text
stringlengths 13
957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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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전자기학}}
[[파일:VFPt metal balls largesmall potential.svg|thumb]]
'''전위'''({{lang|en|電位}}, {{lang|en|electric potential}}) 또는 '''정전 퍼텐셜'''({{llang|en|electrostatic potential}})은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 [[전기장]]에서 단위 전하가 가지게 되는 [[전기적 위치 에너지]]다. [[국제단위계]]에서 단위는 [[볼트 (단위)|볼트]]다.
== 정의 ==
맥스웰 방정식에 따르면 <math> \nabla \times E = - \frac{\partial B}{\partial t} </math>인데, 정전기학에서는 전하가 움직이지 않으므로, 자기장이 없고, 따라서 이 값이 0이 된다. 즉 <math> E </math>의 [[회전 (벡터)|회전]]이 0이 되므로 이를 어떤 스칼라함수의 [[기울기 (벡터)|기울기]]로 표현할 수 있다. 보통 그 스칼라 함수를 <math> -V </math>라고 쓰고, <math> V </math>를 전위라고 부른다. 즉 <math> E = - \nabla V </math>가 된다.
[[위치 에너지]]가 절대적인 값이 아니라, 두 지점 사이의 위치 에너지 차이만이 절대적인 값인 것처럼, 전위 또한 상대적인 값이다. 즉 특정 지점의 전위는 임의로 정의할 수 있고, 두 지점의 [[전위차]]만이 물리적 의미를 갖는다. (전위차는 [[전압]]이라고도 불린다.) 수학적인 이유는 <math> V </math>에 어떤 상수를 더해준 값인 <math> V+a </math>에 대해서도 <math> E = - \nabla V = - \nabla \left(V + a \right) </math>가 되어 같은 전기장이 나오기 때문이다.
다만, 이론 물리학에서는 통상적으로 계에서 "무한히 먼 곳"에서의 전위를 0으로 놓는다. [[전기 회로]]에서는 보통 [[접지]](接地, {{lang|en|ground}})의 전위를 0으로 놓거나, 아니면 회로도에 어느 점의 전위를 0으로 정의하는지 표시한다.
전위는 에너지와 전하의 비(단위전하가 가지고 있는 정전기 퍼텐셜 에너지)이다. 즉, 전위의 [[국제단위계|국제 단위]]인 [[볼트 (단위)|볼트]]는 다음과 같다.
: 볼트(V) = [[줄 (단위)|줄]](J)/[[쿨롱]](C).
:<math> \Delta V = V_f - V_i = { U_f \over q } - { U_i \over q } = { \Delta U \over q } </math>
:<math> \Delta V = V_A - V_B = { \Delta U \over q_0 } = - { \int_{B}^{A} { \vec{E} \cdot d \vec{s} } } </math> (전위차의 정의)
:<math> V = { U \over q_0} </math> (전위의 정의)
:<math> V_f - V_i = - { \int_{i}^{f} { \vec{E} \cdot d \vec{s} } } </math>
두 점의 전위차(<math>V_f- V_i</math>)는 두 점 사이의 전기장을 선적분 한 값이다. 이때, 전기장은 [[보존장]]이기 때문에 적분구간의 모양은 상관 없고, 적분구간의 시작점과 끝점만 중요하다.
=== 하나의 점전하에 의해 생기는 전위 ===
<math> V = { 1 \over 4 \pi \epsilon_0 } { q \over r } </math>
: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존재하는 [[점전하]] q가 있을 때, 이 전하에서 r만큼 떨어진 곳의 전위는 위의 공식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 이 공식은 무한히 먼 곳의 전위를 0V라고 놓은 다음에 세운 공식이다.
: <math> \epsilon_0 </math> = 진공의 [[유전율]]
=== 여러 점전하에 의해 생기는 전위 ===
<math> V = \sum_{i=1}^{n} V_i = { 1 \over 4 \pi \epsilon_0 } \sum_{i=1}^{n} {q_i \over r_i}</math>
: 공간에 점전하 n개가 존재할때, 특정 지점의 전위는 위의 공식과 같이 구할 수 있다.
: <math>q</math> = 각 전하의 전하량
: <math>r</math> = 전위를 구할 지점에서 각 전하까지의 거리
=== [[전기 쌍극자]]의 전위 ===
<math> V = { 1 \over 4 \pi \epsilon_0 } { {p \cos \theta} \over r^2}</math>
<br />
=== 연속적인 전하 분포 ===
<math> V = \int_ {} dV = {1 \over 4 \pi \epsilon_0} \int_ {} {dq \over r} </math>
<br />
=== [[전기장]]과의 관계 ===
<math>\vec{E} = -\nabla V </math>
<math>V = -\int \vec{E} \cdot d\vec{s}</math>
=== 대전입자 계의 전기 퍼텐셜 에너지 ===
<math> U = W = q_2V = {1 \over 4 \pi \epsilon_0} </math>
== 같이 보기 ==
* [[전기적 위치 에너지]]
{{전거 통제}}
[[분류:전자기학]]
[[분류:정전기학]]
[[분류:퍼텐셜]]
[[분류:전압]]
[[분류:물리량]] |
'''축전'''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 [[축전기]](蓄電器): 회로에서 전기 에너지를 저장하는 장치
* [[축제|축전]](祝電): 각종 오락거리가 제공되는 큰 행사
== 같이 보기 ==
* {{in title|축전}}
{{동음이의}}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전류 (오대)|물리학|중국 [[오대십국 시대]] [[오월]]의 왕.}}
{{전자기학}}
[[파일:Ohm's Law with Voltage source TeX.svg|섬네일]]
'''전류'''(電流, electric current)는 [[전하]]의 흐름으로, 단위 시간 동안에 흐른 전하의 양으로 정의된다.<ref name="Lakatos">Lakatos, John; Oenoki, Keiji; Judez, Hector; Oenoki, Kazushi; Hyun Kyu Cho (March 1998). "[http://library.thinkquest.org/10796/ch13/ch13.htm Learn Physics Today!] {{웨이백|url=http://library.thinkquest.org/10796/ch13/ch13.htm |date=20090227065653 }}". Lima, Peru: Colegio Dr. Franklin D. Roosevelt. Retrieved 2009-03-10.</ref> 전하의 흐름은 [[전선]]과 같은 [[도체]], [[전해질]]의 특성을 갖는 [[이온]], [[플라스마]] 등에서 일어난다.<ref>Anthony C. Fischer-Cripps (2004). [http://books.google.com/books?id=3SsYctmvZkoC&pg=PA13&dq=positive-ions+carrier+current+charge+electrons&lr=&as_brr=3&as_pt=ALLTYPES&ei=RbfWSZnELJeSkASZvbi-Bg The electronics companion]. CRC Press. p. 13. {{ISBN|978-0-7503-1012-3}}.</ref>
전류의 [[SI 단위]]는 [[암페어]]로 1 암페어는 1 [[초 (시간)|초]] 당 1 [[쿨롱]]의 전하가 흐르는 것을 뜻한다. 암페어는 기호 A로 표기한다.<ref name="Lakatos"/>
== 정의와 단위 ==
전류는 일정 시간 동안 흐른 전하량의 비율로 정의된다.<ref name="장요한">장요한 외 공저, 기초회로이론, 학문사, {{ISBN|89-467-5054-5}}, 43쪽</ref>
: <math> I = { dQ \over dt } </math>
: <small> I-전류, Q-전하, t-시간</small>
전류의 SI 단위는 [[암페어]]이고 기호 A로 표기한다. 1 암페어는 1 초에 1 쿨롱의 전하가 흐른 것을 뜻한다.<ref name="장요한"/>
: <math> A = { C \over s } </math>
: <small> A-암페어, C-쿨롱, s-초</small>
: <small> mA-밀리암페어, µA-마이크로암페어, nA-나노암페어</small>
== 종류와 밀도 ==
전류의 종류로는 [[도체]]에서 일어나는 전하의 흐름인 전도 전류와 [[진공관]]과 같은 것에서 일어나는 전하를 갖는 대전 입자의 흐름인 대류 전류가 있다. 전도 전류는 금속과 같은 도체에서 [[원자]]는 물체의 결합구조를 유지한채 전자의 이동만으로 이루어지는 전류인 반면, 대류 전류는 대전 입자 자체가 이동하여 일어나는 전류이다. 대류 전류는 전도 전류와 달리 [[옴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ref name="FAW">FAWWAZ T.ULABY, 이문수 외 역, 전자기학, 교보문고, 1998, {{ISBN|89-7085-238-7}}, 132-137쪽</ref>
전류의 방향에 대해 수직인 단면에서 단위면적 당 전류의 세기를 [[전류밀도]]라고 한다. [[SI 단위]]는 [[제곱미터]] 당 [[암페어]](A/m²)이다.<ref>화학용어사전, 일진사, 2006, {{ISBN|89-429-0903-5}}</ref> 정의에 따라서 전류와 전류밀도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관계가 성립한다.
:<math>I = \mathbf{J} \cdot \mathbf{A}</math>
: <small> I-전류, J-전류밀도, A-전류가 흐르는 단면적</small>
전류밀도는 전류의 종류에 따라 전도전류밀도와 대류전류밀도로 구분된다.<ref name="FAW"/>
=== 직류와 교류 ===
{{본문|직류|교류}}
도체에서 일어나는 전하의 흐름인 전도 전류는 한 방향으로 연속하여 흐르는 [[직류]]와 일정한 주기에 따라 전류의 방향이 바뀌는 [[교류]]로 구분된다. 직류와 교류의 전류 흐름이 다른 것은 전류를 만드는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전지]]와 같이 일정한 [[전위차]]가 유지되는 [[전원]]에 연결된 [[전기회로]]는 양극에서 음극으로 지속적인 전류가 흐르게 된다. 한편, 교류는 [[발전기]]와 같은 것을 전원으로 한 전류이다. 현재 대부분의 가정에는 [[교류]]전원이 공급되나, 가전제품에는 주로 [[직류]]가 사용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전기 제품은 [[교류]]를 [[직류]]로 바꾸는 [[정류기]]를 사용하거나 둘 다 같이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 앙페르의 법칙 ==
[[파일:Electromagnetism.svg|섬네일|전류와 자기장]]
{{본문|앙페르의 회로법칙}}
전류가 흐르는 도선에는 오른쪽 그림과 같이 [[자기장]]이 형성되는데 이를 [[앙페르의 회로법칙]]이라고 한다. 앙페르의 회로법칙은 [[전자기역학]]의 성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ref>쑨자오룬, 심지언, 지도로 보는 세계 과학사, 시그마북스, 2009, {{ISBN|89-8445-333-1}}, 350-351쪽</ref>
== 옴의 법칙 ==
{{본문|옴의 법칙}}
직류 전기회로에서 전류의 세기는 [[전원]]의 [[전압]]과 회로의 [[전기저항]]에 의해 결정되어 전압의 크기에 비례하고 전기저항의 크기에 반비례한다. 이를 [[옴의 법칙]]이라 한다.<ref>김상진, 전기공학, 성안당, 2000, {{ISBN|89-315-2191-X}}, 150-151쪽</ref>
: <math> I = { E \over R } </math>
: <small> I-전류, E-기전력(전압), R-전기저항</small>
한편 교류에서는 전기저항 대신 다음의 식과 같이 [[임피던스]]가 전류의 세기에 관계한다. 따라서, 비록 저항이 직접 관여하지는 않지만 교류에서도 여전히 옴의 법칙이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ref>기전연구사, 전기회로계산법의 완성, {{ISBN|90-70032-57-0}}, 165-166쪽</ref>
: <math> I = { E \over Z } </math>
: <small> I-전류, E-기전력(전압), Z-임피던스</small>
== 전류의 방향 ==
[[전기회로]]에서 실제 [[전자]]의 흐름은 음극(-)에서 양극(+)으로 진행한다. 그러나, 최초 정의한 전류의 흐름은 실제 전자의 [[운동 (물리학)|운동]]과 다르게 양극(+)에서 음극(-)인 양전하의 흐름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실제 전류가 흐르는 방향이 정반대로 정의한 까닭은 전류의 흐름을 발견할 당시 과학자들이 전자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다.<ref name="장요한2">장요한 외 공저, 기초회로이론, 학문사, {{ISBN|89-467-5054-5}}, 61-63쪽</ref> [[정공]], [[양이온]]처럼 양전하의 이동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전류의 방향은 양전자의 이동 방향과 같은데, 양전하가 이동할 때나 음전하가 이동할 때 만들어진 전류에 현상적인 차이는 없으므로 옛부터 전류의 방향을 양전하의 흐름으로 통일하였다.<ref name="장준성 1">장준성 외 공저, 고등학교 물리 I, 지학사, 2002년 교육과학기술부 검정, p.98</ref>
[[1830년대]] [[마이클 패러데이]]는 아래 그림처럼 [[전해질|전해전도]] 실험을 하였다.
{| class="toccolours" style="border: 2px solid #aeffae; margin: 0 0 1em 1em; font-size: smaller; width:100%;"
|style="width:254px;"| [[파일:AgNO3 ElectroLysis Korean.png|250px]]
|style="text-align:left;" | '''실험 결과'''<br />1. 질산염(AgNO<sub>3</sub>) 수용액에 은 막대와 강철 스푼을 넣고 [[전지]]와 연결한다. <br /> 2. 질산염 수용액에 있는 [[이온]]들에 의해 전해전도가 일어난다. <br /> 3. 전류의 크기와 비례하여 [[강철]] 스푼에 [[은]]이 축적되어 도금된다.<ref group="주해">현대의 도금 공정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진행된다.</ref>
|style="width:202px;"| [[파일:Current notation.svg|200px]]<br />실제 전자의 흐름(녹색)과 반대로 전류의 흐름(적색)은 양극에서 음극으로 흐르는 것으로 정의된다.
|}
패러데이는 이 실험을 통해 전해질의 전도를 통해 축적한 은의 양을 측정하여 전류의 이동을 입증하였으며, 현대 [[SI 단위]]를 정의하기 전까지 전류의 단위 1 [[암페어]]는 "1초 동안 0.001118 [[그램]]의 은을 축적한 전류의 세기"로 정의했었다. 또한, 패러데이는 계속하여 새로운 은 원자를 제공하는 은막대를 양극(anode), 은 원자가 축적되는 강철 쪽을 음극(Cathode)로 정의하고 전류가 양극에서 음극으로 흐른다고 보았다. 이때문에 전류가 실제로는 전자의 흐름이라는 게 밝혀진 오늘날에도 전류의 방향은 실제 전자의 운동과는 반대로 여전히 양극에서 음극으로 흐른다고 정의한다.<ref name="장요한2"/>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류밀도]]
* [[교류]]
* [[직류]]
* [[전자기 유도]]
* [[전압]]
* [[전력]]
* [[전기저항|저항]]
* [[마찰전기]]
* [[옴의법칙]]
* [[감전]]
== 주해 ==
<references group="주해"/>
== 각주 ==
{{각주}}
{{전거 통제}}
[[분류:전류| ]]
[[분류:전자기학]]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저항|전기저항}}
{{전자기학}}
'''전기저항'''(電氣抵抗, {{lang|en|electrical resistance}})은 [[전기 전도체|도체]]에서 [[전류]]의 흐름을 방해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물리량]]이다. [[국제단위계]] 단위는 [[옴 (단위)|옴]]이고 <math>\Omega</math>로 나타낸다.<ref>이돈응, 《무대음향(1)》, 교보문고, 2000년, {{ISBN|978-89-7085-320-8}}, 108쪽</ref> [[전기 회로]] 이론에서는 간단히 줄여 '''저항'''이라고 부른다. 반대로 전기를 얼마나 잘 흐르게 하는 지를 나타내는 물리량은 '''전기 전도도'''(電氣傳導度, electrical conductance)라고 하고 <math>\sigma</math>로 나타낸다. 전기 전도도는 전기저항의 역수이다.<ref name="김동영_24">김동영, 《반도체공학》, 한빛미디어, 2011년, {{ISBN|978-89-7914-896-1}}, 24</ref>
== 개요 ==
[[파일:Metal film resistor.jpg|섬네일|금속피막 [[저항기]]. 사진에 표시된 값은 6.5 <math>M \Omega</math>이다.]]
[[파일:Resistivity geometry.png|섬네일|일정한 비저항을 갖는 물체의 저항은 길이에 비례하고 단면적에 반비례한다.]]
전기저항은 [[세기 성질과 크기 성질]]을 모두 보인다. 물질마다 서로 다른 값을 갖는 비저항은 전기저항의 세기 성질이고, 물질의 모양은 크기 성질이다. 전기저항의 [[비저항]](比抵抗, resistivity)<ref>저항률이라고도 한다. 특정 조건 아래서 물질이 갖는 고유 저항 성분을 말한다.</ref>은 물질에 따라 서로 다르다.
물체의 저항은 비저항이 클수록, 물체의 길이가 길수록, 단면적이 작을수록 커진다. 어떤 물질의 비저항을 <math>\rho</math>, 길이를 <math>L</math>, 단면적을 <math>A</math>라고 할 때 저항 <math>R</math>의 크기는 다음과 같은 관계를 보인다.<ref>홍순관, 《기초전자실험》, 한빛미디어, 2011년, {{ISBN|978-89-7914-895-4}}, 18쪽</ref>
:<math> R = \rho \frac{L}{A} </math>
전기 회로에서 저항은 [[전류]]의 흐름을 방해하여 [[전압 강하]]를 일으킨다.<ref>홍순관, 《기초전자실험》, 한빛미디어, 2011년, {{ISBN|978-89-7914-895-4}},169쪽</ref> 따라서 회로의 두 지점 사이의 저항 <math>R</math>은 [[전압]] <math>V</math>와 [[전류]] <math>I</math>의 비로 나타낼 수 있다.<ref>이태원, 《일러스트로 보는 기초전기전자》, 한진, 2013년, {{ISBN|978-89-8641-254-3}}, 53쪽</ref>
:<math> R = \frac{V}{I} \!</math>
한편, 회로의 전기 전도도는 비저항의 역수로 나타낼 수 있다.<ref name="김동영_24" />
:<math> \sigma = {1 \over \rho} </math>
: <math> \sigma </math> - 전기 전도도, <math>\rho</math> - 저항
== 비저항 ==
{{본문|비저항}}
{{참고|도체|부도체|반도체}}
비저항의 크기가 작아 전기를 잘 전달하는 물질을 [[전기 전도체|도체]], 비저항의 크기가 커서 전기를 잘 전달하지 못하는 물질을 [[부도체]]라고 한다. [[반도체]]는 주어진 조건에 따라 도체와 부도체의 특징을 모두 보일 수 있는 물질이다.<ref>신현식 김현주, 《정보통신공학개론》, 광문각, 2008년, {{ISBN|978-89-7093-463-1}}, 241-242쪽</ref>
잘 알려진 물질의 [[상온]] 비저항은 다음과 같다.<ref>[http://hyperphysics.phy-astr.gsu.edu/hbase/Tables/rstiv.html Resistivity and Temperature Coefficient at 20 C]</ref>
{| class="wikitable"
|+ 물질의 상온 비저항
|-
! 물질 !! 비저항 <br / > (단위: <math> \times 10^{-8} \Omega \cdot m</math>
|-
| [[은]] || 1.59
|-
| [[구리]] || 1.68
|-
| [[금]] || 2.44
|-
| [[알루미늄]] || 2.65
|-
| [[텅스텐]] || 5.6
|-
| [[니켈]] || 6.99
|-
| [[철]] || 9.71
|-
| [[백금]] || 10.6
|-
| [[납]] || 22
|}
=== 온도와의 관계 ===
물질의 비저항은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 온도에 따른 비저항 변화 비율을 저항온도계수라고 하고 일반적으로 <math>\alpha</math>로 나타낸다. 온도의 변화를 <math>\Delta t</math>라고 하면 상온 비저항 <math>R</math>에 대한 변화된 비저항 <math>R^{'}</math>는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ref>이시웅, 《건축 설비》, 광문각, 2007년, {{ISBN|978-89-7093-423-5}}, 551쪽</ref>
:<math> R^{'} = R + \alpha \cdot \Delta t </math>
전기회로에 사용되는 [[저항기]]의 저항온도계수는 1백만분의 1 °C를 기준으로 하는 ppm/°C 로 나타낸다. 금속피막형 저항기의 경우 저항온도계수는 약 ±50 - ± 200 ppm/°C 정도이다.<ref>유석기, 《전기 전자 통신 기초실습》, 백티닷컴, 2008년, {{ISBN|978-89-9335-503-1}}, 35쪽</ref>
== 옴의 법칙 ==
{{본문|옴의 법칙}}
[[파일:FourIVcurves.svg|섬네일|500px|네 종류의 전기 회로 소자에서 나타나는 전류-전압 특성. 저항값이 큰 저항기, 저항값이 작은 저항기, [[다이오드]], [[전지]] ]]
독일의 물리학자 [[게오르크 옴]]이 발견한 [[옴의 법칙]]은 전류와 전압 사이에 일정한 비례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법칙이다.
:<math>I \propto V</math>
:<math>I</math>: 전류, <math>V</math>: 전압
옴은 전압과 전류의 이러한 비례 관계를 토대로 전기저항을 정의하고 다음과 같은 관계를 정리하였다.<ref>정완상, 《맥스웰이 들려주는 전기자기 이야기》, 자음과모음, 2005년, {{ISBN|89-5440-354-9}}, 55쪽</ref>
:<math> V = I R</math>
:<math>I</math>: 전류, <math>V</math>: 전압, <math>R</math>: 저항
== 온저항 ==
{{본문|온저항}}
[[전기 회로]]에서 [[직류]]와 달리 [[교류]]는 일정한 주기를 갖고 [[전압]]과 [[전류]]가 변화한다.<ref>Hayt, William (1989). Engineering Electromagnetics (5th ed.). McGraw-Hill. p. 312. {{ISBN|0-07-027406-1}}.</ref> 일반적으로 전압, 전류의 변화는 [[사인파]] 형태를 띈다.<ref name="최윤식">최윤식, 《기초 회로 이론》, 한빛미디어, 2011년, {{ISBN|978-89-7914-894-7}}, 320쪽</ref> 따라서 한 주기를 놓고 보았을 때 전체 전압 또는 전류의 총 변화량은 0 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실제 전기 회로가 하는 [[일 (물리)|일]]의 양은 0 이 아니므로 특정 순간의 전압과 전류의 양인 순시값과 일정 주기에서 실재 투여되는 [[실효값]]을 고려하여야 한다.<ref>이기영, 《대학물리학》, 한빛아카데미, 2011년, {{ISBN|978-89-7914-897-8}}, 477-478쪽</ref> [[온저항]]({{llang|en|Impedance|임피던스}})은 교류에 [[옴의 법칙]]을 적용하여 교류의 전류에 대한 전압의 비를 나타낸 것이다. 약어로는 <math>Z</math>가 쓰인다. 회로 이론에서는 영어인 임피던스로 표기되는 경우가 더 많다.<ref name="RFDH">[http://www.rfdh.com/bas_rf/imp.htm 임피던스], RFDH</ref>
:<math>Z = \frac{V}{I}</math>
:<math>Z</math>: 온저항, <math>I</math>: 전류, <math>V</math>: 전압
일반적인 공급 전원은 동상(同相, in phase)이므로 전압과 전류의 위상과 순간 변위는 같다고 간주하여 계산할 수 있다.<ref>교류에서 전압과 전류의 변화 주기가 같을 때 동상 관계에 있다고 한다 - Earl D. Gates, 강동욱 외 역, 《전기전자공학개론》, 홍릉과학출판사, 2003년, {{ISBN|89-7283-315-0}}, 143쪽</ref> 전기 회로가 저항 성분만을 갖는다면 전압과 전류의 위상변화는 없고 온저항 역시 전원의 실효 전압과 실효 전류로만 계산될 수 있다. 그러나, [[유도계수]]를 갖는 [[유도자]]나 [[전기용량]]을 갖는 [[축전기]]는 전류와 전압의 위상을 변화시킨다. 순수한 유도계수 회로나 전기용량 회로에서 전압과 전류는 90°의 위상차이를 보인다. 실재 모든 전기 회로는 저항 성분이 함께 나타나기 때문에 전압과 전류의 위상차는 0°와 90°사이의 어떠한 값이 된다.<ref>Earl D. Gates, 강동욱 외 역, 《전기전자공학개론》, 홍릉과학출판사, 2003년, {{ISBN|89-7283-315-0}}, 163쪽</ref>
[[파일:VI phase.svg|섬네일|가운데|300px|[[축전기]](위)와 [[유도자]](아래)의 전압 전류 위상 변화]]
교류 전기 회로에서 온저항은 전압과 전류의 위상차에 따른 변화를 반영하여 계산하게 된다. 위상차에 의해 발생하는 저항 성분의 [[변위]] 백터를 [[반응저항]]이라고 한다. 반응저항은 빛이나 열을 발생시키는 일을 하지는 않지만 전기 에너지의 일부를 흡수하거나 배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온저항의 값에 영향을 미친다.<ref name="RFDH" /> 따라서 교류 회로의 전기저항은 빛과 열을 발생시키며 [[전기 부하]]의 역할을 하는 실효저항과 유도자나 축전기 등의 위상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반응저항으로 구분될 수 있다. 실재 전기 부품은 유도자나 축전기 역시 스스로도 자체 저항값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순수한 유도계수나 전기용량에 부품 자체의 실효저항을 직렬 연결한 것으로 파악하는 [[등가회로]]를 이용하여 계산한다.<ref>전자기술연구회, 《초보의 전기전자교본》, 기문사, 1988년, {{ISBN|978-89-7723-038-5}}, 103쪽</ref>
전기용량에 의한 위상 변화는 전류가 전압보다 90° 앞서고, 순수 유도계수에 의한 위상 변화에서는 전류가 전압보다 90°뒤에 놓인다.<ref>Earl D. Gates, 강동욱 외 역, 《전기전자공학개론》, 홍릉과학출판사, 2003년, {{ISBN|89-7283-315-0}}, 164-166쪽</ref> 어느 경우든 전기회로에서 이러한 위상 변화는 결국 전류 진행 방향에 반대되는 기전력을 일으켜 전류의 흐름을 방해하게 된다. 이것이 빛과 열을 발생하지 않음에도 이들이 저항으로 분류되는 이유이다.<ref>이태원, 《일러스트로 보는 기초전기전자》, 한진, 2013년, {{ISBN|978-89-8641-254-3}}, 161-162, 177-178쪽</ref> 일반적으로 실효저항은 <math>R</math>, 유도반응저항은 <math>X_L</math>, 용량반응저항은 <math>X_C</math>로 표기한다.
유도반응저항 <math>X_L</math>과 용량반응저항 <math>X_C</math>는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ref name="김응묵">김응묵, 《전기이론》, 기문사, 1990년, {{ISBN|89-7723-034-9}}, 258쪽</ref>
:<math>X_L = 2 \pi f \cdot L = \omega L</math>
:<math>X_L</math>: 유도반응저항, <math>2 \pi f = \omega</math>: 주파수 성분에 따른 위상, <math>L</math>: 유도계수
:<math>X_C = \frac{1}{2 \pi f \cdot C} = \frac{1}{\omega C}</math>
:<math>X_C</math>: 용량반응저항, <math>2 \pi f = \omega</math>: 주파수 성분에 따른 위상, <math>C</math>: 전기용량
온저항은 실효저항과 반응저항의 [[제곱평균제곱근]]으로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계산한다.<ref name="김응묵" />
:(온저항)<sup>2</sup> = (실효저항)<sup>2</sup> + (반응저항)<sup>2</sup>
:: = (실효저항)<sup>2</sup> + (유도반응저항 - 용량반응저항)<sup>2</sup>
온저항을 <math>Z</math>라 하면,
:<math>Z = \sqrt{R^2 + ( X_L - X_C )^2}</math>
온저항은 반응저항의 위상 변화를 [[복소평면]]에 두어 계산할 수 있다. 이때 온저항은 다음과 같이 나타낸다.<ref>[http://hyperphysics.phy-astr.gsu.edu/hbase/electric/impcom.html Use of Complex Impedance]</ref>
:<math>Z = R + j X</math> (<math>j</math>는 [[허수 단위]])
[[파일:Complex Impedance.svg|섬네일|가운데|250px|복소평면에 놓인 온저항. 실효저항이 실수축, 반응저항이 허수축에 놓이고 온저항은 이 둘의 백터로 표시된다.]]
온저항 백터를 나타내는 복소평면에서 허수축은 반응저항에 따른 위상 변화의 발생을 나타낸다. 반응저항이 0보다 크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회로에서 측정하는 두 지점 사이에 흐르는 전류의 위상이 전압 위상의 변화보다 지연된다는 의미이고 0보다 작다면 그 반대를 뜻한다.<ref>鈴木 雅臣, 〈초보자를위한임피던스강좌〉, 《월간 전자기술》, 2004년 10월호, 65-74쪽</ref>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고전 전자기학|전기 이론]]: [[옴의 법칙]], [[전력]], [[전압]], [[전류]]
* [[전기 회로]]: [[저항기]], [[축전기]], [[유도자]]
== 각주 ==
{{각주}}
{{전거 통제}}
[[분류:전기저항| ]]
[[분류:전자공학]]
[[분류:물리량]]
[[분류:전기]]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전자기학}}
'''전력'''(電力, electric power)은 일반적으로 [[전력량|전기에너지]]가 [[일 (물리학)|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며, 작동적 정의는 단위 시간당 [[전류]], 또는 단위 시간당 전달되거나 변환된 전기 에너지에 의해 수행되는 일의 양이다.<ref name="전자기술연구회">전자기술연구회, 《초보의 전기전자 교본》, 기문사, 1988년, {{ISBN|978-89-7723-038-5}}, 22쪽</ref> 전기설비의 전력소비능력(전기에너지를 얼마나 빨리 소비하는지를 나타내는 물리량), 발전설비의 발전용량, 송변전설비의 송전능력 등을 표현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전력은 P로 표시되고, 전력의 단위는 [[와트]](Watt)이며 W로 표시된다.
== 정의 ==
[[파일:Ohm's Law with Voltage source TeX.svg|섬네일|간단한 전기회로. <br /> '''v''': [[전원]], '''i''': 전류, '''R''': 저항]]
전기 회로에서 전력은 전류와 [[전기저항]] 사이의 관계에 의해 정의된다. 그림과 같은 단순한 전기 회로에서 전기저항 R은 전류를 소비하면서 열을 발생시킨다.<ref name="Raymond_643">Raymond A. Serway, John W. Jewett, 대학물리학교재편찬위원회, 《대학물리학 II》, 북스힐, 2011년, {{ISBN|978-89-5526-554-5}}, 643쪽</ref>
1840년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프레스콧 줄|제임스 프레스콜 줄]]은 전기 회로에서 저항에 의해 발생하는 열량이 다음과 같은 관계를 이룬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를 '''줄의 법칙''' 이라고 한다.<ref name="전자기술연구회" />
:<math>Q=I^2Rt</math>
:<small>(Q: 열량[J], I: 전류의 세기[A], R: 도체의 전기저항[Ω], t: 전류가 흐르는 시간[s])</small>
전기 회로의 저항에서 열이 발생하는 까닭은 저항을 통과하는 전자들이 저항 내의 원자들과 충돌하면서 [[전기적 위치 에너지]]를 잃기 때문이다. 전자들이 잃은 에너지는 저항 내에 있는 원자들의 진동 에너지로 전환되고, 그 결과 열이 발생한다.<ref name="Raymond_643" /> 이렇게 발생하는 열을 줄열이라고 하고 그러한 변환을 <math>I^2R</math> 손실이라고 한다.<ref>Raymond A. Serway, John W. Jewett, 대학물리학교재편찬위원회, 《대학물리학 II》, 북스힐, 2011년, {{ISBN|978-89-5526-554-5}}, 644쪽</ref> 전력은 전기 회로 전체가 소비하는 단위 시간당 줄열 발생량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전압]]은 전류와 저항의 곱으로 나타낼 수 있으므로 위 식은 아래와 같이 간단히 할 수 있다.<ref>이기영, 《대학물리학》, 한빛아카데미, 2011년, {{ISBN|978-89-7914-897-8}}, 406쪽</ref>
:<math> P = VI </math>
:<small>P: 전력, V: 전압, I: 전류</small>
따라서 전력은 전압과 전류의 곱으로 나타낼 수 있다.
== 구분 ==
일정한 방향으로 계속하여 흐르는 전류를 [[직류]]라고 하고, 주기적으로 전류의 방향이 바뀌는 전류를 [[교류]]라고 한다. 전기 회로에서 저항으로 작용하는 구성 요소인 [[전기 부하]]는 직류와 교류에서 서로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에 전력 역시 직류 전력과 교류 전력의 계산 방식이 다르다.<ref name="이기영_476477">이기영, 《대학물리학》, 한빛아카데미, 2011년, {{ISBN|978-89-7914-897-8}}, 476-477쪽</ref>
한편, [[교류 전력]]의 경우 [[파동]]의 성질을 지니기 때문에 [[위상]]에 따른 성질을 지닌다.
== 직류 전력 ==
직류 전력의 계산은 전력의 정의에서와 같이 간단히 [[기전력]]을 일으키는 전압과 전류의 양으로 계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전기 회로에 1.5V의 전압으로 300 mA의 전류가 흐른다면 전력은 0.45 W 가 될 것이다. 전기 회로에 여러 전기 부하가 직렬 또는 병렬로 연결되면 전체 전력은 각 부분 부하가 소비하는 전력의 합과 같다.<ref>Earl D. Gates, 강동욱 외 역, 《전기전자공학개론》, 홍릉과학출판사, 2003년, {{ISBN|89-7283-315-0}}, 77쪽</ref>
:<math>P_t = P_1 + P_2 + \cdots + P_n</math>
== 교류 전력 ==
{{본문|교류 전력}}
[[파일:Sine wave 2.svg|섬네일|일반적인 교류는 사인파의 형태를 띈다.]]
교류의 경우엔 계산이 몹시 복잡해진다. 교류는 [[패러데이 전자기 유도 법칙]]에 따라 생성되어 일정한 주기를 갖고 방향을 바꾸는<ref>Hayt, William (1989). Engineering Electromagnetics (5th ed.). McGraw-Hill. p. 312. {{ISBN|0-07-027406-1}}.</ref> [[파동]] 에너지이다. 발전원에 따라 다양한 파형이 있을 수 있으나 안정적인 에너지원으로 쓰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전원은 [[사인파]]의 형태를 띈다.<ref name="최윤식">최윤식, 《기초 회로 이론》, 한빛미디어, 2011년, {{ISBN|978-89-7914-894-7}}, 320쪽</ref> 교류의 주기는 보통 50 [[헤르츠|Hz]] 또는 60 Hz가 쓰이며, 대한민국의 경우 60Hz이다.<ref>[http://www.mykit.com/kor/ele/ac.htm 교류와 직류], 마이키트</ref>
교류의 전압과 전류는 아래의 식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ref name="최윤식" />
:<math> V(t) = V_m cos(\omega t+\theta_v) </math>
:<small>V(t): 순간 전압, V<sub>m</sub>: 최대 전압, <math>\omega t</math>: 위상, Θ<sub>t</sub>: 전압의 순간 변위</small>
:<math> i(t) = I_m cos(\omega t+\theta_i) </math>
:<small>i(t): 순간 전류, I<sub>m</sub>: 최대 전류, <math>\omega t</math>: 위상, Θ<sub>i</sub>: 전류의 순간 변위</small>
따라서 특정 순간의 전력은 아래와 같이 나타낼 수 있다.<ref name="최윤식" />
: <math>P(t) = V(t) \cdot I(t) </math>
:: <math>= V_m cos(\omega t+\theta_v) \cdot I_m cos(\omega t+\theta_i)</math>
:: <math> = \frac{V_m I_m}{2} cos(\theta_v - \theta_i) + \frac{V_m I_m}{2} cos(2 \omega t + \theta_v + \theta_i)</math>
일반적인 공급 전원은 동상(同相, in phase)이므로 전압과 전류의 위상과 순간 변위는 같다고 간주하여 계산할 수 있다.<ref>교류에서 전압과 전류의 변화 주기가 같을 때 동상 관계에 있다고 한다 - Earl D. Gates, 강동욱 외 역, 《전기전자공학개론》, 홍릉과학출판사, 2003년, {{ISBN|89-7283-315-0}}, 143쪽</ref> 위의 교류 전력식 P(t)는 일정한 주기를 갖는 주기 함수이다.<ref>최윤식, 《기초 회로 이론》, 한빛미디어, 2011년, {{ISBN|978-89-7914-894-7}}, 321쪽</ref> 교류 전력은 일정한 주기를 갖기 때문에 주기를 단위로 하여 합하면 상쇄되어 0 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나 매 시각의 전력은 분명 0 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 줄열을 발생시키는 유효 전력을 계산할 필요가 있다. 전기 회로 이론에서는 [[조화 함수]]를 사용하여 [[제곱평균제곱근]]의 양으로 전압과 전류의 [[실효값]]를 계산하고 이를 통해 유효 전력을 나타낸다.<ref>이기영, 《대학물리학》, 한빛아카데미, 2011년, {{ISBN|978-89-7914-897-8}}, 477-478쪽</ref>
교류 전력을 사용하는 전기 회로에서 부하를 통과하는 전류는 부하의 특성에 따라 전압과 전류의 위상에 차이가 생기게 된다.<ref name="전자기술연구회_73">전자기술연구회, 《초보의 전기전자 교본》, 기문사, 1988년, {{ISBN|978-89-7723-038-5}}, 73쪽</ref> 이 때문에 교류 전기 회로의 전력은 [[전기저항]](Resistance), [[유도계수|유도용량]](Inductance), [[전기용량|정전용량]](Capacitance)<ref>이 셋을 합하여 흔히 RLC라고 한다. 전기 회로의 기본 구성 요소이다. - 이태원, 《일러스트로 보는 기초전기전자》, 한진, 2013년, {{ISBN|978-89-8641-254-3}}, 188-189쪽</ref>에 대하여 따로 계산되기도 한다.<ref name="전자기술연구회_73" /> 전류가 각각의 부하를 통과할 때 줄열을 발생시키는 유효 전력은 저항 성분에서만 발생하고 [[유도자]]나 [[축전기]]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ref>최윤식, 《기초 회로 이론》, 한빛미디어, 2011년, {{ISBN|978-89-7914-894-7}}, 321-322쪽</ref>
[[파일:Cmplxpower.svg|섬네일|교류 전력 삼각형 <br /> '''P''': 유효 전력 <br /> '''Q''': 무효 전력 <br /> '''S''': 복소 전력 <br /> '''φ''': 전류에 대한 전압의 위상]]
교류의 전체 전력은 조화 함수를 이용하여 아래와 같이 나타낸다.<ref name="최윤식_327">최윤식, 《기초 회로 이론》, 한빛미디어, 2011년, {{ISBN|978-89-7914-894-7}}, 327 - 328쪽</ref>
:<math>S = P + j Q</math>
:<small>'''S''': 복소전력, '''P''': 유효전력, '''j''': [[허수 단위]], '''Q''': 무효전력</small>
저항 성분을 통해 발생하는 유효 전력과 달리 유도계수나 전기용량에 의해 소모되는 전력은 빛이나 열을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에 무효 전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무효 전력도 실제 전력 변화에는 관여하기 때문에 유효 전력은 전체 복소 전력의 절대값인 피상 전력을 포함하여 계산하게 된다. 교류 전력 삼각형은 복소 전력과 유효 전력, 무효 전력 간의 관계를 나타낸다.<ref name="최윤식_327" />
:<math>P = |S| cos \theta</math>
:<math>Q = |S| sin \theta</math>
=== 역률 개선 ===
교류 전력에서 실제 부하에 사용되는 전력은 유효 전력이고 무효 전력은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유효 전력을 높이고 무효 전력을 낮추어야 한다. 위 식에서 보면 유효 전력과 무효 전력의 위상이 0 이 될 때 <math>cos 0 = 1 , sin 0 = 0 </math>가 되어 유효 전력은 100% 사용하고 무효 전력은 0 %로 낮추는 이상적인 상태가 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전기회로에서는 이와 같은 이상적인 상태는 불가능하므로 최대한 <math> cos \theta </math>의 값이 1에 가깝게 되도록 노력한다. 이때
<math> cos \theta </math>를 역률이라고 하고 이 값을 크게 하려는 활동을 역률 개선이라고 한다.<ref name="최윤식_327" />
=== 단상 전력과 삼상 전력===
[[파일:Hawkins Electrical Guide - 3phase Elementary 6wire.jpg|섬네일|삼상교류의 발생. 자석 안쪽에 세 축으로 나뉜 전선이 회전하여 삼상 유도 전류를 만드는 것을 설명하는 그림]]
교류는 위상을 가지므로 상의 수에 따라 [[단상전력]]과 [[3상전력]]으로 나뉜다. 상이 하나인 것은 단상, 셋인 것은 삼상이라고 부른다. 삼상은 단상 교류 셋을 위상을 달리하여 결합한 것이다.<ref>신현승 외, 《자동차전기》, 골든벨, 2003년, {{ISBN|978-89-7971-443-2}}, 223-224쪽</ref>
단상전력은 위에서 설명한 일반적인 전력 관계식을 따른다.
: <math> P = IV </math> (에너지 전송의 비율)
: <math> P = I^2R </math> (저항으로 인한 손실)
: <math> P = {V^2 \over R} </math> (저항으로 인한 손실)
삼상전력의 상전압 <math>V_p</math> 과 선전압 <math>V_L</math> 은 아래의 관계식을 따른다.<ref>최충석 김진수, 《소방 전기회로》, 동화기술, 2008년, {{ISBN|978-89-4251-351-2}}, 271-272쪽</ref>
:<math> P = 3V_p i = \sqrt{3}V_l i </math>
삼상전력은 순간 전력 총합이 언제나 일정하기 때문에 [[전동기]]를 가동할 때 일정한 전력을 계속하여 공급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단상에 비해 전기 누설의 위험이 크므로 사용에 주의하여야 한다.<ref>최충석 김진수, 《소방 전기회로》, 동화기술, 2008년, {{ISBN|978-89-4251-351-2}}, 379쪽</ref> 삼상 전력은 [[전동차]]<ref>[https://www.ictr.or.kr/information/others_02.asp 전동차현황] {{웨이백|url=https://www.ictr.or.kr/information/others_02.asp |date=20170417072646 }}, 인천교통공사</ref>나 대형 [[에어컨]]<ref>임준영 김상영 최용원, 〈에어컨팬용 3상 SRM(200와트급)〉, 《전력전자학회 2004년도 전력전자학술대회 논문집(Ⅰ)》, 2004.7, 259 쪽</ref>과 같이 전동기를 계속하여 사용하는 기계에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 사용 ==
{{참고|발전 (전기)|전지}}
전력은 전원을 통해 공급된다. 전원은 크게 보아 직류와 교류로 구분되며 [[가전제품]]이나 [[전자제품]]은 대부분 직류로 작동된다. 그러나 직류를 발전하여 한 지역에 공급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기 때문에<ref>미국의 발전사업 초기 [[토머스 에디슨]]은 직류
발전을 [[니콜라 테슬라]]는 교류 발전을 주장하였다. 이후 경제성면에서 교류 발전이 우월함이 입증되어 세게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 이종호, 《천재를 이긴 천재들》, 글항아리, 2007년, {{ISBN|978-89-5460-436-9}}, 54-56쪽</ref> 대규모 전력 공급은 교류로 제공되며 각각의 전기 기기는 [[정류기]]를 이용하여 교류를 직류로 변환해 사용한다.<ref>이태원, 《일러스트로 보는 기초전기전자》, 한진, 2013년, {{ISBN|978-89-8641-254-3}}, 203-206쪽</ref> 교류를 계속하여 공급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사용하는 기기인 [[휴대전화]]와 같은 이동용 기기에는 [[전지]]가 사용된다.
=== 송전선과 전력 ===
{{참고|송전}}
[[파일:NIGU Strain tower.JPG|섬네일|송전선]]
[[발전소]]에서 공급되는 전류는 [[송전|송전선]]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송전선 역시 일정한 저항을 갖는 도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전기가 전달되는 동안 열을 발생시켜 전력 손실이 일어난다. 줄의 법칙에 따라 같은 전력을 전달할 때 전류와 저항은 반비례 관계에 놓인다. 따라서 송전선의 전력 손실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전선의 저항을 낮추거나 전압을 올려야 한다. 전선의 저항을 낮추는 것은 기술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전압을 올리는 쪽이 경제적이다. 발전소에서 고압의 전류를 송전하는 이유다.<ref name="Raymond_645">Raymond A. Serway, John W. Jewett, 대학물리학교재편찬위원회, 《대학물리학 II》, 북스힐, 2011년, {{ISBN|978-89-5526-554-5}}, 645쪽</ref> 어떤 경우에는 765 kV까지 전압을 올린 고압 전류를 송전한다.<ref>[http://home.kepco.co.kr/kepco/KO/C/htmlView/KOCCHP00301.do?menuCd=FN05030303 765kV송변전사업], 한국전력공사</ref> 이렇게 전송된 전류는 도시나 공장과 같은 소비지 근처의 [[변전소]]까지 전달되고, 이 곳의 [[변압기]]를 통해 22.9 kV로 낮추어진 다음 다시 곳곳에 설치된 변압기를 거쳐 220 V 또는 380V 와 같은 사용 전압으로 낮춰져 쓰인다.<ref
name="Raymond_645" /> 대한민국의 가정용 단상 교류 전압은 220V 이고<ref>[http://home.kepco.co.kr/kepco/KO/H/htmlView/KOHAHP00107.do 전기는 우리 집까지 어떻게 오나요?], 한국전력공사</ref>, 일본이나 대만과 같은 나라에선 110V 가 가정용 소비 전압으로 제공된다.<ref>[http://support-kr.canon-ci.co.kr/contents/KR/KR/8200780300.html 국가별 컬러 및 전원 시스템(전압 및 콘센트)] {{웨이백|url=http://support-kr.canon-ci.co.kr/contents/KR/KR/8200780300.html# |date=20170417070141 }}, Cannon</ref> 사이리스터나 인버터 등 전력 전자공학이 발달한 현재는 손실이 적은 고압직류송전방식이 사용되는 구간이 있다.
== 같이 보기 ==
* [[전력산업]]
* [[전력량]]
* [[에너지 개발]]
* [[발전 (전기)]]
* [[전기]]
* [[전압]]
* [[전류]]
* [[전원]]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Electrical power}}
* [http://home.kepco.co.kr/kepco/KO/C/htmlView/KOCCHP001.do?menuCd=FN05030301 한국의 전력] - [[한국전력]]
* [https://www.energy.gov/energysources/electricpower.htm U.S. Department of Energy: Electric Power]
* [https://web.archive.org/web/20140709030157/http://en.globtek.com/glossary.php#.UvZfsRBdWE8 GlobTek, Inc. Glossary of Electric power Power Supply Terms]
* [https://web.archive.org/web/20200408033145/https://e-electricity.com/ Platform of electric sector]
{{전거 통제}}
[[분류:전력| ]]
[[분류:전자기학]]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벨기에 표}}
'''벨기에 왕국'''({{llang|fr|Royaume de Belgique|루아욤 드 벨지크}}, {{llang|nl|Koninkrijk België|코닝크레이크 벨히어}}, {{llang|de|Königreich Belgien|쾨니히라이히 벨기엔}}, {{llang|en|Kingdom of Belgium}}), 줄여서 '''벨기에'''({{llang|de|Belgien|벨기엔}}, {{llang|fr|Belgique|벨지크}}, {{llang|nl|België|벨히어}})는 [[서유럽]]에 있는 [[입헌 군주국]]이다. 북쪽으로는 [[네덜란드]], 서쪽으로는 [[북해]]와 접해있으며, 동쪽으로는 [[독일]]과 [[룩셈부르크]]와 국경 접하고있고, 남쪽과 남서쪽으로는 [[프랑스]]와 국경 접하고있다. [[베네룩스 3국]] 중 하나이다. 공용어는 [[독일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이다.
== 역사 ==
{{본문|벨기에의 역사}}
=== 독립 ===
{{본문|벨기에 혁명}}
벨기에는 본래 [[네덜란드]]의 남부 지역이었으나 [[네덜란드 독립 전쟁]](1568~1648년) 이후 북부와 분열되면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1793년 [[프랑스]]는 벨기에를 합병하였다.<ref>{{서적 인용 |저자 = 김용구 |제목 = 세계외교사 |초판 = 1989 |판=1995(上{{.cw}}下 合本) |출판사 = 서울대학교 출판부 |ISBN=89-7096-413-4 |쪽=4 |인용문 = 프랑스는 11월 유럽의 현존하는 정부들을 전복하려는 모든 인민들에게 원조를 제공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하였고 1793년 1월에 드디어 루이 16세를 처형하였다. 이때부터 프랑스는 대외팽창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사보이(Savoy), 니스(Nice) 그리고 벨지움을 합방하고 영국, 네덜란드 그리고 스페인에 대하여 전쟁을 선포하였다. }}</ref> [[나폴레옹 전쟁]] 이후 벨기에는 북부의 [[네덜란드 연합 왕국]]과 합쳐지게 되었으나 [[절대주의]]적 통치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교회]]라는 신앙적인 차이로 인해 [[왈롱]]인들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프랑스]] 국내에서 [[7월 혁명]]이 일어난 [[1830년]], 이 혁명에 자극받은 왈롱인들이 8월 5일경 혁명을 일으켰다. 이를 벨기에 사람들은 [[:en:Belgian Revolution|벨기에 혁명]]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이 날을 독립 기념일로 여긴다. 네덜란드가 편성한 진압군은 벨기에군을 간단히 격파하였으나 벨기에를 병합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던 프랑스의 무력 및 외교적 압력으로 인해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1831년]] 휴전을 맺고 [[1839년]]에는 런던조약에 서명하여 벨기에의 [[독립]]을 승인하여야만 했다.
=== 식민지 개척 ===
벨기에는 국가로 인정받은 이후 해군(Marine Royale; [[1865년]]에 해체되었다가 [[1917년]]에 다시 창설)을 창설하고, 식민지 개척을 장려한다. [[레오폴 2세 (벨기에)|레오폴 2세]] 치하인 [[1878년]]에는 콩고 지역을 식민지로 삼아 [[콩고 자유국]]으로 만들었다. 레오폴 2세 지배 당시 콩고 자유국에서는 수백만명의 목숨이 희생되는 무력과 착취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집단 살해 사건은 [[고무 테러]]라고 불린다. [[1899년]] [[조지프 콘래드]]는 자신의 저서 ‘암흑의 핵심’에서 처음으로 레오폴 2세 지배 당시 콩고의 참혹한 역사를 처음으로 고발했다.
이 시기에 관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충격적인 책은 [[1999년]] 아담 호츠쉴드의 ‘레오폴드왕의 유령:식민지 아프리카의 탐욕과 테러, 영웅주의의 이야기’였다. 호츠쉴드는 이 책에서 기근과 [[질병]]으로 죽어간 수천명과 함께 수많은 콩고 [[민중]]들이 [[상아]]와 [[고무]]에 대해 레오폴 2세가 정한 생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 [[학살]]을 당했다고 서술했다. 또한 레오폴 2세는 한번도 자신이 사유지화한 콩고를 방문한 적이 없지만 콩고로부터 착취한 자원은 그로 하여금 궁전과 기념비, 박물관을 짓고 어린 딸에게 호화스런 옷과 빌라를 사줄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학살당한 콩고인의 수가 1000만 명에 달한다고 주장하나 이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
이후 레오폴드의 콩고 자유국 지배의 실태가 알려지면서 국제사회는 물론 본국에서도 규탄의 목소리가 커졌고 1908년 벨기에 의회는 레오폴드에게서 콩고의 지배권을 빼앗아 합병하고 인권침해 금지법안을 제정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벨기에는 [[르완다]]와 [[부룬디]]를 차지하여 벨기에령 [[루안다-우룬디]]를 만들어냈다. 한편 이 시기에 르완다, 부룬디에서 형성된 후투족과 투치족의 민족주의가 1990년대 [[르완다 내전]]의 불씨가 된다.
벨기에령 콩고는 [[1960년]] [[6월 30일]]에 [[콩고 민주 공화국]]으로 독립했고, 벨기에령 루안다-우룬디는 [[1962년]] [[7월 1일]]에 [[르완다]] 공화국과 [[부룬디]] 공화국으로 각각 독립했다.
=== 나치 독일의 지배 ===
벨기에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국토 피해를 가장 많이 본 나라이고,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을 당해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다. 루뱅에서는 [[독일 제국 육군|독일군]]이 자행한 학살로 많은 시민들이 무고하게 죽었다(벨기에 사람들은 이를 [[루뱅 시 학살 사건]]이라 하여 추념하며, 루뱅에서는 지금도 [[독일의 국기|독일 국기]]를 게양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부흥이 가장 먼저 이루어진 나라이며 [[1920년]]에는 [[안트베르펜]]에서 [[올림픽]]이 개최되기도 했다.
벨기에 사람들은 [[레오폴 3세 (벨기에)|레오폴 3세]]를 싫어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레오폴 3세와 전왕(前王)인 [[알베르 1세 (벨기에)|알베르 1세]]와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알베르 1세는 전쟁이 터졌을 때 국민과 군인들을 자주 만나고, 자신도 전쟁에 나섰다고 하여 국민들이 칭송하지만 레오폴트 3세는 [[나치 독일]]의 군대가 벨기에를 포위할 때 항복했기 때문이다. 그는 [[1951년]]에 퇴위를 선언하고, [[보두앵 1세 (벨기에)|보두앵]]을 국왕으로 임명한다.
=== 연립정부 ===
벨기에는 [[1993년]]에 연방 국가로 탈바꿈했으나, 최근 북부와 남부의 갈등이 심화되기도 하였다. 국왕의 중재 아래 [[2008년]] [[3월]]에 연립 정부가 구성되었다.
또한 벨기에는 1993년 11월 1일 [[유럽연합]]이 탄생되면서 유럽연합의 본부가 설치된 나라이기도 하다.
== 지리 ==
벨기에는 프랑스, 독일, 룩셈부르크, 네덜란드와 국경을 접한다. 전체 면적은 33,990km<sup>2</sup>로 저지대를 뺀 온전한 땅만을 취한다면 30,528km<sup>2</sup>이다.
== 기후 ==
쾨펜의 기후구분에 따르면 서안해양성 기후인 Cfb이다.
== 정치 ==
이 나라는 국왕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입헌 군주제]]이다. 현재 국왕은 [[필리프 1세]]다. 정치적으로는 [[의원내각제]]를 실행하고 있다. 현재 [[벨기에의 총리|총리]]는 [[혁신운동]] 출신의 소피 월메스이다.
벨기에는 언어 사용 지역별로 지역주의가 굉장히 강하며, [[벨기에 노동당]]을 제외한 다른 모든 원내 정당은 지역정당이다. [[플랑드르]] 지역은 [[신플람스 연맹]], [[열린 플람스 자유민주당]], [[기독교민주당과 플람스]], [[다른 사회당]], [[녹색당 (벨기에)|녹색당]], [[플람스의 이익]]이, [[왈롱]] 지역은 [[사회당 (벨기에)|사회당]], [[혁신운동]], [[생태당 (벨기에)|생태당]], [[인문민주중도당]], [[데피]], [[인민당 (벨기에)|인민당]]이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 무역 ==
2017년 기준으로 벨기에의 주요 수입출 상대국은 독일(16.61%), 프랑스(14.89%), 네덜란드(12.01%), 영국(8.42%), 이탈리아(4.91%)이다. 주요 수입 상대국은 네덜란드(17.20%), 독일(13.84%), 프랑스(9.48%), 미국(7.19%), 영국(4.83%)이다.
2017년 기준으로 총수출액은 429,980백만 달러, 총수입액은 406,412백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 품목은 석유 제품(25,532백만 달러), 기타 의약품(20,8454백만 달러), 자동차 (11,053백만 달러), 다이아몬드 (10,911백만 달러), 독극물(8,067백만 달러)이다. 주요 수입 품목은 석유 제품(18,838백만 달러), 기타 의약품(15,831백만 달러), 원유(15,285백만 달러), 자동차(12,648백만 달러), 가솔린(9,243백만 달러)이다.<ref>[https://wits.worldbank.org/CountryProfile/en/Country/BEL/Year/2017/Summary, World Integrated Trade Solution] Worldbank]</ref>
== 인구 ==
{{본문|벨기에의 인구}}
== 주민 ==
{{본문|벨기에인}}
전국민의 약 57%를 차지하는 북쪽의 [[플랑드르]] 지역에서는 [[플랑드르인]](자신들은 '플라밍'라고 부른다. : Vlaming)이 [[네덜란드어]]를 사용하고, 32%를 차지하는 남쪽의 [[왈로니]] 지역에서는 [[왈로니인]](왈롱, wallons)들이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도 살고 있으며, 벨기에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모로코]], [[터키]]와 [[콩고 민주 공화국|콩고]] (대부분 [[브뤼셀]]에 거주) 등지에서 온 이민들이다.
== 언어 ==
[[파일:벨기에 공용어.png|섬네일|194x194픽셀|'''공식 언어'''{{범례|#0000ff|{{글씨 색|blue|네덜란드어}} (59%)}}{{범례|#F90001|{{글씨 색|red|프랑스어}} (40%)}}{{범례|#F7E600|{{글씨 색|orange||독일어}} (1%)}}{{범례|#4b0082|{{글씨 색|purple|네덜란드어+프랑스어=브뤼셀}}네덜란드어 + 프랑스어 (브뤼셀)}}]]
공식 공용어는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이다. 벨기에 왕실은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모두 구사해야 하며, [[미스 벨기에]] 역시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10%를 차지하는 수도 [[브뤼셀]] 지역은 법적으로는 네덜란드어 및 프랑스어 두 언어를 병용하지만, 브뤼셀의 주민 8할 이상이 사용하는 [[프랑스어]]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 나라의 언어상황을 살피기 위해서는 [[1993년]]에 개정한 [[헌법]]과 그에 따른 연방제의 구조를 먼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나라는 프랑스어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이다.
독일어 사용지역([[벨기에 독일어 공동체]])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벨기에가 [[독일 제국|독일]]로부터 할양받은 지역에 해당한다. 본래 독일의 라인 지방의 일부였던 이 지역을 얻은 1919년에 독일어가 공식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벨기에의 모든 학교에서는 [[영어]]가 외국어 필수로 지정되어 있으며 [[스페인어]] 등을 제2외국어로 선택한다. 그리고 왈롱에서는 네덜란드어를, 플란데런에서는 프랑스어를 외국어로 배운다.
== 종교 ==
{{bar box
|title=종교 구성 (벨기에)
|titlebar=#ddd
|float=right
|bars=
{{백분율 막대|[[로마 가톨릭]] |red|58}}
{{백분율 막대|[[무종교]] |yellow|20}}
{{백분율 막대|그외 [[기독교]] |pink|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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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분율 막대|[[이슬람교]] |gree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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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나라의 국민의 대부분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거의 [[로마 가톨릭교회]] 소속이다. 그 밖에도 [[정교회]]나 [[개신교]] 종파가 존재하며, 이민자들로 인해 [[이슬람교]]를 믿는 이들도 존재하고 있다.
== 군사 ==
{{본문|벨기에의 군사}}
벨기에의 국군 통수권자는 국왕이며, 4만 1천명의 정규군이 존재한다.
# [[벨기에 육군|육군]] (Composante Terre), [[1830년]] 창설 (26,400명)
# [[벨기에 해군|해군]] (Composante Maritime), [[1917년]] 창설 (2,400명)
# [[벨기에 공군|공군]] (Composante Air), [[1915년]] 창설 (8,900명)
# Medical Component (Composante Médicale), [[2002년]] 창설 (2,000명)
== 행정 구역 ==
[[파일:Be-map.png|오른쪽|벨기에의 지도|200px]]
{{본문|벨기에의 행정 구역}}
[[1993년]] [[7월 14일]] 개정된 헌법은 벨기에를 독특한 연방제 국가로 만들었다. 연방은 세 계층으로 구성된다.
# 브뤼설에 자리한 연방 정부
# 세개의 언어 공동체
# 세개의 지역
== 문화 ==
벨기에는 [[맥주]]와 [[초콜릿]], 그리고 [[벨기에 와플]]로 유명하다. 또한 [[스머프]]와 [[탱탱의 모험]] 같은 [[만화]]들을 제작해내기도 하였다. 수도 [[브뤼셀]]에는 [[오줌싸개 동상]]이 있어 세계 각지에서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 언론 ===
이 나라의 [[공영방송]]으로는 네덜란드어권의 [[VRT]], 프랑스어권의 [[RTBF]], 독일어권의 [[BRF]]가 있으며, [[민영방송]]으로 네덜란드어권의 [[VTM]], 프랑스어권의 [[RTL-TVI]]가 있다.
== 대외 관계 ==
=== [[대한민국]] ===
==== 한국과의 수교 및 한국전쟁 참전 ====
벨기에는 [[1901년]]에 [[대한 제국]]과 수교하였고, 1905년에 단교하였다. 1949년에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였다. 벨기에군과 룩셈부르크 군은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대한민국]]을 지원하였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는 한국전쟁에 보병 1개 대대(일명 벨룩스 대대, 벨기에 대대에 룩셈부르크가 소대 병력으로 합류)를 파병했다. 휴전 때까지 연인원 약 3천500명이 참전해 106명이 전사했다. 2016년 기준으로 생존자는 약 730명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6/16/0200000000AKR20160616010600098.HTML 벨기에 한국전쟁 참전기념비 건립 50주년…전사자 추모]</ref>
==== 대사관 ====
브뤼셀에 대한민국 대사관(주 룩셈부르크 대사관, 주 유럽연합 대표부 겸임)이 개설되어 있다. [[서울특별시]]에 주한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대(對)벨기에 수출은 22억5537만USD, 벨기에의 대(對)대한민국 수출은 14억5033만USD(각 2011년)에 달하여, 벨기에는 대한민국에 있어서 제35위의 수출국이자 제38위의 수입국이다.<ref name="무역협회">{{웹 인용 | url = http://stat.kita.net/ | 제목 = 국가별 수출입 | 출판사 = 한국무역협회 | 확인날짜 = 2012-07-25 |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11102051939/http://stat.kita.net/ | 보존날짜 = 2011-11-02 | url-status = dead }}</ref> 모두 824 명(재외국민 751명, 시민권자 73명)의 한민족들이 벨기에에 거주(2010년 12월 기준)하고 있다.<ref name="재외동포 현황">{{웹 인용 |url=http://www.mofat.go.kr/webmodule/htsboard/template/read/korboardread.jsp?typeID=6&boardid=232&seqno=334627&c=&t=&pagenum=1&tableName=TYPE_DATABOARD&pc=&dc=&wc=&lu=&vu=&iu=&du= |제목=국가별 재외동포현황(2011).xls |출판사=대한민국 외교통상부 |형식=엑셀 |확인날짜=2012년 2월 25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526030718/http://www.mofat.go.kr/webmodule/htsboard/template/read/korboardread.jsp?typeID=6&boardid=232&seqno=334627&c=&t=&pagenum=1&tableName=TYPE_DATABOARD&pc=&dc=&wc=&lu=&vu=&iu=&du= |보존날짜=2012년 5월 26일 |url-status=dead }}</ref> [[2002년 FIFA 월드컵]] 때는 대표팀이 [[일본]]과 같은 조에 편성되어 [[대한민국]]으로 가지 않고 일본으로 갔으나, [[1988년 하계 올림픽]] 때는 벨기에가 서울에 선수단을 직접 파견하였다. [[2014년]]에는 [[송도국제도시]]에 [[겐트 대학교]] 캠퍼스가 들어섰다. 1995년에는 [[아시아나항공]]이 벨기에로 가는 항공편을 운영하기도 하였으나 [[IMF 구제금융사건]]으로 인해 단항되었다.<ref>단항 이후 벨기에를 여행하려는 한국인은 제3국을 경유해야 하며 순수 비행 시간으로 해도 14~21시간 이상이 걸린다.</ref> 한편, [[설기현]]이 [[벨기에 주필러 리그]]에 진출한 적이 있었으며 벨기에 선수도 [[K-리그]]에 진출한 적이 있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2001년에 공식 수교하였다. 이로써 벨기에는 사실상 한반도의 두 개 정부를 모두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 [[파키스탄]] ===
벨기에는 [[이슬라마바드]]에 대사관, [[카라치]]와 [[라호르]]에 각각 영사관을 두고 있다. 파키스탄은 [[브뤼셀]]에 대사관, [[헨트]], [[안트베르펜]], 그리고 벨기에령 룩셈부르크에 각 영사관을 두고 있다. 벨기에는 유럽에서 6위 규모의 파키스탄으로부터의 수입국이며, 양국의 무역 규모는 6억 USD에 육박하고 있다. 2008년 초, 파키스탄의 전 대통령 [[페르베즈 무샤라프]]는 그의 유럽 순방(영국, 프랑스, 스웨덴 포함) 중에 벨기에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의 브뤼셀 방문 중, 당시 벨기에 총리 [[히 버르호프스타트]]와 함께 무역 및 상호 방위 협약에 대하여 논의한 바 있다.
=== 튀르키예 ===
벨기에는 [[앙카라]]에 대사관, [[이스탄불]]에 총영사관, [[안탈리아]]와 [[이즈미르]]에 각 영사관을 두고 있다. 터키는 [[브뤼셀]]에 대사관, [[안트베르펜]]에 총영사관을 두고 있다.
==역대 군주==
{{본문|벨기에의 군주 목록}}
* [[레오폴 1세]] (1831년~1865년)
* [[레오폴 2세]] (1865년~1909년)
* [[알베르 1세]] (1909년~1934년)
* [[레오폴 3세]] (1934년~1951년)
* [[보두앵 1세]] (1951년~1993년)
* [[알베르 2세]] (1993년~2013년)
* [[필리프 1세]] (2013년~현재)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위키공용과 분류|Belgium}}
* [http://www.belgium.be/en/ 벨기에 정부 홈페이지]
* [http://www.ilotsacre.be/ 브뤼셀 시 홈페이지]
* {{언어링크|en|ko}} [https://web.archive.org/web/20110406120050/http://www.belgium.or.kr/ 주한 벨기에 대사관]
* [http://bel.mofa.go.kr/korean/eu/bel/main/index.jsp 주벨기에 대한민국 대사관 겸 유럽연합 대표부] {{웨이백|url=http://bel.mofa.go.kr/korean/eu/bel/main/index.jsp |date=20170109190158 }}
{{벨기에의 행정 구역}}
{{유럽}}
{{유엔 창립 회원국}}
{{유럽 평의회}}
{{유럽 연합 회원국}}
{{북대서양 조약 기구}}
{{OECD}}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
{{지중해 연합}}
{{프랑코포니}}
{{파리 클럽}}
{{전거 통제}}
[[분류:벨기에| ]]
[[분류:독일어권]]
[[분류:프랑스어권]]
[[분류:네덜란드어권]]
[[분류:입헌군주국]]
[[분류:유엔 회원국]]
[[분류:연방제 국가]]
[[분류:유럽 연합 회원국]]
[[분류:유럽 평의회 회원국]]
[[분류:프랑코포니 회원국]]
[[분류:북대서양 조약 기구 회원국]]
[[분류: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분류:지중해 연합 회원국]]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6월 25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76번째([[윤년]]일 경우 177번째) 날에 해당한다.
{{6월달력}}
{{특정날짜요일|6|25}}
== 사건 ==
* [[1592년]] - [[임진왜란]]: [[해유령 전투]]: 한양을 함락 시킨 일본이 양주를 침공하고, 조선 육군이 격퇴하여, 임진왜란 최초로 승리한 전투이다.
* [[1862년]] - [[남북 전쟁|미국 남북 전쟁]] : 북군3군단(군단장 하인첼만) 소속 후커 사단이 남북군 중간지대의 남군을 공격하여 숲 지역 점령하다.
* [[1876년]] - [[리틀빅혼 전투]], [[앉은황소]]를 중심으로 한 [[인디언]] 연합이 미국 7기병연대를 무찌른 전투.
* [[1950년]] - 새벽 4시, [[조선인민군]]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다.
* [[1963년]] - [[거제 장승포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
* [[1975년]] - [[모잠비크]]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다.
* [[1991년]] -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다.
* [[1993년]] - [[킴 캠벨]]이 [[캐나다]] 최초의 여성 총리로 뽑히다.
* [[1999년]] - [[코소보 전쟁]]의 종전.
* [[2007년]] - [[PMT 항공 241편 추락 사고|캄보디아 전세기]]가 [[캄보디아]] [[프놈펜]] 남쪽 130km 떨어진 산 속에 추락, 13명의 한국인을 포함한 22명이 사망하다.
== 문화 ==
* [[1960년]] - [[일본 도로교통법]] 제정되었다.
* [[1971년]] - [[하나은행]]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이 설립되다.
* [[1978년]] - 아르헨티나가 [[1978년 FIFA 월드컵]] 결승에서 [[네덜란드]]를 상대로 연장접전까지 간 끝에 3:1로 승리, 월드컵에서 우승함.
* [[1998년]] - [[윈도우 98]]이 영어판으로 최초로 출시되다.
* [[2002년]] - 대한민국이 [[2002년 FIFA 월드컵]] 4강전에서 [[발락]]의 결승골로 독일에 0:1로 패하며 3-4위전으로 밀려났다.
* [[2012년]] -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14대 교구장 [[염수정]] 대주교의 착좌 미사가 거행되었다.
* [[2021년]] -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우 11]]이 공개되었다.
== 탄생 ==
* [[1852년]] -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1926년]])
* [[1892년]] - 일본의 군인 [[이시이 시로]]. (~[[1959년]])
* [[1894년]] - 독일의 과학자 [[발터 네른스트]]. (~[[1941년]])
* [[1895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익상]]. (~[[1925년]])
* [[1903년]] -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 (~[[1950년]])
* [[1908년]] - 미국의 철학자 [[윌러드 밴 오먼 콰인]]. (~[[2000년]])
* [[1919년]]
** 대한민국의 작곡가 [[한복남]]. (~[[1991년]])
** 대한민국의 군인, 가톨릭 성직자 [[김동한 (1919년)|김동한]]. (~[[1983년]])
* [[1924년]] - 미국의 영화감독 [[시드니 루멧]]. (~[[2011년]])
* [[1925년]] - 미국의 영화배우 [[버지니아 패튼]]. (~[[2022년]])
* [[1926년]] - 오스트리아의 시인 [[잉게보르크 바흐만]]. (~[[1973년]])
* [[1928년]] - 미국의 군인 [[존 A. 위컴 주니어]]. (~[[2024년]])
* [[1937년]] - 제16대 쿠웨이트 에미르 [[나와프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2023년]])
* [[1938년]] - 대한민국의 목사 [[김기동 (1938년)|김기동]]. (~[[2022년]])
* [[1946년]] - 영국의 음악가 [[이언 맥도널드]]. (~[[2022년]])
* [[1949년]]
** 대한민국의 배우 겸 방송인 [[윤주상]].
** 오스트리아의 법조인 [[브리기테 비어라인]]. (~[[2024년]])
* [[1950년]] - 대한민국의 성우 [[기연호]].
* [[1952년]]
** 대한민국의 공무원 [[오영호 (1952년)|오영호]]. (~[[2022년]])
** 독일의 보드 게임 디자이너 [[클라우스 토이버]]. (~[[2023년]])
* [[1956년]]
** 대한민국의 성우 [[최성우 (성우)|최성우]].
** 미국의 요리사, 방송인 [[앤서니 보데인]]. (~[[2018년]])
* [[1961년]] - 잉글랜드의 배우 [[리키 저베이스]].
* [[1962년]] - 미국의 연쇄 살인범 [[앤서니 앨런 쇼어]]. (~[[2018년]])
* [[1963년]] - 영국의 가수 [[조지 마이클]] ([[왬!]]). (~[[2016년]])
* [[1966년]]
** 대한민국의 성우 [[성완경 (성우)|성완경]].
** 미국의 농구인 [[디켐베 무톰보]]. (~[[2024년]])
* [[196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채시라]].
* [[196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추귀정]].
** 일본의 전 축구 선수 [[혼다 야스토]].
* [[1973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정세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손혁]].
* [[1977년]] - 잉글랜드의 댄서, 모델, 프로레슬링 선수 [[레일라 엘]].
* [[1979년]]
** 대한민국의 가수 [[에릭킴]].
** 미국의 배우 [[홍 차우]].
* [[1981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김다영.
** 스위스의 스키점프 선수 [[지몬 아만]].
* [[1982년]]
** 대한민국의 가수 [[비 (가수)|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재철 (배우)|김재철]].
* [[1983년]] - 대한민국의 레이싱모델, 가수 [[이효영]].
* [[1984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재운]].
* [[1986년]]
** 일본의 가수 [[마츠우라 아야]].
** 대한민국의 모델 [[유주현 (모델)|유주현]].
** 대한민국의 전 쇼트트랙 선수 [[이호석 (쇼트트랙 선수)|이호석]].
* [[1987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배장호]].
** 네덜란드의 음악 그룹 [[W&W]]의 멤버 [[빌럼 판 하너헴 (1987년)|빌럼 판 하너헴]].
** 일본의 가수 [[후지가야 다이스케]] ([[Kis-My-Ft2]]).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고인규]].
** 일본의 만화가 [[나모리]].
** 대한민국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이동훈 (피겨스케이팅 선수)|이동훈]].
* [[1988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정지성 (아나운서)|정지성]].
** 대한민국의 컬링 선수 [[이슬비 (컬링 선수)|이슬비]].
* [[1989년]] - 대한민국의 연극배우 정혜주.
* [[1990년]]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이화리 (레이싱 모델)|이화리]].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혜리 (축구 선수)|김혜리]].
* [[1991년]] - 케냐의 축구 선수 [[빅터 완야마]].
* [[1992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민재 (배우)|박민재]]. (~[[2024년]])
* [[1993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한현희]].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이승휘]].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김성현 (축구 선수)|김성현]].
* [[1994년]] - 일본의 성우 [[아사쿠라 모모]].
* [[199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유재이]].
* [[1996년]]
** 대한민국의 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하이딘]].
** 대한민국의 배우 [[김우석 (배우)|김우석]].
** 대한민국의 배우 [[이지영 (1996년)|이지영]].
* [[1997년]]
**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 [[로드리고 벤탕쿠르]].
** 태국의 가수, 무용가, 배우 [[정나이신]].
* [[1998년]]
** 오스트레일리아의 수영 선수 [[카일 차머스]].
** 대한민국의 가수 [[챠닐]].
* [[1999년]] - 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 [[신시아 (프로듀서)|신시아]].
* [[200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세현 (2000년)|세현]].
* [[2001년]]
** 일본의 가수 [[히라테 유리나]] (케야키자카46).
** 대한민국의 가수 및 배우 [[형서 (가수)|형서]].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박현주 (배구 선수)|박현주]].
* [[2003년]] - 대한민국의 래퍼 [[차우주]].
* [[2006년]] - 미국의 배우 [[매케나 그레이스]].
== 사망 ==
* [[1822년]] - 독일의 소설가이자 작곡가 [[E. T. A. 호프만]]. ([[1776년]]~)
* [[1861년]] - 오스만 제국의 31대 파디샤 [[압뒬메지트 1세]]. ([[1823년]]~)
* [[1876년]] - 미국의 군인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1839년]]~)
* [[1939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백신애]]. ([[1908년]]~)
* [[1959년]] -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의 첫 번째 부인 [[차용애]]. ([[1927년]]~)
* [[1971년]]
** 프랑스의 작가 및 극작가 [[샤를 빌드라크]]. ([[1882년]]~)
** 영국 스코틀랜드의 교사, 의사, 생물학자, 정치인 [[존 보이드 오어]]. ([[1880년]]~)
* [[1989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음악인 [[리면상]]. ([[1908년]]~)
* [[1996년]] - 대한민국의 승려 [[서경보 (승려)|서경보]]. ([[1914년]]~)
* [[2001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육인수]]. ([[1919년]]~)
* [[2007년]] - 대한민국의 기자 [[조종옥]]. ([[1971년]]~)
* [[2009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태호 (배우)|김태호]]. ([[1979년]]~)
** 미국의 영화배우 [[파라 포셋]]. ([[1947년]]~)
** 미국의 팝 가수 [[마이클 잭슨]]. ([[1958년]]~)
* [[2019년]] - 아르헨티나의 배우, 모델 [[이사벨 사를리]]. ([[1925년]]~)
* [[2020년]]
** 대한민국의 작가 [[양근승]]. ([[1935년]]~)
**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김종철 (생태사상가)|김종철]]. ([[1947년]]~)
* [[2023년]] - 미국의 물리학자 [[존 B. 구디너프]]. ([[1922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연극연출가 [[김동수 (1947년)|김동수]]. ([[1947년]]~)
** 대한민국의 교수 [[김영걸 (교수)|김영걸]]. ([[1930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재윤 (1958년)|김재윤]]. ([[1958년]]~)
** 미국의 영화배우 [[빌 코브스]]. ([[1934년]]~)
** 대한민국의 교육자 [[윤대원]]. ([[1945년]]~)
== 기념일 ==
* [[6·25전쟁일]]
* [[유니세프]] 선정 [[마룬 5]]의 날(Maroon 5 Day, [[2016년]] ~ )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6월 24일]] 다음날: [[6월 26일]] - 전달: [[5월 25일]] 다음달: [[7월 25일]]
* 음력: [[음력 6월 25일|6월 25일]]
* [[366일|모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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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시계 방향으로 [[마루노우치]]와 [[신주쿠]], [[레인보우 브릿지]], [[일본 국회의사당]], [[시부야]], [[도쿄 스카이 트리]], [[구모토리산]], [[하치조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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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설명 = 도쿄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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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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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치체장 = [[고이케 유리코]] (小池 百合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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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사진 =
}}
'''도쿄도'''({{llang|ja|東京都|토-쿄-토}}, {{한국 한자음|동경도}}, {{문화어|도꾜도}}, Tōkyō-To) 또는 '''[[도쿄]]''', '''동경'''은 [[일본]]의 [[수도]]이며<ref>{{웹 인용|last1=Ōshima|first1=Tadamori|date=February 23, 2018|title=衆議院議員逢坂誠二君提出日本の首都に関する質問に対する答弁書|url=http://www.shugiin.go.jp/internet/itdb_shitsumon.nsf/html/shitsumon/b196048.htm|access-date=August 21, 2020|website=The House of Representatives, Japan|quote=There is no law or regulation that expressly defines Tokyo as the capital. However, we are of the opinion that Tokyo is generally accepted in society to be the capital of Japan.}}</ref> [[간토지방]]에 위치하는 [[도도부현|도]](都)로, 일본의 [[도도부현]] 행정구역 가운데서 인구 수가 2024년 기준 14,133,086명으로 가장 많은 지역이다.<ref name = "metrostat">{{웹 인용|title=「東京都の人口(推計)」の概要-令和3年1月1日現在|東京都 |url=https://www.metro.tokyo.lg.jp/tosei/hodohappyo/press/2021/01/28/01.html |publisher=[[Tokyo Metropolitan Government]] |access-date=February 17, 2021 |language=ja}}</ref> 동부는 [[태평양]] 연안 [[도쿄만]]이 접한다. 서부는 [[구모토리산]]이 최고봉이며 [[간토산지]]가 있다.
도부(23구) [[다마지역]](26시 3정 1촌) 및 [[도쿄도 도서부|도서부]](2정 7촌)로 이어져 있고, [[현청 소재지]]는 [[신주쿠구]]에 있다.
행정기관, 금융기관이나 대기업 등이 집중되어 신문·방송·출판 등의 문화면, 대학·연구기관 등의 교육·학술면에서도 일본의 중추를 이룬다. 교통면에서도 철도망, 도로망, 항공로의 중심이며, 경제, 문화, 교통, 상업, 금융 등 여러 부분에서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도시이다.
[[뉴욕]],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도시이며, 일본의 민간 [[연구소]]가 2016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도시]]에서 [[뉴욕]], [[런던]]과 함께 뒤이어 세계 3위로 평가했다. 이코노미스트 조사 부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는 2021년도 조사에서 도쿄도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세계 5위이며 [[아시아]]에서는 1위로 뽑았다.
또, 미국 [[싱크탱크]] 또한, 2020년 [[세계도시]] 랭킹(GCI 2020)에서 뉴욕과 런던 [[파리 (프랑스)|파리]]가 세계 4위 도시로 평가했으며 [[영국]]기관이 발표하는 2021년 세계금융센터지수에서 세계 7위, 아시아 5위의 금융 센터로 평가했다. 세계 경제권 명목 GDP 순위로 도쿄 중심 수도권인 [[간토]] 지방이 전 세계 유일하게 2조 달러를 넘은 지역으로 세계 1위이다.
지리적으로 도쿄도와 주변 7현으로 수도권을 구성함다.특히 도쿄권(도쿄도, [[사이타마현]], [[지바현]], [[가나가와현]]) 등 도쿄 수도권, 혹은 이를 총칭하는 [[간토]] 지방의 총인구는 약 4,400만명에 달해, 일본 인구의 약 30%를 차지한다.
== 개요 ==
관할 지역은 [[도쿄도 구부]](도쿄 23구), [[다마 지역]](26시,3정 1촌) 및 [[도쿄도 도서부]]([[오시마]], [[미야케]], [[하치조]], [[오가사와라]]) 4개의 지청(2정 7촌)로 구성한다. [[오키노토리 암초]]와 [[미나미토리섬]]을 오가사와라 제도를 포함하며 [[일본의 극점]]에 위치한 [[도도부현]]이다. 도가 공인한 '도쿄도'의 영어 표기는 Tokyo Metropolis (Tokyo Met.) 그 외 Tokyo Prefecture와 Tokyo Metropolitan Prefecture가 있다.
인구는 2021년 7월 1일 기준으로 14,049,146명을 넘었다. 일본 도도부현 중에는 인구가 가장 많으며 일본 인구 약 11%를 차지한다.인구밀도가 도도부현 안에서 가장 높다. 도쿄도의 도쿄 도시권은 인구 3700만명을 넘는 세계 최대의 도시권이다.일본 인구의 대략 3할이 집중해, [[폴란드]]나 [[모로코]], [[캐나다]] 의 총인구와 비슷하다.
도쿄는 [[에도 막부]]가 있던 예전 [[에도]]가 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웠던 [[도시 계획]]로 크게 발전했다. [[막말]]에는 동란을 거쳐 메이지 원년 문서에서 처음 "도쿄"라고 표기했다. 1869년 2월 11일 [[헤이안쿄]] ([[교토]])에서 천도하여 ([[도쿄전도]], [[옛 수도 목록]]을 참고하라) 1878년에 부제를 시행하고 도쿄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7월 1일 수도의 [[행정|행정구역]]을 강화할 목적으로 [[도쿄도제]]를 시행하였다. 이로써 도쿄부와 [[도쿄시]]를 폐지하고 이를 통합하는 형태인 도쿄도를 설치했다. 종전 후인 1947년 [[일본 지방자치법]] 시행에 따라, 1943년에 도쿄도제를 폐지했지만, "도쿄도" 명칭과 행정 구역은 변경하지 않았다. 즉 도쿄도제에서 도의 직할이었던 구는 지방자치법 시행으로 특별지방공공단체인 [[특별구]]가 되었고 시에 준하는 권한을을 부여했으나, 일부 사무나 징세권은 계속해서 도에 관리했다. 이 때문에 도쿄도청은, 지금도 "23구를 포괄하는 시청으로서의 기능"과 "현청으로서의 기능"을 겸한다.
도쿄도 의결기관인 [[도쿄도의회]]를 설치했으며 수장인 [[도쿄도지사]]가 역할을 한다. 그 권한은 [[일본 지방자치법]]으로 정했고, 대표는 선거로 선출한다. 임기는 4년이고, 지사 보좌직인 도쿄도 부지사는 4명이다. 2017년 4월 현재 도청의 직원 수(이른바 '도의 직원')는 지사부국 등의 일반행정직원이 약 2만 5천명이며 공기업 부문([[도쿄도 교통국|교통]], [[도쿄도 수도국|상수도]], [[도쿄도 하수도국|하수도]]이 1만 3천명이고 또한 [[도쿄 소방청]]및 [[경시청]] 직원, 도쿄도 내의 [[국공립학교|국립학교]] 교직원까지 합치면 총계 약 16만 8천 명이다.
[[도쿄도청사]] (본청사)는 오랫동안 [[지요다구]] [[유라쿠초]]에 있다가 1991년 4월 1일에 [[신주쿠구]] [[니시신주쿠]]로 이전하였다. 옮기며 지방자치법으로 조례를 개정하고, 도청 소재지를 도쿄도 신주쿠구 니시신주쿠 2초메로 했다. 그러나 지도에서 도청 소재지 표기는 편의상 '도쿄'를 사용하며 [[국토지리원]]은 도쿄 이외의 도부현청 소재지는 시의 명칭을 사용하지만, 도쿄 경우는 실제 소재지인 신주쿠구를 포함한 23구를 통합하여 '도쿄'로 표기한다. 교과서에서 국토 지리원 지침처럼 "도쿄"라고 표기한다. 이 복잡한 명칭은 세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특별구가 시정촌이 아니라는 것이고, 둘째는 시정촌이 지닌 업무 권한을 지역전체에 행사하지 못하는 것, 셋째로 과거 부가 과거 도쿄시라는 도시로 하나였던 것이다.
== 수도 ==
도쿄 도심은 예전의 에도에 해당한다. 에도 막부 성립 이래 일본 정치·행정의 실질적인 중심지였다.1868년에 헤이안쿄에서 에도로 황궁과 태정관 등 수도 기능을 이동했다고 하여(도쿄전도) 그 후 에도를 도쿄부로 개칭하고 수도로 삼았다. 일본제국 시기에는 제도라고 불렀다. 태평양전쟁 중인 1943년 도쿄부와 도쿄시를 통합하고 다시 도쿄도를 수도로 했다. 전후인 1950년에 도쿄도를 일본 수도로서 그 기능을 수행하더록 수도건설법을 시행했으나, 이 법은 1956년에 수도권정비법을 시행하면서 폐지하였다. 수도건설법 폐지로 도쿄도는 법적으로 일본의 수도라는 법적 근거가 없지만, 일본정부 공식견해나 공문서상으로 수도로 여기며 도쿄도에 일본의 국회와 정부 및 관련 부서가 있다. 2018년 2월에는 중의원 의원 아이사카 세이지가 도쿄의 수도 지위에 대한 질의를 했다. 일본 정부는 이 질의에 "수도를 도쿄라고 직접 규정한 법령은 없지만, 도쿄도가 일본 수도라는 것은 사회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인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수도권 정비법에서 도쿄도는 수도권일부라는 조항이 있고, 도쿄도의 공식 영어 표기인 "Tokyo Metropolis"의 metropolis는 "대도시, 대도시권" 외에 "수도"의 의미도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도쿄도를 수도로 직접 규정하는 일본 헌법 및 일본 법률은 없지만, 수도로서 그 중심부(특히 도쿄 23구)에 일본 정부의 국회의사당, 내각총리대신관저와 주요 부처, 최고재판소를 비롯한 3권의 중추기관을 설치했다. 기타 관련 법률에서 그 기관들을 도쿄도에 둔다고 정한 조항이 있다.
== 역사 ==
[[파일:Tokugawa Ieyasu2.JPG|섬네일|오른쪽|[[도쿠가와 이에야스]]]]
[[파일:Kokyo0057.jpg|200px|섬네일|[[고쿄]]]]
도쿄는 원래 작은 어촌으로 [[에도]]라고 명명되었다. 1457년에 [[오타 도칸]]은 [[에도 성]]을 세웠다. 1590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를 근거지로 삼아 1603년에 [[쇼군]]이 되었으며 도시는 막부의 중심지가 되었다. [[에도 시대]]의 18세기 무렵에 인구는 도시로 성장하였다. 263년 후에 막부는 [[메이지 유신]] 하에 전복되었다. 1869년에 17세의 [[메이지 천황]]은 에도로 천도하였다. 에도는 이미 일본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있었고 예전의 에도 성은 [[고쿄]]가 되었다. [[1889년]] [[도쿄부]] 동부에 [[도쿄시]]가 설치되었다.
도쿄는 20세기에 두 번의 대재해를 겪었으나 곧 복구되었다. 한번은 1923년의 [[관동 대지진]]으로 14만 명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또 한번은 1945년의 [[도쿄 대공습]]으로 7만 5천 명에서 최대 20만 명이 사망하였고 도시의 절반이 파괴되었다. [[1943년]]에는 도쿄부와 도쿄시를 도쿄도로 합쳤고, 이전의 도쿄시 지역은 도쿄도 구부(東京都區部)로 불리게 되었다. 전쟁 후에 도쿄는 완전히 재건되었고 [[1964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여 세계에 그 모습을 보여주었다. 1970년대에는 [[선샤인60]]과 같은 고층 건물이 들어섰고 1978년에는 도쿄 인근 [[지바현]] [[나리타시]]에 [[나리타 국제공항]]이 건설되었으며 인구는 증가하여 도쿄도의 인구는 1,100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도쿄 지하철]]과 통근 철도망은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곳이 되었다. 1980년대에 도쿄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여 버블을 형성하였다. 1990년대 초에 버블이 터지면서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한 많은 회사와 은행, 개인들은 자산의 가치가 하락하게 되었다. 경기의 후퇴가 뒤따르면서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도쿄는 여전히 많은 곳에 새로운 도시 개발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의 계획으로는 [[에비스 (도쿄 도)|에비스]] 공원과 덴노즈 아일, [[시오도메]], [[롯폰기 힐스]], [[시나가와]], [[도쿄역]]의 [[마루노우치]] 부분이 포함된다. 중요한 건물들이 [[오모테산도 힐스]]와 같은 최신식 쇼핑 시설을 위해 헐리고 있다. 도쿄의 토지 매립 계획 또한 몇 세기 동안 계속되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오다이바]] 지역으로 현재 쇼핑과 오락의 중심지이다.
2021년에는 [[2020년 하계 올림픽]]과 [[2020년 하계 패럴림픽|패럴림픽]]이 개최되었다. 본래 2020년에 예정된 대회였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의 여파로 연기되어 2021년에 개최된 것이다.
== 지리 ==
[[파일:Map_Tokyo.png|섬네일|가운데|850px|도쿄도의 행정구역]]
도쿄도의 본토 부분은 [[도쿄만]]의 북서쪽에 놓여있고 대략 동서의 길이는 90 km, 남북의 길이는 25 km 정도이다. 동쪽으로 [[지바현]], 서쪽으로 [[야마나시현]], 남쪽으로 [[가나가와현]], 북쪽으로 [[사이타마현]]과 접한다.구와 서부의 다마 지역으로 나뉜다.
또한 도쿄도의 행정 경계는 정남쪽의 두 개의 태평양의 열도를 포함한다. 하나는 [[이즈 제도]]이고 또 하나는 일본 본토에서 1000 km 이상 떨어진 [[오가사와라 제도]]이다. 이들 섬들과 서부의 산지 지방 때문에 도쿄도의 인구 밀도는 도쿄의 도시 및 교외 지역의 실제 인구 밀도보다 훨씬 낮게 나타난다.
=== 도쿄 23구 ===
[[파일:23Tokyo.png|섬네일|가운데|630px|도쿄 23구 지도]]
도쿄도의 [[도쿄 23구|특별구]]는 예전에 [[도쿄시]]를 이루었다. 1943년 7월 1일에 도쿄시는 도쿄부와 합쳐져 현재에 이른다. 이러한 합병의 결과로서 일본의 다른 구들과 달리 특별구는 어떤 대도시의 일부로 취급되지 않는다. 각각의 구들은 일본의 다른 도시들처럼 각자의 시장과 의회를 선출한다. 이들 구들은 도 정부와 독특한 행정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도시들과 다르다. 수도, 하수, 소방과 같은 일부 지자체의 기능은 도 정부가 다룬다. 이러한 행정 비용을 위해 도 정부는 구들에게 세금을 부과한다. 사실상 일본의 수도·경제·정치·방송을 담당하며 관동지방이나 동경 경제권의 중심지이다.
[[도쿄 23구]](동경 23구)는 다음과 같다.
{{col-begin}}
{{col-4}}
* [[가쓰시카구]]({{lang|ja|葛飾区}})
* [[고토구]]({{lang|ja|江東区}})
* [[기타구 (도쿄도)|기타구]]({{lang|ja|北区}})
* [[나카노구]]({{lang|ja|中野区}})
* [[네리마구]]({{lang|ja|練馬区}})
* [[다이토구]]({{lang|ja|台東区}})
{{col-break}}
* [[도시마구]]({{lang|ja|豊島区}})
* [[미나토구 (도쿄도)|미나토구]]({{lang|ja|港区}})
* [[메구로구]]({{lang|ja|目黒区}})
* [[스미다구]]({{lang|ja|墨田区}})
* [[스기나미구]]({{lang|ja|杉竝区}})
* [[신주쿠구]]({{lang|ja|新宿区}})
{{col-break}}
* [[세타가야구]]({{lang|ja|世田谷区}})
* [[시나가와구]]({{lang|ja|品川区}})
* [[시부야구]]({{lang|ja|渋谷区}})
* [[아다치구]]({{lang|ja|足立区}})
* [[아라카와구]]({{lang|ja|荒川区}})
* [[에도가와구]]({{lang|ja|江戸川区}})
{{col-break}}
* [[이타바시구]]({{lang|ja|板橋区}})
* [[오타구]]({{lang|ja|大田区}})
* [[분쿄구]]({{lang|ja|文京区}})
* [[주오구 (도쿄도)|주오구]]({{lang|ja|中央区}})
* [[지요다구]]({{lang|ja|千代田区}})
{{col-end}}
=== 다마 지역 ===
[[1943년]] 이전에는 [[도쿄부]]에 속했던 지역이다. [[도쿄 23구]]의 서쪽에 위치하며 시와 정, 촌으로 이루어져있다. 도쿄 중심가의 업무 기능을 위한 '[[침상도시]]' 역할을 하며 일부는 지역의 상업과 공업의 기반이다. 도쿄 23구는 물론 도쿄도와 붙어있는 [[가나가와현]]보다도 집값이 싼데다가 전철노선이 잘 갖추어져있어 이곳에서 도쿄 23구 혹은 [[요코하마]] 등의 다른 대도시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
==== 시 ====
[[다마 지역]]에는 26개의 도시가 있다.
{{col-begin}}
{{col-3}}
* [[고가네이시]]({{lang|ja|小金井市}})
* [[고다이라시]]({{lang|ja|小平市}})
* [[고마에시]]({{lang|ja|狛江市}})
* [[고쿠분지시]]({{lang|ja|国分寺市}})
* [[구니타치시]]({{lang|ja|国立市}})
* [[기요세시]]({{lang|ja|清瀬市}})
* [[니시토쿄시]]({{lang|ja|西東京市}})
* [[다마시]]({{lang|ja|多摩市}})
* [[다치카와시]]({{lang|ja|立川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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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다시]]({{lang|ja|町田市}})
* [[무사시노시]]({{lang|ja|武藏野市}})
* [[무사시무라야마시]]({{lang|ja|武藏村山市}})
* [[미타카시]]({{lang|ja|三鷹市}})
* [[아키루노시]]({{lang|ja|あきる野市}})
* [[아키시마시]]({{lang|ja|昭島市}})
* [[오메시]]({{lang|ja|青梅市}})
* [[이나기시]]({{lang|ja|稲城市}})
* [[조후시]]({{lang|ja|調布市}})
{{col-break}}
* [[하무라시]]({{lang|ja|羽村市}})
* [[하치오지시]]({{lang|ja|八王子市}})
* [[후추시 (도쿄도)|후추시]]({{lang|ja|府中市}})
* [[훗사시]]({{lang|ja|福生市}})
* [[히가시무라야마시]]({{lang|ja|東村山市}})
* [[히가시야마토시]]({{lang|ja|東大和市}})
* [[히가시쿠루메시]]({{lang|ja|東久留米市}})
* [[히노시]]({{lang|ja|日野市}})
{{col-end}}
도쿄도 정부는 도쿄 중심의 도시 기능을 분산시키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하치오지시]], [[다치카와시]], [[마치다시]], [[오메시]], 다마 신시가지는 다마 지역의 지역 중심지로 지정하였다.
==== 군, 정, 촌 ====
도쿄도의 극서부에는 [[니시타마군]]이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의 대부분은 산지로 도시화에 적합하지 않다. 도쿄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구모토리산]](2017m)를 비롯해 다카수산(1737m), 오다케산(1266m), [[미타케산]](929m)이 이곳에 있다. [[야마나시현]] 주변의 [[다마강]]에 위치한 도쿄도에서 가장 큰 호수인 [[오쿠타마호]]가 있다.
* [[니시타마군]]({{lang|ja|西多摩郡}})
** [[오쿠타마정]]({{lang|ja|奥多摩町}}), [[히노데정]]({{lang|ja|日の出町}}), [[미즈호정]]({{lang|ja|瑞穂町}}), [[히노하라촌]]({{lang|ja|檜原村}})
=== 도서 지역 ===
[[파일:ShikinePortTyoJpDec04-01.jpg|섬네일|[[시키네섬]]]]
[[파일:Hachijo-jima.JPG|섬네일|[[후지 하코네 이즈 국립공원]]]]
도쿄도에는 특별구의 도심으로부터 1850km까지 뻗어있는 수많은 외곽의 섬들이 있다. 신주쿠의 도청사와 섬들의 거리 때문에 지역 사무소가 행정을 담당한다.
[[이즈 제도]]는 화산 열도로 [[후지 하코네 이즈 국립공원]]의 일부를 이룬다. 섬들로는 도쿄 본토에서 가까운 순으로 [[이즈오섬]], [[도시마촌 (도쿄도)|도시마]], [[니지마섬]], [[시키네섬]], [[고즈섬]], [[미야케섬]], [[미쿠라섬]], [[하치조섬]], [[아오가섬]]이 있다. 이즈오섬과 하치조섬은 정이다. 섬들에는 6개의 촌이 있으며 니지마와 시키네섬은 하나의 촌을 이룬다.
도쿄도에는 [[오가사와라 제도]]가 포함되며 섬들로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지치지마섬]], [[니시노섬]], [[하하지마섬]], [[기타이오섬]], [[이오섬]], [[미나미이오섬]]이 있다. 오가사와라 지청은 또한 두 개의 조그마한 섬을 관할한다. 하나는 [[미나미토리섬]]으로 일본의 최동단에 있고 도쿄 중심부에서 1850 km 떨어진 가장 먼 섬이다. 또 하나는 [[오키노토리섬]]으로 일본의 최남단에 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은 사람이 살지 않는 암초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잔 열도]]와 외곽의 섬들은 영구적인 정착민은 없지만 [[자위대]]가 상주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오직 지치지마 섬과 하하지마 섬에만 살며 이 섬들은 [[오가사와라촌]]을 이루고 있다.
* [[오시마 지청 (도쿄도)|오시마 지청]]({{lang|ja|大島支廳}})
** [[오시마정]]({{lang|ja|大島町}}), [[도시마촌 (도쿄도)|도시마촌]]({{lang|ja|利島村}}), [[니지마촌]]({{lang|ja|新島村}}), [[고즈시마촌]]({{lang|ja|神津島村}})
* [[미야케 지청]]({{lang|ja|三宅支庁廳}})
** [[미야케촌]]({{lang|ja|三宅村}}), [[미쿠라지마촌]]({{lang|ja|御蔵島村}})
* [[하치조 지청]]({{lang|ja|八丈支廳}})
** [[하치조정]]({{lang|ja|八丈町}}), [[아오가시마촌]]({{lang|ja|青ヶ島村}})
* [[오가사와라 지청]]({{lang|ja|小笠原支廳}})
** [[오가사와라촌]]({{lang|ja|小笠原村}})
=== 국립 공원 ===
도쿄도에는 다음과 같은 국립공원들이 있다.
* [[메이지의 모리다카오 국정공원]]이 하치오지 남쪽 [[다카오산]] 주변에 있다.
* [[오가사와라 제도|오가사와라 국립공원]]: 2006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우에노 공원]]: 박물관으로 유명한 공원이다. [[도쿄 국립박물관]], [[국립과학박물관]], [[시타마치 박물관]], [[국립서양미술관]], [[우에노 동물원]]이 이곳에 있다. 또한 공원 도처에 예술 작품과 조각상들이 있다.
== 기후 ==
도쿄는 [[온난 습윤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Cfa'')로 여름은 덥고 습하며 겨울은 온화하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며, 연평균 기온은 15.8℃이다. 눈보라는 이따금씩 발생하는 수준이고, 거의 매년 태풍이 찾아온다. 장마가 6월 중순경부터 시작되므로 봄·가을에 여행하는 것이 좋다.
{{Weather box
|location = [[도쿄도 구부|도쿄]] ([[기타노마루 공원]])<ref>1875년~1881년은 [[아카사카구]] 다메이케아오이초(현 [[미나토구 (도쿄도)|미나토구]] 도라노몬) 소재, 1882년~1922년은 [[고지마치구]] 다이칸초(현 [[고쿄]] 기타하네바시문 부근) 소재, 1923년~2014년은 [[지요다구]] [[오테마치 (도쿄도)|오테마치]] 소재, 2014년부터는 지요다구 [[기타노마루 공원]] 소재 관측소에서 관측</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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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일본 기상청]] (평년값: 1991년~2020년, 극값: 1875년~현재)<ref>
{{웹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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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인용
| url = https://www.data.jma.go.jp/obd/stats/etrn/view/rank_s.php?prec_no=44&block_no=47662&year=&month=&day=&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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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cessdate = 2023-03
| publisher = 일본 기상청}}
</ref>
}}
== 상징 ==
도쿄도는 공식적으로 2개의 상징물이 있다. 하나는 문장(紋章)이고 나머지는 심벌이라고 부른다. 각각의 상징물이 들어간 깃발도 공식적으로 쓰인다.
=== 문장 ===
[[파일:Emblem of Tokyo Metropolis.svg|섬네일|100px|도쿄도문장]]
'''도쿄도문장'''(東京都紋章)은 [[1943년]] [[11월 2일]]부터 쓰이고 있으며 제 9대 도쿄도지사와 귀족원의원(현재의 참의원)을 지낸 와타나베 히로모토가 디자인하여 [[1889년]] 12월부터 쓰인 [[도쿄시]]의 문장과 같다. 고시 제 464호로 인하여 쓰이기 시작했다. 이 문장은 6개의 햇살이 뻗어가는 태양을 나타내며 도쿄가 일본의 중심임을 나타낸다. 다른 형들과 마찬가지로 색이 채택되지 않았다. 이 문장은 [[간지]]인 東京(도쿄)의 京(쿄)를 닮았지만 고시에서는 설명이 나타나지 않는다.
[[파일:Flag of Tokyo Prefecture.svg|200px|섬네일|도쿄도기]]
'''도쿄도기'''(東京都旗)는 [[1964년]] [[10월 1일]]부터 쓰이고 있으며(고시 제 1042호) 진보라(江戸紫, [[에도]]의 전통색)색 바탕의 중심에 하얀색의 도쿄도문장이 가운데에 들어가 있다. 비율은 2:3이다.
=== 심벌 ===
[[파일:Symbol flag of Tokyo.svg|200px|섬네일|도쿄도심벌기]]
'''도쿄도의 심벌마크'''(東京都のシンボルマーク)는 [[1989년]] [[6월 1일]] 고시 제577호로 채택되었다. 디자인은 도쿄도심벌마크전형위원회의 20명의 지원자가 선택한 것으로 전문 그래픽 디자이너인 레이 요시무라(レイ吉村)가 만든 것이다. 선명한 초록색 심벌을 3개의 호가 있는 [[은행나무]](도쿄도의 나무)의 잎이며 Tokyo의 T를 나타낸다.
'''도쿄도심벌기'''(東京都シンボル旗)는 [[1989년]] [[9월 30일]] 고시 제 978호로 채택되었다. 도쿄도의 심벌마크가 흰색 바탕의 기 중앙에 있다. 비율은 2:3이다.
== 인구 ==
{{인구추계|code=13000|name=東京都|image=Demography13000.svg}}
{{Historical populations|align=none
|1870|590268
|1880|712259
|1890|1389684
|1900|1580124
|1910|2202079
|1920|3699428
|1925|4485144
|1930|5408678
|1935|6369919
|1940|7354971
|1945|3488284
|1950|6277500
|1955|8037084
|1960|9683802
|1965|10869244
|1970|11408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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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177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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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3515271
|2020|13982112
}}
2016년 6월 기준으로 도쿄 도의 인구는 13,613,660명 도쿄 23구의 인구는 896만 7천 명으로 추정되었다. 주간에는 인접한 지역으로부터 통근하는 250만 명의 노동자와 학생들이 유입된다. 이 결과 도심인 [[지요다구]], [[주오구 (도쿄도)|주오구]], [[미나토구 (도쿄도)|미나토구]]의 2005년 인구는 야간에는 32만 6천 명이지만 주간에는 240만 명에 달했다. 도의 인구는 주간에는 300만 명 이상 증가한다. 도쿄의 인구가 절정에 달했던 1965년에 23구의 인구는 889만 3094명에 달했고 1995년에 800만 명 이하로 떨어졌다. 현재 인구는 전에는 14만명을 넘어섰으나 최근엔 도쿄도 전체 인구는 13,971,109명으로 하락했으며 최근 문서상에 따르면 인구조사에서 10,673명이 유출 된것으로 확인되었다. 결정적인 원인은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와 밀집지역 기피현상이 생겼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했다.
2005년에 도쿄 도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중국인 (123,661), 한국인 (106,697), 필리핀인 (31,077), 미국인 (18,848), 영국인 (7,696), 브라질인 (5,300) 프랑스인 (3,000) 순이었다.
=== 고령자 ===
2010년 시점에서 도쿄도의 고령화율은 20.4%이며 즉 고령자가 5명 중 1명에 이르고 있다,(향후 노인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2020년에는 도쿄에 사는 4명 중 1명이 고령자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독신 고령자는 2010년 시점에서 62만명이다.(그 10년 후인 2020년에는 80만명을 넘을 것으로 전망됨)
=== 연소자 ===
도쿄도의 연소자(0~14세) 인구는, 이미 노인 인구보다 작다.(장래에도 감소가 전망된다).
=== 주간 인구 및 야간 인구, 주간 유입 인구===
; 주간 인구와 야간 인구
2015년 기준 도쿄도의 주간 인구는 약 1592만명이며 그에 비해 야간 인구는 1352만명이나 되고 이는 도쿄도 내의 직장으로 통근하는 사람들과 도내의 학교로 통학하는 사람들로 인해 낮에 인구가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낮에만 도쿄에서 주변의 도도부현으로 통근·통학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수보다 유입되는 인구가 더 크므로 차감하여 낮에 241만 명이 많다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다마 지역과 도쿄 주변현(인접하지 않는 이바라키현, 도치기현, 군마현의 남부 포함)에는 도쿄의 베드타운이 점재하며 시즈오카현 동부와 니가타현 남부 등에서의 신칸센 통근자도 존재한다.
; 주간 유입 인구
23구 지역으로의 주간 유입 인구는 1980년에 266만명이던 것이 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하여 1995년에 372만명으로 정점을 맞았으며 그 후에는 서서히 감소해 2015년에 318만 명이 되었다. 주간 유입 인구가 많다는 것은 이들이 구 지역에서 낮에 다양한 활동(생산 활동이나 소비 활동)을 벌여 활기를 주고 있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재해시에는 대량의 귀가 곤란자가 생기는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는 것도 의미한다[동일본 대지진 때에는, 도쿄도에서 약 352만명이 귀가 곤란자가 되었다고 추계되었다(내각부가 2011년 11월 22일에 발표한 인터넷 조사에 근거하는 추계.자세한 것은 「동일본 대지진에 의한 귀가 곤란자」의 기사를 참조할 것).
[[파일:Tokyo historical population.gif|섬네일|가운데|650px|1920년 이후 도쿄도의 인구 그래프]]
== 행정 ==
[[파일:Tokyo Metropolitan Government Building Oka1.JPG|섬네일|오른쪽|[[도쿄도청사]]]]
[[파일:YasudaAuditorium.jpg|섬네일|[[도쿄 대학]], 야스다 강당]]
[[파일:Old Keio University Library 3.jpg|섬네일|위오른쪽|[[게이오기주쿠 대학]]]]
《[[일본 지방자치법]]》 하에서 도쿄는 도(都)로 지정되어 있다. 행정 구조는 일본의 다른 도도부현과 유사하다. 도쿄도는 1943년까지 [[도쿄시]]를 이루었던 [[도쿄 23구|23개의 특별구]]를 포함하며 이들은 자치권을 가지고 각자의 구장과 의회를 가지고 있어 사실상 도시의 지위를 가진다. 도쿄도는 또한 각자의 지역 정부를 가진 26개의 시와 5개의 정, 8개의 촌을 포함한다. 도쿄도 정부는 공개적으로 선출된 도지사와 도 의회에 의해 운영된다. 도쿄도청은 [[신주쿠구]]에 있다. 도 정부는 호수, 강, 댐, 농장, 먼곳의 섬, 국립 공원과 번화가, 마천루, 지하철 등을 포함한 도쿄의 모든 것을 관할한다.
== 교육 ==
도쿄에는 많은 대학, 전문 대학, 직업 학교가 존재 하고 있다. 많은 일본의 권위있는 대학들이 도쿄에 있다.
=== 국립 대학 ===
* [[도쿄 대학]]
* [[도쿄 공업대학]]
* [[도쿄 외국어대학]]
* [[도쿄 해양대학]]
* [[도쿄 예술대학]]
* [[도쿄 농공대학]]
* [[도쿄 가쿠게이 대학]]
* [[히토쓰바시 대학]]
* [[정책연구대학원대학]]
=== 공립 대학(도쿄 도립) ===
* [[도쿄 도립대학]]
=== 사립 대학 ===
* [[게이오기주쿠 대학]]
* [[와세다 대학]]
* [[조치 대학]]
* [[메이지 대학]]
* [[릿쿄 대학]]
*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
* [[호세이 대학]]
* [[주오 대학]]
* [[가쿠슈인 대학]]
* [[국제 기독교 대학]]
* [[니혼 대학]]
* [[센슈 대학]]
구와 지자체에 의해 운영되는 공립 [[유치원]], [[소학교]](1학년~6학년), [[중학교]](7학년~9학년)이 있다. 도쿄의 공립 [[고등학교]]는 [[도쿄도 교육위원]]에 의해 운영되고 "도 고등학교"로 불린다. 그밖에 도쿄에는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많은 사립 학교가 있다.
== 경제 ==
{{넓은 그림|Tokyo from the top of the SkyTree (cropped).JPG|1000px|[[도쿄 스카이트리]]에서 본 도쿄 파노라마.}}
[[파일:Tokyo stock exchange.jpg|섬네일|오른쪽|[[도쿄 증권거래소]]]]
도쿄는 [[뉴욕]], [[런던]]과 더불어 세계 3대 금융 중심지 중 하나이다. 또한 도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권 경제이다. 도쿄도의 2019년 총 GDP는 115조 7000억 엔로 세계의 도시들 중 1위를 차지했다.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 목록에서 도쿄에 기반을 둔 기업은 51개로 2위 [[파리 (프랑스)|파리]]의 거의 두 배에 달했다.
도쿄는 주요 국제 금융 중심지이고 몇몇 세계에서 가장 큰 [[투자은행]]과 보험 회사들의 본사가 입지해있으며 일본의 교통, 출판, 방송 산업의 중심 역할을 한다. [[2차 대전]] 이후 일본 경제의 중앙집권화된 성장에 따라 많은 대기업들이 정부와의 더 좋은 접근성을 얻기 위해서 역사적인 상업 수도인 [[오사카]] 같은 도시에서 도쿄로 본사를 이전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도쿄의 지속적인 인구 성장과 높은 생계 비용 때문에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도쿄는 [[이코노미스트]]에 의해 [[2006년]]까지 14년 동안 생계 비용이 가장 비싼 도시로 선정되었다.
[[일본은행]] 본점, [[도쿄 증권거래소]] 등 일본 경제의 중추는 도쿄에 있다. [[도쿄 증권거래소]]는 일본에서 가장 큰 [[증권 거래소]]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증권 거래소이다. 1990년의 [[일본 자산 가격 버블]] 때 도쿄는 세계 주식 시장 가치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2003년에 도쿄도의 경작지는 8460헥타르였다. 농지는 주로 도쿄도의 서부에 집중되어있다. 상하기 쉬운 야채, 과일, 꽃을 편리하게 도의 동부로 선적할 수 있다. [[고마츠나]]와 [[시금치]]는 가장 중요한 야채로써 2000년에 도쿄도는 중앙 생산 시장에서 판매되는 고마츠나의 32.5%를 공급하였다. 전체 면적의 36%가 숲으로 덮여있고 도쿄도의 서부 산지에서는 [[삼나무]]와 [[편백]]이 광범위하게 자란다. 목재 가격의 하락, 생산 비용의 증가, 임업 인구의 노령화로 도쿄도의 생산량은 감소하고 있다.
도쿄만은 한때 주요 어장이었으며 현재 도쿄도의 어업 생산량 대부분은 이즈오섬, 하치조섬과 같은 바깥의 섬들로부터 온다. [[가다랑어]], [[노리 (음식)|노리]](김), [[전갱이과]]가 대양에서 생산된다. 관광업 또한 도쿄의 경제에 상당 부분 기여를 한다.
== 교통 ==
=== 공항 ===
[[파일:Haneda kokusaisen entrance.png|섬네일|[[도쿄 국제공항]](하네다 공항)]]
도쿄도에는 [[도쿄 국제공항]](하네다 공항), 조후 비행장, 오시마 공항, 미야케지마 공항, 하치조지마 공항, 니지마 공항, 고즈시마 공항이 있다.
도쿄 국제공항(東京国際空港)은 하네다 공항(羽田空港)이라고도 불리며, [[오타구]] 남부에 위치하여 있다. 1978년 5월, [[나리타 국제공항]]이 개항한 이후로는 국내선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2010년 10월에 신 국제선 터미널이 완공되었다. 도심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일본 정부의 전용기, 국빈급 승객이 이용하는 일본 이외 국가의 특별기도 도쿄 국제공항을 많이 사용한다. 도심과의 교통수단으로는 터미널 바로 아래에서 탈 수 있는 [[도쿄 모노레일]]과 [[게이힌 급행 전철|게이큐 선]]이 있으며, 이외에도 리무진 버스가 공항과 도쿄도 내 또는 인근 도도부현의 주요 역, 주요 호텔 등을 잇는다. 이외에 노선 버스나 택시 등도 이용할 수 있다.
도쿄 국제공항에서 발착하지 않는 국제선은 주로 [[지바현]] [[나리타시]]에 있는 [[나리타 국제공항]](成田国際空港)에서 발착한다. 개항 당시에는 도심에서 공항으로의 교통수단이 [[히가시칸토 자동차도]]를 경유하는 리무진 버스와 터미널에서 가까웠던 당시의 [[히가시나리타 역|나리타 공항역(현 히가시나리타 역)]]까지 운행하였던 [[게이세이 전철]]의 스카이라이너 뿐이었지만, 1991년 3월부터 공항 터미널 바로 아래에 역이 신설되어(제3터미널 제외) [[동일본여객철도]]와 게이세이 전철이 사용하게 되었다. 도쿄도 도심부에서 공항까지 약 1시간이 소요되며, 2010년 7월에는 나리타 고속철도 액세스가 개통하였다.
다마 지역에는 조후 비행장(調布飛行場)이 있으며, 신추오항공이 [[이즈 제도]]로의 정기편을 운항하고 있다. 다른 공항들은 도서 지역의 공항이다. [[이즈오섬]]에 있는 오시마 공항(大島空港)에는 조후 비행장, 하치조지마 공항으로의 정기편이 운항되고 있다. 미야케지마 공항(三宅島空港)에는 조후 비행장으로의 정기편이 운항되고 있다. 하치조지마 공항(八丈島空港)에는 하네다 공항으로의 정기편이 운항되고 있다. 니지마 공항, 고즈시마 공항에는 조후 비행장으로의 정기편이 운항되고 있다. [[오가사와라 제도]]에는 공항이 없으며, 교통 상황의 개선을 위해 공항을 건설해야 하는가, 자연 보호를 위해 건설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해 논쟁이 있다.
=== 철도 ===
[[파일:Tokyo Station Outside view 201804.jpg|섬네일|오른쪽|[[도쿄역]] ]]
[[파일:Yamanote-Line-E235.jpg|섬네일|오른쪽|[[야마노테선]] ]]
[[파일:Tokyo metro map en.png|섬네일|오른쪽|[[도쿄 지하철]] 노선도]]
도쿄에 위치한 역수는 654개 역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의 [[도도부현]]에서 가장 역수가 많아 가장 면적이 넓은 홋카이도의 522개 역을 비교해도 100개 역을 많이 가지고 있다. [[동일본여객철도]]의 [[야마노테선]]이 순환선을 운행하고 있으며 연선을 주기적으로 이어지는 [[도쿄역]], [[시나가와역]], [[시부야역]], [[우에노역]], [[이케부쿠로역]] 등의 역이 철도 각선 역할을 하고 있으며 [[우에노 도쿄 라인]]과 [[게이힌 도호쿠선]], [[요코스카·소부 쾌속선]]등이 운행을 하고 있으며 그외에 사이타마현, 지바현, 가나가와현까지 직통 열차가 하루종일 운행되고있다.
==== 주요 역 ====
:[[도쿄역]], [[우에노역]], [[시나가와역]], [[시부야역]], [[신주쿠역]], [[이케부쿠로역]], [[아키하바라역]], [[아사쿠사역]], [[긴자역]] 등
==== 주요 노선 ====
* 초광역 노선
** [[도카이도 신칸센]], [[도호쿠 신칸센]], [[조에쓰 신칸센]], [[호쿠리쿠 신칸센]], [[도카이도 본선]], [[주오 본선]], [[도호쿠 본선]], [[조반선]]
* 광역노선
** [[동일본 여객철도]] : [[야마노테선]], [[소부 본선]], [[게이힌토호쿠선]], [[난부 선]], [[요코하마 선]], [[무사시노 선]], [[게이요 선]], [[하치코 선]], [[오메 선]], [[이쓰카이치 선]], [[사이쿄 선]]
** [[도쿄 지하철]] : [[도쿄 지하철 도자이 선|도자이 선]], [[후쿠토신 선]], [[도쿄 도 교통국 지하철 신주쿠 선|신주쿠 선]], [[도쿄 지하철 유라쿠초 선|유라쿠초 선]]
** [[도쿄 급행 전철]] : [[도요코 선]], [[메구로 선]], [[덴엔토시 선]]
** [[게이힌 급행 전철]] : [[게이큐 본선]]
** [[오다큐 전철]] : [[오다와라 선]], [[다마선]]
** [[세이부 철도]] : [[세이부 철도 이케부쿠로 선|이케부쿠로 선]], [[세이부 신주쿠 선|신주쿠 선]], [[다마코 선]], [[야마구치 선]], [[하이지마 선]], [[고쿠분지 선]], [[세이부엔 선]], [[세이부 철도 다마가와 선|다마가와 선]]
** [[도부 철도]] : [[이세사키 선]], [[도조 본선]]
** [[게이세이 전철]] : [[게이세이 본선]]
** [[사이타마 고속철도]] : [[사이타마 고속철도선]]
** [[호쿠소 철도]] : [[호쿠소선]]
** [[수도권 신도시 철도]] : [[쓰쿠바 익스프레스]]
** [[게이오 전철]] : [[게이오선]], [[이노카시라 선]]
** [[다마 도시 모노레일]] : [[다마 도시 모노레일 선]]
* 도쿄23구내
** [[도쿄 메트로]] : [[긴자선]], [[마루노우치선]], [[히비야선]], [[지요다선]], [[한조몬 선]], [[도쿄 지하철 난보쿠 선|난보쿠 선]]
** [[도쿄 도 교통국]](도에이 지하철) : [[아사쿠사 선]], [[미타 선]], [[오에도선]], [[신주쿠 선]], [[노면전차 아라카와 선]], [[우에노 현수선]], [[닛포리·도네리 라이너]]
** [[도쿄 급행 전철]](도큐 전철) : [[오이마치 선]], [[도쿄 급행 전철 도큐 다마가와 선|다마가와 선]], [[이케가미 선]], [[세타가야 선]]
** [[게이힌 급행 전철]](게이큐 전철) : [[게이큐 본선]], [[게이힌 급행 전철 공항선|공항선]]
** [[세이부 철도]] : [[세이부 철도 세이부 유라쿠초 선|유라쿠초 선]], [[도시마 선]]
** [[도부 철도]] : [[이세사키 선]], [[가메이도 선]], [[도부 철도 다이시 선|다이시 선]]
** [[게이세이 전철]] : [[오시아게 선]], [[가나마치 선]]
** [[도쿄 모노레일]] : [[하네다 선]]
** [[유리카모메 (기업)|유리카모메]] : [[도쿄 임해 신교통 임해선]]
** [[도쿄 임해 고속 철도]] : [[린카이선]]
* 다마 지역
** [[게이오 전철]] : [[경마장선]], [[동물원선]], [[다카오 선]]
=== 도로 ===
* 고속도로
** [[도메이 고속도로]]
** [[주오 자동차도]]
** [[간에쓰 자동차도]]
** [[도쿄 외환 자동차도]]
** [[게이요 도로]]
** [[수도권 중앙 연락 자동차도]]
* 도시권 자동차 전용도로
** [[수도고속도로|슈토 고속도로]]
** [[도쿄 고속도로]]
** {{임시링크|제3게이힌 도로|ja|第三京浜道路}}
* 국도
** [[국도 제1호선 (일본)|국도 제1호선]]
** [[국도 제4호선 (일본)|국도 제4호선]]
** [[국도 제6호선 (일본)|국도 제6호선]]
** [[국도 제14호선 (일본)|국도 제14호선]]
** [[국도 제15호선 (일본)|국도 제15호선]]
** [[국도 제16호선 (일본)|국도 제16호선]]
** [[국도 제17호선 (일본)|국도 제17호선]]
** [[국도 제20호선 (일본)|국도 제20호선]]
** {{임시링크|국도 제122호선 (일본)|ja|国道122号}}
** [[국도 제130호선 (일본)|국도 제130호선]]
** [[국도 제131호선 (일본)|국도 제131호선]]
** [[국도 제139호선 (일본)|국도 제139호선]]
** [[국도 제246호선 (일본)|국도 제246호선]]
** {{임시링크|국도 제254호선 (일본)|ja|国道254号}}
** [[국도 제298호선 (일본)|국도 제298호선]]
** [[국도 제357호선 (일본)|국도 제357호선]]
** {{임시링크|국도 제411호선 (일본)|ja|国道411号}}
** [[국도 제466호선 (일본)|국도 제466호선]]
* 도도부현도
** [[도쿄도도·가나가와현도 제2호선|도쿄도도 제2호선]]
** [[도쿄도도·가나가와현도 제3호선|도쿄도도 제3호선]]
** [[도쿄도도·사이타마현도 제4호선|도쿄도도 제4호선]]
** [[도쿄도도 제5호선]]
** [[도쿄도도·가나가와현도 제6호선|도쿄도도 제6호선]]
** [[도쿄도도 제7호선]]
** [[도쿄도도 제8호선]]
** [[도쿄도도 제11호선]]
** [[도쿄도도 제12호선]]
** [[도쿄도도 제15호선]]
** [[도쿄도도 제118호선]]
** [[도쿄도도 제123호선]]
** [[도쿄도도 제201호선]]
** [[도쿄도도 제316호선]]
** [[도쿄도도 제318호선]]
** [[도쿄도도 제451호선]]
** [[도쿄도도 제481호선]]
** [[도쿄도도 제482호선]]
** [[도쿄도도 제484호선]]
** 그 외의 다른 노선은 [[도쿄도의 도도 목록]] 문서 참조.
=== 항구 ===
* [[도쿄항]]
== 문화 ==
{{참고|도쿄도의 관광}}
[[파일:Tokyo National Museum, Honkan 2010.jpg|섬네일|오른쪽|[[도쿄 국립박물관]]]]
[[파일:Fuji TV headquarters and Aqua City Odaiba - 2006-05-03 edit.jpg|섬네일|오른쪽|[[후지 TV]] 본사]]
도쿄에는 많은 박물관들이 있다. [[우에노 공원]] 안에는 네 개의 박물관이 있다. 그중 하나인 [[도쿄 국립박물관]]은 일본에서 가장 큰 박물관으로 전통 [[일본 예술]]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국립서양미술관]]과 4만 개가 넘는 일본과 외국 영화를 비롯해 많은 일본 현대 예술품들을 소장한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이 있다. 또한 우에노 공원에는 [[국립과학박물관]]과 [[우에노 동물원]]이 있다. 다른 박물관으로 [[아오야마 (도쿄도 미나토구)|아오야마]]의 [[네주 미술관]]과 도쿄 도심에서 [[스미다강]] 너머 [[스미다구]]의 [[에도-도쿄 박물관]]과 [[일본 국립국회도서관]]과 [[고쿄]] 주변에 위치한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이 있다.
도쿄에는 공연을 하는 많은 극장들이 있다. 이들은 [[노 (연극)|노]]와 [[가부키]]와 같은 일본 전통극을 공연하는 많은 국영 및 민영 극장들을 포함한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다른 음악 협회들이 서양과 일본 전통 음악을 연주한다. 도쿄에서는 또한 친숙한 클럽에서부터 국제적으로 알려진 [[일본 무도관]]까지의 다양한 곳에서 일본 현대음악과 서양의 [[팝]]과 [[락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도쿄에서는 많은 축제들이 열린다. 주요 행사로 [[히에 신사]]의 산노, [[아사쿠사 신사]]의 산자와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신전제]]가 있다. 해마다 7월의 마지막 토요일에는 [[스미다강]]에서 성대한 불꽃 축제가 열리고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봄에 벚꽃이 만개할 때 많은 도쿄의 시민들이 우에노 공원, [[이노카시라 공원]], [[신주쿠 교엔]]으로 소풍을 나온다.
[[시부야]]와 이웃한 [[하라주쿠]]는 젊은이들의 스타일과 패션의 중심지로 알려져있다. 도쿄의 주요 지하철역들에는 대규모 쇼핑센터들이 들어서 있다. 쇼핑 지구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백화점과 고급 상점들, 극장, 레스토랑 들이 모여 있는 [[긴자]]이다. [[간다 (지요다 구)|간다]] 지역에는 백여 개의 고서점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아키하바라]]에는 전자제품과 컴퓨터 및 부속 기기 등을 취급하는 대규모 쇼핑센터들과 작은 상점들이 모여 있다.<ref>{{서적 인용 |저자 = 앤 벤투스 외 | 기타 = 서영조 옮김 | 제목 =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100 | 출판사 = 터치아트 | 연도 = 2007 |쪽=373 |ISBN=978-89-958623-6-0}}</ref>
=== 관광지 ===
* [[도쿄도청]](東京都庁)
* [[시부야]](渋谷)
* [[아메야요코초]](アメヤ横丁)
* [[아사쿠사]](浅草)와 [[센소지]](浅草寺)
* [[아키하바라]](秋葉原)
* [[에도-도쿄 박물관]](江戸東京博物館)
* [[우에노 공원]](上野公園)
* [[오다이바]](お台場)
* [[하라주쿠]](原宿)
=== 갤러리 ===
<gallery mode="packed" heights="130">
Provincial government building of Tokyo.jpg|도쿄도청
Shibuya intersection at night.jpg|시부야 횡단보도
Ameyayokocho Entrance Sign.JPG|아메야요코초
Asakusa Sensoji Kaminarimon 2012.JPG|아사쿠사 센소지의 카미라미몬
Men's shop AOKI, Akihabara.jpg|아키하바라 거리
Edo-Tokyo Museum - Lifesize diorama of kabuki play Sukeroki 04 (15769459291).jpg|에도-도쿄 박물관에 전시된 가부키 공연 전시물
Ueno-Park.JPG|우에노 공원의 벚꽃
Odaiba night.jpg|오다이바의 야경
Sunday at Harajuku - panoramio.jpg|하라주쿠의 코스프레 매니아들
</gallery>
== 스포츠 ==
[[파일:Tokyo Dome 2007-2.jpg|섬네일|오른쪽|[[도쿄 돔]]]]
도쿄는 [[일본]] 스포츠의 중심이다. [[야구]], [[축구]], [[스모]] 프로 팀들이 경쟁하고 있으며 [[1964년 하계 올림픽]]과 [[2020년 하계 올림픽]]이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2개의 프로 야구팀이 도쿄에 연고지를 두고 있는데, [[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 팀인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메이지 진구 구장]])과 [[요미우리 자이언츠]]([[도쿄 돔]])이 그것이다. [[일본 스모 협회]]의 본부 또한 도쿄의 [[료고쿠 국기관]] [[스모]] 경기장에 있고 이 곳에서 매년 3회(1월, 5월, 9월)에 [[스모]] 대회가 열린다.
[[일본 프로 축구 리그|J리그]]에는 [[도쿄 베르디]], [[FC 도쿄]], [[FC 마치다 젤비아]] 3개 구단이 도쿄 도에 연고지를 두고 있다. 그러나 아직 [[도쿄 23구]]를 직접 연고지로 하는 [[일본 프로 축구 리그|J리그]] 소속 구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쿄는 [[1964년 하계 올림픽]]의 개최지이다. [[국립경기장 (도쿄 도)|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수많은 국제 스포츠 이벤트가 열렸다. 세계적인 수준의 개최지로서 도쿄에서는 종종 [[테니스]], [[수영]], [[마라톤]], [[미식축구]], [[유도]], [[가라테]] 대회와 같은 국내외의 스포츠 이벤트가 열린다. [[시부야구]] [[센다가야]]에 있는 [[도쿄 체육관]]은 수영장, 훈련실, 커다란 실내 경기장을 포함한 대형 스포츠 복합단지이다.
[[2020년 하계 올림픽]]이 도쿄에서 개최됨에 따라 새로운 [[신국립경기장 (도쿄 도)|도쿄 신국립경기장]]이 건립되고 있는 것을 비롯하여 많은 스포츠 시설들이 개보수중이다.
=== 도쿄 도의 스포츠 팀 ===
* 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준 본거지)
* 축구: [[도쿄 베르디]], [[FC 도쿄]], [[FC 마치다 젤비아]]([[마치다시]]), [[도쿄 무사시노 시티 FC]]([[무사시노시]])
* 농구: [[도쿄 아파치]]([[후추시 (도쿄도)|후추시]])
* 배구: [[NEC 블루 로켓츠]]
== 자매 결연 도시 ==
단, #표시는 우호도시이다.
* [[서울특별시|서울]]({{국기|대한민국}})
* [[베이징시]]({{국기|중화인민공화국}})
* [[자카르타]]({{국기|인도네시아}})
* [[뉴욕]]({{국기|미국}})
* [[상파울루]]({{국기|브라질}})
* [[파리 (프랑스)|파리]]({{국기|프랑스}})
* [[런던]]({{국기|영국}}) #
* [[로마]]({{국기|이탈리아}})
* [[베를린]]({{국기|독일}})
* [[카이로]]({{국기|이집트}})
* [[모스크바]]({{국기|러시아}})
* [[뉴사우스웨일스]]({{국기|오스트레일리아}})
== 같이 보기 ==
* [[도쿄도지사]]
* [[재일중국인]]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위키공용과 분류|東京|도쿄도|Tokyo}}
{{위키낱말사전|東京都|도쿄도}}
{{위키여행|en:Tokyo|도쿄도{{언어링크|en}}}}
* [http://www.metro.tokyo.jp/KOREAN/index.htm 도쿄도 공식 웹사이트]
* [http://www.gotokyo.org/kr/index.html 도쿄 관광 안내]
* {{언어링크|en}} [http://www.lonelyplanet.com/destinations/north_east_asia/tokyo/ 론리플래닛의 정보(도쿄편)]
{{도쿄도}}
{{일본}}
{{하계 올림픽 개최 도시}}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개최 도시}}
{{하계 패럴림픽 개최 도시}}
{{아시안 게임 개최 도시}}
{{전거 통제}}
[[분류:도쿄도| ]]
[[분류:아시아에 위치한 수도]]
[[분류:하계 올림픽 개최 도시]]
[[분류:하계 패럴림픽 개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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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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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크기 = 290px
|표어 = 자유·정의·진리<br />{{llang|la|Libertas, Justitia, Veritas}}<ref name="motto">{{웹 인용|제목=교훈|url=http://www.korea.ac.kr/mbshome/mbs/university/subview.do?id=university_010105010000|출판사=고려대학교|확인날짜=2017-03-0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70304193140/http://www.korea.ac.kr/mbshome/mbs/university/subview.do?id=university_010105010000|보존날짜=2017-03-04|url-status=live}}</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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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 [[사립대학|사립]]<ref name="academyinfo">{{웹 인용|제목=고려대학교 대학개별공시|url=http://www.academyinfo.go.kr/UIPISA/uipnh/unt/ipsrch/UntUnvAcdtSrchPupInr.do?schlId=0000069&svyYr=2017&schlDivCd=02|출판사=대학알리미|확인날짜=2017-03-0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80720140123/http://www.academyinfo.go.kr/UIPISA/uipnh/unt/ipsrch/UntUnvAcdtSrchPupInr.do?schlId=0000069&svyYr=2017&schlDivCd=02|보존날짜=2018-07-20|url-status=dead}}</ref><br />[[대한민국의 종합대학 목록|종합대학]]
|총장 = [[김동원 (1960년)|김동원]]
|부총장 = '''서울캠퍼스'''<br />교무: 이원규<br />연구: 유혁<br />의무: 윤을식<ref>{{웹 인용|제목=의료원장 인사말|url=http://www.kumc.or.kr/introduction/greeting.do|출판사=고려대학교 의료원|확인날짜=2019-04-02}}</ref><br />'''
|국가 = {{국기|대한민국}}
|위치 = '''서울캠퍼스'''<br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br />'''
|규모 = 1캠퍼스, 12대학, 5학부, 18대학원
|학부 = 서울: 20,047명 (2022년 기준)<ref name="ReferenceA">{{웹 인용|제목=고려대학교 현황|url=http://www.korea.ac.kr/mbshome/mbs/university/subview.do?id=university_010106000000|출판사=고려대학교|확인날짜=2019-04-02}}</ref><br />
|대학원 = 서울: 9,525명 (2022년 기준)<ref name="ReferenceA"/><br />
|교직원수 = 교원: 4,273명 (2022년 기준)<ref name="ReferenceA"/><br />직원: 1,181명 (2022년 기준)
|상징 = 상징동물: [[호랑이]]<ref name="symbol">{{웹 인용|제목=고려대학교 상징|url=http://www.korea.ac.kr/mbshome/mbs/university/subview.do?id=university_010105010000|출판사=고려대학교|확인날짜=2017-03-0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70304193140/http://www.korea.ac.kr/mbshome/mbs/university/subview.do?id=university_010105010000|보존날짜=2017-03-04|url-status=live}}</ref><br /> 교목: [[잣나무]]<ref name="symbol"/><br />
|교색 = [[크림슨]](Crimson) <span style="background:#900023; width:50px; border:1px solid #000;"> </span><ref name="crimson">{{웹 인용|제목=고려대학교 상징|url=http://www.korea.ac.kr/mbshome/mbs/university/subview.do?id=university_010411000000|출판사=고려대학교|확인날짜=2017-02-0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70206104052/http://www.korea.ac.kr/mbshome/mbs/university/subview.do?id=university_010105020000|보존날짜=2017-02-06|url-status=live}}</ref>
|설립자 = [[이용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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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 [http://www.korea.ac.kr 고려대학교 홈페이지]
}}
'''고려대학교'''(高麗大學校, {{llang|en|Korea University, '''KU'''}})는 [[대한민국]]의 [[사립대학|사립]] [[대한민국의 대학|종합대학]]이다. [[대한제국]] [[광무 (연호)|광무]] 9년인 1905년 [[이용익]]이 설립한 [[한국]] 최초의 민간인에 의한 근대적 고등교육기관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로 출발하였다. 학교 설립 이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용익이 망명하였고,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가 경영권을 이어받았고 [[김성수 (언론인)|김성수]]가 1932년 경영난에 허덕이던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하였고 1946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며 '''고려대학교'''로 개칭하였다.<ref name="fouryearcollege">{{뉴스 인용|제목=건국동량(建國動梁)의 새 요람(搖籃)|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46052000209202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46-05-20&officeId=00020&pageNo=2&printNo=6983&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동아일보|날짜=1946-05-20|확인날짜=2011-07-02}}{{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46052000209202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46-05-20&officeId=00020&pageNo=2&printNo=6983&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 }}</ref> 1952년 12월에는 문과대학을 문리과대학으로 개편<ref>{{웹 인용|제목=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주요 연혁|url=http://wizard.korea.ac.kr/user/indexSub.action?codyMenuSeq=1390655&siteId=kulibart&menuType=T&uId=1&sortChar=A&linkUrl=1_3.html&mainFrame=right|출판사=고려대학교 문과대학|확인날짜=2012-05-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1129063104/http://wizard.korea.ac.kr/user/indexSub.action?codyMenuSeq=1390655&siteId=kulibart&menuType=T&uId=1&sortChar=A&linkUrl=1_3.html&mainFrame=right|보존날짜=2014-11-29|url-status=dead}}</ref>하고 1971년에는 [[우석대학교 (서울)|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을 흡수 합병해 이공·인문·의예·예체능 관련 학과를 고루 갖추었다.<ref name="kuhistory">{{웹 인용|제목=고려대학교 약사|url=http://www.korea.ac.kr/mbshome/mbs/university/subview.do?id=university_010602000000|출판사=고려대학교|확인일자=2021-10-20}}</ref><ref name="wooseok">{{뉴스 인용|제목=진통(陣痛) 1年9개月만의 안주(安住) 고려대(高麗大) 우석대(友石大)병합의 언저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12020020920600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1-12-02&officeId=00020&pageNo=6&printNo=15434&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동아일보|저자=정연춘 기자|날짜=1971-12-02|확인날짜=2011-06-06}}{{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12020020920600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1-12-02&officeId=00020&pageNo=6&printNo=15434&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 }}</ref> 고려대학교는 독재 정권에 항거하여 1960년 [[4·19 혁명]]의 촉매제가 된 [[4·18 고려대학생 피습 사건|4·18 의거]]<ref name="koreauniv1960">{{뉴스 인용|제목=다시 격발(激發)된 학생(學生)데모|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41900209101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0-04-19&officeId=00020&pageNo=1&printNo=11701&publishType=0001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동아일보|날짜=1960-04-19|확인날짜=2011-06-29}}{{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41900209101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0-04-19&officeId=00020&pageNo=1&printNo=11701&publishType=00010&doNotReadAnyMore=notClose }}</ref><ref name="korea418">{{뉴스 인용|제목=굽이굽이 미완의 숙제 남기고 흐르는 '굴곡의 현대사'|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1031824575&code=210000|출판사=경향신문|날짜=2010-01-03|확인날짜=2011-06-06}}</ref>를 비롯한 각종 시위의 중심에 서기도 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5년 4월에 공포한 [[긴급조치]] 제7호는 고려대학교만을 대상으로 시행했다.<ref name="archive07">{{웹 인용|제목=대통령긴급조치 제7호(1975.4.8)|url=http://theme.archives.go.kr/next/content/listSubjectDescription.do?id=001482&pageFlag=C|출판사=국가기록원 나라기록|확인날짜=2011-06-0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05214442/http://theme.archives.go.kr/next/content/listSubjectDescription.do?id=001482&pageFlag=C|보존날짜=2011-11-05|url-status=dead}}</ref><ref name="park07"/><ref name="protestors">{{웹 인용|제목=高大의 문은 누구도 닫을 수 없습니다!|url=http://www.koreapas.net/bbs/data/gofun/gate.jpg|출판사=고대신문|확인날짜=2011-06-06}}{{깨진 링크|url=http://www.koreapas.net/bbs/data/gofun/gate.jpg }}</ref>
상징 동물은 [[호랑이]]<ref name="symbol"/>, 교색(校色)은 [[크림슨]]<ref name="crimson"/>, 교목(校木)은 [[잣나무]]<ref name="symbol"/>, 교훈(校訓)은 ‘자유·정의·진리’({{llang|la|Libertas, Justitia, Veritas}})이다.<ref name="motto"/> 약칭으로 '''고대'''(高大)라고 부른다.<ref>{{뉴스 인용|제목=고려대 "`KU' 상표권 등록 어떻게 안될까"|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007430|출판사=연합뉴스|저자=강훈상 기자|날짜=2005-05-20|확인날짜=2011-06-07}}</ref>
== 연혁 ==
{{본문|고려대학교의 역사}}
=== 고려대학교의 모태 ===
고려대학교의 모태는 대한제국 내장원경 [[이용익]]이 1905년에 설립한 '''보성전문학교'''다. 1932년 [[동아일보]] 창업자 [[김성수 (언론인)|김성수]]가 학교를 인수했고 1934년에는 [[안암동]]의 현재의 자리로 학교를 옮겼다. 1944년 일제가 학교 이름을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로 변경했다.
=== 광복 이후 ===
==== 종합대학으로 승격과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의 흡수·합병 ====
1945년 해방 후 교명을 보성전문학교로 환원하고, 1946년에는 종합대학으로 승격을 인가 받으며 동시에 보성전문학교를 '''고려대학교'''로 개칭했다.<ref name="fouryearcollege"/>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본교는 애기능 인근 부지를 매입하였으며<ref name="ku1962">{{뉴스 인용|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203140032920400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62-03-14&officeId=00032&pageNo=4&printNo=5013&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제목=캠퍼스의 봄 (2) 고려대학편(高麗大學篇)|날짜=1962-03-14|출판사=경향신문|확인날짜=2011-07-01}}{{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203140032920400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62-03-14&officeId=00032&pageNo=4&printNo=5013&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 }}</ref> 이는 후일 이곳에 이공계캠퍼스가 자리 잡는 기반이 된다. 1971년 12월에는 1970년에 시작된 장기발전계획에 따라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을 흡수 및 합병하였다.<ref name="kuhistory"/><ref name="wooseok"/>
[[파일:4.19 혁명.jpg|섬네일|오른쪽|250px|4·18 피습사건은 4·19 혁명 발발의 도화선이 됐다.]]
==== 반복적인 시위와 잦은 휴교 사태 ====
1960년 4월 11일 [[3·15 부정선거]]와 관련한 [[마산시|마산]] 시위에서 실종된 [[김주열]] 시신을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하면서<ref name="korea418"/><ref>{{뉴스 인용|제목=4·19의 횃불|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42500209202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0-04-25&officeId=00020&pageNo=2&printNo=11707&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동아일보|날짜=1960-04-25|확인날짜=2011-07-10}}{{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42500209202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0-04-25&officeId=00020&pageNo=2&printNo=11707&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 }}</ref> 5개 단과대학 운영위원장들의 주도로 수많은 학생들이 ‘마산사건의 책임자를 즉시 처단’을 요구하며 장외시위를 벌였으나<ref name="koreauniv1960"/>, 돌아오는 길에 [[신도환]]의 [[대한반공청년단]] 소속 폭력배들에게 피습을 당하여<ref>{{뉴스 인용|제목=고대(高大) 데모대(隊) 깡패단습격(團襲擊)으로 유혈소동(流血騷動)|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41900209203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0-04-19&officeId=00020&pageNo=3&printNo=11701&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동아일보|날짜=1960-04-19|확인날짜=2011-07-10}}{{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41900209203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0-04-19&officeId=00020&pageNo=3&printNo=11701&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 }}</ref><ref>{{뉴스 인용|제목=고대(高大)데모 대원(隊員)의 습격(襲擊) 유지광(柳志光)이 전화(電話)로 지시(指示)|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5250032920301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60-05-25&officeId=00032&pageNo=3&printNo=4355&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경향신문|날짜=1960-05-25|확인날짜=2011-07-10}}{{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5250032920301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60-05-25&officeId=00032&pageNo=3&printNo=4355&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 }}</ref>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매년 4월 18일에 '''[[4·18 고려대학생 피습 사건|4·18 의거]]'''로 기록하며 독재정권에 맞선 선배들의 정의로운 행동을 계승하기 위해 ‘4·18 구국대장정’ 행사를 연다.<ref name="pilgrim">{{뉴스 인용|제목=4·18 고대생 의거 50주년 기념 행사들 열려|url=http://news.jkn.co.kr/pressrelease/27818.htm|출판사=재경일보|날짜=2010-04-19|확인날짜=2011-07-10|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3030133/http://news.jkn.co.kr/pressrelease/27818.htm|보존날짜=2013-12-13|url-status=dead}}</ref> 구국대장정 행사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보려면 [[#연례 행사|연례 행사 단락]]을 참조하도록 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휴교 사태가 빈발한 시기이기도 하다. 1965년 9월 4일에는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 반대시위 사태로 무기한 휴업 명령을 받았으며<ref>{{뉴스 인용|제목=어리둥절 모두 어리둥절|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5090400329207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5-09-04&officeId=00032&pageNo=7&printNo=6118&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경향신문|날짜=1965-09-04|확인날짜=2011-06-06}}{{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5090400329207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5-09-04&officeId=00032&pageNo=7&printNo=6118&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 }}</ref><ref name="kuhistorykhan">{{뉴스 인용|제목=사학(私學)의 수난(受難) 고대(高大)·연대(延大)의 발자취|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5090400329207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5-09-04&officeId=00032&pageNo=7&printNo=6118&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경향신문|날짜=1965-09-04|확인날짜=2011-06-06}}{{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5090400329207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5-09-04&officeId=00032&pageNo=7&printNo=6118&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 }}</ref>, 1971년 10월 15일에는 27일 간의 강제 휴교 조치를 동반한 교내 군 투입 및 위수령 조치를 단행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무거운침묵(沈默) 위수·휴업령(休業令)내려져 굳게닫힌 캠퍼스|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101600209207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1-10-16&officeId=00020&pageNo=7&printNo=15394&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동아일보|날짜=1971-10-15|확인날짜=2011-06-06}}{{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101600209207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1-10-16&officeId=00020&pageNo=7&printNo=15394&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 }}</ref><ref>{{뉴스 인용|제목=27년 만에 빛 본 1980년 ‘신동아’ 계엄검열 삭제 기사 ‘4·19에서 10·26까지 학생운동이 걸어온 발자취’|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62&aid=0000000247|출판사=신동아|저자=김도형 논설위원|날짜=2007-04-25|확인날짜=2011-06-06}}</ref> 1975년 4월, 당시 정부는 [[유신헌법]] 철폐 시위의 중심이었던 고려대학교만을 대상으로 [[긴급조치]] 제7호를 발동하였다.<ref name="archive07"/><ref name="park07">{{뉴스 인용|제목=긴급조치(緊急措置) 7호선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5041000099201024&edtNo=1&printCount=1&publishDate=1975-04-10&officeId=00009&pageNo=1&printNo=2801&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매일경제|날짜=1975-04-10|확인날짜=2011-06-04}}{{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5041000099201024&edtNo=1&printCount=1&publishDate=1975-04-10&officeId=00009&pageNo=1&printNo=2801&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 }}</ref><ref>{{뉴스 인용|제목=35日만에 門열린 고려大 校門의軍人에 "수고했오"|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5051300209203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5-05-13&officeId=00020&pageNo=3&printNo=16496&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동아일보|날짜=1975-05-13|확인날짜=2011-06-06}}{{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5051300209203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5-05-13&officeId=00020&pageNo=3&printNo=16496&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 }}</ref> 제5공화국이 들어선 이후에도 독재정권을 향한 학생들의 시위는 계속됐다.
==== 교육시설의 확충 ====
창립 30주년 기념사업으로 중앙도서관 구관이 1935년에 착공<ref name="ku1962"/>하여 1937년에 개관한 데 이어 1975년에는 창립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중앙도서관 신관을 신축하여 1978년 3월에 개관하였다.<ref name="kuhistory"/><ref name="mainlibrary">{{웹 인용|제목=도서관 연혁|url=http://library.korea.ac.kr/local/html/useChronology11|출판사=고려대학교 도서관|확인날짜=2011-06-0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01008193248/http://library.korea.ac.kr/local/html/useChronology11|보존날짜=2010-10-08|url-status=live}}</ref><ref name="kumainlib">{{뉴스 인용|제목=고대(高大) 새도서관(圖書館)개관|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03150020920701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03-15&officeId=00020&pageNo=7&printNo=17367&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동아일보|날짜=1978-03-15|확인날짜=2011-06-24}}{{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03150020920701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03-15&officeId=00020&pageNo=7&printNo=17367&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 }}</ref> 1973년 10월 [[서독]] 정부의 무상원조에 의해 농과대학 캠퍼스를 준공하였고 1977년부터 활용 시작하였다. 한편 1978년 5월 착공한 기숙사를 1979년 11월에 준공하였고 이듬해인 1980년 3월에 개관하였다. 한편 당국의 수도권 인구분산 정책에 따라 1980년 1월에 8개 학과, 초기 정원 400명 규모의 조치원분교 설립이 인가됐는데 이것이 현재의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세종캠퍼스]]가 탄생하는 계기이다.<ref name="kuhistory"/>
=== 2000년대 이후 ===
==== 졸업요건의 변화 ====
2000년대에 들어서자 세계화 되는 추세에서 고려대학교 졸업자의 실력은 세계적인 수준에 맞추어야 한다는 ‘Global KU 프로젝트’ 등의 영향으로 졸업요건을 대폭 강화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2000년 3월 신입생부터는 졸업 인증제도로 [[TOEIC]] 및 [[TOEFL]] 등 공인영어시험 성적을 일정 수준을 얻어야 졸업이 가능하다<ref name="requisite">{{뉴스 인용|제목=빛나는 졸업장 받기 힘들다|url=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070226000243|출판사=헤럴드경제|저자=오연주 기자|날짜=2010-04-05|확인날짜=2011-06-24}}</ref><ref>{{뉴스 인용|제목=대학졸업門 갈수록 '좁은門'|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8&aid=0000094885|출판사=한국일보|저자=양정대·고찬유 기자|날짜=2001-08-27|확인날짜=2011-06-24}}</ref><ref name="englishforgraduation">{{뉴스 인용|제목=영어못하면 졸업하기 힘들어진다|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2712|출판사=고대신문|저자=구성미 독자리포터|날짜=2003-12-01|확인날짜=2011-06-1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057/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2712|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2004년 3월 신입생부터는 [[한자능력검정시험|한자 2급]] 수준으로 졸업요건을 신설했으나<ref name="requisite"/><ref>{{뉴스 인용|제목=04학번, 한자이해능력 인증돼야 졸업한다|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3133|출판사=고대신문|저자=김연정 기자|날짜=2004-03-01|확인날짜=2011-06-1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18110551/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3133|보존날짜=2012-01-18|url-status=live}}</ref> 2011년 들어 일부 학과들이 이 요건을 폐지하였다.<ref name="hanja"/> 또한 2004년 3월 신입생부터는 심화전공이나 이중전공, 연계전공, 이렇게 세 가지 항목 가운데 한 가지를 의무적으로 선택하여 학생설계전공으로 세분화하는 '''제2 전공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ref name="doublemajor">{{뉴스 인용|제목=04학번 제2전공 꼭 선택해야|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4821|출판사=고대신문|저자=금보운 기자|날짜=2004-11-21|확인날짜=2011-06-1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051/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4821|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 ====
2005년은 고려대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해였으며 같은 해 5월 5일에는 개교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했다.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과 관련하여 2003년에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출범 및 지층에 7천평 규모의 1백주년 기념관에는 박물관과 디지털 도서관을 건립 하는 등 교내에서 다양한 기념사업들을 추진했다.<ref name="ku100th">{{뉴스 인용|제목=내년 개교 100주년 맞는 고려대|url=http://www.unn.net/News/detail.asp?nsCode=7524|출판사=한국대학신문|저자=최창식 기자|날짜=2004-04-06|확인날짜=2011-06-2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1206032834/http://www.unn.net/News/detail.asp?nsCode=7524|보존날짜=2014-12-06|url-status=live}}</ref><ref name="fiveparts">{{뉴스 인용|제목=치밀한 준비가 본교 도약의 전환점|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5130|출판사=고대신문|저자=김연정 기자|날짜=2004-11-01|확인날짜=2011-06-2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101/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5130|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한편 [[고려중앙학원]]에서는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3대 마스터플랜을 기획, 중앙광장과 백주년기념관, 화정체육관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으며 이 가운데 중앙광장이 2002년 3월에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 이후 백주년기념 삼성관과 화정체육관을 각각 2005년, 2006년에 건립했다.<ref>{{웹 인용|제목=고려대학교 약사|url=http://www.korea.ac.kr/content/K/K2_1_2_04.jsp|출판사=고려대학교|확인날짜=2011-06-0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725145918/http://www.korea.ac.kr/content/K/K2_1_2_04.jsp|보존날짜=2012-07-25|url-status=live}}</ref><ref name="tigerdome">{{뉴스 인용|제목=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 별세|url=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2250320|출판사=동아일보|저자=심규선 기자|날짜=2008-02-25|확인날짜=2011-06-02}}</ref>
== 위상 ==
[[파일:Koreauniv.jpg|250px|섬네일|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중앙도서관의 야경]]
{{참고|고려대학교에 대한 비판과 논란}}
=== 세계 대학 순위 평가 ===
[[어윤대]] 총장의 재임기간 동안 고려대학교는 2006년 [[영국]] 《[[더 타임즈|타임즈]]》지가 발표한 세계대학순위에서 종합 150위에 오르는 등 많은 성과를 기록하였다.<ref name="presidenteo"/> 사회과학·경영, 인문·예술, 자연과학, 생명과학·의학, 공학·기술 분야에서 조사를 시행한 ‘2012 조선일보·QS 아시아대학평가’에서 고려대학교는 경영학, 법학, 행정학, 교육학 등이 포함되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아시아 12위를 차지한 바 있다.<ref>{{뉴스 인용|제목=2012 아시아 대학평가 : 사회과학 고려대, 인문학 연세대, 의학 성균관대 약진|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30/2012053000297.html|출판사=조선일보|저자=대학평가팀|날짜=2012-05-30|확인날짜=2015-05-2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525111510/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30/2012053000297.html|보존날짜=2015-05-25|url-status=live}}</ref> 한편,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은 2009년 경영대학 평가 전문기관인 [[:en:Eduniversal|에듀니버설]]이 전 세계 경영대 학장 1000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추천하고 싶은 대학’ 국내 1위에 올랐으며,<ref>{{뉴스 인용|제목=고려대 경영대 ‘추천하고 싶은 대학’ 국내 1위에|url=http://news.donga.com/3/all/20091117/24159656/1|출판사=동아일보|저자=우정열 기자|날짜=2009-11-17|확인날짜=2011-08-19|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525115502/http://news.donga.com/3/all/20091117/24159656/1|보존날짜=2015-05-25|url-status=live}}</ref> 2010년 대한민국 경영대 평가 설문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데 이어<ref>{{뉴스 인용|제목=고려대 경영대 왜 강한가|url=http://magazine.hankyung.com/business/apps/news?popup=0&nid=01&c1=1001&nkey=2010112500782000371&mode=sub_view|출판사=한국경제매거진|저자=이진원 기자|날짜=2010-12-01|확인날짜=2011-08-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03044833/http://magazine.hankyung.com/business/apps/news?popup=0&nid=01&c1=1001&nkey=2010112500782000371&mode=sub_view|보존날짜=2011-11-03|url-status=live}}</ref> 2012년 [[:en:University of Texas at Dallas|UTD]] 랭킹에서는 86위에 올라 대한민국 대학 중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고려대 경영대 세계 86위 국내선 1위|url=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08891|출판사=한국대학신문|저자=홍여진 기자|날짜=2012-04-03|확인날짜=2015-05-2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525104136/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08891|보존날짜=2015-05-25|url-status=live}}</ref> [[경영학 석사|MBA]]는 [[대한민국 교육과학기술부|교육과학기술부]]의 [[BK21]] 평가에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고려대 MBA, BK21 4년 연속 1위 세계 대학과 교류|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102808290346607|출판사=아시아경제|저자=황석연 기자|날짜=2010-10-28|확인날짜=2011-08-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20012030/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102808290346607|보존날짜=2012-01-20|url-status=live}}</ref> BK21의 후속 사업인 BK21 플러스의 2013년 초기 선정 결과도 사업단 수와 지원 금액에서 [[서울대학교]]에 이어 2위를 차지하였으며, 특히 공과대학의 모든 분야가 Bk21 플러스에 선정됐다.<ref>{{뉴스 인용|제목=「BK21 플러스 사업」최종 선정결과 발표|url=http://www.korea.kr/policy/pressReleaseView.do?newsId=155911942|출판사=교육부|저자=교육부|날짜=2013-08-16|확인날짜=2015-05-2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525110247/http://www.korea.kr/policy/pressReleaseView.do?newsId=155911942|보존날짜=2015-05-25|url-status=live}}</ref> 대한민국 경영대학 가운데 [[국제경영대학발전협의회|AACSB]]와 [[:en:European Quality Improvement System|EQUIS]] 두 곳의 인증을 최초로 받은 곳 역시 고려대학교다.<ref>{{뉴스 인용|제목='재벌 2세 요람', 고려대 경영대 인맥|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62&aid=0000000678|출판사=신동아|저자=최호열 기자|날짜=2007-09-27|확인날짜=2011-08-17}}</ref> 2011년에 신규 임용된 42기 사법연수생 가운데 고려대학교 출신자는 189명으로 서울대학교 다음으로 많았다.<ref>{{뉴스 인용|제목=사법연수생 신규 임명자, 주요대 편중 심화|url=http://news.lec.co.kr/gisaView/detailView.html?menu_code=10&gisaCode=L001002006360025&tblName=tblNews|출판사=법률저널|저자=이상연 기자|날짜=2011-06-10|확인날짜=2011-08-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5071219/http://news.lec.co.kr/gisaView/detailView.html?menu_code=10&gisaCode=L001002006360025&tblName=tblNews|보존날짜=2013-12-15|url-status=dead}}</ref> 2009년에 치러진 51회 [[사법시험 (대한민국)|사법시험]]에서는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서 155명의 합격자를 내 가장 많은 합격자를 내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사시 2차 합격자수… 고려대 법대 첫 1위|url=http://www.segye.com/Articles/NEWS/SOCIETY/Article.asp?aid=20091111004195&subctg1=&subctg2=|출판사=세계일보|저자=이태영 기자|날짜=2009-11-11|확인날짜=2011-08-19}}</ref>
=== 세계 대학 평가 기관 ===
고려대학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3대 세계 대학 평가 기관([[중화인민공화국]] [[세계 대학 학술 순위]], [[영국]] [[QS 세계 대학 순위]], 영국 [[타임스 고등교육 세계 대학 평가]]를 뜻한다)이 2015년 발표한 [[세계 대학 순위]]에서도 우수한 성과를 나타냈다. 중화인민공화국 세계 대학 학술 순위에서 [[연세대학교]], [[한국과학기술원]], [[포항공과대학교]], [[성균관대학교]]와 함께 공동 201~300위를 기록했다. 영국 [[QS 세계 대학 순위]]에서는 104위로 연세대학교를 제치며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했고, 영국 [[타임스 고등교육 세계 대학 평가]]에서는 연세대학교와 공동 200~225위를 기록했다(아시아 대학 순위에서는 26위로, 28위를 차지한 연세대학교를 제쳤다.). 그리고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 평가 기관인 US 뉴스&월드 리포트에서는 157위로 대한민국 대학들 중에서는 서울대학교의 뒤를 이어서 2위를 차지했다. 거기다가 [[상하이 자오퉁 대학]]이 가장 최근에 발표한 세계 대학 순위에서는 224위로 대한민국 사립대들 중에서는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2015년 세계대학평가 기관인 QS가 발표한 세계대학평가 학과별 평가에서 고려대학교는 전체 평가 항목 36개 분야 중 20개 학과에서 세계 100위권 이내에 들어 대한민국 사립대 가운데 가장 우수한 성과를 보였다.<ref>{{뉴스 인용|제목=[2015 세계대학평가] 톱 200에 화학 10곳·전자 8곳… 한국대학 '工學 경쟁력' 더 강해졌다.|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4/29/2015042900191.html|출판사=조선일보|저자=김연주 기자|날짜=2015-04-29|확인날짜=2015-05-2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526103032/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4/29/2015042900191.html|보존날짜=2015-05-26|url-status=live}}</ref>
=== 최근의 세계 대학 평가 결과 ===
2016년 9월 발표한 [[QS 세계 대학 순위|QS 세계대학평가]]에서는 전년 대비 6순위 상승한 98위를 기록하며 대한민국 종합사립대학으로서는 가장 먼저 세계 100위 안에 진입한 대학이 됐다. 대한민국의 세계 대학순위 100위권에는 고려대학교 외에도 세 곳득 포함하였으며 국립 대학인 [[서울대학교]], [[한국과학기술원]], [[포항공과대학교]] 등이다.<ref>{{뉴스 인용|제목=한국 대학 4곳, 세계 톱 100에|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06/2016090600161.html|출판사=조선일보|저자=안석배 기자|날짜=2016-09-06|확인날짜=2017-03-0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70304194326/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06/2016090600161.html|보존날짜=2017-03-04|url-status=live}}</ref> 2017년 전년 대비 8순위 상승한 90위에 등극하였다. 2018년에는 전년 대비 4순위 향상한 86위에 등극하였다. 2018년 [[QS 세계 대학 순위|QS 세계대학평가]] 기준으로 100위 안에 진입한 대한민국 대학은 고려대학교(86위)를 포함해 [[서울대학교]](36위), [[한국과학기술원]](40위), [[포항공과대학교]](83위), [[성균관대학교]](100위) 등 총 다섯 곳이다.<ref>{{뉴스 인용|제목=2018 QS 세계대학 순위 설카포 고대 성대 톱5...'성대 첫100위 진입'|ur%7c=http://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118076|출판사=베리타스알파|저자=권수진 기자|날짜=2018-06-07|확인날짜=2019-04-01|보존ur%7c=http://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118076|보존날짜=2019-04-02|url-status=live}}</ref>
== 개설 학과·전공 ==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모두 개설하였다.
=== 학부 과정 ===
2022년 기준으로 본교인 서울캠퍼스에는 12개 단과대학과 분교인 세종캠퍼스에는 5개 단과대학을 설치하였다. 2009학년도부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개원하여서 법과대학을 폐지하였으나 대신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하여 기존의 법학과 신입생 정원을 대체한다. 사이버국방학과는 정보대학 소속 학과로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와 협약하여 2012년에 처음 개설한 학과이다. 컴퓨터교육과 경우 2014학년도를 시작으로 컴퓨터학과로 개편히면서 더 이상 사범대학이 아닌 정보통신대학의 소속으로 변경했다.<ref>{{뉴스 인용|제목=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확장해 정보보호학부 개설|url=http://www.etnews.com/news/computing/informatization/2499500_1475.html|출판사=전자신문|저자=장윤정 기자|날짜=2011-07-04|확인날짜=2012-04-19|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3025842/http://www.etnews.com/news/computing/informatization/2499500_1475.html|보존날짜=2013-12-13|url-status=live}}</ref><ref>{{뉴스 인용|제목=이런 신설학과 아시나요?|url=http://www.ktv.go.kr/ktv_contents.jsp?cid=410059|출판사=한국정책방송|저자=박지연 기자|날짜=2011-12-22|확인날짜=2012-04-19|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6071620/http://www.ktv.go.kr/ktv_contents.jsp?cid=410059|보존날짜=2013-12-16|url-status=live}}</ref> 일부 학과에서는 학부제로 모집을 하며 학부제로 입학한 학생의 경우 2학년으로 진급하면 자신의 전공을 배정받는데, 전공을 배정하는 기준은 단과대학 상황에 따라 다르게 설정하였다.<ref name="majorsetting">{{웹 인용|제목=학부제 전공배정|url=http://www.korea.ac.kr/mbshome/mbs/university/subview.do?id=university_050501040100|출판사=고려대학교|확인날짜=2016-07-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716071013/http://www.korea.ac.kr/mbshome/mbs/university/subview.do?id=university_050501040100|보존날짜=2016-07-16|url-status=live}}</ref> 학부과정에서는 2004년 입학생부터 심화전공, 이중전공, 융합전공, 학생설계 전공으로 세분화한 제2전공 이수를 의무화했다.<ref name="doublemajor"/>
* 융합전공
복수의 학과·학부가 협력하여 개설한 [[#교육방침상의 특징|융합전공]]은 2004년에 처음 도입됐다.<ref name="relationmajoropened">{{뉴스 인용|제목=2004년부터 연계전공 시행|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2419|출판사=고대신문|저자=이승은 기자|날짜=2003-11-03|확인날짜=2011-06-0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218/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2419|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2004학번부터 이수가 의무화<ref name="doublemajor"/> 된 제2전공 하나로 선택할 수 있다.
=== 대학원 과정 ===
일반대학원과 전문대학원, 특수대학원으로 구분한다. 의학전문대학원 경우 전문대학원 53명을 의학과 53명과 병행하여 임시로 운영하였으나 2015년에 폐지했다. 2009년에 개원한 법학전문대학원은 120명을 배정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로스쿨 예비大서울권15곳 1140명,지방10곳 860명 잠정 확정|url=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1300156|출판사=동아일보|날짜=2008-01-30|확인날짜=2011-06-07}}</ref>
== 교육 방침상의 특징 ==
=== 국제 교류 ===
고려대학교의 대표적인 국제 협정 교육기관으로는 고려대의 설립자 인촌 및 고대 초대 총장과 초창기 교직원 절대다수가 졸업하였으며 1973년부터 공식 교류한 (실제 교류는 1920년대부터) [[와세다 대학]] (早稲田大学)과 1989년부터 교류를 개시한 [[베이징 대학]] (北京大; 북경대) 등이 있다. 와세다와 북경대 모두 고려대와 학사와 석사 복수 학위 등을 제공해 캠퍼스 아시아(Campus Asia) 등으로 혈맹 수준의 복수학위 제도를 실시한다.<ref>{{웹 인용|url=https://www.waseda.jp/campus-asia/|제목=https://www.waseda.jp/campus-asia/|언어=ja|확인날짜=2024-01-16|archive-date=2024-01-16|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116003849/https://www.waseda.jp/campus-asia/|url-status=}}</ref><ref>{{웹 인용|url=https://campusasia.korea.ac.kr:6003/community/notice.php?ptype=view&code=notice&idx=5506|제목=고려대|성=고려대|날짜=2024-01-16}}</ref>
국제처에서는 국제 교류의 갈래로 SEP(Student Exchange Program)와 VSP(Visiting Student Program)의 두 종류를 운영한다. SEP는 본교와 학술 교류 협정을 체결흔 외국 대학과 학부 또는 대학원생을 교환하는 프로그램이다. 본교는 해당 학교가 요구하는 자격을 갖춘 자를 교환학생으로 추천하며, 추천된 교환학생에 대한 입학 허가 여부는 해당 학교가 결정한다. 자비유학과 방문학생과 달리 본교에만 등록금을 납부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SEP와는 별도로 VSP 또한 국제 교류의 한 형태로 운영한다. 소수의 학교와 별도의 협정을 체결하여 본교의 학생들을 대규모로 파견하는 것이 VSP 프로그램의 요지이다.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영국]]의 [[:en:Royal Holloway, University of London|로얄할러웨이 대학교]], [[호주]]의 [[그리피스 대학교]],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캠퍼스]]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등이 그 대상이다.<ref>{{웹 인용|제목=VSP|url=http://studyabroad.korea.ac.kr/outgoing/index.jsp|출판사=Korea University International Exchange|확인날짜=2012-05-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0422190943/http://studyabroad.korea.ac.kr/outgoing/index.jsp|보존날짜=2008-04-22|url-status=dead}}</ref> 등록금은 파견학교와 본교에 모두 납부하는 것이 원칙이나, 이 가운데 본교에 납부한 등록금의 대부분은 장학금의 형태로 반환한다.<ref>{{웹 인용|제목=장학금안내|url=http://www.korea.ac.kr/content/L/L1_8_1_01.jsp|출판사=고려대학교|확인날짜=2010-07-1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717210559/http://www.korea.ac.kr/content/L/L1_8_1_01.jsp|보존날짜=2011-07-17|url-status=live}}</ref> 한편, 일부 단과대학은 본교와는 별도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ref>{{웹 인용|제목=교환·방문 프로그램 안내|url=http://biz.korea.ac.kr/listener.do?layout=BBA.exchange02|출판사=고려대학교 경영대학|확인날짜=2012-05-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05044003/http://biz.korea.ac.kr/listener.do?layout=BBA.exchange02|보존날짜=2016-03-05|url-status=dead}}</ref>
=== Global KU 프로젝트와 한자졸업요건 ===
* '''Global KU 프로젝트''' : 2010년까지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을 우선 목표로 하여, 제15대 [[어윤대]] 총장이 주도해서 2003년부터 본격 실시했다.<ref>{{뉴스 인용|제목="고려대 글로벌化"아직도 배고프다|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6&aid=0000209945|출판사=헤럴드경제|저자=하남현 기자|날짜=2006-05-26|확인날짜=2011-06-24}}</ref> 장기적으로 영어강의 확충<ref>{{뉴스 인용|제목=수강생 56% 영어강의 불만족|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252|출판사=고대신문|저자=이정인 기자|날짜=2006-03-13|확인날짜=2011-06-0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139/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252|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해외 대학과의 교류 증진<ref>{{뉴스 인용|제목=글로벌 KU 국제하계대학의 현주소|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3905|출판사=고대신문|저자=하현희 기자|날짜=2009-08-30|확인날짜=2011-06-0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141/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3905|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외국인 교수 채용 확대 등을 목표로 하며, 졸업요건으로 요구하는 [[TOEIC|토익]] 점수를 대폭 상승시키고, 2005년 5월에는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계대학총장포럼을 개최<ref>{{웹 인용|제목=고려대학교 약사|url=http://www.korea.ac.kr/content/K/K2_1_2_05.jsp|출판사=고려대학교|확인날짜=2011-06-0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725150728/http://www.korea.ac.kr/content/K/K2_1_2_05.jsp|보존날짜=2012-07-25|url-status=live}}</ref> 하는 등 단기적인 계획도 함께 진행하였다. 현재 공인영어 성적의 일정 수준 이상을 취득해야 졸업이 가능한 상태다.<ref name="englishforgraduation"/> 한편, Global KU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교내에 도입된 영어강의와 관련해서 학교 측에서는 각 단과대의 특성을 고려해 앞으로 영어로 전공 수업 등을 진행하는 영어강의와 관련된 졸업 요건을 단과대별로 완화하거나 강화할 계획이다.<ref>{{뉴스 인용|제목=고려대 영어강의, 단과대별 탄력운용키로|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3823568|출판사=뉴시스|저자=류난영 기자|날짜=2011-04-27|확인날짜=2011-06-06}}</ref> 2012년 기준으로 대체로 5개 이상의 영어강의를 수강하면 졸업이 가능하지만, 단과대학에 따라 더 많은 수의 영어강의를 수강하여야 졸업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ref>{{뉴스 인용|제목=영어강의 효율성 높여 내실 갖춰야|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4981|출판사=고대신문|날짜=2004-12-04|확인날짜=2011-06-0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18110236/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4981|보존날짜=2012-01-18|url-status=live}}</ref><ref>{{웹 인용|제목=고려대학교 경영대학 졸업가이드|url=http://biz.korea.ac.kr/downManager?fm=200911241259044880110_pdf&fn=%B0%ED%B7%C1%B4%EB%C7%D0%B1%B3%20%B0%E6%BF%B5%B4%EB%C7%D0%20%C1%B9%BE%F7%B0%A1%C0%CC%B5%E5_20091124.pdf&s=sub06|출판사=고려대학교 경영대학|날짜=2009-11-24|확인날짜=2012-05-03|archive-date=2016-04-27|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60427191427/http://biz.korea.ac.kr/downManager?fm=200911241259044880110_pdf&fn=%B0%ED%B7%C1%B4%EB%C7%D0%B1%B3%20%B0%E6%BF%B5%B4%EB%C7%D0%20%C1%B9%BE%F7%B0%A1%C0%CC%B5%E5_20091124.pdf&s=sub06|url-status=dead}}</ref>
* '''한자졸업요건''' : 학부과정에서는 국가 공인 혹은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 인증 한자 2급 획득 또한 의무화하였으나 법과대학을 시작으로 [[한자]]졸업요건은 단과대 자율에 맡기는 방침으로 변경했다. 한자인증을 가장 먼저 폐지한 법과대학과 정보통신대학은 ‘한자인증의 사회적 필요성이 높지 않으며, 이에 학생들이 원하는 공부하도록 하자’라는 설명과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는 설명을 한자인증의 폐지 이유로 각각 제시하였다. 그러나 문과대, 공과대, 사범대 등에서는 한자는 꼭 필요한 소양이고, 학과 특성상 이런 기회에 한자인증졸업요건 유지한다는 원칙을 밝혔다.<ref name="hanja">{{뉴스 인용|제목=한자졸업요건폐지, "단과대 자율에 맡기겠다"|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6485|출판사=고대신문|저자=우수임 기자|날짜=2011-05-08|확인날짜=2011-06-0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116/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6485|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 제2 전공의 의무화 ===
; 제1전공의 심화전공 또는 제2전공의 의무화
2004학년도 학부 입학생부터 적용하는 졸업요구 조건이다. 2004학번 이후의 학부생들은 제1전공과 함께 심화전공이나 이중전공, 융합전공, 학생설계전공으로 분류되는 제2전공 중 하나를 선택해서 이수해야만 졸업할 수 있다.<ref name="doublemajor"/> 일부 학과에서는 학부제로 모집하며 학부제로 입학한 학생의 경우 2학년 진급시 자신의 전공을 배정받는다.<ref name="majorsetting"/> 졸업학점을 모두 이수함과 동시에 영어강의, 졸업논문이나 공인영어성적, 한자인증과 같이 자신이 이수하는 전공에서 부가적으로 요구하는 졸업요구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학생만이 졸업 가능하다.<ref name="biz.korea.ac.kr">{{웹 인용|제목=졸업안내|url=http://biz.korea.ac.kr/listener.do?layout=BBA.guide05|출판사=고려대학교 경영대학|확인날짜=2011-07-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05074138/http://biz.korea.ac.kr/listener.do?layout=BBA.guide05|보존날짜=2016-03-05|url-status=dead}}</ref> 영어강의 경우 대개 5과목 이상 수강이 졸업요건으로 지정했지만<ref>{{웹 인용|제목=교과과정표|url=http://wizard.korea.ac.kr/user/indexSub.action?codyMenuSeq=828360&siteId=math&menuType=T&uId=3&sortChar=A&linkUrl=3_1.html&mainFrame=right|출판사=고려대학교 이과대학 수학과|확인날짜=2012-05-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05102657/http://wizard.korea.ac.kr/user/indexSub.action?codyMenuSeq=828360&siteId=math&menuType=T&uId=3&sortChar=A&linkUrl=3_1.html&mainFrame=right|보존날짜=2016-03-05|url-status=dead}}</ref><ref>{{웹 인용|제목=졸업에 관한 세부사항 안내|url=http://hoan.korea.ac.kr/new/data/%EC%A1%B8%EC%97%85%EC%97%90_%EA%B4%80%ED%95%9C_%EC%84%B8%EB%B6%80%EC%82%AC%ED%95%AD_%EC%95%88%EB%82%B4.pdf|출판사=고려대학교 정경대학|확인날짜=2011-07-03}}{{깨진 링크|url=http://hoan.korea.ac.kr/new/data/%EC%A1%B8%EC%97%85%EC%97%90_%EA%B4%80%ED%95%9C_%EC%84%B8%EB%B6%80%EC%82%AC%ED%95%AD_%EC%95%88%EB%82%B4.pdf }}</ref> 경영대학 경영학과는 이와 다르게 요건을 정했으므로 자신의 학과가 지정한 요건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ref>{{웹 인용|제목=졸업요구학점 및 조건|url=http://biz.korea.ac.kr/listener.do?layout=BBA.guide05_04|출판사=고려대학교 경영대학|확인날짜=2011-07-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25092755/http://biz.korea.ac.kr/listener.do?layout=BBA.guide05_04|보존날짜=2012-01-25|url-status=dead}}</ref> 또한 학번별로 졸업요건이 다르기도 하므로로 자신에게 해당되는 졸업요건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ref>{{뉴스 인용|제목=졸업문이 좁아진다|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0132950|출판사=세계일보|저자=이혜진 기자|날짜=2005-11-28|확인날짜=2011-07-03}}</ref> 졸업요구학점을 모두 이수하였으나 기타 졸업요구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수료상태가 된다.<ref name="biz.korea.ac.kr"/> 비록 학칙에서는 전과 제도가 있지만, 현재 전과제도는 시행하지 않는다. 이유는 제1전공 이수학점이 상대적으로 [[연세대학교]]보다 10 학점이상 낮아서 연세대학교에서 시행되는 전과 제도를 이용하지 않고도, 복수로 전공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학교 관계자학적·수업지원팀 유신열 과장이 밝혔다.<ref name="transmajor">{{뉴스 인용|제목=학칙에만 존재하는 전과제도|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271|출판사=고대신문|저자=김수정 기자|날짜=2010-05-08|확인날짜=2011-07-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133/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271|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 부전공과 복수전공
2004학번부터 의무적인 제2전공 정책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학교에서 흔히 말하는 ‘복수전공’ 또는 이 학교에서 시행하는 '제2전공'과는 다른 제도이다.
* '''부전공''' : 제1전공을 이수하는 동시에 다른 학과의 전체 전공 이수학점의 일부를 이수, 동일한 졸업장에 부전공(minor) 사실을 기재한다. 제1전공과 유사한 학과 및 법학과는 신청할 수 없으며, 사범대학 입학자만 사범대학 학과를 부전공으로 이수할 수 있다. 2004학번을 기준으로 이수요건에 다소간의 차이가 있다.<ref name="minordual">{{웹 인용|제목=부전공/복수전공|url=http://www.korea.ac.kr/mbshome/mbs/university/subview.do?id=university_050501040500|출판사=고려대학교|확인날짜=2016-07-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817095331/http://www.korea.ac.kr/mbshome/mbs/university/subview.do?id=university_050501040500|보존날짜=2016-08-17|url-status=live}}</ref>
* '''복수전공''' : 복수전공은 기본전공 이수 후 졸업을 유보하고, 또 하나의 전공을 연속해서 이수하여 2개의 학위를 받는 제도로, '''제2전공의 일부가 아니다.''' 제1전공 이수를 끝내고 2학기 또는 3학기를 추가로 이수해야 복수전공 학위 취득이 가능하며, 이 점에서 제1전공과 동시에 이수하여 학위를 받는 이중전공과 다르다. 이중전공과 마찬가지로 졸업증서에 제1전공과 복수전공이 1개의 학위를 표기하지만, 증명발급은 제1전공과 별도로 이루어진다. 제1전공을 이수하면서 복수전공에 해당하는 과목을 부전공의 형태로 이수하였을 경우, 복수전공 진입 후 21학점까지 인정받는다. 이 때 부전공의 효력은 상실된다.<ref name="minordual"/>
== 캠퍼스 및 학교 소유 시설 ==
{{참고|고려대학교의 건축물}}
'''서울캠퍼스'''는 [[고려대학교의 건축물#인문·사회계 캠퍼스|인문·사회계 캠퍼스]], [[고려대학교의 건축물#자연계지역과 녹지지역|자연계지역]], [[고려대학교의 건축물#자연계(이공계) 캠퍼스와 녹지 캠퍼스|녹지 캠퍼스]], [[고려대학교의 건축물#정릉 캠퍼스|정릉캠퍼스]]를 포함한다. 전체적으로 건물 양식이 일관된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어윤대]] 총장이 재임하던 시기에 3,500억 원의 발전 기금을 유치하고 기업체의 후원을 받아내 교내 전체 건물의 40% 정도를 신축 및 리모델링함에 따라 전체적으로 건물 양식이 일관된 형태이다.<ref>{{뉴스 인용|제목=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 어윤대는 누구|url=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0201&idxno=326935|출판사=이투데이|저자=최영희 기자|날짜=2010-06-15|확인날짜=2011-06-0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3030229/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0201&idxno=326935|보존날짜=2013-12-13|url-status=dead}}</ref><ref>{{뉴스 인용|제목=대학캠퍼스 리모델링 전도사 고려대 장동식 교수|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6092863151|출판사=한국경제|저자=문혜정 기자|날짜=2006-09-28|확인날짜=2010-03-2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3033430/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6092863151|보존날짜=2013-12-13|url-status=live}}</ref> 중앙광장과 하나스퀘어가 각각 인문사회계지역과 자연계지역에 위치하여 각 지역의 중심을 이룬다. [[세종특별자치시]]에 위치한 분교인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세종캠퍼스]]의 건물들 또한 웅장한 분위기의 건물들이 주를 이룬다. 이 두 캠퍼스 이외에 ‘창조캠퍼스’라는 이름으로 제3캠퍼스 설립을 세종캠퍼스에 추가로 추진한다.<ref>{{뉴스 인용|제목=[단독]고려대, KAIST보다 세종시 먼저 접수하나|url=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37999|출판사=한국대학신문|저자=손현경 기자|날짜=2014-08-14|확인날짜=2014-10-0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1012004215/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37999|보존날짜=2014-10-12|url-status=live}}</ref><ref>{{뉴스 인용|제목=고려대 교우회, 2015 신년인사회 및 제2회 학술상 개최|url=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106010002651|출판사=아시아투데이|저자[email protected]|날짜=2015-01-06|확인날짜=2015-01-2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712144227/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106010002651|보존날짜=2015-07-12|url-status=live}}</ref> 제3캠퍼스는 약 52만m<sup>2</sup> 규모로 [[한국토지주택공사]]와 부지매입 협상 중이다.<ref>{{뉴스 인용|제목=고려대, 세종시에 제3캠퍼스 조성…LH와 부지매입협상 돌입|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5062607215219533|출판사=아시아경제|저자=조영주 기자 [email protected]|날짜=2015-06-26|확인날짜=2015-07-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721031325/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5062607215219533|보존날짜=2015-07-21|url-status=live}}</ref> 본교 홈페이지에서는 본교와 분교의 캠퍼스 지도를 모두 확인할 수 있다.
=== 서울캠퍼스(본교) ===
==== 인문·사회계 캠퍼스 ====
중앙광장과 [[고려대학교 본관|본관]]이 위치한 지역으로, 본관 ~ 중앙광장 ~ 정문을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tag:ref|인문사회계의 진입공간은 ‘2005 서울사랑시민상 환경부문’의 조경생태 부문에서 수상한 바 있다.<ref>{{뉴스 인용|제목=2005 서울사랑시민상 환경부문 시상|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7&oid=098&aid=0000051834|출판사=연합뉴스|날짜=2005-06-02|확인날짜=2011-06-02}}</ref>|group="주"}} 본관과 대학원이 현재 사용하는 구 중앙도서관 건물은 각각 [[대한민국의 사적|사적]] 제285호와 제286호로 지정되었다. 구역별로 본관과 중앙광장 주변, 중앙도서관 주변, 민주광장 주변의 세 부분으로 나누나, 여기서는 인문사회계지역의 중심축을 이루는 본관과 그 주변 건물들에 대해서만 살펴보도록 한다.
; 중심축
* '''정문''' : 최초의 교문은 교우들의 성금으로 건립하였으며, [[#교우회 및 동문|교우회]]측에서는 1965년 10월 11일 정문 앞에서 교문 헌정식을 열었다.<ref name=":0">{{뉴스 인용|제목=알림|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510080020920302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5-10-08&officeId=00020&pageNo=3&printNo=13528&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동아일보|날짜=1965-10-08|확인날짜=2011-07-04}}{{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510080020920302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5-10-08&officeId=00020&pageNo=3&printNo=13528&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 }}</ref> 1995년에는 기존보다 더 크게 현재와 같은 교문을 세웠으며, 기존 교문은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세종캠퍼스]]로 이전했다.<ref name="maingate">{{뉴스 인용|제목=F학점의 악몽,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9736|출판사=고대신문|저자=고대신문|날짜=2007-04-29|확인날짜=2011-07-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135/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9736|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인용 상자|quoted = true|民族(민족)의 힘으로 民族(민족)의 꿈을 가꾸어 온<br />
民族(민족)의 보람찬 大學(대학)이 있어<br />
너 恒常(항상) 여기에 自由(자유)의 불을 밝히고<br />
正義(정의)의 길을 달리고 眞理(진리)의 샘을 지키느니<br />
地軸(지축)을 박차고 咆哮(포효)하거라<br />
너 불타는 野望(야망) 젊은 意慾(의욕)의 象徵(상징)아<br />
宇宙(우주)를 향한 너의 부르짖음이<br />
民族(민족)의 소리되어 메아리치는 곳에<br />
너의 氣槪(기개) 너의 志操(지조) 너의 叡智(예지)는<br />
祖國(조국)의 永遠(영원)한 鼓動(고동)이 되리라|—[[조지훈]], 虎像碑文(호상비문) 응원가 ‘민족의 아리아’의 가사로 인용<ref>{{뉴스 인용|제목=고려大 호상(虎像)|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21400329111010&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2-02-14&officeId=00032&pageNo=11&printNo=14316&publishType=00010|출판사=경향신문|저자=이중근 기자|날짜=1992-02-14|확인날짜=2011-08-16}}{{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21400329111010&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2-02-14&officeId=00032&pageNo=11&printNo=14316&publishType=00010 }}</ref>|너비=370px|salign= right}}최초의 교문은 교우들의 성금으로 건립했으며, 교우회측에서는 1965년 10월 11일 정문 앞(현재 4.18기념관 자리)에서 교문헌정식을 열었다.<ref name=":0" /> 1971년에 본관과 대운동장을 잇는 중심축 선상에 새로운 교문을 더 큰 규모로 세웠으며. 이전 교문은 구 교문으로 부르기로 하고 같은 자리에 그대로 보존하였다. 구 교문은 1995년 세종캠퍼스로 이전하였다.<ref name="maingate" />
* '''[[고려대학교 본관|본관]]''' : 인문사회계 캠퍼스 중심에는 6층 높이 본관이 자리한다. 중앙광장과 더불어 캠퍼스의 중앙에 위치한 본관은 [[김성수 (언론인)|김성수]]가 1932년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했을 때 지은 건물로 1933년 9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1934년 9월에 완공됐다. 다른 대학 캠퍼스의 근대 건축물은 대부분 외국인이 설계하였지만, 이 건물 설계는 한국인 건축가 [[박동진 (1899년)|박동진]]이 맡았다. 그는 본관 이외에도 도서관과 서관, 강당, 제2공학관 등 교내의 여러 건물을 설계하였다.<ref name="parkdongjin">{{뉴스 인용|제목=제2공학관을 위한 변명|url=http://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3662|출판사=고대신문|저자=김현섭 교수|날짜=2009-05-24|확인날짜=2011-06-0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29012328/http://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3662|보존날짜=2012-01-29|url-status=live}}</ref> 본관 건물은 ‘배울 학’(學) 자를, 건물 앞에 위치한 정원은 ‘큰 대(大)’ 자를 형상화하고 있다.<ref name="historical architecture">{{뉴스 인용|제목=[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256) 대학 캠퍼스 안의 역사적 건물|url=https://news.joins.com/article/5140317|출판사=중앙일보|저자=심서현 기자|날짜=2011-03-04|확인날짜=2020-08-30}}</ref> 고딕 양식의 이 건물은 1981년 9월 25일 [[대한민국의 사적|사적]] 제285호로 지정됐다. 본관 양옆으로 오른 편에는 고대 기개를 표현한 호상(虎像)이, 왼편에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4·18을 기념하는 4·18 기념비가 자리한다. 4·18 기념비의 비문은 [[조지훈]]이 지었다.<ref>{{뉴스 인용|제목=그때 그곳엔 4·18기념비|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260|출판사=고대신문|저자=김경민 기자|날짜=2010-05-08|확인날짜=2011-06-09|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150/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260|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호상의 바닥에는 조지훈의 ‘호상비문’(虎像碑文)을 새겼다.<ref name="enjoyseoul">{{서적 인용|저자=구지선|제목=ENJOY 서울|쪽=227|출판사=넥서스BOOKS|날짜=2009-06-15|ISBN=978-89-6000-554-9}}</ref>
* '''중앙광장''' : 본관과 더불어 인문사회계 지역 중앙에 자리한 중앙광장은 고려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2000년 6월에 착공<ref name="mainsquareconstruction">{{뉴스 인용|제목=운동장을 공원으로 만든다|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8&aid=0000016855|출판사=한국일보|저자=고찬유 기자|날짜=2000-08-04|확인날짜=2011-07-04}}</ref>하여 2002년 3월에 완공했다. 지상에는 5780평의 녹지공간과 잔디광장을 조성하였으며, 지하 1층에는 행정부서와 열람실 및 편의시설, 지하 2층과 3층에는 1000대를 수용하는 주차공간을 조성하였다. 중앙광장을 건설하기 이전에는 대운동장이었다.<ref>{{뉴스 인용|제목=고려대 중앙광장 준공|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116444|출판사=동아일보|저자=김선미 기자|날짜=2002-03-05|확인날짜=2011-06-02}}</ref><ref>{{뉴스 인용|제목=그때 그곳엔 중앙광장|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261|출판사=고대신문|저자=김경민 기자|날짜=2010-05-08|확인날짜=2011-06-09|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113/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261|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tag:ref|중앙광장은 서울시가 주는 ‘올해의 조경상’을 수상한 바 있다.<ref>{{뉴스 인용|제목=고대광장 등 6개 건축물 '올해의 조경상' 수상|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157378|출판사=동아일보|저자=이광표 기자|날짜=2002-10-21|확인날짜=2011-06-02}}</ref>|group="주"}}
; 중앙도서관과 서관(西館)
* '''중앙도서관 구관과 신관''' : 중앙도서관 구관은 [[고려대학교 본관|본관]]을 중심으로 중앙광장 오른편에 위치하며, [[보성전문학교]] 창립 30주년 기념사업 일부로 1935년에 착공<ref name="ku1962"/>하여 1937년에 개관하였다. [[김성수 (언론인)|김성수]]는 도서관 건물의 건립을 포함한 기념사업 자금을 조달하고자 전국을 다니며 직접 모금 운동을 전개하였다.<ref name="inchon">{{뉴스 인용|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22100209105001&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5-02-21&officeId=00020&pageNo=5&printNo=22776&publishType=00010&doNotReadAnyMore=notClose|제목=仁村(인촌)선생의 나라사랑-교육사상을 중심으로 40周忌(주기) 추념강연|날짜=1995-05-21|출판사=동아일보|확인날짜=2011-06-06}}{{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22100209105001&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5-02-21&officeId=00020&pageNo=5&printNo=22776&publishType=00010&doNotReadAnyMore=notClose }}</ref> 이 건물은 [[대한민국의 사적|사적]] 제286호로 지정돼 있다.<ref name="kuarchitecture">{{뉴스 인용|url=http://www.donga.com/fbin/output?sfrm=3&n=200701130018|제목=웅장…화려…고풍…절제…대학가 근대건축물 관람|저자=이광표 기자|날짜=2007-01-13|출판사=동아일보|확인날짜=2011-06-02}}{{깨진 링크|url=http://www.donga.com/fbin/output?sfrm=3&n=200701130018 }}</ref><ref name="cul286">{{웹 인용|url=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3,02860000,11|제목=고려대학교중앙도서관(高麗大學校中央圖書館)|출판사=문화재청|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04153811/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3,02860000,11|보존날짜=2011-11-04|url-status=live|확인날짜=2011-06-04}}</ref> 1975년에는 개교 70주년을 기념하며 중앙도서관 신관을 신축하였고 1978년 3월에 개관하였다.<ref name="kuhistory"/><ref name="mainlibrary"/><ref name="kumainlib"/> 2005년에 리모델링을 실시한 데 이어<ref name="presidenteo">{{뉴스 인용|제목=10대 사건으로 돌아본 어윤대 총장 임기 4년|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9183|출판사=고대신문|저자=고대신문|날짜=2006-12-03|확인날짜=2011-08-31|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22121338/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9183|보존날짜=2013-10-22|url-status=live}}</ref><ref>{{뉴스 인용|제목=내달 5일 100돌 고려대학교|url=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504/h2005041018545522020.htm|출판사=한국일보|저자=고찬유 기자|날짜=2005-04-10|확인날짜=2011-06-2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03053102/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504/h2005041018545522020.htm|보존날짜=2011-11-03|url-status=dead}}</ref> 2010년에도 열람공간의 위치를 변경하는 등의 리모델링을 단행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방학동안 중앙도서관 전면 리모델링|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615|출판사=고대신문|저자=이지현 기자|날짜=2010-08-31|확인날짜=2011-07-0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144/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615|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중앙도서관 구관과 사범대학본관 사이에 위치한 중앙도서관 신관이 현재 흔히 일컬어지는 중앙도서관이다.
* '''교내 분관''' : 중앙도서관은 단행본만 160만권 이상<ref>[http://library.korea.ac.kr 고려대학교 도서관] {{웨이백|url=http://library.korea.ac.kr/ |date=20090210023632 }} 장서현황 참고</ref>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이다. 교내 도서관은 중앙도서관, 과학도서관, 학술정보관, 법학도서관, 의학도서관, 세종학술정보원 등 5개 분관으로 구성한다. 중앙도서관은 현재 위치한 중앙도서관 신관과 특수서적을 주로 다루는 중앙도서관 구관, 과학도서관, 해송법학도서관, 학술정보관(CDL)을 총괄하며, 이 중 학술정보관(CDL)은 백주년기념관 내에, 과학도서관은 자연계지역에, 해송법학도서관은 법학관 신관 앞에 자리한다. 과학도서관 단행본실은 1층에 있으며, 인문사회계지역에 위치한 중앙도서관과 마찬가지로 동양서 단행본과 서양서 단행본 모두를 취급한다. [https://web.archive.org/web/20110614223725/http://medlib.korea.ac.kr/ 의학도서관]은 의과대학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의과대학 교우회와 재단의 지원으로 개관하였다.<ref>{{웹 인용|제목=의학도서관 층별안내|url=http://medlib.korea.ac.kr/local/html/useFloorInfo|웹사이트=고려대학교 의학도서관|확인날짜=2017-03-0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70621102845/http://medlib.korea.ac.kr/local/html/useFloorInfo|보존날짜=2017-06-21|url-status=live}}</ref> 모든 분관들을 통틀어 2018년 기준으로 모두 3,587,338권의 장서를 보유한다.<ref>{{웹 인용|제목=고려대학교 도서관 현황/통계|url=https://library.korea.ac.kr/local/html/useLibraryStats|웹사이트=고려대학교 도서관|확인날짜=2019-04-0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90402114806/https://library.korea.ac.kr/local/html/useLibraryStats|보존날짜=2019-04-02|url-status=dead}}</ref>
* '''학습 시설''' : 교내 곳곳에 열람실과 스터디룸, 라운지와 같은 학습 시설이 분포한다.
* '''서관(西館)''' : 문과대학은 1946년 9월 설립 이래 현재까지 모두 졸업생 2만 5천여명을 배출하였다.<ref>{{웹 인용|제목=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학장 인사말|url=http://wizard.korea.ac.kr/user/indexSub.action?codyMenuSeq=1390653&siteId=kulibart&menuType=T&uId=1&sortChar=A&linkUrl=1_1.html&mainFrame=right|출판사=고려대학교 문과대학|확인날짜=2012-05-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05100644/http://wizard.korea.ac.kr/user/indexSub.action?codyMenuSeq=1390653&siteId=kulibart&menuType=T&uId=1&sortChar=A&linkUrl=1_1.html&mainFrame=right|보존날짜=2016-03-05|url-status=dead}}</ref> 문과대학이 사용하는 서관은 1961년 6월에 준공했으며<ref name="kuhistory"/><ref>{{뉴스 인용|제목=그때 그곳엔 서관|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258|출판사=고대신문|저자=김경민 기자|날짜=2010-05-08|확인날짜=2011-06-09|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122/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258|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중앙광장의 서편에 위치한다. 건물 앞에 ‘서관’이라는 명칭은 없지만 ‘西館’과 동음어이면서 문과대학의 특성과 맞기 때문에 ‘서관’(書館, 책을 보관하는 건물을 의미)이라는 별칭을 널리 쓴다. 이 건물 꼭대기에는 4면 시계탑이 위치하며, 이는 1968년 [[쌍용그룹]] 회장 [[김성곤]]이 희사하였다.<ref name="bigben">{{뉴스 인용|제목=서관 시계탑, 사람이 돌리나|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3627|출판사=고대신문|저자=최세아 기자|날짜=2010-05-03|확인날짜=2011-06-1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18105934/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3627|보존날짜=2012-01-18|url-status=live}}</ref> 시계탑 규모가 커서 작업자가이 페달을 밟아 이 곳 시계탑을 작동한다는 등의 소문이 있지만<ref>{{뉴스 인용|제목=고대 2만 학우를 위해 달리는 청년|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61|출판사=고대신문|저자=위대용 기자|날짜=2010-04-01|확인날짜=2011-06-1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109/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61|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사실은 이 건물 3층 기계실에 설치한 모터로 가동한다. 매일 정오에 이 곳 시계탑에서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노래가 나온다. 녹두문대라는 별칭의 유래인 이 노래를 선곡한 이유가 학교측 공식적 기록에는 없지만 녹두장군 정신을 이어받자는 의미로 선곡했다는 의견을 비롯하여 아리랑보다 더 나아서 선곡했다는 의견 등이 있다.<ref name="enjoyseoul"/><ref name="bigben"/>
==== 자연계(이공계) 캠퍼스 ====
자연계 캠퍼스에는 2006년 9월 완공한 하나스퀘어를 중심으로 공과대학, 이과대학, 정보통신대학, 생명과학대학, 보건과학대학, 정보대학의교수 연구실 및 강의실이 위치한다.
* '''과학도서관과 하나스퀘어''' : 1983년 9월에 개관<ref name="kuhistory"/>한 과학도서관은 자연계지역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며, 이공계 관련 서적은 대부분 이 곳에서 보유한다. 하나스퀘어는 [[하나은행]]에서 130억 원을 기부하여 건립된 지하 건축물로서,<ref>{{뉴스 인용|제목=그때 그곳엔 하나스퀘어|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435|출판사=고대신문|저자=김경민 기자|날짜=2010-05-29|확인날짜=2011-06-09|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118/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435|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2006년 8월에 완공했다.<ref>{{뉴스 인용|제목=대학 캠퍼스 ‘지하시대’|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144&aid=0000025848|출판사=스포츠경향|저자=박효순 기자|날짜=2006-09-11|확인날짜=2011-07-02}}</ref>{{#tag:ref|하나스퀘어 건물은 2007년에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ref>{{뉴스 인용|제목=하나스퀘어|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estate/200710/e2007100113514069550.htm|출판사=서울경제|날짜=2007-10-01|확인날짜=2010-03-2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04003103/http://economy.hankooki.com/lpage/estate/200710/e2007100113514069550.htm|보존날짜=2011-11-04|url-status=dead}}</ref>|group="주"}} 과학도서관과 하나스퀘어는 서로 연결하여 지상으로 가지 않고도 이동 가능하다.
==== 녹지 캠퍼스 ====
[[파일:프런티어관.jpg|섬네일|오른쪽|230px|프런티어관 뒷쪽 모습]]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의 교수연구실이 위치하며 기숙사와 체육 시설 등이 있다. 모든 부지는 안암동에 속한다. 녹지운동장이 있어 ‘녹지 캠퍼스’로 부른다.
* '''의료원''' : 1971년 12월에 고려대학교는 1970년 장기발전계획을 따라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을 흡수 및 합병하였다.<ref name="kuhistory"/><ref>{{뉴스 인용|제목=진통(陣痛) 1年9개月만의 안주(安住) 고려대(高麗大) 우석대(友石大)병합의 언저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12020020920600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1-12-02&officeId=00020&pageNo=6&printNo=15434&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동아일보|저자=정연춘 기자|날짜=1971-12-02|확인날짜=2011-06-06}}{{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12020020920600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1-12-02&officeId=00020&pageNo=6&printNo=15434&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 }}</ref> [[전라북도]] [[완주군]]에 위치한 현재 [[우석대학교]]는 1979년에 설립한 대학으로 1971년 당시에 합병한 우석대학교 의과대학과는 관련이 없다.<ref>{{웹 인용|제목=연혁|url=http://www.woosuk.ac.kr/korean/2008/main_sub.html?mTop=A4000|웹사이트=우석대학교|확인날짜=2011-07-13}}{{깨진 링크|url=http://www.woosuk.ac.kr/korean/2008/main_sub.html?mTop=A4000 }}</ref> CJ식품안전관 맞은편 안암병원은 고려대학교 의료원 산하 병원 세 곳 중 하나이며, 1971년 12월 고려중앙학원이 우석학원을 합병하고, 과거 혜화병원을 1991년 7월 22일에 현재 위치에 신축 이전<ref>{{뉴스 인용|제목=그때 그곳엔 의과대학|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272|출판사=고대신문|저자=김경민 기자|날짜=2010-05-28|확인날짜=2011-06-09|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040/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272|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하여 현재에 이른다.<ref>{{웹 인용|제목=연혁|url=http://www.kumc.or.kr/introduction/history1970.do|웹사이트=고려대학교의료원|확인날짜=2011-06-0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05171402/http://www.kumc.or.kr/introduction/history1970.do|보존날짜=2011-11-05|url-status=live}}</ref><ref name="kumcrelocation">{{뉴스 인용|제목=고대(高大) 혜화병원 옮긴다|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71200209213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1-07-12&officeId=00020&pageNo=13&printNo=21530&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동아일보|저자=이강운 기자|날짜=1991-07-12|확인날짜=2011-07-18}}{{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71200209213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1-07-12&officeId=00020&pageNo=13&printNo=21530&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 }}</ref> 혜화병원의 역사는 1938년 5월에 설립된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ref>{{뉴스 인용|제목=대학재단(大學財團) 그 이면(裏面) (11) 우석(友石) 재단|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8092600099201020&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68-09-26&officeId=00009&pageNo=1&printNo=781&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매일경제|저자=김상희 기자|날짜=1968-09-26|확인날짜=2011-07-18}}{{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8092600099201020&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68-09-26&officeId=00009&pageNo=1&printNo=781&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 }}</ref>의 부속 병원으로 1941년 9월에 문을 연 경성의전부속병원에 그 뿌리를 두며, 1948년 5월 서울여자의과대학 부속병원, 1957년 1월 수도의과대학 부속병원, 1967년 3월 우석대학교의과대 부속병원, 1971년 12월 고려대의대부속 우석병원을 거쳐 1976년 3월 고려대의대 부속병원으로 개칭하여 지금에 이른다.<ref name="kumcrelocation"/> 의료원 오른편에 위치한 건물은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이 사용하며 이들 건물 사이에 의학도서관이 위치한다. 현재 의과대학 건물 뒷 편에는 의학관 건물 신축공사를 진행한다. 자연계와 녹지를 잇는 길은 의료원의 오른편을 에둘러 지나가는 형태다. 의과대학에서는 시신을 기증한 고인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매해 4월 말에 의과대학 뒷편의 감은탑 앞에서 ‘감은제’를 거행하는데<ref>{{뉴스 인용|제목=고대의대, 의학교육 위해 시신 기증한 뜻 되새겨|url=http://medipana.com/news/news_viewer.asp?NewsNum=67217&MainKind=A&NewsKind=5&vCount=12&vKind=1|출판사=메디파나|저자=김성지 기자|날짜=2011-04-22|확인날짜=2011-06-0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26235154/http://medipana.com/news/news_viewer.asp?NewsNum=67217&MainKind=A&NewsKind=5&vCount=12&vKind=1|보존날짜=2012-01-26|url-status=live}}</ref>, 감은탑 앞이 협소하여서 이 행사를 진행할 때 부득이 녹지지역으로 향하는 길을 일시적으로 차단한다.
* KU R&D센터 : 1997년 8월 착공<ref>{{웹 인용|제목=고려대학교 약사|url=http://korea.ac.kr/mbshome/mbs/university/subview.do?id=university_010103020000|웹사이트=고려대학교|확인날짜=2017-03-0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70304193333/http://korea.ac.kr/mbshome/mbs/university/subview.do?id=university_010103020000|보존날짜=2017-03-04|url-status=live}}</ref><ref>{{뉴스 인용|제목=인물 동정|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81100099129008&ed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7-08-11&officeId=00009&pageNo=29&printNo=9829&publishType=0001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매일경제|날짜=1997-08-11|확인날짜=2011-07-01}}{{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81100099129008&ed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7-08-11&officeId=00009&pageNo=29&printNo=9829&publishType=00010&doNotReadAnyMore=notClose }}</ref>하여 2000년 5월에 준공된 건물<ref name="kuhistory4">{{웹 인용|제목=고려대학교 약사|url=http://korea.ac.kr/mbshome/mbs/university/subview.do?id=university_010103020000|웹사이트=고려대학교|확인날짜=2017-03-0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70304193333/http://korea.ac.kr/mbshome/mbs/university/subview.do?id=university_010103020000|보존날짜=2017-03-04|url-status=live}}</ref>로 '''생명공학원'''이라고 부르다가 '''생명과학관(녹지)'''로 명칭을 변경한 채 생명과학대학 생명과학부 및 생명공학부 교수 연구실 및 강의실이 위치한다. 생명과학부 학사지원부 또한 이 곳에 위치한다. 2015년 1월에 생명과학대학이 하나과학관 A동으로 이전하면서 이곳은 KU R&D센터로 명칭을 변경했다.
* '''녹지운동장과 화정체육관''' : 녹지운동장은 잔디 운동장으로, 예약해야 이용할 수 있다.<ref>{{웹 인용|제목=예약하기|url=http://www.korea.ac.kr/content/O/O4_3_1.jsp|웹사이트=고려대학교|확인날짜=2011-06-0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608002146/http://korea.ac.kr/content/O/O4_3_1.jsp|보존날짜=2011-06-08|url-status=live}}</ref> 매해 5월 [https://web.archive.org/web/20180429173357/http://www.kuleader.net/ 응원단]에서 주최하는 ‘입실렌티 지·야의 함성’을 이 곳에서 진행한다. 이 행사는 화정체육관 공사가 진행하기 이전에는 노천극장에서 진행했으나 공사로 인해 노천극장을 폐쇄하면서 녹지운동장으로 옮겼다. 화정체육관은 중앙광장, 백주년기념관과 더불어 고려대학교 100주년 기념 사업<ref name="tigerdome"/>으로 2006년 7월 25일 건립했으며, 고려중앙학원에서 공사비 262억원 전액을 출연하였다. [[현승종]] 당시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은 화정체육관 완공으로 “[[김병관 (1934년)|김병관]] 전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이 약속한 고려대 캠퍼스 종합개발 3대 마스터플랜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국내 대학 최대규모 고려대 화정체육관 준공|url=http://www.donga.com/fbin/output?n=200607250089|출판사=동아일보|저자=신수정 기자|날짜=2006-07-25|확인날짜=2011-06-02}}</ref> 화정체육관 건립 이전에 이 곳에는 노천극장이 있었다.<ref>{{뉴스 인용|제목=그때 그곳엔 화정체육관|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414|출판사=고대신문|저자=김경민 기자|날짜=2010-05-29|확인날짜=2011-06-09|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017/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414|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ref>{{뉴스 인용|제목=노천극장 대신 체육관이 생긴다면?|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3391|출판사=고대신문|저자=김현영 기자|날짜=2004-03-21|확인날짜=2011-07-0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19020221/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3391|보존날짜=2012-01-19|url-status=live}}</ref> 화정체육관에서는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2015섬머, 2019섬머 시즌의 결승전 등 많은 [[e스포츠]] 대회를 개최했다.
==== 정릉캠퍼스 ====
정릉캠퍼스는 원래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의과기술초급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학과가 있던 캠퍼스였다. 1971년 고려대학교이 우석대학교 인수한 이후 2004년까지 고려대학교 병설 보건대학이 이곳에 위치했으나, 2005년 10월 25일 [[대한민국 교육인적자원부|교육인적자원부]]가 고려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병설 보건대학의 통합을 승인하면서 고려대학교에 신규 단과대학인 [http://chs.korea.ac.kr 보건과학대학]을 이 곳에 신설했다. 정릉캠퍼스는 정의관, 진리관, 호림관, 학생회관, KU-MAGIC 연구원 등 5개의 건물로 구성한다.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및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또한 정릉캠퍼스에 위치한다. 2015년에 보건과학대학은 안암동 자연계 캠퍼스에 신축한 하나과학관으로 모두 이전하였으며, 이에 따라 2016년부터 정릉캠퍼스는 KU-MAGIC(Medical Applied R&D Global Initiative Center) Project One의 연구시설로 사용한다.
* '''KU-MAGIC 연구원''' : KU-MAGIC의 MAGIC(매직)은 ‘Medical Applied R&D Global Initiative Center’의 약자로 의료, 연구, 개발, 글로벌 네트워킹, 국책과제 수행, 사업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거대한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정릉캠퍼스는 KU-MAGIC Project One을 통해 첨단의료과학센터로 거듭날 예정이다.
=== 세종캠퍼스(분교) ===
{{본문|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파일:Kus13.jpg|섬네일|오른쪽|250px|세종캠퍼스 농심국제관]]
[[세종특별자치시]]에 위치한 고려대학교의 분교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고려대학교'는 서울캠퍼스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분교인 세종캠퍼스는 법적, 행정적으로 엄연히 다른 대학으로 취급한다. 1980년에 개교하였으며<ref>{{웹 인용|제목=캠퍼스 변천사|url=https://sejong.korea.ac.kr/about/introducing_ku_sejong/history01|웹사이트=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확인날짜=2017-03-0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70305024805/https://sejong.korea.ac.kr/about/introducing_ku_sejong/history01|보존날짜=2017-03-05|url-status=live}}</ref> 2010년에는 개교 30주년을 맞았다.<ref>{{뉴스 인용|제목=고려대 세종캠퍼스 개교 30주년 기념식|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298823|출판사=연합뉴스|저자=김준호 기자|날짜=2010-05-27|확인날짜=2011-06-24}}</ref><ref>{{뉴스 인용|제목=30년 쌓아올린 세(世)상의 종(宗)심|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390|출판사=고대신문|저자=이범종 기자|날짜=2010-05-24|확인날짜=2011-07-19|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18111746/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390|보존날짜=2012-01-18|url-status=live}}</ref> 기존의 명칭은 ‘서창캠퍼스’였으나<ref name="kuhistory"/>, 2008년 3월에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했다.<ref name="seochangsejong">{{뉴스 인용|제목=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명칭 선포식|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2000952|출판사=뉴시스|저자=양길모 기자|날짜=2008-03-13|확인날짜=2017-03-04}}</ref> 2011년에 문을 연 [http://sejong.korea.ac.kr/mbshome/mbs/pharm/index.do 약학대학]은 이 곳에 위치한다.<ref name="kupharm">{{웹 인용|제목=연혁|url=http://sejongjwizard.korea.ac.kr/user/indexSub.action?codyMenuSeq=42428&siteId=pharm|웹사이트=고려대학교 약학대학|확인날짜=2012-05-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80523173211/http://sejongjwizard.korea.ac.kr/user/indexSub.action?codyMenuSeq=42428&siteId=pharm|보존날짜=2018-05-23|url-status=live}}</ref>
* '''학술정보원''' : 세종캠퍼스의 도서관으로서 정식명칭은 학술정보원이다. 건물 옥탑 4면 시계탑이 특징이다. 분관대출을 통해 안암에 위치한 자료를 상호 대차 이용하며 [http://libs.korea.ac.kr/html/ko/readingroom.html 관련 홈페이지]에서 열람실 좌석 현황을 확인한다.
=== 의료원 및 기타 시설 ===
고려대학교 의료원 산하에 안암병원과 구로병원, 안산병원 등 세 곳의 병원을 운영한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안암병원은 1051병상을 가동하며,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 구로병원 또한 1057병상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안산병원은 710병상을 가동한다.<ref>{{웹 인용|제목=현황|url=http://www.kumc.or.kr/introduction/status01.do|웹사이트=고려대학교의료원|확인날짜=2011-06-0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521024124/http://www.kumc.or.kr/introduction/status01.do|보존날짜=2011-05-21|url-status=live}}</ref> 구로병원은 1983년에 개원하였으며, 2008년에 증축 완료했다. 안산병원은 1985년에 개원했으며, 1998년 증축하면서 시설을 확대 및 개선하였다.<ref>{{웹 인용|제목=연혁|url=http://www.kumc.or.kr/introduction/history2010.do|웹사이트=고려대학교의료원|확인날짜=2017-03-0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70304194518/http://www.kumc.or.kr/introduction/history2010.do|보존날짜=2017-03-04|url-status=live}}</ref> 또한, 2013년 3월 26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10개의 연구중심병원으로 고려대학교 안암병원과 구로병원이 포함돼 유일하게 1개 대학에서 2곳의 병원을 선정했다.<ref>{{웹 인용 |url=http://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7045 |제목=보관된 사본 |확인날짜=2013년 5월 23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3030630/http://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7045 |보존날짜=2013년 12월 13일 |url-status=live }}</ref>
[[파일:ku441.jpg|섬네일|왼쪽|240px|고려대학교 대천수련원]]
그 밖에 본교 소유의 시설 중 수련원 시설로는 [[강원도 (남)|강원도]] [[양양군]] [[양양읍]]에 위치한 낙산수련원, [[충청남도]] [[보령시]] 신흑동에 위치한 대천수련원<ref>{{웹 인용|제목=편의시설안내|url=http://www.korea.ac.kr/do/MessageBoard/ArticleList.do?forum=33423|출판사=고려대학교|확인날짜=2011-06-0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607220017/http://korea.ac.kr/do/MessageBoard/ArticleList.do?forum=33423|보존날짜=2011-06-07|url-status=live}}</ref>, [[전라남도]] [[완도군]] [[신지면]]에 위치한 완도수련원이 있으며 이 중 완도수련원은 2010년 8월 10일에 완공했다.<ref>{{뉴스 인용|제목=고려대 '완도청해진 수련관' 준공식 개최|url=http://www.ajnews.co.kr/view_v2.jsp?newsId=20100810000465|출판사=아주경제|저자=김유경 기자|날짜=2010-08-10|확인날짜=2011-06-02}}{{깨진 링크|url=http://www.ajnews.co.kr/view_v2.jsp?newsId=20100810000465 }}</ref> 이 밖에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위치한 송추운동장, 경기도 [[남양주시]] 덕소읍에 위치한 덕소농장이 있다. 덕소농장에서는 [[참기름]]을 생산하만 상용화한 제품으로 판매하지 않으며, 교내에서만 선물용으로 판매한다.<ref>{{웹 인용|제목=유니스토어 상품소개|url=http://www.unistore.co.kr/id_09.htm|출판사=UNI STORE|확인날짜=2011-06-0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025010458/http://www.unistore.co.kr/id_09.htm|보존날짜=2011-10-25|url-status=live}}</ref>
=== 서울캠퍼스 주변 상권 ===
이전 초기에는 정문 앞과 제기동 주변이 학교 주변의 가장 주요한 상권이었으나 안암병원 개원과 더불어 개운사길의 복개를 완료하여 그 중심이 유흥 상권이 형성된 안암로터리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서울 지하철 6호선|지하철 6호선]] [[안암역]] 개통을 계기로 안암로터리 부근 상권이 안암역 사거리까지 확장하여 현재 참살이길을 형성하였다. 정경대학 후문을 24시간 개방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ref>{{뉴스 인용|제목=맥도날드에서 "막걸리 달라"|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0262|출판사=고대신문|저자=김효원 기자|날짜=2007-09-02|확인날짜=2011-07-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18105230/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0262|보존날짜=2012-01-18|url-status=live}}</ref> 근래에 들어서 단순히 상권 위치만 옮겨간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식사시간이면 밥집 앞에 길게 들어선 기다리는 줄이 일반적인 풍경이었지만 학생들의 식생활 변화와 연이은 물가 상승 등으로 학교 주변 밥집들이 상당한 위기를 겪는다고 한다.<ref>{{뉴스 인용|제목=고대에 밥 먹을 곳이 사라지고 있다|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6515|출판사=고대신문|저자=김민형 기자|날짜=2011-05-15|확인날짜=2011-06-09|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032/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6515|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2010년대 초반에는 정문 앞 캠퍼스타운 개발 문제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섰다.<ref>{{뉴스 인용|제목=고려대앞 캠퍼스타운 개발 반대|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5030772|출판사=연합뉴스|저자=조성흠 기자|날짜=2011-04-25|확인날짜=2011-06-02}}</ref>
{{-}}
== 주요 학생 단체 ==
=== 총학생회 ===
{{본문|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총학생회는 학교 당국과 독립적인 학생들의 요구를 대외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학생자치기구이다. 총학생회의 기원은 [[이승만]] 정권 당시 존재한 중앙학도호국단의 해체와 관련이 깊다. 1960년 4·19 혁명 후 학생들은 1949년 9월 이승만 정권 당시 대통령령 86호로 결성된 [[학도호국단]]<ref>{{뉴스 인용|제목=학도호국단규공포(學徒護國團規公布)|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4909280032920200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49-09-28&officeId=00032&pageNo=2&printNo=948&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경향신문|날짜=1949-09-28|확인날짜=2011-06-29}}{{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4909280032920200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49-09-28&officeId=00032&pageNo=2&printNo=948&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 }}</ref>과 관련하여 ‘어용기구인 중앙학도호국단에서 탈퇴하여 이의 해산을 강력히 주장한다’고 선언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2001년, 최초로 여학생 총학 당선|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5733#|출판사=고대신문|저자=정인지 기자|날짜=2005-05-02|확인날짜=2008-12-1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006/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5733|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이와 같은 주장이 5월 4일 국무회의를 통해 실현<ref>{{뉴스 인용|제목=학도호국단(學徒護國團)드디어해체(解體)|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50400209103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0-05-04&officeId=00020&pageNo=3&printNo=11716&publishType=0001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동아일보|날짜=1960-05-04|확인날짜=2011-06-29}}{{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50400209103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0-05-04&officeId=00020&pageNo=3&printNo=11716&publishType=00010&doNotReadAnyMore=notClose }}</ref>된 것이 현재 총학생회의 기원이다. 1965년 교칙위반을 이유로 활동정지 처분되는 사건이 있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고대총학생회(高大總學生會) 활동정지처분(活動停止處分)|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511240020920302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5-11-24&officeId=00020&pageNo=3&printNo=13568&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동아일보|날짜=1965-11-24|확인날짜=2011-06-29}}{{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511240020920302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5-11-24&officeId=00020&pageNo=3&printNo=13568&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 }}</ref> 1975년 6월에는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로 학도호국단으로 재편되는 수모를 겪는 등 탄압으로 인해 그 명맥이 끊어질 뻔한 적도 있었으나<ref>{{뉴스 인용|제목=97개大 호국단(護國團)발단|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5063000329207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5-06-30&officeId=00032&pageNo=7&printNo=9157&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경향신문|날짜=1975-06-30|확인날짜=2011-06-29}}{{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5063000329207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5-06-30&officeId=00032&pageNo=7&printNo=9157&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 }}</ref> 1984년 학도호국단을 폐지한 이래<ref>{{뉴스 인용|제목="김준엽 전 총장은 `진정한 선비'의 전형"|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5101593|출판사=연합뉴스|저자=임기창 기자|날짜=2011-06-07|확인날짜=2011-06-09}}</ref><ref>{{뉴스 인용|제목=실천하는 지성, 시대의 스승 故 김준엽 전 총장|url=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110608000130|출판사=헤럴드경제|저자=박수진 기자|날짜=2011-06-08|확인날짜=2011-06-09}}</ref> 매년 선거로 총학생회가 선출되고 있으며 2019년에는 51대 총학생회 ‘SYNERGY’가 활동하였고, 2020~21년에는 총학생회 중앙비상대책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다. 학생처가 총학생회 활동의 지원을 담당하고 있으며<ref>{{웹 인용|제목=학생처|url=http://www.korea.ac.kr/content/L/L3_1_4.jsp|출판사=고려대학교|확인날짜=2011-06-29|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15190350/http://korea.ac.kr/content/L/L3_1_4.jsp|보존날짜=2011-11-15|url-status=live}}</ref> 학생 복지를 관장하는 기구로 학생복지위원회라는 별도의 기구가 존재한다.
=== 학내 공식 언론단체 ===
[[파일:Kua1.jpg|섬네일|오른쪽|250px|서울캠퍼스 풍경]]
* '''고대신문'''(주간신문) : 1947년 창간<ref name="kukey">{{웹 인용|제목=고대신문 소개|url=http://www.kukey.com/com/com-1.html|출판사=고대신문|확인날짜=2011-06-0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21080147/http://www.kukey.com/com/com-1.html|보존날짜=2012-01-21|url-status=live}}</ref>돼 학생 주도로 발행하는 고려대학교의 주간 교내신문으로, 발행비용은 학교 당국이 보조한다. 1960년 4월 2일 ‘우리는 행동성이 결여된 기형적 지식인을 배격한다’며 학생들이 독재정권에 저항할 것을 호소한 날카로운 사설<ref>{{뉴스 인용|제목=1960년 고대생들 깡패들에게 피습|url=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04180039|출판사=동아일보|저자=전승훈 기자|날짜=2007-04-18|확인날짜=2011-06-06}}</ref>은 4·18 고대생 의거의 촉매제가 된 명문으로 유명하며, 1975년 [[긴급조치]] 제7호 당시 학교 앞에 진주한 군대를 상대로 학생들이 교문을 막고 서 있는 사진과 함께 실린 ‘고대의 문은 누구도 닫을 수 없습니다’라는 광고는 수많은 교우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였다.<ref name="archive07"/> 그러나 최근 들어 특정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기사보다는 학내 뉴스 위주로 1면을 내보내고 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ref>{{웹 인용|제목=고대신문의 최근 편집 경향에 대한 단상|url=http://www.kukey.com/bbs/list.html?table=bbs_1&idxno=70&page=1&total=13&sc_area=T&sc_word=%C6%ED%C1%FD|출판사=고대신문 자유게시판|확인날짜=2011-06-2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20120607/http://www.kukey.com/bbs/list.html?table=bbs_1|보존날짜=2012-01-20|url-status=live}}</ref> [[서울대학교]]에서 발생한 대학신문 학생기자단의 편집권 투쟁<ref>{{뉴스 인용|제목=서울大 대학신문 편집권 갈등 창간후 첫 '半백지'발행 파문|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8&aid=0000257546|출판사=한국일보|저자=박선영 기자|날짜=2004-11-14|확인날짜=2011-06-24}}</ref>과 관련해 학생기자들의 투쟁을 촉구하는 의견이 게재되기도 하였다.<ref>{{웹 인용|제목=대학신문 학생기자단의 '편집권 투쟁'을 지지한다|url=http://www.kukey.com/bbs/list.html?table=bbs_1&idxno=696&page=1&total=13&sc_area=T&sc_word=%C6%ED%C1%FD|출판사=고대신문 자유게시판|확인날짜=2011-06-2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20120607/http://www.kukey.com/bbs/list.html?table=bbs_1|보존날짜=2012-01-20|url-status=live}}</ref> 한편 편집권 관련 분쟁으로 인해 서울대학교 대학신문의 2004년 11월 15일자 신문은 정상적으로 발행되지 않았다.<ref>{{뉴스 인용|제목=사과드립니다|url=http://www.snunews.com/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1804|출판사=대학신문|저자=대학신문|날짜=2004-11-20|확인날짜=2011-06-2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03054550/http://www.snunews.com/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1804|보존날짜=2011-11-03|url-status=dead}}</ref> 1998년부터 인터넷 고대신문이 발행됨에 따라 인터넷으로도, 고대신문의 기사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2006년부터는 인터넷 고대 신문 쿠키라는 이름으로 미디어 포탈로 영역을 확장하였다.<ref name="kukey"/> 신문사는 홍보관 건물 2층에 위치하고 있다.
* '''고대문화'''(계간지) : 1945년에 창간된 고려대학교의 교지이다. 본래 학기마다 1회 발행하였으나, 2003년부터 월간으로 전환하였다가<ref>{{웹 인용|제목=월간호 보기|url=http://komun.net/zbxe/monthly_komun_2009|출판사=고대문화|확인날짜=2011-06-0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219205926/http://www.komun.net/zbxe/monthly_komun_2009|보존날짜=2011-02-19|url-status=live}}</ref> 2010년부터는 계간으로 전환돼 발행 중이다.<ref>{{웹 인용|제목=계간호 보기|url=http://komun.net/zbxe/quarterly_komun_2010|출판사=고대문화|확인날짜=2011-06-0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01220160044/http://www.komun.net/zbxe/quarterly_komun_2010|보존날짜=2010-12-20|url-status=live}}</ref> 고대신문과 달리 학생들이 납부하는 교지대에 의존해 발행한다. ‘세계를 변혁하는 대항언론’을 표어로 하고 있으며, 학내외 여러 사안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많이 낸다.<ref>{{웹 인용|제목=고대문화란?|url=http://komun.net/zbxe/about|출판사=고대문화|확인날짜=2011-06-0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01221011306/http://www.komun.net/zbxe/about|보존날짜=2010-12-21|url-status=live}}</ref> 또한 총학생회 계열의 학생운동 세력과 다른 대안적인 주장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학생회비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교지대는 등록금과 함께 학교당국이 수납을 대행하는 일괄납부 방식이었으나, 일부 학생들의 반발로 2005년 2학기부터 분리납부로 전환됐다.<ref name="presidenteo"/>
* '''The Granite Tower''' : 학내 영자신문사인 《''The Granite Tower''》는 [[YBM]] 창립자 [[민영빈]]에 의해서 1954년에 창간하였으며 고려대학교 유일의 영자 매체이다. 1997년에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하였다.<ref>{{웹 인용|제목=About|url=http://thegranitetower.tumblr.com/about|웹사이트=The Granite Tower|확인날짜=2011-06-06|보존url=https://archive.today/20120718164042/http://thegranitetower.tumblr.com/about|보존날짜=2012-07-18|url-status=live}}</ref> 신문사의 위치는 홍보관 2층이다.
* '''KUBS·KTN·KUTV·KDBS''' : 교내종합방송국인 KUBS는 학교 기관인 교육매체실<ref name="korea.ac.kr">{{웹 인용|제목=고려대학교 교육매체실|url=http://www.korea.ac.kr/content/L/L3_2_6.jsp|확인날짜=2014-04-30|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502002423/http://www.korea.ac.kr/content/L/L3_2_6.jsp|보존날짜=2014-05-02|url-status=live}}</ref> 소속의 방송국으로 정식 명칭은 고려대학교 교육방송국이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라디오 방송을 내보내고 정기적인 영상프로그램 제작을 한다. [[고연전]], 석탑대동제와 같은 기간에도 활동하며, 학내 특별 사안이 있을 때에는 특별방송을 한다. KUBS의 방송은 인터넷으로도 보고들을 수 있다.<ref>{{웹 인용|제목=KUBS 소개|url=http://www.kubs.ac.kr/gboard/bbs/board.php?bo_table=introduce|출판사=고려대학교 교육방송국 KUBS|확인날짜=2011-06-0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3030407/http://www.kubs.ac.kr/gboard/bbs/board.php?bo_table=introduce|보존날짜=2013-12-13|url-status=live}}</ref>. 방송국은 홍보관 건물 2층에 위치하고 있다. 교내 TV 방송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KTN은 학교 기관인 교육매체실<ref name="korea.ac.kr"/> 소속의 방송국으로 정식 명칭은 고려대학교 TV 방송국이다. 교내 행사의 영상 기록을 하고, 정규 프로그램을 만들어 송출하며<ref>{{웹 인용|제목=정규방송|url=http://www.ktn.ac.kr/userview/u_list.asp?cat_id=25|출판사=KTN 고려대학교TV방송국|확인날짜=2011-06-0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23171158/http://www.ktn.ac.kr/userview/u_list.asp?cat_id=25|보존날짜=2011-11-23|url-status=live}}</ref>, 교내 케이블TV 채널 4번을 통해 24시간 방송을 한다. 방송국은 홍보관 건물 4층에 위치하고 있다. TV 방송만을 다루는 KUTV는 자치언론협의회 소속의 학생 자치방송국이다.<ref>{{웹 인용|제목=KUTV소개|url=http://kutv.korea.ac.kr/sub/sub_introduction00.html|출판사=KUTV|확인날짜=2014-04-30}}{{깨진 링크|url=http://kutv.korea.ac.kr/sub/sub_introduction00.html }}</ref> 학내 곳곳에 설치된 TV를 통해 아침, 점심으로 방송을 하며,<ref>{{웹 인용|제목=정규방송 편성표|url=http://kutv.korea.ac.kr/sub/sub_jeong.html|웹사이트=KUTV|확인날짜=2011-06-06}}{{깨진 링크|url=http://kutv.korea.ac.kr/sub/sub_jeong.html }}</ref> 정규 방송은 1주일 단위로 편집된다.<ref>{{웹 인용|제목=정규방송 전체보기|url=http://kutv.korea.ac.kr/sub/sub_all_introduction.php|웹사이트=KUTV|확인날짜=2011-06-06}}{{깨진 링크|url=http://kutv.korea.ac.kr/sub/sub_all_introduction.php }}</ref> 방송국은 홍보관 건물 3층에 위치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세종캠퍼스내 학교 부속 언론기관<ref>{{웹 인용|제목=KDBS 소개|url=http://bbbo.homejoa.com/web//bbs/board.php?bo_table=11|출판사=고려대학교 방송국 KDBS|확인날짜=2011-06-29}}{{깨진 링크|url=http://bbbo.homejoa.com/web//bbs/board.php?bo_table=11 }}</ref>인 KDBS도 운영되고 있다.
* '''석순'''(여성주의 교지) : 1983년부터 시작된 여성주의 교지로, 《고대문화》와 더불어 학생회비의 일부를 구성하는 교지대에 의해 운영된다. 《고대문화》와 마찬가지로 교지대 강제 징수를 둘러싸고 진통을 겪었다.<ref name="presidenteo"/> 학기당 1회 발행하며, 학내외 여성주의 문제 전반을 다룬다.
=== 동아리 ===
고려대학교의 동아리는 인문계 캠퍼스 학생회관에 동아리방이 있는 고려대학교 동아리연합회 소속의 중앙동아리와 자연계 캠퍼스 애기능학생회관에 동아리방이 있는 고려대학교 애기능동아리연합회 소속의 애기능중앙동아리로 나뉘며, 두 동아리연합은 동격이다. 이 외에도 단과대, 학과별 동아리도 존재한다.
=== 기타 ===
* '''고려대학교 교환학생 교류회(KUBA)''' : 고려대학교 교환학생 교류회 KUBA는 ‘Korea University Buddy Assistants’의 약자로 외국인 교환학생/방문학생들의 학사와 생활전반에 걸친 정착을 돕는 고려대학교 국제처 산하 자원봉사 단체다. 고려대학교를 전 세계에 알림과 동시에 외국인 학생들이 대한민국과 고려대학교 생활에 빠르게 적응하도록 도움을 주고, 이를 통해 국경을 초월한 우정과 문화 교류를 목적으로 한다. 주요 활동으로는 버디매칭과 조별활동, Language exchange, 매달 다양한 주제의 미션 수행, 축제 및 각종 문화행사(웰커밍 파티, 필드데이, 입실렌티/고연전, International Students' Festival, 페어웰 파티) 등이 있다.<ref name="cafe.naver.com">{{웹 인용|url=http://cafe.naver.com/globalkuba|제목=고려대학교 교환학생 교류회|출판사=고려대학교 교환학생 교류회|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1118123648/http://cafe.naver.com/globalkuba|보존날짜=2015-11-18|url-status=live|확인날짜=2015-11-17}}</ref>
* '''고려대학교 응원단''' : 고려대학교 응원단은 1927년 11월 처음 열었던 보연전 시절부터 비공식적인 단체로 시작하여, 1968년부터 교내의 공식적인 단체가 되었다. 정기 및 비정기 고연전<ref name="koyongames">{{웹 인용|제목=정기 고연전|url=http://www.kuleader.net/activity/activity03.php|출판사=고려대학교 응원단|확인날짜=2013-02-2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02070411/http://www.kuleader.net/activity/activity03.php|보존날짜=2013-10-02|url-status=live}}</ref>을 이끌며, 고려대학교가 참여하는 스포츠 행사, ‘입실렌티 지·야의 함성’<ref>{{웹 인용|제목=지.야의 함성|url=http://www.kuleader.net/activity/activity01.php|출판사=고려대학교 응원단|확인날짜=2011-06-0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03061527/http://www.kuleader.net/activity/activity01.php|보존날짜=2011-11-03|url-status=live}}</ref> 등에서 응원을 담당한다.<ref>{{웹 인용|제목=응원단 역사|url=http://www.kuleader.net/history/history01.php|출판사=고려대학교 응원단|확인날짜=2011-06-0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03061458/http://www.kuleader.net/history/history01.php|보존날짜=2011-11-03|url-status=live}}</ref>
* '''고려대학교 학생홍보대사 여울''' : 고려대학교 대외협력처 홍보팀 소속이며, 재학생들이 구성한 교내 공식 홍보단체이다. 1998년 9월 1기가 선발<ref>{{웹 인용|제목=여울 현황|url=http://tour.korea.ac.kr/jsp/guest/intro/yeoul_guest_intro_history_02_v.jsp|출판사=고려대학교 학생홍보대사 여울|확인날짜=2011-06-03}}{{깨진 링크|url=http://tour.korea.ac.kr/jsp/guest/intro/yeoul_guest_intro_history_02_v.jsp }}</ref>한 이래 2012년 기준으로 14기를 선발하였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고려대학교를 방문하는 일반인들에게 캠퍼스 견학을 제공하고, 입학식과 졸업식, 비전 선포식 등 교내외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여 고려대학교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일에 앞장선다.
*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학생홍보대사 홍랑''' : 분교인 세종캠퍼스는 ‘홍랑’이라는 별도의 학생홍보대사를 운영한다.
* '''생활도서관''' : 타 대학 학생 또는 일반 시민에게도 개방하며 운영 전반에 걸친 부분을 학교의 간섭을 받지 않고 학생들 스스로 해결하는 생활도서관이다. 생활도서관을 1990년 5월 전국 대학 최초로 설립했다.<ref>{{뉴스 인용|제목=「교양의 공간」 생활도서관 속속 등장|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80100329126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5-08-01&officeId=00032&pageNo=26&printNo=15498&publishType=0001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경향신문|저자=김중식 기자|날짜=1995-08-01|확인날짜=2011-07-01}}{{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80100329126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5-08-01&officeId=00032&pageNo=26&printNo=15498&publishType=00010&doNotReadAnyMore=notClose }}</ref><ref>{{웹 인용|제목=안암에서의 정보운동 : 생활도서관|url=http://naver.nanet.go.kr/SearchDetailView.do?cn=KINX1975002756&sysid=nhn|저자=이희영|출판사=국회전자도서관|확인날짜=2011-07-01}}{{깨진 링크|url=http://naver.nanet.go.kr/SearchDetailView.do?cn=KINX1975002756&sysid=nhn }}</ref> 2003년에는 장애인권위원회, 언론자치활동모임 불한당과 함께 ‘올리브’(OLIB) 운동이라는 대학도서관 개방운동에 참가하였다. [[이화여자대학교]]의 ‘올리버’(OLIBER) 운동과 같은 흐름인 이 운동으로 생활도서관은 대학 도서관 완고한 장벽의 철폐를 주장하였다. 한편 이와 같은 움직임에 열람실이 턱없이 부족한 이유로 일부 학생들의 반발 또한 있었다.<ref>{{뉴스 인용|제목=지역주민 향해 열려라! 도서관|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8&aid=0000017562|출판사=한겨레|저자=이지은 기자|날짜=2003-06-08|확인날짜=2011-07-01}}</ref><ref>{{뉴스 인용|제목=올리브·올리버를 아십니까|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2004|출판사=한겨레21|저자=김창석 기자|날짜=2003-06-12|확인날짜=2011-07-01}}</ref>
* '''고전음악감상실''' : 1978년 처음 만들었고, 여전히 학생들의 휴식공간 등 역할을 담당한다. 다양한 장르의 [[서양 고전 음악|고전음악]]과 이에 관한 설명을 하며, 신청곡을 받아 음익을 제공한다.<ref>{{뉴스 인용|제목=고전음악들으며 공부할까요?|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89|출판사=고대신문|저자=정부경 기자|날짜=2007-09-15|확인날짜=2011-06-09|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048/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89|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홍보관 1층에 있었고, 현재는 중앙광장 120호로 자리를 옮겼다. 이로 인해 평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였던 감상실 운영이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로 줄었다. 옮긴 공간에서 수업도 진행하므로 운영시간이 줄었다. 이런 문제점로 감상실 측에서 2011년 2월부터 재학생 커뮤니티인 [[고파스]]에서 ‘24시간 클래식 음악방송’을 진행했지만 현재는 제공하지 않는다.<ref>{{뉴스 인용|제목=고파스에서 24시간 클래식 음악방송을 즐겨보세요|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6640|출판사=고대신문|저자=신효식 기자|날짜=2011-06-05|확인날짜=2011-06-09|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104/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6640|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 '''재학생 커뮤니티''' : 세종캠퍼스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쿠플존을 운영하며, 서울캠퍼스 재학생 대상으로 고파스를 운영한다.
== 연례행사 ==
=== 사발식 ===
'''사발식'''(沙鉢式)은 커다란 사발에 부어진 [[막걸리]]를 선배들이 불러주는 ‘막걸리찬가’에 맞추어 신입생들이 마시는 행사를 말하며, 고려대학교의 교우로 남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ref name="sabal">{{뉴스 인용|제목=막걸리 찬가|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3165|출판사=고대신문|저자=정운용 교수|날짜=2004-03-01|확인날짜=2011-06-10|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158/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3165|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사발식의 기원이 언제부터였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와 같은 문화가 1970년대 즈음에 생겨났다는 증언이 존재한다.<ref>{{뉴스 인용|제목=교우들이 말하는 '그땐 그랬지'|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3434|출판사=고대신문|저자=민경옥 기자|날짜=2009-05-02|확인날짜=2011-07-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220/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3434|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신입생환영회에서 많은 양의 막걸리를 마시도록 하는 것에는 “그간의 획일화된 교육과 얽매인 생활의 묵은 때를 모두 토해 비워버리고 학문의 진리와 민족의 정의를 위해 나아가는 고대인이 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제목=전통을 이어가는 고려대학교 막걸리사발식|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LeisureLife/Article.asp?aid=20100308004799&subctg1=55&subctg2=00|출판사=SPORTS WORLD|저자=박철성 기자|날짜=2010-03-09|확인날짜=2011-06-10}}{{깨진 링크|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LeisureLife/Article.asp?aid=20100308004799&subctg1=55&subctg2=00 }}</ref>
=== 동아리 박람회 ===
'''동아리 박람회'''(-博覽會; 약칭 '동박')는 고려대학교에 소속된 각 동아리들이 학부 신입생들에게 홍보를 하는 행사이다. 매년 3월 중에<ref>{{뉴스 인용|제목=우와~ 멋있다!|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3195|출판사=고대신문|저자=박광미 기자|날짜=2009-03-21|확인날짜=2011-07-01|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212/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3195|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고려대학교 중앙동아리연합회 주최의 동아리 박람회와 애기능동아리연합회 주최의 동아리 박람회가 각각 이틀 간 민주광장과 애기능학생회관 앞에서 열린다.<ref>{{뉴스 인용|제목=제9회 동아리 박람회 개최|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3134|출판사=고대신문|저자=김솔지 기자|날짜=2009-03-14|확인날짜=2011-07-01|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18105143/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3134|보존날짜=2012-01-18|url-status=live}}</ref> 2010년 3월 기준으로 모두 185개의 동아리가 교내에 등록돼 있다.<ref>{{뉴스 인용|제목='대학생 특권 동아리에 도전하라'|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4998|출판사=고대신문|저자=고대신문|날짜=2010-03-23|확인날짜=2011-07-01|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228/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4998|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동아리 구성원들은 박람회 외에도 포스터나 공연, 콘서트, 지인을 통한 여러 홍보활동을 통해 그들이 속한 동아리를 알린다.<ref name="societyad">{{뉴스 인용|제목=실질활동 회원수 감소로 고심|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308|출판사=고대신문|저자=정현아 기자|날짜=2006-03-20|확인날짜=2011-07-2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230/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7308|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추고, 전체동아리대표자회의를 거쳐 가등록과 정식 등록 절차를 거친 동아리는 중앙동아리로 활동할 수 있으며<ref name="signin">{{뉴스 인용|제목=중앙동아리, 물처럼 흘러야 산다|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6522|출판사=고대신문|저자=홍영재 기자|날짜=2011-05-16|확인날짜=2011-07-2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207/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6522|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이미 등록된 동아리들도 매년 재등록신청서를 작성하여야 한다.<ref name="societyad"/> 애기능동아리연합회 소속의 동아리로 활동하고자 할 때도 비슷한 절차를 거치게 된다. 중앙동아리로 인가를 받으면 동아리방을 배정받고 학교의 지원금을 받게 되는데<ref name="signin"/>, 교비를 지원받으려면 정해진 기간 내에 교비 지원 신청을 해야 한다.<ref>{{뉴스 인용|제목=동아리지원금 신청 안 하면 못받아|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174|출판사=고대신문|저자=김경민 기자|날짜=2011-04-12|확인날짜=2011-07-2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226/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174|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 4·18 기념 마라톤과 구국 대장정 ===
매년 4월 18일에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4·19 혁명#4월 19일 이전의 상황|4·18 의거]]를 기념하기 위해 4·18 기념 마라톤과 구국대장정을 진행한다. 헌화 행사에 이어 오전에는 기념 마라톤이, 오후에는 구국대장정이 진행된다.<ref name="pilgrim"/><ref>{{웹 인용|제목=4ㆍ18 의거 50주년 기념 행사|url=http://www.korea.ac.kr/do/MessageBoard/ArticleRead.do?forum=aroma&id=4bbb9b|출판사=고대TODAY|날짜=2010-07-23|확인날짜=2011-07-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103175710/http://korea.ac.kr/do/MessageBoard/ArticleRead.do?forum=aroma&id=4bbb9b|보존날짜=2011-01-03|url-status=live}}</ref> 기념 마라톤은 1969년 당시 총학생회에서 처음으로 만든 이래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학교를 출발하여 [[국립4·19민주묘지|국립 4·19 묘지]]를 거쳐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총 16.2km의 코스로 구성돼 있다. 최종 목적지가 국립 4·19 묘지로 설정되어 있는 것에는 4·18이 4·19 정신으로 이어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와 같은 행사는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도 이어져 마라톤이라는 형식을 빌려 불의에 맞서 싸우는 기능 또한 담당하였다.<ref>{{웹 인용|제목=4.18 마라톤, 선배들의 혁명 정신|url=http://www.korea.ac.kr/do/MessageBoard/ArticleRead.do?forum=special&id=4971e6|출판사=고대TODAY|날짜=2009-04-28|확인날짜=2011-07-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427174540/http://www.korea.ac.kr/do/MessageBoard/ArticleRead.do?forum=special&id=4971e6|보존날짜=2016-04-27|url-status=live}}</ref> 구국대장정은 각 단과대별로 모여 교내 중앙광장을 출발하여 수유동 국립 4·19 묘지까지 행진한 다음, 4·19 기념탑에서 참배한 후 학교로 다시 돌아오는 형식을 띄는 행사로, 이 행사 또한 1969년에 처음으로 개최됐다. 행사 초기에는 시민들의 불편을 우려하여 참가자 수에 제한을 두었으나 1984년부터 이 제한이 폐지됐다. 이 행사에서의 구호는 해당연도의 이슈 또는 시대적인 변화가 반영된 것으로, 이를 구호뿐만 아니라 팜플렛을 통해서도 시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선배들의 정신을 계승한다기보다는 고대생이 되기 위한 하나의 절차 정도로 인식되는 것과 관련하여 알맹이가 빠져 있다는 의견들이 존재하는 반면, 꾸준히 행사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ref>{{뉴스 인용|제목=4·18 우리는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가|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428|출판사=고대신문|저자=공인주 기자|날짜=2003-04-16|확인날짜=2011-06-0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224/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428|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 석탑대동제 ===
매년 5월 중에는 '''석탑대동제'''(石塔大同祭)라는 이름의 학생 축제가 열린다. 1962년 5월 4일부터 3일간 개최된 ‘석탑축전’이 이 행사의 연원으로 알려져 있는데<ref>{{뉴스 인용|제목=석탑축전(石塔祝典)개막|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205050020910401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2-05-05&officeId=00020&pageNo=4&printNo=12447&publishType=0001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동아일보|날짜=1962-05-05|확인날짜=2011-06-29}}{{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205050020910401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2-05-05&officeId=00020&pageNo=4&printNo=12447&publishType=00010&doNotReadAnyMore=notClose }}</ref>, 여기서 ‘석탑’이라는 이름은 당시 본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조지훈]]이 지었다고 한다. 석탑축전이 ‘대동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84년의 일이다.<ref name="anniversary">{{뉴스 인용|제목=다사다난했던 개교기념일|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195|출판사=고대신문|저자=장민석 기자|날짜=2010-05-01|확인날짜=2011-06-2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18110631/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195|보존날짜=2012-01-18|url-status=live}}</ref><ref name="daedong">{{뉴스 인용|제목=고려대 대동제, 어떻게 변해왔을까?|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6557|출판사=고대신문|저자=김다혜 기자|날짜=2011-05-22|확인날짜=2011-06-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201/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6557|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대동제]](帶同祭)라는 의미는 직역을 하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함께 데리고 가는 것 + 추모하는 제(祭)를 지내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한 대학생들이 독재정권 항쟁 과정에서 죽임을 당한 학생들을 추모하면서 살아있는 학샐들의 참여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독재|독재 정권]]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한 학생들을 추모하는 합동위령굿 등을 지내면서 3년 후인 1987년에는 전국 대부분의 대학에서 대동제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열 정도로 ‘대동제’라는 이름은 대학가 전역에 널리 퍼져나갔다. 인문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정태환은 ‘교내 구성원 간에 소속감과 일체감을 느낀다는 면에서 스트레스 해방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면서 교내 축제에 그 의미를 부여하였다.<ref name="daedong"/> 1956년 개교기념일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민주화 투쟁이 발생하는등 개교 기념일에 여러 가지 이벤트가 발생하였다. 석탑대동제는 개교기념일의 대표 행사였으나 2000년대 들어 개최기간이 길게는 3주까지 미뤄지며 개교기념일과의 거리가 멀어졌다.<ref name="anniversary"/> 대동제 기간에는 여러 학과/반 학생회와 동아리에서 주점을 비롯한 각종 이벤트들이 교내 곳곳에서 개최되며, 주요 행사 일정은 교내에 비치된 고대신문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대동제 기간에 애기능 지역에서는 애기능동아리연합회의 주도로 별도의 행사가 열리며 2011년의 경우 공과대, 생명대, 이과대, 보과대, 정통대의 5개 단과대학이 참여하여 노벨광장을 주 무대로 ‘Sound Festival’(사운드 페스티벌)과 ‘애기능 실루엣 가요제’, ‘애기능 요리 경연대회’ 등과 더불어 각종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펼쳐졌다.<ref>{{뉴스 인용|제목='이공계인' 사로잡을 애기능 축제|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6512|출판사=고대신문|저자=김민형 기자|날짜=2011-05-15|확인날짜=2011-06-0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232/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6512|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 입실렌티 지·야의 함성 ===
[[파일:Ipselenti.jpg|섬네일|250px|2011년 입실렌티 무대의 모습]]
'''입실렌티 지·야의 함성'''(Ipselenti: 知野의 喊聲)은 주로 석탑대동제 마지막 날 저녁을 기해 고려대학교 응원단이 주최하는 응원제로 2011년에 34회째를 맞았다. ‘입실렌티’(Ipselenti)란 보성전문학교 시절부터 사용된 고려대학교의 교호(校號)의 일부이며, ‘지·야’란 지성(知性)과 야성(野性)을 가리킨다. 학우들의 참여 프로그램, 초청 연예인들의 공연과 응원제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교가<ref name="고대의 노래">[http://www.korea.ac.kr/mbshome/mbs/university/subview.do?id=university_010412000000 고대의 노래] - 고려대학교</ref>와 교호<ref name="고대의 노래"/>로 행사를 마무리한다. 교가와 교호로 행사를 마무리하는 방식은 입실렌티 이외의 공식적인 행사에서도 일반적이다.<ref>{{뉴스 인용|제목='고대 37회' 동기회 열려|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2167|출판사=고대신문|저자=박종훈 기자|날짜=2003-10-06|확인날짜=2011-07-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18111055/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2167|보존날짜=2012-01-18|url-status=live}}</ref><ref name="finanthem">{{웹 인용|제목=입실렌티 체이홉 카시코시 코시코 칼마시 케시케시|url=http://www.hadream.com/zb40pl3/zboard.php?id=seoul&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709|웹사이트=하종강의 노동과 꿈|출판사=한울노동문제연구소|날짜=2008-01-08|확인날짜=2011-07-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1027172349/http://www.hadream.com/zb40pl3/zboard.php?id=seoul&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709|보존날짜=2012-10-27|url-status=live}}</ref>
* '''응원곡''' : 고려대학교 응원단에서는 매년 고연전 오티를 기해 응원곡 신곡을 발표하고 있다.<ref>{{뉴스 인용|제목=“지성의 고대인, 응원에서만큼은 야성을!”|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0439|출판사=고대신문|저자=정부경 기자|날짜=2007-09-29|확인날짜=2011-07-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18105205/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0439|보존날짜=2012-01-18|url-status=live}}</ref> 응원 문화가 현재와 같은 형태를 띄게 된 것은 1968년 응원단이 조직된 이후의 일이다. ‘뱃노래’가 체계를 갖춘 최초의 응원곡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이 곡은 1974년에 발표됐다. 1981년에 발표된 ‘엘리제’에는 당시의 디스코 문화가 반영돼 있으며, 이듬해인 1982년에 발표된 ‘석탑’에는 반정부 정서가 가미돼 있다.<ref name="cheers">{{뉴스 인용|제목=‘뱃노래’부터 ‘슈퍼맨’까지|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648|출판사=고대신문|저자=이지현 기자|날짜=2010-09-05|확인날짜=2011-07-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215/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648|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 2003년에 발표된 ‘민족의 아리아’<ref>{{뉴스 인용|제목="열정만은 너에게 질 수 없어, 친구야"|url=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905/h2009051902545222020.htm|출판사=한국일보|저자=장재용 기자|날짜=2009-05-19|확인날짜=2011-07-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03053146/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905/h2009051902545222020.htm|보존날짜=2011-11-03|url-status=dead}}</ref><ref>{{뉴스 인용|제목=가장 인기있는 응원곡 1위 '민족의 아리아'|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622|출판사=고대신문|저자=윤다솔 기자|날짜=2010-09-04|확인날짜=2011-07-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8091209/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622|보존날짜=2013-12-18|url-status=live}}</ref>와 2007년에 발표된 ‘들어라 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와 ‘Forever’, ‘캉캉’ 또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최근에는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동작들이 가미된 응원곡들 또한 등장하고 있다. 응원단 측에서는 응원곡을 제작 및 발표할 때 얼마나 많이 불릴지를 예측해서 이들을 3개의 등급으로 분류한다고 한다.<ref name="cheers"/>
* '''교가와 교호''' : 현재 사용되고 있는 교가<ref name="고대의 노래"/>는 1955년에 개교 50주년을 맞아 제정된 것이다.<ref>{{웹 인용|제목=마음의 고향|url=http://ku65.or.kr/tt/board/ttboard.cgi?act=read&db=gesi_408&page=1&idx=1459|출판사=고대65동기회|날짜=2009-01-06|확인날짜=2011-08-16}}{{깨진 링크|url=http://ku65.or.kr/tt/board/ttboard.cgi?act=read&db=gesi_408&page=1&idx=1459 }}</ref> 작사는 [[조지훈]]<ref>{{뉴스 인용|제목=한국의 名家 현대편 (19) 조지훈|url=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157100013&ctcd=C08|출판사=주간조선|저자=김덕형 기자|날짜=2011-05-23|확인날짜=2011-07-0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05153922/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157100013&ctcd=C08|보존날짜=2016-03-05|url-status=live}}</ref>, 작곡은 [[윤이상]]이 맡았다.<ref>{{뉴스 인용|제목=校歌로 만나는 윤이상|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559171|출판사=연합뉴스|저자=현윤경 기자|날짜=2009-03-18|확인날짜=2011-07-03}}</ref> 교호는 1922년 구 교가(이광수 작사, 김영환 작곡)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 즉, 보성전문학교 시절에 제정된 것이다. 그래서 후렴구가 고려대학이 아닌 보전(Pojun, 보성전문)으로 표기돼 있다<ref>《사진으로 본 고려대학교 80년》</ref>.
{{인용문|YELL<br />
Ipse Lenti Je Hook<br />
Kashe Koshe Koshe Koo<br />
Kalmazoo Kezoo Kezoo <br />
Pojun Pojun<br />
Kalma Keshi Pojun<br />}}
교명이 고려대학교로 개명된 뒤, 교호는 아래와 같이 수정됐다.
{{인용문|교호<br />
입실렌티, 체이홉<br />
카시코시 코시코<br />
칼마시 케시케시 고려대학<br />
칼마시 케시케시 고려대학}}
고려대학교 교호는 입실렌티([[알렉산드로스 입실란티스]]), 체이홉([[안톤 체호프]]? 동명이인 체호프?), 카시코시 코시코([[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 그리스 카시코시우스?), 칼마시([[카를 마르크스]])까지 모두 네 사람이 계시는(케시케시) 의미이다. 이들은 출생 연대는 서로 다르지만 사회 저항비판 의식이 강했던 인물들이다. 따라서 교호를 만든 사람은 입실렌티, 체이홉, 카시케시 코시코에게 순서에 관계없이 ‘자유’, ‘정의’, ‘진리’라는 교훈(校訓)을 부여해 고대생에게 사회 저항의식을 가져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ref>조주희 기자, 사회비판의식과 「자유」․「정의」․「진리」내포, 《고대신문》, 1995년 5월 1일 작성.</ref>
=== 고연전 ===
{{참고|고연전}}
'''고연전'''은 애교심을 고양하고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 양교의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ref name="koyongames"/> 스포츠 경기<ref>{{뉴스 인용|제목=2011 고연전 '돌아온 호랑이, 고려대의 승리로 막내려'|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6&c1=06&c2=06&c3=00&nkey=201106261801583&mode=sub_view|출판사=한경닷컴|저자=손지혜 기자|날짜=2011-06-26|확인날짜=2013-02-2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03063248/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6&c1=06&c2=06&c3=00&nkey=201106261801583&mode=sub_view|보존날짜=2011-11-03|url-status=live}}</ref>를 비롯한 강연<ref>{{뉴스 인용|제목=고려ㆍ연세대 `강의도 고연전'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770899|출판사=연합뉴스|저자=강건택 기자|날짜=2007-10-02|확인날짜=2011-07-28}}</ref>, 온라인 게임<ref>{{뉴스 인용|제목='사이버 고연전' 연다…기업경영 시뮬레이션 게임|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20&aid=0000068956|출판사=동아일보|저자=문권모 기자|날짜=2001-06-11|확인날짜=2011-07-28}}</ref>, 사회공헌활동<ref>{{뉴스 인용|제목=‘봉사활동 고연전’ 펼쳐진다|url=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090902000478|출판사=헤럴드경제|저자=김수한 기자|날짜=2010-03-30|확인날짜=2011-07-28}}</ref><ref>{{뉴스 인용|제목='피 터지는' 고연전? '피 나누는' 고연전!|url=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100401031027236002|출판사=문화일보|저자=김병채 기자|날짜=2007-10-04|확인날짜=2013-02-2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02204233/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100401031027236002|보존날짜=2013-10-02|url-status=live}}</ref>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연세대학교와 승부를 겨루는 행사 일체를 의미한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옥스브릿지(Ox-Bridge)전(戰)’과 [[일본]]의 [[와세다 대학]]과 [[게이오기주쿠 대학]]의 ‘[[소케이센]]’({{lang|ja|早慶戦}}) 등과 유사한 형태이다. 고연전은 매년 9월에 연세대학교 5개 종목의 운동부 선수들과 맞붙는 ‘정기 고연전’<ref name="koyongames"/> 과 정기 고연전 이외의 기간에 열리는 ‘비정기 고연전’<ref>{{웹 인용|제목=비정기 고연전|url=http://www.kuleader.net/activity/activity04.php|출판사=고려대학교 응원단|확인날짜=2013-02-2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03061452/http://www.kuleader.net/activity/activity04.php|보존날짜=2011-11-03|url-status=live}}</ref>으로 크게 나누어볼 수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교내에 [[고려대학교 축구부|축구부]], 럭비부, 야구부, 농구부, 아이스하키부 등 5개 종목의 스포츠단체가 활동하고 있다.<ref>{{웹 인용|제목=스포츠단체|url=http://www.korea.ac.kr/content/L/L4_5.jsp|출판사=고려대학교|확인날짜=2013-02-2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0323164257/http://www.korea.ac.kr/content/L/L4_5.jsp|보존날짜=2013-03-23|url-status=live}}</ref> 흔히 일컬어지는 ‘고연전’이라는 명칭은 ‘정기 고연전’을 의미하며<ref>{{뉴스 인용|제목=허정무.홍명보 등 축구 스타들의 고연전 추억|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2069604|출판사=연합뉴스|저자=한상용 기자|날짜=2008-05-01|확인날짜=2011-07-28}}</ref>, 아래에 이어지는 설명도 ‘정기 고연전’에 관한 것이다.
* '''고연전의 역사''' :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와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는 1925년 5월 30일에 열린 [[대한체육회|조선체육회]] 주최 ‘제5회 전조선(全朝鮮) 정구대회’에서 처음으로 맞붙었다. 양교의 실질적인 첫 전면시합이 열린 것은 1927년 [[동대문운동장|경성운동장]]에서 거행된 제8회 [[전조선 축구대회]] 준결승에서의 [[고려대학교 축구부|보성전문학교 축구부]]와 [[연세대학교 축구부|연희전문학교 축구부]]의 대결이었다. 1943년에 징병제가 실시돼 시합이 중지되기 전까지 보성전문학교는 연희전문학교를 상대로 축구대회에서 31전 17승 14패를, 농구대회에서 62전 30승 32패를 기록하였다.<ref name="koyonhistory">{{웹 인용|제목=고연전 역사|url=http://www.kuleader.net/history/history02.php|출판사=고려대학교 응원단|확인날짜=2014-06-2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02071548/http://www.kuleader.net/history/history02.php|보존날짜=2013-10-02|url-status=live}}</ref> 정기전은 광복 이후 1945년 12월 21일부터 이틀간 열린 ‘제1회 보연 OB 축구대회’를 통해 부활하였다. 이듬해인 1946년에는 양교의 교명이 바뀌었으며<ref name="fouryearcollege"/><ref>{{웹 인용|제목=연표|url=http://www.korea.ac.kr/content/K/K2_1_3_04.jsp|출판사=고려대학교|확인날짜=2013-02-2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725144439/http://www.korea.ac.kr/content/K/K2_1_3_04.jsp|보존날짜=2012-07-25|url-status=live}}</ref><ref>{{웹 인용|제목=연희대학교|url=http://www.yonsei.ac.kr/contents/intro/yonhi.html|출판사=연세대학교|확인날짜=2013-02-2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02225728/http://www.yonsei.ac.kr/contents/intro/yonhi.html|보존날짜=2013-10-02|url-status=live}}</ref> 이에 따라 ‘보연전’이라는 명칭 또한 ‘고연전’으로 바뀌었다. 1946년부터는 [[축구]]와 [[농구]]의 재학생 간 정기전이 매년 열리게 됐고, 1956년에는 [[야구]], [[럭비 유니온|럭비]], [[아이스하키|빙구]]의 세 종목이 추가됐다. 오늘날과 같은 규모의 고연전 기틀이 마련된 것은 1959년의 일이다. 1961년부터 1964년까지는 [[5·16 군사 정변]] 등의 이유로 정기전이 열리지 않았다.<ref name="koyonhistory"/> 1965년부터는 이틀 동안 다섯 경기가 일제히 치러지는 지금과 같은 경기방식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으며, 1970년대 중반부터 점차 고연전 때 붉은색 티셔츠를 입기 시작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캠퍼스 가득한 크림슨, 비슷해 보여도 다 달라요|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6561|출판사=고대신문|저자=김다혜 기자|날짜=2011-05-22|확인날짜=2013-02-2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22010846/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6561|보존날짜=2013-10-22|url-status=live}}</ref> 한동안 ‘민족해방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ref>{{뉴스 인용|제목=고연(高延) 민족해방제 오늘부터 6일간|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00800209218013&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10-08&officeId=00020&pageNo=18&printNo=21262&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출판사=동아일보|날짜=1990-10-08|확인날짜=2011-07-04}}{{깨진 링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00800209218013&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10-08&officeId=00020&pageNo=18&printNo=21262&publishType=00020&doNotReadAnyMore=notClose }}</ref> 역대 정기 고연전 전적은 [https://web.archive.org/web/20111103061537/http://www.kuleader.net/history/history03.php 다음]과 같다.
* '''정기전의 명칭과 일정''' : 매년 9월에 열리는 정기전(정기친선경기대회)은 고연 양교가 매년 번갈아 주관한다. 정기전의 공식적인 명칭은 정기전을 주최하는 학교의 이름을 뒤에 붙이는 방식으로 정해지는데, 연세대학교가 주최하는 정기전 행사인 경우 ‘고연전’이 정식 명칭이 되는 식이다.<ref>{{뉴스 인용|제목=100년 호랑이 vs 120년 독수리|url=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509/h2005092219203922980.htm|출판사=한국일보|저자=김일환 기자|날짜=2005-09-22|확인날짜=2013-02-2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03054503/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509/h2005092219203922980.htm|보존날짜=2011-11-03|url-status=dead}}</ref> 그러나 정식 명칭은 실질적으로 방송 중계나 신문 보도 등의 공식 석상에만 사용될 뿐이며, 고려대학교에서는 '''고연전''', 연세대학교에서는 '''연고전'''이라는 명칭으로 통용된다.<ref>{{서적 인용|저자=강현식|제목=세상 밖으로 나온 심리학|쪽=134|출판사=네모북스|날짜=2006-07-29|ISBN=89-90795-31-1}}</ref> 고연전을 며칠 앞두고 세종 오리엔테이션과 서울 오리엔테이션, 합동 오리엔테이션이 각각 진행되며<ref>{{뉴스 인용|제목=응원오티에 참여하세요|url=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659|출판사=고대신문|저자=조세현 기자|날짜=2010-09-05|확인날짜=2013-02-2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22012215/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659|보존날짜=2013-10-22|url-status=live}}</ref>, 정기 고연전이 끝난 후에는 교우회 주최로 선후배 간의 화합의 장인 ‘1905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 행사는 동기회, 학과 교우회, 졸업생 개인이 학교 인근 주점을 예약해 후배들과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행사로, 68학번 동기회가 참살이길의 삼성통닭을 통째로 빌린 것이 그 시초이다.<ref>{{뉴스 인용|제목=고려대 1905페스티벌 “나비처럼 돌아와 범처럼 쏜다”|url=http://media.daum.net/press/view.html?cateid=1065&newsid=20060920100211302&p=newswire|출판사=뉴스와이어|날짜=2006-09-20|확인날짜=2011-08-25}}</ref><ref>{{뉴스 인용|제목=고려대, 동시간 최다 동문화합 '1905페스티벌'|url=http://www.ajnews.co.kr/view.jsp?newsId=20100909000465|출판사=아주경제|저자=김유경 기자|날짜=2010-09-09|확인날짜=2011-08-25}}{{깨진 링크|url=http://www.ajnews.co.kr/view.jsp?newsId=20100909000465 }}</ref>
== 운동부 ==
{{본문|고려대학교 축구부}} {{본문|고연전}}
[[축구]],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럭비]] 등 여러 종목의 운동부를 운영하고 있다.
== 교우회 및 동문 ==
{{참고|분류:고려대학교 동문}}
* '''고려대학교 교우회''' : 고려대학교 출신 교우들 모임인 고려대학교 교우회는 1907년 1월 대한민국 최초 대학 동문회인 ‘보전 친목회’로 창립했다. 초대회장은 조성구(趙聲九)가 맡았으며<ref>{{웹 인용|제목=교우회 연혁|url=http://www.kuaa.or.kr/alumni/history.html|출판사=고려대학교 교우회|확인날짜=2011-06-0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627055151/http://kuaa.or.kr/alumni/history.html|보존날짜=2014-06-27|url-status=dead}}</ref> 현재 교우회장은 [[승명호]](무역학과, 74학번)이다. 호남향우회, 해병전우회와 더불어 특별한 유대와 결속을 자랑하는 3대 모임의 하나로 부를 정도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상당히 강한 결속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결속력은 [[이명박]] 대통령 출마와 당선 과정에서도 확인했지만, 1990년대 후반 들어 입학생들 구성이 변화하여 현재의 결속력은 향후 약화한다는 관측도 있다.<ref>{{뉴스 인용|제목=특유의 유대감으로 ‘똘똘’ 대통령 이어 의원 25명 배출|url=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0394|출판사=시사저널|저자=이춘삼 편집위원|날짜=2009-10-21|확인날짜=2011-06-2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924102335/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0394|보존날짜=2015-09-24|url-status=live}}</ref><ref>{{뉴스 인용|제목=高大 교우회, 그 유별난 결속력 어디서 나오나|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1170822101&code=900315|출판사=경향신문|저자=이용욱 기자|날짜=2008-01-17|확인날짜=2011-06-26}}</ref> 2010년 6월에는 교우회장 자리를 맡고 있던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알선수재' 천신일 회장 징역 2년6월|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5116410|출판사=연합뉴스|저자=임수정 기자|날짜=2010-06-16|확인날짜=2011-06-26}}</ref>, 이는 2011년 4월 28일에 개최한 대의원 정기총회 자리에서 [[구천서 (정치인)|구천서]] 차기 교우회장 후보의 인준 안건 부결에 영향을 미쳤다.<ref>{{뉴스 인용|제목=구천서 고려대 교우회장 인준 부결|url=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75534.html|출판사=한겨레|저자=송채경화 기자|날짜=2011-04-29|확인날짜=2011-06-2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424120756/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75534.html|보존날짜=2016-04-24|url-status=live}}</ref> 교우회관 건물은 1994년 9월 29일에 착공하여 1996년 5월 30일에 문을 연었으며<ref name="kutable10">{{웹 인용|제목=연표|url=http://www.korea.ac.kr/content/K/K2_1_3_10.jsp|출판사=고려대학교|확인날짜=2011-06-0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725144712/http://www.korea.ac.kr/content/K/K2_1_3_10.jsp|보존날짜=2012-07-25|url-status=live}}</ref> 사범대학 동쪽에 위치한다.
* 고려대학교 동문 중엔 기업인이 많은데 2014년엔 대한민국 재벌기업 경영자의 상당수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출신이란 언론 보도가 나왔다.<ref>[http://news.jkn.co.kr/post/775694 다른 대학 출신은 기업인들 사이에 끼지도 못한다… "두 명문대학교의 질주"] 재경일보 2015년 4월 16일 보도내용</ref>
== 비판과 논란 ==
{{본문|고려대학교에 대한 비판과 논란}}
== 각주 ==
{{각주}}
=== 내용주 ===
<references group="주"/>
== 같이 보기 ==
{{포털|교육}}
*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 [[고려대학교 축구단]]
* [[보성전문학교 육상단]]
* [[보성전문학교 정구단]]
* [[4·18 고려대학생 피습 사건]]
* [[고파스]]
* [[동아일보]]
* [[스카이 (대학교)]]
* [[연세대학교]]
* [[와세다 대학]]<ref>{{웹 인용|url=https://www.donga.com/news/amp/all/20021020/7874134/1|제목=고려대-와세다대 교우회 교류 확대|날짜=2002-10-20|확인날짜=2024-01-16}}</ref><ref>{{웹 인용|url=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2402|제목=‘고·연전’에 일본 와세다대 응원단 가세|날짜=2003-09-24|언어=ko|확인날짜=2024-01-16}}</ref><ref>{{웹 인용|url=https://www.waseda.jp/prj-wakai/ko/outline/report/detail/?seq=200|제목=문희상 한국의장을 모셨을 때, 와세다 대학·스카 코이치(須賀晃一) 부총장 및, 요시노 타카시(吉野孝) 지역간 연구 기구장의 환영사를 아래에 내걸었습니다. 新学術領域研究 和解学の創成|확인날짜=2024-01-16}}</ref>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 {{언어링크|ko}} {{공식 웹사이트|http://www.korea.ac.kr/|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 {{언어링크|ko}} {{공식 웹사이트|http://sejong.korea.ac.kr/|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 {{언어링크|en}} {{공식 웹사이트}}
* [http://graduate.korea.ac.kr/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홈페이지]
* [http://medicine.korea.ac.kr/web/www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홈페이지]
* [http://library.korea.ac.kr/ 고려대학교 도서관 홈페이지]
* [http://www.kumc.or.kr/main/index.do 고려대학교 의료원 홈페이지]
* [http://www.kuaa.or.kr/ 고려대학교 교우회 홈페이지]
* [http://www.kukey.com/ 고대신문 홈페이지]
* [https://web.archive.org/web/20100513101301/http://kuplezone.com/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재학생 커뮤니티 쿠플존]
* [http://www.koreapas.net/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재학생 커뮤니티 고파스]
* {{두피디아|101013000748877|고려대학교}}
{{둘러보기 상자 묶음
|제목 = 고려대학교 관련 항목
|내용1 =
{{고려중앙학원}}
{{서울특별시의 대학}}
{{세종특별자치시의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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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사회 운동가 정보
| 이름 = 안중근
| 그림 = An Jung-geun.JPG
| 설명 = 1910년 경 뤼순감옥에 수감 중이던 안중근
| 출생일 = {{출생일|1879|9|2}}
| 출생지 = [[조선]] [[황해도]] [[해주군|해주부]]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10|3|26|1879|9|2}}
| 사망지 = [[일본 제국]] [[둥베이|만저우 지방]] [[관동주]] [[랴오닝성|펑톈 성]] <br/> [[뤼순커우 구|료준]] 뤼순 감옥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천주교]] (세례명: 토마스)
| 배우자 = [[김아려 (1878년)|김아려]]
| 자녀 = 안현생(장녀), 안분도(장남), [[안준생]](차남)
| 부모 = 부: [[안태훈 (1862년)|안태훈]](安泰勳)<br>모: [[조마리아]](趙瑪利亞)
| 친척 = [[안정근]](남동생) <br /> [[안공근]](남동생) <br /> [[안명근]](사촌 남동생) <br /> [[안경근]](사촌 남동생) <br /> [[안우생]](친조카) <br/> [[안미생]](친조카) <br /> [[김인 (1917년)|김인]](친조카사위) <br /> [[안진생]](친조카) <br /> [[안봉생]](5촌 조카) <br /> [[안춘생]](5촌 조카) <br /> [[김구]](사돈) <br /> [[안창호]](친족척)
| 경력 = [[의병|대한의군]](1907년~1909년)<br> 대한의군 참모중장<br>[[의병]] 참모중장 <br/> 특파독립대장 <br/> 아령지구사령관
| 본관 = [[순흥 안씨|순흥]](順興)
| 상훈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 기타 이력 = [[한학#한국의 한문 문학|한학]] 수학 이후 [[천주교]]에 귀의
| 관련 활동 = [[독립운동]]
| 주요 활동 =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
| 직업 = [[독립운동가]], 항일 의병장, 사상가, 저술가, 시인, 작가, 서예가
| 활동 이념 = 민족주의, 범아시아주의
| 다른 이름 = 청계(淸溪) <br/> 아명(兒名): 안응칠(安應七) <br/> 일명(一名): 안다묵(安多默)
}}
{{한국 이름
| 한글 표기 = 안중근
| 한자 표기 = 安重根
| 개정 로마자 표기 = An Junggeun
| 매큔-라이샤워 표기 = An Chungkŭn
| 예일 표기 = An Cwungkun
| 국제 음성 기호 = {{IPA-ko|ɐndʑuŋɡɯn|}}
}}
'''안중근'''(安重根, [[1879년]] [[9월 2일]]~[[1910년]] [[3월 26일]])은 [[대한제국]]의 [[독립운동가]], 항일 의병장([[대한독립군]] ''''대한의군(大韓義軍)'''' 참모중장), 정치 사상가이다. 태명은 '''안응칠'''(安應七)이었으며 [[세례명]]은 [[토마스]]([[음역어]] '''도마''', [[사도 토마]]에서 따옴), 일명은 '''다묵'''(多默)이다. [[본관]]은 [[순흥 안씨|순흥]](順興)이고 고려 후기의 유학자 [[안향]]의 26대손이다.<ref name="안중근의사 기념관">[http://www.patriot.or.kr/laboratory/la_02.php 안중근의사 기념관]{{깨진 링크|url=http://www.patriot.or.kr/laboratory/la_02.php }}</ref><ref name="autogenerated1">[http://www.greatkorean.org/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ref>
[[동학 농민 운동]]에서 아버지 안태훈(安泰勳)이 몇몇 본래의 목적을 가지지 않은 동학군 부대들을 정벌하는 데 함께 참여하였고, 대한제국 말기에는 학교 설립과 교육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을 하였으며 한때 복권 사업과 비슷한 채표회사(彩票會社)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09년 [[우덕순]], 유동하, 조도선과 소수의 결사대를 조직하여 [[만주]]의 [[하얼빈역]] 근처에서 초대하여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 등의 하차 시 암살을 준비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적군의 수장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였다. 이후 러시아제국군 헌병에게 붙잡혀 일본 총영사관으로 옮겨졌고, 재판관할권이 일본에 넘겨졌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살인]]의 죄형으로 [[관동주]] [[뤼순 감옥|뤼순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숨을 거두었다.
== 생애 ==
=== 생애 초반 ===
==== 출생과 가계 ====
[[파일:安重根父母.jpg|섬네일|left|아버지 안태훈(安泰勳)과 어머니 조마리아(趙瑪利亞)]]
[[해주군|해주부]] [[수양산 (황해도)|수양산]] 아래에서<ref name="안중근의사 기념관"/> 아버지 안태훈(安泰勳)과 어머니 조마리아 맏아들로 태어났다. [[진해군|진해]] 명예현감을 지낸 할아버지 안인수(安仁壽)는 해주 일대에서 미곡상을 경영하여 상당한 재산을 축적했다.<ref name="oh227">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227쪽</ref> 1911년 한국을 방문하여 안태훈 일가의 활동지를 답사한 베네딕토 수도원의 노베르트 베버 신부가 작성한 여행기에 따르면 안인수와 그의 아들 6형제와 가족 36인이 해주에서 일가를 이루고 살았을 당시에 안인수는 4백석의 토지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ref name="oh227"/> 할아버지가 대지주에 미곡상으로 재산을 많이 축적하여 안중근은 어렵지 않은 유년기를 보냈다.
뒤에 일본은 안인수가 "항상 미곡 매입 대금을 지불하지 않는 등 각종 간악한 수단을 부려 재물을 모아 거부를 이루었다"거나, "성품이 탐욕하고 배부름을 모르고 일상 간계를 써서 타인의 재산을 수중에 넣으려고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안억핍(安億乏)이라고 다르게 불렀다"고 말한 반면, 안중근은 "조부가 자산가로서 도내에 이름이 높았다."고 회고했다.<ref>한국 독립운동사 자료 8, 173~174페이지</ref>
그러나 안중근의 가계는 그의 5대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다소 불확실하다. [[순흥 안씨]] 족보에 의하면 17대조 안려(安廬)는 사마시에 합격한 생원으로서 건원릉 참봉을 지냈다. 14대조 안효신은 어린 나이에 문단에서 명성을 날릴 정도로 문장에 능했으나 벼슬을 구하지 않고 황해남도 해주로 내려가 은거 생활을 했다. 이로써 안효신은 순흥 안씨 참판공파의 해주 입향시조가 되었다. 이후 안중근의 선조들은 안중근의 14대조 안숙관과 13대조 안류가 통정대부(정3품)의 품계를 받았을 뿐이며, 안중근의 5대조 안기옥(安起玉)에 이를 때까지 벼슬에 나가지 못했다.
그런데 불확실한 내용이 여기에서 나타난다. 1845년에 순흥안씨 족보소가 간행한 순흥안씨 족보에는 안중근의 17대조 안려에게 진사, 후사 없음(進士無后)이라고 되어 있으나, 1864년 안최량(安最良)이 편찬한 순흥안씨 족보에는 안려에 대해 후사가 나와 있지 않고, 진사라고만 되어 있다. 이에 반해 1910년대 이후에 간행된 족보에는 안려의 장조카로 강진현령을 지낸 안효충(安孝忠)의 둘째 동생인 안순복(安順福)이 안려의 양자로 들어가서 안효신을 낳았다고 되어 있다.<ref name="oh222">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222쪽</ref> 따라서 안중근의 15대조이자 해주 입향시조인 안효신의 존재는 1918년에 신문관에서 간행된 순흥안씨족보와 1936년 간행된 순흥안씨 족보 이후부터 나타나고 있다. 또한 1800년대 중반과 후반에 간행된 족보에는 안려의 형인 안의(安毅)의 후손으로 안효충만 나와 있다. 그런데 1910년대에 간행된 족보에는 안의의 후손으로 안효충 외에도 안현복, 안순복, 안경복, 안창복, 안성복, 안준복 등이 새로이 나오고 있다. 이로 미루어 해주에 정착한 순흥안씨 참판공파 인사들의 낙향 직전의 세계와 해주 입향 이후부터 한말까지의 신분 문제는 불명확한 사실이 많음을 알 수 있다.<ref name="oh222"/>
해방 전후에 안중근의 전기와 비문을 집필한 이들은 안중근 가문의 신분을 한결같이 향리로 보고 있다. 김택영과 이건승은 안중근 의거 이후<ref name="oh223">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223쪽</ref>에 지은 간략한 전기에서 각각 "그 선조는 본래 순흥 사람으로 해주에 살면서 대대로 주리(州吏)를 지내다 안태훈 대에 이르러 글을 읽어 진사가 되었다"거나 "그의 선조는 순흥인데 중도에 해주로 이사하여 주리를 지냈다"고 하였다.<ref>윤병석 역편, 《안중근전기전집》 (국가보훈처, 1999) 450, 463페이지</ref> 또한 심산 [[김창숙]]은 1961년에 지은 '안중근의사 숭모비문'에서 "그 선조의 세가는 서한의 해주에서 주리가 되었는데, 부친 안태훈의 대에 이르러 독서하여 국자생(國子生)이 되었다."고 하였다.<ref name="oh223"/>
안중근의 5대조 안기옥의 대에 이르러 무과에 급제, 관직 진출을 꾀하였다. 이는 향리직을 장기간 세습하면서 사회경제적 능력을 갖추어 나간 이서(吏胥)층이 과거를 통해 양반층으로 편입되려는 신분상승운동을 벌였음을 의미한다. 안기옥은 안영풍(安永豊), 안지풍(安知豊, 안중근의 고조부), 안유풍(安有豊), 안순풍(安順豊) 등 네 아들을 두었는데, 이들도 모두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처럼 향리 가문의 4형제가 모두 무과에 급제한 것은 가문의 위상을 높인 쾌거였다.
또한 안지풍의 장남 안정록(安定錄, 안중근의 증조부), 안유풍의 아들 안두형(安斗亨), 안유풍의 손자 안인환(安仁煥), 안순풍의 아들 안신형(安信亨) 등이 모두 무과에 급제하였고 안유풍의 손자 안인권(安仁權)이 절충장군의 품계를 받았다. 안인필(安仁弼)은 중앙 군사 조직인 오위의 정6품 군직인 사과가 되었고,<ref name="oh223"/> 안정록의 아들이자 안중근의 할아버지인 안인수는 통훈대부와 진해현감을 지냈다. 기록에는 안인수의 아들 안태건(安泰健)은 고종(高宗) 28년(1891) 신묘(辛卯)년에 24세의 나이로 증광시(增廣試) 진사 3등(三等)으로 등과됨을 알리고 있다.<ref>[http://people.aks.ac.kr/front/tabCon/exm/exmView.aks?exmId=EXM_SA_6JOc_1891_038833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웨이백|url=http://people.aks.ac.kr/front/tabCon/exm/exmView.aks?exmId=EXM_SA_6JOc_1891_038833 |date=20150402201143 }}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초기 활동 ====
안중근은 태어날 때 등에 검은 점이 7개가 있어서 북두칠성의 기운으로 태어났다는 뜻으로 어릴 때에는 응칠(應七)이라 불렀는데, 이 이름을 해외에 있을 때 많이 사용했다. 안중근은 어렸을 때부터 사냥을 좋아했다. 또한, 서당 공부를 빼먹고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이렇게 차분히 앉아있는 날이 드물자 할아버지는 원래 이름인 응칠 대신 '무거울 중'에 '뿌리 근'자를 써서 중근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1884년 갑신정변 이후 개화당 정객의 식객으로 있었던 아버지 [[안태훈]]이 척신정권에 의해 죽임을 당할 위기에 놓이자 할아버지 안인수는 영특한 셋째 아들을 살리기 위해 일가를 이끌고 황해도 신천군 두라면 청계동으로 피신했다. 안중근도 가솔을 따라 신천 청계동으로 이주했고, 이곳에서 아버지가 세운 서당에서 훈장을 초빙하여 공부를 했으나 사서오경에는 이르지 못하고 통감 10권까지만 배웠다고 한다. 안중근 자신은 《안응칠역사》에서 "내 나이 예닐곱 때 조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서당에 들어가 8~9년 동안 한문을 익혔으며, 조부께서 돌아가신 뒤에는 사냥으로 학문에 힘쓰지 않았다"고 술회하였다.<ref>안중근,《안응칠역사》(1910)</ref>
=== 소년기 ===
==== 동학 농민군 진압 활동 ====
말타기와 활쏘기를 즐겼고, 집을 자주 드나드는 포수꾼들의 영향으로 사냥하기를 즐겨 명사수로 정평이 났다. 아버지 [[안태훈]]은 산채에 개인적으로 사병들을 양성하고 있었는데,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고 그와 함께 백성을 괴롭히는 동학 농민군이 각지에서 동학도들과 농민들이 봉기를 하자 안태훈은 자발적으로 창의를 하고 동학 농민군을 토벌하여{{출처|날짜=2019-12-20}} 승리를 거뒀다. 그 뒤 [[황해도]][[관찰사]]의 요청으로 아버지가 산포군(山砲軍)을 조직해 농민군 진압작전을 펼치자 소년 안에 안중근 역시 [[가짜 동학 농민 운동|동학군]] 토벌에 참가하여, '박석골전투' 등에서 기습전을 감행하는 데 참여했다.
[[김구]]가 동학군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 안태훈이 김구를 보호한 적이 있으며 그 시기에 안중근도 그와 안면이 있었으나 그리 친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천주교 입교 ====
안중근의 집안은 [[로마 가톨릭교회|천주교]] 성당 건축에 참여할 정도로 신앙심이 독실하였고<ref>웅진위인전기《안중근》/[[웅진출판]].</ref>, 안중근 자신도 1895년 [[천주교]]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배웠다.
1897년 아버지를 따라 [[천주교]]에 입교하여 [[프랑스]] 출신의 천주교 신부였던 [[니콜라 빌렘|조제프 빌렐렘]](Joseph Wilhelem, 한국명 홍석구(洪錫九))으로부터 [[토마스]](도마, 다묵(多默))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안중근이 홍석구 신부에게 [[프랑스어]]를 배웠다는 설명도 있지만, 안중근은 홍석구 신부와 함께 뮈텔 주교와 만나 이야기를 한 후 프랑스어 배우기를 그만두었다. 《안중근》([[조정래]] 지음, [[문학동네]])에 의하면, [[귀스타브샤를마리 뮈텔|뮈텔]] 주교(한국이름 민주교)가 조선사람들이 학문을 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학문]]을 하면 머리가 깨일 것이고, 머리가 깨이면 [[로마 가톨릭교회|천주교]] [[교리]]와 신앙에 대해 나름대로의 [[논리]]와 비판으로써 의문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를 보면서 실망한 안중근은 프랑스어 배우기를 그만두었다. 그 뒤 잠시 교회의 총대(總代)를 맡았고 뒤에 만인계(萬人契:1,000명 이상의 계원을 모아 돈을 출자한 뒤 추첨이나 입찰로 돈을 융통해 주는 모임)의 채표회사(彩票會社:만인계의 돈을 관리하고 추첨을 하는 회사)를 설립하고 사장이 되었다.
=== 청인 난타 사건 ===
1904년 아버지 [[안태훈]]과 [[청나라]] 의사 사이에 벌어진 싸움에 휘말렸다가 외교 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아버지 안태훈은 1904년 4월 20일 안악읍에 사는 청나라 의사 서원훈(舒元勛)과 시비가 있었다.<ref name="sibi1">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256쪽</ref> 아버지 안태훈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친우 이용일(李龍一)을 데리고 서원훈을 찾아갔다. 양측이 필담을 나누는 사이에 안태훈측이 어떤 실수를 했는지 서원훈이 갑자기 일어나 안태훈의 가슴을 발로 걷어찼다. 이에 안태훈은 서원훈에게 화해를 청하고 물러나왔다.<ref name="sibi1"/>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안중근이 4월 29일 이용일 등 10여 명과 함께 무기를 들고 야밤에 서원훈을 잡아다가 길가에서 무수히 난타하여 거동이 어렵게 만들었고, 이에 대한 반발로 1904년 5월 2일 청국인 7~8명이 이용일의 집에 난입하여 그를 마구 구타하고 잡아가려고 했다.<ref name="sibi1"/>
한청 양국민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자 삼화항의 청나라 영사가 한국 정부에 공식 문제제기를 했다. 이에 따라 삼화항 재판소 감리가 순검을 보내 안중근과 이용일을 체포하여 압송토록 했다.<ref name="sibi1"/> 그런데 중도에 나타난 괴한들이 순검들을 난타하고 안중근과 이용일을 구하여 사라졌다. 이때 순검 한 명은 안면에 총을 맞아 중태에 빠졌다.<ref name="sibi1"/> 체포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7월 10일 전후에 안중근과 이창순은 각기 외부에 청원서를 올려 자신들의 부친이 억울하게 청국인에게 당했다고 호소했다.<ref name="sibi1"/> 그러나 [[대한제국]] 외무부는 다시 자체 조사를 거친 끝에 안중근과 이용일의 죄상이 중하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지방 정부는 안중근 등의 체포를 명하였고, 7월 22일 황해도관찰사 이용필(李容弼)은 안중근과 이용일이 기미를 알고 미리 도주하여 체포하지 못했다는 보고서를 외무부대신에게 올렸다.<blockquote>重根은 明治三十七年(一九◯四) 봄 黃海道 載寧에서 淸國人과 爭鬪한 끝에 그가 携帶한 短銃으로 淸國人을 射殺하였으므로 淸國領事로부터 外部에 交涉하는 바가 되어 事件이 重大하게 되려고 하였으므로 重根은 上海로 逃走하고 父 泰勳은 그 사이에서 當時의 外部大臣 李夏榮에게 哀願하여 간신히 無事할 수 있었다고 한다.<ref>{{웹 인용|url=https://db.history.go.kr/modern/level.do?levelId=kd_007_0090_0890_0070|제목=한국독립운동사자료 안중근편Ⅱ 九. 伊藤博文 被擊事件 眞相調査 및 嫌疑者 搜査에 關한 件 兇行者 及 嫌疑者 調査書 第一. 兇漢 安重根|성=국사편찬위원회|날짜=1970-12-20}}</ref></blockquote>한편 안중근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는 조금 다르게 사건이 소개되어 있다. 안중근이 경성에 가서 외무부에 청원서를 올렸고, 재판이 진남포 재판소에 회부되어서 서씨와 같이 재판을 받게 됐다고 나와있다. 그리고 이 재판에서는 서씨의 만행이 드러나고 안중근이 옳다는 판결이 났다. 이후 안중근은 어떤 청나라 사람의 소개로 서씨와 만나 서로 사과하고 평화를 유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 계몽 운동과 의병 운동 ===
==== 계몽 운동과 국채보상운동 ====
[[파일:Ahn Joong Keun 1908.jpg|섬네일|오른쪽|190px|안중근, 만주에서]]
1905년 [[을사조약|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외교권을 일본에게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국권 회복 운동을 하기 위해 여비를 마련하고 상하이(上海)로 갔으나 기대를 걸었던 상하이의 유력자들과 천주교 신부들로부터 협조를 거절당하여 실망하고 되돌아왔다. 이 무렵 부친상을 당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3년상을 마치기도 전에 1906년 3월에 평안남도 진남포로 이사했다. 이사한 곳에서 생계를 위해 한때 석탄상회를 경영하였으나 사업이 되지 않았으며, 교육을 통한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석탄회사를 정리하고 자기 집안의 전 재산을 털어서 삼흥학교(三興學校)를 설립하여 교육운동을 시작했다. 그 뒤 [[황해남도]]의 [[천주교]] 계열의 학교인 남포 돈의학교(敦義學校)를 인수하였으며 안중근 자신도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1907년에는 [[대구]]의 독립운동가 [[서상돈]] 등의 주도로 전국적으로 전개되던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호응하여 [[국채보상기성회]]에 가입하여 회원이 됐고, 열심히 활동하여 인정을 받으면서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국채보상운동]] 역시 [[일본]]의 방해로 실패로 돌아갔다.
==== 독립운동 투신 ====
1904년 [[평양]]에서 석탄 장사를 하다가, 1905년 [[조선]]을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로 만든 [[을사늑약]]이 체결되는 것을 보고 이를 저항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어 [[삼흥학교]]를 세우고 [[돈의학교]]를 인수해 교육에 힘쓰다가 1907년 [[연해주]]로 건너가 [[의병]]에 가담했다.
==== 의병 활동 ====
[[파일:안중근.jpg|섬네일|왼쪽|170px|안중근]]
1907년(융희 1년) [[대한제국 고종|황제 고종]]이 [[헤이그 특사 사건]]의 책임을 지고 강제 퇴위를 당한 뒤 한일신협약의 체결, 군대해산에 따라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자 그는 노선을 바꾸어 독립 전쟁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강원도에서 의병을 일으키는 데 가담하였다.<ref name="daum">[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14a3258b daum]</ref> 매국노 척결을 주장하던 그는 의병대를 찾아다녔다. 그 뒤 [[황해도]] 의병대의 한사람으로 일본군과 싸우다가 자신이 직접 국외에서 의병부대를 창설하기 위해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서 계동청년회(啓東靑年會)에 가입하고, 곧 계동청년회의 임시사찰(臨時査察<ref name="daum"/>)에 선출되었다.
1907년 연해주(沿海州)로 가서 의병운동에 참가하였다. 이듬해 1908년 7월 전제덕(全齊德)의 휘하에서 대한의군참모중장(大韓義軍參謀中將) 겸 특파독립대장(特派獨立大將) 및 아령지구(俄領地區) 사령관의 자격으로 엄인섭(嚴仁燮)과 함께 10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경흥군]] 노면에 주둔하던 일본군 수비대를 기습공격하여 전멸시켰다. 그 뒤 본격적인 국내 진공작전을 계획, 감행하여 [[함경북도]] [[경흥군]]과 신아산 부근의 야산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전과를 올렸으나, 얼마 후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처참하게 패배했다. 이때 기습공격을 받은 이유는 다른 의병대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중근 혼자의 뜻으로 전투에서 사로잡은 일본군 포로를 국제공법에 의거해서 석방해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ref>풀어준 일본군 포로들이 이들의 경흥 작전을 누설한 것이다.</ref> 이 일로 의병의 신임을 잃은 그는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새로이 의병을 다시 일으키려고 했으나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고 부대는 곧 해체되었다.
1909년(융희 3) 초, 안중근은 뜻이 같은 동지 11인과 함께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하고 의병으로 재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안중근은 이때 왼쪽 손의 약손가락(넷째 손가락) 한 마디를 끊어 혈서로 결의를 다졌다. 안중근의 수인(手印)은 이때부터 찍기 시작한 것이다.
=== 이토 히로부미 저격과 처형 ===
==== 이토 히로부미 저격 ====
{{본문|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
[[파일:Ito before death.jpg|섬네일|저격 직전의 이토 히로부미(왼쪽에서 두 번째)]]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제국]]의 재무장관 [[블라디미르 코콥초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오게 되었다.<ref name="chosun1">{{뉴스 인용|url=http://blog.naver.com/bookgram/220863539156|제목=안중근이 부르짖은 만세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성=박|이름=진영|날짜=2016.11.17|뉴스=|출판사=|확인날짜=2020.10.20}}</ref> 이 소식을 대동공보사에서 전해들은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자원했다. 10월 21일에 대동공보사 기자 이강(李剛)의 지원을 받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안중근은 [[우덕순]]과 [[조도선]], [[유동하]]와 함께 하얼빈(哈尔滨, 哈爾濱(하얼빈), Harbin)에 도착했다. 당초 계획은 동청철도(東淸鐵道)의 출발지인 [[장춘]]의 남장춘(南長春), 관성자(寬城子)역과 도착지인 하얼빈, 채가구(蔡家溝)역의 4개 지점에서 암살을 시도하려 하였으나 자금과 인력이 부족하여 도착지인 하얼빈과 채가구에서 저격하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2">장석흥, 《안중근의 생애와 구국운동》,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 1992</ref> 이에 따라 우덕순과 조도선은 채가구역으로 이동하였으며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공격하기로 했다. 그러나 채가구역에서의 계획은 이를 수상하게 여긴 러시아 경비병에 의해 실패했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이토 히로부미가 탄 기차가 하얼빈에 도착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 재무대신 블라디미르 코콥초프와 열차 안에서 회담을 가진 후 9시 30분경 러시아 군대의 사열을 받기 위해 하차하였다. 안중근은 사열을 마치고 열차로 돌아가던 이토 히로부미를 [[FN M1900|브라우닝제 반자동권총 M1900]]으로 사격하였다.총알은 할로포인트를 사용하였으며,현재는 금지되어있는 총알이다.<ref>당시 그는 이토 일행이 모두 비슷한 옷을 입어 이토를 알아보지 못해 거사를 실패할 뻔했지만, 갑자기 이토가 멈춰서 뒤돌아 군중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틈을 타 저격을 성공할 수 있었다.</ref> 이외에도, 일곱 발의 총알 중, 나머지 네 발 중 세 발은 각각 옆에 있던 수행비서관 모리 타이지로(森泰二郞), 하얼빈 주재 일본 제국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남만주 철도]]의 이사 다나카 세이지로(田中淸次郞)에게 총격하였다.<ref name="chosun1"/>
총격 후, 안중근은 가슴 안에 있던 태극기를 높이 들어 올리며 [[에스페란토어]]로
{{인용문2|코레아 우라!}}
이라고 3번 크게 외쳤다. 이 외침은 대한 독립'''만세'''라는 뜻이었다.<ref name="chosun1"/>
총격 30분 만인 오전 10시경, 이토 히로부미는 피격당한 직후 열차로 옮겨졌다. 죽기 직전에 [[브랜디]](옛날에는 각성제로 가끔 사용)를 한 모금 마시고 "범인은 조선인인가"하고 물었으며, 주변에서 그렇다고 대답하자 "바보 같은 녀석"이라고 뇌까리며 죽었다고 한다. 이는 당시 사건 현장에 있던 주변인물들의 증언에 의한 것이지만 조작이라는 주장이 있다. 총을 세 발이나 맞고 그런 말을 남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동행한 의사의 증언으로는 분명히 열차 내로 옮길 때까지 살아있었다고 한다. 다만, 다른 기록에서는 죽기 직전에 "난 틀렸다... 다른 부상자는 누구지"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도 기록되어 있어 전반적으로 정확하지 않은 감이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 체포와 국내외 변호 모금 운동 그리고 사형 판결 ====
{{참고|을사조약#변호사 제도의 공포}}
안중근은 곧바로 러시아군에 체포되었고 1차 조사 이후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으로 넘겨졌다.<ref>{{웹 인용|url=https://www.yna.co.kr/view/AKR20191017162700371|제목=[이희용의 글로벌시대] 110년 전 안중근을 도운 애국지사들|웹사이트=[[연합뉴스]]|성=이희용|날짜=2019-10-18|언어=ko|확인날짜=2022-05-19}}</ref> [[최재형 (독립운동가)|최재형]]은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장소를 [[하얼빈]]으로 정해, [[일본]]이 아닌 [[러시아 제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도록 조치하고, [[변호사]]인 미하일로프 주필을 안중근의 변호인으로 준비했다. 하지만 안중근이 [[일본 제국]] 정부에 넘겨져 [[관동주]] [[뤼순]](료준) 감옥에 갇혀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같은해 3월 26일 처형되었으며, 유해는 오늘날 현재까지도 찾지 못했다. 같이 거사한 [[우덕순]]은 징역 3년, [[조도선]]과 [[유동하]]는 각각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한편 법관양성소 출신 [[변호사]] [[안병찬]](安秉瓚)이 안중근을 위해 무료 변론을 했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를 묻는 말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인용문|'''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15가지 이유.'''
<br />
첫 번째, [[명성황후]]를 [[을미사변|시해한 죄]]
두 번째, 1905년 11월 [[을사조약|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든 죄]]
세 번째,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강제로 맺게 한 죄
네 번째, [[대한제국 고종|고종황제]]를 [[고종 양위 사건|폐위시킨 죄]]
다섯 번째, [[대한제국 군대해산|군대를 해산시킨 죄]]
여섯 번째, [[남한 대토벌 작전|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죄]]
일곱 번째, 한국인의 권리를 박탈한 죄
여덟 번째, 한국의 교과서를 불태운 죄
아홉 번째, 한국인들을 신문에 기여하지 못하게 한 죄
열 번째, ([[제일은행 (일본)|제일은행]]) 은행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열한 번째, 한국이 300만 [[파운드 스털링|영국 파운드]]의 빚을 지게 한 죄
열두 번째,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열세 번째,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보호정책을 호도한 죄
열네 번째, 일본천황의 아버지인 [[고메이 천황]]을 죽인죄
열다섯 번째, 일본과 세계를 속인 죄 등이다. }}
안중근의 체포와 수감 소식이 접해지자 당시 국내외에서는 변호 모금 운동이 일어났고 안병찬과 러시아인 콘스탄틴 미하일로프, 영국인 더글러스 등이 무료변호를 자원했으나 일제는 일본인 미즈노 기타로(水野吉太郞)와 가마타 세이지(鎌田政治)를 관선 변호사로 선임했다. 수감 중에도 그는 [[동양 평화론]]의 저술을 하였으나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 마지막 행적 ====
2008년 [[국제한국연구원]]은 안중근이 사형선고를 받은 2월 14일부터 사망한 3월 26일까지의 행적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공개하였다.
* 1910년 2월 14일: 오전 10시 30분 [[관동주]] [[뤼순]]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음. 안중근은 당시 [[천주교]] 조선대목구(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뮈텔]] [[주교]]에게 전보를 보내 [[사제]]를 보내줄 것을 요청함. 자신의 사형 집행일로 [[성금요일]]을 희망한다는 뜻을 전함.
* 1910년 2월 17일: 안중근은 고등법원장을 면담하여 한 국가의 독립을 위한 의병장으로서의 행동을 살인범으로 심리한 것에 이의를 제기함.
* 1910년 3월 9일: [[고해성사]]를 [[니콜라 빌렘|조제프 빌렘]] 당시 [[황해도]] 천주교 신천본당 주임신부에게서 받음.
* 1910년 3월 10일: 빌렘 신부의 집전으로 마지막 [[미사]]를 봉헌.
* 1910년 3월 25일: 사형 집행 연기. 세계적으로 [[성탄절]], 정월 초하루, 황제의 탄신일에는 [[사형]]이 없다는 관례와 [[대한제국]]내의 의병활동이 강하게 전개되고 있어 [[통감부]]에서 이를 고려, 사형을 연기 요청. 이날은 [[대한제국]] 황제 [[대한제국 순종|순종]]이 태어난 건원절이었음.
** 이에 안중근은 면회를 온 두 동생에게 당부를 남김. 당부 내용은 노모의 안부를 묻고, 불효의 죄를 용서를 청하였고, 장남을 [[천주교]] [[사제]]로 길러 달라고 부탁. 동생 안정근에게는 한국의 발전을 위해 [[공업]] 또는 식림 같은 한국을 위한 일에 종사토록 부탁.
*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사형 집행. 향년 32세. 참석자: 미조부치 검찰관, 구리하라 감옥장.
당시 안중근을 지원한 사람은 거부 [[최재형 (독립운동가)|최재형]]이었는데, 최재형은 안중근의 체포에 대비, [[변호사]]와 상의할 정도로 안중근을 현실적으로 도왔다. 한편 안중근은 글씨가 뛰어나, [[뤼순]] 감옥 수감 때 많은 유묵을 남겼고 [[대한민국의 보물|보물]]로 지정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었다.
옥중에서 미완으로 끝난 저서《[[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을 남겼다. 2008년 3월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다롄(大連)시 뤼순(旅順) 감옥 뒤편 야산 일대 등지에서 유해 발굴작업을 벌였지만 실패하였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5/28/2008052801905.html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실패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봇이 따온 제목 -->]</ref>
==== 유언 ====
*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1910년 3월 25일자에는 '안씨 결고(安氏 訣告)'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도되었다. 거월십오일(2월 15일)에 변호사 안병찬(安秉瓚)씨가 여순감옥내에서 안중근씨를 면회 고별할 시에 안중근씨가 한국동포에게 결고(訣告)하는 사의(辭意)를 안병찬씨에게 설급(說及)하였는데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간 해외에서 풍찬노숙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 2천만 형제자매는 각자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유지를 이어 자유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여한이 없겠노라" 하였다.<ref>{{웹 인용|url=http://db.history.go.kr/id/kd_007_0130_0160|제목=안씨 결고(安氏 訣告)|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대한매일신보|확인날짜=}}</ref>
* 어머니의 뜻에 따라 항소를 포기한 안중근 의사는 사형이 집행되기 전인 1910년 3월 9~10일경, 어머니가 준비한 하얀 명주천으로 지은 수의를 가져온 두 동생 [[안정근]]과 [[안공근]]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ref>유석재, [https://www.chosun.com/culture-life/relion-academia/2023/02/10/QZZWKAWTVRGVDJI4XADAMAN34Q/ “안중근 모친의 ‘편지’는 일본인 승려의 조작이었다”], 조선일보</ref>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르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ref>{{웹 인용|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47&aid=0002256402&sid1=001|제목=밸런타인데이, 초콜릿보다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자|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노컷뉴스}}</ref><ref>{{웹 인용|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79&aid=0003215671&sid1=001|제목="안중근 생가 복원, 남북 화합의 가교 삼아야"|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노컷뉴스}}</ref><ref name=":0">{{웹 인용|url=http://ahnjunggeun.or.kr/kwa-47086|제목=독립운동 > 생애 > 대한국인 안중근 > 안중근의사기념관|확인날짜=2020-09-17}}</ref>
*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안중근의 사형은 뤼순 감옥에서 행해졌다. 구리하라 전옥은 안에게 “금년 2월 24일 뤼순 지방 법원의 언도와 확정명령에 따라 사형을 집행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소노키의 통역이 끝나자 안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구리하라 전옥은 다시 한 번 안에게 “뭔가 남길 말이 없느냐”라고 물었다. 안은 "아무것도 남길 유언은 없으나 다만 내가 한 일이 동양 평화를 위해 한 것이므로 한·일 양국인이 서로 일치 협력해서 동양평화의 유지를 도모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ref>{{웹 인용|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32&aid=0002058085&sid1=001|제목=[여적]안중근 의사 가묘|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경향신문}}</ref><ref name=":0" />
== 사후 ==
* 안중근은 자신이 사형 당하면 조국에 운구하여 매장해줄 것을 최후로 당부했다. 그러나 사형당한 그의 시신은 [[뤼순 감옥]]의 근처 죄수 공동묘지에 묻혔다. 일제는 안중근을 매장한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지 않아 그의 유해가 묻혀 있는곳을 찾을 수 없었고, 현재까지도 공식적으로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묻힌 곳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정확한 위치 역시 알려진 정보가 전혀 없다.
* 당시 안중근의 동생인 [[안정근]]과 [[안공근]]이 형인 안중근의 시신을 돌려달라 요구했지만 일본은 안중근의 시신 인수를 거부하고 숙소에 있던 형제를 감금하고, 강제 귀국 시키는 등 안중근의 시신을 못 가져가게 하기위해 안달이였다. 왜냐하면 안중근의 묘지가 한국 독립 운동의 기폭제가 될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 해방 후 1945년 11월에 [[중화민국]]에서 돌아온 [[백범 김구]]는 1946년 6월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독립운동 3의사의 유해를 [[일본]]에서 찾아온 후 [[효창공원]]에 안장하였고, 그 옆에 언젠가는 안치될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만들었다. 이것은 안중근의 시신을 꼭 찾겠다는 김구의 결심을 보여준다. 하지만 김구 선생은 1949년 [[안두희]]의 암살로 사망하였고 김구 선생도 이곳에 안장됐다. 가묘 앞에는 “이곳은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봉환되면 모셔질 자리로 1946년에 조성된 가묘입니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ref>{{웹 인용|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16&aid=0000623182&sid1=001|제목=효창공원의 수난사…안중근 의사의 가묘(假墓)를 아십니까?|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헤럴드경제}}</ref>
*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훈장|건국공로훈장]] 중장(뒤에 대한민국장으로 개정)이 추서되었다.
* 2008년 남북 정부는 [[광복]] 이후 처음으로 안중근 유해 공동 발굴에 나섰지만 [[유해]]는 찾지 못하고 위치 또한 찾지 못했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뤼순(旅順)감옥 북쪽 야산 어딘가에 안 의사의 유해를 묻었다는 일제 당시 간수들의 증언에 따라 정부는 2008년 1차 발굴 작업을 진행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안태근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 회장은 “당시 정부가 발굴 작업을 진행했던 곳은 일본인 공공묘지로, 태평양전쟁 직전에 일본인들이 유해를 파서 본국으로 가져갔다”며 “10억원의 예산을 들여 3000여평의 땅을 파는 대대적인 사업을 진행했으나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말했다.<ref name=":1">{{웹 인용|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81&aid=0002538500&sid1=001|제목=“아파트로 변한 뤼순감옥 묘지터 1차 발굴 때 못 파 너무 아쉬워”|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서울신문}}</ref>
* 안태근 회장은 뤼순감옥구지묘지(旅順監獄舊址墓地)에 유해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발굴을 벌였던 지점과는 반대 방향으로 감옥에서 동쪽으로 500여m 떨어진 곳이다. 가장 오래된 죄인 묘역이다. “1943년 그곳으로 수학여행을 갔던 사람, 아버지와 함께 안 의사의 묘를 참배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모두 그곳을 안 의사 묘지로 지목해요. 묘지가 있는 뤼순에 가면 해당 주민들이 실제 그곳을 묘지로 알고 있기도 하고요. 1차 발굴지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곳인데, 1차 작업 때 거길 파지 않은 게 못내 아쉽습니다.” 현장에는 이미 아파트가 들어서 유해 발굴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ref name=":1" />
* 2019년 12월 26일 전라남도 장흥군 장동면 만수길 25-121에 있는 [[장흥 해동사]]가 [[전라남도의 문화재자료]] 제291호로 지정되었다.<ref name="전라남도 고시 제2019-459호">[https://www.jeonnam.go.kr/boardDown.do?boardId=J0204&seq=585&fileLinkTp=F&fileLinkSeq=1 전라남도 고시 제2019-459호, 《전라남도 지정문화재 지정 고시》], 전라남도지사, 전라남도 도보 제2019-62호, 19-27면, 2019-12-26</ref>
*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기리며 따르자는 취지로 2022년 전반기 신앙의 선조<ref>{{뉴스 인용|url=https://m.catholictimes.org/mobile/article_view.php?aid=367171¶ms=page%3D1%26acid%3D1%26top%3D1|제목=정순택 대주교 "안중근 의사는 자랑스러운 가톨릭 신앙인”|날짜=2022-04-03|출판사=카톨릭신문}}</ref>에 신자 안중근을 선정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casuwon.or.kr/info/news/church/82744|제목=‘신앙의 모범’ 안중근 토마스 의사 기린다|날짜=2022-03-23|출판사=천주교 수원교구청}}</ref>
==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대한 반응 ==
=== 일본의 반응 ===
일본에서는 이토를 사살한 조선인을 적대하는 감정이 가속되었으며, 이후 조선의 강점을 주장하는 논리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 평가 ==
=== 긍정적 평가 ===
* 혁명가 [[김산]]은 “춥고 긴긴 겨울밤에 학교 기숙사에서 우리는 수많은 수행원들을 데리고 기차에서 내려온 이토히로부미를 안중근이 하얼빈역에서 어떤 식으로 저격했는가 하는 이야기와 한국독립을 위해 대담무쌍한 행동을 했던 사람들에 대한 많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라고 [[님 웨일즈]]의 《아리랑》은 수록하고 있다.
* [[한국의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안중근을 한국의 [[모세]], 한국의 사도 [[바오로]]라고 부른다.<ref name="가톨릭 신문 2008년 4월 13일">가톨릭 신문 2008년 4월 13일자.</ref> 즉, 안중근을 한국 교회에서는 [[모세]]의 애국심과 [[바오로]]의 신앙심을 가진 [[기독교인]]으로 평가한 것이다. 안중근의 서예 작품 경천은 감정가가 6억원으로 감정이 되었는데<ref>{{뉴스 인용 |url=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30516/55185383/1|제목=안중근 의사 유묵 ‘敬天’ 나오자… “아!” 방청석에선 탄성|날짜=2013-05-16|출판사=동아일보}}</ref> 카톨릭 서울대교구는 이 작품을 기증받았고 서대문 순교성지 교회사박물관에 전시한다고 발표하였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754082&path=201905|제목=조선 후기 사상사와 순교 정신 품은 ‘보물창고’ 서소문공원·박물관|날짜=2019-06-02|출판사=카톨릭평화신문}}</ref>
*안중근은 그의 저서 《[[동양 평화론]]》의 집필을 위해서 사형 집행을 한 달 늦추도록 고등법원장 히라이시에게 청하여 허락을 받았으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한다. 그래서 《동양 평화론》은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그런 상황이었으나 뤼순 감옥에서 일하던 간수 지바 도시치는 안중근을 존경하여 그의 사후에 그의 유품들을 간직하다 유족들에게 반환을 하였다.
* 안중근의 일본인 교도관 다카오 미조부치는 그를 동아시아의 의인이라고 평하였다.
*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노길명 교수는 안중근을 독실한 [[천주교]] 신앙과 애국심을 조화시킨 인물로 평하였다.<ref name="가톨릭 신문 2008년 4월 13일" />
* 미래사목연구소 황종률 박사는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을 “정의의 하느님”의 뜻에 협력하는 것으로 하느님이 던진 물음에 대한 답이라고 평가하였다.<ref name="가톨릭 신문 2008년 4월 13일"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20세기 초 우리나라 반일애국운동가”, “일제의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애국열사”로 평가하며 북조선의 역사서인 “조선전사”에 저격장면, 계기 등을 자세히 소개하였다.
*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제15차 남북 장관급 회담(2005년 6월 21~24일, 서울)에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사업 공동 추진’에 합의했다.
* 안중근 의사 기념 사업회에서 [[안중근 의사 국제평화상]]을 제정하였다.
* [[김삼웅]]은 안중근의 동양평화 제안을 유럽공동체(EU)와 같은 것으로 평가한다. 당시 안중근의 제안 내용은 한국, 중국, 일본이 동양평화회의를 결성하며, 여순을 중립화하고, 관련 3국으로 운영되는 동양평화회의본부를 여순에 설치한다. 또한 평화지역 창설, 공동개발은행과 공동화폐 발행 등이 포함되어 있다.<ref>[http://blog.ohmynews.com/kimsamwoong/170048 안중근 평전]{{깨진 링크|url=http://blog.ohmynews.com/kimsamwoong/170048 }}</ref>
* 안중근은 또한 문명개화를 통해 실력을 닦는 것이 한국 독립의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 문명개화론자이면서, 일본의 보호정치가 한국의 문명개화가 아닌 국권침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바로 무장투쟁의 선두에 나선 행동가라고 서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평했다.<ref name=ahn_99>[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0/23/2008102301666.html [안중근 의사 의거 99년] "그는 100년 전부터 동북아 평화도시를 꿈꿨다"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봇이 따온 제목 -->]</ref>
* 안중근이 자신을 존경했던 일본인 간수 [[지바 도시치|지바]]에게 남긴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은 군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이라는 글귀는 현재 [[대한민국 국군]]의 표어 중 하나가 되었다.
* [[청산리 대첩|청산리 전투]]주역 [[김좌진]]은 안중근의 의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ref>[http://n.ccdailynews.com/sub_read.html?uid=228563§ion=sc16 SBS, 다큐드라마 '김좌진 장군' 방송]{{깨진 링크|url=http://n.ccdailynews.com/sub_read.html?uid=228563§ion=sc16 }} 충청일보 2011/08/12</ref>
* [[김경천]]은 자신의 일기인 [[경천아일록]]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 이는 안응칠씨라 한다. 아 위대하다. 우리에게도 사람이 있구나!"라고 평가했다.
* [[국제태권도연맹]]에서는 '중근'이라는 틀을 정하여 태권도의 기본 품세를 연습하도록 하고 있다.<ref>윤형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53633 세계 태권도 수련생들, <중근틀> 익히며 안중근 배우다], 오마이뉴스</ref>
=== 부정적 평가 ===
==== 당대 천주교 신자 자격 미달 ====
* 로마카톨릭 조선 대목구 교구장 [[귀스타브샤를마리 뮈텔|뮈텔]] 대주교는 이토 히로부미가 저격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안중근의 신자 자격을 박탈한다. 처형을 앞두고 안중근의 종부성사 요청을 거절하였으나, 프랑스 선교사 니콜라 빌렘이 종부성사를 집전하니 그에게 징계를 내린다.
==== 교육보다는 투쟁을 중시 ====
{{참고|권태훈 (1900년)#예언}}
* 빌렘 신부의 안중근에게 베푼 성사는 안중근의 의거를 이해한 때문이 아니라 천주교 사제로서 신자에게 성사를 주어야 한다는 신념에 의한 행위였다는 견해가 있다.<ref name="빌렘 신부에 관한 오해">{{저널 인용|author=김수태|date=2011-04|title=안중근과 천주교의 관계에 대한 비판적 검토 : 독립운동기를 중심으로|출판사=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journal=한국독립운동사연구|volume=38|pages=5-45|url=https://search.i815.or.kr/publication/report/list.do?titleSort=0&authorSort=0&yearSort=0&volumeSort=0&pageIndex=1&publicationYear=all&volume=38&searchCondition=title&searchKeyword=&pageUnit=10}}</ref> 이 판단의 근거로 빌렘 신부의 서한의 [[프랑스어]] 원문을 오역하였기에 가공해 낸 내용이었기 때문에, 빌렘 신부가 이토가 죽은 것이 잘된 일이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는 2010년의 [[서강대학교]]에서 연구 결과가 있다.<ref name="빌렘 신부에 관한 오해"/> 빌렘 신부가 조선의 독립을 추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안중근과 의견을 크게 달리하게 되어 투쟁보다는 [[교육]]을 중시하였다는 것이다.<ref name="빌렘 신부에 관한 오해"/>
==== 서양에 관한 부정적 견해 소지 ====
*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박광득 교수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미완성으로 보존하기 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완성 작품으로 채워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하였다.<ref name="국제관계학과 동양평화론">{{저널 인용|author=박광득|date=2012|title=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의 내용과 성격에 관한 연구|출판사=한국민족사상학회|journal=민족사상|volume=6|issue=3|pages=101-137|url=https://www.riss.kr/link?id=A104729790}} [[국가디지털콘텐츠식별체계|UCI]] [http://uci.kci.go.kr/resolution/result.do?res_cd=G704-SER000010545.2012.6.3.001 G704-SER000010545.2012.6.3.001]</ref> 하지만 미완성인 동양평화론에서 안중근은 동서양의 문명적, 인종적 차이에 대한 선입견을 매우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고 하였다.<ref name="국제관계학과 동양평화론"/> 당연히 서양의 장점을 수용하여 동양을 발전시킬 수 있다.<ref name="국제관계학과 동양평화론"/> 그런데 문명적으로 개화를 통한 국가발전을 고려하는 거시안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을 만큼, 서양에 대한 경험과 종교적인 차원에서의 개화를 소유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중근은 서양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동양평화론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와 허점을 논하였다.<ref name="국제관계학과 동양평화론"/>
==== 일본 국익에 반대편 ====
* [[일본의 우익단체|일본 우익]]들은 안중근을 존경하는 지바 도시치를 비판하거나 위협을 하였다.<ref name="매일경제안중근">{{뉴스 인용|url=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18/04/275924/|제목=[필동통신] "나는 안중근을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난다"|날짜=2018-04-30|출판사=매일경제}}</ref>
== 사상과 신념 ==
=== 동양평화론 ===
《[[동양 평화론]]》의 서문에서 안중근은 “만약 정략을 고치지 않고 핍박이 날로 심해지면, 차라리 다른 인종에게 망할지언정 차마 같은 인종 황인종에게 욕을 당할 수는 없다는 의론이 한국·청국 두 나라 사람의 마음속에 용솟음쳐 위ㆍ아래가 한 몸이 되어 스스로 여러 사람 앞에 나설 수밖에 없음이 불을 보듯 뻔한 형세이다. 그렇게 되면...(若政略不改 逼迫日甚則 不得已寧亡於異族 不忍受辱於同種 議論湧出於韓淸兩國人之肺腑 上下一體 自爲白人之前驅 明若觀火之勢矣. 然則...)”라고 서술하였다.
서문의 설명처럼 안중근은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 평화론]]》에서 하얼빈 의거를 동양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고 말하고 동양평화론이란 한·중·일 3국이 각각 독립을 유지하면서 서로 상호 부조하여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서구 열강의 식민주의에 대응하는 체계를 만들 수 있다는 방법론까지 제시하고 있었다.
내용을 보면 [[이토 히로부미]]가 바라는 ‘동양평화(東洋平和)’는 이웃나라를 침략해 일본에 종속시키는 것이었고 반대로 ‘일본식 동양평화’를 주창하는 이토에게는 안중근은 ‘동양평화의 교란자’였다.
이러한 이토를 제거하기 위하여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을 일으켰고 이후 5개월간의 수감생활과 공판과정에서 안중근은 이토의 사살이 동양평화를 지키려는 정의의 응징이었음을 줄기차게 강조했다.
미완성의 옥중 저서가 된 《[[동양 평화론]]》은 ‘하얼빈 의거’를 ‘동양평화의전(東洋平和義戰)’으로 기술하고 있다. 사형장에서의 최후 발언도 “나의 이 거사는 동양평화를 위하여 결행한 것이므로 임석 제원들도 앞으로 한·일 화합에 힘써 동양평화에 이바지하기 바란다”였다.<ref name="동양평화론">배영대, [http://news.joins.com/article/752/3838752.html?ctg=1000 “안중근 동양평화론은 오늘날 관점서도 선구적 사상” ] {{웨이백|url=http://news.joins.com/article/752/3838752.html?ctg=1000 |date=20200809113700 }}, [[중앙일보]]</ref>
==== 동양평화론에 대한 평가 ====
{{출처|날짜=2007-6-5|[[중화인민공화국]] [[하얼빈시]]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중국인들은 “안중근 의사가 추구한 동양평화의 정신을 오늘 중국인도 배웠으면 한다”고 말하면서 “안중근 의사의 《[[동양 평화론]]》은 오늘의 관점에서 보아도 선구적인 사상”이라며 “한국에서 안중근의 평화사상을 왜 국제화하지 못하는가”라고 묻는다. 이들은 안중근이 뤼순 감옥에서 최후진술하기 위하여 1910년 2월 12일 관동도독부 법정 제5차 공판에서 당당히 밝힌 것도 동양평화를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였다고 말한다. 이것이 20세기 넘어 서구 유럽 등에서 구상한 평화보다 70년이 앞서는 사상이었다는 것이다.}}
안중근이 지향하는 평화는 한·중·일 3국이 각각 독립을 유지하면서 서로 상부상조하는 길을 찾았고, 이를 통해 서양세력이 동양을 점령하고자 하는 서구 제국주의를 막을 때 동양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고 더 나아가 일본이 침략적 속성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든 대동아공영권 논리의 함정과 모순을 이미 꿰뚫어보았기에 이에 대한 대안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ref name="동양평화론"/>
=====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부정적 시각 =====
안중근은 1894년 16세 나이로 동학 농민군 토벌에 나서 공을 세웠다. 그는 옥중에서 쓴 자서전에서 동학군을 "'동학당'(현 일진회의 뿌리이다)이 곳곳에서 봉기하여 외국인을 배척한다는 구실로 군현을 횡행하면서 관리들을 살해하고 백성의 재산을 약탈했었다(이때가 한국이 장차 위태롭게 된 기초로, 일본과 청나라와 러시아가 개전하게 된 원인을 만든 병균이었다)"라고 말한다. 이어 동학농민혁명 봉기가 청나라와 일본의 개입, 청일전쟁의 불씨가 되었다고 본다.<ref>안중근, <안중근 옥중 자서전>(2019, 열화당 영혼도서관), 22~23쪽.</ref>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안중근의 부정적 시각은 생애 말년 옥중에서 쓰던 《동양평화론》 전감(前鑑)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첫 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나간 해(갑오년) 일청전쟁을 논하더라도 그때 조선의 좀도둑떼와 같은 동학당의 소요로 인해서 청일 양국이 군사를 움직여 건너와 무단으로 전쟁을 시작하여 서로 충돌하였다."<ref>인용한 안중근, <안중근 옥중 자서전>, 111쪽.</ref>
안중근은 대한제국 멸망 원인에 대해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 민영익을 비롯한 고위 층의 무책임한 처사, 일제의 강도짓 등을 거론한다. 그러면서도 고종과 민비를 비롯한 조선 정부의 실정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동학군을 '[[좀도둑]]떼'처럼 여기며 그들에게 상당한 책임을 돌린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안중근은 조선 왕실에 충성을 다하려는 [[왕당파|근왕주의]]적 시각을 벗어나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 저서 및 유묵 ==
[[파일:Ahn's Taegukgi.png|오른쪽|섬네일|안중근이 혈서로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고 쓴 태극기]]
[[파일:Ajg calligraphy ilil.jpg|섬네일|100px|"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속에 가시가 돋는다.]]
=== 저서 ===
안중근은 옥중에서 《[[동양 평화론]](東洋平和論)》을 집필하였다. 이 책에는 일본이 3국 간섭으로 인해 [[뤼순]]을 청나라에 돌려준 뒤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군항으로 만들어 세 나라에서 대표를 파견하고 평화회의를 조직하고 3국 청년으로 구성된 군단을 편성하고, 이들에게 2개국 이상의 언어를 배우게 하며, [[은행]]을 설립하고 공용 화폐를 만들자는 주장이 들어 있다.
또한 《[[안응칠 역사]](安應七歷史)》라는 제목으로 자서전을 집필하였다. 이 자서전의 원본은 현재 전하지 않으며 일본어 번역본과 한문 등사본이 전해진다. 이 자서전을 저본으로 하여 1970년에 출판된 《안중근 자서전》이 있다.
=== 시 ===
안중근은 의거를 거행하기 전 〈장부가(丈夫歌)〉를 지어 우덕순에게 주었으며, 우덕순도 〈거의가(擧義歌)〉로 답하였다. 〈장부가〉는 안중근의 친필로 된 한시와 한글시가 함께 전해진다. 안중근은 〈장부가(丈夫歌)〉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쥐도적'이라 지칭했다.
:丈夫處世兮,其志大矣。 장부가 세상에 쳐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時造英雄兮,英雄造時。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
:雄視天下兮,何日成業。 천하를 웅시함이여 어니 날에 업을 일울고
:東風漸寒兮,壯士義烈。 동풍이 졈드 차미여 쟝사에 의긔가 뜨겁도다
:憤慨一去兮,必成目的。 분개히 한 번 가미여 반다시 목젹을 이루리로다
:鼠竊伊藤兮,豈肯比命。 쥐도젹 이등이여 엇지 즐겨 목숨을 비길고
:豈度至此兮,事勢固然。 엇지 이에 이랄 쥴을 시아려스리요 사셰가 고여하도다
:同胞同胞兮,速成大業。 동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룰지어다
:萬歲萬歲兮,大韓獨立。 만셰 만셰여 대한 독립이로다
:萬歲萬歲兮,大韓同胞。 만셰 만셰여 대한 동포로다
=== 유묵 ===
{{본문|안중근 의사 유묵}}
안중근은 옥중에서 많은 글씨를 남겼다. 이것들 중 몇몇이 보물 제569호 안중근의사유묵(安重根義士遺墨)으로 지정됐다. 이 가운데 유명한 것으로는 보물인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속에 가시가 돋는다) 등이 있다.<ref>[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VdkVgwKey=12,05690000,11&queryText= 보물 제569호, 안중근의사유묵] ([[대한민국 문화재청]])</ref>
== 연보 ==
*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부 광석동에서 부 안태훈 모 [[조마리아]] 사이에서 출생
* 1894년: 16세에 [[김아려]]와 혼인. [[김구]]와의 첫 만남
* 1896년: 부친 안태훈이 [[로마 가톨릭교회|천주교]]에 입교
* 1897년: 19세에 천주교에 입교
* 1898년~1904년: 천주교 전교 사업. 천주교대학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불발
* 1905년: 부친 안태훈 사망
* 1906년: [[삼흥학교]], ''돈의학교''를 운영하였으며 [[서북학회]]에 가입
* 1907년: 석탄회사 삼합을 설립하였으나, 같은 해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 해산|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자]] 만주로 [[망명]]
* 1908년: 1908년 7월 전제덕(全齊德)의 휘하에서 대한의군참모중장(大韓義軍參謀中將) 겸 특파독립대장(特派獨立大將) 및 아령지구(俄領地區) 사령관의 자격으로 엄인섭(嚴仁燮)과 함께 10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국내로 침투
* 1909년 영산전투 패배 후 만난 11명의 동지들과 함께 [[단지동맹]]을 함
* 1909년 10월 26일: 거사
* 1910년 2월 14일: [[일본제국]] 재판부는 안중근에게 사형을 선고. (당시 재판관할권은 일본에 없었음.<ref name="재판권">[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82536.html 안중근 재판권 행사 잘못 알고도 밀어붙인 일본]</ref>)
*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15분 사망.
== 세계(世系) ==
시조부터 본인까지의 세계는 다음과 같다.<blockquote>1세 자미(子美) → 2세 영유(永儒) → 3세 부(孚) → 4세 [[안향|향]](珦) → 5세 [[안우기|우기]](于器) → 6세 목(牧) → 7세 원숭(元崇) → 8세 원(瑗) → 9세 종신(從信) → 10세 진(進) → 11세 윤(掄) → 12세 세량(世良) → 13세 려(慮) → 14세 순복(純福) → 15세 효신(孝信) → 16세 숙근(淑覲) → 17세 류(瑠) → 18세 삼춘(三春) → 19세 의길(義吉) → 20세 신정(信貞) → 21세 진망(震望) → 22세 익섬(益暹) → 23세 성택(聖宅) → 24세 광득(光得) → 25세 기옥(起玉) → 26세 지풍(知豊) → 27세 정록(定祿) → 28세 인규(仁奎) → 29세 태훈(泰勳) → 30세 중근(重根)</blockquote>
=== 가족 관계 ===
* 할아버지: [[안인수]](安仁壽, 1832~1893), 진해현감 역임
* 할머니: [[제주 고씨]](濟州 高氏)
* 아버지: [[안태훈 (1862년)|안태훈]](安泰勳, 1862~1905), 성균진사
* 어머니: [[조마리아]](趙性女 마리아, 1862~1927), 독립운동가, 2008년 8월 조마리아 여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
** 여동생: [[안성녀]] 루시아(安性女, 1881~1954), 독립운동가, 부산 천주교 묘지에 안장.
** 매제 : 권승복(權承福), 독립운동가, 1920년 사망
*** 조카 : 권헌(權憲)
** 남동생: [[안정근]](安定根, 1883~1949), 독립운동가, 1949년 상하이에서 사망.
*** 조카: 안원생(安原生, 1905~?), 독립운동가
*** 조카: [[안미생]](安美生, 1914-2004)
*** 조카: [[안진생]](安珍生. 1916~1988), 미얀마 대사 역임
** 남동생: [[안공근]](安恭根, 1885~1939), 독립운동가, 1939년 사망 추정.
*** 조카: [[안우생]](安偶生,1907~1991)
*** 조카: 안낙생(安樂生, 1913~?), 독립운동가
*** 조카: 안연생(安蓮生, 1917~?)
*** 조카: 안금생(安錦生)
*** 조카: 안지생(安志生)
** 부인: [[김아려 (1878년)|김아려]](金亞麗, 1878~1946)
*** 장녀: [[안현생]](安賢生, 1902~1959), 효성여자대학교 (현 [[대구가톨릭대학교]]) 불문학 교수로 재직함.<ref>[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802 “고국에 돌아와도 의지하고 찾아갈 곳이 없었다”], 시사IN</ref>
*** 사위: 황일청
**** 외손녀: 황은주(1928 ~ 2021)
**** 외손녀: 황은실(1931 ~ 2021 전)
*** 장남: [[안문생]](安文生, 일명 안분도), 연해주로 피신하였다가 7살 때 누군가가 준 과자를 먹고 독살당함.
*** 차남: [[안준생]](安俊生, 1907~1951), 폐결핵으로 사망. 혜화동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ref>[http://weekly.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11/2008031101201.html "그는 100년 전부터 동북아 평화도시를 꿈꿨다"]{{깨진 링크|url=http://weekly.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11/2008031101201.html }}, [[한겨레신문]]</ref>
*** 자부: [[정옥녀]](鄭玉女, 1905 ~ 1991)
**** 손녀: 안선호(安善浩, 1930 ~2003)
***** 손자: [[안웅호]](鄭雄浩, 1933 ~ 2013), 의학박사, 안중근의 유일한 손자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7/30/2009073001365.html Q: 안중근 의사 후손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나?] [[조선일보]]</ref>
****** 증손자: [[토니안 주니어]](안도용(安度勇)<ref>[https://www.youtube.com/watch?v=gGDrZCXn9nc 광복 70주년 - 안중근의 애국혼 재조명, 연합뉴스 TV]</ref>
****** 증손녀: 리사 안
****** 증손녀: 캐런 안(1973~ )
***** 손녀: 안연호(安蓮浩, 1938~2011)
== 기타 ==
=== 거사 동지 우덕순, 일제 밀정 확인 ===
2019년 KBS 탐사보도부가 3.1운동·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의 보이지 않는 적'이었던 밀정을 추적했다. 지난 8개월 동안의 추적이었다.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 기밀문서, 헌정자료실에 보관된 각종 서신, 중국 당국이 생산한 공문서 등 5만 장의 문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취재진은 김좌진 장군의 참모 이정을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895명의 실명을 확인했다. 밀정 혐의자들이다. 8월 13일과 20일 방송되는 <밀정 2부작>(밤 10시, KBS1TV)에서 나눠 공개한다. 여기에 안중근의 거사 동지 우덕순이 밀정이었음이 드러났다.
1920년대 들어 우덕순은 이상 행적을 보인다. 취재진이 입수한 일본 기밀문서 등을 보면 우덕순은 1920~30년대 하얼빈과 치치하얼 등 만주 지역에서 '조선인민회' 주요 간부로 활동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인민회는 일제가 당시 한국인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대표적 친일단체다. 정보 수집이 주요 역할이었다. 일반 한국인뿐 아니라 독립운동가를 면밀히 감시하고 정보를 끌어모았다. 취재진은 우덕순이 일제 정보기관인 '특무기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음을 보여주는 증거 자료 등을 입수했다.
중국 지역 한국독립운동 전문가인 김주용 원광대 교수는 "조선인민회가 활용하는 밀정들이 독립운동가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고 이들 정보가 조선인민회장을 했던 우덕순에게 집중됐다"고 분석했다. 말하자면 우덕순이 밀정을 지휘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이야기다. 우덕순도 현재 독립유공자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ref>{{저널 인용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6&aid=0010731467
|제목=[탐사K] 895명 추적…“김좌진의 비서는 밀정이었다”
|출판사 =KBS
|날짜=2019.08.12}}</ref>
=== 김구와의 인연 ===
백범 [[김구]]가 [[동학 농민 운동]]에 참여했다가 실패한 후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이 [[청학동]]으로 이사하여 살게 되었을 때 처음 대면하였으며, [[김구]]는 그가 총으로 사냥을 잘하며 남자다웠다고 평하였다. 또한 [[이토 히로부미]] 암살 이후 그의 부인 등의 유족을 [[우덕순]], [[김구]] 등이 돌보았으며 안중근의 동생인 [[안공근]]은 상하이에서 [[김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안정근]]은 김구와 직접 연결되지 않고 [[안창호]]를 따랐지만, [[안공근]]은 [[김구]]의 부하가 되어 [[한인애국단]]과 한국독립당특무대를 조직하는데 동참한다.
=== 신자 자격 박탈과 자격 회복 ===
안중근은 19세 때 [[니콜라 빌렘]] 신부에게 [[로마 가톨릭교회|천주교]] 영세를 받았으며, 세례명은 토마스(Thomas)이다.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이 먼저 영세를 받아 입교한 후, 그의 집안은 모두 영세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안중근은 당시 조선교구장으로 사목 중이던 [[귀스타브샤를마리 뮈텔]]주교와도 인연을 맺고, 성당 건축에 필요한 헌금을 봉헌하는 등 왕성한 신앙생활을 해왔다.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의 의거 이후 사형 선고를 받은 안중근은, 사형집행 직전 신부를 만나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집전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조선교구장이었던 뮈텔 주교는 안중근의 의거를 살인 행위로 단죄, 조선교구의 신부들로 하여금 안중근에게 성사를 배푸는 것을 금지했다. 이에 니콜라 빌램 신부가 뮈텔 주교의 명을 어기고 뤼순 감옥으로 찾아가 미사와 고해성사를 집전해주었고, 안중근은 성사를 받고 사망했다. 뮈텔 주교는 주교에게 불순명했다는 이유로 빌렘 신부의 성사집행권을 정지시켰으나, 빌렘 신부가 교황청 교회법원에 이의를 제기해 성사집행권 정지는 해제되었다. 한편 천주교 신앙이 독실했던 안중근은, 자신의 아들인 안분도를 사제로 키우려고 계획했었다.
오랜 기간동안 한국 천주교에서 살인자로 단죄되었으나, 1990년대에 들어 안중근에 대한 한국천주교회의 평가가 변화하기 시작했고 1993년 8월, 탄신 미사를 집전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안 의사의 당시 행위는 살인이 아니라 독립운동이자 정당방위로 봐야 마땅하다" 라는 입장을 밝히며 한국 천주교에서 안중근의 평신도 신분은 완전히 복권되었다.<ref>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3/08/22/1993082272304.html</ref>
=== 기념 사업 ===
* 1958년 -“애국열사 안중근”은 북한에서 창작, 공연되었다.
* 1963년 - [[안중근의사숭모회]]가 설립되어 초대 이사장으로 [[윤치영]]이 취임하였다.
* 1974년 - 안중근 기념 동상이 작가 [[김경승]]에 의해 제작되어 남산 구 [[조선신궁]] 자리에 설치되었는데 최성모 [[신동아그룹]] 창업주가 성금을<ref>{{뉴스 인용
| 제목 = 安義士(안의사) 새銅像(동상) 세워
| url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7402160032920600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4-02-16&officeId=00032&pageNo=6&printNo=8735&publishType=00020
| 출판사 = 경향신문
| 저자 = 이성빈
| 쪽 =
| 날짜 = 1974-02-16
| 확인날짜 = 2022-07-20
}}</ref> 희사하기도 했다.
* 1979년 -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가 북조선에서 개봉되었다. 감독은 [[엄길선]]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총장이다.
* 1979년 - [[명동성당]]에서 안중근 의사 탄신 100주년기념 대미사가 집전되었다.
* 1986년 -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은 중화인민공화국 뤼순 감옥을 방문하여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을 요청하였다.
* 1987년 - 소설가 [[복거일]]이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하얼빈 의거]]의 실패와 그로 인한 [[일제강점기]]의 연장을 가정한 [[대체역사]]소설 《[[비명을 찾아서]]》를 출간했다.
* 1990년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안중근 (도마) 의사 추모 자료집-서거 80주년을 맞이하여》를 발간하였다.
* 1999년 - 서울시 도시공원위원회에서 안중근 의사 기념공원 조성 제안을 부결하였다.
* 2000년 - 안중근 의사 유골 발굴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2000년 - 하얼빈역에서 남한과 북조선의 공동 기념식이 열렸다.
* 2001년 - 오페라 “아시아의 횃불 안중근”이 독일에서 초연되었다.
* 2002년 - 오페라 “안중근 손가락”이 한국에서 공연되었다.
** 2월 1일 -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가 개봉하였다.
* 2002년 - 안중근 의사 국제 평화상이 제정되었다.
* 2003년 - [[안중근 의사 숭모회]] 이사진의 퇴진과 개혁을 촉구하는 100인 선언이 발표되었다.
* 2004년 - 안중근의 삶을 그린 《[[도마 안중근]]》이 한국에서 개봉되었다. 연출가는 [[서세원]]이며 개봉 당시 8.15 광복 59주년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 30주년 기념 영화란<ref>{{뉴스 인용
| 제목 = 광복 70주년에 '천만' 돌파한 영화 '암살', 잊지 말아야 할 순국선열 영화 5
| url =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3&oid=469&aid=0000081558
| 출판사 = 한국일보
| 저자 = 강은영
| 쪽 =
| 날짜 = 2015-08-15
| 확인날짜 = 2022-07-20
}}</ref> 이름으로 홍보했으나 허술한 연출-장면들<ref>{{뉴스 인용
| 제목 = [새영화] ‘도마 안중근’…의사 안중근이 용감한 총잡이?
| url =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05&aid=0000174968
| 출판사 = 국민일보
| 저자 = 한승주
| 쪽 =
| 날짜 = 2004-08-26
| 확인날짜 = 2022-07-20
}}</ref>로 관객들한테 외면당해 흥행에 실패했고 안중근을 《[[영웅본색]]》의 [[주윤발]] 또는 서부영화에 나올 총잡이처럼 묘사한<ref>{{뉴스 인용
| 제목 = <새영화> '도마 안중근'
| url =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0735041
| 출판사 = 연합뉴스
| 저자 = 서한기
| 쪽 =
| 날짜 = 2004-08-18
| 확인날짜 = 2022-07-20
}}</ref> 역사왜곡물이란 지적이 있었는데 자문 역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들이 더욱 종용해 혹독한 평가를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2004년 최악의 한국영화 불명예를<ref>{{뉴스 인용
| 제목 = 개그맨 영화감독의 새로운 도전 "우리에게 좌절은 없다"
| url =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004217
| 출판사 = 조이뉴스24
| 저자 = 정명화
| 쪽 =
| 날짜 = 2005-01-23
| 확인날짜 = 2022-07-20
}}</ref> 안았다.
* 2006년 - 가짜 안중근 휘호가 8천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6/21/2008062100482.html '가짜'논란 안중근 휘호, 8천만원에 낙찰 (조선일보) 2008.06.21자]{{깨진 링크|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6/21/2008062100482.html }}</ref>
** 독립운동가로서는 최초로 2008년 건조된 한국 해군의 1800톤급인 [[손원일급 잠수함]] 대형 3번함의 이름이 [[SS-075 안중근|안중근함]]으로 명명되었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6/04/2008060401907.html 바다의 왕자 '안중근 잠수함' (조선일보) 2008.06.04자]</ref><ref>{{웹 인용 |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6/04/2008060400627.html |제목=214급 잠수함 '안중근함' 진수 (조선일보) 2008.06.04자 |확인날짜=2008-07-24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0701205844/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6/04/2008060400627.html |보존날짜=2008-07-01 |url-status=dead }}</ref> 안중근 잠수함은 2008년 6월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진수되었다. 안중근함 진수식에는 [[김태영 (1949년)|김태영]] [[대한민국]] 합참의장과 정옥근 해군참모총장 등 군관계자와 [[현대중공업]] 임직원, 안중근 의사 숭모회 관계자 등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 2009년 -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6월부터 국내 공연을 시작으로 11월까지 하얼빈, 일본 등지에서 [[최수종]]이 안중근 역을 맡은 연극 '대한국인 안중근'의 막이 올랐다.
** 9월 4일 [[중화인민공화국]] [[하얼빈|하얼빈 시]]에 세워졌다가 [[대한민국]]에 반입된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대한민국 국회]]에 임시 전시됐다.<ref>{{뉴스 인용 |제목 = 안중근 의사 동상, 국회에 임시 전시 |url =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09/09/04/0502000000AKR20090904176100001.HTML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노재현 기자 |쪽 = |날짜 = 2009-09-04 |확인날짜 = 2009-09-04}}</ref>
** 10월 9일~10월 10일 [[중화인민공화국]]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의 1909년 10월의 의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최초로 국제 [[장기 기전]]인 제1회 [[세계인 장기 대회]]가 개최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 제1회 세계인 장기대회 하얼빈서 개최 |url = http://chnavor.dbw.cn/system/2009/10/12/000167638.shtml |출판사 = 흑룡강신문 |저자 = 한동현 기자 |쪽 = |날짜 = 2009-10-12 |확인날짜 = 2009-11-14 |archive-date = 2014-02-22 |archive-url = https://web.archive.org/web/20140222163019/http://chnavor.dbw.cn/system/2009/10/12/000167638.shtml }}</ref>
** 10월 26일 - 안중근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 '영웅'이 초연되었다. (제작사: 에이콤 / 연출: 윤호진 / 공연장: LG아트센터)
* 2010년 -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안중근 의사 추모행사를 공식적으로 승인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中, 안중근 추모행사 첫 공식 승인(종합) |url =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0/03/25/0601020100AKR20100325156200083.HTML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박종국 기자 |쪽 = |날짜 = 2010-03-25 |확인날짜 = 2010-03-28}}</ref>
** 3월 26일 - [[이명박]] 대통령은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모셔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 = 이명박 대통령, “안중근 의사 유해 모셔오는 데 최선”|url = 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787|출판사 = 투데이코리아|저자 = 이광효 기자|날짜 = 2010-03-26|확인날짜 = 2010-03-26|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60305021519/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787|보존날짜 = 2016-03-05|url-status = dead}}</ref>
** 3월 26일 - [[서울]] [[서울광장]]에서 안중근 의사 사망 100주년 추념식이 정부 주관으로 열렸다.
** 7월 27일 [[배우]] [[송일국]]이 1인 2역을 맡은 안중근의 삶과 처음으로 그의 아들 안준생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나는 너다' (2010년 7월 27일 ~ 2010년 8월 22일)가 [[국립중앙극장|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다.<ref>[http://www.ntok.go.kr/www/playinfo/play_guide/play_info/play_monthinfo/playInfo/playInfoView.do?play_seq_n=2502&search_day_v=20100729&returnUrl=playMonthInfo.do 나는 너다] {{웨이백|url=http://www.ntok.go.kr/www/playinfo/play_guide/play_info/play_monthinfo/playInfo/playInfoView.do?play_seq_n=2502&search_day_v=20100729&returnUrl=playMonthInfo.do |date=20210514100603 }} [[국립중앙극장|국립극장]]</ref>
** 9월 30일 -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와 [[조선일보]]가 안 의사 사망 100주년과 조선일보 창간 90주년을 맞아 공동으로 제정한 [[위국헌신상]]이 11명에게 처음 수여되었다.
** 9월 30일 - 러시아 정부가 안중근과 관련된 외교 문서를 대한민국 정부에 처음 전달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러, '안중근 외교문건' 한국에 처음 전달(종합2보) |url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0/09/30/0200000000AKR20100930216000043.HTML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김귀근 김남권 기자 |날짜 = 2010-09-30 |확인날짜 = 2010-10-02 }}{{깨진 링크|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0/09/30/0200000000AKR20100930216000043.HTML }}</ref>
** 11월 19일 - 안중근의사 사망 100주년기념, 대한독립 운동가 42인 초상화 특별전 《대한독립전》이 남산의 안중근의사 기념관에서 개최되었다. (서양화가 조영규)<ref>{{뉴스 인용 |제목 = 독립운동가 42인 초상화展 여는 조영규씨 "生 다할 때까지 순국선열 그릴 겁니다" |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20/2010112000061.html |출판사 = 조선일보 |저자 = 김남인 기자 |날짜 = 2010-11-20 |확인날짜 = 2010-11-20}}</ref>
** 12월 1일 - 안중근의사 사망 100주년기념, 대한독립 운동가 42인 초상화 특별전 《대한독립전》이 안양시 소재의 평촌아트홀에서 개최되었다. (서양화가 조영규)<ref>{{뉴스 인용 |제목 = 독립운동가 42인 초상화展 여는 조영규씨 "生 다할 때까지 순국선열 그릴 겁니다" |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20/2010112000061.html |출판사 = 조선일보 |저자 = 김남인 기자 |날짜 = 2010-11-20 |확인날짜 = 2010-11-20}}</ref>
** 12월 4일 안중근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 '영웅'이 1년 만에 다시 막이 오를 예정이다. (제작사: 에이콤 / 연출: 윤호진 / 공연장: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 안중근 사형 이후의 축하연 기록을 찾아냈다.<ref>{{뉴스 인용 |제목 = 日관리들, 안중근의사 사형집행후 축하연 |url =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0/10/25/0521000000AKR20101025099000043.HTML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김귀근 기자}}</ref>
* 2011년 -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및 국내 봉환을 추진하는 비정부 민간단체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가 공식 출범하였다.
** [[천주교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준비위원회(위원장 [[염수정]] 주교)가 안중근을 ‘근현대 신앙의 증인에 대한 시복조사’ 대상으로 거론하면서 안중근에 대한 시복 조사를 실시하였다.
== 같이 보기 ==
* [[장흥 해동사]]
* [[안중근 의사 유묵]]
* [[단지동맹]]
* [[안응칠]]
* [[동의회]]
* [[최재형 (독립운동가)|최재형]]
* [[독립유공자로 대한민국장을 수여받은 사람]]
* [[윤봉길]]
* [[이토 히로부미 저격]]
* [[안공근]]
* [[이토 히로부미]]
* [[총]]
* [[하얼빈역]]
== 각주 ==
{{각주|2}}
== 참고 문헌 ==
* 안중근, 《안중근 의사 자서전》, 범우사, 2000
* 박환, 《만주 지역 한인 유적 답사기》, 국학자료원, 2009
* 박환, 《러시아 한인 유적 답사기》, 국학자료원, 2008
* 윤명숙, 《대한영웅전 1》 (국가보훈처, 1995)
* 장석흥, 《안중근의 생애와 구국운동》,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 1992
* 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 한국민족운동사학회, 《안중근과 한인민족운동》 (국학자료원, 2002)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분류-줄|An Jung-geun}}
* {{위키문헌언어-줄|ko|저자:안중근}}
* [http://cafe.naver.com/ahnjunggeun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
* [http://ahnjunggeun.or.kr/ 안중근의사 기념관 홈페이지]
* [http://www.patriot.or.kr/ 안중근의사 숭모회 홈페이지]
* [http://www.greatkorean.org/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 홈페이지]
* [http://danji12.com/ 안중근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
* [http://hero1909.chosun.com/ 대한국인 안중근]
*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25 시사IN: 안중근 이용하려는 자 있다]
* [http://blog.ohmynews.com/kimsamwoong/170048 김삼웅의 안중근 평전]{{깨진 링크|url=http://blog.ohmynews.com/kimsamwoong/170048 }}
*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2266&keyword=%BE%C8%C1%DF%B1%D9&gubun=01 안중근 - 가톨릭대사전]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79989&cid=46623&categoryId=46623 안중근 -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유튜브|pAKm7nuj9Jo|안중근 거짓 동양평화론을 심판하다}}
* 월간순국 [http://soongook.com/column/28 <nowiki>[2021/10] 안중근 의사와 일본인 관선 변호사</nowiki>] 2021-10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1993년-이 달의 문화 인물}}
{{1999년-이 달의 독립운동가}}
{{2019년-이 달의 독립운동가}}
{{전거 통제}}
[[분류:안중근| ]]
[[분류:1879년 출생]]
[[분류:1910년 사망]]
[[분류:국민주의 암살자]]
[[분류:범아시아주의자]]
[[분류:한국의 민족주의자]]
[[분류:한국의 사상가]]
[[분류:한국의 암살자]]
[[분류:조선의 서예가]]
[[분류:대한제국의 저술가]]
[[분류: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수훈자]]
[[분류:대한제국의 시인]]
[[분류:대한제국의 작가]]
[[분류:동학농민운동 관련자]]
[[분류:일본-한국 관계]]
[[분류:반일 감정]]
[[분류:대한제국의 장군]]
[[분류:육군 장군]]
[[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
[[분류:조선 의병장]]
[[분류:한말 의병장]]
[[분류:대한민국의 민족주의]]
[[분류:순흥 안씨]]
[[분류:황해도 출신]]
[[분류:이토 히로부미]]
[[분류:일본에서 사형된 사람]]
[[분류:일본에서 교수형된 사람]]
[[분류:로마 가톨릭교회를 이탈한 사람]]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영화인 정보
| 이름 = 유덕화
| 원어명 = 劉德華 <br/> Andy Lau
| 사진 = AndyLau2005 2.jpg
| 사진크기 = 270px
| 사진설명 = 2005년 2월 24일, 제29회 홍콩국제영화절(香港國際電影節)에 참석한 유덕화
| 출생일 = {{출생일과 나이|1961|9|27}}
| 출생지 = 영국령 홍콩
| 국적 = 홍콩
| 직업 = [[영화 배우]], [[영화]][[영화 프로듀서|제작자]], [[영화]][[연출가]],<br />[[가수]]
| 종교 = [[불교]]
| 활동기간 = 1981년 ~
| 배우자 = [[주리첸]](2008년 결혼)<br />{{출생일과 나이|1966|04|06}}
| 자녀 = 딸: 유향혜(劉向蕙)<br />{{출생일과 나이|2012|05|09}}
| 소속사 =
| 학력 = 고졸(可立中學 五年級畢業)
| 웹사이트 = [http://www.awc618.com/ 유덕화 공식 사이트]
| 수상 = 2013년 제46회 [[카탈루냐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시체스영화제]] 오피셜 판타스틱 남우주연상
}}
'''유덕화'''({{zh|order=t|t=劉德華|s=刘德华}}, {{llang|yue|lau<sup>4</sup> dak<sup>1</sup> waa<sup>4</sup>|라우닥와}}, {{zh|p=Liú Déhuá|h=류더화}}, {{llang|en|Andy Lau|앤디 라우}}, [[1961년]] [[9월 27일]]~)는 [[홍콩]]의 [[영화배우]], [[영화]][[영화 프로듀서|제작자]], [[영화]][[연출가]], [[가수]]이다.
== 생애 ==
별명은 유복영(劉福榮,{{llang|yue|라우푹윙}})이며<ref>유덕화의 본명으로 알려진 유복영(劉福榮)은 학교 다닐 때 쓰인 학명(學名)일 뿐이며 유덕화의 본명은 유덕화가 맞다고 대만 예능 강희래료(康熙来了)에서 언급하였다. [http://www.jj831.com/Article/2012/201206/2012-06-21/Article_20120621083404_101431.html "刘德华一家三口都改名的玄机何在?. 凤凰网. 2012-06-21."] {{웨이백|url=http://www.jj831.com/Article/2012/201206/2012-06-21/Article_20120621083404_101431.html |date=20131203001126 }}</ref>, 필명은 자혜(紫慧), 불교식 법명은 혜과(慧果)이다. 애칭은 華仔, 華哥, 劉天王, 華Dee, 劉華, 華神, 民間特首이 있다. [[영국령 홍콩]]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중화인민공화국]] [[광둥성]] [[장먼 시]] [[신후이 구]]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의 신장은 174cm이고, 혈액형은 AB형이다.
== 출연 영화 ==
=== 1980년대 출연 영화 ===
{| class="wikitable"
|-
! 중국어 제목 !! 한국 개봉 제목 !! 개봉년도
|-
| 最佳損友闖情關 || 최가손우틈정관 || 1989
|-
| 飇城 || 혈전영웅(표성) || 1989
|-
| 精裝追女仔之3 狼之一族 || 정장추녀자 3 - 낭지일족 || 1989
|-
| 最佳男朋友 || 가인유약 || 1989
|-
| 省港旗兵第三集 || 홍콩탈출 || 1989
|-
| 同根生 || 영웅대가 || 1989
|-
| 小警察 || 소경찰 || 1989
|-
| 人海孤鴻 || 도시의 아이들 || 1989
|-
| 神行太保 || 도시의 심판관 || 1989
|-
| 法內情 2 || 지존애림 2 || 1989
|-
| 富貴兵團 || 부귀병단 || 1989
|-
| 第一葡 || 복수의 만가 || 1989
|-
| 轟天龍虎鬪 || 굉천용호투 || 1989
|-
| 賭博 || [[도신 - 정전자]] || 1989
|-
| 至尊無上 || [[지존무상]] || 1989
|-
| 傲氣雄鷹 || 영웅출격 || 1989
|-
| 最佳損友2 || 최가손우 2 || 1988
|-
| 法內情 || 법중정 || 1988
|-
| 精裝追女仔續集 || 정장추녀자 2 - 폭소 구애작전 || 1988
|-
| 中國最後一個太監 || 최후태감 || 1988
|-
| 最佳損友 || 최가손우 || 1988
|-
| 君龍奪寶 || 군용탈보 || 1988
|-
| 刀.劍.笑 || 도검소 || 1988
|-
| 獵鷹計劃 || 엽응계획 || 1988
|-
| 龍之家族 || 용의 가족 || 1988
|-
| 旺角卡門 || [[열혈남아 (1988년 영화)|열혈남아]] || 1988
|-
| 神探夫子精 || 부자탐정 || 1987
|-
| 魔翡翠 || 마비취 || 1987
|-
| 龍虎相助 || 용호상조 || 1987
|-
| 英雄好漢 || 강호정 2 - 영웅호한 || 1987
|-
| 江湖精 || 강호정 || 1987
|-
| 最佳福星 || 최가복성 || 1986
|-
| 夏日福星 || 칠복성 || 1986
|-
| 法外精 || 법외정(지존애림) || 1985
|-
| 上海灘十三太保 || 상해탄십삼태보 || 1984
|-
| 家在香港 || 가재홍콩 || 1983
|-
| 毁滅號地車 || 훼멸호지차 || 1983
|-
| 彩雲曲 || 채운곡 || 1982
|-
| 投奔怒海 || 망향 || 1982
|}
=== 1990년대 출연 영화 ===
{| class="wikitable"
|-
! 연도 !! 작품명 !! 역할 !! 비고
|-
||1990년||재전강호(再戰江湖)|| ||
|-
||1990년||[[지존계상]](至尊計狀)|| 빅 디 ||
|-
||1990년||의혈쌍웅(專釣大鰐)|| ||
|-
||1990년||무림지존(摩登如來神掌)||무덕휘(武德輝)||
|-
||1990년||천장지구(天若有情)||와디(華Dee)||광동어 녹음 판본에서는 와디로 발음되며, 자막에 따라 아화로 나오는 곳도 있다.)
|-
||1990년||[[아비정전]](阿飛正傳)||초자(超仔)||극중 직업은 경관.
|-
||1990년||[[경천 12시]](驚天12小時)||아비||
|-
||1990년||지존본색(義胆雄心)|| ||
|-
||1990년||옥중룡(獄中龍)|| ||
|-
||1990년||애인동지(愛人同志)|| ||
|-
||1990년||천도방자(川島芳子)|| ||
|-
||1990년||이역(異域)|| ||
|-
||1990년||화소도(火燒島)|| ||
|-
||1990년||도협(睹俠)||진도자(陳刀仔)||
|-
||1991년||[[정고전가]](整蠱專家)||차문걸(車文傑)||
|-
||1991년||중환영웅(中環英雄)||화영웅(華英雄)||
|-
||1991년||오호장(五虎裝之決裂)||유지명(劉志明)||1980년대 무선오호장 유덕화, 양조위, 황일화, 모교위, 탕진업 출연
|-
||1991년||여락(五億探長 雷洛傳)||뇌락(雷洛)||
|-
||1991년||여락 2 - 뇌락정구(五億探長雷洛傳 II 雷老虎)||뇌락(雷洛)||
|-
||1991년||신조협려(九一神雕俠侶)|| ||
|-
||1991년||여룡공무(與龍共舞)|| ||
|-
||1991년||[[지존무상 2 - 영패천하]](至尊無上II之永覇天下)||계익(雞翼)||
|-
||1991년||화룡만가(極道追踪)||벤||
|-
||1991년||호문야연(毫門夜宴)||유덕화||카메오 출연, 유덕화 본인으로 출연하였다.
|-
||1991년||사해교룡(衝擊天子門生)|| ||
|-
||1992년||용등사해(龍騰四海)|| ||
|-
||1992년||신조협려 2(九二神雕俠侶)|| ||
|-
||1992년||도성대형 - 신가전기(睹城大亨 之 新哥傳奇)|| ||
|-
||1992년||[[절대쌍교]](絶代雙驕)||행운아 ||
|-
||1992년||묘가십이소(廟街十二少)|| ||
|-
||1992년||도성대형 2 - 지존무적(睹城大亨II 之 至尊無敵)|| ||
|-
||1992년||협성(俠聖)|| ||
|-
||1992년||화영웅(嬅!英雄)|| ||
|-
||1992년||군성회(君星會)|| ||
|-
||1992년||여락 3 - 완결편(Lee Rock III, 五億探長雷洛傳之 III: 大結局)|| ||
|-
||1992년||진가성룡(机Boy小子之 眞暇成龍)|| ||
|-
||1992년||쌍웅출사표(反斗马骝)|| ||
|-
||1993년||전신(戰神)|| ||
|-
||1993년||천장지구 2 - 속 천장지구(天長地久)|| ||
|-
||1993년||협성 2(至尊三十六計之偷天換日)|| ||
|-
||1993년||스트리트 파이터(초급학교패왕, 初級學校覇王)||철면(a.k.a 발로그)||
|-
||1994년||[[취권 2]](醉拳 II)||정소사||
|-
||1994년||천여지(天與地)|| ||
|-
||1994년||취권 3(醉拳 III)|| ||
|-
||1994년||흑야법관(殺手的童話)|| ||
|-
||1995년||[[유덕화의 도망자]](大冒險家)|| ||
|-
||1995년||[[열화전차]](烈火戰車)|| 죠 ||
|-
||1996년||신 상해탄(新上海灘)|| 정력 ||
|-
||1996년||천장지구 3 - 천장지구 완결(1/2次同床)|| ||
|-
||1996년||특종 25시(奇異旅程之?心愛生命)|| ||
|-
||1996년||천장지구 3 - 풍화가인(天若有情III 烽火佳人)|| ||영화 홍보차 [[대한민국]]을 방문해 [[슈퍼 선데이]]에 출연하였다.
|-
||1997년||아마게돈(천지웅심, 天地雄心)|| ||
|-
||1997년||흑금(黑金)|| ||
|-
||1998년||99 도협(賭俠 1999)|| ||
|-
||1998년||테러리스트(용재강호, 龍在江湖)|| ||
|-
||1999년||암전(暗戰)||화(華)||
|-
||1999년||[[용재변연]](龍在邊緣)||비룡 ||
|-
||1999년||사랑의 유람선(愛情夢幻號)|| ||
|-
||1999년||도협 대전(賭俠大戰 拉斯維加斯)|| ||
|-
||1999년||흑마 왕자(黑馬王子)|| ||
|-
||1999년||흑금 제국(黑金帝國)|| ||
|-
|}
=== 2000년대 출연 영화 ===
{| class="wikitable"
|-
! 연도 !! 작품명 !! 역할 !! 비고
|-
||2000년||결전(決戰紫禁之巔)|| ||
|-
||2000년||니딩유(孤男寡女)|| ||
|-
||2000년||파이터 블루(阿虎)|| ||
|-
||2001년||풀 타임 킬러(全職殺手)|| ||
|-
||2001년||러브 온 다이어트(瘦身男女)|| ||
|-
||2001년||댄스 오브 드림(愛君如夢)|| ||
|-
||2002년||역고력고 신년재(嚦咕嚦咕新年財)|| ||
|-
||2002년||남혈인(衛斯理之藍血人)|| ||
|-
||2002년||금계(金雞)|| ||
|-
||2002년||[[무간도]](無間道)||유건명(劉健明)||
|-
||2003년||천방지축(老鼠愛上貓)||전조||
|-
||2003년||금계 2(金雞2)|| ||
|-
||2003년||[[무간도 III: 종극무간]](無間道Ⅲ:終極無間)||유건명(劉健明)||
|-
||2003년||절대초인(무적의 소림쿵푸 마스터)(大隻佬)|| ||
|-
||2003년||1:99 전영행동(1:99 電影行動)|| ||
|-
||2004년||연인(十面埋伏)|| ||
|-
||2004년||강호(江湖)|| ||
|-
||2004년||천하무적(天下無賊)|| ||
|-
||2004년||마환주방(魔幻廚房)|| ||
|-
||2004년||용봉투(龍鳳鬥)|| ||
|-
||2005년||동몽기연(童夢奇緣)|| ||
|-
||2005년||다시 한번 사랑한다 말해줘(再說一次我愛你)|| ||
|-
||2006년||[[묵공]](墨攻)||혁리||
|-
||2007년||[[무간도 IV: 문도]](門徒)|| ||
|-
||2007년||형제(兄弟)|| ||[[양조위]]를 제외한 무선 오호장 4명이 출연한 영화
|-
||2007년||[[명장]](投名狀)||조이호||
|-
||2008년||[[삼국지: 용의 부활]](三國.見龍卸甲)||[[조운]]||
|-
||2009년||라스트 프로포즈<br />(游龍戲鳳)|| ||
|-
||2009년||건국대업(建國大業)|| ||
|-
|}
=== 2010년대 출연 영화 ===
{| class="wikitable"
|-
! 연도 !! 작품명 !! 역할 !! 비고
|-
||2010년||미래경찰X(未來警察)||주지호(周志豪)||
|-
||2010년||[[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狄仁杰之通天帝國)||적인걸||
|-
||2011년||샤오린 : 최후의 결전(新少林寺)||후걸(侯傑;호우지에)||
|-
||2011년||아지여인심(我知女人心)||손자강(孫子剛)||
|-
||2011년||건당위업(建黨偉業)||차이어(蔡锷)||
|-
||2012년||[[심플 라이프]](桃姐)||로저(Roger, 본명 : 梁羅傑)||2011년 9월 5일에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영, 국가별 정식 상영은 2012년 시작.<br />2012년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폐막작이며, 한국 개봉은 2012년
|-
||2012년||[[콜드 워 (2012년 영화)|콜드 워]](寒戰)||육명화(陸明華)||카메오 출연
|-
||2013년||스위치 : 부춘산거도(天机·富春山居图)||초금한(肖錦漢)||
|-
||2013년||[[블라인드 디텍티브]](盲探)||존스턴(莊士敦)||
|-
||2013년||파이어 스톰 (風暴)||여명철(呂明哲)||
|-
||2014년||금계SSS(金鷄SSS)||유덕화||우정출연
|-
||2015년||[[도성풍운 2]](賭城風雲II)||진도자(陳刀仔)||도신, 도협에서의 배역과 이름이 같다. 우정 출연
|-
||2015년||실고(失孤)||뇌택관(雷澤寬))||
|-
||2015년||[[나의 소녀시대]](我的少女时代)||유덕화||본인 역으로 카메오 출연. 한국에서는 2016년에 개봉하였다.
|-
||2015년||세이빙 미스터 우(解救吾先生)||오선생(吾先生)||
|-
||2016년||[[홍금보의 보디가드]](我的特工爷爷)||이민구(李政久)||특별출연, 이춘화(李春花, 극의 여주인공)의 아버지 역
|-
||2016년||[[도성풍운 3]](賭城風雲Ⅲ)||진도자(陳刀仔)||
|-
||2016년||왕패두왕패(王牌逗王牌)||보야(寶爺)||홍콩 개봉명 偷天特务
|-
||2016년||[[그레이트 월 (영화)|그레이트 월]](長城)||왕군사(王軍師)||한국 개봉은 2017년
|-
||2017년||[[쇼크웨이브 (2017년 영화)|쇼크웨이브]](拆彈專家)||장재산(章在山)||제작, 투자에도 참여
|-
||2017년||[[추룡]](追龍)||뢰락||특별 출연, 영화 파호(跛豪, 1991)의 리메이크 작
|-
||2017년||[[협도연맹: 도둑들의 전쟁]](俠盜聯盟)||장단(張丹)||
|-
||2019년||화이트스톰2 : 마약전쟁(掃毒2天地對決)||||
|-
|}
=== 2020년대 출연 영화 ===
{| class="wikitable"
|-
! 연도
! 제목
! 원제
! 배역
! 비고
|-
||2020년||[[열혈합창단]]||熱血合唱團|| ||
|-
||2020년||[[쇼크 웨이브 2]]||拆彈專家2|| 풍신풍 ||
|-
||2021년||[[엔드게임: 나는 킬러다]]||人潮洶湧|| || 제작
|-
| rowspan="4" |2023년||유랑지구 2||流浪地球2||도항우||
|-
| ||莫斯科行動 || ||
|-
| [[골드핑거 (영화)|골드핑거]]||金手指||류치위안||
|-
| ||潛行|| ||
|-
||2024년||||紅毯先生|| ||
|-
| rowspan="2" |보류 중
|
|怒火漫延
|
|
|-
|
|危機航線
|
|
|}
== 음반 ==
{{col-begin}}
{{col-3}}
;광동어
* 只知道此刻愛你(1985)
* 情感的禁區(1987)
* 回到你身邊(1988)
* 劉德華 、共你傷心過(1989)
* 可不可以、再會了(1990)
* 愛不完、一起走過的日子、不可不信缘(1991)
* 愛的空間 、真我的風采(1992)
* 答案就是你、爱意(1993)
* 五時三十分(1994)
* 情未鸟(1995)
* 在乎您(1996)
* 真生命(1997)
* 你是我的女人(1998)
* 愛無知(1999)
* 心藍(2000)
* 如果有一天(2003)
* Coffee or Tea(2004)
* 聲音(2006)
* 希望·愛(2009)
{{col-3}}
;보통화
* 回到你身邊&法內情、愛的連線(1989)
* 如果妳是我的傳說(1990)
* 我和我追逐的夢、來生緣(1991)
* 謝謝你的愛(1992)
* 真情難收、一生一次(1993)真情難收앨범 홍보차 [[대한민국]]을 방문해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 忘情水 、 天意(1994)
* 真永遠(1995)
* 因為愛 、 相思成灾(1996)
* 愛如此神奇 、 愛在刻骨銘心時(1997)
* 人間愛(1999)
* 男人的愛(2000)
* 天開了(2001)
* 美麗的一天(2002)
* 再說一次我愛你(2005)
* 一隻牛的異想世界(2007)
{{col-3}}
;보통화+광동어
* Memories(1995)
* 笨小孩精选(1998)
* 回家真好 新曲 + 精选(1999)
* Just For You(2000)
* 夏日Fiesta(2001)
* 繼續談情(2005)
* Everyone is No. 1(專輯)|Everyone is No. 1(2007)
* 長途伴侶(2009)
* 忘不了的(2010)
{{col-end}}
== 수상 ==
=== 영화 부문 ===
{| class="wikitable"
|-
! 연도 !! 시상식명 !! 수상부문 !! 작품명 !! 비고
|-
|1998년||[[홍콩 영화 금상장|제17회 홍콩 영화 금상장]]||올해의 영화상||메이드 인 홍콩(香港製造)||제작자, 프로듀서로서 참여
|-
|2000년||연예동력대상(홍콩)||올해의 남자 영화배우||니딩 유(孤男寡女)||
|-
|2000년||[[홍콩 영화 금상장|제19회 홍콩 영화 금상장]]||남우주연상||암전(暗戰)||
|-
|2001년||연예동력대상(홍콩)||올해의 남자 영화배우||러브 온 다이어트(瘦身男女)||
|-
|2001년||[[금자형장|제6회 홍콩영화금자형장]]||남우주연상||파이터 블루(阿虎)||
|-
|2003년||연예동력대상(홍콩)||올해의 남자 영화배우||절대초인(大隻佬)||
|-
|2004년||[[홍콩 영화 금상장|제23회 홍콩 영화 금상장]]||남우주연상||절대초인(大隻佬)||
|-
|2004년||홍콩영화평론학회대상||남우주연상||절대초인(大隻佬)||
|-
|2004년||중국 영화 미디어 시상식<br />(华语电影传媒大奖)||남우주연상||절대초인(大隻佬)||
|-
|2004년||[[금마장|제41회 금마장]]||남우주연상||[[무간도 III: 종극무간]]||
|-
|2006년||[[부산국제영화제|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 ||
|-
|2006년||[[금자형장|제11회 홍콩영화금자형장]]||가장 인기있는 남우주연상<br />(最受歡迎男主角獎)||동몽기연(童夢奇緣)||남우주연상으로 번역되는 最佳男主角과는 다른 상,<br /> 2006년과 2007년에만 존재했던 상
|-
|2007년||제1회 아시안필름어워즈||아시아흥행스타상|| ||
|-
|2007년||[[금자형장|제12회 홍콩영화금자형장]]||가장 인기있는 남우주연상||묵공(墨攻)||
|-
|2008년||[[홍콩 영화 금상장|제27회 홍콩 영화 금상장]]||남우조연상||[[무간도 IV: 문도]]||
|-
|2011년||[[홍콩 영화 금상장|제30회 홍콩 영화 금상장]]||올해의 영화상||권법 : 쿵푸의 신(打擂台)||프로듀서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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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금마장|제48회 금마장]]||남우주연상||[[심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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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홍콩 영화 금상장|제31회 홍콩 영화 금상장]]||남우주연상||[[심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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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홍콩 영화 금상장|제31회 홍콩 영화 금상장]]||올해의 영화||[[심플 라이프]]||제작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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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카탈루냐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제46회 시체스국제영화제]]||오피셜 판타스틱 남우주연상||[[블라인드 디텍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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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제2회 실크로드 국제영화제||올해의 남배우상||세이빙 미스터 우(解救吾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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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중국영화화표장(中国电影华表奖)||우수 남배우상(优秀男演员)||실고(失孤)||
|}
== 같이 보기 ==
{{포털|중국|영화|음악}}
* [[주윤발]]
* [[량차오웨이|양조위]]
* [[장학우]]
* [[리밍]]
* [[곽부성]]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위키공용과 분류|Andy Lau}}
* [http://www.awc618.com/ 유덕화 공식 사이트]
* [http://cafe.daum.net/andylau 유덕화 한국 팬 카페 Andy음악사랑]
* {{IMDb 이름|0490489|Andy Lau}}
{{유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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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영화 금상장 최우수 남우주연상}}
{{홍콩 영화 금상장 최우수 남우조연상}}
{{금마장 최우수 남우주연상}}
{{연예동력대장 가장 유명한 영화 남우}}
{{톱텐 제이드 솔리드 골드 시상식 아시아 태평양 가장 인기 남자 가수}}
{{제이드 솔리드 골드 시상식 가장 인기 남자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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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物理學者)는 [[물리학]]을 연구하는 자연[[과학자]]이다. 직업으로서는 연구소의 연구원, 대학의 교수 등이 전형적이며, 분야에 따라 응용분과의 경우 다양한 기업체와 개발직 등의 직종에 포진되어 있다. 특이한 경우로, 금융권을 비롯한 증권 분석가, 컨설턴트 등의 분야에 진출하는 경우도 있다. 물리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보통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여야 하나, 현대 물리학의 전문성 때문에 대개는 [[대학원]] 이상의 공부가 필요하다. 분야에 따라 수학이나 공학에 관해서도 전문성이 어느정도 있어야 한다.
연구소의 연구원은 크게 분야가 실험물리학과 이론물리학으로 나뉘게 되며 대학 산하 연구소, 기업체 연구소 등 다양한 연구직종에서 일하게 된다.
대표적인 물리학자는 영국의 [[아이작 뉴턴]],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어니스트 러더퍼드]], [[스티븐 호킹]], 프랑스의 [[마리 퀴리]],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 [[엔리코 페르미]] 독일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하이젠베르크]], [[아인슈타인]], 미국의 [[로버트 오펜하이머|오펜하이머]], [[에드워드 위튼]], [[리처드 파인먼]], [[니콜라 테슬라]], [[이지도어 아이작 라비|이지도어 라비]], [[어니스트 로런스]] 등이 있다.
== 물리학자가 발명한 것들 ==
* [[전자총]]: 브라운관 TV의 기본 장치
* [[자기공명영상|핵자기 공명장치]](MRI)
* [[트랜지스터]], [[반도체]]
* [[레이저]] - 시어도르 마인만
* [[월드 와이드 웹]] - [[팀 버너스 리]]
* [[입자 가속기|입자가속기]]([[대형 강입자 충돌기|LHC]] 등)
== 관련 학과 ==
*물리학과-[[입자물리학]], [[원자물리학]], [[천체물리학]], [[광학|광물리학]], [[고체물리학]], [[생물리학|생체물리학]], [[핵물리학]], [[역학 (물리학)|역학]]
== 같이 보기 ==
* [[물리학]]
* [[노벨 물리학상]]
* 물리 연구소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분류-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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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글|직업}}
[[분류:물리학자| ]]
[[분류:과학 관련 직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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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llang|ja|大江健三郎}}, [[1935년]] [[1월 31일]] ~ [[2023년]] [[3월 3일]])는 [[일본]]의 작가로,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의 일본 전후세대를 대표한다. [[시코쿠]] [[에히메현]]의 한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18세 때에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도쿄]]로 갔다. 학생 시절이었던 [[1957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동시대 [[프랑스]]와 [[미국]] 문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도쿄 대학]] 불문과 재학 당시 [[사르트르]] 소설에 심취했으며 <사육(飼育)>이란 작품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다.
초기에는 전후파 작가답게 전쟁 체험과 그 후유증을 소재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응시하는 사회비판적인 작품을 많이 썼다. 그러나 결혼 후 장애가 있는 아들이 태어나,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 속에서 어렵게 키운 경험을 소재로 개인적인 체험을 써서 전후세대의 [[인권]] 문제를 파헤쳤다는 찬사를 들었다. 이 외에도 [[핵]] 시대의 지구와 우주와의 관계를 그린 미래소설도 썼다.
그는 [[1994년]] 12월 8일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 수상) 이후 26년 만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기념 연설문, 《애매한 일본의 나》를 통해 그는 [[스웨덴]]의 아동문학작품 《[[닐스의 모험]]》을 읽으며 꿈꿨던 어린 시절 [[196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일본적인 [[신비주의]]에 대한 회의, [[전자공학]]이나 [[자동차]] 생산 기술로 유명한 조국 일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한국의 [[김지하]]나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작가들에 대한 정치적 탄압, [[와타나베 가즈오 (작가)|와타나베 가즈오]]에게서 배운 휴머니즘 정신을 말하였다. 이 연설문은 노벨상 위원회가 책으로 출판하였다.<ref>[http://nobelprize.org/nobelfoundation/publications/lectures/WSC/lit-91-95.html Nobel Lecture Series: Literature 1991-1995<!-- 봇이 붙인 제목 -->]</ref> 가족으로는 아들이자 [[장애인]] 음악가인 [[오에 히카리]]와 부인이 있다. 오에 겐자부로가 아들 히카리를 작곡가로 키운 이야기는 [[문화방송]]의 예능 프로그램인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재연극으로 소개된 바 있다.
== 인물 ==
=== 자라난 내력으로부터 작가 데뷔까지 ===
그는 [[에히메현]] 우치코의 오세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7형제중 3남으로 태어났으며 할머니에게 [[예술]]을 배웠다. 그의 할머니는 [[1944년]]에 사망하였고, 그의 아버지도 그 다음해 [[태평양 전쟁]]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 대신 오에를 가르치면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 [[닐스의 모험]] 같은 책을 사주었는데, 그는 그 책들을 무덤까지 가져가겠다고 말하였다.
고향에 있는 학교를 다니다가, 그는 마츠야마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하였다. 18세가 되는 해에 처음 동경에 다녀와서 그 이듬해 동경대학교에서 불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의 스승은 가주오 와타나베로 [[프랑수아 라블레]]에 대한 전문가였다. 그는 1957년 학생의 신분으로 있을 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하였는데, 그의 글은 프랑스와 미국의 현대작품에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이었다.
=== 아쿠다가와상 작가로서 ===
데뷔한 다음 해인 1958년, 자신의 첫 장편소설 <[[아이 싹 훑기]](芽むしり仔撃ち)>를 발표했다. 같은 해에 <사육(飼育)>으로 제 39회 [[아쿠타가와상]]을 23세의 나이에 수상하였다. 1956년에 수상한 이시하라 신타로에 이어 당시 최연소 타이 수상자가 되었다. 전형 위원이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오에 겐자부로는 시대도, 재능도, 작풍도 다르지만, 스물 서 너 살짜리 학생이 기묘한 소재를 가지고 소설을 썼다는 점이 아쿠타가와와 닮은 꼴로 보여 그에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이름이 걸린 상을 주고 싶었다”라고 했다. 한편, [[후나하시 세이치]]는 이전 회 아쿠타가와상 전형에 이의를 제기하였는데, <사육>보다는 <[[죽은 자의 사치]](死者の奢り)>야말로 상을 받았어야 했다며 비판한 바 있다.
또한, 같은 해인 1958년에 [[이시하라 신타로]], [[에토 준]], [[다니카와 슌타로]], [[데라야마 슈지]], [[아사리 게이타]], [[에이 로쿠스케]], [[마유즈미 도시로]], [[후쿠다 요시유키]] 등 젊은 문화인들과 ‘젊은 일본 모임(若い日本の会)’을 결성하여 [[60년 안보]](안보투쟁)에 반대하였다.
1959년에는 [[도쿄대]]를 졸업하였다. 졸업논문의 제목은 <[[사르트르]] 소설의 이미지에 대하여>. 같은 해에 새로운 장편 《[[우리들의 시대]](われらの時代)》를 발표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청년으로서 느끼는 우울함과 허무감, 괴상하고 폐쇄적인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전면에 내세워 통렬한 비난을 받았으나, 이 작품으로 인해 처음으로 작품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그리고 그 해 작곡가인 [[다케미쓰 토오루]]를 알게 되었다. 그 다음 해인 1960년, 이타미 유카리(이타미 주죠의 누이동생)와 결혼했다.
1961년, <[[정치와 성]](政治と性)>의 주제를 집대성한 작품인 <[[세븐틴]](セヴンティーン)>을 《문학계(文學界)》 1월호에, <[[정치소년 죽다]](政治少年死す)-세븐틴 제 2부>를 익월호에 발표하였다. [[아사누마 이네지로]] 암살 사건에서 촉발되어 범인인 [[야마구치 오토야]]를 모델로 ‘성을 탐닉하고, 정치에 도취한 우익소년’ (문고본 뒷면 소개글에서)을 그렸으나, 풍류몽담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을 둘러싸고 문예춘추 등이 우익단체로부터 협박을 받았다. 이 때문에 <정치소년 죽다>는 그 이후 어떠한 단행본으로도 구할 수가 없게 되었다. 단, 《오에 겐자부로 전작품 1》에 수록된 자필연보에 따르면, 본 작품이 “현재까지 단편집에 실리지 않은 것은 작가 스스로의 의지 때문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1963년, 두개골에 이상이 있어 지적장애를 안은 장남 오에 히카리가 태어났다. 무거운 장애를 안은 아이의 탄생은 전후사회에서 희망이 없는 청년과 그 사회에 맞선 절망적 반항과 저주를 독자적으로 그려 온 작가에게 정신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1964년, 히카리의 탄생을 기점으로 쓴 자전적 소설 《[[개인적 체험]](個人的な体験)》으로 제 11회 신초샤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지적장애를 안고 태어난 자식의 죽음을 바라는 아버지 '버드(Bird)'가 온갖 정신편력을 겪은 끝에 상상력에 의해 현실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원래 사르트르의 영향으로 그 의식이 깊어진 '상상력'이라는 개념은 이후 오에 겐자부로에게 상당히 큰 주제/수법 중 하나가 되었다. 같은 해에 히로시마를 수차례 방문했던 경험과 [[세계원수폭금지대회]]에 참가한 경험을 토대로 한 [[르포르타주]] 《[[히로시마 노트]]》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오에 겐자부로는 장애를 안은 아이를 중심으로 한 '개인적 체험'과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 그리고 전쟁이라는 '인류 고유의 비극'을 대응시켜 자신의 주제로써 심화시켜나가고 있다.
=== 노벨상 수상까지 ===
1967년, 30대 초반에 장편소설 《[[만엔 원년의 풋볼]]》을 발표하고, 최연소(2010년까지도 기록으로 남아있음)로 제3회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을 수상했다. 만엔 원년(1860년)에 [[시코쿠]]의 마을에서 일어난 폭동과 100년 후의 일본에서 일어난 [[안보투쟁]]을 결합시켜 폐쇄적 정황에 대한 혁신적인 반항을 그려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 당시 현저했던 오에 특유의 문체는 틀이나 주석,수식,피수식의 관계가 혼탁했기 때문에 여러차례 난해한 문장이라고 지적을 받았지만, [[노벨문학상]]에 선출되었을 당시의 수상이유로 현재의 표준어인 도쿄방언에 대항하는(산문) 시적인 문체를 들었다(단지, 그 후부터는 작품에 어울리는 문체를 적절히 조절하여 쓰는 방법으로도 사용하고 있다).현재는 오에의 대표작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전에 오에를 평가 한 [[에토 준]]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오랜 기간동안 대립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일본 사회와 공존하는 비정상적이고 작은 세상들을 그려낸 단편집《[[우리들의 광기를 참고 견딜 길을 가르쳐 달라]]》(1969년)를 출판하고, 1971년에 발표된 중편<[[스스로 눈물을 닦는 아픈 날]]>,<[[달의 남자]](Moon Man)>에서는 그 전년도의 [[이쓰시마 사건]]을 토대로 [[천황관]]을 개혁할 것을 주제로 삼았다. 그 후에 《[[내 영혼에 이르러]]》(1973년, 노마문예상수상),《[[핀치러너 조서]]》(1976년)에서는 천황제나 핵문제 대해 고민하고, 리얼리즘을 초월한 세계관을 그리기 시작했다. 오에의 후기작에서는 <영혼의 문제>,《기도,허락》같은 종교적인 사상에 깊이있게 접근하고 전환의 계기로 삼았다. 40대부터는 [[야마구치 마사오]]의 문화인 수학에 영향을 받아, 1979년에 발표된 《[[동시대 게임]]》에서 <마을=국가=우주>의 역사를 쓰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썼지만, 문화평론가로부터 명성을 얻은 후의 사치스런 것이라고 비판 받았다.
다만, 오에 자신은 우주의 창조자인 <[[망가뜨리는 자]]>나 영혼의 문제를 작품속에서 중요하게 자리매김 하고 있다.
1982년, 연작집 《레인트리(Rain Tree)를 듣는 여자들》을 발표하고 다음해에 제34회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다케미쓰 토오루는 연작집의 첫 번째 이야기인 <머리 좋은 <[[레인트리]]>>에 영감을 얻어 <[[비의 수목]]>(Rain Tree)를 작곡했다. 연작집의 두 번째 이야기 《레인트리를 듣는 여자들》은 이 곡의 연주를 처음 들으며 집필했으며 소설속에 콘서트의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1983년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에서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인용하여 그의 문헌이나 관련 연구를 반복해서 읽는 것으로 깨달은 사상을 오에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며, 세심한 필체로 자서체 소설로 사생활을 그려내어 제10회 오사라기 지로 상을 수상했다.
1985년에는 연합적군 사건을 사상적으로 총괄해 낸 《[[하마에게 물리다]]》,1986년에는 《[[동시대 게임]]》의 세계관을 현실세계로 비추어 낸 《[[M/T와 숲의 이상한 이야기]]》,1987년에는 단테의 《[[신곡]]》을 바탕으로 자신의 반생,사상의 편력, 주역의 변천등을 서사적으로 그려낸 《[[그리운 날들로의 편지]]》를 발표했다.
1989년에 《[[인생의 친척]]》에서는 장편에서 처음으로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아이를 잃은 여자의 비극과 재기하기까지를 그려 내 제1회 이토세이 문학상을 수상했다.1989-1990년에 발표 된 연작 《[[치료탑]]》 과 그 연속편인 《[[치료탑혹성]]》에서는 넓은 의미로의 SF형식을 사용하고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를 빌려 핵과 인류구제의 주제를 그리고 있다.
1993년 9월부터 《[[신조]]》에 있어서 가장 긴 장편소설 3부작 《[[타오르는 푸른 나무]]》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연재중이었던 1994년 10월 13일에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후 26년만에 일본인으로써는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기념 강연으로 가와바타의 <[[아름다운 일본과 나]]>를 풍자한 <[[애매한 일본과 나]]>를 주제로 삼았다.
11월부터 《[[타오르는 푸른 나무]]》간행을 시작했다. [[시코쿠]]의 마을을 무대로 한 <[[구세주]]>에 의한 전통 계승과 부활, 교회의 <[[구세주]]> 일파로의 공격, 시민과 교회의 격한 대립을 줄거리로 하여 [[아우구스티누스]]나 [[예이츠]]를 인용 <[[영혼의 구제]]>를 주제로 집필하여 지금까지 작품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1995년 1월, 1994년도에 [[조일상]]을 수상하였다.
=== 후기의 일(근황) ===
오에는 1995년 자신의 <[[마지막 소설]]>인 《[[타오르는 푸른 나무]]》를 완성했지만, 1996년 [[다케미쯔 토오루]]의 영결식에서 그를 위해 신작을 바치겠다고 약속하고 1999년 《[[공중회전]]》에서 집필을 다시 시작했다.테러를 막기 위해 <[[탈교]]>한 교주 <의사(성인)>의 파란과 살인속에서 교단의 재건을 삼인칭 시점으로 그려낸 전환작이 되었다. 이후의 창작활동은 오에 자신의 말을 빌려 <후기의 작품활동(Late Work)>이라고 불린다.
[[이타미 쥬죠]]의 죽음을 위해 쓴 작품 《[[뒤바뀐 아이]](체인지링)》(2000년), 《[[우울한 얼굴의 아이]]》(2002년), 《[[안녕,나의 책이여]]!》(2005년)은 전부 <[[스워드커플]](이상한 2인조)>가 등장한 3부작이다.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안녕,나의 책이여]]!》에서는 [[미시마 유키오]]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문제를 자신의 인생에 투영시켜 데뷔작 《[[기묘한 일들]]》로 회귀하는 듯한 복잡한 구성을 택했다.3부작을 집필하고 있던 2002년에는 아이들을 위한 판타지 동화 《[[200년의 아이들]]》을 발표했다.
그 후 2007년에는 수장되었던 영화를 재구성하여 <[[이상한 노인]]>들의 늘그막의 모험담 《[[아름다운 애너벨리 싸늘하게 죽다]]》 가 [[신조사]], 2009년에는 익사한 아버지의 죽음을 그려내려고 한 작가의 행동을 다양하게 표현해 낸 《[[익사]]》가 강담사에 각각 실렸다.
《[[타오르는 푸른 나무]]》의 총괄편이라고도 불리는 《[[공중제비]]》이외의 <후기의 작품>들 모두가 자신을 투영시킨 소설가나 옛의인을 둘러싼 거짓과 진실의 이야기였다. 그의 이야기에서 허구를 섞어 자신의 생각을 고쳐 말하는 것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이러한 형식에서는 오에 자신도 자각적으로 《[[익사]]》속에서 <노작가의 사랑도 변하지 않는 자기모순이다>라는 등의 도회하는 듯한 표현을 썼다).또한, 모든 작품에 있어서 선행되었던 문학,예술 등에 자유로운 인용을 덧붙여 과거 자신의 인용이나 옛 이야기를 현대의 언어로 해석, 환골탈태, 재구성을 하였다.
창작활동 이외에는 2006년에 [[오에 겐자부로상]]이 설립되어 다음세대의 젊은 작가들을 응원하는 움직임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 정치 사상 ==
[[전후 민주주의]]자임을 자인하며 국가주의, 특히 일본의 [[일본 천황|천황]]제에 대해서는 일관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또한 평화헌법을 수호하는 입장으로 핵무기나 헌법 제 9조(일본 헌법 삼대원칙 중 하나인 [[평화주의]]를 규정하고 있음)에 대해 에세이나 강연에서 적극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자위대]]의 존재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1994년 [[노벨상]] 기념 강연회를 가졌을 때에는 덴마크 문법학자 크리스토프 니로프의 ‘(전쟁에) 항의하지 않는 인간은 공모자나 다름없다’라는 발언을 빌려 ‘항의하는 것’이라는 개념에 대해 언급하였다. 또한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거나 문화훈장을 받는 문학가의 자세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노벨문학상]]은 “[[스웨덴]] 국민이 주는 상으로 여기겠다”라고 하며 상을 받았으나, 그 직후에 천황이 손수 문화훈장과 문화공로상을 함께 수여하려 하자, “나는 전후 민주주의자이므로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권위와 가치관을 인정할 수 없다”라고 하여 수상을 거부했다. 한편, 2002년에는 공화국인 [[프랑스]]의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2003년에 자위대를 [[이라크]]에 파병했을 때에는 “이라크에는 순수하게 인도적 차원의 원조를 제공하는 데서 그쳐야 한다”, “전쟁 후 반세기 남짓한 가운데서도 일본이 이 정도로 [[미국]]을 추종하는 모습을 보였던 적은 없다”라고 하며 분노를 표명했다. 2004년에는 헌법 9조 ‘전쟁 포기’의 이념 수호를 목적으로 [[가토 슈이치]], [[쓰루미 슌스케]] 등과 함께 [[9조회]]를 결성하여 전국 각지에서 강연회를 열었다. 2006년에는 [[중국사회과학원]] 외국문학연구소의 초청을 받아 [[중국]]으로 가서 [[난징대학살]]기념관 등을 방문하였다. [[베이징대]] 부속중학교에서 열린 강연에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언급하며 “일본과 일본 젊은 세대의 장래를 철저히 망가뜨리는 짓이다”라고 하였다.
=== 평론가로부터의 비판 ===
{{빈 문단}}
=== 북한 관련 발언 ===
2009년 6월 2일, 강연에서 "핵보유국과 비핵보유국 사이의 신뢰관계가 없으면 핵무기 폐기가 시작될 수 없다.우리들이 싸우지 않는 태도를 일관한다면, 북한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만들어내는 커다란 조건이 되지 않을까"라는 뜻의 발언을 했다. 때마침 이 발언은 5월 25일 북한이 핵실험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나온 발언이여서 많은 물의를 빚었다.
== 오키나와전 재판 ==
{{빈 문단}}
== 에피소드 ==
{{빈 문단}}
== 작품 목록 ==
=== 영어로 번역된 작품 목록 ===
* ''Nip the Buds, Shoot the Kids'' (1958)
* ''A Personal Matter'' (1968)
* ''The Silent Cry'' (1974)
* ''Teach Us to Outgrow Our Madness'' (1977)
* ''Hiroshima Notes'' (1982)
* ''Japan's Dual Identity: A Writer's Dilemma'' (1988)
* ''A Healing Family'' (1996)
=== 한국어로 번역된 작품 목록 ===
==== 오에 겐자부로 소설문학 전집 24권 (고려원) ====
# 중-단편집/죽은자의 사치
# 아이 싹 훑기/우리들의 시대
# 늦게 온 청년
# 성적 인간
# 일상생활의 모험
# 개인적 체험
# 만연원년의 풋볼
# 우리들의 광기를 참고 견딜 길을 가르쳐 달라.
# 홍수는 나의 영혼에 넘쳐 흘러
# 핀치러너 조서
# 동시대 게임
# <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
# 새로운 인간이여, 눈을 떠라
# 하마에게 물리다
# M/T와 이상한 숲의 이야기
# 그리운 해에게로 띄우는 편지
# 길프 군단
# 인생의 친척
# 조용한 생활
# 치료탑/치료탑 혹성
# 타오르는 푸른나무/1부 구세주의 수난
# 타오르는 푸른나무/2부 흔들림
# 타오르는 푸른나무/3부 위대한 세월
# 오에 겐자부로론
# 2백년의 아이들
=== 평론·수필 등 ===
{{빈 문단}}
=== 공저 ===
* 오에 겐자부로, 오자와 세이지, 《문학과 음악이 이야기한다》(정회성 역, 포노, 2018)
=== 공동 편찬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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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빈 문단}}
=== 작품의 영화화 ===
* 우리들의 시대 (1959년) 감독: [[쿠라하라 고레요시]]
* 가짜 대학생 (1960년) 감독: [[마스무라 야스조]]
* 사육 (1961년) 감독: [[오시마 나기사]]
* 조용한 생활 (1995년) 감독: [[이타미 주조]], 음악: [[오에 히카리]]
=== TV 프로그램 ===
* [[1990년]] [[8월 5일]] - [[NHK]] 스페셜「세계는 히로시마를 기억하고 있는가~오에 겐자부로·대화와 사색의 여행~(世界はヒロシマを覚えているか~大江健三郎・対話と思索の旅~)」칼 세이건, 프리먼 다이슨, 안드레이 사하로프, [[김지하]] 등과 대화.
* [[1992년]] 10월 ~ 12월 - NHK 인간대학「문학재입문」1992年10月~12月(후에 비디오 카세트로 발매)
* [[1994년]] [[9월 18일]] - NHK 스페셜「울려퍼지는 부자~오에 겐자부로와 아들 빛의 30년~(響きあう父と子 ~大江健三郎と息子 光の30年~)」
* [[1999년]] -「뉴스23」「하나마루 마켓」등에 출연
* [[2003년]] [[12월 20일]] - NHK 스페셜「시리즈 안전보장」에서 이라크 자위대 파견, 개헌 문제 등에 대해 코토다 마사하루(後藤田正晴),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쿠리야마 쇼이치(栗山尚一)와 토론
* 2003년 11월 - 「뉴스 스테이션」
* [[2002년]] 8월, [[2004년]] 1월 - 「테츠코의 방」에 출연
* [[2006년]] 1월 - 「타케시의 누구라도 피카소」에 출연
* [[2010년]] [[1월 5일]] - NHK「스튜디오 파크에서 안녕」에 출연
== 오에 겐자부로를(모델로 한 인물) 연기한 배우 ==
* [[야마자키 츠토무 (배우)|야마자키 츠토무]] - 「조용한 생활(静かな生活)」(케이 역)
== 같이 보기 ==
*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
== 각주 ==
<references/>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 {{브리태니커|b16a1131a}}
* {{두피디아|101013000725950}}
* {{언어링크|en}} [http://www.nobel.se/literature/laureates/1994/oe-bio.html 오에 겐자부로(노벨 위원회 홈페이지)] {{웨이백|url=http://www.nobel.se/literature/laureates/1994/oe-bio.html |date=20011117235439 }}
* {{언어링크|en}} [https://web.archive.org/web/20150210175324/http://www.kirjasto.sci.fi/oe.htm Kenzaburo Oe]
{{글로벌세계대백과}}
{{노벨 문학상 수상자}}
{{1994년 노벨상 수상자}}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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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오에 겐자부로| ]]
[[분류:1935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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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오키나와 전투]]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넘어옴|브루크너}}
{{각주 부족|날짜=2023-12-15}}
{{독자 연구|날짜=2019-11-12}}
{{음악가 정보
| 이름 = 안톤 브루크너
| 그림 = Joseph Anton Bruckner (1868).jpg
| 그림크기 =
| 그림설명 = 1868년의 모습
| 본명 = 요제프 안톤 브루크너
| 예명 =
| 원어이름 = Anton Bruckner
| 출생일 = {{출생일|1824|9|4}}
| 출생지 = [[오스트리아 제국]] 안스펠덴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896|10|11|1824|9|4}}
| 사망지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빈]]
| 국적 =
| 직업 = [[작곡가]], [[오르가니스트]]
| 장르 = [[서양고전음악]]
| 악기 = [[오르간]]
| 활동시기 =
| 가족 =
| 학력 =
| 종교 =
| 레이블 =
| 소속사 =
| 소속그룹 =
| 관련활동 =
| 웹사이트 =
}}
'''요제프 안톤 브루크너'''({{llang|de|Joseph Anton Bruckner}}, [[1824년]] [[9월 4일]] ~ [[1896년]] [[10월 11일]])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이다. [[교향곡]], [[종교음악]], [[모테트]]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풍부한 화성, 복잡한 [[폴리포니]], 유도동기, 긴 연주시간으로 유명하여 [[독일]]-[[오스트리아]]의 낭만파 최후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 생애 ==
브루크너는 교사이자 오르가니스트인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보조교사로도 일했고 마을 악단에서 바이올린을 켜기도 했으며 마침내 [[성 플로리안 성당]]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생전에 오르가니스트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특히 [[즉흥 연주]]에 능했다고 한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여러 스승에게 [[작곡]]이나 [[대위법]] 등을 배워나갔으며 [[빈 국립음악예술대학교|빈 음악원]]과 [[빈 대학]]에서 교직을 맡기도 했다. 그러면서 열한 개의 [[교향곡]]과 세 개의 [[미사]], [[테 데움]] 등의 [[종교 음악]]을 작곡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살아있는 동안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 이는 그가 바그너의 추종자(바그너파)로 알려져 [[브람스]]를 신봉하는 많은 비평가(브람스파)의 조건 없는 공격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의 음악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드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제자인 페르디난트 뢰베, 프란츠와 요제프 샬크 형제 등은 항상 그의 음악을 청중들이 더 '이해하기 쉽게' 한다는 명분으로 개작하도록 브루크너를 압박했고 이에 브루크너 자신의 유약함 내지 꼼꼼함이 덧붙어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는 수많은 개정판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브루크너는 생애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제 7번과 제 8번 교향곡, [[테 데움]]의 성공을 맛볼 수 있었으나 때는 너무 늦었다. 그는 빈에서 사망했고, 그의 유해는 [[성 플로리안 성당]]의 [[오르간]] 아래에 안장되어 있다.
== 작품 성향 ==
브루크너의 중요한 작품으로는 교향곡과 종교음악을 꼽을 수 있다. 이외에도 실내악 작품이나 피아노 독주곡 등을 음반으로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 [[서양고전음악]]에서 브루크너 작품의 위치는 슈만, 브람스가 계승한 신고전주의적인 구조와 슈베르트가 보여준 개성화된 내용의 결합이며 이러한 경향은 [[구스타프 말러]]로 계승된다.
한편,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고 교회 오르가니스트였기에 브루크너의 종교음악은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이후 낭만주의 종교음악의 맥을 잇는 역할을 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의 종교음악은 대규모 합창과 교향악의 결합으로 대변될 수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장엄미사의 맥을 잇는 것이다.
== 작품 ==
''[[브루크너의 작품목록]]''
작품 번호"WAB"는 음악학자 레나토 글라스베르거(Renate Grasberger)가 편찬한 "브루크너 작품 목록"(Werkverzeichnis Anton Bruckner)의 번호이다. 번호는 149번까지 한다.
=== 교향곡 ===
* [[교향곡 바단조 (브루크너)|교향곡 00번 바단조 WAB.99 ‘습작’]]
* [[교향곡 0번 (브루크너)|교향곡 0번 라단조 WAB.100]]
* [[교향곡 1번 (브루크너)|교향곡 1번 다단조 WAB.101]]
* [[교향곡 2번 (브루크너)|교향곡 2번 다단조 WAB.102]]
* [[교향곡 3번 (브루크너)|교향곡 3번 라단조 WAB.103 ‘바그너’]]
* [[교향곡 4번 (브루크너)|교향곡 4번 내림마장조 WAB.104 ‘로멘틱’]]
* [[교향곡 5번 (브루크너)|교향곡 5번 내림나장조 WAB.105]]
* [[교향곡 6번 (브루크너)|교향곡 6번 가장조 WAB.106]]
* [[교향곡 7번 (브루크너)|교향곡 7번 마장조 WAB.107 ‘서정적’]]
* [[교향곡 8번 (브루크너)|교향곡 8번 다단조 WAB.108 ‘묵시적’]]
* [[교향곡 9번 (브루크너)|교향곡 9번 라단조 WAB.109]]
바단조 교향곡(00번)은 브루크너가 습작용으로 작곡해 첫 번째로 시작되는 일련번호를 붙이지 않은 곡이다. 교향곡 0번은 후년에 애정을 느껴 파기할 수 없다고 느낀 작곡자가 고의로 제0번으로 한 것이지 실제로는 첫 작곡 후에 다룰 수 있는 작품이다. 또한, 마지막 교향곡 제9번은 미완성 작품이다. (실질적은 반쪽 완성)
자세한 내용은 각 교향곡의 문서로 다룬다. 이상 외에 1869년에 착수했지만, 완성을 보지 못한 교향곡 내림나장조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 스케치의 단편만 남아 있다.
=== 합창곡 ===
{{빈 문단}}
=== 실내악곡 ===
{{빈 문단}}
=== 관현악곡 ===
{{빈 문단}}
== 브루크너와 바그너 ==
=== 두 사람의 교제 ===
브루크너가 [[리하르트 바그너|바그너]] 음악을 접하게 된 것은 그가 31세 때인 린츠에 옮겨서부터이다. 그 무렵 그는 지몰 제히터에게 대위법을 배우기 위해 때때로 빈으로 갔었는데, 그때에 바그너가 지휘하는 연주회에 갔던 일이 있었다. 그것이 언제부터였고 그가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로부터 8년 후인 1863년에는 당시 작곡 스승이었던 [[오토 키츨러]]의 권유로 [탄호이저]의 스코어를 연구하여 매우 흥미를 갖게 되었고, 게다가 그 해 안에 린츠에서 [탄호이저]의 실제 상연을 접하여 전격적인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키츨러 자신이 지휘하는 [[로엔그린]]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오페라)|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보고 브루크너는 여태까지 그가 접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음악에 강한 감명을 받았다.
2년 후인 1865년에는 뮌헨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초연이 열리게 되었는데, 브루크너는 이 악극을 보기 위해 뮌헨으로 갔다. 그곳의 호텔 피아 야레스차이덴(4계 호텔)에는 유명한 음악가들이 숙박하고 있었는데 브루크너는 거기에 가서 [[안톤 루빈스타인]]과 [[한스 폰 뷜로]]에게 자신이 만든 교향곡 1번의 악보를 보이기도 했다. 뷜로가 바그너에게 이 젊은 작곡가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에 바그너도 흥미를 갖게 되어 두 사람의 첫 회견이 실현되었다. 브루크너는 처음에는 대선생님을 만날 용기가 없었으나 권유를 받아 바그너를 찾아갔다. 그때 어떠한 화제가 있었는지는 전해지지 않았으나, 브루크너에 의하면 바그너는 매우 친절했었다고 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초연이 연기되었기 때문에 브루크너는 일단 린츠로 돌아왔으나 6월 19일에는 다시 뮌헨으로 나가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제3회 공연을 보고 '감격 때문에 자기를 잊어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린츠에서 브루크너는 대성당 오르가니스트 외에도 프로진이라는 남성 합창단 지휘자를 맡고 있었는데, 1868년 이 합창단의 기념 축하공연에 노래하는 합창단을 위하여 바그너에게, 이전에 작곡한 것이라도 좋으니 무엇이든지 한 곡 빌려줄 수 없는가 하고 부탁했다. 바그너는 기쁜 마음으로 최근 작곡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5막의 일부를 건네주었다. 한스 작스의 연설에서 이어서 나오는 '환희의 합창'이었다. 4월 4일에 이것을 지휘한 브루크너의 감격은 매우 컸었다.
1872년 5월, 그 무렵 빈에 살았던 브루크너는 바그너가 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역으로 마중하러 나갔다. 거기에는 빈 음악계의 면면들이 즐비하였는데 열차에서 내린 바그너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브루크너 쪽으로 달려와서 "오, 오! 브루크너 이리 와요. 자네는 내 동료이다."고 말했다. 이미 그 무렵에 브루크너는 빈 음악원과 대학에서 음악 이론을 가르치고 있는 명강사, 교수였다.
그 이듬해 브루크너는 바이로이트에 가서 바그너를 방문하고 자작인 2번과 3번을 보여준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여 여기서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브루크너 자신이, 보르초겐에게 보낸 편지로 이 회견에 대해 상세히 말했는데, 그 가운데에서 그는 바그너가 교향곡 3번의 [제1부]를 다 훑어보았다고 썼다. 이때 제4악장은 아직 스케치뿐이었기 때문에 바그너에게는 그것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브루크너는 이 교향곡 3번을 바그너에게 헌정하였는데 그 때문에 뒤에 이 곡은 [바그너 교향곡]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다음에 두 사람이 만난 것은 1875년 바그너가 또다시 빈에 나타났을 때이며 브루크너가 그를 찾아갔을 때, "자네 교향곡을 연주해야 한다!"고 외쳤다. 바그너는 브루크너를 만날 때마다 "자네 교향곡을 연주해주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한 번도 실현되지 않았다. 이것은 헛소리로 말했던 것은 아니다. 몇 번이나 빈 필하모닉에게 연주해 주도록 권했었지만, 악단 쪽에서는 비평가 한슬리크의 불만을 사게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채택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만난 것은 1882년 7월 [[파르지팔 (오페라)|파르지팔]] 초연 직전에 바이로이트에서였다. 브루크너는 검은 예복을 입고 바그너 집 앞에서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바그너는 브루크너를 보자마자 손을 내밀며 또 "내가 자네 교향곡과 모든 작품을 상연하겠다."고 말했다. 브루크너는 "오, 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숭배합니다."라고 감격에 차서 말할 뿐이었다.
'''서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런데 정말 바그너는 브루크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브루크너는 바그너를 얼마만큼이나 숭배하고 있었을까?'''
프리드리히 브루메는 바그너가 브루크너의 숭배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순수하게 존중하기에는 너무나도 자기중심적이었다고 말했다. 바그너는 분명히 브루크너를 종종 칭찬했지만, 바그너 쪽에서 접근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는 브루크너의 모든 작품을 상연하겠다고 말해 놓고는 교향곡 3번 '바그너' 이외의 작품을 알려고 하는 관심조차도 없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지휘자 한스 리히터는 바그너가 종종 교향곡 3번을 진심으로 칭찬하는 말을 들었다고 했고, 브루크너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베르너 볼프를 따르면, 바그너의 아들 지크프리트는 그 뒤에 말하기를 "아버지가 브루크너의 모든 교향곡을 자신이 연주하겠다고 말한 것은 본심에서 우러나온 말은 아닐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상으로 보아서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 진상에 가까울 것이다. 바그너는 브루크너의 교향곡 3번 '바그너'를 높이 평가하여, 실제로 상연될 수 있도록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이 지휘하여 상연한다는 것이나 상연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힘을 쓴다는 의지는 없었던 것이다. 바그너는 브루크너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가들을 세상에 인정시키기 위한 노력은 (그것이 특별히 자기에게 이익을 주지 않는 이상)하지 않았었고, 게다가 자기 작품의 창작과 자작의 상연을 위한 일 때문에 시간을 뺏겨서 그럴 틈조차 없었던 것이다.브루크너 자신도 바그너에 의해 자작이 상연될 것이라고는 거의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또한 그 자신이 너무나도 강하게 바그너 당에 끌어들여 지는 것을 회피하였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브루크너 자신은 순박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말 뿐인 약속만 하는 바그너에 대해서는 약간 좋지 않은 기분을 가졌을 것이다. 뒤에 친구에게 "바그너는 주의하는 것이 좋겠다. 자기 이익이 될 때에는 친절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전혀 무관심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니벨룽의 반지]]도 파르지팔도 바이로이트 음악축제에서 보았고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이후의 바그너 오페라를 모두 알고 있었으므로 작곡가 바그너에 바친 커다란 숭배의 마음은 끝내 바꾸지 않았던 것이다.
=== 브루크너 교향곡(작품)에서의 바그너의 영향 ===
브루크너의 바그너 악극에 대한 감탄의 마음은 전적으로 음악에만 한정되었었다. 이 선배의 악극 사상이나 그 활동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브루메에 따르면, 브루크너는 트리스탄의 피아노 스코어를 열심히 사보하였으나 거기에 붙여진 텍스트를 베끼기는커녕 읽지도 않았다고 하며 발퀴레를 보았을 때 그 끝막에서 '브륀힐데는 왜 화형에 처하는가'하면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물었다고 한다.
브루크너가 최초의 교향곡을 쓰기 시작하기 전부터 그는 바그너 음악을 접했었고 또한 키츨러로부터 바그너 작품을 연구하도록 권유를 받기도 했었다. 브루크너보다 10살 아래인 이 린츠의 악장은 제히터처럼 대위법 이론에만 집중하지 않고 베토벤에서 바그너에 이르는 작품, 분석을 브루크너에게 하게 시켰다. 브루크너가 바그너에게서 배운 것 중의 하나는 크로마틱(반음계)와 엔하모닉(딴 이름 한 소리)의 넓은 이용법이었다. 키츨러 지도로 작곡된 교향곡 0번과 그 뒤의 1번에는 이와 같은 바그너의 새로운 수법이 발견된다. 악기 사용법에서도 1번 1악장의 트롬본은 브루크너가 처음으로 접한 바그너 작품인 [[탄호이저 (오페라)|탄호이저]]를 생각나게 한다. 교향곡 2번에서는 1악장에 바그너의 [[리엔치]] 중의 '리엔치의 기도'에 나오는 동기가 거의 그대로 오보에에 나타난다.
그러나 브루크너가 의식적으로 바그너에게 기울어짐을 나타낸 것은 교향곡 3번 '바그너'인데, 거장에게 헌정된 곡인 만큼 화성이나 악기법에 바그너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발퀴레]]에서 인용한 것도 몇몇 보이지만, 이러한 인용은 나중에 작곡가 자신이 제거하였다. 그러나 이것으로 바그너적 색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고, 특히 제2악장 전체에는 [[발퀴레]]의 안정된 낭만적 분위기가 짙게 나타난다.
주부인 제2주제인 '''졸림의 동기'''에 흡사하다. 제4악장조차도 반음계적 화성의 활용이나 현의 세밀한 음형, 그리고 끝맺음에 이르는 장대한 금관악기의 부르짖음 등 탄호이저 이후의 바그너 세계를 방불케 한다.
1878년 작곡된 [[현악5중주 바장조 (브루크너)|현악5중주 F장조]]에 관하여, 가이링거는 "그 화성이나 조바꿈에 있어서 '지크프리트'의 방랑자 장면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이 생각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 곡의 끝 악장에는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베크메이서의 동기와 흡사한 선율도 나타난다.
브루크너는 마지막 세 개의 교향곡에 바그너 튜바를 사용함으로써 바그너에게 대한 숭배의 마음을 표시하였다. 제7교향곡 제2악장의 스케치가 1883년 1월 22일에 완성되었는데 그 무렵부터 브루크너는 바그너의 죽음을 예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같은 해 3월 13일 바그너는 베네치아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다음날 14일 브루크너는 그 통보를 받았다. 이때 브루크너는 음악원에서 이 제2악장 아다지오의 마지막 부분을 작곡 중이었는데 장송의 뜻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아다지오의 코다로 35마디를 덧붙여 썼다고 한다. 이 부분의 처음과 끝에 오는 무거운 금관 합주에서는 바그너 튜바의 울림은 물론이고 전체가 [반지]와 [파르지팔]을 방불케 한다.
그로부터 2년 후 브루크너는 성플로리안에서 이 코다의 음악과 [[신들의 황혼]]의 지크프리트 장송 음악을 결부시켜서 즉흥연주를 했다고 한다. 그 이전에도 그는 간혹 바그너의 선율을 주제로 한 오르간의 즉흥연주를 하였다.
7번, 8번, 9번이라고 하는 3곡의 교향곡에서는 모두 느린 악장이 특히 바그너 수법에 대한 접근을 보여준다. 8번의 제3악장 아다지오는 터치가 부드럽고 깊숙한 음향에서 트리스탄과 공통된다. 기분을 풀 길이 없는 불안한 주제의 반음계적인 움직임, 특히 그 반주의 당김음에 의한 셋잇단음표의 흔들림, 무한선율, 그리고 반음계 화음의 상승 등은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의 세계이다. 초기의 브루크너에 관해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인 섬세한 미가 바그너를 통해서 꽃피었다. 한슬리크가 말했듯이 여기서 하프를 사용한 것도 바그너에 대한 접근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에 비해 교향곡 9번의 첫머리는 [[파르지팔 (오페라)|파르지팔]]을 상기시킨다. '제1주제는 바그너의 '''파르지팔''' 제3막의 전주곡, 성 금요일의 음악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위로받지 못하는 기분 속에서 개시되지만, 곧 '창의 동기'의 연상을 거치면서 '그랄(성배)'적인 상승을 이룬다.
다만 이 브루크너의 '''백조의 노래'''가 바그너의 '''백조의 노래'''와 다른 점은 후자가 드라마의 객관성이 갖는 기분을 전하려고 하는 데 비해 전자는 절대음악이며 그 배후에 아무것도 없는 청결함을 가졌다는 점이다. 그러기 때문에 거기에는 아주 기분 나쁠 정도의 장엄함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바그너가 브루크너의 후기 교향곡을 듣지 못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는 틀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감격했을 텐데 말이다.
== 브루크너와 나치의 전용 ==
브루크너는 바그너와 함께 전용(專用)되었으며 그의 교향곡은 나치 독일 시절 철저하게 나치의 선전용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바그너와 달리 브루크너는 일반적으로 직접적인 나치와의 과거 문제에 때문에 큰 오명을 얻지는 않았다. 또한, 그가 게르만 민족주의, 반유대주의자가 아닌 게 밝혀졌고 유대인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와 친한 사제관계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의 작품은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별다른 외부 저항 없이 레퍼토리로 이용되었고, 이스라엘에서도 그의 음악은 연주금지가 되지 않았고 자주 연주된다.
=== 브루크너와 오스트리아의 합병, 나치 수정주의와 전유의 정치학 ===
1937년, 레겐스부르크의 잊을 수 없는 악명높은 사진에서 나치의 군복을 차려입은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작곡가인 브루크너의 대리석 흉상을 존경스러운 듯이 바라보며 서 있다. 국가 사회주의 사실주의에 따라서, 아돌프 로덴베르거가 만들어낸 이 흉상은 철십자를 잡아채고 있는 독수리가 새겨져 있는 나치 문양과 그 곁에는 금으로 둘러싸인 제단 위에 올려져 있다. 브루크너는, 1841년에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1세의 지시 아래, 파르테논 신전을 본떠 만들어진 레겐스부르크의 신전, 즉 과거 독일의 문화적 영웅들로 가득한 이 신전에 독일 문화의 또 다른 선각자로서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브루크너는 제3제국 속으로 충분히 들어올 자격이 있는 독일 작곡가들 속으로 브루크너를 충분히 우상화시켜 합류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었으나, 실제로 이것은 8개월 후의 독일의 오스트리아에 대한 합병의 징조였다.
피터 가블, 막스 아우어(국제 브루크너 협회 회장), 괴벨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에 의한 연설 등을 포괄하는 이러한 레겐스부르크의 행사는 일련의 음악회, 국제 브루크너 협회의 행사, 그리고 독일 나치 당의 모임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음악 정치적 행사의 가장 핵심적이었다. 브루크네리안의 편협한 시각으로 이 행사를 살펴본다면 그것은 단지 지난해의 브루크너 사망 40주년 기념행사를 마무리하는 행사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930년 후반의 나치의 정치적 전략의 더욱 넓은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의 합병을 위한 하나의 출발점에 불과한 것이었다.
1936년은 이러한 브루크너 사망 40주기를 포함하여, 괴벨스에 의하면, 모든 베르사유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해였다. 독일은 다시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었으며, 1936년이야말로 오스트리아, 체코, 그리고 폴란드로 영토를 넓혀가기 위해 전진하는 해였다. 이제 괴벨스가 스스로 '위험 지대'라고 명명했던 동원의 시기인 1936년 시기에 동시에 이루어졌던 복잡한 국내 선전 캠페인 속에 이 작곡가의 이미지가 어떻게 조작되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국가 사회주의의 문화적 우상으로서의 브루크너의 중요성은 단순히 대리석 흉상부터 출발하여, 깃발, 철십자에 이르기까지 주목받았으며, 심지어는 게르만의 문화적 애국주의로까지 확대되었다. 브루크너를 제3제국의 문화적, 정치적 목적에 연결하려는 행사들은 시시한 것에서 예술적으로 매우 모호한 것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했고, 지금 현대 사람들의 귀에는 매우 순수하게 들리는 그의 음악도 1930년대와 1940년대의 대중들의 귀에는 매우 다른 의미로 각인되었다.
=== 히틀러 개인의 관심 ===
만약 히틀러가 개인적으로 브루크너를 한 인간으로서, 작곡가로서, 그리고 북오스트리아의 같은 형제로서 브루크너를 생각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브루크너를 미화하는 나치의 선전 캠페인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히틀러는 유년 시절, 브루크너의 교향곡에 매우 감동되었다. 히틀러의 예술가로서의 젊은 시절의 투쟁은 매우 잘 알려졌다. 브라나우에서 온 이 평범하고 젊은 예술가는 빈의 미술계에 들어가려고 하나 결국 실패하게 된다.그리고 그는 분명히 이러한 그의 신세를 초기에 빈의 예술계로부터 촌사람으로서 아웃사이더나 다름없었던 브루크너와 동일시하게 된다.
괴벨스의 1941년 3월 13일의 일기를 보면, 또한 히틀러가 빈과 관련해서 크게 상처받았고, 이는 결국 직접 브루크너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 플로리안으로 가라! 브루크너가 작곡하던 수도원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바로크 건물인가! 우리는 이곳으로부터 나온 성직자에게 관심을 돌려 그 음악동료와 브루크너 협회를 위한 보금자리를 찾아내었다. 얼마나 장대한 계획인가! 그의 음악으로 세계를 정복한 시골 청년! 오늘날 이 구역이 얼마나 문화, 역사, 심지어 예술적 힘에 있어서 풍요로운가! 위대한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여기에 문화의 중심지를 세우려고 한다. 빈과 평형을 이루는 평형추로서, 그리고 빈은 서서히 철수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는 빈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린츠를 더욱 좋아한다. 그는 순전히 그의 비용으로 성 플로리안에 그 대안을 만들려고 한다."'''
한스 크레크치의 탁월한 논문은 종전까지의 히틀러의 브루크너에 대한 집착, 특히 그의 개인적 보호 아래 성 플로리안을 바이로이트처럼 만들려는 계획을 비롯하여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소위 '브루크네리안 바이로이트'는 세 가지의 목적을 갖고 있었다.
'''첫째, 성 플로리안은 '브루크너의 불멸 작품을 위한 성스러운 전당'(브루크너의 전통을 유지하고 촉진하기 위해)이 되어야 한다. 둘째, 바이로이트와 같이 브루크너 페스티벌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 플로리안은 음악 협회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프로젝트와 별도로, 브루크너의 음악(교향곡)은 라이브 음악회와 라디오 방송에서 공식적인 의전을 위해 사용되었다. 알버트 스피어는 뉘른베르크에서의 대규모 당 행사에서의 그의 문화에 대한 연설에 앞서 매번 브루크너 교향곡의 한 악장이 연주되는 광경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1937년 6월 30일의 악명높은 '건강한' 독일 예술을 찬양하는 나치 주최의 퍼레이드는 브루크너 3번 교향곡의 팡파르로 시작되었다. 지타가 공인하듯, 브루크너의 멜로디는 어떠한 장엄하고, 의례적인(ceremonial) 면이 있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은 바로 바이로이트의 대 작곡가에게 헌정된 3번 교향곡과 관련하여 바그너 자신이 언급한 바로 그 주제였다는 점이다. 바그너와 바이로이트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지 첫해에 이미 새로운 체제에 의해 정치화되었다. 그리고 나치는 이제 브루크너의 상투성을 '바그너-심포니스트'로서 강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더욱 많은 것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러한 관점은 1934년에 있었던 'Die Musik'에 드러난 나치의 친위대 음악회 비판으로 더욱 확장된다, 그 논평자는 베토벤을 제3제국의 선구자로서 포함한다.
'''"바이로이트의 거장, 즉 독일 변혁의 가장 중요한 개척자 중의 한 사람이며, 제3제국의 가장 대담한 제사장인 바그너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서곡에 의해 묘사되었다. 그리고 브루크너의 기념비적인, '에로이카(영웅)'로 불릴 수 있는 7번 교향곡은 영웅적으로 전체 작품의 음조에서 뿐만 아니라 느린 악장의 장송행진곡에서도 베토벤의 영웅교향곡과 연결되어 있다. 브루크너의 그 느린 악장은 또한 어떤 영웅의 죽음을 슬퍼하는 비가와도 같은데, 그 영웅은 바로 바그너와 관련이 있다."'''
1945년 4월, 7번 교향곡의 아다지오가 독일 라디오의 히틀러의 죽음 소식에 이어 흘러나올 때, 그 브루크너의 음악은 또다른 '영웅'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종종 사용되었을 것이다.
=== 브루크너, 바그너, 그리고 국제 브루크너 협회 ===
초기, 나치와 바이로이트와의 긴밀한 관계는, 그들의 우호적인 관계에도 국가사회주의자들과 국제 브루크너 협회 간의 사소한 마찰을 유발한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전에, 이 협회의 목적은 매우 단순했다. 즉 그들의 목적은 안톤 브루크너의 작품을 널리 퍼뜨리고, 작품들의 진정한 에디션을 위한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비공식적인 두 개의 목적이 또한 있었다.
브루크너를 널리 유포된 브람스파의 패러다임과 어울리게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작곡가로서 소개하는 것이었고, '바그너-심포니스트'로서의 브루크너의 판에 박힌 이미지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국제 브루크너 협회는 나치의 재정적 지원에는 매우 기뻐했으나(괴벨스는 그의 레겐스부르크 연설에서 진정한 브루크너 에디션을 위한 자금의 지원을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이러한 상호 만족 뒤에는 브루크너와 바그너에 관계된 풀 수 없는 긴장의 요소가 잠재되어 있었다.
이러한 긴장은 1937년 5월, 레겐스부르크 연설이 있기 한 달 전에 아우어가 두 작곡가 사이의 확연한 스타일에서의 차이점을 이끌어내는 논문을 발표하게 되자, 표면화되었다. 아우어의 목적은 극음악의 세계에서 바그너의 뿌리를 브루크너의 교회 오르가니스트로서의 그것과 대비시키는 것이었다. 중요한 차이점은 오케스트레이션과 관계되었다. 브루크너의 언어는 오르간 주자로서의 그의 경험으로부터 나오며, 그 음향은 바그너의 영향을 제거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의 후기 교향곡에서는 바그너 튜바가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아우어의 논문에서 이상한 점은 자신과 협회는 반 바그너주의를 '주장하거나 주장했던' 것은 아니라는 주석을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더블 스페이스로 매우 강조한 상태로 말이다. 이러한 거부의 정치적 함축의 의미는, 특히 체제 그 자체와의 충돌을 무릅썼던, 제3제국 시대의 바그너를 비판하는 음악 해설자에게는 그 의미가 확실한 것이다. 아우어 자신은 명백히 브루크너와 바그너를 분리하기 위한 그의 노력에서 주요 흐름을 거스르기는 했지만, 그의 노력은 그가 바이로이트 음악축제가, 오페라가 연주되지 않는 날,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연주함으로써 브루크너 음악축제와 잘 통합될 것이라고 말한 바로 그 보고서에 의해 똑같은 이유로 평가절하되었다.
괴벨스는 레겐스부르크 연설에서 기회를 보고 있었다. 즉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행사의 공동 후원자인 협회를 모욕하고 싶지도, 두 작곡가를 연결하려는 널리 보급된 국가 사회주의 문화 관점을 훼손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두 번 그의 연설에서 바그너를 암시하였다. 초기에 그의 연설에서 그는 브루크너의 음악을 '바그너 예술의 교향악적 왜곡'이라고 본 사람들을 비판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브루크너의 '오르가니스트-교향곡 작곡가 패러다임'의 지지자인 아우어는 괴벨스가 다음과 같이 언급했을 때, 그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브루크너의 바그너에 대한 경험은 그의 음악적 언어의 공명에서 거의 혁명에 가까운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만이 그것을 우리가 진정한 브루크너의 스타일로서 인식할 수 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앞으로, 그 교회 음악가는 동시에 거의 완전하게 후퇴하여, 그로부터 나와 특유한 교향곡 작곡가가 된다." '''
괴벨스가 언급한 것은, 바그너에 의해 자극된 변형(metamorphosis)이다, 즉 교회음악가로부터 교향곡 작곡가로의. 더욱 고고한 세속적 영역에로의 브루크너 격상의 이미지는 괴벨스의 1936년 이후의 국내 선전 캠페인의 필수적이었다.
=== 브루크너의 음악과 국가 사회주의자들의 '미학' ===
히틀러의 개인적 관심과 바그너와의 관련성 외에, 나치에게 있어서 브루크너 음악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음악에서 '독일적인 것'에 대한 탐구는 제3제국 동안 음악 비평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문제였다. 그것은 독일 문화에서 중요한 역사와 관련된, 인종적인 숨겨진 맥락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그리고 19세기 중반에 있었던 반 멘델스존 캠페인과 그 세기 후반에 있었던 브람스-브루크너 논쟁 등에 관한 탐구였다. 그러한 이슈는 제1차대전이 끝난 후에 조금은 다른 형태로 다시 표면화되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는 국가의 상처받은 자존심이 학자들과 언론가들 사이에서 문화적 동질성을 위한 탐구를 촉진하던 때였다. 이러한 탐구 중 초기 1차 대전 후의 내셔널리즘의 몇 가지 예는 가볍고, 별로 심사숙고한 듯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지만, 그것의 대부분은 1930년에 이르러서는 매우 강력하게 이데올로기화되고, 공개적으로 인종차별적으로 되었다. 그때까지 얻은 결론은 매우 간단했다. 즉 아리안의 음악은 영웅적이고, 고상하고, 체계적이고, 숭고하며, 철학적이고, 그리고 영적이다. 반면, 비아리안의 음악은 매우 시시하고, 피상적이고, 열등하고(특히 유태적인 특성이 있다고 여겨짐), 내용 없이 장식적이며, 절충주의적이고, 그리고 뿌리 없는 것이었다.
'''프리드리히 W. 헤르조그'''는 게르만 패러다임에 적합한 특별한 예를 제시하였다. 바흐의 평균율, 푸가의 기법, 베토벤의 합창교향곡과 레오노레 서곡 3번,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그리고 브루크너의 5번과 9번 교향곡 등이 그것이다. 그는 특별히 브루크너 교향곡 중에서 5번의 푸가적인 피날레와 9번 교향곡의 아다지오 악장을 예로 들었다. 헤르조그의 글은 특히 푸가를 강조하였는데, 그것은 귀족적인 독일의 역사가 있었으나, 1차 대전 후, 그것의 '영웅적인 성격'을 상실하게 되었다. 푸가와 코랄, 즉 성스러운 독일 예술의 두 개의 축은 '황금의 20세기' 동안 타락됐던 것이다. 그것들은 예를 들어 쿠르크 바일의 작품, 'Die Dreigroschenoper' 등에서 심지어 희화화되어 왔다. 바이마르 시대의 비관주의, 냉소주의 등의 인지된 배경에 반대하여, 즉 도시의 문화적 가치가 시골의 그것에 비해 널리 유포되고, 그리고 실내 교향곡이 새로운 교향악적 패러다임으로 된 그곳에서 브루크너의 음악은 분명히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나타났음에 틀림이 없다. 북오스트리아의 교사였던 브루크너는 질풍노도의 이상적인 상징으로서 대접받았고, 푸가와 코랄은 그의 음악적 표현에서 핵심이었으며, 그의 서사적인 교향악적 설계는 그 규모에 있어서 심지어 그 당대에도 전무후무한 것으로 여겨졌다. 국가 사회주의자들에게 호소하였던 것은 바로 장엄함과 화려함, 그리고 영적인 면을 지닌 바로 이러한 그의 음악이 지닌 기념비적인 규모였다. 히틀러 자신은 브루크너 교향곡의 피날레를 감상하였고, 특별히 그는 1937년 뉘른베르크에서의 당 행사에 이 음악을 엔딩 음악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브루크너만이 19세기에 깊고, 중후한, 그리고 대규모 관현악단을 위한 음악을 작곡하고, 푸가를 작곡했었는가? 브람스도 역시 그의 4번 교향곡의 피날레에서 장엄하고, 중후한 푸가를 사용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브람스는 나치의 모델에 어울리기에는 너무나 연관이 없는 부르주아 빈 음악계의 주류에 속해 있었다. 그는 질풍노도의 이미지에 맞기에는 너무나도 인텔리적이었고, 도시적이었다. 그럼 대규모 관현악곡을 즐기던 그 당시 생존했던 위대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같은 작곡가는 나치의 선전에 어울렸을까? 잘 알려진, 불편했던 1930년대 중반의 슈트라우스와 나치의 관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살아 있는 작곡가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을 예증시켜주었다. 그들은 너무도 독립적이었고, 이기주의적이었고, 너무도 믿을 수 없었다. 심지어 내셔널리스트였던 한스 피프츠너 역시 신뢰할 수 없는, 궁극적으로는 제3제국의 정치적 목적에 비우호적이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 오직 죽은 작곡가만이 나치의 문화부 선전 목적에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었으며, 바로 브루크너가 이상적이었다.
그에 관한 많은 일화, 편지, 그리고 출판된 많은 인쇄물에도, 브루크너는 항상 음악 뒤의 인간에 대해서는 그의 일대기를 숨길 수 있었기 때문에 이상적이었다. 리하르트 타루스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는 아마도 공허함을 싫어하며, 역사적 대중작가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
브루크너의 대중작가는 아마도 괴벨스였고, 그의 레겐스부르크에서의 17분간의 연설은 이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를 재창조하는 캠페인에서의 정초를 제공하였다.
=== 괴벨스의 레겐스부르크 연설 ===
히틀러 자신은 이날 아침, 의식에서 연설하지 않기로 했다. 브루크너를 재창조하는 임무는 선전 담당 장관인, 괴벨스에게 맡겨졌는데, 그는 매우 탁월하게 간결하고, 효율적인 연설로 그 임무를 훌륭히 완수하였다. 연설은 3개 부분으로 되어 있었는데, 첫 번째 부분은 브루크너의 시골 출신으로서의 뿌리를 낭만적으로 언급하였고, 두 번째는 그에 대한 음악 비평가들의 비난에는 그가 희생양이었음을 강조하였으며, 마지막으로는 브루크너를 그의 천재성과 영적인 면이 '교회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그 자신을 자유롭게' 한 작곡가로서 규정하였다. 이 마지막 부분은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1936년의 나치와 바티칸 간의 관계의 붕괴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 시골 심포니스트 ====
괴벨스는 그가 언급하는 이 작곡가의 감상적인 초상화 속에서 다양한 상투 어구를 나열한다.
그는 그의 지적인 호기심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어린아이 같음이 여전히 남아 있던 겸손한 사람이었으며, 그는 작곡가로서, 그의 '초라한 사무실'에도 불구하고, 그의 '독일 음악의 창조성'의 위력을 통해 성공하고, 유명하게 된 사람이었다. 괴벨스는 또한 브루크너의 촌부로서의 일대기를 강조하고, 그의 대지와의 연관성, 그의 '자연과의 신비로운 친화성', 그리고 그의 손상되지 않은 촌부로서의, 즉 히틀러와 나누어 가진 그러한 뿌리를 강조하였다. 따라서 이 시골 천재의 역설은 오직 혈통과 인종의 요소적인 힘을 이해함으로써 설명될 수 있다. 그가 시골 출신이라는 것 외에도, 브루크너의 '검소한 사무실'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괴벨스에 의해 강조된 부분인 그의 교사로서의 그의 작품이었다.
히틀러는 그것을 인지하였고, 제3제국의 천년왕국을 성공하게 하기 위해서는, 나치의 교화 정책의 선봉은 교육되어야만 생각했던 것이다. 나치주의에 동조하는 교사들은 그들이 상승한 책임의 위치에 있음을 발견하였으나, 그들의 임무는 바이마르 시대 동안 지속하여오던 그것과는 너무도 관련이 없었다. 지적인 발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나치의 교육자들은 아리안의 인종적 교화를 포함하는 개인의 인격을 형성해야만 했다. 교육 잡지들은 인종적·정치적 도그마를 강화하는데 봉사하였다. 실제로, 'Der Deutsche Erzieher'(독일 교육가)의 전체적인 이슈는 브루크너에게 바쳐졌다. 그 속에는 레겐스부르크에서의 브루크너 축제 후에 얼마 되지 않아 출판된 논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에세이의 대부분은 똑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즉 그것은 브루크너를 슈베르트와 막스 레거의 좋은 동료로 인식되게 하는 직업인 그 자신의 교사와 교사의 아들로서의 브루크너를 강조하였던 것이다. 교육가로서, 브루크너는 인종적으로 순수하였고, 북 오스트리아 토양과 그의 관계는 세대에까지 미쳤다.
==== 브루크너, 유대인 비평의 희생양 ====
사악한 빈 비평의 희생양으로서의 브루크너를 강조한 괴벨스의 연설의 두번째 부분은, 더욱 광범위한 문화적 목적을 충족하였다. 한슬리크와 그 일파들에 대한 맹렬한 비난은 괴벨스로 하여금 최근에 형성된 이데올로기적인 교의, 즉 음악 비평의 견딜 수 없음(또는 더욱 일반적으로는 예술비평)에 대해 선언하도록 하였다. 1936년의 가을에, 괴벨스는 음악, 예술, 그리고 영화 등의 저널에 널리 유포된 신조인 '예술 비평(Kunstkritik)'에 반대하는 공적인 선언을 하게 이른다.
예술 비평은 이데올로기적인 배경을 따를 때에만 적절하며, 그렇지 않으면 '예술에 대한 주석과 설명'만이 저널리즘에서 허용될 수 있는 형태라는 것이었다. 괴벨스는 브루크너를 이러한 새로운 신조의 형성과 관련하여 인정한다.
'''"만약 예술에 대한 주석과 설명의 공개적인 실천이 '새로운' 독일 안에서의 공식적인 채널에만 의해서만 가능하도록 법으로 제한됐다면, 우리는 또한 그를 괴롭히는 비평가들에 의해 죽을 때까지 고통받았던, 고독 속에서 투쟁했던 브루크너의 은혜를 갚았다고 믿는다."'''
이러한 반유대주의적인 언급은, 그것이 오늘날에는 거의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의 청중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한 언급은 유대인을 비생산적이고, 심지어는 기생한다고 비난하는 나치 이데올로기와 완전히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었다. [[에두아르트 한슬리크]]와 [[막스 칼벡]]은 작곡할 수 없었고, 그들은 작곡을 했던 창조적이고, 정직한 예술가들에 대해서 쓰거나 어쩌면 파괴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만약 괴벨스의 연설이 브루크너, 비평과 국제적인 반유대주의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매우 모호하다고 할지라도 '''프리츠 스코르체니'''의 아래와 같은 언급은 그러한 모호성을 완전히 제거시키고 있다.
'''"브루크너가 그의 예술가로 사는 생활을 시작했을 때, 국제적인 반유대주의 유럽 자유주의란 탈을 쓴, 이미 독일의 정신적인 것에 대해서 투쟁을 착수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특히 예술에서 자극적이고, 선동적이었다." '''
이러한 왜곡된 유대인에 대한 인식, 즉 한몫 보려 돌아다니는 떠돌이로서의 유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은 괴벨스에 의해 개인적으로 만들어진 프로젝트인 'Der ewige Jude'라는 선전용 영화 속에서 그 후 가장 첨예하게 나타났다. 이 영화는 공장 속에서 분투하는 건강한 아리안의 노동자의 솜씨 있는 장면을 조심스럽게 의심할 것도 없이 열심히 일하는 아리안에 의해 만들어진 상품을 놓고 승강이를 벌이는 게토의 천박하고 수염을 기른 유대인과 나란히 비교하고 있었다
=== 브루크너와 신앙 ===
그러나 괴벨스는 브루크너 수정주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마지막 연설을 위해 남겨 두었다. 그것은 브루크너가 바그너와 알게 된 후, 교회 음악가로서의 역할로부터 후퇴하고, 바그너의 영향으로부터 빠져나온 후에 어떻게 독보적인 교향곡 작곡가가 되었는지에 대한 교묘한 전기 서술이었다. 바그너의 세계와 관련을 맺은 후에 브루크너는, 예배식에 대한 의무적인 위치를 넘어서, 교향악에서의 절대적인 지위로 상승하였다.
'''"여기서 그의 천재성은 교회에 속박된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는 형식을 만든다는 의기양양한 도취감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자유에 대한 한없는 열망이 그의 영혼 내부에서 울부짖었다."'''
물론 테데움과 시편 150편과 같은 후반부의 성스런 작품들은 무시되었는데, 이는 게르만 음악 학자들과 비평가들 모두가 결코 시도한 적이 없는 실수였다. 브루크너가 로마 가톨릭에 헌신했다는 사실이나 심지어는 그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었다는 사실조차 레겐스부르크의 연설에서는 완전히 생략되었다. 그의 종교적 신념은 간단히 "신에 대한 믿음"(Gottglaubig)이라고 묘사되었는데, 이는 나치의 빈틈없는 비기독교적 사상을 담은 정치적인 작품이나 다름없었다. 신앙심(Gottglaubigkeit)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1933년부터 36년까지 교회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에 간략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36년에는 단지 브루크너의 기념일을 정하고 예술 비평 금지령을 내렸을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중대한 사안을 담고 있었던 1936년 7월의 회칙과, 그로부터 겨우 4개월 후에 공식적이면서 대안적인 종교 고백으로서의 'Gottglaubig'의 성립으로 더욱 증폭된 국가 사회주의자들과 로마 가톨릭 간의 관계가 심각하게 냉각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치와 교회의 관계는 히틀러의 공적으로 문제를 피하려고 한 히틀러 개인의 욕망으로 더욱 복잡하고 거대한 주제가 되었다. 심지어는 '나의 투쟁'(Mein Kampf)은 이 이슈를 더욱 피해 갔다. 그러나 히틀러의 반 교권적인 신념은 내부에서는 전혀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었고, 종교의 문제는 총통과의 협상 과정에서 다시금 문제화된 것이었다. '''헤르만 라우스칭(Hermann Rausching)'''은 히틀러가 '''"게르만의 기독교는 하나의 왜곡이며, 게르만인이 되거나 아니면 기독교인이어야 한다. 둘 다 될 수는 없다. 우리는 그저 마음속에서 신을 믿고 느끼는 자유로운 인간들을 필요로 한다."'''고 개인적으로 언급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언급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불확실한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은 무익할 뿐 아니라, 나약함의 표시라는 점이라는 것이었다. 조직화한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이러한 적개심은 고대 그리스가 현대 독일의 중요한 모델이라는 관점과 19세기 중반부터 후반에 이르기까지 나타난, 특히 니체와 바그너를 포함하는 독일 예술가와 지식인들에 의해 지지가 된 확신이었다.
히틀러는 조직화된 종교에 대해 초기에는 유화정책을 사용하였고, 그는 황제의 퇴위 직후에, 정치적 방향이 없었던 개신교도들에 관해서는 일찍이 성공적이었다. 이 독일 개신교도들에게 있어 반유대주의는 그다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유대주의는 그다지 크게 가톨릭 교회를 방해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공식적인 관계에 심각한 방해물은 나치의 소문에 들리는 '공산주의적' 성격이었다. 게다가 바티칸은 볼셰비즘을 히틀러의 1933년 전체주의의 원형이 되었던 그들의 무솔리니와의 1929년의 라테란 협정으로 예시된 것과 같은 전체주의보다 더욱 중대한 국제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독일의 11월 혁명 이후에 교황청은 바이마르 공화국과의 공식적인 협정 조인을 막으려고 노력했으나, 그들은 히틀러를 이길 수 없었다. 1933년의 이 국가적 협정은 로마에 대한 많은 문제를 다음과 같이 명확히 하였다. 교회에 대한 재정적 지원, 성직자의 법적 지위 보장, 그리고 가톨릭교회의 일이나 바티칸에 대한 직접 연관 등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나치의 서약, 그러나 높은 세금이 부과될 예정이었다. 왜냐하면, 교회는 모든 수준에서 국가 정치의 하나로서 남아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곧 나치가 가톨릭의 일에 대해 방관하지 않을 것임이 명백해졌다. 그들은 비공식적인 협박을 위한 능숙한 전략을 세웠고 그것에 의해 설교는 감시받고, 신부들은 괴롭힘을 당했으며, 물론 가톨릭교회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선전활동도 나치의 청소년 조직을 통해 이루어졌다.
1936년까지 독일과 바티칸 사이의 관계는 점차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 정점은, 젊은이들에게 반유대주의와 반기독교주의를 정치적으로 주입하고 시민의 자유를 침범했을 뿐 아니라 총통(Fuehrer)을 신격화한 나치를 비난하는 교황의 회칙(Mit brenner Sorge)이었다. 국가 사회주의자들은 즉각적으로 교회에 대한 정책, 특별히 바티칸에 대한 정책이 실패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치즘을 하나의 종교 그 자체로 인식하고, Gottglaubig를 공식적인 용어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용어는'''"게르만의 본성에 맞는 종족적이고 적절한 신앙"'''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이교도적인 것도 아닌 이러한 비기독교적인 지향은 교회를 떠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이 여전히 종교적이라고 믿게끔 하였으나, 그것은 또한 그들의 신앙을 버린 유대인들이 독일인에게 포함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증해 주는 것이었다. 한 개인의 교회 밖에서의 영적인 본성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은 물질적이고 무신론적인 볼셰비즘에 대한 반대가 나치 교의의 불변적인 요소라는 점에서 필수적이었다.
요컨대 제3제국은 그들이 믿는 모든 것, 즉 국가 사회주의자들의 '혁명'은 정치적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정신적이라는 그 무언가를 공식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독일 예술은 점차 성스런 예술이 되어 갔으며, 음악은 나치의 가장 성스런 현시였다. 성스런 예술로서의 음악에 대한 관점이 나치가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19세기 후반 독일 전반에 퍼져 있었던 의식이었고, 작곡가들과 철학가들에 의해서 동시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바이마르 시대의 일각에서는 이러한 철학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성스런 예술로서의 음악은 1903년대에 불안한 정치적 소용돌이와 함께 곧 소생되었다. 1937년 레겐스부르크 기념식은 브루크너를 성 발할라(Valhalla) 사원의 하나의 신으로 지정했다. 그의 음악은 성스런 언어와 나치즘의 신화적 종교가 될 것이었다. 일요일 아침의 브루크너 기념식과 3제국의 새로운 종교 전략 간의 연결은 바로 그날 오후 군중의 대집회를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레겐스부르크에 모인 약 200,000명의 사람에게 하는 연설을 통해서 히틀러는 처음으로 깊은 믿음(Gottglaubigkeit)이라는 용어를 공식 사용했다.
'''"나는 결코 그 누구도 이 민족을 다시 흩어지게 하거나 종교적 견해차로 인한 싸움으로 우리를 어렵게 만들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앞으로 대대로 우리 역사 속에서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치는 늘 우리 마음속에 각인되어, 우리로 하여금 우리 민족과 영광, 자유, 우리의 공동체를 위한 의무를 실천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에 대한 깊은 믿음(Gottglaubigkeit)을 가지고 미래로 정진해 갈 것입니다. 신이 우리를 돕지 않았다면, 우리가 지금껏 이룬 모든 것들이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독실한 브루크너는 그 '신성한 신'의 메신저가 될 것이었다. 그의 교향곡, 특히 슈베르트의 "천상의 범위(Heavenly Length)"를 능가하는 영혼적인 느릿한 진행은 하나의 종교적인 체험으로 간주할 만했고, 혈연과 지연을 나눈 이들만이 완전히 그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1940년대 초반, 빈의 음악축제(Dunkelkonzerte)에서 가장 잘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은 어두운 빈의 콘서트하우스가 교회에 참석하는 것과 같은 효력을 지닌, 브루크너의 음악을 듣는 성스런 곳으로 바뀌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다른 작곡가들도 그런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이라이트는 언제나 브루크너의 교향곡이었다. 그러한 한 프로그램 안내서의 사본은 이러한 강력한 종교적인 의미를 잘 보여준다. 중간휴식 전에는 모차르트의 레지나 챌리가, 직후에는 브루크너가 유일하게 신 자체에 헌정했던 제9번 교향곡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작곡가는 국가 사회주의자들이 그를 '신의 메신저'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독교로부터 분리되어야만 했었을 것이다. 교회 음악가로서의 브루크너는 완전히 무시되었던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레겐스부르크에서의 기념식과 동시에, 1937년의 한 기사의 작성자는 브루크너의 가톨릭 주의에 대해 비난을 하려고 시도했다. 피터 라베(Peter Raabe)는 물질세계에 대한 브루크너의 "초연함(deafness)"을 강조했다. '''"신성함은 마음의 순수함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선언하면서 그는 '''"왜냐하면 그들은 신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라베는 '''"신과 대화하는"''' 교향곡 작곡자를 묘사하면서, 그러나 그가 중요하지도 않은 교회 음악을 쓰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모순은 신앙심(Gottglaubigkeit)의 맥락 이외에서 인식되지 않을 수 없다.
베르너 코르테(Werner Korte)는 한슬르크(Hanslick)의 맹렬한 비난에 대한 근거로 브루크너의 가톨릭적인 뿌리를 인용했으나, 브루크너를 '''"가톨릭 정신의 순교자"'''로 보거나 그의 음악을 "기독교를 위한 사죄 행위"로서 인식하는 데에는 반대를 했다. ''' 라인홀드 짐머만(Reinhold Zimmermann)'''은 실질적인 문제에 접근했는데, 즉 "가톨릭적인 것"과 "아리안"적인 것은 모순된 개념이라는 것이었다. "브루크너를 완전히, 심지어는 원천적으로 가톨릭적이라고 보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그의 인성과 업적을 평가하는 데 있어 의심할 바 없이 지배적인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은 바로 그의 작품이나 인생의 인종 지향적인 인식이다." 짐머만의 생각은 모든 사람은 게르만인이던가, 아니면 기독교인이라는, 히틀러가 헤르만 라우스칭(Hermann Rausching)에게 보내는 지극히 개인적인 논평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괴벨스의 레겐스부르크 연설은 장엄하고 의식적인 그 순간을 오스트리아 합병의 필연성과 연관시키면서 축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온 대로, 그의 전략은 이를 하나의 교조적인 선전 도구로 이용하려는 보다 광범위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었다. 1940년대의 성 플로리안에 대한 잘 짜인 히틀러의 계획은 좀 더 나아가 전쟁을 통해 어떻게 브루크너를 나치의 문화적 우상으로 남길 것인지를 묘사하고 있다. 비록 브루크너의 그러한 상승이 결코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린츠 제국 브루크너 오케스트라 (Linzer Reichs Bruckner Orchestra)와 브루크너 합창단은 1942년 독일 라디오와 인연을 맺었고 일반 공연과 방송을 통해 1945년 봄까지 공연을 계속했다.
=== 전후 시기 ===
브루크너 교향곡(음악)에 대한 나치의 전용은 전후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아니면 이것은 어떻게 남용된 것일까? 혹자는 아마도 특히 원작이 없거나 덜 실용적인 음악이 시대를 불문하고 그러한 남용에 저항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그저 자전적인 수정주의의 복잡한 그물 속의 한 가닥 줄이었고, 그 안에서 브루크너의 인생은 급진적인 정책들을 지지하고, 'Kunskritik에 대한 공격을 유효하게 만들었으며, 또한 정치적 신화를 위해 종교적 우상을 만드는데 다시 쓰였다. 동시대의 독일 관객들이 나치의 선전을 믿었든 안 믿었든 간에, 또 그들이 아다지오에선 신과 소통하고 푸가의 피날레에서는 튜턴족(게르만)의 영웅주의를 느끼게 하는 전원적인 스케르초에서 그들 공동의 나라(영토)를 느꼈던 안 느꼈는지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또 다른 중요하고 복잡한 문제이다. 경우가 어떠하든 간에 나치의 브루크너 캠페인에 대한 전후의 즉각적인 국내의 영향은 오래가지 않은 것 같았다. 린츠 브루크너 오케스트라는 연합국 지배하에 있던 1945년 5월에 필하모닉 브로드캐스팅 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그것의 브루크너에 대한 지향은 겨우 한 달 후 눈 깜짝할 새에 그 이름을 브루크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바꾸게 했다. 틀림없이 이 작고 단독적인 사건은 전후 브루크너의 평판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 '''바그너와 달리 브루크너는 일반적으로 직접적인 나치와의 과거 문제 때문에 큰 오명을 얻지는 않았다. 그의 작품은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별다른 외부 저항없이 레퍼토리로 이용되었고, 이스라엘에서도 그의 음악은 보이콧되지 않았다.'''
그러나 추축국 외에서의 브루크너에 대한 대접은 그다지 단순하지 않았다.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특히 독일에 점령당했던 유럽지역에서 특히 1940년에서 50년대에는 브루크너의 음악이 필연적으로 독일 점령을 상기시킬 만하였다. 전후 미국에서는 브루크너의 음악이 울려 퍼질 수 없었다. 그의 음악은 나치의 문화적 캠페인에 대해서도 역시 모르고 있던 대부분의 콘서트 관객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사실 40년대 후반에는 미국에서 브루크너 르네상스의 일말의 징조가 보이는 듯도 하였다. 그것은 1948년에 미국 브루크너 협회가 협회지 코드 앤 디스타드(Chord and Dischord)를 재발간했을 때를 전후해서였다. 그 회지는 발간 공백에도 불구하고 1969년까지 잘 운영되었으며, 그 때에는 더는 브루크너의 공연이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오이겐 요훔(Eugen Jochum)과 후에는 베르나르트 하이팅크(Bernard Haitink),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클라우스 텐슈테트(Klaus Tennstedt), 그리고 기타 여러 음악가가 브루크너 교향곡을 음반화하는데 열정을 보였다. 좀 더 최근에는 CD의 발달과 함께, 그런 작업은 그의 제2번, 제3번, 제4번, 제8번 교향곡의 원본 버전과 같은 진품들도 만들어 냈다.
브루크너에 관한 기사들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잡지에서도 계속 나타났다. 물론 나치의 캠페인이 벌어지던 시기의 규모와는 비교가 안 되었다. 전후의 학문은 더욱 실증적인 논조를 띠었다. 인종과 민족에 관한 연구는 사설이나 분석적인 문제들에서나 볼 수 있었다. 독일 학자들은 열렬한 게르만 민족주의자도, 반유대주의자도 아니었다고 판명된 브루크너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또한, 그 잡지들과 편집장들은 나치 지배 동안 바로 그들 잡지에 게재된, 인종과 종교와 브루크너에 관련된 왜곡들에 대해서 억지로 부인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도 않았다. 국가 사회주의자들의 문제는 대부분 언급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과거의 회상보다는 재건이 중요하다는 노판트(Nullpunkt) 정책의 영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침묵은 전후를 넘는 기간까지 확장되었는데, 레오폴트 노바크(Leopold Nowak)의 브루크너 전기인 뉴 그로브(New Grove)는 그 좋은 예가 된다. 나치의 그 엄청난 이데올로기적이고 선동적인 기사들은 노바크의 참고 자료에서 제외되었다. 그러한 그가 이용한 얼마 되지 않는 나치의 케케묵은 저작들은 대부분 그 어떤 정치적인 내용도 담고 있지 않은 것이었다.
2차대전 종전 이듬해는 브루크너 사망 50주기가 되는 해였고, 린츠에서는 국제 브루크너 협회의 기념행사가 있었다. 1946년 7월 27일에는 명망 있는 협회의 의장이었던 막스 아우어(Max Auer)가 지난 12년간의 침묵에 대해서 주목할 만한 연설을 했다. 그의 연설은 다음과 같은 문구로 시작했다.
'''"우리는 안톤 브루크너 사망 50주기에 그를 기리기 위해 이곳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는 그의 삶과 새로운 부활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선언 아래에서 뭉칠 것입니다. 왕은 죽었지만, 그 왕은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The king is dead, long live the king). 브루크너는 왕입니다. 절대 음악의 왕입니다." '''
비록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히틀러와 바그너의 환영(幻影)은 아우어의 말들에 나타났다. 표면적으로 아우어는 브루크너의 죽음을 기리고 있었으며, 다시 브루크너를 연구하고 대접하는 새로운 시대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유령들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의 왕이 죽고, 즉 총통의 죽음에 잇따라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브루크너는 나치 선동의 잿더미로부터 부활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절대음악의 왕"은 리하르트 바그너와의 음악적, 정치적 연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었다.
아우어의 숨겨진 또 다른 언급은 1937년, 그가 총통에게 브루크너 메달을 수여했던 그 해에 있었다. 그 언급은 겨우 1년 전에 그가 발표한 내용을 다시 되풀이했던 것일까? 그 때 괼러리히-아우어(Gollerich-Auer) 자서전의 최종판의 서문에서 그는 바이마르 시대의 물질주의(즉물주의)에 대한 공격을 서서히 감행하기 시작했다. 그 때는 바로 "예술적인 볼셰비즘이 극단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던" 때였고, 브루크너의 "신을 신성시하는 예술"은 (총통을) 보다 나은 세상 1936년의 세계로 이끄는데 이바지했다. 10년 뒤에 아우어의 린츠 연설은 브루크너의 오스트리아 혈통과, 그의 국제적인 영향력과 나치 교리를 분명히 부인하는 그의 주장 모두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연설이 성공적으로 아우어 자신의 이전 발언들을 상쇄시켰던 것일까? 그가 과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도 모호하게 새로운 시대를 선언하기에 충분했던 것일까? 분명히 그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브루크너 협회를 재건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 더 많은 공연을 위해 또 더 많은 관객층의 확보를 위해서 누가 과거의 상처들을 다시 꺼내고 싶어했겠는가?
브루크너와 독일의 정치적 상황은 결코 전쟁 이전이나 전쟁 중이나, 혹은 전후에도 코드 앤 디스타드지에 언급된 적이 없다는 데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물론 미국에서 브루크너는 미국 내의 정치적 쟁점이 되지 않았다. 그는 국가 사회주의자로서의 활동 때문이 아니라 그의 작곡 스타일이 그 당시 미국 학계에 만연되어 있던 논리나 균형, 규모를 중시하는 브람스적인 패러다임에서는 낯선 것이었기 때문에 주류에서 벗어났다. 그의 음악은 오히려 최근에 콘서트의 레퍼토리나 음반 목록으로 더 잘 알려졌다. 그러나 브루크너라는 사람과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미국의 음악적 담론의 바깥에 자리하고 있다. 사실 현재의 브루크너 작품집은 그저 그러한 경향에 약간의 동요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리고 비록 사설적,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분석적 문제와 같은 중요한 이슈들이 여기서 처음으로 혹은 새로운 관점으로 논의되었다 할지라도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브루크너에 대한 이미지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얼마나 나치의 선전에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연구해야 할 많은 것들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전후 브루크너에 대한 중요한 해석(느린 템포들이나 풍부한 하모니를 그 예로 들 수 있다)이 나치의 종교적 우상으로서의 브루크너의 성향을 무의식적으로 현대의 교향곡 무대나 녹음 스튜디오에 옮겨다 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오늘날 "솔직함", "순수성", "유기체" 등과 같은 말들이 나치 시대의 브루크너에 대한 담론들과 함께 명백하게 정치적으로 기호화되었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브루크너를 분석하고 수정할 수 있을까? 분명히 그러한 질문들은 이 에세이가 다룬 영역 외에서도 광범위하게 논의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질문들은 궁극적으로는 해명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브루크너 연구는 과거 사실에 대한, 특히 제3제국 시대 동안의 브루크너에 대한 어두운 평가를 외면한 채로는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 참고 ==
* [https://www.abruckner.com/ 아주 자세한 브루크너 교향곡 녹음 목록]
== 외부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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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렬:브루크너, 안톤}}
[[분류:안톤 브루크너| ]]
[[분류:1824년 출생]]
[[분류:1896년 사망]]
[[분류:오스트리아의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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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llang|de|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는 독일의 [[철학자]]<ref>"내가 문헌학자였던 것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아마 나는 여전히 문헌학자다. 즉 천천히 읽을 것을 가르치는 교사 말이다."《아침놀》, 서문 5번글.</ref>이자 [[작가]]이다. 서구의 전통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고자 했기 때문에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이 있다. 그는 [[기독교|그리스도교]] 도덕과 [[합리론|합리주의]]의 기원을 밝히려는 작업에 매진하였고, 이성적인 것들은 실제로는 비이성과 광기로부터 기원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안티크리스트에서 유대인들이 그들의 망상으로 도덕이나 종교, 문화, 역사 등을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왜곡했다고 말했다. 이는 유대인 혐오의 근거가 되기도 했는데, 니체에 의하면 유대인은 세계의 외면은 물론 내면도 포함해 모든 것을 사기날조로 전복하는 운명적 민족이자 노예 혹은 약자로서 중요성이 있으며 귀족 같은 정신을 가진 고귀한 자들의 진정한 적이다. 그러나 니체는 강자의 입장을 찬양하면서도 때때로 약자의 도덕 등을 칭송하기도 해서 모순도 있다. [[관념론]]과 [[기독교]]는, 세계를 두 개로 구분짓는다. 이를테면 기독교는 이승 이외에도 [[천국|하늘나라]]가 있다고 가르친다. 또한 [[플라톤]]은 세계를 현상계와 [[이데아|이데아계]]로 이분한다. 니체는 이러한 구분에 반대하며 '대지에서의 삶을 사랑할 것'을 주창하였다. 또한 현실에서의 삶을 비방하는 자들을 가리켜 퇴락한 인간<ref>데카당. 대표적으로 소크라테스, 기독교, 불교 등.</ref>이라 부르며 비판하였다. 이렇듯, '영원한 세계'나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니체는 관념론적 [[형이상학]]에 반대한다. 니체는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의 가르침과 달리,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멸망적 교리만을 전했다며 기독교를 비판했다<ref>《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 김진석, 2009, 개마고원</ref>
니체는 [[전체주의]], 국수주의, [[국가주의]], [[반유대주의]] 등을 비판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이 [[파시스트]]들에게 왜곡되기도 했다. 진리의 가치를 묻는 그의 질문은 해석상의 문제를 제기했다.
== 생애 ==
=== 출생과 학업 (1844 – 1868) ===
[[파일:Nietzsche1861.jpg|섬네일|150px|니체 1861년 모습|오른쪽]]
==== 출생 ====
니체는 [[1844년]] [[10월 15일]] 예전 [[프로이센]]([[독일]]) [[작센]] 지방 작은 마을인 뢰켄(Röcken)에서 [[루터교]] [[목사]] 아들로 태어났다. 그 이름은 프러시아 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에게서 가져왔으며, 빌헬름 4세는 니체가 태어나던 날 49세를 넘었었다(니체는 훗날 그 이름에서 가운데에 있던 "빌헬름"을 빼 버렸다.<ref>
Kaufmann, Walter, Nietzsche: Philosopher, Psychologist, Antichrist, p.22.</ref>) 니체 아버지인 카를 빌헬름 루트비히 니체(1813-1849)는 루터교회 목사이자 전직 교사였고, 프란치스카 욀러(1826~1897)와 [[1843년]]에 결혼하였다. 그 여동생인 엘리자베스 니체는 [[1846년]]에 태어났고, 뒤를 이어 남동생인 루드비히 요셉이 [[1848년]]에 태어났다. 니체 아버지는 뇌 질환으로 [[1849년]]에 세상을 떠났다. 어린 남동생은 [[1850년]]에 죽었다. 그 후 가족은 나움부르크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서 니체 할머니와 어머니 프란치스카, 아버지의 결혼하지 않은 두 자매, 두 하녀와 함께 살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니체 할머니가 [[1856년]]에 세상을 하직하자, 가족은 그들 집으로 이사했다.
==== 학교 ====
[[1851년]] 니체는 소년학교에 출석했고 그 다음에는 그가 구스타브 크루크와 빌헬름 핀터와 친구가 되었던 곳인 사립학교에 다녔다. 두 친구는 모두 명망있는 가문 출신이었다. [[1854년]] 그는 나움부르크에 있는 돔 [[김나지움]]에 다니기 시작했으나, 그의 특출한 재능은 [[음악]]과 [[언어]]에서 발휘되기 시작했다. 그 후 국제적으로 유명한 슐포르타에 동료들처럼 입학했으며, 그곳에서 그는 그의 학업을 [[1858년]]부터 [[1864년]]까지 계속했다. 그는 파울 도이쎈, 칼 폰 게르도르프와 친구가 되었다. 또한 그는 시를 짓고 음악을 작곡하는 데 시간을 들였다. 슐포르타에서 니체는 특히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로마에]] 대해 배웠다. 그 동안에 그는 살면서 처음으로, 조그만 시골 마을의 기독교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가족의 삶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었다.
[[1864년]] 졸업을 한 후에 니체는 [[신학]]과 고대 철학을 본 대학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 동안, 그는 도이쎈과 함께 대학생 학우회(Burschenschaft Frankonia)의 구성원이 되었다. 한 학기 후에 어머니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학]] 공부를 중단했고, 신앙도 상실하였다.<ref>
a b Schaberg, William, ''The Nietzsche Can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6, p.32.</ref> 그것은 아마도 1835~1836년에 [[다비드 슈트라우스]]가 쓴 《예수의 생애》(''Das Leben Jesus'')란 책에서 그가 담당한 부분을 읽어나가던 중에, 책의 내용이 젊은 니체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ref>
a b Schaberg, William, ''The Nietzsche Can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6, p.32. 다비드 슈트라우스는 [[신학자]]이자 [[철학자]]로서 헤겔의 제자이었다. 그는 《예수의 생애》라는 책에서 예수 전승이 신화적으로 변형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 당시 슈트라우스의 책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지탄을 받았으며, 출간 이후 슈트라우스는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생을 마감해야 했다. [[게르트 타이쎈]], 아테네 메르츠, 《역사적 예수》, 손성현 옮김, 다산글방, 2001, 32쪽 참고: 《[[역사적 예수]]》- 옛 연구.</ref>
==== 철학공부와 군복무 ====
[[1865년]]에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글들을 알게 되었고, 그는 [[1866년]] 프리드리히 알베르트 랑게의 책, 《유물론의 역사와 그 현재적 의미에 대한 비판》(''Geschichte des Materialismus und Kritik seiner Bedeutung in der Gegenwart'')을 읽었다. 그는 두 사람의 저서 모두와 자극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의 저서는 니체가 그의 지평을, 철학을 넘어서는 영역까지 확장하도록 격려했으며, 그의 학업을 지속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1867년]] 니체는 군에 자원하여, [[1867년]] 10월 군에 입대하였다. 그는 철학과 군복무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도중, 한 꿈을 꾸게 된다. 내용은 어떤 시집을 읽었다는 것인데,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것을 기억해내 전쟁과 싸움을 잊고 학문에 매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어 철학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그는 나움부르크에서 [[프로이센]] 포병으로 한 해 동안 복무하였다.<ref>{{서적 인용|제목=화장실 철학자|성=|이름=|날짜=|판=|출판사=|쪽=|장=}}</ref> 그러나 [[1868년]] 3월에 그는 말을 타다가 사고를 당해서, 가슴을 심하게 다쳐 후송되었으나 군복무를 지속할 수 없었다. 그는 군복무를 5년 이상 하였고, 높은 직위에도 올랐었다.<ref>{{서적 인용|제목=화장실 철학자|성=|이름=|날짜=|판=|출판사=|쪽=|장=}}</ref>
==== 라이프치히 대학 ====
니체는 장기간의 병가를 받고, 다시 학업에 관심을 둘 수 있었다. 그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리츨 교수 밑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데 집중하였고, [[1865년]] 10월 리츨을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겼다. 거기서 그는 에르빈 로데와 친구가 되었다. 이 무렵 니체의 첫 철학 저서의 출판이 곧 이루어지게 된다.
=== 바젤 대학교에서의 교수 생활 (1869–1879) ===
[[파일:Nietzsche187c.jpg|섬네일|175px|왼쪽|1869년 모습]]
==== 바젤대학교 고전문헌학 교수 ====
24살에 리츨의 도움으로, [[스위스]] [[바젤 대학교]]의 고전문헌학 교수에 취임하였다. 바젤 대학교에 들어선 이후, 그는 [[프로이센]]의 국적을 포기했으며, 죽는 순간까지도 공식적인 시민권이 없었다고 하며,<ref>
Hecker, Hellmuth: "Nietzsches Staatsangehörigkeit als Rechtsfrage", Neue Juristische Wochenschrift, Jg. 40, 1987, nr. 23, p.1388~1391; and His, Eduard: "Friedrich Nietzsches Heimatlosigkeit", Basler Zeitschrift für Geschichte und Altertumskunde, vol.40, 1941, p.159~186. 도이쎈과 몬티나리를 포함한 일부 저자들은 니체가 스위스 시민권을 획득했었다는 잘못된 주장을 하기도 했다.</ref> 다시 바젤 대학교로 돌아오면서 그는 [[독일제국]]의 성립과 [[오토 폰 비스마르크|비스마르크]]의 등장을 봤다.
[[파일:Rohde Gersdorff Nietzsche-2.JPG|섬네일|100px|오른쪽|1871년 니체와 친구들-에르빈 로데, 칼 폰 게르도르프, 니체]]
==== 강연 ====
그는 대학교에서 취임 강의로 “[[호메로스]]와 고전문헌학”(Homer und die klassische Philologie) 을 연설했다. 그는 신학과 교수인 [[프란츠 오버베크]]와 어울렸으며, 그와 평생동안 친구로 지냈다. 당시 [[러시아]] 철학자였던 [[아프리칸 스피르]],<ref>^ A biography of Spir.</ref> 니체가 자주 강의를 들었던 동료 역사학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등도 니체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그는 여러 강연회에 연사로 다니며 강연활동을 하기도 했다.
==== 바그너와의 만남과 결별 ====
니체는 이미 [[1868년]]부터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만나기 시작했었는데, 그의 부인과 그에게 매우 감탄하곤 했다. 또한 바젤에 있을 당시 바그너는 니체와 매우 긴밀한 관계에 있었으며,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에 초대하기도 했다. 이후 바그너의 뛰어난 제자의 한사람으로도 인정받았지만, 바그너가 점차 [[기독교]]화되고 〈파르지팔 Parsifal〉에서처럼 [[기독교]]적인 도덕주의 모티브를 많이 이용하고, 국수주의와 반유대주의에 빠지자 그와 결별했다.
==== 박사학위 ====
1869년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시험과 논문없이 출판된 저술들만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니체는 [[1872년]]에 《[[비극의 탄생]]》을 썼다. 하지만 리츨과 같은 니체의 동료들은 이 책에 대해 별로 열정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저술 ====
[[1873년]]과 [[1876년]] 사이에는 《반시대적 고찰》을 썼는데, 총 4편으로 《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로 나뉜다. 네 편의 에세이는 [[쇼펜하우어]]와 [[리하르트 바그너|바그너]]가 주장하는 대로, 독일 문화의 발전 노선에 도전하는 문화 비평의 방향을 공유하고 있다. [[1873년]]이 시작할 무렵, 니체는 또한 고대 그리스 비극에 나타난 철학 같이 사후에 출간된 기록을 점차로 모으고 있었다. 이 시기 동안 바그너와 그의 동료들 사이에서, 니체는 말비다 폰 메이센부르크와 한스 폰 뷔로우를 만났고, 1876년에 그에게 영향을 주어 그의 초기 저작해소시킨, 파울 리와 우정을 나누었다. 그러나 그는 1876년에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진부한 공연과 대중의 천박함에 혐오감을 느끼고 실망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바그너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1878년]] 니체는 그 특유의 경구가 가득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출판하였다. 또한 니체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의 철학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즈음에 혼인을 하려 애쓰기도 했다. [[1879년]], 건강이 더욱 악화되면서 니체는 바젤 대학교의 교수직을 사임했다. 사실 그는 어릴 적부터 병치레가 잦았는데, 가끔 두통이나 복통을 겪기도 했다. [[1868년]]에 낙마사고와, [[1870년]]에 걸린 병 때문에 니체의 건강이 더욱 악화된 것으로 보이며, 실제 바젤 대학교에서 휴가를 많이 갖기도 했다.
==== 퇴직 ====
[[1879년]] 이후 건강상의 악화와 자유로운 철학의 정립을 위해 35세에 바젤대학교를 퇴직하고,조용히 산 속으로 들어가 요양과 집필에 전념했다.
=== 독립 철학자 생활 (1879–1888)과 죽음 ===
35세에 바젤 대학교에서 퇴직한 이후 그는 강연도 그만두고, 병든 몸이 적응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유럽 각지<ref>주로 이탈리아 북부 ·프랑스 남부 [[지중해]] 근방에 장기간 요양하였다.</ref>를 돌아다니면서 집필생활에 몰두하였다. [[1881년]], [[프랑스]]가 [[튀니지]]를 점령했을 때, 튀니지로 여행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이내 그 계획을 접고 만다.(건강에 대한 문제로 여행을 취소한 것으로 보인다.)<ref>
^ Stephan Güntzel, "Nietzsche's Geophilosophy", p.85 in: Journal of Nietzsche Studies 25 (Spring 2003), The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University Park (Penn State), 2003-10-15; re-published on HyperNietzsche's website (English)/(German)</ref> [[1889년]] 1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졸도한 후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생애의 마지막 10년을 보냈다. 니체는 정신병 발작을 일으킨 후 완전히 정신 상실자가 되었고, 이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예나에서 거주했다. 어머니가 죽자 누이동생 엘리자베트가 니체를 [[바이마르]]로 옮겼고, 니체는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죽었다. 니체가 죽자 엘리자베트는 고향 뢰켄의 아버지 묘 옆에 니체를 안장했다.<ref>[http://zmanz.blogi.kr/entry/0315 지만지 선과 악의 저편 책소개]{{깨진 링크|url=http://zmanz.blogi.kr/entry/0315 }}</ref>
=== 니체 정신병의 원인 ===
니체는 말년에 정신적인 붕괴를 겪고 10년 동안 제정신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살다가 죽었다. 그의 정신 착란이 [[매독]]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는 뜬소문에 불과하다. 니체가 매독에 걸렸다는 설을 반박하는 문서들은 다음과 같다.
* [http://www.ncbi.nlm.nih.gov/pubmed/11045229?dopt=Abstract 《니체의 정신병: 세기의 오진인가?》] - 저자; 정신 분석학자 Eva Cybulska
* 《니체가 매독에 걸렸다는 도시전설》- 저자; 신경과학자 Richard SchainGreenwood , Greenwood Press 2001 (Contributions in Medical Studies, vol. 46)
* [https://web.archive.org/web/20040317225535/http://home.cfl.rr.com/mpresley1/fn.pdf 《니체가 치매에 걸린 원인은 무엇인가?》] - 저자; 임상 심리학자 Leonard Sax
* [http://www.telegraph.co.uk/education/3313279/Madness-of-Nietzsche-was-cancer-not-syphilis.html 텔레그래프지의 2003년 기사에 따르면 니체 정신착란의 원인은 악성 뇌종양 때문이다.]
== 사상 ==
[[파일:Nietzsche paul-ree lou-von-salome188.jpg|200px|섬네일|오른쪽|프리드리히 니체 (맨 오른쪽) 맨 왼쪽의 여자는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살로메]]]]
=== 퇴폐성 비판 ===
그는 기존의 도덕적 세계관이 삶을 옥죄고 있다고 인식했다.
{{인용문|모든 시대의 현자들은 삶에 대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삶이란 의미없는 것이라고 말이다.<ref>[http://www.nietzschesource.org/#eKGWB/GD-Sokrates-1 소크라테스의 문제점 1번글]</ref>| 《우상의 황혼》}}
{{인용문|''Weder Manu, noch Plato, noch Confucius, noch die jüdischen und christlichen Lehrer haben je an ihrem Recht zur Lüge gezweifelt.''<ref>http://www.nietzschesource.org/#eKGWB/GD-Verbesserer-5</ref>
마누, 플라톤, 공자, 유대교 교사들과 기독교 교사들. 이들은 거짓을 지껄이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권리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우상의 황혼》}}
그에 기독교와 불교를 포함한 종래의 도덕적 사상들을 데카당(퇴폐적인 것)이라 칭하며 비판한다.
플라톤 연구자이기도 한 니체는,<ref>니체가 저술한 문헌학 서적의 제목을 참고할 것. 《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ref> 기독교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린다.
{{인용문|''denn Christenthum ist Platonismus für’s „Volk“''<ref>http://www.nietzschesource.org/#eKGWB/JGB-Vorrede</ref>
"기독교는 대중을 위한 플라톤 사상에 불과하다."|《선악의 저편》서문.}}
=== 일원론 (생기 존재론) ===
권력의지를 중심으로 하는 니체의 일원론은 근대 철학의 이원론과 배치되며 주체와 대상으로 구분되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에서 탈피하였다. 니체는 진리라는 것은 없으며 단지 진리를 추구하는 힘만이 있다고 하였다. 그는 이상 세계는 허구이며 오직 현상 세계만이 존재하고, 결과가 없이 언제나 과정으로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는 이성의 철학이 아닌 반이성의 철학, 실체의 철학이 아닌 관계의 철학, 정적인 철학이 아닌 동적인 철학, 계몽의 철학이 아닌 허무의 철학을 주장하였다.<ref>{{웹 인용|url=https://blog.naver.com/hobero338/70071889299|제목=프리드리히 니체|언어=ko|확인날짜=2022-02-16}}</ref> <br />
=== 신은 죽었다. ===
[[신은 죽었다|신의 죽음]]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가치의 상실을 의미한다. '신의 죽음'이란, 종교 혹은 이상주의 등의 신앙이 상실된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달리말해, "신의 죽음이란 [[허무주의]]의 도래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최고가치의 상실과 허무주의의 출현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낳는다. "삶의 최고가치가 상실된 상태에서 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안티크리스트》에서, 니체는 [[기독교]]와 [[불교]]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 책에서 니체는 일견 불교에 대해 호평을 내리지만 이내 기독교와 불교 양자를 퇴폐적인([[데카당트]]) 종교로 규정짓는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는 도덕에서의 노예반란<ref>즉 "비참한 자만이 오직 착한 자다. 가난한 자, 무력한 자, 비천한 자만이 오직 착한 자다. 고통받는 자, 궁핍한 자, 병든 자, 추한 자 또한 유일하게 경건한 자이며 신에 귀의한 자이고, 오직 그들에게만 축복이 있다. ㅡ이에 대해 그대, 그대 고귀하고 강력한 자들, 그대들은 영원히 사악한 자, 잔인한 자, 음란한 자, 탐욕스러운 자, 무신론자이며, 그대들이야말로 또한 영원히 축복받지 못할 자, 저주받을 자, 망할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이러한 유대의 가치 전환의 유산을 누가 상속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즉 유대인과 더불어 도덕에서의 노예 반란이 시작된다 《도덕의 계보》</ref>이며, 불교는 삶에 지친 노인들을 위한 종교이다.
《선악의 저편》에서, 니체는 자신을 '철학자 디오니소스의 제자'로 소개한다.
{{인용문|나는 디오니소스 신의 마지막 제자이자 정통한 자이다 : 나는 기어이 한 번쯤 내 친구인 그대들에게, 나에게 허락하는 한, 이 철학을 조금은 맛보게 하는 일을 시작해도 좋을 것이 아닌가?|《선악의 저편》 295}}
여기서 니체는 '디오니소스'를 '그리스 비극'에 대한 상징으로 활용하고 있다. 진화론에 대한 자신의 해석 탓인지, 니체는 '성장'이라는 개념을 좋아했는데, 이는 그리스 비극 정신에 대한 그의 이해에서도 드러난다. 니체에게서 그리스 비극 정신이란, 니힐리즘을 근본으로 하는 고통을 힘의지로 승화시키는 태도이다.
{{인용문|"나를 이해했는가? 디오니소스 vs 십자가에 매달린 자."<ref>이 글귀에서 니체는 디오니소스를 생의 긍정으로, 그리스도를 생의 부정으로 놓고 대조하고 있다. 디오니소스는 그 어원상 두번(Dio) 태어난 자(nysos)를 뜻하며, 예수보다 그 연대가 오래된 신이다. 다음 텍스트를 참조할 것.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3:13.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신명기 21:23</ref>|《이 사람을 보라》 말미.}}
니체는 탈아의 도덕<ref>유교식으로 말하면 극기복례, [http://bibeltext.com/revelation/21-7.htm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이기는 자(Wer überwindet), 계시록 21:7]</ref>을 뛰어넘는 인간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를 위버멘쉬<ref>뛰어넘는 인간 혹은 극복하는 인간. Übermensch. 독일어 Über + mensch. 영어식으로 옮기면 Over + man 혹은 Super + man.</ref>라 부를 수 있다. 위버멘쉬는 또한 종래의 안일한 인간<ref>이를테면 생의지를 주요한 가치판별기준으로 삼는 공리주의적 인간 혹은 부르주아. Der letzte Mensch.</ref><ref>[http://www.nietzschesource.org/#eKGWB/M-175 아침놀 175번글, '상인문화의 근본 가치' 참조]</ref>을 뛰어넘은 인간유형이다. 이렇게 보면 위버멘쉬는 종래의 성(聖)과 속(俗)을 뛰어넘는 인간이다.
=== 허무주의 ===
니체는 《유고》에서 [[허무주의]](Nihilismus)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용문|허무주의: 목표가 결여되어 있으며 : '왜?'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결여되어 있다.
허무주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최고 가치들이 탈가치화하는 것.|1887년 《유고》}}
{{인용문|허무주의는 병리적 중간 상태를 표현한다(병리적이란 전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결론짓는 끔찍한 일반화를 말한다)|1887년 《유고》}}
니체가 말하는 허무주의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 능동적 허무주의 (Der active Nihilismus)
* 수동적 허무주의 (Der passive Nihilismus)
'수동적 허무주의'란 염세주의라고 생각하면 쉽다. 허무감에 사로잡힌 상태를 뜻한다. 달리말해, '허무하다', '무의미하다', '무가치하다' '없다(니힐하다)'는 느낌에 사로잡힌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상태의 인간은 결과적으로 인생의 의미를 잃고 향락주의나 물질주의에 빠져들게 될 공산이 크다.
외부에서 신으로부터 주어진 의미가 없기에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주어진 의미를 찾기에 수동적이다.
다음으로, '능동적 허무주의'란 '없다는 느낌(=무의미하다는 느낌 = 무가치하다는 느낌 = 니힐하다 = 허무주의)'에서 더 나아가 외부로부터 주어진 의미를 찾기보다 스스로 의미를 창조해가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간단히 말해, (의미가) 없으면 만든다는 식이다.
짧게 말해, (유럽에서) 가치와 규범과 의미를 제공해주던 일체가 - 그걸 신이라고 불러도 좋고,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나 칸트라고 불러도 좋다 - 그 확실성을 잃게 되었기에 허무주의(무의미하다는 느낌)이 도래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반응하는 방식의 차이인 것이다.
=== 위버멘쉬 (Übermensch) ===
[[위버멘쉬]]는 어원적으로 '뛰어넘는(Über) 인간(mensch)'을 뜻한다. 다시 말해 극복하는 인간이며, 극복함으로써 창조하는 인간이다.
{{인용문|새겨두어라 형제들이여. 평가하는 것이야말로 창조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인용문|세계가 생겨난 이래로 지금껏, 스스로에 대한 비평을 허용하는 권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침놀 서문》}}
위버멘쉬는 근대적 가치와 도덕 및 신앙을 뛰어넘는 인간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종래의 규범들은 인간에게 해로운 것들이었기 때문이다.<ref>니체 연구자 고병권은 다음과 같이 평한다. "니체는 가치들의 가치를 묻는 사람입니다." 기독교적 가치 중 하나는 육체 경멸이다. 그렇기에 기독교는 스페인을 점령한 후 가장 먼저, "코르도바에만 260개가 있었던 목욕탕을 폐쇄한다." 니체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독교적 가치는 비위생적이다. 심리적으로도 그렇고, 신체적으로도 그렇다.</ref> 도덕적인 측면에서, 위버멘쉬는 탈아의 도덕을 극복해내는 인간이다. 이를테면 극기복례 혹은 순교자 개념을 극복해내는 인간이며, 그럼으로서 창조해내는 인간이다. 위버멘쉬 개념은 '풍습의 도덕'과 대립될 뿐 아니라, '인간말종(Der letzte Mensch)'과도 대립되는 개념이다. '인간말종(Der letzte Mensch)'이란 현실에 안주하는 인간형 혹은 권력욕에 물든 인간을 가리킨다.{{인용문|이 원숭이들을 보라. 이들은 권력을 원하며, 무엇보다도 권력의 지렛대인 돈을 원한다. 이들 모두는 높은 권좌를 원한다. 그러나 권좌 위에는 똥이 있는데.|《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위버멘쉬는 초월적,신적인 힘을 갖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종래의 탈아적 가치를 극복하고 새 것을 생성시키는 인간을 의미한다.
=== 힘에의 의지 (Wille zur Macht) ===
니체 철학에서 힘에의 의지란 자기 보존 본능과 대립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쇼펜하우어]]가 주창한 [[생에의 의지]]라는 개념과 대립되는 개념. [[찰스 다윈]]이 주장한 [[생존 경쟁]]이라는 개념과도 대립된다.
니체는 '생존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용문|''Was den berühmten Kampf ums Leben“ betrifft, so scheint er mir einstweilen mehr behauptet als bewiesen.''<ref>http://www.nietzschesource.org/#eKGWB/GD-Streifzuege-14</ref>
그 유명한 생존경쟁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내게 증명이라기보다 주장으로 보인다.|《우상의 황혼》, 안티 다윈.}}
{{인용문|
''Das Genie — in Werk, in Tat — ist notwendig ein Verschwender: dass es sich ausgibt, ist seine Grösse… Der Instinkt der Selbsterhaltung ist gleichsam ausgehängt; der übergewaltige Druck der ausströmenden Kräfte verbietet ihm jede solche Obhut und Vorsicht.''<ref>http://www.nietzschesource.org/#eKGWB/GD-Streifzuege-44</ref>
천재는 – 작업이나 업적에서 – 필연적으로 낭비하는 자이다 ; 전력을 다한다는 것. 이것이 그의 위대함이다......
말하자면 자기 보존 본능이 풀어져 있다; 발산되는 힘의 압도적인 압력이 그에게 그러한 보호와 신중함을 금한다.|《우상의 황혼》, 나의 천재 개념}}
=== 도덕비평 ===
{{인용문|선과 악에 대해 고찰하는 것은 항상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양심, 좋은 평판, 지옥, 경우에 따라서는 경찰 역시 솔직함을 허용하지 않았고 지금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중략)
세계가 생겨난 이래, 자신을 비판의 대상으로 만드는 권위는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더구나 도덕을 비판한다는 것, 도덕을 문제로 삼고 의문시한다는 것은 비도덕적인 일이 아니었을까?|《아침놀》, 서문 3번글.}}
니체 철학에서 도덕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 잘 알려진 것은 '노예도덕'과 '주인도덕'의 분류이다.
* 비교적 덜 알려진 명명법들: 풍습의 도덕, 탈아의 도덕, 자기희생의 도덕, 연민의 도덕<ref>달리 말해 동정(同情)의 도덕. 니체에 따르면 철학자들은 동정심을 경멸했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심지어는 "플라톤도 동정심을 경멸했다."</ref>
* 니체의 도덕비평은 '사회학적/정치학적' 측면보다는 주로 심리학적/가치론적 측면에서 진행된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도덕적 개념의 족보를 다루며, 도덕과 그 부대개념들이 역사 안에서 어떻게 형성되어 온 것인지를 기술한다.
* 주인도덕은 자기긍정에서 비롯된 가치평가를 반영한다.<ref>"고귀한 영혼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경외심을 품고 있다." ,《선악의 저편》 [http://www.nietzschesource.org/#eKGWB/JGB-287 Die vornehme Seele hat Ehrfurcht vor sich.]</ref>
* 노예도덕은 억압받는 인간의 원념(怨念)에서 발원한다. 즉 노예도덕은 원한도덕이다.
주인도덕은 좋음과 나쁨을<ref>독일어 Gut und Schlecht.《도덕의 계보》 제1논문에서, Schlecht라는 단어는 그 어원상 천민의 어리섞음이나 열등함을 나타낸다고 해석된다.</ref> 가려 물으며 이를 가치평가의 잣대로 삼는다. 노예도덕은 형이상학적 의미의 선과 악을 가치평가의 기준으로 상정한다. 다시 말해, 주인도덕은 개인의 호오(好惡)를 기준으로 하고, 노예도덕은 사회적 선악(善惡)을 기준으로 한다. 주인에게 '좋음'이란, 자신과 타자를 고양시키는 것이다. 주인에게 '나쁨'이란, 나약하게 만드는 것이다.<ref>이를테면 동정심. 니체는 동정심이 동정하는 사람을 의기소침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여 이 개념을 일관스레 비판하였다. 독일어에서 동정Mitleiden이란 고통을leiden을 함께한다Mit는 뜻이다.</ref>
노예도덕은 주인도덕과 대립된다. 주인은 자신을 기준으로 '선'을 상정하지만, 노예는 먼저 '악'을 떠올린다. 노예도덕에서는 '주인에게 복수하지 못하는 무력감'이, '자발적 용서'로 둔갑한다. 노예도덕에서는 노예가 느끼는 무력감이 미덕으로 위장한다. 주인의 미덕이 약자의 눈에는 악덕으로 비쳐진다.
도덕에 대한 니체의 입장을 알기 위해서는, 《도덕의 계보》 이외에도 니체가 쓴 《아침놀》이나 [[플라톤]]이 쓴 《고르기아스》를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 《아침놀》에서 니체는 '관습의 도덕'이라는 개념을 거론하며 이를 비판한다.<ref>풍습의 도덕이라는 개념. -《아침놀》, 제1권, 9번글. [http://www.nietzschesource.org/#eKGWB/M-9 Begriff der Sittlichkeit der Sitte.]</ref> 《고르기아스》를 읽다보면 중간 즈음부터 칼리클레스가 등장하여 자연과 규범에<ref>자연과 규범. 각각 그리스어 Physis와 그리스어 Nomos. Nomos는 규범, 관습, 법 등을 의미한다.</ref>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칼리클레스는 '규범'이 약자 패거리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하며, 규범이란 소수에 불과한 강자를 억압하는 도구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니체의 입장은 칼리클레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보인다.<ref>[http://www.kritike.org/journal/issue_8/urstad_december2010.pdf Nietzsche and Callicles on Happiness, Pleasure, and Power]</ref>
니체 윤리학에서 지칭하는 '주인' 혹은 '강자'라는 개념은 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계급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그는 상인계급을<ref>부르주아. 니체는 상인의 가치평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니체에 따르면 상인이란 수요에 따라 가치를 평가하는 자이고, 그 스스로가 사물 속으로 가치를 불어넣지는 못한다. 이는 예술적이거나 창조적인 태도가 아니다.</ref>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인용문|''Seht mir doch diese Überflüssigen! Reichtümer erwerben sie und werden ärmer damit. Macht wollen sie und zuerst das Brecheisen der Macht, viel Geld – diese Unvermögenden!"<ref>[http://www.nietzschesource.org/#eKGWB/Za-I-Götzen ]</ref>
이 잉여인간들을 봐라! 그들은 재산을 원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가난해지고 있다. 그들은 권력을 원하며 무엇보다도 권력의 지렛대인 돈을 원한다. 이 무능력한 자들은.|《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영원 회귀]]" 사상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근본 사상이다. 이 사상은 1881년 실스마리아에서 니체를 압도적인 영감으로 덮친 사상이다. 이것은 도달 가능한 최고의 긍정 형식이다.
== 미학 이론 ==
=== 비극의 탄생 ===
니체 미학의 고대적 발판. 음악 정신에서 태어난 비극의 탄생의 결정적 새로움은 한 편으로는 그리스 인들에게서 발견되는 "디오니소스적 현상"에 대한 이해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소크라테스주의"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었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도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통한 "비극의 탄생"과 "소크라테스적인 것"을 통한 "비극의 죽음"에 니체의 마음이 쏠렸다. 니체에게 소크라테스는 기독교 종교의 예비자를 구현하고 있었으며, 그에 반해서 디오니소스는 "반(反)그리스도"이고 "예술가 신"이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선악을 넘어선" 염세주의와 비도덕적인 디오니소스 신의 "예술-종교"를 통해서, 간단하게 말해서 현존재가 예술적 현상으로서만 정당화되어서 나타나는 "예술가-형이상학"을 통해서 소크라테스에 의해서 구현된 현존재에 대한 도덕적 해석에 반대했다. 소크라테스는 아폴로적 명징성과 유쾌함, "지식의 빛"과 자아 인식의 인간적 구현이다. 그에 반해서 디오니소스는 "바쿠스적 소동과 춤"의 "어두운 심연", "사랑의 도취에서 생긴 자아망각"을 대표한다.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니체 미학의 두 가지 근본적 범주이다. 헤라클레이토스적 의미에서 조화롭게 대립된 두 예술 충동의 "접합"의 결과물이 니체에게는 단지 아테네 비극의 탄생만이 아니라, 예술 전체의 탄생이다. 첫 작품에서도 비극적-디오니소스적 상태인 "미학적 상태"의 특징과 아폴로적인 것이 지닌 소크라테스주의와의 친근성은 이미 후기 니체의 저서에서 점점 강하게 드러나는 아폴로적인 것에 대한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우세를 인식하도록 만든다. 그 점과 연관된 디오니소스적 특성이 니체 미학이 지닌 독특한 새로움이다. 그것은 대립된 개념이고, 그것을 통해서 초기 니체는 반 고전주의적 미학의 전령이 되고 후기 니체는 영원 회귀의 반(反)기독교적 예술-종교의 선생님이 된다.
니체에게는 예술 신의 전형이 된 "아폴로적 디오니소스"는 디오니소스 자그레우스이다. 그의 정신으로부터 비극이 탄생했다. 그는 비극의 탄생 속에서만이 아니라 비극적 후기 철학의 핵심 인물이다. 거인족에 의해서 갈가리 찢긴 디오니소스가 아폴로에 의해서 다시 맞추어지는 이야기가 들어있는 오르페우스교의 자그레우스 신화는 니체에게는 비극의 신비적 가르침이다. 그는 비극적 신화 그 자체이다. 이런 토양 속에서만 니체의 미래 미학이 성장하고, 젊은 니체의 예술가-형이상학이 자라난 것은 아니다. 신들의 황혼을 쓰는 후기 니체, 디오니소스의 최후의 제자도 결국 이 토대 위에 다시 서게 된다.
니체는 클레멘스 알렉산드리아누스, 크로이처와 라살을 통해서 오르페우스교 자그레우스 신화를 알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아폴로적-디오니소스적"이라는 유명한 대립 쌍이 결코 니체가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다. 니체는 크로이처, 라살, 미슐레 그리고 포이어바흐 등등의 생각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자신의 독자적 미학 이론을 만들어냈다. 음악의 디오니소스적 정신에서 태어난 "비극의 탄생"이라는 환영 속에서 결정적인 것은 예술가, 예술 수용자 그리고 예술 작품의 분리를 해체하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이 화해한 축제를 기리는" 그리스 디오니소스 축제의 모습 속에는 생산자와 소비자 혹은 생산자와 생산품의 분리가 들어설 자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 음악극의 탄생 시기에 대한 중요한 근본 경험으로부터 예술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면서 니체는 하나의 발전을 미리 보게 된다. 그러한 발전은 전래의 "예술 작품의 예술", 즉 개인적 예술가들의 예술 작품으로부터 바그너가 생각한 의미에서의 "종합예술"인 "축제극"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바그너에 대해서 점점 거리감을 갖게 되는 것과 동시에 최종적 단계에서 세상을 보편적 예술 작품으로 보는 미학적 관찰로 이끈다. 바이로이트의 "축제극"에서 진정한 종합 예술작품인 "세계극"이 생겨난다. 더 이상 예술 작품은 하나의 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세계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관찰된다. "모든 것이 유희다", "모든 것이 예술이다". "정오", 아폴로적 디오니소스가 현현하는 순간에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선한 것으로 드러난다. 완벽하게 되고 미학적으로 정당화된 세계는 스스로를 잉태하는 예술작품으로 나타난다.
=== 예술로서의 힘의지 ===
사람들이 "힘의지<ref>힘의지 혹은 힘에의 의지[Wille zum Macht]. 생존의지[Wille zum Leben]와 대립되는 개념.</ref>"라는 마술적 공식을 해석하고 평가하기 위해서 애를 쓴지도 이미 100년이 훨씬 더 지났다. 1901년 부분적으로는 어제도 규범적인, 세기적인 니체 유고의 편집 본이 권력 의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사람들은 이 책을 오랫동안 니체의 주요 저작으로 잘못 간주했다. 오래전에 표어가 되어버린 그리고 정치적으로 잘못 해석된 권력(쟁취) 의지 이론은 실제로는 결코 실행되지 못했던 니체의 계획을 표시한다. 그 계획은 니체의 미학 이론에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쇼펜하우어와는 대조적으로 니체는 자유 의지를 "파국적인 철학자들의 고안물"로 비판하고 여러 번 "어떤 의지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되풀이해서 말한다. 다른 한 편으로 그는 권력 의지를 "세상의 정수", "존재의 가장 내밀한 본질"로 고찰한다. 그것은 권력 의지가 욕구가 없는 의지, 즉 원하는 자아가 없는 의지일 경우에만 서로 일치한다. 니체는 권력 의지라는 생각으로 분명 "나는 원한다."라는 문장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처럼 (힘이 넘치는 위버멘쉬)의 개인적 의지라는 생각을 뛰어넘는다. 이것은 특별히 차라투스트라의 첫 연설("세 가지 변신에 대해서")에서 분명해진다.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난 다음에, "너는 해야만 한다."는 명령이 낙타에게 내려진다. 정신이 사자가 되었을 때, 사자의 정신은 말한다. "나는 원한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 정신은 아이가 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정신의 세 번째이고 가장 심오한 변화이다, 그 변화 속에서 기독교적 도덕 "너는 해야만 한다."는 말 뿐만 아니라, 영웅적인 "나는 원한다."는 말도 아이의 순진함, 창조의 유희 속에서 "자기긍정"을 얻기 위해서 극복되어야만 한다. 위버멘쉬는 "금발의 야수"가 아니라, 사자의 정신과 "나는 원한다."는 것을 극복하는 인간이다, 그의 정신은 아이가 된다. 3번째 정신의 변화 후에 생기는 욕구 없는 의지를 지니고, 자아를 잊어버린 주체의 고대적 모범은 헤라클레이토스 단편 B52에 나오는 유희하는 아이다. 이 단편에서 삶의 유희 혹은 세계-시간, 즉 아이온Aion은 유희하는 아이로 묘사된다. 그리고 헤라클레이토스의 유희하는 아이는 신의 세 번째 변화 후에 생기는 니체의 유희하는 아이의 선행 인물이다. 즉 그 아이는 위버멘쉬의 선행 인물인 것이다. 이 단편과 니체가 자신의 생각 속에 재해석한 것은 접합점으로 드러나고, 그 속에서 비극의 탄생을 쓴 초기 니체로부터 차라투스트라를 쓴 후기 니체로 이끌고 영원 회귀와 권력 의지라는 두 개의 어려운 생각을 결합시키는 것을 허용하는 여러 개의 결합선이 모여 있다. 니체가 헤라클레이토스를 해석한 것 속에 나타나는 세계-시간의 “위대한 년도”인 아이온은 영원 회귀가 신적 형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세계-아이인 아이온이 벌이는 세계-놀이가 지닌 이름이 권력 의지이다. 아이온의 목적 없는 유희 속에서는 욕구 없는 의지가 지배하며, 아이온은 권력 의지의 신적 의인화이다. 권력 의지와 영원 회귀는 동일한 아이온의 서로 다른 두 얼굴이다. 한 편으로는 아폴로적 디오니소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제우스의 특징들을 지니고 있는 아이온이 니체의 비극적 후기 철학에서 예술로서의 영원 회귀와 권력 의지의 예술가-형이상학을 주관하는 신으로 합쳐진다.
=== 미학사적 문맥 ===
미학 이론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사실, 니체가 고전 문헌 학자였다는 사실은 고대의 밑바닥에서부터 그가 신랄하게 비판한 현대의 꼭대기로 곧장 도약을 하게 된 한 가지 원인일 수도 있다. 이 같은 도약은 특히 니체의 미학적 성찰을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니체의 말을 따르면 우리는 그리스인들로부터 먼저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다. 비극의 탄생에서 그는 모든 예술이 내적으로 그리스인들에게 의존되어 있는 상태를 강조한다. 그는 예술과 관련된 분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리스인들을 "우리 문하의 최고의 스승"으로 칭찬한다. 기독교 신은 죽었고 그와 함께 형이상학도 죽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형이상학 이전의 시대에서, 즉 비극적 그리스인들의 시대에 있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니체의 철학적 고생물학은 고대 토양의 점진적 재획득, 무엇보다도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산재된 사유들을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니체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에서 그보다 앞서 살았던 헤겔처럼 단순하게 임시적인 것을 본 것이 아니라, 니체보다 나중에 살았던 하이데거처럼 모범적인 것을 보았다. 니체의 퇴행은 다름 아니라 진보이다. 니체는 플라톤 이전-형이상학 이전의 철학으로 자신이 되돌아간 것을 미래 미학으로 도약을 하기 위한 도움닫기로 이해를 한다("미래의 시간은 나의 것이 될 것이다"). 그는 비극 책이 쓰이던 시기에 미래의 미학이 바그너의 작품 속에서 미리 구현된 것으로 보았다. 그와 반대로 그는 나중에 자신이 꿈꾸었던 비극의 탄생을 바그너 음악 정신에서 태어난 사산(死産)으로 인식을 해야만 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신전을 발굴한 것과 헤라클레이토스의 비극적 철학의 재생을 위한 니체의 의지는 포스트모더니즘 미학 이론의 서곡으로 간주될 수 있다. 특별히 초기 형이상학 시기의 헤라클레이토스의 통찰력에 기반을 두고 있는 미학적 "세계-유희"로서의 "삶의 유희", 대립되는 것의 조화와 추한 것 속에도 존재하는 미의 편재성에 대해서 느낀 경험을 통해서 니체는 후기형이상학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위대한 선조가 되었다. 그것으로써 니체가 동시적으로 보여주는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의 특징Nachvorsokratismus은 동시에 존재하는 모더니즘 이전과 이후의 특징Vorpostmodernismus이기도 하다.
== 평가 ==
생전에는 학계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했다. [[종교계]]와 [[도덕주의]]자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으며 사회를 타락시킨다는 악의성 비방과 음해에 시달렸으나, 사후 유럽의 철학과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현재에는 19세기 최고의 철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간주된다.
니체의 사상은 그 전복적 성향으로 인해 자주 오해되고 비판받았다. 이런 [[니체]]의 성향은 온갖 권위에 불복했던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니체에 대한 평은 극으로 갈릴 때가 많다. 그에 대한 평가는 종교인들에게서는 혹평으로, 포스트 모던 철학자들에게서는 호평으로 나타나는 편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현대 철학사(특히 [[포스트모더니즘]])에 끼친 영향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이다. 니체는 [[프로이트]]나 [[마르크스]] 등과 함께 근대철학을 전복시킨 사상가 가운데 한 명이다.
니체는 가끔 [[나치즘]]과 반유대주의, 인종주의의 시초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는 나치정권과 니체의 여동생이 공동으로 [[니체]]의 사상을 왜곡한 결과 확산된 인식에 불과하다.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니체의 저서를 짜집기해서 나치정권에 유리하게 아부한 것이다. 이 때문에 후일 연구자들의 노고로 '비평판 니체 전집'이 출간되었다.<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95686 슈테판의 시간여행, 막스 크루제 저]</ref> 엘리자베스는 흩어졌던 그의 저서들을 모아 일종의 보관소까지 열었으며, 미쳐 있던 니체에게 흰 [[사제복]]을 입혀 전시하기도 했다. 게다가 엘리자베스는 [[아돌프 히틀러|히틀러]]에게 '니체의 위버멘쉬란 당신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니체에게 붙어다니는 해괴한 이미지와는 별개로 실제 니체는 개인주의자였으며 반(反)국가주의자였다.<ref>"국가라는 새로운 우상이 무너진 저편을 바라보라. 무지개와 위버멘쉬에 이르는 다리가 보이지 않는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편 말미.</ref>
그러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1961년 《니체》를 출간한 이후 달리 평가되어 오늘날 니체에 대한 이상한 오해는 거의 해결되었다. 실제 니체는 자국인 [[독일]]을 매우 싫어했고 [[민족주의]] 또한 매우 혐오했다.<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1997171 철학, 역사를 만나다.]</ref>
== 수용 ==
니체 본인은 자신의 저서에 대한 반응을 갈망했지만 허사였다. 그가 정신을 잃기 몇 년 전에서야 그의 사상이 수용되기 시작했다. '시인이자 철학자'<ref>플라톤과 대비되는 특징이다. 플라톤은 시인들을 도시국가에서 추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온》 참조.</ref>인 니체는 철학이 이론에 그치지 않고 삶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철학과 문체 그리고 삶의 양식을 통해서, 니체는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샤르트르 그리고 카뮈 같은 작가들, 프로이트와 융과 같은 심리학자, 슈펭글러와 슈타이너와 같은 비밀스런 종교의 스승, 벤, 게오르게, 지드, 헤세, 호프만슈탈, 말로, 하인리히 만과 토마스 만, 모르겐슈타인, 무질, 오닐, 릴케, 쇼, 예이츠 등등의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20세기-예를 들면 조형 예술에서 "발견한 대상"(뒤샹)의 경우에 드러나는 "작품의 부재"와 같은 현상으로 특징지어지는-가 시작되기 직전에 니체는 현재의 대부분의 미학 이론보다 20세기 예술 정신을 생각으로 포착하고 드러내는 것에 더 많은 기여를 했다. 쉽게 오해할 수 있는 “위버멘쉬”와 “힘에의 의지”라는 핵심 개념과 도발적인 문장 때문에 보이믈러의 해석에 나타나는 것처럼 최초의 나치로 쉽게 오해받았던 니체가 특별히 동구권에서는 오랫동안 파시즘의 예비자와 "파시즘 미학의 선구자"로 오해되고 왜곡되고 모함을 당한 이후에, 그는 현재 그 곳에서, 특히 구동독 지역에서 점점 인기를 얻고 있다. 니체의 전 저작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편집한 콜리와 몬티나리의 대단한 작업은 오래전부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현 시대에도 지속되는 지적 반향의 표시이다. "세계의 유희에 대한 미학적 기본 지각"을 지닌 니체의 포스트모더니즘 이전의 "예술가-형이상학"의 수용은 프랑스에서는 오늘날까지 중단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 발터 카우프만의 니체 연구 이후로 미국에서도 니체에 대한 연구는 강화되었다. 니체와 하이데거는 더불어 동아시아에 많이 알려졌다
== 저작 ==
=== 문헌학 ===
* 《테오그니스 선집의 역사》, 1867.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원본에 대하여》, 1868~1869.
* 《호메로스와 고전 문헌학》, 1869.
* 《Analecta Laertiana》, 1870.
* 《Der florentinische Tractat über Homer und Hesiod》, 1870.
* 《그리스 음악극》, 1870.
=== 철학 ===
* 《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
* 《그리스 비극 시대의 철학》1870
* 《비도덕적 의미의 진리와 거짓》
* 《소크라테스와 비극》, 1870
* 《비극의 탄생》, 1872.
* 《반시대적 고찰》, 1873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878
* 《아침놀》, 1881
* 《[[즐거운 학문]]》, 1882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883~1885
* 《[[선악의 저편]]》, 1886
* 《[[도덕의 계보학]]》, 1887
*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송가》, 《니체 대 바그너》
=== 니체 저작의 판본 ===
{{본문|니체 저작의 판본}}
==== 니체가 쓰러진 뒤 ====
[[1889년]] 1월 [[이탈리아]] [[토리노]]의 길거리를 산책하던 중 갑작스럽게 쓰러졌다. 이후 간헐적으로 제정신을 회복했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상 죽기 전까지 정신적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니체]]({{lang|de|Friedrich Wilhelm Nietzsche}})는 [[1888년]] ~ [[1889년]] 해가 바뀔 무렵 정신적 암흑에 빠졌다. 그의 저작들은 정본이라 할 만한 형식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부분적으로 예전 저작들은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판본으로 나와 있었으나, 두 저작은 — 니체가 잘못된 곳들을 지적한 가운데 — 인쇄작업이 진행 중이었고, 아울러 인쇄되지 않은 자료들이 다양한 마무리 수준 상태로 존재했다. 이 인쇄되지 않은 자료는 프란츠 오버베크({{lang|de|Franz Overbeck}})가 하인리히 쾨젤리츠({{lang|de|Heinrich Köselitz}})(페터 가스트({{lang|de|Peter Gast}}))와 협의하여 처음으로 수집했다. 이들은 또한 니체의 최종 출판업자인 콘스탄틴 게오르크 나우만({{lang|de|Constantin Georg Naumann}})과 함께 계속적인 출판작업을 두고 논의했다. 그리고 1890년 말에 처음으로 [[파라과이]]에서 귀향한 니체의 누이 엘리자베트 푀르스터-니체({{lang|de|Elisabeth Förster-Nietzsche}})가 가족을 대표하여 논의에 참견했다. 그간에 니체 저술의 판매고가 올랐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1892년]] 초에 처음으로 전집판에 대한 합의에 도달했다. 이 전집판은 나우만 출판사에서 간행되었으며, 쾨젤리츠가 이를 담당했다.
=== 니체 왜곡과 사후 ===
니체는 [[전체주의]], [[도덕주의]], [[국가주의]], [[종교]], [[실체론]],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등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니체는 사후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게오르크 헤겔]]과 함께 [[파시즘]]의 상징적 존재로 왜곡되고 악용되었다. 니체의 이름이 [[아돌프 히틀러]] 및 [[파시즘]]과 연결된 것은 그의 사후 그의 누이 엘리자베드 때문이었다. 엘리자베드는 광적인 [[국가주의]]자이며 [[반유대주의]]자였던 [[베른하르트 푀르스터]]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1889년]] 푀르스터가 자살한 뒤 엘리자베드는 니체를 푀르스터의 이미지로 개조하려 했다. 이무렵의 니체는 정신이 붕괴된 상태였기에<ref>니체는 1889년 초에 정신이 붕괴되어 이후 1900년에 사망할 때까지 제정신을 회복하지 못했다.</ref> 여동생의 멍청한 짓거리에 대처할 수 없었다. 엘리자베드는 니체의 작품들을 무자비하게 통제하고 파괴하려 하였다.<ref>그러나 일부 추종자들에 의해서 그의 작품들은 보존되었다.</ref> 그러다가 [[히틀러]]가 니체의 저작에 관심을 보이고, 시중에서 니체의 사상이 유행하게 되자 탐욕에 사로잡혔던 그의 누이는 니체의 버려진 글들을 짜집기해서 〈힘에의 의지 Der Wille zur Macht〉(1901) 등을 출간했다. 엘리자베드는 [[히틀러]]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했는데, [[히틀러]]의 니체 추종 보다는 [[히틀러]]에 대한 그녀의 열렬한 지지 때문에 대중은 니체를 [[히틀러]]와 연결짓게 되었다.
==== 1930년 저작권 보호기간의 만료 ====
1930년, 니체의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되었다.
== 작곡 ==
니체는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되지 않지만, 13세 무렵부터 20세 무렵에 걸쳐 [[가곡]]과 피아노곡을 [[작곡]]했다. 그 후 작곡하는 일은 없게 되었지만, 바그너와의 만남을 통해 자극을 받고, [[바젤]] 시절에 몇 개의 곡을 남겼다. 작풍은 전기 [[낭만파]]적으로, [[슈베르트]]나 [[로베르트 슈만|슈만]]을 연상케 한다. 그가 후에 전혀 작곡을 하지 않게 된 것은 본업으로 바쁘게 보냈다고 하는 이유 외에, 자신의 작품인 《[[만프레드 명상곡]]》을 [[한스 폰 뷜로]]에게 혹평 받은 것이 이유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니체가 작곡가로서 인식되는 일은 전무하지만, 저명한 철학자가 작곡한 작품이라는 이유로 일부 연주가가 녹음하게 되었고, 서서히 그의 '작곡도 하는 철학자'로서의 측면이 밝혀지고 있다. 그의 작품은 모두 가곡이나 피아노곡이지만, 2인 연탄곡 작품 중에는 《맨프레드 명상곡(Manfred-Meditation)》 [[교향시]] 《에르마나리히(Ermanarich)》 등, [[오케스트라]]를 염두에 두고 쓰여졌을 것이라 여겨지는 작품도 있다. 또, [[오페라]]의 스케치를 남기고 있는데, [[2007년]]에 지크프리트 마트스가 그의 스케치를 골자로 한 오페라 《코지마(Cosima)》를 작곡했다.
{{인용문|
''Wie wenig gehört zum Glücke! Der Ton eines Dudelsacks.''
''— Ohne Musik wäre das Leben ein Irrtum. Der Deutsche denkt sich selbst Gott liedersingend.''<ref>http://www.nietzschesource.org/#eKGWB/GD-Sprueche-33</ref>
행복을 위해 거창한 것이 필요하지는 않다! 백파이프 연주소리.
- 음악이 없는 삶이란 잘못된 것이다. 독일인들은 신조차도 노래를 흥얼거린다고 상상했다.
|《우상의 황혼》
}}
== 같이 보기 ==
* [[자라투스트라]]
*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무신론]]
* 파시즘
* 나치
* [[권력에의 의지]]
* [[에르네스트 르낭]]
*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게오르크 헤겔]]
* [[지그문트 프로이트]]
* [[칼 융]]
* [[반기독교주의]]
* [[쇠렌 키르케고르]]
* [[쇠렌 키르케고르와 프리드리히 니체]]
* [[생태주의]]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허무주의]]
* [[냉소주의]]
* [[무신론]]
* [[실존 철학]]
* [[쇼펜하우어]]
* [[귀스타브 르 봉]]
* [[신은 죽었다]]
== 관련 서적 ==
* 들어라 위대한 인간의 조용한 외침을 (청하, 1982)
* 안티 크리스트 (이너북, 2005)
* 어떻게 살 것인가 (해누리기획, 2005)
* Friedrich Nietzsche - Selected Writings (Essential Thinkers) (Collector's Library, 2005)
* 니체의 숲으로 가다:니체의 사랑과 고뇌, 그리고 인간과 삶에 대한 열정! (지훈, 2004)
* 신은 죽었다 (휘닉스, 2004)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장희창 역, 민음사, 2004)
*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 외 (책세상, 2003)
* 어느 쓸쓸한 날의 선택 자살 (북스토리, 2003)
* 니체의 고독한 방황 (범우사, 2002)
*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책세상, 2002)
* 디오니소스 찬가 (민음사, 2000)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0)
* 유고:1887년 가을∼1888년 3월) (책세상, 2000)
* 선악의 피안 (민성사, 2000)
* 니체 최후의 고백 (작가정신, 1999)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청하출판사, 1999)
* 비극적 사유의 탄생 (문예출판사, 1997)
* 비극의 탄생 (홍신문화사, 1996)
* 비극의 탄생 (범우사, 1995)
* 우상의 황혼 반 그리스도 (청하출판사, 1984)
* 서광 (청하, 1983)
* 도덕의 계보, 이 사람을 보라 (청하출판사, 1982)
* 선악을 넘어서 (청하, 1982)
=== 한국어로 된 참고 문헌 ===
* 고병권.《니체의 위험한 책,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린비, 2003.
* 백승영.《니체 "우상의 황혼"》. 서울(서울대학교철학연구소), 2006.
* 카를 뢰비트.《헤겔에서 니체로. 마르크스와 키아케고어. 19세기 사상의 혁명적 결렬》. 민음사, 2006.
* 정동호 외 지음. 《오늘 우리는 왜 니체를 읽는가》. 책세상, 2006.
* 김정현. 《니체, 생명과 치유의 철학》. 책세상, 2006.
* K. 야스퍼스. 《니체와 기독교》. 철학과현실사, 2006.
* 백승영.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 책세상, 2005.
* 뤼디거 사프란스키. 《니체, 인생을 말하다》. 현실과과학, 2004.
* 신경원. 《니체, 데리다, 이리가레의 여성》. 소나무, 2004.
* 에른스트 벨러. 《데리다-니체, 니체-데리다》. 책세상, 2004.
* 박찬국. 《해체와 창조의 철학자, 니체》. 동녘, 2001.
* 김정현. 《니체의 몸 철학》. 문학과현실사, 2000.
* 게르하르트 슈베펜호이저. 《니체의 도덕 철학》. 울산대학교출판부, 1999.
* 질 들뢰즈. 《니체와 철학》. 민음사, 1998.
* 앨런 D. 슈리프트. 《니체와 해석의 문제》. 푸른숲, 1997.
* 이진우.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 한길사, 2008.
* 피에르 클로소프스키. 《니체와 악순환》. 그린비, 2009.
* 고명섭. 《니체 극장》. 2012, 김영사
* 뤼디거 자프란스키. 《니체; 그의 생애와 사상의 전기》. 문예출판사, 2003.
* 김진석.《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 민음사, 2000.
* 차하순·정동호 공저.《부르크하르트와 니이체》. 서강대학교 출판부, 1986.
* 박찬국.《니체와 불교》. 씨아이알, 2013.
* 마르틴 하이데거. 《니체와 니힐리즘》. 지성의 샘, 1996.
* 마르틴 하이데거. 《니체1》. 길, 2010.
* 마르틴 하이데거. 《니체2》. 길, 2012.
* 마르틴 하이데거. 《니체 철학강의 1》. 이성과현실, 1991.
* 질 들뢰즈. 《니체와 철학》. 민음사, 2001.
* 키스 안셀 피어슨. 《how to read 니체》. 웅진지식하우스, 2007.
== 프리드리히 니체의 명언 ==
{{위키인용집}}
* 너는 안이하게 살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항상 군중 속에 머물러 있으라. 그리고 군중 속에 섞여 너 자신을 잃어버려라.
*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ref>[http://www.nietzschesource.org/#eKGWB/GD-Sprüche-8 Was mich nicht umbringt, macht mich stärker]</ref>
* 옛사람들이 신을 위해서 행했던 것을 요즘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 행한다.
* 실제의 세상은 상상의 세상보다 훨씬 작다.
* 애초에 얻고 싶은 바가 명확하지 않았던 자들에게는 잃을 것도 명확하지 않다.
* 내게 있어서 무신론이란 증명이 불필요한 즉각적인 사실이다.
* 고통을 통해 정신이 성장하고 새 힘을 얻게 된다.
*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있다. 우리가 신을 죽여버렸다.<ref>[http://www.nietzschesource.org/#eKGWB/FW-125 Gott ist tot! Gott bleibt tot! Und wir haben ihn getötet!]</ref>
* 한낱 빛이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라.
* 인생의 목적이 있는 사람은 거의 모든 역경을 감당할 수 있다.
== 각주 ==
{{각주|2}}
== 참고 문헌 ==
* [http://philinst.snu.ac.kr/bbs/download.php?bo_table=supplement&wr_id=25&no=0 니체 『도덕의 계보』 / 백승영] pdf
* [http://philinst.snu.ac.kr/bbs/download.php?bo_table=supplement&wr_id=51&no=0 니체 『우상의 황혼』 / 백승영] pdf
* [http://philinst.snu.ac.kr/bbs/download.php?bo_table=supplement&wr_id=52&no=0 니체 『유고(1885년 가을~1887년 가을)』 『유고(1887년 가을~1888년 3월)』 『유고(1888년 초~1889년 1월 초)』 / 백승영] pdf
* [http://philinst.snu.ac.kr/bbs/download.php?bo_table=supplement&wr_id=74&no=0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백승영] pdf
* 아침놀 (책세상, 2004)
{{글로벌세계대백과}}
{{지만지}}
== 외부 링크 ==
* (독일어) [http://www.nietzschesource.org/#eKGWB 니체 문헌 보관소]
{{위키문헌|저자: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위키공용|Friedrich Wilhelm Nietzsche}}
{{위키인용집}}
{{포털|철학|문학}}
* {{브리태니커|b04n1181b}}
* {{두피디아|101013000886205}}
* {{네이버캐스트|139}}
* {{구텐베르크 저자|Friedrich_Nietzsche}}
* {{IEP|nietzsch}}
* {{SEP|nietzsche}}
* {{월드캣 아이디|lccn-n79-21132}}
* {{dmoz|Society/Philosophy/Philosophers/N/Nietzsche,_Friedrich}}
* [http://www.nietzschehaus.ch/ 니체 하우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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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독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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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렬:니체, 프리드리히}}
[[분류:프리드리히 니체| ]]
[[분류:1844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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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라이프치히 대학교 동문]]
[[분류:본 대학교 동문]]
[[분류:프로이센-프랑스 전쟁 관련자]]
[[분류:폐렴으로 죽은 사람]]
[[분류:19세기 독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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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옛도마뱀과]]
|속='''옛도마뱀속'''<br />(''Sphenodon'')
|속_명명=Gray, 1831
|하위_링크=종
|하위=
* 본문 참조
|지도=Tuatara (Sphenodon) Distribution.png
}}
'''투아타라'''(tuatara)는 [[훼두목|옛도마뱀목]]에 속하는 [[파충류]]로 [[뉴질랜드]]에 2종이 분포한다. ‘투아타라’라는 이름은 [[마오리어]]로 ‘가시돋힌 등’이라는 뜻을 가졌다. 2종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체는 길이 24cm, 몸무게 500g 정도까지 자란다. 다른 파충류들과 구분되는 특징으로는 치아가 턱뼈에 유착되어 있으며, 낮은 온도(16-21°C)에서 잘 견디고, 오히려 27°C이상의 온도에서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번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까지 적어도 10년 이상 걸리며, 4년에 한번씩 알을 낳기 때문에 번식이 더디다. 이들의 수명은 매우 길어서 보통 60년정도이고, 심지어 100년을 넘게 살기도 하는데, 뉴질랜드 자연박물관의 투아타라가 111살의 나이로 새끼를 낳은 일도 있다.<ref>{{웹 인용|url=http://www.ddangi.com/topicnews5235.html|제목=〈111살에 아빠가 된 뉴질랜드의 투아타라〉|출판사=《웹진 괴물딴지》|확인날짜=2009-02-02}}</ref>
개체수가 적고, 서식지가 극히 제한되어 있어 1895년부터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종(endangered species)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 하위 종 ==
* ''Sphenodon punctatus'' <small>(Gray, 1842) (보유명)</small>
* ''Sphenodon guntheri'' <small>Buller, 1877</small>
* [[멸종|†]] ''Sphenodon diversum'' <small>Colenso, 1885</small>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Sphenodontidae}}
* [https://web.archive.org/web/20050923014852/http://www.mtbruce.org.nz/tuatara.htm 투아타라] - Mount Bruce 국제 야생동물 센터
{{전거 통제}}
[[분류:훼두목]]
[[분류:살아있는 화석]]
[[분류:뉴질랜드의 고유종 동물]]
[[분류:뉴질랜드의 파충류]]
[[분류:존 에드워드 그레이가 명명한 분류군]]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생물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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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_설명 = 첫째줄: [[얼룩푸른혀도마뱀]] - [[해안누룩뱀]] - [[굼벵이무족도마뱀]]<br />둘째줄: [[노랑머리난쟁이도마뱀붙이]] - [[히스파니올라가면말린꼬리도마뱀]] - 정체불명<br />셋째줄: [[모래장지뱀]] - [[콧날방울뱀]] - [[칼라로돈]]<br />넷째줄: [[화강암밤도마뱀]] - [[유럽장님뱀]] - [[예수바실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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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_링크=아목
|하위=
*본문 참조
|지도=World.distribution.sauria.1.png
}}
'''뱀목''' 또는 '''유린목'''(有鱗目, {{lang|la|Squamata|스쿠아마타}}, scaled reptiles)은 파충강의 한 목이다. 도마뱀과 뱀을 포함한다.
== 하위 분류 ==
분류학적으로, 뱀목은 3개의 아목으로 분류된다.
* '''뱀목'''(Squamata)
** [[도마뱀아목]](Sauria 또는 Lacertilia): 전 세계적으로 약 3,700여종이 분포
** [[뱀|뱀아목]](Serpentes): 전 세계적으로 약 2,400종이 분포
** [[지렁이도마뱀아목]](Amphisbaenia)
이들 중, 도마뱀은 [[다계통군]]을 형성한다. [[도마뱀아목]](Sauria)이라는 좀 더 최근의 분류명은 일반적으로 파충류와 조류 등에 사용되며, 뱀목(Squamata)은 다르게 나뉜다.
<!-- Zoological Journal of the Linnean Society (1998), 124: 235–265. -->
* [[이구아나아목]](Iguania) - 아가마도마뱀, 카멜레온, 이구아나 그리고 다른 [[신세계]] 도마뱀 등
* 스클레로글로사아목 (Scleroglossa)
** [[무족도마뱀하목]](Anguimorpha) – [[왕도마뱀류]], [[독도마뱀|독도마뱀류]], [[악어도마뱀과|악어도마뱀류]] 등
** [[지렁이도마뱀하목]](Amphisbaenia) – [[지렁이도마뱀류]]
** [[도마뱀붙이하목]](Gekkota) – [[도마뱀붙이]]
** [[도마뱀하목]](Scincomorpha) – ([[도마뱀과|도마뱀류]], [[채찍꼬리도마뱀과|채찍꼬리도마뱀류]] 그리고 [[장지뱀]]류)
** [[뱀|뱀하목]](Serpentes) - [[뱀]]
이들 아목 사이의 관계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ref name="Fry2006">
{{저널 인용
|저자 = Fry, B. et al.
|연도 = 2006
|발행월 = 2월
|제목 = Early evolution of the venom system in lizards and snakes
|저널 = Nature | volume=439
|쪽 = 584–588 | url= http://www.nature.com/nature/journal/v439/n7076/abs/nature04328.html
|doi = 10.1038/nature04328 |형식 = [http://www.venomdoc.com/downloads/2005_BGF_Nature_squamate_venom.pdf PDF]
}}
</ref> 뱀목(Squamate)의 거의 대부분(60%)을 포괄하는 하나의 잠정적인 독을 지닌 분류군이 형성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새로운 분류명 Toxicofera는 다음과 같은 전통적인 [[생물 분류|분류]]로 구성되어 있다.<ref name="Fry2006"/>
* [[뱀|뱀아목]](Serpentes) - 뱀
* [[이구아나아목]](Iguania) - 아가마도마뱀, 카멜레온, 이구아나 등
* [[무족도마뱀하목]](Anguimorpha)
** [[왕도마뱀과]](Varanidae) - 코모도뱀을 포함한 왕도마뱀류
** [[무족도마뱀과]](Anguidae) - 악어도마뱀류, 유리도마뱀류 등
** [[독도마뱀과]](Helodermatidae) - 길라독도마뱀, 멕시코구슬도마뱀 등
== 계통 분류 ==
{{계통도/인룡상목}}
== 각주 ==
{{각주}}
{{파충류}}
{{분류군 식별자|from=Q122422}}
{{전거 통제}}
{{토막글|파충류}}
[[분류:뱀목|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생물 분류
|이름=악어
|색=동물
|그림=Crocodilia montage.jpg
|계=[[동물|동물계]]
|문=[[척삭동물|척삭동물문]]
|강=[[파충류|파충강]]
|목='''악어목'''<br />(Crocodilia)
|목_명명=[[리처드 오언|오언]], 1842
|하위_링크=과
|하위=
* [[앨리게이터과]](Alligatorinae)
* [[크로커다일과]](Crocodylinae)
* [[가비알과]](Gavialinae)
|지도=World.distribution.crocodilia.1.png
}}
'''악어'''(鰐魚)는 '''악어목'''(鰐魚目)에 속하는 [[파충류]]의 총칭으로, 약 2억 2천만 년 전에 진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룡]]이나 [[새]]와 근연관계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23종이 알려져 있다.
== 생태 ==
악어는 물을 수는 있어도 씹지는 못하기 때문에 잡은 동물들을 빙글 돌리면서 몸통을 잘라 통째로 먹는다. 주로 물가에 매복하였다가 물 마시는 [[가젤]], [[누 (동물)|누]], [[임팔라]], [[얼룩말]], [[박쥐]],[[뱀]],[[아나콘다]],[[새]] 등을 잡아 먹는다. [[재규어]]에게는 천적 대상이다.
악어는 [[동족포식]]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영역에 침범한 작은 개체에 대해선 거침없이 공격성을 표출한다. 악어의 동족포식 현상이 야생에서만 발견되지는 않는다. 좁은 공간에 여러 개체를 한데 모아 전시하는 동물원에서도 자주 동족포식 현상이 발견된다.<ref name = "동족포식">{{뉴스 인용 |제목 = Huge crocodile rips off and EATS its playmate's leg during feeding time at a zoo |url =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3213472/Huge-crocodile-rips-EATS-playmate-s-arm-feeding-time-zoo.html |출판사 = Daily Mail |저자 = Sarah Michael |날짜 = 2015-08-28 |확인날짜 = 2015-08-30}}</ref>
악어는 알을 수십개 낳고 땅에 묻어 몇 개월을 지키지만 주변에 있는 [[왕도마뱀]]이나 [[개코원숭이]]들이 훔쳐가기 때문에 몇 개가 남지 않고 부화되지만 물 속에서 살아남는 최후의 새끼는 소수이다.
== 원시 악어 ==
[[중생대]] [[백악기]], 무리생활을 했던 3미터쯤 되는 길이의 원시 악어는 육식공룡처럼, 긴 꼬리로 균형을 잡으면서 앞발을 든 채 긴 뒷다리로 민첩하게 걷고 달리면서 백악기 호수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ref>{{뉴스 인용 |저자=조홍섭 |제목=백악기 거대 악어는 왜 두 발로 걸었나 |url=http://ecotopia.hani.co.kr/499337 |뉴스=[[한겨레]] 물바람숲 |날짜=2020년 6월 26일}}</ref>
== 문화 ==
* 악어의 눈물 - 거짓 '''눈물''' 또는 위선적인 행위를 일컫는 용어. 이집트 나일강(江)에 사는 '''악어'''는 사람을 보면 잡아먹고 난 뒤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는 고대 서양전설에서 유래하였다. 여담으로 악어가 눈물을 흘리는 진짜 이유는 먹이를 씹을 때 턱근육이 눈물샘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 악어가죽 - 악어가죽으로 만든 가방은 최고급으로 쳐준다. 한국에서 인기가 높다. 그러나 악어가죽에 대한 수요는 악어 개체수의 감소를 유발하고 악어 멸종에 일조한다.
== 분류 ==
악어목은 크게 [[가비알과]], [[앨리게이터과]], [[크로커다일과]]의 세 과로 분류한다.
;'''악어목'''(Crocodilia) - 3과 8속 23종
* 가비알상과(Gavialoidea)
** [[가비알과]](Gavialidae) - 2속 2종
*** [[가비알|가비알속]](''Gavialis'') - 1종
*** [[말레이가비알|말레이가비알속]](''Tomistoma'') - 1종
* 앨리게이터상과(Alligatoroidea)
** [[앨리게이터과]](Alligatoridae) - 4속 8종
*** 앨리게이터아과(Alligatorinae)
**** [[앨리게이터속]](''Alligator'') - 2종
*** 카이만아과(Caimaninae)
**** [[카이만속]](''Caiman'') - 3종
**** [[팔레오수쿠스속]](''Paleosuchus'') - 2종
**** [[멜라노수쿠스속]](''Melanosuchus'') -1종
* 크로커다일상과(Crocodyloidea)
** [[크로커다일과]](Crocodylidae) - 2속 13종
*** 크로커다일아과(Crocodylinae)
**** [[크로커다일속]](''Crocodylus'') - 12종
**** [[난쟁이악어속]](''Osteolaemus'') - 1종
== 같이 보기 ==
* [[크로커다일]]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분류-줄}}
{{파충류}}
{{분류군 식별자|from=Q25363}}
{{전거 통제}}
{{토막글|파충류}}
[[분류:악어| ]]
[[분류:살아있는 화석]]
[[분류:리처드 오언이 명명한 분류군]]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생물 분류
|이름=파충류
|색=동물
|그림=Reptiles.jpg
|그림_설명=각종 파충류.
|계=[[동물|동물계]]
|문=[[척삭동물|척삭동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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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류|분류=[[석형류]](Sauropsida)}}
|강='''파충강'''<br />(Reptilia)
|강_명명= Laurenti, 1768
|하위_링크=목
|하위=
* [[거북|거북목]](Testudines)
* [[뱀목]](Squamata)
* [[악어|악어목]](Crocodilia)
* [[투아타라|옛도마뱀목]](Sphenodontia)
}}
'''파충류'''(爬蟲類, {{llang|la|Reptila}}, {{llang|en|Reptiles}})는 [[용궁류]](蜥形類, {{lang|en|Sauropsida}}) '''파충강'''(爬蟲綱)에 속하는 [[척추동물]](脊椎動物)이다. [[린네]]식 분류법으로 파충류로 분류되는 [[동물]]들을 뜻하며, 공기로 호흡하고, "냉혈(冷血,Cold-Blooded)" 물질대사를 하고, 딱딱한 껍질을 갖고 [[양막]](羊膜, amnion)을 지닌 알을 낳는다. [[태생]]을 할 경우에도 유사한 막(membrane)이라는 시스템을 유지한다. [[피부]]는 [[비늘]]과 [[껍질]]로 이루어져 있다. 네 개의 [[다리 (해부학)|다리]]를 지니거나 네발을 지닌 선조에서 유래한 [[네발동물]](영어: Tetrapod)이며, [[배 (동물)|배]](胚, embryo)가 [[양막]]이란 막(膜, membrae)에 의해 둘러싸인 구조인 양막형 알(amniotic eggs)을 낳는다. 현재의 파충류들은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 분포하며, 네 개의 목(目, order)으로 분류된다. 최근에는 [[조강]]과 함께 [[용궁류]]의 분기군(分岐群, ''Clade'')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의 파충류는 조강을 제외하고, 거북목을 포함한다.
* [[악어|악어목]](Crocodilia) - 23 종
* [[투아타라|옛도마뱀목]](Sphenodontia) - 2 종.
* [[뱀목]](Squamata) - [[뱀]]과 [[도마뱀아목|도마뱀]]을 포함. 약 7,600 종
* [[거북|거북목]](Testudines) - 약 300 종
대표적인 파충류에는 [[뱀]], [[도마뱀]], [[카멜레온]], [[거북]], [[자라]], [[악어]] 등이 있다. 과거 번성했던 [[공룡]]은 파충류로 보고 있으며, 전설에 나오는 [[용]](dragon)은 파충류 모양을 본 뜬 것이다.
파충류는 양서류와 달리 물속에서 살아가는 [[유생]] 단계(예, 개구리의 올챙이, 도롱뇽의 올챙이 시기)를 거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파충류는 알을 낳으며(oviparous (egg-laying)) 비늘을 가진 몇몇 종은 새끼를 낳는다. 새끼를 낳는 경우는 난태생 (ovoviviparity, 알이 만들어지지만 어미 몸 속에서 오래 머물면서 알을 깨고 나올 때 어미 몸 밖으로 배출됨)과 태생(viviparity, 석회질의 껍질을 만들지 않고 새끼를 출산함) 둘 중 하나이다. 태생(viviparous)을 하는 파충류들은 포유류의 태반과 닮은 다양한 형태의 태반을 이용하여 태아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며, 난태생하는 종의 경우에는 초기에 많은 영양분을 알 속에 넣어주고 알이 깨어날 때까지 돌봐준다.
현존하는 파충류들은 성체의 크기가 1.7 cm(0.6 in)인 작은 도마뱀붙이(게코 도마뱀, ''Sphaerodactylus ariasae'')에서부터 길이가 6m, 몸무게가 1,000kg에 달하는 [[바다악어]](''Crocodylus porosus'')까지 다양한 크기로 존재한다. 파충류를 연구하는 과학을 [[양서파충류학]](兩棲爬蟲類學, Herpetology)이라 한다.
== 분류 ==
=== 분류의 역사 ===
파충류들은 [[양서류]]들과 함께 분류되어 있던 부류에서 떨어져 나왔다. 보통의 [[살무사]]나 [[풀뱀]] 등이 물에서 사냥하는게 종종 보고되는 등, 종의 다양성이 적었던 [[스웨덴]]에서 연구를 했던 [[칼 폰 린네]]는 그의 저서, [[자연의 체계]]에서 모든 파충류와 [[양서류]]를 "III-양서류"라는 하나의 강(class)으로 분류하였다.<ref name="Linn1758">{{서적 인용
|성 = [[린네우스]]
|이름 = 카를로스
|저작년도 = 1758년
|url=http://biodiversitylibrary.org/bibliography/542
|제목 = Systema naturae per regna tria naturae :secundum classes, ordines, genera, species, cum characteribus, differentiis, synonymis, locis. }}
</ref>
=== 분류 체계 ===
파충류의 계통수는 아래와 같다.
* [[석형강]](Sauopsida)
*
:* Protorothyrididae과 (멸종)
:* '''[[무궁아강]]'''(Anapsida)
::* Mesosauridae과 (멸종)
::* Procolophonida목 (멸종)
::* [[거북|거북목]](Testudines)
:* '''[[이궁아강]]'''(Diapsida)
::* [[어룡|어룡상목]](Ichthyopterygia) - 어룡 (멸종)
::* [[사경룡류|사경룡상목]] 또는 사우롭테리기아상목 (Sauropterygia) - 수장룡 (멸종)
::* [[인룡상목]](Lepidosauria)
:::* [[옛도마뱀목]](Rhynchocephalia) - 투아타라
:::* [[뱀목]](Squamata)
::* [[지배파충류]](Archosauria)
:::* [[악어|악어목]](Crocodilia) - 악어
:::* [[익룡|익룡목]](Pterosauria) - 익룡 (멸종)
:::* [[공룡|공룡상목]](Dinosauria) - 공룡
::::* [[조반류|조반목]](Ornithischia) - 조반류 공룡 (멸종)
::::* [[용반류|용반목]](Saurischia)
:::::* '''[[새|조강]]'''(Aves) - 새
이 중 현존하는 종 가운데 [[조강]]을 제외하여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 '''파충강'''(Reptilia)
** '''[[거북|거북목]]'''(Testudines)
** '''[[이궁아강]]'''(Diapsida)
*** '''[[옛도마뱀목]]'''(Rhynchocephalia)
*** '''[[뱀목]]'''(Squamata)
**** [[도마뱀아목]](Lacertilia)
**** [[뱀|뱀아목]](Serpentes)
**** [[지렁이도마뱀류|지렁이도마뱀아목]](Amphisbaenia)
*** '''[[악어|악어목]]'''(Crocodilia)
== 계통 분류 ==
{{계통도/인룡상목}}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파충류의 과 목록]]
== 각주 ==
{{각주}}
{{척삭동물}}
{{파충류}}
{{분류군 식별자|from=Q10811}}
{{전거 통제}}
[[분류:파충류| ]]
[[분류:측계통군]]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생물학 사이드바}}
[[파일:Animal diversity.jpg|thumb]]
'''동물학'''(動物學, {{llang|en|zoology}})은 생물학의 한 갈래로서 동물을 대상으로 생명 현상(生命現象)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동물의 분류, 발생, 생태, 형태, 유전, 진화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생물학]]의 한 분야이다.
== 역사 ==
동물학의 역사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물|동물의 왕국]]의 연구를 추적한다. 하나의 일관성 있는 분야로서 동물학의 개념이 훨씬 나중에 발생하였지만, 동물학은 [[박물학]]으로부터 병합되며 고대 [[그리스 로마 세계]]의 [[아리스토텔레스]]와 [[갈레노스]]의 노고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한 고대의 노고는 중세시대에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등의 [[이슬람 의학|이슬람 물리학자]]들과 학자들에 의해 더 발전되었다.<ref>{{저널 인용 |author=Mehmet Bayrakdar |year=1983 |title=Al-Jahiz and the rise of biological evolution |journal=The Islamic Quarterly |volume=21 |issue= |pages=149–55 |url=http://dergiler.ankara.edu.tr/dergiler/37/772/9842.pdf |accessdate=21 December 2012 |archive-date=2018-06-01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80601195825/http://dergiler.ankara.edu.tr/dergiler/37/772/9842.pdf |url-status= }}</ref><ref>{{서적 인용|title=Thinking about Life: The History and Philosophy of Biology and Other Sciences|author1=Paul S. Agutter |author2=Denys N. Wheatley |lastauthoramp=yes |publisher=Springer|year=2008|isbn=1-4020-8865-5|page=43|postscript=<!--None-->}}</ref><ref>{{서적 인용 |author=Saint Albertus Magnus |title=On Animals: A Medieval Summa Zoologica |year=1999 |publisher=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isbn=0-8018-4823-7 }}</ref>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동물분류학]]
== 각주 ==
{{각주}}
{{동물학}}
{{생물학 분야}}
{{전거 통제}}
[[분류:동물학|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생물학 사이드바}}
[[파일:Blätter mit Eis (11400428245).jpg|thumb]]
'''식물학'''(植物學)은 [[생물학]]의 한 갈래로서, 식물을 대상으로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식물학의 범위는 [[식물]]의 [[구조]], [[성장]], [[생식]], [[물질대사]], [[진화]], [[질병]], 화학적 특성, 그리고 다른 식물들과의 진화적인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를 포함한다. 가장 오래된 과학 분야의 하나인 식물학의 첫 걸음은 식용, [[약용식물|약초]], 그리고 독초([[:en:List of poisonous plants|poisonous plant]])를 구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식물에 대한 이러한 오랜 관심으로 식물은 현재 약 550,000여 종으로 분류된다.
== 하부 분야 ==
* [[식물의 진화|식물진화학]]
* [[식물분류학]]
* [[식물형태학]]
* [[식물해부학]]
* [[식물생태학]]
* [[식물화학|식물생화학]]
* [[식물유전학]]
* [[식물생리학]]
* [[식물병리학]]
* 식물해충학
* [[민족식물학]]
* [[화분학]]
* [[선태식물학]] (선태학)
* [[조류학 (식물학)|조류학]]
* [[고식물학]]
* [[미확인식물학]]
* 응용식물학
** [[임학]]
*** [[수목학]]
** [[농학]]
** [[조경학]]
** [[원예|원예학]]
** [[본초학]]
** [[실용식물학]]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분류-줄}}
* {{dmoz|Science/Biology/Botany/}}
{{식물학}}
{{생물학 분야}}
{{전거 통제}}
{{원예와 조원술|state=collapsed}}
{{토막글|생물학}}
[[분류:식물학|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파일:RNA-codons.png|섬네일|250px|[[전령 RNA]]의 코돈 배열]]
'''유전 부호'''(遺傳符號, {{llang|en|genetic code}}) 또는 '''유전 암호'''(遺傳暗號)는 각 [[코돈]](codon)이 어떤 [[아미노산]]을 [[부호화]]할지를 정해놓은 규칙이다.
이러한 유전 [[부호 (정보)|부호]]의 의미는 [[모스 부호]], [[아스키 코드]], [[유니코드]]처럼 [[부호화]](encoding) 시스템이며, [[AES]]나 [[RSA]]같은 [[암호화]](encryption) 시스템이 아니다.
유전 부호에 속하는 하나 하나의 [[부호]](code)를 '''[[코돈]]'''({{llang|en|codon}})이라고 부른다.
== 코돈 ==
코돈(codon)은 [[유전자 발현]]에서 하나의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전령 RNA]]와 [[운반RNA]]의 유전 정보이다.<ref>George M. Malacinski, 심웅섭 외 역, 분자생물학, 월드사이언스, {{ISBN|89-5881-047-5}}, 154쪽</ref>
== 역사 ==
어떻게 단백질이 부호화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은 DNA 구조가 1953년에 발견된 이후로 시작되었다. 미국의 천체물리학자인 조지 가모우(George Gamow)는 20가지로 지정된 표준 아미노산은 세 개의 염기로 구성되어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에 따르면, 염기의 총류는 총 네 가지이고, 표준 아미노산은 세 개의 염기로 이루어져 있기에 총 64가지의 서열이 존재할 수 있다.<ref name="isbn0-465-09138-5">{{서적 인용|first=Francis|last=Crick|title=What Mad Pursuit: A Personal View of Scientific Discovery|chapter-url={{google books |plainurl=y |id=awoXBQAAQBAJ|page=89}}|date=10 July 1990|publisher=Basic Books|pages=89–101|isbn=978-0-465-09138-6|chapter=Chapter 8: The genetic code}}{{깨진 링크|url=https://books.google.com/books?id=awoXBQAAQBAJ&pg=PA89 }}</ref>
이 주장은 1961년에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 시드니 브레너(Sydney Brenner), 레슬리 바넷(Leslie Barnett) 그리고 R.J. 와츠-토빈(R.J. Watts-Tobin)의 공동 실험에 의해 실증적으로 증명되었다. 같은 연도에는 코돈의 구조에 대해 연구되었고 그 구조가 마셜 워런 니런버그(Marshall Warren Nirenberg)와 하인리히 마테이(Heinrich Matthaei)의 실험으로 밝혀졌다.
== 전사와 코돈의 형성 ==
{{본문|전사 (생물학)}}
{| class="toccolours" style="border: 2px solid #aeffae; margin: 0 0 1em 1em; font-size: smaller; width:600px;"
| [[파일:Transcription kr.png|600px]]
|-
| [[전령 RNA]]와 코돈의 형성
|}
[[유전자 발현]]에서 새로운 [[단백질]]의 형성은 [[DNA]]에서 [[전사 (생물학)|전사]]된 [[전령 RNA]]의 형성과 함께 시작된다. DNA 사슬을 구성하는 특정한 염기 서열이 전사를 지시하는데 전사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억제자 효소가 부착되어 있어 전사를 막는다. 특정한 단백질의 생산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받으면 억제자는 DNA 사슬에서 떨어져 나가고 [[RNA 중합효소]]에 의해 전사가 시작된다. RNA 중합효소는 전사 시작 지점에 있는 프로모터의 염기서열에 의해 전사의 방향과 전사할 DNA 사슬을 선택하고 오퍼레이터에 결합되어 DNA 사슬을 풀어낸 후 전사를 시작된다. RNA 중합효소는 주형이 되는 DNA 사슬과 [[상보성 (생물학)|상보적]]인 [[리보뉴클레오타이드]]를 이용하여 [[전령 RNA]]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령 RNA의 염기서열은 세개씩 짝을 이뤄 코돈을 형성한다. 한편 RNA 중합효소는 전사 종결을 지시하는 DNA 염기서열을 만나면 전사를 중단하고 DNA에서 떨어져 나간다.<ref name="P2008">Pulves 외, 이광웅 외 역, 생명 생물의 과학, 2008, 교보문고, {{ISBN|978-89-7085-798-5}}, 228-230쪽</ref>
{| class="wikitable" style="width:500px; text-align:center;"
|+ '''유전 부호 표 (코돈의 조합)'''
|-
! rowspan="2" style="background:#eea" | 첫 번째
! colspan="4" style="background:#fda" | 두 번째
! rowspan="2" style="background:#eea" | 세 번째
|-
! style="font-weight:normal;background:#fda" | U
! style="font-weight:normal;background:#fda" | C
! style="font-weight:normal;background:#fda" | A
! style="font-weight:normal;background:#fda" | G
|-
| rowspan="4" style="background:#eea" | U
| UUU<br />[[페닐알라닌]] || UCU<br />[[세린]] || UAU<br />[[티로신]] || UGU<br />[[시스테인]] || style="background:#eea" | U<br />
|-
| UUC<br />[[페닐알라닌]] || UCC<br />[[세린]] || UAC<br />[[티로신]] || UGC<br />[[시스테인]] || style="background:#eea" | C<br />
|-
| UUA<br />[[류신]] || UCA<br />[[세린]] || UAA<br />종료 || UGA<br />종료 || style="background:#eea" | A<br />
|-
| UUG<br />[[류신]] || UCG<br />[[세린]] || UAG<br />종료 || UGG<br />[[트립토판]] || style="background:#eea" | G<br />
|-
| rowspan="4" style="background:#eea" | C
| CUU<br />[[류신]] || CCU<br />[[프롤린]] || CAU<br />[[히스티딘]] || CGU<br />[[아르기닌]] || style="background:#eea" | U<br />
|-
| CUC<br />[[류신]] || CCC<br />[[프롤린]] || CAC<br />[[히스티딘]] || CGC<br />[[아르기닌]] || style="background:#eea" | C<br />
|-
| CUA<br />[[류신]] || CCA<br />[[프롤린]] || CAA<br />[[글루타민]] || CGA<br />[[아르기닌]] || style="background:#eea" | A<br />
|-
| CUG<br />[[류신]] || CCG<br />[[프롤린]] || CAG<br />[[글루타민]] || CGG<br />[[아르기닌]] || style="background:#eea" | G<br />
|-
| rowspan="4" style="background:#eea" | A
| AUU<br />[[이소류신]] || ACU<br />[[트레오닌]] || AAU<br />[[아스파라긴]] || AGU<br />[[세린]] || style="background:#eea" | U<br />
|-
| AUC<br />[[이소류신]] || ACC<br />[[트레오닌]] || AAC<br />[[아스파라긴]] || AGC<br />[[세린]] || style="background:#eea" | C<br />
|-
| AUA<br />[[이소류신]] || ACA<br />[[트레오닌]] || AAA<br />[[리신]] || AGA<br />[[아르기닌]] || style="background:#eea" | A<br />
|-
| AUG<br />[[메티오닌]] || ACG<br />[[트레오닌]] || AAG<br />[[리신]] || AGG<br />[[아르기닌]] || style="background:#eea" | G<br />
|-
| rowspan="4" style="background:#eea" | G
| GUU<br />[[발린]] || GCU<br />[[알라닌]] || GAU<br />[[아스파라긴산]] || GGU<br />[[글리신]] || style="background:#eea" | U<br />
|-
| GUC<br />[[발린]] || GCC<br />[[알라닌]] || GAC<br />[[아스파라긴산]] || GGC<br />[[글리신]] || style="background:#eea" | C<br />
|-
| GUA<br />[[발린]] || GCA<br />[[알라닌]] || GAA<br />[[글루타민산]] || GGA<br />[[글리신]] || style="background:#eea" | A<br />
|-
| GUG<br />[[발린]] || GCG<br />[[알라닌]] || GAG<br />[[글루타민산]] || GGG<br />[[글리신]] || style="background:#eea" | G<br />
|}
== 안티코돈 ==
{{참고|운반 RNA}}
[[파일:TRNA illustration Korean.png|섬네일|250px|운반 RNA의 안티코돈]]
안티코돈은 [[운반 RNA]]의 RNA 사슬을 이루는 특정 구간의 염기서열이다. [[전령 RNA]]의 코돈은 [[리보솜]]에서 [[번역 (생물학)|번역]]되어 [[아미노산]]을 운반하는 [[운반 RNA]]의 안티코돈과 상보적으로 결합한다.<ref>Protain Data Bank, [http://www.pdb.org/pdb/static.do?p=education_discussion/molecule_of_the_month/pdb15_2.html Transfer RNA Structure] {{웨이백|url=http://www.pdb.org/pdb/static.do?p=education_discussion%2Fmolecule_of_the_month%2Fpdb15_2.html |date=20110428130729 }}</ref> 그런데 이렇게 상보적으로 결합을 하는 안티코돈이지만 그 개수는 64개가 아니라 45개가 존재한다.
=== 단백질의 형성 ===
{{참고|리보솜}}
[[운반 RNA]]는 [[RNA]] 사슬의 일부 구간이 안티코돈으로 작용하고 사슬의 끝에는 해당 아미노산을 결합시킨다. 이렇게 충전된 운반 RNA는 리보솜으로 들어가 전령 RNA의 코돈과 결합하고 리보솜은 운반 RNA의 끝에 달린 아미노산을 떼내어 폴리펩타이드 결합을 만든다. 아미노산이 떨어져 나간 운반 RNA는 리보솜 밖으로 나와 다시 아미노산을 전한다.<ref>조지 B 존슨, 전병학 역, 생명 과학, 동화기술, 2007, {{ISBN|89-425-1186-4}} , 208쪽</ref> 한편, 리보솜에서 만들어진 폴리펩타이드는 적당한 3차원 구조로 [[단백질 접힘|접혀서]] [[단백질]]이 된다.<ref>동아사이언스, 과학동아 2001년 9월호, 100쪽, ISBN ABD2001090</ref>
==아미노산==
20가지(페닐알라닌,세린,티로신,시스테인,류신,트립토판,프롤린,히스티딘,아르기닌,글루타민,이소류신,트레오닌,아스파라긴,리신,메티오닌,발린,알라닌,글리신,아스파라긴산,글루타민산)로 지정된 표준 아미노산은 세 개의 염기로 구성되어있다. 추가로 [[스톱코돈]](stop codon 또는 종결코돈)등이 있다.
== 같이 보기 ==
* [[유전자 발현]]
* [[전령 RNA]]
* [[전사 (생물학)|전사]]
* [[운반 RNA]]
* [[리보솜]]
* [[번역 (생물학)|번역]]
* [[부호화]]
* [[부호 (정보)]]
* [[복호화]]
* [[부호화 영역]]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 [http://www.ncbi.nlm.nih.gov/Taxonomy/Utils/wprintgc.cgi The Genetic Codes → Genetic Code Tables]
* [https://madscientist.wordpress.com/2016/07/21/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 유전암호는 영속적인가?]
* [http://scienceon.hani.co.kr/134102 '유전암호 재작성 생물'(GRO) 대장균 생산 2013.10.30] {{웨이백|url=http://scienceon.hani.co.kr/134102 |date=20180426173723 }}
* [http://scienceon.hani.co.kr/425178 유전암호 사용방식 바꿔, 대장균 게놈 설계·합성 2016.08.19] {{웨이백|url=http://scienceon.hani.co.kr/425178 |date=20180426173845 }}
{{유전자 발현}}
{{아미노산}}
{{전거 통제}}
[[분류:RNA]]
[[분류:유전자 발현]]
[[분류:단백질 생합성]]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생화학 사이드바}}
{{학문 정보
|학문명 = 생화학
|그림 = Myoglobin.png
|그림크기 =
|그림설명 =[[미오글로빈]]의 3차원 구조를 나타낸 것으로 알파 나선은 리본으로 표현되어 있다. [[맥스 퍼루츠]]와 [[존 켄드루]]는 1958년에 [[X선 결정학]]으로 미오글로빈의 구조를 최초로 밝혀냈고, 이러한 공로로 1962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다른 이름 =생물화학
|연구 분야 =
|학문 분야 =
|주요 개념 =
|파생 분야 =
|창시자 =
|창시 시기 =
|관련 직업 =
}}
'''생화학'''(生化學, {{llang|en|biochemistry 또는 biological chemistry}})은 살아있는 [[생물체]] 내부의 구성 성분 및 생물체와 관련된 생리작용 또는 화학적 과정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ref>{{웹 인용|url=http://www.acs.org/content/acs/en/careers/college-to-career/areas-of-chemistry/biological-biochemistry.html.html |title=Biochemistry|work=acs.org}}</ref> '''생물화학'''(生物化學, {{llang|en|biological chemistry}})이라고도 하지만, 보통 줄여서 생화학이라고 한다. 생화학적 과정들은 [[생명]]의 복잡성을 야기한다.
[[생물학]]과 [[화학]]의 하위 분야인 생화학은 [[분자유전학]], [[단백질|단백질 과학]], [[물질대사]]의 세 가지 분야로 나눌 수 있다. 20세기의 지난 수 십년 동안 생화학은 이들 세 가지 분야를 통해 생명의 과정을 설명하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생명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들이 생화학적 방법론과 연구에 의해 밝혀지고 발전하고 있다.<ref name="Voet_2005">[[#Voet|Voet]] (2005), p. 3.</ref> 생화학은 [[생체분자]]들이 어떻게 살아있는 [[세포]] 내에서 그리고 세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과정들을 발생시키는지를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ref name="Karp2009">[[#Karp|Karp]] (2009), p. 2.</ref> 이는 차례로 [[조직 (생물학)|조직]], [[기관 (해부학)|기관]], 개체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연구와 이해와 크게 관련되어 있다.<ref name="MillerSpoolman2012">[[#Miller|Miller]] (2012). p. 62.</ref>
생화학은 [[DNA]]에 [[유전암호|암호화]]되어 있는 유전 정보가 생명의 과정을 일으킬 수 있는 [[분자]]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인 [[분자생물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ref name="fn_1">[[#Astbury|Astbury]] (1961), p. 1124.</ref>
생화학의 대부분은 [[단백질]], [[핵산]], [[탄수화물]], [[지질 (생물학)|지질]]과 같은 생물학적 [[고분자]]의 구조, 기능, 상호작용 등에 대해 다루며, 이들 생체분자들은 세포의 구조를 형성하고 생명활동과 관련된 많은 기능들을 수행한다.<ref name="Biology">[[#Eldra|Eldra]] (2007), p. 45.</ref> 세포의 화학작용은 더 작은 [[분자]]들과 [[이온]]들에 달려있다. 이것들은 [[물]], [[금속]] 이온과 같은 [[무기 화합물]]이거나 [[단백질 생합성|단백질 합성]]에 사용되는 [[아미노산]]과 같은 [[유기 화합물]]일 수 있다.<ref name="Marks">[[#Marks|Marks]] (2012), Chapter 14.</ref> 세포가 화학 반응을 통해 환경으로부터 에너지를 이용하는 메커니즘은 [[물질대사]]로 알려져 있다. 생화학에서의 발견은 주로 [[의학]], [[영양학]], [[농업]]에 적용된다. 의학에서 생화학자들은 [[질병]]의 원인과 질병의 치료 방법 및 [[의약품]]에 대해 연구한다.<ref>[[#Finkel|Finkel]] (2009), pp. 1–4.</ref> 영양학에서 생화학자들은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과 [[영양실조|영양소 결핍]]의 영향에 대해 연구한다.<ref name=FFL2010>[[#UNICEF|UNICEF]] (2010), pp. 61, 75.</ref> 농업에서 생화학자는 [[토양|양]]과 [[비료]]를 조사하고, 작물 재배, 작물의 저장 및 [[해충구제|해충 방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 역사 ==
{{본문|생화학의 역사}}
[[파일:Gerty Theresa Radnitz Cori (1896-1957) and Carl Ferdinand Cori.jpg|섬네일|upright|[[거티 코리]]와 [[칼 코리]]는 [[코리 회로]]를 발견한 공로로 1947년에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공동수상했다.]]
생화학을 가장 넓은 정의로 보면 생물체의 구성 요소와 구성 체제,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결합하여 생물체가 되는가에 대한 연구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생화학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ref name="history of science">[[#Helvoort|Helvoort]] (2000), p. 81.</ref> 그러나 특정 과학 분야로서의 생화학은 생화학의 어떤 측면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19세기]] 또는 이보다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시작되었다. 어떤 이들은 생화학의 시작이 [[앙셀름 파얜]]이 1833년에 최초로 [[효소]]인 [[다이아스테이스]](오늘날 [[아밀레이스]]라 불리는)를 발견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주장<ref>[[#Hunter|Hunter]] (2000), p. 75.</ref> 하는 반면, 또 다른 이들은 [[에두아르트 부흐너]]가 세포 추출물에서 복잡한 생화학적 과정인 [[알코올 발효]]를 최초로 증명한 것을 생화학의 탄생으로 여기기도 한다.<ref>[[#Hamblin|Hamblin]] (2005), p. 26.</ref><ref>[[#Hunter|Hunter]] (2000), pp. 96–98.</ref> 일부는 1842년에 [[유스투스 폰 리비히]]의 생리학 및 병리학에서 물질대사에 대한 화학적 이론을 제시한 유기화학에서의 영향력 있는 연구를 생화학의 시작이라 꼽기도 하며,<ref name="history of science" /> 또는 보다 이른 시기인 18세기에 [[앙투안 라부아지에]]의 [[발효]] 및 [[세포 호흡]]에 대한 연구를 생화학의 시작이라 보기도 한다.<ref>[[#Berg|Berg]] (1980), pp. 1–2.</ref><ref>[[#Holmes|Holmes]] (1987), p. xv.</ref> 생화학의 복잡성을 밝혀내는데 도움을 준 이 분야의 많은 개척자들도 현대 생화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에밀 피셔]]는 단백질 화학에 대한 연구를,<ref>[[#Feldman|Feldman]] (2001), p. 206.</ref> [[프레더릭 가울랜드 홉킨스]]는 효소와 생화학의 역동적인 성질에 대해 연구했다.<ref>[[#Rayner|Rayner-Canham]] (2005), p. 136.</ref>
"생화학(biochemistry)"이라는 용어 자체는 "[[생물학]](biology)"과 "[[화학]](chemistry)"의 결합으로부터 유래하였다. 1877년에 펠릭스 호페 자일러(Felix Hoppe-Seyler)는 《생리화학 저널》(Zeitschrift für Physiologische Chemie) 제1호의 서문에서 생화학이란 용어를 생리화학의 동의어로 사용하였고, 생화학 여구 기관의 설립을 주장했다.<ref>[[#Ziesak|Ziesak]] (1999), p. 169.</ref><ref>[[#Kleinkauf|Kleinkauf]] (1988), p. 116.</ref>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독일]]의 [[화학자]] 칼 노이베르크(Carl Neuberg)가 1903년에 생화학이란 용어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며,<ref name="Ben-Menahem 2009">[[#Ben|Ben-Menahem]] (2009), p. 2982.</ref><ref>[[#Amsler|Amsler]] (1986), p. 55.</ref><ref>[[#Horton|Horton]] (2013), p. 36.</ref> 또 다른 이들은 프란츠 호프마이스터(Franz Hofmeister)가 생화학이란 용어를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ref>[[#Kleinkauf|Kleinkauf]] (1988), p. 43.</ref>
[[파일:DNA orbit animated.gif|섬네일|left|upright|DNA의 구조<ref>[[#Edwards|Edwards]] (1992), pp. 1161–1173.</ref>]]
한 때는 생명체와 생명체의 물질들이 무생물과 구별되는 어떤 본질적인 특성이나 물질(흔히 "[[생기론]]"으로 일컬어짐)을 가지고 있다고 일반적으로 믿어졌고, 오직 생명체만이 생명의 분자를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ref>[[#Fiske|Fiske]] (1890), pp. 419–20.</ref> 그런데 1828년에 [[프리드리히 뵐러]]는 [[요소 (화학)|요소]] 합성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여, [[유기 화합물]]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ref name="Kauffman 2001">[[#Kauffman|Kauffman]] (2001), pp. 121–133.</ref> 그 이후 생화학은 특히 20세기 중반부터 [[크로마토그래피]], [[X선 결정학]], 이중 분극 간섭계, 핵자기 공명분광법, 방사성 동위원소 표지법, [[전자현미경]], [[분자동역학]] 시뮬레이션과 같은 새로운 기술이 발달하면서 발전하였다. 이러한 기술들은 [[해당과정]] 및 [[시트르산 회로]]와 같은 [[세포]]의 많은 분자들과 [[대사 경로]]의 발견과 상세한 분석을 가능하게 했으며, 분자 수준에서 생화학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켰다. 필립 랜들(Philip Randle)은 1963년에 발견한 랜들 회로(포도당-지방산 회로) 및 [[당뇨병]]에 대한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랜들은 [[지방산]]이 근육에 의한 [[포도당]]의 산화를 감소시킨다는 것을 확인했다. 고지방 산화가 인슐린 저항성의 원인이었다.<ref name= "Ashcroft, Steve, 2006">[[#Ashcroft|Ashcroft]](2006)</ref>
생화학에서 또 다른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유전자]]와 세포에서 정보 전달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역할의 발견이었다. 생화학에서 이러한 부분을 흔히 [[분자생물학]]이라고 부른다.<ref>[[#Tropp|Tropp]] (2012), p. 2.</ref> 1950년대에 [[제임스 D. 왓슨]], [[프랜시스 크릭]], [[로절린드 프랭클린]], [[모리스 윌킨스]]는 [[DNA]] 구조를 밝혀내고, 유전 정보의 전달 관계를 제안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ref>[[#Tropp|Tropp]] (2012), pp. 19–20.</ref> [[조지 비들]]과 [[에드워드 테이텀]]은 균류에서 [[1유전자 1효소설|하나의 유전자는 하나의 효소를 생성한다는 것]]을 보여준 공로로 1958년에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였다.<ref name="Krebs 2012">[[#Krebs|Krebs]] (2012), p. 32.</ref> 콜린 피치포크(Colin Pitchfork)는 1988년에 [[DNA]] 증거로 살인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을 받은 최초의 사람으로, 이것은 [[법과학]]의 발전을 이끌었다.<ref name="Butler 2009">[[#Butler|Butler]] (2009), p. 5.</ref> [[앤드루 파이어]]와 [[크레이그 멜로]]는 [[유전자 발현]]의 침묵에서 [[RNA 간섭]](RNAi)의 역할을 발견한 공로로 2006년에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였다.<ref name="Sen 2007">[[#Chandan|Chandan]] (2007), pp. 193–194.</ref>
== 시작 물질: 생명의 화학 원소 ==
{{본문|인체의 구성|무기질}}
자연에서 발견되는 92가지의 [[화학 원소]]들 중 약 24가지는 다양한 종류의 [[생명체]]에 필수적이다. 지구 상의 [[희토류 원소]]는([[셀레늄]]과 [[아이오딘]]을 제외하고는) 생명체에서 사용되지 않고, 몇 가지 흔한 원소들([[알루미늄]]과 [[티타늄]])도 생명체에서 사용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생물체들은 필요로 하는 원소들의 종류가 공통적이지만, [[식물]]과 [[동물]]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예를 들어, 바다 조류는 [[브로민]]을 사용하지만, 육상 식물과 동물은 브로민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동물은 [[나트륨]]을 필요로 하지만, 일부 식물은 나트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식물은 [[붕소]]와 [[규소]]가 필요하지만, 동물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또는 극소량이 필요할 수도) 있다.
[[산소]], [[탄소]], [[수소]], [[질소]], [[칼슘]], [[인]]의 6가지 원소들은 사람의 세포를 포함한 살아있는 세포 질량의 약 99%를 차지한다. 인체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6가지 주요 원소 외에도, 사람은 18가지 이상의 미량 원소들을 필요로 한다.<ref>[[#Nielsen|Nielsen]] (1999), pp. 283–303.</ref>
{| class="wikitable" | style="{{float right}} border: 1px dashed black; font-size: 86%; "
|+ align="bottom" style="text-align:left; caption-side: bottom" |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주요 원소의 비율(질량 기준)
| rowspan="13"|[[파일:201 Elements of the Human Body.02.svg|300px]]
| style="width: 70pt;"| '''원소'''
| style="width: 50pt; text-align:center;"|'''원소 기호'''
| style="width: 40pt; text-align:right;"| '''신체 (%)'''
|-
| 산소(oxygen)
| style="text-align:center;"|O
| style="text-align:right;"|65.0
|-
| 탄소(carbon)
| style="text-align:center;"|C
| style="text-align:right;"|18.5
|-
| 수소(hydrogen)
| style="text-align:center;"|H
| style="text-align:right;"|9.5
|-
| 질소(nitrogen)
| style="text-align:center;"|N
| style="text-align:right;"|3.2
|-
| 칼슘(calcium)
| style="text-align:center;"|Ca
| style="text-align:right;"|1.5
|-
| 인(phosphorus)
| style="text-align:center;"|P
| style="text-align:right;"|1.0
|-
| 칼륨(potassium)
| style="text-align:center;"|K
| style="text-align:right;"|0.4
|-
| 황(sulfur)
| style="text-align:center;"|S
| style="text-align:right;"|0.3
|-
| 나트륨(sodium)
| style="text-align:center;"|Na
| style="text-align:right;"|0.2
|-
| 염소(chlorine)
| style="text-align:center;"|Cl
| style="text-align:right;"|0.2
|-
| 마그네슘(magnesium)
| style="text-align:center;"|Mg
| style="text-align:right;"|0.2
|-
| 기타(others)
|
| style="text-align:right;"|< 1.0
|}
== 생체분자 ==
{{본문|생체분자}}
[[생체분자]]의 4가지 주요 부류는 [[탄수화물]], [[지질 (생물학)|지질]], [[단백질]], [[핵산]]이다.<ref name=slabaugh>[[#Slabaugh|Slabaugh]] (2007), pp. 3–6.</ref> 많은 생물학적 분자(생체분자)들은 [[중합체]]이다. [[단위체]]는 중합체로 알려진 큰 [[고분자]]를 생성하기 위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상대적으로 작은 분자들이다. 단량체가 서로 연결되어 [[생체고분자]]를 합성할 때 [[탈수 반응]]을 거치게 된다. 서로 다른 고분자들은 더 큰 복합체를 구성할 수 있으며, 이러한 복합체들은 종종 [[생물활성]]에 필요하다.
=== 탄수화물 ===
{{본문|탄수화물|단당류|이당류|다당류}}
{{multiple image
| align = right
| direction = vertical
| header = [[탄수화물]]
| image1 = Beta-D-Glucose.svg
| width1 = 220
| caption1 = [[단당류]]인 포도당
| image2 = Sucrose-inkscape.svg
| width2 = 220
| caption2 = [[이당류]]인 수크로스(포도당+과당)
| image3 = Amylose 3Dprojection.svg
| width3 = 220
| caption3 =수 천개의 포도당 단위체로 구성된 [[다당류]]인 아밀로스
}}
탄수화물의 주요 기능 중 두 가지는 에너지의 저장과 구조의 형성이다. 당(糖)은 탄수화물이지만, 모든 탄수화물이 당인 것은 아니다. 지구 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탄수화물들이 존재한다. 탄수화물은 에너지 저장에 사용될 뿐만 아니라 세포와 세포 사이의 상호작용 및 [[세포 신호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탄수화물은 [[단당류]]이며, 대부분 탄소, 수소, 산소가 1:2:1의 비율로(일반적인 화학식은 C<sub>n</sub>H<sub>2n</sub>O<sub>n</sub>,여기서 n은 3이상) 포함되어 있다. [[포도당]](C<sub>6</sub>H<sub>12</sub>O<sub>6</sub>)은 가장 중요한 탄수화물이다. [[과당]](C<sub>6</sub>H<sub>12</sub>O<sub>6</sub>)은 [[열매|과일]]의 [[단맛]]과 관련있는 단당류이며,<ref name=Whiting1970>[[#Whiting|Whiting]] (1970), pp. 1–31.</ref>{{Ref label|a|a|none}} [[디옥시리보스]](C<sub>5</sub>H<sub>10</sub>O<sub>4</sub>)는 [[DNA]]의 구성 성분이다. 단당류는 선형 또는 [[고리형 화합물|고리형]]으로 존재할 수 있다. 선형의 단당류는 [[카보닐기]]와 [[하이드록시기]]의 반응으로 [[산소]] 원자가 고리에 포함된 탄소 고리의 형태를 형성할 수 있다. 고리형 분자는 [[알도스]]이면 [[헤미아세탈]], [[케토스]]이면 헤미케탈이다.<ref>[[#Voet|Voet]] (2005), pp. 358–359.</ref>
[[파일:Existence in solution.png|center|섬네일|500px|D-포도당의 [[푸라노스]], 선형, [[피라노스]] 형태 사이의 전환]]
이들 고리형에서, 고리는 보통 5개 또는 6개의 원자를 갖는다. 5원자 고리형은 5원자 고리 화합물인 [[퓨란|푸란]]을 닮아서 [[푸라노스]]라고 하며, 6원자 고리형은 6원자 고리 화합물인 [[피란 (화합물)|피란]]을 닮아서 [[피라노스]]라고 한다. 예를 들어, 알도헥소스인 [[글루코스]](포도당)은 1번 탄소의 카보닐기와 4번 탄소의 하이드록시기 사이에 결합이 만들어져 헤미아세탈이 형성되면, [[글루코스|글루코푸라노스]]라고 불리는 5원자 고리 구조를 생성할 수 있다. 같은 반응이 글루코스의 1번 탄소의 카보닐기와 5번 탄소의 하이드록시기 사이에 일어나면, [[글루코피라노스]]라고 불리는 6원자 고리 구조를 생성할 수 있다.
두 개의 단당류는 물 분자가 방출되는 [[탈수 반응]]을 통해 [[글리코사이드 결합]]을 형성하여 [[이당류]]를 생성할 수 있다. 이당류는 [[가수분해]] 반응으로 글리코사이드 결합이 분해되어 2개의 단당류를 생성할 수 있다.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이당류는 [[포도당]] 1분자와 [[과당]] 1분자로 구성된 [[수크로스]](설탕)이다. 또 다른 주요 이당류는 포도당 1분자와 [[갈락토스]] 1분자로 구성된 [[우유]]에서 발견되는 [[젖당]]이다. 젖당(락토스)는 [[락테이스]]에 의해 가수분해될 수 있으며, 락테이스의 결핍은 [[젖당불내증]]을 초래한다.
몇 개(약 3~6개)의 단당류들이 결합하면, [[올리고당]]("올리고(oligo-)"는 "소수(few)"를 의미)을 형성한다. 올리고당은 표지 및 [[세포 신호]] 뿐만 아니라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ref name=Varki_1999>[[#Varki|Varki]] (1999), p. 17.</ref> 수 많은 단당류들이 중합되면 [[다당류]]를 형성한다. 단당류들은 긴 선형 사슬의 형태로 결합되거나, 분지(가지 구조)를 형성할 수도 있다. 일반적인 다당류로 [[셀룰로스]], [[녹말]], [[글리코젠]]이 있는데, 이들 세 가지 다당류들은 [[포도당]] [[단위체]]들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셀룰로스는 식물의 [[세포벽]]의 중요한 구조적 구성 성분이며, 녹말은 식물의 에너지 저장 형태로, 글리코젠은 동물의 에너지 저장 형태로 사용된다.
[[탄수화물]]은 환원 말단 또는 비환원 말단을 가질 수 있다. 탄수화물의 환원 말단은 선형의 [[알데하이드]]([[알도스]]) 또는 [[케톤]]([[케토스]]) 형태와 평형을 이룰 수 있는 탄소 원자이다. 이러한 환원 말단의 탄소 원자에서 단위체의 결합이 일어나는 경우, [[피라노스]] 또는 [[푸라노스]] 형태의 자유 [[하이드록시기]]는 다른 당의 하이드록시기 측쇄와 교환되어, 완전한 [[아세탈]]을 생성한다. 이것은 알데하이드 또는 케톤의 형태로 사슬이 열리는 것을 방지하고, 수정된 잔기를 비환원성으로 만든다. [[젖당]]에서 [[포도당]] 잔기는 환원 말단을 가지고 있고, [[갈락토스]] 잔기는 포도당의 4번 탄소의 하이드록시기(-OH)와 완전한 아세탈을 형성한다. [[수크로스]]는 포도당의 1번 탄소의 알데하이드와 [[과당]]의 2번 탄소의 케톤 사이에 완전한 아세탈의 형성으로 인해 환원 말단을 가지지 않는다.
=== 지질 ===
{{본문|지질|글리세롤|지방산}}
[[파일:Common lipid types.svg|섬네일|right|320px|일반적인 지질의 구조. 상단에 [[콜레스테롤]]과 [[올레산]]이 위치해 있다.<ref>[[#Stryer|Stryer]] (2007), p. 328.</ref> 가운데에는 [[글리세롤]]에 [[올레산|올레오일]], [[스테아르산|스테아로일]], [[팔미트산|팔리토일]] 사슬이 결합한 [[트라이글리세라이드]]가 있다. 아래쪽에는 일반적인 [[인지질]]인 [[포스파티딜콜린]]이 있다.<ref>[[#Voet|Voet]] (2005), Ch. 12 Lipids and Membranes.</ref>]]
[[지질 (생물학)|지질]]은 다양한 종류의 [[분자]]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왁스]], [[지방산]], [[인지질]], [[스핑고지질]], [[당지질]] 및 [[테르페노이드]](예: [[레티노이드]]와 [[스테로이드]])를 포함한 생물로부터 기원한 비교적 물에 불용성이고, 비극성 화합물들을 포괄하는 화합물들이다. 일부 지질들은 선형의 [[지방족 화합물]]이며, 다른 지질들은 고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부 지질들은 [[방향족 화합물]](고리형의 평명 구조를 가진)인 반면, 다른 지질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지질들은 유연한 반면, 다른 지질들은 경직된 것도 있다.<ref>[[#Fromm|Fromm and Hargrove]] (2012), pp. 22–27.</ref>
지질은 보통 [[글리세롤]] 1분자에 다른 분자들이 결합하여 만들어진다. [[트라이글리세라이드]]는 1분자의 글리세롤과 3분자의 [[지방산]]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경우에 지방산은 [[포화]](탄소 사슬에 이중 결합이 없음)되거나 불포화(탄소 사슬에 하나 이상의 [[이중 결합]]이 있음)될 수 있다.<ref>[[#Voet|Voet]] (2005), pp. 382–385.</ref>
대부분의 지질들은 전체적으로 비극성이지만, 일부분이 [[극성 (화학)|극성]]을 가질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지질 구조의 대부분은 물과 같은 극성 용매와 상호 작용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비극성 또는 [[소수성]]이다. 지질 구조의 또 다른 부분은 극성 또는 [[친수성]]이며, 물과 같은 극성 용매와 상호작용을 잘하는 경형이 있다. 소수성 부분과 친수성 부분을 모두 가지고 있는 분자를 [[양친매성 분자]]라고 한다. [[콜레스테롤]]의 경우 극성 부위는 하이드록시기(-OH)이다. [[인지질]]의 경우 극성 부위는 인산을 포함하는 머리 부분이다.<ref>[[#Voet|Voet]] (2005), pp. 385–389.</ref>
지질은 사람의 일상 식단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사람들이 주로 섭취하는 대부분의 [[기름]]들과 [[버터]], [[치즈]], [[기 (음식)|기]]와 같은 [[유제품]]들은 [[지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식물성 기름]]은 다양한 [[다불포화 지방산]]이 풍부하다. 지방 함유 식품은 체내에서 소화 과정을 거치며, 지방의 최종 분해 산물인 지방산과 글리세롤로 분해된다. 또한 지질, 특히 [[인지질]]은 다양한 [[의약품]]에서 사용되는데, 공동가용화제(예: 비경구 투입) 또는 약물 운반체의 성분(예: [[리포솜]] 또는 [[트랜스퍼솜]])으로 사용된다.
=== 단백질 ===
{{본문|단백질|아미노산}}
[[파일:AminoAcidball.svg|thumbnail|160px|왼쪽에 [[아미노기]]가 있고 오른쪽에 [[카복시기]]가 있는 α-아미노산의 일반적인 구조]]
[[단백질]]은 [[아미노산]]이라고 불리는 단위체로 만들어진 매우 큰 고분자 중합체이다. 아미노산은 알파(α) 탄소라고 불리는 키랄 탄소에 [[아미노기]](–NH<sub>2</sub>), [[카복시기]](–COOH), 수소 원자(–H), [[곁사슬]](R기, –R)이 결합되어 있는 화합물이다. 아미노기와 카복시기는 생리적인 조건 하에서는 –NH<sub>3</sub><sup>+</sup> 와 –COO<sup>−</sup> 로 존재한다. 곁사슬(R기)는 각각의 아미노산의 종류마다 다르며, R기의 특성은 단백질의 전체적인 3차원 구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어떤 아미노산은 그 자체로 또는 변형된 형태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글루탐산]]은 중요한 [[신경전달물질]]로 기능을 한다. 아미노산들은 [[펩타이드 결합]]을 통해 서로 결합될 수 있다. 이러한 [[탈수 반응]]으로 물 분자가 제거되고, 하나의 아미노산의 아미노기의 질소와 다른 하나의 아미노산의 카복실기의 탄소가 펩타이드 결합에 의해 연결된다. 두 개의 아미노산이 펩타이드 결합으로 연결된 분자를 [[다이펩타이드]]라고 하며, 짧은 길이의 아미노산(보통 30개 이하)이 연결된 분자를 펩타이드 또는 [[폴리펩타이드]]라고 한다. 단백질은 많은 수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중요한 [[혈장]] 단백질인 [[알부민]]은 585개의 아미노산 잔기들로 구성되어 있다.<ref name="Metzler 2001">[[#Metzler|Metzler]] (2001), p. 58.</ref>
[[파일:Amino acids 1.png|섬네일|left|390px|일반적인 아미노산 (1) 중성 형태, (2) 생리학적 조건에서 존재하는 아미노산 (3) 다이펩타이드로 결합된 아미노산]]
[[파일:1GZX Haemoglobin.png|섬네일|right|160px|[[헤모글로빈]]의 구조. 빨간색과 파란색 리본은 [[글로빈]] 단백질을 나타내고, 녹색 구조는 [[헴]]기이다.]]
단백질은 구조적, 기능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단백질인 [[액틴]]과 [[마이오신]]의 움직임은 궁극적으로 골격근의 수축을 일으킨다. 많은 단백질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 중 하나는 특정 분자나 특정 분자들의 유형에 특이적으로 결합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결합은 매우 선택적일 수 있다. [[항체]]는 특정 유형의 분자와 결합하는 단백질의 한 예이다. 항체는 중쇄와 경쇄로 구성된다. 2개의 중쇄는 [[아미노산]]들 사이의 다이설파이드 결합을 통해 2개의 경쇄와 연결된다. 항체는 N-말단 도메인의 차이에 기초한 변형을 통해 특이적이게 된다.<ref>{{저널 인용|doi=10.1016/j.tibs.2009.11.005 |pmid=20022755 |pmc=4716677 |title=How antibodies fold |journal=Trends in Biochemical Sciences |volume=35 |issue=4 |pages=189–198 |year=2010 |last1=Feige |first1=Matthias J. |last2=Hendershot |first2=Linda M. |last3=Buchner |first3=Johannes }}</ref>
실제로 항체를 사용하는 [[효소결합면역흡착검사]](ELISA)은 현대 의학에서 다양한 생체분자를 검출하는데 사용하는 가장 민감한 검사 중 하나이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단백질은 [[효소]]이다. 살아있는 [[세포]]의 거의 모든 반응에는 반응의 [[활성화 에너지]]를 낮추기 위한 효소가 필요하다. 효소는 [[반응물|기질]]이라고 불리는 특정 반응물 분자를 인식한 다음 반응을 [[촉매]]한다. 활성화 에너지를 낮춤으로써 효소는 반응 속도를 10<sup>11</sup>배 이상으로 증가시킨다. 자발적으로 반응이 완료되는데 3,000년이 걸릴 반응은 효소 반응으로 1초도 채 걸리지 않을 수 있다. 효소 자체는 반응에서 소모되지 않으며, 다음 반응에서 재사용된다. 다양한 작용기를 사용하여 효소의 활성을 조절하고, 세포 전체의 생화학적 조절을 가능하게 한다.
단백질의 구조는 전통적으로 4가지 단계의 계층 구조로 설명된다. 단백질의 1차 구조는 아미노산의 선형적인 배열 순서로 결정된다. 예를 들어, "알라닌-글리신-트립토판-세린-글루탐산-아스파라긴-글리신-리신-…"과 같은 배열 순서이다. 2차 구조는 국지적인 형태와 관련이 있다. 아미노산들의 일부 조합은 α-나선이라고 불리는 코일 형태 또는 β-시트라고 불리는 시트 형태를 형성한다. 위의 헤모글로빈을 나타낸 그림에서도 일부 α-나선들을 볼 수 있다. 3차 구조는 단백질의 전체적인 3차원 입체 구조 형태이다. 이러한 단백질의 3차 구조는 아미노산의 배열 순서에 의해 결정된다. 실제로 아미노산 1개가 바뀌어도 전체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 [[헤모글로빈]]의 β 소단위체는 146개의 [[아미노산]] 잔기로 구성되어 있다. 헤모글로빈의 β 소단위체의 6번째 아미노산인 [[글루탐산]] 잔기가 [[발린]] 잔기로 치환되면 헤모글로빈의 입체 구조가 바뀌어 [[낫 모양 적혈구 빈혈증]]을 일으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4차 구조는 4개의 소단위체를 가지고 있는 헤모글로빈과 같이 여러 개의 [[폴리펩타이드]] 소단위체를 가지고 있는 단백질의 구조와 관련이 있다. 모든 단백질이 두 개 이상의 소단위체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ref>[[#Fromm|Fromm and Hargrove]] (2012), pp. 35–51.</ref>
[[파일:Protein structure examples.png|섬네일|800px|center|[[단백질 정보 은행]]의 단백질 구조들의 예]]
[[파일:Structural coverage of the human cyclophilin family.png|섬네일|350px|right|[[이성질화 효소]] 도메인의 구조로 대표되는 단백질족의 구성원]]
섭취된 단백질은 일반적으로 [[소장 (해부학)|소장]]에서 단일 아미노산으로 분해되어 흡수된다. 그리고 나서 아미노산들은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결합될 수 있다. [[해당과정]], [[시트르산 회로]], [[오탄당 인산 경로]]의 중간생성물들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20가지 아미노산들을 만드는데 사용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세균과 식물은 아미노산 합성에 필요한 모든 효소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 및 다른 포유류들은 단백질 합성에 사용되는 20가지 아미노산들 중 절반 정도만 합성할 수 있다. 이들은 [[아이소류신]], [[류신]], [[리신]], [[메싸이오닌]], [[페닐알라닌]], [[트레오닌]], [[트립토판]], [[발린]]을 합성할 수 없다. 이들은 [[필수 아미노산]]이기 때문에 섭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포유류는 [[알라닌]], [[아스파라긴]], [[아스파르트산]], [[시스테인]], [[글루탐산]], [[글루타민]], [[글리신]], [[프롤린]], [[세린]], [[티로신]]과 같은 비필수 아미노산들은 합성하는 효소들을 합성하는 효소들을 가지고 있다. 포유류는 [[아르지닌]]과 [[히스티딘]]을 합성할 수 있지만, 어리고 생장 중인 동물은 충분한 양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아르지닌과 히스티딘은 종종 필수 아미노산으로 간주된다.
아미노산에서 아미노기가 제거되면, α-[[케토산]]이라고 불리는 탄소 골격이 남는다. [[아미노기 전이효소]]는 아미노산의 아미노기를 다른 α-케토산으로 전달할 수 있다. 이것은 아미노산의 생합성에서 중요한데, 많은 생화학적 경로의 중간생성물들이 α-케토산 골격으로 전환된 다음, [[아미노기 전이반응]]을 통해 아미노기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아미노산들은 서로 결합하여 단백질을 생성할 수 있다.<ref>[[#Fromm|Fromm and Hargrove]] (2012), pp. 279–292.</ref>
비슷한 과정이 단백질 분해에 사용된다. 단백질은 먼저 구성 성분인 아미노산으로 가수분해된다. 혈액 중에 [[암모늄 이온]](NH<sub>4</sub><sup>+</sup>)으로 존재하는 유리 [[암모니아]](NH<sub>3</sub>)는 생명체에 독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질소 노폐물을 배설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이 존재해야 한다. 동물들의 필요에 따라 각기 다른 배설 방법들이 진화해 왔다. [[단세포 생물]]은 간단하게 암모니아를 환경으로 방출한다. 마찬가지로 [[경골어류]]는 암모니아를 물 속으로 방출한다. 일반적으로 [[포유류]]는 [[요소 회로]]를 통해 암모니아를 [[요소 (화학)|요소]]로 전환시킨 다음, 요소를 배설한다.<ref name="Sherwood 2012">[[#Sherwood|Sherwood]] (2012), p. 558.</ref>
서로 다른 두 단백질이 관련이 있는지, 즉 그들이 동종인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서열 비교 방법을 사용한다. [[서열 정렬]] 및 구조 정렬과 같은 방법은 과학자들이 관련 분자들 사이의 상동성을 식별하는데 도움을 주는 강력한 도구들이다.<ref name="Fariselli 2007">[[#Fariselli|Fariselli]] (2007), pp. 78–87.</ref> 단백질 간의 상동성을 발견하고, 관련성을 파악하는 것은 [[단백질족]]의 진화적인 패턴을 밝혀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두 단백질 서열이 얼마나 비슷한지를 발견함으로써, 단백질의 구조와 그에 따른 기능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 핵산 ===
{{본문|핵산|DNA|RNA|뉴클레오타이드}}
[[파일:0322 DNA Nucleotides.jpg|thumbnail|350px|중합체인 [[디옥시리보핵산]](DNA) 및 DNA의 단량체인 디옥시리보뉴클레오타이드의 구조]]
[[핵산]]은 [[세포핵]]에서 주로 발견되는 생명활동에 필수적인 [[생체고분자]]이다. 핵산은 모든 살아있는 [[세포]]와 [[바이러스]]에서 유전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복잡한 고분자량의 생화학적 거대 분자이다.<ref name="Voet_2005"/> 핵산은 [[뉴클레오타이드]]를 [[단위체]]로 하는 [[중합체]]이다. 뉴클레오타이드는 [[핵염기]]([[퓨린]] 계열 염기 또는 [[피리미딘]] 계열 염기), [[5탄당]], [[인산염|인산]]의 세 가지 성분으로 구성된다.<ref>[[#Saenger|Saenger]] (1984), p. 84.</ref>
[[파일:Nucleotides 1.svg|섬네일|center|500px|일반적인 핵산의 구성 성분의 구조적 요소. 이들은 적어도 하나 이상의 인산기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뉴클레오사이드 일인산, 뉴클레오사이드 이인산, 뉴클레오사이드 삼인산으로 표시된 화합물들은 모두 [[뉴클레오타이드]](인산이 없는 것은 [[뉴클레오사이드]])이다.]]
가장 일반적인 핵산은 [[디옥시리보핵산]](DNA)과 [[리보핵산]](RNA)이다.<ref>[[#Tropp|Tropp]] (2012), pp. 5–9.</ref> 각 뉴클레오타이드의 당과 인산은 서로 결합하여 핵산의 골격을 형성하고, 핵염기의 서열은 정보를 저장한다. 가장 일반적인 핵염기는 [[아데닌]], [[사이토신]], [[구아닌]], [[티민]], [[유라실]]이다. 핵산의 각 가닥의 [[핵염기]]들 사이에서 상보적인 [[염기쌍]]이 형성된다. 아데닌은 티민, 유라실과 [[수소 결합]]을 형성하고, 구아닌은 사이토신과 수소 결합을 형성한다.
[[세포]]의 유전 물질을 형성하는 것 외에도, [[뉴클레오타이드]]는 모든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주요 에너지 운반 분자인 [[아데노신 삼인산]](ATP)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2차 전달자]] 역할을 한다.<ref>[[#Knowles|Knowles]] (1980), pp. 877–919.</ref> [[DNA]]와 [[RNA]]에서 발견되는 핵염기는 서로 다른데, 아데닌, 사이토신, 구아닌은 DNA와 RNA에서 모두 발견되는 반면, 티민은 DNA에서만 발견되고, 유라실은 RNA에서만 발견된다.
== 물질대사 ==
=== 에너지원으로서의 탄수화물 ===
{{본문|탄수화물 대사}}
[[포도당]]은 대부분의 생명체에서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다당류]]는 [[효소]]에 의해 [[단량체]]로 분해된다. [[글리코젠 포스포릴레이스]]는 다당류인 글리코젠으로부터 포도당 잔기를 분해한다. [[젖당]]이나 [[수크로스]](설탕)과 같은 [[이당류]]는 두 개의 [[단당류]]로 분해된다.
==== 해당과정 ====
포도당은 [[해당과정]]이라고 불리는 10단계 과정으로 [[물질대사|대사]]되며, 그 결과로 포도당 1분자가 [[피루브산]] 2분자로 분해된다. 해당과정은 또한 2분자의 [[NAD+|NAD<sup>+</sup>]](니코틴아마이드 아데닌 다이뉴클레오타이드의 산화형)을 2분자의 NADH(니코틴아마이드 아데닌 다이뉴클레오타이드의 환원형)으로 전환시키고, 세포의 에너지 화폐인 [[아데노신 삼인산|ATP]] 2분자를 순생성한다. 해당과정은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세포가 산소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 피루브산을 [[젖산]](예: 사람에서)으로 전환시키거나, 피루브산을 이산화 탄소와 [[에탄올]](예: [[효모]])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NADH를 NAD<sup>+</sup>로 산화시켜서 NAD<sup>+</sup>를 해당과정에 공급한다. [[갈락토스]] 및 [[과당]]과 같은 다른 [[단당류]]들은 해당과정의 중간생성물로 전환될 수 있다.<ref>[[#Fromm|Fromm and Hargrove]] (2012), pp. 163–180.</ref>
==== 시트르산 회로와 산화적 인산화 ====
대부분의 사람 세포에서와 같이 충분한 산소를 공급받는 세포에서 피루브산은 더 대사될 수 있다. 피루브산은 [[아세틸-CoA]]로 비가역적으로 전환되고, 이 과정에서 [[이산화 탄소]]가 방출되고, NAD<sup>+</sup>가 [[NADH]]로 환원된다. 1분자의 포도당으로부터 생성된 2분자의 아세틸-CoA는 [[시트르산 회로]]로 들어가서 4CO<sub>2</sub>로 완전 분해되고, 이 과정에서 6[[NADH]], 2[[FADH2|FADH<sub>2</sub>]], 2[[아데노신 삼인산|ATP]]를 생성한다. 생성된 NADH와 FADH<sub>2</sub>는 [[전자전달계]]로 전달되는데, 전자전달계는 궁극적으로 전자를 산소(O<sub>2</sub>)로 전달하고, 이 과정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로 막(진핵세포의 경우 미토콘드리아 내막)을 경계로 한 H<sup>+</sup>(양성자)의 농도 기울기를 형성한다. 따라서 산소(O<sub>2</sub>)는 물(H<sub>2</sub>O)로 환원되고, 원래의 [[전자수용체]]인 NAD<sup>+</sup>와 [[FAD]]는 재생된다. 이것이 사람이 산소(O<sub>2</sub>)를 들이마시고, 이산화 탄소(CO<sub>2</sub>)를 내뿜는 이유이다. NADH와 FADH<sub>2</sub>의 고에너지 전자는 전자전달계를 전달되고, 이 과정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는 막을 경계로 한 H<sup>+</sup>(양성자)의 농도 기울기로 보존된 다음, [[ATP 생성효소]]를 통해 [[아데노신 삼인산|ATP]]로 전환된다. [[포도당]] 1분자가 [[세포 호흡]]에 사용되면, [[해당과정]]에서 [[기질수준 인산화]]로 2ATP, [[시트르산 회로]]에서 기질수준 인산화로 2ATP, [[산화적 인산화]]에서 28ATP([[NADH]]당 2.5ATP, [[FADH2|FADH<sub>2</sub>]]당 1.5ATP)가 합성되므로, 총 32ATP가 생성된다.<ref>[[#Voet|Voet]] (2005), Ch. 17 Glycolysis.</ref> 포도당을 완전히 산화시키기 위해 산소를 사용하는 것은 산소를 사용하지 않는 어떤 대사 과정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생물체에 제공한다는 것은 분명하며, 이것이 지구의 대기에 많은 양의 산소가 축적되고 나서야 복잡한 생명체가 출현하게 된 이유라고 생각된다.
==== 포도당신생합성 ====
{{본문|포도당신생합성}}
[[척추동물]]에서 격렬하게 수축하는 [[골격근]](예를 들어, 역도 또는 단거리 달리기를 하는 동안)은 에너지 요구량을 충족시킬 만큼 충분한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혐기성 대사 과정으로 전환되어 피루브산을 젖산으로 전환시킨다. [[간]]은 [[포도당신생합성]]이라는 과정을 사용하여 포도당을 재생성한다. 포도당신생합성은 [[해당과정]]과 반대되는 과정이 아니며, 실제로 해당과정에서 얻은 에너지양의 3배를 필요로 한다(해당과정에서 얻은 2ATP와 비교하여 포도당신생합성은 6ATP를 필요로 함). 위와 같은 반응으로 생성된 [[포도당]]은 에너지가 필요한 조직에서 해당과정으로 들어가거나, [[글리코젠]]([[식물]]에서는 [[녹말]])으로 저장되거나, 다른 [[단당류]]로 전환되거나, [[이당류]] 또는 [[올리고당류]]로 결합될 수 있다. 운동 중의 근육세포의 해당과정, 근육세포의 피루브산이 젖산으로 전환된 다음 혈액으로 방출되고, 간세포에서 젖산이 피루브산으로 전환된 다음 포도당신생합성을 통해 포도당을 합성하고 포도당을 혈액으로 방출하는 순환을 [[코리 회로]]라고 한다.<ref>[[#Fromm|Fromm and Hargrove]] (2012), pp. 183–194.</ref>
== 다른 분자 규모의 생물학과의 관계 ==
[[파일:Schematic relationship between biochemistry, genetics and molecular biology.svg|섬네일|250px|생화학, [[유전학]], [[분자생물학]] 간의 도식적 관계]]
생화학 연구자들은 생화학 고유의 특정 기술들을 사용하지만, [[유전학]], [[분자생물학]], [[생물리학]] 분야에서 개발된 기술, 아이디어를 점점 더 결합시켜 사용하고 있다. 이들 분야 중에서 내용과 기술의 측면에서 강경한 적은 없었다. 오늘날 분자생물학과 생화학이라는 용어는 서로 교환이 가능하다. 다음의 그림은 각 분야들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 생화학은 살아있는 생물체 내의 화학 물질과 [[생물체]]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과정들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생화학자들은 [[생체분자]]의 역할, 기능, 구조에 초점을 크게 둔다. 생물학적 과정 뒤에 있는 화학과 생물학적 활성 분자의 합성에 대한 연구는 생화학의 한 예이다.
* [[유전학]]은 유전적 차이가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흔히 이러한 연구는 정상적인 성분(예: 하나의 [[유전자]])의 부재에 의해 추론해 볼 수 있다. 소위 "[[야생형]]" 또는 정상 [[표현형]]인 생명체와는 다른 변화된 유전자를 가진 개체는 [[돌연변이체]]로 유전학의 연구 대상이다. 유전적 상호작용([[상위성 (생물학)|상위성]])은 종종 이러한 "녹아웃(knock-out)" 또는 "녹인(knock-in)" 연구에 대한 간단한 해석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 [[분자생물학]]은 [[게놈|유전 물질]]의 [[DNA 복제|복제]], [[전사 (생물학)|전사]], [[번역 (생물학)|번역]] 과정의 분자적 토대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분자생물학에 대한 단순한 설명임에도 불구하고 유전 물질이 [[RNA]]로 전사된 다음 [[단백질]]로 번역된다는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는 여전히 분자생물학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출발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에 대한 그림은 RNA의 새로운 역할을 반영하여 수정되고 있다.<ref name="Ulveling 2011">[[#Ulveling|Ulveling]] (2011), pp. 633–644.</ref>
* [[화학생물학]]은 생물학적 시스템의 동요를 최소화하면서 기능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저분자]] 기반의 새로운 도구를 개발하고자 한다. 또한, 화학생물학은 생체분자와 합성 장치(예: [[유전자 치료]] 또는 약물 분자를 전달할 수 있는 비어있는 바이러스의 [[캡시드]]) 사이의 비자연적 혼성체를 생성하는 생물 시스템을 사용한다.<ref>[[#Rojas|Rojas-Ruiz]] (2011), pp. 2672–2687.</ref>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div col|colwidth=22em}}
* [[:en:List of biomolecules|생체분자의 목록]]
* [[생물리학]]
* [[효소 번호]]
* [[대체생화학]]
* [[국제 생화학·분자생물학 연합]]
* [[대사체]]
* [[분자생물학]]
* [[단백질 분해]]
* [[저분자]]
* [[구조생물학]]
* [[시트르산 회로]]
{{div col end}}
== 주해 ==
{{참고 자료 시작}}
'''a.''' {{Note label|a|a|none}} 과당은 과일에서 발견되는 유일한 당은 아니다. 포도당과 수크로스는 다양한 과일에서 다양한 양으로 발견되며, 때때로 과당보다 많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대추의 식용 부분의 32%는 포도당인데 비해, 과당은 24%, 수크로스는 8%이다. 그러나 복숭아는 과당(0.93%)이나 포도당(1.47%)보다 수크로스(6.66%)가 더 많다.<ref name=Whiting1970p5>[[#Whiting|Whiting]], G.C. (1970), p. 5.</ref>
{{참고 자료 끝}}
== 각주 ==
{{각주|20em}}
=== 인용 문헌 ===
{{참고 자료 시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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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널 인용|ref=Astbury |doi=10.1038/1901124a0 |title=Molecular Biology or Ultrastructural Biology ? |journal=Nature |volume=190 |issue=4781 |pages=1124 |year=1961 |last1=Astbury |first1=W.T. |bibcode=1961Natur.190.1124A }}
* {{서적 인용|ref=Ben |author=Ben-Menahem, Ari |title=Historical Encyclopedia of Natural and Mathematical Sciences |journal=Historical Encyclopedia of Natural and Mathematical Sciences by Ari Ben-Menahem. Berlin: Springer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9tUrarQYhKMC&pg=PA2982 |year=2009 |publisher=Springer |isbn=978-3-540-68831-0 |page=2982|bibcode=2009henm.book.....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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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널 인용|ref=Edwards |doi=10.1016/0022-2836(92)91059-x |title=Molecular structure of the B-DNA dodecamer d(CGCAAATTTGCG)2 an examination of propeller twist and minor-groove water structure at 2·2Åresolution |journal=Journal of Molecular Biology |volume=226 |issue=4 |pages=1161–1173 |year=1992 |last1=Edwards |first1=Karen J. |last2=Brown |first2=David G. |last3=Spink |first3=Neil |last4=Skelly |first4=Jane V. |last5=Neidle |first5=Steph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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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널 인용|ref=Fariselli |doi=10.1093/bib/bbl032 |pmid=17003074 |title=The WWWH of remote homolog detection: The state of the art |journal=Briefings in Bioinformatics |volume=8 |issue=2 |pages=78–87 |year=2006 |last1=Fariselli |first1=P. |last2=Rossi |first2=I. |last3=Capriotti |first3=E. |last4=Casadio |first4=R. }} {{open ac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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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적 인용|ref=Krebs |author1=Krebs, Jocelyn E. |author2 = Goldstein, Elliott S. |author3 = Lewin, Benjamin |author4 = Kilpatrick, Stephen T. |title=Essential Genes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FzBs_QgihRIC&pg=PA32 |year=2012 |publisher=Jones & Bartlett Publishers |isbn=978-1-4496-1265-8}}
* {{서적 인용|ref=Fromm |author1 = Fromm, Herbert J. |author2 = Hargrove, Mark |title=Essentials of Biochemistry |year=2012 |publisher=Springer |isbn=978-3-642-19623-2 |url = https://books.google.com/books?q=editions:ISBN3642196241&id=2eXILOD0Yl8C}}
* {{서적 인용|ref=Hamblin |author = Hamblin, Jacob Darwin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mpiZRAiE0JwC&pg=PA26#v=onepage&q&f=false |title=Science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An Encyclopedia |publisher=ABC-CLIO |year = 2005 |isbn=978-1-85109-665-7 }}
* {{서적 인용|ref=Helvoort |author = Helvoort, Ton van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fjhdAgAAQBAJ&pg=PA81#v=onepage&q&f=false |title=Reader's Guide to the History of Science |editor= Arne Hessenbruch |publisher=Fitzroy Dearborn Publishing |year=2000 |isbn = 978-1-884964-29-9}}
* {{서적 인용|ref=Holmes |author = Holmes, Frederic Lawrence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MLY-x9a393QC&pg=PR15&lpg=PR15#v=onepage&q&f=false |title=Lavoisier and the Chemistry of Life: An Exploration of Scientific Creativity |publisher=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year= 1987 |isbn=978-0-299-09984-8 }}
* {{서적 인용|ref=Horton |editor = Horton, Derek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JQluAAAAQBAJ&pg=PA36#v=onepage&q&f=false |title=Advances in Carbohydrate Chemistry and Biochemistry, Volume 70 |publisher=Academic Press |year=2013 |isbn = 978-0-12-408112-3 }}
* {{서적 인용|ref=Hunter |author = Hunter, Graeme K. |title=Vital Forces: The Discovery of the Molecular Basis of Life |year=2000 |publisher=Academic Press |isbn=978-0-12-361811-5 |url = https://books.google.com/books/about/Vital_Forces.html?id=VdHV5ET4us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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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적 인용|ref=Slabaugh |author1 = Slabaugh, Michael R. |author2 = Seager, Spencer L. |title=Organic and Biochemistry for Today |publisher=Brooks Cole |location=Pacific Grove |year=2013 |isbn = 978-1-133-60514-0 |edition=6th |url = https://books.google.com/books/about/Organic_and_Biochemistry_for_Today.html?id=K-MBTrn3ZDQC }}
* {{서적 인용|ref=Sherwood |author1 = Sherwood, Lauralee |author2 = Klandorf, Hillar |author3 = Yancey, Paul H. |title=Animal Physiology: From Genes to Organisms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I6X8G8YPdv4C&pg=PA558 |year=2012 |publisher=Cengage Learning |isbn=978-0-8400-6865-1}}
* {{서적 인용|ref=Stryer |vauthors=Stryer L, Berg JM, Tymoczko JL|title=Biochemistry |publisher=W.H. Freeman |location=San Francisco |edition=6th |year=2007 |isbn=978-0-7167-8724-2 |url = https://books.google.com/books/about/Biochemistry.html?id=Uhm_ngEACAAJ}}
* {{서적 인용|ref=Tropp |author = Tropp, Burton E. |title=Molecular Biology |edition=4th |year=2012 |publisher=Jones & Bartlett Learning |isbn=978-1-4496-0091-4 |url = https://books.google.com/books/about/Molecular_Biology.html?id=CCQYtlufUIAC }}
* {{서적 인용 |ref=UNICEF |author=UNICEF |title=Facts for life |date=2010 |publisher=United Nations Children's Fund |location=New York |isbn=978-92-806-4466-1 |edition=4th |url=http://www.unicef.org/nutrition/files/Facts_for_Life_EN_010810.pdf |access-date=2019-05-14 |archive-date=2018-12-12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81212170249/https://www.unicef.org/nutrition/files/Facts_for_Life_EN_010810.pdf |url-status=dead }}
* {{저널 인용|ref=Ulveling |doi=10.1016/j.biochi.2010.11.004 |pmid=21111023 |title=When one is better than two: RNA with dual functions |journal=Biochimie |volume=93 |issue=4 |pages=633–644 |year=2011 |last1=Ulveling |first1=Damien |last2=Francastel |first2=Claire |last3=Hubé |first3=Florent }}
* {{서적 인용|ref=Varki |vauthors = Varki A, Cummings R, Esko J, Jessica F, Hart G, Marth J | title=Essentials of glycobiology | publisher=Cold Spring Harbor Laboratory Press | year=1999 | isbn=978-0-87969-560-6 |url=https://books.google.com/books/about/Essentials_of_Glycobiology.html?id=lH72FFWIIpgC }}
* {{서적 인용|ref=Voet |author1=Voet, D |author2=Voet, JG |year=2005 |title=Biochemistry |edition=3rd |publisher=John Wiley & Sons Inc. |location=Hoboken, NJ |url=http://www.chem.upenn.edu/chem/research/faculty.php?browse=V |isbn=978-0-471-19350-0 |doi= |url-status=dead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70911065858/http://www.chem.upenn.edu/chem/research/faculty.php?browse=V |archivedate=September 11, 2007 |df= }}
* {{서적 인용|ref=Whiting |author = Whiting, G.C |year=1970 |chapter=Sugars |editor=A.C. Hulme |title=The Biochemistry of Fruits and their Products |volume=Volume 1|place=London & New York |publisher=Academic Press |chapter-url = https://books.google.com/books/about/The_biochemistry_of_fruits_and_their_pro.html?id=KYDwAAAAMAAJ |isbn = 978-0-12-361201-4}}
* {{서적 인용|ref=Ziesak |author1 = Ziesak, Anne-Katrin |author2 = Cram Hans-Robert |url= https://books.google.com/books?id=ulN4rKWA8c4C&pg=PA169#v=onepage&q&f=false |title= Walter de Gruyter Publishers, 1749–1999|publisher=Walter de Gruyter & Co |year=1999|isbn=978-3-11-016741-2 }}
* {{웹 인용|last1=Ashcroft |first1=Steve |title=Professor Sir Philip Randle; Researcher into metabolism: [1st Edition] |url=https://search-proquest-com.mctproxy.mnpals.net/globalnews/docview/311080685/718B8A0FC0AD4F8DPQ/1?accountid=28000 |publisher=Independent |accessdate=(12/02/2006)}}
{{참고 자료 끝}}
== 더 읽을거리 ==
{{참고 자료 시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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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hler, Robert. ''From Medical Chemistry to Biochemistry: The Making of a Biomedical Disciplin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2.
* {{저널 인용|doi=10.1371/journal.pone.0190046 |pmid=29267345 |pmc=5739466 |title=Wikipedia as a gateway to biomedical research: The relative distribution and use of citations in the English Wikipedia |journal=PLOS ONE |volume=12 |issue=12 |pages=e0190046 |year=2017 |last1=Maggio |first1=Lauren A. |last2=Willinsky |first2=John M. |last3=Steinberg |first3=Ryan M. |last4=Mietchen |first4=Daniel |last5=Wass |first5=Joseph L. |last6=Dong |first6=Ting |bibcode=2017PLoSO..1290046M }}
{{참고 자료 끝}}
== 외부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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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 넘어옴|프로틴|웹 드라마|프로, 틴}}
[[파일:G-Protein.png|섬네일|G-Protein의 구조]]
'''단백질'''(蛋白質, {{문화어|계란소}})은 [[생화학]]에서 생물의 몸을 구성하는 고분자 [[유기 물질]]이다. '''흰자질'''이라고도 한다.
단백질 영어명 프로틴({{lang|en|protein}})은 그리스어의 proteios(중요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단백질의 한자 표기에서 단(蛋)이 새알을 뜻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단백질은 [[달걀]] 등의 새알의 흰자위를 이루는 주요 성분이다. 단백질이라는 한자어는 독일어 아이바이스슈토프({{llang|de|Eiweißstoff}})에서 비롯되었는데, 독일어를 직역하면 "흰자 물질"이라는 뜻이다.
수많은 [[아미노산]]의 연결체로 20가지의 서로 다른 아미노산들이 [[펩타이드 결합]]이라고 하는 화학 결합으로 길게 연결된 것을 [[폴리펩타이드]]라고 한다. 여러 가지의 폴리펩타이드 사슬이 4차 구조를 이루어 고유한 기능을 갖게 되었을 때 비로소 단백질이라고 불리며{{출처|날짜=2015-05-02}} 단백질과 폴리펩타이드는 엄밀히 말하면 다른 분자이지만 경우에 따라 구분 없이 쓰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분자량이 비교적 작으면 폴리펩타이드라고 하며, 분자량이 매우 크면 단백질이라고 한다.
단백질은 생물체 내의 구성 성분, [[세포]] 안의 각종 화학반응의 [[촉매]] 역할([[효소]]), [[항체]]를 형성하여 [[면역]]을 담당하는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화학식은 ([[질소|N]][[수소|H<sub>2</sub>]][[탄소|C]][[수소|H]][[곁사슬|R<sub>n</sub>]][[탄소|C]][[산소|O]][[산소|O]][[수소|H]])<sub>n</sub>이다.
단백질은 [[트립신]]이라는 단백질 분해효소의 작용에 의해 소화된다. 그런데 [[콩]]에는 트립신의 활동을 방해하는 콩트립신 저해제라는 단백질이 들어있어 콩을 날로 먹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콩을 가열할 경우 이 단백질 성분이 변성되어 저해기능을 잃는다. 결국 트립신이 활성화되어 소화효소의 침입이 용이해지는 것이다.<ref>{{서적 인용 |저자= 사마키 타케오 외 1 | 기타=구성회 옮김 |제목=부엌에서 알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의 과학 |날짜=2004 |출판사=휘슬러 |ISBN=89-90457-24-6|쪽=13 }}</ref>
[[단백질의 변성]]은 천연단백질이 물리적인 요인(가열, 건조, 교반, 압력, X선, 초음파, 진동, 동결)이나 화학적인 요인(산, 염기, 요소, 유기용매, 중금속, 계면활성제) 혹은 효소의 작용 등으로 원래의 성질을 잃어버리는 현상이다.
== 구조 ==
{{본문|단백질의 구조}}
단백질은 고유한 3차원 구조로 접히는(Folding) [[폴리펩타이드]] 사슬을 말한다. 단백질이 자연 상태에서 접히는 구조는 단백질의 이 폴리펩타이드를 이루는 [[아미노산]]들의 서열(sequence)에 의해 결정된다. 생화학자들은 단백질의 구조를 4개의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 '''1차 구조''': 아미노산 서열 한 개의 단백질이 가지는 구조는 상호작용하는 다른 분자들과 환경에 의해서 바뀔 수 있다. 이러한 구조의 변형은 단백질의 생물학적인 기능인 [[촉매]] 작용, 다른 분자와의 결합, 기계적 움직임 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선형 단백질의 1차 구조는 공유 결합인 [[펩타이드 결합]]으로 이루어지고, 이러한 [[펩타이드 결합]]은 단백질이 [[리보솜]]에 의해 합성될 당시에 형성된다. 단백질의 2차, 3차, 4차 구조는 단백질을 이루는 [[뼈대 (생화학)|뼈대]](Backbone Chain)와 [[곁사슬]](Side Chain) 구조들 간의 결합에 의해서 유지된다. 이 결합은 [[수소 결합]], [[소수성 결합]], [[이온 결합]]과 같은 [[비공유 결합]]과, [[디설피드 결합]]과 같은 [[공유 결합]]으로 나뉜다.
* '''2차 구조''': 단백질의 2차 구조는 뼈대(Backbone Chain)에 의해 형성된다. 뼈대에 속해있는 모든 아미노산이 갖고 있는 [[카보닐기]]의 [[산소]] 원자와 [[아민기]]의 [[수소]] 원자 사이에 수소결합이 형성되어 열역학적으로 안정한 상태(가장 낮은 자유에너지를 가진 상태)를 갖게 된다. 이때 단백질의 2차 구조가 주로 알파나선(α-helix)이나 베타 면(β-sheet)의 모양을 취하게 되는 이유는 폴리펩타이드 위에서 바로 옆에 위치한 두 아미노산 사이에서 곁사슬과 뼈대의 원자들끼리 서로 밀어내는 힘을 최소화하는 안정한 모양이 알파나선이나 베타 면의 모양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는 뼈대의 수소결합(hydrogen bond)에 의한 일차적 [[단백질 접힘|접힘]](folding)으로 가장 안정한 2차구조가 알파 나선이나 베타면의 모양을 이룸을 나타낸다. [[라마찬드란 조사구]](Ramachandran plot)는 이러한 추세를 좀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 '''3차 구조''': 단백질의 3차 구조는 단백질을 이루는 곁사슬들의 [[소수성 결합]]에 의해 결정된다. [[디설피드 결합]]이나 [[수소 결합]]등이 3차 구조를 더 안정시켜 주지만 3차 구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힘은 소수성 결합이다.
* '''4차 구조''': 단백질의 4차 구조는 여러 개의 폴리펩타이드가 소수성 결합에 의해 모여 하나의 단백질로 작용하는 것으로, 하나의 폴리펩타이드가 단백질로서 고유 역할을 하는 경우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3차 구조와 마찬가지로 디설피드 결합과 수소결합, 이온 결합 등에 의해 더욱 안정해진다.
아미노산 서열이 복잡한 3차 구조를 이루는 과정을 [[단백질 접힘]](Protein Folding)이라고 한다. 보통은 각자 단백질의 고유한 3차 구조는 그 아미노산 서열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자유 에너지가 낮은 상태이다. 또한 자유 에너지가 낮은 상태가 생물학적 기능을 수행하는 활성 상태이다.{{출처|날짜=2009-09-14}} 하지만 단백질은 이 보다 높은 에너지 상태에도 존재할 수가 있다. 단지 그 에너지가 높기에, 자연 상태에서 높은 에너지 상태에 존재하는 단백질의 양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출처|날짜=2009-09-14}} 가장 안정한 상태에서 단백질의 구조가 완전히 풀리는 상태(2, 3, 4차 구조가 모두 사라진 상태)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단백질의 [[열역학]]적인 안정성을 결정한다.
아미노산 서열의 양끝단을 [[N 말단]]과 [[C 말단]]이라고 한다. 이는 단백질의 한쪽 끝이 [[아미노기]](-NH₂)를 가지고, 다른 쪽은 [[카복실기]](-COOH)를 갖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 연구 방법 ==
용액 내의 단백질 검출 방법은 [[뷰렛 반응]] 또는 [[크산토프로테인 반응]]을 이용하는 것이다.
단백질의 구조를 직접적으로 연구하는 방법은 [[X선 회절]]법이다. 단백질의 결정에 X선을 쬐어, 그 X선이 휘는 모양을 관측하여 구조에 대해 연구한다. 또한 고해상도의 [[원자간력 현미경]](AFM; Atomic Force Microscope)을 이용하여 단백질의 구조를 직접적으로 관찰하기도 한다.
또한 단백질의 서열을 알기 위해서는 [[에드만 분해]](Edman Degradation), [[질량 분석법]](Mass Spectrometry)등을 사용한다. 요즘에는 시간이 오래걸리는 에드만 분해보다는 질량 분석법을 주로 사용한다. 단백질 서열 분석에 질량 분석법을 사용하는 연구에 2002년 노벨 화학상이 시상되었다.
그 외에 [[전기영동]](Electrophoresis), [[분석 (생화학)|분석]](Assay)등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 단백질을 연구한다.
== 역사 ==
단백질은 18세기 [[앙투안 프랑수아 푸르크루아|앙투안 푸르크루아]] 등에 의해 독립적인 생물학적 분자들로 인식되었으며, 열기나 산(acid)을 이용한 치료를 통해 [[응고]], [[응집]]을 할 수 있는 분자의 능력으로 식별되었다.<ref>[[Thomas Burr Osborne (chemist)|Thomas Burr Osborne]] (1909): [https://archive.org/details/vegetableprotein00osbouoft The Vegetable Proteins], History pp 1 to 6, from [[archive.org]]
</ref>
단백질은 [[네덜란드]]의 화학자 [[헤라르뒤스 요하네스 멀더]]에 의해 처음 기술되었으며 1838년 스웨덴의 화학자 [[옌스 야코브 베르셀리우스|야코브 베르셀리우스]]에 의해 명명되었다.<ref name="Mulder1938">{{저널 인용| vauthors = Mulder GJ | year = 1838 | url = https://archive.org/stream/bulletindesscien00leyd#page/104/mode/2up | title = Sur la composition de quelques substances animales | journal = Bulletin des Sciences Physiques et Naturelles en Néerlande | pages = 104 }}</ref><ref name="Hartley">{{저널 인용| first = Hartley | last = Harold | name-list-format = vanc | year = 1951 | title = Origin of the Word 'Protein.' | url = | journal = Nature | volume = 168 | issue = 4267| pages = 244–244 | doi = 10.1038/168244a0 | bibcode = 1951Natur.168..244H | issn=0028-0836}}</ref>
== 같이 보기 ==
* [[단백질 관련 문서 색인]]
* [[단백질 보충제]]
* [[유전자]]
* [[단백체]]
* [[단백체학]]
* [[막단백질]]
== 각주 ==
<references />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 [http://proteinsequence.org ProteinSequence.org] {{웨이백|url=http://proteinsequence.org/ |date=20210124213505 }}: 단백질 서열 포털 사이트
* [https://web.archive.org/web/20081118222929/http://www.biosites.org/index.php/Proteomics 프로테오믹스 관련 전 세계 웹사이트]
{{단백질}}
{{아미노산}}
{{식품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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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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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단백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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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요|날짜=2013-4-3}}
'''식물분류학'''(植物分類學)은 식물계를 구성하는 모든 [[식물]]을 명명하고 기재하며 무리로 나누어 계통체계를 세우고, 계통 간의 관계를 밝히는 학문이다.
식물 분류학에는 알파 분류학, 베타 분류학, 감마 분류학이 있다.
알파 분류학의 경우 이름을 붙이고 그 종에 대한 설명에 기반을 둔 방법이다. 생물 종마다 독특한 외형이나 생화학적 특징에 기초해 분류한다.
베타 분류학은 계층을 만들어 구분하는 것인데 종속과목강문계의 계층으로 분류하는 것을 말한다. 영어로는 Individuals(식물 개체), Populations(한 곳에 사는 같은 종의 식물), Species(종, 種), Genus(속, 屬), Family(과, 科), Order(목, 目), Class(강, 綱), Phylum(문, 門), Kingdom(계, 界), Domain(역, 域) 등의 분류를 말한다.
감마 분류학은 같은 종(Species)내의 생물들의 변화나 그 진화과정 등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분류하는 방법이다.
== 동정(identification)과 분류(classification) ==
식물 분류학의 두 가지 목적은 식물의 동정(identification)과 분류(classification)이다. 이 두 가지 목적의 구분은 중요하며 종종 간과된다.
'''[[식물의 동정]]'''은 기존에 수집된 표본이나 분류 도감과 비교하여 알려지지 않은 식물의 정체를 결정하는 것이다. 동정의 과정은 식물 표본을 기존 식물 분류군과 연결한다. 한번 식물 표본이 동정되면, 그 이름과 속성은 알려진 것으로 된다.
'''[[식물의 분류]]'''는 알려진 식물을 어떤 관계를 알 수 있도록 특정 그룹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생물 분류|생물의 분류]]는 결과를 표준화시키는 규칙을 따라 이루어지며, 다수의 생물 범주(category)를 하나의 계통으로 묶는다.
== 식물 분류 체계 ==
* [[엥글러 분류 체계]] (1924년)
* [[크론퀴스트 분류 체계]] (1968년, 1981년, 1988년)
* [[APG 분류 체계]] (1998년)
* [[APG II 분류 체계]] (2003년)
* [[APG III 분류 체계]] (2009년)
* [[APG IV 분류 체계]] (2016년)
== 같이 보기 ==
* [[생물 분류]]
{{식물학}}
{{전거 통제}}
{{토막글|생물학}}
[[분류:식물분류학| ]]
[[분류:식물학]]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생물 분류
|이름=개양귀비
|색=식물
|그림=Papaver rhoeas - Köhler–s Medizinal-Pflanzen-101.jpg
|계=[[식물|식물계]]
|미분류_문=[[속씨식물|속씨식물군]]
|미분류_강=[[진정쌍떡잎식물|진정쌍떡잎식물군]]
|목=[[미나리아재비목]]
|과=[[양귀비과]]
|속=[[양귀비속]]
|종='''개양귀비'''
|학명=''Papaver rhoeas''
|학명_명명=[[칼 폰 린네|L.]] (1753)
}}
'''개양귀비'''(-楊貴妃)는 [[양귀비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꽃양귀비''', '''우미인초'''(虞美人草) 등으로도 불린다.
== 특징 ==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30~80 cm 정도 자라는 두해살이풀로, 보통 붉은색 내지 주황색 꽃이 피지만 흰색 꽃이 피는 것도 있다. 꽃은 3~4장의 단엽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농작물로 재배해 왔으며, 풍년을 상징하는 꽃으로 오랫동안 여겨 왔다. 씨는 빵에 넣어서 먹거나 기름을 짜서 쓰며, 줄기는 채소로, 빨간 꽃잎은 시럽이나 술을 담는 데에 쓴다. 동양의학에서는 복통, 설사 등에 처방한다. 관상용으로는 개양귀비를 개량한 셜리양귀비({{lang|en|Shirley Poppy}})를 많이 심는다.
‘양귀비’라는 이름 때문에 [[아편]]을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개양귀비로는 마약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양귀비와는 달리 재배를 규제받지 않는다. 하지만 관상용으로 심은 개양귀비가 [[아편양귀비]]로 오해를 받아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ref>{{뉴스 인용|제목=양재천에 '양귀비' 재배 논란|url=http://news.empas.com/show.tsp/cp_sv/20040708n08541/|출판사=SBS|저자=김태훈|날짜=2004-07-08}}</ref><ref>{{뉴스 인용|제목="양재천변 양귀비 마약 성분 없어"|url=http://news.empas.com/show.tsp/cp_sv/20040830n08567/|출판사=SBS|날짜=2004-08-30}}</ref>
== 문화 ==
[[제1차 세계 대전]] 때 전장터에서 캐나다군 중령 [[존 맥크래]]가 쓴 시 〈[[개양귀비 들판에서 (시)|개양귀비 들판에서]]〉가 유명해 지면서 [[영연방]] 국가에서는 [[영령 기념일]]에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꽃으로 개양귀비를 쓴다.
중국에서는 개양귀비를 ‘우미인초(虞美人草)’라고 하는데, [[항우]]의 애첩 [[우미인]]의 무덤에 개양귀비가 피었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 그림과 사진 ==
<gallery>
파일:Papaver rhoeas01.jpg
파일:Poppy-closeup.jpg|개양귀비꽃.
파일:Moonfeld toscana.jpg|[[토스카나]]에 있는 개양귀비 농장.
파일:RemembrancePoppies.jpg|종전 기념일에 쓰는 개양귀비 조화.
파일:Polish Poppies.JPG
</gallery>
== 같이 보기 ==
* [[영령 기념일]]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위키공용|Papaver rhoeas}}
{{위키생물종|Papaver rhoeas|개양귀비}}
* [http://www.koreaplants.go.kr:9101/general/Prgb02/Prgb2_1_3.jsp?nNameID=6835 국가표준식물목록]{{깨진 링크|url=http://www.koreaplants.go.kr:9101/general/Prgb02/Prgb2_1_3.jsp?nNameID=6835 }}
* [http://www.nature.go.kr/plant/plantGuide/results/view.jsp?name_id=6835 산림청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깨진 링크|url=http://www.nature.go.kr/plant/plantGuide/results/view.jsp?name_id=6835 }}
* {{언어링크|en}} [http://www.ipni.org/ipni/idPlantNameSearch.do?id=673692-1 The International Plant Names Index]
* {{언어링크|en}} [https://web.archive.org/web/20090508045615/http://www.ars-grin.gov/cgi-bin/npgs/html/taxon.pl?26703 USDA GRIN Taxonomy for Plants]
{{분류군 식별자|from=Q130201}}
{{전거 통제}}
[[분류:꽃]]
[[분류:식용 씨앗과 견과류]]
[[분류:원예 식물]]
[[분류:1753년 기재된 식물]]
[[분류:레바논의 식물상]]
[[분류:양귀비속]]
[[분류:칼 폰 린네가 명명한 분류군]]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우미인초'''》(虞美人草)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이다. 우미인초는 [[개양귀비]]를 달리 부르는 말이다. [[1907년]] [[아사히 신문]]에 연재했다.
{{나쓰메 소세키}}
{{토막글|소설}}
[[분류: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분류:1907년 책]]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생물 분류
| 이름 = 양귀비과
| 화석_범위 =
| 그림 = Papaver somniferum (3).jpg
| 그림_설명 = [[양귀비 (식물)|양귀비]]
| 색 = 식물
| 계 = [[식물|식물계]]
| 미분류_문 = [[속씨식물|속씨식물군]]
| 미분류_강 = [[진정쌍떡잎식물|진정쌍떡잎식물군]]
| 목 = [[미나리아재비목]]
| 과 = '''양귀비과'''<br>Papaveraceae
| 과_명명 = [[앙투안 로랑 드 쥐시외|Juss.]], 1789
| 하위_링크 = 속
| 하위 = * 본문 참조
}}
'''양귀비과'''(楊貴妃科, <small>[[학명]]:</small> {{lang|la|Papaveraceae|파파베라케아이}})는 [[미나리아재비목]]의 [[과 (생물학)|과]]이다.<ref>Jussieu, Antoine Laurent de. Genera Plantarum 235–236. 1789.</ref> 주로 북반구의 온대·아열대에 분포하며, 약 30속의 500종 정도이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는 [[흰양귀비]]·[[개양귀비]]·[[두메양귀비]] 등의 6속 16종이 분포하고 있다. 대부분이 초본이며, 보통 기름이나 색깔이 있는 즙을 가지고 있다.
== 하위 분류 ==
{{columns-list|colwidth=20em|
* [[금낭화속]](''Dicentra'' <small>Barkh. ex Bernh.</small>)
* [[둥근빗살현호색속]](''Fumaria'' <small>Tourn. ex L.</small>)
* [[매미꽃속]](''Coreanomecon'' <small>Nakai</small>)
* [[성엽초|성엽초속]](''Pteridophyllum'' <small>Siebold & Zucc.</small>)
* [[애기똥풀속]](''Chelidonium'' <small>L.</small>)
* [[양귀비속]](''Papaver'' <small>L.</small>)
* [[줄꽃주머니속]](''Adlumia'' <small>Raf. ex DC.</small>)
* [[피나물|피나물속]](''Hylomecon'' <small>Maxim.</small>)
* [[현호색속]](''Corydalis'' <small>DC.</small>)
* ''Arctomecon'' <small>Torr. & Frém.</small>
* ''Argemone'' <small>L.</small>
* ''Bocconia'' <small>Plum. ex L.</small>
* ''Canbya'' <small>Parry ex A.Gray</small>
* ''Capnoides'' <small>Tourn. ex Adans.</small>
* ''Ceratocapnos'' <small>Durieu</small>
* ''Cryptocapnos'' <small>Rech.f.</small>
* ''Cysticapnos'' <small>Mill.</small>
* ''Dactylicapnos'' <small>Wall.</small>
* ''Dendromecon'' <small>Benth.</small>
* ''Dicranostigma'' <small>Hook.f. & Thomson</small>
* ''Discocapnos'' <small>Cham. & Schltdl.</small>
* ''Ehrendorferia'' <small>Fukuhara & Lidén</small>
* ''Eomecon'' <small>Hance</small>
* ''Eschscholzia'' <small>Cham.</small>
* ''Fumariola'' <small>Korsh.</small>
* ''Glaucium'' <small>Mill.</small>
* ''Hunnemannia'' <small>Sweet</small>
* ''Hypecoum'' <small>Tourn. ex L.</small>
* ''Ichtyoselmis'' <small>Lidén & T.Fukuhara</small>
* ''Lamprocapnos'' <small>Endl.</small>
* ''Macleaya'' <small>R.Br.</small>
* ''Meconella'' <small>Nutt.</small>
* ''Platycapnos'' <small>(DC.) Bernh.</small>
* ''Platystemon'' <small>Benth.</small>
* ''Platystigma'' <small>Benth.</small>
* ''Pseudofumaria'' <small>Medik.</small>
* ''Roborowskia'' <small>Batalin</small>
* ''Romneya'' <small>Harv.</small>
* ''Rupicapnos'' <small>Pomel</small>
* ''Sanguinaria'' <small>Dill. ex L.</small>
* ''Sarcocapnos'' <small>DC.</small>
* ''Stylophorum'' <small>Nutt.</small>
* ''Trigonocapnos'' <small>Schltr.</small>
}}
== 각주 ==
{{각주}}
{{분류군 식별자|From=144723}}
{{전거 통제}}
{{토막글|미나리아재비목}}
[[분류:식물의 과]]
[[분류:양귀비과| ]]
[[분류:1789년 기재된 식물]]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리보솜 RNA'''(ribosomal RNA), 줄여서 '''rRNA'''는 [[리보솜]]을 구성하는 [[RNA]]이며, [[세포]] 내 [[RNA]]의 약 80%를 차지한다. rRNA는 [[세포핵]] 속의 [[핵소체]]에서 [[전사 (유전학)|전사]]된 후 [[단백질]]과 결합하여 [[리보솜]]으로 합성된다. rRNA은 세포핵의 [[핵공]]을 통해 [[세포질]]로 빠져나오며, 이후 단백질과 결합하여 리보솜으로 합성된 뒤, 단백질 합성에 참여한다.
== 같이 보기 ==
* [[16S rRNA]]
{{핵산}}
{{리보솜 서브유닛}}
{{토막글|생물학}}
[[분류:RNA]]
[[분류:리보솜]]
[[분류:리보자임]]
[[분류:단백질 생합성]]
[[분류:비부호화 RNA]]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카탄 (동음이의)|보드게임}}
{{출처 필요|날짜=2012-3-26}}
[[파일:Nepomuk 280 - Osadníci z Katanu.jpg|섬네일|250px|카탄의 개척자 플레이 모습]]
'''카탄의 개척자'''({{llang|de|Die Siedler von Catan}}, {{llang|en|Settlers Of Catan}})은 다양한 요소를 지닌 [[보드게임]]으로, [[클라우스 토이버]](Klaus Teuber)에 의해 제작되었다. [[1995년]]에 [[독일]]의 [[출판사]]인 [[코스모스 (출판사)|코스모스]]에서 처음 출시되었다. 발매 당시 선풍적인 인기와 함께 독일 보드 게임쇼에서 연거푸 상을 받았으며 세계 각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카탄은 독일에서 처음으로 유럽까지 유행하게 된 게임으로도 유명하며,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헝가리어]] 등으로 번역되어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기본판에 추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확장팩들도 이미 시중에 나와 있다.
게임의 배경은 카탄이라는 무인도 섬에 여러 부족들이 정착을 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각 부족들이 자신의 세력을 넓혀서, 카탄의 진정한 정착자가 되려 하는 것이 이 게임의 목적이다.
== 설명 ==
플레이어들은 목재, 벽돌, 밀, 양 자원을 모아 [[마을]]을 짓고 [[1500년]] 도시 또는 승점카드를 모아 승점 10점을 얻는 플레이어가 승리하는 게임이다. 플레이 시간은 약 1시간-2시간, 적정 연령은 13세 이상이다.
게임 개발자가 5-6인용 확장이 마지막 확장팩이 될 것이라 하고 카탄 시리즈의 러시가 종료되었다. 하지만 제작사와 플레이어들의 요청으로 [[2016년]] 탐험가와 해적이라는 이름의 확장이 발매가 확정되었다.
== 구성물 ==
* 육각형의 땅 타일 19개
* 게임 카드 120장(자원 카드 95장, 발전 카드 25장)
* 플레이어 말 96개(도시 16개, 마을 20개, 도로 60개), (각 24개씩)
* 특별 승점 카드 2장(최장 교역로, 최강 기사단)
* 항구 부지가 표시된 테두리 타일 6개
* 주사위 2개
* 숫자 칩 18개
* 도둑 말 1개
== 게임 목표 ==
게임 방법은 정착한 무인도 섬에서 자원을 얻어 그 자원을 이용해 길, 집, 도시, 배(바다가 나오는 맵에서만)를 만들어 점수를 먼저 내는 사람이 승리하게 된다. 각각의 섬에는 숫자칩이 놓이는데 주사위를 돌려 그 숫자에 놓인 자원을 얻게 된다. 물론 그 무인도에 집이나 도시가 정착 되어 있는 사람만이 자원을 받게 된다. 집과 도시는 각각 1 VP, 2 VP(이점수를 합산하여 점수를 낸다.)이며 집과 도시 이외에도 Development카드중 1 VP를 얻을 수 있는 카드도 점수를 내는 데 도움이 된다.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 {{Bgg title|13}} {{Bgg 평점|7.70|확인날짜=2009-2-4}}
{{전거 통제}}
[[분류:보드 게임]]
[[분류:1995년 작품]]
[[분류:오리진스상 수상작]]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양자역학}}
[[파일:"Father" and "Mother" of the series "Spin Family".jpg|섬네일]]
'''스핀'''({{lang|en|spin}})은 [[양자역학]]에서 [[입자]]의 운동과 무관한 고유 [[각운동량]]이다.<ref>김상욱. [http://www.dongascience.com/news/view/6167 빨간 약을 먹으면 양자세계가 사라질까?]. 동아사이언스. 기사입력 2015년 2월 17일. 최종편집 2015년 2월 22일.</ref><ref>김상욱.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2&aid=0002019813 '최순실'보다 "숨 막히는" 이야기]. 프레시안. 2016년 10월 31일.</ref> 예를 들어, [[전자]]는 스핀 양자수 1/2, [[광자]]는 스핀 양자수 1을 갖는다. 어원과는 달리, 실제로 입자는 어떤 축을 중심으로 고전적으로 회전하지 않는다.
[[드 하스 아인슈타인 실험]]에서 외부 자기장으로 스핀을 정렬시키자 전체 각운동량의 보존 때문에 시스템이 회전하는 현상이 보고되었다.
흔히 공간의 양자화로 부르는 양자화된 입자의 스핀의 양은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으로 밝혀낼 수 있게 되었으며, 비균일 자기장에 대해 불연속적인 반응을 주는 내부 인자를 가리킨다.
== 역사 ==
1924년에 [[볼프강 파울리]]는 [[알칼리 금속]]의 [[방출 스펙트럼]]의 [[제이만 효과]]를 연구하던 도중 [[파울리 배타 원리]]를 발견하였다. 이 원리에 따르면 두 전자는 같은 양자 상태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험 결과에 따르면 [[양자수]]가 같은 두 개의 전자가 존재했으므로, 파울리는 기존에 알려진 양자수 이외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와 −의 값을 가지는 또다른 양자수의 존재를 예측하였다.
<ref>{{저널 인용|성=Pauli|이름=Wolfgang|저자링크=볼프강 파울리|제목={{lang|de|Über den Einfluß der Geschwindigkeitsabhängigkeit der Elektronenmasse auf den Zeemaneffekt}}|저널={{lang|de|Zeitschrift für Physik}}|권=31|호=1|쪽=373–385|연도=1925|doi=10.1007/BF02980592}}</ref>
1925년에 조지 윌렌벅({{lang|nl|George E. Uhlenbeck}})과 사뮈엘 하우드스밋({{lang|nl|Samuel Goudsmit}})이 파울리가 가정한 미지의 양자수를 전자의 기본 [[각운동량]]으로 해석하였다.
<ref>{{저널 인용|저자=George E. Uhlenbeck, Samuel Goudsmit|제목={{lang|de|Ersetzung der Hypothese vom unmechanischen Zwang durch eine Forderung bezüglich des inneren Verhaltens jedes einzelnen Elektrons}}|저널={{lang|de|Die Naturwissenschaften}}|연도=1925|월=11|권=13|호=47|쪽=953–954|doi=10.1007/BF01558878}}</ref>
== 스핀-자기장 상호작용 ==
파울리는 처음에 입자의 스핀과 자기장 간의 상호작용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항을 해밀토니안에 도입하였다.
:<math>H_{int} = -\vec{\mu}\cdot\vec{B} = -\frac{q\hbar}{2mc}\mathbf{\vec{\sigma}}\cdot\vec{B}</math>
<math>\vec{\sigma}</math>는 [[파울리 행렬]]을 성분으로 갖는 파울리 벡터를 의미한다.
이 항을 유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ref>{{저널 인용|last1=Hestenes |first1=David|title=Reforming the Mathematical Language of Physics|저널=American Journal of Physics|연도=2003|월=2|권=71|호=2|쪽=104-121}}</ref> <math>m\vec{v} = \vec{p} - \frac{q}{c}\vec{A}</math>와 함께, [[감마 행렬]] 대신 파울리 행렬을 사용하여 [[디락 방정식]]과 유사한 형태로 해밀토니안을 세우면,
:<math>H = \frac{(\vec{\sigma} \cdot (\vec{p} - \frac{q}{c}\vec{A}))^2}{2m} + qV</math>
이 된다. 파울리 행렬과 관련된 공식 <math>(\vec{\sigma} \cdot \vec{a})(\vec{\sigma} \cdot \vec{b}) = \vec{a}\cdot\vec{b} + i\vec{\sigma}\cdot(\vec{a}\times\vec{b})</math>을 이용해서 해밀토니안의 식을 풀면,
:<math>H = \frac{(\vec{p} - \frac{q}{c}\vec{A})^2}{2m} + qV - \frac{q\hbar}{2mc} \vec{\sigma}\cdot\vec{B}</math>
을 얻는다.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RKKY 상호작용]]
* [[회전]]
* [[스핀-통계 정리]]
== 각주 ==
{{각주}}
{{양자역학 주제}}
{{전거 통제}}
[[분류:양자역학]]
[[분류:스핀트로닉스]]
[[분류:물리학 개념]]
[[분류:행렬]]
[[분류:양자장론]]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Infobox programming language
| name=브레인퍽<br />Brainfuck
| file_ext=.b, .bf
| paradigm=[[난해한 프로그래밍 언어|난해한]], [[명령형 프로그래밍|명령형]], [[구조적 프로그래밍|구조적]]
| released= 1993년 9월
| designer=우어반 뮐러(Urban Müller)
| typing=typeless
| influenced_by=[[P′′]], [[난해한 프로그래밍 언어|FALSE]]
}}
[[파일:Hello World Brainfuck.png|thumb]]
'''브레인퍽'''({{lang|en|Brainfuck}})은 [[우어반 뮐러]](Urban Müller)가 [[1993년]] 경에 만든 최소주의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이다. 이름에 포함된 fuck이 [[욕설]]이기 때문에 '''Brainf*ck''', '''Brainf***''', 혹은 단순히 '''BF'''라고 부르기도 한다.
== 언어의 설계 ==
뮐러는 가장 작은 [[컴파일러]]로 구현할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튜링 완전]]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언어는 여덟 개의 [[명령어 (컴퓨팅)|명령어]]로 구성되어 있다. [[아미가]] 컴퓨터에서 작동하는 [https://web.archive.org/web/20070313151559/http://wuarchive.wustl.edu/pub/aminet/dev/lang/brainfuck-2.lha 원래 컴파일러의 둘째 판]은 크기가 240 [[바이트]] 밖에 안 된다. 그는 다른 [[난해한 프로그래밍 언어]]이자, 컴파일러 크기가 1024바이트인 [[False (프로그래밍 언어)|False]]의 영향을 받았다.
이름이 말해 주듯이, 브레인퍽 프로그램은 이해하기 어려운 경향이 있다. 하지만 [[튜링 기계]]는 컴퓨터가 할 수 있는 모든 작업을 할 수 있고, 브레인퍽이 [[튜링 완전성|튜링 완전]]하기 때문에 브레인퍽 또한 복잡하기는 해도 컴퓨터가 할 수 있는 모든 작업을 할 수 있다.
이 언어는 프로그램 외에, 0으로 초기화된 바이트 단위의 배열과, 처음에 배열의 맨 첫 바이트를 가리키는 [[포인터 (프로그래밍)|포인터]], 그리고 입출력 스트림으로 구성된 간단한 기계 모델에 기반을 두고 있다.
=== 명령어들 ===
여덟 개의 명령어들은 각각 한 개의 문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다:
{| class="wikitable"
|-
!문자
!의미
|-
!<code>></code>
|포인터를 증가시킨다.
|-
!<code><</code>
|포인터를 감소시킨다.
|-
!<code>+</code>
|포인터가 가리키는 바이트의 값을 증가시킨다.
|-
!<code>-</code>
|포인터가 가리키는 바이트의 값을 감소시킨다.
|-
!<code>.</code>
|포인터가 가리키는 바이트의 값을 ASCII 문자로 출력한다.
|-
!<code>,</code>
|포인터가 가리키는 바이트에 입력받은 문자의 ASCII 값을 넣는다.
|-
!<code>[</code>
|포인터가 가리키는 바이트의 값이 0이면 짝이 되는 뒤쪽의 <code>]</code>로 이동한다.
|-
!<code>]</code>
|포인터가 가리키는 바이트의 값이 0이 아니면 짝이 되는 앞쪽의 <code>[</code>로 이동한다.
|}
위의 정의 대신에, <code>]</code>에 ‘짝이 되는 앞쪽의 <code>[</code>로 이동한다’는 의미를 사용할 수 있다. 이는 간단하지만 대칭적이지 못 하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이 두 정의는 모든 브레인퍽 프로그램에 대해서 동일한 행동을 보인다.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동일한 또 다른 정의로는, <code>[</code>가 ‘짝이 되는 뒤쪽의 <code>]</code>로 이동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code>]</code>가 ‘포인터가 가리키는 바이트의 값이 0이 아니면 짝이 되는 앞쪽의 <code>[</code> 다음 명령어로 이동한다’는 의미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 있다.
브레인퍽 프로그램들은 <code>ptr</code>이 <code>unsigned char*</code> 형이라 가정할 때 다음과 같은 치환을 사용해서 [[C (프로그래밍 언어)|C 언어]]로 번역할 수 있다:
{| class="wikitable"
|-
!브레인퍽
!C
|-
!<code> > </code>
|<code> ++ptr; </code>
|-
!<code> < </code>
|<code> --ptr; </code>
|-
!<code> + </code>
|<code> ++*ptr; </code>
|-
!<code> - </code>
|<code> --*ptr; </code>
|-
!<code> . </code>
|<code> putchar(*ptr); </code>
|-
!<code> , </code>
|<code> *ptr = getchar(); </code>
|-
!<code> [ </code>
|<code> while (*ptr) { </code>
|-
!<code> ] </code>
|<code> } </code>
|-
|}
== 해설 ==
참고로 여기서는 배열의 각각의 원소들을 바이트로 서술했기 때문에, - 명령은 필요가 없으며 255개의 + 명령으로 고칠 수 있다. 비슷하게, 만약 배열이 유한하고 환형이면, < 명령은 (배열 크기 - 1)개의 > 명령으로 고칠 수 있다. 하지만 이 언어가 튜링 완전하려면 배열의 크기와 각각의 원소들의 크기가 모두 제한이 없어야 한다. (이는 엄밀히 말할 때 현대의 PC가 튜링 완전하지 않은 이유와 동일하다.)
== 예제 ==
=== [[헬로 월드 프로그램]] ===
명령어에 쓰이는 8개의 문자(+-<>[],.)만 사용한 코드는 다음과 같다.
<syntaxhighlight lang="brainfuck">
++++++++++[>+++++++>++++++++++>+++>+<<<<-]>++.>+.+++++++..+++.>++.<<+++++++++++++++.>.+++.------.--------.>+.>.
</syntaxhighlight>
브레인퍽은 이 8개의 문자외에는 모두 무시하므로, 가독성을 위해 공백과 줄바꿈을 넣고 주석을 추가하여 다시 쓴 코드는 다음과 같다.
<syntaxhighlight lang="bf">
+++++ +++++ initialize counter (cell #0) to 10
[ use loop to set the next four cells to 70/100/30/10
> +++++ ++ add 7 to cell #1
> +++++ +++++ add 10 to cell #2
> +++ add 3 to cell #3
> + add 1 to cell #4
<<<< - decrement counter (cell #0)
]
> ++ . print 'H'
> + . print 'e'
+++++ ++ . print 'l'
. print 'l'
+++ . print 'o'
> ++ . print ' '
<< +++++ +++++ +++++ . print 'W'
> . print 'o'
+++ . print 'r'
----- - . print 'l'
----- --- . print 'd'
> + . print '!'
> . print '\n'
</syntaxhighlight>
=== [[ROT13]] ===
<syntaxhighlight lang="bf">
-,+[ Read first character and start outer character reading loop
-[ Skip forward if character is 0
>>++++[>++++++++<-] Set up divisor (32) for division loop
(MEMORY LAYOUT: dividend copy remainder divisor quotient zero zero)
<+<-[ Set up dividend (x minus 1) and enter division loop
>+>+>-[>>>] Increase copy and remainder / reduce divisor / Normal case: skip forward
<[[>+<-]>>+>] Special case: move remainder back to divisor and increase quotient
<<<<<- Decrement dividend
] End division loop
]>>>[-]+ End skip loop; zero former divisor and reuse space for a flag
>--[-[<->+++[-]]]<[ Zero that flag unless quotient was 2 or 3; zero quotient; check flag
++++++++++++<[ If flag then set up divisor (13) for second division loop
(MEMORY LAYOUT: zero copy dividend divisor remainder quotient zero zero)
>-[>+>>] Reduce divisor; Normal case: increase remainder
>[+[<+>-]>+>>] Special case: increase remainder / move it back to divisor / increase quotient
<<<<<- Decrease dividend
] End division loop
>>[<+>-] Add remainder back to divisor to get a useful 13
>[ Skip forward if quotient was 0
-[ Decrement quotient and skip forward if quotient was 1
-<<[-]>> Zero quotient and divisor if quotient was 2
]<<[<<->>-]>> Zero divisor and subtract 13 from copy if quotient was 1
]<<[<<+>>-] Zero divisor and add 13 to copy if quotient was 0
] End outer skip loop (jump to here if ((character minus 1)/32) was not 2 or 3)
<[-] Clear remainder from first division if second division was skipped
<.[-] Output ROT13ed character from copy and clear it
<-,+ Read next character
] End character reading loop
</syntaxhighlight>
== 같이 보기 ==
비슷한 언어들의 목록:
* [[Doublefuck]], 두 개의 배열을 사용하는 브레인퍽의 변형.
* [[Brainfork (프로그래밍 언어)|Brainfork]]
* [[PATH (프로그래밍 언어)|PATH]], 브레인퍽과 [[비펀지]]를 결합한 언어.
* [[SNUSP (프로그래밍 언어)|SNUSP]], 비슷하지만 호출 스택을 가진다.
* [[L33t (프로그래밍 언어)|l33t]]
* [[L00P (프로그래밍 언어)|L00P]]
* [[Ook|Ook!]]
* [[QUOTE (프로그래밍 언어)|QUOTE]]
* [[Aura (프로그래밍 언어)|Aura]]
* [[Spoon 인터프리터|Spoon]], 오직 "0"과 "1" 문자로만 이루어진 토큰을 사용함.
* [[THRAT (프로그래밍 언어)|THRAT]], 명령 테이블에 있는 Brainfuck 명령들을 접근하기 위해 오직 두 개의 명령만을 사용함.
== 외부 링크 ==
* [http://www.muppetlabs.com/~breadbox/bf/ Brian Raiter, Muppetlabs. '''Brainfuck: An Eight-Instruction Turing-Complete Programming Language''']. 이 사이트에는 브레인퍽 [[콰인]]이 함께 들어 있다.
* [https://web.archive.org/web/20031206060451/http://esoteric.sange.fi/brainfuck/ Panu Kalliokoski. '''The Brainfuck Archive'''] - 많은 브레인퍽 프로그램, 콰인, 구현들을 제공한다.
* [https://web.archive.org/web/20041126141853/http://www.microlyrix.com/software/bfdev/ 윈도용 브레인퍽 인터프리터와 통합 개발 환경(IDE)]
* [http://home.arcor.de/partusch/html_en/bfd.html '''Brainfucked''' - Brainfuck Compiler] {{웨이백|url=http://home.arcor.de/partusch/html_en/bfd.html |date=20050303201936 }} (Windows/DOS)
* [http://home.planet.nl/~faase009/Ha_bf_Turing.html Frans Faase. '''BF is Turing Complete''']
* [http://www.hevanet.com/cristofd/brainfuck/ Daniel Cristofani. '''some Brainfuck fluff.''']
* [https://web.archive.org/web/20080529025538/http://www.brainfuck.ca/ Brainfuck.ca '''GPL로 배포되는 브레인퍽 인터프리터와 소스 변환기들''']
* [https://web.archive.org/web/20041206190913/http://www.hardtware.de/index.cgi?site=products&action=brainfuck 윈도용 브레인퍽 인터프리터와 컴파일러]
* [https://web.archive.org/web/20041010074250/http://elswanko.vm.bytemark.co.uk/~fraggle/stuffage/bf.net/ Brainfuck.Net]
* [http://www.nada.kth.se/~matslina/awib/ Also Written In Brainfuck (awib)]는 [[x86]] 플랫폼과 [[리눅스]] 실행 파일을 생성하며, 브레인퍽으로 만든 브레인퍽 컴파일러이다.
* [https://web.archive.org/web/20050104182641/http://robos.org/bfcomp/index.html Robert Östling. '''Brainfuck computer.''']
* [http://www.clifford.at/bfcpu/ Clifford Wolf. '''The Brainf*ck CPU'''과 다른 브레인퍽에 관련된 프로젝트들] {{웨이백|url=http://www.clifford.at/bfcpu/ |date=20171218061322 }}
* [https://web.archive.org/web/20050318095341/http://www.chilliwilli.co.uk/ff/ '''F*ckF*ck homepage''']
* [https://web.archive.org/web/20041217142702/http://martin.egy.nu/index.php?page=bfcomp '''A Brainfuck Computer With a Brainfuck CPU''']
* [https://web.archive.org/web/20050205181458/http://alephmobius.8m.com/dl.html '''The download page with Blue Fern, a Brainfuck IDE''']
* [https://web.archive.org/web/20041205075108/http://alx2002.free.fr/ '''A Brainfuck tutorial''' in English and French].
* [http://kidsquid.com/programs/bf/bf.html Jeffry Johnston. '''BF 프로그램들''', 기본적인 컴파일러와 어셈블러를 포함함]{{깨진 링크|url=http://kidsquid.com/programs/bf/bf.html }}
[[분류:난해한 프로그래밍 언어]]
[[분류:1993년 개발된 프로그래밍 언어]]
[[분류:영어 기반이 아닌 프로그래밍 언어]]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테러 정보
|제목 = 9·11 테러
|그림 = September 11 Photo Montage.jpg
|그림크기 = 300px
|그림설명 = 맨 위: 불타고 있는 구 [[세계 무역 센터 (1973년~2001년)|세계 무역 센터]] 쌍둥이 타워.<br />두 번째 열: 테러로 [[펜타곤]] 건물 일부가 붕괴된 모습.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 테러 사건|UA175편 항공기]]가 세계 무역 센터에 부딪쳐 폭발하는 모습.<br />세 번째 열: [[세계 무역 센터 부지]]에서 소방관이 지원을 요청하는 모습. [[유나이티드 항공 93편 테러 사건|UA93편 항공기]]의 엔진이 발견된 모습.<br />네 번째 열: [[아메리칸 항공 77편 테러 사건|AA77편 항공기]]가 펜타곤에 충돌할 때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화면 캡처 사진본 3장
|지도 =
|지도크기 =
|지도설명 =
|위치 = [[미국]] [[뉴욕주]] [[뉴욕]] [[맨해튼]] [[세계 무역 센터 (1973년~2001년)|세계 무역 센터]]<br />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군]]<br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섕크스빌 (펜실베이니아주)|섕크스빌]] 인근 [[스토니크릭 군구 (펜실베이니아주 서머싯군)|스토니크릭]]
|좌표 =
|발생일 = 2001년 9월 11일
|시간 =
|시간-시작 = 8시 46분
|시간-종료 = 10시 28분
|시간대 = [[동부 표준시]] (EST)
|종류 = [[항공기 납치]]<br>[[자살 공격]]<br>[[대량 살인]]<br>[[이슬람 테러리즘]]
|수단 =
|대상 = [[세계 무역 센터 (1973년~2001년)|세계 무역 센터]] ([[아메리칸 항공 11편 테러 사건|AA11편]] 및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 테러 사건|UA175편]] 항공기)<br />[[펜타곤]] ([[아메리칸 항공 77편 테러 사건|AA77편]] 항공기)<br />[[미국 국회의사당]] 혹은 [[백악관]]([[유나이티드 항공 93편 테러 사건|UA93편]]의 추정 목표)
|사망자 = 2,996명 (민간인 2,977명 + 알카에다 테러리스트 19명){{efn|공식적인 한국인 희생자수는 총 21명이다.<ref>{{뉴스 인용 |url = https://www.yna.co.kr/view/AKR20110902016000072 |제목 = <9·11테러 10년>⑦ 한인 유족들의 아픔 `진행형' |저자 = 정규득 |출판사 = 연합뉴스 |언어 = |날짜 = 2011년 9월 2일 |확인날짜 = 2021년 9월 8일}}</ref>}}
|부상자 = 25,000명 이상<ref name=exchange />
|피해자 =
|공격자 = 총 19명
|가담자 = [[오사마 빈 라덴]]<br />[[아이만 알자와히리]]<br />[[알카에다]]<ref name="cbc-2004" />
|동기 =
|참조 =
}}
'''9·11 테러'''({{llang|en|September 11 attacks}}{{lang|en|, 9/11 attacks}}) 또는 약칭인 '''9/11'''{{efn|name=NoteA|''9/11''라는 단어는 영어에서 보통 "나인 일레븐"("nine eleven")으로 발음하며 심지어 [[날짜 형식에 따른 나라 목록|날짜 형식이 다른 국가]]들에서도 보통 [[빗금]]을 제외하고 "구 일일", "구일일 테러"와 같이 숫자만 발음한다.}}은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아침 [[미국]]에 대항하는 이슬람 과격 테러 단체인 [[알카에다]]<ref name="Moghadam">{{서적 인용|last=Moghadam |first=Assaf |title=The Globalization of Martyrdom: Al Qaeda, Salafi Jihad, and the Diffusion of Suicide Attacks |url=https://archive.org/details/globalizationofm0000mogh |publisher=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year=2008 |page=[https://archive.org/details/globalizationofm0000mogh/page/48 48] |isbn=978-0-8018-9055-0}}</ref><ref name="SalafistJidadism">{{웹 인용|last=Livesey |first=Bruce |title=Special Reports – The Salafist Movement: Al Qaeda's New Front |url=https://www.pbs.org/wgbh/pages/frontline/shows/front/special/sala.html|website=PBS Frontline |publisher=WGBH educational foundation |date=January 25, 2005 |access-date=October 18, 2011}}{{서적 인용|last=Geltzer |first=Joshua A. |title=US Counter-Terrorism Strategy and al-Qaeda: Signalling and the Terrorist World-View |url=https://archive.org/details/uscounterterrori0000gelt |publisher=Routledge |edition=reprint |date=2011 |page=[https://archive.org/details/uscounterterrori0000gelt/page/83 83] |isbn=978-0415664523}}</ref>{{sfnp|Wright|2006|p=79}}가 일으킨 네 차례의 연쇄 [[테러]] 공격을 의미한다.
9월 11일 아침 [[미국 북동부]]에서 [[캘리포니아주]]로 향하는 민항 [[여객기]] 4기가 알카에다 [[9·11 테러 하이재커|테러범들]]에게 비행 중 연쇄적으로 [[항공기 납치|납치당했다]]. 납치범 무리는 총 19명으로, 각 무리 내에 [[비행 훈련]]을 받고 항공기를 장악해 조종한 납치범이 1명씩 있었다. 납치범들은 미국의 유명한 건물에 비행기를 부딪쳐 대규모 인명 피해를 일으키고 테러 대상 건물을 부분적으로 파괴하거나 완전히 붕괴하게 만들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먼저 납치당한 항공기는 [[아메리칸 항공 11편 테러 사건|아메리칸 항공 11편]]이었다. 이 비행기는 현지 시각 8시 46분 미국 뉴욕 [[로어맨해튼]]에 있는 [[세계 무역 센터 (1973년~2001년)|세계 무역 센터]] [[1 월드 트레이드 센터 (9·11 테러 이전)|북쪽 타워]](1WTC)에 충돌하였다. 17분 뒤인 9시 3분에는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 테러 사건|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이 세계 무역 센터 [[2 월드 트레이드 센터 (9·11 테러 이전)|남쪽 타워]](2WTC)에 충돌하였다. 110층짜리 쌍둥이 빌딩은 모두 화재 발생 1시간 42분만에 [[세계 무역 센터의 붕괴|붕괴되어]] 이 여파로 [[7 월드 트레이드 센터 (9·11 테러 이전)|7 세계 무역 센터]](7WTC) 등 다른 세계 무역 센터 건물도 붕괴되고 주변 건물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세 번째로 납치된 항공기는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아메리칸 항공 77편 테러 사건|아메리칸 항공 77편]]으로 [[오하이오주]] 상공에서 납치되었다. 9시 37분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군]]에 있는 [[미국 국방부|미 국방부]] 본부인 [[펜타곤]]의 서쪽 면에 충돌하여 건물 일부가 붕괴되었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납치당한 항공기인 [[유나이티드 항공 93편 테러 사건|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은 [[워싱턴 D.C.]]를 향해 비행했다. 유나이티드 항공 93편 항공기는 목표물에 타격하지 않은 유일한 항공기로 10시 3분 경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섕크스빌 (펜실베이니아주)|섕크스빌]] 인근 들판에 추락하였다. 비행기에 탑승했던 승객들은 납치범들이 장악한 항공기 조종석 통제권을 되찾으러 시도했고, 결국에는 테러범들이 의도한 목표물을 타격하는 데 실패하게 만들었다. 수사관들은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의 원래 목표물은 [[백악관]]이나 [[미국 국회의사당]]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테러 발생 직후 곧바로 [[알카에다]]가 테러를 일으켰다는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뒤이어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 내 알카에다 세력을 축출하고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을 인도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한 [[탈레반]]을 몰아내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년~2021년)|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다. 처음에는 [[빈 라덴]]이 자신이 테러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으나 2004년 빈 라덴은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공식적으로 [[9·11 테러의 책임|자신이 테러를 기획한 것]]이라고 밝혔다.<ref name="cbc-2004">{{뉴스 인용|title=Bin Laden claims responsibility for 9/11 |url=https://www.cbc.ca/news/world/bin-laden-claims-responsibility-for-9-11-1.513654 |quote=Al-Qaeda leader Osama bin Laden appeared in a new message aired on an Arabic TV station Friday night, for the first time claiming direct responsibility for the 2001 attacks against the United States. |publisher=CBC News |date=October 29, 2004 |access-date=September 1, 2011}}</ref> 알카에다와 빈 라덴은 테러를 일으킨 [[9·11 테러의 동기|동기]]로 [[미국-이스라엘 관계|미국의 이스라엘 지원]], [[사우턴 워치 작전|미군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둔]], [[대이라크 제재|이라크에 대한 제재조치]] 등을 꼽았다. 빈 라덴은 테러 후 10년 간 은신하였으나 2011년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 있는 자신의 은거지에서 미군의 [[오사마 빈라덴의 죽음|넵튠 스피어 작전으로 사살]]되었다.
테러로 세계 무역 센터와 인근 인프라가 크게 파괴되었고 이는 [[뉴욕]]의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으며 [[9·11 테러가 경제에 미친 영향|세계적인 경제 불황]]도 초래하였다. 전 세계의 많은 국가가 9·11 테러 이후 [[테러방지법]]을 강화하였으며 테러 공격을 막기 위해 [[법집행기관]]과 [[정보기관]]의 권한을 확대하였다. 미국과 [[캐나다]]의 민항 항공편은 9월 13일까지 폐쇄되었으며 [[월가]]의 금융 거래는 9월 17일에야 재개되었다. 그 외에도 추가적인 테러 우려로 수많은 [[9·11 테러로 인한 폐쇄 조치|폐쇄 조치, 대피, 행사 취소]]가 잇다랐다. 붕괴된 [[그라운드 제로 (뉴욕)|세계 무역 센터 부지]]는 2002년 5월 정리가 끝났으며 펜타곤은 테러 1년만에 재정비를 완료하였다. 구 세계 무역 센터를 대체할 새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건물]]의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건설|건설 공사]]는 2006년 11월 시작하여 2014년 11월 완공해 개방하였다.<ref name="MooreOneWTC">{{웹 인용|last=Moore |first=Jack |title=World Trade Center Re-opens as Tallest Building in America|url=http://onewtc.com/news/world-trade-center-re-opens-as-tallest-building-in-america|website=onewtc.com|date=November 3, 2014|access-date=September 11, 2015|url-status=dead|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50904120549/http://onewtc.com/news/world-trade-center-re-opens-as-tallest-building-in-america|archive-date=September 4, 2015}}</ref><ref>{{뉴스 인용|last=Smith|first=Aaron|title=One World Trade Center opens today|url=https://money.cnn.com/2014/11/03/news/companies/one-world-trade-center/index.html|publisher=CNN|date=November 3, 2014|access-date=November 4, 2014}}</ref>
9·11 테러로 [[9·11 테러의 사상자|2,977명이 사망하고 25,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으며]] 그 외에도 상당한 보건 문제를 일으켰고 인프라 파괴로 최소 100억 달러의 재산 피해가 발생하였다.<ref name="cost">{{웹 인용|title=How much did the September 11 terrorist attack cost America? |url=http://www.iags.org/costof911.html |publisher=Institute for the Analysis of Global Security |access-date=April 30, 2014}}</ref><ref name="PEARL9/11">{{서적 인용|last=Morgan |first=Matthew J. |title=The Impact of 9/11 on Politics and War: The Day that Changed Everything?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JDEfUCll7DcC |publisher=Palgrave Macmillan |date=August 4, 2009 |page=222 |isbn=978-0-230-60763-7}}</ref> 또한 이 테러는 [[사망자수 순 전투 및 폭력 사건 목록|역사상 가장 사망자가 많은 테러]]이자 [[미국의 역사]]상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미국의 사망자수 순 소방관 순직 사건|소방관]]과 경찰관이 사망한 사건으로 소방관 340명<ref>{{웹 인용|title=Deadliest incidents resulting in the deaths of 8 or more firefighters|url=https://www.nfpa.org/News-and-Research/Data-research-and-tools/Emergency-Responders/Firefighter-fatalities-in-the-United-States/Deadliest-incidents-resulting-in-the-deaths-of-8-or-more-firefighters|publisher=National Fire Protection Association}}</ref>과 경찰관 72명<ref>{{웹 인용|title=Deadliest Days in Law Enforcement History|url=https://nleomf.org/facts/enforcement/deadliest.html|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40213135434/https://nleomf.org/facts/enforcement/deadliest.html|archive-date=February 13, 2014|publisher=National Law Enforcement Officers Memorial Fund}}</ref><ref>{{웹 인용|date=June 11, 2002|title=Congressional Record, Vol. 148, No. 76|url=https://www.congress.gov/107/crec/2002/06/11/CREC-2002-06-11.pdf|publisher=Government Printing Office|page=H3312|quote=Joel Hefley: That fateful Tuesday we lost 72 police officers, the largest single loss of law enforcement personnel in a single day in the history of our country.}}</ref>이 순직하였다. 테러 이후에는 사망자를 추모하는 뉴욕의 [[내셔널 셉템버 11 메모리얼 & 뮤지엄]], 버지니아 앨링턴군의 [[펜타곤 메모리얼]], 펜실베이니아주 추락 현장의 [[93편 국립 추모관]] 등 수많은 [[9·11 테러의 추모|추모 및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 배경 ==
{{참조|1993년 세계 무역 센터 폭탄 테러}}
=== 알카에다 ===
{{본문|알카에다}}
[[알카에다]]의 기원은 1979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사마 빈 라덴]]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자헤딘]]으로 [[소련]]과 맞서 싸운 경험이 있다.<ref>{{뉴스 인용|title=Al-Qaeda's origins and links |url=http://news.bbc.co.uk/2/hi/middle_east/1670089.stm |publisher=[[BBC News]] |date=July 20, 2004 |access-date=September 3, 2011}}</ref> [[아이만 알자와히리]]와 함께 하면서 오사마 빈 라덴은 보다 극단적인 사상을 갖게 되었다.<ref name="Gunaratna">Gunaratna, Ronan (2002). Inside Al Qaeda: global network of terror. Columbia University Press. ISBN 978-0-231-12692-2.</ref>{{rp|22-33}} 1996년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군]]이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철수하여야 한다는 첫 [[파트와]]를 발표하였다.<ref>{{웹 인용|title=Bin Laden's fatwā (1996) |url=https://www.pbs.org/newshour/terrorism/international/fatwa_1996.html |url-status=dead |publisher=PBS |access-date=May 29, 2014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11031024057/http://www.pbs.org/newshour/terrorism/international/fatwa_1996.html |archive-date=October 31, 2001}}</ref>
1998년 오사마 빈 라덴은 두번째 파트와를 통해 [[걸프전]] 이후에도 미군이 사우디 아라비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의 외교 정책]]은 그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을 표명하였다.<ref name="1998FatwaPBS">{{웹 인용|url=https://www.pbs.org/newshour/updates/military-jan-june98-fatwa_1998/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31128194258/http://www.pbs.org/newshour/updates/military/jan-june98/fatwa_1998.html|archive-date=November 28, 2013 |title=Al Qaeda's Second Fatwa |website=[[PBS NewsHour]] |publisher=[[Public Broadcasting Service]] |url-status=live |access-date=May 29, 2014}}</ref> 빈 라덴은 이슬람 경전을 인용하여 부당한 처사가 철회될 때까지 [[무슬림]]이 미군을 공격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역사적으로 이슬람의 법을 해석하는 [[울라마]]는 무슬림 국가의 적을 파괴하는 개인들의 [[지하드]]를 승인하여 왔다"고 말한 바 있다.<ref name="1998FatwaPBS" /><ref>{{서적 인용|last=Logevall|first=Fredrik|title=Terrorism and 9/11: A Reader|url=https://archive.org/details/terrorism911read0000unse|publisher=Houghton Mifflin Company|year=2002|isbn=0-618-25535-4|location=New York}}</ref>
==== 오사마 빈 라덴 ====
{{본문|오사마 빈 라덴}}
[[파일:Osama bin Laden portrait.jpg|섬네일|[[오사마 빈 라덴]]]]
오사마 빈 라덴은 9·11 테러를 계획하였다. 사후에 빈 라덴은 자신의 개입을 부정하였으나 훗날 밝혀진 증거들을 보면 빈 라덴의 부정은 거짓이다.<ref name="BBC6Jul2011">{{뉴스 인용|title=Pakistan inquiry orders Bin Laden family to remain|url=https://www.bbc.co.uk/news/world-south-asia-14041604 |publisher=BBC News |date=July 6, 2011 |access-date=September 3, 2011}}</ref><ref name="ajNov2004">{{뉴스 인용|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70613014620/http://english.aljazeera.net/English/archive/archive?ArchiveId=7403 |archive-date=June 13, 2007 |url=http://english.aljazeera.net/English/archive/archive?ArchiveId=7403 |title=Full transcript of bin Laden's speech |publisher=Al Jazeera |date=November 2, 2004 |access-date=September 3, 2011}}</ref> 사건 직후인 9월 16일 [[알자지라]]는 빈 라덴이 "나는 내가 하지 않은 행동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 일은 각 개인들이 스스로의 동기에 의해 일으킨 것"이라고 말하는 내용을 방송하였다.<ref>{{뉴스 인용|title=Pakistan to Demand Taliban Give Up Bin Laden as Iran Seals Afghan Border |url=http://www.foxnews.com/story/0,2933,34440,00.html |publisher=Fox News Channel |date=September 16, 2001 |access-date=September 3, 2011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00523082548/http://www.foxnews.com/story/0,2933,34440,00.html |archive-date=May 23, 2010 |url-status=dead }}</ref> 2001년 11월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잘랄라바드 (아프가니스탄)|잘랄라바드]]의 파괴된 건물에서 수집한 비디오 테이프를 복원하였다. 2001년 12월 7일 복원된 영상이 공개되었고 여기서 빈 라덴은 알카에다 활동을 같이 한 사우디 아라비아의 칼레드 알하르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ref>{{뉴스 인용|title=Bin Laden on tape: Attacks 'benefited Islam greatly' |publisher=[[CNN]] |date=December 14, 2001 |url=http://archives.cnn.com/2001/US/12/13/ret.bin.laden.videotape/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71227125232/http://archives.cnn.com/2001/US/12/13/ret.bin.laden.videotape/ |archive-date=December 27, 2007 |url-status=dead |access-date=November 24, 2013 |quote=Reveling in the details of the fatal attacks, bin Laden brags in Arabic that he knew about them beforehand and says the destruction went beyond his hopes. He says the attacks "benefited Islam greatly".}}</ref>
{{인용문|일반적으로 서방, 특히 미국은 이슬람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해악을 끼져 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 [[십자군]]의 해악이다. 미국에 대항하는 테러리즘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왜냐하면, 불의에 대한 응답이자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을 중단하도록 압박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우리 사람들이 죽는 일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미국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말한다. 빈 라덴과 동료들이 살았건 죽었건, 무슬림의 공동체인 [[움마]]를 일깨우는 ... 군사력의 기반인 (미국의) 경제에 타격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 경제가 타격을 입으면 그들은 재건을 해야만 할 것이다.| 오사마 빈라덴}}
사건 직후 오사마 빈 라덴은 자신의 개입을 부정했지만,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W. 부시]]가 당선되자 비디오 영상물을 통해 알카에다가 9·11 테러를 주도했다는 것을 공인하였다. 그는 "우리는 자유인이다 … 우리 나라의 자유를 되찾고자 한다. 당신들이 우리의 안전을 훼손하는 것만큼, 우리도 당신들을 훼손시킬 것"이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 |last=Michael |first=Maggie |url=http://legacy.signonsandiego.com/news/nation/terror/20041029-1423-binladentape.html |title=Bin Laden, in statement to U.S. people, says he ordered Sept. 11 attacks |agency=Associated Press |publisher=SignOnSanDiego.com |date=October 29, 2004 |access-date=September 3, 2011 |archive-date=2012-09-03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20903021049/http://legacy.signonsandiego.com/news/nation/terror/20041029-1423-binladentape.html |url-status=dead }}</ref> 이 비디오에서 빈 라덴은 자신과 동료들이 직접 세계 무역 센터와 펜타곤을 공격하였다고 말하였다.<ref>{{웹 인용|first1=ABC|last1=News|access-date=February 2, 2019|title=Bin Laden Dead – Where Are Other 9/11 Planners?|url=https://abcnews.go.com/Blotter/osama-bin-laden-dead-911-perpetrators-now/story?id=13511484|date=May 2, 2011|publisher=[[ABC News]]|quote=While initially denying responsibility for the 9/11 attacks, Bin Laden took responsibility for them in a 2004 taped statement, saying that he had personally directed the hijackers.}}</ref><ref>{{웹 인용|access-date=February 2, 2019|date=October 29, 2004|title=Bin Laden claims responsibility for 9/11|publisher=[[CBC News]]|url=https://www.cbc.ca/news/world/bin-laden-claims-responsibility-for-9-11-1.513654}}</ref>
2006년 9월 알자지라가 입수한 또 다른 비디오에서 빈 라덴은 알카에다가 비행기 납치와 테러를 계획하였다고 밝힌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cbc.ca/news/world/bin-laden-9-11-planning-video-aired-1.618703 |title=Bin Laden 9/11 planning video aired |publisher=[[CBC News]] |date=September 7, 2006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71013183902/https://www.cbc.ca/news/world/bin-laden-9-11-planning-video-aired-1.618703 |archive-date=October 13, 2007 |access-date=September 3, 2011}}</ref>
미국은 9·11 테러 이전에 단 한 번도 오사마 빈 라덴을 공식적으로 비난한 바 없지만, [[탄자니아]]의 다레스살람과 [[케냐]] 나이로비의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 이후 [[FBI]]의 최우선 수배 목록에 올라있었다.<ref>{{뉴스 인용|last=Clewley |first=Robin|title=How Osama Cracked FBI's Top 10 |work=[[와이어드 (잡지)|Wired]] |date=September 27, 2001 |url=https://www.wired.com/politics/law/news/2001/09/47109 |url-status=dead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80526032503/http://www.wired.com/politics/law/news/2001/09/47109 |archive-date=May 26, 2008 |access-date=May 29, 2014}}</ref><ref>{{웹 인용|url=https://www.fbi.gov/wanted/topten/usama-bin-laden|title=Usama Bin Laden|publisher=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url-status=live|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01011161759/https://www.fbi.gov/wanted/topten/usama-bin-laden|archive-date=October 11, 2010|access-date=September 10, 2011}}</ref> 9·11 테러 이후 10년에 걸친 추적 끝에 2011년 5월 1일 [[버락 오바마]]가 지켜보는 가운데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에서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이 진행되었고, 빈 라덴은 사망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nytimes.com/2011/05/02/world/asia/osama-bin-laden-is-killed.html|title=Bin Laden Is Dead, President Obama Says |last1=Baker |first1=Peter |last2=Cooper |first2=Helene |date=May 1, 2011 |work=[[The New York Times]] |access-date=September 3, 2011}}</ref>
==== 칼리드 사이크 모하메드 ====
{{본문|칼리드 사이크 모하메드}}
[[파일:Khalid Shaikh Mohammed after capture.jpg|섬네일|2003년 체포 당시의 칼리드 사이크 모하메드]]
알자지라의 기자 요스리 포우다는 2002년 4월 칼리드 사이크 모하메드가 람지 빈 알시브를 따라 9·11 테러에 가담하였다고 시인했다는 보도를 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theguardian.com/international/story/0,3604,906911,00.html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80123195032/http://www.guardian.co.uk/international/story/0%2C3604%2C906911%2C00.html |archive-date=January 23, 2008 |title=We left out nuclear targets, for now |work=[[The Guardian]] |date=March 4, 2003 |access-date=September 3, 2011 |quote=Yosri Fouda of the Arabic television channel al-Jazeera is the only journalist to have interviewed Khalid Sheikh Mohammed, the al-Qaeda military commander arrested at the weekend.|location=London |url-status=dead}}</ref><ref>{{뉴스 인용|url=https://www.telegraph.co.uk/news/3685099/Alleged-911-mastermind-wants-to-confess-to-plot.html|title= Alleged 9/11 mastermind wants to confess to plot |work=[[The Daily Telegraph]] |date=October 10, 2008 |access-date=September 3, 2011 |location=London|first1=Tom|last1=Leonard|first2=Alex|last2=Spillius}}</ref><ref name=aljazeera2007 /> 2004년 [[9/11 위원회 보고서]]는 모하메드가 미국에 대한 증오로 "미국 외교 정책의 이스라엘 편애"를 폭력을 통해 거부하기 위해 9·11 테러의 핵심적 역할을 맡았다고 기록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9/11 Commission Report (2004), p. 147.</ref> 모하메드는 [[1993년 세계 무역 센터 폭탄 테러]]에도 자금을 대고 지원한 바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washingtontimes.com/news/2009/aug/26/white-house-power-grabs/|title=White House power grabs |date=August 26, 2009|work=[[The Washington Times]]|access-date=September 3, 2011}}</ref><ref>{{뉴스 인용|url=http://www.businessweek.com/news/2011-04-04/khalid-sheikh-mohammed-terror-indictment-unsealed-dismissed.html|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10417023034/http://www.businessweek.com/news/2011-04-04/khalid-sheikh-mohammed-terror-indictment-unsealed-dismissed.html|archive-date=April 17, 2011|title=Khalid Sheikh Mohammed Terror Indictment Unsealed, Dismissed |last1=Van Voris |first1=Bob |last2=Hurtado |first2=Patricia|date=April 4, 2011|work=[[Bloomberg BusinessWeek]]|access-date=September 3, 2011}}</ref>
모하메드는 2003년 3월 1일 파키스탄의 라왈핀디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관타나모만 수용소]]에 수감되어 심문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물고문을 포함한 고문을 받았다.<ref>{{뉴스 인용 |last1=Shannon |first1=Elaine |last2=Weisskopf |first2=Michael |title=Khalid Sheikh Mohammed Names Names |url=http://content.time.com/time/nation/article/0,8599,436061,00.html |work=[[타임 (잡지)|Time]] |date=March 24, 2003 |access-date=September 3, 2011 |archive-date=2019-09-27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90927221045/http://content.time.com/time/nation/article/0,8599,436061,00.html |url-status= }}</ref><ref>{{뉴스 인용|date=May 8, 2008|url=https://www.reuters.com/article/idUSN08420997|title=US judge orders CIA to turn over 'torture' memo-ACLU|publisher=Reuters|access-date=September 3, 2011 |first=Michelle|last=Nichols}}</ref> 2007년 3월 모하메드는 알카에다가 9·11 테러에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하였다는 자백을 하였다.<ref name="aljazeera2007">{{뉴스 인용|url=http://www.aljazeera.com/news/americas/2007/03/200852512026300115.html |title=September 11 suspect 'confesses' |publisher=Al Jazeera |date=March 15, 2007 |access-date=September 3, 2011}}</ref><ref>{{뉴스 인용|title=Key 9/11 suspect 'admits guilt' |url=http://news.bbc.co.uk/2/hi/americas/6452573.stm |publisher=BBC News |date=March 15, 2007 |access-date=April 10, 2012}}</ref>
2019년 7월 26일 맨해튼에서 열린 법정에서 모하메드의 변호인은 9·11 테러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의 역할을 증언하고 테러 희생자와 유족을 도울 수 있도록 사형을 면하게 해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유족측 변호인은 모하메드가 그런 역할에 무슨 쓸모가 있겠냐고 반문하였다<ref name="exchange">{{웹 인용|url=https://www.reuters.com/article/us-usa-sept-11-saudi-ksmohammed/accused-9-11-mastermind-open-to-role-in-victims-lawsuit-if-not-executed-idUSKCN1UO27M|title=Accused 9/11 mastermind open to role in victims' lawsuit if not executed|access-date=July 29, 2019|website=Reuters}}</ref>
모하메드는 현재 미국 내에서 복역하면서 사형 선고에 대해 항소 중이며<ref name=Charged>{{웹 인용|url=http://www.defense.gov/news/commissionsCo-conspirators.html |title=U.S. Department of Defense – Military Commissions |publisher=Defense.gov |access-date=October 6, 2010 |url-status=dead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01109025708/http://www.defense.gov/news/commissionsCo-conspirators.html |archive-date=November 9, 2010 }}</ref> 인권 단체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있었던 고문에 대해 군 당국과 미국 정부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하였다.<ref>{{웹 인용|url=http://usmilitary.about.com/library/milinfo/genevacon/blart-84.htm|title=Geneva Convention relative to the Treatment of Prisoners of War (Article 84)|publisher=Usmilitary.about.com|date=June 19, 2010|access-date=October 6, 2010|archive-date=2010-06-25|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00625010805/http://usmilitary.about.com/library/milinfo/genevacon/blart-84.htm|url-status=dead}}</ref>
=== 동기 ===
알케에다의 수장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은 1998년 파트와를 통해 미국과 [[종교전쟁|성전]]을 선포하였다.<ref name="1998FatwaPBS" /> 사건 이후 조사 결과와<ref>Gunarathna, pp. 61–62.</ref> 2002년 11월 빈라덴이 쓴 "미국에 보내는 편지"를 종합하면 빈 라덴의 테러 동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미군의 이스라엘 지원<ref name=bladen/><ref name=isrsources>
* Mearsheimer (2007), p. 67.
* Kushner (2003), p. 389.
* Murdico (2003), p. 64.
* Kelley (2006), p. 207.
* Ibrahim (2007), p. 276.
* {{harvp|Berner|2007|p=80}}</ref>
* [[소말리아]] 무슬림에 대한 공격 지원
* [[모로 분쟁]]에서 필리핀 무슬림에 대한 공격 지원
* 이스라엘의 [[레바논]] 무슬림에 대한 공격 지원
* 러시아의 [[체첸 공화국]] 내 무슬림에 대한 공격 지원
* 중동에 무슬림에 반하는 친미 정부 수립
* [[카슈미르]]에서 인도의 반 무슬림 행위 지원
*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사우던 와치 작전]] 수행<ref>
* Plotz, David (2001) [http://www.slate.com/articles/news_and_politics/assessment/2001/09/what_does_osama_bin_laden_want.html What Does Osama Bin Laden Want?], Slate
* {{harvp|Bergen|2001|p=3}}
* {{뉴스 인용|last=Yusufzai |first=Rahimullah |title=Face to face with Osama |url=https://www.theguardian.com/g2/story/0,3604,558075,00.html |url-status=dead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80119011449/http://www.guardian.co.uk/g2/story/0%2C3604%2C558075%2C00.html |work=The Guardian |location=London |date=September 26, 2001 |access-date=September 3, 2011 |archive-date=January 19, 2008}}
* {{뉴스 인용|title=US pulls out of Saudi Arabia |url=http://news.bbc.co.uk/2/hi/middle_east/2984547.stm |publisher=BBC News |date=April 29, 2003 |access-date=September 3, 2011}}
* {{뉴스 인용|url=https://www.wsj.com/articles/SB1025558570331929960 |title=Saga of Dr. Zawahri Sheds Light on the Roots of al Qaeda Terror |work=[[The Wall Street Journal]] |date=July 2, 2002 |access-date=September 3, 2011 |url-access=subscription}}
* {{웹 인용|url=http://www.9-11commission.gov/archive/hearing10/9-11Commission_Hearing_2004-04-13.htm |title=Tenth Public Hearing, Testimony of Louis Freeh |publisher=9/11 Commission |date=April 13, 2004 |access-date=September 3, 2011}}
* {{웹 인용|title=Jihad Against Jews and Crusaders: World Islamic Front Statement |date=February 23, 1998 |url=https://fas.org/irp/world/para/docs/980223-fatwa.htm |publisher=[[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 |access-date=September 3, 2011}}</ref>
* 이라크 개입<ref name=bladen>
* {{웹 인용|url=http://www.aljazeera.com/archive/2004/11/200849163336457223.html |title=Full transcript of bin Ladin's speech |publisher=Al Jazeera |access-date=April 10, 2012 |url-status=dead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60101093303/http://www.aljazeera.com/archive/2004/11/200849163336457223.html |archive-date=January 1, 2016}}
* {{뉴스 인용|first=Osama |last=bin Laden |title=Full text: bin Laden's 'letter to America' |date=November 24, 2002 |url=https://www.theguardian.com/world/2002/nov/24/theobserver |work=[[The Observer]] |access-date=September 3, 2011 |location=London}}</ref>
테러 이후 빈 라덴과 [[아이만 알자와히리]]는 추가적인 비디오 촬영물과 오디오 녹음물을 통해 자신들의 테러가 정당하다는 주장을 반복하였다. 이들 주장 가운데 중요하게 다루어 지는 것으로 "2002년 미국에 보내는 편지"와<ref name="BLLTA">{{뉴스 인용|url=https://www.theguardian.com/world/2002/nov/24/theobserver |title=Full transcript of bin Laden's "Letter to America" |work=The Guardian |date=November 24, 2002|access-date=September 3, 2011 |location=London}}</ref>2004년 빈 라덴의 비디오 테이프가 있다.<ref name='Full Ladin'>{{웹 인용|url=http://www.aljazeera.com/archive/2004/11/200849163336457223.html |title=Full transcript of bin Ladin's speech |access-date=April 10, 2012 |last=bin Laden |first=Osama |publisher=[[Al Jazeera]] |quote=So I shall talk to you about the story behind those events and shall tell you truthfully about the moments in which the decision was taken, for you to consider |url-status=dead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60101093303/http://www.aljazeera.com/archive/2004/11/200849163336457223.html |archive-date=January 1, 2016 }}</ref>
빈 라덴은 [[무함마드]]가 "이교도 군대의 아라비아 영구 주둔"을 금했다고 해석한다.<ref>{{서적 인용|last=Bergen |first=Peter L. |author-link=Peter L. Bergen |title=Holy War, Inc.: Inside the Secret World of Osama Bin Laden |year=2005 |publisher=Simon and Schuster |location=New York |isbn=978-0-7432-3467-2|url=https://books.google.com/books?id=sRhZDrJb0zgC&pg=PP1|access-date=March 20, 2020}}</ref> 1996년 빈 라덴의 파트와는 이를 근거로 미군의 사우디 아라비아 철수를 요구하였다. 1998년 알카에다는 "미군이 성스러운 땅 아라비아 반도를 7년째 점령하고 있다"고 표현하였다. 그들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번영하며 영구히 살 수 있는 사람은 무슬림뿐이라고 주장하였다.<ref name="1998 Al Qaeda fatwā">{{웹 인용|url=https://fas.org/irp/world/para/docs/980223-fatwa.htm |title=1998 Al Qaeda fatwā |publisher=[[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 (FAS) |date=February 23, 1998|access-date=September 3, 2011}}</ref>
1999년 인터뷰에서 빈 라덴은 미군이 [[메카]]에 너무 가까이 주둔한다고 말하면서 이는 이슬람 세계에 대한 도발이라고 주장하였다.<ref name="guardian-20010926">{{뉴스 인용|url=https://www.theguardian.com/world/2001/sep/26/afghanistan.terrorism3 |title=Face to face with Osama |work=The Guardian |date=September 26, 2001|location=London|access-date=September 3, 2011 |first=Rahimullah |last=Yusufzai}}</ref> 자살 테러 공격에 대한 어느 분석은 미군이 사우디 아라비아에 주둔하지 않았다면 알카에다가 자살 테러 가담자를 모으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였다.<ref>{{서적 인용|last=Pape |first=Robert A. |author-link=Robert Pape |title=Dying to Win: The Strategic Logic of Suicide Terrorism |year=2005 |publisher=Random House |location=New York |isbn=978-0-8129-7338-9|url=https://archive.org/details/dyingtowinstrate00pape|access-date=March 20, 2020}}</ref>
1998년 파트와에서 알카에다는 미국의 이라크 개입을 "알라, 그의 사자, 그리고 무슬림"에 대한 도발이라고 주장하였다.<ref name="1998 Al Qaeda fatwā" /> 이 파트와는 이전의 것 보다 더 극단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미국인을 살해하는 것은 무슬림의 의무"라고 천명한 것이다.<ref name="1998FatwaPBS" /><ref>See also the 1998 [[Fatawā of Osama bin Laden|Al-Qaeda ''fatwā'']]: "The ruling to kill the Americans and their allies{{snd}}civilians and military{{snd}}is an individual duty for every Muslim who can do it in any country in which it is possible to do it, in order to liberate the al-Aqsa Mosque and the holy mosque [Mecca] from their grip, and in order for their armies to move out of all the lands of Islam, defeated and unable to threaten any Muslim." Quoted from {{웹 인용|url=https://www.pbs.org/newshour/updates/military-jan-june98-fatwa_1998/|title=Al Qaeda's Second Fatwa|website=[[PBS NewsHour]]|publisher=[[Public Broadcasting Service]]|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31128194258/http://www.pbs.org/newshour/updates/military/jan-june98/fatwa_1998.html|archive-date=November 28, 2013|url-status=dead|access-date=May 29, 2014}}</ref> 이러한 극단적 주장을 계속하던 알카에다는 결국 9·11 테러를 계획하기에 이른다.
사건 이후인 2004년 빈 라덴은 세계 무역 센터를 파괴하려는 생각은 1982년부터 지니고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레바논과 전쟁을 벌이던 이스라엘군이 고층 빌딩을 폭파시키는 것을 보고 자신도 미국의 빌딩을 부숴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하였다.<ref>Summers and Swan (2011), pp. 211, 506n.</ref><ref>Lawrence (2005), p. 239.</ref>
메르사이머와 월트 같은 분석가들은 미국의 이스라엘 편들기 역시 테러의 명분을 제공하였다고 본다.<ref name=isrsources /><ref name="guardian-20010926" /> 2004년과 2010년 빈 라덴은 또다시 9·11 테러를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과 연결시켰다. 빈 라덴은 부시 대통령이 있는 미국이 파산하기를 희망한다고도 하였다.<ref>{{웹 인용|title=Full transcript of bin Ladin's speech|url=http://www.aljazeera.com/archive/2004/11/200849163336457223.html%20online%20here|publisher=Al Jazeera|access-date=August 24, 2016|date=November 4, 2004|archive-date=2016-11-14|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61114080708/http://www.aljazeera.com/archive/2004/11/200849163336457223.html%20online%20here|url-status=dead}}</ref><ref>In his taped broadcast from January 2010, Bin Laden said "Our attacks against you [the United States] will continue as long as U.S. support for Israel continues.{{nbs}}... The message sent to you with the attempt by the hero Nigerian [[Umar Farouk Abdulmutallab]] is a confirmation of our previous message conveyed by the heroes of September{{nbs}}11". Quoted from [http://www.haaretz.com/news/bin-laden-attacks-on-u-s-to-go-on-as-long-as-it-supports-israel-1.265770 "Bin Laden: Attacks on U.S. to go on as long as it supports Israel"] {{web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61216081625/http://www.haaretz.com/news/bin-laden-attacks-on-u-s-to-go-on-as-long-as-it-supports-israel-1.265770|date=December 16, 2016}}, in Haaretz.com</ref>
미국을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모욕하려는 것도 테러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ref>Bernard Lewis, 2004. In [[Bernard Lewis]]'s 2004 book ''[[The Crisis of Islam: Holy War and Unholy Terror]]'', he argues that animosity toward the West is best understood with the decline of the once powerful [[Ottoman empire]], compounded by the import of western ideas{{snd}}[[Arab socialism]], [[Liberal movements within Islam|Arab liberalism]] and [[Secularism in the Middle East|Arab secularism]]</ref><ref>In "The spirit of terrorism", [[Jean Baudrillard]] described 9/11 as the first global event that "questions the very process of globalization". {{웹 인용|url=http://homes.chass.utoronto.ca/~ikalmar/illustex/baudriterror.htm|title=The spirit of terrorism|last=Baudrillard|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00528231925/http://www.chass.utoronto.ca/~ikalmar/illustex/baudriterror.htm|archive-date=2010-05-28|url-status=|access-date=June 26, 2011}}</ref> 또한 알카에다가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이슬람 세계 내의 여러 세력으로부터 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미국에 대한 테러가 범이슬람권 혁명의 일환이라고 주장하였다.<ref>In an essay entitled "Somebody Else's Civil War", [[Michael Scott Doran]] argues the attacks are best understood as part of a religious conflict within the Muslim world and that Bin Laden's followers "consider themselves an island of true believers surrounded by a sea of iniquity". Hoping that U.S. retaliation would unite the faithful against the West, bin Laden sought to spark revolutions in Arab nations and elsewhere. Doran argues the [[Osama bin Laden videos]] attempt to provoke a visceral reaction in the Middle East and ensure that Muslim citizens would react as violently as possible to an increase in U.S. involvement in their region. ({{잡지 인용|url=https://www.foreignaffairs.com/articles/united-states/2002-01-01/somebody-elses-civil-war|title=Somebody Else's Civil War|first=Michael Scott|last=Doran|issue=January/February 2002|magazine=[[Foreign Affairs]]|access-date=December 5, 2009|url-access=subscription}} Reprinted in {{서적 인용|url=https://archive.org/details/understandingwar0000unse_f3s3|title=Understanding the War on Terror|last1=Hoge|first1=James F.|last2=Rose|first2=Gideon|year=2005|publisher=Norton|location=New York|pages=[https://archive.org/details/understandingwar0000unse_f3s3/page/72 72]–75|isbn=978-0-87609-347-4}})</ref><ref>In ''The Osama bin Laden I Know'', [[Peter Bergen]] argues the attacks were part of a plan to cause the United States to ''increase'' its military and cultural presence in the Middle East, thereby forcing Muslims to confront the idea of a non-Muslim government and to eventually establish conservative Islamic governments in the region.({{harvp|Bergen|2006|p=229}})</ref>
=== 모의 ===
[[파일:World Trade Center, NY - 2001-09-11 - Debris Impact Areas.svg|섬네일|세계 무역 센터 테러 다이어그램]]
9·11 테러를 구상한 사람은 1996년부터 오사마 빈 라덴과 함께한 칼리드 사이크 모하메드였다.<ref>{{뉴스 인용|title=Suspect 'reveals 9/11 planning' |url=http://news.bbc.co.uk/2/hi/south_asia/3128802.stm |publisher=BBC News |date=September 22, 2003 |access-date=September 3, 2011}}</ref> 그가 빈 라덴을 처음 만날 당시 알카에다는 [[수단]]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ref name="911-ch5">9/11 Commission Report (2004), Chapter 5, pp. ??</ref> 1998년 알카에다는 아프리카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폭탄 테러를 벌였고, 그해 빈라덴은 미국에 대한 테러를 표방하는 파트와를 발표하였다.<ref>9/11 Commission Report (2004), p. 67.</ref> 이후 알카에다는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테러를 계획하였다.
1998년 후반에서 1999년 초 사이 빈 라덴은 모하메드에게 테러를 실행할 조직을 구성하라고 제안하였다.<ref>9/11 Commission Report (2004), p. 149.</ref> 1999년 초 모하메드와 빈 라덴, 그리고 빈라덴의 참모였던 모하메드 아테프는 여러 차례 만나 모의하였다.<ref>9/11 Commission Report (2004), p. 155.</ref> 아테프가 작전 지원을 맡아 목표의 선정과 비행기 납치를 위한 여정 등의 초안을 마련하였고<ref name="911-ch5" /> 빈 라덴은 모하메드를 지휘하면서 로스앤젤레스의 미국 뱅크 타워와 같이 따로 떨어져 있는 목표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제외하였다.<ref>{{뉴스 인용|last=Lichtblau |first=Eric |title=Bin Laden Chose 9/11 Targets, Al Qaeda Leader Says |url=https://www.nytimes.com/2003/03/20/us/threats-and-responses-the-plot-bin-laden-chose-9-11-targets-al-qaeda-leader-says.html |work=The New York Times |date=March 20, 2003 |access-date=September 3, 2011}}</ref>{{sfnp|Wright|2006|p=308}}
빈 라덴은 테러의 총책과 자금 마련 역할을 하면서 가담자 선정에도 관여하였다.{{sfnp|Bergen|2006|p=283}} 그는 보스니아에서 테러 활동을 하였던 나와프 알하즈미와 칼리드 알미흐다를 영입하여 2000년 1월 중순 무렵 미국으로 보냈다. 이들은 그해 초 캘리포니아 산디에고의 비행 학교에서 비행기 조종을 배웠지만 영어를 잘 하지 못하여 그다지 성과가 없었고 2차 비행기 납치를 맡게 된다.<ref>McDermott (2005), pp. 191–92.</ref>
1999년 말 [[모하메드 아타]], [[마르완 알셰히]], [[지아드 자라]], [[람지 빈 알시브]] 등의 사람들이 함부르크를 출발하여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했다.<ref>{{뉴스 인용|last=Bernstein |first=Richard |title=On Path to the U.S. Skies, Plot Leader Met bin Laden |url=https://www.nytimes.com/2002/09/10/national/10PLOT.html |work=The New York Times |date=September 10, 2002 |access-date=September 3, 2011}}</ref> 교육 정도가 높고 영어를 할 수 있으며 서구에 살았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빈 라덴은 이들을 테러에 가담시켰다.{{sfnp|Wright|2006|pp=304–07}} 또한 알카에다는 이미 비행사 자격증이 있는 하니 한조르를 새롭게 영입하였다.{{sfnp|Wright|2006|p=302}} 모하메드는 훗날 서구 의상을 입는 법과 음식점에서 주문하는 법과 같은 것들을 가르쳤다고 진술하였다.{{sfnp|Jessee|2006|p=371}}
한조르는 2000년 12월 8일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도착하여 하즈미와 합류하였다.<ref name="9/11 commission staff statement No. 16">{{뉴스 인용|title=9/11 commission staff statement No. 16|date=June 16, 2004|url=http://www.9-11commission.gov/staff_statements/staff_statement_16.pdf|work=9/11 Commission|access-date=September 11, 2012}}</ref>{{Rp|6–7}} 그들은 곧바로 애리조나로 떠나 그곳에서 훈련하였다.<ref name="9/11 commission staff statement No. 16"/>{{rp|7}} 마르완 알세히는 2000년 5월 말에, 아타는 6월 3일에, 자라는 6월 27일에 각각 미국에 입국하였다.<ref name="9/11 commission staff statement No. 16"/>{{rp|6}} 빈 알시브는 예멘 여권의 비자 승인을 여러 차례 신청하였으나 거절되어 미국에 갈 수 없었다.<ref name="9/11 commission staff statement No. 16"/>{{rp|4, 14}} 빈 알시브는 함부르크에 머무르면서 아타와 모하메드 사이를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했다.<ref name="9/11 commission staff statement No. 16"/>{{rp|16}} 미국에 입국한 함부르크 소조 셋은 플로리다 남부의 허프만 비행장에서 비행 훈련을 받았다.<ref name="9/11 commission staff statement No. 16"/>{{rp|6}}
2001년 봄 2차 비행기 납치 팀이 미국에 입국하였다.<ref>{{웹 인용|url=http://www.9-11commission.gov/staff_statements/911_TerrTrav_Monograph.pdf|title=Staff Monograph on 9/11 and Terrorist Travel|publisher=9/11 Commission|year=2004|access-date=September 3, 2011}}</ref> 2001년 7월 아타는 스페인에서 알시브와 만나 음모의 세부 사항을 점검하고 최종 목표를 선정하여 빈 라덴의 승인을 받았다. 빈 라덴은 가능한 빠른 실행을 지시하였다.<ref name="irujo">{{뉴스 인용|url=http://elpais.com/diario/2004/03/21/espana/1079823611_850215.html |title=Atta recibió en Tarragona joyas para que los miembros del 'comando' del 11-S se hiciesen pasar por ricos saudíes|work=El País|date=March 21, 2004|last=Irujo|first=Jose María|access-date=April 10, 2012|language=es}}</ref> 테러 가담자들의 일부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공무원으로 있는 자기 가족을 포섭하여 여권을 발급 받았고, 다른 이들은 위조 여권을 사용하였다.<ref>{{저널 인용|title=Entry of the 9/11 Hijackers into the United States Staff Statement No. 1 |url=http://govinfo.library.unt.edu/911/staff_statements/staff_statement_1.pdf |publisher=National Commission on Terrorist Attacks Upon The United States |page=2}}</ref>
테러를 일으킬 날짜로 9월 11일을 고른 것은 미국의 [[응급 전화번호]]가 911 이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1683년]] 9월 11일 [[오스만 제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신성 로마 제국]] 사이에 있었던 [[빈 전투]]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빈 라덴은 이 전투를 서방이 이슬람 세계를 침입하기 시작한 때로 언급한 바 있다.<ref>{{웹 인용|last=Hudson |first=John |title=How jihadists schedule terrorist attacks |url=https://foreignpolicy.com/2013/05/03/how-jihadists-schedule-terrorist-attacks/ |website=Foreign Policy |access-date=February 9, 2020 |language=en-US}}</ref>
=== 사전 정보 ===
1999년 후반기 알카에다는 칼라드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던 왈리드 빈 아타시에게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미흐다르와 접촉하라고 지시하였다. 그 자리엔 하즈미와 아부 바라 알 예멘도 참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가안보국]]은 미흐다르와 나와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하즈미의 전화를 감청하여 이 모임을 인지하였다. 국가안보국의 요원은 "무언가 사악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하였지만 추가적인 조치는 없었다.
[[중앙정보국]]은 이미 사우디 아라비아의 정보기관으로부터 미흐다르와 하즈미가 알카에다에 속해있다는 경고를 받은 상태였고, 중앙정보국은 미흐다르가 머물던 두바이의 호텔 객실을 급습하여 미흐다르의 미국 비자를 발견하였다. 중앙정보부의 빈 라덴 담당 부서였던 알렉 스테이션도 이를 세계 각지의 요원들에게 경보하였지만 FBI와 정보를 공유하지는 않았다. 2000년 1월 5일 말레이시아 경찰 특수부는 두 명의 알카에다 조직원으로부터 미흐다르와 하즈미, 칼라드가 방콕으로 갔다는 첩보를 얻고 중앙정보국에 전달하였다. 그러나 중앙정보국은 다른 정보 기관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미국 국무부]]에도 미흐다르가 감시 명단에 있는 지 문의하지 않았다. FBI에서 파견한 알렉 스테이션의 요원이 이 모임과 관련한 정보를 요청하였으나 중앙정보국은 "FBI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라는 답변만 하였다.{{sfnp|Wright|2006|pp=310–12}}
2000년 6월 말 대테러 부서 요원 리처드 A. 클라크와 조지 터넷 부장은 "심각한 공격이 행해지려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으나, 중앙정보국은 이러한 공격이 사우디 아라비아나 이스라엘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sfnp|Clarke|2004|pp=235–36}} 7월 초 클라크는 미국내 요원들에게 "최고 경보"를 발령하며 "조만간 정말 거대한 일이 여기서 일아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그는 FBI와 국무부에 각국의 대사관, 경찰서, 국방부에 대해 "델타 컨디션"의 경계를 유지하여 달라고 요청하였다.{{sfnp|Wright|2006|p=344}}{{sfnp|Clarke|2004|pp=236–37}} 사건 이후 클라크는 "중앙정보국의 어느 부서는 알카에다로 판명된 두 명의 테러리스트가 미국에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FBI의 어느 부서는 미국의 비행학교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 각각의 테러리스트가 벌이는 일들의 개별적인 정보로만 취급하였기 때문에, 나나 백악관 어디에서도 정보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기록하였다.{{sfnp|Clarke|2004|pp=242–43}}
2000년 7월 13일 중앙정보국의 톰 윌셔 요원은 FBI 국제 테러 부서로부터 전달받은 하즈미가 미국 내에 있으며 미흐다르가 미국 비자를 지니고 있었다는 정보를 중앙정보국 대테러 센터에 보고하였다. 그러나 중앙정보국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sfnp|Wright|2006|p=340}} 같은 날 중앙정보국 대테러 센터에 파견되어 있던 FBI 분석가 마거렛 질러스파이는 말레이시아 모임을 재검토 하였다. 그는 미국내의 특별한 징후를 언급하지 않았다. 중앙정보국은 미흐다르와 하즈미의 감시 사진을 질러스파이에게 보여 주었으나 그들이 어떤 인물인지는 설명하지는 않았으며, 두 기관의 공동 데이터베이스도 별 다른 정보가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FBI는 두 인물의 추가 정보를 중앙정보국에 요구하였으나 미흐다르의 생년월일과 여권 번호와 같은 기본 정보의 제공마저 거절되었다.{{sfnp|Wright|2006|pp=340–43}}
2001년 8월 말 질러스파이는 국무부의 이민 관리부와 관세청 그리고 FBI에 하즈미와 미흐다르를 감시 명단에 등록하도록 요청하였지만, FBI는 이 둘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사찰하는 것을 거부하였다.{{sfnp|Wright|2006|pp=352–53}} 이보다 이른 7월에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FBI 요원이 FBI 본부와 알렉 스테이션, 뉴욕 지부에 이들이 "오사마 빈 라덴과 연계되어 미국에 민간 비행 학교의 학생으로 파견되었을 가능성"을 통보하였다. 케네스 윌림엄스 요원은 미국 비행 학교에 등록된 모든 아랍계 학생과 학교 관계자를 면담하여야 한다고 제의하였다.{{sfnp|Wright|2006|p=350}} 같은 달, 요르단은 알카에다가 미국 내에서 비행기와 관련된 음모를 진행 중이며 "한달 이내에" 시행될 이 음모의 작전 암호명은 "커다란 결혼식"이라는 정보를 전달하였다.{{sfnp|Yitzhak|2016|p=218}}
2001년 8월 6일 중앙정보국의 대표일일공보관은 빈 라덴이 미국을 공격하려고 한다는 정보를 FBI가 전달한 "나타난 패턴으로 보아 국내에서 비행기 납치 또는 다른 형태의 공격이 예상된다"는 정보를 덧붙여 "대통령 직보"로 보고하였다.<ref>{{웹 인용|title=The Osama bin Laden File: National Security Archive Electronic Briefing Book No. 343|url=http://nsarchive.gwu.edu/NSAEBB/NSAEBB343/|website=The National Security Archive|publisher=The National Security Archive|access-date=March 14, 2016}}</ref>
8월 중순 미네소타의 비행 학교는 FBI에 자카리아스 모사오위가 "수상한 질문"을 해 왔다고 FBI에 신고하였다. FBI는 모사오위가 파키스탄 여행 경력이 있는 극단적 사상을 가진 인물로 파악하였고 이민국은 모사오위의 프랑스 비자가 만료되었다는 것을 근거로 불법 체류 혐의로 체포하였다. 이민국은 FBI에 모사오위의 노트북 조사 결과를 요청하였지만 FBI는 테러 가담에 대한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sfnp|Wright|2006|pp=350–51}}
각 정보 당국은 9·11 테러에 대한 사전 정보를 개별적 첩보로 수집하고 있었지만, 1995년부터 미국 법무부가 통신 감청과 같은 민감한 정보를 정보 당국 사이에 공유하는 것을 규제한 것과 CIA와 NSA가 중요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꺼린 것이 테러 정보 공유 실패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sfnp|Wright|2006|pp=342–43}} 2004년 4월 9/11 청문회에서 법무장관 존 에시크라프트는 각 정보기관 사이의 장벽이 테러의 전말을 밝히지 못한 이유라고 증언하였다.{{sfnp|Clarke|2004|p=238}}
== 사건 흐름 ==
{{본문|9·11 테러 당일 시간별 상황}}
[[파일:911 - FEMA - WTC impacts (graphic).svg|섬네일|[[세계 무역 센터 (1973년~2001년)|세계 무역 센터]]가 피격당한 방향.]]
[[파일:World Trade Center 9-11 Attacks Illustration with Vertical Impact Locations.svg|섬네일|세계 무역 센터가 피격당한 층수.]]
사건은 [[오사마 빈라덴]]의 지휘 아래 4대의 민간 여객기를 납치한 [[알카에다]]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 07:59: [[아메리칸 항공 11편]](AA11)의 [[보잉 767]]기가 81명의 승객과 11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보스턴]]의 [[로건 국제공항]]으로부터 이륙하여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을 향해 비행을 시작했다. 이 항공편의 승객 중에는 5명의 테러범이 포함되어 있었다.
* 08:14: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UA175)의 보잉 767기가 56명의 승객과 9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AA11편처럼 로건 국제공항으로부터 이륙하고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을 향해 비행을 시작했다. 이 항공편의 승객 중에도 5명의 테러범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AA11편 항공기는 [[매사추세츠주]] 중부 상공에서 테러범들에 의해 [[항공기 납치|납치]]되어 남서쪽으로 항로를 돌렸다.
* 08:20: [[아메리칸 항공 77편]](AA77)의 [[보잉 757]]기가 5명의 테러범을 포함하여 58명의 승객과 6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으로부터 이륙하여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을 향해 비행하기 시작했다.
* 08:42: [[유나이티드 항공 93편]](UA93)의 보잉 757기가 4명의 테러범을 포함하여 37명의 승객과 7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뉴어크 국제공항]]에서 이륙하여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을 향하여 비행을 시작했다.
* 08:42-08:46: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UA175편]]이 [[뉴욕시]]로부터 230km가량 떨어진 [[뉴욕주]] [[올버니 (뉴욕주)|올버니]] 상공에서 납치되어 남쪽으로 항로를 선회했다.
* '''08:46''': [[아메리칸 항공 11편|AA11편]]이 시속 790km의 속도로 [[세계 무역 센터 (1973년~2001년)|세계 무역 센터]] 북쪽 건물([[1 월드 트레이드 센터 (9·11 테러 이전)|제1 세계무역센터]])의 북쪽 면에서 93층과 99층 사이에 충돌했다. 항공기는 크게 파괴되지 않은 채 건물에 박혔다.
* 08:50-08:54: [[아메리칸 항공 77편|AA77편]]이 [[오하이오주]] 남부 상공에서 납치되어 남동쪽으로 항로를 선회했다.
* '''09:03''':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UA175편]]이 시속 950km의 속도로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2 월드 트레이드 센터 (9·11 테러 이전)|제2 세계무역센터]])의 남쪽 면에서 77층과 85층 사이에 충돌하였다. 비행기의 우측 엔진을 포함한 잔해들이 빌딩의 동쪽과 북쪽 측에서 떨어져나가 6블록 떨어진 땅에까지 낙하하였다.
* 09:28: [[유나이티드 항공 93편|UA93편]]이 오하이오주 북부 상공에서 납치되어 남동쪽으로 항로를 바꾸었다.
* '''09:37''': [[아메리칸 항공 77편|AA77편]]이 시속 853km의 속도로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의 서쪽 면에 충돌하여 들어가 큰 화재를 일으켰다.
* 09:59: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이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UA175편]]과의 충돌 후 약 56분 만에 완전히 붕괴되었다.
* '''10:03''': [[유나이티드 항공 93편|UA93편]]이 시속 926km의 속도로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시에서 동남쪽으로 약 129km 떨어진 곳에 추락하였는데, 이는 조종석에서 납치범들과 승객들이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이후 발표된 바에 따르면, 승객들은 [[세계 무역 센터 (1973년~2001년)|세계 무역 센터]]와 [[펜타곤]]에서 일어난 충돌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납치범들에게 저항하고 있었다. 이후 [[9/11 위원회]]는 납치범들이 이 항공기를 [[워싱턴 D.C.]]에 위치한 [[미국 의회의사당]]이나 [[백악관]]에 또는 동북부의 [[원자력 발전소]]를 충돌시키려 했었다고 추측하였다.
* 10:28: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이 충돌 후 1시간 42분 만에 완전히 붕괴되었고, 부속건물이던 [[메리어트 월드 트레이드 센터|메리어트 호텔]]이 함께 무너져 내렸다.
* 10:59: 화재로 인해 [[펜타곤]] 건물 일부의 5층이 무너져 내렸다.
* 17:20: 47층짜리 [[7 월드 트레이드 센터 (9·11 테러 이전)|제7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졌다. 제1·2 세계무역센터의 붕괴 때 철골들의 잔해들이 튕겨나와 제7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타격한 것이 붕괴의 가장 큰 원인으로 추측된다.
* 17:42: [[대한항공 85편 납치 오인 사고|대한항공 085편]]이 강제로 착륙한다.
== 사건과 그 여파 ==
이 테러로 테러범을 포함하여 2,996명의 사망자와 최소 6,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4대의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은 전원 사망하였고, 워싱턴 국방부 청사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이 125명, 세계무역센터에서는 약 2,500명의 사람이 사망하였다. 미국 전역은 하루 만에 일어난 큰 테러 사건으로 인해 비상사태에 빠지게 되었고, [[뉴욕]]은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다. 테러 발생 직후 [[CNN]] 방송망을 시작으로 사건의 상황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고, 9·11 테러는 순식간에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파일:National Park Service 9-11 Statue of Liberty and WTC fire.jpg|섬네일|왼쪽|사진 좌측의 남쪽 타워에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이 충돌해 불타고 있다. 그에 앞서 우측의 북쪽 타워에는 [[아메리칸 항공 11편]]이 충돌했다.]]
경제적인 피해는 세계무역센터 건물 가치 11억 달러(1조 4300억 원), 테러 응징을 위한 긴급지출안 400억 달러(약 52조 원), 재난극복 연방 원조액 111억 달러(약 12조 원), 이외에도 각종 경제활동이나 재산상 피해를 더하면 화폐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피해가 발생하였다고 할 수 있다.
테러에 이용된 각 항공기마다 4~5명의 납치범들이 탔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미국연방수사국]](FBI)의 조사 결과 범인들은 [[모하메드 아타]] 등 19명의 [[알 카에다]] 조직원들로 알려졌다. 테러범들은 비행기 충돌과 동시에 전원 사망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국제 테러리스트인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추종 조직인 [[알카에다]]를 주요 용의자로 지적했으며, 그 밖에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 산하의 무장조직인 [[하마스]](HAMAS), 이슬람 원리주의 기구인 [[지하드]],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 다른 이슬람 테러조직들도 관여했을 것으로 보았다.
항공기가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과 충돌한 직후인 09시 29분, [[조지 W. 부시|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 테러사건을 '미국에 대한 명백한 테러 공격'으로 규정하고, 이어 전국의 정부 건물에 대피령을 내리는 한편, [[국제연합]](UN), [[시어스 타워]](현 [[윌리스 타워]]), [[디즈니랜드]] 등 주요 건물을 폐쇄하였다. 같은 날 금융시장 폐장 결정을 내린 뒤, 뉴욕과 워싱턴에 해군의 구축함 등 장비를 파견하였다.
{| class="wikitable" style="width:280px; font-size:90%; float:right; margin-right:10px"
|-
|+사망자 + 납치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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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span="3"| 뉴욕
| [[세계 무역 센터 (1973년~2001년)|세계 무역 센터]]
| 2,606<ref name="edition.cnn.com">{{뉴스 인용|url=http://edition.cnn.com/2009/CRIME/11/13/khalid.sheikh.mohammed/index.html|title=Accused 9/11 plotter Khalid Sheikh Mohammed faces New York trial|date=November 13, 2009|publisher=CNN|accessdate=2011-09-02}}</ref><ref>{{뉴스 인용|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20325210832/http://www.wibw.com/nationalnews/headlines/70082322.html| url=http://www.wibw.com/nationalnews/headlines/70082322.html|archivedate=2012-03-25| url-status=dead| title=Alleged 9/11 Plotters Face Trial Blocks From WTC Site |date=November 13, 2009|publisher=[[WIBW-TV|WIBW]]|accessdate=2013-11-24}}</ref>
|-
| [[아메리칸 항공 11편]]
| 87 + 5<ref>{{뉴스 인용|url=http://www.cnn.com/SPECIALS/2001/memorial/lists/by-location/page93.html |title=American Airlines Flight 11 |publisher=CNN |accessdate=2011-09-02}}</ref>
|-
|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
| 65<ref>{{뉴스 인용|url=http://www.cnn.com/SPECIALS/2001/memorial/lists/by-location/page100.html |title=United Airlines Flight 175 |publisher=CNN |accessdate=2011-09-02}}</ref>
|-
!rowspan="2"| [[알링턴 군|알링턴]]
| [[펜타곤]]
| 125<ref>{{뉴스 인용|url=http://www.cnn.com/SPECIALS/2001/memorial/lists/by-location/page88.html |title=Pentagon |publisher=CNN |accessdate=2011-09-02}}</ref>
|-
| [[아메리칸 항공 77편]] || 64<ref>{{뉴스 인용|url=http://www.cnn.com/SPECIALS/2001/memorial/lists/by-location/page96.html |title=American Airlines Flight 77 |publisher=CNN |accessdate=2011-09-02}}</ref>
|-
! [[펜실베이니아주|생크스빌]]
| [[유나이티드 항공 93편]]
| 44<ref>{{뉴스 인용 |url=http://www.post-gazette.com/headlines/20011028flt93mainstoryp7.asp |title=Flight 93: Forty lives, one destiny |publisher=Pittsburgh Post-Gazette |date=October 2001 |last=Roddy |first=Dennis B. |authorlink=Dennis Roddy |accessdate=2011-09-02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31008115441/http://www.post-gazette.com/headlines/20011028flt93mainstoryp7.asp |archivedate=2003-10-08 |url-status=dead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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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span="2"| 합계
| 2,996
|}
=== 테러와의 전쟁 ===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테러 단체, 국가에 맞서 군사적, 정치적으로 싸울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2001년]] [[10월 7일]], [[미국]]·[[영국]] 연합군은 [[아프가니스탄]] 주변에 350여 기의 항공 전력을 배치하고, [[아프가니스탄]] 영토에서 자유로운 전투·폭격기를 이용한 공습과 아프가니스탄 북부동맹군을 앞세워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년~2021년)|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켰으며, 같은 해 11월 20일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함락하였다. 이어 다음 달 22일 연합군은 반 [[탈레반]] 정권인 과도정부를 수립함으로써 탈레반과의 전쟁을 종결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이 전쟁의 목표로 삼았던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조직 [[알카에다]]를 뿌리뽑는 데는 실패하였다.
이후 미국은 [[2003년]] [[3월 20일]]에는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알카에다와 동맹한 이라크 정부를 20일 만에 함락시키고 새로운 과도정부를 출범시키는 등 대테러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후 [[2011년]] 5월 [[제로니모 작전]]의 일환으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 후 수장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bbc.co.uk/news/world-middle-east-13256791 |제목=BBC News – Osama Bin Laden dead, US President Obama confirms |publisher=bbc.co.uk|date= 2011년 5월 2일|accessdate=2011년 5월 2일}}</ref>
사건이 발생한 지 3개월 만인 2000년 12월 11일 존 애슈크로프트 미국 법무장관은 로버트 멀러 연방수사국(FBI) 국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모로코계 프랑스인인 자카리아스 무사위를 6가지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발표하고 "알 카에다는 이제 매우 싫어하는 재판과 두려워하는 판결과 맞닥뜨릴 것"이라고 했다.<ref>[https://www.hankyung.com/international/article/2001121234920]</ref>
독일 검찰은 9·11테러 비행기 납치범 가운데 한 명인 모하메드 아타가 이끄는 함부르크의 알-카에다 세포조직 창설 멤버로 조직의 자금거래를 지원하고 조직원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며 모로콜 출신의 독일 유학생 압델가니 음주디(32)에 대해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구형했으나 변호인들은 음주디가 9·11테러의 주범들과 친분은 있지만 테러공격 계획을 사전에 알지는 못했다면서 혐의를 부인했다.
함부르크 고등법원이 구속된 음주디에 대해 2003년 12월 "독일 연방범죄수사국(BKA)이 최근 법원에 출처를 밝히지 않고 제출한 자료에 음주디가 9·11테러 계획을 몰랐음을 시사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면서 "이 정보의 신빙성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으나 허위임을 입증할 수도 없다"고 밝히며 석방을 명령하고 재판을 진행하여 2004년 2월 무죄를 선고했다. 독일 연방재판소도 2005년 6월 9일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전 세계에서 911 테러로 기소된 첫 번째 무죄확정이나 오토 쉴리 독일 내무부 장관은 "국제테러리즘을 지지하는 위험인물"이라고 하면서 추방을 명령했다.<ref>[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41033.html 독일법원 911테러 연루 혐의자 최종 무죄확정]</ref>
군사법원은 이들이 지난 2012년 5월 정식 기소됐으며, 30차례 넘는 재판 전 심리를 거쳐 공식 재판 일정이 확정됐다고 밝혔다.
테러 주범으로 알려진 [[알카에다]]의 전 작전사령관,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를 비롯해 피고인 5명은 2002년과 2003년 [[파키스탄]]에서 체포된 뒤 [[미국]] 해군기지인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약속한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뉴욕연방법원에서 재판이 추진됐으나 정치적 논란 속에 군사법원이 2012년 5월 기소하여 관타나모 특별군사법정에서 30차례의 재판 전 심리를 거쳐 정식재판에 회부되어 2021년 1월 재판을 시작한다.
'9·11 테러의 설계자(The principal architect of the 9·11)'로 불리는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추격을 피해 도피생활을 하다 2003년 3월 1일 파키스탄 라왈핀디에서 체포되어 911 테러를 포함해 전쟁범죄 및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2006년부터 13년 동안 관타나모에 수감 중이며 2008년 관타나모 군사위원회에서 사형을 선고받자 "이것은 내가 원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순교를 기다려왔다"고 말했으나 9·11 테러 피해자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소송에서 변호인을 통해 법원에 보낸 편지에서 "현재는 모하메드가 법정 진술에 동의하지 않지만, 마음이 바뀔 수 있다"며 "미국 정부가 사형집행을 면하게 해줄 경우 테러 피해자들을 위해 알카에다의 조직 및 명령 체계 등에 대해 진술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고 말했다.<ref>[https://news.joins.com/article/23540182]</ref>
== 음모론 ==
{{본문|9·11 테러 음모론}}
=== 9·11 테러 자작극 음모론 ===
9·11 테러 자작극 음모론이란 부시 정권이 유태 세력과 공동으로 9·11 테러를 실시했다는 자작극 혐의를 말한다. '진보연구학회'를 이끄는 [[데이비드 레이 그리핀]] 박사는 9·11사건의 '진상규명'을 주장하는 그룹이 초기에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고 말한다.<ref name="weelykhan20070918">[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7&artid=15431 9·11테러 '음모론' 진실은 어디 있나?], 뉴스메이커 742호, 2007-09-18</ref>
* LIHOP(let it happen on purpose): 정부가 테러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알았음에도 일부러 무시하거나 테러리스트들을 방관했다는 주장.
* MIHOP(made it happen on purpose): 정부의 핵심인사들이 테러를 계획했고, 알카에다와 협조관계를 맺고 있다는 주장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루스 체인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케네디 대통령 암살 의혹]]을 다룬 영화 'JFK'를 감독한 [[올리버 스톤]]은 9·11사건을 다룬 영화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개봉하면서 "음모론이 자꾸 나오는 이유는 미국 정부가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9·11이 미국 정부의 자작극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ref name="weelykhan20070918" />
국내에 잘못 들어온 소식으로는 "하지만 급작스러운 테러 상황에서 유대인이 장악한 언론이 실시간으로 그 장면을 촬영했으며, 쌍둥이 빌딩의 20%를 렌트하고 있는 유대인은 한 명도 죽지 않은 데다가 부시 정권이 곧바로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시작한 것을 비추어 보아 유대인과 부시 정부의 합작 테러사건이라는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는 소문이 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실제 통계 조사한 결과는 이들 주장의 오류를 훤히 드러내고 있다.{{출처|날짜=2009-1-31}}
=== 윙딩스 음모론 ===
[[파일:Q33NY-ko.svg|310픽셀|섬네일|윙딩스체와 일반 글씨체의 비교. 실제로 "3"의 건물 모양은 건물이 아닌 문서 모양이다.]]
[[알카에다]]가 [[컴퓨터]]로 테러 정보를 서로 교환했다는 음모론이다. 당시 쌍둥이 빌딩에 충돌한 비행기 편명인 'Q33NY'를 [[워드 프로세서|워드]]에 입력한 후, 이를 '''윙딩스'''(wingdings) 글씨체로 바꾸어서 보면 테러를 암시하는 문양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테러에 이용된 비행기 4대 중 'Q33NY'라는 편명의 비행기는 없으며, 전문가들은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큰 이야기라고 지적하였다.<ref>[http://www.tvrepo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954 음모론 제기한 ‘무서운 스펀지’, 시청률 상승] {{웨이백|url=http://www.tvrepo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954 |date=20160305013034 }} 《TV리포트》2007년 11월 12일.</ref>
== 같이 보기 ==
* [[테러]]
* [[세계 무역 센터 (1973년~2001년)|세계 무역 센터]]
* [[프리덤 타워]]
* [[조지 W. 부시]]
* [[US-VISIT]]
* [[도널드 럼즈펠드]]
* [[딕 체니]]
* [[오사마 빈 라덴]]
* [[탈레반]]
* [[사담 후세인]]
* [[루스 체인지]]
* [[월드 트레이드 센터 (영화)]]
* [[미국]]
*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
== 각주 ==
내용주
{{notelist}}
출처주
{{각주}}
== 참고문헌 {{앵커|Sources}} ==
{{참고 자료 시작|30em}}
* {{보고서 인용|chapter-url=http://www.9-11commission.gov/report/911Report_Ch1.pdf|title=''9/11 Commission Report''|chapter=Chapter 1.1: 'We Have Some Planes': Inside the Four Flights|year=2004|publisher=National Commission on Terrorist Attacks Upon the United States|access-date=March 18, 2016|ref=harv}}
* {{저널 인용|title=Unity of Purpose/Unity of effort: Private-Sector Preparedness in Times of Terror|journal=Disaster Prevention & Management|last1=Alavosius|first1=Mark P.|last2=Rodriquez|first2=Nischal J.|year=2005|volume=14|issue=5|page=666|bibcode=2005DisPM..14..666A|doi=10.1108/09653560510634098|ref=ha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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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 인용|url=http://www.gwu.edu/~nsarchiv/NSAEBB/NSAEBB196/doc02.pdf|title=Flight Path Study – American Airlines Flight 77|date=February 19, 2002|publisher=[[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access-date=September 3, 2011|ref=ha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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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wfhI5oc41sMC&pg=PP1|title=Pentagon 9/11|last1=Goldberg|first1=Alfred|last2=Papadopoulos|first2=Sarandis|year=2007|publisher=Government Printing Office|location=Washington, D.C.|isbn=978-0-16-078328-9|access-date=March 18, 2016|ref={{harvid|Goldberg et al.|2007|ref=harv}}|display-authors=1|last3=Putney|first3=Diane|last4=Berlage|first4=Nancy|last5=Welch|first5=Rebecca|ref=harv}}
* {{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we-oDwAAQBAJ&pg=PA5|title=The Only Plane in the Sky: An Oral History of 9/11|last=Graff|first=Garrett M.|author-link=Garrett Graff|year=2019|publisher=Avid Reader Press|location=New York|isbn=978-1-5011-8220-4|ref=harv}}
* {{서적 인용|url=https://archive.org/details/insidealqaedaglo00guna|title=Inside Al Qaeda: global network of terror|last=Gunaratna|first=Ronan|year=2002|publisher=Columbia University Press|isbn=978-0-231-12692-2|url-access=registration|ref=harv}}
* {{서적 인용|title=Making sense of suicide missions|last=Holmes|first=Stephen|year=2006|editor=Diego Gambetta|publisher=Oxford University Press|chapter=Al Qaeda, September 11, 2001|isbn=978-0-19-929797-9|access-date=March 18, 2016|chapter-url=https://books.google.com/books?id=eciSejVv-YoC&pg=PP1|ref=harv}}
* {{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Ne5JZYf-dlkC&pg=PR2|title=The Al Qaeda reader|last1=Ibrahim|first1=Raymond|last2=bin Laden|first2=Osama|year=2007|publisher=Random House Digital, Inc.|isbn=978-0-385-51655-6|access-date=March 18, 2016|ref=harv}}
* {{저널 인용|title=A Formal Risk-Effectiveness Analysis Proposal for the Compartmentalized Intelligence Security Structure|journal=International Journal of Intelligence and CounterIntelligence|last1=Javorsek II|first1=Daniel|last2=Rose|first2=John|date=August 5, 2015|volume=28|issue=4|pages=734–61|doi=10.1080/08850607.2015.1051830|last3=Marshall|first3=Christopher|last4=Leitner|first4=Peter|s2cid=152911592|ref=harv}}
* {{저널 인용|title=Tactical Means, Strategic Ends: Al Qaeda's Use of Denial and Deception|journal=International Journal of Intelligence and CounterIntelligence|last1=Jessee|first1=Devin|url=http://web.international.ucla.edu/media/files/FTPV_A_175157_P.pdf|year=2006|volume=18|issue=3|pages=367–88|doi=10.1080/09546550600751941|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11121230603/https://web.international.ucla.edu/media/files/FTPV_A_175157_P.pdf|archive-date=November 21, 2021|url-status=live|access-date=March 23, 2016|s2cid=144349098|ref=harv}}
* {{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qgzmexCI734C&pg=PP1|title=Executing the Constitution: putting the president back into the Constitution|last=Kelley|first=Christopher|year=2006|publisher=SUNY Press|isbn=978-0-7914-6727-5|access-date=March 18, 2016|ref=harv}}
* {{서적 인용|url=https://archive.org/details/isbn_9780674028043|title=Al Qaeda in its own words|last1=Keppel|first1=Gilles|last2=Milelli|first2=Jean-Pierre|year=2008|publisher=Harvard University Press|isbn=978-0-674-02804-3|access-date=March 18, 2016|last3=Ghazaleh|first3=Pascale|url-access=registration|ref=harv}}
* {{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3_fRlEZoaioC&pg=PP1|title=Messages to the world: the statements of Osama Bin Laden|last=Lawrence|first=Bruce|year=2005|publisher=Verso|isbn=978-1-84467-045-1|access-date=May 29, 2014|ref=harv}}
* {{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I_jh4VBi_HYC&pg=PP1|title=The SAGE Encyclopedia of Terrorism, Second Edition|last=Martin|first=Gus|year=2011|publisher=Sage|isbn=978-1-4129-8017-3|access-date=March 18, 2016|ref=harv}}
* {{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4Oufo58esZAC&pg=PP1|title=Perfect Soldiers: The 9/11 Hijackers|last=McDermott|first=Terry|year=2005|publisher=HarperCollins|pages=191–192|isbn=978-0-06-058470-2|ref=harv}}
* {{웹 인용|url=http://home2.nyc.gov/html/fdny/html/mck_report/toc.shtml|title=McKinsey Report|date=August 9, 2002|publisher=FDNY / McKinsey & Company|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00603212555/http://home2.nyc.gov/html/fdny/html/mck_report/toc.shtml|archive-date=June 3, 2010|url-status=dead|access-date=September 25, 2011|ref=ha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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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적 인용|url=https://archive.org/details/eleventhdayfulls0000summ|title=The Eleventh Day: The Full Story of 9/11 and Osama Bin Laden|last1=Summers|first1=Anthony|last2=Swan|first2=Robbyn|year=2011|publisher=Ballantine Books|location=New York|isbn=978-1-4000-6659-9|access-date=March 18, 2016|url-access=registration|ref=ha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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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 인용|url=http://www.fema.gov/pdf/library/fema403_ch6.pdf|title=World Trade Center Building Performance Study – Bankers Trust Building|date=May 2002|publisher=[[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access-date=July 12, 2007|ref=harv}}
* {{웹 인용|url=http://www.fema.gov/pdf/library/fema403_ch7.pdf|title=World Trade Center Building Performance Study – Peripheral Buildings|date=May 2002|publisher=[[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access-date=September 3, 2011|ref=harv}}
* {{웹 인용|url=http://www.fema.gov/pdf/library/fema403_ch5.pdf|title=World Trade Center Building Performance Study|year=2002|publisher=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access-date=September 2, 2011|ref=harv}}
* {{서적 인용|url=https://archive.org/details/loomingtoweralqa00wrig|title=The Looming Tower: Al-Qaeda and the Road to 9/11|last=Wright|first=Lawrence|author-link=Lawrence Wright|year=2006|publisher=Alfred A. Knopf|location=New York|isbn=978-0-375-41486-2|oclc=64592193|url-access=registration|ref=harv}}
* {{저널 인용|title=The War Against Terrorism and For Stability of the Hashemite Regime: Jordanian Intelligence Challenges in the 21st Century|journal=International Journal of Intelligence and CounterIntelligence|last1=Yitzhak|first1=Ronen|date=Summer 2016|volume=29|issue=2|pages=213–35|doi=10.1080/08850607.2016.1121038|s2cid=155138286|ref=harv}}
{{참고 자료 끝|ref=harv}}
== 관련 문헌 ==
{{참고 자료 시작|30em}}
* {{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TjKODEaahVQC&pg=PP1|title=The ''9/11 Commission Report: Final Report of the National Commission on Terrorist Attacks Upon the United States''|date=July 30, 2010|publisher=National Commission on Terrorist Attacks|isbn=978-1-61640-2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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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qLCn_D7lX5kC&pg=PP1|title=The 9/11 investigations: staff reports of the 9/11 Commission: excerpts from the House-Senate joint inquiry report on 9/11: testimony from fourteen key witnesses, including Richard Clarke, George Tenet, and Condoleezza Rice|last1=Strasser|first1=Steven|last2=Whitney|first2=Craig R|year=2004|publisher=PublicAffairs|isbn=978-1-58648-279-4|last3=United States. Congress. Senate. Select Committee on Intelligence|first3=National Commission on Terrorist Attacks upon the United States}}
{{참고 자료 끝}}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분류-줄}}
* {{언어링크|en}} [http://www.9-11commission.gov 9-11Commission.gov - 'National Commission on Terrorist Attacks Upon the United States']
* [https://www.webcitation.org/query?id=1263692754602292&url=home.comcast.net/~plutarch/911.html Notes about 9/11]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1/calendar/2211531_19758.html 2001년 9월 12일(한국시간) 뉴스데스크]
* [http://100.naver.com/100.nhn?docid=763833 두산백과사전 "미국대폭발테러사건"]{{깨진 링크|url=http://100.naver.com/100.nhn?docid=763833 }}
{{9·11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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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거 통제}}
[[분류:9·11 테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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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미국의 이슬람 테러리즘]]
[[분류:뉴욕의 역사]]
[[분류:음모론]]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처치-튜링 논제'''(Church-Turing thesis)는 [[계산 가능 함수|계산 가능한 함수]]에 대한 논제(thesis)이다.<ref>김항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30&aid=0002039711 로봇 발전에 기여한 3人을 기억하며]. 전자신문. 2009년 10월 12일.</ref> 간단히 요약하면, 어떤 함수는 [[튜링 기계]]가 계산할 수 있으면, 그리고 그 때만 [[알고리즘]]으로 계산 가능하다는 명제이다. [[알론조 처치]]와 [[앨런 튜링]]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튜링 기계는 모든 범용 [[프로그래밍 언어]]로 번역될 수 있으므로, 이것은 어떤 컴퓨터에게든 충분한 시간과 메모리가 주어진다면 존재하는 모든 알고리즘의 결과를 출력할 수 있다는 명제와 동치이다.
처음 이 명제가 나왔을 때에는 "효과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effectively computable) 함수"와 같이 비형식적인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 명제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후 수학자들은 모호한 말 대신 [[계산 가능 함수|계산 가능한 함수]]를 사용한다.
실제로 증명되거나 반증된 적은 없으며, 영원히 증명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다만 현재까지 인간이 발명한 모든 종류의 계산법([[양자 컴퓨터]]를 포함하여)이 적절한 형태의 튜링 기계로 표현될 수 있음이 알려져 있다.
== 같이 보기 ==
* [[추상 기계]]
* [[결정가능성]]
* [[하이퍼 계산]]
* [[튜링 완전]]
== 각주 ==
<references />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 [http://www.aistudy.com/computer/church_turing_thesis.htm 처치-튜링 명제]
{{계산 이론}}
{{전거 통제}}
[[분류:계산 이론]]
[[분류:앨런 튜링]]
[[분류:계산 가능성 이론]]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출처 필요|날짜=2014-9-26}}
{{다른 뜻}}
{{언어 정보
|이름=에스페란토
|계통색=인공
|자기이름=Esperanto
|인구=[[외국어]] 수백만에서 수천만 명으로 추산, <br />[[모어]]로 많게는 3000명으로 추정
|계통=[[인공어]]([[인도유럽어족]]의 특징이 있음)
|표준=[[에스페란토 학술회]](Akademio de Esperanto)
|iso1=eo|iso2=epo|iso3=epo|sil=ESP}}
{{에스페란토}}
[[파일:Number of Esperanto association members by country (2015).svg|300px|섬네일|에스페란토 협회가 있는 나라]]
[[파일:Flag of Esperanto.svg|섬네일|300px|에스페란토의 녹색 기]]
'''에스페란토'''({{lang|eo|Esperanto}})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인공어]]이다. "에스페란토"라는 이름은 [[1887년]] 발표한 국제어 문법 제1서에 쓰였던 [[라자로 루드비코 자멘호프]]의 필명인 "D-ro Esperanto(에스페란토 박사)"에서 유래하였다.(Esperanto는 본래 '희망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국제적 [[의사소통]]을 위해, 배우기 쉽고 중립적인 언어를 목표로 하여 만들어졌다. 원래는 국제어({{lang|eo|Lingvo Internacia}})라고 불리었다.
현재 에스페란토는 [[여행]], [[의사교환]], [[문화]] 교류, [[편지]], 언어교육 등 많은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전 세계 200만 명의 사람들이 에스페란토로 대화할 수 있다. 그중에서 약 2,000~3,000명은 에스페란토를 말할 줄 아는 부모 사이에서 에스페란토를 [[모어]]로 습득하였다.
== 특징 ==
에스페란토는 말이 서로 다른 민족 간 [[의사 소통]]과 [[상호 이해]], 나아가서 인류 평화를 위해 만들어진, 중립적이고 배우기 쉬우면서 모든 표현이 가능한 [[언어]]로서, 국제적으로 제 기능을 다할 수 있게끔 고안되었다.
그러나 '정말 배우기 쉬운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이견이 있다.
에스페란토를 쓰는 사람을 '''[[에스페란티스토]]'''라고 한다. 에스페란티스토는 [[국제어]]를 쓰는 사람들 중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퍼져 있으며 [[대한민국]]에도 에스페란토 협회인 [[한국에스페란토협회]]가 존재한다. 전 세계 에스페란티스토는 [[라 에스페로]]를 언어가(歌)로 사용하고 있으며, 언어기(旗)도 '''라 에스페로'''라고 부른다.
== 역사 ==
{{본문|에스페란토의 역사}}
폴란드의 [[안과]] [[의사]] [[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는 자신이 살고 있었던 지역의 언어 문제가 곧 주민들 사이에 불화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만 있으면 적어도 그러한 분쟁은 종식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에스페란토를 창안하게 되었다.
[[파일:Unua Libro.jpg|섬네일|오른쪽|150px|제1서. 에스페란토로 쓰여진 최초의 책.]]
처음에 자멘호프는 [[라틴어]]의 복구가 언어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제로 라틴어를 배우면서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 [[영어]]를 배우면서 그 문법이 간단하다는 것과 동사의 인칭변화가 필요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 많은 단어를 알아야 한다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길을 걸으며 우연히 [[러시아어]]로 된 두 개의 간판을 보고 해결책을 생각해냈다.
두 개의 간판 {{lang|ru|швейцарская}}(경비실), {{lang|ru|кондитерская}}(과자가게)에는 공통적으로 {{lang|ru|рская}}(장소라는 뜻)라는 접미사가 사용되고 있었다. 그는 하나의 어근만 외우면 접미사를 써서 다양한 단어를 파생해 낼 수 있도록 구상하였다. 어휘는 다양한 언어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단어를 채용하기로 하였다.
[[1878년]], 현재 에스페란토의 시험판인 [[초기 에스페란토|링그베 우니베르살라]]를 만들어 고등학교 동급생에게 가르쳤다. 그 후 6년간, 우선 각 민족어로 된 문학작품과 시를 번역하며, 언어를 발전시켜 갔다. 그는 [[1895년]] 러시아 [[에스페란티스토]] 보로프코(N. Borovko)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록 이 언어는 1878년에 이미 완전히 완성된 듯 했지만, 나는 이 언어가 완벽해지도록 6년을 더 소비하였다.’라고 적었다. 그는 완성된 언어를 발표하려 하였지만, 당시 폴란드를 지배하고 있던 [[러시아 제국]] 정부의 검열에 의해 출판하지 못하였다. 그는 그 기간 동안 [[성경|성서]]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에스페란토로 번역하고, 언어를 개량하였다. 1887년 [[제1서]]로 에스페란토를 최초로 발표하였다.
== 언어 사용 지역의 지리적 위치와 인구 ==
=== 지리학과 인구학 ===
[[파일:PS mapo 2015.png|섬네일|전세계의 에스페란티스토 여권 서비스 제공자 분포 (2015년)]]
에스페란토는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인공어이다. 이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유럽과 동아시아에 가장 많은데, 특히 도시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에스페란토는 유럽의 북부와 중부 국가에서 특히 유행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역에서 에스페란토 클럽을 만든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도 많이 사용한다.
=== 언어 구사자의 수 ===
에스페란토 구사자들의 수를 예측한 사람은 은퇴한 심리학 교수인 시드니 컬버트(Sidney S. Culbert)이다. 이 교수는 워싱턴 대학에서 활동했으며 오랫동안 에스페란토를 사용했다. 그는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십 개의 국가에서 에스페란토 구사자들에 대해 조사했다. 컬버트는 백만 명에서 이백만 명 사이의 사람들이 에스페란토를 Foreign Service Level 3 수준인, ‘전문적으로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안다는 결론을 내렸다. (Foreign Service Level 3는 Foreign Service Level language ability measures 등급 중 하나로 복잡한 생각들을 망설임 없이 표현할 수 있고 연설과 라디오 방송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뜻한다.)
연감에서 그는 언어 구사자들의 수를 백만의 자리에서 반올림 하였다. 따라서 에스페란토 구사자들의 수는 이백만 명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이 최종 수치는 에스놀로그에 언급되어 있는데, 이 수치가 정확하다면, 세계 인구의 0.03 %가 이 언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자멘호프가 꿈꾸던 보편적 언어의 목표는 아니지만, 이는 다른 어떤 인공어도 도달하지 못한 수치로 에스페란토의 유명한 정도를 알 수 있게 해준다.
핀란드의 언어학자이자 에스페란토의 모어 사용자 전문가인, 유코 린드스테드(Jouko Lindstedt)은 에스페란토 사용 지역의 전체적인 언어 사용 능력 비율을 나타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추정안을 내놓았다.
* 1,000명의 사람들이 에스페란토를 모어로 사용한다.
* 10,000명의 사람들이 에스페란토를 능숙하게 사용한다.
* 100,000명의 사람들이 에스페란토를 활발하게 사용한다.
* 1,000,000명의 사람들이 에스페란토를 상당 부분 소극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 10,000,000명의 사람들이 에스페란토를 어느 정도 시간 동안 공부해 보았다.
컬버트 박사의 구체적인 샘플 데이터 또는 인구 통계 데이터가 존재하지는 않기 때문에, 언어 구사자의 정확한 수치를 알기는 불가능하다.
2009년도에 루 분시-롤셔븐(Lu Wunsch-Rolshoven)은 헝가리와 리투아니아의 2001년도 인구 통계 데이터를 사용하여 160,000에서 300,000명의 사람들이 이 언어를 능숙하거나 활발하게 사용한다고 추정했다. 그리고 이 중 80,000에서 150,000명은 유럽 연합 국가의 국민들이라고 추정했다.
=== 모국어 사용자 ===
{{본문|에스페란토 원어민}}
에스페란토의 모어 사용자인, [[에스페란토 원어민]]({{lang|eo|denaskuloj}})은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날 때부터 이 언어를 배웠다. 이런 현상은 [[다문화 가정]] 내에서 에스페란토가 [[제1언어]] 또는 유일한 공통 언어일 경우에 자주 일어난다. 하지만 가끔 열렬한 에스페란토 사용 가족 내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에스놀로그의 15번째 에디션에서는 1996년도에 200에서 2,000명 사이의 에스페란토 모국어 사용자들이 있다고 하였지만, 이러한 수치들은 16, 17번째 에디션에서 삭제되었다.
== 언어의 변화 ==
{{본문|현대 에스페란토 언어변화}}
* [[1905년]] [[프랑스]] [[불로뉴쉬르메르]]에서 개최된 제1차 에스페란토 세계 대회에서, 에스페란토 기초의 변경을 제한하는 선언을 채택했다. 선언은 언어의 기초를 자멘호프가 출판한 《에스페란토 기초》({{lang|eo|Fundamento de Esperanto}})에서 변경해서는 안되며, 어떤 사람에게도 기초를 변경할 권리는 없다고 하였다. 이 선언은 언어의 사용자가 새로운 생각을 발표하여도 좋다고는 하지만, 언어 자체는 본래의 형태를 장려하고 있다.
* 하지만 실제로는, 현대 에스페란토가 '에스페란토 기초'와 완전히 동일하다고는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국명을 표시하는 접미사가 -uj-에서 -i-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lang|eo|Koreujo→Koreio}}) 또한 엄밀히 말해 -a로 끝나는 모든 단어는 형용사여야 하므로 유럽에서 사용하는 이름 Maria는 에스페란토 기초에 의하면 Mario가 되어야 하지만, 현대 에스페란토에서는 Maria도 인정하고 있다. 지명이나 인명과 같은 고유명사는 자주 사용되는 것일 경우(뉴욕: {{lang|eo|Novjorko}}, 서울: {{lang|eo|Seulo}}, 파리: {{lang|eo|Parizo}}) 에스페란토화된 단어를 따르나, 최근에는 거의 원래의 지명을 이용하고 있다.
* 또한, 새롭게 여러 가지 외래어가 추가되었다. 이것은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기존의 에스페란토 단어 및 규칙에 맞게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어 [[컴퓨터]]({{lang|en|computer}})는 '계산하다'의 의미를 가진 {{lang|eo|komputi}}에 도구를 나타내는 접미사 -il-을 사용하여, {{lang|eo|komputilo}}로 번역하였다. 또한 [[유로]]의 경우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euro로 표기하고 있음에도, 에스페란토에서는 에스페란토 철자법에 맞게 {{lang|eo|eŭro}}로 사용하고 있다.
* 《에스페란토 기초》 이전의 {{lang|eo|kian, ian, ĉian, tian, nenian}}이 각각 {{lang|eo|kia, ia, ĉia, tia, nenia}}의 목적격과 혼동될 수 있어 {{lang|eo|kiam, iam, ĉiam, tiam, neniam}}으로 바뀌었다.
* 발음하기 어려운 ĥ는 ĉ, k 또는 h로 대체되어 이제 거의 쓰이지 않는다. 지금은 바꾸었을 경우 기존의 다른 어근과 혼동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통 바뀐 형태로 사용된다. ({{lang|eo|Ĥinujo → Ĉinio, ĥemio → kemio}} 등)
* 몇 가지 단어의 형태가 바뀌었다. ({{lang|eo|komisio → komisiono, artikulo → artikolo, riprezenti → reprezenti}})
* 지명의 경우 그 지역의 에스페란토 사용자의 희망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lang|eo|Hindio}}보다 {{lang|eo|Barato}}의 사용 빈도가 높아지고 있음, {{lang|eo|Koreo}}가 ‘한국’을 의미했는데 이것이 ‘한국인’의 의미로 바뀌고 {{lang|eo|Koreio}}가 ‘한국’을 의미하게 됨)
== 언어학적 특성 ==
=== 분류 ===
에스페란토는 [[인공어]]이므로, 어떤 [[자연어]]와도 친족관계가 없다. 발음체계는 [[슬라브어]]의 영향을 받았으나, 어휘는 주로 [[로망스어]]([[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약 75%), [[게르만어]]([[독일어]], [[영어]] 등; 약 20%)로부터 채용하였다. [[L. L. 자멘호프|자멘호프]]가 정의하지 않은 문법상의 언어 사용은 초기 사용자의 [[모어]]였던 [[러시아어]], [[폴란드어]], [[독일어]], [[프랑스어]]의 영향을 받았다.
[[어순]]은 [[라틴어]]나 [[그리스어]]처럼 비교적 자유로우나 [[SVO형]]이 주로 쓰이며, [[형용사]]가 [[명사]] 앞에 오는 경우가 많다. [[전치사]]를 사용하며, [[교착어]]적 성질도 가지고 있다.
=== 문법 ===
{{본문|에스페란토 문법}}
에스페란토는 [[성 (문법)|성]]이 없고, 규칙적으로 동사가 변화하는 [[교착어]]이다. [[명사 (품사)|명사]]와 [[형용사]]는 [[주격]]과 [[대격]], 즉 2개의 [[격]]을 가진다. 수는 단수와 복수가 있고, 형용사의 [[복수형]]이 존재한다. [[동사 (품사)|동사]]의 [[인칭변화]]는 없고, [[대격]]어미(-n)는 이동을 나타내거나, [[전치사]]를 대신하기도 한다. 대격이 있으므로 [[러시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일본어]], [[한국어]]와 같이 비교적 어순이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 어원 ===
{{본문|에스페란토 어원}}
에스페란토의 어휘는 대부분 유럽 언어에서 왔지만, 최근에 생긴 어휘는 비유럽어권에서 온 경우도 있다. 가장 주요한 어원은 [[라틴어]]와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등이다. 다국어주의에 의해 대부분의 어휘는 서로 유사한 다양한 언어의 공통적인 부분에서 가져왔다.
=== 글자 ===
{{본문|에스페란토 글자}}
에스페란토는 [[로마자]]에 {{lang|eo|[[ĉ]], [[ĝ]], [[ĥ]], [[ĵ]], [[ŝ]], [[ŭ]]}} 6글자를 더하고 [[q]], [[w]], [[x]], [[y]] 4글자를 뺀 28글자를 쓴다.
: {{lang|eo|a b c ĉ d e f g ĝ h ĥ i j ĵ k l m n o p r s ŝ t u ŭ v z}}
:
==== 글자와 말소리 ====
{| id="AutoNumber1" class="IPA wikitable" style="margin: au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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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50 | '''{{huge|{{lang|eo|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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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50 | '''{{huge|{{lang|eo|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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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c, Ĉĉ, Gg, Ĝĝ, Ĥĥ, Ĵĵ, Ŝŝ, Ŭŭ를 제외한 모든 글자는 [[IPA]]표기와 일치한다.
* 에스페란토는 [[한국어]]와 달리 유기음(예: ㅋ) / 무기음(예: ㄱ) 구분이 없고, 무성음 / 유성음 구분이 있다.
{|border="0" align="center" class="IPA wikitable" style="margin: auto;"
|-
! width=50 | 무성음
| width=50 | p <span>[p]</span>
| width=50 | t <span>[t]</span>
| width=50 | k <span>[k]</span>
| width=50 | f <span>[f]</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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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50 | 유성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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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50 | g <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ɡ]</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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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50 | ĝ <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d͡ʒ]</span>
|}
==== 윗부호 ====
여섯 글자 {{lang|eo|ĉ, ĝ, ĥ, ĵ, ŝ, ŭ}}에는 '''윗부호'''({{lang|eo|Supersigno}})라고 부르는 [[발음 구별 기호]]인 다른소리부호(^)와 짧은소리부호(˘)가 있다. 윗부호를 쓸 수 없을 때 바꾸어 쓰는 방식은 '에스페란토 기초'에서 제시한 H-체계와 현재 주로 쓰이는 X-체계가 있다.
{| cellpadding="0" cellspacing="0" align="center" border="1" width="300"
|- align="center"
| || ĉ || ĝ || ĥ || ĵ || ŝ || ŭ
|- align="center"
| H-체계 || ch || gh || hh || jh || sh || u
|- align="center"
| X-체계 || cx || gx || hx || jx || sx || ux
|}
== 예시 ==
{{인용문3|right|
{{lang|eo|Patro nia, kiu estas en la ĉielo,<br />
sanktigata estu via nomo.<br />
Venu via regno, <br />
fariĝu via volo, kiel en la ĉielo, tiel ankaŭ sur la tero.<br />
Nian panon ĉiutagan donu al ni hodiaŭ.<br />
Kaj pardonu al ni niajn ŝuldojn,<br />
kiel ankaŭ ni pardonas al niaj ŝuldantoj.<br />
Kaj ne konduku nin en tenton,<br />
sed liberigu nin de la malbono.<br />
(ĉar via estas la regno kaj la potenco<br />
kaj la gloro eterne.) Amen.}}|[[주기도문]]}}
* {{lang|eo|Saluton!|살루톤}} {{해석|안녕하세요!}}
* {{lang|eo|Ĝis revido/Ĝis|지스 레비도/지스}} {{해석|다시 만나요}}
* {{lang|eo|Adiaŭ!|아디아우!}} {{해석|안녕히 가세요}}
* {{lang|eo|Jes|예스}} {{해석|네}}
* {{lang|eo|Ne|네}} {{해석|아니요}}
* {{lang|eo|Dankon|단콘}} {{해석|감사합니다}}
* {{lang|eo|Mi tre ĝojas renkonti vin.|미 트레 조야스 렌콘티 빈.}} {{해석|만나서 반가워요.}}
* {{lang|eo|Ĉu vi fartas bone ?|추 비 파르타스 보네 ?}} {{해석|잘 지내십니까 ?}}
* {{lang|eo|Mi estas koreo.|미 에스타스 코레오.}} {{해석|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 비판과 개선안 ==
=== 에스페란티도 ===
{{본문|에스페란티도}}
에스페란토가 발표된 이후, 수십 가지의 개선안과 에스페란토에서 파생된 인공어가 만들어졌다. 이를 '''[[에스페란티도]]'''라고 한다.
=== 성 차별 문제 ===
에스페란토에서 기본적인 단어는 남성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성의 경우 접미사 -in-를 붙여 나타낸다.<ref>예: patro(아버지), patrino(어머니)</ref> 즉, 남성의 경우에는 그냥 나타내고, 여성일 경우에는 접미사 -in-을 사용하여 특별히 강조하여 나타내고 있다. 이는 에스페란토가 발표된 [[1887년]] 당시 시대적 배경에서 유래한 [[남성우월주의]]이며, [[에스페란토 주의]]에서 강조하는 사상 중 하나인 '평등'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있다.
최근에는 가족에 관한 단어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인 단어는 성을 나타내지 않고, 남성을 나타낼 때는 vir-를 붙이는게 일반적이다.<ref>예: kato(고양이), virkato(숫고양이), katino(암고양이)</ref> 또한 일부 에스페란티스토는 남성을 나타내는 접미사 {{lang|eo|-iĉ-}}를 추가할 것을 요구하는데 이를 '{{lang|eo|iĉismo|이치스모}}'라 한다.
참고로, 에스페란토의 성과 관련한 문제로, 성을 나타내지 않는 대명사 'ri'를 추가하여, 일반적인 상황에서 'ri'의 사용을 주장하는 [[리이스모]](riismo)도 있다.
=== 에스페란토는 유럽인에게만 유리한 언어인가? ===
{{인용문|에스페란토를 배우기 쉽다는 것은 실험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다. 에스페란토를 배우는 데 유럽과 미국의 아이들은 매 주 2시간씩 1년이, 또 동아시아의 아이들은 매 주 2시간씩 2년이 걸린다. 반면 동아시아의 아이들이 다른 유럽어를 배우려면 매 주 4~5시간씩 6년을 공부해야 한다.|[[1992년]] [[9월]]|[[제네바]]에서 열린 국제 연맹 총회에서 제출된 보고<ref>{{웹 인용 |url=http://mobigen.com/~hiongun/LA/ezboard/ezboard.cgi?db=LA200507&action=read&page=1&num=5&dbf=200507060003&depth=0 |제목=에스페란토에 대한 비판과 응답(나성권 신부) |확인날짜=2006-09-11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70928201452/http://mobigen.com/~hiongun/LA/ezboard/ezboard.cgi?db=LA200507&action=read&page=1&num=5&dbf=200507060003&depth=0 |보존날짜=2007-09-28 |url-status=dead }}</ref>}}
이는 에스페란토는 다른 언어에 비해 학습을 위해 1/10가량 시간이 적게 걸린다는 장점을 말하기도 하지만, 유럽인들에 비해 동아시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에스페란토를 배우기 힘들다는 단점을 말하기도 한다. 이는 에스페란토의 대부분의 어휘가 유럽에서 기원하였으므로 그 언어와 관계없는 언어의 사용자는 에스페란토 어휘의 의미와 정확한 쓰임을 외우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고 볼 수 있다.<ref>[[에스페란토#어원|어원]], [[에스페란토 기초]] 참조.</ref>
=== 대격 ===
에스페란토는 [[대격]](또는 목적격)을 나타내기 위해 [[어미]] '''-n'''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어]]의 경우 [[대격]](또는 목적격) [[조사 (품사)|조사]] '-을/를'을 사용하여, 겉으로 드러내고 있다. 대격의 존재로 인해 에스페란토의 어순이 더 자유로워지고, 의미가 분명히 전달되는 등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많은 유럽어의 경우 이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으며, 따라서 유럽인들이 '''-n'''의 사용법을 배우는 데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 동의어 ===
에스페란토는 외래어를 받아들이는 데 일정한 규칙이 없으며, 필요에 의해 누군가가 만든 단어가 일정 수준 이상 널리 알려지면, 그런 새로운 단어를 모아서 발표하는, 소극적 방식으로 어휘를 늘려가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인해 같은 뜻을 가진 두 단어 이상이 널리 사용할 경우, 동일하게 쓰이는 단어임에도 배우는 이의 입장에서는 둘다 외우는 수밖에 없다. [[유럽]] 사용자의 경우, 유럽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를 에스페란토화하는 것을, 비유럽권에서는 기존 단어를 사용하여 합성어를 만드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에 같은 뜻을 가진 단어가 두개 이상 동시에 쓰이는 경우가 있다. 합성어의 경우에도 사람마다 합성어를 만드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뜻을 가진 여러 개의 합성어가 함께 쓰이는 경우가 있다.
* futur-o, est-ont-o 미래
* pas-int-ec-o, est-int-o 과거
또한, 원래 하나였던 단어가 여러 개로 분화하는 경우도 있다.
* -uj-(국가를 나타내는 접미사) → -i-(단일민족국가), -land-(국명이 land로 끝나는 국가), (다민족국가에는 붙이지 않는다)
이처럼 에스페란토에는 자연어만큼은 아니나 동의어가 많으며, 에스페란토 학회가 동의어 정리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학습자가 동의어를 모두 외워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 발음 ===
학습자의 [[모어]]에 따라 일부 발음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이 올 수 있다.
* '''c'''를 ĉ또는 s로 혼동하기 쉽다. 특히 한국어 화자는 c를 ĉ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
** '''c'''는 굳이 유럽 언어를 몰라도 [[표준중국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발음이 익숙할 것이다. [[한어병음]] "C"가 이 발음과 비슷하다.
* '''ĵ'''와 '''ĝ'''를 구분하지 않는 언어가 많다.
* ŝ, ĵ, ĉ, ĝ 발음.
* '''ĥ'''를 발음하지 못하는 화자가 많기 때문에, 해당 글자가 k나 h로 바뀌면서 점차 소멸해 가고 있다.
한국어 화자가 자주 하는 실수는 다음과 같다.
* 유성음을 무성음으로 발음한다.
* '''ĵ''', '''ĝ''', '''z'''를 모두 '''ĝ'''로 발음한다.
* '''f'''를 '''p'''로, '''v'''를 '''b'''로 발음한다.
* '''r'''과 '''l'''을 혼동해서 발음한다.
* '''c'''를 '''ĉ'''로 발음한다.
* 모음 앞에 j를 넣어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
== 같이 보기 ==
* [[한국에스페란토협회]]
* [[에스페란티스토]]
* [[조선에스페란토문화사]]
* [[라자로 루드비코 자멘호프]]
* [[제1서]](Unua Libro)
* [[이도 (언어)|이도]](Ido) - 에스페란토에서 파생된 인공어
* [[로즈섬 공화국]] - 에스페란토를 공용어로 사용했던 [[마이크로네이션]].
* [[:b:에스페란토|위키책:에스페란토]]
*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
* [[발리리아어]]
* [[듀오링고]]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인터위키|eo}}
{{위키공용분류}}
* {{언어링크|eo}} [http://www.uea.org/ 세계 에스페란토 협회 (UEA: Universala Esperanto-Asocio)]
* [http://www.esperanto.or.kr 한국 에스페란토 협회 (KEA: Korea Esperanto-Asocio)]
* [http://esperanto.or.kr/vortaro/ex/ 에스페란토-한국어 사전]
* [https://ko-eo.blogspot.com 에스페란토 학습 길잡이]
* [http://www.kursosaluton.org Saluton! Esperanto aŭtodidakte]
{{인공어}}
{{전거 통제}}
[[분류:에스페란토| ]]
[[분류:교착어]]
[[분류:다중언어]]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파일:William Rowan Hamilton Plaque - geograph.org.uk - 347941.jpg|섬네일|브로엄 다리에 새겨진 기념비. 이 곳에서 해밀턴이 사원수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수학]]에서 '''사원수'''(四元數, {{llang|en|quaternion|쿼터니언}}) 또는 '''해밀턴 수'''({{llang|en|Hamilton number}})는 [[복소수]]를 확장해 만든 수 체계이다. 네 개의 실수 성분을 가지며, 덧셈과 곱셈의 [[결합법칙]] 및 덧셈의 [[교환법칙]]을 만족시키지만 곱셈의 [[교환법칙]]은 성립하지 않는다.
== 정의 ==
사원수의 집합 <math>\mathbb H</math>는 집합으로서 <math>\mathbb R^4=\{a_0+a_1i+a_2j+a_3k\colon a_0,a_1,a_2,a_3\in\mathbb R\}</math>이다. 이 위에 다음과 같은 덧셈과 곱셈 연산을 정의하여, [[환 (수학)|환]]으로 만들 수 있다.
덧셈은 각 성분의 합이다.
:<math>(a_0+a_1i+a_2j+a_3k)+(b_0+b_1i+b_2j+b_3k)=(a_0+b_0)+(a_1+b_1)i+(a_2+b_2)j+(a_3+b_3)k</math>
곱셈은 겹선형 연산이며, [[기저 (선형대수학)|기저]] <math>\{1,i,j,k\}</math>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작용한다.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사원수의 곱
|-
!width=15|×
!width=15|1
!width=15|''i''
!width=15|''j''
!width=15|''k''
|-
!1
|1
|''i''
|''j''
|''k''
|-
!''i''
|''i''
| −1
|''k''
| −''j''
|-
!''j''
|''j''
| −''k''
| −1
|''i''
|-
!''k''
|''k''
|''j''
| −''i''
| −1
|}
사원수의 기저 <math>\{1,i,j,k\}</math>는 이 곱셈에 대하여 [[유한군]]을 이루며, 이를 '''[[사원수군]]''' <math>Q</math>라고 한다. 즉, 사원수환은 [[군환]] <math>\mathbb R[Q]</math>의 몫
:<math>\mathbb R[Q]/(1+(-1))</math>
과 같다. (군환 <math>\mathbb R[Q]</math>는 8차원 실수 [[단위 결합 대수]]이며, 위 [[아이디얼]]로 몫을 취하면 4차원 실수 대수를 얻는다.)
이렇게 덧셈과 곱셈을 정의하면, 사원수의 [[환 (수학)|환]] <math>\mathbb H</math>는 [[나눗셈환]]을 이룬다. 그러나 곱셈의 [[교환법칙]]이 성립하지 않으므로, 이는 [[체 (수학)|체]]를 이루지 않는다.
=== 실수부와 허수부 ===
사원수 <math>q=w+xi+yj+zk</math>에 대하여, ''w''를 '''q'''의 '''실수부''' 또는 '''스칼라부''' <math>\operatorname{Re}(q)</math>, <math>xi+yj+zk</math>를 '''q'''의 '''허수부''' 또는 '''벡터부''' <math>\operatorname{Im}(q)</math>라고 한다. 사원수 <math>q=w+xi+yj+zk</math>의 '''켤레 사원수'''({{lang|en|conjugate quaternion}}) <math>\bar q</math>는 그 허수부의 부호를 뒤집은 사원수이다. 즉
:<math>\bar q=\operatorname{Re}(q)-\operatorname{Im}(q)=w-xi-yj-zk</math>.
사원수 ''q''의 [[노름 (수학)|노름]] 또는 절댓값 |''q''| 는
:<math>|q| = \sqrt{ q \bar{q}} = \sqrt{x^2+y^2+z^2+w^2}</math>
이다.
== 성질 ==
사원수환 <math>\mathbb H</math>는 [[노름]]을 갖춘 [[나눗셈환]]이자 <math>\mathbb R</math>-[[대수 (환론)|대수]]이다. 즉, 다음이 성립한다. 임의의 사원수 <math>q_1,q_2,q_3\in\mathbb H</math>에 대하여,
* (덧셈의 [[교환법칙]]) <math>q_1+q_2=q_2+q_1</math>
* (덧셈의 [[결합법칙]]) <math>(q_1+q_2)+q_3=q_1+(q_2+q_3)</math>
* (곱셈의 [[결합법칙]]) <math>(q_1q_2)q_3=q_1(q_2q_3)</math>
* ([[분배법칙]]) <math>q_1(q_2+q_3)=q_1q_2+q_1q_3, (q_1+q_2)q_3=q_1q_3+q_2q_3</math>
* (노름과 곱셈의 호환) <math>|q_1q_2|=|q_1|\cdot|q_2|</math>
* ([[삼각 부등식]]) <math>|q_1+q_2|\le|q_1|+|q_2|</math>
=== 벡터와의 관계 ===
사원수의 실수부는 스칼라로, 허수부는 3차원 벡터로 간주할 수 있다. 즉, 사원수는 스칼라와 3차원 벡터의 [[순서쌍]] <math>q=(w,\mathbf v)</math>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 경우, 사원수의 합과 곱은 다음과 같다.
:<math>(a,\mathbf u)+(b,\mathbf v)=(a+b,\mathbf u+\mathbf v)</math>
:<math>(a,\mathbf u)(b,\mathbf v)=(ab-\mathbf u\cdot\mathbf v,a\mathbf v+b\mathbf u+\mathbf u\times\mathbf v)</math>
=== 행렬 표현 ===
사원수는 2×2 복소 [[행렬]]로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math>\rho\colon a+bi+cj+dk\mapsto\begin{pmatrix}a+bi&c+di\\-c+di&a-bi\end{pmatrix}=a\sigma_0+ib\sigma_3+ic\sigma_2+id\sigma_1</math>
여기서 <math>\sigma_i</math>는 [[파울리 행렬]]이다.
그렇다면 다음이 성립한다. 임의의 사원수 <math>p,q\in\mathbb H</math>에 대하여,
:<math>\rho(p+q)=\rho(p)+\rho(q)</math>
:<math>\rho(pq)=\rho(p)\rho(q)</math>
:<math>\rho(\bar q)=\rho(q)^\dagger</math>
:<math>\Vert q\Vert=\sqrt{q\bar q}=\sqrt{\det\rho(q)}</math>
:<math>\operatorname{Re}q=\frac12\operatorname{tr}\rho(q)</math>
:<math>\rho(\exp(q))=\exp(\rho(q))</math>
마지막 식에서, 우변은 [[행렬 지수 함수]]이다.
== 역사 ==
=== 해밀턴 이전 ===
[[레온하르트 오일러]]는 1748년 5월 4일 [[크리스티안 골드바흐]]에게 보낸 편지<ref>{{서적 인용|장=Lettre CXV. Euler à Goldbach. Berlin d. 4, Mai 1748|쪽=450–455|장url=https://math.dartmouth.edu/~euler/correspondence/letters/OO0841.pdf|제목=Opera Omnia, Series IV, Volume 1|이름=L.|성=Euler|저자링크=레온하르트 오일러|언어=de}}</ref>에서, [[오일러의 네 제곱수 항등식]]을 발표하였다. 이는 두 사원수 <math>a</math>, <math>b</math>에 대하여 <math>|ab|=|a||b|</math>인 것과 같다.
올랭드 로드리그({{llang|fr|Olinde Rodrigues}})는 1840년에 오일러의 네 제곱수 항등식을 [[강체]]의 회전에 응용하였다.<ref>{{저널 인용|이름=Olinde|성=Rodrigues|제목=Des lois géométriques qui régissent les déplacements d’un système solide dans l’espace, et de la variation des coordonnées provenant de ces déplacements considérés indépendamment des causes qui peuvent les produire|저널=Journal de Mathématiques Pures et Appliquées (série 1)|url=http://sites.mathdoc.fr/JMPA/afficher_notice.php?id=JMPA_1840_1_5_A39_0|권=5|쪽=380–440|날짜=1840|언어=fr}}</ref>
=== 사원수의 발견 ===
해밀턴은 [[복소수]]가 2차원 평면상의 점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3차원 공간에서 점을 표현하는 같은 방법을 찾으려 하였다. 3차원 공간에서의 정점은 3개의 수로 이루어지며, 해밀턴은 그 3개의 수들을 어떻게 더하고 곱할 수 있는지에 관해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는 두개의 정점간의 나누기를 어떻게 정의할지 알지 못했고,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1843년 10월 16일, 해밀턴은 그의 아내와 [[더블린]]의 로열 운하({{llang|en|Royal Canal}}, {{llang|ga|An Chanáil Ríoga}})를 걷고 있었다. 브로엄 다리({{lang|en|Brougham Bridge}}, 현재는 브룸 다리 {{lang|en|Broom Bridge}})를 걷고 있을 때, 나누기에 관한 해답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는 3개의 성분을 가진 값은 나눗셈을 정의할 수 없지만, 4개의 성분을 가진 값은 나눗셈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4개의 성분 가운데 세 개를 사용하여 3차원 공간의 [[직교좌표]]를 표현할 수 있다. 해밀턴은 이 수체계의 기본 규칙을 다리에 새겨놓았다.
:<math>i^2 = j^2 = k^2 = ijk = -1 \;</math>
해밀턴은 위의 기본적인 규칙을 적용한 4개의 요소를 "사원수"({{llang|en|quaternion|쿼터니언}})라고 명명하였다. 이는 {{llang|la|[[:wiktionary:quaternio|quaterniō]]|콰테르니오}}(넷, 넷으로 구성된 것)에서 유래한다.
다음날 해밀턴은 이 발견에 대하여 친구 수학자인 존 그레이브스({{llang|en|John T. Graves}})에게 편지로 적어 보냈다. 이 편지는 저널에 출판되었으며, 편지에서 해밀턴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인용문2|이로부터 나는 3차원 값을 다루기 위해서는 일종의 "4차원 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네. 대수학적으로 생각하자면, <math>i</math> 또는 <math>j</math>와 다른 제3의 허수 기호 <math>k</math>가 필요하며, 이는 <math>i</math>와 <math>j</math>의 곱과 같다네. 그래서 나는 <math>a+ib+jc+kd</math> 또는 <math>(a,b,c,d)</math>와 같은 꼴의 "사원수"를 도입하게 되었소. […] 사원수의 허수 성분은 방향을 가진 세기와 비슷하며, 실수 성분은 방향을 갖지 않은 에너지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군. 이는 일종의 방향의 산법(算法)을 구성하게 될 것이라네. 이것은 아직 매우 모호하지만, 그 앞에 서술한 것들은 모두 명확하고 수학적이기를 바라오.<br>
{{lang|en|And here there dawned on me the notion that we must admit, in some sense, ''a fourth dimension'' of space for the purpose of calculating with triplets; or transferring the paradox to algebra, must admit a third distinct imaginary symbol <math>k</math>, not to be confounded with either <math>i</math> or <math>j</math>, but equal to the product of the first as multiplier, and the second as multiplicand; and therefore was led to introduce ''quaternions'', such as <math>a + ib + jc + kd</math>, or <math>(a,b,c,d)</math>. […] There seems to me to be something analogous to polarized intensity in the pure imaginary part; and to unpolarized energy (indifferent to direction) in the real part of a quaternion: and thus we have some slight glimpse of a future Calculus of Polarities. This is certainly very vague, but I hope that most of what I have said above is clear and mathematical.
}}|<ref>{{저널 인용|doi=10.1080/14786444408645047|제목=On Quaternions; or on a new System of Imaginaries in Algebra. To the editors of the Philosophical Magazine and Journal|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저널=Philosophical Magazine (series 3)|권=25|호=169|쪽=489–495|날짜=1844|url=http://www.maths.tcd.ie/pub/HistMath/People/Hamilton/QLetter/QLetter.html|언어=en}}</ref>}}
해밀턴은 이 발견을 1844년에 〈사원수에 대하여: 또는 대수학에서의 새로운 허수 체계에 대하여〉({{llang|en|On Quaternions; or on a new System of Imaginaries in Algebra}})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출판하였다.<ref>{{저널 인용|제목=On Quaternions; or on a new System of Imaginaries in Algebra|doi=10.1080/14786444408644923|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 |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저널=Philosophical Magazine (series 3)|권=25|호=163|쪽=10–13|날짜=1844|issn=1941-5966|언어=en}}</ref> 이후 해밀턴은 이 논문의 속편을 17편 더 같은 저널에 수록하였다.<ref>{{저널 인용|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 |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날짜=1844|제목=On Quaternions; or on a new System of Imaginaries in Algebra (2)|doi=10.1080/14786444408644984|권=25|호=166|쪽=241–246|저널=Philosophical Magazine (series 3)|issn=1941-5966|언어=en}}</ref><ref>{{저널 인용|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 |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날짜=1845|제목=On Quaternions; or on a new System of Imaginaries in Algebra (3)|doi=10.1080/14786444508645110|권=26|호=172|쪽=220–224|저널=Philosophical Magazine (series 3)|issn=1941-5966|언어=en}}</ref><ref>{{저널 인용|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 |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날짜=1846|제목=On Quaternions; or on a new System of Imaginaries in Algebra (4)|doi=10.1080/14786444608562593|권=29|호=191|쪽=26–31|저널=Philosophical Magazine (series 3)|issn=1941-5966|언어=en}}</ref><ref>{{저널 인용|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 |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날짜=1846|제목=On Quaternions; or on a new System of Imaginaries in Algebra (5)|doi=10.1080/14786444608645590|권=29|호=192|쪽=113–122|저널=Philosophical Magazine (series 3)|issn=1941-5966|언어=en}}</ref><ref>{{저널 인용|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 |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날짜=1846|제목=On Quaternions; or on a new System of Imaginaries in Algebra (6)|doi=10.1080/14786444608645509|권=29|호=194|쪽=326–328|저널=Philosophical Magazine (series 3)|issn=1941-5966|언어=en}}</ref><ref>{{저널 인용|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 |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날짜=1849|제목=On Quaternions; or on a new System of Imaginaries in Algebra (7)|doi=10.1080/14786444708645426|권=30|호=203|쪽=458–461|저널=Philosophical Magazine (series 3)|issn=1941-5966|언어=en}}</ref><ref>{{저널 인용|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 |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날짜=1849|제목=On Quaternions; or on a new System of Imaginaries in Algebra (8)|doi=10.1080/14786444708645826|권=31|호=207|쪽=214–219|저널=Philosophical Magazine (series 3)|issn=1941-5966|언어=en}}</ref><ref>{{저널 인용|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 |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날짜=1849|제목=On Quaternions; or on a new System of Imaginaries in Algebra (9)|doi=10.1080/14786444708562643|권=31|호=208|쪽=278–293|저널=Philosophical Magazine (series 3)|issn=1941-5966|언어=en}}</ref><ref>{{저널 인용|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 |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날짜=1849|제목=On Quaternions; or on a new System of Imaginaries in Algebra (10)|doi=10.1080/14786444708645898|권=31|호=211|쪽=511–519|저널=Philosophical Magazine (series 3)|issn=1941-5966|언어=en}}</ref><ref>{{저널 인용|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 |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날짜=1849|제목=On Quaternions; or on a new System of Imaginaries in Algebra (11)|doi=10.1080/14786444808645999|권=32|호=216|쪽=367–374|저널=Philosophical Magazine (series 3)|issn=1941-5966|언어=en}}</ref><ref>{{저널 인용|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 |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날짜=1849|제목=On Quaternions; or on a new System of Imaginaries in Algebra (12)|doi=10.1080/14786444808646046|권=33|호=219|쪽=58–60|저널=Philosophical Magazine (series 3)|issn=1941-5966|언어=en}}</ref><ref>{{저널 인용|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 |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날짜=1849|제목=On Quaternions; or on a new System of Imaginaries in Algebra (13)|doi=10.1080/14786444908646233|권=34|호=229|쪽=294–297|저널=Philosophical Magazine (series 3)|issn=1941-5966|언어=en}}</ref><ref>{{저널 인용|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 |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날짜=1849|제목=On Quaternions; or on a new System of Imaginaries in Algebra (14)|doi=10.1080/14786444908562659|권=35|호=230|쪽=340–343|저널=Philosophical Magazine (series 3)|issn=1941-5966|언어=en}}</ref><ref>{{저널 인용|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 |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날짜=1849|제목=On Quaternions; or on a new System of Imaginaries in Algebra (15)|doi=10.1080/14786444908646261|권=35|호=231|쪽=425–439|저널=Philosophical Magazine (series 3)|issn=1941-5966|언어=en}}</ref><ref>{{저널 인용|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 |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날짜=1849|제목=On Quaternions; or on a new System of Imaginaries in Algebra (16)|doi=10.1080/14786444908646321|권=35|호=234|쪽=133–137|저널=Philosophical Magazine (series 3)|issn=1941-5966|언어=en}}</ref><ref>{{저널 인용|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 |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날짜=1849|제목=On Quaternions; or on a new System of Imaginaries in Algebra (17)|doi=10.1080/14786444908647189|권=35|호=235|쪽=200–204|저널=Philosophical Magazine (series 3)|issn=1941-5966|언어=en}}</ref><ref>{{저널 인용|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 |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날짜=1850|제목=On Quaternions; or on a new System of Imaginaries in Algebra (18)|doi=10.1080/14786445008646479|권=36|호=243|쪽=305–306|저널=Philosophical Magazine (series 3)|issn=1941-5966|언어=en}}</ref>
그 후 그는 사원수를 연구하고 알리는데 그의 여생을 바쳤다. 그는 "사원수론자"({{lang|en|Quaternionists}})라는 학파를 창시하고, 1853년에는 《사원수 강해》({{llang|en|Lectures on Quaternions}})<ref>{{서적 인용|제목=Lectures on quaternions; containing a systematic statement of a new mathematical method; of which the principles were communicated in 1843 to the Royal Irish academy; and which has since formed the subject of successive courses of lectures, delivered in 1848 and subsequent years, in the halls of Trinity college, Dublin: with numerous illustrative diagrams, and with some geometrical and physical applications|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url=http://ebooks.library.cornell.edu/cgi/t/text/text-idx?c=math;idno=05230001|위치=[[더블린]]|출판사=Hodges and Smith|날짜=1853|언어=en}}</ref>를 출판하였다. 해밀턴 사후, 해밀턴의 아들 윌리엄 에드윈 해밀턴({{llang|en|William Edwin Hamilton}})은 아버지의 마지막 책인 800여 쪽의 《사원수 원론》({{llang|en|Elements of Quaternions}})을 편집하여 1866년에 출판하였다.<ref>{{서적 인용|이름=William Rowan|성=Hamilton|저자링크=윌리엄 로언 해밀턴|제목=Elements of quaternions|url=https://archive.org/details/elementsquaterni00hamirich|편집자=William Edwin Hamilton|위치=[[런던]]|출판사=Longmans, Green, & Co.|날짜=1866|언어=en}}</ref>
=== 해밀턴 사후 ===
해밀턴의 죽음 이후, 그의 제자인 [[피터 거스리 테이트]]는 사원수의 연구를 계속하였다. 당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는 사원수가 의무 수강 과목의 하나였다. 현재는 공간 운동학, [[맥스웰 방정식]] 등의 벡터를 이용하여 설명하는 물리와 기하학의 논제들은 그 당시에는 모두 사원수를 이용하여 설명되었다. 1899년에 국제 사원수 학회({{llang|en|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Promoting the Study of Quaternions and Allied Systems of Mathematics}})가 설립되었고, 1900년~1913년 동안 《사원수 학회 저널》({{llang|en|Bulletin of the Association Promoting the Study of Quaternions and Allied Systems of Mathematics}})을 출판하였다.<ref>{{웹 인용|url=http://catalog.hathitrust.org/Record/000548057|제목=Bulletin of 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promoting the study of quaternions and allied systems of mathematics|언어=en}}</ref> 전성기 동안 60여 명의 회원을 가졌으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사라졌다.
1880년대 중반부터 [[조사이어 윌러드 기브스]]와 [[올리버 헤비사이드]]가 제안한 [[벡터]] 해석학이 사원수 표현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벡터는 사원수와 같은 현상을 설명하였기 때문에, 고전 사원수 연구에서 많은 아이디어와 용어 등을 빌려왔다. 그러나 벡터 해석이 보다 간결한 개념과 표기법을 가지고 있었기에 사원수는 수학과 물리에서 비주류가 되었다. 이는 해밀턴의 사원수가 이해하기 난해하고, 표기가 친숙하지 않았으며, 그의 저작물에 길고 불분명한 표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원수는 20세기 말에 공간상에서의 회전에 관한 사원수의 유용성에 의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원수를 이용한 회전의 표현은 행렬을 사용하는 표현에 비해 더욱 간결했고 계산이 빨랐다. 이런 이유로, 사원수는 컴퓨터 그래픽, [[제어이론]], [[신호처리]], [[자세제어]](attitude control), [[물리학]], [[생물정보학]], [[분자동역학]], [[컴퓨터 시뮬레이션]], [[궤도역학]](orbital mechanics) 등에 사용되고 있다.
== 각주 ==
{{각주}}
* {{저널 인용|제목=Hamilton, Rodrigues, and the quaternion scandal|이름=Simon L.|성=Altman|저널=Mathematics Magazine|권=62|호=5|날짜=1989-12|쪽=291–308|doi=10.2307/2689481|출판사=Mathematical Association of America|언어=en}}
* {{저널 인용|제목=Doubling: real, complex, quaternion, and beyond… well, maybe|이름=Robert C.|성=Moore|저널=The College Mathematics Journal|doi=10.2307/2686287|권=17|호=4|날짜=1986-09|쪽=342–343|언어=en}}
* {{저널 인용|제목=Vector identities from quaternions|이름=William C.|성=Schulz|저널=The Two-Year College Mathematics Journal|권=12|호=4|날짜=1981-09|쪽=271–273|doi=10.2307/3027077|언어=en}}
* {{저널 인용|제목=Equivalence of an identity in vector analysis to quaternion associativity, and ramifications|이름=Andrew|성=Sobczyk|저널=The American Mathematical Monthly|권=88|호=6|날짜=1981-06|쪽=441–443|doi=10.2307/2321831|언어=en}}
* {{저널 인용|제목=Hamilton’s discovery of quaternions|이름=B. L.|성=van der Waerden|저자링크=바르털 레인더르트 판데르바르던|저널=Mathematics Magazine|권=49|호=5|날짜=1976-11|쪽=227–234|doi=10.2307/2689449|언어=en}}
* {{서적 인용|제목=Visualizing Quaternions|출판사=Morgan Kaufmann|이름=Andrew J.|성=Hanson|날짜=2005-12-29|isbn=978-012088400-1|url=http://www.cs.indiana.edu/~hansona/quatvis/|언어=en}}
* {{서적 인용|arxiv=1504.04885|제목=Quaternions: a history of complex noncommutative rotation groups in theoretical physics|이름=Johannes C.|성=Familton|기타=박사 학위 논문|날짜=2015|출판사=[[컬럼비아 대학교]]|언어=en}}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분류-줄}}
* {{eom|title=Quaternion}}
* {{매스월드|id=Quaternion|title=Quaternion}}
* {{매스월드|id=QuaternionNorm|title=Quaternion norm}}
* {{매스월드|id=QuaternionConjugate|title=Quaternion conjugate}}
* {{nlab|id=quaternion|title=Quaternion}}
* {{수학노트|title=해밀턴의 사원수(quarternions)}}
* {{웹 인용|url=http://ghebook.blogspot.com/2010/07/quarternion.html|웹사이트=조금은 느리게 살자|제목=사원수(四元數, quaternion)|날짜=2010-07-15|언어=ko}}
* {{네이버캐스트|4132|사원수의 발견|저자=박부성}}
* {{네이버캐스트|4788|사원수의 계산|저자=박부성}}
* {{네이버캐스트|5036|사원수의 활용|저자=박부성}}
== 같이 보기 ==
* [[사원수군]]
* [[팔원수]]
* [[케일리-딕슨 구성]]
* [[사원수 켈러 다양체]]
* [[초켈러 다양체]]
{{수 체계}}
{{전거 통제}}
[[분류:사원수| ]]
[[분류:다원수]]
[[분류:합성 대수]]
[[분류:윌리엄 로언 해밀턴]]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프로그래밍 언어 정보
|이름 = GW-BASIC
|연도 = 1983년
|개발자 = [[마이크로소프트]]
|최근 버전 = 3.23
|최근 버전 출시일 = 1988년
|영향을 받은 언어 = [[IBM 카세트 베이직]], [[IBM 디스크 베이직]], [[IBM BASICA]]
|영향을 준 언어 = [[Q베이직]], [[퀵베이직]], [[MSX 베이직]]
|운영 체제 = [[도스]]
}}
'''GW 베이직'''(GW-BASIC)은 원래 [[마이크로소프트]]가 [[컴팩]]을 위해 개발한 [[베이직]]의 일종이다. 이름의 GW는 초기 마이크로소프트의 직원이었던 [[그렉 위튼]](Greg Whitten, 별명은 'gee-whiz')의 이름 첫 글자를 딴 것이다.
GW-BASIC는 마이크로소프트/IBM [[BASICA]]와 호환성이 있으며, 디스크 기반으로 실행에 IBM PC에 포함된 ROM 베이직의 자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GW-BASIC을 IBM PC의 [[운영 체제]] [[MS-DOS]]에 기본 포함시켜서 제공했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좀 더 빠른 프로그램을 위해 BASCOM이라는 베이직 전용 컴파일러를 판매했다.
초기 마이크로컴퓨터 버전의 베이직 언어들이 그랬던 것처럼, GW-BASIC도 [[구조화 프로그래밍]]에 필요한 [[지역 변수]] 등의 구조가 없고, [[인터프리터형 언어]]의 특성상 실행 속도가 비교적 느렸으나, 그 뒤로 수많은 그래픽 관련 명령어가 추가되었고, 레코드형 디스크 입출력 부분이 추가·보완되었다.
[[MS-DOS]] 5.0 버전 이후로 마이크로소프트는 GW 베이직을 번들로 제공하지 않고, 대신 [[큐베이직]](QBasic)으로 대체했다.
== 기능 ==
IBM BASICA 및 GW-BASIC은 주로 [[MBASIC]] 버전 5.x의 포트이지만 IBM PC 하드웨어용으로 특별히 추가된 기능이 있다. BASIC-80 5.x 및 BASICA/GW-BASIC의 일반적인 기능은 다음과 같다.
* WHILE...WEND 루프
* 최대 40자의 변수 이름
* 배열 변수의 시작 인덱스를 0 또는 1로 설정하는 OPTION BASE 문
* 동적 문자열 공간 할당
* 쉼표와 같은 필드 구분 문자를 무시할 수 있는 LINE INPUT
* 기계어 루틴을 실행하기 위한 CALL 문
* CHAIN 및 MERGE 명령
* 토큰화된 바이너리 형식이나 ASCII 텍스트로 프로그램을 저장하는 기능
== 헬로 월드 예제 ==
<syntaxhighlight lang="gwbasic">
10 PRINT "Hello, World!"
RUN
</syntaxhighlight>
==명칭==
이니셜 "GW"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몇 가지 이론이 있다. 회사의 BASIC 컴파일러 라인 표준을 개발한 초기 마이크로소프트 직원인 그레그 휘튼(Greg Whitten)은 빌 게이츠가 GW-BASIC이라는 이름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휘튼은 이를 지휘즈 베이직(Gee-Whiz BASIC)이라고 부르며 게이츠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프로그램 이름을 지었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 프레스의 마이크로소프트 사용자 설명서에서도 지휘즈 베이직(Gee-Whiz BASIC) 이름으로 참조된다. 수많은 그래픽 명령으로 인해 지휘즈(Gee-Whiz)라는 별명이 붙었을 수도 있다. 이니셜의 기원에 대한 다른 일반적인 이론으로는 "그래픽 및 윈도우", "게이츠, 윌리엄"(당시 마이크로소프트 사장) 또는 "게이츠-휘튼"(프로그램의 두 주요 디자이너)이 있다.
== 같이 보기 ==
* [[퀵베이직]]
* [[비주얼 베이직]]
== 외부 링크 ==
* {{웹 인용 |url=http://geocities.com/KindlyRat/GWBASIC.html |제목=GW-BASIC interpreter program and files download site |확인날짜=2016-05-14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91027112638/http://geocities.com/KindlyRat/GWBASIC.html |보존날짜=2009-10-27 |url-status=dead }}
{{베이직}}
{{전거 통제}}
{{토막글|프로그래밍 언어}}
[[분류:베이직 프로그래밍 언어 계열]]
[[분류:1983년 개발된 프로그래밍 언어]]
[[분류:베이직 인터프리터]]
[[분류:어셈블리어 소프트웨어]]
[[분류:마이크로소프트 베이직]]
[[분류:마이크로소프트의 프로그래밍 언어]]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넘어옴|톨킨}}
{{작가 정보
|이름 = J. R. R. 톨킨
|원어이름 = {{lang|en|J. R. R. Tolkien}}
|그림 = J. R. R. Tolkien, ca. 1925.jpg
|그림크기 =
|설명 = 1925년 톨킨의 모습.
|출생명 =
|출생일 = {{출생일|1892|1|3}}
|출생지 = [[오렌지 자유국]] [[블룸폰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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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지 = [[잉글랜드]] [[본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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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
|직업 = [[대학 교수]], [[언어학자]], [[작가]], [[번역가]]
|언어 =
|국적 = 영국
|민족 =
|시민권 =
|학력 = [[옥스퍼드 대학교]] 엑서터 칼리지
|모교 =
|활동 기간 =
|등단시기 =
|등단작 =
|장르 = [[판타지]], [[하이 판타지]], [[번역]], [[문학평론]]
|주제 =
|문학 경향 =
|주요 작품 = 《[[호빗 (소설)|호빗]]》, 《[[반지의 제왕]]》, 《[[실마릴리온]]》
|수상 =
|신장 =
|배우자 = [[에디스 브랫]] (1916 ~ 1971)
|부모 =
|동거인 =
|자녀 = [[크리스토퍼 톨킨]]
|친척 =
|종교 = [[천주교]]
|영향 받은 인물 =
|영향 준 인물 =
|서명 =
|웹사이트 = {{URL|http://www.tolkiensociety.org}}
}}
'''존 로널드 루엘 톨킨'''({{llang|en|John Ronald Reuel Tolkien [[대영 제국 훈장|CBE]]<ref name=훈장>{{저널 인용 |성= |이름= |날짜=1971-12-31 |제목=Supplement to The London Gazette: 1972 New Year Honours |번역제목= |url=https://www.thegazette.co.uk/London/issue/45554/supplement/9 |언어=en |저널=[[런던 가제트]] |위치= |출판사= |호=45554 |쪽=9 }}</ref>}}, {{IPAc-en|'|r|uː|l|_|ˈ|t|ɒ|l|k|iː|n}}{{efn|영어 인명 {{lang|en|Reuel}}은 '룰({{lang|en|''ROOL''}})'로 주로 발음하나, 톨킨의 가족들은 '루엘({{lang|en|''ROO-el''}})'이라고 발음했다.<ref>http://www.tolkiensociety.org/faq01.html The Tolkien Society</ref>}}, [[1892년]] [[1월 3일]]~[[1973년]] [[9월 2일]]), 또는 '''J. R. R. 톨킨'''은 [[영국]]의 영어학 교수, [[언어학자]]이자 [[작가]]이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 펨브룩 칼리지에서 [[1925년]]부터 [[1945년]]까지 고대영어학 교수로, 1945년에서 [[1959년]] 사이에는 같은 대학 [[머튼 칼리지]]의 영어영문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평생 써 온 [[소설]]을 통해 인생 후반에 큰 명성을 얻었는데, 이것에는 《[[반지의 제왕]]》, 《[[호빗 (소설)|호빗]]》 등의 [[가운데땅]] 관련 세계관 책이 있다. 톨킨은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과 관련한 일을 하기도 했으며, [[언어학]] 교수로도 재직했다. 톨킨은 언어학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그의 작품 내에 인공적인 언어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그러한 언어들 중, [[퀘냐]]와 [[신다린]] 등이 대표적이다.<ref>{{서적 인용|성1=크리스토퍼|이름1=톨킨|성2=험프리|이름2=카펜터|제목=톨킨의 서간집|장=144}}</ref>
톨킨은 인간 세계와는 다른 세계와 다른 종족을 만들어 내었고, 이로써 현대 판타지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크게 발전시킨 작가로 손꼽힌다. 그의 대표 작품으로는 《[[반지의 제왕]]》 삼부작과 《[[호빗 (소설)|호빗]]》 등의 [[가운데땅]]에 대한 작품들의 지속적인 인기와 영향력은 그의 명성을 끌어올려 그를 현대 "[[판타지]]{{efn|혹은 [[하이 판타지]].}}의 아버지"라 불리게 하였다. 또한 그는 [[베오울프]]<ref>{{서적 인용|제목=Tolkien: Finn and Hengest|쪽=4|이름=알란|성=블리스|isbn= 0-0482-9003-3}}</ref>와 [[가웨인 경과 녹기사]] 등에 대한 많은 비평도 남겼다. 그의 열열한 팬들은 [[톨키니스트]]라고 불리며 일부 매우 열열한 [[톨키니스트]]는 이 소설 시리즈를 거의 신앙 수준으로 여긴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 내의 문학 토론 모임인 [[잉클링스]]의 멤버였으며, 같은 [[잉클링스]] 멤버였던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인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C. S. 루이스]]와는 절친으로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ref name=cs>{{뉴스 인용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81&aid=0000065386|제목=루이스와 톨킨/콜린 듀리에즈 지음 |출판사=서울신문 |날짜=2005-11-11}}</ref>
톨킨은 [[1972년]] 신년서훈명단에 올라 [[대영 제국 훈장|3등급 대영 제국 훈장]](CBE)을 받았고,<ref name=훈장 /><ref name=ring>{{뉴스 인용|url=http://news20.busan.com/news/newsController.jsp?subSectionId=1010090000&newsId=20091106000163|제목='반지의 제왕' 탄생 전 이야기|출판사=부산일보|날짜=2009-11-07}}{{깨진 링크|url=http://news20.busan.com/news/newsController.jsp?subSectionId=1010090000&newsId=20091106000163 }}</ref> 이후 [[1973년]] [[9월 2일]] 사망하였다. 그의 사후에는 그의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이 아버지 톨킨의 집필을 정리하여 《[[실마릴리온]]》을 비롯해 많은 책을 출간하였다.
또 톨킨은 [[더 타임스]]에서는 [[2008년]] [[영국]]의 위대한 작가 6위로 그를 선정하였고,<ref>{{웹 인용|url=http://entertainment.timesonline.co.uk/tol/arts_and_entertainment/books/article3127837.ece|제목=The 50 greatest British writers since 1945 - Times Online|날짜=2008-05-11|확인날짜=2021-06-22|archive-date=2008-05-11|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80511204023/http://entertainment.timesonline.co.uk/tol/arts_and_entertainment/books/article3127837.ece|url-status=}}</ref> [[BBC]] 투표에서는 지난 천년동안 위대한 영어 작가 6위에 뽑혔다.<ref>{{웹 인용|url=http://news.bbc.co.uk/2/hi/286082.stm|제목=BBC News {{!}} World {{!}} Shakespeare voted millennium's best writer|확인날짜=2021-06-22}}</ref>
== 생애 ==
=== 톨킨의 조상 ===
톨킨의 직계 조상은 [[런던]]과 [[버밍엄]]에서 [[시계]]와 [[피아노]]를 만들던 장인이었다. 톨킨의 조상들은 [[퀴니히스베르크]] 인근의 [[프로이센]] 크로이츠 부르크에서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그의 아버지의 조상인 미셸 톨킨이 [[1620년|1620년경]]에 태어났다. 미셸의 아들인 크리스티 누스 톨킨은 그의 아들 크리스티안 톨킨과 클리치부르크에서 [[단치히 자유시]]로 이사하였고, 후에 그는 두 아들과 [[런던]]으로 이사하였다. 그의 남동생은 존 로널드 로웰 톨킨의 조상이 되었다. [[1792년]] 톨킨의 증조부는 지인과 한 제조업체를 인수해 시계를 제작해 판매하였다. 하지만 톨킨의 증조부는 영국 시민이 된적이 없었다. 다른 독일의 친척들도 [[런던]]의 두 형제와 합류했다. 톨킨의 성이나 유사한 철자를 가진 사람들 중 일부는 존 로널드 로웰 톨킨과 같은 가족에 속하며 그들은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동 프로이센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후손이다.<ref>{{웹 인용|url=http://www.elendilion.pl/wp-content/uploads/2018/03/TolkienAncestry.pdf|제목=|확인날짜=2021-10-25}}</ref><ref>{{웹 인용|url=http://www.verwandt.de/karten/absolut/tolkien.html|제목=Verteilung des Namens "Tolkien" in Deutschland - verwandt.de|날짜=2013-05-10|확인날짜=2021-06-22|archive-date=2013-05-10|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30510202325/http://www.verwandt.de/karten/absolut/tolkien.html|url-status=}}</ref><ref>{{웹 인용|url=http://www.verwandt.de/karten/absolut/tolkiehn.html|제목=Verteilung des Namens "Tolkiehn" in Deutschland - verwandt.de|날짜=2013-05-10|확인날짜=2021-06-22|archive-date=2013-05-10|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30510194451/http://www.verwandt.de/karten/absolut/tolkiehn.html|url-status=}}</ref>
실제로 톨킨은 [[저지대 프러시안어]]로 '톨의 자손'이라는 뜻인데,<ref name="Derdziński12">Ryszard Derdziński, [https://depot.ceon.pl/bitstream/handle/123456789/15041/Z%20Prus%20do%20Anglii.pdf?sequence=1&isAllowed=y Z Prus do Anglii. Saga rodziny J. R. R. Tolkiena (XIV–XIX wiek)] {{Web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90110133737/https://depot.ceon.pl/bitstream/handle/123456789/15041/Z%20Prus%20do%20Anglii.pdf?sequence=1&isAllowed=y|date=10 January 2019}}</ref><ref name="Derdziński22">Ryszard Derdziński, [http://www.elendilion.pl/wp-content/uploads/2018/03/TolkienAncestry.pdf On J. R. R. Tolkien's Roots] {{Web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90110183343/http://www.elendilion.pl/wp-content/uploads/2018/03/TolkienAncestry.pdf|date=10 January 2019}}, 2017</ref> 톨킨 스스로는 '저돌적'이라는 뜻의 독일어 '톨퀸(tollkühn)'에서 왔다고 말하고 다녔다.<ref>{{잡지 인용|date=25 August 1969|title=Ash nazg gimbatul|url=http://www.spiegel.de/spiegel/print/d-45548112.html|magazine=[[Der Spiegel]]|language=de|issue=35/1969|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10427035821/http://www.spiegel.de/spiegel/print/d-45548112.html|archive-date=27 April 2011|quote=Professor Tolkien, der seinen Namen vom deutschen Wort 'tollkühn' ableitet,... .|url-status=live}}</ref>
=== 어린시절 ===
[[파일:Mabel Suffield Christmas Card.jpg|섬네일|오른쪽|[[영국]] [[버밍엄]]의 친척들에게 보낸 [[블룸폰테인]] 톨킨 가족의 컬러 사진이 담긴 [[1892년]] 크리스마스 카드]]
[[파일:BirminghamOratoryDome.jpg|섬네일|오른쪽|버밍엄 오라토리 돔]]
[[파일:KES Free Grammar School Charles Barry.jpg|섬네일|오른쪽|톨킨이 다녔던 킹 에드워드 학교]]
톨킨은 [[1892년]] [[1월 3일]] [[오렌지 자유국]](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블룸폰테인]]에서 태어났다.<ref name=history5>{{뉴스 인용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0228728|제목=‘반지의…’‘나니아…’ 두 작가 톨킨·루이스의 믿음의 길 37년 동행 |출판사=국민일보|날짜=2005-12-13}}</ref> 톨킨에게는 [[1894년]] [[2월 17일]]에 태어난 남동생 힐러리 로웰 톨킨이 있다. 또한 톨킨은 어렸을 때 큰 거미에게 물렸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이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ref>{{harvnb|Carpenter|1977|p=113}}</ref> 3살 때 글을 읽기 시작했으며, 4 살때 영국 [[버밍엄]]으로 이주했다.<ref name=cs/><ref name=history5/> 4살 때부터 글을 유창하게 쓸수 있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톨킨이 3살 때 류마티스 열로 세상을 떠났다. 이로 인해 가족은 소득이 끊기고 말았다. 하지만 톨킨의 어머니는 집에서 자식들을 가르쳤다. 톨킨의 어머니는 톨킨에게 식물학을 가르쳤다. 어린 톨킨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톨킨의 어머니는 라틴어 기초를 일찍 가르쳤다.<ref>{{웹 인용|url=https://www.tolkiensociety.org/author/biography/|제목=Biography|날짜=2016-10-27|언어=en|확인날짜=2021-06-23}}</ref>
이후 그의 어머니는 외가 모두가 열성적인 [[성공회]]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가톨릭교회]]로 회심하였다. 톨킨의 어머니가 [[로마 가톨릭교회]]로 회심하자 [[성공회]](Anglican) 신자였던 친척들은 톨킨 일족에게 등을 돌리고 경제적 지원을 끊음에 따라 톨킨 모자는 가난하게 생활하게 된다.<ref name=history3>{{뉴스 인용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0033601|제목=무의식으로 빚다, 거대한 환상세계 |출판사=한겨레 |날짜=2003-11-21}}</ref> 톨킨은 다시 킹스 히스로 이사를 가기도 했다. 그곳에서 그는 탐험하기를 좋아했으며, 후에 그의 소설에 종종 이름이 비슷하게 등장한다.<ref>{{harvnb|Carpenter|1977|p=113}}</ref> 톨킨의 어머니는 톨킨이 12살 때 [[당뇨병|당뇨]] 합병증으로 죽었지만, 톨킨은 그의 나머지 생애 동안 그의 어머니가 믿음으로 인해 순교했다고 생각했고, 이는 그의 신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ref>책: J.R.R 톨킨 전기 P.85/저자:험프리 카펜터</ref> 톨킨의 독실한 신앙은 [[성공회]] 신자인 [[C.S.루이스]]와의 대화에도 깊이 베어 있으며, 그의 작품 속에도 다양한 상징과 가치로 나타난다. 10대 시절 톨킨은 [[버밍엄]]의 킹 에드워드 학교과 성 필립 문법학교를 다녔다.
=== 청년기 ===
10대 초반 톨킨은 사촌인 메리와 마조리 인클던의 발명품인 동물 언어를 처음으로 접했다. 그는 당시 라틴어와 앵글로색슨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그 언어에 대한 관심은 곧 사라졌지만 메리와 톨킨은 새롭고 복잡한 언어를 개발하였다.<ref>{{웹 인용|url=http://tolkiengateway.net/wiki/Nevbosh|제목=Nevbosh - Tolkien Gateway|확인날짜=2021-06-25}}</ref> 후에 톨킨은 다음으로 작업해 새로운 언어인 나파린을 만들어내었다.<ref>{{웹 인용|url=http://tolkiengateway.net/wiki/Naffarin|제목=Naffarin - Tolkien Gateway|확인날짜=2021-06-25}}</ref><ref>{{웹 인용|url=https://folk.uib.no/hnohf/vice.htm|제목=Tolkien's Not-So-Secret Vice|확인날짜=2021-06-25}}</ref><ref>{{웹 인용|url=http://lordfingulfin.webs.com/earlierlanguages.htm|제목=Tolkien's Languages {{!}} The Tongues of Middle-Earth|확인날짜=2021-06-25|archive-date=2013-12-24|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24110153/http://lordfingulfin.webs.com/earlierlanguages.htm|url-status=}}</ref> 톨킨은 [[1909년]] [[에스페란토]]를 공부하고 알게 되었다. 후에 그는 16페이지 짜리 "The Book of the Foxrook"라는 공책을 쓰게되었는데, 여기에서 톨킨의 초기 언어가 등장하였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kr/books?id=8ef3-s6fixIC&pg=PAPA136&redir_esc=y#v=onepage&q&f=false|제목=I Am in Fact a Hobbit: An Introduction to the Life and Works of J.R.R. Tolkien|성=Bramlett|이름=Perry C.|연도=2003|출판사=Mercer University Press|언어=en|isbn=978-0-86554-894-7}}</ref> 이 공책은 [[에스페란토]]로 작성되었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kr/books?id=B0loOBA3ejIC&pg=PAPA172&redir_esc=y#v=onepage&q&f=false|제목=J.R.R. Tolkien Encyclopedia: Scholarship and Critical Assessment|성=Drout|이름=Michael D. C.|연도=2007|출판사=Taylor & Francis|언어=en|isbn=978-0-415-96942-0}}</ref>
[[1911년]] 톨킨은 [[스위스]] 루터 브루 넨 밸리에서 여름 휴가를 보냈다. [[1968년]] 편지를 보면 이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였으며, 이 경험은 톨킨의 리븐델을 창조하는데 영향을 주었으며,<ref>{{웹 인용|url=https://ko.topworldtraveling.com/articles/destinations/13-places-you-can-find-middle-earth-on-earth-that-arent-in-new-zealand.html|제목=지구상에서 중간 지구를 찾을 수있는 13 가지 장소 (뉴질랜드에없는 곳) / 목적지|언어=ko|확인날짜=2021-06-26|archive-date=2021-06-26|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10626041555/https://ko.topworldtraveling.com/articles/destinations/13-places-you-can-find-middle-earth-on-earth-that-arent-in-new-zealand.html|url-status=}}</ref> [[호빗 (소설)|호빗]]에서 [[빌보 배긴스]]가 난쟁이들과 야영하는 이야기에 영향을 주었다.<ref>{{웹 인용|url=https://www.valais-wallis-digital.ch/|제목=Valais*Wallis Digital|성=Digital|이름=Valais*Wallis|언어=en|확인날짜=2021-06-26}}</ref> 같은 해 10월, 톨킨은 옥스포드 전문대학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 고전을 공부했지만 [[1913년]]에 [[영어]]와 [[문학]]으로 과정을 변경하여 [[1915년]] 일류 명예를 받고 졸업하였다.
톨킨이 에디스 브렛을 만나 처음 사랑에 빠진 것은 그가 16세일 때였으며 당시 에디스는 톨킨보다 3살 많았다. 에디스는 개신교였기에 이를 좋지 않게 생각한 당시 톨킨의 후견인 모건 신부는 톨킨이 21살이 되기 전까지 그들이 만나는 것을 금지하였고 톨킨은 이에 따랐다. 톨킨은 21세가 되던 생일날 톨킨은 에디스에게 청혼하는 편지를 쓰고 결국 둘은 [[1916년]] [[3월 22일]] 결혼하게 된다.<ref>책: J.R.R 톨킨 전기 P.87/저자:험프리 카펜터</ref>
=== 세계 1차대전 시기 ===
[[파일:Lancashire Fusiliers trench Beaumont Hamel 1916.jpg|오른쪽|섬네일|[[1916년]], [[세계 1차대전]]]]
톨킨은 [[제1차 세계 대전]] 시작 후 [[1915년]] [[7월 15일]], [[연합국#제1차 세계 대전|영국군]]에 지원하였고, 임시 부관에 임명되었다.<ref>{{웹 인용|url=https://www.thegazette.co.uk/London/issue/29232/page/6968|제목=Page 6968 {{!}} Issue 29232, 16 July 1915 {{!}} London Gazette {{!}} The Gazette|확인날짜=2021-06-27}}</ref> 그는 케논 체이스13 보충 대대에서 11개월간 훈련을 받았고, 훈련을 마친 그는 [[영국]] 파견부대 11대대 소속으로 [[1916년]] [[6월 2일]]에 [[프랑스]]에 투입되었다.
==== 프랑스 ====
[[1916년]] [[6월 5일]], 톨킨은 밤새 [[프랑스]]의 [[칼레]]로 향했다. 처음으로 도착한 톨킨은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영국 원정대 기지로 보내졌다. [[6월 7일]], 그는 영국 육군의 11대대에 신호 장교로 배정되었다는 것이 통보되었다. 대대는 제 25사단 제 74여단 소속이었다. 그의 부대가 소환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톨킨은 지루함에 빠졌다. 그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가 [[칼레]]로 넘어올 때의 감정에서 얻은 영감으로 "외로운 섬"이라는 시를 지었다. 영국군의 우편 검열을 피하기 위해 그만의 점자 코드를 만들기도 하였다. [[1916년]] [[6월 27일]], 톨킨은 [[아미앵]] 근처의 도시에 합류하였다. 그는 그곳의 광산, 제분 및 직조 마을에서 끌려온 후 입대한 사람들을 지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톨킨은 이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느꼈지만, [[영국]]에서 다른 계급끼리 과한 우정을 제한하여서 별로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 솜 전투 ====
[[파일:Cheshire Regiment trench Somme 1916.jpg|오른쪽|섬네일|[[솜 전투]] 중 [[영국군]] 진영.]]
톨킨은 [[1차 세계 대전]]에서 가장 참혹하다고도 알려진 [[솜 전투]]에도 참가했다. 톨킨은 [[1916년]] [[7월]] 초 [[솜 (데파르트망)|솜]]에 도착하였고, 그는 부진 코트에서 [[라이프치히]] 돌출부에 대한 전투에 참여하였다. 톨킨의 전투 시간은 그의 아내인 에디스에게는 끔찍한 스트레스였는데, 이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톨킨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려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1916년]] [[10월 27일]]에 톨킨은 레지나 해구로 돌격하는 도중 [[이 (동물)|이]]가 옮기는 [[참호열]]에 걸려 11월 8일 [[영국]]으로 후송되었다.<ref>{{웹 인용|url=https://blog.naver.com/indizio/221662177322|제목=보고 옥스퍼드 도착|언어=ko|확인날짜=2021-06-27}}</ref> 톨킨이 후송된 후 톨킨과 친했던 부대원 대부분이 전사했고, 부대는 거의 전멸하였다.<ref>{{harvnb|Carpenter|1977|pp=93, 103, 105}}</ref>
==== 회복 기간 ====
회복하는 기간 동안 북유럽 [[신화]]와 민간 전승에 기반한 우화 시리즈 '[[잃어버린 이야기들의 책]]'(The Book of Lost Tales)을 썼다. 요양중인 무렵 톨킨은 아내 에디스와 함께 독미나리 숲을 거닐다가 에디스가 톨킨을 위로하는 춤을 추었고 아내의 귀여운 행동에 영감을 얻어 소설 속 등장인물에 반영하였고, 그것은 [[베렌]]과 [[루시엔]]이 되었다.<ref>{{웹 인용|url=https://news.joins.com/article/21629693|제목=J.R.R톨킨 '베렌과 루시엔' 1일 발간···100년만에 빛봐|성=수정 2017.06.01 15:39|이름=입력 2017 06 01 15:35|날짜=2017-06-01|언어=ko|확인날짜=2021-06-27}}</ref>
베렌과 루시엔은 《[[실마릴리온]]》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톨킨이 쓴 '잃어버린 이야기들의 책' 내용에서 《[[반지의 제왕]]》 앞부분은 톨킨 사후에 그의 아들이 출판한 책이다. 톨킨은 그의 아내를 종종 "나의 루시엔"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ref>The Ring of Words (OUP 2006)/저자 :Peter Gilliver, Jeremy Marshall</ref>
=== 대학교수 시절 ===
[[파일:20 Northmoor Road, Oxford.JPG|섬네일|250px|1930년에서 1949년까지 톨킨이 살았던 옥스퍼드 내의 집.]]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이후, 톨킨은 잠시 동안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에 관련한 일을 했다. 그가 주로 담당한 것은 [[알파벳]] '[[W]]'로 시작하는 언어의 기원과 재해석에 관한 것이었다.<ref>{{뉴스 인용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1&aid=0000104409|제목=옥스퍼드 영어사전 `위대한 탄생` 추적 |출판사=문화일보 |날짜=2005-04-22}}</ref> [[1920년]]에 [[리즈 대학교|리즈 대학]]에서 영어 언어학 조교로 강의하다가 [[1924년]] [[리즈 대학교]]에서 정교수가 된다.<ref name=history5/> [[1925년]]에는 톨킨은 다시 [[옥스퍼드 대학교]]로 가서 교수직을 맡게 된다. 톨킨은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들이 모여 출판된 책이 《[[호빗 (소설)|호빗]]》이었다. 호빗은 어른들에게까지 인기를 얻게 되고 호빗의 출판사는 톨킨에게 후속작을 요청한다. 이에 톨킨은 작가 토론모임인 [[잉클링스]]와 [[C.S. 루이스]]의 조언을 받으며 《[[반지의 제왕]]》을 10여년에 걸쳐 저술한다.
톨킨의 절친한 친구이자 톨킨과 마찬가지로 옥스퍼드대 교수였던 [[C.S. 루이스]]는 톨킨과 함께 독서 모임인 [[잉클링스]]의 회원이었다. 둘은 [[잉클링스]]에서 문학, 역사, 종교, 신화 등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루이스는 톨킨이 생각하고 저술했던 [[중간계|가운데 땅]] 이야기를 경청하고 격려해 주었다.<ref name=history5/> 톨킨과 루이스는 말년에는 소원해 지기도 하였지만 둘은 대체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 하였다. 톨킨은 [[1963년]] 루이스가 죽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큰 빚을 지고 있었다. 우리들을 맺어준 깊은 우정은 지금도 그대로이다"라고 하였다.<ref name=history5/>
=== 은퇴 ===
[[1959년]]부터 [[1973년]] 사망할 때까지 은퇴한 톨킨은 꾸준히 대중적인 관심과 문학적인 명성을 얻었다. [[1961년]] 그의 친구인 [[C.S. 루이스]]는 그를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명하기도 하였다.<ref>{{웹 인용|url=https://www.nobelprize.org/nomination/archive/show.php?id=16784|제목=Nomination%20archive|날짜=2020-04-01|언어=en-US|확인날짜=2021-06-27}}</ref> 그의 책이 수익성이 높아지자 톨킨은 조기 퇴직을 한 것을 후회 할 정도가 되었다.<ref>{{웹 인용|url=https://www.tolkiensociety.org/author/biography/|제목=Biography|날짜=2016-10-27|언어=en|확인날짜=2021-06-27}}</ref>
팬들의 관심이 너무 높아서 톨킨은 공개하였던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았고, 에디스와 [[본머스]]에서 살게되었다. 그 당시 [[본머스]]는 [[영국]] 중산층이 이용하던 휴양지였다.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그곳의 정중한 사회 진입은 쉬었을 수 있지만, 그는 옥스퍼드대와 [[잉클링스]]의 생활을 포기해야만 하였다. 은퇴 당시 톨킨은 [[1966년]] [[예루살렘]] 성경의 컨설턴트이자 번역가이었다.
톨킨은 [[1972년]] 신년 명예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으며, [[1972년]] [[3월 28일]] [[버킹엄]] 궁전에서 훈장을 받았다. 같은 해 옥스포드 대학은 그에게 문학 박사 명예를 수여하였다.<ref>{{웹 인용|url=http://www3.shropshire-cc.gov.uk/tolkien.htm|제목=J.R.R. Tolkien (1892-1973)|날짜=2012-07-28|확인날짜=2021-06-27|archive-date=2012-07-28|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20728154119/http://www3.shropshire-cc.gov.uk/tolkien.htm|url-status=}}</ref>
=== 죽음 ===
[[파일:Tolkien's grave.jpg|섬네일|250px|톨킨 부부의 묘비에 적혀 있는 문구.]]
톨킨의 아내가 [[1971년]] [[11월 29일]] 죽었을 때 톨킨은 아내의 묘지 비석에 [[루시엔]](Lúthien)이라고 아내의 이름 아래에 새겼다.<ref>{{웹 인용|url=http://www.simontolkien.com/mygrandfather.html|제목=Simon Tolkien - JRR Tolkien|날짜=2011-09-27|확인날짜=2021-06-27|archive-date=2011-09-27|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10927051931/http://www.simontolkien.com/mygrandfather.html|url-status=}}</ref> 21개월 뒤인 [[1973년]] [[9월 2일]] 톨킨이 81세<ref>{{웹 인용|url=https://archive.nytimes.com/www.nytimes.com/books/01/02/11/specials/tolkien-obit.html|제목=J. R. R. Tolkien Dead at 81; Wrote 'The Lord of the Rings'|확인날짜=2021-06-27}}</ref>의 나이로 출혈성 궤양과 흉부 감염<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kr/books?id=TyKDAwAAQBAJ&pg=PT35&redir_esc=y#v=onepage&q&f=false|제목=J. R. R. Tolkien's Sanctifying Myth: Understanding Middle-earth|성=Birzer|이름=Bradley J.|날짜=2014-05-13|출판사=Open Road Media|언어=en|isbn=978-1-4976-4891-3}}</ref>으로 인해 사망했을 때 같은 곳에 묻혔는데, 이 때 비석에 [[베렌]](Beren)이라는 이름이 더해졌다. 베렌은 《[[실마릴리온]]》의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비석의 전체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인용 상자|<center>Edith Mary Tolkien<br />'''Lúthien'''<br />1889–1971<br />John Ronald<br />Reuel Tolkien<br />'''Beren '''<br />1892–1973</center>|너비=20%|정렬=center}}
또한 톨킨의 유언장은 [[1973년]] [[12월 20일]] 190,577 파운드<ref>{{웹 인용|url=https://measuringworth.com/ukearncpi/|제목=measuringworth|확인날짜=2021-06-27}}</ref><ref>{{웹 인용|url=https://probatesearch.service.gov.uk/Calendar?surname=Tolkien&yearOfDeath=1973&page=1#calendar|제목=Find a will {{!}} GOV.UK|언어=en|확인날짜=2021-06-27}}</ref>에 낙찰되었다.
== 출판물 ==
=== 톨킨 생애에 출판 ===
==== 《베오울프:괴물과 비평가들》 ====
톨킨은 그의 소설과 함께 대학 문학 비평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1936년 강의내용이 나중에 기사로 출판되게 되고, 앵글로 색슨의 서사시 [[베오울프]]를 문학적으로 재해석한 그 내용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 논문은 고전 영문학 공부하는데 있어 지금까지도 많은 영향력을 주고 있다. 또한 이것은 톨킨의 후기 소설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호빗 (소설)|호빗]]과 [[반지의 제왕]]의 세부 사항에서 각색이 드러났다.
==== 아이들을 위한 책과 단편 ====
톨킨은 신화적인 작곡과 더불어, 그의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판타지 이야기를 쓰는 것을 좋아했다.<ref>{{웹 인용|url=https://archive.nytimes.com/www.nytimes.com/books/01/02/11/specials/tolkien-mag67.html|제목=The Prevalence of Hobbits|확인날짜=2021-06-28}}</ref><ref>{{뉴스 인용 |url=http://www.donga.com/fbin/output?n=200612230088|제목=[문학예술]‘북극에서 온 편지’ |출판사=동아닷컴 |날짜=2006-12-23}}</ref><ref>{{웹 인용|url=https://archive.nytimes.com/www.nytimes.com/books/01/02/11/specials/tolkien-mag67.html|제목=The Prevalence of Hobbits|확인날짜=2021-06-22}}</ref> 그는 매해 크리스마스 편지를 산타할아버지가 보내는 형식으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썼고 그 편지에는 짧은 이야기 시리즈가 포함되어 있었다.<ref>{{웹 인용|url=https://www.gale.com/databases/questia|제목=Questia|언어=en|확인날짜=2021-06-22}}</ref> 이것은 나중에 모아져 《[[산타할아버지의 편지]]》로 출판된다. 한국에서는 《[[북극에서 온 편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다른 이야기로는 《[[미스터 블리스]]》와 《[[로버랜덤]]》,《[[니글의 나뭇잎]]》<ref>《나무와 잎사귀》의 일부분 이야기이다.</ref>《[[톰 봄바딜의 모험]]》,《[[요정 이야기에 관하여]]》,《[[큰 우튼의 대장장이]]》,《[[햄의 농부 가일스]]》 등이 있다. 여러 사람들은 그의 전설관에서 아이디어를 빌렸다.<ref>{{저널 인용|제목=A Companion to J. R. R. Tolkien|저널=Wiley Online Library|url=https://onlinelibrary.wiley.com/doi/book/10.1002/9781118517468|날짜=2014-04-15|편집자-성=Lee|편집자-이름=Stuart D.|언어=en|doi=10.1002/9781118517468}}</ref>
==== 《[[호빗 (소설)|호빗]]》 ====
{{본문|호빗 (소설)}}
톨킨은 자신의 허구적인 이야기들이 인기를 얻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원래 《[[호빗 (소설)|호빗]]》은 톨킨의 자녀들을 위해 쓴 소설이었다. 1936년 우연한 기회에 [[호빗 (소설)|호빗]]을 읽게 된 런던의 조지 알렌 & 언윈(George Allen & Unwin) 출판사 여직원의 강력한 추천으로 《[[호빗 (소설)|호빗]]》을 출판하였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nytimes.com/books/01/02/11/specials/tolkien-obit.html |제목=J. R. R. Tolkien Dead at 81; Wrote 'The Lord of the Rings' |출판사=[[뉴욕 타임스]] |날짜=1973-09-03}}</ref><ref>{{웹 인용|url=https://archive.nytimes.com/www.nytimes.com/books/01/02/11/specials/tolkien-obit.html|제목=J. R. R. Tolkien Dead at 81; Wrote 'The Lord of the Rings'|확인날짜=2021-06-22}}</ref> 출판 이후 《[[호빗 (소설)|호빗]]》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 독자들에게까지 인기를 끌게 되고 출판사는 톨킨에게 속편을 요청하게 된다.
==== 《[[반지의 제왕]]》 ====
{{본문|반지의 제왕}}
톨킨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반지의 제왕]]》은 《[[호빗 (소설)|호빗]]》의 후속편을 제작해달라는 출판사의 요청에 의해 시작하였고 10여 년에 걸쳐 반지의 제왕을 쓰게 된다. 처음 출판은 [[1954년]]부터 [[1955년]]에 1권으로 출판하려 했지만 너무 많은 인쇄비 때문에 3권으로 출판되었다. 반지의 제왕을 집필하는 동안 그는 [[잉클링스]]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특히 그의 가까운 친구였던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 S. 루이스]]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 톨킨은 처음 《[[반지의 제왕]]》을 《[[호빗 (소설)|호빗]]》과 마찬가지로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로 쓰려 했다. 그러나 소설의 분위기가 점점 무거워지고 심각해지게 되면서 성인 독자들에게 더 인기를 끌게 되었다.<ref>{{웹 인용|url=https://archive.nytimes.com/www.nytimes.com/books/01/02/11/specials/tolkien-oxford.html|제목=Oxford Calling|확인날짜=2021-06-22}}</ref> 《[[반지의 제왕]]》 집필전에 그가 구상하고 집필한 벨레리안드(Beleriand) 배경 이야기는 그의 사후에 《[[실마릴리온]]》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된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소설의 성공은 [[판타지]] 장르 소설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ref name=ring/>
[[반지의 제왕]]은 1960년대부터 큰 인기를 얻게 되고 판매와 독자평 둘다에서 [[20세기]]에 가장 인기있는 소설 중에 하나로 인정받게 된다.<ref>{{웹 인용|url=http://usatoday30.usatoday.com/life/movies/news/2003-12-12-lotr-main_x.htm|제목=USATODAY.com - 'Rings' comes full circle|확인날짜=2021-06-22}}</ref> [[2003년]] [[BBC]]에서 개최한 "대단한 책"(Big Read) 조사에서 [[반지의 제왕]]은 "[[영국]]에서 가장 사랑 받는 책"으로 선정되기도 한다.<ref>{{뉴스 인용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32&aid=0000044905 |제목=英 최고인기도서 ‘반지의 제왕’|출판사=경향신문 |날짜=2003-12-14}}</ref><ref>{{웹 인용|url=http://www.abc.net.au/news/newsitems/200512/s1523327.htm|제목=Epic trilogy tops favourite film poll. 05/12/2005. ABC News Online|날짜=2006-01-16|확인날짜=2021-06-22|archive-date=2006-01-16|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60116213130/http://www.abc.net.au/news/newsitems/200512/s1523327.htm|url-status=}}</ref> 또한 [[반지의 제왕]]은 [[아마존 (기업)|Amazon.com]]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천년의 책"으로 평가되었다.<ref>{{웹 인용|url=https://www.salon.com/books/feature/2001/06/04/tolkien/|제목=www.salon.com|날짜=2001-6-4|확인날짜=2021-6-23|archive-date=2002-02-24|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20224001042/https://www.salon.com/books/feature/2001/06/04/tolkien/|url-status=dead}}</ref> 또한 [[2004년]] [[반지의 제왕]]은 [[BBC]]가 "대단한 책"(Big Read)을 [[독일인]]으로 투표를 진행하였을 때 약 250,000명이 [[반지의 제왕]]을 좋아한다는 결과가 나왔다.<ref>{{웹 인용|url=https://www.smh.com.au/entertainment/books/a-lord-for-germany-20041005-gdjuv8.html|제목=A lord for Germany|날짜=2004-10-05|언어=en|확인날짜=2021-06-22}}</ref>
=== 사후 출판 ===
톨킨의 사후에 출판한 책은 대부분 [[크리스토퍼 톨킨]]이 묶어 편집하였다.<ref>{{웹 인용|url=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17/2020011702788.html|제목='반지의 제왕' 저자 아들 사망… '실마릴리온' 등 아버지 미발표 원고 출판|날짜=2020-07-16|언어=ko|확인날짜=2021-07-05}}</ref>
==== 《[[실마릴리온]]》 ====
{{본문|실마릴리온}}
톨킨은 [[베렌]]과 [[루시엔]]의 이야기가 포함된 '신화의 초안'(Sketch of the Mythology)을 간략하게 썼다. 그 내용은 나중에 퀜타 [[실마릴리온]]에 포함되게 된다. 톨킨은 실마릴리온 이야기가 반지의 제왕과 함께 출판 되기를 바랬지만 방대한 분량 때문에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절하는 바람에 생전에 출판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당시 전쟁 직후이기 때문에 인쇄비가 너무 높았던 것도 그 이유였으며 반지의 제왕도 3부로 나누어 출판하게 된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worldswithoutend.com/books_year_index.asp?year=1978 |제목=1978 Award Winners & Nominees|출판사= Worlds Without End|날짜=2009-05-17}}</ref>
톨킨은 그의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에게 그의 사후에 작품 발표에 대한 저작권을 위임하였고 [[크리스토퍼 톨킨]]는 그의 아버지의 미출판 원고들을 정리, 편집하여 책 《[[실마릴리온]]》으로 [[1977년]] 출판하게 된다. 이는 톨킨이 죽은 후 4년 뒤의 출판이었다. 《[[실마릴리온]]》은 [[가운데땅]]에서의 신화와 역사를 기록한 소설로서 작가가 《[[호빗 (소설)|호빗]]》과 《[[반지의 제왕]]》을 집필하기 전에 《잃어버린 이야기들의 책》이라고 적힌 노트에 [[1937년]]부터 쓰기 시작해 죽기전까지 집필한 것으로서 《[[반지의 제왕]]》 앞부분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ref name=s>{{뉴스 인용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0708607 |제목=톨킨 소설 '실마릴리온' 번역 출간’|출판사=연합뉴스 |날짜=2004-07-21}}</ref> 한국에서도 동명의 제목(실마릴리온)으로 출판되었다.<ref name=s/>
==== 《[[끝나지 않은 이야기]]》와 《[[가운데땅 역사서]]》 ====
{{본문|끝나지 않은 이야기}}
{{본문|가운데땅 역사서}}
[[1980년]] [[크리스토퍼 톨킨]]은 톨킨의 유작 원고 자료들을 모아 《[[끝나지 않은 이야기|누메노르와 가운데땅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을 출간한다.<ref>{{웹 인용|url=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38596|제목=교환 결정과 기독교적 세계관|성=크리스천투데이|날짜=2021-03-14|확인날짜=2021-07-05}}</ref> 이후 [[크리스토퍼 톨킨]]은 [[1983년]]부터 [[1996년]]까지 톨킨의 저서를 모아 《잃어버린 이야기들의 책》 1부와 2부와 《벨레리안드의 노래》를 비롯한 12권의 책을 출간하고, 나중에 학문적으로 설명한 해설과 각주를 달아 이를 《[[가운데땅 역사서]]》라는 이름의 12권으로 재정리한다.<ref>{{웹 인용|url=https://www.dmitory.com/107215672|제목=시사/이슈/유머 - 크리스토퍼 톨킨, 가운데땅의 학자 타계|언어=ko|확인날짜=2021-07-05}}</ref>
==== 《[[후린의 아이들]]》 ====
{{본문|후린의 아이들}}
[[2007년]] 《[[후린의 아이들]]》이 하퍼 콜린스(Harper Collins)와 휴튼 미플린(Houghton Mifflin)에 의해 출판되었다. 《[[후린의 아이들]]》은 톨킨이 [[1918년]]에 집필을 시작했다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작품으로, 내용은 톨킨의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이 《[[실마릴리온]]》, 《끝나지 않은 이야기》, 《가운데땅 이야기》 등에서 원고를 모은 것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중간계]]이며 《[[반지의 제왕]]》의 시대 배경 [[제3시대]]보다 6500년 앞선 [[제1시대]]의 영웅 [[투린]]의 비극적인 투쟁과 사랑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ref name=hurin>{{뉴스 인용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159142|제목=톨킨의 비극적 영웅이야기 '후린의 아이들'|출판사=연합뉴스 |날짜=2008-07-04}}</ref> [[대한민국]]에서도 [[2008년]] [[7월]] 출간되었다.<ref name=hurin/>
==== 《지구르드와 구드룬의 전설》 ====
[[2009년]] 5월 휴튼 미플린 하코트(Houghton Mifflin Harcourt) 출판사와 하퍼 콜린스에서 톨킨의 미발행 작품을 지구르드와 구드룬의 전설(The Legend of Sigurd and Gudrún)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5937091 네이버책소개]</ref> 이 책은 크리스토퍼 톨킨이 편집하고 소개를 덧붙였다. 내용은 노르웨이의 전설에 관한 책으로 1930년대 톨킨이 옥스퍼드 대학에 교수로 있을 무렵에 썼던 서사시이다.
== 영향 ==
다른 많은 작가들이 톨킨의 이전에 많은 판타지 소설을 써왔지만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호빗 (소설)|호빗]]의 대성공은 판타즈 소설 장르가 대중적인 부활과 현대 판타지 소설 장르 형성으로 이어졌다. 그는 이후 현대 판타지 장르의 "아버지"로 불리었으며, [[2008년]] [[더 타임스]]는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에 선정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thetimes.co.uk/article/the-50-greatest-british-writers-since-1945-ws3g69xrf90|제목=The 50 greatest British writers since 1945|언어=en|issn=0140-0460|확인날짜=2021-06-22}}</ref> 또한 톨킨은 [[더 타임스]]에서는 [[2008년]] [[영국]]의 위대한 작가 6위로 그를 선정하였고<ref>{{웹 인용|url=http://entertainment.timesonline.co.uk/|확인날짜=2021-06-22|제목=보관된 사본|archive-date=2007-06-20|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70620021525/http://entertainment.timesonline.co.uk/|url-status=}}</ref>, [[BBC]] 투표에서는 지난 천년동안 위대한 영어 작가 6위에 뽑혔다.<ref>{{웹 인용|url=http://news.bbc.co.uk/2/hi/286082.stm|제목=BBC News {{!}} World {{!}} Shakespeare voted millennium's best writer|확인날짜=2021-06-22}}</ref>
톨킨의 [[가운데땅]] 판타지 책, 특히 [[반지의 제왕]]과 [[실마릴리온]]은 그의 대한 철학적 관심, 기독교<ref>{{웹 인용|url=http://www.crisismagazine.com/november2001/feature7.htm|제목=Tolkien’s Catholic Imagination|날짜=2006-08-21|확인날짜=2021-06-22|archive-date=2006-08-21|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60821111145/http://www.crisismagazine.com/november2001/feature7.htm|url-status=}}</ref><ref>{{웹 인용|url=https://touchstonemag.com/archives/article.php?id=15-01-051-f|제목=The Lord & Lady of the Rings by Stratford Caldecott|성=Caldecott|이름=Stratford|언어=en|확인날짜=2021-06-22}}</ref>, 신화, 고고학 등에 다양한 영향을 받았다. 그는 [[게르만어]], [[켈트어]]<ref>{{저널 인용|제목=“Mad” Elves and “Elusive Beauty”: Some Celtic Strands of Tolkien's Mythology []|저널=Folklore|성=Fimi|이름=Dimitra|url=https://doi.org/10.1080/00155870600707847|날짜=2006-08-01|권=117|호=2|쪽=156–170|doi=10.1080/00155870600707847|issn=0015-587X}}</ref>, [[핀란드어]]<ref>{{뉴스 인용|url=https://news.nationalgeographic.com/news/2001/12/1219_tolkienroots.html|제목=news.nationalgeographic.com|확인날짜=6월 22일}}</ref>, [[그리스어]]<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kr/books?id=I33v5ny3NX0C&pg=PA77&redir_esc=y#v=onepage&q&f=false|제목=A Question of Time: J.R.R. Tolkien's Road to Faërie|성=Flieger|이름=Verlyn|날짜=2001|출판사=Kent State University Press|언어=en|isbn=978-0-87338-699-9}}</ref>에 영향을 많이 받은 재능 있는 언어 학자였다. 또한 톨킨의 [[영국]] 시골에서의 어린 시절과 [[버밍엄]]의 성장은 톨킨에게 [[샤이어 (판타지)|샤이어]]의 창조에 영향을 미쳤고, [[세계 1차 대전]]의 참호는 [[모르도르]]를 창조하는데 영향을 미쳤다.<ref>{{웹 인용|url=https://www.bbc.com/culture/article/20141120-the-hobbits-and-the-hippies|제목=Hobbits and hippies: Tolkien and the counterculture|성=Ciabattari|이름=Jane|언어=en|확인날짜=2021-06-22}}</ref>
=== 팬덤 ===
톨킨의 열성적인 팬들은 [[톨키니스트]]라고 불린다. 열성적인 [[톨키니스트]]들은 다른 팬덤의 팬들과 규모와 깊이를 달리한다. 대부분의 팬덤의 팬들은 상업적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톨키니스트]]들은 학문, 철학적으로 파고드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톨킨만을 연구하는 [[톨킨학]]이 있을정도이다.
== 정치와 인종 ==
톨킨의 판타지 저작은 인종에 대한 구식적인 태도를 구현하는 것으로 비판을 받아왔다.<ref name="Yatt">{{뉴스 인용|url=https://www.theguardian.com/books/2002/dec/02/jrrtolkien.lordoftherings|title=Wraiths and Race|last=Yatt|first=John|date=2 December 2002|newspaper=[[The Guardian]]|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30826185122/http://www.theguardian.com/books/2002/dec/02/jrrtolkien.lordoftherings|archive-date=26 August 2013|url-status=live|access-date=25 May 2010|df=dmy-all}}</ref><ref>{{웹 인용|url=http://www.rediff.com/news/2003/jan/08lord.htm|title=The Lord of the Rings rooted in racism|last=Bhatia|first=Shyam|date=8 January 2003|publisher=Rediff India Abroad|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01103144856/http://www.rediff.com/news/2003/jan/08lord.htm|archive-date=3 November 2010|url-status=live|access-date=4 December 2010|df=dmy-all}}</ref>
또한 톨킨은 [[오크]]의 이미지를 [[몽골]]에서 따왔다고 지인에게 편지를 보냈고 이 점을 들어 일부 사람들은 고의는 아니지만 무의식적으로 [[백인우월주의]]사상을 가지고 있지않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ref>{{웹 인용|url=http://theconversation.com/was-tolkien-really-racist-108227|제목=Was Tolkien really racist?|성=Fimi|이름=Dimitra|언어=en|확인날짜=2021-06-29}}</ref>
사실 톨킨의 편지를 읽어보면 [[요정 (가운데땅)|요정]]이 [[모르고스]]에 의해 타락해서 [[오크]]가되었다고 묘사되었으며,<ref>{{웹 인용|url=https://tolkien.tistory.com/259|제목=Orc 오크의 기원, 유래, 특성과 관련된 오해와 진실|날짜=2011-10-01|확인날짜=2021-07-04|archive-date=2021-07-09|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10709182720/https://tolkien.tistory.com/259|url-status=}}</ref> [[트롤]] 역시 [[엔트]]가 타락하여 형성되었다 묘사되었다고 묘사되어있다.<ref>{{웹 인용|url=http://www.joysf.com/forum_fantasy/4441033|제목=www.joysf.com/forum_fantasy/4441033|확인날짜=2021-07-05}}{{깨진 링크|url=http://www.joysf.com/forum_fantasy/4441033 }}</ref> 또한 톨킨을 인종차별을 증오하기까지 했다고 말하였다.<ref>{{웹 인용|url=http://tolkiengateway.net/wiki/Racism_in_Tolkien%27s_Works#Tolkien_on_Racism|제목=Racism in Tolkien's Works - Tolkien Gateway|확인날짜=2021-06-22}}</ref> 또한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정책을 뼛속까지 증오했다고 지인들에게 자주 말했을 정도로 인종차별을 증오하였다. 그리고 그는 [[나치 독일]]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인 모습을 지인들 앞에서 보여주었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telegraph.co.uk/books/news/jrr-tolkiens-orcs-no-racist-george-lucass-stormtroopers/|제목=JRR Tolkien’s orcs are no more racist than George Lucas’s Stormtroopers|성=Power|이름=Ed|날짜=2018-11-27|뉴스=The Telegraph|언어=en-GB|issn=0307-1235|확인날짜=2021-06-22}}</ref>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증오하였다고 한 톨킨도 백인들의 인종차별에서 톨킨은 자유롭지 못했다. 그나마 인종차별이 가장 덜한 [[미국]] 서부에서도 아직 인종차별 반대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이다. 또한 [[미국]] [[몽고메리시]]에서 흑인이 백인에게 버스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서 흑인 봉기가 일어난 것도 [[반지의 제왕]]을 쓴 후에 일어났다. 또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를 연설을 하기 10년전에 [[반지의 제왕]]이 씌어지고 난 뒤다.
== 자연 ==
대부분의 생물 보존주의는 아직 정치적 의제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톨킨 자신은 숲에 대한 그의 사랑과 삼림 벌채에 대한 슬픔에 대한 개인적인 편지를 제외하고는 그의 견해를 직접 표현하지 않았다. 나중에 톨킨에 대한 전기 또는 문학 분석의 많은 저자는 [[반지의 제왕]]을 쓰는 동안 톨킨의 야생 및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의 가치와 야생 자연의 남은 것을 보호하는 데 관심을 갖게되었다.<ref>{{웹 인용|url=http://eprints.glos.ac.uk/791/1/Tolkien%20and%20Trees%20PDF.pdf|제목=톨킨(PDF)|확인날짜=2021-07-04}}</ref>
== 출판 목록 ==
<span style="background-color:moccasin;width:50px;border:1px solid #aaaaaa"> </span> 은 [[가운데땅]]과 관련있는 책이다.
=== 톨킨 생애에 출판 ===
{| class="wikitable sortable" border="2" cellpadding="4" cellspacing="0" style="margin: 1em 1em 1em 0; background: #f9f9f9; border: 1px #aaa solid; border-collapse: collapse; font-size: 95%;"
!align="left"|날짜 순
! width="250" align="left" |제목
!align="left"|원어제목
!align="left"|한국어 발행 여부
|-
|- style="background:moccasin"
|align="center"|[[1937년]]
|align="left"|《[[호빗 (소설)|호빗]]》
|align="left"|The Hobbit
|align="left"|발행
|-
|align="center"|[[1939년]]
|align="left"|《[[요정 이야기]]》/에세이
|align="left"|On fairy stories
|align="left"|-
|-
|align="center"|[[1947년]]
|align="left"|《[[니글의 이파리]]》
|align="left"|Leaf by Niggle
|align="left"|발행<ref name=story1>《[[니글의 이파리]]》,《[[햄의 농부 가일스]]》,《[[톰 봄버딜의 모험|톰 봄바딜의 모험]]》,《[[큰 우튼의 대장장이]]》는 한국어 번역본으로는 《[[위험천만 왕국이야기]]》가 있다. - {{ISBN|9788956371160}}
</ref>
|-
|align="center"|[[1949년]]
|align="left"|《[[햄의 농부 가일스]]》/우화
|align="left"|Farmer Giles of Ham
|align="left"|발행<ref name=story1/>
|-
|- style="background:moccasin"
|align="center"|[[1954년]]
|align="left"|《[[반지 원정대]]》
|align="left"|The Fellowship of The Ring
|align="left"|발행
|-
|- style="background:moccasin"
|align="center"|[[1954년]]
|align="left"|《[[두 개의 탑]]》
|align="left"|The Two Towers
|align="left"|발행
|-
|- style="background:moccasin"
|align="center"|[[1955년]]
|align="left"|《[[왕의 귀환]]》
|align="left"|The Return of the King
|align="left"|발행
|-
|- style="background:moccasin"
|align="center"|[[1962년]]
|align="left"|《[[톰 봄바딜의 모험]]》/시집
|align="left"|The Adventures of Tom Bombadil
|align="left"|발행<ref name=story1/>
|-
|- style="background:moccasin"
|align="center"|[[1962년]]
|align="left"|《[[나뭇잎과 잎사귀]]》
|align="left"|Tree and Leaf
|align="left"|-
|-
|- style="background:moccasin"
|align="center"|[[1967년]]
|align="left"|《[[길은 계속해서 이어 진다오]]》
|align="left"| The Road Goes Ever On
|align="left"|-
|-
|align="center"|[[1967년]]
|align="left"|《[[큰 우튼의 대장장이]]》
|align="left"|Smith of Wootton Major
|align="left"|발행<ref name=story1/>
|}
=== 사후 출판 ===
{| class="wikitable sortable" border="2" cellpadding="4" cellspacing="0" style="margin: 1em 1em 1em 0; background: #f9f9f9; border: 1px #aaa solid; border-collapse: collapse; font-size: 95%;"
!align="left"|날짜 순
! width="250" align="left" |제목
!align="left"|원어제목
!align="left"|한국어 발행 여부
|-
|align="center"|[[1975년]]
|align="left"|《[[가웨인 경과 녹기사]]》
|align="left"|Sir Gawain & the Green Knight, Pearl
|align="left"|발행
|-
|align="center"|[[1976년]]
|align="left"|《[[북극에서 온 편지]]》
|align="left"|The Father Christmas Letters
|align="left"|발행
|-
|- style="background:moccasin"
|align="center"|[[1977년]]
|align="left"|《[[실마릴리온]]》
|align="left"|The Silmarillion
|align="left"|발행
|-
|- style="background:moccasin"
|align="center"|[[1980년]]
|align="left"|《[[끝나지 않은 이야기|누메노르와 가운데땅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align="left"|Unfinished Tales
|align="left"|-
|-
|- style="background:moccasin"
|align="center"|[[1981년]]
|align="left"|《[[톨킨 서간집]]》/편지모음
|align="left"|The Letters of J. R. R. Tolkien
|align="left"|-
|-
|align="center"|[[1982년]]
|align="left"|《[[블리스씨 이야기]]》
|align="left"|Mr. Bliss
|align="left"|발행
|-
|align="center"|[[1982년]]
|align="left"|《[[핀과 헨게스트]]》
|align="left"|Finn and Hengest
|align="left"|-
|-
|align="center"|[[1983년]]
|align="left"|《[[괴물과 비평가]]》/비평,에세이
|align="left"|The Monsters and the Critics
|align="left"|-
|-
|- style="background:moccasin"
|align="center"|[[1983년]] <br />~[[1996년]]
|align="left"|《[[가운데땅의 역사]]》
# 《[[잃어버린 이야기들의 책 1]]》(1983)
# 《[[잃어버린 이야기들의 책 2]]》(1984)
# 《[[벨레리안드의 노래]]》(1985)
# 《[[가운데땅의 형성]]》(1986)
# 《[[잃어버린 길과 다른 저작물]]》(1987)
# 《[[어둠의 귀환]]》(1988) (반지의 제왕의 역사 1권)
# 《[[아이센가드의 반란]]》(1989) (반지의 제왕의 역사 2권)
# 《[[반지 전쟁]]》(1990) (반지의 제왕의 역사 3권)
# 《[[사우론의 몰락]]》(1992) (반지의 제왕의 역사 4권)
# 《[[모르고스의 반지]]》(1993) (실마릴리온 이후의 역사 1권)
# 《[[보석 전쟁]]》(1994) (실마릴리온 이후의 역사 1권)
# 《[[가운데땅의 사람들]]》(1996)
|align="left"|The History of Middle-earth
# The Book of Lost Tales 1
# The Book of Lost Tales 2
# The Lays of Beleriand
# The Shaping of Middle-earth
# The Lost Road and Other Writings
# The Return of the Shadow
# The Treason of Isengard
# The War of the Ring
# Sauron Defeated
# Morgoth's Ring
# The War of the Jewels
# The Peoples of Middle-earth
|align="left"| -
|-
|- style="background:moccasin"
|align="center"|[[1990년]]
|align="left"|《빌보의 마지막 노래》
|align="left"|Bilbo's Last Song
|align="left"| -
|-
|align="center"|[[1998년]]
|align="left"|《[[로버랜덤]]》
|align="left"|Roverandom
|align="left"|발행
|-
|- style="background:moccasin"
|align="center"|[[2007년]]
|align="left"|《[[후린의 아이들]]》
|align="left"|The Children of Húrin
|align="left"|발행
|-
|- style="background:moccasin"
|align="center"|[[2007년]]
|align="left"|《[[호빗의 역사]]》
|align="left"|The History of The Hobbit
|align="left"| -
|-
|align="center"|[[2009년]]
|align="left"|《[[지구르드와 구드룬의 전설]]》
|align="left"|The Legend of Sigurd and Gudrún
|align="left"|
|- style="background:moccasin"
|align="center"|[[2015년]]
|align="left"|《[[쿨레르보의 이야기]]》
|align="left"|The Story of Kullervo
|align="left"| -
|}
== 참고 ==
=== 내용주 ===
{{Notelist}}
=== 참조주 ===
{{각주}}
=== 톨킨을 연구한 저서 ===
다음은 톨킨과 그의 세계에 대한 수많은 책들 중에 중요한 것들을 추린 것이다. 저자는 톨킨이 아니며 톨킨 문학을 연구한 사람들의 책이다.
* 1977년 [[J. R. R. 톨킨: 전기]]''(J. R. R. Tolkien: A Biography)'' -[[험프리 카펜터]](Humphrey Carpenter)(한국어판 제목: 톨킨 전기)
* 1978년 [[가운데 땅 완벽 안내서]]''(The Complete Guide to Middle-earth)''(GtME) - [[로버트 포스터]](Robert Foster),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UT]]를 제외하고, [[반지의 제왕|반지]]부터 [[실마릴리온|실마]]까지 정리함)
* 1981년 [[프로도의 여행]]''(Journeys of Frodo)'' -[[바바라 스트라치]](Barbara Strachey) - an atlas of ''The Lord of the Rings'')
* 1981년 [[톨킨의 서간집]]''(The Letters of J. R. R. Tolkien)'' (편지들) - [[크리스토퍼 톨킨]]&[[험프리 카펜터]](Christopher Tolkien and Humphrey Carpenter)
* 1991년 [[가운데 땅 지도책]]''(The Atlas of Middle-earth)'' - [[카렌 윈 폰스테드]](Karen Wynn Fonstad) , 내용-반지의 제왕 · 호빗 · 실마릴리온 ·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지도책(an atlas of ''The Lord of the Rings'', ''The Hobbit'', ''The Silmarillion'', and ''The Unfinished Tales''), (한국어판 제목: 지도로 보는 반지의 제왕)
* 1991년 [[삽화를 곁들인 톨킨 백과사전]]''(Tolkien: The Illustrated Encyclopedia)'' - [[데이비드 데이]](David Day) (한국어판 제목: 톨킨 백과사전)
* 2000년 [[J. R. R. 톨킨: 세기의 작가]]''(J. R. R. Tolkien: Author of the Century)'' - [[T.A 쉬피]](T. A. Shippey)
== 외부 링크 ==
{{자매문서
|author=yes
|b=no |commons=J. R. R. Tolkien |m=no |mw=no |n=no |q=J. R. R. Tolkien |s=J. R. R. Tolkien
|species=no |species_author=no |v=no |voy=no |wikt=no
|d=y}}
; 톨킨 생애 및 작품 세계
* [http://www.tolkiensociety.org/tolkien The Tolkien Society]
* [http://www.tolkienlibrary.com 톨킨 라이브러리]<!--(작품 정보가 뛰어남)-->
* [http://earing.80port.net Eä of the Ring (한국)] {{웨이백|url=http://earing.80port.net/ |date=20091015061723 }}
* [http://www.glyphweb.com/arda/default.htm The Encyclopedia of Arda] (아르다 백과사전)
* [http://tolkiengateway.net 톨킨의 문] (또 다른 톨킨 위키 백과사전)
; 톨킨의 언어
* [http://www.elvish.org 엘프어 우정 연합]
* [https://web.archive.org/web/20031205011802/http://www.uib.no/People/hnohf/ 아르다람비온]
* [https://web.archive.org/web/20041001082217/http://www.elvish.org/gwaith/ Gwaith-i-phethdain]
* [http://cafe.naver.com/eldarin 네이버 카페 '알빗말 두레']
{{톨킨}}
{{톨킨가}}
{{베오울프}}
{{전거 통제}}
{{기본정렬:톨킨, 존 로널드 루엘}}
[[분류:J. R. R. 톨킨| ]]
[[분류:1892년 출생]]
[[분류:1973년 사망]]
[[분류:잉글랜드의 판타지 작가]]
[[분류:잉글랜드의 언어학자]]
[[분류:잉글랜드의 문헌학자]]
[[분류:잉글랜드의 대학 교수]]
[[분류:언어 창작자]]
[[분류:문자 발명가]]
[[분류:신화창조 작가]]
[[분류:대영제국 훈장 사령관]]
[[분류:SF 명예의 전당 헌액자]]
[[분류:독일계 영국인]]
[[분류:버밍엄 출신]]
[[분류:옥스퍼드 대학교 엑서터 칼리지 동문]]
[[분류:리즈 대학교 교수]]
[[분류:옥스퍼드 대학교 펨브룩 칼리지 교수]]
[[분류:옥스퍼드 대학교 머튼 칼리지 교수]]
[[분류:영국의 에스페란티스토]]
[[분류:영국의 반공주의자]]
[[분류:영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분류:20세기 시인]]
[[분류:톨킨가]]
[[분류:로커스상 수상작가]]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물고기 (영화)||영화}}
{{생물 분류
|이름=어류
|색=동물
|그림=Georgia Aquarium - Giant Grouper edit.jpg
|그림_설명=조지아 수족관에서 물고기들 사이를 헤엄치는<br />자이언트 그루퍼의 모습.
|그림2=Pterois volitans Manado-e edit.jpg
|그림2_설명=[[쏠배감펭]](Lionfish)
|계=[[동물|동물계]]
|문=[[척삭동물|척삭동물문]]
|미분류_강=[[유두동물]]
|하위_링크=상강 및 강
|하위=
*포함되는 분류군
:[[무악류|무악상강]] (Agnatha)
:[[멸종|†]] [[판피류|판피강]] (Placodermi)
:[[연골어류|연골어강]] (Chondrichthyes)
:[[조기어류|조기어강]] (Actinopterygii)
:[[육기어류|육기어강]] (Sarcopterygii)
*제외되는 분류군
:[[네발동물|사지상강]] (Tetrapoda)
}}
'''물고기''' 또는 '''어류'''(魚類)는 [[척추동물|척추동물아문]]에 속하는 [[동물]]의 하나다. 또한 척추동물 중에서 [[네발동물]]은 제외된다. 대체적으로 [[물]] 속에 살며 [[아가미]]로 호흡하며 지느러미로 움직이고 몸 표면이 비늘로 덮여 있는 냉혈동물로 주위 온도에 영향을 받는다.
또한 물고기는 지구상의 여러 수생 환경에서 분포하며, 그 서식지는 열대지방에서 극권, 내륙의 [[민물|담수]] 지역에서 해수 지역, 또한 [[해양]]의 표층에서 깊은 바다에까지 이르는 등 다양하다. 어류 전체의 종 수는 25,000~31,000 정도이며, 이는 [[척추동물]] 전체의 과반수에 해당한다.<ref>FishBase: [http://www.fishbase.org/search.php April 2009 Update.] 2010년 4월 10일 확인.</ref>
[[대한민국]]에서는 '''생선'''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보통 음식으로 분류된 이름이다. 상업적이고 자급자족을 하는 어부들은 생선을 야생에서 직접 잡든지, 아니면 호수나 바다의 우리에서 길러낸다. 오락으로 낚시광들에게 많이 잡히며, 물고기 애호가들은 잡아서 키우기도 한다. 여러 세기에 걸쳐 물고기는 문화적인 역할도 담당해 왔다. [[신]]이나 [[종교]]적 [[기호]]로서 추앙 받기도 하였고 [[예술]], [[책]], [[영화]]의 주제로도 쓰였다.
== 물고기의 다양성 ==
물고기라는 용어는 정확하게 말하면 [[사지동물]]이 아니면서 [[두개골]]이 있고, 평생에 걸쳐서 [[아가미]]가 있고, 만약 다리가 있다면 [[지느러미]]의 형상을 하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호칭한다.
<ref>{{서적 인용
|제목 = Fishes of the World
|성 = Nelson
|이름 = J. S.
|저작년도 = 2006년
|p=2
}}</ref>
[[새|조류]]나 [[포유류]]와는 달리 [[어류]]는 단 하나의 [[분기군]]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측계통군]]으로 이루어진 [[계통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는 [[먹장어]], [[칠성장어]], [[상어]] 및 [[가오리]], [[조기어류]], [[실러캔스]], [[폐어]]가 포함된다.<ref name="publishing3"/><ref name="treeoflife">Tree of life web project – [http://tolweb.org/Chordata/2499 Chordates] {{웨이백|url=http://tolweb.org/Chordata/2499 |date=20070224172716 }}.</ref>
전형적인 물고기들은 [[변온동물|변온]] [[냉혈동물]]이다. 이들은 빠르게 헤엄쳐 나가기 위한 [[유선형]]의 몸체를 지녔으며, [[아가미]]를 통해 물에서 [[산소]]를 추출해 내든지, 대기의 [[산소]]를 이용하기 위한 부수적인 호흡기관을 사용한다. 또한 이들은 두쌍의 [[지느러미]]를 지니고 있고, 한두 개(드물게는 세 개도 있다)의 등지느러미, 뒷지느러미, 꼬리지느러미가 있으며, [[턱]]이 있고 보통 [[비늘]]로 덮인 피부가 있으며 알을 낳는다.
[[파일:leafydragon.jpg|섬네일|200px|물고기는 다양한 크기로 존재한다. 이것은 [[해마 (동물)|해마]]와 가까운 친척간인 [[리피해룡]]이다. 이들의 나뭇잎처럼 생긴 부속물들은 그들로 하여금, 쉽게 떠다니는 해초들 사이에 섞일 수 있게 해준다. |alt=Photo of fish with many narrow, straight appendages. Some are end in points, and others are longer, ending in two or three approximately flat, triangular flaps, each with a dark spot.]]
모든 기준에는 예외가 있다. [[참치]], [[황새치]], 또 [[상어]]의 몇몇 종들은 어느 정도의 [[온혈]] [[적응]]을 나타낸다. 이들은 주위 수온보다 확실하게 체온을 높일 수 있다.<ref name="publishing3"/> 물고기마다 유선형의 정도와 수영능력의 효율은 각기 다른데, [[참치]], [[연어]] 그리고 [[전갱이]]는 자신의 몸 길이의 10배에서 20배까지도 초당 수영이 가능한 반면, [[뱀장어]]나 [[가오리]]등과 같이 초당 자신의 몸 길이의 반 정도도 못가는 종류들도 있다.
<ref name="publishing3">{{
harvnb|Helfman
|Collette
|Facey
|1997
|p=103
}}</ref>
수많은 [[민물고기]]류는 물에서처럼 다양한 구조들을 이용하여 공기에서부터도 산소를 추출해 내는데, [[폐어]]들은 [[사지동물]]들의 그것과 비슷한 한 쌍의 [[허파]]를 지니고 있고, [[구라미]]들은 [[코리도라스]] 등의 메기들에서 많이 보이는, 내장기관이나 장을 이용한 산소 추출 과정과 비슷한 작용을 해 주는 [[미로기관]]이라 불리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ref>{{harvnb|Helfman|Collette|Facey|1997|pp=53–57}}</ref> 몸체의 형태와 그 [[지느러미]]들의 배열은 매우 다양한데, [[해마 (동물)|해마]], [[복어]], [[아구]] 또는 심해어인 [[풍선장어]]에서 보이는 전혀 물고기 같지 않은 형태들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과 비슷하게 "피부의 표면"도, 벗겨진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판금모양으로 분류되는(보통의 [[상어]]와 [[가오리]])것들, [[코스모이드]](cosmoid)로 분류되는 것들(멸종된 [[폐어]]와 [[실러캔스]]에서 볼 수 있음), [[경린어]]로 분류되는 것들(다양한 멸종어류에서 보이지만 [[가아]]와 [[폴립테루스]]에서는 아직도 발견된다), [[원린어]]로 분류되는 것들, [[즐린류]]로 분류되는 것들 등(마지막의 두 가지는 [[경골어류]]이다)의 많은 종류의 다양한 비늘로 덮인 것들이 있다.<ref>{{harvnb|Helfman|Collette|Facey|1997|pp=33–36}}</ref> 육지에서 대부분 살아가는 물고기들도 있다. [[말뚝망둥어]]들은 개펄에서 먹이도 먹고, 다른 망둥어들과 교류를 하다가 동굴에 숨기 위해 물속으로 들어간다.<ref>{{피시베이스
|genus=Periophthalmus
|species=barbarus
|year=2006
|month=November
|id=12803
}}</ref>
[[메기]], ''Phreatobius cisternarum''는 땅속에서 사는데, [[지하]]거주라 불리고, 상대적으로 물에 흠뻑 젖은 [[낙엽]] 더미 안에서 산다.
<ref>
{{피시베이스
|genus=Phreatobius
|species=cisternarum
|year=2006
|month=November
}}
</ref>
<ref>{{웹 인용
|url=http://www.planetcatfish.com/catelog/species.php?species_id=646
|제목=Cat-eLog: Heptapteridae: ''Phreatobius'': ''Phreatobius'' sp. (1)
|저자=Planet Catfish
|출판사=Planet Catfish
|확인날짜=26 November 2006
|archive-date=2006-10-23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61023092123/http://www.planetcatfish.com/catelog/species.php?species_id=646
|url-status=
}}</ref>
물고기들의 크기는 16 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고래상어]]에서부터, 8 밀리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스타우트 인펀트피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조개]], [[오징어]], [[불가사리]], [[가재]], [[해파리]]와 같이 미국에서 보통 물고기(fish)라 부르는 많은 종류의 [[수생동물]]들은 사실 위의 기준으로 분류하면 "물고기"가 아니다. 과거에는 생물학자들조차 제대로 된 구분을 하지 못했었다. 16세기의 자연 역사학자들은 수생 무척추동물들은 물론, [[바다표범]], [[고래]], [[양서류]], [[악어]], 거기다가 [[하마]]까지도 물고기로 분류했었다.<ref>Jr.Cleveland P Hickman, Larry S. Roberts, Allan L. Larson: Integrated Principles of Zoology, McGraw-Hill Publishing Co, 2001, {{ISBN|0-07-290961-7}}</ref> 어떤 문헌들에서는 [[수산양식]]을 위한 것들에서 더욱 특별하게, 다른 동물들과 구분하기 위해 진정한 물고기들을 "지느러미 물고기(fin fish)"라고 부른다.
== 분포 ==
모든 물고기는 물 속에서 서식한다. 수중에 포함되어 있는 [[염분]]의 환경에 따라, 바다 및 염분이 포함된 호수 등에서 생활하는 [[해수어]]와 강, 냇가와 습지 등의 민물 지역에서 생활하는 [[담수어]]로 편의상 나눈다. 물론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 섞이는 강의 어귀 등의 지역에서 생활하는 물고기나, 바닷물과 민물 어디서든 생활할 수 있는 물고기도 있어, 바닷물에 사는 물고기와 민물에 사는 물고기를 엄밀하게 나누지는 않는다.
그 밖에, 수심 200미터 이하의 [[심해]] 지역에서 생식하는 [[심해어]]나, [[지하수]] 등지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도 있다. 한편 물고기는 대부분 아가미로 호흡하지만, 예외적으로 허파, 피부 등으로 호흡하며, 갯벌이나 습지와 같은 지역에서 생활하는 물고기도 있다. (예: [[망둥이]]) 그러나 이러한 물고기도 육지에 있는 시간이 긴 경우에도 피부가 건조해지는 경우 살아가지 못하며, 번식이나 치어 등의 생활환경은 물 속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 분류 ==
예전엔 어류를 '''어상강'''(魚上綱)이라는 하나의 [[강 (생물학)|상강]]으로 묶어 놓고 분류하였으나, 최근에는 어상강이란 분류를 없애고 다시 나누어서 [[뼈]]가 [[연골]]인 어류는 상강의 분류가 없는 [[연골어류|연골어강]] 또는 [[판피어류|판피어강]]으로, 뼈가 경질인 어류는 [[경골어류|경골어상강]]으로 분류한다.
[[어류]]는 [[측계통군]]이다. 이는 모든 [[어류]]를 포함하고 있는 어떤 [[분기군]]이든지, 그 [[분기군]]안에는 [[어류]]가 아닌 [[네발동물]]들도 역시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이유로 오래된 참고 문헌 등에서 보이는 "어강(魚綱, Pisces)"과 같은 분류는 더 이상 공식적인 분류로 사용하지 않는다.
[[어류]]는 다음과 같은 주요 그룹으로 분류한다.
* [[먹장어|먹장어강]] (Myxini) - [[먹장어]]
* [[멸종|†]] [[익갑류|익갑강]] - 초기의 턱뼈없는 어류
* [[멸종|†]] [[텔로돈티강]] (Thelodonti)
* [[멸종|†]] [[결갑류|결갑강]] (Anaspida)
* [[칠성장어강]] (Petromyzontida 또는 Hyperoartia)
** [[칠성장어과]] (Petromyzontidae) - [[칠성장어]]
* [[멸종|†]] [[코노돈트강]] (Conodonta)
* [[멸종|†]] [[두갑류|두갑강]] (Cephalaspidomorphi) - 초기의 턱뼈없는 어류
** (미분류) [[멸종|†]] [[갈레아스피다강]] (Galeaspida)
** (미분류) [[멸종|†]] [[피투리아스피스강]] (Pituriaspida)
** (미분류) [[멸종|†]] [[골갑류|골갑강]] (Osteostraci)
* [[유악류|유악하문]] (Gnathostomata) - 턱뼈있는 척추동물
** [[멸종|†]] [[판피류|판피강]] (Placodermi)
** [[연골어류|연골어강]] (Chondrichthyes)
*** [[판새류|판새아강]] (Elasmobranchii) - 판새강(Elasmobranchii)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 [[전두어류|전두어아강]] (Holocephali) - 전두어강( Holocephali)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 [[멸종|†]] [[극어류|극어강]] (Acanthodii)
** [[경골어류|경골어상강]] (Osteichthyes)
*** [[조기어류|조기어강]] (Actinopterygii)
**** [[연질어류|연질아강]] (Chondrostei)
***** [[철갑상어목]] (Acipenseriformes) - [[철갑상어]] 등
***** [[다기어목]] (Polypteriformes)
**** [[신기어류|신기아강]] (Neopterygii)
***** [[전골어류|전골어하강]] (Holostei)
***** [[진골어류|진골어하강]] (Teleostei)
*** [[육기어류|육기어강]] (Sarcopterygii)
**** [[실러캔스|총기어아강]] (Coelacanthimorpha) - [[실러캔스]]
**** [[폐어류|폐어아강]] (Dipnoi) - [[폐어]]
일부 고생물학자들은 [[코노돈트]]가 [[척삭동물]]이기에 초기 [[어류]]라고 주장한다. 더 많은 자료를 위해서는 [[척추동물]] 부분을 보라.
다양한 종류의 [[어류]] 집단들은 반 이상이 [[척추동물]]이라고 간주된다. 현존하는 종은 28,000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27,000개가 딱딱한 뼈가 있는 생선들이고, 970개가 [[상어]], [[가오리]], 그리고 [[은상어]] 등의 [[연골어류]]이다. 108개 정도는 [[먹장어]]와 [[칠성장어]]의 종이다.<ref>{{harvnb|Nelson|2006|p=4–5}}</ref> 이러한 종들의 3분의 1은 9개의 거대한 과(family)에 포함된다. 가장 큰 과부터 가장 작은 과까지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잉어]]과, [[망둑어]]과, [[키클리]]과, [[카라신]]과, [[로리카리아]]과, [[종개]]과, [[농어]]과, [[놀래기]]과, 그리고 [[볼락]]과가 그것들이다. 64개의 과들이 하나의 종(Species)만을 가진 [[단형종]]이다. 생존하는 모든 종의 숫자는 32,500개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ref>{{harvnb|Nelson|2006|p=3}}</ref>
== 해부 ==
[[파일:Lampanyctodes hectoris (Hector's lanternfish).svg|섬네일|왼쪽|350px|''Lampanyctodes hectoris''의 해부도 <br /><small> (1) – 아가미 뚜껑 (2) – 옆줄(측선) (3) – 등지느러미 (4) – fat fin, (5) – caudal peduncle, (6) – 꼬리지느러미 (7) – 뒷지느러미 (8) – photophores, (9) – 배지느러미 (10) – 가슴지느러미</small>]]
=== 외부 구조 ===
물고기의 지느러미는 다양한 기능을 하는데, 가슴지느러미는 물고기의 좌우 균형을 잡으며, 배 지느러미는 알을 옮기는 등의 기능을 한다. 뒷지느러미는 몸의 흔들림을 방지하고 전진운동을 도우며, 꼬리지느러미는 추진력을 낸다. 등지느러미는 몸을 지지하고 전진운동을 도우며, 극조와 연조로 나눌 수 있다.
옆줄(측선)은 물의 온도, 흐름, 수압, 진동을 감지한다.
=== 호흡기관 ===
대부분의 [[어류]]는 [[인두]]의 양 옆에 달려있는 [[아가미]]를 이용해서 기체를 교환한다. [[아가미]]는 [[필라멘트]]라 불리는 실 같은 구조를 지닌다. 각각의 [[필라멘트]]는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하기 위한 넓은 면적을 제공하는 [[모세혈관]]의 망상조직을 지니고 있다. [[어류]]는 산소가 풍부한 물을 입을 통해서 빨아들여, [[아가미]]를 통해 내뿜으로써 기체를 교환한다. 어떤 [[어류]]는 물과는 반대 반향으로 [[모세관]]을 흐르는 혈액이 [[역흐름교환]]을 만들어 내면서 흐른다. [[아가미]]는 [[인두]] 양 옆의 열리는 부분을 이용해서 산소가 없어진 물을 뱉어낸다. [[상어]]나 [[칠성장어]]류는 여러 개의 [[아가미]] 입구를 가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류]]는 양옆에 한쌍의 [[아가미]]입구가 있다. 이 입구는 [[삭개]](영어: operculum)로 불리는 단단한 뼈 아래 숨어 있다.
어린 [[비처허파고기]]는 [[아가미]]가 바깥에 달려 있다. 이는 양서류의 유충에서도 볼 수 있는 매우 원초적인 형태이다.
[[파일:Swim bladder.jpg|섬네일|300px|[[잉어과]] 물고기의 부레|alt=Photo of white bladder that consists of a rectangular section and a banana-shaped section connectd by a much thinner element]]
많은 [[어류]]는 다양한 절차를 이용해서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다. [[뱀장어과]]어류는 피부를 통해 [[산소]]를 빨아들인다고 알려져 있다. [[전기뱀장어]]의 움푹 파인 볼의 기관은 공기를 흡입하는 기관이라 여겨진다. [[로리카리아과]], [[칼리크티스과]], 그리고 [[스콜로플레이시드과]]의 메기들은 소화관을 통해 산소를 빨아들인다.<ref name="Armbruster1998">{{저널 인용|url=http://www.auburn.edu/academic/science_math/res_area/loricariid/fish_key/Air.pdf|제목=Modifications of the Digestive Tract for Holding Air in Loricariid and Scoloplacid Catfishes|journal=[[Copeia]]|year=1998|issue=3|pages=663–675|format=PDF|확인날짜=25 June 2009}}</ref> [[폐어]]와 [[폴립테루스]]들은 [[네발동물]]들과 비슷한 한쌍의 [[폐]]를 갖고있다. 이들은 신선한 공기를 입으로 들이마시고, [[아가미]]로 뱉어내기위해 떠올라야만 한다. [[가아]]와 [[보우핀]]은 똑같은 작용을 하도록 혈관이 발달된 [[부레 (기관)|부레]]를 갖고있다. [[미꾸라지]], [[울프피쉬]], 그리고 많은 [[메기]]들은 공기를 내장에 통과시킴으로써 숨을 쉰다. [[망둥어]]들은 피부로 산소를 빨아들이는데, 이는 [[개구리]]와 비슷하다. 꽤 많은 [[어류]]가 [[숨쉬는 부속기관]]이라 불리는 기관들을 지니도록 진화했다. [[구라미]]와 [[베타]]같은 물고기들은 [[아가미]] 위에 이 기능을 수행하는 하나의 [[미로기관]]을 지니고 있다. 다른 몇몇 [[어류]]는 [[미로기관]]과 형태와 기능에서 비교되는 구조들을 갖는다. 가장 많이 알려진것은 [[가물치]], 그리고 [[공기호흡메기과]]에 속하는 메기들이다.
[[공기]]를 호흡하는 것은 원래 계절마다 물의 수위가 달라짐으로써 그 물에 녹아 있는 산소량 또한 계절별로 줄어드는 [[늪지대]]에 서식하는 [[어류]]들을 위한 [[적응]]이다. 진흙보다 약간 더 젖어있다고 여겨질만한 물에서는, 공기 호흡이 가능한 물고기들은 훨씬 오래 생존하는 반면, [[파치]]나 [[시클리드]]와 같은 순전히 용해된 산소에만 의존하는 물고기들은 쉽게 질식사한다. 가장 극한의 상황에서 몇몇 종의 폐어들은 습기가 많은 굴 안에서 다시 물이 돌아올 때까지 [[여름잠]](aestivation)라 불리는 상태에 들어감으로써 몇 주에 걸쳐 물 없이 생존할 수 있다.
[[파일:Tuna Gills in Situ 01.jpg|섬네일|300px| [[참치]]의 머리부분에 있는 [[아가미]]. The fish head is oriented snout-downwards, with the view looking towards the mouth.|alt=Photo of fish head split in half longitudinally with gill filaments crossing from top to bottom]]
[[어류]]는 "불가피한 공기 호흡어"와 "임의적인 공기호흡어"로 분류할 수 있다. [[아프리카 폐어]]같은 불가피한 공기호흡어는 주기적으로 공기를 호흡해야"만"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질식사한다. 플레코 같은 임의적인 공기 호흡어들은 그들이 원할때만 호흡하고, 그 밖에는 [[아가미]]를 이용해 산소를 호흡한다. 대부분의 공기호흡어들은 지상에서 서는데 사용되는 에너지 비용이나, 지상의 [[포식동물]]에게 노출되는데 따른 체력적 비용을 피하는 "임의적인 공기호흡어"들이다.<ref name="Armbruster1998" />
=== 순환기관 ===
[[어류]]는 [[폐쇄순환회로]]를 지니고 있다. [[심장]]은 하나의 경로를 통해 신체에 [[혈액]]을 공급한다. 대부분의 [[어류]]에서 [[심장]]은 두 개의 방과 입구, 출구의 4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ref name="Setaro">{{서적 인용 | 성 =Setaro | 이름 =John F. | 연도 =1999 | 제목 =Circulatory System | 출판사 =Microsoft Encarta 99}}</ref> 첫 번째 부분은 얇은 벽을 지닌 주머니인 [[정맥동]]이다. 이것은 [[어류]]의 두 번째 부분인, 거대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방인 [[심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정맥]]으로부터 [[혈액]]을 모은다. [[심방]]은 [[결방]]으로써 [[혈액]]을 일방통행시키는 역할과 세 번째 부분인 [[심실]]로 보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심실]]은 또다른 근육으로 이루어진 방인데, 첫 번째 부분부터 네 번째 부분인 [[동맥구]]로 [[혈액]]을 뿜어준다. [[동맥구]]는 큰 관인데 이를 통해 [[심장]] 바깥으로 나간다. [[동맥구]]는 산소를 얻기위해 [[혈액]]이 [[아가미]]로 흐르는 [[대동맥]]으로 연결된다.
=== 소화기관 ===
[[어류]]의 턱뼈는 식물에서부터 다른 기관들까지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섭취할 수 있게 해준다. [[어류]]는 음식을 [[입]]으로 섭취하고, [[식도]]로 부셔서 내려보낸다. [[내장]]에서 음식은 더욱 소화되어 많은 [[어류]]에서 손가락 모양의 유문수라 불리는 주머니 안에서 분비되는 소화[[효소]]에 의해 영양분으로 흡수된다. [[간]]이나 [[췌장]]같은 기관들은 음식이 소화기관을 따라 이동하는 과정에서 소화효소와 다양한 화학물질들을 더한다. [[장]]에서는 [[소화]]의 과정과 [[영양분]]의 [[흡수]]를 끝낸다.
=== 배설기관 ===
다른 많은 해양 동물들처럼 대부분의 [[어류]]는 질소 폐기물들을 [[암모니아]]의 형태로 배출한다. 어떤 폐기물들은 [[아가미]]를 통해 [[확산]]된다. 혈액의 폐기물들은 [[신장]]에서 걸러진다.
[[해수어]]들은 [[삼투]](영어:osmosis)로 인해 물을 잃게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들의 [[신장]]은 물을 다시 신체로 되돌려준다. 반대의 작용이 [[담수어]]에서 일어난다. 이들은 [[삼투압]]으로 인해 물을 흡수하게 된다. 이들의 [[신장]]은 배설을 위해 묽은 소변을 만든다. 어떤 [[어류]]는 [[민물]], 즉 [[민물|담수]]에서 [[해수]]로 이동할 수 있도록 특별히 적응된 [[신장]]을 지닌다.
=== 비늘 ===
[[어류]]의 비늘은 [[피부]]를 이루는 [[중배엽]](영어: mesoderm)에서 기원한다. 보통 [[이빨]]과 비슷한 구조를 지녔다고 본다. 비늘에는 식물의 [[나이테]]와 같은 원 모양의 테두리가 있는데, 이 테두리가 곧 나이라는 설이 있다.
=== 감각수용, 신경기관 ===
[[파일:Fish brain.png|섬네일|150px|[[무지개농어]]의 [[뇌]]를 등쪽에서 본 그림.|alt=Anatomical diagram showing the pairs of olfactory, telencephalon, and optic lobes, followed by the cerebellum and the mylencephalon]]
==== 중앙신경기관 ====
[[어류]]는 다른 [[척추동물]]과 몸크기와의 상대적 비율로 비교해볼때, 전형적으로 작은 [[뇌]]를 지닌다. 이는 다른 비슷한 크기의 [[새|조류]]나 [[포유류]]의 [[뇌]]의 용적의 1/15정도에 불과하다.
<ref name="Helfman_brain">
{{harvnb
|Helfman
|Collette
|Facey
|1997
|pp=48–49
}}
</ref>
그러나 어떤 [[어류]]는 상대적으로 큰 [[뇌]]를 지니는데, 엘레펀트 피쉬나 [[상어]]들이 그러하다. 이들의 뇌는 거의 [[새|조류]]나 [[주머니쥐]]의 몸 크기 당 뇌 용적과 비슷하다.
<ref>
{{harvnb
|Helfman
|Collette
|Facey
|1997
|p=191
}}
</ref>
[[어류]]의 [[뇌]]는 몇개의 영역으로 나뉜다. 앞쪽이 한쌍의 구조를 지니고, 두개의 [[후신경]]으로부터 신호를 받고 처리하는, [[뇌]]의 [[후엽]]이다.<ref name = "Helfman_brain" /> [[먹장어]], [[상어]] 그리고 [[메기]] 등의 사냥을 위해 [[냄새]]를 주로 사용하는 물고기들에게서 이 [[후엽]]은 매우 크다. 이 [[후엽]]은 고등 [[척추동물]]에서의 [[대뇌]]와 같은 구조적 위상을 지닌, 두개의 둥글게 말린 [[종뇌]]로 이어진다. [[어류]]에서 [[종뇌]]는 대개 [[후각]]에 관계된다.<ref name = "Helfman_brain" /> 이 두개의 구조가 "전뇌"를 구성한다.
[[간뇌]]는 이 "전뇌"와 "중뇌"를 연결한다. (그림에서 이 구조는 [[시엽]](영어: optic lobes)에 위치함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간뇌]]는 [[호르몬]]과 [[항상성]]과 관련된 작용을 수행한다.<ref name="Helfman_brain" /> [[송과체]]는 이 [[간뇌]]의 바로 위에 놓여있다. 이 구조는 빛을 감지하고 [[일주기성]]의 리듬을 유지시켜준다. 또한 색의 변화에도 관여한다.<ref name = "Helfman_brain" />
[[중뇌]]는 두개의 [[시엽]]을 포함하고 있다. [[무지개송어]]나 [[시클리드]]와 같은 시각에 의존하여 사냥하는 종들에서는 이 [[시엽]]이 상당히 크다.<ref name = "Helfman_brain"/>
[[후뇌]]는 특히 수영과 균형에 관여하는 부분이다.<ref name = "Helfman_brain" /> [[소뇌]]는 하나의 둥글게 말린 구조체이며 일반적으로 뇌에서 가장 큰 부분이다.<ref name = "Helfman_brain" />엘레펀트 피쉬의 [[소뇌]]가 거대하고 명백하게 그들의 [[전기감각]]에 관여하고 있는 반면, [[막장어]]와 [[칠성장어]]는 비교적 작은 [[소뇌]]를 가졌다.<ref name="Helfman_brain"/>
[[뇌간]]은 [[뇌]]의 끝부분이다.<ref name="Helfman_brain" /> 몇몇 근육과 신체기관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 적어도 [[경골어류]]에서는 이 [[뇌간]]이 [[호흡]]과 [[삼투조절]]을 관리한다.<ref name="Helfman_brain"/>
==== 감각 기관 ====
대부분의 [[어류]]는 매우 발달된 [[감각 기관]]을 지닌다. 거의 모든 낮에 활동하는 물고기들은 인간에 필적하거나 더 좋은 시각을 지닌다. 또한 많은 물고기들은 특기할만큼 맛과 냄새에 반응하는 [[화학수용기관]]을 지닌다. 그러나 [[귀]]를 갖고는 있어도, 많은 물고기들은 소리를 잘 듣지는 못한다. 대부분의 물고기들은 미세한 물의 흐름과 [[진동]]을 감지하고, 옆의 물고기와 먹이의 움직임을 느끼는 [[측선기관]](영어:lateral line system)을 형성하는 감각 수용기를 지닌다.<ref name="Encarta 99">{{서적 인용| last =Orr | first =James | year =1999 | title =Fish | publisher =Microsoft Encarta 99 | isbn =0811423468}}</ref> [[메기]]나 [[상어]]와 같은 물고기들은 낮은 수준의 전류를 감지하는 기관을 가진다.<ref>Albert, J.S., and W.G.R. Crampton. 2005. Electroreception and electrogenesis. pp. 431–472 in The Physiology of Fishes, 3rd Edition. D.H. Evans and J.B. Claiborne (eds.). CRC Press.</ref> [[전기뱀장어]]같은 다른 [[어류]]는 전류 자체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물고기들은 [[경계표]]를 이용해 방향을 잡으며, 아마도 여러개의 [[경계표]]나 상징들을 기반으로 한 심리적 지도를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ref>{{웹 인용 | url= http://juls.sa.utoronto.ca/Issues/JULS-Vol2Iss1/JULS-Vol2Iss1-Review3.pdf | title= Appropriate maze methodology to study learning in fish | format= PDF | author= Journal of Undergraduate Life Sciences | accessdate= 28 May 2009 | 보존url= https://www.webcitation.org/5hn2YJET6?url=http://juls.sa.utoronto.ca/Issues/JULS-Vol2Iss1/JULS-Vol2Iss1-Review3.pdf | 보존날짜= 2009-06-25 | url-status= dead }}</ref>
==== 통각에 대한 수용력 ====
윌리엄 타볼가에 의해 수행된 실험들은 물고기가 [[고통]]을 느끼고 공포에 반응한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타볼가의 실험에서 [[복어]]는 전기적으로 충격을 받을때나, 계속된 실험후에는 전기봉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꿀꿀거리는 소리를 냈다.<ref>Dunayer, Joan, "Fish: Sensitivity Beyond the Captor's Grasp," The Animals' Agenda, July/August 1991, pp. 12–18</ref>
2003년 [[에딘버러]] 대학의 [[스코틀랜드]]의 [[과학자]]들과 로즐린 협회는 [[무지개송어]]의 탐구 행동들은 종종 다른 동물들간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고통]]과 연관된다고 결론내렸다. 입술 안에 투여된 [[벌침]]에 있는 [[독]]과[[아세트산]]은 물고기로 하여금 몸을 뒤흔들게 하고, 그들의 입술을 수조벽과 바닥 주변에 문지르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ref>{{웹 인용 |url=http://www.buzzle.com/editorials/4-30-2003-39769.asp |제목=Vantressa Brown, “Fish Feel Pain, British Researchers Say,” Agence France-Presse, 1 May 2003 |확인날짜=2009-10-14 |보존url=http://arquivo.pt/wayback/20091014095008/http://www.buzzle.com/editorials/4-30-2003-39769.asp |보존날짜=2009-10-14 |url-status=dead }}</ref>
<ref>{{웹 인용|url=http://news.bbc.co.uk/1/hi/sci/tech/2983045.stm|제목=과학자들, 물고기는 고통을 느낀다라고 발표(영어: Fish do feel pain, scientists say) | work=BBC News | date=30 April 2003 | accessdate=4 January 2010}}</ref>
<ref name="grandin183">{{서적 인용 |제목= Animals in Translation|성1= Grandin|이름1= Temple|authorlink= Temple Grandin|성2= Johnson|이름2=Catherine|year= 2005|출판사= Scribner|location= New York, New York|isbn= 0743247698|page= |pages= 183–184|url= }}</ref> [[뉴런]]은 인간의 [[뉴런]]반응양식과 비슷하게 반응한다.<ref name="grandin183" />
[[와이오밍]] 대학의 제임스 D. 로즈 교수는 위의 실험이 물고기가 "인지적 자각, 특히 우리 인간과 의미가 있을만큼 비슷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자각"을 갖고 있다는 증거를 제공하지 않았기에 그 연구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ref>[http://www.nal.usda.gov/awic/pubs/Fishwelfare/RoseC.pdf Rose, J.D. 2003. A Critique of the paper: "Do fish have nociceptors: Evidence for the evolution of a vertebrate sensory system"] {{웨이백|url=http://www.nal.usda.gov/awic/pubs/Fishwelfare/RoseC.pdf |date=20091006114528 }}</</ref> 로즈교수는 "[[어류]]의 [[뇌]]는 인간에게 있어서의 "자각"이 없다라고 볼만큼 [[인간]]의 뇌와는 너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인간의 그것과 비슷해보이는 고통에 대한 반응도 사실은 다른 이유를 가졌다"라고 논쟁한다.<ref>James D. Rose, [http://cotrout.org/do_fish_feel_pain.htm Do Fish Feel Pain?] {{웨이백|url=http://cotrout.org/do_fish_feel_pain.htm# |date=20091129211119 }}, 2002. Retrieved 2007년 9월 27일.</ref> 그러나 동물학자인 [[템플 그랜딘]]은 [[어류]]는 "다른 종(영어:species)들은 같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다른 [[뇌]]의 구조와 시스템들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대뇌]]의 [[신피질]]이 없이도 [[어류]]는 여전히 자각을 갖는다."라고 논쟁한다.<ref name="grandin183" />
[[동물복지옹호론자]]들은 [[낚시질]]로 인해 [[어류]]에게 가해질 수 있는 [[고통]]에 대한 관심과 걱정을 높이고 있다. [[독일]]과 같은 어떤 국가들은 특정 종류의 [[낚시]]를 금지했다. 또한 영국의 [[RSPCA]]는 현재 공식적으로 물고기들에게 잔인한 행동을 한 사람들을 기소 중에 있다.<ref>[http://www.timesonline.co.uk/newspaper/0,,176-1037515,00.html Leake, J. “Anglers to Face RSPCA Check,” The Sunday Times – Britain, 14 March 2004]{{깨진 링크|url=http://www.timesonline.co.uk/newspaper/0,,176-1037515,00.html }}</ref>
=== 근육기관 ===
대부분의 [[어류]]는 대안적 방법인 [[등뼈]] 양옆에 위치하는 쌍으로 존재하는 [[근육]]들을 [[수축]]함으로써 움직인다. 이러한 [[근육]]의 [[수축]]은 몸을 따라 내러가는 S자 모양의 곡선들을 형성한다. 각각의 곡선이 꼬리 지느러미에 닿으면서, 뒤로 향하는 힘이 물에 작용한다. 그리고 꼬리 [[지느러미]]와 함께 물고기는 앞으로 나아간다. [[어류]]의 [[지느러미]]들은 [[비행기]]의 [[보조익]]처럼 작용한다. 또한 이들은 꼬리의 표면적을 넓힘으로써 속도를 증가시켜준다. 유선형의 몸체는 물에서부터 오는 [[마찰]]의 양을 줄여준다. 몸체를 구성하는 조직들이 [[물]]보다 [[밀도]]가 높기에 [[어류]]들은 그 차이를 보상해내지 못하는한 가라앉을 수 밖에 없다. 많은 [[경골어류]]들은 기체의 조절을 통해 그들의 [[부력]]을 조절해주는 [[부레 (기관)|부레]]라는 내부기관을 지닌다.
=== 항온성 ===
[[파일:White shark.jpg|섬네일|300px| [[과달루프섬]]의 [[백상아리]], 3m에 달한다. |alt=Photo of shark surrounded by school of other fish]]
대부분의 [[어류]]가 거의 [[수생]], [[변온동물]]임에도 불구하고, 두가지 상황 모두에 예외가 존재한다.
몇몇 분류군에 속하는 [[어류]]들은 장기간에 걸친 기간동안 물 바깥에서도 살 수 있다. [[망둥어]] 같은 [[수륙양용물고기]](영어:Amphibious fish)들은 몇일간 육지에서 살면서 이동도 할 수 있다.
또한 특정한 종의 [[어류]]는 높은 체온을 유지한다. [[온혈]] [[경골어류]](영어:teleost, bony fish라고도 불림)들은 모두 [[고등어아목]]에 속하고, [[새치]]들과 [[참치]]들, 한 종류의 "원시" [[고등어]]를 포함한다. [[짧은 지느러미 청상아리]], [[긴 지느러미 청상아리]], [[백상아리]], [[악상어]], [[연어상어]] 등의 [[악상어]]과의 모든 [[상어]]들도 [[온혈]]이다. 또한 [[환도상어과]](영어:Alopiidae)의 종들도 [[온혈]]임을 나타내는 증거가 발견된다. [[내부열]](영어:endothermy)의 온도는 눈과 뇌만을 따듯하게 만드는 [[새치]]들로부터 체온을 주변의 수온보다 20도 정도 높게 유지하는 [[참치]](참다랑어)와 [[악상어]]까지 각기 다르다. "[[거대온혈]]항목을 참조하라." [[온혈]]은 대사적으로는 높은 비용이 들어감에도, 향상된 근육의 힘, 중앙신경계의 빠른 속도, 그리고 고효율의 [[소화]] 등의 이점을 제공한다고 여겨진다.
=== 번식기관 ===
==== 기관 ====
[[파일:Torskens indre organer.jpg|섬네일|왼쪽|[[기관 (해부학)|기관]]: 1. [[간]], 2. [[부레 (기관)|부레]], 3. [[알]], 4. [[유문수]], 5. [[위]], 6. [[창자]]]]
[[어류]]의 생식기관에는 [[정소]]와 [[난소]]가 있다. 대부분의 종에서 이와같은 [[생식소]]들은 부분적으로나 완전하게 융합될 수 있는 비슷한 크기의 대응되는 한 쌍으로 되어있다.<ref name="Guimaraes" /> 생식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이차기관들이 있는 종도 있다.
[[정원세포]](영어: spermatogonia)의 분배라는 관점에서 보면, [[경골어류]]의 [[정소]]는 두가지 종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정세관]](영어: seminiferous tubule)의 모든 부분에서 [[정원세포]]가 발생하는 가장 흔한 케이스이고, 두 번째는 ''아테리노몰프 물고기''에 보이는 이러한 구조들의 말단에서만 국한되어 [[정소]]가 발생하는 케이스이다. 물고기들은 포낭안에서 [[정세관]]의 안쪽면을 향해 [[생식세포]]를 놓아주는 상태에 따라 포낭형 혹은 반 포낭형의 [[정자발생]](영어:spermatogenesis)을 나타낼 수 있다.<ref name="Guimaraes">{{저널 인용|저자1=Guimaraes-Cruz, Rodrigo J.|저자2=Santos, José E. dos|저자3=Santos, Gilmar B.|제목=Gonadal structure and gametogenesis of ''Loricaria lentiginosa'' Isbrücker (Pisces, Teleostei, Siluriformes)|journal=Rev. Bras. Zool.|날짜= 2005|volume=22|issue=3|pages=556–564|id=ISSN 0101-8175}}</ref>
물고기의 [[난소]](영어:ovary)는 세가지의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은 [[짐오베리안]], 이차[[짐오베리안]] 혹은 [[시스트오베리안]]이 그것들이다. 첫 번째 분류에서는 [[난모세포]](영어:oocyte)들은 [[체강]](영어:coelom)의 공동으로 직접적으로 방출된 후, 구멍으로 들어가 [[수란관]](영어:oviduct)을 지난 후 제거된다. 이차[[짐오베리안]] 형태의 [[난소]]는 [[난자]](영어:ova)를, 그것들이 직접적으로 [[수란관]](영어:oviduct)으로 가는 [[체강]](영어:coelom)안에 흘린다. 세 번째 부류에서는 [[난모세포]](영어:oocyte)들은 [[수란관]](영어:oviduct)를 통해 외부로 이동된다.<ref name="Brito">{{저널 인용|url=http://www.scielo.br/scielo.php?script=sci_arttext&pid=S0102-09352003000500018|제목=Reproduction of the surubim catfish (Pisces, Pimelodidae) in the São Francisco River, Pirapora Region, Minas Gerais, Brazil|성1=Brito|이름1=M.F.G.|성2=Bazzoli|이름2=N.|journal=Arquivo Brasileiro de Medicina Veterinária e Zootecnia|volume=55|issue=5|년도=2003|id=ISSN: 0102-0935|doi=10.1590/S0102-09352003000500018 | issn=0102-0935}}</ref> [[짐오베리]]는 [[폐어]], [[철갑상어]], 그리고 [[보우핀]] 등에서 발견되는 원시적 형태이다. [[시스트오베리]]는 [[난소]] 안쪽 벽이 [[수란관]]과 연결된 [[경골어류]]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ref name="Guimaraes" /> 이차[[짐오베리]]는 [[연어]]과와 약간의 다른 [[경골어류]]에서 발견된다.
[[경골어류]]에서의 [[난조세포]](영어:Oogonia)의 발전은 군에 따라 다르다. 또한 난자발생의 역학을 결정하는 것은 [[성숙분열]](영어:maturation)과 [[수태]](영어:fertilization)의 과정의 이해를 가능케 한다. [[세포핵|핵]], [[난형질]](영어:ooplasm), 그리고 감싸는 층들의 변화는 [[난모세포]](영어:oocyte)의 [[성숙분열]](영어:maturation) 과정을 특징짓는다.<ref name="Guimaraes" />
배란후의 [[여포]]들은 [[난모세포]]의 방출에 뒤이어 형성된 구조이다. 이들은 [[내분비]]기능이 없고, 넓고 불규칙한 내부공간을 가지며, [[여포]]세포들의 [[세포사멸]]을 포함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재흡수된다. [[여포의 폐쇄과정]](영어:follicular atresia)이라고 불리는 퇴화 과정은 낳지 않은 난황형성 난모세포를 재흡수한다. 이 과정은 또한 빈번하지는 않지만 다른 발전단계의 난모세포안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ref name="Guimaraes" />
어떤 물고기들은 [[정소]]와 [[난소]]를 모두 가진 [[자웅동체]]이다. 이는 크게 그들의 생활환상에서 다른 상태에서만 발생하거나, 아니면 {{임시링크|히포플렉트루스|en|Hypoplectrus}}(''Hypoplectrus'')에서 볼 수 있듯이 동시에 [[정소]]와 [[난소]] 두가지 모두 갖고 있는 종류로 나뉜다.
==== 번식방법 ====
모든 알려진 [[어류]]의 97% 이상은 [[난생]]이다.<ref name="Scott">Peter Scott: ''Livebearing Fishes'', p. 13. Tetra Press 1997. {{ISBN|1-56465-193-2}}</ref> 즉, [[난자]]가 모체의 바깥에서 생성된다. [[난생]]의 [[어류]]의 예에는 [[연어]], [[금붕어]], [[시클리드]], [[참치]] 그리고 [[뱀장어]]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종들의 대부분에서 암컷과 수컷은 그들의 생식세포들을 주변의 물에 흩뿌리면서, 모체의 바깥에서 [[수정]]을 한다. 그러나, 몇몇 [[난생]] [[어류]]는 [[수컷]]이 [[정자]]를 [[암컷]]의 [[성기]]의 입구에 전달하기 위해 특정한 [[삽입기관]]을 이용하여 내부 [[수정]]의 형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와같은 [[수정]]을 하는 종으로는 [[뿔상어]]와 같은 [[난생]] [[상어]]들과, [[홍어]]와 같은 [[난생]] [[가오리]]가 유명하다. 이러한 예들에서 [[수컷]]들은 [[클레스퍼]]라고 알려져있는 변형된 한쌍의 배지느러미를 갖고있다.
[[해양]] [[어류]]들은 종종 트인 물의 기둥(영어: water column)속으로 방출되는 많은 수의 난자들을 생산할 수 있다. [[난자]]들은 평균 1mm의 [[직경]]을 지닌다.
<gallery>
파일:Oeufs002b,57.png|[[칠성장어]]의 난자
파일:Oeufs002b,54.png|[[두툽상어]]의 난자 ([[인어의 지갑]])
파일:Oeufs002b,55.png|[[괭이상어]]의 난자
파일:Oeufs002b,56.png|[[은상어]]의 난자
</gallery>
새롭게 부화한 어린 [[난생]] [[어류]]는 [[유생]](영어:larva)이라고 불린다. 이 [[유생]]들은 보통 불완전한 형태이며, 영양공급을 위해 큰 [[난황난]](영어:yolk sac)을 지니고 [[초생]](영어:juvenile)이나 [[성체]] [[표본]]들과는 매우 다른 외양을 지닌다. [[난생]] [[어류]]의 [[유생]]의 시기는 몇 주 정도로 상대적으로 짧고, [[유생]]은 빨리 자라나 [[초생]]이 되기 위해 외양과 구조를 바꾼다. (이 과정을 [[변태]](영어:metamorphosis)라고 한다.) 이 변화의 기간동안 [[유생]]들은 그들의 영양 공급원을 얻는 과정을 [[난황난]]에서 [[동물성플랑크톤]]의 사냥으로 바꾸어야만한다. 이러한 과정은 전형적으로 [[동물성 플랑크톤]]의 밀도나 [[유생]]들의 배고픔등에 따라 달라진다.
[[난태생]] [[어류]]에게서 [[난자]]는 내부의 [[수정]] 후에 모체 안에서 개발된다. 그러나 모체로부터 영양은 [[난황]]의 크기에 따라 조금만 받거나 아예 못 받는다. 각각의 태아는 그들만의 [[난자]]안에서 자라난다. [[난태생]]에 속하는 과(영어:family)에 해당하는 예로는 [[구피 (어류)|구피]], [[전자리상어]] 그리고 [[실러캔스]] 등이 있다.
어떤 [[어류]] 종들은 [[태생]](영어:viviparous)이다. 이러한 종들에서는 모체가 [[난황]]과 [[태아]]로의 영양공급을 유지한다. 전형적으로 [[태생]][[어류]]들은 [[포유류]]에게서 보이는, 모체의 혈액을 [[배아]]의 [[혈액]]과 연결해주는, [[태반]](영어:placenta)과 비슷한 구조를 갖는 기관을 갖고있다. [[태생]][[어류]]의 예로는 [[망성어]](영어:surf-perches), [[구데아]]과, 그리고 [[레몬상어]]가 있다. 어떤 [[태생]] [[어류]]들은 [[난식]](영어:oophagy)이라는 행태를 보이는데, 이는 자라나는 [[배아]]가 모체가 생산한 다른 [[난자]]들을 먹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사실은 [[청상아리]]와 [[악상어]]와 같은 [[상어]]들 중에서 처음으로 관찰되었지만, [[학공치]] 중의 하나인 ''노멀햄푸스 에브라드티''와 같은 몇몇 [[경골어류]]에서 역시 알려져있다.<ref name="Meisner">Meisner, A & Burns, J: Viviparity in the Halfbeak Genera ''Dermogenys'' and ''Nomorhamphus'' (Teleostei: Hemiramphidae). Journal of Morphology 234, pp. 295–317, 1997</ref> 가장 큰 [[태아]]가 약하거나 작은 형제,자매들을 먹어버리는 [[카니발리즘]]은 [[태생]]의 더욱 희한한 상태이다. 이러한 행동또한 보통 [[그레이 너스 샤크]]와 같은 [[상어]]중에서 대부분 발견되는데, ''노멀햄푸스 에브라드티''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ref name="Meisner" />
사육가들은 [[난태생]]과 [[태생]] [[어류]]를 보통 [[태생어]](영어:livebearer)라고 언급한다.
=== 면역체계 ===
면역체계는 물고기들에 따라 다 다르다.<ref>A.G. Zapata, A. Chiba and A. Vara. ''Cells and tissues of the immune system of fish.'' In: The Fish Immune System: Organism, Pathogen and Environment. Fish Immunology Series. (eds. G. Iwama and T.Nakanishi,), New York, Academic Press, 1996, pp. 1–55.</ref> [[칠성장어]]와 [[먹장어]]같은 [[무악어]](영어: jawless fish)들 중에는 진정한 [[임파]]기관이 없다. 이러한 물고기들은 면역 세포들을 생산하기 위한 다른 기관의 [[임파]][[조직]]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적혈구]]와 [[대식세포]](영어:macrophage), 그리고 [[원형질세포]]들은 [[신장]][[전엽]]에서 (혹은 [[앞콩팥]]) 그리고 내장의 일부분([[과립성 백혈구]]가 성숙하는 곳)에서 생산된다. 이들은 [[먹장어]]의 원시적 [[골수]]와 유사하다.
[[상어]]와 [[가오리]]같은 [[연골어류]]는 더욱 발달된 형태의 면역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연골어류]]에 세 개의 특화된 기관을 지닌다. [[생식선]]을 둘러싸는 [[포유류]]의 뼈와 유사한 [[임파]][[조직]]인 [[조혈]]기관, [[연골어류]]의 [[식도]]의 벽들 안에 있는 [[레이딕스 기관]], 그리고 [[창자]]의 [[나선형 판막]]이 그것이다. 이러한 기관들은 와 [[과립성 백혈구]], [[임파구]], 그리고 [[원형질 세포]]와 같은 전형적인 [[면역세포]]들을 포함하고 있다. 또, 이들은 확실한 [[흉선]](영어: thymus)과 이들의 가장 중요한 [[면역기관]]인 잘 발달된 [[비장]](영어: spleen)을 갖고 있다. 이 [[비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임파구]]들과, [[원형질 세포]], 그리고 [[대식세포]](영어: macrophage)들이 개발되고 저장된다.
[[철갑상어]]와 [[주걱 철갑상어]], 그리고 [[폴립테루스]]와 같은 [[조기어류]](영어: Chondrostean)들은 [[중앙신경조직]]을 둘러싸고 있는 얇은 막인 [[뇌막]]들과 관련된 거대한 덩어리 안에 [[과립성 백혈구]]의 생산을 위한 주된 부위를 갖고 있다. 이들의 심장은 자주 [[임파구]], [[세망세포]](영어: reticular cell), 그리고 약간의 [[대식세포]]를 가진 조직으로 둘러쌓인다. [[조기어류]]의 [[신장]]은 중요한 [[조혈]](영어: hemopoietic)기관이다. 이 [[신장]]에서 [[적혈구]](영어: erythrocyte), [[과립성 백혈구]](영어: granulocyte), [[임파구]](영어: lymphocyte), 그리고 [[대식세포]](영어: macrophage)가 발달한다.
[[조기어류]]처럼, [[경골어류]]의 주된 [[면역]] [[조직]]은 [[신장]], 특히 많은 다른 [[면역]] 세포들을 포함하는 [[신장전엽]](영어: anterior kidney)을 포함한다.<ref>D.P. Anderson. ''Fish Immunology''. (S.F. Snieszko and H.R. Axelrod, eds), Hong Kong: TFH Publications, Inc. Ltd., 1977.</ref> 더하여 [[경골어류]]는 [[흉선]](영어: thymus), [[비장]](영어: spleen) 그리고 [[피부]]와 [[아가미]], [[내장]], 그리고 [[생식선]]과 같은 [[점액]]질의 조직 안에 산재된 [[면역]]부를 갖는다. 보다 [[포유류]]의 [[면역]][[체계]]와 유사하게 [[경골어류]]의 [[적혈구]](영어: erythrocyte), [[호중성 백혈구]](영어: neutrophil) 그리고 [[과립성 백혈구]](영어: granulocyte)들은, [[흉선]]안에서 발견되는 [[임파구]]가 주된 세포형태인, [[비장]] 안의 어디에든 존재한다고 믿어진다.<ref>S. Chilmonczyk. ''The thymus in fish: development and possible function in the immune response''. Annual Review of Fish Diseases, Volume 2, 1992, pp. 181–200.</ref><ref>J.D. Hansen and A.G. Zapata. ''Lymphocyte development in fish and amphibians''. Immunological Reviews, Volume 166, 1998, pp. 199–220.</ref> 2006년, [[포유류]]안의 [[임파]] 조직과 비슷한 [[임파]]조직이 [[경골어류]]의 종들 중 하나인 [[제브라 다니오]]에서 발견되었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조직은 [[항원]]을 기다리는 동안 아직 알려지지 않은, 즉 아직 자극 받지 않은 [[T 세포]]들이 축적되는 장소일 것으로 여겨진다.<ref>Kucher et al.,. ''Development of the zebrafish lymphatic system requires VegFc signalling''. Current Biology, Volume 16, 2006, pp. 1244–1248.</ref>
== 질병들 ==
{{본문|어류의 질병들과 기생충들}}
다른 동물들처럼 [[어류]] 역시 [[질병]]들과 [[기생충]]들로부터 고통을 겪는다. [[질병]]을 막기위해 [[어류]]들은 다양한 방어체계를 갖고있다. [[표피]]에 의해 보호되는, [[미생물]](영어: microorganism)들을 잡거나 그들의 성장을 [[억제]]하는 [[점액층]](영어: mucus layer)을 비롯한, [[피부]]와 [[비늘]]이 ''평상적''인 방어체계들이다. [[병원균]](영어: pathogen)들이 이러한 방어체계를 뚫고 침투하면, 물고기들은 , 감염된 곳을 향해 [[혈류]]를 증가시킴으로써 [[병원균]]을 상대하기 위한 [[백혈구]]를 전달하는, [[염증]]반응을 시작할 수 있다. 특정한 방어체계는 물고기의 신체에 의해 판별된 특정한 [[병원균]]에 반응한다. 예로, [[면역반응]]이 있다.<ref>{{harvnb|Helfman|Collette|Facey|1997|p=95–96}}</ref> 최근에, [[백신]]이 [[수산양식]](영어: aguaculture)과 관상용 물고기 사육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예로는 [[잉어]]에게 발병하는 [[잉어포진 바이러스]]와, 양식된 [[연어]]에서 사용되는 [[절종증]](영어: furunculosis)[[백신]]이 있다.<ref>R. C. Cipriano (2001), Furunculosis And Other Diseases Caused By ''Aeromonas salmonicida''. Fish Disease Leaflet 66. U.S. Department of the Interior.[http://www.lsc.usgs.gov/FHB/leaflets/FHB66.pdf] {{웨이백|url=http://www.lsc.usgs.gov/FHB/leaflets/FHB66.pdf|date=20090507003140}}</ref><ref>K H Hartman et al. (2004), Koi Herpes Virus (KHV) Disease. Fact Sheet VM-149. University of Florida Institute of Food and Agricultural Sciences.[http://edis.ifas.ufl.edu/pdffiles/VM/VM11300.pdf]</ref>
어떤 종들은 외부의 [[기생충]]을 없애기 위해 [[청소어]](영어: cleaner fish)를 사용한다. 이러한 예들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인도양]]과 [[태평양]]의 [[산호초]](영어: coral reef)에서 발견되는 ''레보리데스''속(영어: genus)을 청소해주는 [[청줄청소놀래기]]이다. 이러한 작은 [[어류]]는 다른 [[어류]]들이 모여서, [[청소어]]들의 관심을 끌기위해 특정한 움직임을 보이는, 소위 ''청소지역''을 유지한다.<ref>{{harvnb|Helfman|Collette|Facey|1997|p=380}}</ref> 이러한 청소 행위는, 같은 속의 두 [[시클리드]]들이, 청소를 하는 쪽인 ''에트로플러스 매큘래터스''와 그에 비해 훨씬 큰 ''에트로플러스 수러텐시스''로 나뉘는 흥미로운 예를 포함하는, 몇개의 [[어류]]군(영어: group)에서 관찰되어왔다.<ref>Richard L. Wyman and Jack A. Ward (1972). A Cleaning Symbiosis between the Cichlid Fishes Etroplus maculatus and Etroplus suratensis. I. Description and Possible Evolution. Copeia, Vol. 1972, No. 4, pp. 834–838.</ref>
== 진화 ==
{{참고|선사어류}}
[[파일:Ancestors.gif|섬네일|지속적인 점층변화에대한 과거의 진화 관점(애니메이션)|alt=Animation showing life at different evolutionary stages]]
[[파일:Dunkleosteus BW.jpg|섬네일|''[[던클레오스테우스]]''는 거대한 10미터 길이의 [[선사어류]]였다.|alt=Drawing of animal with large mouth, long tail, very small dorsal fins, and pectoral fins that attach towards the bottom of the body, resembling lizard legs in scale and development.<ref>[http://www.smh.com.au/news/science/jaws-of-steel-on-this-fish-tank/2006/11/29/1164777657728.html Monster fish crushed opposition with strongest bite ever], smh.com.au</ref>]]
[[어류]]는 하나의 [[단일계통적]](영어:monophyletic)인 군을 보여주지 않는다. 따라서 ''[[어류]]의 [[진화]]''란 하나의 사건으로 연구되지 못한다.<ref>G. Lecointre & H. Le Guyader, 2007, ''The Tree of Life: A Phylogenetic Classification'', Harvard University Press Reference Library</ref>
[[어류]]의 [[확산]]은 명백히 관절이 있는 [[턱]]의 출현에 기인한다. 왜냐하면 [[무악어]]들은 아주 적은 후손들만을 남겼기 때문이다.<ref>[http://io.uwinnipeg.ca/~simmons/1116/chordate.htm Classification of the Chordates]Evolution, ecology and biodiversity 05-1116-3, University of Winnipeg. Retrieved 7 April 2007. {{웨이백|url=http://io.uwinnipeg.ca/~simmons/1116/chordate.htm |date=20070416000000 }}</ref>[[칠성장어]](영어:lamprey)들은 턱이 있기 전의 어류와 가깝다고 추측된다. 첫 번째로 진화된 턱뼈가 있는 [[어류]]는 [[판피어강]](영어: placodermi)의 화석에서 발견되었다. 관절이 있는 턱이 가진 이익이 더 큰 악력, 개선된 [[호흡]], 혹은 그 둘 모두를 주는 것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다.
[[어류]]는 아마도 산호처럼 보이는 [[멍게]](영어: sea squirt)와 비슷한 생명체에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들의 [[유충]]이 [[원시어류]]와 중요한 여러 방면에서 비슷하기 때문이다. [[어류]]의 첫 번째 조상들은,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약간의 현존하는 [[멍게]]들이 지금도 하고 있는 [[유형성숙]]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수산업}}
== 특이한 물고기들 ==
* 거꿀치라는 물고기는, 거꾸로 서는 행동을 종종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 인간에게의 중요함 ==
=== 경제적 중요함 ===
{{본문|생선}}
[[크로마뇽인]]들은 [[뼈]]로 낚시 바늘과 작살을 만들었다. 이로써 이들은 새로운 식량인 물고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ref>{{서적 인용 |제목= ''The Pageant of World History'' | 저자= Gerald Leinwand |연도=1986 |출판사=Allyn & Bacon |장=Prologue: In Search of History |쪽= 7|ISBN=978-0-205-08680-1|인용문= The Cro-Magnons made stone, bone, and wood tools. Stone tools were polished. Bones were made into fish-hooks and harpoons; this made possible a new source of food: fish. }}</ref>
{{본문|고기잡이 산업|수산양식|양어}}
=== 오락 ===
{{본문|관상어|여가낚시|낚시}}
== 보호 ==
[[파일:Whale shark Georgia aquarium.jpg|300px|섬네일|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물고기인 [[고래상어]]가 [[취약종]]으로 분류되었다.|alt=Photo of shark in profile surrounded by other, much smaller fish in bright sunlight]]
2006년도 [[국제 자연 보전 연맹]]의 [[IUCN 적색 목록|적색 목록]]은 1,173종의 [[어류]]를 멸종 위기 목록에 등재하였다.
<ref>
{{웹 인용
|url = http://www.iucnredlist.org/info/tables/table1
|제목 = Table 1: Numbers of threatened species by major groups of organisms (1996–2004)
|확인날짜 = 2006-07-21
|archiveurl = https://web.archive.org/web/20060630054235/http://www.iucnredlist.org/info/tables/table1
|archivedate = 2006-06-30
|url-status = dead
}}
</ref>
포함된 종은 [[대서양대구]](영어: Atlantic Cod),<ref>{{웹 인용|url=http://www.iucnredlist.org/search/details.php/8784/summ|제목=Gadus morhua|확인날짜=18 January 2006}}</ref> [[데빌의 구멍 홉피쉬]](영어:Devil's Hole Pupfish),<ref>{{웹 인용|url=http://www.iucnredlist.org/search/details.php/6149/summ|제목=Cyprinodon diabolis|확인날짜=18 January 2006}}</ref> [[실러캔스]](영어: coelacanth),<ref>{{웹 인용|url=http://www.iucnredlist.org/search/details.php/11375/summ|제목=Latimeria chalumnae|확인날짜=18 January 2006}}</ref> 그리고 [[백상아리]]와 같다.<ref>{{웹 인용|url=http://www.iucnredlist.org/search/details.php/3855/summ|제목=Carcharodon carcharias|확인날짜=18 January 2006}}</ref> [[어류]]들이 물 아래에서 살기 때문에, 이들은 육지동물들이나 식물들보다 연구하기가 더 어렵고, [[어류]]의 개체수에 대한 정보들도 보통 부족하다. 그러나 [[민물고기]]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용적의 물 안에 살기 때문에, 확실히 위기에 처해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데빌의 구멍 홉피쉬]]는 오직 하나의 3*6(m)의 웅덩이에서만 살고있을 뿐이다.<ref>{{harvnb|Helfman|Collette|Facey|1997|pp=449–450}}</ref>
=== 남획 ===
{{본문|남획}}
남획은 [[대구]](영어: cod)와 [[참치]](영어: tuna)와 같은 식용 생선들에게 주된 위험이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bbc.co.uk/1/hi/scotland/highlands_and_islands/6234881.stm|제목=Call to halt cod 'over-fishing'|확인날짜=18 January 2006 | work=BBC News | 날짜=5 January 2007}}</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bbc.co.uk/1/hi/world/asia-pacific/6301187.stm|제목=Tuna groups tackle overfishing|확인날짜=18 January 2006 | work=BBC News | 날짜=26 January 2007}}</ref> [[남획]]은 살아남은 물고기들이 잡힌 물고기들을 대체할만한 어린 새끼들을 충분히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점차 [[스탁]](영어: stock)이라고 알려져 있는 [[양식 개체군 동태론]]에서의 [[붕괴]]의 이유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업적 멸절'''이 종의 멸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양식업을 지속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하나의 양식업 붕괴의 잘 연구된 사례는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이루어지는 학명 ''Sadinops sagax caerulues''인 [[태평양 정어리]]의 양식업이다. 이 물고기의 어획량은 1937년도에 나타났던 790,000톤의 최고치로부터 1968년에는 24,000톤으로까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고, 그 해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경제적으로 실용적이지 못하게 되었다.<ref>{{harvnb|Helfman|Collette|Facey|1997|p=462}}</ref>
[[양식학]](영어: fisheries science)과 [[양식업]](영어: fishing industry)사이의 주된 갈등은 두 집단이 집중어획을 위한 양식업의 [[복원력]](영어: resiliency)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졌다는 사실이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bbc.co.uk/1/hi/uk/6112352.stm|제목=UK 'must shield fishing industry'|확인날짜=18 January 2006 | work=BBC News | 날짜=3 November 2006}}</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bbc.co.uk/1/hi/world/europe/6197433.stm|제목=EU fish quota deal hammered out|확인날짜=18 January 2006 | work=BBC News | 날짜=21 December 2006}}</ref>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자들과 [[자원보호론자]](영어: conservationist)들이, 많은 [[스탁]]들이 50년안에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긴급한 보호를 위한 압력을 가한다.<ref>{{웹 인용|url=http://www.physorg.com/news81778444.html|제목=Ocean study predicts the collapse of all seafood fisheries by 2050|확인날짜=13 January 2006}}</ref><ref>{{웹 인용|url=http://www.panda.org/about_wwf/where_we_work/europe/what_we_do/mediterranean/about/marine/bluefin_tuna/tuna_at_risk/index.cfm|제목=Atlantic bluefin tuna could soon be commercially extinct|확인날짜=2006-01-18|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70430205610/http://www.panda.org/about_wwf/where_we_work/europe/what_we_do/mediterranean/about/marine/bluefin_tuna/tuna_at_risk/index.cfm|archivedate=2007-04-30|url-status=dead}}</ref>
=== 서식지 파괴 ===
{{참고| 어획으로 인한 환경적 영향}}
민물에서 그리고 바다의 생태계에 압박을 주는 중요 요인들은 [[수질오염]], [[댐]]의 건설, 인간이 쓰기위한 물의 제거 그리고 새로운 종들의 소개등을 포함한 서식지의 붕괴이다.<ref>{{harvnb|Helfman|Collette|Facey|1997|p=463}}</ref> 서식지 붕괴 때문에 위험에 처한 물고기의 하나의 예는 [[철갑상어]](영어: pallid sturgeon)이다. 이 물고기는 북아메리카의 민물에 사는데 인간활동에 의해 피해를 입은 강들에 서식한다.<ref>{{웹 인용|url=http://www.mt.nrcs.usda.gov/news/factsheets/pallidsturgeon.html|제목=Threatened and Endangered Species: Pallid Sturgeon ''Scaphirhynchus'' Fact Sheet|확인날짜=2013-12-1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51126220804/http://www.mt.nrcs.usda.gov/news/factsheets/pallidsturgeon.html|보존날짜=2005-11-26|url-status=dead}}</ref>
=== 특이종 ===
[[외래]]종은 수많은 서식지로부터 들어왔다. 가장 잘 연구된 본보기 가운데 하나는 1960년에 [[빅토리아 호수]]에 방류된 [[나일파치]](영어: Nile perch)이다. 나일 퍼치는 점진적으로 그 호수에 살고 있던 500마리 정도의 토종 [[시클리드]]들을 근절시켰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지금 인공 사육 프로그램에 의해 생존해 있지만, 다른 종들은 아마도 멸종한 것으로 보인다.<ref>{{뉴스 인용|url=http://www.guardian.co.uk/life/feature/story/0,,1541613,00.html|제목=The little fish fight back|확인날짜=18 January 2006 | work=The Guardian | location=London | first=Laura | last=Spinney | 날짜=4 August 2005}}</ref> [[잉어]], [[가물치과]],<ref>{{뉴스 인용|url=http://www.washingtonpost.com/wp-dyn/articles/A16439-2002Jul2.html|제목=Stop That Fish!|확인날짜=26 August 2007 | work=The Washington Post | 날짜=3 July 2002}}</ref>, [[틸라피아]], [[유럽농어]], [[브라운 송어]], [[무지개 송어]], 그리고 [[바다 칠성장어]]들은 선취특권환경들에 들어감으로써 문제를 일으킨 물고기들의 다른 예이다.
=== 수족관 전시 ===
{{본문|어류보전, 보존과 과학}}
== 물고기를 소재로 한 작품 ==
=== 만화 ===
* {{국기그림|대한민국}} {{국기그림|일본}} [[공포의 물고기]]
* {{국기그림|대한민국}} [[조의 영역]]
=== 영화 ===
* {{국기그림|대한민국}} [[물고기 (영화)|물고기]] [[파닥파닥]]
* {{국기그림|일본}} [[벼랑 위의 포뇨]]
* {{국기그림|미국}} [[니모를 찾아서]]
* {{국기그림|미국}} [[인어 공주 (1989년 영화)|인어공주]]
* {{국기그림|미국}} [[도리를 찾아서]]
* {{국기그림|미국}} [[피라냐 (1978년 영화)]]
* {{국기그림|미국}} [[피라냐 3DD]]
* {{국기그림|미국}} [[죠스 (영화)]]
* {{국기그림|미국}} [[더블 샤크]]
* {{국기그림|미국}} [[딥 블루 씨]]
* {{국기그림|미국}} [[변종샤크]]
* {{국기그림|벨기에}} [[새미의 어드벤쳐]]
* {{국기그림|벨기에}} [[새미의 어드벤쳐 2]]
=== 책 ===
* {{국기그림|미국}} [[노인과 바다]]
== 문화 ==
[[파일:Matsya painting.jpg|섬네일|250px|인어의 모습을 한 [[비슈누]]의 [[아바타라]]|alt=Photo of painting showing blue-skinned, 4-armed upper body of man standing in the opened mouth of a fish with bent tail with other, paler men facing him with hands raised together]]
[[요나의 책]](영어: Book of Jonah)에서는 한 ''거대한 물고기''가 예언자인 [[요나]]를 집어삼킨다. 반인 반어의 전설들은 [[한스 크리스티안 앤더슨]]의 이야기들에서, 또 [[스플래시]]와 같은 영화의 스토리들에서 나타났다. ([[인어]]를 참조하라)
물고기의 모습을 했다고 전해 내려오는 신들에는 [[폴리네시아]]의 [[이카-로아]], 다양한 고대의 [[셈족]]에게서 전해져오는 [[다곤]], [[하와이]]의 상어-신들, 그리고 인도의 [[드라비다]]에 나오는 [[메스야]](영어: Matsya)가 있다.
[[어류]]는 다양한 다른 방법으로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예를 들자면 [[익투스]]는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벵갈인]] 사이에서 비옥함의 [[상징]]인 물고기를 통해, 그들 스스로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ref>Jaffrey, M.: A Taste of India, Atheneum, p 148, 1988, {{ISBN|0-689-70726-6}}</ref>
[[파일:Narva vapp.svg|섬네일|왼쪽|120px|[[에스토니아]]의 [[나바]]의 문장|alt=Drawing of two swords and two fish in profile on background with rectangular top and angled-bottom]]
물고기는 ''[[니모를 찾아서]]''와 같은 영화들에서, 혹은 ''[[노인과 바다]]''와 같은 책들을 통해서 예술과 문학분야에서 눈에 띄게 보인다. 특히 상어와 같은 거대한 물고기들은 자주 [[공포영화]]와 [[스릴러]]물의 주제가 되어왔다. 가장 유명한 것은 소설 [[죠스]]인데 이것은 뒤이어, ''[[상어이야기]]'', ''[[가물치의 공포]](영어: Snakehead Terror)'', 그리고 1978년도 영화 ''[[피라냐 (1978년 영화)|피라냐]]''와 같은 '비슷한 영화와 패러디 작품들을 만들어냈던, 영화 [[죠스]]와 같은 후속작들로 이어졌다.
불교의 기호인 [[애쉬타망갈라]](영어: Ashtamangala)의 [[기호]]속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메스야]]라고 불리는 금붕어는 [[윤회]](영어: samsara)안에서 해로움이 없는 [[대양]]으로 인지되며, '부처의 눈들' 혹은 '자각의 눈'으로 일컬어지는, 공포가 없는 부유 상태를 의미한다. 물고기는 고통의 윤회의 바다에서 빠져죽을 위험이 없는, 즉 공포가 없는 상태안에서, 또 마치 물고기가 헤엄치듯이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이 가르침에서 저 가르침으로 [[이주]]할 수 있는 상태로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길조로 상징화된다.
[[파일:Republic of China Flags.jpg|섬네일|300px|[[중화민국]]의 1920년대 포스터 안에 나오는 물고기를 타는 사람들 |alt=Drawing of three men sitting on fish at the surface, each wearing a sailor suit and waving a flag]] 물고기들은 [[힌두교]], [[자이나교]] 그리고 [[불교]]의 문화에서 뿐만 아니라, [[익투스]]로서 처음 표명되었고, 특별히 사막에서 [[무리를 먹이심]]을 인용함으로써 [[기독교]] 교파들에서도 종교적인 상징성을 가진다. 불교의 [[법 (불교)|다르마]]에서는 물고기는 물안에서 완전한 행동의 자유를 누림으로써 행복을 상징한다. 물고기들은 풍요와 풍부를 상징한다. 동양에서는 이따금씩 이들의 우아한 아름다움과 크기, 그리고 목숨으로 거룩하게 여겨지는 [[잉어]]({{llang|en|carp}})로서 그려지기도 한다.
캐나다의 도시명인 [[코퀴틀람]], [[영국 콜럼비아]]는 ''조그만 빨간 물고기''를 뜻하는 해안 [[샐리쉬어군]](영어: Salish)에서 왔다고 보이는 ''kwikwetlem''이란 단어에서부터 유래한다.<ref>Kwikwetlem First Nation: [http://www.kwikwetlem.com/history___culture History & Culture] {{웨이백|url=http://www.kwikwetlem.com/history___culture |date=20080905193405 }} Retrieved on 5 March 2009</ref>
== 용어 ==
=== 영어 환경 ===
영어 낱말 물고기에는 물고기(''Fish'')와 물고기들(''Fishes'')이 있다. 영어에서 자주 상호 보환되게 쓰이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Fish''와 ''Fishes''는 서로 다른 의미들을 가졌다. ''Fish''는 하나의 단수 명사나 한 종에서부터 추출한 개체군들을 뜻하는 상황에서 사용된다. ''Fishes''는 다른 어류 종들의 군을 뜻한다.<ref name="publishing3" />
=== 고기떼 ===
{{본문|떼지어다니기}}
[[파일:School of Pterocaesio chrysozona in Papua New Guinea 1.jpg|오른쪽|섬네일|250px|
이 [[금줄박이 푸질리어]]들은 이들의 수영이 동조화되어있기 때문에 떼를 지어다니는 중이라 할 수 있다. |alt=Photo of thousands of fish separated from each other by distances of 2 inch or less]] 단지 식량이나 둥지의 장소들 같은 어떤 일정지역에 국한한 자원들을 사용하는 한무리의 [[어류]]의 집단은 간단하게 '''''집합체'''''(영어: aggregation)라고 알려져 있다. 물고기들이 서로 모여서 상호작용을 하고, 사회적인 군을 형성한다면, 그때에 그들은 그 유기적 구조의 정도에 따라서 떼(영어: ''shoal'' or ''school'')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shoal'''''이란 각각의 물고기들이 서로 개별적으로 헤엄치고, 음식을 찾아다니는 등의 서로 약하긴 하지만, 군(영어: group)내의 다른 개체들에게 끌리고, 수영속도같은 이들의 움직임의 조정하는 구조를 가진 군(영어: group)이다. 물고기의 '''''Schools''''' 이란 수영에 있어서 훨씬 더 강한 구조를 지니게 되고, 동기화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물고기들이 같은 속도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러한 떼를 이루는 행동은 다양한 이점들을 제공한다는 믿음이 있다.<ref>Helfman G., Collette B., & Facey D.: The Diversity of Fishes, Blackwell Publishing, p 375, 1997, {{ISBN|0-86542-256-7}}</ref>
예시:
* [[시클리드]]들은 [[구애장소]]에서 ''집합''(영어: aggregation)을 형성하며 모인다.
* 많은 [[연준모치]]무리들과 [[카라신]]들은 ''약한 떼(shoals)''를 형성한다.
* [[멸치]](영어:Anchovy), [[청어]](영어: herrings), 그리고 실버사이드라 불리는 [[색줄멸과]]들은 ''강한떼''(영어: school)를 형성하는 좋은 물고기의 예들이다.
강한떼나 약한떼들이 생물학에서는 다른 의미를 가지는 반면, [[영국영어]]에서는 어떤 물고기의 떼이던지 그것을 묘사하기 위해 ''약한떼''(영어: shoal)'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반면, [[미국 영어]]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자주 ''강한떼''(영어: school)라는 용어를 느슨하게 사용했듯이, 비 전공자들에게는 종종 [[유의어]]로 취급된다.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위키낱말사전|물고기}}
* [[낚시]]
* [[양식업]]
* [[수족관]]
* [[잡기와 방생]]
* [[심해어]]
* [[바닷물고기]]
* [[민물고기]]
* [[생선]]
* [[해산물]]
* [[관상어]]
* [[어류학]]
* [[해양생물학]]
* [[해양척추동물]]
* [[평형석]] (어류의 나이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뼈)
* [[해산물]]
* [[무척추동물]]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 [https://db.angfa.org.au/ ANGFA] – Illustrated database of freshwater fishes of Australia and New Guinea
{{분류군 식별자|From=152}}
{{전거 통제}}
[[분류:물고기| ]]
[[분류:측계통군]]
[[분류:폐기된 동물 분류군]]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출처 필요|날짜=2010-12-15}}
{{생물 분류
|이름=경골어류
|색=동물
|그림=Herring2.jpg
|그림_설명=대서양 청어
|계=[[동물|동물계]]
|문=[[척삭동물|척삭동물문]]
|아문=[[척추동물|척추동물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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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류|분류=진유악류}}
{{미분류|분류=[[진구류]]}}
|상강='''경골어상강'''<br />(Osteichthyes)
|상강_명명=[[토마스 헨리 헉슬리|Huxley]], 1880
|하위_링크=강
|하위=
* [[조기어류|조기어강]] (Actinopterygii)
* [[육기어류|육기어강]] (Sarcopterygii)
}}
전통적인 분류법에서 '''경골어상강'''(硬骨魚上綱)은 [[척삭동물|척삭동물문]]의 강이며, 통틀어서 '''경골어류'''(硬骨魚類)라 부른다. 아강으로 [[조기어류]]와 [[폐어류]]를 포함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별도의 강으로 나뉘었다.
[[뼈]]의 일부 또는 전체가 딱딱한 뼈로 되어 있어 붙여진 명칭이다. [[물]]에서 육지로 이동한 최초의 [[척추동물]]의 조상으로 여겨지며, 현재 일반적으로 말하는 물고기들의 조상이다. 내비공(內鼻孔)이 있는 폐어류와 내비공이 없는 [[조기어류]](條鰭魚類, Actinopterygii) 및 [[완기어류]](腕鰭魚類, Cladistia)로 구분된다. 어류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며, 전 세계의 담수역과 해수역에 고루 분포한다.
일반적으로 [[몸]]은 비늘에 싸였고 [[옆줄]](측선)이 있다. 몸은 전체적으로 날씬한 유선형이며 앞쪽 새공까지의 머리부분, 새공에서 항문까지의 허리부분, 항문에서 [[꼬리]]까지의 꼬리부분 등 3부분으로 구분된다. 머리 끝에서 [[눈 (해부학)|눈]]까지를 문(吻)이라 하며 그 끝에 [[입]]이 있다.
연골어류에는 없는 신경분비물을 저장 또는 방출하는 기관인 미부하수체를 가지고 있다.
== 하위 분류 ==
* [[조기어류|조기어강]] (Actinopterygii)
** [[연질어류|연질어아강]] (Chondrostei)
** [[신기어류|신기어아강]] (Neopterygii)
* [[육기어류|육기어강]] (Sarcopterygii)
** [[실러캔스|총기어아강]] (Coelacanthimorpha)
** [[폐어류|폐어아강]] (Dipnoi)
** [[사지형어류|사지형어아강]] (Tetrapodomorpha)
== 계통 분류 ==
{{계통도/유악류}}
{{계통도/경골어류}}
== 같이 보기 ==
* [[갑주어]]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분류-줄}}
{{분류군 식별자|from=Q27207}}
{{전거 통제}}
[[분류:경골어류| ]]
[[분류:측계통군]]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생물 분류
|이름=연골어류
|색=동물
|그림=Carcharodon carcharias.jpg
|그림_설명=[[백상아리]], ''Carcharodon carcharias''
|계=[[동물|동물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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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_명명=[[토머스 헨리 헉슬리|헉슬리]], 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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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새아강]](Elasmobranchii)
* [[전두어아강]](Holocephali)
}}
'''연골어류'''(軟骨魚類)는 '''연골어강'''(軟骨魚綱, Chondrichthyes)에 속하는 [[물고기]]로 딱딱한 뼈 대신에 질긴 피부와 가벼운 물렁뼈를 가지고 있다. 뼈가 단단한 [[경골어류]]는 기체로 채워진 부레(풍선모양의 주머니)로 물 속에서 떠오르거나 가라앉거나 하지만, 연골어류는 부레가 없다. 때문에 연골어류는 가벼운 지방을 축적하여 약간의 부력을 얻고, 계속 물에 떠 있기 위해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인다.
== 하위 분류 ==
* [[판새아강]](Elasmobranchii)
** [[가오리류|가오리상목]](Batoidea)
*** [[홍어목]] 또는 가오리목(Rajiformes)
*** [[톱가오리목]](Pristiformes)
*** [[전기가오리목]](Torpediniformes)
*** [[매가오리목]](Myliobatiformes)
** [[상어|상어상목]](Selachimorpha)
*** [[신락상어목]](Hexanchiformes)
*** [[돔발상어목]](Squaliformes)
*** [[톱상어목]](Pristiophoriformes)
*** [[전자리상어목]](Squatiniformes)
*** [[괭이상어목]](Heterodontiformes)
*** [[수염상어목]](Orectolobiformes)
*** [[흉상어목]](Carcharhiniformes)
*** [[악상어목]](Lamniformes)
* [[전두어아강]](Holocephali)
** [[은상어목]](Chimaeriformes)
== 계통 분류 ==
{{계통도/유악류}}
== 각주 ==
{{각주}}
== 같이 보기 ==
* [[연골어류의 과 목록]]
{{척삭동물}}
{{연골어류}}
{{분류군 식별자|from=Q25371}}
{{전거 통제}}
[[분류:연골어류|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생물 분류
|이름=농어목
|색=동물
|그림=YellowPerch.jpg
|그림_설명=엘로우 퍼치(''Perca flavescens'')
|계=[[동물|동물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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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류 | 분류=[[에우페르카리아류]]}}
|목='''페르카목'''(구 '''농어목''')<ref name="perca" /> (Perciformes)
|하위_링크=아목
|하위=
* [[꼬리점눈퉁이과|꼬리점눈퉁이아목]] (Bembropoidei)
* [[바리아목]] (Serranoidei)
* [[농어아목|페르카아목]] (Percoidei)<ref name="perca" />
* [[남극암치아목]] (Notothenioidei)
* [[양볼락아목]] (Scorpaenoidei)
* [[빨간양태아목]] (Bembroidei)
* [[양성대아목]] (Triglioidei)
* [[둑중개아목]] (Cottoidei)
}}
'''페르카목'''(Perciformes, 구 '''농어목''')<ref name="perca">새로운 분류법에 의하면, [[농어과]](Percichthyidae)를 [[주걱치목]]으로 분류하므로 기존의 ‘농어목’은 ‘페르카목’(Perciformes)으로, ‘농어아목’은 ‘페르카아목’(Percoidei)으로 호칭해야 한다.</ref>은 [[조기어류|조기어강]]에 속하는 목의 하나로, 물고기 전체 종의 40%를 차지하며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큰 목이다. 등지느러미·뒷지느러미·배지느러미에 가시줄이 발달되어 있다. 대부분 빗비늘을 가지며 부레와 식도는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 하위 분류 ==
* 미분류 아목
** [[벌감펭과]] (Apistidae)
** [[풀미역치과]] (Aploactinidae)
** [[불미역치과]] (Congiopodidae)
** [[에스크메이에르과]] (Eschmeyeridae)
** [[그나타나칸투스과]] (Gnathanacanthidae)
** [[네오세바스테스과]] (Neosebastidae)
** [[파타이쿠스과]] (Pataecidae)
** [[페리에나과]] (Perryenidae)
** [[플렉트로게니움과]] (Plectrogenidae)
** [[잔클로린쿠스과]] (Zanclorhynchidae)
** [[가시양태과]] (Hoplichthyidae)
** [[양태과]] (Platycephalidae)
* [[꼬리점눈퉁이과|꼬리점눈퉁이아목]] (Bembropoidei)
** [[꼬리점눈퉁이과]] (Bembropidae)
* 노르마니크티스아목 (Normanichthyoidei)
** [[노르마니크티스과]] (Normanichthyidae)
* [[바리아목]] (Serranoidei)
** [[바리과]] (Serranidae)
* [[농어아목|페르카아목]] (Percoidei)
** [[다금바리과]] (Niphonidae)
** [[페르카과]] (Percidae)
** [[동미리과]] (Trachinidae)
* [[남극암치아목]] (Notothenioidei)
** [[수염남극양태과]] (Artedidraconidae)
** [[남극양태과]] (Bathydraconidae)
** [[보비크투스과]] (Bovichtidae 또는 Bovichthyidae)
** [[남극빙어과]] (Channichthyidae)
** [[엘레기놉스과]] (Eleginopidae)
** [[하르파기페르과]] (Harpagiferidae)
** [[남극암치과]] (Nototheniidae)
** [[프세우다프리티스과]] (Pseudaphritidae)
* [[쏨뱅이아목]] 또는 [[양볼락아목]] (Scorpaenoidei)
** [[양볼락과]] (Scorpaenidae)
** [[쏨뱅이과]] (Sebastidae)
** [[세타르케스과]] (Setarchidae)
** [[쑤기미과]] (Synanceiidae)
** [[미역치과]] (Tetrarogidae)
* [[빨간양태아목]] (Bembroidei)
** [[빨간양태과]] (Bembridae)
** [[눈양태과]] (Parabembridae)
* [[양성대아목]] (Triglioidei)
** [[양성대과]] (Triglidae)
* [[둑중개아목]] (Cottoidei)
** [[은대구하목]] (Anoplopomatales)
*** [[은대구과]] (Anoplopomatidae)
** [[큰가시고기하목]] (Gasterosteales)
*** [[실비늘치과]] (Aulorhynchidae)
*** [[큰가시고기과]] (Gasterosteidae)
*** [[양미리과]] (Hypoptychidae)
** [[등가시치하목]] (Zoarcales)
*** [[이리치과]] (Anarhichadidae)
*** [[바닥가시치과]] (Bathymasteridae)
*** [[큰입망둑과]] (Cryptacanthodidae)
*** [[장갱이과]] (Stichaeidae)
*** [[황줄베도라치과]] (Pholidae)
*** [[장성베도라치과]] (Zaproridae)
*** [[등가시치과]] (Zoarcidae)
*** [[깃대장어과]] (Ptilichthyidae)
*** [[스키탈리나과]] (Scytalinidae)
** [[쥐노래미하목]] (Hexagrammales)
*** [[쥐노래미과]] (Hexagrammidae)
** [[자니올레피스하목]] (Zaniolepidoales)
*** [[자니올레피스과]] (Zaniolepididae)
** [[둑중개하목]] (Cottales)
*** [[에레우니아스과]] (Ereuniidae)
*** [[도루묵과]] (Trichodontidae)
*** [[도치과]] (Cyclopteridae)
*** [[꼼치과]] (Liparidae)
*** [[람포코투스과]] (Rhamphocottidae)
*** [[조르다니아과]] (Jordaniidae)
*** [[얼룩삼세기과]] (Scorpaenichthyidae)
*** [[날개줄고기과]] (Agonidae)
*** [[둑중개과]] (Cottidae)
*** [[물수배기과]] (Psychrolutidae)
== 계통 분류 ==
{{계통도/에우페르카리아류}}
{{계통도/페르카목}}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분류-줄}}
* {{위키생물종-줄|Perciformes}}
{{조기어류}}
{{전거 통제}}
{{분류군 식별자|from=Q127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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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피터르 블레이커르가 명명한 분류군]]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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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Thunnus atlanticus - pone.0010676.g186.png
|그림_설명=[[검정지느러미다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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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고등어과'''<br/>(Scombridae)
|하위_링크 = 속
|하위=
* 본문 참조
}}
'''고등어과'''(Scombridae)는 [[고등어목]]에 속하는 [[조기어류]]과의 하나이다. 이전에는 [[농어목]] 고등어아목으로 분류하였다. 2개 아과에 15속 51종을 포함하고 있다.<ref name=Orrell2006>{{저널 인용 |last=Orrell |first=T.M. |last2=Collette |first2=B.B |last3=Johnson |first3=G.D. |title=Molecular data support separate Scombroid and Xiphioid Clades |journal=Bulletin of Marine Science |year=2006 |volume=79 |issue=3 |pages=505–519 |url=http://www.ingentaconnect.com/search/download?pub=infobike%3a%2f%2fumrsmas%2fbullmar%2f2006%2f00000079%2f00000003%2fart00007&mimetype=application%2fpdf |accessdate=28 October 2012 |format=PDF }}{{깨진 링크|url=http://www.ingentaconnect.com/search/download?pub=infobike%3a%2f%2fumrsmas%2fbullmar%2f2006%2f00000079%2f00000003%2fart00007&mimetype=application%2fpdf }}</ref>
== 하위 분류 ==
* 비늘삼치아과 (Gasterochismatinae)
** 비늘삼치속 (''Gasterochisma'') - 유일종 [[비늘삼치]](''G. melampus'')
* 고등어아과 (Scombrinae)
** 고등어족 (Scombrini)
*** [[줄무늬고등어속]] (''Rastrelliger'') - [[줄무늬고등어]]
*** [[고등어속]] (''Scomber'') - [[참고등어]](고등어), [[대서양고등어]], [[망치고등어]]
** 삼치족 (Scomberomorini)
*** [[꼬치삼치속]] (''Acanthocybium'') - [[꼬치삼치]]
*** ''Grammatorcynus''
*** ''Orcynopsis''
*** [[삼치속]] (''Scomberomorus'') - [[동갈삼치]], [[평삼치]], [[삼치]], [[재방어]]
** 줄삼치족 (Sardini)
*** ''Cybiosarda''
*** ''Gymnosarda''
*** [[줄삼치속]] (''Sarda'') - [[줄삼치]]
** [[다랑어족]] (Thunnini)
*** [[날씬다랑어속]]''(Allothunnus)'' - [[날씬다랑어]]
*** [[물치다래속]] (''Auxus'') - [[몽치다래]], [[물치다래]]
*** [[점다랑이속]] (''Euthynnus'') - [[점다랑어]]
*** [[가다랑어속]] (''Katsuwonus'') - [[가다랑어]]
*** [[다랑어속]] (''Thunnus'') - [[참다랑어]], [[황다랑어]], [[눈다랑어]], [[날개다랑어]], [[백다랑어]], [[대서양참다랑어]], [[남방참다랑어]]
== 계통 분류 ==
{{계통도/고등어목}}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분류-줄}}
{{분류군 식별자|from=Q215185}}
{{전거 통제}}
[[분류:고등어과| ]]
[[분류:콘스턴틴 새뮤얼 라피네스크가 명명한 분류군]]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생물 분류
|이름=가다랑어
|색=동물
|그림=Katsuwonus pelamis Cyprus.jpg
|그림2=Katsuwonus pelamis.png
|상태 = LC | 상태_기준 = iucn3.1
|상태_출처=<ref name = IUCN>{{저널 인용| author1 = Collette, B. | author2 = Acero, A. | author3 = Amorim, A.F. | author4 = Boustany, A. | author5 = Canales Ramirez, C. | author6 = Cardenas, G. | author7 = Carpenter, K.E. | author8 = de Oliveira Leite Jr., N. | author9 = Di Natale, A. | author10 = Fox, W. | author11 = Fredou, F.L. | author12 = Graves, J. | author13 = Guzman-Mora, A. | author14 = Viera Hazin, F.H. | author15 = Juan Jorda, M. | author16 = Kada, O. | author17 = Minte Vera, C. | author18 = Miyabe, N. | author19 = Montano Cruz, R. | author20 = Nelson, R. | author21 = Oxenford, H. | author22 = Salas, E. | author23 = Schaefer, K. | author24 = Serra, R. | author25 = Sun, C. | author26 = Teixeira Lessa, R.P. | author27 = Pires Ferreira Travassos, P.E. | author28 = Uozumi, Y. | author29 = Yanez, E. | display-authors = 3 | year = 2011 | title = ''Katsuwonus pelamis'' | journal = [[The IUCN Red List of Threatened Species]] | volume = 2011 | page = e.T170310A6739812 | doi = 10.2305/IUCN.UK.2011-2.RLTS.T170310A6739812.en }}</ref>
|계 = [[동물|동물계]]
|문 = [[척삭동물|척삭동물문]]
|강 = [[조기어류|조기어강]]
|목 = [[고등어목]]
|과 = [[고등어과]]
|속 = '''가다랑어속'''
|종 = '''가다랑어'''
|학명=''Katsuwonus pelamis''
|학명_명명=[[칼 폰 린네|Linnaeus]], 1758
}}
'''가다랑어'''(---魚, {{학명|Katsuwonus pelamis}})는 [[고등어목]] [[고등어과]]의 물고기로, 가다랭이, 가다리, 에다대, 여다랭이, 강고등어(경남), 소용치, 목맨둥이, 다랭이(포항) 라고도 한다. 세계의 어로 활동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요 어종 가운데 하나이다.<ref name=FAOspcat>{{서적 인용
| publisher =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
| page = 137
| last = Collette
| first = Bruce B.
|author2=Cornelia E. Nauen
| title = FAO species catalogue. Vol. 2. Scombrids of the world. An annotated and illustrated catalogue of tunas, mackerels, bonitos and other related species known to date
| location = Rome
| series = FAO Fisheries Synopsis
| year = 1983
| url = ftp://ftp.fao.org/docrep/fao/009/ac478e/ac478e00.pdf
}}</ref>
== 생김새 ==
몸 빛깔은 등쪽은 짙은 청자색이며, 배 부분은 은백색 바탕에 4~6개의 검은 색 세로띠가 있다. 몸은 방추형으로 통통하며, 몸통의 횡단면은 거의 원형에 가깝다. 주둥이 끝은 뾰쪽하며, 꼬리자루는 가늘고 단단하다. 눈 뒷부분, 가슴지느러미 주위, 옆 줄에만 [[비늘]]이 있다. 첫 등지느러미의 기저는 길고, 두 번째 등지느러미와 겨우 분리되어 있다. 양 턱에는 융털 모양의 이빨이 있다. 기대 수명은 8-12년이다.<ref name=FAOspcat/>
== 습성 ==
적도 해역에서는 산란이 일 년 내내 이루어지고, [[아열대]] 해역에서는 봄부터 가을초까지 이루어지며 포란수는 체장 41~87cm이며 약8만~200만개의 [[알]]을 낳는다. 부화 후 만 1년이면 [[가랑이체장]] 16cm, 2년이면 34cm, 3년이면 43cm, 4년이면 54cm 전후로 자라며, 다 자라면 전장 100cm가량 자란다. [[전갱이]], [[정어리]], [[멸치]] 등 작은 [[어류]]와 [[연체동물]], [[오징어]]류, 작은 [[갑각류]] 등을 잡아 먹는다.(반면에 다른 [[원양 어류]]와 [[상어]]의 주된 먹이가 되기도 한다.)
== 분포 ==
[[한국]]의 남.동해, [[일본]] 근해, 세계의 온대, 열대 해역(북위 40도~남위40도)에 분포한다. 표층 외양성 어류로서 낮에는 표층에서 수심 260m까지, 밤에는 표층 가까이에서 주로 서식한다. 유영능력이 강하며, 최대 5만마리까지 무리지어 다닌다. 봄~여름에 한반도 주변 해역까지 회유해 오고 가을~겨울에는 남쪽으로 이동한다. [[몰디브]], [[프랑스]], [[스페인]],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에서 특히 많이 어획된다.<ref>{{서적 인용|url=http://www.fao.org/docrep/007/y5428e/y5428e00.htm |title=Historical trends of tuna catches in the world |series=FAO Fisheries Technical Paper No. 467 |author1=Makoto Miyake |author2=Naozumi Miyabe |author3=Hideki Nakano |publisher=[[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 |location=Rome |year=2004}}</ref>
== 용도 ==
가다랑어는 [[칼륨]]이 다량 함유되어 있고 국물용으로 인기가 많다. 가다랑어의 살코기를 건조시켜 건어물로 만든 것이 [[가쓰오부시]]이며, [[회]] 및 [[구이]]로 먹기도 한다.
== 각주 ==
{{각주}}
== 같이 보기 ==
{{위키공용|Katsuwonus pelamis}}
* [[가쓰오부시]]
* [[다랑어]]
{{분류군 식별자|from=Q633957}}
{{전거 통제}}
[[분류:고등어목]]
[[분류:고등어과]]
[[분류:낚싯고기]]
[[분류:1758년 기재된 물고기]]
[[분류:일본의 물고기]]
[[분류:태국의 물고기]]
[[분류:상업적 물고기]]
[[분류:칼 폰 린네가 명명한 분류군]]
[[분류:고치현의 상징]]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넘어옴|지리}}
{{학문 정보
|학문명 = 지리학
|그림 = World map.png
|그림크기 =
|그림설명 =세계의 지형도
|다른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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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분야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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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地理學, {{llang|en|geography}})은 지표 상에서 일어나는 자연 및 인문 현상을 지역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과학]]의 한 분야이다.<ref>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ref>
공간 및 자연과 경제, 사회와의 관계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 분야로, 공간이나 자연 환경이라고 하는 물리적 존재를 대상 안에 포함하는 점에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양면의 성격이 있다. 원래는 농경이나 전쟁, 통치를 위해 각지의 정보를 조사해 정리하기 위한 연구 영역으로서 성립했다. 그러나 현재는 [[자연과학]] 내지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서 지역마다 다른 공간적 이질성을 설명하는 데 필요하게 되었다.
지리학의 관심 대상은 불규칙한 분포이다. 지구에서 발견되는 사물에는 다중성이 존재한다. 사물의 다중성은 공간적으로 불규칙하게 분포한다. 불규칙한 분포가 사물이 지리적인 성격을 나타내게 한다. 다른 관심 대상은 상호관련성이다. 예를 들어, 농업 현상의 경우 농업과 연관된 기후, 토양, 인구, 경제적 조건, 기술력과 다른 조건 사이의 연관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해당 농업의 지리적인 특성을 파악할 수 없다. 이를 바탕으로 미루어 볼 때, 지리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왜, 그곳에, 무엇이 있으며, 그래서 그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어떻게 되느냐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영어에서 지리를 뜻하는 단어(geography)는 고대 그리스어의 {{llang|grc|γεωγραφία}}에서 유래하였다. 에라토스테네스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땅을 뜻하는 "η γη" (hê gê)와 기술(記述)을 뜻하는 "γραφειν" (graphein)를 합친 용어다.<ref>[https://es.wikipedia.org/wiki/Geograf%C3%ADa 에스파냐어 위키백과]]</ref><ref>[http://www.etymonline.com/index.php?term=geography etymonline]</ref> 지리(地理)라는 용어는 [[주역]]에서는 산천의 환경과 형세를 나타내는 말이었고, [[구당서]], [[원사]]에서는 오늘날의 지리학과 유사한 용례로 쓰였다.<ref>[https://zh.wiktionary.org/wiki/%E5%9C%B0%E7%90%86 중국어 윅셔너리]</ref>
== 역사 ==
{{본문|지리학의 역사}}
===서양의 지리학===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세계지도는 기원전 9세기 고대 [[바빌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ref>Kurt A. Raaflaub & Richard J. A. Talbert (2009). Geography and Ethnography: Perceptions of the World in Pre-Modern Societies. John Wiley & Sons. p. 147. {{ISBN|1-4051-9146-5}}</ref>
[[아낙시만드로스]] (기원전 610년 경 -기원전 545년 경)는 후대 그리스 작가들이 지리학의 진정한 창시자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의 아이디어는 후대 학자들의 인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최초로 [[예술]]과 [[과학]]의 방식으로 지리학을 바라보았던 그리스인들은 [[지도학]], [[철학]], [[문학]], [[수학]]을 통해서 지리학을 탐구했다. [[파르메니데스]]나 [[피타고라스]]는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아낙사고라스]]는 [[식]]을 설명하면서 지구의 윤곽이 둥글다는 것을 보였다. 하지만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그는 지구는 편평한 원반이라고 믿었다. 고대에 지구의 반지름을 구한 사람에는 [[에라토스테네스]]가 꼽힌다.<ref>Jean-Louis and Monique Tassoul (1920). A Concise History of Solar and Stellar Physics. Lond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ISBN|0-691-11711-X}}.</ref></p> [[히파르코스]]는 최초로 엄밀하게 위선과 경선 체계를 도입한 사람이었다.
중세시대에는 [[로마 제국의 붕괴]]에 의해 유럽보다는 이슬람 세계에서 지리학의 발전이 두드러졌다.<ref>Needham, Joseph (1986). 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 Volume 3. Taipei: Caves Books, Ltd. Page 512.</ref> [[이드리시|무함마드 알 이드리시]]와 같은 무슬림 지리학자는 상세한 세계지도(예: Tabula Rogeriana)를 제작하였다.
16~17세기 동안 지속된 유럽의 대항해시대에는 많은 신대륙이 발견되었다. 이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마르코 폴로]], [[제임스 쿡]] 같은 탐험가의 발견이 이어졌다. 이들의 발견에 따라 유럽에서는 정확한 지리적 사실을 아는 것과 지리학적 이론의 기반이 필요해졌다. 경도를 찾는 문제가 대표적인 것이었다. [[존 해리슨]]은 크로노미터를 고안하여 경도 문제를 해결했다.<ref>Aughton, Peter (2007). Voyages that changed the world. Quercus. p. 164. {{ISBN|978-1-84724-004-0}}.</ref>
18세기와 19세기는 지리학이 분리된 학문의 분과로서 인식되었던 시대였고, 유럽의 대표적인 대학의 교과과정(특히 파리와 베를린)의 부분이 된 시대였다. 많은 지리 학회의 발전은 19세기에 시작되었다. 1821년의 프랑스 지리학회<ref>"Société de Géographie, Paris, France" (in French). Retrieved 2007-01-15.</ref>, [[1830년]]의 [[왕립지리학회]]<ref>"About Us". Royal Geographical Society. Retrieved 2007-01-15.</ref>, 1851년의 미국 지리학회<ref>"The American Geographical Society". Amergeog.org. 2009-04-02. Retrieved 2009-04-17.</ref>, 1888년의 내셔널지오그래픽 학회<ref>"Inspiring People to Care About the Planet". National Geographic. 2002-10-17. Retrieved 2009-04-17.</ref>가 이 당시에 창설되었다. [[임마누엘 칸트]], [[알렉산더 폰 훔볼트]], [[칼 리터]], [[폴 비달 드 라 블라슈]]는 지리학이 철학에서 학문상의 과목으로 인식되게 하였다.</p>
====이슬람 지리학====
[[파일:Universal Map 2, Al-Idrisi (1100-1165).jpg|섬네일|[[알 이드리시]]의 세계지도]]
이슬람을 신봉하는 아라비아인들은 이슬람 제국이 영토를 확장한 9~14C 동안 지리적 발달을 이룰 수 있었다. 그 이유로는 메카로의 순례 여행이라는 점으로 이전에 알려진 지리적 기록물을 참고로 순례지로 여행하며 새로운 지리적 지식을 지속적으로 추가할 수 있었으며, 동-서양간, 인도, 중국으로의 교역으로 인한 무역로 개척, 교역을 통한 아시아의 지리적 지식이 첨가될 수 있었으며, 확장된 이슬람 제국을 통치하기 위한 자료로 지리적 지식이 요구되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 결과, 동서양으로부터 지리적 지식을 흡수, 보급하기 위한 아랍어 번역이 이루어 질 수 있었다. 이렇게 보전된 지리적 저서들은 이후 르네상스 시기 라틴어로 재 번역되어 지리학 재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슬람 지리학은 이 뿐만 아니라, 수리 지리학을 발달시키고, 측량, 야외 조사 발달에 공헌하기도 하였다.
===동양의 지리학===
[[파일:GeneralMapOfDistancesAndHistoricCapitals.jpg|섬네일|오른쪽|혼일강리역대국대지도]]
==== 중국의 지리학 ====
<p>3세기 이후로 지리학적 연구와 지리학적 문헌 집필에 대한 중국의 이론은 13세기까지 동시대의 유럽에 비해 훨씬 정교했다.<ref>Needham, Joseph (1986). 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 Volume 3. Taipei: Caves Books, Ltd. Page 512.</ref>.</p><p>중국은 서양과의 지리적 이격으로 인해 천원지방 사상으로 대표되는 독자적 지리관을 발달시켜 나가게 된다. 결국, 지리적 개념과 연구 방법은 서양과 상당한 차이가 나타나게 된다. </p><p>[[유안 (회남왕)|유안]], [[배수 (서진)|배수]], [[가탐]], [[심괄]], [[범성대]], [[주달관]], [[서하객]]과 같은 중국인 지리학자는 중요한 문헌을 남겼다. 그렇지만 17세기에는 서양식 지리학적 이론이 중국에서 채용되었다.</p>
==== 한국의 지리학 ====
한국에서 삼국시대나 그 이전의 지리학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반구대 암각화]], [[고구려 고분 벽화]]를 토대로 당시의 지리관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신라 말기에 선종 승려들이 중국에서 풍수지리설을 들여왔다.<ref>국사편찬위원회, 고등학교 국사, 2002</ref> 고려시대에는 [[김부식]]의 삼국사기 지리지처럼 지리에 대한 문헌이 남아있다. 이 시대는 풍수지리설이 유행한 시기였다. 서경 천도와 북진 정책의 추진 근거로 풍수지리가 활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많은 지리지와 지도가 편찬되었다. 이는 중앙 집권과 국방의 강화를 위한 것이었다. 태종 때에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동양의 세계 지도중 가장 오래 된 것이다. 16세기에도 많은 지도가 만들어졌는데, [[조선방역지도]]가 현존하고 있다. 세종, 성종 때에는 지리지가 편찬되었다. 여기에는 군현의 연혁, 지세, 인물, 풍속, 산물, 교통 등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이 당시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을 중종 때 [[신증동국여지승람]]으로 보충하여 편찬했다.
[[실학]]이 발달하면서, 민족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한국의 전통지리도 이에 따라 발달했다. [[한백겸]]의 [[동국지리지]], [[정약용]]의 [[아방강역고]]와 같은 역사 지리서, [[이중환]]의 [[택리지]]와 같은 인문 지리서가 편찬되었다. 중국에서 서양식 지도가 전해짐에 따라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같은 정밀한 지도가 만들어졌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근대지리학이 도입되었다.
<ref>국사편찬위원회, 고등학교 국사, 2002</ref><ref>{{웹 인용 |url=http://www.jirilim.com/zbxe/ |제목=지리임 |확인날짜=2015-03-01 |archive-date=2015-01-22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50122020145/http://www.jirilim.com/zbxe/ |url-status= }}</ref>
===현대의 지리학===
지난 2세기 동안, 컴퓨터 기술의 발전은 지리정보학이 발전하게 하였다. 참여자의 관찰과 지리 통계학은 지리학의 새로운 도구가 되었다. 20세기 서구에서는 지리학은 주요 네 가지 과정을 가쳤다. [[환경결정론]], [[지역지리학]], [[계량혁명]], [[비판적 지리학]]이다. 지질학, 식물학, 경제학, 인구학과 같은 학문과의 연계가 크게 늘어났다. 특히 세계를 통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지구 시스템 과학의 연구로 인해 연계가 늘어났다.
== 현대 지리학의 기초 ==
현대 지리학은 주로 서구에서 유래한 것이다. 서구에서는 전통적으로, [[지리학자]]는 지도학자, 지명이나 수를 연구하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많은 지리학자가 지명을 다루는 학문이나 지도학을 아는 사람이었어도 이 분야는 지리학자의 주된 연구 분야가 아니다. 지리학자는 현상, 과정, 사물의 시공간적 분포를 다룬다. 여기에 인간과 그들이 사는 환경 간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도 연구한다.<ref name="Hayes-Bohanan">{{웹 인용|last=Hayes-Bohanan |first=James |title=What is Environmental Geography, Anyway? |url=http://webhost.bridgew.edu/jhayesboh/environmentalgeography.htm |accessdate=October 9, 2006}}</ref> 공간과 장소는 다양한 주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지리학은 다른 학문과의 연관성이 크다. 지리학적 접근의 이러한 특성은 현상과 그것의 공간적 패턴 사이의 상관관계를 얼마나 깊게 따지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quote|text=
(전략) 한낱 장소의 이름은 지리가 아닙니다. (중략) 원래 지명 사전을 통째로 외우는 것은 [[지리학자]]의 일이 아닙니다. 지리학은 이보다 더 높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리학은 현상을 분류하고, 비교하고, 일반화하고, 원인과 결과를 따져서 자연의 법칙을 아는 것과 인간에게 이들이 끼치는 흔적을 찾아내기를 추구합니다. 이것이 '세계의 기술(記述)', 지리학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지리학은 과학입니다. 이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설명과 추론, 원인과 결과에 관한 것입니다.
<ref>Hughes, William. (1863). ''The Study of Geography 지리학의 연구''. Lecture delivered at King's College, London by Sir Marc Alexander. Quoted in {{서적 인용|last=Baker |first=J.N.L |date=1963 |title=The History of Geography |publisher=Basil Blackwell |location=Oxford |pages=66 |isbn=0-85328-022-3}}</ref>|sign=[[윌리엄 휴]], 1863}}
{{quote|text=모든 현상은 시간에 있기 때문에 역사가 있듯이, 공간에도 있어서 지리가 있다.
<ref>"Chapter 3: Geography's Perspectives". {{서적 인용|author=<!--Staff writer(s); no by-line.--> |date=1997 |title=Rediscovering Geography: New Relevance for Science and Society |publisher=The National Academies Press |location=Washington DC |pages=28 |accessdate=2014-05-06 |url=http://www.nap.edu/openbook.php?record_id=4913&page=28 }}</ref>|sign=[[미국 국립 연구 회의]], 1997}}
[[미국지리교육학회]]와 [[미국지리학회]]는 1984년에 지리학의 기본 주제를 다음 다섯 가지로 선정하였다.
#위치({{llang|en|Location}}): 절대위치와 상대위치로 나뉜다. 절대위치란 어떤 장소의 실제 위치이다. 경위도로 나타낼 수 있다. 상대위치는 다른 장소에 대한 위치이다. 서울을 한강 위의 도시로 나타내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장소({{llang|en|Place}}): 특징을 나타내는 말이다. 장소를 나타내는 특성에는 인문적인 특성과 자연적인 특성이 있다. 전자는 인간에 의해서 나타나고, 후자는 자연 환경에 의해 나타난다.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llang|en|Human-Environment Interaction}}): 인간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느냐에 관한 주제이다. 인간이 환경에 의존한다는 관점, 환경을 바꾼다는 관점, 환경에 적응한다는 관점이 있다.
#이동({{llang|en|Movement}}): 연결에 관한 주제이다. 인간이나 장소, 자연 환경은 이동에 의해 서로 연결된다.
#지역({{llang|en|Region}}): 지리학의 기본적인 연구단위이다. 공통점이 있는 영역({{llang|en|area}})으로 정의할 수 있다. 지역간의 유사성과 차이와 같은 연구 주제가 있다. 기후나 민족과 같은 특성으로 장소의 공통점과 차이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ref>[https://www.csustan.edu/sites/default/files/TeacherEd/FacultyStaff/betts/Handouts/PDFs/Five%20Themes%20of%20Geography.pdf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ref>
== 분류 ==
지리학을 분류할 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분류할 수 있으나 가장 대표적인 분류방법으로 접근 방법 혹은 연구 방법에 따른 분류가 사용된다. 이를 통해 지리학을 분류하면 [[계통지리학]]과 [[지역지리학]]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계통지리학]]은 특정 주제에 대해 지리적으로 접근하여 일반적인 원리를 도출하는 연구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계통지리학]]은 그 주제의 성격에 따라 [[인문지리학]]과 [[자연지리학]]으로 분류한다. [[지역지리학]]은 특정 지역을 지리적으로 접근하여 내용을 서술하고 연구하는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 인문지리학 ===
{{본문|인문지리학}}
인간 활동의 공간적 조직, 인간과 환경간의 연관성을 탐구하는 분야이다. 인간에 의하여 공간조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탐구하고, 어떤 형태인지를 탐구한다. 공간의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하는 분야이다.
<div style="text-align: center;">'''인문지리학은 다양하고 넓은 분야로 구분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분과가 있다.'''</div>
{| class="wikitable" style="margin: au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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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Christaller model 1.jpg|96px]] ||[[경제지리학]]|| 경제적 활동의 위치, 분포, 공간적 조직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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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Tourists-2.jpg|96px]] ||[[관광지리학]]|| 여행과 관광을 산업이나 사회적, 문화적 활동으로 보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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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RERParisVision2025.png|96px]] || [[교통지리학]]|| 인간의 관심 대상의 움직임, 연결을 연구하는 경제지리학의 분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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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New-York-Jan2005.jpg|96px]]|| [[도시지리학]] || 건물, 기반 시설이 밀집한 지역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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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Qichwa conchucos 01.jpg|96px]] || [[문화지리학]]|| 문화적 산물, 규범과 이들의 다양성과 이들의 공간에 대한 연관성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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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Pepsi in India.jpg|96px]] || [[발전지리학]]|| 거주지의 삶의 질, 삶의 기준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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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Star of life.svg|96px]] || [[보건지리학]]|| 보건에 지리학적 지식을 응용한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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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US-hoosier-family.jpg|96px]] || [[사회지리학]]|| 사회 현상과 이 현상의 공간적인 요소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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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British Empire 1897.jpg|96px]]|| [[시간지리학]], [[역사지리학]] || [[시간지리학]]에서는 어떤 사건의 시간과 공간적인 측면을 다룬다. [[역사지리학]]은 과거의 지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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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Pyramide Comores.PNG|96px]] || [[인구지리학]], [[인구론]] || 인구의 분포, 구성, 이주가 장소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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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UN General Assembly.jpg|96px]] || [[정치지리학]], [[지정학]] || [[정치지리학]]에서는 특정 장소의 사람들이 정치적인 모임을 어떻게 형성했고, 이들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연구한다. 이 중 [[지정학]]은 지리가 국제 정세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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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ReligionSymbol.svg|96px]] || [[종교지리학]]|| 종교적 신념에 지리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룬다.
|}
시간이 지나면서 다음과 같은 분야도 생겨났다.
* [[행동주의 지리학]]: 인간의 행동을 독립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인간과 장소를 연계시켜 보는 시각과 대비된다.
* [[여성주의 지리학]]: [[여성주의]]를 환경, 사회, 지리적 공간에 접목시킨 학문이다.
* [[문화 이론]]: 문화를 특정 시각에서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 [[지리철학]]: 사람들이 인식하고 떠올리는 세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 자연지리학 ===
{{본문|자연지리학}}
자연지리학은 말 그대로 자연에 대한 지리적 내용을 다루는 분야이다. 자연과 환경의 구성요소, 상호작용, 공간적 분포에 대해 탐구하는 분야이다.
지리학이 발달한 미국, 영국,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는 자연지리학을 지질학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며 지구과학의 한 분야 혹은 자연과학의 한 분야로 취급한다.
<div style="text-align: center;">'''자연지리학은 다양하고 넓은 분야로 나눌 수 있다. 다음 분과를 포함한다.'''</div>
{| class="wikitable" style="margin: au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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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Khajuraho-landscape.jpg|96px]] || [[경관생태학]]|| 환경에서 생태학적 과정과 특정 생태계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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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Pangea animation 03.gif|96px]] || [[고지리학]]|| 과거의 지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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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Cyclone Catarina from the ISS on March 26 2004.JPG|96px]] || [[기후학]], [[기상학]] || 각각 [[기상]], [[기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기후가 기상 현상의 평균이라는 것이 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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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Receding glacier-en.svg|96px]] || [[빙하학]] || [[빙하]]나 얼음을 수반하는 자연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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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Línea de Wallace.jpg|96px]] || [[생물지리학]] || [[종 (생물학)|종]]이나 [[생태계]]의 분포, 특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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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Meander-en.svg|96px]] || [[수문학]], [[수로학]] || 수문학은 물의 순환을 다루고, 수로학은 바다, 강과 같은 물이 있는 지형 따위를 다루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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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Milankovitch Variations sv.png|96px]] || [[제4기학]]|| [[제4기]]의 환경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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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Delicate Arch LaSalle.jpg|96px]] || [[지형학]] || 지형의 형성, 발달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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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Meridian convergence and spehrical excess.png|96px]] || [[측지학]] || [[지구]]나 지구 [[중력장]]의 측정과 표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
| [[파일:Soil profile.jpg|96px]] || [[토양학]] || 자연 환경에서 [[토양]]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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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90 mile beach.jpg|96px]] || [[해안지리학]]|| [[대양]]과 [[육지]]가 만나는 곳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
| [[파일:World11.jpg|96px]] || [[해양학]] || 해양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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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Gavin Plant.JPG|96px]] || [[환경자원관리]]|| 인간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과 상호작용을 관리하는 것이다.
|}
=== 지역지리학 ===
{{본문|지역지리학}}
지역지리학, 또는 지지(地誌)는 지역을 종합적으로 보는 분야이다. 규모에 상관없이 지구 상의 지역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지역지리학의 목표는 자연적, 인문적 요소를 이루는 지역을 이해하고 정의하는 것이다. 지리적 과학의 한 방식으로 여겨지지도 한다. 지역구분(Regionalisation)도 지역지리학의 관심분야이다. 대표적인 분야에는 한국지리, 유럽지리 등이 있다.
=== 지리정보학 ===
{{본문|지리정보학}}
지리정보학은 1950년대 중반의 [[계량 혁명]]이후에 새롭게 떠오른 분야이다. [[지도학]], [[지형학]]에서 쓰인 공간과 연관된 기술과 컴퓨터에 대한 응용을 포함한다. 지리정보학은 GIS와 원격 탐사를 쓰면서 다른 학문과도 연관된 폭넓은 학문이 되었다. 지리학과가 다시 살아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특히 1950년대 이후로 침체기를 겪었던 북미의 지리학과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지리정보학은 [[공간분석]]과 연관된 다양한 분야를 포함한다. 이 분야에는 [[지도학]], [[원격탐사]], [[GIS]], [[GPS]]가 있다.
===연관 분야===
* [[도시 계획]], [[지역 계획]]: 지리학의 이론을 이용한다. 이는 안전, 미, 경제적 기회, 자연 유산이나 인조 유산의 보존과 같은 기준을 만족시키도록 땅을 개발하기(또는 개발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마을과 도시와 교외 지역에 대한 계획은 응용 지리학으로 생각할 수 있다.
* [[지역 과학]]: 1950년대에 월터 아이사드가 이끄는 지역 과학 운동이 일어났다. 지리적인 질문에 더욱 계량적이고 분석적인 기초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묘사,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전통적인 지리 과정과는 대비되는 것이었다. 지역 과학은 공간적 차원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야를 포함한다. [[지역지리학]], [[자원 관리]], [[위치 이론]], [[도시 계획]], [[교통]], [[통신]], [[인문지리학]], [[인구분포]]가 그 예이다.
* [[행성 과학]]: 지리학이 지구를 주로 다루지만, 지리학에서는 다른 세계를 묘사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태양계의 행성이나 더 멀리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구보다 더 큰 체계를 연구하는 것은 [[천문학]]의 일부를 이룬다.
==기법==
통시적인 특성을 띤 과학인 지리학은 공간적인 상호연관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지도]]는 지리학의 중요한 도구이다. 고전적인 [[지도학]]에 지리적 분석의 현대적인 방식인, 컴퓨터를 기반으로한 [[지리 정보 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
지리학에서는 지리학자가 쓰는 서로 연관된 네 가지 접근 방식이 있다. 이는 다음과 같다.
*체계적 방식({{llang|en|Systematic}}): 지리적인 지식을 세계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범주로 묶는다.
*지역적 방식({{llang|en|Regional}}): 행성 상의 장소나 특정한 지역에 대한 범주 사이의 체계적인 관계를 관찰한다.
*서술적 방식({{llang|en|Descriptive}}): 사상(事象)과 인구의 위치를 간단히 명시한다.
*분석적 방식({{llang|en|Analytical}}): 특정 지리적 지역에서 왜 지리적 사상과 인구를 탐구하는지 묻는다.
===지도학===
{{본문|지도학}}
[[지도학]]은 지구의 표면을 추상적인 기호로 표현하는 방법을 다루는 학문이다. 지리학의 다른 분과가 연구에서 얻은 분석 결과를 나타내는 데 지도를 사용하고 있어서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나, 지도를 만드는 것은 추상적이기 때문에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다. 지도학은 지도를 작성하는 기술에서 실제 [[과학]]으로 발전했다.
지도학자는 인지심리학과 인체 공학을 알아야 한다. 어떤 기호가 [[지구]]를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내야 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도를 보는 사람들이 정보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행동심리학도 알아야 한다. 지구의 모양이 보기 위한 평평한 표면 위에서 어떻게 왜곡되는지 알기 위해서는 [[측지학]]과 고급의 [[수학]]을 알아야 한다. 지도학은 지리학의 넓은 영역이 자라나는 씨앗이라고 볼 수 있다. 지리학자 중에서는 어린 시절의 지도에 대한 깊은 관심이 지리학의 길로 이끌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리 정보 체계===
지리는 컴퓨터에 의해 지구에서 자동으로 검색된 정보를 저장하는 것을 다룬다. 정보의 목적에 따라 적당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지리학의 수많은 세부 분야와 더불어, GIS전문가는 컴퓨터 과학과 데이터베이스 체계를 이해해야 한다. GIS는 지도학에 혁명을 일으켰다. 거의 모든 지도제작은 GIS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진다. 지리 정보 체계는 한다. 이 맥락에서 GIS는 지리 정보 과학({{llang|en|Geographic information science}})를 말한다.
===원격탐사===
{{본문|원격탐사}}
원격탐사는 지구 상의 사물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측정하여 그 사물에 대한 정보를 얻는 과학이다. 원격으로 얻은 정보는 다양한 형태를 띤다. 위성 사진, 항공 사진이 그 예이다. 지리학자들이 원격 탐사를 통해 얻은 지표, 해양, 대기에 관한 정보를 이용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다양한 공간적 척도(지역적 범위에서 세계적 범위까지)에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관심 지역을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게 한다.
*멀거나 접근이 불가능한 장소도 다룰 수 있게 한다.
*가시광선 이외의 영역의 전자기파를 볼 수 있게 하여, 이 영역으로 관찰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물이나 지역이 어떻게 시간에 따라 바뀌는 지에 관한 연구를 촉진시킨다.
원격탐사로 얻은 정보는 다른 디지털 정보와 같이 분석하거나, 독립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정량적 기법===
지리학에서는 정량적 기법이 활용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지리통계학이다. 지리통계학은 정량적인 정보 분석을 다룬다. 특히 지리적 현상을 탐구하는 통계적 방법론의 응용을 다룬다. 지리통계학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그 분야에는 [[수문학]], [[지질학]], [[석유]]탐사, 기상 분석, [[도시 계획]], [[물류]], [[역학 (의학)|역학]]이 있다. 지리통계학에서 쓰이는 수학의 분야에는 [[클러스터 분석]], [[선형 판별 분석]], [[비모수 통계]] 등이 있다. 지리통계학의 적용은 지리 정보 체계에서 주로 이루어지는데, 특히 측정하지 않은 점의 내삽을 할 때 주로 이루어진다. 정량적 기법의 방법에 지리학자가 많은 기여를 한다.
===정성적 기법===
지리학적 정성적 기법, 또는 민족지적 연구 기법은 인문지리학자가 사용하는 기법이다. 문화지리학에서는 예로부터 정성적인 기법을 썼다. 인류학과 사회학에서도 쓰이는 기법이다. 참여자 관찰이나 심층 인터뷰는 정성적 자료를 얻는 방법이다.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지구과학]]
* [[지도]]
* [[지리 정보 체계]]
* [[지리학의 역사]]
* [[지리학자 목록]]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 [http://www.kgeography.or.kr/ 대한지리학회 홈페이지]
* [https://web.archive.org/web/20081205042105/http://www.ngi.go.kr/ 국토지리정보원 홈페이지]
{{지리학}}
{{사회과학}}
{{전거 통제}}
[[분류:지리학|*]]
[[분류:지구과학]]
[[분류:사회과학]]
[[분류:학문 분야]]
[[분류:개체군]]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파일:Tomb of Nakht (2).jpg|섬네일|right|]]
[[파일:Rice-planting-machine,katori-city,japan.JPG|섬네일|논농사를 짓는 모습.]]
'''농업'''(農業, {{llang|en|agriculture}}) 또는 '''농경'''(農耕)은 [[흙]]이나 [[토지]]를 이용하여 인간에게 유익(유용)한 [[식물]]([[곡물]], [[채소]], [[과일]], [[꽃|화훼]], [[약재]], [[섬유]] 등)의 재배와 생산 그리고 [[가축]]들의 생산 및 품질 관리에 관계되는 온갖 활동과 연구를 일컫는다.<ref name="Office1999">{{서적 인용 |title=Safety and health in agriculture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GtBa6XIW_aQC&pg=PA77 |year=1999 |publisher=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sbn=978-92-2-111517-5 |pages=77– |accessdate=13 September 2010 |url-status=live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10722061757/http://books.google.com/books?id=GtBa6XIW_aQC&pg=PA77 |archivedate=22 July 2011 |df=dmy-all }}</ref> 인류가 부락을 이루는 [[정착생활]]을 시작하는 데에 막중한 역할을 한 산업으로, [[수렵]]과 [[어로]], 열매 [[채집]]과 함께 가장 먼저 발달된 생산 활동이기도 하다. 최소 105,000년 전부터 야생 곡물을 수확한 흔적이 있으며, 11,500년 전 초기 [[농부]]들이 나타나 작물을 경작하기 시작했고, 이와 같은 초기 농경은 세계 11곳에서 따로따로 일어났다. 21세기를 기하여 대규모 [[단작]]과 기계화를 바탕으로 한 [[집약농업]]이 주로 이루어지며 [[생업]]으로 삼는다.
농업 생산과 경영 방식, 효과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을 [[농학]]이라고 따로 일컫는다. 발달된 농학과 품종 개량, [[살충제]]·[[제초제]]·[[비료]]·[[퇴비]]로 인하여 전세계 수확량이 지난 시대에 비하여 크게 증가하고 있으나, 동시에 크나큰 [[자연 파괴]]와 토양 오염과 수질 오염을 초래하고 있다.
== 역사 ==
{{본문|농업의 역사}}
농업은 전 세계 여러 다른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했으며 다양한 분류군을 포함하였다. 구대륙과 신대륙, 적어도 11개의 지역에서 독립적인 [[기원지]]로 발생하였다.<ref>{{저널 인용 |doi=10.1073/pnas.1323964111 |title=Current perspectives and the future of domestication studies|journal=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volume=111 |issue=17 |page=6139 |year=2014 |last1=Larson |first1=G. |last2=Piperno |first2=D. R. |last3=Allaby |first3=R. G. |last4=Purugganan |first4=M. D. |last5=Andersson |first5=L. |last6=Arroyo-Kalin |first6=M. |last7=Barton |first7=L. |last8=Climer Vigueira |first8=C. |last9=Denham |first9=T. |last10=Dobney |first10=K. |last11=Doust |first11=A.N. |last12=Gepts |first12=P. |last13=Gilbert |first13=M. T. P. |last14=Gremillion |first14=K. J. |last15=Lucas |first15=L. |last16=Lukens |first16=L. |last17=Marshall |first17=F. B. |last18=Olsen |first18=K.M. |last19=Pires |first19=J.C. |last20=Richerson |first20=P.J. |last21=Rubio De Casas |first21=R. |last22=Sanjur |first22=O.I. |last23=Thomas |first23=M.G. |last24=Fuller |first24=D.Q.}}</ref> 적어도 105,000년 전에 곡물을 수집하여 섭취하였다.<ref>{{웹 인용|last1=Harmon|first1=Katherine|title=Humans feasting on grains for at least 100,000 years|url=http://blogs.scientificamerican.com/observations/humans-feasting-on-grains-for-at-least-100000-years/|publisher=[[Scientific American]]|accessdate=28 August 2016|date=17 December 2009}}</ref> [[돼지]]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15,000년 전 즈음에 가축화되었다.<ref>{{서적 인용 |last=Nelson |first=Sarah M. |date=1998 |title=Ancestors for the Pigs. Pigs in prehistory |url=https://books.google.co.il/books?id=N5dN_A29v58C&printsec=frontcover&hl=ru&source=gbs_ge_summary_r&cad=0#v=onepage&q&f=false |location= |publisher=University of Pennsylvania Museum of Archaeology and Anthropology}}</ref> [[쌀]]은 13,500~8,200년 전 중국에서 경작되었고, [[녹두]], [[콩]], [[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대한민국에서 15,000년 전의 탄화미가 발견되면서, 최초 쌀 경작지는 대한민국으로 변경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bbc.co.uk/2/hi/science/nature/3207552.stm|제목=World's 'oldest' rice found|성=Dr David Whitehouse|날짜=Tuesday, 21, October, 2003|뉴스=World's 'oldest' rice found|출판사=BBC|확인날짜=Wednesday, 22, June, 2022}}</ref> [[양]]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13,000~11,000년 전에 가축화되었다.<ref>{{서적 인용 |title=Sheep and Goat Science |edition=Fifth |last=Ensminger |first=M.E. |author2=Parker, R.O. |year=1986 |publisher=Interstate Printers and Publishers |isbn=0-8134-2464-X}}</ref>
== 현실 ==
실질적인 중요함에 비해 대한민국에서는 전근대적인 이미지로 무시를 받고 있다. 예로 "도시에서 실패하면 시골에 내려가 농사나 지어야지" 퇴직하면 시골에 내려가 농사 지어야지 등 이렇게 함부로 말한다. 이는 농부들을 모독하는 발언이다. 농촌과 농업의 현실을 알지 못하면 말아먹기 딱 좋은 행동이다.
== 체력 ==
무엇보다 체력이 정말 중요하다.노인이 농업을 그만두는 경우가 체력이 없기 때문이다. 기계가 많은 일을 대체해 주었다곤 하나 아직도 농사는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하다. 그 대신에 장맛비,태풍 처럼 비가 너무 많이 온다던지 겨울에는 일이 없지만 가축을 기르는 경우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 기술 ==
땅, 작물, 날씨, 시세, 기계 운전하는법,돈,부지런함과 체력,많은 경험도 필요하며 배우려면 농사를 오랫동안 지어온 사람 농업기술센터 같은 곳에 물어본다. 그러나 직접 경험을 해보려면 최소 몇년 고생해야 한다. 농사를 지어 최소한 손익 분기점을 넘기려면 예상외로 오랫동안 많은 경험과 영농교육도 필요하다. 당연히 경험도 없거나 부족하면 이익을 보기 어렵다. 심지어 출타 전에 농사를
해봤더라도 기계가 있기 때문에 어럽다 농업은 공업 못지않게 노하우와 기술이 매우 중요하며 실제 농사지어보니 '차라리 도시 생활이 낫더라' 하고 다시 도시로 가는 경우도 많으며 도시로 못가서 시골에 남는경우도 많다.
작물의 종자 종류와 각 작물의 생육환경, 수확 시기, 비료의 성분별 배합비율이나 시비 시기,친환경 약제 또는 농약 살포 시기와 분량 등에 트랙터,이앙기,콤바인,지게차 운전은 기본이며 기계가 밭 한가운데서 고장을 일으켰을 때 논에서 움직이지 못할때 어떻게 하는지 알아된다. 시설농업을 경영하는 농부라면 온실의 온도조절장치 유지 보수, 수경재배 배양액의 제조 등도 기본적으로 꿰차고 있어야 한다. 농작인들은 작물에 비료를 얼마만큼 하는지 시기가 언제인지 짓는 방식과 농산물 거래 방식 및 현 상황에 대해서는 일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다. 부지런하게 해도 날씨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비가 많이 와서 병충해 피해가 생기거나 작물을 일부 또는 전체를 포기해야 되며 실제로 돈이 안되면 트랙터로 갈아엎는다. 고추는 습도가 높으면 탄저병에 걸려서 가지에 달린 채로 썩어들어가고,과수원은 열매가 떨어져서 없는 경우도 있다. 건조기 없거나 밖에다 말려놓으면 따놓은 것들도 말리는 도중에 썩어들어가서 버린다.
== 농업 연구 ==
농업의 영향으로 [[사람|인류]]가 먹은 음식의 종류가 줄어들었다.<ref>{{뉴스 인용 | 제목 = Is farming the root of all evil? | 저자 = Sanjida O'Connell | url = http://www.telegraph.co.uk/science/science-news/5604296/Is-farming-the-root-of-all-evil.html | 출판사 = [[데일리 텔레그래프]] | 날짜 = 2009-06-23 | 확인날짜 = 2013-05-11 | 언어 = 영어 | archive-date = 2012-07-02 | archive-url = https://web.archive.org/web/20120702053117/http://www.telegraph.co.uk/science/science-news/5604296/Is-farming-the-root-of-all-evil.html }}</ref>
== 산출물 ==
[[파일:MollisolWorld.jpg|thumbnail|220px|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농경지]]
유엔 식량농업기구 통계에 따른 전 세계 농업 산출물
{| class="wikitable" align=left
! colspan=2|통계 <br />(백만 톤) [[2004년]]도
|-
| [[곡물]] || align="right" | 2,264
|-
| [[채소]] 및 과(瓜) || align="right" | 866
|-
| 근(根) 종류 || align="right" | 715
|-
| 유제품 || align="right" | 619
|-
| [[과일]] || align="right" | 503
|-
| 고기류 || align="right" | 259
|-
| 식물성 기름 || align="right" | 133
|-
| 생선류 ([[2001년]]) || align="right" | 130
|-
| [[알]](계란 등) || align="right" | 63
|-
| [[콩]]류 || align="right" | 60
|-
| 섬유(纤维)류 || align="right" | 30
|-
|colspan=2|<small>출처: <br />유엔 식량농업기구(FAO)[http://faostat.fao.org/faostat/form?collection=Production.Crops.Primary&Domain=Production&servlet=1&hasbulk=0&version=ext&language=EN] {{웨이백|url=http://faostat.fao.org/faostat/form?collection=Production.Crops.Primary&Domain=Production&servlet=1&hasbulk=0&version=ext&language=EN |date=20060619150659 }}</small>
|}
{| class="wikitable"
! colspan="2" |품종
(백만톤) 2004년도
|-
| 감서(甘蔗) || align="right" | 1,324
|-
| [[옥수수]] || align="right" | 721
|-
| [[밀]](wheat) || align="right" | 627
|-
| [[쌀]] || align="right" | 605
|-
| [[감자]] || align="right" | 328
|-
| 담채(甜菜) || align="right" | 249
|-
| 콩 || align="right" | 204
|-
| 종려 기름 및 열매 || align="right" | 162
|-
| 대맥(大麦) || align="right" | 154
|-
| 가지 || align="right" | 120
|-
|colspan=2|<small>출처: <br />유엔 식량농업기구(FAO)[http://faostat.fao.org/faostat/form?collection=Production.Crops.Primary&Domain=Production&servlet=1&hasbulk=0&version=ext&language=EN] {{웨이백|url=http://faostat.fao.org/faostat/form?collection=Production.Crops.Primary&Domain=Production&servlet=1&hasbulk=0&version=ext&language=EN |date=20060619150659 }}</sm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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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별 농업 ==
과거에 지역간의 교역이 적었던 고대에는 기술의 수준이 낮은 자급적 농목업이 영위되었다. 중세에는 근세로 넘어옴에 따라 교통과 공업이 발달하여 도시 인구가 많아지고 상품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농목업이 성하게 되었다. 현재 세계의 각 지역에는 여러 가지의 농목업이 영위되고 있다.<ref>{{글로벌2|제목=세계의 농업과 목축업}}</ref>
=== 아시아 ===
세계 인구의 반 이상이 살고 있는 아시아의 농업은 연평균 강수량 1,000mm 이상 지역인 벼농사지대와 350 1,000mm 지역인 밭농사지대, 그리고 그 주변의 350mm 이하인 목축지역으로 대별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영세성이고 자급적이며, 생산성이 낮고 사료작물의 재배가 없는 것이 유럽식 농업과 다른 점이다. 하지만 아시아는 세계의 주요한 농업지역의 하나이며, 일본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농업이 생산에서 으뜸을 차지하고 있다. 그 생산액도 매우 많으나 인구가 많으므로 아시아 내부에서 소비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아시아의 차·황마·고무·향료는 세계시장에서 제1위를 차지하며 밀·쌀·설탕·코프라·콩·면화·유채씨·땅콩, 그 밖의 유용(油用) 과일·건포도·커피·담배·아편·키나·장뇌·마(麻)·무명·생사도 수출된다. 축산·임산 및 수산자원은 부분적이고도 지역적으로 중요하며, 피혁·모피·달걀 등의 축산품과 티크·나왕 등의 목재가 수출된다. 농업의 형태는 하크경작·가래경작, 관개경작·계단경작·재식경장(栽植耕作)·원예경작 등 각 지역의 기후 및 문화의 차이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ref>{{글로벌2|제목=아시아의 자원·산업}}</ref>
농업은 아시아의 주산업이다. 아시아 농업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몬순을 기반으로 하는 벼농사인데 몬순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곳이나, 영향을 받아도 여름에 강수량이 적은 곳에서는 밭농사를 한다.중국에서는 연 강수량 750mm를 나타내는 화이허(淮河)선을 경계로 하여 벼농사 지역과 밭농사 지역으로 나뉘고, 인도에서는 거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달리는 1,000mm 선이 그 경계로 되어 있다.경영에 있어서는 가족노동의 영세경영을 특색으로 하는 이른바 아시아적 생산양식에 의존하는 지역과 플랜테이션(plantation) 경영을 하고 있는 지역을 대비할 수 있다. 전자는 아시아 농업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후자는 열대·아열대에만 분포되어 있다.<ref>{{글로벌2|제목=아시아의 자원·산업}}</ref>
==== 대한민국 ====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농자천하지대본야(農者天下之大本也)'<ref>한길사,〈 조선후기의 생활풍습〉, 《한국사 10》, 1994</ref>이라는 옛 말에 따라 농업을 인간 생활의 기반으로 높이 평가하였다. 하지만,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경제적 측면에서 "천하지대본"에서 도외시 되어 왔다. 특히 현대의 기계, 물질 문명의 발달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 세계적인 인구의 폭발적 증가는 농업의 생산면에서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농업과 관련된 여러 식생활 분야에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대두되고 있다. 농업과 관련된 분야로는 [[생물학]], [[유전학]], [[화학]], [[지리학]], [[지질학]], [[기상학]], [[정치학]], [[경제학]], [[식품영양학]]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한반도]]에서의 벼농사의 경우, 충북 청원에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인 [[소로리 볍씨]]가 발견되었지만, 재배벼이전의 순화벼라고 이융조(충북대학교 교수)가 발표하였다.<ref>http://www.rice-museum.com/front/talk/all/allView?sflag=AL&sflag1=&board_seq=4{{깨진 링크|url=http://www.rice-museum.com/front/talk/all/allView?sflag=AL&sflag1=&board_seq=4 }}</ref>
대천리에서 출토된 볍씨를 들어 신석기시대에 농경이 시작되었다고 한창균 외 발굴조사팀이 대천리발굴조사보고서에 기록하였지만, 방사선탄소연대측정결과 후대 유입으로 밝혀졌다.<ref>한창균 외, 2014「대천리 신석기유적 탄화곡물의 연대와 그 의미」『한국신석기연구I 28, 한국신석기학회</ref> 진정한 의미에서의 벼농사는 청동기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외 잡곡류의 농사는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조와 기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ref>Lee,G.-A.,(2011) The Transitition from Foraging to Farming in prehistoric Korea.Current Anthropology.52,4.p.307-327</ref>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농업시설 기반이 미약한데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의 사망 이후 [[인플레이션]]이 심각하여, 농업 의존도를 거의 대부분 [[중화인민공화국]]과 [[러시아|러시아 연방]]에 의존하게 되어 1995년 고난의 행군 이후 경제가 계속 더 나빠져서 전기,식량이 문제가 되어서 아사자가 많이 생겼으며 경제는 약간 회복했다가 일제강점기보다 더 안좋은 상황에 있다.
==== 일본 ====
{{본문|농업협동조합 (일본)}}
일본에서는 농업 방식이 [[대한민국]]과 거의 유사한 환경을 두고 있다. 일본의 농업은 영세 경작·가족 경영·미작 중심이라는 점들이 제2차 세계대전 전과 본질적인 차이는 없으나, 생산성이나 경영 내용 면에서는 크게 변질·발전되어 있다. 변질·발전의 주된 요인으로는 농지개혁 후의 산업구조 변화와 농산물 시장의 확대를 가져왔다는 점과 농업의 기계화에 따라 생산력이 증대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일본 농가의 가장 두드러진 특색은 대다수의 농가가 농업만으로는 자립할 수 없기 때문에 전체 농가 호수의 87%까지가 농외 소득을 얻고 있는 겸업 농가라는 점인데, 그 중 약 60%는 농업소득보다 많은 농외소득을 얻고 있다.농업 생산을 부문별로 볼 때, 제2차 세계대전 전의 농업은 한마디로 쌀과 누에고치의 농업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이제는 쌀과 원예·축산의 농업으로 바뀌어 국내시장 상대의 상품생산이 보편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전작부문에서 그 신장이 현저한 것은 과수와 채소이다. 축산은 홋카이도의 젖소 사육을 제외하고는 소비시장과의 관계로 해서 대도시 근교에서 집중적으로 사육되고 있다.<ref>{{글로벌2|제목=일본의 산업}}</ref>
2011년 3월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발생의 여파에 따라, 이후 [[후쿠시마시|후쿠시마]] 일대의 농축수산식품은 먹거리 안전 문제가 부각되었다.
==== 중국 ====
중국의 국토는 신석기(新石器) 시대에 이미 경작되어 있었고, 경지도 널리 분포해 있어 각지의 토지 이용이나 농업 경영방식은 지역별 자연조건, 사회환경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중국인 학자들과 함께 치밀한 현지조사를 한 로싱백은 화이허(淮河)와 친링(秦嶺)선에서 수도(水稻)지역과 소맥(小麥) 지역으로 크게 둘로 나누고, 나아가서 다시 소맥지역을 창장(長江)수도 소맥구, 쓰촨(四川)수도구, 수도·차(茶)구, 서남수도구, 수도 2기작구(二期作區)로 세분하고, 한편 북부의 소맥지대를 겨울보리·수수구, 겨울보리·조구, 봄보리구로 구분했다. 이러한 지역구분은 주변 지대로의 확대도 가능하여 동북지구를 콩·수수구로 보고 내몽골 지방과 티베트 및 칭하이(靑海) 지방을 목축구로, 타이완과 하이난섬(海南島)을 2기작구로 볼 수도 있다.종래 중국의 농가는 주로 자급용기의 곡물과 콩 종류를 재배하고, 여력이 있으면 판매용 작물을 길렀다. 수도(벼)는 기온이 높고 강우량이 많은 화이허 이남에서 주로 생산되는데 특히 광둥·푸젠(廣東·福建) 양성(兩省) 연해 지방은 이모작(二毛作)이 가능하다. 쌀의 총생산량은 17,825만t(94년 현재)으로 방글라데시에 이어 세계 제2위이지만 국내소비가 많기 때문에 수출은 소량이다.소맥(밀)은 중국본토 북부와 동부지구 북부를 중심으로 하며 화이허와 양쯔강에 연하여 평야지대에서도 제2기작으로서 재배된다. 산시(陜西), 산시(山西) 북부에서 옌산(燕山)산지 북서에 걸치는 지방에서는 기후가 한랭한 관계로 춘경보리가 재배된다. 총생산 3,200만t(1994년 현재)으로 만주, 바오즈 등을 주식으로 하기 때문에 대부분 국내에서 소비된다.고구마는 산둥(山東), 허베이(河北), 허난(河南)에서 재배되고 조, 수수 등은 동북과 화북의 평야 및 쓰촨(四川) 분지에서 많이 산출된다. 옥수수는 랴오둥반도, 황하 이북의 후베이(湖北)평야, 산시·산시의 남부에서 쓰촨에 걸치는 지대에서 많이 나는데 식량과 사료로 쓰인다. 육지의 단백질원이라고 하는 대두(콩)는 동북평원과 산둥반도에서 많이 나오는데 총샌산고는 약 1,212만 t이다.면화는 랴오허(遼河) 하류의 평야에서부터 후난(湖南), 쓰촨, 구이저우(貴州)의 각 성에 이르는 지역에 분포해 있으며 허베이 평야지대, 산시·산시의 남부, 후난, 장쑤(江蘇), 안후이(安徽), 후베이(湖北)의 제성이 그 생산 중심이 되어 있다. 면화는 관개작물로 결실기의 건조한 기후가 양질의 작물을 낳는다.가축은 돼지, 닭, 오리 외에 노력과 배료원으로서 나귀, 노새(밭농사지대), 소, 물소(수전지대), 말(초원지대) 등이 많으며 양은 식육 및 모(毛) 자원으로서 동북지구, 내몽골지방, 신장·위구르 지방, 티베트 등 변경지대에서 많이 사육된다.<ref>{{글로벌2|제목=중국의 농업}}</ref>
==== 대만 ====
농업은 대만의 주력산업이며 식료품과 농산가공품이 수출 구조 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섬 전역에서 이모작의 벼(水稻) 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품종개량, 관개 기타의 기술조건이 진보해 있기 때문에 단위면적당 생산고는 아시아에서도 높은 편이다. 2,000만이 넘는 인구에 식량을 공급하면서도 수출의 여력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사탕수수 재배의 중심지는 중부 이남의 평야인데 설탕은 수출품목의 대종을 이루고 있다. 차, 바나나, 파인애플 등의 생산고도 높다. 대만 총면적 약 360만 ha의 약 25%인 89만 ha 정도가 농경지이다.<ref>{{글로벌2|제목=타이완의 산업}}</ref>
==== 미얀마 ====
미얀마의 경우 농업이 산업의 지주이며 하(下)미얀마 지방의 도작(稻作)이 국력의 기반이다. 하미얀마의 논은 19세기 후반 이후에 개척되었으며, 미얀마 농민은 대부분이 인도인 지주의 소작인이었다. 전후 농업개혁이 실시되었고 1965년의 포고령으로 농민은 겨우 소작인의 신세를 면할 수가 있게 되었다.<ref>{{글로벌2|제목=미얀마의 산업·무역}}</ref>
==== 말레이시아 ====
말레이시아의 주산물은 쌀, 고무, 코프라 등이다. 쌀은 국민의 주식이지만 아직 자급자족을 하지 못하고 있어 매년 다량의 쌀을 수입에 의존해야만 한다. 따라서 정부는 관개사업 실시, 벼의 품종개량 등으로 생산 증가에 주력하고 있다. 고무는 수출품의 태반을 차지하고, 합성고무의 발달, 고무농원 노동자의 문제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ref>{{글로벌2|제목=말레이시아의 산업·무역}}</ref>
==== 인도네시아 ====
인도네시아의 농업은 대규모의 플랜테이션(plantation) 농업과 소규모의 농업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전에 네덜란드인이 소유·경영했던 것이나, 현재는 모두 네덜란드의 기업국유화법(企業國有化法)으로 인도네시아의 소유가 되어 있다. 플랜테이션에서는 수출용의 고무·커피·사탕수수·코프라·담배·코코아 등이 재배되고 있다. 한편, 소규모의 농업의 주요산물은 국내소비용의 쌀·옥수수·타피오카 등이다. 식량은 아직 자급자족할 만큼은 못되어 매년 다량의 쌀이 수입된다.<ref>{{글로벌2|제목=인도네시아의 산업·무역}}</ref>
==== 필리핀 ====
필리핀의 가장 중요한 산업은 농업이다. 전(全) 노동 인구의 55%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동시에 수출용 작물을 재배한다. 쌀, 옥수수는 주식이며 아바카(麻), 설탕, 담배, 코코넛은 중요한 수출품이다. 국민생활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농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낮은 생산성이다. 낮은 생산성의 원인 중 하나는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에 있다. 수많은 농민이 소작농으로 생산한 곡물의 반을 지주에게 바쳐야 한다. 특히 곡창지대인 중부 루손에서 소작농의 수가 압도적인데, 이들의 빈곤은 사회 불안의 큰 요인이 되고 있다.<ref>{{글로벌2|제목=필리핀의 산업·무역}}</ref>
==== 인도 ====
인도 국민의 약 68%가 종사하는 농업은 자급적 성격이 강한 인도의 가장 중요한 산업이다. 몬순이 시작되면서 파종하고 몬순이 끝날 무렵에 수확하는 하기작(夏期作)을 ‘칼리프’라고 하며, 몬순이 끝날 때 파종하고 건조기에 수확하는 동기작을 ‘라비’라고 한다.주요 농산물은 쌀, 사탕수수, 밀, 주트(마), 면화 등이며 경작면적이 가장 넓은 쌀은 벵골, 비하르, 오리사, 아삼 등 동부의 습윤기후지역에서 재배된다. 사탕수수의 생산은 세계 제1인데, 그 주산지는 우타르프라데시주이며, 비하르와 동(東) 펀자브 주가 그 다음에 온다. 그러나 함당률(含糖率)이 낮고 기술이 미숙하기 때문에 생산은 소련 다음으로 2위이지만 그래도 상품농작물로서 중요하다. 밀은 동 펀자브, 우타르프라데시주 서부에서 많이 나며 한때는 유럽에도 수출했으나 현재는 수입국의 위치로 전락했다. 주트는 갠지스 삼각주에서 재배되는데 이 지역은 방글라데시와 더불어 세계 최대의 주트 산지이다. 면화는 사탕수수 및 주트와 더불어 중요한 상품작물이며 흑색 면화토(黑色綿花土)가 분포하는 데칸 고원 북서부에서 많이 난다.<ref>{{글로벌2|제목=인도의 산업}}</ref>
=== 유럽 ===
유럽기후의 여러 여건 등은 화력학적 또는 계절학적 농업캘린더에서 뚜렷이 반영되고 있다. 특히 사과꽃의 개화일이나 밀의 수확일 등에서 현저하게 나타난다. 겨울밀의 수확일은 시칠리아섬 및 남부 포르투갈과 중부 잉글랜드 및 스칸디나비아의 남부지방과는 약 2개월의 차이가 있다. 또한 겨울밀의 파종일과 수확일과의 사이에는 남부유럽에서는 160일이 걸리는데 북부유럽에서는 여름이 짧기 때문에 수확과 동시에 파종하여야 한다. 남부유럽 지방에서는 수확 후부터 파종시까지 4∼5개월간의 시일이 있기 때문에, 이 기간을 이용하여 간작지나 또는 목초재배지로 이용된다. 에스파냐의 메세타고원지방이나 헝가리의 푸스타평원에서는 3∼4개월을 이용할 수 있다. 동부유럽에서는 작물의 생육기간이 짧기 때문에, 같은 위도의 서부유럽 지방보다도 일찍 파종하고 일찍 수확한다. 유럽의 농업캘린더는 고위도에 갈수록 기온의 저하뿐만 아니라, 동부로 갈수록 증가되는 대륙도(大陸度)에도 민감하게 반영되어 나타난다.<ref>{{글로벌2|제목=유럽의 농업 캘린더}}</ref>
==== 이탈리아 ====
이탈리아 국토의 약 50%가 경지나 과수원으로서, 농업종사자는 산업별 총인구의 약 17%, 농산물은 국내 총생산의 약 8%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밀·옥수수를 중심으로 과수·야채 재배·북부의 낙농업·미작(米作) 등 상품생산적 성격이 강한 영농이 발전되고 있다. 밀·옥수수·미작 등은 롬바르디아 평원이 원산지이며 국내의 밀생산고는 구소련과 프랑스에 이어 유럽 제3위이다. 1950년 전후의 토지개혁은 불모지(不毛地)의 재배분(再配分)을 주로 한 것으로, 토지의 생산력 증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EEC체제의 강화에 따라 남부에서의 올리브·포도(포도를 원료로 하는 포도주 생산은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감귤류의 재배 등이 현저하게 발전하고 있다. 한편, 전에 부진(不振)한 밀(小麥)재배가 행하여졌던 지대에서는 이농(離農)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ref>{{글로벌2|제목=이탈리아의 산업·무역}}</ref>
==== 러시아 ====
구 소련의 농업은 주로 집단농장과 국영농장에서 행해졌다. 소련 해체 직전 구 소련 전역에는 약 2만 6천 개의 집단농장과 약 2만 3천 개의 국영농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많은 집단농장과 국영농장이 해체되고 있다. 대신 새로운 형태의 기업농장과 개인농장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의 국토는 광대하기 때문에, 세계 굴지의 생산액을 갖는 농업부문이 많다. 예를 들어 곡물·감자 생산량은 세계 최대이고, 옥수수·사탕무·해바라기·포도 등은 세계 5위권 안에 속해 있다. 또 육류·양모도 세계 5위권 안에 들어 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농업생산의 감소로 농산물의 수입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주로 집단농장과 국영농장의 생산감소에서 기인한다.<ref>{{글로벌2|제목=러시아의 농업}}</ref>
=== 아메리카 ===
==== 캐나다 ====
캐나다의 농업은 취업 인구의 3.4%(1999)로 농업인구는 감소하고 있으나 노동생산성은 급속히 상승하고 있다. 곡류·감자 등의 농산물 중에서도, 평원의 3주에서 생산되는 경질(硬質) 밀은 단백질의 함유량도 많아 질이 좋으며, 생산량의 3분의 2를 수출하고 있다. 또한 낙농과 가축 사육도 왕성하다.<ref>{{글로벌2|제목=캐나다의 산업·무역}}</ref>
==== 미국 ====
미국의 농업은 광대한 면적의 비옥한 토지와 일반적으로 온난습윤한 기후의 천혜를 입고, 게다가 구대륙과 같은 봉건적 토지제도도 없으므로, 이른바 미국형이라고 불리는 자본주의적 대규모 경영이 발달하였으며, 기계력을 구사하여 적지적작(適地適作)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2000년 미국의 농립수산업 취업인구 비율은 2.9%에 불과하나 그 생산규모는 세계 유수의 농업국임을 입증하고 있다. 경지(耕地)와 수원지(樹園地)의 면적은 약 2억㏊, 목초지는 약 2억4,000만㏊로 농업용지의 면적이 알래스카를 제외한 국토면적의 약 6할을 차지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 중 밀·옥수수·콩·귀리·담배·목화·포도·귤·파인애플·사과는 생산량에서 세계 제1∼2위를 다투고 있다. 미국은 선진국 중 식량의 완전자급이 가능한 몇 나라 중의 하나이며, 수출능력도 높고 고도의 기술을 이용한 경작으로 생산성도 높다.<ref>{{글로벌2|제목=미국의 산업}}</ref>
=== 남아메리카 ===
남아메리카의 농업의 유형은 특정산물에 의존하는 단일경작(mo- noculture)이므로 국제시장의 수요에 민감하다. 생산자의 안정을 위하여 각국은 가격유지정책을 쓰는 한편 다각화의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커피는 세계 생산의 40% 이상을 이 대륙이 차지하며, 이것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그외 카카오·사탕수수·면화 등도 주요한 생산품이다. 이러한 농산물은 커피의 단일경작에서 오는 경제적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하여 장려되고 있다. 또한 국내 소비에 필요한 식량생산을 장려, 소맥 생산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외 브라질·콜롬비아 등지에서는 쌀을 생산하여 수출하고 있다.<ref>{{글로벌2|제목=남아메리카의 산업}}</ref>
==== 칠레 ====
칠레의 경우 전 국토의 불과 15%가 경작지인데, 그 대부분이 대지주에게 점유되어 반봉건적인 소작제도 하에 농업이 영위되고 있다. 미국에서 잉여 농산물을 도입해 오므로 한층 더 식량자급은 어렵게 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보리·옥수수·감자 등. 목축은 남부의 파타고니아 지방에서 양·소가 사육되고 있다. 2차대전 후 북부에서 수산업이 급속히 발달하였는데, 주요 어획물은 정어리이며, 어분(魚粉)으로 가공된다.<ref>{{글로벌2|제목=칠레의 산업}}</ref>
==== 볼리비아 ====
볼리비아의 경우 서부의 고원지대가 주요한 농업지대이며, 원시적인 농기구에 의한 농업생산이 행하여지고 있다. 주요 산물은 사탕수수·감자·옥수수·쌀·밀 등인데 농업생산성은 낮은 편이다. 국내 총생산의 21%가 농업에서 생산되고 있는 형편이다.<ref>{{글로벌2|제목=볼리비아의 산업·무역}}</ref>
==== 페루 ====
농업은 페루 최대의 산업으로서, 해안 지역에서는 사탕수수·면화 등의 수출용 작물이 대농장에서 재배되는 한편, 안데스 고지에서는 인디오에 의한 원시적·자급적인 농업을 볼 수 있다. 목축은 양·라마·알파카가 남부고지에서 사육된다.<ref>{{글로벌2|제목=페루의 산업}}</ref>
=== 오스트레일리아 ===
오스트레일리아의 농업은 밀을 중심으로 하여 매우 왕성하다. 신식민지의 식량 자급을 목표로 하여 시작되었던 밀의 경작도 오늘날에는 세계 유수의 생산국으로서 알려져 있다(밀생산고 1,680만t). 밀 지대는 최적의 자연적 조건을 갖는 지역에 합치하여 출현하였는데, 대륙 동남부·동부 고지의 내륙쪽을 따라서 분포하며, 또한 내륙 서남부의 일각도 차지하고 있다.<ref>{{글로벌2|제목=오스트레일리아의 산업·무역}}</ref>
== 같이 보기 ==
* [[농장]]
* [[곡물건조기]]
* [[도시 농업]](urban agriculture)
* [[도시 농장]](city farm)
* [[애그리컬쳐 배싱]]([[:fr:Agribashing]])
* [[자연순환유기농업]]
* [[농작물]]
* [[부엉이농사]]
* [[올빼미농사]]
* [[분무경]]
* [[농기구]]
* [[원격탐사]]
* [[수직농업]]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 [http://lib.rda.go.kr/newlib/dict/index.asp 농기구 및 농업용어사전 - '디지털 농업용어사전 2.0' 검색]
{{기술}}
{{기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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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와 조원술|state=collapsed}}
[[분류:농업| ]]
[[분류:농학]]
[[분류:식품산업]]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아르헨티나 표}}
'''아르헨티나 공화국'''({{llang|es|República Argentina|레푸블리카 아르헨티나}}, {{llang|gn|Tetã Argentina}})<ref>아르헨티나 헌법 제35조에서는 역사적 국명인 [[리오데라플라타 연합주]]와 [[아르헨티나 연방]]이라는 국명에 '아르헨티나 공화국'과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아르헨티나 헌법은 법령에서 '''아르헨티나국'''({{llang|es|Nación Argentina|나시온 아르헨티나}})이라는 국명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헌법상 공식 명칭인 아르헨티나국보다 아르헨티나 공화국이라는 명칭이 더 많이 쓰이고 있다.</ref> 줄여서 '''아르헨티나'''({{llang|es|Argentina|아르헨티나}})는 [[남아메리카]] 대륙 남부에 자리 잡고 있는 [[연방]] [[공화국]]이다. 연방국가로서 23개의 주와 자치시 1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도시로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코르도바 (아르헨티나)|코르도바]], [[바이아블랑카]], [[마르델플라타]], [[라플라타]] 등이 있고 [[수도]]는 [[부에노스아이레스|부에노스아이레스시]]이다.
동쪽의 [[대서양]]과 서쪽의 [[안데스산맥]] 사이에 2,766,890km<sup>2</sup>의 면적을 차지하여 남아메리카에서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넓으며,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나라이다. 아르헨티나는 북쪽으로는 [[파라과이]]와 [[볼리비아]], 북동쪽으로는 [[브라질]]과 [[우루과이]], 서·남쪽으로는 [[칠레]]와 [[국경]]을 싸우고 있다. 공용어는 [[스페인어]]이며 여러 차례의 대량 이민으로 [[이탈리아]]계 등 백인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또한 [[영국의 해외 영토]]로 인정되고 있는 [[포클랜드 제도]]와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 남극의 일부인 [[아르헨티나령 남극]]에 대한 영유권도 주장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구매력]] 대비 1인당 GDP 3위, [[인간개발지수]] 2위의 국가로 조사되었고, 명목 GDP는 세계 30위, 구매력을 고려한 GDP는 세계에서 23위이다. [[세계은행]]에서는 이 나라를 [[국민총소득]] 중상 수준의 국가 혹은 신흥 시장으로 분류했다. 아르헨티나는 [[메르코수르]], [[남미 국가 연합]], [[세계은행 그룹]], [[G-15]], [[G-20]]에 속하는 나라이다.
== 지리 ==
=== 지형 ===
[[파일:Argentina topo blank.jpg|섬네일|왼쪽|아르헨티나의 지형도]]
아르헨티나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최남단부에 위치하며, [[브라질]]에 버금가는 넓은 국토를 가진 [[남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러시아, 캐나다, 미국, 중국, 브라질, 호주, 인도 다음의 전세계 8위의 넓은 면적을 가진 나라이다. 북쪽기 [[볼리비아]], 동북쪽은 [[우루과이]]·[[브라질]]·[[파라과이]], 서쪽은 [[칠레]]에 접하고, 동남쪽은 [[대서양]]에 잇닿아 있다. 남쪽의 최장 거리는 3,700km, 동서의 최대 거리는 1,700km라는 넓은 국토의 서부를 [[안데스산맥]]이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으며 [[조인빌섬]]을 포함하여 남극의 일부도 아르헨티나의 영토이다. 효펵을 포함하여 열대 우림에서부터 한랭 지대까지 전지구상에 있는 모든 기후 지역을 갖고 있다. 남미에서 가장 높은 산인 [[아콩카과 산]] 역시 아르헨티나에 있다.
아르헨티나는 [[남극]]에서 [[아르헨티나령 남극]]이라는 969,464 [[제곱킬로미터]]의 지역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는데, 일부는 칠레([[칠레령 남극]])와 [[영국]]([[영국령 남극]])의 영유권 주장 지역과 겹친다. 그러나 이 주장은 1961년 체결된 [[남극 조약]]에 의해 공식적으로 유예되어 현재까지 실효 지배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팜파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서쪽과 남쪽에 펼쳐진 중앙의 대평원이다. [[습한 팜파]]라고도 하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주]]와 [[코르도바주 (아르헨티나)|코르도바주]]의 대부분과 [[산타페주]], [[라팜파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라팜파 주의 서쪽 부분과 [[산루이스주]]도 대체로 평야([[건조한 팜파]])인데, 건조해서 주로 초지로 쓰인다. 이름이 같은 [[코르도바주 (아르헨티나)|코르도바주]] 지역의 [[시에라데코르도바 산맥]]은 팜파스에서 가장 지리적으로 두드러지는 지형이다.
이 지역과 [[우루과이]] 사이에는 길이 약 4,700km의 [[라플라타강]]이 흐른다. '은(銀)의 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어귀의 강폭은 약 220km 가량이다.
팜파스는 농업에 적절한 비옥한 땅으로 [[쇠고기]]·[[양모]]·[[밀]]·[[옥수수]] 등을 많이 산출하며, 이 나라의 중요 경제 지역이다. 제조 공업도 여기에 집중하고 있다.
북부의 아열대 평원 [[그란차코]] 지역은 계절에 따라 건조하거나 습해진다. 주로 목화를 재배하고 가축을 방목한다. 이 지역에는 [[차코주]], [[포르모사주]]가 있다. 간간히 아열대 우림, 관목림, 습지가 자리잡고 있으며 수많은 식물과 동물의 서식지이다. [[산티아고델에스테로주]]는 그란차코에서도 건조한 지역이다.
[[메소포타미아 (아르헨티나)|메소포타미아]]는 [[파라나강]]과 [[우루과이강]] 사이에 위치한 곳이다. 이 지역에는 [[코리엔테스주]]와 [[엔트레리오스주]]가 있다. 목축과 식물 재배에 적합한 평야 지역으로, 코리엔테스 중부에는 [[이베라 습지]]가 있다. [[미시오네스주 (아르헨티나)|미시오네스주]]는 더 더운 지역으로, [[브라질고원]]의 지형적 영향을 받는다. 아열대 우림과 [[이과수 폭포]]가 있다.
아르헨티나 남부의 [[네그로강 (아르헨티나)|네그로강]]에서 [[마젤란 해협]]에 이르는 [[파타고니아]]의 [[스텝 (평야)|스텝]] 초원에는 [[네우켄주]], [[리오네그로주 (아르헨티나)|리오네그로주]], [[추부트주]], [[산타크루스주 (아르헨티나)|산타크루스주]]가 있다. 이 지역 대부분은 북쪽으로는 반건조 기후에 추우며, 남쪽으로는 건조하다. 그러나 서쪽 경계에는 숲이 자라며 여러 호수가 있다. 그리고 대륙의 돌출부 끝에는 [[칠레]]와 절반씩 영유하는 [[티에라델푸에고 제도]]가 있으며, 바다의 영향으로 서늘하고 습하며, 온화하다. 파타고니아 북부(네그로 강 남쪽, 네우켄)은 [[코마우에]] 지역이라고도 한다.
파타고니아는 목양지로서 유명하며, 석유 자원 지대로서도 중요하다.
'''[[쿠요]](Cuyo)'''
아르헨티나 중서부는 [[안데스산맥]]의 영향권이다. 산맥 동쪽의 건조한 지역을 [[쿠요]]라고 한다. 고산 지대에서 녹은 물은 저지대에 있는 오아시스에 물을 공급한다. 이 지역은 [[멘도사주]]와 [[산후안주 (아르헨티나)|산후안주]]의 과실과 포도주 생산의 중심을 이룬다. 여기서 더 북쪽으로 가면 [[라리오하주 (아르헨티나)|라리오하주]]의 더 덥고 건조한 기후를 만난다. 산루이스주 북쪽의 [[시에라팜페아나스산맥]]이라는 세 곳의 낮은 산맥이 북에서 남으로 뻗어 이곳 최동단 경계를 이룬다.
칠레 국경 지역에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높은 산인 [[아콩카과산]]이 있다. [[안데스산맥]]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일 뿐 아니라 남반구와 서반구에서도 최고봉이다. 높이는 약 7,000m이다.
'''[[아르헨티나 북서부]](NOA)'''
이 지역은 아르헨티나에서 평균 고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산맥이 뻗어 있으며, 어떤 봉우리는 6,000m에 이르기도 한다. 이 산지는 북쪽으로 갈수록 더 넓어진다. 산맥은 비옥한 강가 계곡에서 끊기는데, 가장 중요한 곳은 [[카타마르카주]], [[투쿠만주]], [[살타주]]의 [[칼차키 계곡]]이다. 더 북쪽으로 볼리비아와 가까운 [[후후이주]]는 주로 중부 안데스의 고원에 있다. [[남회귀선]]이 이 곳 북부를 지난다.
=== 기후 ===
[[파일:Talampaya NP.jpg|섬네일|왼쪽|위오른쪽|[[라리오하주 (아르헨티나)|라리오하주]]의 [[타람파야]] 자연공원의 사막지대(북동쪽)]]
기후는 국토가 남북으로 뻗고 넓기 때문에 지역차가 크지만, 대체로 온화하다. 북부와 동북부는 아열대성으로, 우기(10∼3월)와 건기(4∼9월)로 나뉘며, 여름이 길고 덥고, 겨울철은 짧지만 매우 춥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부는 [[온대 기후]]에 속하며, 강수량은 여름철에 많으나 대체로 연중 고른 편이다. 그리고 중앙부의 여름은 더우며 뇌우를 동반한다(때때로 세계에서 가장 큰 우박이 내리기도 한다.). 남부의 겨울, 즉 11~12월은 매우 덥다.
남아메리카에서 기록된 가장 높은 온도와 가장 낮은 온도가 아르헨티나에서 기록되었다. 1920년 1월 2일, [[코르도바주 (아르헨티나)|코르도바주]]에서 49.1 °C가 기록되었다. 가장 낮은 온도로는 1972년 7월 17일, [[산후안주 (아르헨티나)|산후안주]]에서 기록된 −39 °C이다.
[[남반구]]에 있으므로 4계(四季)의 시기는 북반부와 정반대여서 1년의 시작인 [[1월 1일]]은 [[여름]]이 된다.
=== 생태계 ===
북쪽의 [[그란차코]] 지역은 Dalbergia속의 브라질리안 로즈우드나 퀘브라쵸, 카로브 나무 등의 아열대식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안데스 근처의 더 메마른 곳에는 [[사바나]]와 비슷한 지역이 존재한다. 수생식물들은 아르헨티나의 습지에 잘 자란다. 아르헨티나의 중부에 있는 습윤팜파스는 톨그래스 초원이다. 원래의 팜파스에는 사실상 나무가 없으나 [[양버즘나무]]와 [[유칼립투스]] 등과 같은 수입종들이 길이나 마을, 시골의 사유지([[에스탄시아]]) 등에 자란다. 유일한 팜파스 원산지의 나무는 피토라카이다. 팜파스 토양의 표면은 진한 검은색으로 주로 흔히 부엽토로 알려진 [[몰리솔]]로 되어있다. 이것은 이 지역을 세계에서 가장 생산적인 농업지로 만들었지만 또한 상업적 농업으로 인해 이 지역의 본래 생태계를 심하게 훼손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비가 적게 오는 서쪽의 팜파스는 건조팜파스로서 짧은 풀이 자라는 평원이거나 [[스텝 (지리)|스텝]]지역이다. 29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대부분의 [[파타고니아]]는 안데스산맥에 의한 [[비그늘]]이 형성되어 건조한 지역에 맞는 식물군들이 존재한다. 이 지역의 토양은 딱딱하고 바위가 많아 강이나 계곡 근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땅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불가능하다. 파타고니아의 서쪽과 [[티에라델푸에고섬]]에는 [[침엽수]]림과 [[활엽수]]림 등이 있다.
[[쿠요]]에는 가시가 있는 식물이나 다른 건조지역에 사는 식물들이 풍부하다. 강을 따라서는 몇몇 종의 나무와 풀들이 자란다. 이 지역의 조건은 포도가 자라기 적합한 조건이다. 아르헨티나의 북서쪽은 다양한 종의 [[선인장]]이 존재한다. 약 4000m의 고도의 지역에는 초목이 자라지 않는다.
[[파일:Cougar at Cougar Mountain Zoological Park 2.jpg|섬네일|왼쪽|아르헨티나 북서쪽에 서식하는 [[퓨마]]]]
북쪽의 아열대 지역에는 많은 종의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재규어]], [[퓨마]], [[오셀롯]] 등의 [[고양이과]] 동물들, [[고함원숭이]]와 같은 영장류, [[악어]]와 같은 거대한 파충류 등이 서식한다. [[맥 (동물)|맥]], [[페커리]], [[카피바라]], [[들개]] 등과 다양한 종의 [[거북]] 등도 서식하고 있다. 다양한 종의 조류 역시 서식하고 있는데, 특히 [[벌새]], [[홍학]], [[큰부리새]], [[제비]] 등을 꼽을 수 있다.
아르헨티나 중부의 초원에는 [[큰개미핥기]], [[아르마딜로]], [[팜파스고양이|팜파스 고양이]], [[갈기늑대]], [[마라 (동물)|마라]], [[기니피그]] 등의 포유류와 [[레아 (새)|레아]]가 서식한다. [[매]]와 [[왜가리과]]의 새, 그리고 [[티나무]] 역시 이 지역에 서식하고 있다. [[팜파스사슴|팜파스 사슴]], [[팜파스여우|팜파스 여우]] 등도 서식한다. 이들 중 몇몇 종들은 [[파타고니아]]에도 서식하고 있다.
서쪽의 산지에는 다른 동물들이 산다. [[라마]]나 [[구아나코]], [[비쿠냐]] 등의 남미의 특징적인 종들이 서식한다. 또한 여우나 [[비스카차]], [[안데스산고양이|안데스 고양이]], 그리고 아메리카의 날 수 있는 새중에서 가장 큰 [[안데스콘도르]] 등 역시 서식한다.
[[파일:Southern right whale10.jpg|섬네일|오른쪽|[[남방참고래]]]]
아르헨티나 남부는 [[퓨마]], [[안데스 사슴]], [[푸두]](세계에서 가장 작은 사슴), 그리고 도입종인 [[멧돼지]] 등의 서식지이다. 파타고니아의 해안가에는 [[코끼리물범]], [[물개과|물개]], 바다사자, 그리고 다양한 종의 펭귄 등이 서식한다. 조금 더 남쪽은 [[가마우지]]가 있다.
아르헨티나의 영해에는 돌고래, [[범고래]], 그리고 [[남방참고래]]와 같은 고래 등 다양한 바다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정어리]], [[만새기]], [[연어]], 그리고 [[상어]] 등의 바다물고기가 서식하고 또한 [[티에라델푸에고섬]]에는 오징어와 같은 것도 서식한다. 아르헨티나의 강과 개울에는 다양한 종의 [[송어]] 역시 서식한다. [[왕뱀|보아]]나 매우 독성이 강한 [[살모사]] 등도 서식한다. 1928년 조사 이후 [[호르네로]]가 아르헨티나의 국조로 선정되었다.
== 역사 ==
{{본문|아르헨티나의 역사}}
[[파일:Cabildo de Buenos Aires (1864).jpg|섬네일|위오른쪽|부에노스 아이레스 카빌도. 독립 선언으로 이어지는 1810년의 결의 장면]]
=== 콜럼버스 이전 시대 ===
[[파일:SantaCruz-CuevaManos-P2210651b.jpg|섬네일|왼쪽|아메리카 지역의 원주민들이 살았던 가장 오래된 증거중 하나인 [[리오 핀투라스 암각화]]]]
아르헨티나에 최초로 인간이 정주한 증거는 [[파타고니아]]에서 발견되며 기원전 11,000여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지역에는 국가 없이 [[인디오]]들이 부족을 이루며 살고 있었는데, [[파차쿠텍]] 왕이 통치하던 [[잉카 제국]]은 1480년에 공격을 시작하여 오늘날의 아르헨티나 북서부를 정복해서 [[코야수유]] 지역에 포함시켰다. [[과라니족]]들은 [[유카]], [[고구마]], [[예르바 마테]] [[농업]]을 발전시켰다. 중부와 남부 지역([[팜파스]]와 파타고니아)은 유목민들이 지배했으며 [[17세기]]에 [[마푸체]]인들이 통일시켰다.
=== 식민 시대 ===
[[파일:José de San Martín (retrato, c.1828).jpg|섬네일|왼쪽|위오른쪽|호세 데 산 마르틴 장군. 아르헨티나와 [[칠레]], [[페루]]의 해방자]]
1516년 이 땅에 [[유럽인]]들이 들어왔다. 스페인은 1542년, 남아메리카 대부분을 아우르는 [[페루 부왕령]]을 설립했다. 그들이 현재 아르헨티나 지역에 처음 정착한 것은 1527년 [[파라나강]] 근처의 지역이었다. 그들은 153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처음 영구 식민지를 건설했으나, 원주민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스페인]]은 158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영구 [[식민지]]를 다시 건설하였다.
이 지역은 주로 스페인 이민자들과 [[크리오요]]라는 그들의 후손과 [[메스티소]], 토착민과 [[아프리카]] 노예의 후예들의 나라였다. 식민 시대 정착민 중 1/3은 [[부에노스 아이레스]]나 다른 [[도시]]에 모여 살았으며, 나머지는 [[가우초]]라 하여 [[팜파스]]에서 살았다. 나머지 지방에는 원주민들이 살았고, [[파타고니아]]와 [[그란차코]]의 대부분 지역은 원주민 지배하에 남았다.
1776년, 전의 [[페루 부왕령]]의 영토였던 지역에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수도로 하여 [[리오 데 라 플라타 부왕령]]이 설치되었다. (이 영향으로 [[스페인어]]가 아르헨티나의 [[공용어]]로 쓰이고 있고 [[기독교]]([[로마 가톨릭교회]])가 주요한 [[종교]]이다.) [[영국]]이 1806년~1807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두 번 침공했으나<ref>이매뉴얼 월러스틴 <근대세계체제 3> 까치글방 2003.3.13, p378</ref> 후에 대중적 지지를 얻어 [[총독]]이 되는 프랑스 장교 [[산티아고 리니에르]]에 의해 두번 다 저지당했다.
=== 독립 ===
[[1808년]]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하여 왕위를 찬탈한 후 친형 [[조제프 보나파르트|조제프]]를 국왕으로 임명한다.<ref>이강혁 <스페인 역사 100장면> 가람기획 2003.5.14 p247</ref> 이 사건의 실체가 아르헨티나로 전해지자 1810년 5월 25일에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민들은 [[1차 의회]](First Government Junta, [[아르헨티나 5월 혁명|5월 혁명]])을 조직했다. 현재의 아르헨티나를 이루게 되는 두 나라가 생겼는데, [[남아메리카 합주국]](1810년)과 [[자유 연맹]](1815년)이었다. 다른 주들은 자치론자와 중앙집권론자들의 견해 차로 통합 국가에 귀속되는데 시간이 걸렸다. [[파라과이]]는 1811년 독립을 선언하며 분리했다.
[[파일:Juan Manuel de Rosas.jpg|섬네일|위오른쪽|후안 마누엘 데 로사스. 1829년~1852년 집권.]]
[[파일:Velez Sarsfield.jpg|섬네일|위오른쪽|달마시오 벨레스 사르스필드. 그의 1869년 민법은 아르헨티나 법 제도의 초석을 놓았다.]]
[[파일:Hipólito Yrigoyen.jpg|섬네일|위오른쪽|이폴리토 이리고옌 대통령. 1928년 끈기 있는 활동가로 ([[남성]]) 보통 선거를 관철하여 공화국의 첫 민선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호세 데 산 마르틴]]이 1814년에서 1817년 사이에 군사 작전을 지휘하면서 점차 독립은 현실이 되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산 마르틴을 국가 독립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다. 산 마르틴과 그의 군대는 1817년 안데스를 넘어 [[칠레]]와 [[페루]]의 왕당파를 무찔러 독립을 공고하게 다졌다. 1816년 7월 9일 [[투쿠만 의회]]가 소집되어 [[스페인]]에서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1820년 자유 연맹(Liga Federal)은 남아메리카 통합주 군대와 [[브라질]]에서 온 [[포르투갈]] 군대의 공격으로 무너졌으며, 이 주는 남아메리카 통합주로 귀속되었다. 1825년 [[볼리비아]]가 독립을 선언했고, 1826년에 아르헨티나는 브라질로부터 독립을 시도하는 시스플라티나주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결과 당시 브라질의 속주였던 시스플라티나주의 독립을 막으려는 브라질과 무력으로 충돌하여 전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이었다. 1828년에는 [[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이 정전을 맺고 그 결과 시스플라티나주가 [[우루과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했다. 이 정전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주 총독 [[후안 마누엘 데 로사스]]가 부상했는데, [[연방주의자]]인 그는 공포 정치를 펴고 불안한 연맹을 계속 유지했다.
[[파일:JulioArgentinoRoca.JPG|섬네일|왼쪽|위오른쪽|[[훌리오 아르헨티노 로카|훌리오 로카]] 대통령. 1880년에서 1906년까지 정계를 지배했다.]]
1852년 로사스 총독이 축출되자 [[중앙집권당]](Unitarios)과 [[연방주의자]](Federales)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미래의 내분을 미리 막게 된다. 1853년 [[헌법]]이 통과된다. 이것은 법학자 [[후안 바우티스타 알베르디]]가 초안을 썼으며, [[프란체스코회]] 수사 [[마메르토 에르키우]]가 설교를 통해 헌법과 국가 통합을 변호했으며, 처음 몇 년간 어려운 시기를 맞았으나, 1865년 전쟁으로 국가 통합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대신 그 전쟁으로 [[파라과이]]를 멸망 위기까지 몰고 갔다.
=== 현대 아르헨티나의 등장 과정 ===
[[1870년대]]부터 해외 투자와 이민자들이 밀려 들어오며 농업 등이 근대적으로 발전했고 아르헨티나 사회와 경제 새롭게 재편되어 국가 통합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1870년대 "사막의 정복" 남부 [[팜파스]]와 [[파타고니아]]의 토착 부족들을 탄압하여 1,300여명의 토착민이 죽었다.
1880년과 1929년 사이 아르헨티나는 경제 성장을 계속하여 당시 세계적으로 부유한 10개국 중 한 곳이었으며 농업 수출 경제로 이익을 보았다. 이민자들이 늘고 사망률이 떨어지면서 아르헨티나 인구는 5배로 늘었고, 경제는 15배로 확대되었다.
[[국민자치당]]은 비민주적으로 아르헨티나 정치를 지배했으나 1912년 [[로케 사엔스 페냐]] 대통령이 남성 보통 선거와 비밀 선거를 법제화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전통적인 정적인 중앙집권론자 [[급진 시민 연맹]]이 1916년 아르헨티나 첫 자유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폴리토 이리고옌]] 대통령은 사회 경제 개혁을 추진하고 가족농과 소상인 지원을 확대했다. 그러나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1930년 군부는 그를 축출했다. 그리하여 십 여년간 보수주의자의 지배가 시작되었으며 경제 정책을 보호주의로 선회했다. 아르헨티나는 [[제1차 세계대전]]때 중립을 지켰고,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대체로 그런 태도를 보였으며, 연합국의 식량 공급처가 되었다.
=== 페론에서 군사독재까지 ===
==== 페론정부 ====
1946년 [[후안 페론]]이 대통령이 되면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사회]] 및 [[교육]] 정책을 폈으며,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의 수가 늘어나서 [[노동자]] 계급이 성장하였다. 그의 아내 [[에바 페론]]("에비타"로 잘 알려졌다.)은 페론의 두 번째 임기까지 [[영부인]]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는 페론의 성공으로 [[노동자]] 계급 사이에서 거물이었다. 1947년 그녀는 [[에바 페론 재단]]을 설립하여 사회 [[복지]]를 실시했다.
[[파일:Juan Peron con banda de presidente.jpg|섬네일|왼쪽|위오른쪽|후안 페론 대통령(1946년)]]
이것은 아르헨티나 최초로 정부가 사회[[복지]]에 관심을 두게 된 사건이었으며, 기존의 과두정치와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에비타는 무뚝뚝한 페론과 그의 지지자 사이의 "[[사랑]]의 다리"로 여겨졌다. 그녀는 여성 참정권을 얻어냈으며, [[페론주의 여성당]]을 창립하기도 했다. 페론의 두 번째 임기까지 그의 [[경제학자]]들은 [[산업]]과 [[도시]] 발전을 장려했다. 1952년 에비타가 33살의 나이로 죽자 페론 행정부는 점차 아르헨티나의 주요한 종교인 [[로마 가톨릭교회]]와 자신의 [[정치]]운동 사이의 갈등으로 곤란에 처했다. 1955년 [[쿠데타]]가 일어나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 일리아 ====
1963년 [[아르투로 일리아]]가 대통령에 선출되어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경제적 번영에도 불구하고 그가 페론주의자들을 정계에 끌어들이려 하자 군부는 1966년 쿠데타로 대통령을 축출했다.
==== 페론의 재집권 ====
억압적인 군부독재정권은 국내 개발과 공공 사업에 대한 투자를 장려했다. 1975년에 [[경제]]는 매우 발전했고 [[빈곤]]은 7%나 떨어져 낮은 수준이었다. 부분적으로 군부 독재정권의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써 정치적 소요가 확대되자 망명지에서 페론은 능란하게 학생과 [[지식인]]으로 구성된 시위대를 동원해서 결국 군사 정권은 1973년 자유 선거를 요구하게 되었으며, 페론은 스페인에서 다시 돌아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페론은 1974년 7월에 죽고, 그의 셋째 부인이자 부통령 [[이사벨 페론]]은 남편의 뒤를 승계했다. 이사벨 페론은 페론주의자 파벌 사이의 타협으로 선택된 것이었다. 좌우익 극단주의자 사이의 폭력 사태와 재정위기가 일어나자 1976년 3월 24일 [[1976년 아르헨티나 쿠데타|군사 쿠데타]]로 이사벨도 축출됐다.
[[파일:Pobreza en GBA Argentina 1965-2005 (PRN).png|섬네일|250px|군사정부(PRN) 통치 기간 동안 아르헨티나의 빈곤율(Porcentaje de la población)이 폭증했다. - 아르헨티나 국립통계센서스연구소(Indec)]]
===== 군사정권 =====
군사정권은 스스로를 [[국가 재건 과정]]이라고 불렀는데, 군사정권은 쿠데타를 일으킨 다음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반대파를 탄압(일명 [[더러운 전쟁]])했다. 군부독재정권 당시 아르헨티나 비밀정보국은 칠레 비밀경찰 및 미국 [[중앙정보국]]과 협조하여 [[콘도르 작전]]을 수행해 수천명의 반체제 "행방불명자"가 생겼다.
[[1976년 아르헨티나 쿠데타|1976년 쿠데타]]로 집권한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일명 [[국가 재건 과정]])은 여러 복잡한 경제 문제를 남기고 물러났다. 1976년 군사정권이 중화학 공업 육성정책을 본격화하면서 성급하게 자본 및 수입자유화를 실시하여 외채가 1975년 78억달러에서 외채가 1983년에는 450억달러로 늘어났다. 외채 상환을 위해 다시 외채를 끌어들이는 악순환은 이때부터 시작됐다.<ref name="한국경제">[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15&aid=0000638980 아르헨티나의 눈물 '반복되는 위기']《한국경제》2003년 8월 18일</ref> 군사정권은 노동법 개정, 노조탄압, 최저임금 폐지를 통해 해고를 자유롭게 하도록 허용하고 임금을 대폭 하락시켰다. 1970년을 기준으로 실질 임금을 100이라고 하면, 1975년에는 124로 상승했지만, 1976년에는 1년만에 30년 이래 최저 수준인 79까지 떨어졌다. 이로 인해 국민의 생활 수준이 하락하여 군사정권 말기에 빈곤율이 40%, 실질실업률은 18%까지 치솟았다.<ref name="golpe de estado s a">{{웹 인용 |url=http://perio.unlp.edu.ar/question/numeros_anteriores/numero_anterior10/nivel2/articulos/ensayos/mason_1_ensayos_10.htm |제목=보관된 사본 |확인날짜=2008-04-2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0429135700/http://perio.unlp.edu.ar/question/numeros_anteriores/numero_anterior10/nivel2/articulos/ensayos/mason_1_ensayos_10.htm |보존날짜=2008-04-29 |url-status=dead }}</ref><ref>{{웹 인용 |url=http://www.laeditorialvirtual.com.ar/Pages/Ballesteros_JuicioSobreDeudaExterna/Ballesteros_001.htm |제목=Sentencia dictada por el Juez Jorge Ballesteros en el juicio penal Olmos, Alejandro c/ Martinez de Hoz y otros s/ Defraudación, del 13 de junio de 2000 (Exte. 14467) |확인날짜=2013-09-27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0927083820/http://www.laeditorialvirtual.com.ar/Pages/Ballesteros_JuicioSobreDeudaExterna/Ballesteros_001.htm |보존날짜=2013-09-27 |url-status=dead }}</ref>
국민들은 군사정권에 저항했고 1982년 군사 정부가 [[영국]]과 [[포클랜드 전쟁]]을 벌이다 패하자 신뢰를 잃고 1983년 민정 이양이 이뤄지고 선거를 치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로베르토 에두아르도 비올라]]부터 [[레이날도 비그노네]]에 이르기까지 2년(1981년 ~ 1983년)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 동안 4명의 대통령이 거쳐갔을 정도로 이 시기 아르헨티나의 정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 민주화 이후 ===
==== 알폰신 ====
[[라울 알폰신]] 정부는 "행방불명자"를 찾는 작업에 착수했으며, [[군대]]에 대한 민간의 통제 및 민주적인 통합 조직을 세웠다. 군사독재정권 출신자들은 고발되어 [[종신형]]을 선고받는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과거 정권이 떠안은 외채는 그대로 남아 [[국제통화기금]]과 개인 채권자들은 아르헨티나 경제에 몇몇 조건을 내렸으며, 국가는 우선 공공 사업과 국내 신용을 희생하고 외채를 갚아야 했다. 알폰신은 경제 악화를 해결하지 못하여 대중의 지지를 잃었다. 뒤이어 갑자기 닥친 1989년 통화 위기로 물가는 15배나 껑충 뛰었으며, 그는 5개월 일찍 대통령직에서 사임했다.
==== 메넴 ====
새로 대통령에 선출된 [[카를로스 메넴]]은 사유화 정책을 펴기 시작했으며, 1990년에 두 번째 [[하이퍼인플레이션]] 이후 경제학자 [[도밍고 까발로]]를 기용하여 1991년 페소화 환율을 달러화에 고정시켰으며, 시장 기반의 정책을 추진해 사유화 정책에 박차를 가하는 동시에 무역 장벽과 기업 규제를 철폐했다. 이런 개혁 덕분에 [[1990년대]] 거의 내내 물가 안정을 이루면서 투자와 성장 확대를 이끌었다. 그러나 페소화는 시장에 달러화가 밀려들어와 제 가치를 유지하지 못했으며, 외채가 다시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1998년 일련의 국제 금융 위기가 닥치고 고정 페소화가 지나치게 고평가되면서 점차 경제 위기로 빠져들었다. 경제 안정에 대한 기대는 갑자기 무너졌으며, 그의 임기말인 1999년 누적된 문제들과 부패 보고로 메넴은 인기를 잃었다.
[[파일:20 Años del Mercosur-Iguazu-Sarney-Lula-Kirchner-Alfonsín-Bielsa- 30-nov-05-presidencia-govar-2.jpg|섬네일|[[브라질]]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시우바([[2003년|2003]]~)와 호세 사르네이([[1985년|1985]]-[[1990년|90]])가 아르헨티나 대통령 네스토르 키르츠네르(2003-[[2007년|07]])와 라울 알폰신([[1983]]-[[1989년|89]])과 다시 만났다.]]
==== 루아 ====
후임 대통령 [[페르난도 데 라 루아]]는 카를로스 메넴정권의 만성적인 재정 적자와 악화된 [[수출]] 경쟁력을 물려받았다. 정치 연합은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고, 카바요가 다시 경제 장관으로 돌아오자 이는 금융 파생상품 시장에 의한 위기로 해석되었다. 이에 맞불로 카바요는 결국 자본 이탈 흐름을 막고 긴급한 채무 위기를 막을 수밖에(은행 계좌를 동결하며 정점을 이루었다) 없었다. 그러나 대중의 불만은 계속되었고 2001년 12월 20일 아르헨티나는 1890년 대불황 이래 최악의 사회 및 경제 위기에 봉착했다. 거리에선 폭력 [[시위]]가 일어났고 [[경찰]]과 충돌하여 사망자가 발생했다. 시위 군중 사이로 점차 "모두 꺼져라"라고 외쳤으며, 결국 데 라 루아 대통령도 사임하게 된다.
==== 두알데 ====
아르헨티나는 2주 동안 세 명의 대통령을 갈아치웠으며, 2002년 1월 2일 입법 의회가 [[에두아르도 두알데]]를 임시 대통령으로 임명하면서 극에 달했다. 아르헨티나는 해외 채무에 대해 [[채무 불이행]](default)를 선언했으며, 11년간 지속된 페소화의 달러화 연동은 폐지되었고, 이로써 페소화가 크게 절하되고 [[인플레이션]]을 막았다. 중도 좌파 성향의 페론주의자 두알데는 2002년 말까지 실업률이 25%에 이르고 실질 임금이 지난 60년간 최저치를 보이면서 금융 및 사회경제 위기에 봉착했다. 이 위기로 대중은 정치인과 제도를 더욱 불신하게 되었다. 이듬해 시위가 득세했고, 경제는 2002년 말부터 안정되기 시작했으며 그해 12월 [[은행]] 인출 제한이 해제되었다.
==== 키르츠네르 ====
[[파일:Cristina con baston y banda.jpg|왼쪽|섬네일|위오른쪽|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츠네르]] 대통령. 2007년 12월에 취임했다.]]
2003년 5월 [[자유사회주의]] [[페론주의]]자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산타크루스 주지사가 대통령에 선출됐다. 환율의 평가절하 정책 덕택에 정부는 산업 부흥했으며, [[수입대체]](import substitution)와 수출 증가에 기반을 둔 새 정책을 실행했고, 재정과 무역 면에서 안정적으로 흑자를 보였다. 키르츠네르 시기에 아르헨티나는 대부분의 채권에 높은 할인율(약 66%)로 채무 재조정을 했다. 또한 2005년 [[국제통화기금]]에 대한 모든 외채를 갚았다. 공익 사업을 재조정하고 90년대 민영화된 기업 중 일부를 국유화했다. 그의 경제부 장관인 [[로베르토 라바냐]]는 강력한 소득 증진 정책과 공공 사업 투자를 추진했다. 그리하여 아르헨티나는 경제위기에서 벗어나 경제 성장을 계속 하게 되었다. 그리고 추후 아르헨티나는 [[G20]]회원국이 되었다.
네스토르 키르츠네르가 2007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 대신, 그의 부인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상원의원이 출마하여 당선됐다. 페르난데스는 아르헨티나 역사상 직접 선거로 뽑힌 첫 번째 [[여성]] 대통령이 됐다. 여당인 [[승리를 위한 전선]]은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총선과 지방선거에 승리해서 의회를 다수를 차지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농업]] 수출세 인상 계획을 펴려고 하자, 2008년 3월부터 7월까지 농업인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직장폐쇄로 반발했다. 2008년 7월 16일 부통령 [[훌리오 코보스]]는 의회의 가부 동수(同數) 결과에서 상원의장으로서 여당에 반대표를 던져서 대통령의 정책을 좌절시켰다. 2008년 10월 세계 금융 위기가 닥치자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남편의 정책대로 국가가 직접 경제에 개입했다. 2009년 6월 총선에서 집권연합 [[승리를 위한 전선]]이 패해 과반수를 잃었다. 2009년 10월 아르헨티나 상하원은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개 업체가 소유할 수 있는 방송 면허의 수를 제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미디어 개편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미디어 개편법안에 대해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온 [[클라린]]을 겨냥했다는 평가도 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2915821 IPI, 아르헨티나 미디어 개편법안 비난]</ref>
== 인구 현황 ==
{{본문|아르헨티나의 인구}}
=== 현재 수치 ===
[[아르헨티나 통계 및 인구조사국]](INDEC)의 2001년 인구조사를 보면 아르헨티나의 총 인구는36,260,130명이다. 남아메리카에서는 3위이며, 전 세계로는 30위에 해당한다. 전 세계적으로 8위의 면적을 자랑하는 국토를 보유한 나라 치고는 인구가 너무나 적은 나라이기도 하다. 2008년에는 40,482,000으로 늘었다. 이 나라의 인구밀도는 1평방킬로미터당 15명으로 전 세계 평균 50명보다 낮다. 인구 분포는 편중되어 있으며,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인구 밀도는 1평방킬로미터당 14,000명이 넘는데 비해 산타 크루스 주는 1평방킬로미터당 1명도 채 안된다. 1930년대 이래 적정한 출산율 덕분에 아르헨티나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순 이민율이 양수(+)인 나라로 해마다 +0.4%로 순수 이민자가 들어온다.
:'''지역별 인구'''<ref name=EPH>[http://www.indec.mecon.gov.ar/nuevaweb/cuadros/2/EPHcont_1trim08.pdf INDEC]{{깨진 링크|url=http://www.indec.mecon.gov.ar/nuevaweb/cuadros/2/EPHcont_1trim08.pdf }}</ref>
[[파일:Commonwealth Bank of Australia, Martin Place.jpg|섬네일|코르도바 시청]]
{| class="wikitable" border="1" style="margin-right:60px;font-size:85%"
|-
! 순위 !! 도시 !! 주!! 인구 !! 지방
|-
|align="center"| 1 || '''[[부에노스아이레스]]''' || City + 31 ''partidos'' in [[부에노스아이레스주]]
|align="right"| 12,789,000 ||align="center"| 팜파스
|-
|align="center"| 2 || '''[[코르도바 (아르헨티나)|코르도바]]''' || [[코르도바주 (아르헨티나)|코르도바주]]
|align="right"| 1,372,000 ||align="center"| 팜파스
|-
|align="center"| 3 || '''[[로사리오 (아르헨티나)|로사리오]]''' || [[산타페주]]
|align="right"| 1,242,000 ||align="center"| 팜파스
|-
|align="center"| 4 || '''[[멘도사 (아르헨티나)|멘도사]]''' || [[멘도사주]]
|align="right"| 885,000 ||align="center"| 쿠요
|-
|align="center"| 5 || '''[[산미겔데투쿠만]]'''|| [[투쿠만주]]
|align="right"| 789,000 ||align="center"| NOA (northwest)
|-
|align="center"| 6 || [[라플라타]] || [[부에노스아이레스주]]
|align="right"| 732,000 ||align="center"| 팜파스
|-
|align="center"| 7 || [[마르델플라타]] || [[부에노스아이레스주]]
|align="right"| 604,000 ||align="center"| 팜파스
|-
|align="center"| 8 || [[살타]] || [[살타주]]
|align="right"| 516,000 ||align="center"| NOA (northwest)
|-
|align="center"| 9 || [[산타페 (아르헨티나)|산타페]] || [[산타페주]]
|align="right"| 493,000 ||align="center"| 팜파스
|-
|align="center"| 10 || [[산후안 (아르헨티나)|산후안]] || [[산후안주 (아르헨티나)|산후안주]]
|align="right"| 453,000 ||align="center"| 쿠요
|-
|align="center"| 11 || [[레시스텐시아]] || [[차코주]]
|align="right"| 377,000 ||align="center"| 그란차코
|-
|align="center"| 12 || [[산티아고델에스테로]] || [[산티아고델에스테로주]]
|align="right"| 357,000 ||align="center"| 그란차코
|-
|align="center"| 13 || [[코리엔테스]] || [[코리엔테스주]]
|align="right"| 345,000 ||align="center"| 메소포타미아
|-
|align="center"| 14 || [[바이아블랑카]] || [[부에노스아이레스주]]
|align="right"| 304,000 ||align="center"| 팜파스
|-
|align="center"| 15 || [[산살바도르데후후이]] || [[후후이주]]
|align="right"| 298,000 ||align="center"| NOA (northwest)
|-
|align="center"| 16 || [[포사다스 (아르헨티나)|포사다스]] || [[미시오네스주 (아르헨티나)|미시오네스주]]
|align="right"| 287,000 ||align="center"| 메소포타미아
|-
|align="center"| 17 || [[파라나 (아르헨티나)|파라나]] || [[엔트레리오스주]]
|align="right"| 268,000 ||align="center"| 메소포타미아
|-
|align="center"| 18 || [[네우켄]] || [[네우켄주]]
|align="right"| 255,000 ||align="center"| 파타고니아
|-
|align="center"| 19 || [[포르모사 (아르헨티나)|포르모사]] || [[포르모사주]]
|align="right"| 229,000 ||align="center"| 그란차코
|-
|align="center"| 20 || [[산페르난도델바예데카타마르카]] || [[카타마르카주]]
|align="right"| 196,000 ||align="center"| NOA (northwest)
|-
|align="center"| 21 || [[산루이스 (아르헨티나)|산루이스]] || [[산루이스주]]
|align="right"| 192,000 ||align="center"| 쿠요
|-
|align="center"| 22 || [[라리오하 (아르헨티나)|라리오하]] || [[라리오하주 (아르헨티나)|라리오하주]]
|align="right"| 172,000 ||align="center"| NOA (northwest)
|-
|align="center"| 23 || [[리오콰르토]]|| [[코르도바주 (아르헨티나)|코르도바주]]
|align="right"| 161,000 ||align="center"| 팜파스
|-
|align="center"| 24 || [[콩코르디아 (아르헨티나)|콩코르디아]] || [[엔트레리오스주]]
|align="right"| 148,000 ||align="center"| 메소포타미아
|-
|align="center"| 25 || [[코모도로리바다비아]] || [[추부트주]]
|align="right"| 141,000 ||align="center"| 파타고니아
|}
=== 인종 ===
"이민자 축제"(''Fiesta del Inmigrante'')에서는 19세기에서 20세기 [[오베라]] 시의 아르헨티나 이민을 기념한다. 하지만 이민자 축제 개최와는 무색하게 아르헨티나는 인종 차별이 심한 편이다. 인구 절대 다수가 백인이며 인종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나라에서 방문한 방문객들, 특히 흑인 계통이나 동남아시아 국가 사람들이 방문하면 인종 차별적인 모욕을 하기도 하며 심지어 마트 등 생필품 가계에서 물건을 계산을 안 해주는 등의 모욕을 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영원한 우방 국가인 우루과이조차도 이러한 인종 차별 때문에 아르헨티나에 핀잔을 줄 정도이며 앙숙 관계인 브라질은 아르헨티나를 이러한 문제점을 들어 인종 차별밖에 할 줄 모르는 나라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이런 일이 거의 없어졌으며 아르헨티나 원주민들이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 진출하는 등 차별은 사실상 사라졌다.
=== 이민 ===
아르헨티나는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미국]]과 더불어 이민자들의 나라이다.
==== 유럽계와 원주민 ====
대부분의 아르헨티나인들은 유럽에서 온 식민시대 정착민과 19~20세기 이주민들의 후손이며, 아르헨티나 인구의 90%는 유럽계 백인이다. 이들 유럽 이민자 대다수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출신이다. [[쿠오레]](사랑의 학교)에 나오는 마르코 소년이 엄마를 찾아 아르헨티나를 여행한 이야기는 [[19세기]]와 [[20세기]]에 이탈리아 사람들의 [[이민]]이 많았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인구의 6%는 [[메스티소]]이다. 또 4%는 [[아랍인]]이나 [[동아시아]]인 후손이다. 초근 국가 인구조사에 따르면 600,000여명 (1.6%)만이 원주민이다.
==== 유럽이민의 출신지 ====
스페인 식민자들이 처음으로 도착한 이래,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중엽까지 620만 여명의 유럽 이주민 이 나라로 들어왔다. 주요 출신지로는 이탈리아([[피에몬테]], [[롬바르드]], 나중에는 [[캄파니아]], [[칼라브리아]]), 스페인(주로 [[갈리시아]]와 [[바스크]]), 프랑스이다. 그 밖에도 [[아일랜드]],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스]], [[포르투갈]] 등이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 동유럽이나 [[폴란드]], [[헝가리]],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루마니아]] 등 중부 유럽에서도 이민자가 왔다. [[마케도니아 공화국|마케도니아]]나 [[몬테네그로]] 등 발칸 국가에서도 상당수가 왔다. [[아르메니아]]인도 있으며, [[추부트 계곡]]에는 [[웨일스]]인들이 큰 집단을 이루고 있다. [[러시아인]], [[폴란드인]], [[프랑스인]], [[독일인]], [[이탈리아인]], [[에스파냐인]] 등은 인종적으로도 서로 섞이고 이들 중에 혼혈이 존재하기도 하는 편이다.
[[파일:Hotel Inmigrantes Buenos Aires.jpg|섬네일|210px|1906년에 건설되어 수많은 새 이민자를 맞아주던 "이민자 호텔"은 이제 국립 박물관이 되었다.]]
=== 소수 민족 ===
아직 적지만 동아시아에서 온 이주자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살고 있다. 최초의 아시아계 아르헨티나인은 일본인의 후손으로 이후 한국인, 중국인, [[베트남]]인 등이 뒤 따라서 현재 60,000명이 넘었다. 특히 한국계의 경우는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의 이민장려정책에 따라 대거 유입되어 아르헨티나는 남아메리카에서 한국계가 가장 많이 사는 나라가 되었다.
아르헨티나의 유대인 집단은 대개 [[아슈케나짐]] 유대인으로 15~20%는 [[스파라딤]]으로 주로 시리아 유대인이다. 아르헨티나의 유대인 집단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크다.
파타고니아에는 1902년 끝난 [[보어 전쟁]] 이후 이곳으로 이주한 남아프리카 보어인의 집단이 있다. 이들은 100~120명으로 추산되며, 훌리오 로카 장군이 그들에게 할당한 땅에 아직도 살고 있다. 그들은 주로 농촌에 살고 있다.
[[아랍인|아랍]] 출신의 집단도 많은데, [[레바논]]이나 [[시리아]]에서 온 사람들이다. 대부분은 [[동방 정교]]나 [[마론파]] 신도로 [[유대인]]이나 [[무슬림]]도 있다. 상당수는 재계나 정계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로, 가령 [[카를로스 메넴]] 전 대통령은 라리오하 주의 시리아 이민자의 아들이다.
수적으로 적긴 하지만 영국 이주민들도 현대 아르헨티나가 형성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국계 아르헨티나인들은 전통적으로 철도, 공업, 농업 분야에서 영향력있는 위치에 올랐다. 1940년대 [[후안 페론]]이 수많은 영국인 소유 회사를 국유화하고, 1982년 [[포클랜드 전쟁]](말비나스 전쟁)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계 아르헨티나인들이 이렇게 성공한 연유는 복잡하다.
2004~05년 "원주민 보충 조사"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아르헨티나 원주민 인구는 600,000여명으로, 대다수는 [[마푸체]]인들이다.
아르헨티나의 인구조사에 대한 비판도 있는데, 이 자료는 역사적으로 인종보다는 국적 기원의 범주로 조사를 해와서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이나 [[메스티소]]를 빠뜨렸다는 것이다. 1887년 국가 인구조사에서 처음으로 흑인을 독립 범주로 설정했는데, 이전에는 정부에서 무시한 것이었다.
=== 불법 이민 ===
불법 이민은 아르헨티나 인구 현황에서 최근에 생긴 요소이다. 대부분의 불법 이민은 아르헨티나 국경 북쪽의 볼리비아나 파라과이에서 오는 경우이다. 페루나 에콰도르, 우루과이에서도 불법 이민자가 들어온다. 심지어는 [[징병제]]에 크게 불만을 갖고 있는 브라질 사람들이 불법 이민자로 들어오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실제로 징병제를 증오한 나머지 아르헨티나로 국적을 변경한 브라질인도 상당수 존재한다. 아르헨티나 정부에서는 750,000여명이 공적인 등록 기록이 없는 것으로 추산했고, 그리하여 "위대한 조국"(''Patria Grande'') 계획을 시행하여 불법 이주민을 공적 신분을 부여하여 670,000여명의 신청자가 이 사업으로 양성화되었다.{{출처|날짜=2016-03-04}}
아르헨티나에서는 불법체류자에 대한 처우가 매우 관대하며 아르헨티나로 여행온 사람들이 아예 그 곳에 터를 잡고 죽을 때까지 사는 경우도 빈번하다. 한국의 경우 상호비자면제 협정이 이루어져 있으며 비자없이 최장 90일까지 아르헨티나에 체류할 수 있으나 90일이 지나도 관광비자를 갱신하지 않을 경우 벌금이 한화로 약 2만원에 해당되는데 이 마저도 실질적으로는 흐지부지 상태이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이나 일본 등 상호 비자면제협정을 맺은 국가와 남미 대륙의 타국가 국적을 갖고 있을 경우 불법체류자로서 2년이 경과하면 아르헨티나 국적이 자동으로 취득된다.{{출처|날짜=2016-03-04}}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러시아 임산부들이 대거 아르헨티나로 몰려들어 그 곳에서 아기를 낳아 아르헨티나 국적을 부여시키는 일이 증가하고 있다. 2024년 러시아는 그냥 [[징병제]]도 아니고 전쟁터에 투입되는 징병제이기 때문에 아이를 살리고 싶어서 임산부들이 그 먼 아르헨티나까지 와서 원정 출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종교]] ===
아르헨티나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을 믿고 있다. 국교인 가톨릭이 75%, 10%의 [[개신교]]도 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나, 대통령과 부통령은 반드시 가톨릭 신자를 선출하도록 헌법으로 정해져 있다.
=== 도시화 ===
[[파일:Tucumán-Casa-Gobierno-1.jpg|섬네일|투쿠만의 주지사 관저]]
[[파일:Juzgados Federales-La Plata-1.jpg|섬네일|라 플라타의 연방 법원]]
아르헨티나는 대단히 도시화된 나라이며, 국내 10개 대도시 지역에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으며, 시골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은 인구의 1/10 이하이다. 약 3백만명이 부에노스 아이레스 자치시에 살고 있으며, [[그란 부에노스아이레스]] 광역권의 인구는 총 1,280만명이다.(2008년) 그리하여 이 지역은 세계에서 인구가 많은 대도시권 중에 한 곳이다. 아르헨티나의 [[코르도바 (아르헨티나)|코르도바]]와 [[로사리오 (아르헨티나)|로사리오]] 광역시도 인구가 각각 130만, 120만에 이르며, 나머지 다섯 광역 도시들도 각기 50만 정도 인구가 살고 있다.
대부분의 유럽 이주민들은 도시에 정착해서 직장을 얻고 교육 등 더 많은 기회를 얻어 중산층에 편입될 수 있었다. 또 철도망이 확대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지방 소도시에도 정착했으며, 1930년대부터 시골 노동자들이 대도시로 이주했다.
1990년대 철도가 끊기고 지역 소규모 제조업이 대규모 저가 수입품에 밀려 몰락하면서 많은 시골 소읍들이 유령도시가 되었다. 동시에 아르헨티나의 대도시 외곽에는 슬럼(''villas miserias'')이 확산되어 슬럼 인구가 750,000 가구(약 4백만 명)에 육박했다. 슬럼에는 도시 하류층 빈민, 내륙(특히 북부)에서 올라온 시골 사람들, 1960~90년대 사이 이웃나라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었다. 2001~2년에 경제 위기로 상당수 이민자들이 떠나기도 했지만, 경제가 회복되자 다시 돌아온 사람도 많았다.
여러 도시 지역들은 유럽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유럽 도시처럼 보인다. 대개 도시는 스페인식으로 플라사''plaza''라 하는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주변에 성당과 정부 건물이 둘러싼 격자 모양의 도시 구조이다. 이런 도시의 일반적인 배치를 "체커판"(''damero'')이라고 하는데, 사각형 블록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인데, 현대에는 이런 방식을 벗어나기도 한다. 19세기 말에 건설된 라 플라타 시는 체커판 모양에 일정한 간격으로 대각선 도로가 나있다. (이 도시는 남아메리카 최초로 전기 가로등이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
== 행정 구역 ==
{{참고|아르헨티나의 행정 구역}}
[[파일:Argentina-map.png|섬네일|400px|아르헨티나의 행정구역 지도]]
{| class="toccolours" style="float: auto; text-align:right; font-size:80%; width:70%; background:F5F5F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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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ign=center style="background:#f0f0f0;" | [[파일:Bandera de la Ciudad de Buenos Aires.svg|30px|테두리]]|| style="background:#f0f0f0;" align=left colspan="2" |'''[[부에노스아이레스|부에노스아이레스 자치시]]'''|| align=center style="background:#f0f0f0;" | [[파일:Flag of Mendoza province in Argentina.gif|30px|테두리]] || align=left style="background:#f0f0f0;" |'''[[멘도사주]]''' || align=left| [[멘도사 (아르헨티나)|멘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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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ign=center style="background:#f0f0f0;" | [[파일:Bandera Buenos Aires.svg|30px|테두리]]|| style="background:#f0f0f0;" align=left |'''[[부에노스아이레스주]]''' || align=left | [[라플라타]] || align=center style="background:#f0f0f0;" | [[파일:Flag of Misiones.svg|30px|테두리]]|| align=left style="background:#f0f0f0;" |'''[[미시오네스주 (아르헨티나)|미시오네스주]]''' || align=left| [[포사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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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ign=center style="background:#f0f0f0;" | [[파일:Stemma catamarca.gif|30px]]|| style="background:#f0f0f0;" align=left |'''[[카타마르카주]]''' || align=left| [[산페르난도델바예데카타마르카]] || align=center style="background:#f0f0f0;" | [[파일:Flag of Neuquen province in Argentina.gif|30px|테두리]]|| align=left style="background:#f0f0f0;" |'''[[네우켄주]]''' || align=left| [[네우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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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ign=center style="background:#f0f0f0;" |[[파일:Bandera de la Provincia de Córdoba.svg|대체글=|테두리|30x30픽셀]]|| align="left" style="background:#f0f0f0;" |'''[[코르도바주 (아르헨티나)|코르도바주]]''' || align=left| [[코르도바 (아르헨티나)|코르도바]] || align=center style="background:#f0f0f0;" | [[파일:Flag of San Juan province in Argentina.gif|30px|테두리]]|| align=left style="background:#f0f0f0;" |'''[[산루이스주]]''' || align=left| [[산루이스 (아르헨티나)|산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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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ign=center style="background:#f0f0f0;" | [[파일:Flag of La Rioja province in Argentina.gif|30px|테두리]]|| align=left style="background:#f0f0f0;" |'''[[라리오하주 (아르헨티나)|라리오하주]]''' || align=left| [[라리오하 (아르헨티나)|라리오하]] || align=center style="background:#f0f0f0;" |[[파일:Bandera de la Provincia de Tucumán.svg|대체글=|테두리|30x30픽셀]]|| align="left" style="background:#f0f0f0;" |'''[[투쿠만주]]''' || align=left| [[산미겔데투쿠만]]
|}
== 정치 ==
정치는 [[공화제]]를 채용하고 [[삼권분립]]이며, [[국민 투표]]에 의한 4년 임기의 [[대통령]] 중심제를 택하고 있다. 정·부 대통령의 자격은 아르헨티나 태생의 [[로마 가톨릭교회]] 신도로 제한된다. [[아르헨티나 의회]]는 [[아르헨티나 상원|상원]]·[[아르헨티나 하원|하원]]으로 이루어진 [[양원제]]로서, 1912년부터 [[보통 선거]]제가 실시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총선은 후보 개인이 아닌 정당 또는 정당연합에 투표하는 비례대표 선출제 형식으로 실시된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2724449 아르헨티나총선 `부동층 표심 野로']</ref> 전국은 23개의 주와 1연방구로 이루어지는데, 각 주는 주의회를 가지며, 주지사를 선거한다.
총 병력은 약 6만 7,300명이며,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 중에서 가장 근대화한 군대를 가지고 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 이후 1995년[[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택하고 있다. 또한 아르헨티나는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자국민으로 하여금 국적포기를 할 수 없도록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 출신인 [[네덜란드]]의 왕비 [[네덜란드 왕비 막시마|막시마 조레귀에타]]는 국왕 [[빌럼알렉산더르]]와 결혼한 뒤 네덜란드의 국적을 취득하여 네덜란드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국적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최초의 비유럽국가 출신 [[교황 프란치스코]]도 이러한 이유로 인해 국적포기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배우 [[마르코 (배우)|마르코]]는 2011년 대한민국 국적법이 개정되기 이전까지 [[대한민국]] 귀화 시도를 계속 실패했다. 아르헨티나 정부에서 국적법 포기가 불가능하게 국적법을 제정한 이유는 [[나치 독일]]에서 자국으로 피난 온 [[유대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실제로도 [[호세 페케르만]], [[후안 파블로 소린]] 등 유대계 아르헨티나인 유명인사들이 몇몇 있다.
== 경제 ==
{{본문|아르헨티나의 경제}}
[[파일:Aeroparque Jorge Newberry-Overview (by Darío Crusafón).jpg|섬네일|국내선 뉴베리 활주로]][[파일:Patio Parada Rosario 5.jpg|섬네일|로사리오의 철도]]
아르헨티나의 산업의 근간(根幹)은 [[농업]]과 [[목축업]]이며, 국가의 경제는 이들 제1차 산업 위에 성립되어 있다. 농산물과 축산물이 [[GNP]]의 14%, 총수출의 50% 이상을 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이 아르헨티나 경제가 갖고 있던 저성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도입되었으나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은 아르헨티나 산업생산의 위축과 외채의 증가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1986년 ~ 2001년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연간 1.5%의 누적성장률을 기록하였으며 외채의 경우 92억 7,800만 달러에서 1397억 8,300만 달러로 증가했다. 이 시기 아르헨티나에서 해외로 유출된 자본의 액수는 약 1,3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낮은 성장률과 산업구조의 붕괴, 외채 및 자본도피의 증가는 고용률의 감소로 이어졌다. 또한 실질임금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에 평균 25%가 감소하였다. 특히 1998년부터 2002년 중반까지 아르헨티나 경제는 가장 강력한 경기침체를 경험했고 실업률은 18.3%, 빈곤율은 전체 인구의 60%에 달했다.<ref>{{서적 인용|저자=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 연구소|제목=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날짜=2013-06-20|출판사=한울 아카데미|쪽=74}}</ref>
=== 공업 ===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급속히 공업화를 추진하여 공업화가 상당히 진전되어 있는 반면 공업의 생산 경비가 높아 경쟁력은 낮은 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비스업]]도 시장점유율이 높으며, 그 밖에 운수, 상 등을 포함하면 아르헨티나는 제3차 산업이 발달돼 있다고 할 수 있다. 1900년대에 들어 농산물 가공에서 출현한 아르헨티나의 [[공업]]은 제1차 [[후안 페론|페론]] 정권시기인 1940년대부터 막강한 정부의 보호 아래 급속히 발전을 이뤘다. 역대 정부가 공업화 정책을 계속 추진한 결과 현재는 대부분의 소비재, 내구소비재와 함께 중공업 부문에서 [[철강]], [[선박]], [[항공기]], [[자동차]]를 국내에서 제조하고 있다.
=== 목축업과 농업 ===
목축업은 극히 왕성하여, 국토의 40% 이상이 목장과 방목지(放牧地), 10%가 사료 작물과 목초의 농지로 되어 있다. [[소]]·[[돼지]]·[[양]]고기·원피(原皮)·[[양모]] 등이 산출되며, [[육류]](肉類)가 풍부하므로 국민 1인당 식육 소비량이 세계 제1위이다. 주요 농산물은 [[밀]]·[[옥수수]]·[[아마]](亞麻)·[[면화]]·[[목초류]]·[[고구마]] 등인데, 이곳의 [[곡물]]은 북반구의 단경기(端境期)에 출하되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주요 수출품목은 [[두류|콩]]·[[육류]]·[[밀]] 등으로 [[미국]]·[[영국]]·[[네덜란드]]·[[이탈리아]]·[[러시아]]·[[브라질]]·[[일본]]·[[독일]]이 주요 수출 대상국이다. 이에 대하여 [[기계]]류·[[철강]]·화학약품·[[원유]] 등을 수입하는데, [[미국]]·[[일본]]·[[이탈리아]]·[[독일]]·[[브라질]] 등이 주요 수입 대상국이다.
=== 광업 ===
[[광업]]은 총생산의 4%에 불과하며, [[파타고니아]] 지방의 [[석유]] 자원이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매장량은 풍부하나 개발이 뒤져 있다. 근대공업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일어났는데, 축산물의 가공업, 삼유·피혁 공업이 중심이다. 제철업은 소미자 제철소가 [[산니콜라스]]에 선강(銑鋼) 일관 공장을 건설한 후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 사회 ==
아르헨티나는 [[탱고]]와 [[목축]]으로 유명하며 교육과 문화 수준은 [[남아메리카]]에서 최고를 자랑한다. 따라서 [[박물관]], [[미술관]], [[극장]] 등의 문화 수준과 [[대학]]을 비롯한 교육 시설은 상당히 충실하다. 다만 문화는 이 지역의 원주민 [[인디오]]가 볼 만한 문화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두 이식된 유럽 문화를 기초로 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상류 계층에서는 프랑스 풍이 유행했다. 반면 중·하류계 층에서는 국민의 최대수를 차지하는 [[이탈리아]]계 이민과 그 자손을 통해 전파된 [[이탈리아]] 문화가 광범위하게 뿌리를 내렸다. 또한 식민지시대 이후 [[스페인]] 문화의 토대 위에 생활양식, 관습, 특히 식생활, 언어, 음악 등 다방면에 걸쳐서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았다. 최근에는 [[미국]]과의 정치, 경제관계가 긴밀해짐에 따라 [[미국]] 문명도 침투되고 있으나 큰 영향은 받지 않았다. 아르헨티나는 [[중남미]]에서 가장 교육이 진보한 나라이며 문맹률은 3%에 불과하다. 교육제도는 7년제의 초등 교육, 5년제의 중등 교육과 4∼6년제의 대학 교육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등 교육은 의무 교육으로 7년간 무료이며 중등 교육(5년), 대학 교육(5∼6년)도 무료이다. [[대학]]의 경우 입학은 쉽지만 졸업이 어렵다.
== 교통 ==
[[파일:Avenida General Paz entre Cabildo y Panamericana.jpg|섬네일|왼쪽|200px|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도로(Av. General Paz)]]
[[파일:Puente Rosario-Victoria 2.jpg|섬네일|오른쪽|220px|로사리오-빅토리아 대교의 화물선]]
아르헨티나의 교통 인프라는 비교적 우수한 편이다. 넓은 국토를 가진 아르헨티나는 교통도 필연적으로 발달하고 있다. 23만 km의 도로 중 72,000km는 포장 도로이며, 1,575km는 고속도로이다. [[철도]]는 연장거리 45,000km 에 달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핵(中核)으로 하여 [[남아메리카]]에서는 가장 잘 정비되어 있으며 세계에서도 유수한 철도망으로 손꼽힌다. [[항공]] 또한 발달하여,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고 있다.<ref>《[[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남아메리카/아르헨티나#아르헨티나의 교통·도시|아르헨티나의 교통·도시]]〉</ref>
== 문화 ==
세계 3대 오페라 하우스 중의 하나인 떼아뜨로 꼴론(Teatro Colon)을 비롯, [[오페라]], [[발레]], [[연극]], [[영화]], [[서양 고전 음악|클래식 음악]], [[미술]] 전시 등 200여 개가 넘는 [[중남미]] 최대의 문화 공연 시설을 가지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민속춤은 '까르나발SSSSSSSSSSSS
아르헨티나는 세계적인 [[축구]] 강국이다. 아르헨티나는 [[FIFA 월드컵]]이 처음 생길때부터 이미 세계적인 축구강국이였으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은 첫 FIFA 월드컵인 [[1930년 FIFA 월드컵|1930년 월드컵]]에서는 이미 당대 최강인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우루과이]]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할 정도의 강호였다. 하지만 극심한 선수유출 속에서 193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계속적인 쇠락의 길을 걸어왔으나 FIFA에서 두 개 이상의 국가대표팀에서 뛸 수 없도록 규정을 변경한 이후가 되어서야 [[1978년 FIFA 월드컵]]에서 제 기량을 다 발휘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로부터 선수를 빼돌려서 자국 팀으로 주로 사용한 나라로는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와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스페인]] 등이 있다. 특히 이탈리아는 아르헨티나로부터 [[루이스 몬티]], [[엔리케 과이타]], [[라이문도 오르시]] 등의 스타플레이어급 선수들을 뭉텅이로 빼가서 [[1934년 FIFA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가 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는 [[1978년 FIFA 월드컵|1978년]], [[1986년 FIFA 월드컵|1986년]], [[2022년 FIFA 월드컵|2022년 월드컵]]에서 우승하였고, [[1978년 FIFA 월드컵|1978년]]엔 자국에서 월드컵을 개최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는 [[FIFA 월드컵 결승전]]에 6번 진출해 3번 우승했는데 FIFA 월드컵에서 3번 이상 우승한 팀으로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7전 5승 2패),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8전 4승 4패),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6전 4승 2패), 아르헨티나(6전 3승 3패) 등 4개국밖에 없다. [[하계올림픽]]에서 역시 발군의 성적을 보여줬는데 특히 [[2004년 하계 올림픽]]과 [[2008년 하계 올림픽]]에 연속으로 우승한 점은 주목할 만 하다. 또한 [[FIFA U-20 월드컵]]은 역대 최다 우승인 6회 우승(1979년, 1995년, 1997년, 2001년, 2005년, 2007년)을 달성했다. 거기에 그냥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축구 선수의 인적자원 수준이 세계최고이며 [[디에고 마라도나]], [[리오넬 메시]] 등 인류 역사상 더 이상 찾기 힘들 불세출의 축구영웅들을 많이 배출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FIFA월드컵 개최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30년 FIFA 월드컵]]을 초대 월드컵 개최국인 우루과이와 같이 공동개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예술 ==
=== 문학 ===
이 나라의 본격적인 문학은 독립 후의 혼란기에 [[낭만주의]]가 대두함으로써 시작되었다. 탄압 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묘사한 소설 <아말리아>로 유명한 [[호세 마르몰]](1817-1871), 문화사의 고전 <파쿤도, 문명이냐 야만이냐>의 저자인 [[도밍고 파스티노 사르미엔토]](1811-1888)도 있으나, 이 시기의 문학을 대표하는 것은 누가 무어라 해도 [[가우초]](gaucho)의 시(詩)로 초원에 사는 소치기(飼牛)의 생활을 낭만적으로 노래한 것이다. [[에스타니슬라오 캄포]](1834-1880)는 소박한 소치기의 상징<파우스토>를, [[호세 에르난데스]](1834-1886)는 국민적 서사시 <마르틴 피에로>를 남겼다. 현대시는 근대파의 [[레오폴도 루고네스]](1874-1938)에서 비롯되는데 보다 대담한 전위시, 특히 초현실주의로 이행되어갔다. 산문으로는 가우초에 대한 향수(鄕愁)를 선명한 이미지로 묘사한 소설 <돈 세군도 솜브라>의 저자 [[리카르도 구이랄데스]](1886-1927), 자연주의적 소설로 이름이 난 [[마누엘갈베스]](1882-1962), 현대 세계에 있어서 인간의 고립을 테마로 하는 에세이스트 [[에두아르도 마예아]](1903-1982), 환상적 단편소설의 명수(名手)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 1976년 발표한 <거미여인의 키스>가 대표작인 [[마누엘 푸익]](1932-1990), 역사소설 <돈 마리오의 영광>의 작자 [[엔리케 라레타]](1875-1961) 등이 대표적 작가들이다.<ref>{{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2}}</ref>
== 관광 ==
[[파일:Iguazú-Argentinia-001.JPG|섬네일|이구아수 폭포]]
[[파일:ViñedoCafayate.jpg|섬네일|[[살타주]]]]
{{본문|아르헨티나의 관광}}
아르헨티나를 찾는 관광객들은 자연스러운 경관과 지리적 특질, 문화적 특성에 대해 크게 매료된다. 더욱이 2001년 [[아르헨티나 페소]]화의 약세로 환율이 외국인 관광객들에 유리해지면서 남미 중에 아르헨티나를 여행지로 찾는 사람들도 많다. 자국의 통계국에 따르면 2005년도의 관광객 수는 전년 대비 12% 성장하였으며 전체 [[서비스업]] 관련 총액의 8.1%, 국가 전체 생산 중 세 번째로 높은 산업을 관광이 차지하였다. 당시 방문객은 370만 명 정도로 추산되며 통계상 최초로 외국인들의 아르헨티나 방문객이 해외에 여행을 떠난 아르헨티나 사람보다 많아졌다. 2006년 1/4분기에는 전년 동일 분기에서 22%나 상승한 560,265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31%는 [[유럽]], 19.2%가 [[미국]]과 [[캐나다]], 14.2%는 [[브라질]], 9.1%는 [[칠레]], 14.1%가 이웃 국가 출신의 관광객이었다.
== 외교 ==
{{본문|아르헨티나의 대외 관계}}
== 각주 ==
<references/>
== 외부 링크 ==
{{위키공용과 분류|Argentina}}
{{위키낱말사전|아르헨티나}}
{{위키인용집|아르헨티나의 속담}}
{{위키여행|en:Argentina|아르헨티나{{언어링크|en}}}}
* [https://www.youtube.com/watch?v=4Mih1tZ-ICk <nowiki>[지구본연구소]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대표적 백인국가, 아르헨티나 1부</nowiki>]
*{{언어링크|es}} [http://www.argentina.gov.ar/ 아르헨티나 정부 공식 홈페이지]
* [https://web.archive.org/web/20110815000147/http://www.en.argentina.ar/ 아르헨티나 정부포털]
* [https://web.archive.org/web/20101126125749/http://www.korar.org/ 아르헨티나 한인회]
* [https://overseas.mofa.go.kr/ar-ko/index.do 주 아르헨티나 대한민국 대사관]
* [https://ecore.cancilleria.gob.ar/ko 주대한민국 아르헨티나 대사관]
* [https://web.archive.org/web/20130531133037/http://centroculturalcoreano.org/ 주아르헨티나 중남미한국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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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Youth-soccer-indiana.jpg|섬네일|upright=1.35|right|어린 시절의 스포츠. 위에 표시된 축구는 신체 단련과 사회적 상호작용 기술을 양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팀 스포츠다.]]
[[파일:London Marathon 2005 at Blackfriars.jpg|섬네일|2005년 런던 마라톤 대회는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오래되고 전통적인 형태의 스포츠를 대표한다.]]
'''스포츠'''({{llang|en|sports}})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개인이나 단체끼리 속력, 지구력, 기능 따위를 겨루는 활동이다. 신체 활동을 비롯하여 도구 혹은 동물의 힘을 빌려 하는 여러 운동과 [[게임]]이 포함된다.
스포츠는 영어에서 온 외래어로 본래 [[여가]]를 뜻하는 옛 [[프랑스어]] ''{{lang|fr|desport}}''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운동경기''' (運動競技) 라고 불리기도 한다.
스포츠는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와 형태에 따라서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는 개인 운동과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단체 운동으로 나뉜다. 여기에서 스포츠는 개인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단체 운동의 경우에는 경쟁심을 고취하여 구성원의 협동 정신을 높이는 좋은 효과를 갖고 있다.
스포츠는 또한 뛰어난 운동 선수들의 경쟁과 보다 나은 기록을 추구함으로써 사람이 가진 신체적 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활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활동은 스포츠를 몸소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관심과 흥미를 일깨움으로써 스포츠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며, '''경기'''라는 형태로 대중 생활의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즉 위는 일반적으로 1900년대까지의 일반적 스포츠를 의미한다. 물론 그 후로 약100년이 지난 지금(2022)의 Sports는 더 나아가서 아주 넓은 의미를 갖기도 한다. 현대사회에서 "esports"가 생긴것처럼 점차 확대 발전되어가는 의미가 될 것이다. 우선 학문으로 보면 스포츠철학 스포츠미디어 스포츠심리학 스포츠사회학 및 성폭력 스포츠역사 스포츠의학 스포츠생화학 스포츠운동역학 및 재활 스포츠스포츠운동처방 스포츠생리학 스포츠경제 및 경영학 스포츠행정학 스포츠법학 스포츠댄스 및 율동 스포츠정책학 스포츠정치학 스포츠외교학 스포츠건축학 생활(여가)스포츠 레져스포츠 엘리트스포츠 트래이닝론 스포츠교수법 스포츠교육과정 스포츠통계 학교스포츠 야외스포츠와 환경연구 등이 있다.
== 종목 분류 ==
스포츠는 여러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스포츠 종목에는 [[육상]], [[체조]], [[수상 스포츠]], [[빙상]], [[구기]], [[투기]] 등이 있다. 이러한 스포츠 각각의 특성과 기본적 이론을 참조하면 올바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 육상 ===
{{본문|육상 경기}}
[[육상]] 경기 종목은 각각 달리기, 뜀뛰기, 던지기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모든 운동과 스포츠의 기본이 된다. 또한, 대표적인 기록 경기 가운데 하나로 기록 단축에 의한 인간 능력의 한계 도전이 관심이다.
==== 트랙경기 ====
트랙 경기는 [[달리기]] 경기를 의미하며, 단거리달리기, 중ㆍ장거리달리기, 장애물달리기, 이어달리기가 포함된다.
단거리달리기는 100m, 200m, 400m 종목이 있으며, 지정된 자신의 코스에서만 달려야 한다. 또한, 단거리 종목에 적합한 체격 조건과 함께 스피드를 위한 다리의 강한 근력과 순발력이 필요하다.
중ㆍ장거리달리기는 800m, 1,500m, 5,000m, 10,000m 종목이 있으며, 중거리달리기는 단거리의 스피드 능력과 함께 장거리를 달릴 수 있는 지구력이 동시에 필요하고, 장거리달리기는 강한 심폐 지구력과 근 지구력이 필요하며, 장거리 경기일 수록 페이스 조절이 중요하다.
장애물달리기는 크게 허들 경기[100m 허들(여), 110m 허들(남), 400m 허들]와 장애물 경기(3,000m 장애물)로 구분할 수 있는데, 3,000m 장애물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경기는 각 코스에 설치된 10개의 허들을 넘어야 하고, 3,000m 장애물 경기는 총 28개의 장애물과 7개의 물웅덩이를 뛰어넘어야 한다.
이어달리기는 육상 경기 중 유일한 단체 종목으로, 올림픽 경기에서는 400m(4×100m)와 1,600m(4×400m) 종목이 실시된다.
==== 필드(Field) 경기 ====
필드 경기는 트랙 이외의 곳에서 실시되는 경기를 의미하며, 크게 뜀뛰기 경기와 던지기 경기로 구분된다.
* 뜀뛰기 경기
뜀뛰기 경기에는 높이뛰기, 장대높이뛰기, 멀리뛰기, 세단뛰기 경기가 있다.
높이뛰기는 도움닫기에서 발생한 수평 방향의 속도를 수직 속도로 전환하여 크로스바를 넘는 경기고, 도움닫기 → 발구르기 → 공중 동작 → 착지의 4단계로 구분된다. 높이뛰기 기술로는 가위뛰기와 배면뛰기(포스베리 플롭)가 있으며, 키가 크고 몸의 중심이 높은 선수일수록 배면뛰기가 유리하다.
장대높이뛰기는 장대를 사용하여 바를 넘는 경기로, 육상 경기 중에서 가장 복잡한 운동 구조(장대 운반 → 도움닫기 → 장대꽂기와 발구르기 → 끌어올리기와 다리감기 → 비틀어 올리기 → 바넘기 및 착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피드, 순발력, 근력, 균형성, 유연성 등의 종합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멀리뛰기는 도움닫기 속도를 이용하여 보다 멀리 뛰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도움닫기 → 발구르기 → 공중동작 → 착지의 4단계로 이루어진다. 공중동작의 자세에 따라 가위뛰기와 젖혀뛰기로 구분된다.
세단뛰기는 세 번의 도약(홉, 스텝, 점프)을 통하여 보다 멀리 뛰는 경기로, 빠른 도움닫기 속도와 다리의 근력이 필요하며, 동작의 연속성과 리듬, 도약 거리의 배분 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 던지기 경기
던지기 경기에는 포환던지기,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해머던지기의 4가지 종목이 있으며, 올림픽 대회에서는 남녀 모두 이 네 가지 종목을 실시하고 있다.
모든 던지기 경기는 경기자가 8명 이하일 때에는 각자 6명씩 던지고, 8명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3회를 던져 8명을 선발한 다음, 다시 3회를 던져 총 6시기 중 최고의 기록으로 순위를 결정한다.
또한, 던지기 경기는 형태와 중량이 다른 각각의 도구를 던져야 하기 때문에 체격이 크고 순발력이 뛰어난 선수가 유리하다.
==== 마라톤 ====
[[마라톤]]은 42.195km를 달려 순위를 겨루는 최장 달리기 도로 경기이다. 기원전 고대 아테네에서 유래되었으며, 1896년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근대 올림픽부터 육상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마라톤은 인간 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가장 상징적인 종목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강인한 체력과 인내심을 요구하는 종목이다. 또한, 엄청난 체력 소모 때문에 경기 중 음식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
마라톤 기록은 코스마다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세계 신기록 대신에 세계 최고 기록이라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최근 마라톤 경기에 참여하는 애호가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어, 5km, 10km, 하프마라톤 대회들이 전 세계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 체조 ===
{{본문|체조}}
'체조'라는 용어는 운동의 목적, 형식, 방법 등에 따라 여러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경기 종목화된 체조는 기계체조, 리듬체조, 스포츠 에어로빅스를 예로 들 수 있으며, 이 외에도 맨손체조, 유연체조, 보강체조 등이 있다.
==== 기계 체조 ====
{{본문|기계 체조}}
[[기계 체조]] 경기는 남자 6종목(마루 운동, 안마, 링, 도마, 평행봉, 철봉), 여자 4종목(마루 운동, 도마, 이단 평행봉, 평균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도의 숙련된 기술의 미적 아름다움과 역동성이 뛰어난 스포츠 경기 중 하나이다.
또한, 강한 근력과 유연성, 순발력, 조정력, 균형성 등이 요구되는 운동으로 특히 자신감과 용기,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종목이다.
* '''마루 운동'''
[[파일:Jade Barbosa, floor routine, 2007.jpg|섬네일|left|250px|마루 운동 경기]]
마루 운동은 구획된 사방 12m의 탄성 마루 위에서 공중돌기 동작, 힘과 균형, 유연성, 물구나무서기 그리고 조화로운 리듬 동작을 조합하여 구성한다. 동작들은 선수의 개성과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하며, 최대 70초 동안 연기할 수 있다. 여자 선수는 음악에 맞추어 연기하고, 남자 선수는 음악 없이 연기한다.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가치점이 높은 고난도의 기술을 연속적으로 수차례 시도해야 하며, 감점을 최소화해야 한다. 감점 요소는 몸 자세의 위반, 기술 실행의 실수, 버티기의 폭과 정지 시간 유지, 착지의 균형 등이 있다.
* '''안마'''
[[파일:Gymnastics brokenchopstick.jpg|섬네일|right|300px|안마경기를 하고 있는 선수]]
안마 종목은 말(높이 105cm, 길이 160cm, 폭 35cm)위에 고정된 두 개의 손잡이를 주로 이용하여 팔로 버티는 동작을 기본으로 여러 종류의 선회 및 진자 운동 기술들을 실행하는 경기이다. 안마 경기에서는 말의 모든 부분을 사용해야 하며 위치 이동, 방향 전환과 엇걸기, 물구나무서기 등의 기술을 선수의 능력에 따라 구성하게 된다. 모든 동작은 반드시 스윙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며, 경기 도중 아주 경미한 정지도 허용되지 않는다.
* '''링'''
링 운동은 높이 550cm로부터 2개의 링줄과, 줄에 연결된 링(지름 18cm)에 매달려 흔들기, 힘을 중심으로 한 버티기 등의 기술로 구성된다. 기본 동작들을 버티기 자세 또는 물구나머서기 자세로 연결되는 매달리기 자세로 실행되며, 연기 중 링이 흔들리거나 꼬여서는 아니된다. 실시 할 때도 양 팔은 반드시 펴야 하며, 힘 버티기에서는 올바른 자세와 각도를 유지해야 한다.
* '''도마'''
[[파일:DHypolito-Vault.jpg|섬네일|250px|도마 경기]]
횡측 방향으로 설치된 말(높이 135cm)을 양 손으로 동시에 짚고 뛰어 넘는 경기이다. 도움닫기 거리는 25m 이내로 제한되며, 2번의 상이한 기술을 사용하는 종목별 결승 경기를 제외하고는 한 번의 뜀틀 연기를 실시한다.
각 뜀틀 시기에서는 뛰어서(도움닫기) 두 다리를 모아 발구름으로 몸을 띄워 비행 동작, 착지로 이어진다.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가치점이 높은 기술을 시도해야 하며, 높은 비행과 비행 거리, 정확한 착지가 중요하다.
* '''평행봉'''
평행한 계란 모양의 두 개의 봉(높이 175cm, 길이 350cm, 직경 5cm)을 사용하여 매달리기, 버티기 자세를 기본으로, 흔들거나 봉 위나 아래에서 양 손을 동시에 놓았다 다시 잡는 등의 기술로 연기한다. 높으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양 손을 놓았다 잡기에서 외봉잡기, 겹공중돌기, 크게 매달려돌기 등 고난도 기술이 포함되어야 한다.
낮은 비행, 위치 이탈, 물구나무서기에서 여분의 흔들기, 손움직임 등은 감점이 된다.
* '''철봉'''
철봉(높이 225cm, 직경 2.8cm)에 매달려 정지 동작 없이 흔들기를 중심으로 기술을 연기하는 종목이다.
비행 요소의 연속 동작과 다양성 있는 연속적인 기술로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스릴 넘치는 변화가 있어야 하며, 이 때 가치점이 높게 평가된다.
* ''' 이단 평행봉'''
이단 평행봉(높은 봉 225cm, 낮은 봉 145cm)은 위, 아래에서 흔들기를 중심으로 정지함이 없이 매달리기, 돌기, 버티기, 틀기 등의 기술로 양 봉 사이를 이동하며 연기한다. 어려운 요소들을 직접 연결하면서 크고 정확하게 표현해야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 '''평균대'''
{{기계 번역 문단|날짜=2022-10-07}}
평균대(높이 105cm, 길이 500cm, 폭 10cm) 위에서 70~90초 동안 연기를 하며 평균대 앞, 옆, 뒤를 활용한 비행 요소와 턴, 점프, 걷기, 몸 웨이브, 평균잡기, 서거나 앉기 등의 기술로 구성된다. 숙련된 점프 동작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요소가 된다.
==== 리듬체조 ====
줄, 후프, 공, 곤봉, 리본 등의 기구를 이용하여 신체 율동을 표현하는 체조 종목의 하나이다. 예술적 가치가 상대적을 높은 스포츠로 여성 경기만이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짐노스(Gymnos)에서 발생한 체조는 모든 체조 운동의 기원이자 리듬체조의 기원이기도 하다. 유럽에서는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이와 같은 짐노스의 체조 운동 체계를 바로 잡고 스포츠로서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는데, 바제도우(Basedow,J., 1723∼1890)의 범애학교, 잘츠만(Salzmann,C., 1744∼1811)의 슈렙텐달(Schreptenthal) 교육연구소에서 실시한 자연체조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에어로빅 체조(aerobic gymnastics)====
에어로빅체조는 전통적인 에어로빅스운동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높은 강도의 복합적 동작들을 음악에 맞춰서 지속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능력을 뜻 한다. 루틴을 연기 할 때에는 지속적인 동작 , 유연성, 근력을 보여 주어야 하며, 7가지 에어로빅스 기본 스탭을 사용하고 난도를 완벽하게 실시하여야 한다(Federation Internationale de Gymnastique:FIG, Aerobic Gymnastics Code of Points 2013-2016, 문미희, 2013).
경기종목은 개인전(IM, IW), 혼성2인조(MP), 3인조(TR), 5인조(GR) 부분이며 모든 경기는 1분 25초(±5초)를 기준으로 연기를 실시하며 국제 체조 연맹(Federation International de Gymnasticque: F.I.G)의 규정에 의해 경기를 실시한다. 심판구성은 주심 1명, 난이도 심판 2명, 예술심판 4명, 실시심판 4명, 라인심판 2명, 타임심판 1명 등 총 14명으로 있다(Aerobic Gymnastics Code of Points 2013-2016, 문미희, 2013).
==== 맨손 체조 ====
정의신체 이외의 다른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실시하도록 고안된 체조.
내용보통체조·자유체조·도수체조(徒手體操)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성별·연령·시간·장소·인원수 등에 관계없이 실시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 운동량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전신운동이므로 신체의 기능적·형태적 발달을 도모하고, 근육의 탄력성과 관절의 가동성을 높여 스포츠의 기술향상과 안전을 도모하게 한다. 또한 모든 운동의 준비·정리·보강운동에 적합하며, 작업의 능률향상을 위한 피로회복운동으로도 적합하다.
=== 구기 ===
스포츠의 한 분야로 볼을 사용하는 종목의 총칭.
네트(net)형, 베이스볼(baseball)형, 골(goal)형의 3가지로 구별된다. 네트형은 네트를 사이에 두고 하는 경기로서 배구·테니스·탁구·배드민턴 등이 포함된다.
또 베이스볼형은 야구·크리켓·소프트볼이 해당되며, 골형은 공을 때리거나 차거나 함으로써 상대방의 골에 넣는 것으로 축구·농구·럭비·하키·미식축구 등이 포함된다.
=== 투기 ===
==== 태권도 ====
{{본문|태권도}}
==== 검도 ====
{{본문|검도}}
==== 유도 ====
{{본문|유도}}
==== 레슬링 ====
{{본문|레슬링}}
==== 복싱 ====
{{본문|복싱}}
==== 씨름 ====
{{본문|씨름}}
=== 기타 ===
==== 양궁 ====
{{본문|양궁}}
====사격====
{{본문|사격}}
==== 사이클 ====
{{본문|사이클}}
====펜싱====
{{본문|펜싱}}
==== 역도 ====
{{본문|역도}}
====배드민턴====
{{본문|배드민턴}}
==== 골프 ====
{{본문|골프}}
==== 수상 ====
{{본문|수상 스포츠}}
==== 빙상 ====
{{본문|빙상}}
==== 스키 ====
{{본문|스키}}
==== 카누 ====
{{본문|카누}}
==== 승마 ====
말을 타면서 배우는 것.
걸음 종류:평보(걷는것),경속보(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조깅),좌속보(앉아 있는 조깅),구보(빠르게 뛰는 것)
재활승마도 있다.
== 관련 주요 행사 ==
* [[올림픽]]
* [[하계 올림픽]]
* [[동계 올림픽]]
* [[패럴림픽]]
* [[하계 패럴림픽]]
* [[동계 패럴림픽]]
* [[청소년 올림픽]]
* [[스페셜 올림픽]]
* [[데플림픽]]
* [[아시안 게임]]
* [[동계 아시안 게임]]
* [[실내 무도 아시안 게임]]
* [[장애인 아시안 게임]]
* [[팬아메리칸 게임]]
* [[올아프리카 게임|아프리칸 게임]]
* [[태평양 게임|퍼시픽 게임]]
* [[유러피언 게임]]
* [[유니버시아드]]
* [[세계육상선수권대회|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AFC 아시안컵]]([[아시안컵]])
*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유로컵]])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 [[골드컵]]
* [[OFC 네이션스컵]]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프리미어 12]]
* [[FIFA 월드컵]]
* [[발틱컵]]
* [[스즈키컵]]
* [[캐리비안컵]]
* [[걸프컵]]
* [[서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 [[남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 [[동아시아컵]]
* [[월드 게임]]
* [[코먼웰스 게임]]
* [[프랑코포니 경기 대회]]
* [[루소포니아 경기 대회]]
* [[전국체전|전국체육대회]]
== 같이 보기 ==
* [[유스 시스템]]
* [[팜팀]]
* [[드래프트 (스포츠)]]
* [[리저브팀]]
* {{임시링크|스포츠 에이전시|en|Sports Agency}}
** {{임시링크|ISM (단체)|en|International Sports Management}}
* [[스포츠 에이전트]]
** [[스캇 보라스]]
* [[프로 스포츠]]
* [[아마추어 스포츠]]
* [[취미]]
* [[도핑]]
* [[체육]]
* [[체육학]]
* [[스포츠 마케팅]]
* [[스포테인먼트]]
* [[:분류:스포츠 시설|스포츠 시설 목록]]
* [[:분류:스포츠인|스포츠인 목록]]
* [https://ninza.kr/ 스포츠 기초상식]
== 참고 도서 ==
* 체육 개론(구 스포츠 개론) : 한국체육대학교 체육과학연구소(교육과학기술부), 2011, 교학사
* 스포츠 과학(구 스포츠 경기 과학) :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교육과학기술부), 2011, 교학사
* 육상(구 육상운동) :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교육과학기술부), 2011, 교학사
* 체조(구 체조 운동) : 한국교원대학교 체육과학연구소(교육과학기술부), 2011, 교학사
* 수영 :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교육과학기술부), 2011, 교학사
* 체육과 진로 탐구 : 한국교원대학교 체육교육연구소(교육인적자원부), 2006, 교학사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분류-줄}}
* [http://www.sports.or.kr/ 대한민국 체육회]
* {{언어링크|en}} [https://www.olympic.org/the-ioc IOC] - [[국제 올림픽 위원회]]
{{게임의 종류}}
{{전거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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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미식축구|축구|미국에서 발달한 구기종목}}
{{스포츠 정보
|이름 = 축구
|그림 = football iu 1996.jpg
|그림크기 = 250px
|그림설명 = 10번의 등번호를 단 선수가 골을 넣기 위해<br/>골키퍼 쪽으로 슛을 시도하고 있다.
|연맹 = [[국제 축구 연맹|FIFA]]
|별칭 = [[아름다운 게임]]
|기원 = 19세기 중반 잉글랜드<ref>{{웹 인용|url=https://www.fifa.com/classicfootball/history/the-game/Britain-home-of-football.html|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30328222208/http://www.fifa.com/classicfootball/history/the-game/Britain-home-of-football.html|url-status=dead|archive-date=28 March 2013|title=History of Football – Britain, the home of Football|publisher=FIFA}}</ref><ref name=fifa-or>{{웹 인용|title=History of Football – The Origins |publisher=FIFA |url=https://www.fifa.com/classicfootball/history/the-game/origins.html |access-date=29 April 2013|url-status=dead|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71028084304/http://www.fifa.com/about-fifa/who-we-are/the-game/index.html|archive-date=28 October 2017}}</ref>
|접촉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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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La mejor Hinchada de Futbol Argentino.jpg|섬네일|축구에서 팬의 기본 목적은 경기 중에 팀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이다.]]
'''축구'''(蹴球, {{llang|en|association football or football}} 또는 soccer)는 11명의 선수들이 각각 한 팀을 이루어 주로 발을 사용하여 [[골대]]에 [[공]]을 넣는 [[구기]] [[단체 스포츠]],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이다.<ref>{{백과사전 인용
|url = http://100.naver.com/100.nhn?docid=148514
|제목 = 축구
|출판사 = 네이버
|백과사전 = 두산 엔싸이버 백과사전
|확인날짜 = 2007-12-30
}}{{깨진 링크|url=http://100.naver.com/100.nhn?docid=148514 }}</ref>
경기장은 [[직사각형]]이며, 바닥은 [[잔디|천연잔디]]나 [[인조잔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기장 양 끝에 놓인 상대방 골대 안으로 [[축구공|공]]을 통과시키면 득점이 된다. 선수 중 [[골키퍼]]만 팔과 손으로도 공을 건드릴 수 있으나, 팔과 손을 사용할 수 있는 구역이 제한되어 있다. 나머지 선수들은 팔과 손을 제외한 신체 부위로만 공을 다룰 수 있다. 골키퍼 외의 선수가 경기장 안에서 팔이나 손으로 공을 고의로 다루면<ref>[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803202135266&sec_id=560101&pt=nv 김준영 Football 잉글리쉬 칼럼 (2008-03-20) "핸들링 반칙 < 핸드볼 반칙"]</ref> 핸드볼 반칙<ref>[http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208&article_id=0000000008 박문성 칼럼 (2006-03-28) "영국 사람도 모르는 한국축구 표현"]</ref> 이 된다. 주로 발을 사용하여 공을 차며, 공이 공중에 떠있을 때에는 몸과 머리를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경기 종료 시점까지 더 많은 득점을 올린 팀이 승리하며, 동점일 때는 대회 규칙에 따라 무승부로 처리하거나 [[연장전]]과 [[승부차기]]로 승패를 결정 짓는다. 경기 방식이 리그일 경우에는 연장전 없이 무승부로 처리가 되며 토너먼트일 경우에도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을 채택할 경우에는 무승부로 처리되어 원정 다득점 원칙을 따르지만, 단판의 토너먼트일 때는 무승부가 되면 연장전과 승부차기로 승패를 결정하게 된다.
또한 현대적 의미의 축구는 [[1863년]] [[영국]] [[잉글랜드]]에서 [[잉글랜드 축구 협회]] (Football Association)가 창립되면서 시작되었고, [[1863년]] 만들어진 [[축구 경기 규칙|규칙]]을 기본으로 한 규정들이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국제 축구 연맹]] (FIFA)이 주관해 4년마다 국제 대회인 [[FIFA 월드컵]]이 개최되고 있다. 이 대회는 [[하계 올림픽]]의 두 배나 되는, 가장 많은 인구가 [[TV]]로 시청하는 [[스포츠]] 행사이다.<ref>{{웹 인용 |url=http://www.fifa.com/en/marketing/newmedia/index/0,3509,10,00.html |제목=2002 FIFA World Cup TV Coverage |출판사=FIFA official website |확인날짜=2007-12-30 |언어=영어 |archive-date=2006-12-30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61230124633/http://www.fifa.com/en/marketing/newmedia/index/0,3509,10,00.html |url-status=dead }}</ref>
== 축구의 명칭 ==
축구({{한국 한자|蹴球}}, {{llang|en|Soccer}})는 ‘공을 발로 찬다.'라는 뜻을 지닌 한자어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어]]에서 들어온 말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영어 단어 Soccer를 음차한 '''사커'''({{llang|ja|サッカー|삿카}})를 사용하지만, 당시 일본에서는 축구({{llang|ja|蹴球|슈큐}})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사실 축구가 처음 [[한반도]]에 전래할 당시에 한국(당시 조선)에는 [[영국 왕립해군|영국 해군]]이 [[인천항|제물포항]](현재 인천항)에 입항하여 편을 갈라 축구 경기를 하였고, 경기가 끝난 뒤 구경을 나온 한국 사람과 공을 가지고 놀았는데, 운동 경기의 이름을 몰라서 '''척구'''(躑球 또는 踢球)나 '''경구'''(競球)라는 단어로 표현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012300329208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01-23&officeId=00032&pageNo=8&printNo=9944&publishType=00020|제목=얘기로 풀어본 韓國스포츠 80年 <1> 黎明期 蹴球 ①|성=김종식|이름=|날짜=1978-01-23|뉴스=|출판사=[[경향신문]]|확인날짜=2019-07-25}}</ref> 같은 [[한자 문화권]]인 [[중화인민공화국]]이나 [[중화민국]]에서는 '''족구'''({{llang|zh|足球}})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hani.co.kr/h21/data/L980713/1p9h7d0u.html| 제목=‘축구’는 한국에서만 한다?| 저자=송창석| 출판사=한겨레 21| 날짜=1998-07-23| 확인날짜=2007-12-29}}{{깨진 링크|url=http://www.hani.co.kr/h21/data/L980713/1p9h7d0u.html }}</ref><ref name="한국최초">{{서적 인용
|저자=김은신
|제목=이것이 한국 최초|날짜=1995-11-01
|출판사=삼문
|ISBN=978-89-85407-35-9
|쪽=256~257쪽 }}</ref> 그러나 [[한국어]]에서 말하는 [[족구]]는 다른 스포츠이다.
오늘날 영어에서 축구를 의미하는 단어는 '''[[풋볼]]'''({{llang|en|Football}})이다. 미국 등 몇몇 영어권 나라에서는 '''사커'''({{llang|en|Soccer}})라고도 한다. 1863년 잉글랜드 축구 협회(The Football Association)가 처음 창설 되었을때는, 다른 풋볼 방식인 Rugby football과 구분되기 위해 Association football 이라고 불리다가, 그것이 현재에는 간단히 풋볼로 불리게 되었다. Soccer는 Association football을 줄여서 1800년대에 별명으로 부른 것이 기원이다.<ref>{{웹 인용| url=http://germany2006.fussballportal.de/history.php| 제목=The World's Most Beloved Sport - The History of Soccer| 저자=Rebecca Blain| 출판사=germany2006.fussballportal.de| 언어=영어| 확인날짜=2007-12-2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71230053134/http://germany2006.fussballportal.de/history.php| 보존날짜=2007-12-30| url-status=dead}}</ref>(참고로 럭비
축구는 영어를 공식 언어로 쓰는 대부분의 나라, 즉 축구의 종주국인 [[잉글랜드]]를 포함, [[스코틀랜드]], [[웨일스]], 카리브해 국가([[트리니다드토바고]], [[자메이카]] 그리고 이밖의 나라들 포함), [[몰타]], [[인도]], [[나이지리아]], [[카메룬]], [[푸에르토리코]], [[파키스탄]], [[홍콩]], [[라이베리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카리브해 그리고 중미에 걸친 나라들에서 일반적으로 Football로 쓰인다.
한편 '사커'로만 명명하는 국가는 [[미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일랜드]], [[일본]], [[짐바브웨]] 등으로 제한적이며, 이외 유럽 등 대다수의 국가는 여러 자국어 호칭이 있기는 하지만 ‘풋볼’이 일반적이다. 영국에서도 '풋볼'과 '사커'가 혼용되기는 하나 2000년대 이후에는 '풋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비중이 더 커졌다.
축구가 세계적인 스포츠가 된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사커’보다 풋볼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발을 이용한 다른 유사 스포츠들-[[럭비]], [[미식축구]], [[오지풋볼]], [[갤릭풋볼]] 등-이 인기를 끄는 몇몇 나라에서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풋볼보다 ‘사커’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여러 스포츠가 동시에 치러지는 [[올림픽]]에선, 이 경기 종목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풋볼이라 부르고 있다.<ref>{{웹 인용 | url = http://www.olympic.org/uk/sports/programme/index_uk.asp?SportCode=FB| 제목=Football - Olympic sport since 1900| 출판사=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확인날짜=2007-12-29 |언어=영어 }}</ref> [[대한민국]]에서도 다른 유사 축구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아식축구’(←Association式蹴球)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 있다.
축구는 [[브라질]]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인 [[펠레]]로 인해 "[[아름다운 게임 (축구)|아름다운 게임]]"이라는 별칭이 생기기도 했다.
== 축구의 역사와 발전 ==
{{참고|풋볼|축구의 역사}}
공을 차며 돌아다니는 형식의 게임 방식은 오래 전부터 많은 나라에서 행해져 왔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보급된 스포츠의 하나가 되었으며 국가 간 대항전은 '대리전쟁'이라 불릴 만큼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FIFA]]에 따르면, 게임의 가장 이른 형태는 기원전 2, 3세기경 [[중국]]에서 행해진 현재의 축구와 유사한 형태인 [[축국]] ({{한자|蹴鞠}})이라고 한다.<ref>{{뉴스 인용 | 제목 = FIFA “축구 발상지는 중국”| 저자 = 권순일 | 출판사 = 동아일보 | url = https://news.naver.com/sports/index.nhn?ctg=news&mod=read&office_id=020&article_id=0000268646 | 날짜 = 2004-11-04 | 확인날짜 =2007-12-24 }}</ref> 한국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에서 공차기 놀이가 있었는데 그 명칭이 '축국(蹴鞠)'이었다. [[김유신]]과 [[김춘추]]가 이 놀이를 했는데 '농주(弄珠, 둥근 놀이기구)'를 가지고 놀다가 옷고름이 찢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대 그리스]]에는 기원전 7∼6세기 무렵에 고대 그리스 시대에 에피스키로스({{llang|el|επισκυρος}})라는 공을 차고 던지는 간단한 형식의 놀이가 있었다.<ref name="축구의 역사2">{{뉴스 인용 | 제목 = 단순한 룰이 영국 노동자 사로잡아 | 저자 = 정윤수 | 출판사 = 위클리조선 | url = https://news.naver.com/sports/index.nhn?ctg=news&mod=read&office_id=053&article_id=0000004267 | 날짜 = 2005-10-25 | 확인날짜 =2007-12-24 }}</ref> [[고대 로마]]에서 행하진 공놀이의 한 형태인 [[하르파스툼]]은 축구의 먼 친척일지도 모른다고 한다.<ref name="축구의 역사">{{웹 인용 |url=http://61.96.109.83/cufc/class_history.htm |제목=축구의 역사 |확인날짜=2007-12-28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40926022759/http://61.96.109.83/cufc/class_history.htm# |보존날짜=2004-09-26 |url-status=dead }}</ref>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띠면서 축구는 [[중세 유럽]] 곳곳에서 행해졌다.
현대적 규칙의 축구는 잉글랜드 [[퍼블릭 스쿨|사립학교]](Public school)들에서 행해지던 광범위하고 다양한 형태의 [[풋볼]]을 표준화하려 한 19세기 중반의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1848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처음 작성된 [[케임브리지 규칙]]은 뒤에 현대 축구를 포함한 규칙의 발전을 이루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케임브리지 규칙]]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4개 단과대학 중 하나인 [[트리니티 칼리지 (케임브리지)|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여러 학교([[이튼 칼리지|이튼]], [[해로 스쿨|해로]], [[럭비 스쿨|럭비]], [[윈체스터 칼리지|윈체스터]], [[슈루즈버리 스쿨|슈루즈버리]] 등)의 대표자가 참석한 회의에서 작성되었다.<ref name="축구의 역사" /><ref>{{서적 인용 |저자= 김병욱|제목= 한국축구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K-리그 | url = |확인날짜=2007-12-25 |판= |날짜= 2002-12-01 |출판사= 킴스정보전략연구소|출판위치=|인용문=1848년 이튼에 있는 공립학교들을 대표하는 14명이 케임브리지 규칙(Cambridge Rules)으로 알려진 축구규칙을 처음으로 통합... }}</ref> 이 규칙은 현대 축구의 규칙과 거의 유사했다.
그러나 이 규칙은 처음엔 보편적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1850년대]]에 이르러, 여러 학교 또는 대학교에서 분리되어 다양한 형태의 축구를 하는 많은 클럽이 영어권 국가 곳곳에 형성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1857년]]에는 세계 최초의 아마추어 축구 클럽인 [[셰필드 FC]]를 사립학교의 졸업생이 창단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셰필드 FC]] 창단을 발판으로 [[셰필드 FA]]가 [[1867년]]에 창립되었다. 셰필드의 창단은 원시적이던 당시의 축구를 현대 축구로 발전시키는 하나의 계기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f name="축구의 역사" /><ref>{{뉴스 인용 | 제목 = 전 세계 最古의 축구클럽은 셰필드FC
| 저자 = 헤럴드경제 | url =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7/10/25/200710250245.asp | 날짜 = 2007-10-25 |확인날짜=2007-12-26 }}</ref> 또한 [[1862년]]에는 어핑엄 스쿨의 존 찰스 스링이 영향력 있는 규칙 한 벌을 고안해 냈다.<ref>{{뉴스 인용 |저자=David Winner |출판사=The Times |날짜=2005-03-28 |제목=The hands-off approach to a man's game |url=http://www.timesonline.co.uk/article/0,,27-1544006,00.html |확인날짜=2007-12-28 |archive-date=2020-05-28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00528033057/http://www.thetimes.co.uk/ |url-status= }}</ref>
1862년 [[노팅엄]]에서 세계 최초의 프로축구 클럽인 [[노츠 카운티 FC]]가 창단되었다. 노츠카운티의 창단은 축구 협회와 규칙이 그 다음 해에 세워지는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의의가 있다. [[1863년]] [[10월 26일]] 런던에 있는 학교들과 스포츠 클럽들은 프리메이슨 테이번이라는 선술집(Pub)에서 축구 규칙의 통합을 위해 모였다. 처음에는 제각기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 해 12월까지 5번 정도 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점점 하나의 이견으로 좁혀졌고, 여기에서 현대 축구의 첫 번째 공식 규칙이 만들어졌다. 또한, 그들은 그 자리에서 [[잉글랜드 축구 협회|축구 협회]](The Football Association, 약칭 FA)의 설립에도 합의하였다.<ref name="축구의 역사2" /><ref name="축구의 역사" /><ref name="FAhistory-en">{{웹 인용 |제목=History of the FA |work=Football Association website | url = http://www.thefa.com/TheFA/TheOrganisation/Postings/2004/03/HISTORY_OF_THE_FA.htm |확인날짜=2007-12-27 }}</ref> 그러나 규칙의 최종본에서 ‘공을 들고 뛸 수 있다’와 ‘뛰는 상대를 막을 수 있다’(상대의 정강이 차기, 발 걸기, 잡기 등) 등의 두 가지 규칙이 제외되면서 이에 반발한 [[블랙히스 럭비 클럽|블랙히스]]를 포함한 몇몇 팀은 FA에 참가하기를 거부하였다. 이때 FA에 참가하기를 거부하거나, 그 뒤에 FA를 탈퇴한 클럽들이 모여 [[1871년]] [[런던]]에서 [[잉글랜드 럭비협회|럭비 풋볼 유니언]](Rugby Football Union)을 만들었다.
오늘날 축구 경기 규칙은 [[국제 축구 평의회]](IFAB)에서 규정하고 있다. 평의회는 [[스코틀랜드 축구 협회]]와 [[웨일스 축구 협회]], [[아일랜드 축구 협회]]가 참여한 가운데 [[맨체스터]]에서 [[1886년]] 설립됐다.<ref name="축구의 역사" /> 가장 역사가 오래된 축구 대회는 [[FA컵 (잉글랜드)|FA컵]]으로, [[찰스 윌리엄 얼콕|C.W. 얼콕]]이 세워 [[1872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잉글랜드]]의 모든 축구팀이 참여하여 자웅을 겨루는 대회이다. 첫 공식 국가대표팀 간의 국제경기는 [[1872년]]에 [[글래스고]]에서 벌어진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스코틀랜드]]의 경기이며, 이 또한 얼콕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잉글랜드는 세계 최초 축구 리그인 '''[[풋볼 리그]]'''(Football League)의 발상지이기도 한데, 이 리그는 당시 [[애스턴 빌라 FC|애스턴 빌라]]의 중역이었던 [[윌리엄 맥그레고]]에 의해 [[1888년]] 설립되었다. 초기의 시스템은 잉글랜드 중부와 북부의 12개의 클럽이 참여하는 식이었다. 축구에 관한 일체의 국제 행사를 관장하는 [[국제 축구 연맹]](FIFA)은 [[1904년]]에 [[프랑스]] [[파리시|파리]]에서 잉글랜드 축구 협회의 규칙을 따르는 것을 기본으로 설립되었다.<ref name="축구의 역사" /> 그러나 축구 국제 경기가 대중적으로 변해 감에 따라 국제 축구 연맹은 [[1913년]]에 [[국제 축구 평의회]](IFAB)의 규칙을 따르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었다. 국제 축구 평의회는 현재 4명의 국제 축구 연맹 의원과 영 4개국 축구 협회에서 각각 한 명씩으로 이루어져 있다. 1930년에는 [[1930년 FIFA 월드컵|제1회 FIFA 월드컵]]이 시행되었다.
오늘날 축구는 프로축구의 형태로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수백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축구 경기장을 찾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고,<ref>{{뉴스 인용 | url = http://football.guardian.co.uk/news/theknowledge/0,9204,1059366,00.html | 제목 = Baseball or Football: which sport gets the higher attendance? | 저자 = Ingle, Sean and Barry Glendenning | 날짜 = 2003-10-09 | 출판사 = Guardian Unlimited | 확인날짜 = 2007-12-29 | 언어 = 영어 |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80411002757/http://football.guardian.co.uk/news/theknowledge/0,9204,1059366,00.html | 보존날짜 = 2008-04-11 | url-status = dead }}</ref> 수십억의 인구가 텔레비전으로 축구를 시청한다.<ref>{{웹 인용 | 제목 = TV Data | 출판사 = FIFA website | url = http://www.fifa.com/aboutfifa/marketingtv/factsfigures/tvdata.html | 확인날짜 = 2007-12-29 | 언어 = 영어 | archive-date = 2009-02-24 | archive-url = https://web.archive.org/web/20090224112318/http://www.fifa.com/aboutfifa/marketingtv/factsfigures/tvdata.html | url-status = dead }}</ref> 수많은 사람 또한 아마추어 레벨에서 축구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국제 축구 연맹이 주관한 조사에 따르면, 2억 4천 명 이상의 인구가 200여 국가에 걸쳐 정기적으로 축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ref>{{웹 인용 | 제목 = FIFA Survey: approximately 250 million footballers worldwide | 출판사 = FIFA website | url = http://www.access.fifa.com/infoplus/IP-199_01E_big-count.pdf | 형식 = PDF | 확인날짜 = 2007-12-29 | 언어 = 영어 |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60915133001/http://access.fifa.com/infoplus/IP-199_01E_big-count.pdf# | 보존날짜 = 2006-09-15 | url-status = dead }}</ref> 축구의 간단한 규칙과 적은 경기 필수품이 축구의 확산과 대중화에 기여했음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축구는 많은 팬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특정 지방 혹은 전 국가적인 사랑을 받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고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주 언급된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과 독일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친선 축구경기를 열고자 잠시 휴전했다. 또, [[ESPN]]의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의 축구경기 중계로 [[2005년]]에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이 휴전된 적도 있다. 또한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남부 아시아에서는 희한하게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인기가 매우 높다. 그리고 코소보와 카불에서는 전쟁이 종식되고 나서 사회가 정상화되는 첫 번째 신호가 축구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축구가 전쟁의 원인이 된 적도 있다.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축구 전쟁]]이 바로 축구가 발단이 된 전쟁이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축구가 시장을 움직인다
| url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6061310111
|출판사 = 한국경제
|저자 = 프레드릭 켐프, 장규호(한국어로 번역 및 정리)
|날짜 = 2006-06-13
|확인날짜 = 2007-12-29 }}</ref><ref>{{뉴스 인용
|제목 = 축구의 지정학, 분열에서 평화로
| url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606151830141&code=990309
|출판사 = 경향신문
|저자 = 모름(해외칼럼), 김진호(한국어로 번역 및 정리)
|날짜 = 2006-06-15
|확인날짜 = 2007-12-29 }}</ref> 축구는 또한 [[NK 디나모 자그레브]]와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경기가 폭동으로 번짐에 따라 1990년대의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격화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 | 출판사 =The Washington Post([[워싱턴 포스트]]) | 제목= The Soccer Wars | 저자 = Daniel W. Drezner | 날짜 = 2006-06-04 |쪽 = p. B01 |언어=영어 }}</ref>
== 축구의 성질 ==
[[파일:Soccer goalkeeper.jpg|섬네일|250px|골키퍼가 골대 안으로 오는 공을 막으려 다이빙 하고 있다.]]
축구는 경기 규칙에 따라 진행된다. 축구 양 팀 선수 열한 명이 상대 팀의 골대 안으로 축구공을 넣어 득점을 올리기 위해 경쟁하는 경기이다. 공은 단 한 개만 사용되며, 주전 선수가 부상이나 기타 여러 사유로 더 이상 경기를 진행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 후보 선수 열세 명을 따로 두기 때문에 한 팀당 선수 구성은 스물네 명이 된다. 경기가 종료됐을 때 더 많은 득점을 올린 팀이 승리하며, 양 팀이 동점일 경우는 무승부가 된다.
축구의 기본적인 규칙에 따라,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선수는 공을 팔이나 손으로 건드려선 안 되며(스로인 상황 예외), 그 외의 모든 신체 부위로 플레이가 가능하지만 일반적으로 발의 사용도가 가장 높다.<ref name="반칙">{{웹 인용 |url=http://www.kfa.or.kr/fb_info/fb_rule_list_012.asp |출판사=국제 축구 연맹 |제목=규칙 12. 반칙과 불법 행위 |확인날짜=2007-12-29 }}{{깨진 링크|url=http://www.kfa.or.kr/fb_info/fb_rule_list_012.asp }}</ref>
일반적인 경기에서, 선수들은 드리블, 패스, 슛 등을 통하여 득점을 올리기 위한 시도를 하며, 이에 골키퍼는 상대편의 슛을 막아냄으로써 득점을 저지한다. 공의 점유권을 상대 팀에게 빼앗겼을 경우엔 그 공을 다시 되찾기 위해 상대 팀의 패스를 차단하거나 태클 등을 시도한다. 축구는 공이 경기장 라인 밖으로 나가거나 [[심판 (축구)|심판]]이 멈추지 않는 이상 정지되지 않는다. 경기가 정지되었을 경우, 상황에 따른 특정한 방법을 통해 재개된다.<ref name="재개">{{웹 인용 |url=http://www.kfa.or.kr/fb_info/fb_rule_list_08.asp |출판사=국제 축구 연맹 |제목=규칙 8. 경기 개시와 재개 |확인날짜=2007-12-2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01204074924/https://www.kfa.or.kr/fb_info/fb_rule_list_08.asp# |보존날짜=2010-12-04 |url-status=dead }}</ref>
프로축구 경기에서는 일반적으로 많은 골이 나오지 않는다. 예로서 [[프리미어리그 2005-06]]에서는 경기당 평균 2.48 골이 나왔다.<ref>{{뉴스 인용
|제목 = 수비축구 대세...지구촌이 '골가뭄'
| url = http://sports.chosun.com/news/news.htm?name=/news/sports/200610/20061011/6ak81003.htm
|출판사 = 스포츠조선
|저자 = 권영한
|날짜 = 2006-10-10
|확인날짜 = 2007-12-29 }}</ref> 규칙상으로는 골키퍼 외에 포지션을 규제하지 않지만,<ref name="선수의 수">{{웹 인용 |url=http://www.kfa.or.kr/fb_info/fb_rule_list_03.asp |출판사=국제 축구 연맹 |제목=규칙 3. 선수의 수 |확인날짜=2007-12-2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01204080017/https://www.kfa.or.kr/fb_info/fb_rule_list_03.asp# |보존날짜=2010-12-04 |url-status=dead }}</ref> 선수 별로 포지션을 나누어 특정한 역할을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포지션은 크게 [[공격수#중앙 공격수|스트라이커]](또는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로 나눌 수 있다. 스트라이커와 공격수는 직접 득점을 올리는 것이 주 목적이며, 미드필더는 공의 점유와 상대편의 공 소유권 탈환 및 공격수와 수비수의 연결, 수비수는 상대편의 득점을 저지하는 역할이다. 이 세 포지션 내에 있는 선수는 골키퍼와의 분별을 위해 아웃필드 선수(Outfield players)로 분류하며, 각 포지션은 다시 위치별로 나뉘고 해당 선수는 그 위치에서 경기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게 된다. 예로서, 미드필더는 위치별로 중앙, 왼쪽, 오른쪽으로 나뉘며, 이 또한 성질에 따라 공격형과 수비형으로 나뉜다. 10명의 아웃필드 선수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득점과 방어에서 조화를 이루게끔 구성된다. 각 포지션별의 선수의 수는 팀의 경기 성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많은 공격수와 적은 수비수를 둔 팀은 빠르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지향하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며, 그 반대의 경우는 느리고, 수비적인 플레이를 할 가능성이 높다. 선수들은 주어진 포지션에서 경기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기 때문에, 작전 여하에 따라 움직임에 제한이 있는 경우가 있고, 감독이나 개인의 판단에 따라 경기 중 언제든지 포지션을 바꿀 수 있다.<ref>{{뉴스 인용 | url = http://news.bbc.co.uk/sport1/hi/football/rules_and_equipment/4196830.stm |제목=Positions guide, Who is in a team? |출판사=[[BBC]] |확인날짜=2007-12-29 |언어=영어 }}</ref> 선수들의 포지션 배치도는 ‘포메이션’이라고 하며, 이는 감독의 특권이자 감독이 의도하는 전술과 성향을 나타내기도 한다.<ref>{{웹 인용 | url = http://news.bbc.co.uk/sport1/hi/football/rules_and_equipment/4197420.stm |제목=Formations |출판사=[[BBC|BBC Sport]] |확인날짜=2007-12-29 |언어=영어 }}</ref>
== 축구 전술과 기술 ==
축구 선수들과 감독들은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다양한 전술과 기술을 꾸준히 개발해 왔다. 비록 축구가 상대편보다 더 많은 득점을 올리는 것이 승리 요건인 단순한 규칙을 기반으로 시작된 스포츠이지만, 단체 종목인 축구의 특성 상 선수 개개인의 기량을 극대화하여 보다 탄탄한 전술로 잘 조직된 팀이 승리할 가능성이 더 크다. 여러 팀 전술과 개인 기술의 발전은 축구를 단순한 공놀이가 아닌, 보다 흥미롭고 세련된 스포츠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프로화된 축구에서 기술은 개인의 역량과 기량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며, 전술은 선수 개개인을 조합하여 경기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짜이는 큰 틀로써 설명된다. 개인 기술이 반드시 전체 팀의 경기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전술 또한 개인 기술 없이는 이론일 뿐이기 때문에, 전술과 기술은 밀접하고도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내용과 사용 여부에 따라서 서로 보완할 수도, 또는 서로 얽매일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다.
=== 포지션과 포메이션 ===
{{본문|축구의 포지션|포메이션 (축구)}}
[[파일:Boisko Positions.PNG|섬네일|200px|오른쪽|선수 위치와 포지션]]
축구에서, 각 팀 열한 명의 선수들은 경기 시에 특별한 위치에서 경기를 하게 되는데, 이를 포지션이라고 한다. 한 팀은 [[골키퍼]] 한 명과 열 명의 아웃필드 선수로 구성된다. 아웃필드 선수 열 명은 다시 크게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로 나뉜다. 각각의 포지션도 전술적인 역할에 따라 다시 여러 종류로 나뉠 수 있으며, 선수들에게 각기 다른 역할을 요구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골키퍼는 일반적으로 큰 키에 순발력과 적절한 상황 판단력 등이 매우 중시된다. 반면 중앙 수비수는 골키퍼 마찬가지로 큰 키를 요하면서도 몸싸움에 능해야 하지만 측면 수비수의 경우에는 뛰어난 스피드와 체력, 기본적인 볼 컨트롤이 요구된다. 미드필더는 세부적인 포지션별로 요구 사항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드리블과 패스가 중시되며, 또한 중원을 경기 내내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에 좋은 체력이 요구된다. 공격수는 일반적으로 우수한 개인기와 골 결정력을 요하며, 그밖의 세부적인 영역에 따라 추가로 요구되는 사항이 다를 수 있다. 이렇게 선수들에게 포지션 별로 요구되는 신체 조건과 그에 걸맞은 역할 수행은 한 팀이 경기를 수행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ref>{{뉴스 인용
|제목 = 축구에서 포지션이 갖는 의미와 역할
| url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41174
|출판사 = 오마이뉴스
|저자 = 손병하
|날짜 = 2005-03-07
|확인날짜 = 2008-02-02 }}</ref>
[[파일:Football Formation - WM.png|섬네일|200px|왼쪽|초기 포메이션 중 하나였던 W-M 시스템]]
이렇게 선수 개개인의 포지션을 위치를 숫자로 나타낸 것을 포메이션이라고 한다. 포메이션은 보다 조직적인 플레이로 상대 팀보다 더 많은 득점과 더 적은 실점을 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축구 초창기에는 포메이션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전략과 전술로 경기를 이기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구체적인 포메이션이 등장하게 되었다. 최초의 포메이션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친선전에서 등장한 2-2-6 포메이션으로, 당시의 여느 축구팀과 다르지 않게 10명 전원이 무질서하게 공격과 수비를 겸하던 영국팀과 다르게 2-2-6 포메이션을 이용해 처음으로 체계적인 전술을 선보인 스코틀랜드 팀이 선전했다. 이후 포메이션은 발전해 [[1890년대]]에 일반화된 [[피라미드]] 포메이션은(2-3-5)이었다. [[1930년대]] 들어서는 W-M(3-2-2-3) 시스템이 일반화되었는데, 이 포메이션은 공격수와 수비수들의 구분을 명확하게 했다.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이전까지 공격수와 수비수로 단순히 구분되던 것이 발전하여 중원에서 플레이하는 미드필더의 분화가 시작되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 대표팀]]이 즐겨 사용했던 4-2-4 포메이션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 포메이션은 공격수와 수비수를 강조한 포메이션이었다. 브라질은 이후 이를 변형한 4-3-3 포메이션도 선보인다.
[[파일:4-3-3.png|섬네일|200px|오른쪽|현재 가장 보편화된 포메이션 중 하나인 4-3-3 포메이션]]
이 무렵 [[세리에 A|이탈리아]]에서는 빗장수비, 일명 [[카테나치오]]라는 전술이 사용되었다. 이 전술은 수비의 강화에 일조를 했지만 반면에 축구 경기를 단조롭게 만들었다는 비난도 받았다. 한편, 축구 종가라고 일컬어지는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 대표팀]]은 브라질의 4-2-4에서 공격수 2명을 중원으로 끌어내린 4-4-2 포메이션을 선보였다. 그리고 [[1974년 FIFA 월드컵|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네덜란드 대표팀]]은 [[토털 풋볼]]을 선보이게 된다. 이 전술은 전원 공격과 전원 수비를 추구하며 공간을 폭넓게 사용하므로 체력이 매우 강조되는 전술로 당시엔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 이후 현재까지 포메이션은 더욱 분화되면서 5-3-2, 3-4-3, 3-5-2, 4-3-3 포메이션 등이 등장했으며, 여기에 몇 가지 옵션을 활용하는 더 세부적으로 분화된 4-2-3-1, 4-3-1-2, 4-1-4-1 등의 4열 계열 전술도 등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오늘날 각 축구팀이 선보이는 포메이션은 제각기 다양하다.
포메이션은 4-4-2, 3-5-2 같은 숫자의 형태로 나타내는데, 여기서 골키퍼는 제외되며 10명의 아웃필드 선수들만 나타낸다. 앞의 숫자부터 차례대로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의 숫자를 나타낸다. 이를테면 4-4-2 같은 경우는 수비수 4명, 미드필더 4명, 공격수 2명의 형태이며, 3-5-2 같은 경우는 수비수 3명, 미드필더 5명, 공격수 2명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 포메이션의 형태에 따라서 이 팀이 공격적인 성향을 갖는지, 수비적인 성향을 갖는지도 판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포메이션의 숫자들만으로는 이 팀이 추구하는 축구 전술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포메이션의 숫자들은 단순히 해당 포지션의 선수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기 운용 시에는 포지션의 숫자에 연연하여 경기를 운영하기보다는 이를 유연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새로운 전술과 포메이션의 '4분화!
| url = https://news.naver.com/sports/index.nhn?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0033736
|출판사 = 스포츠서울
|저자 = 심재희
|날짜 = 2006-07-19
|확인날짜 = 2008-02-05 }}</ref><ref>{{뉴스 인용
|제목 = 축구 역사를 바꾼 전술들
| url = https://news.naver.com/sports/index.nhn?ctg=news&mod=read&office_id=117&article_id=0000038079
|출판사 = 마이데일리
|저자 = 김덕중
|날짜 = 2006-02-17
|확인날짜=2008-02-02 }}</ref><ref>{{웹 인용 | url = http://ssjjfc.skynet.co.kr/soccer-tactics/trctics-1.htm | 제목 = 포메이션이란? }}{{깨진 링크|url=http://ssjjfc.skynet.co.kr/soccer-tactics/trctics-1.htm }}</ref>
==== 포지션에 따른 등번호 ====
감독의 재량에 따라 등번호는 포지션과 상관없이 달라질 수는 있으나 일반적인 포지션에 따르는 등번호는 다음과 같다.
* GK
** 1 - [[골키퍼]]
** 13 - 백업[[골키퍼]]
* DF
** 2, 3 - [[풀백]]
** 4, 5, 15 - [[센터백]]
* MF
** 6 - [[수비형 미드필더]]
** 7, 11, 17 - [[미드필더#윙어|윙어]] (7번:팀의 상징, 11번:가장 빠른 선수, 17번:세컨드 7번)
** 8 - [[중앙 미드필더]]
** 10 - [[공격형 미드필더]] (10번:에이스, 플레이메이커)
* FW
** 9, 10 - [[중앙 공격수]] (9번:득점 기계, 10번:에이스)
** 7, 11, 17 - [[공격수#윙어|윙어]] (7번:팀의 상징, 11번:가장 빠른 선수 17번:세컨드 7번)
* 축구는 그라운드에는 11명이 뛰지만 실제로 축구팀의 선수 총원은 교체선수를 포함하여 한 팀당 총 23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지막 23번은 감독 재량으로 포지션이 정해지지만 통상적으로는 청소년 국가대표의 유망주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를 성인국가대표로 승격시켜서 활용한다.(예를 들면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카카]]가 이에 해당된다.) 그 이유는 이 선수가 차기대회에서 팀의 중심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23명은 각 포지션당 다른 포지션은 다 2명씩이고 골키퍼만 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후보 선수를 포함한 팀 당 인원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사정에 따라 대략 18명에서 25명 사이에서 재량에 따라 결정된다. 참고로 월드컵 본선 경기는 각 팀당 선수 인원을 스물세 명(골키퍼 세 명 포함)으로 정해져 있다. [[2010년 아시안 게임 축구 남자|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은 스무 명(골키퍼 두 명 포함)이었다.
=== 기술 ===
[[파일:개인기기술.jpg|258x258px|섬네일|축구 선수가 [[퍼스트 터치]]로 볼을 잡고 있다.]]
축구를 할 때 몇 가지의 필요한 기본기가 있다.<ref>{{웹 인용 | url = http://w1.hompy.com/jhbok/pdsdata/trainning.htm |제목= 축구 기술|확인날짜=2008-01-25 |형식= |웹사이트= }}</ref><ref>{{웹 인용 | url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bolae9&logNo=40007189463&from=search |제목= 축구의 기본 기술!|확인날짜=2008-01-25 |형식= |웹사이트= }}</ref> 그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패스로 축구를 패싱 게임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는 선수들에게 볼 컨트롤 능력과 함께 선수에게 가장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패스는 모든 팀 전술의 기초가 되는 기술이며, 그 때문에 패스는 최소한 보내는 사람(Passer)과 받는 사람(Receiver)의 움직임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패스의 정확성과 상호 협조는 경기를 리드하는 데 매우 필수적이다. 패스의 종류는 크게 인사이드 패스, 아웃사이드 패스, 인스텝 패스, 힐 패스 등으로 나뉜다.
드리블도 축구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인데, 드리블은 상대방의 움직임에 대응하여 볼을 컨트롤하며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드리블의 속도와 상대방을 속일 수 있는가의 여부가 드리블의 성공에서 매우 중요하다. 드리블링은 개인이 단독적으로 구사가 가능한 부분이므로 드리블은 선수별로 각각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드리블이 팀 전술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토탈 풋볼]]과 같은 빠른 공수 전환이 이루어지는 축구, 그리고 패스 위주의 경기가 진행되며 드리블의 중요성이 줄어든 경향이 있다. 하지만 축구 선수들의 현란한 드리블은 여전히 축구팬들에게 경탄의 대상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유명한 드리블 기술로는 [[마르세유 턴]], [[크루이프 턴]], [[레인보우 킥]] (사포), [[플립 플랩]], [[라크로케타]] (팬텀 드리블), [[스텝 오버]] (헛다리짚기) 등이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속도+속임수 … 이것이 바로 개인기!
| url = https://news.naver.com/sports/index.nhn?ctg=news&mod=read&office_id=037&article_id=0000002379
|출판사 = 주간동아
|저자 =
|쪽 =
|날짜 = 2007-05-02
|확인날짜 = 2008-01-24 }}</ref>
트래핑은 발 이외의 전신(단, 손과 팔 부분 제외)을 사용하여 공을 받는 기술을 말한다. 흔히 볼 처리 능력이라고도 하며 공을 받은 뒤 다음 동작으로 나아가는 데 대한 사전 동작이므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방법 자체보다는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 기술이다.
슈팅은 축구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득점을 하기 위한 최종 기술로 볼 수 있다. 그만큼 슈팅의 중요성은 매우 큰데, 그렇기 때문에 찬스가 왔을 때 잘 성공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찬스를 잘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평소 슈팅 감각에 대한 연습이 수반되어야 한다. 일반적인 슈팅 동작은 킥이나 패스의 동작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킥 (축구)|킥]]은 공을 발로 차는 기술을 가리키며, 킥은 차는 발의 부위에 따라서 인사이드 킥, 아웃사이드 킥, 인프런트 킥, 아웃프런트 킥, 인스텝 킥, 힐 킥, 토 킥 등으로 나뉘고, 그밖에 차는 순간의 자세에 따라 발리 킥, 오버헤드 킥, 시저스 킥 등으로도 구분한다.
[[헤더 (축구)|헤더]]<ref>{{뉴스 인용 |url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73&aid=0000001397&|출판사=스포츠서울|제목=시선집중 "헤딩이 아니라 헤더" 축구용어 바르게 알기 책 발간|확인날짜=2006-03-29}}</ref>는 머리(혹은 이마)를 사용하여 공을 처리하는 기술이며 패스, 슛, 수비를 위한 클리어링 등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된다. 스탠딩 헤더, 점프 헤더, 다이빙 헤더, 백 헤더 등이 있다.
태클은 상대방의 공을 뺏는 모든 기술을 의미한다. 축구 선수들에게 이 기술은 가히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태클의 종류로는 인터셉트, 어깨 차징, 스탠딩 태클, 슬라이딩 태클 등이 있다. 태클을 잘못하면 상대가 넘어져 부상을 입을 수도 있어 유용하지만, 때로는 위험한 기술이기도 하다.
퍼스트 터치는 축구에서 패스 받을 때 가장 처음 가슴,허벅지,인사이드(발안쪽) 등, 볼을 건드려 공을 멈추게 하거나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트는 것이다.흔히 퍼스트 터치라는 표현보다 볼트래핑이라고 자주 쓴다.퍼스트 터치를 잘하는 선수로는 베르캄프를 빼놓을 수 없다.베르캄프는 퍼스트 터치를 할 때 몸에 착 달라 붙듯이 자기 몸에서 1m내의 볼로 트래핑한다.베르캄프 뿐만 아니라 유럽 톱클래스 선수들은 거의 대부분 좋은 퍼스트 터치를 가지고 있다.{{출처|날짜=2020-05-16}}
== 경기 규칙 ==
{{참고|축구 경기 규칙}}
한 팀 당 열한 명이며, 두 팀이 공 한 개를 사용한다. 공을 상대팀의 골대에 넣으면 점수를 얻으며, 정해진 시간 내에 더 많은 점수를 얻은 팀이 이긴다. 공은 신체의 거의 모든 부위로 다룰 수 있지만, 골키퍼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손이나 팔로 공을 다룰 수 없다. 만약 골키퍼 이외의 선수가 손이나 팔로 공을 다루면, 반칙이 선언되고 [[옐로카드]]를 받는다. 고의성이 심할 경우 [[레드카드]]를 받는 경우도 있다. (2010년 남아공 올림픽 8강전에서 수아레즈가 골대안으로 들어가는 공을 손으로 쳐내서 레드카드를 받은 적이 있다.) 축구의 규칙은 [[IFAB]]에서 정한다.
=== 공 ===
{{본문|축구공}}
[[파일:Generic football.png|floating|150px|오른쪽]]
축구가 하나의 놀이로서 처음 생겼을 때 사용된 공 혹은 발로 차기 위한 도구로 아마 천이나 짚으로 뭉친 덩어리가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축구와 유사한 운동이 존재한 몇몇 나라에서는 [[돼지]]의 [[방광|오줌보]] 등도 사용되었다.
축구가 공식적으로 경기의 모습을 갖추고 인간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바람을 넣어 둥근 모양으로 만든 '''축구공'''이 고안되었다. 오랫동안 공의 껍질의 재료로는 가죽이 쓰였으나 오늘날에는 수중 경기에도 일정한 공의 무게 유지에 적합한 합성 재료가 쓰이고 있다.
* 공의 무게: 410 ~ 450 [[그램]]
* 공의 둘레: 68 ~ 70 [[센티미터]]
=== 경기장 ===
{{본문|축구 필드}}
[[파일:Soccer field - empty.svg|300px|오른쪽|축구 경기장]]
골대를 가로지르는 경기장 양쪽 끝의 선을 골라인이라 하고, 두 골라인의 끝을 잇는 선을 터치라인이라 한다. 양쪽 터치라인의 중간지점을 잇는 센터라인이 있으며, 센터라인의 중앙에 센터서클이 있다. 또, 각 진영마다 골라인으로부터 16.5[[미터]]의 페널티 에어리어(길이 40.3[[미터]])와 5.5[[미터]] 떨어진 골키퍼 에어리어(18.3[[미터]])가 있다.
* 국제 성인 경기의 경우 터치라인의 길이는 100~110[[미터]]이고 골라인의 길이는 64~75[[미터]]이며, 비국제 경기의 경우 각각 터치라인은 90~120미터, 골라인은 45~90미터이다. 2008년 국제 축구협회 평의회([[IFAB]])는 새롭게 지어지는 경기장의 터치라인과 골라인 길이를 각각 105미터, 68미터로 통일하기로 결정하였고 [[FIFA]] 집행위원회도 이를 따르기로 결정하였으나,<ref>{{뉴스 인용|url=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breaking/view.html?cateid=1027&newsid=20080315152709274&p=newsis |제목=FIFA, 새 축구장 터치라인 105m, 골라인 68m 확정 |출판사=뉴시스 |날짜=2008-03-15 |확인날짜=2013-10-19}}</ref> 이후 이 결정은 보류되어 실제로 적용되지는 않았다.<ref>{{언어링크|en}} {{웹 인용 |url=http://www.fifa.com/mm/document/affederation/administration/77/82/55/circularno.1145-amendmentstothelawsofthegame-2008.pdf |제목=FIFA Amendments to the Laws of the Game, 2008 |출판사=FIFA |형식=PDF |확인날짜=2011-03-04 |archive-date=2015-11-05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51105180533/http://www.fifa.com/mm/document/affederation/administration/77/82/55/circularno.1145-amendmentstothelawsofthegame-2008.pdf |url-status=dead }}</ref>
* 센터서클과 아크서클은 각각 센터스폿과 페널티스폿을 중심으로 [[반지름]] 9.15[[미터]]의 [[원 (기하학)|원]]과 [[호 (기하학)|호]]이다.
* [[페널티킥]]을 차는 지점은 골라인으로부터 11[[미터]] 떨어져 있으며, 공격 측의 키커와 수비 측의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선수는 키커가 공을 차는 순간까지는 공을 놓은 지점으로부터 9.15[[미터]] 아크서클 밖에 위치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기 시작 시, 또는 골 이후 경기 재개 시엔 공격 측의 두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선수는 공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공을 놓은 지점으로부터 9.15[[미터]] 센터서클 밖에 위치해야 한다.
* 성인 축구에서 골대의 규격은 골포스트 높이 2.44[[미터]], 크로스바 길이 7.32[[미터]]이다.
실제 축구 경기가 이루어지는 부분을 '''피치'''라고 하는데, 국제 경기를 치르려면 반드시 피치가 천연 또는 인조 [[잔디]]로 덮여 있어야 한다. 위와 같은 규격을 만족하는 잔디밭이라면 어디서든 축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축구 경기는 [[육상 경기]] 등을 같이 치르기 위해 세워진 다목적의 '''[[다목적경기장|종합경기장]]'''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축구가 많은 인기를 누리는 나라에는 축구 경기만을 위해 만들어진 [[축구 전용 경기장]]도 여럿 존재하고, 경기 관전의 편의성 때문에 [[축구 전용 경기장|전용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것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 선수의 수와 장비 ===
* 안전 : 경기자는 자신이나 다른 경기자에게 위험스러운 장비 또는 물건을 착용하거나 사용해서는 안 된다 (보석류 포함)
* 기본 장비 : 경기자의 기본 장비는 상의, 하의(보온 바지를 착용할 경우는 하의의 기본 색상과 같아야 한다), 양말, 정강이 보호대, 신발로 이루어진다고한다.
* 정강이 보호대 : 스타킹으로 완전히 덮인 상태여야 하고, 적절한 재료로 만든 것(고무, 플라스틱 또는 이와 유사한 물질)이어야 하며, 보호의 정도에 무리가 없는 장비여야 한다.
* 골키퍼 : 각 골키퍼는 다른 경기자나 주심 또는 부심과 구별되는 색의 옷을 착용해야 한다.
* 위반/처벌 : 본 규칙을 위반할 때에는
:- 플레이를 중지시킬 필요는 없다.
:- 경기자의 장비가 잘못되어 있으면 경기장을 떠나서 그의 장비를 고치도록 주심이 지시한다.
:- 이미 장비를 바르게 했을 경우를 제외하고 다음 경기가 중단되었을 때 경기장 밖으로 내보낸다.
:- 어떤 선수건 경기장을 떠나 장비를 고친 뒤 주심의 허락 없이는 재입장하지 못한다.
:- 주심은 그를 경기장에 재입장하도록 허락하기 전에 경기자의 장비가 올바른지 점검한다.
:- 경기자는 볼이 아웃 오브 플레이 때에만 재입장이 허용된다. 본 규칙의 위반으로 경기장을 떠났다가 주심의 허락 없이 경기장에 입장(또는 재입장)했을 때, 주심은 옐로카드를 보여 경고 조치한다.
* 플레이의 재개 : 주심이 선수의 장비와 관련하여 경고 조치를 행하려고 플레이를 중지시켰다면 볼이 있던 지점에서 상대팀의 간접 프리킥으로 경기를 재개한다.<ref>{{웹 인용 |url=http://www.kfa.or.kr/fb_info/fb_rule_list_012.asp |출판사=국제 축구 연맹 |제목=규칙 4. 선수의 장비 |확인날짜=2007-12-29 }}{{깨진 링크|url=http://www.kfa.or.kr/fb_info/fb_rule_list_012.asp }}</ref>
=== 심판 ===
[[파일:심판.jpg|섬네일|265x265px|축구 경기 중 심판의 모습.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이 [[부심]]이다.]]
경기장 내에는 총 4명의 심판이 있다. 경기장 안에서 총괄하는 주심과 양쪽 터치라인에서 오프사이드나 주심이 보지 못한 파울 등을 지켜보는 부심이 두 명 있다. 또한 주심이 정한 추가 시간이나 벤치의 교체 신호를 알리는 대기심이 있다.
주심은 파울 등에 휘슬을 불어 파울이나 오프사이드를 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며, 최종적으로 심판을 내릴 수 있다. 그에 반해 부심은 오로지 주심에게 어떤 파울이나 오프사이드를 주심에게 “권유”할 수 있는 자격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또한, 주심은 마치 ‘땅’과 같기 때문에 공이 주심에 맞더라도, 경기는 공이 주심에 맞지 않았을 때와 완전히 동일하게 진행된다.
부심에게는 깃발이 주어지며 깃발을 통해 주심에게 파울이나 오프사이드를 전할 수 있게 된다.
최근, 축구에서 많은 오심이 일어나자, 다른 스포츠처럼 비디오 판정을 내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이 대두되어, [[비디오 판독심]](VAR)이 도입되었다.<ref>{{뉴스 인용|저자1=김경윤 |제목=처음 도입한 VAR, 절반의 성공…월드컵 오심 줄였다 |url=https://www.yna.co.kr/view/AKR20180715036200007 |날짜=2018-07-16 |확인날짜=2021-08-02 |뉴스=연합뉴스}}</ref>
특히 골에어리어 안에서 발생하는 반칙을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서 양쪽 골대 옆에 추가 심판을 투입하는 방식이 검토되기도 했다.<ref>{{언어링크|en}} {{웹 인용 |url=http://www.fifa.com/mm/document/afdeveloping/refereeing/01/09/72/32/additionalassistanrefs-backgroundpaper_e.pdf |제목=Additional Referee Experiment 2009-2010 UEFA Europa League |출판사=FIFA |확인날짜=2013-10-19 |archive-date=2013-10-19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19102224/http://www.fifa.com/mm/document/afdeveloping/refereeing/01/09/72/32/additionalassistanrefs-backgroundpaper_e.pdf |url-status=dead }}</ref>
=== 경기 시간과 동점 시 처리 방법 ===
축구 경기는 일반적으로 전반전, 후반전으로 각각 45분씩 총 90분으로 치른다. [[하프타임]]은 15분이다. 경기 도중 반칙 등의 상황이 있어도 축구 경기의 시간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간다(다만 이 손실 시간을 어림잡아 주심이 추가 시간을 주는 것이 보통이다). 전반전과 후반전 45분이 경과한 후에는 추가 시간이 주어지며, 보통 1~5분 범위에서 주심이 결정하며, 최대10분까지 추가시간을 부여할 수 있다. 심판은 경기 상황에 따라 추가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주심은 경기 진행에서 시간 관리를 주관하며, 선수 교체나 부상 선수 등에 따르는 경기 중단과 재개의 권한이 있다. 추가 시간(additional time)은 연장 시간(injury time), 로스타임(loss time), 스토피지 타임(stoppage) 등으로도 불리며, 전적으로 주심의 판단에 따른다. 주심만이 경기 종료를 선언할 수 있으며, 전후반 종반에 대기심이 주심의 추가 시간 사인을 받아 번호판을 올려 선수와 관객에게 알린다. 이렇게 미리 공개된 추가 시간은 상황과 주심의 의도에 따라 더 길어질 수 있다.
친선 경기나 평가전, 리그 경기 등의 경우에는 후반전 종료와 함께 경기가 끝나지만, [[FIFA 월드컵|월드컵]]과 같이 반드시 승부를 내야 하는 [[토너먼트]] 경기일 경우에는 [[연장전]]을 치른다. 연장전은 전후반 각각 15분, 총 30분의 경기 시간이 주어진다.
연장전을 해도 승부가 안 나면 [[승부차기]]로 돌입하는데(연장전을 치르지 않고 승부차기로 돌입하는 경우도 있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재경기에 돌입했으나, 이 제도가 채택되면서 거의 모든 축구 대회에서 이 방법을 택한다. 진행 방식은 돌아가면서 5명의 키커가 번갈아 가면서 차는데, 모든 선수가 다 차기 전에는 찼던 선수는 찰 수 없으며, 5:5로 무승부가 되면 계속 승부를 겨루고, 그 전에 승부가 나는 경우도 있다(4:2의 경우). 연장전에서 기록된 득점은 최종 스코어에 반영되지만, 승부차기는 단지 진출자를 가리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최종 스코어에 반영되지는 않는다(단, 경기 결과로서 기록은 되며, [[FA컵 (잉글랜드)|FA컵]]이나 [[풋볼 리그컵]]에서는 첫 번째 무승부일 시 재시합으로 돌입).
[[1990년대]] 후반에는 [[IFAB]]에서 [[골든골]] 제도를 시범 실시했다. 골든골은 연장전 동점 상황에서 어느 한 팀이 골을 넣게 되면 경기가 바로 끝나는 방법으로, [[1998년 FIFA 월드컵]]과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실시되었다. 골든골 제도는 연장전에서 선수들이 지나치게 수비적으로 임하게 만든다는 비판으로 [[2004년]]에 폐지되었고, 대신에 [[실버골]] 제도가 시행되었는데 연장 전반까지는 일단 경기를 다 치른 후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에는 연장 후반을 모두 치르는 제도이다. 하지만 실버골 제도의 실효성도 의심되어 현재는 폐지되었다. 최근에는 연장전을 없애고 바로 승부차기로 넘기는 제도가 논의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 |url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20&g_serial=514693| 출판사=조이뉴스| 제목=월드컵 연장전 폐지? 블래터 FIFA회장 언급|날짜=2010-09-10}}</ref>
청소년 경기의 경기 시간은 전후반 각각 40분씩 총 80분으로, 성인 경기에 비해 10분이 짧다. 연장전도 전후반 각각 10분씩 총 20분의 경기 시간이 주어져 성인 경기의 연장전보다 10분이 짧다.
축구 경기를 토너먼트로 진행할 경우에 홈과 원정 경기를 한 번씩 갖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는 1차전과 2차전의 점수를 합산한 뒤, 더 많은 골을 넣은 쪽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게 된다. 두 팀이 넣은 골의 숫자가 같은 경우에는 [[원정 다득점]] 원칙이 적용되어, 원정 경기 득점이 더 많은 팀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다. 두 팀의 골 숫자가 같고 원정 경기에서의 골 숫자에도 차이가 없는 경우, [[연장전#축구|연장전]]을 진행하거나 [[승부차기]]로 승패를 가늠한다.
=== 반칙과 오프사이드 ===
[[파일:Yellow-red card.svg|섬네일|오른쪽|150px|옐로카드는 경고를, 레드카드는 퇴장을 의미한다. 카드의 색상은 [[1970년 FIFA 월드컵]]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축구에서 반칙한 선수에게 [[옐로카드]] 또는 [[레드카드]]가 주어진다. 경고로 충분한 경우는 옐로카드를, 선수가 경기장 밖으로 나가야 된다고 생각될 때는 심판이 레드카드를 꺼내든다. 옐로카드가 2장이 누적되면 레드카드를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퇴장된다. 옐로카드가 2장 누적되었거나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된 선수에 대해서는 교체가 허용되지 않으며, 해당 팀은 필드에서 뛰는 인원이 줄어든 상태에서 그대로 경기에 임해야 한다. 퇴장은 각 팀 당 4명까지 허용되며, 5명째 퇴장된 선수가 발생하는 순간 경기는 중단되고 해당 팀의 몰수패가 선언된다. 반칙에 대한 벌칙으로 반칙을 당한 상대 팀에게 [[직접 프리킥]]이나 [[간접 프리킥]] 기회를 주게 되는데, 모든 프리킥은 차는 순간 인플레이가 성립되며 [[오프사이드]]도 적용된다. 킥을 하기 전에 공은 반드시 정지 상태여야 한다. 상대편 선수는 공으로부터 최소한 9.15[[미터]](10[[야드]])를 떨어져야 한다.
* [[직접 프리킥]] : 키커가 차서 공이 골로 들어가면 골로 선언된다.
* [[간접 프리킥]] : 키커가 찬 공이 심판을 제외한, 키커가 아닌 선수를 접촉한 후에 골대로 들어가야 골로 선언된다. 즉, 키커가 찬 공이 그대로 골에 들어가도 무효가 된다.
* [[페널티킥]] :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직접 프리킥에 해당하는 반칙을 한 경우 선언된다. 골키퍼는 키커가 공을 차기 전에 앞으로 움직일 수 없고 다만 좌우의 평행 이동만 가능하다. 키커와 골키퍼를 제외한 선수들은 페널티킥 스팟으로부터 9.15미터를 떨어져야 한다. 간접 프리킥에 해당하는 반칙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않고 상대편은 벽을 세울 수 있다. 9.15미터를 벌릴 수 없는 경우에는 골라인에서 벽을 세울 수 있다. 토너먼트에서 연장후반까지 무승부가 될 경우 승부차기로 승부를 결정한다.
한편, 축구에서 가장 복잡한 규칙이 [[오프사이드]] 반칙이다. 공격 측 선수가 일반적인 플레이 상황에서 수비 측 진영에서 골키퍼를 포함하는 상대 팀 2명 앞에 있는 선수에게 볼을 전달하면 오프사이드가 성립한다. 만약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는 선수에게 패스를 의도하지 않더라도 공이 선수 몸에 맞는 굴절 등의 이유로 그 선수에게 향했다면 오프사이드가 선언된다. 그러나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는 선수가 플레이가 관여하지 않았다면 오프사이드는 선언되지 않는다. 오프사이드 성립 시 간접 프리킥이 주어진다. 골킥 및 스로인에서는 오프사이드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하프라인 이전의 필드에서도 오프사이드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손 또는 팔을 공에 대는 경우에 범하는 반칙을 '''핸드볼''' 반칙이라 부르며, 영어로는 핸드볼(handball)이라고 한다. [[골키퍼]]는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손을 사용할 수 있지만, 일반 선수들은 스로인(throw in)을 제외하고는 손을 사용할 수 없다. 이를 어기게 되면 핸들링이 되어 상대편에게 [[직접 프리킥]]이 주어진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는 [[페널티킥]]이 주어짐.) 핸들링 반칙도 상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주심이 판단하기 때문에 종종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공이 팔에 닿았다 하더라도 주심이 선수의 의도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반칙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경기는 그대로 진행된다. 만약 명백하게 의도적으로 핸들링 반칙을 범한 것이라면, 주심은 옐로카드를 선수에게 주어야 한다.
=== 볼의 인 플레이와 아웃 오브 플레이 ===
축구의 규칙은 경기 중 상황을 ‘볼의 인 플레이’(ball in play)와 ‘볼의 아웃 오브 플레이’(ball out of play) 두 가지로 구분한다. 전반과 후반의 시작은 킥오프(kick-off)로 개시되며, 볼이 경기장 밖으로 나가거나 심판이 경기를 멈추지 않는 한 볼은 항상 인 플레이이다. 볼이 아웃되었을 때는, 어떻게 아웃되었는지에 따라 경기는 아래의 여덟 가지 방법으로 재개된다.
* '''킥오프''' (Kick) : 상대편이 득점을 했을 때 주어지며, 전반과 후반 및 각 연장전의 시작에 주어진다.
* '''스로인'''(Throw-in) : 볼이 터치라인 밖으로 나갔을 때, 마지막으로 맞고 나간 선수의 상대편은 공을 두 손으로 잡아 머리 위로 던질 수 있다.
* '''골킥'''(Goal kick) : 상대편의 선수에 의해서 볼이 골라인 밖으로 나갔을 때, 수비 팀에게 주어진다. 골킥은 최초의 킥에 한해서 오프사이드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 '''코너킥'''(Corner kick) : 수비 팀의 선수에 의해 볼이 골라인 밖으로 나갔을 때, 공격 팀에게 주어진다.
* '''간접 프리킥'''(Indirect free kick) : 상대편이 사소한 반칙을 했을 때에 주어진다. 별다른 파울 없이도 주의 등을 주기 위해 경기가 정지되었을 때에도 주어진다. 간접 프리킥에서 직접 득점을 올려서는 안 된다(심판을 제외하고, 키커가 아닌 다른 선수에 접촉한 후에 골대로 들어가야 골로 인정됨).
* '''직접 프리킥'''(Direct free kick) : 상대편이 중요 반칙(penal foul)을 했을 경우 주어진다. 직접 득점을 올릴 수 있다.
* '''페널티킥'''(Penalty kick) : 상대편이 수비 중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반칙을 했을 경우 주어진다.
* '''드롭 볼'''(Dropped-ball) : 심판이 선수의 부상, 외부자의 경기 진행 방해, 볼의 결함 등을 이유로 경기를 중단시켰을 경우, 양 팀의 선수들에게 공정하게 진행된다. 성인 경기에서는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 기권 ===
공식 경기 개최 거부 또는 속행 거부 등 어느 한 팀의 귀책 사유로 인하여 개최 불능 또는 중지(중단)되었을 경우, 해당 귀책 사유가 있는 팀이 0:2로 패배(몰수패)한 것으로 한다. 다만 기권 승으로 인한 점수는 골득실에 적용되지 않는다.
=== 징계 ===
공식 축구대회 경기에서 선수, 감독 또는 관중이 규정을 위반할 경우 FIFA에서 해당 팀, 선수 또는 관중에게 다음과 같은 징계를 내릴 수 있다.
* 몰수 게임 : 이 경우 피해자에 해당되는 팀이 물의를 일으킨 팀을 3-0으로 승리한 것으로 처리한다. [[유로 2012]] 대회 예선에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와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세르비아]]의 경기 도중 세르비아의 관중들이 소요를 일으키자 이 경기는 이탈리아가 세르비아를 3-0으로 승리하는 몰수게임 처리되었고 세르비아는 무관중 경기라는 추가 징계를 받았다.
* 무관중 경기 : 물의를 일으킨 팀이 사건 발생 후 자신들의 홈경기 중 한 경기를 관중이 없는 빈 경기장에서 시합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세르비아는 해당사유로 무관중 시합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 중립 경기 : 물의를 일으킨 팀이 사건 발생 후 자신들의 홈경기 중 한 경기를 중립 지역에서 시합해야 한다. 가령, [[미얀마 축구 국가대표팀|미얀마]]는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2차 예선에서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오만]]과의 경기 도중 미얀마의 관중들이 크게 난동을 부리자 [[2018년 FIFA 월드컵]] 출전 금지 징계를 받았다가 나중에 징계 수위가 완화되어 홈 경기를 중립 경기로 치르게 되었다.
* 출전 금지 : 선수 또는 감독이 물의를 일으켰을 때 물의를 일으킨 정도에 따라 경기수가 정해지며 해당경기 동안 출전할 수 없다. [[루이스 알베르토 수아레스]]가 [[파트리스 에브라]]와 인종차별 문제로 시비가 붙었는데 이 때문에 수아레스는 이 징계를 받았다.
* 국제 경기 출전 자격 박탈 : 자격이 없는 선수를 출전시키거나 승부조작을 하는 등의 잘못을 저지를 경우 해당 대회에서 아예 탈락 처리한다.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2차 예선에서 [[시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시리아]]는 경기 출전 자격이 없는 선수를 출전시킨 사유로 이 징계를 받았고 그로 인해 지역 예선 탈락 처리가 되었다. 시리아 대신 [[타지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타지키스탄]]이 3차 예선에 진출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 벌금 : 가장 광범위한 징계로서 일정 액수의 돈을 벌금으로 내야 한다.
== 축구 주관 기관 및 주요 대회 ==
=== 국제 축구 ===
{| class="wikitable"
|-
!colspan="2"|기관
!국가대항전 대회
!클럽대항전 대회
|- bgcolor="#d0e6ff"
|colspan="2"| '''[[국제 축구 연맹]](FIFA)'''
| '''[[FIFA 월드컵]]'''<br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FIFA 클럽 월드컵]]
|-
| bgcolor="#ffffff" colspan="4" |
|-
| width="20" align="center" bgcolor="#eeeeee" rowspan="6" |'''대륙별'''
'''연맹'''
| [[아시아 축구 연맹]](AFC)
| [[AFC 아시안컵]]
| [[AFC 챔피언스리그]], [[AFC컵]]
|-
| [[아프리카 축구 연맹]](CAF)
|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
| [[CAF 챔피언스리그]], [[CAF 컨페더레이션컵]]
|-
| [[북중미카리브 축구 연맹]](CONCACAF)
| [[CONCACAF 골드컵]]
| [[CONCACAF 챔피언스리그]]
|-
| [[남미 축구 연맹]](CONMEBOL)
| [[코파 아메리카]]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코파 수다메리카나]]
|-
| [[오세아니아 축구 연맹]](OFC)
| [[OFC 네이션스컵]]
| [[OFC 챔피언스리그]]
|-
| [[유럽 축구 연맹]](UEFA)
|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 [[UEFA 챔피언스리그]], [[UEFA 유로파리그]]
|}
축구를 비롯한 [[풋살]], [[비치사커]] 등 관련 종목에 대한 모든 것을 총괄하는 기관은 [[국제 축구 연맹]]('''FIFA''')이며, [[스위스]] [[취리히]]에 [[FIFA 본부|본부]]를 두고 있다. FIFA 산하에는 여섯 개 대륙 연맹이 소속되어 있으며, 각 대륙별 연맹은 해당 대륙의 모든 축구 대회 및 선수, 규정 등을 관장한다.
[[파일:WorldCup ko.svg|섬네일|320px|피라미드로 나타낸 연령별 주요 축구 국제대회]]
FIFA가 주관해 4년마다 열리는 [[FIFA 월드컵]]은 전 세계의 모든 축구 대회 중 가장 중요한 대회로 꼽힌다. 그밖에 각급 연맹에서 주관하는 여자부 대회 및 연령 제한이 있는 각 청소년 대회([[FIFA U-20 월드컵|U-20]], [[FIFA U-17 월드컵|U-17]] 등)가 있다. 또한, 각 대륙 연맹 산하에는 각국 축구 협회가 소속되어 해당 협회의 축구 행정 및 대회를 총괄하고 있다.
그밖에 [[올림픽 축구]] 역시 중요한 대회 중 하나이다. 축구는 [[1932년 하계 올림픽]]을 제외하고는 [[1900년 하계 올림픽]]부터 꾸준히 올림픽 종목 중 하나로 채택되어 왔다. [[1930년 FIFA 월드컵|1930년 제1회 월드컵]]이 열리기 전까지 사실상 올림픽은 가장 중요한 축구 대회로써 지위를 누려왔다. 하지만 순수 [[아마추어]]만이 참여할 수 있었던 올림픽의 특성상, 급속하게 프로화가 진행된 축구 종목에서 점차 월드컵보다 중요도가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1984년 하계 올림픽]]부터 프로 선수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지만, FIFA는 월드컵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올림픽에 참여할 수 있는 선수들을 만 23세 이하(U-23)로 제한하고 있다(단, 본선에서는 아직까지 23세 이상의 선수를 각 대표팀 당 세 명까지 [[와일드카드 (스포츠)|와일드카드]]로 포함시킬 수 있다).<ref>{{웹 인용|url=http://reddevil.or.kr/wzcol/wzcol_read.asp?block=&page=&uid=71|제목=신동일 칼럼|저자=신동일|출판사=붉은악마|날짜=2004-01-30}}{{깨진 링크|url=http://reddevil.or.kr/wzcol/wzcol_read.asp?block=&page=&uid=71 }}</ref>
한편, 여자 축구의 경우에는 올림픽에서 연령 제한이 없기 때문에 올림픽 축구도 [[FIFA 여자 월드컵]]처럼 최상위 국가대표팀이 참가하는 중요한 대회이다.<ref>{{뉴스 인용 |url=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400&Total_ID=368922 |제목=올림픽 알면 더 재밌다: 14, 16세기엔 남자 못잖았던 여자축구 |저자=강혜란 |출판사=중앙일보 |날짜=2004-07-28 }}{{깨진 링크|url=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400&Total_ID=368922 }}</ref>
또한 국제 경기는 월드컵, 올림픽 축구 종목, U-20, U-17등의 국제 대회에서는 1경기를 출전할 때마다 일정 금액의 출전료가 각 팀에 지불된다. 물론 승리한 팀에게 더 많은 액수가 지급된다. 과거 [[1954년 FIFA 월드컵]] 당시 이 사실을 몰랐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체류 비용을 아끼려고 2패의 초라한 전적이 되자 일찌감치 귀국했으나 FIFA 측은 오히려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헝가리]]전과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터키]]전 두 경기의 출전료 9천 달러를 찾아가라는 독촉장을 보냈다. 물론 이 돈은 다음 월드컵인 [[1958년 FIFA 월드컵]]이 개최되었을 때 [[대한축구협회]]에서 서류를 분실하는 바람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자 벌금으로 징수했다.
=== 각국의 축구 ===
각국 축구 협회는 그 나라 실정에 맞는 [[리그 (스포츠)|리그]]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리그에 따라서 [[디비전 시스템]]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고, 하나의 리그를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축구가 발전한 나라의 경우 디비전 시스템에 기초해 리그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리그에서는 정규 시즌 동안 리그에 소속된 각 클럽이 [[리그전]] 방식에 홈 어웨이 방식을 덧붙인 방식으로 경기를 갖고, 시즌 결과에 따라 우승 팀을 결정하게 된다. [[일본]]의 [[J리그]],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와 같이 몇몇 상위 팀은 상부 리그로 승격하고 하위 팀들은 하부 리그로 강등되는 [[승강제]]가 운영되는 것이 보편적인 리그 운영 방식이다. [[대한민국]]의 [[K리그]]에서는 2013년부터 승강제를 도입했다.
각국의 최상위 리그(1부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클럽은 각 대륙 연맹 등에서 개최하는 국제 대회에 진출할 자격을 얻게 되는데, 이러한 대회는 해당 클럽에 경제적 이득과 명예를 안겨주기 때문에 각 클럽의 발전과 축구의 세계화를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몇몇 리그는 정규 시즌을 전기와 후기, 또는 [[아페르투라와 클라우수라]]로 나누어 진행하기도 하는데, 리그 특성에 따라 한 시즌에 두 개의 우승 팀을 가리는 경우도 있고 [[플레이오프]]와 같은 방식을 거쳐 통합 챔피언을 가리기도 있다.
또한 많은 나라에서는 해당 축구 협회에서 주관하는 [[토너먼트]] 방식의 컵 대회([[FA컵]])를 운영하고 있으며, 정규 리그 우승 팀과 컵 대회 우승 팀 간에 [[슈퍼컵]] 대회를 열기도 한다.
많은 축구 선수는 높은 연봉을 보장해 주는 각국의 유명 클럽에 소속되기를 희망한다. 일반적으로 유럽의 5대 리그로 불리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 A]],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독일]] [[분데스리가]]와 [[프랑스]] [[리그 앙]]은 연봉 수준이 높고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리그로 꼽히기 때문에 세계의 많은 선수가 그곳에 진출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 [[대한민국]] 등 100개 이상의 국가에서 이들 리그에 실제로 진출한 선수들도 배출되고 있다.) [[국제 축구 역사 통계 연맹]](IFFHS)에서는 이들 유럽 5대 리그와 함께 [[CONMEBOL|남미]]의 [[브라질 세리에 A]],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등을 주요 리그로 꼽고 있다.<ref>{{웹 인용 | url = http://www.iffhs.de/?b6e28fa3002f71504e52d17f7370eff3702bb0a35b14| 제목=The world's strongest leagues in 2007: First trends| 출판사=IFFHS }}</ref>
== 축구를 소재로 한 작품 ==
=== 나이스 ===
* 나아띠골!
** [[골! 2: 꿈을 향해 뛰어라]]
** [[골! 3]]
* [[누구에게나 찬란한 (영화)|누구에게나 찬란한]]
* [[비상 (2006년 영화)|비상]]
* [[서울 유나이티드, 이제 시작이다]]
* [[맨발의 꿈]]
* [[소림축구]]
* [[댐드 유나이티드 (영화)|댐드 유나이티드]]
* [[승리의 탈출]]
* [[슈팅라이크 베컴 (영화)|슈팅라이크 베컴]]
* [[루킹 포 에릭 (영화)|루킹 포 에릭]]
* 티켓
* [[피버 피치 (영화)|피버피치]]
* [[유나이티드 (영화)|유나이티드]]
* [[윌 (영화)|윌]]
* [[오프사이드 (영화)|오프사이드]]
* [[드림팀 (영화)|드림팀]]
=== TV 프로그램 ===
* [[날아라 슛돌이]]
* [[청춘FC 헝그리 일레븐]]
* [[뭉쳐야 찬다]]
* [[으라차차 만수로]]
* [[골 때리는 그녀들]]
=== 만화 영화 ===
* {{국기그림|일본}} [[쥐라기 월드컵]]
* {{국기그림|일본}} [[축구왕 슛돌이]]
* {{국기그림|일본}} [[썬더일레븐(초능력 만화)]]
=== 축구 잡지 ===
* {{국기그림|대한민국}} [[베스트일레븐 (잡지)|베스트 일레븐]]
* {{국기그림|대한민국}} [[F&]]
* {{국기그림|영국}} [[포포투]]
* {{국기그림|독일}} [[키커]]
=== 축구 게임 ===
과거에는 프로그래밍 기술이 열악하여 축구의 게임화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시간이 흘러 기술의 한계가 극복되면서 다양한 축구 게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축구 게임의 초창기라 할 수 있는 1980년대에 나온 그 축구 게임들도 2차원 그래픽스로 된 형태였기 때문에 축구의 현실성을 따질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하였다. 이 시기에 나온 축구 게임들은 《인도어 사커》, 《파워 플레이》 등이 있다. 198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조금씩 축구 게임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 나온 게임들은 《킥오프》, 《캡틴 츠바사》, 《월드 컵 90》 등이 있다.
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에 이르러 드디어 축구 게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첫 시작은 [[1992년]]에 아케이드에 등장한 《세이부 축구》로 이때부터 축구 게임의 인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디오 게임]] 분야에서는 [[EA 스포츠]]가 《[[FIFA (비디오 게임 시리즈)|FIFA 시리즈]]》의 첫 번째 버전을 내놓았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FIFA 시리즈를 능가할 정도의 위력을 가진 게임이 나타났는데, 그것이 바로 [[코나미]] 사가 발매한 《[[위닝 일레븐]]》이다. [[J리그]]를 바탕으로 한 《위닝 일레븐》의 첫 버전이 [[1995년]]에 판매되었다.
이 게임들은 2000년을 전후로 하여 경쟁적으로 각기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각자 특화된 부분, 이를테면 [[FIFA (비디오 게임 시리즈)|FIFA 시리즈]]는 [[FIFA]]로부터 받은 공식 라이선스 등을 강조하는 반면에, 위닝 일레븐은 그 대신에 축구 게임 자체의 현실성을 내세워 사람들을 축구 게임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한편, 양대 산맥을 이루는 두 게임 사이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는 게임도 있는데, 바로 [[풋볼 매니저]]이다. 이 게임은 FIFA 시리즈와 위닝 일레븐과는 달리 축구 경기 자체를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직접 감독이 되어 팀과 선수들 전반에 관하여 컨트롤하는 색다른 방식을 취한다. 이 게임들은 매년 새로운 버전을 출시하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사이버 월드 컵 세상, 축구 게임의 변천사
|url = http://www.gamedonga.co.kr/gamenews/gamenewsview.asp?sendgamenews=17682
|출판사 = 동아일보
|저자 = 조학동
|날짜 = 2006-06-13
|확인날짜 = 2007-12-29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70807161108/http://www.gamedonga.co.kr/gamenews/gamenewsview.asp?sendgamenews=17682
|보존날짜 = 2007-08-07
|url-status = dead
}}</ref><ref>{{뉴스 인용
|제목 = 축구 게임의 최강자를 가린다
| url = https://news.naver.com/sports/index.nhn?ctg=news&mod=read&office_id=276&article_id=0000000107
|출판사 = 풋볼위클리
|저자 = 김현회
|날짜 = 2007-12-20
|확인날짜 = 2007-12-29 }}</ref>
== 같이 보기 ==
* [[FIFA]]
* [[FIFA 랭킹]]
* [[FIFA 월드컵]]
* [[FIFA 발롱도르]]
* [[축구의 역사]]
* [[축구 규칙]]
* [[축구의 포지션]]
* [[축구의 포메이션]]
* [[축구 국가대표팀 목록]]
* [[축구 선수]]
* [[:분류:나라별 축구 선수|축구 선수 목록]]
* [[축구 경기장]]
* [[골 세리머니|골 셀러브레이션]]
* [[풋살]]
* [[구기 종목]]
* [[5인제 시각장애인 축구]]
== 각주 ==
{{각주|30em}}
== 외부 링크 ==
{{포털|축구}}
{{위키공용분류}}
{{위키낱말사전|축구}}
{{위키책|축구}}
* {{언어링크|en|de|fr|es}} [http://www.fifa.com 국제 축구 연맹]
* {{언어링크|de|en|es|fr}} [http://www.iffhs.de/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 {{언어링크|en}} [http://www.rsssf.com/ 축구 뉴스그룹 통계 협회]
* {{curlie|Sports/Soccer/}}
{{단체 경기}}
{{올림픽 스포츠}}
{{전거 통제}}
[[분류:축구| ]]
[[분류:구기]]
[[분류:단체 스포츠]]
[[분류:잉글랜드에서 시작된 스포츠]]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그리스 표}}
'''그리스 공화국'''({{llang|el|Ελληνική Δημοκρατία|엘리니키 디모크라티아}})은 [[남유럽]]의 [[발칸반도|발칸]] 반도 남쪽 끝에 있는 [[국가]]이다. '''엘라다'''({{llang|el|Ελλάδα|엘라다}}) 또는 '''헬라'''(또는 '''헬라스'''(Hellas, {{llang|el|Ελλάς|'''엘라스'''}}))라고도 한다. 때문에 [[중국어|중국식]]의 [[한자어]]로는 '''[[나라 이름의 한자 표기 목록|희랍]]'''(希臘)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수도 [[아테네]]는 그리스 전역에서 가장 큰 도시에 속한다. 2018년의 통계에 따르면, 대략 1070만여명이 그리스에 산다. 그리스 공화국의 주요 도시로는 [[테살로니키]], [[파트라]], [[이라클리오]], [[라리사]], [[볼로스]], [[요안니나]], [[카발라 (그리스)|카발라]], [[로도스섬|로도스]], [[세레스 (그리스)|세레스]], [[코린트]] 등의 각 지역 도시들이 있다.
[[남유럽]]의 [[발칸반도|발칸]] 반도 등을 바탕으로써, [[유럽]], [[북아프리카]], [[아시아]]의 교차점에 있는 [[국가|나라]]로, [[알바니아]]와는 북서 국경을, [[북마케도니아]], [[불가리아]]와는 북쪽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동남쪽으로까지는 [[튀르키예]]와도 접한다. 그리스 본토 동쪽에는 [[에게해]], 서쪽에는 [[이오니아해]]가 있으며, 남쪽에는 [[크레타만]]과 [[지중해]]가 흐른다. 동쪽과 남쪽에는 1,400여 개에 달하는 섬과 바위가 흩어져 있다. 대표적으로 [[크레타|크레타섬]], [[로도스섬]], [[산토리니섬]]이 있는 [[키클라데스 제도]] 등이 있다. 해안선 길이는 13,676 km (8,498 mi)로 지중해 지역에서는 가장 길고, 세계에서 11번째로 길다. 그리스는 [[냉전]]시기 [[공산주의]] 국가와 인접하였고, 이른바 가상 적국이던 [[튀르키예]]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발칸반도]]에서부터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편으로, [[그리스군]]은 [[유럽]]에서도 제법이나 강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1973년 [[그리스 군사 정권]]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연평균 7% 고속 성장을 이루어 [[그리스의 경제 기적]]으로 불린다. 그 뒤 성장세는 꺾였으나 경제 성장률은 남유럽에서 높은 편에 속했으며, 1인당 [[국민총생산]]도 [[1949년]]에는 프랑스의 40%이 되었으나 2008년에는 98%에 달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실제 국민 소득은 크게 진보한 점 없어 현재 최저 임금은 시간당 3.5유로로 프랑스의 8.9유로 절반 이하이고, 평균 소득도 절반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다. 1인당 GDP는 17,000달러 수준이다.<ref>[http://epp.eurostat.ec.eropa.eu/cache/ITY_OFFPUB/KS-QA-09-029/EN/KS-QA-09-029-EN.PDF "Summary of statutory national minimum wages in the European Union, Turkey and the USA (Situation as at 1 January 2009)".]{{깨진 링크|url=http://epp.eurostat.ec.eropa.eu/cache/ITY_OFFPUB/KS-QA-09-029/EN/KS-QA-09-029-EN.PDF }} Eurostat</ref>
현대 그리스는 [[고대 그리스]] 문명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동로마 제국]] 시대 그리스인 후손이다. 근대까지는 그리스인 대신 [[로마 제국|로마]]인이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현재에도 그리스에서 로마인들이라 함은 자기 자신들을 가리킨다. [[민주주의]]와 [[서양 철학]], [[올림픽]], [[문학|서양 문학]], [[역사학]], [[정치학]], 수많은 과학적ㆍ수학적 원리, [[희극]]이나 [[비극]] 같은 서양 [[희곡]] 등 서양 문명의 발상지로 변함없이 칭송되어 오고 있다.
== 명칭 ==
'그리스'라는 국호는 세계 국가와 문화마다 칭하는 이름이 서로 다르다. [[한국어]]와 [[영어]], [[스페인어]]를 비롯한 대부분 언어는 [[라틴어]]로 그리스 땅을 뜻하는 '그라이키아'(Graecia)에서 유래한 '''그리스'''(Greece), '''그레시아'''(Grecia) 등으로 부르지만, [[튀르키예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등 서아시아 계열 언어에서는 [[고대 페르시아어]]로 그리스를 일컫던 단어인 '''이오니아'''({{llang|fa|ایونیا}})에서 따온 '''유나니스탄'''({{llang|tr|Yunanistan}}), 알류난({{llang|ar|اليونان}}) 등으로 칭한다. 음차 표기로는 '''희랍'''(希臘)이라고 일컫는다.
== 역사 ==
{{본문|그리스의 역사}}
=== 선사시대와 에게 문명 ===
{{본문|미노스 문명|미케네 문명|에게 문명}}
[[파일:Entrance_to_the_treasure_of_Atreus.jpg|링크=https://en.wikipedia.org/wiki/File:Entrance_to_the_treasure_of_Atreus.jpg|왼쪽|섬네일|[[미케네]]에 있는 기원전 13세기경 세워진 [[아트레우스의 보고]].]]
[[마니반도]]의 [[아피디마 동굴]]에서는 약 20만년 전의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아프리카 밖에서 발견된것 중 가장 오래된 초기 현대 인류(EMH) 유골 중 하나다.<ref name="NAT-20190710">{{저널 인용|title=Apidima Cave fossils provide earliest evidence of Homo sapiens in Eurasia|journal=[[Nature (journal)|Nature]]|last=Harvati|first=Katerina|url=https://zenodo.org/record/6646855|date=10 July 2019|volume=571|issue=7766|pages=500–504|doi=10.1038/s41586-019-1376-z|issn=0028-0836|pmid=31292546|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20801132212/https://zenodo.org/record/6646855|archive-date=1 August 2022|url-status=live|access-date=16 July 2022|display-authors=et al.|s2cid=195873640}}</ref>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이 유골이 [[구인류]]를 대표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ref name=":5">Marie-Antoinette de Lumley, Gaspard Guipert, Henry de Lumley, Natassa Protopapa, Théodoros Pitsios, Apidima 1 and Apidima 2: Two anteneandertal skulls in the Peloponnese, Greece, L'Anthropologie, Volume 124, Issue 1, 2020, 102743, ISSN 0003-5521, https://doi.org/10.1016/j.anthro.2019.102743 {{Web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15655/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0003552119300974?via%3Dihub|date=10 June 2024}}.</ref> 그리스에서는 [[석기 시대]]의 세 시기가 모두 나타나는데, 프랑크티 동굴이 그 예이다.<ref>{{저널 인용|title=Franchthi Cave revisited: the age of the Aurignacian in south-eastern Europe|journal=Antiquity Magazine|last1=Douka|first1=K.|last2=Perles|first2=C.|url=https://www.academia.edu/1129937|year=2011|page=1133|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31222140445/https://www.academia.edu/1129937|archive-date=22 December 2023|url-status=live|access-date=20 December 2017|last3=Valladas|first3=H.|last4=Vanhaeren|first4=M.|last5=Hedges|first5=R.E.M.}}</ref> 기원전 7천년경에 형성된 그리스의 [[신석기 시대]] 정착지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것인데,<ref name="Borza">{{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614pd07OtfQC&pg=PA58|title=In the Shadow of Olympus: The Emergence of Macedon|author=Eugene N. Borza|year=1992|publisher=Princeton University Press|page=58|isbn=978-0-691-00880-6|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15721/https://books.google.com/books?id=614pd07OtfQC&pg=PA58#v=onepage&q&f=false|archive-date=10 June 2024|url-status=live|access-date=11 October 2015}}</ref> 그리스가 농업이 [[근동]]에서 유럽으로 전파되는 경로에 위치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LQQ3tx5_t7QC&q=sesklo|title=The Early Neolithic in Greece: The First Farming Communities in Europe|last=Perlès|first=Catherine|year=2001|publisher=Cambridge University Press|page=1|isbn=9780521000277|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15728/https://books.google.com/books?id=LQQ3tx5_t7QC&q=sesklo|archive-date=10 June 2024|url-status=live|access-date=11 November 2020}}</ref>
그리스는 유럽 최초의 고급 문명이 발달한 곳이자 서양 문명의 발상지로 여겨지며,<ref name="Duchesne2011">{{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pWmDPzPo0XAC&pg=PA297|title=The Uniqueness of Western Civilization|author=Ricardo Duchesne|author-link=Ricardo Duchesne|date=7 February 2011|publisher=BRILL|page=297|isbn=978-90-04-19248-5|quote=The list of books which have celebrated Greece as the "cradle" of the West is endless; two more examples are Charles Freeman's The Greek Achievement: The Foundation of the Western World (1999) and Bruce Thornton's Greek Ways: How the Greeks Created Western Civilization (2000)}}</ref><ref name="BotticiChalland2013">{{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QW1lrPMXprwC&pg=PA88|title=The Myth of the Clash of Civilizations|author1=Chiara Bottici|author2=Benoît Challand|date=11 January 2013|publisher=Routledge|page=88|isbn=978-1-136-95119-0|quote=The reason why even such a sophisticated historian as Pagden can do it is that the idea that Greece is the cradle of civilisation is so much rooted in western minds and school curricula as to be taken for granted.}}</ref> [[에게해]]의 섬들에서 기원전 3200년경에 시작된 [[키클라데스 문명]],<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YJONdN0dNYQC&q=cycladic%20civilization&pg=PT27|title=Ancient Greek civilization|last=Sansone|first=David|year=2011|publisher=Wiley|page=5|isbn=9781444358773|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15654/https://books.google.com/books?id=YJONdN0dNYQC&q=cycladic%20civilization&pg=PT27#v=snippet&q=cycladic%20civilization&f=false|archive-date=10 June 2024|url-status=live|access-date=11 November 2020}}</ref> [[크레타]]에서 번성한 [[미노스 문명]](기원전 2700-1500년경),<ref name="Frucht2004">{{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lVBB1a0rC70C&pg=PA847|title=Eastern Europe: An Introduction to the People, Lands, and Culture|last=Frucht|first=Richard C|date=31 December 2004|publisher=ABC-CLIO|page=847|isbn=978-1-57607-800-6|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15707/https://books.google.com/books?id=lVBB1a0rC70C&pg=PA847|archive-date=10 June 2024|url-status=live|access-date=5 December 2012|quote=People appear to have first entered Greece as hunter-gatherers from southwest Asia about 50,000 years... of Bronze Age culture and technology laid the foundations for the rise of Europe's first civilization, Minoan Crete}}</ref><ref name="World and Its Peoples">{{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b5vHRWp8yqEC&pg=PA1458|title=World and Its Peoples|date=September 2009|publisher=Marshall Cavendish|page=1458|isbn=978-0-7614-7902-4|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15655/https://books.google.com/books?id=b5vHRWp8yqEC&pg=PA1458#v=onepage&q&f=false|archive-date=10 June 2024|url-status=live|access-date=5 December 2012|quote=Greece was home to the earliest European civilizations, the Minoan civilization of Crete, which developed around 2000 BC, and the Mycenaean civilization on the Greek mainland, which emerged about 400 years later. The ancient Minoan}}</ref> 그리고 본토의 [[미케네 문명]](기원전 1600-1100년경)으로 이어진다.<ref name="World and Its Peoples" /> 이들 문명은 문자를 사용하였으며, 미노스 문명은 아직 해독되지 않은 [[선형문자 A]]를 사용했고, 미케네 문명은 [[선형문자 B]]로 [[그리스어]]의 가장 초기 형태를 기록하였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bFpK6aXEWN8C&q=greece%20bronze%20age%20collapse|title=The End of the Bronze Age: Changes in Warfare and the Catastrophe Ca. 1200 BC|last=Drews|first=Robert|author-link=Robert Drews|year=1995|publisher=Princeton University Press|page=3|isbn=0691025916|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15656/https://books.google.com/books?id=bFpK6aXEWN8C&q=greece%20bronze%20age%20collapse#v=snippet&q=greece%20bronze%20age%20collapse&f=false|archive-date=10 June 2024|url-status=live|access-date=11 November 2020}}</ref> [[히타이트]] 및 [[이집트]]의 기록은 동시기 그리스 본토를 중심으로 한 "위대한 왕"이 지배하는 단일 국가의 존재를 시사한다.<ref>{{저널 인용|title=Writings from the Ancient World: The Ahhiyawa Texts|journal=Writings from the Ancient World|last1=Beckman|first1=Gary M.|last2=Bryce|first2=Trevor R.|url=http://www.sbl-site.org/assets/pdfs/pubs/061528P.front.pdf|year=2012|publisher=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location=Atlanta|page=6|issn=1570-7008|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50409120519/http://www.sbl-site.org/assets/pdfs/pubs/061528P.front.pdf|archive-date=9 April 2015|url-status=live|last3=Cline|first3=Eric H.}}</ref><ref>{{저널 인용|title=The Kingdom of Mycenae: A Great Kingdom in the Late Bronze Age Aegean|journal=CDL Press|last1=Kelder|first1=Jorrit M.|url=https://www.academia.edu/218696|year=2010|location=Bethesda, MD|pages=45, 86, 108|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10713103627/https://www.academia.edu/218696|archive-date=13 July 2021|url-status=live|access-date=18 March 2015}}</ref>
=== 고대 그리스 ===
{{본문|고대 그리스}}
[[도리스인]]들에 의해 [[미케네 문명]]이 붕괴된 이후 일정 기간 동안 문헌 기록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 시대가 있는데, 이를 [[그리스 암흑기]]라 한다. 암흑기의 끝은 전통적으로 첫 번째 [[고대 올림픽|올림픽]] 경기가 열린 해인 기원전 776년으로 여겨진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uGE9AAAAIAAJ&q=greek%20dark%20ages%20776%20BC&pg=PA10|title=An Introduction to Urban Geography|last=Short|first=John R|year=1987|publisher=Routledge|page=10|isbn=9780710203724|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20158/https://books.google.com/books?id=uGE9AAAAIAAJ&q=greek%20dark%20ages%20776%20BC&pg=PA10|archive-date=10 June 2024|url-status=live|access-date=11 November 2020}}</ref> 서양 문학의 기초가 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역시 [[호메로스]]에 의해 기원전 7세기 또는 8세기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된다.<ref>Vidal-Naquet, Pierre. ''Le monde d'Homère'' (The World of Homer), Perrin (2000), p. 19.</ref><ref name="The Odyssey 2003">[[D.C.H. Rieu]]'s introduction to ''The Odyssey'' (Penguin, 2003), p. ''xi''.</ref> 시문학은 [[올림포스 12신|올림포스 신]]들에 대한 믿음을 형성했지만, [[고대 그리스 종교]]에는 사제 계급이나 체계적인 교리가 없었고, [[디오니소스]] 숭배와 같은 대중적 숭배, [[밀의종교|신비주의]] 및 마술 등의 형태로 숭배되었다.<ref>{{harvnb|Schuller|2008|pp=27, 88–89}}</ref> 이 시기에 그리스 반도 전역에 걸쳐 왕국과 [[폴리스]]들이 등장했는데, 도리스인들은 미케네인들보다 지배적인 성격이 강한 스파르타 등 일종의 귀족적인 [[폴리스]]들을 건설했다. 그러나 아테네처럼 과거의 미케네 문명을 간직한 폴리스들도 있었다. 이들은 [[흑해]] 연안, [[이탈리아 남부|남이탈리아]]의 [[마그나 그라이키아]], [[소아시아]]까지 확산되었다. 이러한 폴리스들은 건축, 드라마, 과학, 수학, 철학 등에서 표현된 고전 그리스의 전례 없는 문화적 번영을 이루었다. 기원전 508년,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테네]]에서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 정부 체제를 도입했다.<ref name="BKDunn1992">{{서적 인용|title=Democracy: the unfinished journey 508 BC – 1993 AD|last=Dunn|first=John|year=1994|publisher=Oxford University Press|isbn=978-0-19-827934-1}}</ref><ref name="BKRaaflaud2007">{{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6qaSHHMaGVkC|title=Origin of Democracy in Ancient Greece|last1=Raaflaub|first1=Kurt A|last2=Ober|first2=Josiah|year=2007|publisher=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isbn=978-0-520-24562-4|last3=Wallace|first3=Robert W}}</ref>
[[파일:The_Parthenon_in_Athens.jpg|링크=https://en.wikipedia.org/wiki/File:The_Parthenon_in_Athens.jpg|섬네일|[[아크로폴리스 (아테네)|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기원전 500년경, [[페르시아 제국]]은 소아시아와 [[마케도니아]]에 있는 그리스 폴리스들을 지배하고 있었다.<ref>Joseph Roisman, Ian Worthington. [https://books.google.com/books?id=QsJ183uUDkMC&q=Achaemenid+Persians+ruled+balkans&pg=PA345 "A companion to Ancient Macedonia"] {{Web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330042424/https://books.google.com/books?id=QsJ183uUDkMC&q=Achaemenid+Persians+ruled+balkans&pg=PA345#v=snippet&q=Achaemenid%20Persians%20ruled%20balkans&f=false|date=30 March 2024}} John Wiley & Sons, 2011. {{ISBN|144435163X}} pp 135–138, p 343</ref> 소아시아의 그리스 폴리스들이 페르시아의 지배를 [[이오니아 반란|전복하려는 시도]]도 몇 차례 있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으며, 페르시아는 기원전 492년에 [[제1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그리스 본토의 폴리스들을 침공]]했으나,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한 후 철수해야만 했다. 이에 대응하여, 그리스 폴리스들은 기원전 481년에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동맹을 결성했는데, 이는 [[트로이 전쟁]]의 신화적 동맹 이후 최초로 기록된 그리스 국가들의 연합이었다.<ref name="Waterfield2018">{{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lLNSDwAAQBAJ&pg=PA148|title=Creators, Conquerors, and Citizens: A History of Ancient Greece|author=Robin Waterfield|date=19 April 2018|publisher=Oxford University Press|page=148|isbn=978-0-19-872788-0|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20158/https://books.google.com/books?id=lLNSDwAAQBAJ&pg=PA148#v=onepage&q&f=false|archive-date=10 June 2024|url-status=live|access-date=1 September 2018|quote=They formed an alliance, which we call the Hellenic League, and bound themselves not just to repel the Persians, but to help one another whatever particular enemy threatened the freedom of the Greek cities. This was a real acknowledgment of a shared Greekness, and a first attempt to unify the Greek states under such a banner.}}</ref><ref name="Fine1983">{{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NjeM0kcp8swC&pg=PA297|title=The Ancient Greeks: A Critical History|author=John Van Antwerp Fine|year=1983|publisher=Harvard University Press|page=297|isbn=978-0-674-03314-6|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20202/https://books.google.com/books?id=NjeM0kcp8swC&pg=PA297#v=onepage&q&f=false|archive-date=10 June 2024|url-status=live|access-date=1 September 2018|quote=This Hellenic League – the first union of Greek states since the mythical times of the Trojan War – was the instrument through which the Greeks organised their successful resistance to Persia.}}</ref> [[제2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그리스에 대한 페르시아의 두 번째 침공]]은 기원전 480-479년에 벌어졌는데 페르시아가 [[살라미스 해전|살라미스]]와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하여, 페르시아가 유럽의 모든 영토에서 철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한 것 이후 50년간의 평화는 아테네의 황금기로 알려져 있으며,<ref name="Strauss2005">{{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nQFtMcD5dOsC|title=The Battle of Salamis: The Naval Encounter That Saved Greece – and Western Civilization|author=Barry Strauss|date=16 August 2005|publisher=Simon and Schuster|pages=1–11|isbn=978-0-7432-7453-1|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429045458/https://books.google.com/books?id=nQFtMcD5dOsC|archive-date=29 April 2024|url-status=live|access-date=29 October 2015}}</ref> 이 시기는 서양 문명의 많은 기초를 놓은 중요한 시기였다.
그러나 그리스 폴리스들은 정치적으로 통일되지 않았고, 폴리스간에 빈번한 갈등을 초래하였다. 전쟁 승리의 주역인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써 번영을 누렸다. 이를 마땅치 않게 여겼던 스파르타는 역시 [[펠로폰네소스 동맹|펠로폰네소스 동맹들]]을 맺은 뒤 아테네와 대립했다. 가장 대표적인 내전은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으로, 이 전쟁은 델로스 동맹의 몰락과 [[스파르타]], 그리고 이후 [[테베 (그리스)|테베]]의 패권을 가져왔다.{{Sfn|Worthington|2015|pp=42–43}} 기원전 4세기 동안 지속된 끊임없는 전쟁으로 인해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점차 약화되었고, 결국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에 의해 [[코린토스 동맹]]으로 흡수되었다.<ref>{{harvnb|Walbank|1993|pp=13–14, 29–30}}, {{harvnb|Schuller|2008|pp=49–51, 52–53}}, {{harvnb|Hornblower|2011|pp=268–270, 285–9}}.</ref>
기원전 336년 필리포스 2세가 암살된 후, 그의 아들이자 마케도니아의 왕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제국을 상대로 하는 범그리스 원정을 이끌어 결국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했다.<ref>{{harvnb|Walbank|1993|pp=31–2, 34–5, 36–7}}, {{harvnb|Gehrke|1995|pp=10–3, 16–7, 21, 24–5, 28–9}}</ref>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그는 기원전 323년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인더스강]]까지 진군하였다.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은 그의 사후 분열되었고, 이로써 [[헬레니즘 시대]]가 시작되었다. [[디아도코이|알렉산드로스의 뒤를 이은 장군]]들과 그들의 후계자들은 [[디아도코이 전쟁|치열한 내부 갈등]] 끝에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이란의 [[셀레우코스 제국]] 등 자기들이 정복한 지역에 왕국을 세웠다.<ref>{{harvnb|Walbank|1993|pp=46–48, 59, 74–75}}, {{harvnb|Gehrke|1995|pp=30, 32, 45–48, 54–55}}</ref> 이러한 왕국들에 새롭게 설립된 폴리스, 예를 들어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 등지에 정착한 그리스인들은 통치 소수 집단의 일원으로서 그리스 문화와 함께 '[[코이네 그리스어]]'로 알려진 그리스어 방언을 전파하였다. 이와 동시에 그리스인들은 동방의 종교를 수용하여 [[헬레니즘 종교]]를 만들었다.<ref>{{harvnb|Walbank|1993|pp=62–3, 133–9}}, {{harvnb|Gehrke|1995|pp=63–65, 73, 75–6}}.</ref> 헬레니즘 시대 동안 그리스의 과학, 기술, 수학은 정점에 도달하였다.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왕조]]로부터 자치와 독립을 유지하려는 열망으로 많은 그리스 폴리스는 코이나 또는 [[심폴리테이아이]], 즉 연합을 결성하였다. 한편 동방과의 경제적 관계가 확립된 후에는 부유한 이들이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에우에르게테스주의]]가 자리잡았다.<ref>{{harvnb|Walbank|1993|pp=79–80, 91–2, 141–2, 151–2}}, {{harvnb|Gehrke|1995|pp=68–70}}.</ref>
=== 로마 제국 ===
기원전 200년경부터 [[로마 공화국]]은 그리스의 내정에 점점 더 개입하게 되었고, [[마케도니아 전쟁|마케도니아와 일련의 전쟁]]을 벌였다.<ref name="Flower">{{서적 인용|url=https://archive.org/details/cambridgecompani0000unse_s0h2/page/248|title=The Roman Republic|year=2004|editor-last=Flower|editor-first=Harriet|publisher=Cambridge University Press|pages=[https://archive.org/details/cambridgecompani0000unse_s0h2/page/248 248, 258]|isbn=978-0-521-00390-2}}</ref> 결국 기원전 168년 [[피드나 전투]]에서 마케도니아가 패배하면서 안티고노스 왕조의 권력은 종말을 맞이했다.<ref>{{서적 인용|title=Britannica|year=2008|edition=online|contribution=Antigonid dynasty}}</ref> 기원전 146년, 마케도니아는 로마의 속주로 병합되었고, 그리스의 나머지 지역은 로마의 보호국이 되었다.<ref name="Flower" /><ref name="Ward">{{서적 인용|url=https://archive.org/details/historyofromanpe00alle/page/276|title=A history of the Roman people|last1=Ward|first1=Allen Mason|year=2003|publisher=Prentice Hall|page=[https://archive.org/details/historyofromanpe00alle/page/276 276]|isbn=978-0-13-038480-5|display-authors=etal}}</ref>
[[파일:Athen_Odeon_Herodes_Atticus_BW_2017-10-09_13-12-44.jpg|링크=https://en.wikipedia.org/wiki/File:Athen_Odeon_Herodes_Atticus_BW_2017-10-09_13-12-44.jpg|섬네일|아테네에 161년에 세워진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
이 과정은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나머지 그리스 지역을 병합하여 [[아카이아 속주|아카이아]]라는 속주로 편입하면서 완료되었다.<ref name="Ward" /> 로마인들은 비록 자신들의 국력이나 군사력이 더 우세했음에도 그리스 문화를 높이 여겨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95bu0O3LLlsC&q=Graecia%20capta%20ferum%20victorem%20cepit&pg=PA136|title=Ancient Rome: An Introductory History|last=Zoch|first=Paul|year=2000|publisher=University of Oklahoma Press|page=136|isbn=978-0-8061-3287-7|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20159/https://books.google.com/books?id=95bu0O3LLlsC&q=Graecia%20capta%20ferum%20victorem%20cepit&pg=PA136#v=snippet&q=Graecia%20capta%20ferum%20victorem%20cepit&f=false|archive-date=10 June 2024|url-status=live|access-date=29 April 2012}}</ref>
헬레니즘화된 동방의 그리스어 공동체는 2세기와 3세기에 [[기독교]]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3tuKkxU4-ncC&pg=PA617|title=Backgrounds of Early Christianity|last=Ferguson|first=Everett|year=2003|publisher=Wm. B. Eerdmans|pages=617–18|isbn=978-0-8028-2221-5|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20200/https://books.google.com/books?id=3tuKkxU4-ncC&pg=PA617#v=onepage&q&f=false|archive-date=10 June 2024|url-status=live|access-date=18 May 2022}}</ref>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과 작가들은 그리스 출신이 아니었음에도 대부분 그리스어를 사용했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xkOhwFzz1AkC&q=early%20christian%20leaders%20speak%20greek&pg=PA500|title=Ancient Rome|last=Dunstan|first=William|year=2011|publisher=Rowman & Littlefield Publishers|page=500|isbn=978-0-7425-6834-1|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20200/https://books.google.com/books?id=xkOhwFzz1AkC&q=early%20christian%20leaders%20speak%20greek&pg=PA500#v=snippet&q=early%20christian%20leaders%20speak%20greek&f=false|archive-date=10 June 2024|url-status=live|access-date=29 April 2012}}</ref> [[신약성경]]은 그리스어로 작성되었으며, 당대 그리스 지역의 교회들이 주요한 교회였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많은 지역은 여전히 이교를 고수했고, 고대 그리스 종교 관습은 4세기 후반까지도 성행했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OcRTwsDq_Z4C&q=early%20christianity%20greece&pg=PA158|title=Early Christian Art and Architecture|last=Milburn|first=Robert|year=1992|publisher=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page=158|isbn=9780520074125|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20204/https://books.google.com/books?id=OcRTwsDq_Z4C&q=early%20christianity%20greece&pg=PA158#v=snippet&q=early%20christianity%20greece&f=false|archive-date=10 June 2024|url-status=live|access-date=29 April 2012}}</ref> 이들은 391-392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금지되었다.<ref name="FriellWilliams2005">{{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I8KRAgAAQBAJ|title=Theodosius: The Empire at Bay|author1=Gerard Friell|author2=Peabody Professor of North American Archaeology and Ethnography Emeritus Stephen Williams|date=8 August 2005|publisher=Routledge|page=105|isbn=978-1-135-78262-7|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429045345/https://books.google.com/books?id=I8KRAgAAQBAJ|archive-date=29 April 2024|url-status=live|access-date=19 October 2015|author3=Stephen Williams}}</ref> 마지막으로 기록된 올림픽 경기는 393년에 열렸으며,<ref name="Perrottet2004">{{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B2VPMUBAxUUC&pg=PA190|title=The Naked Olympics: The True Story of the Ancient Games|author=Tony Perrottet|date=8 June 2004|publisher=Random House Digital, Inc.|pages=190–|isbn=978-1-58836-382-4|access-date=1 April 2013}}</ref> 그 후 한 세기 동안 많은 사원들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다.<ref name="Evans2005">{{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xDNv6qZ_I-IC|title=The Emperor Justinian and the Byzantine Empire|author=James Allan Stewart Evans|date=January 2005|publisher=Greenwood Publishing Group|pages=65–70|isbn=978-0-313-32582-3}}</ref><ref name="Haldon1990">{{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pSHmT1G_5T0C|title=Byzantium in the Seventh Century: The Transformation of a Culture|author=J. F. Haldon|year=1990|publisher=Cambridge University Press|page=329|isbn=978-0-521-31917-1|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30927210555/https://books.google.com/books?id=pSHmT1G_5T0C|archive-date=27 September 2023|url-status=live|access-date=19 October 2015}}</ref> 529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아테네의 [[신플라톤주의|신플라톤]] 학파 [[아카데미]]가 폐쇄된 것은 고대의 종말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여겨지지만, 아카데미가 계속 유지되었다는 증거도 있다.<ref name="Evans2005" /><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kKOY5NsekfkC&q=10th%20century&pg=PA17|title=Hellenic Temples and Christian Churches: A Concise History of the Religious Cultures of Greece from Antiquity to the Present|last=Makrides|first=Nikolaos|year=2009|publisher=NYU Press|page=206|isbn=978-0-8147-9568-2|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20750/https://books.google.com/books?id=kKOY5NsekfkC&q=10th%20century&pg=PA17#v=onepage&q=10th%20century&f=false|archive-date=10 June 2024|url-status=live|access-date=29 April 2012}}</ref>
=== 중세 그리스 ===
{{본문|동로마 제국}}
서기 5세기 [[서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 [[동로마 제국]]이 패권을 잡았다. 수도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었고, 그 언어와 문화는 그리스적이었으며, 종교는 주로 [[동방정교]]였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liFKua_cWL8C&pg=PA4|title=The Oxford Handbook of Byzantine Studies|year=2008|editor-last=Jeffreys|editor-first=Elizabeth|publisher=Oxford University Press|page=4|isbn=978-0-19-925246-6|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20703/https://books.google.com/books?id=liFKua_cWL8C&pg=PA4#v=onepage&q&f=false|archive-date=10 June 2024|url-status=live|access-date=11 October 2015}}</ref>
제국의 발칸 지역, 특히 그리스는 [[게르만족의 대이동|게르만족의 침략]]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ref>{{서적 인용|title=Barbarian Migrations and the Roman West|last=Halsall|first=Guy|year=2007|publisher=Cambridge University Press|pages=376–568}}</ref> 4세기와 5세기에 [[고트족]]과 [[훈족]]의 습격, 7세기에는 [[슬라브족]]의 침입으로 인해 그리스 반도에서 동로마 제국의 권위가 붕괴되었다.{{Sfn|Fine|1991|pp=35–6}} 제국 정부는 섬들과 해안 지역, 특히 아테네, [[코린토스]], [[테살로니키]]와 같은 인구가 밀집된 성곽 도시들만을 통제할 수 있었다.{{Sfn|Fine|1991|pp=35–6}}{{Sfn|Fine|1991|pp=63–6}}<ref>{{서적 인용|title=A History of Byzantium|last=Gregory|first=TE|year=2010|publisher=Wiley-Blackwell|page=169|quote=It is now generally agreed that the people who lived in the Balkans after the Slavic "invasions" were probably for the most part the same as those who had lived there earlier, although the creation of new political groups and arrival of small immigrants caused people to look at themselves as distinct from their neighbors, including the Byzantines.}}</ref> 그러나 현대에는 그리스가 쇠퇴, 분열, 인구 감소를 겪었다는 견해를 낡은 것으로 보고, 4세기부터 6세기까지의 도시는 제도적 연속성과 번영을 보여준다 해석하는 것이 우세하다. 6세기 초, 그리스에는 약 80개의 도시가 있었고, 4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 번영한 것으로 여겨진다.<ref name="Rothaus2000">{{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dbAhrDO1XQIC|title=Corinth, the First City of Greece: An Urban History of Late Antique Cult and Religion|author=Richard M. Rothaus|year=2000|publisher=BRILL|page=10|isbn=978-90-04-10922-3|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20704/https://books.google.com/books?id=dbAhrDO1XQIC|archive-date=10 June 2024|url-status=live|access-date=7 September 2018}}</ref>
[[파일:Map_Byzantine_Empire_1025-en.svg|링크=https://en.wikipedia.org/wiki/File:Map_Byzantine_Empire_1025-en.svg|섬네일|1025년 [[바실리오스 2세 불가록토노스]] 사후의 동로마 제국.]]
8세기까지 거의 모든 현대 그리스 지역은 로마의 [[성좌 (가톨릭)|성좌]]의 관할 아래 있었다. 동로마 황제 [[레온 3세|레오 3세]]는 8세기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의 경계를 서쪽과 북쪽으로 확장했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2rayUr0j28wC&pg=PA203|title=Byzantium: Church, Society, and Civilization Seen Through Contemporary Eyes|last=Geanakoplos|first=Deno John|date=1984|publisher=University of Chicago Press|isbn=978-0226284606|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20720/https://books.google.com/books?id=2rayUr0j28wC&pg=PA203|archive-date=10 June 2024|url-status=live|access-date=19 October 2018}}</ref> [[아랍-동로마 전쟁]] 동안 8세기에 시작된 잃어버린 속주들의 회복으로 대부분의 그리스 반도가 다시 제국의 통제하에 들어왔다.<ref name="EB2">{{웹 인용|url=https://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244154/Greece/26387/Byzantine-recovery|title=Greece During the Byzantine Period: Byzantine recovery|website=Online|publisher=Encyclopædia Britannica|access-date=28 April 2012}}</ref>{{Sfn|Fine|1991|pp=79–83}} 이 과정은 [[시칠리아]]와 소아시아에서 그리스인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많은 슬라브족이 포로로 잡혀 소아시아로 재정착되면서 촉진되었다.{{Sfn|Fine|1991|pp=63–6}} 11세기와 12세기에 안정이 회복되면서 그리스 반도는 경제 성장을 누렸다.<ref name="EB2" /> 그리스 정교회는 그리스 사상을 더 넓은 정교 세계에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ref name="BritIdent">{{백과사전 인용|year=2008|title=Greece during the Byzantine period (c. AD 300 – c. 1453), Population and languages, Emerging Greek identity|encyclopedia=Encyclopædia Britannica|id=Online Edition}}</ref>
[[파일:Καστροπολιτεια_μονεμβασιας.jpg|링크=https://en.wikipedia.org/wiki/File:%CE%9A%CE%B1%CF%83%CF%84%CF%81%CE%BF%CF%80%CE%BF%CE%BB%CE%B9%CF%84%CE%B5%CE%B9%CE%B1_%CE%BC%CE%BF%CE%BD%CE%B5%CE%BC%CE%B2%CE%B1%CF%83%CE%B9%CE%B1%CF%82.jpg|섬네일|중세의 요새화된 도시 [[모넴바시아]]의 전경]]
1204년 [[제4차 십자군]]과 [[라틴 제국]]에 의한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이후, 그리스 본토는 그리스의 [[이피로스 전제공국]]과 [[프랑스 왕국]]령([[프랑크인의 지배]])로 분열되었다.<ref name="EB3">{{웹 인용|url=https://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244154/Greece/26389/Results-of-the-Fourth-Crusade|title=Greece During the Byzantine Period: Results of the Fourth Crusade|publisher=Online Encyclopædia Britannica|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20422103358/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244154/Greece/26389/Results-of-the-Fourth-Crusade|archive-date=22 April 2012|url-status=live|access-date=28 April 2012}}</ref><ref name="EB3A">{{웹 인용|url=https://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244154/Greece/26395/The-islands|title=Greece During the Byzantine Period: The islands|publisher=Online Encyclopædia Britannica|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30224051540/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244154/Greece/26395/The-islands|archive-date=24 February 2013|url-status=live|access-date=14 May 2012}}</ref>1261년 콘스탄티노플에 제국 수도가 재건되면서 그리스 반도의 대부분을 제국이 회복하였으나, 섬들은 [[제노바 공화국|제노바]]와 [[베네치아 공화국|베네치아]]의 통제 하에 남아 있었다.<ref name="EB3" /> [[팔레올로고스 왕조]](1261-1453) 시기에는 고대 그리스로의 회귀와 함께 새로운 그리스 민족주의 시대가 도래하였다.<ref>{{저널 인용|title=Nationalism and Byzantine Greece|journal=Greek, Roman and Byzantine Studies|last1=Moles|first1=Ian|url=https://books.google.com/books?id=HJhOAAAAIAAJ|date=1969|page=102|language=en|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20724/https://books.google.com/books?id=HJhOAAAAIAAJ|archive-date=10 June 2024|url-status=live|access-date=27 September 2020|quote=Greek nationalism, in other words, was articulated as the boundaries of Byzantium shrank... the Palaeologian restoration that the two words are brought into definite and cognate relationship with 'nation' (Έθνος).}}</ref><ref name="RuncimanRunciman1985">{{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Vm5OGIBgoHMC&pg=PA120|title=The Great Church in Captivity: A Study of the Patriarchate of Constantinople from the Eve of the Turkish Conquest to the Greek War of Independence|author1=Steven Runciman|author2=Sir Steven Runciman|date=24 October 1985|publisher=Cambridge University Press|page=120|isbn=978-0-521-31310-0|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20725/https://books.google.com/books?id=Vm5OGIBgoHMC&pg=PA120|archive-date=10 June 2024|url-status=live|access-date=9 September 2018|quote=By the fifteenth century most Byzantine intellectuals alluded to themselves as Hellenes. John Argyropoulus even calls the Emperor 'Emperor of the Hellenes' and describes the last wars of Byzantium as a struggle for the freedom of Hellas.}}</ref><ref name="Vasiliev">{{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RtM0qClcIX4C|title=History of the Byzantine Empire, 324–1453|last1=Vasiliev|first1=Alexander A.|date=1964|publisher=University of Wisconsin Press|page=582|language=en|isbn=978-0299809256}}</ref><ref name="CareyCarey1968">{{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ltw7AAAAMAAJ|title=The Web of Modern Greek Politics|author1=Jane Perry Clark Carey|author2=Andrew Galbraith Carey|year=1968|publisher=Columbia University Press|page=33|isbn=978-0231031707|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30927205509/https://books.google.com/books?id=ltw7AAAAMAAJ|archive-date=27 September 2023|url-status=live|access-date=9 September 2018|quote=By the end of the fourteenth century the Byzantine emperor was often called "Emperor of the Hellenes"}}</ref><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t7GkAgAAQBAJ&pg=PA8|title=Byzantine Art and Diplomacy in an Age of Decline|last1=Hilsdale|first1=Cecily J.|date=2014|publisher=Cambridge University Press|pages=82–83|language=en|isbn=978-1107729384|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610020749/https://books.google.com/books?id=t7GkAgAAQBAJ&pg=PA8#v=onepage&q&f=false|archive-date=10 June 2024|url-status=live|access-date=27 September 2020}}</ref>
14세기에 동로마 제국은 그리스 반도의 대부분을 [[세르브인]]들과 이후 [[오스만 제국]]에게 빼앗겼다.<ref name="EB4">{{웹 인용|url=https://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244154/Greece/26391/Thessaly-and-surrounding-regions|title=Greece During the Byzantine Period: Serbian and Ottoman advances|publisher=Online Encyclopædia Britannica|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30224052621/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244154/Greece/26391/Thessaly-and-surrounding-regions|archive-date=24 February 2013|url-status=live|access-date=28 April 2012}}</ref>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하여 로마 제국은 멸망했다. 오스만의 지배 직전에 그리스의 지식인들이 [[서유럽]]으로 이주하면서 고대 그리스의 지적 유산을 전해주면서 [[서유럽 르네상스]]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서 이슬람교 개종은 원칙적으로 자유였으며, 개종을 거부한 그리스도 교도들은 동로마 시대의 농민이나 봉건제하의 농노보다 조금 나은 생활을 감수해야 하였다.<ref name="history">[http://grc.mofat.go.kr/kor/eu/grc/affair/opening/index.jsp 주 그리스 한국 대사관 <그리스 개관>] {{웨이백|url=http://grc.mofat.go.kr/kor/eu/grc/affair/opening/index.jsp#|date=20110503220601}} 중 "그리스 약사", 2009년 6월 15일 확인.</ref> 그렇지만 오스만 제국의 [[밀레트]] 제도 덕분에 [[그리스 정교]]를 믿는 본토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타지 사람과 섞이지 않고 결속을 유지하며 이후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을 창출할 수 있었다. 1460년까지 그리스 본토의 오스만 정복이 완성되었다.<ref name="EB5">{{웹 인용|url=https://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244154/Greece/26391/Thessaly-and-surrounding-regions|title=Greece During the Byzantine Period: The Peloponnese advances|publisher=Online Encyclopædia Britannica|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30224052621/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244154/Greece/26391/Thessaly-and-surrounding-regions|archive-date=24 February 2013|url-status=live|access-date=28 April 2012}}</ref> 이후 독립할 때까지 그리스는 역사에서 개별국가로 존재하지 않았다.
=== 근대 그리스 ===
{{본문|근대 그리스}}
==== 근대 국가 형성 ====
[[1821년]]부터 [[1829년]]까지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운 [[그리스 독립 전쟁]]의 결과, [[런던 의정서]]에 의해 신생 그리스가 독립을 인정받았다. [[1827년]]에 [[이오니아 제도]]의 그리스 귀족 [[요안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가 새 공화국의 통치자로 선출되었으나 그가 암살당하자, 강대국들은 [[1832년]]에 왕정을 세우고 [[바이에른 왕국]]의 [[오톤 (그리스)|오톤]]을 국왕으로 옹립하였다. [[1843년]]에 입헌군주제를 요구하는 무장봉기가 일어나자 오톤은 헌법과 대의제 의회를 승인했으나, [[영국]] 등 열강에 기댄 나약한 권위주의 통치자로서 결국 [[1862년]] 10월에 폐위되었다.
[[파일:Greekhistory.GIF|섬네일|420px|left|현대 그리스의 영토 확장. (노란색은 한때 점령했다가 상실한 지역)]]
[[1863년]]에 [[덴마크 왕국]]의 빌헬름 공이 [[요르요스 1세]]로 왕위에 올랐으며, [[영국]]은 그의 즉위 선물로 [[1864년]]에 [[이오니아 제도]]를 그리스에 할양하였다. [[1877년]], 그리스의 경제 발전에 공헌한 그리스 정계의 거물 [[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는 왕권을 억누르고 의회 과반의 지지를 획득한 사람이 총리가 되는 원칙(dedilomeni)을 확립하였다.
독립 당시의 그리스의 영토는 [[아테네]] 일대와 [[펠로폰네소스반도]] 등에 국한되었으나, [[1881년]]에 그 북쪽의 [[테살리아]] 지방까지 확장되었다. 그리스는 [[1912년]]부터 [[1913년]]까지 치른 [[발칸 전쟁]]의 결과로 [[마케도니아 (그리스)|마케도니아]]와 [[이피로스]], [[크레타|크레타섬]] 등을 차지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불가리아]]로부터 [[1919년]]에 [[서트라키아]]를 할양받아 현재의 국경을 거의 완성하였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이탈리아]]로부터 [[1947년]]에 [[로도스섬]] 등 [[도데카니사 제도]]를 할양받았다.
====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전후 ====
{{참고|국론 분열|추축국 점령기의 그리스}}
[[제1차 세계 대전]]을 앞두고, 외교 정책을 놓고 국왕 [[콘스탄티노스 1세]]와 카리스마적인 총리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사이의 갈등으로 그리스 정계는 양분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에 그리스는 [[무스타파 케말]]의 [[튀르키예]] 민족주의자들과 [[그리스-튀르키예 전쟁 (1919년 ~ 1922년)|전쟁]]을 벌였고, [[로잔 조약]]에 의한 두 나라 사이의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인구 교환]]으로 약 150만 명의 그리스 피난민이 [[소아시아]]에서 그리스로 밀려들어 왔다. 한편, 약 50만 명의 [[무슬림]]이 그리스에서 추방당했다.
[[1923년]]부터 12년간 공화제가 실시되었다. [[1940년]] 10월 28일, 파시스트 이탈리아가 그리스에 항복을 요구했으나 그리스의 독재자 [[요안니스 메탁사스]]가 거부하여 [[그리스-이탈리아 전쟁]]이 발발했다. 그리스는 이탈리아군을 [[알바니아]]로 몰아내어 [[추축국]]에 대한 첫 지상전 승리를 [[연합국]]에게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 전쟁 직후 이탈리아와 연합한 [[나치 독일]]이 재침공하여 [[1941년]] [[4월]] 말에 그리스 영토의 거의 대부분이 독일군에게 점령되었다. 독일 점령군에 대한 [[그리스 저항군]]의 저항은 [[제2차 세계대전|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 2차 세계 대전 이후 ====
{{참고|그리스 내전|그리스 군사 정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2년 후인 [[1947년]] 그리스 북부에서 왕정에 반대하는 [[공산주의]] [[게릴라]]의 반란이 일어났으나, 2년 만에 진압되었다. 그리스는 [[마셜 계획]]으로 전후 복구를 이루고 [[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 초까지 좌파 세력이 전반적인 열세에 있었음에도, 30여 년간 군부세력의 쿠데타 등 정정 불안과 전쟁,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좌우파 간 심각한 사회 갈등을 겪었다.
1963년부터 [[파리 (프랑스)|파리]]로 망명했던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 전 총리가 돌아온 것이 [[메타폴리테프시]]의 시작이었다. [[1967년]] 4월 21일,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등장한 [[사회주의]] 정권을 두려워한 [[우익|우파]] 세력을 등에 업고 미국의 지원을 받은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1973년]] 스스로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1973년 [[아테네 종합기술학교 시위]]로 정권은 타격을 입었다. 1974년 7월 20일 [[디미트리오스 요안니디스]] 장군이 역(逆)[[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자가 되었지만 [[튀르키예]]가 [[키프로스섬]]을 침공하자 정권은 붕괴되었다.
1974년 8월 14일, 그리스군은 튀르키예의 [[북키프로스]] 점령에 항의하고자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통합 군사 기지에서 철수했다.
[[1974년]] 그리스 국민 투표를 통해 왕정이 폐지되고 1975년에 민주적인 공화국 헌법이 발효되었다. 그리하여 마지막 국왕 [[콘스탄티노스 2세]]가 폐위되었다. 그러는 사이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는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의 [[신민주주의당]]에 맞서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을 창당하여 이후 그리스의 양당 정치 구도를 이루었다.
그리스는 1980년에 다시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했다. 1999년 여름에 그리스와 튀르키예 두 나라를 강타한 지진 이후로 지난 십여 년간 양국 관계도 상당히 호전되었다. 오늘날 그리스 정부는 튀르키예의 유럽 연합 가입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리스는 1981년 1월 1일 [[유럽 연합]]에 10번째로 가입했고, 그때부터 경제 발전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 연합의 기금과 늘어나는 관광 수입, 해운업과 성장하는 서비스 부문 덕분에 기업과 인프라에 광범위한 투자가 이루어져 그리스의 생활 수준은 전례없이 높아졌다. 2001년 [[유로화]]가 도입되었고, 2004년 [[2004년 하계 올림픽|아테네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치렀다. 2008년에는 경찰의 총격으로 시민이 사망한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2008년 그리스 반정부 시위|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4&sid2=233&oid=079&aid=0002014498 '살인 경찰'에 분노…그리스 격렬시위 3일째 확산)</ref>
== 지리 ==
{{본문|그리스의 지리}}
{{참고|그리스의 지역|그리스의 섬}}
[[파일:Gr-map.png|200px|right|섬네일|그리스의 지도]]
그리스는 [[발칸반도]] 남단에 있다. 그리스 본토 남쪽에는 [[펠로폰네소스반도]]가 있으며 그 사이 [[코린토스 지협]]으로 [[코린토스 운하|운하]]가 있다. 해안에는 [[에게해]]의 [[크레타]], [[에비아섬|에비아]], [[레스보스섬]], [[히오스섬]], [[도데카니사 제도]], [[키클라데스 제도]], [[스포라데스 제도]]가 있으며 [[이오니아해]]에도 섬이 많다. 그리스는 세계에서 열 번째로 해안선(14,880km)이 긴 나라다. 육지 국경선은 1,160km다.
그리스 4/5는 산지나 구릉이며 유럽에서 가장 산지가 많은 나라다. 유사 이래 그리스 문화의 중요한 장소였던 [[올림포스산]]에서 가장 높은 [[미티카스봉]]은 높이가 그리스에서 가장 높은 2,917m에 이른다. 한때 신들의 옥좌로 여겼던 이 산은 오늘날 등산가 사이 인기가 매우 높다. 서부 그리스 지역에는 호수와 습지가 많으며 [[핀도스산맥]]이 있다. 핀도스산맥은 발칸의 [[디나르알프스산맥]]의 연장으로, 가장 높은 [[스몰리카스봉]]은 높이가 2,637m이다. 비코스 아오스 협곡은 장대한 모습으로 스포츠 마니아에게 인기 있는 행락지다.
[[파일:Pontikonisi.jpg|섬네일|left|[[케르키라섬]]의 폰티코니시와 블라헤라이나 수도원.]]
[[파일:Olympus Litochoro.JPG|섬네일|left|리토코로에서 본 올림포스 산의 모습.]]
[[파일:Greece meteora monasteries.JPG|섬네일|230px|그리스 중부의 메테오라]]
산계는 중앙펠로폰네소스를 지나 에게해 남서쪽의 [[키티라섬]]과 안티키티라섬으로 이어져서 [[크레타|크레타섬]]에서 끝난다. 에게해 섬들은 과거 그리스 본토에 속했던 지금의 해저 산맥의 봉우리들이다. [[핀도스산맥]]은 높고 가파른 봉우리로 유명하며, 협곡과 다양한 카르스트 지형을 보인다. 특히 정교 수도원이 많은 [[메테오라]]에는 높고 경사가 급한 바위 지형으로,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에게 놀라운 경험을 제공한다.
대부분 그리스의 강은 얕고 계절에 따라 말라서 항해에 부적합하다. 가장 긴 강은 북부의 [[할리아몬강]]이다
그리스 북동부에도 [[동마케도니아 트라키주]]의 접경으로 [[로도피산맥]]이 있다. 이 지역에는 울창한 원시림이 있다. 유명한 다디아 숲은 그리스의 북동부 멀리 [[에브로스]]에 있다.
[[테살리아]], [[중앙마케도니아 주|중앙마케도니아]], [[서트라키아]]에는 넓은 평야가 있다. 이곳은 그리스에서 얼마 안 되는 경작하기 좋은 농지일 뿐 아니라 중요한 경제 지역이다.
=== 기후 ===
그리스 기후는 세 가지가 있다. (지중해성, 고산, 온대) [[핀도스산맥]] 때문에 그리스 서부 지역은 동부보다 평균적으로 더 침윤(浸潤)하다. 지중해성 기후 영향으로 겨울은 온난 다습하고, 여름은 고온 건조하다. 키클라데스, 도데카니사, 크리티, 펠로폰네소스 동부, 중부 그리스 일부 지역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스는 산지가 많고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지만, 해안 지역 기온은 극단으로 오르내리지 않는다. 도데카니사나 키클라데스제도에서 눈이 내리기도 한다.
그리스 북서부 지역([[이피로스주]], [[중앙그리스]], [[테살리아]], [[서마케도니아주]])은 고산 기온이 지배적이다. 핀도스 산맥이 지나는 [[아하이아]], [[아르카디아]], 일부 [[라코니아]] 등 펠로폰네소스 중부 지역도 마찬가지 기후를 보인다. 마지막으로 온대 기후는 [[중앙마케도니아주]], [[동마케도니아 트라키주]]에 영향을 주는데, 겨울에 춥고 다습하며 여름에 덥고 건조하다. 아테네는 지중해성 기후와 온대 기후 사이다. 이 도시 북부 교외 지역은 온대 기후를 보이지만, 시가지나 남쪽 교외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다. 아테네 낮은 찌는 듯이 덥지만, 저녁은 시원해서 야외생활과 야간생활이 발달했다.
=== 행정 구역 ===
{{본문|그리스의 행정 구역}}
[[수도]]는 [[아테네]]이다. 주요 도시로는 테살로니키, 라리사, 파로스, 요안니나, 이라클리오 등이다. 행정 구역상 그리스에는 13개의 주가 있으며, 총 51개의 현으로 나뉜다. 또 [[중앙마케도니아주]]와 접한 [[아토스산]]은 자치 구역인 [[아토스산 수도원 공화국]]을 형성한다.
{| class="wikitable sortable" border="1" style="text-align:left;"
|- style="font-size:100%; text-align:center;"
! 지도 !! 번호 !! [[주 (행정 구역)|주]] !! [[주도]] !! [[면적]] !! [[인구]] </tr>
| rowspan=15 | [[파일:Greece-map.png|400px]]
|-
| 1 || [[아티키주]] || [[아테네]] || style="text-align:right"|3,808 km<sup>2</sup>|| style="text-align:right"|3,761,810
|-
| 2 || [[중앙그리스주]] || [[라미아 (도시)|라미아]] || style="text-align:right"|15,549 km<sup>2</sup>|| style="text-align:right"|605,329
|-
| 3 || [[중앙마케도니아주]] || [[테살로니키]] ||style="text-align:right"|18,811 km<sup>2</sup>|| style="text-align:right"|1,871,952
|-
| 4 || [[크레타]] || [[이라클리오]] || style="text-align:right"|8,259 km<sup>2</sup>|| style="text-align:right"|601,131
|-
| 5 || [[동마케도니아 트라키주]] || [[코모티니]] || style="text-align:right"|14,157 km<sup>2</sup>|| style="text-align:right"|611,067
|-
| 6 || [[이피로스주]] || [[요안니나]] ||style="text-align:right"|9,203 km<sup>2</sup>|| style="text-align:right"|353,820
|-
| 7 || [[이오니아 제도주]] || [[케르키라섬|케르키라]] || style="text-align:right"|2,307 km<sup>2</sup>|| style="text-align:right"|212,984
|-
| 8 || [[북에게주]] || [[미틸리니]] || style="text-align:right"|3,836 km<sup>2</sup>|| style="text-align:right"|206,121
|-
| 9 || [[펠로폰네소스주]] || [[칼라마타]] || style="text-align:right"|15,490 km<sup>2</sup>|| style="text-align:right"|638,942
|-
| 10 || [[남에게주]] || [[에르무폴리]] || style="text-align:right"|5,286 km<sup>2</sup>|| style="text-align:right"|302,686
|-
| 11 || [[테살리아]] || [[라리사]] || style="text-align:right"|14.037 km<sup>2</sup>|| style="text-align:right"|753,888
|-
| 12 || [[서그리스주]] || [[파트라]] || style="text-align:right"|11,350 km<sup>2</sup>|| style="text-align:right"|740,506
|-
| 13 || [[서마케도니아주]] || [[코자니]] || style="text-align:right"|9,451 km<sup>2</sup>|| style="text-align:right"|301,522
|-
| - || [[아토스산]] (자치 구역) || [[카리에스]] || style="text-align:right"|390 km<sup>2</sup>|| style="text-align:right"|2,262
|}
=== 교통 ===
1980년 이래 그리스의 도로망과 철도망은 매우 현대화되었다. 중요한 사업 중에는 [[에그나티아 고속도로]](Εγνατία Οδός,)가 있는데 이 도로는 북서부 그리스의 [[이구메니차]]항에서 그리스-튀르키예 국경이 있는 [[키피]]를 잇고 있다. [[리오-안티리오 다리]](유럽에서 가장 긴 [[사장교]]. 2,250m)는 [[펠로폰네소스반도|펠로폰네소스]] 서부의 리오([[파트라]]에서 7 km)와 그리스 중부 본토의 [[안티리오]]을 연결한다. 그리고 파트라-아테네간 국도를 2014년까지 펠로폰네소스 서부 [[피르고스 (일리아 현)|피르고스]]까지 연장하는 계획이 있다. 그리스에서 [[테살로니키]]로 가는 고속도로는 이미 완성되었다.
수도 [[아테네]]의 도시 구역에는 2001년 [[아테네 국제 공항|새 국제 공항]]이 들어섰고, 같은 해 민간이 운영하는 교외 국도인 [[아티키 도로]]도 개설되었으며, 2000년부터 [[아테네 지하철|지하철망]]이 확대되었다.
그리스 대부분의 섬과 그리스의 주요 도시는 항공편으로 연결되며, [[올림픽 항공]]과 [[에게 항공]] 두 주요 항공사가 있다. 해운 분야에서는 [[수중익선]]이나 [[쌍동선]](catamaran) 등 현대적인 고속 선박이 발달했다. 철도의 역할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부족한 편인데, 그러나 아테네 주변 새로운 교외 지역 연결이나 아테네-테살로니키간 철도망은 계속 확대되고 있으며, 2,500km의 철도망 중 많은 곳에서 복선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국가간 철도는 그리스 도시와 발칸, 튀르키예를 이어준다.
== 정치 ==
{{본문|그리스의 정치}}
[[파일:Hellenic Parliament from high above.jpg|250px|left|섬네일|아테네의 그리스 의회]]
[[파일:Ελευθέριος Βενιζέλος.jpg|섬네일|210px|[[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1864년]]–[[1936년]]).<br />근대 그리스의 위대한 정치가.]]
그리스는 [[대통령제]]를 채택한 [[공화국]]이다. [[대통령]]은 5년 임기로 [[의회]]에서 선출된다.<ref name="con30">{{웹 인용 |url=http://www.parliament.gr/english/politeuma/syntagma.pdf |제목=The Constitution of Greece: Article 30 |확인날짜=2009년 8월 2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70925181747/http://www.parliament.gr/english/politeuma/syntagma.pdf |보존날짜=2007년 9월 25일 |url-status=dead }}</ref> 현행 헌법은 제5차 그리스 개헌 의회에서 채택한 것으로, 7년간의 군부 독재(1967-1974)가 무너지고 1975년에 발효되었다. 그 후 1986년과 2001년에 두 번 개정된 바 있다. 120개의 조항으로 된 헌법은 [[삼권 분립]], 시민 자유와 [[사회권]]의 광범위한 보장(2001년에 더욱 강화되었다.)을 담고 있다.<ref>P.D. Dagtoglou, ''Individual Rights'', I, 21 & E. Venizelos, ''The "Acquis" of the Constitutional Revision'', 131-132, 165-172</ref>
입법권은 300명으로 구성된 단원제 의회에서 행사한다.<ref name="con51,53">{{웹 인용 |url=http://www.parliament.gr/english/politeuma/syntagma.pdf |제목=The Constitution of Greece: Articles 51, 53 |확인날짜=2009년 8월 2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70925181747/http://www.parliament.gr/english/politeuma/syntagma.pdf |보존날짜=2007년 9월 25일 |url-status=dead }}</ref> 의회에서 통과한 법령은 대통령이 반포한다.<ref name="con42">{{웹 인용 |url=http://www.parliament.gr/english/politeuma/syntagma.pdf |제목=The Constitution of Greece: Article 42 |확인날짜=2009년 8월 2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70925181747/http://www.parliament.gr/english/politeuma/syntagma.pdf |보존날짜=2007년 9월 25일 |url-status=dead }}</ref> 의회 선거는 4년마다 실시되나, 특별히 중요한 국가적인 문제 때문에 내각의 제안이 있으면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게 되어 있다.<ref name="con41">{{웹 인용 |url=http://www.parliament.gr/english/politeuma/syntagma.pdf |제목=The Constitution of Greece: Article 41 |확인날짜=2009년 8월 2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70925181747/http://www.parliament.gr/english/politeuma/syntagma.pdf |보존날짜=2007년 9월 25일 |url-status=dead }}</ref> 야당이 불신임 결의를 통과하려 할 때 대통령은 그 전에 의회 해산을 명할 수 있다.<ref name="con84">{{웹 인용 |url=http://www.parliament.gr/english/politeuma/syntagma.pdf |제목=The Constitution of Greece: Article 84 |확인날짜=2009년 8월 2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70925181747/http://www.parliament.gr/english/politeuma/syntagma.pdf |보존날짜=2007년 9월 25일 |url-status=dead }}</ref> 여성 투표권은 1952년 헌법 개정때 보장되었다.
사법권은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독립되어 세 개의 최고 법원이 있다. 사법부는 3심제도로서 대법원, 고등법원, 하급법원으로 구성되며, 행정부의 위헌 여부 및 행정권 남용을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특별재판소가 따로 있다.
=== 정당 ===
군부 [[독재]]가 종식된 민정 이양 이후 그리스 정치는 [[자유주의]] [[보수주의|보수]]정당 [[신민주주의당]](ND)과 [[사회민주주의]] 정당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PASOK)이 양당제를 이루고 있었다. 경제 위기 이후 PASOK은 선거에 참패하면서 몰락했고 [[좌익대중주의]] 성향의 [[급진 좌파 연합]](SYRIZA)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다른 정당으로는 [[그리스 공산당]](KKE), [[대중 정교회 연대]](LAOS), [[황금새벽당]](XA) 등이 있다. 현재는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가 [[그리스의 총리]]로 선출되면서 [[신민주주의당]](ND)가 [[여당]]이 되면서 [[의회]]에서 최대 [[정당]]으로 변했다.
=== 대외 관계 ===
[[파일:Greek AH-64A+ Apache (2).JPG|섬네일|그리스 공군의 [[AH-64]]A+ Apache]]
[[파일:HS Psara F454.jpg|섬네일|그리스 해군의 [[프리깃함]] Psara]]
[[파일:Greek Army - IFOR - Bosnian elections.JPEG|섬네일|그리스 [[육군]] [[보병]]]]
{{본문|그리스의 대외 관계}}
그리스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1952),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961), [[유럽 연합]](EU, 1981년), [[서유럽 연합]](WEU, 1995), [[유럽경제통화동맹]](2001), [[유럽 우주국]](ESA, 2005) 가입국이고, [[흑해 경제 협력 기구]]의 창립 회원국이다.
그리스의 주요한 외교 문제로는 [[키프로스]]와 [[에게해]]를 두고 [[튀르키예]]와 갈등을 빚고 있다. 19세기까지 수백 년간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그리스는 [[튀르키예]]에 대해 적대적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영향으로 [[키프로스]] 공화국 내부에서 튀르키예계([[북키프로스]])와 그리스계가 대립하고 있다. 또한 [[북마케도니아]]의 국호 변경 전까지 [[마케도니아 국호 분쟁]]이 있었다.
=== 군사 ===
{{참고|그리스군}}
그리스는 [[발칸반도]]에서 제일 강력한 규모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2012년 기준으로 상비군의 수는 약 177,600명이며, 예비군의 수는 약 280,000명 정도이다. 그리스군은 구 냉전 시절부터 공산주의 국가에 둘러싸여 있었고 가상의 적국인 튀르키예가 옆에 자리잡고 있어 발칸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포병 화력은 EU 국가 중 수준급으로 꼽힌다. 그리스 육군의 공식적인 명칭은 엘리니쿠스 스트라토스 (Ελληνικός Στρατός, Hellenic Army)이며, 병력은 3.5세대 전차를 353대, 2세대 전차를 520대, 1세대 전차를 390대 정도 보유하고 있으며 장갑차는 2,671대, 박격포는 4,065문, 수송 차량은 11,331대 정도를 보유한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고 있다. 공군은 4세대 전투기를 200기, 3세대 전투기를 57기, 2세대 공격기를 51기, 조기경보관제기를 4기, 헬리콥터를 254기 정도 보유하고 있다. 그리스 해군은 발칸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다. 4,000톤급 호위함을 13척, 초계함과 고속정을 33척, 잠수함을 8척 정도 보유하고 있다.
== 인구 ==
{{본문|그리스의 인구}}
그리스 정부의 통계 부서는 [[그리스 국립 통계국]](NSSG)이다. 국립 통계국에 따르면 2001년 그리스의 총 인구는 10,964,020명이었다. 여기서 남성은 5,427,682명, 여성은 5,536,338명이다. 1971년, 1981년, 2001년 통계를 살펴보면 그리스의 인구는 지난 수십여 년간 점차 늙어가고 있다. 그리스의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은 [[2004년]] 현재 ([[유럽 통계청]] 추정) 1.29명으로 [[유럽연합]] 내에서도 낮은 편이다. (1981년에는 1,000명당 14.5명이었으며, 2003년 출산율은 1,000명당 9.5명이었다.) 또 사망률도 1981년 1,000명당 8.9명에서 2003년 1,000명당 9.6로 약간 올랐다. [[2005년]] 현재 1,000명당 출산율은 9.4명, 1,000명당 사망율은 9.2명으로, 간신히 자연증가 상태에 있다.
2001년 인구의 16.71%가 65세 이상이었으며, 68.12%는 15세에서 64세 사이였고, 15.18%는 14세 이하였다. 그리스 사회는 시간에 따라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혼인율은 1981년부터 2002년까지 1,000명당 71명으로 계속 떨어지다가 2003년에 1,000명당 61명으로 약간 늘었다가 2004년에 다시 51명으로 떨어졌다. 이혼율은 계속 늘었는데, 1991년 결혼 1,000건당 191.2건이었다가 2004년에는 1,000건당 239.5건으로 집계되었다. 그리스 인구의 거의 2/3은 도시 지역에 산다. 2001년 그리스의 큰 도시로는 [[아테네]], [[피레아스]], [[파트라]], [[이라클리오]], [[라리사]], [[볼로스]]가 있다.
20세기에 수백명의 그리스인들이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독일]]로 이민 가서 [[그리스 디아스포라]] 인구는 오늘날 거의 6백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80년대부터 그리스 경제가 발전하자 오히려 외부에서 이민이 들어오게 되었다.
=== 이민 ===
그리스 이민 정책과 실행, 데이터 수집이 복잡하기 때문에 그리스의 이민자 인구를 완벽하게 수합하기 곤란하며 상당부분 추측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지중해 이민 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그리스 국립 통계국의 2001년 인구조사에서 그리스 시민권 없이 그리스에 거주하고 있는 인구가 762,191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전체 인구의 약 7%이다. 또 이들 중 48,560명은 유럽연합이나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국가에서 왔으며, 특별 자격으로 키프로스인 17,426명이 있다고 한다. [[알바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이들 발칸 국가에서 온인구가 전체 외국인의 2/3을 차지한다. 구 소련([[조지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몰도바]] 등) 출신 이주자도 총 외국인 중 10%를 차지한다.
非유럽연합 이주자가 가장 많이 사는 곳은 아테네 지역이다. 약 132,000명에 이르며 지역 인구의 17%를 차지한다. 테살로니키는 두 번째로 외국인이 많은 곳으로 지역 주민의 7%인 27,000여명이 산다. 그 다음으로는 대도시 근교나 농업 지대가 있다. 또 [[알바니아인]]은 전체 이민자의 56% 정도 되며, [[불가리아인]](5%), [[조지아인]](3%), [[루마니아인]](3%), 기타([[튀르키예인]], [[아랍인]] 등)도 있다. [[미국]], [[키프로스]], [[영국]], [[독일]]은 총 외국인 인구에서 각각 2% 정도이다. 나머지 690,000여 명은 非유럽연합 이민족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그리스에 거주하는 외국 인구(기록과 추정을 합해)는 그리스 혈통의 이민자까지 포함해서 사실상 8.5% 혹은 10.3%로 집계되며, 대략 1,150,000여 명에 달한다.
=== 언어 ===
오늘날 그리스는 언어상 비교적 동질적인 사회이다. 토착 인구 대다수가 [[그리스 문자]]를 쓰는 [[그리스어]]를 구사한다. 트라키아에는 [[튀르키예어]], [[불가리아어]]([[포막]]), [[루마니아어]]를 쓰는 소수의 무슬림들이 있는데 이들은 전체 인구의 0.95%에 불과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집시어도 쓰인다.
그리스 여러 지역에서 더욱 소수인 언어도 분포한다. 20세기에 그리스어 사용인구와 동화되면서 이들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수도 아테네 근교 시골 지역에 주로 사는 알바니아어를 쓰는 집단 [[아르바니테스]] 그리고 알바니아어와 밀접히 연관된 언어를 쓰며 중부 그리스의 산지 곳곳에 살고 있는 [[블라크]](Vlach)라고도 하는 [[아로마니아인]]과 [[모글레니테스]]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런 집단은 인종적으로 그리스인과 동일시되며 오늘날 모두 모국어와 더불어 그리스어를 함께 구사한다. 이제 많은 지역에서 이들의 전통 언어는 늙은 세대가 겨우 유지하고 있으며 사멸 위기에 처해있다.
그리스 북쪽 접경에는 [[슬라브어]]를 쓰는 집단이 있는데, 인종적으로는 대개 그리스인에 속한다. 이들의 방언은 언어학적으로 (지역에 따라 ''슬라보마케도니아어'' 혹은 ''슬라브어''라고 하는) [[마케도니아어]] 혹은 [[불가리아어]](트라키아의 불가리아어계 무슬림이 쓰는 ''포막''과는 다르다)로 분류될 수 있다.
그리스의 [[유대인]] 집단은 에스파냐계 유대어인 [[라디노어]]를 쓰며, 오늘날 겨우 수천 명만 남아있다.
그리스어 사용 인구 중에는 [[폰토스 그리스어]]를 쓰는 집단도 있는데, 이들은 오스만 제국의 박해를 받고 소아시아에서 이주한 사람들로 꽤 큰 집단을 이룬다.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는 관광지와 호텔에서 통용된다. 그리스는 2004년에 프랑스어 사용국 기구([[프랑코포니]])의 준회원국이 되었고, 2006년에는 정회원국이 되었다.
== 종교 ==
[[파일:Stavronikita Aug2006.jpg|섬네일|그리스 북부 아토스 반도의 그리스 정교 수도원인 스타브로니키타 수도원.]]
=== 기독교 ===
그리스 [[헌법]]에서 모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그리스 정교회]]에 대해 이 나라의 "우세한" 종교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스에서 [[동방 정교회]]는 [[오스만 투르크]]의 점령 시절 그리스인들의 의지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기독교]]는 사회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종교에 대해 통계를 작성하지 않고 있다. 그리스 국무부에 따르면 97%의 그리스 시민이 자신을 [[그리스 정교회]] 신자라고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유럽 위원회]]의 통계 부서인 [[유럽 통계국]](Eurostat)에 따르면 2005년 유로바로미터 설문조사에서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답한 그리스 시민은 81%였는데, [[몰타]], [[키프로스]]와 함께 유럽연합 국가 중 세 번째로 높은 수치였다. [[로마 가톨릭교회]]에 소속된 그리스인은 50,000여명이며, 이민자 출신의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는 200,000여명이다. [[성공회]]<ref>[[유럽]] [[성공회]]는 [[교구 (기독교)|교구]](Diocese)이다.</ref>와 [[개신교]] 신자도 소수 있다.<ref>{{웹 인용 |url=http://www.visitgreece.kr/information/information.php?no=1&PHPSESSID=c2283b807c7cf6ed2dfef99a869d1033# |제목=그리스 관광청 누리집 |확인날짜=2010-11-12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512001753/http://www.visitgreece.kr/information/information.php?no=1&PHPSESSID=c2283b807c7cf6ed2dfef99a869d1033# |보존날짜=2011-05-12 |url-status=dead }}</ref>
=== 이슬람 ===
주로 트라키아에 거주하는 소수 [[이슬람교]] 공동체의 경우 대략 98,000명에서 140,000명 정도로 나왔는데, 이민자 출신 무슬림의 수는 200,000에서 300,000여명 정도였다. 알바니아 이민자는 대부분 세속적인 입장이긴 하지만 보통 무슬림 신앙과 연관된다.
=== 유대교 ===
그리스에서 [[유대교]]는 [[신약성서]]인 [[사도행전]]의 성 바울의 선교이야기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2,000년 넘게 존재했다. [[스파라드 유대인]]들은 [[테살로니키]](데살로니가, 데살로니카)에 상당한 집단을 이루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계 그리스인 집단은 대략 5,500명 정도로 집계된다.
== 경제 ==
{{본문|그리스의 경제}}
[[파일:GreeceEconomyGDPEnglish.png|섬네일|유로존과 비교한 그리스의 GDP 성장률(1996 - 2006).]]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그리스는 [[그리스 경제 기적]]을 이룬다. 1950년에서 1973년 사이 GDP는 평균 7%로 성장했다.<ref>그러나 문제는 이 기간 동안 그리스가 세계 2위가 될 정도로 빚을 많이 꿨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1위 일본과는 달리 다른 나라들에게서 빌려서 빚 문제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다.</ref> 그리스는 [[유럽 연합]]의 기금을 지원 받는 동안 수많은 구조/재무 개혁을 시행했다. 2001년 그리스는 유로존에 가입했다. 그리스의 GDP 연간 성장률은 유럽 연합내 대부분의 국가 수준을 상회한다. 오늘날 서비스업은 그리스 경제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중요 산업이며 다음으로 기타 산업과 농업이 있다. 관광업은 외화 수입의 주요 원천이며, 그리스 총 GDP의 15%를 차지하는데다 총 노동 인구의 16.5%가 직간접적으로 여기에 종사한다.
그리스는 발칸반도 국가 중 선도적인 투자국으로, 2006년 국립 그리스 은행은 튀르키예 [[피난스뱅크]]의 46%, [[세르비아]] Vojvođanska 은행의 99.44%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제조업은 GDP의 13%이며, 이 중 음식 산업이 주도적이다. 공공 부문은 GDP의 40%인데, 정부에서는 이 비중을 더 줄이고 있다. 첨단 기술 장비 생산(특히 텔레커뮤니케이션)도 빠르게 성장하는 부문이다. 다른 주요 산업으로는 섬유, 건축 자재, 기계, 운송 장비, 전자 제품 등이 있다. 건설업은 GDP의 10%로 2004년 [[2004년 하계 올림픽|아테네 올림픽]]으로 건설붐이 일어났으며, 이 나라 경제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GDP 7%의 농업 부문도 중요하다. 그리스의 노동 인구는 총 490만 명으로, [[OECD]] 국가 중 [[대한민국]] 다음으로 많다. [[그로닝엔 성장 개발 센터]]는 1995~2005년새 그리스는 유럽 국가 중 시간 대비 노동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스 노동자는 연간 평균 1,900 시간을 일한다. 그 다음은 [[에스파냐]]가 있다. (연간 평균 1,800 시간) 2007년 노동시간당 GDP는 20$로 에스파냐와 비슷하며, 미국의 시간당 평균 임금의 절반을 약간 넘는 수치이다. 이민자들은 노동력의 거의 1/5을 차지하며 농업과 건설업에 주로 종사한다.
그리스의 구매력평가 기준 1인당 GDP는 세계 28위이다. 1인당 gdp는 아직 낮은 17.890달러이다 2006년 그리스는 [[인간개발지수]] 18위를 차지했으며, 2005년 [[이코노미스트]]지의 세계 삶의 질 지수에서 22위를 차지했다. 이코노미스트지 조사에 따르면 아테네의 생활비는 뉴욕의 비용에 90%에 근접하며, 시골 지역은 이보다 더 낮았다.하지만 낮은 1인당 gdp로 높은 물가에 허덕인다.
=== 해운 산업 ===
해운업은 예로부터 그리스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오늘날 해운업은 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산업이다. GDP의 4.5%를 이루며, 160,000여명을 고용하고 있고(전체 노동력의 4%), 이 나라 무역 적자액의 1/3에 해당한다.
1960년대 그리스 선박의 규모는 거의 두 배로 늘었는데, 주로 해운 재벌 [[오나시스]]와 [[니아르코스]]의 투자 때문이었다. 현대 그리스 해운 산업의 기반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형성되었는데, 이때 그리스 해운업자들은 1940년대 미국의 선박 판매법에 따라 미국 정부가 이들에게 판매한 잉여 선박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미국 교통부 교통통계국(BTS)에 따르면, 그리스 소유의 해운 선박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데, 세계 선박 용량(총 141,931,000 [[dwt]])의 18%인 3,079척의 선박을 보유하고 있다. 선박 종류로 보면, 그리스는 [[유조선]]이나 드라이 [[벌크선]]에서 1위이고, [[컨테이너선]]은 4위, 다른 배 종류도 4위이다. 그러나 오늘날 선박 수는 1970년대 말 최대 5,000척에서 줄어든 것이다.
=== 과학 기술 ===
그리스에서 광대역 인터넷은 널리 보급되어 있으며, 일반 인구의 약 13.4%가 광대역으로 인터넷(주로 ADSL2)에 연결되어 있다. 인터넷 접속, 사무, 멀티플레이 게임이 가능한 [[인터넷 카페]]도 그리스에서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다. 휴대전화 네트워크상의 모바일 인터넷이나 와이파이 핫스팟도 있으나 널리 쓰이지는 않는다.
그리스의 전략적 위치, 우수한 노동력, 정치적/경제적 안정 덕분에 [[에릭슨]], [[지멘스]], [[SAP AG|SAP]], [[모토롤라]], [[코카콜라]] 등 여러 다국적 회사가 지역 연구개발(R&D) 본부를 그리스에 두고 있다.
그리스 개발부의 연구기술일반과에서는 국가 연구 기술 정책을 설계, 시행, 감독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2003년 연구 개발에 45,637만 유로의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이는 2002년보다 12.6% 증가한 것이다) 공공과 민간 부문 모두 아울러 GDP 대비 총 연구개발 지출은 1989년에 0.38%에서 2001년에는 0.65%로 지난 십 여년간 눈에 띄게 늘었다. 그리스의 연구개발 지출은 아직 유럽 연합 평균치인 1.93%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지만, [[OECD]]와 유로스탓 자료에 따르면 1990년에서 1998년 사이 그리스의 총 연구개발 지출은 [[핀란드]]와 [[아일랜드]] 다음으로 유럽에서 3위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인큐베이터 시설을 갖춘 그리스의 기술 단지로는 크리티 과학기술 단지(이라클리오), 테살로니키 기술 단지, 라브리오 기술 단지, 파트라 과학 단지 등이 있다. 그리스는 2005년부터 [[유럽우주국]](ESA)의 회원국이다. 그리스 국가 우주 위원회는 1990년대 초부터 유럽우주국과 협력을 시작했다. 1994년 그리스와 유럽우주국은 첫 제휴 협약을 맺었다. 2003년 공식적으로 정식 회원에 신청하여, 그리스는 2005년 3월 16일 유럽 우주국의 16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유럽우주국 회원국으로서 그리스는 우주국의 통신, 기술 활동, [[세계 환경 및 안보 모니터링]]에 참여하고 있다.
== 교육 ==
그리스에서 [[초등학교]](Δημοτικό Σχολείο, Dimotikó Scholeio)와 [[김나지움]](Γυμνάσιο)은 의무 교육이다. [[탁아소]](Παιδικός σταθμός, Paidikós Stathmós)는 의무는 아니지만 많이 이용한다. [[유치원]]은 현재 4세 이상 유아에게 의무가 되었다. 아이들은 6살 때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6년간 다닌다. 김나지움은 12살에 들어가며 여기서 3년간 공부한다. 그리스의 의무 중등 교육 이후에는 두 가지 학교 유형으로 진로를 정할 수 있다. 상급 중학교(Ενιαίο Λύκειο, Eniaia Lykeia)와 기술 직업교육 학교(Τεχνικά και Επαγγελματικά Εκπαιδευτήρια, "TEE")이다. 여기에는 직업 교육 기관(Ινστιτούτα Επαγγελματικής Κατάρτισης, "IEK")도 있는데, 하급 중학교(Gymnasio)와 상급 중학교(Lykeio)를 졸업한 학생들이 여기에 오면 정해진 특정한 교육 단계로 구분되지 않는 교육 방식으로 가르친다.
공공 고등 교육으로는 "최고 교육 기관"(Ανώτατα Εκπαιδευτικά Ιδρύματα, Anótata Ekpaideytiká Idrýmata, "ΑΕΙ")과 "최고 기술 교육 기관"(Ανώτατα Τεχνολογικά Εκπαιδευτικά Ιδρύματα, Anótata Technologiká Ekpaideytiká Idrýmata, "ATEI") 이 두 가지 대학교 유형이 있다. 학생들은 상급 중학교(lykeio) 3학년 과정을 수료하고 국가 시험을 쳐서 대학에 입학한다. 22세 이상의 학생들은 추첨 형식으로 [[그리스 개방 대학교]]에 입학한다. [[아테네 대학교]]는 동지중해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그리스의 교육 제도는 학습 장애나 다른 문제가 있는 학생들을 위한 특별 유치원, 초중등 학교도 둔다. [[음악]], [[신학]], [[체육]] 분야의 전문 김나지움이나 고등학교도 있다.
== 관광 ==
[[파일:Loutraki.jpg|섬네일|루트라키 해변의 관광객들]]
관광업은 그리스의 소득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2004년 그리스는 1,650만 여명의 관광객을 맞아들였다. 2005년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의 조사에 따르면 그리스는 중국인이 선호하는 관광지로 뽑혔으며, 수도 [[아테네]]에만 6,088,287명이 방문했다. 2006년 11월 중국과 비슷하게 오스트리아도 그리스를 선호 관광지로 발표했다. 2007년 그리스는 1,9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와 세계 관광지 중 상위 10위에 들었다. [[로도스섬]]은 유럽 관광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관광지로 선정되었다. 다른 유명한 명승지로는 [[아테네]], 북부 [[할키디키반도]], [[이오니아 제도]]의 [[케르키라섬|케르키라]], [[미코노스]], [[산토리니섬|산토리니]], [[파로스]], [[크레타]] 등이 있다.
== 스포츠 ==
그리스는 [[올림픽]]의 발상지로서 오랜 스포츠의 전통을 지닌 나라이다. 이 때문에 올림픽 개막식의 선수단 입장 과정에서는 그리스 선수단이 가장 먼저 입장하며 올림픽 폐막식에서는 그리스의 국기 게양과 함께 그리스의 국가가 연주된다.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는 [[1896년 하계 올림픽]]과 [[2004년 하계 올림픽]]이 열린 곳이다. [[올림피아 (그리스)|올림피아]] 유적은 [[고대 올림픽]] 개최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올림픽 성화]] 채화 장소이기도 하다.
==== 축구 ====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은 2007년 5월 [[FIFA 랭킹]] 20위를 기록하였으며,<ref>{{웹 인용 |1= |url=http://www.fifa.com/worldfootball/ranking/lastranking/gender=m/fullranking.html |제목=FIFA World Rankings |출판사=www.fifa.com |웹사이트=FIFA |확인날짜=2007-05-07 |발행월=April |연도=2007 |archive-date=2018-12-24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81224011850/https://www.fifa.com/worldfootball/ranking/lastranking/gender=m/fullranking.html |url-status=dead }}</ref> 축구 역사상 [[UEFA 유로 2004]]에서 놀라운 우승을 거두었다.<ref name=Euro2004>{{뉴스 인용|성=McNulty |이름=Phil |제목=Greece win Euro 2004 |url=http://news.bbc.co.uk/sport1/hi/football/euro_2004/3860105.stm |publisher=news.bbc.co.uk |뉴스=BBC News |확인날짜=2007-05-07 |날짜=2004-07-04}}</ref> [[수페르 리가 엘라다]]는 16개 구단으로 이루어진 그리스 최고의 프로 축구 리그이다. 이 가운데 강력한 구단으로는 [[올림피아코스 FC]], [[파나티나이코스 FC]], [[AEK 아테네 FC]], [[PAOK FC]], [[아리스 테살로니키 FC]]가 있다.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은 10년간 축구에서 우위를 지켜왔다. 2008년 8월 기준으로 세계 4위에 랭크되었다.<ref>{{웹 인용 |1= |url=http://www.fiba.com/pages/eng/fc/even/rank/rankMen.asp |제목=Ranking Men after Olympic Games: Tournament Men (2008) |발행월=August |연도=2008 |확인날짜=2008-08-24 |웹사이트=International Basketball Federation |archive-date=2007-06-07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70607092902/http://www.fiba.com/pages/eng/fc/even/rank/rankMen.asp |url-status= }}</ref>
== 같이 보기 ==
* [[2010년 유럽 국가부채위기]]
* [[고대 그리스]]
* [[그리스 신화]]
* [[그리스 요리]]
* [[레스보스섬]]
== 각주 ==
{{각주}}
== 참고 문헌 ==
{{글로벌세계대백과}}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위키인용집|그리스의 속담}}
* {{언어링크|el|en}} [https://www.mfa.gr/missionsabroad/en/republic-of-korea.html 주한 그리스 대사관]
* {{언어링크|el|en}} [https://www.gov.gr/ 그리스 정부 홈페이지]
* {{언어링크|ko|en|el}} [https://overseas.mofa.go.kr/gr-ko/index.do 주 그리스 대한민국 대사관]
* {{dmoz|Regional/Europe/Greece}}
* {{언어링크|ko}} [https://www.holylandgreece.com 그리스 선교 & 성지연구소]
* {{언어링크|en|el}} [https://www.visitgreece.gr 그리스 관광청]
{{좌표|39|N|22|E|type:country_region:GR|display=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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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
{{다른 뜻 넘어옴|호주}}
{{오스트레일리아 표}}
'''오스트레일리아 연방'''({{llang|en|Commonwealth of Australia}}), 줄여서 '''오스트레일리아''', 혹은 '''호주'''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본토와 [[태즈메이니아섬]], 그리고 [[인도양]]과 [[태평양]]의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주권국]]이며 [[오세아니아]]에서 1번째, 세계에서 6번째로 면적이 넓은 나라이다. 북쪽에는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 [[파푸아뉴기니]], 북동쪽에는 [[솔로몬 제도]]와 [[바누아투]], [[누벨칼레도니]], 그리고 남동쪽에는 [[뉴질랜드]]가 있다. 수도는 [[캔버라]]이고, 주요 도시로는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퍼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퍼스]], [[골드코스트 (퀸즐랜드주)|골드코스트]], [[애들레이드]] 등이 있다.
18세기 말 유럽인들 이주 이전인 최소 40,000년 전부터 원주민이 살았다고 여긴다. 1606년 [[네덜란드 공화국]]이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한 이후, 1770년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오스트레일리아 동쪽 지역을 자기 영토로 삼았으며, 1788년 1월 26일부터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식민지]]로 죄인들을 수송해 정착시키기 시작하면서 [[이민]]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 인구는 차츰 늘기 시작했고, 계속 대륙을 탐험해서 다섯 개 자치 식민지를 추가로 건설했다. 1901년 1월 1일, 여섯 개 식민지가 연합하여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을 설립하였다. 모국인 영국과 지리적 영향으로 인해 다른 정체성을 점차 갖추었다. 1942년 [[웨스트민스터 헌장]] 적용을 받아 행정적으로 모국과 분리되었으며, 1948년부터 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하는 [[영국]] 국민은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을 사용하게 되었다. 1986년 오스트레일리아 법이 [[영국 의회]]에서 통과되어 영국 의회의 오스트레일리아 내 입법권이 정지되었으며, 사법권도 [[최고재판소]]가 런던의 [[추밀원 (영국)|추밀원]]에서 오스트레일리아 고등법원으로 옮겨짐으로써 [[영국]]과 남은 법적 종속관계를 단절하여 자주국가가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과 [[캐나다]], [[뉴질랜드]]를 비롯한 [[영연방]] 국가들과 [[동군연합]]을 이루고 있으며, 국가원수는 [[찰스 3세]] 국왕을 대표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총독이며,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연방 성립 이후부터 [[대의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6개 주와 2개 준주, 6개 특별 지역이 있고, 약 2,290만 인구는 대부분 동쪽 지역에 밀집해 있으며, [[도시화]] 비율이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높다.
오스트레일리아는 [[GDP]]가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높고, [[1인당 GDP]]은 6번째로 높은 대표적 [[선진국]]이다. [[군사비 지출에 따른 나라 목록|군비 지출]]은 12번째로 많으며, 인간 개발 지수에서 2위를 비롯해 오스트레일리아는 삶의 질, 건강, 교육, 경제적 자유, 시민적 자유와 권리의 보호 등 다양한 국가간 비교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G20]],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세계 무역 기구|WTO]],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국제 연합]], [[영국 연방]], [[태평양 안전 보장 조약|앤저스(ANZUS)]], [[태평양 제도 포럼]]에 가입해 있다. 한편, [[2012년]] OECD(경제 협력 개발 기구) 조사에서 오스트레일리아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나타났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donga.com/3/all/20120524/46475790/1|제목=‘삶의 질’ 1위 호주… 한국 24위|이름=주애진|날짜=2012-05-24 |출판사=동아일보|확인날짜=2012-10-20}}</ref>
== 국호 ==
{{본문|오스트레일리아의 국호}}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은 고대에 남반구에 있는 가상의 대륙을 이르던 말인 [[테라 아우스트랄리스]](Terra Australis)에서 유래했다. 17세기에 유럽인들이 처음으로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하여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라는 이름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영토에 적용되었다.
19세기 초까지 오스트레일리아는 1644년에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이 붙인 "뉴홀랜드(New Holland)"로 알려져 있었으며, 자연스럽게 이름으로 굳혀졌다.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도 과학 논문과 같은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은 "듣기 편하고 다른 지명과도 잘 어울린다"고 주장한 탐험가 [[매슈 플린더스]]에 의해 널리 퍼졌다.
몇몇 유명 지도 제작자들은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을 지도에 표기했다.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1512-1594)는 단어 "''climata australia"''를 그의 1538년판 복심장형 지도에 사용했고, 그의 스승이자 공동저자였던 게마 프리시우스는 그보다 앞선 1540년에 사용했다.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은 1817년 4월에 총독 [[래클런 매쿼리|래클란 매쿼리]]가 [[제3대 배서스트 백작 헨리 배서스트|배서스트 백작]]에게서 받은 플린더스의 장부 영수증을 승인했을 때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되었으며, 8개월 후 매쿼리는 곧 정식으로 채택될 것이라며 오스트레일리아의 사용을 식민성에 권장하였다. 1824년에 [[영국 왕립해군]]은 신대륙을 오스트레일리아로 명명한다는데 동의했다. 새로운 이름은 1830년 해로 제작처의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명"에 처음 공개되었다.
구어체로는 "OZ"와 "the Land Down Under" (줄여서 "Down Under")가 있으며, "the Great Southen Land", "the Lucky Country", "the Sunburnt Country", "the Wide Brown Land"로도 불린다.
정식 국호는 ‘오스트레일리아 연방’(Commonwealth of Australia)이며 한국어권에서 공식적으로 일컫는 국호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이다. 그러나 이름이 너무 길고 비슷한 이름을 가진 [[오스트리아]]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한자 음역인 '호사태랄리아주(濠斯太剌利亞洲)'를 줄인 '''호주'''(濠洲)라는 이름이 더 많이 통용되고 있다. 대한민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양국 정부에서도 "호주"라는 국호를 사용한다.
== 역사 ==
{{본문|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
===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
[[파일:Bathurst Island men.jpg|섬네일|오스트레일리아 [[배서스트섬 (오스트레일리아)|배서스트섬]]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원주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65,000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현재의 [[남아시아]] 지역에서 [[육교 (지리학)|육교]]를 이용하거나 좁은 바다를 건너 이주했다. 아넘랜드(Arnhem Land)의 마제베베(Madjedbebe) 바위 은신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간의 존재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유적이다. 가장 오래된 인간의 유골은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조상인 [[멍고인]]으로, 약 4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문화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이다. 유럽인들이 처음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접촉했을 때, 이들은 복잡한 경제와 사회를 동반한 [[수렵채집사회]]를 이루고 있었으며,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약 75만명의 인구가 유지될 수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대지에 대한 경외심과 [[몽환시]]를 바탕으로 영적 가치를 지닌 [[구전]]문화를 가지고 있다. [[토레스 해협]]인, 민족적으로 [[말레이시아인]]은 계절 원예와 바다의 자원으로 그들의 생계를 유지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북쪽 해안과 바다는 지금의 인도네시아에서 온 [[마카사르]] 어부들에 의해 간간히 종종 방문되기도 했다.
=== 유럽인들의 도착 ===
[[파일:Captain James Cook, 1728-79 RMG BHC2628.tiff|섬네일|1770년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해안에 상륙한 선장 [[제임스 쿡]]]]
[[파일:Australia discoveries by Europeans before 1813 en.png|270px|섬네일|오른쪽|1813년까지 유럽인들의 오스트레일리아 항해 경로<br />
{{범례|#000000|1606년 [[빌렘 얀스존]]}}
{{범례|#ff9955|1606년 [[루이스 바에스 데 토레스]]}}
{{범례|#39842c|1616년 [[딕 하토그]]}}
{{범례|#ffd42a|1619년 프레더릭 드 하우트만}}
{{범례|#835b38|1644년 [[아벨 타스만]]}}
{{범례|#516778|1696년 [[윌리엄 드 블라밍]]}}
{{범례|#000080|1699년 [[윌리엄 댐피어]]}}
{{범례|#8000ff|1770년 [[제임스 쿡]]}}
{{범례|#0055d4|1797–1799년 [[조지 배스]]}}
{{범례|#ff0000|1801–1803년 [[매슈 플린더스]]}}]]
최초로 기록된 유럽인들의 오스트레일리아 본토 관측과 상륙은 [[네덜란드인]]에 의한 것이다(1606). 네덜란드 항해사 빌렘 얀스존이 이끄는 다프켄 호는 처음으로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을 측량하고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만났다. 그는 1606년 초에 [[케이프요크반도]]의 해안을 관측하고 2월 26일에 케이프 요크 웨이파의 현대 마을 부근의 페네파더 강(Pennefather River)에 상륙했다. 다음 해에 스페인 탐험가 루이스 바에스 데 토레스(Luís Vaz de Torres)가 토레스 해협 제도를 항해했다. 네덜란드인들은 17세기에 서쪽과 북쪽의 모든 해협을 측량하고 "뉴 홀란드(New Holland)"라고 이름 붙였지만 정착하지는 않았다. 영국의 탐험가 [[윌리엄 댐피어]]는 1688년에 해적 선장 존 리드(John Read) 밑에서 일하는 동안 뉴 홀랜드의 북쪽 해안에 상륙했고, 1699년에 돌아오면서 다시 상륙했다. 1770년에는 [[제임스 쿡]]이 동쪽 해안을 따라 항해하며 지도화했는데, 그는 이 해안을 [[뉴사우스웨일스주|뉴사우스웨일즈]]라고 명명하고 대영제국에 보고했다.
1783년에 미국 식민지를 잃은 영국 정부는 뉴사우스웨일즈에 새 유형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아서 필립(Arthur Phillip)의 지휘아래 "제1함대(the First Fleet)"로 불리는 함대를 보냈다. 캠프는 1788년 1월 26일(훗날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경일인 [[오스트레일리아의 날]]이 된다.) [[포트잭슨만]]의 [[시드니 코브]]에 세워졌다. 영국 정착지는 반 디멘의 땅(Van Diemen's Land),현재의 [[태즈메이니아주|태즈메이니아]]에 세워졌고, 1825년에 별도의 식민지가 되었다. 영국은 1828년 공식적으로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스완 리버 식민지)의 서부 지역의 권리를 주장했다. [[뉴사우스웨일스주|뉴사우스웨일즈]]의 일부는 각각 1846년에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1851년에 [[빅토리아주|빅토리아]], 1859년에 [[퀸즐랜드주|퀸즐랜드]]의 식민지로 분리되었다. [[노던 준주|노던 테리토리]]는 1911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분리되며 설립되었다.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는 "자유 지역(free province)"로 설립되었으며, 다른 주들과 달리 유형 식민지였던 적이 없다. 빅토리아와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도 마찬가지였으나, 나중에 죄수들을 수용했다. 뉴사우스웨일즈의 정착민들에 의한 캠페인은 오스트레일리아로의 죄수 수송의 종말을 가져왔으며, 마지막 죄수선은 1848년에 도착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인구는 150년간 정착민들이 가져온 전염병으로 인해 감소했다. 또한 천명이 넘는 원주민들은 정착민들과의 오스트레일리아 국경 전쟁(the Australia Frontier Wars)으로 인해 사망했다. 1869 원주민 보호법(Aboriginal protection Act)에서 시작된 정부의 "동화"정책은 "빼앗긴 세대(the Stolen Generations)"라고 일컬어지는수많은 원주민 아이들을 그들의 가족과 사회에서 격리했고, 이 또한 인구 감소의 원인이 되었다. 1967년 국민투표 결과, 특정 인종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는 연방정부의 권한이 확대되어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수 있게 되었다. 전통적인 토지 소유권("원래 소유권")은 1992년 마보 대 퀸즐랜드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 고등법원(제2호)이 영국 정착 당시 오스트레일리아가 테라 무효라는 법적 교리를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 식민지의 팽창 ===
1813년에 그레고리 블랙스랜드(Gregory Blaxland), 윌리엄 로슨(William Lawson), 윌리엄 웬트워스(William Wentworth)는 시드니 서쪽의 [[블루마운틴스 (뉴사우스웨일스주)|블루마운틴]]을 건너 유럽 정착지를 개방했고, 1824년에는 해밀턴 흄(Hamilton Hume)과 전 영국 해군 대위 윌리엄 호벨(William Hovell)이 식민지 남쪽의 새로운 방목지와 뉴사우스웨일즈 서부의 강을 찾기 위해 탐험을 떠났다. 1826년 에드먼드 록키어(Edmund Lockyer) 소령이 킹 조지 사운드(King George Sound), 지금의 [[올버니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올버니]]에 정착지를 설립하면서 영국의 권리 주장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전체로 확대되었다. 1850년까지 내륙의 거대한 땅들은 여전히 유럽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유럽인들은 여전히 농업과 과학적 발견을 위한 새로운 땅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골드 러시]]는 1850년대 초에 시작되었고, 광업 수수료에 대한 유레카 반란이 시민 불복종의 초기 표현으로 나타났다. 1855년에서 1890년 사이에 6개의 식민지가 정부로부터 독립된 권리를 얻었고, 대영제국의 일부로써 대부분의 일을 스스로 관리했다. 런던의 식민지 사무소는 외교 문제, 방위 문제, 무역 문제를 통제했다.
=== 국가 ===
[[파일:Eternal flame, Shrine of Remembrance, ANZAC Square, Brisbane, Anzac Day 2019 01.jpg|섬네일|[[퀸즐랜드주]] [[브리즈번]]에 위치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군단|ANZAC]] 스퀘어]]
1901년 1월 1일, 10년간의 계획, 협의, 투표 끝에 식민지의 연방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대영제국의 지배를 받는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이 세워졌다. 연방 수도 준주(Federal Capital Territory), 훗날의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는 현재 [[캔버라]]의 위치에 자리잡았다. 캔버라가 건설되는 1901년에서 1927년까지는 [[멜버른]]이 임시 수도의 역할을 했다. [[노던 준주]]는 1911년에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의 통제에서 연방 의회로 권력이 이전되었다.
1914년에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과 [[제1차 세계 대전|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물러나는 연방자유당(Commonwealth Liberal Party)과 새로 집권한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의 지지를 받았다. 오스트레일리아군은 [[서부 전선 (제1차 세계 대전)|서부전선]]의 주요 전투에 참여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416,000명의 오스트레일리아군이 참전해 60,000명이 전사했고, 152,000명이 부상을 입었다. 많은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갈리폴리 전역|갈리폴리]]에서의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군단]](ANZACs, 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의 패배를 국가의 탄생으로 여기며, 이 전쟁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첫 번째 군사 행동이다. [[제2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대전]] 중의 코코다 트랙 작전(Kokoda Track Campaign) 또한 국가를 정의한 갈리폴리 전투와 유사한 사건이다.
1931년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헌장]]은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사이의 헌법상 연관을 종료시켰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이를 1941년에 수용했으나, 이는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제2차 세계 대전]] 도중에 [[오스트레일리아 의회]]가 통과시킨 법률의 타당성을 확인했다. 특히 [[아시아]]에서 벌어진 [[영국]]의 패배와 [[일본 제국]]의 침략으로 인한 충격은 오스트레일리아가 [[미국]]을 새로운 동맹이자 보호자로 여기게 했다. 1951년부터 오스트레일리아는 [[태평양 안전 보장 조약]](ANZUS)에 속하는 [[미국]]의 동맹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레일리아는 [[유럽]] 본토에서의 이민을 장려했다. 1970년대부터 후술할 [[백호주의]]가 폐지될때까지 [[아시아]]와 그 외 지역에서의 이민 또한 장려되었다. 이로 인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구, 문화, 자아가 크게 바뀌었다. 1986년 오스트레일리아법(Australia Act 1986)의 통과는 [[영국 정부]]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역할을 차지할 가능성을 끝냈으며, 간간히 쓰이던 [[추밀원 (영국)|영국 추밀원]]의 재판상의 상소 선택권도 빼앗았다. 1999년의 국민투표에서는 투표자의 55%와 모든 주의 대다수가 오스트레일리아 의회의 양원에서 3분의 2의 투표로 대통령이 지명된 공화국이 되자는 제안을 거부했다. 1972년 도날드 혼(Donald Horne)의 랜드마크 비평서 The Lucky Country(1964년)와 휘틀람 정부의 당선 이후 오스트레일리아의 전통적인 동맹국 및 교역 파트너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태평양 연안 국가들과의 관계에 대한 외교 정책의 초점이 높아지고 있다.
=== 오스트레일리아의 토끼 ===
[[영국]]에서 온 이민자가 토끼를 풀어놓은 바람에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10년 후, 오스트레일리아에는 토끼로 가득 차게 되었다. 한 해에 200만마리를 총으로 사살했음에도 불구하고 토끼는 계속 늘어났다. 1920년대 세계 대공황 때는 전 세계가 빈곤으로 흔들렸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토끼 고기로 음식을 만들어 식량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1990년대 200년 간 이어진 토끼와의 전쟁이 토끼 [[바이러스]]의 개발로 종식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도 초목들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
== 자연환경 ==
[[파일:Reliefmap of Australia.png|섬네일|오스트레일리아의 입체 지도, 진한 녹색은 낮은 곳, 진한 갈색은 높은 곳을 나타낸다.]]
=== 일반적 특성 ===
오스트레일리아는 [[인도양]]과 [[태평양]]에 둘러싸여 있다. [[아라푸라해]]와 [[티모르해]]에 의해 [[아시아]]와 분리되어 있으며; [[산호해]]는 [[퀸즐랜드주|퀸즐랜드]] 해안에, [[태즈먼해]]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 맞닿아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대륙]]이자 [[면적순 나라 목록|6번째로 넓은 나라]]로 그 크기와 고립성 때문에 "섬 대륙"이라고 불리며, 종종 [[세계]]에서 가장 큰 [[섬]]으로 여겨진다. 오스트레일리아는 34,218킬로미터(21,261마일)의 [[해안선]](섬 제외)과 8,148,250평방킬로미터(3,146,060평방마일)의 [[배타적 경제 수역]]을 가지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매쿼리섬]]과 별도로 위도 9°와 44°S, 경도 112°와 154°E 사이에 위치한다.
[[파일:GreatBarrierReef-EO.JPG|섬네일|[[그레이트배리어리프|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위성 사진]]
세계에서 가장 큰 [[산호초]]인 [[그레이트배리어리프]]는 북동쪽 해안의 일부로부터 약 2,000킬로미터(1,240마일)정도 뻗어 있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에 위치한 2,228미터(7,310피트) 높이의 어거스투스 산(Mount Augustus)은 세계에서 가장 큰 [[단층|단층석]]으로 여겨진다. [[코지어스코산|코지어스코 산]]은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허드 맥도널드 제도|허드섬]]에 있는 마우슨 피크(2,745 미터, 9,006 피트)가 최고봉이다. [[오스트레일리아령 남극 지역]]에서는 맥클린톡 산과 멘지 산이 각각 3,492미터(11,457피트)와 3,355미터(11,007피트)이다.
[[파일:The great dividing range.jpg|섬네일|[[그레이트디바이딩산맥|그레이트 디바이딩 산맥]]]]
오스트레일리아의 크기는 북동쪽의 [[열대 우림]], 남동쪽과 남서쪽과 동쪽의 [[산맥]], 그리고 중앙의 [[사막]]과 같은 다양한 풍경을 보여준다. [[아웃백]]으로 알려진 [[사막]]이나 반건조 지대는 국토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사람이 사는 가장 건조한 대륙으로, 연평균 강수량은 500mm 미만이다. 인구밀도는 km<sup>2</sup>당 2.9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한다. 또한 인구의 대부분은 남동쪽 해안을 따라 거주한다.
동부 오스트레일리아는 [[퀸즐랜드주|퀸즐랜드]], [[뉴사우스웨일스주|뉴사우스웨일즈]], [[빅토리아주|빅토리아]] 해안에 평행한 [[그레이트디바이딩산맥]]으로 표시되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이름은 정확하지 않은데, 왜냐하면 그 [[산맥]]의 일부는 낮은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고, 고지는 보통 1,600미터(5,249피트) 이하의 높이기 때문이다. 해안 고원과 브리갈로 초원의 띠가 해안과 산 사이에 놓여 있고, 산맥의 내륙은 넓은 초원지역이다. 여기에는 [[뉴사우스웨일스주|뉴사우스웨일즈]]의 서부 평야와 에이나슬리 업랜즈(Einasleigh Uplands), 바클리 테이블랜드(Barkly Tableland), [[퀸즐랜드주|퀸즐랜드]] 내륙의 물가랜드(Mulga Lands) 등이 포함된다. 동해안의 최북단 지점은 열대우림 [[케이프요크반도|케이프 요크 반도다]].
탑 엔드(top End)와 걸프 컨트리(Gulf Country)의 풍경은 [[열대 우림]]과 더불어 [[숲]], 삼림지, [[습지]], [[초원]], [[사막]]을 포함한다. 대륙의 북서쪽 끝은 [[사암]] 절벽; [[킴벌리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킴벌리]]의 협곡과 [[필바라]], 그리고 내륙의 남쪽에는 오드 빅토리아 평원과 서부 오스트레일리아 물가 관목지 등 더 많은 초원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심장부는 중부의 고원이다. 중앙과 남쪽의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유명한 [[사암]] 단층석인 [[울루루]]와 내륙 심슨, 티라리 및 스투르트 스토니, 깁슨, [[그레이트샌디 사막|그레이트 샌디]], 타나미, [[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그레이트 빅토리아 사막]] 등이 있으며 남해안에는 유명한 누르보 평원이 있다.
=== 지리 ===
[[파일:Ausgeolbasic.jpg|섬네일|나이에 따른 오스트레일리아의 기본 지질학적 지역]]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인도-오스트레일리아판|인도-오스트레일리아 판]] 위에 놓여 있으며, 비교적 안정적인 지질학적 역사를 가진 지구상에서 가장 낮고 원시적인 대륙이다. 이 대륙은 알려진 모든 종류의 암석과 38억년에 지질학적 시기를 포함하고 있다. 필바라 크래튼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확인된 36-2.7Ga 중 하나이다.
모든 주요 [[초대륙]]의 일부였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아프리카|아프리카 대륙]]과 [[인도 아대륙|인도 대륙]]의 분리와 함께 페르미안에서 [[곤드와나]]가 분리된 후 형성되기 시작했다. [[페름기]]에서부터 [[백악기]]까지 장시간에 걸쳐 [[남극]]에서 분리되었으며, 마지막 [[빙하기]]가 기원전 10,000년경에 끝났을 때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태즈메이니아주|태즈메이니아]]가 육지로부터 분리되었고 [[배스 해협]]이 형성되었다. 기원전 8,000년에서 6,500년 사이에 북쪽의 저지대도 바다에 잠겼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1년에 6-7센티미티씩 [[유라시아]]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얇은 테두리를 제외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판 (지각)|지각]]의 평균 두께는 38킬로미터로 범위는 24-59킬로미터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성장한 것으로 보이는데; 주로 서쪽에서 발견되는 아르차이아의 분화구는 중앙에서, [[조산 운동]]의 [[퇴적암|퇴적층]]과 [[변성암]], [[화성암]]은 동쪽에서 발견된다.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와 [[태즈메이니아주|태즈메이니아]]는 [[판 구조론|판]]의 중간에 위치해 있고 현재는 [[활화산]]이 없지만 동부 오스트레일리아 핫스팟을 지난다. 이로 인해 최근 서쪽 [[빅토리아주|빅토리아]]와 남동쪽 오스트레일리아의 뉴 볼카니스 지방 화산 활동이에서 발생했으며, 또한 [[뉴기니섬|뉴기니]]의와 오스트레일리아의 [[허드 맥도널드 제도|허드섬]]과 [[허드 맥도널드 제도|맥도날드섬]] 부근에서도 일어났다. [[1989년 뉴캐슬 지진|1989년 뉴 캐슬 지진]]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가운데,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와 [[태즈메이니아주|태즈메이니아]] 지역의 지진 활동은 적은 편이다.
=== 기후 ===
[[파일:Australia Köppen.svg|섬네일|오스트레일리아의 [[쾨펜의 기후 구분|쾨펜 기후 구분]]도]]
오스트레일리아 기후는 [[인도양]]의 디폴과 [[엘니뇨|엘니뇨-]]남반구 오실레이션, 계절성 열대 저기압을 비롯한 바다 흐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러한 요인은 매년 강수량의 큰 변화를 불러온다. 북부 지방은 대부분 [[열대 기후|열대성]]으로 강수량이 여름에 집중되어 있으며, 남동쪽은 [[서안 해양성 기후|해양 기후]]와 [[온난 습윤 기후]], [[고산 기후]], [[아열대|아열대 기후]]가 특징이다. 내륙 중심부는 [[건조 기후|건조]] 또는 [[스텝 기후|반건조 기후]]다.
기상청의 2011년 오스트레일리아 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기온은 [[라니냐]] 영향으로 평균보다 낮았다.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 10년 평균 기온은 계속해서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며, 2001-2011년은 장기 평균보다 0.52 °C(0.94 °F) 높은 온도로 역사상 2번째로 더운 10년이었다. 게다가, 2014년은 1910년에 국가 기온 관측을 시작한 이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세 번째로 더운 해였다. 2019년 1월은 평균 기온이 30 °C(86 °F)를 넘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더운 달이었다.
도시 인구 증가와 국지적인 [[가뭄]]으로 인한 만성적인 물 부족으로 말미암아 많은 지역에서 물제한을 빈번히 시행하고 있다. 2000년대에 이어 2010,11,12년에 발생했던 것처럼, 대륙 전역에 걸친 대규모 [[홍수]]는 장기간의 가뭄, 내륙 강의 범람, 범람하는 댐, 대규모 내륙의 평야 침수 후에 정기적으로 발생한다.
=== 생물 다양성 ===
[[파일:Kangaroo au.jpeg|섬네일|오스트레일리아의 상징적 동물인 [[캥거루]]]]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대부분이 [[사막]]이지만, 대륙은 [[고산 기후|고산 지대]]에서 [[열대 우림|열대 우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서식지를 포함하고 있다. [[곰팡이]]는 그 지역의 생물 다양성을 상징하는데, 약 25만종으로 추정되고, 그중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5%가 서식한다. 대륙의 오래된 역사, 다양한 날씨, 그리고 장기적인 지리적 고립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의 많은 생물들은 매우 독특하다. [[속씨식물|꽃이 피는 식물]]의 약 85%, [[포유류]]의 84%, [[새|조류]]의 45%, [[물고기|어류]]의 89%등이 오스트레일리아에만 서식한다. 또한 755종으로 가장 많은 수의 [[파충류]]를 가지고 있다. [[남극|남극 대륙]]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고양이과]]가 자연석으로 서식하지 않는 유일한 대륙이다. 야생 [[고양이]]들은 17세기에 [[네덜란드]]의 난파선과 18세기 후반에 유럽인들에 의해 소개되었을 것이다. 고양이는 이제 많은 멸종 위기에 처한 토착종들의 감소와 멸종의 주요 요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숲은 대부분 [[상록수]], 특히 덜 건조한 지역은 [[유칼립투스]]로 이루어져 있다. [[호두나무|호두]]는 더 건조한 지역과 사막에서 지배적이다. 잘 알려진 오스트레일리아의 동물들 중에는 [[오리너구리]], [[가시두더지]] 등의 [[단공류]]와 [[캥거루]], [[코알라]], [[웜뱃]]을 포함한 다수의 [[유대류]], [[에뮤]]와 [[웃음물총새|쿠카부라]]와 같은 새들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독성이 강한 뱀들을 포함해 많은 위험한 동물들의 서식지이다. [[딩고]]는 기원전 3000년경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과 거래한 사람들에 의해 소개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메가 파우나를 포함한 많은 동물과 식물 종들은 인간이 처음 정착한 후 곧 멸종되었다.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태즈메이니아 늑대]]를 비롯한 다른 종들은 유럽인들이 정착한 이래 사라졌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대다수 생태계와 [[동물]], [[크로미스타]], [[곰팡이]], [[식물]] 종들은 인간의 활동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오스트레일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포유류 멸종률을 기록하고 있다. 1999년 연방 환경 보호 및 생물 보호법(the Federal Environment Protection and Biodiversity Conservation Act 1999)은 멸종 위기 종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이다. 또한 독특한 생태계를 보호하고 보존하기 수많은 보호 구역이 만들어졌다. [[람사르 협약]]에 따라 65개의 [[습지]]가 등록되어 있고, 16개의 [[세계유산|세계자연 유산]]이 설립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18년 [[환경성과지수]]에서 178개국 중 21위를 차지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절멸위기종|멸종 위기종 목록]]에는 500마리 이상의 동물과 식물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산불로 인해 상당수가 줄어들었다.
== 정치 ==
오스트레일리아는 [[연방의회|연방 의회]] 중심의 [[입헌군주제|입헌 군주국]]이다. 1901년 연방 정부가 성립된 이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헌법]] 하에서 안정적인 [[자유민주주의|자유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유지해 왔으며 [[연방정부|연방 정부]]와 주 정부, 그리고 준주 정부 사이에서 권력이 나누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방제|연방]] 중 하나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정부 체제는 [[영국]]([[입헌군주제|입헌 군주제]], 강령한 정당 규율)과 [[미국]]의 정치 체제([[연방주의|연방 주의]], [[헌법|성문 헌법]], 선출된 [[상원]]과 강력한 [[양원제]])의 요소들과 독특한 자신들만의 특징들을 결합한 것이다.
[[연방정부|연방 정부]]는 세개의 부서로 [[권력 의지|분리]]된다.
* [[입법부]]: [[군주]], [[상원]] 및 [[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양원제 의회]]
* [[정부|행정부]]: [[의회]]의 추천에 따라 정부 기관장이 임명한 [[총리]] 및 기타 국무장관으로 구성된 내각의 결정에 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연방 집행 위원회.
* [[사법 (국가 작용)|사법부]]: 오스트레일리아 고등 법원과 다른 연방 법원, 의회의 추천에 따라 행정 장관이 임명하는 판사
[[찰스 3세]]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국왕]]으로 군림하며 [[연방정부|연방 정부]]의 [[총독]]과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주지사들에 의해 대표된다. 주지사들은 국왕의 장관들의 조언에 따라 [[관습법]]을 제정한다. 따라서 실제로는 [[총리]] 및 연방 집행 위원회의 행위에 대한 법적 명목상의 지도자로서 정부 장성이 행동을 취한다. 정부 수반은 이례적이고 제한적인 상황에서 총리의 요청을 받지 않고 행사할 수 있는 특별한 예비군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1975년 헌법 위기 당시 휘트람 정부의 해임이었다.
[[상원]]에는 76명의 상원 의원이 있다.(각 주에서 12명, 준주에서 2명) [[하원]]에는 151명의 하원 의원이 있으며, "인구에 따른 [[소선거구]]에서 선출된다. 각 선거구는 최소 5석을 보장 받는다. 양원의 선거는 3년마다 동시에 실시된다. 준주 출신을 제외한 상원의원의 임기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보통 6년으로, 하원 선거 주기에 맞춰 선거를 치른다.
[[파일:Parliament House at dusk, Canberra ACT.jpg|섬네일|캔버라의 [[오스트레일리아 의회의사당|의회의사당]]]]
[[태즈메이니아주|태즈메이니아]]와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를 제외한 모든 하원 선거는 [[선호투표제]], 상원은 [[비례대표제|비례대표]]와 결합된 이양식 투표제이다. 18세 이상의 모든 유권자는 [[의무투|의무적으로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하원의 다수당이 정부를 구성하고 당수가 총리가 된다. 많은 지지를 받은 정당이 없는 경우에는 헌법에 따라 총독이 총리를 임명하며, 의회의 신임을 잃은 경우에는 파면한다.
일반적으로 정부, 연방 정부, 주 정부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노동당]]과 [[오스트레일리아 자유당|자유당]], [[오스트레일리아 국민당|국민당]]이 이루는 [[오스트레일리아 보수연립|보수연립(Coaliation)]], [[양당제|두개의 주요 정당으로 나뉜다]]. 보수 연합은 [[중도우파|중도 우파]], 노동당은 [[중도좌파|중도 좌파]]로 간주된다. [[무소속]] 의원들과 몇몇 [[군소 정당]]들은 주로 상원에서 표를 얻었다.
가장 최근의 연방 선거는 2019년 5월 18일에 열렸고 그 결과 [[스콧 모리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 연합이 정부를 유지하게 되었다.
=== 주 및 준주 ===
[[파일:Australia states and territories labelled.svg|섬네일|400x400픽셀|오스트레일리아의 주 및 준주]]
오스트레일리아에는 [[뉴사우스웨일스주|뉴사우스웨일즈(NSW)]], [[퀸즐랜드주|퀸즐랜드(QLD)]],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SA)]], [[태즈메이니아주|태즈메이니아(TAS)]], [[빅토리아주|빅토리아(VIC)]],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WA)]]의 6개 주와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ACT)]], [[노던 준주|노던 준주(NT)]]의 2개 준주가 있다. 연방 정부가 준주 정부 의회에서 통과된 법률을 수정하거나 폐지할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준주는 주와 거의 동일하게 기능한다.
헌법에 따르면, 각 주는 원칙적으로 모든 영역에 대해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전체 입법권을 가지고 있는 반면, 연방 의회는 51조에 명시된 영역 내에서만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주 의회는 교육, 형법, 주 경찰, 보건, 운송 및 지방 정부와 관련된 법률을 제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연방 의회는 이러한 분야의 법률을 제정할 권한이 없다. 그러나, 연방 법은 역설적으로 주 법보다 우위에 있다. 또한 연방 정부는 소득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주정부에게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는 권한과 함께 영연방이 입법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영역 내에서 특정 입법 안건을 추구하도록 장려하기 위한 재정적 수단을 제공한다.
각 주와 준주에는 각각의 [[의회]](노던 준주,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 퀸즐랜드는 [[단원제]], 나머지 주는 [[양원제]])가 있다. 하원은 입법 의회로 알려져 있고, 상원은 입법 회의로 알려져 있다. 각 주의 정부 수반은 총리이고 각 준주의 수반은 지사이다. 국왕은 각 주에서 주지사로, 노던 준주에서는 행정관으로 대표된다. 연방 정부에서 국왕의 대리인은 총독이다
연방 의회는 [[슈모어]]와 [[카르티에 제도]], [[오스트레일리아령 남극 지역]], [[크리스마스섬]], [[코코스 제도]], [[산호해 제도]], [[허드 맥도널드 제도]], [[저비스베이 준주]] 등의 외부 지역을 직접적으로 관리한다. [[매쿼리섬]]은 [[태즈메이니아주]], [[로드하우섬]]은 [[뉴사우스웨일스주]]가 관리한다.
== 대외 관계 ==
[[파일:Ac.dfat.jpg|섬네일|캔버라에 위치한 외교통상부 본부 RG CAsey House]]
수십년간 오스트레일리아의 외교 관계는 [[태평양 안전 보장 조약|ANZUS]] 조약을 통한 [[미국]]과의 긴밀한 동맹과 오스트레일리아가 창립 멤버인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 [[태평양 제도 포럼]], 태평양 공동체를 통한 [[아시아 태평양|아시아·태평양]]과의 관계 발전 의지 속에 추진되어 왔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05년 [[동남아시아]]에서 우호 협력 조약을 체결한 것에 이어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취임식을 가졌고, 2011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제6회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는 영연방 정부 수반들이 협력을 위한 주요 포럼을 제공하는 [[영국 연방|영연방 국가]]의 일원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국제 무역 자유화를 위해 노력해 왔는데, [[케언스 그룹]]과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의 설립을 이끌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경제협력개발기구]]와 [[세계무역기구]]의 회원국으로 국가 간의 주요한 자유 무역 협정을 추진해 왔다. 미국 [[자유 무역 협정]](FTA)과 [[뉴질랜드]]와의 긴밀한 경제 관계 무역 협정(Close Economic Relations), [[중국]], [[일본]], [[대한민국]], [[칠레]]-오스트레일리아 [[자유 무역 협정]](FTA)을 실시함과 동시에 2015년 11월 현재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을 의회에 상정하고 있다. 카티온
오스트레일리아는 트랜스-태즈만 여행 협정(Trans-Tasman Travel Arrangement)에 따라 뉴질랜드와 두 나라 간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성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뉴질랜드]], [[캐나다]],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에게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나라들로, 오스트레일리아와 많은 외교적, 군사적, 문화적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중에서도 [[뉴질랜드]]와는 혈맹과도 같은 관계를 유지하며,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에서 ANZAC 군으로 참전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 주재 뉴질랜드 [[고등판무관 (영국 연방)|고등판무관]]은 뉴질랜드 외교관 중에서도 가장 고위직 인사가 맡는 것이 관례이며, 캔버라의 고등판무관 사무소는 캔버라 의회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뉴질랜드]], [[영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함께 오스트레일리아는 지역 방위 협정인 [[5개국 방위 협정]](Five Power Defence Agreements)의 당사자이다. [[유엔|국제 연합]]의 창립 회원국인 오스트레일리아는 다자 간 협력에 적극적이며 60여개국이 원조를 지원하는 국제 원조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2005-06년도에 25억 오스트레일리아달러의 개발 지원을 제공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12년 글로벌 개발 센터의 개발 기여도에서 종합적으로 15위에 올랐다.
== 군사 ==
{{본문|오스트레일리아 방위군}}
[[파일:Australian soldiers attend a medals parade at Camp Taji, Iraq, Nov 15, 2017.jpg|섬네일|2017년 이라크에 파병된 오스트레일리아 군인]]
오스트레일리아 방위군(Australian Defence Force)은 오스트레일리아 육군,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해군(Royal Australia Navy),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공군(Royal Australia Air Force) 등 총 8만 121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사령관은 정부의 추천에 따라 방위군 중 한 곳에서 국방군 총사령관을 임명한다. 일상적인 군사 작전은 최고 사령관의 지휘 하에 있으며, 보다 광범위한 행정과 방위 정책은 장관과 국방부에 의해 수행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2016~17년 예산안에서는 국방비가 [[국내총생산|국내 총생산]](GDP)의 2%를 차지해 [[군사비|세계 12위의 국방 예산]]을 기록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03년 이라크 침공을 포함한 유엔과 지역 평화 유지, 재난 구호, 무력 충돌에 관여해 왔다. 또한 현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한 12개 지역에 다양한 역할의 2,241명의 인력을 배치했다.
* 오스트레일리아 방위군 (ADF)
* 병력 (2011년 기준) : 현역 59023명
** 육군 : 현역 30235명, 예비역 16900명
** 해군 : 현역 14215명, 예비역 2150명
** 공군 : 현역 14573명, 예비역 2800명
* 오스트레일리아 육군
** M1A1 Abrams 59대
** ASLAV-25 255대
** Bushmaster PMV 차량 837대
** M113 APC 700대
** L119 Hamel Gun (105 mm)
** [[M777 곡사포]] (155 mm) 35문
** [[M198 곡사포]] (155 mm)
** [[M2A2 곡사포]] (105mm) 육군예비군
** RBS-70 (휴대용 SAM)
** ARH Tiger 공격헬기
** MRH-90 (UH-1 Iroquois을 대체)
** S-70A Blackhawk (MRH-90로 대체예정)
** [[CH-47D 치누크]]
** [[OH-58 키오와]]
*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해군 (RAN) - 2013년 취역한 54척의 함정으로 구성
** 호위함(frigates) 12척
*** Anzac class(만재배수량 3600톤) 8척
*** Adelaide class(만재배수량 4100톤) 4척
** 잠수함
*** Collins class 6척
** 지원함
*** HMAS Choules (dock landing ship)
*** HMAS Tobruk (heavy landing ship)
*** Balikpapan class (heavy landing craft) 6척.
*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공군
** 전투기
*** F/A-18A/B 71대, F/A-18F 24대
** 지원기
*** 737 AEW&C 6대, Airbus A330 MRTT(공중급유기) 5대, AP-3C Orion(해상초계기) 21대, C-130J 12대, C-17A 6대, C-130H 8대
== 경제 ==
[[파일:Sydney skyline at dusk - Dec 2008.jpg|섬네일|252x252픽셀]]
세계적으로 부유한 국가에 속하는 호주는 [[시장 경제]], 높은 [[일인당 명목 국내 총생산순 나라 목록|1인당 GDP]], 상대적으로 낮은 빈곤율을 가지고 있다. 평균 재산으로 볼 때 오스트레일리아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스위스]]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2018년에는 스위스를 추월해 평균 재산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빈곤율은 2001년에서 2013년까지 10.2%에서 11.8%로 증가했다. 이는 2013년에 [[크레디트 스위스|크레딧 스위스 연구소]]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중앙값과 두번째로 높은 평균 재산을 가진 국가로 확인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 달러]]는 [[크리스마스섬]], [[코코섬|코코스(킬링 섬)섬]], [[노퍽섬]], [[키리바시]], [[나우루]], [[투발루]]를 포함한 독립된 태평양 섬 국가들을 포함한 국가의 화폐이다. 2006년 [[오스트레일리아 증권거래소]]와 시드니 퓨처스 거래소가 합병하면서 오스트레일리아 증권 거래소는 세계에서 9번째로 큰 증권 거래소가 되었다.
[[경제자유지수|경제 자유 지수]](2017년)에서 5위를 차지한 오스트레일리아는 세계 14위의 경제 대국으로 [[일인당 명목 국내 총생산순 나라 목록|1인당 국내 총생산]](명목)이 10위인 55,692달러를 기록했다. 또한 [[유엔|UN]]의 2017년 [[인간 개발 지수순 나라 목록|인간 개발 지수]]에서 3위를 차지했다. [[멜버른]]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2014년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서 4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애들레이드]], [[시드니]], [[퍼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퍼스]]가 각각 5위, 7위, 9위를 차지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총 부채는 2010년의 GDP의 20%에 해당하는 호주 달러 1,900억달러에 달한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집값과 가장 높은 가계 부채 수준을 가지고 있다.
공산품보다는 원자재 수출에 중점을 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무역 전략은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21세기 초 이후 무역 조건에서 압박을 가해 왔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국내총생산]](GDP)대비 7%이상의 수지를 가지고 있으며 50년 이상 지속적으로 대규모 [[경상수지|경상수지 적자]]를 겪어 왔다.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연평균 2.5%와 비교해 15년간 연평균 3.6%의 성장률을 보였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08-2009년 대침체에서 경기 침체를 겪지 않은 유일한 선진국이다.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6개 주요 교역국의 경제는 경기 침체에 빠져 있고, 이에 영향을 받아,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제 성장은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호크 정부는 1983년 [[오스트레일리아 달러]]를 유통시켰고 부분적으로 금융 규제를 완화했다. 하워드 정부는 노동 시장의 부분적인 규제 완화와 함께 전기 통신 산업 국영 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했다. 간접세 제도는 10%의 관세(GST)도입과 함께 2000년 7월 크게 바뀌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조세 제도에서 개인 소득세와 회사 소득세는 정부 수입의 주요 원천이다.
2018년 9월 현재 [[정규직]]의 수는 1264 만 800명(파트 타임 포함)이며 [[실업|실업률]]이 5.2%이다. 2013년 11월 중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복지 대상자의 수가 55%증가했다. 2013년에는 228,621명의 실업 수당 수급자가 등록되었는데, 이는 2007년 보다 64만 6414명으로 증가한 것이다. 대학원 진로 조사에 따르면 2011년 이후 다양한 직종의 신입 사원들의 정규직 채용은 감소했으나 졸업 후 3년부터 증가하고 있다.
2008년 이후 [[인플레이션]]은 일반적으로 2-3%이고 [[기준금리]]는 5-6%이다. 관광, 교육, 금융 서비스를 포함한 경제의 서비스 부문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70%를 차지한다. 천연 자원이 풍부한 오스트레일리아는 주요 농산물 수출국이며, 특히 밀과 양모, 철이나 금과 같은 광물, 그리고 액화 천연 가스와 석탄 등의 에너지를 수출한다. 농업과 천연 자원은 각각 국내 총생산(GDP)의 3%, 5%에 불과하지만 수출 실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가장 큰 수출 시장은 [[일본]], [[중국]], [[미국]], [[대한민국]], [[뉴질랜드]]이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는 세계에서 네번째로 큰 [[포도주|와인]] 수출국이며, 와인 산업에 매년 55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 인구 ==
{{본문|오스트레일리아의 인구}}
== 사회 ==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은 석기시대와 똑같은 수렵생활을 영위한 데 지나지 않았으며, 식민지 당국은 그 노력을 이용할 수는 없었다. 원주민 인구는 크게 감소하여 순혈종의 원주민 약 4만 명이 특별보호구에서 보호 생활을 보내고 있다. 따라서 이 나라의 주민 구성을 생각할 때 원주민은 현실적으로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결과 이 나라의 주민은 모두 최초의 선대 이래 도래한 사람들이며, 현재 총인구 약 1,973만 중 96%가 유럽계 백인으로 구성되어 명실공히 ‘백인의 천하’라 해도 좋겠다. 그중 영국계가 압도적으로 많아 90%를 차지한다. 오랫동안 이민에 의한 인구 증가를 꾀해 왔는데,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급속한 자원 개발, 경제 성장을 목표로 하고, 또한 1930년대의 낮은 출생률에 기인하는 인구 구성의 틈을 메우기 위해서 이민 수용정책이 채용되었다. 이탈리아·그리스·네덜란드·독일 등지로부터의 이민이 많다. 한편 [[골드러시]] 때의 중국인 채광부와의 사이에 일어난 노동력의 덤핑·생활 정도의 저하 등의 문제가 얽혀서 발생한 [[백호주의]] 정책이 최근까지 채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세계 여론과 아시아로 눈길을 돌린 이 나라의 입장 등으로 [[백호주의]] 정책이 파기되었다. 국어는 영어이다.<ref name="역사">《[[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오세아니아/오스트레일리아#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주민|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주민]]〉</ref>
=== 복지국가 ===
오스트레일리아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발달된 [[복지국가]]이다. 사회보장제도는 고령자·신체장애자 등에 대한 연금과, 실업자·병약자·자녀가 있는 가정에 대한 수당 등이 있다. 그 밖에 여러 복지단체에 대해서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또 주택정책이 잘 되어 있어 2008년 기준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주택 보급률은 70%를 조금 웃돌아 세대의 약 25%의 정도는 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rootiz.wownet.co.kr/news_view.asp?idx=2086&mkey=21 |제목 = 해외투자 성공가이드 <호주편> |날짜 = 2008-01-04 }}{{깨진 링크|url=http://rootiz.wownet.co.kr/news_view.asp?idx=2086&mkey=21 }}</ref> 영국계 주민이 많고, 영연방의 하나인 탓에 생활양식이 영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
=== 여가 활동 ===
대다수의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퇴근 후 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을 하루 중 가장 큰 낙으로 생각한다.
크리켓·론 볼링·럭비 등의 스포츠가 활발하다. 이 외에도 골프나 경마, 수상 스포츠, 캠핑을 즐기고, 일요일 오후에는 지역적으로 있는 ‘아르보(오후라는 뜻)’라는 정원 맥주파티에서 서로 어울린다.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흔히 예고없이 친구와 친척집을 ‘잡담하러’ 방문하는 관습이 있고, 시골에서는 남녀가 따로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느긋한 옥외생활의 분위기는 먹는 일과 그 사회생활에도 영향을 미쳐, 이곳 사람들은 오스트레일리아식 바비큐라는 요리를 항시 즐기게 되었다. 많은 공원이나 해변가에서는, 점심때나 저녁식사시간이면 불에 굽는 스테이크와 갈비 소시지의 냄새가 환담소리와 맥주 깡통 비우는 소리와 어울려 은은히 새어 나온다. 야외식사의 풍습은 [[굴]]·[[게]]·[[바닷가재]], ‘야비’라고 하는 민물가재 등을 파는 거리의 노점에서도 성행되고 있다. 도박도 널리 행해져 대규모 사교클럽이 인기가 있고, 행락을 위하여 해외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 노동인권 ===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노동조건을 몇 가지 갖고 있다. 그들은 일년에 4∼5주의 휴가와 연중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다수의 공휴일을 확보하고 있다. 또,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외에,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농업전시회, 국왕의 [[생일]], 그리고 멜버른 사람인 경우에는 이 나라 최대의 경마행사인 ‘멜버른 컵’ 경기 때도 근무를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일찍 근무를 시작하여 오후 5시면 끝마침으로써, 몰려오는 파도 옆의 백사장에서 본격적으로 일광욕을 하는 등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만들고 있다.
오늘날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풍경의 하나는, 태양에 바랜 머리카락과 푸른 눈을 가진 십대의 젊은이들이 풍요와 넘치는 영양, 그리고 야외생활로 다져진 건강한 피부빛의 육체들을 가지고 서프보드와 윈드서핑 장비가 꽂힌 캠프용 자동차 주위에 모여 있는 모습이다.<ref name="글로벌 사회">《[[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오세아니아/오스트레일리아#오스트레일리아의 사회|오스트레일리아의 사회]]〉</ref>
=== 민족 ===
[[파일:Aboriginal craft.jpg|섬네일|200px|어보리진이 사용하는 도구]]
영국계가 주류이지만 다양한 [[민족]]이 존재하며, [[원주민]] 보호 구역에는 예전부터 거주하던 [[어보리진]]도 분포한다. [[태즈메이니아]] 지역 애버리진은 오스트레일리아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백인]]이 벌인 '인간사냥'으로 전멸당하고 말았으며, 오스트레일리아 애버리진들도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약 40년간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원주민 말살정책으로 부모에게서 강제로 분리해 백인 가정으로 [[입양]]하거나 강제수용당했다. 원주민 [[인권]]을 짓밟은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원주민 탄압정책은 《[[리더스 다이제스트]]》 [[한국어]]판에 강제수용당한 원주민 소년이 탈출하여 고향에 돌아온 이야기가 실릴 만큼 [[지식인]]들 지탄을 받았으며, 애버리진도 불행한 자신들 과거를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 또는 '도둑맞은 아이들'(Stolen Children)이라고 부를 만큼 큰 상처를 받았다. 강제 입양이나 수용당한 원주민 어린이는 최소 10만 명 이상으로 추정한다. 이들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는데, 일부는 법정투쟁으로 [[2007년]] [[9월 1일]] 오스트레일리아 역사상 최초로 보상결정이 내려졌다.<ref>(http://www.imbc.com/cms/SISA000000800/TV0000000068551.html 문화방송 W, '호주, 도둑맞은 세대.')</ref>
[[2007년]]까지 재임한 [[존 하워드]] 정권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정부의 민족말살정책이 이전정권 일이었다는 이유로 애버리진에 관한 사과나 보상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으나, [[2007년]] 12월에 집권한 [[케빈 러드]] [[러드 행정부|행정부]]는 [[2008년]] [[2월 13일]], 범정부 차원 첫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이를 연방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등 적극적인 사죄 활동을 시작했다.<ref>(http://news.media.daum.net/foreign/asia/200802/13/yonhap/v19940574.html{{깨진 링크|url=http://news.media.daum.net/foreign/asia/200802/13/yonhap/v19940574.html }} 濠정부, 원주민 탄압 공식 사과), 연합뉴스, [[2008년]] [[2월 13일]] 작성</ref> 이는 오스트레일리아정부가 "잃어버린 세대"로 불리는 정부주도의 토착민 가정 및 사회 파괴행위에 관해 사죄의 뜻을 밝힘으로써 과거사 청산 의지를 보였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1973년]]까지 [[백호주의]]을 고수하여 [[흑인]] 이민을 제한하였으나 노동력 부족 등 문제가 나타나자 [[1973년]]에 백호정책을 전면 폐지하였고, 그 뒤로 인종 차별은 줄어들었다.
=== 언어 ===
대부분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은 [[영어]]를 쓰는데, [[호주 영어|오스트레일리아 영어]](오지 잉글리시)는 [[미국 영어]]나 [[영국 영어]]와 구별되는 특징 있다. 2001년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80%는 가정에서 [[영어]]만을 사용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가정에서 많이 쓰는 언어가 [[중국어]](2.1%), [[이탈리아어]](1.9%), [[그리스어]](1.4%) 순이다. 이민 1세대나 2세대 상당수는 두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베트남계 이주민은 [[베트남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영어 구사자도 있다.
일례로 동남아시아에 온 주민은 베트남에서 온 주민처럼 고향 언어를 사용하는 점이랑 영어를 같이 구사하는 점도 있는 편이다.
처음 유럽인이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했을 때 원주민이 사용하는 약 200에서 300개 토착 언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약 70개 정도만 살아남았으며, 그 가운데 20개는 사멸 위기에 있다. 이들 토착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인구는 약 5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0.02%이다.
=== 종교 ===
{{bar c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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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bel1 = 가톨릭교 | data1 = 5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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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bel7 = 시크교 | data7 =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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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bel9 = 타 종교 | data9 =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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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 제 116조에는 어떤 종교를 확립을 위해 종교의식 강요,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률을 금지하고있다.
== 문화 ==
[[파일:SydneyOperaHouseFromRivercatFerry.jpg|섬네일|200px|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오스트레일리아는 수백 개의 국립공원만큼이나 다채로운 축제와 행사가 벌어지는데 마디그라 축제, 패션축제, 애들레이드 예술축제, 캔버라 꽃축제, 포도축제를 비롯하여 요트경기·자동차 경주·경마경기 등이 사랑을 받고 있다. 오팔과 진주가 유명하며 독특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예술로 관광객들에게서 많은 사랑과 관심을 얻어내고 있다.<ref name="글로벌 사회"/> [[시드니]]에 있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오페라 하우스]]는 전 세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국가 종교가 없으며, 오스트레일리아 헌법 조항 166조는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정부가 그 어떤 종교를 수립하고, 그 어떤 종교적 의식을 시행하는 것 또는 그 어떤 종교의 자유적인 활동을 금지"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주요 종교는 [[샌즈교]] 교파인 [[오스트레일리아 성공회]]와 [[로마 가톨릭]]이며 정치적으로도 영향력을 갖고 있다. 실례로 [[2006년]]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에서 [[성공회]]와 [[로마 가톨릭]]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학교내 종교 교육을 허용하는 법안을 제시했다가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다. 또한 정신과 의사출신의 작가인 [[콜린 매컬로]]의 소설 [[가시나무새들]]도 로마 가톨릭을 일부 배경으로 하고 있다.
=== 교육 ===
영연방 국가인 오스트레일리아의 정규 대학 학사 과정은 일반적으로 영국과 같이 3년제를 유지하고 있다. 석사 과정의 수료는 1~2년이, 박사 과정은 4~5년이 요구되는 것이 보통이다.
{{본문|오스트레일리아의 대학 목록}}
=== 스포츠 ===
[[오지 풋볼|오스트레일리아식 축구]]와 [[럭비 리그]], [[크리켓]], [[축구]]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ref>[https://www.topendsports.com/world/lists/popular-sport/countries/australia.htm Most Popular Sports in Australia]</ref>
축구의 경우는 [[2004년]]엔 8개 팀으로 [[축구|프로 축구]] 리그인 [[A-리그]]가 창설되었다. (현재 현대 A-리그에는 10개 팀 (그 중 하나는 [[뉴질랜드]]에 연고를 두고 있다.)이 있다.) [[올림픽]]은 [[1956년 하계 올림픽|1956년]] ([[멜버른]] 올림픽)과 [[2000년 하계 올림픽|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2번 연 적이 있었다. [[크리켓 월드컵]] 4회 우승이라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
== 주요 출신 인물 ==
* [[리오 세이어]] - 가수
* [[히스 레저]] - 배우
* [[크리스 헴스워스]] - 배우
* [[니콜 키드먼]] - 배우
* [[휴 잭맨]] - 배우
* [[러셀 크로]] - 배우
* [[나오미 왓츠]] - 배우
* [[미란다 커]] - 모델
* [[닉 부이치치]] - 팔다리가 없는 사람으로 TV에 나온 적이 있다.
* [[샘 해밍턴]] - [[뉴질랜드]] 출생이지만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을 가지고 있다. MBC [[진짜 사나이]]에 출연했다.
* [[휴고 위빙]] - [[아르헨티나]] 출생이지만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을 가지고 있다.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스미스 요원을 맡은걸로 유명하다.
* [[샘 워딩턴]] - 월드무비스타 영화 [[아바타 (2009년 영화)|아바타]]에 주연으로 나왔다
* [[미아 바시코프스카]] - 월드무비스타. 영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엘리스로 나왔다.
* [[조시 헬먼]] - 월드무비스타, 영화 [[X맨 시리즈]]에서 젊은 스트라이커 대령으로 나왔다.
* [[필릭스]] - 스트레이키즈
* 트로이 시반 - 가수
* [[방찬]]- 스트레이키즈
* 하니- 뉴진스
== 같이 보기 ==
* [[오스트레일리아의 날]]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포털|오스트레일리아}}
* {{언어링크|en}} [https://www.pm.gov.au 오스트레일리아 정부 홈페이지]
* {{언어링크|ko}} [https://www.australia.com/ko-kr 오스트레일리아 관광청 공식 웹사이트]
* {{언어링크|en|ko}} [https://southkorea.embassy.gov.au/seol/home.html 대한민국 주재 오스트레일리아 대사관]
* {{위키공용분류-줄|Australia}}
* {{위키낱말사전-줄|오스트레일리아}}
* {{위키여행-줄|en:Australia|오스트레일리아{{언어링크|en}}}}
{{오스트레일리아의 주와 준주}}
{{오세아니아}}
{{지역}}
{{유엔 창립 회원국}}
{{영국 연방}}
{{APEC}}
{{OECD}}
{{G20}}
{{남아시아 지역 협력 연합}}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
{{TPP}}
{{태평양 제도 포럼}}
{{파리 클럽}}
{{전거 통제}}
[[분류:오스트레일리아| ]]
[[분류:영국의 옛 식민지]]
[[분류:입헌군주국]]
[[분류:유엔 회원국]]
[[분류:영어권]]
[[분류:연방제 국가]]
[[분류: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분류:영연방 회원국]]
[[분류:G20 회원국]]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넘어옴|케이프베르데||베르데곶}}
{{카보베르데 표}}
[[파일:Cv-map.png|섬네일|카보베르데 지도]]
'''카보베르데 공화국'''({{llang|pt|República de Cabo Verde|헤푸블리카 드 카부베르드}}, <small>[[카보베르데 크리올]]:</small> Repúblika di Kabu Verdi), 줄여서 '''카보베르데'''({{llang|pt|Cabo Verde|카부베르드}}, {{문화어|까부웨르드, 베르데갑}})는 [[아프리카]] 서쪽 [[대서양]]에 있는 [[국가]]이다. 영어로 '''케이프버드'''({{lang|en|Cape Verde}}, /keɪpˈvɝd/)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 어원 ==
카보베르데는 [[세네갈]] 연안에 위치한 [[베르데곶]](Cap-Vert)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서 명명된 이름이다. 1444년에 포르투갈의 항해사들이 베르데곶 근처에 위치한 이들 섬을 발견한 다음에 [[포르투갈어]]로 "녹색의 곶"이라는 뜻을 가진 '카보베르데'(Cabo Verde)로 명명했다. 2013년 10월 24일에는 카보베르데 정부가 각국 정부와 여러 국제 기구에 카보베르데라는 포르투갈어 국명만을 사용하고 다른 언어로 의역한 형태의 국명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 역사 ==
유럽 사람들이 방문하기 전까지 이곳은 무인 지대였고 1456년경에 [[제노바 공화국]]과 [[포르투갈 왕국]]의 항해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무인도이기는 했지만 고대로부터 [[페니키아인]], 아랍인, [[무어인]] 및 인근 서아프리카의 부족들이 이 섬들을 방문했다고 한다. 1462년에는 열대 지방으로는 드물게 [[산티아구섬]]에서 포르투갈인의 이주가 시작되어, 히베이라그란드(Ribeira Grande, 나중에 [[시다드벨랴]](Cidade Velha)로 이름을 바꿈)라는 정착촌이 건설되었다.
16세기 경에는 [[노예 무역]]이 번성하였으나, 때때로 해적의 습격을 받기도 하였다. 노예 무역의 결과,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카보베르데로 끌려왔으며, 이들이 오늘날 카보베르데인의 조상이다. 노예 무역의 쇠퇴 이후에는 대서양 항로의 중간 거점항, 보급항으로서 번성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아프리카에서 민족주의 열풍이 거세지면서 기니-카보베르데 독립 아프리카당이라는 조직을 중심으로 한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다. 1974년 포르투갈에서 일어난 [[카네이션 혁명]] 이후에는 이들의 독립이 가시화되었다. [[1975년]] [[7월 5일]],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했다.
== 지리 ==
카보베르데는 아프리카 서쪽 해안에 위치한 나라로서 10개의 큰 섬과 약 8개의 작은 섬으로 [[군도]]를 이루고 있다. 크게 북쪽의 [[바를라벤투 제도]](Barlaventos)와 남쪽의 [[소타벤투 제도]](Sotaventos)로 나뉜다. 수도 [[프라이아]]는 소타벤투 제도의 [[산티아구섬]](Santiago)에 위치한다.
== 기후 ==
15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구성된 카보베르데는 [[바를라벤투 제도]]와 [[소타벤투 제도]]로 불리는 두 [[군도]]로 나뉜다. 이 가운데 5개의 섬은 [[무인도]]이다. 몇 개의 섬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화산활동과 침식에 의하여 생성된 섬으로 암석산지이고, 포구섬의 피코화산은 해발고도 2,829m로 최고봉을 이룬다. 대부분의 섬들은 대륙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와 고온건조한 기후이며 5∼10월의 우기를 제외하면 비가 적다. 연평균 강수량은 해안에서 200mm 내외, 산지에서 1,000mm 정도이다. 연평균 기온은 24℃인데다가 화산재가 표층을 덮고 있기 때문에 토양도 비옥하지 않아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
== 인구와 주민 ==
{{본문|카보베르데의 인구}}카보베르데 주민들은 대부분 [[크리올]]로 구성되어 있다.
== 문화 ==
언어는 공용어가 [[포르투갈어]]이며, [[크레올어]]도 비공식적으로 사용된다. 카보베르데는 프랑스어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이다. [[1999년]] [[11월 23일]]자 [[헌법]] 9조 1항에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종교 분포는 [[로마 가톨릭교회|가톨릭교]]가 98%로 그 밖에 [[개신교]] 신도 등이 있다.
== 대한민국과의 관계 ==
[[1988년]]부터 [[대한민국]]과 수교했다.
== 각주 ==
<references />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 {{언어링크|pt}} {{공식 웹사이트}}
* [https://overseas.mofa.go.kr/sn-ko/brd/m_10172/list.do 주세네갈 대사관의 카보베르데 설명]
{{아프리카}}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
{{라틴 연합}}
{{프랑코포니}}
{{아프리카 연합 회원국}}
{{전거 통제}}
[[분류:카보베르데| ]]
[[분류:섬나라]]
[[분류:공화국]]
[[분류:유엔 회원국]]
[[분류:포르투갈어권]]
[[분류:프랑코포니 회원국]]
[[분류:아프리카 연합 회원국]]
[[분류: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 회원국]]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출처 필요|날짜=2020-10-25}}
{{다른 뜻}}
{{나라 정보
|나라이름=캐나다
|현지이름=캐나다
|다른표기={{lang|en|Canada}}
|국기_그림=Flag of Canada (Pantone).svg
|문장_그림=Royal Coat of Arms of Canada.svg
|나라_표어={{llang|la|A Mari Usque Ad Mare}}<br>{{llang|en|From Sea to Sea}}<br>{{llang|fr|D'une océan à l'autre}}
|나라_표어_설명=(바다에서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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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어=[[영어]], [[프랑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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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_칭호=[[캐나다 국왕|국왕]]
|지도자_칭호1=[[캐나다 총독|총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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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_이름=[[찰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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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 [[입헌군주제]], [[연방제]], [[양원제]], [[의원내각제]]
|주권=독립
|주권_설명=[[영국]]으로부터 독립
|정부수립=[[1867년 영국령 북아메리카 법|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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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9,984,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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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면_비율=11.76 (2015)<ref>{{웹 인용|title=Surface water and surface water change |url=https://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SURFACE_WATER# |access-date=October 11, 2020 |publisher=[[OECD]] |archive-date=December 9, 2018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81209191004/https://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SURFACE_WATER |url-status=live}}</ref>
|인구어림년도=2015
|어림인구수=4,128,599<ref>{{웹 인용|date=September 25, 2024 |title=Population estimates, quarterly |url=https://www150.statcan.gc.ca/t1/tbl1/en/tv.action?pid=1710000901 |url-status=live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925184234/https://www150.statcan.gc.ca/t1/tbl1/en/tv.action?pid=1710000901 |archive-date=September 25, 2024 |access-date=September 25, 2024 |publisher=Statistics Canada}}</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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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설명=<sup>1</sup> 캐나다는 [[캐나다의 군주|국왕]]을 국가 원수로 채택한 나라이므로 [[왕실 국가]]는 [[영국의 국가|God Save the King]]이 된다.
|}}
'''캐나다'''({{llang|en|Canada}}, {{llang|fr|Canada|카나다}})는 [[북아메리카]]에 위치한 나라로, 10개의 주와 3개의 준주로 구성되어 있다. 캐나다는 서쪽으로 [[태평양]]에 접하고, 동쪽으로는 [[대서양]]에 접하며 북쪽으로는 [[북극해]]와 접한다. 캐나다는 총 면적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이고 세계에서 가장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의 [[캐나다-미국 국경|국경]]은 세계에서 가장 긴 국제 육지 국경이다. 캐나다는 기상 및 지질학적 측면에서 매우 다양한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4,1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대부분 [[북위 55도]] 아래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가 적은 국가다. 캐나다의 수도는 [[오타와]]이며, 세 개의 가장 큰 대도시 지역은 [[토론토]], [[몬트리올]], [[밴쿠버]]이다.
캐나다가 현재 위치한 지역에는 수천 년 동안 원주민들이 계속해서 거주해 왔다. 16세기부터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화|영국]]과 [[프랑스의 아메리카 식민지화|프랑스]] 탐험대가 대서양 해안을 탐험한 뒤 나중에 캐나다에 정착했다. 여러 무력 충돌의 결과로, 프랑스는 1763년에 북미 대륙의 거의 모든 식민지를 영국에 양도하였다. 1867년, 세 개의 [[영국령 북아메리카]] 식민지가 연합하여 [[캐나다 연방]]을 형성했고, 캐나다 연방은 4개의 주를 가진 [[연방제]] [[자치령]]이다. 이 때부터 캐나다의 주와 준주는 늘어났고 영국으로부터 더 큰 자치권을 부여받았다. 1931년의 [[웨스트민스터 헌장]]과 [[1982년 캐나다 법]]을 통해 캐나다의 자치권은 더욱 커졌고, 이 법들은 영국 의회에 대한 캐나다의 법적 종속을 완전히 끊은 것이었다.
캐나다는 [[웨스트민스터 체제|웨스트민스터 전통]]을 따르는 [[의원내각제]] [[입헌군주국]]이다. 캐나다의 정부 수반은 [[캐나다의 총리|총리]]로, 총리는 선출된 [[캐나다 하원|하원]]의 [[신임 공급|신임]]을 얻을 수 있는 능력에 의해 직위를 유지하며, 캐나다의 의례적 국가 원수인 군주를 대표하는 [[캐나다의 총독|총독]]이 총리를 임명한다. 캐나다는 [[영연방 왕국]]의 일원이며, 연방 관할구역에서 공식적으로 [[영어]]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캐나다의 이중 언어|이중 언어]] 국가이다. 캐나다는 정부 투명성, 삶의 질, 경제 경쟁력, 혁신, 교육, 성평등 등의 국제적인 측정에서 매우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대규모 이민의 결과로 세계에서 가장 인종적으로 다양한 다문화 국가 중 하나다. 미국과의 길고 복잡한 관계는 캐나다의 역사, 경제,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선진국인 캐나다는 세계적으로 높은 명목 1인당 소득을 자랑하며, 풍부한 천연자원과 잘 발달된 국제 무역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선진 경제를 가지고 있다. 중간 강국으로 인정받는 캐나다는 다자주의와 국제주의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유지하며, 이는 평화유지와 개발도상국 원조와 같은 외교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캐나다는 여러 국제 기구와 포럼에 속해 있다.
== 지명 ==
{{본문|캐나다의 지명}}
캐나다의 어원에 대해 여러 이론이 제기되었으나, 현재는 이 이름이 세인트로렌스 이로쿼이어로 "마을" 또는 "정착지"를 의미하는 카나타(kanata)에서 유래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ref>{{서적 인용|last1=Olson |first1=James Stuart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uyqepNdgUWkC&pg=PA109 |title=Historical Dictionary of European Imperialism |last2=Shadle |first2=Robert |publisher=Greenwood Publishing Group |year=1991 |isbn=978-0-313-26257-9 |page=109}}</ref> 1535년에 현재 퀘벡시 지역의 원주민들이 프랑스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에게 [[스타다코나]](Stadacona) 마을을 가리키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했다.<ref name="Rayburn2001">{{서적 인용|last=Rayburn |first=Alan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aiUZMOypNB4C&pg=PA14 |title=Naming Canada: Stories about Canadian Place Names |publisher=[[University of Toronto Press]] |year=2001 |isbn=978-0-8020-8293-0 |pages=14–22}}</ref> 이후 카르티에는 "캐나다"라는 단어를 그 특정 마을뿐만 아니라 스타다코나 추장 [[도나코나]](Donnacona)가 지배하는 전체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다.<ref name="Rayburn2001"/> 1545년까지는 유럽의 책과 지도에서 세인트로렌스강을 따라 있는 작은 지역을 '캐나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ref name="Rayburn2001"/>
16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 [[캐나다 (누벨프랑스)|캐나다]]는 세인트로렌스강을 따라 위치한 누벨프랑스의 일부를 가리키는 지명이었다.<ref>{{서적 인용|last=Magocsi |first=Paul R. |url=https://archive.org/details/encyclopediaofca0000unse_q5r1 |title=Encyclopedia of Canada's Peoples |publisher=University of Toronto Press |year=1999 |isbn=978-0-8020-2938-6 |page=1048 |url-access=registration}}</ref> 영국이 누벨프랑스를 정복한 후, 이 지역은 1763년부터 1791년까지 [[퀘벡주 (1763년~1791년)|퀘벡주]]로 불렸다.<ref name="f014">{{웹 인용| title=Province of Quebec 1763-91 | website=The Canadian Encyclopedia | date=May 14, 2020 | url=https://www.thecanadianencyclopedia.ca/en/article/province-of-quebec-1763-91 | access-date=October 1, 2024}}</ref> 1791년, 이 지역은 [[어퍼캐나다]]와 [[로어캐나다]]라는 두 개의 영국 식민지로 나뉘었으며, 이 두 식민지는 1841년 [[캐나다주]]로 통합될 때까지 "[[더 캐나다스]]"(The Canadas)라고 불렸다.<ref>{{웹 인용|year=1841 |title=An Act to Re-write the Provinces of Upper and Lower Canada, and for the Government of Canada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BCQtAAAAYAAJ&pg=PA20 |publisher=J.C. Fisher & W. Kimble |page=20}}</ref>
1867년 [[캐나다 연방|연방]] 결성 시, [[런던 회의 (1867년)|런던 회의]]에서 캐나다가 새로운 국가의 법적 명칭으로 채택되었고, "[[자치령]]"(dominion)이라는 단어가 국가의 칭호로 부여되었다.<ref>{{서적 인용|last=O'Toole |first=Roger |chapter-url=https://books.google.com/books?id=OGHgLlxfh7wC&pg=PA137 |title=Holy Nations and Global Identities: Civil Religion, Nationalism, and Globalisation |publisher=Brill |year=2009 |isbn=978-90-04-17828-1 |editor-last=Hvithamar |editor-first=Annika |page=137 |chapter=Dominion of the Gods: Religious continuity and change in a Canadian context |editor-last2=Warburg |editor-first2=Margit |editor-last3=Jacobsen |editor-first3=Brian Arly}}</ref> 1950년대까지 영국은 더 이상 "[[캐나다 자치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캐나다를 "[[영연방 왕국]]"으로 간주했다.<ref>{{서적 인용|last=Morra |first=Irene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b9OLDwAAQBAJ&pg=PT49 |title=The New Elizabethan Age: Culture, Society and National Identity after World War II |publisher=I.B.Tauris |year=2016 |isbn=978-0-85772-867-8 |page=49}}</ref><ref>{{서적 인용| last=McIntyre | first=D. | title=British Decolonization, 1946–1997: When, Why and How did the British Empire Fall? | publisher=Bloomsbury Publishing | series=British History in Perspective | year=1998 | isbn=978-1-349-26922-8 |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h5FKEAAAQBAJ&pg=PA108 | page=108}}</ref> [[캐나다의 헌법]]을 완전히 캐나다의 통제 아래 두게 한 [[1982년 캐나다법]](Canada Act)에서는 오직 "캐나다"라는 명칭만 사용되었다. 1982년 후반, 캐나다 내 국가 공휴일의 이름도 자치령의 날(Dominion Day)에서 [[캐나다의 날]](Canada Day)로 변경되었다.<ref name="buckner">{{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KmXnLGX7FvEC&pg=PA37 |title=Canada and the British Empire |publisher=[[Oxford University Press]] |year=2008 |isbn=978-0-19-927164-1 |editor-last=Buckner |editor-first=Philip |pages=37–40, 56–59, 114, 124–125}}</ref>
== 역사 ==
{{본문|캐나다의 역사}}
{{참고|캐나다의 역사기록학}}
=== 유럽인 도착 이전 ===
인류는 최소 약 14,000여 년 전부터 [[시베리아]]에서부터 [[베링 해협]]을 건너 현재 북아메리카와 캐나다 지역에 모여 살기 시작하였다.<ref>{{서적 인용|last=Dillehay |first=Thomas D. |title=The Settlement of the Americas: A New Prehistory |publisher=Basic Books |year=2008 |isbn=978-0-7867-2543-4 |page=61}}</ref><ref>{{서적 인용|last1=Fagan |first1=Brian M.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fMneCwAAQBAJ&pg=PA124 |title=World Prehistory: A Brief Introduction |last2=Durrani |first2=Nadia |publisher=Routledge |year=2016 |isbn=978-1-317-34244-1 |page=124}}</ref> 이 시기에 캐나다 지방에 정착한 고인디언(Paleo-Indian)들이 모여 살던 블루피시 동굴과 올드크로우 평원 등이 있다.<ref>{{서적 인용|last=Rawat |first=Rajiv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AwlYiuPAX-UC&pg=PT58 |title=Circumpolar Health Atlas |publisher=University of Toronto Press |year=2012 |isbn=978-1-4426-4456-4 |page=58}}</ref> 원주민 사회의 특성으로는 영구적인 정착지, 농업, 복잡한 사회적 계층 구조, 그리고 무역 네트워크 등이 포함되었다.<ref>{{서적 인용 |last=Hayes |first=Derek |title=Canada: An Illustrated History |publisher=Douglas & Mcintyre |year=2008 |isbn=978-1-55365-259-5 |pages=7, 13}}</ref><ref>{{서적 인용|last=Macklem |first=Patrick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quM1xyFyfhQC&pg=PA170 |title=Indigenous Difference and the Constitution of Canada |publisher=University of Toronto Press |year=2001 |isbn=978-0-8020-4195-1 |page=170}}</ref> 이들 문화 중 일부는 15세기 말과 16세기 초에 유럽 탐험가들이 도착할 때쯤 붕괴되었으며,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서만 발견되었다.<ref>{{서적 인용|last=Sonneborn |first=Liz |title=Chronology of American Indian History |date=January 2007 |publisher=Infobase Publishing |isbn=978-0-8160-6770-1 |pages=2–12}}</ref> 현재 캐나다에 있는 원주민은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s), 이누이트(Inuit), 그리고 [[메티스]](Métis)를 포함하며,<ref name="GraberKuprecht2012">{{서적 인용|last1=Graber |first1=Christoph Beat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5dv2d57n52MC&pg=PA366 |title=International Trade in Indigenous Cultural Heritage: Legal and Policy Issues |last2=Kuprecht |first2=Karolina |last3=Lai |first3=Jessica C. |author-link3=Jessica Lai |publisher=Edward Elgar Publishing |year=2012 |isbn=978-0-85793-831-2 |page=366}}</ref> 메티스는 17세기 중반 유럽 정착민과 퍼스트 네이션 사람들이 결혼하여 이후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한 혼혈 출신이다.<ref name="GraberKuprecht2012" />
[[파일:Indigenous population by census division.svg|upright=1.3|섬네일|[[2021년 캐나다 인구조사]]에 따른 인구 조사 구역별 자칭 원주민 정체성([[퍼스트 네이션]], [[이누이트]], [[메티스]]) 비율을 보여주는 캐나다 지도.<ref name="Statistics Canada 2022 u867">{{웹 인용|title=Census Program Data Viewer dashboard |website=Statistics Canada |date=February 9, 2022 |url=https://www12.statcan.gc.ca/census-recensement/2021/dp-pd/dv-vd/cpdv-vdpr/index-eng.cfm |access-date=February 3, 2024|archive-date=January 25, 2024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40125123112/https://www12.statcan.gc.ca/census-recensement/2021/dp-pd/dv-vd/cpdv-vdpr/index-eng.cfm |url-status=live}}</ref>]]
유럽인들이 처음 정착지를 세울 당시 원주민 인구는 약 20만 명에서<ref name="dying">{{서적 인용|last1=Wilson |first1=Donna M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p_pMVs53mzQC&pg=PA25 |title=Dying and Death in Canada |last2=Northcott |first2=Herbert C |publisher=University of Toronto Press |year=2008 |isbn=978-1-55111-873-4 |pages=25–27}}</ref> 200만 명 사이였던 것으로 추정되며,<ref>{{서적 인용|last=Thornton |first=Russell |title=A population history of North America |publisher=[[Cambridge University Press]] |year=2000 |isbn=978-0-521-49666-7 |editor-last=Haines |editor-first=Michael R |pages=13, 380 |chapter=Population history of Native North Americans |editor-last2=Steckel |editor-first2=Richard Hall}}</ref> 캐나다 왕립 원주민 문제 조사 위원회는 약 50만 명을 원주민 추정 인구 수치로 보고 있다.<ref>{{서적 인용 |last=O'Donnell |first=C. Vivian |title=Indians in Contemporary Society |publisher=Government Printing Office |year=2008 |isbn=978-0-16-080388-8 |editor-last=Bailey |editor-first=Garrick Alan |series=Handbook of North American Indians |volume=2 |page=285 |chapter=Native Populations of Canada |chapter-url=https://books.google.com/books?id=Z1IwUbZqjTUC&pg=PA285}}</ref> 유럽의 식민지화로 인해 원주민 인구는 최소 40%에서 최대 80%까지 감소했다.<ref>{{서적 인용|last=Marshall |first=Ingeborg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ckOav3Szu7oC&pg=PA442 |title=A History and Ethnography of the Beothuk |publisher=McGill-Queen's University Press |year=1998 |isbn=978-0-7735-1774-5 |page=442}}</ref> 이러한 감소의 원인으로는 [[콜롬버스 교환|유럽 질병의 전파]](원주민에게 자연 면역이 없었음),<ref>{{저널 인용| last=Collen | first=Evelyn Jane | last2=Johar | first2=Angad Singh | last3=Teixeira | first3=João C. | last4=Llamas | first4=Bastien | title=The immunogenetic impact of European colonization in the Americas | journal=Frontiers in Genetics | publisher=Frontiers Media SA | volume=13 | date=2022-08-05 | issn=1664-8021 | doi=10.3389/fgene.2022.918227 | doi-access=free | page=1-8}}</ref><ref>{{서적 인용|last=True Peters |first=Stephanie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v0zEiM_hijsC&pg=PA39 |title=Smallpox in the New World |publisher=Marshall Cavendish |year=2005 |isbn=978-0-7614-1637-1 |page=39}}</ref> 모피 무역을 둘러싼 갈등, 식민지 당국과 정착민들의 충돌, 그리고 정착민들의 원주민 토지 강탈 및 몇몇 국가들의 자연 붕괴 등이 포함된다.<ref>{{서적 인용|last1=Laidlaw |first1=Z.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Ec-_BwAAQBAJ&pg=PT150 |title=Indigenous Communities and Settler Colonialism: Land Holding, Loss and Survival in an Interconnected World |last2=Lester |first2=Alan |publisher=Springer |year=2015 |isbn=978-1-137-45236-8 |page=150}}</ref><ref>{{서적 인용|last=Ray |first=Arthur J. |url=https://archive.org/details/ihavelivedheresi0000raya/page/244 |title=I Have Lived Here Since The World Began |publisher=Key Porter Books |year=2005 |isbn=978-1-55263-633-6 |page=[https://archive.org/details/ihavelivedheresi0000raya/page/244 244]}}</ref>
유럽계 캐나다인과 퍼스트 네이션 및 이누이트 인구 간의 초기 상호작용은 갈등이 없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평화로웠다.<ref>{{서적 인용|last=Preston |first=David L.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L-9N6-6UCnoC&pg=PA43 |title=The Texture of Contact: European and Indian Settler Communities on the Frontiers of Iroquoia, 1667–1783 |publisher=[[University of Nebraska Press]] |year=2009 |isbn=978-0-8032-2549-7 |pages=43–44}}</ref> 퍼스트 네이션과 메티스는 특히 북미 모피 무역 기간 동안 유럽의 "쿠뢰르 데 보아(coureurs des bois)"와 보야저(voyageurs)가 대륙을 탐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ref>{{서적 인용|last=Miller |first=J.R.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TcPckf7snr8C&pg=PT34 |title=Compact, Contract, Covenant: Aboriginal Treaty-Making in Canada |publisher=University of Toronto Press |year=2009 |isbn=978-1-4426-9227-5 |page=34}}</ref> 퍼스트 네이션과의 초기 유럽 상호작용은 우정과 평화 조약에서 원주민 토지의 강탈로 변화했다.<ref>{{서적 인용 |last=Williams |first=L. |title=Indigenous Intergenerational Resilience: Confronting Cultural and Ecological Crisis |publisher=Taylor & Francis |series=Routledge Studies in Indigenous Peoples and Policy |year=2021 |isbn=978-1-000-47233-2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HehEEAAAQBAJ&pg=PT51 |page=51}}</ref>
<ref>{{서적 인용|last=Turner |first=N.J. |title=Plants, People, and Places: The Roles of Ethnobotany and Ethnoecology in Indigenous Peoples' Land Rights in Canada and Beyond |publisher=McGill-Queen's University Press |series=McGill-Queen's Indigenous and Northern Studies |year=2020 |isbn=978-0-2280-0317-5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JVjZDwAAQBAJ&pg=PA14 |page=14}}
}}</ref> 18세기 후반부터 유럽계 캐나다인들은 원주민들을 캐나다의 서구식 사회에 녹아들 것을 강요했다.<ref>{{서적 인용|last=Asch |first=Michael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9Uae4mTTyYYC&pg=PA28 |title=Aboriginal and Treaty Rights in Canada: Essays on Law, Equity, and Respect for Difference |publisher=UBC Press |year=1997 |isbn=978-0-7748-0581-0 |page=28}}</ref> 캐나다에서 정착민 식민주의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절정에 달했다.<ref>{{서적 인용|author=Commission de vérité et réconciliation du Canada |title=Canada's Residential Schools: The History, Part 1, Origins to 1939: The Final Report of the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of Canada, Volume I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7gWQCwAAQBAJ&pg=PA3 |date=January 1, 2016 |publisher=McGill-Queen's University Press |isbn=978-0-7735-9818-8 |pages=3–7}}</ref><ref>{{서적 인용|last=Lux |first=M.K. |title=Separate Beds: A History of Indian Hospitals in Canada, 1920s-1980s |publisher=University of Toronto Press |series=G - Reference, Information and Interdisciplinary Subjects Series |year=2016 |isbn=978-1-4426-1386-7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o9gQDAAAQBAJ&pg=PA7 |page=7}}</ref><ref>{{서적 인용|last1=Kirmayer |first1=Laurence J.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AXYDxvx3zSAC&pg=PA9 |title=Healing Traditions: The Mental Health of Aboriginal Peoples in Canada |last2=Guthrie |first2=Gail Valaskakis |publisher=UBC Press |year=2009 |isbn=978-0-7748-5863-2 |page=9}}</ref> 2008년 캐나다 정부의 화해 위원회 설립으로 보상 기간이 시작되었다.<ref name="trc">{{웹 인용|year=2015 |title=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of Canada: Calls to Action |url=http://www.trc.ca/websites/trcinstitution/File/2015/Findings/Calls_to_Action_English2.pdf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50615202024/http://www.trc.ca/websites/trcinstitution/File/2015/Findings/Calls_to_Action_English2.pdf |archive-date=June 15, 2015 |publisher=National Centre for Truth and Reconciliation |page=5}}</ref> 여기에는 캐나다 정부의 문화적 집단 학살에 대한 인정,<ref name="TRCSummary">{{웹 인용 |title=Honouring the Truth, Reconciling for the Future: Summary of the Final Report of the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of Canada |url=https://nctr.ca/assets/reports/Final%20Reports/Executive_Summary_English_Web.pdf |website=National Centre for Truth and Reconciliation |publisher=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of Canada |access-date=January 6, 2019 |date=May 31, 2015 |url-status=live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60706170855/http://www.trc.ca/websites/trcinstitution/File/2015/Findings/Exec_Summary_2015_05_31_web_o.pdf |archive-date=July 6, 2016}}</ref> 합의된 보상,<ref name="trc"/> 실종 및 살해된 원주민 여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같은 인종 차별 문제의 개선이 포함되었다.<ref name="Ministère de la Justice 2017">{{웹 인용|title=Principles respecting the Government of Canada's relationship with Indigenous peoples |website=Ministère de la Justice |date=July 14, 2017 |url=https://www.justice.gc.ca/eng/csj-sjc/principles-principes.html |archive-date=June 10, 2023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30610052703/https://www.justice.gc.ca/eng/csj-sjc/principles-principes.html |url-status=live}}</ref>
=== 유럽의 식민지화 ===
[[파일:Nouvelle-France map-en.svg|upright=1.3|섬네일|1750년 당시 [[북아메리카]] 내 영유권 주장. [[영국령 아메리카]] (분홍), [[누벨프랑스]] (파랑), [[누에바에스파냐]] (주황); [[캘리포니아]], [[태평양 북서부]], 그리고 [[그레이트베이슨]]은 표시되지 않았다.<ref name="Chapman p.">{{미디어 인용|last=Chapman |first=Frederick T. |title=European Claims in North America in 1750 |jstor=community.15128627 |url=https://jstor.org/stable/community.15128627 |access-date=July 23, 2023}}</ref>]]
유럽에서 동부 캐나다 해안을 처음으로 탐험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노레그 왕국|노르웨이]] 탐험가 [[레이프 에이릭손]](Leif Erikson)이다.<ref>{{백과사전 인용 |last=Wallace |first=Birgitta |date=October 12, 2018 |title=Leif Eriksson |url=https://www.thecanadianencyclopedia.ca/en/article/leif-ericsson |encyclopedia=The Canadian Encyclopedia |access-date=June 4, 2020 |archive-date=April 13, 2021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10413193628/https://www.thecanadianencyclopedia.ca/en/article/leif-ericsson |url-status=live}}</ref><ref>{{서적 인용|last1=Johansen |first1=Bruce E.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sGKL6E9_J6IC&pg=PA727 |title=Encyclopedia of American Indian History |last2=Pritzker |first2=Barry M. |publisher=ABC-CLIO |year=2007 |isbn=978-1-85109-818-7 |pages=727–728}}</ref> 약 1000년경, [[노르웨이인]]들은 [[뉴펀들랜드]] 북쪽 끝에 위치한 [[랑스 오 메도즈]](L'Anse aux Meadows)에서 작고 단명한 야영지를 세웠으며, 이곳은 약 20년 동안 간헐적으로 노르웨이인이 점령했다.<ref name="CordellLightfoot2008">{{백과사전 인용|title=L'Anse aux Meadows National Historic Site |encyclopedia=Archaeology in America: An Encyclopedia |publisher=ABC-CLIO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arfWRW5OFVgC&pg=PA82 |year=2009 |pages=27, 82 |isbn=978-0-313-02189-3 |last2=Lightfoot |first2=Kent |last3=McManamon |first3=Francis |last4=Milner |first4=George |first1=Linda S. |last1=Cordell}}</ref> 이후 유럽의 추가적인 탐험은 이루어지지 않다가 1497년, 항해사 [[존 캐벗]](John Cabot)이 [[헨리 7세]]의 이름으로 캐나다 대서양 연안을 탐험하고 영유권을 주장했다.<ref name="BlakeKeshen2017p19">{{서적 인용 |last1=Blake |first1=Raymond B.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z4kwDwAAQBAJ&pg=PA19 |title=Conflict and Compromise: Pre-Confederation Canada |last2=Keshen |first2=Jeffrey |last3=Knowles |first3=Norman J. |last4=Messamore |first4=Barbara J. |publisher=University of Toronto Press |year=2017 |isbn=978-1-4426-3553-1 |page=19}}</ref> 1534년에는 프랑스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가 [[세인트로렌스만]]을 탐험하였고, 7월 24일에 "프랑스 왕 만세"라는 문구가 새겨진 10미터(33피트) 높이의 십자가를 세우며 [[프랑수아 1세 (프랑스)|프랑수아 1세]]의 이름으로 [[누벨프랑스]]를 영토로 삼았다.<ref>{{서적 인용 |last1=Cartier |first1=Jacques |url=https://archive.org/details/voyagesofjacques0000cart |title=The Voyages of Jacques Cartier |last2=Biggar |first2=Henry Percival |last3=Cook |first3=Ramsay |publisher=University of Toronto Press |year=1993 |isbn=978-0-8020-6000-6 |page=[https://archive.org/details/voyagesofjacques0000cart/page/n79 26] |url-access=registration}}</ref> 16세기 초반에는 [[바스크인]]과 [[포르투갈인]]이 개척한 항해 기술을 바탕으로 유럽의 선원들이 대서양 연안에 계절별로 고래잡이 및 어업 기지를 세웠다. 대체로 발견 시대 초기의 정착지는 혹독한 기후, 무역로의 항해 문제, 그리고 [[스칸디나비아]]의 경쟁 기지들로 인해 단명한 것으로 보인다.<ref>{{서적 인용 |last=Baten |first=Jörg |title=A History of the Global Economy. From 1500 to the Present |date=2016 |publisher=Cambridge University Press |isbn=978-1-107-50718-0 |page=84}}</ref><ref>{{서적 인용|last=Wynn |first=Graeme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bxGFaFvo2oMC&pg=PA49 |title=Canada and Arctic North America: An Environmental History |publisher=ABC-CLIO |year=2007 |isbn=978-1-85109-437-0 |page=49}}</ref>
1583년, [[험프리 길버트]] 경(Sir Humphrey Gilbert)은 [[엘리자베스 1세]]의 왕실 특권에 의해 뉴펀들랜드의 [[세인트존스 (뉴펀들랜드)|세인트존스]](St. John's)에 북아메리카 최초로 영국계 계절 기지를 세웠다.<ref>{{서적 인용 |last=Rose |first=George A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tDNe7GOOwfwC&pg=PA209 |title=Cod: The Ecological History of the North Atlantic Fisheries |date=October 1, 2007 |publisher=[[Breakwater Books]] |isbn=978-1-55081-225-1 |page=209}}</ref> 1600년, 프랑스는 [[세인트로렌스강]]을 따라 [[타두삭]](Tadoussac)에 첫 번째 계절 무역 기지를 세웠다.<ref name="CordellLightfoot2008" /> 1603년에 프랑스 탐험가 [[사뮈엘 드 샹플랭]](Samuel de Champlain)이 도착하여 1605년에 [[포르루아얄]](Port Royal)과 1608년에 [[퀘벡시]](Quebec City)에 유럽인 최초의 상시 거주지를 설립했다.<ref>{{서적 인용|last1=Kelley |first1=Ninette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3IHyRvsCiKMC&pg=PA27 |title=The Making of the Mosaic: A History of Canadian Immigration Policy |last2=Trebilcock |first2=Michael J. |date=September 30, 2010 |publisher=University of Toronto Press |isbn=978-0-8020-9536-7 |page=27}}</ref> 누벨프랑스의 식민지 개척자들 중에서 캐나다인들은 세인트로렌스강 유역에 광범위하게 정착했으며 [[아카디아인]]들은 오늘날의 해양 지방에 정착했고, 모피 무역상들과 가톨릭 선교사들은 [[오대호]], [[허드슨만]], [[미시시피강]] 유역을 탐험하여 [[루이지애나]]까지 이르렀다.<ref>{{서적 인용|last=LaMar |first=Howard Roberts |url=https://archive.org/details/readersencyclope00lama_0/page/355 |title=The Reader's Encyclopedia of the American West |publisher=[[University of Michigan Press]] |year=1977 |isbn=978-0-690-00008-5 |page=[https://archive.org/details/readersencyclope00lama_0/page/355 355] |author-link=Howard R. Lamar}}</ref> 17세기 중반에는 북미 모피 무역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비버 전쟁]](Beaver Wars)이 발발했다.<ref>{{서적 인용|last1=Tucker |first1=Spencer C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JsM4A0GSO34C&pg=PA394 |title=The Encyclopedia of North American Indian Wars, 1607–1890: A Political, Social, and Military History |last2=Arnold |first2=James |last3=Wiener |first3=Roberta |date=September 30, 2011 |publisher=ABC-CLIO |isbn=978-1-85109-697-8 |page=394}}</ref>
영국은 1610년에 뉴펀들랜드에 추가적인 정착지를 세웠으며, 남쪽의 [[13개 식민지]]에도 정착지를 세웠다.<ref>{{서적 인용|last1=Buckner |first1=Phillip Alfred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_5AHjGRigpYC&pg=PA55 |title=The Atlantic Region to Confederation: A History |last2=Reid |first2=John G. |publisher=University of Toronto Press |year=1994 |isbn=978-0-8020-6977-1 |pages=55–56}}</ref><ref>{{서적 인용|last=Hornsby |first=Stephen J |title=British Atlantic, American frontier: spaces of power in early modern British America |publisher=[[University Press of New England]] |year=2005 |isbn=978-1-58465-427-8 |pages=14, 18–19, 22–23}}</ref> 1689년부터 1763년까지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프렌치-인디언 전쟁|네 차례의 전쟁]]이 발발했으며, 이 중 후반부 전쟁들은 [[7년 전쟁]]의 [[북아메리카 전역]]에 포함된다.<ref>{{서적 인용|last=Nolan |first=Cathal J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Nn_61ts-hQwC&pg=PA160 |title=Wars of the age of Louis XIV, 1650–1715: an encyclopedia of global warfare and civilization |publisher=ABC-CLIO |year=2008 |isbn=978-0-313-33046-9 |page=160}}</ref>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노바스코샤]] 본토가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1763년 7년 전쟁 이후 [[캐나다 (누벨프랑스)|캐나다]]와 누벨프랑스 대부분이 영국에 넘어갔다.<ref>{{저널 인용|last=Allaire |first=Gratien |date=May 2007 |title=From 'Nouvelle-France' to 'Francophonie canadienne': a historical survey |journal=International Journal of the Sociology of Language |issue=185 |pages=25–52 |doi=10.1515/IJSL.2007.024 |issn=0165-2516}}</ref>
=== 영국령 캐나다 ===
[[파일:Benjamin West 005.jpg|섬네일|[[벤저민 웨스트]]의 작품 "[[울프 장군의 죽음]]"은 [[미국 독립 전쟁]] 당시 [[퀘벡시]]에서 벌어진 [[아브라함 평원 전투]]에서 전사한 [[제임스 울프]]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했다.<ref name="National Gallery of Canada n963">{{웹 인용|title=The Death of General Wolfe |website=National Gallery of Canada |url=https://www.gallery.ca/collection/artwork/the-death-of-general-wolfe-0 |access-date=July 23, 2023 |archive-date=July 26, 2023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30726125332/https://www.gallery.ca/collection/artwork/the-death-of-general-wolfe-0 | url-status=live}}</ref>]]
[[1763년 왕실 포고령]](Royal Proclamation)은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 조약 권리를 확립하고, 옛 누벨프랑스에서 퀘벡주를 창설했으며, [[케이프브레턴섬]](Cape Breton Island)을 노바스코샤에 병합했다.<ref name="buckner" /> 세인트존스 섬(현재의 [[프린스에드워드섬]])은 1769년에 별도의 식민지가 되었다.<ref>{{저널 인|last=Hicks |first=Bruce M |date=March 2010 |title=Use of Non-Traditional Evidence: A Case Study Using Heraldry to Examine Competing Theories for Canada's Confederation |journal=[[British Journal of Canadian Studies]] |volume=23 |issue=1 |pages=87–117 |doi=10.3828/bjcs.2010.5}}</ref> [[퀘벡]]에서 일어날 지도 모르는 갈등을 피하기 위해, 영국 의회는 [[1774년 퀘벡법]](Quebec Act)을 통과시켜 퀘벡의 영토를 오대호와 [[오하이오 계곡]]까지 확장했다. 더 중요한 것은, 퀘벡법이 퀘벡에 특별한 자치권과 자치 행정권을 부여한 시점이, 13개 식민지가 점점 더 영국 통치에 반발하고 있던 시기라는 점이었다.<ref>{{서적 인용|last=Nellis |first=Eric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b6YVX53fIsC&pg=PT331 |title=An Empire of Regions: A Brief History of Colonial British America |publisher=University of Toronto Press |year=2010 |isbn=978-1-4426-0403-2 |page=331}}</ref> 이 법은 퀘벡에서 프랑스어, 가톨릭 신앙, 그리고 프랑스 민법을 재도입함으로써 [[13개 식민지]]와 달리 독립 운동의 성장을 억제했다.<ref>{{서적 인용|last1=Stuart |first1=Peter |url=https://books.google.com/books?id=Fdx4AV1kgCsC&pg=PA101 |title=The Catholic Faith and the Social Construction of Religion: With Particular Attention to the Québec Experience |last2=Savage |first2=Allan M. |publisher=WestBow Press |year=2011 |isbn=978-1-4497-2084-1 |pages=101–102}}</ref> 왕실 포고령과 퀘벡법은 13개 식민지 주민들의 분노를 자아냈고, 이는 [[미국 혁명]] 이전에 반영국 감정을 더욱 부채질했다.<ref name="buckner" />
=== 팽창 ===
[[파일:Canada provinces evolution 2.gif|왼쪽|섬네일|300px|1867년 이후로 캐나다의 행정 구역 변화를 보여주는 지도]]1867년 7월 1일, [[영국령 북아메리카 법]]을 통하여 [[온타리오주|온타리오]], [[퀘벡주|퀘벡]], [[노바스코샤주|노바 스코티아]], [[뉴브런즈윅주|뉴브런스윅]], 이 4개의 주가 합쳐져 공식적으로 캐나다 자치령(Dominion of Canada)이 설립되었는데, 이를 [[캐나다 연방]](Canadian Confederation)이라고 한다. 각 주는 사법부를 선출하였고 교육과 보건 등에 자치권을 행사했다. 신생 캐나다 정부는 설립 직후 곧바로 [[루퍼츠랜드]]를 북서부의 영토로 합쳐 [[북서부 영토]]를 설립하였으며, 1870년 7월에 [[매니토바주|마니토바 주]]를 새롭게 만들었다. 1866년에 합쳐져 있던 브리티시컬럼비아와 밴쿠버 섬은 1871년에 캐나다 자치령에 포함되었고, 프린스에드워드 섬은 1873년에 캐나다에 가입했다. 1898년에는 금광을 찾아 북서부 지역으로 수많은 백인 광부들이 [[골드 러시|골드러시]]를 떠났고, 이에 북서부 지역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유콘 준주]]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1871년과 1896년, 캐나다 인구의 4분의 1이 미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남쪽으로 이민을 갔다.
캐나다 정부는 낙후된 서부 지방을 개발하고 유럽인 이주를 장려하기 위하여 3개의 대륙횡단철도 건설을 본격화했다. 당시 철도 건설에 핵심적으로 기여한 이들은 중국에서 온 1만 5천여 명의 이주 노동자들이었는데 이들을 향한 차별은 분리정책과 임금차별 등 이들의 이주 초기부터 철도 완공 후 {{임시링크|중국인 인두세|en|Chinese head tax|label=인두세 부과}} 등 20세기 중반까지 계속된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정부에 따르면 당시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만 투입된 9000명의 인력 중 6500명이 중국 이주노동자들이었는데, 백인 노동자들이 하루 1.5달러에서 2.5달러의 임금을 받으며 식사와 장비를 제공 받을 때 이들은 하루 1달러를 받으며 식사와 장비를 본인들이 사야 했고 폭파와 같은 가장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서만 수백 명의 중국 이주노동자들이 건설 노동 중 사고, 추운 겨울, 질병과 영양실조로 사망했다.<ref>{{웹 인용|url=https://www2.gov.bc.ca/gov/content/governments/multiculturalism-anti-racism/chinese-legacy-bc/history/building-the-railway|제목=Building the Railway|성=Government of British Columbia|웹사이트=Government of British Columbia|확인날짜=2021-03-14}}</ref> 2006년 연방정부는 차별적 인두세 정책에 대해 사과했다.<ref>{{웹 인용|url=https://www.canada.ca/en/news/archive/2006/06/prime-minister-harper-offers-full-apology-chinese-head-tax.html|제목=Prime Minister Harper Offers Full Apology for the Chinese Head Tax|성=Government of Canada|날짜=2006-06-22|웹사이트=Government of Canada|확인날짜=2021-03-14}}</ref>
캐나다 정부는 또한 개척자들의 토지 획득을 장려했고 경찰 조직을 신설하여 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하였다. 이 때 수많은 백인들이 서부 지역으로 건너갔고, 이 때문에 많은 토착 민족들이 거주지를 잃고 강제로 내쫒기거나 ‘보호구역’으로 끌려갔다. 또한 백인 사냥꾼들의 무분별한 사냥으로 한때 미대륙 전역에 있던 [[아메리카들소|아메리카 들소]]가 멸종당했으며, 이들의 빈자리를 유럽식 소 농장과 밀 농장이 채웠다. 한편 원주민들은 유럽발 전염병, 토지 상실 등의 복합적인 이유로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캐나다 정부는 이들이 보호구역으로 옮겨가는 조건으로 인도적 지원을 했다. 이 시기 캐나다 정부는 ‘인디안 법’을 제정하여 이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정부 주도 교육을 강화하여 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하기도 했다.
=== 20세기 초 ===
신생 캐나다 정부가 설립되었다고는 했어도, 1867년 영국령 북아메리카법에 따라 영국은 여전히 캐나다의 외교권을 쥐고 있었다. 이 때문에 캐나다는 자동적으로 [[제1차 세계 대전|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수 밖에 없었다. 캐나다의 자원병들은 곧바로 [[서부 전선 (제1차 세계 대전)|서부 전선]]으로 투입되었으며, 비미 리지(Vimi Ridge) 전투 등 여러 싸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대략 625,000여 명의 군인들이 유럽으로 파병되었으며, 이들 중 6만 명이 전사하였고 172,000 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렇게 많은 수의 캐나다인들이 유럽의 전쟁에서 전사하며 캐나다 내에서 회의론이 커지던 중, 친영파 내각이 병사 부족을 근거로 징병령을 추진하자 국민들은 특히 프랑스어권 퀘벡을 중심으로 이에 강하게 반발하기도 하였다. 프랑스계 국민들은 상대적으로 영국계에 비하여 차별을 받고 있었다 느꼈고, 영국에 대한 애국심도 약했기에 참전을 꺼릴 수 밖에 없던 것이다. 한편 1919년에 캐나다는 영국과는 독자적으로 국제 연맹에 가입하였고, 1931년의 [[웨스트민스터 헌장|웨스터민스터 헌장]]을 통하여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다.
캐나다는 1930년대 초의 [[대공황]]으로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이때 수많은 국민들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리자, 정부가 이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이념이 40년대와 50년대에 주류로 떠오르며 현대적 ‘복지 국가’의 개념이 대두되었다. 한편 1939년에는 당시 총리였던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윌리엄 라이언 메켄지 킹]]이 9월 10일에 [[나치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하였고, 이로 인하여 캐나다의 독립 행보가 잠시 주춤하였다.
1939년에는 첫 캐나다 파병대가 영국에 도착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대전]]을 통틀어 약 100만 명에 달하는 캐나다인들이 참전하였으며, 대략 42,000여 명이 사망하였고 55,0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캐나다 군인들은 [[노르망디 침공|노르망디 상륙 작전]], [[노르망디 전역|노르망디 전투]], [[이탈리아 전역 (제2차 세계 대전)|이탈리아 침공]], 스헬더 전투 등에서 활약을 펼쳤다. 또한 나치 독일군을 피해 피난을 온 [[네덜란드]] 왕가에게 망명지를 제공하였으며, 이 때문에 네덜란드의 해방을 도와준 은인국가로 인정받기도 했다. 또한 세계 대전기 동안 캐나다, 영국, [[중화민국]], [[소련]] 등 참전국들에게 판매할 군수품들을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캐나다 경제는 전폭적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비록 1944년에 퀘벡에서 또다시 징병 논란이 불거지기는 하였으나, 전쟁이 끝날 때쯤의 캐나다는 강한 군대와 경제를 갖고 있는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태평양 전쟁 중인 1942년 연방정부는 서부 연안에서부터 100마일(약 160km) 이내에 살고 있는 재캐나다 일본인과 일본계 캐나다인 2만 1천여 명(당시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 살던 일본계 캐나다인 중 90 퍼센트를 초과)을 감금하고 어떠한 보상도 없이 이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매각했다. 이들은 {{임시링크|전시조치법|en|War Measures Act}}에 의해 구금되었고 제2차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억류되었다. 이들은 내륙에 있는 수용소로 강제이주 당했는데, 성인 남성들은 가족과 분리되어 도로 건설에 투입되거나 가족과 함께 알버타 주와 매니토바 주에 있는 사탕무 농장으로 이주할 것을 강요받았다. 강제이주를 거부하는 이들은 포로소용소로 보내졌다. 이 조치는 캐나다 군과 캐나다 연방경찰([[왕립 캐나다 기마경찰|RCMP]])의 일본계 캐나다인들은 캐나다에 위험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의견에도 불구하고 이뤄졌다. 일본계 캐나다인의 투표권은 1948년이 되어서야 복권되었다. 1998년 브라이언 멀로니 총리는 캐나다 정부를 대표해 일본계 캐나다인들에게 행해진 잘못을 사과했고 정부는 배상금을 지불하고 전시조치법을 폐지했다.<ref name=":0">{{웹 인용|publisher=Statistics Canada |date=February 9, 2022 |title=Profile table, Census Profile, 2021 Census of Population – Canada [Country] |url=https://www12.statcan.gc.ca/census-recensement/2021/dp-pd/prof/index.cfm?Lang=E}}</ref><ref>{{웹 인용|url=https://www.thecanadianencyclopedia.ca/en/article/japanese-internment-banished-and-beyond-tears-feature|제목=Japanese Canadian Internment: Prisoners in their own Country|성=Marsh|이름=James H.|날짜=2012-02-23; 2020-09-17|웹사이트=The Canadian Encyclopedia|출판사=Historica Canada|확인날짜=2021-03-16}}</ref>
== 정치 ==
{{본문|캐나다의 정치}}
연방 단위 행정은 연방 정부({{llang|fr|Gouvernement fédéral}}, {{lang|en|Federal Government}}), 입법은 [[캐나다 의회|연방 의회]]({{llang|fr|Parlement du Canada}}, {{lang|en|Parliament of Canada}}), 사법은 연방 법원({{llang|fr|Cour fédérale}}, {{lang|en|Federal Court}})에서 처리하는 3권 분립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캐나다 연방 정부는 캐나다의 최고 행정 기관으로 [[캐나다 하원|연방하원]]({{llang|fr|Chambre des Communes}}, {{lang|en|House of Common}}),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내각을 구성하며, 내각의 수장은 [[총리]]({{llang|fr|Premier ministre}}, {{lang|en|Prime Minister}})로 연방 하원 내 다수당 대표가 연임하게 된다. 차관급 미만 연방 공무원은 비정치적, 비선출직 공무 분야 전문인으로 구성되어 정치색을 띠지 않는다. [[지방자치제]]가 발달해 각 주에는 주 정부({{llang|fr|Gouvernement provincial}}, {{lang|en|Provincial Government}})가 총리({{llang|fr|Premier ministre}}, {{lang|en|Prime Minister}})의 영도 아래에 연방정부 고유 권한인 외교권과 군통수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행정 영역을 관할한다. 주 단위에서도 [[삼권 분립]]이 이뤄져 사법부인 주 법원({{llang|fr|Cour provinciale}}, {{lang|en|Provincial Court}})과 입법부인 주 의회({{lang|en|Legislative Assembly, House of Assembly, National Assembly}}, {{llang|fr|Assemblée législative, Chambre d'assemblée, Assemblée nationale}})가 활동하고 있다.
캐나다는 세계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발전한 국가들 가운데 하나로<ref>{{뉴스 인용|url=https://www.ctvnews.ca/politics/canada-s-democracy-is-growing-stronger-as-world-weakens-report-1.5296226|제목=Canada's democracy is growing stronger as world weakens: report|성=CTV News|날짜=2021년 2월 4일}}</ref><ref>{{웹 인용|url=https://dailyhive.com/vancouver/canada-democracy-ranking-world|제목=Canada ranks as one of the strongest democracies in the world|성=DH News Vancouver}}</ref>, {{출처|날짜=2021-04-29|1=자유주의, 평등주의, 온건한 정치 이념 등을 바탕으로 가히 타국의 모범이 될 만한 정치 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출처|날짜=2021-04-29|1=자유주의 국가치고는 사회적 정의에도 상당한 가치를 두고 있으며, 그 외에도 평화, 질서, 권리, 인권 등 서구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가치들을 중심으로 정치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캐나다의 정계는 현재 크게 2개의 중도파로 나누어져 있는데, 중도 좌파 정당이자 현재 여당인 [[캐나다 자유당]](Liberal Party of Canada), 그리고 중도 우파 정당이자 현재 제 1야당인 [[캐나다 보수당]](Conservative Party of Canada)이 있다. 그 외에도 좌파 계열 정당인 [[신민주당]](New Democratic Party) 등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캐나다 정계에서는 단 한 번도 극우나 극좌 세력이 주도권을 잡은 적이 없으며, 국민들도 대체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 중도를 선호하며, 온건한 방향의 정당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2019년 총선의 결과로 5개의 정당이 대표를 가진 교섭단체로 의회에 진출하였는데, 이 5개의 정당들 중에서는 현재여당인 캐나다 자유당, 제 1야당인 캐나다 보수당, 좌파 계열 정당인 신민당, 퀘벡 분리주의 정당이자 지역정당인 [[퀘벡 블록]], 환경정당인 [[캐나다 녹색당|녹색당]] 등이 있다.
캐나다는 영국의 국왕이자 캐나다의 국왕을 최고 국가원수로 하는 의회제도를 가지고 있다. 현재의 국왕은 영국의 [[찰스 3세]]로, 그는 캐나다 외에도 15개에 달하는 타 [[코먼웰스|커먼웰스]] 국가들의 국가원수이기도 하다. 찰스 3세가 여전히 캐나다와 영국의 국가원수를 동시에 겸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캐나다와 영국은 완전히 별개의 국가이며 시스템 제도도 독자적으로 운영한다. 캐나다 국왕은 캐나다 본토에서 자신을 대리할 [[캐나다의 총독|총독]](Governor General)을 임명하며, 이 총독이 총리를 임명하거나 의회를 해산할 수 있고 내각 각료들을 임명하거나 내치는 등 캐나다에서 국왕의 권한을 대신 맡아 수행한다. 다만 실제로 총독이 국민이 뽑은 총리를 내친 경우는 거의 없다. 총독의 권력은 거의 상징적인 것이며, 총리가 단순히 최고 국가원수인 국왕의 권위를 빌어 총독의 명령을 받는 형식을 취하는 것에 불과하다.
캐나다 국왕이 캐나다의 최고 원수이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는 순전히 상징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보통 캐나다의 권력은 국민들에 의하여 선출된 [[캐나다 하원|하원]]과 내각, 그리고 이들에 의하여 선출된 장관들에 의하여 행해지며, 행정수반인 [[캐나다의 총리|캐나다 총리]]가 정무를 주로 본다. 국왕에 의하여 임명된 총독은 대부분의 경우 아무 일도 하지 않으나,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서는 장관들의 재고도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명령을 내릴 권한을 가지고 있기에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총독은 정부의 국정운영을 안정시킬 목적으로 보통 의회에서 의석을 가장 많이 차지한 다수당의 당수에게 총리직을 넘겨주며, 원내 2당의 당수는 공식적으로 야당 대표의 지위를 획득하여 정부가 국정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자연스레 맡게 된다.
현재 하원은 338명의 의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선거구제]]에 기반하여 국민들의 총선을 통하여 선출된다. 실질적으로 캐나다의 정치를 이끌어나가는 기관으로, 의회해산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총리와 평민원 의원들의 임기는 4년이다. 10년에 한 번씩 인구조사를 시행하여 각 주에 의석을 배분하는 데, 북부 3개의 준주에 최소 1개를 배분해주며 나머지 10개 주에는 원칙적으로 인구 비례에 따라 배분한다. 선거구의 인구 편차는 최대 1:3:7 정도로 나누어진다. 총선은 기본적으로 총리의 제청에 따라 총독의 명령으로 이루어지며, 헌법에 따라 총선이 한 번 치러진 후 최소한 5년 이내에는 또다시 총선이 치러져야만 한다. 다만 캐나다 선거법에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4년마다 한 번씩 10월에 총선을 실시한다. [[캐나다 상원|상원]]은 105명의 의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국민들이 뽑지 않으며 총리가 추천하고 총독이 임명한다. 상원 의원들은 주와 준주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고, 각 주 별로 의석 수가 정해져 있다. 헌법에서 상원의 정수가 113명을 넘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임기는 따로 없으나 정년은 75세로 규정되어 있다.
=== 행정 구역 ===
{{본문|캐나다의 행정 구역}}
수도인 [[오타와]]에 의회와 [[캐나다 총독|총독부]]가 있다. 캐나다 총독부는 공식적으로 [[국가 원수]]인 [[영국]]의 국왕 [[찰스 3세]]를 대리한다.
[[캐나다의 주|캐나다 주]]는 모두 10개로 다음과 같다:
* [[노바스코샤]] (주도 [[핼리팩스 (노바스코샤주)|핼리팩스]])
* [[뉴브런즈윅]] (주도 [[프레더릭턴]])
* [[뉴펀들랜드 래브라도주]] (주도 [[세인트존스 (뉴펀들랜드 래브라도주)|세인트존스]])
* [[매니토바주]] (주도 [[위니펙]])
*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주도 [[빅토리아 (브리티시컬럼비아주)|빅토리아]])
* [[서스캐처원 주|새스캐추언 주]] (주도 [[리자이나]])
* [[앨버타주]] (주도 [[에드먼턴]])
* [[온타리오주]] (주도 [[토론토]])
* [[퀘벡주]] (주도 [[퀘벡 시]])
*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주]] (주도 [[샬럿타운]])
준주는 [[노스웨스트 준주]](주도 [[옐로나이프]]), [[누나부트 준주|누나붓 준주]](주도 [[이칼루이트|이칼루잇]]), [[유콘 준주]](주도 [[화이트호스]])가 있다.
=== 외교 ===
캐나다의 국력은 약 [[미들 파워|중견국]] 정도로 평가받으며, 보통 국제 갈등 상황에서 다자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cbc.ca/radio/ideas/canada-as-a-middle-power-in-an-upended-world-time-for-a-foreign-policy-reset-1.5372192|제목=Canada as a middle power in an upended world: Time for a foreign policy reset?|성=CBS News Canada}}</ref>
캐나다의 외교 기조는 주로 국제 평화 유지에 치중되어 있으며, 국제 연합 등 국제기구들을 통하여 갈등을 해결하는 쪽으로, 웬만한 경우에는 군사력으로 충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캐나다는 약 20세기부터 전세계에서 평화유지 업무를 맡아왔으며, 해외에서 일어나는 전쟁, 내전 등에 나름대로 활발히 참여해왔으며 현재에도 참여하고 있다. 캐나다 외교부에서는 2018년에 해외정책 기본 기조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정책에는 단순히 특정 국가의 번영이 아닌, 전세계인들의 공영과 복지가 포함되어 있는 [[밀레니엄 개발 목표|밀레니엄 개발목표]] 등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도 캐나다 외교의 기본적인 골조를 보여준다.
캐나다는 [[유엔|UN]]의 창립 회원국이자, [[세계무역기구]]의 회원국이며 [[G2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또한 여러 국제기구와 헌장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1976년에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조인하였으며 1990년에는 [[미주 기구|미주기구]](OAS)에 가입하였다. 2000년에는 OAS 정상회담을 열었으며 2001년에는 3회 아메리카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또한 환태평양 경제권을 중심으로 경제적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가입하기도 하였다.
캐나다는 미국과 유난히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긴 길이의 국경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경에 군대를 배치하거나 초소를 설치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과 여러 군사 캠페인들과 합동훈련들을 벌이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서로에게 최대 교역국이기도 하며, 경제적으로도 뗄 수 없을 정도로 서로에게 종속되어 있다. 그렇다고 하여 캐나다가 미국과 완전히 궤를 같이 하는 것이 아니기에, 미국과 적대적인 국가들 중 하나인 [[쿠바]]와도 여전히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2003년에 [[이라크 전쟁]]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캐나다는 미국 외에도 역사적으로 영국과 프랑스와도 관련이 깊은 나라였기 때문에, 구 영국 식민지들의 모임인 [[코먼웰스|커먼웰스]]와 프랑스어 국가들의 모임인 [[프랑코포니]]에도 동시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를 나치 치하에서 해방시키는 데에 큰 공을 세운 역사 덕분에 현재까지도 네덜란드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파일:CF-18 Cold Lake Alberta.jpg|섬네일|캐나다 CF-18의 이륙 모습]]
=== 국방 ===
캐나다는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고, 꽤나 긴 기간 동안 영국에게 외교권을 종속당하고 있었기에 영국의 뜻에 따라 [[제2차 보어 전쟁|2차 보어 전쟁]]과 1차 세계대전, 그리고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편에서 싸웠다. 이때 자국민들과의 뜻에 반하여 자신들과 관련 없는 전쟁에 연이어 참전한 경험 탓에, 캐나다는 지금까지도 최대한 군사력을 활용하지 않고 외교적으로 갈등을 풀어나가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만 [[냉전|냉전기]]에는 [[6.25 전쟁|한국 전쟁]]에서 [[유엔군|UN군]]의 일원으로 공산군과 맞서 싸웠으며, [[소련]]의 잠재적 공습을 대비하기 위하여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를 창설하여 미국과 함께 항공을 공동 방위하는 호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1956년의 [[제2차 중동 전쟁]] 당시, 후에 캐나다의 총리에 오르게 되는 [[레스터 B. 피어슨]]은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하여 [[유엔 평화유지군|국제평화유지군]]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안하였고, 그는 이후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57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UN의 국제평화유지군은 이 때 처음으로 활약을 펼쳤고, 피어슨이 아니었다면 평화유지군의 개념 자체가 없었을 것이기에 피어슨은 보통 국제평화유지군의 입안자로 평가받는다. 캐나다는 그때 이후로 세계평화유지 임무에 여러 차례 참가하여, 최소 50여 차례에 달하는 임무에 참가하였으며 1989년까지는 UN에서 주도하는 모든 평화유지 프로젝트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르완다]], [[유고슬라비아]] 등 여러 분쟁지역에 군대를 주둔하며 국제평화에 일조하였다. 다만 1993년의 [[소말리아]] 등지에서 캐나다 군인들이 대거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렇게 적극적으로 해외에 자국 군인들을 파병하는 것에 대한 회의론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2001년에는 미국군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년~2021년)|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병하여 UN의 인정을 받고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가 주도하는 [[국제안보지원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였다. 2007년 2월에는 캐나다, 이탈리아, 영국, 노르웨이, 러시아 등이 개발도상국과 최빈국들을 위하여 거금을 들여 백신개발을 지원하겠다는 발표도 한 바 있다. 2007년 8월에는 1925년 이래 자국령이라 여겨오던 북극 내 캐나다령 영토가 러시아의 잠수함 프로젝트로 인하여 침범당한 적도 있다. 2020년 9월에는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범유행|코로나 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하여 국제 공동 백신 배분 프로젝트인 [[코벡스]]에 참여하였고, 모든 회원국들과 특히 개발도상국들에게 최대한 공평한 백신 배분이 이루어지도록 할 수 있게 노력하였다.
캐나다는 기본적으로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출처|날짜=2021-04-29|1=약 79,000여 명의 현역 군인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32,250명의 예비군이 있다.}} 캐나다 군대는 크게 육군, 해군, 공군으로 나누어진다. {{출처|날짜=2021-04-29|1=2013년에 캐나다의 국방비 지출은 약 190억 캐나다 달러 정도로, 캐나다 전체 GDP의 1% 정도에 머물렀다. 다만 캐나다 정부 측에서 발표한 2016년 국방백서에는 이후 10년 동안 국방비를 약 70%가량 증강하겠다고 밝혔다.}} {{출처|날짜=2021-04-29|1=이로 인하여 캐나다 군대는 약 88기의 전투기와, 15척의 상륙함을 추가적으로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캐나다의 총 국방비 지출은 2027년 경에 이르면 약 327억 캐나다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날짜=2021-04-29|1=현재 캐나다는 3,000명이 넘는 군인들을 해외에 파병하였으며}}, 가장 대표적으로 [[이라크]]<ref>{{뉴스 인용|url=https://www.ctvnews.ca/politics/canada-expected-to-face-pressure-to-reverse-withdrawal-send-troops-to-iraq-1.5312112|제목=Canada expected to face pressure to reverse withdrawal, send troops to Iraq|성=Lee Berthiaume|날짜=2021년 2월 17일}}</ref>, {{출처|날짜=2021-04-29|1=[[우크라이나]], [[카리브해|캐리비안 해]]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 자연 환경 ==
[[파일:Moraine Lake 17092005.jpg|섬네일|[[로키산맥|로키 산맥]]의 정경]]
=== 자연 ===
{{본문|캐나다의 자연}}
캐나다는 유럽 전체보다 땅이 넓어서 [[러시아]] 다음으로 큰 나라이다. 그러나 국토의 북쪽 절반은 메마른 [[툰드라]] 지대이고, 실제로 사람이 활동하는 지역은 동서 약 6,000km에 걸쳐 뻗쳐 있으며, [[미국]]과의 국경에서 200∼300km 사이에 있는 지대에 한정된다. 약 200만 개의 호수가 있다. 캐나다는 여섯 지형구로 나뉜다. 먼저 동부 대서양 연안의 애팔래치아산계, 서부 태평양 연안의 코르딜레라 산계, 국토의 중앙의 북쪽에서 [[허드슨만]]이 파고들어 이루어진 허드슨만 저지, 이것을 둘러싸고 국토의 절반을 차지하는 캐나다 순상지, 동쪽의 세인트로렌스강 연안 저지, 서쪽의 내륙평원인 프레이리 등이다. 이들 대지형의 배열은 대규모의 지각 변동에 따라 형성되어 제각기 다른 지형을 구성하였으나, 캐나다 모든 곳에서 볼 수 있는 빙하의 영향을 받은 점이 전체적으로 공통된 점이다. 또한 나무가 우거진 곳이 많다.
캐나다는 15개의 육상생태권과 5개의 해상생태권으로 나누어진다. 이 생태권들에는 약 8만 개가 넘는 캐나다 고유 야생종들이 살아가고 있으며, 이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수의 야생종들이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한다. 캐나다 정부 차원에서 타국에 비하여 생태계 보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인간 활동으로 인하여 자연이 훼손되는 것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보니 {{출처|날짜=2021-03-18|1=약 800여 종의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놓여 있으며 더 많은 종들이 위험 위기에 처해있다. 현재 캐나다 국토의 절반 넘게가 아직까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처녀지이며, 각종 환경 규제를 통하여 그 자연환경을 보호받고 있다. 캐나다의 타이가 숲은 그 규모가 약 300만 제곱킬로미터가 넘어가며 도로, 도시, 공장 따위 로 더럽혀지지 않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처녀림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캐나다의 전체 국토 가운데 약 42% 정도가 숲으로 덮여있으며, 덕분에 전세계 숲 면적의 8%를 캐나다가 차지하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전 국토의 약 12.1%를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해놓았으며, 이 외에도 국토의 11.4%에 달하는 면적을 또다시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어 놓았다. 호수나 강들의 경우에도 전체의 13.8%가 자연보호구역이며 8.9%가 개발제한구역이다. 캐나다의 첫 국립공원인 밴프 국립공원은 1885년에 설립되었는데, 그 면적이 약 6,641 제곱킬로미터가 넘어가며 얼음 벌판, 만년빙, 빽빽한 타이가 숲 등이 풍부하여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아름다운 국립공원들 중 하나이다. 캐나다의 슈퍼리어호 국립 해상 보호구역은 그 면적이 1만 제곱킬로미터가 넘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담수호 보호구역이기도 하다. 캐나다에서 가장 거대한 야생보호구역은 스콧 섬 해상국립 야생구역으로, 면적이 11,570 제곱킬로미터가 넘어가며 {{출처|날짜=2021-03-18|1=브리티시 컬럼비아에 살고 있는 야생 조류들의 40%가 넘게 거주할 정도로 생물들이 풍부하다.}} 캐나다는 약 18개에 달하는 유네스코 생태보존구역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 지리 ===
{{본문|캐나다의 지리}}
캐나다는 해수면 면적을 포함하면 러시아의 뒤를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거대한 규모의 국토를 가진 영토 대국이다. 그러나 워낙 많은 내륙의 담수호들 탓에 세계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내수면 비율을 가지고 있기에, 순수한 육지 면적만 따지면 세계에서 4번째로 거대한 국토를 가지고 있다. 캐나다의 영토는 동쪽으로는 [[대서양]], 북쪽으로는 [[북극해]], 서쪽으로는 태평양에 접해 있으며, 전체 면적은 약 9,984,670 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이같이 넓은 국토 덕에 해안선도 세계 최대 규모로, 약 243,042km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미국과는 8,891k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육상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북동쪽으로 [[그린란드]]와 해상 경계를, 동남쪽으로는 [[프랑스의 해외 영토|프랑스의 해외영토]]들과 해상 경계를 가지고 있다. 캐나다는 세계 최북단에 위치한 거주지이자 군사기지인 [[얼러트]]가 위치한 국가이기도 하다. 얼러트는 얼즈미어 섬의 북쪽 끝에 위치한 군사기지로, 북극점에서 약 817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며 워낙 추운 날씨 탓에 약 72명 정도만이 겨우 거주하고 있다.
캐나다의 지리환경은 매우 복합적인데, 냉대 [[타이가|타이가 숲]]이 국토 전역에 걸쳐 넓게 퍼져 있으며 북극해와 인접한 지방들과 로키 산맥 근처에는 영구적인 만년빙들이 쌓여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평평한 편인 남서부 지방의 캐나다 평원에서는 기후가 상대적으로 온난하여, 주로 대규모 농업이 이루어지고는 한다. 거대한 담수호들에서 물이 흘러나와 [[세인트로렌스강|세인트로렌스 강]]으로 흘러들어가며, 이 강이 캐나다 경제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저지대 지방을 건너 대서양으로 향하게 된다. 캐나다는 약 200만 개가 넘는 담수호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 중 563개가 면적이 100 제곱킬로미터가 넘어간다. 그 외에도 로키 산맥, 해안가 산맥, 북극 인접 지방들에도 녹지 않는 빙하들이 존재한다. 캐나다는 상대적으로 지진이 활발한 편으로, 지진과 화산활동이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아직도 많은 휴화산들이 있다.
[[파일:Canada Köppen.svg|섬네일|캐나다의 기후도]]
=== 기후 ===
캐나다의 기후를 결정하는 인자(因子)는 대륙에서의 캐나다의 위치와 대지형(大地形)과의 관계이다. 태평양 연안에는 해안산맥이 뻗어 있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대기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으므로, 습하고 따뜻한 태평양의 기단은 내륙으로 진출하지 못한다. 내륙 평원은 지형적으로 회랑(回廊)을 이루어, 겨울에는 북극지방의 찬 공기가 남하하고, 여름에는 열대성의 기단이 북상한다. 한편, 동부의 대서양 연안에서는 대기가 내륙부로부터 계속 흘러오므로 바다의 영향이 적으며, 같은 위도인 유럽에 비하면 겨울에는 추위가 심하다.
서쪽([[브리티시컬럼비아주]] 등)은 온난하여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으나, 겨울에는 비가 많이 온다. 동쪽([[온타리오주]], [[퀘벡주]], [[매니토바주]] 등)은 여름은 덥고 습하며, 겨울은 추운 기후로 사계절이 뚜렷하지만 봄과 가을이 약간 짧은 편이다. 여름에는 장마가 없으나 서부 [[밴쿠버]] 지역은 겨울에 강수량이 높아 '겨울 장마'라 불릴 정도다. 여름철은 캐나다 여러 지역이 매우 기온이 높은 편이나 기온이 섭씨 30도를 넘는 날에도 습도가 낮기 때문에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참고로 리자이나는 체감 온도가 50도 가까이 된 적도 있다. 북부의 [[옐로나이프]]와 [[화이트호스]]는 겨울이 매우 춥고 여름이 쾌적하다. 겨울이 길고 대도시라도 기온이 섭씨로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도 있다. 북부는 너무 추워 겨울이면 오후 2시만 되어도 일몰하고 남부라도 오전 8시 이후에 일출하는 날도 있다. 캐나다는 11월에 겨울이 시작되어 한국보다 일찍 겨울이 찾아오며, 반 년이나 지속되어 다음 해 4월에야 겨울이 끝난다.
== 경제 ==
{{본문|캐나다의 경제}}
캐나다는 지리 위치상(접하고 있으므로) [[미국]]의 경제에 상당히 의존하는 편으로 [[미국]]과 많은 교역을 하고 있다. 세계 10위권 경제규모이며 나라 면적이 세계 2위인 캐나다는 각 주마다 특성을 이용한 산업이 활발한 편으로, 각 주마다 주요 산업이 다르다. 특히 [[2007년]] 시점에서는 [[앨버타주]]의 오일 샌드에서 원유가 채굴되고 있기 때문에 거대한 매장량을 지닌 산유국이기도 하다.
=== 산업 ===
캐나다의 주요 산업은 [[항공]] 산업, 우주 산업, 자동차 부품 제조, 제지, 철강, [[기계]] ·[[기기]], [[에너지]] 산업, [[광업]], [[화석연료]] 채굴, 임산, [[농업]], [[어업]], 관광업, [[영화]] 산업, [[멀티미디어]] 산업, 하이테크 산업, [[컴퓨터]] 산업, [[소프트웨어]] 제작, [[게임]] 제작, [[컴퓨터 그래픽스|CG]], [[애니메이션]]이다.
임업과 그 관련 사업은 캐나다 경제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높으며, 전수출액의 3할 가까이를 제공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펄프, 제지업은 생산액, 취업자수, 수출액에 있어서 캐나다 최대의 산업이며, 신문 용지는 세계 수용의 1/2을 공급하고 있다.
수산업은 캐나다 최초의 산업이며, [[새우]], [[대구 (어류)|대구]]를 중심으로 하는 대서양 연안에서는 [[청어]], 정어리 등을 중심으로 35%를 차지하며, [[오대호]]에서는 10%에 불과하다.
광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히 발전한 산업으로서, 특히 서드베리 부근의 [[니켈]], [[퀘벡주]] 남부의 [[석면]](石綿)은 독점적인 지위에 있다. 그 밖에 [[백금]], [[금]], [[우라늄]], [[은]], [[구리]], [[아연]] 등 세계 유수의 광산물 수출국이다. 또 수력 발전은 [[미국]] 다음 가는 세계 제2위의 발전 능력을 지니며, [[보크사이트]]를 수입하여 정련하는 [[알루미늄]] 생산국이기도 하다. 금속 자원의 경우 [[우라늄]](1만 톤, 1위, 세계 시장 점유율 29.2%), [[염화 칼륨]](820만 톤, 1위, 세계 시장 점유율 30.9%), [[황|유황]](903만 톤, 2위), [[철광석]](1980만 톤, 3위), [[은]](1309톤, 3위), [[텅스텐]](2750톤, 3위), [[니켈]](16만 톤, 3위), [[아연]](100만 톤, 4위), [[코발트]](4304톤, 5위), [[염화 나트륨]](1335만 톤, 5위), [[납]](15만 톤, 5위), [[금]](141톤, 7위), [[안티몬]](143톤, 8위), [[구리]](56만 톤, 8위)을 가지고 있다. 이 외에도 [[마그네슘]], [[인]] 등도 채굴되고 있다.
캐나다는 광물 자원을 타고나서 세계 10위에 들어가는 광물이 17종류가 있다. 이하 수치는 [[2003년]] 시점의 통계 데이터에 근거한 것이다. 유기 광물 자원은 [[천연가스]](6565천조 줄, 3위), 연료가 되는 갈탄(3695만 톤, 9위)외에 [[석탄]](2954만 톤)과 [[원유]](9111만 톤)의 산출량을 가지고 있다. [[다이아몬드]]의 산출량도 1120만 캐럿에 이르러 세계 제6위이다. 주로 보유한 천연자원으로는 [[천연가스]], [[석유]], [[석탄]], [[금]], [[은]], [[구리]], [[다이아몬드]], [[철광석]], [[니켈]], [[우라늄]], [[아연]] 등이 있다. 석유([[오일샌드]] 포함)는 세계 2위의 부존량을 자랑한다. 그러나, 캐나다는 대량으로 원유를 수입한다. 중동뿐 아니라 베네수엘라와 북해에서도 들여온다. 2006년 기준 하루 평균 27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했고 85만 배럴을 수입했다. 캐나다의 원유 조달 구조가 이처럼 기이한 것은 이 나라 원유 자원의 자연적 특징 때문이다. 원유는 보통 지하의 [[유정 (석유)|유정]](油井)에서 뽑아내는 방식으로 생산되지만, 이 나라 원유는 [[오일샌드]](oil sand) 형태로 부존하기 때문에 생산 방식이 전혀 다르다.<ref>{{뉴스 인용 |url= 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11/01/17/201101170500025/201101170500025_1.html | 제목 = 귀하신 몸 석유모래가 더러운 기름? | 출판사= 동아일보사 | 뉴스 = 주간동아 | 날짜 = 2011-01-17}}</ref>
캐나다의 농업은 취업 인구의 3.4%([[1999년]])로 농업 인구는 감소하고 있으나 노동생산성은 급속히 상승하고 있다. 곡류, [[감자]] 등의 농산물 중에서도, 평원의 3주에서 생산되는 경질(硬質) 밀은 [[단백질]]의 함유량도 많아 질이 좋으며, 생산량의 3분의 2를 수출하고 있다. [[밀]] 총생산량은 25,261,400톤(2011년, 세계 7위, 3.59%)<ref>{{웹 인용 |url=http://faostat3.fao.org/ |제목=식량농업기구 통계 |확인날짜=2022-01-06 |archive-date=2016-10-20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61020154824/http://faostat3.fao.org/ |url-status=dead }}</ref>이다. 또한 낙농과 가축 사육도 왕성하다. [[온타리오주]]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는 온실(green house) 농업이 발전하는 추세에 있다.
=== 무역 ===
2018년 기준으로 캐나다의 주요 수출국은 미국(75.85%), 중국(4.32%), 영국(3.24%), 일본(2.17%), 멕시코(1.44%)이다. 주요 수입 상대국은 미국(51.33%), 중국(12.64%), 멕시코(6.33%), 독일(3.20%), 일본(3.12%)로 주요 수출입 상대국은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2017년 기준으로 총수출액은 420,632백만 달러, 총수입액은 432,405백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 품목은 석유(54,037,754백만 달러), 자동차(16,216,430백만 달러), 금 광석(13,112,868백만 달러), 석유 등(11,337,522백만 달러)이다. 주요 수입 품목은 자동차(24,734,528백만 달러), 석유(12,768,537백만 달러), 석유 등(12,297,755백만 달러), 트럭(10,646,055백만 달러)이다.<ref>[https://wits.worldbank.org/, World Integrated Trade Solution] Worldbank</ref>
=== 교통 ===
{{본문|캐나다의 교통}}
캐나다는 넓은 땅이 지형적으로 군데군데 끊겨 있고, 3,000만에 가까운 인구가 [[미국]]과의 국경과 가까운 남부 (북위 49~50도 사이)에 몰려있는 실정으로, 교통망도 이러한 토대 아래 형성되었다. 현재의 주 교통망은 [[1885년]]에 개통한 [[캐나다 내셔널 철도|대륙 횡단철도]]에서 파생한 철도망, 넓은 국토를 덮는 항공망, 각 가정에 보급된 자동차와 거주지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망, [[오대호]]로부터 센트로렌스 물길을 거쳐 [[대서양]]에 이르는 선박수송에서 [[석유]], [[가스]]의 파이프라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통 수단이 이용되고 있다. [[1962년]]에 개통된 길이 8,000km에 이르는 캐나다 횡단 고속도로의 구실도 매우 크다.<ref>《[[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북아메리카/캐나다#캐나다의 교통|캐나다의 교통]]〉</ref> 국토가 너무 넓어 토론토에서 밴쿠버까지 차로는 시속 100km의 속도 기준으로 한번도 쉬지 않고 운전을 할 경우에 약 45시간 걸리기 때문에 [[미국]]과 같이 도시와 도시를 잇는 주요 교통 수단은 [[항공기]]이다. 캐나다는 [[에어 캐나다]]와 [[웨스트제트]] 등의 항공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대한민국과는 [[대한항공]]과 [[에어 캐나다]] 2개의 항공사가 연결하고 있다.
== 사회 ==
=== 국민 ===
{{본문|캐나다인}}
==== 인구 ====
{{본문|캐나다의 인구}}
[[파일:Population Density Map of Canada (2016).png|섬네일|300px|캐나다의 인구밀도]]
캐나다의 총 인구는 2015년 기준으로 35,939,927명이다. 인구 증가율은 1.04%(2010~2015년)로 1955년부터 점점 증가하고있다. [[인구밀도]]는 4.0명/km<sup>2</sup>이며 세계 평균인 56.5명/km<sup>2</sup>와 비교해 볼 때 매우 낮은 수준이며 전체 인구의 81.8%(2015년)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중위연령은 40.6세이며 2015년 노인인구비율이 16.14로 고령화 사회이다.<ref>[http://esa.un.org/unpd/wpp/Download/Standard/Population/,UN 경제사회국 인구분과]{{깨진 링크|url=http://esa.un.org/unpd/wpp/Download/Standard/Population/,UN }} UN 세계 인구 추계 2015년판</ref>
2016년에 시행된 캐나다 인구조사에 의하면, 당시 캐나다의 인구는 35,151,728명으로, 2011년과 비교하여 약 5% 정도의 증가폭을 보였다고 한다. 2011년과 2016년 5월 사이에 캐나다의 인구는 약 170만 명 정도 증가하였는데, 이 증가분 중 약 3분의 2가 전세계에서 몰려온 이민자들 덕분이라고 하였다. 1990년과 2008년 사이에 캐나다는 전세계의 이민자들을 수용하면서 약 560만 명 정도 증가하였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약 20.4% 정도나 불어난 수이다. 현재도 캐나다 인구 증가의 주요 원동력은 이민을 통한 인구 증가로, 캐나다 내 출산으로 인한 인구 증가 효과는 이민에 비해서는 미미하다.
캐나다는 1인당 이민률이 가장 높은 축에 끼는 국가들 중 하나로, 국가 측에서도 이를 장려하고 있으며 가족 단위의 이주를 장려하여 더욱 많은 수의 이민자들이 오게 하고 있다. 캐나다의 국민들과 기존 정당들 대다수들도 현재의 이민 제도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2019년 기준으로 1년에 약 341,180명의 이민자들이 캐나다로 유입하였으며, 이들 중 대부분이 아시아에서 온 이민자들이었다. 새로 이민을 온 사람들은 주로 토론토, 몬트리얼, 밴쿠버와 같은 도시권 지대에 정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는 단순 이민자들 외에도 난민들도 많이 수용하는데, 전체 연간 세계 난민들 가운데 10% 넘게를 수용하고는 한다. 특히 2018년의 경우에는 28,000여 명에 달하는 난민들을 받아들였다.
다만 이토록 이민과 난민들을 많이 받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의 인구밀도는 1제곱킬로미터당 약 3.7명으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캐나다의 국토는 북위 41도부터 북위 83도까지 걸쳐 있는데, 이와중에 약 95%의 인구가 모두 북위 55도 아래에 모여 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전체 인구의 5분의 4에 달하는 사람들이 미국 국경과 150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 캐나다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되어 약 50%에 달하는 국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은 남부 퀘벡과 남부 온타리오 지역으로, [[세인트로렌스강]]과 담수호들이 있는 지역이다. 나머지 30% 정도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지역의 저지대나 알베르타 등에 모여 살고 있다.
캐나다인들의 약 67.7%는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고, 28.2%는 홀로 살아가고 있으며 4.1% 정도만이 가족이 아닌 사람과 살고 있다고 답했다. 6.3%의 가정만이 다세대 가정이며 20세와 34세 사이의 청년들 중 34.7%가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고 전했다. 69%의 가정이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들 중 58.6%가 담보대출을 끼고 저택을 구매했다고 한다.
==== 민족 ====
{{본문|캐나다의 소수 민족}}
캐나다는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10만 명 이상인 민족만 해도 34개 민족이 있다. [[캐나다인]]의 다수인 백인은([[2016년]] 기준 73%)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이민 온 [[유럽]]([[잉글랜드]] 18.3%, [[프랑스]] 13.6%, [[스코틀랜드]] 13.9%, [[아일랜드]] 13.4%, [[독일]] 9.6%, [[이탈리아]] 4.6%) 출신의 백인의 자손이다. 아시아계 캐나다인은 전체 인구의 14.5%이며, [[온타리오주]] 남부와 [[밴쿠버]]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원주민은 전체 인구의 3.3%이다. [[흑인]]은 전체 인구의 2.88%를 차지하는데, [[서인도 제도]]에서 온 이민들이 대부분이다. [[영어]]를 쓰는 섬나라들에서 온 이민들은 주로 [[토론토]] 지역에, [[프랑스어]]를 쓰는 [[아이티]] 이민들은 주로 [[몬트리올]] 지역에 정착하였다.
미국과는 달리 심한 인디언 박해는 없었으며 [[1982년]]의 [[헌법]]은 캐나다의 원주민 세 집단([[인디언]], [[이누이트]], [[메티스 (민족)|메티스]])을 인정한다. 법 제정 당시에는 '인디언(Indians)'이라는 명칭을 썼지만, 현재는 선주민을 의미하는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s)'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이들 원주민은 2001년 인구 조사에서 전체 인구의 3.3%인 976,305명이 집계되었는데, 그 가운데 62%가 퍼스트네이션, 30%가 메티스, 5%가 이누이트이다.
=== 종교 ===
{{bar box
|title=종교구성 (캐나다)
|titlebar=#ddd
|float=right
|bars=
{{백분율 막대|[[로마 가톨릭]] |red|38.7}}
{{백분율 막대|[[개신교]] |blue|27}}
{{백분율 막대|[[이슬람교]] |green|3.2}}
{{백분율 막대|[[힌두교]] |yellow|1.5}}
{{백분율 막대|[[무종교]] |gray|23.9}}
}}
캐나다는 종교적으로도 매우 다원적인 국가들 중 하나로,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이민자들 덕택에 수많은 종교들이 서로 공존하고 있다. 캐나다에는 국교가 없으며, 정부 차원에서도 종교적 다원주의를 정책으로 채택하고 있다.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으며, 그 어떠한 힘으로도 개인이 특정 종교로 개종하거나 개종하지 못하도록 할 수도 없다. 영국 식민지 시절, 백인들이 사회를 주도하던 시절에는 [[로마 가톨릭교회|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등이 사회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나, 이후 [[아시아계 캐나다인|아시아계]], [[아프리카계 캐나다인|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사회 주류로 통합되기 시작하자 기독교가 점차 힘을 잃고 세속적인 경향을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현대 캐나다인 대다수는 종교가 일상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성향이 강하나, 여전히 대부분이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답했다.
2011년 종교 분포 조사에 의하면, 캐나다인들 가운데 약 67.3%가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밝혔다. 이들 중 로마 가톨릭이 가장 수가 많고, 전체 인구의 38.7%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기독교 인구의 대다수는 개신교이며, 전체 캐나다인의 27%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개신교 단체는 [[캐나다연합교회|캐나다 연합교회]]로, 전체 캐나다인의 6.1%가 이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 또한 그 뒤를 [[캐나다 성공회]] 교회(anglican church of canada), 그 외 여러 [[복음주의]] 교회들이 잇는다. 1960년대 이후부터는 세속주의가 강해졌고, 2011년에는 전체의 23.9%에 달하는 국민들이 종교가 없다고 밝혔으며 2001년의 16.5%와 비교했을 때 꽤나 큰 증가세를 보였다. 기독교를 제외하고 가장 거대한 종교는 [[이슬람교]]로, 캐나다 인구 전체의 3.2%가 무슬림이다. 또한 이민자 유입에 힘입어 가장 빠르게 세를 확장하는 종교이기도 하다. 캐나다 전체 인구의 1.5%는 [[힌두교|힌두교도]]이며 1.4%는 [[시크교|시크교도]]이다.
=== 언어 ===
캐나다의 공용어는 [[영어]]<ref group=upper-alpha>캐나다에서 사용하는 영어는 표준 영국 영어와 비슷하지만 어휘나 문법 등에서 차이가 있는 [[캐나다 영어]]이다.</ref>와 [[프랑스어]]이다. [[2007년]] [[12월 4일]] 발표한 [[2006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모어는 [[영어]] 57.8%, [[프랑스어]] 22.1%, 가정어로 [[영어]]는 67.55%, [[프랑스어]]는 21.70%, 인지도를 보면 [[영어]] 85.08%, [[프랑스어]] 30.70%로 나타났다. 캐나다는 [[1969년]] [[7월 7일]] [[캐나다 공용어법|공용어법]](Official Languages Act)을 통해 [[프랑스어]]의 지위가 연방 정부를 통틀어 [[영어]]의 지위와 맞먹게 되었고 [[프랑스어]]를 모어로 하고 있는 인구는 약 600만 명이다. 그리하여 캐나다가 이중 언어 [[다문화주의]] 국가로 스스로 재정의하게 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영어]]와 [[프랑스어]]는 연방 법원과 의회, 모든 연방 기구에서 동일한 지위를 갖는다. 캐나다인의 98%가 [[영어]]나 [[프랑스어]]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구사한다. 캐나다의 모든 고등학교에서는 [[영어]]가 필수 이수 과목이고, 제2외국어로는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등의 언어가 개설되어 있다. [[프랑스어]]는 [[퀘벡주]] 전체를 비롯하여 [[뉴브런즈윅주]], [[온타리오주]]의 동부와 북부, [[서스캐처원 주|새스캐추언 주]], [[노바스코샤주]] 남쪽 해안과 북쪽 섬,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 주|프린스애드워드아일랜드]] 주 서남쪽 해안, [[매니토바주]] 남부 등 여러 군데에 흩어진 지역에서 쓰인다. [[프랑스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캐나다인 가운데 85%가 [[퀘벡주]]에 거주한다. [[노스웨스트 준주]]에서는 여러 원주민 언어들이 공식 지위를 가진다. [[누나부트 준주|누나붓 준주]]에서는 [[이누이트어]]가 다수 언어로 공식 지위를 가진다. [[누나부트 준주|누나붓 준주]]의 초등학교에서는 6학년까지 영어 대신 이누이트어를 가르친다. 또 [[2006년]] 국세조사에 따르면 [[영어]]와 [[프랑스어]]가 아닌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6,147,840(20.1%)나 차지했다. 그중에서 여러 개의 [[중국어]](1,034,090), [[이탈리아어]](476,905명), [[독일어]](466,650명), [[펀자브어]](382,585명), [[스페인어]](362,120명), [[아랍어]](286,785명), 타갈로그어(260,440명)등이 포함된다. 캐나다는 [[영연방]]의 주요 구성원이자, [[프랑스어]] 사용국 기구([[프랑코포니]])의 정회원이다.
캐나다인들은 다양한 언어를 사용한다. 공식 언어는 영어와 프랑스어로, 캐나다 전체 국민의 56%와 21%가 각각 영어와 프랑스어를 모어로 자유롭게 사용한다. 2016년 조사결과에 의하면 730만 명 정도에 달하는 국민들이 영어와 프랑스어가 아닌 타국어를 모어로 사용한다고 밝혔다. 가장 대표적인 비공식 언어로는 [[중국어]]로, 약 122만 명에 달하는 사용자들이 있다. 그 뒤를 50만 명 정도의 [[펀자브어]], 45만 명의 [[스페인어]], 41만 명의 [[아랍어]], 38만 명의 [[독일어]], 37만 명의 [[이탈리아어]] 등이 뒤따른다. 캐나다의 공식 언어 방침은 영어와 프랑스어를 동등하게 국어로 인정하는 것으로, 공공기관, 연방법원, 의회 등 모든 곳에서 영어와 프랑스어가 동시에 통용된다. 시민들은 프랑스어와 영어, 그 외 여러 소수 언어들로 공공 서비스들을 제공받을 수 있으며, 모든 지방들에서 이 언어들을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도 있다.
1977년에 제정된 프랑스어 헌장으로 인하여 퀘벡 주에서는 프랑스어를 공식적인 언어로 채택하였다. 캐나다에 살고 잇는 프랑스어 사용자들 가운데에 85%가 퀘벡 주에 살고 있으며, 그 외에도 뉴브런스윅, 알버타, 마니토바, 온타리오 등에도 많은 수의 프랑스어 사용자들이 살고 있다. 뉴브런스윅의 경우에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전체의 33% 정도에 달한다. 이외에도 노바스코티아 남서부, 브레톤 곶 섬, 프린스에드워드 섬 남중부 등에도 프랑스어 사용자들이 모여 살고 있다.
대부분의 지방들은 공식 언어를 채택하지 않았으나, 프랑스어가 영어와 함께 법원, 공공기관 등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온타리오의 경우에는 프랑스어가 상당한 위상을 가지고 있으나, 아예 법적으로까지 못박아놓지는 않았다. 캐나다에는 11개에 달하는 언어 그룹들이 있다. 이들 중 인구가 극히 적고 원주민들이 여전히 맥을 잇고 있는 북서부 영토에는 여전히 원주민들의 언어가 세를 가지고 있어서, 특히 누나부트 지방 등에서는 이누이트어가 다수어로 3개의 공식 언어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캐나다는 여러 수화들의 발생지들 중 하나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미국 수화]]이다. 다만 퀘벡 수화도 특히 퀘벡 등지에서 쓰이는 편이며, 뉴브런스윅, 온타리오, 마니토바 등의 프랑코포니 사회에서도 잘 쓰인다.
== 복지 ==
캐나다의 복지체제는 공공이 주도하는 헬스케어 시스템으로, 자국 내에서는 ‘메디케어’라고 부른다. 기본적으로는 1984년에 제정된 캐나다 보건법을 따르며, 전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의료 체제이다. 캐나다 정부 측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들에게 국가 의료보장체제 구축’을 목표로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고 있으나, 여전히 캐나다 국민의 전체 의료비 지출의 30%가 개인 사비를 들이고 있다고 전해졌다. 다만 이같은 지출은 메디케어의 보험대상이 아닌 의료 서비스 때문에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가장 대표적으로 치과, 안과, 단순처방 제조약 등이 있다. 캐나다인들의 65%에서 75% 정도가 국가의료시스템 외에도 추가적인 개인 의료 보험에 들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이 직장에서 보장해주는 의료 보장 제도를 이용한다. 그 외에도 고령자, 사회적 약자, 소수민족 등의 경우에는 정부에서 추가적으로 의료 기금을 지원해준다.
캐나다는 여러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고령화를 겪고 있고, 이 때문에 복지 지출도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는 형국이다. 점차 은퇴자와 고령자가 많아지고 노동가능인구는 갈수록 적어지고 있는 것이다. 2006년에 캐나다인의 평균 나이는 약 39.5세였고, 12년만에 약 42.4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한편 기대수명은 약 81.1세이다. 2016년 캐나다 보건부의 조사에 따르면, 약 캐나다 인구의 88%가 자신이 ‘건강이 매우 좋다’라고 답했다고 하며, 이는 같은 선진국 모임인 G7에서도 가장 높은 수치였다. 다만 캐나다 성인의 80%가 자신들이 흡연, 신체적 장애, 불균형한 식습관, 운동 부족 등 만성적인 위험 요인들을 최소 한 가지 이상은 가지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캐나다는 OECD에서 비만율이 가장 높은 국가들 중 하나이며, 당뇨 진단율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또한 4대 만성질환인 암, 호흡기 질환, 당뇨, 심장질환이 캐나다인의 사인 가운데에 약 65%를 차지한다.
2017년에 캐나다 보건부에서는 캐나다의 의료체계 지출이 당시 캐나다의 전체 GDP의 11%에 달하는 약 2,420억 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하였다. 캐나다 국민들이 의료에 지출하는 금액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라서 OECD 전체에서 약 7위에 달하였다. 캐나다는 2000년대 초반부터 OECD 평균보다 약간 높은 수준으로 의료 시스템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으며, 2017년에는 의사를 만나기 위하여 기다려야하는 대기 시간과 의료의 질을 평가했을 때도 OECD 평균보다는 상위권에 있었으나, 아직까지도 캐나다의 보건 체제가 갈 길이 멀다는 평가도 있다. 캐나다 보건 시스템의 고질적인 약점들 중 하나는 상대적으로 높은 영아 사망률, 만성질환의 만연화, 긴 대기시간, 사후 관리 체계의 부재, 처방약의 부족과 치과 부족 등이 있다.
== 문화 ==
캐나다는 다양한 이민자들을 포용하고 받아들이면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따로 창조해내는 데에 성공했다. 캐나다의 최고 문화적 성취들 가운데 하나는 [[다문화주의]]로, 여러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을 인정하면서도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어내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퀘벡의 경우에는 프랑스계 국민들이 매우 많은데, 일부 갈등은 있을지 몰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캐나다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영국계가 주축이 되어왔던 캐나다에서 스스로를 캐나다의 한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인정한 것이다. 이같은 경우들은 아랍, 중국, 아프리카계 시민들까지도 모두 적용되며, 이같이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사람들이 모인 캐나다의 문화를 표현하기 위하여 [[문화 모자이크]]라고 칭한다.
캐나다의 문화는 역사적으로 영국, 프랑스, 유럽, 기타 문화들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20세기 동안에는 새롭게 유입되기 시작한 아시아계와 아프리카계, 카리브해 계의 사람들이 점차 캐나다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고, 문학, 음악, 예술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캐나다 문화의 특성들 중 하나로 꼽히는 ‘캐나다식 유머’가 꽤나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캐나다 출신의 수많은 코미디언들이 미국 텔레비전이나 프로그램들을 통하여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는 했다. 캐나다는 자체적으로도 훌륭하게 발전된 미디어 산업을 가지고 있으나, 바로 옆에 붙어있는 미국이 워낙 거대한 미디어 산업계를 가지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그 명성이 바래는 감이 있다. 게다가 미국의 문화들이 바로 옆의 캐나다로 지나치게 쏟아져 들어와 캐나다 미디어 문화계를 압도해버리는 경향도 있기에, 캐나다는 정부 차원에서 캐나다 문화 진흥을 위하여 애쓰고 있다.
=== 상징 ===
가장 대표적인 캐나다의 상징물은 국기에도 있는 [[단풍나무|메이플 나무]] 잎사귀로, 최소 18세기 초부터 캐나다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이 때문에 캐나다는 현재 이전의 국기, 그리고 캐나다의 국장에도 메이플 잎사귀를 넣고 있다. 현재 [[캐나다의 국장]]은 [[영국의 왕실 문장|영국의 국장]]에서 크게 본을 따온 형태로, 다만 지나치게 영국식인 요소는 배제하고 캐나다의 요소를 일부 가미하였다. 그 외에도 캐나다의 표어인 ‘A Mari Usque Ad Mare', 즉 ’바다에서 바다로‘도 유명한 캐나다의 상징이며, 캐나다에서 유명한 스포츠인 [[아이스하키]]도 있다. 그 외에도 캐나다의 동물인 [[비버]], 캐나다 오리, 말 등도 있으며, 캐나다의 기마경찰, 로키 산맥 등도 캐나다를 대표하는 것들이다. 물질적인 것들로는 캐나다 맥주, [[단풍당밀|메이플시럽]], 카누, 버터타르트 등이 유명하다. 캐나다의 동전들에도 이 것들이 들어 있는데, 1달러 동전에는 캐나다 [[아비|아비새]], 50센트 동전에는 캐나다의 국장이, 니켈 동전에는 비버가 새겨져 있다. 2013년부터 쓰이지 않게 된 페니에는 메이플 잎사귀가 새겨져 있었다. 또한 현재의 20달러 지폐와 모든 캐나다 동전에는 엘리자베스 2세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 스포츠 ===
캐나다의 스포츠 역사는 17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스하키, 농구, 야구, 축구 등 여러 스포츠 등이 캐나다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캐나다의 공식적인 국민 스포츠는 아이스하키와 [[라크로스]] 등이 있다. 골프, 축구, 야구, 테니스, 스키, 배드민턴, 사이클링, 수영, 볼링, 럭비, 카누, 스쿼시 등도 인기가 많으며 많은 국민들이 유년기부터 무술을 짧게나마 배우기도 한다.
캐나다는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 리그를 미국과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캐나다의 유명한 프로 스포츠 가운데에는 캐나다 축구 리그, 라크로스 리그 등이 있다. 캐나다는 1900년 이래 거의 항상 올림픽에 참가한 바 있고, [[1976년 하계 올림픽]], [[1988년 동계 올림픽]], [[1994년 농구 챔피언십]], [[2007년 FIFA U-20 월드컵]], [[2010년 동계 올림픽]], [[2015년 FIFA 여자 월드컵|2015년 FIFA 여성 월드컵]] 등 여러 국제 경기들도 여러 차례 유치했다. 캐나다는 2015년에 범아메리카 게임, 2015년 파라판 아메리칸 게임 등도 토론토에서 유치했다. 또한 2026년에는 멕시코와 미국과 함께 [[2026년 FIFA 월드컵]]도 공동 개최할 예정이다.
== 같이 보기 ==
* {{임시링크|캐나다의 개요|en|Outline of Canada}}
== 각주 ==
=== 내용주 ===
<references group="upper-alpha" />
=== 참조주 ===
{{각주}}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 {{언어링크|en|fr}} [http://www.gc.ca/ 캐나다 정부 공식 홈페이지]
* {{언어링크|en|fr}} [http://www.international.gc.ca/index.aspx 캐나다 외무부]
* {{언어링크|ko|en}} [https://web.archive.org/web/20100111071553/http://can-ottawa.mofat.go.kr/kor/am/can-ottawa/main/index.jsp 주캐나다 대한민국 대사관]
* {{언어링크|ko|en}} [https://web.archive.org/web/20061213002554/https://www.cia.gov/cia/publications/factbook/geos/ca.html "CIA 월드 팩트북" -- 캐나다]
* {{언어링크|en}} [http://www.hanifworld.com/canadaphotos.htm 캐나다 매력의 사진] {{웨이백|url=http://www.hanifworld.com/canadaphotos.htm |date=20070519195305 }}
* {{언어링크|en|fr}} [https://web.archive.org/web/20080302170327/http://www.culture.ca/ 캐나다 문화]
* {{언어링크|ko}} [https://canadatalk.net 캐나다 생활 정보 사이트]
* {{언어링크|en}} [http://japanesecanadianhistory.ca/ Japanese Canadia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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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라리온 공화국'''({{llang|en|Republic of Sierra Leone}})은 [[아프리카]] 대륙 서부 [[대서양]] 해안에 위치한 나라이다. [[기니]], [[라이베리아]]와 국경을 접한다. 시에라리온은 아프리카에서 비교적 작은 나라의 하나로 71,740 km<sup>2</sup>의 면적이며<ref name="Sierra Leone">{{웹 인용| url=http://encarta.msn.com/encyclopedia_761563681/Sierra_Leone.html| 제목="Sierra Leone"| 저자=Encarta Encyclopedia| 확인날짜=2008-02-1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0228134322/http://encarta.msn.com/encyclopedia_761563681/Sierra_Leone.html| 보존날짜=2008-02-28| url-status=dead}}</ref> 인구는 약 6,296,803 명이다.<ref name="CIA">{{웹 인용| url=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geos/sl.html| 제목="CIA: The World Factbook: Sierra Leone"| 확인날짜=2009-04-20| archive-date=2015-10-16|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51016034059/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geos/sl.html| url-status=dead}}</ref>[[사바나 기후]]에서 [[우림]]까지 범위를 갖는 다양한 환경의 [[열대 기후]]를 지니고 있어, 우계에는 고온 다습하다.<ref name="Sierra Leone Geography">{{웹 인용| url=http://sbs.com.au/theworldnews/Worldguide/index.php3?country=178&header=3| 제목="Sierra Leone Geography"| 저자=The World Guide| 확인날짜=2008-02-1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90112013329/http://sbs.com.au/theworldnews/Worldguide/index.php3?country=178&header=3| 보존날짜=2009-01-12| url-status=dead}}</ref> [[프리타운]]은 수도, 정부의 소재지이자 가장 큰 도시이며,<ref name="Sierra Leone" /> [[보 (시에라리온)|보]]는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도시이다. 인구 10만을 넘는 다른 주요 도시들은 [[케네마]], [[코이두]], [[마케니]]이다. 시에라리온은 1827년에 설립된,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포라 베이 컬리지]] (Fourah Bay College)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천연 항구 [[엘리자베스 2세 부두]] (Queen Elizabeth II Quay,QE II Quay,Deep Water Quay)가 있다.<ref>{{웹 인용| url=http://www.visitsierraleone.org/freetown.asp| 제목="Freetown"| 저자=visitsierraleone.org| 확인날짜=2009-03-21|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90901014101/http://www.visitsierraleone.org/freetown.asp| 보존날짜=2009-09-01| url-status=dead}}</ref><ref>{{웹 인용| url=http://embassyofsierraleone.net/home/index.php?option=com_content&task=view&id=30&Itemid=106| 제목="Geography"| 저자=Republic of Sierra Leone Embassy in United States| 확인날짜=2009-03-21|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90201015734/http://embassyofsierraleone.net/home/index.php?option=com_content&task=view&id=30&Itemid=106| 보존날짜=2009-02-01| url-status=dead}}</ref> 이로 인해 ‘서아프리카의 아테네’라고 불린다.
시에라리온의 초기 거주자들은 [[셰르브로인]], [[템네인]], [[림바인]], [[타이라인]], 나중에 로마롱인으로 시에라리온에 알려진 [[멘데인]]<ref name="Precolonial tribes">Kup (1961), p. 116</ref>, 시에라리온의 동쪽에 정착했었던 [[코노인]]을 포함한다.<ref name="Sierra Leone2">{{웹 인용| url=http://www.1911encyclopedia.org/Sierra_Leone| 제목="Sierra Leone"| 저자=Classic Encyclopedia| 확인날짜=2008-02-1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0320082247/http://www.1911encyclopedia.org/Sierra_Leone| 보존날짜=2008-03-20| url-status=dead}}</ref> 1462년, 지금의 시에라리온을 '사자 산'을 뜻하는 Serra de Leão이라 이름지었던 [[포르투갈]]의 탐험가 [[페르도 다 신트랄]]이 방문했다.<ref name="Placenames of the World">Room (1995), p. 346-7</ref> [[1833년]] [[영국]]에서는 [[성공회]] 신자인 [[윌리엄 윌버포스]] 등의 [[인도주의]]자들의 노예 제도 반대 운동으로 [[노예제도]]가 금지됨으로써 해방 노예를 식민시켰는데, 그 명분은 해방 노예의 자치국을 만든다는 데 있었으나 실제로는 해방 노예들을 이주시킨 식민지를 특허 회사의 식민지 경영에 이용하고 흑인과 백인을 분리시킨다는<ref>《두 얼굴을 한 하나님-성서로 본 노예제》/김형인 지음/살림</ref> 의도가 있었다. 해방노예의 자치령의 이념은 수도 프리타운(Freetown)에 그 면목이 약간 남아 있을 뿐이다. 시에라리온은 이전에 [[노예|노예였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위한 집으로서 프리타운이 [[시에라리온 회사]]에 의해 설립되었을 때인 1792년까지 [[대서양 노예 무역|대서양 무역]]의 중요한 중심이 되었다.<ref name="History of Sierra Leone">{{웹 인용| url=http://www.historyworld.net/wrldhis/PlainTextHistories.asp?historyid=ad45| 제목="History of Sierra Leone"| 저자= History World| 확인날짜=2008-02-19}}</ref> 1808년, 프리타운은 [[대영 제국|영국]] [[국왕 식민지]] (Crown Colony)가 되었고, 1896년 시에라리온의 내부는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고<ref name="Sierra Leone2" /> 1961년에 영연방국으로 [[독립]]을 하였고, 1971년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17년간 집권한 시아카 스티븐스의 후계자로 1981년 군사령관 조세프 모모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비동맹외교노선을 추구하고 영국과 밀접하다. 산업은 원래 코코야자와 기름야자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으나, 근년 다이아몬드, 보크사이트, 철광 등의 산출로 광업국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다. 다이아몬드는 산출고가 33만 9,000캐럿으로 수출의 45%. 무역은 주로 영국과 독일 외 유럽의 나라들, 미국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프리타운은 천연의 양항이며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푸라 베이대학이 있어 ‘서아프리카의 아테네’라고 불린다. 종교는 부족종교가 성행한다.<ref>《[[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프리카/시에라리온·코트디부아르·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시에라리온]]〉</ref>
== 역사 ==
[[1961년]] [[4월 27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1997년]] 민주 대통령이던 [[아마드 테잔 카바]]가 독재자 [[포다이 상코]]의 쿠데타로 쫓겨났다가 주변 국가들의 도움으로 다시 복귀했다. 그러나 상코를 지지하는 반군 간의 [[시에라리온 내전]]이 일어나 고통을 겪은 적도 있었다.
== 지리 ==
시에라리온은 아프리카 서해안에 접하는데 적도에서 북쪽으로 벗어나 있다. 전체 면적은 71,740 km<sup>2</sup>이며 [[기니]]와 [[라이베리아]]에 접한다. 대서양을 끼고 있기도 하다.
서쪽에서부터 시에라리온은 400km에 달하는 해안선이 있고 해양 자원과 아름다운 광경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이곳을 벗어나면 낮은 늪지대가 나타나며 열대우림 평원과 농경지가 나타난다.
== 기후 ==
[[열대기후]]에 속하며 농업 주기에 적합한 두 절기가 나타난다. 우기는 5월~11월이고 건기는 12월에서 5월이다. 건기 때는 사하라 열풍이 불기도 한다. 수도인 [[프리타운]]은 해안 지방에 있는데 시에라 리온 항구에 접해 있으면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자연 항구이다.
== 경제 ==
시에라리온은 1930년에 [[다이아몬드]]가 발견된 이래, 다이아몬드 채굴을 기반으로 한 다이아몬드 수출국이다. 시에라리온 특별기업합동은 25년간 다이아몬드의 탐사권을 독점하여 이익의 다수를 정부에 상납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부분의 다이아몬드는 밀수출도 되고 있다. 남서부가 가장 다이아몬드의 매장량이 많은 지역이고, 이것과 관련하여 과거에 내전도 발생하였다. 1991~2002년 내전에 시달린 시에라리온에서는 반군조직 ‘혁명연합전선’이 주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연 평균 1억2,500만달러 어치의 다이아몬드를 생산해 무기 구입자금으로 사용했다. 이는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 (영화)|블러드 다이아몬드]]》로도 널리 알려졌다.<ref>{{뉴스 인용 |제목=코트디부아르 '핏빛 초콜릿' |url=http://news.hankooki.com/lpage/world/200707/h2007071721002584560.htm |출판사=한국일보 |저자=권혁범 기자 |날짜=2007-07-17 |확인날짜=2010-05-05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925065720/http://news.hankooki.com/lpage/world/200707/h2007071721002584560.htm |보존날짜=2011-09-25 |url-status=dead }}</ref>
== 기아문제 ==
시에라리온의 기아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매년 아일랜드의 NGO인 [[컨선월드와이드]](Concern Worldwide), 독일의 NGO인 세계기아원조(Welthungerhilfe) 그리고 미국의 연구기관인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가 협력하여 발표하는 [[세계 기아 지수|세계기아지수]](GHI)에 따르면 2016년 시에라리온의 기아지수는 100점 만점 중 35.0점으로 가장 심각한 기아점수를 기록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46.1점과 비교해봐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조사 대상이었던 118개의 개발도상국 중 112위에 해당하는 수치로 상당한 기아수준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ref>{{저널 인용|제목=Global Hunger Index-기아가 없는 세상|저널=2016 세계기아지수 보고서|성=컨선월드와이드(Concern Worldwide), 독일의 NGO인 세계기아원조(Welthungerhilfe) 그리고 미국의 연구기관인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이름=|url=http://www.concern.or.kr/load.asp?subPage=510|날짜=2017-10-13|출판사=|확인날짜=2017-08-1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70728160644/http://www.concern.or.kr/load.asp?subPage=510|보존날짜=2017-07-28|url-status=dead}}</ref>
== 인구 ==
{{본문|시에라리온의 인구}}
== 사람과 언어 ==
1991년 헌법 90조에 "국회의 업무는 영어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 종교 ==
[[이슬람교]]와 [[기독교]], 그리고 부족 신앙이 공존한다.
== 문화 ==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블러드 다이아몬드 (영화)|블러드 다이아몬드]]의 배경이 된 나라이다.
== 외교 ==
;대한관계
남북한 수교국으로 [[대한민국]]과는 1964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1973년 수교하였다. [[한국]]은 이 나라에 공관을 설치했으나 현재는 주(駐)나이지리아 공관이 겸직하고 있다.
== 각주 ==
<div class="각주" style="height: 150px; overflow: auto; padding: 1px" >
{{각주}}
</div>
== 외부 링크 ==
{{위키공용과 분류|Sierra Leone|시에라리온|Sierra Leone}}
* [https://statehouse.gov.sl/ 시에라리온 정부 사이트]
* [https://web.archive.org/web/20150504070606/http://nga-abuja.mofat.go.kr/korean/af/nga-abuja/legation/plura/sierralone/index.jsp 주 나이지리아 대한민국 대사관의 시에라리온 설명]
{{아프리카}}
{{영국 연방}}
{{OIC}}
{{아프리카 연합 회원국}}
{{전거 통제}}
[[분류:시에라리온| ]]
[[분류:영국의 옛 식민지]]
[[분류:유엔 회원국]]
[[분류:영어권]]
[[분류:아프리카 연합 회원국]]
[[분류:이슬람 협력 기구 회원국]]
[[분류:영연방 회원국]] |
{{위키낱말사전|호주}}
'''호주'''는 다음을 가리킨다.
* 호주(濠洲)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한자 음역 표기이다.
* [[호주 (법률)|호주]](戶主)는 [[호주제]]에서 규정된, 가족을 대표하는 사람을 말한다.
* [[호주 (조위)|호주]](浩周, ? ~ ?)는 [[후한]] 말기 ~ [[위 (삼국)|조위]]의 관료이다.
== 같이 보기 ==
* {{in title|호주}}
* [[후저우 (동음이의)]]
{{동음이의|지명}}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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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력 모양 ==
모든 달이 1번째 요일에 시작한다는 기준으로 만들었으며, 기준 년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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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7" |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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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7" |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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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8일|8]] || [[11월 9일|9]] || [[11월 10일|10]] || [[11월 11일|11]] || [[11월 12일|12]] || [[11월 13일|13]] || [[11월 14일|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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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2일|22]] || [[11월 23일|23]] || [[11월 24일|24]] || [[11월 25일|25]] || [[11월 26일|26]] || [[11월 27일|27]] || [[11월 28일|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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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9일|29]] || [[11월 30일|30]]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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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7" |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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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25" | [[12월 1일|1]] || width="25" | [[12월 2일|2]] || width="25" | [[12월 3일|3]] || width="25" | [[12월 4일|4]] || width="25" | [[12월 5일|5]] || width="25" | [[12월 6일|6]] || width="25" | [[12월 7일|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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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8일|8]] || [[12월 9일|9]] || [[12월 10일|10]] || [[12월 11일|11]] || [[12월 12일|12]] || [[12월 13일|13]] || [[12월 14일|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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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5일|15]] || [[12월 16일|16]] || [[12월 17일|17]] || [[12월 18일|18]] || [[12월 19일|19]] || [[12월 20일|20]] || [[12월 21일|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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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2일|22]] || [[12월 23일|23]] || [[12월 24일|24]] || [[12월 25일|25]] || [[12월 26일|26]] || [[12월 27일|27]] || [[12월 28일|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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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 [[윤년]]
[[분류:날짜|*]]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파일:Fireworks in Las Palmas.jpg|섬네일|[[라스팔마스]]의 [[신년전야]]]]
'''12월 31일'''은 [[그레고리력]]으로 365번째([[윤년]]일 경우 366번째) 날에 해당한다. 이 날이 바로 12월이자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12월달력}}
{{특정날짜요일|12|31}}
== 사건 ==
* [[406년]] - [[반달족]]과 수에비족, [[알라니족|알란족]]이 라인강을 넘어 [[갈리아]] 침공을 시작하다.
* [[535년]] - [[동로마 제국]]의 장군 [[벨리사리우스]]가 [[시칠리아]]를 점령하다.
* [[1600년]] - [[영국]], [[영국 동인도 회사|동인도 회사]] 설립.
* [[1796년]] - [[볼티모어]]가 도시로 합병되다.
* [[1918년]] - [[베를린]]에서 [[독일 공산당 (1919년)|독일 공산당]](KPD) 창당.
* [[1952년]] - [[소련]], [[창춘시|장춘 철도]]를 중국에 반환.
* [[1990년]] - [[대한민국]] 목적세인 [[방위세]]가 폐지되다.
* [[1993년]] - 대한민국 정부가 [[천연두]]를 [[예방접종]]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 [[1999년]]
** 대우자동차 채권단, [[2000년]] 6월까지 제한적 경쟁입찰로 대우자동차 매각 결정.
**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사임,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를 직무대행으로 임명.
* [[2014년]]
** [[중화인민공화국]] [[상하이]]의 신년맞이 행사장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해 30여명이 사망했다.
** 대한민국 306[[보충대]] 해체.
* [[2017년]] - 호주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주]] [[:en:Cowan, New South Wales|코완 크릭]] 예루살렘 베이에서 [[:en:de Havilland Canada DHC-2 Beaver|de Havilland Canada DHC-2 Beaver]] 수상 경비행기(1963년 제작)가 강으로 추락, 세계 최대 케이터링(출장 연회 서비스) 업체인 영국 컴퍼스그룹([[:en:Compass Group|Compass Group]])의 CEO인 리처드 커즌스(Richard Cousins) 포함 가족 5명, 조종사 1명 등 탑승자 6명이 사망하였다.
* [[2018년]] -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강북삼성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 [[임세원]]이 진료하던 환자의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 [[2022년]] - 제265대 가톨릭 교황이였던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교회의 어머니 수도원에서 선종했다.
== 문화 ==
* [[1961년]] - [[KBS 1TV|KBS TV]] 개국.
* [[1988년]] - [[대덕군]] 이 폐지되었다. [[대전광역시]]가 출범하였다.
* [[1962년]] - [[장충체육관]] 개관.
* [[1994년]] - [[중원군]]이 폐지되었다. 통합된 [[충주시]]가 출범하였다.
* [[1996년]] - [[디아블로 (비디오 게임)|디아블로]]가 출시되었다.
* [[2001년]] -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우 1.0]]부터 [[윈도우 95]]까지의 지원을 중단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인터넷 익스플로러 1]], [[인터넷 익스플로러 2|2]]의 지원도 중단했다.
* [[2003년]] -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이후 10개월 만에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대구)|중앙로역]]이 복구 공사 완료와 동시에 영업 재개하다.
* [[2004년]]
** iTV [[경인방송]] 지상파 TV 마지막 방송과 동시에 폐국하다.
**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우 NT 4.0|윈도우 NT 4.0 서버]], [[윈도우 2000|윈도우 2000 서비스팩 1]], [[인터넷 익스플로러 4]]의 모든 지원을 중단했다.
* [[2005년]]
** [[윤초]]로 인해 마지막 1분이 61초가 되다.
**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인터넷 익스플로러 5|인터넷 익스플로러 5.0, 5.01, 5.5]]의 지원을 중단했다.
* [[2011년]]
** [[미국 항공우주국]](NASA)가 달 주위 궤도에 두 개의 중력 복구 및 실내 실험 위성을 최초로 진입시키는 데 성공하다.
** [[사모아]], 표준 시간대를 [[UTC-11:00]]에서 하루를 앞당긴 [[UTC+13:00]]으로 변경.
** [[대한민국]]에서 [[네이버]], [[다음]], [[네이트]], [[엔씨소프트]], [[한게임]]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웹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 6]]에 대한 모든 지원을 중단했다.
* [[2012년]]
** [[대한민국]] 수도권의 지상파 아날로그 TV방송이 종료되면서 대한민국에서 지상파 아날로그 TV방송이 완전히 종료되었다.
** [[야후! 코리아]]가 한국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 [[2016년]] - [[중국국제텔레비전|CGTN]]이 정식 방송을 시작했다.
* [[2020년]]
** [[보이저 1호]]와 [[보이저 2호]]의 [[셧다운]]이 시작되었다.
** 대한민국의 걸그룹 [[구구단 (음악 그룹)|구구단]]이 데뷔 4년 만에 해체되었다.
* [[2021년]] - [[중부내륙선]] [[부발역|부발]] ~ [[충주역|충주]] 구간 개통.
== 탄생 ==
* [[1491년]] - 프랑스의 왕국 출신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 (~[[1557년]])
* [[1493년]] - 우르비노의 공작부인이자 섭정 [[엘레오노라 곤차가 델라 로베레]]. (~[[1570년]])
* [[1514년]] - 벨기에의 의학자, 근대 해부학의 창시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1564년]])
* [[1770년]] - 프랑스의 군인 [[루이 샤를 앙투안 드제]]. (~[[1800년]])
* [[1815년]] - 미국의 군인 [[조지 미드]]. (~[[1872년]])
* [[1869년]] - 프랑스의 화가 [[앙리 마티스]]. (~[[1954년]])
* [[1870년]] - 인도네시아의 슈퍼센티네리언 [[음바 고토]]. (~[[2017년]])
* [[1905년]] - 프랑스의 정치가 [[기 몰레]]. (~[[1975년]])
* [[1915년]] - 대한민국의 기업가 [[정주영]]. (~[[2001년]])
* [[1921년]] -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계훈제]]. (~[[1999년]])
* [[1933년]] - 미국의 배우 [[에드워드 벙커]]. (~[[2005년]])
* [[1935년]] - 사우디아라비아의 제7대 국왕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 [[1937년]] - 영국의 배우 [[앤서니 홉킨스]].
* [[1941년]] - 스코틀랜드의 전직 축구 선수 출신이자, 전직 축구 감독 [[알렉스 퍼거슨]].
* [[1943년]]
** 영국의 배우 [[벤 킹즐리]].
** 미국의 가수 [[존 덴버]]. (~[[1997년]])
* [[194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임현식]].
* [[1947년]]
** 대한민국의 가톨릭 성직자 [[이기헌 (주교)|이기헌]].
** 캐나다의 기업인 [[리처드 페디]].
* [[1953년]] - 미국의 배우, 가수 [[제인 배들러]].
* [[1954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영민 (1954년)|김영민]].
** 스코틀랜드의 정치인 [[앨릭스 새먼드]]. (~[[2024년]])
* [[1956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보연]].
* [[1958년]] - 대한민국의 성우 [[강구한]].
* [[1959년]] - 미국의 배우 [[발 킬머]].
* [[1964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박기영 (1964년)|박기영]].
* [[1965년]]
** 중국의 영화배우 [[궁리]].
** 미국의 소설가 [[니컬러스 스파크스]].
* [[1966년]] - 대한민국의 가수 [[루카 (가수)|루카]].
* [[1967년]]
** 대한민국의 장기 기사 [[김동학 (장기 기사)|김동학]].
** 일본의 배우 [[에구치 요스케]].
* [[1968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승진 (가수)|김승진]].
** 대한민국의 범죄자 [[정두영]].
* [[1969년]] - 대한민국의 배우 [[남성진]].
* [[1970년]]
** 대한민국의 배우 [[구혜령]].
** 대한민국의 배우 [[정석용 (배우)|정석용]].
* [[1977년]]
** 대한민국의 가수 [[싸이]].
** 대한민국의 배우 [[서유정]].
** 미국의 기업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 [[1978년]] - 미국의 한국계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 [[1980년]] - 대한민국의 모델 [[한윤희]].
* [[1981년]]
**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디에고 산체스]].
** 영국의 모델, 배우 [[리키 휘틀]].
* [[1982년]] - 도미니카 공화국의 야구 선수 [[훌리오 데폴라]].
* [[1983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신종길]].
** 대한민국의 힙합 프로듀서 [[에이조쿠]].
** 일본의 가수 [[이치이 사야카]].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로빈 판페르시]].
* [[1984년]]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임혜림.
* [[1985년]] - 일본의 전 축구 선수 [[다무라 유키]].
* [[1986년]] - 대한민국의 가수 미나.
* [[198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경화.
** 일본의 성우 [[후쿠하라 아야카]].
* [[1990년]] - 캐나다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패트릭 챈]].
* [[1991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나영 (가수)|김나영]].
** 대한민국의 배우 [[김성철 (배우)|김성철]].
** 우크라이나의 저널리스트, 위키인 [[이호르 코스텐코]]. (~[[2014년]])
* [[1992년]] - 대한민국의 사격 선수 김지혜.
* [[199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소주연]].
** 미국의 카레이서 [[라이언 블레이니]].
* [[1994년]]
** 대한민국의 체조 선수 [[허선미]].
** 대한민국의 배우, 모델 [[이종원 (1994년)|이종원]].
* [[1995년]]
** 대한민국의 연극배우 박소정.
** 영국의 배우 [[나디아 파크스]].
* [[1996년]]
** 대한민국의 가수 유수.
** 대한민국의 전직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운타라]].
** 일본의 아이돌 [[오오타 리오나]].
* [[1998년]]
** 미국의 배우, 모델 [[헌터 셰이퍼]].
** 대한민국의 가수 [[에크루]].
* [[1999년]] - 대한민국의 가수 [[소희 (1999년)|소희]] ([[앨리스 (음악 그룹)|앨리스]]).
* [[200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승현 (2001년)|이승현]].
* [[2005년]] - 일본의 아이돌 [[미야치 스미레]].
== 사망 ==
* [[192년]] - 로마 제국의 17대 황제 [[콤모두스]]. ([[161년]]~)
* [[335년]] - 제33대의 교황 [[교황 실베스테르 1세]]. (?~)
* [[669년]] - 당나라의 장수 [[이세적]]. ([[594년]]~)
* [[1426년]] - 잉글랜드의 군사령관이자 대법관 [[엑서터 공작 토머스 보퍼트]]. ([[1377년]]~)
* [[1469년]] - 조선의 제8대 국왕 [[예종 (조선)|예종]]. ([[1450년]]~)
* [[1510년]] -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두 번째 황후 [[비앙카 마리아 스포르차]]. ([[1472년]]~)
* [[1583년]] - 스위스의 신학자 [[토마스 에라스투스]]. ([[1524년]]~)
* [[1610년]] - 네덜란드의 수학자 [[뤼돌프 판 쾰런]]. ([[1540년]]~)
* [[1650년]] - 청나라의 예친왕 [[도르곤]]. ([[1612년]]~)
* [[1691년]] - 잉글랜드의 자연철학자, 화학자, 물리학자 [[로버트 보일]]. ([[1627년]]~)
* [[1812년]] - 프랑스의 장군 [[장바티스트 에블레]]. ([[1758년]]~)
* [[1877년]] - 프랑스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 ([[1819년]]~)
* [[1969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LG 그룹의 창설자 [[구인회 (기업인)|구인회]]. ([[1907년]]~)
* [[1971년]] - 대한민국의 정치가 [[김준연]]. ([[1895년]]~)
* [[1989년]] - 헝가리의 축구 선수, 축구 감독 [[런토시 미하이]]. ([[1928년]]~)
* [[2014년]] - 중화민국의 배우 [[브루스 라이]]. ([[1950년]]~)
* [[2015년]]
** 미국의 가수 [[내털리 콜]]. ([[1950년]]~)
** 미국의 배우 [[웨인 로저스]]. ([[1933년]]~)
** 미국의 배우 [[베스 하울랜드]]. ([[1941년]]~)
* [[2018년]]
** 대한민국의 의사 [[임세원]]. ([[1971년]]~)
** 인도의 배우 [[카데르 칸]]. ([[1937년]]~)
* [[2019년]] - 일본의 야구 선수 [[이노우에 요시오]]. ([[1941년]]~)
* [[2020년]]
** 프랑스의 영화감독 [[로베르 오셍]]. ([[1927년]]~)
** 스코틀랜드의 축구 선수, 축구 감독 [[토미 도허티]]. ([[1928년]]~)
* [[2021년]] - 미국의 배우 [[베티 화이트]]. ([[1922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사진작가 [[김중만]]. ([[1954년]]~)
** 바티칸 시국의 제265대 가톨릭 [[교황 베네딕토 16세]]. ([[1927년]]~)
* [[2023년]]
** 미국의 영화배우 [[셔키 그린]]. ([[1926년]]~)
** 대한민국의 목사 [[이재록]]. ([[1943년]]~)
** 멕시코의 영화배우 [[아나 오펠리아 무르기아]]. ([[1933년]]~)
== 기념일 ==
* [[제야의 종]] 타종식: 대한민국
* [[신년전야]]
* [[크리스마스|성탄]] 팔일 축제 내 7일 ([[서방 기독교]])
* 국제 연대의 날 International Solidarity Day ([[아제르바이잔]])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2월 30일]] 다음날: [[1월 1일]] - 전달: [[11월 30일]] 다음달: [[1월 31일]]
* [[366일|모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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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2월 30일'''은 [[그레고리력]]으로 364번째([[윤년]]일 경우 365번째) 날에 해당한다.
{{12월달력}}
{{특정날짜요일|12|30}}
== 사건 ==
* [[1066년]] -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무슬림 군중이 와지르(재상)인 Joseph ibn Naghrela를 포함하여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하였다.
* [[1853년]] - 개즈던 구입: [[미국]]이 [[멕시코]]로부터 영토를 구입하다.
* [[1895년]] - 김홍집 내각, [[단발령]] 공포.
* [[1922년]] - 제1차 소비에트 대회가 [[소련 수립 조약]]을 통해 [[소련]]이 수립되었음을 선포했다.
* [[1965년]]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필리핀]]의 [[대통령]]이 되었다.
* [[1997년]] - [[대한민국]]에서 사형수 23명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 [[2006년]] - [[이라크]]의 전직 [[대통령]] [[사담 후세인]]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 [[2011년]] - 남태평양의 섬나라 [[사모아]]와 [[토켈라우]]가 표준시간을 변경, 2011년 12월 29일에서 하루(30일)를 건너뛰고(skipped) 31일로 넘어가다. 세계에서 가장 늦게 해가 지는 나라에서 가장 빨리 해가 뜨는 나라가 되었다.
* [[2013년]] - [[여당]]과 [[야당]], 노조가 국회의 철도발전소위원회를 구성하고 [[2013년 한국철도공사 노조 파업|철도파업]]에 철회하는 내용의 합의문에 사인하였다.
* [[2014년]] - [[감비아]]에서 군인 출신 무장세력이 쿠데타를 시도를 하였다.
== 문화 ==
* [[1927년]] -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철 노선인 도쿄 지하철의 긴자 선 개통.
* [[1993년]] - 대한민국의 [[힙합]]듀오 [[듀스|듀스(DEUX)]], 《듀시즘(DEUXISM)》 발매.
* [[1996년]] -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 [[왕십리역]] 구간 개통.
* [[2000년]] - [[중화인민공화국]] [[항저우 샤오산 국제공항]] 개항.
* [[2003년]] -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로 연소된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대구)|중앙로역]] 재건.
* [[2007년]] - 만화 '[[노블레스 (만화)|노블레스]]',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시작.
* [[2008년]] - [[대전광역시의 시내버스]] 노선 전면 개편.
* [[2013년]] - [[교황 프란치스코]], 유경촌(티모테오) 신부와 정순택(베드로) 신부를 [[천주교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에 임명.
* [[2016년]] - 부산권 전철 [[동해선]] [[부전역 (한국철도공사)|부전역]] ~ [[일광역]] 8구간 개통.
== 탄생 ==
* [[39년]] - 로마 제국의 제10대 황제 [[티투스]]. (~[[81년]])
* [[1607년]] - 조선 후기의 문신, 철학자 [[송시열]]. (~[[1689년]])
* [[1865년]] - 영국의 소설가, 시인 [[러디어드 키플링]]. (~[[1936년]])
* [[1879년]] - 인도의 철학가 [[라마나 마하르시]]. (~[[1950년]])
* [[1880년]] - 독일의 음악학자 [[알프레드 아인슈타인]]. (~[[1952년]])
* [[1884년]] - 일본의 군인, 정치가 [[도조 히데키]]. (~[[1948년]])
* [[1891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안재홍]]. (~[[1965년]])
* [[1905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최영두 (1905년)|최영두]]. (~[[1996년]])
* [[191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양일동]]. (~[[1980년]])
* [[1917년]] - 대한민국의 시인 [[윤동주]]. (~[[1945년]])
* [[1920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민경식 (1920년)|민경식]]. (~[[2000년]])
** 대한민국의 작가 [[이범선]]. (~[[1982년]])
* [[1925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오중열]]. (~[[1988년]])
* [[1930년]] - 대한민국의 학자 [[정의숙]].
* [[1931년]] - 미국의 가수 [[스키터 데이비스]]. (~[[2004년]])
* [[1935년]]
** 미국의 야구 선수 [[샌디 쿠팩스]].
** 가봉의 최장 집권 대통령 [[오마르 봉고]]. (~[[2009년]])
* [[1937년]] - 영국의 축구 선수 [[고든 뱅크스]]. (~[[2019년]])
* [[1939년]]
** 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 [[이희우]]. (~[[2019년]])
** 대한민국의 물리학자 [[정근모]].
* [[1942년]]
** 미국의 영화배우 [[프레드 워드]]. (~[[2022년]])
** 미국의 음악가, 가수, 소설가, 각본가, 영화배우 [[마이클 네스미스]]. (~[[2021년]])
* [[1943년]] - 캐나다의 사격 선수 [[린다 톰]].
* [[1945년]]
** 대한민국의 법학자 [[이기수 (1945년)|이기수]].
** 대한민국의 정치인 [[강숙자]].
** 미국의 영화감독, 제작자 [[로이드 코프먼]].
* [[1946년]]
** 독일의 전직 축구 선수 출신의, 현직 축구 감독 [[베르티 포크츠]].
** 미국의 가수 [[패티 스미스]].
* [[1947년]] - 대한민국의 교수, 강사인 [[이필상]].
* [[1955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해숙]].
* [[1957년]]
** 대한민국의 축구 심판 [[김영주 (축구인)|김영주]].
** 바누아투의 정치인 [[사토 킬만]].
* [[1961년]] - 캐나다의 육상 선수 [[벤 존슨]].
* [[1963년]] - 미국의 정치인 [[마이크 폼페이오]].
* [[196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윤다훈]].
* [[1966년]] - 대한민국의 가수 [[왕소연]].
* [[1968년]] - 대한민국의 의원 [[이종호 (1968년)|이종호]].
* [[1969년]] - 에스토니아의 대통령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 [[1970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이윤정.
* [[197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최창준]].
* [[1974년]] - 대한민국의 태생 미국 입양인 출신 화제인물 [[필립 클레이]]. (~[[2017년]])
* [[1975년]]
** 오스트레일리아의 축구 선수 [[스콧 치퍼필드]].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신경현]].
** 미국의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
* [[1976년]] - 대한민국의 작가 [[최정안]].
* [[1977년]]
** 대한민국의 미술가 [[성희승]].
** 세르비아의 전 축구 선수 [[사샤 일리치]].
* [[1978년]]
** 미국의 가수, 배우 [[타이리스 깁슨]].
** [[카밀라 (가수)|카밀라]].
* [[1979년]]
** 앙골라의 축구 선수 [[플라비우 아마두]].
** 미국의 힙합 가수 [[옐라울프]].
* [[198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오지은 (배우)|오지은]].
** 대한민국의 가수 [[케이윌]].
* [[1982년]] - 대한민국의 음악가, 래퍼 [[쿤타]].
* [[1983년]]
** 대한민국의 성우 [[신경선]].
**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나인 (가수)|나인]].
** 미국의 기업인, 프로그래머, 인스타그램 공동 창업자 [[케빈 시스트롬]].
* [[1984년]]
** 미국의 농구 선수 [[르브론 제임스]].
** 미국의 가수, 배우 [[앤드라 데이]].
* [[1986년]] - 영국의 가수 [[엘리 골딩]].
* [[1987년]]
** 대한민국의 쌍둥이 배우 [[한기원]], [[한기웅 (1987년)|한기웅]].
** 대한민국의 배우 [[전성우]].
* [[198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왕수]].
* [[1989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태군 (야구 선수)|김태군]].
** 대한민국의 전 가수, 배우 [[윤보라]].
** 미국의 스케이트 선수, 배우 [[라이언 셰클러]].
* [[1990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권희동]].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서예림]].
* [[1991년]] - 대한민국의 전 아나운서, 앵커 [[김지현 (앵커)|김지현]].
* [[199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유나 (1992년)|유나]] ([[AOA (음악 그룹)|AOA]]).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데시레이 판 륀테런]].
* [[1993년]] - 독일의 축구 선수 [[루카스 레더]].
* [[199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안현호 (배우)|안현호]].
* [[1995년]]
** 대한민국의 가수 [[뷔]] ([[방탄소년단]]).
** 대한민국의 가수 [[조슈아 (가수)|조슈아]] ([[세븐틴 (음악 그룹)|세븐틴]]).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지안 (축구 선수)|김지안]].
* [[1996년]]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도인비]].
** 중국의 배우, 가수 [[쟝쩐위]].
* [[1997년]] - 대한민국의 모델 김나연.
* [[1998년]] - 일본의 가수 [[우에무라 아카리]].
* [[1999년]] - 프랑스의 축구 선수 [[장클레르 토디보]].
* [[2001년]] - 대한민국의 가수 [[J.na]].
* [[2002년]] - 대한민국의 탁구 선수 이다은.
* [[2006년]]
** 프랑스 태생 알제리의 체조 선수 [[켈리아 느무르]].
** 이탈리아의 체조 선수 [[알리체 다마토]].
== 사망 ==
* [[274년]] - 제26대 로마의 교황 [[교황 펠릭스 1세]]. (?~)
* [[1896년]] - 필리핀의 독립 운동가 [[호세 리살]]. ([[1861년]]~)
* [[1945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동아일보의 사장 [[송진우 (1890년)|송진우]]. ([[1890년]]~)
* [[1947년]]
** 영국의 철학자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 ([[1861년]]~)
** 네덜란드의 화가 [[한 판 메이헤런]]. ([[1889년]]~)
* [[1968년]]
** 소련의 군인 [[키릴 메레츠코프]]. ([[1897년]]~)
** 제1대 유엔 사무총장, 노르웨이의 정치인 [[트뤼그베 리]]. ([[1896년]]~)
* [[1993년]] - 일제강점기 태생 대한민국의 정치인 [[권성기]]. ([[1908년]]~)
* [[1997년]]
** 일본의 소설가 [[호시 신이치]]. ([[1926년]]~)
** 대한민국의 범죄자 김용제. ([[1970년]]~)
* [[2003년]] - 홍콩의 가수, 영화배우 [[매염방]]. ([[1963년]]~)
* [[2006년]] - 이라크의 대통령, 군인 [[사담 후세인]]. ([[1937년]]~)
* [[2011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근태 (1947년)|김근태]]. ([[1947년]]~)
** 영국의 교육철학가 [[리처드 스탠리 피터스]]. ([[1919년]]~)
* [[2012년]] - 대한민국의 저술가, 대학교수 [[황수관]]. ([[1945년]]~)
* [[2018년]] - 미국의 심리학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 ([[1938년]]~)
* [[2019년]] - 미국의 산업디자이너 [[시드 미드]]. ([[1933년]]~)
* [[2020년]]
** 미국의 영화배우 [[돈 웰스]]. ([[1938년]]~)
** 미국의 영화배우, 안무가, 무용가 [[아돌포 퀴노네스]]. ([[1955년]]~)
* [[2021년]] - 대한민국의 시인 [[신기선 (시인)|신기선]]. ([[1932년]]~)
* [[2022년]] - 미국의 언론인 [[바버라 월터스]]. ([[1929년]]~)
* [[2023년]]
** 일본의 가수 [[야시로 아키]]. ([[1971년]]~)
** 잉글랜드의 영화배우 [[톰 윌킨슨]]. ([[1948년]]~)
== 기념일 ==
* [[:en:Rizal Day|리잘 기념일]]: 스페인 정부에 의해 처형된 필리핀의 독립운동가 [[호세 리살]] 박사를 기리는 날, [[필리핀]]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2월 29일]] 다음날: [[12월 31일]] - 전달: [[11월 30일]] 다음달: [[1월 30일]]
* 음력: [[음력 12월 30일|12월 30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2월 30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1일'''은 [[태양력|양력]]([[그레고리력]])으로 1번째 날(첫해가 시작될 날)이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1}}
== 새해 첫날 ==
{{본문|새해 첫날}}
전세계적으로 [[새해]]를 맞이할 날인 [[새해 첫날]]로서 기념한다. [[기원전 4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카이사르]]가 [[로마 공화정]]의 유일한 권력자가 된 후, 봄의 시작에서 한겨울인 이 날로 1월 1일을 옮겼다. 그 근거가 로마의 남부 지방 이집트<ref>{{뉴스 인용|url=http://kids.dongascience.com/presscorps/newsview/8218|제목=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샐러드,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날짜=2019-08-27|출판사= 동아사이언스}}</ref>에서는 옮겨진 1월 1일이 한겨울이 아닌 따뜻한 날짜라는 것이었으며, 옮기기 전에 1월 1일은 지금의 [[3월 1일]]이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sciencetimes.co.kr/?news=달력의-유래와-각-달의-명칭|제목=달력은 동서양 역사와 문화의 산물|날짜=2020-01-04|출판사=사이언스타임즈}}</ref>
[[대한민국]]에선 이 날을 [[음력 1월 1일]]인 [[설날 (한국)|설]]과 구분하여 '양력설' 또는 '신정(新正)'이라고 부른다. [[일제강점기]]와 [[이승만]] 정부 시대와, [[박정희]] 정부 시대 때에는 이중과세(二重過歲) 문제를 없앤다는 구실로 [[새해 첫날|양력설]]만을 연휴(1월 1~3일)로 지정하고, [[설날 (한국)|음력설]]을 쇠지 못하게 강제하여 [[서울특별시|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양력설에 [[차례]]를 지내던 가정도 존재했다. 그러나, 음력설은 [[1985년]] [[설날 (한국)|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공휴일이 됐고, [[1989년]] '''[[설날 (한국)|설날]]'''이란 이름을 되찾고 3일 연휴가 됐다. 이후 양력설은 연휴가 순차적으로 폐지되고, 1월 1일 하루만 공휴일이 된 것이다.
== 사건 ==
* [[기원전 153년]] - [[로마 공화정]]의 [[집정관]]이 첫 임기를 시작하다.
* [[기원전 45년]] - [[율리우스력]]이 처음으로 도입된다.
* [[기원전 42년]] - [[로마 원로원]]이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사후 신격화하다,
* [[69년]] -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의 [[로마 군단]]이 [[갈바]]에 대한 충성맹세를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켜 [[비텔리우스]]를 황제로 추대하다.
* [[193년]] - 로마 원로원이 [[콤모두스]]의 뒤를 이을 황제로 [[페르티낙스]]를 선택하다.
* [[1001년]] - 미자르 대공 [[이슈트반 1세]]가 [[교황 실베스테르 2세]]로부터 헝가리의 왕 칭호를 받다.
* [[1068년]] - [[로마노스 4세 디오예니스]]가 [[에우도키아 마크렌보리티사]]와 결혼하고 [[동로마 제국]] 황제에 오르다.
* [[1259년]] - [[미하일 8세 팔레올로고스]]가 [[요안니스 4세]]와 [[니케아 제국]]의 공동황제로 선포되다.
* [[1438년]] - [[합스부르크 왕가]]의 [[알브레히트 2세 (독일)|알브레히트 2세]]가 헝가리 왕위에 오르다.
* [[1502년]] - 오늘날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지역이 포르투갈인에 의해 처음으로 탐험되다.
* [[1515년]] - 브루타뉴 공작 [[프랑수아 1세 (프랑스)|프랑수아]]가 [[루이 12세]]를 이어 프랑스 왕위에 오르다.
* [[1527년]] - 크로아티아의 귀족들이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1세 (신성 로마 황제)|페르디난트 1세]]를 크로아티아 국왕으로 선출하다.
* 1583년~1700년 - 그레고리력 [[1월 11일]]
* [[1651년]] - [[찰스 2세]]가 스코틀랜드 왕위에 오르다.
* 1701년~1800년 - 그레고리력 [[1월 12일]]
* 1801년~1900년 - 그레고리력 [[1월 13일]]
* 1901년~2100년 - 그레고리력 [[1월 14일]]
== 문화 ==
* [[1707년]] - [[주앙 5세]]가 포르투갈의 왕위에 오르다.
* [[1739년]] - 프랑스의 탐험가 장 바티스트 샤를 부베 데 로지에이 [[부베섬]]을 발견하다.
* [[1772년]] - 유럽 90여개 도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여행자 수표]]가 런던에서 발행되다.
* [[1788년]] - 런던에서 신문 "데일리 유니버셜 레지스터"가 제호를 [[타임스]]로 바꿔 발간되다.
* [[1800년]] -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해산되다.
* [[1801년]]
** [[주세페 피아치]]가 [[소행성]] [[세레스 (왜행성)|세레스]]를 처음으로 발견하다.
** [[아일랜드 왕국]]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합병,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영국]])이 되다.
* [[1804년]] - [[아이티]]가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나다. 아이티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최초의 흑인공화국과 두 번째 독립국가가 된다.
* [[1806년]] - [[프랑스 혁명력]]이 폐지되다.
* [[1808년]] - [[미국]]에서 [[노예]] 수입이 금지되다.
* [[1833년]] - [[영국]]이 [[포클랜드 제도]]를 점령하다.
* [[1863년]] -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노예 해방 선언]]을 하다.
* [[1877년]] - [[영국]] [[영국의 빅토리아|빅토리아 여왕]]이 [[인도 제국의 황제]]로 선포되다.
* [[1890년]] - [[이탈리아 왕국 (1861년~1946년)|이탈리아 왕국]]이 [[동아프리카]]의 [[에리트레아]]에 식민지를 설치하다.
* [[1892년]] - 뉴욕의 [[엘리스섬]]에서 [[미국으로의 이민|미국 이민자들의 입국 심사]]를 시작하다.
* [[1896년]] - [[조선]]에서 [[그레고리력]](양력)을 사용하기 시작.
* [[1899년]] - [[스페인]]의 [[쿠바]] 지배가 끝나다.
* [[1900년]] - [[대한제국]]이 [[만국 우편 연합]]에 가입했다.
* [[1901년]]
** [[나이지리아]]가 영국의 보호령이 되다.
** 영국의 식민지 [[뉴사우스웨일스주|뉴사우스웨일스]], [[퀸즐랜드주|퀸즐랜드]], [[빅토리아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태즈메이니아주|태즈메이니아]],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가 [[오스트레일리아|오스트레일리아 연방]]으로 독립하다.
* [[1905년]] - 서울-부산간의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다.
* [[1912년]] - [[신해혁명]]: [[중화민국]]이 건국을 선포하다.
* [[1927년]] - 새로운 멕시코 석유 법안이 발효되면서 [[크리스테로 전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지다.
* [[1934년]] - 샌프란시스코만의 [[앨커트래즈섬]]이 미국 연방 교도소가 되다.
* [[1942년]] - [[연합국 공동 선언]]이 26개국 공동으로 결의되다.
* [[1945년]] - [[제2차 세계 대전]]: 독일 국방군 [[루프트바페]]가 한 번의 타격으로 연합국 공군을 유럽 북부에서 몰아내려는 [[보텐플라테 작전]]을 시작하다.
* [[1949년]] - [[유엔]]이 자정 1분 전부터 [[카슈미르]]에서 휴전을 개시하여 [[1947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전쟁]]이 그에 따라 중단되다.
* [[1954년]] - 미국 [[NBC]]가 세계 최초로 컬러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다.
* [[1956년]] - [[수단]]이 [[영국]]과 [[이집트]]의 공동 식민통치에서 독립을 선언하다.
* [[1958년]] - [[유럽 경제 공동체]]가 설립되다.
* [[1959년]] - 쿠바에서 [[쿠바 혁명]]이 일어나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을 축출하다.
* [[1960년]] - [[카메룬]]이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통치로부터 독립하다.
* [[1962년]] - 대한민국에서 [[서력기원]](西曆紀元, AD) 사용을 시작함.<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34278&cid=46620&categoryId=46620 <nowiki>[네이버 지식백과] 단군기원 [檀君紀元]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nowiki>].....1961년 12월 2일부 법률 제775호 「연호에 관한 법률」에서 “대한민국의 공용연호는 서력기원으로 한다.”고 하고, 다시 그 부칙에서 “본 법은 서기 1962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 법률 제4호에 관한 법률은 이를 폐지한다. 본 법 시행 당시의 공문서 중 단기로 표시된 연대는 당해 연대에서 2,333년을 감하여 이를 서력연대로 간주한다.”고 법제화함으로써 단군기원은 폐지되고 서력기원이 채택되었다.</ref><ref name=":4">[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79506&cid=40942&categoryId=31675 <nowiki>[네이버 지식백과] 단군기원 [檀君紀元]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nowiki>].....1948년 대한민국(大韓民國) 정부의 수립과 동시에 모든 공문서(公文書)에 단군기원을 사용하기로 하여 10여 년간 시행해오다가 1961년 5 ·16군사정변 후 정부가 폐기하였고, 그 뒤부터 서력기원을 쓰고 있다.</ref> [[사모아]]가 [[뉴질랜드]]로부터 독립.
* [[1963년]] -
** [[경상남도]] [[부산광역시|부산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다.
** [[양주군]] 의정부읍이 [[의정부시]]로 승격.
* [[1971년]] - [[서울특별시|서울]]의 [[남산1호터널]]이 개통하다.
* [[1973년]] - [[덴마크]], [[아일랜드]], [[영국]]이 [[유럽 경제 공동체]]에 가입하다.
* [[1978년]] - 인도 봄베이 인근에서 [[에어 인디아 855편 추락 사고]]로 탑승한 213명이 모두 사망하다.
* [[1979년]] - [[미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정식으로 국교를 맺다.
* [[1981년]]
** 대한민국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중앙정보부]]가 [[국가안전기획부]]로 개칭되다.
** [[그리스]]가 유럽 공동체에 가입하다.
* [[1984년]] - [[브루나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 [[1989년]]
** [[오존층]]을 파괴시키는 화학 물질 사용을 금지하는 [[몬트리올 의정서]]가 발효되다.
** [[대한민국]] [[대전광역시|대전]]이 직할시로 승격됐다.
* [[1993년]] - [[체코슬로바키아의 해체]]: 하나의 국가였던 [[체코슬로바키아]]가 각각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다.
* [[1995년]]
** [[세계 무역 기구]](WHO)가 출범하다.
** [[스웨덴]], [[오스트리아]], [[핀란드]]가 [[유럽 연합]]에 가입하다.
** 대한민국에서 [[행정 구역]] 체계의 개편이 이루어져 직할시가 [[광역시]]로 개편되고 전국단위의 도농통합으로 [[창원시]] 등 도농복합시들이 출범하다.
** [[키리바시]]가 표준 시간대를 [[UTC-11:00]]와 [[UTC-10:00]]에서 [[UTC+13:00]]과 [[UTC+14:00]]로 24시간 앞당기면서 1994년 12월 31일을 없앴다.
* [[2000년]] - [[KBS 제3라디오]] AM 방송 개국.
* [[2002년]] - [[유로]] 화폐가 [[유럽 연합]]의 11개국에서 공식 통용되다.
* [[2005년]] - [[터키]]가 1백만 [[튀르키예 리라]]를 1 [[신 터키 리라]]로 하는 화폐개혁을 실시하다.
* [[2007년]]
**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유럽 연합]]에 가입하다.
** [[인도네시아]] [[마카사르 해협]] 인근에서 [[애덤에어 574편 추락 사고|애덤에어 574편]]이 추락하여 탑승한 102명이 사망하다.
* [[2008년]]
** [[크로아티아]]가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하다.
** [[대한민국]]에서 [[호주제]]가 폐지되다.
* [[2009년]]
** [[슬로바키아]]가 [[유로존]]에 가입하고 [[유로]] 사용을 시작하다.
** [[태국]] [[방콕]]의 [[산티카 클럽 화재]]로 66명이 사망하다.
* [[2010년]]
** [[슬로바키아]]가 [[유로존]]에 가입하고 [[유로]] 사용을 시작하다.
** [[미국]] [[뉴욕]]의 [[산티카 클럽 화재]]로 66명이 사망하다.
* [[2011년]]
**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알 키디신 [[콥트교]] 성당에서 [[2011년 알렉산드리아 폭탄 테러|폭탄 테러]]가 발생해 21명이 숨지고, 97명이 부상을 당했다.
** [[브라질]] 첫 여성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취임.
** [[에스토니아]]가 [[유로존]]에 가입하고 [[유로]] 사용을 시작하다.
* [[2012년]] - [[일본]]에서 규모 7.0의 지진이 시즈오카현 시즈오카 남쪽 398km 해역에서 발생하다.
* [[2013년]] -
** [[대한민국]], [[오스트레일리아]], [[아르헨티나]], [[룩셈부르크]], [[르완다]]가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비상임 이사국이 되다.
** [[MBC TV]], 24시간 종일방송 개시.
* [[2014년]] - [[라트비아]]가 [[유로]]화를 도입하였다.
* [[2015년]]
**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 5국이 [[유라시아 경제 연합]]을 출범시키다.
** [[리투아니아]]가 [[유로존]]에 19번째로 가입하였다.
* [[2017년]] - 대한민국의 [[YTN2|YTN 라이프]], [[CH.DIA]] 개국.
* [[2021년]] - [[대한민국]]에서 [[낙태죄]]가 폐지되었다.
== 탄생 ==
* [[1431년]] - 제214대 로마의 교황 [[교황 알렉산데르 6세]]. (~[[1503년]])
* [[1449년]] - 이탈리아의 정치인 [[로렌초 데 메디치]]. (~[[1492년]])
* [[1467년]] - 폴란드의 왕 [[지그문트 1세]]. (~[[1548년]])
* [[1484년]] - 스위스의 신학자 [[울리히 츠빙글리]]. (~[[1531년]])
* [[1735년]] - 미국의 은세공가 [[폴 리비어]]. (~[[1818년]])
* [[1745년]] - 미국의 군인, 정치인 [[앤서니 웨인]]. (~[[1796년]])
* [[1814년]] - 중국의 개혁가, 태평천국의 천왕 [[홍수전]]. (~[[1864년]])
* [[1823년]] - 헝가리의 시인, 활동가 [[페퇴피 샨도르]]. (~[[1849년]])
* [[1854년]] - 스코틀랜드의 인류학자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1941년]])
* [[1863년]] - 프랑스의 근대 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 (~[[1937년]])
* [[1864년]] - 중국의 화가 [[제백석]]. (~[[1957년]])
* [[1879년]]
** 영국의 소설가 [[E. M. 포스터]]. (~[[1970년]])
** 헝가리계 미국인 영화 제작자 [[윌리엄 폭스 (영화 제작자)|윌리엄 폭스]]. (~[[1952년]])
* [[1880년]] - 일본의 군인 [[스기야마 겐]]. (~[[1945년]])
* [[1881년]] - 태국의 왕 [[와치라웃]]. (~[[1925년]])
* [[1883년]]
** 미국의 군인, 정치인 [[윌리엄 J. 도너번]]. (~[[1959년]])
** 일본의 정치인, 총리 대신 [[하토야마 이치로]]. (~[[1959년]])
* [[1884년]] - 미국의 재즈 연주가 [[파파 셀레스틴]]. (~[[1954년]])
* [[1887년]] - 독일의 해군 군인 [[빌헬름 카나리스]]. (~[[1945년]])
* [[1888년]]
** 체코슬로바키아의 작가 [[에두아르트 바스]]. (~[[1946년]])
** 미국의 총기 개발자 [[존 개런드]]. (~[[1948년]])
* [[1889년]] - 일본의 바둑 기사 [[세고에 겐사쿠]]. (~[[1972년]])
* [[1892년]] - 필리핀의 독립 운동가, 정치인, 대통령 [[마누엘 로하스]]. (~[[1974년]])
* [[1894년]] - 인도의 물리학자, 수학자 [[사티엔드라 나트 보스]]. (~[[1974년]])
* [[1895년]] - 미국의 공무원 [[J. 에드거 후버]]. (~[[1972년]])
* [[1900년]]
** 일본의 군인, 외교관 [[스기하라 지우네]]. (~[[1986년]])
** 스페인계 미국인 싱어송라이터, 배우 [[사비에르 쿠가트]]. (~[[1990년]])
** 대한민국의 시인 [[이장희 (시인)|이장희]] (~[[1929년]])
* [[1904년]] - 중국의 경극 배우 [[청옌치우]]. (~[[1958년]])
* [[1905년]] - 폴란드의 수학자 [[스타니스와프 마주르]]. (~[[1981년]])
* [[1911년]] - 미국의 야구 선수 [[행크 그린버그]]. (~[[1986년]])
* [[1912년]] - 영국의 이중 간첩 [[킴 필비]]. (~[[1988년]])
* [[1919년]]
** 미국의 소설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2010년]])
** 미국의 배우 [[캐럴 랜디스]]. (~[[1948년]])
* [[1921년]]
**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백선엽]]. (~[[2020년]])
** 프랑스의 조각가 [[세자르 발다치니]]. (~[[1998년]])
** 이탈리아의 배우 [[레지나 비앙키]]. (~[[2013년]])
* [[1923년]]
** 이탈리아의 배우 [[발렌티나 코르테세]]. (~[[2019년]])
** 미국의 재주 연주자, 작곡가 [[밀트 잭슨]]. (~[[1999년]])
* [[1924년]]
** 미국의 기업인 [[찰리 멍거]]. (~[[2023년]])
** 적도 기니의 정치인, 초대 대통령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1979년]])
* [[192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서인석 (1926년)|서인석]]. (~[[2017년]])
* [[1927년]] - 미국의 경제학자, 노벨상 수상자 [[버넌 스미스]].
* [[1928년]] - 독일계 미국인 역사가 [[거하드 와인버그|게하드 와인버그]].
* [[1930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종환 (축구인)|박종환]].
** 대한민국의 교수, 사회운동가, 언론인 [[리영희]]. (~[[2010년]])
** 일본의 정치인 [[호리우치 미쓰오]]. (~[[2016년]])
** 중화민국의 배우 [[랑슝]]. (~[[2002년]])
** 시리아의 시인, 수필가 [[아도니스]].
** 수단의 정치인, 4대 대통령 [[가파르 니메이리]]. (~[[2009년]])
** 미국의 영화감독 [[프레더릭 와이즈먼]].
* [[1931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주양자]].
* [[1933년]] - 영국의 극작가 [[조 오튼]]. (~[[1967년]])
* [[1934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정몽필]]. (~[[1982년]])
* [[1935년]] - 대한민국의 과학자 [[이휘소]]. (~[[1977년]])
* [[1936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세학]]. (~[[2021년]])
** 미국의 코스트코 창립자 [[짐 시네갈]].
* [[1938년]] - 대한민국의 기업 겸 정치가 [[정선호 (1938년)|정선호]].
* [[1940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황인용]].
* [[1942년]] - 코트디부아르의 경제학자, 정치인, 대통령 [[알라산 우아타라]].
* [[1944년]]
** 수단의 군인, 정치인, 7대 대통령 [[오마르 알바시르]].
** 파키스탄의 정치인, 13대 총리 [[자파룰라 칸 자말리]]. (~[[2020년]])
* [[1945년]]
** 대한민국의 성우 [[최원형]].
** 대한민국의 성우 [[장유진 (성우)|장유진]].
* [[1946년]] - 브라질의 축구 선수, 감독 [[호베르투 히벨리누]].
* [[1948년]]
** 러시아 연방 초대 국방장관 [[파벨 그라체프]]. (~[[2012년]])
** 터키의 경제학자, 정치인, 부총리 [[데블레트 바흐첼리]].
** 아르헨티나의 기업인 [[호르헤 아모르 아메알]].
* [[1950년]] - 대한민국의 가수 겸 기업인 [[허경영]].
* [[195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안성기]].
* [[1953년]]
** 미국의 정치인, 뉴멕시코주지사 [[게리 존슨]].
** 미국의 배우 [[일레인 카오]].
* [[1954년]]
** 대한민국의 교육인 [[이건 (교육인)|이건]].
** 미국의 정치인 [[밥 메넨데스]].
** 대한민국의 MC, 아나운서 [[왕종근]].
* [[1955년]] - 대한민국의 정치가 겸 시사평론가 [[남충희]].
* [[1956년]]
** 프랑스의 법률가, 정치인, IMF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
** 일본의 배우 [[야쿠쇼 코지]].
* [[195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장경식]].
* [[1960년]]
** 대한민국의 작곡가, 피아니스트 [[양방언]].
** 미국의 기업인 [[마이클 린턴]].
* [[1961년]] - 대한민국의 국방인 [[원인철]].
* [[196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전일범]].
* [[1965년]] -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마스나리 코지]].
* [[1966년]]
** 독일의 작가, 수필가 [[히토 슈타이얼]].
** 세르비아의 정치인, 95대 총리 [[이비차 다치치]].
** 크로아티아의 기업가, 정치인, 11대 총리 [[티호미르 오레슈코비치]].
** 대한민국의 배우 [[이원종 (배우)|이원종]].
* [[1968년]]
** 크로아티아의 전 축구 선수 [[다보르 슈케르]].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현기 (1971년)|김현기]].
** 대한민국의 가수 [[김기태 (1968년)|김기태]].
* [[196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지대한]].
* [[1970년]]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전 아나운서 [[장은영]].
** 북한의 가수 [[리경숙]].
* [[1971년]] -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영화 각본가 [[송일곤]].
* [[1972년]]
**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 [[릴리앙 튀람]].
** 대한민국의 씨름 선수 [[박광덕]].
** 이란의 영화 감독 [[아시가르 파르하디]].
** 대한민국의 제7대 서울특별시의원 [[이수정 (1972년)|이수정]].
* [[197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전 야구 선수 [[김현수 (1973년 1월)|김현수]].
* [[1974년]] - 일본의 디자이너, 작가 [[미야자키 히데타카]].
* [[1975년]]
** 우크라이나의 정치인 [[안드리 시비하]].
** 아랍에미리트의 기업인 [[칼둔 알 무바라크]].
** 일본의 만화가 [[오다 에이치로]].
** 대한민국의 성우 [[김상현 (성우)|김상현]].
* [[1976년]]
** 대한민국의 배우 [[고주희 (1976년)|고주희]].
** 대한민국의 가수, 웨이크보드 선수 [[김용일 (1976년)|김용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대환 (축구인)|김대환]].
* [[1977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탐희]].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격 선수 [[김정수 (사격 선수)|김정수]].
* [[1978년]] - 인도의 배우 [[비디아 발란]].
* [[1979년]]
** 대한민국의 레슬링 선수 [[이나래 (1979년)|이나래]].
** 일본의 가수, 배우 [[도모토 코이치]].
** 인도의 배우 [[비디아 발란]].
* [[1980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다현 (배우)|김다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정재훈 (1980년)|정재훈]].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광재 (축구 선수)|이광재]].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상욱 (1980년)|김상욱]].
* [[1981년]] - 미국의 프로그래머 [[노아 글래스]].
* [[1982년]]
** 대한민국의 래퍼 [[더블 케이]].
** 대한민국의 희극인 [[하박]].
** 아르헨티나의 테니스 선수 [[다비드 날반디안]].
**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 [[에히디오 아레발로]].
* [[1983년]]
** 대한민국의 양궁 선수 [[박성현 (양궁 선수)|박성현]].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다니엘 하르케]]. (~[[2009년]])
** 자메이카의 육상 선수 [[밀레인 워커]].
* [[1984년]] - 일본의 게임음악 작곡가 [[후나키 토모스케]].
* [[1985년]]
** 대한민국의 배우 [[한수진 (배우)|한수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상덕 (1985년)|김상덕]].
** 북아일랜드의 축구 선수 [[스티븐 데이비스]].
** 브라질의 농구 선수 [[티아고 스플리터]].
* [[1986년]]
** 대한민국의 가수 [[성민 (1986년)|성민]] ([[슈퍼주니어]]).
** 대한민국의 래퍼 [[지조]].
* [[1987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임종혁 (희극인)|임종혁]].
** 대한민국의 배우 [[최민 (1987년)|최상]].
** 대한민국의 배우 [[한소영]].
** 대한민국의 배우 [[김무영 (1987년)|김무영]].
** 대한민국의 가수 [[김준수 (가수)|김준수]].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헌도]].
** 대한민국의 배우 [[최정 (배우)|최정]].
* [[1988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두식]].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성규 (1988년)|김성규]].
* [[1989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배그린]].
** 대한민국의 래퍼 [[블랙넛]].
** 대한민국의 범죄자 [[고종석 (범죄인)|고종석]].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서경수]].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도연 (1989년)|김도연]].
** 대한민국의 배우 [[박수인]].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주현준]].
* [[1990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신규진]].
** 대한민국의 희극인 [[안소미]].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은하영]].
** 영국의 영화 프로듀서 [[톰 애컬리]].
* [[1991년]]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영화배우 [[이아민]].
* [[199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상운 (배우)|이상운]].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이주형 (바둑 기사)|이주형]].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유튜버 [[이해른]]. (~[[2024년]])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잭 윌셔]].
* [[1993년]]
** 대한민국의 유튜버, 방송인, 교수 [[이녕 (유튜버)|이녕]].
** 대한민국의 전 가수, 배우 [[정미미]].
** 대한민국의 래퍼 [[DPR 라이브]].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장현수 (1993년)|장현수]].
** 대한민국의 배우 [[김예은 (1993년)|김예은]].
** 캐나다의 가수, 배우 [[아린 도일]].
** 네덜란드의 육상 선수 [[시판 하산]].
* [[1994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황휘]].
* [[1995년]]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윤영서]].
** 대한민국의 요리사 [[나폴리 맛피아]].
** 이란의 축구 선수 [[사르다르 아즈문]].
** 스위스의 축구 선수 [[플로리야나 이스마일리]].
* [[1996년]]
** 중국의 가수 [[쿤 (1996년)|쿤]] ([[NCT (음악 그룹)|NCT]]).
** 일본의 배우 [[미즈이시 아토무]].
* [[1997년]] - 대한민국의 사격 선수 [[김청용]].
* [[1998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상민 (1998년)|이상민]].
** 오스트레일리아의 배우 [[라라 로빈슨]].
** 잠비아의 전 축구 선수 [[에녹 음웨푸]].
* [[199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원유진]].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잔루카 스카마카]].
* [[2000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이예원 (아나운서)|이예원]].
** 대한민국의 가수 [[김경민 (가수)|김경민]].
** 대한민국의 래퍼, 음악 프로듀서 [[최래성]].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전호준]].
** 미국의 래퍼 [[아이스 스파이스]].
** 오스트레일리아의 피겨스케이팅 선수 [[예카테리나 알렉산드롭스카야]]. (~[[2020년]])
* [[2001년]]
** 대한민국의 가수 [[윈터 (가수)|윈터]] ([[aespa]], [[GOT the Beat]]).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정지윤 (2001년)|정지윤]].
** 오스트레일리아의 배우 [[앵거리 라이스]],
* [[2002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휘집]].
=== 미상 ===
*일본의 애니메이터 [[이치이시 사유리]].
== 사망 ==
* [[898년]] - 서프랑크의 왕 [[외드 (서프랑크)|외드]]. ([[850년]]~)
* [[1204년]] - 노르웨이의 왕 [[호콘 3세]]. ([[1180년]]~)
* [[1387년]] - 나바라의 왕 [[카를로스 2세 (나바라)|카를로스 2세]]. ([[1332년]]~)
* [[1496년]] - 앙굴렘의 백작 [[샤를 도를레앙 (1459년)|샤를 도를레앙]]. ([[1459년]]~)
* [[1515년]] - 프랑스의 왕 [[루이 12세]]. ([[1462년]]~)
* [[1559년]] - 덴마크의 왕 [[크리스티안 3세]]. ([[1503년]]~)
* [[1560년]] - 프랑스의 시인 [[조아섕 뒤 벨레]]. ([[1522년]]~)
* [[1748년]] - 스위스의 수학자 [[요한 베르누이]]. ([[1667년]]~)
* [[1782년]] - 독일의 작곡가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 ([[1735년]]~)
* [[1817년]] - 독일의 화학자 [[마르틴 하인리히 클라프로트]]. ([[1743년]]~)
* [[1862년]] - 우크라이나의 물리학자, 수학자 [[미하일 오스트로그라드스키]]. ([[1801년]]~)
* [[1880년]] - 영국의 소설가 [[조지 엘리엇]]. ([[1819년]]~)
* [[1881년]] -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루이 오귀스트 블랑키]]. ([[1805년]]~)
* [[1894년]] - 독일의 물리학자 [[하인리히 루돌프 헤르츠]]. ([[1857년]]~)
* [[1907년]] - 조선의 학자, 의병장, 정치인 [[최익현]]. ([[1883년]]~)
* [[1944년]] - 잉글랜드의 건축가 [[에드윈 루티언스]]. ([[1869년]]~)
* [[1953년]]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기타 연주자 [[행크 윌리엄스]]. ([[1923년]]~)
* [[1960년]] - 미국의 배우 [[머거릿 설래번]]. ([[1888년]]~)
* [[1966년]] - 프랑스의 정치인, 16대 대통령 [[뱅상 오리올]]. ([[1884년]]~)
* [[1969년]] -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군인 [[김준원 (1888년)|김준원]]. ([[1888년]]~)
* [[1973년]] - 체코슬로바키아의 작가 [[프란티셰크 베호우네크]]. ([[1898년]]~)
* [[1981년]] -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연미당]]. ([[1908년]]~)
* [[1984년]] -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기타 연주자 [[알렉시스 코너]]. ([[1928년]]~)
* [[1992년]] - 미국의 군인, 컴퓨터 과학자 [[그레이스 호퍼]]. ([[1906년]]~)
* [[1994년]] - 미국의 배우 [[시저 로메로]]. ([[1907년]]~)
* [[1995년]] - 헝가리계 미국인 물리학자, 수학자, 노벨상 수상자 [[유진 위그너]]. ([[1902년]]~)
* [[1996년]]
** 미국의 해군 군인 [[알레이 버크]]. ([[1901년]]~)
** 독일의 공학자 [[아르투어 루돌프]]. ([[1906년]]~)
** 대한민국의 가수 [[서지원]]. ([[1976년]]~)
* [[2005년]] - 미국의 교육가, 정치인 [[셜리 치점]]. ([[1924년]]~)
* [[2006년]] - 대한민국의 공학자 [[양지원 (공학자)|양지원]]. ([[1949년]]~)
* [[2013년]] - 미국의 가수, 배우 [[패티 페이지]]. ([[1927년]]~)
* [[2015년]]
**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 ([[1944년]]~)
** 미국의 정치인, 52대 뉴욕주지사 [[마리오 쿠오모]]. ([[1932년]]~)
** 레바논의 정치인, 58대 총리 [[오마르 카라미]]. ([[1934년]]~)
* [[2021년]] - 아일랜드의 가수 [[리엄 라일리]]. ([[1955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종교학자 [[지명관]]. ([[1924년]]~)
** 미국의 영화배우 [[맥스 줄리엔]]. ([[1933년]]~)
* [[2023년]] - 미국의 여성래퍼 [[갱스타 부]]. ([[1979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수석부위원장 [[김동관 (1967년)|김동관]]. ([[1967년]]~)
** 스위스의 컴퓨터과학자 [[니클라우스 비르트]]. ([[1934년]]~)
** 대만의 야구 선수 [[장즈자]]. ([[1980년]]~)
** 대한민국의 교육자 [[정홍섭 (1947년)|정홍섭]]. ([[1947년]]~)
== 기념일 ==
* [[새해 첫날]]
* [[지구 가족의 날]]
* 퍼블릭 도메인 데이(Public Domain Day)
* [[콴자 (행사)|콴자]] 마지막 날: [[미국]]
* [[제헌절]]: [[이탈리아]]
*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로마 가톨릭교회]]
* [[:en:Public holidays in Taiwan|개국기념일]]: [[중화민국]]
* [[:en:Arbor_Day|식목일]](National Tree Planting Day): [[탄자니아]]
* [[쇼가쓰]]: [[일본]]
== 같이 보기 ==
* 전날: [[12월 31일]] 다음날: [[1월 2일]] - 전달: [[12월 1일]] 다음달: [[2월 1일]]
* 음력: [[음력 1월 1일|1월 1일]]
{{대한민국의 공휴일}}
== 각주 ==
{{각주}}
{{열두달}}
[[분류:1월 1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2일'''은 [[그레고리력]]으로 2번째 날에 해당한다. [[스코틀랜드]]의 [[설날]]이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2}}
== 사건 ==
* [[366년]] - [[알레만니|알레마니족]]이 얼어붙은 [[라인강]]을 건너서 [[로마 제국]]을 침략하다.
* [[533년]] - 메르쿠리우스(Mercurius)가 요한으로 개명하면서 [[교황 요한 2세]]가 되다. 교황의 지위에 오르면서 새로운 이름을 얻는 최초의 교황이 되다.
* [[1492년]] - [[레콩키스타]]: [[무어인]]의 최후 거점인 [[그라나다 토후국]]이 항복함으로써 [[스페인]]이 통일되다.
* [[1788년]] - [[조지아주]]가 미국의 4번째 주가 되었다.
* [[1905년]] - [[일본]]이 [[러시아]]와 접전을 벌인 끝에 뤼순(旅順)을 점령했다.
* [[1929년]] - [[미국]]과 [[캐나다]]가 [[나이아가라 폭포]] 보호 협정을 조인하다.
* [[1942년]] - [[제2차 세계 대전]] : 일본군이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를 점령하다.
* [[2008년]] - [[뉴욕상업거래소]]의 2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 중질유]] 가격 거래 도중 사상 처음으로 '''[[석유값|유가]]'''가 1 배럴당 100 [[미국 달러|달러]]를 돌파하였다.
* [[2013년]]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동쪽 39 km 해역에서 규모 2.4 [[지진]]이 발생하다.
* [[2014년]] - [[일본]] [[지바현]] 동쪽 앞바다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 [[2015년]] - [[영국]] [[블루아일랜즈 항공]] 소속 여객기가 엔진에서 화재가 발생해 [[런던]] [[사우스엔드 공항]]에 비상 착륙하였다. 승객 28명은 전원 무사하였다.
* [[2015년]] - [[보코하람]]이 [[나이지리아]] [[바가 (나이지리아)|바가]]의 주민들을 학살하였다.([[2015년 바가 학살]])
* [[2016년]]
**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규모 6.4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아파]] 지도자인 [[님르 바크르 알님르]]를 비롯한 47명의 사형수가 처형되었다.
* [[2024년]] - 이재명 대표가 괴한한테 습격을 당했다.
== 문화 ==
* [[1959년]] - [[소련]] 최초의 달 탐사선 [[루나 1호]]가 발사되다.
* [[1978년]] - [[노이바이 국제공항]] 개항.
* [[1984년]] - 프랑스의 방송국 [[TV5Monde]] 개국.
* [[2001년]] -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을 잇는 직항로가 52년 만에 개설되다.
* [[2004년]] - [[미국 항공우주국]]의 스타더스트(Stardust) [[우주선]]이 와일드 2(Wild 2) 혜성을 접근 통과, 샘플을 수집하고 성공적으로 지구로 귀환하다.
* [[2006년]] - 대한민국에서 5,000원권 신권이 발행되다.
* [[2018년]] - [[신기한나라TV]] 개국.
== 탄생 ==
* [[1507년]] - 몽골 투메드부의 지도자 [[알탄 칸]]. (~[[1582년]])
* [[1693년]] - 조선 제21대 국왕 [[영조]]의 정비(正妃) [[정성왕후]]. (~[[1757년]])
* [[1699년]] -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자 황제 [[오스만 3세]]. (~[[1757년]])
* [[1727년]] - 영국 육군의 군인 [[제임스 울프]]. (~[[1759년]])
* [[1819년]] - 영국의 소설가 [[조지 엘리엇]]. (~[[1880년]])
* [[1822년]] - 독일의 물리학자 [[루돌프 클라우지우스]]. (~[[1888년]])
* [[1835년]] - 독일의 해부학자, 동물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빌헬름 클라우스]]. (~[[1899년]])
* [[1837년]] - 러시아의 작곡가 [[밀리 발라키레프]]. (~[[1910년]])
* [[1884년]] - 미국의 영화 감독 및 영화 작가 [[오스카 미쇼]]. (~[[1951년]])
* [[1896년]] - 소비에트 연방의 영화 감독 [[지가 베르토프]]. (~[[1954년]])
* [[1903년]] - 일본의 슈퍼센티네리언 [[다나카 가네]]. (~[[2022년]])
* [[1909년]] - 미국의 정치인 [[배리 골드워터]]. (~[[1998년]])
* [[1917년]]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축구 감독 [[정국진 (축구인)|정국진]]. (~[[1976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예술가 [[김원균]]. (~[[2002년]])
* [[191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민병권]]. (~[[1992년]])
* [[1920년]]
** 일본의 축구 선수 [[가토 노부유키]].
** 미국의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 (~[[1992년]])
* [[1921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봉환 (1921년)|김봉환]]. (~[[2020년]])
* [[1928년]] - 일본의 작가, 종교학자, 평화운동가 [[이케다 다이사쿠]]. (~[[2023년]])
* [[1931년]] - 일본의 정치가, 총리 대신 [[가이후 도시키]]. (~[[2022년]])
* [[1933년]] - 일본의 소설가 [[모리무라 세이이치]]. (~[[2023년]])
* [[1936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성원 (배우)|김성원]]. (~[[2022년]])
* [[1938년]]
** 대한민국의 전 국무총리 [[고건]].
**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린 콘웨이]]. (~[[2024년]])
* [[1944년]]
** 대한민국의 성우 [[김정경]].
** 헝가리의 작곡가, 지휘자 [[외트뵈시 페테르]]. (~[[2024년]])
* [[1946년]] - 일본의 배우 [[이부키 고로]].
* [[1949년]] - 대한민국의 의사 [[김성권]].
* [[1950년]] - 미국의 클라리넷 연주가 [[데이비드 시프린]].
* [[1951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추자]].
* [[1952년]] - 홍콩의 영화배우 [[오맹달]]. (~[[2021년]])
* [[1960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오대석]].
** 일본의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
* [[1961년]] - 미국의 영화감독 [[토드 헤인스]].
* [[1962년]] - 대한민국의 전 육상 선수 [[장재근]].
* [[1963년]] - 미국의 전 야구 선수 [[데이비드 콘]].
* [[1967년]] - 프랑스의 축구 선수 [[바질 볼리]].
* [[1968년]]
** 일본의 게임 제작자 [[스다 고이치]].
** 미국의 배우 [[쿠바 구딩 주니어]].
* [[1969년]] - 미국의 모델 [[크리스티 털링턴]].
* [[1971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서용빈]].
** 대한민국의 희극인 [[염경환]].
** 일본의 배우 [[다케노우치 유타카]].
** 대한민국의 성우 [[임미진]].
** 대한민국의 성우 [[이상훈 (성우)|이상훈]].
* [[1973년]] - 대한민국의 성우 [[이주연 (성우)|이주연]].
* [[1974년]]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윤현석 (바둑 기사)|윤현석]].
* [[197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정성화]].
** 대한민국의 코치, 전 야구 선수 [[손민한]].
* [[1976년]] - 스페인의 배우 [[파스 베가]].
* [[1977년]]
** 대한민국의 PD [[신경수 (연출가)|신경수]].
** 대한민국의 소설가, 작가 [[최민석 (소설가)|최민석]].
* [[1978년]]
** 일본의 성우 [[토요구치 메구미]].
** 대한민국의 배우 [[윤세아]].
* [[198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조선옥.
* [[1981년]]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막시 로드리게스]].
** 중화인민공화국의 양궁 선수 [[장쥐안쥐안]].
** 미국의 프로 야구 선수 [[라이언 가코]].
* [[1982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지현 (배우)|김지현]].
** 대한민국의 가수 [[윤희 (1982년)|윤희]].
* [[1983년]] - 미국의 배우 [[케이트 보즈워스]].
* [[1985년]] - 대한민국의 가수 신현우.
* [[1986년]]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니콜라스 베르톨로]].
* [[1987년]] - 대한민국의 발레 무용수 [[최선아 (발레 무용수)|최선아]].
* [[1988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시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상수 (1988년)|김상수]].
** 일본의 성우 [[아케사카 사토미]].
** 덴마크의 축구 선수 [[나디아 나딤]].
* [[1989년]]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박상우 (프로게이머)|박상우]].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용찬 (야구 선수)|이용찬]].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출신 아나운서 [[김남희 (아나운서)|김남희]].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최연식 (프로게이머)|최연식]].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이윤재 (야구인)|이윤재]].
* [[199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윤태화]].
**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아라지오]].
* [[1991년]]
** 대한민국의 전 가수 [[유지 (가수)|유지]].
** 대한민국의 희극인 [[정진하]].
** 대한민국의 성우 [[김수영 (성우)|김수영]].
* [[1992년]]
** 스웨덴의 축구 선수 [[빅토르 클라에손]].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강병의]].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레전드 프로게이머 [[와치 (프로게이머)|와치]].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파울로 가사니가]].
* [[1993년]] - 스웨덴의 축구 선수 [[욘나 안데르손]].
* [[1994년]]
** 대한민국의 가수 [[정민 (1994년)|정민]] ([[BF (음악 그룹)|BF]]).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남현종]].
* [[1996년]]
** 대한민국의 가수, 래퍼 [[올티]].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재열 (1996년)|김재열]].
* [[1997년]]
** 베트남의 태권도 선수 [[쯔엉티낌뚜옌]].
** 스페인의 축구 선수 [[카를로스 솔레르]].
** 파키스탄의 육상 선수 [[아르샤드 나딤]].
* [[1998년]] - 네델란드의 축구 선수 [[티모티 포쉬멘사]].
* [[1999년]] - 대한민국의 기상캐스터 [[정희지]].
* [[2000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솔.
** 대한민국의 가수 [[예빛]].
* [[2001년]] - 대한민국의 범죄자 [[최원종 (범죄인)|최원종]].
* [[2002년]]
** 미국의 배우 [[제이든 리버허]].
** 대한민국의 기업인 [[방정식 (기업인)|방정식]]의 아들 [[방태빈]].
* [[2003년]] - 미국의 배우 [[사이러스 아널드]].
* [[2004년]] - 대한민국의 가수 [[유승언]]. (이븐)
* [[200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신비 (2006년)|신비]].
== 사망 ==
* [[1904년]] - 남북전쟁 남부동맹의 장군 [[제임스 롱스트리트]]. ([[1821년]]~)
* [[1917년]] - 프랑스의 사이클 선수 [[레옹 플라멩|레온 플라멩]]. ([[1877년]]~)
* [[1931년]] - 조선 말기의 정치인 [[조민희 (조선귀족)|조민희]]. ([[1859년]]~)
* [[1942년]] - 대한민국의 독립지사 [[김경천 (1888년)|김경천]]. ([[1888년]]~)
* [[1977년]] - 일본의 군인 [[사토 슌지]]. ([[1896년]]~)
* [[1988년]] - 일본의 군인 [[가사하라 유키오]]. ([[1889년]]~)
* [[2000년]] - 영국의 소설가, 번역가 [[패트릭 오브라이언]]. ([[1914년]]~)
* [[2011년]] - 미국의 군인 [[리처드 윈터스]]. ([[1918년]]~)
* [[2014년]] - 대한민국의 군인 [[김재춘 (1927년)|김재춘]]. ([[1927년]]~)
* [[2016년]] - 사우디아라비아의 시아파 지도자 [[님르 바크르 알님르]]. ([[1959년]]~)
* [[2017년]] - 영국의 비평가, 소설가이자 화가 [[존 버거]]. ([[1926년]]~)
* [[2018년]] - 모르몬경의 제16대 회장 [[토머스 S. 몬슨]]. ([[1927년]]~)
* [[2019년]] - 대한민국의 군인 [[김철우 (군인)|김철우]]. ([[1937년]]~)
* [[2020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홍창선]]. ([[1944년]]~)
* [[2021년]]
** 러시아의 영화배우 [[블라디미르 코레네프]]. ([[1940년]]~)
** 독일의 신학자 [[요한네스 발만]]. ([[1932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리얼미터 미래전략연구소 이사 [[김주영 (1986년)|김주영]]. ([[1986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승율]]. ([[1952년]]~)
** 케냐의 고인류학자 [[리처드 리키]]. ([[1944년]]~)
* [[2023년]] - 미국의 스턴트 배우 [[켄 블록]]. ([[1967년]]~)
== 기념일 ==
* 카니발 데이: [[세인트키츠 네비스]]
* 조상의 날(Ancestry Day): [[아이티]]
* [[설날]](New Year Holiday): [[스코틀랜드]]
== 같이 보기 ==
* 전날: [[1월 1일]] 다음날: [[1월 3일]] - 전달: [[12월 2일]] 다음달: [[2월 2일]]
* 음력: [[음력 1월 2일|1월 2일]]
* [[366일|모두 보기]]
{{위키공용분류}}
{{열두달}}
[[분류:1월 2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3일'''은 [[그레고리력]]으로 3번째 날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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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
* [[1521년]] - [[교황 레오 10세]]가 [[마르틴 루터]]를 파문하였다.
* 1594년 - [[송유진의 난]] 발생
* [[1868년]] - [[일본]]이 왕정 복고를 선포하여 [[에도 막부]]가 종식되었다.
* [[1918년]] - [[핀란드]] 독립.
* [[1959년]] - [[알래스카주]]가 미국의 49번째 주가 되었다.
* [[1999년]] - [[미국]]이 화성탐사선 랜더호를 발사하다.
* [[2002년]] - [[유로화]] 발행 3일만에 [[독일]]과 [[아일랜드]] 등에서 위조된 유로화가 대량 발견되었다.
* [[2004년]] - 이집트의 민간 [[항공사]] 플래시 에어의 [[보잉 737]] 전세기가 [[홍해]]에 추락, 탑승자 148명 전원이 사망하다.
* [[2005년]] - [[철산역]]에서 [[서울 지하철 7호선]]에서 화재가 발생하다. ([[서울 지하철 7호선 방화 사건]])
* [[2006년]]
** 오전 4시 10분부터 [[경북]] [[칠곡군]] 지천면 심천리 건령산 부근에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산불이 났다.
**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가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만나다.
* [[2008년]] -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열린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제44대)를 위한 지역별 순회경선에서 [[버락 오바마]]([[미국 민주당|민주]])와 [[마이크 허커비]]([[미국 공화당|공화]])가 승리하다.
* [[2009년]] - 대한민국 [[김형오]] [[대한민국의 국회의장|국회의장]]이 [[민주당 (대한민국, 2008)|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대한민국)|민주노동당]]의 국회농성을 진압하기 위해 국회 경위 등을 투입했다.
* [[2010년]] - 페루의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페루에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다.
* [[2011년]] -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11년 1월 1일에 있었던 이집트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를 강하게 규탄하다.
* [[2014년]] -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훈센]] 정권을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하였다. 경찰의 발포로 5명이 사망하였고, 20여명이 부상당하였다.
* [[2016년]]
** [[서해안고속도로]]에서 안개로 인해 17중 추돌사고가 발생하였다.
**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과의 국교를 단절하였다.
* [[2022년]] - [[방역패스]]의 유효기간이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 [[2024년]]
** [[미국]] [[아이오와주]]의 페리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3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당했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washingtonpost.com/nation/2024/01/04/perry-iowa-school-shooting-scene/|제목=Terror in small-town Iowa as gunfire erupts at Perry High School|성=Paquette|이름=Danielle|날짜=2024-01-05|뉴스=Washington Post|언어=en-US|issn=0190-8286|확인날짜=2024-02-11}}</ref>
** [[괌]] 투몬에서 [[한국인]] 피격 사건이 발생해 1명이 사망했다.<ref>{{웹 인용|url=https://www.yna.co.kr/view/AKR20240105039451504|제목=한국 관광객 1명 괌에서 총기 피격으로 사망…교민사회 '충격'(종합)|성=박의래|날짜=2024-01-05|언어=ko|확인날짜=2024-02-11}}</ref>
** [[라오스]]의 [[왕위앙]]에서 한국인이 버기카를 타던 도중 사망했다.<ref>{{웹 인용|url=https://imnews.imbc.com/replay/2024/nw1400/article/6559362_36493.html|제목=라오스서 '버기카' 타던 한국인 관광객 1명 사망|성=김민형|날짜=2024-01-04|언어=ko|확인날짜=2024-02-11}}</ref>
** [[충북]] [[청주시]]의 [[오리온 (대한민국의 기업)|오리온]] 공장에서 만든 [[카스타드 (과자)|카스타드]]에서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되었다.<ref>{{웹 인용|url=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1122869.html|제목=오리온 카스타드서 식중독균 검출…식약처 회수 조처|성=김윤주|날짜=2024-01-03|언어=ko|확인날짜=2024-02-11}}</ref>
== 문화 ==
* [[2005년]] - [[문화방송|MBC 문화방송]]이 CI를 새로 도입하다.
* [[2019년]] -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중국]]의 [[창어 4호]]가 착륙했다.
* [[2020년]] - tvN의 예능 프로그램 [[신서유기]] 시즌7 종영
== 탄생 ==
* [[기원전 106년]] - 고대 로마의 웅변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기원전 43년]])
* [[1502년]] -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 [[이황]]. (~[[1571년]])
* [[1660년]] - 청나라의 제3대 황제 [[기수 (청나라)|기수]]. (~[[1665년]])
* [[1836년]] - 일본의 무사, 사업가 [[사카모토 료마]]. (~[[1867년]])
* [[1879년]] - 리투아니아의 정치가 [[스테포나스 카이리스]]. (~[[1964년]])
* [[1892년]] - 영국의 소설가 [[J. R. R. 톨킨]]. (~[[1973년]])
* [[1901년]] - 남베트남의 정치인 [[응오딘지엠]]. (~[[1963년]])
* [[1907년]] - 웨일스의 배우 [[레이 밀랜드]]. (~[[1986년]])
* [[1917년]] - 북한의 영화 배우 [[문예봉]]. (~[[1999년]])
* [[1919년]] - 대한제국 황실 사동궁 사손이며 前 대한민국의 공무원 [[이곤 (1919년)|이곤]]. (~[[1984년]])
* [[1921년]] - 프랑스의 기하학자 [[장루이 코쥘]]. (~[[2018년]])
* [[1922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작가, 언론인 [[선우휘]]. (~[[1986년]])
** 대한민국의 축구인 [[한창화]]. (~[[2006년]])
* [[1924년]] - 대한민국의 군인 [[현시학]]. (~[[1989년]])
* [[1926년]] - 영국의 음반 프로듀서 [[조지 마틴]]. (~[[2016년]])
* [[1929년]]
** 인텔의 공동창립자, 전임회장, 전임최고경영자,명예회장 [[고든 무어]]. (~[[2023년]])
**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세르조 레오네]]. (~[[1989년]])
* [[1930년]]
** 대한민국의 군인 겸 정치가 [[이병문]]. (~[[2019년]])
** 미국의 영화배우 [[로버트 로자]]. (~[[2015년]])
** 미국의 영화배우 [[에디 이건 (배우)|에디 이건]]. (~[[1995년]])
* [[1932년]] - 미국의 배우 [[대브니 콜먼]]. (~[[2024년]])
* [[1938년]] - 미국의 배우 [[톰 바우어]]. (~[[2024년]])
* [[1940년]] - 일본의 레슬링 선수 [[하나하라 쓰토무]]. (~[[2024년]])
* [[194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강동연 (정치인)|강동연]]. (~[[2004년]])
** 헝가리의 정치인 [[쇼욤 라슬로]]. (~[[2023년]])
* [[194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규현.
* [[1950년]]
** 대한민국의 시인 [[정호승]].
** 대한민국의 지리학자 [[최창조 (교수)|최창조]]. (~[[2024년]])
* [[1953년]] - 레바논의 모델 [[주르지나 리즈크]].
* [[1956년]] -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미국 배우 [[멜 깁슨]].
* [[1957년]] -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최진희]].
* [[1958년]] -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심형래]].
* [[1960년]] - 대한민국의 문학 겸 정치인 [[정도상]].
* [[1963년]]
** 대한민국의 기자 [[배재성 (기자)|배재성]].
** 대한민국의 부산광역시의원 [[김영희 (1963년)|김영희]].
* [[1964년]]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박승문]].
* [[196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성민수 (배우)|성민수]].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종부 (축구인)|김종부]].
* [[1966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이금희 (방송인)|이금희]].
* [[1967년]] - 대한민국의 사격 선수 [[이은철]].
* [[1968년]] - 대한민국의 성우 [[최원형]].
* [[1969년]] - 독일의 자동차 경주 선수 [[미하엘 슈마허]].
* [[1970년]] - 대한민국의 방송 작가 [[박계옥]].
* [[1973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김민재 (1973년)|김민재]].
* [[197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신은정]].
** 일본의 성우 [[이토 겐타로]].
* [[1975년]]
** 프랑스의 전자 음악가 [[토마 방갈테르]] ([[다프트 펑크]]).
** 일본의 시나리오, 작사, 작곡가 [[마에다 준]].
* [[1976년]]
** 대한민국의 전 배우 [[김태연 (배우)|김태연]].
** 대한민국의 테니스 선수 [[이형택]].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효진 (희극인)|김효진]].
* [[1977년]] - 일본의 가수 [[이이즈카 마유미]].
* [[1978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솔미]].
* [[1979년]]
** 대한민국의 배우 [[강말금]].
** 일본의 성우 [[타나카 리에 (성우)|타나카 리에]].
** 대한민국의 전 아나운서 [[위서현 (아나운서)|위서현]].
** 브라질의 축구 선수 [[루카스 세베리누]].
* [[1980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리포터 [[윤형빈]].
** 대한민국의 성우 [[이동훈 (성우)|이동훈]].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커트 바일]].
* [[1982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박지윤 (가수)|박지윤]].
* [[198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완 (배우)|이완]].
** 대한민국의 배우 [[나석민]].
** 대한민국의 배우 [[김하은 (배우)|김하은]].
** 일본의 성우 [[하시모토 마이]].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최우범]].
* [[1985년]] -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유튜버 [[윰댕]].
* [[1986년]]
** 대한민국의 성우 [[이보희 (성우)|이보희]].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로이드 (가수)|로이드]].
** 대한민국의 배우 [[이은채]].
* [[1987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모상기]].
** 대한민국의 배우 [[김옥빈]].
* [[1988년]] - 북아일랜드의 축구 선수 [[조니 에번스]].
* [[1989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성현 (1989년)|김성현]].
** 일본의 가수 [[우메다 아야카]]. ([[AKB48]])
** 일본의 체조 선수 [[우치무라 고헤이]].
** 스페인의 축구 선수 [[조르디 마시프]].
* [[199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소유찬]].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정현 (1990년 1월)|김정현]].
* [[1991년]]
** 대한민국의 전 아나운서, 방송인 [[조유영]].
** 대한민국의 가수 [[구하라]] ([[카라 (음악 그룹)|카라]]). (~[[2019년]])
** 미국의 농구 선수 [[다리우스 모리스]]. (~[[2024년]])
* [[1992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박소현 (1992년)|박소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금교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호은]].
* [[1993년]]
** 대한민국의 전 가수 [[민희]]. ([[스텔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한승혁 (1993년)|한승혁]].
** 대한민국의 유튜버 [[하늘 (유튜버)|하늘]].
* [[1994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최항 (야구 선수)|최항]].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융]].
* [[1995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김설현]] ([[AOA (음악 그룹)|AOA]]).
** 대한민국의 가수 [[지수 (가수)|지수]] ([[블랙핑크]]).
* [[199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설인아]].
** 영국의 배우 [[플로렌스 퓨]].
** 대한민국의 가수 [[지헤라]].
* [[1997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동혁 (가수)|김동혁]] ([[IKON]]).
** 대한민국의 가수 [[제인 (1997년)|제인]] ([[모모랜드]]).
** 대한민국의 유튜버 [[양팡]].
* [[1998년]]
** 대한민국의 가수 [[Ranunculus]].
** 중화인민공화국의 체조 선수 [[쩌우징위안]].
* [[1999년]] - 스페인의 가수 [[아마이아 로메로]].
* [[2000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기훈 (야구 선수)|김기훈]].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명기 (2000년)|이명기]].
* [[2001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박태용.
* [[2002년]]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김선기 (바둑 기사)|김선기]].
* [[2003년]] -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 [[2007년]]
** 대한민국의 배우 [[조휘준]].
** 대한민국의 배우 [[길정우 (배우)|길정우]].
=== 미상 ===
*대한민국의 가수 [[김서영 (가수)|김서영]].
== 사망 ==
* [[1497년]] - 에르콜레 1세 데스테의 딸이자 밀라노의 공작부인 [[베아트리체 데스테]]. ([[1475년]]~)
* [[1571년]] -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 [[이황]]. ([[1502년]]~)
* [[1903년]] - 아돌프 히틀러의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 ([[1837년]]~)
* [[1923년]] - 체코의 작가 [[야로슬라프 하셰크]]. ([[1883년]]~)
* [[1977년]] - 북한의 문인 [[송영 (극작가)|송영]]. ([[1903년]]~)
* [[2003년]] - 프랑스의 작가 [[모니크 비티그]]. ([[1935년]]~)
* [[2006년]] - 일본의 군인 [[아즈마 시로]]. ([[1912년]]~)
* [[2007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무상 [[백남순 (1929년)|백남순]]. ([[1929년]]~)
* [[2008년]] - 대한민국의 권투 선수 [[최요삼]].
* [[2016년]]
** 대한민국의 만화가 [[이상무]]. ([[1946년]]~)
** 미국의 외교관 [[스티븐 보즈워스]]. ([[1939년]]~)
** 영국의 봅슬레이 선수 [[고머 로이드]]. ([[1947년]]~)
* [[2019년]] - 중국의 범죄자 [[가오청융]]. ([[1964년]]~)
* [[2020년]]
** 미국의 영화배우 [[로버트 블랑체]]. ([[1962년]]~)
** 이란의 군인 [[가셈 솔레이마니]]. ([[1957년]]~)
** 이라크의 공학자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스]]. ([[1954년]]~)
* [[2022년]]
** 조지아의 육상 선수 [[빅토르 사네예프]]. ([[1945년]]~)
** 프랑스의 쌍둥이 [[보그다노프 형제]]. ([[1949년]]~)
** 대한민국의 시인 [[추영수]]. ([[1937년]]~)
== 기념일 ==
* [[:en:Hakozaki Shrine#Festivals|타마세세리]](玉せせり) 축제: [[:en:Hakozaki Shrine|하코자키 신사]], [[후쿠오카시]], [[일본]]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2일]] 다음날: [[1월 4일]] - 전달: [[12월 3일]] 다음달: [[2월 3일]]
* 음력: [[음력 1월 3일|1월 3일]]
* [[날짜의 목록|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3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4일'''은 [[그레고리력]]으로 4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4}}
== 사건 ==
* [[기원전 46년]] - [[율리우스 카이사르|카이사르]]가 아프리카 북동부 [[:en:Battle of Ruspina|루스피나 전투]]에서 [[티투스 라비에누스|라비에누스]]를 격파하다.
* [[1896년]] - [[유타주]]가 미국의 45번째 주가 되었다.
* [[1947년]] -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창간
* [[1951년]] - [[1.4 후퇴]]로 조선인민군과 중공군에게 [[서울]]을 내줌
* [[1982년]] - 대한민국 [[문교부]]가 중·고등학생의 [[머리]]와 [[교복]]의 자율화 방안을 발표하다.
* [[1987년]] - [[한국]]의 민주 운동가인 [[박종철]]을 수사관들이 물고문을 통해 [[익사]]시킨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나다.
* [[2007년]]
** [[낸시 펠로시]]가 [[미국 하원]]의장에 선출되었다. 사상 첫 여성 미국 하원 의장이다.
**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석유로 인해 분쟁이 발생했다.
* [[2010년]]
** [[미 항공우주국]] [[케플러 계획]]의 첫 데이터가 수신되어 다섯 개의 [[외계 행성]]을 발견하다.
** [[2010년 1월 4일 한국 중부 폭설|대한민국(한반도) 중부 폭설]]: [[대한민국]]의 [[수도권]]과 [[강원도]] 등을 비롯한 중부 대부분 지역에 [[폭설]]이 내리다.
* [[2011년]]
** [[파키스탄]]의 정치인 [[살만 타시르]]가 자신의 경호원에게 살해당했다.
** [[이란]]의 마지막 [[샤]]인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의 막내 아들 [[알리 레자 팔라비]]가 미국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 [[2012년]]
**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미국 대통령 선거]]의 첫 관문인 아이오와 공화당 코커스에서 롬니가 승리하다.
** [[터키]]가 미국의 [[이란]] 제재 대상에서 예외로 해 줄 것을 요청하다.
* [[2021년]] - [[이슬람 혁명 수비대|이란의 혁명수비대]]가 UAE행 한국 유조선을 해상 오염 혐의로 나포했다.
== 문화 ==
* [[2004년]] - [[스피릿 (탐사차)|스피릿]]이 착륙하였다.
* [[2005년]] - [[경차]]의 번호판이 분류 번호 3자리 숫자화, 희망 번호제를 실시되었다.
* [[2010년]] - [[두바이]]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조건물인 [[부르즈 칼리파]]가 개장되었다.
* [[2011년]] - [[포드]]의 준고급 브랜드인 [[머큐리 (자동차)|머큐리]]의 마지막 차량이 생산되었다.
* [[2013년]] - [[PS2]]의 생산이 전 세계적으로 중단되었다.
* [[2023년]] - [[블랙핑크]]의 곡 뚜두뚜두 (DDU-DU DDU-DU)가 한국 노래로는 2번째로 유튜브 조회수 20억을 돌파했다.
== 탄생 ==
* [[1077년]] - 북송의 제7대 황제 [[북송 철종]]. (~[[1100년]])
* [[1643년]] -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 (~[[1727년]])
* [[1710년]] - 이탈리아의 작곡가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 (~[[1736년]])
* [[1785년]] - 독일의 언어학자 [[야코프 그림]]. (~[[1863년]])
* [[1809년]] - 프랑스의 교육자, 발명가 [[루이 브라유]]. (~[[1852년]])
* [[1893년]] - 일본의 최장수 할머니 [[미나가와 요네]]. (~[[2007년]])
* [[1897년]] - 대한민국의 목사 [[이동욱 (목회자)|이동욱]]. (~[[1949년]])
* [[1899년]]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군인 [[프리츠 바이에를라인]]. (~[[1970년]])
* [[1917년]] - 대한민국의 의학자, 기업인 [[정재원 (1917년)|정재원]]. (~[[2017년]])
* [[1923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박승규 (1923년)|박승규]]. (~?)
* [[1924년]] - 미국으 수영 선수 [[월리 리스]]. (~[[1989년]])
* [[1929년]] - 동독의 정치인 [[귄터 샤보프스키]]. (~[[2015년]])
* [[1930년]] - 영국의 배우, 무대 연출가 [[아인 커스버트슨]]. (~[[2009년]])
* [[1932년]] - 스페인의 영화 감독 [[카를로스 사우라]]. (~[[2023년]])
* [[193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태룡 (정치인)|김태룡]]. (~[[2024년]])
* [[1935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강신조]].
* [[1936년]] - 이탈리아의 철학자, 정치인 [[잔니 바티모]]. (~[[2023년]])
* [[1938년]] - 대한민국의 기타리스트 [[신중현]].
* [[1940년]]
** 영국의 물리학자 [[브라이언 데이비드 조지프슨]].
** 프랑스의 소설가 [[가오싱젠]].
* [[1943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황석영]].
* [[194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정대철]].
* [[1955년]]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한철균]].
* [[1957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갑준]].
* [[1958년]]
** 일본의 만화가 [[미타 노리후사]].
** 잉글랜드의 배우 [[줄리언 샌즈]]. (~[[2023년]])
* [[1961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오세훈]].
* [[1962년]] - 미국의 소설가 [[할런 코벤]].
* [[1963년]] - 독일의 가수 [[틸 린데만]].
* [[1964년]] - 대한민국의 희극 배우 [[서원섭]].
* [[196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기철 (배우)|이기철]].
* [[1967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행정가 [[유정아 (방송인)|유정아]].
* [[1968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동희 (야구 선수)|박동희]]. (~[[2007년]])
* [[197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유해진]].
* [[1971년]] - 대한민국의 가수 겸 제작자 [[강대풍]].
* [[1973년]]
** 대한민국의 MC, 희극인, 가수 [[송은이]].
** 미국의 영화 감독 [[하모니 코린]].
* [[1975년]] -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셰인 카윈]].
* [[1977년]] - 대한민국의 변호사 [[허진영]].
* [[197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사강 (배우)|사강]].
* [[198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육중완]].
** 미국의 배우, 성우 [[그레그 사이프스]].
* [[1982년]] - 대한민국의 배우 [[강혜정]].
* [[1983년]] - 대한민국의 골프 선수 김선아.
* [[1984년]]
** 대한민국의 작곡가 [[심은지 (작곡가)|심은지]].
** 대한민국의 배우 [[오인혜]]. (~[[2020년]])
* [[1985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정성룡]].
* [[1986년]]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제임스 밀너]].
* [[1987년]]
** 대한민국의 아이스하키 선수 [[조민호 (아이스하키 선수)|조민호]]. (~[[2022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윤준하]] ([[강원 FC]]).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대니 심슨]].
** 멕시코의 축구 선수 [[모니카 오캄포]].
* [[1988년]] - 대한민국의 모델 [[이예은 (미스코리아)|이예은]].
* [[1989년]] - 대한민국의 성우 [[박요한 (성우)|박요한]].
* [[1990년]]
** 대한민국의 사회기관단체인 [[김동근 (1990년)|김동근]].
** 독일의 축구 선수 [[토니 크로스]].
* [[1991년]] - 대한민국의 테니스 선수 김지혜.
* [[1992년]]
** 대한민국의 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호진 (프로게이머)|호진]].
** 대한민국의 여행작가 [[박성호 (여행작가)|박성호]].
** 미국의 축구 선수 [[크리스 브라이언트]].
* [[199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조윤서]].
** 대한민국의 전직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캡틴잭]].
* [[199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최예슬 (배우)|최예슬]].
** 대한민국의 래퍼 [[퀸 와사비]].
** 덴마크의 배드민턴 선수 [[빅토르 악셀센]].
* [[1995년]]
** 미국의 배우 [[매디 해슨]].
** 대한민국의 래퍼 [[비바 (가수)|비바]].
* [[1996년]]
** 대한민국의 가수 [[조연호 (1996년)|조연호]].
** 이탈리아의 테니스 선수 [[자스민 파올리니]].
* [[1997년]] - 스페인의 축구 선수 [[앙헬리뇨]].
* [[1998년]] - 대한민국의 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윤석준]].
* [[1999년]]
** 대한민국의 가수 [[봉재현]] ([[골든차일드 (음악 그룹)|골든차일드]]).
** 대한민국의 가수 [[김뮤즈]].
** 오스트레일리아의 수영 선수 [[잭 스터블레티쿡]].
** 쿠바의 레슬링 선수 [[가브리엘 로시요]].
* [[200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우상혁.
* [[2004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주아 (배우)|김주아]].
** 프랑스의 농구 선수 [[빅토르 웸바냐마]].
* [[2008년]] - 브라질의 스케이드보드 선수 [[하이사 레아우]].
* [[201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서연우 (2013년)|서연우]].
== 사망 ==
* [[898년]] - 신라의 제51대 국왕 [[진성여왕]]. (?~)
* [[1695년]] - 프랑스의 원수 [[프랑수아 앙리 드 몽모랑시뤽상부르 공작]]. ([[1628년]]~)
* [[1707년]] - 신성로마제국의 장군 [[루트비히 빌헬름 폰 바덴바덴 변경백]]. ([[1655년]]~)
* [[1794년]] - 독일 출신 프랑스의 장군 [[니콜라 뤼크네르]]. ([[1722년]]~)
* [[1856년]] - 프랑스의 조각가 [[다비드 당제]]. ([[1789년]]~)
* [[1907년]] - 조선 말기의 문신, 구한말의 의병장 [[노응규]]. ([[1861년]]~)
* [[1941년]] -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손]]. ([[1859년]]~)
* [[1960년]] - 프랑스의 철학자, 소설가 [[알베르 카뮈]]. ([[1913년]]~)
* [[1961년]] -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 ([[1887년]]~)
* [[1965년]] - 영국의 시인, 평론가 [[T. S. 엘리엇]]. ([[1888년]]~)
* [[2010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유기정]]. ([[1922년]]~)
* [[2011년]]
** 이란 마지막 황제의 아들 [[알리 레자 팔라비]]. ([[1966년]]~)
** 파키스탄의 기업가이자 정치인 [[살만 타시르]]. ([[1944년]]~)
* [[2017년]] - 프랑스의 지휘자 [[조르주 프레트르]]. ([[1924년]]~)
* [[2018년]] - 일본의 야구 선수, 야구 감독 [[호시노 센이치]]. ([[1947년]]~)
* [[2019년]] - 영국의 작가 [[존 버닝햄]]. ([[1936년]]~)
* [[2020년]] - 오스트레일리아의 영화배우 [[톰 롱]]. ([[1968년]]~)
* [[2021년]]
** 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김장환 (정치인)|김장환]]. ([[1980년]]~)
** 미국의 영화배우 [[타니아 로버츠]]. ([[1949년]]~)
** 홍콩의 영화배우 [[리샹친]]. ([[1932년]]~)
**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마르티뉘스 펠트만]]. ([[1931년]]~)
** 레바논의 작곡가 [[엘리아스 라바니]]. ([[1938년]]~)
* [[2022년]] - 미국의 영화배우 [[조안 코플랜드]]. ([[1922년]]~)
* [[2023년]]
** 영국의 축구 전문 기업인 [[데이비드 골드]]. ([[1936년]]~)
** 독일의 알파인 스키 선수 [[로지 미터마이어]]. ([[1950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교육인 [[고학찬]]. ([[1947년]]~)
** 영국의 영화배우 [[글리니스 존스]]. ([[1923년]]~)
** 미국의 영화배우 [[데이비드 솔]]. ([[1943년]]~)
** 일본의 사진가 [[시노야마 기신]]. ([[1940년]]~)
** 일본의 축구 선수 [[요코야마 도모노부]]. ([[1985년]]~)
** 독일의 영화배우 [[크리스티안 올리버]]. ([[1972년]]~)
== 기념일 ==
* [[독립기념일]]: [[미얀마]], 1948년에 버마라는 이름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
* 세계 점자의 날: 점자의 발명자 [[루이 브라유]]의 생일을 기념하여 제정.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3일]] 다음날: [[1월 5일]] - 전달: [[12월 4일]] 다음달: [[2월 4일]]
* 음력: [[음력 1월 4일|1월 4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4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7일'''은 [[그레고리력]]으로 7번째([[윤년]]일 경우도 7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7}}
== 사건 ==
* [[1325년]] - [[:en:Afonso IV of Portugal|알폰소 4세]]가 포르투갈의 왕이 되다.
* [[1558년]] - 프랑스가 영국으로부터 [[칼레]]를 탈환하다.
* [[1566년]] - [[교황 비오 5세]]가 선출되다.
* [[1608년]] - 미국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 (버지니아주)|제임스타운]]에서 화재가 발생하다.
* [[1610년]] -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갈릴레이 위성]]을 처음으로 관측하다.
* [[1782년]] - [[미국 의회]]가 최초의 국립은행인 [[:en:Bank of North America|뱅크 오브 노스 아메리카]]를 [[필라델피아]]에 설립하다.
* [[1895년]] - [[대한제국 고종|고종]], [[종묘]]에서 [[홍범 14조]] 선포.
* [[1941년]] - [[신사군 사건]], [[제2차 국공 합작]] 결렬
* [[1946년]] - [[대한민국]]에서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우익계열 학생들의 총연합체 [[반탁전국학생연맹]]의 위원장에 [[이철승]]이 선출되다.
* [[1993년]] -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우암상가아파트 붕괴 사고]]가 일어나다.
* [[2008년]] -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가 일어나다.
* [[2011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가 [[우리민족끼리 해킹 사건|디시인사이드 유저들에 의해 해킹]]당했다.
* [[2012년]] - [[뉴질랜드]]의 [[:en:Carterton, New Zealand|카터턴]]에서 [[열기구]]가 추락해 11명이 사망하다.
* [[2015년]] - [[프랑스]]의 [[샤를리 에브도]]([[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 주간지 회사)에서 테러가 발생해 12명이 사망했다.
== 문화 ==
* [[1762년]] - [[오스트리아]] [[모차르트]]가 첫 번째 연주여행을 시작하다.
* [[2000년]] - [[현대 모빌리티 재팬|현대 모터스 재팬]] 주식 회사가 설립되었다.
* [[2005년]] - 골프채널 [[JTBC GOLF|J골프]] 개국.
* [[2019년]] - [[다음]] 아고라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 탄생 ==
* [[1502년]] - 제226대 로마의 교황 [[교황 그레고리오 13세]]. (~[[1585년]])
* [[1537년]] - 조선의 문신, 성리학자 [[이이]](李珥). (~[[1584년]])
* [[1768년]] - 스페인 나폴리와 스페인 국왕,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 (~[[1844년]])
* [[1800년]] - 미국의 제13대 대통령 [[밀러드 필모어]]. (~[[1874년]])
* [[1831년]] - 독일의 정치인 [[하인리히 폰 슈테판]]. (~[[1897년]])
* [[1845년]] - 바이에른 왕국의 마지막 국왕 [[루트비히 3세 (바이에른)|루트비히 3세]]. (~[[1921년]])
* [[1864년]] - 대한제국의 독립운동가, 언론인, 미국의 의사 [[서재필]]. (~[[1951년]])
* [[1895년]] - 루마니아의 피아노 연주자 [[클라라 하스킬]]. (~[[1960년]])
* [[1896년]] - 독일의 언론인, 정치인 [[빌리 아이흘러]]. (~[[1971년]])
* [[1926년]] - 대한민국의 정치가 [[김종필]]. (~[[2018년]])
* [[1930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인 겸 정치인 [[오극렬]]. (~[[2023년]])
** 오스트리아의 피겨 선수 [[수시 기에비슈]].
* [[1935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하대돈]]. (~[[2013년]])
* [[1939년]] - 그리스의 왕자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자 미하일]]. (~[[2024년]])
* [[1940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공무원 [[김백준]]. (~[[2022년]])
* [[1943년]] - 종이학 접기로 유명한 일본의 소녀 [[사사키 사다코]]. (~[[1955년]])
* [[1945년]] - 대한민국의 목회자 [[김삼환]].
* [[1948년]] - 일본의 가수, 성우 [[미즈키 이치로]]. (~[[2022년]])
* [[1952년]] - 홍콩의 배우 [[홍금보]].
* [[1956년]] - 미국의 배우 [[데이비드 카루소]].
* [[1958년]] - 대한민국의 교사 출신 노동운동가 [[노옥희]]. (~[[2022년]])
* [[1959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조원진]].
* [[1961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백영현]].
* [[1964년]]
** 대한민국의 공무원, 정치인 [[박수영 (1964년)|박수영]].
** 미국의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
* [[1968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강형석 (야구인)|강형석]].
* [[1970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오승록]].
* [[1971년]] - 미국의 배우 [[제러미 레너]].
* [[1972년]]
** 대한민국의 각본 작가 [[김은희]].
**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 [[이경섭 (작곡가)|이경섭]].
** 대한민국의 성우 [[임아영]].
* [[1974년]] -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 [[훌렌 게레로]].
* [[1975년]] - 대한민국의 가수 [[윤건]].
* [[1976년]] - 대한민국의 가수 최윤영.
* [[1978년]] - 싱가포르의 전 축구 선수 [[대니얼 베넷]].
* [[1979년]]
** 대한민국의 배우 [[하재숙]].
** 일본의 성우 [[혼나 요코]].
* [[1982년]]
** 일본의 배우 [[토미타 쇼]].
** 대한민국의 성우 [[이지현 (성우)|이지현]].
** 대한민국의 방송인 [[에이미 (1982년)|에이미]].
** 오스트레일리아의 축구 선수 [[제이드 노스]].
** 북한의 축구 선수 [[량용기]].
* [[1983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윤승균]].
** 대한민국의 희극인 [[장효인]].
** 대한민국의 레이싱모델 출신 배우 [[구지성]].
* [[1984년]]
** 대한민국의 모델, 배우 [[공현주]].
** 미국의 야구 선수 [[존 레스터]].
* [[198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신다은]].
* [[1986년]]
** 대한민국의 성우 [[김채하]].
**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 [[김민지 (쇼트트랙 선수)|김민지]].
* [[1987년]] - 대한민국의 모델 [[송해나]].
* [[1988년]]
** 네덜란드의 음악 프로듀서 [[하드웰]].
** 대한민국의 배우 [[임주은]].
** 미국의 배우, 가수 [[헤일리 베넷]].
* [[199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신성진]].
* [[1991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여명 (정치인)|여명]].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육상 선수 [[캐스터 세메냐]].
** 벨기에의 축구 선수 [[에덴 아자르]].
** 프랑스의 축구 선수 [[클레망 그르니에]].
** 대한민국의 배우 [[안우연]].
** 대한민국의 정치인,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여명 (정치인)|여명]].
* [[1992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경순.
**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이찬성]].
* [[1993년]]
** 대한민국의 가수 [[신현희]].
** 슬로베니아의 축구 선수 [[얀 오블라크]].
* [[199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선빈]].
* [[199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오진석]].
** 대한민국의 유튜버 [[잼미님]]. (~[[2022년]])
** 대한민국의 배우 [[홍서영]].
* [[1996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소은 (배우)|박소은]].
** 중화인민공화국의 바둑 기사 [[판윈뤄]]. (~[[2020년]])
** 모로코의 육상 선수 [[수피안 엘바칼리]].
* [[1997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새롬]] ([[Fromis 9]]).
** 대한민국의 가수 유현 ([[드림캐쳐 (음악 그룹)|드림캐쳐]]).
** 대한민국의 가수 지니 ([[굿데이 (음악 그룹)|굿데이]]).
** 대한민국의 배우 [[유현주 (배우)|유현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최원태]].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강국]].
** 대한민국의 전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노바 (1997년)|노바]].
* [[1999년]] - 일본의 스케이트보딩 선수 [[호리고메 유토 (스케이트보딩 선수)|호리고메 유토]]
* [[2000년]] -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 [[김하윤 (유도 선수)|김하윤]].
* [[2001년]] - 프랑스의 유도 선수 [[조앙뱅자맹 가바]].
* [[2004년]] - 미국의 배우 [[소피아 와일리]].
* [[2009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하나 (2009년)|김하나]].
* [[2013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연우 (배우)|김연우]].
== 사망 ==
* [[1536년]] - 영국왕 헨리 8세의 첫 번째 부인 [[카탈리나 다라곤 왕녀]]. ([[1485년]]~)
* [[1655년]] - [[교황 인노첸시오 10세]]. ([[1574년]]~)
* [[1754년]] - 조선 후기의 문신, 외척 [[정우량]]([[1692년]] ~ )
* [[1890년]] - 독일 제국의 초대 황후 [[아우구스타 폰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녀|아우구스타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녀]]. ([[1811년]]~)
* [[1943년]] - 미국의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 ([[1856년]]~)
* [[1947년]] - 대한민국의 시인 [[홍사용]]. ([[1900년]]~)
* [[1989년]] - 일본의 제124대 천황 [[쇼와 천황]]. ([[1901년]]~)
* [[1998년]]
** 미국의 수학자 [[리처드 해밍]]. ([[1915년]]~)
** 크로아티아계 스위스의 수상자 [[블라디미르 프렐로그]]. ([[1906년]]~)
* [[2002년]] - 대한민국의 비전향 장기수 [[신인영]]. ([[1929년]]~)
* [[2004년]] - 스웨덴의 배우 [[잉리드 툴린]]. ([[1926년]]~)
* [[2005년]] - 대한민국의 가수 [[길은정]]. ([[1961년]]~)
* [[2017년]] - 포르투갈의 제17대 대통령 [[마리우 소아르스]]. ([[1924년]]~)
* [[2018년]] - 프랑스의 가수 [[프랑스 갈]]. ([[1947년]]~)
* [[2018년]] - 뉴질랜드의 정치인 [[짐 앤더튼]]. ([[1938년]]~)
* [[2019년]] - 대한민국의 가수 [[진형 (가수)|진형]]. ([[1985년]]~)
* [[2020년]] - 캐나다의 음악가 [[닐 피어트]]. ([[1952년]]~)
* [[2021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경동호]]. ([[1981년]]~)
** 미국의 영화배우 [[발 베틴]]. ([[1923년]]~)
** 미국의 영화배우 [[마리온 램지]]. ([[1947년]]~)
** 미국의 영화배우 [[타키 키무라]]. ([[1924년]]~)
** 미국의 야구인 [[토미 라소다]]. ([[1927년]]~)
** 잉글랜드의 영화 감독 [[마이클 앱티드]]. ([[1941년]]~)
* [[2022년]] - 프랑스의 정치인 [[조제 에브라르]]. ([[1945년]]~)
* [[2023년]]
** 러시아의 수학자 [[유리 마닌]]. ([[1937년]]~)
** 미국의 영화배우 [[애덤 리치]]. ([[1968년]]~)
** 카메룬의 축구 선수 [[모데스트 음바미]]. ([[1982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국종남]]. ([[1937년]]~)
** 독일의 축구인 [[프란츠 베켄바워]]. ([[1945년]]~)
== 기념일 ==
* [[:en:Nanakusa-no-sekku|세븐 허브 축제]](Nanakusa no sekku): [[일본]]
* [[:it:Festa del Tricolore|삼색기의 날]](Festa del Tricolore): [[이탈리아]]
* [[동방 정교회]] 및 [[콥트 교회]]의 [[주 예수 그리스도 성탄 대축일|성탄절]], 이슬람 국가인 [[이집트]]는 2003년부터 공휴일로 지정됨.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6일]] 다음날: [[1월 8일]] - 전달: [[12월 7일]] 다음달: [[2월 7일]]
* 음력: [[음력 1월 7일|1월 7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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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5일'''은 [[그레고리력]]으로 5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5}}
== 사건 ==
* [[1554년]] -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다.
* [[1781년]] - [[미국 독립 전쟁]]: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버지니아주)|리치먼드]]가 [[베네딕트 아놀드]]의 영국 해군에 의해 타격을 입었다.
* [[1885년]] - [[우정총국]]에서 우편 업무 폐지.
* [[1905년]] -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 러시아 노동자 장례행렬에서 춤추다.
* [[1924년]] - 의열단원 [[김지섭]], [[일본 천황]] 폭살 기도 실패
* [[1949년]] - 미국의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이 트루먼 페어딜 정책을 발표하다.
* [[1964년]] - 동, 서방 교회 수장이 [[예루살렘]]에서 910년 만에 만남.
* [[2003년]] -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2회의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하여 23명이 사망하다.
* [[2004년]] - [[부룬디]]의 [[후투족]] 무장 조직인 FNL([[:fr:Forces nationales de libération (Burundi)|fr]])이 2003년 12월 31일 발표한 [[선전 포고]]를 철회하고 도미티앵 은다이제예([[:fr:Domitien Ndayizeye|fr]]) 대통령과 협상할 것을 받아들이다.
* [[2014년]]
** [[인도]] [[가오]]주의 신축 중이던 건물이 붕괴해 14명이 사망하였다.
** [[방글라데시]]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해 100여명이 사망하였다.
== 문화 ==
* [[1982년]] - 대한민국의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다.
* [[2005년]] - 대한민국에서 발견된 공룡인 '''[[천년 부경용]]'''이 클리블랜드 자연사박물관의 세계 공룡 목록에 등재되었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발견된 것으로는 두 번째로, 한국어 이름으로는 처음으로 등재된 것이다.
* [[2007년]] - 중화민국의 [[타이베이시]]와 [[가오슝시]]간의 고속철도가 개통하였다.
* [[2013년]] - [[동차형 새마을호]]가 운행중지되었다.
* [[2015년]] - [[보도전문채널]] [[연합뉴스TV]] 개국.
== 탄생 ==
* [[1592년]] -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 (~[[1666년]])
* [[1759년]] - 방데 반란의 지도자 [[자크 카텔리노]]. (~[[1793년]])
* [[1876년]] - 서독의 초대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 (~[[1967년]])
* [[1890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상옥 (1890년)|김상옥]]. (~[[1923년]])
* [[1907년]] - 대한민국의 수필가 [[김소운]]. (~[[1981년]])
* [[1912년]] - 대한민국의 아동 문학가 [[이원수 (작가)|이원수]]. (~[[1981년]])
* [[1920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세영 (1920년)|김세영]]. (~[[2010년]])
**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1995년]])
* [[1928년]]
**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인 [[술탄 이븐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2011년]])
** 미국의 제42대 부통령 [[월터 먼데일]]. (~[[2021년]])
* [[1931년]] - 미국의 배우 [[로버트 듀발]].
* [[1932년]]
**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작가 [[움베르토 에코]]. (~[[2016년]])
** 영국의 축구 선수 [[빌 폴크스]]. (~[[2013년]])
* [[1935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반형식]]. (~[[2024년]])
** 대한민국의 성우 출신 배우 [[김복희 (배우)|김복희]].
* [[1937년]] - 일본의 정치인 [[고노 요헤이]].
* [[193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박양수]]. (~[[2024년]])
** 스페인의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
** 케냐의 작가 [[응구기 와 티옹오]].
* [[1941년]] -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 [[1942년]]
**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2024년]])
** 쿠웨이트의 정치인 [[자베르 알무바라크 알하마드 알사바]]. (~[[2024년]])
* [[1945년]] - 러시아의 정치인 [[이반 립킨]].
* [[1946년]] - 미국의 배우 [[다이앤 키턴]].
* [[1950년]] -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정치인 [[정상용]].
* [[1952년]]
** 대한민국의 성우, 배우 [[장광]].
** 독일의 축구 선수 [[울리 회네스]].
* [[1953년]]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김동광]].
** 대한민국의 제빵사 [[김영모]].
* [[1956년]]
** 대한민국의 정치평론가 [[강준만]].
** 독일의 정치인이자 제12대 대통령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 [[1959년]] - 대한민국의 전직 군인 [[조현천]].
* [[1962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박흥식 (야구인)|박흥식]].
* [[1965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강기정]].
* [[1966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유철균]].
** 일본의 성우 [[아마노 유리]].
* [[1967년]] - 대한민국의 변호사 조수연.
* [[1968년]]
**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 [[정연준]].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경민 (희극인)|김경민]].
** 스위스의 싱어송라이터 [[DJ 보보]].
** 일본의 비평가 [[미즈노 슌페이]].
* [[1969년]]
** 미국의 음악가 [[마릴린 맨슨]].
** 미국의 배우 [[셰이 위검]].
* [[1970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야구 코치 [[강성우 (야구인)|강성우]].
* [[1971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겸 번역가 [[송경아]].
** 대한민국의 지방의원 [[김미화 (천안시의원)|김미화]].
** 크로아티아의 전 축구 선수 [[요슈코 옐리치치]].
* [[197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장서희]].
* [[1973년]]
** 대한민국의 성우 [[국승연]].
** 대한민국의 가수 [[미나 (1973년)|미나]].
** 대한민국의 가수 [[전지연 (가수)|전지연]].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정문 (1973년)|이정문]].
* [[1975년]]
** 대한민국의 성우 [[홍진욱]].
** 미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 프로듀서 [[브래들리 쿠퍼]].
* [[1976년]]
** 일본의 성우 [[아사누마 신타로]].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디에고 트리스탄]].
* [[1977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현정 (1977년생 가수)|김현정]].
* [[1978년]] - 미국의 영화배우 [[재뉴어리 존스]].
* [[198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신정선]].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황현준 (1980년)|황현준]].
** 독일의 축구 선수 [[제바스티안 다이슬러]].
* [[1981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한상헌]].
** 캐나다의 전자 음악가 [[데드마우스]].
* [[1982년]]
** 일본의 야구 선수 [[아오키 노리치카]].
** 일본의 유도 선수 [[쓰카다 마키]].
* [[1983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여성 (축구 선수)|이여성]].
* [[1984년]]
** 일본의 배우, 가수, 모델 [[나가사와 나오 (배우)|나가사와 나오]].
** 대한민국의 배우 [[민영원]].
** 대한민국의 배우 [[유인영]].
* [[198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윤소이]].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이하린 (아나운서)|이하린]].
** 프랑스의 배우 [[멜라니 베르니에]].
* [[1986년]]
** 일본의 배우, 가수 [[코이케 텟페이]].
** 대한민국의 배우 [[이도영 (배우)|이도영]].
** 대한민국의 희극인 [[이국주]].
** 대한민국의 배우 [[주민하]].
** 인도의 배우 [[디피카 파두콘]].
* [[1987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명제 (야구 선수)|김명제]].
** 대한민국의 가수 [[더 씨야|송민경]] ([[더 씨야]]).
** 대한민국의 연극배우, 영화배우 [[류지훈]].
* [[1988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나성용]].
* [[1989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윤준호.
* [[199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신윤정 (1990년)|신윤정]].
** 대한민국의 가수 [[양요섭]] ([[비스트 (음악 그룹)|비스트]], [[하이라이트 (음악 그룹)|하이라이트]]).
* [[1991년]]
** 대한민국의 댄스 스포츠 선수 이해인.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다니엘 파체코]].
* [[1992년]] - 영국의 모델 [[수키 워터하우스]].
* [[1993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경혜 (배우)|박경혜]].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강지훈 (바둑 기사)|강지훈]].
* [[1994년]] - 대한민국의 가수 [[설이랑]].
* [[1996년]]
** 프랑스의 유도 선수 [[뤼카 므케이제]].
** 대한민국의 골프 선수 [[안나린]].
* [[1997년]]
** 대한민국의 가수 수윤.
** 스페인의 축구 선수 [[헤수스 바예호]].
* [[1998년]] - 스웨덴의 축구 선수 [[카를레스 알레냐]].
* [[1999년]]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루트 (프로게이머)|루트]].
* [[2000년]] - 일본의 배우 [[마시코 아츠키]].
* [[2001년]]
** 대한민국의 사격 선수 [[추가은]].
** 대한민국의 가수 현.
* [[2002년]] - 대한민국의 가수 [[가린]] ([[앨리스 (음악 그룹)|앨리스]]).
* [[200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안지호 (배우)|안지호]].
* [[2013년]] - 대한민국의 아역 배우 [[박예린]].
== 사망 ==
* [[1066년]] -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참회왕]]. ([[1003년]]~)
* [[1477년]] - 부르고뉴의 공작 [[샤를 1세 드 부르고뉴 공작|샤를1세 드 부르고뉴 공작]]. ([[1433년]]~)
* [[1589년]] - 앙리 2세의 어머니이자 프랑스의 섭정 [[카트린 드 메디시스]]. ([[1519년]]~)
* [[1762년]] - 러시아 제국 로마노프 왕조의 6번째 군주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1709년]]~)
* [[1827년]] - 영국 [[조지 3세]]의 아들 [[요크와 올버니 공작 프레더릭]]. ([[1763년]]~)
* [[1922년]] - 영국의 군인,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 ([[1874년]]~)
* [[1933년]] - 미국의 대통령 [[캘빈 쿨리지]]. ([[1872년]]~)
* [[1947년]] - 일본의 군인 [[나가노 오사미]]. ([[1880년]]~)
* [[1951년]] - 대한민국의 독립 운동가 [[서재필]]. ([[1864년]]~)
* [[1951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김동인]]. ([[1900년]]~)
* [[1981년]] - 대한민국의 배우 [[라시찬]]. ([[1940년]]~)
* [[2001년]] - 대한민국의 성우 [[이영달]]. ([[1942년]]~)
* [[2007년]] - 일본의 기업인 [[안도 모모후쿠]]. ([[1910년]]~)
* [[2013년]] - 대한민국의 조직폭력배 [[김태촌]]. ([[1948년]]~)
* [[2014년]] -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에우제비우]]. ([[1942년]]~)
* [[2016년]] - 프랑스의 지휘자이자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 ([[1925년]]~)
* [[2017년]] - 대한민국의 국악인 [[성창순]]. ([[1934년]]~)
* [[2018년]]
** 대한민국의 역사학자 [[전해종 (1919년)|전해종]]. ([[1919년]]~)
** 미국의 우주비행사 [[존 영 (우주비행사)|존 영]]. ([[1930년]]~)
* [[2019년]]
** 대한민국의 배우 [[하용수]]. ([[1950년]]~)
** 유고슬라비아의 축구 선수 및 지도자 [[드라고슬라브 셰쿨라라츠]]. ([[1937년]]~)
* [[2021년]]
** 대한민국의 화가 [[김창열 (화가)|김창열]]. ([[1929년]]~)
** 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김봉희 (1966년)|김봉희]]. ([[1966년]]~)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콜린 벨 (1946년생 축구인)|콜린 벨]]. ([[1946년]]~)
** 영국의 영화배우 [[존 리처드슨 (배우)|존 리처드슨]]. ([[1934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미수]]. ([[199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동성 (1948년)|김동성]]. ([[1948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안상돈]]. ([[1940년]]~)
* [[2023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김덕주]]. ([[1933년]]~)
** 미국의 영화배우 [[얼 보엔]]. ([[1941년]]~)
** 대한민국의 국악음악가 [[정은하]]. ([[1956년]]~)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에르네스토 카스타노]]. ([[1939년]]~)
**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허버트 긴티스]]. ([[1940년]]~)
* [[2024년]]
** 잉글랜드의 가수 [[델 파머]]. ([[1952년]]~)
** 브라질의 축구 선수, 축구 감독 [[마리우 자갈루]]. ([[1931년]]~)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장명한]]. ([[1957년]]~)
== 기념일 ==
* [[:en:Bird_Day#National_Bird_Day|조류의 날]](National Bird Day): [[미국]]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4일]] 다음날: [[1월 6일]] - 전달: [[12월 5일]] 다음달: [[2월 5일]]
* 음력: [[음력 1월 5일|1월 5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5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6일'''은 [[그레고리력]]으로 6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6}}
== 사건 ==
* [[1540년]] - 영국 국왕 [[헨리 8세]]가 [[클레페의 앤]]과 네 번째로 결혼.
* [[1912년]] - [[뉴멕시코주]]가 [[미국]]의 47번째 주로 편입되었다.
* [[1941년]] -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네 가지 자유]]에 대한 연두교서를 발표.
* [[1980년]] - [[사무엘 도]]가 [[라이베리아]] [[대통령]]의 임기를 시작했다.
* [[1995년]] - [[보진카 계획]]이 적발되다.
* [[2015년]] - [[대한민국]]에서 [[세월호 특별법]] 타결.
* [[2016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2016년 1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 실험|4차 핵실험]] 실시.
* [[2021년]] - [[미국]] [[워싱턴 D.C.]]에서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이 발생했다.
== 문화 ==
* [[1907년]] - 이탈리아의 교육자 [[마리아 몬테소리]]가 '어린이의 집'을 설립.
* [[2000년]] - [[전라북도]]를 연고로 하는 [[한국의 프로 야구|대한민국의 프로야구]] 구단 [[쌍방울 레이더스]]가 해체됨.
== 탄생 ==
* [[1412년]] - 프랑스의 백 년 전쟁 영웅 [[잔 다르크]]. (~[[1431년]])
* [[1822년]] - 독일의 사업가 및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 (~[[1890년]])
* [[1838년]] - 독일의 작곡가, 지휘자 [[막스 브루흐]]. (~[[1920년]])
* [[1845년]] - 미국의 사업가 겸 정치인 [[이시도르 스트라우스]]. (~[[1912년]])
* [[1849년]] - 독일계 미국인 [[아이다 스트라우스]]. (~[[1912년]])
* [[1850년]] - 독일의 사회주의자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1932년]])
* [[190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주형 (정치인)|이주형]]. (~?)
* [[1913년]]
** 미국의 배우 [[로레타 영]]. (~[[2000년]])
** 폴란드의 정치가 [[에드바르트 기에레크]]. (~[[2001년]])
* [[1916년]] - 대한민국의 시인 겸 대학 교수 및 교육자 [[박목월]]. (~[[1978년]])
* [[1917년]] - 대한민국의 정치깡패 [[이정재 (1917년)|이정재]]. (~[[1961년]])
* [[1922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정치인, 국회의원 [[유기정]]. (~[[2010년]])
* [[1924년]] - 대한민국의 15대 대통령, 노벨평화상 [[김대중]]. (~[[2009년]])
* [[1926년]] - 일본의 소설가 [[김윤규]]. (~[[1980년]])
* [[1927년]] -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변형윤]]. (~[[2022년]])
* [[1929년]] - 아프가니스탄의 정치가 [[바브락 카르말]]. (~[[1996년]])
* [[1933년]] - 대한민국의 시인 [[이형기]]. (~[[2005년]])
* [[1937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황승민]]. (~[[2003년]])
* [[193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성우 [[김영옥 (배우)|김영옥]].
* [[1939년]] - 우크라이나의 축구 선수, 축구 감독 [[발레리 로바노우스키]]. (~[[2002년]])
* [[1942년]] - 대한민국의 언론인 [[김광일 (1942년)|김광일]].
* [[1943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김계관]].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축구 감독 [[테리 베너블스]]. (~[[2023년]])
* [[1944년]] - 북한의 축구 선수 [[박리섭]].
* [[1945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인환 (배우)|박인환]].
* [[1946년]]
** 영국의 뮤지션 [[시드 배릿]]. (~[[2006년]])
** 독일의 전 축구 선수 [[베른트 횔첸바인]].
** 홍콩의 배우 [[정페이페이]]. (~[[2024년]])
* [[1950년]] - 미국의 배우 [[일레인 브롬카]].
* [[1951년]] - 대한민국의 지방의원 [[이의영 (1951년)|이의영]].
* [[1953년]]
** 독일의 전 축구 선수 [[만프레트 칼츠]].
** 오스트레일리아의 음악가, 기타리스트 [[맬컴 영]]. (~[[2017년]])
* [[1955년]] - 영국의 배우, 희극인 [[로언 앳킨슨]].
* [[1959년]] - 레바논의 총리 [[하산 디아브]].
* [[1961년]] - 대한민국의 프로듀서 [[박정훈 (1961년)|박정훈]].
* [[1962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장정일]].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홍규 (1962년)|김홍규]].
** 대한민국의 검사, 정치인 [[이성윤 (1962년)|이성윤]].
* [[1964년]] - 미국의 레슬링 선수 [[재클린]].
* [[1966년]] - 대한민국의 성우 [[박경찬]].
* [[1968년]]
** 대한민국의 가수 [[고병희 (가수)|고병희]].
** 미국의 영화 감독 [[존 싱글턴]]. (~[[2019년]])
* [[1971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은혜 (1971년)|김은혜]].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최문식]].
* [[1974년]] - 일본의 영화 감독 [[이상일 (영화 감독)|이상일]].
* [[1975년]] - 일본의 성우 [[유카나]].
* [[1976년]]
** 미국의 배우, 성우, 뮤지션 [[조니 용 보시]].
**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 [[전이경]].
** 중화인민공화국의 배우 [[루이 (배우)|루이]].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박상준 (아나운서)|박상준]].
* [[1977년]] - 대한민국의 가수 [[데프콘 (가수)|데프콘]].
* [[1978년]]
**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양양 (1978년)|양양]].
**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츠지 아야노]].
* [[197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정소영 (여성 배우)|정소영]].
* [[1980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시은]].
* [[198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윤주만]].
** 대한민국의 배우 [[안재현 (1981년)|안재현]].
** 일본의 배우 [[키쿠치 린코]].
* [[1982년]] - 영국의 배우 [[에디 레드메인]].
* [[1983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태원 (희극인)|김태원]].
** 대한민국의 래퍼 [[미쓰라 진]] ([[에픽하이]]).
** 대한민국의 국악인, 가수 [[이봉근 (국악인)|이봉근]].
** 대한민국의 방송인 [[김이브님]].
** 대한민국의 배우 [[서정욱 (배우)|서정욱]].
* [[1984년]]
** 미국의 희극인, 배우, 성우 [[케이트 매키넌]].
** 대한민국의 만화가 [[CUTEG]].
** 체코의 모델 [[에릭 트럼프]].
* [[198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서효림]].
* [[1986년]]
** 영국의 음악가 [[알렉스 터너]] ([[악틱 몽키즈]]).
** 러시아의 모델 [[이리나 셰이크]].
** 대한민국의 배우 [[김성규 (배우)|김성규]].
** 대한민국의 배우 [[국기훈]]. (~[[2021년]])
** 네덜란드의 디스크자키, 음악 프로듀서 [[니키 로메로]].
* [[1987년]] - 대한민국의 배우 [[신민수 (1987년)|신민수]].
* [[1988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지혜.
* [[1989년]]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앤디 캐럴]].
** 일본의 성우 [[미카미 시오리]].
** 네덜란드의 디스크자키 겸 음악 프로듀서 [[니키 로메로]].
* [[1990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박윤미 (1990년 1월)|박윤미]].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정설빈]].
* [[1991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정다운.
* [[1992년]] - 코스타리카의 축구 선수 [[조나탄 모야]].
* [[1993년]] - 대한민국의 모델 김미림.
* [[199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최원명]].
** 대한민국의 가수 [[JAY B]] ([[GOT7]]).
** 대한민국의 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프레이 (프로게이머)|프레이]].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데니스 수아레스]].
* [[1995년]] - 미국의 발레단 [[미켈라 드프린스]]. (~[[2024년]])
* [[1996년]]
** 대한민국의 가수 [[낯선아이]] (前 [[볼빨간사춘기]]).
** 대한민국의 래퍼 [[KING SOUTH G]].
* [[1997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강지훈 (축구 선수)|강지훈]].
**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옥진욱]].
* [[1998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승우 (1998년)|이승우]].
** 이란의 레슬링 선수 [[모함마드 하디 사라비]].
* [[1999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엄원상]].
** 러시아의 피겨스케이팅 선수 [[옐레나 라디오노바]].
* [[2000년]]
** 대한민국의 가수 [[권은빈]] ([[CLC (음악 그룹)|CLC]]).
** 중화민국의 가수 [[슈화]] ([[(여자)아이들]]).
** 독일의 축구 선수 [[얀피에테 아르프]].
* [[2001년]] - 대한민국의 가수 클로이.
* [[2002년]]
** 일본의 아이돌 가수 [[야나가와 나나미]].
** 중국의 배우, 가수 [[린모]].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민성 (2002년)|김민성]].
* [[2003년]] - 대한민국의 가수 채이.
* [[2007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다경.
== 사망 ==
* [[1829년]] - 체코의 소설가 [[요세프 도브로프스키]]. ([[1753년]]~)
* [[1852년]] - 프랑스의 점자 창안자 [[루이 브라유]]. ([[1809년]]~)
* [[1884년]] - 오스트리아의 생물학자 [[그레고어 멘델]]. ([[1822년]]~)
* [[1918년]] - 독일의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 ([[1845년]]~)
* [[1919년]] - 미국의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1858년]]~)
* [[1949년]] - 미국의 영화 감독 [[빅터 플레밍]]. ([[1889년]]~)
* [[1958년]] - 대한민국의 장로교 목사 [[김응순]]. ([[1891년]]~)
* [[1981년]] - 영국의 소설가 [[A. J. 크로닌]]. ([[1896년]]~)
* [[1993년]] - 미국의 트럼펫 연주자 [[디지 길레스피]]. ([[1917년]]~)
* [[1996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광석]]. ([[196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병주 (1912년)|이병주]]. ([[1912년]]~)
* [[2013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조성민 (야구인)|조성민]]. ([[1973년]]~)
* [[2017년]] - 인도의 배우 [[옴 푸리]]. ([[1950년]]~)
* [[2020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이선중]]. ([[1924년]]~)
* [[2021년]]
** 대한민국의 래퍼 [[빅죠]]. ([[1978년]]~)
** 일본의 재즈연주자 [[나베시마 나오테루 (비브라폰 연주자)|나베시마 나오테루]]. ([[1926년]]~)
** 일본의 야구 선수 [[다도코로 젠지로]]. ([[1934년]]~)
* [[2022년]]
** 일본의 역사학자 [[이마니시 하지메]]. ([[1948년]]~)
** 미국의 영화 감독 [[피터 보그다노비치]]. ([[1939년]]~)
** 미국의 영화배우 [[시드니 포이티어]]. ([[1927년]]~)
** 필리핀의 소설작가 [[프란시스코 시오닐 호세]]. ([[1924년]]~)
* [[2023년]]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잔루카 비알리]]. ([[1964년]]~)
== 기념일 ==
* [[:en:Public holidays in Laos|빠텟 라오의 날]](Pathet Lao Day): [[라오스]]
* [[:en:Public holidays in Iraq|국군의 날]](Armed Forces Day): [[이라크]]
* [[동방 박사]] 3인의 축일([[주현절|주님 공현 대축일]])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5일]] 다음날: [[1월 7일]] - 전달: [[12월 6일]] 다음달: [[2월 6일]]
* 음력: [[음력 1월 6일|1월 6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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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8일'''은 [[그레고리력]]으로 8번째([[윤년]]일 경우도 8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8}}
== 사건 ==
* [[307년]] - [[서진 혜제]]가 독살되고 [[서진 회제]]가 즉위하다.
* [[871년]] - [[:en:Battle of Ashdown|애쉬다운 전투]]: [[웨섹스 왕국]]의 [[앨프레드 대왕]]이 북방의 [[:en:Danelaw|데인족(Danes)]]을 격파하다.
* [[936년]] - 신라가 고려에 항복함으로써 신라에 병합되다.
* [[1297년]] - 모나코 독립.
* [[1815년]] - [[뉴올리언스 전투]]가 끝나다.
* [[1895년]] - [[홍범 14조]] 반포.
* [[1918년]] - 미국의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의회에서 제1차 대전 평화와 전후 세계에 대한 [[14개조]]를 발표하다.
* [[1932년]] - [[이봉창]] 의사, [[히로히토]] [[일본 천황]]을 암살하려는 [[도쿄]] [[사쿠라다몬 의거]] 발생.
* [[1959년]] - 프랑스 제5공화정의 초대 대통령으로 [[샤를 드 골]]이 취임하다. [[미셸 드프레]]가 수상이 되다.
* [[1974년]] - 대한민국의 대통령 [[박정희]], [[긴급조치]] 1호를 선포하다.
* [[1981년]] [[경복궁]]의 [[근정전]]이 국보 제223호로 지정된 날
* [[1989년]] - 일본의 제125대 천황 [[아키히토]]가 즉위하다.
* [[1992년]] - [[수요시위|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시작되다.
* [[1995년]] - [[대한민국]]에서 [[개인정보보호법]](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다.
* [[1996년]] - [[1996년 에어아프리카 충돌 사고]] 발생.
* [[2005년]] - [[칠곡 시온글러브 화재]]가 발생하다.
* [[2015년]] -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모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인천 송도국제도시 어린이집 아동폭행 사건|네살배기 아이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다.
* [[2020년]] - [[이란]]의 [[테헤란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에서 [[우크라이나 국제항공]] 여객기가 이륙 직후 [[우크라이나 국제항공 752편 추락 사고|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해 탑승객 전원 176명이 숨졌다.
* [[2021년]]
** [[서울중앙지방법원]]이 피고인 일본 정부가 원고인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12인에게 1인당 1억원씩을 지급하라는 원고승소 판결을 내렷다.
** [[테슬라]]의 주가 폭등에 힘입어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아마존닷컴의 CEO [[제프 베조스]]를 제치고 순자산 1천 885억 달러(약 206조 원, 블룸버그 집계기준)로 세계 최고 부자 자리에 올랏다.
== 문화 ==
* [[2007년]] - [[서울특별시|서울]]에 위치한 [[롯데월드]]가 전면 개보수를 위해 휴장하다.
== 탄생 ==
* [[1037년]] - 중국 북송의 시인 [[소식 (북송)|소식]]. (~[[1101년]])
* [[1587년]] -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파브리치우스]].
* [[1628년]] - 프랑스의 원수 [[프랑수아 앙리 드 몽모랑시뤽상부르 공작|프랑수아 앙리 드 몽모랑시 뤽상부르 공작]]. (~[[1695년]])
* [[1821년]] - 남부동맹의 장군 [[제임스 롱스트리트]]. (~[[1904년]])
* [[1902년]] - 소련의 정치인 [[게오르기 말렌코프]]. (~[[1988년]])
* [[1905년]]
** 대한민국의 동화작가 [[마해송]]. (~[[196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영기 (1905년)|김영기]]. (~[[1989년]])
* [[1920년]]
** 대한민국의 미술평론가 [[박문원 (미술가)|박문원]]. (~[[1973년]])
** 대한민국의 군인 [[박병권]]. (~[[2005년]])
* [[1921년]] - 대한민국의 군인 [[김영환 (1921년)|김영환]]. (~[[1954년]])
* [[1923년]] - 미국의 영화배우 [[래리 스토치]]. (~[[2022년]])
* [[1924년]] - 대한민국의 군인 [[안창관]]. (~[[1971년]])
* [[1930년]] - 미국의 배우, 댄서 [[메이 윈]].
* [[1932년]] - 대한민국의 관료 겸 정치인 [[이상희 (1932년)|이상희]]. (~[[2022년]])
* [[1933년]] - 스페인의 소설가, 저널리스트 [[후안 마르세]]. (~[[2020년]])
* [[193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선길]]. (~[[2008년]])
* [[1935년]] - 미국의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 (~[[1977년]])
* [[1942년]]
**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2018년]])
** 일본의 전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 [[1945년]] - 대한민국의 가수 [[서유석]].
* [[1947년]] - 영국의 음악가, 예술가 [[데이비드 보위]]. (~[[2016년]])
* [[1953년]] - 미국의 야구 선수 [[브루스 수터]]. (~[[2022년]])
* [[195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장광근]]. (~[[2023년]])
* [[195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두섭]].
** 대한민국의 변호사, 시사평론가 [[전원책]].
* [[1956년]] - 대한민국의 성우 [[유해무]].
* [[1957년]] - 대한민국의 성우 [[도용구]].
* [[1960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 [[주호영]].
* [[1965년]]
** 대한민국의 전 탁구 선수, 해설가 [[안재형]].
** 대한민국의 성우 [[홍성헌]].
** 미국의 배우 [[미셸 포브스]].
* [[1967년]] - 미국의 가수, 음반 프로듀서 [[R. 켈리]].
* [[196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정재곤]].
** 대한민국의 배우 [[정민경 (1969년)|정민경]].
* [[1971년]]
** 대한민국의 지방의원, 정치가 [[허창원]].
**스위스의 축구 선수 [[파스칼 추베르뷜러]].
**미국의 야구 선수 [[제이슨 지암비]].
* [[1972년]] - 미국의 가수 [[솔리드 (음악 그룹)|정재윤]] ([[솔리드 (음악 그룹)|솔리드]]).
* [[1975년]] - 일본의 배우, 성우 [[치바 레이코]].
* [[1977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유진 (여자 배우)|이유진]].
* [[1978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진희 (1978년)|박진희]].
* [[1979년]]
** 캐나다의 가수 [[세라 폴리]].
** 스웨덴의 전 축구 선수 [[한나 융베리]].
** 루마니아의 축구 선수 [[아드리안 무투]].
** 미국의 배우 [[윈덜 미들브룩스]].
** 대한민국의 방송인 [[슈카월드]].
* [[1980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정수 (축구인)|이정수]].
** 잉글랜드의 배우, 가수 [[샘 라일리]].
* [[1981년]] - 오스트레일리아의 배우 [[카산드라 매그래스]].
* [[1982년]] - 대한민국의 미디어아티스트 [[문준용]].
* [[198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송유현 (1983년)|송유현]].
* [[1984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무위원장ㆍ조선로동당 총비서 [[김정은]].
** 대한민국의 배우 [[전여진]].
* [[1985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그리나]].
** 대한민국의 성우 [[한만중]].
* [[1986년]]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다비드 실바]].
** 대한민국의 배우 [[장재호 (배우)|장재호]].
** 대한민국의 배우 [[차엽]].
** 대한민국의 가수 [[윤성현 (가수)|윤성현]].
** 대한민국의 장애인 탁구 선수 [[서수연]].
** 코스타리카의 축구 선수 [[다니엘 캄브로네로]].
* [[1987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정재원 (배우)|정재원]].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종현 (축구 선수)|이종현]].
** 태국의 왕족 [[시리완나와리 나리랏]].
** 일본의 성우 [[고토 사오리]].
** 잉글랜드의 배우 [[프레디 스트로마]].
* [[1988년]]
** 대한민국의 가수 [[하진 (가수)|하진]].
** 대한민국의 모델 겸 배우 [[최시형 (1988년)|최시형]].
* [[1989년]]
** 대한민국의 전 배우 [[이찬호]].
** 대한민국의 배우 [[김가은 (1989년 1월)|김가은]].
** 대한민국의 배우 [[이이경]].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오하루]].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태균 (야구 선수)|이태균]].
** 스페인의 축구 선수 [[알프레드 후르케라]].
* [[1990년]]
**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감스트]].
** 스웨덴의 축구 선수 [[로빈 올센]].
** 카보베르데의 축구 선수 [[리안 멘드스]].
* [[1991년]]
** 대한민국의 체조 선수 [[신수지]].
** 대한민국의 래퍼 [[지민 (래퍼)|지민]]. ([[AOA (음악 그룹)|AOA]])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축구 선수 [[리영철 (축구 선수)|리영철]].
** 몬테네그로의 축구 선수 [[스테판 사비치]].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길태곤]].
* [[1992년]]
** 대한민국의 래퍼 [[아이언 (래퍼)|아이언]]. (~[[2021년]])
** 스페인의 축구 선수 [[코케]].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김수진 (1992년)|김수진]].
** 프랑스의 배우 달리 벤살라
* [[1993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한보선]].
** 대한민국의 가수 [[용석 (가수)|용석]].
* [[1995년]]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미스틱 (프로게이머)|미스틱]].
** 미국의 가수, 배우 [[라이언 데스티니]].
* [[1996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수영 (1996년)|김수영]].
* [[1997년]] - 슬로베니아의 유도 선수 [[안드레야 레슈키]].
* [[1998년]]
** 대한민국의 역도 출신 가수 [[이병찬 (가수)|이병찬]].
** 이란의 레슬링 선수 [[아민 미르자자데]].
* [[2000년]] - 미국의 가수 [[노아 사이러스]].
* [[2001년]] - 일본의 배우 [[야마다 안나]].
* [[2003년]]
** 중국의 가수 [[장쟈위엔]].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지한 (축구 선수)|이지한]].
** 대한민국의 가수 [[서다현]].
* [[2004년]]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권효진 (2004년)|권효진]].
* [[2008년]] - 대한민국의 가수 [[곽연지]].
* [[2009년]] - 일본의 스케이트보드 선수 [[아카마 리즈]].
* [[2011년]]
** 덴마크의 왕자 [[덴마크 왕자 빈센트]].
** 덴마크의 공주 [[덴마크 공주 요세피네]].
=== 미상 ===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주엽 (축구 선수)|김주엽]].
== 사망 ==
* [[1324년]] - 이탈리아의 탐험가 [[마르코 폴로]]. ([[1254년]]~)
* [[1337년]] - 이탈리아의 건축가, 화가 [[조토 디 본도네]]. ([[1267년]]~)
* [[1825년]] - 미국의 발명가 [[일라이 휘트니]]. ([[1765년]]~)
* [[1896년]] - 프랑스의 시인 [[폴 베를렌]]. ([[1844년]]~)
* [[1949년]] - 일본의 군인 [[우메즈 요시지로]]. ([[1882년]]~)
* [[1976년]] -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무원, 총리 [[저우언라이]]. ([[1898년]]~)
* [[1996년]] - 프랑스의 제21대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 ([[1916년]]~)
* [[1997년]] - 미국의 화학자 [[멜빈 캘빈]]. ([[1911년]]~)
* [[2016년]] - 대한민국의 연극배우 [[백성희 (배우)|백성희]]. ([[1925년]]~)
* [[2017년]] - 이란의 제4대 대통령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1934년]]~)
* [[2018년]]
**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정치인 [[조지 맥스웰 리처즈]]. ([[1931년]]~)
** 온두라스의 축구 선수 [[후안 카를로스 가르시아]]. ([[1988년]]~)
** 미국의 대학교수 [[조지 린드벡]]. ([[1923년]]~)
* [[2020년]]
** 미국의 영화배우 [[벅 헨리]]. ([[1930년]]~)
** 미국의 영화배우 [[에드 번즈]]. ([[1932년]]~)
* [[2021년]] - 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김기태 (1954년)|김기태]]. ([[1954년]]~)
* [[2022년]]
** 태국의 가수 [[썬펫 썬쑤판]]. ([[1948년]]~)
** 영국의 언론인, 기자 [[앤드루 제닝스]]. ([[1943년]]~)
** 소련의 역도 선수 [[빅토르 마진]]. ([[1954년]]~)
* [[2024년]]
** 우크라이나의 축구 선수 [[보흐단 셰르슌]]. ([[1981년]]~)
** 멕시코의 영화배우 [[아단 칸토]]. ([[1981년]]~)
** 벨기에의 축구 선수 [[프란스 얀선스]]. ([[1945년]]~)
== 기념일 ==
* 연방의 날(Commonwealth Day): [[북마리아나 제도]]
* [[:en:Babinden|산파의 날]]: [[벨라루스]]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7일]] 다음날: [[1월 9일]] - 전달: [[12월 8일]] 다음달: [[2월 8일]]
* 음력: [[음력 1월 8일|1월 8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8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15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5번째([[윤년]]일 경우도 15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15}}
== 사건 ==
*
* [[69년]] - 로마 제국의 일곱 번째 황제 [[오토 (로마 제국)|오토]]가 스스로 황제임을 자처하면서 권력을 잡다.
* [[1559년]] -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의 대관식이 열리다.
* [[1892년]] - [[제임스 네이스미스]]가 [[농구]] 규칙을 발표하다.
* [[1919년]] - 독일의 사회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가 암살됨
* [[1943년]] - 세계에서 제일 큰 오피스 건물인 미 국방성 본부인 5각의 [[펜타곤]]([[버지니아주]])이 완성된다.
* [[1946년]] - [[남조선국방경비대]] 창설.
* [[1970년]] - [[비아프라]]가 멸망하다.
* [[1982년]] - [[OB베어스]]가 창단하다.
* [[1987년]] - 대한민국, [[박종철]] 사망 발표.
* [[2001년]] - [[위키위키|위키]] 기반의 [[WWW|웹]] 백과사전인 [[위키백과]]가 탄생하다.
* [[2006년]] - [[김정일]]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하다.
* [[2009년]] - [[US 에어웨이스 1549편 불시착 사고]]: 미국 뉴욕주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 노스 캐롤라이나 주 샬럿으로 향하던 [[에어버스 A320]] 여객기가 [[센트럴 파크]] 인근 [[허드슨강]]에 불시착하다.
* [[2013년]] - 외발산동 버스 차고지에서 방화가 원인인 화재가 발생해, 운행을 마치고 주박중인 버스 30대가 전소되었고 , 8대가 일부분 에 불에 탔다.
* [[2014년]] - 이틀에 걸쳐 시행된 [[이집트]] [[2014년 이집트 헌법|신헌법]]에 대한 [[2014년 이집트 개헌 국민투표|국민투표]]가 투표율 38.6%, 찬성율 98.1%로 통과되다.
* [[2023년]] - [[예티 항공 691편 추락 사고]]를 일어났다.
== 문화 ==
* [[1961년]] -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 개항.
* [[1975년]] - [[대한민국]]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부처님 오신 날|석가탄신일]]을 법정공휴일로 지정, 공포했다.
* [[2007년]] - [[달빛조각사]]의 첫 출판일.
* [[2015년]] - 걸그룹 [[여자친구 (음악 그룹)|여자친구]] 데뷔.
* [[2016년]] - 걸그룹 [[카라 (음악 그룹)|카라]]가 데뷔 9년만에 전격 해체하였다.
== 탄생 ==
* [[961년]] - 고려의 제6대 국왕 [[성종 (고려)|성종]]. (~[[997년]])
* [[1169년]] - 고려의 문신 [[이규보]]. (~[[1241년]])
* [[1622년]] - 프랑스의 극작가 [[몰리에르]]. (~[[1673년]])
* [[1754년]] - 프랑스의 혁명기 때 정치가 [[자크 피에르 브리소]]. (~[[1793년]])
* [[1809년]] - 프랑스의 사상가 [[피에르조제프 프루동]]. (~[[1865년]])
* [[1850년]] - 루마니아의 시인 [[미하이 에미네스쿠]]. (~[[1889년]])
* [[1875년]] - 미국의 육상 선수 [[토머스 버크 (육상 선수)|토머스 버크]]. (~[[1929년]])
* [[1891년]] - 미국 프로 전 야구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선수 [[레이 채프먼]]. (~[[1920년]])
* [[1895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유일한]]. (~[[1971년]])
** 핀란드의 생화학자 [[아르투리 일마리 비르타넨]]. (~[[1973년]])
* [[1905년]] - 대한민국의 교육자 [[송금선]]. (~[[1987년]])
* [[1908년]] - 헝가리 출신 유대계 미국인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 (~[[2003년]])
* [[1912년]] - 프랑스의 정치인 [[미셸 드브레]]. (~[[1996년]])
* [[1917년]] - 미국의 배우 [[일레인 라일리]]. (~[[2015년]])
* [[192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원경 (1922년)|이원경]]. (~[[2007년]])
** 대한민국의 비전향 장기수 [[리세균]]. (~[[2013년]])
* [[1923년]] - 중화민국의 정치인, 총통 [[리덩후이]]. (~[[2020년]])
* [[1926년]] -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정치인 [[라피크 니쇼노프]]. (~[[2023년]])
* [[1929년]] - 미국의 목사 [[마틴 루터 킹 주니어]]. (~[[1968년]])
* [[193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윤재명]].
** 미국의 육상 선수 [[딘 스미스 (육상 선수)|딘 스미스]]. (~[[2023년]])
* [[1934년]]
** 대한민국의 격투 선수 [[송순천]]. (~[[2019년]])
** 대한민국의 기업가, 정치인 [[박유재]].
* [[1936년]] - 대한민국의 성우 [[김현직]]. (~[[2002년]])
* [[1937년]]
** 대한민국의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 [[이수병]]. (~[[1975년]])
** 영국의 기업인 [[데이비드 골드]]. (~[[2023년]])
** 대한민국의 성우 [[김계원 (성우)|김계원]]. (~[[2012년]])
* [[193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유한열]].
* [[1939년]] - 대한민국의 광물학자 [[김수진 (1939년)|김수진]].
* [[1941년]] - 중화민국의 정치인 [[스밍더]]. (~[[2024년]])
* [[1943년]] - 일본의 배우 [[키키 키린]]. (~[[2018년]])
* [[1947년]] - 대한민국의 교육인 [[정홍섭 (1947년)|정홍섭]]. (~[[2024년]])
* [[194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성우 [[황정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정우현]].
* [[1949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창숙 (배우)|김창숙]].
* [[1951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박일환]].
* [[195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신동훈 (1953년)|신동훈]].
* [[1955년]] - 일본의 성우 [[타나카 마유미 (성우)|타나카 마유미]].
* [[1957년]]
** 미국의 작가 [[로버트 라이트]].
** 미국의 영화감독 [[마리오 밴 피블스]].
* [[195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기초자치단체장 [[고남석]].
* [[1959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혜민 (남자 가수)|이혜민]].
** 대한민국의 가수 [[홍서범]].
** 대한민국의 교육인 [[정병걸]].
** 대한민국의 금융인, 정치인 [[주진형]].
* [[196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상숙]].
** 이탈리아의 배우 [[마르게리타 부이]].
* [[1964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충선]].
* [[1966년]] - 대한민국의 공무원 [[문승욱]].
* [[1969년]]
** 대한민국의 언론인,정치인 [[한민수 (1969년)|한민수]].
**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서경희]].
* [[1970년]]
** 대한민국의 성우 [[이주창]].
** 미국의 프로레슬링 선수 [[셰인 맥마흔]].
* [[1971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황정민 (아나운서)|황정민]].
** 대한민국의 법조인 [[심우정 (법조인)|심우정]].
** 미국의 배우 [[리자이나 킹]].
* [[1972년]] - 대한민국의 성우 [[박만영]].
* [[1973년]]
** 이집트의 전 축구 선수 [[에삼 엘하다리]].
** 대한민국의 탁구 선수 [[주영대 (탁구 선수)|주영대]].
* [[197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신소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황성관]].
* [[1975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영수 (1975년)|김영수]].
* [[1976년]] - 대한민국의 배우 [[현우섭]].
* [[1977년]]
** 대한민국의 배우 [[진재영]].
** 대한민국의 앵커, 연출가 [[김현정 (연출가)|김현정]].
** 이탈리아의 정치인 [[조르자 멜로니]].
* [[1979년]]
** 대한민국의 성우 [[홍희숙]].
** 대한민국의 기상 캐스터, 방송인 [[박신영 (방송인)|박신영]].
* [[1980년]] - 대한민국의 성우 [[박서진 (성우)|박서진]].
* [[1981년]]
** 미국의 랩 가수 [[핏불]].
** 세네갈의 축구 선수 [[엘 하지 디우프]].
** 대한민국의 가수 [[최예나 (1981년)|최예나]].
** 부르키나파소의 육상 선수 [[위그 파브리스 장고]].
* [[1982년]]
** 대한민국의 전 가수, 배우 [[강세정]].
** 대한민국의 배우 [[최하나 (배우)|최하나]].
* [[1983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오타 (가수)|이오타]].
* [[1984년]]
** 일본의 성우 [[요나가 츠바사]].
** 대한민국의 배우 [[임은경]].
* [[1985년]] - 대한민국의 배우 [[클라라 (배우)|클라라]].
* [[1986년]] - 대한민국의 성악가 이효재.
* [[1987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심영성]].
** 대한민국의 배우 [[곽시양]].
** 미국의 배우, 모델 [[켈리 켈리]].
** 미국의 배우 [[마이클 시터]].
* [[1988년]] - 대한민국의 가수 [[Jun. K]] ([[2PM]]).
* [[1989년]] - 오스트레일리아의 배우 [[라이언 코]].
* [[1990년]]
** 대한민국의 가수 린아.
** 대한민국의 가수 [[백지웅]].
* [[1991년]]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이은서 (레이싱 모델)|이은서]].
** 대한민국의 럭비 선수 [[안드레 진]].
** 대한민국의 가수 [[양화 (가수)|양화]].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마르크 바르트라]].
** 미국의 레슬링 선수 [[애들린 그레이]].
* [[1992년]]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이경민 (프로게이머)|이경민]].
** 노르웨이의 축구 선수 [[조슈아 킹]].
** 네델란드의 축구 선수 [[요옐 펠트만]].
* [[1993년]]
** 중화인민공화국의 바둑 기사 [[탕웨이싱]].
** 중화인민공화국의 역도 선수 [[리파빈]].
* [[1994년]]
** 대한민국의 가수 [[형원]] ([[몬스타엑스]]).
** 대한민국의 배우 [[이효나]].
** 시리아의 축구 선수 [[오마르 크르빈]].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에릭 다이어]].
** 중화인민공화국의 탁구 선수 [[천멍]].
* [[1995년]]
** 대한민국의 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리라 (프로게이머)|리라]].
** 대한민국의 기계체조 선수 [[허선미]].
* [[1996년]]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김채영 (바둑 기사)|김채영]].
** 미국의 배우, 가수 [[도브 캐머런]].
* [[1997년]]
** 대한민국의 가수 [[최예근]].
** 대한민국의 쇼핑호스트 [[장가희]].
* [[1998년]]
** 대한민국의 가수 [[주연]] ([[더보이즈 (음악 그룹)|더보이즈]]).
** 대한민국의 가수 [[HYNN]].
* [[1999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오세훈 (축구 선수)|오세훈]].
** 대한민국의 사격 선수 [[조영재 (사격 선수)|조영재]].
* [[200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수현 (2000년)|수현]] ([[Billlie]]).
** 대한민국의 성우 [[한혜원 (KBS 성우)|한혜원]].
* [[200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영은 (2004년)|이영은]].
* [[2005년]] - 일본의 아이돌 [[시미즈 리오]].
=== 미상 ===
*대한민국의 가수 [[루이드]] (김기범).
== 사망 ==
* [[69년]] - 로마 제국의 제6대 황제 [[갈바]]. ([[기원전 3년]]~)
* [[1394년]] - 조선 태조의 1왕자 [[진안대군]]. ([[1354년]]~)
* [[1595년]] - 오스만 제국의 12대 술탄 [[무라트 3세]]. ([[1546년]]~)
* [[1919년]] - 독일 마르크스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 ([[1871년]]~)
* [[1931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동진 (1931년)|이동진]]. ([[1931년]]~)
* [[1957년]] - 대한민국의 군인 [[지청천]]. ([[1888년]]~)
* [[2005년]] - 미국의 영화배우 [[루스 워릭]]. ([[1916년]]~)
* [[2013년]] - 일본의 영화 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 [[오시마 나기사]]. ([[1932년]]~)
* [[2014년]] - 영국의 영화배우 [[로저 로이드팩]]. ([[1944년]]~)
* 2015년 - 우리 엄마
* [[2016년]] -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신영복]]. ([[1941년]]~)
* [[2017년]] - 미국의 프로레슬링 선수 [[지미 스누카]]. ([[1943년]]~)
* [[2018년]] - 아일랜드의 싱어송라이터 [[돌로레스 오리오던]]. ([[1971년]]~)
* [[2019년]] - 미국의 배우, 희극인, 가수, 댄서 [[캐럴 채닝]]. ([[1921년]]~)
* [[2020년]] - 대한민국의 기자 [[김영희 (기자)|김영희]]. ([[1936년]]~)
* [[2021년]]
** 대한민국의 기초단체장 [[심의조]]. ([[1938년]]~)
** 일본의 소설가 [[오마키 후지오]]. ([[1928년]]~)
** 칠레의 축구 선수 [[비센테 칸타토레]]. ([[1935년]]~)
* [[2022년]] -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 겸 기업인 [[니노 세루티]]. ([[1930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김승한 (아나운서)|김승한]]. ([[1937년]]~)
** 대만의 정치인 [[스밍더]]. ([[1941년]]~)
** 대한민국의 교수 [[채경철]]. ([[1949년]]~)
==기념일==
* [[북한]]의 한글날([[조선글날]])
== 각주 ==
<references/>
== 같이 보기 ==
* 전날: [[1월 14일]] 다음날: [[1월 16일]] - 전달: [[12월 15일]] 다음달: [[2월 15일]]
* 음력: [[음력 1월 15일|1월 15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15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10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0번째([[윤년]]일 경우도 10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10}}
== 사건 ==
* [[기원전 49년]] -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넘으로써 [[카이사르 내전]]이 시작되다.(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 [[9년]] - 외척 [[왕망]]이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세우다.
* [[69년]] - [[로마 제국]]의 황제 [[갈바]]가 [[:en:Lucius Calpurnius Piso Licinianus|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리키니아누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하다.
* [[1072년]] - [[노르만족]] 정복자 [[로베르 기스카르]]가 [[팔레르모]]를 정복하다.
* [[1776년]] - [[토머스 페인]] 《[[상식론]]》을 출판하여<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66862&cid=59014&categoryId=59014 <nowiki>[네이버 지식백과] 토마스 페인 [Thomas Paine] - 국제적 혁명이론가 (인물세계사, 차창룡)</nowiki>].....1776년 1월 10일토마스 페인의 책 <상식(Common Sense)>이 출간되자 아메리카 대륙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페인이 이 책을 통해 주장하는 바는 한마디로 말해 미국의 독립이 지극히 상식적인 진실이라는 것이다.</ref> 미국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에 큰 영향을 끼쳤다.
* [[1810년]]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첫 번째 아내인 [[조제핀 드 보아르네|조제핀]]과 이혼하다.
* [[1991년]] - [[일본]] 정부, 재일 한국인에 대한 지문날인제도 폐지.
* [[2006년]] - [[김정일]]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중화인민공화국]]을 비공식 방문하였다.
* [[2015년]]
**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의 대봉그린 아파트에서 일어난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 사고|대형화재]]로 130명이 죽거나 다치고 건물 8동이 불에 타는 등 다수의 인명 및 재산피해가 발생하다.
** [[청주 크림빵 뺑소니 사건]]이 발생하다.
== 문화 ==
* [[1863년]] -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 [[영국]] [[런던]]에서 운행 시작.
* [[2003년]] - [[위키미디어 재단]]의 프로젝트 [[위키책]] 프로젝트가 시작되다.
== 탄생 ==
* [[1596년]] - 조선의 문신, 성리학자, 작가 미수 [[허목]]. (~[[1682년]])
* [[1644년]] - 프랑스의 군인, 원수 [[루이 프랑수아 드 부플레르 공작]]. (~[[1711년]])
* [[1729년]] - 이탈리아의 생물학자 [[라차로 스팔란차니]]. (~[[1799년]])
* [[1835년]] - 일본의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 (~[[1901년]])
* [[1855년]] - 조선의 동학 지도자 [[전봉준]]. (~[[1895년]])
* [[1875년]] -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관료 [[이종국 (1875년)|이종국]]. (~[[1927년]])
* [[1877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병조 (1877년)|김병조]]. (~[[1952년]])
* [[1885년]] - 청나라 광서제 치세 시대의 천립 군주 [[푸쥔]]. (~[[1942년]])
* [[1913년]] - 체코슬로바키아의 정치인 [[구스타프 후사크]]. (~[[1991년]])
* [[1916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리종옥]]. (~[[1999년]])
* [[1921년]] - 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 출신 정치 깡패 [[임화수]]. (~[[1961년]])
* [[1924년]] - 대한민국의 경찰 출신 정치인 [[곽영주]]. (~[[1961년]])
* [[1927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한영원]]. (~[[2006년]])
* [[1928년]] - 대한민국 예비역 육군 중령 출신의 암살 방조자 [[신초식]]. (~[[1958년]])
* [[1930년]]
** 대한민국의 만화가 [[길창덕]]. (~[[2010년]])
** 미국의 기업인 [[로이 E. 디즈니]]. (~[[2009년]])
** 미국의 배우 [[일레인 드브리]].
* [[1934년]] - 우크라이나의 제1대 대통령 [[레오니드 크라우추크]]. (~[[2022년]])
* [[1937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축구 감독 [[차경복]]. (~[[2006년]])
* [[1938년]]
** 대한민국의 교수 [[백낙청]].
**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도널드 커누스]].
** 미국의 야구 선수 [[윌리 맥코비]]. (~[[2018년]])
* [[1939년]] - 미국의 가수 [[스콧 매켄지]]. (~[[2012년]])
* [[1940년]]
** 대한민국의 공인회계사 겸 정치가 [[임길수]]. (~[[1990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하림 (1940년)|김하림]].
* [[194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가기산]]. (~[[2023년]])
* [[1943년]] - 미국의 수학자 [[리처드 S. 해밀턴]]. (~[[2024년]])
* [[1944년]] - 대한민국의 성우 [[한상덕]].
* [[1945년]] - 영국의 록 싱어송라이터 [[로드 스튜어트]].
* [[1953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축구 감독 [[허정무]].
* [[1954년]]
** 대한민국의 성우 [[이호인 (성우)|이호인]].
** 대한민국의 팝페라 가수 [[키메라 (가수)|키메라]].
* [[1955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승훈 (1955년)|이승훈]].
* [[195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국회의원 [[이명규 (1956년)|이명규]].
* [[1957년]]
** 대한민국의 배우, 공연 제작자 [[송승환]].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김동엽 (바둑 기사)|김동엽]].
* [[1960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양승호 (야구인)|양승호]].
* [[1961년]]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최순호]].
** 대한민국의 정치인, 공무원 [[윤태영 (1961년)|윤태영]].
* [[1962년]]
** 대한민국의 의학자, 교육자 [[김진왕]].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전대영]].
** 대한민국의 축구 감독, 전 축구 선수 [[최순호]].
* [[1963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전 야구 감독 [[선동열]].
** 대한민국의 정치인 [[어기구]].
* [[1965년]]
** 대한민국의 성우 [[손종환]].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신동호 (아나운서)|신동호]].
** 대한민국의 가수 [[장호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최대식]]. (~[[2024년]])
* [[196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조경태]].
* [[1969년]] - 대한민국의 기자 [[이용마]]. (~[[2019년]])
* [[1971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희원 (배우)|김희원]].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류정한]].
* [[1972년]]
** 일본의 가수, 록 밴드 [[야마구치 타츠야|야마구치 다쓰야]].
** 일본의 기업인 [[후루카와 슌타로]].
* [[1973년]] - 미국의 야구 선수 [[게리 레스]].
* [[1974년]] - 일본의 성우 [[유즈키 료카]].
* [[197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최원영 (배우)|최원영]].
* [[1977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선은]].
* [[1978년]]
** 미국의 프로레슬링 선수 [[타미나 스누카]].
** 대한민국의 가수 [[김현성 (가수)|김현성]].
** 대한민국의 가수 [[윤상훈]].
* [[1979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권진영]].
* [[1980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영민 (1980년)|김영민]] ([[태사자 (음악 그룹)|태사자]]).
** 대한민국의 가수 [[박상훈 (1980년)|박상훈]].
* [[1981년]]
** 미국의 가수 [[브라이언 (가수)|브라이언]] ([[플라이 투 더 스카이]]).
** 대한민국의 뮤지션 [[하세빈]].
* [[1982년]]
** 일본의 성우 [[후쿠엔 미사토]].
** 이란의 축구 선수 [[모함마드 노스라티]].
* [[1983년]] - 대한민국의 화가 해연.
* [[1984년]]
** 대한민국의 배우 [[한주완]].
** 모로코의 축구 선수 [[마루안 샤마크]].
** 일본의 정치인 [[마루야마 호다카]].
** 대한민국의 가수, 래퍼 [[술제이]].
* [[1985년]] - 대한민국의 작가 김하나.
* [[1986년]] -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 [[아우라 (가수)|아우라]].
* [[1987년]] - 사우디아라비아의 축구 선수 [[모하메드 알살라위]].
* [[1988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정준희 (아나운서)|정준희]].
* [[1989년]]
** 대한민국의 가수 [[솔지]] ([[EXID]]).
** 대한민국의 성악가 [[이벼리]].
* [[1990년]] - 대한민국의 전 배구 선수 이현진.
* [[1991년]]
** 스페인의 핸드볼 선수 [[곤살로 페레스 데 바르가스]].
** 영국의 배우 [[피네건 올드필드]].
* [[1992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강민국 (야구 선수)|강민국]].
** 대한민국의 희극인 [[홍현호]].
** 오스트레일리아의 방송인 [[블레어 윌리엄스]].
**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 [[시메 브르살코]].
** 가나의 축구 선수 [[크리스천 아추]].
** 대한민국의 배우 [[김건우 (배우)|김건우]].
* [[1993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이혜지]].
**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래퍼 [[제이클레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찬동]].
* [[1994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예은.
* [[1995년]]
** 일본의 가수 [[켄타 (가수)|켄타]] ([[JBJ]]).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박규연]].
* [[1996년]] - 대한민국의 가수 [[해윤]] ([[체리블렛]]).
* [[1997년]] - 일본의 배우 [[콘노 아유리]].
* [[1998년]] - 대한민국의 가수 [[류시아]].
* [[1999년]]
** 대한민국의 가수 [[여름 (1999년)|여름]] ([[우주소녀]]).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메이슨 마운트]].
* [[2000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소희 (2000년)|김소희]].
** 일본의 가수 [[스가와라 마야]].
* [[200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 [[김준욱]] ([[더 이스트라이트]]).
* [[2004년]] - 대한민국의 래퍼 [[NSW 윤]].
* [[2005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박건욱]].
== 사망 ==
* [[314년]] - 제32대의 교황 [[교황 멜키아데]]. (?~)
* [[681년]] - 제79대 로마의교황 [[교황 아가토]]. ([[577년]]~)
* [[1778년]] -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 ([[1707년]]~)
* [[1833년]] - 프랑스의 수학자 [[아드리앵마리 르장드르]]. ([[1752년]]~)
* [[1840년]] - 영국의 [[조지 3세]]의 3번째 딸 [[영국 공주 엘리자베스]]. ([[1770년]]~)
* [[1862년]] - 미국의 총기 개발자 [[새뮤얼 콜트]]. ([[1814년]]~)
* [[196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약수]]. ([[1890년]]~)
* [[1965년]] - 대한민국의 수필가 [[전혜린]]. ([[1934년]]~)
* [[1971년]] - 프랑스의 패션디자이너 [[코코 샤넬]]. ([[1883년]]~)
* [[1986년]] - 체코의 소설가 [[야로슬라프 사이페르트]]. ([[1901년]]~)
* [[2007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형은]]. ([[1981년]]~)
* [[2008년]] - 대한민국의 축구인 [[박수일 (1944년)|박수일]]. ([[1944년]]~)
* [[2012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규환 (야구 선수)|이규환]]. ([[1989년]]~)
* [[2014년]] - 미국의 교육학자 [[엘리엇 아이스너]]. ([[1933년]]~)
* [[2016년]] - 영국의 가수 [[데이비드 보위]]. ([[1947년]]~)
* [[2017년]] - 독일의 제7대 대통령 [[로만 헤어초크]]. ([[1934년]]~)
* [[2020년]] - 오만의 국왕 [[카부스 빈 사이드 알사이드]]. ([[1940년]]~)
* [[2021년]]
** 미국의 사회활동가 [[낸시 워커 부시 엘리스]]. ([[1926년]]~)
** 미국의 영화배우 [[줄리 스트레인]]. ([[1962년]]~)
* [[2023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김승진 (법조인)|김승진]]. ([[1939년]]~)
** 영국의 록 기타리스트 [[제프 벡]]. ([[194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최수환 (1938년)|최수환]]. ([[1938년]]~)
** 그리스 왕국의 마지막 국왕 [[콘스탄티노스 2세]]. ([[1940년]]]~)
** 오스트레일리아의 추기경 [[조지 펠]]. ([[1941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성우 [[성창수]]. ([[1958년]]~)
** 미국의 게임디자이너 [[제넬 자퀘이스]]. ([[1956년]]~)
** 미국의 판타지작가 [[테리 비슨]]. ([[1942년]]~)
** 미국의 영화배우 [[티사 패로우]]. ([[1951년]]~)
== 기념일 ==
* [[:en:Fête_du_Vodoun|전통의 날]](Traditional Day): [[베냉]]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9일]] 다음날: [[1월 11일]] - 전달: [[12월 10일]] 다음달: [[2월 10일]]
* 음력: [[음력 1월 10일|1월 10일]]
* [[366일|모두 보기]]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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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일'''은 [[그레고리력]]으로 9번째([[윤년]]일 경우도 9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9}}
== 사건 ==
* [[1431년]] - 잉글랜드의 점령지역인 [[루앙]]에서 [[잔 다르크]]에 대한 종교재판이 시작되다.
* [[1788년]] - [[코네티컷주]]가 미국의 5번째 주가 되었다.
* [[1839년]] - [[프랑스]]의 화가이자 물리학자인 [[다게르]]가 [[다게레오타이프]](은판사진)를 발명했다고 밝혔다.
* [[1867년]] - [[메이지 천황]]이 즉위했다.
* [[1885년]] - [[갑신정변]] 처리를 위한 [[한성조약]]이 체결되다.
* [[1900년]] - 이탈리아의 [[축구]] 클럽 [[SS 라치오]] 창단.
* [[1905년]] - 러시아 [[피의 일요일 (1905년)|피의 일요일]].
* [[1951년]] - [[유엔 본부]]가 문을 열다.
* [[1953년]] - [[창경호 침몰 사건]]이 일어났다.
* [[1968년]] - [[아랍 석유 수출국 기구]](OAPEC)이 설립되었다.
* [[2011년]]
**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개브리엘 기퍼즈]] 하원 의원을 포함한 19명이 괴한에게 총격을 당했다.
** [[테헤란]]을 출발 오루미에로 향하던 [[이란 항공 277편]] 보잉 727여객기가 복행(고 어라운드)실패 후 추락 77명이 사망하다.
* [[2021년]]
** [[스리위자야 항공 182편 추락 사고]]가 일어나다.
== 문화 ==
* [[1920년]] -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공항]] 개항.
* [[2018년]] -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우 8.1]], [[윈도우 서버 2012|윈도우 서버 2012, 윈도우 서버 2012 R2]]의 메인스트림 지원을 중단했다.
* [[2019년]] - [[대한민국]]의 종교방송채널 [[기독교광주방송|광주CBS 음악FM]] 개국. (주파수 98.1MHz, 1㎾)
== 탄생 ==
* [[1554년]] - 제234대 로마의 교황 [[교황 그레고리오 15세|교황그레고리오 15세]]. (~[[1623년]])
* [[1624년]] - 일본의 제109대 천황 [[메이쇼 천황]]. (~[[1696년]])
* [[1870년]] - 오스트레일리아의 외교관 겸 정치인 [[토머스 라이언 (1870년)|토머스 라이언]]. (~[[1943년]])
* [[1890년]] -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 (~[[1938년]])
* [[1908년]] - 프랑스의 작가이자 여성운동가 [[시몬 드 보부아르]]. (~[[1986년]])
* [[1910년]] - 중화인민공화국의 군인 [[장아이핑]]. (~[[2003년]])
* [[1913년]] - 미국의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 (~[[1994년]])
* [[1923년]] - 대한민국의 마라톤 선수 [[서윤복]]. (~[[2017년]])
* [[1924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이종환 (기업인)|이종환]]. (~[[2023년]])
* [[1925년]] - 미국의 배우 [[리 밴클리프]]. (~[[1989년]])
* [[1926년]]
** 대한민국의 기업가 [[최종건 (1926년)|최종건]]. (~[[1973년]])
**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 [[황인성 (1926년)|황인성]]. (~[[2010년]])
* [[1927년]] - 대한민국의 가수 [[명국환]]. (~[[2023년]])
* [[1928년]] - 미국의 소설가 [[주디스 크란츠]]. (~[[2019년]])
* [[1936년]]
** 대한민국의 성우 [[최흘]]. (~[[2018년]])
** 미국의 야구 선수 [[랠프 테리]]. (~[[2022년]])
* [[1937년]] - 일본의 전 야구 선수, 야구 감독, 야구 평론가 [[모리 마사아키 (야구인)|모리 마사아키]].
* [[1938년]] - 일본의 영화감독 [[오바야시 노부히코]]. (~[[2020년]])
* [[1941년]] - 미국의 가수, 인권 운동가 [[존 바에즈]].
* [[1942년]] - 대한민국의 기업가 [[이건희]]. (~[[2020년]])
* [[1943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정창선]].
** 대한민국의 시인 [[이기철 (시인)|이기철]].
* [[1944년]]
** 영국의 락 밴드 레드 제플린의 기타 리스트 [[지미 페이지]].
** 대한민국의 교육 출신 정치인 [[서한샘]]. (~[[2019년]])
* [[1945년]]
** 미국의 배우 [[존 도먼]].
** 영국의 기업인 [[대니 피즈먼]]. (~[[2011년]])
* [[194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조상건]]. (~[[2023년]])
* [[1947년]] - 대한만국의 기업인, 정치가 [[남현식]]. (~[[1994년]])
* [[1948년]]
** 대한민국의 공무원 출신 사회기관단체인 [[윤인선 (공무원)|윤인선]].
** 멕시코의 영화배우 [[수사나 도사만테스]]. (~[[2022년]])
* [[1951년]] - 미국의 가수, 영화배우 [[크리스털 게일]].
* [[1952년]] - 대한민국의 전 부산광역시장 [[서병수]].
* [[1954년]]
** 일본의 테러리스트 [[기리시마 사토시]]. (~[[2024년]])
** 영국의 소설가 [[필리파 그레고리]].
* [[1955년]] - 미국의 배우 [[J. K. 시먼스]].
* [[1956년]] - 잉글랜드의 배우 [[이멜다 스탠턴]].
* [[1957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윤후덕]].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마누엘 사라비아]].
* [[1958년]] -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박노해]].
* [[1959년]] - 과테말라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리고베르타 멘추]].
* [[196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정두겸]].
* [[1963년]]
** 대한민국의 검사, 변호사, 대학교수 [[김오수]].
** 일본의 성우 [[이가라시 레이]].
* [[196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정하완]].
* [[1967년]] -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 [[클라우디오 카니히아]].
* [[1970년]]
** 대한민국의 가수 겸 연예기획자 [[양현석]].
**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김성호 (영화 감독)|김성호]].
** 캐나다의 싱어송라이터 [[라라 파비앙]].
* [[1972년]]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유영주]].
* [[1973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성웅]].
** 대한민국의 성우 [[장성호 (성우)|장성호]].
** 자메이카의 힙합 가수 [[숀 폴]].
* [[1974년]] - 대한민국의 가수 [[조성민 (가수)|조성민]].
* [[1978년]]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젠나로 가투소]].
* [[1979년]] - 대한민국의 게임자키 [[길수현]].
* [[1980년]]
** 대한민국의 발레무용가 [[윤혜진]].
** 대한민국의 축구 심판 [[홍은아]].
* [[198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태훈.
* [[1982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진형.
** 미국의 배우 [[가비 호프먼]].
** 영국 왕세손 케임브리지 공작 윌리엄의 부인 [[웨일스 공비 캐서린]].
* [[1984년]] - 대한민국의 가야금연주가 김민영.
* [[1985년]]
** 대한민국의 가수 [[홍대광]].
** 스페인의 축구 선수 [[후안 프란시스코 토레스]].
* [[1986년]]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박소유]].
* [[1987년]]
** 일본의 배우 [[이노우에 마오]].
** 브라질의 축구 선수 [[루카스 레이바]].
* [[1988년]]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고명진]].
* [[1989년]]
** 캐나다의 배우 [[니나 도브레브]].
** 대한민국의 배우 [[이학주 (배우)|이학주]].
** 미국의 농구 선수 [[마이클 비즐리]].
** 네덜란드의 배우 [[전나영]].
* [[1990년]]
** 대한민국의 배우, 가수 [[손지현 (배우)|남지현]].
** 대한민국의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이제동]] ([[이블 지니어스]]).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세혁]].
** 대한민국의 가수 [[양지은]].
** 대한민국의 배우 [[김민호 (1990년)|김민호]].
* [[1992년]] - 대한민국의 기상 캐스터 [[최현미 (기상 캐스터)|최현미]].
* [[1993년]] - 미국의 배우 [[애슐리 아고타]].
* [[1994년]] - 우즈베키스탄의 축구 선수 [[이크롬 알리바예프]].
* [[1995년]]
** 대한민국의 배우 [[하승리]].
** 미국의 배우 [[니컬라 펠츠]].
** 멕시코의 축구 선수 [[카를라 파올라 니에토]].
**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뜨뜨뜨뜨]].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이고은 (배구 선수)|이고은]].
**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또니.
* [[1996년]]
** 대한민국의 기상캐스터 [[김규리 (1996년)|김규리]].
** 대한민국의 골프 선수 [[박결]].
** 대한민국의 가수 [[장한나 (가수)|장한나]].
** 대한민국의 배우 김창호.
* [[1997년]]
** 중국의 가수 겸 코스플레이어 [[Liyuu]].
** 프랑스의 축구 선수 [[이사 디오프]].
** 일본의 아이돌 [[니시하타 다이고]].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준기 (축구 선수)|이준기]].
* [[1998년]] - 일본의 아이돌 [[야베 마사키]].
* [[200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지훈 (가수)|지훈]] ([[TRCNG]]).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민준 (2000년 1월)|김민준]].
* [[2001년]] - 브라질의 축구 선수 [[호드리구 고이스]].
* [[2002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도 선수 [[문성희]].
* [[2007년]] - 오스트레일리아의 화가 [[아엘리타 앤드리]].
== 사망 ==
* [[1283년]] - 남송의 정치가 [[문천상]]. ([[1236년]]~)
* [[1799년]] - 이탈리아의 언어학자 [[마리아 아녜시]]. ([[1718년]]~)
* [[1840년]] - 조선의 가톨릭 순교자 [[김 테레사]]. ([[1797년]]~)
* [[1873년]] -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3세]]. ([[1808년]]~)
* [[1878년]] - 이탈리아의 왕국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1820년]]~)
* [[1983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강량욱]]. ([[1903년]]~)
* [[1987년]] -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작곡가 [[이봉룡]]. ([[1914년]]~)
* [[1999년]] -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작곡가 [[손목인]]. ([[1913년]]~)
* [[2001년]] - 대한민국의 동화작가 [[정채봉]]. ([[1946년]]~)
* [[2005년]] - 캐나다의 수학자 [[이임학]]. ([[1922년]]~)
* [[2009년]] - 잉글랜드의 모험가, 탐험가, 동기 부여 연설가 [[롭 곤틀릿]]. ([[1987년]]~)
* [[2012년]] - 기니바시우의 대통령 [[말랑 바카이 사냐]]. ([[1947년]]~)
* [[2014년]] - 미국의 극작가 [[아미리 바라카]]. ([[1934년]]~)
* [[2017년]] -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 ([[1925년]]~)
* [[2018년]] - 노르웨이의 정치인 [[오드바르 노를리]]. ([[1927년]]~)
* [[2021년]]
** 미국의 영화배우 [[존 라일리 (배우)|존 라일리]]. ([[1936년]]~)
** 이탈리아의 의사 [[파브리치오 소코르시]]. ([[1942년]]~)
* [[2022년]]
** 미국의 희극인, 배우 [[밥 서겟]]. ([[1956년]]~)
** 미국의 영화배우 [[두아인 히크먼]]. ([[1934년]]~)
** 일본의 정치인 [[가이후 도시키]]. ([[1931년]]~)
* [[2023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고동주]]. ([[193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부영]]. ([[1966년]]~)
** 미국의 영화배우 [[멀린다 딜런]]. ([[1939년]]~)
** 헝가리의 축구 선수 [[메사로시 페렌츠]]. ([[1950년]]~)
** 일본의 수학자 [[사토 미키오]]. ([[1928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손용상]]. ([[1946년]]~)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최홍석]]. ([[1988년]]~)
== 기념일 ==
* [[:en:Martyrs%27_Day_(Panama)|순교자의 날]]: [[파나마]]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8일]] 다음날: [[1월 10일]] - 전달: [[12월 9일]] 다음달: [[2월 9일]]
* 음력: [[음력 1월 9일|1월 9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9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11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1번째([[윤년]]일 경우도 11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11}}
== 사건 ==
* [[532년]] - [[니카 반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en:Hippodrome of Constantinople|히포드롬(Hippodrome)]]에서 벌어진 전차경기가 끝난 후 청색당과 녹색당이 서로 충돌, 관중들이 경기장을 뛰쳐나와 폭동을 일으키다.
* [[1055년]] -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목록|비잔티움의 공동 여제]] [[테오도라 (11세기)|테오도라]]가 여제(Empress)의 지위에 오르다.
* [[1569년]] - 영국에서 처음으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공식적 인가를 받은 복권이 발행되다.
* [[1683년]] -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에트나 산|에트나 화산]] 폭발. 6만여 명 사망.
* [[1693년]] - 강력한 지진이 [[시칠리아]]와 [[몰타]]를 파괴하다.
* [[1759년]] - 미국 최초의 [[생명보험]] 회사가 [[필라델피아]]에서 설립되다.
* [[1851년]] - [[홍수전]], [[태평천국]] 수립 선언
* [[1890년]] - 영국 정부가 포르투갈에 모잠비크와 앙골라 사이의 거대한 영토에서 군대를 철수하라는 [[1890년 영국 최후통첩|최후통첩]]을 전달했다.
* [[1964년]] - [[흡연]]의 유해성에 관한 최초의 보고서 발표.
* [[1985년]] - [[양강교 버스 추락 사고]]로 39명의 사상자 발생되었다.
== 문화 ==
* [[1914년]] - 대한민국의 [[호남선]]이 개통하다.
* [[2011년]] - [[중화인민공화국]] 최초의 스텔스 전투기인 [[청두 J-20]]이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 탄생 ==
* [[347년]] - 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 (~[[395년]])
* [[1322년]] - 일본 남북조 시대 북조의 제2대 천황 [[고묘 천황]] (~[[1380년]])
* [[1758년]] - 프랑스의 정치인 [[프랑수아 루이 부르동]]. (~[[1797년]])
* [[1842년]] - 미국의 철학자,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 (~[[1910년]])
* [[1858년]] - 대한제국의 무신, 군인, 정치인 [[이두황]]. (~[[1916년]])
* [[1890년]] -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군인 [[백홍석 (군인)|백홍석]]. (~[[1960년]])
* [[1901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권기옥]]. (~[[1988년]])
* [[1911년]] - 일본의 정치가, 총리 대신 [[스즈키 젠코]]. (~[[2004년]])
* [[1924년]]
** 대한민국의 경찰 출신 정치인 [[곽영주]]. (~[[1961년]])
** 프랑스 태생 미국의 생리학자 [[로제 기유맹]]. (~[[2024년]])
* [[1933년]] - 일본의 배우 [[오카다 마리코]].
* [[1934년]]
** 캐나다의 총리 [[장 크레티앵]].
** 스웨덴의 영화배우, 작가 [[스벤 볼터]]. (~[[2020년]])
* [[1941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이중근 (1941년)|이중근]].
* [[1945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재오]].
* [[1948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백찬기 (배우)|백찬기]].
* [[1949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조재환 (1949년)|조재환]].
* [[195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45대 국무총리 [[이낙연]].
* [[1960년]] - 대한민국의 금융인 [[나재철]].
* [[1961년]] -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 [[카를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
* [[1963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태흠]].
** 대한민국의 성우 [[김옥경 (성우)|김옥경]].
* [[1968년]] - 독일의 화학자 [[베냐민 리스트]].
* [[1969년]]
** 일본의 성우 [[히카미 쿄코]].
** 미국의 배우 [[카일 리처즈]].
* [[1971년]]
** 미국의 가수 [[메리 J. 블라이즈]].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동성 (1971년)|김동성]].
* [[1972년]] - 미국의 배우 [[어맨다 피트]].
* [[1973년]] - 일본의 배우 [[후카츠 에리]].
* [[1974년]] - 대한민국의 배우 [[민영기 (배우)|민영기]].
* [[1977년]]
** 일본의 가수, 배우 [[마츠오카 마사히로]] ([[TOKIO]]).
** 미국의 전 야구 선수 [[릭 거톰슨]].
* [[1978년]] - 영국의 축구 선수 [[에밀 헤스키]].
* [[1979년]] - 말레아시아의 가수 [[시티 누르할리자]].
* [[198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지혜]].
* [[1981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유지곤]].
** 대한민국의 배우 [[서우진 (1981년)|서우진]].
** 대한민국의 가야금 연주자 [[이슬기 (국악인)|이슬기]].
* [[198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손예진]].
** 이란의 축구 선수 [[모함마드 노스라티]].
* [[1983년]]
** 대한민국의 성우 [[백경훈]].
** 대한민국의 가수 [[길정화]].
* [[1984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시운]].
** 대한민국의 PD 박지혜.
* [[1985년]]
** 대한민국의 래퍼 [[제이켠]].
** 일본의 가수 [[리에 후]].
* [[1987년]]
** 대한민국의 모델, 배우 [[김영광 (배우)|김영광]].
** 영국의 축구 선수 [[제이미 바디]].
* [[1988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최승준 (야구 선수)|최승준]].
** 중국의 가수 [[준준]] ([[모닝구무스메]]).
** 일본의 모델 겸 배우 [[오타 리나]].
* [[1989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고종욱]].
** 대한민국의 배우 [[하정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진솔 (축구 선수)|김진솔]].
** 대한민국의 배우 [[안성봉]].
** 대한민국의 배우 [[유일 (1989년)|유일]] ([[서프라이즈 (그룹)|서프라이즈]]).
** 대한민국의 배우 겸 방송인 [[김정민 (1989년)|김정민]].
* [[1991년]] - 대한민국의 가수 진영.
* [[1992년]]
** 대한민국의 래퍼 [[이승훈 (가수)|이승훈]] ([[위너 (음악 그룹)|위너]]).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다니 카르바할]].
** 대한민국의 가수 [[정동환 (가수)|정동환]].
* [[1993년]]
** 대한민국의 배우 [[권세은]].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박정환 (바둑 기사)|박정환]].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마이클 킨]].
* [[1994년]]
** 대한민국의 카바디 선수 [[우희준]].
** 대한민국의 가수 [[서아]].
* [[1995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종석 (축구 선수)|김종석]].
* [[1996년]] - 독일의 축구 선수 [[리로이 자네]].
* [[1997년]]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이승현 (프로게이머)|이승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구본혁 (야구 선수)|구본혁]].
* [[199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손보승]].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신민준]].
** 대한민국의 가수 [[유용하]].
** 대한민국의 배우 [[양현모 (배우)|양현모]].
* [[200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석철 (가수)|이석철]] ([[더 이스트라이트]]).
** 대한민국의 가수 [[이채연 (가수)|이채연]] ([[IZ*ONE]]).
* [[2001년]] - 대한민국의 가수 가현.* [[200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서기 (가수)|서기]].
* [[2004년]] - 대한민국의 가수 예원.
* [[2007년]] - 대한민국의 배우, 가수 [[리원 (가수)|리원]].
== 사망 ==
* [[537년]] - 제58대 로마의 교황 [[교황 실베리오]]. (?~)
* [[705년]] - 제85대 로마의 교황 [[교황 요한 6세]]. ([[655년]]~)
* [[1891년]] - 프랑스의 도시계획가 [[조르주외젠 오스만]]. ([[1809년]]~)
* [[1969년]] - 독일의 사회학자 [[레오폴트 폰 비제]]. ([[1876년]]~)
* [[1983년]]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정창현 (바둑 기사)|정창현]]. ([[1938년]]~)
* [[2000년]] - 미국의 야구 선수 [[밥 레몬]]. ([[1920년]]~)
* [[2006년]] - 대한민국의 군인 [[최영희 (1921년)|최영희]]. ([[1921년]]~)
* [[2008년]] - 뉴질랜드의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 ([[1919년]]~)
* [[2010년]]
** 네덜란드의 시민 [[미프 히스]]. ([[1909년]]~)
** 프랑스의 영화 감독 [[에릭 로메르]]. ([[1920년]]~)
* [[2011년]] - 대한민국의 변호사 [[이돈명]]. ([[1922년]]~)
* [[2014년]] - 이스라엘의 제11대 총리 [[아리엘 샤론]]. ([[1928년]]~)
* [[2017년]] - 사라왁의 제5대 총리 [[아데난 사템]]. ([[1944년]]~)
* [[2018년]] - 대한민국의 의사 [[박부남 (1931년)|박부남]]. ([[1931년]]~)
* [[2019년]] - 영국의 수학자 [[마이클 아티야]]. ([[1929년]]~)
* [[2020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임택근]]. ([[1932년]]~)
* [[2021년]]
** 대한민국의 화가 [[공성훈]]. ([[1965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환의]]. ([[1931년]]~)
** 미국의 기업인 [[셸던 애덜슨]]. ([[1933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법관 [[윤성근]]. ([[1959년]]~)
** 터키의 축구 선수 [[아흐메트 일마즈 찰리크]]. ([[1994년]]~)
* [[2023년]]
**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정치인 [[라피크 니쇼노프]]. ([[1926년]]~)
** 바시키르 공화국의 [[무르타자 라히모프]]. ([[1934년]]~)
** 미국의 영화배우 [[캐롤 쿡]]. ([[1924년]]~)
** 독일의 영화배우 [[타탸나 파티츠]]. ([[1966년]]~)
* [[2024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김경옥 (정치인)|김경옥]]. ([[1930년]]~)
** 대한민국의 공학자 [[서정욱 (공학자)|서정욱]]. ([[1934년]]~)
== 기념일 ==
* [[:en:Kagami_biraki|카가미비라키]](鏡開きの日):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서 장식한 카가미모치(鏡餠, 거울떡)를 먹는 날, [[일본]]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10일]] 다음날: [[1월 12일]] - 전달: [[12월 11일]] 다음달: [[2월 11일]]
* 음력: [[음력 1월 11일|1월 11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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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12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2번째([[윤년]]일 경우도 12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12}}
== 사건 ==
* [[1528년]] -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1세 바사]]가 즉위하다.
* [[1848년]] - [[:en:Sicilian revolution of 1848|1848년 시실리 혁명]]: [[시칠리아|시실리]] [[팔레르모]]의 시민들이 [[:en:Ferdinand II of the Two Sicilies|봄바(Bomba) 왕]]에 반란을 일으키다.
* [[1923년]] - [[일제 강점기 조선]]의 [[의열단]] 단원 [[김상옥 (1890년)|김상옥]]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다.
* [[1948년]] - [[야오원위안]], 17세 나이로 중국공산당 입당.
* [[1949년]] - [[반민특위]]에 체포된 [[박중양]] 등에 대한 공판이 [[서울]] 특별법원에서 열리다. 이 중 [[박중양]]은 [[조선총독부]]의 통치를 긍정하고 조선총독부는 지역, 신분차별 없이 인재를 등용했으며, [[이완용]]은 시대의 억울한 희생자라고 주장하여 방청석에서 소란이 벌어졌고, 전국적인 논란이 되다.
* [[1950년]] - [[미국]] 국무부에서 방송담화를 통해 [[애치슨 라인]]을 공포하다.
* [[1956년]] - [[태신호 화재]] 발생.
* [[1998년]] - [[미국]] [[조지아주]] [[로렌스군 (조지아주)|로렌스군]] 휘플 크로싱 도로에서 [[카일 딩켈러 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 [[2010년]] - [[:en:2010 Haiti earthquake|2010년 아이티 지진]]: [[아이티]]에서 [[릭터 규모|리히터 규모]] 7.3의 강진이 일어나 가옥과 공공시설이 파괴되고 20여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다.
* [[2014년]] - [[교황 프란치스코]]가 [[염수정]](안드레아) 대주교를 포함한 19명의 주교를 [[추기경]]에 임명한다고 발표하다.
* [[2016년]] - [[터키]] [[이스탄불]] 술탄마흐메트 인근 광장에서 [[2016년 1월 이스탄불 폭탄 테러|폭탄테러]]가 발생하여 10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을 입었다.
* [[2020년]] - [[탈 화산]]이 [[분화]]하였다.(아래 사진)[[파일:Taal Volcano - 12 January 2020.jpg|섬네일|right|265x265px|]]
== 문화 ==
* [[2016년]] -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우 XP|윈도우 XP 임베디드]], [[윈도우 8]]과 [[인터넷 익스플로러 7]], [[인터넷 익스플로러 8|8]], [[인터넷 익스플로러 9|9]], [[인터넷 익스플로러 10|10]]의 모든 지원을 종료했다.
== 탄생 ==
* [[1628년]] - 프랑스의 작가 [[샤를 페로]]. (~[[1703년]])
* [[1722년]] - 독일 출신의 프랑스 장군 [[니콜라 뤼크네르]]. (~[[1794년]])
* [[1729년]] - 영국의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 (~[[1797년]])
* [[1746년]] - 스위스의 교육학자이자 사상가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 (~[[1827년]])
* [[1876년]] - 미국의 소설가 [[잭 런던]]. (~[[1916년]])
* [[1892년]] - 우크라이나 출신 소비에트 연방 군인 [[미하일 키르포노스]]. (~[[1941년]])
* [[1893년]]
** 독일의 군인, 정치인 [[헤르만 괴링]]. (~[[1946년]])
** 미국의 만화영화 제작자인 [[에드워드 셀저]]. (~[[1970년]])
** 나치 독일의 정치인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1946년]])
* [[1903년]] - 대한민국의 관료 [[이근직 (1903년)|이근직]]. (~[[1964년]])
* [[1906년]] - 프랑스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 (~[[1995년]])
* [[1916년]] - 남아공의 정치인 [[피터르 빌럼 보타]]. (~[[2006년]])
* [[1926년]] - 미국의 컨트리 음악 가수, 작곡가, 기타리스트 [[레이 프라이스]]. (~[[2013년]])
* [[1927년]] - 대한민국의 시민운동가 [[김문숙 (1927년)|김문숙]]. (~[[2021년]])
* [[1930년]] - 캐나다의 아이스하키 선수 [[팀 호턴]]. (~[[1974년]])
* [[1946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손용상]]. (~[[2024년]])
* [[1948년]] - 일본의 정치인 [[아라이 쇼케이]]. (~[[1998년]])
* [[1949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정치인 [[문국현]].
**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 독일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오트마어 히츠펠트]].
* [[1951년]]
** 미국의 영화배우 [[커스티 앨리]]. (~[[2022년]])
** 미국의 방송인, 시사평론가 [[러시 림보]]. (~[[2021년]])
* [[1960년]] - 타지키스탄 출신의 축구 선수 [[신의손]].
* [[1961년]]
**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 [[김승기 (가수)|김승기]].
** 대한민국의 가수 [[유열]].
* [[1963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신경숙]].
* [[1964년]]
** 미국의 기업인 [[제프 베저스]].
** 대한민국의 성우 [[손선근]].
** 대한민국의 가수 [[홍성민 (가수)|홍성민]]. ([[2007년]]~)
* [[1965년]] - 대한민국의 성우 [[성유진 (성우)|성유진]].
* [[1967년]]
** 일본의 만화가 [[이노우에 다케히코]].
** 미국의 배우 [[블랜처드 라이언]].
* [[196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최무성]].
** 일본의 게임 디렉터 [[마스다 준이치]].
* [[1969년]] - 크로아티아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로베르트 프로시네치키]].
* [[197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 [[정재형]].
* [[1972년]] - 대한민국의 스포츠 캐스터 [[한명재]].
* [[1973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바비 킴]].
* [[197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최은석 (배우)|최은석]].
** 일본의 전 축구 선수 [[사카모토 요스케]].
* [[1976년]]
** 대한민국의 배우 [[문정희 (배우)|문정희]].
** 일본의 배우 [[나카타니 미키]].
* [[1978년]]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배우 [[김사랑 (배우)|김사랑]].
** 대한민국의 배우 [[심형탁]].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강봉규]].
** 대한민국의 작가 [[홍정훈]].
* [[197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보영 (배우)|이보영]].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정명수.
* [[198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진원.
* [[1981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성배 (야구 선수)|김성배]].
* [[1982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최영재 (1982년)|최영재]].
** 대한민국의 전 가수 [[채건]].
* [[1983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동현 (1983년)|이동현]].
** 대한민국의 연출가 [[정철민]].
* [[1984년]] - 이란의 배우 [[타라네 알리두스티]].
* [[1985년]]
** 미국의 쌍둥이 가수 써니, 바니 ([[샤인 (듀오)|샤인]]).
** 대한민국의 배우 [[백민현]].
* [[1986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김수화]].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루스 회르츠]].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한지은 (레이싱 모델)|한지은]].
**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파블로 다니엘 오스발도]].
** 잉글랜드의 배우 [[제마 아터턴]].
* [[1987년]]
** 대한민국의 가수 [[선데이 (가수)|선데이]]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 [[심재현 (가수)|심재현]].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살바토레 시리구]].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정경호 (1987년)|정경호]].
** 대한민국의 성악가 [[김현수 (성악가)|김현수]].
* [[1988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현수 (1988년생 야구 선수)|김현수]] ([[두산 베어스]]).
** 일본의 성우 [[후루키 노조미]].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그래프트,프로게이머 [[김동현 (1988년)|김동현]].
* [[1989년]]
** 대한민국의 전 아나운서 [[류미정]].
** 벨기에의 축구 선수 [[악셀 위첼]].
* [[199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유현지 (배우)|유현지]].
* [[1991년]]
** 영국의 가수 [[픽시 로트]].
** 대한민국의 배우 [[서이안]].
** 대한민국의 가수 [[반석]].
** 대한민국의 가수, 복싱 선수 [[주형 (가수)|주형]].
* [[1992년]] - 핀란드의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 [[이보 니스카넨]].
* [[1993년]]
** 대한민국의 가수 [[디오 (1993년)|디오]] ([[EXO]]).
** 영국의 가수 [[제인 말리크]] ([[원 디렉션]]).
** 일본의 가수 [[미츠이 아이카]] ([[모닝구무스메]]).
** 대한민국의 작곡가 [[김승수 (작곡가)|김승수]].
* [[1994년]] - 독일의 축구 선수 [[엠레 잔]].
* [[1995년]]
**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정치인 [[손솔]].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알레시오 로마뇰리]].
* [[1996년]]
** 대한민국의 가수 [[혜빈]] ([[모모랜드]]).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신민재 (1996년)|신민재]].
**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 [[정예린 (유도 선수)|정예린]].
**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 [[이혜경 (유도 선수)|이혜경]].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민준 (1996년)|김민준]].
** 일본의 배우 [[하시모토 아이 (1996년)|하시모토 아이]].
* [[1997년]] - 대한민국의 유튜버 아이리스 (팀샐러드).
* [[1998년]]
** 미국의 배우 [[네이선 갬블]].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후안 포이트]].
* [[1999년]]
** 대한민국의 래퍼 [[양홍원]].
** 대한민국의 가수 [[혜주 (가수)|혜주]].
* [[2000년]]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에스퍼 (프로게이머)|에스퍼]].
** 뉴캐슬의 축구 선수 [[스벤 보트만]].
** [[대전 하나 시티즌|대전하나]]의 축구 선수 [[빅토르 보브싱 페레이라|밥신]]
* [[2001년]]
** 대한민국의 가수 [[유자 (가수)|유자]].
** 대한민국의 가수 [[강건우 (2001년)|강건우]].
* [[200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 [[김준욱]].
* [[200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안서현]].
* [[2006년]] - 대한민국의 배우 [[권수정 (배우)|권수정]].
* [[2014년]] - 대한민국의 유튜버 윤승아. (모야모야패밀리)
== 사망 ==
* [[1665년]] -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 ([[1607년]]~)
* [[1790년]] -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1723년]]~)
* [[1875년]] - 청나라 제11대 군주 [[광서제]]의 사촌 형이며 청나라 前 제10대 군주 [[동치제|동치 상황제]]. ([[1856년]]~)
* [[1909년]] - 러시아의 태생 독일 수학자 [[헤르만 민코프스키]]. ([[1864년]]~)
* [[1957년]] - 러시아 출신의 일본 야구 선수 [[빅토르 스타루힌]]. ([[1916년]]~)
* [[1976년]] - 영국의 대표 추리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 ([[1890년]]~)
* [[1977년]] - 프랑스의 영화감독 [[앙리조르주 클루조]]. ([[1907년]]~)
* [[1997년]] - 미국의 의학자, 노벨상 수상자 [[찰스 브렌턴 허긴스]]. ([[1901년]]~)
* [[1998년]] - 미국의 경찰관 카일 딩켈러. ([[1975년]]~)
* [[2001년]] - 미국의 엔지니어, 휴렛 팩커드 공동 설립자 [[빌 휴렛]]. ([[1913년]]~)
* [[2013년]] -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국영기업가 [[김윤호 (군인)|김윤호]]. ([[1930년]]~)
* [[2014년]] - 튀르키예의 고고학자, 펜싱 선수 [[할레트 참벨]]. ([[1916년]]~)
* [[2017년]] - 미국의 작가 [[윌리엄 피터 블래티]]. ([[1928년]]~)
* [[2018년]] - 프랑스의 기하학자 [[장루이 코쥘]]. ([[1921년]]~)
* [[2020년]] - 미국의 영화배우 [[윌리엄 보거트]]. ([[1936년]]~)
* [[2021년]] - 일본의 평론가 [[한도 가즈토시]]. ([[1930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표명일]]. ([[1975년]]~)
** 태국의 가수 [[와이폿 펫수판]]. ([[1942년]]~)
** 페루의 변호사 [[루이스 카스타녜다 로시오]]. ([[1945년]]~)
** 미국의 유튜버 [[아달리아 로즈]]. ([[2006년]]~)
* [[2023년]]
** 잉글랜드의 작가 [[폴 존슨 (작가)|폴 존슨]]. ([[1928년]]~)
** 미국의 가수 [[리사 마리 프레슬리]]. ([[1968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기초단체장 [[강택상]]. ([[1950년]]~)
** 미국의 영화배우 [[빌 헤이스]]. ([[1925년]]~)
== 기념일 ==
* 메모리얼 데이: [[투르크메니스탄]]
* [[잔지바르]] 혁명기념일: [[탄자니아]]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11일]] 다음날: [[1월 13일]] - 전달: [[12월 12일]] 다음달: [[2월 12일]]
* 음력: [[음력 1월 12일|1월 12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12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13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3번째([[윤년]]일 경우도 13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13}}
== 사건 ==
* [[1593년]] - [[독성산성 전투]]가 발발하다.
* [[1888년]] - [[미국 지리학회]]가 설립되다.
* [[1898년]] - [[에밀 졸라]]가 로로르지에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하다.
* [[1958년]] - [[진보당]]의 [[조봉암]]이 [[간첩]] 혐의로 구속되다.
* [[2012년]] - 4,232명이 탑승한 대형 [[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가 이탈리아 서해안 [[토스카나 제도]] 질리오 섬 앞바다에서 암초에 걸려 좌초, 31명이 사망하고 한 명이 실종되다.
== 문화 ==
* [[1999년]] - 그룹 [[god (음악 그룹)|god]]가 활동을 시작하였다.
* [[2015년]] -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우 7]], [[윈도우 서버 2008]], [[윈도우 서버 2008 R2]]의 메인스트림 지원을 종료했다.
* [[2017년]] - [[남해고속도로제3지선]]이 개통되었다.
== 탄생 ==
* [[1338년]] - 고려의 문신, 성리학자 [[정몽주]]. (~[[1392년]])
* [[1870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이필주]]. (~[[1942년]])
* [[1904년]] - 미국의 바이올린 연주자 [[나단 밀슈타인]]. (~[[1992년]])
* [[1912년]] - 미국의 배우 [[폴 버치]]. (~[[1969년]])
* [[1919년]] - 대한민국의 역도 선수 [[김성집 (역도 선수)|김성집]]. (~[[2006년]])
* [[1920년]] - 대한민국의 목회자 [[강희남]]. (~[[2009년]])
* [[1930년]] - 미국의 배우 [[프랜시스 스턴헤이건]]. (~[[2023년]])
* [[193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전석홍]].
* [[1939년]] - 대한민국의 성우 겸 배우 [[김석옥]].
* [[1943년]] - 미국의 배우 [[리처드 몰]]. (~[[2023년]])
* [[1955년]] - 일본의 만화가 [[이가라시 미키오]].
* [[1956년]] -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권선택]].
* [[1961년]] - 미국의 배우 [[줄리아 루이드라이퍼스]].
* [[1966년]]
** 잉글랜드의 배우 [[사이먼 셸턴]]. (~[[2018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김민영.
* [[1968년]]
** 일본의 엔카 가수 [[나가야마 요코]].
** 대한민국의 가수 [[김건모]].
** 대한민국의 성우 [[문선희]].
* [[1970년]] - 이탈리아의 사이클 선수 [[마르코 판타니]]. (~[[2004년]])
* [[1971년]]
** 대한민국의 배우 [[강성진 (배우)|강성진]].
**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 [[조규찬]].
* [[1976년]]
** 대한민국의 성우 [[서지연 (성우)|서지연]].
** 콜롬비아의 축구 선수 [[마리오 예페스]].
* [[1977년]]
** 영국의 배우 [[올랜도 블룸]].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도균 (축구인)|김도균]].
* [[1978년]] - 대한민국의 양궁 선수 [[최원종 (양궁 선수)|최원종]].
* [[198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원흠]] ([[노라조]]).
* [[1981년]]
** 대한민국의 가수 [[성진환]] ([[스윗 소로우]]).
** 대한민국의 배우 [[정문성]].
** 대한민국의 배드민턴 선수 [[이효정 (배드민턴 선수)|이효정]].
** 웨일스의 프로 레슬링 선수 [[메이슨 라이언]].
* [[1982년]] - 대한민국의 래퍼 [[추플렉스]] ([[마이티 마우스 (음악 그룹)|마이티 마우스]]).
* [[1983년]]
**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제 카스트루]].
** 대한민국의 당구 선수 [[김가영]].
* [[1984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이현주 (아나운서)|이현주]].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박영민 (1984년)|박영민]].
* [[1985년]] - 프랑스 태생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선수 [[솔 밤바]]. (~[[2024년]])
* [[1986년]] - 캐나다의 피겨스케이팅 선수 [[조아니 로셰트]].
* [[1987년]]
**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배우 [[이승기]].
** 미국의 아이스하키 선수 [[잭 존슨 (아이스하키 선수)|잭 존슨]].
* [[1988년]]
** 스위스의 축구 선수 [[카롤린 아베]].
** 대한민국의 배우 [[정준원 (1988년)|정준원]].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이정현 (1988년)|이정현]].
* [[1989년]] - 대한민국의 공예가 정다혜.
* [[1990년]]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서설희]].
* [[1992년]]
** 콜롬비아의 축구 선수 [[산티아고 아리아스]].
** 대한민국의 배우 [[이상진 (배우)|이상진]].
* [[1993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현도훈]].
* [[1994년]]
** 대한민국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이병렬 (프로게이머)|이병렬]].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류지혁]].
** 대한민국의 가수 [[신재혁 (가수)|신재혁]].
** 일본의 가수, 배우 [[나카야마 유마]].
** 미국의 농구 선수 [[바실리예 미치치]].
* [[1995년]]
** 대한민국의 가수 [[승준 (1995년)|승준]] ([[온앤오프]]).
** 대한민국의 유튜버 [[태경]] (유튜버).
* [[1996년]] - 대한민국의 배우 [[공유림]].
* [[1997년]]
** 콜롬비아의 축구 선수 [[루이스 디아스]].
** 캐나다의 아이스하키 선수 [[코너 맥데이비드]].
* [[1998년]] - 미국의 육상 선수 [[크리스토퍼 닐슨]].
* [[1999년]]
** 대한민국의 배우 [[하율리]].
** 대한민국의 가수 [[킴학스]].
* [[2000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진욱 (2000년)|김진욱]].
* [[2001년]]
** 대한민국의 래퍼 [[언텔]].
** 대한민국의 래퍼 [[강민수 (래퍼)|강민수]].
* [[2003년]]
** 대한민국의 가수 [[윤서령]].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지상욱 (축구 선수)|지상욱]].
* [[2004년]] - 대한민국의 가수 [[유현승 (가수)|현승]] ([[PICKUS|피커스]]).
* [[2006년]] - 태국의 육상 선수 [[푸리폰 분손]].
* [[2009년]] - 대한민국의 가수 [[오유진 (가수)|오유진]].
=== 미상 ===
*스페인의 바리톤 가수, 배우 [[포르투니오 보나노바]] (~[[1969년]])
*대한민국의 가수 [[고진명]].
== 사망 ==
* [[888년]] - 카롤링거 왕조 출신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롤루스 3세 크라수스]]. ([[839년]]~)
* [[1599년]] - 영국의 시인 [[에드먼드 스펜서]]. ([[1552년]]~)
* [[1864년]] - 미국의 작곡가 [[스티븐 포스터]]. ([[1826년]]~)
* [[1916년]] - 멕시코의 대통령 [[빅토리아노 우에르타]]. ([[1850년]]~)
* [[1937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유여대]]. ([[1878년]]~)
* [[1941년]] - 아일랜드의 문학가 [[제임스 조이스]]. ([[1882년]]~)
* [[1964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1887년]]~)
* [[1981년]] - 대한민국의 시인, 소설가 월탄(月灘) [[박종화]]. ([[1901년]]~)
* [[2000년]] - 대한민국의 배우 [[강계식]]. ([[1917년]]~)
* [[2002년]]
** 대한민국의 군인 [[이형근]]. ([[1920년]]~)
** 쿠바의 어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 ([[1897년]]~)
* [[2011년]] -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오건우 (배우)|오건우]]. ([[1981년]]~)
* [[2014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정수 (1953년)|김정수]]. ([[1953년]]~)
** 대한민국의 배우 겸 가수 [[한지서]]. ([[1981년]]~)
* [[2017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대학교수 [[박세일]]. ([[1948년]]~)
* [[2018년]] - 대한민국의 방송 PD [[전기상]]. ([[1960년]]~)
* [[2023년]]
**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김재홍 (문학평론가)|김재홍]]. ([[1947년]]~)
** 잉글랜드의 영화배우 [[줄리언 샌즈]]. ([[1958년]]~)
* [[2024년]] - 체코의 영화배우 [[야나 흐라바초바]]. ([[1938년]]~)
== 기념일 ==
* [[:en:Korean American|미주 한인의 날]]: 일부 [[미국]]의 주
* [[:en:Public holidays in Cape Verde|민주주의의 날]]: [[카보베르데]](Cape Verde)
* [[:en:Liberation Day|광복절]]: [[토고]]
* [[:en:St. Knut's Day|성 크누트의 날]](Tjugondag Knut), [[크리스마스]]의 마지막날: [[스웨덴]], [[핀란드]]
* [[:en:Old New Year|올드 새해]] 전야: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공화국]], [[스릅스카 공화국]]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12일]] 다음날: [[1월 14일]] - 전달: [[12월 13일]] 다음달: [[2월 13일]]
* 음력: [[음력 1월 13일|1월 13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13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14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4번째([[윤년]]일 경우도 14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14}}
== 사건 ==
* [[1939년]] - 일제, [[조선징발령세칙]] 공포 시행.
* [[1943년]] - [[제2차 세계 대전]]: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나치 독일]]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성명 발표.
* [[1946년]] - [[국방경비대]] 창설
* [[1959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농적위군]] 창설
* [[1969년]] - 미국 [[항공모함|원자력 항공모함]] [[CVN-65 엔터프라이즈]]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하여, 25명이 사망하고 85명이 부상당함
* [[1983년]] - [[청량리 가스 폭발 사고]]
* [[1984년]] - [[대아호텔 화재 사고]]가 일어났다.
* [[1987년]]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 [[2005년]] - [[하위헌스 탐사선]]이 [[토성]]의 [[위성]] [[타이탄 (위성)|타이탄]]에 착륙함.
* [[2011년]] - [[2010-2011년 튀니지 반정부 시위|튀니지의 반정부 시위]]로 인하여 [[벤 알리]] 대통령이 축출됨.
* [[2012년]] -
** [[중화민국]] 제13대 [[중화민국의 총통|총통]] 선거에서 [[중국 국민당]] 소속 [[마잉주]] 총통이 재선에 성공하였고 동시에 실시된 입법위원 선거에서도 집권 국민당이 압승하다.
** [[이탈리아]] 근해에서 [[유람선]]이 침몰하여 11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다.
* [[2014년]] -
** [[남수단 내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남수단]]주민들이 내전을 피해 [[백나일강]]을 따라 [[보트]]로 대피하다 물에 빠져 200여 명이 익사하였다.
** [[미국]] 정부가 [[사암 조각상]]을 포함한 세 점의 조각상을 [[인도]] 측에 반환하다.
* [[2024년]] -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이 즉위 52주년을 맞아 퇴위하고 [[프레데리크 10세]] 국왕이 즉위하였다.
== 문화 ==
* [[1996년]] - [[무궁화 2호]] 발사.
* [[2017년]] - [[2017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이 [[가봉]]에서 개막하였다.
* [[2019년]] - [[여자친구]] 정규 2집 [[Time for us]] 발매
* [[2020년]] -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우 7]], [[윈도우 서버 2008]], [[윈도우 서버 2008 R2]], [[인터넷 익스플로러 9]], [[인터넷 익스플로러 11|11]]의 모든 지원을 종료했다.
== 탄생 ==
* [[기원전 83년]] - 로마제국의 장군, 정치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기원전 30년]])
* [[1854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동식. (~[[1909년]])
* [[1861년]] - 오스만 제국의 황제, 칼리프 [[메흐메트 6세|메흐메드 6세]]. (~[[1926년]])
* [[1875년]] - 독일의 의사 [[알베르트 슈바이처]]. (~[[1965년]])
* [[190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효상]]. (~[[1989년]])
* [[1908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이무영 (소설가)|이무영]]. (~[[1960년]])
* [[1924년]] - 미국의 영화배우 [[캐롤 쿡]]. (~[[2023년]])
* [[1925년]]
**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김유복]]. (~[[2008년]])
** 일본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 (~[[1970년]])
* [[192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문태준 (정치인)|문태준]]. (~[[2020년]])
* [[1929년]] - 대한민국의 제14대 대통령 [[김영삼]]. (~[[2015년]])
* [[1931년]] - 프랑스의 가수 [[캐터리나 발렌트]]. (~[[2024년]])
* [[1934년]] - 인도 비하르주의 노동자, 마운틴 맨 [[다슈라트 만지]]. (~[[2007년]])
* [[1937년]] - 덴마크의 배우 [[벤트 메이딩]]. (~[[2024년]])
* [[1938년]]
** 일본의 정치인 [[호소카와 모리히로]].
** 미국의 가수 [[잭 존스]]. (~[[2024년]])
* [[1941년]]
** 미국의 배우 [[페이 더너웨이]].
** 스페인의 성악가이자 지휘자 [[플라시도 도밍고]].
* [[1942년]] - 독일의 영화배우 [[미하엘 그비스데크]]. (~[[2020년]])
* [[1944년]]
** 일본의 정치가 [[다나카 마키코]].
** 대한민국의 배우 [[심양홍]].
* [[1948년]]
** 대한민국의 시인 [[박해수 (시인)|박해수]]. (~[[2015년]])
** 미국의 영화배우 [[칼 웨더스]]. (~[[2024년]])
**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잔 피에로 벤투라]].
* [[195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진수 (서울특별시의원)|김진수]]. (~[[2022년]])
** 일본의 정치인 [[야라 조스케]].
* [[195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유필우]].
* [[1955년]] - 프랑스의 전직 축구 선수 [[도미니크 로슈토]].
* [[1962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축구 선수 [[정몽규]].
* [[1963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서경배]].
** 미국의 영화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 대한민국의 범죄자 [[이춘재]].
* [[1966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김응국]].
* [[1967년]] - 영국의 배우 [[에밀리 왓슨]].
* [[1968년]] - 미국의 래퍼, 배우, 작곡가, 음반 제작자 [[LL 쿨 J]].
* [[1969년]]
** 미국의 음악가 [[데이브 그롤]].
** 미국의 배우 [[제이슨 베이트먼]].
* [[197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최병모 (배우)|최병모]].
* [[1974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연수 (야구 선수)|박연수]].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정을호]].
* [[1977년]] - 대한민국의 힙합 래퍼 [[MC 한새]].
* [[1979년]] - 대한민국의 전 아나운서 [[노현정]].
* [[1980년]]
** 대한민국의 전직 프로게이머, 기업인 [[김대기 (1980년)|김대기]].
** 일본의 배우 [[타마키 히로시]].
* [[1981년]]
** 대한민국의 래퍼 [[개코]] ([[CB 매스]], [[다이나믹 듀오]]).
** 대한민국의 배우 [[정우]].
** 대한민국의 배우 [[박윤재]].
* [[1982년]]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빅토르 발데스]].
* [[1983년]] - 대한민국의 마술사 최영두.
* [[1984년]] - 대한민국의 가수 루시.
* [[1985년]]
** 대한민국의 래퍼 [[디액션]] ([[언터쳐블]]).
** 대한민국의 전 가수 [[김민수 (가수)|김민수]] ([[먼데이키즈]]). (~[[2008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배정화]].
* [[1986년]] - 프랑스의 축구 선수 [[요안 카바예]].
* [[1987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윤준하]] ([[강원 FC]]).
** 일본의 배우 [[하시모토 아츠시]].
** 대한민국의 가수 [[김보아]] ([[스피카 (음악 그룹)|스피카]]).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강려원]].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한동훈 (프로게이머)|한동훈]].
* [[1988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혜성 (배우)|김혜성]].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한민영]].
** 프랑스의 가수 [[조르디 (가수)|조르디]].
* [[1989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김재율]].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지웅 (1989년)|김지웅]].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빅토르 발데스]].
* [[1990년]]
** 헝가리의 펜싱 선수 [[실라지 아론]].
** 대한민국의 가수 한결.
* [[1991년]]
** 미국의 야구 선수 [[스티븐 피스코티]].
** 미국 태생 체코의 야구 선수 [[에릭 소가드]].
* [[1992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형규 (배우)|동하]].
** 대한민국의 배우 [[윤다영]].
** 대한민국의 가수 [[서진 (가수)|서진]].
* [[1993년]] - 대한민국의 모델, 배우 [[최아라 (모델)|최아라]].
* [[1994년]]
** 대한민국의 래퍼 [[카이 (1994년)|카이]] ([[EXO]], [[EXO-K]]).
** 대한민국의 가수 [[해디]].
** 대한민국의 가수 [[윤현상]].
* [[1995년]] - 대한민국의 가수 [[태영 (가수)|태영]] ([[블랙식스]]).
* [[199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주현영 (배우)|주현영]].
* [[1997년]]
** 노르웨이의 가수 [[페더 엘리아스]].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변상일]].
** 대한민국의 가수 오로라 ([[네이처 (음악 그룹)|네이처]]).
* [[1998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준범]].
** 일본의 배우, 모델 [[모리타카 아이]].
* [[1999년]]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데클런 라이스]].
** 브라질의 축구 선수 [[이메르송 로얄]].
* [[200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제린]].
** 캐나다의 축구 선수 [[조너선 데이비드]].
** 중화인민공화국의 바둑 기사 [[셰커]].
** 주피코 여친 이슬 - TRUZ 로미 (ROMY)
* [[2002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손성빈]].
* [[2005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유빈 (2005년)|김유빈]].
=== 미상 ===
*대한민국의 가수 [[루나율]].
== 사망 ==
* [[927년]] - 오대 십국 시대 민나라의 2대 군주 [[왕연한]]. (?~)
* [[1753년]] - 아일랜드의 철학자 [[조지 버클리]]. ([[1685년]]~)
* [[1945년]] - 스웨덴의 경제학자 [[구스타프 카셀]]. ([[1866년]]~)
* [[1953년]] - 일본의 사학자 [[도리이 류조]]. ([[1870년]]~)
* [[1957년]] - 미국의 배우 [[험프리 보가트]]. ([[1899년]]~)
* [[1974년]] - 북한의 시인 [[이찬 (시인)|이찬]]. ([[1910년]]~)
* [[1978년]] - 오스트리아의 수학자 [[쿠르트 괴델]]. ([[1906년]]~)
* [[1987년]] -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가 [[박종철]]. ([[1964년]]~)
* [[1988년]]
**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인 [[게오르기 말렌코프]]. ([[1902년]]~)
** 니카라과의 혁명 게릴라, 정치가 [[노라 아스토르가]]. ([[1948년]]~)
* [[1999년]] - 대한민국의 군인 [[송석하 (1915년)|송석하]]. ([[1915년]]~)
* [[2008년]] - 대한민국의 비전향장기수 김영태. ([[1931년]]~)
* [[2010년]] - 대한민국의 가톨릭 신부, 의사 [[이태석]]. ([[1962년]]~)
* [[2016년]] - 영국의 배우 [[앨런 릭먼]]. ([[1946년]]~)
* [[2017년]] - 중국의 경제학자 [[저우유광]]. ([[1906년]]~)
* [[2019년]] - 폴란드의 정치인 [[파베우 아다모비치]]. ([[1965년]]~)
* [[2020년]] - 미국의 영화배우 [[잭 케호]]. ([[1934년]]~)
* [[2021년]]
** 미국의 영화배우 [[피터 마크 리치먼]]. ([[1927년]]~)
** 인도네시아의 설교자 [[셰이크 알리 자베르]]. ([[1976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목회자 [[김성광]]. ([[1947년]]~)
** 스페인의 건축가 [[리카르도 보필]]. ([[1939년]]~)
* [[2023년]]
** 일본의 음악가 [[다카하시 유키히로]]. ([[195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규상 (1936년)|이규상]]. ([[1936년]]~)
** 러시아의 영화배우 [[인나 추리코바]]. ([[1943년]]~)
* [[2024년]]
** 오스트레일리아의 축구 선수 [[스티븐 레이벗]]. ([[1977년]]~)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리카르도 알로스]]. ([[1931년]]~)
** 오스트리아의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트리센나]]. ([[1944년]]~)
== 기념일 ==
* [[다이어리 데이]]: 대한민국
* [[동방 정교회]] [[율리우스력]] [[설날]]
* [[센카쿠 제도 개척의 날]]
== 같이 보기 ==
* 전날: [[1월 13일]] 다음날: [[1월 15일]] - 전달: [[12월 14일]] 다음달: [[2월 14일]]
* 음력: [[음력 1월 14일|1월 14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14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16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6번째([[윤년]]일 경우도 16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16}}
== 사건 ==
* [[기원전 27년]] - [[로마 제국]]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원로원으로부터 '[[프린켑스]](제1시민)', '[[아우구스투스]](존귀한 자)' 등의 칭호를 받았다.
* [[1919년]] -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되었다.
* [[1966년]] - [[존슨 아그이이론시]]가 [[나이지리아]]의 대통령직을 시작했다.
* [[1969년]] - 구소련의 우주선 [[소유스 (우주선)|소유즈 4호]]와 5호 우주 도킹.
* [[1979년]] - [[이란]] 국왕 [[레자 샤 팔라비]]가 [[이란 혁명]]으로 망명.
* [[1991년]] - 연합군이 [[걸프 전쟁]] 중 '''사막 보호 작전'''의 일환으로 [[이라크]]에 대한 공중폭격을 실시했다.
== 문화 ==
* [[2004년]] - [[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97]]의 판매 및 지원 중단.
* [[2014년]] - [[대한민국]]의 7인조 남성그룹 [[GOT7|GOT7(갓세븐)]] 데뷔.
* [[2015년]] - [[대한민국]]의 6인조 여성그룹 [[여자친구 (음악 그룹)|여자친구]] 데뷔.
== 탄생 ==
* [[1728년]] -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니콜로 피치니]]. (~[[1800년]])
* [[1870년]] - 미국의 야구 선수 [[지미 콜린스]]. (~[[1943년]])
* [[1901년]] - 쿠바의 정치인 [[풀헨시오 바티스타]]. (~[[1973년]])
* [[1903년]] - 대한민국의 시인 [[김영랑]]. (~[[1950년]])
* [[1915년]] - 미국의 전 해군 군인, 정치인 [[안수산]]. (~[[2015년]])
* [[1920년]] -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겸 조직폭력배 [[김영태 (조직폭력배)|김영태]]. (~[[2010년]])
* [[1924년]] -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가 [[전부일 (1924년)|전부일]]. (~[[2004년]])
* [[1929년]] - 대한민국 14대 대통령 [[김영삼]]의 영부인 [[손명순]]. (~[[2024년]])
* [[1930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심봉섭 (정치인)|심봉섭]]. (~[[2000년]])
** 프랑스의 배우 [[미쉘린 루치오니]]. (~[[1992년]])
* [[1931년]] - 미국의 배우 [[엘렌 홀리]]. (~[[2023년]])
* [[1933년]] - 미국의 소설가 [[수전 손택]]. (~[[2004년]])
* [[1943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난영 (1943년)|김난영]]. (~[[1985년]])
* [[1944년]]
** 대한민국 최초의 시각 장애인 박사 [[강영우]]. (~[[2012년]])
** 독일의 영화배우 [[토마스 프리치]]. (~[[2021년]])
* [[1948년]] - 일본의 전 야구 선수, 정치인 [[호리우치 쓰네오]].
* [[195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연극연출가 [[윤석화]].
* [[1957년]] - 아르헨티나의 배우 [[리카르도 다린]].
* [[1958년]] - 대한민국의 성우 [[박기량 (성우)|박기량]].
* [[1959년]] - 영국의 가수 [[샤데이 아두]].
* [[196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장혜리]].
* [[1963년]]
** 영국과 미국의 경제학자 [[사이먼 존슨 (경제학자)|사이먼 존슨]].
** 일본의 성우 [[히노 유리카]].
* [[1965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및 작사가 겸 작곡가 [[임형순 (가수)|임형순]].
** 대한민국의 가수 [[하준 (가수)|하준]].
* [[1967년]]
** 대한민국의 배우 [[심혜진]].
** 대한민국의 가수 [[김민교 (가수)|김민교]].
* [[1968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조현준 (기업인)|조현준]].
* [[197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원웅재]].
* [[1973년]]
** 대한민국의 배우 [[류성훈]].
** [[미야마에 마키]].
* [[1974년]] - 영국의 패션 모델 [[케이트 모스]].
* [[1976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장희영 (방송인)|장희영]].
* [[1978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야구 코치 [[홍세완]].
* [[1979년]]
** 미국의 가수 [[알리야 (가수)|알리야]].
** 대한민국의 배우 [[조우진 (배우)|조우진]].
* [[1980년]]
** 도미니카 공화국의 야구 선수 [[앨버트 푸홀스]].
** 말리의 축구 선수 [[세이두 케이타]].
** 미국의 작곡가, 작사가, 배우 [[린마누엘 미란다]].
* [[1982년]]
**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대학 교수, 정치인 [[조동연]].
** 튀르키예의 축구 선수, 지도자 [[툰자이 샨르]].
* [[1983년]] - 우크라이나의 축구 선수 [[안드리 루솔]].
* [[198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다일]].
** 스위스의 축구 선수 [[슈테판 리히트슈타이너]].
* [[198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민기]].
** 대한민국의 앵커 [[이세나 (앵커)|이세나]].
** 대한민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임현규]].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파블로 사발레타]].
* [[1986년]] - 일본의 축구 선수 [[니와 다이키]].
* [[1987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주호]].
** 대한민국의 래퍼 [[매슬로]].
* [[1988년]]
** 덴마크의 축구 선수 [[니클라스 벤트네르]] ([[VfL 볼프스부르크]]).
** 대한민국의 스타그래프트, 프로게이머 [[최지성 (1988년)|최지성]].
* [[1989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요한 (1989년)|박요한]]
** 캐나다의 싱어송라이터 [[카이자]].
* [[1991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대원 (1991년)|이대원]].
* [[1992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윤승현 (희극인)|윤승현]].
** 대한민국의 희극인 [[이은지 (희극인)|이은지]].
** 아일랜드의 축구 선수 [[맷 도허티]].
* [[1993년]]
** 대한민국의 가수 [[성진 (가수)|성진]] ([[DAY6]]).
** 대한민국의 배우 [[노종현]].
** 대한민국의 배우 [[김혜인]].
** 대한민국의 희극인 [[이지수 (1993년생 희극인)|이지수]]. (~[[2023년]])
* [[1995년]]
** 대한민국의 모델 [[심소영 (1995년)|심소영]].
** 대한민국의 펜싱 선수 [[이혜인 (펜싱 선수)|이혜인]].
** 일본의 축구 선수 [[미나미노 다쿠미]].
* [[1996년]]
** 대한민국의 가수 [[제니 (1996년)|제니]] ([[BLACKPINK]]).
** 대한민국의 만화가 [[박지 (만화가)|박지]].
* [[1997년]] - 스페인의 축구 선수 [[파우 토레스]].
* [[1998년]] - 대한민국의 가수 [[승관 (가수)|승관]] ([[세븐틴 (음악 그룹)|세븐틴]]).
* [[2000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최승훈 (축구 선수)|최승훈]].
* [[2001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김민지 (2001년)|김민지]].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예찬]].
* [[2002년]] - 대만의 가수 켈리.
* [[200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주혜린]].
* [[2004년]] - 대한민국의 가수 하윤.
* [[2009년]]
** 대한민국 키즈모델, 유튜버 [[나하은]].
** 대한민국의 가수 [[주빈]].
== 사망 ==
* [[1710년]] - 제113대 일본의 천황 [[히가시야마 천황]]. ([[1675년]]~)
* [[1794년]] -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 ([[1737년]]~)
* [[1864년]] - 조선의 제25대 임금 [[철종 (조선)|철종]]. ([[1831년]]~)
* [[1891년]] - 프랑스의 작곡가 [[레오 들리브]]. ([[1836년]]~)
* [[1944년]] - 대한민국의 시인 [[이육사]]. ([[1904년]]~)
* [[1972년]] - 미국의 배우 [[로스 배그더세리언]]. ([[1919년]]~)
* [[1980년]] - 독일의 영화감독 [[막스 W. 키미히]]. ([[1893년]]~)
* [[2015년]] - 중국의 가수 [[야오베이나]]. ([[1981년]]~)
* [[2017년]] - 미국의 우주비행사 [[유진 서넌]]. ([[1934년]]~)
* [[2018년]] - 대한민국의 시인 [[이승훈 (시인)|이승훈]]. ([[1942년]]~)
* [[2018년]] -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심융택]]. ([[1936년]]~)
* [[2020년]] - [[J. R. R. 톨킨]]의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 ([[1924년]]~)
* [[2021년]]
** 대한민국의 시인 [[최정례]]. ([[1955년]]~)
** 미국의 음반 프로듀서 [[필 스펙터]]. ([[1939년]]~)
* [[2022년]]
** 말리의 제6대 대통령 [[이브라임 부바카르 케이타]]. ([[1945년]]~)
** 체코의 가수 [[하나 호르카]]. ([[1964년]]~)
* [[2023년]]
** 이탈리아의 영화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 ([[1927년]]~)
** 소련과 라투니아의 카누 선수 [[블라다스 체슈나스]]. ([[1940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박일문]]. ([[1959년]]~)
** 미국의 작곡가 [[피터 쉬켈]]. ([[1935년]]~)
** 미국의 음악가 [[피터 시컬리]]. ([[1935년]]~)
== 기념일 ==
* 종교 자유의 날(National Religious Freedom Day): [[미국]]
* [[교사의 날]]: [[타이|태국]]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15일]] 다음날: [[1월 17일]] - 전달: [[12월 16일]] 다음달: [[2월 16일]]
* 음력: [[음력 1월 16일|1월 16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16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17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7번째([[윤년]]일 경우도 17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17}}
== 사건 ==
* [[1377년]] - [[아비뇽 유수]] 종식. [[교황청]]이 [[아비뇽]]에서 약 70년만에 [[로마]]로 돌아옴.
* [[1819년]] - [[시몬 볼리바르]], [[그란콜롬비아]] 선포
* [[1893년]] - [[하와이 왕국]] 전복
* [[1955년]] - [[미국 해군]]이 건조한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인 [[노틸러스 호 (원자력 잠수함)|노틸러스 호]]가 항해를 시작하다.
* [[1991년]] - 다국적군의 공중폭격에 의해 [[걸프 전쟁]], [[사막의 폭풍 작전]]이 시작되다.
* [[1992년]] - [[김보은 김진관 사건]]이 발생
* [[1995년]] -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고베 대지진]]. 일본의 [[효고현]] 남부에서 지진이 발생하다.
* [[1995년]] - [[베를루스코니]]가 [[이탈리아]]의 제 73대 [[총리]]직에서 물러나다.
== 문화 ==
* [[1983년]] - 영국 [[BBC]]에서 아침 시간대 프로그램 〈[[BBC 브렉퍼스트|브렉퍼스트 타임]]〉 첫 방송.
* [[2006년]] - [[국민중심당]] 창당.
* [[2010년]] - [[국민참여당]] 창당.
* [[2012년]] - [[한국예수교장로회]]가 [[하승무]] 목사를 중심으로 창립.
== 탄생 ==
* [[1560년]] - 스위스의 식물학자 [[카스파 바우힌]]. (~?)
* [[1820년]] - 영국의 소설가 [[앤 브론테]]. (~[[1849년]])
* [[1851년]] - 영국의 의사 [[제임스 캔틀리]]. (~[[1926년]])
* [[1899년]]
** 미국의 마피아 [[알 카포네]]. (~[[1947년]])
** 미국의 교육 철학자 [[로버트 허친스]] (~[[1977년]])
* [[1905년]]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축구 감독 [[기예르모 스타빌레]]. (~[[1966년]])
* [[1910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설가 [[박태원 (1909년)|박태원]]. (~[[1986년]])
* [[1922년]]
** 멕스코의 제57대 대통령 [[루이스 에체베리아]]. (~[[2022년]])
** 미국의 배우 겸 희극인 [[베티 화이트]]. (~[[2021년]])
* [[1923년]] - 미국의 중국학자 [[데이비드 니비슨]]. (~[[2014년]])
* [[192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정래혁]]. (~[[2022년]])
* [[1927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최운지]]. (~[[202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정규헌]]. (~[[1993년]])
* [[1930년]] - 미국의 연주가 [[딕 콘티노]]. (~[[2017년]])
* [[1931년]] - 미국의 배우 [[제임스 얼 존스]]. (~[[2024년]])
* [[1935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인규 (1935년)|김인규]].
* [[1940년]]
**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2022년]])
** 몰도바의 제2대 대통령 [[미르체아 스네구르]]. (~[[2023년]])
** 우루과이의 대통령, 정치인 [[타바레 바스케스]]. (~[[2020년]])
* [[1942년]] - 미국의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 (~[[2016년]])
* [[1943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권수창]]. (~[[1997년]])
* [[1944년]]
** 일본의 국제정치학자 [[이노구치 다카시]]. (~[[2024년]])
** 프랑스의 배우, 작가 [[프랑수아즈 아르디]]. (~[[2024년]])
* [[1946년]] - 북마케도니아의 배우 [[메토 조바노브스키]]. (~[[2023년]])
* [[1948년]] - 대한민국의 시인 [[고정희]]. (~[[1991년]])
* [[1951년]] - 소련의 역도 선수 [[유리 자이체프 (역도 선수)|유리 자이체프]]. (~[[2022년]])
* [[1952년]] - 일본의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 (~[[2023년]])
* [[1953년]] - 일본의 탁구인 [[야마이즈미 카즈코]]. (~[[2024년]])
* [[1955년]] - 헝가리의 생화학자 [[커리코 커털린]].
* [[1959년]] - 일본의 가수 [[야마구치 모모에]].
* [[1962년]]
** 캐나다의 희극인 [[짐 캐리]].
** 일본의 정치인 [[아즈미 준]].
* [[1963년]] - 대한민국의 배우 [[류태호]].
* [[1964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김소진 (소설가)|김소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강기정]].
** 미국 최초의 흑인 퍼스트 레이디 [[미셸 오바마]].
* [[196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오성열]]. (~[[2011년]])
* [[1966년]]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행정가 [[김주성 (1966년)|김주성]].
** 캐나다의 종합격투기 선수 [[게리 굿리지]].
* [[196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윤유선]].
** 네덜란드의 음악 프로듀서 [[티에스토]].
* [[1970년]] - 미국의 영화 감독 [[겐디 타타코프스키]].
* [[1971년]]
** 미국의 배우 [[데니즈 리처즈]].
** 대한민국의 작가 김성호. (~[[2001년]])
** 프랑스의 배우 [[실비 테스튀]].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두아]].
* [[1972년]] - 일본의 가수, 싱어송라이터 [[히라이 켄]].
* [[1973년]]
** 멕시코의 전 축구 선수 [[콰우테모크 블랑코]].
** 대한민국의 배우 [[김정태 (배우)|김정태]].
** 캐나다의 배우, 음악가 [[소피아 시너스]].
* [[1974년]]
** 대한민국의 성우 [[최수진 (성우)|최수진]].
** 이란의 샴 쌍둥이 [[비자니 자매]]. ([[라단 비자니]], [[라엘 비자니]]) (~[[2003년]])
* [[1975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정수 (축구인)|김정수]].
** 중국계 미국인 가수 [[코코 리]]. (~[[2023년]])
* [[197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상훈 (1976년)|이상훈]].
** 대한민국의 가수, 작사가 [[H (가수)|H]].
* [[1978년]]
** 대한민국의 배우 [[한상진 (배우)|한상진]].
**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스즈히라 히로]].
* [[1979년]] - 일본의 유도 선수 [[우에노 마사에]].
* [[1980년]] - 미국의 가수, 배우 [[조이 데이셔넬]].
* [[1981년]] - 대한민국의 가수 [[레이 (1981년)|레이]].
* [[1982년]] - 대한민국의 가수 [[환희]] ([[플라이 투 더 스카이]]).
* [[1983년]]
** 스페인의 축구 선수 [[알바로 아르벨로아]].
** 대한민국의 기상캐스터 [[오하영 (기상 캐스터)|오하영]].
* [[1984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이아롬]].
** 대한민국의 배우 [[장신영]].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도 선수 [[오정애]].
** 영국의 전자 음악가 [[캘빈 해리스]].
** 이탈리아의 방송인, 사업가 [[알베르토 몬디]].
* [[198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최성원 (배우)|최성원]].
** 일본의 가수 [[코사카 리유]].
** 대한민국의 모델 [[혜박]].
* [[1986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도윤 (1986년)|이도윤]].
** 대한민국의 가수 [[태군]].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이다연 (레이싱 모델)|이다연]].
* [[1987년]]
** 대한민국의 테니스 선수 [[조민혁 (테니스 선수)|조민혁]].
** 대한민국의 그룹 아이리스의 전 멤버 [[이은미 (1987년)|이은미]]. (~[[2011년]])
** 타이완의 야구 선수 [[양다이강]].
* [[1988년]]
** 대한민국의 피아노 연주자, 작곡가 [[유발이]].
** 대한민국의 배우 [[최수정]].
** 대한민국의 가수 [[주미]].
* [[1990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장성우]].
* [[1991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가수 [[송상은]].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원준 (축구 선수)|김원준]].
** 핀란드의 랠리 선수 [[에사페카 라피]].
* [[1992년]]
** 브라질의 축구 선수 [[페드루 엔리케 올리베이라]].
** 일본의 야구 선수 [[요시다 에리]].
* [[1993년]]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보르하 이글레시아스]].
* [[1994년]]
** 영국, 미국의 배우 [[루시 보인턴]].
** 일본의 성우 [[우에다 레이나]].
** 대한민국의 가수 [[지성 (가수)|지성]].
* [[1995년]]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도미니크 얀선]].
* [[1996년]]
** 핀란드의 지휘자, 첼리스트 [[클라우스 메켈레]].
* [[1997년]]
** 대한민국의 수영 선수 [[김가을 (수영 선수)|김가을]].
** 미국의 유튜버 [[제이크 폴]].
* [[2000년]]
**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배우 [[찬희]] ([[SF9]]).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정은원]].
* [[2001년]]
** 대한민국의 가수 에스더.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엔소 페르난데스]].
* [[2002년]]
** 대한민국의 치어리더 [[정희정]].
* [[2009년]] - 대한민국의 아역배우 [[김하겸]].
* [[2013년]] - 대한민국의 배우, 모델, 유튜버 [[기은유]].
== 사망 ==
* [[1468년]] - 알바니아의 민족 영웅 [[스컨데르베우|스칸데르베우]]. ([[1405년]]~)
* [[1588년]] - 명나라의 군인 [[척계광]]. ([[1528년]]~)
* [[1751년]] - 이탈리아의 작곡가 [[토마소 알비노니]]. ([[1671년]]~)
* [[1893년]] - 미국의 제19대 대통령 [[러더퍼드 B. 헤이스]]. ([[1822년]]~)
* [[1911년]] - 영국의 인류학자 [[프랜시스 골턴]]. ([[1822년]]~)
* [[1981년]] - 대한민국의 시인 [[김종문 (시인)|김종문]]. ([[1919년]]~)
* [[199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정일권]]. ([[1917년]]~)
** 미국의 육상 선수 [[헬렌 스티븐스]]. ([[1918년]]~)
* [[1997년]] - 미국의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 ([[1917년]]~)
* [[2005년]] - 중국의 정치가, 공산당 총서기, 전 국무원 총리 [[자오쯔양]]. ([[1919년]]~)
* [[2008년]] - 미국의 체스 선수 [[보비 피셔]]. ([[1943년]]~)
* [[2018년]] - 잉글랜드의 배우 [[사이먼 셸턴]]. ([[1966년]]~)
* [[2019년]] - 수단의 정치인 [[바비케르 아와달라]]. ([[1917년]]~)
* [[2020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황순희]]. ([[1919년]]~)
** 일본의 야구 선수 [[다카기 모리미치]]. ([[1941년]]~)
* [[2022년]] - 미국의 군인 [[메릴 뉴먼]]. ([[1928년]]~)
* [[2023년]]
** 프랑스의 수녀 [[뤼실 랑동]]. ([[1928년|1904년]]~)
** 루마니아의 영화배우 [[테오도르 코르반|테오도르 코반]]. ([[1904년|1957년]]~)
== 기념일 ==
* [[:en:Minorca|내셔널 데이]](National Day): [[메노르카섬|미노르카]], [[스페인]]
* [[:en:Patras Carnival|파트라스 카니발]] 개막일: [[파트라|파트라스]], [[그리스]]
* [[해군사관학교 (대한민국)|해군사관학교]] 개교기념일: [[대한민국]]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16일]] 다음날: [[1월 18일]] - 전달: [[12월 17일]] 다음달: [[2월 17일]]
* 음력: [[음력 1월 17일|1월 17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17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18}}
'''1월 18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8번째([[윤년]]일 경우도 18번째) 날에 해당한다.
차
아침
이령
== 사건 ==
* [[350년]] - 로마의 장군 [[마그넨티우스]]가 황제 [[콘스탄스]]를 퇴위시키고 스스로 황제임을 천명하다.
* [[474년]] - [[레오 2세 (비잔티움 제국)|레오 2세]]가 7살의 나이로 황제가 되다.
* [[532년]] - [[니카 반란]]이 실패로 끝나다.
* [[1535년]] -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페루]]를 발견하다.
* [[1825년]] - 영국의 [[조지 스티븐슨]], 세계 최초의 [[증기 기관차]] [[로코모션 호]] 운전.
* [[1871년]] - [[독일 제국]]의 성립.
* [[1910년]] - [[1910년 파리 대홍수|파리 대홍수]]가 발생하다.
* [[1912년]] - 탐험가 [[로버트 스콧]], [[남극]]에 도달.
* [[1919년]] - [[파리 강화 회의]] 개최.
* [[1952년]] - 대한민국, [[이승만]] 대통령 [[이승만 라인|평화선]] 선언.
* [[2002년]] -
** [[시에라리온 내전]] 공식 종결.
** 가수 [[유승준]]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 [[병역 기피]] 의혹에 휩싸였다.
* [[2012년]] - [[미국 의회]]의 [[SOPA]]·[[PIPA]] 법령 제정을 반대하는 의미로 [[영어 위키백과]], 24시간 동안 서비스 중단.
== 문화 ==
* [[2024년]] - 전라북도가 [[전북특별자치도]]로 출범했다.
== 탄생 ==
* [[1689년]] -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몽테스키외]]. (~[[1755년]])
* [[1879년]] - 프랑스의 군인 [[앙리 지로]]. (~[[1949년]])
* [[1889년]] - 일본의 군인 [[이시와라 간지]]. (~[[1949년]])
* [[1904년]] - 미국의 배우 [[케리 그랜트]]. (~[[1986년]])
* [[1906년]] - 대한민국의 화가 [[오지호 (화가)|오지호]]. (~[[1982년]])
* [[1925년]] -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 (~[[1995년]])
* [[1928년]] - 폴란드의 영화배우 [[프란치셰크 피에치카]]. (~[[2022년]])
* [[1931년]] - 대한민국의 제11{{.cw}}12대 대통령, 군인 [[전두환]]. (~[[2021년]])
* [[193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윤형상]]. (~[[2022년]])
* [[1933년]]
**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공학기술자 [[레이 돌비]]. (~[[2013년]])
** 영국의 영화 감독 [[존 부어먼]].
* [[1934년]]
** 대한민국의 언론 출신 정치인 [[남재희]]. (~[[2024년]])
** 영국의 작가 [[레이먼드 브릭스]]. (~[[2022년]])
* [[1937년]] - 일본의 체조 선수 [[엔도 유키오]]. (~[[2009년]])
* [[1938년]] -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
* [[194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윤문식]].
* [[194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오승명]]. (~[[2024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조중연 (축구인)|조중연]].
* [[1947년]] - 일본의 영화 감독, 배우, 희극인 [[기타노 다케시]].
* [[1948년]] - 대한민국의 성우 [[양지운]].
* [[1950년]] - 대한민국의 폭력 조직 '양은이파'의 두목 [[조양은]].
* [[1954년]] - 대한민국의 프로듀서 [[이호연]]. (~[[2018년]])
* [[1955년]] - 미국의 배우, 감독 [[케빈 코스트너]].
* [[1958년]] -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베르나르 장기니]].
* [[1960년]] - 영국의 배우 [[마크 라일런스]].
* [[1966년]] - 대한민국의 가수 [[신효범]].
* [[1967년]] - 칠레의 전 축구 선수 [[이반 사모라노]].
* [[1968년]] - 대한민국의 성우 [[송준석 (성우)|송준석]].
* [[1969년]]
** 미국의 프로레슬링 선수, 배우 [[데이브 바티스타]].
** 대한민국의 성우 [[송준석 (성우)|송준석]].
** 미국의 음악가 [[짐 오루크]].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유정 (국회의원)|김유정]].
** 대한민국의 성우 [[김경수 (성우)|김경수]].
* [[1970년]]
** 대한민국의 성우 [[양석정]].
**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장준환 (영화 감독)|장준환]].
* [[1971년]]
** 대한민국의 행정, 법조 출신 정치인 [[박성훈 (1971년)|박성훈]].
** 대한민국의 배우 [[정요숙]].
**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주제프 과르디올라]].
** 케냐의 작가 [[비냐방가 와이나이나]]. (~[[2019년]])
* [[1973년]]
** 일본의 배우, 가수 [[나카야마 시노부]].
** 대한민국의 골프 선수 강명구.
* [[1974년]] - 대한민국의 성우 [[김지혜]].
* [[1975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안진희]].
* [[1978년]]
** 대한민국의 가수 [[신동욱 (가수)|신동욱]] ([[구피 (음악 그룹)|구피]]).
** 대한민국의 가수 [[김영우 (1978년)|김영우]] ([[스윗 소로우]]).
* [[1979년]]
** 타이완의 가수, 배우, 영화감독 [[저우제룬]].
**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파울루 페헤이라]].
** 일본의 전 배우 [[아라이 히로후미]].
* [[1980년]] - 미국의 배우, 음악가, 작가 [[제이슨 시걸]].
* [[1981년]] - 대한민국의 배우 [[강동원]].
* [[1983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전 아나운서 [[오정연]].
** 대한민국의 배우 [[정유미 (1983년)|정유미]].
** 대한민국의 배우 [[진서연]].
* [[1984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오승원]].
** 대한민국 국적의 미 영주권자,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범 [[조승희]]. (~[[2007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최형우 (야구 선수)|최형우]].
** 일본의 축구 선수 [[하세베 마코토]].
* [[1985년]]
** 대한민국의 배우 [[현우]].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리카르도 몬톨리보]].
* [[1986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황인성 (아나운서)|황인성]].
** 일본의 성우 [[시라이 유스케]].
* [[1987년]]
** 스위스의 축구 선수 [[요한 주루]].
** 대한민국의 전 배우, 기업인 [[윤세인]].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김성기 (프로게이머)|김성기]].
** 대한민국의 군인, 기업인 [[에이전트 H]].
** 대한민국의 배우 [[임성재]].
* [[1988년]]
** 대한민국의 가수 [[제이세라]].
** 대한민국의 배우 [[박하이]].
** 독일의 테니스 선수 [[안젤리크 케르버]].
* [[1989년]]
** 대한민국의 철권 프로게이머 [[김현진 (1989년)|김현진]].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손흥윤]].
** 도미니카 공화국의 야구 선수 [[마이클 피네다]].
* [[199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신주]].
** 대한민국의 가수 하루.
* [[1991년]] - 대한민국의 배우 [[남이안]].
* [[1992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조은지 (아나운서)|조은지]].
** 대한민국의 방송인, 아나운서 [[허송연]].
* [[1993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승리]].
** 대한민국의 성우 [[권다예]].
* [[1994년]]
** 대한민국의 가수 [[강지영]] ([[카라 (음악 그룹)|카라]]).
** 대한민국의 가수 [[공민지]] ([[2NE1]]).
** 대한민국의 배우 [[안승균]].
* [[1995년]]
** 대한민국의 가수 [[나상현]].
** 중화민국의 배드민턴 선수 [[왕치린]].
* [[1996년]]
** 대한민국의 가수 [[화수]].
**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 [[이보 그르비치]].
* [[199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신예은]].
** 브라질의 축구 선수 [[에데르 밀리탕]].
* [[1999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민 (1999년)|김민]].
** 미국의 배우 [[캐런 브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대원 (1999년)|김대원]].
* [[2000년]] - 대한민국의 모델 [[윤준협]].
* [[2001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선우 (야구 선수)|김선우]].
* [[2004년]]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이연 (바둑 기사)|이연]].
* [[2005년]] - 대한민국의 육상 선수 [[최진우 (육상 선수)|최진우]].
* [[2010년]] - 대한민국의 아역 배우 [[김나연]].
=== 미상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김호정.
== 사망 ==
* [[264년]] -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수 [[종회]]. ([[225년]]~)
* [[474년]] - 로마 제국의 황제 [[레오 1세 (동로마 제국)|레오 1세]]. ([[401년]]~)
* [[1862년]] - 미국의 제10대 대통령 [[존 타일러]]. ([[1790년]]~)
* [[1899년]] - 독일의 해부학자, 동물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빌헬름 클라우스]]. ([[1835년]]~)
* [[1936년]] - 영국의 소설가, 시인 [[러디어드 키플링]]. ([[1865년]]~)
* [[1994년]] - 대한민국의 목사, 재야운동가 [[문익환]]. ([[1918년]]~)
* [[2016년]]
** 미국의 가수 [[글렌 프라이]]. ([[1948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황규봉]]. ([[1953년]]~)
* [[2017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정미경 (소설가)|정미경]]. ([[1960년]]~)
* [[2018년]] - 미국의 연쇄 살인범 [[앤서니 앨런 쇼어]]. ([[1962년]]~)
* [[2020년]]
** 독일의 신학자 [[페터 바이어하우스]]. ([[1929년]]~)
** 일본의 영화배우 [[시시도 조]]. ([[1933년]]~)
* [[2021년]]
** 프랑스의 영화배우, 각본가 [[장 피에르 바크리]]. ([[1951년]]~)
** 미국의 야구 선수 [[돈 서턴]]. ([[1945년]]~)
* [[2022년]]
** 미국의 패션, 저널리스트 [[안드레 리언 탤리]]. ([[1948년]]~)
** 스페인의 축구 선수 [[프란시스코 헨토]]. ([[1933년]]~)
** 영국의 통계학자 [[데이비드 콕스 (통계학자)|데이비드 콕스]]. ([[1924년]]~)
* [[2023년]]
** 우크라이나의 정치인, 내무부 장관 [[데니스 모나스티르스키]]. ([[1980년]]~)
** 대한민국의 교육자, 목사 [[이종윤 (1940년)|이종윤]]. ([[1940년]]~)
** 미국의 가수 [[데이비드 크로스비]]. ([[1941년]]~)
== 기념일 ==
* [[태국군의 날]]({{lang|th|วันกองทัพไทย}}; {{lang|en|Royal Thai Armed Forces Day}}): [[나레수안]] 대왕이 1593년 버마군을 무찌른 농사라이 전투(Battle of Nong Sa Rai)를 기념하는 날.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17일]] 다음날: [[1월 19일]] - 전달: [[12월 18일]] 다음달: [[2월 18일]]
* 음력: [[음력 1월 18일|1월 18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18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19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9번째([[윤년]]일 경우도 19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19}}
== 사건 ==
* [[1135년]] - [[묘청의 난]] 발발.
* [[1793년]] - [[프랑스]] [[루이 16세]]에 대한 [[사형]] 확정
* [[1966년]] - [[인디라 간디]]가 [[인도]] 총리에 취임하다.
* [[1967년]] - [[대한민국 해군 56함 침몰 사건]]
* [[1993년]] - [[슬로바키아]]와 [[체코]]가 [[유엔]]에 가입하다. ([[체코슬로바키아]]가 분리된 후 동시 가입)
* [[2012년]] -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카메라, 필름 회사인 [[코닥]]이 파산 보호 신청을 하다.
== 문화 ==
* [[1983년]] - [[애플|애플 컴퓨터]]가 [[마우스]]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갖춘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인 [[애플 리사]]를 발표하다.
* [[1988년]] - [[한글 맞춤법]] 개정.
* [[1996년]] -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되다.
* [[2006년]] - [[명왕성]] 탐사를 목적으로 NASA에서 무인 우주 탐사선 [[뉴 허라이즌스]]를 발사하다.
== 탄생 ==
* [[1544년]] -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2세]]. (~[[1560년]])
* [[1736년]] - 영국의 발명가 [[제임스 와트]]. (~[[1819년]])
* [[1807년]] - 미국의 군인 [[로버트 E. 리]]. (~[[1870년]])
* [[1809년]] - 미국의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 (~[[1849년]])
* [[1813년]] - 잉글랜드의 발명가 [[헨리 베서머]]. (~[[1898년]])
* [[1833년]] - 독일의 수학자 [[알프레트 클렙슈]]. (~[[1872년]])
* [[1839년]] - 프랑스의 화가 [[폴 세잔]]. (~[[1906년]])
* [[1879년]]
** 러시아의 혁명가 [[보리스 사빈코프]]. (~[[1925년]])
** 이탈리아의 수학자 [[귀도 푸비니]]. (~[[1943년]])
* [[1883년]] - 독일의 지휘자 [[헤르만 아벤트로트]]. (~[[1956년]])
* [[1902년]] - 러시아의 역사학자 [[게오르크 오스트로고르스키]]. (~[[1976년]])
* [[1903년]] - 독일의 작곡가 [[보리스 블라허]]. (~[[1975년]])
* [[1910년]] - 대한민국의 화가 [[김인승 (화가)|김인승]]. (~[[2001년]])
* [[1914년]] - 대한민국의 시인 [[김광균]]. (~[[1993년]])
* [[1920년]] - 제5대 유엔 사무총장, 페루의 외교관, 정치인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2020년]])
* [[1921년]] - 미국의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1995년]])
* [[1923년]]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체피로 푸리아시]]. (~[[1974년]])
* [[1928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송삼석]]. (~[[2022년]])
* [[1930년]]
** 대한민국의 의학자, 안철수의 부친 [[안영모]]. (~[[2022년]])
** 미국의 배우 [[티피 헤드런]].
* [[1933년]] - 일본의 탁구 선수 [[쓰노다 케이스케]]. (~[[2024년]])
* [[1937년]] - 일본의 기업인 [[사쿠라다 사토시]]. (~[[1997년]])
* [[1941년]] - 대한민국의 교수, 과학자 [[성용길]].
* [[1943년]]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재니스 조플린]]. (~[[1970년]])
* [[1946년]] - 미국의 가수, 배우 [[돌리 파튼]].
* [[1950년]] - 대한민국의 가수 겸 뮤지컬 배우 [[이승규 (가수)|이승규]].
* [[1954년]] - 미국의 배우, 싱어송라이터 [[케이티 사갈]].
* [[1960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교수 [[박형준 (1960년)|박형준]].
** 이탈리아의축구 선수, 지도자 [[마우로 타소티]].
* [[1961년]]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지도자 [[박경훈]].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지도자 [[신경식 (야구인)|신경식]].
** 대한민국의 신학자 [[신문철]].
* [[1962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광정]]. (~[[2008년]])
* [[1963년]] - 일본의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
* [[1969년]] - 몬테네그로의 전 축구 선수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
* [[1971년]] - 대한민국의 배우 [[허정규]].
* [[197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최원석.
* [[1973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전 아나운서 [[신영일 (방송인)|신영일]].
* [[1974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준서 (배우)|박준서]].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최인철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최인철]].
* [[1976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김동혁 (방송인)|김동혁]].
** 대한민국의 배우 [[현성 (배우)|현성]].
* [[1977년]]
** 대한민국의 성우 [[김서영]].
** 대한민국의 방송인, 시사평론가 [[이승원 (시사 평론가)|이승원]].
** 미국의 배우 [[롭 딜레이니]].
* [[1979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병현]].
* [[1980년]]
** 대한민국의 가수 [[미소라]].
** 영국의 레이싱 드라이버 [[젠슨 버튼]].
* [[1982년]]
** 일본의 정치인 [[나카소네 야스타카]].
** 미국의 정치인 [[피트 부티지지]].
* [[1983년]] - 일본의 가수 [[우타다 히카루]].
* [[1984년]]
**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 [[니콜라스 파레하]].
** 대한민국의 작가 김민영.
* [[1985년]]
** 대한민국의 가수 [[한강 (가수)|한강]].
** 일본의 전 가수 [[이시카와 리카]] (전 [[모닝구무스메]]).
** 미국의 영화 감독 [[데이미언 셔젤]].
* [[1986년]]
** 일본의 성우 [[마키노 유이]].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
* [[1987년]]
** 대한민국의 가수 [[문현아]]. ([[나인뮤지스]])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MC [[이현지]].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홍명찬]].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선지효]]. (~[[2015년]])
** 일본의 성우 [[카네코 유키 (성우)|카네코 유키]].
* [[1988년]] - 일본의 배우 [[야마모토 유스케]].
* [[1990년]] - 대한민국의 성우 [[장서화]].
* [[1991년]]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신노열]].
** 대한민국의 배우 [[황인엽]].
** 대한민국의 래퍼 [[어글리덕]].
* [[1992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태훈 (1992년생 야구 선수)|김태훈]].
** 미국의 배우 [[로건 러먼]].
* [[1993년]]
** 미국의 배우, 가수 [[빅토리아 저스티스]].
** 대한민국의 래퍼, 배우 [[채주화]]. ([[헬로비너스]])
** 일본의 성우 [[쿠노 미사키]].
**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주앙 마리우]].
** 대한민국의 래퍼 [[김혜림 (1993년)|김혜림]].
* [[1994년]] - 독일의 축구 선수 [[마티아스 긴터]].
* [[1996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정우 (1996년생 배우)|박정우]].
* [[1998년]] - 베트남계 대한민국의 가수 [[한빈 (템페스트)|한빈]].
* [[1999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시은 (1999년)|김시은]].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태준 (축구 선수)|박태준]].
* [[2000년]]
** 대한민국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최다빈]].
** 일본의 가수 [[마츠오카 하나]].
** 일본의 배우 [[이토 아사히]].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상혁 (축구 선수)|이상혁]].
* [[2001년]]
** 대한민국의 가수 [[듀티 (가수)|듀티]].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이승우 (농구 선수)|이승우]].
* [[2003년]] - 기니의 축구 선수 [[일라시 모리바]].
* [[2004년]] - 대한민국의 래퍼 [[터치 더 스카이 (래퍼)|터치 더 스카이]].
== 가상인물 ==
* [[판도라 하츠]] - 쟈크 베델리우스
* 나루토 - 가아라
== 사망 ==
* [[1865년]] - 프랑스의 사상가 [[피에르조제프 프루동]]. (1809년~)
* [[1938년]] - 오스트리아의 작가, 인권운동가 [[로자 마이레더]]. (1859년~)
* [[1942년]] - 중국 청나라의 황족 종실 겸 정치가 [[푸쥔]]. (1885년~)
* [[1983년]] -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 [[가린샤]]. (1933년~)
* [[2000년]] -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배우이자 발명가 [[헤디 라마르]]. (1914년~)
* [[2017년]] - 미국의 배우 [[미겔 페러]]. (1955년~)
* [[2018년]] - 미국의 배우 [[도러시 멀론]]. (1924년~)
* [[2020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신격호]]. (1921년~)
** 일본의 영화배우 [[하라 치사코]]. (1936년~)
* [[2022년]] - 프랑스의 영화배우 [[가스파르 윌리엘]]. (1984년~)
* [[2023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인규 (1935년)|김인규]]. (1935년~)
**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윤정희 (1944년)|윤정희]]. (1944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용수 (1929년)|김용수]]. (1929년~)
**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이두용]]. (1941년~)
== 기념일 ==
* [[:en:Confederate Memorial Day|남부동맹 영웅의 날]]& [[로버트 E. 리]] 데이(Robert E. Lee Day): [[미국]] [[텍사스주]], [[앨라배마주]], [[아칸소주]], [[플로리다주]], [[조지아주]], [[미시시피주]]
*일본 가라오케의 날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18일]] 다음날: [[1월 20일]] - 전달: [[12월 19일]] 다음달: [[2월 19일]]
* 음력: [[음력 1월 19일|1월 19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19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3월 1일'''은 [[그레고리력]]으로 [[삼일절]]이자 60번째([[윤년]]일 경우 61번째) 날이다.
{{3월달력}}
{{특정날짜요일|3|1}}
== 사건 ==
* 금성사의 회사명이 LG전자로 변경되었다
* [[기원전 752년]] - [[로물루스]]가 주최한 축제(Neptune Equester)에서 로마인들이 손님으로 온 사비니 여인을 습격하여 납치([[:en:The Rape of the Sabine Women|The Rape of the Sabine Women]])하다.
* [[기원전 86년]] - [[로마 공화정]] 군대의 수장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아테네에 입성, [[미트리다테스 6세]]의 지원을 받은 폭군 아리스티온([[:en:Aristion|Aristion]])을 제거하다.
* [[492년]] - [[교황 젤라시오 1세]]가 임기를 시작하다.
* [[705년]] - [[교황 요한 7세]], 86대 로마 교황으로 취임.
* [[926년]] - [[발해]] 멸망
* [[1565년]] - [[리우데자네이루]]가 세워지다.
* [[1627년]] - [[정묘호란]] 발발.
* [[1803년]] - [[오하이오주]]가 미국의 17번째 주가 되었다.
* [[1867년]] - [[네브래스카주]]가 미국의 37번째 주가 되었다.
* [[1896년]] - [[아두와 전투]]에서 에티오피아가 이탈리아를 격파하면서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1차 에티오피아-이탈리아 전쟁]]이 끝나다.
* [[1917년]] - 미국 정부가 소위 [[치머만 전보]]를 공개하다.
* [[1919년]] - [[3·1 운동]]: [[일제강점기]]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오후 2시 30분 [[탑골공원]]에서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고 학생들이 [[기미 독립 선언서|독립 선언서]]를 낭독함.
* [[1932년]] - 일본 [[관동군]]이 1931년 9월 '[[만주사변]]'으로 조선의 만주를 점거한 뒤 '[[만주국]]' 건국을 선언.
* [[1936년]] - [[후버 댐]]이 완공되다.
* [[1947년]] - IMF 협정이 발효되어 [[국제 통화 기금]](IMF)이 업무를 개시하다.
* [[1952년]] - 2차대전 이후 영국이 점령하고 있던 [[북해]]의 섬 [[헬골란트섬]]을 독일에 반환하다.
* [[1954년]] - 일본의 참치잡이 어선 [[제5 후쿠류마루]]가 미국의 [[수소 폭탄]] 실험에 의해 방사능에 오염되다.
* [[1956년]] - [[동독군]] 창설.
* [[1974년]] - 미국에서 [[워터게이트 사건]] 발생.
* [[1995년]] - 재능tv를 정식 개국.
* [[1999년]] - [[오타와 협약]] 발효.
* [[2006년]] - 철도노조 총파업을 단행하다.
* [[2010년]] - [[2010년 삼일절 사이버 공격]]이 일어났다.
* [[2022년]] - [[방역패스]]가 중단되었다.
* 2024년: 드래곤볼과 닥터 슬럼프의 원작자 토리야마 아키라가 향년 68세의 나이에 별세하였다.
== 문화 ==
* [[1946년]] - [[대한항공|대한국제항공사]] 창립.
* [[1955년]] - [[대한민국 육군본부]], 대구서 서울로 이전하다.
* [[1969년]] - [[대한항공]] 창립.
* [[1995년]] - 대한민국의 [[매일방송|매일경제TV MBN]], [[중앙방송 (대한민국 민영방송사)|중앙방송]], [[YTN]], [[QTV (텔레비전 채널)|Q채널]](現 [[JTBC2]]), [[GMTV (텔레비전 채널)|KM]], [[KTV 국민방송]], [[가톨릭평화방송]], [[BTN불교TV]], [[Mnet]], [[KMTV]], [[OCN (텔레비전 채널)|DCN]](現 [[OCN (텔레비전 채널)|OCN]]), [[캐치온|캐치원]](現 [[캐치온]]) 등의 [[케이블 텔레비전|케이블 TV]] 방송국들이 개국하였다.
** [[서울특별시|서울시]] [[구로구]]의 남동부와 경기도 [[광명시]]의 일부 지역이 합쳐져 [[금천구]]로 분리독립했다.
* [[1996년]]
** [[경기도]] [[용인군]] 일원이 [[용인시]]로 승격.
** [[일제강점기]] 1941년부터 사용되었던 [[국민학교]]란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뀌다.
* [[2002년]] - 대한민국의 [[CBS기독교방송]], [[엠플렉스|제3영화채널(현 엠플렉스)]], [[K-바둑|SKY바둑(현K-바둑)]] 등의 디지털위성방송 [[KT 스카이라이프|스카이라이프]] 개국.
* [[2003년]] - [[부산청년포럼]](창립대표 [[하승무]]) 창립.
* [[2004년]] - 서울방송([[SBS]])이 [[양천구]] 목동에서 신사옥 시대를 시작.
* [[2007년]] - 대한민국의 [[법률방송]] 개국.
* [[2015년]] - 대한민국의 [[매일경제TV]], [[BTN라디오]] 개국.
* [[2016년]] - 대한민국의 [[JTBC2]] 개국.
* [[2019년]] - [[3·1 운동]] 100주년.
* [[2021년]] - 대한민국의 [[YTN2]], [[MGTV|MG소비자TV]] 개국.
== 탄생 ==
* [[1445년]] - 이탈리아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 (~[[1510년]])
* [[1633년]] - 조선의 문신, 시인 [[이서우 (1633년)|이서우]]. (~[[1709년]])
* [[1810년]] - 폴란드의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 (~[[1849년]])
* [[1821년]] - 조선의 가톨릭 신부 [[최양업]]. (~[[1861년]])
* [[1858년]] -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 (~[[1918년]])
* [[1879년]] - 미국의 수학자 [[로버트 대니얼 카마이클]]. (~[[1967년]])
* [[1892년]] - 일본의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1927년]])
* [[1901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 (~[[1988년]])
* [[1904년]] - 독일계 미국인, 트럼본 연주자이자 스윙 재즈의 대가 [[글렌 밀러]]. (~[[1944년]])
* [[1914년]] - 미국의 작가 [[랠프 엘리슨]]. (~[[1994년]])
* [[1921년]] - 대한민국의 군인 [[최영희 (1921년)|최영희]]. (~[[2006년]])
* [[1927년]] - 미국의 음악가 [[해리 벨라폰테]]. (~[[2022년]])
* [[1933년]] - 대한민국의 출판인, 정치가 [[방일홍]]. (~[[2017년]])
* [[1934년]]
** 대한민국의 정치학자 겸 교육인 [[김민하 (1934년)|김민하]].
**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윤일봉]].
* [[1928년]] - 프랑스의 영화감독 [[자크 리베트]]. (~[[2016년]])
* [[1930년]] - 프랑스의 작곡가 [[피에르 막스 뒤부아]]. (~[[1995년]])
* [[1940년]] - 대한민국의 시인 [[이근배]].
* [[194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주현]].
* [[1942년]]
** 대한민국의 배우 [[강민호 (1942년)|강민호]].
** 대한민국의 교통 출신 정치인 [[권영우 (정치인)|권영우]]. (~[[2006년]])
* [[1944년]]
**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제정구]]. (~[[1999년]])
** 대한민국의 공무원 [[이재정 (1944년)|이재정]].
* [[1947년]] - 대한민국의 드라마 작가 [[홍승연]]. (~[[2021년]])
* [[195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경기도의원 의회 [[서형열]].
* [[195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조재훈]]. (~[[2007년]])
* [[1952년]] - 영국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마틴 오닐]].
* [[1954년]] - 미국의 배우, 영화 감독 [[론 하워드]]. (~[[2020년]])
* [[1960년]]
** 대한민국의 축구 지도자 [[김학범]].
** 대한민국의 지방의회 [[임재구]]. (~[[2020년]])
* [[1962년]]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김영규 (1962년)|김영규]].
** 대한민국의 언론인 [[김진수 (언론인)|김진수]].
* [[1964년]] - 스페인의 축구 심판 [[루이스 메디나 칸탈레호]].
* [[1965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재관 (1965년)|이재관]].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황보관]].
* [[1966년]] - 미국의 영화감독 [[잭 스나이더]].
* [[1967년]]
** 네덜란드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아론 빈터르]].
** 미국의 배우 [[조지 이즈]].
** 대한민국의 성우 [[김미정 (성우)|김미정]].
* [[1968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염경엽]].
* [[1969년]] - 스페인의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
* [[1970년]]
** 일본의 배우 [[나카야마 미호]].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정민태]].
* [[1971년]]
** 대한민국의 배우 [[마동석]].
** 대한민국의 성우 [[최재호 (성우)|최재호]].
* [[1972년]] - 대한민국의 정치학자 [[김지윤 (정치학자)|김지윤]].
* [[1973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혜은]].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곽채진]].
** 캐나다의 기타리스트 [[라이언 피크]].
* [[1974년]] - 이탈리아의 작가 [[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
* [[1976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김준희 (1976년)|김준희]].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주형광]].
** 대한민국의 펜싱 선수, 기업인 [[고영태]].
* [[1977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송신영]].
* [[1978년]]
** 일본의 성우 [[노가와 사쿠라]].
** 대한민국의 배우 [[오승현]].
** 미국의 배우 [[젠슨 애클스]].
** 대한민국의 배우 [[지건우]]. (~[[2023년]])
* [[1979년]] - 대한민국의 전 가수 [[김형철 (1979년)|김형철]]. ([[Uno (음악 그룹)|Uno]])
* [[1980년]]
** 미국의 기업인 [[마크 테토]].
** 대한민국의 배우 [[김주헌]].
** 대한민국의 가수 [[연규성]].
* [[1981년]]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김동수 (프로게이머)|김동수]].
** 지바현의 작곡가 [[시미즈 다쓰야]].
** 대한민국의 성우 [[강시현]].
* [[1982년]]
** 대한민국의 모델, 배우 [[김민희 (1982년)|김민희]].
** 대한민국의 희극인 [[신종령]].
* [[1983년]]
** 케냐와 멕시코의 배우 [[루피타 뇽오]].
** 대한민국의 배우 [[황지현]].
** 대한민국의 가수 [[권정열]].
* [[1984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정현석 (야구인)|정현석]].
* [[1985년]]
** 대한민국의 양궁 선수 [[윤옥희]].
** 대한민국의 펜싱 선수 [[강영미]].
** 독일의 전 축구 선수 [[안드레아스 오틀]].
* [[1986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차유나]].
** 대한민국의 배우 [[문지인]].
* [[1987년]]
** 미국의 가수 [[케샤]].
** 대한민국의 가수 [[김그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동길 (야구 선수)|김동길]].
** 캐나다의 프로레슬링 선수 [[카일 오라일리]].
* [[1988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양현종]] ([[KIA 타이거즈]]).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상화 (1988년)|이상화]] ([[롯데 자이언츠]]).
* [[1989년]] - 멕시코의 축구 선수 [[카를로스 벨라]].
* [[1990년]]
** 대한민국의 트라이애슬론 선수 [[허민호]].
** 대한민국의 사격 선수 [[송종호 (사격 선수)|송종호]].
* [[1991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준희 (축구 선수)|박준희]].
* [[1992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소혜 (1992년)|김소혜]].
** 세네갈의 축구 선수 [[에두아르 멘디]].
* [[1993년]]
** 대한민국의 가수 [[원호 (가수)|원호]] ([[몬스타엑스]]).
**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킹기훈]].
** 스페인의 축구 선수 [[후안 베르나트]].
* [[1994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박보람]]. (~[[2024년]])
** 일본의 배우 [[아카소 에이지]].
** 캐나다의 싱어송라이터, 멀티 악기연주자 [[저스틴 비버]].
* [[1995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준용 (가수)|이준용]].
* [[1996년]] - 대한민국의 가수 [[별은]].
* [[1997년]]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김정호 (배구 선수)|김정호]].
** 이스라엘의 체조 선수 [[아르템 돌고피아트]].
* [[1998년]] - 중화인민공화국의 배드민턴 선수 [[천위페이]].
* [[1999년]]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비디디 (프로게이머)|비디디]].
* [[2000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윤수녕]].
** 이집트의 근대5종 선수 [[아흐마드 알진디]].
* [[2002년]] - 일본의 가수 미쿠.
* [[2003년]]
** 미국의 배우 [[밀리센트 시먼스]].
** 대한민국의 유튜버 [[최준희]].
=== 미상 ===
*대한민국의 가수 [[명지수]].
== 사망 ==
* [[991년]] - 제64대 일본의 천황 [[엔유 천황]]. ([[959년]]~)
* [[1792년]] -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 [[레오폴트 2세 (신성 로마 황제)|레오폴트 2세]]. ([[1747년]]~)
* [[1924년]] - 스웨덴의 수학자 [[헬리에 본 코크]]. ([[1890년]]~)
* [[197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정문흠]]. ([[1892년]]~)
* [[1980년]] - 영국의 축구 선수 [[딕시 딘]]. ([[1907년]]~)
* [[1983년]] - 미국의 정치인 [[밀드레드 팩스턴 무디]]. ([[1897년]]~)
* [[1995년]] - 독일의 생물학자,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 [[게오르게스 J. F. 쾰러]]. ([[1946년]]~)
* [[2010년]] - 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회 주교 [[김옥균 (주교)|김옥균]]. ([[1925년]]~)
* [[2011년]] - 대한민국의 성우 [[백순철]]. ([[1958년]]~)
* [[2014년]] - 프랑스의 영화 감독 [[알랭 레네]]. ([[1922년]]~)
* [[2019년]]
** 대한민국의 의사 [[조운해]]. ([[1925년]]~)
** 러시아의 물리학자 [[조레스 알표로프]]. ([[1930년]]~)
** 아일랜드의 건축가 [[케빈 로치]]. ([[1922년]]~)
* [[2020년]]
** 대한민국의 군인 [[박구일]]. ([[1934년]]~)
** 미국의 기업인 [[잭 웰치]]. ([[1935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화가 [[김병기 (화가)|김병기]]. ([[1916년]]~)
** 미국의 영화배우 [[콘래드 제니스]]. ([[1928년]]~)
* [[2023년]]
** 미국의 영화배우 [[테드 도널드슨]]. ([[1933년]]~)
** 오스트리아의 예술가 [[페터 바이벨]]. ([[1944년]]~)
** 프랑스의 축구 선수 [[쥐스트 퐁텐]]. ([[1933년]]~)
* [[2024년]]
** 미국의 패션디자이너 [[아이리스 아펠]]. ([[192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오현경 (1936년)|오현경]]. ([[1936년]]~)
** 일본의 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 ([[1955년]]~)
== 기념일 ==
* 대한민국의 [[3·1절]]
*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무스타파 바르자니]]([[:en:Mustafa Barzani|Mustafa Barzani]]) 추모일: [[쿠르드 자치구]]
* 구 동독의 [[국가인민군|국가 인민군의 날]]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독립 기념일
* 돼지의 날(National Pig Day): 미국
* 세계 민방위의 날(World Civil Defence Day)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2월 28일]]([[2월 29일]]) 다음날: [[3월 2일]] - 전달: [[2월 1일]] 다음달: [[4월 1일]]
* 음력: [[음력 3월 1일|3월 1일]]
* [[366일|모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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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2월 28일'''은 [[그레고리력]]으로 59번째([[윤년]]일 경우도 59번째) 날에 해당한다.
{{2월달력}}
{{특정날짜요일|2|28}}
== 사건 ==
* [[1922년]] - [[이집트]]가 영국으로부터 독립.
* [[1947년]] - [[중화민국]]의 [[타이완]]에서 [[2·28 사건]] 발생.
* [[1960년]] - [[대한민국]] [[대구광역시]]에서 [[2·28 대구 학생의거]] 발발.
* [[2022년]] - 마지막 [[안토노프 An-225]]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인하여 파괴됨.
== 문화 ==
* [[2002년]] - KBS 위성 1TV와 KBS 위성 2TV 폐국.
* [[2007년]] -
** [[하이텔|하이텔 VT]] 서비스 종료되었다.
** [[케이블TV]] 채널인 [[Qwiny]]가 사행성 문제로 폐국되었다.
* [[2008년]] - [[제로보드]] XE버전 공식 발표.
* [[2009년]] - 대한민국의 종합 인터넷 검색회사 [[엠파스]]가 [[네이트]]에 통합되었다.
* [[2010년]] - [[대한민국]]에서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웹 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 6]]에 대한 일부 지원을 중단했다.
* [[2012년]] - [[ITX-청춘]] 열차 운행 시작. (청량리 ~ 춘천 구간)
* [[2017년]] - [[서원주 나들목|서원주 IC]] 개통하였다.
== 탄생 ==
* [[1533년]] -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 (~[[1592년]])
* [[1838년]] - 조선의 가톨릭 순교자, 프랑스인 신부 [[시몽 마리 앙투안 쥐스트 랑페르 드 브르트니에르|시몽 마리 앙투안 쥐스트 랑페르 드브르트니에르]]. (~[[1866년]])
* [[1854년]] - 청나라 황족 종실 겸 정치가 공충친왕 이신의 장녀 [[롱슈]].
* [[1879년]] - 일제강점기의 승려 [[권상로]]. (~[[1965년]])
* [[1880년]] - 브라질의 최고령 [[마리아 올리비아 다 실바]]. (~[[2010년]])
* [[1881년]] - 대한제국의 독립운동가 [[김규식 (1881년)|김규식]]. (~[[1950년]])
* [[1901년]] - 미국의 물리화학자 [[라이너스 폴링]]. (~[[1994년]])
* [[1909년]] - 영국의 문인 [[스티븐 스펜더]]. (~[[1995년]])
* [[1920년]] -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 (~[[1592년]])
* [[1921년]] - 프랑스 최후의 사형집행인 [[마르셀 슈발리에]]. (~[[2008년]])
* [[1928년]] - 파키스탄의 자선가이자 운동가 [[압둘 사타르 에디]]. (~[[2016년]])
* [[1929년]] - 대한민국의 군인 [[강상욱]]. (~[[2014년]])
* [[1930년]] - 대한민국 정치인 [[노신영]]. (~[[2019년]])
* [[1938년]] - 대한민국의 가수 [[패티 김]].
* [[1942년]]
**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디노 초프]].
** 미국의 전 정치인, 문학 작가 [[토머스 조지프 라이언 (1942년)|토머스 조지프 라이언]].
* [[1947년]] - 폴란드의 전 축구 선수 [[브워지미에시 루반스키]].
* [[1954년]] - 벨기에의 수학자 [[장 부르겡]].
* [[1955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규창 (1955년)|김규창]].
** 미국의 영화배우, 희극인 [[길버트 갓프리드]]. (~[[2022년]])
* [[1957년]] - 대한민국의 전직 씨름 선수 [[이봉걸]].
* [[1960년]] - 캐나다의 배우, 모델 [[도로시 스트래튼]].
* [[1961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염동열]].
* [[1962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 [[최교일]].
* [[1963년]] - 대한민국의 배우 [[강애심]].
* [[1965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광재 (정치인)|이광재]].
* [[1966년]]
** 영국의 문학 작가 [[필립 리브]].
** 포르투갈의 전 축구 선수 [[파울루 푸트르]].
* [[1967년]] - 대한민국의 가수 예지.
* [[1968년]]
** 대한민국의 가수, 희극인 [[정찬우 (희극인)|정찬우]]. ([[컬투]])
** 대한민국의 성우 [[양정애]].
* [[1969년]] - 대한민국의 성우 [[이자명]].
* [[1970년]] - 미국의 소설가 [[대니얼 핸들러]].
* [[1971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종석 (1971년)|김종석]].
* [[1972년]] - 대한민국의 성우 [[임유진 (성우)|임유진]].
* [[1973년]] - 미국의 정치인 [[마크 리퍼트]].
* [[1974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적 (가수)|이적]].
* [[1975년]]
** 대한민국의 성우 [[이자명]].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박진영|박진철]].
** 대한민국의 배우 [[김혜진 (1975년)|김혜진]].
** 일본의 성우 [[하야미즈 리사]].
* [[1976년]]
** 일본의 성우 [[KAORI]].
** 미국의 모델, 배우 [[앨리 라터]].
* [[1977년]]
** 대한민국의 배우 [[고서희]].
** 대한민국의 배우 [[김정민 (1977년)|김정민]].
** 대한민국의 전 농구 선수 [[이언주 (농구 선수)|이언주]].
* [[1979년]]
** 영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마이클 비스핑]].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민수 (1979년 2월)|김민수]].
** 대한민국의 작곡가, 음악 프로듀서 [[라이언 전]].
* [[1980년]] - 대한민국의 가수 겸 뮤지컬 배우 [[바다 (가수)|바다]].
* [[1981년]] - 대한민국의 역도 선수 [[전상균]].
* [[1982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서홍석]].
* [[1984년]]
** 체코의 모델 [[카롤리나 쿠르코바]].
** 리투아니아의 근대5종 선수 [[라우라 아사다우스카이테]].
* [[1985년]]
** 대한민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이강석]].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백지훈]].
** 브라질의 축구 선수 [[지에구 히바스 다 쿠냐]].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정영주 (프로게이머)|정영주]].
* [[1986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허승민 (야구인)|허승민]]. ([[삼성 라이온즈]]).
** 대한민국의 가수 [[윤혁 (가수)|윤혁]]. ([[디셈버 (음악 그룹)|디셈버]])
** 대한민국의 배우 [[구재이]].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영신 (축구인)|김영신]].
** 일본의 성우 [[산페이 유우코]].
* [[1987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최정 (야구 선수)|최정]] ([[SSG 랜더스]]).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황가히]].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안토니오 칸드레바]].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김지민 (레이싱 모델)|김지민]].
* [[1988년]] - 체코의 싱어송라이터, 배우 [[마르케타 이르글로바]].
* [[1989년]]
** 중국의 가수 [[장리인]].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두현 (희극인)|김두현]].
** 대한민국의 배우 [[최태환 (1989년)|최태환]].
** 미국의 야구 선수 [[채드 벨]].
** 중국의 배우 [[안젤라베이비]].
* [[1990년]]
** 영국의 배우 [[조지나 레오니다스]].
** 독일의 축구 선수 [[제바스티안 루디]].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최호선]].
** 대한민국의 가수 강지혜.
* [[1991년]]
** 일본의 배우 [[야마모토 히카루]].
** 일본의 성우 [[야마키타 사키]].
** 대한민국의 가수 [[로이도]].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강상준 (뮤지컬 배우)|강상준]].
* [[1992년]]
** 대한민국의 가수 건지 ([[가비엔제이]]).
** 멕시코의 축구 선수 [[나옐리 랑헬]].
** 대한민국의 래퍼 [[나플라]].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방송인 [[추혁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문미라]].
* [[1993년]]
** 대한민국의 래퍼 [[씨잼]].
** 대한민국의 성우 [[김민주 (성우)|김민주]].
** 대한민국 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루퍼 (프로게이머)|루퍼]].
** 그레나다의 육상 선수 [[린든 빅터]].
* [[199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윤수 (배우)|윤수]].
** 대한민국의 가수 [[지수 (1994년)|지수]] ([[타히티 (음악 그룹)|타히티]]).
** 영국의 가수 [[제이크버그]].
** 대한민국의 골프 선수 [[유현주 (골프 선수)|유현주]].
** 대한민국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오은철]].
** 대한민국의 가수 [[남궁진영]].
** 대한민국의 배우 [[정하담]].
* [[1995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방효린]].
** 대한민국의 가수 [[유회승]] ([[엔플라잉]]).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크라운 (프로게이머)|크라운]].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한다혜 (배구 선수)|한다혜]].
** 대한민국의 배우 [[이유진 (1995년)|이유진]].
* [[1996년]]
** 대한민국의 피아니스트 [[이경아]].
** 노르웨이의 육상 선수 [[카르스텐 바르홀름]].
* [[1997년]]
** 대한민국의 가수 [[태양 (가수)|태양]] ([[SF9]]).
** 대한민국의 배우 [[홍서희]].
** 중화인민공화국의 양궁 선수 [[우자신]].
** 미국의 사격 선수 [[버지니아 트래셔]].
* [[1998년]] - 대한민국의 가수 수진.
* [[1999년]] - 슬로베니아의 농구 선수 [[루카 돈치치]].
* [[2000년]]
** 일본의 배우, 가수 [[카미시라이시 모카]].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모이스 켄]].
* [[2001년]] - 대한민국의 이종격투기 선수 [[박나영]].
* [[2002년]]
** 러시아의 체조 선수 [[이반 쿨랴크]].
** 오스트레일리아의 싱어송라이터 [[일로나 가르시아]].
* [[2005년]] - 브라질의 축구 선수 [[비토르 호케]].
* [[2007년]] - 대한민국의 아역 배우 [[조유하]].
* [[2009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방윤하]].
* [[2011년]] - 대한민국의 아역 배우 이설아.
== 사망 ==
* [[1452년]] - 조선의 재상 [[황희]]. ([[1363년]]~)
* [[1648년]] - 덴마크, 노르웨이의 국왕 [[크리스티안 4세]]. ([[1577년]]~)
* [[1975년]] - 대한민국의 시인 [[한하운]]. ([[1920년]]~)
* [[1978년]] - 미국의 한국계 영화배우 [[안필립]]. ([[1905년]]~)
* [[1981년]] - 대한민국 군인 겸 기업가 및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중장 [[양국진 (1916년)|양국진]]. ([[1916년]]~)
* [[1986년]] - 스웨덴의 총리 [[올로프 팔메]]. ([[1927년]]~)
* [[1989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시인 [[박세영 (1902년)|박세영]]. ([[1902년]]~)
* [[2005년]] - 대한민국의 화가 [[장우성]]. ([[1912년]]~)
* [[2011년]] - 프랑스의 배우 [[아니 지라르도]]. ([[1931년]]~)
* [[2015년]] - 터키의 소설가 [[야샤르 케말]]. ([[1923년]]~)
* [[2016년]] - 미국의 배우 [[조지 케네디]]. ([[1925년]]~)
* [[201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최기선]]. ([[1945년]]~)
* [[2019년]] - 미국의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 ([[1929년]]~)
* [[2020년]] - 미국의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 ([[1923년]]~)
* [[2021년]]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글렌 로더]]. ([[1955년]]~)
* [[2023년]]
** 대한민국의 가수 [[송민도]]. ([[1923년]]~)
** 이란의 작가 [[자바드 타바타바이]]. ([[1945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제36대 보건복지부장관 [[김모임]]. ([[1935년]]~)
** 소련의 정치인 [[니콜라이 리시코프]]. ([[1929년]]~)
** 대한민국의 교육인 [[송수식]]. ([[1941년]]~)
** 대한민국의 성우 [[안종국 (성우)|안종국]]. ([[1942년]]~)
== 기념일 ==
* [[2·28 대구 학생의거|2.28 민주운동]] 기념일: [[대한민국]]
* [[핀란드]] [[칼레발라]]의 날
* [[중화민국]] 평화 기념일(Peace Memorial Day)
* [[:en:Teachers' Day|스승의 날]](Teachers' Day): [[:en:Arab states|아랍 국가]](Arab countries). [[이란]]은 5월 2일
* 세계 희귀병의 날(2월의 마지막 날)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2월 27일]] 다음날: [[3월 1일]]([[2월 29일]]) - 전달: [[1월 28일]] 다음달: [[3월 28일]]
* 음력: [[음력 2월 28일|2월 28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2월 28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7월 1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82번째([[윤년]]일 경우 183번째) 날에 해당한다.
{{7월달력}}
{{특정날짜요일|7|1}}
== 사건 ==
* [[1863년]]
** [[남북 전쟁|미국 남북 전쟁]]의 분수령이 되는 [[게티스버그 전투]]가 시작되다(~ [[7월 3일]])
** [[미국 남북전쟁]] 중 [[게티즈버그 전역]]: [[칼라일 전투]]
* [[1867년]] - [[캐나다]], [[영국]]으로부터 독립.
* [[1908년]] - [[SOS]]가 국제 무선 전신 협약에 의해 조난 신호로 채택되다.
* [[1916년]] - 1차 세계대전에서 양군 합쳐 100만명의 사상자를 낸 [[솜므 전투]] 발발.(~ [[1917년]])
* 1954년 - 일본의 [[자위대]]가 조직되다.
* [[1960년]] - [[소말리아]]가 독립했다.
* [[1962년]] - [[르완다]], [[부룬디]]가 [[벨기에]]에서 독립하다.
* [[1964년]] - [[아시아 태평양 방송 연합]](ABU)이 발족됐다.
* [[1967년]] - [[유럽 공동체]](EC)가 결성되다.
* [[1991년]] - [[바르샤바 조약 기구]]가 공식적으로 해체되다.
* [[1997년]] - [[영국]]의 조차지였던 [[홍콩]]이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되다.
* [[2006년]] - [[이탈리아]], [[징병제]]를 폐지했다.
* [[2011년]] - [[독일]], [[징병제]]를 폐지했다.
* [[2014년]]
** [[일본]] 정부가 내각 회의 결정을 통해 헌법 해석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공식 인정하였다.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선자들이 취임하다.
* [[2018년]]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선자들이 취임하다.
* [[2022년]]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선자들이 취임하다.
* [[2026년]] -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선자들이 취임하다.
== 문화 ==
* [[1903년]] - 제1회 [[투르 드 프랑스]]가 개최되다.
* [[1904년]] - [[1904년 하계 올림픽]]이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개막됐다.
* [[1931년]] - [[밴쿠버 국제공항]] 개항.
* [[1933년]] - [[리버풀 존 레논 공항]] 개항.
* [[1946년]] - [[일양약품]]이 창립되었다.
* [[1955년]] - [[김성환 (만화가)|김성환]] 화백의 시사만화 《[[고바우]]》가 처음으로 [[동아일보]]에 연재되다.
* [[1979년]] - [[소니]]가 [[워크맨]]을 출시하다.
* [[1981년]]
** [[대구]]와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되다.
** [[양주군]] 동두천읍이 [[동두천시]]로 승격.
** [[남원군]] 남원읍이 [[남원시]]로 승격.
** [[정읍군]] 정주읍이 [[정주시 (전라북도)|정주시]]로 승격.
** [[나주군]] 나주읍과 영산포읍이 [[금성시]]로 승격.
* [[1988년]] -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공익광고협의회]]로 설립.
* [[1990년]] - [[경상남도]] [[마산시]]가 [[회원구]]와 [[합포구]]로 분구.
* [[1996년]] - [[KBS 1TV|KBS위성 1TV]]와 [[KBS N 라이프|KBS위성 2TV]] 개국.
* [[2000년]] - [[대한민국]]의 지상파 방송사인 [[한국방송공사|KBS]]의 수도권 FM 라디오 채널 [[KBS 제2라디오]] 개국. (주파수 106.1MHz, 10㎾)
* [[2001년]] - [[대한민국]]의 [[대한민국 철도청|철도청]]이 경영 합리화의 목적으로 무정차 간이역 대다수를 폐지시키다.
* [[2004년]] - [[서울특별시]]에서 대중교통 체계를 개편하다.
* [[2006년]] - [[대한민국]]의 [[도 (행정 구역)|도]]였던 제주도가 [[제주특별자치도]]로 출범하다. [[북제주군]]은 [[제주시]]로, [[남제주군]]은 [[서귀포시]]로 통합되었다.
* [[2008년]] - [[마창대교]] 개통.
* [[2009년]]
** 대한민국의 [[수도권 전철 경의선]] [[서울역]] - [[문산역]] 간 복선 전철이 개통되었다.
** [[용인서울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 [[2010년]] - [[경상남도]]의 [[창원시]], [[마산시]], [[진해시]]가 통합 [[창원시]]로 출범하였다. (행정구: [[성산구]], [[의창구]],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진해구]])
* [[2011년]] - 대한민국의 [[YTN2|YTN Weather]], [[디스코 (텔레비전 채널)|디스코]], [[디즈니 채널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채널)|디즈니 채널]] 개국.
* [[2012년]] -
** [[대한민국]]의 새로운 광역 행정구역이자 최초의 [[특별자치시]]인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다.
** [[의정부 경전철]]이 개통되었다.
* [[2013년]] -
** [[대한민국 민법]]상 성년의 기준 연령이 기존의 만 20세에서 현재의 만 19세로 하향 조정되었다.
** [[해왕성]]의 초소형 위성(달) [[:en:S/2004 N1|S/2004 N1]]이 발견되었다.
* [[2014년]] -
** [[교동대교]] 개통.
** [[충청북도]]의 [[청주시]], [[청원군]]이 통합 [[청주시]]로 출범하였다. (행정구: [[청원구]], [[상당구]], [[서원구]], [[흥덕구]])
* [[2015년]] - 대한민국의 [[채널A플러스]], [[YTN2|YTN 웨더&라이프]] 개국.
* [[2021년]] - [[중앙선]], [[강릉선]] KTX-이음 복합열차가 운행되었다.
* [[2023년]] -
** [[수도권 전철 서해선]] [[대곡역 (고양)|대곡]] - [[소사역|소사]] 구간 개통.
** [[군위군]]이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어 대구광역시 군위군이 되었다.
== 탄생 ==
* [[1311년]] - 중국 명나라의 군사전략가, 정치인, 시인 [[유기 (명나라)|유기]]. (~[[1375년]])
* [[1646년]] - 독일의 수학자, 철학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1716년]])
* [[1654년]] - 프랑스의 원수 [[루이조제프 드 부르봉 드 방돔 공작]]. (~[[1712년]])
* [[1725년]] - 프랑스의 원수, 군인 [[로샹보 백작 장바티스트 도나티앵 드 비뫼르|로샹보 백작 장바티스트 도나티앵 디 비뫼르]]. (~[[1807년]])
* [[1804년]] - 프랑스의 소설가 [[조르주 상드]]. (~[[1876년]])
* [[1859년]] - 조선 최초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1916년]])
* [[1879년]] - 프랑스의 사회운동가 [[레옹 주오]]. (~[[1954년]])
* [[1892년]] - 미국의 작가 [[제임스 M. 케인]]. (~[[1977년]])
* [[1902년]] - 미국의 영화감독 [[윌리엄 와일러]]. (~[[1981년]])
* [[1903년]]
** 대한민국의 교육자, 철학자 [[박종홍]]. (~[[1976년]])
** 영국의 파일럿 [[에이미 존슨]]. (~[[1941년]])
* [[1905년]] - 북한의 고고학자 [[도유호]]. (~[[1982년]])
* [[1912년]] - 대한민국의 시인 [[백석]]. (~[[1996년]])
* [[1916년]] - 미국의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2020년]])
* [[1926년]]
** 독일의 작곡가 [[한스 베르너 헨체]]. (~[[2012년]])
** 아르헨티나의 지휘자 [[아틸리오 스탐포네]]. (~[[202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철 (1926년)|김철]]. (~[[1994년]])
* [[1934년]] - 미국의 영화감독 [[시드니 폴락]]. (~[[2008년]])
* [[1936년]] - 미국의 영화배우 [[론 마삭]]. (~[[2022년]])
* [[193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심완구]]. (~[[2020년]])
* [[1942년]] - 캐나다의 배우 [[준비에브 뷔조]].
* [[194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대근]].
* [[1944년]] - 대한민국의 성우 [[탁원제]].
* [[1945년]] - 미국의 가수 겸 배우 [[데비 해리]] ([[블론디 (밴드)|블론디]]).
* [[1947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송기원]]. (~[[2024년]])
* [[1955년]] -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 [[리커창]]. (~[[2023년]])
* [[1959년]]
** 대한민국의 승마 선수 [[김형칠]]. (~[[2006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정해원 (축구인)|정해원]]. (~[[2020년]])
* [[1960년]]
** 대한민국의 역사학자 [[김보한]]. (~[[2021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박진규 (기업인)|박진규]].
** 일본의 성우 [[이시이 코지]].
* [[1961년]]
** 영국 찰스 왕세자의 전 부인 [[웨일스 공비 다이애나]]. (~[[1997년]])
** 미국의 육상 선수 [[칼 루이스]].
** 인도계 미국인 우주인 [[칼파나 촐라]]. (~[[2003년]])
* [[1962년]]
** 대한민국의 도시공학자 [[김수현 (1962년)|김수현]].
** 미국의 배우 [[앤드리 브라우어]]. (~[[2023년]])
* [[1964년]] - 일본의 성우 [[사토 치에]].
* [[1966년]] - 벨기에의 축구 심판 [[프랑크 더블레이케러]].
* [[1967년]] - 캐나다의 모델, 배우 [[패멀라 앤더슨]].
* [[1968년]] - 대한민국의 배우 [[한갑수]].
* [[1969년]] - 일본의 전 야구 선수 [[히야마 신지로]].
* [[1971년]] - 미국의 래퍼 [[미시 엘리엇]].
* [[1972년]]
** 대한민국의 방송연예인 [[전용준]].
** 일본의 성우 [[이나다 테츠]].
* [[1973년]] - 대한민국의 체조 선수 [[한광호]].
* [[1974년]] - 대한민국의 법조 출신 정치인 [[김한규 (1974년)|김한규]].
* [[1975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미진 (희극인)|김미진]].
* [[1976년]]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뤼트 판 니스텔로이]].
** 네덜란드의 전 축구 선수 [[파트릭 클라위버르트]].
** 대한민국의 성우 [[곽윤상]].
* [[1977년]]
** 대한민국의 MC, 방송인 [[허준 (방송인)|허준]].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김만수 (바둑 기사)|김만수]].
** 미국의 배우 [[리브 타일러]].
* [[1978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일경 (야구 선수)|김일경]].
* [[1979년]]
** 미국의 종합격투기의 선수 [[포레스트 그리핀]].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배성재 (축구인)|배성재]].
* [[1980년]]
** 대한민국의 전 가수 [[고지용]].
** 대한민국의 배드민턴 선수 [[손승모]].
* [[1981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유한준 (야구인)|유한준]].
* [[1982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석만]].
* [[1983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특 (가수)|이특]] ([[슈퍼주니어]]).
* [[1985년]]
** 프랑스의 배우 [[레아 세두]].
** 일본의 만화가 [[사쿠라이 노리오]].
** 대한민국의 육상 선수 [[김하나 (육상 선수)|김하나]].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창현 (야구인)|김창현]].
* [[1986년]] - 미국의 영화 배우 [[샤이아 러버프]].
* [[1987년]]
** 대한민국의 육상 선수 [[정혜림]].
** 대한민국의 배우, 모델 [[안재현]].
** 대한민국의 배우 [[연제욱]].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일권 (희극인)|김일권]].
* [[1988년]]
** 영국의 배우 [[미즈노 소노야]].
** 대한민국의 기상 캐스터 [[김지효]].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김선형]].
* [[1989년]]
** 미국의 야구 선수 [[마이크 몽고메리]].
** 영국의 배우 [[미치 휴어]].
** 대한민국의 성우 [[이슬 (성우)|이슬]].
** 영국의 배우 [[해나 머리]].
* [[1990년]]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김성현 (1990년)|김성현]].
** 일본의 가수 [[사토 나츠키]].
* [[1991년]]
** 대한민국의 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정명훈 (프로게이머)|정명훈]].
** 대한민국의 수영 선수 [[백수연]].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루카스 바스케스]].
** 대한민국의 프로 사진기사 윤원균.
* [[1992년]] - 대한민국의 작가 겸 아나운서, 앵커 [[한지이]].
* [[1993년]] - 일본의 가수, 배우 [[카미야마 토모히로]].
* [[1994년]]
** 대한민국의 가수 [[정인성]] ([[크나큰]]).
** 에스토니아의 가수 [[위리 포츠만]].
** 일본의 패션모델겸 배우 [[오카모토 안리]].
** 일본의 배우 [[마이 키류]].
* [[1995년]] - 대한민국의 가수 [[태용]] ([[NCT]]).
* [[1996년]]
** 러시아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 대한민국의 양궁 선수 [[최미선 (양궁 선수)|최미선]].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스피릿 (프로게이머)|스피릿]].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최승민 (1996년)|최승민]].
* [[1997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강윤성 (축구 선수)|강윤성]].
* [[1998년]] - 대한민국의 가수 [[정은우 (1998년)|은우]] ([[희나피아]]).
* [[1999년]] - 중국의 배우 [[린먀오커]].
* [[2000년]] - 대한민국의 가수 [[블루디]].
* [[2001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이수민 (2001년)|이수민]].
* [[200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최수호 (가수)|최수호]].
** 중화인민공화국의 바둑 기사 [[저우훙위]].
* [[2004년]]
** 대한민국의 가수 [[원빈 (가수)|원빈]].
** 스페인의 축구 선수 [[알레한드로 가르나초]].
=== 미상 ===
* 대한민국의 미술가 겸 뮤지컬 배우 [[이홍 (1974년)|이홍]].
== 사망 ==
* [[1277년]] - 이슬람 맘루크 왕조의 술탄 [[바이바르스]]. (1223년~)
* [[1860년]] - 미국의 화학자, 발명가 [[찰스 굿이어]]. (1800년~)
* [[1896년]] - 미국의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헤리엇 비처 스토]]. (1811년~)
* [[1925년]] -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에리크 사티]]. (1866년~)
* [[2004년]] - 미국의 영화배우 [[말론 브란도]]. (1924년~)
* [[2005년]]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루서 밴드로스]]. (1951년~)
* [[2006년]] - 일본의 정치인, 총리 [[하시모토 류타로]]. (1937년~)
* [[2015년]] -영국의 인도주의자 [[니컬러스 윈턴]]. (1909년~)
* [[2017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박상륭]]. (1940년~)
* [[2019년]]
** 미국의 기독교 조직신학자 [[노만 가이슬러]]. (1932년~)
** 미국의 야구 선수 [[타일러 스캐그스]]. (1991년~)
* [[2020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황명수 (1927년)|황명수]]. (1927년~)
** 독일의 성직자이자 음악가 [[게오르크 라칭거]]. (1924년~)
* [[2021년]] - 네덜란드의 작곡가 [[루이 안드리선]]. (1939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정주환 (정치인)|정주환]]. (1939년~)
* [[2023년]]
**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 축구 감독 [[크리스티앙 달제]]. (1949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규채]]. (1938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안정효]]. (1941년~)
* [[2024년]]
** 미국의 영화감독 [[로버트 타운]]. (1934년~)
** 일바니아의 소설가 [[이스마일 카다레]]. (1936년~)
== 기념일 ==
* 여경의 날(National Policewoman Day): [[대한민국]]
* [[캐나다의 날|캐나다 데이]](Canada Day):前 캐나다 자치령 제정 기념일, [[캐나다]]
* [[:en: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Establishment Day|홍콩 특별행정구 설립 기념일]]: [[홍콩]]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6월 30일]] 다음날: [[7월 2일]] - 전달: [[6월 1일]] 다음달: [[8월 1일]]
* 음력: [[음력 7월 1일|7월 1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7월 1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8월 1일'''은 [[그레고리력]]으로 213번째([[윤년]]일 경우 214번째) 날에 해당한다.
{{8월달력}}
{{특정날짜요일|8|1}}
== 사건 ==
* [[1714년]] - [[그레이트브리튼의 조지 1세|조지 1세]], 영국 국왕으로 즉위.
* [[1798년]] - [[나일 해전]]에서 [[호라이쇼 넬슨]]의 영국 해군이 프랑스 해군을 격파하다.
* [[1834년]] - [[영국]], 노예 해방 선언 발표
* [[1907년]] - [[일본]], [[대한제국]] 군대 강제해산.
* [[1914년]] - [[제1차 세계 대전]], 독일, 러시아에 선전포고.
* [[1919년]]
** [[일제강점기]] 조선의 [[경성부|경성]] 원효정 1정목에서 한국 최초의 [[고무]]제품 제조공장인 [[대륙고무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대륙고무주식회사]]에서 [[한국]] 최초로 검정[[고무신]], [[고무]][[공]]이 생산되었다.
** [[루마니아]] 군대가 부다페스트로 진격하면서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이 소멸
* [[1927년]] - 중국, [[난창 봉기]].
* [[1943년]] - 일본, 조선인에 대한 [[징용|징병제]] 실시
* [[1944년]] - 폴란드, [[제2차세계대전]]중 [[바르샤바봉기]] 개시
* [[1955년]] - 제1차 중국-미국 회담개시 (제네바)
* [[1961년]] - 대한민국, [[중소기업은행]] 발족
* [[1980년]] - 대한민국,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약칭 "국보위"). 신원기록 일제정리와 [[연좌제]] 폐지<ref>[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80100329201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8-01&officeId=00032&pageNo=1&printNo=10720&publishType=00020]</ref> 결정 발표.
* [[1981년]] - 대한민국, 해외여행 자유화 및 새여권법 발효.
* [[1985년]] - 대한민국,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문학인 401명의 시국선언 발표.
* [[2000년]] - 대한민국, [[대한민국]] 의약 분업 이 전국적으로 본격 시행.
* [[2002년]] - [[동남아시아 국가연합]](아세안)국가들 미국과 반테러협정 체결.
* [[2014년]] - [[중화민국]] [[가오슝시]] [[첸전구]]에서 [[2014년 가오슝시 가스 폭발 사고|가스 누출 연쇄 폭발 사고]]가 나 15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부상당하였다.
== 문화 ==
* [[1909년]] - [[한국은행]]([[한국은행]]의 전신) 발족.
* [[1910년]] - 미국에서 최초로 [[자동차 운전면허|자동차 운전면허제도]]가 시행되었다.
* [[1936년]] - [[1936년 하계 올림픽|제11회 베를린 올림픽]] 개막.
* [[1946년]] -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 도(道)로 승격.
* [[1954년]] - [[이창 (영화)|이창]] 개봉.
* [[1957년]] - [[서독]]에서 [[탈리도마이드]] 약을 판매하기 시작.
* [[1961년]] - [[중소기업은행]] 발족.
* [[1976년]]
** [[1976년 하계 올림픽|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서 레슬링 선수 [[양정모]], 해방 후 첫 올림픽 금메달 획득.
** [[대한민국]], [[김해국제공항]] 개항.
* [[1983년]] - [[MBC충북|청주문화방송(현. MBC충북)]]에서 [[MBC FM4U|FM4U]]가 개국했다. (FM 99.7 MHz)
* [[2000년]] - [[서울 지하철 7호선]] [[신풍역|신풍]] ~ [[건대입구역|건대입구]] 구간이 개통되었다.
* [[2009년]] - [[광화문 광장]]이 개장하였다.
* [[2010년]] - 대한민국의 [[한국직업방송]], [[MGTV|소비자TV]] 개국.
* [[2013년]] - [[아시아나항공]]이 [[인천국제공항]]내 최대규모인 제2격납고를 개장하였다.
* [[2014년]]
** [[경기도]] [[고양시]] 인구 100만 돌파.
** 대한민국의 걸그룹 [[레드벨벳 (음악 그룹)|레드벨벳]] 데뷔
* [[2015년]] - [[대한민국]]의 [[대한민국의 우편번호|우편번호]]가 6자리에서 5자리로 변경되었다.
* [[2021년]] - [[강릉선 KTX]]의 운행열차가 [[KTX-산천]]에서 [[KTX-이음]]으로 교체되었다.
== 탄생 ==
* [[기원전 10년]] - 로마의 제국 제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54년|기원후 54년]])
* [[992년]] - 고려의 제8대 국왕 [[현종 (고려)|현종]]. (~[[1031년]])
* [[1738년]] - 프랑스의 장군 [[자크 프랑수아 뒤고미에]] (~[[1794년]])
* [[1744년]] - 프랑스의 생물학자 [[장바티스트 라마르크]]. (~[[1829년]])
* [[1770년]] - 미국의 탐험가 [[윌리엄 클라크 (탐험가)|윌리엄 클라크]]. (~[[1838년]])
* [[1819년]] - 미국의 소설가, 작가 [[허먼 멜빌]]. (~[[1891년]])
* [[1917년]] - 대한민국의 작사가, 가수 [[반야월 (작사가)|반야월]]. (~[[2012년]])
* [[1923년]] - 대한민국의 기독교 페미니스트 겸 노동운동가 [[이우정 (1923년)|이우정]]. (~[[2002년]])
* [[1924년]] - 사우디아라비아의 제6대 국왕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2015년]])
* [[1933년]]
** 대한민국의 시인 [[고은]].
** 이탈리아의 출신 윤리 정치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 (~[[2023년]])
** 일본의 야구 선수, 야구 감독 [[가네다 마사이치]]. (~[[2019년]])
* [[1934년]] - 대한민국의 배우 [[남궁원]]. (~[[2024년]])
* [[1936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최광률]]. (~[[2024년]])
**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2008년]])
* [[1937년]] - 대한민국의 언론인 [[현소환]]. (~[[2018년]])
* [[1939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혁규]].
* [[1942년]]
** 대한민국의 가수 겸 미술가 [[차중락]]. (~[[1968년]])
** 이탈리아의 배우 [[지안카를로 지아니니]].
* [[1948년]]
**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만화가 [[알린 코민스키크럼]].
** 대한민국의 가수 [[김국환]].
** 대한민국의 정치인 [[진석규]].
* [[1949년]] - 중국의 금융인, 정치인 [[진리췬]].
* [[1952년]] - 일본의 기업인 [[나가노 가즈오]]. (~[[1985년]])
* [[1953년]]
** 대한민국의 기자 출신 방송기관단체인 [[유연채]].
** 미국의 블루스 음악가 [[로버트 크레이]].
* [[1955년]] - 대한민국의 전 배우 [[조은덕]].
* [[1956년]] - 대한민국의 골퍼 [[구옥희]]. (~[[2013년]])
* [[1961년]]
** 대한민국의 성우 [[홍승섭]].
** 네덜란드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다니 블린트]].
* [[1962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 [[김삼화]].
* [[1963년]]
** 미국의 래퍼 [[쿨리오]]. (~[[2022년]])
** 멕시코의 배우 [[데미안 비치르]].
* [[1965년]] - 영국의 영화 감독 [[샘 멘데스]].
* [[1968년]] - 미국의 전 농구 선수 [[스테이시 오그먼]].
* [[1969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명철 (가수)|김명철]].
* [[1970년]]
** 영국의 축구 선수 [[데이비드 제임스 (축구 선수)|데이비드 제임스]].
** 대한민국의 음악감독 [[방준석]]. (~[[2022년]])
* [[1973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류여해]].
** 대한민국의 야구 코치, 전 야구 해설가, 전 야구 선수 [[손혁]].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오규택]].
* [[1975년]] - 대한민국의 카피라이터, 정치인 [[김진아 (카피라이터)|김진아]].
* [[1976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남진]].
** 나이지리아의 축구 선수 [[느왕쿼 카누]].
* [[1977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심광호]].
* [[1978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안상태]].
* [[1979년]]
** 미국의 배우 [[제이슨 모모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민수 (1979년 8월)|김민수]].
* [[1980년]] - 인도네시아의 배우, 가수 [[샤리니]].
* [[1981년]] - 대한민국의 미용전문가 [[이승지]].
* [[1982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광민]].
* [[1984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유지원 (아나운서)|유지원]].
** 독일의 축구 선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유현 (축구 선수)|유현]].
* [[1985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쥬니]].
** 네덜란드의 격투기 선수 [[게가드 무사시]].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김리나 (1985년)|김리나]].
** 푸에르토리코의 배구 선수 [[카리나 오카시오]].
* [[1987년]]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캐런 카니]].
** 스페인의 축구 선수 [[이아고 아스파스]].
* [[1988년]] - 세르비아의 축구 선수 [[네마냐 마티치]].
* [[1989년]]
** 대한민국의 배우 [[노지연]].
** 한국계 미국인 가수 [[티파니 영|티파니]]([[소녀시대]]).
** 대한민국의 가수 [[변흥수]].
** 미국의 프로야구 선수 [[매디슨 범가너]].
** 사우디아라비아의 축구 선수 [[살만 알파라지]].
* [[1990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희정 (배우)|김희정]].
** 영국의 배우 [[잭 오코널]].
* [[1991년]]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정민수 (프로게이머)|정민수]].
* [[199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 [[Clovd]].
* [[1993년]]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이유진 (바둑 기사)|이유진]].
** 중화민국의 탁구 선수 [[천쓰위 (탁구 선수)|천쓰위]].
* [[1994년]] - 일본의 가수 [[와다 아야카]] (스마이레지 리더).
* [[1995년]]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체이서 (프로게이머)|체이서]].
** 일본의 야구 선수 [[후타키 고타]].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문환]].
** 대한민국의 근대5종 경기 선수 [[전웅태]].
* [[1996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연우 (배우)|연우]] ([[모모랜드]]).
** 프랑스의 배우 [[루 루아레콜리네]].
* [[1997년]]
** 대한민국의 펜싱 선수 [[전은혜 (펜싱 선수)|전은혜]].
** 대한민국의 가수 고한승.
* [[1998년]]
** 이란의 태권도 선수 [[나히드 키아니]].
** 태국의 태권도 선수 [[테윈 한쁘랍]].
* [[2000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채원 (2000년)|김채원]] ([[아이즈원]]).
** 대한민국의 역도 선수 [[이선미 (역도 선수)|이선미]].
** 일본의 아이들 [[후쿠오카 세이나]].
* [[2001년]] - 대한민국의 배우, 가수 [[박시은 (2001년)|박시은]] ([[STAYC]]).
* [[2002년]] - 대한민국의 가수 도희.
* [[2003년]] - 대한민국의 가수 오넷.
* [[2004년]] - 케냐의 육상 선수 [[이매뉴얼 와뇨니]].
* [[2007년]] - 대한민국의 가수 [[정하연 (가수)|정하연]].
== 사망 ==
* [[기원전 30년]] - 로마제국의 장군, 정치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기원전 83년]]~)
* [[527년]] - 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누스 1세]]. ([[450년]]~)
* [[1646년]] - 조선 중기의 무신, 명장 [[임경업]]. ([[1594년]]~)
* [[1907년]] - 대한제국의 군인 [[박승환 (1869년)|박승환]]. ([[1869년]]~)
* [[1967년]] - 오스트리아의 생화학자 [[리하르트 쿤]]. ([[1900년]]~)
* [[1969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제3대 국무총리 [[장택상]]. ([[1893년]]~)
* [[1977년]] - U2 정찰기 격추 사건의 조종사 [[프랜시스 게리 파워스]]. ([[1929년]]~)
* [[199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석광렬]]. ([[1968년]]~)
* [[2009년]] - 필리핀의 제11대 대통령 [[코라손 아키노]]. ([[1933년]]~)
* [[2016년]] - 루마니아 왕국 [[미하이 1세]]의 왕비 [[루마니아의 안]]. ([[1923년]]~)
* [[2018년]] - 캐나다의 모델 [[릭 제네스트]]. ([[1985년]]~)
* [[2019년]]
** 미국의 프로레슬링 선수 [[할리 레이스]]. ([[1943년]]~)
** 일본의 황족 [[오규 기요코]]. ([[1919년]]~)
* [[2020년]]
** 미국의 배우 [[레니 샌토니]]. ([[1939년]]~)
** 미국의 배우 [[윌퍼드 브림리]]. ([[1934년]]~)
* [[2021년]] - 미국의 배우 [[알빈 잉]]. ([[1932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교육학자 [[권이종]]. ([[1940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윤명노]]. ([[1934년]]~)
** 일본의 성우 [[오오타케 히로시]]. ([[1932년]]~)
* [[2023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강기희]]. ([[1964년]]~)
** 코트디부아르의 제2대 대통령 [[앙리 코낭 베디에]]. ([[1934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교육자 [[윤오남]]. ([[1960년]]~)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크레이그 셰익스피어]]. ([[1963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조춘제]]. ([[1942년]]~)
== 기념일 ==
* [[독립기념일]]: [[스위스]]
* [[:en:Scouts%27_Day#World_Scout_Scarf_Day|세계 스카우트 스카프의 날]]
* [[중국 인민해방군|인민해방군]] 창립일: [[중화인민공화국]]
* [[:en:Armed_Forces_Day#Lebanon|국군의 날]]: [[레바논]]
* [[:en:Public_holidays_in_Azerbaijan|아제르바이잔어와 알파벳의 날]]: [[아제르바이잔]]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7월 31일]] 다음날: [[8월 2일]] - 전달: [[7월 1일]] 다음달: [[9월 1일]]
* 음력: [[음력 8월 1일|8월 1일]]
* [[366일|모두 보기]]
== 각주 ==
{{각주}}
{{열두달}}
[[분류:8월 1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9월 1일'''은 [[그레고리력]]으로 244번째([[윤년]]일 경우 245번째) 날에 해당한다. 이 날이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아닌 경우, [[대한민국]]의 [[대학교]]의 2학기 개강은 대부분 이 날 시작한다.
{{9월달력}}
{{특정날짜요일|9|1}}
== 사건 ==
* [[1914년]] - 마사가 사망하면서 [[여행 비둘기]]가 멸종되었다.
* [[1923년]] - [[간토 대지진]]: 일본의 간토 지방에서 지진이 발생하다. 지진 직후의 혼란 속에서 재일 [[한국인|조선인]] 6천 명이 군경과 자경단이 휘두른 죽창 등에 살해되다.
* [[1939년]] - [[제2차 세계 대전]]: 나치 독일, [[폴란드]] 침공.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 [[1949년]] - [[이승만 정부]]는 [[여순사건]]을 반정부적인 시각으로 담아 사회적 통념에 반한다는 이유로 [[여수야화]]를 대한민국 최초의 금지곡으로 지정
* [[1952년]] -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군사|국군]] [[징병제]] 실시.
* [[1955년]] - [[대한민국]], 전국 인구조사 사상 첫 실시.
* [[1955년]] - [[우한장강대교]] 공사 시작
* [[1969년]] - [[리비아]], [[무아마르 알카다피]] 대위, [[리비아 1969년 쿠데타|군사 쿠데타]] 일으켜 왕정 무너뜨리고 공화국 수립.
* [[1980년]] - [[대한민국]], 11대 [[전두환]] 대통령 취임.
* [[1983년]] -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대한항공 007편]] 여객기가 [[사할린섬]] 근해 상공서 소련의 [[수호이 Su-15]] [[요격기]]에 격추돼 탑승자 269명 전원 사망.
* [[1986년]] - [[대한민국]], 외국산 담배 국내 시판 시작.
* [[1996년]] -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군함 2척,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처음으로 [[부산광역시|부산]]에 입항.
* [[2001년]] - [[일본]], [[가부키초 빌딩 화재]]가 발생하여 44명이 사망했다.
* [[2003년]] - [[대한민국 정부]], 종합부동산세 신설 등 관련 세법 개정 추진 발표.
* [[2004년]] - 러시아 연방 북오세티야공화국에서 [[베슬란 학교 인질 사태]]발생. 9월 3일 종료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최소 385명이 사망했다.
* [[2015년]] - [[서울특별시]] [[양천구]]에 있는 [[월촌중학교|중학교]]에서 [[뷰테인|부탄가스]] 테러가 발생하여, 학교 내의 기물이 파손되었다.
* [[2021년]] - [[인천광역시]] [[연수구]]에 있는 [[인천새봄초등학교]]가 문을 열다.
== 문화 ==
* [[1918년]] - 만해 [[한용운]](韓龍雲), 불교 월간지 `[[유심]]'(惟心) 창간
* [[1953년]] - [[대한민국]], `[[국군의 방송]]' 송출 시작
* [[1963년]] - [[대한민국 철도청]] 발족.
* [[1975년]] - [[대한민국]], 여의도 [[국회의사당]] 준공.
* [[1976년]] -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이 영업을 시작했다.
* [[1979년]] - [[파이어니어 11호]], [[토성]]에 접근.
* [[1981년]] - [[대한민국]], [[서울메트로|서울특별시 지하철공사]] 발족.
* [[1994년]] - [[대한민국]], 수도권 지하철 [[분당선]] 수서-오리간 개통. ([[복정역]]과 [[이매역]]은 당시 개통 안함)
* [[1997년]] - [[울산방송]] [[ubc TV]] 개국.
* [[2000년]] - [[대한민국]] 케이블TV 축구전문채널 [[SBS 플러스|SBS 축구채널]](現 SBS 플러스)개국
* [[2001년]] - [[대한민국]] [[울산광역시]]에서 [[Ubc Green FM]] 개국.
* [[2003년]] - [[아리랑 라디오]] 라디오 방송 개국.
* [[2011년]] - [[문화방송]]이 진주문화방송과 창원문화방송을 포함한 몇 개의 지역방송사를 합병하여 [[MBC경남]]으로 출범했다.
* [[2014년]] - [[문화방송]]이 여의도 사옥 시대를 마감하고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신사옥으로 공식 이전했다.
* [[2015년]] -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단둥]]시와 [[선양]]을 잇는 고속철도가 개통되었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을 합병한 [[KEB하나은행]]이 탄생했다.
* [[2021년]]
** [[서울특별시]] [[상암동]] [[월드컵대교]] 본선 개통
** [[서부간선도로]] 지하화 개통
== 탄생 ==
* [[948년]] - 요나라의 제5대 황제 [[요 경종]]. (~[[982년]])
* [[1145년]] - 에스파냐의 여행가 [[이븐 주바이르]]. (~[[1217년]])
* [[1453년]] - 스페인의 장군 [[곤살로 페르난데스 데 코르도바]]. (~[[1515년]])
* [[1792년]] - 캐나다의 사업가 [[토머스 매케이|토머스 맥케이]]. (~[[1855년]])
* [[1856년]] - 아일랜드의 정치인 [[존 에드워드 레드먼드]]. (~[[1918년]])
* [[1911년]] - 대한제국의 시인, 작가 [[노천명]]. (~[[1957년]])
* [[1927년]] - 대한민국의 교육인, 정치가 [[정희채]]. (~[[2020년]])
* [[1931년]] - 대한민국의 정치학자 겸 교육인,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 (정치학자)|이인수]]. (~[[2023년]])
* [[1933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윤일영]]. (~[[2022년]])
* [[1935년]]
**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겸 시인 [[송백헌]]. (~[[2021년]])
** 일본의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 (~[[2024년]])
* [[193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황교선]]. (~[[202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상희 (1938년)|이상희]]. (~[[2023년]])
** 미국의 배우 [[릴리 톰린]].
* [[1944년]] - 일본의 스키점프 선수 [[곤노 아키쓰구]]. (~[[2019년]])
* [[1946년]]
**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2009년]])
** 영국의 가수 [[배리 깁]].
** 미국의 배우 [[수잔 백클리니]]. (~[[2024년]])
* [[1948년]]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유건재]]. (~[[2021년]])
* [[1954년]] - 대한민국의 시인 겸 대학 교수 [[최승호 (시인)|최승호]].
* [[1957년]] - 미국의 가수 [[글로리아 에스테판]].
* [[1962년]]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뤼트 휠릿]].
* [[1965년]]
** 대한민국의 배우 겸 방송인 [[김상중]].
** 대한민국의 의원 [[서정진 (1965년)|서정진]].
* [[1966년]] - 대한민국의 산악인 [[한왕용]].
* [[1967년]] - 대한민국의 전 수영 선수 출신 정치인 [[최윤희 (수영 선수)|최윤희]].
* [[1970년]] - 대한민국의 배우 [[황정민]].
* [[1971년]]
** 터키의 전 축구 선수 [[하칸 쉬퀴르]].
** 미국의 성우 겸 각본가 [[데이브 위튼버그]].
* [[1972년]] - 대한민국의 교육자 유재현.
* [[1974년]]
** 영국의 배우 [[번 고먼]].
** 일본의 에니메이션 감독 [[야마모토 유타카]].
* [[1976년]] - 일본의 전 축구 선수 [[후쿠니시 다카시]].
* [[1977년]]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다비드 알벨다]].
** 일본의 배우 [[미야기 켄타로]].
* [[1978년]]
** 대한민국의 기상 캐스터 [[홍서연]].
** 일본의 성우 [[나카지마 사키 (성우)|나카지마 사키]].
** 미국의 축구 선수 [[올 루커스]].
* [[1979년]]
** 일본의 배우 [[시미켄]].
** 미국의 전 야구 선수 [[제이슨 스코비]].
* [[1980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재화 (배우)|김재화]].
** 잉글랜드의 배우 [[라라 펄버]].
* [[1981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박효신]].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성우 (야구인)|이성우]].
** 대한민국의 래퍼 [[여운]].
* [[1982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전진영 (아나운서)|전진영]].
** 대한민국의 래퍼, 음악가 [[이그니토]].
* [[1983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종민 (1983년)|이종민]].
** 대한민국의 펜싱 선수 [[김정환 (펜싱 선수)|김정환]].
** 스페인의 축구 선수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2019년]])
* [[1984년]] - 스웨덴의 작곡가 [[루드비그 예란손]].
* [[1986년]]
** 중국의 배우 [[장수잉]].
** 대한민국의 배우 [[백은혜]].
* [[1987년]]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이소라 (배구 선수)|이소라]]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 미국의 야구 선수 [[션 오설리반]].
** 대한민국의 가수 [[이지 (가수)|이지]].
* [[1988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최우선 (희극인)|최우선]].
* [[1989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아빈]].
** 대한민국의 배우 [[정다운 (배우)|정다운]].
** 대한민국의 가수 김호연.
** 대한민국의 배우 [[정원창]].
** 대한민국의 가수 [[이도진]].
** 러시아의 축구 선수 [[아르투르 유수포프 (축구 선수)|아르투르 유수포프]].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대니얼 스터리지]].
* [[1990년]]
** 스위스의 싱어송라이터 [[멜라니 르네]].
** 대한민국의 연극배우 [[김상아]].
** 대한민국의 유튜버 [[킴성태]].
* [[1991년]]
** 대한민국의 모델, 기업인 [[김민영 (모델)|김민영]].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선기 (야구 선수)|김선기]].
* [[199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우혜림]] ([[원더걸스]]).
** 대한민국의 가수 [[윤지환]].
* [[1993년]]
** 대한민국의 성우 [[박시윤]].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메건 니콜]].
** 일본의 야구 선수 [[이마나가 쇼타]].
* [[1994년]]
** 미국의 가수 [[비앙카 라이언]].
** 대한민국의 가수 슬기.
* [[1995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민하 (1995년)|김민하]].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안중열]]. ([[롯데 자이언츠]])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무니르 엘 하다디]].
* [[1996년]] - 미국의 배우 겸 가수 [[젠데이아]].
* [[1997년]] - 대한민국의 가수 [[정국 (가수)|정국]] ([[방탄소년단]]).
* [[1998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박성우 (야구 선수)|박성우]].
* [[200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진호은]].
**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 [[김민종 (유도 선수)|김민종]].
** 일본의 배우 [[다이고 코타로]].
* [[2001년]] - 프랑스의 태권도 선수 [[알테아 로랭]].
* [[2003년]]
** 대한민국의 가수 [[안유진]] ([[IZ*ONE]], [[IVE|아이브]]).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서준 (야구 선수)|김서준]].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승호 (축구 선수)|박승호]].
* [[2004년]] - 대한민국의 가수 예주. ([[아이칠린]])
* [[2006년]] - 대한민국의 유튜버 [[마이린]].
== 사망 ==
* [[1159년]] - 제169대의 교황 [[교황 하드리아노 4세|하드리아노 4세]]. ([[1154년]]~)
* [[1636년]] - 프랑스의 수학자 [[마랭 메르센]]. ([[1588년]]~)
* [[1715년]] - 프랑스의 국왕 [[루이 14세]]. ([[1638년]]~)
* [[1986년]] - 미국의 배우 [[머리 해밀턴]]. ([[1923년]]~)
* [[1997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박준호 (1912년)|박준호]]. ([[1912년]]~)
* [[2001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경인]]. ([[1925년]]~)
* [[2008년]] - 독일의 육상 선수 [[카를 카우프만 (육상 선수)|카를 카우프만]]. ([[1936년]]~)
* [[200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장진영 (배우)|장진영]]. ([[1972년]]~)
* [[2016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유두열]]. ([[1956년]]~)
* [[2017년]] - 영국의 추기경 [[코맥 머피오코너]]. ([[1932년]]~)
* [[2021년]] - 미국의 프로레슬링 선수 [[데프니]]. ([[1975년]]~)
* [[2023년]]
** 일본의 정치인 [[나카무라 쇼자부로]]. ([[1934년]]~)
** 미국의 정치인 [[빌 리처드슨]]. ([[1947년]]~)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지미 버핏]]. ([[1946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사회학자 [[김왕식]]. ([[1953년]]~)
**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선수 [[솔 밤바]]. ([[1985년]]~)
** 홍콩의 영화배우 [[서소강]]. ([[1950년]]~)
** 일본의 탁구 선수 [[쓰노다 케이스케]]. ([[1933년]]~)
== 기념일 ==
* [[통계의 날]]: {{국기나라|대한민국}}
* [[:en:1923 Great Kantō earthquake|방재의 날]]: {{국기나라|일본}}
* [[:en:Public_holidays_in_Taiwan|기자의 날]]: {{국기나라|중화민국}}
* [[:en:Knowledge Day|지식의 날]](Knowledge Day): {{국기나라|러시아}}
* [[:en:Teachers' Day|교사의 날]]: {{국기나라|싱가포르}}
* [[:en:Public holidays in Slovakia|제헌절]]: {{국기나라|슬로바키아}}
* [[:en:Amerindian Heritage Month (Guyana)|아마존 원주민 및 알래스카 원주민 문화유산의 달]] 시작일: {{국기나라|가이아나}}
* [[:en:List_of_holidays_by_country#Eritrea|무장투쟁 시작 기념일]]: {{국기나라|에리트레아}} 관련 항목
{{위키공용분류}}
* 전날: [[8월 31일]] 다음날: [[9월 2일]] - 전달: [[8월 1일]] 다음달: [[10월 1일]]
* 음력: [[음력 9월 1일|9월 1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9월 1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0월 1일'''은 [[그레고리력]]으로 274번째([[윤년]]일 경우 275번째) 날에 해당한다.
{{10월달력}}
{{특정날짜요일|10|1
}}
== 사건 ==
* [[1903년]] - 제1회 [[월드 시리즈|미국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보스턴]]서 개막
* [[1910년]] - [[일본]], [[조선총독부]] 설치.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 [[1912년]] - [[호남선]]의 [[김제역]]-[[이리역]] 구간이 개통했다.
* [[1924년]]
** [[경성도서관]]이 재정난으로 무기휴관에 들어갔다.
** [[경북선]]의 [[김천역]]-[[상주역]] 구간이 개통했다.
* [[1936년]] -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 [[스페인 국민당]] 정부 수반에 취임
* [[1942년]] - [[최현배]] 등 학자 30여 명,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구속
* [[1945년]]
** 조선체육회(현 [[대한체육회]]) 발족(초대 회장 [[이병학 (1898년)|이병학]]).
** [[대한민국]], [[제주일보]] 창간
* [[1946년]] -
** [[미군정]] 지역에서 [[대구 10·1 사건]] 발생.
** [[제2차 세계 대전]]: 전범 처벌을 위한 [[뉘른베르크 재판]] 종료
** [[김일성종합대학]]이 [[북한]] [[평양]]에서 개교하다.
* [[1949년]]
** 대한민국 육군항공사령부가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항공국과 통합하여 [[대한민국 공군]] 창설.
**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 [[1950년]] - [[한국 전쟁]]: [[대한민국 육군 3사단]] 26연대, [[강원도]] [[양양군]]서 한국 전쟁 발발후 최초로 [[38선]] 넘어 북진
* [[1951년]] - [[대한민국]], [[대한신문협회]] 결성
* [[1953년]] - [[한미 상호 방위 조약]], [[미국]] [[워싱턴 D.C.]]서 조인
* [[1956년]] - 제1회 [[국군의 날]] 기념식 열림
* [[1958년]] -
**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업무를 시작하다.
** [[대한민국]]와 [[타이]] 국교 수립
* [[1960년]] -
** [[나이지리아]]가 독립하다.
** [[키프로스]]가 독립하다.
* [[1964년]] - [[일본]] 고속철도 [[신칸센]](新幹線) 개통
* [[1969년]] - [[영국]]과 [[프랑스]] 공동개발 여객기 [[콩코드 (비행기)|콩코드]]', 세계 최초로 초음속 비행성공
* [[1970년]] - [[브라질]]의 [[축구]] 영웅 [[펠레]]가 은퇴 경기를 갖다.
* [[1974년]] - [[미국]] [[존 미첼]] 전 [[미국 법무장관|법무장관]], [[워터게이트 사건]] 관련 기소
* [[1978년]] - [[투발루]]가 독립하다.
* [[1994년]] - [[팔라우]]가 독립하다.
* [[1996년]] -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최덕근]] 영사, 괴한에 피습 사망
* [[1997년]]
** [[한국통신]], 정부출자기관으로 전환
** [[대한민국]], [[개인 휴대 통신]](personal communication services, PCS) 상용서비스 개시
* [[1998년]] - [[뉴욕]]에서 제3차 북미미사일회담 열림
* [[1999년]] - [[평양직할시]]에서 [[정주영]] [[현대|현대그룹]] 명예회장,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대북사업관련 면담
* [[2005년]] - [[대한민국]] [[부산광역시]]에서 [[부산개성중학교 폭행 치사 사건]] 발생.
* [[2010년]] -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내 오피스텔에서 [[우신골든스위트 화재 사고|화재]]가 발생하였다.
* [[2013년]] - 미국 연방정부가 일시 폐쇄 조치에 들어가다.
* [[2017년]] -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함
== 문화 ==
* [[1897년]] - [[조선]], [[목포항]]을 개항시키다.
* [[1926년]] -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 (1926년 영화)|아리랑]]》, [[단성사]]서 개봉.
* [[1928년]] -
** [[박승희]] 등이 [[토월회]]를 재조직.
**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개항.
* [[1964년]] - 세계 최초의 [[고속철도]]인 [[도카이도 신칸센]] 개통.
* [[1981년]] -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방송광고향상자문위원회 설립.
* [[1991년]] - [[국군의 날]]이 15년 만에 [[대한민국의 공휴일|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 [[1994년]] - [[한국전력공사]]에서 수신료 위탁징수제도를 시행함. 이로써 [[KBS 1TV]]에서의 상업광고는 폐지되었음.
* [[1997년]] -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
* [[1999년]] - [[상하이 푸둥 국제공항]] 개항.
* [[2000년]] -
** [[2000년 하계 올림픽|제27회 시드니 올림픽]] 폐막.
** [[충북선]] [[청주공항역]] 개통.
** 대한민국 [[E채널]], [[iHQ (텔레비전 채널)|코미디TV]](現 [[iHQ (텔레비전 채널)|IHQ 채널]]), [[케이블 텔레비전|케이블 TV]] 방송국들이 개국하였다.
* [[2005년]] - [[청계천]] 복원사업이 완료되다.
* [[2014년]] - [[독일]] [[레버쿠젠]]의 [[손흥민]]이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본선 첫 골을 기록하였다.
* [[2015년]] - 걸그룹 [[러블리즈]]가 [[Lovelyz8]]라는 앨범으로 완전체로 컴백했다.
* [[2016년]]
** [[MBC충북 청주방송국|청주문화방송]]과 [[MBC충북 충주방송국|충주문화방송]]이 통합되어 [[MBC충북]]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지상파방송국으로 출범하였다.
** [[케세이퍼시픽 항공]]이 [[하네다 국제공항]] ~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간의 노선을 마지막으로 [[보잉 747-400]]을 퇴역시켰다.
* [[2019년]] - [[일본]]이 2014년 4월 이후 5년 6개월만에 기존 8%의 [[소비세|소비세율]]을 10%로 인상하였다.
* [[2024년]] - [[국군의 날]]이 34년만에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공휴일 지정 48년만에 부활하였다.
== 탄생 ==
* [[208년]] - 로마 제국의 제24대 황제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235년]])
* [[1207년]] - 잉글랜드 플랜태저넷 왕가의 왕 [[헨리 3세]]. (~[[1272년]])
* [[1685년]] -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6세]]. (~[[1740년]])
* [[1754년]] - 러시아 제국의 로마노프 왕조 9번째 군주 [[파벨 1세]]. (~[[1801년]])
* [[1826년]] - 미국의 공학자이자 발명가 [[벤저민 호치키스]]. (~[[1885년]])
* [[1905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화학자 [[리승기]]. (~[[1996년]])
* [[1915년]] -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제롬 브루너]]. (~[[2016년]])
* [[192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종갑 (1922년)|김종갑]]. (~[[1996년]])
** 중화인민공화국의 물리학자 [[양전닝]].
* [[1924년]] - 미국의 제39대 대통령, 노벨평화상 [[지미 카터]].
* [[1925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양형섭]]. (~[[2022년]])
* [[1927년]] - 대한민국의 역사학자‧고서 수집가 [[이종학 (1927년)|이종학]]. (~[[2002년]])
* [[1928년]] - 중국의 정치가, 전 국무원 총리 [[주룽지]].
* [[1930년]]
** 아일랜드의 배우 [[리처드 해리스]]. (~[[2002년]])
** 프랑스의 배우 [[필리프 누아레]]. (~[[2006년]])
* [[1935년]] - 영국의 배우, 가수 [[줄리 앤드루스]]. (~[[2023년]])
* [[1938년]]
** 미국의 배우, 영화 감독 [[스텔라 스티븐스]].
** 미국의 패션디자이너, 작가 [[메리 맥패든]]. (~[[2024년]])
* [[1943년]] - 프랑스의 영화 감독 [[장자크 아노]].
* [[1944년]]
** 네덜란드의 기업인 [[프리츠 스하위테마]].
** 대한민국의 배우 [[이정길 (1944년)|이정길]].
* [[1945년]]
** 대한민국의 간호 출신 정치인 [[정영희 (1945년)|정영희]].
** 대한민국의 경제관료 [[이기호]]. (~[[2022년]])
** 인도의 제14대 대통령 [[람 나트 코빈드]].
* [[1952년]] -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 [[한기호 (1952년)|한기호]].
* [[195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희도]].
* [[1956년]] - 미국의 전 야구 선수 [[밴스 로]].
* [[1957년]]
** 대한민국의 배우 [[강석우]].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항서]].
* [[1959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조범현]].
* [[1960년]] - 대한민국의 배우 [[경인선 (배우)|경인선]].
* [[1962년]] - 미국의 배우 [[이사이 모랄레스]].
* [[1963년]] - 미국의 포커 선수 [[다빈 문]]. (~[[2020년]])
* [[1966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정혜정 (아나운서)|정혜정]].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신동수 (야구인)|신동수]].
** 이탈리아의 배우 [[스테파노 디오니시]].
** 라이베리아의 전 축구 선수 [[조지 웨아]].
* [[196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문수 (정치인)|김문수]].
* [[1969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가득염]].
* [[1970년]] - 대한민국의 배우 [[감우성]].
* [[197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송일국]].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이상희 (아나운서)|이상희]].
* [[1972년]] - 이란의 배우 [[레일라 하타미]].
* [[1973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선아]].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지도자 [[서혁수]].
* [[1975년]] - 미국의 야구 선수 [[브랜든 나이트]].
* [[197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정희용]].
** 이라크 이슬람 국가의 지도자 [[아부 이브라힘 알하셰미 알쿠라이시]]. (~[[2022년]])
* [[1977년]]
** 대한민국의 성우 [[권인지]].
** 일본의 아나운서 [[다키가와 크리스텔]].
* [[1979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리포터 [[배수경 (방송인)|배수경]].
** 일본의 작곡가 [[나카하라 류타로]].
* [[1980년]] - 일본의 배우 [[오타니 료헤이]].
* [[1981년]]
** 대한민국의 국악인 [[남지인]].
** 브라질의 축구 선수 [[줄리우 바프티스타]].
* [[1982년]] - 대한민국의 광고 제작자 [[이제석]].
* [[1983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안지만]].
** 대한민국의 희극인 [[양상국]].
** 몬테네그로의 축구 선수 [[미르코 부치니치]].
** 미국의 수영 선수 [[에릭 섄토]].
* [[198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안미나]].
** 대한민국의 배우 [[지찬]].
** 미국의 야구 선수 [[맷 케인 (야구인)|맷 케인]].
* [[1985년]]
** 일본의 성우 [[아이바 히로키]].
** 일본의 가수 [[RYO]] ([[ORANGE RANGE]]).
* [[1986년]]
** 대한민국의 전 아나운서 조영빈.
** 일본의 가수, 배우, 성우 [[칸다 사야카]].
* [[1987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루다.
* [[1988년]] - 대한민국의 캐스터, 아나운서 [[서승현 (아나운서)|서승현]].
* [[1989년]]
** 미국의 배우 [[브리 라슨]].
** 이집트의 사브르 펜싱 선수 [[마나드 제이드]].
* [[1990년]]
** 대한민국의 가수 리니.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동철 (축구 선수)|김동철]].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민호 (1990년 10월)|김민호]].
* [[1991년]] - 대한민국의 장고연주가 정이수.
* [[199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수현 (1992년)|수현]] ([[스누퍼]]).
** 대한민국의 전 쇼핑호스트, 기상캐스터 [[정민경 (1992년)|정민경]].
* [[1993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종우]].
**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 [[니콜라스 로페스]].
* [[1994년]]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김수민 (미스코리아)|김수민]].
** 대한민국의 가수 [[고현 (가수)|고현]] ([[텐엑스]]) ([[원포유]]).
** 이집트의 축구 선수 [[마흐무드 하산]].
* [[1995년]] - 대한민국의 가수 [[시연 (1995년)|시연]] ([[드림캐쳐 (음악 그룹)|드림캐쳐]]).
* [[1996년]]
** 대한민국의 배틀그라운드 프로게이머 [[이노닉스]].
** 대한민국의 댄서, 가수, 래퍼, 안무가 [[정혜윤 (가수)|정혜윤]].
* [[1997년]]
** 대한민국의 가수 [[류지호]].
** 대한민국의 배우 [[이다현 (배우)|이다현]].
** 잉글랜드의 싱어송라이터 [[제이드 버드]].
* [[199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정지우.
* [[2001년]]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메이슨 그린우드]].
* [[2004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민상]].
* [[2007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정링컨]].
* [[2010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보민 (2010년)|김보민]].
== 사망 ==
* [[686년]] - 일본의 40대 천황 [[덴무 천황]]. ([[631년]]~)
* [[1404년]] - 203대 로마의 교황 [[교황 보니파시오 9세]]. ([[1350년]]~)
* [[1499년]] - 이탈리아 철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 ([[1433년]]~)
* [[1658년]] - 조선 후기의 문신 [[김육]]. ([[1580년]]~)
* [[1807년]] -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득공]]. ([[1748년]]~)
* [[1911년]] - 독일의 철학자 [[빌헬름 딜타이]]. ([[1833년]]~)
* [[1935년]] -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길랴롭스키]]. ([[1853년]]~)
* [[1985년]] - 미국의 동화작가 [[엘윈 브룩스 화이트]]. ([[1899년]]~)
* [[1986년]] - 대한민국의 배우 겸 가수 [[박길라]]. ([[1964년]]~)
* [[2001년]] - 대한민국의 군인 [[김일환 (1914년)|김일환]]. ([[1914년]]~)
* [[2018년]]
**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정길영]]. ([[1923년]]~)
** 프랑스의 가수 [[샤를 아즈나부르]]. ([[1924년]]~)
** 베트남의 공산당원, 정치인 [[도므어이]]. ([[1917년]]~)
* [[2019년]] - 체코의 가수 [[카렐 고트]]. ([[1939년]]~)
* [[2020년]] - 미국의 극작자 [[머리 시스걸]]. ([[1926년]]~)
* [[2022년]] - 일본의 프로레슬링 선수, 정치인 [[안토니오 이노키]]. ([[1943년]]~)
* [[2023년]]
** 대한민국의 교수 [[김명기 (1936년)|김명기]]. ([[1936년]]~)
** 미국의 야구 선수 [[팀 웨이크필드]]. ([[1966년]]~)
** 슬로바키아의 소프라노 [[파트리치아 야네치코바]]. ([[1998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이대봉]]. ([[1941년]]~)
== 기념일 ==
* [[추석]] - [[2001년]], [[2020년]], [[2031년]], [[2077년]], [[2096년]]
* [[국군의 날]] & [[대한민국 공군|공군]] 창설일: [[대한민국]]
* [[국제 노인의 날]]
* [[세계 채식인의 날]]
* [[세계 커피의 날]](International Coffee Day)
* [[중화인민공화국 국경절]] -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기념일.
* [[독립기념일]] - [[팔라우]]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9월 30일]] 다음날: [[10월 2일]] - 전달: [[9월 1일]] 다음달: [[11월 1일]]
* 음력: [[음력 10월 1일|10월 1일]]
* [[날짜 목록|모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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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1월 1일'''은 [[그레고리력]]으로 305번째([[윤년]]일 경우 306번째) 날에 해당한다.
{{1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1|1}}
== 사건 ==
* [[1755년]] - 포르투갈 왕국에서 [[리스본 대지진]]이 발생하다.
* [[1897년]] - [[조선]] [[한성부|한성]]에서 열린 [[독립협회]] 회의에서 [[서재필]], [[윤치호]]의 발의로 [[노예]] 해방이 결의되다.
* [[1945년]] - [[오스트레일리아]] 유엔 가입.
* [[1949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노동당]]의 기관지 [[로동신문]] 창간.
* [[1951년]] - [[대한민국]], [[논산]]에 육군 제2훈련소 창설. (지금의 [[육군훈련소]])
* [[1952년]] - 미국, [[태평양]] 에니웨톡 섬에서 첫 [[수소 폭탄]] 실험.
* [[1955년]] - [[베트남]], [[베트남 전쟁]] 발발.
* [[1960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흥직할시]] 신설([[흥남시]] 흡수).
* [[1981년]] - [[앤티가 바부다]], [[영국]]으로부터 독립
* [[2000년]] -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유엔]] 가입.
* [[2005년]] - [[구마고속도로]] [[달성 2터널]]에서 미사일 추진체를 싣고 가던 화물차에 불이나 미사일 추진체가 폭발
* [[2010년]] - [[서울특별시교육청]] 산하 초중고교에서 체벌 전면 금지가 시행됨.
== 문화 ==
* [[1897년]] - 이탈리아의 [[축구]] 클럽 [[유벤투스 FC]] 창단.
* [[1900년]] - 이탈리아의 [[축구]] 클럽 [[US 팔레르모]] 창단.
* [[1905년]] - 대한제국, [[도량형]] 신제도 채택.
* [[1918년]] - [[영천역]] 개역.
* [[1936년]] - [[서대전역]] 개역.
* [[1946년]] - 금남 박명규 원장, [[전라북도]] [[정읍시]]에 [[호남고등학교]] 설립.
* [[1950년]] - 영자신문 [[코리아 타임스]]가 창간되었다.
* [[1976년]] - [[한국방송공사|KBS]], 여의도 방송 시대 개막.
* [[1986년]] - [[전라남도]] [[광주광역시|광주시]], 직할시로 승격.
* [[1990년]] - [[신승훈]]이 1집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데뷔.
* [[2002년]] -
** [[2002년 아시아태평양장애인경기대회]] 폐막.
** [[춘천불교방송]] 개국.
** [[대한민국]]에서 시청 가능 연령을 표시하는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등급 제도|드라마 등급 제도]]'''가 6개월 간의 유예 기간을 거친 후에, 일제히 시행되었다.
* [[2006년]] - [[경의선]]에 [[새마을호]]가 투입됨. ([[2009년]] [[6월 30일]]까지 운행.)
* [[2007년]] -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소녀시대]], 첫 정규앨범 "[[소녀시대 (음반)|소녀시대]]" 발매.
* [[2010년]] - [[경부고속철도]] 2단계 [[동대구역|동대구]] ~ [[경주역|신경주]], [[울산역|울산]] 경유 [[부산역|부산]] 구간의 영업운전이 시작됨.
* [[2012년]] - 2012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SK 와이번스]]를 7대 0으로 꺾고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통산 6번째 우승을 달성하였다.
* [[2013년]] - [[KBO 리그]]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두산 베어스]]를 7대 3으로 꺾고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통산 7번째 우승을 달성하였다.
* [[2014년]] - [[중앙선]]에 [[ITX-새마을]]이 청량리~영주구간에 투입되었다.
== 탄생 ==
* [[825년]] - 신성 로마의 제국 황제 [[루도비쿠스 2세 이우니오르]]. (~[[875년]])
* [[846년]] - 프랑크 왕국의 왕 [[루도비쿠스 2세 발부스]]. (~[[879년]])
* [[1757년]] - 이탈리아의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 (~[[1822년]])
* [[1871년]] - 증산교의 창시자 [[강일순]]. (~[[1909년]])
* [[1879년]] - 헝가리의 정치가 [[텔레키 팔]]. (~[[1941년]])
* [[1880년]] - 독일의 지구물리학자 [[알프레트 베게너]]. (~[[1930년]])
* [[1894년]] - 대한민국의 국무총리 [[최두선]]. (~[[1974년]])
* [[1903년]] - 대한민국의 교육인 [[윤인구 (1903년)|윤인구]]. (~[[1986년]])
* [[1911년]] -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가, 슈퍼센티네리언 [[시핑 (정치인)|시핑]]. (~[[2024년]])
* [[1913년]] - 대한민국의 시인 [[양명문]]. (~[[1985년]])
* [[1930년]]
**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조재봉]]. (~[[2012년]])
** 대한민국의 체육인 [[안광열]]. (~[[2024년]])
* [[1935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성옥]]. (~[[2022년]])
** 팔레스타인의 교수, 문학 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 (~[[2003년]])
* [[193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오현경 (1936년)|오현경]].
* [[1938년]] - 대한민국의 가수 [[남일해]].
* [[1939년]] - 미국의 배우 [[바바라 보슨]]. (~[[2023년]])
* [[1941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신준호]].
* [[1948년]] - 대한민국의 목사 [[박영선 (목사)|박영선]].
* [[1949년]] - 캐나다의 음악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
* [[1950년]] - 미국의 응용물리학자 [[로버트 B. 로플린]].
* [[1952년]] - 세르비아의 작가 [[보라 도르제비치]]. (~[[2024년]])
* [[1953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지방의원 [[한병수]]. (~[[2023년]])
* [[1957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배기철]].
* [[1958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경문]].
* [[195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안석환]].
** 일본의 성우 [[하라 에리코]].
* [[1960년]]
** 미국의 기업인 [[팀 쿡]].
** 멕시코 태생 미국의 야구 선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2024년]])
* [[1961년]] - 미국의 정치인 [[라이언 징키]].
* [[196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윤한홍]].
* [[1963년]]
** 독일의 배우 [[카차 리만]].
** 영국의 전 프로 축구 선수 [[마크 휴스]].
* [[196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진목]].
* [[1967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성세정]].
* [[1968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신양]].
* [[1969년]]
** 대한민국의 학원인 [[조진만 (학원인)|조진만]]. (~[[2001년]])
** 콜롬비아의 축구 심판 [[오스카르 루이스]].
** 대한민국의 희극인 겸 MC [[이병진 (희극인)|이병진]].
* [[1970년]] - 미국의 농구 선수 [[에릭 스폴스트러]].
* [[1972년]]
** 오스트레일리아의 배우 [[토니 콜렛]].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지도자 [[윤희준]].
* [[1973년]]
** 인도의 배우 [[아이슈와라 라이]].
** 대한민국의 게임 개발자 [[김학규 (게임 개발자)|김학규]].
* [[1974년]] - 대한민국의 리포터, 전 아나운서 [[정은영 (방송인)|정은영]].
* [[1976년]] - 미국의 배우 [[로건 마셜그린]].
* [[1977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건형]].
** 대한민국의 배우 [[손상현]].
* [[1978년]]
** 대한민국의 성우 [[정성훈 (성우)|정성훈]].
** 대한민국의 교수, 정치인 [[한지아]].
* [[1979년]]
** 대한민국의 성우 [[전승화]].
** 일본의 성우 [[에노모토 아츠코]].
**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 [[조태준]].
* [[1980년]] - 필리핀의 가수 니나.
* [[1982년]]
** 대한민국의 성우 [[이재범]].
** 대한민국의 배우 [[장서원]].
** 대한민국의 변호사 [[손정혜]].
* [[198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오의식]].
** 대한민국의 배우 [[한다민]].
** 일본의 그라비아 아이돌 [[오구라 유코]].
** 아일랜드의 배우 [[대니엘 라이언]].
* [[1984년]]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방송 기자 [[권은영 (1984년)|권은영]].
** 덴마크의 핸드볼 선수 [[레네 토프트 한센]].
* [[1986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곽범]].
* [[1987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장시환]].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명운 (축구 선수)|김명운]].
* [[198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민지 (1988년)|이민지]].
** 일본의 야구 선수 [[다나카 마사히로]].
* [[1989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고혜윤]].
* [[1990년]] - 대한민국의 연극배우 [[진예슬]].
* [[199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선웅]].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경민 (1991년)|김경민]].
** 대한민국의 체조 선수 [[조재윤 (체조 선수)|조재윤]].
** 일본의 배우 [[하시모토 타이토]].
* [[1992년]] - 세르비아의 축구 선수 [[필리프 코스티치]].
* [[1993년]]
** 브라질의 싱어송라이터, 작곡가 [[파블루 비타르]].
** 대한민국의 가수 태호.
* [[1994년]] - 대한민국의 가수 하늘.
* [[1995년]] -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 보이샘.
* [[1996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민재 (1996년)|김민재]].
** 대한민국의 가수 [[정연 (가수)|정연]] ([[트와이스]]).
** 대한민국의 가수 [[이찬원]].
** 대한민국의 배우 [[정우진 (1996년)|정우진]].
** 미국의 래퍼 [[릴 피프]]. (~[[2017년]])
* [[1997년]]
** 미국의 배우 [[앨릭스 울프]].
** 대한민국의 가수 [[단 (가수)|정승보]] ([[킹덤 (음악 그룹)|킹덤]]).
** 댜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영하 (야구 선수)|이영하]].
* [[1998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인터넷 방송인 [[쵸단]]. ([[QWER]])
* [[1999년]] - 대한민국의 가수 건호.
* [[2000년]]
** 일본의 가수 [[코코로 (가수)|코코로]].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지원 (축구 선수)|박지원]].
* [[2001년]]
** 대한민국의 가수 [[윤경 (가수)|윤경]].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홍기범]].
* [[2003년]] - 대한민국의 암벽 등반 선수 [[서채현]].
* [[2004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예빈 (가수)|김예빈]].
* [[2008년]] - 대한민국의 배우 [[한서진 (2008년)|한서진]].
== 사망 ==
* [[1700년]] - 스페인의 국왕 [[카를로스 2세 (스페인)|카를로스 2세]]. ([[1661년]]~)
* [[1925년]] - 대한민국의 학자, 독립운동가 [[박은식]]. ([[1859년]]~)
* [[1986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서영춘]]. ([[1928년]]~)
* [[1991년]] - 미국의 배우 [[진 티어니]]. ([[1920년]]~)
* [[2015년]]
** 미국의 영화배우 [[프레드 톰프슨]]. ([[1942년]]~)
** 동독의 정치인 [[귄터 샤보프스키]]. ([[1929년]]~)
* [[2018년]] - 아르메니아의 역도 선수 [[유리 바르다냔]]. ([[1956년]]~)
* [[2019년]] -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함중아]]. ([[1952년]]~)
* [[2020년]] - 미국의 영화배우 [[캐롤 아서]]. ([[1935년]]~)
* [[2021년]]
** 미국의 심리학자, 정신의학자 [[에런 벡]]. ([[1921년]]~)
** 브라질의 클래식피아니스트 [[넬슨 프레이레]]. ([[1944년]]~)
* [[2023년]] - 대한민국의 정치학자 [[이인수 (정치학자)|이인수]]. ([[1931년]]~)
* [[2024년]]
** 일본의 문학자 [[니시오 간지]]. ([[1935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이임택]]. ([[1940년]]~)
== 기념일 ==
* [[세계 비건의 날]](World Vegan Day)
* [[모든 성인 대축일]](All Saints' Day)
* [[:en:National Bison Day|국립 들소의 날]]: [[미국]]
* [[잡지의 날]]: [[대한민국]]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0월 31일]] 다음날: [[11월 2일]] - 전달: [[10월 1일]] 다음달: [[12월 1일]]
* 음력: [[음력 11월 1일|11월 1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1월 1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2월 1일'''은 [[그레고리력]]으로 335번째([[윤년]]일 경우 336번째) 날에 해당한다.
{{12월달력}}
{{특정날짜요일|12|1}}
== 사건 ==
* [[1959년]] - [[냉전]]:[[남극 조약]]이 체결되었다. [[남극]]에서의 군사활동은 금지되었다.
* [[1975년]] - [[현대자동차]]에서 첫 국산승용차인 [[현대 포니|포니]]의 생산을 시작하다.
* [[1990년]] -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채널 터널]]이 연결되다.
* [[1991년]] - [[우크라이나]]가 독립했다.
* [[2012년]] - 2011년 4월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된 [[제미니호 피랍 사건|제미니호]] 한국 선원들이 1년 7개월만에 풀려나다.
* [[2014년]] - 사조산업 소속 명태잡이 트롤선인 [[501 오룡호]]가 [[러시아]] [[베링해]]에서 [[오룡호 침몰 사고|침몰]]하였다.
* [[2017년]] - [[닌텐도 스위치]]가 [[한국]],[[타이완|대만]]에서 정식 발매되었다.
== 문화 ==
* [[1860년]] -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자신의 대표작인 《[[위대한 유산]]》을 'All the Year Round' 잡지에 처음으로 실었다.
* [[1913년]] - [[포드 자동차 회사]]가 최초의 일괄 조립 라인을 도입, 공개하다.
* [[1980년]] - 지상파 방송인 [[KBS 2TV]]가 개국하였으며, KBS TV의 채널명을 [[KBS 1TV]]로 변경되었다.
* [[1995년]] - [[대한민국]] [[투니버스]], [[바둑TV]], KCTS(現[[CTS기독교TV]]), A&C코오롱(現 [[K-STAR]]) 등 4개의 [[케이블 텔레비전|케이블 TV]] 채널이 개국되었다.
* [[1997년]] -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및 [[경상북도]] 일원에서 [[TBC Dream FM]] 개국.
* [[2005년]] -
** [[한국교통방송]] DMB 방송국 개국
** [[지상파]] 3사 텔레비전 평일 낮 방송 개시.
** 지상파 DMB 방송 개시.
* [[2006년]] -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서 [[2006년 아시안 게임|제15회 아시안 게임]]이 개최되다. (~ [[12월 15일]])
* [[2011년]] - [[대한민국의 종합편성채널]] [[채널A]], [[TV조선]], [[JTBC]], [[매일방송]] 및 [[보도전문채널]] 뉴스Y(現[[연합뉴스TV]]) 개국.
* [[2012년]] -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 [[기흥역]] ~ [[망포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 [[2015년]] - 대한민국의 [[CTS라디오]] 라디오 방송 개국.
* [[2017년]] - [[대한민국]]의 종교방송채널 [[기독교대구방송|대구CBS 음악FM]] 개국. (주파수 97.1MHz, 1㎾)
* [[2018년]] - 대한민국의 [[TV조선2]], [[GMTV (텔레비전 채널)|GM]] 개국.
* [[2021년]] -
** [[안면도]]와 [[원산도]], [[대천]]을 잇는 [[보령해저터널]]이 개통되었다.
** [[경부고속도로]]의 구간인 [[북구미IC]]가 개통되었다.
== 탄생 ==
* [[1083년]] - 비잔티움 제국의 공주이자 역사가 [[안나 콤니니]]. (~[[1151년]])
* [[1896년]] - 소련의 명장 [[게오르기 주코프]]. (~[[1974년]])
* [[1905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영민 (1905년)|이영민]]. (~[[1954년]])
* [[1912년]] - 미국의 건축가, 뉴욕 세계 무역 센터의 설계자 [[미노루 야마사키]]. (~[[1986년]])
* [[1917년]] - 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 [[김소희 (국악인)|김소희]]. (~[[1995년]])
* [[1920년]] - 베트남의 정치인 [[레득아인]]. (~[[2019년]])
* [[1924년]] - 일본의 역사학자 [[이노우에 히데오]]. (~[[2008년]])
* [[1930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신춘호]]. (~[[2021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최태복]]. (~[[2024년]])
* [[1931년]] - 대한민국의 출판인 [[송성문 (1931년)|송성문]]. (~[[2011년]])
* [[1933년]] - 일본의 만화가 [[후지코 F. 후지오]]. (~[[1996년]])
* [[1934년]] - 대한민국의 체조 선수 [[김상국 (체조 선수)|김상국]].
* [[1935년]]
** 미국의 영화 감독 [[우디 앨런]].
** 대한민국의 가수 겸 영화배우 [[한명숙 (가수)|한명숙]].
* [[1943년]] - 그리스계 미국인 컴퓨터 과학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 [[1944년]] - 모로코의 작가 [[타하르 벤 젤룬]].
* [[1945년]] - 미국의 가수, 배우 [[벳 미들러]].
* [[1947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지방자치단체장 [[이태근 (1947년)|이태근]].
* [[1948년]]
** 대한민국의 언론인 [[김승한]].
** 영국의 성공회 주교 겸 기독교 신약성서 학자 [[니컬러스 토머스 라이트]].
* [[1949년]]
** 대한민국의 가수, 작사가, 작곡가 [[김정수 (가수)|김정수]].
** 칠레의 제40·42대 대통령 [[세바스티안 피녜라]]. (~[[2024년]])
* [[1950년]] - 대한민국의 작곡가 [[박현진 (작곡가)|박현진]].
* [[1951년]] - 미국의 배우 [[트리트 윌리엄스]]. (~[[2023년]])
* [[1952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권오현 (1952년)|권오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용범 (인천광역시의원)|이용범]].
* [[1953년]] - 미국의 생물학자 [[빅터 앰브로스]].
* [[195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임태희]].
* [[1958년]]
** 멕시코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하비에르 아기레]].
** 미국의 작가, 칼럼니스트 [[캔디스 부슈널]].
* [[1960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배기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박선숙]].
* [[1961년]] - 대한민국의 전 양궁 선수 [[김진호 (양궁 선수)|김진호]].
* [[1962년]]
** 네덜란드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뤼트 휠릿]].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윤상현]]
** 일본의 배우 [[하기와라 사요코]].
* [[196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안희정]].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살바토레 스킬라치]]. (~[[2024년]])
* [[1967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경수 (정치인)|김경수]].
* [[1968년]]
** 대한민국의 프로듀서 [[신동식]].
** 대한민국의 배우 [[박신영 (배우)|박신영]].
* [[1970년]]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조너선 콜턴]].
** 미국의 희극인, 배우 [[세라 실버먼]].
* [[1971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권준헌]].
** 영국의 배우 [[에밀리 모티머]].
* [[1972년]] - 대한민국의 베이시스트 이윤종.
* [[1973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정수찬]].
** 대한민국의 가수 [[박완규 (가수)|박완규]].
** 일본의 성우 [[나카가와 아키코]].
* [[1975년]]
** 대한민국의 전 농구 선수 [[문태종]].
** 아랍에미리트의 기업인 [[칼둔 알무바라크]].
* [[1976년]]
** 뉴질랜드의 배우 [[딘 오고먼]].
** 대한민국의 방송인 [[김동혁 (방송인)|김동혁]].
** 미국의 기자 [[로라 링]].
* [[1978년]] - 중화인민공화국의 축구 선수 [[리웨이펑]].
* [[1979년]]
** 대한민국의 성우 [[송정희]].
** 대한민국의 배우 [[김재범 (배우)|김재범]].
** 대한민국의 배우 [[이동욱 (1979년)|이동욱]].
* [[1980년]] - 대한민국의 커피 교육자, 기업인 [[한승재]].
* [[1981년]]
** 대한민국의 가수 지후.
** 대한민국의 배우 [[오연아]].
* [[1982년]] - 영국의 배우 [[리즈 아메드]].
* [[198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서장원 (배우)|서장원]].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손주인]].
* [[1985년]]
** 미국의 가수, 배우 [[저넬 모네이]].
** 대한민국의 연극배우 [[김국희]].
* [[1986년]] - 대한민국의 모델 [[김라희]].
* [[1987년]] - 대한민국의 카누 선수 [[신진아]].
* [[1988년]]
** 대한민국의 배우, 가수 [[임시완]] ([[제국의아이들]]).
** 대한민국의 성우 [[김신우 (성우)|김신우]].
** 미국의 배우 [[조이 크래비츠]].
* [[1989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태수 (축구 선수)|박태수]].
* [[1990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진희.
* [[199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정혜원 (배우)|정혜원]].
** 중국의 수영 선수 [[쑨양]].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민우 (축구 선수)|이민우]].
* [[1992년]] - 네델란드의 축구 선수 [[마르코 판 힝컬]].
* [[199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신주협]].
** 대한민국의 배우, 모델 [[이주명]].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김연견]].
* [[1994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조석환]].
* [[1995년]] - 대한민국의 연극배우 김민지.
* [[1996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이세령.
* [[1997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정채연]] ([[다이아 (음악 그룹)|다이아]], [[아이오아이]]).
* [[1998년]]
** 중국의 아이돌 가수 [[셰레이레이]].
** 일본의 가수 [[미야모토 카린]].
* [[1999년]] - 조지아의 유도 선수 [[타토 그리갈라슈빌리]].
* [[2000년]] - 대한민국의 가수 [[강석화 (가수)|강석화]] ([[위아이]]).
* [[2001년]] - 일본의 아키히토 천왕의 손녀 [[도시노미야 아이코 내친왕]].
* [[200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태우 (배우)|이태우]].
== 사망 ==
* [[1521년]] - 제217대의 교황 [[교황 레오 10세]]. ([[1475년]]~)
* [[1825년]] - 로마노프 왕조의 10번째 군주,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1세]]. ([[1777년]]~)
* [[1830년]] - 253대 로마의 교황 [[교황 비오 8세]]. ([[1761년]]~)
* [[1905년]] - 조선 말기의 독립운동가 [[조병세 (1827년)|조병세]]. ([[1827년]]~)
* [[1934년]] - 러시아의 공산주의자 [[세르게이 키로프]]. ([[1886년]]~)
* [[1968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승호]]. ([[1917년]]~)
* [[1972년]] - 이탈리아의 정치인 [[안토니오 세니]]. ([[1891년]]~)
* [[1973년]] -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 정치인 [[다비드 벤구리온]]. ([[1886년]]~)
* [[2005년]] - 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 [[김영욱 (1923년)|김영욱]]. ([[1923년]]~)
* [[2018년]] - 미국의 제41대 대통령 [[조지 H. W. 부시]]. ([[1924년]]~)
* [[2019년]]
** 대한민국의 가수 [[정동권]]. ([[1954년]]~)
** 미국의 영화배우 [[셸리 모리슨]]. ([[1936년]]~)
* [[2020년]] - 오스트레일리아의 영화배우 [[휴 키스번]]. ([[1947년]]~)
* [[2021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동은 (야구인)|김동은]]. ([[1990년]]~)
** 벨기에의 가수 [[그랜드 조조]]. ([[1936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유재건 (1937년)|유재건]]. ([[1937년]]~)
** 미국의 야구 선수 [[게일로드 페리]]. ([[1938년]]~)
* [[2023년]] - 미국의 법조인 [[샌드라 데이 오코너]]. ([[1930년]]~)
* [[2024년]] - 프랑스의 영화배우 [[닐스 아레스트뤼프]]. ([[1949년]]~)
== 기념일 ==
* [[세계 에이즈의 날]]
* [[독립기념일]] - [[포르투갈]]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1월 30일]] 다음날: [[12월 2일]] - 전달: [[11월 1일]] 다음달: [[1월 1일]]
* 음력: [[음력 12월 1일|12월 1일]]
* [[366일|모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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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은 [[그레고리력]]으로 91번째([[윤년]]일 경우 92번째) 날에 해당한다.
{{4월달력}}
{{특정날짜요일|4|1}}
== 사건 ==
* [[1916년]] - [[군산공립실과고등여학교]]가 [[설립]]되었다.
* [[1938년]] - [[일본]]이 [[국가 총동원법]]을 공표하였다.
* [[1946년]] - [[알류샨 열도]]에서 [[지진]]이 발생하여, [[하와이]] 주민 165명이 목숨을 잃었다. ('''[[1946년 알류샨 열도 지진|알류샨 지진]]''')
* [[1963년]] - [[기타큐슈시]]가 [[정령지정도시]]로 지정됐다.
* [[1958년]] - 대한민국 특전인의 날 기념일
* [[1968년]] - [[대한민국]]에 [[향토예비군]]이 창설됐다.
* [[1980년]] -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철판하의 판하묘지에서 위구르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연구팀이 기원전 1880년~기원전 1800년경에 살던 40~48세 여성 [[누란미녀]] 미이라를 발견하였다. [[백인]]인 점과 미모가 화제가 되었다.
* [[1987년]] - [[일본]]국철([[일본국유철도]])이 [[JR]]로 민영화와 동시에 지역블록으로 분사화.
* [[1988년]] - [[천호대교 버스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
노태우 정부 정한모 공보 장관을 통해
광주사태 성격을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 및 피해자를 비롯 대국민 치유책 발표 정부 차원 유감 표명
* [[1990년]] - [[전서구]]를 이용한 [[RFC 1149|인터넷 통신]] 방법이 제안됐다.
* [[1991년]] - [[고스플란]]이 해체됐다.
* [[1997년]] - [[빌뉴스#문화|우주피스 공화국]]의 건국일. 우주피스 공화국은 1년에 단 하루만 열리는 나라이다.
* [[2000년]] - [[일본]] 총리 [[오부치 게이조]]가 혼수 상태에 빠졌다.
* [[2001년]] - [[네덜란드]]에서 [[동성결혼]] 제도가 세계 최초로 시행됐다.
* [[2003년]] -
** [[이라크 전쟁]]: [[제시카 린치]] 일병 구출 작전이 벌어졌다.
** 홍콩의 유명한 영화배우이자 가수인 [[장국영]]이 사망했다.
* [[2004년]] - 한·[[칠레]] [[자유 무역 협정]](FTA)가 공식 발효됐다.
* [[2008년]]
**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중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32일치의 일기 내용이 새로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 [[소니]]는 일본의 이동통신사인 [[NTT도코모]]에 휴대전화 납품을 중단하면서 2008년 안으로 일본 국내시장용 휴대전화의 개발과 생산을 중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2009년]]
** 국내산 [[베이비파우더]]에서 [[대한민국 석면파동|석면이 검출]]되었다.
** [[북해]] 인근에서 [[유로콥터 AS 332]]기가 불시착하면서 최소 8명이 숨졌다.
** [[알바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에 참여하기로 했다.
** [[스웨덴 의회]]가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했다.
* [[2013년]] - 한국 최초의 [[동성애자]] 인권운동가이자 [[시조]] 시인, 작가인 [[육우당 (활동가)|육우당]]을 기념하는 [[육우당 문학상]]이 [[서울특별시|서울]] [[동대문구|동대문]]에서 제정되었다.
== 문화 ==
* [[1908년]] -
** 시흥역 (現 [[금천구청역]]) 개통.
** [[대한제국]] [[한국 표준시|표준시]]를 [[그리니치 천문대]] 기준 [[경도|동경]] 127도 30분 [[경선|자오선]]에 준해 변경하여 시행.<ref>순종실록, [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zb_10102007_002 순종 2권, 1년(1908 무신 / 대한 융희(隆熙) 2년) 2월 7일(양력) 2번째기사]</ref>
* [[1913년]] - [[서울맹학교]]가 개교하다.
* [[1920년]] - [[동아일보]]가 창간되었다.
* [[1926년]] - [[경성도서관]]이 경성부립도서관 종로분관으로 개편되어 재개관하였다.
* [[1938년]] - [[공주교육대학교|공주여자사범학교]]가 개교하였다.
* [[1939년]] - [[수도권 전철 중앙선]] [[국수역]]이 개통 되었다.
* [[1942년]] - [[청량리역|청량리]] - [[경주역 (폐역)|경주]] 간의 [[중앙선]] 철도가 개통되다.
* [[1949년]] - [[도쿄 증권거래소]]가 설립됐다.
* [[1955년]] - [[독일]] 국적 항공사인 [[루프트한자]]가 최초로 운항을 개시했다.
* [[1958년]] - [[대한민국]]에 [[농업은행 (대한민국)|농업은행]]이 발족되었다.
* [[1974년]] - [[차지맨 켄!]]이 일본 TBS에서 처음으로 방영되었다.
* [[1976년]] - [[애플]]이 설립되었다.
* [[1983년]] - [[청주문화방송]]에서 TV가 개국했다.
* [[1990년]] - [[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역 (서울)|교대역]]에 법원·검찰청이 부역명으로 고시되었고, [[서울 지하철 3호선]] 화물터미널역의 역명이 [[남부터미널역]]으로 변경되었다.
* [[1994년]] - [[과천선]]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
* [[1998년]]
** [[스타크래프트]], 북미에 출시되다. 대한민국에서는 [[4월 9일]]에 출시되었다.
** [[경기도]] [[김포군]]이 [[김포시]]로 승격했다.
* [[2001년]] - [[대한민국]] 고스트스테이션이 처음으로 방송되었다.
* [[2003년]] -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연주했다.
* [[2004년]]
** [[구글]]이 1[[기가바이트|GB]] 용량을 제공하는 [[Gmail]] 서비스를 시작했다.
** [[한국고속철도|KTX]]([[동대구역|동대구]] ~ [[경주역|신경주]], [[울산역|울산]] 경유 [[부산역|부산]], [[호남고속선]] 구간 제외)가 개통했고, [[통일호]]가 폐지되었다.
* [[2005년]] - 상모면이 [[수안보면]]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 [[2006년]] - [[조흥은행]]과 [[신한은행]]이 [[신한은행]]으로 통합 출범했다.
* [[2011년]]
** [[옥구선]] 열차 운행이 재개되었다.
** [[NHK 위성 제2텔레비전]]과 [[NHK 디지털 위성 하이비전]]이 통합되어 [[NHK BS 프리미엄]]이 되었다.
* [[2012년]] - 대한민국의 [[매일경제TV|M머니]] 개국.
* [[2013년]]
** 가수 [[소녀시대]]의 '[[Gee (소녀시대의 노래)|GEE]]', 국내 여성가수 뮤비 중 최초로 유튜브 조회수 1억뷰 달성.
** [[국민TV]]가 첫 방송을 시작했다.
* [[2015년]] - [[EBS 2TV]]가 케이블TV에서 수신이 가능해졌다.
* [[2016년]]
** [[2016년 KBO 리그]]가 개막하였다.
** [[동해고속도로]] [[동부산 나들목]] 구간이 개통되었다.
** [[프로듀스101]]의 마지막회를 끝으로 최종데뷔조 11명이 결정되었다.
* [[2017년]] - [[아이오아이]]멤버 출신 [[김소혜]]의 브이앱채널이 개설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channels.vlive.tv/E58335 |제목=보관된 사본 |확인날짜=2017-04-02 |archive-date=2017-10-28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71028073530/http://channels.vlive.tv/E58335 |url-status= }}</ref>
* [[2019년]] - 그리고 아이즈원의 두 번째 한국 앨범 '''HEARTIZ'''가 발매되었다.
* [[2021년]] - 대한민국의 [[TV조선3]], [[KBS 라이프]], [[KBS 스토리]] 개국.
== 탄생 ==
* [[1697년]] - 프랑스의 소설가 [[아베 프레보]]. (~[[1763년]])
* [[1776년]] - 프랑스의 수학자 [[소피 제르맹]]. (~[[1831년]])
* [[1815년]] - 독일의 정치인 외교관 [[오토 폰 비스마르크]]. (~[[1898년]])
* [[1854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허위 (1854년)|허위]]. (~[[1908년]])
* [[1865년]] - 오스트리아의 화학자 [[리하르트 아돌프 지그몬디]]. (~[[1929년]])
* [[1866년]] - 이탈리아의 피아노 연주자, 작곡가 [[페루초 부소니]]. (~[[1924년]])
* [[1873년]] - 러시아계 미국인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1943년]])
* [[1889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이영 (1889년)|이영]]. (~[[1960년]])
* [[1898년]] - 미국의 수학자이자 인류학자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 (~[[1944년]])
* [[1908년]] - 일본의 영화 감독 [[카메이 후미오]]. (~[[1987년]])
* [[1912년]] - 일본의 소설가 [[요시다 겐이치]]. (~[[1977년]])
* [[1915년]] - 영국의 영화감독 [[테런스 영]]. (~[[1994년]])
* [[1918년]] - 대한민국의 비전향 장기수 [[신린수]].
* [[1920년]] - 일본의 배우 [[미후네 도시로]]. (~[[1997년]])
* [[1927년]] - 대한민국의 만화가 [[신동헌 (1927년)|신동헌]]. (~[[2017년]])
* [[1929년]]
** 일본의 법조 겸 정치가 [[소노베 이츠오]]. (~[[2024년]])
** 프랑스의 가수 [[마르셀 아몽]]. (~[[2023년]])
** 체코슬로바키아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 (~[[2023년]])
* [[1929년]] - 대한민국의 군인 겸 정치가 [[마달천]]. (~[[2016년]])
* [[1930년]] - 미국의 영화배우 [[그레이스 리 휘트니]]. (~[[2015년]])
* [[193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하경근]]. (~[[2015년]])
** 미국의 배우 [[데비 레이놀즈]]. (~[[2016년]])
* [[1933년]] -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물리학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클로드 코엔타누지]].
* [[1935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윤관]]. (~[[2022년]])
* [[1938년]]
** 대한민국의 천주교 성직자 [[조비오]]. (~[[2016년]])
** 일본의 야구 선수 [[곤도 아키히토]]. (~[[2019년]])
* [[1939년]]
** 미국의 배우 [[앨리 맥그로]].
** 미국의 야구 선수 [[필 니크로]]. (~[[2020년]])
* [[1940년]] - 케냐의 환경·정치운동가 [[왕가리 마타이]]. (~[[2011년]])
* [[1943년]] - 스위스의 건축가 [[마리오 보타]].
* [[1944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이상열 (방송인)|이상열]].
* [[1947년]]
** 프랑스의 수학자 [[알랭 콘]].
** 대한민국의 배우 [[정영숙]].
* [[1948년]] - 대한민국의 의학자 [[문신용]].
* [[1952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이용식 (희극인)|이용식]].
* [[1954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영화감독 [[이창동]].
* [[1959년]] - 대한민국의 법조 겸 정치인 [[권영세 (1959년)|권영세]].
* [[196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왕태언]].
** 일본의 성우 [[쿠지라]].
* [[1961년]]
** 영국의 가수 [[수잔 보일]].
** 뉴질랜드의 작가 [[앤서니 매카튼]].
* [[1964년]]
** 대한민국의 민주열사 [[박종철]]. (~[[1987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축구 감독 [[이광종]]. (~[[2016년]])
* [[1966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박효진.
* [[1968년]] - 일본의 정치인 [[다케다 료타]].
* [[1969년]]
** 대한민국의 변호사 겸 정치인 [[고영일]].
** 미국의 성우 [[에이프릴 스튜어트]].
* [[1971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성민 (배우)|박성민]].
* [[1972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음악감독 신소영.
* [[1973년]] - 그리스의 영화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 [[1974년]]
** 대한민국의 성우 [[현경수]].
** 대한민국의 전 가수 [[서동욱 (1974년)|서동욱]].
* [[197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지영산]].
* [[197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유상재]].
** 미국의 성우 [[트로이 베이커]].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클라렌서 세이도르프]].
* [[1977년]] - 브라질의 종합격투기 선수 [[비토르 베우포르트]].
* [[1979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정현 (1979년)|김정현]].
* [[1980년]]
** 대한민국의 배우 [[강지운]].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고동진]].
** 일본의 배우 [[다케우치 유코]]. (~[[2020년]])
** 미국의 프로레슬링 선수 [[랜디 오턴]].
**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하명지]].
* [[1981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예진]].
** 대한민국의 배우 [[양경원]].
** 영국의 가수, 배우, 방송인 [[해나 스피어릿]].
** 홍콩의 배우, 모델 [[류신유]].
* [[1982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정배 (야구인)|박정배]].
* [[1983년]]
** 프랑스의 축구 선수 [[프랑크 리베리]].
** 미국의 배우, 성우, 모델 [[맷 랜터]].
* [[1985년]]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박영훈 (바둑 기사)|박영훈]].
* [[198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오동민]].
** 미국의 배우 [[릴리 글래드스턴]].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힐러리 스콧]].
** 네덜란드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이레인 뷔스트]].
* [[198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정해인]].
* [[1989년]] - 일본의 모델, 영화배우 [[스기모토 유미]].
* [[1990년]] - 대한민국의 가수 [[동림 (가수)|동림]] ([[DMTN]]).
* [[1991년]]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바니티 레베리사]].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승대]].
* [[1992년]]
** 캐나다의 테니스 선수 [[개브리엘라 더브라우스키]].
** 대한민국의 가수, 뮤지컬 배우 황진영.
* [[1993년]]
** 대한민국의 배우 [[노영학]].
** 대한민국의 배우 [[김가란]].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변시원]].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프로게이머 [[장윤철]].
** 대한민국의 치어리더 [[김수현 (치어리더)|김수현]].
** 대한민국의 미술가 [[류성실]].
** 일본의 가수 [[오카모토 게이토]] ([[Hey! Say! JUMP]]).
** 일본의 가수 [[시바타 아야]] ([[SKE48]]).
* [[1994년]]
** 영국의 가수 [[엘라 에어]].
** 조지아의 레슬링 선수 [[게노 페트리아슈빌리]].
* [[1995년]]
** 대한민국의 프로게이머 [[이동녕 (프로게이머)|이동녕]]([[FXOpen]]).
** 미국의 프로레슬링 선수 [[로건 폴]].
* [[1996년]]
** 대한민국의 배우 [[강해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임은수 (축구 선수)|임은수]].
* [[1997년]]
** 영국의 배우 [[에이사 버터필드]].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베릴 (프로게이머)|베릴]].
* [[199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준혁 (1998년)|이준혁]].
** 대한민국의 가수 [[설하수]].
* [[1999년]] - 대한민국의 가수 조아.
* [[2000년]]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리안 브루스터]].
* [[2001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로운.
* [[2002년]]
** 미국의 배우 [[세이디 싱크]].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정상빈]].
* [[2003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황인택]].
* [[2005년]] - 미국의 배우 [[게이브리얼 베이트먼]].
== 사망 ==
* [[1204년]] - 프랑스의 왕비이자 잉글랜드의 왕비인 [[엘레오노르 다키텐 여공작]]. ([[1122년]]~)
* [[1621년]] - 이탈리아의 화가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1577년]]~)
* [[1917년]]
** 대한민국의 관료, 독립운동가 [[이상설]]. ([[1871년]]~)
** 미국의 작곡가, 피아니스트 [[스콧 조플린]]. ([[1868년]]~)
* [[1922년]]
**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제 [[카를 1세 (오스트리아)|카를 1세]]. ([[1884년]]~)
**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 심리학자 [[헤르만 로르샤흐]]. (?~)
* [[1968년]] - 대한민국의 경찰 [[노덕술]]. ([[1912년]]~)
* [[1976년]] - 예비역 영국 해군 상사 출신의 소믈리에 노동업자 [[앨프리드 레논]]. ([[1905년]]~)
* [[2002년]] - 핀란드의 군인, 저격수 [[시모 해위해]]. ([[1956년]]~)
* [[2003년]] - 중화인민공화국 홍콩 특별행정구의 가수 겸 영화 배우 [[장국영]]. ([[1956년]]~)
* [[2004년]] - 대한민국의 비전향 장기수 [[정순덕 (1933년)|정순덕]]. ([[1933년]]~)
* [[2005년]] - 대한민국의 비전향 장기수, 사회운동가, 통일운동가 [[류락진]]. ([[1928년]]~)
* [[2013년]] -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방송인 [[박상규 (가수)|박상규]]. ([[1942년]]~)
* [[2017년]] - 대한민국의 시인 겸 영문학자 [[김종길]]. ([[1926년]]~)
* [[2018년]] - 과테말라의 정치인, 군인, 대통령 [[에프라인 리오스 몬트]]. ([[1926년]]~)
* [[2019년]] - 미국의 소설가 [[본다 N. 매킨타이어]]. ([[1948년]]~)
* [[2020년]]
** 미국의 가수, 음악가 [[애덤 슐레진저]]. ([[1967년]]~)
** 미국의 재즈 피아노 연주자, 음악가 [[엘리스 마살리스]]. ([[1934년]]~)
** 소말리아의 외교관, 정치인 [[누르 하산 후세인]]. ([[1938년]]~)
* [[2021년]]
** 스위스의 가수 [[파트리크 쥐베]]. ([[1950년]]~)
** 일본의 공학자 [[아카사키 이사무]]. ([[1929년]]~)
** 이스라엘의 고고학자 [[로버트 E. 쿨리]]. ([[1930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송삼석]]. ([[1928년]]~)
* [[2023년]]
**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 [[뤄즈쥔]]. ([[1951년]]~)
** 독일의 보드게임 개발자, 디자이너 [[클라우스 토이버]]. ([[1952년]]~)
* [[2024년]]
** 이란의 군인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 ([[1960년]]~)
** 미국의 영화배우, 성우 [[조 플래허티]]. ([[1941년]]~)
== 기념일 ==
* 많은 나라에서 4월 1일은 [[만우절]]이다.
* [[어업인의 날]]: [[대한민국]]
* [[KD운송그룹]]의 창립기념일이다.
* 이슬람 공화국의 날: [[이란]]
* [[게이샤]] 댄스 축제인 미야코 오도리(Miyako Odori)의 시작일: 일본 [[기온 (교토시)]]
== 같이 보기 ==
* 전날: [[3월 31일]] 다음날: [[4월 2일]] - 전달: [[3월 1일]] 다음달: [[5월 1일]]
* 음력: [[음력 4월 1일|4월 1일]]
* [[366일|모두 보기]]
== 각주 ==
{{각주}}
{{열두달}}
[[분류:4월 1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5월 1일 (영화)||영화}}
'''5월 1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21번째([[윤년]]일 경우 122번째), 뒤에서부터는 245번째 날에 해당한다.
{{5월달력}}
{{특정날짜요일|5|1}}
== 사건 ==
* [[1834년]] - [[벨기에]] 의회, 철도법안 통과.
* [[1871년]] - [[프랑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인 [[파리코뮌]]의 공안위원회 설립
* [[1886년]] - [[미국]]에서 총파업을 시작하여 며칠 뒤 8시간 노동권을 얻어내다. 이후 [[노동절]]의 유래가 되다.
* [[1895년]] - [[조선]]의 [[조선의 행정 구역|지방제도]]를 [[이십삼부|23부]]로 개편하는 칙령(칙령 제98호)을 시행하다.
* [[1898년]] - [[미국-스페인 전쟁]]: [[마닐라만 전투]]가 시작되다.
* [[1919년]] - [[바이에른 소비에트 공화국]], 국방군과 [[바이에른 의용군]]에 의해 진압.
* [[1921년]] - 연합국 배상위원회, [[독일]]의 [[독일의 전후 배상 문제|제1차 세계 대전 배상금]]을 1320억 [[금마르크]]로 결정하다.
* [[1960년]] - [[미국]]의 항공기가 [[소련]]에서 격추당한 [[U-2기 사건]]이 일어났다.
* [[1970년]] - 미국 및 [[베트남]] 정부군, [[캄보디아]] 침공.
* [[1977년]] - [[튀르키예]] [[이스탄불]] [[탁심 광장]]에서 [[5·1 유혈 진압]]으로 최소 34명이 사망하고 126명이 부상당했다.
* [[2003년]] - [[조지 W. 부시|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항공모함]] [[USS 에이브러햄 링컨 (CVN-72)|에이브러햄 링컨호]]([[:en:USS Abraham Lincoln (CVN-72)|en]]) 선상에서 [[이라크 전쟁]]에서의 주요 작전이 종료되었음을 선언하다.
* [[2004년]] - [[유럽 연합]] 확장: [[라트비아]]·[[리투아니아]]·[[몰타]]·[[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에스토니아]]·[[체코]]·[[키프로스]]·[[폴란드]]·[[헝가리]] 가입하다.
* [[2007년]] - [[튀르키예]] 헌법재판소가 [[4월 27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 1차 투표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 [[2010년]] - [[상하이 세계박람회|2010 상하이 엑스포]]가 개최되었다.( ~ [[10월 31일]].)
* [[2011년]]
** 국제 [[테러리스트]] 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라덴]]의 사망 소식이 공식 발표되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복자]]로 공식 선포되었다.
* [[2019년]] - [[나루히토 천황|나루히토]]가 일본의 126대 [[일본 천황]]으로 즉위, [[레이와 시대]]가 시작되었다.
== 문화 ==
* [[1786년]]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부파]] "[[피가로의 결혼]](이탈리아어: Le nozze di Figaro)", [[오스트리아]] [[빈]]의 [[부르크 극장]]에서 초연되다.
* [[1802년]] -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국립 [[육군]][[사관학교]]인 [[생시르 사관학교|생시르 육군사관학교]]를 설립하다.
* [[1840년]] -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에서 최초의 [[우표]]인 '''[[페니 블랙]]'''을 발행하다.
* [[1851년]] - 영국, 런던에서 [[1851년 만국 박람회|만국박람회]] 개회
* [[1896년]] - [[서울미동초등학교|미동초등학교]]의 전신 한성공립소학교 개교
* [[1918년]] - [[서울시립대학교]]의 전신 경성공립농업학교가 설립되다.
* [[1923년]] - 소파 [[방정환]] 선생, 어린이 단체인 [[색동회]]를 결성. 색동회 결성일은 한국 최초의 [[어린이날]]이기도 하다.
* [[1931년]] -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완공되다.
* [[1949년]] - [[해왕성]]의 위성 [[네레이드 (위성)|네레이드]]가 발견됨.
* [[1979년]] - [[군위면]], [[영덕면]], [[청송면]], [[봉화면]], [[영양면]], [[무주면]] 등 49개 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 [[1984년]] - [[과천시|과천]] [[서울대공원]] 개원.
* [[1985년]] -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 개항.
* [[1987년]] - [[서울 지하철 3호선]]이 중앙청역을 [[경복궁역]]으로 역명 변경.
* [[1990년]] - [[BBS FM]] 라디오 방송 개국.
* [[1992년]] - [[기아 타우너]] 출시
* [[1993년]] - [[KBS 1TV]] [[KBS 뉴스 9]] 방송개시
* [[1994년]] - [[하승무]] [[부산국제포럼]] 편집주간, [[한겨레문학]]에서 [[박재삼]] 시인 외 2인의 추천, 시단에 등단.
* [[1995년]] - [[한국케이블TV제주방송]] 개국.
* [[2001년]] - [[MBC 게임]](현[[MBC M]])채널개국
* [[2002년]] - [[매일방송|MBN]] - [[CNBC]] 채널명 로고변경
* [[2004년]] - [[서울광장]] 개장.
* [[2005년]] - 대한민국의 산악인 [[박영석]]이 북극점에 도달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또는 어드벤쳐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였다.
* [[2008년]] - [[서울특별시]]가 [[서울 지하철 9호선]] 1단계 구간 25개역의 명칭을 확정해 발표했다.
* [[2010년]] -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에서 [[킹 샤카 국제공항]]이 개항했다.
* [[2012년]] - [[주한 미군]] [[AFN Korea]]가 AFN TV 아날로그 송출을 전면 중단하였다.
* [[2014년]] - [[부산시민공원]] 개원.
== 탄생 ==
* [[1602년]] - 영국의 점성가 [[윌리엄 릴리]]. (~[[1681년]])
* [[1672년]] - 영국의 시인, 수필가, 극작가, 정치인 [[조지프 애디슨]]. (~[[1719년]])
* [[1857년]] -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인 [[테오 반 고흐 (미술상)|테오 반 고흐]]. (~[[1891년]])
* [[1916년]] - 러시아 출신 일본 야구 선수 [[빅토르 스타루힌]]. (~[[1957년]])
* [[1917년]] - 프랑스의 배우 [[다니엘 다리외]]. (~[[2017년]])
* [[1922년]] - 대한민국의 비전향 장기수 김명수. (~[[2009년]])
* [[1925년]] -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정치가 [[양순직]]. (~[[2008년]])
* [[1927년]] - 덴마크의 수영 선수 [[그레타 안데르센]]. (~[[2023년]])
* [[1933년]] -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정치인 [[오광협]]. (~[[2023년]])
* [[1939년]] - 대한민국의 번역가 [[천병희]]. (~[[2022년]])
* [[1940년]] - 대한민국의 배우 [[홍성민 (배우)|홍성민]]. (~[[2007년]])
* [[194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손영순]].
* [[1946년]]
** 대한민국의 성우 [[김태훈 (성우)|김태훈]].
** 홍콩의 영화감독 [[오우삼]].
* [[1947년]] - 대한민국의 야구 감독 [[김인식 (1947년)|김인식]].
* [[1949년]] - 대한민국의 검사 [[이종왕 (1949년)|이종왕]]. (~[[2022년]])
* [[1956년]] - 미국의 만화가 [[팀 세일]]. (~[[2022년]])
* [[1961년]] -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박래군]].
* [[196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최민수]].
* [[1964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조계현]].
** 대한민국의 희극인, 리포터, 가수 [[김종하 (희극인)|김종하]].
* [[1967년]]
** 대한민국의 배우 [[설경구]].
** 미국의 컨트리 가수 [[팀 맥그로]].
* [[1968년]]
** 독일의 전 축구 선수 [[올리버 비어호프]].
** 대한민국의 배우 [[송채환]].
** 대한민국의 가수 [[박혜성]].
** 대한민국의 희극인, 방송인 [[정재윤 (희극인)|정재윤]].
* [[1969년]] - 미국의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
* [[1972년]] - 대한민국의 배우 [[강헌일]].
* [[1973년]] - 독일의 축구 선수 [[올리버 뇌빌]].
* [[1974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로사 (배우)|김로사]].
** 대한민국의 기업인 [[최용민 (기업인)|최용민]].
* [[1975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유영실]].
** 카메룬의 축구 선수 [[마르크비비앵 푀]]. (~[[2003년]])
* [[1977년]]
** 대한민국의 배우 [[허다정]].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남일]].
* [[1979년]] - 대한민국의 조각가 임수진.
* [[1980년]]
** 일본의 배우 [[이치카와 요스케]].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안영길 (바둑 기사)|안영길]].
* [[198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전 가수 [[최정원 (1981년 5월)|최정원]].
** 벨라루스의 축구 선수 [[알략산드르 흘렙]].
* [[1982년]]
** 영국의 배우 [[제이미 도넌]].
**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 [[다리요 스르나]].
* [[1983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해진]].
** 대한민국의 성우 [[한신 (성우)|한신]].
** 프랑스의 수영 선수 [[알랭 베르나르]].
* [[1984년]]
** 대한민국의 만화가 [[김미선 (만화가)|김미선]].
** 일본의 가수, 배우 [[코야마 케이치로]] ([[NEWS (음악 그룹)|NEWS]]).
** 영국의 배우 [[사샤 다완]].
** 대한민국의 가수 [[백수정 (가수)|백수정]].
* [[1985년]] - 대한민국의 가수 황성수.
* [[1986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창민 (가수)|이창민]] ([[2AM]], [[옴므 (음악 그룹)|옴므]]).
* [[1987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이지현 (아나운서)|이지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시강]].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레오나르도 보누치]].
* [[1988년]]
** 대한민국의 가수 하연.
** 미국의 배우 [[니컬러스 브론]].
* [[1990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강지혜.
* [[1992년]]
** 대한민국의 가수 [[하니 (1992년생 가수)|하니]] ([[EXID]]).
** 대한민국의 래퍼 [[G2 (래퍼)|G2]].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원균 (축구 선수)|김원균]].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새미 아메오비]].
** 대한민국의 가수 [[박현호]].
**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 [[김원진 (유도 선수)|김원진]].
** 대한민국의 배우 [[최민우 (배우)|최민우]].
* [[1993년]]
** 대한민국의 가수 [[상일 (가수)|상일]] ([[스누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성욱 (야구 선수)|김성욱]].
* [[1994년]] - 대한민국의 가수 해나.
* [[1995년]] - 대한민국의 래퍼 [[미미 (1995년)|미미]] ([[오마이걸]]).
* [[1996년]] - 라오스의 유도 선수 [[숙팍사이 시띠사네]].
* [[1997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진래]].
* [[1999년]] - 대한민국의 가수 영웅.
* [[2000년]] - 대한민국의 연극배우 [[지동건]].
* [[2001년]]
** 대한민국의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 [[장유진 (스키 선수)|장유진]].
** 대한민국의 배우 [[정재민 (배우)|정재민]].
* [[2002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채린.
* [[200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최승훈 (배우)|최승훈]].
* [[201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유이. (버비)
== 사망 ==
* [[1555년]] - 제222대 로마의 교황 [[교황 마르첼로 2세]]. ([[1501년]]~)
* [[1714년]] -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군주 [[앤 (영국)|앤]]. ([[1665년]]~)
* [[1904년]] - 체코의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 ([[1841년]]~)
* [[1909년]] - 영국의 기자 [[어니스트 베델]]. ([[1872년]]~)
* [[1918년]] - 미국의 지형학자 [[그로브 칼 길버트]]. ([[1843년]]~)
* [[1945년]] - 나치 독일의 간부, 정치인, 선동가 [[요제프 괴벨스]]. ([[1897년]]~)
* [[1970년]] - 대한제국 고종의 황태자 [[의민태자]]. ([[1897년]]~)
* [[1978년]] - 아르메니아계 러시아의 작곡가 [[아람 하차투리안]]. ([[1903년]]~)
* [[1994년]] - 브라질의 자동차 경주 선수 [[아이르통 세나]]. ([[1960년]]~)
* [[2019년]] - 이탈리아의 영화배우 [[알레산드라 파나로]]. ([[1939년]]~)
* [[2020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정해원 (축구인)|정해원]]. ([[1959년]]~)
* [[2021년]] - 미국의 영화배우 [[올림피아 두카키스]]. ([[1931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발레 무용수 [[김희선 (발레 무용수)|김희선]]. ([[1992년]]~)
** 유고슬라비아의 축구 선수 [[이비차 오심]]. ([[1941년]]~)
* [[2023년]] - 캐나다의 싱어송라이터 [[고든 라이트풋]]. ([[1938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군인, 변호사 [[이종연]]. ([[1928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함태용]]. ([[1933년]]~)
== 기념일 ==
* 한국의 [[노동절]](근로자의 날)
* 한국의 [[부처님 오신 날]] - [[1982년]], [[2001년]], [[2066년]], [[2085년]]
* 구 [[동독]]의 노동자의 날
* 레이 데이(Lei Day): [[하와이]]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4월 30일]] 다음날: [[5월 2일]] - 전달: [[4월 1일]] 다음달: [[6월 1일]]
* 음력: [[음력 5월 1일|5월 1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5월 1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2월 1일'''은 [[그레고리력]]으로 32번째([[윤년]]일 경우도 32번째) 날에 해당한다.
{{2월달력}}
{{특정날짜요일|2|1}}
== 사건 ==
* [[1902년]] - 청나라, 만주족과 한족간 결혼금지령 해제
* [[1906년]] - 일제, 조선병탄 예비공작 위해 한성에 [[통감부]] 설치
* [[1909년]]
** 미주 한국인단체, 통합하여 [[대한인국민회|국민회]] 발족.
** [[청나라]] [[상하이]]에서 제2회 [[아편]] 금지 국제회의 개막
* [[1917년]] - 독일군 잠수함이 영국행 중립국 상선 공격 해 미국의 [[제1차 세계 대전]] 개입 초래
* [[1919년]] - [[무오독립선언]]
* [[1924년]] - [[영국]], [[소련]] 승인
* [[1942년]] - [[마오쩌둥]]이 [[정풍운동]]의 시작을 선언했다.
* [[1958년]] - [[이집트]]와 [[시리아]], 아랍연합공화국 수립.
* [[1973년]] - 비상국무회의, 국정감사폐지법안 의결.
* [[1974년]] - [[상파울루]] 빌딩 화재. 189명 사망.
* [[1979년]] - 해외망명중이던 [[이란]] 지도자 [[아야툴라 호메이니]] 15년 만에 귀국.
* [[1989년]]
** 대한민국, 공산권 국가로는 최초로 [[헝가리 인민 공화국]]과 수교.
**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산 [[무연탄]] 2만t을 인천항 통해 첫 직수입.
* [[1991년]] - F.W. 데 클레르크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 인종차별법 폐지 발표.
* [[1992년]] - [[조지 H. W. 부시|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양국의 적대관계청산하는 캠프 데이비드 선언에 서명해 [[냉전]] 공식 종결 .
* [[2000년]] - 대한민국 국무회의,'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 의결.
* [[2003년]] - 미국 [[우주왕복선]] [[컬럼비아 우주왕복선|컬럼비아 호]]가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다 [[텍사스주]] 64km 상공에서 폭발, 승무원 7명 전원 사망. ([[컬럼비아 우주왕복선 공중분해 사고]])
* [[2004년]]
** [[마이클 잭슨]]의 동생인 [[자넷 잭슨]]이 슈퍼볼 공연 도중 [[저스틴 팀버레이크]]에 의해 가슴을 노출하여 [[니플게이트]]가 발생했다.
** 일본의 애니메이션인 [[프리큐어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인 [[빛의 전사 프리큐어]]가 처음 방영하였다.
== 문화 ==
* [[1881년]] - [[파나마 운하]] 기공식.
* [[1919년]] - [[김동인]], [[주요한]] 등, 한국 최초의 종합문예동인지 《[[창조 (잡지)|창조]](創造)》 창간
* [[1943년]] - 철도국을 교통국으로 개편.
* [[1952년]] -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창립.
* [[1963년]]
** 부산, [[직할시]]로 승격
** 서울 [[장충 체육관]] 개관.
** [[국민은행]] 개점.
* [[1968년]] - [[경부고속도로]] 착공.
* [[1974년]] - 대한민국 [[한국방송협회]] 창립.
* [[1988년]] - [[KBS 제2FM]] [[굿모닝 팝스]] 첫방송.
* [[1989년]] - 대한민국 [[세계일보]] 창간.
* [[2008년]] - [[MBC TV]]에서 [[엄기영]] 앵커, [[평일]] [[MBC 뉴스데스크]] 마지막 방송.
* [[2012년]] - [[MBC 게임]]이 [[MBC 뮤직]]으로 변경
* [[2015년]] - [[대한민국 해군]]이 제9잠수함 전단을 소장급 장교가 지휘하는 [[대한민국 해군 잠수함사령부|해군잠수함사령부]]로 승격시키다.
== 탄생 ==
* [[1550년]] - 영국의 수학자 [[존 네이피어]]. (~[[1617년]])
* [[1552년]] - 영국의 식민지 사업가, 판사, 정치인 [[에드워드 코크]]. (~[[1634년]])
* [[1707년]] - 영국 조지 2세의 장남 [[프레더릭 루이스]]. (~[[1751년]])
* [[1883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조만식]]. (~[[1950년]])
* [[1894년]] - 미국의 영화감독 [[존 포드]]. (~[[1973년]])
* [[1901년]]
** 미국의 군인 [[프랭크 버클스]]. (~[[2011년]])
** 미국의 배우 [[클라크 게이블]]. (~[[1960년]])
* [[1902년]] - 미국의 시인 [[랭스턴 휴즈]]. (~[[1967년]])
* [[1915년]] - 영국의 축구 선수, 축구 감독 [[스탠리 매슈스]]. (~[[2000년]])
* [[1917년]] -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 [[장춘차오]]. (~[[2005년]])
* [[1920년]] - 대한민국의 의사 출신 정치가 [[정희섭]]. (~[[1987년]])
* [[1928년]] -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정치인 [[조순]]. (~[[2022년]])
* [[1929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차규헌]]. (~[[2011년]])
** 독일의 신학자 [[페터 바이어하우스]]. (~[[2020년]])
* [[1930년]]
** 방글라데시의 정치인 [[샤하부딘 아흐메드]]. (~[[2022년]])
** 방글라데시의 군인 겸 고위정치인 [[후세인 무함마드 에르샤드]]. (~[[2019년]])
* [[1931년]] - 러시아의 정치인 [[보리스 옐친]]. (~[[2007년]])
* [[1935년]] - 소련의 우주인 [[블라디미르 악쇼노프]]. (~[[2024년]])
* [[1936년]]
** 대한민국의 성우 [[고은정 (성우)|고은정]].
** 대한민국의 성우 [[최흘]]. (~[[2018년]])
* [[1937년]] - 대한민국의 시인 [[추영수]]. (~[[2022년]])
* [[1939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한화갑]].
* [[1941년]]
**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신낙균]].
** 대한민국의 건축가 [[이수형 (건축가)|이수형]]. (~[[2022년]])
* [[1948년]] -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윤한봉]]. (~[[2007년]])
* [[194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병철 (배우)|이병철]]. (~[[2022년]])
** 영국의 기업인 [[데이비드 설리번]].
* [[1953년]]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서봉수]].
** 대한민국의 기초의원 [[한병수]]. (~[[2023년]])
* [[1955년]] - 홍콩의 영화 배우 [[성규안]]. (~[[2009년]])
* [[1956년]]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교수 [[정수현]].
* [[1957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배일호]].
* [[1958년]] - 홍콩의 영화 배우 [[양가휘]].
* [[196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미경 (배우)|이미경]]. (~[[2004년]])
* [[1962년]]
** 일본의 음악가 [[호테이 토모야스]].
** 프랑스의 축구 선수 [[마뉘엘 아모로스]].
** 일본의 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
* [[1965년]]
** 대한민국의 배우 [[변우민]].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이금진 (농구인)|이금진]].
* [[1966년]]
** 미국의 영화 배우 [[버스터 키튼]].
** 대한민국의 배우 [[선우일란]].
** 미국의 전직 축구 선수 [[미셸 에이커스]].
* [[1968년]]
** 미국의 가수 [[리사 마리 프레슬리]]. (~[[2023년]])
** 일본의 기타리스트, 작곡가 [[오시오 고타로]].
* [[1969년]]
** 대한민국의 교육인, 정치가 [[나향욱]].
**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 [[1970년]] - 대한민국의 의사 박지현.
* [[1971년]] - 미국의 배우, 성우 [[힌든 월치]].
* [[1972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정선희]].
** 푸에르토리코의 랩퍼 [[테고 칼데론]].
** 스페인의 유도 선수 [[이사벨 페르난데스]].
* [[197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예지원]].
** 일본의 성우 [[오모토 마키코]].
* [[1974년]] - 대한민국의 연극배우 [[최지연 (1974년)|최지연]].
* [[1975년]]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신진식]].
** 대한민국의 배우 [[오수범]].
** 미국의 래퍼 [[빅 보이 (래퍼)|빅 보이]].
* [[1979년]] -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 [[주앙 시우베이라 두스 산투스|주앙]].
* [[1982년]] - 대한민국의 전 가수 [[김종욱 (가수)|김종욱]].
* [[1984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여상]].
** 스코틀랜드의 축구 선수 [[대런 플레처]].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로운 (야구인)|이로운]].
* [[1985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박지용.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정정호]].
** 오스트레일리아의 배우, 모델 [[조디 고든]].
* [[1986년]] - 대한민국의 성우 [[정주원]].
* [[1987년]]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주세페 로시]].
**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론다 라우시]].
** 일본의 성우 [[이자와 시오리]].
* [[1988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루리.
* [[1989년]]
** 아이슬란드의 축구 선수 [[알프레드 핀보가손]].
** 대한민국의 배우 [[염문경]].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정명호 (1989년)|정명호]].
** 일본의 성우 [[쿠스다 아이나]].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한수지 (배구 선수)|한수지]].
* [[1990년]]
** 영국의 가수 [[로라 말링]].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주현우]].
* [[1991년]]
** 대한민국의 기상 캐스터, 방송인 [[김민아 (방송인)|김민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송서미]].
** 알제리의 축구 선수 [[파우지 굴람]].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루카 칼디롤라]].
* [[1992년]]
** 일본의 배우 [[이치미치 마오]].
** 대한민국의 사격 선수 [[배상희]].
* [[1993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심창민]].
** 대한민국의 작가 [[김초엽]].
** 대한민국의 치어리더 [[이나경 (치어리더)|이나경]].
* [[1994년]]
** 영국의 가수 [[해리 스타일스]] ([[원 디렉션]]).
** 미국의 배우 [[줄리아 가너]].
** 일본의 배우 [[요시자와 료]].
** 일본의 가수 [[후지에 레이나]].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그래프트 프로게이머 [[하늘 (프로게이머)|하늘]].
* [[1995년]] - 독일의 배우 [[파울라 베어]].
* [[1996년]]
** 대한민국의 가수 [[도영]] ([[NCT (음악 그룹)|NCT]]).
** 대한민국의 가수 [[기련]].
* [[1997년]]
** 대한민국의 가수 [[지효]] ([[트와이스]]).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동준 (1997년)|이동준]].
* [[1998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정우 (1998년)|박정우]].
* [[1999년]] - 대한민국의 연극배우 강지연.
* [[2000년]]
** 대한민국의 가수 [[한이서 (가수)|한이서]].
** 콩고민주공화국 태생 대한민국의 방송인 겸 유튜버 [[조나단 욤비]].
* [[2001년]] - 미국의 배우 [[레이철 제글러]].
* [[2003년]] - 캐나다의 가수 [[테이트 맥레이]].
* [[2006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다솜.
* [[2008년]] - 대한민국의 배우 겸 모델 [[박이사야]].
* [[2012년]] - 대한민국의 유튜버 [[송나윤]] (루루체체TV).
== 사망 ==
* [[1328년]] - 프랑스의 국왕 [[샤를 4세]]. (1294년~)
* [[1691년]] - 241대 로마의 교황 [[교황 알렉산데르 8세]]. (1610년~)
* [[1851년]] - 영국의 소설가 [[메리 셸리]]. (1797년~)
* [[1907년]] - 키르기스스탄의 지도자, 통치자 [[쿠르만잔 닷카]]. (1811년~)
* [[1925년]] - 한말 정치인 [[송병준]]. (1857년~)
* [[1935년]] - 조선 말기의 의사 [[지석영]]. (1855년~)
* [[1966년]] - 미국의 배우 [[버스터 키턴]]. (1895년~)
* [[1976년]] -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1901년~)
* [[1986년]] - 스웨덴의 정치가 [[알바 뮈르달]]. (1902년~)
* [[2012년]] -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1923년~)
* [[2014년]] - 스위스의 배우 [[막시밀리안 셸]]. (1930년~)
* [[201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명윤]]. (1924년~)
** 과테말라의 군인이자 정치인 [[오스카르 움베르토 메히아 빅토레스]]. (1930년~)
* [[2019년]] - 일본의 성우 [[아리모토 킨류]]. (1940년~)
* [[2020년]]
** 이탈리아의 기업인 [[루차노 가우치]]. (1939년~)
** 헝가리의 영화배우 [[언도러이 페테르]]. (1948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허참]]. (1949년~)
** 일본의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 (1932년~)
* [[2023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한병수]]. (1953년~)
* [[2024년]]
** 미국의 영화감독 [[마크 거스태프슨]]. (1959년~)
** 프랑스의 장거리달리기선수 [[미셸 재지]]. (1936년~)
** 일본의 레슬링인 [[아사히 (프로레슬러)|아사히]]. (2002년~)
** 미국의 영화배우 [[칼 웨더스]]. (1948년~)
== 기념일 ==
* [[:en:Black History Month|흑인 역사의 달]] 시작일: [[미국]], [[캐나다]]
== 같이 보기 ==
* 전날: [[1월 31일]] 다음날: [[2월 2일]] - 전달: [[1월 1일]] 다음달: [[3월 1일]]
* 음력: [[음력 2월 1일|2월 1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2월 1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6월 1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52번째([[윤년]]일 경우 153번째) 날에 해당한다.
{{6월달력}}
{{특정날짜요일|6|1}}
== 사건 ==
* [[1270년]] - [[고려-몽골 전쟁]]: [[고려]]가 [[몽골 제국]]에 항복하자, [[배중손]] 등의 [[삼별초의 항쟁|삼별초는 대몽 항쟁]]을 계속하다.
* [[1523년]] - [[조선 중종]] 18년, [[전라도]] [[수군절도사]]가 왜구를 물리친 사실을 보고하다.
* [[1538년]] - [[조선 중종]] 33년, [[평안도]]에서 [[전염병]]으로 150여 명이 죽다.
* [[1548년]] - [[조선 명종]] 3년, [[경상도]]에서 전염병으로 630명이 죽다.
* [[1556년]] - [[조선 명종]] 11년, [[경상도|경상 좌도]] [[병마절도사|병사]](慶尙左道兵使)가 [[울산]]에서 왜적을 물리친 사실을 보고하다.
* [[1587년]] - [[조선 선조]] 20년, [[황해도]]에서 [[기근]]과 전염병으로 5,570명이 죽다.
* [[1592년]] - [[임진왜란]]: [[곽재우]]가 [[경상도]] [[의령군]]에서 [[의병]]을 일으키다.
* [[1670년]] - [[조선 현종]] 18년, 전라도에 [[큰비]]로 피해가 발생하다.
* [[1862년]] - [[남북 전쟁]]: [[아메리카 연합국|남부연합]]의 [[제퍼슨 데이비스]] 대통령은 중상을 입은 [[조지프 E. 존스턴|존스턴 장군]]의 후임으로 [[로버트 E. 리|리 장군]]을 남군 최고 사령관에 임명하다.
* [[1871년]] - [[미국]]의 [[조선]] 침략으로 [[신미양요]]가 발생하다.
* [[1952년]] - [[중화인민공화국]]과 [[일본]]이 [[중일국교정상화#중일민간무역협정|제1차 중-일 민간무역협정]]에 서명하다.
* [[1976년]] - [[대한민국]]의 [[신용보증기금법]]에 따라 [[특별법인]]이며 [[대한민국의 공공기관|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인 [[신용보증기금]]을 설립하다.
* [[1980년]] - 대한민국, [[신군부]] [[12·12 군사 반란]] 세력이 [[언론계의 정화-정비계획]]에 따른 [[언론통폐합]] 등 [[언론 대탄압 사건]]을 일으키다.
* [[1988년]] - 미국과 [[소련]] 간에 체결된 [[중거리 핵전력 조약]]이 발효되다.
* [[1998년]] - [[유럽 연합]]의 [[중앙은행]]인 [[유럽 중앙은행]]이 출범하다.
* [[1999년]] - 미국 [[아칸소주]] [[리틀록]] 근처의 [[:en:Clinton National Airport|애덤스 필드 공항]]에서 [[아메리칸 항공]]의 [[아메리칸 항공 1420편 활주로 이탈 사고|1420편이 활주로를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11명 사망, 110명 부상을 입다.
* [[2000년]] - [[종이]] [[주민등록증]] 사용이 중지됐다.
* [[2001년]] - [[네팔 궁중 학살]]: [[네팔]]의 [[네팔 국왕|국왕]] [[비렌드라]]를 비롯한 수많은 왕족이 살해는 참사가 발생하다.
* [[2007년]] - 대한민국, [[한국철도공사]]의 수많은 간이역이 여객 수요 감소로 인해 여객 취급이 중지되다.
* [[2009년]] - [[에어프랑스 447편 추락 사고]]: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갈레앙 국제공항|리우데자네이루 국제공항]]을 이륙해 [[프랑스]]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샤를 드 골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여객기가 [[대서양]]에 추락하여, 탑승자 228명 전원이 사망했다.
* [[2015년]] - [[중화인민공화국]] [[후베이성]] [[젠리시|젠리현]] 부근 [[장강|양쯔강]]에서 [[둥팡즈싱호 침몰 사고|둥팡즈싱호가 침몰]]해 456명 중 14명이 구조되고, 406명이 사망했으며 36명은 실종되었다.
* [[2016년]] - 세계에서 가장 길고 깊은 [[터널]]인 [[스위스]]의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en:Gotthard Base Tunndl|GBT]])이 개통되었다.
* [[2022년]] - 국호를 ‘터키’에서 [[튀르키예]]로 변경해 달라는 요청을 [[유엔]]이 최종 승인하다.
== 문화 ==
* [[2000년]] - [[대한민국]] 요리전문채널 [[tvN STORY|채널F]](現 tvN STORY)를 개국하다.
* [[2003년]] -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에서 [[SBS 파워FM]]의 지역민방 라디오 프로그램 [[JIBS New Power FM]]을 개국하다. (FM 101.5 MHz)
* [[2015년]] - 대한민국의 [[C` TIME]], [[GMTV (텔레비전 채널)|GMTV]]를 개국하다.
== 탄생 ==
* [[1076년]] - 키예프 대공국의 대공 [[므스티슬라프 1세]]. (~[[1132년]])
* [[1804년]] - 러시아의 작곡가 [[미하일 글린카]]. (~[[1957년]])
* [[1882년]] - 일본의 불교학자 [[우이 하쿠주]]. (~[[1963년]])
* [[1899년]] - 대한민국의 경찰 [[노덕술]]. (~[[1968년]])
* [[1918년]] - 대한민국의 목사 및 재야운동가 [[문익환]]. (~[[1994년]])
* [[1920년]]
** 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 [[김재덕 (종교인)|김재덕]]. (~[[1988년]])
** 소련의 번역가 [[다비트 사모일로프]]. (~[[1990년]])
* [[1922년]] - 미국의 배우 [[조안 코플랜드]]. (~[[2022년]])
* [[1926년]]
** 대한민국의 극작가 [[박현숙 (극작가)|박현숙]]. (~[[2020년]])
** 미국의 배우 [[마릴린 먼로]]. (~[[1962년]])
* [[1931년]] - 일본의 연구자 [[이즈카 고조]].
* [[1934년]]
** 대한민국의 시인 [[성기조]]. (~[[2023년]])
** 미국의 팝 가수 [[팻 분]].
* [[1935년]] - 독일의 영화감독, 작가 [[퍼시 아들론]]. (~[[2024년]])
* [[1937년]] - 미국의 배우 [[모건 프리먼]].
* [[1940년]] -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 [[킵 손]].
* [[1944년]] - 대한민국의 법조 출신 정치인 [[윤재기]].
* [[1946년]] - 대한민국의 목사, 사회 운동가 [[인명진]].
* [[1952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배연정]].
** 터키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셰놀 귀네슈]].
** 대한민국의 드라마 연출자 [[운군일]].
* [[195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도경 (배우)|이도경]].
* [[1957년]] - 일본의 유도선수 겸 행정가 [[야마시타 야스히로]].
* [[1961년]]
** 슬로바키아의 작곡가 [[페테르 마하이디크]].
** 러시아의 기업인 [[예브게니 프리고진]]. (~[[2023년]])
* [[1962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청]].
** 대한민국의 배우 [[서광재]].
* [[1963년]] - 대한민국의 기자 출신 정치인 [[신성범]].
* [[1964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방송인 [[김자영 (방송인)|김자영]].
** 미국의 기업인 [[마크 타페닝]].
* [[1968년]] - 일본의 배우 [[나츠카와 유이]].
* [[1970년]] - 인도의 배우 [[R. 마다반]].
* [[1973년]] - 독일의 모델 [[하이디 클룸]].
* [[1974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홍표]].
** 대한민국의 양궁 선수 [[정재헌 (1974년)|정재헌]].
** 캐나다의 싱어송라이터 [[앨러니스 모리세트]].
* [[1978년]]
** 대한민국의 가수 [[서정환]].
** 미국의 모델, 배우 [[레아 더럼]].
* [[1979년]]
** 대한민국의 배우, 래퍼 [[양동근]].
** 대한민국의 장애인운동가 겸 정치인 [[최혜영 (1979년)|최혜영]].
** 스웨덴의 게임 개발자 [[마르쿠스 페르손]].
* [[1981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김승휘]].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이정우 (바둑 기사)|이정우]].
** 미국의 희극인 겸 배우 [[에이미 슈머]].
* [[1982년]]
** 일본의 야구 선수 [[셋쓰 다다시]].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정원 (야구 선수)|정원]].
* [[1983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채윤아]].
* [[1984년]]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윤호영]].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정윤성 (축구인)|정윤성]].
* [[1985년]]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이시현 (레이싱 모델)|이시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정우람]] ([[한화 이글스]]).
** 대한민국의 가수, 모델 [[이서현 (모델)|이서현]].
* [[1986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유희관]].
**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배우 [[이장우]].
* [[1987년]]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양윤진]].
* [[1988년]]
** 대한민국의 스키 선수 [[정동현 (스키 선수)|정동현]].
** 멕시코의 축구 선수 [[하비에르 에르난데스]].
** 일본의 가수 [[타마키 나미]].
* [[1989년]]
** 대한민국의 전 아나운서 출신 정치인 [[안귀령]].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윤지 (축구 선수)|김윤지]].
* [[1990년]] - 일본의 성우 [[무라카와 리에]].
* [[1991년]]
** 독일, 미국의 배우 [[자시 비츠]].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조병세 (프로게이머)|조병세]].
* [[199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신나래]].
* [[1993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정현 (1993년)|김정현]].
** 미국의 농구 선수 [[조니 오브라이언트]].
* [[1994년]]
** 대한민국의 전 래퍼 [[던 (래퍼)|던]].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정현 (야구 선수)|정현]].
**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 [[히오르히안 데 아라스카에타]].
* [[1995년]]
** 대한민국의 전직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쿤 (프로게이머)|쿤]].
** 일본의 아이돌 [[마에다 아미]].
* [[1996년]] - 잉글랜드의 배우 [[톰 홀랜드 (배우)|톰 홀랜드]].
* [[1997년]] -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 [[니콜라스 데 라 크루스]].
* [[1998년]] - 러시아의 리듬 체조 선수 [[알렉산드라 솔다토바]].
* [[1999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한동희]].
** 미국의 유튜버 [[테크노블레이드]]. (~[[2022년]])
** 미국의 육상 선수 [[야레드 너구스]].
* [[2000년]]
** 미국의 배우 [[윌로 실즈]].
** 대한민국의 가수 [[이나경 (가수)|이나경]] ([[fromis_9]]).
* [[2002년]] - 튀니지의 태권도 선수 [[무함마드 할릴 젠두비]].
* [[2003년]] - 미국의 배우 겸 모델 [[엠제이 앤서니]].
* [[2004년]] - 일본의 배우 [[혼다 미유]].
* [[201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오한결]].
* [[2016년]] - 대한민국의 아역배우, 모델 [[한주현 (배우)|한주현]].
== 사망 ==
* [[193년]] - 로마 제국의 황제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133년~)
* [[1452년]] - 조선의 제5대 국왕 [[문종 (조선)|문종]]. (1414년~)
* [[1616년]] - 일본 에도 막부의 1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 (1543년~)
* [[1815년]] - 프랑스의 군인, 정치인 [[루이 알렉상드르 베르티에]]. (1753년~)
* [[1846년]] - 제254대 로마의 교황 [[교황 그레고리오 16세]]. (1765년~)
* [[1868년]] - 미국의 제15대 대통령 [[제임스 뷰캐넌]]. (1791년~)
* [[1920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황병길]]. (1885년~)
* [[1943년]] - 원불교 창시자 [[박중빈]]. (1891년~)
* [[1943년]] - 영국의 배우 [[레슬리 하워드]]. (1893년~)
* [[1962년]] - 나치 독일의 군인 [[아돌프 아이히만]]. (1906년~)
* [[1968년]] - 미국의 작가,활동가,교육가,사회주의자 [[헬렌 켈러]]. (1880년~)
* [[1971년]] -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 (1892년~)
* [[2008년]] -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이브 생 로랑]]. (1936년~)
* [[2019년]] - 스페인의 축구 선수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1983년~)
* [[2021년]]
** 이탈리아의 왕족 [[아메데오 디 사보이아아오스타 공작 (1943년)|아메데오 디 사보이아아오스타 공작]]. (1943년~)
** 캐나다의 저술가 [[자크 라쿠르시에르]]. (1932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조덕현 (정치인)|조덕현]]. (1934년~)
* [[2023년]]
** 독일의 영화배우 [[마르기트 카르스텐센]]. (1940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민병수]]. (1933년~)
* [[2024년]] - 프랑스의 영화배우 [[필립 르로이]]. (1930년~)
== 기념일 ==
* [[의병의 날]]: [[대한민국]]
* [[국제아동절]]
* [[:en:Public holidays in Palau|대통령의 날]](President's Day): [[팔라우]]
* [[:en:Gawai Dayak|가와이 다약 축제]]의 첫날: [[말레이시아]] [[사라왁주]]
* [[:en:Public holidays in Portugal|아조레스 데이]]: [[아소르스 제도|아조레스]]
* [[:en:Madaraka Day|해방기념일]](Madaraka): [[케냐]]
* [[:en:Mexican Navy|해군의 날]]: [[멕시코]]
* [[:en:Arbor Day#Cambodia|식목일]]: [[캄보디아]]
* [[:en:Public holidays in Indonesia|판카실라 데이]]: [[인도네시아]]
* [[:en:Flag of Tunisia|승리의 날]]: [[튀니지]]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5월 31일]] 다음날: [[6월 2일]] - 전달: [[5월 1일]] 다음달: [[7월 1일]]
* 음력: [[음력 6월 1일|6월 1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6월 1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3월 2일'''은 [[그레고리력]]으로 61번째([[윤년]]일 경우 62번째) 날에 해당한다.
{{3월달력}}
{{특정날짜요일|3|2}}
== 사건 ==
* [[537년]] - [[벨리사리우스]]에게 로마를 빼앗긴 [[동고트인|동고트족]]이 [[:en:Vitiges|비티게스]]를 왕으로 추대하고 대군을 모아 로마를 포위 공격하다.
* [[986년]] - [[루도비쿠스 5세 이네르스|루이 5세]]가 [[프랑스의 군주|서프랑크의 왕]]이 되다.
* [[1476년]] - [[부르고뉴 전쟁]]의 전투 중 하나인 [[그랑송 전투]]가 벌어지다.
* [[1498년]] - [[바스쿠 다 가마]]의 함대가 [[:en:Island of Mozambique|모잠비크 섬]]을 방문하다.
* [[1561년]] - 아르헨티나의 도시 [[멘도사 (아르헨티나)|멘도사]]가 스페인의 정복자 [[:en:Pedro del Castillo|페드로 델 카스티요]]에 의해 설립되다.
* [[1808년]] - [[미국 의회]], 미국 사법권이 미치는 지역으로 [[노예]]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다.
* [[1836년]] - [[텍사스 혁명]](Texas Revolution) 발생. [[텍사스 공화국]]이 [[멕시코]]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다.
* [[1855년]] -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알렉산드르 2세]]가 [[러시아 제국]]의 [[차르]]에 즉위하다.
* [[1906년]] -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으로 취임
* [[1919년]] - [[코민테른|1차 코민테른]]이 [[모스크바]]에서 첫 번째 회의를 개최하다.
* [[1939년]] - [[교황 비오 12세]], 260대 로마 교황 취임.
* [[1941년]] - [[제2차 세계 대전]]: [[불가리아]]가 [[추축국]]에 합류한 이후, 첫 번째 독일군 부대가 불가리아로 진주하다.
* [[1946년]] - [[호치민]]이 [[북베트남]]의 대통령으로 선출되다.
* [[1955년]] - [[부산역 열차 화재]] 사고.
* [[1956년]] - [[모로코]]가 [[프랑스]]와 [[스페인]]로부터 독립하다.
* [[1960년]] - [[부산 국제고무공장 화재]]가 일어났다.
* [[1961년]] - [[대한민국]] [[국무총리]] 직속 정보기관 [[대한민국 시국정화운동본부|시국정화단]] 출범.
* [[1962년]] - [[버마]](현재 [[미얀마]])에서 [[네 윈]]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다.
* [[1969년]] - [[중소 국경 분쟁]], 우수리강의 [[전바오섬]](다만스키섬)에서 두 나라 무력 충돌.
* [[1992년]] - [[카자흐스탄]], [[몰도바]]. [[키르기스스탄]], [[산마리노]],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유엔]] 가입.
* [[1998년]] - [[NASA]]가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 (위성)|유로파]]에서 [[물]]을 발견했다고 발표하다.
* [[2011년]] - [[파키스탄]] 소수민족부 장관 샤바즈 바티가 괴한들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 [[2012년]] - 거대한 [[토네이도]]가 미국 남부 지역에서 발생, 오하이오 밸리 지역(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웨스트버지니아, 인디아나, 켄터키, 일리노이의 6개주)을 강타하여 40명이 숨지다.
* [[2014년]] - [[태국]]의 [[2014년 타이 총선거|2014 총선]] 때, 선거가 시행되지 못했던 18개 지역 중 5개 지역에서 재선거가 실시되다.
* [[2022년]] -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하고 대통령 선거 후보직을 사퇴하다.
== 문화 ==
* [[1958년]] -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 수도 국제공항]] 개항.
* [[1998년]] - [[대한민국]] [[대전광역시]]·[[충청남도]] 일원(현 [[세종특별자치시]] 포함)에서 [[SBS 파워FM]]의 지역민방 라디오 프로그램 [[TJB POWER FM]] 개국. (FM 95.7 MHz)
* [[2001년]] - 대한민국 [[Gugak FM]] 라디오 방송 개국.
* [[2010년]] - [[KTX-산천]]이 [[경부선]]과 [[호남선]]에 투입되어 운행을 시작하였다.
* [[2012년]] - [[가천의과대학교]]와 [[경원대학교]]가 [[가천대학교]]로 통합되었다.
* [[2013년]] -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개막.(~ [[3월 19일]])
* [[2014년]] - [[미국]] [[로스엔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거행된 제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노예 12년]]"이 3관왕을 달성하였다.
* [[2020년]] - [[경강선]]의 [[남강릉신호장]]과 [[영동선]]의 [[안인역]]을 잇는 [[강릉삼각선]]이 개통되었다.
== 탄생 ==
* [[1459년]] - 제218대 로마의 교황 [[교황 하드리아노 6세]]. (~[[1523년]])
* [[1622년]] - 조선 중기의 실학자, 작가 [[유형원]]. (~[[1673년]])
* [[1793년]] - 미국의 정치인이자 군인, 텍사스 독립전쟁의 영웅 [[샘 휴스턴]]. (~[[1863년]])
* [[1810년]] - 제256대 로마의 교황 [[교황 레오 13세]]. (~[[1903년]])
* [[1820년]] - 네덜란드의 작가 [[물타툴리]]. (~[[1887년]])
* [[1824년]] - 체코의 작곡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1884년]])
* [[1832년]] - 일본의 군인 겸 귀족 정치가 [[나카야마 다다요시]].
* [[1851년]] - 독일의 법학자 [[프란츠 폰 리스트]]. (~[[1919년]])
* [[1876년]] - 제260대 로마의 교황 [[교황 비오 12세]]. (~[[1958년]])
* [[1880년]] - 일본의 군인 [[요나이 미쓰마사]]. (~[[1948년]])
* [[1894년]] - 러시아의 생물학자, 생화학자 [[알렉산드르 오파린]]. (~[[1980년]])
* [[1900년]] - 독일의 작곡가 커트 웨일. (~[[1950년]])
* [[1904년]] - 미국의 작가이자 만화가 [[닥터 수스]]. (~[[1991년]])
* [[1917년]] - 수단의 정치인 [[바비케르 아와달라]]. (~[[2019년]])
* [[1919년]] - 미국의 배우 [[제니퍼 존스]]. (~[[2009년]])
* [[1930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인 겸 정치가 [[김두남 (1930년)|김두남]] (~[[2009년]])
** 미국의 배우 [[존 컬럼]].
* [[1931년]] - 소비에트 연방의 마지막 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 (~[[2022년]])
* [[193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윤환 (1932년)|김윤환]]. (~[[2003년]])
* [[1939년]]
** 대한민국의 연출가 [[전세권 (연출가)|전세권]]. (~[[2024년]])
** 일본의 황족 [[시마즈 다카코]].
* [[1943년]] - 미국의 소설가, 시인 [[피터 스트라우브]].
* [[1944년]]
** 대한민국의 성우 [[이선영]].
** 핀란드의 지휘자, 작곡가 [[레이프 세게르스탐]]. (~[[2024년]])
* [[1945년]] - 이란의 배우 [[파르바네 마수미]]. (~[[2023년]])
* [[194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용덕 (1946년)|김용덕]].
* [[1947년]] - 러시아의 수학자 [[유리 마티야세비치]].
* [[1950년]] - 대한민국의 공무원 [[이만기 (1950년)|이만기]].
* [[1951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송지헌 (방송인)|송지헌]].
** 대한민국의 정치인 [[안홍준]].
* [[1952년]] - 러시아의 정치인 [[세르게이 스테파신]].
* [[1953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구자열]].
* [[195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송민형]]. (~[[2024년]])
* [[1957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배일호]].
* [[1962년]]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음악가, 배우 [[존 본 조비]].
* [[1963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박학기]].
** 대한민국의 배우 [[류용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진성 (배우)|박진성]].
** 대한민국의 배우 [[김명국 (배우)|김명국]].
** 대한민국의 교육강사 출신 정치인 [[김학동]].
* [[196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백운규]].
* [[1965년]] - 대한민국의 가수 [[정원관]].
* [[1967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영욱 (정치인)|김영욱]].
* [[1968년]]
** 영국의 배우 출신 영화 제작자 [[대니얼 크레이그]].
** 대한민국의 배우 [[조덕제 (배우)|조덕제]].
* [[197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최철호]].
* [[1971년]]
** 대한민국의 배우 [[고현정]].
** 체코의 아이스하키 선수 [[로만 체흐마네크]]. (~[[2023년]])
* [[1972년]] -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 [[1974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전 축구 선수 [[야스민 무이자]].
* [[197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선균]]. (~[[2023년]])
** 대한민국의 만화가 [[김나경 (만화가)|김나경]].
* [[1977년]]
** 영국의 음악가 [[크리스 마틴]] ([[콜드플레이]]).
** 대한민국의 전 래퍼, 방송인 [[김구 (방송인)|김구]] ([[코요태]]).
* [[1978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지형 (가수)|이지형]].
* [[1979년]]
** 아일랜드의 축구 선수 [[데미언 더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정민 (1979년)|이정민]].
* [[1980년]] - 오스트레일리아의 배우 [[리벨 윌슨]].
* [[1981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곽현화]].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손지화]].
** 미국의 배우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 [[1982년]]
** 대한민국의 만화가 [[이종범 (만화가)|이종범]].
** 대한민국의 배우 [[박성현 (배우)|박성현]].
* [[1983년]]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배우 [[이하늬]].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이세돌]].
* [[198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전태수]]. (~[[2018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축구 선수 [[정대세]].
** 대한민국의 배우 [[성혁]].
** 미국의 성우 [[이언 싱클레어]].
** 대한민국의 가수 [[최정철]].
** 대한민국의 연주자 [[최광문]].
* [[1985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정찬민 (희극인)|정찬민]].
* [[1986년]] - 대한민국의 웹디자이너 박혜림.
* [[1988년]]
**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제임스 아서]].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흑운장]].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및 기자 [[유정원]].
* [[1989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홍효의]].
** 벨기에의 축구 선수 [[토비 알데르베이럴트]].
* [[1990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이홍기]] ([[FT아일랜드]]).
** 대한민국의 희극인 [[이한별]].
* [[1991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민수 (1991년)|김민수]].
* [[1992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태훈 (1992년생 야구 선수)|김태훈]].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진영 (축구 선수)|김진영]].
* [[1993년]]
** 대한민국의 전 가수 [[상도 (가수)|상도]].
** 대한민국의 가수, 유튜버 [[유정호 (유튜버)|유정호]].
* [[199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서은수]].
** 대한민국의 배우 [[최효은]].
**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 [[안창림]].
* [[1995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주영 (1995년)|김주영]].
* [[1996년]]
** 중국의 가수 [[용국]] ([[JBJ]]).
** 대한민국의 배우, 모델 [[김영대 (배우)|김영대]].
* [[1997년]] - 미국의 가수, 작곡가, 배우 [[베키 G]].
* [[1998년]] -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쏘대장]].
* [[199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최원희]].
* [[2001년]] - 캐나다의 배우 [[지워니 가브리엘]].
* [[2002년]]
** 미국의 가수 [[베비스 소르비앙]].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지훈 (2002년)|이지훈]].
** 대한민국의 가수 [[신지윤]].
* [[2003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준영 (2003년)|박준영]].
** 대한민국의 가수 [[김다연]].
* [[2005년]] - 대한민국의 가수 유니.
* [[2007년]] - 대한민국의 배우 [[엄채영]].
* [[2009년]] - 일본의 바둑 기사 [[나카무라 스미레]].
* [[2016년]] - 스웨덴의 왕태자 [[스코네 공작 오스카르 왕자]].
=== 미상 ===
*대한민국의 가수 [[제이프]].
== 가상인물 ==
* [[Fate/Zero]] - 마토우 사쿠라
* [[임슬기(인생존망)]] - 인생존망에 나오는 사람
== 사망 ==
* [[274년]] - 페르시아의 예언자로 마니교의 창시자 [[마니 (예언자)|마니]]. ([[216년]]~)
* [[1009년]] - 고려의 제7대 국왕 [[목종 (고려)|목종]]. ([[980년]]~)
* [[1589년]] - 이탈리아의 추기경이자 외교관 [[알레산드로 파르네세 (추기경)|알레산드로 파르네세]]. ([[1520년]]~)
* [[1619년]] - 잉글랜드의 왕 [[덴마크의 앤]]. ([[1574년]]~)
* [[1791년]] - 신학자, 저술가, 영국 성공회 사제 [[존 웨슬리]]. ([[1703년]]~)
* [[1855년]] - 러시아의 제국의 황제 [[니콜라이 1세]]. ([[1796년]]~)
* [[1982년]] - 미국의 작가 [[필립 K. 딕]]. ([[1928년]]~)
* [[1991년]] - 프랑스의 가수 [[세르주 갱스부르]]. ([[1928년]]~)
* [[1999년]] - 영국의 가수 [[더스티 스프링필드]]. ([[1939년]]~)
* [[2011년]] - 파키스탄의 정치인 [[샤바즈 바티]]. ([[1968년]]~)
* [[2017년]] - 대한민국의 배우 [[민욱 (배우)|민욱]]. ([[1947년]]~)
* [[2018년]]
** 미국의 게이 포르노 배우 [[빌리 헤링턴]]. ([[1969년]]~)
** 미국의 산업디자이너 겸 작가 [[제임스 T. 볼드윈]] ([[1933년]]~)
* [[2020년]]
** 미국의 영화배우 [[제임스 립턴]]. ([[1926년]]~)
** 이란의 정치인 [[모함마드 미르모함마디]]. ([[1948년]]~)
* [[2021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김태영 (소설가)|김태영]]. ([[1933년]]~)
** 자메이카의 음악가 [[버니 웨일러]]. ([[1947년]]~)
* [[2022년]]
** 미국의 영화 감독, 영화 제작자 [[앨런 래드 주니어]]. ([[1937년]]~)
** 미국의 영화배우 [[자니 브라운]]. ([[1937년]]~)
** 러시아의 장군 [[안드레이 수호베츠키]]. ([[1974년]]~)
* [[2023년]] - 미국의 작곡가 [[웨인 쇼터]]. ([[1933년]]~)
* [[2024년]]
** 미국의 블루스 음악가 [[W. C. 클라크]]. ([[1939년]]~)
** 대한민국의 성악가 [[나영수]]. ([[1938년]]~)
** 필리핀의 영화배우 [[재클린 호세]]. ([[1963년]]~)
** 대한민국의 공무원 [[황영하]]. ([[1939년]]~)
== 기념일 ==
* 일본 오바마([[:en:Obama, Fukui|Obama, Japan]])의 오미주-오쿠리(Omizu-okuri, 물나르기) 축제
* [[미얀마]] 농민의 날
* [[텍사스 독립기념일]](Texas Independence Day): [[미국]] [[텍사스주]]의 기념일
* 리드 어크로스 아메리카 데이(Read Across America Day): 미국 어린이들에게 독서를 권장하는 전국 규모의 행사
* [[에티오피아]] 아드와 전승 기념일(Victory at Adwa Day)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식수절]]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3월 1일]] 다음날: [[3월 3일]] - 전달: [[2월 2일]] 다음달: [[4월 2일]]
* 음력: [[음력 3월 2일|3월 2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3월 2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8월 14일'''은 [[그레고리력]]으로 226번째([[윤년]]일 경우 227번째) 날에 해당한다.
{{8월달력}}
{{특정날짜요일|8|14}}
== 사건 ==
* [[1592년]] - 한산도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르다.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 하나인 [[한산도대첩]]으로 기록되다.
* [[1945년]] -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 일본의 무조건 항복 수락.
* [[1945년]] - [[중화민국]]과 [[소련]], 중소우호동맹조약 체결.
* [[1947년]] - [[파키스탄]], [[인도]]로부터 분리 독립.
* [[1960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 주석, 남북연방제 제의.
* [[1965년]] - [[대한민국 국회]], 한일협정 비준 동의안 야당 불참 속 가결.
* [[1980년]] -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김대중 등 재야인사 24명의 내란음모혐의에 대한 첫 재판 열림.
* [[2000년]] -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 4년 만에 재가동.
* [[2002년]] -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7차 남북장관급회담 합의안 공동보도문 발표.
* [[2003년]] - [[서울지방법원]], [[수지 김 사건]] 유족에 42억 국가 배상 판결.
* [[2005년]] - [[헬리오스 항공 522편 추락 사고]]: 헬리오스 에어웨이 [[보잉 737]] [[여객기]]가 [[그리스]]의 [[:마라톤 (그리스)|마라톤]]과 [[:en:Varnavas|바나바스]] 북쪽 산에 추락, 승무원과 탑승객 121명이 사망하다.
* [[2009년]] - [[삼성 특검]] :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배정 사건]]으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과 임원들에 대한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이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천100억원을 선고했다. [[이학수 (1946년)|이학수]] 전 부회장은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5년, 김인주 전 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 문화 ==
* [[1920년]] - [[1920년 하계 올림픽|제7회 벨기에 앤트워프 올림픽]] 개막.
* [[1988년]] - 프로 권투 선수 [[문성길]], [[세계 복싱 협회|세계 권투 협회]](WBA) 밴텀급 챔피언 타이틀 획득.
* [[2000년]] - [[경의선]] [[탄현역]] 개통.
* [[2010년]] -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경기에서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선수가 2회초 1사 주자 1,2루 상황에서 [[김희걸]] ([[KIA 타이거즈]])투수에게 2구째 공을 받아 치면서 3점 홈런을 작성하면서 최다경기 연속 홈런 세계 신기록(9경기)을 작성하였다.
* [[2012년]] - [[포항야구장]] 개장.
* [[2014년]] - [[교황 프란치스코|프란치스코 교황]]이 오전 10시 16분(한국 표준시) [[대한민국]] [[서울공항]]에 도착하여 4박 5일간의 한국 사목방문 일정을 시작하다.
* [[2015년]] - [[대한민국]]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아 임시 공휴일로 지정.
== 탄생 ==
* [[1297년]] - 제95대 일본의 천황 [[하나조노 천황]]. (~[[1348년]])
* [[1740년]] - 이탈리아의 251대 로마 교황 [[교황 비오 7세]]. (~[[1823년]])
* [[1871년]] - 중국의 제11대 황제 [[광서제]](光緖帝). (~[[1908년]])
* [[1903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김책]]. (~[[1951년]])
* [[1911년]] - 대한민국의 외과 의사 [[장기려]]. (~[[1995년]])
* [[1921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형우]]. (~[[2016년]])
* [[1926년]] - 미국의 유머 작가 [[르네 고시니]]. (~[[1977년]])
* [[1931년]] - 대한민국의 전통 무용가 [[공옥진]]. (~[[2012년]])
* [[1941년]] - 미국의 가수 [[데이비드 크로스비]]. (~[[2023년]])
* [[1943년]] - 러시아의 법조인 [[뱌체슬라프 레베데프]]. (~[[2024년]])
* [[1945년]] - 독일의 영화 감독 [[빔 벤더스]].
* [[1947년]] - 미국의 소설가 [[대니엘 스틸]].
* [[1950년]] - 아일랜드의 기업인 [[더멋 데즈먼드]].
* [[1957년]] - 대한민국의 행정관료 출신 정치인 [[정일영 (1957년)|정일영]].
* [[1959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유라 (배우)|김유라]].
** 미국의 수학자 [[피터 쇼어]].
** 미국의 프로 농구 선수 [[매직 존슨]].
* [[196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송옥숙]].
**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배우 [[사라 브라이트만]].
* [[1963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장훈]].
** 대한민국의 노동 출신 정치인 [[윤종오]].
** 프랑스의 배우 [[에마뉘엘 베아르]].
* [[196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박수현 (1964년)|박수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학재 (정치인)|이학재]].
** 대한민국의 기업인 [[변창흠]].
** 대한민국의 배우 [[한성식]].
* [[1965년]]
**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오카무라 야스유키]].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 [[1966년]]
** 일본의 배우 [[스즈키 호나미]].
** 미국의 배우 [[할리 베리]].
* [[1967년]] - 이집트의 축구 선수 [[에하브 갈랄]]. (~[[2024년]])
* [[1968년]] - 미국의 배우 [[캐서린 벨]].
* [[1969년]] - 덴마크의 전 축구 선수[[스티 퇴프팅]].
* [[1970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마해영]].
* [[1971년]] - 핀란드의 배우, 작가, 영화 감독 [[페테르 프란센]].
* [[1972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사회자, 희극인 [[유재석]].
** 일본의 성우 [[혼다 타카코]].
* [[1973년]]
** 멕시코의 전 축구 선수 [[하레드 보르헤티]].
** 나이지리아의 전 축구 선수 [[제이제이 오코차]].
* [[1974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 연출가 겸 제작자 [[왕용범]].
* [[1976년]] - 대한민국의 성우 [[장은숙 (성우)|장은숙]].
* [[197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동규 (배우)|이동규]].
* [[1979년]]
** 대한민국의 앵커, 방송기자 [[김현우 (기자)|김현우]].
** 일본의 가수 [[다니 루미코]].
* [[1981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기남 (야구인)|박기남]].
** 페루의 댄서, 배우, 싱어송라이터 [[아나 카리나 (가수)|아나 카리나]].
* [[198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숙희 (가수)|숙희]].
* [[1983년]]
** 미국의 배우 [[밀라 쿠니스]].
** 타이완의 테니스 선수 [[루옌쉰]].
* [[1984년]]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조르조 키엘리니]].
** 대한민국의 전 아이스하키 선수 [[이규선 (아이스하키 선수)|이규선]].
* [[1985년]]
** 대한민국의 전 아나운서 [[김민지 (아나운서)|김민지]].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정지원 (레이싱 모델)|정지원]].
* [[198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용만 (정치인)|김용만]].
** 대한민국의 가수 병옥. (니즈)
* [[1987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박연경]].
** 대한민국의 배우 [[한지완]].
* [[1988년]]
** 미국의 인권운동가 [[케일라 뮬러]]. (~[[2015년]])
** 세르비아의 축구 선수 [[류보미르 페이사]].
** 노르웨이의 축구 선수 [[엘리세 토르스네스]].
* [[1989년]] - 스페인의 축구 선수 [[안데르 에레라]].
* [[1991년]]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와꾸대장봉준]].
* [[1992년]]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정윤종]].
* [[1993년]]
** 대한민국의 가수 [[공찬]] ([[B1A4]]).
**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보물섬 (유튜버)|강민석]].
** 대한민국의 배우 [[최연청]].
** 대한민국의 가수 [[이솔로몬]].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루카 비탄테]].
* [[1995년]] - 대한민국의 가수 헤니.
* [[1996년]] - 미국의 배우 [[브리애나 힐더브랜드]].
* [[1998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정연제]].
* [[1999년]]
** 대한민국의 작곡가 박혜원.
** 스페인의 축구 선수 [[프란 가르시아]].
** 미국의 배우 [[개릿 라이언]].
* [[2001년]] - 대한민국의 래퍼 [[로이다보이]].
* [[2002년]]
** 미국의 가수 [[휴닝카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 대한민국의 전직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 [[장건 (프로게이머)|장건]].
* [[2003년]] - 대한민국의 가수 [[소희 (2003년)|소희]].
* [[2004년]] - 대한민국의 가수 사랑.
* [[2006년]] - 대한민국의 아역배우 [[갈소원]].
* [[2007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동국]]의 딸 이재시, 이재아.
* [[2011년]] - 대한민국의 유튜버 [[최나린]]. (토깽이네)
== 사망 ==
* [[1204년]] - 가마쿠라 막부의 제2대 쇼군(將軍) [[미나모토노 요리이에]]. ([[1182년]]~)
* [[1858년]] - 일본 에도 막부의 1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 ([[1824년]]~)
* [[1941년]] - 폴란드의 사제, 순교자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1894년]]~)
* [[1956년]] -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1898년]]~)
* [[1981년]] - 오스트리아의 지휘자 [[카를 뵘]]. ([[1894년]]~)
* [[198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박종진 (1920년)|박종진]]. ([[1920년]]~)
* [[1988년]] - 이탈리아의 페라리 창립자 [[엔초 페라리]]. ([[1898년]]~)
* [[1989년]] - 대한민국의 역사학자 [[이병도]]. ([[1896년]]~)
* [[2000년]] - 대한민국의 서예가 [[김기승]]. ([[1909년]]~)
* [[2015년]] -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이맹희]]. ([[1931년]]~)
* [[2016년]] - 일본의 야구 선수, 야구 지도자 [[도요다 야스미쓰]]. ([[1935년]]~)
* [[2018년]] - 러시아의 아동문학가 [[예두아르트 우스펜스키]]. ([[1937년]]~)
* [[2020년]] - 잉글랜드의 류트니스트 [[줄리언 브림]]. ([[1933년]]~)
* [[2021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조성태 (정치인)|조성태]]. ([[1942년]]~)
* [[2021년]] - 일본의 기업인 [[메리 키타가와]]. ([[1926년]]~)
* [[2021년]] - 러시아의 바이올리니스트 [[이고리 오이스트라흐]]. ([[1931년]]~)
* [[2024년]]
** 미국의 배우 [[제나 롤런즈]]. ([[1930년]]~)
** 대한민국의 공직자 [[안응모]]. ([[1930년]]~)
** 독일의 물리학자 [[헤르만 하켄]]. ([[1927년]]~)
== 기념일 ==
* [[세계 위안부 기림일|세계 위안부의 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대한민국]]
* [[독립기념일]]: [[파키스탄]]
== 같이 보기 ==
* 전날: [[8월 13일]] 다음날: [[8월 15일]] - 전달: [[7월 14일]] 다음달: [[9월 14일]]
* 음력: [[음력 8월 14일|8월 14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8월 14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31일'''은 [[그레고리력]]으로 31번째([[윤년]]일 경우도 31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31}}
== 사건 ==
* [[314년]] - [[교황 실베스테르 1세]]가 [[교황 멜키아데]]를 계승하다.
* [[1504년]] - 프랑스가 [[나폴리]]를 [[아라곤 왕국]]에 할양하다.
* [[1578년]] - [[:en:Battle of Gembloux (1578)|젬블루 전투]]가 발발하다.
* [[1606년]] - [[화약음모사건]]의 주모자 [[가이 포크스]]가 [[제임스 1세]]와 [[영국 의회]]에 대한 반역혐의로 처형되다.
* [[1747년]] - [[:en:London Lock Hospital|런던의 록병원]]에서 세계 최초로 [[성병]](venereal diseases)진료가 시작되다.
* [[1801년]] - [[존 마셜]]이 [[미국 대법원장|연방 대법원장]]에 임명되다.
* [[1812년]] - [[조선]] [[평안도]] [[가산군]]에서 [[홍경래의 난]] 발발. (음력으로는 [[1811년]])
* [[1951년]] - [[북조선]]의 부수상 겸 [[산업상]] 군사위원회 위원 겸 전선사령관 [[김책]]이 사령부 막사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하였다.
* [[1952년]] - [[일본]], 경찰예비대를 [[자위대]]로 개편. 일본 재무장 시작.
* [[1955년]] - 중국 국무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의 연구를 위해 중국을 원조하는 소련의 제안에 관한 결의> 채택
* [[1961년]] - [[장면]] 대한민국 국무총리가 [[민주당 (대한민국, 1955년)|민주당]] 탈당을 하고 [[무소속]] 전향.
* [[1968년]] - [[나우루]] 독립.
* [[1969년]] - [[천안 열차 추돌 사고]]
* [[1972년]] - [[정병섭 자살 사건]]
* [[2003년]] -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18명이 사망하다. 이 중 다수가 미국인이었다.
* [[2006년]] - [[경기도]] [[용인시]] 등지에서 초등생 12명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있는 일명 용인 발바리 이득재(당시 38세)를 검거하였다.
* [[2007년]] -
** [[쿠바]]에서 카스트로의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요코 이야기]]》 수업이 마침내 중단되었다.
* [[2009년]] - 케냐 서부에서 주민들이 [[유조차]]에서 흘러나온 기름을 주워담던 중 화재가 발생, 최소 111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화상을 입었다.
* [[2014년]] - [[전라남도]] [[여수시]] 낙포동 낙포각 원유2부두에서 기름 600여톤이 유출되어 근해가 오염되었다.
* [[2020년]] - [[영국]]이 [[유럽 연합]]을 [[브렉시트|탈퇴하였다.]]
== 문화 ==
* [[1996년]] -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 [[2011년]] - [[순천완주고속도로]]의 [[순천 분기점|순천]] ~ [[서남원 나들목|서남원]] 구간 개통.
* [[2017년]] - 그룹 [[아이오아이]]가 공식해체되었다.
== 탄생 ==
* [[877년]] - 고려의 제1대 국왕 [[태조 (고려)|태조]]. (~[[943년]])
* [[1530년]] - 일본 센고쿠 시대의 장수 [[오토모 소린]]. (~[[1587년]])
* [[1543년]] - 일본 에도 막부의 제1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 (~[[1616년]])
* [[1751년]] - 프랑스의 화가이자 장군 [[장 프랑수아 카르토]]. (~[[1813년]])
* [[1797년]] -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 (~[[1828년]])
* [[1900년]] - 미국의 미술가 [[베티 파슨스]]. (~[[1982년]])
* [[1902년]] - 스웨덴의 정치인 [[알바 뮈르달]]. (~[[1986년]])
* [[1919년]] - 미국의 야구 선수 [[재키 로빈슨]]. (~[[1972년]])
* [[1921년]] - 미국의 배우, 희극인, 가수, 댄서 [[캐럴 채닝]]. (~[[2019년]])
* [[1922년]] - 미국의 배우 [[조앤 드루]]. (~[[1996년]])
* [[1929년]] - 영국의 배우 [[진 시먼스 (배우)|진 시먼스]]. (~[[2010년]])
* [[1935년]] - 일본의 작가 [[오에 겐자부로]]. (~[[2023년]])
* [[1937년]] - 미국의 작곡가 [[필립 글래스]].
* [[1938년]] - 네덜란드의 여왕 [[베아트릭스 (네덜란드)|베아트릭스]].
* [[1939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국창근]].
* [[1940년]] - 미국의 영화배우 [[스튜어트 마골린]]. (~[[2022년]])
* [[1947년]] - 미국의 전 야구 선수 [[놀런 라이언]].
* [[1951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원세훈]].
* [[1955년]] - 대한민국의 시인, 소설가 [[장석주 (시인)|장석주]].
* [[1956년]] - 네덜란드의 프로그래머 [[귀도 반 로섬]].
* [[1961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영록 (배우)|박영록]].
* [[1963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공지영]].
** 대한민국의 살인자, 강간범죄자 [[이춘재]].
* [[1964년]]
** 일본의 정치인 [[마쓰이 이치로]].
** 미국의 록 밴드, 기타리스트 [[제프 한네만]]. (~[[2013년]])
** 일본의 배우 [[마야 미키]].
* [[1967년]] - 중화민국의 영화배우 [[왕쭈셴]].
* [[197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영애]].
* [[1974년]]
** 대한민국의 성우 [[전숙경]].
** 대한민국의 프로듀서 [[이윤정 (연출가)|이윤정]].
* [[1976년]] - 대한민국의 가수 [[추승엽]].
* [[1977년]]
** 일본의 가수 [[카토리 싱고]].
** 미국의 배우 [[케리 워싱턴]].
* [[1979년]]
** 독일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예니 볼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이지]].
** 대한민국의 가수, 싱어송라이터 [[정민아 (음악가)|정민아]].
** 영국의 작가 [[대니얼 태멋]].
* [[198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심이영]].
* [[1981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안소영]].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양기]].
** 재일한국인의 야구 선수 [[모리모토 히초리]].
** 미국의 가수 [[저스틴 팀버레이크]] ([[엔싱크]]).
** 일본의 만화가 [[마츠이 유세이]].
* [[1983년]]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파비오 콸리아렐라]].
* [[1984년]] - 대한민국의 골프 선수 [[전상우 (골프 선수)|전상우]].
* [[1985년]]
** 일본의 배우 [[나카호도 히토미]].
** 대한민국의 가수 [[박윤화]].
* [[1987년]]
** 대한민국의 가수 [[강유은]].
** 대한민국의 가수 [[황인선]].
** 대한민국의 전 배구 선수 이지혜.
** 알제리의 축구 선수 [[압델무멘 자부]].
* [[1988년]]
** 중화민국의 유도 선수 [[롄전링]].
** 독일의 축구 선수 [[시드니 샘]].
** 대한민국의 아프리카TV BJ, 유튜버 [[보겸]].
* [[1989년]]
**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금단비 (가수)|금단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조민경 (아나운서)|조민경]].
* [[1990년]]
** 일본의 가수 [[야부 코타]].
** 대한민국의 성우, 유튜버 [[김보민 (성우)|김보민]].
* [[1991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정종락]].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이슬기 (1991년 1월)|이슬기]].
* [[1992년]]
** 중국의 배우 [[저우둥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권경원]].
** 프랑스의 축구 선수 [[부나 사르]].
** 덴마크의 가수 [[크리스토퍼 (가수)|크리스토퍼]].
** 대한민국의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김동현 (1992년)|김동현]].
* [[1993년]] - 대한민국의 양궁 선수 [[구본찬]].
* [[1994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홍준기 (1994년)|홍준기]].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윤대영]].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윤형준]].
** 이더리움의 작가 [[비탈릭 부테린]].
** 대한민국의 배우, 모델 [[신지수 (미스코리아)|신지수]].
** 미국의 농구 선수 [[자밀 워니]].
* [[1995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명진 (1995년)|김명진]].
** 일본의 성우 [[쿠보타 미유]].
* [[1996년]] - 미국의 배우 [[조엘 코트니]].
* [[1997년]] - 대한민국의 가수 [[미연]] ([[(여자)아이들]]).
* [[1998년]] - 대한민국의 래퍼 [[우석 (가수)|우석]] ([[펜타곤 (음악 그룹)|펜타곤]]).
* [[1999년]]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로치 (프로게이머)|로치]].
* [[2000년]]
** 대한민국의 수영 선수 [[한다경]].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훌리안 알바레스 (축구 선수)|훌리안 알바레스]].
** 브라질의 유도 선수 [[윌리앙 리마]].
* [[2001년]] - 대한민국의 가수 [[진권]] ([[뉴키드]])
* [[2002년]] - 대한민국의 배우 [[홍예지 (배우)|홍예지]].
* [[2004년]]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제우스 (프로게이머)|제우스]].
* [[2006년]]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잔루카 프레스티아니]].
=== 미상 ===
*대한민국의 가수 [[Une]].
*대한민국의 가수 박선우.
== 사망 ==
* [[1606년]] - 화약음모사건의 주모자 [[가이 포크스]]. ([[1570년]]~)
* [[1840년]]
** 조선의 가톨릭 순교자 [[권진이]]. ([[1819년]]~)
** 조선의 가톨릭 순교자 [[박종원 (종교인)|박종원]]. ([[1793년]]~)
** 조선의 가톨릭 순교자 [[홍병주]]. ([[1798년]]~)
** 조선의 가톨릭 순교자 [[손소벽]]. ([[1801년]]~)
* [[1944년]] - 프랑스의 극작가, 소설가 [[장 지로두]]. ([[1882년]]~)
* [[1951년]] - 북조선의 군인 겸 정치인, 작곡가 [[김책]]. ([[1903년]]~)
* [[1956년]] - 영국의 소설가, 시인 [[A. A. 밀른]]. ([[1882년]]~)
* [[1981년]] - 스리랑카의 정치인 [[윌리엄 고팔라와]]. ([[1897년]]~)
* [[1987년]] - 대한민국의 군인 [[유원식 (군인)|유원식]]. ([[1914년]]~)
* [[1999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종길 (1921년)|김종길]]. ([[1921년]]~)
* [[2015년]]
** 일본의 언론인 [[고토 겐지]]. ([[1967년]]~)
** 독일의 제6대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1920년]]~)
* [[2016년]] - 대한민국의 공무원 출신 정치가 [[이계익]]. ([[1937년]]~)
* [[2017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강봉균 (정치인)|강봉균]]. ([[1943년]]~)
** 잉글랜드의 음악가 [[존 웨튼]]. ([[1949년]]~)
* [[2018년]] - 대한민국의 국악인 [[황병기]]. ([[1936년]]~)
* [[2019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김만제]]. ([[1934년]]~)
* [[2020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박연차]]. ([[1945년]]~)
* [[2021년]] - 베네수엘라의 정치인 [[더글라스 브라보]]. ([[1932년]]~)
* [[2022년]] - 미국의 영화배우 겸 마술사, 작가 [[칼턴 카펜터]]. ([[1926년]]~)
* [[2023년]]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김영희 (농구인)|김영희]]. ([[1963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김형기 (법조인)|김형기]]. ([[1929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공무원 [[이균범]]. ([[1934년]]~)
** 대한민국의 교수 [[최창조 (교수)|최창조]]. ([[1950년]]~)
== 기념일 ==
* [[:en:List of national independence days|독립기념일]]: [[나우루]]
* [[한국의 설날]] - [[1995년]], [[2014년]], [[2033년]], [[2071년]]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30일]] 다음날: [[2월 1일]] - 전달: [[12월 31일]] 다음달: [[2월 28일]]([[2월 29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31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30일'''은 [[그레고리력]]으로 30번째([[윤년]]일 경우도 30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30}}
== 사건 ==
* [[1018년]] - [[:en:Peace of Bautzen|바우첸 조약]] - [[하인리히 2세 (신성 로마 제국)|하인리히 2세]]의 [[폴란드]] 원정이 실패로 끝나고 [[:en:Bautzen|바우첸]]에서 폴란드와 신성 로마 제국 사이에 조약이 체결되다.
* [[1607년]] - [[브리스틀 해협]] 해안선을 따라 51,800 [[헥타르]]가 대규모 홍수로 파괴되고 2,000여 명이 사망하다.
* [[1648년]] - [[네덜란드 독립 전쟁]]: 스페인과 네덜란드 사이의 협정인 [[:en:Peace of Münster|뮌스터 조약]]이 조인되다. [[스페인 제국]]과 [[네덜란드 공화국]]간의 80년 전쟁이 끝나다.
* [[1902년]] - [[영일 동맹]], 런던에서 체결.
* [[1933년]] - [[아돌프 히틀러|히틀러]], [[독일]] 수상에 취임.
* [[1972년]] -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났다.
* [[1991년]] - [[김부남 사건]]이 발생했다.
* [[2004년]] - [[부천 초등학생 피살 사건]]이 발생했다.
* [[2009년]] - [[크립톤 퓨처 미디어]]에서 VOCALOID2를 채용한 [[메구리네 루카]]를 발표했다.
* [[2012년]] - [[MBC]] [[노동조합|노조]]가 총파업에 들어가다.
* [[2023년]] - [[대한민국]]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 권고로 조정되었다.
== 문화 ==
* [[1980년]] - [[부산대교]]가 완공되었다.
* [[1996년]] - [[일산선]] 개통.
* [[1999년]] - [[1999년 동계 아시안 게임|강원 동계 아시안 게임]] 개막. (~ [[2월 6일]])
* [[2000년]] - [[TV 아사히]]에서 [[가면라이더 시리즈]] 중 헤이세이 라이더 첫 번째 작품인 [[가면라이더 쿠우가]] 첫방영.
* [[2011년]] - [[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 개최.
* [[2012년]] - [[EXO]] 데뷔 프롤로그 싱글 "What Is Love" 공개.
* [[2013년]] - [[대한민국]]의 최초 우주 발사체 [[나로호]]가 3차 발사에 성공하였고,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확인하였다.
* [[2016년]] - [[신분당선]] 2단계 [[정자역]] ~ [[광교역]] 연장 구간이 개통되었다.
== 탄생 ==
* [[133년]] - 로마 제국의 제19대 황제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193년]])
* [[1841년]] - 프랑스 제3공화정 시대의 정치가 [[펠릭스 포르]]. (~[[1899년]])
* [[1882년]] -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945년]])
* [[1894년]] - 불가리아의 국왕 [[보리스 3세]]. (~[[1943년]])
* [[1920년]]
** 일본 최초의 여성 프로 만화가, 사자에상(サザエさん)의 작가 [[하세가와 마치코]]. (~[[1992년]])
** 미국의 영화 감독 [[델버트 맨]]. (~[[2007년]])
* [[1925년]] - 노르웨이계 미국인 과학자 [[더글러스 엥겔바트]]. (~[[2013년]])
* [[1929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이인희 (기업인)|이인희]]. (~[[2019년]])
* [[1930년]] - 미국의 전 배우 [[진 해크먼]].
* [[1937년]] - 영국의 배우 [[버네사 레드그레이브]].
* [[1938년]] - 대한민국의 언론인 [[류근일]].
* [[1941년]]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강문철]]. (~[[1997년]])
** 미국의 정치가 [[딕 체니]].
* [[194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노건평]].
* [[1946년]] - 미국의 소아마비 생존자, 변호사 [[폴 알렉산더]]. (~[[2024년]])
* [[1950년]] - 대한민국의 성우 [[조동희 (성우)|조동희]].
* [[1951년]] -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드러머 [[필 콜린스]].
* [[1952년]] - 미국의 발명가 [[더그 엥겔바트]]. (~[[2013년]])
* [[1954년]] - 대한민국의 가수 [[유현상]] ([[백두산]]).
* [[1958년]] - 일본의 가수 [[이시카와 사유리 (1958년)|이시카와 사유리]].
* [[1962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전인석]].
** 요르단의 현 국왕 [[압둘라 2세]].
* [[196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오영실]].
* [[1968년]] - 스페인의 현 국왕 [[펠리페 6세]].
* [[1970년]]
** 대한민국의 성우 [[정남 (성우)|정남]].
**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최현주 (1970년)|최현주]].
** 대한민국의 배우 [[김일권 (배우)|김일권]].
* [[197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서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홍집 (1971년생 야구인)|김홍집]].
* [[1973년]] - 대한민국의 전 배우, 방송인 [[박근혜 (방송인)|박근혜]].
* [[1974년]]
** 영국의 배우 [[올리비아 콜먼]].
** 영국의 배우 [[크리스찬 베일]].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한준호]].
* [[1975년]]
** 브라질의 축구 선수 [[주니뉴 페르남부카누]].
** 대한민국의 배우 [[오만석 (1974년)|오만석]].
* [[1977년]] - 대한민국의 기타연주가 김주엽.
* [[1978년]] - 스웨덴의 가수 [[다니엘 린드스트룀]].
* [[1979년]]
** 대한민국의 전 배우, 미스코리아 [[한나나]].
** 대한민국의 성우 [[안소이]].
** 대한민구의 예술가, 교수 [[팝핀현준]].
* [[1980년]] - 미국의 가수, 배우 [[리나 홀]].
* [[1981년]]
** 대한민국의 성우 [[오병조]].
** 일본의 성우 [[히구치 치에코]].
** 도미니카 공화국의 야구 선수 [[호세 카페얀]]. (~[[2015년]])
** 불가리아의 전 축구 선수 [[디미터르 베르바토프]].
** 이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 [[피터 크라우치]].
* [[1982년]]
** 브라질의 축구 선수 [[나드송 호드리게스 지 소자]].
** 일본의 배우 [[토쿠야마 히데노리]].
* [[1983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재인 (1983년)|김재인]].
** 대한민국의 성우 [[문지영 (성우)|문지영]].
* [[1984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우시흥]].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주형욱]].
* [[1985년]]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박샤론]].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최유정 (레이싱 모델)|최유정]].
* [[1986년]]
** 일본의 성우 [[시모다 아사미]].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루카스 비글리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원준 (배우)|김원준]].
* [[1987년]] - 튀르키예의 축구 선수 [[아르다 투란]].
* [[1988년]] - 대한민국의 가수, 모델 [[다희 (모델)|다희]].
* [[1989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백성현]].
** 대한민국의 배우 [[강한나]].
** 대한민국의 가수 [[니아 (가수)|니아]] ([[마이네임 (음악 그룹)|마이네임]]).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원훈]].
** 미국의 배우 [[카일리 번버리]].
* [[199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솜]].
* [[1991년]]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김정우 (프로게이머)|김정우]].
** 대한민국의 방송인 [[변서은]].
** 중화인민공화국의 배우 [[장위시]].
* [[1992년]]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배우 [[유예빈]].
* [[1993년]] - 대한민국의 가수 정훈.
* [[1994년]] - 대한민국의 가수 소담.
* [[1995년]]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나현 (바둑 기사)|나현]].
* [[1996년]] - 파나마의 축구 선수 [[아리엘 후라도]].
* [[1997년]]
**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 [[심석희]].
** 대한민국의 가수 [[새봄 (가수)|새봄]] ([[네이처 (음악 그룹)|네이처]]).
* [[1998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주성 (야구 선수)|김주성]].
** 대한민국의 배우 [[박나예]].
** 대한민국의 가수 [[이시온 (가수)|이시온]].
** 브라질의 양궁 선수 [[마르쿠스 비니시우스 다우메이다]].
* [[1999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장환.
* [[2000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최인호 (야구 선수)|최인호]].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오영수 (야구 선수)|오영수]].
** 말레이시아의 배드민턴 선수 [[고진웨이]].
* [[2001년]]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유칼]].
** 대한민국의 가수, 기타리스트 [[냥뇽녕냥]]. ([[QWER]])
* [[200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유키.
** 대한민국의 배우 [[최현욱]].
* [[2004년]] - 대한민국의 가수 젬마.
== 사망 ==
* [[1601년]] - 조선 중기의 무신 [[이일]]. ([[1538년]]~)
* [[1649년]] - 영국의 국왕 [[찰스 1세]]. ([[1600년]]~)
* [[1714년]] - 조선 중기의 학자, 사상가 [[윤증]]. ([[1629년]]~)
* [[1840년]] - 조선의 가톨릭 순교자 [[민극가]]. ([[1788년]]~)
* [[1948년]]
** 인도의 독립운동가 [[마하트마 간디|모하트마 간디]]. ([[1869년]]~)
** 미국의 비행기 제작가 오빌 라이트. ([[1871년]]~)
* [[1970년]] - 독일의 군인 [[프리츠 바이에를라인]]. ([[1899년]]~)
* [[1991년]] - 미국의 물리학자 [[존 바딘]]. ([[1908년]]~)
* [[2006년]] - 미국의 인권 운동가 [[코레타 스콧 킹]]. ([[1927년]]~)
* [[200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강근호 (정치인)|강근호]]. ([[1934년]]~)
* [[2010년]] - 대한민국의 만화가 [[길창덕]]. ([[1930년]]~)
* [[2013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김지원 (소설가)|김지원]]. ([[1942년]]~)
* [[2018년]] - 미국의 배우 [[마크 샐링]]. ([[1982년]]~)
* [[2019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이인희 (기업인)|이인희]]. ([[1929년]]~)
* [[2021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정상영]]. ([[1936년]]~)
** 스코틀랜드의 음악가 [[소피 (음악가)|소피]]. ([[1986년]]~)
* [[2022년]]
** 미국의 영화배우, 무술가 [[로버트 월 (1939년)|로버트 월]]. ([[1939년]]~)
** 소련의 영화배우 [[레오니트 쿠라블료프]]. ([[1936년]]~)
* [[2024년]] - 미국의 영화배우 [[치타 리베라]]. ([[1933년]]~)
== 기념일 ==
* [[:en:Saudade|진한 그리움(향수)의 날]]: [[브라질]]
* [[한국의 설날]] - [[2090년]]
== 같이 보기 ==
* 전날: [[1월 29일]] 다음날: [[1월 31일]] - 전달: [[12월 30일]] 다음달: [[2월 28일]]([[2월 29일]])
* 음력: [[음력 1월 30일|1월 30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30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29일'''은 [[그레고리력]]으로 29번째([[윤년]]일 경우도 29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29}}
== 사건 ==
* [[661년]] -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알리]]의 죽음으로 [[정통 칼리파조|정통 칼리파 시대]]가 끝나다.
* [[757년]] - 연(燕)의 황제 [[안녹산]]이 아들 안경서(安慶緒)의 손에 죽다.
* [[1802년]] - [[존 버클리]]가 [[미국 의회도서관]] 최초로 사서 고용.
* [[1819년]] -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 경, [[싱가포르]] 상륙.
* [[1861년]] - [[캔자스주]]가 미국의 34번째 주가 되었다.
* [[1955년]] - 미국 의회, 대만방위결의안 통과; 대통령에게 무력사용권한 부여.
* [[1955년]] - [[단성사 앞 저격 사건]]이 일어나다.
* [[1968년]] - [[베트콩]]이 [[남베트남]]을 상대로 [[구정 공세]]를 시작하다.
* [[2002년]] - 미국의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크]]·[[이란]]을 '[[악의 축]]'으로 언급.
* [[2008년]] - 소행성 [[2007 TU24]]가 지구와 약 55만km 정도로 근접하다.
== 문화 ==
* [[1944년]] - [[USS 미주리 (BB-63)]]의 진수식이 거행되다.
* [[1966년]] -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 (뉴질랜드)|오클랜드 공항]] 개항.
* [[2011년]] - [[2011년 AFC 아시안컵]] 3·4위전이 열리다.
* [[2017년]] - 걸그룹 [[아이오아이]]가 데뷔 1년만에 전격 해체하였다.
== 탄생 ==
* [[919년]] - 요나라의 제3대 황제 [[요 세종]]. (~[[951년]])
* [[1396년]] - 조선의 왕족 [[효령대군]]. (~[[1486년]])
* [[1688년]] - 스웨덴의 신학자, 과학자 [[에마누엘 스베덴보리]]. (~[[1772년]])
* [[1737년]] -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페인]]. (~[[1809년]])
* [[1749년]] - 덴마크의 국왕 [[크리스티안 7세]]. (~[[1808년]])
* [[1843년]] - 미국의 제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 (~[[1901년]])
* [[1860년]] - 러시아의 극작가 [[안톤 체호프]]. (~[[1904년]])
* [[1881년]] - 대한제국의 독립운동가 [[김규식]]. (~[[1950년]])
* [[1883년]] - 북아일랜드의 축구 선수 [[빌리 맥크라켄]].
* [[1884년]] - 스웨덴의 정치인이자 총리 [[리카르드 산들레르]]. (~[[1964년]])
* [[1892년]] - 미국의 배우, 영화감독 [[에른스트 루비치]]. (~[[1947년]])
* [[1902년]] - 마카오의 정치가 겸 외교관 [[루주즈]]. (~[[2008년]])
* [[190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윤제술]]. (~[[1986년]])
* [[1919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박동균 (1919년)|박동균]].
** 한국계 미국의 군인이자 전쟁 영웅, 대령 [[김영옥 (군인)|김영옥]]. (~[[2005년]])
* [[1923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안상민. (~[[2015년]])
* [[1926년]] - 파키스탄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압두스 살람]]. (~[[1996년]])
* [[1927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백설희]]. (~[[2010년]])
* [[1930년]]
** 대한민국의 시인, 문학평론가 [[천상병]]. (~[[1993년]])
** 일본의 성악가, 기업인 [[오가 노리오]]. (~[[2011년]])
* [[1940년]]
** 미국의 배우 [[캐서린 로스]].
** 미국의 희극인 [[하워드 헤스먼]]. (~[[2022년]])
* [[1941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박영주 (기업인)|박영주]]. (~[[2023년]])
* [[1942년]]
**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한광옥]].
** 쿠바의 우주인 [[아르날도 타마요 멘데즈]].
* [[1945년]] - 말리의 제6대 대통령 [[이브라임 부바카르 케이타]]. (~[[2022년]])
* [[1947년]] - 미국의 생물학자 [[린다 B. 벅]].
* [[1948년]] - 일본의 우주인 [[모리 마모루]].
* [[1953년]] - 중화민국의 가수 [[등려군]]. (~[[1995년]])
* [[1954년]] - 미국의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 [[1959년]]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출신 가수 [[김성희 (1959년)|김성희]].
* [[1960년]] - 미국의 다이빙 선수 [[그레그 루가니스]].
* [[1962년]]
** 일본의 만화가 [[사다모토 요시유키]].
** 팔레스타인의 정치인 [[이스마일 하니예]]. (~[[2024년]])
** 폴란드의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
* [[196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조민수 (배우)|조민수]].
* [[1966년]] - 브라질의 축구 선수 [[호마리우]].
* [[1968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서라]].
** 대한민국의 성우 [[배정미]].
* [[1969년]] - 일본의 가수 [[하이도]].
* [[1970년]]
** 미국의 배우 [[헤더 그레이엄]].
** 미국의 정치인 [[폴 라이언]].
* [[1972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김종훈 (1972년)|김종훈]].
* [[197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양진영 (배우)|양진영]].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작원 [[원정화]].
** 일본의 성우 [[나카야마 사라]].
** 일본의 가수 [[와다 코지]]. (~[[2016년]])
* [[1975년]]
** 대한민국의 성우 [[이광수 (성우)|이광수]].
** 미국의 배우, 모델 [[켈리 팩카드]].
* [[1976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조지훈 (희극인)|조지훈]].
* [[1979년]] - 대한민국의 의사 조혜진.
* [[198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성용욱.
* [[1981년]] - 멕시코의 배우 [[테노치 우에르타]].
* [[1982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동진 (1982년)|김동진]].
** 일본의 여성 아나운서 [[스즈키 나오코]].
** 미국의 가수, 작곡가, 배우 [[애덤 램버트]].
* [[198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오태경 (배우)|오태경]].
* [[1985년]]
** 대한민국의 래퍼 [[더 콰이엇]]
** 대한민국의 전도사 공윤성.
** 대한민국의 역도 선수 [[사재혁]].
** 오스트레일리아의 배우 [[이저벨 루커스]].
* [[198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안세하]].
** 일본의 배우 [[야스다 소타로]].
** 미국의 배우 [[드루 타일러 벨]].
* [[1987년]]
** 대한민국의 배우 [[권소현 (배우)|권소현]].
** 미국의 야구 선수 [[호세 아브레유]].
* [[1988년]]
** 미국의 한국계 야구 선수 [[행크 콩거|최현]].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임진묵]].
* [[1989년]] - 프랑스의 배우 [[프랑수아 시빌]].
* [[1990년]]
** 폴란드의 축구 선수 [[그제고시 크리호비아크]].
** 노르웨이의 축구 선수 [[잉리 모에 볼]].
* [[1991년]]
** 대한민국의 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푸만두]].
** 대한민국의 전 배우 [[박훈정 (배우)|박훈정]].
* [[1992년]]
** 브라질의 축구 선수 [[펠리피뉴]].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황희두]].
* [[1993년]]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프랜 커비]].
** 조지아의 축구 선수 [[발레리 카자이슈빌리]].
** 일본의 가수 겸 패션모델 [[캬리 파뮤파뮤]].
* [[1994년]]
** 일본의 성우 [[사쿠라 아야네]].
** 대한민국의 태권도 선수 [[김소희 (태권도 선수)|김소희]].
* [[1995년]]
** 대한민국의 전직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카린 (프로게이머)|카린]].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원혁재]].
* [[1996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정수 (야구 선수)|박정수]].
* [[1997년]]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렘 (프로게이머)|렘]].
** 일본의 배우 [[히라노 쇼]].
* [[1998년]] - 일본의 가수 [[무카이치 미온]].
* [[1999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황태현]].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설현준]]
* [[2000년]] - 대한민국의 가수 다비.
* [[2001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대휘]] ([[AB6IX]], [[워너원]]).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정성원 (축구 선수)|정성원]].
** 대한민국의 가수 소섬.
* [[2002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형욱.
* [[2003년]] - 대한민국의 연구기관단체장 [[전연우]].
* [[200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조용진 (배우)|조용진]].* [[2016년]] - 대한민국의 유튜버 김승리.
=== 미상 ===
* 대한민국의 과학자, 수의사 [[황우석]].
== 사망 ==
* [[661년]] - 이슬람의 4대 정통 칼리파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601년]]~)
* [[1730년]] - 로마노프 왕조의 군주 러시아의 [[표트르 2세]]. ([[1715년]]~)
* [[1820년]] - 영국의 국왕 [[조지 3세]]. ([[1738년]]~)
* [[1915년]] - 조선의 성리학자 겸 의병장 [[유인석 (1842년)|유인석]]. ([[1842년]]~)
* [[1918년]] - 프랑스의 중국학자 [[에두아르 샤반]]. ([[1865년]]~)
* [[1934년]] -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 ([[1868년]]~)
* [[1943년]] - 제정러시아의 정치인 [[블라디미르 코콥초프]]. ([[1853년]]~)
* [[1962년]] - 미국의 바이올린 연주자, 작곡가 [[프리츠 크라이슬러]]. ([[1875년]]~)
* [[1963년]] -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1874년]]~)
* [[1975년]] - 대한민국의 군인 [[안광수 (1925년)|안광수]]. ([[1925년]]~)
* [[2006년]] - 대한민국의 현대 미술가 [[백남준]]. ([[1932년]]~)
* [[2008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창익]]. ([[1957년]]~)
* [[201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남이]]. ([[1948년]]~)
* [[2016년]] - 프랑스의 영화감독 [[자크 리베트]]. ([[1928년]]~)
* [[2017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이갑상]]. ([[1924년]]~)
* [[2019년]]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제임스 잉그램]]. ([[1952년]]~)
* [[2022년]] - 미국의 희극인 [[하워드 헤스먼]]. ([[1940년]]~)
* [[2023년]]
** 미국의 영화배우 [[애니 워싱]]. ([[1977년]]~)
** 미국의 화학자 [[윌 스테판]]. ([[1947년]]~)
**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허수열]]. ([[1952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고성]]. ([[1941년]]~)
** 일본의 테러리스트 [[기리시마 사토시]]. ([[1954년]]~)
** 일본의 만화가 [[아시하라 히나코]]. ([[1974년]]~)
** 이탈리아의 영화배우 [[산드라 밀로]]. ([[1933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이정우 (법조인)|이정우]]. ([[1931년]]~)
** 대한민국의 교육자 [[조경식]]. ([[1936년]]~)
** 팔레스타인의 소녀 [[힌드 라잡]]. ([[2018년]]~)
== 기념일 ==
* 캔자스 데이(Kansas Day): 1861년 1월 29일 [[캔자스주]]가 미연방의 34번째 주로 편입된 것을 기념하는 날.
* [[한국의 설날]] - [[1987년]], [[2006년]], [[2025년]], [[2063년]], [[2082년]]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28일]] 다음날: [[1월 30일]] - 전달: [[12월 29일]] 다음달: [[2월 28일]]([[2월 29일]])
* 음력: [[음력 1월 29일|1월 29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29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28일'''은 [[그레고리력]]으로 28번째([[윤년]]일 경우도 28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28}}
== 사건 ==
* [[1547년]] -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6세|에드워드 6세]], 잉글랜드 국왕으로 즉위하다.
* [[1637년]] - [[병자호란]], [[광교산 전투]]
* [[1932년]] - 중국과 일본 간의 [[제1차 상하이 사변]] 발발
* [[1969년]] - 서울에 적설량 25.6cm의 기록적인 폭설이 내리다.
* [[1986년]] - [[챌린저 우주왕복선 폭발사고]]가 일어남.
* [[2009년]] - 스리랑카에서 계속된 [[스리랑카 내전|내전]]이 격화되어 최근 수백명의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 [[2012년]] - [[일본]] [[도쿄]] 인근에서 규모 5.5의 지진이 발생하다.
* [[2014년]] -
** [[미국]] [[조지아주]] 상원에서 [[한반도]] 동쪽 바다 [[동해]] 표기법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 [[우크라이나의 총리]] [[미콜라 아자로프]]가 반정부 [[유로마이단|시위]]의 여파로 사임하다.
== 문화 ==
* [[2007년]] - [[중화인민공화국]] [[장춘]]에서 [[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개막(~ [[2월 4일]]까지).
* [[2010년]] -
**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소녀시대]], 두번째 정규앨범 "[[Oh! (소녀시대의 음반)|Oh!]]" 발매.
**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김운회]](루카) 주교를 [[천주교 춘천교구|천주교 춘천교구장]]에 임명하였다.
* [[2017년]] - [[201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가 [[알마티]]에서 개막하였다.
== 탄생 ==
* [[1312년]] - 나바라 왕국의 여왕 [[호아나 2세]]. (~[[1349년]])
* [[1457년]] - 영국의 국왕 [[헨리 7세]]. (~[[1509년]])
* [[1540년]] - 네덜란드의 수학자 [[뤼돌프 판 쾰런]]. (~[[1610년]])
* [[1600년]] - 제238대 로마의 교황 [[교황 클레멘스 9세]]. (~[[1669년]])
* [[1693년]] - 로마노프 왕조의 4번째 군주 [[안나 이바노브나]]. (~[[1740년]])
* [[1822년]] - 조선 후기의 무신 [[이재경 (1822년)|이재경]]. (~[[1902년]])
* [[1853년]] - 쿠바의 혁명가 [[호세 마르티]]. (~[[1895년]])
* [[1887년]] - 폴란드 태생 미국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1982년]])
* [[1898년]] - 대한민국의 의학자 [[백인제]]. (~[[1950년]])
* [[1899년]] - 일본의 법학자 [[오다카 도모오]]. (~[[1956년]])
* [[190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석주 (1904년)|이석주]].
* [[1905년]] - 일본의 연쇄살인자 고다이라 요시오. (~[[1949년]])
* [[1912년]] -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 (~[[1956년]])
* [[1916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안진생]]. (~[[1988년]])
* [[1920년]] - 일본제국의 군인 [[가네코 야스지]]. (~[[2010년]])
* [[1927년]] - 대한민국의 민주운동가 [[이문영]]. (~[[2014년]])
* [[1929년]] - 미국의 조각가 [[클라스 올든버그]]. (~[[2022년]])
* [[1935년]] - 미국의 배우 [[니컬러스 프라이어]]. (~[[2024년]])
* [[1936년]]
** 미국의 배우 [[앨런 알다]].
** 알바니아의 소설가 [[이스마일 카다레]]. (~[[2024년]])
* [[1938년]] - 대한민국의 가수 [[현미 (가수)|현미]]. (~[[2023년]])
* [[1942년]] - 네덜란드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샤우크여 데이크스트라]]. (~[[2024년]])
* [[194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염동연]].
* [[1947년]] -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 축구 감독 [[체추 로호]]. (~[[2022년]])
* [[1949년]] -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 [[마이클 제임스 더프]].
* [[1950년]] - 대한민국의 성우 [[김정호 (성우)|김정호]].
* [[195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강창일]].
* [[1953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영덕 (정치인)|김영덕]].
** 대한민국의 양궁인 [[김기희 (양궁인)|김기희]].
* [[1954년]] - 대한민국의 배우 문대성.
* [[1955년]] - 프랑스의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
* [[1957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동연]].
* [[1962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영석 (배우)|김영석]].
** 대한민국의 성우 [[민응식]].
* [[1963년]] - 일본의 성우 [[이와츠보 리에]].
* [[1964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코치, 전 야구 선수 [[김태원 (야구인)|김태원]].
** 대한민국의 배우 [[박해미]].
* [[1965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여영국]].
* [[1966년]]
** 대한민국의 경찰공무원 [[이대우]].
** 대한민국의 전 배우 [[황준욱]].
** 대한민국의 정치인 [[우병우]].
* [[1968년]] - 캐나다의 가수, 작곡가 겸 화가 [[세라 매클라클런]].
* [[1971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정진아.
* [[1972년]] - 일본의 야구 선수 [[신조 쓰요시]].
* [[1973년]] - 대한민국의 야구 해설가, 전 야구 코치, 전 야구 선수 [[이종열]].
* [[1974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임진웅]].
** 대한민국의 정치인 [[최선 (정치인)|최선]].
* [[1975년]] - 일본의 성우 [[카미야 히로시]].
* [[1976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차미연]].
* [[1978년]]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잔루이지 부폰]].
** 세네갈의 축구 선수 [[파파 부바 디오프]].
* [[1979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한이]].
** 대한민국의 범죄심리학자 [[박지선 (1979년)|박지선]].
* [[198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유리 (배우)|이유리]].
** 대한민국의 배우 [[장소연 (배우)|장소연]].
** 일본의 축구 선수 [[엔도 야스히토]].
** 일본의 성우 [[키무라 마도카]].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댄서, 배우 [[닉 카터]].
* [[198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오유나]].
** 미국의 배우 [[일라이저 우드]].
** 일본의 가수 [[호시노 겐]].
* [[1983년]]
** 일본의 애니메이터 [[호리구치 유키코]].
** 브라질의 싱어송라이터, 배우 [[산지 레아 리마]].
* [[198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지호 (1984년생 배우)|이지호]].
**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 [[안정환 (유도 선수)|안정환]].
* [[1985년]]
** 미국의 래퍼 [[제이 콜]].
** 일본의 축구 선수 [[미야마 아야]].
** 대한민국의 배우 [[선우 (배우)|선우]].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성진 (축구 선수)|박성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차유주.
* [[1986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장진용]].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이용택 (배구 선수)|이용택]]. (~[[2011년]])
** 일본의 게임 개발자, 일러스트레이터 [[츠나코]].
* [[1987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슬 (1987년)|이슬]].
** 대한민국의 기타연주가 이인규.
* [[1988년]]
** 일본의 레슬링 선수 [[사나다 세이야]].
** 대한민국의 가수 [[이민희 (가수)|이민희]].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추정현]].
* [[1990년]]
** 스웨덴의 축구 선수 [[칼요한 욘손]].
** 대한민국의 배우 [[이홍내]].
* [[1991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정형식 (야구인)|정형식]].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재민]].
* [[1992년]] - 튀니지의 축구 선수 [[우사마 하다디]].
* [[1993년]]
**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강두리]]. (~[[2015년]])
** 대한민국 야구 선수 [[이태양 (1993년)|이태양]].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전은하]].
** 영국의 배우 [[윌 폴터]].
* [[1994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이영은 (1993년)|이영은]].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그래프트 프로게이머 [[변현제]].
* [[1995년]] - 일본의 여성 아이돌 [[니시무라 호노카]].
* [[1996년]] - 일본의 레슬링 선수 [[히구치 레이]].
* [[1997년]] - 대한민국의 인권운동가, 프로게이머 [[하예나]].
* [[1998년]] - 미국의 배우 [[애리얼 윈터]].
* [[1999년]]
** 일본의 축구 선수 [[아베 히로키]].
** 대한민국의 가수 [[다은]].
* [[2001년]] - 일본의 가수 아라마키 미사키 ([[HKT48]] 팀TII, [[무시카고]]).
* [[2005년]]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루시드 (프로게이머)|루시드]].
* [[2006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수현.
== 사망 ==
* [[814년]] - 프랑크 왕국의 2대 국왕 [[카롤루스 대제|샤를마뉴 대제]]. ([[742년]]~)
* [[1547년]] -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8세]]. ([[1491년]]~)
* [[1621년]] - 제233대 로마의 교황 [[교황 바오로 5세]]. ([[1552년]]~)
* [[1754년]] - 덴마크, 노르웨이의 작가, 철학자, 소설가, 역사가, 극작가 [[루드비 홀베르]]. ([[1684년]]~)
* [[1794년]] - 방데 반란의 지도자 [[앙리 드 라 로슈자클랭]]. ([[1772년]]~)
* [[1939년]] - 아일랜드의 시인 [[W. B. 예이츠|W. B 예이츠]]. ([[1865년]]~)
* [[1975년]] - 체코슬로바키아의 정치인 [[안토닌 노보트니]]. ([[1904년]]~)
* [[1978년]] - 영국의 예술사회학자 [[아르놀트 하우저]]. ([[1892년]]~)
* [[1996년]] - 슈퍼맨의 원작자 [[제리 시걸]]. ([[1914년]]~)
* [[1998년]] - 일본의 만화가 [[이시노모리 쇼타로]]. ([[1938년]]~)
* [[2002년]]
** 스웨덴의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1907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주일 (군인)|이주일]]. ([[1918년]]~)
* [[2016년]] - 미국의 가수 [[폴 캔트너]]. ([[1941년]]~)
* [[2019년]] - 대한민국의 인권운동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인권 운동가)|김복동]]. ([[1926년]]~)
* [[2020년]]
** 멕시코의 야구 선수 [[나르시소 엘비라]]. ([[1967년]]~)
** 미국의 모델, 영화배우 [[다이안 손]]. ([[1932년]]~)
* [[2021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강병기]]. ([[1960년]]~)
** 미국의 영화배우 [[시실리 타이슨]]. ([[1924년]]~)
** 네덜란드의 화학자 [[파울 크뤼천]]. ([[1933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교육학자 [[정범모 (교육학자)|정범모]]. ([[1925년]]~)
** 미국의 영화배우 [[도널드 메이]]. ([[1927년]]~)
* [[2023년]] - 이탈리아의 정치인 [[카를로 타베키오]]. ([[1943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강철구 (법조인)|강철구]]. ([[1942년]]~)
** 대한민국의 언론인 [[이민희 (언론인)|이민희]]. ([[1941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이영호 (1976년)|이영호]]. ([[1976년]]~)
** 대한민국의 가수 [[정선연]]. ([[1973년]]~)
** 파나마의 축구 선수 [[루이스 테하다]]. ([[1982년]]~)
== 기념일 ==
* [[:en:Data Privacy Day|데이터 프로텍션 데이]](Data Protection Day)
* [[한국의 설날]] - [[1998년]], [[2017년]], [[2036년]], [[2055년]]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27일]] 다음날: [[1월 29일]] - 전달: [[12월 28일]] 다음달: [[2월 28일]]
* 음력: [[음력 1월 28일|1월 28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28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27일'''은 [[그레고리력]]으로 27번째([[윤년]]일 경우도 27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27}}
== 사건 ==
* [[98년]] - [[트라야누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다.
* [[1945년]] -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가 소련의 [[붉은 군대]]에 의해 해방되다.
* [[1989년]] - [[전두환 정부]] 시절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장]]이었던 [[장세동]]이 비리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
* [[2010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 서해 [[백령도]] [[NLL]]부근에 해안포를 발사하였다.
* [[2011년]] - [[이광재 (정치인)|이광재]] 강원도지사가 [[대법원]]에서 직역형을 선고받고 도지사직을 잃게 되었다.
* [[2019년]] - 보이그룹 [[워너원]]이 마지막 콘서트 [[2019 Wanna One Concert[Therefore]|2019 Wana One Concert [ Therefore ]]]을 끝으로 활동을 마무리했다.
== 문화 ==
* [[1988년]] - [[서울]] [[여의도]]에 [[대한민국 국회도서관]]이 완공되었다.
* [[2010년]] - [[애플]]이 [[아이패드]]를 공개되었다.
* [[2012년]] - ia/이아가 발표되었다.
== 탄생 ==
* [[1537년]] - 조선의 문신, 정치인, 학자, 작가 [[정철]](鄭澈). (~[[1594년]])
* [[1756년]] -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791년]])
* [[1775년]] -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 (~[[1854년]])
* [[1832년]] - 영국의 수학자 [[루이스 캐럴]]. (~[[1898년]])
* [[1836년]] - 오스트리아의 작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1895년]])
* [[1859년]] - 독일 제국의 3대 황제 [[빌헬름 2세]]. (~[[1941년]])
* [[1871년]] - 대한민국의 관료, 독립운동가 [[이상설]]. (~[[1917년]])
* [[1879년]] - 크로아티아의 작곡가 [[요시프 코소르]]. (~[[1961년]])
* [[1908년]] - 대한민국의 극작가 [[이석훈 (1908년)|이석훈]]. (~?)
* [[1919년]] - 미국의 배우 [[로스 배그더세리언]]. (~[[1972년]])
* [[1920년]] - 일본의 파일럿 [[니시자와 히로요시]]. (~[[1944년]])
* [[1921년]] - 미국의 배우 [[도나 리드]]. (~[[1986년]])
* [[1928년]] - 동독의 정치인 [[한스 모드로]]. (~[[2023년]])
* [[1929년]] - 이집트의 기업인 [[모하메드 알파예드]]. (~[[2023년]])
* [[1935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 [[이택돈]]. (~[[2012년]])
* [[1936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영덕 (야구인)|김영덕]]. (~[[2023년]])
* [[1942년]] -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최병국 (1942년)|최병국]].
* [[1943년]] - 대한민국의 방송 작가 [[김수현 (작가)|김수현]].
* [[1950년]] - 대한민국의 배우, 前 정치가 [[최종원]].
* [[195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유지인]].
* [[195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장미희]].
* [[1960년]] - 탄자니아의 정치인, 대통형 [[사미아 술루후 하산]].
* [[1961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상조]]. (~[[2022년]])
** 미국의 배우 [[로이 피건]].
* [[196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병준 (1964년)|이병준]].
** 대한민국의 권투 선수 [[백현만]].
** 미국의 배우 [[브리짓 폰다]].
* [[1965년]]
** 대한민국의 배우 [[견미리]].
** 대한민국의 배우 [[임대호]].
** 대한민국의 행정공무원 [[김윤일 (1965년)|김윤일]].
** 영국의 배우 겸 영화 감독 [[앨런 커밍]].
* [[1966년]]
** 대한민국의 대법관 [[김상환]].
**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겸 게임 개발자, 만화가 [[스기모리 켄]].
* [[1967년]] - 대한민국의 기자 [[김대오]].
* [[1968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상면 (배우)|박상면]].
* [[1969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박정태]].
* [[197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임호 (배우)|임호]].
* [[1971년]] - 미국의 래퍼, 프로듀서 [[릴 존]].
* [[1972년]] -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마크 오언]].
* [[1973년]] - 대한민국의 배우 · 방송인 · 전 아나운서 [[최은경 (방송인)|최은경]].
* [[1975년]]
** 일본의 작가 [[아마미야 카린]].
** 대한민국의 공무원 이주희.
* [[1976년]]
** 대한민국의 래퍼 [[조PD]].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안정환]].
** 대만의 가수, 배우 [[린신루]].
** 대한민국의 전 아나운서 [[박소현 (1976년)|박소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주일 (1976년)|김주일]].
* [[1979년]]
** 영국의 배우 [[로저먼드 파이크]].
** 일본의 성우 [[코야마 키미코]].
* [[1980년]]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이동준 (1980년)|이동준]].
* [[1981년]] - 대한민국의 가수 애니.
* [[1982년]] -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 [[리스 에번스]].
* [[198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최윤슬]].
* [[1984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태완 (1984년)|김태완]].
** 대한민국의 성우 [[최낙윤]].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지석 (희극인)|김지석]].
** 대한민국의 가수 [[손준혁]].
**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한채윤 (1984년)|한채윤]].
* [[1985년]]
** 일본의 프로 레슬링 선수 [[히노 유지]].
** 포르투갈의 전 축구 선수 [[후벵 아모링]].
* [[1986년]] - 대한민국의 성우 [[문유정]].
* [[1987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김선신]].
** 대한민국의 가수 [[마이진 (1986년)|마이진]].
** 미국의 가수 [[애슐리 그레이스]].
* [[1988년]]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조세희 (레이싱 모델)|조세희]].
* [[1989년]] -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비비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비비]].
* [[1990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재인 (1990년)|김재인]].
* [[1991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강성규]].
** 대한민국의 가수 [[예아라]].
* [[1992년]] - 대한민국의 연극배우 김형석.
* [[1993년]]
** 프랑스의 축구 선수 [[야야 사노고]].
** 대한민국의 가수 [[강고은]].
* [[1994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민준 (1994년)|김민준]].
* [[1995년]] - 대한민국의 프로레슬링 선수 정서연.
* [[1996년]] - 대한민국의 가수 [[제이유나]].
* [[1997년]]
** 일본의 축구 선수 [[이타쿠라 고]].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안상현 (야구 선수)|안상현]].
* [[1998년]]
** 대한민국의 가수 [[키노 (가수)|키노]] ([[펜타곤 (음악 그룹)|펜타곤]]).
** 대한민국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레베카]].
** 대한민국의 배우 [[마현지]].
* [[1999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혜성 (야구 선수)|김혜성]].
** 이탈리아의 수영 선수 [[니콜로 마르티넨기]].
* [[2001년]]
** 이탈리아의 수영 선수 [[토마스 체콘]].
** 대한민국의 가수 주은.
* [[2003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한사형.
** 대한민국의 가수 [[태영 (2003년)|태영]].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성훈 (축구 선수)|박성훈]].
* [[2004년]] - 대한민국의 가수 [[정승환 (2004년)|정승환]].
* [[2005년]] - 대한민국의 양궁 선수 [[남수현]].
* [[2006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수안 (2006년)|김수안]].
* [[2011년]] -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임서원]].
=== 미상 ===
* 캐나다의 여성 장수자이며 前 트뤼도 행정부 예하 별정행정관 [[섬 잉 펑]]. (~[[2011년]])
== 사망 ==
* [[98년]] - 로마 제국의 황제 [[네르바]]. ([[30년]]~)
* [[672년]] - 제76대의 교황 [[교황 비탈리아노]]. ([[580년]]~)
* [[1142년]] - 송나라 남송 초기의 군인 [[악비]]. ([[1103년]]~)
* [[1596년]] - 영국의 해적, 군인, 탐험가 [[프랜시스 드레이크]]. ([[1540년]]~)
* [[1731년]] - 이탈리아의 악기제조자이자 피아노의 발명가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 ([[1655년]]~)
* [[1814년]] - 독일의 철학자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1762년]]~)
* [[1901년]] - 이탈리아의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 ([[1813년]]~)
* [[1924년]] - 일본의 정치인 [[하세가와 요시미치]]. ([[1850년]]~)
* [[1987년]] - 대한민국의 목사 [[김재준]]. ([[1901년]]~)
* [[2008년]] - 인도네시아의 전(前) 대통령 [[수하르토]]. ([[1921년]]~)
* [[2009년]] - 미국의 작가 [[존 업다이크]]. ([[1932년]]~)
* [[2010년]] - 미국의 소설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1919년]]~)
* [[2015년]]
** 홍콩의 영화배우 [[하가구]]. ([[1948년]]~)
** 미국의 물리학자 [[찰스 하드 타운스]]. ([[1915년]]~)
* [[2017년]]
** 영국의 배우 [[존 허트]]. ([[1940년]]~)
** 프랑스의 배우 [[에마뉘엘 리바]]. ([[1927년]]~)
* [[2018년]] - 스웨덴의 기업인 [[잉바르 캄프라드]]. ([[1926년]]~)
* [[2020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최창학 (소설가)|최창학]]. ([[1941년]]~)
* [[2021년]]
** 미국의 영화배우 [[클로리스 리치먼]]. ([[1926년]]~)
** 이란의 축구 선수, 축구 코치 [[메흐르다드 미나반드]]. ([[1975년]]~)
* [[2022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리용무]]. ([[1925년]]~)
* [[2023년]] - 영국의 영화배우 [[실비아 사임스]]. ([[1934년]]~)
== 기념일 ==
*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26일]] 다음날: [[1월 28일]] - 전달: [[12월 27일]] 다음달: [[2월 27일]]
* 음력: [[음력 1월 27일|1월 27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27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26일'''은 [[그레고리력]]으로 26번째([[윤년]]일 경우도 26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26}}
== 사건 ==
* [[1531년]] - [[:en:1531 Lisbon earthquake|1531년 리스본 대지진]]: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지진이 발생, 약 3만 여명이 사망했다.
* [[1699년]] - [[:en:Treaty of Karlowitz|카를로비츠 조약]]: [[다뉴브강|도나우강]]변의 카를로비츠에서 [[신성 동맹 (1684년)|신성 동맹 전쟁]]에서 패한 [[오스만 제국]]과 유럽 동맹국들 사이에 조약이 체결되다. 이 조약에 따라 오스만 제국이 도나우 강 이북의 영토를 기독교 국가들에 영구적으로 할양하다.
* [[1837년]] - [[미시간주]]가 미국의 26번째 주가 되었다.
* [[1960년]] - [[서울역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
* [[1962년]] -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덕혜옹주]]가 근 30여년 만에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다.
* [[1965년]] - [[베트남 전쟁]] 전투병력 파견안이 국회에 가결됨.
* [[2008년]]
** [[삼성 특검]]:특검 수사팀은 [[제일모직 (1954년)|제일모직]] 원종운 전무 등 그룹 내 간부급 인사 3명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하여 조사하였고, 이번 사건의 수사 단서를 제공한 [[김용철]] 변호사도 참고인으로 불러서 조사했다.
** [[성재기 (활동가)|성재기]] 등에 의해 대한민국의 남성단체 겸 인권운동단체 [[남성연대]]가 창립되다.
* [[2012년]] - [[트위터]]가 '국가별 차단'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 [[2015년]] - [[:en:2015 Los Llanos Air Base crash|로스 야노스 공군기지 추락사고]]: 그리스의 [[제너럴 다이내믹스 F-16 파이팅 팰콘|F-16]] [[전투기]] 한 대가 스페인 남부에 있는 로스 야노스(Los Llanos) 군사기지에 추락해 9명이 사망하는 등 3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다.
* [[2018년]] - [[밀양 세종병원 화재]]
* [[2020년]] - [[코비 브라이언트]]가 헬기 사고로 사망하다.
* [[2021년]] - 이탈리아에서 [[주세페 콘테]] 총리가 사임했다.
* [[2022년]] -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는 자국 외교관 일부를 철수시켯다.
== 문화 ==
* [[1898년]] - [[전차]], [[전등]], [[전화]]의 독점 사업권을 가진 [[한성전기회사]] 설립.
* [[1962년]] - KBS TV, 개국 이후 첫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 방송.
* [[1974년]] - [[던전 & 드래곤]] 출시
* [[1982년]] - 대한민국의 프로야구단 [[MBC 청룡]] (現 LG 트윈스) 창단.
* [[1988년]] -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오페라의 유령]]이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가|브로드웨이]] [[머제스틱 극장 (브로드웨이)|머제스틱 극장]]에서 개막하다.
* [[2000년]] - [[XHTML]] 1.0이 [[W3C]]의 권고안이 되다.
* [[2017년]] - 걸그룹 [[원더걸스]]가 데뷔 10년만에 전격 해체하였다.
* [[2018년]] - [[동해선]] [[영덕역]] ~ [[포항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 [[2021년]] - [[신세계그룹|신세계]] [[이마트]]가 [[SK 와이번스]]를 1,352억에 인수하기 위하여 [[SK텔레콤]]과 MOU를 체결했다.
== 탄생 ==
* [[183년]] - 위나라의 초대 황제 [[조비]]의 정비 [[문소황후]]. (~[[221년]])
* [[1497년]] - 제105대 일본의 천황 [[고나라 천황]]. (~[[1557년]])
* [[1562년]] - 사보이아 공국의 공작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 디 사보이아 공작]]. (~[[1630년]])
* [[1657년]] - 캔터베리의 대주교 [[윌리엄 웨이크]]. (~[[1737년]])
* [[1763년]] - 스웨덴의 국왕 [[칼 14세 요한]]. (~[[1844년]])
* [[1880년]] - 미국의 군인 [[더글러스 맥아더]]. (~[[1964년]])
* [[1892년]] - 미국의 첫 흑인 여성 비행사 [[베시 콜먼]]. (~[[1926년]])
* [[1898년]] - 대한민국의 물리학자, 교수 [[최규남]]. (~[[1992년]])
* [[1917년]] - 미국의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 [[루이스 잠페리니]]. (~[[2014년]])
* [[1918년]] - 루마니아의 정치인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1989년]])
* [[1925년]] - 미국의 배우 [[폴 뉴먼]]. (~[[2008년]])
* [[1928년]] - 프랑스의 영화 감독, 영화 제작자, 극작가, 작가, 배우, 언론인 [[로제 바딤]]. (~[[2000년]])
* [[1936년]] - 대한민국의 작곡가 [[백병동]].
* [[1940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우식 (1940년)|김우식]].
* [[1945년]] - 미국의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
* [[1947년]] - 대한민국의 정치가, 대학교수 [[박준홍 (정치인)|박준홍]].
* [[1950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기초자치단체장 [[정현복]]. (~[[2023년]])
* [[1953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정수 (1953년)|김정수]]. (~[[2014년]])
* [[1955년]]
** 스웨덴의 배우 [[비에른 안드레센]].
** 미국의 음악가 [[에디 반 헤일런]]. (~[[2020년]])
** 대한민국의 스포츠인 [[이기흥]].
* [[1957년]] - 케냐의 배우 [[딥 로이]].
* [[1958년]] - 미국의 희극인 겸 방송인 [[엘런 드제너러스]].
* [[1959년]] - 튀르키예의 영화 감독, 사진가, 배우 [[누리 빌게 제일란]].
* [[1960년]] - 미국의 프로레슬링 선수 [[로드 워리어 애니멀]]. (~[[2020년]])
* [[1962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강성곤]].
** 대한민국의 의사 [[주석중]]. (~[[2023년]])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오스카르 루헤리]].
* [[1963년]] -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축구 감독 [[주제 모리뉴]].
* [[1964년]] - 대한민국의 기자 [[최효찬]].
* [[1967년]]
** 일본의 성우 [[모리카와 토시유키]].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김인호 (야구인)|김인호]].
* [[1970년]] - 대한민국의 기자, 앵커 [[박장범]].
* [[1973년]]
** 북아일랜드의 전 축구 선수, 축구 감독 [[브렌던 로저스]].
** 일본의 만화가 [[신조 마유]].
* [[1976년]] - 대한민국의 의사 [[임연정]].
* [[1977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해일]].
* [[1979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범수 (가수)|김범수]].
** 일본의 성우 [[키모토 오리에]].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최정화 (희극인)|최정화]].
* [[1980년]] - 일본의 성우 [[고바야시 사나에]].
* [[1981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차일목]].
** 베네수엘자의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
* [[1982년]]
** 대한민국의 가수 [[KCM]].
** 대한민국의 배우 [[김근현]].
** 일본의 가수 [[무라카미 싱고]] ([[SUPER EIGHT]]).
* [[1983년]]
** 대한민국의 격투기 선수 [[이수환 (킥복싱 선수)|이수환]].
** 대한민국의 배드민턴 선수 [[이재진]].
* [[1984년]]
** 대한민국의 성우 [[정혜원]].
** 대한민국의 래퍼 [[제리케이]].
** 대한민국의 모델, 배우 [[이현욱 (모델)|이현욱]].
* [[1985년]] - 일본의 성우 [[Nao (1985년)|nao]].
* [[1986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재중]] ([[JYJ]]).
** 대한민국의 성우 [[김디도]].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정재홍]]. (~[[2019년]])
** 대한민국의 필드하키 선수 [[박미현 (필드하키 선수)|박미현]].
** 대한민국의 배우 [[염승현]].
* [[1987년]]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세바스티안 조빈코]].
* [[1988년]]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김모아]].
* [[1989년]]
** 대한민국의 기타리스트 겸 싱어송라이터 [[적재]].
** 대한민국의 배우 [[진기주]].
** 잉글랜드의 배우 [[해나 아터턴]].
* [[1990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민영 (1990년)|김민영]].
** 사우디아라비아의 축구 선수 [[나와프 알아베드]].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정찬헌]].
* [[1991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동범 (배우)|김동범]].
** 대한민국의 배우 [[김해림 (배우)|김해림]].
* [[1992년]]
** 미국의 프로레슬링 선수 [[사샤 뱅크스]].
** 독일의 축구 선수 [[마르빈 플라텐하르트]].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탁구 선수 [[리명순]].
* [[1993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진아 (가수)|김진아]].
** 일본의 성우 [[후지타 아카네]].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도영 (1993년)|김도영]].
* [[1994년]]
** 영국의 배우 [[조셉 퀸]].
** 오스트레일리아의 축구 선수 [[스테프 캐틀리]].
** 대한민국의 기상캐스터 [[백지원 (기상캐스터)|백지원]].
* [[1995년]]
** 중국의 가수 [[선의 (가수)|선의]] ([[우주소녀]]).
** 러시아의 레슬링 선수 [[세르게이 세묘노프 (레슬링 선수)|세르게이 세묘노프]].
* [[1996년]]
** 대한민국의 래퍼 [[아이엠 (가수)|아이엠]] ([[몬스타엑스]]).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황희찬]].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김진휘]].
* [[1997년]] - 대한민국의 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폰 (프로게이머)|폰]].
* [[1998년]]
** 대한민국의 가수 [[정찬우 (가수)|정찬우]] ([[iKON]]).
** 대한민국의 가수 [[문빈]] ([[아스트로 (음악 그룹)|아스트로]]). (~[[2023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김우성 (뮤지컬 배우)|김우성]].
* [[1999년]] - 대한민국의 모델 [[이진이]].
* [[2000년]]
** 스페인의 배우 [[에스테르 엑스포시토]].
** 대한민국의 가수 [[서령 (가수)|서령]] ([[공원소녀]]).
** 대한민국의 가수 [[안솜이 (2000년)|안솜이]].([[다이아]])
* [[200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정다은 (2001년)|정다은]].
** 중국의 가수 [[정단니]].
* [[2004년]] - 대한민국의 가수 설윤 ([[엔믹스]]).
* [[2008년]] - 대한민국의 포스트 포철고 제라드 구도현.
== 사망 ==
* [[910년]] - 당나라의 시인 [[나은 (당)|나은]]. ([[883년]]~)
* [[1210년]] - 중국 남송의 시인 [[육유]]. ([[1125년]]~)
* [[1656년]] - 조선 14대 국왕 선조의 아들 [[능원대군]]. ([[1598년]]~)
* [[1823년]] -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 ([[1749년]]~)
* [[1893년]] - 미국의 군인, 남북 전쟁 북군의 장군 [[애브너 더블데이]]. ([[1819년]]~)
* [[1911년]] - 대한제국의 정치가 [[이범진 (1852년)|이범진]]. ([[1852년]]~)
* [[1949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홍병기]]. ([[1869년]]~)
* [[1951년]] - 대한민국의 군인 [[심일]]. ([[1923년]]~)
* [[1962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전형필]]. ([[1906년]]~)
* [[1963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연병호]]. ([[1894년]]~)
* [[1971년]] - 독일의 군인 [[헤르만 호트]]. ([[1885년]]~)
* [[1978년]] - 일본의 정치인 [[호시노 나오키]]. ([[1892년]]~)
* [[1991년]] -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작곡가, 가수 [[한복남]]. ([[1919년]]~)
* [[1995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김갑수 (법조인)|김갑수]]. ([[1912년]]~)
* [[1996년]] - 미국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찰스 주트로]]. ([[1900년]]~)
* [[2001년]] - 대한민국의 일본인 유학생 이수현. ([[1974년]]~)
* [[2004년]] - 대한민국의 언어학자 [[허웅 (언어학자)|허웅]]. ([[1918년]]~)
* [[2011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안춘생]]. ([[1912년]]~)
* [[2018년]] - 일본의 정치인 [[노나카 히로무]]. ([[1925년]]~)
* [[2019년]] - 프랑스의 음악가 [[미셸 르그랑]]. ([[1932년]]~)
* [[2020년]] - 미국의 농구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 ([[1978년]]~)
* [[2021년]] - 콜롬비아의 정치인 [[카를로스 홀메스 트루히요]]. ([[1951년]]~)
* [[2023년]] - 오스트레일리아의 인류학자 [[피오나 그레이엄]]. ([[1961년]]~)
* [[2024년]] - 미국의 야구 선수, 야구 지도자 [[지미 윌리엄스]]. ([[1943년]]~)
== 기념일 ==
* [[오스트레일리아의 날]]: 오스트레일리아의 날이 토요일 또는 일요일과 겹치면 다음 월요일을 [[공휴일]]로 정한다.
* [[인도]]의 제헌절 ([[:en:Republic Day|Republic Day in India]])
* [[대한민국]] [[대체공휴일]] - [[2039년]]
== 각주 ==
{{각주}}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25일]] 다음날: [[1월 27일]] - 전달: [[12월 26일]] 다음달: [[2월 26일]]
* 음력: [[음력 1월 26일|1월 26일]]
* [[366일|모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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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25일'''은 [[그레고리력]]으로 25번째([[윤년]]일 경우도 25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25}}
== 사건 ==
* [[41년]] - 협상의 밤 이후 [[클라우디우스]]가 [[로마 원로원|로마 상원]]에 의해 황제로 인정받았다.
* [[750년]] - [[:en:Battle of the Zab|자브 강(江) 전투]]: [[아바스 왕조]]의 반군이 [[우마이야 왕조]]의 군대를 패퇴시켰다. 이 전투의 결과로 [[우마이야 왕조]]가 멸망에 이르렀다.
* [[1890년]]
** [[:en:United Mine Workers|미국광산노동자연합]]이 설립됐다.
** [[미국]]의 기자 [[넬리 블라이]]가 72일간의 세계일주를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 [[1945년]] - [[벌지 전투]]: 독일 최후의 대반격이 실패로 끝났다.
* [[1971년]] - [[이디 아민]]이 [[쿠테타]]로 우간다의 정권을 장악했다.
* [[1973년]] - 전남 진도군 지산면 세포리 앞바다에서 목포발 조도행 68.8톤급 여객선 한성호가 침몰, 13명이 사망하고 48명이 실종됐다.
* [[1991년]] - [[평화방송]] 노동조합의 파업 농성장에 공권력이 투입돼 농성중인 조합원을 연행했다.
* [[1981년]] - [[마오쩌둥]]의 미망인 [[장칭]]이 반혁명죄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 [[2003년]] - 한국에서 [[1·25 인터넷 대란]]이 일어났다.
* [[2008년]] - [[삼성 특검]]:특검 수사팀은 새벽 3시 [[삼성화재해상보험|삼성화재]]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또한 서울 수유리, 수원의 [[삼성화재해상보험|삼성화재]] 전산센터와 과천의 그룹전산센터등 5곳에서도 압수수색을 동시에 진행하여 전산자료를 확보하였다. 특검 수사팀은 [[삼성그룹|삼성]] 일가를 대리해 고가 미술품을 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홍송원 서미 갤러리 대표를 소환조사하였다.
* [[2009년]] -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 범인인 [[강호순]]이 검거되었다.
* [[2010년]] - [[에티오피아 항공 409편]]이 [[레바논]] 인근 [[지중해]]에 추락했다.
* [[2012년]] - [[문화방송]] 기자협회가 [[김재철 (정치인)|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뉴스 제작을 거부했다.
* [[2013년]] - [[울산 자매 살인 사건]]의 용의자인 [[김홍일]]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 [[2015년]] - [[그리스]]에서 열린 총선에서 [[시리자]]가 압승을 거뒀다
== 문화 ==
* [[1924년]] - [[1924년 동계 올림픽 | 제1회 동계 올림픽]]이 [[프랑스]] [[샤모니]]에서 개막됐다.
* [[2005년]] - [[제주항공]] 설립
* [[2006년]] - [[중앙고속도로]] [[대동 분기점]] ~ [[동대구 분기점]] 구간이 개통되었다.
* [[2017년]] - 그룹 [[아이오아이]]가 공식 마지막 활동을 종료하였다.
* [[2021년]] - [[싸이월드|싸이월드Z]]가 설립되었다
== 탄생 ==
* [[750년]] -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레온 4세]]. (~[[780년]])
* [[1627년]] - 아일랜드의 과학자 [[로버트 보일]]. (~[[1691년]])
* [[1736년]] - 프랑스의 수학자, 천문학자 [[조제프루이 라그랑주]]. (~[[1813년]])
* [[1739년]] - 프랑스의 장군 [[샤를프랑수아 뒤 페리에 뒤무리에]]. (~[[1823년]])
* [[1759년]] - 스코틀랜드 출신 영국의 시인이자 서정시인(작사가) [[로버트 번스]]. (~[[1922년]])
* [[1842년]] - 조선의 성리학자 겸 의병장 [[유인석 (1842년)|유인석]]. (~[[1904년]])
* [[1860년]] - 미국의 제31대 부통령 [[찰스 커티스]]. (~[[1936년]])
* [[1870년]] - 스웨덴의 수학자 [[헬리에 본 코크]]. (~[[1950년]])
* [[1874년]]
** 영국의 소설가 겸 극작가 [[윌리엄 서머싯 몸]]. (~[[1965년]])
** 영국의 종교인 [[휼렛 존슨]]. (~[[1966년]])
* [[1882년]] -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 (~[[1942년]])
* [[1886년]] - 독일의 지휘자, 작곡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1954년]])
* [[1903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가네코 후미코]]. (~[[1926년]])
* [[1909년]] - 일본의 바둑 기사 [[기타니 미노루]]. (~[[1975년]])
* [[1913년]] - 폴란드의 작곡가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 (~[[1994년]])
* [[1917년]] - 러시아의 화학자 [[일리야 프리고진]]. (~[[2003년]])
* [[1920년]] - 대한민국의 공학자 [[김재근 (1920년)|김재근]]. (~[[1999년]])
* [[1925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리용무]]. (~[[2022년]])
* [[1926년]] - 미국의 영화배우 [[테드 화이트]]. (~[[2022년]])
* [[1928년]] - 소련의 정치인, 외교관, 조지아의 대통령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2014년]])
* [[1929년]] - 미국의 색소폰연주자 [[베니 골슨]]. (~[[2024년]])
* [[1932년]] - 대한민국의 성우 [[구민]].
* [[1933년]] - 필리핀의 제11대 대통령 [[코라손 아키노]].
* [[1938년]]
** 대한민국의 시인 [[이운룡 (교육인)|이운룡]]. (~[[2022년]])
** 일본의 만화가 [[마쓰모토 레이지]]. (~[[2023년]])
* [[1940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정치인 [[안대륜]].
* [[1942년]] -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에우제비우]]. (~[[2014년]])
* [[1947년]] -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 [[토스탕]].
* [[1948년]] - 오스트레일리아의 외교관, 언어학자 [[대니얼 케인]]. (~[[2021년]])
* [[1950년]] - 대한민국의 대학 총장, 교육인 [[정영선 (1950년)|정영선]].
* [[1951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방주연]].
* [[1952년]]
** 대한민국의 기자 출신 정치가 [[박병석]].
**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미술평론가 [[황지우]].
* [[1955년]] - 프랑스의 영화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
* [[1959년]] -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김연자]].
* [[1960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유성엽]].
** 일본의 성우 [[나라하시 미키]].
** 대한민국의 배우 [[차화연]].
* [[1963년]] - 이탈리아의 테너 가수 [[마르첼로 조르다니]]. (~[[2019년]])
* [[1966년]] - 대한민국의 지방의원 [[육미선]]. (~[[2024년]])
* [[1967년]]
** 대한민국의 복싱 선수 [[이열우]]. (~[[2009년]])
** 일본의 성우 [[사사키 노조무]].
**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 [[다비드 지놀라]].
* [[1968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선경 (1968년)|김선경]].
* [[1969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지영 (1969년)|박지영]].
* [[1970년]] - 대한민국의 전 가수 [[김태우 (1970년)|김태우]].
* [[1971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배우 [[김진수 (배우)|김진수]].
* [[1972년]]
** 대한민국의 가수, 래퍼 [[김정남 (가수)|김정남]].
** 대한민국의 희극인 [[리마리오]].
* [[1973년]] - 미국의 만화가 [[제프 존스]].
* [[1974년]]
** 대한민국의 디자이너 [[조수용]].
** 대한민국의 외교 출신 기업인 [[김일범]].
** 일본의 만화가 [[아시하라 히나코]]. (~[[2024년]])
** 포르투갈의 전 축구 선수 [[누누 이스피리투 산투]].
* [[1975년]] - 대한민국의 성우 [[김민아 (성우)|김민아]].
* [[1976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김성균 (야구 선수)|김성균]].
** 대한민국의 기업인 [[조원태]].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마누엘 파블로]].
* [[1978년]] - 우크라이나의 희극인,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 [[1980년]]
** 대한민국의 모델, 배우 [[장자연]]. (~[[2009년]])
** 스페인의 축구 선수 [[차비 에르난데스]].
** 미국의 전 프로레슬링 선수 [[미셸 매쿨]].
* [[1981년]]
** 미국의 가수 [[앨리샤 키스]].
** 대한민국의 배우 [[추소영]].
* [[1982년]]
** 일본의 가수, 배우 [[사쿠라이 쇼]] ([[아라시 (음악 그룹)|아라시]]).
** 대한민국의 전 아나운서, 방송인 [[박선영 (방송인)|박선영]].
* [[1983년]] - 대한민국의 기상 캐스터 [[김혜선 (기상캐스터)|김혜선]].
* [[1984년]]
** 브라질의 축구 선수 [[호비뉴]].
** 독일의 축구 선수 [[슈테판 키슬링]].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패라 윌리엄스]].
* [[1985년]]
** 대한민국의 전 가수, 배우 [[황정음]].
** 대한민국의 배우 [[수현 (배우)|수현]].
** 대한민국의 성우 [[이유리 (성우)|이유리]].
** 대한민국의 가수, 래퍼 [[JJK]].
** 대한민국의 배우 [[정원영 (배우)|정원영]].
**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 [[김재범]].
** 미국의 배우 [[마이클 트레비노]].
* [[1986년]] - 대한민국의 모델 허경식. (~[[2016년]])
* [[1987년]]
** 러시아의 테니스 선수 [[마리아 키릴렌코]].
** 프랑스의 배우 [[하프시아 헤르지]].
* [[1988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박가영]].
** 대한민국의 배우 겸 크리에이터 [[최다은]].
* [[1989년]] - 일본의 배우 [[타베 미카코]].
* [[199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준호]] ([[2PM]]).
** 대한민국의 가수 [[여은]] ([[멜로디데이]]).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임단 코치 [[정제승]].
* [[1991년]]
** 일본의 가수 [[세키구치 멘디]].
** 미국의 배우 [[아리아나 데보세]].
** 일본의 성우, 배우 [[키타무라 료]].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동혁 (축구 선수)|김동혁]].
* [[1992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오효주]].
** 크로아티아 독일의 축구 선수 [[이바나 루델리치]].
** 대한민국의 가수 마린.
* [[1993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김희주]].
** 벨기에의 유도 선수 [[토마 니키포로브]].
** 대한민국의 가수, 싱어송라이터 [[G1nger]].
** 필리핀의 가수, 배우 [[카일리 파디야]].
* [[1995년]]
** 대한민국의 골퍼 박지연.
** 인도의 필드하키 선수 [[만디프 싱 (필드하키 선수)|만디프 싱]].
* [[1996년]]
** 대한민국의 가수 [[승희]] ([[오마이걸]]).
** 대한민국의 배우 [[정혜린]].
** 스페인의 말리계 축구 선수 [[아다마 트라오레 디아라]].
* [[1997년]] - 영국의 유도 선수 [[첼시 자일스]].
* [[1998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조규성]].
* [[1999년]]
** 중국의 가수 [[루카스 (가수)|루카스]] ([[NCT (음악 그룹)|NCT]], [[WayV]]).
** 대한민국의 성악가 [[정승원 (성악가)|정승원]].
* [[2000년]]
** 대한민국의 배우 [[노윤서]].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민호 (축구 선수)|김민성]].
** 벨기에의 자전거 경주 선수 [[렘코 에베네풀]].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배드민턴 선수 [[요하니타 스콜츠]].
* [[2005년]] - 대한민국의 작가 문지영.
* [[2012년]] - 대한민국의 아역 배우 [[권예은]].
== 사망 ==
* [[390년]] - 초기 기독교의 교부 철학자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우스]]. ([[329년]]~)
* [[1891년]] -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인 [[테오 반 고흐 (미술상)|테오 반 고흐]]. ([[1857년]]~)
* [[1947년]] - 미국의 마피아 [[알 카포네]]. ([[1899년]]~)
* [[1983년]] - 영국의 봅슬레이 선수 [[로드니 소허]]. ([[1893년]]~)
* [[1990년]] - 미국의 배우 [[에바 가드너]]. ([[1922년]]~)
* [[2004년]] - 헝가리의 축구 선수 [[페헤르 미클로시]]. ([[1979년]]~)
* [[2015년]] - 그리스의 가수 [[데미스 루소스]]. ([[1946년]]~)
* [[2016년]] - 독일의 기자이자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 ([[1937년]]~)
* [[2017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구창림]]. ([[1941년]]~)
** 미국의 배우 [[메리 타일러 무어]]. ([[1936년]]~)
* [[2021년]] - 대한민국의 래퍼 [[아이언 (래퍼)|아이언]]. ([[1992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오인택 (1934년)|오인택]]. ([[1934년]]~)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빔 얀선]]. ([[1946년]]~)
* [[2023년]] - 미국의 배우 [[신디 윌리엄스]]. ([[1947년]]~)
== 기념일 ==
* [[:en:National Voters' Day|유권자의 날]]: [[인도]]
* [[:en:Burns supper|번스 나이트]]: [[작별 (민요)|올드 랭 사인]]의 작사가 [[로버트 번스]]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 [[스코틀랜드]], [[:en:Scottish people|스코틀랜드 지역사회]]
* [[:en:Tatiana Day|타티아나 데이]]: [[러시아]]
* [[:en:Opposite Day|아퍼지트 데이/반대의 날]]
* [[:en:Scientology holidays|Criminon Day]]: [[사이언톨로지교]]
* [[대한민국]] [[대체공휴일]] - [[2050년]]
== 같이 보기 ==
* 전날: [[1월 24일]] 다음날: [[1월 26일]] - 전달: [[12월 25일]] 다음달: [[2월 25일]]
* 음력: [[음력 1월 25일|1월 25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25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20일'''은 [[그레고리력]]으로 20번째([[윤년]]일 경우도 20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20}}
== 사건 ==
* [[1953년]]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미국]]의 제3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다.
* [[1961년]] - [[존 F. 케네디]]가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다.
* [[1969년]] - [[리처드 닉슨]]이 [[미국]]의 제3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다.
* [[1974년]] - [[제너럴 다이내믹스 F-16 파이팅 팰콘|F-16 파이팅 팰컨]]이 첫 비행(비공식)에 성공하다.
* [[1977년]] - [[지미 카터]]가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다.
* [[1981년]] -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다.
* [[1989년]] - [[조지 H. W. 부시]]가 [[미국]]의 제4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다.
* [[1993년]] - [[빌 클린턴]]이 [[미국]]의 제4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다.
* [[1997년]] - [[신창원]]이 부산교도소를 탈옥, 도주했다.
* [[2000년]] - [[새정치국민회의]]가 [[새천년민주당]]으로 이름을 변경하다.
* [[2001년]] - [[조지 W. 부시]]가 [[미국]]의 제43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다.
* [[2009년]]
**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제44대 [[미국의 대통령|대통령]]으로 취임하다.
** [[용산4구역 남일당 화재 사건]]이 일어나다.
* [[2011년]] - [[대한민국 대법원]]이 [[조봉암]] 간첩 혐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 [[2017년]] -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제45대 [[미국의 대통령|대통령]]으로 취임하다.
* [[2020년]] -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중국 우한에 다녀온 여성이 첫 국내 확진.
* [[2021년]] - [[조 바이든]]이 [[미국]]의 제46대 [[미국의 대통령|대통령]]으로 취임하다.
== 문화 ==
* [[1939년]] - [[낙랑 고분]]이 발견됨.
* [[1981년]] - [[한국방송광고공사]]에 설립되었다.
* [[1985년]] - [[상파울루 구아룰류스 국제공항]] 개항.
* [[2005년]] -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천안역]]까지 연장 개통되다.
* [[2016년]] - [[호남고속도로]] [[북광산 나들목]] 구간이 개통되었다.
* [[2021년]] - [[수도권 전철 4호선]] 신길온천역이 [[능길역]]으로 역 이름을 변경하였고 집행 정지 신청이 제기되어 보류되었다.
* [[2022년]] - [[이베이]]코리아가 사명을 "지마켓글로벌"로 변경하였다.
== 탄생 ==
* [[1029년]] - 셀주크 제국의 제2대 술탄 [[알프 아르슬란]]. (~[[1072년]])
* [[1554년]] - 포르투갈 왕국의 왕 [[세바스티앙 (포르투갈)|세바스티앙 1세]]. (~[[1578년]])
* [[1716년]] - 스페인의 왕 [[카를로스 3세 (스페인)|카를로스 3세]]. (~[[1788년]])
* [[1775년]] - 프랑스의 물리학자 [[앙드레마리 앙페르]]. (~[[1836년]])
* [[1824년]] - 미국의 군인 [[스톤월 잭슨]]. (~[[1863년]])
* [[1855년]] - 프랑스의 작곡가 [[에르네스트 쇼송]]. (~[[1899년]])
* [[1860년]] - 구한말의 의병장 [[김복한]]. (~[[1924년]])
* [[1879년]] - 미국의 무용가 [[루스 세인트데니스]]. (~[[1968년]])
* [[1896년]] - 일제 강점기의 페미니스트 작가, 언론인 [[김명순 (1896년)|김명순]]. (~[[1951년]])
* [[1920년]]
** 대한민국의 노동계파 독립운동가 [[김두만 (1920년)|김두만]]. (~[[1984년]])
**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 (~[[1993년]])
* [[1921년]] - 일본의 작곡가 [[요시다 다다시]]. (~[[1998년]])
* [[1922년]] - 미국의 밴드리더, 트럼펫 연주자, 송라이터, 배우 [[레이 앤서니]].
* [[1924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이선중]]. (~[[2020년]])
* [[1926년]] - 미국의 배우 [[퍼트리샤 닐]]. (~[[2010년]])
* [[1930년]]
** 미국의 우주비행사 [[버즈 올드린]].
** 체코의 소설가 [[에곤 본디]]. (~[[2007년]])
* [[193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금진호]]. (~[[2024년]])
* [[193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강우혁 (정치인)|강우혁]].
* [[1946년]]
** 일본의 정치인 [[미조구치 젠비]]. (~[[2024년]])
** 미국의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
* [[1949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송병대]].
* [[1952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정치인 [[진대제]].
* [[1955년]]
** 대한민국의 성우 [[성병숙]].
** 대한민국의 배우 [[성인자]].
* [[195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박경철 (정치인)|박경철]].
* [[1957년]] - 체첸 공화국의 대통령, 정치인 [[알루 알하노프]].
* [[1960년]] - 대한민국의 공무원 [[정황근]].
* [[1962년]] - 일본의 성우 [[타마가와 사키코]].
* [[1964년]]
** 미국의 언론인 [[파리드 자카리아]].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축구 감독 [[김준현 (축구인)|김준현]].
* [[1965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남경필]].
** 미국의 컨트리 음악가 [[가스 브룩스]].
** 미국의 가수 [[존 마이클 몽고메리]].
* [[1966년]] - 미국의 배우 [[레인 윌슨]].
* [[1967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철민 (1967년)|김철민]]. (~[[2021년]])
** 대한민국의 기자 출신 정치인 [[김영우 (1967년)|김영우]].
* [[196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위성곤]].
* [[1970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원상]].
* [[197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정웅인]].
* [[197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소찬휘]].
** 미국의 정치가 [[니키 헤일리]].
* [[1974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정치인 [[이경희 (1974년)|이경희]].
** 대한민국의 기업인 [[한성호]].
* [[1976년]] - 일본의 성우 [[리키마루 노리코]].
* [[1977년]]
** 대한민국의 현 야구 코치, 전 야구 선수 [[정수근]].
** 대한민국의 작가 [[김유리 (작가)|김유리]].
* [[1978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인권]].
** 프랑스의 배우 [[오마르 시]].
* [[197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추자현]].
* [[1980년]]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목진석]].
** 대한민국의 탁구 선수 [[주세혁]].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김정훈 (1980년)|김정훈]] ([[UN (음악 그룹)|UN]]).
* [[1981년]]
** 영국의 축구 선수 [[오언 하그리브스]].
** 캐나다의 배우 [[대니얼 커드모어]].
* [[1983년]]
** 대한민국의 트로트가수 [[선경 (가수)|선경]].
** 대한민국의 배우 [[강예빈]].
** 일본의 가수, 배우 [[야구치 마리]].
* [[1984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양승학 (1984년)|양승학]].
** 대한민국의 배우 [[문선용]].
* [[1985년]]
** 일본의 성우 [[이노우에 마리나]].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장선영 (아나운서)|장선영]].
* [[1986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강승조]].
* [[1987년]] - 미국의 배우 [[에번 피터스]].
* [[1988년]] - 대한민국의 자전거 경주 선수 [[황인혁 (자전거 경기 선수)|황인혁]].
* [[199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악동광행 ([[남녀공학 (음악 그룹)|남녀공학]]).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오아희]].
* [[1991년]] - 대한민국의 가수 [[글로우션]].
* [[1992년]]
** 대한민국의 탁구 선수 [[정영식 (탁구 선수)|정영식]].
** 튀르키예의 축구 선수 [[괴크한 퇴레]].
* [[1993년]]
** 홍콩의 펜싱 선수 [[처이호인]].
** 대한민국의 가수 키미.
* [[1994년]]
** 대한민국의 래퍼 [[키썸]].
** 대한민국의 배우 [[정수환 (1994년)|정수환]].
** 브라질의 축구 선수 [[루카스 피아종]].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창민 (축구 선수)|이창민]].
* [[1995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소희 (가수)|김소희]] ([[네이처 (음악 그룹)|네이처]]).
** 우루콰이의 축구 선수 [[호세 마리아 히메네스]].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캘럼 체임버스]].
** 미국의 힙합 가수 [[조이 배드애스]].
**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배우 [[이수웅]].
* [[199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양혜지 (배우)|양혜지]].
* [[1997년]] - 대한민국의 모델, 배우 [[이호정 (배우)|이호정]].
* [[1998년]] - 대한민국의 가수 진희.
* [[1999년]] - 대한민국의 유튜버 [[뽀구미]].
* [[2000년]] - 에티오피아의 육상 선수 [[셀레몬 바레가]].
* [[2003년]] - 대한민국의 가수 제로.
* [[2004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세훈 (2004년)|김세훈]].
** 일본의 가수 [[야마구치 키라]].
* [[2005년]] - 대한민국의 래퍼 [[조우찬]].
* [[2006년]] - 대한민국의 가수 다운. ([[파스텔걸스]])
=== 미상 ===
*대한민국의 성우 [[황윤걸]].
== 사망 ==
* [[1495년]] - 조선의 제9대 국왕 [[성종 (조선)|성종]] (1457년~)
* [[1612년]] -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루돌프 2세 (신성 로마 황제)|루돌프 2세]]. (1552년~)
* [[1666년]] - 프랑스 [[루이 13세]]의 왕비이자 [[루이 14세]]의 모후 [[안 도트리슈]]. (1601년~)
* [[1819년]] - 부르봉 왕가의 스페인 왕 [[카를로스 4세 (스페인)|카를로스 4세]]. (1748년~)
* [[1907년]] - 러시아의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1834년~)
* [[1936년]] - 영국의 국왕 [[조지 5세]]. (1865년~)
* [[1938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신언준]]. (1904년~)
* [[1957년]] - 미국의 육상 선수 겸 작가 [[제임스 브렌던 코널리]]. (1868년~)
* [[1990년]] - 미국의 배우 [[바버라 스탠윅]]. (1907년~)
* [[1993년]]
** 영국의 영화 배우 [[오드리 헵번]]. (1929년~)
** 대한민국의 변호사 [[황인철 (1940년)|황인철]]. (1940년~)
* [[2014년]] - 이탈리아의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1933년~)
* [[2021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김상하]]. (1926년~)
** 크로아티아의 영화배우 [[미라 푸를란]]. (1955년~)
* [[2022년]] - 미국의 가수 [[미트 로프 (가수)|미트 로프]]. (1947년~)
* [[2024년]]
** 캐나다의 영화감독 [[노먼 주이슨]]. (1926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최태복]]. (1930년~)
== 기념일 ==
* 취임일자가 일요일인 경우를 제외하고 1월 20일은 미국의 대통령 취임식 날이다.
* 동아시아권의 국가에서는 설날(음력 1월1일)에 많이 일치하는 날이기도 하다.
* [[:en:Armed Forces Day|국군의 날]]: [[말리]]
* 육군의 날: [[라오스]]
* [[:en:Heroes' Day|영웅의 날(Heroes' Day)]]: [[카보베르데|케이프 베르데]]
* 순교자의 날 [[아제르바이잔]]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19일]] 다음날: [[1월 21일]] - 전달: [[12월 20일]] 다음달: [[2월 20일]]
* 음력: [[음력 1월 20일|1월 20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20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1월 24일'''은 [[그레고리력]]으로 24번째([[윤년]]일 경우도 24번째) 날에 해당한다.
{{1월달력}}
{{특정날짜요일|1|24}}
== 사건 ==
* [[1955년]] - [[저우언라이]], [[타이완]]은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의 일부이고 타이완 해방에 대하여 [[유엔]] 등 외국이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선언
* [[1963년]] - [[남북체육회담]] 최초 개최
* [[1972년]] - [[일본군]] 패잔병 [[요코이 쇼이치]] 발견
* [[2011년]] - [[러시아]]의 [[도모데도보 국제공항]]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남
== 문화 ==
* [[1984년]] - 애플, [[매킨토시]] 출시.
* [[1986년]] - [[보이저 2호]], [[천왕성]]에 접근. 천왕성의 표면 이미지를 최초로 전송함.
* [[1989년]] - [[설날]]이 부활되었다.
* [[2018년]] - [[중국과학원]] [[신경과학]] 연구소 소속 과학자들이 세계 최초로 [[체세포 핵 치환]](SCNT) 기법으로 원숭이를 [[복제 (생물학)|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복제 원숭이의 이름은 중중(中中)과 화화(華華)이며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셀'([[:en:Cell (journal)|Cell]])에 실렸다.
== 탄생 ==
* [[76년]] - 로마 제국의 제14대 황제 [[하드리아누스]]. (~[[138년]])
* [[1444년]] - 밀라노의 공작 [[갈레아초 마리아 스포르차]]. (~[[1476년]])
* [[1705년]] - 이탈리아의 카스트라토 [[파리넬리]]. (~[[1762년]])
* [[1712년]] - 프로이센의 군주 [[프리드리히 2세 (프로이센)|프리드리히 2세]]. (~[[1786년]])
* [[1732년]] - 프랑스의 극작가 [[피에르 보마르셰]]. (~[[1799년]])
* [[1776년]] - 독일의 후기낭만파 화가이자 소설가, 작곡가 [[E. T. A. 호프만]]. (~[[1822년]])
* [[1891년]] - 독일의 군인 [[발터 모델]]. (~[[1945년]])
* [[1918년]] - 미국의 목사 [[오럴 로버츠]]. (~[[2009년]])
* [[1932년]] - 대한민국의 통일운동가 [[백기완]]. (~[[2021년]])
* [[1933년]] - 이탈리아의 음악가 [[니코 피덴코]]. (~[[2022년]])
* [[1934년]] -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배우, 방송인 [[김상국 (가수)|김상국]]. (~[[2006년]])
* [[1937년]] - 김정일의 아내 [[성혜림]]. (~[[2002년]])
* [[1942년]] - 일본의 법조인 [[구마자키 가쓰히코]]. (~[[2022년]])
* [[1943년]] - 미국의 배우 [[샤론 테이트]]. (~[[1969년]])
* [[1945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손욱]].
** 미국의 배우 [[일레인 기프토스]].
* [[1950년]] - 프랑스의 배우 [[다니엘 오퇴유]].
* [[1951년]] - 대한민국의 교육자 [[박헌영 (1951년)|박헌영]]. (~[[2011년]])
* [[1953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춘진]].
**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 [[문재인]].
** 대한민국의 성우 [[장정진]]. (~[[2004년]])
* [[1955년]] - 미국의 물리학자 [[앨런 소칼]].
* [[1957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은철 (배우)|이은철]].
** 미국의 농구 선수 [[마크 이턴]]. (~[[2021년]])
* [[1959년]]
** 대한민국의 역사학자 [[임지현 (역사학자)|임지현]].
** 벨기에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미셸 프뢰돔]].
* [[196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임예진]].
* [[1961년]]
** 독일의 배우 [[나스타샤 킨스키]].
** 대한민국의 언론운동가 출신 기초의원 [[강병수 (인천광역시의원)|강병수]]. (~[[2023년]])
* [[1962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광근 (1962년)|이광근]].
* [[1963년]] - 일본의 영화 감독 [[이와이 슌지]].
* [[1966년]]
** 대한민국의 배우 [[명로진]].
** 프랑스의 배우 [[카랭 비아르]].
* [[1967년]] - 미국의 베이시스트 [[존 명]].
* [[1969년]]
** 대한민국의 테니스 선수 [[김일순]].
** 대한민국의 배우 [[유호정]].
* [[197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명호 (배우)|이명호]].
* [[1971년]]
** 미국의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 미국의 영화 제작자, 배우, 모델 [[켄냐 무어]].
* [[1973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태희.
* [[1975년]] - 대한민국의 팝페라가수 이지.
* [[1977년]]
** 대한민국의 성우 [[최정현]].
** 대한민국의 기자 [[양원보]].
**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 [[돈 스파이크]].
* [[1978년]]
** 일본의 성우 [[미야하라 나미]].
** 카자흐스탄 태생 러시아의 레슬링 선수 [[규젤 마뉴로바]].
* [[197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송창의]].
* [[1980년]] - 쿠바의 유도 선수 [[요르다니스 아렌시비아]].
* [[1981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김동현 (1981년)|김동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권동식]].
* [[1982년]] - 미국의 배우 겸 가수 [[더비드 디그스]].
* [[1983년]]
** 미국의 가수 [[다이앤 버치]].
** 대한민국의 배우 [[문보령]].
** 대한민국의 배우 [[양조아]].
* [[1984년]]
** 대한민국의 래퍼 [[팔로알토 (래퍼)|팔로알토]].
** 미국의 배우, 영화제작자 [[저스틴 밸도니]].
* [[1985년]]
** 일본의 배우 [[이토 유키 (배우)|이토 유키]].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영기 (축구 선수)|김영기]].
* [[1986년]]
** 미국의 배우 [[리키 울먼]].
** 미국의 배우 [[미샤 바턴]].
* [[1987년]]
**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 [[루이스 알베르토 수아레스]].
** 일본의 라이트 노벨 작가 [[와타리 와타루]].
* [[1988년]] - 잉글랜드의 가수 [[제이드 유언]].
* [[1989년]]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방송인 [[공평희]].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기성용]].
** 일본의 가수 [[나카니시 유카]] ([[SKE48]]).
** 일본의 축구 선수 [[나가사토 아사노]].
** 말리의 축구 선수 [[삼바 디아키테]].
* [[1990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민석 (1990년생 배우)|김민석]].
** 일본의 수영 선수 [[이리에 료스케]].
** 브라질의 모델 [[최송이]].
* [[1991년]]
** 대한민국의 래퍼 [[기리보이]].
** 우크라이나의 레슬링 선수, 정치인 [[잔 벨레뉴크]].
** 우크라이나의 레슬링 선수 [[파르비즈 나시보우]].
* [[1992년]]
** 대한민국의 배우, 모델 [[박선임]].
** 중국의 아이돌 [[펑신둬]].
* [[1993년]] - 대한민국의 펜싱 선수 [[윤지수]].
* [[1994년]]
** 대한민국의 전 가수 [[영재 (1994년)|영재]].
** 대한민국의 펜싱 선수 [[마세건]].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신동훈 (야구 선수)|신동훈]].
* [[1995년]] - 대한민국의 기타리스트 [[강신혁]].
* [[199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주안]].
** 대한민국의 배우 [[민채은 (배우)|민채은]].
* [[1997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종현 (1997년)|이종현]].
* [[199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신영]]
* [[1999년]]
** 인도네시아의 싱어송라이터, 음악프로듀서 [[니키 (가수)|니키]].
** 프랑스의 유도 선수 [[시린 부클리]].
* [[2000년]]
** 대한민국의 가수 [[기욱 (가수)|기욱]].
** 대한민국의 가수 이한울.
* [[2001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기중 (가수)|김기중]].
* [[2005년]] - 대한민국의 가수 [[에이든 (EPEX)|에이든]].
* [[2012년]] - 덴마크의 공주 [[몽페자 여백작 아테나]].
== 사망 ==
* [[41년]] - 로마 제국의 3대 황제 [[칼리굴라]]. ([[12년]]~)
* [[817년]] - 제97대 로마의 교황 [[교황 스테파노 4세]]. ([[770년]]~)
* [[1737년]] - 캔터베리 대주교 [[윌리엄 웨이크]]. ([[1657년]]~)
* [[1865년]] - 라이베리아의 초대 총리이자 2대 대통령인 [[스티븐 벤슨]]. ([[1816년]]~)
* [[1916년]] - 대한제국의 정치인 [[고영희 (조선귀족)|고영희]]. ([[1849년]]~)
* [[1920년]] - 이탈리아의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1884년]]~)
* [[1924년]] - 룩셈부르크의 여대공 [[마리아델라이드 (룩셈부르크)|마리아델라이드]]. ([[1894년]]~)
* [[1930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좌진]]. ([[1889년]]~)
* [[1932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이장녕]]. ([[1881년]]~)
** 독일의 히틀러 청소년단원 [[헤르베르트 노르쿠스|헤르바르트 노르쿠스]]. ([[1916년]]~)
* [[1965년]] - 영국의 정치 지도자 [[윈스턴 처칠]]. ([[1874년]]~)
* [[197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윤재근]]. ([[1910년]]~)
* [[1981년]] - 대한민국의 아동 문학가 [[이원수 (작가)|이원수]]. ([[1912년]]~)
* [[1983년]] - 미국의 영화감독 [[조지 큐커]]. ([[1899년]]~)
* [[1993년]] - 미국의 법학자 [[서굿 마셜]]. ([[1908년]]~)
* [[2004년]] - 브라질의 축구 선수 [[레오니다스 다 시우바]]. ([[1913년]]~)
* [[2006년]] - 미국의 배우 [[크리스 펜]]. ([[1913년]]~)
* [[2007년]] - 푸에르토리코의 슈퍼센티네리언 [[에밀리아노 메르카도 델 토로]]. ([[1891년]]~)
* [[2011년]] - 독일의 영화 제작자 [[베른트 아이힝거]]. ([[1965년]]~)
* [[2012년]] - 그리스의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 ([[1949년]]~)
* [[2015년]] - 독일의 전차 에이스 [[오토 카리우스]]. ([[1935년]]~)
* [[2020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정희채]]. ([[1922년]]~)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로프 렌센브링크]]. ([[1927년]]~)
* [[2021년]]
** 스웨덴의 영화배우 [[군넬 린드블롬]]. ([[1947년]]~)
** 카자흐스탄의 스키 선수 [[니콜라이 체보티코]]. ([[1982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유튜버 [[잼미님]]. ([[1995년]]~)
** 헝가리의 기계체조 선수 [[촐라니 실베스테르]]. ([[1970년]]~)
** 브라질의 음모론자 [[올라부 지 카르발류]]. ([[1947년]]~)
** 터키의 영화배우 [[파트마 기리크]]. ([[1942년]]~)
* [[2023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천명수 (1947년)|천명수]]. ([[1947년]]~)
* [[2024년]] - 미국의 포로노배우 [[제시 제인]]. ([[1980년]]~)
== 기념일 ==
* [[한국의 설날]] - [[2001년]], [[2039년]], [[2058년]], [[2077년]], [[2088년]]
* [[:en:United Principalities|통일의 날]]: [[루마니아 왕국]]의 전신인 [[몰다비아 왈라키아 연합공국]]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 [[루마니아]]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1월 23일]] 다음날: [[1월 25일]] - 전달: [[12월 24일]] 다음달: [[2월 24일]]
* 음력: [[음력 1월 24일|1월 24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1월 24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