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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AFC 아시안컵 이란 | [include(틀: AFC 아시안컵)]
[목차]
1976 AFC ASIAN CUP
[[아시아 축구 연맹]] 주관의 [[AFC 아시안컵]] 6회 대회
== 경기장 ==
|| 도시 || 경기장 이름 || 수용인원 ||
|| 테헤란 || [[아자디 스타디움|아리아메르 경기장]][* [[1974년 아시안 게임]]을 위해 건설되었으며,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에는 현재의 이름인 아자디 스타디움으로 불리고 있다.] || 90,000명 ||
|| 티브리즈 || 바그 소말 경기장 || 25,000명 ||
* 개막전을 비롯한 본선 A조 경기는 [[타브리즈]]에서, 본선 B조 경기와 4강전, 3-4위 결정전, 결승전은 [[테헤란]]에서 개최되었다.
== 진행 방식 ==
* 개최국이면서 지난대회 우승팀 이란에게 자동 출전권이 주어졌다. 남은 5장의 본선 티켓을 놓고 14개국이 예선에 참가하였다.
* 아시안컵 예선은 4개조로 나뉘어 각 조 1,2위팀이 본선에 진출한다.
* 본선에선 원래 8개팀으로 치러야 하나 3개팀이 기권을 선언하는 바람에 3개팀 2개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실시하여 각 조 상위 1,2위팀이 4강에 진출한다. 4강부터는 토너먼트로 실시한다.
* 1976년 6월 3일 쿠웨이트와 말레이시아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결승전인 6월 12일까지 약 2주간 진행된다.
== 지역예선 ==
당초 그룹 편성은 다음과 같다.
* 그룹1 : 이란, 쿠웨이트, 남예멘, 바레인, 레바논, 파키스탄[* 본래 그룹 2에 가야하지만, 그룹2의 인도와 경기를 거부 하여 그룹1로 편성되었다.], 시리아
* 그룹2 :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이라크,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방글라데시, 인도, 요르단, 네팔
* 그룹3 : 브루나이, 홍콩[* 지정학적 위치는 그룹4가 맞으나, 그룹3으로 분류되었다. 베트남 공화국, 크메르 공화국, 라오스 조차도 그룹4로 분류되었건만. 이렇게 피해갔지만.....],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버마, 스리랑카
* 그룹4 : 일본, 중국, 대한민국, 베트남 공화국, 이스라엘, 크메르 공화국, 라오스, 필리핀
이란은 개최국이라 자동출전이 되었고, 기권팀들도이 속출했고, 이스라엘은 아예 AFC에서 축출되었을 뿐만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은 AFC에서 축출됐다가 다시 복귀하면서 그룹3으로 이동하고, 일본은 돌연 그룹4로 옮겨져가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은 갑자기 그룹4로 바뀌고, 북한 역시 그룹 3으로 배정되면서
* 그룹1 : 쿠웨이트, '''남예멘'''
* 그룹2 :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이라크,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 그룹3 : 브루나이, 홍콩, '''중국''', '''북한''', 일본, 싱가포르
* 그룹4 : 말레이시아, 태국, 대한민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공화국
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 그룹1 ===
바레인, 레바논, 파키스탄, 시리아가 모두 기권하여, 남은 두팀 '''쿠웨이트'''와 '''남예멘'''의 본선 자동진출이 확정되었다.
=== 그룹2 ===
1975년 4월 2일~1975년 4월 14일까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개최되었다.
홈&어웨이 방식의 풀리그로 진행되었다.
|| 홈 || 경기결과 || 원정 ||
|| 이라크 || 1 - 0 || 카타르 ||
|| 사우디 아라비아 || 2 - 0 ||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
|| 이라크 || 4 - 0 ||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
|| 사우디 아라비아 || 2 - 1 || 카타르 ||
|| 이라크 || 1 - 1 || 사우디 아라비아 ||
|| 카타르 || 2 - 1 ||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
|| 이라크 || 3 - 0 || 카타르 ||
|| 사우디 아라비아 || 6 - 0 ||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
|| 이라크 || 2 - 1 || 사우디 아라비아 ||
|| 카타르 || 1 - 1 ||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
|| 이라크 || 3 - 1 ||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
|| 사우디 아라비아 || 0 - 1 || 카타르 ||
카타르,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사우디 아라비아는 예선 첫출전이었고, 이미 지난 대회 본선출전 경험이 있는 이라크는 홈버프에 힘입어 예선을 매우 쉽게 풀어나갔다. 사우디 역시 만만치 않은 전력을 자랑하며 2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사우디 아라비아는 예선 종료이후 기권을 하게되어, 그룹2의 본선진출국은 '''이라크''' 단독 진출이 되었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이라크 || 6 || 5 || 1 || 0 || 14 || 3 || 11 ||
|| '''2위''' || 사우디아라비아 || 6 || 3 || 1 || 2 || 12 || 5 || 7 ||
|| '''3위''' || 카타르 || 6 || 2 || 1 || 3 || 3 || 5 || 5 ||
|| '''4위''' ||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 6 || 0 || 1 || 5 || 3 || 18 || 1 ||
=== 그룹 3 ===
그룹 3은 6팀이라 3팀씩 2조로 나뉘어 풀리그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1975년 6월 14일~26일까지 홍콩 정부 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제 1회 아시안컵이 열렸던 그 경기장이다.]
* 그룹 배정경기
|| 홍콩 || 0 - 0 (PK 4 - 3) || 일본 ||
|| 중국 || 1 - 0 || 북한 ||
|| 싱가포르 || 6 - 0 || 브루나이 ||
==== 그룹리그 ====
|| 중국 || 10 - 1 || 브루나이 ||
|| 홍콩 || 3 - 0 || 브루나이 ||
|| 홍콩 || 0 - 1 || 중국 ||
브루나이는 사실 전력이 좋을 리가 없었고, 그룹배정경기까지 합하면 19실점을 하며 광탈.
홍콩은 결국 동아시아 팀과 경기를 가지게 되었으나, 브루나이라는 승점자판기 덕분에 최하위를 면하며 다음 토너먼트로 진출했다. 대회 첫출전의 중국은 그룹배정경기부터 북한을 꺾고, 브루나이를 상대로 무려 10골을 득점하며 기대를 모았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중국 || 2 || 2 || 0 || 0 || 11 || 1 || 4 ||
|| '''2위''' || 홍콩 || 2 || 1 || 0 || 1 || 3 || 1 || 2 ||
|| '''3위''' || 브루나이 || 2 || 0 || 0 || 2 || 1 || 13 || 0 ||
중국과 홍콩이 다음 토너먼트로 진출했다
|| 북한 || 1 - 0 || 일본 ||
|| 북한 || 1 - 0 || 싱가포르 ||
|| 일본 || 2 - 1 || 싱가포르 ||
10년전 월드컵 8강에 진출했던 북한이 아시안컵 예선에 첫등장했고, 2승을 따내며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일본은 북한에게 패했지만, 오치아이와 나가이의 골로 싱가폴을 제압하며 2위로 진출.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북한 || 2 || 2 || 0 || 0 || 2 || 0 || 4 ||
|| '''2위''' || 일본 || 2 || 1 || 0 || 1 || 2 || 2 || 2 ||
|| '''3위''' || 싱가포르 || 2 || 0 || 0 || 2 || 1 || 3 || 0 ||
북한과 일본이 다음 토너먼트로 진출했다
==== 준결승전 ====
|| 중국 || 2 - 1 || 일본 ||
|| 북한 || 3 - 3 (PK 11-10) || 홍콩 ||
중국은 리 유티에, 크 우샹의 연속골로 아라이의 만회골에 그친 일본을 가볍게 제압하고 결승진출, 북한은 홍콩과 3골씩 주고받는 난타전끝에 승부차기에 돌입했고, 각각 11명의 선수가 승부차기를 한끝에 북한이 결승에 진출했다.
==== 3,4위전, 결승전 ====
|| 홍콩 || 0 - 1 || 일본 ||
|| 북한 || 2 - 0 || 중국 ||
와타나베의 골로 일본이 3위, 북한은 그룹배정경기에서 패배를 안겨줬던 중국을 2-0으로 제압하며, 북한이 우승했다. 북한과 중국의 첫 본선진출이 결정되었으나, 북한이 기권하며 '''중국'''만 대회에 나서게 되었다.
=== 그룹 4 ===
5개의 팀이 풀리그로 경기를 치러 상위 2개팀이 본선에 진출했다.
1975년 3월 15일~24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개최되었다.
|| 태국 || 3 - 1 || 인도네시아 ||
|| 말레이시아 || 2 - 1 || 대한민국 ||
|| 인도네시아 || 2 - 1 || 베트남 공화국 ||
|| 태국 || 0 - 1 || 말레이시아 ||
|| 대한민국 || 1 - 0 || 베트남 공화국 ||
|| 말레이시아 || 0 - 0 || 인도네시아 ||
|| 태국 || 4 - 0 || 베트남 공화국 ||
|| 대한민국 || 1 - 0 || 인도네시아 ||
|| 말레이시아 || 3 - 0 || 베트남 공화국 ||
|| 태국 || 1 - 0 || 대한민국 ||
동남아시아의 반란이라고 불릴정도의 예선이었다. 지난 대회를 개최하며 본선에 올랐던 태국은 말레이시아에게만 패했고, 특히 대한민국을 최종전에서 1-0으로 꺾으면서 2회연속 진출을 달성했다. 말라야 반도시절부터 꾸준히 예선에 참가했던 말레이시아는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조 1위를 차지하며 첫 본선진출을 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최종전 태국전에서 원정경기의 어려움끝에 패배하며 탈락하게 되었다. 나름 아시안컵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베트남 전쟁을 치르면서 정상적인 전력을 구리기 어려웠던 베트남 공화국을 상대로도 1골밖에 못넣는든 예선 내내 빈공에 시달렸던게 패인. 초대대회때부터 매번 예선 참가했던 베트남 공화국이 마지막으로 예선에 참가한 대회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말레이시아 || 4 || 3 || 1 || 0 || 6 || 1 || 7 ||
|| '''2위''' || 태국 || 4 || 3 || 0 || 1 || 8 || 2 || 6 ||
|| '''3위''' || 대한민국 || 4 || 2 || 0 || 2 || 3 || 3 || 4 ||
|| '''4위''' || 인도네시아 || 4 || 1 || 1 || 2 || 3 || 5 || 3 ||
|| '''5위''' || 베트남 공화국 || 4 || 0 || 0 || 4 || 1 || 10 || 0 ||
말레이시아와 태국이 본선에 진출했다. 그러나 태국이 이후 기권하여, '''말레이시아''' 단독진출이 되었다.
== 본선 진출국 ==
||<:>'''국가'''||<:>'''진출 경위'''||<:>'''진출 횟수'''[* 현대회 본선진출 제외 횟수]||<:>'''최고 성적'''||
||<:>[[이란]]||<:>전대회 우승[br]개최국 자동 진출||<:>2회||<:>우승(2회)||
||<:>[[쿠웨이트]]||<:>예선 1조||<:>1회||<:>1라운드||
||<:>[[남예멘]]||<:>예선 1조||<:>0회||<:>첫 참가||
||<:>[[이라크]]||<:>예선 2조 1위||<:>1회||<:>1라운드||
||<:>[[중국]]||<:>예선 3조 2위||<:>0회||<:>첫 참가||
||<:>[[말레이시아]]||<:>예선 4조 1위||<:>0회||<:>첫 참가||
== 진행 경과 ==
=== 조별 리그 ===
==== A조 ====
A조의 경기는 타브리즈, 바그 소말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 쿠웨이트 || 2 - 0 || 말레이시아 ||
|| 중국 || 1 - 1 || 말레이시아 ||
|| 쿠웨이트 || 1 - 0 || 중국 ||
쿠웨이트는 첫경기부터 알 안베리, 알다킬의 골로 말레이시아를 대파했고, 중국과 말레이시아는 다하리, 왕 지리안의 골을 서로 주고받으며 대회 첫승점을 획득했다. 쿠웨이트는 중국마저 파티 카멜의 골로 이기며 조선두로 진출, 1골 차이로 중국이 말레이시아를 제치고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쿠웨이트 || 2 || 2 || 0 || 0 || 3 || 0 || 4 ||
|| '''2위''' || 중국 || 2 || 0 || 1 || 1 || 1 || 2 || 1 ||
|| '''3위''' || 말레이시아 || 2 || 0 || 1 || 1 || 1 || 3 || 1 ||
'''쿠웨이트'''와 '''중국'''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 B조 ====
B조의 경기는 테헤란 아리아메르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 이란 || 2 - 0 || 이라크 ||
|| 이라크 || 1 - 0 || 남예멘 ||
|| 이란 || 8 - 0 || 남예멘 ||
개최국 이란은 라이벌 이라크를 나세르 누레이, 로샨의 골로 가볍게 제압하며 아시안컵 10연승을 달성했다. 이라크는 첫출전의 남예멘을 상대로도 빈공을 보이다가 후반 왈르의 골로 간신히 승점을 따냈다. 남예멘은 마지막경기에서도 이란에게 8골이나 두들겨 맞으며 승점을 거두지 못한체 탈락했다. 골람 후세인 마즐루미는 이번 대회 첫 헤트트릭을 달성했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이란 || 2 || 2 || 0 || 0 || 10 || 0 || 4 ||
|| '''2위''' || 이라크 || 2 || 1 || 0 || 1 || 1 || 2 || 2 ||
|| '''3위''' || 남예멘 || 2 || 0 || 0 || 2 || 0 || 9 || 0 ||
'''이란'''과 '''이라크'''가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 토너먼트 ===
이후 경기는 테헤란 아리아메르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 준결승 1경기 쿠웨이트 3 - 2 이라크 ====
1976년 6월 11일
전반 11분에 터진 이브라힘의 골에 이라크는 끌려가기 시작했으나, 후반 시작하자마자 압둘 잘릴의 만회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린다. 파티 카멜이 77분 골을 터트리고, 이라크의 하산이 다시 85분에 골을 터뜨리며 연장전에 돌입했다. 두번째 골의 주인공 파티 카멜이 연장전에 다시 대회 3호골을 터뜨리며 쿠웨이트가 사상첫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 준결승 2경기 이란 2 - 0 중국 ====
1976년 6월 11일
개최국이자 디펜딩챔피언이며 아시안컵 11연승의 강자 이란을 상대로 실점을 하지않고 잘버텨 연장전에 돌입했으나 연장전에서 코르시디, 로샨의 골에 패배했다.
==== 3-4위전 중국 1 - 0 이라크 ====
1976년 6월 13일
중국은 허 지아의 골로 이라크를 제압하며 아시안컵 첫 승리를 거두었고, 첫출전에 3위라는 좋은 성적으로 대회를 마무리 했다.
==== 결승전 이란 1 - 0 쿠웨이트 ====
1976년 6월 13일
두팀다 조 1위로 본선리그를 통과하고, 연장전을 치르는 고난끝에 결승에 진출했지만, 파르빈의 골에 힘입어 홈팀 이란이 아시안컵 13연승이라는 괴물같은 성적과 함께 아시안컵의 유일한 3연패 국가로 남게 되었다.
||<table align=center><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
|| A || 4강 1경기 [br] '''쿠웨이트''' 3:2 이라크 ||<|3><:> C ||<|3><:> 결승 [br] 쿠웨이트 0:1 '''이란''' ||
|| B || 4강 2경기 [br] '''이란''' 2:0 중국 ||
|| D || 3/4위전 [br] 이라크 0:1 '''중국''' ||
||<table align=center><rowbgcolor="#FFD700"> '''{{{+2 1976 AFC 아시안컵 우승}}}''' ||
|| [[파일:external/www.worldstatesmen.org/ir-pahlavi_dynasty1964.jpg|width=200]] [br] '''이란''' ||
|| 3번째 우승 ||
== 결과 ==
|| 순위 || 국가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 || 승점 || 비고 ||
||<rowbgcolor=#FFD700><:> 1 || 이란 || 4 || 4 || 0 || 0 || 13 || 0 || +13 || '''8''' || '''우승''' ||
||<rowbgcolor=#C0C0C0><:> 2 || 쿠웨이트 || 4 || 3 || 0 || 1 || 6 || 3 || +3 || '''6''' || 준우승 ||
||<rowbgcolor=#B8860B><:> 3 || 중국 || 4 || 1 || 1 || 2 || 2 || 4 || -2 || '''3''' || 3위 ||
||<rowbgcolor=#F0E68C><:> 4 || 이라크 || 4 || 1 || 0 || 3 || 3 || 6 || -3 || '''2''' || 4위 ||
||<rowbgcolor=#FFA7A7><:> 5 || 말레이시아 || 2 || 0 || 1 || 1 || 1 || 3 || -2 || '''1'''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6 || 남예멘 || 2 || 0 || 0 || 2 || 0 || 9 || -9 || '''0''' || 1라운드 ||
* 득점왕 : 나세르 누레이(1954~)(이란), 골람 후세인 마즐루미(1950~2014)(이란), 파티 카멜(1955~)(쿠웨이트) 3골
* 최우수선수 : 알리 파르빈(1946~)(이란)
== 이야깃거리 ==
* 개최국 이란은 전승 무실점으로 우승하며 3개 대회 연속으로 우승하였다. 지난 두개대회까지 본선에서 13경기를 치뤄서 단한번도 비기거나 지지않고 모두 이기며 70년대 아시아 최강자임을 증명했다. 아시안컵 13연승이라는 대기록과 더불어 3회 연속 득점왕 배출은 덤. --그러나 이게 마지막 우승이다--
* 상술했듯이, 기권 한번 없이 꾸준히 예선을 치뤘던, 베트남 공화국이 마지막으로 참가했던 대회다. 본선진출에는 실패했지만. 1975년에 3월 23일에 치룬 말레이시아와의 예선경기가 마지막 경기로, 이유는 한달뒤인 4월 30일 '''나라가 정말 멸망'''해버렸기 때문이다.
* 남예멘 역시 처음이자 마지막 본선진출로, 12년뒤 한번더 본선진출을 도전하지만, 실패했고, 이후 예멘에 흡수 통일되었다. 결국 승점 1점, 득점 1점을 못한채 사라졌다.
* 꾸준히 예선에 참가했던 중화민국 축구대표팀이 참가하지 못했는데, 이유는 AFC에서 축출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의 대회 참가가 가능했던것. 16년뒤에야 복귀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전대회 항목에 서술한대로, 이번대회 예선에서 축출당한뒤로 영원히 AFC와는 바이바이 하게되었다.
* 결승전의 관중수는 만석인 10만명. 깨지지 않을 기록이다.
* 대한민국이 예선 탈락해서 참가하지 못한 두번째 대회다.--어째 이란에서 아시안컵을 개최하면 출전을 못하는 것도 한때의 징크스였을지도 모른다--
[각주]
[[분류:AFC 아시안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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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 ||<-13><tablealign=center><bgcolor=#a9a9a9> {{{#000000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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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18세기]]}}} ||<-3> {{{-2 [[19세기]]}}} ||<bgcolor=#a9a9a9> [[20세기|{{{#000000 '''20세기'''}}}]] ||<-3> {{{-2 [[21세기]]}}} ||<-3> {{{-2 [[22세기]]}}} ||
||<-13><bgcolor=#2f4f4f> {{{#ffd711 '''밀레니엄'''}}} ||
||<-6> {{{-2 [[제1천년기]]}}} ||<bgcolor=#2f4f4f> [[제2천년기|{{{#ffd700 '''제2천년기'''}}}]] ||<-6> {{{-2 [[제3천년기]]}}} ||
||<-2><tablealign=right><bgcolor=#cbb8ee> '''세계 각 지역의 표기''' ||
|| [[서력기원|서기]] || 1977년 ||
|| 대한민국 || 59년 ||
|| [[단군기원|단기]] || 4310년 ||
|| [[불멸기원|불기]] || 2521년 ||
|| [[이슬람력]] || 1397년 ~ 1398년 ||
|| [[갑자|간지]] || [[병진]]년 ~ [[정사]]년 ||
|| [[주체사상|주체]] || 66년 ||
|| [[중화민국|민국]] || 66년 ||
|| [[일본]] || [[쇼와]] 52년 ||
|| [[히브리력]] || 5737년 ~ 5738년 ||
[목차]
== 개요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122800209204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12-28&officeId=00020&pageNo=4&printNo=17304&publishType=00020|1977년 동아일보 선정 국내외 10대 뉴스]]
[[토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이 해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매우 뜻있는 해이기도 한데, 바로 '''국민소득 1천 달러 및 수출 1백억 달러 달성'''이었다. 너무 가난한 이들이 가득해 세금이 안 걷혀 원조농산물을 시장에 판 돈이 국가예산의 절반을 차지하던 세계 최빈국이 15년만에 중진국에 진입하였다.
연예계에서는 [[정윤희]], [[장미희]]가 드라마 청실홍실에서, [[유지인]]이 드라마 서울야곡에서 인기를 끌어 [[2세대 여배우 신트로이카]] 시대를 열던 해이기도 했다. 이 해에 장미희는 드라마 이외에도 영화 [[겨울여자]]의 흥행 성공으로 트로이카 중 선두주자로 앞서나갔다. 겨울여자의 경우에는 [[별들의 고향]]의 흥행기록을 깨서 14년동안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고수하였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는 9년으로 보기도 한다. [[깊고 푸른 밤]]의 흥행 기록이 겨울여자보다 앞섰다고 보는 사람도 있기 때문.]
방송계 역시 1927년 JODK 개국을 기준으로 '한국방송 50주년'을 성대히 기념하였다. 이에 따라 KBS도 <한국방송사>란 책을 냈다.
[youtube(3YExTM_q8rk)]
더불어 수백년간 인류를 위협하던 '''[[천연두]]가 완전히 박멸'''된 해이기도 하다.
== 사건 ==
=== 실제 ===
==== 1월 ====
* [[1월 1일]]
* 박정희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자주/자립 기반 실현을 강조하였다.
* 정부는 쌀을 먹지 않는 날인 '무미일'을 철폐하였다.
* 보건사회부는 생활무능력자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의료보호 사업을 실시하였다.
* 북한의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대미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였다.
* 유럽경제공동체(EEC)가 2백해리 공동어로 경제수역을 설정하였다.
* [[1월 12일]]: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대북 식량원조를 제의하며 남북 불가침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의 철수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 불가침협정을 거부하는 대신 남북정치협상회의를 제안하였다.
* [[1월 20일]]: [[지미 카터]]가 미국 제 39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 [[1월 28일]]: 박정희 대통령은 국방부를 순시하며 핵무기와 전투기를 뺀 모든 무기를 국산화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 [[1월 29일]]: 하이틴 영화의 본좌로 손꼽히는 '''[[고교얄개]]'''가 개봉되었다.
==== 2월 ====
* [[2월 10일]]: 박정희 대통령은 임시행정수도 건설 구상을 발표하였다.
==== 3월 ====
* [[3월 9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4~5년 내에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계획을 발표하였다.
* [[3월 22일]]: 이날 대법원이 3.1 민주구국선언 관련 인사들에 대한 상고를 기각하자 윤보선 전 대통령 등 민주인사 10명이 <민주구국헌장>을 발표하였다.
* [[3월 27일]]: '''[[스페인]]의 [[카나리아 제도]]에서 사상 최악의 항공참사로 기록되는 [[테네리페 참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항공기만으로 일어난 최다 사망자인 '''583명'''을 기록하였다.]
==== 4월 ====
* [[4월 14일]]: 부산~제주 간 카페리호가 취항하였다.
* [[4월 18일]]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77선언'을 발표하였다.
*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동남전기 지부(이하 동남전기 노조)'가 결성되었다.
* [[4월 19일]]: 고려대 유인물 사건이 발생하였다.
* [[4월 20일]]: [[전라남도]] [[광주시]][* 당시 광주는 전라남도 소속이였다.]에서 [[박흥숙|박흥숙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당시 정부의 강제 재개발로 인한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들어나면서 선처운동을 할정도로 논란이 일었다.
* [[4월 21일]]: 인선사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동조합 결성을 신고하러 갔으나 유령노조의 존재로 무산되었다.
* [[4월 29일]]: 인선사 측이 유령노조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탄압하자 노동자 10여 명이 '인선사 노동조합 정상화 수습대책 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5월 ====
* [[5월 4일]]: 문화공보부는 일본 요미우리신문 서울지국을 폐쇄시키고 국내 배포를 금지시켰다. 이는 박정희 사후인 1980년 1월에야 풀렸다.
* [[5월 24일]]: 미국의 필립 하비브와 브라운 특사가 한국을 방문하여 주한미군 철수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 [[5월 25일]]: [[미국]]에서 SF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이 개봉되었다. 한국은 1978년 6월 1일 개봉.
* [[5월 29일]]: 카터 미국 대통령은 한국이 침략당할 시 핵무기를 사용한다고 언명하였다.
==== 6월 ====
* [[6월 15일]]: [[스페인]]에서 [[스페인 내전]] 이래 처음으로 첫 민주선거가 치뤄졌다.
* [[6월 19일]]: 국내 최초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원자력 발전소]] 1호기가 가동을 개시하였다.
* [[6월 22일]]: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미국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정희 정권 시기 비사들을 증언하였다.
* [[6월 23일]]: 영화 <엄마없는 하늘아래>가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개봉되었다.
* [[6월 28일]]: 외무부는 김형욱 증언 사건과 청와대 도청사건과 관련하여 미국 정부에 항의각서를 보냈다.
* [[6월 29일]]: 사이러스 밴스 미국 국무부 장관은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당사국 회담 개최를 촉구하였다.
==== 7월 ====
* [[7월 1일]]
* 정부는 부가가치세 제도와 의료보험제를 실시하였다.
* 북한은 2백해리 경제수역을 선포하였다. 이에 남한 정부는 이를 불인정한다고 발표하였다.
* [[7월 8일]]: 이날 중부지역에 폭우가 발생하여 3백여 명의 사망자가 났다.
* [[7월 10일]]: 대한민국이 네덜란드에서 열린 제23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첫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 [[7월 13일]]: [[미국]] [[뉴욕]]에서 사상 최악의 정전이 발생하여 25시간 동안 전력 공급이 중단되었다.
* [[7월 22일]]: [[중화인민공화국]] 국가 및 당 주석 화궈펑이 [[4인방]] 숙청 이후 정국 수습을 위해 [[덩샤오핑]]을 복권시켰다. 이후 덩샤오핑은 서서히 권력을 장악해가기 시작한다.
* [[7월 24일]]: 충북 옥천 지탄역에서 열차 충돌사고가 일어나 16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 [[7월 25일]]: [[일본]]에서 5명의 10대 소년으로 구성된 밴드 [[LAZY]]가 데뷔 싱글인 Hey! I Love You!로 메이져 데뷔했다. 이 날은 이 그룹의 멤버였던 '''[[카게야마 히로노부]]'''가 정식적으로 메이저 데뷔한 날이기도 하며, 다른 4인[* [[타가사키 아키라]], [[이노우에 슌지]], [[타나카 히로유키]], [[히구치 무네타카]].]의 데뷔일도 이날로 기산하고 있다.
* [[7월 28일]]: 미국 상원은 대통령과 의회의 대한정책 공동작성을 규정한 법안을 채택하였다.
* [[7월 30일]]: 백건우 윤정희 피랍미수 사건이 발생하였다.
==== 8월 ====
* [[8월 1일]]: 북한이 해상군사경계선을 서해 2백 마일, 동해 50마일로 설정하였다. 이에 남한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 [[8월 12일]]: [[중국 공산당]] 제11차 인민대의원회의가 이날부터 6일간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 [[화궈펑]]이 문화대혁명의 종결을 선언하였다.
* [[8월 16일]]: 로클론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가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채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향년 42세. 프레슬리의 죽음은 당시 전세계팬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 [[8월 20일]]
* [[고리 원자력 발전소]] 1호기가 송전을 개시했다. 이후 한국의 전력생산에서 원자력 발전의 비중이 급속도로 높아진다.
* 보이저 2호가 타이탄 IIIE 로켓에 실려 외행성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였다. 보이저 2호는 아직 작동중이며, 현재 최초의 항성간(Interstellar) 탐사선이 되었다.
* [[8월 23일]]: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은 적성국인 한국 외교관의 입국을 허용하였다.
* [[8월 25일]]: 충남 금산에 제2 위성통신 기지국이 준공되었다.
==== 9월 ====
* [[9월 1일]]: 리영희 교수의 저서 <8억인과의 대화>가 출간되었다.
* [[9월 3일]]: 제1회 [[MBC 대학가요제]]가 개최되었다.
* [[9월 5일]]: 보이저 2호에 이어 보이저 1호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 [[9월 6일]]
* 미국 법무성은 박동선을 기소하였다.
* 일본과 북한은 민간 어업협정을 체결하였다.
* [[9월 7일]]: [[미국]]과 [[파나마]]가 [[파나마 운하]]에 대한 새로운 조약을 체결, [[20세기]]가 종식된 이후 파나마 운하의 모든 권한을 파나마에 이양하기로 합의하였다.
* [[9월 10일]]: [[프랑스]]에서 마지막 [[단두대]]형이 집행되었다. 그리고 [[1981년]] 프랑스에서 사형이 폐지될 때 까지 사형을 실시하지 않음으로써 프랑스의 마지막 사형 방법이 단두대형이 되었다.
* [[9월 15일]]: [[고상돈]] 대장이 이끄는 한국 등반대가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다.
==== 10월 ====
* [[10월 4일]]: 프랑스에서 국제TV아카이브연맹(FIAT)이 발족되었다.
* [[10월 6일]]: 유신정권은 크리스찬아카데미가 발간해 온 기관지 <대화>에 대해 무기한 휴간 조치를 내렸다.
* [[10월 18일]]
* 박정희 대통령은 남북 불가침협정, 경계선 개방, 자유선거제를 원칙으로 한 '평화통일 3원칙'을 제시하였다.
* KBS에서 [[전설의 고향]]이 첫 전파를 탔다.
* [[10월 20일]]: 미국의 [[서던 록]] 밴드 [[레너드 스키너드]]의 멤버인 로니 반 잰트, 스티브 게인즈, 백업 보컬리스트 캐시 게인즈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고 나머지 멤버들도 큰 부상을 입었다.
* [[10월 28일]]: [[영국]]의 [[펑크 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가 발매된다. 이 음반은 향후 대중음악의 판도를 바꿔놓는다.
==== 11월 ====
* [[11월 11일]]: 전북 이리에서 [[이리역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 [[11월 19일]]: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가 아랍국가 정상으로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 [[11월 23일]]: 경찰은 <8억인과의 대화>의 일부 내용을 문제삼아 저자인 리영희 교수를 구속했다.
* [[11월 26일]]: [[영국]]에서 [[애쉬타 전파납치 사건]]이 발생했다.
==== 12월 ====
* [[12월 1일]]
* 서울에서 시내버스 토큰제가 처음 실시되었다.
* [[미국]]에서 세계 최초의 [[스텔스]]기인 [[F-117]]이 첫 비행에 성공했다.
* [[12월 17일]]: [[구마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 [[12월 2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수출 1백억불 달성 기념식이 열렸다.
=== 가상 ===
* 일자불명
* 미국 [[알래스카]] 주의 [[유대인]] 정착촌인 싯카 특별구에서 싯카 세계박람회가 열렸다. 이 시절이 싯카 특별구의 [[리즈시절]]이었다. - [[유대인 경찰연합]]
* 미국 정부가 국가의 승인 없는 자경단원들의 활동을 금지하는 '킨 법령'을 제정하였다. - [[왓치맨]]
* 8월
* 요나키 마을에서 최초의 왕 게임이 시작 - [[왕 게임(소설)|왕 게임]]
== 탄생 ==
=== 실존인물 ===
* [[1월 1일]] - [[하산 살리하미지치]]: [[보스니아]]의 축구 선수
* [[1월 3일]] - [[이이즈카 마유미]]: [[일본]]의 [[성우]] 및 [[가수]]
* [[1월 6일]] - [[데프콘(가수)|데프콘]]: [[한국]]의 [[래퍼]]
* [[1월 10일]] - [[릭 바우어]]: [[미국]]의 [[야구]]선수
* [[1월 11일]] - [[릭 구톰슨]]: [[미국]]의 前 [[야구]] 선수
* [[1월 12일]] - [[사사키 히사토]]: 일본의 [[작사#s-1]]
* [[1월 13일]] - [[올랜도 블룸]]: [[영국]]의 배우
* [[1월 19일]]
* [[김서영(성우)|김서영]]: 한국의 성우
* [[로렌]]: [[카메룬]]의 축구 선수
* [[1월 20일]] - [[정수근]]: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1월 22일]] - [[나카타 히데토시]]: 일본의 전 [[축구 선수]]
* [[1월 26일]] - [[박해일]] : 한국의 배우
* [[1월 31일]] - [[카토리 싱고]]: 일본의 가수, [[아이돌]] [[SMAP]]의 멤버
* [[2월 2일]]
* [[게키단 히토리]]: 일본의 [[개그맨]], [[배우]]. 본명 카와시마 쇼고
* [[샤키라]]: [[콜롬비아]] 출신의 [[가수]]. [[헤라르드 피케]]의 부인[* 공식적으로 결혼하지는 않았으나 동반자 관계로 인정받고 있다.]으로 [[헤라르드 피케]]와는 '''정말로 딱 10년 차이'''가 난다.
* [[2월 5일]]
* [[라형진]]: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이성진(NRG)|이성진]]: 한국의 가수, 그룹 [[NRG(아이돌)|NRG]]의 멤버
* [[2월 9일]] - [[장혜옥]]: 한국의 [[배드민턴]] 선수이자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 [[2월 12일]]
* [[사이토 키미코]]: 일본의 성우
* [[유동훈]]: 한국의 前 [[야구]] 선수이자 현 기아 타이거즈 퓨처스팀 투수코치
* [[2월 14일]] - [[이승윤]]: 한국의 [[개그맨]]
* [[2월 16일]]: [[김동완(축구)|김동완]]: 한국의 [[축구]] [[해설위원]]
* [[2월 17일]]
* [[스즈키 치히로]]: 일본의 성우
* [[카라 에드워즈]]: [[미국]]의 성우
* [[2월 19일]] - [[잔루카 잠브로타]]: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2월 20일]]
* [[게일 킴]]: [[캐나다]]의 [[프로레슬러]]
* [[조원석]]: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가수]]
* [[2월 22일]] - [[미야가와 미호]]: 일본의 성우
* [[2월 26일]] - [[오정세]] : 대한민국의 배우
* [[2월 27일]] - [[지성(배우)|지성]]: 한국의 배우
* [[3월 1일]] - [[오대웅]]: 대한민국의 방송인
* [[3월 2일]] - [[크리스 마틴]]: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의 보컬
* [[3월 3일]] - [[로넌 키팅]]: 아일랜드의 방송인, 배우, 음악가, 자선가.
* [[3월 6일]] - [[요르고스 카라구니스]]: [[그리스]]의 축구 선수
* [[3월 5일]] - [[전근표]]: 한국의 [[야구]] 선수
* [[3월 7일]] - [[폴 캐터몰]]: 영국의 가수, 방송인, 배우.
* [[3월 9일]] - [[김상진(1977)]]^^[[음력]]^^: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3월 11일]] - [[조성모]]: 한국의 가수
* [[3월 12일]] - [[토쿠나가 아이]]: [[일본]]의 [[성우]]
* [[3월 14일]]
* [[김남일]]^^[[음력]]^^: 한국의 [[축구선수]]
* [[호시노 아키]]: 일본의 [[그라비아 아이돌]], [[배우]]
* [[3월 16일]] - [[야스모토 히로키]]: 일본의 성우
* [[3월 18일]]
* [[박승민]]: 한국의 前 [[야구]] 선수
* [[ZUN]]: [[일본]]의 [[게임 제작자]], 유명 [[동인 게임]] [[동방 프로젝트]]의 원작자
* [[윌리 사뇰]]: [[프랑스]]의 축구 선수
* [[3월 20일]] - [[강지환]]: [[대한민국]]의 [[배우]]
* [[3월 24일]]
* [[미우라 히로아키]]: 일본의 성우
* [[제시카 채스테인]]: [[미국]]의 [[배우]]
* [[3월 25일]] - [[에드가 라미레즈]]: [[베네수엘라]]의 [[배우]]
* [[3월 26일]] - [[모르간 데 산치스]]: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3월 27일]] - [[정원석(야구선수)|정원석]]: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내야수)
* [[4월 1일]] - [[비토 벨포트]]: [[브라질]]의 [[종합격투기]] 선수
* [[4월 2일]]
* [[마이클 패스벤더]]: [[아일랜드]]의 배우
* [[박대기]]: [[대한민국]]의 [[기자]]
* [[4월 3일]] - [[차엘 소넨]]: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4월 7일]] - [[송우진]]: 한국의 가수, 그룹 [[스윗소로우]]의 멤버
* [[4월 10일]] - [[스테파니 셰이]]: 미국의 [[성우]]
* [[4월 16일]] - [[프레디 융베리]]: [[스웨덴]]의 축구 선수
* [[4월 17일]]
* [[송재룡]]: 한국의 [[기업인]]
* [[임재현(농구)|임재현]]: 한국의 농구코치
* [[4월 20일]] - [[이상열(야구)|이상열]]: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4월 22일]]
* 대니 서: 한국계 미국인 환경운동가
* [[마르크 판보멀]]: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 [[카바시마 요스케]]: [[일본]]의 [[애니메이터]]
* [[4월 23일]]
* [[이영표]]: [[한국]]의 [[축구 선수]]
* [[존 시나]]: [[미국]]의 [[프로레슬러]]
* [[4월 24일]] - [[김현주]]: 한국의 배우
* [[5월 1일]] - [[김남일]]: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 [[5월 2일]] - [[J.ae]]: 한국의 가수
* [[5월 3일]]
* [[렉시(가수)|렉시]]: 한국의 가수
* [[마시마 히로]]: 일본의 만화가
* [[5월 4일]] - [[민지(성우)|민지]]: 한국의 성우
* [[5월 5일]] - [[최강희(배우)|최강희]]: 한국의 배우 ~~최강동안~~
* [[5월 7일]] - [[이정민(MBC)]]: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5월 8일]] - [[타카하시 치아키]]: 일본의 가수, 성우
* [[5월 9일]]
* [[최정윤(배우)|최정윤]]: 대한민국의 배우
* [[양영은]]: 대한민국의 방송기자
* [[5월 11일]]
* [[하마다 사토시]]: 일본의 정치인
* [[이혜승]]: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5월 13일]]
* [[크리스 옥스프링]]: [[롯데 자이언츠]] [[투수]] 코치
* [[푸샤 티]]: 미국의 래퍼
* [[5월 16일]] - [[이마이 아사미]]: 일본의 성우
* [[5월 19일]] - [[김길태]]: 대한민국의 [[범죄자]].
* [[5월 25일]] - [[도스 카라스 주니어]]([[알베르토 델 리오]]): [[멕시코]]의 [[프로레슬러]], [[종합격투기]] 선수
* [[5월 26일]]
* [[루카 토니]]: 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 이토 미사키: 일본의 배우
* [[5월 28일]]
* 박찬협 : 한국의 前 [[야구선수]]
* 서덕준
* [[5월 29일]] - [[마시모 암브로시니]]: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6월 2일]] - [[AJ 스타일스]]: 미국의 [[프로레슬링]] 선수
* [[6월 6일]] - [[최민용]]: 한국의 배우
* [[6월 7일]] - [[박명환]]: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6월 8일]] - [[카녜 웨스트]]: 미국의 가수
* [[6월 10일]] - [[마츠 타카코]]: 일본의 배우
* [[6월 22일]] - [[오노 료코]]: 일본의 성우
* [[6월 25일]] - [[레일라(프로레슬러)|레일라]]: [[영국]] 출신의 [[프로레슬러]]
* [[6월 27일]]
* [[라울 곤살레스]]: [[스페인]]의 [[축구]]선수
* [[정종철]]: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6월 29일]] - [[강수정]]: 대한민국의 방송인, 前 아나운서
* [[7월 1일]] - [[허준(게임 캐스터)]]: 한국의 게임캐스터
* [[7월 3일]] - [[카츠 안리]]: 일본의 성우
* [[7월 4일]] - [[나카무라 유리]]: [[GARNET CROW]]의 [[보컬]]
* [[7월 5일]] - [[조유진]]: 한국의 가수, [[록 밴드]] [[체리필터]]의 [[보컬]]
* [[7월 8일]] - [[크리스티안 아비아티]]: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7월 10일]]
* [[서재응]]: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박주희]]: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박휘순]]: 한국의 [[코미디언]]
* [[추이텔 에지오포]]: [[영국]]의 배우
* [[7월 12일]]
* [[마르코(배우)]]: [[아르헨티나]]의 한국계 [[모델]] 겸 배우
* [[브록 레스너]]: 미국의 [[프로레슬러]], [[종합격투기]] 선수
* [[7월 13일]] -
* 표성대 : [[한국]]의 前 [[야구선수]]
* [[켈리 월그렌]]: 미국의 성우
* [[7월 14일]]
* [[권재관]]: [[대한민국]]의 [[개그맨]]
* [[빅토리아 잉그리드 알리스 데시리에]] 왕세녀: [[스웨덴]]의 공주. 차기 왕위 계승자.
* [[7월 19일]] - [[이소은(성우)|이소은]]: 한국의 성우
* [[7월 24일]]
* [[정은승]]: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메디 마다비키아]]: [[이란]]의 축구 선수
* [[7월 25일]]
* [[사쿠라다 신타로]]: 일본의 정치인
* [[경헌호]]: [[한국]]의 [[야구]] 선수
* [[7월 26일]] - [[키타자와 리키]]: 일본의 성우
* [[7월 27일]] - [[미즈노 마나비]]: 일본의 가수
* [[7월 28일]]
* [[마누 지노빌리]]: [[미국]]의 [[농구]]선수
* [[박기영]]: 한국의 [[가수]]
* [[7월 30일]]
* [[제이미 프레슬리]]: [[미국]]의 [[배우]]
* [[파브리시오 베우둠]] : 브라질의 [[종합격투기]] 선수
* [[7월 31일]] - [[샘 해밍턴]]: [[오스트레일리아]]출신 코미디언
* [[8월 1일]] - [[심광호]]: 한국의 前 [[야구]]선수
* [[8월 2일]] - [[에드워드 펄롱]]: 미국의 배우 --[[존 코너]]--
* [[8월 5일]]
* [[손제호]]: 한국의 판타지 소설 작가, 웹툰 작가
* [[히로하시 료]]: 일본의 성우
* [[8월 8일]] - [[제이미 마키]]: 미국의 성우
* [[8월 12일]] - [[박용하]]: 한국의 배우, 가수
* [[8월 13일]] - [[김진표(가수)|김진표]]: 한국의 가수
* [[8월 16일]] - [[신소윤]]: 한국의 성우
* [[8월 17일]]
* [[티에리 앙리]]: [[프랑스]]의 [[축구]]선수
* [[윌리암 갈라스]]: [[프랑스]]의 축구 선수
* [[8월 23일]]
* [[미야케 켄타]]: 일본의 성우
* [[변기수]]: 한국의 [[코미디언]]
* [[8월 24일]] - [[로베르트 엔케]]: [[독일]]의 [[축구]]선수
* [[8월 25일]]
*[[아사노 마스미]]: 일본의 성우, 가수, 작사가
*[[카테리나 세레브리안스카]]: 우크라이나의 前 리듬체조 선수
* [[8월 26일]] - [[치바 사에코]]: 일본의 성우 및 가수
* [[8월 27일]] - [[데쿠]]: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 [[9월 1일]] - [[다비드 알벨다]]: [[스페인]]의 축구 선수
* [[9월 4일]]
* [[김선우(1977)|김선우]]: [[한국]]의 야구 해설가, 前 야구 선수
* [[어썸 콩]]: 미국의 프로레슬러
* [[9월 7일]] - [[몰리 할리]]: 미국의 前 프로레슬러
* [[9월 8일]] - [[사나다 아사미]]: 일본의 성우
* [[9월 9일]] - [[채정안]]: 한국의 배우
* [[9월 10일]] - [[박애리]]: 한국의 국악인
* [[9월 11일]] - [[장민호(가수)|장민호]]: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9월 12일]]
* [[김성경(1977)|김채연]]: 한국의 배우
* [[윤지민]]: 한국의 배우
* [[투 체인즈]]: [[미국]]의 [[래퍼]]
* [[9월 13일]] - [[피오나 애플]]: 미국의 가수
* [[9월 14일]] - [[마츠키 미유]]: 일본의 성우
* [[9월 15일]] - [[톰 하디]]: [[영국]]의 배우
* [[9월 17일]]
* [[데니스 강]]: 캐나다의 [[종합격투기]] 선수
* [[시모네 페로타]]: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9월 20일]] - [[아무로 나미에]]: 일본의 가수
* [[9월 27일]] - [[한경화]]: 한국의 성우
* [[9월 28일]]
* [[김경란]]: 대한민국의 방송인, 前 [[아나운서]]
* [[박세리]]: 한국의 [[골프]]선수
* [[9월 30일]] - [[쑨지하이]]: [[중국]]의 축구 선수
* [[10월 1일]]
* [[권인지]]: 대한민국의 성우
* [[타키가와 크리스텔]]: 일본의 [[아나운서]]
* [[10월 6일]] - [[타이 유우키]]: 일본의 성우, 배우
* [[10월 9일]] - [[이정훈(투수)]]: 한국의 [[야구]]선수
* [[10월 10일]] - [[브랜든 베라]]: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10월 11일]]
* [[박광현]]: 한국의 배우
* [[데스몬드 메이슨]]: 미국의 전 농구선수
* [[10월 13일]] - [[안토니오 디 나탈레]]: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10월 15일]] - [[다비드 트레제게]]: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10월 17일]]
* [[안드레 비야스 보아스]]: [[포르투갈]]의 축구 감독
* [[10월 18일]] - [[장성호#s-2]]: 한국의 [[야구]]선수, 스나이퍼
* [[10월 20일]] - [[허성태(배우)|허성태]]: 한국의 배우
* [[10월 27일]] - [[김상훈(1977)]]: 한국의 [[야구]]선수
* [[11월 1일]] - [[박건형]]: 한국의 배우
* [[11월 4일]] - [[소지섭]]: 한국의 배우
* [[11월 7일]] - [[전현무]]: 대한민국의 방송인, 前 [[아나운서]]
* [[11월 10일]]
* [[원빈]]: 한국의 --[[CG]]--배우
* [[조쉬 바넷]]: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브리트니 머피]]: 미국의 배우
* [[11월 11일]]
* [[홍정도]]: 한국의 [[언론인]].
* [[마니시]]: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 [[11월 12일]] - [[베니 매카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 축구선수, 축구감독
* [[11월 16일]] - [[매기 질렌할]]: 미국의 배우
* [[11월 21일]] - [[미야모토 유키히로]]: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 [[11월 25일]] - [[김선혁]]: 한국의 배우
* [[11월 27일]] - [[이태곤]]: 한국의 [[탤런트]], [[모델]]
* [[11월 28일]] - [[파비오 그로소]]: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11월 30일]] - [[조쉬 코스첵]]: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스티브 아오키]]: 미국의 DJ
* [[12월 6일]] - [[이치카와 에비조]] : [[일본]]의 [[가부키]] [[배우]]이자 [[탤런트]]
* [[12월 9일]] - [[정성훈(1977)|정성훈]] :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 [[12월 11일]] - [[조동혁]]: 한국의 배우
* [[12월 13일]] - [[고세원]] - 한국의 배우
* [[12월 14일]] - [[모모이 하루코]]: 일본의 성우
* [[12월 17일]]
* [[신주영(프로게이머)]]: 한국의 [[프로게이머]]
* [[시오타니 나오요시]]: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애니메이터]]
* [[12월 21일]] - [[버디 카라이어]]: 미국의 [[야구]]선수
* [[12월 23일]] - [[홍진경]]: 한국의 모델, 방송인
* [[12월 24일]] - [[길(가수)|길]]: 한국의 [[가수]], 힙합 그룹 [[허니 패밀리]], [[리쌍]]의 멤버
* [[12월 25일]] - [[엄지원]]: 대한민국의 배우
* [[12월 31일]]
* [[싸이]]: 한국의 가수
*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도널드 트럼프]]의 아들
* 일자 불명
* [[안인득]] : [[대한민국]]의 [[범죄자]]
* [[타츠와 나오유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애니메이터]]
=== 가상인물 ===
* [[2월 25일]]: [[삼천포(응답하라 1994)|삼천포]] - [[응답하라 1994]]
* [[3월 2일]]: [[후지누마 사토루]], [[히나즈키 카요]] - [[나만이 없는 거리]]
* [[3월 11일]]: [[정애란(남일소프트)|정애란]] - [[캠퍼스 러브 스토리]]
* [[3월 14일]]: [[아사미야 아테나]][*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KOF의 세계관일 뿐이고 [[사이코 솔저]]가 출시된 [[1987년]] 기준이면 [[1968년]] 생이 된다.] -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
* [[3월 20일]]: [[구동백]] - [[그저 바라보다가]]
* [[3월 30일]]: [[이카리 유이]] - [[신세기 에반게리온]]
* [[4월 10일]]: [[아사쿠라 타케시]] - [[가면라이더 류우키]]
* [[5월 22일]]: [[심수련]] - [[펜트하우스(드라마)]]
* [[7월 15일]]: [[이지연(남일소프트)|이지연]] - [[캠퍼스 러브 스토리]]
* [[8월 16일]]: [[김주환]] - [[검은방]] 1
* [[9월 10일]]: [[박주민(남일소프트)|박주민]] - [[캠퍼스 러브 스토리]]
* [[9월 15일]]: 남궁신영 - [[플러스 내 기억 속의 이름]]
* [[9월 29일]]: [[칸자키 시로]] - [[가면라이더 류우키]]
* [[10월 3일]]: [[사이고 쇼지로]]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 [[10월 12일]]: [[주인공(캠퍼스 러브 스토리)|박남일]] - [[캠퍼스 러브 스토리]][* 정확하게는 주인공의 [[디폴트 네임]]과 초기설정값. [[나의 신부]] 버전 박남일은 [[1975년]]생이다.]
* [[10월 23일]]: [[징징이(네모바지 스폰지밥)|징징이]] - [[네모바지 스폰지밥]]
* [[11월 5일]]: [[문지현(캠퍼스 러브 스토리)|문지현]] - [[캠퍼스 러브 스토리]]
* [[11월 26일]]: [[오가타 리나]] - [[WHITE ALBUM]]
* [[12월 9일]]: [[키미지마 코우]] - [[Robotics;Notes]]
* [[12월 31일]]: [[카스가 이치반]] - [[용과 같이 7: 빛과 어둠의 행방]]
* 일자 불명
* [[건축학개론]]의 주인공들 전원[* [[빠른 생일]] 관련 언급이 작중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으므로 없다고 가정한다.]
* [[GTA 4/등장인물#s-3.6|그레이시 안첼로티]] - [[GTA: 에피소드 프롬 리버티 시티]]
* 김동우 - [[응답하라 1994]]
* 김복음 - [[명화마을]]
* [[브루시 키부츠]] - [[GTA: 에피소드 프롬 리버티 시티]]
* [[로만 벨릭]] - [[GTA: 에피소드 프롬 리버티 시티]]
* [[미나미노 슈이치]], [[카이토 유우]] - [[유유백서]]
* 민현석, 안성환, 윤동건, 윤석재 - [[캠퍼스 러브 스토리]]
* [[GTA 4/등장인물#s-1.2.3|엘리자베타 토레스]] - [[GTA: 에피소드 프롬 리버티 시티]]
* 오영심 - [[영심이]]
* [[GTA 4/등장인물#s-3.7|유수프 아미르]] - [[GTA 더 발라드 오브 게이 토니]]
* [[제니아라이 쿠마베에]] - [[역전재판 5]]
* [[세드릭 디고리]] - [[해리 포터 시리즈]]
* [[코나카 마사루]] - [[역전재판 1]]
* [[GTA 4/등장인물#s-2.1.5|테리 소프]] - [[GTA 4: 더 로스트 앤 댐드]]
* [[플뢰르 델라쿠르]] - [[해리 포터 시리즈]]
== 사망 ==
=== 실존인물 ===
* [[1월 3일]]
* [[김보형]]: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송영]]: 월북 극작가
* [[1월 14일]] - [[피터 핀치]]: 영국, 호주의 배우
* [[2월 4일]] - [[양주동]]: 대한민국의 시인, 국문학자, 영문학자
* [[2월 5일]] - 이장표: [[동오그룹]] 창업주
* [[2월 9일]] - [[세르게이 블라디미로비치 일류신]]: [[소련]]의 [[항공기]] 기술자
* [[2월 11일]] - [[루이지 베르톨리니]]: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 [[2월 15일]] - [[허백련]]: 대한민국의 남종화가
* [[2월 17일]] - [[임영신]]: [[중앙대학교]] 설립자, 초대 상공부장관
* [[2월 27일]] - [[존 딕슨 카]]: [[미국]]의 [[추리소설]] [[작가]]
* [[3월 9일]] - [[울리세스 포이리에르]]: [[칠레]]의 전 [[축구 선수]]
* [[3월 27일]] - [[테네리페 참사]] 희생자 583인
* [[4월 11일]] - [[장기영(1916)|장기영]]: [[한국일보]] 창업주, 제8대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 [[4월 18일]] - [[안수길]]: 대한민국의 소설가
* [[5월 8일]] - [[박헌봉]]: 대한민국의 국악이론가
* [[5월 15일]] - [[양썬]]: [[군벌/중화민국|중화민국의 군벌]]
* [[5월 31일]] - [[네쿠]]: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
* [[6월 5일]] - [[마르틴 벤톨라]]: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
* [[6월 16일]] - [[이휘소]]: [[한국]]의 입지전적 [[물리학자]]
* [[6월 26일]] - [[J. 월터 케네디]]: [[NBA]] 2대 총재
* [[6월 29일]] - [[김대영]]: 1972년부터 사망 시까지 5년간 [[서울신문]]에 <애비씨>를 그린 신문만화가
* [[7월 7일]] - [[니콜라에 코바치]]: 루마니아의 전 축구 감독
* [[7월 9일]] - [[앨리스 폴]]: [[미국]]의 여성참정권 운동가
* [[7월 10일]] - [[강중희]]: [[동아제약]] 창업주
* [[7월 17일]] - [[빌리 곤살베스]]: [[미국]]의 전 축구 선수
* [[7월 26일]] - [[현수명]]: [[화승]] 창업주
* [[8월 2일]] - [[서먼 먼슨]]: 1970년대 중반 양키스의 전성기를 빛낸 주전 포수
* [[8월 8일]] - [[손 녹 탄]]: 캄보디아의 독립운동가이자 반 왕당파 민족주의자
* [[8월 9일]] - [[심홍근]]: 전 [[호남전기]] 사장
* [[8월 16일]] - [[엘비스 프레슬리]]: [[미국]]의 전설적 [[가수]]이자 [[배우]], [[로큰롤]]의 제왕
* [[8월 26일]] - 김형두: 제3대 [[국제신보]] 사장, 정치가
* [[9월 5일]] - [[요시다 타츠오]]: [[타츠노코 프로덕션]] 창업주
* [[9월 10일]] - [[하미다 잔부디]]: [[프랑스]]에서 마지막으로 [[단두대]]로 [[사형]]된 죄수
* [[9월 12일]] - [[정소희]]: 대한민국의 성우
* [[9월 16일]] - [[마리아 칼라스]]: [[그리스]]의 [[성악가]]
* [[10월 16일]] - [[슈테판 아우어]]: 루마니아 출신의 전 축구감독. 헝가리식 이름인 [[어버르 이슈트반]]으로 더 유명하다.
* [[10월 19일]] - [[도상봉]]: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 [[10월 25일]] - [[강창원]]: 대한민국의 칠공예가
* [[11월 3일]] - [[박길웅]]: 대한민국의 추상화가
* [[11월 5일]] - [[르네 고시니]]: [[아스테릭스]]의 스토리 작가, 꼬마 니콜라의 삽화가
* [[11월 23일]] - [[이예춘]]: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탤런트 [[이덕화]]의 부친
* [[11월 29일]] - [[신쾌동]]: 대한민국의 가야금 명인
* [[12월 1일]] - [[박병규(기업인)]]: [[해태그룹]] 창업주
* [[12월 11일]] - [[심재열]]: 대한민국의 수의학자, 초대 진주축협 조합장
* [[12월 20일]] - [[헨리 텐디]]: [[영국]]의 [[군인]]
* [[12월 25일]] - [[찰리 채플린]]: [[영국]]의 [[희극인]]
* [[12월 26일]] - [[하워드 혹스]]: [[미국]]의 [[영화 감독]]
* [[12월 30일]] - [[아메리코 테소리에레]]: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
== 데뷔 ==
=== 가수 ===
==== 한국 ====
* 고영준[* 가수 [[고복수]]-[[황금심]] 부부의 아들.]
* 박일준
* [[윤수일]]과 솜사탕
* '''[[산울림]]'''
* [[김창완]]
* 작은별가족
* 강애리자
* 퀘스천
* [[김수철(가수)|김수철]]
* [[최백호]]
* 함중아
* 해바라기
* 이주호, 한영애
* 홍수철
==== 해외 ====
* [[7월 25일]]: [[LAZY]] [* 메이저 데뷔일이다. 1973년에 [[카게야마 히로노부]], [[타카사키 아키라]], [[타나카 히로유키]] 3인이 결성함.]
* [[카게야마 히로노부]], [[타카사키 아키라]], [[타나카 히로유키]], [[히구치 무네타카]], [[이노우에 슌지]]
* [[모터헤드]]
* [[빌리지 피플]]
* [[콰이어트 라이엇]]
=== 예능인 ===
* [[김학래]]
* [[주병진]]
=== 만화계 ===
* 김민기 - <누나의 영광>
* 김용덕
* 에구치 히사시 - <恐るべき子どもたち>
=== 스포츠 ===
==== 농구 ====
* 그렉 발라드
* 놈 닉슨
* 리키 그린
* 마키스 존슨
* 버나드 킹
* 브래드 데이비스
* 어니 그룬필드
* 에디 조던
* 에디 존슨
* 오티스 버드송
* 월터 데이비스
* 세드릭 맥스웰
* 잭 시크마
* 켄트 벤슨
* 트리 롤린스
==== 권투 ====
* 김태식
* 김환진[* KBS 소속 성우와 동명이인.]
* [[박종팔]]
* 박찬희
* 이효필
==== 모터스포츠 ====
* [[츠치야 케이이치]]
== 은퇴 ==
=== 스포츠 ===
* [[7월 6일]]: [[이회택]]
== 히트작 ==
=== 영화 ===
* [[고교얄개]]
* [[스타워즈(영화)|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
* 미지와의 조우
=== 드라마 ===
* 왜 그러지
* 청실홍실
=== 가요 ===
* 한국
* 김만수 - 영아, 푸른 시절
* 바니걸스 - 그냥 갈 수 없잖아
* 산울림 - 아니 벌써,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 샌드페블스 - [[나 어떡해]]
* 서울대 트리오 - 젊은 연인들
* 서유석 - 가는 세월
* 윤승희 - 제비처럼
* 이수만 - 행복
* 이은하 - 밤차
* 진미령 - 소녀와 가로등
* 최백호 -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 하수영 -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 혜은이 - 당신만을 사랑해, 뛰뛰빵빵
* 해외
* Arabesque - Hello, Mr. Monkey
* Bee Gees - Stayin’ Alive, How Deep Is Your Love
* Queen - We Will Rock You, We Are The Champions
* 등려군(鄧麗君) -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
* 핑크 레이디 - UFO
=== 애니메이션 ===
* 국산/더빙
* [[공룡탐험대 본프리|공룡탐험대]]
* [[타임보칸(애니메이션)|날아라 태극호]]
* [[이상한 나라의 폴|이상한 나라의 삐삐]]
* [[캔디캔디|캔디]]
*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극장판)
* 해외
* [[초인전대 바라타크]]
* [[초전자머신 볼테스V]]
* [[혹성로보 단가드A]]
=== 베스트셀러 ===
* 장길산 - 황석영 저.
* 비틀거리는 오후 - 박완서 저.
* 부초 - 한수산 저.
== 출시 상품 ==
=== 자동차 ===
* 현대자동차
* 코티나 마크 IV
* HD1000 미니버스 / 포터
* 현대 3톤 트럭: 출시 당시엔 '바이슨'이었다.
* 기아산업
* 브리사2
* 새한자동차
* 제미니
* BF101
=== 식음료 ===
* 농심
* 3월: 달고마
* 5월: 길면
* 롯데제과
* 4월 15일: 가나콘, 달래바, 마주바, 알차네, 조안나
* 10월: 바닐라웨하스
* 동서식품
* 프리마(원두커피용)
=== 생활용품 ===
* 애경유지
* 마돈나비누
== 달력 ==
[include(틀:토요일로 시작하는 평년)]
[각주]
[[분류:1977년]] |
1977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 [include(틀:역대 FIFA U-20 월드컵)]
[include(틀:FIFA 주관 대회)]
[include(틀:FIFA 청소년 월드컵)]
'''1977 FIFA World Youth Championship'''
[목차]
== 개요 ==
제 1회 [[FIFA U-20 월드컵]]으로 [[1977년]][[6월 27일]]부터 [[7월 10일]]까지 [[튀니지]]의 4개의 도시에서 개최되었다. 개최된 도시는 라데스,튀니스,스팍스 그리고 수스로 총 28경기가 펼쳐졌다.
참가 팀은 총 16개 팀이며 본선에 진출한 팀은 다음과 같다. '''굵은 글씨'''는 개최국이다.
1라운드는 조별로 4개의 팀씩 치루어지며 각 조의 1위가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하여 우승자가 나올때까지 싱글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다.
|| 대륙 || 출전권 || 팀 1 || 팀 2 || 팀 3 || 팀 4 || 팀 5 || 팀 6 ||
|| 아시아 || 2장 || 이라크 || 이란 || || || || ||
|| 아프리카 || 3장 || '''튀니지''' || 코트디부아르 || 모로코 || || || ||
|| 북중미카리브 || 2장 || 멕시코 || 온두라스 || || || || ||
|| 남미 || 3장 || 브라질 || 파라과이 || 우루과이 || || || ||
|| 유럽 || 6장 || 오스트리아 || 헝가리 || 이탈리아 || 프랑스 || 스페인 || 소련 ||
== 조별 라운드 ==
A조
|| 홈팀 || 경기결과 || 원정팀 ||
|| 프랑스 || 1 - 2 || 스페인 ||
|| 멕시코 || 6 - 0 || 튀니지 ||
|| 스페인 || 1 - 1 || 멕시코 ||
|| 튀니지 || 0 - 1 || 프랑스 ||
|| 프랑스 || 1 - 1 || 멕시코 ||
|| 스페인 || 0 - 1 || 튀니지 ||
멕시코가 준결승전에 진출하였다.
B조
|| 홈팀 || 경기결과 || 원정팀 ||
|| 모로코 || 0 - 1 || 온두라스 ||
|| 우루과이 || 2 - 1 || 헝가리 ||
|| 온두라스 || 0 - 1 || 우루과이 ||
|| 헝가리 || 2 - 0 || 모로코 ||
|| 헝가리 || 0 - 2 || 온두라스 ||
|| 우루과이 || 3 - 0 || 모로코 ||
우루과이가 준결승전에 진출하였다.
C조
|| 홈팀 || 경기결과 || 원정팀 ||
|| 이탈리아 || 1 - 1 || 코트디부아르 ||
|| 브라질 || 5 - 1 || 이란 ||
|| 이란 || 0 - 0 || 이탈리아 ||
|| 브라질 || 1 - 1 || 코트디부아르 ||
|| 이란 || 3 - 0 || 코트디부아르 ||
|| 브라질 || 2 - 0 || 이탈리아 ||
브라질이 준결승전에 진출하였다.
D조
|| 홈팀 || 경기결과 || 원정팀 ||
|| 소련 || 3 - 1 || 이라크 ||
|| 오스트리아 || 0 - 1 || 파라과이 ||
|| 이라크 || 5 - 1 || 오스트리아 ||
|| 파라과이 || 1 - 2 || 소련 ||
|| 파라과이 || 4 - 0 || 이라크 ||
|| 오스트리아 || 0 - 0 || 소련 ||
소련이 준결승전에 진출하였다.
== 준결승전 ==
|| 홈팀 || 경기결과 || 원정팀 ||
|| 멕시코 || 1 - 1 (승부차기 5 - 3) || 브라질 ||
|| 우루과이 || 0 - 0 (승부차기 3 - 4 || 소련 ||
== 3·4위전 ==
|| 홈팀 || 경기결과 || 원정팀 ||
|| 브라질 || 4 - 0 || 우루과이 ||
== 결승전 ==
|| 홈팀 || 경기결과 || 원정팀 ||
|| 멕시코 || 2 - 2 (승부차기 8 - 9) || 소련 ||
소련이 첫 우승이자 마지막 우승을 차지했다. 멕시코는 이후 이 대회 4강에 오른 게 34년이 지난 2011년이었다.
[[분류:FIFA 월드컵]] |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 [include(틀:역대 FIFA 월드컵)]
----
||<-3><table align=right><table width=400><table bordercolor=#000000>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FFFF 10%, #7BAFDE 10%, #7BAFDE 20%, #FFFFFF 20%, #FFFFFF 30%, #7BAFDE 30%, #7BAFDE 40%, #FFFFFF 40%, #FFFFFF 60%, #7BAFDE 60%, #7BAFDE 70%, #FFFFFF 70%, #FFFFFF 80%, #7BAFDE 80%, #7BAFDE 90%, #FFFFFF 90%)"
{{{+4 '''{{{#000000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FFFF 10%, #7BAFDE 10%, #7BAFDE 20%, #FFFFFF 20%, #FFFFFF 30%, #7BAFDE 30%, #7BAFDE 40%, #FFFFFF 40%, #FFFFFF 60%, #7BAFDE 60%, #7BAFDE 70%, #FFFFFF 70%, #FFFFFF 80%, #7BAFDE 80%, #7BAFDE 90%, #FFFFFF 90%)"
{{{#000000 '''Copa Mundial de Fútbol Argentina '78'''[br]'''1978 FIFA World Cup Argenti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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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bgcolor=white> [[파일:external/grainedit.com/argentina_world_cup_poster.jpg|width=70%]] ||
||<height=40><bgcolor=#7bafde> {{{#ffffff ''' 대회기간 ''' }}} ||<-2> [[1978년]] [[6월 1일]] ~ [[1978년]] [[6월 25일]] ||
||<height=40><bgcolor=#7bafde> {{{#ffffff ''' 개최국 ''' }}} ||<-2> [[아르헨티나]] ||
||<height=40><bgcolor=#7bafde> {{{#ffffff ''' 마스코트 ''' }}} ||<-2> 가우쵸 보이(Gaucho boy) ||
||<height=40><bgcolor=#7bafde> {{{#ffffff ''' 주제가 ''' }}} ||<-2> El Mundial ||
||<height=40><bgcolor=#7bafde> {{{#ffffff ''' 공인구 ''' }}} ||<-2> 탱고 리버플레이트(Tango River Plate) ||
||<height=40><bgcolor=#7bafde> {{{#ffffff ''' 참가팀 ''' }}} ||<-2> 16개팀 ||
||<-3><height=40><bgcolor=#000000> {{{#ffffff ''' {{{+1 대회 결과 }}} ''' }}} ||
||<height=40><bgcolor=#7bafde> {{{#ffffff ''' 우승 ''' }}}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br]{{{-1 (1번째 우승)}}}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파일:Argentina AFA 1978.png|height=35]]]] ||
||<height=40><bgcolor=#7bafde> {{{#ffffff ''' 준우승 ''' }}} ||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네덜란드]] ||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파일:Netherlands KNVB 1978-Away.png|height=35]]]] ||
||<height=40><bgcolor=#7bafde> {{{#ffffff ''' 3위 ''' }}}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파일:Brazil CBF 1978-Away.png|height=35]]]] ||
||<height=40><bgcolor=#7bafde> {{{#ffffff ''' 4위 ''' }}}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파일:Italy FIGC 1970~1978.png|height=35]]]] ||
||<-3><height=40><bgcolor=#000000> {{{#ffffff ''' {{{+1 수상 }}} ''' }}} ||
||<height=40><bgcolor=#7bafde> {{{#ffffff ''' 골든볼 ''' }}} ||<-2> [[마리오 켐페스]]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 ||
||<height=40><bgcolor=#7bafde> {{{#ffffff ''' 골든슈 ''' }}} ||<-2> [[마리오 켐페스]]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 ||
||<-3><height=40><bgcolor=#000000> {{{#ffffff ''' {{{+1 이전·이후 대회 }}} ''' }}} ||
||<width=33%> [[1974 FIFA 월드컵 서독|1974년[br]서독]] ||<width=33%><bgcolor=#7bafde> {{{#ffffff ''' 1978년[br]아르헨티나 ''' }}} ||<width=33%>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1982년[br]스페인]] ||
[목차]
[clearfix]
== 개요 ==
[youtube(BbsKwMVevCk, width=400)]
[[1978년]]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된 11번째 [[FIFA 월드컵]]. [[남반구]]에서 네번째로 개최된 월드컵이다. (첫번째는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 두번째는 1950년 브라질 월드컵, 세번째는 1962년 칠레 월드컵)
1978년 6월 1일 부터 1978년 6월 25일까지 16개 본선진출국가가 [[아르헨티나]]의 6개 경기장에서 38경기를 치렀다. 5개 도시에 6개의 경기장이 지어졌다. 월드컵 본선이 16팀 체제로 치뤄진 마지막 대회로, 다음 대회인 스페인 월드컵부터는 본선 진출팀이 24개로 확대된다. 또한 이 대회부터 [[승부차기]]가 공식적으로 도입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월드컵에서 승부차기가 처음 열린 것은 다음 대회인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대회 방식상 단판 승부로 겨룰 경기가 결승전과 3-4위밖에 없었는데, 이들 두 경기는 모두 승부차기로 가기 전에 승부가 갈렸기 때문.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꽃가루를 뿌리는 응원이 유명했다.
==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지역예선|지역 예선]] ==
항목 참조.
== 엠블럼·[[마스코트]]·[[월드컵 공인구|공인구]] ==
=== 엠블럼 ===
[[파일:/image/etimesi/2010/06/17/1_11_Copy(46).jpg]]
=== [[월드컵 공인구|공인구]] ===
[[FIFA 월드컵/공인구#s-2.5|항목]] 참조. 이 축구공은 기존의 공인구들의 '''검은 오각형과 흰 육각형'''의 고정틀을 깬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것이 새로운 혁신이 되어 2002년에 피버노바가 개발되기까지 공인구는 계속 이 디자인으로 이어지게 된다.
=== 마스코트 ===
위 사진 오른쪽 위 캐릭터.
이름은 "가우쵸 보이"인데 남미 전통의 모자를 쓴 소년이 축구공을 차는 형상이다.
== 군사독재와 불공정 대회 진행 ==
1976년 아르헨티나는 페론주의 정권을 뒤엎고 군사독재를 시작했다. [[호르헤 비델라]]는 [[프로파간다|월드컵을 자신의 정치수단으로]] [[어용|삼으려 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뒷말이 많은 월드컵이 되었다. 특히 경기장 근처에서 정치범을 [[고문]]하는 등의 행위로 인하여 인권에 대해 굉장히 말이 많았다. 월드컵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것을 빌미로 이때다 하며 못했던 정치범 박해도 굉장히 적극적으로, 잔인하게 임했다는 말도 많지만 여전히 논란거리다. 또한,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아르헨티나 전역에는 [[3S정책|컬러 TV가 보급된다.]]
그런 사정으로 개최국 아르헨티나는 그야말로 우승에 혈안이 되었다. 어떻게든 반드시 우승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조직위원회는 고심 끝에 아르헨티나에게 편한 대진표를 짜자는 의견을 내놓았고 결국 실현된다. ~~[[아전인수]]~~ 뭐 [[베니토 무솔리니]]가 매 경기를 앞두고 주심들과 따로 만났던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와 거의 준할 정도의 더러운 월드컵이였다.
* [[호르헤 비델라]]는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과 아르헨티나 월드컵 조직위원회에게 '''우승 못하면 총살'''이라는 ~~공갈협박~~ 지상명령을 내렸다.
* 개최국 아르헨티나의 첫 경기 상대는 [[헝가리]]였다. 헝가리를 이끌던 전설적인 명장 러요시 버로티 감독은 '''"모든 것이, 심지어 공기조차도 아르헨티나 편이다."'''라고 역레발을 쳤고, 아니나 다를까 헝가리는 두 명의 선수가 퇴장당하며 아르헨티나에게 승리를 헌납한다.
* 이 대회를 포함해서 네덜란드는 두 번 연속으로 홈팀에게 패해 우승을 놓치자 눈물을 삼키며 '''우리도 월드컵을 개최하자!'''고 외치며 그라운드를 떠났다.
* 놀라운 사실은 이 월드컵 결승전이 있던 엘 모누멘탈 경기장 바로 옆 건물에서 바로 결승경기가 있던 당일, 그 시각에 정치범을 [[고문]]하고 있었다. ~~축구도 하고 고문도 하고...사람들도 이 덜덜 떨면서 봤을듯~~
* 2차 조별리그에서 직전 대회 우승국 서독(조2위로 2차리그 진출)을 피하기 위해 1차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이탈리아에게 고의로 졌다는 의혹이 있다.
* 2차 조별리그 첫 경기인 아르헨티나와 폴란드의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의 켐페스가 자기편 골문으로 들어가는 공을 [[루이스 수아레스|손으로 쳐냈다.]] 하지만 주심은 켐페스의 퇴장을 선언하지 않았다. 이 후 아르헨티나 골리 필욜의 [[페널티킥]] 선방과 기사회생한 켐페스의 멀티골로 아르헨티나는 2-0으로 승리한다. 폴란드인들은 [[무승부|승점 1점]]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했을 듯.
* 다음 경기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무재배]]를 쳐냈다. 그 후 브라질이 페루를 3-0으로 승리했는데 아르헨티나가 페루를 무려 6-0으로 양민학살을 해버렸다. 그러자 바로 아르헨티나가 페루에게 차관과 곡물원조를 해줬다는 소문과 브라질이 페루에게 아르헨티나를 무재배로 막으면 선수 1인당 6만 달러씩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등 여러가지 소문들이 퍼졌다. 일설에서는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호르헤 비델라가 경기 전 선수들을 격려한다는 명분으로 페루 라커룸을 방문해서 밀담을 나누었다고 한다.
* 반면 브라질에서는 페루에게 '''아르헨티나를 무승부로 막으면 선수 1인당 6만달러씩 지급하겠다'''고 대놓고 선언했다.~~피장파장~~
* 요한 크루이프는 군사독재자놈들 따위의 잔치에 장단을 맞춰줄 순 없다고 말하며 불참했다고 알려져왔으나, 사실은 그때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2618|본인을 포함한 가족들이 모조리 납치되었다가 구조된 사건]]이 발생해서 집을 비울 수 없다는 이유로 월드컵에 불참했다. 크루이프는 이 사실을 계속 숨겨오다가 2006년이 되어서야 공개했다.
* 아르헨티나는 1950년 월드컵 개최권을 브라질에, 1962년 월드컵 개최권을 칠레에, 그리고 1970년 월드컵 개최권을 멕시코에 내주며 번번이 유치 경쟁에서 고배를 들이켜 온 국가다. 그로 인해 1978년 월드컵 성공에 대한 의지가 매우 남달랐으며, 메노티 감독은 대회 3년 전부터 지속적인 합숙훈련까지 실시하며 조직력을 다져나갔다. 이 덕에 아르헨티나는 국가대표로 차출된 선수들이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리그로 복귀하지 못했다. 게다가 스페인 리그인 발렌시아에서 뛰고 있던 마리오 캠페스를 국내로 불러온 뒤 구단에는 엄청난 돈을 지불해가면서 마리오 켐페스를 월드컵이 끝나는 순간까지 국가대표에서 절대로 놓아주지 않았다.
*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염원하던 홈 관중들은 두루마리 휴지 응원으로 이색적인 광경을 연출하는 한편,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를 연호하며 뜨거운 현지 분위기를 조성시켰다. 프랑스의 미셸 플라티니는 훗날 아르헨티나 팬들의 응원구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 원래 아르헨티나는 적당한 인구와 시장성, 공업력 그리고 넘쳐나는 자원으로 1960년대까지 남미의 스위스라고 부를 정도로 부국이었으나 오랜 군사독재 기간동안 경제력이 바닥을 칠 조짐을 보였다. 당시 [[독재자]] [[호르헤 비델라]]는 자신과 군사정권에 인기를 유지하고 정치로부터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월드컵에 앞장서서 개최했는데 이게 제살 깎아먹기 식으로 엄청난 비용이 들어 많은 장관과 경제학자들이 반대했지만 끝까지 밀고 나가 결국 월드컵 우승컵을 얻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후로 아르헨티나는 외채부담으로 인해[* 아이러니 하게도 이것도 호르헤 비델라가 시장개방으로 경제를 살리겠다고 외채를 대거 도입하였는데 미당국이 물가잡겠다고 고금리 정책을 폈던 덕택에 막대한 예산을 이자갚는데 써야될 판이 되었다는것이다. 그리고 외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 유치하겠다고 임금과 복지예산은 무지막지하게 깎아냈기 때문에 이득을 본건 소수에 불과했고 대다수 아르헨티나 인들 입장에서는 뭐 주는것도 없는 주제에 수백억 달러의 외채와 실업률만 잔뜩 남겨놓은 꼴이 되었다. 한국에서 아르헨티나 쇠락의 원인을 단순히 페론주의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이건 오류에 가깝다.] 경제난에 빠지게 되었고 실업률도 18%를 기록하는 침체를 기록한다.
== 1라운드 조 편성 ==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8강 진출국. 순서는 조별 리그 순위.
||<-5> 1차 조별 라운드 ||
|| A조 || '''이탈리아''' || '''아르헨티나''' || 프랑스 || 헝가리 ||
|| B조 || '''폴란드''' || '''서독''' || 튀니지 || 멕시코 ||
|| C조 || '''오스트리아''' || '''브라질''' || 스페인 || 스웨덴 ||
|| D조 || '''페루''' || '''네덜란드''' || 스코틀랜드 || 이란 ||
=== A조 ===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프랑스, 헝가리
- 개최국 아르헨티나는 어렵게 얻은 홈버프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무려 3년 전부터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금지하고 지속적인 합숙훈련으로 조직력을 다졌으며, 이미 발렌시아에 나가있던 마리오 캠페스를 임대료까지 지불하며 아르헨티나로 불러들이는 초강수를 둔다. 그런데도 첫 조편성은 상당히 힘겨웠다. 승점 자판기인 북중미(멕시코), 아시아(이란), 아프리카(튀니지) 팀을 모두 피했고, 유럽에서도 최강급 전력인 이탈리아와 한물 갔다지만 녹녹치 않은 전력을 가진 프랑스와 헝가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조를 통과하기 위해 아르헨티나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한다. 우선 아르헨티나가 경기하는 세 경기를 모두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집어넣고 나머지 경기를 마르델 플라타에 몰아넣음으로써 경기 이동거리를 0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그나마 1승 유력상대인 헝가리와의 첫 경기에서 쩌는 편파판정을 남발한다. 전반 9분 차포의 선제골로 끌려다니자마자 거친 파울을 남발하며 헝가리가 공을 잡는 꼴을 못 보게 했으며, 홈 관중의 살벌한 응원 속에 루케의 동점골, 베르토니의 후반 역전골로 2:1로 신승한다. 워낙 거칠었던 탓에 부상자가 속출했고, 두 명이 억울하게 퇴장당해 9:11로 싸워야 했다. 항의하면 곧바로 폭동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에서 헝가리 선수들은 제대로 말조차 하지 못했다. 경기가 끝나고 헝가리 감독은 '아르헨티나의 열두번째 선수는 심판'이라는 노골적인 인터뷰를 날리기까지 했다. 마르델플라타에서 열린 이탈리아:프랑스 경기는 이탈리아의 2:1 승리로 끝났다. 두 번째 경기에서는 각종 편파판정과 부상 선수 속출로 만신창이가 된 헝가리를 상대로 이탈리아가 가볍게 3:1로 이겼으며, 역시 아르헨티나:프랑스 경기에서도 심한 편파를 등에 업고 신성 플라티니가 버티던 프랑스를 2:1로 이기며 8강 진출을 확정했다. 프랑스 감독도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에서 '관중들의 휴지 응원이 인상적이었다'면서 경기 내용에 대해서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은 프랑스와 헝가리 경기가 조금 일찍 열렸는데 전반전에만 네 골이 터지며 프랑스의 3:1 승리로 끝났다. 탈락팀간의 대결에서 프랑스가 본선 20년만의 승리를 따내며 간신히 체면치레를 하고 역시 12년만에 올라온 헝가리는 3전 전패의 수모를 당한다. 한편 이탈리아 전이 열리기 직전 B조의 결과가 나왔는데, 서독이 폴란드에 밀려 2위로 떨어졌다. 여기서 아르헨티나가 1위로 올라가면 8강 2라운드에서 디팬딩챔피언 서독과 만나게 되었으므로, 이탈리아 전에서는 역으로 교모하게 수를 쓰며 지루하게 경기를 이끌어간다. 결국 후반 23분 베테가에게 결승골을 헌납하며 2위로 진출했고, 이탈리아는 8강에서 숙적~~호구~~ 서독과 만나게 된다. 고의적으로 패배해서 쉬운 상대를 만나려고 했던게 아니냐는 의혹이 상당히 컸던 결과였다.
'''① 이탈리아 : 3승 0무 0패 6득점 2실점 승점 6'''
'''② 아르헨티나 : 2승 0무 1패 4득점 3실점 승점 4'''
③ 프랑스 : 1승 0무 2패 5득점 5실점 승점 2
④ 헝가리 : 0승 0무 3패 3득점 8실점 승점 0
* '''이탈리아''' 2 - 1 프랑스
* '''아르헨티나''' 2 - 1 헝가리
* '''이탈리아''' 3 - 1 헝가리
* '''아르헨티나''' 2 - 1 프랑스
* '''프랑스''' 3 - 1 헝가리
* 아르헨티나 0 - 1 '''이탈리아'''
=== B조 ===
'''폴란드''', '''서독''', 튀니지, 멕시코
- 전 대회 우승팀 서독과 전 대회 4강에 빛나는 폴란드의 독주가 뻔한 조였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조금 달랐다. 이 두 나라가 8강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서독이 2위로 미끄러지고 승점 셔틀로 생각했던 튀니지가 분전을 했던 것. 일단 개막전이었던 서독:폴란드 전에서는 0:0 무재배를 하는 바람에 66년대회 이후 4연속 무재배 징크스가 그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멕시코vs튀니지 전에서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는데, 객관적 전력에서 앞서는 멕시코가 처음으로 국제무대에 나선 듣보잡팀 튀니지에서 1:3으로 관광당한 것이다. 전반 종료 직전 멕시코의 페널티킥으로 앞섰지만 후반 내리 3골을 얻어맞으며 주저앉고 말았는데, 이 놀라운 결과가 팀 분위기에도 크게 영향을 미쳐 두 번째 경기에서는 서독이 멕시코를 상대로 D.뮐러, H.뮐러, 루메니게, 플로헤가 골 폭죽을 터뜨리며 6:0으로 탈탈 털었다. 8년만의 월드컵 무대에서 개최 때의 선전이 홈버프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려 했던 멕시코는 오히려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무기력하게 주저앉았고, 폴란드도 튀니지를 1:0으로 이기기는 했지만 의외로 선전하며 첫 경기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경기는 서독vs튀니지, 폴란드vs멕시코였는데, 두 번째 경기에서 골폭죽을 터뜨린 서독이 당연히 튀니지를 잡고 1위로 올라갈 것이라 생각되었지만... 튀니지는 마지막까지 끈질겼다. 서독의 무서운 공격을 모조리 막아내며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고 결국 0:0 무재배로 경기를 끝내버렸다. 폴란드는 무너진 멕시코를 상대로 보니에크 2골, 데이나 1골을 몰아넣으며 3:1 깔끔한 승리를 가져갔고, 1위와 2위의 결과가 뒤집히는 파란을 일으킨다. 아프리카에서 첫 출전한 듣보잡팀 튀니지가 강팀들을 상대로 발목을 잡은 것이 혼전의 원인이었다. 이후 다음대회에서 알제리가 역시 서독 조에서 발목을 잡으며 큰 화제를 일으키고, 다다음대회에서 모로코가 조 1위로 16강에 오르는 등 북아프리카 팀들의 선전과 아프리카 돌풍의 신호탄이 되는 조였다. 더불어 서독이 미끄러짐과 동시에 이를 피하기 위한 아르헨티나의 고의적 미끄러짐도 직후에 이루어졌다.
'''① 폴란드 : 2승 1무 0패 4득점 1실점 승점 5'''
'''② 서독 : 1승 2무 0패 6득점 0실점 승점 4'''
③ 튀니지 : 1승 1무 1패 3득점 2실점 승점 3
④ 멕시코 : 0승 0무 3패 2득점 12실점 승점 0
* 서독 0 - 0 폴란드
* '''튀니지''' 3 - 1 멕시코
* '''서독''' 6 - 0 멕시코
* '''폴란드''' 1 - 0 튀니지
* 서독 0 - 0 튀니지
* '''폴란드''' 3 - 1 멕시코
=== C조 ===
'''오스트리아''', '''브라질''', 스페인, 스웨덴
- 우루과이가 오스트리아로 바뀌었을 뿐 1950년 결승과 상당히 비슷한 조가 탄생했다. 4년 전의 부진을 씻고 힘을 내려던 브라질은 유럽의 세 강팀과 붙어 다소 힘겨운 싸움이 예고되었다. 첫 경기 오스트리아:스페인 전에서는 오스트리아가 2:1로 이겼고 브라질:스웨덴 전에서는 역대 월드컵(38,50,58)에서 3전 3승으로 발랐었던 브라질이 예상외로'''(혹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1:1 무재배를 하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유는, 경기 종료직전 브라질의 [[지쿠]]가 헤딩골을 넣었으나, 심판인 클라이브 토마스가 시간이 다 지났다는 이유로 종료 휘슬을 부는바람에 지쿠의 득점은 인정되지 않았다.] 두 번째 경기에서도 기세가 오른 오스트리아가 스웨덴을 1:0으로 잡음으로써 라이벌 두 팀을 상대로 모두 승리, 일찌감치 8강 진출을 확정지었고 브라질은 스페인을 상대로도 0:0 무재배를 하는 졸전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브라질은 스페인한테 질 뻔했는데, [[훌리오 카르데뇨사]]가 [[야쿠부 아이예그베니|니가가라]] [[이동국|2라운드]] [[크리스티안 비에리|슛]]을 날리면서 무재배가 되었다. [[스노볼|결국 이 경기를 못이긴 스페인은 다음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 28년 전 결승리그에서 각각 7:1, 6:1로 쳐바른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2무로 마지막까지 탈락의 기로에 선 브라질은 2연승으로 8강을 확정지은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1:0으로 승리하면서 2위 자리를 챙겼고[* 지쿠의 득점이 인정만 됐었다면 브라질이 C조 1위를 했을것이고, 2라운드의 판도는 알수 없었을 것이다...], 2무의 브라질이 이기지 않고 각각 1무 1패로 서로를 잡으면 가능성이 있었던 스페인과 스웨덴 경기에서는 후반 30분 스페인이 결승골을 넣으며 승리를 가져갔지만 같은 시각 브라질이 승리를 가져가며 두 팀 모두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오스트리아는 라이벌을 모두 이겨 1위를 챙기며 20년만의 본선에서 상당한 호성적을 냈고, 브라질은 8강 진출에만 성공했을 뿐 4년 전과 같은 결과에 세 경기 두 골이라는 저조한 득점력을 보여주었기에 자국 내에서 강력한 비난을 맞았다.....지만 2라운드에서의 논란이 그 모든 것을 잠재웠다. 한편 스페인은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20년 뒤의 월드컵]]에서 또다시 그와 비슷한 흐름으로 16강 진출에 실패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그 때는 불가리아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D조#s-6|6:1]]이라는 엄청난 대승을 거두고도 떨어졌으니 그로 인한 허무함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더 이상 말할 것도 없을 정도]]...
'''① 오스트리아 : 2승 0무 1패 3득점 2실점 승점 4'''
'''② 브라질 : 1승 2무 0패 2득점 1실점 승점 4'''
③ 스페인 : 1승 1무 1패 2득점 2실점 승점 3
④ 스웨덴 : 0승 1무 2패 1득점 3실점 승점 1
* '''오스트리아''' 2 - 1 스페인
* 브라질 1 - 1 스웨덴
* '''오스트리아''' 1 - 0 스웨덴
* 브라질 0 - 0 스페인
* '''스페인''' 1 - 0 스웨덴
* '''브라질''' 1 - 0 오스트리아
=== D조 ===
'''페루''',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이란
- 전 대회 준우승의 네덜란드가 당연히 독주할거라 예상되었던 D조였지만 역시나 결과는 혼돈이었다. 2위 자리를 놓고 경쟁을 펼칠 페루vs스코틀랜드 전에서는 쿠비야스의 대활약으로 3:1로 페루가 승리를 가져갔고, 아시안컵 3연속 우승에 무패로 월드컵 첫 진출한 아시아 최강 이란은 역시 세계구급 강호 네덜란드에 상대가 되지 못했다. 크루이프의 빈 자리를 렌센브링크가 채우며 PK 2골을 포함해 3:0으로 깔끔하게 승리를 따냈다. 첫 경기 페루전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한 스코틀랜드는 두 번째 승점자판기 이란을 상대로 승리를 다짐했지만 전반 종료 직전 이란의 자책골로 겨우 한 점 앞서다 후반전 동점을 내주며 1:1로 비겨 8강 전망이 무척 어두워졌다. 반면 페루는 네덜란드를 상대로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사실상 8강을 확정지었다. 마지막 경기는 네덜란드vs스코틀랜드, 페루vs이란 전이었기에 두 번째 경기에서 이미 8강은 거의 가려진 상황이었는데 하필 이 경기들을 앞두고 서독과 아르헨티나 조의 결과가 판가름 났다. A조의 아르헨티나와 B조의 서독 모두 2위로 올라감으로써 D조의 네덜란드가 조 1위로 올라가면 홈팀 아르헨티나와 붙게 되었다. 아무리 크루이프가 빠졌다지만 축구의 흐름을 바꾼 전설의 팀과 붙는 것은 아르헨티나에겐 무리였고, 결국 마지막 경기에서 철저히 스코틀랜드에게 편파판정 크리를 낸다. 스코틀랜드가 무조건 이겨야만 네덜란드가 2위로 미끄러질 수 있었고 심지어는 탈락까지 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반전 렌센브링크의 PK로 1:0으로 앞서다 달그리시의 동점골로 1:1로 마무리했지만 후반전이 되자마자 말도 안 되는 애매한 PK를 헌납하며 1:2로 끌려다니고, 쐐기골[* 아치 게밀 선수가 득점한 이 득점은, 대회 최고의 득점중 하나로 꼽혔다.]까지 작렬하며 1:3으로 끌려다니기 시작했다. 후반 26분 만회골을 터뜨렸지만 더 이상의 기회는 --심판이 막았고-- 없었고 결국 2:3 펠레스코어로 네덜란드가 패배. 동시에 열린 페루vs이란전은 예상대로 쿠비야스의 헤트트릭이 작렬하며 이란을 4:1로 대파하고 페루가 1위로 올라간다. 사실 애초에 A조에서 아르헨티나가 1위를 장담할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첫 경기부터 네덜란드를 어떻게든 끌어내리려고 세 경기 모두 네덜란드에 불리하게 편파판정을 내리는 병크를 저질렀다. 페루전 무승부, 이란전 (겨우)세 골차 승리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편파판정의 최대 승자는 아르헨티나에게 쉬웠던 페루였지만, 결국 이들은 2라운드에서 월드컵 최고 핫 이슈를 만들어내고 말았으니...
'''① 페루 : 2승 1무 0패 7득점 2실점 승점 5'''
'''② 네덜란드 : 1승 1무 1패 5득점 3실점 승점 3'''
③ 스코틀랜드 : 1승 1무 1패 5득점 6실점 승점 3
④ 이란 : 0승 1무 2패 2득점 8실점 승점 1
* '''페루''' 3 - 1 스코틀랜드
* '''네덜란드''' 3 - 0 이란
* 스코틀랜드 1 - 1 이란
* 네덜란드 0 - 0 페루
* '''페루''' 4 - 1 이란
* '''스코틀랜드''' 3 - 2 네덜란드
== 2라운드 조 편성 ==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결승 진출국. 순서는 조별 리그 순위
||<-5> 2차 조별 라운드 ||
|| A조 || '''네덜란드''' || 이탈리아 || 서독 || 오스트리아 ||
|| B조 || '''아르헨티나''' || 브라질 || 폴란드 || 페루 ||
=== A조 ===
- 톱시드였던 아르헨티나, 서독, 브라질, 네덜란드가 모두 조 2위로 미끄러지면서 유럽의 강호 네 팀이 한 조에 속하는 최악의 편성이 탄생했다. 가장 먼저 결과가 나온 서독 조를 보고 [[승부조작|아르헨티나가 고의적으로 2위로 미끄러지고]], 여기에 네덜란드까지 2위로 밀리게 함으로써 석연치 않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역시나 아르헨티나가 쉽게 우승하기 위해 유럽의 네 강팀을 한 조에 편성해 일찌감치 힘을 빼게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나왔다. 이 네 팀 중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모두가 우승 후보 반열에 올라 있어 더욱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었다.
첫 경기 네덜란드vs오스트리아전. 네 팀 중 가장 전력이 약했던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네덜란드가 어렵지 않게 5:1 대승을 거둔다. 조 예선에서의 기대 이하의 성적은 심판 때문이었다는 듯, 네 선수가 골고루 득점을 하며 오스트리아를 맹폭격하며 어렵지 않게 1승을 챙겼다. 서독vs이탈리아 전에서는 치열한 공방전 끝에 0:0 무득점 무재배로 경기가 끝났다. 두 번째 경기인 서독vs네덜란드 전은 4년전 결승전에서의 설욕을 갚느냐, 디펜딩 챔피언으로서의 위상을 잇느냐를 놓고 신경전이 대단했던 빅매치였다. 아직까지도 1974년에 서독과 네덜란드 중 누가 우위였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할 정도이니 이 당시의 감정이 어땠는지는 상상에 맡긴다. 아르헨티나에서의 리턴매치는 서독이 선제골을 넣으면 네덜란드가 따라붙는 식으로 팽팽히 맞서면서 2:2 무승부. 누구도 승리를 챙기지 못한 채 끝났다. 이탈리아vs오스트리아전 역시 파올로 로시가 일찌감치 선제골을 넣고 무섭게 잠금으로써 이탈리아의 1:0 신승으로 끝이 났다. 각각 1승 1무를 챙긴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는 마지막 경기에서 결승행이냐 3·4위전행이냐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게 되는데, 네덜란드의 수비수 브란츠 선수가 전반 18분 어이없게 자살골을 넣음으로써 이탈리아가 앞서나간다. 이 때 브란츠의 --슛팅--에 골키퍼가 부상을 입는 초유의 팀킬을 저지른다. 브란츠는 후반 5분 다시 한 골을 집어넣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탈리아의 네트를 제대로 가르며 1:1 원점. 결국 한 골을 더 넣고 2:1 네덜란드의 승리로 경기가 끝났다. 서독vs오스트리아 전에서는 서독이 1:1 이상 비기거나 오스트리아를 이기면 3·4위전에는 진출할 수 있었지만[* 사실 결승전에 진출할수있는 기회가 있긴 있었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고,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5골차 이상으로 승리하는 것이였다.--쉽지가 않아서 그렇지...--], 전반 19분 루메니게의 선제골에도 불구하고 후반 14분 역시 포크츠의 자책골이 터지며 원점, 후반 21분 크란클의 추가골이 터지며 역전당한다. 역전을 허용한지 4분 만에 동점골을 우겨넣지만 크란클의 추가골이자 결승골이 터지며 2:3으로 역전패, 결국 3·4위전 진출에도 실패하며 2연속 우승의 꿈은 물건너갔다.[* 이 경기는 오스트리아에서 "코르도바의 기적"으로 회자된다.] 덕분에 이탈리아는 마지막 경기를 지고도 4강에 올라갔으며 네덜란드가 2연속 결승 진출에 성공한다. 특히 네덜란드는 죽음의 조에서 경기당 세 골을 뽑아내며 무서운 상승세를 이어갔다.
'''① 네덜란드 : 2승 1무 0패 9득점 4실점 승점5''' ▶ 결승 진출
'''② 이탈리아 : 1승 1무 1패 2득점 2실점 승점3''' ▷ 3·4위전 진출
③ 서독 : 0승 2무 1패 4득점 5실점 승점2
④ 오스트리아 : 1승 0무 2패 4득점 8실점 승점2
* '''네덜란드''' 5 - 1 오스트리아
* 서독 0 - 0 이탈리아
* 서독 2 - 2 네덜란드
* '''이탈리아''' 1 - 0 오스트리아
* '''오스트리아''' 3 - 2 서독
* '''네덜란드''' 2 - 1 이탈리아
=== B조 ===
- A조에 유럽 우승후보 네 팀을 몰아넣는 바람에 B조는 사실상 꿀대진이었다. 브라질이 유일한 아르헨티나의 상대였고, 4년 전 아르헨티나를 무너뜨리고 4강에 올라간 폴란드도 아르헨티나와는 게임이 되지 않았다. 결국 누가 결승을 가져가냐를 놓고 남미의 두 라이벌이 팽팽하게 맞섰는데, 결과적으로는 아르헨티나가 승리했지만 지금까지도 논란이 될 정도로 찝찝하게 끝났다. 일단 첫 경기에서는 브라질이 페루를 3:0으로 가볍게 누르고 아르헨티나 역시 켐페스의 두 골로 폴란드에 2:0으로 승리하며 4년 전의 복수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두 번째 경기에서는 폴란드가 페루를 1:0으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맞대결은 일방적인 편파판정과 악몽같은 관중들의 야유에 브라질이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하며 석연치 않은 무승부로 끝이 났다. 마지막 경기에서는 브라질vs폴란드 경기가 먼저 치뤄졌는데, 넬리뉴의 프리킥 골와 호베르투 디나미테[*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A]] 역사상 최다 득점선수]의 멀티골로 폴란드를 3:1로 이기며 경기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아르헨티나vs페루전. 세 경기를 모두 치룬 브라질이 2승 1무 6득점 1실점이었는데 아르헨티나는 한 경기를 앞두고 1승 1무 2득점 무실점이었다. 페루를 4:0 이상 이겨야만 결승 진출이 가능했지만, 문제는 페루가 그리 만만한 팀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전설의 선수 [[테오필로 쿠비야스]]가 최절정에 오른 상황이었고 예선에서도 네덜란드를 제치고 1위로 올라온 강팀이었다. '''그리고 월드컵 역사상 [[히혼의 수치]]에 버금가는 더러운 경기가 시작됐다.'''아무리 객관적으로 아르헨티나가 전력이 앞선다고 해도 4골차의 대량득점은 상당히 힘든 상황이었지만, 켐페스와 루케가 2골을 몰아넣고 타란티니, 오우세만의 추가골로 6:0으로 페루를 관광보낸다. 마지막 경기에서의 경악스런 결과에 브라질 언론은 비델라 군사 정권이 페루에게 부채 5천만 달러를 탕감해주는 대가로 선수를 매수했다는 이야기와 페루에 대규모 무상 곡물지원을 해주었다는 설을 꾸준히 퍼트리고, 이에 맞서 아르헨티나에서도 브라질 정부가 페루에게 아르헨티나를 막으면 선수당 3만 달러를 지원해주기로 약속했다는 루머를 퍼트린다. 아직도 아르헨티나:페루전의 승부조작 논란은 끊이지 않으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사람들 대부분은 당국이 퍼트린 소문을 그대로 믿고 있으며 특히 브라질에서는 감독까지 대놓고 '우승을 도둑맞았다'며 날선 비난을 서슴없이 하는 판국이다. 믿기지 않는 결과에 분노한 브라질 시민들은 경기 직후 페루 대사관 앞에서 폭동을 일으킬 정도였다. 일단 페루 측에서는 '골키퍼가 없었으면 더 많은 점수차로 졌다' '[[승부조작]]은 없다'로 일축했으나 아직까지 진위여부가 가려지지 않는, 다음 대회의 서독 조에 버금가는 석연찮고 찜찜했던 조였다.
'''① 아르헨티나 : 2승 1무 0패 8득점 0실점 승점5''' ▶ 결승 진출
'''② 브라질 : 2승 1무 0패 6득점 1실점 승점5''' ▷ 3·4위전 진출
③ 폴란드 : 1승 0무 2패 2득점 5실점 승점2
④ 페루 : 0승 0무 3패 0득점 10실점 승점0
* '''브라질''' 3 - 0 페루
[youtube(CSunkCuSMgE)]
* '''아르헨티나''' 2 - 0 폴란드
* '''폴란드''' 1 - 0 페루
* 아르헨티나 0 - 0 브라질
* '''브라질''' 3 - 1 폴란드
[youtube(Y9eKFZTPUck)]
[youtube(U_wdK6K_rV8)]
* '''아르헨티나''' 6 - 0 페루
== 3·4위전 + 결승전 ==
◎ 3·4위전
브라질 2:1 이탈리아
[youtube(l4O0MF_poPw)]
[youtube(svjJLm0KFoc)]
- 어찌보면 브라질과 이탈리아 모두 아르헨티나가 짜놓은 '내 맘대로 우승' 플랜에 걸려든 피해자였다. 홈팀을 누르고 조 1위로 올라왔지만 알고 보니 --지옥-- 우승후보 세 팀이 몰린 죽음의 조였던 이탈리아, 그리고 승부 조작 논란에 휩싸이며 억울하게(?) 4강으로 미끄러진 브라질이었기에 이 경기에서라도 설욕해 자존심을 되찾자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특히 브라질에서는 아르헨티나가 3점차로 이겨도 자기들이 결승행이었기에 억울함은 말도 못하게 컸다. 결국 브라질이 전반전 선제골을 내주고도 넬리뉴와 디르세우의 연속골로 역전승을 거두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경기 종료 후 브라질의 클라우디우 쿠티뉴 감독은 '''"우리는 도덕적인 챔피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브라질의 발언이 워낙 유명하기는 했지만 이탈리아 역시 '''"다른 곳에서 월드컵이 열렸다면 아르헨티나는 1라운드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멕시코 월드컵 결승전 이후 8년만의 매치였지만, 양 팀 모두에게 그런 것 따윈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네덜란드는 제외하고-- 사실상의 결승전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경기였다.
◎ 결승전
네덜란드 1:3 아르헨티나
[youtube(2EwfHjbeNV8)]
- 아르헨티나의 조편성 조작에도 압도적인 화력으로 손쉽게 결승행 티켓을 따낸 네덜란드. 이번에야말로 우승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다짐하며 이를 악물었지만 여기서 아르헨티나의 대놓고 편파판정이 절정에 이른다. 경기 전에는 당연히 대부분의 전문가와 --아르헨티나를 제외한-- 전세계 여론은 '네덜란드가 우승'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크루이프가 빠졌어도 렌센브링크를 축으로 한 강력한 라인은 여전했으며 지역 예선과 본선에서의 성적이 그를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운 좋게 결승에 올라왔지만 사실상 결승 진출을 할 수 있을만큼 네임드의 선수는 거의 없는 판이었으며 1930년 준우승 이후 국제무대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노골적인 홈버프로 올라왔으나 결승전은 어쩔 수 없다라는 평가가 대세였다. 아르헨티나는 여기서 홈 버프를 이용하여 경기 시작 직전에 네덜란드의 레네 판 더 케르크호프 선수에 대하여 심판에게 항의하였다. 이 선수는 팔에 깁스를 한 채 경기를 뛰었는데, 그것이 위협적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선수는 몇 달째 깁스를 하고 있었고, 월드컵 경기를 치러오는 동안 전혀 논란이 없었다. 즉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기선제압을 위한 시비였던 셈. 이에 분노한 네덜란드 선수들이 경기장을 나가겠다며 난동을 부리는 등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결승전. 결승전이 시작하자마자 네덜란드가 압도적인 기세로 아르헨티나를 몰아붙이며 쉴새없이 골문을 위협했고 아르헨티나는 이런 네덜란드를 막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제12의선수 심판을 앞세운 아르헨티나의 일방적인 분위기 끌어오기로 네덜란드는 점점 말려들었고 결국 1:1로 비겨 연장전을 갔으며, 연장전에서만 두 골을 허용하면서 연장전 끝에 1:3으로 패배하고 만다. 지상명령을 이기고 첫 우승컵을 들어올린 아르헨티나는 광란의 도가니에 휩싸였으며, 너무도 편파적인 판정으로 2연속 준우승에 머무른 네덜란드 선수들은 '''"우리도 월드컵을 개최하자!"'''며 분노했다고 한다. 다만 편파와 조작으로 얼룩진 대회였음에도 [[마리오 켐페스]]라는 걸출한 스타를 탄생시킨 대회이기도 했다.
== 우승 ==
[[파일:1978아르헨티나.jpg]]
||<table align=center><rowbgcolor=#ffd700> '''{{{+2 1978 FIFA 월드컵 우승}}}''' ||
||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width=200]] [br]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000000 '''아르헨티나'''}}}]]''' ||
|| 첫 번째 우승[br]★ ||
== 기록실 ==
[[아르헨티나 월드컵]]의 여러가지 기록들을 정리한 항목. 너무 길어진 고로 분할하는 바이다. 참고로 네덜란드의 에르니 브란츠 선수는 '''한 경기에서 양쪽 골대에다 모두 골을 넣는''' 황당한 짓거리를 했다.[* 40년후인 2018년 월드컵에서는 크로아티아의 [[마리오 만주키치]] 선수도 같은 기록을 만들었다. 그것도 결승전에서(...)] 브라질은 이 대회에서 단 한 경기도 패하지 않은 유일한 팀이다.
*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기록실]] 항목 참조.
== 결과 ==
|| 순위 || 국가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 || 승점 || 비고 ||
||<rowbgcolor=#ffd700> 1 || 아르헨티나 || 7 || 5 || 1 || 1 || 15 || 4 || +11 || '''11''' || '''우승''' ||
||<rowbgcolor=silver> 2 || 네덜란드 || 7 || 3 || 2 || 2 || 15 || 10 || +5 || '''8''' || 준우승 ||
||<rowbgcolor=#b8860b> 3 || 브라질 || 7 || 4 || 3 || 0 || 10 || 3 || +7 || '''11''' || 3위 ||
||<rowbgcolor=#f0e68c> 4 || 이탈리아 || 7 || 4 || 1 || 2 || 9 || 6 || +3 || '''9''' || 4위 ||
||<rowbgcolor=#b2ccff> 5 || 폴란드 || 6 || 3 || 1 || 2 || 6 || 6 || 0 || '''7''' || 8강 ||
||<rowbgcolor=#b2ccff> 6 || 서독 || 6 || 1 || 4 || 1 || 10 || 5 || +5 || '''6''' || 8강 ||
||<rowbgcolor=#b2ccff> 7 || 오스트리아 || 6 || 3 || 0 || 3 || 7 || 10 || -3 || '''6''' || 8강 ||
||<rowbgcolor=#b2ccff> 8 || 페루 || 6 || 2 || 1 || 3 || 7 || 12 || -5 || '''5''' || 8강 ||
||<rowbgcolor=#ffa7a7> 9 || 튀니지 || 3 || 1 || 1 || 1 || 3 || 2 || +1 || '''4'''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0 || 스페인 || 3 || 1 || 1 || 1 || 2 || 2 || 0 || '''4'''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1 || 스코틀랜드 || 3 || 1 || 1 || 1 || 5 || 6 || -1 || '''3'''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2 || 프랑스 || 3 || 1 || 0 || 2 || 5 || 5 || 0 || '''2'''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3 || 스웨덴 || 3 || 0 || 1 || 2 || 1 || 3 || -2 || '''1'''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4 || 이란 || 3 || 0 || 1 || 2 || 2 || 8 || -6 || '''1'''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5 || 헝가리 || 3 || 0 || 0 || 3 || 3 || 8 || -5 || '''0'''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6 || 멕시코 || 3 || 0 || 0 || 3 || 2 || 12 || -10 || '''0''' || 1라운드 ||
골든볼 - (ARG) [[마리오 켐페스]](아르헨티나)
실버볼 - (NED) [[롭 렌센브링크]](네덜란드)
브론즈볼 - (BRA) [[지르세우]](브라질)
득점왕 - (ARG) [[마리오 켐페스]](아르헨티나)
골든글러브(야신상) - (ARG) [[우발도 피욜]](아르헨티나)
신인상 - (ITA) [[안토니오 카브리니]] (이탈리아)
페어플레이상 - (아르헨티나)
== 대회 이후 ==
[[파일:external/4.bp.blogspot.com/Jorge-videla-argentina.jpg]]
이 대회의 여파로 인하여 [[호르헤 비델라]]의 지지도는 일시적으로 상승했다.[* 사실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자들은 돌려가며 해먹었는데 이 중에 비델라가 가장 오래 해먹었다. 다른 독재자들은 다들 1년 남짓 해먹은 반면 이 양반은 무려 5년 동안이나 해먹었다.] 그러나 월드컵의 열기가 식고 나자 경제문제와 인권탄압 문제가 부각되며 지지도가 하락했다.
당시 [[FIFA]] 회장 [[주앙 아벨란제]]는 아르헨티나의 우승 축하연 자리에서 축사를 하며 '''"세계가 아르헨티나의 진면목을 보았습니다."'''라는 찬사를 남겼다.
[[분류: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
1978 방콕 아시안 게임 | [include(틀:역대 하계 아시안게임)]
||<-3><table align=right><table width=420><table bordercolor=#d9b249><bgcolor=#d9b249> {{{+4 '''{{{#ffffff 1978 방콕 아시안게임}}}'''}}} ||
||<-3><bgcolor=#245a99> {{{#fff 제8회 아시안게임[br]{{{+1 1978 방콕 아시안게임 }}}[br]VIII Asian Games'''[[상표|{{{#fff ™}}}]] '''Bangkok 1978 }}} ||
||<-3><bgcolor=#ffffff,#191919> [[파일:attachment/51224002485.jpg|width=70%]] ||
||<height=40><bgcolor=#245a99> {{{#fff ''' 대회기간 ''' }}} ||<-2> [[1978년]] [[12월 9일]] ~ [[12월 20일]] ||
||<height=40><bgcolor=#245a99> {{{#fff ''' 개최국 ''' }}} ||<-2> [[태국]]/[[방콕]] ||
||<height=40><bgcolor=#245a99> {{{#fff ''' 참가국 ''' }}} ||<-2> 25개국 ||
||<height=40><bgcolor=#245a99> {{{#fff ''' 참가인원 ''' }}} ||<-2> 3,842명 ||
||<height=40><bgcolor=#245a99> {{{#fff ''' 경기종목 ''' }}} ||<-2> 19개 종목 - 199개 세부 종목 ||
||<height=40><bgcolor=#245a99> {{{#fff ''' 개회선언 ''' }}} ||<-2> [[라마 9세]][br],,[[태국 국왕]],, ||
||<height=40><bgcolor=#245a99> {{{#fff ''' 개·폐회식장'''}}} ||<-2> [[수파찰라사이 경기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1978년]]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제8회 하계 [[아시안 게임]]. [[방콕]]에서만 세번째 열린(...) [[아시안 게임]]이다.
== 유치과정 ==
유치과정이 [[1970 방콕 아시안 게임]]만큼이나 복잡하다. 원래는 [[싱가포르]]에서 유치권을 가져갔으나 당시 [[경제]]성장 중이던 [[싱가포르]]의 재정에 압박이 되어 유치권을 반납하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자금지원을 받는 대가로 유치권을 가져가게 되었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이 제대로 지원을 해주지 않아서 개최준비를 제대로 못 하게 되었다. 따라서 결국 다시 개최권을 반납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 이후 [[중동]] [[산유국]]들의 지원을 받는 대가로 '''또''' [[방콕]]에서 [[아시안 게임]]을 여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방콕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1966년]]과 [[1970년]] 연달아서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여 재정적으로 무리가 간 방콕에서 또 개최하게 되어 이후의 태국 상황은 휘청이게 된다. ~~태국:이제 제발 멈춰줘..~~
== 메달 순위 ==
|| 순위 ||<-2> 국가명 || 금 || 은 || 동 || 합계 ||
|| 1 || [[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 일본 || 70 || 59 || 49 || 178 ||
|| 2 || [[파일:중국 국기.svg|width=30]] || 중국 || 51 || 54 || 46 || 151 ||
|| 3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 대한민국 || 18 || 20 || 31 || 69 ||
|| 4 || [[파일:북한 국기.svg|width=30]] || 북한 || 15 || 13 || 15 || 43 ||
|| 5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 태국 || 11 || 12 || 19 || 42 ||
|| 6 || [[파일:인도 국기.svg|width=30]] || 인도 || 11 || 11 || 6 || 28 ||
|| 7 ||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width=30]] || 인도네시아 || 8 || 7 || 18 || 33 ||
|| 8 || [[파일:파키스탄 국기.svg|width=30]] || 파키스탄 || 4 || 4 || 9 || 17 ||
|| 9 || [[파일:필리핀 국기.svg|width=30]] || 필리핀 || 4 || 4 || 6 || 14 ||
|| 10 || [[파일:이라크 국기.svg|width=30]] || 이라크 || 2 || 4 || 6 || 12 ||
|| 11 || [[파일:싱가포르 국기.svg|width=30]] || 싱가포르 || 2 || 1 || 4 || 7 ||
|| 12 ||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width=30]] || 말레이시아 || 2 || 1 || 3 || 6 ||
|| 13 || [[파일:몽골 국기.svg|width=30]] || 몽골 || 1 || 3 || 5 || 9 ||
|| 14 || [[파일:레바논 국기.svg|width=30]] || 레바논 || 1 || 1 || 0 || 2 ||
|| 15 || [[파일:시리아 국기.svg|width=30]] || 시리아 || 1 || 0 || 0 || 1 ||
|| 16 || [[파일:미얀마 국기.svg|width=30]] || 버마 || 0 || 3 || 3 || 6 ||
|| 17 || [[파일:영국령 홍콩 기.png|width=30]] || 홍콩 || 0 || 2 || 3 || 5 ||
|| 18 || [[파일:스리랑카 국기.svg|width=30]] || 스리랑카 || 0 || 0 || 2 || 2 ||
|| 19 || [[파일:쿠웨이트 국기.svg|width=30]] || 쿠웨이트 || 0 || 0 || 1 || 1 ||
== 이모저모 ==
* [[일본]]이 8연속 우승을 달성한 대회. [[중화인민공화국]]이 2위였다.
* 이 대회부터 [[한중일]]이 아닌 국가들은 이 대회부터 죄다 4위 이하의 성적을 기록하게 되었고 이는 최근에 열린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까지도 한번도 뒤집혀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한중일이 계속 해먹을 거 같다~~
* 개회식 실황중계에서 [[북한]]의 입장시, [[대한민국]]의 [[텔레비전]]에서 이를 자막으로 화면을 막고 북한 선수들의 입장 모습을 볼 수 없도록 하여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다.
* 이 대회에서부터 [[이스라엘]]은 [[중동]] [[국가]]들의 실력행사로 인해 [[아시안 게임]]에 참가할 수 없게 된다.
* 축구에서는 남북 공동 금메달이라는 희귀한 장면이 나왔다. 결승전에서 남과 북이 연장전까지 무득점에 그친 것. 당시 [[승부차기]] 제도가 아시안게임 축구에서는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승전이나 3, 4위전에서 무승부가 나오면 공동 순위 처리했다. 당시 먼저 시상대에 올라간 북한 주장 김종민이 자리를 내주지 않자 남한 주장 [[김호곤]]이 억지로 몸으로 비집고 올라서고, 김종민은 그러는 김호곤을 밀쳐 넘어뜨리고 김호곤이 똑같이 되돌려주고를 반복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결국 그러다 어색하게 어깨동무하고 미소지으며 사진찍긴 했지만.
[[분류:하계 아시안 게임]] |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 #redirect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
1978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타이브레이커 게임 | [[분류:아메리칸 리그]]
||[[파일:external/cdn.bleacherreport.net/BuckyDentPhoto98_display_image.jpg]]||
||양키스의 버키 덴트가 6회초 3점 결승홈런을 치고 난 후 홈으로 들어와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는 장면.||
[목차]
== 개요 ==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놓고 1978년 10월 2일에 진행된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단판 승부.[*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리그가 각각 3대 지구로 재편성되어서 플레이오프가 [[디비전 시리즈|DS]] -[[챔피언십 시리즈|CS]]- [[월드 시리즈|WS]] 3단계로 짜여진 것은 1994년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동부-서부 지구로만 분류되었고 각 지구의 우승팀이 곧바로 CS를 치뤘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뒷심을 보인 양키스와 허무 개그의 절정을 보여준 레드삭스의 모습 그대로를 보인 시즌이라고 할 수 있겠다.
== 1978년의 두 팀 ==
우선 레드삭스는 1975년 월드시리즈를 7차전으로 가는 접전끝에 [[스파키 앤더슨]]이 이끄는 [[신시내티 레즈]]에게 패했다. 그리고 이듬해에 월드시리즈에 나섰던 [[뉴욕 양키스]] 역시 [[신시내티 레즈]]에게 4게임 '''싹슬이로 광탈당하는 치욕을 맛본다'''. 그러나 그 다음해인 1977년 명장 [[토미 라소다]]감독이 이끄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6차전으로 매듭짓고 우승을 만끽했다. 1978년에 들어서면서 두 팀은 강력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레드삭스는 이해 전년시즌 양키스에서 활약한 마이크 토레즈를 자유계약선수로 영입하고, 당시엔 선발투수였던 세이브의 달인 [[데니스 에커슬리]]까지 영입해서 명실상부한 동부지구 강자로 나설 채비를 했다. 이에 질세라 양키스는 구스 고세지를 영입해 불펜을 강화하였다. 이미 [[론 기드리]], 스파키 라일 같은 기라성 같은 투수에 [[서먼 먼슨]], [[레지 잭슨]], 그레익 네틀스 같은 훌륭한 타자까지 보유하고 있었던 양키스는 올해도 승리로 장식,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레드삭스 역시 그냥 있지는 않았다. [[칼 야스트렘스키]], 프레드 린, 릭 버를슨, 그리고 불세출의 포수 [[칼튼 피스크]]와 [[짐 라이스]]가 버티는 타순으로 기필고 3년만의 월드 시리즈 진출을 이루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그래도 잡는다 ==
이렇게 시작된 1978년도의 시즌은 레드삭스의 독주로 시작됐다. 무려 10경기까지 벌어져 밀워키가 2위, 양키스가 3위였던 시즌은 그러나 양키스쪽에서 부상선수들이 발생하고 참다못한 양키스 구단주였던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당시 감독이던 [[빌리 마틴]] 감독을 해임시킨 뒤 밥 레몬을 후임감독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양키스의 회복은 보이지 않고 급기야 레드삭스와 14 1/2경기차로 벌어지게 된다. 이때가 바로 7월 중순. 그러나 양키스는 이때부터 힘을 내기 시작, 그 이후로 53승 23패를 해 추격을 하는 반면, 레드삭스는 38승 36패를 하는 데 그쳤다. 특히 양키스와의 대결한 4경기 중 4경기 모두 졌다. 결국 양팀은 단판 승부로 지구 우승을 가려야하는 처지로 들어섰다.
== 외나무다리 승부 ==
||||||||||||||||||||||||||||||<#132448><:> {{{#ffffff 10월 2일, 팬웨이 파크}}} ||
||<#dcdcdc> '''팀''' ||<#dcdcdc> '''1회''' ||<#dcdcdc> '''2회''' ||<#dcdcdc> '''3회''' ||<#dcdcdc> '''4회''' ||<#dcdcdc> '''5회''' ||<#dcdcdc> '''6회''' ||<#dcdcdc> '''7회''' ||<#dcdcdc> '''8회''' ||<#dcdcdc> '''9회''' ||<#dcdcdc> '''R''' ||<#dcdcdc> '''H''' ||<#dcdcdc> '''E''' ||
|| '''양키스''' || 0 || 0 || 0 || 0 || 0 || 0 || 4 || 1 || 0 || 5 || 8 || 0 ||
|| 레드삭스 || 0 || 1 || 0 || 0 || 1 || 0 || 0 || 2 || 0 || 4 || 11 || 0 ||
결국 10월 2일, 이 두 운명의 앙숙은 외나무다리 승부를 펄쳤다.
장소는 레드삭스의 홈구장이었던 [[펜웨이 파크]]. 양키스는 24승 투수였던 [[론 기드리]]를 내세웠고, 레드삭스는 전 양키스 소속이던 마이크 토레스를 내세웠다. 레드삭스는 [[칼 야스트렘스키]]가 2회말에 솔로포를 터뜨린 후 5회에는 [[짐 라이스]]의 1타점 적시타로 2대 0을 만들어 앞서간다. 그러나 양키스는 6회초 크리스 챔블리스와 론 화이트가 각각 안타를 친 1사 1,2루 상황에서 벅키 덴트가 마이크 토레즈의 투구를 통타 좌월 3점 홈런을 터뜨려서 양키스의 3대 2 역전을 이뤄낸다. 레드삭스는 토레즈를 강판시키고 그 자리를 마무리 밥 스탠리를 올렸으나 타석에 들어선 리버스가 출루하고 2루에 도루, 이렇게 1사 2루에 [[서먼 먼슨]]이 2루 적시타와 [[레지 잭슨]]의 홈런으로 5대 2로 리드해나갔다.
양키스는 마무리 [[구스 고시지]]를 등판시켜 그대로 경기를 매조지려고 했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던 레드삭스가 8회말에 반격을 감행하여 프레드 린과 [[칼 야스트렘스키]]의 안타로 5대 4로 점수차를 줄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9회말, 레드삭스는 최후의 대반격을 감행한다. 1사후 1번타자 벌레슨이 1루에 출루한 상황에서 2번 타자 제리 레미가 우익수 방면으로 강한 [[직선타]]를 날린다. 그리고 여기서 양 팀의 운명을 엇갈리게 만든 수비 장면이 나온다. 양키스의 우익수 루 피넬라는 이때 '''햇빛에 시야를 가려서 공의 궤적을 놓친 상태였지만, 공을 잡을 수 있는 것처럼 태연히 연기하였고, 여기에 감쪽같이 속은 벌레슨은 2루까지만 진루한다.''' ~~[[정수빈]] [[한국프로야구/2009년 포스트시즌#s-3.2.3|보고있나?]]~~ 이어 [[짐 라이스]]가 큼직한 외야플라이를 날렸고, 정상적이었다면 동점 [[희생플라이]]가 되어야 했을 이 타구는 단순한 진루타에 그치고 만다. 어느 쪽도 쉽사리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2사 1,3루의 상황. 레드삭스의 주장 야스트렘스키가 레드삭스 팬들의 간절한 기도와 함께 타석에 서지만, 그의 초구 타격은 허무하게도 3루수 쪽으로 향하는 파울 플라이볼이었고 그대로 경기는 끝났다. 그렇게 양키스는 플레이오프행 막차를 탔고 레드삭스는 [[망했어요]].
== 여담 ==
* 이후 양키스는 ALCS에서 로열스를 꺾은데 이어 월드시리즈에서는 다저스와 리턴 매치를 가졌는데 다시 한 번 승리를 거두고 월드시리즈 2연패를 차지한다. 다만 이 해가 양키스의 마지막 불꽃이었고 그 이후 양키스는 [[데릭 지터]]로 대표되는 90년대 후반의 제2의 전성기가 오기전까지 처절한 암흑기를 거치게 된다.
* 양키스는 전년도와 이 해, 연속 [[사이 영]]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전년도인 77년에는 스파키 라일이, 그리고 이 해에는 25승으로 아메리칸 리그를 평정한 론 기드리가 그들이었다.
* 보스턴은 이 해의 대역전극 참사 [[2011 MLB 와일드카드 레이스|33년 후 또 한번 어메이징한 추락을 경험한다]]. |
1978년 | ||<-9><tablealign=center><bgcolor=#a9a9a9> {{{#000000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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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tablealign=right><bgcolor=#CBB8EE> '''세계 각 지역의 표기''' ||
|| [[서력기원|서기]] || 1978년 ||
|| [[대한민국 연호|대한민국]] || 60년 ||
|| [[단군기원|단기]] || 4311년 ||
|| [[불멸기원|불기]] || 2522년 ||
|| [[이슬람력]] || 1398년 ~ 1399년 ||
|| [[갑자|간지]] || [[정사#s-3]]년 ~ [[무오]]년 ||
|| [[주체사상|주체]] || 67년 ||
|| [[중화민국|민국]] || 67년 ||
|| [[일본]] || [[쇼와]] 53년 ||
|| [[히브리력]] || 5738년 ~ 5739년 ||
[목차]
== 개요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122500329205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12-25&officeId=00032&pageNo=5&printNo=10227&publishType=00020|경향신문 선정 1978년 국내외 10대 뉴스]]
한국에선 지속되는 고도 성장으로 민간 경제는 크게 나아졌는데 반해 물가고와 심각한 생필품 품귀 현상이 발생하고 부가가치세 신설로 불만이 많아져 12월에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총선]]에서 부가세 철폐를 내세운 [[신민당(1967년)|신민당]]에 [[민주공화당]]이 참패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입지가 크게 악화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여파는 [[오일 쇼크#s-3|2차 오일쇼크]]와 겹쳐서 [[부마민주항쟁|부마항쟁]], [[10.26 사건|10.26 사태]]로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역사상 최악의 해이다. 이 해를 기준으로 그 전까지는 풍요롭고 살기 좋았던 아프가니스탄이 이 해 이후부터는 [[공산당]]과 [[무자헤딘]]이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총탄을 퍼붓으며 싸우는 지옥이 되어]]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되고 말았다.
[[유엔|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부터 1979년까지를 '세계 반인종차별의 해'로 지정했다.
== 사건 ==
=== 실제 ===
==== 1월 ====
* [[1월 1일]] - 봄베이발 두바이행 [[인도항공]] 855편 [[보잉]] [[747]] 여객기가 아라비아해로 추락해 탑승 인원 213명 전원이 사망했다.
* [[1월 10일]] - 이날 서울에서 박동선 사건 처리를 위한 한미법무회의가 열렸다. 10일 뒤에 한미검찰공조협정이 발표되었다.
* [[1월 14일]] - [[영국령 홍콩]]에서 유명 여배우 [[최은희]]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당했다.
* [[1월 18일]] - 박정희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헬기, 대포, 탄약, 장갑차, 함정, 레이더, 미사일 등 각종 병기를 생산 중이며 항공기 산업과 특수전차 개발에 착수했다고 발표하였다.
==== 2월 ====
* [[2월 21일]] - 유신시기 최대의 노동탄압 사건인 [[동일방직 똥물 사건]]이 발생했다.
* [[2월 24일]] - [[윤보선]] 전 대통령과 [[함석헌]] 옹 등 66명의 각계 민주 인사들이 <3.1 민주선언>을 발표하였다.
==== 3월 ====
* [[3월 7일]] - [[팀 스피릿]] '78 한미합동 훈련이 개시되었다.
* [[3월 14일]] - [[이스라엘]]이 계속되는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의 공격을 분쇄하기 위해 [[레바논]] 남부를 침공했다.
* [[3월 16일]] - 이탈리아의 테러단체 [[붉은 여단]]이 알도 모로 전 수상을 납치하였다. 두 달여 뒤인 5월 9일에 그는 시체로 발견되었다.
* [[3월 29일]] - 제26차 남북[[적십자]]실무회담이 북한 조선적십자회의 불참으로 유회되었다. 이로써 남북대화는 한동안 중단되었다.
* [[3월 30일]] - [[대전역]]~[[익산역|이리]] 간 [[호남선]] [[철도의 선로 구성 방식#s-2|복선]]이 개통되었다.
==== 4월 ====
* [[4월 1일]]: (주)중앙일보·동양방송이 <문예중앙>을 창간하였다.
* [[4월 3일]]
* 윌리엄 J. 포터 전 주한 미국대사가 자신의 대사 부임 전에 있었던 [[청와대]] [[도청(범죄)|도청]] 사실을 시사하였다.
* 코리아게이트의 당사자 박동선이 미국 하원 윤리위원회 청문회에서 미국 내 전/현직 의원에의 현금매수 사실을 증언하였다.
* [[4월 6일]]
* 박정희 대통령은 모 공업기지 전차공장에서 국산 고성능 전차 M48A3와 M48A5의 성능시험을 참관하였다.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310261856051&code=210010|'춘천가톨릭농민회 사건']]이 발생했다.
* [[4월 8일]] - 미국 법원은 [[코리아게이트]] 관련자인 김한조에 유죄 판결을 내렸다.
* [[4월 14일]] - 서울 세종로 구 시민회관 터에 [[세종문화회관]]이 개관되었다.
* [[4월 15일]] - 상공부는 수입자유화 및 예시품목 321개를 발표하여 적극적 수입정책을 추구하였다.
* [[4월 17일]] - '부산대 자율화 민주투쟁 선언서 사건'이 발생하였다.
* [[4월 20일]] - 프랑스발 서울행 [[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대한항공 902편]] [[보잉 707]] 여객기가 항법상의 실수로 소련 영공을 침범하여 콜라 반도 상공에서 격추당해 탑승 인원 109명 중 2명이 사망했다.
* [[4월 24일]]
* 박정희 대통령은 사흘 전 KAL기 사건과 관련해 소련의 우호적 조치에 사의를 표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하였다.
*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백범사상연구소는 문인 7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족문화의 밤’을 공동 개최하였다. 이 행사와 관련하여 [[고은(시인)|고은]] 시인과 [[백기완]]이 5월 2일에 연행 조사당했다.
* [[함평]]농민회 회원 7백여 명은 이날 광주 북동 천주교회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함평 고구마 피해보상과 농민회 탄압 중지, 구속 회원 석방 등을 요구하였다.
* [[4월 27일]] -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다우드 칸 [[대통령]]과 그 일가족이 살해당하고 [[공산당|공]][[사회주의|산]][[프롤레타리아 독재|당]] [[일당 독재|1당 독재]] 정권이 들어섰다.
* [[4월 30일]] - 정부는 12해리 영해법을 제정하였다.
==== 5월 ====
* [[5월 1일]] - [[남산3호터널]]이 개통되었다.
* [[5월 9일]] - [[YH 사건|YH무역]] 노동자들은 사측의 위장휴업 조치에 반발하여 제3차 정기대의원대회를 열어 농성에 돌입하였다.
* [[5월 12일]] - 학생운동 출신들이 모인 최초의 공개단체 '민주청년인권협의회(이하 민청협)'이 출범되었다.
* [[5월 15일]] - [[이란 제국]]에서 [[테헤란]] 대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반정부시위를 시작했다.
* [[5월 18일]] - 제2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 [[5월 26일]] - [[여수국가산업단지]]의 전신인 '여천석유화학공단'이 준공되었다.
==== 6월 ====
* [[6월 1일]] - [[아르헨티나]]에서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1978년 FIFA 월드컵]]이 개막되었다.
* [[6월 5일]] - [[조세희]]의 소설집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출간되었다.
* [[6월 16일]] - [[타이토]]의 게임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출시되었다.
* [[6월 22일]] - 한일[[대륙붕]]협정이 발효되었다.
* [[6월 23일]] -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에 민간경협기구 구성을 제의하였다.
* [[6월 27일]] - [[송기숙]] 교수 등 [[전남대]] 교수 11명이 [[국민교육헌장]]을 위시한 유신정권의 획일적 교육체제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은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했다(우리의 교육지표 사건).
* [[6월 30일]]
*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개원되었다.
* '압구정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이 발생하였다.
==== 7월 ====
* [[7월 6일]] - [[박정희]] 대통령이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9대 대통령 선거|9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 [[7월 7일]] - [[솔로몬 제도|솔로몬]]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 [[7월 20일]] - [[고리 원자력 본부|고리원전]] 1호 발전기가 준공되었다.
* [[7월 22일]] - 제1회 [[동양방송|TBC]] 해변가요제가 개최되었다.
* [[7월 23일]] - 이날 [[한강대교]]에서 시내버스 추락 사고가 발생해 승객 33명이 사망하였다.
* [[7월 28일]]
* '경북도교육위원회 가짜 중등교사자격증 사건'이 발생해 관련자 74명이 구속되었다.
* 제1차 한미군사위원회가 개최되었다.
*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가 [[영국]]에서 탄생했다.
* [[7월 30일]] - [[일본]] [[오키나와]]의 차량 통행 방식이 [[730(통행체계)|일본 본토와 같은 좌측 통행으로 변경되었다.]]
==== 8월 ====
* [[8월 8일]] - 정부는 투기억제를 위한 '8.8 조치'를 실시하였다.
* [[8월 19일]] - [[이란 제국]] [[테헤란]]에서 군경이 대규모로 발포, 477명이 숨졌다. 이를 계기로 시위대와 민중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한다.
* [[8월 26일]] - [[요한 바오로 1세]]가 263대 [[교황]]으로 즉위했다.
* [[8월 30일]] - [[부산]]에서 제24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금메달 연속 2연패를 달성하였다.
==== 9월 ====
* [[9월 3일]] - [[신현확]] [[보건복지부|보건사회부]] 장관이 한국인 최초로 [[소련]]을 방문하였다.
* [[9월 8일]] - 이란군이 테헤란에서 시위대에 재차 발포, 122명이 죽고 4,0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그러나 이는 시위대의 분노만 샀을 뿐이었다.
* [[9월 9일]] - 섬유노조는 국제방직 노동자 실태조사를 결정하고 이를 회사에 통고하면서 협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회사는 이를 거부하고 노조 어용화 공작을 추진하였다.
* [[9월 14일]] - [[고려대학교|고려대]]생 3천여 명이 <1978 민중선언>을 발표하며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 [[9월 16일]] - 경북 [[속리산]] 일대서 리히터 규모 5.2의 [[속리산 지진]]이 발생하였다.
* [[9월 17일]] -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의 중재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상호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에 합의하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 체결되었다.
* [[9월 25일]] - [[미국]] [[샌디에이고]] 상공에서 PSA 182편 [[보잉 727]] 여객기와 경비행기 [[세스나 172]]이 공중충돌하여 두 기체 탑승 인원 144명 전원이 사망했다.
* [[9월 26일]] - 충남 안흥시험장에서 국산 유도탄인 [[백곰]] 미사일의 시험발사가 성공하여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미사일 개발/보유국이 되었다.
* [[9월 27일]] - 서울에서 제42회 세계사격대회가 개최되었다.
* [[9월 29일]] - 내무부는 10월 1일부터 국기 하강식을 거행할 것을 전국 시/도에 지시하였다.
* [[10월 1일]]
* [[베트남]]군이 [[민주 캄푸치아]] 침공을 개시했다.
* [[투발루]]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 10월 ====
* [[10월 5일]] - 정부는 '자연보호헌장'을 선포하였다.
* [[10월 7일]] - [[충청남도]] [[홍성]]에서 리히터 규모 5.0의 [[홍성 지진|지진]]이 일어났다.
* [[10월 16일]] - [[요한 바오로 2세]]가 264대 [[교황]]으로 즉위했다.
* [[10월 17일]] - 이날 열리려던 '광화문 범시민 학생 궐기대회’가 경찰의 사전 탄압으로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 [[10월 24일]]
* 동아투위의 민주인권일지 배포 사건이 발생하였다.
* [[지미 카터]] 대통령이 항공 규제 완화법에 사인했다. 이후 항공 규제 완화법은 세계로 퍼져나가 현재 우리가 아는 항공사 산업구조를 이루어냈다.
* [[10월 27일]] - [[유엔군사령부]]는 [[땅굴/북한#s-4.3|제3땅굴]]을 발견했다고 발표하였다.
==== 11월 ====
* [[11월 2일]] - [[경북대학교|경북대]]생 2백여 명이 <구국선언문>을 발표하고 [[10월 유신|유신]] 철폐와 총장 사퇴 등을 요구하면서 교내 시위를 벌였다.
* [[11월 3일]] - [[도미니카 연방]]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 [[11월 7일]] - [[한미연합군사령부|한미연합사령부]]가 발족되었다.
* [[11월 18일]] - [[가이아나]]에서 [[인민사원 집단자살사건]]이 발생했다.
* [[11월 23일]] - [[서울고속버스터미널|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이 완공되었다.
==== 12월 ====
* [[12월 11일]] - [[이란 제국]]에서 200만 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샤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 [[12월 12일]] - 이날 열린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여당인 공화당을 1.1% 더 앞질러서 승리하는 바람에 유신정권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 [[12월 13일]] - 주한 미군 전투부대 1진 219명이 [[오산 공군기지|오산기지]]에서 철수하였다.
* [[12월 22일]]
* 박정희 대통령은 최규하 국무총리를 유임시키고 11개 부처장관을 경질하는 등의 개각을 단행하였다.
* [[중화인민공화국]]의 실권을 잡은 [[덩샤오핑]]이 중국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 [[12월 23일]] - 국제방직 노조는 사측의 부당 노동행위에 대해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
* [[12월 25일]] - [[베트남군]]이 [[민주 캄푸치아]]의 [[크메르 루주]] 정권에 대한 최종공세를 개시했다.
* [[12월 27일]]
* 박정희가 제9대 대통령으로 또다시 취임하였다. 이는 그의 '''생애 마지막 대통령 취임식'''이었다.
* [[김대중]]이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 [[12월 30일]]
* 전국 92개 지역에 [[시외전화|장거리자동공중전화(DDD)]] 5백여 개가 개통되었다.
* [[행정안전부|내무부]]에서 미등록도서 및 비정위치도서 등록사업을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애초에 [[북한]] 영토인 [[함박도]]가 행정상으로는 대한민국 영토로 처리되면서 훗날 논란의 빌미를 주게 되었다.
=== 가상 ===
* [[칭기즈 칸]]에 의해 유라시아 문명이 멸망한 아틸라 평행계가 발견되었다.(홈라인 연도 2001년.) - [[겁스 무한세계]]
* 유하 감독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배경 연도이다.
* 곽경택 감독의 영화 [[극비수사]]의 배경 연도이다.
== 탄생 ==
=== 실존 인물 ===
* [[1월 2일]]
* [[윤세아]]: [[한국]]의 [[배우]]. 본명 김보영.
* [[토요구치 메구미]]: [[일본]]의 [[성우]].
* [[1월 8일]] - [[박진희(1978)|박진희]]: [[한국]]의 [[배우]].
* [[1월 9일]] - [[젠나로 가투소]]: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 [[1월 10일]] - [[타미나 스누카]]: [[미국]]의 [[프로레슬러]].
* [[1월 12일]]
* [[강봉규]]: [[한국]]의 전 [[야구]] 선수.
* [[김사랑]]: [[한국]]의 [[배우]].
* [[심형탁]]: [[한국]]의 [[배우]].
* [[1월 13일]] - [[오오우라 후유카]]: 일본의 성우.
* [[1월 16일]] - [[홍세완]]: [[대한민국]]의 야구 코치, 前 [[야구선수]].
* [[1월 17일]] - [[스즈히라 히로]]: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 [[1월 18일]] - [[김영우(스윗소로우)|김영우]]: 한국의 [[가수]], 그룹 [[스윗소로우]]의 멤버.
* [[1월 23일]] - [[구광모]]: 대한민국의 기업 [[LG그룹|LG]]의 제2대 회장.
* [[1월 24일]] - [[미야하라 나미]]: 일본의 성우.
* [[1월 26일]] - 쿠루스 아츠코: 일본의 배우.[* [[격주전대 카레인저]]에서 [[야가미 요우코]] 배역 담당.]
* [[1월 28일]]
* [[잔루이지 부폰]]: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 [[제이미 캐러거]]: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 [[2월 3일]]
* [[채리나]]: [[한국]]의 [[가수]], 혼성그룹 [[룰라]]의 멤버. 본명 박현주.
* [[호안 카프데빌라]]: [[스페인]]의 축구 선수.
* [[2월 6일]] - [[전미라]]: [[대한민국]]의 전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
* [[2월 7일]] - [[다니엘 반부이텐]]: [[벨기에]]의 축구 선수.
* [[2월 10일]]
* [[돈 오마르]]: [[푸에르토리코]]의 가수.
* [[세드릭 바워스]]: 미국의 전 야구선수.
* [[2월 14일]]
* [[리처드 해밀턴]]: [[미국]]의 [[농구]] 선수.
* [[다나이 구리라]]: [[미국]]의 [[배우]].
* [[2월 15일]] - [[이루마]]: 한국의 [[피아니스트]].
* [[2월 19일]] - [[히라타 히로미]]: 일본의 성우.
* [[2월 21일]]
* [[박은혜]]: [[한국]]의 배우.
* [[김하늘]]: 한국의 배우.
* [[성승헌]]: 한국의 게임 [[캐스터]].
* [[2월 23일]] - 모토하시 유카: 일본의 배우.[* [[격주전대 카레인저]]에서 [[시노하라 나츠미(격주전대 카레인저)|시노하라 나츠미]] 배역 담당.]
* [[2월 24일]] - [[개리(래퍼)|개리]]: 한국의 [[가수]], 힙합 그룹 [[허니 패밀리]], [[리쌍]]의 멤버. 본명 강희건.
* [[2월 25일]]
* [[최승환]]: [[한국]]의 [[야구]]코치, 前 [[야구선수]].
* [[이관우]]: 한국의 [[축구 선수]].
* [[나카자와 유지]]: [[일본]]의 축구 선수.
* [[2월 27일]] - [[카카 칼라제]]: [[조지아]]의 축구 선수.
* [[3월 1일]]
* [[노가와 사쿠라]]: 일본의 성우.
* [[아게마츠 노리야스]]: [[일본]]의 작,편곡가 겸 음악 프로듀서.
* [[젠슨 애클스]]: [[미국]]의 [[배우]].
* [[오승현]]: [[대한민국]]의 [[배우]].
* [[3월 2일]] - [[이지형]]: 대한민국의 가수.
* [[3월 3일]] - [[서문탁]]: 한국의 가수. 본명 이수진.
* [[3월 5일]] - [[김의선|김재희]]: 대한민국의 대역 전문 연예인.
* [[3월 8일]]
* [[스도 겐키]]: 일본의 전 [[종합격투기]] 선수, 댄스그룹 [[WORLD ORDER]]의 메인 [[보컬]], [[프로듀서]], [[감독]].
* [[코마츠 유카]]: 일본의 성우, [[배우]].
* [[3월 11일]]
* [[디디에 드록바]]: [[코트디부아르]]의 축구선수.
* [[하정우]]: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김성훈.
* [[3월 12일]]
* [[타네무라 아리나]]: 일본의 만화가.
* [[남궁민]]: 대한민국의 배우.
* [[3월 13일]] - [[정태호]]: 한국의 [[코미디언]].
* [[3월 14일]] - [[문희준]]: 한국의 보이그룹 [[H.O.T.]]의 멤버.
* [[3월 15일]] - [[정형돈]]: 한국의 [[개그맨]].
* [[3월 19일]] - [[렌카|Lenka]]: [[오스트레일리아]]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 .
* [[3월 23일]] - [[왈테르 사무엘]]: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3월 29일]] - [[장석조]]: [[오인용]]의 리더 '데빌'.
* [[4월 3일]] - [[박시후]]: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박평호.
* [[4월 5일]]
* [[윤태수(야구)|윤태수]]: 대한민국의 [[심판/KBO 리그|야구심판]], 前 [[야구선수]].
* [[최동석]]: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소향]]: 대한민국의 가수. 본명 김소향.
* [[4월 6일]] - [[천명훈]]: 한국의 [[래퍼]], 그룹 [[NRG(아이돌)|NRG]]의 멤버.
* [[4월 9일]] - [[오오하라 타카시]]: 일본의 성우.
* [[4월 11일]] - [[카모시다 하지메]]: 일본의 [[라이트 노벨]] 작가 겸 [[각본가]].
* [[4월 13일]] - [[카를레스 푸욜]]: [[스페인]]의 축구선수.
* [[4월 15일]] - [[루이스 폰시]]: [[푸에르토 리코]]의 가수.
* [[4월 17일]] - [[박지윤(성우)|박지윤]]: 한국의 성우.
* [[4월 19일]]
* [[제임스 프랭코]]: 미국의 배우.
* [[가브리엘 에인세]]: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4월 25일]] - [[이득수]] :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 [[4월 26일]] - [[타치바나 신노스케]]: 일본의 성우.
* [[4월 27일]] - [[모치즈키 히사요]]: 일본의 성우.
* [[5월 3일]]
* [[고지행]]: [[재일교포]] [[야구]] 선수.
* [[브베(인터넷 방송인)|브베]]: 한국의 [[인터넷 방송인]]. 본명 한창석.
* [[5월 4일]] - [[오노 다이스케]]: 일본의 성우.
* [[5월 5일]] - [[칸자키 히로]]: 일본의 [[애니메이터]], [[일러스트레이터]] 겸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 [[5월 6일]] - [[장동혁(오인용)|장동혁]]: [[한국]]의 [[플래시]] 애니메이션 제작팀 [[오인용]]의 전 멤버.
* [[5월 8일]]
* [[장우혁]]: 대한민국의 보이그룹 [[H.O.T.]]의 멤버.
* [[루시우(축구선수)|루시우]]: [[브라질]]의 축구 선수.
* [[5월 12일]] - [[이시구로 아야]]: [[일본]]의 아이돌 [[모닝구 무스메]]의 전 멤버..
* [[5월 13일]] - [[마지마 준지]]: 일본의 성우.
* [[5월 14일]] - [[나카무라 치에]]: [[일본]]의 [[성우]].
* [[5월 15일]] - [[배성재]]: SBS 아나운서.
* [[5월 16일]] -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 사건#s-4|아오바 신지]]: 일본의 [[범죄자]],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 사건]]의 범인.
* [[5월 18일]] - [[히카르두 카르발류]]: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 [[5월 19일]] - [[줄루징요]]: [[브라질]]의 종합격투기 선수.
* [[5월 24일]]
* [[이동훈(번역가)|이동훈]]: 한국의 [[번역가]].
* [[파울로 필리오]]: 브라질의 종합격투기 선수.
* [[5월 25일]]
* [[이동윤(태사자)|이동윤]]: 한국의 가수 그룹 [[태사자(아이돌)|태사자]]의 [[래퍼]] 겸 [[보컬]].
* [[이정진]]: 한국의 배우
* [[5월 30일]] - [[료토 마치다]]: 브라질의 종합격투기 선수.
* [[6월 2일]] - [[도미닉 쿠퍼]]: 영국의 배우.
* [[6월 5일]]
* [[이노쿠치 유카]]: 일본의 성우.
* [[콘도 타카유키]]: 일본의 성우.
* [[6월 6일]]
* [[퀸튼 잭슨]]: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김동희(1978)|김동희]]: 대한민국의 배우
* [[6월 7일]] - [[토니 안]]: 한국의 보이그룹 [[H.O.T.]]의 멤버. 본명 안승호.
* [[6월 8일]] - [[은지원]]: 한국의 보이그룹 [[젝스키스]]의 멤버.
* [[6월 9일]]
* [[매튜 벨라미]]: [[영국]]의 얼터너티브 [[록밴드]] [[Muse]]의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 [[피아니스트]].
* [[미로슬라프 클로제]]: [[독일]]의 [[축구 선수]].
* [[6월 10일]] - [[주민준]]: 한국의 배우. 본명 이영호.
* [[6월 19일]]
* [[타니이 아스카]]: 일본의 성우.
* [[Revo]]: 일본의 [[작곡가]], [[싱어송라이터]].
* [[조 샐다나]]: [[미국]]의 [[배우]].
* [[6월 20일]]
* [[정가은]]: 한국의 배우. 본명 백라희.
* [[프랭크 램파드]]: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 [[6월 22일]] - [[일락(가수)|일락]]: 한국의 가수. 본명 윤대근.
* [[6월 24일]]
* [[후안 로만 리켈메]]: [[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
* [[나카무라 슌스케]]: [[일본]]의 축구 선수.
* [[6월 28일]] - [[하지원]]: 한국의 배우. 본명 전해림.
* [[7월 3일]] - [[김보민]]: KBS 아나운서 .
* [[7월 4일]] - [[무라타 유스케]]: [[일본]]의 [[만화가]].
* [[7월 6일]]
* [[시오무라 아야카]]: 일본의 배우, 정치인.
* [[오진환]]: 한국의 래퍼, 그룹 [[원타임(그룹)|원타임]]의 멤버.
* [[7월 7일]] - [[미샤]]: [[일본]]의 [[R&B]] [[가수]].
* [[7월 11일]] - [[김강우]]: 한국의 배우.
* [[7월 12일]]
* [[미셸 로드리게스]]: 미국의 배우.
* [[지에드 자지리]]: [[튀니지]]의 [[축구선수]]
* [[토퍼 그레이스]]: 미국의 배우. 본명 크리스토퍼 존 그레이스.
* [[홍방장]]: 대한민국의 트위치 스트리머.
* [[7월 15일]] - [[방우호]]: 한국의 성우.
* [[7월 17일]] - [[히카르도 아로나]]: 브라질의 종합격투기 선수.
* [[7월 18일]] - [[주상욱]]: 한국의 배우.
* [[7월 21일]] - [[정지혁]]: [[한국]]의 [[플래시]] 애니메이션 제작팀 [[오인용]]의 멤버이자 대표.
* [[7월 22일]] - [[하세가와 쿄코]]: 일본의 배우.
* [[7월 23일]] - [[코마츠 후미노리]] - 일본의 성우.
* [[7월 25일]] - [[조현정(성우)|조현정]]: 한국의 성우.
* [[7월 27일]] - [[나스 메구미]]: 일본의 성우.
* [[7월 28일]] - [[박지헌]]: 한국의 가수, 그룹 [[V.O.S]]의 멤버. 본명 박용규.
* [[7월 29일]] - [[최단비]]: 대한민국의 변호사.
* [[8월 3일]] - [[강규리]]: 한국의 성우.
* [[8월 4일]] - [[히노 사토시]]: 일본의 성우.
* [[8월 6일]]
* [[신명철]]: 한국의 [[야구]]선수.
* [[이지아]]: 한국의 배우. 본명 김지아.
* [[8월 8일]]
* [[쿠와타니 나츠코]]: 일본의 성우.
* [[루이 사하]]: [[프랑스]]의 축구 선수.
* [[8월 11일]] - [[타케다 히나타]] :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
* [[8월 14일]] - [[이동규(배우)|이동규]]: 한국의 배우
* [[8월 16일]]
* 김덕용 - 한국의 前 [[야구선수]].
* [[임하진]]: 한국의 [[성우]].
* [[8월 18일]] - [[앤디 샘버그]]: 미국의 [[코미디언]] 겸 [[영화배우]], [[SNL]] 크루이자 [[론리 아일랜드]]의 멤버.
* [[8월 19일]] - [[츠루오카 사토시]]: 일본의 성우.
* [[8월 23일]] - [[코비 브라이언트]]: 미국의 [[농구]]선수.
* [[8월 25일]] - [[조정치]]: 한국의 가수.
* [[8월 30일]] - [[막심 샤츠키흐]]: [[우즈베키스탄]]의 축구 선수.
* [[9월 1일]] - [[나카지마 사키(성우)|나카지마 사키]]: 일본의 성우.
* [[9월 4일]] - [[웨스 벤틀리]]: 미국의 배우.
* [[9월 5일]] - [[미스터 타이푼]]: 대한민국의 래퍼. 본명 양태웅.
* [[9월 9일]] - [[정상훈]]: 한국의 배우
* [[9월 11일]]
* [[데얀 스탄코비치]]: [[세르비아]]의 축구 선수.
* [[김창후]]: 대한민국의 아마추어 성우.
* [[9월 14일]]
* [[김지연(SBS)|김지연]]: [[SBS]] 아나운서.
* [[오언종]]: [[KBS]] 아나운서.
* [[테디(원타임)|테디]]: 한국의 래퍼, 프로듀서. 그룹 [[원타임(그룹)|원타임]]의 멤버. 본명 박홍준.
* [[9월 15일]] - [[아이두르 구드욘센]]: [[아이슬란드]]의 축구 선수.
* [[9월 18일]] - [[모리 카오루]]: 일본의 [[만화가]].
* [[9월 19일]]
* [[류기중]]: [[한국]]의 前 [[야구선수]] .
* [[장영란]]: 한국의 방송인.
* [[9월 22일]] - [[고미 타카노리]]: 일본의 종합격투기 선수.
* [[9월 23일]] - [[나얼]]: 한국의 [[가수]], 그룹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멤버. 본명 유나얼.
* [[9월 30일]]
* [[스가누마 히사요시]]: 일본의 성우.
* [[캔디스 미셸]]: 미국의 前 프로레슬러.
* [[10월 2일]] - [[하마사키 아유미]]: 일본의 가수.
* [[10월 3일]]
* [[게랄드 아사모아]]: 독일의 축구 선수.
* [[클라우디오 피사로]]: [[페루]]의 축구 선수.
* [[10월 4일]] - [[고수(배우)|고수]]: 한국의 배우.
* [[10월 9일]] - [[심승한]]: 한국의 성우.
* [[10월 10일]] - [[진이한]]: 한국의 배우. 본명 김현중.
* [[10월 11일]] - [[심제훈]] :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10월 12일]] - [[조 마사코]]: 일본의 [[성우]]
* [[10월 14일]] - [[어셔]]: 미국의 가수
* [[10월 16일]]
* [[김현숙]]: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최대철]]: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최원철.
* [[10월 18일]] - [[시라이시 미노루]]: 일본의 성우.
* [[10월 21일]] - [[오츠이치]]: [[일본]]의 [[소설가]].
* [[10월 26일]] - [[CM 펑크]]: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10월 27일]] - [[바네사 메이]]: [[싱가포르]]의 [[바이올리니스트]].
* [[10월 28일]] - [[최현우(1978)|최현우]]: 대한민국의 [[마술사]].
* [[10월 29일]] - [[김가을]]: 한국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現 삼성전자 칸 감독
* [[10월 30일]]
* [[고종수]]: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 [[주석(가수)|주석]]: 대한민국의 [[힙합]] 가수, [[래퍼]], 본명 박주석.
* [[데니스 울프]]: 독일의 前 [[보디빌더]]
* [[10월 31일]]
* 장인규 :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대도서관(방송인)|대도서관]]: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본명 나동현.
* [[11월 1일]] - [[정성훈(성우)|정성훈]]: 한국의 성우.
* [[11월 2일]] - [[토미사카 아키라]]: 일본의 성우.
* [[11월 5일]] - [[박성태(성우)|박성태]]: 한국의 성우.
* [[11월 6일]] - [[연정훈]]: 한국의 배우.
* [[11월 7일]]
* [[리오 퍼디난드]]: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전수비수.
* [[나가세 토모야]]: [[일본 아이돌]] [[TOKIO(아이돌)|TOKIO]]의 멤버.
* [[11월 8일]] - [[알리 카리미]]: [[이란]]의 축구 선수.
* [[11월 10일]]
* [[정대현(1978)|정대현]]: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 [[칸다 아케미]]: 일본의 성우.
* [[11월 16일]]
* [[강필석]]: [[한국]]의 [[뮤지컬]] [[배우]].
* [[송은영]]: [[대한민국]]의 배우[* [[음력]] [[10월 16일]]].
* [[11월 17일]] - [[레이첼 맥아담스]]: [[캐나다]]의 [[배우]].
* [[11월 25일]] - [[시이나 링고]]: 일본의 가수.
* [[11월 26일]] - [[후쿠야마 준]]: 일본의 성우.
* [[11월 27일]] - [[김태현(코미디언)|김태현]]: 대한민국의 방송인, 코미디언.
* [[12월 1일]] - [[리웨이펑]]: [[중국]]의 [[축구선수]].
* [[12월 7일]] - [[디기리]]: 한국의 래퍼, 힙합 그룹 [[허니패밀리]]의 멤버. 본명 원신종.
* [[12월 9일]] - [[기태영]]: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김용우.
* [[12월 10일]] - [[채연]]: 대한민국의 [[가수]]. 본명 이채연.
* [[12월 12일]] - [[김풍]]: 대한민국의 [[만화가]]. 본명 김정환.
* [[12월 13일]]
* [[BJ 펜]]: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본명 제이 디 펜.
* [[김성회(방송인)|김성회]] :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前 [[게임 개발자]].
* [[12월 15일]] - [[이민(가수)|이민]]: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애즈 원]]의 멤버. 본명 이민영.
* [[12월 17일]] - [[루이스#s-2.1]]: 한국의 [[가수]]. 본명 임상훈.
* [[12월 18일]]
* [[김원섭]]: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매직박]]: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치과의사. 본명 박재성.
* [[12월 20일]] - [[윤계상]]: 한국의 가수, 배우, 그룹 [[god(아이돌)|god]]의 멤버.
* [[12월 22일]] - [[데니 안]]: 한국의 [[래퍼]], 보이그룹 [[god(아이돌)|god]]의 멤버.
* [[12월 26일]] - [[테일러장군]]: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 [[12월 28일]]
* [[영준]]: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멤버. 본명 고영준.
* [[장민혁]]: 대한민국의 성우.
* [[12월 29일]] - [[김윤지(아나운서)|김윤지]]: KBS 아나운서.
* [[12월 31일]] - [[율리아 바르수코바]]: 러시아의 前 리듬체조 선수
* 일자 불명
* 김경열: 한국의 레저 강사 출신 배우, [[위기탈출 넘버원]]의 넘버원 역
* [[스기이 히카루]]: [[일본]]의 [[라이트 노벨]] [[작가]]
* [[스도 토모노리]]: [[일본]]의 [[애니메이터]],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캐릭터 디자이너
* [[식빵(인터넷 방송인)]]: [[대한민국]]의 유튜버
=== 가상 인물 ===
* [[1월 10일]]: [[레오나 하이데른]] -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 [[KOF 96]] 제작 연도를 기준으로 프로필상 나이 18세에서 역산.]
* [[2월 26일]]: [[최지혜(캠퍼스 러브 스토리)|최지혜]] - [[캠퍼스 러브 스토리]]
* [[3월 3일]]: [[레오리오]] - [[헌터X헌터]]
* [[3월 22일]]: [[윤지애]] - [[검은방]] 1
* [[4월 1일]]: [[프레드 위즐리]], [[조지 위즐리]] - [[해리 포터 시리즈]]
* [[4월 4일]]: [[사오토메 요시오]] - [[도키메키 메모리얼]]
* [[4월 8일]]: [[이소현]] - [[캠퍼스 러브 스토리]]
* [[4월 12일]]: [[데드샷(DC 확장 유니버스)|데드샷]] - [[수어사이드 스쿼드(영화)|수어사이드 스쿼드]]
* [[4월 24일]]: [[무나카타 나오미]] - [[도키메키 메모리얼]]
* [[5월 5일]]
* [[이쿠사베 와타루]] - [[마신영웅전 와타루]]
* [[쿠로이와 게키]] - [[용자지령 다그온]]
* [[5월 14일]]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등장인물/코너 루트#s-2.3|아만다 스턴]]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 [[5월 21일]]: [[패트리셔 맥그래스]] - [[도키메키 메모리얼]]
* [[6월 16일]]: [[헬무트 제모(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헬무트 제모]]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6월 30일]]
* [[코시키 유카리]] - [[도키메키 메모리얼]]
* [[7월 7일]]: [[히모오 유이나]] - [[도키메키 메모리얼]]
* [[8월 23일]]: [[이주인 레이]] - [[도키메키 메모리얼]]
* [[9월 5일]]: [[미키하라 메구미]] - [[도키메키 메모리얼]]
* [[9월 23일]]: [[팔콘(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팔콘]]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9월 30일]]: [[카타기리 아야코]] - [[도키메키 메모리얼]]
* [[10월 9일]]: [[아소 카스미(도키메키 메모리얼 2)|아소 카스미]] - [[도키메키 메모리얼 2]]
* [[10월 14일]]: 고소연, 고소희, 최진희 - [[명화마을]]
* [[10월 17일]]: [[아사히나 유코]] - [[도키메키 메모리얼]]
* [[11월 15일]]: [[카가미 미라]] - [[도키메키 메모리얼]]
* 11월 31일: [[사카모토 마사유키]]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 [[12월 3일]]: [[키요카와 노조미]] - [[도키메키 메모리얼]]
* 일자 불명
* 김정호, 주대발 - [[명화마을]]
* [[김창후(연예인 지옥)|김창후]] - [[연예인 지옥]][* 오인용 다큐 '김창후 이병의 탈영사건'에서 배경 연도가 [[1998년]]으로 공개했다. 평균 입대 연령이 약 20세 정도인 것을 감안했을 때, [[오인용]] 멤버들의 탄생 연도랑 약간 일치한다.]
* [[니코 벨릭]] - [[GTA 4]]
* [[두번째 스무살#s-2.2|라윤영]], [[두번째 스무살#s-2.1|차현석]], [[두번째 스무살#s-2.1|하노라]] - [[두번째 스무살]]
* [[GTA 4/등장인물#s-1.2.9|버니 크레인]] - [[GTA 4]]
* [[송재익]] - [[리멤버 - 아들의 전쟁]]
* [[아키야마 슌]] - [[용과 같이 시리즈]]
* [[이름 없는 여자/등장인물#s-2.2.2|올리버 장]] - [[이름 없는 여자]]
* 잭스 텔러 - [[썬즈 오브 아나키]]
* [[하이킥 짧은다리의 역습/등장인물#s-1.5|윤계상]] - [[하이킥 짧은다리의 역습|하이킥 3]]
* [[켄시로]] - [[북두의 권]][* 궁극해설서 세기말패왕열전에서 시대적 배경이 [[2008년]]인 2부 초반에서 만 30살로 나온다.]
* [[후지사키 시오리]] - [[도키메키 메모리얼]][* 다만 이 경우는 [[플레이어]] 입력에 따라 혈액형과 특별활동 부서까지 달라지는 케이스로, 데이터상 1979년 [[빠른 생일]]이 될 수도 있지만 일단 도키메키 메모리얼 Private Collection에 1978년 [[5월 27일]] [[A형]]이라고 되어 있으므로 편의상 여기에 등록한다.]
== 사망 ==
=== 실존 인물 ===
* [[1월 6일]] - [[버트 먼로]]: 뉴질랜드의 오토바이 선수. 영화 <[[인디언]]>의 실제 주인공.
* [[1월 14일]] - [[조 매카시]]: [[조 디마지오]] 시대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 2기'를 형성해낸 양키스의 명감독
* [[3월 24일]] - [[박목월]]: [[한국]]의 [[시인(문학)|시인]]
* [[4월 4일]] - [[토마스 헨리 펜틀랜드 몰슨]]: 전 몰슨 브루어리 회장 및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 구단주
* [[4월 15일]] - [[박광현]]: 1950~60년대에 주로 극화풍의 그림체를 선보인 만화가 및 삽화가이자 탤런트 [[박원숙]]의 부친. 그러나 사후 아내가 그의 원고를 모두 소각했기 때문에 현재 그의 작품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 [[5월 9일]] - [[알도 모로]]: 이탈리아 공화국의 38대 총리
* [[5월 17일]] - [[류비사 스테파노비치]]: [[유고슬라비아 왕국|유고슬라비아]](現 [[세르비아]])의 전 [[축구 선수]]
* [[5월 18일]] - [[웨이다오밍]]: 중화민국 외교부장.
* [[6월 2일]] -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67년 동안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 감독, 회장을 두루 거친 레전드
* [[6월 10일]] - [[샤를르 보와이에]]: [[프랑스]], [[미국]]의 배우
* [[6월 18일]] - [[드라고슬라프 미하일로비치]]: [[세르비아]]의 전 축구 선수
* [[6월 20일]] - 김형남: 일신방직 창업주
* [[7월 8일]] - [[정법영]]: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7월 13일]]
* [[이만규]]: 월북 교육자, 독립운동가
* [[하타케야마 바쿠]]: 일본의 배우
* [[8월 6일]] - [[바오로 6세]]: 제262대 [[가톨릭]] [[교황]]
* [[8월 7일]] - [[김호정]]: <[[수사반장(드라마)|수사반장]]>의 서형사 역으로 유명한 탤런트
* [[8월 11일]] - [[마리오 바를리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 [[8월 28일]] - [[로버트 쇼]]: [[영국]]의 [[배우]]
* [[8월 31일]] - [[앙헬 보시오]]: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
* [[9월 6일]] - [[노수현]]: 일제 시기 <멍텅구리>로 유명한 만화가이자 동양화가
* [[9월 7일]] - [[키스 문]]: 영국의 록 밴드 [[더 후]]의 드러머
* [[9월 8일]]
* [[리카르도 사모라]]: [[스페인]]의 전 축구 감독
* [[장 니콜라]]: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
* [[판초 블라디게로프]]: [[불가리아]]의 [[작곡가]]
* [[9월 25일]] - [[루이지 알레만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 [[9월 28일]] - [[요한 바오로 1세]]: 제263대 [[가톨릭]] [[교황]]
* [[10월 9일]] - [[자크 브렐]]: [[벨기에]] 태생 [[프랑스]]의 [[가수]]
* [[10월 12일]] - 낸시 스펑겐: [[시드 비셔스]]의 애인
* [[10월 19일]] - [[기그 영]]: [[미국]]의 [[배우]]
* [[10월 22일]] - [[구정회]]: 제2대 금성사 사장, [[구인회(기업인)|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둘째동생.
* [[11월 15일]] - 이한원: [[대한제분]] 창업주
* [[11월 18일]] - [[인민사원 집단자살사건]] 희생자 9백여 명
* [[짐 존스]]: 인민사원 창시자
* [[11월 27일]] - [[하비 밀크]]: [[미국]]의 [[성소수자]] [[정치인]]
* [[12월 9일]] - [[한창우]]: 경향신문 2대 사장
* [[12월 19일]] - [[잔 클라선스]]: [[벨기에]]의 전 축구 감독
* [[12월 26일]] - 박기순: 광주 들불야학 창설멤버.
* [[12월 28일]] - [[타미야 지로]]: [[하얀거탑]]의 자이젠 고로 역으로 유명한 배우
* 일자 불명 - [[주인용]]: [[사조그룹]] 창업주
=== 가상 인물 ===
* [[3월 14일]] - [[GTA 5/이스터 에그#s-4|졸린 크랜리 에반스]] - [[GTA 5]]
== 데뷔 ==
=== 가수 ===
* [[구창모(가수)|구창모]]
* 김만준
* [[노사연]]
* [[배철수]]
* [[밴 헤일런]]
* [[사잔 올 스타즈]]
* [[심수봉]]
* [[휘버스]]
* 이명훈
* [[징검다리]]
* [[왕영은]], [[정금화]]
* [[윤시내]]
* [[이치현과 벗님들]]
* [[정태춘]], [[박은옥]] 부부
* [[최병걸]]
* [[희자매]]
* [[인순이]]
* [[신디 로퍼]]
=== 예능인 ===
* [[강석(코미디언)|강석]]
* [[방미]]
=== 만화계 ===
* 김동산
* 김진태 - <외고집>
* [[유데타마고]] - [[근육맨]]
* 장지연 - 부산MBC <[[어린이 문예]]>지 고전만화 시리즈
* 최신오 - <쭈쭈와 뽀뽀>
* [[타카하시 루미코]] - [[제멋대로인 녀석들]]
* [[토리야마 아키라]] - <원더 아일랜드>
=== 스포츠 ===
==== 축구 ====
* [[게리 리네커]]
* [[이안 러쉬]]
==== 농구 ====
* 레지 씨어스
* 마이클 레이 리차드슨
* 마이클 쿠퍼
* 마이클 톰슨
* 모리스 칙스
* [[박수교]]
* [[신선우]]
* 프리맨 윌리엄스
* 필 포드
==== 권투 ====
* [[김득구]]
* 서성인
== 은퇴 ==
=== 스포츠 ===
* [[4월 9일]]: [[존 하블리첵]]
* [[이에리사]]
== 히트작 ==
=== 영화 ===
* 겨울여자
* 소나기
* 슈퍼맨
* 그리스
*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 드라마 ===
* 청춘의 덫
=== 가요 ===
* 한국
* 가람과 뫼 - 생일
* 김정수 - 내 마음 당신 곁으로
* 김태곤 - 송학사
* 노사연 - 돌고 돌아가는 길
* 사랑과 평화 - 한동안 뜸했었지
* 사월과 오월 - 장미
* 산울림 -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 송창식 - 사랑이야
* 양희은 - [[상록수(가요)|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 윤수일 - 사랑만은 않겠어요
* 윤시내 - 공연히
* 윤항기 - 노래하는 곳에
* 전영 - 어디쯤 가고 있을까
* 정난이 - 제7광구
* 정태춘 - 촛불, 시인의 마을
* 조경수 - 돌려줄 수 없나요
* 징검다리 - 여름
* 최백호 - 입영전야
* 최병걸 - 난 정말 몰랐었네
* 최헌 - 앵두
* 혜은이 - 감수광
* 활주로 -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탈춤
* 휘버스 - 그대로 그렇게
* 해외
* Anne Murray - You Needed Me
* Chic - Good Times, Le Freak
* Chuck Mangione - Feels So Good
* Earth, Wind & Fire - September
* Gary Moore - Parisienne Walkways
* Judas Priest - Before the Dawn
* Kansas - Dust in the Wind
* Rainbow - Long Live Rock 'n' Roll, Kill the King
* Village People - '''[[YMCA(노래)|YMCA]]'''
=== 애니메이션 ===
* TBC 더빙
* [[그레이트 마징가]]
* [[얏타맨|이겨라 승리호]]
* [[아스트로 강가|짱가의 우주전쟁]]
* [[쿠레나이 산시로|태풍소년]]
* 국산 극장판
* [[똘이장군]]
* [[황금날개 1.2.3]]
* 로보트 태권 V와 황금날개의 대결
* 해외
* [[은하철도 999(TVA)|은하철도 999]]
=== 베스트셀러 ===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조세희]] 저.
* [[머나먼 쏭바강]] - 박영한 저.
== 출시 상품 ==
=== 자동차 ===
* 기아 K303
* 새한 레코드 로얄
=== 식음료 ===
* 농심
* 5월: 바나나킥
* 7월: 거버유아식(수입)
* 8월: 삼선짜장면
* 롯데제과
* 1월: 맛댕기
* 티나콘
* 동서식품
* 프리마 생크림, 탱
=== 생활용품 ===
* 애경유지
* 마무리샴푸, 오리브샴푸, 향그린, 향나라
== 최초 ==
=== 방영 프로그램 ===
* 여의도 청백전 (KBS)
== 달력 ==
[include(틀:일요일로 시작하는 평년)]
[[분류:1978년]] |
1979년 | ||<-13><tablealign=center><bgcolor=#a9a9a9> {{{#000000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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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tablealign=right><bgcolor=#cbb8ee> '''세계 각 지역의 표기''' ||
|| [[서력기원|서기]] || 1979년 ||
|| [[대한민국 연호|대한민국]] || 61년 ||
|| [[단군기원|단기]] || 4312년 ||
|| [[불멸기원|불기]] || 2523년 ||
|| [[이슬람력]] || 1399년 ~ 1400년 ||
|| [[갑자|간지]] || [[무오]]년 ~ [[기미]]년 ||
|| [[주체사상|주체]] || 68년 ||
|| [[중화민국|민국]] || 68년 ||
|| [[일본]] || [[쇼와]] 54년 ||
|| [[히브리력]] || 5739년 ~ 5740년 ||
[목차]
== 개요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9122500329205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9-12-25&officeId=00032&pageNo=5&printNo=10535&publishType=00020|경향신문 선정 1979년 국내외 10대 뉴스]]
1970년대의 마지막 해. [[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한국에선 이 해 상반기부터 2차 오일파동, 율산사태, YH 사건, 부마항쟁 등으로 매우 뜨거웠다. 10월 26일에 '''[[10.26 사건|대한민국 사상 초유의 국가원수가 살해된 사건]]'''이 발생하였고 그 다음날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11월에 한국 대통령 중 최초로 [[국장]](國葬)이 거행되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제4공화국|유신]]정권과 [[긴급조치]]가 종식되었으나[* 엄밀히 따지면 종식되지 않았다. [[1980년 국민투표]]로 제5공화국이 출범하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무주공산의 권력 진공 상태에 들어가 여당이던 [[민주공화당]]은 구심점을 잃어 혼란에 빠졌고 민주세력들도 갈피를 못 잡았다. 그 상태로 곧바로 [[12.12]]가 발생해 하나회가 정권을 잡을 채비를 마련했다.
위와 같은 혼란 속에서도 경제 분야에선 한국증권거래소가 정들었던 명동을 떠나 여의도로 이전해 '여의도 증권가' 시대 개막의 토대를 다졌고, 롯데그룹 측은 롯데호텔 서울 개장, 롯데리아 1호점 개점, 롯데쇼핑센터 1호점 개점을 각각 이뤄내 고도성장의 틀을 마련했다. 영화계에서는 [[2세대 여배우 신트로이카|2세대 트로이카 여배우]]인 [[유지인]], [[정윤희]]가 절정기를 맞던 시절이었다. 각각 [[내가 버린 남자]], [[꽃순이를 아시나요]]를 비롯하여 수 편의 영화를 한 해에 성공시켰다.
전세계적으로 지난 60년대와 70년대의 급진적인 사회변화와 혼란에 대한 반동으로 [[보수주의]]가 급격히 확산되었다. 영국에서는 [[마가렛 대처]]가 총리로 취임했고,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이 공화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다음해 대선 승리의 발판을 다졌다. 중국에서는 [[마오쩌둥]]과 [[사인방]]의 과격한 정책을 배격한 [[덩샤오핑]]이 당내 극좌파를 제압하고 권력을 잡았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당시 공산국이었던 폴란드를 방문해 공산정권을 비판하며 곧이을 민주화 운동을 예고했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이슬람권에서 일어났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무신론자'들의 침공으로 여겨져 큰 충격을 주었다. [[이란 혁명]]과 [[메카]]의 그랜드 모스크 공성전은 서양의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한 노골적인 반발이었다. 이미 명분을 잃고 약해져있던 아랍 민족주의는 급속히 쇠퇴해 이슬람주의에 자리를 내주고, 혁명이 난 이란뿐만 아니라 사우디 아라비아, 파키스탄같은 나라들도 서구화가 중단되고 급격히 보수화됐다. 미국등 서방진영 국가들은 반공을 명목으로 이슬람주의자들을 지원했지만 그 대가를 치루는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미국 음악계에선 슈가힐 갱이 신종 음악장르 '''[[힙합]]'''을 유행시켰는데, 슈가힐 갱은 힙합을 처음 상업적으로 녹음해 음반으로 판매했다.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세계 아동의 해'로 지정했다.
'''[[https://m.youtube.com/watch?v=0za_GMaAFhw&t=140s|1979년 크리스마스]]'''
== 사건 ==
=== 실제 ===
--연초부터 연말까지 격동의 한 해--
==== 1월 ====
* [[1월 1일]]
* [[박정희]] 대통령은 생전 마지막이자 집권 마지막 신년사에서 의지와 땀으로 보람찬 미래를 창조하자고 강조했다.
* [[미국|미]]-[[중국|중]] 양국이 30년 만에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미국]]이 [[대만]]과 단교했다.
* [[1월 4일]]: 대구교도소 양심범들이 단식농성을 벌였다.
* [[1월 7일]]
* [[캄보디아]] 반군을 앞세운 [[베트남군]]이 [[민주 캄푸치아]]의 수도 [[프놈펜]]을 함락했다.
* [[폴 포트]]를 비롯한 [[크메르 루주]]가 베트남군의 추격을 피해 서부 [[태국]] 국경지대로 도망갔다.
* [[1월 7일]]: 보건사회부가 어린이 [[천연두]] 접종을 폐지했다.
* [[1월 8일]]
* 서울 다동 뉴타운호텔 나이트클럽에 큰불이 나 3명이 숨졌다.
* 서울시는 시내 나이트클럽 41개 및 캬바레 51개소에서 미성년자 출입 등 불법영업을 집중 단속했다.
* [[1월 9일]]: 법무부는 일본 마이니치신문 서울특파원에 정치정세 왜곡보도를 이유로 출국명령을 내렸다.
* [[1월 10일]]
* 전주우석여자대학이 설립되었다.
* 충북 단양에서 신라 진흥왕대 석비 및 480cm짜리 입석불상이 발견되었다.
* [[1월 11일]]
* 한화갑 비서가 김대중 석방조치 요구 성명서 배포혐의로 구속되었다.
* 민주캄푸치아가 '캄푸치아인민공화국'으로 국명을 바꾸었다.
* [[1월 16일]]: [[이란 제국]]의 샤인 [[팔레비 2세]]가 [[이집트]]로 탈출해 사실상 망명했다.
* [[1월 19일]]: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무조건 대화를 촉구하였다.
* [[1월 22일]]
* 브라운 미 국방장관은 의회 브리핑에서 주한미군 철수계획에 변동 없다고 밝혔다.
* 영국에서 [[제임스 캘러헌]] 내각의 임금상승률 억제에 반대하는 총파업이 발발하면서 [[불만의 겨울]]이 정점에 이른다.
* [[1월 26일]]: 정부는 북측의 전민족대회 등 주장에 대해 책임있는 책임있는 당국 간 대화촉구 및 예비회담 개최를 제의하였다.
* [[1월 27일]]
* 정부는 1.19 제의 관련 남북대화를 실현키 위해 미국을 통한 중공 설득 등 다각외교를 전개키로 결정하였다.
* 정부는 공무원 재산공개 등을 담은 '공무원 부정방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 북한 조국전선이 남북실무급 대표자회담을 4월에 개최하자고 제의하였다.
* [[1월 31일]]
* 민관식 남북조절위 서울위원장이 조절위 재개 및 직통전화 개통을 촉구하였다.
* [[동해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월 1일 0시를 기해 대남비방선전 및 행사 중지를 선언했다.
==== 2월 ====
* [[2월 1일]]: 이란 시아파 혁명운동 최고지도자 호메이니가 1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 [[2월 2일]]: <1977년판 세계인구연감>에서 서울이 세계 6위, 한국 인구가 3,644만 명으로 세계 22위로 보고되었다.
* [[2월 3일]]: 호메이니는 '이란 이슬람공화국'을 정식 출범시켰다.
* [[2월 5일]]: 북한 조국전선이 남북조절위 대신 '민족통일준비위원회'를 제의했다.
* [[2월 10일]]: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이영하가 오슬로 세계빙상선수권대회 500m 결승에서 동메달을 땄다.
* [[2월 16일]]: 대한탁구협회가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참가 한국선수단 비자신청서를 ITTF에 발송하였다.
* [[2월 17일]]
* 남북조절위 양측이 기구확대 및 통일준비위원회안으로 의견대립했다.
* [[중공군]]이 베트남 북부를 전면 침공했다.([[중국-베트남 전쟁]])
* [[2월 18일]]: '''[[사하라]] 사막 일대에 [[눈(날씨)|눈]]이 내려 적설량 30cm를 기록했다.'''
* [[2월 21일]]
* 전경련 등 60개 사회단체가 '(가칭)국민생활안정 대책협의회'를 설립했다.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결성되었다.
* [[2월 22일]]: [[세인트 루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 [[2월 26일]]: 고리원전 1호기가 냉각수 방사능오염으로 가동이 중단되었다.
* [[2월 27일]]: 남북한 양국 탁구협회 대표들이 평양세계탁구대회 단일팀 구성 협의차 판문점에서 만났다.
* [[2월 28일]]: 유정회는 신임 의장에 태완선을 선출했다.
==== 3월 ====
* [[3월 1일]]
* 민주주의국민연합이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으로 재발족되었다.
* 팀 스피릿 '79 한미합동군사훈련이 개시되었다.
* [[3월 9일]]: 크리스찬아카데미 여성사회간사 한명숙이 연행되었다.
* [[3월 13일]]: EC정상회의는 '유럽신통화제도(EMS)'를 발표하였다.
* [[3월 15일]]: 국립 안동대학이 개교되었다.
* [[3월 16일]]
* 정보산업협의회가 설립되었다.
* [[프랑스]] 연안에서 VLCC 아모코 카디즈 호가 침몰하여 원유 약 22만톤이 유출되었다.
* [[3월 17일]]: 국회는 새 의장직에 백두진 유정회 의원, 부의장에 민관식-고흥문을 각각 선출하였다.
* [[3월 18일]]: 프로권투선수 박찬희가 WBC 플라이급 타이틀 쟁탈전에서 멕시코의 미겔 칸토를 꺾어 승리를 거머쥐었다.
* [[3월 19일]]: 제10대 국회가 정식 출범되었다.
* [[3월 20일]]: 충북 청원군 북일면서 4백년 전 여성 미라 및 수의 등 18점이 원형대로 출토되었다.
* [[3월 21일]]
* 국회 본회의는 박정희 대통령이 낸 [[이영섭]]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다.
* 북한 함북 삼지연군에 '삼지연혁명사적관'이 문을 열었다.
* [[3월 23일]]
* 국회는 첫 대정부질문에서 정치활성화, 안보협의회 설치, 미군 철수문제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 제주도는 5.16 제1횡단도로 확장공사로 한라산 천연림 1만여 그루를 훼손했다.
* 대한항공이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국 뉴욕을 취항하였다.
* [[3월 24일]]
* 북한 체육지도위 및 탁구협회가 27일부터 남북탁구협 5차 회담을 판문점 중립국감독위 회의실에서 개최하자고 제의하였다.
* 서울시교육위가 국민학교 운동회를 의무화한다고 밝혔다.
* 이융조 충북대 교수가 <대청댐 수몰지역 유적발굴보고서>에서 고인돌 유적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 [[3월 25일]]: 방사언 일산역장이 선로횡단 승객 구출 후 순직했다.
* [[3월 26일]]
* 박정희 대통령이 이호 헌법위원장 등 위원들을 임명하였다.
* 이스라엘-이집트 양국이 [[미국]] [[백악관]]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였다.
* [[3월 27일]]
* 북한 조선탁구협회가 대한탁구협회에 실무협의를 제의하였다.
* 북한측은 정당-사회단체-당국 대표로 구성된 연락대표단 회담을 주장하며 실무협의를 제의하였다.
* 토지금고가 '한국토지개발공사'로 새로 발족되었다.
* [[3월 28일]]
* 신민당이 '긴급조치 해제 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스리마일 섬 원전에서 노심 부분이 녹아버렸다.([[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
* [[3월 29일]]
* 신민당이 긴급조치 9호 및 반공법 위반 수감자 2백여 명의 조속 사면/석방 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 YH무역이 공장 폐쇄 및 종업원 5백여 명 해고를 예고했다.
* [[3월 30일]]
* 국회 본회의는 '남북대화 촉진에 대한 결의안' 등을 통과시키고 101회 임시국회를 끝냈다.
* 박준규 공화당 의장서리가 소련 및 중공에 호혜평등 교류를 제의하였다.
==== 4월 ====
* [[4월 1일]]
* 율산그룹이 도산되었다.
* [[이란]] 국민투표에서 이슬람 공화국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로 이란이 이슬람 국가로 재탄생했다.
* [[4월 2일]]
* 대검은 검찰범죄자료 전산화 5개년 계획에 따라 컴퓨터 터미널 및 팩시밀리 1대씩 청사에 설치하였다.
*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이 전북 이리 주현교회 교주 이교부 등의 음란집회 등을 공개했다.
* '''<[[도라에몽]]> 애니(신에이)판'''이 일본 TV아사히에서 첫 전파를 탔다.
* [[4월 3일]]: 서울지검은 율산그룹 전 대표 신선호를 업무상 횡령 및 외환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율산사건)
* [[4월 5일]]
* 유럽탁구연맹이 평양세계탁구대회에 한국 및 이스라엘을 출전하자고 결의하였다.
* 전 반민특위 위원장 애산 이인이 세상을 떠났다.
* [[4월 6일]]
* 경주보문관광단지 190만 평이 개장되었다.
* 북한 중앙인민위는 화폐개혁과 관련해 '새 돈 발행에 관한 정령'을 발표했다.
* [[4월 7일]]
* IOC는 중공 정부의 가입신청을 승인하였다.
* 일본 선라이즈 작품 '''<[[기동전사 건담]]>'''이 나고야TV에서 첫 전파를 탔다.
* [[4월 8일]]: 단국대 고적조사단이 충북 중원군 가금면 입석마을에서 [[중원 고구려비|고구려 척경비]]를 발굴해냈다.
* [[4월 11일]]
* 탄자니아 반군-정부군 연합군이 수도 캄팔라를 점령해 아민 독재정권을 붕괴시켰다.
* 이디 아민 탄자니아 대통령이 리비아로 망명했다.
* [[4월 12일]]: 미-일-EC 3자가 '도쿄라운드 합의의사록'에 가조인하였다.
* [[4월 13일]]: YH무역 종업원 5백여 명이 사측의 폐업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
* [[4월 14일]]
* 황낙주 신민당 의원이 목포/무안/신안지구당 개편대회 축사 도중 깁단폭행으로 부상당했다.
* 서울지검 특수부는 율산그룹 주거래은행 탁은 행장 홍윤섭 등을 외환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 강원 정선군 함백광업소에서 폭약이 터져 광부 26명이 숨지고 38명이 부상당했다.
* [[4월 15일]]: 민주구국학생연맹 관련자 5명이 구속되었다.
* [[4월 16일]]: 중정은 크리스찬아카데미 간사 등 7명을 용공활동 혐의로 구속했다.
* [[4월 18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이 준공되었다.
* [[4월 19일]]: 앰네스티 인천지부가 결성되었다.
* [[4월 20일]]
* 서울구치소 교도관들이 독서량 제한에 항의하던 긴급조치 위반 수감학생들을 무차별 집단폭행했다.(서울구치소 양심수 집단구타 사건)
* 치안본부는 통혁당 재건관련자 임동규 등 7명을 간첩 및 국보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 [[4월 22일]]: 상고르 세네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 [[4월 25일]]: 한-소 간 국제전화가 개통되었다.
* [[4월 29일]]: 제8회 세계여자농구대회가 서울에서 개막되었다.
==== 5월 ====
* [[5월 2일]]
* '한국미술 5000년전'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양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
* 발트하임 유엔 사무총장이 북한을 방문했다.
* [[5월 4일]]
* 방북 마친 [[쿠르트 발트하임|발트하임]] 유엔 사무총장이 일본을 거쳐 한국을 방문하였다.
* 서울 후암동 판자촌에 큰불이 나 150여 동 전소, 이재민 2백여 가구 850여 명이 발생했다.
* 조태일 시인이 취중에 반정부 발언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 [[마거릿 대처]] 총재가 이끄는 [[영국]] [[보수당(영국)|보수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다.
* 대처 보수당 총재가 영국 첫 여성 총리로 취임하였다.
* [[5월 5일]]
* 박정희-발트하임 간 회담이 청와대에서 3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 감자 피해보상 운동 주도자 오원춘 안동교구 가농 청기분회장이 실종되었다.([[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사건]])
* [[5월 9일]]: 북한-그라나다 간 외교관계가 설정되었다.
* [[5월 12일]]: 검찰은 긴급조치 9호 위반학생의 [[형집행정지]]를 결정했다.
* [[5월 13일]]: 한국 대표팀이 서울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했다.
* [[5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환경청을 조속히 설치토록 지시했다.
* [[5월 26일]]: 판소리 명창 박녹주가 세상을 떠났다.
* [[5월 29일]]: 고상돈 휘하 한국등반대가 미국 매킨리봉 하산 도중 조난당해 고 대장 등 2명이 숨졌다.
* [[5월 30일]]: 신민당 전당대회는 총재직에 김영삼 의원을 선출하였다.
==== 6월 ====
* [[6월 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고향 [[폴란드]]를 방문했다. 이는 교황으로선 역대 최초로 공산권 국가를 방문한 사례이다.
* [[6월 11일]]
* 한국 정부는 [[쿠웨이트]]와 108번째로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키로 결정하였다.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야당총재 자격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북측 최고책임자와 만날 뜻이 있다고 밝혔다.
* 양심수 가족들과 청년 11명이 주한미대사관 앞에서 카터 방한 반대 시위를 벌였다.
* [[6월 12일]]: 월북 경제학자 백남운이 세상을 떠났다.
* [[6월 18일]]: 미국의 카터 대통령과 소련의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제2차 전략무기 제한 협상(SALT-II)에 조인하였다.
* [[6월 21일]]: 문교-문공부는 1980년부터 TV교육방송을 실시키로 결정하였다.
* [[6월 28일]]: 이란 혁명을 계기로 석유수출국기구에서 석유값을 66%로 인상했다.(제2차 [[오일 쇼크]])
* [[6월 29일]]: 카터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 [[6월 30일]]: 박정희-카터 간 1차 한미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 7월 ====
* [[7월 1일]]
* 박정희-카터 한미양국 정상이 2차 회담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 밴스 미국 국무장관이 서울 기자회견에서 한미 양국이 북한에 3당국 회담을 제의했다고 발표하였다.
* [[스웨덴]] 정부는 아동 [[체벌]]을 전면 금지시켰다.
* [[소니]]는 최초의 [[워크맨]] TPS-L2을 일본에 출시했다.
* [[7월 2일]]
* 한국증권거래소 여의도 신사옥이 문을 열었다.
* 제4차 세계시인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7월 3일]]: 서울 강남 삼성동에 '한국종합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 [[7월 4일]]: 민관식 남북조절위 서울측 위원장대리는 북한에 3당국회의 제의 호응을 촉구하였다.
* [[7월 5일]]: 오원춘 농민이 두달 전 중정에 납치되어 울릉도에 격리당한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 [[7월 10일]]: 북한 외교부 대변인은 한-미 당국이 제의한 3당국회의 거부 성명을 냈다.
* [[7월 12일]]: [[키리바시]]가 [[영국]]으로부터 정식 독립했다.
* [[7월 16일]]
* 축구선수 차범근이 한국인 최초로 서독 분데스리가 구단 '아인트하르트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하였다.
* [[이라크]] 부통령 [[사담 후세인]]이 바크르 대통령을 권좌에서 몰아낸 후 대통령에 취임했다.
* [[7월 17일]]: 소모사 니카라과 대통령이 민족해방전선세력에 밀려 미국으로 망명했다.
* [[7월 19일]]
* 박정희 대통령은 헌정질서 부정 용납 못한다고 야당을 비판했다.
* YH무역이 정상화 약속을 번복하고 폐업을 선언했다.
* [[7월 20일]]: 한국 대표팀이 제30회 세계궁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종합우승을 달성하였다.
* [[7월 25일]]: 가톨릭 안동교구는 오원춘이 중정 조사 후 행방불명되었다고 밝혔다.
* [[7월 26일]]: 전주교구 문정현 신부가 <시국에 대한 우리의 견해> 발표 후 구속되었다.
* [[7월 27일]]: 고려대 등반대가 매킨리봉을 등정하였다.
* [[7월 30일]]: 오원춘 농민이 두 번째 양심선언을 발표하였다.
* [[7월 31일]]: 경북도경은 오원춘 농민 등 3명을 긴급조치 9호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 8월 ====
* [[8월 6일]]
* 제26차 교사/교육자 세계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 관련자들이 공판정에서 중정의 고문사실을 폭로했다.
* [[8월 7일]]: YH무역 여종업원들이 기숙사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 [[8월 9일]]
* YH무역 여종업원 170여 명이 폐업에 반발하며 신민당사 강당에서 농성을 벌였다.
* 이재오 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이 반정부 연설로 구속되었다.
* [[8월 10일]]
* 미국 유명가수 [[마이클 잭슨]]이 앨범 [[Off The Wall]]을 미국 전역에 발매했다.
* 신민당은 YH무역 농성으로 국회에 보사위 소집을 요구하였다.
* YH무역 노동자들이 긴급결사총회에서 은행관리기업 인수 촉구 등을 결의 후 농성을 지속했다.
* [[8월 11일]]
* 경찰은 YH무역 여종업원들이 농성 중이던 신민당사에 기동대를 투입해 172명을 강제 해산시켰다. 농성 진압 과정에서 김경숙 노동자가 숨지고 의원/기자 등 다수가 부상당했다.([[YH 사건]])
* 경북도경은 오원춘 농민 중정 납치설이 허위조작이었다고 밝혔다.
* [[8월 12일]]: 신민당 비대위는 YH사건과 관련해 무기한 농성을 결의하였다.
* [[8월 13일]]
* 중정은 북한 지령으로 이란에서 귀국한 무역회사 간부를 검거했다.
* 오원춘 농민은 대구지검 기자회견에서 중정 납치설이 허위조작이었다고 밝혔다.
* [[8월 21일]]: 제1회 세계공기총선수권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8월 25일]]
* 제11호 태풍 '주디'가 한반도 남부지역에 상륙했다.
* 도서출판 돌베개가 창립되었다.
* [[8월 27일]]: 영국 왕실 원로 루이 마운트배튼 백작 일가 등 7명이 아일랜드 북서부에서 요트여행 중 IRA의 폭탄테러로 숨졌다.
==== 9월 ====
* [[9월 1일]]: 안중근 의사 유고록 <동양평화론>이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발견되었다.
* [[9월 4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현 정권의 경제적 실패 및 부정부패 등으로 민심이 당을 떠났다고 주장했다.
* 김성진 문공장관은 선교 빙자한 근로자 선동이 불법이라며 기독교 지도자에게 밝혔다.
* 계명대 등 경북지역 3개 대생들이 <이 어둔 역사의 조타수가 되지 못한다면> 낭독 후 연합시위를 벌였다.
* [[9월 7일]]: 검찰은 김덕룡 신민당 총재비서실장을 YH백서 관련 간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했다.
* [[9월 8일]]
* 서울민사지법 합의 16부는 김영삼 등 신민당 총재단에 대해 직무정지 가처분 및 정운갑 총재대행 등록을 결정했다.
* 신민당은 김영삼 총재 주재 확대간부회의에서 법원 결정 전면부인 및 민주투쟁 방침을 결정하였다.
* [[9월 9일]]
* 신민단 총재단 직무정지 가처분신청 제출자 조일환은 김영삼 당선무효 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 장용호 YH무역 회장이 미국 뉴욕에서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 [[9월 18일]]: 제34차 유엔총회는 세인트루시아의 유엔 가입을 승인하였다.
* [[9월 16일]]: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미국 <[[뉴욕 타임스]]>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한국에서 이란 팔레비 정권 붕괴 때와 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고 밝혔다.
* [[9월 17일]]: 서울 청량리 대왕코너 터에 '맘모스 쇼핑센터'가 문을 열었다.
* [[9월 20일]]: [[프랑스군]]이 [[중앙아프리카 제국]] 황제 보카사를 체포했다.
* [[9월 22일]]
* 여당측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뉴욕타임스> 발언을 문제삼아 김 총재를 징계키로 결정했다.
* 미국 인공위성 벨라가 남인도양 해상에서 핵실험 또는 운석 충돌로 추정되는 섬광을 관측했다.([[벨라 사건]])
* [[9월 25일]]
* 신민당 전국당원대회는 김영삼 총재 지지를 선언하였다.
* 여당권은 정운갑 신민당 총재대행을 여야 접촉창구로 삼는다고 밝혔다.
* 정부와 여당은 제3자 개입 규제하는 노동대책을 검토했다.
* 선관위는 정운갑 신민당 총재대행 등록신청을 심의/등재키로 결정했다.
* [[9월 26일]]: 서울대는 종전의 희망휴학제에서 총장 직권으로 문제학생을 휴교시키는 '지도휴학제'를 실시했다.
* [[9월 27일]]
* 서울 인사동 금당골동품상 주인 부부 등 시신 3구가 실종 100일만에 발견되었다.
* 서울시경은 금당골동품상 살인사건 범인 박철웅 형제를 검거했다.
* [[9월 29일]]: 정운갑 신민당 총재대행이 수습기구 명단을 발표했다.
* [[9월 30일]]
* 신민당은 여당이 김영삼 총재 강경 징계방침을 수립하자 다각적 대응책을 수립했다.
* 이대생 3천여 명이 <이화 민주선언> 발표 후 반유신 집회를 벌였다.
==== 10월 ====
* [[10월 1일]]
* 박정희 대통령은 비생산적 공론으로 민심을 선동한다고 개탄했다.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여당측이 제명이 아닌 구속을 한다 해도 정정당당히 대도를 걷겠다고 다짐하였다.
* [[니카라과]] 사회주의 반군이 전 국토를 장악하고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했다.
* [[10월 3일]]
* 박정희 대통령은 개천절 경축사에서 국론분열 및 사회혼란 조장은 국민 지탄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 여당측은 김영삼 총재 징계사유서를 발표했다.
* 정운갑 신민당 총재대행은 박병효 의원을 대행체제 대변인으로 지명했다.
* 정부는 북한측이 최근 DMZ 내에 3,300V짜리 고압전류 철조망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 시아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이 '민족주의연합(FUNCINPEC)'을 결성하였다.
* [[10월 4일]]
* 국회는 [[민주공화당|여당]] 의원 159명만으로 [[김영삼]] [[신민당]] [[총재]] 징계안을 10여분 만에 기습처리했다.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제명결정 후 기자회견에서 성명을 발표했다.
* 호딩 카터 미 국무부 대변인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제명이 민주정부 원칙에 위배된다고 성명을 냈다.
* [[10월 5일]]
* 에드워드 케네디 미 상원의원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제명에 대해 민주원칙에 위배되는 처사라고 논평하였다.
* 리처드 홀브룩 미 국무부 아태차관보가 김용식 주미대사와 약 25분간 요담했다.
* 호딩 카터 미 국무부 대변인이 2차 성명을 냈다.
* [[10월 6일]]
* [[백두진]] [[국회의장]]은 김영삼 신민당총재 제명 관련 성명을 냈다.
* 신민당은 김영삼 총재 주재 확대간부회의에서 등원거부 결정을 재확인하였다.
* 여당측은 간부회의에서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제명관련 미국반응에 대해 협의했다.
* 외무부 고위당국자는 미 국무부의 김영삼 총재 제명관련 유감 표명이 이해 부족이라고 밝혔다.
* [[10월 7일]]: 김형욱 전 중정부장이 프랑스 파리에서 돌연 실종되었다.
* [[10월 8일]]
* 신민당은 국회의사당 의원총회에서 김영삼 총재 제명에 대한 일괄사퇴문제를 논의했다.
* 정상천 서울시장은 기자회견에서 1988년 제24회 하계올림픽을 서울에서 유치키로 했다고 밝혔다.
* 전남 신안 23개 섬에 해저케이블 전화사업이 준공되었다.
* [[10월 9일]]
* 정부는 경기 시흥군 과천면 문원리 및 관문리 일대 69만 6천 평에 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 내무부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관련자 20명을 검거하고 54명을 수배중이라고 밝혔다.(남민전 사건)
* 맨스필드 주일미대사는 미국 아-태 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 [[10월 10일]]
* 신민당은 '사퇴협의 17인 위원회'를 구성했다.
* 호딩 카터 미 국무부 대변인은 한국 등 동북아 동맹국들에 대한 미국의 방어의지가 확고하다고 밝혔다.
* [[10월 11일]]
* 박정희 대통령은 주한 외교사절 전원을 경주 보문관광단지 만찬에 초청했다.
* '새생활국민운동협회'가 설립되었다.
* [[10월 13일]]
* 신민-통일당 의원 79명은 김영삼 변칙제명에 항의하며 의원직사퇴서를 국회에 냈다.
* 노재현 국방장관은 최근 북한 군사력 규모가 56만에서 72만 명으로 증강되었다고 밝혔다.
* 대간첩대책본부는 동부전선에서 무장간첩 1명을 사살하고 잔당 2명을 추적중이라고 밝혔다.
* [[10월 14일]]: 미국 각 신문들이 신민당 의원직 사퇴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 [[10월 15일]]
* 부산대 구내에 <민주선언문>이 살포되었다.
* 청암 송건호 등 학자 12명이 쓴 <[[해방 전후사의 인식]]> 1권이 출간되었다.
* [[10월 16일]]
* 구자춘 내무장관은 남민전 사건 관련자 46명 검거사실을 밝혔다.
* 부산대생 5천여 명이 유신철폐·독재타도·학원탄압 중지 등을 요구하며 교내 시위를 벌였다. 이는 [[부산·마산 민주 항쟁]]의 시발점이었다.
* 서울 [[성수대교]]가 개통되었다.
* [[10월 17일]]: 부산시내 학생/시민들이 유신철폐 등을 요구하며 파출소 등 공공건물을 파괴했다.
* [[10월 18일]]
* 박정희 대통령은 0시를 기해 부산 일대에 비상계엄령을 내렸다.
* 신민당은 부산사태 진상조사단 파견 결정 후 정부에 부산사태에 대해 반성 및 책임지라고 추궁했다.
* 최석원 부산시장은 학생 및 시민 소요사태로 학생 2명, 민간인 4명, 경찰 73명이 각각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 부산시민 2천여 명이 남포동 일대에서 가두시위를 전개하였다
* 경남대는 시위확산 방지를 위해 무기 휴교령을 내렸다.
* [[10월 19일]]
* 서울대생 3백여 명은 강제휴학명령권을 부여한 학칙 개정에 반발하며 시위를 벌였다.
* 내무부는 마산, 창원, 진해에 통금시간을 2시간 더 연장토록 했다.
* 마산 시민과 학생 수천 명은 통금 연장에 아랑곳하지 않고 "독재타도"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때 수출자유지역 노동자와 고교생들도 이에 가담하였다.
* 제12차 한미안보협의회의는 F5E 및 F5F 전투기를 한국에서 공동생산키로 합의하였다.
* 브라운 미 국방장관이 카터 대통령의 친서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냈다.
* 미국 <워싱턴포스트> 지는 미 정부측이 한국 정치와 관련해 대한차관 자동승인을 보류했다고 보도했다.
* 제20호 태풍 '팁'이 일본 혼슈 지방을 강타했다.
* [[10월 20일]]
* 정부는 경남 마산과 창원에 위수령을 선포했다.
* 정부와 여당은 안보협의회를 열어 부산사태 및 한미안보협의회 결과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 [[10월 22일]]
* 신민당 확대간부회의는 시국분석 및 당 정책, 행동방향 등을 논의하였다.
* 경북대는 부마사태로 인한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임시 휴교령을 내렸다.
* [[10월 23일]]
* 공화-유정 합동조정회의는 신민당 의원직 총사퇴서 자진철회를 요구했다.
* 영남대는 위와 같은 이유로 휴교령을 내렸다.
* 계엄군의 진압으로 진정 국면에 들어가 부산-마산지역 통금시간이 원상복구되었다.
* [[10월 24일]]
* 문교부는 1980년부터 연 1회 이상 운동회를 의무 개최토록 하였다.
* 한국외대생 김남일 등이 <진리와 자유를 위한 선언서>를 배포하였다.
* [[10월 25일]]
* 국회는 공화-유정 의원들만 참석한 채 본회의를 열어 31일까지 휴회키로 결의 후 2분만에 폐회시켰다.
* 신민당 정무회의는 평화적 정권교체 등 결의문 8개항을 채택하였다.
* 대구 계명대생 2천여 명이 유신철폐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롯데리아가 서울 소공동 지하에 1호점을 냈다.
* [[10월 26일]]
* 충남 삽교천 방조제가 준공되었다.
* KBS 당진 송신소가 준공되었다.
* 호텔롯데가 소공동 본사에 '롯데일번가'를 개점하였다.
* 글라이스틴 주한미대사가 김영삼 신민당 총재와 현 국내시국 등에 대해 요담했다.
* '''[[김재규]] 중정부장이 서울 궁정동 안가 술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경호실장 [[차지철]]을 암살했다.'''([[10.26 사건]])
* [[10월 27일]]
* 최규하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했다.
*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가 비상시국에 대한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옥외집회 금지, 보도검열 등을 담은 포고령 1호를 내렸다.(제주도 제외)
* 김성진 문공장관이 오전 7시 45분 박정희 대통령 서거에 관해 공식 발표했다.
* 미 국방부는 박정희 대통령 피살로 주한미군에 3급 경계령을 하달했다.
*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이 [[영국]]으로부터 정식 독립했다.
* [[10월 28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의원 30여 명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 빈소에 분향했다.
* 국무회의는 박정희 대통령 국장을 10.26 ~ 11.3일까지 국장으로 치루기로 결정했다.
* 계엄사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 미 국방부는 신예 조기경보통제기 및 키티호크 항모 등 기동타격대를 한국으로 급파했다.
* [[10월 29일]]
*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시국대책회의를 주재했다.
* 정부는 경제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특별경제대책회의'를 구성했다.
* 내무부는 박정희 대통령 추모와 관련해 분향소 1,695개 설치 및 28일 기준 국민분향 수가 65만 명이었다고 밝혔다.
* 미국 정부는 박정희 대통령 피살소식을 신속 보고받은 후 사태 발전을 조심스레 관망했다.
* [[10월 30일]]
*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틀째 시국대책회의를 주재했다.
*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중정부장 서리에 이희성 육참차장을 임명했다.
* 계엄사 합수부는 김재규 사건 및 김계원 비서실장 관련 여부를 집중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 [[10월 31일]]
*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3일째 시국대책회의를 주재했다.
* 박대통령장의위는 11월 3일부로 국장을 거행한다고 공고했다.
* 밴스 미 국무장관이 현 한국 정세가 안정유지되는 걸 환영한다고 밝혔다.
==== 11월 ====
* [[11월 1일]]
* 국회 본회의가 의원들 불참으로 유회되었다.
* 여당권은 국장기간 동안 정치활동 않겠다고 밝혔다.
* 문교부는 1980학년도부터 체고 특기자 종목에서 구기종목을 제외키로 결정했다.
* [[11월 2일]]
* 미 항모 키티호크 등 군함 총 11척이 제주남방 10km 해상에 도착했다.
* 미국에서 급파된 조기경보통제기 E3A기 2대가 한반도 24시간 감시탐지업무를 개시했다.
* [[11월 3일]]
* 박정희 대통령 영결식이 서울 중앙청에서 국장으로 거행되었다.
* 밴스 미 국무장관이 카터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박정희 대통령 국장 참석차 방한했다.
* 밴스 미 국무장관은 한국 군부가 민간정부를 지지하며 합헌적 방법으로 전진 실현한다고 이한성명을 냈다.
* 대구교도소 긴급조치 위반 재소자들이 박정희 대통령 국장 때 묵념거부로 교도관들에게 집단폭행당했다.
* [[11월 4일]]
* 정부는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최규하 주재로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 중앙 각 부처 차관들과 지방장관들이 민생안정과 보호에 대한 각종 의견들을 교환하였다.
* 대한체육회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일시중단한 각종 경기들을 재개토록 지시하였다.
* 주 [[이란]] [[미국]]대사관이 이란 시아파 청년들에게 점거되어 [[미국인]] 90명이 인질로 잡혔다.([[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 [[11월 5일]]
* 국회 본회의는 야당 의원들이 낸 사퇴서를 원의로 반려했다.
* 문공부는 최근 북한측에 특별한 군사적 동향이 없다고 밝혔다.
* 여천석유화학공단 2단지가 준공되었다.
* [[11월 6일]]
* 전두환 계엄합수부장이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의 전모를 발표했다.
* 문교부는 산업체부설학교 설립계획을 승인하였다.
* 1980학년도 대학입학예비고사가 실시되었다.
* [[11월 7일]]: 계엄합수부는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관련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 [[11월 8일]]
*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무분별한 정치선동, 불법시위, 난동 등을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 계엄사는 서울 등 일부지역 통금시간을 밤 11시로 단축시키고 나머지는 종전대로 환원한다고 밝혔다.
* [[11월 9일]]
* 신민당은 국회 등원을 결정하였다.
* 계엄사는 12일부터 대학원/교대/전문대 휴교령을 해제키로 결정하였다.
* 동자부는 가정용 전압을 100V, 220V 겸용으로 전면 수정했다.
* [[11월 10일]]
*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현행 유신헌법대로 늦어도 1980년 1월 25일까지 대통령을 선출하겠다고 밝혔다.
* 김성진 문공장관은 긴급조치 9호를 엄존한다고 밝혔다.
* [[11월 11일]]
* 전경련이 서울 삼일로에서 여의도 전경련회관으로 이전하였다.
* 제4차 퇴계학 국제학술회의가 자유중국 타이페이 타이완사범대에서 개최되었다.
* [[11월 12일]]
* 공화당은 신임 총재직에 김종필 총재상임고문을 만장일치로 선출했다.
* 계엄사는 사회혼란 조성 선동행위 및 불법 집단활동을 엄단키로 한다고 밝혔다.
* [[11월 13일]]
*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이 김종필 공화당총재와 시국 관련 요담했다.
* 계엄합수부는 김재규 등 박정희 시해사건 관련자 8명을 육군보통군법에 송치했다.
* 경찰은 남민전 사건 3차 수사진행상황을 발표했다.
* 국민회의는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의 특별담화를 비판하였다.
* 해교협, 자실 등 5개 단체가 <나라의 민주화를 위하여>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11월 14일]]
* 김종필 공화당총재는 박준규 의장서리 등 3명의 사표를 수리했다.
* 여야 3당이 12월 이전까지 '헌법개정심의 특별위원회'를 설치키로 합의하였다.
* 문교부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전국대학총학장회의'를 소집했다.
* 이란 정부는 미국 내 자산을 동결했다.
* [[11월 15일]]
*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은 긴급조치 9호 관련 구속자 석방 및 제적학생 복교를 조속히 검토토록 지시하였다.
* 김종필 공화당총재는 취임사에서 대통령보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언명했다.
* 유정회 의원총회는 태완선 대신 최영희 원내총무를 새 의장직에 선출하였다.
* EYC가 유신체제 조속 청산 및 민주정부 수립 등을 담은<민주화 선언>을 발표하였다.
* '민주주의와 학원자유화를 위한 전국대학생협의회 부활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현기영 소설 <순이 삼촌>이 출간되었다.
* 호텔롯데 쇼핑센터사업부가 '롯데쇼핑(주)'로 출범되었다.
* [[11월 16일]]: 이민우 신민당 부총재는 평화적 정권교체 전통 확립코자 '보복 없는 정치'를 강조하였다.
* [[11월 17일]]
* JP-YS 양측은 회담을 열어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자고 의견을 발표하였다.
* 대구지검은 최병욱 가농 회장에 법정소란죄 등을 적용해 벌금 10만원을 선고했다.
* [[11월 19일]]: 이스라엘 정부는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반환했다.
* [[11월 20일]]
* 정부는 1983년부터 핵연료 점진적 국산화 계획으로 개발시설비 118억 원을 투입키로 결정했다.
* 이용희 국토통일장관은 남북관계가 주변정세 국면 및 내부 동향으로 새로운 국면이라고 밝혔다.
* 홍성철 보사장관은 YH사태 발생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 [[11월 21일]]
* 노재현 국방장관은 통금시간을 빠른 시간내에 환원한다고 답변했다.
* 구자춘 내무장관이 국회 답변 통해 석달 전 신민당사 경찰난입과 현역 의원 및 기자 구타에 대해 사과하였다.
* [[11월 22일]]
*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과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3시간 5분 간 정치발전과 시국현안 문제에 대해 요담했다.
* 법무부는 국회제출자료에서 당년도 9월 말 기준 국내거주 외국인이 68개국 47,146명으로 집계되었다고 밝혔다.
* 국제인력소개업자 석희찬이 이란 미대사관 억류 18일만에 석방되었다.
* [[11월 23일]]: 정부는 현행 버스료 80원 및 택시 기본료 500원 등 교통요금 조정안을 확정하였다.
* [[11월 24일]]
*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은 김수환 추기경 등 천주교 지도자들과 면담에서 구속인사 조기 석방건의를 수용하였다.
* 동자부는 등유값을 5.4%로 인상하고 경유값을 1.7%로 내린다고 밝혔다.
*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국가안보 최우선 및 법질서 확립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 윤보선 등 재야인사들이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대통령 선거 저지와 민주화 촉구대회’를 서울YWCA 강당에서 열었다.([[YWCA 위장결혼식 사건]])
* [[11월 25일]]: 조선왕조 궁중무용 7편이 수록된 고전 기록영화가 일본 간토지방 모 가정에서 발견되었다.
* [[11월 26일]]
* 국회 본회의는 '헌법개정심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계엄사는 함석헌 등 96명을 YWCA 결혼식 위장 시국집회 및 관련 포고령 위반으로 검거/조사중이라고 밝혔다.
* [[11월 27일]]
* 육군 보통군법 검찰부는 김재규, 김계원 등 8명을 박정희 시해사건과 관련해 기소시켰다.
* 병역문제대책위는 거국민주내각 구성 및 조속 개헌/총선실시 등을 담은 선언문 <진정한 민주주의 정착을 위하여>를 발표하였다.
* [[11월 28일]]
* 계엄사는 서울대생 4명을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하고 6명을 수배했다고 밝혔다.
* 문교부는 제적학생 복교문제 및 국교 육성회비 폐지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 전남지역 6개 재야단체들이 광주YWCA 연합기도회에서 통대선거 반대 성명서 <민주주의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자!>를 발표하였다.
* [[에어 뉴질랜드]] 901편 DC-10기가 악천후로 [[남극]] [[에레보스#s-2]] 산에 [[에어 뉴질랜드 901편 추락 사고|추락해]] 탑승자 257명 전원이 숨졌다.
* [[11월 29일]]: 계엄보통군법은 부마사태 관련 대학생 6명 등 20명에 실형을 선고했다.
* [[11월 30일]]
*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국민적 합의 존중하며 공청회를 열기로 결정하였다.
* 전남대생 2천여 명이 군 중립화, 조기 개헌, 어용교수 퇴진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12월 ====
* [[12월 1일]]
*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이 차기 대통령을 선출키 위해 닷새 후 장충체육관에서 통대 3차회의를 소집한다고 밝혔다.
* 국회 본회의는 신민당이 제안한 '긴급조치 9호 해제건의안'을 여야 법사위안으로 발의/통과시켰다.
* [[12월 2일]]: 북한 평양 중구역에 국립도서관 '인민대학습당'이 착공되었다.
* [[12월 3일]]
* 백두진 국회의장이 사퇴서를 냈다.
* 곽상훈 통대운영위원장 등 827명이 차기 대통령후보자로 최규하 권한대행을 추천했다.
* 내무부는 도시 주민 주택부족률을 40%로 집계했다고 밝혔다.
* 문공부는 대마초 연예인 출연규제를 4년 만에 해제시켰다.
* [[12월 4일]]: 육군보통군법은 김재규 등 10.26 사태 관련자 4명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 [[12월 5일]]: 노동청은 11월 기준 체불임금 30억 원으로 전년도 동기에 비해 4배를 기록했다고 집계했다.
* [[12월 6일]]
*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최규하 후보를 10대 대통령 선출 후 당선사실을 공고했다.
* 공화-신민 양당이 개헌 내용 중 대통령 선출방식과 임기, 지자제 등을 놓고 대립했다.
* [[12월 7일]]
* [[최규하]]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다음날 0시를 기해 긴급조치 9호를 해제키로 의결하였다.
* [[신현확]] 부총리 등 국무의원 전원이 사표를 냈다.
* 문교부는 1974년 이후 [[제적]]학생은 786명, 재임용 탈락교수 181명이라고 각각 발표했다.
* 대법원은 [[김재규]]의 [[재정신청]]을 기각했다.
* [[12월 8일]]
* 김종필 공화당 총재는 미국 <뉴스위크>지 회견에서 북한의 위협이 있는 한 민주제한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 법무부는 긴급조치 9호 위반 구속인사들을 석방하고 김대중을 연금 해제시켰다.
* 계엄사는 공금 10억 원 횡령 등 김재규의 비위사실들을 발표했다.
* 육군보통군법은 10.26 사건 관련 2차 공판을 열었다.
* [[12월 9일]]
* 김종필 공화당 총재는 외신 기자회견에서 1980년대부터 한국에 자유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언급했다.
* 일본 가수 오오하시 준코가 제1회 TBC 세계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 [[12월 10일]]
* 최규하 대통령은 국무총리직에 신현확 전 부총리를 임명하였다.
* 육군보통군법은 10.26 사건 관련 3차 공판을 열었다.
* 북한 로동당 중앙위는 제5회 19차 전원회의를 열었다.
* 최순영 YH노조 지부장과 문동환 목사 등 YH사건 관련자 9명이 석방되었다.
* [[12월 11일]]
* 김재규 등 10.26 사태 관련자들이 4차 공판에서 변호인단의 변론 거부를 선언했다.
* 통계청은 10월 1일 기준 국내 인구가 3,735만 5천명으로 전년도보다 1.9% 증가했다고 밝혔다.
* 온산 동제련소가 준공되었다.
* [[12월 12일]]
* 신민당 총재단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이 신청인의 취하로 백지화되었다.
* 문교부는 초중고 교과서에서 유신 관련 내용을 삭제키로 결정하였다.
* 육군보통군법은 10.26 사건 관련 5차 공판을 열었다.
* 군 수사기관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했다.([[12.12 군사반란]])
* [[12월 13일]]
* 신현확 총리가 비상국무회의 소집 후 시국현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 건설부는 전국 36개 도시계획지역 이용지가를 확정/고시했다.
* 경제기획원과 문공부는 TV 수신료를 월 600원에서 800원으로 33.3% 인상한다고 밝혔다.
* [[12월 14일]]
* 최규하 대통령은 경제부총리에 이한빈, 외무부장관에 박동진 등을 유임/임명해 조각을 단행했다.
* 건설부는 아산만 일대 본격개발에 착수하였다.
* 육군보통군법은 10.26 사건 6차 공판을 속개했다.
* 유네스코는 경북 경주를 세계 10대 유적지로 지정하였다.
* [[12월 15일]]
* 최규하 대통령은 경제수석 겸 특정지역개발추진위 기획단장에 [[최창락]] 등을 임명했다.
* 체신부는 1백억불 규모 전자교환 제2기종으로 미국 웨스턴일레트릭 인터내셔널 사의 'NOIA'를 선정했다.
* 서울지법 합의11부는 김영삼 신민당 총재 등 4명에 면소처분을 내렸다.
* 육군보통군법은 10.26 사건 7차 공판을 속개했다.
* [[12월 16일]]: 정문연이 '제1회 한국학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 [[12월 17일]]: 롯데쇼핑이 서울 소공동 사옥 근처에 '롯데쇼핑센터' 1호점을 열었다.
* [[12월 20일]]: 육군 계엄보통군사법원은 김재규 등 7명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 [[12월 21일]]: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이 장충체육관에서 제10대 대통령 취임식을 진행했다.
* [[12월 24일]]: [[소련군]]이 본격적으로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아프간]]을 침공했다.([[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 [[12월 27일]]: [[소련]]이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아프간]]에 괴뢰정부를 수립하여 하피줄라 아민 대통령을 사살하였다.
=== 가상 ===
* 멀린-1에서 미국이 이란에 양탄자를 탄 [[특수부대]]를 투입했다. - [[겁스 무한세계]]
* 루시퍼-3에서 [[초신성]] 폭발이 일어나 지구가 멸망했다. - [[겁스 무한세계]]
* 라이히-4에서 [[페르시아 만]]의 [[석유]]를 두고 [[독일]]과 [[일본]]의 분쟁이 격화되었고, 결국 [[핵전쟁]]으로 발전해 버렸다. - [[겁스 무한세계]]
* [[라이히-5]]에서 하인켈 보잉사와 크루프사가 소행성 노이루르를 가져와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 [[겁스 무한세계]]
* [[카일 하이드]]가 [[브라이언 브래들리]]를 추적하기 위해 12월 28일 '호텔 더스크'에 투숙한다. - [[호텔 더스크의 비밀]]
* 10.26 사태 당시 박정희 대신 차지철이 살해당했다. - [[박정희 다시 태어나다]]
* 영화 [[동감(영화)|동감]], [[그때 그 사람들]], [[남산의 부장들]]의 배경 연도.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원판 소설의 배경 연도. 영화판은 [[1980년]]이다.
* 중국의 선제 공격으로 2차 [[중국-소련 국경분쟁]]이 일어난다. - [[워게임: 레드 드래곤]]
*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 샤오위가 시간 여행을 한 연도.
* [[캐리(소설, 영화)|캐리]] 원판 소설의 배경 연도. 그런데 원판 소설이 출간된 연도는 1974년이다.
* 소설/드라마 [[란제리 소녀시대]]의 배경연도.
* [[시끌별 녀석들]]의 배경 년도
== 탄생 ==
=== 실존인물 ===
* [[1월 1일]] - [[도모토 코이치]]: 일본의 [[가수]], [[탤런트]], [[KinKi Kids]]의 멤버
* [[1월 3일]]
* [[위서현]]: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타나카 리에]]: 일본의 성우
* [[1월 7일]] - [[혼나 요코]]: 일본의 성우
* [[1월 8일]]
* [[설기현]]: [[한국]]의 [[축구선수]]
* [[세라 폴리]]: [[캐나다]]의 [[배우]]
* [[한나 융베리]]: 스웨덴의 축구선수
* [[아드리안 무투]]: [[루마니아]]의 축구 선수
* [[1월 10일]] - [[히라오 타카유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 [[1월 11일]] - [[시티 누르할리자]]: [[말레이시아]]의 가수
* [[1월 12일]] - [[이보영]]: 한국의 배우
* [[1월 14일]] - [[노현정]]: 대한민국의 방송인, 前 아나운서
* [[1월 16일]]
* [[알리야]]: [[미국]]의 [[배우]], [[가수]]
* [[조우진(배우)|조우진]]: 한국의 배우
* [[카슈 토시키]]: 일본의 배우
* [[1월 18일]] - [[주걸륜]]: [[대만]]의 [[싱어송라이터]], [[배우]]
* [[1월 20일]]
* [[the GazettE#s-2.3|아오이]]: 일본의 [[기타리스트]], [[비주얼계]] 락밴드 [[the GazettE]]의 멤버
* [[추자현]]: 한국의 배우
* [[1월 24일]] - [[송창의]]: 한국의 배우, [[뮤지컬]] 배우
* [[1월 26일]]
* [[김범수(1979)|김범수]]: 한국의 [[가수]]
* [[키모토 오리에]]: 일본의 성우
* [[1월 27일]] - [[코야마 키미코]]: 일본의 성우
* [[1월 28일]] - [[박한이]]: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1월 31일]] - [[김이지]]: 한국의 배우, [[한국 아이돌]] [[베이비복스]]의 멤버
* [[2월 1일]] - [[후앙]]: [[브라질]]의 축구 선수
* [[2월 2일]] - [[정일영(가수)]]
* [[2월 4일]] - [[안드레이 알롭스키]]: [[벨라루스]]의 [[종합격투기]] 선수
* [[2월 6일]] - [[이기찬]]: 한국의 [[가수]], [[싱어송라이터]][* 음력 1월 10일]
* [[2월 7일]] - [[이시게 사와]]: 일본의 성우
* [[2월 8일]] - [[MC 스나이퍼]]: 한국의 [[힙합]] [[래퍼]]
* [[2월 9일]]
* [[DJ YOSHITAKA|니시무라 요시타카]]: 일본의 [[BEMANI|BEMANI 시리즈]] 아티스트
* [[이리나 슬루츠카야]]: [[러시아]]의 전 [[피겨 스케이팅]] 선수
* [[정훈(농구)|정훈]]: 한국의 농구 선수
* [[2월 13일]]
* [[라파엘 마르케스]]: 멕시코의 축구선수.
* [[미나 수바리]]: 미국의 모델 겸 배우.
* [[2월 15일]]
*[[김두희(성우)|김두희]]: 한국의 성우
*[[김병현]]: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2월 16일]] - [[에릭(신화)|에릭]]: 한국의 래퍼, 그룹 [[신화(아이돌)|신화]]의 멤버
* [[2월 19일]] - [[이천희]]: 한국의 [[배우]]
* [[2월 20일]] - [[송종국]]: 한국의 [[축구 선수]]
* [[2월 22일]] - [[이나영]]: 한국의 배우
* [[2월 23일]] - [[안치용(야구)|안치용]]: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2월 27일]] - [[myco]]: 일본의 [[가수]], [[Changin' My Life]]의 [[보컬]]
* [[2월 28일]] - [[마이클 비스핑]]: [[영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3월 2일]]
* [[이정민(야구선수)|이정민]]: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데미안 더프]]: [[아일랜드]]의 축구 선수
* [[3월 6일]] - [[팀 하워드]]: [[미국]]의 [[축구 선수]]
* [[3월 9일]] - [[멜리나]]: [[미국]]의 [[프로레슬러]]
* [[3월 12일]]
* [[이혜천]]: 한국의 [[야구]] 선수
* [[피트 도허티]]: [[영국]] [[록 음악]] [[뮤지션]]
* [[3월 13일]] - [[마정길]]: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3월 14일]] - [[니콜라 아넬카]]: [[프랑스]]의 축구 선수
* [[3월 16일]] - [[최희섭]]: 한국의 --[[등산]]가--[[야구]]선수
* [[3월 17일]]
* [[양파(가수)|양파]]: [[대한민국]]의 [[가수]]
* [[사모아 조]]: [[미국]]의 [[프로레슬러]]
* [[3월 18일]] - [[박사임]]: 한국의 [[아나운서]]
* [[3월 20일]]
* [[다니엘 코미어]]: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레슬러]]
* [[송병철]]: 한국의 [[코미디언]]
* [[3월 21일]] - [[김민우(1979)|김민우]]: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3월 23일]] - [[박지윤(MC)|박지윤]]: [[대한민국]]의 前 [[아나운서]]
* [[3월 24일]]
* [[레이크 벨]]: [[미국]]의 [[배우]]
* [[비비아나 슈타인하우스]]: 독일의 축구 심판
* [[3월 27일]]
* [[이지훈(멀티 엔터테이너)|이지훈]]: 대한민국의 가수 겸 연기자
* [[이지훈(1979)|이지훈]]: 대한민국의 연기자[* 바로 위의 [[이지훈(멀티 엔터테이너)|이지훈]]과 '''동명이인이면서 생년월일까지 같다!''']
* [[3월 28일]] - [[채림]]: 대한민국의 배우
* [[3월 30일]]
* [[박경림]]: 한국의 [[연예인]]
* [[아나톨리 티모슈크]]: [[우크라이나]]의 축구 선수
* [[노라 존스]]: [[미국]]의 재즈 가수
* [[3월 31일]] - [[노홍철]]: 한국의 [[연예인]]
* [[4월 2일]] - [[그라피테]]: [[브라질]]의 축구 선수
* [[4월 4일]] - [[히스 레저]]: [[오스트레일리아]]의 [[영화배우]]
* [[4월 8일]] - [[김은중]]: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 [[4월 9일]] - [[숙행]]: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4월 10일]] - [[도모토 츠요시]]: [[일본]]의 [[가수]], [[탤런트]], [[KinKi Kids]]의 멤버
* [[4월 12일]]
* [[송백경]]: 한국의 래퍼, 그룹 [[원타임(그룹)|원타임]]의 멤버
* [[이수영(가수)|이수영]]: 대한민국의 [[가수]]
* [[4월 15일]] - [[루크 에반스]]: [[영국]] [[웨일스]] 출신의 [[배우]]
* [[4월 17일]] - [[성시경]]: 한국의 가수
* [[4월 18일]] - [[오지헌]]: [[대한민국]]의 [[개그맨]]
* [[4월 19일]] - [[후루시마 키요타카]]: 일본의 남성 성우
* [[4월 21일]]
* [[박용택]]: 한국의 [[야구]]선수, [[LG 트윈스]]의 --[[별명택]]--
* [[제임스 매커보이]]: [[영국]] [[스코틀랜드]]의 배우
* [[4월 26일]] - [[이윤형]]: [[삼성그룹]] [[이건희]]의 3녀
* [[4월 27일]] - [[김이나]]: 한국의 [[작사가]]
* [[4월 29일]] - [[이동국]]: 한국의 [[축구]]선수, 라이언킹
* [[4월 30일]] - [[셸리 컬린블랙]]: [[미국]]의 성우
* [[5월 1일]] - [[스페이스 카우보이(뮤지션)|스페이스 카우보이]]: 한국의 가수 겸 프로듀서
* [[5월 9일]] - [[앤드루 W.K.]]: 미국의 가수
* [[5월 10일]] - [[이효리]]: 한국의 가수, [[걸그룹]] [[핑클]]의 멤버
* [[5월 12일]]
* [[아라이 히로키]]: [[일본]]의 프로듀서,작곡가,편곡가,레코딩 엔지니어.
* [[콘도 타카시]]: 일본의 성우.
* [[5월 16일]] - [[이희진(배우)|이희진]]: 한국의 배우, [[한국 아이돌]] [[베이비복스]]의 멤버
* [[5월 18일]] - [[가브리엘 곤자가]]: [[브라질]]의 [[종합격투기]] 선수
* [[5월 19일]]
* [[디에고 포를란]]: [[우루과이]]의 [[축구]]선수, 피치치
* [[안드레아 피를로]]: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 [[5월 20일]] - [[유재웅]]: 한국의 야구 선수
* [[5월 22일]] - [[카가미 타카야]]: [[일본]]의 [[라이트 노벨]] [[작가]]
* [[5월 23일]]
* [[권해성]]: 한국의 배우
* [[김나나(기자)|김나나]]: [[대한민국]]의 [[방송]] [[기자]]
* [[이중옥]]: 대한민국의 배우
* [[5월 24일]] - [[프랭크 미어]]: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5월 25일]] - [[소라치 히데아키]]: [[일본]]의 [[만화가]]
* [[5월 26일]]
* [[애슐리(프로레슬러)|애슐리 마사로]]: [[미국]]의 [[프로레슬러]]
* [[요아킴 한센]]: [[노르웨이]]의 [[종합격투기]] 선수
* [[5월 28일]] - [[이대환]]: 한국의 [[야구]]선수
* [[5월 29일]] - [[임주현]]: 한국의 성우
* [[5월 30일]]
* [[쿠기미야 리에]]: 일본의 성우
* [[이정민(성우)|이정민]]: 한국의 성우
* [[6월 1일]] - [[양동근]]: [[대한민국]]의 배우, 가수
* [[6월 2일]] - [[모레나 바카린]]: [[브라질]]의 [[배우]]
* [[6월 3일]] - [[임동규(야구)|임동규]]: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6월 8일]] - [[최현정(방송인)|최현정]]: [[대한민국]]의 [[방송인]], 前 [[아나운서]]
* [[6월 9일]] - [[코바야시 아키코]]: 일본의 성우
* [[6월 13일]]
* [[이재영(야구선수)|이재영]] : [[한국]]의 前 [[야구선수]]
* [[서영희]]: 한국의 배우
* [[디에고 밀리토]]: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6월 18일]] - [[코바야시 유미코]]: 일본의 성우
* [[6월 19일]]
* [[정영웅]]: 한국의 성우
* [[김수근(1979)|김수근]]: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배우
* [[6월 21일]]
* [[유민(배우)|유민]]: 일본의 배우
* [[코스타스 카추라니스]]: [[그리스]]의 축구 선수
* [[크리스 프랫]]: 미국의 배우
* [[6월 22일]] - [[레이레 마르티네스]]: [[스페인]]의 가수
* [[6월 24일]]
* [[민지영]]: 대한민국의 [[배우]]
* [[권성주]]: [[대한민국]]의 정치인
* [[6월 26일]]
* [[미즈하라 카오루]]: 일본의 성우
* [[정철연]]: 한국의 [[만화가]]
* [[칸자키 치로]]: 일본의 성우이자 前 [[작사#s-1]]
* [[6월 27일]]
* 조현수: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김규리(1979년 6월)|김규리]]: 한국의 배우
* [[6월 29일]] - [[이희준]]: 한국의 배우
* [[7월 1일]] - [[포레스트 그리핀]]: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7월 2일]] - [[크리스 미크]]: [[북아일랜드]]의 랠리 드라이버
* [[7월 5일]]
* [[호란(가수)|호란]]: 한국의 가수, [[클래지콰이]] 멤버
* [[스틸리얀 페트로프]]: [[불가리아]]의 축구 선수
* [[7월 6일]] - [[가다 슈헤이]]: 일본의 정치인
* [[7월 8일]]
* [[유수연#s-2]]: [[한국]]의 [[가수]], [[록밴드]] [[시베리안 허스키]]의 [[보컬]]
* [[현재윤]]: 한국의 [[야구]]선수
* [[7월 9일]] - [[키라 빈센트데이비스]]: 미국의 성우
* [[7월 10일]] - [[공유(배우)|공유]]: 한국의 배우
* [[7월 11일]]
* [[강석정(배우)|강석정]]
* [[서민정]]: 한국의 배우
* [[임수정]]: 한국의 배우
* [[7월 13일]]
* [[이재진(젝스키스)|이재진]]: 대한민국의 가수, 보이그룹 [[젝스키스]]의 멤버
* [[크레이그 벨라미]]: [[웨일스]]의 축구 선수
* [[7월 14일]] - [[세르게이 이그나셰비치]]: [[러시아]]의 축구 선수
* [[7월 15일]] - [[알렉산더 프라이]]: [[스위스]]의 축구 선수
* [[7월 20일]] -
* 곽동기 : [[대한민국]]의 [[대학]][[교수]]
* 윤상무 -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장동민]]: 한국의 [[개그맨]]
* [[미클로스 페헤르]](~[[2004년]]): [[헝가리]]의 축구선수
* [[7월 25일]]
* [[수애]]: 한국의 배우
* [[박소연(뮤지컬 배우)|박소연]]: [[한국]]의 [[뮤지컬]] 배우
* [[조현정(성우)|조현정]]: [[한국]]의 [[성우]]
* [[7월 28일]] - [[이민우(신화)|이민우]]: 한국의 가수, 그룹 [[신화(아이돌)|신화]]의 멤버
* [[7월 31일]] - [[카를로스 마르체나]]: [[스페인]]의 축구 선수
* [[8월 1일]] - [[제이슨 모모아]]: 미국의 배우
* [[8월 7일]] - [[김재덕]]: 한국의 래퍼, 그룹 [[젝스키스]]의 멤버
* [[8월 9일]]
* [[기타야마 다케쿠니]]: [[일본]]의 [[소설가]]
* [[홍지연]]: [[미스코리아]] 출신의 [[딜러(카지노)|딜러]] 겸 방송인
* [[8월 12일]]
* [[강귀태]]: 한국의 [[야구]]선수
* [[이화진]]: [[나이스게임TV]] 게임[[캐스터]]
* [[8월 16일]]
* [[김규리(1979년 10월)|김규리]]: 한국의 배우
* [[권오원]]: [[한국]]의 前 [[야구선수]]
* [[8월 17일]] - [[야나 바티시나]]: 러시아의 前 리듬체조 선수
* [[8월 20일]]
* [[김현심]]: 한국의 성우
* [[김수경(야구)|김수경]]: 한국의 [[야구선수]]
* [[하하(가수)|하하]]: 한국의 연예인 ~~[[석사]]~~
* [[8월 26일]] - [[이혁]]: 한국의 가수, 그룹 [[노라조]]의 전 멤버
* [[8월 27일]] - [[아론 폴]]: [[미국]]의 [[배우]]
* [[8월 28일]] - [[서남용]]: 한국의 [[코미디언]]
* [[8월 31일]] - [[미키 제임스]]: 미국의 프로레슬러
* [[9월 2일]] - [[알렉스(클래지콰이)|알렉스]]: 한국의 가수
* [[9월 3일]]
* [[이지혜(프로게이머)|이지혜]]: 한국의 전 [[프로게이머]]
* [[줄리우 세자르]]: [[브라질]]의 축구 선수
* [[9월 4일]] - [[MC몽]]: 한국의 래퍼
* [[9월 5일]]
* [[그레이 메이나드]]: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류수영]]: 한국의 배우
* [[9월 8일]]
* [[핑크(가수)|핑크]]: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 [[런업]]: 한국의 [[유튜버]]
* [[9월 10일]] - [[메이비(가수)|메이비]]: 한국의 가수 겸 배우
* [[9월 11일]]
* [[에릭 아비달]]: [[프랑스]]의 축구 선수
* [[다비드 피사로]]: [[칠레]]의 축구 선수
* [[9월 12일]]
* [[마스다 유우키]]: 일본의 성우
* [[이미향]]: 한국의 성우
* [[9월 14일]] - [[이비차 올리치]]: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
* [[9월 20일]]
* [[안재모]]: 한국의 배우
* [[넋업샨]]: [[한국]]의 [[래퍼]], [[I.F]], [[소울 다이브]]의 멤버
* [[9월 21일]] - [[리처드 던]]: [[아일랜드]]의 前 [[축구선수]]
* [[9월 24일]]
* [[김종민]]: 한국의 가수, 혼성그룹 [[코요태]]의 멤버
* [[추승우]]: 한국의 [[야구]]선수
* [[9월 25일]]
* [[라샤드 에반스]]: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정명훈(코미디언)|정명훈]]: 한국의 [[코미디언]]
* [[9월 26일]] - [[선호제]]: 한국의 성우
* [[9월 29일]] - [[조남호(교육인)|조남호]]: 한국의 [[스터디코드]] [[CEO]]
* [[10월 1일]] - [[Ryu☆|나카하라 류타로]]: 일본의 [[BEMANI 시리즈의 아티스트]]
* [[10월 4일]] - [[김희진(성우)|김희진]]: 한국의 성우
* [[10월 7일]] - [[탕웨이]]: [[중국]]의 배우
* [[10월 8일]] - [[유대현]]: 前 [[프로게이머]], 해설가
* [[10월 9일]] - [[유민상]]: 한국의 [[코미디언]]
* [[10월 11일]] - [[배두나]]: 한국의 배우
* [[10월 12일]] - [[김유미(1979)|김유미]]: [[한국]]의 [[배우]]
* [[10월 13일]]
* [[고민정]]: 한국의 [[청와대]] 부대변인, 前 [[아나운서]]
* [[후지타 사유리]]: 일본 출신 방송인
* [[10월 14일]] - [[스테이시 키블러]]: 미국의 前 프로레슬러
* [[10월 17일]] - [[키미 래이쾨넨]]: [[핀란드]]의 [[포뮬러 1]] 드라이버
* [[10월 18일]] - [[장동혁]]: 한국의 [[코미디언]]
* [[10월 25일]] - [[로사 멘데스]]: 미국의 프로레슬러
* [[10월 26일]] - [[오미무라 마유코]]: [[일본]]의 성우
* [[10월 30일]] - [[나카마 유키에]]: [[일본]]의 배우
* [[10월 31일]] - [[시망 사브로자]]: [[포르투갈]]의 [[축구선수]]
* [[11월 1일]]
* [[에노모토 아츠코]]: 일본의 성우
* [[조태준]]: 한국의 가수
* [[전승화]]: [[한국]]의 성우
* [[11월 2일]] - [[스컬(가수)|스컬]]: 한국의 가수
* [[11월 3일]] - [[파블로 아이마르]]: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11월 9일]] - [[애덤 던]]: 미국의 [[야구]]선수
* [[11월 12일]] - [[Crown J]]: 한국의 힙합 래퍼
* [[11월 13일]]
* [[론 아테스트]]: [[미국]]의 [[농구]]선수
* [[히라카와 테츠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각본가]]
* [[11월 14일]]
* [[올가 쿠릴렌코]]: [[우크라이나]]의 [[배우]]
* [[장원영(야구)|장원영]]: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 [[11월 15일]]
* [[김진희(아나운서)|김진희]]: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김일중]]: [[대한민국]]의 방송인, 前아나운서
* [[Lotus Juice]]: 일본의 [[래퍼]]
* [[11월 19일]]
* 박형식: [[한국]]의 前 [[야구선수]]
* [[리자 하님]]: [[말레이시아]]의 가수
* [[11월 20일]] - [[현미진]]: [[대한민국]]의 [[바둑기사]]
* [[11월 21일]] - [[김동완(신화)|김동완]]: 한국의 가수, 그룹 [[신화(아이돌)|신화]]의 멤버
* [[11월 27일]] - [[신혜성]]: 한국의 가수, 보이그룹 [[신화(아이돌)|신화]]의 멤버
* [[11월 28일]] - [[다니엘 헤니]]: [[미국]] 국적의 [[탤런트]], [[영화배우]]
* [[11월 29일]] - [[강타]]: 한국의 가수, 보이그룹 [[H.O.T.]]의 멤버[* 음력 10월 10일]
* [[12월 1일]] - [[송정희]]: [[한국]]의 성우
* [[12월 2일]] - [[니고 마야코]]: 일본의 성우
* [[12월 3일]] - 김정열 :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12월 6일]]
* [[류담]]: [[한국]]의 [[코미디언]]
* [[팀 케이힐]]: [[오스트레일리아]]의 축구 선수
* [[12월 7일]] - [[호나우도 소우자]]: [[브라질]]의 [[종합격투기]] 선수
* [[12월 9일]] - [[하세 유리나]]: 일본의 [[성우]]
* [[12월 10일]] - [[네모토 케이코]]: 일본의 성우
* [[12월 14일]] - [[마이클 오언]]: 영국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 [[12월 16일]] - [[P-Type]]: [[한국]]의 [[래퍼]]
* [[12월 18일]] - [[채상병]]: 한국의 [[야구]]선수
* [[12월 20일]]
* [[레아 클락]]: [[미국]]의 [[성우]]
* [[이시다테 타이치]]: [[일본]]의 [[애니메이터]], [[애니메이션 감독]]
* [[12월 23일]]
* [[유승화]]: 한국의 성우
* [[여욱환]]: 한국의 배우
* [[12월 26일]] - [[곽건화]]: [[대만]]의 [[배우]]이자 [[가수]]
* 시기 불명
* [[누마타 세이야]]: 일본의 [[애니메이터]]
=== 가상인물 ===
* [[1월 5일]]: [[우라시마 케이타로]] - [[러브히나]]
* [[1월 13일]]: [[니지노 사키]] - [[도키메키 메모리얼]]
* [[1월 20일]]: [[쿠단시타 마에카]] - [[도키메키 메모리얼 2]]
* [[1월 22일]]: [[이즈미 쿄코(도키메키 메모리얼)|이즈미 쿄코]] - [[도키메키 메모리얼]]
* [[1월 24일]]: [[딘 윈체스터]] - [[수퍼내추럴]]
* [[2월 3일]]: [[키사라기 미오]] - [[도키메키 메모리얼]]
* [[3월 3일]]: [[다테바야시 미하루]] - [[도키메키 메모리얼]]
* [[4월 16일]]: [[아키호 미노리]] - [[도키메키 메모리얼]]
* [[5월 4일]]: [[유우야 브리지스]] - [[마브러브 얼터너티브 토탈 이클립스]]
* [[5월 15일]]: [[니카이도 사키]] - [[좀비 랜드 사가]]
* [[5월 16일]]: [[사오토메 유미]] - [[도키메키 메모리얼]]
* [[6월 10일]]: [[채소라]] - [[캠퍼스 러브 스토리]]
* [[6월 12일]]: [[사와무라 신]] - [[용자지령 다그온]]
* [[8월 8일]] - [[시도우 히카루]] - [[마법기사 레이어스]][* 애니판에서는 작중 1994년으로 명시돼서 나온다. 후술할 [[호우오우지 후]]도 마찬가지이고, 빠른 생일인 [[류자키 우미]]는 1980년생이 되는 셈.]
* [[8월 28일]]: [[데스록(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데스록]]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8월 30일]]: [[차민호|차선호&차민호]] 형제 - [[피고인(드라마)|피고인]]
* [[8월 31일]]: [[콘노 미츠네]] - [[러브히나]]
* [[9월 19일]]: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 [[해리 포터 시리즈]]
* [[10월 8일]]: [[카자마츠리 요쿠]] - [[용자지령 다그온]]
* [[10월 31일]]: [[L(데스노트)|L]] - [[데스노트]][* 애니메이션에서는 [[1982년]].]
* [[11월 23일]]: [[미사키 스즈네]] - [[도키메키 메모리얼]]
* [[12월 1일]]: [[코코로(DOA)|코코로]] -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리즈]]
* [[12월 12일]] - [[호우오우지 후]] - [[마법기사 레이어스]]
* [[12월 20일]]: [[쿠루스가와 세리카]] - [[투하트]]
* 일자불명
* [[데이비드 메이슨]]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
* [[스가 케이스케]] - [[날씨의 아이]]
* [[신(북두의 권)|신]] - [[북두의 권]]
* [[우라메시 유스케]], [[쿠와바라 카즈마]], [[유키무라 케이코]] - [[유유백서]]
* [[이민용]] - [[거침없이 하이킥]]
* [[키시베 로한]]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GTA 4/등장인물#s-1.1.5|패트릭 매크리어리]] - [[GTA 4]], [[GTA 5]]
* [[카자마 진]], [[화랑(철권)|화랑]], [[스티브 폭스]] - [[철권 시리즈]]
== 사망 ==
=== 실존 인물 ===
* [[1월 3일]] - 콘라드 힐튼: 힐튼 호텔 & 리조트 창업주
* [[2월 2일]] - [[시드 비셔스]]: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베이시스트]](?)
* [[2월 7일]] - [[김은호]]: 대한민국의 동양화가
* [[2월 11일]]
* [[김계현]]: 대한민국의 야구인
* [[양도일]]: 꼭두각시놀음 기능보유자
* [[2월 12일]] - [[장 르누아르]]: [[프랑스]]의 [[영화감독]]
* [[2월 19일]] - [[위 조지 우드]]: [[영국]]의 [[배우]]이자 코미디언이다.
* [[2월 21일]] - [[바우데마르 지브리투]]: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
* [[2월 27일]] - [[주경]]: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 [[2월 28일]] - [[하길종]]: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 [[3월 4일]] - [[손응성]]: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 [[3월 6일]] - [[안병소]]: 대한민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
* [[3월 7일]] - [[이반 치스차코프]]: 전 한반도 이북지역 [[소련군정]] 장관.
* [[3월 24일]] - [[오신호]]: [[대림수산]] 창업주
* [[3월 27일]] - [[방사언]]: 전 일산역장
* [[3월 29일]] - [[박항섭]]: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 [[4월 2일]] - [[캐롤 로젠블룸]]: 전 볼티모어 콜츠, [[LA 램스]] 구단주
* [[4월 4일]] - [[조제프 알카사르]]: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
* [[4월 27일]] - [[빌리 슈마우스]]: 오스트리아의 전 축구 선수
* [[5월 4일]] - [[방순희]]: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5월 8일]] - [[한항길]]: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부천대학교]] 설립자
* [[5월 15일]] - [[오영수]]: 대한민국의 소설가, 민중화가 [[오윤]]의 부친
* [[5월 26일]] - [[박녹주]]: 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 시인 김유정의 애인
* [[5월 27일]] - [[김화경]]: 대한민국의 동양화가
* [[5월 29일]] - 매킨리 한국등반대 희생자 2명
* [[고상돈]], 이일교
* [[6월 6일]] - [[박승찬]]: 락희화학 3대 사장, [[금성사]] 4대 사장
* [[6월 12일]] - [[콩스탕 조아심]]: [[벨기에]]의 전 축구 선수
* [[6월 14일]] - [[이경심]]: 대한민국의 여성 노동운동가
* [[7월 12일]] - [[미니 리퍼튼]]: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 [[7월 14일]] - [[산토스 우르디나란]]: [[우루과이]]의 전 축구 선수
* [[8월 9일]] - [[월터 오말리]]: 전 [[LA 다저스]] 구단주
* [[8월 11일]]
* [[김경숙]]: 대한민국의 여성 노동운동가
* [[미하일 안]]: 고려인 출신 소련 축구선수
* [[8월 14일]] - [[왕윈우]]: 초대 중화민국 재정부장
* [[8월 27일]]
* [[루이 마운트배튼]]: 영국의 군인, 마지막 인도 총독
* [[스젠차오]]: 중공의 정치인.
* [[8월 30일]] - [[진 시버그]]: [[미국]]의 [[배우]]
* [[9월 3일]] - [[산유테이 엔슈]](6대): 일본의 라쿠고가이자 배우
* [[9월 8일]] - [[누르 무하마드 타라키]]: 아프가니스탄의 3대 대통령
* [[9월 11일]] - [[김치복]]: 한글라스 공동 창업주, 전 대한화재 회장
* [[9월 13일]] - [[이시다 타이조]]: 전 토요타자동차 회장
* [[9월 30일]] - [[시이나 에츠사부로]]: 제93~94대 일본 외무대신. 1965년 한일협정 주도자
* [[10월 1일]] - [[프레기뉴]]: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
* [[10월 7일]]? - [[김형욱]]: 제4대 [[중앙정보부장]]
* [[10월 21일]]
* [[조제프 코틴]]: [[소련]]의 [[군인]], [[전차]] 설계자
* [[차초]]: [[스페인]]의 전 축구 감독
* [[10월 25일]] - [[나카다 하루오]]: 1960~70년대를 풍미한 인기 만담 콤비 '더블 영(Wヤング)'의 멤버
* [[10월 26일]]
* '''[[박정희]]: 제5~9대 [[대한민국 대통령]]'''
* [[차지철]]: 제3대 [[대통령경호실장|청와대 경호실장]]
* [[11월 1일]] - [[매미 아이젠하워]]: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의 영부인
* [[11월 17일]] - [[주요한]]: 대한민국의 시인, 제15대 상공부 장관, 친일반민족행위자
* [[11월 21일]] - [[신덕발]]: [[해태그룹]] 공동 창업주
* [[12월 4일]] - [[김연수(기업인)|김연수]]: [[삼양그룹]] 창업주
* [[12월 13일]]
* [[12.12 군사반란]] 희생자(이하 사후 추서 계급)
* [[김오랑]] [[중령]]
* 박윤관 [[상병]]
* 정선엽 [[병장]]
* [[박기당]]: 1960~70년대에 주로 활동한 시대극 전문 만화가
* [[12월 27일]] - [[하피줄라 아민]]: 아프가니스탄의 4대 대통령
* 일자 불명 - [[신우경]]: [[한일관]] 창업주
=== 가상 인물 ===
* 일자불명
* [[레귤러스 블랙]] - [[해리 포터 시리즈]]
* [[홍기표(자이언트)|홍기표]] - [[자이언트(드라마)|자이언트]]
== 데뷔 ==
=== 가수 ===
이 해에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힙합뮤지션 둘이 탄생했다.
* 한국
* 김트리오
* 김학래
* [[나미(가수)|나미]]
* [[송골매(밴드)|송골매]]
* [[이정희(동명이인)|이정희]]
* [[임주리]]
* [[조동진]]
* 해외
* [[더 큐어]]
* [[데프 레파드]]
* 립스 잉크
* 슈가힐 갱
* [[아즐리나 아지즈]]
* [[조이 디비전]]
* 커티스 블로우
* [[트위스티드 시스터]]
* [[하디자 이브라힘]]
* [[U2]]
=== 예능인 ===
* ~~[[서세원]]~~
* 손철
* [[엄용수]]
* 이용근
* [[전유성]]
* [[한무]]
=== 만화계 ===
* [[미야시타 아키라]] - <사립극도고교>
* [[이진주(만화가)|이진주]] - <어린이 1,2 구조대>
* [[이현세]] - <시모노세키의 까치놀이>
* [[호조 츠카사]] - <스페이스 엔젤>
=== 스포츠 ===
* [[드라젠 페트로비치]]
* [[래리 버드]]
* [[로타어 마테우스]]
* [[매직 존슨]]
* [[박인규(농구)|박인규]]
* 비니 존슨
* [[빌 레임비어]]
* [[빌 카트라이트]]
* 시드니 몽클리프
* [[신동찬]]
* [[안준호]]
* 유용순
* 유환길
* [[이문규]]
* [[이운임]]
* 이은경
* [[진효준]]
* 제임스 도널드슨
* 캘빈 냇
* 필 허바드
== 히트작 ==
=== 영화 ===
* [[록키 2]]
* [[26 x 365 = 0]]
* 에이리언
* 취권
=== 드라마 ===
* 봄비
* 야! 곰례야
* 대춘향전
* 토지
=== 가요 ===
* 한국
* 김만준 - 모모
* 김트리오 - [[연안부두]]
* 김학래, 임철우 - 내가
* 나미 - 미운 정 고운 정
* 노고지리 - 찻잔
* 들고양이들 - 마음 약해서
* 라이너스 - 연
* 배인숙 -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 블랙테트라 - 구름과 나
* 사랑과 평화 - 얘기할 수 없어요, 장미
* 심수봉 - [[그때 그 사람]]
* 양희은 - 한 사람
* 여진 - 그리움만 쌓이네
* 윤복희 - [[여러분(윤복희)|여러분]]
* 윤수일 - 나나
* 윤시내 - 열애
* 이은하 - 봄비, 아리송해
* 장애향 - 석탑[* 후에 고려대학교 응원가로 유명해진 곡.]
* 장은아 -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
* 전영록 - 누군가, 가버린 사랑
* 정윤선 - 엽서
* 조경수 - [[YMCA]], 행복이란
* 진미령 - 하얀 민들레
* [[최백호]] - [[영일만 친구]]
* 최헌 - 가을비 우산 속
* [[혜은이]] - 제3한강교, 새벽비
* 홍삼트리오 - 기도
* 휘버스 -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 해외
* [[ABBA]] - Gimme! Gimme! Gimme!, I Have a Dream
* Billy Joel - Honesty
* [[버글스]] - [[Video Killed the Radio Star]]
* [[도나 서머]] - Hot Stuff
* 도나 서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 No More Tears(Enough is Enough)
* The Dooleys - Wanted
* Dschinghis Khan - [[Dschinghis Khan]]
* Earth, Wind & Fire - Boogie Wonderland
* Patrick Hernandez - Born to Be Alive
* Pink Floyd - Another Brick In The Wall, Comfortably Numb
* Rainbow - Since You Been Gone
* [[Queen]] - Don't Stop Me Now,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 Village People - In The Navy, Macho Man
* [[등려군]] - 첨밀밀(甜蜜蜜)
=== 애니메이션 ===
* KBS 더빙
* [[공룡대전쟁 아이젠보그|어린이 특공대 아이젠보그]]
* TBC 더빙
* 인어공주 나나
* [[신조인간 캐산|정의의 캐산]]
* MBC 더빙
* [[그로이저X]]
* [[초원의 샬로트|샤로트]]
* [[슈퍼 특공대(애니메이션)|슈퍼 특공대]]
* 국산 극장판
* 간첩잡는 똘이장군
* [[도깨비 감투]]
* [[별나라 삼총사]]
* [[은하함대 지구호]]
* 해외
* [[기동전사 건담]]
* [[도라에몽(애니메이션)|도라에몽]]
* [[은하철도 999(극장판)]]
=== 베스트셀러 ===
* 토지 - 박경리 저.
* 사람의 아들 - 이문열 저.
== 출시 상품 ==
=== 자동차 ===
* [[기아자동차|기아산업]]
* 푸조 604
* 피아트 132
* [[대우자동차|새한자동차]]
* 맥스
=== 식음료 ===
* 동양제과
* 오리온 밀크캬라멜
* 농심
* 3월: 꿀꽈배기
* 4월: 된장라면
* 9월: 캠벨(수입)
* 롯데제과
* 3월: 초코파이
* 빠다코코낫
=== 생활용품 ===
* 애경유지
* 핑키비누, 마돈나샴푸, 향스민샴푸, 농축크린엎
== 유행어 ==
* 슈퍼맨~ - 슈퍼특공대 주제가
== 최초 ==
=== 방송 프로그램 ===
* 문예극장 (KBS-TV)
== 달력 ==
[include(틀: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
[각주]
[[분류:1979년]] |
1979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 [include(틀:역대 FIFA U-20 월드컵)]
'''1979 FIFAワールドユース選手権'''
1979 FIFA World Youth Championship
[목차]
== 개요 ==
[[1979년]] [[8월 25일]]부터 [[9월 7일]]까지 [[일본]]의 4개의 도시에서 개최되었다. 개최된 도시는 [[도쿄]],[[고베]],[[요코하마]] 그리고 오미야로 총 32경기가 펼쳐졌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19세 이하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출장하였다. 이 때는 연령 제한이 20세가 아닌 19세였다.
참가 팀은 총 16개 팀이며 본선에 진출한 팀은 다음과 같다. '''굵은 글씨'''는 개최국이다. 1라운드는 조별로 4개의 팀씩 치루어지며 각 조의 1위 팀과 2위 팀이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하여 우승자가 나올때까지 싱글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다.
|| 대륙 || 출전권 || 팀 1 || 팀 2 || 팀 3 || 팀 4 || 팀 5 || 팀 6 ||
|| 아시아 || 3장 || '''일본''' || 대한민국 || 인도네시아[* 원래는 이라크가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출전을 포기했다.] || || || ||
|| 아프리카 || 2장 || 알제리 || 기니 || || || || ||
|| 북중미카리브 || 2장 || 멕시코 || 캐나다 || || || || ||
|| 남미 || 3장 || 아르헨티나 || 파라과이 || 우루과이 || || || ||
|| 유럽 || 6장 || 헝가리 || 폴란드 || 포르투갈 || 소련 || 스페인 || 유고슬라비아 ||
== 조별 예선 ==
* A조
|| 홈 || 경기결과 || 원정 ||
|| 멕시코 || 1 - 1 || 알제리 ||
|| 일본 || 0 - 1 || 스페인 ||
|| 스페인 || 2 - 1 || 멕시코 ||
|| 알제리 || 0 - 0 || 일본 ||
|| 스페인 || 0 - 1 || 알제리 ||
|| 일본 || 1 - 1 || 멕시코 ||
스페인과 알제리가 8강에 진출하였다.
* B조
|| 홈 || 경기결과 || 원정 ||
|| 폴란드 || 2 - 0 || 유고슬라비아 ||
|| 아르헨티나 || 5 - 0 || 인도네시아 ||
|| 유고슬라비아 || 0 - 1 || 아르헨티나 ||
|| 인도네시아 || 0 - 6 || 폴란드 ||
|| 폴란드 || 1 - 4 || 아르헨티나 ||
|| 유고슬라비아 || 5 - 0 || 인도네시아 ||
아르헨티나와 폴란드가 8강에 진출하였다.
* C조
|| 홈 || 경기결과 || 원정 ||
|| 캐나다 || 3 - 1 || 포르투갈 ||
|| 파라과이 || 3 - 0 || 대한민국 ||
|| 포르투갈 || 1 - 0 || 파라과이 ||
|| 대한민국 || 1 - 0 || 캐나다 ||
|| 캐나다 || 0 - 3 || 파라과이 ||
|| 포르투갈 || 0 - 0 || 대한민국 ||
파라과이와 포르투갈이 8강에 진출하였다.
* D조
|| 홈 || 경기결과 || 원정||
|| 소련 || 5 - 1 || 헝가리 ||
|| 우루과이 || 5 - 0 || 기니 ||
|| 헝가리 || 0 - 2 || 우루과이 ||
|| 기니 || 0 - 3 || 소련 ||
|| 소련 || 0 - 1 || 우루과이 ||
|| 헝가리 || 2 - 0 || 기니 ||
우루과이와 소련이 8강에 진출하였다.
== 결승 토너먼트 ==
=== 8강 ===
|| 홈 || 경기결과 || 원정 ||
|| 아르헨티나 || 5 - 0 || 알제리 ||
|| 우루과이 || 0 - 0(연장 1 - 0) || 포르투갈 ||
|| 스페인 || 0 - 0(승부차기 3 - 4) || 폴란드 ||
|| 파라과이 || 0 - 0(승부차기 5 - 6) || 소련 ||
아르헨티나,우루과이,폴란드 그리고 소련이 준결승전에 진출하였다.
=== 준결승전 ===
|| 홈 || 경기결과 || 원정 ||
|| 아르헨티나 || 2 - 0 || 우루과이 ||
|| 폴란드 || 0 - 1 || 소련 ||
아르헨티나와 소련은 결승전에 진출했고,우루과이와 폴란드는 3·4위전에 진출했다.
=== 3·4위전 ===
|| 홈 || 경기결과 || 원정 ||
|| 우루과이 || 0 - 0(승부차기 5 - 3) || 폴란드 ||
=== 결승전 ===
|| 홈 || 경기결과 || 원정 ||
|| 아르헨티나 || 3 - 1 || 소련 ||
=== 최종순위 ===
||<table align=center><rowbgcolor=#ffd700> '''{{{+2 1979 FIFA U-20 월드컵 우승}}}''' ||
|| [[파일:external/www.worldstatesmen.org/ar_1818a.gif|width=200]] [br] '''아르헨티나''' ||
|| 첫번째 우승 ||
아르헨티나가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하였다. 마라도나라는 이름이 전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대회이다.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엔트리 탈락에 대한 아쉬움을 이 대회에서 모두 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류:FIFA 월드컵]][[분류:쇼와 시대]] |
1979년 일본시리즈 | [[분류:일본프로야구]] [[분류:쇼와 시대]]
||<-5><table align=center><tablewidth=100%><#FF8200><:> [[일본프로야구|[[파일:external/content.sportslogos.net/a6a8sz0eo3fbj75hhtsg.gif|width=30]]]] [br] '''[[일본시리즈|{{{#ffffff 역대 일본시리즈 우승팀}}}]]''' ||
||<width=30%><:> [[1978년 일본시리즈|1978년]] [br] [[한큐 브레이브스]] (3승) [br] '''[[야쿠르트 스왈로즈]]''' (4승) ||<:> {{{+1 ←}}} ||<:><width=30%> '''1979년''' [br] '''[[히로시마 도요 카프]]''' (4승) [br] [[킨테츠 버팔로즈]] (3승) ||<:> {{{+1 →}}} ||<:><width=30%> [[1980년 일본시리즈|1980년]] [br] [[킨테츠 버팔로즈]] (3승) [br] '''[[히로시마 도요 카프]]''' (4승) ||
||<tablealign=center><:>[[파일:external/love.ap.teacup.com/1468899822.jpg]]||
||<:> '''[[히로시마 도요 카프]], 창단 30년 만에 드디어 [[일본시리즈]] 첫 우승!''' ||
[목차]
== 개요 ==
1979년 시즌 [[센트럴리그]] 우승팀인 [[히로시마 카프]]와 [[퍼시픽리그]] 우승팀 [[킨테츠 버팔로즈]]가 맞붙은 [[일본시리즈]] 역사상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명승부. 그 해 일본시리즈 6차전까지 3승 3패로 팽팽하게 맞서던 상황에서 7차전 9회말에 히로시마의 [[마무리 투수]]이던 '''[[에나츠 유타카]]'''가 상대방의 스퀴즈 작전을 간파하고 멋지게 저지하며 팀의 창단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실현시킨 일명 '''에나츠의 21구'''는 [[NPB|일본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 장면 중 하나이다.
당시 에나츠의 활약을 소설가인 야마기와 준지(1948~1995)가 논픽션 소설로 엮으면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 1~6차전 결과 ==
=== 1차전 : 10월 27일, [[오사카 구장]] ===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 '''[[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 0 || 1 || 0 || 0 || 0 || 0 || 0 || 0 || 1 || '''2''' ||
|| '''[[킨테츠 버팔로즈|킨테츠]]''' || 2 || 0 || 0 || 1 || 0 || 2 || 0 || 0 || X || '''5''' ||
* 승리투수 : 이모토 타카시(킨테츠, 1승)
* 패전투수 : [[키타벳푸 마나부]](히로시마, 1패)
1회말 히로시마의 [[유격수]] 타카하시 요시히코의 실책을 시작으로 만든 2사 만루 찬스에서 하타 코이치의 중전 적시타로 킨테츠가 2점을 선취했고, 2회초에 히로시마는 바로 1점을 따라 붙었지만 4회말, 6회말에 킨테츠가 3점을 뽑으며 5-1로 달아났다.
히로시마는 9회초에 1점을 만회 하였지만 승부를 뒤집지 못하면서 선발 이모토가 완투한 킨테츠가 먼저 1승을 거두었다.
=== 2차전 : 10월 28일, [[오사카 구장]] ===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 '''[[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 '''[[킨테츠 버팔로즈|킨테츠]]''' || 0 || 0 || 0 || 0 || 0 || 0 || 4 || 0 || X || '''4''' ||
* 승리투수 : [[스즈키 케이시]](킨테츠, 1승)
* 패전투수 : 야마네 카즈오(히로시마, 1패)
양 팀이 7회까지 숨막히는 투수전을 전개했고, 특히 히로시마의 선발 야마네가 5회까지 킨테츠 타선을 퍼펙트로 틀어 막았지만 정작 히로시마 타선이 3~5회 연속으로 번트 작전 실패에 [[병살타]]가 이어지는 통에 다소 맥이 빠진 상태였다. 반격에 나선 킨테츠가 7회말 대타 크리스 아놀드의 중견수 [[희생플라이]], 하타 코이치의 중전 적시타, 아리타 슈조의 투런 [[홈런]]을 묶어 대거 4점을 뽑아냈고, 선발 [[스즈키 케이시]]가 완봉으로 경기를 매조지면서[* 킨테츠로선 전날에 이어 두 게임 연속 완투승 이었다.] 킨테츠는 홈에서 2승을 거두며 기분 좋게 적지 [[히로시마]]로 이동할 수 있었다. 반면 2연패를 당한 히로시마는 침체된 분위기에서 홈 3연전에 돌입해야 했다.
=== 3차전 : 10월 30일, [[히로시마 시민 구장]] ===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 '''[[킨테츠 버팔로즈|킨테츠]]''' || 2 || 0 || 0 || 0 || 0 || 0 || 0 || 0 || 0 || '''2''' ||
|| '''[[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 0 || 1 || 0 || 0 || 0 || 0 || 2 || 0 || X || '''3''' ||
* 승리투수 : 이케가야 코지로(히로시마, 1승)
* 패전투수 : 야나기다 유타카(킨테츠, 1패)
* 세이브 : [[에나츠 유타카]](히로시마, 1세이브)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던 히로시마는 시리즈 들어 부진에 늪에 빠진 [[기누가사 사치오]]와 [[외국인 선수]] 애드리언 개럿을 선발에서 빼는 초강수를 뒀지만, 안타깝게도 1회초부터 킨테츠에 [[밀어내기(야구)|밀어내기]] 볼넷과 내야 땅볼로 2점을 허용하며 경기를 어렵게 시작했다.
그러나 히로시마는 2회말 미즈타니 지츠오의 솔로 홈런과 선발 투수 이케가야의 호투로 반격을 시작했고, 결국 7회말 1사 1, 3루 상황에서 대타 우치다 준조의 동점타, 경기 중반 교체출장한 개럿이 역전 적시타를 날리며 3대 2 역전에 성공했다.
히로시마는 8회부터 구원 등판한 [[에나츠 유타카]]가 2이닝을 틀어막으며 시리즈 첫 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 승리는 히로시마 창단 후 처음으로 일본시리즈 에서 거둔 승리였다. 처녀 진출한 [[1975년 일본시리즈]]에선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한큐 브레이브스]]에 2무 4패로 패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리즈 전적은 여전히 킨테츠가 2승 1패로 앞서고 있었다.
=== 4차전 : 10월 31일, [[히로시마 시민 구장]] ===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 '''[[킨테츠 버팔로즈|킨테츠]]''' || 0 || 0 || 2 || 0 || 0 || 0 || 0 || 0 || 1 || '''3''' ||
|| '''[[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 0 || 0 || 0 || 3 || 0 || 0 || 2 || 0 || X || '''5''' ||
* 승리투수 : [[장명부|후쿠시 아키오]](히로시마, 1승)
* 패전투수 : 이모토 타카시(킨테츠, 1승 1패)
킨테츠는 1차전 승리 투수인 이모토를, 히로시마는 [[장명부|후쿠시 아키오]]를 선발 투수로 등판 시켰다. 3회초 [[찰리 매뉴얼]]이 후쿠시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날리며 킨테츠가 선제점을 뽑았지만, 4회말 무사 1, 3루 상황에서 [[야마모토 코지]]의 얕은 외야 플라이를 잡은 우익수 매뉴얼의 홈 송구가 빗나가며 1점을 허용하고 그 사이에 1루 주자가 2루로 진루한 것에 이어 후속 타자 미즈타니 지츠오가 자신의 시리즈 두번째 홈런을 뽑으며 히로시마는 3대 2 역전. 그리고 7회말에 타카하시 요시히코의 쐐기 투런 홈런이 터지며 9회초 아리타 슈조의 솔로포로 1점을 만회한 킨테츠를 5대 3으로 누르고 드디어 시리즈 전적은 2승 2패 동률이 되었다.
이날 히로시마의 선발 [[장명부|후쿠시]]는 완투승으로 마운드에서 큰 공을 세웠다.
=== 5차전 : 11월 1일, [[히로시마 시민 구장]] ===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 '''[[킨테츠 버팔로즈|킨테츠]]'''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 '''[[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 0 || 0 || 0 || 0 || 0 || 1 || 0 || 0 || X || '''1''' ||
* 승리투수 : 야마네 카즈오(히로시마, 1승 1패)
* 패전투수 : [[스즈키 케이시]](킨테츠, 1승 1패)
2차전에 선발로 맞대결 했던 스즈키와 야마네가 재격돌했다. 2차전과 같이 투수전으로 일관하던 이날의 승부는 6회말에 명암이 갈렸다. 선두 타자인 투수 야마네가 중전 안타로 출루하며 만들어진 2사 2루의 찬스에서 [[미무라 토시유키]]가 우측 담장 쪽으로 큼지막한 타구를 날렸고, 우익수 [[찰리 매뉴얼]]이 열심히 쫓아가 보았지만 타구는 우월 2루타가 되면서 2루 주자 야마네가 홈을 밟은 것이 그날의 결승점이 되었다.
결승 득점을 올린 야마네는 마운드에서도 킨테츠 타선을 2안타로 틀어막으며 완봉승, 2차전의 패배를 톡톡히 앙갚음 했다. 그리고 3연승을 올린 히로시마는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 6차전 : 11월 3일, [[오사카 구장]] ===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 '''[[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 1 || 0 || 0 || 0 || 0 || 0 || 0 || 0 || 1 || '''2''' ||
|| '''[[킨테츠 버팔로즈|킨테츠]]''' || 0 || 1 || 3 || 1 || 0 || 1 || 0 || 0 || X || '''6''' ||
* 승리투수 : 이모토 타카시(킨테츠, 2승 1패)
* 패전투수 : 이케가야 코지로(히로시마, 1승 1패)
2승을 먼저 따놓고 3연패를 당한 채 홈구장으로 돌아온 킨테츠, 그리고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으로서는 절대로 질 수 없는 6차전 이었다. 4차전에 등판했다가 KO당한 이모토가 이틀만에 선발 등판을 자청했고, 히로시마는 3차전 승리투수인 이케가야를 내보냈다.
킨테츠 선발 이모토가 1회초 [[미무라 토시유키]] 에게 우월 솔로포를 허용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으나, 2회말 1사 1, 3루 상황에서 히라노 미츠야스가 1루 땅볼로 동점을 만들고 3회말 [[찰리 매뉴얼]]의 적시타와 [[나시다 마사타카]]의 투런포를 묶어 3득점, 4회말 히라노의 1타점 [[희생플라이]]로 5대 1, 전세를 뒤집었다. 6회말에도 킨테츠는 히라노의 스퀴즈 번트로 1점을 추가하여 6대 1로 달아났으며 9회초 히로시마는 [[야마모토 코지]]의 홈런으로 1점을 뽑았지만 승부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이모토가 완투승을 거둔 킨테츠가 6차전을 6대 2로 가져가면서 전적은 3승 3패, 이제 1979년 일본시리즈 패권의 향방은 7차전 결과로 갈리게 되었다.
== 운명의 일본시리즈 7차전 : 11월 4일, [[오사카 구장]] ==
다음 날 [[오사카]] 구장에서 열린 일본시리즈 7차전. 5차전에서 맞붙었던 킨테츠의 [[스즈키 케이시]]와 히로시마의 야마네 카즈오 모두 이틀만 쉬고 선발로 마운드에 올랐다. 이번 시리즈 들어 세번째 맞대결 이었다.
=== 1회초~9회초 ===
1회초 선두 타자인 타카하시 요시히코의 우전 안타성 타구를 우익수 [[찰리 매뉴얼]]이 뒤로 빠뜨리는 바람에 무사 3루의 위기를 자초했고, 오랫만에 스타팅 멤버로 복귀한 [[기누가사 사치오]]의 적시타로 선취 1득점을 뽑았다. 3회초 미즈타니 지츠오의 적시타로 1점을 추가하여 히로시마가 2대 0 리드를 잡았으나 5회말 히로시마 선발 야마네가 21타석 연속 무안타의 부진에 시달리던 킨테츠의 히라노 미츠야스 에게 불의의 좌월 투런포를 두들겨 맞고 2대 2 동점을 허용했다. 그러나 이어진 히로시마의 6회초 공격에서 2사 후 하기와라 야스히로가 안타로 출루한 후 미즈누마 시로가 다시 전세를 뒤집는 좌월 2점 [[홈런]]을 뽑아내며 4대 2로 다시 앞서나갔다. 킨테츠는 6회말에 1사 2, 3루의 기회를 잡았지만 하타 코이치가 3루 땅볼에 그치며 1점을 얻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4대 3으로 앞서고 있던 히로시마의 [[고바 타케시]] 감독은 승리를 굳히고자 6회말 부터 등판하여 1실점 한 [[장명부|후쿠시 아키오]] 대신 [[마무리 투수]]인 '''[[에나츠 유타카]]'''를 마운드에 올리는 초 강수를 두었다. 에나츠는 7, 8회 킨테츠의 공격을 잘 막아내었지만...
=== 9회말, '''에나츠의 21구''' ===
킨테츠의 9회말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 마운드에 오른 에나츠는 선두타자 하타 코이치에게 초구부터 중전 안타를 얻어맞으며 조금씩 불안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급기야 후속타자 크리스 아놀드 타석 때 대주자인 후지세 시로[* 주로 [[대주자]]로만 출장했지만 통산 105[[도루]]를 기록, 2014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스즈키 타카히로'''가 갱신하기 전까지 대주자 전문 선수 통산 최다 도루 기록 보유자였다. [[일본프로야구]] 판 [[강명구]]라 해도 무리는 없을 듯... 1984년 은퇴 후 1995년 까지 킨테츠의 주루 코치로 재임했으며, 1996년엔 프런트로 전업하여 구단 관리부장 까지 올라갔지만 2004년 시즌을 끝으로 킨테츠가 [[오릭스 버팔로즈]]로 흡수통합 되자 사표를 제출했다. 현재는 모교인 오사카 체육대학 산하 나미쇼 학원의 운동부 강화 센터장으로 재직 중.]가 2루 도루[* 니시모토 감독이 생전에 회고한 바에 따르면 '''히트앤드런''' 사인을 냈는데 에나츠의 피칭이 볼이 되고, 아놀드가 스윙하지 않는 바람에 단독 도루의 모양새가 나왔다고 한다.]를 시도하자 포수인 미즈누마 시로가 2루에 송구한다는 것이 유격수 앞에서 원바운드 되며 중견수 쪽으로 빠지는 사이에[* 아래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송구가 유격수 글러브에 제대로 들어갔다면 아웃 타이밍 이었다.] 후지세가 3루까지 질주하면서 무사 3루라는 위기가 찾아왔다. 어쩔수 없이 에나츠는 아놀드를 볼넷으로 거르며 무사 1, 3루.
8번 타자 히라노 미츠야스 타석 때 아놀드를 대신하여 1루 대주자로 나온 후키이시 토쿠이치가 2루 도루에 성공, 무사 2, 3루로 위기는 더 커졌고 고바 감독이 [[덕아웃]]에서 투수를 교체하려는 낌새를 보이자 에나츠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를 눈치 챈 1루수 [[기누가사 사치오]]는 마운드로 올라가서 에나츠를 다독였다.
>네 기분은 나도 잘 안다.
>네가 강판당한다면 나도 더 이상 안 뛰고 그라운드에서 나올거야.
>그런데 이 상황을 너 말고 누가 정리하겠냐?
>아무 생각 말고 타자한테만 집중해. 힘내라!
흔들리던 에나츠는 친구의 격려에 안정을 찾았고, 고바 감독도 투수 교체를 철회하면서 에나츠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었다.
마음을 가다듬은 에나츠는 히라노까지 고의 사구를 내주며 무사 만루라는 [[배수진]]을 쳤고, [[콩라인]] 탈출 일보 직전에서 마음이 달아오른 킨테츠의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은 강타자 '''사사키 쿄스케'''[* 1978년 시즌 타격왕. 은퇴 후에 1996~1999년 [[킨테츠 버팔로즈]]의 감독으로 재임했고, [[주니치 드래곤즈]] 1군 수석 겸 타격 코치이던 2003년 시즌 도중 [[야마다 히사시]]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퇴진하자 감독 권한대행으로 잔여 시즌을 지휘하여 정규시즌 순위를 5위에서 2위로 올려놓는 수완을 발휘했지만, 이듬해 [[오치아이 히로미츠]]가 감독으로 취임하며 주니치에서 퇴단했다.]를 대타로 냈지만 에나츠는 사사키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여기서 킨테츠로서는 통한의 장면이 나왔는데, 카운트 1-1에서 에나츠가 던진 14번째 투구를 사사키가 잡아당겨 3루수 [[미무라 토시유키]]의 글러브를 스치며 외야 파울지역으로 날아가는 2루타성 타구를 만들었으나, 3루심이 타구가 미무라의 글러브를 스치지 않았다며 파울로 판정하면서 끝내기 안타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그럼에도 여전히 1사 만루의 중대한 핀치였고, 오사카의 킨테츠 팬들은 끝내기 안타를 기대하며 한창 들끓고 있었다.
후속타자는 1번 이시와타 시게루. 에나츠는 몸쪽 커브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았고, 2구를 던지려는 순간 '''3루 주자 후지세가 스타트를 끊고 이시와타는 스퀴즈 번트 자세로 돌아서자 에나츠는 순간 당황하였지만 바로 자세를 가다듬고 침착하게 공을 멀찌감치 피치아웃 시켰다. 벌떡 일어서서 포구한 포수 미즈누마는 거의 홈까지 와있던 후지세를 태그아웃 시키며 상황은 2사 2, 3루로 급변.'''[*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점은 [[니시모토 유키오]]가 [[다이마이 오리온즈]] 감독 시절 처음으로 진출한 1960년 일본시리즈에서 [[다이요 훼일즈]]에게 밀려 준우승에 그친 가장 큰 원인이 2차전 때 스퀴즈 번트 실패였다는 것이다. 즉 니시모토는 스퀴즈 번트 무산으로 두 번이나 [[콩라인]] 탈출의 기회를 날려버린 셈...]
[[파일:external/blogimg.goo.ne.jp/7d1365e7f8bc8c6db54c0b8c4ed05563.jpg]]
스퀴즈 번트를 시도하는 이시와타 시게루.
[[파일:external/blog-imgs-48-origin.fc2.com/197901.jpg]]
스퀴즈 번트 실패로 미즈누마 시로에게 아웃당하고 만 후지세 시로. ~~[[잡았다 요놈]]~~
그래도 여전히 끝내기 찬스였지만 에나츠는 이시와타에게 몸쪽 떨어지는 커브를 던져 헛스윙 삼진으로 낚으며 한편의 드라마 같던 승부에 종지부를 찍고 미즈누마와 뜨거운 감격의 [[포옹]]을 나누었다. 히로시마의 창단 첫 일본시리즈 제패의 순간이었다.[* 1979년 일본시리즈는 히로시마나 킨테츠 모두 사상 첫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더구나 킨테츠의 감독 [[니시모토 유키오]]는 리그 우승 경력은 화려했지만 정작 시리즈에선 준우승만 6번을 기록하고 있었던 바 누구보다도 7차전의 승리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결국 에나츠의 벽을 넘지 못한 니시모토는 이듬해에도 시리즈 준우승에 그치며 [[콩라인]] 탈출에 실패한 채 현장을 떠났다(...).]
[[파일:external/smtgvs.weathernews.jp/06_01_pc.jpg]]
7차전 종료 후 팀의 우승이 결정되면서 환호하는 [[투수]] [[에나츠 유타카]]와 [[포수]] 미즈누마 시로. 그리고 [[삼진(야구)|삼진]]으로 팀의 패배를 결정짓고 만 킨테츠의 마지막 타자 이시와타 시게루.
[youtube(9aYP5NXjMuQ?)]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보자.
9회말에 에나츠가 던진 공의 개수는 21개였고, 그래서 이날의 명승부가 '''"에나츠의 21구"'''로 명명된 것이다.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 '''[[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 1 || 0 || 1 || 0 || 0 || 2 || 0 || 0 || 0 || '''4''' ||
|| '''[[킨테츠 버팔로즈|킨테츠]]''' || 0 || 0 || 0 || 0 || 2 || 1 || 0 || 0 || 0 || '''3''' ||
* 승리투수 : 야마네 카즈오(히로시마, 2승 1패)
* 패전투수 : 야나기다 유타카(킨테츠, 2패)
* 세이브 : [[에나츠 유타카]](히로시마, 2세이브)
이 해 일본시리즈 최우수선수상([[MVP]])는 시리즈 7경기에서 전부 안타를 치며 타율 0.444를 기록한 히로시마의 [[유격수]] '''타카하시 요시히코'''가 차지하였다.
== 타이틀 시상 ==
* 최우수선수상([[MVP]]) : 타카하시 요시히코([[히로시마 도요 카프]])
* 감투상 : 이모토 타카시([[킨테츠 버팔로즈]])
* 최우수투수상 : 야마네 카즈오([[히로시마 도요 카프]])
* 기능상 : [[미무라 토시유키]]([[히로시마 도요 카프]])
* 우수선수상 : 미즈타니 지츠오([[히로시마 도요 카프]])
여담으로, 이듬해 일본시리즈부터 최우수투수상, 기능상, 우수선수상은 전부 우수선수상으로 일체화되었다.
== 여담 ==
* 이 시리즈 당시 오사카에서 열린 킨테츠의 홈경기는 킨테츠의 메인 홈구장인 [[후지이데라 구장]]이 아니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난카이 호크스]]의 홈구장인 '''[[오사카 구장]]'''에서 개최되었다. 그 이유는 후지이데라 구장이 오사카 교외인 후지이데라 시의 [[리글리 필드|주택가 한가운데에 위치한 입지조건 때문에 야간경기를 할 경우 소음과 조명으로 인한 광공해로 생활에 지장을 받는다는 주변 주민들의 항의 때문에 조명탑을 설치할 수가 없어서 야간경기 개최가 불가했기 때문이었다.]][* 리글리 필드보다 더 안습인 건 리글리 필드는 주변 주민들의 항의를 핑계삼아 평일에도 낮경기를 하면서 조명탑 설치비용을 아끼는 꼼수를 부렸지만 후지이데라 구장은 돈들여서 조명탑까지 건설해놓고도 정작 주변 주민들의 항의로 조명시설을 설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정규시즌 때 후지이데라 구장은 주말이나 휴일 낮 경기만 개최하고 야간 경기는 [[오사카]] [[모리노미야]]에 있는 [[일본생명구장]][*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생명보험]] 건설-소유의 야구장으로, 산하에 있던 [[사회인야구]]팀의 홈구장이었다. ~~프로팀이 자기네 홈구장을 쓸 수가 없어서 사회인 야구팀 홈구장을 빌려썼다는 얘기다. 안습~~ 킨테츠가 1984년 다시 [[후지이데라 구장]]을 본격적으로 홈구장으로 쓰게 된 이후엔 제2홈구장으로 사용되다가 1996년을 끝으로 프로야구 경기 개최를 중단. 이후 1997년을 끝으로 철거했다. 여담으로 근처에 [[모리노미야역]]이 있었으며, 1996년 5월 9일 이 구장에서 마지막으로 열린 프로야구 경기인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VS [[킨테츠 버팔로즈]] 戰은 다이에가 2-3으로 역전패하면서 경기 종료 후 당시 다이에가 이날 경기까지 포함해 9승 22패로 3할이나 겨우 넘나드는 단독 최하위라는 것과 이날 패전으로 4연패에 빠진것에 빡친 [[오사카]]의 다이에 팬들이(당연히 [[오사카]]에 있었던 전신 [[난카이 호크스]] 팬들도 포함) 경기 종료 후 다이에 선수단 버스를 둘러싸고 날[[계란]]을 던지며 격하게 항의한 '''날달걀 사건(生卵事件)'''으로 유명하다.(...)]을 써야만 했다. 게다가 [[일본생명구장]]의 수용관중 수가 2만여명 밖에 안 되는 바람에 일본시리즈 개최요건(수용능력이 최소 3만명 이상)을 충족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본시리즈]]에서 열리는 홈경기를 [[난카이 호크스|남의 팀]] [[오사카 구장|홈구장]]에서 열 수 밖에 없었다. [[후지이데라 구장]]에서 [[일본시리즈]]를 개최된 것은 [[1989년 일본시리즈]] 단 한 차례 이며 그 때는 [[일본시리즈]]가 전 경기 낮경기[* 심지어 평일 경기마저 낮경기로 치뤘다. 일본시리즈가 다시 야간경기로 환원된 것은 [[1994년 일본시리즈]]에 들어와서였다.]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제서야 비로소 킨테츠는 자기 홈구장에서 [[일본시리즈]]를 개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일본시리즈에서 킨테츠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리버스 스윕|3연승 후 4연패로 역관광(...)]]이라는 안습의 기록을 세우며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특히 일본시리즈 패전이 확정된 최종 7차전이 열린 곳이 바로 홈구장인 [[후지이데라 구장]]이었다. 결국 [[킨테츠 버팔로즈]]는 경영 악화로 2004년, 단 1번도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루지 못하고 [[오릭스 블루웨이브]]에게 합병당했다.
참고로 위와 같은 문제로 [[올스타전]]도 개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홈구장으로 사용하게 된 1985년이 되어서야 겨우 첫 [[올스타전]]을 열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1989년 딱 1번 열린 후론 역시나 개최를 안했다.(...)
* 이날의 명승부를 본따서 [[마무리 투수]]들의 활약상에 따라 '''"OO의 OO구"'''로 자주 [[패러디]] 되곤 한다. 그 중에서 특히 유명한 것은 2009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라쿠텐 이글스]]의 클로저이던 '''후쿠모리 카즈오'''의 이른바 '''후쿠모리의 21구'''와 2011년 일본시리즈 4차전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모리후쿠 마사히코]]'''가 기록한 '''모리후쿠의 11구'''. 그리고 이 둘의 활약은 '''이름의 순서만큼이나 극단적으로 대조'''를 이루었다.
* 창단 후 최초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하여 스테이지 1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꺾고 스테이지 2에 진출,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던 라쿠텐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를 맞이한 1차전 에서 9회초 까지 8-4로 리드하고 있었다. 그러나 9회말에 마무리로 등판한 후쿠모리가 정확히 '''21번째 투구'''만에 터멜 슬레지에게 극적인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을 두들겨 맞고 8-9로 대역전패(...). 결국 라쿠텐은 1차전의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일본시리즈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경기의 중요성과 드라마틱 함 등등의 요소가 위의 에나츠의 사례 못지 않은데 결과는 완전 정반대 였다는 점, 그리고 하필이면 투구수가 21개로 딱 맞아 떨어지는 바람에 후쿠모리의 이 [[블론세이브]]는 '''불쇼'''의 대명사로서 또다른 의미로 전설이 되고 말았다(...).
* 그와는 대조적으로 모리후쿠의 케이스는, 시리즈의 흐름을 바꿔서 팀의 우승에 공헌한 경우이다.
2011년 일본시리즈에서 [[주니치 드래곤즈]]와 맞붙은 소프트뱅크는 홈인 후쿠오카 돔에서 벌어진 1, 2차전을 연장 접전 끝에 클로저 마하라 타카히로의 이틀 연속 [[블론세이브|불쇼]]로 내리 내주고 말았다. 최악의 상황에서 [[나고야]] 원정에 나선 호크스는 3차전을 승리하고 4차전에서도 2대 1의 박빙의 리드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선발투수인 [[D.J. 홀튼]]이 6회말에 안타-2루타-볼넷으로 무사 만루를 만들어 놓고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안타 한방이면 역전, 타자를 병살타로 잡아도 운이 없으면 최소 동점인 절체 절명의 상황. 소뱅 팬들이 최소 동점이라고 거의 체념하고 있던 상황에 등판한 모리후쿠는 단 11구만으로 타자 3명을 처리하고 무사 만루의 위기를 탈출했다.
투구 내용은
- 6번 코이케: 4구만에 헛스윙 삼진
- 7번 히라타: 2구만에 짧은 좌익수 플라이 (너무 짧아서 3루주자가 홈으로 들어오지 못함)
- 8번 [[타니시게 모토노부|타니시게]]: 5구만에 유격수 땅볼로 1루주자 포스아웃
덤으로 모리후쿠의 11구도 감상해보자.
[youtube(yBwXUYl7r_U)]
만약 이 경기를 내줬으면 소프트뱅크는 1승 3패의 위기에 몰릴 상황이었으나 모리후쿠의 신들린 듯한 투구로 위기를 모면하고 4차전을 가져오면서 시리즈를 2승2패로 끌고 갔다. 결국 원정 3연전을 모두 쓸어담은 소프트뱅크는 홈에서 벌어진 6차전을 다시 주니치에게 내줬지만, 최종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8년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7차전 9회말 마지막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극적인 요소는 에나츠의 21구 보다 덜할 수도 있지만, 게임 당시의 긴장감과 시리즈의 향방을 좌우하는 키플레이라는 점에서 모리후쿠의 11구는 야구 팬들과 평론가들의 갈채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명승부였다. [[2011 아시아 시리즈|그렇게 가을의 저주를 겨우 풀었건만....]]
* 실제 경기와는 상관없지만 만화 [[그라제니]]에서도 주인공 본다 나츠노스케의 XX구 식으로 패러디된다.주인공이 불펜투수[* 중반 이후 셋업맨으로 정착]다 보니 가능한 일로 만화 내에서도 본다가 등판해서 불을 끄거나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내려가면 그걸 본다의 XX구로 부르는 식.
* 카프가 구단 첫 우승했던 이해에 미국의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구단의 5번째이자 현재까지 구단의 마지막 월드 시리즈를 달성했다.
* [[장명부|4차전에서의 히로시마의 선발 투수]]는 훗날 한국의 [[삼미 슈퍼스타즈|모 구단]]으로 가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여담으로 에나츠의 21구때도 불펜으로 등판했다. 그것도 에나츠는 장명부 후속으로 등판. |
1979년 코리안시리즈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5><:> '''역대 [[한국실업야구]] [[코리안시리즈(실업야구)|코리안시리즈]]''' ||
||<width=30%><:> [[1978년 코리안시리즈|1978 코리안시리즈]][BR][[상무 야구단|육군 경리단]] ||<:> {{{+1 ←}}} ||<:><width=30%> '''1979 코리안 시리즈''' [br] '''[[롯데 자이언트]]''' ||<:> {{{+1 →}}} ||<:><width=30%> [[1980년 코리안시리즈|1980 코리안시리즈]][BR][[상무 야구단|육군 경리단]] ||
[목차]
== 소개 ==
1979년 실업야구 연맹이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대한야구협회]] 산하로 편입되며 실업야구리그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대한야구협회]] 주관으로 변경된후 가진 첫번째 코리안 시리즈. 타이거즈 리그와 라이온스 리그, 양대리그제가 도입된 마지막 시즌의 코리안시리즈이다.
== 대진표 ==
|| [[파일:attachment/1979koreanseries001.png]] ||
|| 팀명 || 리그 성적 ||
|| [[상무 야구단|육군 경리단]] || 1차리그 우승 ||
|| 성무 야구단 || 2차리그, 3차리그 우승 ||
|| 상업은행 야구단 || 4차리그 우승 ||
|| [[한국전력공사 야구단]] || 춘계리그 우승 ||
|| [[롯데 자이언트]] || 1차리그 준우승 ||
|| [[농협 야구단]] || 2차리그 준우승 ||
|| [[포스틸 야구단|포항제철 야구단]] || 3차리그, 4차리그 준우승 ||
=== 8강 조별 예선 ===
==== 상은 VS 경리단 ====
||||||||||||||||||||||||||<#dcdcdc> 1979년 9월 18일 [[동대문야구장|서울 운동장]] ||
||<#dcdcdc> 팀 ||<#dcdcdc> 1회 ||<#dcdcdc> 2회 ||<#dcdcdc> 3회 ||<#dcdcdc> 4회 ||<#dcdcdc> 5회 ||<#dcdcdc> 6회 ||<#dcdcdc> 7회 ||<#dcdcdc> 8회 ||<#dcdcdc> 9회 ||<#dcdcdc> R ||<#dcdcdc> H ||<#dcdcdc> E ||
|| 육군 ||<#FFD700> 1 || 0 || 0 || 0 || 0 || 0 || 0 || 0 || 0 || '''1''' || 0 || 0 ||
|| '''상업은행''' || 0 || 0 || 0 || 0 ||<#FFD700> 2 ||<#FFD700> 1 || 0 || 0 || 0 || '''3''' || 0 || 0 ||
상업은행 야구단의 선발투수 [[하기룡]]이 1회에 1실점을 기록하긴 했지만, 경리단의 불꽃타선을 단 5안타로 막아내면서 무난히 승리를 가져갔다. 4번타자 김준환은 홈런을 치며 팀 승리에 일조했다.
==== 농협 VS 롯데 ====
||||||||||||||||||||||||||<#dcdcdc> 1979년 9월 18일 [[동대문야구장|서울 운동장]] ||
||<#dcdcdc> 팀 ||<#dcdcdc> 1회 ||<#dcdcdc> 2회 ||<#dcdcdc> 3회 ||<#dcdcdc> 4회 ||<#dcdcdc> 5회 ||<#dcdcdc> 6회 ||<#dcdcdc> 7회 ||<#dcdcdc> 8회 ||<#dcdcdc> 9회 ||<#dcdcdc> R ||<#dcdcdc> H ||<#dcdcdc> E ||
|| '''롯데''' || 0 ||<#FFD700> 1 ||<#FFD700> 2 ||<#FFD700> 1 || 0 || 0 || 0 || 0 || 0 || '''4''' || 0 || 0 ||
|| 농협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이선희(야구)|이선희]]가 완투한 [[농협 야구단]]을 2,3,4회에 7안타를 몰아치며 4득점에 성공한 롯데 자이언트가 꺾었다. 승리한 롯데는 4강전에서 성무와 맞대결을 펼치게 된다.
==== 포철 VS 한전 ====
||||||||||||||||||||||||||<#dcdcdc> 1979년 9월 18일 [[동대문야구장|서울 운동장]] ||
||<#dcdcdc> 팀 ||<#dcdcdc> 1회 ||<#dcdcdc> 2회 ||<#dcdcdc> 3회 ||<#dcdcdc> 4회 ||<#dcdcdc> 5회 ||<#dcdcdc> 6회 ||<#dcdcdc> 7회 ||<#dcdcdc> 8회 ||<#dcdcdc> 9회 ||<#dcdcdc> R ||<#dcdcdc> H ||<#dcdcdc> E ||
|| 한전 || 0 || 0 || 0 || 0 ||<#FFD700> 1 || 0 ||<#FFD700> 2 || 0 || 0 || '''3''' || 0 || 0 ||
|| '''포철''' ||<#FFD700> 3 ||<#FFD700> 2 || 0 || 0 || 0 || 0 ||<#FFD700> 1 || 0 || X || '''6''' || 0 || 0 ||
1회말, 1,3루 찬스에서 [[이광은]], [[윤동균]], [[김용희]] 클린업 트리오가 맹폭을 해 3점을 뽑아냈고 2회말에 함학수, [[장효조]]의 연이은 안타이후 2점을 기록해 5:0으로 크게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한전도 5회초에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한 [[김용달]]을 김중근이 2루타로 불러들이며 1점을, 7회초에 김중근의 투런으로 2점을 더 추가했으나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포스틸 야구단|포항제철 야구단]]이 [[한국전력공사 야구단]]을 6:3으로 꺾고 상위라운드로 진출, 4강전에서 [[상업은행 야구단]]과 패권을 가리게 되었다.
=== 4강전 ===
==== 성무 VS 롯데 ====
||||||||||||||||||||||||||<#dcdcdc> 1979년 9월 19일 [[동대문야구장|서울 운동장]] ||
||<#dcdcdc> 팀 ||<#dcdcdc> 1회 ||<#dcdcdc> 2회 ||<#dcdcdc> 3회 ||<#dcdcdc> 4회 ||<#dcdcdc> 5회 ||<#dcdcdc> 6회 ||<#dcdcdc> 7회 ||<#dcdcdc> 8회 ||<#dcdcdc> 9회 ||<#dcdcdc> R ||<#dcdcdc> H ||<#dcdcdc> E ||
|| 성무 || 0 || 0 || 0 || 0 || 0 ||<#FFD700> 1 || 0 || 0 || 0 || '''1''' || 0 || 0 ||
|| '''롯데''' || 0 || 0 || 0 || 0 || 0 || 0 || 0 ||<#FFD700> 1 ||<#FFD700> 1X || '''2''' || 0 || 0 ||
* 롯데 자이언트 : 2승
성무와의 경기에서 9회말 만루찬스에서 김성호의 절묘한 번트로 결승점을 올리며 성무를 2:1로 꺾고 결승전에서 상업은행을 꺾은 포항제철과 겨루게 되었다.
6회초, [[김재박]]의 적시타로 1:0으로 성무가 앞서 나갔다. 하지만 8회말, 볼넷으로 나간 8번타자 김성호가 폭투를 틈타 2루까지 진출, 이어 실책을 틈타서 홈을 밟아 1:1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9회말 4번타자 김한근의 우전안타에 이어 희생타 2개로 2사 3루 상황에서 김성호의 번트로 홈인, 2:1 승리를 만들어 냈다.
==== 상은 VS 포철 ====
||||||||||||||||||||||||||<#dcdcdc> 1979년 9월 19일 [[동대문야구장|서울 운동장]] ||
||<#dcdcdc> 팀 ||<#dcdcdc> 1회 ||<#dcdcdc> 2회 ||<#dcdcdc> 3회 ||<#dcdcdc> 4회 ||<#dcdcdc> 5회 ||<#dcdcdc> 6회 ||<#dcdcdc> 7회 ||<#dcdcdc> 8회 ||<#dcdcdc> 9회 ||<#dcdcdc> R ||<#dcdcdc> H ||<#dcdcdc> E ||
|| '''포철''' || 0 || 0 || 0 || 0 || 0 ||<#FFD700> 2 || 0 || 0 ||<#FFD700> 2 || '''4''' || 0 || 0 ||
|| 상은 ||<#FFD700> 1 || 0 || 0 ||<#FFD700> 1 || 0 || 0 || 0 || 0 ||<#FFD700> 1X || '''2''' || 0 || 0 ||
초반 선취점을 내주며 힘들게 시작한 포철은 4회 말에 또다시 1점을 내주며 2:0으로 끌려다니기 시작했다. 특히나 선발투수들의 부진과 중요한 찬스마다 침묵하는 타선이 문제였는데 그러던 6회초에 2개의 안타와 볼넷 1개를 추가해 2점을 내며 따라 붙었고 9회초 3번타자 [[이광은]]이 안타로 출루한후 [[윤동균]], [[김용희]]가 안타와 볼넷으로 출루한후 무사 만루 상황에서 대타로 신현석이 타석에 들어서 내야 땅볼로 1타점을 기록해 역전에 성공했고 뒤이어 1점을 더 추가하며 4:2 승리를 거두며 코리안시리즈 결승전에 진출했다.
=== 결승전 ===
||||||||||||||||||||||||||||||<#dcdcdc> 1979년 9월 20일 [[동대문야구장|서울 운동장]] ||
||<#dcdcdc> 팀 ||<#dcdcdc> 1회 ||<#dcdcdc> 2회 ||<#dcdcdc> 3회 ||<#dcdcdc> 4회 ||<#dcdcdc> 5회 ||<#dcdcdc> 6회 ||<#dcdcdc> 7회 ||<#dcdcdc> 8회 ||<#dcdcdc> 9회 ||<#dcdcdc> 10회 ||<#dcdcdc> 11회 ||<#dcdcdc> R ||<#dcdcdc> H ||<#dcdcdc> E ||
|| 포철 || 0 || 0 || 0 || 0 ||<#FFD700> 2 ||<#FFD700> 2 || 0 ||<#FFD700> 1 ||<#FFD700> 1 || 0 || 0 || '''6''' || 0 || 0 ||
|| '''롯데''' || 0 || 0 ||<#FFD700> 2 || 0 || 0 || 0 || 0 || 0 ||<#FFD700> 4 || 0 ||<#FFD700> 2X ||'''8''' || 0 || 0 ||
롯데가 1976년 창단이후 3년만에 실업야구 정상에 등극했다.
포항제철의 강력한 타선은 5,6회에 2점씩 뽑아내며 4:2로 앞서나갔고 8회와 9회에 각각 1점씩을 보태 승리에 쐐기를 박는듯 했다. 반면 롯데는 포항제철 선발투수 박상열에게 8회까지 2득점만 얻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tablealign=center> [[파일:1979코리안시리즈.png|width=350]] ||
9회말, 롯데 공격 6번타자 조용선이 좌측펜스를 넘기는 솔로홈런을 만들어냈을때도 포철의 패배를 예상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 홈런이 경기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어 등장한 7번타자 김성호가 범타로 물러난뒤 8번타자 박순철, 9번타자 장정호, 1번타자 김형운이 연거푸 안타를 뽑아냈고 이어 포항제철의 실책까지 곁들여 한점을 추가해 6:2에서 6:4로 따라잡기 시작했다.
포항제철의 구원투수 천창호가 올라왔지만 경기흐름을 뒤바뀌기엔 너무 늦었다.
이어 롯데 2번타자 이광렬이 1루수쪽 땅볼을 쳤으나 포항제철의 1루수 [[김용희]]가 병살을 노리고 2루로 공을 던졌으나 이것이 악송구가되 공이 뒤로 빠졌고 이틈을타 또다시 1점을 얻어냈다. 1사 1,3루의 상황에서 3번타자 [[이해창(1953)|이해창]]이 3루수앞 땅볼을 쳤으나 포항제철 3루수 유상호가 홈송구를 잘못해 악송구가 나와 롯데의 3루수가 홈을 밟아 6:6 동점이 되었다.
||<tablealign=center> [[파일:1979코리안시리즈2.png|width=350]] ||
11회말까지 동점이었던 상황에서 1사 1루, 롯데 이해창이 볼카운트 1S - 2B에서 친 타구가 펜스까지 날아가 포항제철 중견수 윤동균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갔으나 윤동균이 잡질 못해 [[김주찬|글러브에서 빠져나가 담장 너머로 떨어졌다.]] 이것이 홈런으로 인정되어 굿바이 투런이 되어버렸다.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 [include(틀:역대 동계올림픽)]
||<tablealign=center><:><width=30%> 12회 ||<:> {{{+1 → }}} ||<:><width=30%> 13회 ||<:> {{{+1 → }}} ||<:><width=30%> 14회 ||
||<:>[[1976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 ||<:> {{{+1 → }}} ||<:><#DCDCDC>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1 → }}} ||<:>[[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tablealign=right> '''1980 Winter Olympics[br]XIII Olympic Winter Games''' ||
|||| [[파일:attachment/LakePlacid1980.jpg|width=200]] ||
|| 대회기간 || [[1980년]] [[2월 13일]] ~ [[1980년]] [[2월 24일]] ||
|| 개최국가/도시 || [[미국]] / [[레이크플래시드]] ||
|| 마스코트 || 로니 ||
|| 참가국 || 37개국 ||
|| 참가선수 || 1,072명[br](남자: 840명, 여자: 232명) ||
|| 경기종목 || 6개 종목, 38개 세부 종목 ||
|| 개회 선언자 || [[월터 먼데일]][br],,[[미국 부통령]],, ||
|| 선수 선서 || [[에릭 하이든]] ||
|| 심판 선서 || 테리 맥더모트 ||
|| 성화 점화 || 찰스 구기노 ||
|| 개·폐회식장 || 레이크플래시드 승마 스타디움 ||
[목차]
== 소개 ==
[[1980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에서 개최된 동계 [[올림픽]]. 레이크플래시드는 1932년 이후 48년만에 다시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였다.
개회식은 [[미국]]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대통령]] 시절의 [[미국 부통령|부통령]]인 [[월터 먼데일]]이 하였다.
마스코트 Roni and Ronny
== 유치 ==
[[레이크플래시드]] 단수 후보였다.
== 메달 ==
||<-6> 1980년 올림픽 메달 순위 ||
|| 순위 || 국가 || 금 || 은 || 동 || 합계 ||
|| 1 || [[소련]] || 10 || 6 || 6 || 22 ||
|| 2 || [[동독]] || 9 || 7 || 7 || 23 ||
|| 3 || [[미국]] || 6 || 4 || 2 || 12 ||
|| 4 || [[오스트리아]] || 3 || 2 || 2 || 7 ||
|| 5 || [[스웨덴]] || 3 || 0 || 1 || 4 ||
|| 6 || '''[[리히텐슈타인]]''' || 2 || 2 || 0 || 4 ||
|| 7 || [[핀란드]] || 1 || 5 || 3 || 9 ||
|| 8 || [[노르웨이]] || 1 || 3 || 6 || 10 ||
|| 9 || [[네덜란드]] || 1 || 2 || 1 || 4 ||
|| 10 || [[스위스]] || 1 || 1 || 3 || 5 ||
==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s-4.9|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성적]] ==
■ 1980 13회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1980 Winter LakePlacid Olympics)
* 기간 : 2월13일~2월24일
* 규모 : 37개국
* 종목 : 38개
* 참가선수 : 1,072명
* 개막일 : [[1980년]] [[2월 13일]]
* 폐막일 : [[1980년]] [[2월 24일]]
[[파일:대한민국동계올림픽성적19.png]]
== 기타 ==
* 대회 개최 몇 개월 전에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다. 이로 인하여 논란이 있었지만,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은 참가하였고, 동구권의 보이콧 사태는 없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1980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을 결정한 것은 후의 일이다.
* 중국이 China라는 이름으로 IOC의 승인을 받아 처음으로 동계 올림픽에 출전했다. 중국의 압력으로 [[대만]]은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의 이름과 국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이후에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로 IOC의 승인을 받아 올림픽에 참가하게 된다. 대만은 이 결정에 불복하여 정식 국호와 국기로 올림픽에 참가하려고 하였지만 자기들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자 불참을 결정하고 미국까지 간 선수들이 그냥 되돌아왔다.
* [[미국]]의 [[에릭 하이든]]은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에 걸린 [[전관왕|5개의 금메달을 싹쓸이]]. 동계올림픽 사상 최초의 5관왕이자 동계, 하계 통틀어 단체전을 제외한 사상 최초 개인종목 5관왕에 등극했다.[* 하계 올림픽에서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비탈리 셰르보(체조, [[벨라루스]](단 대회 출전은 독립 국가 연합)), [[2008 베이징 올림픽]] [[마이클 펠프스]](수영, [[미국]])가 개인종목 5관왕을 달성했다.] 동계올림픽 5관왕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 [[리히텐슈타인]]의 [[알파인 스키]] 선수 남매가 금2, 은2을 획득했다. 이로써 인구 3만의 미니국가 리히텐슈타인이 이 대회 메달획득 종합 6위에 오르는 기적을 연출했다.
* ~~비대한 몸뚱이로 바디체킹을 즐기는~~ [[미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세계 최강 [[소련]] 대표팀을 꺾고 우승하였다. 소련 국대는 79년에 열린 NHL 올스타팀[* 캐나다 선수가 대부분이었고 미국 선수는 한명도 없었다.]과의 경기에서 2승 1패를 기록하였다. NHL 선수들이 출전할 수 없었던 미국 아이스하키 국대가 소련 아이스하키 국대에게 절대적으로 전력이 열세임은 너무나도 분명했다. 소련은 올림픽 개막 며칠전에 있었던 미국과의 시범경기에서도 10-3의 압도적인 승리하여 전력의 차이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하지만 미국 대표팀은 한 골차로 끌려가던 3피리어드에서 연속골로 4:3 역전, 기적적인 승리를 거뒀다. 미국은 핀란드와 마지막 경기에서도 이김으로써 소련을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 과정은 1981년 '은반위의 기적', 2004년 '미라클'로 영화화되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레이크플래시드의 기적]] 참고.
* 마스코트는 [[라쿤]]을 모델로 한 Roni and Ronny였다. 그러나 관련 자료는 찾기 어렵다.
* 이 대회는 흑자대회였다. 그리고 [[미국]]을 넘어서 [[아메리카]] 대륙의 동계 [[스포츠]] 중심지로 각인시키게 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롤모델이 되는 [[올림픽]]이다.--그렇다고 막장운영까지 닮아갈건 없잖아?--
[[분류: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
1980 모스크바 올림픽 | [include(틀:역대 하계올림픽)]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c21023><bgcolor=#c21023> {{{+4 ''' {{{#fff 1980 모스크바 올림픽 }}} ''' }}} ||
||<-3><bgcolor=#c3ab4b> {{{#c21023 제22회 올림픽 경기대회[br]{{{+1 1980 모스크바 올림픽 경기대회}}}[br]И́гры XXII Олимпиа́ды[br]Games of the XXIII Olympiad[[상표|{{{#c21023 ™}}}]] Moscow 1980 }}} ||
||<-3><bgcolor=#ffffff,#191919> [[파일:external/colorlib.com/1980-Moscow-Soviet-Union-Olympics.png|width=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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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ght=40><bgcolor=#c21023> {{{#fff ''' 대회기간 ''' }}} ||<-2> [[1980년]] [[7월 19일]] ~ [[1980년]] [[8월 3일]] ||
||<height=40><bgcolor=#c21023> {{{#fff ''' 개최국 ''' }}} ||<-2> [[소련]] [[모스크바]][* [[모스크바]] 이외의 지역에서도 일부 종목이 개최되었다. 물론 개최 당시는 [[소련]] 한 나라에서 열린 거지만 [[소련]]이 깨진 지금 국가 기준으로 한다면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 공동개최다.] ||
||<height=40><bgcolor=#c21023> {{{#fff ''' 마스코트 ''' }}} ||<-2> 미샤 ||
||<height=40><bgcolor=#c21023> {{{#fff ''' 주제가 ''' }}} ||<-2> Стадион моей мечты [br] (Stadium of my dreams) ||
||<height=40><bgcolor=#c21023> {{{#fff ''' 참가국 ''' }}} ||<-2> 80개국 ||
||<height=40><bgcolor=#c21023> {{{#fff ''' 참가선수 ''' }}} ||<-2> 5,179명[br](남자: 4,064명, 여자: 1,115명) ||
||<height=40><bgcolor=#c21023> {{{#fff ''' 경기종목 ''' }}} ||<-2> 21개 종목, 203개 세부 종목 ||
||<height=40><bgcolor=#c21023> {{{#fff ''' 개회선언 ''' }}} ||<-2> [[레오니트 브레즈네프]][br],,소련 최고회의 상임위원회 주석,, ||
||<height=40><bgcolor=#c21023> {{{#fff ''' 선수 선서 ''' }}} ||<-2> 니콜라이 안드리아노프 ||
||<height=40><bgcolor=#c21023> {{{#fff ''' 심판 선서 ''' }}} ||<-2> 알렉산드르 메드베트 ||
||<height=40><bgcolor=#c21023> {{{#fff ''' 성화 점화 ''' }}} ||<-2> 세르게이 벨로프 ||
||<height=40><bgcolor=#c21023> {{{#fff ''' 개·폐회식장'''}}} ||<-2> 레닌 중앙 스타디움 [br] (현 [[루즈니키 스타디움]]) ||
[목차]
[clearfix]
== 개요 ==
[youtube(VFI0xP5_VaQ, width=55%)]
[youtube(9tW56iK2PRY)] 한글자막
올림픽 공식 주제가.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제치고 개최지로 확정되어[* 39대 20, 거의 더블스코어 차이로 이겼다.] 공산국가 특유의 중앙집권 체제와 '''[[크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풍토를 '''잘 반영해서''' '''열심히''' 대회를 준비했다. 참고로 올림픽 준비하는데 드는 비용의 반절 가량은 [[복권]] 발행으로 충당했다고 한다. 물론 한국에서도 [[로또]]가 발행되기 이전에는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1988 서울 올림픽]], [[1993 대전 엑스포]], [[2002 한일 월드컵]] 재원의 상당부분을 복권 발행으로 충당했으니[* 참고로 서울 아시안 게임과 서울 올림픽 당시에는 [[주택복권]]의 발행을 일시중지하고 올림픽복권을 발행했고, 대전 엑스포를 개최했을 당시에 엑스포복권이라는 명칭으로 즉석복권을 발행했으며, 한일 월드컵 당시에는 주택복권이나 신용카드 복권, 복지복권, 자치복권 등 이미 존재한 여러복권들과 별도의 복권인 월드컵 복권을 발행했다.] 딱히 이상할 것이 없기는 하지만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에서 했다고 하니까 이상할 것 같은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소련은 당대 복권판매로 세계 순위권을 달리던 국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1979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터지자 인권 외교를 표방하던 [[미국]]의 [[지미 카터]] 정부는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했고, 이에 동조해 많은 국가들, 특히 서방 세계라 불리는 국가들에서 올림픽 참가를 포기했다.[* 그러나 [[미국|같은 나라]]면서 선수단을 따로 보내는 [[푸에르토리코]]는 참가했다. ~~적은 내부에~~ 푸에르토리코 올림픽 위원회는 권투 선수 세 명을 출전시켰고, 이 세 선수만이 미국 여권을 들고 와서 참가한 선수가 되었다. 단, 푸에르토리코 깃발이 아닌 올림픽기를 앞세워 개인 자격으로 입장하였다.] 그러나 [[그리스]][* 그리스의 경우 올림픽 대회에서 입장할 때 가장 먼저 입장하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참가 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1980년 올림픽은 친 그리스 국가인 [[키프로스]]의 첫 올림픽 무대였다.]나 [[아이슬란드]], [[스웨덴]]처럼 보이콧하지 않고 올림픽 대회에 참가한 서방 국가들도 있었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처럼 [[미국]]의 말에 무조건 따르기 싫고, 그렇다고 항의해야 할 것같은 나라들은 국기 대신 올림픽기 또는 자국 올림픽 위원회기를 들고 입장하여 이 대회 참가가 개인적인 것이라는 점을 명시해 버렸다. ~~그러니까 지금 [[대만]] 선수단이 강제로 당하는 그것을 자발적으로 했다 그 말이다.~~ 덤으로 [[소련]]과 사이가 1960년대 이후 좋지 않았던 [[중국]]도 이 때 그냥 불참해 버렸다. 원래 이 대회를 통해 하계 올림픽 무대에 처음 데뷔할 예정이었는데, 결국 4년 뒤인 [[1984 LA 올림픽]]으로 연기됐다. 이외에 [[일본]]과 [[대만]] 등도 불참했다.
[[대한민국]]도 보이콧했다. 미국의 보이콧 선언에 서방국가들이 동조하는 분위기인지라 그 영향이 당연히 한국에도 미쳤는데 '보이콧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견과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선수들에게 피해가 가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대립했고 일각에서는 '그러면 참가를 원하는 선수에 한해 태극기 대신 올림픽기 쥐어주고 개인 자격으로라도 참가시키자'는 절충안도 나왔는데, 정서적으로는 [[북한]]의 우방국 이미지인 공산국가 [[소련]]의 심장부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대한 반감도 있고,[*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1973 모스크바 하계 유니버시아드]]와 [[민스크]] 세계 레슬링 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1960년대 말부터는 '공산권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참가하지 않는다.'란 원칙은 없어서 여건이 되면 다 참가했다. 대통령이 바뀌진 않았지만 1962년 월드컵 지역예선 때와는 입장이 상당히 달라진 듯. 다만 반대로 1980년대 초까지는 공산권 국가들은 '남조선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존재했다. 지금 보기는 전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올림픽과 인지도도 낮고 대부분이 아마추어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유니버시아드가 크게 차이가 나게 보이지만, 1973년 당시에는 올림픽 메달도 따기 힘든 시절이라(그 이전에 열린 올림픽에서 한국은 한 대회에서 많아야 메달 3개 따던 수준이었다) 당시 유니버시아드에 관심이 높았고, 이 대회 참가는 큰 이슈가 되었다. 메달을 따자 '적의 심장부에 태극기를 올렸다'는 기사들도 올라왔다.] 현실적으로는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서 최종 엔트리 마감 1주일 전인 1980년 5월 17일이 되어서야 KOC 긴급총회를 통해 결국 불참하기로 확정했다. 그런데 긴급총회의 결정이 아니더라도 국내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참가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긴급총회가 개최된 당일 [[신군부]]의 [[5.17 내란|군사내란]]이 일어났으며, 이후 [[5.18 민주화운동]]과 신군부의 정권참탈 과정이 급속도로 진행되어 [[12.12 군사반란|#]] 참가가 불가능했을 것.
이 때문에 불운을 맛본 선수들이 상당히 많은데, 대표적인 선수가 당시 여자 양궁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자였던 [[김진호(양궁)|김진호]]. 그녀는 최전성기에 올림픽과 인연을 맺지 못하면서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의 영광과는 아쉽게 멀어졌고, 4년 후 [[1984 LA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신예 [[서향순]]이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동메달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항상 여자 양궁 신궁 계보에 반드시 [[김진호(양궁)|김진호]]의 이름부터 출발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여담으로 1970년대 초반 [[펩시]]가 [[소련]]에 진출하여 짭짤하게 수익을 내자, 이에 맞서 [[코카콜라]]도 소련에 진출하려 했다. 소련 당국에 지속적인 로비를 한 결과 올림픽 때 코카콜라를 팔 수 있게 허가권까지 받아 냈고, 이를 계기로 소련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하필이면 그놈의 아프간 침공이 터지면서 [[미국]]의 보이콧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결국 1987년이 되어서야 코카콜라는 본격적으로 소련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여러 미국 패스트푸드점들이 소련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마찬가지로 사업이 무기한 연기되었고, 개방을 주장한 [[미하일 고르바초프|고르비]] 정권이 되어서야 소련에 진출하게 되었다.
역사상 다섯 번 일어난 집단 보이콧의 하나이며, 그 규모가 그 다음 대회인 LA 올림픽과 함께 가장 커서, 파행으로 치러진 올림픽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같이 언급된다. 한 마디로 '''반쪽 대회.''' 올림픽 주 경기장인 [[루즈니키 스타디움]](당시는 레닌 스타디움)은 보수를 거쳐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홈 구장으로 쓰였으나 현재는 신축한 다른 경기장으로 홈을 이전했다. 2007-2008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린 곳이자,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결승전이 열린 경기장이기도 하다.
[[미국]]과 서구 국가들이 없던 자리는 [[소련]](금메달 80, 메달 195개)을 위시로 [[동독]](금메달 47, 메달 126개), [[불가리아]](금메달 8, 메달 41개), [[체코슬로바키아]] 등의 [[그들만의 리그|공산권 국가들이 순위를 차지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전체 메달의 약 40%를 소련과 동독 두 나라가 차지했으며, 금메달만 따진다면 60% 정도다. [[이탈리아]]가 5위, [[헝가리]], [[루마니아]]에 이어 [[프랑스]]와 [[영국]]이 체면치레를 하는 정도. [[북한]]은 26위였다. --역대 최고 성적[* 은메달 3에 동메달 2개. 금메달이 없어서 순위는 더 낮았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금메달 4개, 동메달 5개(금, 은, 동 순 16위)가 최고 성적이고, 이건 3번째로 높은 성적이다.([[2012 런던 올림픽]] 20위) 다만 메달 개수로 따지면 의외로 1992년이 21위, 2012년이 순위권 밖이고 이게 18위라...]-- 메달수로 따지면 순위는 소련, 동독, 불가리아, 헝가리-[[폴란드]], 루마니아, 영국, 쿠바 순서가 된다고.
공교롭게도 차기 개최국이 바로 [[미국]]이었는데[* 같은 해 열렸던 동계 올림픽 개최지도 미국 [[뉴욕(주)|뉴욕 주]] [[레이크플레시드]]. 주로 동계올림픽이 연초에 열리기 때문에 같은 해에는(1992년까지) 동계 대회가 먼저 열리게 된다. 그 대회 당시 서방 국가들의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이 예측되었지만, 이 때는 동구권 선수들이 그냥 참가하고 다음 하계 올림픽 때 보복했다. [[중국]]도 참가했다.] 미국이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게 됨에 따라 결국 차기 개최국가의 국기 게양식 때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를 대신하여 [[로스앤젤레스]]의 시기(市旗)가 게양되고 미국 국가 대신 [[로스앤젤레스]]의 시가(市歌)가 연주되어 올림픽 사상 최초로 특정 국가의 도시 시기와 시가가 연주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사상 최초이자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꺼같다--[* [[미국]] 측이 국기 게양과 국가 연주를 거부했다. 미국은 선수는 참가시키지 않았지만, 일부 임원과 심판은 파견했다.]
[[1984 LA 올림픽|이 때의 보복을 잊지 않은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칼을 갈면서, 4년 후 반쪽 대회 시즌 2가 열리게 된다]]. 보이콧만 한 게 아니라 공산권은 딱 LA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에 [[프렌드쉽 게임]]이라는 국제 스포츠 대회를 개최해서 흥행을 깎아먹었다.
|| [[파일:attachment/1980 모스크바 올림픽/Example.jpg|width=92%]] ||<width=50%> [[파일:external/www.sports.ru/object_23.1342005511.86363.jpg|width=93%]] ||
대회 마스코트인 [[미샤]](Миша/Misha). [[불곰]]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친근한 이미지 때문에 역대 올림픽 마스코트 1위로 꼽히고 있다.
33년 6개월 후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열렸으며, 이는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 연방 출범 이후로는 최초로 열리는 올림픽이다.
==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s-3.9|대한민국 하계올림픽 성적]] ==
■ 1980년 22회 모스크바 올림픽 (1980 Summer Moscow Olympics)
* 기간 : 7월 19일~8월 3일
* 규모 : 81개국 5217(여)명 참가.
* 종목 : 근대5종, 농구, 레슬링, 배구, 복싱, 사이클, 수영, 승마, 양궁, 역도, 요트, 유도, 육상, 조정, 체조, 축구, 카누, 펜싱, 하키, 핸드볼
* ▶대한민국 참가 현황 : 불참
[[파일:대한민국하계올림픽성적 9.jpg]]
== 기타 ==
만화 [[근육맨]]에서 [[초인올림픽]]이라는 전개가 나온 것도 이 때였다고 한다.
{{{#!html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JhDHtKpfP0o"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그리고, 모스크바 올림픽을 1년 앞두고 기념으로 독일 밴드 [[징기스칸(가수)|징기스칸]]의 노래 'Moskau(모스크바)'가 나왔다. 다만, 이 영상은 모스크바 올림픽 때 나온 영상이 아니라 2013년 새해 축제 방송에서 나왔던 영상이다. [[붉은 군대 합창단]]까지 초청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노래 초반에는 '모스카우' 라면서 독일어로 노래를 하지만, 노래 중반부터는 러시아어로 번안해 노래를 부른다.
[youtube(WXtDPlPTPTA)]
에스토니아 가수인 터니스 매기(Tõnis Mägi)[* 참고로 아이러니하게도 터니스 메가는 후일 에스토니아에서 분리독립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이에 동참했다. 노래혁명 영상에서도 나올 정도.]가 부른 '올림피아다'(Олимпиада)는 비공식 주제가처럼 취급되었다. 공식 주제가보다는 이 쪽이 더 듣기 좋다는 사람들도 많았을 정도. 그리고 이 노래는 2014년 소치 올림픽 때에도 에도 다른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불려졌다.
[youtube(9tW56iK2PRY)]
공식 주제가는 '나의 꿈의 경기장'. 소련 음악치고는 소련이나 공산주의를 찬양, 미화하는 가사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여담으로 IOC가 도핑테스트를 수행하기로 한 1967년부터 현재까지 열린 올림픽[* 1968년 멕시코시티부터 2016년 리우까지] 중 단 한명도 금지약물에 의해 메달 박탈이 이루어지지 않은 유일한 올림픽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서방세계에서는 동구권에서 약물복용이 워낙 일반화되다 보니 제대로 약물검사를 하지 않은것으로 치부하고 있으며 [[https://en.wikipedia.org/wiki/Doping_at_the_Olympic_Games#1980_Moscow|Chemists' games]]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소련시절부터 [[러시아 국가대표팀 도핑 스캔들|체육계의 약물문제]]가 거론되었었다. --그리고 34년뒤 대놓고 약물 파티를 벌였다--
미국이 예상을 깨고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티켓을 받지 못하고 탈락하면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이어서 2018년 월드컵에서 불참했다는 농담이 미국 인터넷 상에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물론 진지하게 보자면 1980년에는 스스로 떨어져나간 것이고 2018년에는 예선에서 나가떨어진 것이니 경우가 다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일본이 당시 이 올림픽 참가를 보이콧했던 사실이 소설의 내용 전개에 사용되었다.
[[로쿠데나시 블루스]]에서 콘도 마사히코 선생이 과거 프로 레슬링 선수로 국가대표였다는 과거가 나온다. 그런데, 1972 뮌헨 올림픽과 1976 몬트리올 올림픽을 앞두고 연이어 병이 나서 수술받느냐 나가지 못했다. 드디어 1980년 이 올림픽 국대선수 자격을 얻었지만 일본도 불참해서 이렇게 해서 올림픽에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줄때...다들 신나게 웃어서 콘도 선생은 화냈지만 주인공인 [[마에다 타이슨]]은 엉엉 울면서 "불쌍하다, 선생님. 그렇게도 나가고 싶어했을 꿈인데 그렇게 다 이루지 못했으니 너무나도 불쌍해...."라고 슬퍼하는 통에 다들 아연실색하고 콘도 선생조차도 어...응....이렇게 대했다...
[[분류:하계올림픽]][[분류:러시아의 스포츠]][[분류:1980년]][[분류:브레즈네프 시대]][[분류:냉전]][[분류:러시아에서 개최된 올림픽 대회]] |
1980년 | ||<-13><tablealign=center><bgcolor=#a9a9a9> {{{#000000 '''해'''}}} ||
||<-2> {{{-2 [[1977년]]}}} ||<-2> {{{-2 [[1978년]]}}} ||<-2> {{{-2 [[1979년]]}}} ||<bgcolor=#a9a9a9> {{{#000000 '''1980년'''}}} ||<-2> {{{-2 [[1981년]]}}} ||<-2> {{{-2 [[1982년]]}}} ||<-2> {{{-2 [[198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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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 [[제1천년기]]}}} ||<bgcolor=#2f4f4f> [[제2천년기|{{{#ffd700 '''제2천년기'''}}}]] ||<-6> {{{-2 [[제3천년기]]}}} ||
||<-2><tablealign=right><bgcolor=#cbb8ee> '''세계 각 지역의 표기''' ||
|| [[서력기원|서기]] || 1980년 ||
|| [[대한민국 연호|대한민국]] || 62년 ||
|| [[단군기원|단기]] || 4313년 ||
|| [[불멸기원|불기]] || 2524년 ||
|| [[황기]] || 2640년 ||
|| [[이슬람력]] || 1400년 ~ 1401년 ||
|| [[갑자|간지]] || [[기미]]년 ~ [[경신]]년 ||
|| [[주체사상|주체]] || 69년 ||
|| [[중화민국|민국]] || 69년 ||
|| [[일본]] || [[쇼와]] 55년 ||
|| [[히브리력]] || 5740년 ~ 5741년 ||
[목차]
== 개요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12270020920400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12-27&officeId=00020&pageNo=4&printNo=18226&publishType=00020|동아일보 선정 1980년 국내외 10대 뉴스]]
당시 한국에선 1979년 박정희 대통령 피살 후 계엄 상태로 '안개정국'이 조성되어 개헌 방향을 놓고 정치권이 혼란에 빠졌고, 민주화세력들도 갈팡질팡했다. 그런 형국에 [[서울의 봄]]과 [[5.18 민주화운동]]으로 대표되는 [[민주화]]의 좌절, '사회정화'를 앞세운 [[국보위]]의 대숙청, 인권유린 수용소 '[[삼청교육대]]', [[언론통폐합]] 등 암울한 사건만 터져나왔다. 경제적으로도 [[1950년]] 이후 최초의 마이너스 경제성장률과 1인당 [[국민소득]]이 감소한 해이다.
[[소련]]에서 [[1980 모스크바 올림픽|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이, [[미국]]에서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레이크플래시드 동계 올림픽]]이 열렸는데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에서는 [[한국]], [[일본]], [[서독]], [[캐나다]], [[미국]] 등 서방 국가 및 [[민주주의]] 국가들이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여 대거 불참하면서 반쪽짜리 대회로 전락하였다. 이 [[올림픽]]에서 [[한국]]은 처음으로 하계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으면서 불참하였다.[* 그 당시 소련이 적대국이라는 정치적 이념이 있었지만, 올림픽에까지 불참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 침공 크리가 터져 동맹국인 [[미국]]이 불참을 결정하면서 한국도 그 뒤를 따르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이때부터 흑백 TV에서 컬러 TV로 전환되는 시기를 맞이했다. 이미 컬러 방송을 시작할 여건은 마련되어 있었으나, 여러 가지 규제 논란으로 방송 개시가 지연되다가, 1980년 12월부터 컬러로도 TV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였다.[* KBS 1TV는 12월 1일, KBS 2TV와 MBC TV는 12월 22일부터.] 그러나 컬러방송을 같이 해야 할 [[동양방송]]은 언론통폐합으로 KBS에 합쳐졌고, 동아방송도 TV 방송조차 아예 못한 채 KBS에 흡수합병됐다. 심지어 기독교방송은 뉴스와 광고를 잃었다.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여름]]에 유난히 서늘하고[* 이 당시 서울의 6,7,8월 평균기온이 21.6도, 22.7도, 22.8도에 불과했을 정도로 굉장히 서늘했다. 5월 말에 31도를 넘더니 정작 7~8월에는 30도를 간신히 넘은 날이 이틀에 불과할 정도였다. 똑같이 서늘한 여름으로 유명한 1993년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강릉시]]에서는 6월 [[이상 고온]]으로 인해 더웠다.][* 여름은 물론 11월을 제외한 월 전체가 평년보다 낮았다.]흐린 날이 많아 [[냉해]] 피해가 심각했던 해였다.[* 요즘은 대체로 이상 고온으로 말이 많지만, 1980년에는 오히려 이상 저온과 심지어는 지구한랭화로 말이 많았다.] 이로 인하여 70년대 말에 쌀 풍년으로 쌀을 수출했던 한국에서는 [[쌀]] 생산량이 30%나 감소하며 심각한 농업 피해를 입었으며,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물론 경제성장률 하락의 가장 큰 이유는 제2차 [[오일 쇼크]]로 인한 성장 지체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 중부 지역에서는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이 몰아닥쳐 농업 피해가 컸으며, 이로 인하여 세계적인 [[옥수수]], [[밀]] 생산 지역인 이 지역의 생산량이 줄어들어 국제 농산물 가격도 올라갔다.
[[여담]]으로, 이 해에는 한국에 올림픽 열기가 없었던 유일한 시기이기도 했는데, 한국 선수단은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선 노메달을 기록했고, 뒤이어 개최된 소련 모스크바 올림픽도 정치적 이유로 불참함에 따라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첫 출전하게 된지 32년만에 현재까지 유일하게 올림픽 열기가 없었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여기에 미국은 [[지미 카터]] 행정부가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항의하는 표시로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였고 일본 역시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였다. 다만 소련의 맹방이었던 [[북한]]은 모스크바 올림픽에 참가함에 따라 올림픽 열기는 한반도 기준으로 북한에서만 전파하게 되었다.
1979년에 시작된 강변가요제도 이해에는 열리지 않았다. ~~~ 열릴 맛이 나겠는가 ~~~
학계에선 미국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박사가 저서 <[[제3의 물결]]>을 발표하여 농경 시대-산업화 시대에 이어 '정보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일찍이 예언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전쟁 후 대한민국 최대의 암흑기 중 하나인 해였다.
== 사건 ==
=== 실제 ===
==== 1월 ====
* [[1월 1일]]
* [[최규하]]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국민의 신뢰와 화합을 당부하였다.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신년사에서 [[7차 개헌|개헌시한]]을 앞당겨 1980년 하반기까지 정권을 이양하자고 촉구하였다.
* [[김종필]] [[민주공화당]] 총재는 신년사에서 [[7차 개헌|헌법개정]]을 서둘러 늦어도 1981년 초에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 [[1월 2일]]: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설문조사에서 한국을 세계 23개국 중 가장 전망있는 나라라고 밝혔다.
* [[1월 3일]]: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김성준이 일본 도쿄에서 나카지마 시게오에게 15회만에 패해 4차 방어에 실패했다.
* [[1월 4일]]
* 정부는 1980년도에도 긴축정책을 지속키로 결정했다.
* [[고병익]] [[서울대학교]] 총장은 제적 학생 복교 등 학원 자율화를 위한 개선책을 밝혔다.
* [[1월 5일]]: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가 개교되었다.
* [[1월 6일]]
* [[사우디아라비아]]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며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을 선언하였다.
* [[인디라 간디]] [[인도]] 총리가 이끄는 국민회의파가 다시 압승을 거두었다.
* [[1월 8일]]: [[북한]] [[평안북도]] [[의주군]] 일대서 [[의주 지진|규모 5.3의 지진이 발생했다.]]
* [[1월 11일]]: 네덜란드 정부가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을 선언하였다.
* [[1월 12일]]: 정부는 대미 환율을 19%, 은행 대출금리 25%, 정기예금금리 24%로 각각 인상했다.
* [[1월 14일]]
* 남북조절위원회 서울측은 [[리종옥]] 북한 정무원 총리가 [[신현확]] 총리 등을 만나자는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 영국 정부가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을 선언하였다.
* [[1월 15일]]
* [[문화공보부]]는 [[1977년]]에 폐쇄된 일본 [[요미우리 신문]] 서울지국 재개설을 허가하였다.
* '전국연합노동조합 서울지부 남화전자 분회(이하 남화전자 노조)'가 결성되었다. [* 남화전자는 ‘쟈코’라는 국내 최초의 미니 카세트와 전자 완구를 생산·수출하는 중소기업이었고, 노동자 임금체불 문제와 1차 부도 문제로 노사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1981년 폐업했다. 이후, 2013년 6월 11일, 서울행정법원의 판결로 1981년 남화전자 폐업은 노조활동을 막으려는 방편으로 진행 되었다며, 조분순 씨 등 3명의 해직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했다.]
* [[1월 18일]]
* [[최규하]]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남북총리회담 용의를 북측에 통보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 [[정승화]]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육군참모총장]]이 [[김재규]] 등의 [[10.26 사건|내란음모]] 방조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로 송치되었다.
* [[1월 21일]]
* 섬유노조 집행위원회는 김영태 섬유노조 위원장 겸 [[한국노총]] 위원장의 퇴진을 권고하였다.
* 소련 [[KGB]]는 반체제 운동가 [[안드레이 사하로프]] 부부를 연행 후 고르키 시로 유배보냈다.
* [[1월 22일]]: [[김옥길]] 문교부 장관은 [[교복자율화|중고교 교복자율화]]를 학교장 재량에 맡긴다고 밝혔다.
* [[1월 24일]]: [[신현확]] 국무총리는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을 제의하며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처음 지칭했다.
* [[1월 25일]]: [[수도방위사령부|수경사]] 보통군법회의는 [[윤보선]], [[함석헌]] 등 YWCA 위장결혼식 사건 관련자 17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 [[1월 26일]]: 캐나다 정부가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을 선언하였다.
* [[1월 28일]]
* 육군 고등군사재판은 김재규 등 6명에게 사형을, 유석술에게는 징역 3년을 선고하였다.
* 수경사 보통군법회의는 YWCA 위장결혼식사건 관련자 윤보선과 함석헌에게 형 집행 면제를 내렸다.
* [[1월 29일]]
* 육군고등군법 관할관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김계원을 무기로 감형하였다.
* 정부는 석유화학원료 및 제품값을 최저 20.2에서 최고 66.4%로 올린다고 밝혔다.
* [[1월 31일]]
* 문교부는 교육목적 외 학생동원 금지를 지시하였다.
* 해군 측은 거북선 원형복원 진수식을 열었다.
==== 2월 ====
* [[2월 3일]]: [[일본]] TV아사히에서 <[[전자전대 덴지맨]]>이 첫 전파를 탔다.
* [[2월 4일]]: 경제기획원은 '유통근대화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 [[2월 5일]]
* 남북조절위 서울측은 남북총리회담 준비 실무대표를 김영주 외무부 본부대사, 정종식 통일기획실장, 이동복 한적 사무국장으로 결정하였다.
* 프랑스 정부가 리비아와 단교했다.
* [[2월 6일]]: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실무대표접촉이 판문점에서 진행되었다.
* [[2월 7일]]: 남북직통전화가 3년 반만에 개통되었다.
* [[2월 8일]]: 김영태 한국노총 위원장이 사퇴하였다.
* [[2월 9일]]
* 공화-신민 양당은 대통령중심제-직선제-임기 4년-1차 중임 등을 골자로 한 헌법시안을 마련하였다.
* 김종필 공화당총재와 최영희 유정회의장은 최규하 대통령과 개헌/복권문제에 대해 논의하였다.
* 계엄사는 무분별한 정치과열 불용 및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로 국법질서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 [[2월 10일]]: WBC 플라이급 챔피언 박찬희가 필리핀의 아르넬 아로살을 상대로 4차 방어에 성공하였다.
* [[2월 11일]]: 국회 개헌특위는 공화-유정-신민 3당의 확정시안을 접수하였다.
* [[2월 12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신민당의 집권은 역사적 순리"라 하여 대통령 출마를 시사하였다.
* 정상천 서울시장은 시청, 교육위, 시경을 1983년까지 강남지역으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보고하였다.
* 서울대 단과대 학생회 대표들이 학원민주화를 결의하였다.
* 한국노총 산하 9개 산별노조 위원장들이 '노총정상화추진위원회' 결성 후 김영태 노총위원장의 완전사퇴를 촉구하였다.
* [[2월 13일]]: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승마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 [[2월 16일]]
* 신민당은 대선 및 총선에 앞서 대통령 후보를 지명키로 결정하였다.
* 전국 대학들이 학도호국단을 선거제로 개편하였다.
* [[2월 17일]]: 프로권투선수 김태식이 WBA 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파나마의 루이스 이바라를 2회 KO로 꺾어 챔피언벨트를 차지하였다.
* [[2월 18일]]
* 최규하 대통령은 허정, 유진오, 백낙준, 김수환 추기경 등 23명을 국정자문위원으로 위촉하였다.
* 정부는 3월 중순부터 헌법개정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5~7월부터 전국 공청회를 개최토록 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 [[피에르 트뤼도]] 총재가 이끄는 [[캐나다 자유당]]이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 [[2월 19일]]: 정부는 당월 5일 기준으로 전국 도매물가가 16%, 소비자물가 3.6%로 각각 폭등했다고 밝혔다.
* [[2월 22일]]
* 정부는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 미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준결승에서 [[소련]]을 4-3이란 간발의 차로 격파해 결승에 진출하였다.([[레이크플래시드의 기적]])
* [[2월 23일]]
* 정문연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세부 편찬계획을 확정하였다.
* 서울대병원 의공학팀이 인공췌장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 미국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에릭 하이든]]이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10,000m에서 금메달 5관왕을 달성하였다.
* [[2월 24일]]: 서강대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가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 [[2월 25일]]
* [[김대중|DJ]], [[김영삼|YS]], [[김종필|JP]] 3김이 인촌기념관에서 회동하였다.
* [[수리남군]] 원사(Sergeant Major) 데시 바우르테서가 쿠데타를 일으켜 헨크 아론 내각을 붕괴시키고 정권을 장악했다.
* [[2월 26일]]: 서울지하철 2호선 왕십리 ~ 문래 구간이 착공되었다.
* [[2월 27일]]
* 최규하 대통령은 정치일정은 국민에 공약이므로 실천에 옮기자고 강조하였다.
*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개헌 단일화 모색키 위해 정부 개헌실무 책임자를 출석키로 결의하였다.
* 한국은행은 환율을 종래의 고정환율제에서 '복수통화바스켓방법'에 의한 유동제로 바꾸었다.
* [[2월 28일]]
* 신민당 민주제도개혁특위는 사회안전법 등 10개 법률에 대한 개정작업에 착수하였다.
* 건설부는 백제권 개발사업을 확정하였다.
* [[2월 29일]]: 법무부는 [[윤보선]], [[김대중]] 등 재야인사 687명을 일반/특별복권시켰다.
==== 3월 ====
* [[3월 1일]]
* 최규하 대통령은 삼일절 기념사에서 사회안정과 정치난국 극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김대중은 복권 후 첫 기자회견에서 정치 목표는 반공 안보태세 강화와 자유민주주의 실현이라 천명했다.
* 전두환 육군 소장이 육군 중장으로 승진했다.
* 한양대는 해직교수 리영희와 정창렬에 복직조치를 내렸다.
* [[팀 스피릿]] '80 한미합동군사훈련이 개시되었다.
* 정문연 한국학대학원이 개교되었다.
* 미국 하와이대 한국학센터가 문을 열었다.
* [[3월 2일]]: 해태제과 노동자들이 9개월여 만에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였다.
* [[3월 3일]]: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당 차원에서 사회정의 활동과 사회정화운동에 모든 활동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 [[3월 4일]]
*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실무대표 3차 접촉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 [[로버트 무가베]]가 이끄는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연합'이 로디지아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 [[3월 5일]]
* 김종필 공화당 총재와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경제난국 해결을 위한 초당적 협의기구 구성 및 정치형사범 추가 복권 등에 합의하였다.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윤보선 전 대통령과 범야권 대통령후보 단일화문제에 대해 협의하였다.
* [[3월 6일]]
* 10.26 사건 관련자 박흥주 대령의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 경우회는 경찰중립 제도화를 요구하였다.
* [[3월 8일]]
* 김종환 내무장관은 경찰중립화 문제가 경찰 발전과정에서 한 번쯤 거론될 수 있는 문제라고 밝혔다.
* 소련령 그루지야 트빌리시에서 사상 최초의 [[록 페스티벌]] '트빌리시 80'이 개최되었다.
* [[3월 10일]]
* 검찰은 최근 발생한 경찰중립화 움직임에 대해 수사권 독립은 시기상조라고 반대 의견을 견지했다.
* YH 해고노동자들이 취업을 요구하며 노동절 식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 가수 [[조용필]]이 [[조용필 1집|첫 정규앨범]]을 발표하였다.
* [[3월 11일]]
* 신현확 총리는 유신체제가 국방충실과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했던 체제라고 밝혔다.
* 대한변협은 경찰의 정치중립을 위한 공안위원회 설치 등에 찬성하지만 수사권 독립에 대해선 반대입장을 밝혔다.
* [[3월 12일]]: 국회는 헌법개정심의위원으로 유진오, 김정렬, 백남억, 김상협 등 각계인사 58명을 위촉하였다
* [[3월 13일]]: 국방부 계엄보통군법회의는 선고공판에서 정승화 전 육참총장에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 [[3월 14일]]
* 최규하 대통령은 새 헌법상 대통령 중심제와 의원내각제를 가미한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시사했다.
* 주공은 경기 과천신도시 건설공사를 개시하였다.
* [[3월 15일]]
* 신민당은 민주화촉진궐기대회에서 결의문 6개항을 채택하였다.
* 김종필 공화당 총재는 이원집정제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 민주헌정동지회 사무실이 문을 열었다.
* 한양대 안산캠퍼스가 개교되었다.
* 조선일보사가 <[[월간조선]]>을 창간하였다.
* [[3월 16일]]
* 북한 육상선수 고춘선이 프랑스 에손 국제마라톤대회에서 우승했다.
* 일본 사회당이 북한 로동당과 '동북아지역 비핵평화지역 창설에 대한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 [[3월 18일]]
*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 실무대표 4차 접촉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 성대생들이 긴급대의원대회 개최 후 비리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용인자연농원이 하루 평균 오물 10kg을 방류해 팔당댐이 오염된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어 파문이 일었다.
* [[3월 19일]]
* 공화당 정풍파 의원들이 김종필 총재에게 부정부패 인사의 당직 퇴진 등을 요구하고 사퇴서를 제출했다.
* 신민당 남원-임실-순창 지구당 개편대회가 폭력사태로 무기한 연기되었다.
* 검찰은 용인자연농원이 자행한 팔당댐 오염사건 조사에 착수하였다.
* [[3월 20일]]
* 국회 헌법개정심의위 기본권소위는 새 헌법에 연좌제 폐지조항 신설에 합의하였다.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지역감정 해소의 일환으로 집권 시 호남고속도로를 3차선으로 늘리는 등 지역발전을 도모하겠다고 다짐하였다.
* 문예 무크지 <실천문학>이 창간되었다.
* [[3월 21일]]
* 국회 헌법개정심의위 기본권소위는 언론기관의 경영-편집 분리조항을 두도록 합의하였다.
* 호남전기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하였다.
* 카터 미국 대통령이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항의하여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했다.
* [[3월 23일]]: 경기도는 용인자연농원 팔당댐 오염사건을 계기로 '수질보전대책위원회'를 구성키로 결정하였다.
* [[3월 24일]]
* 신민당 긴급정무회의는 지구당 개편대회 폭력사건과 관련해 불순세력 음모배격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 이후락 공화당 의원은 김종필 총재에 당내 혼란을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오스카 로메로 추기경이 엘살바도르 프로비덴시아 병원 경당 미사 도중 괴한에게 암살당했다.
* [[3월 25일]]: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대통령 선거를 직접비밀투표제로, 임기는 4년 1차 중임제로 하기로 합의하였다.
* [[3월 26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부주도 개헌 환상을 깨고 정치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요구하였다.
* 공화당은 이후락, 임호 의원에게 탈당을 권유키로 하고 당직자들이 사표를 제출했다.
* 정승화 전 육참총장이 항소 포기로 징역 7년으로 확정되었다.
* 대간첩대책본부는 경북 포항에서 무장간첩선 1척을 격침했다고 밝혔다.
* [[3월 27일]]
* 문교부는 전체 중학생 중 80~90%가 정상학력 미달이라고 밝혔다.
* 연세대 총학생회가 부활하였다.
* [[3월 28일]]
* 공화당은 박찬종, 오유방 의원에게 탈당을 권유토록 하고 박용기 등 6명에 경고처분을 내렸다.
* 동자부는 전국적인 연탄 품귀현상으로 각 탄광에 필요물품을 확보토록 긴급 지시하였다.
* 중앙대 약대생 1백여 명이 폭력교수의 공개사과를 요구하여 농성을 벌였다.
* 동덕여대생 4백여 명이 조용방 학장 등 3명의 사퇴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명지대생 1백여 명이 이사장실을 점거하고 철야농성을 벌였다.
* 서울대 총학생회가 6년만에 부활하였다.
* 한신대 학원자율화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3월 29일]]
* 상공부는 11개 중소기업공단을 조성해 367개 업체를 입주시키기로 결정하였다.
* 박동진 외무장관은 대북 무역접촉과 상업활동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 김옥길 문교장관이 학원사태 관련 담화를 발표했다.
* 전남 광주 조선대생 2천여 명이 <학원의 민주화와 정상화를 위한 선언문>을 발표한 뒤 박철웅 총장의 사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3월 30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과도정부에서 진행 중인 남북회담 중단을 촉구하였다.
* 북한 평양 대동강구역에 '평양산원'이 문을 열었다.
* [[3월 31일]]
* 공화당은 당직 개편을 단행하여 의장서리에 전예용, 부의장에 장영순, 중앙위원에 진의종을 각각 앉혔다.
* 정부는 수교국가와 경협을 통해 미수교 비동맹국가와도 교역시도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 서울시는 인구 3만명 이상 44개동 분동 및 1만명 이하 9개동 통합 등 동단위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 4월 ====
* [[4월 1일]]
* 재무부는 긴축기조와 건전재정운용 방침을 지속키로 결정하였다.
* 평택화력발전소 1호기가 준공되었다.
* 김수환 추기경은 부활절 메시지에서 부정과 불의의 장벽을 헐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설립되었다.
* 현곡 양일동 통일당 총재가 세상을 떠났다.
* 독립문 현저동 이전복원 공사가 완료되었다.
* 경희대 등 전국 14개대생들이 어용교수 퇴진 및 학원자율화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고려원양 노동자 2,700여 명이 체불임금 7억여 원 청산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금융노조는 임금 20.6% 인상을 요구하며 노동청에 조정신청을 냈다.
* [[4월 2일]]
* 신민당 당기위는 지구당 개편대회 폭력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남원 등 3개 지구당위원장에 제명처분을 내렸다.
* 홍대생 4백여 명이 총학생회장 직선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광산노조 지부장들이 동자부로 몰려가 임금인상을 요구하였다.
* 일본 [[TBS 테레비]]를 통해 <[[울트라맨 80]]>이 전파를 탔다.
* [[4월 3일]]
* 정부는 대통령 직속기구 '헌법개정심의위원회'를 발족하였다.
* 서울대는 총학 구성을 승인하는 학생자치기구 개설 조항을 학칙에 신설한다고 결정하였다.
* 세종대생들이 재단-학원 분리 및 어용교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홍대생들이 이사진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경기대생 1백여 명이 학장-어용교수-재단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한국체대와 서일공전생들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건대 선수 [[황병일]]이 대학야구 춘계연맹전에서 원광대를 상대로 한국 야구사상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였다.[* 이전까지는 사이클링 히트라는 개념이 한국 야구계에 없었기 때문에 나왔더라도 기록되지 않았다.]
* [[4월 4일]]
* YS-DJ 양측은 회담에서 범민주권 통합에 대한 의견차를 보였다.
* 서울대교수협은 족벌학원경영자 사퇴와 군사교육 개선, 교수재임용 철폐, 교수협의회 결성 등을 결의하였다.
* [[4월 6일]]
* 전남-경남 등지에서 태풍을 동반한 집중호우로 9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되었다.
* 한국 축구대표팀이 모스크바 올림픽 1차 예선에서 말레이시아에 1-2로 패해 본선진출이 좌절되었다.
* [[4월 7일]]
* 공화당 의원총회는 이후락 등 정풍운동 주도자 4명을 제명했다.
* 검찰은 경찰의 수사권독립 주장을 반박한 <소위 경찰대화자료의 허위성>이란 유인물을 냈다.
* 통일당은 현곡 양일동 총재의 사회장을 거행하였다.
* 경희대생 5백여 명이 농성 도중 조영식 총장 사퇴요구 등을 담은 <경희인의 백서>를 배포하였다.
* 유도대생 3백여 명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미국 정부가 이란과 단교했다.
* [[4월 8일]]
* 신현확 총리는 경찰 수사권독립을 둘러싼 검-경 간 마찰에 대해 양측의 자제를 촉구하였다.
* 국산 구축함 1호 '울산함' 진수식이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개최되었다.
* [[4월 9일]]
* 청피노조가 임금인상 및 퇴직금제, 노동 3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한양대 측은 교직원을 사칭한 운동부원 40여 명을 동원해 농성 학생들을 폭행했다.
* [[4월 10일]]
* 한양대생 1,500여 명은 '농성학생 폭행사건'에 대한 김연준 총장의 해명을 요구하며 총장실에서 농성을 벌였다.
* 성대생들이 병영집체훈련 거부를 결의하였다.
* 울릉도 저동항이 준공되었다.
* [[4월 11일]]
* 신현확 총리는 미국 NYT지 회견에서 대학가 소요사태 등 사회 혼란으로 계엄령 유지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 경제기획원은 '유통산업근대화 기본계획'을 마련하였다.
* 서울대생들은 '4월 혁명 기념제 및 고 김상진 열사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 서울지역 9개대 학생대표들이 학원사태에 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 서울노동위는 롯데, 크라운, 동양, 서울식품 등 4개 식품업체에 근로시간을 하루 12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토록 직권조정을 발동하였다.
* [[4월 12일]]
* 국회는 4월 말까지 개헌안을 마련하여 5월 임시국회에 보고/접수시킨 뒤 정부에 이송키로 합의하였다.
* 동일방직복직투위는 복직을 요구하며 거리 선전전 및 가두시위를 벌였다.
* [[라이베리아]]에서 육군 상사 [[새뮤얼 케니언 도]]가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궁을 점거하고 대통령 윌리엄 톨버트를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 [[4월 13일]]
* 세종대생들이 주영하 학장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성대생들이 군사교육을 반대하는 유인물을 배포하였다.
* 경희대생들이 조영식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 [[4월 14일]]
* 최규하 대통령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에 중정부장 서리로 겸직발령을 내렸다.
*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심의했던 개정안 조항을 정리해 소위 활동을 종결지었다.
* [[4월 15일]]
* 육군 계엄고등군법회의는 YWCA 위장결혼식사건 항소심에서 윤보선, 함석헌의 항소를 기각했다.
* 문교부는 1986년 하계 아시안게임을 서울서 유치키로 결정하였다.
* 진해화학노조는 임금인상 및 근로복지시설 개선 등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서울대생 2천여 명이 대통령 특별담화에 대한 항의집회를 열었다.
* [[4월 16일]]
* 최규하 대통령은 정부의 정치일정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 신민당은 '학원사태 조사단'을 구성하였다.
* 청평양수발전소 1~2호기가 준공되었다.
* 서강대생들이 병영집체훈련 거부를 결의하였다.
* [[4월 17일]]
* 김옥길 문교장관은 학교재단은 공익법인이니 학교-학생 양자는 타협하고 상호 책임지는 선에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 금융노조 8개지부 간부 68명이 임금인상 및 금융기관 자율화 보장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IMF는 중공의 가입신청을 승인하였다.
* [[4월 18일]]
* 신민당은 마포당사 4.19 20주년 기념식에서 4.19 정신계승과 민주구현 결의를 다짐하였다.
* 문교부는 최근 학원사태 관련 자료에서 휴교 19, 철야농성 24, 어용교수 퇴진요구 24, 시설확충 요구 11, 학원자율 요구 20개교로 각각 잠정 집계했다.
*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실무대표 6차 접촉'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 청피노조 농성이 노동청의 중재로 협상이 타결되며 종료되었다.
* 청피노조는 농성 해단식에서 <8백만 노동자에 보내는 메시지>를 발표하였다.
* 반도상사 인천공장 노동자 7백여 명이 농성 8일만에 임금인상을 쟁취하였다.
* [[짐바브웨]]가 [[영국]]으로부터 정식 독립했다.
* [[4월 19일]]
* 문공부는 1975년 사이공 함락 때 억류되었던 이대용 공사 등 3명이 귀국했다고 밝혔다.
* 중앙재해대책본부는 강풍/폭우로 2명이 숨지고 14명이 실종되었다고 밝혔다.
* '한국지퍼(YKK)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4월 20일]]
* 정부는 6월부터 KBS-TV를 통해 <가정고교> 프로그램을 방영키로 결정하였다.
* 광운공대 설립자 화도 조광운 박사가 세상을 떴다.
* [[4월 21일]]
*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신현확 총리의 정부주도 개헌 회견을 중시하고 신 총리가 위원회에 출석토록 요구하였다.
* 산선 총무 서경석과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정명자가 구속되었다.
*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 소속 광부 7백여 명이 임금 인상 및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탄광촌을 점거해 경찰과 대치하였다.([[사북사건]])
* [[4월 22일]]: 강원 사북읍에서 광부-경찰 간 충돌로 경찰 1명이 사망하고 광부 1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 [[4월 23일]]
* 신현확 총리가 국회 헌법개정특위 출석을 거부했다.
* 외무부는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방침을 대한체육회에 통보하고 불참을 권고했다.
* 서울대 농대생들이 어용교수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4월 24일]]
* 사북사태대책본부-광부대표 양측은 노조 집행부 총사퇴, 상여금 연 400% 인상 등 11개항에 합의하였다.
* 사북사태대책본부는 피해 규모가 사망자 1명, 부상자 1백여 명, 건물파괴 1백여 채라고 밝혔다.
* 한국노총은 사북사태가 저임금 등 열악한 노동조건과 노동3권 규제로 노조가 제 역할을 못해 발생한 거라며 노동질서 회복을 주장했다.
* 서울지역 14개대 교수 361명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서울대 총대위원회는 병영집체훈련을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 서강대 1학년생들이 병영집체훈련 거부를 결의하였다.
* 성대 1학년생들이 병영집체훈련을 거부하며 농성을 벌였다.
* 항공대생들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미국]] 특수부대가 주 이란 미대사관에 억류된 자국인 인질구출에 돌입하다 실패했다.
* [[4월 25일]]
* 정부와 강원도경은 사북사태 주동자 30여 명이 외지로 도피했음을 밝혀내고 주동자 수사에 착수했다.
* 정부는 '임대가옥 입주에 관한 특별법'을 마련하였다.
* 인천제철 노동자 7백여 명이 현 경영진 퇴진 및 기본급 책정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국제실업 해외근로자 가족 및 국내 근로자 2백여 명이 체불임금 청산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일신제강 노동자 6백여 명이 노조지부장 사퇴 및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30여 명이 복직 및 노조집행부 퇴진을 요구하며 한국노총 위원장실에서 농성을 벌였다.
* [[4월 26일]]
* 신현확 총리는 자신과 대통령의 1981년 대선출마 가능성 및 신당 관련설을 부인했다.
* 정부는 컬러TV 시판시기를 8월로 잠정 결정하였다.
* 조계종 6대 총회는 무기명 비밀투표에서 월주 스님을 새 총무원장으로 선출하였다.
* [[4월 28일]]
* 국민대생들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서울대 학장회의는 현 군사교육제도의 조속개혁을 당국에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 신민당 사북사태진상조사단은 노조간부 직선 등을 통해 노조민주화와 자율화를 촉구하였다.
* 김녹영 통일당 총재대행은 만주회복 때까지 모든 재야인사 및 정당사회단체의 연합전선 구성을 제창하였다.
* 동국제강 부산공장 노동자 1천여 명이 민주노조 인정 및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하였다.
*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해고자 복직 및 임금인상, 노조 정상화를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4월 29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유신세력 퇴진 및 대통령 중심제/국회의원 소선거구제 촉구 당론을 밝혔다.
* 전두환 중정부장서리는 본인의 부장서리 및 보안사령관 겸직이 정치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 건대생 20여 명이 이사진 전원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경기대 행정학과생 30여 명이 전병두 학장 퇴진을 요구하며 학장실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 금성통신 안양공장 노동자 3천여 명이 임금인상과 어용노조 집행부 퇴진 등을 요구하며 운동장 및 강당에서 농성을 벌였다.
* 동양나이론 울산공장, 반도상사, 대한모방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동국제강]] 부산공장 노동자 1천여 명이 임금인상 농성 도중 출동한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 [[4월 30일]]
* 최규하 대통령은 사북사태와 관련해 노사문제는 법절차에 따라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계엄사는 전군지휘관회의에서 학원사태 등에 우려를 표명하며 폭력행위를 엄단키로 결의했다.
* 고려대 총학이 '제1차 민주화 공개토론회'를 개최하였다.
* 서울 오산고생 4백여 명이 교장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율리아나 네덜란드 여왕이 [[베아트릭스]] 공주에게 양위했다.
==== 5월 ====
* [[5월 1일]]
* 정부는 대학 군사교육을 종전의 주 4시간에서 2시간으로, 대상학년도 2학년까지로 각각 축소시킨다고 밝혔다.
* 성대생들이 병영집체훈련을 거부하며 농성을 벌였다.
* 부산남부경찰서는 동국제강 부산공장 농성사태 관련자 6명을 포고령 1호 위반으로 구속했다.
* [[5월 2일]]
* 정종택 노동청장은 한국노총 측의 국가보위법상 노동기본권 제한조항 시행유보 요구 수용이 어렵다고 밝혔다.
* 서울대생들이 '민주화 대행진'을 개최하였다.
* 고려대생 1천여 명이 계엄철폐 및 유신잔당 척결, 정치일정 단축 등을 요구하며 연좌농성 후 철야농성을 벌였다.
* 전북대-경북대생들이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전남대-조선대생들이 학내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서울형사지법은 이재문, 신향식, 안재구, 최석진 등 남민전 사건 관련자 4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다.
* [[5월 3일]]
* YS-신 총리 양측이 '선 안정-선 민주화' 문제로 갈등을 보였다.
* '전국민주노동자연맹(이하 전민노련)'이 창립되었다.
* 서울대생 1만여 명이 계엄해제 및 이원집정부제 구상 철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대우중공업 노동자들이 어용노조 규탄 및 단협 준수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세진전자 등 한국노총 금속노련 남서울지부 산하 9개 분회가 어용노조 퇴진을 외치며 지부 사무실을 점거농성하였다.
* [[5월 4일]]
* 정부는 연탄값을 35.2%, 석탄값을 41.9%로 각각 인상했다.
* 국민연합은 학원민주화 및 비상계엄 해제를 주장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티토 유고연방 초대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 [[5월 5일]]: 김종필 공화당 총재는 새 대통령은 안보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행정경험자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5월 6일]]
* 신민당 비당권파 24명은 동교동 모임에서 독자기구를 구성키로 결정하였다.
* 남북총리회담 실무대표 7차 회의가 개최되었다.
* 이대생들이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이대 총학은 5월을 '이화 민주투쟁의 달'로 결정하였다.
* 한신대생들은 계엄해제 등을 담은 시국선언문 발표 후 농성에 돌입하였다.
* 한국외대생들이 '민주화촉진대회'를 개최되었다.
* 숭전대생들은 계엄철폐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연대 총학은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비상학생총회를 개최하였다.
* 전북대생 3천여 명이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 동국대생들이 '민주화를 위한 학원대회'를 개최하였다.
* 각 대학생들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연합시위를 벌였다.
* [[5월 7일]]
* 신민당은 계엄해제를 정부 당국에 촉구하였다.
* 한국은행은 [[GNP]]가 16년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고 밝혔다.(1/4 분기 내 전년대비 1.7% 감소)
* 외대-연대 교수들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한신대 대학원생들이 <민주화운동에 즈음한 우리의 결의>를 발표하였다.
* 홍대생 1천여 명이 '범민주화 촉진대회'를 개최하였다.
* 외대생 8백여 명이 야간 가두시위를 전개하였다.
* 중대 등 각 대학생들이 계엄철폐 및 민주화 촉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북한 지도자 김일성이 티토 장례식 참석차 유고로 출국했다.
* [[5월 8일]]
* 전국 각지 대학생들이 '시국성토대회'를 개최되었다.
* 서울지역 대학신문들이 <시국에 대한 대학신문 결의>를 채택하였다.
* 중대 총학이 <5.8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외대 교수들은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세계보건기구|WHO]]가 [[천연두]] 박멸을 공식 선언했다.
* [[5월 9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계엄해제, 임시국회 즉각 소집, 정부주도 개헌작업 중지 등을 요구하였다.
* 중대-숙대 교수들이 계엄철폐 요구 등을 담은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건대-인하대생들이 '시국성토대회'를 개최하였다.
* 숙대-한양대생들이 횃불시위를 벌였다.
* 이대생들이 연좌시위를 벌였다.
* 서울대 학부생 및 대학원생들이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한국노총 금속노조 산하 25개 지부 조합원들은 어용노조 집행부 규탄 및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금속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미 국방부는 한국 DMZ에서 미군 경찰대가 괴한들과 총격전을 벌였으나 사상자는 없었다고 밝혔다.
* [[5월 10일]]
* 김도창 법제처장은 개헌공청회 개최를 보류한다고 밝혔다.
* 전국 23개대 총학생회장은 계엄해제 요구 등을 담은 성명을 발표하였다.
* 동국대 교수 198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최규하 대통령이 사우디 및 쿠웨이트 방문을 위해 중동으로 떠났다.
* 단대생들이 '시국대토론회'를 개최하였다.
* 롯데제과 노조는 민주후보 신태웅 노동자를 새 지부장으로 선출하였다.
* [[5월 11일]]
* 신현확 총리는 사회가 안정되었다고 판단될 시 즉각 계엄을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 동명목재 부산공장 노동자 3천여 명이 공장 정상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5월 12일]]: 부산 해운대 조선비치호텔 종업원 310명이 어용노조 퇴진, 임금인상, 외국인 경영자 교체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5월 13일]]
* 정부는 국회측과 개헌안 이견 사전조정방침을 수립하였다.
* 서울지역 6개대생들이 세종로 일대에서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가두시위에 나섰다.
* 한국노총은 전국 11개 시/도에서 '노동기본권 확보 궐기대회'를 개최하였다.
* 고려대 교수 236명이 '교수협의회'를 발족하였다.
* [[5월 14일]]
* 최규하 대통령은 자베르 3세 쿠웨이트 국왕과 원유공급 문제 및 경협문제 등을 논의하였다.
* 신민당은 소속의원 66명 명의로 '비상계엄 해제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 김옥길 문교장관은 학생들의 자제/자숙을 당부하며 야간시위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 전국 27개대 총학생회장단이 <시국에 관한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 서울지역 21개대 및 지방 11개대생 총 15만여 명이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자정까지 가두시위를 벌였다.
* 롯데제과 노조원 2,700여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을 벌였다.
* [[5월 15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민주화작업 연내 완결을 위한 일정 공개 및 정부주도 개헌심의위 해체를 주장하였다.
* 신현확 총리는 학생들의 자숙/자제를 호소하며 법질서 파괴행위가 지속될 시 방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김옥길 문교장관은 학생들의 가두시위에 대해 최 대통령 귀국 시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 지식인 130여 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전국 30개대생 수십만 명이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 서울지역 35개대생 10만여 명이 서울역에서 연좌농성을 벌였다.
* 심재철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격론 끝에 시위대를 회군시켰다.([[서울역 회군]])
* 서통 노동자 1천여 명이 회사에서 농성을 벌였다.
* [[5월 16일]]
* 최규하 대통령이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귀국했다.
*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대통령중심제 및 4년임기, 1차 중임 등을 담은 헌법 개정안 작성을 완료하였다.
* 전국 55개대 총학생회장 95명이 이대에서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장단 회의'를 개최했다.
* 서울지역 25개대 및 지방 2개대 총학생회장들은 시위 중단 후 정상수업에 돌입토록 결의하였다.
* 기협은 계엄당국의 보도검열 반대 결의문 및 행동지침을 채택하였다.
* 주한 유엔사 공보과장은 북한군이 DMZ에 침투해 미군과 교전을 벌였다고 밝혔다.
* [[5월 17일]]
* 민관식 국회의장대행은 의원 186명의 소집요구에 따라 20일 제104회 임시국회 소집을 공고하였다.
* 신민당은 소속의원 66명 명의로 '민주화를 위한 정치개혁일정 완결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 국무회의는 18일 0시부터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에 비상계엄지역을 확대키로 의결했다.([[5.17 내란]])
* '전국섬유노동조합 서통지부(이하 서통노조)'가 결성되었다.
* 경찰은 이대 전국총학회장단 회의를 급습해 전국 55개대 학생대표 95명을 연행했다.
* [[5월 18일]]
* 계엄사는 전/현직 국가원수 비방 금지, 정치활동 중지, 대학 휴교 등을 담은 '포고령 10호'를 발표했다.
* 계엄사는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자 및 시위 배후조종 혐의자 26명을 연행/조사중이라고 밝혔다.
* 광주 전남대생 6백여 명이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정문 앞에서 투석전을 벌였다. 이는 광주항쟁의 시발점이었다.
* 미 국무부는 한국의 계엄령 확대에 우려를 표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미국]] [[워싱턴 주]] 스카미니아에서 [[세인트 헬렌스 화산]]이 폭발해 57명이 숨졌다.
* [[5월 19일]]
* 광주항쟁이 공수부대의 폭력진압을 계기로 시내 전역에 확산되었다.
* 경향신문 등 언론사 기자들이 5.18에 대한 왜곡보도에 반발해 제작거부 투쟁을 벌였다.
* [[5월 20일]]
* 계엄사는 당월 18일부터 광주 일원에 소요사태가 발생해 아직 수습을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 특전3공수 병력이 광주역에서 '''시위대에 난사해''' 4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당했다.
* 전남일보-전남매일이 발행을 중단했다.
* 광주MBC 궁동사옥과 광주세무서가 시위대에 의해 방화되었다.
* 신현확 총리 등 국무위원 전원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 진의종 보사장관은 노사분규에 전 행정력을 동원하라고 노동청에 지시했다.
* 대법원은 [[10.26 사태]] 관련자 [[김재규]] 등 5명에 사형, [[김계원]]에 무기징역, 유석술에 징역 3년을 각각 확정했다.
* [[캐나다]] [[퀘벡]] 분리독립 찬반 투표에서 주민들 중 약 60%가 반대함으로서 독립이 무위로 돌아갔다.
* [[5월 21일]]
* 특전11공수 33대대 병력이 광주 전남도청 앞 시위대에 '''무차별 난사해''' 54명이 숨지고 5백여 명이 부상당했다.
* 광주 시위대가 광주교도소, 전남도청/도경 등을 뺀 전 관공서를 완전 장악하였다.
* KBS광주 사옥과 광주시내 8개 파출소들이 시위대에 의해 방화되었다.
* 광주 시위대가 무기고 탈취 후 소총 등으로 무장해 밤 사이 계엄군을 시 외곽으로 몰아냈다.
* 광주 학생수습위원회 및 시민수습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광주 시민들에게 이성을 회복하고 질서유지를 당부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 최규하 대통령은 [[박충훈]]을 총리서리에, 김원기를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개각을 단행하였다.
* <[[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이 미국에 개봉되었다.
* [[5월 22일]]
* 광주항쟁이 목포, 나주 등 인접 시/군으로 확대되었다.
*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 실무자대표 8차 접촉이 이루어졌다.
* 계엄사는 김대중이 학생시위를 배후 조종했다고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 미 국무부는 광주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희망하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 미 국방부는 항공모함 코럴시호를 한국 근해에 파견한다고 밝혔다.
* [[남코]]가 비디오 아케이드게임 <[[팩맨(게임)|팩맨]]>을 일본에 출시하였다.
* [[5월 23일]]
* 박충훈 총리서리는 광주가 치안부재 상태이며, DJ-JP는 포고령 위반으로 연행 후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 11공수 장병들이 광주 주남마을에서 운행 중이던 미니버스에 난사해 탑승자 17명을 살해했다.([[주남마을 버스 총격 사건]])
* 위컴 한미연합사령관이 한국 정부측의 군 소요진압 동원 요청에 동의했다.
* [[5월 24일]]
* [[10.26 사건]]의 주범 [[김재규]] 등 5명이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당했다.
* 11공수 62대대 장병들이 광주 송암동에서 무반동포로 군용트럭에 오인사격하는 바람에 광주보병학교 교도대 9명이 숨졌다.
* 동 부대 장병들이 오인사격에 대한 분풀이로 송암동 일대 주민들과 가축들을 무차별 학살했다.(광주 송암동 학살사건)
* [[5월 25일]]: 최규하 대통령은 광주사태 해결을 위한 특별담화문을 발표했다.
* [[5월 26일]]
* 내무부는 광주시위로 전남 행정기능이 마비되어 본부가 시/군 예산지원 및 행정지도를 직접 담당키로 결정하였다.
* 이광표 문공장관은 '광주 소요사태에 대한 특별담화문'을 발표했다.
* 내무부는 안병하 전남도경국장을 대기 발령시키고 송동섭 치본 작전과장을 새 국장직에 앉혔다.
* 광주수습위는 '전남도청 독침사건' 관련 내용을 발표하였다.
* [[5월 27일]]
* 계엄군이 새벽 3시 반에 광주 시내로 진입해 전 시가지를 완전 장악했다.
* 계엄사는 안병하 전남도경국장을 지휘권 포기혐의로 연행했다.
* 계엄사 측은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 17명 사망, 군인 2명 순직, 295명 체포라고 발표했다.
* 장형태 전남지사가 사임했다.
* [[5월 28일]]
* 국무회의는 '광주사태 긴급구호 및 복구처리방안'을 승인했다.
* 정부는 광주사태에 따른 금융 및 세제지원 대책을 마련했다.
* 사북사태 관련자 25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 군인 출신 김종호가 새 전남도지사로 취임했다.
* 미국 정부는 본국의 대한방위공약 준수결의를 재확인했다.
* [[5월 29일]]
* 한국은행은 광주사태 관련 전남지역 피해 사업체에 시설복구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 광주지검 및 전남북계엄분소 합동검시반은 광주항쟁 희생자 검시를 종료했다.
* 전라남도는 광주시 피해복구를 위해 취로사업비 2억 7천만 원을 방출키로 요청했다.
* [[5월 30일]]
* 김종호 전남지사는 기자회견에서 민심수습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 뒤 후유증 없도록 사태를 수습하겠다고 밝혔다.
* 서강대생 김의기가 유인물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배포한 후 기독교회관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
* 대한체육회는 모스크바올림픽 불참 결정에 따라 태릉선수촌 대표선수 강화훈련을 중단했다.
* [[한국공항공사]]의 전신인 [[국제공항관리공단]]이 설립되었다.
* [[5월 31일]]
* 정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 계엄사는 광주사태 당시 사망자 170명, 부상자 380명, 체포 1,740명이라고 했으며 이 중 730명을 조사중이라고 발표했다.
* 광주시내 각 국교가 휴교 13일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 6월 ====
* [[6월 1일]]
* 서기원 청와대 대변인은 국보위 운영에 관해 최규하 대통령이 주재하는 대로 수시로 열릴 거라고 밝혔다.
* 전남북계엄분소는 밤 9시로 연장된 통금시간을 원래 시간으로 환원했다.
* 미국 TBS가 세계 최초의 케이블TV 뉴스채널 '[[CNN]]'을 개국하였다.
* [[6월 2일]]
*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중정 서리에서 사임했다.
* 정부는 중단되었던 헌법개정요강작성소위를 재개했다.
* 문공부는 일본 교도통신 서울지국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 한국개발금융이 '한국장기신용은행'으로 전환됐다.
* 전매-전일 양 신문사가 12일만에 발행을 재개했다.
* [[6월 3일]]
* 서울시경은 폭력배 특별단속에서 2,371명을 검거하고 2명 군사재판 회부, 251명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 경찰은 사북사태와 관련해 동원탄좌 사장 이혁배 등을 구속하였다.
* [[6월 4일]]
* 정부는 공무원 기강확립을 위해 '공무원 숙정'을 시사했다.
* 계엄사는 광주사태 연행자 중 혐의가 가벼운 206명을 석방했다고 밝혔다.
* 경기 강화군 아차분교에 국내 최초로 태양열발전소가 설치되었다.
* [[6월 5일]]
* 최규하 대통령은 국보위 상임위원 30명을 임명했다.
* 정부는 '긴축 완화를 위한 종합경제대책'을 발표하였다.
* 계엄사는 광주사태 사망자 수를 148명이라고 밝히고 신원이 확인된 128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 광주MBC, 광주CBS, 전일방송이 방송을 재개했다.
* [[6월 7일]]: 서울 서강대교가 착공되었다.
* [[6월 9일]]
* 계엄사는 언론인 8명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검거하겠다고 밝혔다.
* 삼진특수철 노동자 김종태가 서울 이대앞 4거리에서 <광주 시민/학생들의 넋을 위로하며>란 유인물을 뿌리고 분신했다. 이후 그는 닷새 만에 숨을 거두었다.
* [[6월 10일]]: 마산 외자기업 한국신흥화학 노동자들이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하였다.
* [[6월 11일]]
* 치안본부는 미국에서 음주운전 측정기를 도입해 전국 경찰관서에 배포하였다.
* 김병룡 금속노조위원장이 연내 사퇴 의사를 밝혔다.
* [[6월 12일]]
* 최규하 대통령은 개헌투표를 10월, 정권이양을 1981년 6월부터 실시키로 하는 등 정치일정을 확정지었다.
* 오히라 마사요시 전 일본 총리가 세상을 떴다.
* [[6월 13일]]: EC수뇌회담은 <아프가니스탄 특별선언> 및 <중동평화선언>을 발표하였다.
* [[6월 14일]]: 광주시내 13개 여고 및 25개 남고가 휴교 26일만에 다시 열었다.
* [[6월 15일]]: 국보위는 '공직자 숙정계획'을 발표했다.
* [[6월 16일]]: KBS-TV에서 <가정고교>가 첫 전파를 탔다.
* [[6월 17일]]
* 국보위는 정화자료 등을 수집키 위해 민원실을 설치했다.
* 계엄사는 부정축재, 국기문란, 시위주동, 배후조종 등 혐의로 [[오치성]], [[이용희(1931)|이용희]] 등 정치인과 교수, 목사, 언론인, 학생 등 329명을 지명수배했다.
* [[6월 18일]]
* 외무부는 UAE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다고 밝혔다.
* 계엄사는 권력형 부정축재에 대한 수사를 발표하면서 축재금액이 총 853억 1,154만원이라고 주장했다.
* [[6월 19일]]
* 계엄사는 당월 23일부터 대학 휴교를 '휴업'으로 변경했다.
* 축구선수 차범근이 서독 분데스리가 베스트11로 선정되었다.
* [[6월 20일]]
* 총무처 행정자문위원회가 신설되었다.
* 판문점 자유의집 별관이 준공되었다.
* [[6월 21일]]
* 대간첩대책본부는 충남 서산 앞바다에서 무장간첩선을 격침시켜 9명을 살해하고 1명을 생포했다고 밝혔다.
* 대검은 자체 숙정작업을 벌여 검사 8명 및 직원 21명을 부조리와 관련해 인사조치했다고 밝혔다.
* [[5.18 민주화운동]] 희생군인 24명과 경찰 4명이 서울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 [[6월 22일]]
* 세계은행은 한국이 초등학교 진학률 100%로 조사대상 75개 개도국 중 1위라고 밝혔다.
* 제76차 베네치아 선진국수뇌회담은 소련군 철수를 요구하는 <아프가니스탄 문제선언>을 채택하였다.
* [[6월 23일]]: 서울시경은 택시 등 영업차량 운전사들이 승객의 유언비어를 신고할 시 모범운전자 자격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 [[6월 24일]]
* 계엄사는 국기문란/시위관련 수배자 324명 중 97명이 자수했다고 밝혔다.
*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실무자대표 9차 접촉'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 권운상, 황인오 등 6명이 미스유니버스 폭파기도 혐의로 구속되었다.(미스유니버스 폭파미수 사건)
* [[6월 25일]]
* [[김종필]] 등 권력형 부정축재자 6명이 공직을 사퇴했다.
* 정부는 취업 및 여권 발급 시 신원보증제를 폐지키로 결정하였다.
* [[시리아]] 무장단체 '[[무슬림 형제단]]'이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에 대한 암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했다.
* [[6월 26일]]
* 공진청은 국내 최초로 '국민표준체위'를 조사한다고 밝혔다.
* 제일은행은 동명목재를 부도처리시켰다.
* 북한 <로동신문>은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이 무의미하다고 보도했다.
* [[6월 27일]]
* 문교부는 전국 96개대 학생처장회의를 열어 향후 대책을 논의하였다.
* 마산수출지역 4개 외국인기업 노조 중 3개가 해산되었다.
* 전라남도는 광주 시민돕기 성금 26억 원으로 어린이회관을 건립키로 결정하였다.
* [[6월 28일]]
* 상공부는 컬러TV 방식을 미국 NTSC 방식으로 확정한다고 밝혔다.
* 치안본부는 즉결심판자를 경찰서 보호실에 장기보호할 수 없도록 하는 '경찰민원업무 쇄신방안'을 전국 경찰관서에 시달했다.
* [[6월 29일]]
* 국방부는 북한 주민 1명이 판문점을 통해 귀순했다고 밝혔다.
* 한국 여자탁구 대표팀이 제50회 전미오픈 탁구대회 단체전에서 우승하였다.
* [[6월 30일]]
* 정부는 중동 산유국 오일달러 유입을 위해 '외화표시채권' 발행을 중동지역에 확대키로 결정하였다.
* 서울 성산대교가 개통되었다.
* 한전이 평택화력 1호기를 준공하였다.
==== 7월 ====
* [[7월 1일]]
* 예춘호 등 야당의원 4명이 국회의원 사퇴서를 제출했다.
* 서울지방항공관리국은 김포공항 운영권을 [[한국공항공사|국제공항관리공단]]에 이관하였다.
* 중앙매스컴은 <월간중앙> 6월호 기사 관련자 3명을 해직/파면시켰다.
* [[7월 2일]]
* 최순영 축구협회 회장은 국내 최초 프로축구팀 '할렐루야'를 창단한다고 밝혔다.
* 북한 대동강 미림갑문이 준공되었다.
* [[7월 3일]]
* 민관식 국회의장대리는 5.17 뒤 제출된 김종필 등 국회의원 9명의 사직서를 수리했다.
* 노동청은 당년도 실업자 수가 82만 9천여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 계엄사는 광주사태 관련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 부산시는 일본 TV 불법송출을 방지키 위해 불법유선방송 사업자 단속을 지시했다.
* [[7월 4일]]
* 계엄사는 김대중 등 37명을 내란 음모혐의로 군사재판에 송치하겠다고 밝혔다.([[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 남제주화력발전소가 준공되었다.
* 부산시는 '일본 텔레비전 안보기 운동'을 개시했다.
* [[7월 5일]]
* 최규하 대통령은 [[정재석]] 대신 신병현을 새 상공장관에 임명하였다.
* 에너지관리공단이 설립되었다.
* 동명목재는 종업원 3,088명을 해고한다고 결정했다.
* [[7월 7일]]
* 정부는 일본 아사히신문 및 지지통신 서울지국 특파원에 출국 명령을 내렸다.
* 영국 우정성이 세계 최초로 국제전송 서비스(인텔포스트)를 개시하였다.
* [[7월 8일]]: 제29회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 본선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되었다.
* [[7월 9일]]
* 국보위 상임위는 2급 이상 공무원 232명을 숙정하며 이중 15명은 당국에서 조사 중이라고 발표하였다.
* 임진왜란 당시 이운룡이 썼던 <거영일기> 및 <계본등록>이 경북 청도에서 발견되었다.
* [[7월 11일]]
* 이규호 문교장관은 사학의 재단-학교운영 분리를 강조했다.
* 상공부는 8월 1일부터 컬러TV 시판을 허용한다고 발표하였다.
* [[7월 12일]]
* 계엄사는 김대중 등 9명을 보통군법회의 검찰부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 계엄사는 5.18 광주항쟁 유인물과 녹음 테이프를 제작한 오태순 신부 등 가톨릭 성직자 7명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연행했다.
* [[7월 14일]]: 충남 서산 앞바다에서 생포된 남파간첩 김광현이 기자회견에서 유혈폭동을 선동키 위해 남파했다고 폭로했다.
* [[7월 15일]]
* 국보위는 전국 3급 이하 행정공무원 4,760명을 숙정했다고 밝혔다.
* 보사부는 전국에 일본뇌염 비상방역령을 내렸다.
* 스티븐 솔라즈 미국 하원의원이 미국 의원으로서 최초로 북한을 방문하였다.
* [[7월 16일]]
* 전매청은 '태양', '거북선' 등 고급 담배값을 평균 40%나 인상했다.
* 차상록 성북경찰서장이 5.5 집회 해산 때 신계륜 고대 총학생회장과 화해 악수했다는 이유로 강제 해직되었다.
* 계엄사 합수부는 방용석 원풍모방지부장에게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관련해 수배 및 출두 요구를 내렸다.
* [[7월 17일]]
* 최규하 대통령은 제헌절 기념사에서 '지속적인 민주발전'을 기초로 한 새 헌법을 만들자고 밝혔다.
* 미국 MIT가 세계 최초로 인공피부 생산 및 이식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 [[7월 18일]]
* 최규하 대통령은 새 중정부장직에 유학성 육군대장을 전역과 동시에 임명하였다.
* 솔라즈 미 하원의원이 김일성 북한 지도자와 면담했다.
* [[7월 19일]]
* 계엄사는 김현옥 등 전직 장관 3명과 국회의원 14명을 국가 기강 문란혐의로 연행/조사중이라고 밝혔다.
* 서울대생 조남일 등 4명이 광주항쟁 지하신문 발행혐의로 구속되었다.
* 국보위는 은행, 보험, 증권기관 임직원 431명을 사회정화 명분으로 숙정했다.
* [[1980 모스크바 올림픽]] 개막식이 [[루즈니키 스타디움|레닌중앙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 <[[열한 마리 고양이]]> 극장애니판이 일본 전역에 개봉되었다.
* [[7월 20일]]: 국세청은 고액 개인소득자에 대한 탈세조사를 강화키로 결정했다.
* [[7월 21일]]: 치안본부는 사소한 경범죄처벌 위반자에게 벌금 즉석납부 등 '즉심제도 간소화'를 결정하였다.
* [[7월 22일]]: 국보위는 정부투자기관 등 산하기관 127개소에서 임직원 1,819명을 숙정했다고 발표하였다.
* [[7월 23일]]
* 국보위는 대학생의 방학중 해외연수 규제를 해제시켰다.
* 김태성 등 6명이 이념서적 출판으로 구속되었다.
* [[7월 24일]]
* 국보위는 '민원업무 쇄신지침'을 마련 후 반영토록 시달했다.
* 한국 주재 외신기자들이 관계당국에 다수 연행되었다.
* [[7월 25일]]
*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당국에 연행된 김대중이 부상을 당하거나 앓고 있다는 소문은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 주덴마크 한국대사관은 유엔여성회담에 참석한 한국대표를 북한 공작원이 납치하려 했다고 밝혔다.
* 스노베 주한일본대사는 스즈키 내각 출범 후 양국관계엔 변동이 없다고 밝혔다.
* '한국해양소년단'이 창단되었다.
* [[7월 26일]]
* 법무부는 일제시기 독립운동가 수형기록을 공적사실에 포함한다고 결정하였다.
* 고려대는 김용준 교수 등 6명을 해직시켰다.
* 주한미군 부사령관은 북한측이 대다수 무기를 자체 생산한다고 밝혔다.
* [[7월 28일]]: 정부는 1981년 주택 34만채 건설계획을 수립하였다.
* [[7월 30일]]
* 신문협은 언론인 자율정화를 결의했다. 이에 따라 9월까지 언론인 933명이 해직당하게 되었다.
* 국보위는 대입 본고사제 폐지, [[졸업정원제]] 실시, 과외 금지 등을 골자로 한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을 마련하였다.
* 연세대는 시위학생 24명을 제적시키고 63명에 무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 [[바누아투]]가 [[영국]]으로부터 정식 독립했다.
* [[7월 31일]]
* 문공부는 <[[창작과비평]]> 등 정기간행물 172종의 등록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 문교부는 대학생의 가정교사 업무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 문교부는 교육공무원 611명을 숙정했다고 밝혔다.
* 계엄사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관련자 24명을 군법회의에 기소했다.
==== 8월 ====
* [[8월 1일]]
* 국보위는 신원기록 일제정리 및 [[연좌제]] 폐지를 결정하였다.
* 서울고법은 남민전 사건 항소심 1차 공판을 열었다.
* 서울시는 종로, 광화문 등 45개 교차로 신호등을 컴퓨터 전자감응식으로 바꾸었다.
* 상공부 물가안정위는 컬러TV 시판가격을 결정/고시하였다.
* 전남북계엄분소는 광주사태 연행자 중 168명을 훈방시켰다고 밝혔다.
* [[8월 2일]]: 삼성전자 등 가전 3사가 컬러TV 시판을 개시하였다.
* [[8월 4일]]
* 국보위는 폭력, 마약, 사기, 밀수 등 '사회악 일소를 위한 특별조치'를 마련하였다.
* 계엄사는 삼청계획 5호에 따라 포고령 제13호(불량배 일제 검거에 대한 포고령)를 발동했다. 겉은 그럴싸했지만 [[삼청교육대]]의 뿌리이기도 하다.
* 문교부는 각급 학교에 정화위원회 구성 지시 후 과외/폭력 등 비리를 일소키로 결정했다.
* 고려대는 반정부 시위학생 27명에 제적처분을 내렸다.
* 한신대 교수 3명이 반정부 발언과 관련해 사임했다.
* [[8월 5일]]: 최규하 대통령은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육군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 발령했다.
* [[8월 6일]]
*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은 국운 개척의 사명을 기필코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 국보위는 폭력배, 전과자 등 16,599명을 검거하고 이들을 A급(군사재판), B급(근로봉사), C급(순화교육) 등으로 나눈다고 밝혔다.
* 보사부는 불량식품 단속을 벌여 4개 업체에 영업정지, 3개 업체에 품목허가취소 등을 내렸다.
* 제1군 보통군법은 사북사태 1심 선고공판에서 관련자 8명에서 최고 5년 ~ 1년 6개월형을 선고했다.
* 요트선수 노영문과 이재웅이 '파랑새호'를 타고 경남 울산 ~ 미국 LA 간 태평양 횡단에 성공하였다.
* [[8월 7일]]
* 보사부는 불량의약품 적발 후 11개 품목에 제조허가 취소를 내렸다.
* CBS는 박인석 기자 등 12명을 해직시켰다.
* [[8월 8일]]
* 외무부는 국제앰네스티의 입국거부 항의에 대해 '부당한 내정간섭'이라 논평했다.
* 문교부는 세종대 재단운영 및 학사행정 전반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하였다.
* (현지시각 기준)위컴 한미연합사령관이 <LA 타임스> 인터뷰에서 "한국인은 레밍(들쥐)"이라 발언해 파문이 일었다.
*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은 미국 <뉴욕 타임즈> 회견에서 한국은 새 시대의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고 밝혔다.
* 미 국무부가 한국 지도자 선택은 한국인이 결정할 문제라고 언급했다.
* [[8월 9일]]
* 국보위는 도시계획에 따른 건물 및 토지 보상기준의 현실화 조치를 내렸다.
* 동아일보는 지방 주재기자 7명을 포함한 기자 33명을 강제 해직시켰다.
* 민문기, 양병호 등 대법원 판사 5명이 사임했다.
* 성균관대는 시국관련 교수 4명을 해임시키고 학생 11명을 제적시켰다.
* [[8월 10일]]
* 동자부, 공진청, 서울시는 시내 주유소 및 석유판매업소 합동 불시단속을 실시하였다.
* 소비자보호협의회는 불량품 중 가전 3사 제품이 전체의 60%에 달한다고 집계하였다.
* 이우재 등 서울대생들이 반정부 유인물 배포로 구속되었다.
* [[8월 11일]]
*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사회안정과 발전을 위해 대통령중심제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 수영선수 [[조오련]]이 [[대한해협]]을 헤엄쳐 횡단에 성공했다.
* 김포공항 신청사가 착공 2년 10개월만에 완공되었다.
* 동아일보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이 김성환 작가 해직으로 연재가 중단되었다.
* [[8월 12일]]
* 문교-내무-국세 합동 37개 과외단속반이 활동을 개시하였다.
* 대한적십자사는 북적 측에 남북적십자회담을 무조건 재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 '1980년 세계복음화대성회'가 서울 여의도 5.16광장에서 개최되었다.
* 박용길 장로가 유언비어 유포혐의로 연행되었다.
* [[8월 13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고 정계 은퇴 의사를 밝혔다.
* 유공은 미국 걸프 사에 주식 6,800만 불 송금 후 거래를 완전 청산했다.
* [[8월 14일]]: 육군보통군법회의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심 공판을 열었다.
* [[8월 15일]]
* 국보위는 사회악 사범 30,578명을 검거하고 이중 19,000여 명을 군부대에서 순화교육 중이라고 발표했다.
* 전매청이 '솔' 담배를 시판하였다.
* [[8월 16일]]
* [[최규하]] 대통령은 오전 10시 특별성명에서 대통령직에서 하야한다고 밝혔다.
* 박충훈 대통령 권한대행은 통대선거에서 후임자를 곧 선출한다고 밝혔다.
* 미 국무부는 최규하 대통령 하야 관련 논평에서 넓은 지지기반을 지닌 민주정부 수립의 중요성을 촉구하였다.
* [[8월 17일]]
* 한국지퍼노조가 고정열 분회장 등의 조건부 퇴직으로 사실상 와해되었다.
* 미국 <워싱턴 포스트> 지는 미국 정부가 전두환의 대통령 추대에 반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 [[8월 18일]]
* 육군보통군법회의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2차 공판을 열었다.
* 계엄사 수사당국은 여야 정치인 17명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 법제처는 10월 중 확정될 새 헌법에 따라 수립되는 정부가 '제5공화국'에 해당된다고 유권해석했다.
*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 실무자대표 10차 접촉'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 국제경제연구원은 한국 주요 75개 기업 중 66%가 장남 위주로 기업을 승계한다고 지적했다.
* 폴란드 반소 노조파업이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 [[8월 19일]]
*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은 전국총/학장회의에서 학원 내/외 소요사태를 용납치 않겠다고 밝혔다.
* 국보위는 여권발급기간 단축 등 간소화방안을 마련하였다.
* 문공부는 전국 2,597개 출판사 중 617개의 등록을 취소했다.
* 방송협은 [[폭력성 만화영화 금지 정책|SF만화영화 편성금지]] 등을 담은 '방송자율정화방안'을 마련했다.
* 권중동 노동청장은 사용자가 근로자의 불만을 경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우디항공 163편 L-1011-200기가 리야드공항 이륙 도중 [[사우디아라비아 항공 163편 사고|큰불이 나]] 탑승인원 301명이 전원 사망했다.
* [[8월 20일]]
* 북한측 대표는 남한측 정세변화를 이유로 '남북총리회의 10차 실무자회담' 연기를 주장했다.
* 내무부는 '지문채취규정' 개정에 따라 모든 입건피의자의 지문체취를 폐지하였다.
* 국보위 상공분과위는 중공업분야 투자조정을 단행해 현대양행의 발전설비/중장비부문을 대우로 넘기도록 했다.
* 한신대는 학내 시위학생 7명을 제적시켰다.
* 중정은 석달윤을 간첩 혐의로 불법 연행했다.
* [[8월 21일]]
* 최규하 전 대통령은 새 지도자가 국민과 군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국방부 전군주요지휘관회의는 차기 대통령에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추대할 것을 결의하였다.
* 노동청은 '노동계 정화지침'을 전국 각 사업장 등지에 시달했다.
* 김영태 노총위원장 등 한국노총 산별노조 위원장급 12명이 해임되었다.(제1차 노동계 정화조치)
* [[8월 22일]]
*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육군 대장으로 전역했다.
* 박충훈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 보궐선거를 위해 통대 대의원 소집을 공고했다.
* [[8월 23일]]
* 계엄사 합수부는 비리/사생활 문란혐의로 연행된 전직 장관 등 17명을 석방시켰다.
* 보사부는 전국에 일본뇌염 발생경보를 하달하였다.
* 동자부는 온수보일러 등 에너지소비효율 표시대상 품목 광고에 소비효율 표시를 의무화하도록 하였다.
* [[8월 24일]]: 동자부는 유류가격 평균 12.6% 인상 및 향후 환율 원유가 등에 유류가를 연동키로 결정했다.
* [[8월 25일]]
* 이춘기 통대운영위원장 등 대의원 737명이 전두환을 차기 대통령후보로 추대했다.
* 신민당은 김영삼 대신 이민우 부총재를 총재권한대행으로 지명했다.
* [[8월 26일]]
* 서울대 교수 7백여 명이 '학원정상화 촉진 결의대회'를 열었다.
* 대법원 형사1부는 'YWCA 위장결혼식 사건' 관련자들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 [[8월 27일]]
*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 전두환 신임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장에 김경원, 경호실장에 정동호, 의전수석에 김병훈, 공보수석에 이웅희를 각각 임명하였다.
* 민관식 국회의장대행은 최태호 유정회 의원 대신 김유복에게 의원직을 승계하였다.
* [[8월 28일]]
* 계엄사는 대학 휴교령을 9월 1일부로 전면 해제시킨다고 밝혔다.
* 이규호 문교장관은 각 대학 소요사태 발생으로 법정일수 180일 충당 못할 시 유급시키겠다고 경고했다.
* 5개 TV/R 방송사 심의실장회의는 9월 1일부터 심수봉, 이주일 등 연예인 24명에 출연금지를 결정토록 했다.
* 미 하원 외무위는 한국관계청문회에서 홀부르크 차관보 증언 시 김대중에 피난처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 [[8월 29일]]
* 정부는 골프비용이나 개인 향응비, 자가용 유지비를 회사경비로 지출하지 못하도록 요강을 마련하였다.
* 문교부는 한국외대 등 4개대를 종합대학으로 승격하였다.
*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대우실업 등 관계사 주식 2백억 원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밝혔다.
* [[8월 30일]]
* 국보위 민원실이 폐쇄되었다.(8.27까지 민원 30,953건 집계)
* 전남-부산지방에 집중호우가 발생해 11명이 사망/실종되고 가옥 79채가 파괴되었다.
* 8.4 포고령 이후 수용된 불량배 2만 명 중 9,600명이 순화교육 이수 후 사회로 복귀했다.
* [[8월 31일]]
* 국보위는 '수출입절차 간소화대책'을 발표하였다.
* 레흐 바웬사 등 노동자들이 폴란드 레닌조선소에서 [[독립자치노동조합 '연대']]를 결성하였다.
==== 9월 ====
* [[9월 1일]]
*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제11대 대통령직에 취임했다.
* 전두환 대통령은 일본 <제군> 지 회견에서 강력한 영도력으로 국민총화 방향으로 전진하겠다고 밝혔다.
* 정부는 1981년부터 국내 최초로 에너지 센서스를 실시한다고 결정하였다.
* [[9월 2일]]
* 전두환 대통령은 남덕우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조각을 단행하였다.
* 남덕우 신임 국무총리는 1980년대부터 안정적 경제성장 위에 민주복지국가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 신일고 야구부가 제1회 서울시장기 쟁탈 고교야구대회 결승에서 선린상고를 3-2로 꺾어 우승하였다.
* [[9월 3일]]
* 전국 대학들이 109일만에 정상수업을 개시했다.
* 노동청은 '노동조합 정화 역이용 사례 방지 지침'을 전경련, 경총, 한국노총, 대한상의 등에 하달했다.
* [[9월 4일]]: 육군보통군법회의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15회 공판을 열었다.
* [[9월 5일]]
* 문교부는 학과별 최소 졸업정원제 등을 담은 '대학교육개혁시안'을 마련하였다.
* 서정화 내무장관은 순화교육 이수자에게 취업알선 등 생계대책을 마련토록 지시했다.
* 전남북계엄분소는 광주사태 관련자 174명에 기소유예, 정동년 등 나머지 175명에 포고령 위반 및 내란혐의로 각각 기소했다.
* 서울고법은 이재문 등 '남민전 사건' 관련자 4명에 사형을 선고했다.
* 도서윤리위는 '만화정화방안'을 마련했다.
* [[9월 6일]]: 이현주, 박형규 목사가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
* [[9월 8일]]: 북한 고원 ~ 봉산 간 전기철도가 개통되었다.
* [[9월 9일]]: 이란-이라크 양군이 샤트 알아랍 수로를 두고 분쟁을 일으켰다.
* [[9월 11일]]
* 육군보통군법회의는 내란음모 혐의자 김대중에 사형을 구형했다.
* 경주 안압지 및 임해전 복원공사가 완료되었다.
* 새마을지도자중앙협의회가 설립되었다.
* 연합노조 서울수산시장지부 전 지부장 및 조합원 120명이 노조간부의 운영비 착복을 비판하고 사퇴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9월 12일]]
* 전두환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서 물가안정세 유지를 지시하였다.
* 정부는 미국과 일본의 대북한 교류 확대 움직임에 대해 다각적 대응책을 마련했다.
* 내무부는 사회정화 차원에서 교통 및 거리질서 확립운동을 전개키로 결정하였다.
* 대한적십자사는 북적에 남북적십자 본회담 조속개최 및 납북선원 조기송환을 제의하였다.
* [[케난 에브렌]] 터키 육참총장이 쿠데타를 일으켜 데미렐 정부를 전복시켰다.
* [[9월 13일]]
* 정부는 중전기 등 4개 부문 중공업 2단계 통합조정을 단행했다.
* 육군보통군법회의는 18회 공판에서 김대중의 최후진술을 청취했다.
* [[9월 14일]]
* 경제기획원은 인구/주택 센서스 조사기준일을 10월 1일에서 11월 1일로 바꾼다고 밝혔다.
* <젊음의 행진>이 KBS-TV에서 첫 전파를 탔다.
* [[9월 15일]]
* 전두환 대통령은 구태의연한 정치인들을 새 정치에 참여시켜선 안 된다고 언급했다.
* 이규호 문교장관은 교육개혁 저해요소를 배제키 위해 희생을 무릅쓸 각오가 됐다고 언급했다.
* [[9월 16일]]
* 정부는 금리인하 및 양도소득세율 완화 등을 담은 '종합경제대책'을 마련하였다.
* 국방부는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군이 민주복지국가와 정의사회 구현의 선봉이 될 것을 다짐했다.
* 미국 보스턴미술관에서 '한국미술 5천년전'이 개최되었다.
* [[9월 17일]]
* 전두환 대통령은 한국이 박정희 정권기보다 더 민주적 사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육군보통군법회의는 내란음모 혐의자 김대중에 사형 선고를 내렸다.
* [[9월 18일]]
* 한국은행은 1979년 기준 실질경제성장률이 6.4%, 국민소득이 1,597 불이라고 각각 밝혔다.
* 미 국방부는 한국에 신형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한다고 밝혔다.
* 북한 조국전선-조평통 연합회의는 김대중 사형선고 규탄성명을 냈다.
* [[9월 19일]]
* 한-불 어업협정이 정식 체결되었다.
* 경제기획원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을 연내에 제정키로 결정하였다.
* [[9월 20일]]
* 제105회 정기국회가 개최되었다.
* 김문수, 방용석 등 민주노조 간부 191명이 강제로 사표를 냈다.(제2차 노동계 정화조치)
* [[9월 21일]]: 한국 여자농구대표팀이 제8회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였다.
* [[9월 22일]]
* 국회 본회의는 남덕우 총리 및 이한기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가결 후 폐회했다.
* 보사부는 서울, 전북에서 진성콜레라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 이라크군 병력이 선전포고 없이 이란 영토를 기습해 [[이란-이라크 전쟁|전쟁]]이 발발했다.
* [[9월 23일]]: 상공부는 185개 산하단체 중 유사/운영중복 단체 28개를 해산키로 결정했다.
* [[9월 24일]]
* 문교부는 대학교수들의 학생지도 상담활동을 책임제로 강화하라고 각 대학에 지시했다.
* 북한 실무대표는 남북총리회담 실무대표 접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 [[9월 25일]]: 적십자간호전문대 학생들이 반정부 유인물을 배포했다.
* [[9월 26일]]
* 국무회의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국가보위대책회의'로 개칭키로 의결했다.
* 남북총리회담 서울 실무대표단은 11월 둘째주에 총리회담을 열자고 북측에 공개 제의하였다.
* [[9월 27일]]
* 정부는 20개 재벌 계열사 정리 등을 담은 '기업체질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 서울지하철건설본부는 2호선 잠실 ~ 신설동 구간 시범운행을 개시하였다.
* [[9월 28일]]
* 내무부-자연보존협회는 경기 포천군 내촌면 임야 15만평을 가꾸기로 결정하였다.
* 한양대 마취/정형외과팀이 뼈와 살 동시이식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 [[9월 29일]]: 전두환 대통령은 임시국무회의에서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 개헌안'을 발의한다고 공고했다.
* [[9월 30일]]: 정부는 전국 지방장관/경찰국장회의 및 전국검사장회의에 국민투표 저해사범을 철저히 단속토록 시달했다.
==== 10월 ====
* [[10월 1일]]
* 상공부는 중공업 통폐합작업에 직권조정을 내렸다.
* 건설부는 주택 5백만 채 건설계획을 발표하였다.
* [[10월 2일]]
* 이승윤 재무장관이 국제신용보험기구 설치를 제의하였다.
* 전주우석여자대가 교명을 '전주우석대학'으로 개칭하였다.
* [[10월 7일]]
* 남북총리회담 11차 실무접촉이 북측 불참으로 실패했다.
* 내무부는 인구 2만 이상 35개 면을 읍으로 승격키 위한 규정을 마련하였다.
* 계엄사는 수배자 김태홍 전 기자협회 회장을 수경사 보통군법 검찰부로 구속/송치했다.
* 부산도시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 [[10월 8일]]
* 정부는 대기업 및 기업인 소유 미신고 부동산을 색출키 위해 '합동조사반' 편성과 정밀조사를 결정하였다.
* 이규호 문교장관은 전국총학장협의회에서 교수 재임용제를 강력 시행한다고 밝혔다.
* 문교부는 고교 우열반 편성을 허용했다.
* 아메드 세쿠 투레 기니 대통령이 방북했다.
* 산티아고 카리요 스페인 공산당 총비서가 방북했다.
* [[10월 9일]]
* 정부는 '한강유역 환경보전계획'을 마련키로 결정하였다.
* 북한 지도자 김일성이 평양에서 리센녠 중공 부주석과 회담을 열었다.
* [[10월 10일]]
* 전두환 대통령은 사정협의회에서 고위공직자 재산등록제를 마련토록 지시했다.
* 북한 지도자 김일성은 조선로동당 제6차 당대회 연설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안'을 제의했다.
* 북한 로동당은 제6차 대회에서 김정일을 당집행위원 29명 중 서열 5위로 선출해 세습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 알제리 북부 엘 아스남 지역에 리히터 규모 7.3짜리 강진이 발생해 2만 명이 숨지고 25만 명이 부상당했다.
* [[10월 11일]]
* [[남덕우]] 총리는 학원이 예전처럼 질서 파괴의 근원지가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전태일]] 모친 이소선이 청피노조 임금인상농성 배후조종 혐의로 구속되었다.
* [[10월 12일]]: 대한민국 [[제주도]]의 하멜 기념비 제막
* [[10월 13일]]: 국가보위대책회의는 순화교육자 19,000여 명 중 214명(1.1%)가 재범으로 검거되었다고 밝혔다.
* [[10월 14일]]
* 문교부는 각급 학교 운동장을 적극 개방해 활용하도록 전국 국/중/고에 지시하였다.
* 내무부는 경범죄 처벌자에 즉심 대신 벌금통고서로 대체키로 결정하였다.
* [[10월 15일]]
* 이동복 남북조절위 서울측 대변인은 북측의 '고려연방공화국' 제의에 대해 비난성명을 냈다.
* 경주~포항 간 고속화도로가 개통되었다.
* [[10월 16일]]
* 전두환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1981년 3월 전에 대통령선거, 4~5월에 국회의원선거, 6월까지 새 정부 수립 계획이라고 밝혔다.
* 보건사회부는 의료보험공사 설립과 사회복지기금법 제정 등을 골자로 한 '보사행정 장기계획'을 발표하였다.
* [[10월 17일]]
* 고대생들이 선언문 <반파쇼 민주화의 횃불을 들라>를 뿌리며 시위를 벌였다.
* 서울대 농대생들이 유인물 <민주화 학우선언> 배포 및 시위를 벌였다.
* 일본 MBS에서 <가면라이더 슈퍼-1>이 첫 전파를 탔다.
* [[10월 18일]]
* 고려대는 교내 학생시위로 자진휴업 조치를 내렸다.
* (현지시간 기준)송요찬 전 내각수반이 미국 시카고에서 세상을 떠났다.
* 윈드서퍼 박희봉이 8시간 23분만에 대한해협 횡단에 성공하였다.
* [[10월 20일]]
* 부산지하철 1호선 공사가 개시되었다.
* 그리스 정부가 NATO로 복귀하였다.
* [[10월 21일]]
* 국무회의는 '의료보험법 시행령'을 개정키로 결정하였다.
* 주간 농촌드라마 <[[전원일기]]>가 MBC에서 첫 전파를 탔다.
* 경기공전생들이 반정부 유인물을 배포했다.
*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창단 98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 [[10월 22일]]: 제8차 개헌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 [[10월 23일]]
* 정부는 개헌 국민투표에서 투표율 95.5% 및 찬성율 91.6%로 개헌이 확정되었다고 밝혔다.
* 건설부는 해외 건설 수출이 당년도 목표치인 60억 불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 서울시립대생들이 반정부 교내시위를 벌였다.
* [[10월 24일]]
* 국가보위입법회의 구성이 완료되었다.
* 육군보통군법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항소심 1차 공판을 열었다.
* [[10월 25일]]: 전남북계엄분소 보통군법은 광주사태 관련 선고공판에서 [[정동년]] 등 5명에 사형, [[홍남순]] 변호사 등 7명에 무기징역을 각각 선고했다.
* [[10월 26일]]: 한국 남녀 배구 대표팀이 제1화 아시아주니어 배구선수권대회에서 각각 동반우승하였다.
* [[10월 27일]]
* 정부는 제5공화국 헌법 제정과 동시에 국회 및 각 정당들을 자동 해산시켰다.
* 계엄사 합수부는 불교계 정화 명분으로 전국 사찰에 난입해 조계종 승려와 관계자 등 153명을 불법 연행했다([[10.27 법난]]).
* [[10월 28일]]
* 전두환 대통령은 국회를 대신할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 81명을 임명하였다.
* 김동호 동아대 박물관장은 제4회 한국고고학전문대회에서 경남 욕지군도에서 중석기 유적을 발굴했다고 보고했다.
* 조화순 목사 등 3명이 유언비어 유포혐의로 구속되었다.
* 시오타 일본 방위청 방위국장이 홋카이도 북방영토 및 독도가 불법 점거되었다고 망언했다.
* [[10월 29일]]
* 입법회의는 제2차 본회의에서 이호 의장 등 임원진을 선출했다.
* 정부는 국무총리 직속으로 사회정화위원회 설치할 계획을 발표했다.
* 육군 계엄고등군법은 내란음모사건 결심에서 김대중에게 사형, 문익환 등 4명에 징역 20년, 한승헌 등 11명에게 징역 3~4년 6개월 등을 구형했다.
* [[10월 30일]]
* 보사부는 1982년부터 모든 의약품에 정찰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 새싹회는 1979년에 자살한 재일동포 학생 임현일 군의 추모식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었다.
* [[10월 31일]]
* 문교부는 1981년부터 해외동포교육 강화 방안으로 재외 한국학교 3개교 및 한국교육원 5개교를 증설한다고 밝혔다.
* 노동청은 원풍모방노조 간부 정화조치를 지시했다.
* 섬유노조는 원풍모방노조 부지부장 박순희에 조합원 제명조치를 내렸다.
*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설동역]] ~ [[종합운동장역(서울)|종합운동장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 중공 정부는 사회주의 경제와 자유경제를 혼합한 새 경제체제를 도입키로 한다고 밝혔다.
==== 11월 ====
* [[11월 1일]]
* 입법회의 예산결산위는 '1980년도 추경예산안' 종합심사에 착수해냈다.
* 정부는 '대도시권 정비법안'을 마련하였다.
* 문교부는 1983년부터 면 이하 지역에서부터 중학교 의무교육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 보사부는 권삼출 등 10명이 일본 히로시마 원폭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고 밝혔다.
* [[11월 2일]]
* 정부는 불황 장기화로 기업의 도태는 불가피하며 구제금융은 없다고 밝혔다.
* 국무총리 직속기구 '사회정화위원회'가 구 통일주체국민회의 건물에서 업무를 개시하였다.
* [[11월 3일]]
* 입법회의는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의결했다.
* 육군 고등군법은 김대중에 사형, 이문영 징역 20년, 문익환 15년, 예춘호 12년형을 각각 선고했다.
* [[11월 4일]]
* 조계종은 임시중앙총회에서 종회를 해산하고 정화중흥회의를 발족한다고 의결했다.
* 노동청은 '정화된 노동조합 간부의 노조활동 금지 지침'을 발표했다.
* 경희대생들이 교내에 반정부 유인물을 배포했다.
* (현지시간 기준)미국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이 대선에서 카터 대통령(민주당)의 연임시도를 저지해 당선되었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기자회견에서 한국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 [[11월 5일]]: 계엄사는 KNCC 인권위 사무실을 수색하고 간사를 연행했다.
* [[11월 6일]]
* 경제기획원은 통화공급 규제방식을 간접규제방식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 상공부는 인천 남동구 폐염전을 공업단지로 조성한다고 밝혔다.
* 광주 지하 음악감상실에서 폭발물이 터져 1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당했다.
* [[11월 7일]]
* 전두환 대통령은 정치활동 규제대상자 심사위원 9명을 임명하였다.
* 동자부는 경북 울진원전 5~6호기를 프랑스 프라마톰 사에 발주키로 확정하였다.
* [[11월 8일]]
* 정부는 예금금리 2.5% 인하 등을 담은 경제활성화대책을 발표했다.
* 정치쇄신위는 비공개회의에서 정치활동 규제대상자를 가려내기 위한 특별심사에 착수했다.
* 차우셰스쿠 루마니아 대통령은 소련군의 아프간 철수 촉구 및 대 폴란드 외세개입 반대를 선언했다.
* [[11월 9일]]: <[[전국 노래자랑]]>이 KBS-TV에서 첫 전파를 탔다.
* [[11월 10일]]
* 정부는 추곡수매가를 전년도보더 25% 더 올렸다.
* 문공부는 12월 1일부터 컬러TV 시험방송을 개시한다고 밝혔다.
* [[11월 11일]]: 김대중 등 내란음모사건 관련자 12명이 2심 판결에 불복하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 [[11월 12일]]
* 이홍우 시사만화 <[[나대로 선생]]>이 동아일보에서 연재를 개시하였다.
* 정치쇄신위는 정치활동 규제대상자 811명의 이름을 담은 1차 명단을 공고했다.
* 납북어선 제6~7해왕호 및 선원들이 억류 291일만에 귀향했다.
* [[11월 13일]]
* 건설부는 '동서고속도로 건설계획'을 확정하였다.
* 서울 경서중 1학년생 이윤상이 실종되었다.([[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
* [[11월 14일]]
* 계엄사는 불교계 부조리수사 결과 승려 등 18명을 구속/형사입건하고 각종 부정치부재산이 2백억 6천만 원이라고 밝혔다.
* 이규호 문교장관은 기업체와 정부산하기관 채용시험에 <국민윤리>를 넣도록 권장했다.
* 신문협-방송협 양측은 임시총회에서 [[언론통폐합|'건전언론 육성과 창달을 위한 결의문']]을 발표했다.
* [[11월 15일]]
* 정치쇄신위는 피규제자 24명을 추가 공고해 피규제자 수는 총 835명으로 늘어났다.
* 정치활동 피규제자 남재한, 김유복이 정치쇄신위에 '적격심판 청구서'를 냈다.
* [[11월 17일]]: 원로 작곡가 [[이흥렬]]이 세상을 떴다.
* [[11월 18일]]: 입법회의 법사위는 정당법 및 선관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 [[11월 19일]]: KAL 707편 B747기가 서울 김포공항 착륙 도중 큰불로 탑승자 226명 중 14명이 사망했다.([[대한항공 015편 착륙 사고]])
* [[11월 20일]]: 사회정화위는 불량만화 출판사 대표 및 만화가 14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1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 [[11월 21일]]
* 계엄사는 정치활동 피규제자 일부의 정치활동 복귀허용 등을 담은 '포고령 15호'를 발표했다.
* 정치쇄신위는 적격심판을 청구한 피규제자 569명에 대한 개별심사를 착수했다.
* 문교부는 학원 소요사태와 관련해 안세희 연세대 총장을 소환하고 재단에 계고장을 내렸다.
* [[11월 22일]]: 이탈리아 남부 이르피니아 지역에 매그니튜드 6.9짜리 강진이 발생해 1만여 명이 숨졌다.
* [[11월 23일]]: [[공주사대]](현 [[공주대학교]]) 발굴팀이 충남 공주군 공산성 터에서 백제 군창지를 발굴해냈다.
* [[11월 24일]]: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경남일보가 종간되었다.
* [[11월 25일]]
* 정치쇄신위는 정치활동 피규제자 835명 중 268명에 적격판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신아일보, 서울경제신문, 일간내외경제, 영남일보, 시사통신, 무역통신 등이 각각 폐업되었다.
* 동 조치에 따라 CBS의 보도 부문이 폐지되었다.
* [[11월 26일]]
* 김동휘 외무차관은 주한 일본공사에게 김대중 공판에 관해 정부의 강력한 입장을 전했다.
* 현대경제일보가 <한국경제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었다.
* [[11월 27일]]
* 입법회의 경제1위원회는 소득세법 등 4개 법안을 심의/통과시켰다.
* 유치송 등 구 신민당 의원 14명이 '(가칭)민주한국당 창당발기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 [[11월 28일]]
* '민주정의당 창당발기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한-일 간 해저케이블이 개통되었다.
* [[11월 29일]]
* 민주사회당 발기준비위원회가 창당을 공식 선언했다.
* 입법회의 본회의는 '집시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전일-전매 2개 신문이 종간되었다.
* [[11월 30일]]
*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동양방송|TBC]], [[동아방송|DBS]], [[전일방송]], [[서해방송]], [[한국FM]], [[국제신문]] 등이 각각 종방/종간되었다.
* 한국 여자탁구 대표팀이 제23회 스칸디나비아 오픈탁구선수권대회에서 1~3위를 차지하였다.
==== 12월 ====
* [[12월 1일]]
* KBS는 신규 TV채널 1개([[동양방송|TBC-TV]]→KBS 2TV) 및 라디오 3개 채널을 개국했다.
* KBS 1TV가 컬러 시험방송을 처음으로 개시하였다.
* 전남지역 통합일간지 <광주일보>가 창간되었다.
* 한국화학분석시험검사소가 설립되었다.
* 민간단체 '새마을운동중앙본부'가 발족되었다.
* 부여사적지발굴조사단이 충남 부여 정림사지에서 백제시기 인공연못을 발굴해냈다.
* [[12월 2일]]
* 민정당 창당발기인총회는 이재형을 위원장직에 선출했다.
* 대청다목적댐이 완공되었다.
* 반도상사노조가 전/현직 지부장의 회사 출입금지 조처에 항의하며 집회를 열었다.
* [[12월 3일]]
* 구 유정회-공화당 의원 18명이 '제1차 창당발기준비위원회'를 열었다.
* 선관위는 신규 정당 측이 이미 해산된 당명을 쓸 수 없다고 유권해석했다.
* 부산대 발굴팀이 동래에서 가야시대 금동관을 발굴해냈다.
* [[12월 4일]]
* 민정당은 68개 지구당 조직책 명단을 발표하였다.
* 남덕우 총리는 임금조정은 기업 단위로 노사협의를 통해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 정부는 정책금융 단계적 폐지 등을 담은 '금융산업 자율화방안'을 발표하였다.
* 국방부는 징집연령을 만 19세로 낮추고 복무기간을 30개월로 단축한다고 밝혔다.
* 상공부는 염색공업 육성지원을 강화키로 결정하였다.
* [[12월 5일]]
* 입법회의는 구속적부심 절차 규정 등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입법회의는 보호감호제도를 도입한 '사회보호법'을 통과시켰다.
* 정부는 모든 공무원시험에 <국민윤리>를 채택키로 결정했다.
* 재무부는 1개 시중은행 민영화 및 외국합작은행 신설 등 '금융자율화시책'을 확정지었다.
* [[12월 6일]]
* 반공정당 '한국자유민주당'이 창당유보 성명을 냈다.
* 노동청은 기업별노조 도입, 제3자 개입금지 등을 담은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 노동청은 제3자 개입금지, 산별노조의 기업노조 전환, 유니언숍 제도 폐지, 노조 설립요건 강화 등을 골자로 한 노동조합법과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 [[12월 7일]]
* 전두환 대통령이 사회혼란은 미리 정보를 입수해 막으라고 지시했다.
* 계엄사 합수부는 임현재 청피노조 지부장 등 간부 6명을 연행했다.
* [[12월 8일]]
* 경제기획원은 1981년 중 서울에 농수산물 종합도매시장 8개를 신/증설한다고 밝혔다.
* 계엄사 합수부는 원풍모방 이문희 지부장대리 등 노조 간부 및 대의원들을 강제 연행했다.
* 계엄사 합수부는 배옥병 등 서통노조 간부 6명을 연행했다.
* 전 비틀즈 멤버 [[존 레넌]]이 미국 뉴욕 저택 앞에서 [[마크 채프먼]]에게 총상을 입고 숨졌다.
* [[12월 9일]]
* '민정당 창당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문교부는 국어순화운동을 범국민운동 등으로 강력히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 가농 광주분회원 정순철 등 5명이 5.18 당시 미국의 책임을 규탄하고자 광주 미국문화원에 불을 질렀다.([[광주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 [[12월 10일]]
* 전두환 대통령은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새마을운동이 민간운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 권정달 민정당준비위 사무총장은 구 공화당 지방조직을 민정당이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 [[12월 11일]]
* 문공부는 KBS가 MBC-경향 주식 중 65%를 KBS가 인수하고 나머지 35%를 5.16장학회가 보유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김지하 시인 등 8명이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 서울대생들이 교내 학생식당과 도서관 계단에서 <반파쇼 학우 투쟁> 등 유인물을 뿌리며 시위를 벌였다(무림 사건).
* [[12월 13일]]
*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브라운 미 국방장관과 회담을 열었다.
* 브라운 미 국방장관이 이한 성명에서 한국의 민주성장을 낙관한다고 밝혔다.
* [[12월 14일]]
* 경제기획원은 11월 기준 349개 소비자물가 평균가격이 전년도 12월보다 100% 상승했다고 밝혔다.
* 부산시경은 '효주양 유괴사건' 범인 매석환을 검거했다.
* [[12월 15일]]: 사회정화위는 전자오락실 393개소, 구슬당구장 114개소, 독서실 139개소에 각각 폐쇄조치를 내렸다.
* [[12월 16일]]
* 입법회의는 정치자금의 범위를 확대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 환경청은 전국 교회 차임벨/종소리, 사찰 스피커 등을 자진철거하도록 유도했다.
* 대한상의는 광공업근로자 의식구조 조사에서 52.5%가 대우받는 직장을 원한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 [[12월 18일]]
* 권정달 민정당준비위 사무총장은 공화당 재산을 무상 양도받았다고 밝혔다.
* '(가칭)신정당 창당발기인대회'는 위원장에 김갑수를 선출하였다.
* [[12월 19일]]
* 국무회의는 대입예비고사제를 학력고사제로 바꾼 '교육법 개정안'을 의결하였다.
* 정부는 1981년 1월 1일부로 중정을 '[[국가안전기획부]]'로 개칭한다고 발표하였다.
* 입법회의 본회의는 '한국방송광고공사법' 등 4개 법안을 의결하였다.
* 국내 최초 통합통신사 '연합통신'이 설립되었다.
* [[12월 20일]]
* 계엄사 합수부는 전직 CBS 기자 4명을 군 관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검거하고 1명을 수배 중이라고 밝혔다.
* 한국기독교선교원이 국내 최초 프로축구팀 '할렐루야'를 창단하였다.
* [[12월 22일]]: KBS 2TV와 MBC가 컬러방송을 시작하였다.
* [[12월 23일]]
* 입법회의 문공위는 '언론기본법안'을 수정/통과시켰다.
* 대법원 형사4부는 이재문 등 남민전 사건 관련자 57명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지었다.
* 부산대 발굴팀이 동래구 복천동 고분군 22호 고분석실에서 마구 등을 출토해냈다.
* [[12월 24일]]: [[교보문고]]가 설립되었다.
* [[12월 26일]]
* 입법회의 본회의는 언론기본법 등 19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 입법회의 경제2위원회는 '노동조합법 개정안' 등 노동관계법안 5개를 통과시켰다.
* [[12월 27일]]
*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솔라즈 미 하원의원을 면담했다.
* 김영균 입법회의 법사위 간사위원은 반공법과 국보법에 유사규정이 많아 법체계 정리 후 본회의에 통과하겠다고 밝혔다.
* [[12월 28일]]
* 농수산부는 청정벼 등 38개 신품종을 장려/준장려품으로 선정 후 농가에 공급키로 결정하였다.
* 자연보존협회는 자연생태계의 심각한 파괴로 보호대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하였다.
* [[12월 29일]]
* 정부는 '공무원 윤리헌장 5개항'을 선포하였다.
* 한국-리비아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12월 30일]]
* 입법회의 본회의는 노동관계 5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 입법회의가 118개 법안/동의안 처리를 끝으로 당년도 일정을 마쳤다.
* 상공부는 9.27 기업체질강화대책에 따라 26개 그룹 631개 계열사 중 166개사를 정리토록 지시했다.
*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이 네덜란드 국제배구대회에서 우승하였다.
* [[12월 31일]]
* 경제기획원은 당년도 도매물가가 44.2%, 소비자물가가 34.6%, [[경제성장률]]이 -5.7%로 기록되었다고 밝혔다.
* 정부는 언기법 등 26개 법률을 제정했다.
* 합동-동양통신이 종간되었다.
=== 가상 ===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판의 배경 연도. 원판 소설의 배경은 [[1979년]]이다.
* [[화려한 휴가]]의 배경연도.
* [[레드 드래곤(소설)|레드 드래곤]]의 배경연도.
* [[택시운전사]]의 배경연도.
* [[마약왕]] 후반부 배경연도.
* [[도라에몽(애니메이션)#s-3|구 도라에몽]]의 배경연도.
== 탄생 ==
=== 실존 인물 ===
==== 1월 ====
* [[1월 1일]] - [[정재훈(1980)|정재훈]]: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1월 3일]]
* [[윤형빈]]: 한국의 [[코미디언]]
* [[이동훈(성우)|이동훈]]: 한국의 [[성우]]
* [[1월 5일]] - [[세바스티안 다이슬러]]: [[독일]]의 축구 선수
* [[1월 6일]] - [[박시은]]: 한국의 [[배우]]
* [[1월 7일]] - [[체샤]]: 한국의 [[코스프레|코스튬 플레이어]]
* [[1월 9일]] - [[미즈사와 후미에]]: [[일본]]의 성우
* [[1월 13일]] - [[원흠]]: [[노라조]]의 멤버
* [[1월 14일]]
* [[김대기(프로게이머)|김대기]]: [[한국]]의 --적절한-- 기업인, 전직 [[프로게이머]]
* [[카이다 유코]]: [[일본]]의 성우
* [[타마키 히로시]]: 일본의 배우
* [[1월 15일]] - [[박서진(성우)|박서진]]: [[한국]]의 성우
* [[1월 16일]] - [[세이두 케이타]]: [[말리]]의 축구 선수
* [[1월 17일]] - [[조이 데이셔넬]]: [[미국]]의 배우
* [[1월 18일]]
* [[모가미 츠구오]]: [[일본]]의 성우
* [[로버트 그린]]: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1월 19일]] - [[젠슨 버튼]]: [[영국]]의 [[포뮬러 원]] 드라이버
* [[1월 20일]] - 매트 턱: [[불렛 포 마이 발렌타인]]의 보컬.
* [[1월 21일]]
* [[미즈키 나나]]: 일본의 성우 및 [[가수]]
* [[이경원]]: 한국의 [[배드민턴]] 선수이자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 [[1월 22일]] - [[조나단 우드게이트]]: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1월 25일]]
* [[미셸 맥쿨]]: [[미국]]의 前 [[프로레슬러]]
* [[장자연 자살 사건|장자연]](~[[2009년]]): 한국의 [[모델]], [[탤런트]]
* [[차비 에르난데스]]: [[스페인]]의 [[축구선수]]
* [[1월 26일]]
* [[나리타 사야카]]: 일본의 성우
* [[코바야시 사나에]]: 일본의 성우
* [[1월 28일]]
* [[엔도 야스히토]]: 일본의 축구 선수
* [[이유리(배우)|이유리]]: 대한민국의 [[배우]]
* [[키무라 마도카]]: 일본의 성우
* [[장소연(배우)|장소연]]: 대한민국의 배우
==== 2월 ====
* [[2월 4일]] - [[야부키 켄타로]]: 일본의 [[만화가]]
* [[2월 6일]]
* [[나카타 야스타카]] : 일본의 음악 프로듀서
* [[노토 마미코]] : 일본의 성우
* [[2월 7일]]
* [[김인석]]: 대한민국의 개그맨
* [[이정현(멀티 엔터테이너)|이정현]]: [[대한민국|한국]]의 가수, 배우
* [[2월 8일]] - [[이재은(1980)|이재은]]: [[한국]]의 배우
* [[2월 9일]]
* [[김동성]]: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
* [[이재우]]: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2월 10일]] - [[타마키 유키]]: [[일본]]의 [[성우]]
* [[2월 11일]] - [[마크 브레시아노]]: [[오스트레일리아]]의 축구 선수
* [[2월 13일]]
* [[제바스티안 켈]]: [[독일]]의 축구 선수
* [[김용환(배우)|김용환]]: 대한민국의 배우
* [[2월 15일]] - [[오상진]]: 한국의 [[아나운서]]
* [[2월 16일]] - [[장윤정]]: 한국의 가수, [[트로트]]의 여왕
* [[2월 17일]]
* [[엔도 아야]]: 일본의 성우
* [[홍은희]]: 한국의 배우
* [[2월 20일]] - [[나카무라 유이치]]: 일본의 성우
* [[2월 21일]]
* [[이현곤]]: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부탄]]의 [[국왕]]
* [[진워렌버핏|진현기]](~[[2020년]]): 한국의 전 [[아프리카]] [[BJ]]
* [[2월 22일]] - [[강성훈]]: [[한국]]의 가수
* [[2월 27일]] - [[사문영]]: 한국의 성우
* [[2월 28일]]
* [[바다(가수)|바다]]: [[한국]]의 가수, 걸그룹 [[S.E.S.]]의 멤버
* [[비지(래퍼)|비지]]: 대한민국의 [[힙합]] [[래퍼]]
==== 3월 ====
* [[3월 1일]]
* [[마크 테토]]: [[기업인]], [[비정상회담]] 출연자
* [[이지훈(e스포츠)|이지훈]]: 한국의 프로게임단 [[감독]]
* [[3월 3일]] - [[전우성]]: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노을(보컬그룹)|노을]]의 멤버
* [[3월 4일]]
* [[김보영(성우)|김보영]]: 한국의 성우
* [[정다빈(1980)|정다빈]](~[[2007년]]): 한국의 배우
* [[3월 5일]] - [[최종윤(배우)|최종윤]]: 대한민국의 배우
* [[3월 7일]] - [[모세(가수)|모세]]: 대한민국의 가수
* [[3월 8일]] - [[오키츠 카즈유키]]: 일본의 성우
* [[3월 9일]]
* [[권오준]]: [[한국]]의 [[야구]] 선수
* [[매튜 그레이 구블러]]: 미국의 배우
* [[3월 13일]] - [[김남길]]: 한국의 배우
* [[3월 15일]] - [[강예원]]: 한국의 배우
* [[3월 17일]] - [[최자]]: [[한국]]의 [[래퍼]], 듀오 [[CB Mass]], [[다이나믹 듀오]]의 멤버
* [[3월 17일]] - [[최자]]: 한국의 래퍼, 듀오 [[CB Mass]], [[다이나믹 듀오]]의 멤버
* [[3월 18일]] - [[송준근]]: 한국의 개그맨
* [[3월 19일]] - [[뎁]]: [[한국]]의 [[싱어송라이터]]
* [[3월 20일]] - [[옥주현]]: 한국의 가수, 걸그룹 [[핑클]]의 멤버
* [[3월 21일]] - [[이진]]: 한국의 가수 걸그룹 [[핑클]]의 멤버
* [[3월 26일]] - [[손호영]]: 한국의 가수, 그룹 [[god(아이돌)|god]]의 멤버
* [[3월 28일]] - [[조승우]]: 한국의 배우
* [[3월 29일]] - [[김태희]]: 한국의 배우
* [[3월 31일]] - [[사카모토 마아야]]: 일본의 성우
==== 4월 ====
* [[4월 1일]]
* [[고동진(야구선수)|고동진]]: 한국의 [[야구]]선수
* [[다케우치 유코]](~[[2020년]]): 일본의 배우
* [[랜디 오턴]]: [[WWE]] [[프로레슬러]]
* [[4월 2일]]
* [[이시구로 쿄헤이]]: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 [[카를로스 살시도]]: [[멕시코]]의 축구 선수
* [[4월 4일]] - [[공효진]]: 한국의 배우
* [[4월 5일]] - [[이재원(가수)|이재원]]: 한국의 래퍼, 그룹 [[H.O.T.]]의 멤버
* [[4월 6일]] - [[한미리(성우)]]: 한국의 성우
* [[4월 7일]] - [[김태영(야구선수)]]: 한국의 [[야구]] 선수
* [[4월 8일]] - [[캐리 새비지]]: 미국의 성우
* [[4월 9일]] - [[이요원]]: 한국의 배우
* [[4월 10일]]
* [[장경희]]: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김정욱(배우)|김정욱]]: 한국의 배우
* [[4월 11일]] - [[마크 테세이라]]: [[미국]]의 [[야구]] 선수
* [[4월 13일]] - [[콜린 클링컨비어드]]: 미국의 [[성우]]
* [[4월 17일]]
* [[김사율]]: 한국의 [[야구]] 선수
* [[정동하]]: 한국의 가수, [[부활(밴드)|부활]] 출신의 [[보컬리스트]]
* [[이마무라 타카히로]]: 일본의 성우
* [[4월 20일]] - [[이광섭]]: 한국의 희극인
* [[4월 21일]] - [[시모노 히로]]: 일본의 성우
* [[4월 25일]]
* [[모리나가 리카]]: 일본의 성우
* [[타다노 카즈히토]]: 일본의 야구 선수
* [[4월 29일]] - [[크리스탈(애즈 원)|크리스탈]]: 한국의 가수, 걸그룹 [[애즈 원]]의 멤버
==== 5월 ====
* [[5월 1일]] - [[사카모토 미우]]: 일본의 [[가수]]
* [[5월 5일]] - [[요시 베나윤]]: [[이스라엘]]의 축구 선수
* [[5월 6일]] - [[대니(원타임)|대니]]: 미국의 가수, 그룹 [[원타임(그룹)|원타임]]의 멤버
* [[5월 8일]]
* [[박진배]]: 한국의 [[작곡가]]
* [[호시노 타카노리]]: 일본의 성우, 배우
* [[5월 9일]] - [[조현재]]: 대한민국의 배우
* [[5월 12일]] - [[이정민(KBS)|이정민]]: 한국의 아나운서
* [[5월 13일]]
* [[우연석]]: 대힌민국의 가수, [[클릭비]]의 멤버
* [[이재경]]: 한국의 [[밴드]], [[NELL]]의 멤버
* [[5월 14일]] - [[하시모토 미유키]]: 일본의 [[가수]]
* [[5월 15일]] - [[나카오 에리]]: 일본의 성우
* [[5월 16일]]
* [[백승훈(야구)|백승훈]] : 한국의 前 [[야구선수]]
* [[사토 아케미]]: 일본의 [[성우]]
* [[5월 17일]] - [[알리스타 오브레임]]: [[네덜란드]]의 [[종합격투기]] 선수
* [[5월 19일]] - [[한채원]](~2011년): 한국의 배우
* [[5월 20일]] - [[김영준(배우)|김영준]]: 한국의 배우
* [[5월 22일]] - [[무릴로 닌자]]: [[브라질]]의 [[종합격투기]] 선수
* [[5월 25일]] - [[김성균]]: 한국의 배우
* [[5월 29일]] - [[타카하시 미카코]]: 일본의 성우, 가수
* [[5월 30일]] - [[스티븐 제라드]]: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6월 ====
* [[6월 1일]] - [[키카와다 마사야]]: [[일본]]의 배우
* [[6월 3일]] - [[한상훈]]: 한국의 [[야구]] 선수
* [[6월 9일]] - [[우에다 카나]]: 일본의 성우
* [[6월 12일]] - [[유상무]]: [[한국]]의 [[코미디언]]
* [[6월 13일]] - [[플로랑 말루다]]: [[프랑스]]의 [[축구 선수]]
* [[6월 15일]] - [[염기정]]:한국의 코미디언
* [[6월 18일]] - [[이종욱]]: 한국의 [[야구]] 선수
* [[6월 27일]] - [[정성훈]]: 한국의 [[야구]] 선수
* [[6월 28일]] - [[하동균]]: 한국의 가수
* [[6월 29일]] - [[송승준]] :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7월 ====
* [[7월 1일]]
* [[고지용]]: [[한국]]의 가수, 그룹 [[젝스키스]]의 멤버
* [[손승모]]: [[한국]]의 [[배드민턴]] 선수이자 [[2004 아테네 올림픽]] 남자 단식 [[은메달]]리스트
* [[7월 3일]] - [[전태풍]]: 한국의 [[농구]] 선수
* [[7월 4일]]
* [[아라이 사토미]]: 일본의 성우
* [[진주(가수)]]: [[한국]]의 가수
* [[7월 5일]] - [[에바 그린]]: [[프랑스]]의 [[배우]], [[모델]]
* [[7월 7일]]
* [[미셸 콴]]: [[중국계 미국인]]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의 롤 모델이다.)
* [[송형수]]:한국의 개그맨, 배우
* [[7월 8일]] - [[로비 킨]]: [[아일랜드]]의 축구 선수
* [[7월 9일]] - [[크리스 윌리엄스]]: [[미국]]의 농구선수
* [[7월 10일]]
* [[이택근]]: 한국의 [[야구]] 선수
* [[제임스 롤프]]: [[미국]]의 영상 제작자 겸 인터넷 리뷰어
* [[7월 15일]]
* [[봉중근]]: [[한국]]의 [[야구]] 선수 ~~의사~~
* [[모치다 료코]]:[[일본]]의 [[AV(영상물)|AV]] 배우
* [[7월 16일]] - [[장수원]]: 한국의 가수 겸 배우, 그룹 [[젝스키스]]의 멤버
* [[7월 18일]] - [[히로스에 료코]]: 일본의 가수 및 배우
* [[7월 22일]]
* [[이상곤]]: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노을(보컬그룹)|노을]]의 멤버
* [[타블로]]: [[한국]]의 래퍼, 그룹 [[에픽하이]]의 멤버
* [[디르크 카윗]]: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 [[7월 23일]] - [[박재현]]: 한국의 배우
* [[7월 24일]] - [[이시연]]: 한국의 [[배우]]
* [[7월 25일]] - [[차두리]]: [[한국]]의 축구 선수 --피로는 [[간때문이야|간 때문이야]]--
* [[7월 26일]]
* [[이동건]]: 대한민국의 배우
* [[이진영]]: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7월 30일]]
* [[김성연(성우)|김성연]]: [[한국]]의 성우
* [[마리우스 자롬스키]]: [[리투아니아]]의 [[종합격투기]] 선수
==== 8월 ====
* [[8월 4일]]
* [[더 네임]]: 대한민국의 前 가수, 現 프로듀서
* [[정재원(NELL)]]: [[한국]]의 [[밴드]] [[NELL]]의 멤버
* [[8월 6일]] - [[로만 바이덴펠러]]: [[독일]]의 축구 선수
* [[8월 9일]] - [[류승범]]: [[한국]]의 배우
* [[8월 10일]] - [[김민경(배우)]]: [[한국]]의 배우
* [[8월 13일]] - [[이영욱(투수)|이영욱]]: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 [[8월 15일]]
* [[김광삼]]: [[한국]]의 前 [[야구]]선수
* [[백보람]]: [[한국]]의 방송인
* [[최경철]]: [[한국]]의 [[야구]]선수
* [[8월 16일]] - [[황보(가수)|황보]]: [[한국]]의 가수
* [[8월 18일]]
* [[세르게이 하리토노프]]: [[러시아]]의 [[종합격투기]] 선수
* [[에스테반 캄비아소]]: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8월 19일]]
* [[전진(신화)|전진]]: 한국의 래퍼, 그룹 [[신화(아이돌)|신화]]의 멤버
* [[손태영]]: 한국의 배우
* [[8월 23일]] - [[정보명]]: 한국의 前 [[야구]]선수
* [[8월 26일]] - [[맥컬리 컬킨]]: 미국의 배우
* [[8월 27일]] - [[최은희(코미디언)|최은희]]:한국의 [[개그우먼]], [[쇼호스트]]
* [[8월 29일]] - [[인교진]]: 대한민국의 배우
* [[8월 31일]] - [[이세은]]: 대한민국의 배우
==== 9월 ====
* [[9월 3일]] - [[정경미]]: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9월 4일]] - [[임요환]] : ~~'''대한게임국의 황제'''~~ 한국의 프로게이머
* [[9월 5일]] - [[정기고]]: 한국의 가수이자 힙합 뮤지션
* [[9월 6일]]
* [[질리언 홀]]: [[미국]]의 [[프로레슬러]]
* [[히무카이 유지]]: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 [[9월 7일]]
* [[가브리엘 밀리토]]: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이종미]]: [[한국]]의 [[프로게이머]]
* [[자바드 네쿠남]]: [[이란]]의 축구 선수
* [[9월 8일]] - [[카도와키 마이]]: [[일본]]의 성우
* [[9월 12일]]
* [[이기석]]: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 [[유세윤]]: [[한국]]의 [[개그맨]]
* [[한은정]]: [[대한민국]]의 [[배우]]
* [[사와노 히로유키]]: 일본의 [[작곡가]]
* [[9월 13일]]
* [[마쓰자카 다이스케]]: [[일본]]의 [[야구]]선수
* [[한채영]]: [[한국]]의 배우
* [[9월 15일]] - [[채의림]]: [[대만]]의 [[가수]]
* [[9월 16일]] - [[허영란]]: [[한국]]의 배우
* [[9월 21일]] - [[윤장호]]: [[대한민국]]의 [[군인]]
* [[9월 24일]] - [[욘 아르네 리세]]: [[노르웨이]]의 축구 선수
* [[9월 25일]] - [[조규준]]: [[한국]]의 성우
* [[9월 27일]] - [[장태성]]: [[한국]]의 배우
* [[9월 30일]]
* [[마르티나 힝기스]]: [[스위스]]의 [[테니스]] 선수
* [[오가사와라 아리사]]: 일본의 성우, 배우
==== 10월 ====
* [[10월 4일]] - [[토마스 로시츠키]](~생존 중): [[체코]]의 축구 선수
* [[10월 5일]] - [[The Angry Video Game Nerd/등장인물#마이크 마테이|마이크 마테이]](~생존 중): [[미국]]의 [[전업투자자]]
* [[10월 6일]] - [[신봉선]](~생존 중): [[한국]]의 [[개그우먼]]
* [[10월 11일]]
* [[스기타 토모카즈]](~생존 중): 일본의 성우
* [[티파니 터렐]](~생존 중): 미국의 성우
* [[10월 12일]]
* [[노유민]](~생존 중): [[한국]]의 가수, 그룹 [[NRG(아이돌)|NRG]]의 멤버
* [[레들리 킹]](~생존 중):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10월 13일]] - [[장대호]](~생존 중): [[한강 몸통시신 사건]]의 범인
* [[10월 14일]]
* [[벤 위쇼]](~생존 중): [[영국]]의 [[배우]]
* [[오윤아]](~생존 중): [[한국]]의 배우, 前 [[레이싱 모델]]
* [[10월 15일]] - [[문성훈]](~생존 중): [[한국]]의 가수, 그룹 [[NRG(아이돌)|NRG]]의 멤버
* [[10월 18일]] - [[황현희]](~생존 중):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10월 19일]]
* [[손시헌]](~생존 중): [[한국]]의 [[야구]]선수
* [[호세 바티스타]](~생존 중): [[도미니카 공화국]]출신의 [[야구]] 선수
* [[10월 21일]] - [[킴 카다시안]](~생존 중): [[미국]]의 [[유명인]]
* [[10월 23일]] - [[김명준(성우)|김명준]](~생존 중): [[한국]]의 성우
* [[10월 24일]] - [[이토 아이코]](~생존 중): 일본의 前 배우, 모델
* [[10월 26일]] - [[강명구]](~생존 중): 한국의 前 야구선수
* [[10월 26일]]
* [[장석현]](~생존 중): 한국의 가수
* [[닉 콜리슨]](~생존 중): 미국의 前 농구선수
* [[크리스티안 키부]](~생존 중): [[루마니아]]의 축구 선수
* [[10월 27일]]
* [[변성철]](~생존 중):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 [[켈빈 히메네스]](~생존 중):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야구 선수]]
* [[10월 28일]] - [[앨런 스미스]](~생존 중):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10월 29일]] - [[벤 포스터(배우)|벤 포스터]](~생존 중): [[미국]]의 [[배우]]
* [[10월 30일]] - [[최홍만]](~생존 중): 한국의 [[이종격투기]]선수, 前 [[씨름]]선수
==== 11월 ====
* [[11월 2일]]
* [[이호산]]: [[한국]]의 성우
* [[김소연(배우)]]: [[한국]]의 배우
* [[11월 4일]]
* 무로야 코이치로: [[일본]]의 [[바이올리니스트]]
* [[이안(가수)|이안]]: [[한국]]의 가수
* [[11월 7일]] - [[이인구(야구선수)|이인구]]: 한국의 야구 선수
* [[11월 10일]] - [[안영미(성우)|안영미]]: [[한국]]의 성우
* [[11월 11일]] - [[이정훈(NELL)|이정훈]]: 한국의 [[밴드]] [[NELL]]의 멤버
* [[11월 12일]]
* [[김상현(1980)|김상현]]: [[기아 타이거즈]]의 [[야구선수]]
* [[라이언 고슬링]]: [[캐나다]]의 배우
* [[류승곤]]: [[한국]]의 성우
* [[11월 15일]] - [[울랄라세션#s-4.1|임윤택]](2013년): [[대한민국]]의 [[가수]]
* [[11월 16일]]
* [[김준현]]: [[한국]]의 코미디언
* [[최대훈]]: 대한민국의 배우
* [[11월 18일]]
* [[치하라 미노리]]: 일본의 성우
* [[C.J. 윌슨]]: [[미국]]의 [[야구]]선수
* [[11월 21일]]
* [[백대운]] :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모따]]: [[브라질]] 출신의 [[축구 선수]]
* [[행크 블레이락]]: 미국의 야구선수
* [[11월 24일]] - [[베스 피닉스]]: [[미국]]의 前 프로레슬러
* [[11월 25일]] - [[닉 스위셔]]: [[미국]]의 [[야구]]선수
* [[11월 26일]] - [[오노 사토시]]: [[일본]]의 가수, [[아이돌]] [[아라시(아이돌)|아라시]]의 멤버
* [[11월 29일]] - [[천정명]]: [[한국]]의 배우
* [[11월 30일]] - [[셰인 빅토리노]]: 미국의 야구선수
==== 12월 ====
* [[12월 3일]] - [[단 미츠]]: [[일본]]의 [[배우]]
* [[12월 5일]] - [[이토 시즈카]]: [[일본]]의 성우
* [[12월 6일]]
* [[문용민]]: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야스다 케이]]: [[일본]]의 [[아이돌]]그룹 [[모닝구무스메]]의 멤버
* [[12월 7일]]
* [[정인(가수)|정인]]: 한국의 [[가수]]
* [[존 테리]]: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12월 13일]]
* [[유미(가수)|유미]]: 한국의 가수
* [[츠마부키 사토시]]: 일본의 배우
* [[12월 16일]]
* [[양성제]]: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김대명]]: [[대한민국]]의 배우
* [[백봉기]]:대한민국의 배우
* [[12월 18일]]
* [[바스코(래퍼)]]: 대한민국의 [[래퍼]]
*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미국]]의 가수
* [[12월 19일]]
* [[제이크 질렌할]]: 미국의 배우
* [[버벌진트]]: 한국의 [[가수]]
* [[12월 20일]]
* [[최지훈(성우)|최지훈]]: [[대한민국]]의 성우
* [[김순택]](파랑): [[대한민국]]의 뮤지컬배우
* [[애슐리 콜]]: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 [[마르틴 데미첼리스]]: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12월 21일]] - [[윤정희(1980)|윤정희]]: [[대한민국]]의 [[배우]]
* [[12월 22일]] - [[이은주(배우)|이은주]]: [[대한민국]]의 [[배우]]
* [[12월 24일]] - [[김소향(1980)|김소향]]: [[대한민국]]의 뮤지컬배우
* [[12월 25일]]
* [[가희(가수)|박가희]]: [[한국]]의 가수, [[걸그룹]] [[애프터스쿨]]의 前 멤버
* [[윤혜정]]: 한국의 국어교사
* [[12월 26일]] - [[조정석]]: [[한국]]의 배우
* [[12월 27일]]
* [[후지타 후미타케]]: 일본의 정치인
* [[서원석]]: [[한국]]의 성우
==== 일자 불명 ====
* [[귀귀]]: [[대한민국]]의 [[웹툰 작가]]
* [[쿄고쿠 요시아키]]: [[일본]]의 [[애니메이터]],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 [[토쿠사시 켄고]]: [[일본]]의 [[작곡가]]
=== 가상 인물 ===
* [[1월 17일]]: [[히로세 카이]] - [[용자지령 다그온]]
* [[2월 17일]]: [[료우기 시키]] - [[공의 경계]]
* [[2월 29일]]: [[키노모토 토우야]] - [[카드캡터 사쿠라]]
* [[3월 1일]]: [[론 위즐리]] - [[해리포터 시리즈]]
* [[3월 3일]]: [[류자키 우미]] - [[마법기사 레이어스]][* 애니메이션판에서는 작중 명시적으로 [[1994년]]으로 나온다. 따라서 [[시도우 히카루]]와 [[호우오우지 후]]는 1979년생이 되고, 우미는 빠른 생일이기 때문에 1980년생이 된다.]
* [[3월 24일]]: [[호노카(DOA)|호노카]] -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리즈]]
* [[6월 5일]]: [[드레이코 말포이]] - [[해리포터 시리즈]]
* [[6월 6일]]: [[마리 로즈]] -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리즈]]
* [[6월 10일]]: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등장인물/마커스 루트#s-4.1|고든 펜윅]]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 [[6월 16일]]: [[김성아|스포일러]] - [[화이트데이 시리즈]]
* [[6월 23일]]: [[두들리 더즐리]] - [[해리포터 시리즈]]
* [[7월 24일]]: [[다이도우지 엔]] - [[용자지령 다그온]]
* [[7월 30일]]: [[네빌 롱바텀]] - [[해리 포터 시리즈]]
* [[7월 31일]]: [[해리 포터]] - [[해리 포터 시리즈]]
* [[9월 10일]]: [[호시나 토모코]] - [[ToHeart]]
* [[9월 23일]]: [[한나영(화이트데이 시리즈)|한나영]] - [[화이트데이 시리즈]]
* [[9월 27일]]: [[브루노 부차라티]]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11월 7일]]
* [[나가오카 시호]] - [[ToHeart]]
* [[하시바 류]] - [[용자지령 다그온]]
* [[11월 24일]]: [[히나야마 리오]] - [[ToHeart]]
* [[12월 21일]]: [[미야우치 레미]] - [[ToHeart]]
* 일자 불명
* 김준완 - [[슬기로운 의사생활]]
* 안정원 - [[슬기로운 의사생활]]
* 양석형 - [[슬기로운 의사생활]]
* 이익준 - [[슬기로운 의사생활]]
* 채송화 - [[슬기로운 의사생활]]
* [[이민용]] - [[거침없이 하이킥|하이킥 1]]
* [[오타콘(메탈기어 시리즈)|오타콘]] - [[메탈기어 시리즈]]
* [[유은수]] - [[신의(드라마)|신의]]
* [[야마노 호시오]][* 36세로 나오는 GBA 버전 [[역전재판 1]] 한정이다. NDS 버전 역전재판 1에서는 44세, [[역전검사 2]]에서 47세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1972년]] 생으로 설정이 변경된 듯 하다.], [[야타부키 무기츠라]], [[우카리 테루오]], [[미치바 마사요]] - [[역전재판 시리즈]]
* [[호프 밴 다인(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호프 밴 다인]], [[스타로드(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스타로드]]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김성룡(김과장)|김성룡]] - [[김과장]]
* [[박도경(또 오해영)|박도경]], [[또 오해영/등장인물#s-2.2|이진상]], [[한태진(또 오해영)|한태진]] - [[또 오해영]]
* [[손대범]] - [[클로저 이상용]]
* [[정태수(나쁜 녀석들)|정태수]] - [[나쁜 녀석들(OCN)|나쁜 녀석들]]
* [[정수호]] - [[뷰티풀 군바리]]
* [[세피로스]] - [[파이널 판타지 7]]
* [[소라쿠 유즈키]], 고죠 이로하 - [[도사의 무녀]]
* [[GTA 4/등장인물#s-2.3.2|드션]] - [[GTA 4: 더 로스트 앤 댐드]]
* [[GTA 4/등장인물#s-3.4|로코 펠로시]] - [[GTA 더 발라드 오브 게이 토니]], [[GTA 5]]
* [[GTA 4/등장인물#s-1.5.4|마이클 킨]] - [[GTA EFLC]]
* [[GTA 4/등장인물#s-2.3.1|말콤]] - [[GTA EFLC]], [[GTA 온라인]]
* [[GTA 4/애인#s-2.2|케이트 맥리어리]] - [[GTA 4]]
== 사망 ==
=== 실존 인물 ===
* [[1월 19일]]
* [[곽상훈]]: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초대 통일주체국민회의 운영위원장
* [[윌리엄 O. 더글라스]]: 미국의 연방대법관
* [[1월 28일]] - [[김정수]]: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2월 2일]] - 에자키 리이치: [[에자키 글리코]] 창업주
* [[2월 15일]] - [[손원일]]: [[대한민국 해군]] 및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 창군자
* [[2월 18일]] - [[문정창]]: 대한민국의 재야 역사학자
* [[2월 22일]] - [[피에르 코르브]]: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
* [[2월 25일]] - [[루이스 에드워즈]]: 제7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회장, [[마틴 에드워즈]] 8대 회장의 부친.
* [[2월 29일]] - [[안종필]]: 제2대 동아투위 위원장. 그를 기리기 위해 [[안종필 자유언론상]]이 제정되었다.
* [[3월 1일]] - [[딕시 딘]]: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 [[3월 6일]] - [[박흥주]]: 대한민국의 군인
* [[3월 10일]] - [[장파쿠이]]: [[군벌/중화민국|중화민국의 군벌]]
* [[3월 12일]] - [[김두식]]: [[삼미그룹]] 창업주
* [[3월 18일]] - [[에리히 프롬]]: 독일계 미국인 철학자, 정신분석학자
* [[3월 26일]] - [[롤랑 바르트]]: 프랑스의 기호학자, 비평이론가
* [[3월 31일]] - [[제시 오언스]]: [[1936 베를린 올림픽]] 당시 인종차별의 벽을 깨고 금메달을 딴 육상선수
* [[4월 4일]] - [[홍재선]]: 전 쌍용양회 사장, 제6~7대 전경련 회장
* [[4월 12일]] - [[윌리엄 톨버트]]: 제20대 라이베리아 대통령
* [[4월 14일]] - [[잔니 로다리]]: <[[치폴리노의 모험]]>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동화작가
* [[4월 15일]] - [[장폴 사르트르]]: [[프랑스]]의 [[철학자]]
* [[4월 20일]] - [[조광운]]: [[광운대학교]] 설립자
* [[4월 23일]] - 이덕수 순경: 사북사건 당시 영월경찰서 소속 진압경찰
* [[4월 24일]] - [[김교헌]]: 대한민국의 수의학자
* [[4월 25일]] - [[최기호]]: [[영풍그룹]] 공동 창업주
* [[4월 26일]] - [[유한철]]: 대한민국의 시나리오 작가, 영화/문화평론가, 체육인.
* [[4월 29일]] - [[앨프리드 히치콕]]: [[미국]]의 [[영화감독]]
* [[5월 4일]] - [[요시프 브로즈 티토]]: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대통령]]
* [[5월 8일]] - [[히가시야마 치에코]]: 일본의 여배우
* [[5월 14일]] - [[휴 그리피스]]: [[영국]]의 [[배우]]
* [[5월 17일]] - [[이세종]]: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 [[5월 18일]]
* [[5.18 민주화운동]]의 수많은 희생자들(27일까지)
* [[김경철]](5월 19일): 항쟁 최초의 희생자, [[청각장애인]].
* 박용준(5월 27일): 들불야학 멤버, <[[투사회보]]>제작 참여자.
* [[윤상원(1950)|윤상원]](5월 27일): 들불야학 멤버, 광주시민학생투쟁위원회 대변인
* [[이안 커티스]]: [[포스트 펑크]] [[밴드]] [[조이 디비전]]의 [[보컬]]
* [[5월 21일]] - [[손대업]]: 대한민국의 동요 작곡가
* [[5월 24일]] -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10.26 사건]]의 주범
* [[5월 30일]] - [[김의기]]: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 [[6월 4일]] - [[레오폴트 킬홀츠]]: [[스위스]]의 전 축구 감독
* [[6월 7일]] - [[헨리 밀러]]: 미국의 소설가
* [[6월 8일]] - [[에른스트 부슈#s-2]]: [[독일]]의 [[공산주의자]], [[배우]] 겸 [[가수]]
* [[6월 9일]]
* [[김종태(1956)|김종태]]: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조명제]]: 궁시장 기능보유자
* [[6월 12일]] - [[오히라 마사요시]]: 제68~69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 [[6월 23일]] - [[산자이 간디]]: [[인디라 간디]]의 아들
* [[6월 24일]] - 하야카와 도쿠지: [[샤프(기업)|샤프]] 창업주
* [[7월 1일]] - [[찰스 퍼시 스노]]: [[영국]]의 [[물리학자]], [[소설가]]
* [[7월 11일]] - 김용성, 변형만: 대한민국의 비전향 장기수
* [[7월 17일]] - 랄프 조던: 오번 대학교 풋볼팀의 레전드급 감독
* [[7월 19일]] - [[전택보]]: [[천우사]] 창업주, 제12대 상공부 장관
* [[7월 24일]] - [[피터 셀러스]]: 영국의 영화배우
* [[7월 25일]] - [[박승무]]: 대한민국의 동양화가
* [[7월 26일]] - [[임기윤]]: 대한민국의 목사, 민주화 운동가
* [[7월 27일]] -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이란 [[팔라비 왕조]] 시기 마지막 국왕
* [[8월 5일]] - [[윤석봉]]: 대한민국의 수의학자
* [[8월 8일]] - [[김홍일]]: [[한국]]의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인]]
* [[8월 14일]] - [[도로시 스트래튼]]: [[미국]]의 [[영화배우]] 겸 [[모델]]
* [[8월 19일]] - [[오토 프랑크]]
* [[8월 20일]] - [[안기영]]: 월북 작곡가, 성악가
* [[8월 30일]] - 원경수: 전 대한공론사 이사장
* [[9월 17일]] -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 니카라과의 독재자
* [[9월 20일]] - [[하야시야 산페이]](초대): 일본의 라쿠고가이자 탤런트
* [[9월 25일]] - [[존 본햄]]: 전 [[레드 제플린]] [[드러머]]
* [[10월 13일]] - [[이홍근]]: 대한민국의 문화재 수집가. 사후 그가 모은 문화재 4,941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었다.
* [[10월 18일]] - [[송요찬]]: 전 내각수반, 제13대 국방부 장관
* [[10월 21일]]
* 이학철: 고려해운 창업주
* [[아라시 칸쥬로]]: 일본의 배우
* [[한스 아스페르거]]: [[오스트리아]]의 [[의사]]
* [[11월 4일]] - [[나가하마 다다오]]: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자
* [[11월 7일]]
* [[스티브 맥퀸]]: 미국의 영화배우
* [[코시지 후부키]]: 일본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 가수
* [[11월 11일]] - [[최화식]]: [[깨끗한나라]] 창업주
* [[11월 12일]] - [[안드레이 아말리크]]: 구소련의 반체제 학자
* [[11월 17일]] - [[이흥렬]]: 대한민국의 작곡가
* [[11월 18일]]
* [[운허]]: [[동국역경원]] 설립자
* [[콘 스마이스]]: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의 전설적인 선수이자 감독, 구단주.
* [[11월 22일]] - [[메이 웨스트]]: 미국의 영화배우
* [[11월 25일]] - [[이영춘]]: 대한민국의 의사, 농촌보건 선구자
* [[11월 29일]] - [[도로시 데이]]: [[미국]]의 사회운동가
* [[12월 3일]] - [[하추동]]: 부산일보에 <[[모서리]]>를 연재한 시사만화가
* [[12월 6일]] - [[백년설]]: [[대한민국]]의 [[가수]]
* [[12월 8일]] - [[존 레넌]]: [[영국]]의 [[가수]], [[비틀즈]] 멤버
* [[12월 16일]] - [[할랜드 샌더스]]: [[KFC]] 창업주
* [[12월 24일]]
* [[조흔파]]: 대한민국의 소설가
* [[카를 되니츠]]: [[독일]]의 [[군인]]
* [[12월 31일]] - [[라울 월시]]: 미국의 영화감독
* 일자 불명
* [[문재봉]]: 대한민국의 수의학자
* [[원종기]]: 세기센추리 창업주
=== 가상 인물 ===
* [[5월 20일]]: 구재식 - [[택시운전사]]
* 일자불명: [[메리 콜레오네]] - [[대부(영화)]]
== 데뷔 ==
=== 가수 ===
* 한국
* [[김현식]]
* [[민해경]]
* [[홍서범]]
* 이진관
* [[조하문]]
* 해외
* [[U2]]
* [[아이언 메이든(밴드)|아이언 메이든]]
* [[자말 압딜라]]
* [[마츠다 세이코]]
* [[콘도 마사히코]]
=== 배우 ===
* [[유동근]]
=== 예능인 ===
* 김은우
* [[김형곤]]
* [[장두석]]
* [[이성미]]
* 이하원
* [[정명재]]
* [[조정현(코미디언)|조정현]]
* [[톤네루즈]]
=== 만화계 ===
* 강창욱 - <점등>, <탈출>
* 권현수 - <청춘행진곡>
* 김학운 - <호랑이의 사랑>
* 박연 - <환상의 폴로네이즈>
* 신기원 - <아름다운 여인>, <킬러>
* [[아라키 히로히코]] - <무장 포커>
* 이재복
* 전일봉
* 전혜경 - <제니의 노래>
* 정형기
* 조대현 - <제갈통 투수>
* 조주청 - <뫼 뿌리>
* 최홍재 - <코돌이 박사>
* 타카하시 요이치 - <[[캡틴 츠바사]]>
* [[하승남]] - <목림방>
* [[황미나]] - <이오니아의 푸른 별>
=== 스포츠 ===
==== 농구 ====
* [[김영희(농구)|김영희]]
* 김화순
* 대럴 그리피스
* 래리 드류
* 로리 스패로우
* 릭 마혼
* 마이크 그민스키
* 마이크 오코렌
* 마이크 우드슨
* 앤드류 토니
* 우은경
* 이원우
* 제프 럴랜드
* 조 배리 캐롤
* 커트 램비스
* [[케빈 맥헤일]]
* 키키 반더웨이
* 테리 스토츠
==== 배구 ====
* 김정순
* 이명희
* 정금선
==== 권투 ====
* 백인철
* 오민근
* [[장정구]]
== 히트작 ==
=== 영화 ===
* 바람불어 좋은 날
* 이주일의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 스타워즈 에피소드 5: 제국의 역습
* 블루스 브라더스
=== 드라마 ===
* 국산
* 달동네
* 축복
* 종점
* 간양록
* 전원일기
* 더빙
*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
=== 가요 ===
* 한국
* 계은숙 - 노래하며 춤추며, 기다리는 여심
* 김도향 - 바보처럼 살았군요
* 김세환 - 어느날 오후
* 김수철과 작은 거인 - 일곱빛깔 무지개
* 김정호 - 하얀 나비
* 나미 - 영원한 친구
* 들고양이들 - 정든 부두
* 로커스트 - 하늘색 꿈
* 마그마 - 해야
* 박경애 - 곡예사의 첫사랑
* 방미 - 날 보러와요
* 백영규 - 슬픈 계절에 만나요
* 산울림 -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 샤프 - 연극이 끝난 후
* 송창식 - 가나다라
* 옥슨 80 - 불놀이야
* 윤수일 - 유랑자
* 윤시내 - 천년, 고목
* 윤항기 - [[나는 행복합니다]]
* 윤형주 - 바보
* 이범용, 한명훈 - 꿈의 대화
* 이은하 - 사랑의 그림자
* 장은숙 - 춤을 추어요
* 전영록 - 만나려는 마음
* 조용필 - '''[[조용필 1집|단발머리, 창밖의 여자, 한오백년]]''', '''[[조용필 2집|촛불]]''', [[조용필 1집|잊혀진 사랑]]
* 현숙 - 정말로,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
* 해외
* ABBA - The Winner Takes it All, Super Trouper, Happy New Year
* AC/DC - Back In Black, Highway to Hell
* Black Sabbath - Heaven and Hell
* Blondie - Call Me
* Lipps Inc - Funkytown
* John Lennon - (Just Like)Starting Over
* Judas Priest - Breaking the Law, Living After Midnight
* Queen - Another One Bites The Dust
* Village People - Can’t Stop the Music
=== 애니메이션 ===
* TBC 더빙
* [[UFO로보 그렌다이저|그랜다이저]]
* [[과학닌자대 갓챠맨|독수리 5형제]]
* [[원탁의 기사]]
* MBC 더빙
* [[우주전함 야마토|날으는 전함 V호]]
* 루루
* [[SF 서유기 스타징가|오로라 공주와 손오공]]
* 국산 극장판
* [[꼬마어사 똘이]]
* [[로보트 킹]]
* [[소년 007|소년 007 은하대작전]]
* [[15소년 우주 표류기]]
* 해외
* [[괴물군]]
* [[전설거신 이데온]]
* [[철완 아톰]] (제2작)
=== 베스트셀러 ===
* 만다라 - 김성동 저.
* 방황의 끝 - 김이연 저.
== 출시 상품 ==
=== 자동차 ===
* 현대 코티나 마크 V
* 기아 봉고
* 새한 로얄살롱, 로얄디젤
=== 식음료 ===
* 농심
* 1월: 켈로그 콘후레이크, 허니스맥(수입)
* 5월: 비빔면
* 7월: 포테토칩
* 롯데제과
* 4월: 야채크래커
* 5월: 왔다볼
* 동서식품
* 맥심
=== 생활용품 ===
* 애경유지
* 포인트비누
== 유행어 ==
* [[대한민국 제5공화국|새 시대 새 사회]] ~~[[현실은 시궁창]]~~
*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못생겨서 죄송합니다 - 이주일
*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 [[LG전자|금성사]] 광고
* I am your father - [[다스 베이더]]
== 최초 ==
=== 방영 프로그램 ===
* KBS
* 전국노래자랑
* 뉴스 파노라마
* 젊음의 행진
* 100분 쇼
* KBS 바둑왕전
* TV 문학관
* TBC
* 토요일이다! 전원출발[* 언론통폐합 후 ‘일요일이다! 코미디출발’로 개편되었다.]
* MBC
* 전원일기
=== 창간 ===
* 월간조선
== 달력 ==
[include(틀:화요일로 시작하는 윤년)]
[각주]
[[분류:1980년]] |
1980 AFC 아시안컵 쿠웨이트 | [include(틀: AFC 아시안컵)]
[목차]
1980 AFC ASIAN CUP
== 개요 ==
[[아시아 축구 연맹]] 주관의 [[AFC 아시안컵]] 7회 대회.
== 경기장 ==
|| 도시 || 경기장 이름 || 수용인원 ||
|| 쿠웨이트시티 || 사바 알 사렘 경기장 || 22,000명 ||
|| 쿠웨이트시티 || 알 알라비 경기장 || 21,500명 ||
* 개막전과 3-4위 결정전, 결승전은 모두 쿠웨이트시티에서 개최되었다.
== 진행 방식 ==
* 개최국 쿠웨이트와 지난대회 우승팀 이란에게 자동 출전권이 주어졌다. 남은 8장의 본선 티켓을 놓고 18개국이 예선에 참가하였다.
* 아시안컵 예선은 4개조로 나뉘어 각 조 1,2위팀이 본선에 진출한다.
* 본선에선 5개팀 2개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실시하여 각 조 상위 1,2위팀이 4강에 진출한다. 4강부터는 토너먼트로 실시한다.
* 1980년 9월 15일 북한과 방글라데시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결승전인 9월 30일까지 약 2주간 진행된다.
== 지역 예선 ==
기권팀은 취소선. 예선 첫 참전 팀은 진한표시
* 1조 : 바레인, 레바논, 시리아, '''아랍에미리트''', --파키스탄--, --남예멘--
* 2조 :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방글라데시''', 카타르, --인도--, --이라크--, --요르단--, --네팔--, --사우디아라비아--
* 3조 : 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북한, 싱가포르, 스리랑카, 태국, --브루나이--, --버마--
* 4조 : 중국, '''마카오''', 필리핀, 대한민국, --민주 캄푸치아--[* 그 악명높은 크메르 루주 치하의 캄보디아], --일본--, --라오스--,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왕국시절엔 한번도 예선에 참가하지 않고 기권을 했다가,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이되면서 지난대회 예선에 참가했던 아프가니스탄이, 공산당 쿠테타로 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이 되면서 다시 예선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외에도 지난 대회 본선에 진출한 남예멘과 이라크도 기권. 마카오와 UAE가 처음으로 예선에 등장했다. 쿠웨이트와 이란은 본래 1조에 소속되어있으나, 개최국과,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예선이 면제되었다.
=== 1조 ===
1979년 1월 11일~16일까지, 아랍 에미레이트의 아부다비에서 개최되었다.
|| UAE || 0 - 0 || 레바논 ||
|| 시리아 || 1 - 0 || 바레인 ||
|| UAE || 0 - 0 || 시리아 ||
|| 레바논 || 2 - 0(몰수패) || 바레인 ||
|| 시리아 || 1 - 0 || 레바논 ||
|| UAE || 2 - 0(몰수패) || 바레인 ||
개최국 아랍 에미리트는 사실 단 한경기도 이기지 못했다. 레바논, 시리아전을 모두 0-0무승부를 기록했었기 때문, 그런데 시리아와의 첫경기에서 패한 '''바레인이 이후 기권을 선언'''하는 바람에, 레바논과 아랍 에미리트는 1승씩 추가하게 되었고, 아랍 에미리트는 실제로는 이기지도 않고, 득점도 없었음에도 2-0몰수승으로 2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레바논의 경우 마지막 경기에서 시리아에게 패하는 바람에 탈락하게 되었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시리아 || 3 || 2 || 1 || 0 || 2 || 0 || 5 ||
|| '''2위''' || UAE || 3 || 1 || 2 || 0 || 2 || 0 || 4 ||
|| '''3위''' || 레바논 || 3 || 1 || 1 || 1 || 2 || 1 || 3 ||
|| '''4위''' || 바레인 || 3 || 0 || 0 || 3 || 0 || 5 || 0 ||
'''시리아'''와 '''아랍 에미리트'''가 본선에 진출했다. 두팀다 본선 첫진출.
=== 2조 ===
1979년 1월 10일~16일까지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개최되었다.
3팀뿐인지라 홈&어웨이로 각각 4경기씩 치렀다
|| 방글라데시 || 1 - 1 || 카타르 ||
|| 카타르 || 3 - 0 ||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
|| 방글라데시 || 2 - 2 ||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
|| 방글라데시 || 0 - 4 || 카타르 ||
|| 카타르 || 2 - 1 ||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
|| 방글라데시 || 4 - 1 ||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
3팀중 한팀만 떨어지기에 가장 꿀조였으며, 카타르가 압도적인 전력을 보여주며 1위를 차지 했다. 그럼 남은건 홈팀 방글라데시와 아프가니스탄의 대결인데, 아프가니스탄은 공산화 쿠테타로 상당히 어수선한 분위기가 반영된데다가, 홈팀 방글라데시의 열렬한 응원앞에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최약체로 탈락하게 된다. 방글라데시가 홈팀 버프와 꿀조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첫 본선진출을 달성했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카타르 || 4 || 3 || 1 || 0 || 10 || 2 || 7 ||
|| '''2위''' || 방글라데시 || 4 || 1 || 2 || 1 || 7 || 8 || 4 ||
|| '''3위''' ||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 4 || 0 || 1 || 3 || 4 || 11 || 1 ||
'''카타르'''와 '''방글라데시'''가 본선에 진출했다. 두팀다 본선 첫 진출
=== 3조 ===
1979년 5월 1일~14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개최되었다.
7팀이라서 두조로 나뉘어 경기를 했다.
* 그룹 매칭 경기
|| 태국 || 3 - 1 || 인도네시아 ||
|| 말레이시아 || 3 - 1 || 스리랑카 ||
|| 북한 || 2 - 2 || 홍콩 ||
싱가포르는 부전승으로, B조에 편성되었다.
==== 3조A ====
|| 말레이시아 || 4 - 1 || 인도네시아 ||
|| 북한 || 3 - 1 || 인도네시아 ||
|| 말레이시아 || 1 - 1 || 북한 ||
인도네시아는 시작부터 2연패를 하며 탈락을 확정지었기에, 말레이시아와 북한이 최종전 결과와 상관없이 토너먼트 진출을 하게 되었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말레이시아 || 2 || 1 || 1 || 0 || 5 || 2 || 3 ||
|| '''2위''' || 북한 || 2 || 1 || 1 || 0 || 4 || 2 || 3 ||
|| '''3위''' || 인도네시아 || 2 || 0 || 0 || 2 || 2 || 7 || 0 ||
==== 3조B ====
|| 홍콩 || 3 - 1 || 싱가포르 ||
|| 태국 || 4 - 0 || 스리랑카 ||
|| 홍콩 || 5 - 0 || 스리랑카 ||
|| 태국 || 4 - 0 || 싱가포르 ||
|| 스리랑카 || 4 - 0 || 싱가포르 ||
|| 태국 || 1 - 0 || 홍콩 ||
최약체는 싱가포르였으며, 첫경기 홍콩전에서 1득점외에 무득점이었으며, 11실점을 했다. 심지어 같은 승점자판기 스리랑카에게도 4-0으로 지며 아시안컵에 나갈 실력이 아직 안됨을 다시금 증명했다. 태국과 홍콩의 독무대였으며, 최종전에서 홈팀 태국이 홍콩을 잡으며 조선두를 차지했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태국 || 3 || 3 || 0 || 0 || 9 || 0 || 6 ||
|| '''2위''' || 홍콩 || 3 || 2 || 0 || 1 || 8 || 2 || 4 ||
|| '''3위''' || 스리랑카 || 3 || 1 || 0 || 2 || 4 || 9 || 2 ||
|| '''4위''' || 싱가포르 || 3 || 0 || 0 || 3 || 1 || 11 || 0 ||
==== 준결승 ====
|| 말레이시아 || 0 - 0(PK 5 - 4) || 홍콩 ||
|| 태국 || 0 - 1 || 북한 ||
말레이시아는 승부차기까지 같은 혈전끝에 홍콩을 제압하고 결승에 진출했고, 홈팀 태국은 북한에게 패배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 3-4위전, 결승 ====
|| 태국 || 1 - 2 || 홍콩 ||
|| 북한 || 1 - 0 || 말레이시아 ||
본선 탈락의 충격이 컸던지, 조별리그에선 1-0으로 이긴 홍콩에게 역전패를 당하며 4위를 차지한 태국, 그리고 북한은 말레이시아까지 제압하며 3조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북한'''과 '''말레이시아'''가 본선에 진출했다.
=== 4조 ===
1978년 12월 25일~29일까지 [[필리핀]] [[마닐라|리살 기념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4팀간의 풀리그로 진행되었다.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 4 - 1 || 마카오 ||
|| 필리핀 || 0 - 3 || 중국 ||
|| 필리핀 || 0 - 5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
|| 중국 || 2 - 1 || 마카오 ||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 1 - 0 || 중국 ||
|| 필리핀 || 1 - 2 || 마카오 ||
개최국 필리핀이 홈팀 버프를 전혀 못받은 대회로, 첫 참가국인데다가 지금도 인구 60만가량인 마카오에게도 지는 굴욕을 받으며 전패 탈락. 애초에 대한민국과 중국 입장에서는 역대급 꿀조인지라, 두팀이 승점을 나란히 나눠먹었고, 맞대결에서도 중국은 대한민국의 한끼 식사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 3 || 3 || 0 || 0 || 10 || 1 || 6 ||
|| '''2위''' || 중국 || 3 || 2 || 0 || 1 || 5 || 2 || 4 ||
|| '''3위''' || 마카오 || 3 || 1 || 0 || 2 || 4 || 7 || 2 ||
|| '''4위''' || 필리핀 || 3 || 0 || 0 || 3 || 1 || 10 || 0 ||
'''대한민국'''과 '''중국'''이 본선에 진출했다.
== 본선 진출국 ==
|| '''국가''' || '''진출 경위''' || '''진출 횟수'''[* 현대회 본선진출 제외 횟수] || '''최고 성적''' ||
|| [[쿠웨이트]] || 개최국 자동 진출 || 2회 || 준우승 ||
|| [[이란]] || 전대회 우승 || 3회 || 우승(3회) ||
|| [[시리아]] || 예선 1조 1위 || 0회 || 첫 참가 ||
|| [[아랍에미리트]] || 예선 1조 2위 || 0회 || 첫 참가 ||
|| [[카타르]] || 예선 2조 1위 || 0회 || 첫 참가 ||
|| [[방글라데시]] || 예선 2조 2위 || 0회 || 첫 참가 ||
|| [[북한]] || 예선 3조 1위 || 0회 || 첫 참가 ||
|| [[말레이시아]] || 예선 3조 2위 || 1회 || 1라운드 ||
|| '''[[대한민국]]''' || 예선 4조 1위 || 4회 || 우승(2회) ||
|| [[중국]] || 예선 4조 2위 || 1회 || 3위 ||
첫참가국이 무려 5팀으로 전체의 절반이었다.
== 진행 경과 ==
=== 조별 리그 ===
==== A조 ====
|| 북한 || 3 - 2 || 방글라데시 ||
|| 이란 || 0 - 0 || 시리아 ||
|| 북한 || 2 - 1 || 중국 ||
|| 방글라데시 || 0 - 1 || 시리아 ||
|| 중국 || 2 - 2 || 이란 ||
|| 방글라데시 || 0 - 7 || 이란 ||
|| 시리아 || 1 - 0 || 중국 ||
|| 이란 || 3 - 2 || 북한 ||
|| 중국 || 6 - 0 || 방글라데시 ||
|| 북한 || 2 - 1 || 시리아 ||
디펜딩 챔피언 이란이 첫경기 시리아와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연승기록이 13연승에서 멈추게 되었다. 이후 중국전도 두골씩 주고받으며 비겼지만, 방글라데시를 대파[* 베타시 파리바는 이경기에서 무려 4골을 터트렸다.], 북한까지 꺾으며, '''본선 17경기 무패행진'''을 이어나갔다.
북한은 이란에게 진 패배 이외에는 전승을 거두며 대회의 다크호스로 부상했고, 첫경기에서 사고를 친 시리아는 중국을 꺾었지만 최종전에서 북한에게 패배하며 탈락하게 되었다. 중국은 셴 시양푸와 쑤 용라이가 각각 헤트트릭을 터트리며 방글라데시를 압살했지만, 나머지 경기에서 승리를 못했다. 방글라데시는 승점 1점도 얻지 못하고, 17실점을 하며 처음이자 마지막 본선진출을 끝마쳤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이란 || 4 || 2 || 2 || 0 || 12 || 4 || 6 ||
|| '''2위''' || 북한 || 4 || 3 || 0 || 1 || 9 || 7 || 6 ||
|| '''3위''' || 시리아 || 4 || 2 || 1 || 1 || 3 || 2 || 5 ||
|| '''4위''' || 중국 || 4 || 1 || 1 || 2 || 9 || 5 || 3 ||
|| '''5위''' || 방글라데시 || 4 || 0 || 0 || 4 || 2 || 17 || 0 ||
'''이란'''과 '''북한'''이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 B조 ====
|| UAE || 1 - 1 || 쿠웨이트 ||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 1 - 1 || 말레이시아 ||
|| 카타르 || 2 - 1 || UAE ||
|| 쿠웨이트 || 3 - 1 || 말레이시아 ||
|| 카타르 || 0 - 2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
|| 말레이시아 || 2 - 0 || UAE ||
|| 쿠웨이트 || 0 - 3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
|| 말레이시아 || 1 - 1 || 카타르 ||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 4 - 1 || UAE ||
|| 쿠웨이트 || 4 - 0 || 카타르 ||
대한민국은 지난대회 예선 탈락의 아픔을 안겨준 말레이시아를 만났지만, 무승부를 기록하며 불안한 출발을 했으나, 이후 카타르, 쿠웨이트, UAE를 모두 잡아내며 본선을 가볍게 통과했다. 개최국 쿠웨이트 역시 첫경기를 무승부로 시작했으나, 이후 말레이시아와 카타르를 잡아내며 본선진출했다. 말레이시아는 이번에도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고, 카타르는 아시안컵 첫참전에 첫승을, 아랍 에미리트는 첫 승점을 따내는데 그쳤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대한민국 || 4 || 3 || 1 || 0 || 10 || 2 || 7 ||
|| '''2위''' || 쿠웨이트 || 4 || 2 || 1 || 1 || 8 || 5 || 5 ||
|| '''3위''' || 말레이시아 || 4 || 1 || 2 || 1 || 5 || 5 || 4 ||
|| '''4위''' || 카타르 || 4 || 1 || 1 || 2 || 3 || 8 || 3 ||
|| '''5위''' || UAE || 4 || 0 || 1 || 3 || 3 || 9 || 1 ||
'''대한민국'''과 '''쿠웨이트'''가 토너먼트에 진출하였다.
=== 토너먼트 ===
==== 준결승 1경기 이란 1 - 2 쿠웨이트 ====
1980년 9월 28일
2만명의 홈팬이 지켜보는 가운데 쿠웨이트가 후반전 야쿱, 알 다카흘리의 골로 디펜딩 챔피언이자 17경기 무패행진의 이란을 앞서나가는 대이변을 낳았다. 이란은 호세인 파라키가 90분에야 따라가는 골을 넣었고, 경기는 쿠웨이트의 승리로 끝났다. 이란의 17경기 무패행진이 드디어 종결되었다.
==== 준결승 2경기 대한민국 2 - 1 북한 ====
1980년 9월 28일 19:30
정치적인 이유로 예선도 같은 조에서 하지 않았던 두 팀의 아시안컵 첫 맞대결이 펼쳐졌다. 대한민국의 조영증의 핸들링 반칙으로 북한이 PK를 얻었고 박종훈이 선취점을 넣었다. 이후 경기내내 북한의 수비에 대한민국은 좀처럼 공격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중거리 슛만 날리게 되었고, 80분, 조광래의 크로스가 북한의 문전에서 혼란 상황을 유도했고, 이강조가 다시 정해원에게 연결하여 정해원의 골로 동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89분 이영무의 패스를 이어받은 정해원이 다시 왼발 슛으로 골을 터뜨리며 8년만에 결승행 티켓을 얻어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 경기에서 무려 9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여 쿠웨이트와의 결승전에서...
==== 3-4위전 이란 3 - 0 북한 ====
1980년 9월 29일
대회운영의 막장성을 볼수 있는 경기로, 이란과 북한 두팀다 경기를 뛴 바로 그다음날 다시 경기를 하는 일정이 정말 어이없었다. 관중수도 만명으로 반토막이 난 상황인지라 관심도도 적었고, 이란이 파리바의 대회 7호골, 파라키의 두골로 북한을 가볍게 제압했다.
==== 결승전 쿠웨이트 3-0 대한민국 ====
1980년 9월 30일
이미 본선리그에서 대한민국이 3-0승리를 거두었으나, 홈 버프로 치열한 경기 결과가 예상되었다.[* 거기에 대한민국은 북한과의 4강전 때 9명의 부상자가 나온 것 때문에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다.] 이날 25,000명의 쿠웨이트 관정의 열광적인 응원에 힘입어 전반 8분, 자심 야콥의 크로스를 이어받은 사드 알 호티의 선취골로 쿠웨이트가 일찌감치 앞서나갔다. 34분에는 수비수 조영증의 백패스가 하필 자심 야콥에게 이어졌고 그의 크로스가 파이잘 테킬의 골이 되었다. 후반전에도 자심 야콥의 패스로 파이잘 테킬의 골로 이어지며 3-0. 25,000명의 홈팬들에겐 축제가 열렸다. 경기 종료 1분 전 정해원이 PK를 얻어냈지만, 이강조가 실축하면서 쿠웨이트의 첫 우승이 결정되었다.
||<table align=center><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
|| A || 4강 1경기 [br] 이란 1:2 '''쿠웨이트''' ||<|3> C ||<|3> 결승 [br] '''쿠웨이트''' 3:0 대한민국 ||
|| B || 4강 2경기 [br] '''대한민국''' 2:1 북한 ||
|| D || 3/4위전 [br] '''이란''' 3:0 북한 ||
||<table align=center><rowbgcolor=#ffd700> '''{{{+2 1980 AFC 아시안컵 우승}}}''' ||
|| [[파일:쿠웨이트 국기.svg|width=200]] [br] '''쿠웨이트''' ||
|| 첫 번째 우승 ||
== 결과 ==
|| 순위 || 국가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 || 승점 || 비고 ||
||<rowbgcolor=#ffd700> 1 || 쿠웨이트 || 6 || 4 || 1 || 1 || 13 || 6 || +7 || '''9''' || '''우승''' ||
||<rowbgcolor=silver> 2 || 대한민국 || 6 || 4 || 1 || 1 || 12 || 6 || +6 || '''9''' || 준우승 ||
||<rowbgcolor=#b8860b> 3 || 이란 || 6 || 3 || 2 || 1 || 16 || 6 || +10 || '''8''' || 3위 ||
||<rowbgcolor=#f0e68c> 4 || 북한 || 6 || 3 || 0 || 3 || 10 || 12 || -2 || '''6''' || 4위 ||
||<rowbgcolor=#ffa7a7> 5 || 시리아 || 4 || 2 || 1 || 1 || 3 || 2 || +1 || '''5'''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6 || 말레이시아 || 4 || 1 || 2 || 1 || 5 || 5 || 0 || '''4'''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7 || 중국 || 4 || 1 || 1 || 2 || 9 || 5 || +4 || '''3'''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8 || 카타르 || 4 || 1 || 1 || 2 || 3 || 8 || -5 || '''3'''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9 || 아랍에미리트 || 4 || 0 || 1 || 3 || 3 || 9 || -6 || '''1'''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0 || 방글라데시 || 4 || 0 || 0 || 4 || 2 || 17 || -15 || '''0''' || 1라운드 ||
* 득점왕 : 베타시 파리바(이란), 최순호(대한민국) 7골
* 베스트 일레븐
* GK : 나세르 헤자지(이란)
* DF : 나임 사드(쿠웨이트), 소 친 아운(말레이시아), 마부브 주마(쿠웨이트), 메디 딘바르자데(이란)
* MF : 압돌레자 바르제가리(이란), 사드 알 호티(쿠웨이트), [[이영무]](대한민국)
* FW : [[최순호]](대한민국), 파이살 알 다킬리(쿠웨이트), 자심 야콥(쿠웨이트)
== 이야깃거리 ==
* 개최국 쿠웨이트는 조별리그에서는 대한민국에게 뒤져 2위로 4강에 진출했지만 결승에서 대한민국에게 이기며 처음으로 우승하였다.
* 대한민국은 조별리그에서 3승 1무 무패 1위의 성적으로 통과하였다. 공교롭게도 쿠웨이트에게 조별리그에서는 3:0으로 승리하였으나 결승전에서 0:3으로 패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그리고 이 과정은 [[2015 AFC 아시안컵 호주|35년 후의 대회에서]] 똑같이 진행된다. 개최국(쿠웨이트, 호주)과의 조별예선 승리와 결승전 리매치에서의 패배가 전부 동일하게 이루어졌다. 대한민국이 무패로 결승에 올라온 것도 그렇고... 그리고 이 대회에서 만 18세의 한 신인 공격수가 등장해 7골을 넣으면서 아시안컵 역사상 최연소 득점왕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1980년대의 한국 축구의 간판 공격수이자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그리고 불세출의 [[천재]]라 불린 [[최순호]]다.''' 또한 대한민국은 2일전 북한과의 준결승전에서 무려 9명이 부상당해 결승전에서 전력을 꾸리기가 어려운 상황이기도 했었다.
* 남북한이 아시안컵에서 처음으로 4강에서 맞붙었는데 결과는 2:1로 대한민국이 북한에게 승리하였다. 물론 이때 경기가 매우 치열했기 때문에, 결승전에 악영향을 미쳤다.
* 상기했듯이 이란의 아시안컵연승기록이 대회 시작과 동시에 멈추게 되었다. 13연승은 아직도 최고기록. 무패기록 역시 17경기로 이란이 보유하고 있다.
* 이번 대회부터 처음으로 베스트 일레븐을 선정하기 시작했다. 3경기 5실점의 말레이시아의 소 친 아운이 수비수에 뽑혔는데, 조별리그 5경기 5실점의 대한민국 선수단에서는 단 한명도 뽑히지 않았다.
* 해트트릭이 많이 나온 대회로, 공동득점왕인 베타시 파리바가 9월 22일 방글라데시전에서 무려 4골을 뽑아내면서 대회첫 헤트트릭을 달성했고, 9월 24일 또다른 공동 득점왕인 최순호가 UAE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그리고 다음날 중국의 셴 시앙푸와 쑤 용라이가 방글라데시를 상태로 각각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해트트릭 횟수만 4번인 대회가 되었다.
[각주]
[[분류:AFC 아시안컵]] |
1980년 코리안시리즈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5><:> '''역대 [[한국실업야구]] [[코리안시리즈(실업야구)|코리안시리즈]]''' ||
||<width=30%><:> [[1979년 코리안시리즈|1979 코리안시리즈]][BR][[롯데 자이언트]] ||<:> {{{+1 ←}}} ||<:><width=30%> '''1980 코리안 시리즈''' [br] '''[[상무 야구단|육군 경리단]]''' ||<:> {{{+1 →}}} ||<:><width=30%> [[1981년 코리안시리즈|1981 코리안시리즈]][BR][[롯데 자이언트]] ||
[목차]
== 개요 ==
전기리그 우승팀인 [[상무 피닉스 야구단|성무 야구단]]과 후기리그 우승팀인 [[상무 야구단|육군 경리단]]과의 맞대결. 현재는 통합되었지만 당시로써는 군(軍)라이벌 끼리의 자존심 대결이었다.[* 성무는 공군에서 운영하던 야구팀이었고 경리단은 육군에서 관리하던 야구팀이었다.]
경리단은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 [[심재원(야구선수)|심재원]] 배터리와 홈런타자 [[김용철(야구)|김용철]], [[장효조]][* [[포스틸 야구단|포항제철 야구단]]에서 활약하다 입대한지 1달밖에 안되는 신병이었다(...)]가 든든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성무는 [[김유동]], [[김인식]], [[천보성]], [[김성관]], [[김정수(1953)|김정수]]등 주축 선수들이 대거 전역하면서 전력 약화가 우려되었으나 [[김재박]], [[김진우(1958)]], [[김한근]]이 버티고 있어서 경기전에는 박빙의 승부를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다.
전년도 코리안시리즈와 방식이 많이 바뀌었는데 전년도 코리안시리즈는 1차리그~4차리그까지 각 리그 우승, 준우승팀이 토너먼트를 진행해 코리안시리즈 진출팀을 가리는 방식이었는데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한 [[롯데 자이언트]]와 [[포스틸 야구단|포항제철 야구단]]이 코리언 시리즈 패권다툼을 벌여 이에 대한 다른 팀들의 반발이 일어났다. 그래서 이번 대회부터는 전기,후기리그로 통합해서 진행하고 전후기 우승팀이 맞붙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후에 [[한국시리즈]] 초창기 방식으로도 진행되며 [[1985년 통합우승|1985년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는 불상사]](...)가 벌어질때 까지 유지가 되었다.
== 1차전: 권영호의 호투, 장효조의 발이 만든 승리 ==
||||||||||||||||||||||||||<#dcdcdc> 1981년 10월 17일 [[동대문야구장|서울 운동장]] ||
||<#dcdcdc> 팀 ||<#dcdcdc> 1회 ||<#dcdcdc> 2회 ||<#dcdcdc> 3회 ||<#dcdcdc> 4회 ||<#dcdcdc> 5회 ||<#dcdcdc> 6회 ||<#dcdcdc> 7회 ||<#dcdcdc> 8회 ||<#dcdcdc> 9회 ||<#dcdcdc> R ||<#dcdcdc> H ||<#dcdcdc> E ||
|| '''육군 경리단''' || 0 || 0 || 0 ||<#FFD700> 2 || 0 || 0 || 0 || 0 || 0 || '''2''' || 0 || 0 ||
|| 성무 야구단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 승리투수: 권영호(경리단, 9이닝 무실점)
▲ 패전투수:
▲ 홈런: 신언호 1호(경리단, 4회 1점)
* 육군 경리단: 1승
* 성무 야구단: 1패
5,000명의 관중이 운집한 시리즈 첫경기. 초반 승부는 팽팽했다. 3회 말까지 양팀 타선은 투수들을 공략하지 못하고 쩔쩔 매고 있었다. 그러나 4회초 입대 한달밖에 안된 신병이었던 3번타자 [[장효조]]가 선두타자 출루로 1루로 진출한후 이어 2루로 도루에 성공, 뒤이어 5번타자 김일환이 중전 적시타를 때리며 홈으로 들어와 경리단이 1:0으로 앞서나가고 있었다. 이어 김일환은 2루 도루하다 아웃되며 2사에 주자가 없던 상황에서 다음 타자인 신언호가 좌측담장을 넘기는 솔로홈런을 때려내며 2:0으로 앞서 나갔다.
거기다 경리단의 선발투수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는 8이닝동안 단 5개의 안타만을 맞으며 무실점을 기록했고 9회말 볼넷 2개를 내주며 1사 1,2루의 위기를 맞이했으나 후속 타자들을 범타처리하며 깔끔하게 막아냈다.
== 2차전: 경리단의 불꽃타선이 폭발하다. ==
||||||||||||||||||||||||||<#dcdcdc> 1981년 10월 17일 [[동대문야구장|서울 운동장]] ||
||<#dcdcdc> 팀 ||<#dcdcdc> 1회 ||<#dcdcdc> 2회 ||<#dcdcdc> 3회 ||<#dcdcdc> 4회 ||<#dcdcdc> 5회 ||<#dcdcdc> 6회 ||<#dcdcdc> 7회 ||<#dcdcdc> 8회 ||<#dcdcdc> 9회 ||<#dcdcdc> R ||<#dcdcdc> H ||<#dcdcdc> E ||
|| 성무 야구단 || 0 || 0 || 0 ||<#FFD700> 1 || 0 || 0 || 0 || 0 ||<#FFD700> 2 || '''2''' || 0 || 0 ||
|| '''육군 경리단''' ||<#FFD700> 1 || 0 || 0 || 0 ||<#FFD700> 3 || 0 ||<#FFD700> 2 ||<#FFD700> 1 || X || '''7''' || 0 || 0 ||
▲ 승리투수:
▲ 패전투수:
▲ 홈런: [[서정환]](경리단, 1회 1점), [[김용철(야구)|김용철]](경리단, 7회 2점), [[이광은]](성무, 9회 2점)
* 육군 경리단: 2승
* 성무 야구단: 2패
== 3차전: 벼랑끝 성무, 물러설 곳이 없다. ==
||||||||||||||||||||||||||||<#dcdcdc> 1981년 10월 19일 [[동대문야구장|서울 운동장]] ||
||<#dcdcdc> 팀 ||<#dcdcdc> 1회 ||<#dcdcdc> 2회 ||<#dcdcdc> 3회 ||<#dcdcdc> 4회 ||<#dcdcdc> 5회 ||<#dcdcdc> 6회 ||<#dcdcdc> 7회 ||<#dcdcdc> 8회 ||<#dcdcdc> 9회 ||<#dcdcdc> 10회 ||<#dcdcdc> R ||<#dcdcdc> H ||<#dcdcdc> E ||
|| 육군 경리단 || 0 || 0 || 0 ||<#FFD700> 4 || 0 || 0 || 0 ||<#FFD700> 2 || 0 || 0 || '''4''' || 0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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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투수:
▲ 패전투수:
▲ 홈런:
2연패를 당한 성무야구단은 이번 경기를 놓치게 되면 힘들어 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5,000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무 야구단은 경리단의 선발투수 신태중에게 7회까지 단 3안타에 그치며 4:1로 뒤쳐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8회말, 기회가 찾아왔다. 8번타자 송종창이 2루타를 치고 나간후 수대성, 김재박이 연이어 볼넷을 얻어내며 무사 만루 찬스를 만들어 냈고 조용선이 무사 만루 찬스를 놓치지 않고 중전 적시타를 때려내 4:3으로 따라 붙었다. 그리고 9회말 2사 1,2루의 상황에서 [[김재박]]이 3루수를 스쳐 지나가는 2루타를 때려내며 4:4 동점으로 이끌어 냈다.[* 실업야구에는 일몰콜드게임이 존재했기 때문에 해가지면 경기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1승만 더 챙겼으면 실업야구 정상을 차지할수 있었지만 이날 경기 무승부로 우승기회는 다음 경기로 미뤄야만 했다.
== 4차전: 9회말 극적인 역전승부 ==
||||||||||||||||||||||||||<#dcdcdc> 1981년 10월 19일 [[동대문야구장|서울 운동장]] ||
||<#dcdcdc> 팀 ||<#dcdcdc> 1회 ||<#dcdcdc> 2회 ||<#dcdcdc> 3회 ||<#dcdcdc> 4회 ||<#dcdcdc> 5회 ||<#dcdcdc> 6회 ||<#dcdcdc> 7회 ||<#dcdcdc> 8회 ||<#dcdcdc> 9회 ||<#dcdcdc> R ||<#dcdcdc> H ||<#dcdcdc> 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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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 경리단''' || 0 || 0 || 0 || 0 ||<#FFD700> 1 || 0 || 0 || 0 ||<#FFD700> 6X ||'''7''' || 0 || 0 ||
▲ 승리투수:
▲ 패전투수:
▲ 홈런: 이광은(성무, 3회초 1점), 김성호(경리단, 5회말 1점)
4천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육군 경리단은 9회초까지 성무 야구단에게 6:1로 끌려가며 5차전으로 이어 지리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9회말 선두타자 김일환이 좌전안타로 출루햇고[* 이날 안타로 24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중이었다.] 다음 타자인 김성호가 안타로 무사 1,2루를 만든 상황에서 [[심재원(야구선수)|심재원]]이 [[김재박]]의 실책으로 출루 무사 만루의 찬스를 맞이했다. 이때 대타로 투입된 김호인이 우중간 2루타를 때려내며 주자 모두를 불러들이며 6:4로 따라붙었다.
뒤이어 김우근이 몸에 맞는 볼로 무사 1,2루가 되었고 [[서정환]]이 내야안타를 치며 또다시 무사 만루가 되었다. 그리고 [[차영화]]가 좌전 적시타를 때려내며 6:6 동점을 만들었고 이에 1점만 내줘도 끝내기 점수가 되며 준우승이 확정되는 상황이 된 성무 야구단은 2번타자 [[장효조]]를 걸러내고 무사 만루에서 병살을 이용한 작전을 구상했지만 [[김일환]]이 친 1루 강습타구를 성무의 1루수 조용선이 놓치며 결국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성무의 [[김재박]]은 4타수 4안타 3득점을 기록했지만 결정적인 찬스에서 실책을 범하며 패배의 주역이 되었다.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
1980년대 | ||<-5><tablealign=center><bgcolor=#808080> {{{#09081c '''연대'''}}} ||
|| {{{-2 [[1960년대]]}}} || {{{-2 [[1970년대]]}}} ||<bgcolor=#a9a9a9> {{{#000000 '''1980년대'''}}} || {{{-2 [[1990년대]]}}} || {{{-2 [[2000년대]]}}} ||
||<-5><bgcolor=#778899> {{{#c4b73b '''세기'''}}} ||
|| {{{-2 [[18세기]]}}} || {{{-2 [[19세기]]}}} ||<bgcolor=#a9a9a9> [[20세기|{{{#000000 '''20세기'''}}}]] || {{{-2 [[21세기]]}}} || {{{-2 [[22세기]]}}} ||
||<-5><bgcolor=#2f4f4f> {{{#ffd711 '''밀레니엄'''}}} ||
||<-2> {{{-2 [[제1천년기]]}}} ||<bgcolor=#2f4f4f> [[제2천년기|{{{#ffd700 '''제2천년기'''}}}]] ||<-2> {{{-2 [[제3천년기]]}}}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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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세계 [[경제]]가 전체적으로 호황을 맞고 있던 시기라 세기말적 분위기를 풍기는 [[1990년대]]와 석유 파동을 겪었던 [[1970년대]]와 달리 좀 더 밝게 묘사되는 부분이 있다. [[로널드 레이건]], [[마거릿 대처]], [[나카소네 야스히로]]와 같은 [[경제적 자유주의]]/[[신자유주의]] 성향의 지도자들이 영미권등에 등장했고, 이에 따라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권이 막을 열었다. 이 시기에 빈부격차가 급속히 커졌기 때문에 이들 정권의 경제적 성과에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최소한 [[1970년대]]의 인플레는 사라졌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남미나 동유럽권에서는 1980년대는 매우 암울한 시기로 기억된다.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고금리 정책을 펴면서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막대한 외채부담을 져야했고 그 과정에서 국가경제가 파탄난 나라가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빚을 갚기 위해 긴축정책으로 큰 고통을 겪어야 했던 국가들이 한두 곳이 아니었으며 공산권 가운데서 가장 자유주의 정책을 펼치던 [[유고슬라비아]]조차도 이때는 거액의 외채를 지고 있을 지경이었고, 거기에다가 지역갈등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지도 못하였으며, 타 동유럽 국가나 중남미 국가라고 해서 딱히 사정이 다른 것도 아니었다. 당시 중남미 국가와 동유럽 국가들이 빚을 갚기 위해 필사적으로 재정긴축을 하고 수입을 억제시켜서 매년 무역흑자를 거두고 있는데도 하도 이자율이 높다 보니, 이자조차도 못 갚았다는 슬픈 얘기도 전해져 내려오고,(다만 이들 나라 중에서도 루마니아는 그 비싼 이자율에도 어떻게든 빚을 다 갚기는 했다. 덕택에 [[차우셰스쿠]] 정권이 무너져내려졌지만) 소련은 동유럽 국가와 중남미 국가와는 다르게 일단 채권자에 가까운 위치이기는 했지만 결국엔 소련-아프간전과 유가하락, 체르노빌 사태라는 3중고가 겹치며 재정적으로 궁핍해지는 바람에 결국엔 개혁개방정책을 펴게 되었지만 결국 버티지 못했다. 뭐, 그래도 긍정적인 면을 찾자면 중남미에서 1980년대에 민주주의가 대부분 회복되었으며, 동유럽도 1989년을 기점으로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 한국, 대만, 필리핀이 민주화 된 시기와 비슷하다.
다만 [[냉전]]이 마지막 절정기였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1983년]]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핵미사일 오발 직전까지 간 사건]]'''.] 이에 따른 긴장 역시 풀 수 없었다. 그러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집권으로 소련에서 개방정책을 시도하는 등 냉전이 풀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980년 이라크의 이란 침공으로 [[이란-이라크 전쟁]]이 8년에 걸쳐서 일어났다. 중동의 전쟁이 미국의 국내정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등 중동 문제가 최중요 현안으로 급부상한 시기기도 하다. [[이란 콘트라 사건]]도 그렇고.
언론인이자 페미니스트인 수전 팔루디(S.Faludi)는 자신의 도서 《[[백래시(도서)|백래시]]》 에서, 이 시기를 가리켜서 '''"백래시의 시대"''' 라고 불렀다. 70년대에 여성운동이 이루어냈던 모든 성취들을 전부 부정하고, 다시 그 이전의 가부장적 사회로 회귀하려고 미국 사회 전반에 걸친 움직임이 일었으며, 그 중심에는 [[로널드 레이건]]이 있었다는 것. 자세한 내용은 해당 도서를 참조해 보자.
80년대 말에는 공산주의가 잇달아 붕괴되면서 자유주의 열풍이 불기도 했다.
[[파일:1980.jpg]]
[[1986년]]~[[1988년]]은 [[3저 호황]]으로 세계경제가 황금기에 있던 시기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20571&cid=42958&categoryId=42958|3저호황]]]
이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낸사람은 대부분 [[1962년]]생~[[1982년]]생이다. (빠른 [[1983년]]생 포함)
== 세계적인 모습 ==
||[youtube(OWBSu-9mrRM)]||[youtube(lQqE9An3kXA)]||
||Top 10 Trends of the 1980s ||NewsChannel 9 - 1980s Video Timeline ||
=== 음악 ===
==== 영미권 음악 ====
[[대중음악]]의 경우 '''[[마이클 잭슨]]의 등장으로 음악의 [[인종차별|인종장벽]]이 무너지며 시대의 아이콘이 된다.''' 이는 20세기 인종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대중문화]]의 확산에 큰 기여를 했다. 마이클 잭슨의 등장으로 [[대중음악]]은 흑인이 주도해 나가기 시작하는데 이 기조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MTV]]의 개국과 [[마이클 잭슨]], [[프린스(음악가)|프린스]], [[마돈나(가수)|마돈나]]의 혁명적인 등장 이후로 '보는 음악'의 시대가 열렸다. 뮤직비디오와 같은 새로운 홍보매체와 70년대의 펑크(Funk), 디스코뮤직에 일렉트로니카가 뒤섞여 새로이 파생된 현대식 댄스팝, 정교한 퍼포먼스, 무대 장치와 화려한 비주얼등이 음악계의 주류로 떠오른 시대이다. 신디사이저를 적극적으로 사운드에 활용하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드록]]에서 파생된 [[메탈]]을 중심으로 하는 [[록 음악]]이 여전히 초강세를 보이던 시절이기도 했다. 초반에는 [[모터헤드]]와 [[주다스 프리스트]]을 위시한 브리티쉬 메탈이, 중후반에는 [[메탈리카]], [[메가데스]], [[슬레이어]], [[앤스렉스]]등의 [[스래쉬 메탈]]과 [[본 조비]], [[머틀리 크루]], [[화이트 스네이크]], [[유럽]], [[스콜피온스]]를 위시한 팝&글램메탈의 전성기가 바로 이 시대.
[[퀸(밴드)|퀸]]은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창법이 조금 바뀐 채 활동하며 명곡을 뽑는 등 전성기의 중후반이다. 한편 언더그라운드에서는 과거 펑크 록의 흐름을 변주한 [[포스트 펑크]]가 유행했으며, 이는 후에 [[얼터너티브]], [[슈게이징]], [[하드코어 펑크]] 등의 기원이 된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2000년대]]에 들어 크게 재조명받게 된다. 그 외에 [[핑크 플로이드]]도 전성기의 후반을 누렸고 87년부터 [[건즈 앤 로지스]]가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 뉴욕 클럽 등지에서 나타난 [[힙합]]이 본격적으로 주류음악권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이 시기. 이 무렵에는 [[비스티 보이즈]]와 같은 힙합밴드의 형태도 존재하였다.
[[1970년대]]에 태동한 일렉트로니카는 본격적으로 분화되어 [[테크노]]와 신스팝 등의 장르가 주류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여러 뮤지션들이 일렉트로니카와 자신들의 음악을 융합하려는 시도를 진행하기 시작한다.
==== 한국 음악 ====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의 [[3S정책]]에 힘입어 가요계의 히트곡들은 전체적으로 1970년대에 비해서 대단히 분위기가 밝아졌다. 그리고 전체적인 가요계의 시장 크기와 앨범판매량이 급증하기 시작한 시기였으며 이는 이후 1990년대를 거쳐 황금기를 맞이한다.
혹자에 따라선 1990년대를 한국음악의 전성기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90년대는 대중음악의 인기가 폭발적인 시기일 뿐, 장르의 다양성과 실험성에 있어서는 1980년대가 더 우위에 있었다는 여론이 있을만큼 상당히 음악적으로 발전한 시대다.
가왕 [[조용필]]이 신드롬적인 인기와 영향력, 뛰어난 음악성을 바탕으로 앨범판매량과 대상 수상기록, 가요톱텐 1위 기록등을 수시로 갈아치우며 한국 가요계를 완전히 평정했던 시절이다.
조용필 외에도 수많은 뮤지션들이 활동했다. 조용필의 어마무시한 인기와 영향력에 그나마 대항할 수 있었던 [[전영록]], [[김수철(가수)|김수철]]과 같은 네임드 남자가수들이 활약했던 시기이며 [[이선희]]와 같은 전설적인 여가수들도 등장했다. 기존의 한국음악계를 주름잡았던 트로트의 인기도 여전해서 [[주현미]]와 같은 트로트 가수들도 상당한 위치를 선점했던 시기다.
현 시점에 록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가장 록 음악에 관심을 두었던 몇 안되는 전성기였으며 70년대 세시봉 출신 포크송 가수들의 직속 후배격이라 할 수 있는 [[들국화]], [[김현식]], [[한영애]], [[신촌블루스]], [[빛과 소금(밴드)|빛과 소금]] 등의 뮤지션들이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음악계를 개척하며 블루스와 록 음악의 장르를 다양화 시켰다. 또한 1980년대 초반 당시 유일한 슈퍼밴드였던 [[송골매(밴드)|송골매]]가 활약했으며 1980년대 중후반에는 위에 언급된 록 뮤지션들의 후배격인 [[백두산(밴드)|백두산]], [[시나위(밴드)|시나위]], [[부활(밴드)|부활]] 등이 하드 록, 얼터너티브 록 음악을 기반으로 한 [[밴드]]활동으로 크게 돋보였다.
한편 한국 발라드의 뿌리인 [[유재하]]와 작곡가 [[이영훈]]-가수 [[이문세]] 콤비도 이 시기에 나온 뮤지션이다. 이 들의 영향으로 현재까지도 한국 가요계의 주류 장르라 할 수 있는 발라드 장르가 성립되며 1980년대 후반경 [[변진섭]]이 음반 100만장을 돌파하면서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게 된다. 이는 이후 1990년대 [[신승훈]]의 등장으로 더욱 가세된다.
1980년대 중후반 이후에는 [[소방차]], [[김완선]], [[박남정]]을 비롯한 본격적인 1세대 댄스가수들이 등장하여 지금의 아이돌 가수처럼 큰 인기를 얻었던 시기였다. 이들의 인기 자체는 상당했지만 당시엔 댄스음악에 대해 일종의 차별적 시선이 존재하여 완전히 가요계의 주류였다고 일컫기엔 부족했으며 이는 이후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판도가 뒤집히게 되었다.
즉, 1980년대에는 한국 가요계에서 좋은 음악들과 각종 실험적인 사운드가 많이 쏟아지던 시절이었으며 실상 현재 한국 가요계에서 즐길 수 있는 장르들은 거의 다 이때 나온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물론 내부적으로 보면 가요 내용 검열이나 음반사의 음반판매 수입 독점, 창작자에 대한 저작권의 인식이 실상 전무했던 것과 같은 뿌리깊은 문제점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었다. 이는 1990년대를 거치면서 개선되기 시작했다.
==== 일본 음악 ====
1980년대 일본 음악은 큰 틀에서 [[일본 아이돌|아이돌]]과 [[시티 팝]] 등의 뉴 뮤직으로 나눌 수 있다.
1980년대 [[일본 아이돌]] 전성기를 열어젖힌 장본인은 바로 '''[[쟈니스 사무소]]'''였다. 1979년 청춘드라마 '3학년 B반 긴파치 선생'에서 데뷔한 '타노킨(たのきん) 트리오'([[타하라 토시히코]], [[노무라 요시오]], [[콘도 마사히코]])가 남자 아이돌 황금기의 막을 올렸고, 이후 쟈니스는 시부가키대, [[소년대]], [[히카루GENJI]]를 연이어 성공시키면서 일본 연예계의 큰 손으로 자리매김했다.
여자 아이돌 시장에서는 1980년 [[야마구치 모모에]]의 은퇴와 동시에 [[마츠다 세이코]]가 데뷔했고, 그 후 이른바 '꽃의 82년 데뷔조'([[나카모리 아키나]], [[코이즈미 쿄코]] 등)가 등장하면서 일본 가요계는 아이돌 위주의 시장으로 재편되었다. 특히 마츠다 세이코와 나카모리 아키나는 상반되는 음악적 색깔로 전혀 다른 매력을 선보이며 80년대 일본 가요계 최대의 라이벌로 기억되고 있다.
메이저 록씬에선 [[라우드니스]] 같은 [[헤비메탈]]과 [[블루하츠]]같은 [[펑크 록]]이 인기를 끌었다.
언더그라운드에선 제패노이즈(japanoise)라고 하는 독자적인 노이즈 음악씬이 생겨났고, 하드코어 펑크씬도 활성화 되어있었다.
=== 영화 ===
* [[영화]]의 경우 특수효과의 사용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기이기도 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성공 이후 간간히 만들어지던 [[블록버스터]]가 보편화 되었다. 다만 CG 그래픽의 십분 활용은 90년대부터 확장되기 시작한다.
* [[잃어버린 10년/일본|잃어버린 10년]]을 겪기 전인 1980년대 [[일본]]은 [[킹왕짱]]급 [[강대국]]으로 여겨졌었다. 당시 일본은 경제규모 세계 2위였지만 [[미국]]을 추월하여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 여겨졌었다. [[블레이드 러너]], [[로보캅 시리즈|로보캅 3]], 떠오르는 태양(라이징 썬), [[다이 하드]] 등 1980년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일본에 대한 두려움이 잘 나타나 있다. 실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일본의 경제성장을 매우 심각한 위협으로 여기고 두려워했다. 게다가 당장 눈앞에 놓인 비현실적인 환율이 심각한 문제였고 일본의 급성장은 이런 환율 탓이 크다는 게 당시 서구권의 인식이었다. 결국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5개국 경제 수장들이 모여 [[플라자 합의]]로 환율을 현실화하기로 합의한다.[* 플라자 합의를 서방 여러 나라가 연합하여 일본을 굴복시킨 걸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일본 경제의 실력을 인정한 미국의 인증 선언에 더 가깝다. 플라자 합의는 근본적으로 환율의 현실화에 불과했고 실제로 그 효과가 나타날지도 당시에는 의심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당시에도 환율에 대한 결정권은 이미 정부가 아닌 민간으로 넘어간 상황이었고 때문에 5개국 정부가 합의했다고 하더라고 과연 환율이 정상화 될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현실 속에서 플라자 합의가 장래에 일본의 거품경제를 만들어내고 잃어버린 10년을 만들어 내는 간접적인 한 원인이 될 거라는 걸 누가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단 말인가.]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는 파격적으로 평가절상되고 이런 엔화의 절상과 함께 일본 경제에 대한 과도한 환상은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거대한 거품]]을 만들어내고 거품 붕괴와 함께 일본의 성장은 서서히 끝이 나고 잃어버린 10년이 도래했다.
* 다양한 장르가 성행했던 시기였다. [[2010년대]]부터 저예산 영화와 [[블록버스터(영화)|블록버스터]] 영화가 분리되고 있다는 점에서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에서 당시 제작비 예산이 블록버스터[* 당시 블록버스터는 1000만 달러 이상이었다. 1991년 개봉한 터미네이터 2 이후에 들어서서 1억 달러 기준으로 올랐다.]와 저예산 영화들을 같이 만들어서 다양한 장르가 나올 수 있었다. SF 영화부터 청춘 영화, 슬래셔 영화까지 다양한 장르들이 고르게 흥행했다. 게다가 시나리오(각본)가 당시 기준으로 신선한 이야기들이 많이 성행하기도 했다. 그래서 흥행의 원동력되기도 했다. 복고풍이 불고 있는 2010년대에 들어서서 다시 리메이크로 제작할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서 흥행작들은 대부분 블록버스터에 한정되어있음을 감안하면, 이 시기까지는 아직 저예산 영화들이 힘을 쓰던 시기라는 말이 된다.
=== 게임 ===
[[아타리 쇼크]]라는 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인해 비디오 게임 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이후 닌텐도의 [[마리오 시리즈]]와 [[패미컴]]이 대박을 치면서 일본 제작사들에 의해 시장이 재개편, 2001년에 마이크로 소프트의 엑스박스가 나오기 전까지 콘솔 시장은 일본 제작사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게 된다. 횡, 종스크롤 액션, 슈팅게임들이 이때부터 체계적으로 발전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했고, 80년대 중, 후반엔 일본식 RPG의 대표라 불리는 드래곤 퀘스트,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 만화, 애니메이션 ===
한국 만화에 대한 검열은 여전했지만 [[보물섬(만화잡지)|보물섬]], [[아이큐 점프]] 같은 만화잡지들이 등장하면서 만화 시장이 팽창했던 시기. 특히 1983년부터 보물섬에서 연재된 [[김수정(만화가)|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는 전 세대의 사랑을 받으며 국민 캐릭터로 자리잡았고,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은 실사영화와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 후반 [[로보트 태권 V]]를 필두로 활발하게 이뤄지던 국산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작이 1980년대 들어 소재고갈, 표절, 지나친 반공의식 주입 등을 이유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1986년 [[우뢰매|우뢰매 시리즈]]의 히트로 순수 애니메이션 대신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결합된 한국형 특촬물이 어린이 극장가를 장악했다.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둔 1987년부터 TV 애니메이션 제작이 시작되면서 [[떠돌이 까치]](KBS), 달려라 호돌이(MBC) 등 단편 애니메이션들이 제작되었고 1988년 최초의 TV 시리즈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가 방영되었다. 이때부터 90년대 초까지 한국 TV 애니메이션이 전성기를 맞았다.
일본은 [[은하철도 999(TVA)|은하철도 999]]와 [[기동전사 건담]]이 일으킨 아니메 붐이 8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과거 TV판의 확장판 수준이었던 극장판이 오리지널 스토리로 제작되기 시작했고, 성인 소비자를 위한 [[OVA]]가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에는 해외 합작의 감소와 어린이 시청 인구 감소 등 [[버블경제]]의 역풍을 맞으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은 침체기를 맞았다. [[AKIRA(1988)|AKIRA]] 같은 대작도 1988년 첫 상영 당시에는 흥행이 저조했다. 그 와중에 [[미야자키 하야오]][* 지브리 창립 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제작했다.]와 [[타카하타 이사오]]의 [[스튜디오 지브리]]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같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히트시켰다.
1970년대 일본 만화계에 [[나가이 고]]가 있었다면 1980년대에는 [[토리야마 아키라]]가 있었다. 토리야마는 1979년부터 [[소년 점프]]에 개그 만화 [[닥터 슬럼프]]를 연재한데 이어 1984년에는 [[배틀물]] [[소년 만화]]의 대명사 격인 [[드래곤볼]]의 연재를 시작했다.[* 드래곤볼도 초기에는 닥터 슬럼프의 개그 노선을 따르다가 점차 능력자 배틀물로 변화했다.] 또한 [[캣츠 아이(만화)|캣츠 아이]], [[시티헌터]]를 히트시킨 [[호조 츠카사]], [[터치(만화)|터치]]의 [[아다치 미츠루]]도 80년대를 대표하는 만화가였다. 여성 만화가 중에서는 [[시끌별 녀석들]], [[메종일각]] 등으로 [[러브 코미디]] 장르를 유행시킨 [[타카하시 루미코]]가 두각을 나타냈다.
1980년대 일본 TV 애니메이션은 [[후지 테레비|후지TV]]가 [[닥터 슬럼프]], [[시끌별 녀석들/애니메이션|시끌별 녀석들]] 같은 개그물과 [[북두의 권]], [[드래곤볼(애니메이션)|드래곤볼]] 등 소년 액션물을, [[TV 아사히]]가 [[도라에몽(애니메이션)|도라에몽]]을 필두로 한 [[후지코 후지오]] 애니메이션과 [[건담 시리즈]]로 대표되는 리얼로봇물을 주로 편성했다.
=== 대량 학살 ===
전 세계 독재자들이 반정부 성향을 보이는 자국민들을 대량 학살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했다.
* 대한민국: 5·18 광주 민주화 운동 - 전두환 학살 주도, 현장 사망 165명, 상이 후 사망자 376명, 행방불명자 65명.'''[* 다만 아놀드 피터슨은 8백 명 사망, 조선대민주투쟁위원회 측은 2,000여 명 사망이라고 주장했다.] [[https://m.youtube.com/watch?v=ak_MO8NKZ-A| 00]] - [[https://m.youtube.com/watch?v=cvV_oiq0ec4| 01]] - [[https://m.youtube.com/watch?v=1KYyWVnG9gE| 02]] - [[https://m.youtube.com/watch?v=xxFucbA7XMI| 03]] - [[https://m.youtube.com/verify_age?next=%2Fwatch%3Fv%3DQQH1Ho66BN0&disable_polymer=true| 04]] '''
* 중국: 톈안먼 사건 - 덩샤오핑(당시 최고지도자), [[리펑]](당시 총리) 학살 주도, 7000명(나토 추정)~10000명(소련 추정) 사망 추정.
* 짐바브웨: 구쿠라훈디 학살 - [[로버트 무가베]](당시 최고지도자, 짐바브웨 총리) 주도, 1982년~1983년간 마타벨레랜드 지역에서 2만여 명 학살.
* 시리아: 1982년 2월 2일 하마 학살 - 하페즈 알아사드(당시 시리아 대통령) 지시, 리파트 알아사드(하페즈 알아사드의 동생) 주도, 38000명(리파트 알아사드 본인 주장)~4만 명(시리아 인권위원회 추정) 사망 / 타드무르 대학살 - 1982년 6월 하페즈 알아사드의 동생인 리파트 알아사드가 군대를 이끌고 정치범들이 수용된 타드무르 감옥에 진입, 재소자들 무차별 학살. 수천 명 사망 추정.
* 이라크: 알 안팔 작전 - 사담 후세인(당시 최고지도자, 이라크 대통령) 주도, 1986~1988년간 18만 2000여 명 학살, 1988년 3월 16일에는 할랍자에 독가스를 살포해 5000여 명 즉사.
== 한국의 경우 ==
=== [[대한민국/정치|정치]] ===
[include(틀:토론 합의, this=문단, 토론주소1=TacitTranquilDeadProfit, 합의사항1=정치적 중립성을 기해 공신력 있는 자료를 토대로 서술하는 것(#50))]
>'''{{{+4 서울의 봄}}}'''
||[youtube(IA119wQWX2U)]||
||역사다시보기 - 6월민주항쟁(The June Struggle for Democracy) ||
1979년 10월 26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정부장에게 암살당해 18년 철권통치가 끝났으나, 뒤이어 계엄령이 선포되고 최규하 대통령의 위기관리정부가 출범한 뒤 정국은 안개처럼 보이지 않은 채로 예측불허 상태로 흘렀다. 이 상황 속에서 2월 29일에 정부가 윤보선과 김대중 등 687명을 복권하여 민주화에 호응하는 듯했고,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 통칭 '3김' - 이 등장하여 앞으로의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을 벌였다. 그 사이 12.12 쿠데타로 실권을 잡기 시작한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은 암약하며 언론포섭 계획인 'K-공작계획' 같은 집권 시나리오를 은밀히 만들어 권력 장악을 할 채비를 했다.
1980년 봄 들어서 학생과 민주세력을 중심으로 민주화 열기가 다시 거세졌는데, 이들은 유신헌법 폐지, 전두환-신현확 퇴진, 비상계엄 해제, 민주정부 수립 등을 외쳤다. 학생운동 조직은 종전의 학도호국단 대신 학생회를 부활시켜 '학원민주화투쟁'을 시작했고, 4월 9일 성균관대 학생들의 군장검열 거부로 '병영집체훈련 반대투쟁'도 점차 퍼졌다. 5월 13일부터 연세대 등 6개 대학생 3천여명이 교문을 나서 광화문을 거쳐 서울역, 남대문, 종로 등에서 격렬히 가두시위를 벌였으나, 군 투입 움직임을 읽은 지도부는 서울역에서 '회군'을 결정했다.
같은 시기 사회 저명인사 100여명이 학생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고, 학생운동에 놀란 각 정당들도 계엄령 해제 건의를 준비했으나 정치권과 재야세력들은 앞으로 들어설 정부에 관심을 기울여 주도권 다툼을 하다 신군부의 암약에 대응하지 못했다. 노동운동계에선 4월 21일 동원탄좌(현 넥스트사이언스) 사북광업소 노동자들의 파업(사북 사건)이 있었고, 동국제강, 일신제강, 롯데제과 등지에도 민주노조 쟁취운동 등 노동쟁의가 일어났다.
이를 기회로 신군부는 5월 17일에 국무회의에서 각료들로 하여금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쪽으로 찬성토록 했고, 다음날 0시를 기해 본격 선포하여 김종필과 이후락 등에게 부정축재자 혐의를 씌워 연행했고, 김대중 등 재야인사들도 소요 조종 혐의로 강제 연행하며 학생운동 지도자 등 민주인사에 대한 수배를 개시했다. 더 나아가 이들은 언론을 검열하고, 시위 등 정치활동 자체를 금지시키며 대학까지 휴교시켰다. 5월 18일 전남대 교문 앞 시위를 계기로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했으나 신군부는 광주시민 전체를 '폭도'로 규정하여 무자비하게 짓밟음으로서 9일여만에 비참하게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이 투쟁은 훗날 살아남아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원천이 됐다.
신군부는 동월 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하여 실권을 잡고 박정희처럼 '반공과 안보'를 국시로 유지했으며, 공화당과 유정회, 신민당 출신 등 구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규제했으며, '삼청계획'을 통해 먼저 고급공무원 등 공직자들을 대거 숙청했고, 언론인 933명을 해직했다. 또 불량배 소탕을 명분으로 '삼청교육대'를 만들어 전 국민을 혹독하게 다뤘다. 같은 시기 김대중도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아 죽음의 문턱까지 오기도 했다.
8월에 전두환이 군복을 벗고 유신헌법에 따라 정식으로 대통령에 뽑혔고, 10월에는 대통령 간선제와 7년 임기제, 국회의원 1/3 전국구 배정, 국회 해산권 부여 등을 골자로 한 8차 개정헌법을 공포했다. 이후 '국가보위입법회의'가 만들어져 반공법을 흡수한 '개정 국가보안법'을 비롯해 노동쟁의 제3자 개입금지를 골자로 한 '개정 노동쟁의조정법', 기업별 노조제를 골자로 한 '개정 노동조합법' 등 악법들을 만들었다. 1981년 1월에는 미국을 방문하여 김대중의 감형을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전두환 정권을 인정받았고, 2월 대선에선 선거인단제에 따라 재선임되어 '제5공화국'이 본격 출범됐다. 3월 25일엔 11대 총선이 열려 여당 민주정의당과 관제야당 민주한국당-한국국민당으로 대표되는 '1대대-2중대-3소대' 체제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광주항쟁으로 지핀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았으니, 학생운동권은 무림-학림 논쟁 등을 통해 전열을 정비했고, 1982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을 계기로 '반미자주화 투쟁'의 봉화가 점차 피기 시작했다. 1983년 12월에 5공 정권은 정권 안정을 이유로 제적 학생들을 복교시키고 경찰을 대학에서 철수시키는 등의 이른바 '유화 정책'을 실시하자 1984년부터 점차 여러 대학에 총학생회가 결성되어 다시금 가두투쟁이 시작됐고, 노동운동권에선 1980년대 초반에 원풍모방, 콘트롤데이타, 남화전자, 청계피복 등 기존 민주노조들이 정권의 탄압으로 와해됐음에도 1984년을 기점으로 청계피복 노동조합이 재결성되고 서울 구로공단과 가리봉공단 등을 중심으로 대우어패럴, 로옴코리아, 삼경복장, 효성물산, 가리봉전자, 대한마이크로 등지에서 새 민주노조들이 결성돼 1985년 구로동맹파업으로 불씨를 키웠으며, 대학생들도 공장에 위장취업까지 하며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노동운동을 했다. 또 '농활'과 '공활'도 급증했다. 이렇듯 민주화운동은 학생과 지식인을 넘어 농민과 노동자 등 기층민중까지 파급됐으며, 나아가 광주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는 것으로 발전했다. 특히 민주-민중운동은 5공 독재반대 투쟁과 더불어 민중생존권 쟁취, 반미자주화와 통일 등의 투쟁을 해왔다.
1983년 김영삼의 단식투쟁을 계기로 이듬해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가 발족되어 김영삼의 상도동계와 김대중의 동교동계가 손을 잡았고, 1985년 2월 12일 12대 총선에서 김영삼, 김대중 등 민추협 중심으로 만든 '신한민주당'이 돌풍을 일으켜 '선명야당'으로서 5공 정권과 싸우기 시작했고, 1986년에는 민주-민중운동 세력과 연합하여 대통령 직선제 쟁취 투쟁을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전두환 정권은 호헌론으로 맞서며 재야 민주세력을 폭력적으로 탄압했으나,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같은 정권의 폭력성을 드러낸 사건들이 잇따라 터져 대중들의 반감이 커졌다. 이는 1987년 6월 민주 항쟁이란 전민항쟁으로 이어져 또 궁지에 몰린 신군부 정권은 6.29 선언을 발표해 직선제를 수용하는 등 정국 전환을 시도했다. 12월에 열린 13대 대선에서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양김의 분열을 틈타 대통령에 당선됐고, 1988년에 새 헌법이 발효되면서 제6공화국이 출범됐다.
새로 출범한 노태우 정권은 내각과 군부 등 요직에 하나회 인사들이 그대로 있기에 '5.5공화국'이란 소리를 들었으나, 대신 법적/제도적 측면에서 민주주의가 보장됐고 직접선거로 뽑힌 대통령이기에 정치권력도 어느 정도 정당성을 유지했다. 또 전임 정권과 달리 입법 및 사법부의 권한이 강해지고 헌법재판소도 세워졌기에 3권 분립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일정해졌다.
그해 4월 13대 총선에서 민정당이 과반수 장악에 실패해 여소야대가 되어 정권은 야당과 민주세력들의 개혁적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야당 측은 청문회를 열어 일해재단 같은 5공 때 비리들을 파헤치며 '5공 청산'을 부르짖었고, 전두환의 형 전경환 등 친인척들이 구속되고 전두환 부부도 백담사로 '유배'를 떠났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혁 바람은 보수 세력들에게 좋게 보일 리 없었으니, 1988년 정권 출범 초기부터 오홍근 테러사건 같이 정보기관이나 극우 세력에 의한 백색테러들이 주를 이루다가 1989년에는 노태우 정권이 중간평가까지 거부하며 '공안정국'을 선포한 뒤 공권력을 총동원해 재야세력에 용공혐의를 씌워 탄압하는가 하면, 온갖 공안사건을 발표하여 여론을 호도했다. 같은 시기 탈냉전 바람이 일자 정권은 1988년 헝가리 한국대표부 설치를 시초로 '북방정책'을 추진하여 동구권 등 공산권과의 관계를 개선코자 했지만, 다른 한쪽에선 동구권 관계개선을 명분으로 북한을 고립시키겠다는 냉전적 사고에서 못 벗어났다는 견해도 있었다.
남북관계에선 통일 관련 제안이 빈번히 제시됐던 때였다. 최규하 정권 때인 1980년 1월 12일과 24일에 남북한 양측이 처음으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공식 호칭을 처음 쓴 후 남북총리회담 예비접촉까지 하면서 전임 대통령 때보다 좀 나아질 듯했으나, 5.17 내란과 5.18 민주화운동을 진압한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다시 파탄났다. 그해 10월에 먼저 북한이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방안'을 먼저 제시하자 전두환 정권도 1982년에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을 같이 내세웠고, 1984년 수해 때 북한의 구호물자를 받아들인 후 이듬해 남북 고향방문단 및 예술단의 상호 교환 방문이 이뤄져 남북관계에도 빛이 보였고, 남북정상회담도 비밀리에 계획됐으나 여건상 성사되지 못했다.
남북한 양측은 상대방을 적대시하면서도 권력 유지를 위해 제안을 하는 핑퐁게임을 해왔는데, 이 과정에서 1983년 아웅산 묘소 테러나 1986년 김일성 사망 오보 사건, 금강산댐 건설 소동 같은 게 터졌다. 다른 한편 전두환 정권은 통일운동을 탄압하여 1986년에는 유성환 신민당 의원이 국회에서 국시와 관련해 "반공보다 통일이 상위개념"이라 했다가 안기부에 구속된 것도 당시 상황을 증명한다.
그러나 1987년 6.29 선언 후 1988년에는 김중기 서울대 총학생회 후보의 남북한 대학생 공동체육대회와 국토순례대행진 제안을 계기로 통일운동 열기가 28년 만에 다시 살아났고, 5월 서울대생 조성만의 투신을 계기로 통일운동의 필요성이 학생들의 가슴 속에 와닿기 시작했다. 전대협은 6월 10일과 8월 15일 두 차례 남북학생회담을 시도했다가 경찰에 의해 무산됐지만, 이 경험을 바탕으로 통일운동의 역량이 더더욱 키워졌다. 다른 한편 국보법 철폐운동과 더불어 '북한 바로알기 운동'도 같이 퍼졌으며, 1989년에 터졌던 문익환, 임수경, 서경원, 황석영 등 재야인사들의 무단방북 사건들도 이 흐름에서 일어난 것이다. 노태우 정권은 창구단일화를 내세워 재야세력의 통일운동을 억누르는 한편 '7.7 선언'을 발표했고, 1989년엔 현 통일정책의 기반인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마련했다.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한국 진보세력의 사상과 이념이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진보정치의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 [[브루스 커밍스|한국 전쟁의 기원]] 등의 서적으로 대표되는 [[친일반민족행위자|친일파]] 청산론, [[반공]]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북한]]에 대한 재평가와 북한과의 화해 및 통일의 추구,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에서 비롯된 [[미국]]에 대한 재평가는 이후 이때 민주화 운동을 벌인 [[386세대]]들이 정권을 잡게 된 [[2000년대]]에 과거사 청산 활동, 북한과의 화해, 협력 및 외교 다각화 노선 등으로 현실정치에서 시도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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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
1980년 경제는 2차 오일쇼크 때문에 마이너스에서 시작했다가 1981년부터 다시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음에도 외채는 갈수록 올라 1985년 기준 총외채 468억 / 순외채 355억 달러로 올라가 '외채망국론'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다행히 1986년 3저 호황으로 숨통이 트였으나, 미국의 수입개방이 거세져 농축산물 개방이 무차별적으로 행해지자 농민들이 생계에 큰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1984년 함평/무안 농민투쟁, 1985년 소몰이 투쟁 등이 벌여졌고, 1985년에는 '함평농민회'라는 자주 농민운동조직을 결성했다. 이는 1987년 전국농민협회, 1988년 전국농민운동연합으로 각각 발전되었다. 공산품 역시 정부가 점진적으로 수입개방을 감행해 1986년 수입담배가 허용됐고, 1987년 물질특허, 1988년 영화직배 등이 각각 개방되었다. 1989년에는 GATT BOP원용조항이 폐지되고 GATT 11조(수출입 수량제한 철폐) 이행국이 되어 농산물 88.5%, 공산품 99.9%로 각각 증가했다. 금융시장 역시 1987년 외국보험사 지사 개설을 허용했고, 1988년에 현지법인 설립까지 허용했다. 또 기업들도 기술개발에 주력하기보다 비업무용 부동산 매입에 주력했다.
1981년을 계기로 석유파동의 후유증을 극복하면서 중산층의 비율이 증가하기 시작하고 1986년부터 1989년에 이르기까지 3저 호황이라고 해서 경제 성장과 수출 증가를 거치면서 전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중산층의 비중이 두터워졌다.[* 다만 이때 호황의 여파로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부동산값이 급속히 올라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또한 70년대까지만 해도 극소수의 부자들만이 소유할 수 있었던 자가용 자동차를 보유한 가정이 크게 늘게 되어 '[[마이카]]' (My Car)가 유행어가 되었다(마찬가지로 ‘오너드라이버’라는 말도 유행했다) 1가구 1자동차 시대는 90년대의 일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해서 보급률이 크게 늘어났고 주차난도 8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 되었던것도 사실이었다. 1985년의 한국의 GNP는 2310달러로 낮지는 않은 수준이었다.
=== [[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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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youtube.com/watch?v=RVPSpsrGPCQ&t=10s|여자 삼청]][[삼청교육대|교육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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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고속버스 안내양 멘트 ||
* 대학 졸업자들은 대기업에 취업이 잘 되고[* 물론 당시 대학진학률이 20%대에 불과했다는 것은 감안해야 된다.] 공무원의 경우에는 당시에는 그리 돈을 못 버는 직종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사실 이때는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견기업 정도만 되어도 평생직장은 보장해주는 분위기였기에 공무원이 그리 메리트 있는 직종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물론 공장다니는 것이나 농사짓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겨지던 수준.] 시험경쟁률이 낮아서 하급 공무원이 되기 쉬웠다. 다만 그때도 [[행정고시]]의 경우에는 엘리트가 되기 수월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경쟁률이 높은 건 마찬가지였기는 했다. 물론 당시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도 근로환경이 열악했다는 것은 넘어가자(...) 참고로 공무원 시험은 88년까지는 쉬웠으나 89년부터 취업율이 둔화되고 한국 경제가 예전만큼 시원찮치 못하게 되어 조금씩 어려워졌다. 91년 이후 만만치 않은 시험으로 어려워졌는데, 참고로 80년대 후반에 대학 입학한 학생들이 대학 안가고 7급이라도 시험 쳐서 들어갔다면 들어갔을 텐데 5~6년 만에 너무 어려워졌다고 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대기업도 대졸자라면 80년대에는 C-성적도 골라서 갈 수 있던 것을 91년 이후에는 성적이 B-이하라면 대기업 들어가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석유 가격도 80년대 중반부터 좀 안정화 되어서 마이카를 일단 사기만 하면 부담 없이 끌고 다니던 시기였다.
* 전두환 정권이 박정희 정부와 차별화하려는 목적도 있었고, 올림픽 개최에 따라서 시민을 학살한 독재정권이었다는 점을 희석시켜야 되었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부분적으로 자유로워지는 면이 있어서, [[통금]]이 해제되고, [[교복]]이 자율화되었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개인 [[과외]]가 금지됨에 따라 [[사교육]] 없이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세대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몰래 할 사람은 다 하고 과외 가격만 올랐다.~~ "입학은 쉽게 졸업은 어렵게"란 명분으로 대학 정원도 급속하게 불어났는데, 이것이 결국엔-- 전두환의 의도와 달리-- 학생운동의 활성화(...)로 이어진다. 그리고 실제로 졸업 못한 사람은 자퇴율 때문에 많지 않았다.
* 대령으로 예편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체신부]] 차관으로 임명된 [[오명(정치인)|오명]]의 전화 전전자교환기 도입 추진에 따라 1987년 [[시외전화|DDD]]가 전국에 깔리면서 재래식 전화의 현대화가 완료되었고, 이는 1990년대 [[PC통신]]과 [[삐삐]]의 시대를 거쳐 21세기 정보화 시대로 가는 기틀을 닦았다.
* [[3S정책]]의 일환으로 <[[애마부인]]>을 위시한 [[에로영화]]들이 대거 제작되었고, 1988년 미국의 영화시장 개방 압력으로 직배가 허용되자 토종 영화인들이 반발해 시위까지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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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로 지배하라! 5공 3S 정책(프로야구) ||
[[K리그]]와 [[KBO 리그]], 민속[[씨름]]이 시작되는 등 프로 스포츠가 활성화되기도 하였다. 또한 [[야구]]에 있어서는 [[해태 타이거즈]]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 1980년에는 아시안 게임을 한국에서 하기로 결정된 해이기도 하며, 1982년 서울에서 올림픽을 하기로 결정되었는데 이때를 계기로 [[대한민국]]의 세계적 지위를 알림으로 인해 [[한국인]]들의 자부심이 커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 유소년층의 인구가 본격적으로 줄기 시작했을 때이기도 하다. 여성들의 취업률이 높아지는 등 사회적인 변화와 함께 198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의 저출산 경향|산아제한 정책]]이 제대로 약빨(...)을 받아서 신생아수가 1987년에 62만으로까지 떨어지기까지 했고 출생아수 70만을 다시 넘기려면 1991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1996년부터 다시 60만대로 떨어졌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출산율 2명대를 더이상 넘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 1960년대생들이 성인이 된 시기다.
* 컬러방송이 시작되었다. 사실 그 이전에도 컬러방송을 할려고 했으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다 같이 흑백방송 보자는 기존의 흑백TV 사용자들을 배려(?)한 정책 때문에 무산됐다. [[텔레비전]]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대한민국]]은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네 번째로 늦게 컬러방송을 개시한 국가'''다.
* [[1980년]] 코미디언 [[이주일]]이 전성기를 맞이하여 전 국민을 TV 앞으로 불러모으고 배를 잡고 뒹굴게 만들었다. 가히 이주일 신드롬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사회적으로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주일의 데뷔는 컬러방송의 시작과 거의 일치한다. 80년대 중반부터는 KBS에서 유머 1번지, 쇼 비디오 자키등이 방영되며 콩트시대의 황금기를 맞이한다. 컬러방송, 이주일, 조용필은 당시의 연예계를 관통하는 키워드였다.
* 이때부터 지금의 [[서울]]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특히 강남, 특히 [[송파구]]와 [[잠실]]이 더욱 엄청난 속도로 개발되었다.
* 이때까지도 학교에 공공연히 금전을 주는 행위가 만연했다. 60년대, 70년대가 지난 뒤에도 일부에서는 가난등의 이유로 돈을 가져오지 않는 학생이 얻어맞거나 반 수십명이 보는 앞에서 개쪽을 당했고, 아예 학교 밖으로 쫒겨나기도 했는데, 이때에도 당국은 이를 신경 쓰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90년대에 들어서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점차 사라진다.
* 어느 곳이든 권위주의가 굉장히 짙었다. 국민학교마저 선생님의 심기를 거스르면 바로 폭력으로 응징당했다. 80년대에는 [[부조리]]를 부조리라고 생각도 못하던 시대여서, 지금 기준으로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몽둥이 찜질을 당해도 그냥 잘못했다고 비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었다.
* 인권의식이 아직도 열악한 시기였다. 그 유명한 [[삼청교육대]]의 시대로, 범죄자 뿐 아니라 길거리에 나뒹굴던 죄 없는 술고래들이나 노숙자들이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 몸이고 정신이고 망가지기도 했다. 할당을 정해주고 무작정 다 채우라고 강요하던 시대여서, 경찰들도 묻지도 따지지 않고 좀 불량해 보이는 사람이면 족족 잡아넣기 바빴던 탓이다.
* [[남아선호사상]],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 관념이 여전히 통념이던 시절이라 [[여성]]들의 경우 능력을 갖추고도 대학에 가지 않거나, 집안의 반대로 가지 못한 경우가 흔했다. 부모와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바로 공장으로 취업하거나, 아니면 시집을 가서 집안일을 시작했다. 학교에서도 오늘날에는 남자, 여자 모두 기술, 가정을 다 배우나 당시에는 남자에게는 기술을, 여자에게는 가정을 교육하는 경향이 있었다.
* 오늘날에는 최상위권이 아닌 이상 대학교를 나와도 우수하다는 말을 듣지 못하지만, 당시에 대학은 달랐다. [[대학]] 문이 굉장히 좁아서 당시 대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은 수재임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대학]]을 나오면 대기업에 골라서 들어갔다는 말이 나온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신데렐라]] 노래에 뜬금없이 1980년대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 일본의 경우: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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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s Tokyo, Japan - Traffic, Busy Streets, Shibuya Crossing, Rare 35mm Footage ||80's Japanese TV Commercials (Part 1 of 4)[* 세 번째 아이브로우 광고에서 나오는 여성이 [[기무라 타쿠야]]의 부인 [[쿠도 시즈카]].]||
* [[거품경제]]의 호황을 누리던 시기라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고, 이 시기에 [[서브컬쳐]]에서는 미래 지향적인 작품들이 자주 제작되었다.
* 8비트 게임기의 중흥기를 이끌어냈다. [[패미컴]]만 해도 [[전설의 레전드]].
*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희망적이고 자신에 차 있는 경우가 많다.
|| (1980~1989)일본과 주요국가의 명목 GDP 흐름[* [[http://www.imf.org/external/pubs/ft/weo/2014/02/weodata/weorept.aspx?sy=1980&ey=1989&scsm=1&ssd=1&sort=country&ds=.&br=1&pr1.x=41&pr1.y=7&c=924%2C132%2C134%2C158%2C112%2C111%2C542&s=NGDPD&grp=0&a=|(1980~1989)일본과 주요국가의 명목 GDP 흐름]]] ||<|2>1980년||<|2>1981년||<|2>1982||<|2>1983년||<|2>1984년||<|2>1985년||<|2>1986년||<|2>1987년||<|2>1988년||<|2>1989년||
||단위: 10억 달러(약 1조 원) ||
||[[미국]] 전체 [[명목 GDP]] || 2,862|| 3,210|| 3,345|| 3,638|| 4,040|| 4,346|| 4,590|| 4,870|| 5,252|| 5,657||
||<bgcolor=#40E0D0>[[일본]] 전체 [[명목 GDP]] ||<bgcolor=#40E0D0> 1,086||<bgcolor=#40E0D0> 1,201||<bgcolor=#40E0D0> 1,116||<bgcolor=#40E0D0> 1,218||<bgcolor=#40E0D0> 1,294||<bgcolor=#40E0D0> 1,384||<bgcolor=#40E0D0> 2,051||<bgcolor=#40E0D0> 2,485||<bgcolor=#40E0D0> 3,015||<bgcolor=#40E0D0> 3,017||
||[[독일]] 전체 [[명목 GDP]] || 826|| 695|| 671|| 669|| 630|| 639|| 913|| 1,136|| 1,225|| 1,216||
||[[프랑스]] 전체 [[명목 GDP]]: [[주요 7개국 정상회담|G7]] || 704|| 621|| 589|| 564|| 534|| 559|| 775|| 939|| 1,025|| 1,031||
||[[영국]] 전체 [[명목 GDP]]: [[주요 7개국 정상회담|G7]] || 542|| 520|| 492|| 466|| 441|| 468|| 570|| 704|| 855|| 865||
||[[중국]] 전체 [[명목 GDP]] || 309|| 292|| 286|| 307|| 316|| 312|| 303|| 330|| 411|| 459||
||[[대한민국]] 전체 [[명목 GDP]] || 67|| 76|| 81|| 90|| 99|| 103|| 119|| 150|| 202|| 248||
||{{{#!html
<iframe title='이웃 나라 이야기 1부 - 불패신화_0649' width='640px' height='360px' src='http://videofarm.daum.net/controller/video/viewer/Video.html?vid=fXo1TNEKO6g$&play_loc=undefined&alert=true' frameborder='0' scrolling='no' ></iframe>}}}||
||이웃 나라 이야기 1부 불패신화 ||
너무 높은 화폐가치로 인해 [[쌍둥이 적자]][*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550]]]에 시달리던 미국은 수출을 증가시키기 위해 자국의 화폐가치를 절하할 방법을 찾는다. 결국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주요 7개국 정상회담|G5]] 경제선진국인 [[미국]], [[프랑스]], [[서독]], [[일본]], [[영국]]이 [[플라자 합의]]를 맺는다. 절상됐던 달러의 가치는 하락했고 독일, 일본의 화폐가치는 상승했다. 일본의 돈은 더욱 부동산에 몰리게 된다.[* [[http://ko.wikipedia.org/wiki/%ED%94%8C%EB%9D%BC%EC%9E%90_%ED%95%A9%EC%9D%98|관련 기사]]]
당시 일본의 경제규모는 미국을 추월할 것처럼 보였다. 일본은 미국 경제규모 절반에 해당하는 명목 GDP를 달성했다. 그 수치가 [[1987년]]에는 51.0%, [[1988년]]에는 57.4%, [[1989년]]에는 53.3%에 달했다. 일본의 남아도는 돈들은 주식과 부동산에 집중적으로 쏠렸다. 덩달아서 [[부동산]] 불패신화가 불었고 거품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절상된 화폐가치 때문에 수출에 어려움을 겪을 것을 두려워했다. 때문에 일본 정부는‘엔고 불황’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저금리정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일본의 부동산거품과 주식거품에 더욱 불을 지르게 된다.
|| (1980~1989)일본과 주요국가의 [[국가별 1인당 GDP 순위(명목)|1인당 명목 GDP]] 흐름
[* [[http://www.imf.org/external/pubs/ft/weo/2014/02/weodata/weorept.aspx?pr.x=36&pr.y=3&sy=1980&ey=1989&scsm=1&ssd=1&sort=country&ds=.&br=1&c=924%2C132%2C134%2C158%2C112%2C111%2C542&s=NGDPDPC&grp=0&a=|(1980~1989)일본과 주요국가의 1인당 명목 GDP 흐름]]][* [[http://www.imf.org/external/pubs/ft/weo/2014/02/weodata/weorept.aspx?pr.x=63&pr.y=6&sy=1980&ey=1989&scsm=1&ssd=1&sort=country&ds=.&br=1&c=128%2C142%2C172%2C144&s=NGDPDPC&grp=0&a=|북유럽 국가 1인당 gdp]]]/단위: 달러 ||1980년||1981년||1982||1983년||1984년||1985년||1986년||1987년||1988년||1989년||
||<bgcolor=#40E0D0>[[일본]] 1인당 [[명목 GDP]]: [[주요 7개국 정상회담|G7]] ||<bgcolor=#40E0D0> 9,312||<bgcolor=#40E0D0> 10,217||<bgcolor=#40E0D0> 9,431||<bgcolor=#40E0D0> 10,216||<bgcolor=#40E0D0> 10,786||<bgcolor=#40E0D0> 11,464||<bgcolor=#40E0D0> 16,890||<bgcolor=#40E0D0> 20,367||<bgcolor=#40E0D0> 24,604||<bgcolor=#40E0D0> 24,522||
||[[핀란드]]의 1인당 명목 GDP: [[북유럽|북유럽국가]] || 11,497|| 11,198|| 11,242|| 10,724|| 11,074|| 11,682|| 15,249|| 18,949|| 22,482|| 24,369||
||[[노르웨이]]의 1인당 명목 GDP: [[북유럽|북유럽국가]] || 15,569|| 15,307|| 15,003|| 14,701|| 14,737|| 15,449|| 18,495|| 22,020|| 23,706|| 23,805||
||[[스웨덴]]의 1인당 명목 GDP: [[북유럽|북유럽국가]] || 15,781|| 14,395|| 12,672|| 11,645|| 12,092|| 12,643|| 16,689|| 20,252|| 22,761|| 23,805||
||[[미국]] 1인당 [[명목 GDP]]: [[주요 7개국 정상회담|G7]] || 12,575|| 13,965|| 14,410|| 15,531|| 17,099|| 18,231|| 19,078|| 20,062|| 21,442|| 22,879||
||[[덴마크]]의 1인당 명목 GDP: [[북유럽|북유럽국가]] || 13,609|| 11,782|| 11,513|| 11,571|| 11,289|| 11,974|| 16,880|| 20,950|| 22,075|| 21,454||
||[[프랑스]] 1인당 [[명목 GDP]]: [[주요 7개국 정상회담|G7]] || 13,111|| 11,493|| 10,858|| 10,329|| 9,733|| 10,146|| 14,003|| 16,869|| 18,324|| 18,324||
||[[독일]] 1인당 [[명목 GDP]]: [[주요 7개국 정상회담|G7]] || 10,699|| 8,984|| 8,681|| 8,691|| 8,222|| 8,358|| 11,929|| 14,841|| 15,904|| 15,632||
||[[영국]] 1인당 [[명목 GDP]]: [[주요 7개국 정상회담|G7]] || 9,629|| 9,227|| 8,746|| 8,281|| 7,818|| 8,292|| 10,071|| 12,395|| 15,035|| 15,171||
||[[대한민국]] 1인당 [[명목 GDP]] || 1,778|| 1,968|| 2,075|| 2,268|| 2,474|| 2,542|| 2,906|| 3,627|| 4,813|| 5,860||
||[[중국]] 1인당 [[명목 GDP]] || 313|| 292|| 281|| 298|| 303|| 295|| 282|| 301|| 370|| 407||
1980년대 일본은 1인당 명목 GDP에서는 이미 미국을 추월하고 있었고, 같은 시기 미국 대중문화에서는 '일본위협론'처럼 보이는 사상들이 각종 매체에서 광범위하게 투영되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SF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라이징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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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ame width="480" height="360" src="//www.youtube.com/embed/otX6zo2q4z8"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Robocop 3 Ninja fight (scene) ||
[[1993년]]의 작품이지만 그러한 시대적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로보캅 시리즈|로보캅 3]][*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Story.do?movieId=11817&t__nil_main_synopsis=more]]]다. 이 작품은 '''1980년대 일본의 경제성장'''에 대하여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정의를 상징하는 로보캅이 일본문화를 대표하는 닌자에게 팔이 잘리고 얻어맞아 쓰러지는 등의 장면에서 당시 미국이 일본에게 느끼던 공포와 불안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일본의 미국 추월에 대한 우려는 80년대와 함께 종말을 맞은 것이 아니라, 일본의 거품붕괴가 일어난 이후인 90년대 중반을 지나며 사그러들었다. 일본의 주식시장은 1989년, 부동산시장은 1991년에 최고점을 찍은후 급격한 하락세를 겪으며 거품이 본격적으로 빠지기 시작했는데, 따라서 미일간 경제규모 격차가 가장 적게 났던 시점은 80년대가 아닌 1995년이었다. 이 해 일본 GDP는 미국 GDP의 71.1%까지 도달했으나, 거품붕괴와 아시아경제위기의 본격적인 영향을 겪으며 96년 59.7%, 97년 51.3%, 98년 44.4%까지 뚝뚝 떨어지게 된다.
== 중화권의 경우 ==
==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 ==
해당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 제외. 가상역사/SF물인경우 ▼.
*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 관련 작품 전부'''
* [[오 꿈의 나라]]
* [[부활의 노래]]
* [[택시운전사]]
* [[소년이 온다 (소설)]]
* [[임을 위한 행진곡]]
* [[26년(웹툰)|26년]]
* [[꽃잎(영화)|꽃잎]] ▼
*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 [[메탈기어 솔리드 V 더 팬텀 페인]] ▼ [* 소련 -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콩고 내전등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무대이지만 워낙에 시리즈 자체가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는(물론 현재에도) 오버테크놀로지나 초능력자등을 묘사하기에 SF 물이나 다름없다.]
* [[박하사탕]] ▼ - 1990년대 에피소드 일부 포함
* [[화려한 휴가]]
* [[1987(영화)|1987]]
* [[1984]] ▼
*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 [[스카우트(영화)|스카우트]]: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직전의 이야기
* [[마법사의 밤]]▼ - 정확한 연도는 모르나 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 [[마더 러시아 블리즈]]▼ - 연도 배경은 1986년이지만, 실질적으론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묘사되는 사회상이 개막장이다(...).
* [[만남의 광장]]
* [[버블로 고! 타임머신은 드럼 방식]][* 타임슬립물로 당시 일본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를 풍자한 일본 영화.]
* ~~[[베이퍼웨이브]] 뮤직비디오들~~[* 이 시기의 TV 영상물들을 짜집기해서. 해당 소재가 90년대 초까지 커버하는 경우도 있지만 80년대 영상클립들이 압도적이다.]
* [[번지점프를 하다]]
*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 [[변호인(영화)|변호인]]
* [[비명을 찾아서]]▼
* [[빛과 그림자]][* 초반부는 아니고 64회중 40회정도부터 1980년대로 넘어간다]
* [[살인의 추억]]
* [[식물 vs 좀비 2#s-6.10]] 네온 믹스테이프 투어
* [[써니(영화)|써니]]
* [[첫사랑(KBS)|첫사랑]]
* [[친구(영화)|친구]] - 소년시절 및 현재 제외
*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3]]▼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과거 파트) ▼ [* 2025년의 가상역사와 이어지기도 하고 해서 반쯤은 가상역사. ~~그리고 고증오류문제도~~]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콜드 워]]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스타더스트 크루세이더즈]] ▼
* [[제4공화국(드라마)|제4공화국]][* 대개는 유신을 다루고 있지만 전두환의 집권 과정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5.17 쿠데타가 터진 80년도 4공은 4공이었다. 5공은 전두환이 11대 대통령에 이은 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1981년]]부터 시작된다.]
*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
* [[에덴의 동쪽(드라마)|에덴의 동쪽]](드라마) 전반기 ~~▼(어쩌다 고증이 엉망이 되었다)~~
* [[위험한 상견례]]
* [[이웃사촌(영화)|이웃사촌]]
* [[텐 - 천화거리의 쾌남아]]
* [[품행제로]]: [[류승범]]의 양아치 연기가 일품인 한국영화, 교복자율화 시기인 1983~1986년이 배경.
* [[페이퍼 플리즈]]▼
* [[퍼펙트 게임(2011)|퍼펙트 게임]]: 80년대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최동원]]과 [[선동렬]]의 맞대결
* [[피끓는 청춘]]
* [[자이언트(드라마)|자이언트]]
* [[조커(2019)|조커]]
* [[이중간첩]]
* [[젊은이의 양지]]
* [[카지노(영화)|카지노]]: 후반부 한정.
* [[핫라인 마이애미]]
* [[화이트 앨범]] - 애니판과 리메이크판은 1986년~1987년 배경
* [[GTA 바이스 시티]]
* [[GTA 바이스 시티 스토리즈]]
* [[스카페이스(1983년)]]
* [[쿵 퓨리]] ▼ - 스웨덴에서 제작된 복고풍 권격영화. 동명의 게임도 출시되었다.
* [[쓰르라미 울 적에]] - 1983년의 깡촌을 배경으로한다.
* [[응답하라 1988]]
* [[슈퍼스타 감사용]]
* 썸머 85
* [[끝없는 사랑]]
* [[남영동1985]]
* [[보스 1999]]
* [[첨밀밀]](2번 항목) - 1986년에서 1995년도까지의 일을 다루고 있다.
* [[기묘한 이야기(미국 드라마)|기묘한 이야기]]
* [[Spintires]] - 80년대 소련의 시골을 배경으로 하는 오프로드 트럭 시뮬레이션 게임. 정확히는 1982년이 배경이다.
* [[엑스맨: 아포칼립스]]▼
* [[제빵왕 김탁구]]
* [[용과 같이 제로]] - 1988년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 [[카미츄!]]
* [[월드 인 컨플릭트]]▼
* [[원더우먼 1984]]
== 이 시대에 시작된 것들 ==
※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는 것'''들을 적을 것.
* [[BC카드]]
* [[CNN]], [[MTV]] 등 케이블 방송
* [[KBO 리그]]
* [[K리그]]
* [[Microsoft Windows]]
* [[가이낙스]]
* 강수확률예보: 1987년에 도입됨.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 국회 [[청문회]]제도: 1988년 국회법 개정 시 도입됨.
* 꾸러기 곰돌이
* 컬러TV: 1980년 8월부터 시판하여 12월 1일부터 방송 시작함.
* [[뉴코아백화점]]
* [[닌자 거북이]]
* [[롯데면세점]]
* [[롯데월드]]
* [[롯데월드 어드벤처]]
* [[롯데호텔 월드]]
* 맥도날드 등 해외 패스트푸드점 한국점포들
* 무인경비시스템: 1981년 [[에스원|한국안전시스템]]이 일본 세콤 브랜드를 국내에 진출시킨 게 시초이다.
* 여성 운전자
* 외국영화 직배: 1986년 영화법 개정 이후 허용됐으며, 1988년에 UIP코리아가 <위험한 정사>를 먼저 들여왔다.
* [[민자역사]]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복합상영관: 1986년 서울 영동예식장 내에 개점한 '다모아극장'이 최초이다.
* [[시사저널]]
* [[한겨레]]
* [[안성탕면]]
* [[서울대공원]]
* [[서울동물원]]: 조성 당시엔 '서울대공원 동물원'이었다.
* [[서울랜드]]
* [[신라면]]
* [[심슨 가족]]
* [[웅진씽크빅]]: 창립 당시엔 '헤임인터내셔널'이며, 1983년부터 '웅진출판'이 됐다.
* [[재능교육]]: 법인 설립은 1981년이다.
* 재능수학: 출시 당시에는 '재능산수'였다.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 철거용역업체: 1986년에 최초로 생겨났으나, 일반화된 건 1980년대 후반부터이다.
* 치료감호제도: 1980년 사회보호법 제정으로 도입됨.
*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 [[공익광고협의회]]
* [[뮤직비디오]]
* [[코스프레]][* 전통적 개념의 코스프레는 18세기부터 있었지만, 서브컬처계 코스프레는 이때부터 일본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한국에 정식적으로 대중화가 된건 2000년대 초반.]
* 프로월드컵
* 아티스
* 월드컵
* 슈퍼카미트
* 액티브
* [[프로스펙스]]
* [[르까프]]
* [[아시아나항공]]
*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 [[서울 올림픽]]이후 [[1989년]]부터 전면 자유화되었다.
* 화려한 무늬나 그림이 많이 새겨진 외국형 패션들
==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 ==
※ '''이전 시대에 나와 지속적으로 쓰인 것'''들을 적을 것.
* [[대한민국]] [[프로레슬링]]
* [[언론통폐합]]으로 폐사된 언론사들
* 합동통신, 동양통신 등 5개 통신사: 연합통신으로 통폐합됨.
* 신아일보: 1980년 폐간 후 사원과 기자재 등이 경향신문으로 넘어감.
* 경남일보: 1980년 폐간 후 1989년부터 '신경남일보'로 복간됐다가, 2000년부터 본래 제호를 되찾았다.
* 전남매일신문: 1980년 전남일보에 합병됨.
* 제남신문: 1980년 제주신문에 통폐합됨.
* [[동아방송]]: 1980년 KBS에 흡수돼 KBS 라디오서울이 됨.
* [[동양방송]]: 1980년에 [[KBS]]에 합병되어 [[KBS 2TV]]로 바뀌었다. 물론 지금은 [[JTBC]]로 부활했지만...
* [[전일방송]] 등 3개 제휴사: 1980년 KBS로 흡수됨.
* 흑백 TV
* [[석유풍로]]([[곤로]]) - 1980년대 후반까지 사용된 조리도구. 도시가스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가스렌지]]로 점점 대체되기 시작한다.
* 버스 [[안내양]] - 1989년 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으로 제도 자체가 없어졌으며, 대신 여성 버스 운전기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 [[동마장터미널]]
* [[가쿠란]] 교복 : 교복 자율화 조치에 따라 1983학년도부터 전국의 중고등학교에서 폐지된다.
* 남자 어린이들의 [[삭발]] : 위생상태의 개선과 함께 1983년 중고교생 교복 및 두발자유화 조치가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들에게도 파급되어 사라진다.
* 6.25 전쟁이 일어날 때 쓰였던 자동차들 : 1983년까지 폐차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1970년대까지 쓰였던 전통적인 패션들
* 공연물 사전검열: 1989년 공연법 개정으로 폐지됨.
* 보안감호제도: 1989년 사회안전법이 '보안관찰법'으로 바뀌면서 폐지됨.
* 유언비어 유포죄: 1989년 경범죄처벌법 개정으로 폐지됨.
* 자택장: 1980년대 들어 병원에서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영안실에서 치르는 빈도가 늘어 쇠퇴했다.
* 장발 및 미니스커트 단속제도: 1980년 이후 사문화됐다가 1989년 경범죄처벌법 개정으로 폐지됨.
* 프레스카드 제도: 1987년 정간법 제정으로 폐지됨.
* 한국 섬유/방직/신발업계: 1987년 노동자 대투쟁 후 노동운동 활성화와 인건비 상승 등으로 인해 개발도상국으로 생산설비를 이전했다.
* 한국 해외건설업계: 1980년대 초반 제2차 오일쇼크와 중동 건설 붐의 침체로 쇠퇴한 바 있었다.
* [[국제그룹]], [[명성그룹]], [[동명그룹]], [[화신그룹]], [[광명그룹]], [[삼호그룹]] 등 일제강점기와 6~70년대를 호령하던 재벌들: 화신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들은 거의 [[전두환]]의 산업합리화 조치 등에 의해 해체되었는데 특히 국제그룹과 명성그룹이 전두환의 미움을 사 억울하게 해체되었다.
* [[기계식 시계]] - [[손목시계]]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서 [[쿼츠 시계]]와 [[디지털 시계]]로 대체되었고 더 이상 기계식으로 돌아가는 다른 종류의 시계가 생산되지 않고 있다.심지어 손목시계 마저도 실용성에서 멀어진 고가의 명품 내지 사치품목이 되었다.
* 1종 소형면허 제도: 1984년 폐지.
* 3륜 화물자동차: 1972년 고속도로 진입금지 시행 후 1984년 1종 소형면허 폐지에 따라 사라졌다.
== 이 시대의 상징들 ==
=== 인물 ===
==== 대한민국 ====
===== 정/관계 =====
* 정부/여당
* [[전두환]]
* [[노태우]]
* [[박세직]]
* [[박철언]]
* [[유학성]]
* [[주영복]]
* [[윤성민]]
* [[이기백(군인)|이기백]]
* [[남덕우]]
* [[이광표]]
* [[이원홍(1929)|이원홍]]
* [[이진희(1932)|이진희]]
* [[박영수(1928)|박영수]]
* [[강영훈]]
* [[이학봉]]
* [[허문도]]
* [[허화평]]
* [[허삼수]]
* [[장세동]]
* [[노신영]]
* [[박준병]]
* [[이춘구]]
* [[배명국]]
* [[안현태]]
* [[권정달]]
* [[권익현]]
* [[진의종]]
* [[김정렬(1917)|김정렬]]
* [[김상협]]
* [[이현재(1929)|이현재]]
* [[정동호(1935)|정동호]]
* [[정호용]]
* [[서동권]]
* [[이재형(정치인)|이재형]]
* [[김종호(1935)|김종호]]
* [[김준성]]
* [[김재익]]
* [[김만제]]
* [[신병현]]
* [[이규호]]
* [[권이혁]]
* [[안무혁]]
* 손제석
* [[정순덕]]
* [[봉두완]]
* [[염보현]]
* [[허청일]]
* 법조계
* [[유태흥]]
* [[이회창]]
* 경찰
* [[박배근]]
* [[강민창]]
* 5공 비리 관련인물
* [[최순달]]
* [[이규광]]
* 이규동
* [[이순자]]
* [[전경환]]
* 야당
* [[김영삼]]
* [[김대중]]
* [[김종필]]
* [[유치송]]
* [[이만섭]]
* [[이민우(1915)|이민우]]
* [[김동영(정치인)|김동영]]
* [[김상현(1935)|김상현]]
* [[서경원]]
* [[노무현]]
* [[최형우(정치인)|최형우]]
* [[강삼재]]
* [[조세형(정치인)|조세형]]
* [[백기완]]
* [[유성환]]
* [[김덕룡]]
===== 군부 =====
* [[고명승]]
* [[김진영(군인)|김진영]]
* [[박희도]]
* [[이종구(군인)|이종구]]
* [[최세창]]
===== 재야운동가 =====
* [[문익환]]
* [[박형규(목사)|박형규]]
* [[이돈명]]
* 유원호
* [[이부영]]
* [[김문수]]
* [[김근태]]
* [[이재오]]
* 권용목
* [[단병호]]
* 민종덕
* [[문부식(시인)|문부식]]
* 김현장
* 김은숙
* [[김승훈]]
* [[김수환]]
* [[김정남(1942)|김정남]]
* [[조영래]]
* [[홍남순]]
* [[황인철]]
* [[박종철]]
* [[이한열]]
* [[권인숙]]
* [[송건호]]
* [[정연주(언론인)|정연주]]
* [[이인영(정치인)|이인영]]
* [[오영식]]
* [[임종석]]
* [[제정구]]
* [[조철현]]
* 조성만
* 진관
===== 재계 =====
* 강진구 삼성전자 부회장: 1983년 64K D램 개발 공헌.
*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1983년 64K D램 개발 공헌.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1988년 삼성 '제2창업' 선언.
* [[김승연]] [[한국화약그룹]] 회장: 1986년 구 명성그룹 관광계열사들과 한양유통을 인수해 재계순위 10위권에 등극시킴.
* [[김석원(기업인)|김석원]] [[쌍용그룹]] 회장: 1983년 효성증권, 1986년 동아자동차 인수로 사업다각화 주도.
* [[김선홍]] [[기아산업]] 사장: 1980년대 '봉고신화'로 기아산업 재기에 공헌.
* [[김중원]] [[한일그룹]] 회장: 1986년 국제상사 등 구 국제그룹 주요 계열사 인수.
* 김용산 극동그룹 회장: 1986년 동서증권 및 국제상사 건설부문 인수.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1982년 강원여객, 1983년 한국자동차보험, 1984년 일신제강 등을 각각 인수해 '탈 건설'을 선언함.
* [[김향수]] [[아남그룹]] 회장
* 김현철 [[삼미그룹]] 회장: 1984년 도산위기였던 그룹을 '전문화'로 회생시킴.
* 박건배 [[해태그룹]] 회장: '탈 식품' 선언으로 사업 다각화 주도.
* 박성용 [[금호그룹]] 회장: 제2항공사 '아시아나항공' 설립 주도로 기업 성장에 공헌함.
*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잠실 롯데월드 프로젝트' 주도자.
* 이동찬 코오롱그룹 회장
* 이재준 대림그룹 회장
* 이준용 대림산업 부회장
* 임창욱 [[미원그룹]] 회장: 박건배와 동일함.
* 장상태 동국제강 회장: 1986년 연합철강 인수.
*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 1980년 대한석유공사 민영화로 석유업계 중심으로 개편.
* 현승훈 화승그룹 회장: '르까프' 출시로 운동화 고급화 주도.
* 김철호 명성그룹 회장
*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
* 김덕영 국제그룹 부회장
===== 방송/연예계 =====
{{{+1 ''' 배우 ''' }}}
----
* 남배우
* 이덕화
* 남성훈
* 오현경
* 김희라
* 임동진
* 신구
* 이순재
* 김진해
* 강민호
* 문오장
* 이춘식
* 이치우
* 김성겸
* 장학수
* 김성원
* 김영인
* 박근형
* 장항선
* 김병기
* 임성민
* 유인촌
* 최불암
* 김상순
* 김영철
* 김주승
* 김성찬
* 이낙훈
* 연규진
* 최재성
* 전무송
* 주현
* 노주현
* 장용
* 송재호
* 태민영
* 한지일
* 나한일
* 정한용
* 백일섭
* 박병호
* 김세윤
* 김시원
* 김윤형
* 조재훈
* 이문환
* 박해상
* 장칠군
* 김천만
* 이대로
* 이낙훈
* 신동훈
* 김용건
* 박윤배
* 김무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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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호
* 홍민우
* 정태섭
* 심양홍
* 신충식
* 임채무
* 임현식
* 이정길
* 맹상훈
* 손창호
* 정해창
* 황범식
* 조경환
* 전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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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
* 현석
* 오지명
* 강남길
* 김순철
* 서인석
* 박인환
* 최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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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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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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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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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옥경
* 김혜수
* 전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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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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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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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수지
* 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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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애리
* 차화연
* 이수나
* 아역
* 강문희
* 김민희
* 안정훈
* 양진영
* 김수용
* 김수양
* 이상택
* 유경아
* 윤유선
* 이건주
* 이민우
* 황치훈
{{{+1 ''' 가수 ''' }}}
----
* '''조용필'''
* '''전영록'''
* '''이용'''
* 혜은이
* 이은하
* 윤수일
* 윤시내
* 이정희
* 방미
* 함중아
* 현숙
* 구창모
* '''송골매'''
* 산울림
* 강병철과 삼태기
* 시나위
* 부활
* 백두산
* 김수철
* 설운도
* 정수라
* '''이선희'''
* '''주현미'''
* 임병수
* 최혜영
* 장덕
* 김연자
* 최진희
* 한마음
* 높은음자리
* '''이문세'''
* 김범룡
* 김학래
* 나미
* 민해경
* 김완선
* 김승진
* 박혜성
* 변진섭
* 소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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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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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개그맨 ''' }}}
----
* '''이주일'''
* '''김병조'''
* '''이용식'''
* 이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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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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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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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형래'''
* '''임하룡'''
* '''최양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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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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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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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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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운
* 황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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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산
* 임미숙
* 이경애
* 팽현숙
* 김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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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재미
* 쌍라이트 형제(조춘, 김유행)
* 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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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옥주
{{{+1 ''' 진행자 ''' }}}
----
* 앵커
* 최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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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성춘
*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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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덕
* 신완수
* 쟈니 윤
{{{+1 ''' 성우 ''' }}}
----
* 남성 성우
* 엄주환
* 양지운
* 배한성
* 한상덕
* 조명남
* 이광세
* 이강식
* 김종성
* 유강진
* 장정진
* 김정호
* 오세홍
* 전기병
* 이재명
* 장세준
* 노민
* 최흘
* 황원
* 정기항
* 탁원제
* 이인성
* 김용식
* 김기현
* 권혁수
* 박일
* 박기량
* 이도련
* 신성호
* 여성 성우
* 김순원
* 박영남
* 김정애
* 송도순
* 김정희
* 김성희
* 손정아
* 강희선
* 주희
* 정경애
* 이경자
* 이진화
* 송도영
* 우문희
* 정희선
* 서영애
* 윤소라
* 이미자
* 권희덕
===== 스포츠 =====
{{{+1 ''' 선수 ''' }}}
----
* [[야구]]
* [[박철순]]
* [[윤동균]]
* '''[[이만수]]'''
* 김성관
* [[김용희]]
* [[김용철(야구)|김용철]]
* [[유두열]]
* '''[[최동원]]'''
* [[김시진]]
* [[김일융]]
* [[김봉연]]
* '''[[선동열]]'''
* [[김성한]]
* [[김종모]]
* [[장명부]]
* [[장효조]]
* [[김용달]]
* [[김재박]]
* [[이광은]]
* [[한대화]]
* [[이상군]]
* [[한희민]]
* [[축구]]
* '''[[차범근]]'''
* [[허정무]]
* [[김주성(축구)|김주성]]
* [[박창선]]
* [[최순호]]
* [[김종부]]
* [[이태호(축구)|이태호]]
* [[피아퐁 피우온]]
* [[로프 란스베르헌]]
* [[권투]]
* '''[[박종팔]]'''
* [[김득구]]
* '''[[장정구]]'''
* [[김광선]]
* [[유명우]]
* 김철호
* 김태식
* 김환진
* 권철
* 백인철
* 최충일
* 서성인
* 문성길
* [[씨름]]
* '''[[이만기]]'''
* [[이준희]]
* [[이봉걸]]
* 장지영
* 김칠규
* 황대웅
* [[남자]][[농구]]
* '''[[이충희]]'''
* [[박수교]]
* [[신선우]]
* 이원우
* [[이문규]]
* [[김성욱(농구)|김성욱]]
* [[김현준(농구)|김현준]]
* [[임정명]]
* [[안준호]]
* [[신동찬]]
* [[박인규(농구)|박인규]]
* [[김진(농구인)|김진]]
* 최철권
* [[한기범]]
* [[허재]]
* [[유재학]]
* [[김유택]]
* [[여자]][[농구]]
* [[김영희(농구)|김영희]]
* 김복순
* 전숙
* 김화순
* [[박찬숙(농구인)|박찬숙]]
* 성정아
* 정미경
* 조문주
* 최경희
* 이형숙
* 김옥희
* 우은경
* [[배구]]
* [[장윤창]]
* [[류중탁]]
* 정의탁
* [[강만수(배구)|강만수]]
* [[김호철]]
* [[강두태]]
* 이종경
* [[신영철(배구)|신영철]]
* [[서남원]]
* [[이성희]]
* [[박삼용]]
* [[박미희]]
* [[이운임]]
* 이은경
* 지경희
* 기타
* '''[[최윤희]]'''
* [[임춘애]]
* [[김수녕]]
* '''[[현정화]]'''
* [[하형주]]
* [[조훈현]] 9단
{{{+1 ''' 감독 ''' }}}
----
* 야구
* '''[[김응용]]'''
* [[김영덕]]
* [[김동엽(1938)|김동엽]]
* [[김성근]]
* [[축구]]
* [[박종환]]
* [[김정남(축구인)|김정남]]
* 장운수
* [[이차만]]
* [[이회택]]
* [[씨름]]
* 김학룡
* 황경수
* 이중근
* 권석조
* [[농구]]
* [[방열(농구)|방열]]
* [[김인건(1944)|김인건]]
* 정광석
* 정봉섭
* 조승연
* 임영보
* 손정웅
* [[신동파]]
* 진가일
* 정주현
* 김재웅
* 남자배구
* 우철우
* [[진준택]]
* 송만기
* 박진환
* 유석철
* [[송만덕]]
* 여자배구
* [[이창호(배구인)|이창호]]
* 전호관
* 이임
* [[김철용]]
{{{+1 ''' 구단 ''' }}}
----
* 프로
* '''[[해태 타이거즈]]'''
* [[롯데 자이언츠]]
* [[삼성 라이온즈]]
* [[대우 로얄즈]]
*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
* 포항제철 아톰즈
* 현대중공업 호랑이
* 일양약품 원비
* 럭키금성 황소 씨름단
* 실업농구
* 현대전자 농구단
* 삼성전자 농구단
* 기아 농구단
* 삼성생명 여자농구단
* 국민은행 여자농구단
* 코오롱 여자농구단
* 태평양화학 여자농구단
* 한국화장품 여자농구단
* 실업배구
* 고려증권 배구단
* 현대자동차써비스 배구단
* 대농 여자배구단
* 현대 여자배구단
* 대학/고교
* 선린상업고등학교 야구부
* 중앙대학교 농구부
* 경기대학교 배구부
* 한양대학교 배구부
* 일신여자상업고등학교 배구부: 1981년 4월부터 1985년 3월까지 118연승을 기록해 배구 역사상 미도파에 이은 2위 기록을 남겼다.
{{{+1 ''' 해설위원 ''' }}}
----
* 야구
* 하일성
* 허구연
* 김소식
* 축구
* 박경호
* 박병주
* 이우현
* 농구
* 황태석
* 배구
* 오관영
* 씨름
* 김광식
* 권투
* 한보영
* 바둑
* 노영하 9단
* 윤기현 9단
===== 만화계 =====
* '''이현세'''
* '''허영만'''
* '''박봉성'''
* '''이두호'''
* 김영하
* 이상무
* 고행석
* 김형배
* 차성진
* 김동화
* 김수정
* 오세영
* 탁영호
* 주완수
* 박흥용
* 이희재
* 장태산
* 강철수
* 오수
* 한희작
* 길창덕
* 고우영
* 윤준환
* 신문수
* 이진주
* '''황미나'''
* 신일숙
* 강경옥
* 김혜린
* 이보배
==== 해외 ====
===== 정/관계 =====
* [[로널드 레이건]]
* [[조지 P. 슐츠]]
* 캐스퍼 와인버거
* 윌리엄 케이시
* 게리 하트
* [[마이클 듀카키스]]
* [[미하일 고르바초프]]
* [[마가렛 대처]]
* [[프랑수아 미테랑]]
* [[헬무트 콜]]
* [[나카소네 야스히로]]
* [[덩샤오핑]]
* [[자오쯔양]]
* [[후야오방]]
* [[장징궈]]
* [[김일성]]
* [[김정일]]
* [[허담]]
* [[아야톨라 호메이니]]
* [[사담 후세인]]
* [[무아마르 알 카다피]]
* [[레흐 바웬사]]
* [[네 윈]]
* [[에리히 호네커]]
* 우 산 유
* 소 마웅
* [[아웅산 수치]]
*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 [[토도르 지프코프]]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 [[베니그노 아키노]]
* [[코라손 아키노]]
* [[리콴유]]
* [[히로히토]]
* [[요한 바오로 2세]]
* [[인디라 간디]]
* [[모부투 세세 세코]]
* [[케난 에브렌]]
* [[베아트릭스 여왕]]
===== 연예계 =====
{{{+1 ''' 배우 ''' }}}
----
* '''아놀드 슈워제네거'''
* 드류 배리모어
* '''실베스터 스탤론'''
* '''브루스 윌리스'''
* 키아누 리브스
* 알렉스 윈터
* 빌 머레이
* 댄 애크로이드
* 해롤드 래미스
* 어니 허드슨
* 시고니 위버
* 브룩 쉴즈
* 소피 마르소
* 장 클로드 반담
* 마이클 J. 폭스
* 크리스토퍼 로이드
* 리 톰슨
* 리처드 딘 앤더슨
* 게리 콜먼
* 다나 플래토
* 토드 브릿지스
* 성룡
* 홍금보
* 원표
* 주윤발
* 글로리아 입
* 해리슨 포드
* 브랫 팩 일원들
* 톰 크루즈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 존 휴스
* 조엘 슈마허
{{{+1 ''' 가수 ''' }}}
----
* 건스 앤 로지스
* '''마이클 잭슨'''
* 본 조비
* 신데렐라
* 머틀리 크루
* 아이언 메이든
* '''퀸'''
* 오지 오스본
* 모터헤드
* 주다스 프리스트
* 에어로스미스
* 바비 브라운
* 버글스
* 프린스
* 폴리스
* 신디 로퍼
* 듀란 듀란
* 투 라이브 크루
* 펫 샵 보이즈
* 장국영
* LOUDNESS
* 카시오페아
* 안전지대
* LAZY
* A-ha
* Run-DMC
* Public Enemy
* Wham!
* '''마돈나'''
* 카일리 미노그
* 휘트니 휴스턴
* 나카모리 아키나
* 마츠다 세이코
* 오카다 유키코
* 오냥코 클럽
* 소년대
* 소녀대
* 히카루GENJI
* LAZY
{{{+1 ''' 개그맨 ''' }}}
----
* 톤네루즈
===== 스포츠 =====
{{{+1 ''' 선수 ''' }}}
----
* 야구
* [[놀란 라이언]]
* [[돈 매팅리]]
* [[아지 스미스]]
* [[라인 샌드버그]]
* [[잭 모리스]]
* [[칼 립켄 주니어]]
* [[칼튼 피스크]]
* 커크 깁슨
* [[조지 브렛]]
*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 [[이토 쓰토무]]
* [[하라 다쓰노리]]
* [[랜디 바스]]
* 축구
* '''[[디에고 마라도나]]'''
* 마법의 사각형
* [[미셸 플라티니]]
* [[루이스 페르난데스]]
* [[장 티가나]]
* [[알랭 지레스]]
* 황금의 4중주
* [[지쿠]]
* [[소크라치스]]
* [[호베르투 팔캉]]
* [[토니뉴 세레주]]
* [[케니 달글리시]]
* [[그레이엄 수네스]]
* [[필 닐]]
* [[필 톰슨]]
* 앨런 핸슨
* [[이안 러쉬]]
* 얀 묄비
* [[브라이언 롭슨]]
* [[마크 휴즈]]
* [[노먼 화이트사이드]]
* [[게리 리네커]]
* [[존 반스]]
* [[하랄트 슈마허]]
* [[로타어 마테우스]]
* [[베른트 슈스터]]
* [[파올로 로시]]
* [[디노 조프]]
* 농구
* '''[[매직 존슨]]'''
* '''[[래리 버드]]'''
* '''[[카림 압둘 자바]]'''
* [[제임스 워디]]
* 마이클 쿠퍼
* 커트 램비스
* A.C. 그린
* [[케빈 맥헤일]]
* [[로버트 패리시]]
* [[대니 에인지]]
* 데니스 존슨
* [[모제스 말론]]
* [[줄리어스 어빙]]
* 모리스 칙스
* 바비 존슨
* [[찰스 바클리]]
* [[아이재이아 토마스]]
* [[빌 레임비어]]
* [[조 듀마스]]
* 릭 마혼
* 존 샐리
* [[데니스 로드맨]]
* 비니 존슨
* 시드니 몽클리프
* 리키 피어스
* 테리 커밍스
* [[알렉스 잉글리시]]
* 키키 반더웨이
* 팻 리버
* 대니 쉐이즈
* 월터 데이비스
* 앨반 애덤스
* 래리 낸스
* 마크 프라이스
* 자비에 맥대니얼
* 데일 엘리스
* 톰 챔버스
* 조지 거빈
* 아티스 길모어
* [[마이클 조던]]
* 버나드 킹
* 브래드 데이비스
* 롤랜도 블랙맨
* 마크 어과이어
* 데틀레프 슈렘프
* 샘 퍼킨스
* 미식축구
* [[조 몬태나]]
* 제리 라이스
* 조 타이즈먼
* 필 심스
* [[댄 마리노]]
* 버니 코사
* 브라이언 보스워스
* 하위 롱
* 마커스 앨런
* 스티브 라젠트
* [[보 잭슨]]
* 워렌 문
* [[존 엘웨이]]
* 부머 어사이어슨
* 앤서니 무노즈
* 랜달 커닝엄
* 에릭 디커슨
* [[스티브 영]]
* 아이스하키
* [[웨인 그레츠키]]
* 프로레슬링
* 앙드레 더 자이언트
* 헐크 호건
* 브루터스 비브케익
* 제이슨 더 테러블
* 다이너마이트 키드
* 브리티시 불독: 당시엔 '데이비 보이 스미스'였다.
* 마초맨
* 정크 야드 독
* 빅 보스맨
* 하트 파운데이션 1기
* 브렛 하트, 짐 나이드하트
* 데몰리션
* 액스, 스매쉬(배리 달소)
* 로드 워리어스
* 스팅
{{{+1 ''' 감독 ''' }}}
----
* 야구
* [[토미 라소다]]
* [[스파키 앤더슨]]
* [[토니 라루사]]
* 로저 크레이그
* [[데이비 존슨]]
* [[화이티 허조그]]
* 딕 하우저
* [[후지타 모토시]]
* [[히로오카 타츠로]]
* [[요시다 요시오]]
* [[모리 마사아키]]
* [[우에다 토시하루]]
* 축구
* [[엔초 베아르초트]]
* [[조반니 트라파토니]]
* [[아리고 사키]]
* [[카를로스 빌라르도]]
* [[바비 롭슨]]
* [[밥 페이즐리]]
* [[조 페이건]]
* 케니 달글리시
* 하워드 켄달
* [[론 앳킨슨]]
* [[브라이언 클러프]]
* [[테리 베너블스]]
* [[조크 스타인]]
* [[빌리 빙엄]]
* [[기 티]]
* [[제프 피온테크]]
* [[미겔 무뇨스]]
* 미셸 이달고
* [[하비에르 클레멘테]]
* [[레오 베인하커르]]
* 알베르토 오마에체아
* [[우도 라테크]]
* [[프란츠 베켄바우어]]
* 에른스트 하펠
* [[유프 하인케스]]
* [[데트마어 크라머]]
* 거스 히딩크
* 농구
* 팻 라일리
* K.C. 존스
* 돈 넬슨
* 덕 모
* 척 데일리
* 딘 스미스
* 밥 나이트
* 데니 크럼
* 래리 브라운
* 데일 브라운
* 스티브 피셔
* 제리 타캐니언
* 빌리 텁스
* 놈 스튜어트
* 루트 올슨
* 가이 루이스
* 짐 발바노
* 레프티 드라이젤
* 마이크 슈셉스키
* 바비 크레민스
* 레이 마이어
* 롤로 사인스
* 미르코 노보셀
* 알렉산드르 고멜스키
* 미식축구
* 빌 월시
* 마이크 디트카
* 척 녹스
* 샘 와이키
* 존 로빈슨
* 톰 플로레스
* 조 깁스
* 빌 파셀스
* 버디 라이언
* 조 패터노
* 빈스 둘리
* 팻 다이
* 폴 브라이언트
* 보 슈켐베클러
* 얼 브루스
* 마이크 화이트
* 조지 펄스
* 헤이든 프라이
* 배리 스위처
* 톰 오스본
* 재키 셰릴
* 빌 여먼
* 프레드 에이커스
* 바비 콜린스
* 그랜트 티프
* 조니 메이저스
* 테리 도나휴
* 돈 제임스
* 래리 스미스
* 라벨 에드워즈
* 아이스하키
* 글렌 섀더
* 알 아버
* 밥 존슨
{{{+1 ''' 구단 ''' }}}
----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캔자스시티 로열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세이부 라이온즈]]
* [[한신 타이거즈]]
* [[한큐 브레이브스]]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보스턴 셀틱스]]
*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 [[밀워키 벅스]]
* [[댈러스 매버릭스]]
* [[덴버 너기츠]]
* [[애틀랜타 호크스]]
* [[휴스턴 로켓츠]]
* [[시카고 불스]]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 [[시카고 베어스]]
* [[신시내티 벵갈스]]
* [[워싱턴 레드스킨스]]
* [[뉴욕 자이언츠]]
* [[시애틀 시호크스]]
{{{+1 ''' 전술 ''' }}}
----
* 조던 룰
* 웨스트 코스트 오펜스
* [[46 디펜스]]
==== 만화계 ====
* '''토리야마 아키라'''
* 호조 츠카사
* 부론손
* 하라 테츠오
* 마츠모토 이즈미
* '''아다치 미츠루'''
* 고바야시 요시노리
* 타카하시 요시히로
* 아라키 히로히코
* 타카하시 요이치
* 유데타마고
* 미야시타 아키라
* 테라사와 부이치
* 에구치 히사시
* '''타카하시 루미코'''
* 무로야마 마유미-마리코 자매[* <천하태평 아리짱> 원작자.]
* 후지코 F. 후지오[* 그래서 [[도라에몽]]의 시대배경도 1970~1980년대다.]
=== 사회/문화 ===
특히 대한민국 물건이거나 대한민국에서 흥한 경우 ●
* ~~[[LD]]~~[* 80년대를 풍미한 물건은 맞으나 대한민국에서는 구경해 보기는커녕 그 존재를 아는 이들조차 극소수 매니아뿐이었다. 일본에서나 80년대를 풍미한 물건.]
* [[MTV]]
* [[이경규]] ●
* [[MBC 대학가요제]] ●
* [[TV 손자병법]] ● - 오현경, 서인석, 장용, 김희라, 정종준, 김성찬이 당대 황금콤비였다.
* [[VHS]]
* [[베타맥스]]
* [[롤러장]] - 롤러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곳. 물론, [[1970년대]]에도 인기가 있었다.
* [[종합운동장]] ●
* 8비트 컴퓨터
* [[63빌딩]]
* '''[[IBM PC]]''', [[애플 II]]●, [[MSX]]●, [[SPC-1000]]●[* [[코모도어64]]의 경우 또한 국내에서 그 존재를 아는이가 전무하다. [[삼성전자]]의 SPC-1000이나 [[LG전자|금성사]]의 패미콤(FC-100) 정도가 80년대 초반을 풍미했다.]
* [[가요톱10]] ● - 임성훈 MC 시절이 해당됨.
* [[개구장이 스머프]]
* [[기아 봉고]] ●[* 봉고 트럭의 출시 년도가 1980년인데, 이듬해 나온 코치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기아를 살리는 1등 공신이 되었다.]
* [[대우 로얄]] ●[* [[현대 소나타]]의 출시 이전 장관용 차량 4기통 제한등의 대내외적인 호조로 르망과 더불어 대우자동차의 --찬란했던-- 좋은 한 때를 보여주는 자동차.]
* [[현대 스텔라]] ●[* 중형차의 대중화를 앞당긴 모델, 허나 낮은 내구성으로 금방 도태되어 극소수만 현재까지 생존했다. 그렇지만 택시로는 불티나게 팔려 초창기 중형택시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다.]
* [[드래곤볼]] - 물론, 1990년대에도 인기가 많았다.
* [[맥가이버]]
* 맥가이버 머리
* 민병철 생활영어 - 당시엔 교재, 카세트, 비디오테이프로도 나왔다.
* 신나는 개구장이
* 올드 스쿨 힙합
* Run-DMC, LL 쿨 J, Public Enemy
* [[이문열]] 소설들 ●
* 황제를 위하여, 영웅시대, 레테의 연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 [[김우중]] 저. ●
* '''[[마이클 잭슨]]''' - 1980년대를 상징하는 [[대중음악]]계의 혁명.
* [[보도지침]] ●
* [[보물섬(만화잡지)|보물섬]], 만화광장, 주간만화 ●
* 80년대 [[미국 드라마]] ●[* [[맥가이버]], [[베이워치]]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 [[에어로빅]] 영상/비디오 - 90년대 초까지 지속되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서양권 기준으로 8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를 상징하는 추억의 요소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 [[워크맨]] - 물론, [[마이마이]]를 비롯한 휴대형 라디오는 [[1990년대]]를 넘어 2000년대에도 쓰이는 물건이었다.
* '''[[WWF]] 프로레슬링'''
* [[패미컴]][* [[대한민국]]에서는 1990년대 초에 현대전자에서 북미판 [[NES]]를 정발하면서 흥했다. 그 외에도 슈퍼콤 같은 [[패미클론]]으로 접해 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또 다른 패미컴으로 금성사의 개인용 컴퓨터(FC 시리즈)가 오히려 80년대를 풍미했다. 참고로 이 제품의 한글이름은 패미'''콤'''. 닌텐도 게임기 패미컴은 한국기준으로는 앞 주석에서처럼 1990년대에 유명했지 1980년대에는 그 존재를 아는이가 많지 않았다. 물론 세계적으로는 80년대 물건임은 맞다.]
* 소년잡지 ●
* [[소년 점프]] 황금기의 만화들[* 한국에서는 일본보다 이르게 잡아도 이들 점프 일본만화들이 3년 정도 늦게 알려진 편이다.]
* [[시티헌터]][* [[호조 츠카사]]의 만화. 국내에선 주인공 [[사에바 료]]가 당시 해적판 만화들의 한국명인 '''우수한'''으로 잘 알려져 있다.]
* 소녀시대(잡지책)
* [[수사반장]] ● - 당대 황금콤비는 최불암, 김상순, 조경환, 남성훈, 노경주 라인이었다.
* [[슈퍼 마리오 시리즈]] - [[비디오 게임]]의 신화이자, [[닌텐도]]를 상징하는 전설이 된 작품.
* [[새소년]], [[소년중앙]][* 다만, 이것은 1980년대보다는 1970년대에 더 유명했다. 1970년대 항목으로 옮기는게 맞을 듯.] ●
* [[이현세]] 화백 작품들 ●
* [[공포의 외인구단]], 지옥의 링
* [[아기공룡 둘리]] ●
* 아르미안의 네 딸들 ●
* 북해의 별 ●
* 굿바이 미스터 블랙 ●
* 불청객 시리즈 - [[고행석]] 화백 작품. ●
* [[허영만]] 화백 작품들 ●
* 변칙 복서, 무당거미
* [[1988년 서울 올림픽]] ●
* [[우주세기]] 건담 -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 [[유머 1번지]] ●
* [[유로비트]] - 물론, 롤러장 음악과도 관련이 깊었다.
* [[은마아파트]] - 한보주택이 세운 [[강남구]] [[대치동]] 소재의 대규모 아파트.
*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 386세대의 대학시절 기억에 남아 있는 대중 학생운동조직. 노태우 시절 활발히 활동했다.
* [[카세트테이프]]
* [[땡전뉴스]] ●
* [[토토즐]] ●
* [[닌자 거북이]]
* [[새마을호]] ● - 1969년부터 관광호라는 명칭으로 운행을 하였으나,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1986년부터 흔히 우리가 아는 '''유선형 새마을호'''가 도입되었다.
* [[홍콩 영화]]
* [[성룡]]
* [[왕조현]]
* [[주윤발]]
* [[홍콩 느와르]]
* 이념도서 - 당시 공안수사기관이나 주류언론이 재야 운동권 도서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 노동의 새벽 - 박노해 저. ●
* [[해방 전후사의 인식]] ●
*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저. ●
=== 이 시대의 유행어 ===
* [[웬열]] (웬일이니? 레알? 정도의 유행어)
* 못생겨서 죄송합니다./콩나물 팍팍 무쳤냐?/일단 한번 와보시라니깐요?([[이주일]]의 유행어)
* 아이고! 김사장! 이거 정말 [[반갑구만 반가워요|반갑구만! 반가워요!]] (북청 물장수에 나오는 [[이봉원]]의 유행어)
* 잘 되어야 할 텐데... 잘 될 턱이 있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에서 나오는 [[김형곤]]의 유행어)
* 영구 없다~([[심형래]]의 유행어)
* 숭구리당당 숭당당 ([[김정렬(코미디언)|김정렬]]의 유행어)
* 나는 봉이야~([[최양락]]의 유행어)
* Where`s the beef? ([[웬디스]]에서 [[맥도날드]]와 [[버거킹]]을 까기 위해 만든 광고에서 나온 유행어)
* [[코와붕가]] ([[닌자 거북이]]에서 나온 유행어.[[바트 심슨]]이 종종 사용한다)
* 뛰뛰빵빵
* 흥청망청
* 불야성
== 1980년대에 들어가는 해 ==
[[1980년]] - [[1981년]] - [[1982년]] - [[1983년]] - [[1984년]] - [[1985년]] - [[1986년]] - [[1987년]] - [[1988년]] - [[1989년]]
== 1980년대생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1980년대생)]
== 관련 문서 ==
*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 [[1980년대의 저출산 경향]]
* [[북한의 80년대 3대 실정]]
* [[베이퍼웨이브]]
* [[신스웨이브]]
* ~~[[신데렐라#s-8.4|샤바 샤바 아이샤바]]~~
== 참고/관련 문헌 ==
* 강좌 한국근현대사 - 역사학연구소 저. 풀빛. 1995.
* 고쳐 쓴 한국현대사 - 강만길 저. 창작과비평사. 1994.
*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3권 - 박세길 저. 돌베개. 1992(초판)/2015(재판).
* 대한민국사: 1945~2008 - 임영태 저. 들녘. 2008.
*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 정인(황광우) 저. 거름. 1985(초판)/1991(개정판).
* 바로보는 우리역사 2권 - 구로역사연구소(현 역사학연구소) 저. 거름. 1990.
* 불의 기록, 피의 기록, 죽음의 기록 - 김종찬 저. 실천문학사. 1988.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개정증보 3판) - 서중석 저. 웅진지식하우스. 2020.
*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6~20권(완결) - 서중석/김덕련 저. 오월의봄. 2019~2020.
*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재벌과 빈곤의 경제 - 정인(황광우) 저. 거름. 1985(초판)/1989(개정판).
* 우리역사 이야기 3권: 8.15에서 6월 민주항쟁까지 - 조성오 저. 돌베개. 1993.
*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한국 현대사 - 윤대원 저. 거름. 1990.
* 청년을 위한 한국 현대사 - 박현채 저. 소나무. 1992.
* 한국현대사 4권 - 한국역사연구회 저. 풀빛. 1991.
*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전 4권) - 강준만 저. 인물과사상사. 2003.
* 한국현대사 이야기주머니 3권 - 한국정치연구회 저. 녹두. 1993.
* 함께보는 한국근현대사 - 역사학연구소 저. 서해문집. 2003(초판)/2016(개정판).
* 80년대 한국사회 대논쟁집(월간중앙 1990년 신년호 부록) - 월간중앙 편집부 저. 중앙일보사. 1990.
* 80년대 한국사회와 학생운동 - 한용 외 저. 청년사. 1989.
[각주]
[[분류:1980년대]] |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 ||<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youtube(pacCZ6pJXoc)]}}} ||
|| [[1980년대]] 일본의 [[코카콜라]] 광고[* 참고로 CF 속 미소짓는 여주인공은 마츠모토 타카미(松本 孝美, [[1965년]] 생)다. 연인으로 나온 남자는 [[일본계 미국인]]인 켄 브레니스(ケン・ブレニス[* [[페르시아어]]로는 کن برنیس][* [[타지크어]]로는 Кен Бреннис], [[일본]]에서 활동하다 나중에 버블경제가 꺼지고 [[잃어버린 10년]]이 도래하자 미국으로 다시 건너갔다). 참고로 2분 쯤부터 나오는 광고는 80년대 한국에서도 거의 똑같이 리메이크되어 [[https://www.youtube.com/watch?v=QfcBZqyTxdw|방영]]된 바 있다. [[심혜진]]과 [[이종원]]이 출연했으며, CM송도 [[한국어]] 가사였다. 코카콜라 내부 정책에 따라 [[일본]]의 원본을 정식으로 [[로컬라이징]] 했다.[[https://youtu.be/eRJSeNQQSWg|다른 영상들도 있는 버전도 있다.]]][* 이는 단지 광고를 카피한게 아니라 당시 한국의 분위기도 일본 버블 경제의 영향을 받아서 패션, 영화, 드라마등,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일본과 거의 흡사했다. 한국에서 리메이크한 코카콜라 광고도 당시의 한국 분위기나 사회상과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잘 어울렸고, 많은 젊은이들이 광고속의 나오는 샐러리맨들처럼 되기를 바라며 대학생활을 즐기던때였다.] ||
||<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youtube(KJQsGpCDX54)]}}} ||
|| 거품경제 말기인 '''1992년 도쿄를 [[1080p]]로''' 촬영한 모습[* 1992년이면 세계적으로 HD 영상은 커녕 DVD(480p)급 SD영상도 드물었던 때다. 선진국들도 VCR에 만족해야 했고 개발도상국은 그것조차 없었다. 그러나 1989년에 일본은 MUSE 방식의 HDTV([[하이비전]]) 본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절대 SD급 영상을 [[업스케일링]]해서 뻥튀기한 화질이 아니다. 1080P는 현재 TV에 가장 많이 쓰고 있는 '''[[FHD]]급이다'''. 한국 기준으로 1080P급 화질의 방송이 시작된 시기는 2001년 말이지만. 여전히 360p가 쓰였고, 본격화된 시기는 2010년대 이후이다, 즉, 당시 일본은 다른 나라들보다 대략 10년에서 20년 이상 앞서간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1080p가 보편적으로 쓰이고 4K가 막 태동할때 8K방송을 송출하는 셈이다.] ||
> 버블을 통해서 '''"[[밀턴 프리드먼|공짜 점심은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는 경제의 대원칙이 재확인됐다. 버블 안에 있을 때는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고 이익을 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버블이 한 번 발생하면 [[잃어버린 10년/일본|경제적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 ----
> [[1993년]] [[일본국]] 경제백서 中[* [[https://www.youtube.com/watch?v=-D7GIBs8QAU&t=2s|KBS스페셜 '욕망과 혼돈의 도쿄, 1991년']]의 마지막 내레이션. 일본 거품경제를 잘 표현했다고 평가받는 다큐이다.]
[목차]
== 개요 ==
'''バブル景気[* '버블 경기'.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도 이 제목으로 문서가 존재하며 일본의 거품경제와 관련한 다른 것들도 모두 버블 ○○라고 지칭하고 제각기 문서도 있다. 버블 붕괴(バブル崩壊), 버블 시대(バブル時代), 버블 세대(バブル世代) 등.] / Japanese asset price bubble'''
1980년대, [[일본]]의 주식과 부동산 시장 전반에 나타났던 [[거품경제]]. 일본은 당시 짧게는 [[1985년]]부터 [[1990년]]까지[* 환율평가 절상(플라자) 합의 때부터 헤이세이 불황이 터지기까지.], 길게는 [[1980년]]부터 [[1992년]][* 2차 석유파동이 끝난 시점부터 부동산 경제 붕괴까지.]까지 비정상적인 자산 가치 상승 현상을 겪게 되는데, 이후 거품이 붕괴되며 1,500조 엔의 [[자산]]('''무려 한화 약 1경 6,500조원''')이 공중분해된다.[* 다만 일본의 이 빚들은 외국인이 아닌 자국인들, 자국 은행에 진 빚들이라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그 결과 이후 일본은 인구 고령화, 금융시장 부실화, 정부의 미약한 대응, 디플레이션 등 여러 요인과 결합해 지금까지도 극복했다고 보기 힘든 장기불황, [[잃어버린 10년/일본|잃어버린 10년]]을 맞게 된다.
== 1980년대 일본 ==
||<-6> '''세계 50대 기업 시가총액 순위'''[*출처 [[매일경제신문]] 1988년 9월 24일 제4면]^^[[:파일:attachment/일본경제.jpg|(이미지)]]^^ ,,(단위=백만달러),, ||
||<-2> 순위 ||<|2> 기업 ||<|2> 국적 ||<|2> 시가총액 ||<|2> 87년도 매출액 ||
|| 88년 || 87년 ||
|| 1|| 1||[[NTT]]||[[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276,840'''|| 46,639||
|| 2|| 2||[[IBM]]||[[미국|[[파일:미국 국기.svg|width=25]]]]|| 76,049|| 54,220||
|| 3|| 4||[[스미토모은행]]||[[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65,335|| 300,933||
|| 4|| 3||[[엑슨모빌|엑슨]]||[[미국|[[파일:미국 국기.svg|width=25]]]]|| 62,572|| 82,100||
|| 5|| 8||[[다이이치칸교은행]]||[[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61,971|| 325,206||
|| 6|| 9||[[미즈호 은행|후지은행]]||[[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59,746|| 293,103||
|| 7|| 6||[[도쿄전력]]||[[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57,318|| 32,455||
|| 8|| 10||[[미쓰비시 UFJ 은행|미쓰비시은행]]||[[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53,934|| 296,063||
|| 9|| 5||일본개발은행||[[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52,170|| 225,909||
|| 10|| 7||[[노무라 증권]]||[[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51,154|| 28,707||
|| 11|| 13||[[로열 더치 쉘]]||[[영국|[[파일:영국 국기.svg|width=25]]]][br][[네덜란드|[[파일:네덜란드 국기.svg|width=25]]]]|| 49,312|| 78,312||
|| 12|| 14||[[토요타]]||[[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46,334|| 54,984||
|| 13|| 12||[[미쓰비시 UFJ 은행|산와은행]]||[[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46,136|| 262,051||
|| 14|| 11||[[제너럴 일렉트릭]]||[[미국|[[파일:미국 국기.svg|width=25]]]]|| 39,617|| 39,300||
|| 15|| 23||[[파나소닉|마쓰시타전기]]||[[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34,852|| 39,696||
|| 16|| 77||[[신일본제철]]||[[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32,252|| 19,276||
|| 17|| 32||[[히타치(기업)|히타치]]||[[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31,721|| 40,980||
|| 18|| 27||[[미쓰비시 UFJ 은행|도카이은행]]||[[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31,288|| 194,270||
|| 19|| 16||일본장기신용은행||[[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30,078|| 156,087||
|| 20|| 20||[[미쓰이스미토모은행|미쓰이은행]]||[[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29,351|| 185,106||
|| 21|| 17||[[AT&T]]||[[미국|[[파일:미국 국기.svg|width=25]]]]|| 28,855|| 33,600||
|| 22|| 24||[[포드(자동차)|포드]]||[[미국|[[파일:미국 국기.svg|width=25]]]]|| 28,585|| 71,600||
|| 23|| 15||[[BP plc|BP]]||[[영국|[[파일:영국 국기.svg|width=25]]]]|| 27,441|| 51,589||
|| 24|| 22||[[BT#s-2|브리티시텔레콤]]||[[영국|[[파일:영국 국기.svg|width=25]]]]|| 26,612|| 19,073||
|| 25|| 19||미쓰비시신탁은행||[[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25,621|| 99,750||
|| 26|| 25||[[제너럴 모터스]]||[[미국|[[파일:미국 국기.svg|width=25]]]]|| 25,050|| 102,000||
|| 27|| 21||[[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스미토모신탁은행]]||[[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23,517|| 94,590||
|| 28|| 40||[[NEC]]||[[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22,986|| 22,362||
|| 29|| 38||[[간사이전력]]||[[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22,744|| 16,573||
|| 30|| 31||미쓰비시부동산||[[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22,647|| 2,076||
|| 31|| 30||다이와증권||[[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22,282|| 361,606||
|| 32|| 18||[[듀폰]]||[[미국|[[파일:미국 국기.svg|width=25]]]]|| 22,182|| 30,500||
|| 33|| 26||메텍||[[미국|[[파일:미국 국기.svg|width=25]]]]|| 22,162|| 5,061||
|| 34|| 46||도쿄가스||[[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21,431|| 6,013||
|| 35|| 98||[[미쓰비시 중공업|미쓰비시중공업]]||[[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21,297|| 14,788||
|| 36|| 82||[[도시바]]||[[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21,151|| 29,425||
|| 37|| 41||[[미쓰비시 UFJ 은행|도쿄은행]]||[[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21,055|| 153,363||
|| 38|| 37||닛코증권||[[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20,801|| 24,077||
|| 39|| 44||벨소우||[[미국|[[파일:미국 국기.svg|width=25]]]]|| 20,753|| 12,300||
|| 40|| 42||도키오화재해상보험||[[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20,155|| 6,244||
|| 41|| 35||[[필립 모리스]]||[[미국|[[파일:미국 국기.svg|width=25]]]]|| 19,817|| 27,700||
|| 42|| 62||[[후지쯔|후지쓰]]||[[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19,335|| 16,862||
|| 43|| 33||[[BP plc|아모코]]||[[미국|[[파일:미국 국기.svg|width=25]]]]|| 18,743|| 22,400||
|| 44|| 69||[[전일본공수]]||[[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18,140|| 4,217||
|| 45|| 39||[[엑슨모빌|모빌]]||[[미국|[[파일:미국 국기.svg|width=25]]]]|| 17,946|| 56,700||
|| 46|| 99||[[닛산자동차]]||[[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17,919|| 34,957||
|| 47|| 64||[[주부전력]]||[[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17,490|| 13,452||
|| 48|| 47||[[월마트]]||[[미국|[[파일:미국 국기.svg|width=25]]]]|| 17,307|| 15,959||
|| 49|| 60||[[다우 케미칼]]||[[미국|[[파일:미국 국기.svg|width=25]]]]|| 17,186|| 13,377||
|| 50|| 58||다케다화학||[[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5]]]]|| 17,170|| 5,214||
이 당시([[1988년]]) [[시가총액]] 기준 세계 50대 기업 순위. 세계 50위 기업 가운데 무려 33개가 [[일본]] 기업이고 더구나 20위 위로는 일본 기업이 자그마치 16개에 게다가 시가총액 1위 [[NTT]]의 시가총액은 2위 [[IBM]]의 [[넘사벽|3배가 넘었다]].[* NTT의 시가총액은 서독 주식시장 전체 시가총액에 맞먹었다.] 이 때 한국의 [[국내총생산]]은 2023억 달러로, NTT 시가총액의 70% 수준에 불과하다.[* 1987년 연말 한국 증시의 전체 시가총액이 26조원으로 당시 환율로 4조엔 수준이었다. NTT의 시가총액 최고치는 87년 4월 22일의 49조 6천억엔.] 아무리 당시 한국이 신생 공업국이었다고 하더라도 [[1988 서울 올림픽|올림픽]]을 개최한 국가의 GDP가 일개 기업의 시가총액보다도 못하다는 점에서 당시 일본의 경제 규모가 얼마나 엄청났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다. 게다가 당시 일본의 GDP가 나머지 아시아 전체 GDP보다 컸다.[* 당시 석유붐이 끝나면서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 [[이라크]]의 GDP가 대폭 하락한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가령 사우디아라비아는 1981년의 고점 18,800달러에서 1988년 6,400달러까지 꺼졌다. 또 당시 [[중국]]이나 [[인도]]는 인구 대비 경제력이 미약한 후진 [[개발도상국]]이었다는 것도 컸다. 그런데 놀라운 건 거품 꺼진 2020년대도 일본 GDP는 세계 3위다.]
[[http://www.index.go.kr/potal/stts/idxMain/selectPoSttsIdxSearch.do?idx_cd=1068|환율 비교표]][* 출처는 e-나라지표]를 보면 이 당시의 일본이 얼마나 잘나갔었는지 환율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볼 부분은 상당수가 '''[[은행]]과 [[증권회사]] 등의 금융 관련 기업들'''이라는 점이다. 또한 더 유심히 봐야 할 것은 [[1987년]] 매출액으로 1,000억달러 이상 기업은 일본의 은행들과 다이와증권을 제외하면 [[제너럴 모터스]]뿐이라는 것이다.[* 단, 위의 자료에서 은행은 매출액이 아닌 자산을 기입한 것으로 보인다. 통상 은행업은 예대차익이 사업의 본질이기 때문에 회계에 매출 개념을 인식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보자면, [[도쿄전력]]/도쿄가스/[[간사이전력]]/[[주부전력|주부(中部)전력]] 등도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일개 지역의 전력/가스 공급업체가 글로벌 기업들의 순위권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한국전력공사]]/[[서울도시가스]]/[[부산도시가스]] 등이 애플, 삼성전자 등과 비슷한 규모의 기업이라 평가받는다고 보면 된다.
사실 얼핏 봐선 그냥 쩌네라고 생각하고 말 수도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소비시장이 일본 전체도 아닌, 일부 지역으로 한정되는 지역회사들까지 세계적인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것은 뭔가 '''정상적인 기업 성장과는 [[거품|다른 상황]]'''임을 알 수 있다.
== 배경 ==
[youtube(EDgSuITnDy8)]
1970년대 일본의 경제성장은 오일쇼크로 인해 침체기를 맞았지만 [[JVC]], [[소니]], [[파나소닉]], [[토요타]], [[혼다]], [[캐논(기업)|캐논]]과 같은 일본의 대기업들은 이를 극복하고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차근차근 쌓아올린 기술력으로 그간의 싸구려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미국]]과 [[유럽]]의 경쟁사들을 고사시키며 세계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또한 자동차 회사들은 [[오일쇼크]]를 역이용해서 기존 미국차보다 기름을 덜 먹는다는 점을 널리 홍보하고 잔고장도 미국차보다 적었기 때문에 미국 시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디트로이트]]가 본격적으로 쇠락하기 시작했을 때가 이 당시부터였다. 이 시기의 분석가들이 언젠가 [[히타치(기업)|히타치]]나 [[소니]]가 '''[[인텔]]이나 [[IBM]]을 인수해버릴 것이다'''고 전망했을 정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당시 일본 경제의 성공 요인을 주제로 하여 그 유명한 [[피터 드러커]]가 쓴 [[https://hbr.org/1981/01/behind-japans-success|장문의 분석글]]을 게재한 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세계 1위의 무역흑자를 기록하며 막대한 자본을 비축해 놓지만 동시에 타국 간의 무역마찰도 심해진다.
또한 [[1980년대]]에 [[오일 쇼크]]의 여파가 잦아들었고, 오일쇼크 이래 인위적인 엔저로 일본의 수출이 매년 급속하게 불어나면서 기업들의 매출이 크게 상승하자 [[1983년]]을 기점으로 자산시장이 급속하게 활성화되었다. 그러던 [[1985년]]에 '''[[플라자 합의]]'''로 엔화 가치가 올라 일본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이 감소하며 성장률이 떨어졌다. 그 결과 [[1986년]]에 '''-0.5%'''(달러 기준. 엔화 기준은 +2.8%). 오일쇼크 이후 최악의 성장률이었으며 달러 기준 마이너스 성장이 기록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런 갑작스러운 무역환경 악화로 인한 경기둔화에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와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라는 정책을 폈다. 부동산 가격과 주식 가격은 이 때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고, 특히 부동산 시장은 기존의 부동산 불패 신화도 있었기에 더욱 상승했고 이에 따라 기업과 개미들이 재테크로 거금을 벌었다는 소식이 잇따라 전해졌다. 투기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여기에 혹한 기업과 중장년층이 대박을 꿈꾸며 자산시장에 대거 진입했다. 여기에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 거품을 조장하고 나서니 투자자들은 이에 호응하여 광적으로 부동산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경제성장률은 다시 [[1987년]] 달러기준 +1.6%(엔화기준 4.1%), 1988년 엔화기준 '''7.1%''', 1989년 엔화기준 5.4%, 1990년 엔화기준 5.6%, 1991년 3.3%(엔화기준)까지 성장하기는 했다.
문제는 내수경기 부양책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쏠린 결과물이었다는 것. 저금리로 시장에 풀린 자금은 부동산과 주식 투기에 쏟아졌고, 안 그래도 올랐던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다시 수많은 기업과 개미들이 주식과 부동산 시장으로 점점 더 몰려들었다. 집값이 너무 비싸진 나머지 주요 대도시 실수요자들은 집을 구하지 못 하고 근교 지역으로 계속 밀려 나갔다. 결과적으로 집을 소유하지 못 하고 밀려난 이 사람들은 버블 당시의 낙천적인 국가 분위기만 즐긴 의문의 승리자들이 된다. 하지만 말이 의문의 승리자들이지, 결국 이들이 궁극적인 패배자였다. 버블로 돈놀이하던 부동산쟁이들이야 자업자득이지만, 일본 기업이 뭉텅이로 쓰러지자 이들 또한 당연히 잘려나갔다. 이후 긴 디플레로 인해 이들의 자산은 증가율은 더뎠고 평생을 저당잡아 마련한 부동산은 짐덩어리로 변했다. 그나마 꾸준한 수요가 생기는 대도시 근교라면 모를까, 지방에 내집을 마련했다면 그냥 안고 죽는 수 밖에. 버블이 꺼질 무렵, IMF에서 똑같이 재현된 아버지는 실직하고 자식은 구직실패라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들이 승리자들일 리가 없다.[* 그저 30억엔 하던 건물을 담보로 15억엔을 빌려서 사업을 하다가, 사업은 망하고, 건물값은 10억엔으로 떨어져 건물값이 대출금보다 낮아지자, 건물은 은행에 빼앗기고, 나머지 대출금 5억엔에 대한 이자만 내면서 평생 살아야하는 사람에 비해서 승리자로 보이는 일종의 착시현상같은거다.] 모든 버블의 충격은 중-하층에 있는 사람들이 감당하게 된다. 돈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빠져나가고. 자본 위기의 진실이었다.
이러자 경기부양책을 펼치던 [[일본 정부]]는 자산가격의 비정상적인 폭등을 진정시켜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1989년 3%의 [[소비세]][* 한국의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면서 동시에 전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한다. 물론 금리 인하가 자산 시장 버블의 요인이 되었던 만큼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려 한 것이겠지만, 문제는 천천히 올려야 할 금리를 너무 급격히 올려버린 나머지 이전까지 크게 올랐던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고 이는 소비 심리를 위축시켜서 경제의 경착륙을 불러왔다.
[[일본은행]]은 [[1988년]] [[9월]]에 2.50%이던 기준금리를 [[1990년]] 12월 6.00%까지 올렸다. 즉 2년 3개월만에 3.50%p나 금리가 폭등한 것. 이로 인해 주식시장이 먼저 고꾸라지고,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1991년]]에는 '''[[부동산]] 대출 총량규제(즉, 신규대출 전면금지), 기존대출도 [[담보 인정 비율|LTV]](Loan-to-value, 부동산 감정가 대비 대출액) 200%→70%로 제한'''이라는 [[자폭]]을 하고 만다. 부동산은 거래액수가 매우 큰만큼 LTV의 변동은 구매자 성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데, 담보가치를 130%p나 변동시키는 조치를 '''너무 쉽게 꺼냈다.'''[* [[한국]]의 사례로는 2002년 LTV 규제가 도입된 이래 노무현 행정부(2002~03)에서 60→40~50%로 강화되었다가 박근혜 행정부(2012~14)에서 70%로 상향 조정되고 다시 문재인 행정부에서 2017년 [[8.2 부동산대책]]으로 [[LTV]]를 비수도권 70%→ 60%, 수도권 60%→ 50%, [[투기과열지구]] 50%→ 40%로 내렸다. 10~20%p 정도의 변동에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단 일본의 LTV 규제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텍스트가 없어 확인이 필요하다. 기껏해야 홋카이도타쿠쇼쿠은행에서 120%짜리 대출을 해줬다는 사례가 언급되는 정도. 현재 일본에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적용하는 LTV 규제가 없는데 국내 텍스트에는 (아마도 정부의 간접 지도 또는 금융기관 자체 기준을 인용해서) 80% 혹은 100%로 쓰는 경우가 많다. 또한 [[https://www.mizuho-ri.co.jp/publication/research/pdf/argument/mron1306-1.pdf|미즈호 은행 계열 연구소 자료]]에 의하면 일본 기업용 부동산 대출의 LTV 비율은 이미 버블에 들어서기 전부터 감소하고 있었고 지가가 하락한 92년 이후는 오히려 상승했다. 또한 88~90년 사이 부동산 대출 총량이 20~30%씩 급증하다 브레이크가 걸려서 그렇지 어쨌든 대출 자체가 감소한 해는 없었다.]
당연히 담보가치 폭락으로 부동산 시장에는 매수세가 뚝 끊겼고, 일본의 부동산 시장은 한 방에 가버리고 만다.[* 일본 전체의 공시지가를 보면 1989~1991년 사이 상업용지는 40%, 주거용지는 36% 상승하는데, 1992년에 각각 -4%, -5.6% 떨어진다. 특히 가장 등락이 심했던 오사카권은 동기간 주거용지가 95% 상승했다가 -23%로 급반전한다.([[http://www.lij.jp/html/jli/jli_2017/2017summer_p151.pdf|관련 논문]])]
왜 이렇게 강경한 정책을 펼쳤냐면, 이 당시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집을 구하지 못하는 서민들의 아우성이 최고조에 달해있었기 때문이다. [[일본방송협회|NHK]]에서는 시민들의 참여로 부동산 관련 방송을 했는데 당시 참여한 샐러리맨은 "외국에서는 닭장같은 집이라고 일본의 집들을 비웃는데 정작 그런 집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즉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만연했다. 이에 국민들은 정부에 강력한 정책을 요구했고 정부는 그에 응했다(...)
이후로도 [[일본 정부]]는 불량 채권 회수에 미비하게 대처하면서 경기 침체를 악화시켰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생산과 소비의 중심인 생산 가능 인구가 [[1992년]] 정점에 도달한 이후 감소하기 시작해 자산 거품 붕괴로 인한 단발적이며 일시적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었다. 게다가 [[1997년 외환 위기|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닥쳐오자, 일본 기업들의 해외 자산이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면서 견실한 기업들마저 줄도산하는 등, 글로벌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사실 해당 기간 동안 성장률이 쭈욱 감소세는 아니었고 1994년부터는 조금씩 회복세를 나타냈기는 했으며 1996년에는 경제성장률 3.1%를 기록하며 1997년부터는 경기침체에서 빠져나올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하시모토 류타로]] 내각에서 이를 그간의 재정적자를 벌충할 기회라고 판단하며 성급하게 소비세를 3%에서 5%로 올렸고 거기에 더해서 [[1997년 외환 위기|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까지 겹치며 은행들이 줄줄히 파산하는 바람에 1998년부터 완전히 마이너스 성장과 0% 성장을 반복하는 고사 상태로 접어든다. 1996년까지는 도산하는 기업이 부동산, 주식 리스크가 컸던 중소형 은행/증권사, 중소 건설업체, 부동산 회사 등에 집중됐으나, 1998년부터는 대기업과 대형 금융사까지 쓰러지게 된다. 이른바 ‘눈물의 파산선언’으로 유명한 일본 3대 증권사 '''야마이치 증권'''(1998년 파산), 일본 최대의 지방은행 홋카이도 탁쇼쿠 은행(1998년 말 파산), 일본장기신용은행(1999년 파산)은 전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아시아 사업 손실 때문에 파산했다.
학자들은 자산 거품이 꺼지는 중에 금리 인상과 대출 총량 규제 등의 정책이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으로 보았고 이런 사례를 바탕으로 [[벤 버냉키]]가 이끌었던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시 미국은 금리 인하와 강력한 부양 정책을 펼치는 등 일본과 전혀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다.
=== [[주식]] ===
[[1980년대]] 초반 [[일본]] 기업들은 [[재테크]]를 벌이고 있었는데, [[1984년]]에 일본 대장성은 "투금 계정"[* 투금계정이란, [[재무상태표]]에만 나타나고 [[손익계산서]]에는 기타포괄손익으로 처리할 수 있는 특별자산들을 모아놓은 [[펀드]] 투자자산 계정이다. 기업들이 펀드 투자할 수 있는건 당연한 거 아닌가 싶겠지만, 일본에서는 [[1984년]] 이전까지 비금융권 기업이 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불법으로 규제해왔다. 회사의 본업을 망각하고 돈놀이에만 올인하면 안 된다는 이유. 한국에서는 불법이었던 적이 없다. 대신에 한국에 [[펀드]]라는게 유행을 탄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였기에, 1997년 이전에는 한국 기업회계에 투금계정이 있다 하더라도 기업에서 활용하지 않았던 것이다.]이라는 불법 계정을 합법화함으로써 기업이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이 때문에 기업은 [[자본이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증권사]] 투금 계정에 돈을 넣어두고 재테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1980년대]] 들어 성장세가 둔화되자, 정부에선 [[일본은행]]을 윽박질러 [[기준금리]]를 5.00%에서 '''2.50%'''까지 떨어뜨린다.
이는 은행의 대출 폭풍을 유발하여 엄청난 액수의 돈이 각종 자산에 쏟아진다. 은행의 고위 간부와 기업가, 그리고 이를 감시해야 할 관료가 서로 인맥으로 묶여있는 일본의 특성 덕분에 무분별하고 부주의한 대출이 많았다. 이는 일본기업의 재테크 수익을 높였고, 다시 주가가 오르면서 더 큰 재테크 수익을 벌어 들이는 '''악순환'''이었다. [[1985년]] 투금 계정의 잔액은 9조엔이었지만, [[1989년]]에는 40조 엔까지 팽창했다. 당시 [[일본인]]은 기업의 [[현금흐름]]은 신경쓰지 않고, 재테크로 불어나는 자산만 보고 달려 들었다. 이것도 일본 기업을 부실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언제든지 [[흑자도산]]이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PER]]이 67을 찍었고 전통적인 기업들이 성장주로 과대평가받기 시작했다.
[[일본]] 증시가 이렇게 폭등하자, [[일본 정부]]는 [[NTT]] [[민영화]]를 시작했는데, 공모가와 공모 주식 수를 발표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공모청약에 몰려들었으며, 상장 시초가가 120만엔이었다. 그럼에도 단 '''이틀'''만에 25%가 추가상승했고,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022600099208005&edtNo=1&printCount=1&publishDate=1987-02-26&officeId=00009&pageNo=8&printNo=6456&publishType=00020|2주만에 '''정확히 2배인 240만엔''']]까지 올랐으며, [[1989년]] 연말에는 400만엔 부근까지 치솟았다. --이쯤 되면 정말 개[[막장]]이다--[* 위 50대기업 시가총액 표에서 1위인 NTT항목을 보라. 2위와는 아예 자릿수부터 다른것을 알 수있다.] 당시엔 '''언젠가는 뜰 것이라는 예상'''이나, 수백만엔을 호가하는 [[NTT]]보다 주가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주가 폭등하는 등 [[막장]] 증시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 [[부동산]] ===
우주 한복판을 날고 있었던 [[주식]] 거품은 [[부동산]] 거품으로 합리화되었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토지 가격이 50배 정도 뛰는 동안 소비자 물가 지수는 고작 2배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즉, 땅값의 실질 가치가 25배 급등한 것으로, 이때문에 일본사회 전반에 토지 불패 신화가 확고하게 자리잡게 된다. "오르기는 해도 절대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당시 일본 부동산 버블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지가가 상승하는 와중에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6%에서 2.5%까지 떨어뜨리자 [[은행]]들은 대출 경쟁을 벌였다. A은행에서 8% 금리를 제시하면 옆 B은행에 가서 7.5% 대출을 제안 받고, 다시 그 옆 C은행에서 7% 대출을 받아 가며 토지 투기가 벌어졌다. 당시 [[LTV]]는 200%까지 치솟았다.[* 시장 가격 10억짜리 땅을 가지고 있으면 20억까지 대출해 준다는 소리. 물론 은행들이 '언젠간 2배가 될 거니까 그 정도 쯤 쳐줘도 된다'는 생각에 이런 담보율을 설정했다고 단순화시킬 수는 없다. 타 은행과의 경쟁, 실제 파산 비율 등도 고려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런걸 감안해도 LTV 200%는 그만큼 은행이 자신이 있었다는 뜻이고, 당시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2010년대 한국 [[LTV]]는 50% 선이다.] 이는 토지만 있으면 지가의 2배에 달하는 대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렇게 대량의 자금 수혈이 가능하다보니 아직 저렴했던 땅에 돈이 풀리며 지가를 올리고, 이 토지를 담보로 또 지가보다 더 많은 자금을 끌어오고, 이 돈으로 다른 저렴한 땅을 사고, 사 놓은 땅의 지가도 계속 오르니 추가 대출이 가능하고... 이렇듯 터지기 전까지 화수분처럼 불어나는 게 자본 버블의 특성이다. 이렇게 점점 [[미나토구(도쿄)|미나토 구]]를 중심으로 시작된 부동산 광풍은 도내를 넘어 도쿄 광역권 전체에 휘몰아쳤다. [[요코하마시]], [[가나가와현]], [[사이타마]], [[치바현]] 등... 더 무서운 건 이중 치바와 사이타마는 거품 붕괴 이후에도 지가가 요지부동이다. 이러다보니 [[도쿄]] 이외도 무사할 수가 없어, [[오사카]]에서 [[케이한신]]권으로, [[나고야]]에서 인근 광역권으로 등등 일본 전역에서 비슷 양상이 나타난다. 다만 [[농촌]]은 제외.[* 수도권에서 가장 멀리 있는 권역인 [[후쿠오카]]나 [[삿포로]]까지 가면 당시 소득 대비 큰 거품이 끼었다고 보기 어렵다. 산골은 말할 것도 없고...[[아라카와 히로무]]의 [[백성귀족]] 6권에서 이 당시 분위기를 전하는데,'''워낙 깊은 산골짝이라 땅값이 한푼도 안 올랐다고''' 말하는 아버님과 '''이놈의 땅을 [[긴자]]에 들고 가서 팔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하는 어머님의 표정이 압권.]
거품이 붙는 속도도 어마무시해서, 도쿄 지가는 [[1981년]]부터 버블 붕괴 직전인 [[1990년]]까지 5배 이상 폭등했는데 이중 대부분은 [[1987년]]~[[1988년]] 1년의 '''3배''' 상승분이다. 당시엔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농담이 유행하기도 했고[* [[http://www.nber.org/chapters/c8819.pdf|당시 토지 가격을 보자면,]] 미나토 구는 평당 1,900만엔, 스기나미 구는 350만엔을 기록했다. [[오사카]]는 평당 200만엔, 나고야는 85만엔, 후쿠오카는 45만엔까지 치솟았다. 긴자는 평당 1억엔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1980년대에!''' 그리고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20년 동안 지속적인 [[디플레이션]]을 겪었기 때문에 실질 가치는 명목상의 1,900만엔보다 '''훨씬 높았다'''.][* 미나토구 중에서도 아자부나 아오야마 같은 곳은 평당 5,000만엔에 육박했다. (출처:상기한 KBS스페셜)] 이 당시 도쿄 [[고쿄]](황거) 지가가 '''[[캘리포니아]] 주 전체 지가'''와 맞먹었다.
그리고 유독 무시무시한 폭등을 이어간 지역이 있는데, [[도쿄메트로]] [[긴자선]] 연선 지역이 여기에 속한다. 특히 신바시, 아사쿠사같은 동네는 무려 10배 이상, 아오야마는 15배나 폭등해서 신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이 시기에 민영화된 국철은 부채 청산을 위해 [[시오도메역|시오도메 화물역]] 부지[* 현재의 시오도메 시오사이트 부지.] 매각 사전작업을 진행하였으나, 지나치게 높은 토지 가격으로 인해 과열 경쟁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매각 보류가 되었다. 그런 이유로 화물역 기능이 철거된지 10여년이 지난 [[1997년]]에 들어서야 겨우 개발될 수 있었다. 땅값이 워낙 높아진 탓에 도쿄의 상업용지값은 거품이 터지기 이전인 80년대 말에 하락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건 역으로 따진다면 암만 월급이 올라도 집을 사기에는 택도 없다는 셈이므로 당시 내 집 마련을 꿈꾸던 당대 일본 월급쟁이들에게 상당한 재앙이었던지라 [[http://money.cnn.com/magazines/fortune/fortune_archive/1990/05/21/73567/|100년 만기대출]]같은 황당한 상품이 등장하기도 했고, 직장인 때문에 [[지바]]현이나 [[사이타마현]], [[가나가와현]], 도쿄 중서부지역[* 타마지역, 이 지역은 한국으로 친다면 [[1970년대]]-[[1980년대]] [[강남구]]나 [[노원구]] 비슷한 지역이라고 볼수 있다.], [[이바라키현]] 남서부 지역의 인구가 급증하기도 했다.[* 하지만 버블 붕괴 후엔 상황이 반전되어서 상속을 받았다가 거액의 세금을 무는 바람에(이 경우에는 버블 시기에 재산 신고해서 서류상 재산은 빠방했는데 막상 상속받을 시기가 되자 부동산이 팔리지 않아 애물단지가 되어 버리고, 설사 부동산이 팔리더라도 엄청나게 손해를 보기 때문에 세금 감당도 못할 지경이 되면서 결국 파산하게 되는 것) 파산하는 일이 잦아서 상속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공공 임대 아파트의 공급은 이에 훨씬 못미쳤기에 청약 경쟁률이 턱없이 높았다.
당연히 [[난개발]] 지역도 땅값이 폭등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더 심각한 것은 버블이 꺼진 후에도 [[사이타마]]나 [[치바]]의 땅값은 그리 떨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미 [[도쿄]]에서 한번 유출된 인구가 복귀하지 않으면서 교외 지역 수요층으로 편입된 것이다. [[1981년]] 대비 [[1991년]](버블 붕괴 시작할 때)의 사이타마나 치바 땅값은 3~4배 정도 상승했는데, [[2015년]] 현재까지도 그 수준에서 유지가 되고 있다. [[대기업]] 종사자는 보너스가 왕창 나오던 시절이었고 중소기업도 인력 부족으로 봉급이 올랐기 때문에 집을 사는 것만 포기하면 풍족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당대 [[일본 문화]] 산업이 전례없는 호황이었던 것도 이런 영향이 크다는 의견도 있는데 암만 월급 모아 봤자 집을 살 수는 없으니 포기하고 문화 생활이라도 즐기려는 젊은층이 많아서 그렇다나.
오늘날 [[도쿄]], [[오사카]] 등 일본 [[대도시]]의 주요 거점 [[스카이라인]]은 대부분 이 시기에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주쿠]], [[시부야]], [[이케부쿠로]], [[롯폰기]], [[우에노]], [[오다이바]](이상 도쿄), [[우메다]], [[난바]], [[텐노지]], [[쿄바시]](이상 오사카), [[나카교]](교토), [[미나토미라이]](요코하마) 등. [[1990년대]] 이후에 완성된 일본 주요 대도시 상업 지구는 신주쿠, 시부야, 우메다, 난바 정도를 빼면 [[1981년]]까지만 해도 빈민가나 놀고 있는 공지였다.
땅값 폭등으로 이 동네에 주거 지구를 남겨두는 것보다 상업 지구로 철저하게 [[재개발]]하는 것이 몇 배나 남는 장사가 되면서 부동산개발 회사가 난립했고,[* 개중에는 '지아게야'라 해서 야쿠자가 운영하는 개발 회사들도 많았다. 이 경우 굉장히 폭력적인 방법까지 동원해서 억지로 땅을 사들였기 때문에 원주민 입장에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https://news.joins.com/article/2842002|#]]] 이 회사들이 자체 [[도시계획]]을 짜고 부지를 [[지방자치단체]]나 소유주로부터 사들인 뒤 [[1986년]]부터 전부 오피스 지구로 재개발하게 된 것.[*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이런 상황이면 공공기관에서 토지 수용 후 전면 개발한다. 공공의 수용이므로 감정가의 2배 이내에서 수용가가 결정된다. 반면에 [[일본]]에서는 공공의 수용이 아닌 민간이 토지를 다 사야 하므로 개중에 몇 몇 알박기 등으로 인해 토지가가 무한정 올라갈 수 있다.] 한국의 건설사가 자체적인 도시 개발 능력이 뒤처지는 데 비해[* 한국은 일개 건설사가 독자적으로 도시 개발을 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보통 [[한국토지주택공사]]나 지방공사가 도시개발을 하고 건설사는 단지 시공만 한다.] 버블 붕괴에서 살아남은 일본 건설사는 자체적인 도시 개발 및 건축 기술을 축적하여 [[1990년대]] 이후에도 전 세계적으로 [[신도시]] 개발 수주를 따내고 있다. 파산한 부동산 업계와 건설사의 [[미분양]] 물량까지 살아남은 회사들이 인수하여 완공한 것이 [[2000년대]] 이후의 일본의 스카이라인이다.
=== [[골프장]], [[호텔]], [[리조트]], [[스키장]] ===
주식과 부동산 투기가 [[커피]]라면, '''[[골프장]]과 [[골프]]회원권, [[호텔]] 투기는 [[티오피]]'''였다.
[[일본인]]들은 1980년대 갑자기 돈이 흘러넘치자, 상류층끼리 친목을 다지기 위해 골프장과 골프회원권, 호텔 투기가 극성이었다. 특히 1986년 일본 경제성장률이 -0.5%를 찍어 금리를 낮춘 이후로 유독 심해졌는데, 이를 근거로 일본 버블경제의 시작을 이 골프 회원권과 호텔 투기 시점으로 보는 미국 경제 학계의 연구도 많다.
특히 이 쪽은 '''[[야쿠자]], [[정치인]], [[관료]]의 이권개입'''까지 겹쳐서 상황이 매우 심각했다. 유력 부자들이 돈을 모아 [[골프장]]이나 [[호텔]]을 짓자고 하면, 그 지역의 정치인, 관료와 접촉하여 골프 회원권과 호텔 분양권을 담보로 허가를 받는다. 그리고 [[용역깡패|야쿠자를 동원해서 수용대상지에 있는 주민을 강제로 쫓아내고]] 심지어 '''토막살인'''까지 저지르는가 하면, 1988년에는 야쿠자가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해 '''[[공구리|일가족을 전부 살해하고 콘크리트에 묻어 바다에 수장시킨 사례]]'''도 있었다.
이런 골프회원권, 호텔 투기는 1991년 대출 총량규제가 발동되고 투자자와 야쿠자, 지역 정치인까지 한 번에 대형 손실을 보면서 서로 죽이는 사건으로 번지는 등 후유증이 심각했다.
일본 수도권 지역의 골프회원권 시세는 1990년 정점을 찍고 1999년 97% 폭락한 뒤, 2018년 지금까지도 고점대비 3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오히려 공급 과잉과 일본 상류층들의 취미 변화(골프→승마)로 인해 골프장이나 호텔이 줄도산했다. 권리가 불분명하거나 땅주인이 증발한 경우도 있는데다가 철거비용도 만만찮아서 [[재개발]]로 철거되는 경우는 운이 좋은 편이고, 을씨년스럽게 방치되는 것이 대다수인데, 지금도 일본의 시골지역에는 버려진 골프장이나 호텔이 많은 편이다.
스키장 또한 골프장과 리조트와 함께 지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의 경우 홋카이도 뿐 아니라 [[혼슈|본토]]에도 호설지대가 많아(ex.[[니가타현]]) 한때 일본 전역에 스키장이 1000여 개에 달했다는 통계가 있다. 물론 그냥 하나의 산에 여러 리프트를 세워두고 운영주체가 다른 경우 서로 다른 스키장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지만 일단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지금도 산골 스키장과 지방 공항([[도야마 공항]] 등)은 해외 스키 투어가 지역사회의 큰 관광동력인 경우가 많다.
이런 투기 세태가 당대의 작품에도 반영된 케이스가 있는데, 바로 [[소년탐정 김전일]] 시리즈. 몰락한 리조트나 골프회원권을 사이에 두고 이권 다툼으로 살인사건을 벌이는 에피소드의 소재가 이것이다. 같은 만화에서 허구헌날 스키장 고립사건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투기 사태에도 불구하고 오이타현의 유후인 같은 몇몇 지역은 개발을 자제했는데, 지금은 이 때문에 오히려 관리가 쉬워서 현대에도 많은 사랑을 받는다고 한다.
=== [[일본|국내(일본)]] ===
* [[외제차]] 수입이 급증해 [[벤츠]] 주력 모델이던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W201 190E]][* 현재 팔리는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의 전신이다. 당시 상대는 BMW의 3시리즈.]는 너무 많이 보급돼 '코벤츠'[* 아기벤츠(子ベンツ) 혹은 작은벤츠(小ベンツ)로 해석 가능.]로 불렸으며 [[BMW E30]]은 [[롯폰기]] [[토요타 코롤라|코롤라]][* 토요타의 준중형 세단. 한국에서 흔히 쓰는 "강남 [[쏘나타]]"와 비슷한 표현이다.]란 별명이 붙었다.여담으로 이 두 차량은 당시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한국에도 수요가 넘쳐서 이때 나왔던 물건을 이삿짐 명목으로 들여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스포츠카들의 수요도 대폭 증가했는데. 국내[* 한국이 아니다. 여기서의 국내는 일본을 말한다.]에선 [[토요타 수프라|수프라]]와 [[혼다 NSX|NSX]], [[닛산 스카이라인 GT-R|스카이라인 GT-R]]. [[마쓰다 RX-7|RX-7]], [[미쓰비시 GTO]] 등이 수요들을 노리고 제작이 되었으며. 외제쪽에선 페라리와 포르쉐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고, [[페라리 테스타로사|테스타로사]]와 [[포르쉐 911|911]]의 수요가 엄청 많았고. 특히 플래그 쉽에 한정생산이였던 [[페라리 F40|F40]]과 [[포르쉐 959|959]]도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전술하였듯 지금 한국에서 돌아다니는 오래된 병행 수입 차량 대부분이 이시기 일본에서 출고된 차를 한국에 들여온 것이다.]
* 당시에 출시된 이륜차 역시 초고성능 및 고가의 파츠로 도배되었다. 400cc나 250cc 의 저배기량에서 4기통엔진을 쓴다거나 온갖 호화로운 부품은 현재 나오는 것과 비교해도 넘사벽의 포스를 갖고 있었다.
* [[프리터]]도 이 때 유행하고 있었다. 언제든 취업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새로운 낭만적인 라이프스타일 쯤으로 취급받았다. '''[[면접]]만 받으러 가도, 교통비로 쓰라며 3~5만엔을 꽂아주는 시대'''였으니 면접만 보러다니는 사람까지 있었을 정도.
* [[테마파크]]도 우후죽순으로 지어졌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은 노동 시간 최장 국가 중 하나였고[* 연간 노동시간이 2,200시간 정도였다. 참고로 [[OECD]] 노동시간 2위를 찍은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16년]]기준 2,113시간이다.] 당시에는 주당 44시간 노동제였기 때문에 야근은 물론이고 토요일 오전에도 일하거나 학교에 다니는 건 당연했는데, 국내외에서 여러모로 지적 받는 일이 많아지자 1987년 [[주5일제]] 도입을 시작으로 차츰 노동 시간을 줄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시기가 버블이랑 겹치면서 여가 시간도 늘어나고 돈도 넘쳐서 테마파크붐이 일게 된 것. 후나바시 시에는 일본 최대의 실내 스키장인 자우스[* 지금은 망해서 [[이케아]] 일본 1호점이 생겼다. 그러나 이 이케아는 엄밀히 말해서 최초의 일본 1호점은 아니다. 일본에서 한 번 실패를 겪은 뒤 [[2000년대]]에 재진출해서 리부트로 1호점을 다시 세웠는데 공교롭게도 자우스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가 생기는가 하면 [[미야자키]] 현에는 한때 세계 최대 [[워터파크]]라는 전설이 전해지는 오션 돔이 생겼다. [[하우스텐보스]]도 비슷한 흐름을 타고 생겼으며, 그 외에 여러 지방 도시에 테마파크나 박물관이 들어섰다. 물론 80년대 초에 생긴 [[도쿄 디즈니랜드]]가 흥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 일조한 듯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거품이 꺼진 뒤 하나둘씩 망했고, 오션돔도 거품이 꺼지더니 세계 최대 워터파크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파리만 날리다 2000년대 중후반 망했다는 [[전설드립|슬픈 전설]]이 있다.[* 지브리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치히로의 부모님이 작중 주요 배경이 되는 유바바의 목욕탕과 부속시설을 거품경제 당시 만들어졌다가 망한 테마파크로 오해한다.] 더 안습인 건 탄광산업이 사양세로 접어들 때 생명줄로 버블을 타고 볼거리를 유치하려다 [[유바리시|그 볼거리마저 거품이 꺼지자 도시까지 끌고가서 망한 동네]]도 있다. [[도쿄 디즈니랜드]] 정도만 제외하면 버블시대에 생긴 테마파크 중 살아남은 곳이 있다고 해도 불황때문에 여전히 힘들다. [[하우스텐보스]]조차 예전만 못하다고. 우후죽순으로 생겼던 대형시설이 2010년대 이후에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205279435g|여기]]로. 굳이 장점을 꼽자면 도시권역을 개발하고도 돈이 남다 보니 지방도시까지 퍼져서 어지간한 시골에서도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문화 인프라가 많이 확충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인구 감소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서 지금 대가를 치르는 중. 앞서 말한 테마파크의 난립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 일본 기업의 아이디어가 기발하거나, 독창적인 제품을 생산한다는 이미지가 버블경제의 영향이라 분석도 있다. 기업이 기술부문에 투자하고도 남아도는 잉여의 돈으로 괴상한 제품을 만든 것. 그 시절 일본의 자동차, 제품 등을 보면 그저 돈지랄로 보이는 게 많다. 물론 당시로서는 일본의 화려한 발전에 눈이 멀어 마냥 우러러 보는 시선이었지만.[* 1980년대 일본 전자 기업들이 완전한 오리지널은 아니더라도 각각의 8, 16비트 컴퓨터 아키텍처를 갖고 있었던 것을 상기해 보자. 현재 전기8사로 일컬어지는 대형 전자기업 중 NEC, 후지쯔, 샤프, 히타치 등은 CPU에서 모니터 브라운관까지 대부분의 부품을 자사 공장에서 만들어서 자사 소프트웨어로 돌리는 PC를 출시할 수 있었다.]
* 일본인의 [[루트비히 판 베토벤|베토벤]] [[교향곡 제9번(베토벤)|교향곡 9번]]에 대한 병적이라고 해도 될 만큼의 애정이, 돈과 인력을 때려박아 매머드급으로 팽창한 것도 이 시기였다. 매년 2월 중순 혹은 하순에 도쿄의 실내체육관인 료고쿠 국기관에서 5,000명(!)의 합창단을 모아놓고 공연하는 [[http://www.5000dai9.jp/|국기관 5천명의 제9 콘서트]](1985~), 간사이 지방에서 가장 큰 이벤트 홀인 오사카성 홀에서 10,000명(!!)의 합창단과 공연하는 [[http://www.suntory.co.jp/culture-sports/daiku|산토리 1만명의 제9]](1983~), [[히로시마]] 최대의 이벤트홀인 히로시마 선플라자에서 1,000~2,000명 규모의 합창단과 공연하는 [[http://www.rcc.net/event/daiku|제9 히로시마]](1985~) 같은 이벤트성 공연이 시작된 것 역시 이 시기였다. 이 때의 영향으로 수많은 가수들이 교향곡 9번의 An Die Freude를 [[일본어]]로 커버했으며, 일본어 커버 버전뿐만이 아니라 [[독일어]] 원곡 버전도 일본제 노래방 전기종에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물론 버블 당시의 일인지라 버블시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는 현재의 젊은 층은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 [[자위대]]는 버블경제를 바탕으로 군비증강을 단행해 80~90년대의 기간 동안 [[F-15J]],[[E-2]],[[공고급 구축함]],[[패트리어트 미사일]]과 같은 첨단무기들을 도입했으며 해공군력의 질은 당시 중국군을 크게 앞선다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였다. 해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에서 운용하는 무기체계들은 남북한 해공군이나 중국 해공군보다 훨씬 우수했다. 일본 해상자위대 장교들은 중국군 장교들 앞에서 자신있게 '''단독으로 중국 해군을 전멸시킬 수 있다.'''라고 자신감을 드러냈으며 90년대 이후 일본과 본격적인 외교갈등에 들어선 한국에서도 [[기어링급|당시]] [[포항급|처참한]] [[울산급|해군력의 실태]]가 조명되면서 분쟁 시 일본에 해상봉쇄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많아졌다. 공교롭게도 버블이 붕괴되고 중국과 남한이 국방비를 본격적으로 크게 늘리고 우수한 해공군 전투체계들을 도입하면서 자위대의 압도적 해상전, 공중전 우세는 상실된 상태이며 특히 중국의 경우 2010년대 이후 자위대의 해공군력을 역전해 양적으로 질적으로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이다.
* 물론 자위대에게 마냥 좋은 시절은 아니었던것이 모병제 특성상 인력난에 시달렸던 시절이었다. 중소기업도 취직하러오는 사람이 없어서 발 동동 굴리던 시절인데 그 중소기업보다도 급여수준이 떨어지는 자위대가 인력모집이 활발히 이루워질리는 없었다. 사실 90년대 중반~2010년대 초의 취업빙하기 시절에도 자위대는 돈없는 사람들이 별수 없이 가는곳, 막장 취급을 받았는데 당연지사였기는 했다.
* [[술집]]의 접대부들은 부자가 된 부동산 업자들을 상대로 서비스를 하다 보니 생일 선물로 '''아파트나 집 한 채를 선물받기도 했으며''' 자가용 자동차는 물론이고 온갖 명품으로 온 몸을 도배할 수 있었다. 부동산 업자들은 [[팁]]으로 접대부의 가슴에 액수를 세지도 않고 '''10만엔 지폐 다발을 끼워넣어주었다.'''
=== 해외 ===
일본의 부동산 광풍은 해외까지 뻗어나가 [[미국]]의 [[록펠러 센터]]([[미쓰비시그룹|미쓰비시]]가 매입),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일본인, 미국인 투자자가 파트너십을 체결해 매입)이나 [[컬럼비아 픽처스]]([[소니]]가 매입), [[유니버설 픽처스]]([[파나소닉]]이 매입) 등을 싹쓸이하기도 했다. 이 당시 일본 자본의 해외 진출을 두고 치를 떨면서 록펠러 센터가 넘어갈 쯤 '''일본이 제 2의 [[진주만 공습]]을 감행하고 있다'''는 표현까지 나왔을 정도이다. 특히 [[록펠러 센터]]가 미국에 있어 상징성이 큰 건물이었던 만큼 그 소식에 대해 착찹하게 여겼던 미국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되자 되려 [[미국]]에서 일본이 세계 경제를 장악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번지기 시작했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 중 많은 수가 '''미래에는 경제적으로 [[일본]]이 [[미국]]을 능가할 것'''라는 예측과 함께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시기 유행한 [[사이버펑크]] 장르에도 미래 기술과 일본 문화가 융합하여 등장하는 것 역시 버블경제와 절대 무관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블레이드 러너]]([[1982년]])에서는 2019년의 [[LA]]의 [[길거리 음식]]으로 [[일본 음식]]이 자연스럽게 팔리고 있으며, 가게 주인도 일본인이고, 전광판 광고로 [[기모노]] 입은 일본인이 나온다[* 이 기모노 입은 일본인은 훗날 영화 블랙팬서에서 ~~여자 [[꽈찌쭈]]~~ 수산시장 아줌마로 나온다. “사고치기 좋아하는 애들이라구?”라는 명대사를 남긴다.]. 영화 [[백 투 더 퓨쳐]]에서는 미래(2015년)에 기업은 일본 기업 외에는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다이하드]]에서는 사건이 일어나는 빌딩이 일본인 소유의 나카토미 타워였고[* 빌런은 독일계인데 독일도 플라자 합의에 일본과 같이 불려나간 전적이 있다.], [[로보캅]] 3편에서는 일본 기업이 악역으로 나왔다.[* 이러한 것들의 영향으로 SF의 상류층 집은 일본적인 인테리어나 정원 등을 가지는 모습이 종종 묘사된다. [[블랙 레인]](1989년)은 아예 일본 본토까지 날아와 찍었고, [[데몰리션 맨]]에서도 지배층은 [[일본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톰 클랜시]]의 적과 동지가 일본의 북마리아나 제도 침공을 다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제국]]과 [[전쟁]]을 했던 [[미국인]]들이 많이 살아 있었다. 당장 1988년 미국 대선에서 당선(임기 1989~1993)됐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대통령이 '''태평양 전쟁 참전 용사'''였다.[* 것도 [[치치지마 식인 사건]]의 희생양이 될 뻔했다! 그래서 1989년 [[쇼와 덴노]] 사망 이후에야 "이제야 겨우 일본을 용서할 마음이 들었다"라는 술회를 했고, 장례식에도 참석했다.] 그러다보니 태평양 전쟁 참전용사들을 위주로 해서 1980년대에 미국의 자산들을 싹쓸이로 쇼핑하던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찔렀다. 당시 일본에서는 자꾸 미국 언론들이 일본을 비난하는 기사가 늘어나니 '''"미국 언론사까지 인수하면 미국 애들이 좀 닥치지 않을까?"''' 라고 응수했다.(...) --미국 영화사들을 사들이기는 했다-- 이런 응수는 미국 언론사는 아니지만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를 [[2015년]]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전액 현금 일시불'''로 질러버리는 모습을 통해 반쯤 실현됐다.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뛰어오르면서 이를 [[담보]]로 한 대출도 급속도로 많아지고 시중에 풀리는 돈이 급증하자, 넘쳐나는 돈을 쓰기 위해 일본인은 세계 명화(名畵)를 싹쓸이하기 시작했다. [[1987년]] [[3월]]에 [[고흐]]의 [[해바라기]]를 3629만 달러에 낙찰받은 등[* 이게 왜 남아있냐면, 이 해바라기 최고가 낙찰 기록은 '''무려 17년이나''' 있다가 갈리기 때문이다.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엄청난 금액이 아닐수없다.](실제 매입비용은 수수료 등을 포함하여 $39,921,750이었다), [[피카소]]나 [[르누아르]]를 비롯하여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나온 미술품을 모조리 사들였다. 예술품은 경매가가 정해지면 그 다음 경매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거래가가 치솟을 수 있으며,[* 물론 거품 꺼진 뒤에는 예술품 가격도 폭락했다.] 부를 과시하는 수단[* 당시 돈 좀 있다 싶은 부동산 회사는 명화를 입구부터 사장실까지 걸어 놨다고 한다. 미국인이 사업차 와서 이를 보고 [[뒷담화]]를 까기도 했다고]이었기 때문이다.
거품이 꺼진 이후에 은행이 담보로 압류한 미술품이 너무 많아서 일부는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은행 창고에 잠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미술품 특성상 제대로 보존 처리를 받지 못하면 아무래도 쉽게 손상되기 마련이고, 이런 작품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보면 이전의 가치가 제대로 남아 있기 힘들다. 그래서 버블 이후에 몇몇 명화는 압류하고 있던 은행까지 도산해버려서 영영 찾을 수 없게 된 것이 있다. 이런 작품이 대략 백여점 쯤 된다. 보통 이렇게 소실된 미술품은 모조품 제작 등으로 전시회에 나오긴 하는데, 전시회 [[큐레이터]]가 '이는 모조품이며 진품은 소실되었다'고 말해준다.[* 만화 [[갤러리 페이크]]에서는 주인공 [[후지타 레이지]]가 이렇게 거품경제에 미친 졸부와 은행들의 농간에 휘말린 명화들을 거래하거나 복원하다가, 진품은 자기가 챙기고 복제품을 파는 식으로 나름대로의 복수를 하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실제로 한국인이 유럽 유명 화가의 작품을 보고 싶으면, 외국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초대전으로 작품이 잠시 한국에 온 때 보는 경우가 아니면 결국 외국에 나가서 봐야 한다. 이 때, 유럽이나 북미의 미술관이 너무 멀면 일본이 훌륭한 대안이다. 유럽이나 미국을 제외하면 세계적인 명화가 매우 많이 있는 나라가 일본이기 때문이다. 물론 비전공자도 알 수 있을 만한 유명 화가의 대표작은 다 서양에 있지만, 그런 최고 등급의 대표작을 제외한 바로 아래 등급의 작품은 일본에 매우 많다.
실제로 한국의 미술 전공자가 유명 화가의 원화를 보러 일본에 다니는 사례가 꽤 있다. 국립서양미술관, 브리지스톤미술관, 모리미술관, 국립 신미술관, 요코하마미술관, 손보저팬 도고 세이지 미술관 등 수도권 미술관 뿐 아니라 야마자키마작미술관, 나고야시 미술관, 히로시마 미술관 등 지방 미술관조차 그 컬렉션의 양과 질에서 한국과 비교되지 않는다. 다 거품경제 시절에 넘치는 돈으로 전 세계에서 미술 작품을 사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
다만 이 해외 투자가 완전한 헛짓은 아니다. 이 투자 덕분에 일본은 지속적으로 상당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는데, 오늘날에도 일본은 여전히 대외 순자산 및 외국 채권 보유 규모가 세계 1위로 2위인 [[독일]]의 2배에 육박하며, 매년 30~40조엔 가까이 되는 막대한 해외 수입(본원 소득수지)으로 수십 년 동안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경제]]에 있어 이것이 [[외환위기]] 같은 본격적인 붕괴를 막아주는 최후의 보루임을 감안하면 차라리 처음부터 국내의 [[버블]]에 미쳐 돌아가는 어리석은 짓 대신 해외 투자에만 전념했다면 지금 같은 꼴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후에도 숱한 대내외적 이슈가 있었으나 버블 붕괴에 비하면 그 충격은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반대로 말하면 버블 붕괴 충격이 그만큼 거대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에도 해외 자산 투자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 결과 오히려 지속적으로 일본 기업들의 해외 자산 보유 건수는 늘어나는 편이다. 비전펀드를 통해 전세계 IT 기업들을 실시간 쇼핑하는 [[소프트뱅크 그룹]]을 이끄는 [[손정의]] 회장, [[2008년 세계금융위기]] 과정에서 [[리먼 브라더스]]를 인수한 [[노무라 증권]], [[모건스탠리]]를 인수한 [[미쓰비시 UFJ 은행]], [[2015년]]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를 '''전액 현금 일시불'''[* [[파이낸셜 타임즈]]는 원래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과 [[블룸버그]]가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고 경쟁했는데, __인수의향서를 제출하지도 않았던__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의 키타 츠네오(喜多恒雄) 회장이 파이낸셜 타임즈의 모회사 [[피어슨]] 그룹의 회장을 1:1로 만나서 '''007 가방에 들어있는 현금 다발을 보여주고''' 그 자리에서 니혼게이자이의 FT 인수가 확정됐다.(...) --이게 무슨 첩보 영화도 아니고-- 사실 이런 인수과정은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고 정식으로 인수 경쟁을 하는 인수 후보 기업들한테는 '''엄청난 결례'''다.]로 인수한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이 있다. [[2019년]] 다케다제약은 [[아일랜드]] 제약사 샤이아를 니혼게이자이신문처럼 '''전액 현금 일시불'''로 인수했다. ~~물론 [[웨스팅하우스]]를 집어먹고 배탈이 난 [[도시바]]처럼 다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건 아니지만....~~ 그러나 [[2010년대]]에는 일본 기업의 해외 자산 인수 행렬이 그다지 욕을 먹지 않는데, [[중국]]의 해외기업 싹쓸이가 [[1980년대]]의 일본보다 더 미친듯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의 기술 유출, 탈취까지 생각하면... 그러다가 [[미국-중국 무역 전쟁]] 발발로 인해 2019년 해외 기업 [[M&A]] 실적은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38|다시 일본이 중국을 앞섰다고 한다. 2012년 이후 6년 만이라고.]]
=== [[붕괴|터지기 시작한 거품]] ===
> 버블 당시에 일본 국민들은 버블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 같은 공무원도 몰랐고, 언론인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정치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본 국민 전체가 버블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 ----
> 니시무라 요시마사, [[와세다대학]] 경제학부 교수, 전직 [[대장성]] 은행국장
||<width=50%>[[파일:버블경제.png|width=100%]]||
|| [[닛케이 225]]의 '''1970 ~ 2007년의 기록''' ||
1990년과 1991년 수치에 주목해 보자. 2010년대 [[아베노믹스]]를 기점으로 엄청난 회복세를 보이는듯 했지만 2만 초반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중앙은행이 엔화를 찍어내고 그걸로 주식을 사서 억지로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엔화가 기축통화에 준하는 격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미국에서도 연준이 주가 부양을 위해 비슷한 일을 한다. 당연히 [[인플레이션|한국에서 하면 큰 일이 난다.]]] 닛케이 지수는 1991년 버블 경제 붕괴 이후 29년만인 2020년 11월 11일에야 25,000을 넘는다. 그마저도 [[코로나바이러스-19]] 백신 개발 진전에 따른 경제활성화의 기대감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다.[[https://www.yna.co.kr/view/AKR20201111135300073?input=1195m|#]]
1990년 새해 첫날부터 주식에서 지나치게 높은값으로 거래가 끊기자 가격이 하락하고 매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거품경제 붕괴의 전형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연말에는 연초 최고치의 절반수준으로 급감, 그리고 1990년대 후반에 IT버블로 잠깐 동안 주가가 상승하나 싶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 IT거품이 꺼지면서 그 절반으로 급하락. 물가 역시 계속해서 디플레이션을 거듭하고 있다.
[youtube(-D7GIBs8QAU)]
부동산 시장은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의 구두개입과 토지구역 감시제도 마련 그리고 금리 인상[* 본래 일본은 [[플라자 합의]]로 인해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위해 금리 인하를 단행했으나 부동산 시장의 과도한 거품으로 인해 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에도 불구하고 [[1991년]]까지 버텼지만, 1990년 [[3월]] 27일에 [[하시모토 류타로]] 당시 대장성 장관이 발표한 '''대출 총량규제'''[* 실시 기간 : 1990.03.27 ~ 1991.12.20]로 고꾸라졌다. 대출 총량규제는 쉽게 말하면 총량규제 발표 시점부터 '''신규 부동산 대출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였다. 발표 시점부터 6개월간 전면 금지하고 이후로도 3년간 이전에 '''200%까지 막나가던 [[LTV]]를 감정평가액의 70%로 제한'''했다. 이러다보니 대출이 없으면 매매가 끊기는 부동산 시장의 특성상, 매매는 없이 호가만 대폭락했다. 이 때 정부의 대책에는 연착륙이라는 생각이 없었는데, '''"땅 가지고 아무것도 안 하고 돈 버는 놈들은 망해도 싸다"'''는 생각을 지녔으며, 류타로도 일본 전체 경제에 다소 영향이 있을 순 있으나 비정상적 경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선 감내할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곧 엄청난 오판이었음이 드러났고, 나중에 아시아의 연쇄 IMF 사태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등의 경제위기에서 정부의 빠른 대책이 필요하다는 교훈으로 남게 되었다. 버블이 붕괴된 직후 투기업자들과 건설 업계들이 무너졌고, 이들과 깊은 연관이 있었던 금융기관들이 부실채권을 떠맡게 되는 여파로 부실화된 금융기관들의 연쇄도산도 이어졌다. 부실채권이 막대해져서 '''일본 정부에서도 환수를 위한 관련 기구를 설치할 정도였다.''' 그리고 도미노의 붕괴처럼 자연스럽게 금융기관에 대출을 했던 일반인들까지 큰 경제적 타격을 입으며, 불황을 맞게 된 기업들은 임금삭감과 대량의 해고를 동반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는 일본 서민 대다수의 지갑문을 닫게 만들었고 소비도 당연히 얼어붙어 경제에 악순환이 가중되었다.
버블이 완전히 사라진 1992년부터 엔화 기준으로 [[경제성장률]]이 0.8%(1992), 0.2%(1993), 0.9%(1994), 2.7%(1995), 3.1%(1996)으로 어느정도 회복되나 싶더니... [[태국]]을 위시로 한 아시아 [[외환위기]]로 일본 기업의 동남아 및 한국 투자자산이 대거 파산하며 일본 기업도 다시 줄도산, 1998년부터는 '''엔화 기준으로도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된다. -1.1%(1998), -0.3%(1999), +2.8%(2000), 0.4%(2001), 0.1%(2002) 등. 이러다보니 일본에서 엔화 기준으로 완전히 경제성장률 통계를 바꾼 건 [[1998년]]부터이다. 1997년까지만 달러기준 성장률을 발표하다가 1998년부터 폐지했다. 일본인의 소득이 늘어나기는커녕 꾸준히 제자리걸음인데도 달러화 기준 GDP는 끝없이 성장하는, 일본의 생활상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버블 붕괴는 당시 [[일본/경제|일본의 경제]]에 치명타를 가했으며, 이로 인하여 이후로도 수십년간 엔화 기준 마이너스 성장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당시를 '''[[잃어버린 10년/일본|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는 이유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마이너스 성장은 [[아베노믹스]]를 위시한 강력한 양적완화 드라이브를 통해서 다소 나아지긴 했으나, 그럼에도 그 엄청난 후폭풍의 피해는 20년이 지나기까지 영향을 미쳐 2014년 기준 가처분 소득은 85년 수준 이하까지 떨어졌다. (자세한 것은 후술)
버블이 붕괴되면서, [[폐건물]]이 늘어났으며, 시골이나 공터에 방치되는 [[자동차]]들도 늘어나게 되었고[* 그래서 이 시기에 많은 수입차들이 한국, 중국, 동남아, 러시아로 중고로 팔려나갔다.], 거리나 공원에는 [[홈리스]]가 속출했다.
> 거품경제 당시에는 100만 엔 코트, 80만 엔 양복을 입고 다니고 예쁜 여자에게 모피코트를 입혀서 데리고 다니고 커다란 반지를 끼고 활보하던 분들이 지저분한 옷을 입고 술 취해 다니는 것을 보면 가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 ----
> 모치즈키 아케미, [[긴자]] [[호스트바|클럽]] 르 자르댕 [[포주|사장]]
* [[울트라맨]]과 [[고질라]]의 미술감독이었던 스즈키 요시오는 '''총 12억 엔이라는 거금을 대출까지 해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버블 붕괴로 문자 그대로 쪽박을 차게 되고 빚독촉을 받게 되었다.[* 여담으로 이로 인해 그의 아내는 우울증에 걸리게 되고 심지어 자살시도까지 했을 정도로 가정도 파탄이 났다. 〈욕망과 혼돈의 기록, 도쿄 1991〉 당시 스즈키의 집이 나오는데 아내가 머물고 있는 문을 찍기만 할 뿐 얼굴도 비추지 않는 것으로 보아 우울증이 현재까지도 진행중임을 알 수 있다.]
* 자타공인 부동산 재벌 가수이자 3000억 엔의 부동산 자산가 센 마사오[* 별빛의 왈츠, 북국의 봄 등으로 유명했던 엔카 가수. 향토적인 외모와 양 눈썹 사이의 커다란 검은 사마귀(현재는 없음)가 트레이드 마크였으며, 노래 또한 서정적이고 향토적인 분위기의 곡이 많았다. 당시 사람들은 '센' 마사오가 아니라 '억' 마사오로 불렀고 전용 헬기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업을 했고 그를 풍자한 개그 프로그램 등이 만들어질 정도였다.]는 '''1030억 엔의 빚을 지고'''[* 본래 3천억엔에 달했지만 현재 은행으로의 공적 자금 투입으로 인해 최종적인 개인 부채액은 1,034억엔이 되었다.]파산한 것은 물론이고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했다. 전성기 때는 '''일주일 동안 수억 엔 단위의''' 부동산 거래를 하던 그였지만 파산 이후 길거리에서 공연할 때는 '''밴드를 구성할 돈 조차 없어서 녹음된 음반을 재생'''해야 했을 정도로 궁핍했다고 한다.
* 도쿄 시내에 빌딩 70채 소유에 8000억 엔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 사업가 코지마 노부타카는 버블 붕괴로 인해 전 재산이 붕괴되고 100억 엔의 빚만 지게 되었다. 다만 위에 파산해서 궁핍하게 살아가는 이들과 다르게 빌딩 한두 채 정도는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듯.[* 그가 진 100억엔의 빚을 다 갚기까지 소요될 기간을 직접 계산해서 보여줬는데 무려 '''8333년이 걸릴 것이란 답이 나왔다!''' 한마디로 평생에 못갚는단 얘기].
== 각종 부정부패 사건 ==
=== 오노우에 누이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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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우에 누이(尾上縫)[* 이명으로는 [[오사카]]의 흑녀, 거품 부인(Bubble lady).]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레스토랑 웨이트리스를 시작으로 레스토랑 사장으로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일본산업은행으로부터 10억 엔 어치의 채권을 구매한 것을 계기로 증권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이후, 자신이 경영하고 있는 레스토랑 가치의 1,500배에 달하는 3조 엔에 가까운 돈을 빌려 주식을 사들였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금융계의 큰손이 되었고, 그녀의 레스토랑에는 수 많은 금융계 인사가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저택 앞에는 오후마다 금융계 인사가 서류가방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가 다음날 새벽 2시~3시가 되도록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저택에 들어간 인물 중에는 일본산업은행 총재와 같은 거물도 있었으며, JP모건 일본 지사나 야마이치 증권 등과 같이 내로라하는 증권사에서도 직원을 파견했다.
레스토랑 사장이라는 직함에서 아마 '그렇게나 밥이 맛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나?' 싶었겠지만, 그게 아니다. 사실 이 사람들이 그녀의 저택에 찾아온 이유는 다름 아닌 '''[[두꺼비]]에게 매주 지내는 의식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파일:external/photos1.blogger.com/toad3.jpg]]
이 두꺼비 의식이 왜 중요한고 하니, 이 두꺼비 의식을 통해서 '''어떤 주식을 사고 팔지가 정해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상당한 액수가 말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누이는 두꺼비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정원에 세워진 [[불상]] 앞에서 [[불경]]을 왼다. 누이 부인이 두꺼비 앞에 앉아서 신내림을 받게 되면, 그 순간 어떤 주식을 사고 팔지 [[신탁]]을 알려주는 의식이 진행된다. 이런 방식으로 사고 팔린 주식이 전성기인 1990년에는 무려 '''100억 달러'''에 달했다.
사실 냉정하게 접근해도 아예 근거가 없는 짓거리는 아니다. 경제는 자연과학과 다르게 결국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실현적 예언|그것이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는 헛소리라 할지라도 다수의 사람들이 믿고 그에 따라서 행동하면 시장은 움직이기 마련이다]]. 간단히 생각해서 두꺼비가 A사의 주식을 매수하라고 신탁을 내렸다고 생각해보자. 소규모의 신실한 집단이 그 말에 따라 A사 주식을 사기 시작한다. 다른 모든 변수가 동일하다면 자연스럽게 A사 주식의 가격은 오른다. 이를 목격한 다른 이들 역시 A사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한다. 결국 이를 반복하게 되면 두꺼비가 A사의 주식이 오를거라고 한마디 던져주는 것만으로도 시장에 기대가 형성되어 그 자산의 가격은 실제로 폭등한다(!).
그러나 거품붕괴 이후 오노우에 누이는 파산했으며, 가짜 예금증서로 첫 대출을 받은 것이 드러나면서 1991년 8월에 경찰에 체포됐고, 은행의 후원자들과 더불어 여러 해의 징역을 선고받게 되었다. 그녀의 파산으로 대출자는 2,700억 엔의 돈을 잃었고, 일본산업은행장은 사퇴했으며, 은행 2곳이 도산했다.
일본어 위키백과에는 오노우에 누이가 정확히 언제 사망했는지 모르지만, 2014년 사망했다고 적혀있다. 정확히는 2017년 3월 20일 한 방송에서 오노우에 누이의 행적을 추적했는데 이미 3년 전에 사망하였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물론 1930년생인 오노우에는 2014년 기준, 이미 팔순의 고령이었으므로 세상을 떠나도 무리는 아니다. 개인의 병크로 일어난 엄청난 사건으로 --자업자득이지만-- 육체적, 심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에 비하면 오히려 오래 살았다고 볼 수도 있을 듯.
그리고 오노우에 누이가 극히 유명해진 이유는 [[일본]]이 [[남초]] 중심사회이기 때문이다. 급격한 [[거품경제]]가 발생하면 '''주류 문화에 반대되는 특성이지만 벼락부자'''가 된 '''버블 퍼슨'''이라는 게 나온다. [[미국]] [[19세기]] [[도금시대]] 때 [[헤티 그린]]이 그랬고, [[일본]]의 오노우에 누이도 마찬가지였다. 도금시대의 [[미국]]은 [[카우보이]], [[서부개척시대]]로 대표되는 [[마초(동음이의어)|마초]]적인 남성사회, [[일본]] 또한 '''[[남성]]위주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 벼락부자인 오노우에 누이가 이른바 '''성공한 여성'''으로 당대의 급격한 주목을 끌었다. '''[[뉴스]]라는 것은 [[사건사고]]가 필요'''하니까, 오노우에 누이는 당대 일본 주류 사회에서 '''사건사고'''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실제의 오노우에 능력보다 더욱 과대평가되었고, 수많은 [[일본]] 금융맨들이 오노우에 집을 들락날락한 것이다.
=== [[리쿠르트 사건|리쿠르트 코스모스 사건]] ===
1988년 6월 가와사키의 하급 공무원 1명이 외부에 양심고백을 함으로서 세상에 내막이 드러났다. 내부정보를 활용해 리쿠르트 코스모스[* 일본 굴지의 구인구직정보 회사인 리쿠르트의 자회사. 역시나 부동산 사업을 하던 곳이다.] 주식을 매입하여 이익을 챙겼다고 '''시인하고''' 사임한 것이다. 당시 리쿠르트 회장이었던 에조에 히로마사가 자사 관련 입법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정치인, 공무원, 관료, 기업인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자사의 주식을 대량으로 선물했던 것.[* 당시 주식을 받았던 사람은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 NTT 회장,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회장 등 약 50명이었다.] 이 사건으로 당시 법무부 장관은 임명된 지 나흘 만에 사임했으며, 대장성 장관도 물러났다.
거기다 [[타케시타 노보루]] 당시 [[일본 총리]]도 리쿠르트 주식으로 1억 5,000만엔의 부당이익을 챙긴 것이 몇달 뒤 드러났다.[* 당시 총리를 대신해서 현금을 받은 비서는 자살했다.] 이 사건으로 [[타케시타 노보루]] 총리는 사퇴했고, 후임 우노 소스케도 불륜 혐의가 드러나며 자민당의 지지율이 급감, 소비세 신설문제와 함께 엮여 1989년 7월 23일에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처참한 성적을 받게 된다.
그 이전에는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면 '''자민당 참패!''' 타이틀이 뜨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차에 개선의석의 1/3(126석/ 총의석 252석)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총의석에서도 과반에 18석씩 미달하는 상황이 되니 자민당 입장에선 이보다 처참할 수 없는 선거결과였던 것. 오죽하면 다음 해 치러질 중의원 선거에서 사회당 중심의 야당연합이 압승하여 [[55년 체제]]가 끝장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1990년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하면서 55년 체제 붕괴는 몇년 더 늦춰졌지만...
=== [[허영중]](이토만) 사건 ===
[[허영중]] 문서로.
== 거품경제 이후의 일본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Real_GDP_growth_rate_in_Japan_%281956-2008%29.png|width=100%]]||
||([[1956년]] ~ [[2008년]])실질 [[GDP]] 성장률 ||
||[[파일:버블경제.jpg|width=100%]]||
||([[1985년]] ~ [[2013년]])일본 [[정부부채]] 증가율 ||
|| [[파일:687e2560c69995d569ec8edc1318b28c.jpg|width=100%]] ||
|| 일본의 연평균 실질소비지출 지수. 거품경제가 꺼지고 하락세로 이어졌다. ||
|| [[파일:maney.png|width=100%]] ||
|| 일본의 명목임금, 실질임금의 추이. 1997년에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이어졌다. ||
|| [[파일:180221_02-01.jpg|width=100%]] ||
|| 실질임금지수를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일본 홀로 하락세로 이어졌다. ||
|| [[파일:2016022101_03_1.jpg|width=100%]] ||
|| 일본의 실질 가처분소득 추이. 1997년에 정점을 찍었고, 2015년에 1985년 이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
아직도 거품경제 침체의 늪에서 제대로 빠져나오지 못 하고 있는 일본인은 1990년부터 2000년까지를 '[[잃어버린 10년/일본|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른다.[* 다만 거품 붕괴의 후유증이 오래 간 만큼, 그 충격도 서서히 나타나서 1995년까지는 분위기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실제로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본위협론이 아직 힘을 얻던 시기이기도 했고.] 이 시기를 통해 한국은 일본과의 경제적 격차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자세한 설명은 [[한국/경제]], [[일본/경제]] 문서로.] 1990년 기준으로 1인당 GDP가 일본이 25,359 달러이던 시절 한국은 6,516달러로 거의 4배가량 차이가 났었다. 2018년 한국의 1인당 GDP가 약 32,046달러로 추산되는데, 일본은 40,106달러 수준으로 이제 1.25배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며, 33계단 차이나던 1인당 GDP 순위로는 4계단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일본의 1인당 GDP는 물가를 고려해보면 사실상 제자리 걸음이다.
취업시장 역시 버블 붕괴의 충격을 받았다. 안 그래도 에코 베이비붐(1971~1974년생) 세대가 취업을 준비할 때라 더 많은 일자리가 필요했는데, 늘기는커녕 왕창 줄었으니 스펙이 아무리 좋아봤자 취업문은 바늘구멍이었다.[* 그 시기에 한 명문대생이 취직하지 못한 것을 비관해서 전철역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 일어나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린 적도 있다.] 이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일본|취업빙하기]]'라 부르기도 했다. 이것이 일본 사회의 [[출산율]] 급감의 한 원인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덧붙여서 베이비붐 에코 세대 중 상당수가 나이가 들어서도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하지 못하고 비정규직을 전전하거나, 니트족으로 남는 경우가 상당했기 때문에 현재까지 [[일본/경제]]에 큰 짐이 되어서 일본 경제에 막대한 후유증을 남겨주었으며, 베이비붐 에코 세대의 출산율은 매우 낮았기에[* 실제로 베이비붐 에코세대가 본격적으로 출산에 돌입할 시기가 출산율이 가장 낮은 시기이다.] 일본의 고령화 현상을 가속화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다. 2010년대 이후, 출생률이 낮아진 때에 태어난 세대가 본격적으로 취업에 돌입할 시기가 되고 나서부터는 버블경제 시기에 버금갈 정도로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지자 뒤늦게 신입사원을 우대한다거나 외국인 노동력을 수입해야 한다느니 하는 호들갑을 떨고있지만 이미 배는 예전에 떠난 셈이다.
다만 일본의 대졸자 취업구조는 한국과 많이 달라서, 취업난의 개념 역시 다르다. 일본은 대학 4학년 1학기가 시작하는 4월부터 공식적인 리크루팅이 시작되어[* 대기업은 설명회 등의 비공식적인 리크루팅을 그해 1월부터 시작한다.], 이르면 골든위크 전, 늦어도 졸업 전에 입사가 확정되는 시스템이다. 물론 취활(就活-취직활동)은 3학년 1학기부터 시작한다. 3학년 2학기가 되면 취직 세미나 등에 참석하고, 빠르면 11월쯤부터 입사면접이 시작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정년이 보장되며, 기업도 30년은 쓸 의도로 뽑기 때문에, 일단 입사하면 이직이나 경력자 전직 등의 형태로 회사를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 간단히 말해 졸업식 전까지 결정된 회사가 이후 인생행로를 결정한다. 마찬가지로 졸업식까지 취직이 결정되지 않았다면 이런 경우 정상적인 취업은 사실상 불가능.[* 물론 이것도 이제는 과거의 일이라고 할만큼 많이 달라졌다. 아직도 50년 이상 유지되는 중견기업 같은 경우에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에서는 이직이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고(특히 대기업의 경우에는 이직이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다), 졸업 이후에 직장을 구하려는 사람도 많다. 현직 리크루팅 회사들도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지 않는다면 '왜 바로 졸업을 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스토리가 충분하다면 면접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한국처럼 휴학을 반복한다거나, 졸업하고도 계속 도서관 다니며 취업준비하는 경우는 없다...기보다 불가능하다. 아주 작은 중소기업도 졸업 =신입사원이라는 공식이 박혀 있다.[* 우리나라의 중, 고등학교처럼 생각하면 편하다. 우리나라는 군대 때문에 대학 졸업시기가 제각각이라 다소 약하지만 병역의무가 없는 일본은 그렇지 않은 것. 입사담당자가 고등학교 1년 휴학한 학생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믿고 뽑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입사하는 사례를 '신졸(新卒)'이라 부른다. 따라서 졸업예정인 4학년이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단 몇 개월에 불과한 리쿠르트 시즌에 인생이 걸린거나 같다. 여기서 밀리거나 탈락하면 패자부활의 기회 따위는 없다.[* 물론 그 대신에 일본은 다른 방식의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는 것에 한국보다 비교적 관대한 편이긴 하다. 졸업 이후 뭔가 예술을 하고 싶다거나 사회운동을 하고 싶어서 취직을 하지 않고 이런저런 일을 전전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나서 취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취업한 회사는 일반적인 이미지의 회사보다는 조금 크리에이티브한 일자리, 혹은 그만큼 이직이 잦은 일자리다. 소위 말하는 '리크루트 수트' 입고 돌아다니는 회사원의 인생과는 많이 다른 것.][* 다만 상술했다시피, 이것도 10년 전이나 통용되던 상식이고, 한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최근엔 화이트칼라 직종이라고 하더라도 이직이나 졸업 이후 취직도 많이 관대해졌다. 외자계 기업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채용오퍼를 서너 개씩 받아서 느긋하게 골라 가며 졸업준비하던 거품경제 시기와 비교해서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지, 객관적인 수치로 [[일본]]의 고용시장은 다른 OECD국가와 비교해도 상당히 안정적이다. 특히 청년실업률은 일부 [[유럽]]국가와 비교해보면 환상적으로 낮은 수준.[* 고용시장을 파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만 보더라도 고용률이 70%를 넘으며(평균 65% 수준. 그 이하도 수두룩하다) 비정규직 비중도 평균 수준(근데 이건 비정규직의 정의가 기관, 학자마다 차이가 크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청년 고용률도 정확히 평균. 거의 모든 면에서 한국보다 '''훨씬 낫다'''. 다만 가계 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얘기가 조금 달라지는데 이는 가구 구조의 변화, 고령화가 제일 큰 원인이지 노동 시장 문제라고 보긴 어렵다. [[OECD/중위 가처분 소득]] 문서로. 물론 국가 경제의 문제라고 본다면 맞지만.] 물론 1980년대 호황기에 비해서 비정규직이나 [[블랙기업]]이 늘어나는 등 일자리의 질은 확실히 떨어졌다고 할 수 있지만, 이건 한국을 비롯해 더 심한 나라도 많다.
실제로 2011년 기준으로 일본의 대학 졸업예정자의 취업내정률 (졸업 예정자 중 진학 등을 제외한 취업 희망자 대비 합격판정을 받은 비율)은 90%를 넘었고, 잃어버린 20년 동안에도 90% 선이 깨진 것은 미국 금융위기가 폭발한 직후인 2009년 정도이다.[* 일본은 세계에서도 톱을 달리도록 경직된 채용 시스템이 굴러가는 나라이기 때문에 일본, 특히 대졸자의 취업률을 다른 나라와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반대로 한번 입사했다가 1~2년 정도의 단기간에 퇴사한 자가 재취업을 하는 소위 '제2신졸' 바닥은 다른 나라에서 나름의 경력직 대접을 받는 것과 달리 근래 들어와 다소 개선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며, 이직자에 대한 인식도 그다지 좋지 못하다. 다만 어쨌든 완전실업률을 포함한 일본의 고용 사정은 한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보다는 여전히 낫고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황이다. 게다가 일본 고등학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2018년 기준 54.67%로 한국(69.7%)에 비해 낮으며 인구 변화 요인도 있기에, 대졸자의 취업내정률은 아직까지 90% 이상으로 높은 편이다.]
버블경제 다음에 장기 불황까지 오면서 세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20년에 달한 기간에 취업빙하기를 직접 겪은 세대는 경기 침체 시대에 힘들게 살고 있는 이유가 버블경제 때에 호황을 누리면서 고생도 안 해본 기성세대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경우가 꽤 많다. 이런 세대 갈등은 [[한국]]도 비슷하지만 일본은 더욱 심하다.[* 한국은 그나마 IMF 겪은 후 다시 옛날만큼은 아니더라도 꾸준하게 성장세를 이어왔기에 그럴 수도 있다. 적어도 일본처럼 마이너스 성장, 저성장은 잘 없었다.]
다만 위의 장점은 뒤집어 말하면 고용유연성이 극단적으로 낮다는 뜻도 되며 직접 현장에서 일해보지 않고는 정확히 깨우치기 어려운 본인의 적성과 맞지 않는 직업을 택해버렸거나, 한순간의 부주의나 실수로 중과실을 저질러 또는 무언가 밉보여 해고(권고사직 포함)당하거나, 사고, 질병 등으로 장기간 상병하게 된 상태로 휴직연한을 초과하거나, 조직문화가 맞지 않거나, 정년퇴직하였으나 퇴직금을 날려먹거나 빚을 값는 데 전부 쓴 경우라면 '''그 즉시 사회 최하층의 나락으로 떨어져서 아예 평생 재기불능한 상태가 되어 생활보호대상자(우리나라의 [[기초생활수급자]])로 여생을 보낼 것을 강요당한다'''는 단점도 있다.
그래서 일본 [[블랙기업]]에서 시달리다가 더이상 못 버티는 경우 십중팔구 [[퇴사]]가 아니라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재취업이 어려운 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긴 하나 일본은 그 정도가 거의 전 사회적 낙인 수준으로 매우 극단적이라는 것. 과거 1회 이상 전직했거나, 졸업이후 2년 안에 취직을 못했거나, 입사한 지 2년이 지나서 전직을 시도하는 구직자가 일본 취업시장에서 받는 대우는 우리나라의 [[전과자]]가 받는 대우 수준이라고 한다. 그나마 근래 완화되었다곤 하나 취직후 1~2년 이내에 단 한번의 기회(제2신졸)밖에 없고 여전히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전과기록은 벌금형은 납부 후 2년, 3년 이하의 실형(집유포함)은 출소 후 5년이 경과하면 말소되는 것을 감안하면 일본에서의 그것은 어쩌면 한국 전과자보다 더할 수도.~~
== 세계에 끼친 영향 ==
[[플라자 합의]]로 인하여 세계의 경제 주도권은 다시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과 미국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일본]]으로 넘어갈 듯하던 세계경제의 패권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자 미국에서도 엄청난 거품경제가 발생했는데, [[빌 클린턴]] 시대의 [[IT버블]]이다. 일본 거품경제와 달리 장기화되지는 않았지만 IT버블 붕괴 이후로 투기자본이 대거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부동산 거품이 생겼고, 정부에서 이를 방관하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며 일본 못지 않게 힘들어졌다.
이 사건으로 [[미국/경제|미국의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아 국방비까지 크게 축소해야 했으며[* 이 때문에 투자 대비 수익이 안 나오는 [[중동]],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에서 손 떼고,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등지의 국가들과 관계를 맺어 [[중국]] 견제에 전념하고 있다. 아니, 그 이상 할 여력이 없다.] [[유럽]]도 [[남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거품경제 붕괴의 후유증을 톡톡히 겪으며 아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격을 받아도 손 쓰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우크라니아-러시아 갈등은, 그동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려 놓고 서방으로 갈아탄데다, 역사적으로나 실질적인 이유로나 러시아로서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흑해함대 모항 세바스토폴이 걸린 문제라 돈만 있다고 개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전면적으로 개입했다간 3차 세계대전까지 각오해야 하기 때문. 더군다나 동우크라이나와 서우크라이나의 인프라의 차이와 경제 구조의 차이는 늦든 빠르든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약점으로써 존재했다.]
참고로 [[북유럽]]은 일본과 같은 시기인 1980년대 중반에 부동산 거품이 달아오르다 90년대 초반에 꺼지며 경제위기를 겪었는데 특히 [[스웨덴]]과 [[핀란드]]의 타격이 가장 심했다.[* [[노르웨이]]는 거품이 몇 년 일찍 꺼져 저 두 국가만큼 심한 위기를 겪지는 않았다.] 1994년에는 전 국민의 20%가 실업자였던 수준. 다행히 IT산업 육성 등을 비롯, 체질 개선으로 일본만큼 '길게 잃어버리는' 일은 면했다. 그러나 2008년에 [[아이슬란드]] 은행 연쇄부도를 시작하여 북유럽은 또다시 '잃어버릴' 위기에 빠졌는데, 아이슬란드 정부에서 은행을 모두 국유화한 뒤 부채를 탕감해주는 식으로 경제위기를 해결해 일본처럼 길게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 같이보기 ==
* 버블시대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며 종종 한국의 인터넷에서는 도시전설화된 버블시절의 산물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회자되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버블 시대 애니메이션' 이라며 90년대 애니메이션의 움짤들 몇 개가 올려지며 '일본에 돈이 넘쳐나던 시절에만 나올 수 있었던 작품' 이라며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되곤 하는데 엄밀히 말해 애니메이션은 버블 시대의 혜택을 받기는 커녕 80년대 초반부터 TV방송국이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발을 빼며 제작사들이 직접 [[OVA]]를 만들기에 이른다. 정말로 애니메이션이 버블의 혜택을 받았다면 디즈니 애니메이션 같은 퀄리티로 제작되어야 한다.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면 몇 배로 돈이 벌리는데 애니메이션에 돈을 투자할리 만무하다. 저 때의 애니메이션은 오히려 그 이후의 애니메이션보다 제작비가 적다. 저때 작품들이 작화가 좋아보이는 건 그저 잘 그리는 사람들이 잘 그려서 그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의 제작 편 수가 적었던 시절이라 좋은 애니메이터가 한 작품에 여러 명이 모이는 경우가 많았다. 돈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1980년대 초중반의 애니메이션은 실력있는 애니메이터는 미국 하청 애니메이션을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은 그리지 않아 일본 애니메이션의 작화의 질이 좋지 못했다.] 그리고 그 시절 작품이라고 올라오는 것들이 그 시대를 벗어나 있는 등,[* 1990년대 애니메이션을 가지고 자꾸 버블 시대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를 지적하면 변호를 위해 튀어나오는 변명이 1990년대도 버블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위의 표를 봐도 알겠지만 일본에선 1991년부터 내려가기 시작해 1992년이면 바닥을 쳐서 버블이 끝난 것으로 본다. 1990년대 애니의 대부분은 버블 덕을 전혀 볼 수 없다. 단순히 잘 만들어서 작화가 좋은 걸 돈과 시대를 이유로 포장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망상에 불과한 것들이 많다. 하기의 항목들도 검증되어 있지 않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이후 애니메이션은 OVA 체제로 가다가 심야애니메이션과 제작위원회 시스템의 등장으로 국면이 전환된다.
* [[그리스 경제위기]]
* [[거품경제]]
* [[고지라 vs 킹기도라]] - 거품 붕괴가 오지 않은 세계에서 먼 미래에 일본이 세계를 석권하자 이에 반발하는 미래인들이 괴수를 이용해 일본을 망치려는 내용의 영화. 장래에 일본이 세계 최강이 될 것이라 진심으로 믿었던 당시 일본인들의 자뻑이 근간에 깔려 있다.
* [[도쿄 80's]] - 이 때가 배경인 만화.
* --[[롯데월드]]--[* [[신격호]]가 도쿄 땅 50평 팔아서 세웠다는 [[도시전설]]이 있다. 물론 실제로는 일본 롯데의 주력 계열사들을 모두 동원한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였다. 다만 이때 롯데가 엄청나게 성장한 건 사실. 80년대 당시 신격호는 일본 4위의 부자였다고 하며, 실제로 당시 세계 부호 리스트에서 일본의 10억 달러 이상 자산가에 나와 있다. 참고로 같은 시기 한국은 [[이병철]]과 [[정주영]]만이 그 리스트에 있었다.]
* [[블랙 레인]] - 범죄 스릴러물이지만 외국인의 눈으로 본 이시절 일본의[* 정확히는 [[오사카]].] 휘황 찬란한 모습들을 그대로 담고 있다.
* [[백 투 더 퓨처]] - 정확히는 2편. 주인공 마티의 미래에서 세계를 휘어잡은 대기업 후지쯔필름이 등장한다. 시리즈 막바지의 중요한 키워드를 담은 마티의 해고통지서도 여기서 보내준 것.
* [[시티 팝]]
* [[어른제국의 역습]] - 짱구의 극장판. 배경은 버블경제의 조금 더 전인 1970년이다. 이 당시는 제조업이나 각종 산업이 성공하고 있을 때로, 일본은 1964년에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을 개최성공, [[1970 오사카 엑스포]]로 이제 막 경제성장에 다다를 때이다. 이 극장판은 잘 살던 20세기로 돌아가자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 [[신입사원 토오루군]] - 1984년 코나미에서 제작한 게임. 한국 오락실에서는 신입사원 석돌이라는 제목으로 많이 알려져있다. 해외판은 Mikie라는 제목으로 발매.
* [[오오에도 줄리아 나이트]]
* [[용과 같이 제로: 맹세의 장소]]와 메인 테마인 [[バブル]] - 게임 배경은 물론 테마마저 거품경제의 황혼기인 1988년 일본을 묘사하고 있다.
* [[잃어버린 10년/일본]]
* [[줄리아나 도쿄]]
* [[지팡구]] - 원래는 [[마르코 폴로]] 이후 유럽인들에게 [[황금]]이 넘치는 나라 [[지팡구]]라는 환상 속의 지역으로 알려졌지만, '''정체는 바로 [[일본]].''' 사실 초가집과 볏짚을 황금으로 보고 착각한 것이지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1980년대에는 그게 빈말이 아니라고 할 수준으로 돈이 썩어 넘쳐났다.]]'''
* [[파푸루]] - 해당 세대를 살아온 인물들의 생활 문화가 모티브이고 이름의 유래 역시 버블 경제이다.
* [[폭음열도]] - 80년대 초중반 최고점을 찍었던 [[폭주족]] 문제와 더불어, 배경으로 당대 일본 사회의 소소한 모습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 [[하우스 텐 보스]] -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에 있는 유럽식 테마파크. 바로 버블 경제 시절 [[돈지랄]]의 산물. 빈말이 아니라 모나코 공국보다 큰 부지에 헤이그에 있는 왕궁인 실제 하우스 텐 보스를 똑같이 재연했다. 버블경제 시절에는 입장료만 무려 2만엔. 그걸 돈주고 들어가는 사람이 있었으니(...)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지금 입장료는 약 4~5천엔 정도 한다.
* [[헤이세이ABC]]
* [[혼다 CBR 250RR]]
* [[혼다 NR]]
* [[흑자도산]]
* [[히카루GENJI]]
* '''[[1990년대]] [[한국]]''' - [[1997년 외환 위기]] 전까지 1980년대부터 경제 급성장이 지속되고 [[1987년]]엔 [[6월 민주항쟁|민주화]]까지 이루어졌다.[* 다만 자산시장의 거품은 90년대 [[1기 신도시]] 건설로 땜빵했기 때문에 대규모 버블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진짜 문제는 경상수지 적자였다.]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자유로운 분위기가 퍼지기 시작했고 특히 음악 시장은 양적 [[황금기]]를 맞았다. 그러나 [[안전불감증]] 역시도 팽배했고 여러 사회적 문제점이 가려져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 [[AKIRA(1988)]] - '버블 시대 애니메이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아키라의 실질 제작비는 7억엔[* 현재 물가 기준으로 보면 대충 21억엔정도. ] 정도로 역대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작비 랭킹 중에서는 그렇게 높지 않은 수준이다. 엄청난 컷수를 사용한 것 치고는 높지 않은 제작비라는 것은, 결국 사람을 엄청나게 갈아댔다는 말이다.
* [[20세기 소년]] -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을 거품 경제 시절에 보낸 것이 중요한 요소이다.
* [[beatmania IIDX 14 GOLD]] - 이 때를 컨셉으로 잡은 시리즈
* [[IT버블]]
[[분류:쇼와 시대]][[분류:1980년대]][[분류:일본의 경제사]] |
1980년대의 저출산 경향 | [include(틀:대한민국의 저출산 현황)]
[목차]
>{{{+1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
>1980년대 정부가 내세웠던 대표적인 [[가족계획]] 캠페인 표어
>[[파일:external/photo-media.hanmail.net/20060619095605.585.0.jpg]]
>'''"하나만 더 낳고 그만 두겠어요"'''
>[[차범근]]과 그의 아내 오은미 씨, 장녀 차하나 씨와 같이 등장한 산아 제한 캠페인 포스터.
>--하지만 차붐은 [[차두리|아들 둘을]] [[차세찌|더 낳게 되는데]](...)--
== 개요 ==
[[대한민국]]에서, [[1983년]] [[계해]]년(癸亥年)부터 [[1987년]] [[정묘]]년(丁卯年)까지 일어난 [[출산율]] 하락 현상 및 저출산 경향.[* '''결과적으로는''' 1983년생까지도 인구대체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의 선진국화로 인한 유아사망률 감소와 외국인 순유입으로 인한 것이고, 당시로서는 빨간불이 켜졌다고 봐야 한다.]
== 상세 ==
1960년대부터 가족계획(산아제한정책)을 해왔지만, 그 성과가 미미하자 1970년대부터는 둘 낳는 집안은 각종 혜택을 본다는 식으로 강력하게 권장하였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 인구들이 출산할 시기가 되어도 출생자가 좀처럼 줄지를 않자 결국 1980년대와서는 '하나씩만 낳자'고 매우 강력하게 나갔다. 이로 인해 [[1983년]]에는 합계 [[출산율]]이 인구 대체 마지노선인 2.1명에 조금 미달했다가(2.06명 769,155명)[* [[1979년]]부터 [[1982년]]까지 해마다 약 85~87만명이 태어났으나 갑자기 1984년이 되면서 70만명 이하로 크게 하락했다.], [* 1983년 당시의 2.0명대의 출산율은 요즘의 선진국이면 인구대체수준이 얼추 된다. 그런데 당시 한국은 개발도상국이었다.] 이듬해인 1984년부터는 그보다 훨씬 아래(1.74명 674,793명)로 떨어졌다. [* 1984~89년의 출산율은 일본보다도 낮았다.] 특히 1987년의 출산율(1.53명 623,831명)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출산율과 비슷한 수준.[* 출산율은 1997년의 1.536보다도 낮으며, 출생아 수를 기준으로 할 경우 [[1998년]]과 [[2000년]]보다도 적다.] 당시 출산 가능 연령대 인구에 1차 베이비붐 세대도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태어난 아이의 수는 적은 편이 아니었지만 그 때까지의 출산율[* 이에 관해선 [[대한민국/출산율]] 항목 참조.]을 생각해보면 심각하게 낮은 수준이었다. 더불어 이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형제가 없는 외동인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지금 전세계 기준으로 외동 인구 비율(30대 이하)로 따진다면 2위일 정도로 흔하다고 한다. 그럼 1위는(...)... 아시다시피 [[계획생육정책]]을 실시한 [[중국]].
다만 당시 산아제한 정책을 느슨하게 시행시킨 일부 시골 [[군(행정구역)|소도시]] 지역이나 특히 [[제주도]] 전 지역[* 제주도의 경우 인구수 때문인지는 몰라도 타 지역에 비해 산아제한정책이 매우 느슨했다.]의 경우 평균 출생아 수가 2.0명을 훌쩍 넘긴 2명대 중반이었으나 이들 지역도 80년대 후반에 와서야 2명 이하로 떨어졌다.
이렇게 1980년대 이미 대체출산율 2.1명 이하로 떨어졌지만 당시 정부에선 '''[[1996년]]까지 산아제한 정책을 추진하는 오판을 하고 만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1989년 이후 산아제한 정책을 중단하였다.] 이런 정부의 오판은 산아제한 정책 폐기 이후에도 한동안 이어지다가 1996년에 와서야 겨우 산아제한 정책을 폐기하였다.
1990년 이후 산아제한 정책을 실질적으로 중단하자 외환위기 이전까지 경제호황에 따른 사치풍조로서 [[늦둥이]] 출산이 급격히 늘어 출산률과 출생아 수가 반등하는 현상이 있었다.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저출산 문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외환위기 이후에도 [[밀레니엄 베이비]] 유행이 끝나고 난 2002년 이후이며,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출산률이 다시 늘어났기 때문에 오히려 산아제한을 너무 일찍 종료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하였다.[* 본 문서에서 설명하는 경향이 가장 두드러진 80년대 중후반생(85~89)은 [[출생신고]] 기준 약 319만 명인데, 이 숫자는 80년대 초중반생(80~84, 약 402만)은 당연하고 산아제한 중단 직후인 90년대 초중반생(90~94, 약 353만), 심지어 완연한 감소추세를 보이던 '''90년대 중후반생'''(95~99, 334만)에도 밀린다.] 다만 늦둥이 출산이 반짝 늘은 것으로 출산율이 안정화될 수 있는게 아니었던 데다, 산모가 될 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상황에 접어들고 있었기에 별 의미 없는 주장이었다. 이후 외환위기가 오면서 출산율은 다시 고꾸라치고 만다.[* 사실 당시 인구정책 담당자들과 관료들은 [[외환위기]]만 끝나면 출산율이 안정적인 수준으로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물론 경제가 어려워질 때 출산율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만도 했지만 그 예측은... '''제대로 망했다'''. 외환위기를 끝낸 방법을 생각해보자. 게다가 외환위기가 끝난 지 얼마 안 돼서 [[세계금융위기|금융위기]]가 찾아왔다.]
2002년에 출산율이 1.18명을 찍어 초저출산으로 돌입하자 뒤늦게나마 출산장려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출산율은 큰폭으로 올라가지 않고, 1.1~1.2명대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2012년]]에 출산율이 1.30을 찍으면서 2001년 이후 11년만에 출산율이 높았던 예외도 있다.] 그 이후 등락을 반복하다가 2018년 1.0명이 붕괴해 0.98명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이 시기에 태어난 남성들이 병역의 의무를 지게 되는 2000년대 중반부터 병무 대상자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90년대 중반이었다면 절반 정도가 방위로 빠졌을 남성들이 2000년대 중반부터는 얄짤없이 현역으로 들어가게 된 것.[* 실제로 1986년생들이 주로 받았던 2005년 [[징병검사]]에서 병력 수급 부족을 이유로 그 해 신체검사를 받는 대학생에 한하여 4급도 현역 판정을 내렸던 적이 있었다. 나중에 예상 외로 병력 수급이 원활해져서 후에 이들도 [[보충역]]으로 다시 환원되었지만. 이미 입대한 경우가 문제 되었을텐데, 병역처분 내지는 병역통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하더라도, 병역 수급에 관한 행정청의 재량이 폭넓게 인정되어 기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서 이 시기부터 현역 기준이 많이 완화되었다. 병역비리 등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여러 가지 병역 면제나 보충역 대상이었던 신체/장애/학력미달 기준이 줄줄이 강화/삭제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만 1990년대 초중반생들의 인구가 조금 많아서 일시적으로 기준이 올라가기는 했다. 물론 이 세대가 병역을 끝내는 2020년 이후에는 오히려 더 강화된다.
이 시기에는 낮은 출산율과 [[남아선호 사상]]이 겹쳐서 [[남초]] 현상이 매우 심했다. 사실 1980년대 초반까지 남아선호 사상 그 자체로는 남초 현상을 유발하는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현대의학의 발달로 태아의 성별을 미리 감별할 수 있게 되면서 딸을 임신하면 낳는 게 아니라 아예 [[낙태]] 시켜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며 급격하게 성비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기술의 발달이 오히려 인간에게 큰 해악을 끼치기 시작한 셈이다. 자세한 사항은 [[80-90년대의 여아낙태 문제]] 참조. 물론 현 세대에는 [[남아선호 사상]]이 줄어들고 워낙 출산율이 줄어들어 낙태가 남초 현상을 유발한다고 볼 수 없지만 아직도 셋째 출산성비는 109로 자연성비 이상을 보여주고 있기에 여전히 위험성은 도사리고 있다. 2017년 들어 셋째 성비도 107 밑으로 떨어졌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02/26/0200000000AKR20130226060500002.HTML?input=1179m|韓 11년만에 超저출산국 탈출 임박…출생아 3년째 ↑]] ]
또한 이 시기에 태어난 학생들이 주로 보는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지원자 수와 응시생 수가 70만명을 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저출산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 1983년생들이 주로 응시했던 [[200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2001년 11월 시행) 부터 매년 응시생 수가 감소하였으며, 1990년생들이 주로 응시했던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2008년 11월 시행) 까지 계속되었다. 다만 이는 출산율 이외에도 대학입시 정책의 변화 등도 한몫하였다. 또한 2016년에 역대 최저 출생아 수를 기록했던 것도 이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이 이 무렵에 혼인 및 출산 세대로 진입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다만 최저 출산율을 기록했던 2005년보다는 출산율이 높은데, 이는 출산율에서 '분모'에 해당하는 가임기 여성의 인구가 줄어들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리고 30대 이후 성인이라면 각자 자신이 졸업한 초, 중, 고등학교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최신 입학 인원수가 몇 명인지 검색해 보자. 아무리 못해도 30~40%, 심한 곳은 70% 넘게 줄어있을 것이다. 물론 [[동탄신도시]]나 [[세종특별자치시]]같은 신흥 신도시의 경우 농촌 학교의 이전으로 도시화가 진행되어 감소폭이 작을 수 있으나[* 그나마 이 두 지역도 전국에서 손꼽히는 유소년인구가 가장 많은 신도시이다.], 대한민국 초, 중, 고등학교의 90% 이상 해당하는 얘기라 생각하면 된다. 다만 [[강남3구]]만은 예외다. 한 학년에 심하게는 20반까지 있던 학교의 학급 수가 많아봐야 6~7학급이 된 것을 보면 저출산이 확실히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전세버스의 경우 28인승 우등고속형 차량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는 고급 서비스를 요구하는 소비자의 눈높이가 높아진 것이 주 원인이 아니라 '''저출산으로 인해 학급 인원 수가 25명 선으로 줄어서'''가 주 원인이다. 담임교사 합해도 28석을 다 못 채우는데 영리가 제1의 목표인 전세버스 회사 입장에서는 45인승 버스를 넣으면 인원은 적은데 좌석이 좁다고 고객들이 기피하게 된다.
=== 1996년까지 이어진 정부의 산아 제한 정책에 대한 의견 ===
==== 옹호론 ====
인구 대처 문제에 대해 [[전두환]], [[노태우]] 정부 시절 아주 예상하지 못했다고 하기는 뭐한 것이, 당시 경제정책 담당자들의 인구관이 [[맬서스 트랩|맬서스의 그것]]을 철저히 따르고 있었다. 심지어 당시 구호가 1984년 국민총생산으로 미국 수준의 개인소득을 올리려면 '''1천만 명'''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일 정도로 인구 압력에 대해 무척 민감했다. 당시 담당자들의 인식으로 인해서 [[김종인]]의 얘기에 의하면 "'출산율이 2명 아래로 떨어졌으니 산아제한을 슬슬 폐기해야 되지 않나'라는 투로 얘기를 해놓았다가 철저하게 박살이 났다"라는 지금보면 도저히 웃지못할 얘기도 있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23&oid=305&aid=0000018807|#]] 그 만큼 당시 당담자들의 인식이 [[맬서스 트랩]]에서 벗아나지 못했다는 얘기였다는 반증이다.
게다가 당시 [[동유럽 혁명|북한 경제가 급속도록 어려워지면서 구 동구권처럼 북한도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던 때]]였다. 따라서 [[남북통일|통일]]도 염두에 두었던 것. 하지만 [[주체사상|북한 체제 특성]]을 고려하면 동구권과 다르게 예측이 빗나갔다.
물론 당시 담당자들이 이러한 인식을 가지는데 있어서 UN을 비롯한 국제기구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당시만 하더라도 2020년에 인구 120억을 예측하기도 했으며, 국제적으로 산아제한정책을 강조하였다.[* 세계인구는 전세계 평균 합계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인구 증가폭이 줄고 있고 2020년 현재 78억 명으로 당시 인구 120억 명 전망은 잘못된 추계치이다. 한편, 세계인구는 2100년에 110억명까지 늘어날 거라고 한다.]
==== 비판론 ====
이미 1983년 출산율이 대체출산율인 2.1명 수준으로 떨어진 이상, 산아정책을 즉각 폐기하지 않은 건 당시 정부의 책임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당장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참고하는 선진국인 일본의 경우 1962년 출산율이 대체출산율까지 떨어지자 즉각 산아제한 정책을 폐기해 2.0~2.2명 수준으로 유지했지만 이후 70년대 중반 [[오일쇼크]]에 의한 경제 악화로, 80년대 [[버블경제]] 탓에 집을 구하기 어려워진 청년들의 결혼 기피로 이미 80년대에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또한 [[프랑스]]만 해도 출산율이 1.87명으로 떨어지자 바로 1983년부터 적극적인 출산 장려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이런 사례만 검토를 했어도 지금 당장 인구가 늘어난다고 '''대체출산율을 넘어 씨를 말려버릴 기세로''' 산아제한 정책을 지속하는 무리한 정책은 펴지 않았을 것이다.
통일을 염두에 둔 까닭도 있었다고 하는데, 출산율이 대체출산율인 2.1명 이하로 떨어진 1983년에는 아직 [[소련]]이나 [[동독]]이 건재하던 상황이었는데다 북한의 경제도 [[고난의 행군]] 이전이라 그적 저럭 괜찮았기에 단순히 통일에 대해 근거 없이 낙관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게다가 전두환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동시기 서독처럼 통일을 위한 활발한 교류나 지원 활동을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막연히 통일이 되겠거니 생각하면서 정책을 짰다는 건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물론 위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당시 1인당 GDP를 늘리기 위해선 인구가 줄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름 힘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주로 출산율이 4-5명대에 달하는 후진국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6,70년대는 이 주장에 부합했을지 몰라도 80년대엔 아니었다. 또한 출산 제한을 통한 인구 감소는 전세대에서 동일한 비율로 줄어드는 게 아니다. 문제는 경제는 경제활동인구(만 15세 이상 만 64세 이하)가 비경제활동인구(만 15세 미만, 만 65세 이상) 뒷받치는 구조라는 거다. 윗세대 인구는 많은데 아랫세대 인구는 적은 구조가 이어지면 인구 많은 세대가 비경제활동인구라 되었을 때 아랫세대들의 부담은 점점 커진다. 이는 당연히 국가 경제에 큰 리스크가 되고 그것이 현재 대한민국이 앞둔 상황이다. 그리고 그러한 점에서 이미 80년대에 출산 문제는 심각해지고 있었다. 단순히 따져봐도 1970년 출생자가 백만명이었는데 1987년 출생자는 62만명이었다. 이게 훗날 문제가 될 것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 건 그 당시 정부가 얼마나 무능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전두환 노태우 정부는 바뀐 세태에 대해 빠르게 파악하고 다른 나라 사례들을 참고하면서 기존의 출산 정책을 수정할 의무가 있었지만, 별 생각 없이 이전 정책을 답습하기만 했던 것은 옹호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세월이 흘러 이들이 가임기에 들어서면서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출산율이 점점 줄어드는데 2차 베이비붐세대의 가임기가 한창인 2012년을 정점으로 1.3명이었던 출산율이 해를 거듭할 수록 점점 내려갔기 때문이다.
1986년에는 주교위원회 가정사목담당 박토마 주교(춘천교구장)가 11월 26일 '하나낳아 알뜰살뜰'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80원짜리 [[우표]]를 가톨릭신자들이 사용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https://m.catholictimes.org/mobile/article_view.php?aid=337229|#]] 우편이 주요 통신수단인 시대에 우표로 정부정책을 홍보할 정도면 정부의 책임은 매우 분명하다.
== 대책 및 후유증 ==
성비 불균형 문제를 막기 위해 1987년에 아예 태아의 성별감별을 금지하고 의사가 태아의 성별을 알더라도 가족에게 알려주지 못 하도록 법을 만들었지만-- 속이거나 거꾸로 말하라고 한 적은 없었으니까 돌려 말하면 되었다.-- [[현실은 시궁창]]. 남초 현상은 오히려 심화되었다.[* 특히 [[1990년]], [[1993년]], [[1994년]]이 그 절정. 출생성비가 각각 무려 '''116.5,115.3,115.2'''까지 치솟았다! 이 중에서 [[1990년]]은 '''역대 최고치.''' 1990년은 여자의 팔자가 드센 백말띠의 해라는 근거 없는 속설이 퍼져서 엄청난 여아 낙태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근거 없는 속설은 21C에도 살아남아 2006년 쌍춘년설으로 인한 결혼붐과 2007년 [[황금돼지해]] 베이비붐으로 이어졌으나 2010년대가 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2019년에도 황금돼지해 마케팅이 있었지만 출산율은 0명대를 기록했다.]
1989년 실질적인 산아제한 완화조치를 취한 직후인 1990년대 초반에는 오히려 출산율이 올라가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1992년(1.76명 730,678명)의 출산율은 1984년보다 약간 높아졌다. 하지만 이 때는 1984년보다 출산 가능 연령대에 접어든 여성의 수가 월등히 많이 늘어나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수 없으며, 너무 급격한 출산율 하락에 따른 일시적인 반등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1990년부터 피임약과 피임기구 보급 사업비를 절반가량 줄여서 가족계획이 다소 완화되었다는 것도 한몫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331215|아이 안낳는 한국, 1990년대생이 마지막 희망]] ]
사실, 현대 한국의 여성 사회진출이 활발해짐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 국가차원의 '''보육'''문제나 양육비 등 때문에[* 그 외에도 사교육비의 지속적인 증가와 외환위기 이후의 일자리 질의 하향평준화 경향(평생직장 개념의 붕괴, 비정규직의 대두)의 영향 및 눈높이도 컸다.] 1990년대 중반(공식적으로 [[1996년]][[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60500329101010&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6-06-05&officeId=00032&pageNo=1&printNo=15787&publishType=00010|당시 기사]]) 이후 산아 제한 정책을 멈춘 뒤에도 계속 출산율이 감소했으니 단지 산아 제한 때문에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졌다고 할 순 없다.[* 실제로 [[1995년]](1.63명,715,020명)부터 [[2005년]]에 사상 최저점(1.08명 435,031명)을 찍기전까지 출산율이 계속 하락하는 추세였다.([[2000년]]([[즈믄둥이]], 1.47명), [[2003년]](1.18명)은 제외)] 산아제한이 출산률을 떨어트렸다기 보다는, 슬슬 떨어지려는 출산률의 등을 밀어 준 셈.[* 정부 정책도 그렇지만 특히 대다수 기업들의 기업문화도 철저히 '''산아제한''' 정책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출산율 감소의 일등 공신으로 작용하고 있다. 산아제한 정책은 1996년에 폐지되었지만, 대다수 기업들은 이를 모른--척 하고 있--다. 비용 절감이 최우선 목표인 기업 입장에서 산아제한 정책은 매우매우 입맛 당기게 하는 정책이지만, 출산장려 정책에는 아직도 수많은 기업들이 반감을 표시한다. 산아제한 정책은 장래의 인건비를 절감시키지만, 출산장려 정책은 반대로 이를 증가시킨다.]-- 1983년부터 무려 13년이나 지난 1996년까지 '''이 멍청한 짓을 시전했다는 점'''을 기억해두자.-- 일단, 이 시기부터 태어나는 아이들의 수가 줄어 들더니 [[2013년]]까지 출산율이 세대 교체율을 넘어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의료의 발달로 [[평균 수명]]은 증가하니 2050년 즈음엔 고령화 현상[* 노인 인구는 많은데 이들을 부양할 청년층 인구가 엄청나게 적음.]이 심각할 거라는 예상이 나오게 된다. --그리고 이 현상은 10년뒤 중국에서 [[계획생육정책|재현]]된다--
일단 정부는 출산장려와 국제결혼을 권하고 있지만 애초에 비용 절감을 우선시하는 기업문화나 이로부터 파생되는 비정규직 문제와 육아문제, 그 외에 수요-공급 논리와 맞지 않는 주택문제[* 주택가격 하락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무난하다.]가 단기적으로 해결될리가 만무해서 출산장려정책은 큰 효과가 없는걸로 나오고 있고, 해당 분야 전문가들은 대부분 [[이민]]을 주장하는 상황. 특히 UN이나 IMF는 한국이 적어도 인구의 10%. 많게는 35%의 이민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고, 주요 언론들도 [[다문화]]를 사실상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거론하면 한다. 게다가 국제 사회의 흐름도 일본처럼 자체 증가는 별 효과가 없고, 있더라도 인구의 자질 저하를 피할 수 없으며 독일처럼 적극적인 이민수용국이 오히려 상황이 양호해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 역시 출산장려책 자체는 계속 하되, 인구 유지에 있어서는 결국 대세를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완전히 순수한 혈통의식'''([[민족주의]])을 중시하는 한국 문화 특성상 이민 정책이 빛을 발할 때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제노포비아]]가 판을 치는 것도 이것이 바탕이다.
그런데 이민을 받는 부분에 있어서 사회적 저항이 예상 이상으로 심각할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출산을 안 한다기보다는 위에서 언급된 문제들로 못 하는 사람들이 사실상 절대 다수인데 그걸 메우려 이민을 받는다? 아무리 방송에서 떠들고 다민족국가를 장려해 봐야 경제적 문제로 아이를 못 낳는 상황에서 이민을 받아 해결하려 하는 건 설득력 자체가 없다. 더욱 후덜덜한 것은 어거지로 이민을 받아 인구를 늘려도 경제적 모순과 사회적 양극화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면 이제 민족 단위로 갈등이 증폭되거나 이민자 2세들의 집단탈선과 사회문제까지 덤으로 예상된다. 요즘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와 적응하는 과정만 봐도 이미 답이 나온다. 북한이면 같은 민족인데 백안시당하고 아이들 교육을 시키는데 간첩소리를 듣거나 집단차별을 당하는 현실이 방송까지 타는 상황에서 이민자를 대량으로 받는다? 벌써부터 싹수가 노랗고 대혼란만 예상된다. 이미 인터넷 등에서는 이민자 혐오정서가 만연하고 있는데 이게 확산되고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확율도 매우 높다.
다만 [[북한]]의 경우 그 당시 심한 저출산은 아니였기에[* 그 당시 3명대 ~ 2명대였다.] 그나마 [[남북통일]]이 된다면 가능 하겠지만 2010년대 후반에 와서는 이들도 혼인적령기가 지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후 [[고난의 행군]]시기 때문에 출산율이 한국의 80년대까지는 아니더라도 거기도 확 줄어들어 2명대에 근접했기 때문에 그쪽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연상 선호와 북한 남자를 거들떠도 보지 못할 것이 [[안 봐도 비디오]] 수준이기 때문에 상황은 더 심각해질듯 하다. 다만 남성의 경우 60세까지는 아이를 가질 수 있기도 하고 북한 남성과 비교해도 경제력이 있기 때문에 [[남남북녀|그나마 좀 나은 상황]]. 때문에 이 경우 여자가 훨씬 불리하다. 다만 말이 좋아 한 민족이지, 결혼적령기에 있는 세대의 경우 남한 출신은 선진국 태생이고 북한 출신은 최빈국 태생인지라 심각한 [[아비투스]] 충돌을 빚을 가능성이 크기에[* 실제로 2010년대 중반 이후 대한민국의 결혼 풍조는 철저한 게급동질혼이다. 같은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 간에도 출신성분과 사회지위를 따져가며 결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혼이 성사되기 힘들 것이다. 오히려 남북간의 결혼은 현재의 국제결혼이나 다를 바 없을 가능성이 크다.
[[유럽]]의 경우를 살펴봐도 기존의 문화와 인종이 완전히 달라버린 국가들의 이민으로 인해 현재 유럽에서 일어나는 혼란상을 봐도 위험성은 분명하다. 더구나 한국보다 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좀 덜한 편인데도 받아들인 많은 외국인들의 상당수가 중하류층에 머물러 있거나 불만세력이 돼서 극단주의에 심취해 자생적 테러 등을 일으키는 상황을 보면 무작정 이민을 받아 인구를 늘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험성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인건비의 상승문제와 겹쳐 기술의 발전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일자리 문제를 감안하면 교육수준이 낮은 이민자를 대량으로 받아 인구 숫자를 무작정 늘린다는 것 자체가 바보짓에 가깝다. 국방 문제 역시 마찬가지인데 [[징병제]]로 4급 받기도 힘든 젊은이들을 끌어다가 머릿수로 메꾸는 짓거리만 하지 말고, 과학기술을 동원한 첨단병기와 자동화로 그 갭을 메울 생각을 해야한다.
결국 출산율을 근본적으로 올리려면 출산을 비용으로 보는, 그러니까 출산에 대한 인식이 산아제한 시절에 머물러 있는 국민들의 사고방식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실제 일본은 이러한 부분에 직접 칼을 들이대서라도 출산율을 올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래서 출산율이 1.4명 수준까지 오르기는 했다. 자세한 건 [[일본/출산율]] 문서 참고.
== 관련 문서 ==
* [[대한민국/출산율]]
* [[저출산]]
* [[출생 인구]]
* [[출생률]]
* [[인구 증감]]
* [[인구 증감률]]
* [[기대 수명]]
* [[영아 사망률]]
[[분류:저출산]] |
1981 산타클라라 월드 게임 | [include(틀:역대 월드 게임)]
[목차]
||<:><-2><tablebordercolor=#0000FF>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10px-World_Games_1981_logo.png]]||
|| 개최국가 || [[미국]] ||
|| 개최도시 || [[캘리포니아|산타클라라]] ||
|| 개막일 || [[1981년]] [[7월 25일]] ||
|| 폐막일 || [[1981년]] [[8월 3일]] ||
== 개요 ==
[[1981년]] [[미국]] [[캘리포니아|산타클라라]]에서 개최된 최초의 [[월드 게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는 종목의 선수들의 기량을 시험하기 위한 첫 대회이다.
== 이모저모 ==
* 18개 종목에서 개최되었다.
* [[태권도]]가 [[1988 서울 올림픽]]에서부터 시범종목으로 올라갔기 때문에 이 대회에서는 [[월드 게임]]에 태권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 [[야구]]와 [[소프트볼]]도 당시 [[올림픽]] 정식종목에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여기에서 개최하였다. 대륙간컵을 준비하던 [[야구 국대|한국 대표팀]]이 이 대회에 참가했다.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1981년]] 항목 참조.
* 개최를 3년 앞둔 [[1978년]] [[서울특별시]]에서 대회 창설이 결정되었다. 당시 NOF(국제경기연맹 비올림픽종목 회의)의 의장을 역임했고, 훗날 IOC 부위원장을 역임하는 [[김운용]]이 대회 창설에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공로로 김운용은 국제 월드게임협회의 초대 회장이 되었고, 이 대회의 개회선언도 하였다.
[[분류:월드 게임]][[분류:레이건 행정부]] |
1981년 | ||<-13><tablealign=center><bgcolor=#a9a9a9> {{{#000000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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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tablealign=right><bgcolor=#CBB8EE> '''세계 각 지역의 표기''' ||
|| [[서력기원|서기]] || 1981년 ||
|| [[대한민국 연호|대한민국]] || 63년 ||
|| [[단군기원|단기]] || 4314년 ||
|| [[불멸기원|불기]] || 2525년 ||
|| [[황기]] || 2641년 ||
|| [[이슬람력]] || 1401년 ~ 1403년 ||
|| [[갑자|간지]] || [[경신]]년 ~ [[신유]]년 ||
|| [[주체사상|주체]] || 70년 ||
|| [[중화민국|민국]] || 70년 ||
|| [[일본]] || [[쇼와]] 56년 ||
|| [[히브리력]] || 5741년 ~ 5742년 ||
[목차]
== 개요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112260020920902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12-26&officeId=00020&pageNo=9&printNo=18533&publishType=00020|동아일보 선정 1981년 국내외 10대 뉴스]]
정치적으로는 전두환이 새 헌법에 따른 선거인단식 대통령 선거를 통해 연임하면서 '제5공화국'이 출범됐고, 계엄령도 2년여 만에 해제됐다. 이에 따라 3년만에 다시 치러진 11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이 승리했고, 나머지 의석은 민주한국당과 한국국민당 등 관제야당들이 채움으로써 국회는 '1대대-2중대-3소대' 체제가 됐다.
경제적으론 [[1979년]]~[[1980년]]의 제2차 석유 파동의 영향으로 경제적 혼란이 심각해져 이로 인해 많은 주화의 발행량이 축소되었는데 이 당시 나온 [[오원 주화|5원]], [[십원 주화|10원]], [[백원 주화|100원]] [[동전]]들은 100,000개씩 밖에 발행되지 않아 상당히 귀하다. 하지만 -1.7%을 기록한 [[1980년|전년도]]보다 경제성장률이 7.2%로 크게 오르고 12월 19일에 수출 200억 불을 달성해 한국 경제는 회복기에 접어들었다. 또한 대흉년이었던 전년과 다르게[* 여름철에도 기온이 안 오르고 서늘한 날씨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상 저온/사례]] 문서나 [[냉해]] 문서 참고.] 1981년도 쌀 작황은 풍년이었다.
그러나 두 차례 가스 폭발 사고가 터져 LPG 가스의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깨닫게 해준 해이기도 한데, 8월 안양 대교보신탕 폭발사고 및 12월 대한화재 빌딩 지하식당 가스 폭발사고가 대표적이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해 공화당이 다시 정권을 잡았으며, 전임 [[지미 카터]] 대통령의 도덕정치/인권외교를 버리고 대소/반공 강경책으로 일관해 미소 간 관계는 대립 일변도로 치달았다.
또한, 이 해는 세계 지도자들의 [[암살]] 및 암살 시도가 유난히도 많았던 굵직굵직한 해였다. 3월 30일에 있었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부터 시작해서, 5월 13일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암살 미수 사건, 5월 30일에는 [[방글라데시]]의 대통령이었던 지아우르 라흐만이 암살됐고, 8월 30일에는 이란 대통령이었던 라자이가 암살, 뒤이어 10월 6일에는 [[이집트]] 대통령이었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된 그야말로 [[죽음의 신]]이 세계 지도자들의 주위에서 [[죽음의 무도]]를 추던, 지도자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불길한 해였다.
그리고 이 해에 [[유엔|국제연합]]에서 '''세계 장애인의 해'''[* 1981년 당시에는 '세계 장애자의 해'로 불렸음.]가 선포되어 그 일환으로 우리나라에서 '심신장애자복지법'이 만들어졌지만, 당시의 장애인들에게 사회의 시선은 참담하고 냉담했었다.[* 여담으로, 그 해 5월에 장애인이었던 중학생이 사회의 참담하고 냉담한 시선을 참지 못하고 [[자살]] 한 사건이 있었으며, 심지어는 그 해 12월에는 정신 지체 장애인의 부모가 5살 여아를 유괴, 감금해 반 년 동안 정신 지체 장애인의 노리개감으로 삼은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5살 여아는 반년 동안 정신 지체 장애인에게 얼굴에 할퀴고 뜯긴 채로 살아가야 했으며, 결국 5살 여아는 문이 열려 있는 틈을 타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했고 정신 지체 장애인의 부모는 [[약취유인죄]]로 구속 기소되었다.]
[[대구시]]와 [[인천시]]가 각각 동년 7월에 [[경상북도]]와 [[경기도]]에서 분리 독립하여 직할시로 승격되었고, 경기도에서는 시흥군 소하읍과 광명출장소가 통합되어 '[[광명시]]'로 새로 출범되었고, 송탄읍이 평택군에서 분리되어 시로 승격되었다. 전라남도에선 광산군 나주읍과 영산포읍이 합쳐져 '금성시'가 되었다.
1월 5일 [[양평군]]의 최저기온 '''-32.6 °C''', 월평균기온 '''-13.5 °C'''로 엄청난 한파기록을 보여주며 공식 기록으로 대한민국 역대 최저 극값을 기록했다.[* 자세한 내용은 [[한파]] 문서 참고.]
== 사건 ==
=== 실제 ===
==== 1월 ====
* [[1월 1일]]
* [[대한민국]] 중앙정보부가 국가안전기획부로 개칭되었다.
* 전두환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1981년은 '제5공화국의 해'라고 강조하였다.
* 스즈키 일본 총리는 김대중사건 재판이 일본과 무관한 한국 내 문제라고 밝혔다.
* [[그리스]] 정부가 EC에 가입했다.
* [[1월 4일]]: 연합통신이 창간호를 냈다.
* [[1월 5일]]: [[대한민국]] 지역에서 관측된 역대 공식 최저기온 '''-32.6 ˚C'''가 [[양평군]]에서 관측되었다.
* [[1월 7일]]: 서울시는 청피노조에 해산 명령서를 발부했다.
* [[1월 8일]]: '한국미술 5000년전'이 미국 뉴욕에서 개최되었다.
* [[1월 12일]]: 전두환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남북한 당국 최고책임자 상호방문을 제의했다.
* [[1월 13일]]: 소설가 월탄 박종화가 세상을 떠났다.
* [[1월 14일]]: 정부행정자료실이 문을 열었다.
* [[1월 15일]]: [[민주정의당]]은 창당대회에서 총재 겸 12대 대통령후보로 전두환 대통령을 추대하였다.
* [[1월 17일]]: [[민주한국당]]은 창당대회에서 총재 겸 대통령후보로 유치송을 추대하였다.
* [[1월 19일]]
* 안기부는 3개 간첩망 15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 김일 북한 조평통위원장은 남북대화 재개 전제조건 5개항을 제시했다.
* 미국-이란 양국이 테헤란 미대사관 억류 미국인들의 석방에 합의했다.
* [[1월 20일]]
* 고정훈을 중심으로 한 '민주사회당'이 창당되었다.
* 문교부는 방통대를 2년제에서 5년제로 변경하였다.
*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제40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 이란에 억류되었던 미국인 55명이 444일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레이건 대통령이 선서를 한 직후인 1월 20일 정오에 풀어줬다고 한다.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이란이 복수를 한거나 마찬가지이다.]
* [[1월 21일]]: 상공부는 전국 읍면 새마을공장 건설계획을 발표하였다.
* [[1월 22일]]
* 청피노조 사무실이 강제 폐쇄되었다.
*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설립되었다.
* [[1월 23일]]
*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은 창당대회에서 총재 겸 대통령후보로 김종철을 지명하였다.
* 민권당은 창당대회에서 창당대회에서 총재 겸 대통령후보로 김의택을 지명하였다.
* 대법원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피고인 12명에 대해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 등 원심을 확정했다.
* 정부는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김대중을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키로 결정했다.
* [[1월 24일]]
* 정부는 비상계엄 실시 465일만에 '계엄포고 13호' 전면 해제를 공고하였다.
* 아동문학가 이원수가 세상을 떠났다.
* [[1월 25일]]: 프로권투선수 [[김철호]]가 WBC 슈퍼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베네수엘라의 라파엘 오로노를 9회만에 KO로 꺾어 타이틀을 차지하였다.
* [[1월 27일]]
* 김갑수를 중심으로 한 '신정당'이 창당되었다.
*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회'가 설립되었다.
* [[인도네시아]] 자바 해역에서 여객선 '탐포나스 2호'가 침몰해 580명이 사망했다.
* [[1월 28일]]
* 전두환 대통령이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 북한 조선사회당이 당명을 '조선사회민주당'으로 바꾸었다.
* [[1월 30일]]: 청피노조는 서울시의 노조해산령에 불복하며 AAFLI 한국사무실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 2월 ====
* [[2월 1일]]: 전두환 대통령은 발트하임 유엔 사무총장과 회담을 열었다.
* [[2월 2일]]: 한국방송공사는 교육방송채널 '[[KBS 3TV]]'를 개국하였다.
* [[2월 3일]]
* 전두환-레이건 양국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 백지화 등 14개항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 반도상사가 휴업공고를 발표했다.
* [[2월 4일]]: 미국 정부는 일본에 대해 경제/군사지원을 강화토록 촉구했다.
* [[2월 7일]]
* [[일본]] TV아사히에서 <[[태양전대 선발칸]]>이 첫 전파를 탔다.
* 일본 정부가 [[북방 영토의 날]]을 제정하였다.
* [[2월 10일]]: [[KBS1]]에서 [[가요톱10]]이 첫 전파를 탔다.
* [[2월 11일]]: 선관위는 대통령선거인단 투표를 개시해 선거인단 5,278명을 선출했다.
* [[2월 12일]]: 한일경제협회가 발족되었다.
* [[2월 15일]]: 북한의 김일성이 미테랑 프랑스 사회당위원장과 평양에서 회담을 열었다.
* [[2월 18일]]: 유명 하드록 밴드 [[LAZY]]가 일본 도쿄 쵸후시에서 열린 라이브에서 해체를 발표했다.
* [[2월 19일]]
* 서울대는 충북 보은 교수/학사협의회에서 문제학생의 휴학 및 군 입대를 학부모들에게 권장토록 하였다.
* 조선초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일본 도쿄에서 발견되었다.
* [[2월 20일]]: 대한민국 대학 최초의 [[새터]]가 [[서강대학교]]에서 시행되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1021900329212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02-19&officeId=00032&pageNo=12&printNo=10889&publishType=00020|#]]
* [[2월 22일]]: 경남도시가스가 설립되었다.
* [[2월 23일]] - [[스페인]]에서 [[23-F]]가 일어났다.
* [[2월 24일]]: 한국동력자원연구소는 충남 금산에서 평균품위 0.04%짜리 우라늄 1,255만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 [[2월 25일]]
* 전두환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인단 투표에서 다시 당선되었다.
* 입법회의는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법안'을 의결하였다.
* [[2월 26일]]: 전 국대 야구선수 허구연이 운동선수로서 최초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 [[2월 27일]]: 이선근 등 학림그룹 인사들이 '전국민주학생연맹(이하 전민학련)'을 결성하였다.
* [[2월 28일]]
* 상공부는 승용차생산을 현대-새한으로 이원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자동차공업 통합조치|자동차공업 재조정안]]'을 발표했다.
* 서울시는 옥외 롤러스케이트장을 허가키로 결정하였다.
* 영산강하구 물막이공사가 완공되었다.
==== 3월 ====
* [[3월 1일]]: 바비 샌즈를 비롯한 [[IRA]] 관련 수감자들이 [[아일랜드 단식투쟁|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 [[3월 3일]]
* 전두환 대통령 연임과 동시에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이 출범되었다.
* 법무부는 부마사태, 5.18, 민청학련 사건, 10.26 사건 관련자 등 재소자 5,221명을 사면조치하였다.
* [[3월 7일]]
* 방송위원회가 세워졌다.
* [[한국방송공사]]가 1TV 및 2TV 광고방송을 재개하였다.
* [[3월 11일]]
* 팀 스피릿 '81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되었다.
* 마무드 알리 라자이 이란 총리가 신임 대통령직에 취임하였다.
* [[3월 13일]]
* 국무회의는 노동청을 노동부로, 무임소장관을 정무장관으로 개편하는 등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의결하였다.
* 반도상사노조가 해산되었다.
* [[3월 14일]]
* MBC에서 <토요일 토요일 밤에>의 후속으로 <쇼 2000>이 첫 전파를 탔다.
* 북한의 김일성은 전두환 대통령의 1.12 제의를 거부했다.
* [[3월 13일]]: 제5차 ITI 제3세계연극제 및 회의가 서울 문예회관에서 개최되었다.
* [[3월 16일]]: MBC에서 어린이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이 첫 전파를 탔다.
* [[3월 17일]]: MBC에서 탐사보도 프로그램 <레이다11>이 첫 전파를 탔다.
* [[3월 19일]]
* [[문용식]]과 박대건 등 서울대생 3백여 명이 <반파쇼 반민주 투쟁선언>을 배포하며 교내시위를 벌였다.
* 북한-이집트 양국이 평양에서 상품유통의정서를 조인했다.
* [[3월 20일]]: 정부는 '식품위생법 시행령 개정안' 등 인허가 관계 26개법을 개정하였다.
* [[3월 21일]]: 에스콰이어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 [[3월 22일]]: 김영남 북한 로동당 국제부장이 '한반도 통일을 세계대회'에 참석키 위해 알제리로 출국했다.
* [[3월 23일]]: 선인학원은 재단비리와 관련해 재산 1천억 원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밝혔다.
* [[3월 24일]]: 내무부는 연좌제 폐지 및 전과기록 말소 지침을 발표하였다.
* [[3월 25일]]
* [[제11대 국회의원 선거]]가 전국에서 일제히 개최되었다.
* 개표 결과 여당인 민정당이 90석, 관제야당 민한-국민당이 각각 57석, 19석을 얻었다.
* [[3월 26일]]: 북한의 김일성은 니에레레 탄자니아 대통령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 [[3월 29일]]: MBC에서 <[[일요일 밤의 대행진]]>이 첫 전파를 탔다.
* [[3월 30일]]: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힐튼호텔에서 괴한의 총에 맞았으나,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레이건 암살미수 사건)
* [[3월 31일]]
* 입법회의가 154일만에 활동을 종결했다.
* [[언론중재위원회]]와 방송심의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4월 ====
* [[4월 1일]]
* 3촌 이상 해외초청 허용 등을 담은 '개정 여권법'이 시행되었다.
*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다.
* 종전의 (주)문화방송-경향신문이 (주)문화방송과 (사)경향신문사로 분리되었다.
* TV 광고의 컬러 방영이 시작되었다.
* [[4월 2일]]: [[공화국 시리즈]] 제1작 <[[제1공화국(드라마)|제1공화국]]>이 MBC에서 첫 전파를 탔다.
* [[4월 3일]]: 법무부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구속된 83명 전원에 대해 감형 및 사면조치를 내렸다.
* [[4월 6일]]: 사회정화위는 청탁풍조 배격 무기한 국민운동을 전개하였다.
* [[4월 8일]]: <닥터 슬럼프> 애니판이 일본 후지TV에서 첫 전파를 탔다.
* [[4월 9일]]: 안기부는 박창복 등 간첩 13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 [[4월 10일]]
* 전두환 대통령은 새 대법원장직에 유태흥 대법원 판사를 임명하였다.
*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청탁풍조 배격 서울시민 결의대회'가 개최되었다.
* 현대미술관회가 설립되었다.
* [[4월 11일]]: 제11대 국회가 개원되었다.
* [[4월 12일]]
* [[미국]] NASA는 세계 최초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를 휴스턴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하였다.
* 재일 조총련경제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했다.
* [[4월 13일]]: '[[교정시설경비교도대]] 설치법'이 제정되었다.
* [[4월 14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표단이 IPU 이사회에 참가했다.
* [[4월 15일]]
*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이 착공되었다.
* 경북 포항 65km 해상에서 진도 4.5짜리 강진이 발생했다.
* [[4월 17일]]: [[국립세무대학]]이 개교되었다.
* [[4월 18일]]: 경기 광주군 삼합리에서 곰이 처음으로 목격되었다.
* [[4월 20일]]: 국정자문회의가 발족되었다.
* [[4월 23일]]: 북아일랜드 청년 가톨릭 신도들이 벨파스트와 런던데리에서 9일째 군경과 무장충돌을 벌였다.
* [[4월 27일]]
* [[한일은행]]이 민영화되었다.
* 보사부는 아폴로눈병 주의보를 발령시켰다.
* [[4월 28일]]: 한국기술개발(주)가 설립되었다.
* [[4월 29일]]
* 한국 축구대표팀이 스페인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쿠웨이트에 0-2로 패해 본선진출이 좌절되었다.
* 제13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가 개막되었다.
==== 5월 ====
* [[5월 1일]]
* 국무회의는 '공직자윤리법안'을 의결하였다.
* 문교부는 1982년부터 교육세를 신설한다고 발표하였다.
* KBS국제방송국이 독일어 라디오방송을 개시하였다.
* 을지중앙의료원이 발족되었다.
* [[5월 4일]]: 철도청은 철도박물관 건립을 결정하였다.
* [[5월 6일]]
* [[공정거래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미국 정부는 국제테러행위 지원 혐의로 전 주미 리비아 외교관들에게 출국명령을 내렸다.
* [[5월 7일]]
*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가 발족되었다.
* 산악인 기형희가 이끄는 한국여자등반대가 히말라야 람중히말봉을 여성 최초로 정복하였다.
* [[5월 8일]]
* 대주종합건설이 설립되었다.
* 레이건-스즈키 미일 양국 정상은 백악관에서 한반도 평화를 함께 증진시키기로 다짐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 [[5월 10일]]: 미테랑 프랑스 사회당 후보가 대선에서 지스카르 데 스탱 대통령의 연임을 저지해 당선되었다.
* [[5월 11일]]: 한국통일연구위원회가 설립되었다.
* [[5월 12일]]: 부산 태화쇼핑이 문을 열었다.
* [[5월 1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괴한의 총격으로 부상당했다.
* [[5월 14일]]
* 경북 [[경산시|경산군]] 경부선 일대에서 열차 2대가 충돌해 55명이 죽고 24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경산 열차 추돌사고]])
* (사)민족통일중앙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5월 18일]]: 신병현 부총리와 글라이스틴 주한미대사는 한-미 간 잉여농산물 15만톤 도입협정 제의를 끝으로 미국 잉여농산물 도입이 26년만에 종결되었다.
* [[5월 21일]]: 새세대육영회가 설립되었다.
* [[5월 22일]]: 정부는 에너지 절약시책에 따라 중단된 TV 아침방송을 25일부터 재개한다고 밝혔다.
* [[5월 23일]]: 충남 보령 외연도 앞바다에서 조업 중이던 해녀 1명이 식인상어에 물려 숨졌다.
* [[5월 25일]]
* KBS-MBC 양사는 TV 아침 방송시간대를 8년만에 부활시켰다.
* [[MBC]]에서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 아침드라마 <포옹>이 첫 전파를 탔다.
* [[5월 27일]]
* 서울대생 김태훈이 관악캠 5.18 희생자 위령제 도중 도서관 건물에서 "살인마 전두환 물러가라"를 세 번 외치며 투신자살했다.
* 경기 광주-여주 일대에 출몰했던 곰이 사살되었다.
* [[5월 28일]]
* '[[국풍81]]'이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개막되었다.
* 대한불교조계종은 새 총무원장직에 초우 스님을 선출하였다.
* [[5월 29일]]: 보안사는 중앙일보 연재소설 <욕망의 거리> 저자 한수산 등 7명을 서빙고분실로 연행했다.(한수산 필화사건)
* [[5월 30일]]
* '충무공 고성지역 전승기념사업회'가 설립되었다.
* 지아우르 라흐만 방글라데시 대통령이 치타공에서 육군 장교들에게 암살당했다.
* [[5월 31일]]: [[일본]] 유명 하드록 밴드 [[LAZY]]가 잠정 해체했다.
==== 6월 ====
* [[6월 3일]]: 이규호 문공장관은 국회 문공위에서 학원소요를 강경대처로 극복하겠다고 답변했다.
* [[6월 5일]]: 전두환 대통령은 평통 개회식에서 1.12제의 수락을 북측에 촉구하였다.
* [[6월 6일]]
* 정부는 컴퓨터 등 56개 업종에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였다.
* 인도 동부 비하르 주에서 열차가 강으로 추락해 탑승자 5천여 명이 숨졌다.
* [[6월 7일]]: 이스라엘 공군 전폭기들이 [[이라크]] 북부 오시리크 원자력 발전소를 폭격했다.
* [[6월 10일]]: 한일의원연맹이 발족되었다.
* [[6월 11일]]: 이란 테헤란 주 남동부 지역에 규모 6.8짜리 지진이 발생해 1,027명이 숨졌다.
* [[6월 12일]]
* 인천수협 소속 어선 제1공영호가 NLL 인근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에 납북당했다.
* 한국언론연구소가 '한국언론연구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 [[6월 15일]]: 일본 자민당 정조회장 아베 신타로가 스즈키 총리의 친서를 가지고 방한했다.
* [[6월 17일]]: 일본 [[도쿄도]] [[고토구]]에서 [[후카가와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다.
* [[6월 19일]]: 대한체육회는 1984년 LA올림픽 남북한 단일팀 구성을 북측에 제의하였다.
* [[6월 20일]]: 한국 대표단이 미국 애틀란타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 4연패를 달성하였다.
* [[6월 23일]]
* 금융통화운영위원회는 저축예금금리를 단일금리인 14.4%로 대폭 인상했다.
* 미국인 롤스턴이 소유한 고종황제 하사 태극기가 91년만에 돌아와 정부로 기증되었다.
* [[6월 24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북괴 재침흉계 분쇄 및 6.5제의 수락촉구 궐기대회'가 열렸다.
* [[6월 25일]]: 전두환 대통령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5개국을 순방키 위해 출국하였다.
* [[6월 26일]]
* 순국선열유족회가 설립되었다.
* 중공-인도 외무장관 회담이 개최되었다.
* [[6월 27일]]: 한국이슬람교 경기 광주성원이 문을 열었다.
* [[6월 28일]]: 초우 스님이 새 조계종 총무원장직에 취임하였다.
* [[6월 30일]]
* 부산 삼미유나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 도봉산자연공원 및 유원지 정비공사가 완공되었다.
* 중공 정부는 마오쩌둥 사상을 폐기하고 덩샤오핑식 실용주의 지도체제를 선언하였다.
==== 7월 ====
* [[7월 1일]]
* 경상북도 대구시와 경기도 인천시가 직할시로 승격되고 송탄 등 10개시가 출범되었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한국 및 자유중국산 신발류 수입쿼터제를 철폐하도록 결정했다.
* 한국인구보건연구원이 설립되었다.
* 하곡수매제가 전국 농촌에서 일제히 실시되었다.
* [[7월 2일]]
* 신안해저유물발굴조사단이 세계 최대 청자정병 등 보물 247점을 인양하였다.
*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전두환 대통령의 1.21 제의 수락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 [[7월 6일]]: 한국고고미술연구소가 설립되었다.
* [[7월 14일]]: 한국 대표팀이 존스컵 국제여자농구대회에서 우승하였다.
* [[7월 15일]]: [[닌텐도]]가 아케이드 게임 [[동키콩(게임)|동키콩]]을 일본에 출시하였다.
* [[7월 17일]]: [[이스라엘 공군]] 전폭기들이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공습해 PLO측 중요 시설들을 파괴했다.
* [[7월 18일]]
* 서울신문사가 주간지 <TV가이드>를 창간하였다.
* 폴란드 공산당은 동구권 최초로 직접비밀투표에서 카니아 제1서기를 재선하였다.
* [[7월 19일]]: 프로권투선수 김환진이 대구 WBA 주니어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파나마의 알폰소 로페스를 꺾어 우승하였다.
* [[7월 22일]]: 한-일 양국 정부는 안보차원 경제협력 모색을 논의하였다.
* [[7월 23일]]: 검찰은 [[이태복]] 등 전민학련 및 전민노련 관련자 30여 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학림 사건]])
* [[7월 25일]]: 정부는 일본에 차관 60억 달러를 요청하는 한편 외국인의 투자업종을 대폭 확대했다.
* [[7월 28일]]: 정부는 복수여권제 도입을 골자로 한 새 여권법 시행규칙을 제정하였다.
* [[7월 29일]]
* [[다이애나 스펜서]]가 [[찰스 왕세자]]와 결혼했다.
* 성보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 [[7월 31일]]: 법무부 교정국은 '교정시설경비교도대 1기 발대식'을 경북 김천소년교도소에서 개최하였다.
==== 8월 ====
* [[8월 1일]]: 미국 WASEC사가 케이블 음악채널 '[[MTV]]'를 개국하였다.
* [[8월 3일]]: [[미국]] 항공관제사노조(PATCO)가 전면 총파업에 돌입했다.
* [[8월 4일]]
* 납북어선 제2태창호가 244일만에 조국의 품으로 귀환하였다.
* 윤경화 보살 등 일가족 3명이 서울 원효로 자택에서 2주만에 피살된 사체로 발견되었다.(윤경화 보살 피살사건)
* [[8월 5일]]
* 국방부는 [[박세직]] 수경사령관을 청탁 등 비위행위와 관련해 예편시켰다고 밝혔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본업 복귀지시를 불이행한 관제사 11,345명을 해고한다고 밝혔다.
* [[8월 6일]]: 북한 조평통은 전두환 대통령의 남북한 수뇌회담 제의 등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 [[8월 7일]]: 강정렬 아시아신협 사무국장이 1981년 막사이사이상 국제이해협력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 [[8월 8일]]: 서울시는 지하철 3~4호선 역 확정을 고시하였다.
* [[8월 10일]]: 서울 경동시장이 착공되었다.
* [[8월 11일]]: 고정화력발전소가 착공되었다.
* [[8월 13일]]
* 치안본부는 고정간첩 나진-나수연 남매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 경기 안양 대교보신탕에서 LP가스가 폭발해 10명이 사망하고 36명이 부상을 입었다.
* [[8월 14일]]: 정부는 석탄 및 연탄값을 각각 15.81%, 10.87%로 대폭 인상했다.
* [[8월 15일]]: 법무부는 광복절을 맞이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련자 등 재소자 1,061명을 특별 사면시켰다.
* [[8월 17일]]: 서울지하철 3~4호선 도심공사가 착공되었다.
* [[8월 19일]]: 서울지검은 전두환 대통령의 사촌동생 전우환을 변호사법 위반혐의로 구속하였다.
* [[8월 20일]]: 광주어린이대공원이 준공되었다.
* [[8월 21일]]: 경제기획원은 제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 [[8월 22일]]: 정부는 한일 외상회담 제2차 회의에서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 중 총 60억 달러의 공공차관을 제공토록 공식 요청했다.
* [[8월 27일]]: 국내 최초의 정당후원회 '민정당후원회'가 창립되었다.
* [[8월 30일]]: 라자이 이란 대통령과 바호나르 총리가 취임 5개월여 만에 괴한의 폭탄테러로 암살당했다.
* [[8월 31일]]: 신영예술문화재단과 한국분재협회가 설립되었다.
==== 9월 ====
* [[9월 1일]]: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가 설립되었다.
* [[9월 2일]]
* [[부마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 한국의상협회가 설립되었다.
* [[9월 5일]]: 폴란드 솔리다르노시치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로서 처음으로 전국대회를 개최하였다.
* [[9월 7일]]: 연세대박물관은 충북 단양군 상시천변 석회암동굴에서 12만년 전 구석기인의 유골 다량을 발굴해냈다.
* [[9월 9일]]: 정래혁 국회의장은 돗자리 사건과 관련된 문공위원 9명에게 경고서한 및 전 의원 대상 청렴강조 공한을 보냈다.
* [[9월 9일]]: KOBACO 산하기구 '방송광고향상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9월 10일]]: 한일각료정기회의가 서울에서 개막되었다.
* [[9월 11일]]: [[노신영]] 외무부 장관과 소노다 스나오 외무대신은 외상회담을 열었으나 안보경협문제에 대한 정치적 절충이 실패로 끝났다.
* [[9월 14일]]: 미국 최신예 전투기 [[F-16]]기 한국배치분 48대 중 제1진 8대가 주한 미공군에 실전배치되었다.
* [[9월 19일]]: 문공부 문화재위는 6월 23일부터 8월 22일까지 전남 신안 해저현장에서 청자 등 유물 2,564점을 인양했다고 밝혔다.
* [[9월 20일]]: [[벨리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 [[9월 21일]]: 부산산대 여학생 박상은이 서울 삼성동 대리석 야적장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여대생 박상은 양 피살사건)
* [[9월 23일]]: 박성수 창업주가 이화여자대학교 앞에서 잉글런드를 개업하였다. 이것이 이랜드그룹의 뿌리이다.
* [[9월 26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민항기 [[보잉 767]]이 첫 비행에 성공했다.
* [[9월 27일]]
* [[피에르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한국을 방문하였다.
* 프랑스 파리~리옹 간 고속철도([[TGV]]) 구간이 개통되었다.
* [[9월 28일]]: 윤보살 피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던 고숙종 씨가 경찰의 고문으로 인해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 [[9월 30일]]: 제84회 바덴바덴 IOC 총회는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에 [[서울특별시]]를 확정지었다.
==== 10월 ====
* [[10월 1일]]
* 철도청이 승차권 컴퓨터발매를 개시하였다.
* 새 여권 발급이 전국적으로 개시되었다.
* 동-서독 양국은 대규모 첩보원 상호석방 교환에 합의하였다.
* [[10월 2일]]
* 제1회 전국장애자체육대회가 개최되었다.
* 만화가 이원복이 만든 <[[먼나라 이웃나라]]>가 소년한국일보에 처음 연재되었다.
* [[10월 5일]]
* 노신영 외무장관과 알렉산더 헤이그 미 국무장관은 워싱턴에서 한미 외상회담을 열었다.
* MBC에서 여인열전 시리즈 제1작 <장희빈>이 첫 전파를 탔다.
* [[10월 6일]]: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군 퍼레이드 참관 도중 괴한들에게 암살당했다.
* [[10월 10일]]
* [[천재교육]]이 설립되었다.
* 북한의 김일성이 아라파트 PLO 의장과 회담을 열었다.
* [[10월 13일]]
* 문교부는 1982년부터 국교 4년생 이상을 대상으로 특활시간마다 영어교육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 보안사는 재일동포 대학생 김태홍 등 5명을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 [[10월 14일]]: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부통령이 대통령직에 취임했다.
* [[10월 15일]]
* 정부는 조직 수를 3실 41국 453과로 축소한 '정부조직정비안'을 발표하였다.
* 서울 철도고 실습장에 '철도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 [[10월 16일]]
* 남덕우 총리와 여야 3당은 국가보위법 및 8.3조치 폐지에 합의하였다.
* 동서고속도로가 착공되었다.
* 가수 나훈아가 5년만에 가요계로 복귀하였다.
* [[10월 17일]]: 대우조선 옥포조선소가 준공되었다.
* [[10월 20일]]: 서울 서초구에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 문을 열었다.
* [[10월 27일]]
* 서울 원효대교가 준공되었다.
* 서울 삼성동에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이 문을 열었다.
* [[10월 29일]]: 농림수산부는 추곡수매가를 14%로 올린다고 결정했다.
==== 11월 ====
* [[11월 1일]]
* 원로 언론인 유광열이 세상을 떠났다.
* [[앤티가 바부다]]가 [[영국]]으로부터 정식 독립했다.
* [[11월 2일]]
*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한국원호복지공단이 설립되었다.
* 원로시인 김소운이 세상을 떠났다.
* [[11월 5일]]
* 건설부는 제2제철소를 전남 광양만에 건립키로 최종 확정했다.
* 문교부는 긴급 대학총장 간담회를 열어 학원소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적극적인 동조자도 처벌키로 하였다.
* [[11월 6일]]: 안기부는 재미/재일 간첩단 3개망을 적발해내 홍선길 등 관련자 9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 [[11월 8일]]: 쁘렘 띤술라논 태국 총리가 한국을 방문하였다.
* [[11월 10일]]: [[여의도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 [[11월 11일]]
* 보안사는 통혁당을 결성한 이헌치와 이주광 등 고정간첩 2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산업체/학원침투 간첩단 사건)
* 외무부는 1981년 6월 기준으로 재외국민이 98개국 159만 853명이라고 밝혔다.
* [[11월 13일]]
* 경찰은 [[공주사대]] 지하서클 '금강회' 관련자 8명을 구속했다.(금강회 사건)
* 미국 NASA가 유인우주왕복선 '컬럼비아 호'를 발사하였다.
* [[11월 14일]]: 미국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로봇팔 실험에 성공하였다.
* [[11월 18일]]: 철도청이 국립서울병원을 준공하였다.
* [[11월 19일]]: 여야 3당이 전경련회관에서 '[[야간통행금지]] 해제 건의안'을 채택하였다.
* [[11월 21일]]: 부산 금정산에서 만원버스가 추락해 승객 70명 중 33명이 숨졌다.(부산 금정산 버스추락사고)
* [[11월 23일]]: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미국 중앙 정보국|CIA]]의 [[니카라과]] 반군 세력 지원계획에 서명했다. 이는 [[이란-콘트라 사건]]의 씨앗이었다.
* [[11월 25일]]
* '충민공 임경업장군 숭모회'가 설립되었다.
* [[일본]] 헤비메탈 밴드 [[라우드니스]]가 1집 앨범을 냈다.
* [[11월 26일]]: 뉴델리 AGF 총회는 1986년 하계 아시안게임 개최지를 서울특별시로 확정지었다.
* [[11월 27일]]
* 국내 대미환율이 7백원 대를 돌파했다.
* 북한 조선로동당은 허정숙을 당비서에 선출했다.
* [[11월 29일]]: 과기처가 '기술진흥확대회의'를 신설하였다.
* [[11월 30일]]
* 서울시경은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 관련자 주영형 교사 등 3명을 검거하였다.
* 기아-동아차 양사가 1대 1 통합에 합의하였다.
==== 12월 ====
* [[12월 1일]]
* 대법원은 변호인 없는 형사재판을 금지하였다.
* 오보테 우간다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다.
* [[리종옥]] 북한 총리가 네팔-방글라데시 방문차 출국했다.
*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표단이 프랑스-가나-기니비사우 방문차 출국했다.
* [[12월 4일]]
* 국무회의는 '8.3조치 폐지법률안'을 의결하였다.
* [[최경록]] 주일대사는 사쿠라우치 요시오 외무대신과 회담에서 한일경협협상 재개 등에 합의하였다.
* [[12월 5일]]: 북한 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는 조선왕조실록 적상산본 1,163권을 <리조실록>으로 완역했다고 밝혔다.
* [[12월 8일]]: 영산강 하구언 공사가 완공되었다.
* [[12월 10일]]: 국회 내무위는 국민당이 제출한 통금해제 건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 [[12월 11일]]: [[한국야구위원회|한국프로야구위원회]]가 창립되었다.[* 이를 기념해 1982년부터 매년 12월 11일에 [[KBO 골든글러브상]] 시상식과 KBO 창립 기념행사를 진행했지만 2013년부터는 12월 둘째 화요일에 [[KBO 골든글러브상]] 시상식을 여는 것으로 규정을 바꿨다.]
* [[12월 13일]]
*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폴란드 [[총리]]가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 폴란드 정부는 바웬사 자유노조지도자 등 반체제인사 2천여명을 검거했다.
* [[12월 14일]]: 이스라엘 정부는 시리아령 골란고원을 합병한다고 선언했다.
* [[12월 15일]]: 서울 제3한강교가 확장 개통되었다.
* [[12월 17일]]
* 국세청은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투기 전매자 1,005명에 양도소득세/증여세 등 세금 31억 원을 추징하였다.
* 유엔 안보리는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합병 무효를 결의하였다.
* [[12월 19일]]: 한국 수출실적이 2백억 달러를 돌파했다.
* [[12월 20일]]: 자오쯔양 중공 총리가 북한을 방문했다.
* [[12월 21일]]: 세계은행은 한국에 산업구조조정 차관 2억 5천만 달러를 포함한 3억 4천만 달러의 차관을 공여하기로 결정했다.
* [[12월 22일]]: 북한의 김일성이 [[자오쯔양]] 중공 총리와 면담했다.
* [[12월 23일]]
* 제1한강교 확장공사가 완공되었다.
* 경수전철 복복선이 개통되었다.
* [[12월 26일]]
* 대한화재빌딩 지하 식당에서 LP가스가 폭발해 3명이 죽고 9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 [[부산외국어대학교]]가 개교하였다.
* [[12월 27일]]: 전두환 대통령은 대한화재빌딩 가스폭발사고와 관련해 화재대피시설 보완을 지시하였다.
* [[12월 29일]]: 상공부는 대일 무역적자가 21억달러를 기록해 전체 무역적자의 82.8%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 [[12월 31일]]
* 서울언론재단이 설립되었다.
* 한양주택이 (주)한양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 가상 ===
* [[10월 11일]] : 제3중학교 여학생이 [[이지메]]를 견디지 못하고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 [[아마야도 버스정류장]][* 사망년도에 논란이 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 [[12월 24일]] : [[소련]]의 실험시설 얌츠크11에서 세계 최대의 TAROS가 폭주했다. - [[풀 메탈 패닉]]
* 레닌-1에서 [[멕시코]]가 공산화되었다. - [[겁스 무한세계]]
* 영화 [[변호인(영화)|변호인]], [[조커(2019)|조커]]의 배경연도이다.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콜드 워]]의 주요 배경연도.
== 탄생 ==
=== 실존인물 ===
* [[1월 2일]] - [[막시 로드리게스]]: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1월 5일]] - [[deadmau5]]: [[캐나다]]의 [[DJ]], [[프로듀서]]
* [[1월 9일]] - [[이동건(작가)|이동건]]: [[대한민국]]의 만화가
* [[1월 10일]] - [[브라이언(플라이 투 더 스카이)|브라이언]]: [[미국]]의 [[가수]], 그룹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멤버
* [[1월 13일]] - [[성진환]]: [[한국]]의 [[가수]], 그룹 [[스윗소로우]]의 멤버
* [[1월 14일]] - [[개코(다이나믹 듀오)|개코]]: [[한국]]의 [[래퍼]], 듀오 [[CB Mass]], [[다이나믹 듀오]]의 멤버
* [[1월 18일]] - [[강동원]]: 대한민국의 배우
* [[1월 19일]] - [[후지오카 미키오]]: [[일본]]의 [[기타리스트]]
* [[1월 20일]]
* [[오언 하그리브스]]: [[영국]]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임강희(배우)|임강희]]: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 [[1월 21일]]
* [[앤디(신화)|앤디]]: [[한국]]의 [[래퍼]], 그룹 [[신화(아이돌)|신화]]의 멤버
* [[정려원]]: 한국의 연기자, 전 [[가수]]
* [[카도와키 사토시]]: 일본의 [[애니메이터]]
* [[1월 24일]] - 권동식 : [[대한민국]]의 야구 코치, 前 [[야구선수]]
* [[1월 25일]] - [[파울로 티아고]]: [[브라질]]의 [[BOPE]], [[종합격투기]] 선수
* [[1월 26일]]
* [[곽현화]]: [[한국]]의 [[개그우먼]]
* [[차일목]]: [[한국]]의 [[야구]] 선수
* [[1월 28일]]
* [[오토하]]: 일본의 [[영화배우]] 겸 성우
* [[일라이저 우드]]: [[미국]]의 배우
* [[코다이라 유우키]]: [[일본]]의 [[성우]]
* [[호시노 겐]]:[[일본]]의 [[가수]] 겸 [[배우]]
* [[1월 30일]]
* [[오병조]]: 대한민국의 성우
* [[호세 카페얀]]: [[도미니카 공화국]]의 [[야구]] 선수
* [[히구치 치에코]]: [[일본]]의 [[성우]]
*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불가리아]]의 축구 선수
* [[피터 크라우치]]: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1월 31일]]
* [[마츠이 유세이]]: [[일본]]의 [[만화가]]
* [[이양기]]: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2월 1일]] - [[앨리슨 빅토린]]: 미국의 성우
* [[2월 6일]] - [[심은진]]: 대한민국의 가수 및 배우, 그룹 [[베이비복스]]의 멤버
* [[2월 9일]]
* [[롬 미스릴]]: 미국의 [[유튜버]]
* [[심수창]]: 한국의 [[야구]]선수
* [[톰 히들스턴]]: 영국의 배우
* [[2월 10일]] - [[조여정]]: 한국의 배우
* [[2월 11일]]
* [[아리츠 아두리스]]: [[스페인]]의 축구 선수
* [[김승회]]: 한국의 [[야구]] 선수
* [[권도영]]: 한국의 [[야구]] 코치
* [[2월 12일]]
* [[김산호]]: 한국의 배우
* [[정미선(아나운서)|정미선]]: [[SBS]] [[아나운서]]
* [[조정현(프로게이머)|조정현]]: 한국의 [[프로게이머]]
* [[경동호]]: 방송인
* [[2월 13일]] - [[나베이 마키코]]: 일본의 성우
* [[2월 14일]]
* [[김환성]]: 대한민국의 가수, [[NRG(아이돌)|NRG]] 멤버
* [[후지와라 요시유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 [[2월 15일]]
* [[홍수현]]: 대한민국의 배우
* [[진태현]]: 대한민국의 배우
* [[2월 16일]] - [[허경환]]: 한국의 [[개그맨]]
* [[2월 17일]]
* [[브렛 로저스]]: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조셉 고든레빗]]: 미국의 배우
* [[패리스 힐튼]]: 미국의 배우
* [[2월 18일]]
* [[김재원(배우)|김재원]]: 대한민국의 배우
* [[정우]]: [[대한민국]]의 [[배우]][* 음력 [[1월 14일]].]
* [[2월 19일]] - 커피귀족: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 [[2월 23일]]
* [[나카하라 마이]]: 일본의 성우
* [[가레스 배리]]: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2월 24일]] - [[박정아]]: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쥬얼리]]의 前 멤버
* [[3월 1일]]
* [[김동수(프로게이머)|김동수]]: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Tatsh]]: [[BEMANI 시리즈의 아티스트]], 본명은 시미즈 타츠야.
* [[3월 2일]] - [[손지화]]: [[한국]]의 아나운서
* [[3월 3일]]
* [[성유리]]: 대한민국의 가수 및 배우, 그룹 [[핑클]]의 멤버
* [[유진(1981)|유진]]: 대한민국의 가수 및 배우, 그룹 [[S.E.S.]]의 멤버
* [[3월 5일]] - [[한나 알스트룀]]: [[스웨덴]] 출신의 [[배우]].
* [[3월 7일]] - [[최현준]]: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V.O.S]]의 멤버
* [[3월 9일]] - [[이은주(가수)|이은주]]: 대한민국의 가수
* [[3월 10일]] - [[사무엘 에투]]: [[카메룬]]의 축구 선수
* [[3월 12일]] - [[사이토 치와]]: [[일본]]의 [[성우]]
* [[3월 13일]] - [[김남길]]: 대한민국의 배우
* [[3월 14일]] - [[스즈키 나오미치]]: 일본의 정치인.
* [[3월 17일]] - [[타카기 슌]]: 일본의 [[뮤지컬]] [[배우]], [[성우]]
* [[3월 18일]] - [[장나라]]: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 [[3월 19일]]
* [[김래원]]: 대한민국의 배우
* [[콜로 투레]]: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선수
* [[김태형(클릭비)|김태형]]
* [[3월 22일]]
* [[제냐(성우)|제냐]]: [[러시아]] 출신이자, 일본의 성우
* [[조동화]] :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3월 25일]]
* [[채은정]]: [[대한민국]]의 가수
* [[김주찬]]: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아베 아츠시]]: 일본의 성우
* [[3월 26일]] - [[시미즈 아이]]: [[일본]]의 성우
* [[3월 27일]] - [[박영진]]: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3월 28일]]
* [[조수빈]]: [[한국]]의 [[아나운서]]
* [[줄리아 스타일스]]: 미국의 배우
* [[3월 30일]] - [[박지성]]: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 [[3월 31일]] - [[신타니 료코]]: 일본의 성우
* [[4월 1일]]
* [[박예진]]: 대한민국의 배우.
* [[KEI(일러스트레이터)|KEI]]: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 [[해나 스피어릿]]: 영국의 가수, 배우, 방송인.
* [[4월 5일]] - [[최제우(배우)|최제우]]: [[대한민국]]의 [[배우]], 前 [[가수]]
* [[4월 8일]]
* [[거미(가수)|거미]]: 대한민국의 가수
* [[나성호(노을)|나성호]]: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노을(보컬그룹)|노을]]의 멤버
* [[4월 9일]] - [[A.J. 엘리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LA 다저스]] 소속 [[야구]] 선수
* [[4월 10일]]
* [[장경희#s-2|장경희]]: 한국의 [[코미디언]]
* [[마이클 피트]]: [[미국]]의 [[배우]]
* [[4월 11일]]
* [[알레산드라 앰브로시오]]: [[브라질]]의 [[모델]]
* [[유태오]]: 한국의 배우
* [[4월 14일]]
*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의 정치인
* [[장준관]] :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4월 17일]]
* [[김유연]]: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겸 [[배우]]
* [[4월 18일]]
* [[강균성]]: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노을(보컬그룹)|노을]]의 멤버
* [[김수미(코미디언)|김수미]]: 한국의 [[코미디언]]
* [[타키타 쥬리]]: [[일본]]의 [[성우]]
* [[4월 19일]]
* [[김동준(게임 해설가)|김동준]]: 대한민국의 게임 [[해설가]]
* [[헤이든 크리스텐슨]]: 캐나다 배우
* [[4월 22일]]
* [[커피소년]]: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 [[이수(가수)|이수]]: 대한민국의 가수
* [[박민환]]: 대한민국의 개그맨, 배우
* [[4월 23일]] - [[김혁건]]: 한국의 [[가수]]
* [[4월 24일]] - [[다나카 마르쿠스 툴리오]]: 일본의 [[축구 선수]]
* [[4월 25일]] - [[김형은]]: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4월 26일]] - [[김경아]]: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4월 28일]]
* [[김광진(정치인)|김광진]]: 前 [[대한민국 국회의원]]
* [[제시카 알바]]: 미국의 [[배우]]
* [[4월 30일]] - [[존 오셰이]]: [[아일랜드]]의 축구 선수
* [[5월 1일]] - [[알렉산드르 흘렙]]: [[벨라루스]]의 축구 선수
* [[5월 2일]]
* [[사토 리나]]: [[일본]]의 성우
* [[티아구 멘데스]]: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 [[심지호(배우)|심지호]]: [[대한민국]]의 배우
* [[5월 3일]] - [[유니(가수)|유니]]: [[대한민국]]의 [[가수]]
* [[5월 4일]] - [[배영수]]: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5월 5일]]
* [[홍마태]] :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비트마리오]]: [[일본]]의 [[COOL&CREATE]]의 멤버
* [[5월 6일]]
* [[이동학]]: [[한국]]의 前 [[야구]] 선수
* [[더스틴 니퍼트]]: [[미국]]의 [[야구선수]]
* [[5월 7일]] - [[고구인]]: [[대한민국]]의 성우
* [[5월 8일]] - [[안드레아 바르잘리]]: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5월 12일]] - [[김태우(god)|김태우]]: [[한국]]의 가수, 그룹 [[god(아이돌)|god]]의 멤버
* [[5월 13일]] - [[이지애]] - [[한국]]의 방송인, 前 [[아나운서]]
* [[5월 14일]] - [[빽가]]: [[대한민국]]의 가수, 포토그래퍼, 그룹 [[코요태]]의 멤버
* [[5월 15일]]
* [[장진남]]: 한국의 전 [[프로게이머]]
* [[장진수]]: 한국의 전 [[프로게이머]]
* [[파트리스 에브라]]: [[프랑스]]의 [[축구 선수]]
* [[5월 17일]] - [[임정희]]: 한국의 [[가수]]
* [[5월 19일]]
* [[봉태규]]: [[대한민국]]의 배우
* [[조르주 생 피에르]]: [[캐나다]]의 [[종합격투기]] 선수
* [[5월 20일]] - [[이케르 카시야스]]: [[스페인]]의 [[축구]] 선수, 스페인 국가 대표 및 [[레알 마드리드]]의 수문장
* [[5월 21일]] - [[the GazettE#s-2.4|REITA]]: 일본의 [[베이시스트]], [[비주얼계]] 락밴드 [[the GazettE]]의 멤버
* [[5월 22일]] - [[황이갑]] :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5월 26일]] - [[김대훈]]:대한민국의 개그맨
* [[5월 28일]]
* [[로라 베일리]]: [[미국]]의 성우
* [[마일영]]: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송지선]]: 대한민국의 前 아나운서
* [[5월 29일]] - [[안드레이 아르샤빈]]: [[러시아]]의 축구 선수
* [[5월 31일]] - [[윤미래]]: 대한민국의 가수
* [[6월 1일]]
* [[김승휘]]: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에이미 슈머]]: [[미국]]의 [[코미디언]]
* [[6월 2일]] - [[서지영]]: [[대한민국]]의 前 그룹 S#ARP의 멤버, [[탤런트]]
* [[6월 3일]] - [[유니]]: [[대한민국]]의 [[가수]], [[탤런트]]
* [[6월 4일]]
* [[나경은]]: [[대한민국]]의 방송인, 前 아나운서
* [[박기혁]]: [[한국]]의 [[야구]] 선수
* [[6월 5일]] - [[김기열]]: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6월 8일]] - [[노나카 아이]]: [[일본]]의 성우
* [[6월 9일]]
* [[나탈리 포트만]]: [[이스라엘]] 출신의 배우
* [[the GazettE#s-2.2|우루하]]: 일본의 [[기타리스트]], [[비주얼계]] 락밴드 [[the GazettE]]의 멤버
* [[6월 11일]] - [[요조]]: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 [[6월 13일]] - [[크리스 에반스]]: [[미국]]의 배우
* [[6월 13일]] - [[한나(가수)|한나]]: [[대한민국]]의 [[가수]]
* [[6월 14일]] - [[박은태]]: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 [[6월 17일]]
* [[강영식]]: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조한선]]: 대한민국의 배우
* [[6월 18일]] - [[엄정욱]] -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 [[6월 19일]] - [[리키 김]]: [[미국]]의 [[배우]]
* [[6월 21일]] - [[김사니]]: [[대한민국]]의 前 [[배구 선수]]
* [[6월 23일]] - [[디테오]]: [[한국]]의 [[래퍼]], 브라운 후드, [[소울 다이브]]의 멤버
* [[6월 26일]] - [[콘도 카나코]]: [[일본]]의 성우
* [[6월 30일]] - [[김주희(방송인)|김주희]]: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7월 1일]] - [[유한준]]: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7월 4일]] - [[윤효환]]:대한민국의 [[개그맨]]
* [[7월 8일]] - [[곽태휘]]: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 [[7월 9일]] - [[이천수]]: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 [[7월 16일]] - [[비센테 로드리게스]]: [[스페인]]의 축구 선수
* [[7월 17일]] - [[김원효]]: 대한민국의 [[개그맨]]
* [[7월 21일]]
* [[박정권]]: [[SK 와이번스]] 소속 한국의 야구 선수
* [[캐스커#s-2|이융진]]: 대한민국의 가수
* [[호아킨 산체스]]: [[스페인]]의 축구 선수
* [[7월 25일]] - [[유호 해니넨]]: [[핀란드]]의 랠리 드라이버
* [[7월 26일]]
* [[전익령]]: 대한민국의 배우
* [[최자혜]]: 대한민국의 [[배우]]
* [[마이콩]]: [[브라질]]의 축구 선수
* [[7월 27일]] - [[데얀 다미아노비치]]: [[몬테네그로]]의 [[축구]] 선수
* [[7월 28일]]
* [[김시덕]]: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마이클 캐릭]]: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조인성]]: 대한민국의 배우
* [[7월 29일]] - [[페르난도 알론소]]: [[스페인]]의 카 [[레이서]]
* [[7월 31일]] - [[M. 섀도우스]]: 미국의 록밴드 [[어벤지드 세븐폴드]]의 보컬
* [[8월 2일]] - [[알렉산더 예멜리아넨코]]: [[러시아]]의 [[종합격투기]] 선수
* [[8월 3일]] - [[트래비스 윌링햄]]: 미국의 [[성우]]
* [[8월 4일]] - [[메건 마클]]: [[미국]]의 전 [[배우]], [[영국]]의 왕자비
* [[8월 5일]]
* [[시바사키 코우]]: 일본의 [[배우]], 가수
* [[제시 윌리엄스]]: 미국의 배우, 흑인 인권 운동가
* [[8월 7일]]
* [[빠미]]: [[태국]]의 가수
* [[김도윤(배우)|김도윤]]: 대한민국의 배우
* [[8월 8일]]
* [[로저 페더러]]: [[스위스]]의 [[테니스]] 선수
* [[브래들리 매킨토시]]: 영국의 가수, 배우, 방송인.
* [[이이다 카오리]]: 일본의 [[가수]]
* [[8월 9일]] - [[윤수영]]: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8월 10일]] - [[아베 나츠미]]: [[일본]]의 가수
* [[8월 11일]]
* [[장요상]]: [[한국]]의 前 [[야구선수]]
* [[소유진]]: [[한국]]의 [[배우]]
* [[8월 12일]]
* [[오인실]]: 대한민국의 성우
* [[지브릴 시세]]: [[프랑스]]의 축구 선수
* [[8월 14일]]
* [[박기남]]: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쿄고쿠 타카히코]]: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 [[8월 15일]]
* [[박성광]]: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송지효]]: 대한민국의 [[배우]]
* [[이상윤(배우)|이상윤]]: 대한민국의 [[배우]]
* [[8월 16일]] - [[로케 산타 크루스]]: [[파라과이]]의 축구 선수
* [[8월 17일]]
* [[김예준]]: 대한민국의 [[가수]], 록 그룹 [[버즈(한국 밴드)|버즈]]의 리더
* [[이상호(코미디언)|이상호]], [[이상민(코미디언)|이상민]]: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8월 21일]]
* [[아이자와 마이]]: 일본의 [[성우]]
* [[이대수]]: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8월 23일]] - [[미야자키 우이]]: 일본의 [[성우]]
* [[8월 25일]] - [[제2연평해전|박동혁]]: [[대한민국]]의 [[군인]]
* [[8월 27일]] - [[막스웰]]: [[브라질]]의 축구 선수
* [[8월 28일]]
* [[구은영]] - [[한국]]의 [[아나운서]]
* [[유우키 아이라]]
* [[8월 29일]] - [[정시아]]: 대한민국의 배우
* [[8월 31일]] - [[카토 유리아]]: [[일본]]의 [[AV(영상물)|AV]] 배우
* [[9월 1일]] - [[이성우(야구선수)|이성우]]: 한국의 야구선수
* [[9월 4일]] - [[비욘세]]: 미국의 가수
* [[9월 5일]] - [[김성민(만화가)|김성민]] : 대한민국의 만화가
* [[9월 8일]] - [[오윤(야구)|오윤]]: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9월 9일]]
* [[서지석]]: 대한민국의 배우
* [[이승호(1981)|이승호]]: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9월 11일]]
* [[김민경(코미디언)|김민경]]: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야마모토 마리아]]: 일본의 성우
* [[9월 12일]] - [[Noria]]: [[일본]]의 가수
* [[9월 14일]] - [[미야비(가수)|미야비]]: [[일본]]의 가수
* [[9월 16일]]
* [[이진욱]]: 대한민국의 배우
* [[판빙빙]]: [[중국]]의 배우
* [[9월 17일]] - [[SEED#s-2|SeeD]]: [[대한민국]]의 [[일러스트레이터]], 본명 박정훈
* [[9월 18일]]
* [[제아(브라운 아이드 걸스)|제아]]: 한국의 [[가수]], 그룹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멤버
* [[한예슬]]: 한국의 배우
* [[9월 19일]]
* [[김태완(1981)|김태완]] -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모리나가 마유미]]: 일본의 가수
* [[이지수(작곡가)|이지수]]: [[대한민국]]의 [[작곡가]]
* [[9월 22일]] - [[시부타니 스바루]]: [[일본 아이돌]] 그룹 [[칸쟈니∞]]의 前 멤버
* [[9월 25일]] - [[이윤미]]: [[한국]]의 [[배우]]
* [[9월 26일]]
* [[세레나 윌리엄스]]: [[미국]]의 [[테니스]] 선수
* [[주호민]]: 대한민국의 만화가
* [[츠네마츠 아유미]]: 일본의 성우
* [[9월 28일]] - [[윌리 카바예로]]: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9월 29일]] - [[정상수(방송인)|정상수]]: 대한민국의 방송인, 배우
* [[9월 30일]]
* [[윤태웅(배우)|윤태웅]]: 한국의 [[배우]]. '''[[1988 서울 올림픽]] 개막식 식후공연 도중 적막 속에서 굴렁쇠를 굴렸던 그 어린이다.'''[* 그가 태어난 1981년 9월 30일은 서독 [[바덴바덴]]에서 개최된 제84회 IOC 총회를 통해서 [[서울특별시]]가 [[1988 서울 올림픽|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된 날이다.]
* [[최승훈(성우)|최승훈]]: 한국의 [[성우]].
* [[10월 1일]] - [[줄리우 밥티스타]]: [[브라질]]의 [[축구 선수]]
* [[10월 2일]] - [[이은결]]: 대한민국의 [[마술사]]
* [[10월 3일]]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스웨덴]]의 축구 선수
* [[안드레아스 이삭손]]: 스웨덴의 축구 선수
* [[10월 5일]] - [[곽희주]]: [[대한민국]] 국적의 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소속 [[축구 선수]]
* [[10월 8일]] - [[윤성환]]: 한국의 [[KBO 리그|프로야구]]팀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
* [[10월 10일]] - [[세레나 바게스]]: 미국의 [[성우]], [[배우]]
* [[10월 15일]]
* [[뮤지]]: 대한민국의 가수
* [[궈징징]]: 중국의 다이빙선수
* [[10월 17일]] - [[오구라 유이(에로게 성우)|오구라 유이]]: 일본의 [[에로게 성우]]
* [[10월 21일]] - [[네마냐 비디치]]: [[세르비아]]의 [[축구]] 선수
* [[10월 23일]]
* [[최윤정]]: [[대한민국]]의 기상 캐스터
* [[슈(1981)|슈]]: [[대한민국]]의 [[가수]], 해체한 그룹 [[S.E.S.]]의 멤버
* [[이기우(배우)|이기우]]: [[대한민국]]의 [[배우]]
* [[10월 24일]] - [[이정(가수)|이정]]: [[대한민국]]의 [[가수]]
* [[10월 25일]] - [[숀 라이트필립스]]: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10월 27일]] - [[한혜진(배우)|한혜진]]: [[대한민국]]의 [[배우]]
* [[10월 28일]]
* [[지토(래퍼)|지토]]: [[한국]]의 [[래퍼]], 브라운 후드, [[소울 다이브]]의 멤버
* [[밀란 바로시]]: [[체코]]의 축구 선수
* [[the GazettE#s-2.5|카이]]: 일본의 [[드러머]], [[비주얼계]] 락밴드 [[the GazettE]]의 멤버
* [[10월 30일]]
* [[센다이 에리]]: 일본의 성우
* [[전지현]]: [[대한민국]]의 [[배우]]
* [[이반카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와 이바나 트럼프의 딸
* [[10월 31일]] - [[프랭크 아이에로]]: [[미국]]의 밴드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리듬 [[기타리스트]] 및 백 보컬
* [[11월 2일]]
* [[이정식]] -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미료]]: [[한국]]의 [[래퍼]], 그룹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멤버
*[[윤우현]]: [[대한민국]]의 [[가수]], 록 그룹 [[버즈(한국 밴드)|버즈]]의 기타리스트
* [[11월 6일]] - [[이동욱]]: 대한민국의 배우
* [[11월 7일]] - [[무하마드 핫산]]: 미국의 前 프로레슬러
* [[11월 8일]] - [[조 콜]]: 영국의 [[축구선수]]
* [[11월 9일]] - [[린(가수)|린]]: [[대한민국]]의 [[가수]]
* [[11월 16일]]
* [[서재호(가수)|서재호]]: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원티드]]의 멤버
* [[양현민]]: 대한민국의 배우
* [[11월 17일]] - [[김동현]]: [[대한민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11월 18일]] - [[신지(가수)|신지]]: [[한국]]의 [[가수]], 그룹 [[코요태]]의 멤버
* [[11월 19일]]
* [[나카무라 에리코]]: 일본의 [[성우]]
* [[DJ 투컷]]: [[한국]]의 가수, 본명 김정식, [[에픽하이]]의 멤버
* [[11월 21일]]
* [[박해수]]: [[대한민국]]의 배우
* [[이케와키 치즈루]]: [[일본]]의 배우
* [[11월 22일]]
* [[송혜교]]: [[대한민국]]의 배우
* [[이명희(성우)|이명희]]: [[대한민국]]의 성우
* [[11월 23일]] - [[강도경]]: 한국의 [[프로게이머]], 코치
* [[11월 25일]]
* [[이범호]] : [[한국]]의 [[야구선수]]
* [[하현우]]: [[대한민국]]의 록 가수, 그룹 [[국카스텐]]의 멤버 ~~[[음악대장]]님~~
* [[사비 알론소]]: [[스페인]]의 축구 선수
* [[11월 26일]] - [[영지(가수)|영지]]: [[한국]]의 가수
* [[11월 28일]] - [[이미나(성우)|이미나]]: [[대한민국]]의 성우
* [[12월 1일]]
* [[박효신]]: 한국의 가수
* [[madkof]]: 한국의 트위치 스트리머.
* [[12월 2일]] - [[브리트니 스피어스]]: 미국의 가수
* [[12월 3일]]
* [[김사랑(가수)|김사랑]]: [[대한민국]]의 록 뮤지션
* [[다비드 비야]]: [[스페인]]의 [[축구]] 선수
* [[김정운(배우)|김정운]]: 대한민국의 [[배우]]
* [[12월 8일]] - [[클레이 구이다]]: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12월 11일]] - [[하비에르 사비올라]]: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12월 13일]] - [[장승조]]:대한민국의 배우
* [[12월 15일]] - [[로만 파블류첸코]]: [[러시아]]의 축구 선수
* [[12월 16일]] - [[정혜옥]]: 대한민국의 성우
* [[12월 19일]] - [[지승현]]: 대한민국의 배우
* [[12월 20일]] - [[아키코 공주]]: [[일본]]의 황족
* [[12월 23일]]
* [[팀(가수)|팀]]: 미국의 가수
* [[임강성]]:대한민국의 배우, 가수
* [[12월 25일]]
* [[이영현]]: 한국의 가수
* [[김지호(코미디언)|김지호]]: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12월 28일]] - [[나르샤(브라운 아이드 걸스)|나르샤]]: 한국의 가수, 그룹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멤버
* [[12월 29일]] - [[아라카와 시즈카]]: [[일본]]의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
* [[12월 30일]]
* [[오지은]]: 한국의 [[배우]]
* [[K.WILL]]: 한국의 [[가수]]
* [[오헬리엉 루베르]]
* [[12월 31일]]
* [[디에고 산체스]]: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리키 휘틀]]: [[영국]]의 [[배우]]
* 일지미상
* [[이사벨(1981년)|이사벨]]:대한민국의 [[팝페라]] 가수
=== 가상인물 ===
* [[1월 15일]]: [[신지(거침없이 하이킥)|신지]] - [[거침없이 하이킥]]
* [[1월 23일]]: [[쿠루스가와 아야카]] - [[투하트]]
* [[1월 30일]]: [[성시원]] - [[응답하라 1997]]
* [[2월 3일]]: [[임선호]] - [[검은방|검은방 시리즈]]
* [[2월 13일]]: [[루나 러브굿]] - [[해리 포터 시리즈]]
* [[2월 20일]]: [[카미기시 아카리]] - [[투하트]]
* [[3월 18일]]: [[우츠미 라이]] - [[용자지령 다그온]]
* [[3월 25일]]: [[나루세가와 나루]] - [[러브히나]]
* [[4월]]: [[히구라시 카고메]] - [[이누야샤]]
* [[4월 18일]]([[음력]]): [[장준후]] - [[퇴마록]]
* [[5월 5일]]: [[쿠라타 사유리]] - [[Kanon]]
* [[5월 6일]]: 김지연 - [[연예인 지옥]][* 666부대 114편을 통해 조연급 최초로 생년월일이 공개됐다.]
* [[6월 13일]]: [[오리가미 유카리]] - [[도사의 무녀]]
* [[6월 24일]]: [[아베 소지]] - [[사혼곡 2: 사이렌]]
* [[6월 25일]]: [[안노 요리코]] - [[사혼곡: 사이렌]]
* [[7월 14일]]: [[후지와라 미나토]] - [[도사의 무녀]]
* [[8월 11일]]: [[지니 위즐리]] - [[해리 포터 시리즈]]
* [[9월 15일]]: [[이민우(골든 타임(드라마))|이민우]] - [[골든 타임(드라마)]]
* [[9월 18일]]: [[엘레나(캡콤)|엘레나]]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 [[10월 9일]]: [[히메카와 코토네]] - [[투하트]]
* [[11월 5일]]: [[김해일]] - [[열혈사제]]
* [[11월 12일]]: [[하나노코우지 쿠라라]] - [[호혈사일족]]
* [[12월 24일]]: [[위스퍼드]] 전원 - [[풀 메탈 패닉]]
* 일자불명
* [[김자홍(신과함께)/영화|김자홍]] - [[신과 함께(영화)]]
* 김희창, 모선주 - [[알파 베스티어리]]
* [[남승우]] - [[클로저 이상용]]
* 린전신, 쉬타이위, 오우양페이판 - [[나의 소녀시대]]
* 민태구 - [[협상(2018)|협상]]
* ~~[[사가라 소스케]] - [[풀 메탈 패닉]]~~[* 1981년생이 아닐 가능성도 있으므로 취소선 처리.]
* [[사야마 카오루]] - [[용과 같이 시리즈]]
* [[사이타마 붉은 전갈대]] 멤버들 - [[크레용 신짱]][* 배경 연도가 최초 연재 기준으로 1990년일 때 [[1972년]]생이다.]
* [[우시지마 카오루]] - [[사채꾼 우시지마]]
* [[하이킥 짧은다리의 역습/등장인물#s-1.6|윤지석]] - [[하이킥 짧은다리의 역습|하이킥 3]]
* [[이누키 케이코]] - [[배틀로얄(소설)]]
* 이비 - [[브이 포 벤데타]][* 브이와의 대화에서 언급된다]
* [[이지훈(지붕뚫고 하이킥)|이지훈]] - [[지붕뚫고 하이킥|하이킥 2]]
* [[오즈 마키토]] - [[마법전대 마지렌쟈]]
* [[카와다 쇼고]] - [[배틀로얄(소설)]]
* 타치바나 아카네 - [[아마야도 버스정류장]]
* [[타니무라 마사요시]] - [[용과 같이 4]]
* 하시마 에마 - [[도사의 무녀]]
* [[오 나의 귀신님/등장인물#s-5.1|한진구]] - [[오 나의 귀신님]]
* [[후지에다 요시노]] - [[디지몬 세이버즈]]
== 사망 ==
=== 실존인물 ===
* [[1월 3일]] - [[묵담]]: 제3~4대 한국불교태고종 종정
* [[1월 5일]] - [[라시찬]]: 드라마 <[[전우(드라마)#s=2|전우]]>의 김소위 역으로 유명한 탤런트
* [[1월 13일]] - [[박종화]]: 한국의 소설가
* [[1월 17일]] - [[김종문]]: [[한국]]의 [[시인(문학)|시인]]
* [[1월 21일]] - [[정화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가
* [[1월 24일]] - [[이원수(아동문학가)|이원수]]: [[한국]]의 아동문학가
* [[2월 7일]] - [[이종우]]: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 [[2월 8일]]
* [[야마모토 사나에]]: 일본의 원로 애니메이션 제작자
* [[야코프 벤더]]: 독일의 전 축구감독
* [[2월 13일]] - [[신석호]]: 대한민국의 역사학자
* [[3월 13일]] - [[이범선]]: 한국의 소설가
* [[3월 25일]] - [[이갑성]]: 한국의 독립운동가, 민족대표 33인의 일원
* [[4월 3일]] - [[루돌프 크르칠]]: [[체코슬로바키아]]의 전 축구 감독
* [[4월 8일]] - [[오마 브래들리]]: [[미국]]의 [[군인]]
* [[4월 12일]] -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 일본의 황족, 전범
* [[4월 22일]] - [[레나토 윌리엄 존스]]: 제2대 FIBA 사무총장. 1977년에 개최되고 있는 국제 농구대회 [[윌리엄 존스컵]]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 [[5월 5일]] - [[바비 샌즈]]: 북아일랜드의 독립운동가
* [[5월 9일]] - [[요코야마 유]]: [[일본 아이돌]] [[칸쟈니∞]]의 멤버
* [[5월 11일]] - [[밥 말리]]: [[자메이카]]의 [[가수]]
* [[5월 15일]]
* [[오수각]]: 전 서울대 수의과대부속 동물병원장
* [[요제프 실니]]: [[체코]]의 전 축구 감독
* [[5월 25일]] - [[이서구]]: 한국의 극작가
* [[5월 27일]] - [[김태훈]]: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5월 29일]]
* 조석봉: 학교법인 동구학원 설립자
* [[쑹칭링]]: [[쑨원]]의 부인, 중공의 정치가
* [[5월 30일]] - [[스벤 안데르손(1907)|스벤 안데르손]]: [[스위스]]의 전 축구 감독
* [[5월 31일]] - [[지아우르 라흐만]]: 제7대 방글라데시 대통령
* [[6월 15일]] - [[손재형]]: 대한민국의 서예가
* [[6월 24일]] - [[강달수]]: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 [[6월 28일]] - [[테리 폭스]]: [[캐나다]]의 육상선수, 인도주의자, [[암]]연구 활동가
* [[7월 17일]] - [[정진기]]: [[매일경제신문]] 창업주
* [[7월 23일]] -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
* [[7월 31일]] - [[라슬로 라핀스키]]: [[루마니아]]의 [[축구 선수]]
* [[8월 4일]] - [[멜빈 더글러스]]: [[미국]]의 [[배우]]
* [[8월 24일]] - [[윌리엄 F. 딘]]: 미국의 군인
* [[8월 30일]] - [[모하마드 알리 라자이]]: 제2대 이란 대통령
* [[9월 1일]] - [[최종철]]: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9월 8일]] - [[유카와 히데키]]: 일본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 [[9월 9일]]
* [[지홍창]]: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주치의, 지석영의 손자
* [[자크 라캉]]: [[프랑스]]의 [[철학자]], [[정신분석학]]자
* [[9월 15일]] - [[김미희]]: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의 부인, 한국 차문화 선구자.
* [[9월 27일]] - [[로버트 몽고메리]]: [[미국]]의 [[배우]]
* [[9월 29일]] - [[빌 샹클리]]: [[리버풀 FC]]의 황금 시대를 연 감독
* [[10월 5일]] - [[이마동]]: 한국의 서양화가
* [[10월 6일]] - [[안와르 사다트]]: 제5~6대 [[이집트]] [[대통령]]
* [[10월 9일]] - [[훌리오 리보나티]]: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10월 16일]] - [[모세 다얀]]: [[이스라엘]]의 군인, 정치가
* [[10월 24일]] - [[이디스 헤드]]: 미국의 패션 디자이너
* [[10월 26일]]
* [[반 준자부로]]: 일본의 희극배우
* [[밥 우퍼]]: 전 미시건 대학교 체육팀 전담 캐스터
* [[11월 2일]]
* 곽태석: KEC그룹 창업주
* [[김소운]]: 한국의 시인
* [[11월 3일]]
* [[김용수]]: 전 MBC 기자, 심의실장
* [[드라구틴 나이다노비치]]: [[유고슬라비아 왕국|유고슬라비아]](現 [[세르비아]])의 전 축구 선수
* [[에랄도 몬첼리오]]: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 [[11월 22일]] - [[이재문]]: 1979년 남민전 사건 관련자
* [[11월 24일]] - [[조연현]]: [[한국]]의 [[시인(문학)|시인]], 전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현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
* [[11월 25일]] - [[잭 앨버트슨]]: [[미국]]의 [[배우]]
* [[11월 29일]] - [[나탈리 우드]]: 미국의 [[배우]]
* [[11월 30일]] - [[빌리 부슈]]: [[독일]]의 축구선수
* [[12월 2일]] - [[조성철]]: 중앙건설 창업주
* [[12월 4일]] - [[소일로 살돔비데]]: [[우루과이]]의 전 축구 선수
* [[12월 9일]] - [[루디 피어틀]]: 오스트리아의 전 축구선수
* [[12월 20일]] - [[안향련]]: 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
* [[12월 27일]] - [[위한머우]]: 중화민국의 군벌.
* [[12월 28일]] - [[요코미조 세이시]]: [[일본]]의 [[소설가]]
* [[12월 31일]] - [[코스텔 러둘레스쿠]]: [[루마니아]]의 전 축구 감독
* 일자불명 - [[김성식]]: 진도그룹 창업주
=== 가상인물 ===
[include(틀:스포일러)]
* [[10월 11일]] : 스즈나리 코바토 - [[아마야도 버스정류장]][* 다만 죽은 년도에 논란이 있는데, 자세한 것은 [[아마야도 버스정류장|항목]] 참조.]
* [[10월 31일]] : [[제임스 포터]], [[릴리 포터]] - [[해리 포터 시리즈]]
== 데뷔 ==
=== 가수 ===
* 한국
* [[강병철과 삼태기]]
* 국보자매
* 사랑의 멜로디
* [[설운도]]
* [[이용(가수)|이용]]
* 이재성
* [[주현미]]
* 해외
* [[듀란 듀란]]
* [[머틀리 크루]]
* [[Venom(밴드)|베놈]]
* [[셀린 디옹]]
* 시마다 카호[* <힘내라!! 로보콘>에서 로빈 역을 열연했던 배우.]
* [[엘리펀트 카시마시]]
* [[LOUDNESS]]
* The Go-Go's
=== 예능인 ===
* 근종기
* 김덕성
* 김명덕
* 김보화
* 김영옥
* [[김정식]]
* [[김정렬(코미디언)|김정렬]]
* 김학성
* 김혜영
* 나도국
* 박경순
* [[박세민]]
* 원경애
* [[이경규]]
* [[이상운]]
* 이은순
* 이효신
* [[임하룡]]
* 전정희
* 정성월
* 정귀영
* 최미진
* [[최양락]]
=== 만화계 ===
* [[고행석]] - <아빠아빠 우리 아빠>
* [[권혁준]] - <꾸러기>
* 니와노 마코토 - <迷勝負!?>
* [[마츠모토 이즈미]] - <LIVE! とってもロックンロール>
* [[박흥용]] - <돌개바람>
* [[시게노 슈이치]] - <우리들은 절호조>
* 이상세 - <미모사>
* [[최정현(만화가)|최정현]]
* [[카츠라 마사카즈]] - <転校生はヘンソウセイ!?>
* 한승원 - <다섯 번째 계절>
=== 스포츠 ===
==== 야구 ====
* [[최동원]]
* [[츠다 츠네미]]
==== 농구 ====
* [[대니 에인지]]
* [[래리 낸스]]
* 벅 윌리엄스
* 마이크 맥기
* 마크 어과이어
* 사루나스 마르셜오니스
* [[아비다스 사보니스]]
* [[아이재아 토마스(1961)|아이재아 토마스]]
* 앨버트 킹
* 올랜도 울릿지
* [[이충희]]
* 임정명
* 정태균
* 커트 램비스
* 페르난도 마틴
* 프랭크 존슨
* 허브 윌리엄스
==== 권투 ====
* 나경민
* 전주도
== 은퇴 ==
* [[10월 31일]]: [[장훈(야구선수)|장훈]]
== 출시 상품 ==
=== 자동차 ===
* 기아 봉고코치
* 기아 슈퍼타이탄
* 아시아 AC/AV076
=== 식음료 ===
* 농심
* 4월: 브이라면, 비29
* 11월: 사발면
* 롯데제과
* 1월 21일: 수노아껌, 부푸러
* 9월: 가나쵸코바
* 10월: 피리스틱캔디
* 동서식품
* 맥스웰 그래뉼, 탱애플, 탱파인, 사과주스, 녹차, 코코아차
=== 생활용품 ===
* 애경유지
* 보들하나로샴푸, 레몬샴푸, 보들라일락샴푸, 보들푸로틴샴푸
== 히트작 ==
=== 영화 ===
* 국산/수입
* 피막
* 만다라
* 사랑하는 사람아
* 레이더스
* 007 문레이커
* 해외
* [[불의 전차]]
=== 드라마 ===
* 국산
* [[제1공화국(드라마)|제1공화국]]
* 교동마님
* 대명
* 여인열전: 장희빈
* 호랑이 선생님
* 더빙
* 스타스키와 허치
* 기동순찰대
=== 가요 ===
* 한국
* [[임을 위한 행진곡]]
* 김만수 - 그 사람
* 김현식 - 봄여름가을겨울
* 로커스트 - 내가 말했잖아
* 민해경 - 누구의 노래일까
* 사랑의 하모니 - 별이여 사랑이여
* 산울림 - 청춘, 가지마오, 산할아버지
* [[송골매(밴드)|송골매]] - 세상만사
* 수연 - 첫사랑, 높은 하늘아
* 유심초 - 사랑이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윤수일밴드 - 제2의 고향
* 이용 - 바람이려오
* 이은하 - 한 순간
* 이정희 - 그대여, 바야야
* 정여진, 최불암 - 아빠의 말씀
* 조동진 - 나뭇잎 사이로
* 조용필 - [[조용필 3집|'''고추잠자리''', '''미워 미워 미워''', '''일편단심 민들레야''', 물망초]]
* 한경애 - 옛 시인의 노래
* 함중아 - 내게도 사랑이
* 현숙 - 멋쟁이
* 혜은이 - 옛사랑의 돌담길
* 해외
* Iron Maiden - Killers
* Lionel Richie, Diana Ross - Endless Love
* Olivia Newton John - Physical
* Ozzy Osbourne - Crazy Train, Mr. Crowley
* Queen - Under Pressure
* Stars on 45 - Medley
* The Nolans - Sexy Music
* 콘도 마사히코 - ギンギラギンにさりげなく
* 테라오 아키라 - 루비반지
=== 애니메이션 ===
* 국산/더빙
* [[보물섬(애니메이션)|보물섬]]
* [[혹성 로보트 썬더 A]](극장판)
* 해외
* [[닥터 슬럼프/애니메이션#s-1|닥터 슬럼프와 아라레짱]]
* [[꾸러기 닌자 토리|닌자 핫토리 군]]
* [[시끌별 녀석들/애니메이션|우루세이 야츠라]]
* [[백수왕 고라이온]]
* [[육신합체 갓마즈]]
* [[골든라이탄]]
=== 베스트셀러 ===
* 꼬방동네 사람들 - 이동철
== 유행어 ==
* 정의사회 구현
*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다
* 아름다운 갈색 머~리! - 훼미닌 헤어칼라 CF
* 일단 한번 와 보시라니깐요/따지냐? - 이주일
* 워낙~ 비싸요 - 김형곤
== 최초 ==
=== 방송 프로그램 ===
* KBS
* KBS 뉴스 80
* 가요톱10
* 만나고 싶었습니다: 최초 방송 당시 제목은 <8시에 만납시다>.
* 스튜디오 830
* 퀴즈로 배웁시다 (1기)
* MBC
* MBC 뉴스센터 (1차)
* MBC 뉴스쇼
* MBC 생활영어
* 레이다 11
*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최초 방송 당시 제목은 <쇼 2000>.
* 영 11
* 뽀뽀뽀
* 안녕하세요 변웅전입니다
* 어린이 만화선물
* 일요일밤의 대행진(일밤)
* 모두 모두 즐겁게
* 호랑이 선생님
=== 창간 ===
* TV가이드 (서울신문사)
== 달력 ==
[include(틀:목요일로 시작하는 평년)]
[각주]
[[분류:1981년]] |
1981년 코리안시리즈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5><:> '''역대 [[한국실업야구]] [[코리안시리즈(실업야구)|코리안시리즈]]''' ||
||<width=30%><:> [[1980년 코리안시리즈|1980 코리안시리즈]][BR][[상무 야구단|육군 경리단]] || {{{+1 ←}}} ||<width=30%><:> '''1981 코리안시리즈''' [br] '''[[롯데 자이언트]]''' || {{{+1 →}}} ||<:><width=30%> 실업야구 코리안시리즈 중지[BR]~~[[1982년 한국시리즈]]~~ ||
1981년 [[한국실업야구]] 전기 리그 1위팀인 [[롯데 자이언트]]와 후기리그 1위팀인 [[상무 야구단|육군 경리단]]이 맞붙은 시리즈.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열리면서 마지막으로 개최된 코리안시리즈였고, 극적인 승부로 유명해진 시리즈이다. 여담으로 최초로 컬러로 생중계된 코리안시리즈이기도 하다.
[목차]
== 소개 ==
||<tablealign=center> [[파일:attachment/1981koreaseiresplayers11.png]] ||
당시 롯데 자이언트와 경리단의 대결은 모두의 관심사였다. 당대 최고의 투수라고 평가받던 최동원과 김시진의 대결, 박영길 롯데 감독과 심말용 경리단 감독간의 지략대결, 강력한 타선을 보유한 두팀의 맞대결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력은 롯데보다 경리단이 우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롯데의 투수진은 철저하게 [[최동원]]만 믿고 가는 팀이었고[* 참고로 1981년 롯데 자이언트가 소화한 팀 이닝이 36경기 324이닝이었는데 그중 206이닝을 신인이었던 최동원이 소화, 17승 4패를기록하며 팀을 코리안시리즈에 끌어 올렸다(...)] 육군 경리단은 김시진, 권영호 원투펀치가 버티고 있었던 데다 [[포항제철 야구단|포스코 야구단]]에서 막 입대한 ~~이병~~ [[장효조]]가 버티고 있는 육군 경리단의 막강 타선을 최동원 혼자서 과연 막을수 있을 것이가도 모두의 관심거리 였다.
||<tablealign=center> || 롯데 자이언트 || 경리단 ||
|| 팀타율 || .263 || .285 ||
|| 팀방어율 || 2.95 || 2.83 ||
|| 팀별투수 || [[최동원]](30경기)[br][[계형철]](8경기)[br]김현홍(5경기)[br]차준섭(7경기)[br]강만식(8경기) || [[김시진]](23경기)[br][[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17경기)[br]신태중(10경기)[br]정선두(10경기)[br]배경환(8경기) ||
|| 팀별타자 || [[허규옥]](.389)[* 타율 1위][br][[정현발]](.360)[* 타율 2위][br]김한근(.300) || [[장효조]](.352)[* 타율 3위][br]우경하(타율 4위)[br]정진호(타율 7위)[br]이석규(.318)[* 타율 9위] ||
|| 홈런타자 || [[정현발]], [[이해창(1953)|이해창]](6개)[br][[허규옥]](4개) || 장효조(10개)[br]이석규(7개)[br]정구선(5개) ||
== 1차전: [[김시진]]의 역투가 롯데 타선을 잠재우다. ==
||<:><-14><#ebad24> {{{#060808 1981년 10월 25일 서울 운동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투수'''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R''' || '''H''' || '''E''' ||
||<#ebad24><:> '''{{{#060808 경리단}}}''' || [[김시진]] || 0 || 0 ||<#FFD700> 1 || 0 || 0 ||<#FFD700> 1 || 0 || 0 ||<#FFD700> 1 ||<#dcdcdc> '''3''' || 7 || 0 ||
||<#87CEEB><:> '''{{{#red 롯데}}}''' || [[최동원]] || 0 || 0 || 0 || 0 || 0 || 0 || 0 || 0 || 0 ||<#dcdcdc> '''0''' || 2 || 0 ||
▲ 승리투수: 김시진(9이닝 무실점)
▲ 패전투수: 최동원(9이닝 3실점)
▲ 홈런: 이석규 1호(9회, 1점)
* 육군 경리단: 1승
* 롯데 자이언츠: 1패
1981년 10월 25일, 첫경기가 열렸다. 1경기는 최동원과 김시진의 맞대결. 이 경기는 김시진이 롯데 타선을 단 2안타로 묶어 버렸고, 최동원이 3회까지 잘 막아내다 4회초, 2사후 3번 타자 이석규, 4번 타자 장효조에게 연속안타로 1실점했고 이후 6회초에 또다시 3안타를 기록하며 1점을 더 추가했다. 그리고 9회초, 선두타자 이석규가 좌측펜스를 넘기는 홈런을 쳐 3:0 패배를 기록했다.
선발 투수 최동원은 9이닝 3실점을 했지만 타선의 난조로 승리를 기록하지 못했다.
== 2차전: 2연승의 육군 경리단, 2연패의 롯데 자이언트 ==
||<:><-14><#ebad24> {{{#060808 1981년 10월 27일 서울 운동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R''' || '''H''' || '''E''' ||
||<#87CEEB><:> '''{{{#red 롯데}}}''' || [[계형철]] ||<#FFD700> 3 || 0 || 0 || 0 || 0 || 0 ||<#FFD700> 1 || 0 || 0 ||<#dcdcdc> '''4''' || 0 || 0 ||
||<#ebad24><:> '''{{{#060808 경리단}}}''' || [[배경환]] ||<#FFD700> 2 ||<#FFD700> 3 || 0 || 0 || 0 || 0 || 0 || 0 || 0 ||<#dcdcdc> '''5''' || 0 || 0 ||
▲승리투수: 배경환
▲패전투수: 계형철
▲홈런:김정수(1회초 2점), 정현발(1회초 1점)
* 육군 경리단: 2승
* 롯데 자이언츠: 2패
[[파일:attachment/1981koreaseires2set.png|width=400]]
롯데가 1회초, 경리단의 선발투수 배경환에게 선두타자 차영화의 안타와 3번타자 김정수의 투런홈런에 이어 4번타자 [[정현발]]의 연속홈런을 기록 3점을 먼저 뽑아내며 기분 좋게 시작했지만 곧바로 경리단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롯데의 선발 투수 [[계형철]]을 상대로 1회말 선두타자 정진호에게 우전안타, 2번타자 김명구의 우월 2루타로 1점을 만회하고, 계속된 무사 1,2루찬스에서 4번 타자 장효조가 외야플라이를 날리자 2루주자 김명구가 3루로 뛰었고 이를 롯데 유격수 [[정영기]]가 중계플레이 실수로 송구가 파울지역으로 빠지자 그사이 3루를 돌아 홈으로 들어와 2점을 추가했다.
경리단이 2회말, 또다시 안타 4개와 롯데의 2에러를 틈타 3점을 추가해 순식간에 5점을 기록해 역전을 했고 이후 다급해진 롯데는 최동원을 2회말에 구원투수(!)로 내세워 급하게 불을 껏지만 7회초 2사 1,2루 찬스에서 차영화의 적시타로 가까스로 1점을 만회한 것에 그친 타선의 무기력함으로 롯데가 2패를 안고 가게 되었다.
== 3차전: 연장 11회, 그리고 무승부. ==
||<:><-16><#dcdcdc> 1981년 10월 28일 서울 운동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11회''' || '''R''' || '''H''' || '''E''' ||
||<#ebad24><:> '''{{{#060808 경리단}}}''' || || 0 ||<#FFD700> 1 || 0 ||<#FFD700> 2 || 0 ||<#FFD700> 1 ||<#FFD700> 1 || 0 ||<#FFD700> 1 || 0 || 0 ||<#dcdcdc> '''6''' || 0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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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투수: -
▲패전투수: -
▲홈런:이해창(1회말 2점), 장효조(2회초 1점), 우경하(6회초 1점), 김한근(7회말 1점), 최정기(8회말 2점)
* 육군 경리단: 2승 1무
* 롯데 자이언츠: 1무 2패
여유가 있던 경리단과 2패로 쫓기던 롯데의 만남. 경리단은 단 1승만 거두면 우승이었고 한치의 물러설수 없는 롯데 입장에선 내주면 절대 안되는 경기였다. 그래서일까, 이날 경기에서 11회까지 가는 혈투끝에 무승부가 선언 되었다.
롯데가 1회 말에 이해창의 투런을 앞세워 선취점을 기록했지만, 2회초 장효조의 솔로홈런이 터졌고 다시 롯데가 3회 말에 1점을 내며 달아났지만 4회초 정구선이 투런 홈런으로 따라 붙었다. 롯데는 또다시 에이스 최동원을 5회 초부터 투입했으나 우경하가 6회초에 1점을 달아나는 솔로홈런을 쳐내며 달아났다.
롯데가 5:3으로 뒤지고 있던 7회말, 8번 김한근의 솔로홈런과 8회말 대타로 나온 최정기의 투런으로 6:5로 역전에 성공했지만 9회초 경리단의 대타 강기섭이 동점타를 치며 원점으로 돌아왔다. 롯데 자이언트는 이후 9회말과 11회말에 1사 만루찬스를 각각 3번 타자 김정수와 4번타자 [[정현발]]이 범타로 물러나면서 점수를 내지 못했고 장장 3시간 40분간의 혈투에도 승부를 내지 못해 무승부가 되었다.
== 4차전: 위기의 롯데를 구한 [[최동원]]. ==
||<:><-14><#87CEEB> {{{#red 1981년 10월 29일 서울 운동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R''' || '''H''' || '''E''' ||
||<#87CEEB><:> '''{{{#red 롯데}}}''' || 최동원 || 0 || 0 ||<#FFD700> 1 || 0 || 0 || 0 ||<#FFD700> 6 || 0 || 0 ||<#dcdcdc> '''7''' || 0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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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투수: 최동원(7⅓이닝 3실점)
▲패전투수: 권영호
* 육군 경리단: 2승 1무 1패
* 롯데 자이언츠: 1승 1무 2패
[[파일:attachment/1981koreaseires4set.png|width=400]]
원래 하루전날 열렸어야 할 경기였지만, 비가내리는 바람에 하루 연기되어서 열리게된 시리즈 4차전. 선발 최동원이 호투한 가운데 롯데가 7회초에 타자일순을 하며 무려 10타자가 4사구 4개와 3안타를 묶어 6점을 내며 7:4 대승을 거두었다.
이날 경기에서 최동원은 '''7이닝동안 던지고 나서 휴식차원으로 불펜투수 차준섭에게 마운드를 물려주고 1루수에 갔다가 8회말 2사 만루 상황이 되자 구원등판해 1승 1세이브를 기록'''하는 진기 명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반면 경리단의 선발투수 김시진은 3:1로 앞서고 있던 8회 2아웃 상황에서 2타자 연속 볼넷을 내주며 흔들렸고, 권영호가 마운드를 이어 받았지만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롯데가 6점을 쓸어담으며 경기를 뒤집혔다.
== 5차전: 파죽지세의 롯데 자이언트. ==
||<:><-14><#87CEEB> {{{#red 1981년 10월 30일 서울 운동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R''' || '''H''' || '''E''' ||
||<#ebad24><:> '''{{{#060808 경리단}}}''' || || 0 || 0 || 0 ||<#FFD700> 1 || 0 || 0 ||<#FFD700> 2 || 0 || 0 || '''3''' || 0 || 0 ||
||<#87CEEB><:> '''{{{#red 롯데}}}''' || ||<#FFD700> 2 || 0 || 0 ||<#FFD700> 3 || 0 || 0 || 0 || 0 || 0 || '''5''' || 0 || 0 ||
▲승리투수:
▲패전투수:
▲세이브투수: 최동원(3이닝 무실점)
▲홈런:이해창(1회말 1점), 정현발(1회말 1점),
* 육군 경리단: 2승 1무 2패
* 롯데 자이언츠: 2승 1무 2패
분위기를 탄 다음 경기의 승자는 롯데였다. 1회말 롯데의 2번타자 [[이해창(1953)|이해창]]과 4번타자 [[정현발]]의 솔로홈런으로 2점을 먼저 가져간 롯데는 경리단에게 4회초 1점을 내주었지만 4회말 2사 만루 찬스에서 정영식 대신 들어간 대타 김인식의 안타가 행운의 텍사스 안타로 기록되며 주자를 모두 불러들여 5:1로 앞서 나갔다. 이후 경리단이 2점을 따라 붙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최동원]]은 이날 경기에서 7회 등판,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
== 6차전: [[최동원]], 괴물이 되다. ==
||<:><-14><#87CEEB> {{{#red 1981년 10월 31일 서울 운동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R''' || '''H''' || '''E''' ||
||<#87CEEB><:> '''{{{#red 롯데}}}''' || [[최동원]] ||<#FFD700> 1 || 0 ||<#FFD700> 1 || 0 ||<#FFD700> 1 ||<#FFD700> 1 ||<#FFD700> 2 || 0 || 0 || '''6''' || 0 || 0 ||
||<#ebad24><:> '''{{{#060808 경리단}}}''' || [[김시진]] || 0 ||<#FFD700> 3 || 0 || 0 ||<#FFD700> 1 || 0 || 0 || 0 || 0 || '''4''' || 0 || 0 ||
▲승리투수: 최동원(9이닝 4실점)
▲패전투수: 김시진(
▲홈런:이해창(1회초 1점), 조종규(2회말 2점),김성관(5회초 1점), 손상대(7회초 1점)
* 육군 경리단: 2승 1무 3패
* 롯데 자이언츠: 3승 1무 2패(우승)
|| [[파일:attachment/1981koreaseriesfinal.jpg|width=500]] ||
||▲ 롯데 자이언트의 우승을 전하는 당시 기사. ||
'''{{{+2 기적의 드라마가 쓰였다.}}}'''
롯데가 1회초 이해창이 솔로홈런을 치며 선취득점을 내며 기분 좋게 시작했다.~~ 보면 항상 1회에 득점하고 역전당하지.~~ 하지만 경리단의 조종규가 2회말에 투런을 때려내며 역전을 해냈다. 하지만 롯데의 공격력이 매서웠는데 5회초 김성관의 솔로홈런, 7회초 손상대의 결승 솔로 홈런을 앞세워 6:4 승리로 롯데 자이언트가 실업야구 코리안시리즈의 두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롯데는 초반 2패를 기록하며 1패면 준우승에 머물게 되었지만 [[리버스 스윕|4경기를 내리 따내며]](1경기는 무승부였지만) 코리안시리즈 우승을 거머지게 되었다.~~경리단 [[지못미]]~~
||<tablealign=center> [[파일:attachment/1981koreaseiresfinal22.png|width=550]] ||
|| 코리안시리즈 우승 헹가레를 받는 [[최동원]] ||
== 여담 ==
* 코리안 시리즈 '''6경기중 6경기 등판해 42⅓이닝 2승 1패 1세이브 방어율 2.32를 기록한 [[최동원]]의 괴물같은 저력이 돋보이는 경기였다.''' 1981년 실업야구에서 최동원은 최우수 신인상, 최우수 선수상, 최다 승리상이라는 3관왕을 거머쥐며 그의 시대를 알리게 되었다. 하지만 3년후, '''[[1984년 한국시리즈|이보다 더 괴물같은 포스를 보여주는데...]]'''
* 1981년 이후에도 [[한국실업야구]]는 유지되었고, 따라서 코리안시리즈도 개최되었다. 하지만 프로 출범과 함께 인기가 사그라 들며 기록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안습]].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 [include(틀:역대 FIFA 월드컵)]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0b256b>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FD1205 25%, #F9F208 25%, #F9F208 75%, #FD1205 75%)"
{{{+4 '''{{{#0b256b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
||<-3><bgcolor=white> {{{#0b256b '''Copa Mundial de Fútbol – España 82'''[br]'''1982 FIFA World Cup Spa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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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ght=40><bgcolor=#fd1205> {{{#f9f208 ''' 개최국 ''' }}} ||<-2> [[스페인]] ||
||<height=40><bgcolor=#fd1205> {{{#f9f208 ''' 마스코트 ''' }}} ||<-2> 나란히토(Naranji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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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ght=40><bgcolor=#fd1205> {{{#f9f208 ''' 참가팀 ''' }}} ||<-2> 24개팀 ||
||<-3><height=40><bgcolor=#0b256b> {{{#fff ''' {{{+1 대회 결과 }}} ''' }}} ||
||<height=40><bgcolor=#fd1205> {{{#f9f208 ''' 우승 ''' }}}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br]{{{-1 (3번째 우승)}}}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파일:Italy FIGC 1982.png|height=35]]]] ||
||<height=40><bgcolor=#fd1205> {{{#f9f208 ''' 준우승 ''' }}}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서독]]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파일:Germany DFB 1978-1994.png|height=35]]]] ||
||<height=40><bgcolor=#fd1205> {{{#f9f208 ''' 3위 ''' }}} ||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폴란드]] ||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파일:Poland PZPN 1982.png|height=35]]]] ||
||<height=40><bgcolor=#fd1205> {{{#f9f208 ''' 4위 ''' }}}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프랑스]]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파일:France FFF 1982.png|height=35]]]] ||
||<-3><height=40><bgcolor=#0b256b> {{{#fff ''' {{{+1 수상 }}} ''' }}} ||
||<height=40><bgcolor=#fd1205> {{{#f9f208 ''' 골든볼 ''' }}} ||<-2> [[파올로 로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 ||
||<height=40><bgcolor=#fd1205> {{{#f9f208 ''' 골든슈 ''' }}} ||<-2> [[파올로 로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 ||
||<-3><height=40><bgcolor=#0b256b> {{{#fff ''' {{{+1 이전·이후 대회 }}} ''' }}} ||
||<width=33%>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1978년[br]아르헨티나]] ||<width=33%><bgcolor=#f9f208> {{{#fd1205 ''' 1982년[br]스페인 ''' }}} ||<width=33%>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1986년[br]멕시코]] ||
[목차]
== 개요 ==
[youtube(skFgoys2mwg)]
[[1982년]] [[스페인]]에서 개최된 12번째 [[FIFA 월드컵]]. 1982년 6월 13일부터 7월 11일까지 스페인의 15개 도시 17개 경기장에서 열렸다.
이 대회부터 출전국이 '''24개국'''으로 확대되었다. 24개국 체제는 [[1994 FIFA 월드컵 미국]]까지 4개 대회 동안 유지되었다. 그리고 조별 예선이 숫자로 표기된 마지막 대회. 다음 대회인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부터 A조, B조 식의 알파벳으로 바뀐다.
경기진행방식은 기존의 2차 풀리그 제도를 유지하여 1라운드에서 4개팀 6개조 풀리그를 거쳐 각조 2위까지 12개 팀이 상위 라운드로 진출, 3개팀 4개조로 나뉘어 풀리그를 거쳐 각 조 1위가 4강에 진출하는 방식을 채용했다. 이 월드컵에서만 유일하게 적용된 방식으로, 다음 대회부터는 1라운드에서 16개 팀을 선발하여 결선 토너먼트를 치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 대회 우승팀은 [[이탈리아]].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까지 2연패 이후로 '''44년 만에''' 세 번째 우승을 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탈리아 국민으로서는 더없이 감격적이었던 우승. 그 속에는 이 대회 득점왕이자 골든볼 수상자 [[파올로 로시]]가 브라질과의 2차 리그부터 결승전 때까지 선보인 독보적 대활약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1982년 6월 16일부터 7월 14일까지 KBS에서 매일 밤 10시에 녹화 방영하였으며, MBC에서도 같은 기간 1시간 가량의 경기 하이라이트를 방영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6150020920800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6-15&officeId=00020&pageNo=8&printNo=18675&publishType=00020|#]]
==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지역예선|지역예선]] ==
출전국 확대 조치에 따라 그동안 1장씩만 주어졌던 북중미, 아프리카, 아시아/오세아니아에도 출전권이 2장씩으로 확대되었다. 전 대회 우승국 아르헨티나와 개최국 스페인은 자동으로 진출이 확정되었고, 그외의 22장의 티켓은 다음과 같이 배분되었다.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예선에 피지(남태평양 국가)가 첫 참가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FIFA와 아시아축구협회에 재가입하여 월드컵 지역예선에 복귀하였다. 중국은 아시아-대양주 2차예선에서 뉴질랜드[* 첫 월드컵 본선 진출. [[리키 허버트]]가 뉴질랜드 국가대표로 첫 월드컵 본선 참가했고, 두번째 월드컵([[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뉴질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지휘하였다.]에게 발목 잡혀서 2위결정 플레이오프(싱가포르에서 개최)에서 뉴질랜드에게 져서 탈락하였다. 한편 [[대한민국]]은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서 심판의 이해할 수 없는 판정으로 아쉽게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였다.
FIFA 월드컵 사상 최초로 6개 대륙 연맹에서 모두 본선출전국을 낸 대회이기도 하다. 이후 이 기록은 [[2006 FIFA 월드컵 독일]]과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이어받는다.
* 유럽 : 13장
1조 : 서독/오스트리아 진출
2조 : 벨기에/프랑스 진출
3조 : 소련/체코슬로바키아 진출
4조 : 헝가리/잉글랜드 진출
5조 : 유고슬라비아/이탈리아 진출
6조 : 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 진출
7조 : 폴란드 진출
* 남미 : 3장
1조 : 브라질 진출
2조 : 페루 진출
3조 : 칠레 진출
* 북중미/카리브 : 2장
온두라스/엘살바도르 진출
* 아시아/오세아니아 : 2장
쿠웨이트/뉴질랜드 진출
* 아프리카 : 2장
알제리/카메룬 진출
== 경기장 ==
스페인 전국 14개 도시의 17개 경기장이 대회를 개최했다. 이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두 나라가 20개 도시의 20개 경기장에서 대회를 개최하기 전까지 가장 많은 도시와 많은 경기장에서 개최한 대회였다. 가장 많은 경기를 개최한 경기장은 바르셀로나의 캄 노우로 준결승전을 비롯해 5경기를 개최했다. 바르셀로나는 8경기를 개최해 이 대회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개최한 도시이기도 했는데, 에스타디 데 사리아도 3경기를 개최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으로 많은 경기를 개최한 도시는 마드리드로 총 7경기를 개최하였다.
대회 개최 조직위가 많은 도시를 개최 도시로 선정한 이유는 6개 조의 선수단과 팬들의 이동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취였다고 밝혔다. 1차 조별 리그의 1조는 [[갈리시아]] 지역의 비고와 코루냐, 2조는 [[아스투리아스]] 지역의 히혼과 오비에도, 3조는 [[발렌시아]] 남부 지역의 엘체와 알리칸테,(아르헨티나와 벨기에 경기는 예외적으로 개막전이기 때문에 캄 노우에서 진행되었다) 4조는 북부 [[바스크]]의 빌바오와 [[카스티야이레온]]의 바야돌리드에서, 개최국 스페인이 편성된 5조는 발렌시아와 [[아라곤]]의 사라고사에서, 6조는 [[안달루시아]]의 세비야(산체스 피스후안에서 한 경기, 베니토 비야마린에서 두 경기)와 말라가에서 진행되었다. 또한 1차 조별 리그 경기는 빌바오나 히혼 같은 북부 지역의 경우 오후 5시에, 세비야나 말라가 같은 남부 지역의 경우에는 밤 9시에 경기를 시작해 최소 32도에 달하는 스페인의 혹서기에 맞출 수 있도록 일정을 잡았다.
2차 조별리그부터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세비야, 그리고 알리칸테(개막전을 치르지 못한 보상으로 3위 결정전을 개최했다)에서만 개최되었다. A조와 C조는 바르셀로나의 [[캄 노우]]와 에스타디 데 사리아에서, B조와 D조는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산티아고 베르나베우]]와 [[에스타디오 비센테 칼데론|비센테 칼데론]]에서 각 조별로 한 경기장에서 진행되었다.
두 준결승전은 각각 바르셀로나의 캄 노우와 세비야의 산체스 피스후안에서 진행되었고, 3위 결정전은 알리칸테에서 열렸으며,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결승전을 끝으로 대회의 막을 내렸다.
*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Estadio Santiago Bernabéu) - 80,800명 수용. [[마드리드]]
* [[에스타디오 비센테 칼데론]] (Estadio Vicente Calderón)- 65,000명 수용. [[마드리드]]
* [[캄 노우]] (Camp Nou) -93,053명 수용. [[바르셀로나]]
* 에스타디 데 사리아 (Estadi d saria)[* 1997년 철거.] - 43,667명 수용. [[바르셀로나]]
* [[에스타디오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 (Estadio Ramón Sánchez Pizjuán) - 56,000명 수용. [[세비야]]
* [[에스타디오 베니토 비야마린]] (Estadio Benito Villamarín) - 52,500명 수용. [[세비야]]
* [[에스타디오 데 발라이도스]] (Estadio de Balaídos) - 31,800명 수용. [[비고]]
* [[에스타디오 마누엘 마르티네스 발레로|누에보 에스타디오]] (Nuevo Estadio los Pajaritos) - 39,000명 수용. [[엘체]]
* [[에스타디오 데 리아소르]] (Estadio de Riazor) - 34,617명 수용. [[레코루냐]]
* [[엘 몰리논]] (Estadio El Molinón) - 25,885명 수용. [[히혼]]
* [[에스타디오 카를로스 타르티에레]] (Estadio Carlos Tartiere) - 20,000명 수용. [[오비에도]]
* [[에스타디오 호세 리코 페레스]] (Estadio José Rico Pérez) - 30,000명 수용. [[알리칸테]]
* 에스타디오 산 마메스 (Estadio San Mamés)[* 현재의 산 마메스는 2013년 구(舊) 산 마메스를 철거한 자리에 [[산 마메스|다시 세운 것]]이다. 둘 다 홈팀은 [[아틀레틱 클루브]]이다.] - 40,000명 수용. [[빌바오]]
* [[에스타디오 호세 소리야]] (Estadio José Zorrilla) - 30,500명 수용. [[바야돌리드]]
* [[에스타디오 데 메스타야]](Estadio de Mestalla) - 49,092명 수용. [[발렌시아]]
* [[에스타디오 데 라 로마레다]](Estadio de La Romareda) - 34,596명 수용. [[사라고사]]
* [[에스타디오 라 로살레다]](Estadio La Rosaleda) - 45,000명 수용. [[말라가]]
== 1라운드 ==
=== 시드 및 포트 배정 ===
* 시드 배정국: 스페인 (개최국), 아르헨티나 (전 대회 우승국), 브라질, 잉글랜드, 이탈리아, 서독
* A포트: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소련, 유고슬라비아
* B포트: 벨기에, 프랑스,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칠레, 페루
* C포트: 알제리, 카메룬, 쿠웨이트,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뉴질랜드
=== 최종 조 편성 ===
조편성은 다음과 같다. 조 순위대로 나열. 굵은 글씨는 2라운드 진출.
* 1조 : '''폴란드''', '''이탈리아''', 카메룬, 페루
* 2조 : '''서독''', '''오스트리아''', 알제리, 칠레
* 3조 : '''벨기에''', '''아르헨티나''', 헝가리, 엘살바도르
* 4조 : '''잉글랜드''', '''프랑스''', 체코슬로바키아, 쿠웨이트
* 5조 : '''북아일랜드''', '''스페인''', 유고슬라비아, 온두라스
* 6조 : '''브라질''', '''소련''', 스코틀랜드, 뉴질랜드
=== 1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폴란드 국기.svg|width=30]] || [[폴란드]] || 3 || 1 || 2 || 0 || 5 || 1 || +4 || 4 || 2라운드 ||
||<rowbgcolor=#ddffdd> 2 || [[파일:이탈리아 국기.svg|width=30]] || [[이탈리아]] || 3 || 0 || 3 || 0 || 2 || 2 || 0 || 3 || 2라운드 ||
||<rowbgcolor=#ffdddd> 3 || [[파일:카메룬 국기.svg|width=30]] || [[카메룬]] || 3 || 0 || 3 || 0 || 1 || 1 || 0 || 3 || 탈락 ||
||<rowbgcolor=#ffdddd> 4 || [[파일:페루 국기.svg|width=30]] || [[페루]] || 3 || 0 || 2 || 1 || 2 || 6 || -4 || 2 || 탈락 ||
* 이탈리아 0 : 0 폴란드
* 페루 0 : 0 카메룬
* 이탈리아 1 : 1 페루
* 폴란드 0 : 0 카메룬
* 폴란드 5 : 1 페루
* 이탈리아 1:1 카메룬
이탈리아가 치른 세 경기는 모두 비고의 [[에스타디오 아방카 발라이도스|발라이도스]]에서, 나머지 세 경기는 라코루냐의 [[에스타디오 아방카-리아소르|리아소르]]에서 진행되었다.
이 조에서 승부가 난 경기라고는 폴란드 대 페루전이 유일했고 나머지는 죄다 비겼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는 3무를 거두는 바람에 같은 3무인 카메룬과 다득점까지 따지는 상황이 발생했고 어렵게 2라운드에 진출했다.
~~[[허정무]]가 좋아합니다~~
=== 2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독일 국기.svg|width=30]] || [[서독]] || 3 || 2 || 0 || 1 || 6 || 3 || +3 || 4 || 2라운드 ||
||<rowbgcolor=#ddffdd> 2 ||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width=30]] || [[오스트리아]] || 3 || 2 || 0 || 1 || 3 || 1 || +2 || 4 || 2라운드 ||
||<rowbgcolor=#ffdddd> 3 || [[파일:알제리 국기.svg|width=30]] || [[알제리]] || 3 || 2 || 0 || 1 || 5 || 5 || 0 || 4 || 탈락 ||
||<rowbgcolor=#ffdddd> 4 || [[파일:칠레 국기.svg|width=30]] || [[칠레]] || 3 || 0 || 0 || 3 || 3 || 8 || -5 || 0 || 탈락 ||
* 서독 1 : 2 알제리
[youtube(fBWJS27wgZs)]
* 칠레 0 : 1 오스트리아
* 서독 4 : 1 칠레
[youtube(4IR-VdAL400)]
* 알제리 0 : 2 오스트리아
* 알제리 3 : 2 칠레
* [[히혼의 수치|서독 1 : 0 오스트리아]]
서독이 치른 세 경기는 히혼의 [[엘 몰리논]]에서, 나머지 경기는 오비에도의 [[에스타디오 카를로스 타르티에레|카를로스 타르티에레]] 구 구장에서 벌어졌다.
최종전 서독 : 오스트리아 경기에서 양 팀간 '''[[승부조작]]성''' 경기로 크게 물의를 빚었다. [[UEFA 유로 1980]] 우승국으로 그 라이벌이라고는 [[마리오 켐페스]]와 [[디에고 마라도나]]를 동시에 보유한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밖에 없다는 평가를 들은 서독이었지만 서전부터 처녀출전한 알제리에게 1-2로 쳐발려버렸다. 이후 서독은 칠레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고 알제리는 오스트리아에게 패했다. 그 이후 알제리가 칠레를 상대로 요상하게 고전하면서 겨우 이겼는데 이렇게 해서 알제리의 경기가 모두 끝난 시점에서 알제리는 2승 1패. 서독은 1승 1패(알제리에게 당함), 오스트리아는 2승이었다. 이때 서독이 오스트리아를 2점차 이하의 점수차로 이기면 서독이 알제리를 밀어내고 상대팀인 오스트리아와 사이좋게 2라운드에 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양 팀은 경기 초반 서독의 득점이 있은 후 패스돌리기로 일관하여 시간보내기에 급급했다. 당연히 경기장에서는 관중들의 야유가 터져나왔고, 서독과 오스트리아는 국제적인 비난을 면치 못했으며 서독에선 내 조국이 이런 더러운 짓을 하니 정말 못살겠다고 자살한 사람까지 있었다. 프랑스 당시 대표팀 감독은 "올해 노벨평화상은 오스트리아와 서독 축구대표팀에게 줘야 한다." 라고 대놓고 인터뷰에서 두 나라를 깠다. 알제리는 FIFA에 공식적으로 항의했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아 쓸쓸히 짐을 싸야 했다. 이 문제로 인해 다음 대회, 정확히는 [[UEFA 유로 1984]]부터 조별 리그의 마지막 경기는 동시에 열린다는 원칙이 세워진다. 이것을 '''[[히혼의 수치]]'''라고 한다.[* 여담으로 前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 [[울리 슈틸리케]]가 선수 시절 이 경기에서 스위퍼로 출전했었다. 그런데 슈틸리케는 사실 팀의 방침대로 움직였을 뿐이고 주동자는 '''이 경기에서 골을 넣은 호어스트 흐루베슈'''였다.]
=== 3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벨기에 국기.svg|width=30]] || [[벨기에]] || 3 || 2 || 1 || 0 || 3 || 1 || +2 || 5 || 2라운드 ||
||<rowbgcolor=#ddffdd> 2 ||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width=30]] || [[아르헨티나]] || 3 || 2 || 0 || 1 || 6 || 2 || +4 || 4 || 2라운드 ||
||<rowbgcolor=#ffdddd> 3 || [[파일:헝가리 인민 공화국 국기(1957–1990).svg|width=30]] || [[헝가리]] || 3 || 1 || 1 || 1 || 12 || 6 || +6 || 3 || 탈락 ||
||<rowbgcolor=#ffdddd> 4 || [[파일:엘살바도르 국기.svg|width=30]] || [[엘살바도르]] || 3 || 0 || 0 || 3 || 1 || 13 || -12 || 0 || 탈락 ||
* 아르헨티나 0 : 1 벨기에
[youtube(UAkBWUysdrg)]
* 헝가리 10 : 1 엘살바도르
* 아르헨티나 4 : 1 헝가리
* 벨기에 1 : 0 엘살바도르
* 벨기에 1 : 1 헝가리
* 아르헨티나 2 : 0 엘살바도르
아르헨티나와 벨기에 간의 개막전은 바르셀로나의 [[캄 노우]]에서, 나머지 아르헨티나의 두 경기는 알리칸테의 [[에스타디오 호세 리코 페레스|호세 리코 페레스]]에서, 나머지 세 경기는 엘체의 [[에스타디오 마누엘 마르티네스 발레로|마르티네스 발레로 신구장]]에서 진행되었다.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한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전쟁]]의 패전으로 인해 실의에 빠진 나머지 모든 경기를 울며불며 뗑깡을 부렸다. 포메이션이고 나발이고 간에 하프타임때도 계속 울기만 했다.[* 이들은 포클랜드전 패배 소식을 아르헨티나가 아니라 스페인에 와서야 알았다. 아르헨티나에서 이겼다고 뻥카를 쳤던 탓이다.] 그러다가 벨기에에게 일격을 먹고 약체인 헝가리와 엘살바도르를 상대로도 고전끝에 겨우 이겨서 2라운드에는 간신히 진출했다. 참고로, 헝가리는 엘살바도르를 상대로 '''10:1'''[* 이 스코어는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에서 한국이 기록한 최다 점수 패배 타이 기록. 당시 한국은 헝가리에 0:9로 패했다.]이라는 오세아니아 지역예선에서나 볼법한 괴이한 점수로 대승을 거두었다. 정작 승점에서는 운없게도 벨기에와 아르헨티나에 뒤쳐져서 2라운드 진출에 실패했지만. 사실 헝가리의 입장에서 아르헨티나는 실력은 엄청 쎘지만 경기를 뛰고자 하는 의욕을 잃은 팀이라 해볼만했지만 결국 졌다.
=== 4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 [[잉글랜드]] || 3 || 3 || 0 || 0 || 6 || 1 || +5 || 6 || 2라운드 ||
||<rowbgcolor=#ddffdd> 2 || [[파일:프랑스 국기.svg|width=30]] || [[프랑스]] || 3 || 1 || 1 || 1 || 6 || 5 || +1 || 3 || 2라운드 ||
||<rowbgcolor=#ffdddd> 3 || [[파일:체코 국기.svg|width=30]] || [[체코슬로바키아]] || 3 || 0 || 2 || 1 || 2 || 4 || -2 || 2 || 탈락 ||
||<rowbgcolor=#ffdddd> 4 || [[파일:쿠웨이트 국기.svg|width=30]] || [[쿠웨이트]] || 3 || 0 || 1 || 2 || 2 || 6 || -4 || 1 || 탈락 ||
* 잉글랜드 3: 1 프랑스
* 체코슬로바키아 1 : 1 쿠웨이트
* 잉글랜드 2 : 0 체코슬로바키아
* 프랑스 4 : 1 쿠웨이트
* 프랑스 1 : 1 체코슬로바키아
* 잉글랜드 1 : 0 쿠웨이트
잉글랜드가 치른 세 경기는 모두 빌바오의 [[산 마메스]]에서 나머지 경기는 바야돌리드의 [[에스타디오 호세 소리야|호세 소리야]]에서 열렸다.
프랑스-잉글랜드 경기 당시, 잉글랜드 [[훌리건]]들이 살아있는 [[수탉]]을 가져와 경기 도중 모가지를 잘라 피를 뿌리는 짓을 저질렀다. 비난 속에 이들은 [[수탉]]은 프랑스 축구 상징, 잉글랜드는 [[사자]]니 꼬우면 니들도 [[사자]] 목을 자르던가라는 개소리를 했다.[* 그런데 사실 잉글랜드의 삼사자 문장은 원래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문장인데, 노르망디 귀족이었던 [[윌리엄 1세]]가 영국왕에 오르면서 사용하게 된 것이니만큼, 프랑스인들 입장에선 더더욱 환장할 노릇.] 잉글랜드는 예선에서 프랑스를 이기고 조 1위로 2라운드에 올랐으나 2라운드 조예선에서 서독과 스페인에게 [[무재배]]를 거두면서 탈락한 반면, 프랑스는 4강까지 진출했다. 그 훌리건들은 국제적 비난 속에 잉글랜드로 돌아오자마자 쇠고랑을 찼으며 [[FIFA]]에선 경기장에서 살아있는 동물을 학대하거나 죽여 피를 뿌리는 행위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금지하며 해당국에도 불이익을 준다라는 규정까지 만들어야 했다.
쿠웨이트와 프랑스의 경기에서, 3대1로 프랑스가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가 공격하고 있을 때 관중석의 누군가가 휘슬을 불었고, 이를 쿠웨이트 선수들이 심판의 휘슬로 착각하고 동작을 멈추자 프랑스는 손쉽게 4번째 득점을 얻었다. 이에 경기를 지켜보던 쿠웨이트 축구협회장 파하드(Fahad) 왕자가 경기장에 난입해 골을 무효로 할 것을 요구했고 당시 주심이었던 소련국적의 미로슬라프 스투파르(Miroslav stupar)는 파하드 왕자의 요구를 받아들여서 큰 파장을 낳았다.
=== 5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북아일랜드 국기.svg|width=30]] || [[북아일랜드]] || 3 || 1 || 2 || 0 || 2 || 1 || +1 || 4 || 2라운드 ||
||<rowbgcolor=#ddffdd> 2 || [[파일:스페인 국기.svg|width=30]] || [[스페인]] || 3 || 1 || 1 || 1 || 3 || 3 || 0 || 3 || 2라운드 ||
||<rowbgcolor=#ffdddd> 3 ||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width=30]] || [[유고슬라비아]] || 3 || 1 || 1 || 1 || 2 || 2 || 0 || 3 || 탈락 ||
||<rowbgcolor=#ffdddd> 4 || [[파일:온두라스 국기.svg|width=30]] || [[온두라스]] || 3 || 0 || 2 || 1 || 2 || 3 || -1 || 2 || 탈락 ||
* 스페인 1 : 1 온두라스
* 유고슬라비아 0 : 0 북아일랜드
* 스페인 2 : 1 유고슬라비아
[youtube(UfKaq8aqvuY)]
* 온두라스 1 : 1 북아일랜드
* 온두라스 0 : 1 유고슬라비아
* 스페인 0 : 1 북아일랜드
스페인이 치른 세 경기는 모두 발렌시아의 [[에스타디오 데 메스타야|루이스 카사노바]][* 당시 메스타야 경기장의 명칭]에서, 나머지 경기는 사라고사의 [[라 로마레다]]에서 진행되었다.
개최국 스페인이 유고슬라비아와 승점이 같았으나, 다득점에 앞서 간신히 2라운드에 진출하였다. 이는 월드컵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28년후]]에는 이와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는데...-- 그나마 스페인의 저 1승도 편파판정[* 0-1로 지던 상황에서 [[프리킥|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유도한 파울]]을 심판진이 [[페널티 킥]]으로 판정하고, [[로베르토 로페스 우파르테]]의 킥이 홈런(...)이 되자 이번엔 골키퍼 파울을 선언하며 재시도 기회를 주고, 2차 시도에서 [[후아니토]]가 간신히 성공(...)] 덕에 따낸 떳떳하지 못한 승리였다.
=== 6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브라질 국기.svg|width=30]] || [[브라질]] || 3 || 3 || 0 || 0 || 10 || 2 || +8 || 6 || 2라운드 ||
||<rowbgcolor=#ddffdd> 2 || [[파일:소련 국기.svg|width=30]] || [[소련]] || 3 || 1 || 1 || 1 || 6 || 4 || +2 || 3 || 2라운드 ||
||<rowbgcolor=#ffdddd> 3 ||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width=30]] || [[스코틀랜드]] || 3 || 1 || 1 || 1 || 8 || 8 || 0 || 2 || 탈락 ||
||<rowbgcolor=#ffdddd> 4 || [[파일:뉴질랜드 국기.svg|width=30]] || [[뉴질랜드]] || 3 || 0 || 0 || 3 || 2 || 12 || -10 || 0 || 탈락 ||
* 브라질 2 : 1 소련
[youtube(O1SzYMvPQGE)]
[youtube(69aozBj-BCU)]
* 스코틀랜드 5 : 2 뉴질랜드
* 브라질 4 : 1 뉴질랜드
[youtube(KGnkYeOmucQ)]
[youtube(iXyhcqpG88Q)]
[youtube(v7guie0fhIg)]
* 소련 3 : 0 뉴질랜드
[youtube(ldk1zUjE9u8)]
* 소련 2 : 2 스코틀랜드
* 브라질 4 : 0 스코틀랜드
[youtube(S6Es1qzUVvs)]
[youtube(5Y5N_7wIBRk)]
브라질이 치른 세 경기는 세비야에서 진행되었는데, 첫 경기는 [[에스타디오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산체스 피스후안]]에서, 나머지 두 경기는 [[에스타디오 베니토 비야마린|베니토 비야마린]]에서 진행되었다. 나머지 세 경기는 말라가의 [[에스타디오 라 로살레다|라 로살레다]]에서 진행되었다.
브라질은 [[지쿠]], [[소크라치스]], [[토니뉴 세레주]], [[호베르투 파우캉]]. 이른바 '''{{{#gold 황금의 사중주}}}'''를 내세워 일찌감치 3승을 챙기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그러나...
== 2라운드 ==
조편성은 다음과 같다. 조 순위대로 나열. 굵은 글씨는 4강 진출.
* A조 : '''폴란드''', 소련, 벨기에
* B조 : '''서독''', 잉글랜드, 스페인
* C조 : '''이탈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 D조 : '''프랑스''', 오스트리아, 북아일랜드
가장 핫이슈가 된 것은 아르헨티나 vs 잉글랜드의 경기가 준결승에서 성사되느냐의 문제였다. 언론에서는 제2의 [[포클랜드 전쟁]]이니 뭐니 하면서 있는대로 어그로를 끌었지만 정작 이 두팀 모두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아르헨티나는 지나치게 어려운 조를 만났음에도 시종일관 울며불며 난리 법석을 떨다가 브라질 전에서 [[디에고 마라도나|마라도나]]가 뗑깡부리다가 퇴장당한 것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붕괴하여 조꼴찌로 탈락했으며 잉글랜드는 아르헨티나보다 비교적 쉬운 조편성을 받은 데다가 첫 경기부터 스페인이 탈락이 기정사실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하나만 이기면 되는데 그걸 못하고 스페인과 서독에게 무재배를 거두며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승승장구를 치던 브라질은 풍운아 [[파올로 로시]]의 맹활약에 의해 이탈리아에게 3:2로 패하면서 결선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한다.
=== A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폴란드 국기.svg|width=30]] || [[폴란드]] || 2 || 1 || 1 || 0 || 3 || 0 || +3 || 3 || 4강 ||
||<rowbgcolor=#ffdddd> 2 || [[파일:소련 국기.svg|width=30]] || [[소련]] || 2 || 1 || 1 || 0 || 1 || 0 || +1 || 3 || 탈락 ||
||<rowbgcolor=#ffdddd> 3 || [[파일:벨기에 국기.svg|width=30]] || [[벨기에]] || 2 || 0 || 0 || 2 || 0 || 4 || -4 || 0 || 탈락 ||
* '''폴란드''' 3 - 0 벨기에
* 벨기에 0 - 1 '''소련'''
* 폴란드 0 - 0 소련
세 경기 모두 바르셀로나의 [[캄 노우]]에서 진행되었다.
골 득실차로 인해 폴란드는 비기기만 해도 4강에 진출한다. 그리고 실제로 폴란드와 소련이 득점없이 비겨 폴란드가 4강에 진출했다.
=== B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독일 국기.svg|width=30]] || [[서독]] || 2 || 1 || 1 || 0 || 2 || 1 || +1 || 3 || 4강 ||
||<rowbgcolor=#ffdddd> 2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 [[잉글랜드]] || 2 || 0 || 2 || 0 || 0 || 0 || 0 || 2 || 탈락 ||
||<rowbgcolor=#ffdddd> 3 || [[파일:스페인 국기.svg|width=30]] || [[스페인]] || 2 || 0 || 1 || 1 || 1 || 2 || -1 || 1 || 탈락 ||
* 서독 0 - 0 잉글랜드
* '''서독''' 2 - 1 스페인
* 스페인 0 - 0 잉글랜드
세 경기 모두 마드리드의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진행되었다.
잉글랜드가 4강에 가려면 스페인을 2점 차 이상으로 이겨야만 했다. 하지만 스페인이 잉글랜드의 발목을 제대로 잡았다. 그 결과 서독이 4강에 진출했다. 여담으로 스페인이 2010 월드컵에서 우승한 현재 기준으로는 바로 밑의 C조와 마찬가지로 전원 월드컵 우승 유경험팀이다.
=== C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이탈리아 국기.svg|width=30]] || [[이탈리아]] || 2 || 2 || 0 || 0 || 5 || 3 || +2 || 4 || 4강 ||
||<rowbgcolor=#ffdddd> 2 || [[파일:브라질 국기.svg|width=30]] || [[브라질]] || 2 || 1 || 0 || 1 || 5 || 4 || +1 || 2 || 탈락 ||
||<rowbgcolor=#ffdddd> 3 ||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width=30]] || [[아르헨티나]] || 2 || 0 || 0 || 2 || 2 || 5 || -3 || 0 || 탈락 ||
* '''이탈리아''' 2 - 1 아르헨티나
* 아르헨티나 1 - 3 '''브라질'''
[youtube(gZw4D2RklJY)]
[youtube(AqfRxubjs6w)]
* '''이탈리아''' 3 - 2 브라질
[youtube(dM-PsYqA010)]
[youtube(FsDo4C4l1Bk)]
[youtube(yBC02hKBTlQ)]
세 경기 모두 바르셀로나의 에스타디 데 사리아[* [[RCD 에스파뇰]]의 구 홈구장]에서 진행되었다.
'''유사이래 최악의 [[죽음의 조]]''' 뭐 이딴 조가 다 있나 싶은데 조편성된 구성원 전체가 '''월드컵 우승 유경험팀'''이라는 해괴한 편성이었다. 게다가 아르헨티나는 [[디펜딩 챔피언]]에 브라질은 우승 3회, 이탈리아는 우승 2회의 강팀들이다. 여기 편성된 팀들은 딴조 어딜 가든 조 1위를 할 그런 강팀들뿐이었다.
대진표가 이지경이 된 건 이탈리아는 단 1승도 못한 채 올라오고 아르헨티나는 이기고도 남을 벨기에에게 덜미를 잡혀서 이렇게 된 것이다. 이전 월드컵에서는 이런 극악의 조편성이 없었으며 훗날 월드컵에서도 이렇게 엄청난 조편성이 된 건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D조의 우루과이-이탈리아-코스타리카-잉글랜드 밖에 없다. --하지만 우승 경험이 아예 없는 코스타리카가 조 1위를 차지했지--
아르헨티나가 두 경기 모두 패했다곤 하지만 다른 조의 어지간한 팀들을 압도할 강팀이었다. 그런데도 이탈리아가 ~~홈그라운드가 유럽이라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모두 이기는 괴력을 발휘하면서 4강에 진출했다. 이 중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승부조작 논란으로 인해 한동안 그라운드를 떠났던 풍운아 [[파올로 로시]]의 [[해트트릭]]이 있었다.[* 특히 브라질에는 '''{{{#gold 황금의 사중주}}}'''라 불리는 [[지쿠]], [[소크라치스]], [[토니뉴 세레주]], [[호베르투 파우캉]]이 있었고, 조별리그부터 승승장구를 치고 올라왔으니 충격이 더 클 수 밖에 없었다.]
이탈리아가 올라가긴 했으나 아르헨티나나 브라질도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결국은 이탈리아가 4강에 진출 하였고 ''결국은 이탈리아가 이 월드컵을 우승했다.''
참고로 이탈리아에 패한 브라질은 경기 후 2명이 자살하고 5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충격에 빠졌다. 이를 '''데 사리아 참사'''라고 하며 32년전에 있었던 [[마라카낭의 비극]]과 32년 후에 있을 [[미네이랑의 비극]]과 더불어 브라질의 3대 잔혹사로 불린다.[* 잔혹사이긴 해도, 미네이랑의 비극에 비하면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브라질이 월드컵에서 유일하게 먹힌 [[해트트릭]]이었다.] --32년 주기설인가-- [[http://www.star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4363|브라질 대표팀의 3대 비극로 기억될 '미네이랑의 비극'..."나머지 참사들은 뭘까?"]]
=== D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프랑스 국기.svg|width=30]] || [[프랑스]] || 2 || 2 || 0 || 0 || 5 || 1 || +4 || 4 || 4강 ||
||<rowbgcolor=#ffdddd> 2 ||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width=30]] || [[오스트리아]] || 2 || 0 || 1 || 1 || 2 || 3 || -1 || 1 || 탈락 ||
||<rowbgcolor=#ffdddd> 3 || [[파일:북아일랜드 국기.svg|width=30]] || [[북아일랜드]] || 2 || 0 || 1 || 1 || 3 || 6 || -3 || 1 || 탈락 ||
* 오스트리아 0 - 1 '''프랑스'''
* 오스트리아 2 - 2 북아일랜드
* 북아일랜드 1 - 4 '''프랑스'''
세 경기 모두 마드리드의 [[에스타디오 비센테 칼데론|비센테 칼데론]]에서 진행되었다.
이 조에서는 프랑스만 2번 모두 이기고 오스트리아와 북아일랜드는 비겼다.
== 결선 토너먼트 ==
||<table align=center><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
|| A || 4강 1경기 [br] 폴란드 0:2 '''이탈리아''' ||<|3> C ||<|3> 결승 [br] '''이탈리아''' 3:1 서독 ||
|| B || 4강 2경기 [br] '''서독''' 3:3(5:4) 프랑스 ||
|| D || 3/4위전 [br] '''폴란드''' 3:2 프랑스 ||
[youtube(lSnGCoFKKRA)]
[youtube(qBCf-r1ACc4)]
[youtube(Tv4SDyOBB9E)]
서독과 프랑스와의 준결승에서는 후반 15분 서독 골키퍼 [[하랄트 슈마허]]와 프랑스의 파트리크 바티스통의 충돌 사고가 있었다. 플라티니의 스루패스를 경합 상황에서 바티스통이 달려들면서 슈팅했지만 오른쪽으로 빗나갔고 [[https://youtu.be/tGq7VcaHoqo|직후 뒤늦게 뛰어나온 슈마허의 엉덩이와 바티스통의 얼굴이 부딪쳤다.]] 바티스통은 이 충돌로 의식을 잃고 교체되었지만(게다가 이가 두 개 나가고 갈비뼈 세 개에 금이 갔다) 파울로 간주되지는 않았다.
하랄트 슈마허는 [[승부차기]]에서 눈부신 선방을 보이며 승부차기 끝에 프랑스를 꺾고 팀을 결승에 올렸지만 결승전에서는 3대1로 이탈리아에게 패하였고,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결승에서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에게 3대2로 패하여 [[콩라인|결승을 두번이나 갔음에도 불구하고 우승컵을 안지 못하였다]].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서독 축구 국가대표팀]]이 우승하긴 하였으나, 그는 자서전 때문에 감독인 [[프란츠 베켄바워]]와 사이가 안 좋아져 주전은 물론 2군 명단에조차도 못 들어갔다.[*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골키퍼]]는 [[보도 일그너]]와 [[안드레아스 쾨프케]]였다. 물론 주전은 일그너.] 은퇴 후에는 축구 감독을 하였는데,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기 하프타임 도중에''' 경질당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 우승 ==
[[파일:1982년 44년만의 우승.jpg]]
||<table align=center><rowbgcolor=#ffd700> '''{{{+2 1982 FIFA 월드컵 우승}}}''' ||
|| [[파일:이탈리아 국기.svg|width=200]] [br]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000 '''이탈리아'''}}}]]''' ||
|| 세 번째 우승[br]★★★ ||
== 결과 ==
|| 순위 || 국가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 || 승점 || 비고 ||
||<rowbgcolor=#ffd700> 1 || [[파일:이탈리아 국기.svg|width=30]] '''이탈리아''' || 7 || 4 || 3 || 0 || 12 || 6 || +6 || '''11''' || '''우승''' ||
||<rowbgcolor=silver> 2 || [[파일:독일 국기.svg|width=30]] 서독 || 7 || 3 || 2 || 2 || 13 || 10 || +3 || '''8''' || 준우승 ||
||<rowbgcolor=#b8860b> 3 || [[파일:폴란드 국기.svg|width=30]] 폴란드 || 7 || 3 || 3 || 1 || 11 || 5 || +6 || '''9''' || 3위 ||
||<rowbgcolor=#f0e68c> 4 || [[파일:프랑스 국기.svg|width=30]] 프랑스 || 7 || 3 || 2 || 2 || 16 || 12 || +4 || '''8''' || 4위 ||
||<rowbgcolor=#b2ccff> 5 || [[파일:브라질 국기.svg|width=30]] 브라질 || 5 || 4 || 0 || 1 || 15 || 6 || +9 || '''8''' || 2라운드 ||
||<rowbgcolor=#b2ccff> 6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잉글랜드 || 5 || 3 || 2 || 0 || 6 || 1 || +5 || '''8''' || 2라운드 ||
||<rowbgcolor=#b2ccff> 7 || [[파일:소련 국기.svg|width=30]] 소련 || 5 || 2 || 2 || 1 || 7 || 4 || +3 || '''6''' || 2라운드 ||
||<rowbgcolor=#b2ccff> 8 ||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width=30]] 오스트리아 || 5 || 2 || 1 || 2 || 5 || 4 || +1 || '''5''' || 2라운드 ||
||<rowbgcolor=#b2ccff> 9 || [[파일:벨기에 국기.svg|width=30]] 벨기에 || 5 || 2 || 1 || 2 || 3 || 5 || -2 || '''5''' || 2라운드 ||
||<rowbgcolor=#b2ccff> 10 || [[파일:북아일랜드 국기.svg|width=30]] 북아일랜드 || 5 || 1 || 3 || 1 || 5 || 7 || -2 || '''5''' || 2라운드 ||
||<rowbgcolor=#b2ccff> 11 ||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width=30]] 아르헨티나 || 5 || 2 || 0 || 3 || 8 || 7 || -1 || '''4''' || 2라운드 ||
||<rowbgcolor=#b2ccff> 12 || [[파일:스페인 국기.svg|width=30]] 스페인 || 5 || 1 || 2 || 2 || 4 || 5 || -1 || '''4''' || 2라운드 ||
||<rowbgcolor=#ffa7a7> 13 || [[파일:알제리 국기.svg|width=30]] 알제리 || 3 || 2 || 0 || 1 || 5 || 5 || 0 || '''4'''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4 || [[파일:헝가리 인민 공화국 국기(1957–1990).svg|width=30]] 헝가리 || 3 || 1 || 1 || 1 || 12 || 6 || 6 || '''3'''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5 ||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width=30]] 스코틀랜드 || 3 || 1 || 1 || 1 || 8 || 8 || 0 || '''3'''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6 ||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width=30]] 유고슬라비아 || 3 || 1 || 1 || 1 || 2 || 2 || 0 || '''3'''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7 || [[파일:카메룬 국기.svg|width=30]] 카메룬 || 3 || 0 || 3 || 0 || 1 || 1 || 0 || '''3'''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8 || [[파일:온두라스 국기.svg|width=30]] 온두라스 || 3 || 0 || 2 || 1 || 2 || 3 || -1 || '''2'''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9 || [[파일:체코 국기.svg|width=30]] 체코슬로바키아 || 3 || 0 || 2 || 1 || 2 || 4 || -2 || '''2'''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20 || [[파일:페루 국기.svg|width=30]] 페루 || 3 || 0 || 2 || 1 || 2 || 6 || -4 || '''2'''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21 || [[파일:쿠웨이트 국기.svg|width=30]] 쿠웨이트 || 3 || 0 || 1 || 2 || 2 || 6 || -4 || '''1'''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22 || [[파일:칠레 국기.svg|width=30]] 칠레 || 3 || 0 || 0 || 3 || 3 || 8 || -5 || '''0'''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23 || [[파일:뉴질랜드 국기.svg|width=30]] 뉴질랜드 || 3 || 0 || 0 || 3 || 2 || 12 || -10 || '''0'''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24 || [[파일:엘살바도르 국기.svg|width=30]] 엘살바도르 || 3 || 0 || 0 || 3 || 1 || 13 || -12 || '''0''' || 1라운드 ||
골든볼 - [[파올로 로시]] (이탈리아)
실버볼 - [[호베르투 파우캉]] (브라질)
브론즈볼 -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서독)
득점왕 - [[파올로 로시]] (이탈리아)
골든글러브(야신상) - [[디노 조프]] (이탈리아)
신인상 - [[마누엘 아모로스]] (프랑스)
페어플레이상 - 브라질
[각주]
[[분류: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 | [include(틀:역대 하계 아시안게임)]
||<-3><table align=right><table width=420><table bordercolor=#151714><bgcolor=#151714> {{{+4 '''{{{#ffffff 1982 뉴델리 아시안게임}}}'''}}} ||
||<-3><bgcolor=#e51625> {{{#fff 제9회 아시안게임[br]{{{+1 1982 뉴델리 아시안게임 }}}[br]IX Asian Games'''[[상표|{{{#fff ™}}}]] '''New Delhi 1982 }}} ||
||<-3><bgcolor=#ffffff,#191919> [[파일:attachment/51324002490.jpg|width=70%]] ||
||<height=40><bgcolor=#e51625> {{{#fff ''' 대회기간 ''' }}} ||<-2> [[1982년]] [[11월 19일]] ~ [[12월 4일]] ||
||<height=40><bgcolor=#e51625> {{{#fff ''' 개최국 ''' }}} ||<-2> [[인도]]/[[뉴델리]] ||
||<height=40><bgcolor=#e51625> {{{#fff ''' 참가국 ''' }}} ||<-2> 33개국 ||
||<height=40><bgcolor=#e51625> {{{#fff ''' 참가인원 ''' }}} ||<-2> 3,411명 ||
||<height=40><bgcolor=#e51625> {{{#fff ''' 경기종목 ''' }}} ||<-2> 21개 종목 - 196개 세부 종목 ||
||<height=40><bgcolor=#e51625> {{{#fff ''' 개회선언 ''' }}} ||<-2> 자일 싱[br],,인도 대통령,,[* 인도의 제7대 대통령으로 당시 대통령에 취임한지 5개월차였다.1994년 12월 25일에 서거했다.] ||
||<height=40><bgcolor=#e51625> {{{#fff ''' 성화점화 ''' }}} ||<-2> P. T. 우샤 ||
||<height=40><bgcolor=#e51625> {{{#fff ''' 개·폐회식장'''}}} ||<-2> [[자와할랄 네루 스타디움]] ||
[목차]
[clearfix]
== 개요 ==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제 9회 하계 [[아시안 게임]].
|| [[파일:Mascot-New-Delhi-1982.jpg|width=200]] ||
|| 마스코트는 코끼리 아뿌이다. ||
== 메달 순위 ==
|| 순위 ||<-2> 국가명 || 금 || 은 || 동 || 합계 ||
|| 1 || [[파일:중국 국기.svg|width=30]] || 중국 || 61 || 51 || 41 || 153 ||
|| 2 || [[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 일본 || 57 || 52 || 44 || 153 ||
|| 3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 대한민국 || 28 || 28 || 37 || 93 ||
|| 4 || [[파일:북한 국기.svg|width=30]] || 북한 || 17 || 19 || 20 || 56 ||
|| 5 || [[파일:인도 국기.svg|width=30]] || 인도 || 13 || 19 || 25 || 57 ||
|| 6 ||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width=30]] || 인도네시아 || 4 || 4 || 7 || 15 ||
|| 7 || [[파일:이란 국기.svg|width=30]] || 이란 || 4 || 4 || 4 || 12 ||
|| 8 || [[파일:파키스탄 국기.svg|width=30]] || 파키스탄 || 3 || 3 || 5 || 11 ||
|| 9 || [[파일:몽골 국기.svg|width=30]] || 몽골 || 3 || 3 || 1 || 7 ||
|| 10 || [[파일:필리핀 국기.svg|width=30]] || 필리핀 || 2 || 3 || 9 || 14 ||
|| 11 || [[파일:이라크 국기.svg|width=30]] || 이라크 || 2 || 3 || 4 || 9 ||
|| 12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 태국 || 1 || 5 || 4 || 10 ||
|| 13 || [[파일:쿠웨이트 국기.svg|width=30]] || 쿠웨이트 || 1 || 3 || 3 || 7 ||
|| 14 || [[파일:시리아 국기.svg|width=30]] || 시리아 || 1 || 1 || 1 || 3 ||
|| 15 ||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width=30]] || 말레이시아 || 1 || 0 || 3 || 4 ||
|| 16 || [[파일:싱가포르 국기.png|width=30]] || 싱가포르 || 1 || 0 || 2 || 3 ||
|| 17 || [[파일:아프가니스탄 국기.svg|width=30]] || 아프가니스탄 || 0 || 1 || 0 || 1 ||
|| 18 || [[파일:레바논 국기.svg|width=30]] || 레바논 || 0 || 0 || 1 || 1 ||
|| 18 || [[파일:바레인 국기.svg|width=30]] || 바레인 || 0 || 0 || 1 || 1 ||
|| 18 || [[파일:베트남 국기.svg|width=30]] || 베트남 || 0 || 0 || 1 || 1 ||
|| 18 || [[파일:카타르 국기.svg|width=30]] || 카타르 || 0 || 0 || 1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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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모저모 ==
* [[일본]]의 9연속 종합 1위 달성이 좌절되었다. [[중국]]이 [[1974년]] 첫 참가 이래로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2위로 밀어내고 아시안 게임에서 종합 1위를 차지하였다.
* 주최국인 [[인도]]의 경기장 및 선수촌 '''부실공사'''와 --[[티스푼 공사]]-- 공사지연으로 무지 욕을 먹었다.
* [[북한]]의 서길산 선수는 사격 부문 개인전에서 금메달 4개, 단체전에서 금메달 3개를 획득하여 7관왕에 올랐다. 7관왕은 아시안 게임 사상 단일 대회 최다관왕이다.
* [[북한]] [[축구]] 대표팀은 [[쿠웨이트]]와의 준결승전에서 2:3으로 패한 직후 편파 판정으로 졌다며 '''주심을 폭행'''한 사건으로 인해 3, 4위전 출전이 금지되었고, 이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이 자동으로 3위(동메달)에 오르게 되었다. 한편 아시아 축구 연맹(AFC) 집행위원회는 [[북한]]에 2년간 국제 축구 대회 출전을 금지하는 강력한 추가 제재를 가하게 된다. 그리고 이 덕을 제대로 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 아시아 청소년 대회에서 광탈했던 [[대한민국]]은 [[북한]]이 실격되자 어부지리로 [[북한]]의 쿼터를 받아 결선 라운드에 진출 후 우승,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 진출해서 4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 북한의 쿠웨이트전 주심폭행 사건은 당시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과거 출판된 반공동화 및 반공교재에서 '북한의 스포츠맨십은 개같다'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언급된 사례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북한 vs 중국의 A매치에서 갑자기 북한선수가 "중공놈의 새끼들 때려죽여라"라면서까지 중국선수를 폭행한 사건도 언급되고 있는데, 여러 정황상 사실무근일 가능성이 높다. 일단 북한이 [[대만|국부천대 이후의 중화민국]]을 국가로 인정한 적은 전혀 없으니 중국 대륙을 중공이라 칭할리도 없고, 적어도 2000년대 이전에는 중국과 매우 돈독한 혈맹 관계였기 때문에.... 또 다른 이야기지만 한 반공 서적에서 북한의 여자 체조 선수가 몸을 유연하게 해준다는 주사를 맞았다가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도핑에 걸려 참가하지 못했고 그에 따라 생명도 위험하다면서 실명까지 거론했는데, 이 선수 모스크바 올림픽에 멀쩡히 참가했고(메달은 못 땄지만), 이 대회에서는 금메달 땄다. 이 책은 이 대회 이후에 나왔다는 것이 또 함정. 원래 당시 반공 서적에서 없는 이야기 만들어서 쓴 것도 꽤 있다.]
*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은 4강전에서 226cm의 [[장신]] 센터 오카야마 야스다카가 있는 일본을 91:90으로 승리하더니, 결승에서 [[중국]]을 85:84로 1점차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남자 농구 국가대표팀]]이 중국을 제친 것은 1974년 대회 이후 두 번째였다. [[http://www.basketkorea.com/2015/05/130787.htm|관련기사]] 이 때 우승 이후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남자 농구 국가대표팀]]은 아시안 게임에서 번번히 중국 앞에서 좌절했다가 20년이 지난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극적인 우승을 차지한다.
* [[대만]]은 [[양안관계|중국의 압박]]으로 참가하지 못했다. [[안습]]
* [[대한민국]]의 여자 테니스 선수인 설민경은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 대회 이후 32년 뒤 설민경의 아들인 야구선수 [[황재균]](당시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 대만과의 야구 결승전에서 쐐기타를 날리며 금메달을 차지해 '''대한민국 스포츠 사상 최초의 모자(母子)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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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력기원|서기]] || 1982년 ||
|| [[대한민국 연호|대한민국]] || 64년 ||
|| [[단군기원|단기]] || 4315년 ||
|| [[불멸기원|불기]] || 2526년 ||
|| [[황기]] || 2642년 ||
|| [[이슬람력]] || 1403년 ~ 1404년 ||
|| [[갑자|간지]] || [[신유]]년 ~ [[임술]]년 ||
|| [[주체사상|주체]] || 71년 ||
|| [[중화민국|민국]] || 71년 ||
|| [[일본]] || [[쇼와]] 57년 ||
|| [[히브리력]] || 5743년 ~ 5744년 ||
[목차]
== 개요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12290020920402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12-29&officeId=00020&pageNo=4&printNo=18843&publishType=00020|동아일보 선정 1982년 국내외 10대 뉴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122400329208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12-24&officeId=00032&pageNo=8&printNo=11459&publishType|경향신문 1982년 12월 24일자에 실린 국내외 주요 사건사고 일지]]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12110009921000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2-12-11&officeId=00009&pageNo=10&printNo=5161&publishType=00020|매일경제신문 1982년 12월 11일자에 실린 국내외 주요 사건사고 일지]]
이 해에 한-미 양국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을 기준으로 수교 100주년을 성대히 기념했고, [[3월 27일]] [[KBO리그|한국프로야구]]가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또 '야간통행금지'가 폐지돼 밤중에 울리던 사이렌 소리가 사라졌다.
그러나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듯이, 상반기엔 [[우범곤]] 사건으로 충격을 줬고, 5월 들어 '''이철희-장영자 사건'''이란 대규모 권력형 비리스캔들이 터져 국민들로부터 "정의사회구현 좋아하네"라는 말이 나돌게 만들었다. 해외 [[대중음악]]계에선 '''[[마이클 잭슨]]이 음반 [[Thriller]]를 발매하며 문화계의 인종 장벽이 붕괴되었으며 대중 음악계의 엄청난 사건으로 기억되었다.'''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남아프리카 제재 완화의 해'로 지정했다.
지폐로만 존재했던 500원짜리 화폐가 주화로 처음 발행되었다.
== 사건 ==
=== 실제 ===
==== 1월 ====
* [[1월 1일]]
* 전두환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성장과 발전을 위한 안정'을 강조하였다.
* 종전의 한국전력(주)가 '한국전력공사'로 개편되었다.
* '교통사고특례법'이 시행되었다.
* [[1월 2일]]: 문교부는 '중고생 교복 및 두발자율화'를 발표하였다.
* [[1월 3일]]: 전두환 대통령은 [[남덕우]] 대신 [[유창순]]을 새 [[국무총리]]로 임명하는 등 5개 부처에 개각을 단행하였다.
* [[1월 5일]]
* 국무회의는 '[[야간통행금지]] 폐지안'을 통과시켰다.
* 당일 자정을 기해 야간통행금지가 폐지되었다.
* 과기처는 중앙관상대를 '중앙기상대'로 개편하였다.
* 문교부는 유치원~고등학교 과정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 [[1월 7일]]
* 보사부는 유흥업소 정기휴일제 폐지 및 영업시간 자율화를 결정하였다.
* [[한국은행]]은 통화규제방식을 간접규제로 바꾸어 은행별 여신한도를 철폐했다.
* 북한주민 김용준이 중부전선을 넘어 귀순하였다.
* [[1월 10일]]
* 대한체조협회는 서울국제체조경기대회 창설 및 예산확대 등을 담은 '체조중흥안'을 확정하였다.
* 전국 각지에 개기월식이 발생했다.
* [[1월 11일]]
* 정부와 민정당은 1991년까지 새 국제공항을 건설한다고 합의하였다.
* 한국은행은 개인 신용카드제를 실시한다고 결정하였다.
* '한국산업경제기술연구원'이 설립되었다.
* NATO는 소련과 폴란드에 정치/경제 제재 경고를 내렸다.
* [[1월 13일]]
* 백제문화개발연구원이 설립되었다.
* 에어 플로리다 90편 B737-222기가 미국 워싱턴 포트맥 강에 추락해 탑승객 79명 중 74명과 지상인원 4명이 사망했다([[에어 플로리다 90편 추락사고]]).
* [[1월 14일]]: 정부는 금리를 1% 포인트로 내리는 한편 수출지원금융을 확대했다.
* [[1월 16일]]: 문공부는 국전 폐지 후 '대한민국미술대전'과 '현대미술초대전'을 실시한다고 결정하였다.
* [[1월 17일]]: 시사영어사가 [[TOEIC]] 시험을 국내 최초로 실시하였다.
* [[1월 19일]]: UN은 세계 인구가 43억 3,600만 명이라고 밝혔다.
* [[1월 21일]]: 당안리 화력발전소 3호기가 폐기되었다.
* [[1월 22일]]
* 전두환 대통령은 국회 국정연설에서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을 발표했다.
* 한국독립유공자협회가 설립되었다.
* [[1월 23일]]: 한국 여자탁구 국가대표팀이 서독 오픈 탁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 [[1월 25일]]: 귀순자 김용준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측이 주민계층을 10개로 나누고 있다고 밝혔다.
* [[1월 26일]]
* 김종철 국민당 총재는 연두기자회견에서 정치관계법 개정 방침을 제시하였다.
* 김일 북한 조평통 위원장은 전두환 대통령이 제시한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을 거부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 [[1월 27일]]: [[유치송]] [[민한당]] [[총재]]는 연두기자회견에서 대통령/국회의원 선거법 개정 및 정치 피규제자의 해금을 촉구하였다.
* [[1월 30일]]: 콘트롤데이타노조가 노동부에 쟁의신고를 냈다.
==== 2월 ====
* [[2월 1일]]
* 손재식 국토통일장관은 이산가족상봉 실현 등 20개 남북한 시범사업을 북한에 제시하였다.
* 서울형사지법은 윤보살 피살사건 선고공판에서 고문에 의한 자백은 증거가 될 수 없다며 고숙종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설립되었다.
* 체신부는 '우편저금제'를 부활하였다.
* [[로널드 레이건|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전두환의 통일방안을 지지하는 친서를 보냈다.
* [[2월 2일]]: [[시리아군]]이 지방 소도시 하마에서 일어난 [[무슬림 형제단]]의 봉기를 진압하면서 도시가 초토화됐고, 약 25,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 [[2월 5일]]
* 국무회의는 제주대를 종합대학으로 승격키로 결정하였다.
* 공군 C-123 수송기가 훈련 도중 악천후로 제주도 [[한라산]] 개미등계곡에 추락해 특전사 장병 53명 전원이 순직했다.([[제주 C-123 추락사고]])
* IOC는 1988 서울올림픽부터 테니스, 탁구 등을 정식종목, 태권도를 시범종목으로 각각 채택하였다.
* 영국 정부는 소련 및 폴란드 제재조치를 발표하였다.
* [[2월 6일]]
* 문교부는 김종필, 김진만, 이후락이 각각 설립한 3개 사학재단을 국가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 문교부는 1983년부터 대학생 취업 시 교수추천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 에로영화 <[[애마부인]]>이 종로 서울극장에서 개봉되었다.
* [[일본]] [[TV아사히]]에서 <[[대전대 고글파이브]]>가 첫 전파를 탔다.
* [[2월 8일]]
* 포철은 포항제철소 4기 설비를 준공시켰다.
* 일본 도쿄 [[호텔 뉴재팬]]에서 큰불이 나 투숙객 33명이 사망하고 34명이 다쳤다.([[호텔 뉴재팬 화재 사고]])
* [[2월 9일]]
* 외무부는 여권 발급을 각 직할시 및 도에 위임한다고 밝혔다.
* 후쿠오카발 JAL 305편 DC-8-61기가 일본 도쿄 오오타 구 앞바다에 추락해 탑승인원 174명 중 24명이 사망했다.([[일본항공 350편 추락사고]])
* [[2월 10일]]
* 김준성 부총리가 "노동생산성이 향상되더라도 임금상승 몫이 없다"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 내무부는 민방위훈련 연령을 50세까지 연장한다고 밝혔다.
* 정부는 경로우대제를 실시하였다.
* WBC S플라이급 챔피언 김철호가 대구 타이틀전에서 일본의 이시이 고키를 KO로 꺾어 4차 방어에 성공하였다.
* 북한 조평통은 20개 남북시범사업 제의 거부 및 남북정치연합회담 제의성명을 발표했다.
* [[2월 12일]]
* 안기부는 경기 강화군 미법도에 거주한 간첩혐의자 3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 보사부는 의료보험 임의적용대상을 5인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한다고 결정하였다.
* 경찰은 YWCA 위장결혼식사건 관련 수배자 문국주와 이명준을 연행했다.
* [[2월 13일]]
* 병무청은 '육군일선병지원제도'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 [[팀 스피릿]] '82 한미연합훈련이 개시되었다.
* [[2월 14일]]
* 노신영 외무장관이 스리랑카 등 4개국 방문을 위해 출국하였다.
* 워커 주한미국대사가 미국 <더 스테이트> 지 회견 중 한국 민주인사들에 대해 "버릇없는 애X끼들"이라 발언해 파문이 일었다.
* [[2월 15일]]
* KBS1에서 <11시에 만납시다>가 첫 전파를 탔다.
* MBC에서 거부실록 제1작 <남강 이승훈>이 첫 전파를 탔다.
* 미국 정부는 일본에 1985년까지 경보기 12대를 구입할 것을 요구했다.
* [[2월 16일]]
* 상공부는 섬유산업구조 개편 등 '섬유산업육성방안'을 확정하였다.
* 미 국방부는 개량형 호크 유도미사일 170기와 로켓 723기를 한국에 판매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 [[2월 19일]]: 소련 정부는 SS-20 중거리 핵미사일의 극동 배치를 공식 시인했다.
* [[2월 20일]]
* 문공부는 해방 이래 처음으로 이념서적 <[[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 그의 시대>의 시판을 허용했다.
* [[박성철(1913)|박성철]] 북한 부주석이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4개국 순방차 출국했다.
* 정준기 북한 부총리가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5개국 순방차 출국했다.
* [[2월 22일]]
* 서울대는 2학기부터 이념교육을 실시키로 결정하였다.
* 허담 북한 부총리 겸 외교부장이 알제리 등 5개국 순방차 출국했다.
* 길재경 북한 로동당 국제사업부장이 소련 등 동구권 3개국을 방문했다.
* 북한 조선로동당 대표단이 시리아 등 6개국을 순방했다.
* 아마추어 야구단 [[롯데 자이언트]]가 프로 야구단으로 전환하였다.
* [[2월 23일]]
* 서울대는 제적/제명학생을 뺀 시위학생 1백여 명을 구제시키고 지도휴학생 64명의 복학을 허용하였다.
* 콘트롤데이타노조가 태업에 돌입하였다.
* [[2월 24일]]
* 문교부는 소풍/수학여행 자유화방침을 발표하였다.
* 캐나다 경찰은 전두환 암살음모 혐의 자국민 2명을 체포하고 북한으로 도주한 한국교포 최중화[* [[최홍희]]의 아들] 등에 체포영장을 발부한다고 밝혔다.
* [[2월 25일]]
* [[손재식]] 국토통일장관은 대북성명에서 남북 고위대표회담을 3월중에 개최하자고 제의하였다.
* 정부는 1988 서울올림픽에 대비해 도심 76곳 및 변두리 67곳을 1985년까지 재개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 [[2월 26일]]
* 주한미공군은 공중근접지원기 A10을 한국에 처음 배치한다고 밝혔다.
* 연세대는 신학기부터 학회 활동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 [[2월 28일]]: 상공부는 승용차부문 생산 이원화를 결정하였다.
==== 3월 ====
* [[3월 1일]]
* 경기신문이 제호를 <경인일보>로 바꾸었다.
* 제주대가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다.
* 아주공대가 종합대학 승격에 따라 '아주대학교'로 출범하였다.
* 종전의 경남도시가스가 '경남에너지'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 KBS는 TV시청료 선납제를 폐지했다.
* [[3월 3일]]: 법무부는 전두환 대통령 취임 1주년 및 삼일절 특사에 따라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5.18 민주화운동|5.18]] 관련자 등 시국사범을 포함한 2,863명을 [[사면]]/[[가석방]]시켰다.
* [[3월 4일]]
* 치안본부는 '전두환 대통령 위해음모사건' 관련자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 경찰은 수배 중이던 민주헌정동지회 간사 유중남을 체포했다.
* 한국유전공학연구조합이 설립되었다.
* [[3월 5일]]
* 상공부는 광양 제2제철소 건설사업계획을 발표하였다.
* 문교부는 '대학문화육성위원회' 설치/운영을 각 대학에 지시했다.
* [[일본]] TV아사히에서 메탈히어로 시리즈 제1작 <[[우주형사 갸반]]>이 첫 전파를 탔다.
* [[3월 7일]]: 북한 당/정 대표단이 가이아나 등 남미 공산국가 4개국 순방차 출국했다.
* [[3월 10일]]: 한국데이타통신이 창립되었다.
* [[3월 13일]]
* 한국콘트롤데이타는 임금인상 단체교섭 중 이영순 노조위원장 등 6명을 해고시켰다.
* 콘트롤데이타노조는 이영순 위원장 등 6명의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3월 16일]]: 정부는 법무부 등 5개 부처를 [[정부과천청사]]로 이전하고 구 중앙청 건물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하도록 하는 '정부종합청사 재배치 계획'을 발표하였다.
* [[3월 18일]]
* '''부산 대청동 미국문화원에서 큰불이 나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했다.'''([[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발기인대회'가 개최되었다.
* [[3월 19일]]
* 동자부는 '원유도입 자율화계획'을 확정하였다.
* 수사본부는 '부미방 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였다.
* '[[1988 서울 올림픽|서울올림픽]]범민족추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3월 20일]]
* 내무부는 35개 읍면/225개 동리 통금을 추가 해제시켰다.
* 서정화 내무장관은 부미방 사건 관련자 현상금을 2천만 원으로 한다고 밝혔다.
* 체육부가 정식 발족되었다.
* [[3월 24일]]
* 신정-민사 양당이 합쳐져 '신정사회당'으로 출범하였다.
* 내무부는 부미방 사건 관련자 현상금을 3천만 원으로 증액했다.
* 문공부 문화재위는 묘법연화경판각 등 28종을 국보로 지정하였다.
* 브레즈네프 소련 서기장이 20년만에 대 중공 화해를 제의하였다.
* [[3월 25일]]: 정부는 올림픽복권, 기념주화, LA올림픽 참관복권 발행계획을 발표하였다.
* [[3월 26일]]: 중공 정부는 브레즈네프 소련 서기장의 화해제의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 [[3월 27일]]: '''[[한국프로야구]] 첫 개막식이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개최되었다.'''
* [[3월 28일]]: 제1회 서울국제마라톤대회가 개최되었다.
* [[3월 30일]]
* 치안본부는 부미방 사건 관련자 김화석 등 5명을 검거하고 주동자 문부식과 김은주를 수배한다고 밝혔다.
* 제17차 한미안보연례협의회가 개최되었다.
* [[3월 31일]]
* 이시정, 유연식 등 동국대생들이 유인물 <전국 민주학우에게 보내는 글> 1백여 장을 뿌리며 시위를 벌였다.
* 북한의 [[김정일]]이 전국주체사상토론회에서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 4월 ====
* [[4월 1일]]
* 정부는 '유아교육진흥 5개년 종합계획'을 확정하였다.
* 은행신용카드협회가 설립되었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소련]]의 핵 동결 제안을 거부했다.
* 부미방사건 주동자 [[문부식(시인)|문부식]]과 김은숙이 천주교 원주교구 교육원장 최기식 신부의 설득으로 자수했다.
* 조선 중기 작품 <미인도>가 윤선도 고택 녹우당에서 발견되었다.
* [[4월 2일]]
* 이규호 문교장관은 전국대학총학장회의에서 학생지도 및 좌경 이데올로기 비판교육 강화를 촉구했다.
* 부미방사건 관련자 김현장과 김영애가 자수했다.
*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설립되었다.
* 문공부 문화재위는 전국 노거수 53그루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 재일 프로바둑기사 조치훈이 십단위전 결승에서 오다케 히데오를 꺾어 3관왕을 달성하였다.
* [[아르헨티나군]]이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를 침공했다.([[포클랜드 전쟁]])
* 영국 정부는 아르헨티나와 단교를 선언하였다.
* [[4월 3일]]
* 문교부는 전국 대학 지하서클이 73개이며 대책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 서울시는 올림픽을 위해 잠실 주변 대기오염 측정장치를 추가 운영한다고 밝혔다.
* [[4월 4일]]
* 포클랜드 제도 영국 총독부가 아르헨티나군에 항복했다.
* 북한 평양 남산재에 국립도서관 '인민대학습당'이 문을 열었다.
* [[4월 5일]]
* 문교부는 고교에서도 좌경 이데올로기 비판교육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 치안본부는 문부식 등 부미방사건 관련자 4명을 구속하는 한편, 최기식 신부 등 가톨릭인사 4명을 범인 은닉 혐의로 연행했다.
* 치안본부는 박관현, 윤한봉 등 5.18 관련자 9명을 긴급 수배했다.
* 경찰은 박관현, 박계동 등 5.18 관련자 2명을 검거했다.
* [[마거릿 대처|대처]] [[영국 총리]]가 [[포클랜드 제도]]의 탈환을 선언하였다.
* [[영국 해군]] 측이 아르헨티나령 [[포클랜드 제도]]로 출동하였다.
* [[4월 8일]]
* 부산시경은 최기식 신부 등 부미방사건 관련자 4명을 구속했다.
* 경향신문사가 <레이디경향>을 창간하였다.
*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지하철 3호선 공사현장에서 붕괴사고가 발생해 10명이 사망하고 42명이 부상당했다.
* [[4월 9일]]
* 재무부는 금융기관 점포 신설규제를 완화시켰다.
* 허문도 문공차관은 "새 시대의 언론인들은 비판보다 계도를 먼저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 북한 평양 경흥동에 '평양제1백화점'이 준공되었다.
* [[4월 10일]]
* 전두환 대통령은 사정협의회에 부정의식 추방 등 의식개혁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라고 지시하였다.
* 사정협의회는 '의식개혁 9대 실천요강'을 발표하였다.
* [[4월 11일]]
* 김수환 추기경은 부활절 강론에서 천주교 탄압에 항의하였다.
* 전북 남원군 아영면 고분에서 가야시대 철제갑옷 등 27점이 발굴되었다.
* [[4월 12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정부 당국에 묻는다>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4월 13일]]
* 안기부는 고정간첩망 3개를 적발해 관련자 13명을 검거하고 이중 10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 '한국공해문제연구소(이하 공문연)'가 설립되었다.
* [[4월 14일]]: 사회정화위는 '의식개혁추진 세부화계획'을 발표하였다.
* [[4월 15일]]
* 교회사회선교회는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에 대한 우리의 견해>란 제호로 성명을 발표하였다.
* 국제교류진흥회가 설립되었다.
* [[북한]] 평양 대동강변에 [[주체사상탑]]이 세워졌다.
* [[4월 17일]]
* [[캐나다]] 헌법이 제정되었다.
* 차우셰스쿠 루마니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다.
* [[4월 19일]]
* 원진프로모션 회장 김상기가 자살했다.
* 이스라엘 정부는 시나이반도 정착민들을 분산 이주토록 하였다.
* KBS3에서 <딩동댕 유치원>이 첫 전파를 탔다.
* [[4월 20일]]
* 노신영 외무장관은 교회사회선교회 4.15 성명에 유감을 표명했다.
* 치안본부가 '경찰특공대'를 창설하였다.
* 수출촉진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4월 21일]]: 서울지검은 교회사회선교회 4.15 성명서와 관련해 김승훈 신부 등 11명을 소환해 발표 경위를 조사했다.
* [[4월 23일]]
* 부미방 사건 성명과 관련된 교회사회선교회 소속 목사 11명이 풀려났다.
* 정일형 전 신민당 부총재가 세상을 떴다.
* [[4월 25일]]
*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부시]] 미국 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 이스라엘군이 시나이 반도에서 완전 철수함과 동시에 이집트로 15년만에 반환되었다.
* [[4월 26일]]: '''경북 의령경찰서 궁류지서 [[우범곤]] 순경이 인근 5개 마을에서 총기를 난사해 주민 60여 명이 숨지고 35명이 부상당했다.'''
* [[4월 27일]]
* 의령 총기난사사건 주범 우범곤이 경찰과 대치도중 자폭해 사건이 종결되었다.
* 유창순 국무총리는 의령 총기난사사건을 납득할 수 있는 쪽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 [[4월 28일]]: 전두환 대통령은 서정화 내무장관과 박영수 서울시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새 내무장관직에 노태우, 체육장관직에 이원경, 서울시장직에 김성배를 각각 임명하였다.
* [[4월 29일]]
* 정부는 의령 총기난사사건 피해자들에게 영농자금 상환 연기 등 대책을 마련하였다.
* 부산지검은 부미방사건 수사결과 발표 후 관련자 14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 국립지리원은 1/5,000 지도를 시중에 판매한다고 결정하였다.
* [[4월 30일]]: UN해양법회의는 영해를 12해리, 경제수역을 200해리로 규정한 <국제해양법조약>을 채택하였다.
==== 5월 ====
* [[5월 1일]]: [[영국 공군]] 발칸 [[폭격기]]가 [[포클랜드 제도]]의 스탠리 공항을 폭격해 반격에 나섰다.
* [[5월 2일]]: [[영국 해군]] [[원자력 잠수함]] HMS 컨커러가 [[아르헨티나 해군]]의 중순양함 헤네랄 벨그라노를 격침시켰다.
* [[5월 4일]]
* 손재식 국토통일원 장관은 원자재와 1차산품 등의 남북교역을 제의하였다.
* [[아르헨티나 해군]] 항공대 소속 쉬페르 에탕다르에서 발사한 [[엑조세]] 공대함미사일이 [[영국 해군]] 구축함 셰필드를 파괴했다.(엑조세 쇼크)
* [[5월 5일]]: 한국 대표팀이 제9회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였다.
* [[5월 6일]]:
* 주한 미국대사 리처드 워커는 관훈클럽 초청 연설에서 한국 내 반미감정은 보편적 움직임이 아니라고 밝혔다.
* [[헝가리 인민 공화국]]이 [[국제통화기금]]에 가입했다.
* [[5월 7일]]: '''대검은 장영자-이철희 부부를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구속했다고 밝혔다.'''([[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
* [[5월 8일]]: 정부는 '경로헌장'을 발표하였다.
* [[5월 10일]]
* 민정당은 이철희-장영자 사건 진상규명 및 공개를 정부에 요구하였다.
* [[국제통화기금|IMF]]는 한국 정부에 환율 인상을 촉구했다.
* [[5월 11일]]
* 전두환 대통령은 이철희-장영자 사건의 진상 철저조사 및 사건 관련자 엄단을 지시하였다.
* 정부는 이철희-장영자 사건 관련업체 6개 중 일신제강과 공영토건을 부도처리시키고 각각 법정관리/공매 처분키로 하였다.
* [[5월 12일]]
* 내무부는 전국민/전가구를 대상으로 주민신고망을 조직한다고 결정하였다.
* 광진공 사장 이규광이 이철희 부부 비호세력으로 밝혀져 사표가 수리되었다.
* [[5월 15일]]: 검찰은 이철희-장영자 사건과 관련된 전 조흥은행장 임재수 등 은행관계자 4명과 사채업자 3명을 구속하였다.
* [[5월 16일]]: 검찰은 공영토건 회장 변강우, 일신제강 회장 주창균, 장영자의 첫 남편 김수철 등 6명을 구속하였다.
* [[5월 17일]]: 일신제강 노동자들이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5월 18일]]
* 검찰은 장영자의 형부 이규광을 한국-중동 합작은행 설립청탁 및 1억원 수수 혐의로 구속하였다.
* 경찰은 5.18 2주기 추모행사 참석자 18명을 연행했다.
* [[5월 19일]]: '5.18 사건 대책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5월 20일]]
* 전두환 대통령은 [[민주정의당|민정당]] 일부 당직을 개편하여 신임 사무총장에 권익현, 정책위원장에 진의종, 총재비서실장에 남재두, 대변인에 김용태를 각각 임명하였다.
* 검찰은 '이철희-장영자 거액어음사기사건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였다.
* [[5월 21일]]
* 전두환 대통령은 법무부, 안기부 등 11개 부처 장관급에 대해 대폭 개각을 단행했다.
* [[영국군]]이 [[포클랜드 제도]]를 탈환하였다.
* [[5월 22일]]: 인천 전역에서 '한미수교 1백주년 기념비 기공식' 등 한미수교 100주년 관련 기념행사가 개최되었다.
* [[5월 23일]]: 맬컴 프레이저 [[호주]] 총리가 한국을 방문하였다.
* [[5월 24일]]
* 전두환 대통령은 프레이저 호주 총리와 청와대 회담에서 태평양정상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소련 공산당은 [[유리 안드로포프]] KGB 주석을 당 서기에 임명했다.
* [[5월 27일]]: 영국 로이드선급협회는 한국이 선박수법 잔고 216만톤으로 일본에 이어 세계 2위라고 집계하였다.
* [[5월 28일]]: 야당측은 '이철희-장영자사건 국정조사위원회 구성 결의안' 및 '국무총리 해임 공동결의안' 등 5개항을 공동 발의하였다.
* [[5월 29일]]
* 국회 본회의는 야권이 공동발의한 김준성 부총리 등 관료 해임결의안을 부결 처리했다.
* 산악인 허영호가 이끄는 한국원정대가 히말라야 마칼루봉을 정복하였다.
* [[5월 30일]]: 광주 횃불회사건 관련자 기종도가 병상 유언문에서 고문에 의한 사건 조작을 폭로하였다.
* [[5월 31일]]: 횃불회사건 관련자 기종도가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다.
==== 6월 ====
* [[6월 1일]]
* 국회는 야권이 공동발의한 '이철희-장영자사건 국정조사위원회 구성 결의안' 및 '국무총리 해임 공동결의안'을 부결시켰다.
* 노동부는 콘트롤데이타 미국본사의 해고자 6명 복직에 반대입장을 밝혔다.
* 공군 C-123 수송기가 경기 성남 청계산 중턱에 추락해 탑승장병 53명 전원이 사망했다.[* 같은 기종이 같은 해에 추락하고 사망자 수도 같았지만, 이쪽은 실제 훈련 중에 일어난 사고다.]
* [[6월 2일]]: 전두환 대통령은 새 외무장관직에 이범석, 안기부장직에 노신영을 각각 임명하였다.
* [[6월 3일]]: [[용인자연농원]]이 [[대관람차]] 놀이기구 '[[우주관람차]]'를 개장했다.
* [[6월 4일]]: 보사부는 전남 목포시를 의약분업 시범지역으로 선정하였다.
* [[6월 5일]]
* 김지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가 출간되었다.
* 강만길 교수 등이 쓴 <한국민족주의론> 1권이 출간되었다.
* [[6월 6일]]: [[이스라엘군]]이 [[중동전쟁#s-2.1|남부 레바논을 침공]]했다.
* [[6월 11일]]
* 국세청은 김지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를 낸 창작과비평사에 세무사찰을 가했다.
*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SF영화 <[[E.T.]]>가 미국 전역에서 개봉되었다.
* [[6월 12일]]: 한국은행은 500원 주화를 시중에 유통하기 시작하였다.
* [[6월 13일]]
* [[1982 스페인 월드컵]] 개막식이 바르셀로나 캄 노우에서 개최되었다.
* 칼리드 사우디 국왕의 승하로 파드 왕자가 왕위를 승계하였다.
* [[6월 14일]]
* 한미섬유협정이 체결되었다.
* [[아르헨티나군]]이 포클랜드 점령 74일만에 영국에 항복했다.
* [[6월 16일]]: 전두환 대통령은 3당 대표회담에서 경제난국과 시국수습방안 등을 협의하였다.
* [[6월 18일]]: 갈티에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포클랜드 전쟁]]의 패전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 [[6월 19일]]: 내무부는 [[교통안전표지]]판 국제화를 결정하였다.
* [[6월 20일]]
* 전두환 대통령은 1980년대 말까지 전국의 지하수맥도 작성계획을 발표하였다.
*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가 <한국민속대관> 완간기념회를 개최하였다.
* [[6월 23일]]
* 정부는 대 공산권 문호개방정책을 활성화하기 위해 중공, 소련 등 18개국에 관세상 편익을 부여키로 결정했다.
* 전남 목포지역 84개 약국들이 보사부의 의약분업 강행에 항의하며 휴업했다.
* [[6월 24일]]
* 전두환 대통령은 유창순 대신 [[김상협]]을 새 국무총리직에 임명하는 등 3개 부처에 개각을 단행하였다.
* 영국항공 9편 B747-200기가 인도네시아 자바 섬 상공에서 화산재 속에서 엔진이 꺼져 착륙 위기에 처하다 엔진 재점화로 자카르타공항에 비상착륙해 탑승자 전원이 생존했다.([[영국항공 9편 사건]])
* [[6월 25일]]
* 서울 반포대교가 개통되었다.
* 레이건 대통령은 헤이그 대신 조지 프랫 슐츠를 국무장관직에 임명하였다.
* [[6월 26일]]: '''일본 문부성이 새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검정에서 중국 '침략'을 '진출'로, '출병'을 '파견'이란 용어로 바꾸도록 지시한 사실이 각 언론매체에 보도되어 파문이 일었다.'''
* [[6월 28일]]: 정부는 금리 및 법인세율 인하, 시중은행 민영/자율화 등을 담은 '경제활성화대책'을 마련하였다.
==== 7월 ====
* [[7월 3일]]: 정부는 사채양성화 및 금융거래정상화를 위해 [[1983년]] 7월 1일부터 전 금융거래 실명화 대책을 발표하였다.
* [[7월 7일]]: 국내 최초의 민간은행 '[[신한은행(1982년)|신한은행]]'이 설립되었다.
* [[7월 9일]]: 라스베가스행 팬암 759편 B727-235기가 [[미국]] 뉴올리언스공항 이륙 도중 윈드시어로 추락해 탑승자 145명 전원 등 총 153명이 숨졌다.([[팬암 759편 추락 사고]])
* [[7월 12일]]: 대한체육회는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신임 회장직에 선출하였다.
* [[7월 15일]]
*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이 준공되었다.
* 국립중앙박물관 학술조사단은 강원도 철원에서 조선시대 철회백자도요지를 발굴해냈다.
* 제12회 세계평화국제학술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 [[7월 20일]]: 미국 콘트롤데이타가 한국지사 폐업을 결정했다.
* [[7월 22일]]
* 경제장관협의회는 [[SC제일은행|제일은행]]과 [[서울신탁은행]]을 9월부터 민영화하기로 결정했다.
* 문교부는 일본 정부에 역사교과서 왜곡 시정요구를 결정하였다.
* [[7월 23일]]
* 오가와 헤이지 일본 문부상이 한국측의 일본 역사교과서 시정요구를 '내정간섭'이라고 발언했다.
*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클라라 근방 발렌시아에서 영화 <환상특급> 촬영도중 주연배우 [[빅 모로]]와 아역 배우 2명이 촬영 중 추락된 헬기 날개에 의해 사망했다.([[환상특급 헬기추락 사건]])
* 일본 정부는 '방위력증강 5개년 계획'을 확정해 총 방위비를 15조 4천억 엔으로 확정했다.
* [[7월 26일]]
* 정부는 제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 기간 중 공공차관 49건에 79억 5천 6백만 달러를 도입키로 했다.
* 상공부는 기아산업-동아자동차 통합 추진작업을 백지화하기로 결정하였다.
* [[7월 27일]]: 한국 정부는 일본측에 역사교과서 왜곡 및 각료들의 관련 발언 등 진상규명을 촉구하였다.
* [[7월 30일]]: 일본 정부는 한국측의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 비판을 수용하겠다고 다짐하였다.
* [[7월 31일]]
* 전두환 대통령은 경남 [[진해구|진해]] 기자회견에서 태평양 정상 연례회담을 실현키 위해 5개항 원칙을 제시했다.
*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관련 성명을 발표하였다.
==== 8월 ====
* [[8월 2일]]
* 만화가 임웅순이 만든 <팔방이>가 소년한국일보에서 처음으로 연재되었다.
* 미 국무부는 특별보고서에서 남북한이 일부 무기류를 수출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 [[8월 3일]]: 치안본부는 운전/조깅 중 헤드폰 착용자에 대한 단속을 개시하였다.
* [[8월 4일]]: 내무부는 1983년부터 순경모집 중단 후 신규인력을 전경으로 전환하는 '경찰행정제도개선방안'을 마련하였다.
* [[8월 9일]]: 클로드 셰이송 프랑스 외무장관은 남북한 교차승인에 의한 한반도 통일 촉진 가능성을 시사했다.
* [[8월 15일]]
* 전두환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을 포함한 공산권 국가에 거주하는 동포들에게 사회개방을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 법무부는 광복절을 기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및 5.18 관련자 등 1,286명을 특별 사면시켰다.
* [[8월 16일]]: 전두환 대통령은 가봉 등 아프리카 4개국과 캐나다 순방을 위해 출국하였다.
* [[8월 17일]]: 정부와 민정당은 6.28 및 7.3 조치를 대폭 수정하여 신규 무기명 유가증권 발행을 금지토록 하였다.
* [[8월 21일]]: PLO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철수를 개시하였다.
* [[8월 27일]]: 이진희 문공장관은 일본 정부가 교과서 문제부분 시정을 각서로 화답했다고 밝혔다.
* [[8월 28일]]
* '독립기념관 건립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중공 정부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시정 약속을 거부하고 구체적 시정조치를 촉구했다.
* [[8월 31일]]: [[중소기업은행]]이 중금채 발행을 개시하였다.
==== 9월 ====
* [[9월 1일]]: 민정당은 소속 의원 등 180명을 대상으로 본인/배우자/직계존비속 소유 부동산등록을 개시하였다.
* [[9월 3일]]
* 조선어학회 사건 고법 판결문이 부산지검 문서보관창고에서 발견되었다.
* <임진록>이 경북 의성에서 발견되었다.
* [[9월 4일]]: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가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개막되었다.
* [[9월 6일]]
* 서울시경은 조사요원으로 배치할 여형사 28명에 대해 교육을 개시하였다.
* 국민독서자료추천위는 227권의 추천도서목록을 발표하였다.
* [[9월 8일]]: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원자력 수출 통제국에 한국을 제외시켰다.
* [[9월 9일]]
* 제일은행-탁은이 정부 보유주식 공매를 개시하였다.
* KAL 기술진이 조립한 마하1.6짜리 국산 초음속 전투기 F5/F 타이거 II의 시험비행이 성공되었다.
* [[9월 10일]]: 안기부는 송지섭 등 간첩단 29명을 검거하고 이중 12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 [[9월 14일]]
* 대법원은 자필로 작성/날인한 자술서도 강압으로 작성된 건 증거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1982년|한국 대표팀]]이 서울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1위로 우승을 달성하였다.
* [[9월 15일]]
* 사회정화위는 음성적 과외 집중단속을 지시하였다.
* 한양대부속병원이 '장기은행'을 정식 발족하였다.
* 미국 가넷 컴퍼니가 <[[USA 투데이]]>를 창간하였다.
* [[9월 16일]]: 북한의 김일성이 중공을 공식 방문했다.
* [[9월 17일]]
* 미국 뉴욕 금융계 측은 한국 외채가 1981년 기준으로 3백 50억 달러로 세계 5위에 든다고 밝혔다.
* '조치훈후원회'가 설립되었다.
* 레바논 팔랑헤당 소속 기독교 민병대가 이스라엘군의 방조 하에 서베이루트 사브라 및 샤빌라에 각각 소재한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습격해 팔레스타인 난민 1,800여명을 학살했다.
* [[9월 18일]]: 시조시인 노산 이은상이 세상을 떴다.
* [[9월 19일]]: 서울대 학생들은 <한일경제협정 반대, 역사교과서 왜곡시정 일제타도> 등이 적힌 유인물 1천여 장을 뿌리며 반일/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 [[9월 20일]]: [[KBS2]]에서 [[TV유치원 하나둘셋]]이 첫 전파를 탔다.
* [[9월 21일]]: 제23차 세계여성단체협의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9월 22일]]: <전자시보>가 창간되었다.
* [[9월 24일]]: 1982 서울국제무역박람회가 역삼동에서 개막했다.
* [[9월 25일]]: 문예진흥원이 '제1회 대한민국가을미술대전'을 개최하였다.
* [[9월 26일]]: 슐츠 미국 국무장관은 이범석 외무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한국과의 방위공약을 재확인했다.
* [[9월 27일]]: 외무부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 주한 일본공사를 통해 39개항의 시정 자료를 전달했다.
* [[9월 28일]]
* 정부는 '한강종합개발사업 착공식'을 거행하였다.
* 워커 주한 미국대사는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 강연에서 한국인들은 민족 중심적 행동양식을 회피하라고 언급했다.
* [[9월 29일]]
* 제일은행이 민영화되었다.
* 미국에서 [[타이레놀 독극물 주입 사건]]이 발생하였다.
* [[9월 30일]]: 원풍모방 노조원 650여명 중 4백여 명이 사측 폭력배들의 구타로 입원하고 나머지 4명이 연행되었다.
==== 10월 ====
* [[10월 1일]]
*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는 [[대한민국 육군/특공대|육군 특공대]]를 창설했다.
* 육영재단이 어린이 만화잡지 <보물섬>을 창간하였다.
* 서독 하원은 슈미트 총리 불신임안을 가결한 후 [[헬무트 콜]] 기민당 총재를 새 수상직에 선출하였다.
* [[10월 3일]]: [[일본]] TBS에서 <[[초시공요새 마크로스]]>가 첫 전파를 탔다.
* [[10월 6일]]: 이범석 외무부 장관은 영국 왕립국제연구소 연설에서 미국-소련-중국-일본 4국의 합의 없이는 한반도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 [[10월 7일]]: 원풍모방노조는 노조파괴에 대항하는 항의 기도회가 무산되자 가두시위를 벌였다.
* [[10월 8일]]
* 금성사가 한국 가전업계 최초로 미국 앨라배마 주 헌츠빌에 컬러TV 공장을 설립하였다.
* 남민전 사건 사형수 신향식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 [[10월 10일]]: 원불교 서울회관이 준공되었다.
* [[10월 12일]]
* 새벽 5시경에 서울, 부산, 대구 등 전국 9개 도시에서 [[UFO]] 출현 소동이 일어났다.
* OB베어스가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4승 1패로 꺾어 원년 첫 우승을 차지했다.
* 5.18 당시 총학생회장이던 박관현이 광주교도소에서 단식투쟁 도중 옥사하였다.
* [[10월 13일]]: 경북 울진원전 9, 10호기가 착공되었다.
* [[10월 16일]]
*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 국방부는 중공군 조종사 오영근이 MiG-19기로 한국으로 망명했다고 밝혔다.
* [[10월 18일]]: 미-일 양국 군대가 북방 해상에서 합동훈련을 진행했다.
* [[10월 19일]]: 문교부는 대입학력고사 과학과목에 가산점을 적용키로 결정하였다.
* [[10월 20일]]: 환경청은 진해, 부산, 울산, 광양 등 4개 해역을 '연안오염특별관리해역'으로 선포하였다.
* [[10월 21일]]: 제16차 OANA(태평양 통신사 기구) 이사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10월 22일]]: 홍콩 주간지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에서 미-북 양국은 1979~1981년 사이에 31만 달러 규모의 직접무역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 [[10월 23일]]: 법무부는 감호소 수용 중인 보호감호 대상자에 중간출소제 실시를 결정하였다.
* [[10월 28일]]: 스페인 총선에서 사회노동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같은 날 이웃 포르투갈에서도 군정이 종식되었다.
* [[10월 29일]]
* 이광표 문공장관은 중앙지 지방주재기자 부활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 카다피 리비아 국가지도자가 북한을 방문했다.
* 77그룹은 제3세계 경협회의에서 이스라엘을 제외키로 결정했다.
* [[10월 30일]]: 민정당은 금융실명제 실시를 연기키로 결정했다.
==== 11월 ====
* [[11월 3일]]: 제37차 국제청년회의소 세계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11월 5일]]: 서울 아현동 로터리에서 도시가스 폭발로 가스가 누출되어 현장인원/경찰 등 5명이 숨졌다.
* [[11월 10일]]: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세상을 떠났다.
* [[11월 11일]]
* 문공부는 경주 155호 고분에서 발견된 천마도장니를 국보 207호로 지정하였다.
* 한국핵연료(주)가 설립되었다.
* [[11월 12일]]
* 게스틴 시거 미국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유고로 안드로포프 서기가 새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했다.
* [[11월 14일]]: 프로권투선수 김득구가 미국 라스베가스 WBA 라이트급 타이틀전에서 레이 맨시니에게 턱을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다.
* [[11월 17일]]: 찰스 L. 도넬리 주일미군사령관은 한반도 유사시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공동으로 대 소련 방위 필요성을 강조했다.
* [[11월 18일]]
* 일본 정부는 교과서 시정을 위해 한국이 제시한 13개항/19가지 내용 중 4개항/6가지만 시정하고 나머지는 시정이 곤란하거나 계속 검토하겠다고 통고했다.
* 뇌사판정을 받은 프로권투선수 김득구가 사흘 만에 병상에서 숨을 거두었다.
* [[11월 19일]]: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 개막식이 인도 자와할랄 네루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 [[11월 21일]]: 월성원전 3호기가 시험 가동되었다.
* [[11월 25일]]: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행정관리청 장관이 새 총리직에 취임했다.
* [[11월 30일]]: '''미국 유명가수 [[마이클 잭슨]]이 앨범 [[Thriller]]를 미국 전역에 발매하며 월드스타의 서막을 알렸다.'''
==== 12월 ====
* [[12월 2일]]: 미국 유타대 메디컬센터가 세계 최초로 영구인공심장 이식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 [[12월 6일]]: 아르헨티나 노동자들이 인권침해 등에 항의하며 전국적으로 파업을 전개했다.
* [[12월 8일]]: 전북도경은 '오송회' 관련자 이광웅 교사 등 9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오송회 사건]])
* [[12월 13일]]
* 국회 재무위는 금융실명제를 1986년부터 실시키로 의결하였다.
* 부산고법은 부미방사건 관련자 문부식-김현장에 사형, 김은숙 등 4명에 징역 10년 등 실형선고를 각각 내렸다.
* [[12월 14일]]: 서울 구로구 호암산에서 24세 이발소 여종업원의 사체가 발견되었다.([[죽음을 연출한 사진]] 사건)
* [[12월 16일]]: 정부는 청주교도소 복역 중이던 김대중을 치료하기 위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시켰다.
* [[12월 20일]]
* '1천만 이산가족 재회 추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케난 에브렌 터키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 [[12월 23일]]
* [[서울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서울)|종합운동장역]] ~ [[교대역(서울)|교대역]] 구간이 개통했다.
*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김대중이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 [[12월 24일]]: 법무부는 5.18 및 김대중사건 관련자를 포함한 재소자 1,206명을 형집행정지로 석방시켰다.
* [[12월 27일]]: 한국조명가협회가 설립되었다.
* [[12월 29일]]: 대구 하서동 금호관광호텔에서 큰불이 나 투숙객 10명이 죽고 20명이 부상당했다.
* [[12월 30일]]: 브라질 정부는 대서방 외채 원금상환을 동결시켰다.
* [[12월 31일]]
* 의무경찰제 신설을 골자로 한 새 전경설치법이 제정되었다.
* 세네월드 유엔군 사령관은 한미연합사 육/해/공군의 현대화계획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가상 ===
* [[4월]]: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상공에 [[프런|외계인]]의 거대한 우주선이 출현했다. 이 우주선은 이후 3개월 동안 그 자리에 뜬 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 [[디스트릭트9]]
* [[7월]]: 외계인들의 반응을 기다리다 지친 남아공 정부는 마침내 직접 우주선의 외벽을 뚫고 들어가 영양실조로 허약해진 [[프런|외계인]]들을 발견하고 이들을 지상의 디스트릭트9에 수용했다. - [[디스트릭트9]]
* [[7월 12일]]: [[에니그마]] 평행계에서 사람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모두 사라졌다. - [[겁스 무한세계]]
* 멀린-1에서 [[포클랜드 전쟁]]에서 콘도르 그룹의 [[나치]] 마법사들을 배후에 둔 [[파시스트]] [[아르헨티나]]가 [[영국]]을 이기자 이에 자극받아 전 세계에서 네오 파시즘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겁스 무한세계]]
*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슈퍼스타 감사용]], [[피끓는 청춘]]의 배경 연도.
* 만화 [[AKIRA]]에서는 [[도쿄]] 중심지에 정체불명의 폭발이 일어나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제3차 세계대전]]을 거쳐 도쿄 재건 작업을 통해 [[네오 도쿄]]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를 애니화한 [[AKIRA(1988)]]에서는 [[1988년]]에 발생한 것으로 바뀌었다.]
* 게임 [[Papers, Please]]의 배경년도이다.
== 탄생 ==
=== 실존인물 ===
==== 1월 ====
* [[1월 1일]] - [[ILLSON]]: [[대한민국]]의 [[힙합]] [[MC]]. 본명 손창일.
* [[1월 3일]] - [[박지윤(멀티 엔터테이너)|박지윤]]: 대한민국의 멀티 엔터테이너.
* [[1월 4일]] - [[강혜정]]: [[대한민국]]의 [[배우]].
* [[1월 6일]] - [[에디 레드메인]]: [[영국]]의 [[배우]].
* [[1월 7일]] - [[이지현(성우)|이지현]]: 대한민국의 [[성우]].
* [[1월 9일]] - [[캐서린 미들턴]]: [[영국]]의 왕세손비.
* [[1월 10일]]
* [[이치키 미츠히로]]: [[일본]]의 성우.
* [[후쿠엔 미사토]]: [[일본]]의 성우.
* [[1월 11일]] - [[손예진]]: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손언진.
* [[1월 13일]] - [[상추(마이티 마우스)|상추]]: 한국의 래퍼. 그룹 [[마이티 마우스(가수)|마이티 마우스]]의 멤버. 본명 이상철.
* [[1월 14일]] - [[빅토르 발데스]]: [[스페인]]의 축구 선수.
* [[1월 17일]] -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환희]]: 한국의 가수, 그룹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멤버. 본명 황윤석.
* [[1월 19일]] - [[나카소네 야스타카]]: 일본의 정치인.
* [[1월 25일]]
* [[박선영(방송인)|박선영]]: 대한민국의 방송인, 前 [[아나운서]].
* [[사쿠라이 쇼]]: [[일본]]의 가수, 그룹 [[아라시(아이돌)|아라시]]의 멤버.
* [[1월 26일]]
* [[KCM]]: 한국의 가수. 본명 강창모.
* [[무라카미 싱고]]: 일본의 가수, 그룹 [[칸쟈니∞]]의 멤버.
* [[1월 29일]] - [[스즈키 나오코]]: 일본의 [[아나운서]].
* [[1월 30일]] - [[토쿠야마 히데노리]]: 일본의 배우.
==== 2월 ====
* [[2월 1일]] - [[the GazettE#s-2.1|RUKI]]: 일본의 [[보컬리스트]], 밴드 [[the GazettE]]의 멤버.
* [[2월 2일]]
* [[차지연]]: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 [[간미연]]: 대한민국의 가수.
* [[2월 4일]] - [[김병민]]: 대한민국의 시사평론가, 정당인.
* [[2월 5일]]
* [[로드리고 팔라시오]]: [[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
* [[코바야시 유우]]: 일본의 성우.
* [[휘성]]: 대한민국의 가수.
* [[2월 6일]]
* [[앨리스 이브]]: [[영국]]의 [[배우]].
* [[허미영]]: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2월 9일]] - [[심규혁]]: 대한민국의 성우.
* [[2월 10일]] - [[호소야 요시마사]]: 일본의 성우.
* [[2월 11일]]
* [[박화요비]]: 대한민국의 가수. 본명 박레아.
* [[크리스티안 마지오]]: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2월 16일]] - [[이민정]]: 대한민국의 배우.
* [[2월 17일]] - [[아드리아누]]: [[브라질]]의 축구 선수.
* [[2월 20일]] - [[장기하]]: 대한민국의 가수.
* [[2월 22일]]- [[이선영(KBS)|이선영]]: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2월 24일]] - [[이리나 차시나]]: [[러시아]]의 [[리듬체조]] 선수.
* [[2월 25일]] - [[한가인]]: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김현주.
==== 3월 ====
* [[3월 1일]] - [[김민희(1982)|김민희]]: 대한민국의 배우.
* [[3월 2일]] - [[이종범(만화가)|이종범]]: [[대한민국]]의 [[만화가]].
* [[3월 3일]]
* [[류이라]]: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장신민: 대한민국의 전 가수.
* [[3월 4일]]
* [[손승락]]: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
* [[랜던 도노반]]: [[미국]]의 축구 선수.
* [[3월 9일]] - [[신준기]]: 대한민국의 기타리스트. [[버즈(한국 밴드)|버즈]]의 베이시스트.
* [[3월 11일]] - [[소라 버치]]: 미국의 배우.
* [[3월 13일]]
* [[이수경]]: 대한민국의 배우.
* [[하타노 와타루]]: 일본의 성우.
* [[신애]]: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조신애.
* [[3월 15일]]
* [[김주현(코미디언)|김주현]]: 한국의 코미디언.
* [[강민]]: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전 [[프로게이머]], 프로게이머 해설가.
* [[3월 23일]] - [[정태우]]: 대한민국의 배우.
* [[3월 24일]]
* [[한채아]]: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김서현.
* [[KENN]]: 일본의 성우.
* [[3월 26일]] - [[미켈 아르테타]]: [[스페인]]의 축구 선수.
* [[3월 28일]]
* [[신재웅]]: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이윤희(성우)|이윤희]]: 대한민국의 성우.
* [[3월 30일]] - [[윤요섭]]: 대한민국의 야구 지도자, 전 [[야구선수]].
==== 4월 ====
* [[4월 1일]] - [[박정배]] :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4월 5일]] - [[제춘모]]: [[대한민국]]의 [[야구인]].
* [[4월 9일]]: [[D-myo]]: [[대한민국]]의 [[일러스트레이터]].
* [[4월 11일]]
* [[김현지(성우)|김현지]]: 대한민국의 성우.
* [[최송현]]: 대한민국의 배우, 前 아나운서.
* [[박종윤(1982)|박종윤]]: 한국의 전 야구선수.
* [[줄리엔 강]]: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이탈리아의 모델, 배우.
* [[간종우]]: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작사가.
* [[4월 12일]] - [[길버트 멜렌데즈]]: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4월 16일]] - [[지나 카라노]]: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4월 17일]]
* [[이시영(배우)|이시영]]: 대한민국의 배우.
* [[이준기]]: 대한민국의 배우.
* [[4월 22일]].
* [[시타야 노리코]]: 일본의 성우
* [[카카]]: [[브라질]]의 [[축구 선수]].
* [[4월 24일]]
* [[정미애]]: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켈리 클락슨]]: 미국의 가수.
* [[4월 25일]] - [[채병용]]: 대한민국의 야구 전력 분석가, 전 야구선수.
* [[4월 26일]] - [[존 리(S Club 7)|존 리]]: 영국의 가수, 배우.
* [[4월 27일]] - [[이정호(1982)|이정호]] : [[대한민국]]의 야구 지도자, 전 [[야구선수]]
* [[4월 30일]] - [[커스틴 던스트]]: 미국의 배우.
==== 5월 ====
* [[5월 1일]] - [[다리요 스르나]]: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
* [[5월 2일]] - [[고규필]]: 대한민국의 배우.
* [[5월 4일]]
* [[이소은(가수)|이소은]]: 대한민국의 배우, 미국의 변호사
* [[자두(가수)|자두]]: 대한민국의 가수. 본명 김덕은.
* [[카야모리 사야카]]: [[일본]]의 [[작사#s-1|작사]].
* [[5월 9일]]
* [[김정우(축구인)|김정우]]: 대한민국의 축구 지도자, 전 축구선수.
* [[장민석]]: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 [[5월 10일]]
* [[홍현희]]: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붐(연예인)|붐]]: 대한민국의 방송인. 본명 이민호.
* [[아데바요 아킨펜와]]: [[영국]]의 [[축구선수]].
* [[5월 11일]]
* [[문세윤]]: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코리 몬티스]]: [[캐나다]]의 [[배우]].
* [[5월 16일]] - [[주지훈]]: 대한민국의 배우.
* [[5월 18일]] - [[임주환]]: 대한민국의 배우, 모델.
* [[5월 20일]]
* [[김민식(배우)|김민식]]: 대한민국의 배우.
* [[페트르 체흐]]: [[체코]]의 축구 지도자, 전 축구선수.
* [[5월 22일]] - [[아폴로 안톤 오노]]: 미국의 전 [[쇼트트랙]] 선수.
* [[5월 24일]] - [[조쉬 피터스도프]]: 미국의 성우
* [[5월 25일]]
* [[브래드 스나이더]]: [[미국]]의 전 [[야구선수]].
* [[이동진(방송인)|이동진]]: [[대한민국]]의 방송인.
* [[5월 26일]] - [[마에노 토모아키]]: 일본의 성우.
* [[5월 27일]] - [[나탈리아 네이드하트]]: [[캐나다]]의 [[프로레슬러]].
* [[5월 29일]]
* [[김태균]]: 대한민국의 스포츠 해설가, 전 [[야구선수]].
* [[토네 켄타로]]: 일본의 성우.
==== 6월 ====
* [[6월 2일]] - [[오창석(배우)|오창석]]: 대한민국의 배우.
* [[6월 3일]]
* [[네스티캣]]: 대한민국의 [[만화가]].
* [[옐레나 이신바예바]]: [[러시아]]의 장대높이뛰기 선수.
* [[6월 5일]] - [[유인나]]: 대한민국의 배우.
* [[6월 9일]] - 요시다 쇼헤이: 일본의 [[바이올리니스트]].
* [[6월 13일]] - [[김미려]]: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6월 14일]]
* [[서재경]]: 대한민국의 [[배우]].
* [[랑랑]]: [[중국]]의 [[피아니스트]].
* [[6월 15일]] - [[조 스티븐슨]]: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6월 17일]] - [[아서 다빌]]: [[영국]]의 성우 겸 배우.
* [[6월 19일]]
* [[기욤 패트리]]: [[캐나다]]의 [[프로게이머]].
* [[사사키 사야카]]: 일본의 [[가수]].
* [[임태현]]: 한국의 [[야구]] 응원단
* [[정원창]]: 대만의 [[배우]] 겸 [[모델]]
* [[6월 20일]] - [[벤 브로드]]: [[하스스톤]]의 前 디렉터.
* [[6월 21일]]
*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 [[영국]]의 [[왕족]].
* [[이대호]]: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6월 22일]] - [[배영규(성우)|배정우]]: 대한민국의 성우.
* [[6월 23일]] - [[이비(1982년)|이비]]: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본명 조은별.
* [[6월 25일]]
* [[비(연예인)|비]]: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본명 정지훈.
* [[김재철(배우)|김재철]] : 대한민국의 배우.
* [[6월 28일]] - [[정겨운]]: 대한민국의 배우.
* [[6월 29일]] - [[매슈 머서]]: 미국의 성우.
* [[6월 30일]] - [[사이토 모모코]]: 일본의 성우.
==== 7월 ====
* [[7월 1일 ]] - [[아칙 스핀]]: [[말레이시아]]의 가수.
* [[7월 5일]] -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 [[7월 6일]] - [[박주형(배우)|박주형]]: [[대한민국]]의 [[배우]].
* [[7월 7일]]
* [[이상준]]: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아즈마 신이치로]]: 일본의 범죄자. [[사카키바라 사건]]의 범인.
* [[7월 11일]]
* [[박혜나]]: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 [[이나무라 유우나]]: 일본의 성우.
* [[7월 12일]] - [[안토니오 카사노]]: [[이탈리아]]의 전 [[축구선수]].
* [[7월 13일]]
* [[야디어 몰리나]]: [[푸에르토 리코]]의 [[야구선수]].
* [[추신수]]: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7월 14일]] - [[김두현]]: 대한민국의 축구 지도자, 전 [[축구선수]].
* [[7월 15일]]
* [[박은영(방송인)|박은영]] - 대한민국의 방송인, 전 [[아나운서]].
* [[오승환]]: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차도진]]: 대한민국의 배우.
* [[7월 16일]] - [[칼리 로이드(축구선수)|칼리 로이드]]: 미국의 축구선수.
* [[7월 20일]] - [[박재상]]: 대한민국의 야구 지도자, 전 야구 선수.
* [[7월 24일]]
* [[루카 마그노타]]: [[캐나다]]의 전 배우, 강력 범죄자.
* [[애나 패퀸]]: [[뉴질랜드]]의 배우.
* [[7월 25일]] - [[한지상]]: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 [[7월 26일]] - [[이영학]]: 대한민국의 [[범죄자]].
* [[7월 28일]] - [[케인 벨라스케즈]]: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7월 30일]] - [[김민정(1982)|김민정]]: 대한민국의 배우.
==== 8월 ====
* [[8월 2일]] - [[김경현]]: 대한민국의 가수, [[더 크로스]] 2기 보컬
* [[8월 4일]]
* [[이지윤(1982)|이지윤]]: 대한민국의 前 [[아나운서]]
* [[전미도]]: 대한민국의 배우.
* [[8월 9일]]
* [[공서영]]: 대한민국의 방송인, 前 [[아나운서]].
* [[조세호]]: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8월 11일]] - [[손성희]]: 대한민국의 기타리스트. 밴드 [[버즈(한국 밴드)|버즈]]의 기타리스트.
* [[8월 12일]] - [[이희성(1982)|이희성]]: [[대한민국]]의 [[바둑기사]].
* [[8월 13일]] - [[세바스찬 스탠]]: 미국의 배우.
* [[8월 14일]] - [[BOH]]: 일본의 [[베이시스트]].
* [[8월 16일]]
* [[토드 하버콘]]: 미국의 [[성우]] 겸 배우.
* [[wony]]: 대한민국의 만화가. 본명 박종원.
* [[강은탁]]: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신슬기.
* [[8월 17일]]
* [[KillerBlood]]: [[대만]]의 작곡가.
* [[필 야기엘카]]: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8월 18일]]
* [[이문재]]: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아카이 토시후미]]: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 [[8월 19일]] - [[스티페 미오치치]]: [[미국]], [[크로아티아]]의 [[이종격투기]] 선수.
* [[8월 20일]] - [[사카모토 다이스케]]: 일본의 정치인.
* [[8월 22일]] - [[고토 마이]]: 일본의 성우.
* [[8월 23일]] - [[최승태(농구)|최승태]]: 대한민국의 농구 지도자, 前 [[농구]] 선수.
* [[8월 24일]]
* [[조제 보싱와]]: [[포르투갈]]의 [[축구선수]].
* [[킴 셸스트룀]]: [[스웨덴]]의 축구 선수.
* [[8월 25일]] - [[정재성(1982)|정재성]]: 대한민국의 전 [[배드민턴]] 선수.
* [[8월 26일]]
* [[요시다 마유미(성우)|요시다 마유미]]: 일본의 성우.
* [[일리야 벨랴코프]]: 러시아 출신의 대한민국의 방송인.
* [[8월 28일]]
* [[카로 파리시안]]: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티아구 모타]]: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홍성기]]: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8월 29일]] - [[악사나]]: [[리투아니아]] 출신 前 [[프로레슬러]].
* [[8월 31일]] - [[페페 레이나]]: [[스페인]]의 축구 선수.
==== 9월 ====
* [[9월 1일]] - [[이그니토]]: 대한민국의 [[힙합]] [[MC]]
* [[9월 2일]]
* [[이종훈(코미디언)|이종훈]]: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조이 바튼]]: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 [[9월 3일]]
* [[세토 사오리]]: 일본의 성우.
* [[후지무라 아유미]]: 일본의 성우.
* [[9월 6일]] - [[정승환(코미디언)|정승환]]: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9월 7일]] - [[시라이시 료코]]: 일본의 성우.
* [[9월 9일]] - [[오오츠카 아이]]: 일본의 가수.
* [[9월 10일]]
* [[조성환(1982)|조성환]]: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나우두]]: [[브라질]]의 축구 선수.
* [[9월 12일]] - [[라일라 모란]] : 영국의 정치인.
* [[9월 13일]] - [[김강민]]: 한국의 야구 선수.
* [[9월 14일]]
* [[신동욱(배우)|신동욱]]: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신희석.
* [[키라 요시코]]: 일본의 정치인.
* [[9월 15일]] - [[전해리]]: 대한민국의 성우.
* [[9월 17일]] - [[자동(인터넷 방송인)|자동]]: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본명 이동훈.
* [[9월 21일]] - [[최두영]]: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9월 22일]]
* [[빌리 파이퍼]]: [[영국]]의 가수 겸 배우.
* [[마르턴 스테켈렌뷔르흐]]: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 [[9월 23일]] - [[이하나]]: 대한민국의 배우.
* [[9월 25일]] - [[현빈]]: 대한민국의 배우.
* [[9월 27일]] - [[제이윤]]: 한국의 [[가수]]. 그룹 [[M.C The Max]] 소속. 본명 윤재웅.
* [[9월 30일]] - [[키에란 컬킨]]: [[미국]]의 [[배우]].
==== 10월 ====
* [[10월 2일]]
* [[정근우]]: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 [[요시카와 미키]]: 일본의 [[만화가]].
* [[10월 4일]] - [[SHORRY J]]: 한국의 래퍼, 힙합 그룹 [[마이티 마우스(가수)|마이티 마우스]]의 멤버. 본명 소준섭.
* [[10월 5일]]
* [[요시다 사오리]]: 일본의 [[레슬링]] 선수.
* [[김빈우]]: 대한민국의 배우.
* [[10월 7일]] - [[저메인 데포]]: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10월 8일]] - [[츠츠이 타이시]] : [[일본]]의 만화가.
* [[10월 11일]]
* [[발렌티나 젤랴예바]]: 러시아의 [[모델]].
* [[채태인]]: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 [[10월 13일]] - [[조윤희]]: 대한민국의 배우.
* [[10월 16일]]
* [[김아중]]: 대한민국의 배우.
* [[안윤상]]: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10월 17일]] - [[벤자민 주키치]]: 미국의 [[야구]]선수.
* [[10월 18일]] - [[박현빈]]: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본명 박지웅.
* [[10월 19일]] - [[하지영]]: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10월 21일]] - [[사쿠라이 하루미]]: 일본의 성우.
* [[10월 25일]] - [[김기두]]: 대한민국의 배우.
* [[10월 27일]] - [[가애란]]: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10월 28일]]
* [[맷 스미스]]: 영국의 배우.
* [[쿠라키 마이]]: 일본의 가수.
* [[후쿠이 유카리]]: 일본의 성우.
* [[10월 31일]] - [[홍진호]]: [[대한민국]]의 방송인,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11월 ====
* [[11월 1일]] - [[이재범(성우)|이재범]]: 대한민국의 성우.
* [[11월 2일]] - [[후카다 쿄코]]: 일본의 가수, 배우.
* [[11월 3일]] - [[요코야마 마사루]]: [[일본]]의 작곡가.
* [[11월 5일]]
* [[정이랑]]: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한지민]]: 대한민국의 배우.
* [[11월 7일]]
* [[아이비(가수)|아이비]]: 대한민국의 가수, 뮤지컬 배우. 본명 박은혜.
* [[윤봉길(배우)|윤봉길]]: 대한민국의 배우.
* [[11월 9일]] - [[키쿠치 코코로]]: 일본의 성우.
* [[11월 10일]] - [[우라타 나오야]]: 일본의 가수, 그룹 [[AAA(일본 그룹)|AAA]]의 전 멤버.
* [[11월 11일]] - [[김도]]: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본명 이택기.
* [[11월 12일]]
* [[앤 해서웨이]]: 미국의 배우.
* [[조영훈]]: 대한민국의 야구 지도자, 전 야구 선수.
* [[티아고 실바]]: 브라질의 축구 선수.
* [[금비(거북이)|금비]]: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거북이(혼성그룹)|거북이]]의 멤버.
* [[11월 13일]] - [[코다 쿠미]]: 일본의 가수.
* [[11월 18일]]
* [[와타나베 아케노]]: 일본의 성우.
* [[V.K克]]: 대만의 [[피아니스트]]. 본명 쉬친이.
* [[11월 19일]] - [[조나단 산체스(야구선수)|조나단 산체스]]: [[푸에르토 리코]]의 야구 선수.
* [[11월 22일]]
* [[샬린 초이]]: 홍콩의 가수.
* [[설의석]]: [[대한민국]]의 [[야구인]].
* [[11월 23일]] - [[신성록]]: 대한민국의 배우.
* [[11월 24일]] - [[최혜림]]: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11월 25일]] - [[풍월량]]: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본명 김영태.
* [[11월 26일]] - [[송원근]]: 대한민국의 배우.
* [[11월 30일]] - [[시무라 유미]]: 일본의 성우.
==== 12월 ====
* [[12월 3일]]
* [[황치열]]: 대한민국의 [[가수]].
* [[마이클 에시앙]]: [[가나]]의 축구 선수.
* [[12월 4일]] - [[닉 부이치치]]: [[호주]]의 목사.
* [[12월 7일]]
* [[김경언]]: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 [[잭 휴스턴]]: [[영국]]의 [[배우]].
* [[12월 8일]]
* [[니키 미나즈]]: 미국의 가수, 래퍼.
* [[하밋 알틴톱]]: [[터키]]의 축구 선수.
* [[하릴 알틴톱]]: [[터키]]의 축구 선수.
* [[12월 13일]]
* [[럼블 피쉬]]: 대한민국의 가수. 본명 최진이.
* [[키노시타 아유미]]: [[일본]]의 배우.
* [[12월 15일]] - [[찰리 콕스]]: 영국의 배우.
* [[12월 20일]] - [[조중근]] : [[대한민국]]의 야구 지도자, 前 [[야구선수]].
* [[12월 24일]]
* [[아이바 마사키]]: [[일본]]의 가수, 보이그룹 [[아라시(아이돌)|아라시]]의 멤버.
* [[카키하라 테츠야]]: 일본의 성우.
* [[12월 26일]] - [[오구리 슌]]: [[일본]]의 [[배우]].
* [[12월 30일]] - [[요시쿠라 마리]]: 일본의 [[작사#s-1|작사]]이자 前 [[성우]].
* [[12월 31일]] - [[훌리오 데폴라]]: 도미니카 공화국의 [[야구선수]].
=== 가상인물 ===
* [[1월 19일]]: [[마츠바라 아오이]] - [[투하트]]
* [[1월 22일]]: [[애천사전설 웨딩피치/등장인물#s-5.2|카와이 유키코]] - [[애천사전설 웨딩피치]]
* [[1월 29일]]: [[카와스미 마이]] - [[Kanon]]
* [[3월 2일]]: [[사이다(동음이의어)#s-4|사이버 가수 CYDA]]
* [[3월 7일]]: [[나천재]] - [[총몇명#s-5.1|총몇명 스토리]]
* [[4월 1일]]: 김지영 - [[82년생 김지영]][* 소설에서는 비교적 초반부인 '1982년~1994년' 파트에서. 영화에서는 후반부 자막에서 언급되었다.]
* [[4월 2일]]: 하야카와 료 - [[프린세스 나인 키사라기 여고 야구부]][* 작품의 배경은 [[1998년]]이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고1이다.]
* [[4월 4일]]: [[마리아 힐(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마리아 힐]]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4월 15일]]: [[코우사카 히카루]] - [[전설의 용자 다간]]
* [[4월 29일]]: [[미즈오리 시즈쿠]] - [[Summer Pockets]]
* [[5월 5일]]: [[타마노 히나기쿠]] - [[애천사전설 웨딩피치]]
* [[5월 20일]]: [[야에 카오리]] - [[도키메키 메모리얼 2]]
* [[6월 4일]]: [[타카스기 세이지]] - [[전설의 용자 다간]]
* [[6월 7일]]: [[미카미 테루]] - [[데스노트]]
* [[6월 10일]]: 미타 카나코 - [[프린세스 나인 키사라기 여고 야구부]]
* [[7월 7일]]: [[타니마 유리]] - [[애천사전설 웨딩피치]]
* [[8월 5일]]: 히무로 이즈미 - [[프린세스 나인 키사라기 여고 야구부]]
* [[8월 8일]]: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등장인물/코너 루트#s-3.7|제프리 파울러]]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 [[9월 1일]]: [[스테판 제반니]] - [[데스노트]]
* [[9월 15일]]: [[허강민]] - [[검은방|검은방 시리즈]]
* [[9월 26일]]: [[스리]] - [[하마토라]]
* [[9월 27일]]: [[사쿠라코지 호타루]] - [[전설의 용자 다간]]
* [[10월 10일]]: 토카시키 요코 - [[프린세스 나인 키사라기 여고 야구부]]
* [[10월 31일]]
* [[L(데스노트)|L]] - [[데스노트/애니메이션]][* 원작에서는 [[1979년]].]
* [[후마 요스케]] - [[애천사전설 웨딩피치]]
* [[11월 1일]]: 아즈마 유키 - [[프린세스 나인 키사라기 여고 야구부]]
* [[11월 3일]]: [[스칼렛 오하라(애천사전설 웨딩피치)|스칼렛 오하라]] - [[애천사전설 웨딩피치]][* 애니메이션에선 [[1981년]]생으로 설정.]
* [[11월 27일]]: 모리무라 세이라 - [[프린세스 나인 키사라기 여고 야구부]]
* [[11월 30일]]: [[히이라기 카가리]] - [[도사의 무녀]]
* [[12월 3일]]: 정령지 - [[플러스 내 기억 속의 이름]]
* [[12월 20일]]: 이노우에 카오루 - [[SP#s-7|SP]]
* [[12월 23일]]: [[미나세 나유키]] - [[Kanon]]
* 일자 불명
* [[리틀 제이콥]] - [[GTA 4]]
* 학생 '''대부분'''[* [[1997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주인공들은 중3이다. 그러므로 [[빠른 생일]]에 해당되는 일부 학생들을 제외하면 1982년생이 된다.] - [[배틀로얄(소설)]]
* [[시가라키 타테유키]] - [[역전검사 2]]
* [[아스토리아 그린그래스]] - [[해리 포터 시리즈]]
* [[오 나의 귀신님/등장인물#s-2.2|조동철]] - [[오 나의 귀신님]]
* [[웅(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 시리즈)|웅]] -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 시리즈]]
* [[폭룡전대 아바레인저]]
* [[하쿠아 료우가]]
* [[산죠 유키토]]
* [[이츠키 란루]]
* [[히메가미 사쿠라]], [[키리사키 테츠로]], [[시가라키 타테유키]], [[닷츠 디니겔]], [[두르크 사드마디]], [[잉가 카르쿨 쿠라인]] - [[역전재판 시리즈]]
* [[타카츠 유키나]] - [[도사의 무녀]]
* [[히라노 미하루]], [[링 샤오유]] - [[철권 시리즈]]
== 사망 ==
=== 실존인물 ===
==== 1월 ====
* [[1월 1일]] - 하수영: 대한민국의 가수
* [[1월 2일]] - [[이진래]]: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 [[1월 13일]] - [[마르셀 카뮈]]: 프랑스의 영화감독
* [[1월 17일]] - 주옥경: 의암 [[손병희]] 선생의 부인
* [[1월 28일]] - [[조긍하]]: <[[육체의 길]]>을 만든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 [[1월 29일]] - [[하야시야 히고로쿠]]: 일본의 라쿠고가
* [[1월 31일]] - [[유장산]]: 대한민국의 영화촬영기사
==== 2월 ====
* [[2월 8일]] - [[호텔 뉴재팬]] 화재사고 희생자 33명
* 김태동: 제21대 보건사회부 장관, 제13대 체신부 장관, 전 일간내외경제-코리아헤럴드 사장
* [[2월 13일]]
* [[에리 치에미]]: 일본의 배우, 가수
* [[프랑크 세슈에]]: [[스위스]]의 전 축구 감독
* [[2월 17일]]
* [[델로니어스 몽크]]: [[미국]]의 [[음악가]]
* [[리 스트라스버그]]: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영화감독, 영화 이론가
* [[2월 18일]] - [[장운상]]: 대한민국의 동양화가
* [[2월 20일]] - [[김동수]]: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3월 ====
* [[3월 2일]] - [[필립 K. 딕]]: [[미국]]의 [[소설가]]
* [[3월 5일]] - [[존 벨루시]]: [[미국]]의 [[배우]]
* [[3월 6일]] - [[아인 랜드]]: [[미국]]의 [[소설가]]
* [[3월 10일]] - [[시로타 미노루]]: 일본 [[야쿠르트]] 창업주
* [[3월 16일]] - [[후지무라 아리히로]]: 일본의 배우, 성우. 주로 엉터리로 외국어를 구사하는 만담을 선보였다.
* [[3월 18일]] - [[바실리 추이코프]]: [[소련군]] 장군
* [[3월 19일]] - [[랜디 로즈]]: 미국의 [[기타리스트]]
* [[3월 26일]] - [[미즈하라 시게루]]: 일본의 야구인
==== 4월 ====
* [[4월 3일]]
* [[양기섭]] 베드로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신부(종교)|신부]], 초대 [[경향신문]] 사장
* [[워렌 오츠]]: [[미국]]의 [[배우]]
* [[4월 9일]] - [[김지태]]: 삼화그룹 창업주, 정치가
* [[4월 10일]] - [[최현(북한)|최현]]: 북한의 독립운동가, 정치가, 군인, 최룡해의 부친
* [[4월 13일]] - [[류기현]]: 대한민국의 성우
* [[4월 17일]] - [[노진수]]: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 [[4월 19일]] - [[김상기]]: 전 원진프로모션 대표이사
* [[4월 21일]] - [[황창오]]: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4월 24일]] - [[이용민]]: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 [[4월 25일]] - [[정일형]]: [[대한민국]]의 [[정치인]], 제6대 외무부 장관, [[이태영]] 변호사의 남편.
* [[4월 26일]] ~ [[4월 27일]]: 의령 경찰관 총기난동 사건 희생자 62명
* [[우범곤]] 순경: 당시 의령경찰서 궁류지서 소속 경찰관, 연쇄살인마
* [[4월 29일]] - [[정몽필]]: 전 [[인천제철]] 사장,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장남
==== 5월 ====
* [[5월 1일]] - [[김덕진]]: 대한민국의 영화 촬영기사
* [[5월 3일]] - [[기종도]]: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
* [[5월 29일]] - [[로미 슈나이더]]: 독일계 프랑스인 영화배우
* [[5월 31일]] - [[강혜원(독립운동가)|강혜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6월 ====
* [[6월 8일]] - [[마뉘스 프라우브된트]]: 네덜란드의 전 축구 선수
* [[6월 13일]] - [[칼리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4대 국왕
* [[6월 18일]] - [[쿠르트 유르겐스]]: 독일계 오스트리아인 영화배우
* [[6월 29일]] - [[헨리 킹]]: 미국의 영화감독
==== 7월 ====
* [[7월 4일]]
* [[슈테른베르크 라슬로]]: 헝가리의 전 축구감독
* [[이규환]]: <임자 없는 나룻배>, <춘향전> 등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 [[7월 7일]] - [[베프 바크하위스]]: [[네덜란드]]의 축구 감독
* [[7월 12일]] - [[케네스 모어]]: [[영국]]의 [[배우]]
* [[7월 17일]] - [[경봉]]: 전 통도사 주지, 경봉장학회 설립자
* [[7월 18일]] - [[조시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7월 26일]] - [[빅 모로우]]: 미국의 영화배우
* [[7월 29일]] - [[해롤드 사카타]]: 일본계 미국인 프로레슬러, 영화배우
==== 8월 ====
* [[8월 1일]] - [[이규웅]]: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 [[8월 2일]] - [[캐슬린 네스빗]]: 영국의 배우
* [[8월 6일]] - [[조중현]]: 대한민국의 동양화가
* [[8월 12일]] - [[헨리 폰다]]: 미국의 [[영화배우]]
* [[8월 16일]]
* [[김한수(1922)|김한수]]: 경남모직 및 [[한일그룹]] 창업주
* [[최재형]]: 유원산업 창업주, 제4대 [[한국기원]] 이사장
* [[8월 21일]] - [[소부자 2세]]: [[에스와티니]]의 전제군주
* [[8월 22일]] - [[문영수]]: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8월 29일]] - [[잉그리드 버그먼]]: [[스웨덴]] 출신의 [[할리우드]] [[영화배우]]
==== 9월 ====
* [[9월 5일]] - [[나카다 다이마루]]: 만담가 형제 '나카다 다이마루-라켓'의 형.
* [[9월 14일]] - [[그레이스 켈리]]: 미국의 영화배우, [[모나코]]의 [[왕비|공비]]
* [[9월 27일]] - [[이신애(독립운동가)|이신애]]: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10월 ====
* [[10월 4일]] - [[글렌 굴드]]: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 [[10월 5일]] - [[복혜숙]]: 대한민국의 원로 영화배우
* [[10월 8일]] - 신향식: 1979년 남민전 사건 핵심 관련자
* [[10월 12일]] - [[박관현]]: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
* [[10월 18일]] - [[베스 트루먼]]: 해리 S.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영부인
* [[10월 26일]] - [[하이다 카츠히코]]: 일본의 가수
==== 11월 ====
* [[11월 1일]] - [[킹 비더]]: 미국의 영화배우
* [[11월 3일]]
* [[백운택]]: [[12.12 군사반란]] 관련 군인
* [[에드워드 카|에드워드 H. 카]]: [[영국]]의 [[역사학자]], [[정치학]]자
* [[11월 5일]] - 아현동 로터리 가스누출 사고 희생자 5인
* 김유연 경사(추서계급): 당시 마포경찰서 기동순찰대 소속 경찰관.
* 황재하 상경(추서계급): 당시 동 경찰서 소속 전투경찰.
* [[11월 10일]] -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제8대 [[소련 공산당]] [[서기장]]
* [[11월 18일]]
* [[곽일로]]: <[[빨간 마후라]]>등 70여편의 영화 각본을 쓴 영화 시나리오 작가
* [[김득구]]: [[대한민국]]의 [[권투]] 선수
* [[11월 20일]] - [[김학성]]: 대한민국의 영화촬영기사.
* [[11월 21일]] - [[박창복]]: 대한제국 시절 마지막 상궁 중 하나
* [[11월 22일]] - [[성소민]]: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 12월 ====
* [[12월 6일]] - [[허먼 레이]]: 미국 유명 제과업체 [[프리토레이]] 창업주
* [[12월 7일]] - [[윌 리]]: [[세서미 스트리트]]의 '미스터 후퍼'로 유명한 배우
* [[12월 8일]] - [[미나미 신스케]]: 일본의 만담가, <[[쇼텐]]> 3대 MC
* [[12월 10일]] - [[윤태일]]: 제12대 서울특별시장, 제3대 대한주택공사 사장
* [[12월 11일]] - [[박재갑]]: [[갑을그룹]] 및 KBI그룹 창업주
* [[12월 21일]] - [[윤치왕]]: 대한민국의 의학자, 군의관
* [[12월 25일]] - [[오지호]]: [[대한민국]]의 동양화가
* [[12월 28일]] - [[키시다 신]]: 일본의 배우, 성우
==== 일자 불명 ====
* [[송금수]]: 대한제국 시절 마지막 상궁
* [[임창]]: '땡이 시리즈'로 1960년대를 풍미한 만화가
* [[조덕성]]: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 가상인물 ===
== 데뷔 ==
=== 가수 ===
*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 퓨리어스 파이브
* [[김범룡]]
* 나이트 레인저
* [[나카모리 아키나]]
* 로이와 프란
* 로이스턴 스타 마리아, 프란치스카 피터
* 시부가키대
* [[안전지대(록밴드)|안전지대]]
* [[정광태]]
=== 예능인 ===
* 김문섭
* 김창준
* [[심형래]]
* 이경래
* 이선민
* [[이원승]]
* [[최병서]]
* [[황기순]]
=== 배우 ===
* 최상훈
* 조형기
* 이영범
* 맹상훈
* 이동신
* 강석란
* 선동혁
=== 아나운서 ===
* 김희성
* 노병무
* 박대식
* 박서정
* [[박영선]]
* 성경환
* 송경희
* 송인득
* 신석진
* 유협
* 윤영미
* 위영미
* 이덕환
* 이용순
* 임화숙
* 정은수
* [[정미홍]]
* 조동건
* 조원숙
* 진두연
* 진현숙
* 최명진
=== 만화계 ===
* 오세호 - <사랑과 이별의 시>
* 장윤식 - <권법 48기>
* 조원행 - <비정의 글러브>
* 탁영호 - <학마을 사람들 이야기>
* 홍용하 - <5인의 용병>
=== 스포츠 ===
==== 야구 ====
1982 시즌 이전에 데뷔한 실업야구 출신 선수들은 제외함.
* [[김성한]]
* [[김신부]]
* [[박철순]]
* [[이만수]]
==== 농구 ====
* [[김현준(농구)|김현준]]
* [[도미니크 윌킨스]]
* 라살레 톰슨
* 리키 피어스
* 마크 이튼
* 슬리피 플로이드
* 윤재근
* 이민현
* [[제임스 워디]]
* 존 배글리
* 클락 켈로그
* 클리프 리빙스턴
* 테리 커밍스
* 테리 티글
* 트렌트 터커
* [[팻 리버]]
* 폴 프레시
==== 배구 ====
* 김종순
==== 권투 ====
* [[유명우]]
* 최창호
==== 리듬체조 ====
* [[이리나 데리우기나]]
== 히트작 ==
=== 영화 ===
* 한국
* [[애마부인]]
* 해외
* [[람보]]
* [[록키 3]]
* [[사관과 신사]]
* [[E.T.]]
* [[최가박당]]
=== 드라마 ===
* 보통 사람들
* 풍운
* 거부실록
=== 가요 ===
* 한국
* 강병철과 삼태기 - [[삼태기메들리]]
* 김성희 - 매력
* 김연자 - 진정인가요
* 나훈아 - 대동강 편지, 울긴 왜 울어, [[잡초#s-4|잡초]]
* 남진 - 빈잔
* 남궁옥분 -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꿈을 먹는 젊은이
* 문성재 - [[부산갈매기]]
* 민해경 -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 산울림 - 내게 사랑은 너무 써, [[회상(산울림)|회상]]
* 송골매 -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두 다 사랑하리
* 윤수일 - '''[[아파트(노래)|아파트]]'''
* 윤시내 - DJ에게
* 이명훈 - 얼굴 빨개졌다네
* 이용 - '''[[잊혀진 계절]]'''
* 전영록 - 종이학, 지나간 시절의 연가
* 정광태 - '''[[독도는 우리땅]]''', 코끼리 아저씨
* 조용필 - [[조용필 4집|'''못 찾겠다 꾀꼬리''', '''비련''', 자존심]]
* 조정희 - 참새와 허수아비
* 하춘화 - 사랑했는데
* 현숙 - 포장마차
* 혜은이 - 잊게 해 주세요
* 해외
* Culture Club -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
* F. R. Davis - Words
* Iron Maiden - The Number of the Beast, Run to the Hills
* Joe Cocker, Jennifer Warnes - Up Where We Belong
* Laura Branigan - Gloria
* Survivor - Eye Of The Tiger
* Toto - Africa, Rosanna, I Won't Hold You Back
=== 애니메이션 ===
* 국산/더빙
* [[개구리 왕눈이]]
* [[미래소년 코난]]
* [[은하철도 999(TVA)|은하철도 999]]
* [[해돌이 대모험]](극장판)
* 해외
* [[전투메카 자붕글]]
* [[파타리로]]
=== 베스트셀러 ===
* 인간시장 - 김홍신
* 들개 - 이외수
== 출시 상품 ==
=== 자동차 ===
* 현대 포니 2
* 현대 FB485
* 새한 맵시
* 새한 BV113
=== 식음료 ===
* 농심
* 6월: 해피소고기라면
* 11월: 너구리 우동(순한맛), 육개장 사발면
* 롯데제과
* 2월: 네거리캔디
* 4월: 아몬드쵸코렡
* 동서식품
* 맥스웰 상카
* 맥스웰하우스 마스타 커피: 블렌드, 퀸, 골드
* 오렌지음료
* 일화
* 맥콜
=== 생활용품 ===
* 애경유지
* 럭스비누
== 최초 ==
=== 방영 프로그램 ===
* 딩동댕 유치원
* 모여라 꿈동산
* 전국일주
* TV유치원 하나 둘 셋
* KBS 보도본부 24시: 최초 방영 당시 제목은 <보도본부 24시>.
* MBC 바둑제왕전
== 유행어 ==
* 단군 이래 최대의~
* 민나 도로보데스 - 드라마 <거부실록 - 공주갑부 김갑순>
* 개구리 번트 - 김재박
* 기도하는! (꺄아악~) - 조용필
== 달력 ==
[include(틀:금요일로 시작하는 평년)]
[각주]
[[분류:1982년]] |
1982년 스페인 월드컵 | #redirect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
1982년 한국시리즈 | [include(틀:역대 KBO 한국시리즈 목록)]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 bordercolor=#151B54><#ffffff><:>[[파일:external/41.media.tumblr.com/tumblr_o4a4woaUar1sqk8veo6_r1_400.png|width=200]][br] '''{{{#151B54 역대}}} [[KBO 한국시리즈|{{{#151B54 KBO 한국시리즈}}}]]''' ||
||<width=30%><:> ~~[[1981년 코리안시리즈|1981 코리안시리즈]]~~ [br] 프로야구 출범 || {{{+1 ←}}} ||<:><#FFFFFF><width=30%> '''1982년''' [br] '''[[OB 베어스]]''' ||<:> {{{+1 →}}} ||<width=30%><:> [[1983년 한국시리즈|1983년]] [br] [[해태 타이거즈]] ||
||<-2><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15326f><tablebgcolor=#ffffff><#FFF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982한국시리즈오비우승.png|width=100%]]}}} ||
||<-2><:><#ffffff>[[파일:external/s20.postimg.org/OB1982.png|width=200]]||
||<-2><:><#ed1c24> '''{{{#ffffff 1982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2><:><#15326f> [[OB 베어스|'''{{{#ffffff OB 베어스}}}''']] ||
||<:> '''{{{#15326f MVP}}}''' || [[김유동|'''{{{#15326f 김유동}}}''']] ||
> '''자 2사에 주자는 없습니다. 2번 타자 [[배대웅]] 나왔습니다. 쳤습니다.'''
> '''투수 키 넘겼습니다. [[유지훤]] 잡았습니다. 러닝스로~ 아웃!'''
> ''' 경기 끝났습니다. 경기 끝났습니다.'''
> '''[[OB 베어스]]가 꿈의 구연이라고 일컬어지는 [[KBO 한국시리즈|코리안 시리즈, 코리안 시리즈]] 6차전도 승리를 장식을 해서 4승 1무승부 1패로 승리를 안았습니다.'''
> ----
> [[MBC]] [[임주완]] 캐스터의 우승 콜
[목차]
== 개요 ==
||<tablewidth=100%><-2><:><tablebordercolor=#edd36c><bgcolor=#00143f,#0b1966> {{{+2 {{{#edd36c '''1982'''}}} {{{#edd36c '''프로야구'''}}} {{{#ffffff '''한국시리즈'''}}}}}} ||
||<width=500><height=150><#007FFF> [[파일:samsung_lions_logo_1982.png|width=130]] ||<width=500><height=150><#15326F> [[파일:obbears_insignia.png|width=110]] ||
||<width=500><#007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1 '''삼성 라이온즈'''}}}}}}]] ||<width=500><#15326F> [[두산 베어스|{{{#ffffff {{{+1 '''OB 베어스'''}}}}}}]] ||
[[1982년]] [[10월 5일]]부터 [[10월 12일]]까지 열린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한국시리즈. 경기 결과는 4승 1무 1패로 전기리그 우승팀인 [[OB 베어스]]가 후기리그 우승팀인 [[삼성 라이온즈]]를 누르고 승리하며 프로야구 초대 우승팀의 영광을 안았다.
[[박철순]]의 부상 투혼, [[김유동]]의 극적인 홈런, 그리고 [[이선희(야구)|이선희]]의 눈물로 대변되는 시리즈이자 프로야구의 첫 한국시리즈가 명승부로 장식되면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시리즈이다. ~~그리고 콩성의 역사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 시리즈 전 분위기 ==
당초 예상을 뒤엎고 원년 전기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한국시리즈 진출 티켓을 확보한 [[OB 베어스]]는 전기리그 동안 다소 무리했던 [[에이스]] [[박철순]]을 적당히 던지게 하면서도 의외로 후기리그에서도 상당히 잘 나가면서 선두를 달렸다. 하지만 막판 거세게 추격한 [[삼성 라이온즈]]에게 쫓기면서 후기리그 우승의 향방은 알 수 없게 된 상황.
아래는 유명 야구기자였던 고 [[이종남(기자)|이종남]] 기자의 저서 '''[[멜 오트|사람 좋으면 꼴찌]]'''에 실린 내용이다.
>OB는 후기 우승을 확정짓기 위해 9월 29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 와의 시즌 최종전에 [[박철순]]을 선발로 올렸다. OB가 이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후기리그 우승과 동시에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전, 후기 통합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를 선발투수로 맞세운 삼성의 저력도 만만치는 않았고, 여기에 내심 프로 첫 해부터 최대의 하이라이트인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가 무산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해서 껄끄럽게 생각하던 [[한국야구위원회|KBO]]의 난데없는 개입으로 이날 경기는 연장 12회 접전 끝에 삼성의 2:1 승리로 끝났다. 1:1로 맞서던 이날 경기에서 9회말이 종료된 시간은 밤 10시 30분. 규정상 연장전에 들어갈 수 없었고 이대로 후기리그 우승팀은 10월 2일 삼성과 [[MBC 청룡|MBC]]와의 시즌 최종전 결과로 결정될 상황이었지만, 당시 경기 감독관으로 현장에 있던 이호헌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차장이 '''"밤 10시 30분 이후 연장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규정은 [[서울]]에만 국한되는 로컬 룰"''' 이라는 말도 안되는 유권해석을 내세우며 탈법적(?)으로 연장에 돌입했고 결국 4시간 8분의 대 접전 끝에 삼성이 12회말 [[함학수]]가 3루 쪽으로 끝내기 내야안타를 뽑아내며 승리를 낚은 것이다.[* 당시 시즌 종료까지 2경기를 남긴 후기리그 2위 삼성은 1위 OB에 0.5게임 차로 뒤져 있었다. 이날 삼성이 OB와의 경기를 무승부로 끝냈다면 삼성은 [[MBC 청룡]]과의 최종전을 반드시 이기고 다시 OB와 후기리그 우승 결정전을 치뤄야 하는 절대 불리한 상황이었다. 결국 KBO로서는 어차피 한국시리즈가 무산될 지언정 이날 경기에서 어떻게든 끝장을 보는 게 낫다고 판단하여 주최측의 농간(?)을 벌인 셈이다.]
하지만 이는 이종남 기자의 착각이라 보는 것이 맞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011500209208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3-01-15&officeId=00020&pageNo=8&printNo=18856&publishType=00020|참고기사1]][[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060400209208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3-06-04&officeId=00020&pageNo=8&printNo=18974&publishType=00020|참고기사2]] 1983년의 기사로 기사 중간 작년(1982년)에는 서울시에서 10시 이후 경기 진행에 제한을 걸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KBO 규정상 15이닝 시간제한 없는 연장이라 할지라도 운동장 사업소의 협조가 없다면 진행할 수 있을리가 만무하다. 실제로 당시 서울시의 경기장 운영원칙은 고약한걸로 소문이 나 잔디보호를 명목으로 경기시작 전까지 경기장에서 훈련도 하지 못하게 했고 청룡과 후에 올라온 OB는 인근 학교 운동장에서 훈련하곤 했다. 또한 주최측 농간이란 의견은 한번도 나온 적이 없다가 이종남기자가 처음 제기한 것으로 같은 시기 다른 기자에 의해 유사한 주장이 나온 기록은 하나도 없다.
어쨌든 이날 승리로 최소 후기 공동 우승을 확보한 삼성은 10월 2일 열린 [[MBC 청룡]]과의 대구 홈경기도 3:1로 가져오며 자력으로 후기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얘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특별할 일도 없었겠지만, 9월 29일 경기에 나선 박철순이 8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오대석]]의 보내기 번트 타구를 처리하다 허리를 다친 것이 결정적인 변수가 되었다.[* 더군다나 박철순은 당장 강판해서 병원으로 달려가도 모자랄 판에 이날 무려 12회까지 완투하며 허리 상태가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다 잡았던 후기리그 우승을 날린데다가 [[에이스]]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OB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고, 반대로 15승 투수만 세 명([[이선희(야구)|이선희]], [[황규봉]],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을 보유하며 당대 최강의 마운드를 자랑하던 삼성으로서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었다.
== 엔트리[* 볼드체는 당시 주장이었던 선수.] ==
=== [[OB 베어스]] ===
||<-3><#15326f><tablewidth=80%> '''{{{#ffffff OB베어스 1982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ed1c24><width=10%><:> '''{{{#ffffff 감독}}}''' ||<width=10%> 1명 ||<width=80%> [[김영덕]] ||
||<#ed1c24><width=10%> '''{{{#ffffff 코치}}}''' ||<width=10%> 2명 ||<width=80%> [[김성근]], [[이광환]] ||
||<#ed1c24><width=10%> '''{{{#ffffff 투수}}}''' ||<width=10%> 7명 ||<width=80%> [[강철원]], [[계형철]], [[김현홍]], [[박상열]], [[박철순]], [[선우대영]], [[황태환]] ||
||<#ed1c24><width=10%> '''{{{#ffffff 포수}}}''' ||<width=10%> 4명 ||<width=80%> 정종현, [[김경문]], [[조범현]], 김진홍 ||
||<#ed1c24><width=10%> '''{{{#ffffff 내야수}}}''' ||<width=10%> 7명 ||<width=80%> [[구천서(야구)|구천서]], [[신경식(야구)|신경식]], [[김광수(1959)|김광수]], [[유지훤]], 박종호[* LG - 현대 - 삼성에서 뛰었던 [[박종호(1973)|박종호]]와는 다른 사람이다. 특이하게 지금의 고3 나이인 19세(1964년생)에 프로에 데뷔했으며, 82년 5경기만 뛰고 은퇴했다. 특이하게도 은퇴 후 음대에 진학하여 음악가로 전업했고 현재는 대전시립교향악단에서 더블베이스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http://dpo.artdj.kr/dpo/?a_idx=03_02_02&kf=sub&kw=&bo=dpo_danwon&p=2&ku=2836&mo=view|#]]], [[양세종(야구선수)|양세종]], 이근식 ||
||<#ed1c24><width=10%> '''{{{#ffffff 외야수}}}''' ||<width=10%> 7명 ||<width=80%> [[윤동균]], [[김유동]], [[이홍범]], 정혁진, '''[[김우열]]''', 구재서, 이근식 ||
=== [[삼성 라이온즈]] ===
||<-3><#007FFF><tablewidth=80%> '''{{{#ffffff 삼성 라이온즈 1982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fecd00><width=10%><:> '''{{{#007FFF 감독}}}''' ||<width=10%> 1명 ||<width=80%> [[서영무]] ||
||<#fecd00><width=10%> '''{{{#007FFF 코치}}}''' ||<width=10%> 2명 ||<width=80%> [[임신근]], [[우용득]] ||
||<#fecd00><width=10%> '''{{{#007FFF 투수}}}''' ||<width=10%> 7명 ||<width=80%> [[이선희(야구)|이선희]],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 [[황규봉]], [[성낙수]], [[박영진(야구선수)|박영진]], [[송진호]] ||
||<#fecd00><width=10%> '''{{{#007FFF 포수}}}''' ||<width=10%> 4명 ||<width=80%> [[이만수]], [[손상득]], [[박정환(1957)|박정환]], [[손상대(야구선수)|손상대]] ||
||<#fecd00><width=10%> '''{{{#007FFF 내야수}}}''' ||<width=10%> 6명 ||<width=80%> [[함학수]], '''[[배대웅]]''', [[김한근]], [[서정환]], [[오대석]], [[천보성]] ||
||<#fecd00><width=10%> '''{{{#007FFF 외야수}}}''' ||<width=10%> 6명 ||<width=80%> [[장태수(1957)|장태수]], [[허규옥]], [[정현발]], 정구왕, [[박찬(1955)|박찬]], 김휘욱 ||
== 경기결과 ==
=== 1차전 ===
||<-21><:><#ffffff> {{{#000000 '''한국시리즈 1차전 10.05(화) 18:30,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000000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R''' ||<:> '''H''' ||<:> '''E''' ||<:> '''B''' ||
||<:><#007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 ||<:>0 ||<:> 0 ||<:> 0 ||<:> 0 ||<:> 0 ||<:> 2 ||<:> 0 ||<:> 0 ||<:> 1 ||<:> 0 ||<:> 0 ||<:> 0 ||<:> 0 ||<:> 0 ||<:> 0 ||<:><#dcdcdc> '''3''' ||
||<:><#131230> '''[[OB 베어스|{{{#ffffff OB}}}]]''' ||<:> [[강철원]] ||<:> 2 ||<:> 0 ||<:> 0 ||<:> 0 ||<:> 1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dcdcdc> '''3''' ||
||<-27><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KBS2|[[파일:KBS_1973_-_19840815[1].png|width=45]]2]] | 캐스터: 이장우 | 해설: 하일성''' ||
삼성이 권영호를 1차전 선발로 내세운 건 충분히 이해가 갈 만 했지만, 박철순의 허리부상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던 야구팬들로선 OB가 그 해 정규시즌 5승에 그친 [[언더핸드 스로]] 투수 [[강철원]][* 시즌 5승 투수라 해도, 당시 강철원은 어깨 부상으로 인해 전기리그를 날리고 후기리그 중반에 복귀하여 8경기 등판에 5승 무패, 평균자책 2.18로 제법 활약을 보였다. 그 해 후반기 박철순에게 어느 정도 휴식을 주고도 OB가 승승장구 한 것에는 강철원의 역할도 무시 못할 정도였으니, 그가 박철순의 대역으로 1차전 선발을 맡을 만한 이유는 있었던 것이다.]을 마운드에 올린 것은 도저히 납득이 불가능한 사실이었다. 당연히 선발의 무게감으로는 15승을 거둔 권영호가 앞섰지만 공도 둥글고 배트도 둥근 법, 예상을 깨고 먼저 앞서간 것은 OB였다. 1회 [[신경식(야구)|신경식]]과 [[김유동]]의 적시타로 먼저 2점을 선취했고, 5회에는 [[김우열]]의 적시타로 3:0으로 초반 기선을 제압한 것이다. 반대로 삼성 타선은 경기 중반까지 강철원의 주무기인 지저분한 구질과 정교한 로케이션에 헛방망이만 돌리며 5회까지 무안타의 빈공에 허덕였다.
그러나 삼성은 6회 [[함학수]]의 2점 홈런에 힘입어 3:2로 추격하더니, 9회초 2사 2루 상황에서 [[배대웅]]이 동점 2루타를 터뜨리며 기어이 동점을 만들었다. 9회까지 강철원을 끌고 가던 OB는 연장전에서 [[선우대영]]을 구원투수로 내세웠고, 삼성도 황규봉과 이선희를 모두 투입시키면서 15회를 꽉 채웠다. 강철원이 9이닝 3실점으로 예상 밖의 호투를 보였고 공격 자체도 12안타를 터뜨린 OB가 3안타에 그친 삼성보다 활발했지만 모두 산발로 그치는 바람에 점수와는 연을 맺지 못하며 결국 이날 승부는 3:3 무승부로 끝났다.
승패는 갈리지 않았지만, 사실상 패자는 OB였다. 다 잡았던 경기를 아깝게 날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패배감은 2차전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이 경기는 또한 [[KBO 리그]] 공식경기 첫 무승부이기도 하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에도 무승부 제도가 있었지만, 정규시즌 240경기들 중 실제로 무승부가 난 경기는 없었다. 정규시즌 경기 중에서 최초로 무승부가 난 경기는 [[1983년]] [[4월 3일]] 삼성과 해태의 광주 경기이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040300239101001&officeId=00023|1983년 4월 4일 경향신문 8면]]
=== 2차전 ===
||<-15><:><#007FFF> {{{#ffffff '''한국시리즈 2차전 10.06(수) 18:3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ffffff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131230> '''[[OB 베어스|{{{#ffffff OB}}}]]''' ||<:> [[계형철]] ||<:>0 ||<:> 0 ||<:> 0 ||<:> 0 ||<:> 0 ||<:> 0 ||<:> 0 ||<:> 0 ||<:> 0 ||<:><#dcdcdc> '''0''' ||
||<:><#007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이선희(야구)|이선희]] ||<:> 0 ||<:> 6 ||<:> 0 ||<:> 2 ||<:> 0 ||<:> 0 ||<:> 0 ||<:> 1 ||<:> - ||<:><#dcdcdc> '''9''' ||
중계방송사는 MBC TV.
OB는 선발 투수로 [[계형철]], 삼성은 [[이선희(야구)|이선희]]를 내세웠다.
승부는 비교적 쉽게 갈렸다. 2회말 삼성은 만루 찬스에서 김한근의 2타점 적시타를 신호로 타순이 한바퀴 돌며 대거 6점을 뽑으면서 일찌감치 승기를 가져왔다. 여기에 OB는 선발 계형철이 일찌감치 삼성 타선에 KO패 당하고 1회말 유지훤의 더블플레이가 인정되지 않은 것에 대한 심리적인 동요를 포함, 수비진의 잦은 실수가 겹치면서 자멸했다. 게다가 공격마저도 꼬일대로 꼬이며 이날 OB는 총 세 개의 병살타를 날렸고, 그 중에 구천서가 두 개를 치며 패배의 단초를 단단히 제공했다(...) 삼성은 이선희와 [[성낙수]]의 이어던지기로 OB의 타선을 단 5안타로 틀어 막으면서 가볍게 승리했다.
OB는 이날 경기에서도 진 것도 진 것이지만 한술 더떠 2차전에서 패한 후 다음 날이 이동일이라는 것을 빌미로 [[이광환]] 코치를 비롯해 [[김우열]], [[윤동균]], [[김유동]], [[계형철]], [[유지훤]], [[이홍범]], 황태환 등의 고참급 선수들이 대구의 숙소 부근에서 술자리를 갖고 실컷 마신 후 숙소인 수성관광호텔 지하 나이트클럽 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취객들(그것도 하필 대구에서 알아주는 [[조폭|주먹]]들)과 그만 시비가 붙으면서 [[경찰]]까지 출동하는 대 난투극이 벌어졌다(...). 시리즈 전적 1무 1패로 몰린 상황에서 [[이광환]] 코치가 [[김영덕]] 감독에게 정규시즌 중 하던 대로 선수들의 분위기를 살려 보겠다며 제안했고 "알았어, 마음대로 해 보라"는 김감독의 묵인 하에 구단 사무국장이던 이민우를 물주로 하여 고참들을 데리고 술판을 벌였는데 2차 장소인 나이트클럽에서 유지훤이 술김에 주먹들에게 시비를 건 것이 사단을 부른 것이었다... 그나마 언론인 출신이던 OB 박용민 단장[* 박단장은 [[언론통폐합]] 때 연합통신(현 [[연합뉴스]])에 흡수 통합된 '''합동통신''' 기자 출신이다.[[도쿄]] 특파원 재직 시절 [[일본 프로야구]]를 접하면서 [[네모토 리쿠오]] 등 일본 야구인과도 친분을 쌓았고, 덕분에 원년 6개구단 프런트 중 누구보다도 프로야구의 생리를 잘 아는 인물이었다.]이 이리저리 뛰면서 이 사태가 매스컴을 타지 않도록 무마시킨 덕분에 선수들이 시리즈 도중 쇠고랑을 차는 신세는 면했지만 그렇잖아도 흉흉하던 팀 분위기가 더욱 최악으로 치달았다.[* 사건을 수습한 후 박단장은 속으로 ''''네 이놈들 시리즈만 끝나봐라 전부 [[모가지]]다'''' 라고 이를 갈았지만 다행히(?) OB가 극적으로 우승하면서 없었던 일로 흐지부지 되었다고 한다.]
같은 날 [[무등 야구장|광주]]에서는 정규시즌 중 우천으로 연기되었던 [[롯데 자이언츠]]와 [[해태 타이거즈]]의 경기가 [[더블헤더]]로 열렸다. 1차전은 3:2, 2차전은 9:1로 모두 해태가 가져갔고 롯데와 해태는 원년 후기리그에서 18승 22패로 공동 4위를 기록하며 뒤늦게 그 해 정규시즌을 마감했다.
=== 3차전 ===
||<-15><:><#131230> {{{#ffffff '''한국시리즈 3차전 10.08(금) 18:30, [[동대문야구장|{{{#ffffff 동대문야구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007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 ||<:>0 ||<:> 0 ||<:> 0 ||<:> 1 ||<:> 0 ||<:> 0 ||<:> 0 ||<:> 2 ||<:> 0 ||<:><#dcdcdc> '''3''' ||
||<:><#131230> '''[[OB 베어스|{{{#ffffff OB}}}]]''' ||<:> [[선우대영]] ||<:> 0 ||<:> 0 ||<:> 1 ||<:> 0 ||<:> 2 ||<:> 1 ||<:> 1 ||<:> 0 ||<:> - ||<:><#dcdcdc> '''5''' ||
||<-27><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KBS2|[[파일:KBS_1973_-_19840815[1].png|width=45]]2]] | 캐스터: 이세진 | 해설: 하일성''' ||
3차전부터는 중립구장인 동대문에서 개최되었다.
그렇잖아도 안 좋은 선수단 사기가 패싸움 사태로 인해 아예 바닥을 파고 들어가며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던 OB는 이젠 시리즈 제패는 글렀고 최소 1승이라도 챙겨서 개망신은 피해보자는 각오로 3차전을 맞이했다. OB의 선발은 좌완 [[선우대영]], 삼성은 같은 좌완인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를 등판시켰다.
먼저 기선을 잡은 것은 OB였다. 정규시즌 주로 3, 4번을 맡다가 시리즈 들어 1번타자로 전진 배치된 팀의 리더 [[윤동균]]이 3회말 중월 2루타를 치며 출루했고 [[김광수(1959)|김광수]]가 범타에 그쳤지만 3번타자 [[김우열]]이 좌전 적시타로 윤동균을 홈으로 불러들이며 선취점을 뽑았다. 그러나 반격에 나선 삼성도 4회초 함학수의 1타점 우전 적시타로 다시 동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OB는 5회말 시리즈 내내 무안타의 슬럼프에 시달리던 [[유지훤]]이 처음으로 중견수 앞 안타를 뽑아냈고, 이어 윤동균의 좌월 2루타로 만든 무사 2, 3루의 찬스에서 김광수의 내야 땅볼 때 3루 주자 유지훤이 홈에서 횡사했지만 3번 [[김우열]]의 땅볼을 삼성의 유격수 [[오대석]]이 더듬는 사이에 윤동균이 홈을 밟으며 재역전에 성공했다. 후속타자인 4번 신경식은 외야 플라이에 그쳤지만 [[김유동]]이 좌전 적시타를 치면서 스코어는 3:1.
그리고 6회초 삼성이 1사 1, 3루의 절호의 찬스를 잡자 OB는 부상으로 등판이 불가능해보였던, 그리고 사실 불가능한 것이 맞았던 '''[[박철순]]을 마운드에 올렸다'''. 우레와 같은 관중들의 환호 속에 박철순은 벼락같은 견제구로 1루 주자 정현발을 잡아낸 후 천보성을 외야 뜬공으로 돌려세우며 이닝을 마감했다. 위기 뒤에 찬스라는 듯 OB는 6, 7회말에 윤동균과 구천서가 득점권 상황을 놓치지 않고 각각 1타점 적시타를 날리며 5:1로 달아났고, 8회 박철순이 이만수에게 우익선상 3루타, 함학수에게 희생플라이, 정현발에게 솔로 홈런을 맞았지만 더 이상의 실점 없이 5:3 승리를 이끌며 시리즈를 1승 1무 1패 동률로 맞췄다.
=== 4차전 ===
||<-15><:><#131230> {{{#ffffff '''한국시리즈 4차전 10.09(토) 18:30, [[동대문야구장|{{{#ffffff 동대문야구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131230> '''[[OB 베어스|{{{#ffffff OB}}}]]''' ||<:> [[강철원]] ||<:>0 ||<:> 0 ||<:> 0 ||<:> 1 ||<:> 1 ||<:> 0 ||<:> 5 ||<:> 0 ||<:> 0 ||<:><#dcdcdc> '''7''' ||
||<:><#007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이선희(야구)|이선희]] ||<:> 0 ||<:> 0 ||<:> 2 ||<:> 2 ||<:> 0 ||<:> 0 ||<:> 2 ||<:> 0 ||<:> 0 ||<:><#dcdcdc> '''6'''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MBC|[[파일:mbc1981.png|width=50]]]] | 캐스터: 김용 | 해설: 허구연''' ||
OB는 1차전에서 예상 밖의 역투를 보인 [[강철원]]이 선발로 나왔지만, 구질이 노출되었는지 1차전과 다른 양상으로 삼성은 초반 강철원을 흠씬 두들기면서 3회말 장태수가 2점 홈런을 쳤고, 4회에도 다시 2점을 뽑으면서 4회초 김우열이 솔로홈런, 5회초 정종현이 솔로홈런을 치며 만회한 OB에게 2:4로 앞서 나갔다. 그리고 6회부터 이선희 대신에 황규봉을 올리면서 승부를 결정지으려 했지만, 7회초에 사건이 터졌다. 흔히들 '''럭키 세븐'''이라고 하지만 그건 OB한테만 해당되는 얘기였고, 삼성에게는 악몽같은 7회였다.
7회초 OB의 선두타자는 6번 구천서. 하위 타선으로 내려가던 상황이라 황규봉은 가볍게 이닝을 마무리 지으려 했는데 구천서는 뜻밖에 좌중간 2루타를 뽑으며 찬스를 만들었다. 포수 정종현 대신 대타로 나온 작은 이근식은 내야플라이에 그쳤지만 이홍범이 볼넷을 골랐고 유지훤은 빚맞은 2루 땅볼로 주자들을 한 루씩 진루시키며 2사 2, 3루. 다음 타자는 시리즈 들어 최고의 타격감을 자랑하던 윤동균이었고, 황규봉은 그를 [[고의사구]]로 거르며 OB는 2사 만루의 기회를 잡았다.
여기서 김광수의 대타로 투입된 정혁진이 황규봉의 2구째를 잡아당겨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날렸고[* 타구가 우중간 깊숙한 곳에 떨어졌고 게다가 2사 상황이라 타격과 동시에 주자들이 일찌감치 스타트를 끊었음에도 타구 속도가 너무 빨라서 1루주자 윤동균이 3루에서 멈춰야 할 정도였다. 당시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고 [[이종남(기자)|이종남]] 기자는 "딱~(배트에 공 맞는 소리) 쿵~(펜스에 맞는 소리) 하는 간격이 불과 2초 남짓이었다" 라고 그렇게 빠른 타구는 평생 본 적이 없다며 저서인 '''이중노출'''에서 회고한 바 있다.] 주자 두 명이 홈을 밟으며 4:4 동점. 이어지는 2사 2, 3루 찬스에서 김우열이 포수와 투수 사이로 솟아오르는 평범한 내야 뜬공을 날리며 스리아웃 공수교대... 가 될 상황 이었으나, 콜 플레이 미숙으로 그만 [[히 드랍 더 볼|황규봉과 이만수가 충돌하면서 타구는 그라운드에 뚝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고]] 그 사이에 3루에 있던 윤동균이 홈을 밟으며 5:4로 전세를 뒤집었다.[* 이때 기록은 규칙상 실책이 아닌 '''충돌안타'''였지만 OB로선 그게 안타든 실책이든 중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역전 했으니까...] 그리고 시리즈 들어 공이 수박만하게 보이던 5번 김유동까지 김이 샌 황규봉을 상대로 2타점 중전 적시타를 [[뿜뿜]], 2사 후에 5점을 뽑는 빅 이닝을 만들며 순식간에 점수는 7:4로 벌어졌다.
반격에 나선 삼성도 7회말 무사 1, 2루 상황에서 구원 등판한 [[박철순]]을 상대로 2점을 뽑으며 7:6까지 바짝 따라 붙었지만, 결국 박철순은 김한근을 삼진으로 잡고 위기에서 벗어난 뒤 남은 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 막으며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이로서 OB는 시리즈 전적을 2승 1무 1패로 뒤집을 수 있었다.
=== 5차전 ===
||<-15><:><#131230> {{{#ffffff '''한국시리즈 5차전 10.10(일) 14:00, [[동대문야구장|{{{#ffffff 동대문야구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007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 ||<:>0 ||<:> 0 ||<:> 0 ||<:> 0 ||<:> 2 ||<:> 0 ||<:> 2 ||<:> 0 ||<:> 0 ||<:><#dcdcdc> '''4''' ||
||<:><#131230> '''[[OB 베어스|{{{#ffffff OB}}}]]''' ||<:> [[선우대영]] ||<:> 3 ||<:> 0 ||<:> 1 ||<:> 0 ||<:> 0 ||<:> 0 ||<:> 0 ||<:> 0 ||<:> 1X ||<:><#dcdcdc> '''5''' ||
중계방송사는 KBS 1TV.
삼성의 선발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는 초반 난조를 보이면서 1회 [[신경식(야구)|신경식]]에게 1타점 우월 2루타, [[김유동]]에게 좌월 2점 홈런을 맞으며 먼저 3점을 내줬고 3회말에는 [[김우열]]에게 좌월 솔로포를 허용하며 스코어는 4:0으로 벌어졌다. 하지만 삼성의 저력도 만만치 않았고, OB의 선발 [[선우대영]]을 상대로 5회초 [[오대석]]의 2점 홈런으로 추격을 개시하더니, 급기야 7회초에는 선우대영을 상대로 대타 [[박찬(1955)|박찬]]의 2점 홈런이 터지면서 동점을 만들었다. 삼성은 7회초에 바뀐 투수 황태환을 2사 만루까지 몰고 가면서 승부를 뒤집을 찬스를 잡았지만, [[손상득]]이 외야 플라이로 물러나면서 땅을 쳐야 했다.
이후 8회초~9회초에 삼성과 OB에게 연달아 찾아온 득점권 기회가 전부 불발되면서 1차전에 이어 또 다시 연장전 돌입의 기미가 보였지만, 승부의 여신은 OB의 손을 들어 주었다. 9회말 선두 타자로 나온 [[이홍범]]이 [[이선희(야구)|이선희]]를 상대로 중견수 앞 안타를 쳤고, 그 타구를 중견수 정구왕이 제대로 포구하지 못하는 실책을 틈타 2루까지 진출한 후 [[김경문]]이 희생번트로 이홍범을 3루로 밀어넣으며 1사 3루의 찬스를 잡았다. 그리고 후속 타자 [[유지훤]]이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끝내기 안타[* KBO 리그 사상 첫 포스트시즌 끝내기 기록이다. 덧붙이자면 사고뭉치 중 유일하게 시리즈 내내 이렇다 할 활약이 없던 [[이홍범]]은 이날 9회말 선두타자 출루에 끝내기 득점까지 올리면서 체면치레를 할 수 있었다...]를 치면서 5:4 승리를 거두었고, OB는 시리즈 전적 3승 1무 1패로 우승에 단 1승만을 남겨 놓게 되었다. 무엇보다 OB는 박철순을 쉬게 하고도 선우대영과 황태환 두 명 만으로 투수 전력을 아끼면서 승리를 따낸 것이 큰 소득이었다.
=== 6차전 ===
||<-15><:><#131230> {{{#ffffff '''한국시리즈 6차전 10.12(화) 18:30, [[동대문야구장|{{{#ffffff 동대문야구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131230> '''[[OB 베어스|{{{#ffffff OB}}}]]''' ||<:> [[박철순]] ||<:>0 ||<:> 1 ||<:> 1 ||<:> 0 ||<:> 1 ||<:> 0 ||<:> 0 ||<:> 0 ||<:> '''5''' ||<:><#dcdcdc> '''8''' ||
||<:><#007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이선희(야구)|이선희]] ||<:> 2 ||<:> 0 ||<:> 1 ||<:> 0 ||<:> 0 ||<:> 0 ||<:> 0 ||<:> 0 ||<:> 0 ||<:><#dcdcdc> '''3'''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MBC|[[파일:mbc1981.png|width=50]]]] | 캐스터: 임주완 | 해설: 허구연''' ||
하루를 쉬고 맞붙은 6차전. 벼랑 끝에 몰린 삼성은 난조를 보인 15승 투수 3인방 중 가장 믿을 수 있던 이선희를 다시 올렸다. 이틀 전 5차전에서 선발 권영호의 구원 투수로 5이닝을 던졌지만, 3차전 이후 OB 타선에 계속 털린 황규봉이나 권영호에 비하면 그나마 이선희의 컨디션이 가장 나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OB는 3, 4차전 연속으로 세이브를 올리고 이틀을 쉰 박철순을 마운드에 올리느냐, 아니면 하루 더 휴식을 주고 7차전에 승부를 거느냐 고민 끝에 [[김영덕]] 감독이 박철순에게 직접 "오늘 (6차전에)나갈래 하루 더 쉴래?"라고 물었는데 박철순은 망설임 없이 '''"마운드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제가 던지겠습니다. 지금 이게 어떤 기회인데 여기서 포기할 수 없습니다!"''' 라고 강한 의지를 내세웠다.
결국 승부를 결정짓기 위해 김영덕 감독은 박철순을 6차전 선발로 올리는 초 강수를 단행했고, 허리 상태가 최악에 달해 있던 박철순은 경기 시작 전 야구장 부근 주차장에 세워둔 [[밴]]에 들러 친분이 있던 의사의 도움으로 이른바 '''대포주사''' 라고 불리던 '''데포메드롤'''[* [[스테로이드]] 계열의 진통제. 효과는 강력하지만 부상 부위 주변의 근육 약화나 연골, 뼈가 손상되는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갖고 있다. [[KBO 리그|KBO]]에서는 2008년 도핑 테스트가 도입되면서 금지약물로 지정 되었다. 단 경기력 향상이나 근육 강화와는 관계가 없고 진통 효과가 뛰어난 약품이므로, 부상치료 목적으로 일정 기간 동안 투약한다는 전제로 전문의의 처방을 받아서 KBO 반도핑 위원회에 치료목적 사용면책(TUE)를 신청하여 심사 후 통과되면 사용 가능하다고 한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7&aid=0002658228|근거 기사]]] 주사를 맞고 간신히 등판할 수 있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로는 3, 4차전 때도 이 주사를 맞고 마운드에 올랐다고 한다.]
양 팀 선발의 초반 컨디션 난조를 틈타 삼성과 OB는 점수를 냈다. 삼성이 1회말 [[이만수]]가 중견수 키를 넘기는 2타점 2루타로 선취점을 뽑자, OB는 2회초 [[김유동]]의 솔로홈런과 3회초 김우열의 중전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었다. 다시 3회 삼성이 이만수의 좌전 적시타로 2:3 재역전 했지만, OB는 5회초 2사 후 김유동의 1타점 중전 적시타로 다시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8회말까지 더 이상 점수가 나지 않으며 팽팽한 승부가 이어졌다.
운명의 9회초. 8번 김경문이 3루 앞 기습번트 안타로 출루한 OB는 9번 유지훤이 희생번트를 시도했으나 3루수 파울플라이로 잡히며 1사 1루가 되었지만, 윤동균의 중전 안타와 김광수의 몸에 맞는 공으로 풀 베이스의 찬스를 잡았다. 위기에 몰린 이선희는 3번 김우열을 유격수 플라이로 잡으면서 큰 산을 넘기는가 싶었지만, 4번 신경식을 상대로 그만 볼넷을 내주며 4:3 역전을 허용했다. 이대로 끝났다면 한국 프로야구의 초대 우승팀이 밀어내기 볼넷으로 결정 되었을 상황이었지만, 곧이어 이 볼넷을 팬들의 뇌리에서 금새 사라지게 만든 명장면이 펼쳐졌다.
'''다음 타석에 들어온 5번 [[김유동]]이 전 타석의 볼넷을 의식한 이선희의 한복판 초구를 놓치지 않고 끌어당겨 좌측 외야석 중단에 떨어지는 [[만루홈런]]을 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김유동이 역전 만루홈런을 쳤다고 착각하게 만들 정도의 인상적인 쐐기 홈런이었다. 이 홈런 한 방으로 승부는 순식간에 8:3으로 벌어졌고, ~~그리고 이선희는 덕아웃 근처에 쪼그려 앉아 눈물을 쏟았다~~ 9회까지 역투한 박철순이 3실점 완투승으로 경기를 끝내면서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초대 우승은 OB 베어스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6차전까지 25타수 10안타(0.400) 3홈런 11타점[* 그 중 6차전에서만 무려 2홈런 6타점을 쓸어담았다.]을 기록한 김유동은 초대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며 부상으로 [[새한 맵시|승용차]]까지 받는 경사를 누렸다.
== 후일담 ==
* 2차전 종료 후 술자리에서의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광환]] 코치는 사직서를 품은 채 경기에 임했다고 한다. 재밌는 사실은 2차전 이후 서울로 올라와 [[강남역]] 뉴욕제과 뒷편의 호프집에서 이광환을 포함하여 사고를 친 멤버들 끼리 또 술잔을 기울이며[* 이 술자리는 대구에서의 사고 당시 물주로 나섰다가 된통 혼쭐이 난 이민우 구단 사무국장에게 또 부탁할 상황이 못 되었고, 대신 구경백 주무가 술값을 염출했다고 한다.] '''"우리 때문에 이 코치님 [[모가지]]가 날아가게 생겼다.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정신 차려서 내일부터는 꼭 이기자"''' 면서 3차전의 승리를 다짐했었는데,[* 이 때 [[윤동균]]이 주먹을 들어보이며 '''"여기서 안타 못치는 녀석들은 나한테 혼쭐날줄 알라"'''며 한마디 거들었고, 당시 시리즈에서 무안타로 헤메던 [[유지훤]]과 [[이홍범]]은 이 한마디에 뜨끔했다고 한다(...). 결국 이 두 명도 나중에 나름 한몫 해내기는 했다.] 그 뒤로 계속 승리를 이어가자 그 때 술을 마셨던 주점에서 경기 후 그 멤버끼리 뭉쳐 밤새 부어라 마셔라 하는 것이 일종의 [[징크스]]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OB는 거짓말 같이 내리 4연승을 거두었고''', 이광환은 우승이 확정되자마자 바로 사직서를 찢어버렸다. 또한 사고를 쳤던 선수들은 6차전 종료 후 그라운드에서 우승을 자축하면서 ~~자신들을 자르려 했던~~ 박용민 단장에게 집중적으로 [[맥주]]를 퍼부었다고...
* 사실 프로 초창기 대다수의 선수들이 밤 새워 죽어라 퍼마신 뒤 다음 날 경기에 술냄새 풀풀 풍기며 출장하는 일은 비일비재 했고,[* 이런 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원년 시즌은 지금처럼 월요일을 이동일로 하고 일주일 내내 3연전으로 경기를 치루는 것이 아니라 우천 등 변수가 아니면 2연전을 뛴 후 하루나 이틀 정도 휴식일을 가지는 시스템인지라 경기 후 부담없이 술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물론 다음 날 경기가 있다고 해서 음주를 피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고 봐도 좋다(...).] 그것이 [[나름]]대로의 자기관리 방법 중 하나였다. 더구나 프로 원년 구단 중 OB만 유일하게 메리트 시스템을 실시하여 선수들 주머니는 항상 넉넉했고[* 경기 후 사무국장이 덕아웃으로 현금을 꽉 채운 [[007 가방]]을 들고와서 바로 수훈 선수들에게 공헌도에 따라 5만~20만원 정도의 포상금을 줬다고 한다. 당시 저연봉 선수들이 몇 경기 공을 세우면 그 포상금이 한 달치 급여를 웃도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그러다 보니 경기 후 항상 가는 곳은 술집. 한술 더 떠 [[윤동균]], [[김우열]] 등 술 좋아하는 팀 내 고참급 선수들이 "코치님 요새 방망이가 잘 안맞는데 오늘 한잔 하시죠?" 라며 [[이광환]] 코치[* 말이 코치지 실상 이광환은 윤동균, 김우열보다 한 살 연상일 뿐이라 사석에선 친구나 다름없는 형동생 관계였다.]에게 [[뽐뿌]]질을 넣으면 이 코치는 흔쾌히 허락하면서 거의 매일 선수들 술자리에 동반하며 [[쉴드]]를 쳐주었다. 더군다나 OB 베어스의 모기업은 주류제조 업체인 [[OB맥주|동양맥주]]였기 때문에 음주에 대해 제법 관대한 편이기는 했다. 그래서 당시 OB만큼 술꾼들이 뛰기 좋은 구단은 없었다 봐도 좋을 듯.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김유동은 외상 술값이 많이 깔린 게 원인이 돼 구단과 마찰을 빚었고 다음 시즌 도중 방출되고 말았다.
* '''넉제비''' 라는 별명답게 넉살과 입담이 좋았던 [[김유동]]은 시리즈 MVP로 뽑힌 후 인터뷰에서 "경기 전 낮잠을 자다 꿈을 꿨는데 '''친구 네 명과 같이 상가집에서 절을 두 번 하는''' 꿈이었다. 오늘 만루홈런의 예고편 이었나 보다" 라고 털어놓았다.[* 절 두 번은 김유동이 6차전에서 날린 [[홈런]] 두 방, 친구 네 명은 만루홈런의 예지몽이었다는 해설을 덧붙였다.]
* OB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짓는 타구는 유격수 땅볼이었다. 2사 후 [[배대웅]]이 [[박철순]]의 초구를 휘두른 것이 마운드 앞에서 크게 튀기며 박철순의 키를 넘겼고, 유격수 [[유지훤]]이 타구를 날렵한 대시로 잡아서 아웃시킨 후 박철순이 마운드 위에서 무릎을 꿇은 채 선수들과 포옹하며 환호하던 것이 프로야구 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인데, 사실 이 때 박철순은 그렇지 않아도 세 번이나 진통제를 맞으며 무리하던 허리에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배대웅의 바운드를 처리하려 점프하다가 그만 엉덩방아를 찧으며 허리에 막심한 충격이 간 것이다. 박철순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이 때 충격은 설령 허리가 멀쩡했더라도 크게 다쳤을 정도였다고... 이후 박철순은 척추 헤르니아 진단을 받고 길고 긴 어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 사실 두 팀 모두 프로라기보다는 아마추어 결승전에 가까운 투수 운용을 보여줬다. 이 때의 후유증으로 인해 [[박철순]]을 비롯해 삼성도 이선희와 황규봉이 선수 경력에 치명상을 입고 만다. 특히 박철순과 이선희는 이 때 이후로 두 번 다시 두 자리수 승수를 거두지 못했으며, 그래도 황규봉은 1984년과 1985년 2시즌 연속 두 자리수 승수를 거두며 재기에 성공, 나름 활약을 보였다. 그리고 이선희의 비극에 가려져서 그렇지, 1, 3, 5차전 선발로 나온 권영호 또한 그해 15승을 거둔 거물투수 라고 하기엔 너무나 부진한 모습이었다. 그나마 권영호는 당시 삼성 에이스 3인방 중 덜 혹사당한 편 이었고, 이후 [[1980년대]] 후반까지 삼성의 구원투수로 맹활약하였다.
* 프로출범 직전 잘해야 3~4위권 전력으로 예상되던 OB의 전기리그 우승이 말 그대로 이변이었다면, 국가대표 출신 선수 최다 보유라는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삼성의 후기 우승은 당연하다는 평가였다. 더구나 OB는 박철순이 허리 고장으로 등판이 어려운 상황이었고 ~~결국 나왔지만~~ 일찌감치 승리감에 도취된 삼성의 일부 선수들은 시리즈 도중 임에도 음주가무에 [[포커]]판을 즐기다가 결국 --그냥 술만 퍼마신(...)-- OB에 불의의 일격을 당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2015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33년 뒤의 예고편?]]--
* OB 베어스는 1982년 당시엔 연고지가 대전/충청권이었다. 이후 1986년에 창단한 [[빙그레 이글스]]가 대전/충청권 연고지를 이어받았고, 대전/충청권 연고팀이 [[1999년 한국시리즈|다시 우승하기까지 17년이 걸렸다.]]
* 당시 [[동아일보]] 기사에서 '비행접시처럼 날아간 김유동 만루홈런'이란 헤드라인이 실렸는데, 한국시리즈 6차전이 열린 날 새벽에 전국적으로 UFO 목격 소동이 벌어져서 뉴스와 신문 등에 제법 크게 이슈가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시리즈 준우승 후 이틀이 지난 10월 14일, 전기리그 중 개최되지 못한 [[MBC 청룡]]과의 원정 잔여 1경기를 [[동대문야구장]] 에서 치루어야 했다. 경기 내내 무득점으로 일관하던 삼성이 8회초에 1득점으로 앞서 갔지만, 9회말에 MBC가 '''대타 끝내기 투런 홈런'''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말하자면 '''[[KBO 슈퍼 한국시리즈|슈퍼 한국시리즈]]의 원조격 경기 되겠다(...).'''
* 한국시리즈 이후 삼성 측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마이너리그 혼성팀을 초청해 초대팀인 삼성 라이온즈와 우승팀 OB 베어스, 그리고 한국 올스타팀 등과 잠실에서 친선 경기를 가졌다. 이때 [[행크 애런]]도 내한했다.
== [[우승반지]] ==
[[파일:1982한국시리즈.png]]
1982년 당시에는 우승반지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이 때 우승한 사람들은 우승반지를 받지 못했는데, 두산 베어스가 한국 프로야구 출범 30주년을 기념하며 2011년에 1982년 우승반지를 제작했다. 우승 당시 코칭스탭이거나 선수였다면 현재 소속 팀을 막론하고 모두 수여했는데, 대표적인 예로 2011년 기준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 감독으로 있던 [[김성근]], [[조범현]], [[김경문]][* 1982년 당시 김성근은 코치로, 조범현과 김경문은 포수로 활약]에게도 반지가 수여되었다.
== 관련 문서 ==
* [[OB 베어스]]
* [[삼성 라이온즈/1982년]]
* [[싸대기 매치]]
== 둘러보기 ==
[include(틀:한국프로야구 역대 포스트시즌 목록)]
[[분류:KBO 한국시리즈]][[분류:두산 베어스]][[분류:삼성 라이온즈]] |
1983년 | ||<-13><tablealign=center><bgcolor=#a9a9a9> {{{#000000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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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align=right><bgcolor=#CBB8EE> '''세계 각 지역의 표기''' ||
|| [[서력기원|서기]] || 1983년 ||
|| [[대한민국 연호|대한민국]] || 65년 ||
|| [[단군기원|단기]] || 4316년 ||
|| [[불멸기원|불기]] || 2527년 ||
|| [[이슬람력]] || 1404년 ~ 1405년 ||
|| [[갑자|간지]] || [[임술]]년 ~ [[계해]]년 ||
|| [[주체사상|주체]] || 72년 ||
|| [[중화민국|민국]] || 72년 ||
|| [[일본]] || [[쇼와]] 58년 ||
|| [[히브리력]] || 5744년 ~ 5745년 ||
[목차]
== 개요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122700329209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3-12-27&officeId=00032&pageNo=9&printNo=11769&publishType=00020|경향신문 1983년 12월 27일자에 실린 국내외 주요 사건사고 일지]]
[[토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으로, 이 해에는 [[소련]]에 의한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과 [[북한]]에 의한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가 발생하자, 이에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퍼싱-II 미사일을 서독에 배치하는 등의 보복을 단행함으로써 제3차 세계대전의 문턱까지 가기도 했다. 또 세계를 멸망시킬 [[우발적 핵전쟁]]의 가능성이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또 한 번 세계를 스쳐 지나갔다.]]
KBS1에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처음으로 전파를 타 삼천리 방방곡곡에 눈물과 감동으로 만들어놓았던 시기였다. 그 당시 서울 여의도 KBS 사옥 벽면을 보면 온통 이산가족을 찾고 있다는 메모들이 붙어있었는데 KBS 역사에 있어서도 기억에 남게 되는 부분으로 회자되고 있다. 더군다나 그해 12월 21일에 전두환 정권이 '학원자율화조치'를 마련해 해직 교수들과 제적 학생들이 복권되어 '유화 국면'이 형성되었다. 이로 인해 주춤하던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 다음 해부터 다시 고개를 들게 되었다. 경제계에선 신흥 기업집단 [[명성그룹]]이 불법대출 사건으로 해체됐고, 영동개발진흥도 어음 부정보증으로 무너져 이슈가 되었다.
한국 만화계 역시 1983년은 가장 의미깊은 해이기도 한데, 만화잡지 <보물섬>에 훗날 국민캐릭터로 자리매김할 김수정 화백 작품 <[[아기공룡 둘리]]>가 첫선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현세 화백도 같은 해에 불후의 명작 <공포의 외인구단>을 출시해 만화방 이용객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다.
인천직할시는 개항 100주년을 성대하게 맞이했고, 유엔에서는 이 해를 '세계 커뮤니케이션의 해'로 지정했다.
1원, 5원, 10원, 50원, 100원 주화의 디자인들이 모두 500원 주화 디자인으로 변경/통일 되었다. 이후 [[2019년]] 현재까지도 이 모습의 동전들을 사용하고 있다.[* 10원은 [[2006년]]도에 동전 성분이 변경되어 크기도 1원짜리처럼 된, 완전 다른 동전이 되었다. 하지만 동전 디자인은 그대로이긴 하다.]
== 사건 ==
=== 실제 ===
==== 1월 ====
* [[1월 1일]]
* 전두환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우리의 국운과 저력에 대하여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때가 되었다"고 밝혔다.
* 공직자윤리법이 시행되었다.
* 외무부는 50세 이상 국민들에게도 해외여행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 [[1월 2일]]: 프로권투선수 백인철이 OPBF 주니어미들급 4차 방어전에서 필리핀의 로미 안젤리스를 상대로 24회 연속 KO승을 기록하였다.
* [[1월 5일]]
* 한일 양국 외무장관들은 나카소네 일본 총리 방한을 동시 발표하였다.
* 재무부는 1982년 12월 30일부로 한국 정부가 아프리카개발은행에 가입했다고 발표하였다.
* 상공부는 한국형 컴퓨터 개발/공급을 확정하였다.
* [[소련]] 정부는 핵추진첩보위성 '코스모스 1402호'가 고장으로 지구에 추락중이라고 밝혔다.
* [[1월 6일]]
* 전 민주당 당수 박순천 여사가 세상을 떴다.
* 원로 역사학자 하성 이선근 박사가 세상을 떴다.
* [[1월 11일]]: 나카소네 일본 총리가 한국을 방문하였다.
* [[1월 14일]]: 통계청은 1980년 기준 인구 및 주택 센서스 조사결과 국내 인구수는 3743만 6315명, 가구 796만 9201가구, 인구밀도는 세계 3위인 385명/km²라고 밝혔다.
* [[1월 13일]]
* 청와대 대변인은 한일정상 2차회담에서 40억불 규모의 한일경협 타결 등 12개항 공동성명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 나카소네 일본 총리는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을 지지하며 방한이 매우 유익했다고 밝혔다.
* [[1월 17일]]
* 유치송 민한당 총재는 창당 2주년 기념식사에서 정부 여당에 국회법 및 지방자치법 개정을 촉구하였다.
* 보사부는 1980년부터 지속해 온 남미지역 농업이주사업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 레이건-나카소네 미일 양국 정상이 정상회담에서 미-일 동맹관계를 재확인하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상호 노력하기로 했다.
* [[1월 18일]]
* 전두환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치피규제자 단계적 해금 및 남북정상회담 제안 등을 밝혔다.
* 정부는 정책자문위원회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 문교부는 국/중/고 학생체력검사 종목에 오래달리기, 윗몸일으키기를 추가하였다.
* 북한측은 남북한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개최 제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1월 19일]]: 원풍모방 노조원들은 [[인명진]] 목사의 정리 요청에 따라 그동안 농성하던 산업선교회관에서 해산을 결의했다.
* [[1월 20일]]: 에드워드 메이어 [[미 육군]] 참모총장이 한국을 방문하여, 북한이 남침할 시 [[미군]]이 핵무기를 쓸 것을 언급했다.
* [[1월 21일]]: 전두환 대통령은 나카소네 일본 총리와 국제통화로 방미 결과를 청취하였다.
* [[1월 24일]]
* [[문교부]]는 외국 박사학위를 조회하기로 결정하였다.
* 일본 방위청은 유사시 대한해협을 봉쇄하겠다고 밝혔다.
* [[1월 26일]]
* OB베어스가 KBO 6개 구단 중 최초로 실내연습장 및 잔디구장을 완공하였다.
* [[로널드 레이건|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연두 교서에서 세계경제 회복과 자유무역을 촉구했다.
* [[1월 29일]]
* 민정당 등 여야 3당이 북한의 '정당/사회단체 연합성명'에 반박성명을 냈다.
* 미-일 양국은 일본 사세보항을 동해/태평양 대소전략전진기지로 삼기로 합의하였다.
==== 2월 ====
* [[2월 1일]]
* [[팀 스피릿]] '83 한미합동훈련이 개시되었다.
* 손재식 국토통일장관은 남북 당국과 정당, 사회단체 대표회의 개최를 제의할 것을 담은 대북성명을 발표했다.
* 북한측은 팀 스피릿 '83 훈련에 대응해 '준전시상태'로 돌입했다.
* [[2월 2일]]: 문교부는 국교 4~6학년 개편교과서를 신학기부터 공급하기로 결정하였다.
* [[2월 3일]]
* 민정당은 부가가치세법 등 4개 세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 국민당은 전당대회에서 김종철 총재를 재선임하였다.
* 법무부는 개방교도소 및 여자교도소를 설립키로 결정하였다.
* [[2월 4일]]
* 미국 잡지 <카운터 스파이>와 <멀티내셔널 가이드>는 한국 원전의 안전도 결함을 보도하였다.
* 미국 정부가 만든 2억 3천 2백 70만 달러의 한국군 군사지원을 포함한 92억 달러 규모의 '1984 회계연도 대외 군사원조 예산안'이 의회에 제출되었다.
* 나카소네 일본 총리는 일본측의 대한해협 방위는 당연하며 유사시 한국 정부에 통고한다고 밝혔다.
* [[2월 5일]]: 일본 TV아사히에서 [[과학전대 다이나맨]]이 첫 전파를 탔다.
* [[2월 6일]]
* 정부는 고급휘발유 값 1,060원을 890원으로, 일반휘발유 값 740원을 660원으로, 등유값 292원을 297원으로, 경유값을 278원에서 283원 등으로 석유값을 조정해냈다.
* 슐츠 미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 [[2월 8일]]: 슐츠 미국 국무장관은 이한 기자회견에서 방한 중 한국측과 남북한 교차승인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 [[2월 9일]]
* '밀알중앙회'가 발족되었다.
* '한국광고단체연합회'가 설립되었다.
* [[2월 15일]]: 문공부는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청 이전공사를 비롯해 독립기념관, 예술의전당, 국악당, 국립현대미술관 등을 연내에 착공한다고 밝혔다.
* [[2월 16일]]: 정부는 서울 일부지역 민간아파트 채권입찰제 실시 등을 골자로 한 '부동산 투기억제'를 확정 발표하였다.
* [[2월 18일]]
* 국세청은 서울 개포 등 36개 지역을 부동산 투기억제 특정지역으로 고시하였다.
* 베이루트 주재 한국대사관 직원 3명이 레바논 사태로 철수했다.
* [[2월 19일]]: 농수산부는 전국에 225개 복합영농시범단지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 [[2월 21일]]: 공진청은 '소비자피해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하였다.
* [[2월 22일]]: 재무부는 [[조흥은행]] 민영화를 위해 정부 소유주식 2,040만 3천주를 공개입찰/매각시켰다.
* [[2월 23일]]: 서울대 규장각은 독도를 한국령으로 표기한 일본 해군성 수로국판 지도 원본을 발견/공개하였다.
* [[2월 24일]]: 서울올림픽조직위는 올림픽 공식 마스코트를 '호랑이'로 확정하였다.
* [[2월 25일]]
* 전두환 대통령은 정치활동 피규제자 555명 중 250명을 1차로 해금시켰다.
* 국방부는 [[북한 공군]] 파일럿 [[이웅평]] 상위가 [[MiG-19]]기를 몰고 [[탈북|남한으로 귀순했다고 밝혔다.]]
* [[2월 26일]]: KBS2에서 <사랑방중계>가 첫 전파를 탔다.
* [[2월 27일]]: 귀순 파일럿 이웅평은 기자회견에서 "전쟁준비에 광분 중인 북한의 실상을 알리러 왔다"고 밝혔다.
* [[2월 28일]]
* 체육-문교부는 국중고 체력검사 불참학생에 0점 처리한다고 밝혔다.
* 노동부는 '체불임금 조기청산 지도지침'을 마련하였다.
==== 3월 ====
* [[3월 1일]]: 한-중 양국 방송사들이 아시아방송연맹(ABU) 결의에 따라 TV뉴스를 처음으로 교환하였다.
* [[3월 2일]]: 전국 각 중고등학교들이 중고생 교복자율화를 실시하였다.
* [[3월 3일]]: 건설부는 수도권 인구와 산업의 적정배치를 유도키 위해 1984년 7월부터 '인구영향평가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 [[3월 5일]]: 서울지역 13번째 고등학교 [[선덕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
* [[3월 8일]]
* 대법원은 부미방 사건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주도자인 김현장과 문부식에게 사형을, 최기식 신부 등 관련자들에게 유죄를 확정하였다.
* 대법원은 이철희와 장영자에게 징역 15년을 확정지었다.
*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소련을 [[악의 축|악의 제국]]으로 지칭했다. 점점 악화되던 양국관계와 냉전의 현황을 보여주는 예였다.
* [[3월 14일]]: 국제통화기금은 한국 정부에 신중한 외채관리를 건의하였다.
* [[3월 15일]]
* 한국 정부가 세계에서 123번째로 UN 해양법협력에 서명하였다.
* 전두환 대통령이 문부식과 김현장의 형량을 무기로 특별감형시켰다.
* [[3월 16일]]: 국내 최초의 한-미 합작은행 '[[한미은행]]'이 영업을 시작하였다.
* [[3월 17일]]
* 서울시는 민간아파트 실제 분양방법을 '채권입찰제'로 확정하였다.
* 서울 천호동 강동캬바레 화장실에서 종업원이 요구르트병에 담긴 독극물을 마시고 사망했다.
* 재일 프로바둑기사 조치훈 명인이 기성전 결승에서 후지사와 슈코 기성을 꺾어 타이틀을 두 번째로 석권하였다.
* [[3월 18일]]: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이하 기농)'가 창립되었다.
* [[3월 20일]]: 록그룹 '송골매' 멤버 배철수가 KBS1 <젊음의 행진> 생방송 도중 감전당해 실신했다.
* [[3월 21일]]
* 전두환 대통령은 민정당 대표위원직에 [[진의종]]을 임명하였다.
* 헤임인터내셔날이 상호명을 '웅진출판'으로 개칭하였다.
* [[3월 24일]]: 밍키모모가 <요술공주 밍키>란 제목으로 KBS2에서 더빙 방영되었다.
* [[3월 25일]]
* 한일합섬 이사 김근조가 치안본부 특수수사대 신길동 분실에서 조사 도중 고문으로 숨졌다.(한일합섬 이사 고문치사사건)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전략 미사일 방어체계([[SDI]])의 개발을 지시했다.
* [[3월 26일]]: 프로권투선수 장정구가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WBC 라이트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파나마의 일라리오 사파타를 꺾어 승리를 거머쥐었다.
* [[3월 27일]]: 경찰은 김근조 한일합섬 이사를 고문치사한 치안본부 특수수사대 수사관 김만희 경위를 구속하였다.
* [[3월 30일]]: 북한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이 일본을 방문했다.
* [[3월 31일]]
*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경제협의회가 이틀간 열렸다.
* MBC에서 [[조선왕조 오백년]] 제1부 <추동궁 마마>가 첫 전파를 탔다.
==== 4월 ====
* [[4월 1일]]
* [[손재식]] 국토통일장관은 남북한 당국 및 정당/사회단체 대표회담 및 예비회담 개최를 재촉구하였다.
* 문교부는 국/중/고 전산교육을 강화키 위해 교육과정 및 교과서 개편을 결정하였다.
* 주택은행이 '올림픽복권' 발매를 개시하였다.
* [[청주문화방송]]에서 TV가 개국했다.
* [[4월 2일]]
* 국방과학연구소가 국내 최초 잠수정 '돌고래' 진수식을 개최하였다.
* KBS2에서 <[[유머 1번지]]>가 첫 전파를 탔다.
* [[4월 3일]]: 주간소년점프 애니 <근육맨>이 일본 니혼TV에서 첫 전파를 탔다.
* [[4월 4일]]
* 건설부는 북한산-도봉산 일원 78.5km²를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다.
* 미국 NASA의 두번째 우주왕복선 챌린저가 첫 발사를 하였다
* [[4월 5일]]: 대검은 기업의 토지 재매입 수사에 착수하였다.
* [[4월 6일]]: 제15회 한일 민간합동 경제회의가 열렸다.
* [[4월 7일]]
* 내무부는 한일합섬 이사 고문치사사건과 관련해 안응모 치안본부장을 경질하고 이해구 서울시경국장을 본부장직에 앉혔다.
* 중공 정부는 테니스선수 후나의 미국망명 허용에 대한 보복으로 대미문화/스포츠 교류 중단을 선언하였다.
* [[4월 9일]]
* 문공부는 과천 남서울대공원 '국립현대미술관' 건립계획을 발표하였다.
* 문교부는 대학 여름학기 신설을 허용하였다.
* [[4월 11일]]: 서울시는 강서구 신정동 일대에 450m² 택지개발을 결정하였다.
* [[4월 12일]]: 카피차 소련 외무차관이 일-소 실무자회의에서 소련이 남북한 교차승인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 [[4월 13일]]
* 현대그룹이 전자산업 투자계획을 상공부에 제출하였다.
* 북한 대동강 봉화갑문이 준공되었다.
* [[4월 14일]]
* 무기 구형을 받은 조세형이 서울형사지법 구치감에서 탈출했다.
* 핀란드 정부는 북한 대사에 추방령을 내렸다.
*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가 개막되었다.
*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안보협의회의가 열렸다.
* [[4월 15일]]: 일본 오리엔탈랜드 사가 지바현 우라야스시에 '[[도쿄 디즈니랜드]]'를 개설하였다.
* [[4월 16일]]: '한국영화제작자협동조합'이 창립되었다.
* [[4월 17일]]: 씨름선수 이만기가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 결승전에서 최욱진을 꺾어 우승을 차지하였다.
* [[4월 18일]]
* 대구 향촌동 디스코텍 '초원의 집'에서 큰불이 나 10대 청소년 25명이 죽고 67명이 부상을 입었다.
* 레바논 베이루트 주재 미국 대사관 건물이 테러조직 [[헤즈볼라]]의 자살 차량폭탄 테러로 63명이 죽고 130명이 다쳤다.
* [[4월 19일]]
* 탈주범 [[조세형(범죄자)|조세형]]이 닷새 만에 경찰에 검거되었다.
* 문공부는 공산권 순수음악 음반수입 및 국내 라이선스 판매를 허용한다고 밝혔다.
* 동자부는 유류제품 가격을 평균 4.76%로 내린다고 밝혔다.
* 국제문화예술협회 한국위원회가 설립되었다.
* [[4월 20일]]: 문공부는 '공산권 순수음악 음반수입허용기준'을 마련하였다.
* [[4월 21일]]
* 문교부는 대구 디스코클럽 화재사건을 계기로 전국 시/도 교육청에 교외생활지도 강화를 지시하였다.
* 한국여성개발원이 설립되었다.
* [[4월 22일]]
*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은 유흥업소 영업시간 자정 제한 등 '청소년 유흥업소 출입억제 종합대책'을 마련하였다.
* 법무부는 조세형 탈옥사건을 계기로 교정업무 쇄신책을 마련하였다.
* 월성원전 2호기가 준공되었다.
* [[4월 23일]]
* 상공부는 미수출 외국상표 사용 금지를 결정하였다.
* 낙동강 하구언 공사가 착공되었다.
* [[4월 25일]]
* 대한교련은 '교권보호법' 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 최무장 건대 교수가 고구려 시기 만주 집안현 장천2호 벽화를 중공측 문헌 입수로 첫 공개하였다.
* [[4월 26일]]
* 정부는 청소년 선도를 위한 중점대책을 마련하였다.
* 문교부는 상고를 뺀 전국 실업계 고교 무시험 추천선발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 [[4월 27일]]: 부산~시모노세키 간 페리관광호가 처음으로 취항하였다.
* [[4월 30일]]: 정부는 '지방문화 육성방안'을 마련하였다.
==== 5월 ====
* [[5월 1일]]
* 치안본부는 전국 경찰국에 '범죄소탕령'을 지시하였다.
* 한-미 당국은 적정 시기까지 남북한 교차승인을 않겠다고 합의했다.
* [[5월 2일]]
* 문교부는 성교육 교재를 국/중/고 교사들에게 보급하였다.
* 미국 <워싱턴포스트> 지는 미군이 한국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하고 휴전선에 핵지뢰를 설치했다는 주장을 보도하였다.
* [[5월 3일]]: 문공부는 불교 및 향교단체 감독강화를 위해 '불교재산관리법' 및 '향교재산관리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 [[5월 4일]]: 이란 정부는 친소 공산정당 '투데당'을 해체시키고 소련 외교관 18명을 추방시켰다.
* [[5월 5일]]
* 중공 중국민항 여객기가 탁상인 등 6명에 의해 납치되어 강원도 춘천 모 공군비행장에 불시착했다.([[중공 여객기 불시착 사건]])
* 민방위본부는 오후 2시 3분부터 중공 민항기 불시착과 관련해 수도권지역에 공중경계경보를 발령했다가 4분만에 해제했다.
* 이스턴 항공 855편 L1011-385-1 트라이스타기가 바하마 도착 도중 악천후로 인한 엔진 고장으로 해상추락 위기에 처했으나, 다행히 파일럿들이 엔진 시동을 성공해내 추락을 모면했다.([[이스턴 항공 855편 사고]])
* [[5월 6일]]
* 재무부는 '금융감독위원회'를 설치해 은감원을 한은으로부터 분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 서독 주간지 <슈테른>이 [[히틀러]]의 미발견 일기를 전격 출간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 [[5월 7일]]
* 국방부는 북한군 신중철 대위가 DMZ를 넘어 귀순했다고 밝혔다.
* 중공측 송환협상대표단 33명과 한국 정부가 처음으로 직접 협상을 벌였다.
* [[5월 8일]]
* 프로축구리그 '슈퍼리그' 개막전이 서울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 한-중 양국이 여객기 납치범 6인을 제외한 승객 및 기체 조기송환에 합의하였다.
* [[5월 9일]]: 정부는 1983년부터 외국상표 도입을 자유화한다고 결정하였다.
* [[5월 10일]]: 피랍기 탑승 중공인 승객 및 승무원 95명이 중공측 교섭대표단 22명과 함께 출국하였다.
* [[5월 11일]]: 문교부는 중/고교 영어듣기평가 방송을 처음으로 실시하였다.
* [[5월 12일]]: 일본 토요타자동차가 [[AE86]]을 시판하였다.
* [[5월 16일]]: 북한측은 준전시태세 돌입명령을 3개월만에 해제했다.
* [[5월 17일]]: 미-이-레 3국이 레바논 철군협정에 조인하였다.
* [[5월 18일]]: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가 정치활동 피규제자 해금 등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김영삼 단식 농성 사건]])
* [[5월 19일]]
* 경찰은 단식농성 중이던 원풍모방노조 간부 및 구속자 가족들을 전원 연행했다.
* 조선 순조대 지리전도 <천하전도>가 대구에서 발견되었다.
* [[5월 24일]]
* 정부는 외국인 토지소유 제한을 대폭 완화했다.
* 남아공 ANC 대표단이 북한 평양을 방문했다.
* [[5월 25일]]
* 시인 곽재구가 <사평역에서>를 발간하였다.
* [[스타워즈 오리지널 시리즈]] 제3작 <[[제다이의 귀환]]>이 미국 전역에 개봉되었다.
* [[5월 26일]]
* 안기부는 김성규 등 2개 간첩망 8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 정부는 대한상의 측 건의에 따라 상품권 발행을 8년만에 허용한다고 밝혔다.
* 서울시는 외인아파트 등 남산일대 풍치지구 45m²를 '남산공원'으로 추가 지정하였다.
* 한국정보산업협회가 설립되었다.
* [[5월 27일]]: 이대생 2명이 교내시위 주도 후 구속되었다.
* [[5월 30일]]
* 문교부는 7.30 교육개혁조치 후 개정된 사학법 중 불합리하거나 사학발전을 저해하는 조항들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 문교부는 외래어, 상용일어, 한자어 등 6,800여개 단어를 표준용어로 고쳐 전 행정기관 및 교과서에 사용토록 지시하였다.
* 북한 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는 남한측에 중성자무기 배치 규탄성명을 발표했다.
* [[5월 31일]]
* 상공부는 1,769개 수입규제품목 중 냉장고, 세탁기 등 305개 수입자유화를 결정하였다.
* 함석헌 등 민주인사 5명이 <긴급민주선언> 발표 후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 건설부는 도시 근교에 휴식공간을 조성키로 결정하였다.
* 환경청은 자동차 배기가스, 공장 먼지 등 5개 대기오염물질 환경기준을 추가 설정했다.
==== 6월 ====
* [[6월 1일]]
* 전두환 대통령은 5공 헌법이 국력신장과 국민화합을 위한 최적의 법조항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밝혔다.
* 국방부는 북한 벌목노동자 정범호가 DMZ를 넘어 귀순했다고 밝혔다.
* 유럽핵연구소가 'Z(제로) 입자'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 [[6월 2일]]
* 상공부는 7월 1일부터 의약품원료, 방열기 등 282개 품목 수입자유화를 발표하였다.
* 제4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 개막전이 멕시코시티 '에스타디오 아즈테카'에서 개최되었다.
* 에어 캐나다 797편 DC-9기가 원인 불명의 기내화재로 미국 신시내티공항에 비상착륙했으나, 탑승인원 46명 중 23명이 사망했다.
* [[6월 5일]]
* 조계종 원로 탄허 스님이 오대산 월정사에서 입적하였다.
* 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가 엮은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 출간되었다.
* [[6월 6일]]: <Reading Rainbow>가 미국 PBS에서 첫 전파를 탔다.
* [[6월 9일]]
*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가 단식 23일만에 단식농성 중단을 선언하였다.
* 건설부는 월악-소백산 일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 [[6월 10일]]: 문공부는 전남 승주군 남한읍성 및 인근 마을 5만 평을 사적 302호로 지정하였다.
* [[6월 11일]]
* 한국 청소년대표팀이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 8강전에서 우루과이를 연장전에서 2-1로 꺾어 4강전에 진출하였다.
* 한국은행은 새 5천원권 및 1만원권 발행을 개시하였다.
* (사)한국여성의전화가 설립되었다.
* [[6월 15일]]: 한국 청소년대표팀이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 4강전에서 브라질에 1-2로 패했다.
* [[6월 18일]]
* 한국 청소년대표팀이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 3~4위 결정전에서 폴란드에 1-2로 패해 4위를 달성하였다.
* 여성평우회가 발족되었다.
* 중공 전인대는 제6기 회의에서 국가주석직에 리셴녠 부주석, 중앙군사위 주석직에 덩샤오핑을 각각 선출하였다.
* 미국 NASA가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를 처음 발사하였다.
* [[6월 20일]]: 문교부는 교사들의 학생 체벌금지지침을 각급 학교에 시달하였다.
* [[6월 24일]]
* 문교부는 전국 616개 국/중/고교에 생활지도 전담교감을 신설하였다.
* 서방 16개국을 주축으로 한 '국제민주연합(IDU)'가 발족되었다.
* [[6월 26일]]: 프로야구팀 '해태 타이거즈'가 창단 1년만에 첫 전기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 [[6월 27일]]
* 문교부는 '영재교육특별법' 제정을 결정하였다.
* 미국 MS-일본 아스키 양사가 합작하여 개인용 컴퓨터 'MSX 규격'을 발표했다.
* [[6월 28일]]: 동자부는 한국-인도네시아 합동유전개발사업의 한국측 개발권자 코데코에너지에 733만 6천달러를 추가 지원한다고 밝혔다.
* [[6월 30일]]
* '''밤 10시 15분부터 KBS1에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첫 전파를 탔다.'''
* 일본 정부는 왜곡기술로 물의를 빚은 1984학년도 역사교과서 내용 중 7개항을 수정했다고 한국 정부에 통보하였다.
==== 7월 ====
* [[7월 1일]]
* 체신부는 전국 2,129개 우체국에서 체신보험업무를 실시하였다.
* 상공부는 가전제품 등 305개 품목과 342개 수입의약품 원료의 수입자유화를 실시하였다.
* 정부는 은행예금 등 부분적 금융자산 실명거래제를 실시하였다.
* [[7월 2일]]: '반제/친선평화를 위한 세계기자대회'가 북한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 [[7월 4일]]
* 민관식 남북조절위 서울측 공동위원장대리는 남북한 최고책임자회의를 북한에 촉구했다.
* 한국자연보존협회는 건설부에 지리산 화엄사 ~ 노고단 케이블카 구간 설치 반대를 건의하였다.
* [[7월 5일]]
* 정부는 이산가족 재결합사업을 범국민운동으로 추진키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였다.
* 국세청은 명성그룹 운영 전반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 일본 경찰은 지문날인을 거부한 재일교포 2세 김명관을 외국인등록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 [[7월 6일]]
* 전두환 대통령은 내무장관에 주영복,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에 노태우를 임명하는 등 일부 개각을 단행하였다.
* 유창순 한적총재는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및 남북적십자회담 조속재개를 북한에 촉구하였다.
* [[7월 7일]]
* 노동부는 '임금심의위원회' 설치를 결정하였다.
* 외무부는 남북한 이산가족을 찾기 위해 케야르 유엔사무총장에게 협조공한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 미국인 소녀 [[서맨사 스미스]]가 안드로포프 서기장의 초청으로 소련을 방문하였다.
* [[7월 10일]]: 이란 외무성은 주 이란 프랑스영사관 및 문화원 폐쇄를 발표했다.
* [[7월 11일]]: 서울시는 IPU 총회 등 국제회의에 대비해 보신탕, 개소주 등의 도심영업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 [[7월 12일]]: 민한-국민 양당은 정부에 졸업정원제 폐지를 촉구하였다.
* [[7월 13일]]
* 정부는 '병역법 개정안'을 시초로 입법예고제를 처음 실시하였다.
* 안기부는 리비아취업기능공 간첩 등 3개 간첩망 6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 [[7월 14일]]
* 닌텐도가 아케이드판 [[마리오브라더스]]를 일본에 발매했다.
* [[7월 15일]]
* 닌텐도가 차세대 가정용 게임기 '[[패밀리 컴퓨터]]'를 일본에 발매했다.
* 세가는 차세대 가정용 게임기 '[[SG-1000]]'을 일본에 발매하였다.
* [[7월 16일]]: 이진희 문공장관은 민족문화위인 57명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 [[7월 17일]]: 전두환 대통령은 제헌절 경축사에서 장기집권조항이 배제된 현행 헌법의 수호를 역설했다.
* [[7월 22일]]: 폴란드 정부가 계엄령을 해제하였다.
* [[7월 23일]]
* 스리랑카 타밀족이 정부군의 학살 사건을 계기로 총궐기하며 내전을 일으켰다.(스리랑카 내전)
* 몬트리올발 에드먼턴행 에어캐나다 143편 B767-233기가 4만 1천 피트 고도에서 연료 부족으로 인해 매니토바 김리공항에 비상 착륙했다. 다행히도 탑승인원 전원이 무사히 생존했다.([[에어 캐나다 143편 불시착 사건]])
* [[7월 25일]]
* '민한당후원회'가 발족되었다.
* 미국 록밴드 [[메탈리카]]가 최초의 [[스래시 메탈]] 앨범이자 첫 정규앨범인 <[[Kill 'Em All]]>을 발매했다.
* [[7월 28일]]: 북한은 청진항을 개방하는 협정을 중국과 체결했다.
* [[7월 29일]]
* 서울시는 '파고다공원정비계획 최종안'을 마련하였다.
* 당일 인구시계 기준 하오 10시 51분 28초를 기점으로 한국 인구가 4천만을 돌파하였다.
==== 8월 ====
* [[8월 1일]]
* 가농이 '농협조합장 직선제 실시 1백만인 서명운동'을 개시하였다.
* 국세청은 '명성그룹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명성사건)
* 김철호 명성그룹 회장은 기업 관련직을 뺀 모든 공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 한국전기통신공사는 수도권 전자식전화 가입자 86명에게 국제자동전화를 개방시켰다.
* [[8월 3일]]: 삼성반도체통신이 국내 최초로 64KB D램을 개발했다.
* [[8월 6일]]
* 서울 여의도 KBS 근방에 '만남의 광장'이 개설되었다.
* 강원도 설악산 신흥사에서 승려들 간 폭행으로 스님 1명이 숨졌다.(신흥사 승려 살해사건)
* [[8월 7일]]
* 국방부는 중공군 파일럿 쑨첸롄이 MiG-21기를 몰고 한국 공군기지에 비상착륙 후 귀순했다고 밝혔다.
* 중공기의 한국 영해 침범으로 수도권 일대에 휴전 이래 최초로 공습경보가 내려졌다.
* [[8월 12일]]: 법무부는 시국사범 695명을 포함한 재소자 1,944명에 광복절 특사 조치를 내린다고 밝혔다.
* [[8월 15일]]: '독립기념관 기공식'이 충남 천원군 목천면에서 열렸다.
* [[8월 16일]]
* 문교부는 1980년 당시 해직된 교수 87명을 단계적으로 복직한다고 발표하였다.
* 보사부는 일본뇌염 경보를 발령했다.
* [[8월 17일]]
* 대검은 명성그룹의 112억 탈세사실을 밝혀낸 후 그룹총수 김철호와 [[한국상업은행|상업은행]] 혜화동지점 대리 김동겸을 특가법 등의 위반혐의로 구속하였다.
* [[문공부]]는 [[창경궁]] 복원을 위해 1984년 [[새해 첫날|신정]]부터 1985년 말까지 공개를 중지한다고 결정하였다.
* [[8월 18일]]
* [[기획재정부|재무부]]는 [[명성그룹]]에 은행공동관리단을 파견키로 결정하였다.
* [[한국가스공사]]가 설립되었다.
* [[8월 21일]]: 필리핀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가 귀국 도중 암살당했다.
* [[8월 27일]]: 한국 대표단이 제27회 린츠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 5연패를 달성하였다.
* [[8월 29일]]: 대검은 명성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윤자중 전 교통장관 등 총 16명을 뇌물수수 및 업무상 횡령방조 혐의로 구속하였다.
==== 9월 ====
* [[9월 1일]]
* '''뉴욕발 서울행 KAL 007편 B747기가 소련 사할린 부근 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피격으로 탑승자 269명 전원이 숨졌다.([[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 정부는 '대한항공피격추락사건 실무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서울시설공단|서울시설관리공단]]이 설립되었다.
* [[9월 2일]]: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소련의 KAL기 피격행위를 야만행위라고 비난했다.
* [[9월 5일]]: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소련의 KAL 피격사건과 관련해 전략물자 금수 등 대소제재조치를 발표하였다.
* [[9월 7일]]
* '대한항공기 희생자 전원 269명 합동위령제'가 서울운동장에서 거행되었다.
* 종전의 은행신용카드협회가 '[[비씨카드]]'로 출범하였다.
* [[9월 8일]]: 명지대학이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다.
* [[9월 9일]]: 한전은 고리원전 2호기를 준공하였다.
* [[9월 10일]]: 후세인 요르단 국왕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 [[9월 13일]]: 대법원은 1981년 여대생 살해혐의자 정재파에게 무죄를 확정지었다.
* [[9월 15일]]: '한국국민당 후원회'가 발족되었다.
* [[9월 16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 [[을지로입구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 [[9월 20일]]: 기아산업이 일본 도요공업 및 이토추상사 지분 납입을 완료하였다.
* [[9월 22일]]: 대구 미문화원 정문 앞에서 사제폭발물이 터져 고교생 1명이 죽고 5명이 부상당했다.
* [[9월 24일]]: '제1차 비동맹-개발도상국 교육문화부장회의'가 북한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개최되었다.
* [[9월 26일]]: '''소련군 핵미사일 관제센터 당직장교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가 [[미국]]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컴퓨터 오류'라고 상부에 보고해 핵발사를 막아냈다.'''
* [[9월 27일]]
* 대검 중수부는 '조흥은행 부정보증사건' 관련자인 영동개발진흥 회장 이복례 등을 검거하였다.
* [[바티칸]] [[교황청]]은 [[한국 103위 순교성인|한국인 순교자 103명]]의 시성을 승인하였다.
* [[9월 30일]]
* 국립환경연구소는 농민들의 중금속 오염 심각성을 보고하였다.
* '민주화운동전국청년연합(이하 민청련)'이 발족되었다.
==== 10월 ====
* [[10월 2일]]
* 경남 마산 고려호텔에서 큰불이 나 영국인 등 총 8명이 숨졌다.
* [[전광훈]] 전도사가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사랑제일교회]]를 세웠다.
* [[10월 3일]]: 전두환 대통령은 개천절 경축사에서 새 역사 개척에 적극 참여하자고 촉구하였다.
* [[10월 4일]]
* 제70차 IPU 총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렸다.
* 전두환 대통령은 서울 IPU(국제 의회 연맹) 총회 연설에서 "평화/평등/협력의 새 시대"를 강조하였다.
* [[10월 5일]]: 폴란드 자유노조 지도자 레흐 바웬사가 1983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 [[10월 7일]]
* 성철 종정이 조계종 대표권자로 문공부에 등록하였다.
* 미국 국무성은 미국과 북한 양국 외교관의 접촉을 9월 30일부터 허용했다고 밝혔다.
* [[10월 8일]]
* 전두환 대통령은 17박 18일간의 동남아 및 오세아니아 6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하였다.
* 창경원동물원이 과천 서울대공원 부지 이전에 착수하였다.
* IPU는 전 회원국 유엔가입안을 의결하였다.
* [[10월 9일]]
* '''버마 랭군시내 아웅산 묘소에서 폭탄이 터져 서석준 경제부총리 등 수행원 17명이 숨지고 14명이 부상당했다.'''('''[[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 전두환 대통령이 동남아 6개국 순방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하였다.
* [[10월 10일]]
* 한국 정부조사단이 현지 사후수습과 사건조사를 위해 버마 랭군에 도착하였다.
* 아웅산 묘소 폭발사건 부상자 13명 중 11명이 귀국 후 국립의료원으로 입원되었다.
* 버마 정부는 아웅산 묘소 폭파사건 조사를 위해 '5인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북한 평양 ~ 중공 베이징 간 주1회 정기국제여객열차 운행이 개시되었다.
* [[10월 11일]]
* 서석준 부총리 등 아웅산 묘소 테러사건 희생자 16명의 유해가 환국되었다.
* 버마 경찰은 아웅산 묘소 폭발사건 관련자 1명을 체포하고 1명 사살, 1명 도주라고 발표하였다.
* 레이건 대통령은 방미 중인 우쉐첸 중국 외교부장과 한반도 긴장에 대해 논의했다.
* [[10월 12일]]
* 한국-버마 합동조사단은 아웅산 묘소 폭발사건 현장에서 북한 소행을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였다.
* 제70회 IPU 총회는 이사회 및 전체회의에서 소련의 KAL기 격추 규탄 및 보상요구 등 5개항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 [[10월 13일]]
* 서석준 부총리 등 순국 외교사절 17위 합동영결식 및 북한만행 규탄대회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개최되었다.
* 경제4단체 등 경제계 인사 40여 명이 아웅산 테러로 순직한 유자녀를 위해 장학금 20억원을 모금키로 했다.
* [[10월 15일]]: 전두환 대통령은 [[진의종]]을 새 국무총리로 임명하는 등 11개 부처 장관급 등에 대해 개각을 대폭 단행하였다.
* [[10월 17일]]: 버마 정부는 아웅산 테러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였다.
* [[10월 19일]]: 안기부는 서성수 등 4개 간첩망 16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 [[10월 20일]]
* 전두환 대통령은 폭력망동은 국제사회 징벌을 받아 마땅하며 북한 재도발 시 응징한다고 경고하였다.
* 프로야구팀 해태 타이거즈가 창단 1년만에 한국시리즈에서 MBC청룡을 4승 1무로 꺾어 처음으로 우승하였다.
* [[10월 21일]]: 제17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 1[[미터]]의 정의를 '빛이 진공에서 <math> \displaystyle \frac{1}{299792458} </math>초 동안 간 거리'로 고쳐 정의하였다. 이로써 [[광속]]은 오차 없는 299 792 458m/s라는 숫자를 얻게 되었다.
* [[10월 22일]]
* 한국 여자대표팀이 제22회 LA 세계양궁선수권대회 개인 및 단체전에서 5연패를 달성하였다.
* 서독, 영국, 이탈리아, 미국 등지에서 수십만 명이 반핵시위를 벌였다.
* [[10월 23일]]: 레바논 테러조직 '헤즈볼라'가 미군과 프랑스군 주둔기지에 자살차량 폭탄테러를 감행해 미 해병대원 241명과 프랑스 공수부대원 58명이 숨졌다.
* [[10월 25일]]: 미군은 그레나다 군부정권의 좌경화를 막기 위해 그레나다를 침공/점령하였다.
* [[10월 31일]]: KBS2에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가 첫 전파를 탔다.
==== 11월 ====
* [[11월 1일]]
* 전국 행정관청들이 새 주민등록증 발급을 개시하였다.
* 문교부는 53개 신설예정 고교에 남녀공학을 적극 권장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 [[11월 2일]]
* 조계사측 진경스님과 봉은사측 서운스님 간에 조계종 총무원장직을 놓고 법정투쟁이 벌어져 파문이 일었다.
* NATO가 선제 핵공격 대비 군사훈련 '에이블 아처(Able Archer) 83'을 실시했다.
* [[11월 3일]]
* 문교부는 교수임용 심사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 광주학생독립운동동지회는 10년 전 폐지된 '학생의 날' 부활을 정부에 건의하였다.
* 1919년 2월에 제작된 <대한독립여자선언서>가 미국 LA에서 발견되었다.
* [[11월 4일]]
* 대구 향토 건설재벌 '광명그룹'이 자금난으로 도산했다.
* 버마 정부는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 사건을 계기로 북한측과 단교 및 정부승인 취소조치를 내렸다.
* 전두환 대통령은 우산유 버마 대통령에게 대북 응징조치 환영 전문을 발송하였다.
* [[11월 8일]]
* 재무부가 이날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은행빚 1천억 이상을 진 기업체가 95개 이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일본과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출국했다.
* 서울대생 황정하가 시위 도중 도서관 6층 난간에서 추락했다. 결국 그는 8일 뒤에 병상에서 숨을 거두었다.
* [[11월 10일]]: 미국 정부는 미국 외교관과 북한 외교관 및 관리의 비공식 접촉허용 조치를 전면 취소했다.
* [[11월 12일]]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 전두환-레이건 간 1차 한미정상회담이 청와대에서 개최되었다.
* 이원경 외무장관과 슐츠 미 국무장관이 회담을 열었다.
* [[11월 13일]]
* 전두환-레이건 간 2차 한미정상회담이 청와대에서 개최되었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휴전선 최전방을 시찰하였다.
* 김만제 재무장관은 한미고위경협에서 미국의 한국 특혜관세 연장하는 등 경협 증진방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 [[11월 14일]]: 전두환-레이건 한미양국 정상들은 한국군 전투력 증강 지원 등 '한미안보공동성명'에 서명하였다.
* [[11월 16일]]: 정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안'을 확정하였다.
* [[11월 19일]]: 문교부는 중학교 의무교육을 1985년부터 단계적으로 실시키로 결정하였다.
* [[11월 22일]]: 버마 검찰은 아웅산 폭탄테러사건 첫 공판에서 북한측 테러범 진모와 강민철에게 3개의 죄목을 적용하였다.
* [[11월 23일]]: 버마 경찰국장은 북한 정찰국이 전두환 대통령과 수행원들을 살해하기 위해 파견한 북한군 장교 암살단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 [[11월 26일]]: [[이원경]] 외무장관이 일본-미국 등 5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했다.
* [[11월 27일]]: 필리핀 전역에서 20만 명이 반 마르코스 시위를 벌였으나 경찰의 발포로 14명이 사망했다.
* [[11월 28일]]
* 문교부는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을 일부 수정한 '국어의로마자표기법 개정안'을 확정지었다.
* 서울도시가스가 설립되었다.
* [[11월 29일]]
* 건설업체 유상실업이 도산했다.
* 서울올림픽조직위는 양승춘이 디자인한 휘장과 김현이 그린 호랑이를 1988 서울올림픽 공식상징물로 확정하였다.
==== 12월 ====
* [[12월 1일]]: 아웅산 테러사건 순직자 유자녀 장학단체 '[[일해재단]]'이 세워졌다.
* [[12월 3일]]
* 아마농구 대제전 '1983 점보시리즈'가 처음으로 개막했다.
* 대간첩대책본부는 부산 다대포에서 무장간첩선을 격침하고 간첩 2명을 생포했다고 밝혔다.
* [[12월 5일]]: [[윤성민]] 국방장관이 한미안보협력문제의 협의차 방미하였다.
* [[12월 6일]]: 코스타리카 정부는 버마 아웅산 묘소 테러사건을 규탄하며 북한과 단교하였다.
* [[12월 8일]]: 정부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국제민속축제 등 63개 문화올림픽 행사를 열기로 확정했다.
* [[12월 9일]]
* 대간첩대책본부는 다대포 생포간첩의 진술에 따라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이 북한 소행임이 판명되었다고 밝혔다.
* 버마 랭군지구 인민법원 제8특별재판부는 아웅산 테러사건의 범인 강민철과 진모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 [[12월 10일]]
* 서천화력선 간치역 ~ 동백정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 프로권투선수 전주도가 IBF 주니어밴텀급 타이틀전에서 태국의 파운삭 무앙수린을 꺾어 초대 챔피언 타이틀을 쟁취하였다.
* 라울 알폰신 아르헨티나 급진시민연합 총재가 대통령직에 취임면서 드디어 군정이 종식되고 민간정부가 성립되었다.
* [[12월 14일]]: 다대포 무장간첩 2명이 전향을 선언했다.
* [[12월 15일]]
* 국회 본회의는 '부동산중개업법' 등 21개 법안을 가결시켰다.
* 여의도백화점이 개점되었다.
* 경향신문사가 <소년경향>을 창간했다.
* [[12월 16일]]
* 전두환 대통령은 새 육참총장직에 정호용 대장을 임명했다.
* 전두환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체불악덕기업주 처벌을 지시하였다.
* 국회 본회의는 '유전자공학육성법'을 통과시켰다.
* [[12월 17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역(서울)|교대역]] ~ [[서울대입구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 [[12월 19일]]: 안기부는 김상원 등 3개 간첩망 21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 [[12월 20일]]
* '해직교수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코모로 정부가 북한과 단교하였다.
* [[12월 21일]]: 문교부는 1980년 5월 17일 이후 학생운동 관련 제적학생 1,363명에 대해 복교를 허용키로 했다.
* [[12월 22일]]
* 법무부는 시위학생 131명을 포함한 형이 확정된 시국사범 314명 및 일반사범 1,451명에 특사/복권조치를 내렸다.
* 럭키금성스포츠가 프로축구팀 '[[럭키금성 황소]]'를 창단하였다.
* 서사모아 정부가 북한과 단교하였다.
* [[12월 24일]]
* 정부는 해운업체 70개를 20개로 통폐합하기 위한 '해운산업 합리화 계획'을 발표했다.
* 미국 정부는 유네스코 탈퇴를 결정했다.
* [[12월 29일]]: 이원경 외무장관은 대소관계 개선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12월 30일]]: 한국전기통신공사는 전국 22개 외딴섬의 무선전화를 모두 육지 내 자동전화로 바꾸어 개통하였다.
* [[12월 31일]]
* 경찰은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기사연) 사건' 관련자 조승혁 목사를 연행했다.
* [[브루나이]]가 영국으로부터 정식 독립했다.
=== 가상 ===
* [[기묘한 이야기(미국 드라마)|기묘한 이야기]] 시즌 1의 배경 연도.
* [[슈발체스마켄]]의 배경연도.
* [[시간이탈자]]의 배경연도.
* [[쓰르라미 울 적에]]의 주요 배경연도.[* [[쇼와]] 53년으로 일컫는다. 1983년 6월이 주요 시점이다.]
*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배경연도.
* [[웨스트월드]]의 배경연도.
* [[카미츄!]]의 주요 배경연도.[* 14화에서 [[히토츠바시 유리에|유리에]]가 읽고 있던 신문이 [[1984년]] 1월 1일자이므로, 13화까지의 배경이 된다.]
* [[Five Nights at Freddy's 4|FNaF 4]]의 배경연도이자 "Bite of '83"(83년도 입질 사건)이 발생한 해.
* [[12월 9일]]: [[콘노 준코]]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다. - [[좀비 랜드 사가]]
* [[겁스 무한세계]] 관련
* 딕시-1의 [[남부연합]]이 경제적 곤란 타개와 국내의 불만세력 탄압을 위해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개발하자 [[미합중국]]의 녹스 대통령이 이에 대한 대응으로 [[푸에르토 리코]]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 [[라이히-5]]의 제3대 [[나치 독일 총통]] 빅토르 알흐슈나이스가 [[페루]]와 [[아프가니스탄]]의 저항세력들에게 [[중성자탄]]을 투하했다. - [[겁스 무한세계]]
* [[보물 사냥꾼]]들이 [[카나리아 제도]] 앞바다에서 [[팬텀 블러드|100년 전]]에 가라앉았던 철제 관을 인양하여 개봉했고, 관 속에 잠들어 있던 [[돌가면의 흡혈귀]] [[DIO]]가 100년 만에 부활했다.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NATO]]가 실시한 에이블 아처 훈련이 [[소련]]을 선제 공격하기 위한 기동이라고 오인한 [[소련군]]이 [[예방전쟁|전면적 예방공세]]를 실시했다. - [[워게임: 유러피안 에스컬레이션]]
== 탄생 ==
=== 실존인물 ===
* [[1월 1일]] - [[박성현(양궁)|박성현]]: [[대한민국]]의 전 [[양궁]]선수.
* [[1월 6일]]
* [[미쓰라 진]]: 대한민국의 [[힙합]] 그룹 [[에픽하이]]의 멤버. 본명 최진.
* [[김이브]]: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본명 김소진.
* [[1월 7일]]
* [[구지성]]: 한국의 [[레이싱 모델]].
* [[김태현(작사)|김태현]]: 일본의 [[재일교포]] 출신 [[작사#s-1|작사]].
* [[장효인]]: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1월 11일]] - [[백경훈]]: 대한민국의 [[성우]].
* [[1월 12일]] - [[이동현(1983)|이동현]]: 한국의 [[야구]] 선수.
* [[1월 16일]] - [[김저키]]: 대한민국의 [[만화가]].
* [[1월 17일]] - [[알바로 아르벨로아]]: [[스페인]]의 축구 선수.
* [[1월 18일]]
* [[미사이즈 케이스케]]: 일본의 성우, 배우.
* [[오정연]]: 대한민국의 방송인, 전 [[아나운서]].
* [[정유미(1983)|정유미]]: 한국의 [[영화배우]].
* [[1월 19일]] - [[우타다 히카루]]: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 [[1월 20일]]
* [[강예빈]]: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강정미.
* [[야구치 마리]]: 일본의 가수. 걸그룹 [[모닝구 무스메]]의 前 멤버.
* [[1월 21일]] - [[마리즈]]: [[캐나다]]의 前 [[프로레슬러]].
* [[1월 24일]] - [[이시구로 치히로]]: 일본의 [[성우]].
* [[1월 25일]] - [[김혜선(기상캐스터)|김혜선]]: [[대한민국]]의 기상 캐스터.
* [[1월 26일]] - [[이재진(배드민턴)|이재진]]: 대한민국의 [[배드민턴]] 선수.
* [[1월 31일]]
* [[파비오 콸리아렐라]]: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케인(인터넷 방송인)|케인]]: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본명 최진우.
* [[2월 2일]]
* [[조승희#s-4|조승희]]: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고유정]]: [[대한민국]]의 [[범죄자]].
* [[2월 3일]] - [[곽용섭]]: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2월 8일]]
*[[지주연]]: 대한민국의 배우.
*[[고효준]]: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 [[2월 11일]] - [[라파엘 판데르파르트]]: [[네덜란드]]의 축구선수.
* [[2월 12일]] - [[김광석(축구선수)|김광석]]: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2월 14일]]
* [[바카리 사냐]]: [[프랑스]]의 축구 선수.
* [[성훈(배우)|성훈]]: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방성훈.
* [[2월 15일]] - [[최준석]]: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 [[2월 16일]]
* [[오종혁]]: [[대한민국]]의 가수, [[클릭비]]의 멤버.
* [[샬렛 정]]: [[미국]]의 성우.
* [[2월 17일]] - [[마이노스]]: [[대한민국]]의 [[힙합]] [[MC]]. 본명 최민호.
* [[2월 18일]] - [[손지윤]]: [[대한민국]]의 [[배우]].
* [[2월 19일]]
* [[고토오슈 가쓰노리]]: [[불가리아]] 출신의 [[스모]]선수. 본명 안도 캬로안.
* [[김호영]]: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 [[나카시마 미카]]: 일본의 가수.
* [[사사키 노조미(성우)|사사키 노조미]]: 일본의 [[성우]].
* [[2월 26일]]
* [[페페(축구선수)]]: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토고]]의 축구 선수.
* [[3월 1일]]
* [[루피타 뇽오]]: [[케냐]]와 [[멕시코]]의 [[배우]].
* [[야마모토 야마토]]: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 [[3월 2일]]
* [[이세돌]]: 대한민국의 前 프로 [[바둑기사]].
* [[이하늬]]: 대한민국의 [[배우]], 2006 [[미스코리아]] 진.
* [[3월 7일]] - [[김진우(1983)|김진우]]: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 [[3월 9일]]
* [[이은형(배우)|이은형]]: [[대한민국]]의 [[배우]].
* [[클린트 뎀프시]]: [[미국]]의 축구 선수.
* [[3월 12일]]
* [[남도형]]: 한국의 성우.
* [[낢]]: [[한국]]의 [[만화가]]. 본명 서나래.
* [[3월 17일]]
* [[강호철]]: [[대한민국]]의 [[성우]].
* [[하울 메이렐레스]]: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 [[3월 19일]] - [[배정남]]: [[대한민국]]의 모델 겸 배우.
* [[3월 20일]] - [[황규림]]:대한민국의 배우.
* [[3월 21일]] - [[아웃사이더(래퍼)|아웃사이더]]: 한국의 [[래퍼]]. 본명 신옥철.
* [[3월 29일]] - [[지호진]]:대한민국의 모델.
* [[3월 30일]] - [[염기훈]]: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3월 31일]] - [[김민아(아나운서)|김민아]]: [[대한민국]]의 방송인, 전 스포츠 아나운서.
* [[4월 2일]]
* [[김재욱(배우)|김재욱]]: [[대한민국]]의 [[배우]].
* [[마타요시 아이]]: 일본의 성우.
* [[4월 3일]] - [[이재현(성우)|이재현]]: 대한민국의 성우.
* [[4월 4일]] - [[테이]]: 대한민국의 가수. 본명 김호경.
* [[4월 6일]] - [[무웅]]: 대한민국의 힙합 듀오 배치기의 멤버. 본명 정무웅.
* [[4월 7일]]
* [[문지애]]: 대한민국의 前 [[아나운서]].
* [[프랭크 리베리]]: [[프랑스]]의 축구 선수.
* [[4월 10일]]
* [[길미]]: 대한민국의 [[가수]]. 본명 길미현.
* [[제이미 정]]: 미국의 [[배우]].
* [[4월 13일]] - [[클라우디오 브라보]]: [[칠레]]의 축구 선수.
* [[4월 16일]]
* [[이은형]]: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순결한코리]]: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본명 한정현.
* [[4월 18일]]
* [[성재민]]: 대한민국의 게임 개발자.
* [[4월 20일]]
* [[미란다 커]]: [[오스트레일리아]]의 모델.
* [[류상문]]: [[한국]]의 前 [[야구선수]].
* [[4월 21일]] - [[장성규]]: 대한민국의 방송인, 전 [[아나운서]].
* [[4월 25일]] - [[김기표]]: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 [[4월 28일]]
* [[데이비드 프리즈]]: 미국의 전 야구선수.
* [[후지와라 코코아]]: [[일본]]의 [[만화가]].
* [[5월 1일]]
* [[박해진]]: 대한민국의 배우.
* [[한신(성우)|한신]]: 대한민국의 성우.
* [[5월 2일]] - [[다니 소르도]]: [[스페인]]의 랠리 드라이버.
* [[5월 5일]] - [[헨리 카빌]]: [[영국]]의 배우.
* [[5월 6일]]
* [[김효선(배우)|김효선]]: [[대한민국]]의 [[배우]].
* [[가보리 시디베]]: [[미국]]의 [[배우]].
* [[다니에우 아우베스]]: [[브라질]]의 [[축구 선수]].
* [[5월 7일]] - [[김상혁]]: 대한민국의 가수, [[클릭비]]의 멤버.
* [[5월 8일]] - [[이상엽]]: [[대한민국]]의 [[배우]].
* [[5월 9일]]
* [[마츠다 류헤이]]: 일본의 배우.
* [[아오키 신야]]: 일본의 종합격투기 선수.
* [[오타카 시노부]]: 일본의 만화가.
* [[장희진]]: [[대한민국]]의 [[배우]].
* [[5월 11일]]
* [[박희본]]: 대한민국의 [[배우]].
* [[쿠스미 아이코]]: 일본의 [[성우]].
* [[5월 12일]]
*[[도널 글리슨]]: [[아일랜드]]의 [[배우]].
*[[알리나 카바예바]]: 러시아의 前 리듬체조 선수이자 정치인
* [[5월 13일]]
* [[영탁]]: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본명 박영탁.
* [[야야 투레]]: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선수.
* [[5월 14일]] - [[앰버 탬블린]]: [[미국]]의 배우.
* [[5월 17일]] - [[강유미]]: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5월 19일]] - [[김흥수(배우)|김흥수]]: [[대한민국]]의 [[배우]].
* [[5월 20일]] - [[박은지]]: 대한민국의 방송인, 전 [[기상캐스터]].
* [[5월 21일]] - [[시미즈 카오리]]: [[일본]]의 성우.
* [[5월 26일]] - [[오넬리 페레즈]]: [[도미니카 공화국]]의 [[야구]] 선수.
* [[5월 29일]] - [[키비(가수)|키비]]: [[대한민국]]의 래퍼. 본명 배이삭.
* [[5월 30일]]
* [[류제국]]: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조석(만화가)|조석]]: [[대한민국]]의 [[만화가]].
* [[김영은(성우)|김영은]]: [[대한민국]]의 [[성우]].
* [[권다현]]: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권민서.
* [[6월 1일]] - [[채윤아]]: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6월 3일]]
* [[김기욱]]: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신사동호랭이]]: [[대한민국]]의 [[작곡가]]. 본명 이호양.
* [[6월 4일]] - [[문수호]]: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6월 8일]] - [[미야노 마모루]]: 일본의 성우.
* [[6월 9일]] - [[장원삼]]: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6월 10일]] - [[가스파드]]: 대한민국의 [[만화가]].
* [[6월 13일]] - [[おぶい]]: 일본의 만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 [[6월 17일]]
* [[니노미야 카즈나리]]: [[일본]]의 가수, [[아이돌]] [[아라시(아이돌)|아라시]]의 멤버.
* [[카자마 슌스케]]: [[일본]]의 [[배우]].
* [[6월 19일]]
* [[윤혜숙]] - [[대한민국]]의 [[배구]]선수.
* [[에이단 터너]]: [[아일랜드]]의 배우.
* [[쿤겐]]: [[스웨덴]]의 유명 [[와우저]].
* [[6월 22일]] - [[이효정(여배우)|이효정]]: 대한민국의 배우.
* [[6월 24일]]
* [[송광민]]: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김경진(코미디언)|김경진]]: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6월 25일]] - [[이효영]]: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6월 27일]] - [[알수]]: 러시아의 팝 가수.
* [[6월 29일]] - [[오보카타 하루코]]: 일본의 세포[[생물학]]자.
* [[7월 1일]] - [[이특]]: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본명 박정수.
* [[7월 3일]] - 이자연: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7월 5일]] - [[이루(가수)|이루]]: 대한민국의 가수. 본명 조성현.
* [[7월 7일]]
* [[박희은]]: 한국의 성우.
* [[임은경]]: 대한민국의 배우.
* [[7월 8일]] - [[나카츠 마리]]: 일본의 성우.
* [[7월 10일]]
* [[희철]]: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본명 김희철.
* [[가비(축구선수)]]: [[스페인]]의 축구 선수.
* [[7월 12일]] - [[남궁인]]: 대한민국의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필가.
* [[7월 13일]] - [[박희수]]: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7월 15일]] - [[최재환]]: [[대한민국]]의 [[배우]].
* [[7월 16일]] - [[양영동]]: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 [[7월 17일]] - [[김진우(배우)|김진우]]: [[대한민국]]의 [[배우]].
* [[7월 19일]]
* 이정옥: [[대한민국]]의 여자 배구선수.
* [[이대형]]: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 [[7월 23일]] - [[조경이]]: 대한민국의 성우.
* [[7월 26일]] - [[김동명(가수)|김동명]]: 대한민국의 가수.
* [[7월 27일]]
* [[최여진]]: [[대한민국]]의 [[배우]].
* [[고란 판데프]]: [[북마케도니아]]의 축구 선수.
* [[7월 29일]]
* [[김동욱(배우)|김동욱]]: [[대한민국]]의 [[배우]].
* [[윤성귀]]: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장태희]]: [[대한민국]]의 [[가수]].
* [[7월 31일]] - [[박진우(1983)|박진우]]: 대한민국의 배우.
* [[8월 2일]]
* [[닉 디아즈]]: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정아]]: 대한민국의 가수, 스타일리스트, 걸그룹 [[애프터스쿨]]의 전 멤버. 본명 김정아.
* [[8월 4일]]
* [[손여은]]: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변나연.
* [[테라사키 유카]]: 일본의 성우.
* [[8월 6일]]: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로빈 판페르시]].
* [[8월 10일]]: [[이현진(레이싱모델)|이현진]]: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8월 11일]]: [[크리스 헴스워스]]: 미국의 배우.
* [[8월 12일]]
* [[아스미 카나]]: 일본의 성우.
* [[클라스얀 휜텔라르]]: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 [[8월 14일]] - [[밀라 쿠니스]]: 우크라이나 태생의 미국 배우이자 성우.
* [[8월 15일]] - [[나카무라 다케야]]: 일본의 야구선수.
* [[8월 16일]] - [[정준일]]: 대한민국의 가수.
* [[8월 18일]] - [[MIKA]]: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 [[8월 19일]] - [[금나나]]: 대한민국의 교수, 2002 [[미스코리아]] 진 출신.
* [[8월 20일]]
* [[앤드루 가필드]]: 미국과 [[영국]]의 배우.
* [[유리 지르코프]]: [[러시아]]의 [[축구 선수]].
* [[8월 21일]] - [[전주리]]: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8월 23일]] - [[김영희(개그우먼)|김영희]]: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8월 25일]] - [[김석류]]: 대한민국의 전 [[아나운서]].
* [[8월 29일]] - [[사비 프리에토]]: [[스페인]]의 축구 선수.
* [[8월 30일]]
* [[정다은(아나운서)|정다은]]: [[한국]]의 [[아나운서]].
* [[김정훈(성우)|김정훈]]: 대한민국의 성우.
* [[마츠모토 준]]: [[일본]]의 가수, [[아이돌]] [[아라시(아이돌)|아라시]]의 멤버.
* [[8월 31일]]
* [[성현주]]: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정경호(1983)|정경호]]: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탤런트.
* [[에밀리 리 조]]: [[대한민국]]의 [[기업인]]. 한국명 조현민.
* [[9월 2일]]
* [[김정환(펜싱)|김정환]]: 대한민국의 펜싱선수.
* 조진수: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9월 3일]]
* [[이제인]]: 대한민국의 성우.
* [[키시다 메루]]: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 [[9월 4일]]
* [[김학민]]: 대한민국의 배구선수.
* [[조동찬]]: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 [[9월 5일]] - [[김형민(배우)|김형민]]: 대한민국의 배우.
* [[9월 7일]] - [[배다해]]: 대한민국의 가수, 뮤지컬 배우.
* [[9월 8일]] - [[디에고 베날리오]]: [[스위스]]의 축구 선수.
* [[9월 9일]] - [[김정화]]: 대한민국의 배우.
* [[9월 10일]] - [[탁]]: 대한민국의 힙합 듀오 배치기의 멤버. 본명 이기철.
* [[9월 13일]] - [[정민혁]]: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 [[9월 14일]] - [[에이미 와인하우스]]: 미국의 [[가수]].
* [[9월 15일]]
* [[히라타 유카]]: [[일본]]의 [[영화배우]], [[모델]].
* [[임성언]]: 대한민국의 배우.
* [[9월 16일]] - [[나카무라 토모코]]: 일본의 성우.
* [[9월 17일]] - [[양승은]]: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9월 18일]] - [[민우혁]]: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 [[9월 20일]]
* [[데이데이]]: 미국 국적의 대한민국 작사가. 본명 데이비드 킴
* [[김민수(배우)|김민수]]: 대한민국의 배우.
* [[9월 21일]] - [[오토키타 슌]]: 일본의 정치인
* [[9월 23일]] - [[윤길현]]: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 [[9월 25일]]
* [[도널드 글로버]]: 미국의 래퍼, 배우, 코미디언.
* [[손담비]]: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 [[오보카타 하루코]]: 일본의 전직 과학자.
* [[하은주]]: 대한민국의 전 농구선수.
* [[9월 26일]]
* [[히카르두 콰레스마]]: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 [[김용석(코미디언)|김용석]]:대한민국의 개그맨.
* [[9월 27일]]
* [[라임어택]]: 대한민국의 [[힙합]] [[MC]]. 본명 임형래.
* [[알이에스티]]: 한국의 [[힙합]] [[뮤지션]]. 본명 강상욱.
* [[전혜빈]]: 대한민국의 배우.
* [[9월 29일]] - [[윤승아]]: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윤애리.
* [[9월 30일]] - [[김용현(코미디언)|김용현]]:대한민국의 개그맨
* [[10월 1일]]
* [[양상국]]: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안지만]]: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에릭 섄토]]: 미국의 [[수영]] 선수.
* [[10월 2일]] - [[황보라]]: 대한민국의 배우.
* [[10월 3일]]
* [[티아고 알베스]]: [[브라질]]의 [[종합격투기]]선수.
* [[테사 톰슨]]: [[미국]]의 [[배우]].
* [[10월 5일]] - [[제시 아이젠버그]]: 미국의 배우.
* [[10월 6일]] - [[레다메스 리즈]]: [[도미니카 공화국]]의 전 야구선수.
* [[10월 9일]]
* [[이병규(1983)|이병규]]: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장미란]]: 대한민국의 역도 선수.
* [[10월 11일]] - [[이현승(야구선수)|이현승]]: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10월 12일]]
* [[이지현(1983)|이지현]]: [[한국]]의 [[배우]], 아이돌 그룹 [[쥬얼리]]의 전 멤버.
* [[칼튼 콜]]: 영국의 전 축구선수, 축구코치.
* [[10월 14일]] - [[강기영]]: 대한민국의 배우.
* [[10월 15일]] - [[디바제시카]]: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본명 이승주.
* [[10월 17일]] - [[펠리시티 존스]]: 영국의 배우.
* [[10월 18일]] - [[단테(축구선수)|단테]]: [[브라질]]의 [[축구선수]].
* [[10월 19일]] - [[주종혁]]: 대한민국의 배우.
* [[10월 20일]] - [[야마다 타카유키]]: 일본의 배우.
* [[10월 22일]] - [[별(가수)|별]]: 대한민국의 가수.
* [[10월 25일]]
* [[미카사노미야 요코 공주]]: [[일본]]의 황족.
* [[아카네 호타루]]: [[일본]]의 [[AV 여배우]]
* [[10월 27일]] - [[윤형렬]]: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가수.
* [[10월 29일]] - 진유현: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10월 31일]] - [[제레미 마티외]]: [[프랑스]]의 축구 선수.
* [[11월 3일]] - [[조용형]]: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11월 4일]] - [[박고운]]: 대한민국의 성우.
* [[11월 5일]]
* [[안영미]]: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최연성]]: 한국의 [[프로게이머]].
* [[11월 6일]]
* [[권혁]]: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배현진]]: 대한민국의 정치인, 전 언론인.
* [[11월 7일]]
* [[차다혜]]: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홍희기: 대한민국의 희극배우.
* [[11월 8일]]
* [[이현(가수)|이현]]: 대한민국의 가수.
* [[김해인]]: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김숙영.
* [[11월 9일]] - [[엄태구]]: 대한민국의 배우.
* [[11월 11일]]
* [[김치우]]: 한국의 [[축구선수]].
* [[스즈키 타츠히사]]: 일본의 성우.
* [[아오이 소라]]: 일본의 [[AV 여배우]].
* [[필립 람]]: [[독일]]의 축구 선수.
* [[11월 15일]] - [[욘 헤이팅아]]: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 [[11월 17일]] - [[라이언 브론]]: [[미국]]의 [[야구]]선수.
* [[11월 18일]] - [[벤슨 헨더슨]]: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11월 19일]] - [[윤아정]] : 대한민국의 배우.
* [[11월 21일]]
* [[벨라 트윈스]]: 미국의 [[쌍둥이]] 프로레슬러
* 니키 벨라
* 브리 벨라
* [[11월 22일]] - [[김지우(배우)|김지우]]: [[한국]]의 배우. 본명 김정은.
* [[11월 24일]] - [[김지나(정치인)|김지나]]: 한국의 [[정치인]], 공인노무사.
* [[11월 26일]]
* [[마루야마 류헤이]]: [[일본 아이돌]] [[칸쟈니∞]]의 멤버.
* [[카토 에미리]]: 일본의 성우.
* [[11월 28일]]
* [[써머 래]]: 미국의 프로레슬러.
* [[하현곤]]: 대한민국의 음악 그룹 [[클릭비]]의 멤버.
* [[11월 29일]] - [[이규형(배우)|이규형]]: [[대한민국]]의 [[배우]].
* [[12월 1일]] - [[손주인]]: 한국의 전 야구선수.
* [[12월 4일]] - [[김경록(가수)|김경록]]: 한국의 가수, 그룹 [[V.O.S]]의 멤버.
* [[12월 5일]] - [[이말년]]/[[침착맨]]: 대한민국의 만화가, 인터넷 방송인. 본명 이병건.
* [[12월 6일]]
* [[김민정(성우)|김민정]]: 대한민국의 성우.
* [[박용욱]]: 대한민국의 [[프로게이머]].
* [[12월 8일]]
* [[배힘찬]]: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 [[에반(유호석)]]: 대한민국의 가수.
* [[12월 11일]] - [[온주완]]: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송정식.
* [[12월 16일]]
* [[김나율]]: 대한민국의 성우.
* [[오승원(아나운서)|오승원]]: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최형우]]^^[[음력]]^^: 한국의 [[야구선수]].
* [[키쿠치 미카]]: 일본의 [[성우]].
* [[12월 17일]]
* [[사이토 코스케]]: 일본의 [[BEMANI 시리즈의 아티스트]].
* [[세바스티앙 오지에]]: [[프랑스]] 출신의 랠리 [[드라이버]].
* [[12월 19일]] - [[오민우]]:대한민국의 개그맨.
* [[12월 20일]]
* [[테라시마 타쿠마]]: 일본의 성우.
* [[후지이 쇼타]]: 일본의 종합격투기 선수.
* [[미카사노미야 아키코 공주]]: 일본의 황족.
* [[12월 21일]]
* [[스티븐 연]]: [[한국계 미국인]] [[배우]].
* [[타케]]: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 [[12월 22일]] - [[카노 유이]]: [[일본]]의 [[성우]].
* [[12월 23일]]
* [[이치이 사야카]]: 일본 [[걸그룹]] [[모닝구무스메]]의 前 멤버.
* [[정지민]]: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 [[12월 24일]] - [[노민혁]]: 대한민국의 가수, [[클릭비]]의 멤버.
* [[12월 25일]] - [[계륜미]]: 대만의 배우.
* [[12월 26일]] - [[오오무라 타카요시]]: 일본의 [[기타리스트]].
* [[12월 27일]] - [[박정석]]: 대한민국의 프로게임단 감독.
* [[12월 30일]] - [[신경선]]: 대한민국의 성우.
* [[12월 31일]] - [[신종길]]: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 일자 불명
* 조명애: 북한의 무용수. 2005년에 가수 [[이효리]]와 삼성 애니콜 광고를 찍어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다.
* [[에이드리언 홍 창]]
* [[배준환]] : 대한민국의 [[성범죄자]].
* [[행귤탱귤]] : 대한민국의 [[오버워치]] [[스트리머]]이자 [[유튜버]].
=== 가상인물 ===
* [[1월 7일]]
* [[츠키미야 아유]] - [[Kanon]]
* [[그랜트 워드]]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1월 19일]]: [[가면라이더 류우키]] - [[칸자키 유이]]
* [[2월 14일]]: 요시모토 히카루 - [[프린세스 나인 키사라기 여고 야구부]]
* [[3월 1일]]: [[미사카 카오리]] - [[Kanon]]
* [[3월 3일]]
* 다이도우지 마오 - [[프린세스 나인 키사라기 여고 야구부]]
* [[하나사키 모모코]] - [[애천사전설 웨딩피치]]
* [[3월 4일]]: [[백인하]] - [[치즈인더트랩]](영화/[[치즈인더트랩(드라마)|드라마 동일]])
* [[3월 31일]]: [[강수혁]] - [[검은방]] 2
* [[4월 2일]]: 민정우 - 마이 시크릿 러브
* [[4월 4일]]: [[쿠시마 카모메]] - [[Summer Pockets]]
* [[4월 21일]]: [[류태현]] - [[검은방|검은방 시리즈]]
* [[4월 22일]]: [[둘리]] - [[아기공룡 둘리]][* [[경기도]] [[부천시]]에서 둘리에게 830422로 시작하는 주민등록증을 발급해준 바 있다.]
* [[5월 2일]]: [[샘 윈체스터]] - [[수퍼내추럴]]
* [[5월 3일]]: [[크리스(KOF)|크리스]] - [[KOF 시리즈]]
* [[5월 5일]]: [[호카리 쥰이치로]] - [[도키메키 메모리얼 2]]
* [[5월 20일]]: [[나란차 길가]]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5월 21일]]: [[타카하라 하이리]] - [[Summer Pockets]]
* [[6월 8일]]: [[나루세 시로하]] - [[Summer Pockets]]
* [[6월 26일]]: [[히노모토 히카리]] - [[도키메키 메모리얼 2]]
* [[7월 18일]]: [[아카이 호무라]] - [[도키메키 메모리얼 2]]
* [[8월 15일]]: [[김무열(이름 없는 여자)|김무열]] - [[이름 없는 여자]]
* [[8월 31일]]: [[츠무기 벤더스]] - [[Summer Pockets]][*스포 프로필 상의 나이를 역산하면 1983년생이 되겠지만 이는 정확한 나이라고 할 수 없다. 문서 참조.]
* [[9월 6일]]: [[사카키 타쿠미]] - [[도키메키 메모리얼 2]]
* [[9월 10일]]: [[이치몬지 아카네]] - [[도키메키 메모리얼 2]]
* [[9월 20일]]: [[소라카도 아오]], [[소라카도 아이]] - [[Summer Pockets]]
* [[10월 9일]]: [[이윤성(시티헌터(드라마))|이윤성]] -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
* [[10월 10일]]: [[카노 텐젠]] - [[Summer Pockets]]
* [[11월 5일]]: [[시게노 고로]] - [[메이저(만화)|메이저]]
* [[11월 7일]]: [[데이비드 리(클로저스)|데이비드 리]] - [[클로저스]]
* [[11월 14일]]: [[사쿠라 카에데코]] - [[도키메키 메모리얼 2]]
* [[11월 29일]]: 한지애 - 마이 시크릿 러브
* [[12월 2일]]: [[미나즈키 코토코]] - [[도키메키 메모리얼 2]]
* [[12월 6일]]: [[아마노 미시오]] - [[Kanon]]
* 일자 불명
* [[강모연]] - [[태양의 후예]][* 2화에서 서대영이 들고 있는 해성병원 의료진 명단에서 나온다.]
* [[강선우]], [[오 나의 귀신님/등장인물#s-3.1|이소형]] - [[오 나의 귀신님]]
* [[구도치]] - [[이름 없는 여자]]
* 김동원[* 설정상 02학번이다.] - [[복학왕]]
* [[GTA 4/등장인물#s-1.5.6|김영국]] - [[GTA 4]]
* [[미하마 치요]]를 제외한 [[아즈망가 대왕/등장인물|동급생 멤버]]들[* 일본 서브컬처의 단골 [[클리셰]]인 [[빠른 생일]] 에피소드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으므로 빠른 생일이 없다고 가정한다.] - [[아즈망가 대왕]]
* [[루이스 페르난도 로페즈]] - [[GTA: 에피소드 프롬 리버티 시티]], [[GTA 더 발라드 오브 게이 토니]]
* 박현석, 서예린, 왕경수, 윤차영, 차승태 - 마이 시크릿 러브
* [[성진주]] - [[응답하라 1988]]
* [[GTA 4/등장인물#s-3.10|아르만도 토레스]] - [[GTA 더 발라드 오브 게이 토니]]
* [[GTA 4/등장인물#s-3.11|엔리케 바르다스]] - [[GTA 더 발라드 오브 게이 토니]]
* [[오즈 호우카]] - [[마법전대 마지렌쟈]]
* [[정세오]] - [[뷰티풀 군바리]]
* [[GTA 4/등장인물#s-1.2.4|플레이보이 X]] - [[GTA 4]]
* [[황 리]] - [[GTA 차이나타운 워즈]]
* [[히가시카타 죠스케]]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마니와 사나 - [[도사의 무녀]]
* [[성현경]], [[송가희]] - [[한 번 다녀왔습니다]]
== 사망 ==
=== 실존인물 ===
* [[1월 4일]] - [[민병태]]: 대한민국의 원로 축구인
* [[1월 8일]] -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독일군]] 소속 [[전투조종사]]
* [[1월 9일]]
* [[박순천]]: 대한민국의 여성 독립운동가, 정치인
* [[이선근]]: 대한민국의 원로 사학자
* [[강량욱]]: 초대~3대 북한 제2부주석
* [[1월 20일]] - [[가린샤]]: [[브라질]]의 [[축구선수]]
* [[1월 24일]] - [[조지 쿠커]]: 미국의 영화감독
* [[1월 25일]] - [[이성순]]: [[시라소니]]로 유명한 [[조직폭력배]]
* [[1월 26일]] - [[폴 브라이언트]]: [[앨라배마 대학교]] 미식축구팀의 전설적인 감독
* [[2월 4일]] - [[캐런 카펜터]]: [[카펜터즈]]의 멤버
* [[2월 7일]] - [[이병희]]: 대한민국의 원로 승마인
* [[2월 10일]] - [[이종찬]]: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가
* [[2월 25일]] - [[김석]]: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2월 27일]] - [[라자르 줄러]]: [[헝가리]]의 전 축구선수
* [[3월 3일]] - [[에르제]]: <[[땡땡의 모험]]> 원작자
* [[3월 31일]] - [[카타오카 치에조]]: 일본의 배우
* [[4월 1일]] - [[김동철(야구선수)|김동철]]: 전 [[삼미 슈퍼스타즈]] 원년 선수
* [[4월 9일]] - [[장쉐밍]]: [[장쭤린]]의 차남, 중공의 정치인
* [[4월 18일]] - [[야기 지로]]: 일본의 아나운서
* [[4월 27일]] - [[호세 이라라고리]]: [[스페인]]의 전 축구 감독
* [[5월 4일]]
* [[이윤성]]: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녹화사업 피해자
* [[테라야마 슈지]]: 일본의 극작가
* [[5월 5일]] - [[리하르트 호프만]]: 독일의 전 축구선수
* [[6월 2일]] - [[에르네스트 리베라티]]: [[프랑스]]의 전 [[축구선수]]
* [[6월 5일]] - [[탄허]]: 대한민국의 불교 승려
* [[6월 18일]] - [[김두황]]: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녹화사업 피해자
* [[6월 28일]] - [[오키 마사야]]: [[일본]]의 [[배우]]
* [[6월 29일]] - 조 딜레이니: 미국의 미식축구 선수
* [[7월 3일]]
* [[유승준(정치인)|유승준]]: 대한민국의 정치인
* [[한영현]]: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녹화사업 피해자
* [[7월 9일]] - 주영형: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의 가해자
* [[7월 17일]] - [[김택수]]: 대한민국의 정치인, 체육행정가
* [[7월 21일]] - [[아더 워츠]]: 전 [[시카고 블랙호크스]], [[시카고 불스]] 구단주
* [[7월 29일]] - [[마누엘 페레이라]]: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감독
* [[7월 31일]] - [[김형종]]: 한신공영그룹 창업주
* [[8월 12일]] - 아르테미오 프란키: 제3대 [[유럽축구연맹]] 회장
* [[8월 14일]] - [[최온순]]: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녹화사업 피해자
* [[8월 18일]]
* [[오운환]]: 당시 동국대학교 농구부 감독
* [[유창영]]: 당시 동국대학교 농구부 소속 선수
* [[9월 1일]] -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으로 불귀의 객이 된 탑승자 전원
* [[로런스 맥도널드]]: 미국의 정치가
* [[류춘택]]: 대한민국의 승마인
* [[9월 9일]] - [[루이스 몬티]]: [[아르헨티나]]/[[이탈리아]]의 전 축구감독
* [[9월 16일]] - [[정인섭]]: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 국어학자. 타계 2년 뒤 색동회에서는 그를 기리기 위해 그의 호를 딴 '눈솔상'을 제정했다.
* [[9월 22일]] - [[차오관화]]: 제4대 중공 외교부장.
* [[9월 23일]] - [[모무열]]: 대한민국의 원로 야구인
* [[10월 9일]] -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희생자 24인 및 범인 1인
*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 [[서석준]]: 제18대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 [[심상우]]: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
* [[이범석(1925)|이범석]]: 제19대 [[외교부|외무부]] [[장관]]
* [[함병춘]]: 제9대 [[대통령비서실]]장
* [[강인희]]: 제29대 농수산부 차관
* [[김동휘]]: 제30대 상공부 장관
* [[김용한]]: 제4대 과학기술처 차관
* [[서상철]]: 제10대 건설부 차관, 제6대 동력자원부 장관
* [[이계철]]: 당시 주 미얀마 대사
* [[민병석(의사)|민병석]]: 당시 대통령 주치의
* [[이중현]]: 동아일보 소속 사진기자
* [[하동선]]: 당시 경제기획원 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장
* [[한경희]], [[정태진]] 경호원
* [[10월 10일]] - [[랠프 리처드슨]]: [[영국]]의 [[배우]]
* [[10월 13일]] - [[이기욱]]: 제32대 재무부 차관
* [[10월 27일]] - [[강명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10월 31일]] - [[조지 할라스]]: 전 [[시카고 베어스]] 선수, 감독, 구단주
* [[11월 6일]] - [[카네코 쇼지]]: 일본의 배우이자 각본가
* [[11월 11일]] - [[정월터]]: 대한민국의 체육행정가
* [[11월 16일]] - [[황정하]]: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11월 17일]] - [[나화랑]]: 대한민국의 대중가요 작곡가
* [[11월 18일]] - [[에밀 베낭트]]: [[프랑스]]의 전 축구감독
* [[11월 22일]] - [[황신덕]]: 중앙여중/여고, [[추계예술대학교]] 설립자
* [[11월 26일]] - [[박초월]]: 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
* [[12월 8일]] - [[최정민(축구)|최정민]]: 대한민국의 축구인
* [[12월 11일]] - [[한희철]]: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녹화사업 피해자
* [[12월 15일]] - [[정은복]]: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12월 16일]] - [[구산]]: 전 송광사 방장, 불일국제선원 설립자
=== 가상인물 ===
* [[4월 2일]] - 채시연/채정아 - 마이 시크릿 러브
* [[8월 3일]] - 타카시마 이치코 -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 [[12월 9일]] - [[콘노 준코]] - [[좀비 랜드 사가]]
* 일자불명
* [[쓰르라미 울 적에]]의 등장인물[* 단, 완결편인 [[마츠리바야시]] 편과 [[미오츠쿠시(쓰르라미 울 적에)|미오츠쿠시]] 편에선 전원 생존한다. 사망한 월, 일, 시각은 미상. 사망 원인은 [[히나미자와 대재해]]로 죽거나 살해당하거나 등등.]
* [[마에바라 케이이치]]
* [[류구 레나]][* 다만 [[와타나가시]], [[메아카시]] 편에선 히나미지와 대재해가 일어나지 않아 생존했고, [[츠미호로보시]] 편에선 학교 인질극으로 경찰서로 조사를 받으러 갔기에 [[히나미자와 대재해]]로 죽는건 면했다. 그리하여 2기 1화의 미래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주민이다. 나머지는 모두 사망…]
* [[소노자키 미온]]
* [[소노자키 시온]][* [[츠미호로보시]] 편에선 대재해 당시 히나미자와에 없었기에 죽는 걸 면했다.]
* [[호죠 사토코]]
* [[후루데 리카]]
* [[토미타케 지로]]
* [[히나미자와]] 주민 2천 명과 그 외
*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인하여 [[시티헌터(드라마)#s-2.4|박무열]]을 포함해서 북한보복 작전으로 '싹쓸이 계획'에 참가한 거의 모든 최정예 북파대원들 -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
* [[아포칼립스(엑스맨 유니버스)|아포칼립스]], [[하복(엑스맨 유니버스)|하복]], [[엔젤(엑스맨 유니버스)|엔젤]] - [[엑스맨: 아포칼립스]]
== 데뷔 ==
=== 가수 ===
==== 한국 ====
* 유연실
* [[이무송]]
* [[이문세]]
* 이진관
* 장혜리
* 한마음
* 강영철, 양하영
* 한울타리
* 최진희
==== 해외 ====
* [[마돈나]]
* [[메탈리카]]
* [[슬레이어(밴드)|슬레이어]]
* 아프리카 밤바타
* [[안와르와 엘리나]]
* [[안와르 제인]], [[엘리나 라작]]
* [[앤스랙스]]
* [[잉베이 말름스틴]]
* 쇼넨 나이프
* [[오자키 유타카]]
* 후디니
* [[Run-D.M.C.]]
* [[Wham!]]
=== 예능인 ===
* [[김미화]]
* [[김종석(1959)|김종석]]
* 단덕수
* [[배영만]]
* [[이재포]]
* 이정문
* 장용
* [[정재환]]
* 지영옥
=== 배우 ===
* 천호진
* 견미리
* 윤철형
* 노경주
* 김영배
* 장정희
* 허윤정
* 이정훈
* 양미경
* 최재성
* 이경영
* 이한위
* 이효정
* 한경선
* 정호근
* 김명국
=== 만화계 ===
* [[김진(만화가)|김진]] - <바다로 간 새>
* [[김혜린]] - <북해의 별>
* 김종두 - <나원참>
* 모리카와 죠지 - <실루엣 나이트>
* 안철주 - <고지산의 괴물타자>
* [[야부우치 유]] - <빵빵해서 미안!>
=== 스포츠 ===
==== 야구 ====
* [[박승호(야구)|박승호]]
* [[양일환]]
* [[한대화]]
* [[장명부]][* 한국 무대 기준]
* [[장효조]]
* [[김시진]]
==== 축구 ====
* 김풍주
* [[로베르토 바조]]
* [[이태호(축구)|이태호]]
* 임고석
==== 미식축구 ====
* [[댄 마리노]]
* [[존 엘웨이]]
==== 농구 ====
* 남자
* 그렉 카이트
* [[닥 리버스]]
* 데릭 하퍼
* 데일 엘리스
* 랄프 샘슨
* 랜디 브루어
* [[바이런 스캇]]
* 시드니 로
* 시드니 그린
* 썰 베일리
* 앤트완 카
* 제프 말론
* 존 팩슨
* 크레익 엘호
* [[클라이드 드렉슬러]]
* 여자
* 성정아
* 조문주
==== 배구 ====
* [[류중탁]]
* [[문용관]]
* [[장윤창]]
* 정의탁
==== 권투 ====
* 최점환
== 은퇴 ==
=== 스포츠 ===
* [[비에른 보리]]
== 히트작 ==
=== 영화 ===
* 적도의 꽃
* 스타워즈 에피소드 6: 제다이의 귀환
* 오복성
* 프로젝트 A
* 007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
=== 드라마 ===
* 개국
* 고교생 일기
* 조선왕조 500년: 추동궁 마마
* 간난이
* 안개
* 전우(제2작)
* 지금 평양에선
* 야망의 25시
* 3840 유격대
=== 가요 ===
* 한국
* 강승모 - 무정부르스
* 강은철 - 삼포로 가는 길
* 국보자매 - 내 모습이 쓸쓸해요
* 김연자 - 그런거야
* 김수철 - 나도야 간다
* 김수희 - 멍에
* 김정호 - 님,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
* 김태정 - 기도하는 마음
* 나훈아 - 18세 순이, 사랑
* 노사연 - 님 그림자
* 민해경, 김현준 - 내 인생은 나의 것
* 방미 - 계절이 두번 바뀌면, 올 가을엔 사랑할거야
* 산울림 - 어머니와 고등어
* 설운도 - 잃어버린 30년
* 손현희 - 이름 없는 새
* 송골매 - 처음 본 순간, 한 줄기 빛, 빗물, 아가에게
* 윤시내 - 공부합시다
* 이동기 - 논개
* 이용 - 서울, 사랑 행복 그리고 이별, 태양의 저편
* 인순이 - 밤이면 밤마다
* 전영록 -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 정수라 - 바람이었나, 아 대한민국
* 조용필 - '''[[조용필 5집|나는 너 좋아, 친구여]]'''
* 패티김 -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1963년 곽순옥의 노래 '남과 북'이 원곡이다.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 주제가로 쓰였다.],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 한마음 - 사랑앓이
* 해바라기 - 행복을 주는 사람
* 허영란 - 날개
* 현철 - 사랑은 나비인가봐,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 혜은이 - 독백
* 해외
* '''[[마이클 잭슨]] - [[Billie Jean]], [[Beat It]], [[Thriller]]'''
* [[컬처 클럽]] - Karma Chameleon
* [[신디 로퍼]] - Girls Just Want To Have Fun, Time after Time
* [[Gary Moore]] - Shape of the Things
* [[Iron Maiden]] - [[The Trooper]]
* '''[[폴리스(밴드)|폴리스]] - [[Every Breath You Take]]'''
* [[유리드믹스]] -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
=== 애니메이션 ===
* 더빙
* [[개구장이 스머프]]
* 알프스의 소녀 안네트
* 어린이 명작동화
* [[요술공주 밍키]]
* [[천년여왕]]
* 해외
* [[G.I. Joe: 어 리얼 아메리칸 히어로(선보우 제작 시리즈)]]
* [[우주의 왕자 히맨|He-Man and the Masters of the Universe]]
* [[앨빈과 슈퍼밴드]]
* [[근육맨]]
* [[캡틴 츠바사]]
* [[캣츠 아이(만화)|캣츠 아이]]
* [[퍼맨]]
* [[성전사 단바인]]
=== 베스트셀러 ===
* 소설 손자병법 - 정비석 저.
== 유행어 ==
* 맞네, 맞아 -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 부탁~해요 - 이덕화
* 나 돈 없슈 - MBC 드라마 <야망의 25시>
* 왜, 떫으유? - 김병조
== 출시 상품 ==
=== 식음료 ===
* 농심
* 2월: 너구리 우동(얼큰한 맛)
* 6월: 크레오파트라 포테토칲
* 8월: 자갈치
* 9월: 안성탕면
* 10월: 양파링
* 롯데제과
* 4월: 빼빼로
* 6월: 죠스바
* 10월 1일: 꼬깔콘
* 유카C
* 동서식품
* 맥스웰 스틱형 커피믹스
=== 생활용품 ===
* 애경유지
* 디데이비누
=== 자동차 ===
* 현대자동차
* 스텔라
* 기아산업-아시아자동차
* 봉고나인
* 세레스
* AM805 콤비
* 대우자동차
* 로얄프린스
* 로얄XQ
* BH120S
* BV101
* BV113 시리즈 중 R, S모델
* 맵시-나
* 거화
* 코란도
* 토요타 자동차
* AE86
=== 전자제품 ===
* 금성사
* 금성 패미콤-30
* 금성 전천후냉장고 3도어
* 금성 백조세탁기 레이디
== 최초 ==
=== 방송 프로그램 ===
* KBS
* 고교생 일기
* 사랑방중계
* 유머 1번지: 최초 방송 당시 제목은 <유모어 1번지>.
* 추적 60분 (1차)
* MBC
* 조선왕조 오백년
* 차인태의 아침살롱
* MBC 베스트셀러극장
== 달력 ==
[include(틀:토요일로 시작하는 평년)]
[[분류:1983년]] |
1983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 [include(틀:역대 FIFA U-20 월드컵)]
[[파일:external/i.goalzz.com/?i=competitions%2Fworld_youth_champ%2Fmexico_083.jpg]]
'''Copa Mundial de Fútbol Juvenil de 1983'''
La Copa Mundial de Fútbol Juvenil de la México 1983
1983 FIFA World Youth Championship
[목차]
== 개요 ==
1983년 6월 2일부터 6월 19일까지 열린 멕시코의 7개의 도시에서 개최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대회 명칭은 월드컵이 아니라,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였다. 개최 도시는 [[과달라하라]], 이라푸이토, [[멕시코 시티]], 레온, [[몬테레이]], 푸에블라, [[톨루카]]에서 총 32경기가 펼쳐졌다.
특히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4강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하여 해외 언론으로부터 '''[[붉은 악마|Red Devils]]''' 즉 '''붉은 악마'''라는 찬사를 받았다. [[2002년 월드컵]] 이전까지 4강 신화라고 하면 이 멕시코 U-20 대회를 뜻했다.[* 그러나, 1999년 나이지리아 대회에서 일본이 준우승하면서 이 말도 쏙 언론에서 빼버리게 되었다....] 그때 당시의 대회 명칭은 '''19세 이하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연령 제한이 20세로 상향 조정된 것은 1991년 포르투갈 대회 때 부터다.[* 참고로 이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북한과 남북단일팀을 결성, 8강까지 진출했다.] 당연히 국내에서 엄청난 화제거리가 되었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가 [[양정모(1953)|양정모]] 하나였고 월드컵도 1954년 이래로 나가보지 못한 상황이다보니 아시아권에서나 스포츠 강국이었지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은 아니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상 [[올림픽]]에서 10위권에 든것이 [[하계 올림픽]]은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부터, [[동계 올림픽]]은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부터이고 월드컵 본선 연속 진출은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1986 멕시코 월드컵]]부터 달성하게 되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이 세계 규모 스포츠 대회에서 10위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언감생심]]인 일이었다.] 1970년대에는 [[킹스컵]], [[메르데카컵]]에서 우승컵을 들어도 카페레이드 했다가 성인남자월드컵이 아닌 청소년들이 나온것이라고 해도 어쨌든 피파에서 주관하는 대회에서 강호들을 잇따라 격파하다보니 더더욱 화제가 되었던 것.
참가 팀은 총 16개 팀이며 본선에 진출한 팀은 다음과 같다 '''굵은 글씨'''는 개최국이다. 1라운드는 조별로 4개의 팀씩 치루어지며 각 조의 1, 2위가 8강에 진출하여 우승자가 나올때까지 싱글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다.
|| 대륙 || 출전권 || 팀 1 || 팀 2 || 팀 3 || 팀 4 || 팀 5 || 팀 6 ||
|| 아시아 || 2장 || 대한민국 || 중국 || || || || ||
|| 아프리카 || 2장 || 코트디부아르 || 나이지리아 || || || || ||
|| 북중미카리브 || 2장 || '''멕시코''' || 미국 || || || || ||
|| 남미 || 3장 || 브라질 || 아르헨티나 || 우루과이 || || || ||
|| 오세아니아 || 1장 || 오스트레일리아 || || || || || ||
|| 유럽 || 6장 || 오스트리아 || 소련 || 체코슬로바키아 || 네덜란드 || 폴란드 || 스코틀랜드 ||
== 조별 라운드 ==
=== A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 '''1''' || [[파일:스코틀랜드 국기.png|width=30]] ||<bgcolor=#90ee90>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스코틀랜드]]''' || 3 || 2 || 0 || 1 || 4 || 2 || +2 || '''6''' ||
|| '''2'''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bgcolor=#90ee90>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 3 || 2 || 0 || 1 || 4 || 4 || 0 || '''6''' ||
|| 3 || [[파일:호주 국기.svg|width=30]] ||<bgcolor=#ffb6c1> [[오스트레일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오스트레일리아]] || 3 || 1 || 1 || 1 || 4 || 4 || 0 || '''4''' ||
|| 4 || [[파일:멕시코 국기.svg|width=30]] ||<bgcolor=#ffb6c1>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멕시코]] || 3 || 0 || 1 || 2 || 2 || 4 || -2 || '''1''' ||
스코틀랜드와 대한민국이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youtube(NAGDaaAcT2I)]
=== B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 '''1''' || [[파일:우루과이 국기.svg|width=30]] ||<bgcolor=#90ee90>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우루과이]]''' || 3 || 2 || 1 || 0 || 6 || 3 || +3 || '''7''' ||
|| '''2''' || [[파일:폴란드 국기.svg|width=30]] ||<bgcolor=#90ee90>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폴란드]]''' || 3 || 2 || 0 || 1 || 10 || 6 || 4 || '''6''' ||
|| 3 || [[파일:미국 국기.svg|width=30]] ||<bgcolor=#ffb6c1>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미국]] || 3 || 1 || 0 || 2 || 3 || 5 || -2 || '''3''' ||
|| 4 || [[파일:코트디부아르 국기.svg|width=30]] ||<bgcolor=#ffb6c1>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코트디부아르]] || 3 || 0 || 1 || 2 || 2 || 8 || -6 || '''1''' ||
폴란드와 우루과이가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 C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 '''1''' ||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width=30]] ||<bgcolor=#90ee90>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 || 3 || 3 || 0 || 0 || 10 || 0 || +10 || '''9''' ||
|| '''2''' || [[파일:체코 국기.svg|width=30]] ||<bgcolor=#90ee90> '''[[체코 축구 국가대표팀|체코슬로바키아]]''' || 3 || 2 || 0 || 1 || 7 || 4 || 3 || '''6''' ||
|| 3 || [[파일:중국 국기.svg|width=30]] ||<bgcolor=#ffb6c1>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중국]] || 3 || 1 || 0 || 2 || 5 || 8 || -3 || '''3''' ||
|| 4 ||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width=30]] ||<bgcolor=#ffb6c1>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오스트리아]] || 3 || 0 || 0 || 3 || 0 || 10 || -10 || '''0''' ||
체코슬로바키아와 아르헨티나가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 D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 '''1''' || [[파일:브라질 국기.png|width=30]] ||<bgcolor=#90ee90>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 || 3 || 2 || 1 || 0 || 6 || 2 || +4 || '''7''' ||
|| '''2''' || [[파일:네덜란드 국기.svg|width=30]] ||<bgcolor=#90ee90>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네덜란드]]''' || 3 || 1 || 2 || 0 || 4 || 3 || +1 || '''5''' ||
|| 3 ||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width=30]] ||<bgcolor=#ffb6c1>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나이지리아]] || 3 || 1 || 1 || 1 || 1 || 3 || -2 || '''4''' ||
|| 4 || [[파일:소련 국기.svg|width=30]] ||<bgcolor=#ffb6c1>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소련]] || 3 || 0 || 1 || 2 || 3 || 5 || -2 || '''1''' ||
브라질과 네덜란드가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 결선 토너먼트 ==
=== 8강 ===
||<-2><tablealign=center> '''대진표''' ||
|| 스코틀랜드
(A조 1위) || 폴란드
(B조 2위) ||
|| 우루과이
(B조 1위) || 대한민국
(A조 2위) ||
|| 아르헨티나
(C조 1위)) || 네덜란드
(D조 2위)) ||
|| 브라질
(D조 1위) || 체코슬로바키아
(C조 2위)) ||
||<-3><tablealign=center>'''1983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8강 제 1경기'''||<-3>'''1983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8강 제 2경기'''||
|| [[파일:스코틀랜드 국기.png|width=30]] 스코틀랜드 || '''0 - 1''' || '''폴란드''' [[파일:폴란드 국기.svg|width=30]] || [[파일:우루과이 국기.svg|width=30]] 우루과이 || '''1 - 1''' (연장전 '''1-2''') ||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
||<-3><tablealign=center>'''1983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8강 제 3경기'''||<-3>'''1983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8강 제 4경기'''||
||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width=30]] 아르헨티나 || '''2 - 1''' || '''네덜란드''' [[파일:네덜란드 국기.svg|width=30]] || [[파일:브라질 국기.png|width=30]] 브라질 || '''4 - 1''' || '''체코슬로바키아''' [[파일:체코 국기.svg|width=30]] ||
대한민국, 폴란드, 아르헨티나 그리고 브라질이 준결승전에 진출했다.
=== 준결승 (4강) ===
||<-3><tablealign=center>'''1983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준결승 제 1경기'''||<-3>'''1983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준결승 제 2경기'''||
|| [[파일:폴란드 국기.svg|width=30]] 폴란드 || '''0 - 1''' || '''아르헨티나'''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width=30]] || [[파일:브라질 국기.png|width=30]] 브라질 || '''2 - 1''' ||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결승전에 진출했다.
=== 3위 결정전 ===
|| [[파일:폴란드 국기.svg|width=30]] 폴란드 || '''1 - 1''' (연장전 '''2 - 1''')||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
폴란드가 3위,대한민국이 4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 결승전 ===
|| [[파일:브라질 국기.png|width=30]] 브라질 || '''1 - 0''' || '''아르헨티나'''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width=30]] ||
브라질이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다.
[[분류:FIFA 월드컵]] |
1983년 한국시리즈 | [include(틀:역대 KBO 한국시리즈 목록)]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 bordercolor=#151b54><bgcolor=#ffffff,#191919> [[파일:external/41.media.tumblr.com/tumblr_o4a4woaUar1sqk8veo6_r1_400.png|width=200]][br] '''{{{#151b54,#abb1ea 역대}}} [[KBO 한국시리즈|{{{#151b54,#abb1ea KBO 한국시리즈}}}]]''' ||
||<width=30%> [[1982년 한국시리즈|1982년]] [br] [[OB 베어스]] || {{{+1 ←}}} ||<bgcolor=#ffffff,#191919><width=30%> '''1983년''' [br] '''[[해태 타이거즈]]''' || {{{+1 →}}} ||<width=30%> [[1984년 한국시리즈|1984년]] [br] [[롯데 자이언츠]] ||
||<-2><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f01e23><tablebgcolor=#ffffff,#191919>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age.pullbbang.com/20110502015927.jpg|width=310]]}}} ||
||<-2> [[파일:6C4qm5u.png|width=200]] ||
||<-2><bgcolor=#000000> '''{{{#ff0000 1983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
||<-2><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타이거즈}}}''']] ||
|| '''{{{#f01e23 MVP}}}''' || [[김봉연|'''{{{#f01e23 김봉연}}}''']] ||
[목차]
== 개요 ==
||<tablewidth=100%><-2><:><tablebordercolor=#edd36c><bgcolor=#00143f,#0b1966> {{{+2 {{{#edd36c '''1983'''}}} {{{#edd36c '''프로야구'''}}} {{{#ffffff '''한국시리즈'''}}}}}} ||
||<width=500><height=150><#1552f8> [[파일:MBC 청룡 엠블럼(1982-1985).gif|width=150]] ||<width=500><height=150><#f01e23> [[파일:1411__haitai_tigers_cap-1982.png|width=110]] ||
||<width=500><#1552f8> [[MBC 청룡|{{{#ffff00 {{{+1 '''MBC 청룡'''}}}}}}]] ||<width=500><#f01e23> [[해태 타이거즈|{{{#000000 {{{+1 '''해태 타이거즈'''}}}}}}]] ||
1983년 10월 15일에 시작해서 10월 20일에 종료된 한국시리즈. 4승 1무로 해태 타이거즈가 첫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시리즈 MVP는 교통사고 후유증을 딛고 한국시리즈에서 맹타를 휘두른 [[김봉연]]이 선정되었다. 그리고 해태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진출시 100% 우승공식의 시작이기도 하다.
[[MBC 청룡]]의 내분으로 인해 자멸한 시리즈이기도 하고 경기 내용 또한 태업성 플레이가 겹치면서 졸전에 가까운 플레이가 많았다. 해태 타이거즈도 이 시리즈 이후 유명한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47&aid=0002055427|불고기 화형식 사건]]'''이 벌어지는 등, 이래저래 경기 자체보다는 경기 앞 뒤의 에피소드가 더 유명한 시리즈다.
== 시리즈 전 상황 ==
=== [[해태 타이거즈]] ===
원년에 선수 부족에 시달리면서 4위를 차지한 해태는 [[김응용]] 감독의 취임 이후 김응용의 지도력에 더해 재일교포 포수 [[김무종]]이 안방을 책임지고, 이상윤과 주동식이 팀의 투수진을 구축하면서 선두권을 형성했다. 그러나 [[장명부]]의 괴력을 앞세운 [[삼미 슈퍼스타즈]]에 내내 끌려다니다가 6월에 열린 홈 3연전에서 김성한의 완봉승에 힘입어 모두 싹쓸이하면서 역전에 성공,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후기리그에서 페이스를 조절하며 통합 성적 2위를 차지한 해태는 김봉연을 축으로 한 타선이 장점이었지만, 그 김봉연이 전기리그 종료 후 휴식기간 중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얼굴을 백여바늘 꿰매는 중상을 입었고,[* 그러나 김봉연은 초인적인 의지로 후기리그 막판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그가 사고 때 흉터를 가리기 위해 [[콧수염]]을 기른 것도 이 때였다.] 그 후유증으로 타선의 폭발력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MBC 청룡]] ===
후기리그에서 삼미를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한 MBC는 전력 자체는 탄탄했다. 원년에 참가하지 못했던 [[김재박]]이 가세했고, 투수진 자체도 상당히 준수한 편이었다. 하기룡, 오영일, 이길환 같은 선수들은 특급은 아니어도 언제든 팀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준척들이었고, 타선도 짜임새가 있던 편이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겉보기와 달리 속은 곪아가는 중이었다. 후기리그 우승 [[보너스]]를 둘러싸고, 구단 수뇌부와 [[김동엽(1938)|김동엽]] 감독, 선수 간의 3자 갈등이 있었던 것. 후기리그 우승 당시 김동엽 감독이 1인당 5백만원의 보너스를 약속한 것을 두고, 구단 수뇌부에서는 한국시리즈 우승이라고 생각하며 후기리그에는 1백만원만 지급했다. 여기에 선수들은 후기리그 우승 보너스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을 두고 불만을 품었다. 원래 구단의 지원+개인의 사비를 털어 지급할 계획이었고, 실제로 이를 미끼로 선수들을 독려한 김동엽 감독은 보너스가 적게 나온 것을 두고 구단에 실망하고, 한편으로는 보너스 때문에 야구를 하는 것처럼 보인 선수들에게도 실망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게 되었다.
===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인한 한국시리즈 연기 ===
후기리그는 원래 10월 5일 종료되었지만, [[전국체전]]이 10월 6일부터 11일까지 열리면서 10월 12일에 시작하기로 결정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10월 9일 [[미얀마]]에서 일어난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인해 17명의 각료가 순직하는 대참사에 따라 애도 기간이 설정되면서 한국시리즈 또한 미뤄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10일을 미뤄서 10월 22일에 시작하려던 한국시리즈는 3일간의 애도기간만을 가진 후 10월 15일에 시작되었다.
중간의 애도 기간동안 MBC는 훈련을 하지 않았는데 "대통령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판에 야구단 마크가 그려진 버스를 타고 왔다갔다 하는 게 남들의 눈에 안좋게 보이지 않겠느냐"라고 구단 차원에서 압력을 가하는 바람에 훈련을 하지 못 했다.
그리고 그 갈등의 골이 깊어진데는 비극적인 참사로 인한 한국시리즈의 연기가 원인으로 작용했다. 갑자기 생긴 휴식기 동안 갈등이 수습되지 않은 것이다. 청룡이 후기리그 우승의 여세를 몰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할 수있을 것이라던 당초 예상이 빗나가는 변수가 되었다. 이 때문인지 세간에서는 "해태 우승의 숨은 공로자는 김일성"이라는 이야기가 회자되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한국시리즈에서 대결한 양팀의 감독 김응용, 김동엽은 모두 이북 실향민 출신이었다.[* 특히 김동엽 감독은 38선에서 따온 등번호 38번을 고수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생전에 김동엽은 1983년 한국시리즈 패배를 회상하며 늘 아웅산 사태를 일으킨 김일성을 원망했다는 후문이다.]
== 엔트리 ==
=== [[해태 타이거즈]] ===
||<-3><bgcolor=#f01e23><tablewidth=80%> '''{{{#ffffff 해태 타이거즈 1983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width=10%><colbgcolor=#000000> '''{{{#ffffff 감독}}}''' ||<width=10%> 1명 ||<width=80%> [[김응용]] ||
||<width=10%> '''{{{#ffffff 코치}}}''' ||<width=10%> 3명 ||<width=80%> [[조창수]], [[유남호]], [[백기성]] ||
||<width=10%> '''{{{#ffffff 투수}}}''' ||<width=10%> 9명 ||<width=80%> [[이상윤(야구선수)|이상윤]], 김용남, [[주동식]], [[방수원]], 강만식, 김현재, 황기선, 엄평재, 조도연 ||
||<width=10%> '''{{{#ffffff 포수}}}''' ||<width=10%> 3명 ||<width=80%> [[김무종]], 박전섭, [[조종규]] ||
||<width=10%> '''{{{#ffffff 내야수}}}''' ||<width=10%> 9명 ||<width=80%> [[김봉연]], [[김성한]], [[서정환]], [[양승호]], [[차영화]], 장진범, 임정면, 김일환, 조충열 ||
||<width=10%> '''{{{#ffffff 외야수}}}''' ||<width=10%> 5명 ||<width=80%> [[김일권]], [[김종모]], [[김준환]], 김종윤, 송일섭 ||
=== [[MBC 청룡]] ===
||<-3><tablewidth=80%><colbgcolor=#1552f8> '''{{{#ffff00 MBC 청룡 1983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width=10%> '''{{{#ffff00 감독}}}''' ||<width=10%> 1명 ||<width=80%> [[김동엽(1938)|김동엽]] ||
||<width=10%> '''{{{#ffff00 코치}}}''' ||<width=10%> 3명 ||<width=80%> [[류영수]], [[유백만]], [[한동화]] ||
||<width=10%> '''{{{#ffff00 투수}}}''' ||<width=10%> 8명 ||<width=80%> [[하기룡]], 오영일, [[이길환]], 이광권, [[유종겸]], [[이원국]], 정순명, 박석채 ||
||<width=10%> '''{{{#ffff00 포수}}}''' ||<width=10%> 3명 ||<width=80%> [[유승안]], [[김용운(야구)|김용운]], 차동열 ||
||<width=10%> '''{{{#ffff00 내야수}}}''' ||<width=10%> 7명 ||<width=80%> [[김재박]], [[이광은]], [[김바위]], [[김인식(1953)|김인식]], [[김용달]], [[김정수(1960)|김정수]], 조호 ||
||<width=10%> '''{{{#ffff00 외야수}}}''' ||<width=10%> 5명 ||<width=80%> 송영운, [[이해창(1953)|이해창]], 김봉기, 신언호, [[이종도]] ||
== 경기 결과 ==
=== 1차전 ===
||<-15><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1차전 10.15(토) 15:00, [[무등 야구장|{{{#ffffff 무등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1552f8> '''[[MBC 청룡|{{{#ffff00 MBC}}}]]''' || 오영일 || 0 || 0 || 0 || 0 || 0 || 2 || 0 || 2 || 0 ||<colbgcolor=#dcdcdc,#222222> '''4''' || 8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이상윤(야구선수)|이상윤]] || 3 || 1 || 0 || 2 || 1 || 0 || 0 || 0 || - || '''7''' || 12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MBC|[[파일:mbc1981.png|width=50]]]] | 캐스터: 양진수 | 해설: 허구연''' ||
[[https://youtu.be/lyimducN3_U|1차전 하이라이트]]
MBC의 선발은 에이스 하기룡도 아니었고, 예고했던 이광권도 아닌 오영일이었다. 이 깜짝수는 그러나 실패로 돌아갔다. 여기에는 해태의 행운이 따랐다. 1회말 무사 1, 2루에서 3번 [[김성한]]이 친 타구는 평범한 3루 땅볼로 병살이 될 것처럼 보였지만, 부러진 방망이가 3루로 튀면서 그만 MBC의 3루수 [[이광은]]이 공을 잡는데 실패한 것이다. 그러면서 맞은 무사 만루 위기에서 오영일은 [[김봉연]]을 삼진으로 잡으면서 위기를 넘기는가 싶었지만, 5번 김종모가 친 타구는 3루 베이스를 맞고 굴절되면서 2루타가 되었다. 결국 이 때문에 1회 3점 실점했다.
문제는 이거까지는 괜찮았는데, MBC의 김동엽 감독의 전술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기용의 연속이었다는 것에 있었다.[* 이에 대해 허구연의 저서 <홈런과 삼진 사이>(1992)는 당시 보너스 갈등으로 자신의 체면이 깎인 것에 심기가 불편해진 김동엽 감독이 작전 지시를 비롯한 경기 운영을 한동화 수석코치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방관했다고 기록했다. 당시 한국시리즈 내내 나타났던 청룡의 무기력한, 개연성이 부족한 경기 운영도 이를 통해 설명되는 편이다.] 깜짝 선발로 흔들려던 의도가 실패했다면 당연히 하기룡이든 이길환이든 MBC의 괜찮은 투수 물량을 이용해야 했는데 그저 가만히 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오영일은 이 날 7실점을 하면서 완투패를 하는데, MBC가 7회와 9회 2점씩 내면서 추격을 했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투수 운용으로 스스로 경기를 헌납한 것이었다.
1983년 20승을 거두며 해태의 에이스로 등극한 이상윤은 9이닝을 4실점으로 버티면서 완투승을 따내며 해태가 시리즈 첫 승을 거두는데 크게 기여한다.
=== 2차전 ===
||<-15><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2차전 10.16(일) 15: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ffffff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주동식]] || 0 || 0 || 2 || 0 || 2 || 0 || 1 || 3 || 0 ||<colbgcolor=#dcdcdc,#222222> '''8''' || 9 ||
||<bgcolor=#1552f8> '''[[MBC 청룡|{{{#ffff00 MBC}}}]]''' || [[유종겸]] || 0 || 0 || 0 || 1 || 0 || 0 || 3 || 0 || 0 || '''4''' || 9 ||
중계방송사는 KBS 1TV.
해태는 팀의 2선발인 재일교포 출신 [[주동식]]을 내세웠다. 그런데 MBC는 여기서 또 하기룡 대신에 좌완 계투인 유종겸을 올렸다.
MBC가 먼저 기세를 올렸다. 2회말 1사 2,3루의 찬스를 잡은 것. 그러나 여기서 3루 주자 송영운이 해태 포수 김무종의 견제구에 걸려 아웃되면서 기회를 날리고 만다. 한 숨 돌린 해태는 3회초에서 대타 [[양승호]]의 2루타로 2점을 내면서 기선을 잡았다. MBC가 4회 연속 3안타로 1점을 내자 해태의 김응용 감독은 바로 주동식을 내리고 김용남을 올려 불을 껐다. 그리고 5회초 볼넷 3개와 상대 실책 2개를 묶어 2점을 내면서 4:1로 도망갔다. 그리고 7회초에는 [[김봉연]]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하는 초강수를 던지며 1점을 도망가는데 성공했다.
이 희생번트를 통한 1점은 상당히 컸는데, 7회말 MBC가 3점을 내면서 추격하며 5:4로 따라잡은데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시 김동엽 MBC 감독의 이해할 수 없는 운영이 나왔다. 이미 바꿔도 진작 바꿔야 했던 유종겸을 다시 8회에도 올린 것이다. 지친 유종겸은 결국 8회초에서 해태에게 4안타를 내주면서 3실점했고, 그것으로 승부는 끝났다.
승리투수는 4회 구원 등판한 해태의 김용남, 패전 투수는 8실점 완투패를 기록한 유종겸. 김동엽 갑독의 태업에 가까운 운용, 고비마다 나온 선수들의 실책, 주루사와 4차례의 병살타까지. MBC는 태업이 의심되는 자멸에 가까운 플레이로 스스로 무너졌다.
=== 3차전 ===
||<-15><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3차전 10.18(화)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ffffff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1552f8> '''[[MBC 청룡|{{{#ffff00 MBC}}}]]''' || 이광권 || 0 || 0 || 0 || 0 || 0 || 3 || 0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3''' || 5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주동식]] || 1 || 0 || 3 || 0 || 0 || 0 || 1 || 0 || - || '''5''' || 10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MBC|[[파일:mbc1981.png|width=50]]]] | 캐스터: 김용 | 해설: 허구연''' ||
해태는 선발로 주동식을 다시 내보냈고, MBC는 이번에도 하기룡 대신에 이광권을 내세웠다. 에이스 대신에 또 다시 깜짝 카드를 선택한 MBC의 김동엽 감독의 선택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이해하기 힘든 선택이기는 했다.
그러나 이광권 카드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먼저 1회말 해태는 김봉연의 3루 강습 안타로 선취점을 냈다. 그리고 3회말 무사 2, 3루 찬스를 잡은 해태는 바뀐 투수 하기룡을 상대로 김봉연이 3점 홈런을 치면서 4:0으로 달아났다.
MBC도 앞선 두 경기와 달리 무기력하지는 않았다. 6회초 공격에서 [[김재박]]의 2타점 2루타와 [[서정환]]의 실책을 틈타 3점을 내면서 추격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김재박의 주루 미스로 아웃이 하나 늘면서 흐름이 맥이 끊어지고 만다. 한숨돌린 해태는 7회말 1사 1,3루에서 김봉연의 내야 땅볼로 5점을 내면서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김봉연은 이 날 혼자 5타점을 올리면서 팀 승리의 1등 공신이 되었고, 마운드에서는 6회부터 구원등판한 이상윤이 끝까지 경기를 지키면서 해태는 시리즈 우승에 1승만 남겨놓게 되었다.
=== 4차전 ===
||<-19><bgcolor=#ffffff,#191919> {{{#000000,#e5e5e5 '''한국시리즈 4차전 10.19(수)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000000,#e5e5e5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R''' || '''H'''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이상윤(야구선수)|이상윤]] || 0 || 1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1''' || 16 ||
||<bgcolor=#1552f8> '''[[MBC 청룡|{{{#ffff00 MBC}}}]]''' || [[이길환]] || 0 || 0 || 0 || 0 || 0 || 0 || 0 || 0 || 1 || 0 || 0 || 0 || 0 || 0 || 0 || '''1''' || 12 ||
중계방송사는 KBS 1TV.[* 당일 경기 중계 방송은 이장우 캐스터, 하일성 해설위원이 진행하였다.]
우승을 위해 해태는 다소 무리이기는 했지만 전날 구원으로 나온 이상윤을 선발로 냈고, MBC는 1983년 승률 1위 이길환을 선발로 냈다.
분명 찬스는 해태가 더 많았다. 2회 김봉연의 2루타와 김종모의 안타로 무사 1, 3루의 찬스를 잡으면서 승부를 결정지을 좋은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여기서 [[김무종]]의 병살타로 1점을 내는데 그쳤다. 해태는 15회동안 안타 16개와 볼넷 6개를 얻고도 병살타 3개를 치는 등, 타선이 집중력을 잃으면서 경기를 끝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MBC가 잘했냐면 그건 아니었다. 전날 구원으로 나온 이상윤에게 다시 끌려다니면서 8회까지 선발 5안타로 끌려갔다. 하지만 9회말 송영운의 안타로 이상윤을 끌어내리는데 성공한 후, 2사 1, 3루의 찬스에서 대타 김바위의 극적인 동점 적시타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 적시타로 MBC 청룡은 역대 한국시리즈 통틀어 패배와 함께 준우승이 확정되는 벼랑끝 상황을 극복하고 시리즈를 다음경기까지 끌고 간 유일한 사례로 현재까지도 남아있다.][* 이후 [[2019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키움 히어로즈]]가 [[두산 베어스]]에 1점차로 지고 있던 9회말의, 준우승 확정 직전 상황에서 동점을 만드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이어진 연장승부에서 결승점을 내주고 패하면서 시리즈를 다음 경기로 연장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국시리즈에서 비슷한 벼랑끝 상황에서 시리즈 전체를 뒤집거나 해당 경기에 역전승을 거둔 팀은 아직까지 없다.]
그리고 연장 11회말, 1사 1, 2루 상황에서 2루에 있던 [[이해창(1953)|이해창]]이 내야 땅볼 때 과감하게 홈 대시를 하면서 끝내기를 노렸다. 하지만...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age/109/2005/05/06/200505061216071100_1.jpg]]}}}||
|| 이 사진 한 장이 이날 경기의 모든 것을 요약해준다. ||
홈에 뛰어들다 아웃된 후 허탈해 하는 MBC의 이해창과 "아웃이에요, 아웃" 하면서 웃고 있는 해태의 [[김무종]]. 이 장면이 이 날의 마지막 기회였고, 승부는 1:1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4차전 종료 후, 해태 선수들에게 '''호랑이 기운이 솟아날''' 소식이 들려왔다. 해태가 시리즈 우승 시 선수단에 보너스로 1억원[* 정확히는 시리즈 우승 배당금 2천 8백만원+구단 지원금 7천 2백만원. 참고로 이 당시에는 '''강남의 60평 짜리 아파트가 5천만원 하던 시절이다'''.]을 풀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긴 접전 끝에 지칠대로 지친 선수들이 없던 힘까지 쥐어짤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 5차전 ===
||<-15><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5차전 10.20(목)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ffffff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1552f8> '''[[MBC 청룡|{{{#ffff00 MBC}}}]]''' || [[이원국]] || 0 || 0 || 0 || 0 || 0 || 0 || 1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1''' || 6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주동식]] || 1 || 0 || 2 || 0 || 2 || 0 || 3 || 0 || - || '''8''' || 11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MBC|[[파일:mbc1981.png|width=50]]]] | 캐스터: 김용 | 해설: 허구연''' ||
[youtube(UXmWs6ApgqA)]
전날 혈전으로 투수진이 바닥한 두 팀. 해태는 하루 쉬고 다시 나온 주동식에게 선발을 맡겼고, MBC는 멕시칸리그 출신의 이원국에게 선발을 맡겼다.
그러나 시즌 내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던 이원국은 예상대로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1회말 김일권이 도루와 상대 실책으로 3루 진루에 성공하며 내야 땅볼 때 홈을 밟아 가볍게 선취점. 3회말에는 김성한과 김봉연의 적시타로 2점 더, 5회말에는 김일권의 2타점 2루타로 2점 더 내면서 5:0으로 점수를 벌렸다.
7회초 MBC가 한 점을 추격했지만, 2사 만루 찬스에서 등판한 이상윤이 이해창을 내야 플라이로 잡으면서 추격은 여기까지였다. 그리고 곧바로 7회말에 해태는 대거 3득점하면서 승부를 결정지었다. 9회말 2사에서 김인식을 땅볼로 잡고 5차전에서 낙승한 해태는 이로서 예상을 깬 첫 우승에 성공했다.
== 기타 ==
* 보너스 문제로 갈등을 빚은 MBC 청룡은 보너스 문제의 중심이 있던 김동엽 감독을 해임하는 것으로 문제를 정리했지만, 그 뒤로 MBC 청룡은 선수단과 프런트, 감독의 3자 갈등이 고질병이 되면서 [[LG그룹]]에 [[LG 트윈스|인수되기 전까지]] PO 진출에 번번이 실패한다.
* 투수진에서 다소 열세였지만 무리에 가까운 운용으로 우승을 따낸 해태는 예상대로 우승 후유증으로 이후 2년 동안 정상과는 거리가 먼 성적을 내었다. 물론 그 뒤로는 프로야구의 신화가 되었지만.
* 우승 보너스로 1억원의 거금을 풀었지만, 해태의 대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듬해인 1984년 시즌, 해태가 선수들의 짭짤한 용돈벌이 수단이었던 메리트 시스템을 폐지하고 원정경기 숙소를 이전보다 낮은 등급의 호텔로 바꾸는 등 오히려 선수들 대접이 더욱 열악해진 것이다. 결국 불만을 품은 해태의 선수들이 주동해서 벌인 것이 그 유명한 '''[[불고기]] 화형식''' 사건. 1984년 시즌 개막 후 처음으로 맞이한 서울 원정경기가 끝난 후 타이거즈 구단주였던 박건배 해태그룹 회장이 저녁 회식을 베풀었는데 선수단 전체가 불고기에 손을 대지 않고 태워버리는 집단 항명을 벌인 것이다. 결국 심기가 불편해진 박건배 회장은 회식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고 김응용 감독은 노발대발했다. 당시 어느 한 선수가 꼭 주동한 것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정작 어느 누구도 "내가 주도했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으면서 프로야구 판의 이단아 격이었던 [[김일권]]이 주동자로 찍히게 된다. 물론 실력이 있으면 악감정은 눈감는 김응용 감독은 이순철의 등장 전까지는 김일권을 주전으로 쓰기는 했다.
* 모든 해설가와 야구 전문가들이 MBC 청룡의 우세를 점쳤지만, 딱 한 사람만이 해태의 우승을 예고하면서 이 해설가는 그 뒤로 해설계의 대표주자로 떠오른다. 바로 [[환일고등학교]] 체육교사를 그만 두고 당시 [[한국방송공사|KBS]]에서 본격적으로 프로야구 해설을 시작한 [[하일성]]이었다.[* 이후에 방송에서 해태의 우승을 예상한 이유를 '내가 그때 뭘 알았겠어, (평소에 친한 김)응용이 형님이 감독으로 있어서 그냥 그렇게 말한거지'라고 하였다]
* [[2017년 한국시리즈]] 전까지 [[선동열]]과 [[이종범]]이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모두 없는 상황]]에서 타이거즈가 우승을 차지한 유일한 시리즈였다. --그런데 둘 다 있을 때 우승했던 건 [[1993년 한국시리즈]] 1번 뿐이다.--
== 관련 문서 ==
* [[해태 타이거즈]]
* [[MBC 청룡]]
== 둘러보기 ==
[include(틀:한국프로야구 역대 포스트시즌 목록)]
[[분류:KBO 한국시리즈]][[분류:해태 타이거즈]][[분류:LG 트윈스]][[분류:김응용]] |
1984(소설)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rd1=1Q84)]
[include(틀:노벨연구소 선정 역대 최고의 책)]
[include(틀: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
||[[파일:attachment/1984/c0026408_4bf7e8c421895.jpg|width=300]]||[[파일:attachment/penguin1984.png|width=300]]||
|| 2008, Penguin Books '''USA''' [br](절판) || 2013, Penguin Books '''UK'''[br]제목이 검열된 듯한 표지가 인상적이다.[* 우리가 보통 '[[펭귄 북스]]'하면 떠올리는 위와 같은 주황색 커버는 정식으론 영국 펭귄에서만 발매한다. 미국에서 안 파는 것은 아니고 역수입을 통해 판다. 저 검열된 듯한 검은 윗 띠에 비춰지는 단어는 Nineteen Eighty-Four 또는 1984이다. 그리고 아랫 띠에는 대부분 George Orwell이나 한국어 번역판의 경우 조지 오웰 또는 아랫 띠가 없다.] ||
[목차]
== 개요 ==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WAR IS PEACE. FREEDOM IS SLAVERY. IGNORANCE IS STRENGTH.)
>----
>- 당의 구호
'''1984'''는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의 [[1949년]]작 [[소설]]로, 집필 당시에 미래인 [[1984년]]의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무대로 [[가공의 국가]] [[오세아니아(1984)|오세아니아]]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을 다룬다.
== 상세 ==
국민에 대한 통제와 [[독재]]를 풍자하며, 같은 작가가 쓴 《[[동물농장(소설)|동물농장]]》과 더불어 국가가 개인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이다. 같은 영국의 소설가인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러시아의 소설가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친]]의 《[[우리들]]》과 더불어 '''[[20세기]] 3대 SF 디스토피아 소설'''로 불린다.
정부의 감시 카메라 설치나 개인정보 사용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자주 쓰는 개념인 '[[빅 브라더]]'는 이 소설에서 유래되었다. 이 소설의 영향으로 소설 속의 오세아니아처럼 정부가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통제하는 전체주의 사회는 '오웰리언(Orwellian)'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근미래 [[사이언스 픽션]] 소설로 분류하나 정작 작가 본인은 이를 싫어했다고 하는데, 그 시대의 SF는 그저 값싼 펄프지로 찍어낸[* 주로 [[펄프 픽션]]으로 불렸었다.], 불쏘시개에만 국한되는 소설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었다. 1984년 전까지는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이들이 마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처럼 1984년에 실제로 이러한 사건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으며, 이 때문에 이 소설을 1984년 [[Apple]]사에서 [[Macintosh(컴퓨터)|매킨토시]] 광고에 적절히 이용하여 큰 호응을 불어일으켰다. 현실 세계의 1984년은 동구권[* 7년 후의 소련 완전붕괴 전, 서서히 체제가 무너지고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 소설과 비슷하게 흘러갔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 시절로 [[신군부]]의 독재 체제였으며 정권에 대한 불만을 돌리기 위해 [[3S 정책]]이 실시되던 때이다.] 등을 제외하면 소설 속 내용과 정 반대로 지나갔으므로, 이 소설을 [[대체역사소설]]로 취급하는 이도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1984》가 자신이 볼 때는 별로 대단한 소설이 아닌데다, 디스토피아 소설은 한 가지 음밖에 낼 수 없다며 이 작품은 [[냉전]] 기류에 편승해서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고 혹평했다.
《1984》에서 주로 다루는 "국가로 인한 광범위한 국민의 통신 도감청 및 감시"라는 개념은 훗날 에셜론 프로젝트(ECHELON Project)로 드러난 미국 [[NSA]]와 5 아이즈 국가의 정보기관이 주도한 광범위한 유럽 전지역의 상업통신 도감청시도로 드러났다. 맨 처음 폭로한 사람은 영국 월간지 뉴스테이츠먼의 탐사전문기자 던컨 캠벨로, 1980년부터 추적을 시작해 1988년 1월 유럽의회에서 에셜론 프로젝트 관련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 제목 ==
제목 '1984'는 오웰이 집필 당시의 연도인 '''[[1948년]]의 숫자 2개를 서로 바꾸어''' 만들었다고 한다. 집필 시작은 1948년부터 했으나, 집필이 마무리되어 책으로 첫 출간된 해는 1949년이다.
원래 오웰은 책의 제목을 '[[유럽]]의 마지막 인간'이라고 정했으나, 출판사에서 반대해서 바꿨다고 한다. 그래서 작중 오브라이언이 "만일 네가 지구의 마지막 인간이라면, 그 인간의 꼴을 네 눈으로 봐라!"라고 주인공인 윈스턴에게 말하기도 한다.
== 줄거리 ==
>1984』는 현대 사회의 전체주의적 경향이 도달하게 될 종말을 기묘하게 묘사한 근미래소설이다. 1984년,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 세 국가에 의해 분할 통치되고 있다. 윈스턴 스미스는 오세아니아의 한때 영국이라 불렸던 지역에 사는 하급 당원이다. 사람들은 사무실에서도 집에서도 24시간 송수신이 가능한 ‘텔레스크린’에 감시당하고, 사생활과 개인공간이라는 말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어느 날 그는 가게 진열장에 놓인 공책에 홀리듯 매료되어 그것을 구입한다. 그리고 방 안 구석 텔레스크린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유일한 공간에 앉아 이제까지는 상상만 해왔던 그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1984년 4월 4일.” 그것은 바로 일기를 쓰는 것이다……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015 《1984》 줄거리 (인용)
== 설정 ==
[include(틀:스포일러)]
《1984》의 사회는 [[기술독재]]를 기반으로 하며, 당원이 사는 집에는 '[[텔레스크린]]'이라고 부르는, [[텔레비전]]과 비슷하게 방송에 쓰지만 수신과 송출이 동시에 되는 기계가 있다.[* [[텔레스크린]]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카메라를 탑재한 [[스마트 TV]]의 등장으로 이미 기술적으로는 상당부분 완성이 되었다.] 텔레스크린은 함부로 끌 수 없고, 소리만 조금 낮출 수 있다. 고급 당원은 하루 30분 정도는 끌 수 있다고 한다. 당원이 아닌 하층 [[노동자]] '프롤(Prole, 프롤레타리아의 줄임말)'들은 텔레스크린의 감시는 겪지 않으나 국가의 [[우민화 정책]]이 놀랄 만큼 성공하여, 만화경 같은 기계로 쓰는 소설과 노래를 소비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이들 중에서 똑똑하거나 반항적이라고 간주된 이들은 고대 [[스파르타]]에서 같은 이유로 헬롯을 죽이던 것처럼 숙청당한다. 당의 통치 방침 중에서 '''노동자와 동물은 자유'''도 있다.
어디에 가나 [[빅 브라더]]는 벽보로 붙어있고, 방송에서 꼭 등장하지만 빅 브라더가 실제 모습으로 등장한 적은 없다. 작품 후반부에 애정부에 갇힌 윈스턴에게 심문자인 오브라이언이 "[[전체주의|개인은 유한하나 국가는 불멸]]"이라고 한 말을 보아, 빅 브라더는 오브라이언으로도 볼 수 있고, 나아가 어떤 특정 개인이라기보다는 지도 계층, 또는 지도 계층의 아이콘, 혹은 국가(당) 그 자체이거나 그것을 상징하는 그 무엇으로 인식되어도 무방하다. 윈스턴의 사회적 지위도 낮으므로, 그를 심문하고자 빅 브라더가 직접 등장할 이유도 없다.
소설 후반부에서는 체제의 반역자 골드스타인이 썼다는 《과두적 정치체제의 이론과 실제》도,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는 지하조직 '형제단'도 오브라이언이 파놓은 함정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심지어 윈스턴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던 프롤 노인인 채링턴의 정체도 윈스턴을 몰래 은신처의 텔레스크린으로 감시하던 사상경찰이 위장한 것이었다.
빅 브라더가 통치하기 전의 세계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모두 당이 [[숙청]]하였다.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가 작중에서 어렸을 적의 사건을 어렴풋이 기억하지만, 그마저도 주인공 스스로 정확한지 의문을 가진다.
=== [[신어]] ===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사상에 입각하여, 당은 영어를 바탕으로 [[신어]](newspeak)라는 사상통제용 언어를 새로 만들어 사람들이 당의 방침에 대한 어떠한 의문도 가지지 못하게 한다. 이전의 언어는 구어(oldspeak)[* 집필 당시에도 사용되었던 현대 '''영어'''.]라고 하여 점차 사용 빈도 수를 줄이며 사어화시킨다.
이렇게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당의 방침과 반대인 개념을 완전히 제거하여, 신어를 쓰는 사람들이 당의 방침을 본능으로 느끼도록(bellyfeel) 만들고, 궁극적으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자유인 생각의 자유마저 앗아가는 것이다. 또한 신어는 보통의 다른 언어들과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어휘 수가 줄어드는 언어이며, 이것 또한 어휘의 풍족성을 매우 낮추어서 사람들의 생각을 억압하거나 통제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이에 대한 적절한 예시로, 좋다(good)의 반대말은 나쁘다(bad)이지만, 신어에서는 좋다의 반대말로 나쁘다가 아닌 좋지 않다(ungood)가 사용된다. 나쁘다(bad)와 좋지 않다(ungood)의 의미 차이는 상당하다.
작가가 부록('신어의 원리')에서 신어의 개념과 변천과정을 설명하는 글을 일종의 연구 보고서 형식으로 해서 현대 영어로 분석하였는데, 시점이 '''과거형'''이다. 이 서술 방식을 통해 결국 신어는 (더 나아가 영사와 오세아니아는) 실패하였다(!)는 암시를 드러내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펭귄사 판의 토마스 핀천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미국에 출판될 때 미국 독서클럽에서는 엠마뉴엘 골드스타인의 '과두정치적 집단주의의 이론과 실제'와 이 부록을 빼야한다고 요청했는데(!) 조지 오웰은 책의 한 내용을 빼면 모든 것을 뒤집어야 한다고 극구 반대했다.
작가가 이 소설만을 위해 만든 [[인공언어]]에 가깝다 보니 작품 내부에서만 쓰이는 신조어들도 많다. ~~줄임말에 기반한 단어들이다보니 이 단어들은 번역 과정에서 오히려 한자문화권에선 쓸 법한 단어들이 된 경우도 꽤 있다.~~
이 외에도 동사의 불규칙 형태나 중복된 의미를 가진 동사 등 영어의 불필요한 형태가 제거되었다.
그 외 자세한 정보는 [[신어]] 문서 참조.
=== 작품 속 세계관 ===
1984 속 세계에는 작품 속 시간대 몇년전에 세계 곳곳에서 [[핵전쟁]]과 혁명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 빅 브라더가 통치하는 '''[[오세아니아(1984)|오세아니아]]'''와 다른 두 거대국가인 '''유라시아''', '''동아시아'''라는 3대 [[초강대국]]이 탄생한다. 이 세 국가는 한 국가를 다른 두 국가들이 동맹을 맺고 공격하다 동맹이 깨지고 다시 다른 국가와 동맹을 맺어 다시 두 국가가 다른 한 국가를 공격하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 체제의 붕괴를 방지하는 [[적대적 공생]]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작중에서 3대 초국가는 소규모 전쟁만 벌일 뿐, 상대국이 [[상호확증파괴|정말로 파멸에 이를 수 있는 술책]]은 서로 암묵적으로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와 같이 《1984》의 배경인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는 식자층의 끊임없는 감시와 [[우민화 정책]], 국가의 과도한 개입을 정당화시키는 '''영구적인 전쟁'''으로 존속한다. 전쟁을 계속하지 않으면 지배층이 국민을 통제할 만한 중요한 명분이 사라지고, 또한 잉여 생산물이 나오면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 금세 [[혁명]]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고 국민들을 가혹하게 통제하기 위해서 [[외부의 적]]을 언급하는 것은 [[독재]]정권의 기본 전략이다. [[선군정치]]를 내세우는 [[북한]] 정권이 그 예다.
흔히 디스토피아를 다루기'만' 하는 소설[* 2010년대 들어 [[헝거 게임 시리즈]], [[다이버전트]] 시리즈를 비롯한 영 어덜트 소설에서 디스토피아 사회를 다룬 소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에서는 관리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고 하층민들은 뼈빠지게 착취당하는 식으로 묘사되는데, 《1984》에서 오세아니아 연방은 국민과 지도부를 초탈한 하나의 영속하는 유기체[* 일종의 [[사회유기체설]]인데, 흔히 전체(국가, 민족, 사상집단 등)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개인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변질된다. [[파시즘]], [[스탈린주의]], [[주체사상]] 모두 이런 논리를 포함하고 있다.]처럼 표현된다. 그래서 전자의 소설들이 흔히 '민중의 힘'으로 체제를 뒤엎는 클라이맥스로 끝나는 반면, 《1984》를 포함한 명작으로 불리는 디스토피아 소설들에서는 그런 전형적인 [[영웅]]들보다는 거대한 체제에 반항하다 끝내 파멸하는 개인을 묘사한다. 본작에서도 2부까지는 그런 희망을 어느 정도 비추지만, 3부에서는 끝내 고문과 세뇌 과정 끝에 카페에서 술이나 마시며 신세나 한탄하는 폐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소설의 세계관에 관해서 [[한국어 위키백과]]에 관련 세계지도가 있다.[[http://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1984_fictious_world_map.png|#]] [[영어 위키백과]]의 지도는 여기.[[http://en.wikipedia.org/wiki/File:1984_fictious_world_map_v2_quad.svg|#]] 3강 대립구도 자체는 상당히 흔하나, 실제로 미-소 진영의 대립구도에다 정치/경제 강국으로 부상한 동아시아권이 합세한 3대 세력의 정립 양상은 20세기 후반, 그리고 현대의 현실 세계정세에 나타났다. 소련이 붕괴되어 러시아로 변한 것을 빼면 미-소-중 냉전은 변하지 않았다.
소수의 해석으로, 오세아니아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 및 전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선전 속 허구'''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작중 줄리아도 거주 구역에 대한 로켓 공격에 대해 정부의 자작극이라는 주장을 한다. (물론 근거는 없지만.) 즉 위에 언급한 외부의 적 자체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체제 유지를 위해서 허구의 적을 만들어냈다는 것. 이 역시 현실의 독재 체제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사례이다.
여담으로 작중에선 오세아니아를 비롯한 3강의 독재정을 흔들 요소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람의 생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환경 문제]]'''가 남아있다. 대규모 핵전쟁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방사능 문제도 남아있을 수 있고[* 핵폭발로 인해 발생하는 방사능은 지속시간이 그리 길지 않지만, 방사능으로 인한 인체 내 유전자 변이와 그 폐해는 대를 이어 지속된다. 더군다나 생화학 무기까지 동원되었다면...], 인간을 자원취급하는 당의 성격을 고려해보면 공업으로 인한 오염 대책도 논의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소빙하기]]로 인한 농업 생산량 감소가 유럽 내 사회혼란을 가속화해 [[마녀사냥]]과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다는 점이나 [[체르노빌 사고]]가 [[소련 붕괴]]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사실 환경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시점이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을 쓴 1960년대이기 때문에 1949년에 본작을 쓴 조지 오웰 또한 이 점을 간과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오세아니아(1984)|오세아니아]] ====
'''Oceania'''
작품의 무대. [[오세아니아(1984)]] 문서 참조.
==== 그 외 지역 ====
* [[유라시아]](Eurasia)
[[소련]]이 [[영국]]을 뺀 유럽 대륙 전체를 합병(공산화)하여 성립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더한 지리상의 명칭을 그대로 반영했다. 대표 사상은 "신(네오) 볼셰비즘". 광활한 대륙 영토를 국가 방어의 이점이자 전쟁의 장기로 삼고 있다. 소설의 시작 시점에서 오세아니아와 [[아프리카]]에서 국지전을 치르고 있다고 나온다.
* [[동아시아]](Eastasia)[* 이스트아시아로 끊어서 번역한 곳도 있고, 그냥 이스타시아로 번역한 곳도 있다. 출판사마다 표기가 다르다.]
이름 그대로 [[중국]], [[일본]], [[한국]][* 작중 지역으로서의 언급은 없다.], [[만주]], [[몽골]], [[티베트]]가 들어간다. '중국 남쪽의 나라들'이라는 언급으로 보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도 여기에 속하는 듯 하며[* 하지만 동남아는 거의 전부가 [[홍콩]] - [[다윈(호주)|다윈]] - [[탕헤르]] - [[브라자빌]]의 사각형 안에 들어간다.], 서쪽 국경은 불분명하다고 나온다.[* 때문에 인터넷 등지에서는 동아시아가 영역이 가장 들쭉날쭉하며 카자흐스탄의 남쪽 절반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와 이란, 아프가니스탄까지 차지한 것으로 그린 버전도 있다. 남인도와 인도네시아 군도가 분쟁 지역으로 언급된 것으로 보아 북인도와 인도차이나, 말레이 반도까지는 차지하고 있을 수도.] 작품 안에서는 10년 간의 전쟁 끝에 성립되어서 3대 국가 중 가장 늦게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1960년대]]라 한다. [[국공내전]]에서 이긴 쪽이 대륙을 통일한 듯하지만... 그냥 모호하다. 대표 사상은 "죽음 숭배", "자기 말살"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고 하나 이 또한 모호하다. 구 [[일본 제국]]의 [[국가신토|천황 숭배]]에서 따온 듯 하다. 땅은 앞의 두 국가보다 좁으나 [[인해전술|많은 인구]]로 커버하는 모양이다. 골드스타인의 책에서도 오세아니아는 드넓은 [[태평양]]과 [[대서양]]에 의해, 유라시아는 광활한 국토에 의해, 그리고 동아시아는 국민의 다산성과 근면성에 의해 보호받으면서 세 국가 간의 균형이 유지된다는 언급이 나온다.
* 분쟁 지역
[[북아프리카]]와 적도 아프리카, [[중동|중동권]], [[중앙아시아]] 및 남인도, 인도네시아 군도, 극지방은 분쟁 지역으로 3대 강국 어디에도 확고한 지배권이 없는 곳으로 설정되었다. 정확히는 [[홍콩]], [[다윈(호주)|다윈]], [[탕헤르]], [[브라자빌]][* 중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콩고 공화국]]의 수도.]을 잇는 지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베트남]] 등은 동아시아 영토에 안 들어갈 수도 있다. 그 밖에도 극지방과 유라시아의 접경 지대인 [[몽골]], 중앙아시아 및 오세아니아/동아시아가 다투는 [[인도양]]과 [[태평양]]의 섬들도 분쟁지역이다. 분쟁지역에는 귀중한 광물이나 합성 제품의 원료, 고무 같은 천연 자원이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이곳이 값싼 노동력의 보고라는 점이다.[* 골드스타인의 책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20%가 이곳에 거주한다.] 이곳의 사람들은 [[제국주의|노예나 자원 취급을 받으며 석탄이나 석유처럼 소모된다]].
=== 등장인물 ===
==== 주요 등장인물 ====
* [[윈스턴 스미스]](Winston Smith) - 주인공.
* [[줄리아#s-1.2.1]](Julia)
* [[오브라이언#s-3.1]](O'Brien)
==== 주변 등장인물 ====
* 파슨스(Parsons)
윈스턴의 동료. 이름은 톰이며 35세. 아내와 1남 1녀를 두었다. 전체적인 이미지는 동물농장의 복서처럼 우직하고 힘깨나 쓰는 근육뇌 캐릭터다. 순수하게 당에 충성하나 머리가 딸려서(...) 요직은 맡지 못하고 힘 쓰는 하급직에서 일한다. 자신의 자녀들이 당의 강령에 아주 충성스럽게 따르고 있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을 정도로 충성심이 강하다. 그런데 그 방식이 당가를 시도때도 없이 부른다든가 하는 식이면 그나마 양호한데, 빅 브라더가 인쇄된 종이로 음식물을 싸는 노부인의 치마에 몰래 불을 붙여서 중상을 입힌다든가 하는 등 하나같이 흠좀무한 것들로, 이러한 이야기들은 본작의 세계관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완벽하게 세뇌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파슨스는 동료인 윈스턴을 나름 친구처럼 여기고 있으나, 체제에 불만을 품고 있던 윈스턴은 당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파슨스를 얼간이로 취급하며 내심 경멸했다. 나중에는 윈스턴과 마찬가지로 사상죄로 애정부에 끌려와 그를 놀라게 한다. 파슨스를 신고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7살 먹은 딸'''이었다. 파슨스에 따르면 잠을 자던 중에 얼떨결에 "빅 브라더를 타도하라"는 잠꼬대를 했는데, 딸이 엿듣고 바로 다음 날 아침에 신고해버렸다고 한다. 이때 파슨스가 윈스턴에게 하는 말이 "그래도 내가 자식 하나는 잘 키우지 않았나?"(...)
* 사임(Syme)
윈스턴의 동료. 당의 명령에 따라 신어사전 편찬을 맡고 있으며, 언어와 사상을 통제하는 어려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만큼 지적이며 총명하다. 윈스턴과 대화하던 중에 신어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는 면모를 보여준다(신어는 사상 통제와 반란 방지를 위해 영어를 재구성한 언어로, 자세한 내용은 [[신어]] 문서 참고). 윈스턴은 그가 너무 똑똑하기 때문에 증발[* 오세아니아는 위험 분자들을 숙청하고 처벌하는 정도로 끝내지 않고, '''아예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사람(Unperson)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이것을 '증발'되었다고 한다.]될 것이라고 예상했고, '''그 예상은 사실이 되었다.'''
* 앰플포스(Ampleforth)
윈스턴의 동료. 각운을 맞추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과거의 시문학 중 남겨 놓아야 할 것들을 현 체제의 입맛에 맞게 수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키플링의 시 중 Rod의 각운인 God를 대체할 말이 없어[* McAndrew's Hymn에서 Lord, Thou hast made this world below the shadow of a dream, / An', taught by time, I tak' it so / exceptin' always Steam. / From coupler-flange to spindle-guide I see Thy Hand, O '''God''' / Predestination in the stride o' yon connectin'-'''rod'''.] 그대로 두었고, 결국 증발되었다.
* 캐서린 스미스(Katharine Smith)
윈스턴의 아내. 외부당원. 윈스턴의 회상에 따르면 선사자(Goodthinker)였고, 그에 걸맞게 당의 선전에 세뇌되어 성행위 자체를 불결한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남편인 윈스턴과 성관계를 가지기는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의 요구에 따라 아이를 만들기 위한 것에 불과했고, 결국 윈스턴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얻지 못했다. 소설에서는 별거 중이라 직접 등장하지 않고(당은 이혼을 금지한다) 윈스턴의 회상에서만 언급된다. 윈스턴의 회고에 따르면 성관계를 할 때마다 마치 시체처럼 뻣뻣했으며 때문에 별다른 애정은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 채링턴(Charrington)
런던 빈민가에서 잡화상점을 운영하는 60대 주인으로, 노동자(프롤) 계급이다. 윈스턴과 친하게 지내며 혁명 이전의 많은 노래들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상점 위층에는 텔레스크린이 없는 빈 방이 있는데, 윈스턴이 이를 빌려 줄리아와의 밀회 장소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텔레스크린이 그림 뒤에 있었고, 그의 정체는 사상경찰'''이었다. 2부의 극후반부에서 이 사실이 밝혀진다. 애초부터 채링턴은 윈스턴을 감시하려 했던 것이다. 실제로는 30대의 젊은이였으며, 노인의 모습은 윈스턴을 속이기 위한 정교한 분장이었다.
* 마틴(Martin)
오브라이언의 집에서 일하는 하인.
* 위더스 동지([[동지#s-2|Comrade]][* Comrade를 한국말로 번역하면 동지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북한편에서 [[북한]] 유적관리자가 발언한 바에 따르면, 동지는 공적인 자리 혹은 상급자에게 쓰는 격식있는 존어이고, 동무는 친구나 부하에게 쓰는 하대이다. 님은 김씨 일가나 그에 준하는 고위간부에게만 쓰고 수령님, 원수님, 장군님 같은 전용 타이틀이 있다. 아바이는 김일성 전용 타이틀이다.][* 애초에 동지는 공산당이 아니라도 정당에서 같은 당원에게 쓰는, '뜻이 같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고 동무는 원래 친구말고 쓰던 우리말이다. [[북한]]이 동무를 자주 쓰니까 친구로 대체한 건데 당시에 친구는 동무 사이에 너무 거창하다고 거북해한 단어다.] Withers)
내부당원. 유동요새[* 1984에서 바다 위의 주요 거점에 세워진 요새.]의 보급을 맡은 군수조직 FFCC를 맡았고 빅 브라더에게 2등 공로훈장을 수여받았으나 3개월 후에 증발됐다. 윈스턴은 증발된 위더스의 기록을 지우라는 업무를 받고 아래에 있는 오길비 동무를 만들었다.
* 오길비 동지(Comrade Ogilvy)
윈스턴이 증발된 위더스를 대체하기 위해 지어낸 외부당원. 전선에서 영웅적 활동을 하다 사망해서 현 시점에선 이미 없는 사람이라는 게 포인트다. 윈스턴이 만든 설정에 따르면 19살에 매우 높은 살상력의 수류탄을 발명해 실험했고 6살에 당의 배려로 1년 일찍 스파이단에 가입한 후, 반당분자인 숙부를 애정부에 신고했다. 나이가 차자 당과 빅 브라더를 위해 헌신하기 위해 독신을 지키다가 전선에서 비행 중에 적군(유라시아/동아시아)에게 피격당하자, 서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기관총을 매달고는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윈스턴은 이 기사를 빅 브라더가 오길비의 충성심을 치하하는 연설로 마무리했다. 훈장을 추가할까 생각도 했지만 교차 검증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져 그만뒀다고 한다. 이 부분은 (이후 오브라이언이나 채링턴 등이 윈스턴을 잠재적 사상범으로 보고 감시해왔던 사실이 드러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윈스턴 역시 '너무 똑똑하기 때문에' 증발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는 처지였음을 보여주는 복선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작중 사임(Syme)이 당의 명령에 따라 신어를 만드는 작업에 참여하는 것에 자부심까지 드러내며 신어를 통한 사상통제를 강하게 지지하고 긍정하는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윈스턴은 그가 너무 똑똑하기 때문에 조만간 증발당할 것이라 예측했고, 그 예측은 곧 맞아떨어진 것과 비슷하다.[* 언어적 기능이 크게 축소된 신어를 통해 사람들이 당을 의심하거나 반발하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당의 목적인데, 그 작업에 참여한 사임은 당이 '아무도 모르도록 만들고 싶어하는 개념들'을 골라서 삭제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은 그 개념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윈스턴 역시 마찬가지인데, 당이 원하는 것은 '이중사고', 즉 당이 어제와 오늘 전혀 다른 소리를 하더라도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당이 말하는대로 무조건 믿도록 만드는 것이고, 윈스턴이 하는 일은 기록을 조작하여 당이 어제와 오늘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증거를 아무도 발견할 수 없도록 만드는 일이다. 즉, 윈스턴 자신은 기록을 조작하기 위해 어제 당이 한 주장과 오늘 한 주장이 어떻게 다른지 알고 있어야 하는 것. 결국 사임처럼 당의 목표를 광적으로 지지하는 인물이든, 윈스턴처럼 속내야 어떻든 일단은 당이 시키는대로 하는 인물이든 당의 궁극적 목적인 '당에 대한 의심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에 비추어보면 [[토사구팽|그들이 담당한 일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그들 자신이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윈스턴의 경우 단순히 지시받은 일을 수동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위더스 동지의 자리를 오길비 동지로 대체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작업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 비용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까지 '능동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인물임이 드러나있는 것이다. 결국 윈스턴 역시 사임처럼 '당이 용인하기에는 너무 똑똑한' 부류라는 것.]
* 틸롯슨(Tillotson)
진리부 기록국에서 일하는 내부당원.
==== 배경 등장인물 ====
* [[빅 브라더#s-2]](Big Brother)
당의 지도자. 작중에서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번역본에 따라서는 대형(大兄)이라고도 불린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오세아니아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초월적인 권력의 소유자이다. 당으로부터는 위대하며 전지전능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 사람들 앞에서는 모습과 음성은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작중에서도 그가 직접 등장하는 일은 없다. 다만 그의 초상화가 그려진 포스터는 오세아니아 곳곳에 널려있으며, 그가 사람들 앞에서 했다고 하는 발언들은 꾸준히 기록물에 실리고 있다. 다만, '그의 발언'으로 알려진 대부분의 발언은 진리부 기록국의 인물들이 수없이 추가하거나, 수정하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진짜 빅 브라더의 발언이 무엇인지는 이미 알 수가 없는 상태일 것이다. 윈스턴의 묘사에 따르면 초상화에 그려진 빅 브라더는 잘생기고 위엄있는 얼굴에 콧수염을 기른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숙적인 골드스타인이 노골적으로 [[레프 트로츠키]]에게서 따온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면, 빅 브라더는 그 인상에 대한 서술이 [[이오시프 스탈린]]과 흡사하다. 내부당원 오브라이언의 말에 따르면 '''빅 브라더가 곧 당이요, 당이 곧 빅 브라더'''라고 한 점을 보면 사실 빅 브라더는 실존하지 않거나 혹은 실존하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당의 프로파간다를 위하여 상징적인 껍데기만 남아있는 인물로 여겨진다. 오브라이언은 애정부에서 빅 브라더가 죽는지에 대해 윈스턴이 물어보자 어떻게 죽겠느냐고 답했으며, 형제단이 실존하는지에 대해서도 그건 자네가 영원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 엠마누엘 골드스타인(Emmanuel Goldstein)
당의 반역자. 빅 브라더와 마찬가지로 작중에서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유대인 혈통에 안경을 걸쳤으며 염소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등 소련의 [[레프 트로츠키]]를 연상케하는 외모를 지니고 있다. 당의 주장에 따르면 한때 빅 브라더와 맞먹는 세력을 가졌으나 그에게 반기를 든 후 잠적한 만악의 근원이며 반당 조직인 형제단의 우두머리이다. 당의 지도자인 빅 브라더와 마찬가지로 작중에서는 직접 등장하지는 않으며, 텔레스크린 속 모습과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당에서 가장 적대하는 인물로, '''공식적인 원수.''' 당원들은 하루에 1번씩 2분 동안 스크린에 나타난 골드스타인의 얼굴을 보고 분노해야 하는 "2분간 증오"라는 해괴한 의식을 치른다. 이는 평소에 억눌려있던 당원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환기구 역할을 한다. 여기에 사회공동체 전체의 적을 설정하여 당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는 효과 또한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별다른 강요나 그런 것들은 없지만 군중심리까지 합쳐져서 무의식적으로 증오에 빠져들어 누구라도 증오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의 지도자인 빅 브라더의 경우처럼 어쩌면 실존하지 않거나, 혹은 실존하는 인물이라도 당의 프로파간다를 위하여 상징적인 요소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스포일러 오브라이언이 형제단의 존재에 대해 확답을 하진 않았지만(윈스턴이 형제단이 존재하냐고 묻자, 오브라이언은 윈스턴 본인이 여기서 빠져나와 천수를 누리며 살아도 그 질문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을거라고 말했다), 이후 묘사를 보면 형제단은 실존하지 않는 듯 하다. 그러므로 골드스타인도 허구이거나 과거에는 실존인물이었을지언정 현재 시점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거기다 골드스타인의 모티브로 추정되는 트로츠키는 이 소설이 쓰여졌을 때 이미 암살당한 후였으니, 어쩌면 당이 이미 그를 찾아내어 사살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존스, 애런슨, 러더퍼드(Jones, Aaronson, Rutherford)
당의 초기 멤버. 이 중에서도 러더퍼드는 당의 혁명 때 풍자 만화를 이용한 여론몰이에 재주가 있었다. 하지만 셋 다 빅 브라더와의 권력다툼에 패해 1960년대에 숙청당했고 당의 공식 역사서에 반역자로 기록됐다. 윈스턴은 1973년에 진리부에서 근무하다가 이들이 과거에 [[뉴욕]]에서 열렸던 당의 모임에 참가한 사실을 [[더 타임스]]에 실린 사진으로 알게 됐는데, 당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그 날 이들은 유라시아의 비밀 기지에서 회합을 가졌기에 윈스턴이 당의 기록은 거짓임을 확신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윈스턴은 사진을 그 자리에서 기억구멍[* 필요없는 문서를 소각하는 장치.]에 넣어 버렸지만 윈스턴이 잡혀 들어간 애정부에서 같은 사진을 보여준 오브라이언은 사진을 다시 기억구멍에 버린 후,[* 윈스턴이 기억구멍에 버린 사진은 소각되지 않고 오브라이언의 손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오브라이언이 그 사진을 실제로 소각시킨 것.] 그들은 반역자일 뿐이며 그 사진은 자네가 조작하고 지어낸 망상이라는 이중사고로 윈스턴의 입을 막았다. 빅 브라더가 스탈린, 골드스타인이 트로츠키라면 이들은 스탈린과 협력했다가 숙청당한 레프 카메네프, 그리고리 지노비예프, [[니콜라이 부하린]][* 러더퍼드처럼 그림에 재주가 있었다.]에 대응된다.
== 결말부 ==
명확하지 않고 애매한 결말부 때문에, 결말부를 대충 읽은 독자들은 주인공이 감옥 복도에서 총살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안 그래도 악명높은 1984 번역본들이 "아예 결말을 바꿔서 실었다"는 이야기가 도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사실 오웰은 주인공의 상상을 등장시키면서 암시도 여러 번 했다. 예를 들어 꿈 속에서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에게 "우린 어둠이 없는 곳에서 만날 것이오.(We shall meet in the place where there is no darkness.)"라고 말한 것은, 애정부의 고문실을 암시한 것이다(애정부는 창문이 없고 항상 불이 켜져 있다). 원전은 다음과 같다.
> The voice from the telescreen was still pouring forth its tale of prisoners and booty and slaughter, but the shouting outside had died down a little. The waiters were turning back to their work. One of them approached with the gin bottle. '''Winston, sitting in a blissful dream''', paid no attention as his glass was filled up. He was not running or cheering any longer. He was back in the Ministry of Love, with everything forgiven, his soul white as snow. He was in the public dock, confessing everything, implicating everybody. He was walking down the white-tiled corridor, with the feeling of walking in sunlight, __and an armed guard at his back. The long-hoped-for bullet was entering his brain.__
>----
>텔레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은 여전히 포로, 노획품, 사살자 등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바깥의 환호성은 다소 수그러들었다. 웨이터들도 다시 분주하게 일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한 웨이터가 진이 든 병을 가지고 그에게 다가왔다. 윈스턴은 잔에 술이 채워지는 것도 모른 채 '''행복한 몽상에 잠겨 있었다.'''[* 여기서부터 윈스턴의 상상이다.] 그는 더 이상 펄쩍펄쩍 뛰지도, 환성을 지르지도 않았다. 그의 영혼은 흰눈처럼 깨끗해졌다. 그는 애정부로 돌아가 모든 것을 용서받았다. 피고석에 앉아 죄를 고백했고,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공범자로 만들었다. 그는 햇빛 속을 걷는 기분으로 하얀 타일이 깔린 복도를 걷고 있었다. __그때 무장한 간수가 뒤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그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총알이 그의 머리에 박혔다.__
>— 정회성 역, 민음사 (2003), 416~417쪽
밑줄 친 부분 때문에 오해가 생기는데, 실제로 윈스턴이 총살당한 것이 아니라 총살당하는 것을 상상하는 장면이다. 총을 맞았다는 상상은 자신의 반항적인 내면이 거세되었다는 뜻으로, 어찌보면 총살당하는 것보다 더 비참한 내용이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세뇌]]임을 암시하는 문장이며, 오히려 윈스턴이 죽었다면 명작이 아니라 김 새는 작품이 되었을 거라는 의견도 많다.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당에게 내면까지 세뇌당한 데다가, 당의 변덕에 따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채로 목숨만 연명하는 처지]][* 3부에서 오브라이언이 "사상죄로 애정부에 끌려온 사람은 언제라도 당의 변덕에 따라 죽을 수 있다"고 말한다. 2부에서 윈스턴이 생각하는 장면에서도 증발된 사람들이 뜬금없이 다시 나타나서 예전에 저질렀던 사상죄를 고백하고 주변 사람들을 고발한 뒤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일이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사상죄를 범한 사람은 순교자가 되지 않도록 인격을 개조한 뒤에 죽인다고 한다. 그리고 개조된 주인공도 그것을 바라므로 조만간 죽는다는 건 확실하다. 줄리아와 만났을 때 우린 다시 만나야 한다는 줄리아의 말에 수긍한 것 역시 언젠가는 '''사형장'''에서 만나야 된다는 의미로 보인다.]니 [[데드 엔드]]는 아니지만 [[배드 엔딩]]이며, [[존 허트]]가 주연한 영화판의 결말도 이를 따르고 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He loved Big Brother)"'''로 끝나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일품이다. 사상경찰에 체포되기 전에 줄리아는 윈스턴에게 "그들은 당신의 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고, 윈스턴도 동의한다. 체포되어 오브라이언이 주도하는 모진 고문과 세뇌, 그리고 죄중단 훈련과 이중사고를 통해 윈스턴은 마침내 당의 강령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윈스턴이 하얀 석판에 연필로 쓰는 문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끝내 오브라이언이 "빅 브라더에 대한 자네의 진심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윈스턴은 "그를 증오한다"라는 말로 응수한다.
그러자 윈스턴은 애정부에 끌려온 모든 정치범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고문실인 101호실[* 소설에서의 묘사에 따르면 피고문자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으로(윈스턴의 경우 [[쥐]]) 자극하는 방식으로 고문을 가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전에 윈스턴이 101호실에는 무엇이 있냐는 말에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은 이미 알고 있다고 말했다.]로 끌려가 마침내 자신이 절대 배신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줄리아마저 배신하고 만다. 여기서 '어? 분명 앞서서 불 사람은 다 불었다 했는데 줄리아는 예외인 건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윈스턴은 줄리아가 반역 행위를 저질렀다고 자백한 것은 맞다. 그런데 왜 배신하지 않았다고 묘사되는지 알려면 조금 더 앞에서의 줄리아의 말을 봐야 하는데, '''자백이야 결국 하게 될 테지만, 마음만은 그들도 바꾸어 놓을 수 없다'''라는 말을 지켰음을 뜻한다. [[손절매|하지만 101호실에서 자신 대신 줄리아가 쥐에게 물어뜯기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줄리아를 배신했다는 뜻.]]
세세하게 덧붙이자면, 당은 자백하게 할 순 있지만 그들 때문에 윈스턴과 줄리아가 서로 사랑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게 진짜 배신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당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 줄리아와 윈스턴 모두 단언한다. 아무리 당이라 하더라도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윈스턴은 당의 사람들이 아무리 영리하다 해도 다른 사람의 생각까지 알아 낼 수 없으며,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아무리 파헤친다 하더라도 속마음은 공략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이 말들은 줄리아와의 '''사랑은 자신의 깊은 속마음이며, 이것은 절대 바꿀 수 없고 건드릴 수 없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101호실에서 줄리아 자신과 쥐 사이에 놓겠다고 오브라이언에게 매달리면서 그 배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8분 39초부터, [[https://youtu.be/gXFkUdcObk0]]]
결국 그는 자신의 마지막 남은 인간성까지 모조리 말살당하고, 당이 바라는 인간성으로 채워진다. 이는 곧, 영사가 건드릴 수 없다고 믿었던 윈스턴의 자아를 끝내 당의 입맛에 맞게 개조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한 줄로 함축한 묘사이다.
또한 작중에서 전쟁하던 대상이 매번 바뀌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유라시아/동아시아와 항상 전쟁 중이었다는 식으로 세뇌시킨 것처럼,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라는 과거형으로 그도 과거부터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고 세뇌되었다는 암시로도 해석할 수 있다.
줄리아도 당에게 세뇌당해서, 마지막 장면 직전에 만났을 때 윈스턴에게 별다른 감정이 남아있지 않다. 1984년에 개봉한 영화에선 [[전두엽 절제술]]의 상처 자국이 있는 걸로 묘사했다. 소설에서 나온 "이마를 가로질러 관자놀이까지 기다란 흉터가 있었다"의 묘사인 듯하다.
== 명대사 ==
>It was a bright cold day in April, and the clocks were striking thirteen.
>
>맑고 쌀쌀한 4월의 어느 날, 시계는 13시를 가리켰다.[* 1부 1장의 첫 문장이다. 번역가 공진호에 따르면 13시를 가리켰다고 하는 것은 오역이라는데, 13시가 아닌 시계가 13번 울렸다는 뜻으로 윈스턴이 사는 혁명후의 사회가 혁명 전의 사회와 다른 가치관과 표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은유하는 장치로서 24시간 다이얼을 가진 시계를 등장시킨 것인 만큼 일리있는 지적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2&aid=0001997077|기사]] 하지만 동사 'strike'는 '울리다' 라는 뜻의 자동사이기도 하지만 '(시간을) 알리다' 라는 뜻의 타동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당시 시계가 시간을 '알리는' 방식은 시계 내에 내장된 알람 장치에 의해서이다. 당연히 시계에서 13시를 알리는 13번의 타종(알람)소리가 울렸다고 번역한 것이 보다 정확한 번역이다. 덧붙여 이 책이 쓰였을 당시에 사용되던 아날로그 시계는 지금도 그렇듯이 대부분 12시간 단위로 시간을 표기하는 것이 표준방식이었음은 분명하나 이미 천체관측이나 항공업계 종사자 전용으로 24시간 다이얼을 사용하는 시계들은 분명 존재했다. 이처럼 '13번 종을 쳤다'가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지만 여타 번역본의 '13시를 가리켰다'가 본문의 의미를 완전히 훼손하는 오역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단지 썩 좋지 않은 번역일 뿐.][*반론 시계가 13시를 가리켰다는 옳은 번역이며 오히려 13번 울렸다는 원문의 의미를 훼손한다고 볼 수 있다. 근거로는 영어로 strike를 울리다라는 자동사로 쓰기위해서는 13을 목적어처럼이 아니라 13 times라고 확실한 13번이란 뜻의 부사로서 쓰는 것이 문법적/회화적으로 맞다. 거기에 George Orwell은 자신시의 작품의 시계를 실제로 24시간 표시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는 실제에 이미 있더라도 분명 일상생활에서 굳이 24시간으로 나눠진 아날로그 시계를 사용하지는 않기에 실제 세계와 차별된 느낌을 주기에는 틀리지 않다. 책을 직접 읽어보면 해당 부분 말고도 시계를 묘사하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2부 4장(The old-fashioned clock with the twelve-hour face was ticking away on the mantelpiece). 이를 해석하면 구식인 12시간 표기형식의 시계가 벽난로 위 선반에서 째깍이고 있었다 정도인데 이 구식은 제작 당시의 현대를 뜻하므로 우리가 쓰는 12시간 짜리 시계. 반대로 보면 작중 현대의 시계는 신식일테니 24시간. strike는 시계에서 시침 혹은 초침이 어느 시점을 도달하다, 혹은 더 직역적으로 때린다는 느낌을 원어민이 받기에 13시를 가리켰다는 번역이 13번 울렸다는 번역보다 더 나으면 낫지 전혀 더 못하지 않다. ][*민음사판 4월, 맑고 쌀쌀한 날이었다. '''시계들의 종이 열세 번 울리고 있었다.'''][*펭귄북스코리아판1 4월, 맑고 쌀쌀한 어느 날이었다. '''시계들이 13시를 알렸다.'''][*문학동네판 화창하지만 쌀쌀한 4월의 어느 날이었고, '''시계는 13시를 치고 있었다.''']
>'''[[국가의 감시|BIG BROTHER IS WATCHING YOU]]'''
>'''빅 브라더는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펭귄북스코리아판2 빅 브라더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War is peace, Freedom is slavery, Ignorance is strength.
>
>전쟁은 평화, 자유는 속박[* 예속, 복종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무지는 힘.[* 본작에서 나오는 가상의 국가 '오세아니아'의 공식 슬로건으로, 모순된 단어들을 묶은 괴상한 문장이다. 진리부 건물에 붙어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온갖 모순과 모순들이 충돌하며 저런 말도 안되는 단어에도 국민들을 납득할 수 있도록 철저히 세뇌시키고 자유롭게 조종하는 세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다. [[http://humansarefree.com/2013/01/what-means-war-is-peace-freedom-is.html|해석]]]
>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
>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주인공 윈스턴이 되뇌이는 당의 강령이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결과를 바꿀 수 없다는 진실과 과거 사건에 대한 기록을 교정하는 주인공의 직업 사이에서 발생하는 논리적인 모순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런 모순적인 현재 상황을 있는 모순에 관계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인 이중사고(Doublethink)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모순에 의문을 드러내는 언행은 작중에서 사상범죄(Thoughtcrime)라는 죄목으로 매우 잔혹하게 처벌당한다. 영사는 모든 신민에게 이중사고를 강요함으로써 현재를 지배하고, 과거 사실에 대한 날조를 무제한적으로 행하여 과거를 지배하고, 그러한 날조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 사상범죄를 차단함으로써 신민의 행동 양상을 영사의 의도에 맞게 개조하여 미래를 지배하는 것이다. 1984년의 시점에서 과거, 현재와 미래에 대해 영사가 지니는 절대적인 권한은 [[순환논법|시작도 끝도 없는 순환적인 구조]]를 보인다.]
>We shall meet in the place where there is no darkness.[* 윈스턴이 꿈에서, 혹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날 어딘가에서 들었던 말. 윈스턴은 이 말을 오브라이언이 한 말로 믿고 있었으며, 그에게 이유없는 호감을 느껴왔다. 다만 작중 후반대에서 밝혀지듯, 여기서 말하는 어둠이 없는 곳은 사실 애정부 고문실을 뜻하는 말이었다(애정부는 창문이 없고, 24시간 전등이 밝혀져 있다).]
>
>우리는 어둠이 없는 곳에서 만날 것이오.
>2 plus 2 equals 5.
>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다.[* 이중사고의 예시로 되풀이되는 대사로서 2차 대전 당시 [[헤르만 괴링]]이 [[http://www.netcharles.com/orwell/articles/col-twoplustwo.htm|"총통의 말은 모두 진실이다. 총통께서 2+2=5라면 그런 것이다!(If the Fuhrer wants it, two and two make five!)"]]라고 말한 데서 따온 듯하다.]
>Do it to Julia! Not me!
>
>[[손절매|줄리아에게 하시오! 나 말고!]][* 101호실에서 자신이 무서워하는 쥐가 들어있는 상자가 얼굴 앞에 놓인 윈스턴이 외친 절규. 상기된 바와 같이 윈스턴이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줄리아를 배신했음(줄리아를 생각하는 마음을 지켜내지 못했음)을 상징하는 대사로써, 윈스턴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이용하여 고문자들이 결국 윈스턴의 의지를 꺾었음을 상징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세뇌|{{{+1 He loved Big Brother.}}}]]'''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 고문 끝에 의지가 꺾이고 완전히 세뇌된 윈스턴이 하는 생각이다.]'''
== 미디어 ==
=== 영화화 ===
[[1954년]], [[1956년]]에 2차례 영국에서 영화화했고, 오페라화도 했다. 오페라에서 국가로 등장하는 《All heil Oceania》는 대표적으로 유명한 합창이니 찾아볼 사람은 찾아보자.
가장 최근 영화화 된 작품 제목과 같은 연도인 1984년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 국내서도 유명한 [[일 포스티노]]를 감독한 인물이다.]의 작품으로 [[존 허트]], [[리처드 버튼]], 수잔나 해밀튼 등이 출연했다. 사실, 영화의 퀄리티는 원작에 누가 되지 않을 정도였으나, 불행히도 이듬해(1985년) 동 장르의 걸작으로 추앙받는 [[테리 길리엄]] 감독의 《[[브라질(영화)|브라질]]》이 나오는 바람에 더 묻혀버렸다(...).
1984년작의 특징은 소설의 묘사를 있는 그대로 살리려고 애쓴 흔적이 많이 보인다는 것. 이 때문에 원작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원작의 황폐한 이미지를 매우 잘 살려냈다고 호평을 하나, 반대로 지루하고 내용이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비판도 있다. 평론가들의 평가는 매우 좋은 편이지만 이로 인해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다. 심지어 크랭크인 기간도 오웰이 소설 속에서 상정한 시간대(1984년 5월경)와 같다. 촬영 로케이션은 당연히 소설에서 상정한 런던 근교이고, 촬영감독으로는 《[[쇼생크 탈출]]》을 찍은 [[로저 디킨스]]가 참여했다.
영화 장면을 보면, 가장 첫 시퀀스인 "[[http://www.youtube.com/watch?v=0vvvPZd6_D8|2분간 증오]][* 해당 장면을 바로 보려면 2분으로 넘기거나 [[http://www.youtube.com/watch?v=WupvCZhKMnM|이 영상으로 보자.]]][* 증오중에 [[텔레스크린]]에 등장하는 골드스타인은 사실 전쟁이니 뭐니 하는 건 '''불만을 딴 곳으로 돌리려는 거짓'''이고 우리의 적은 바로 오세아니아 국민을 기만하는 당이며 깨어날 것을 강조한다.]"를 비롯하여 무색건조한 오세아니아를 디테일하게 그렸다. 또 "개인성"을 확인하는 요소로 배치한 '[[섹스|성애]]'의 장면[* 원작 소설에서는 [[오르가슴]]을 배제해 생산성 강화에 역량을 다하자는 운동이 있고, 오브라이언도 애정부에서 당의 과학자들이 성적 쾌감을 없애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윈스턴도 1부에서 일기에 나이 든 프롤 매춘부와 성관계를 가진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다.] 역시 가감없이 드러내는데, 그러다 보니 영화에서 노출이 노골적으로 나온다. 영화상 여주인공 줄리아(수잔나 해밀턴)의 전라[* 심지어 풍성한 겨드랑이 털까지 나온다.] 및 음모가 꽤나 긴 시간 동안 노출되지만[* 남자 주인공의 성기는 나오지만 여 주인공의 성기는 음모에 가려 나오지 않는다.] 에로틱한 느낌은 없고 건조하게 연출했다. 당연히 청소년은 볼 수 없는 영화다.
또한 지금보면 주인공 윈스턴이 근무하는 기록국의 묘사가 지금 시각으로 보면 꽤 우스꽝스럽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 만든 물건이라, [[전화기]] [[다이얼]]로 수치를 입력하고, 양철[[깡통]]에 든 문서가 관을 타고 전해진다. 수정한 문서는 철필로 긁거나 기억구멍을 통해 버린 후 조악한 소각로에서 불태운다. 물론 소설 속 세계가 생산력이 막장인 [[핵전쟁]] 뒤임을 기억하자. 영화가 만들어진 실제 [[1984년]]은 텔렉스 통신이나 [[Apple|애플]], [[IBM PC]]가 있던 시대였지만, 영화는 1948년 당시에 원작 소설에서 묘사한 미래세계를 충실히 재현하였다. 그리고 전지구적으로 모든 역량을 체제 유지를 위한 [[병림픽]]에 쏟아붓고 있는 세계라서 전쟁과 대인 사찰용 기술을 제외하면 다른 기술 발전이 어렵다는 설명이 골드스타인의 책에 있다.
주인공 윈스턴 역을 맡은 [[존 허트]]는 뒷날 [[브이 포 벤데타]]의 주연으로 출연해 빅 브라더 필이 나는 [[독재자]] [[아담 수잔|아담 서틀러]][* 물론 [[총통]](Chancellor)이란 직위명이나, 이름이 암시하듯이 모델은 [[아돌프 히틀러]]에 가깝지만.] 역할을 멋지게 해냈고, 나아가서는 《[[설국열차(영화)|설국열차]]》의 반체제의 상징(?)인 길리엄 역까지 해냈다. 한편 오브라이언 역할을 맡은 [[리처드 버튼]][* 명배우로 아카데미에 수차례 노미네이트했지만 끝내 1번도 수상 못했다.]은 《1984》 촬영 한 달 뒤에 세상을 떠났다. 또한 여주인공 '줄리아' 역의 수잔나 해밀턴은 이 영화에 출연한 후 이듬해인 [[1985년]]에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또한, 《[[러브 액츄얼리]]》에서 한물간 록커 '빌리'의 매니저 '조' 역으로 나왔던 그레고르 피셔의 얼굴을 볼 수 있는데 윈스턴의 동료인 뚱뚱하고 멍청한 '파슨스' 역으로 나온다.
[[http://www.youtube.com/watch?v=InXH-hCa0pQ|#]] 《오세아니아, 그대를 위해(Oceania, 'Tis(=It is) for thee)》라는 오세아니아 국가.
> Oceania, Tis For Thee (오세아니아, 그대를 위해)
>
>Strong and peaceful, wise and brave; (강하고 평화로운, 현명하고 용감한 우리는)
>Fighting the fight for the whole world to save. (세계를 구하기 위한 싸움을 한다네)
>We the people will ceaselessly strive (우리 인민은 위대한 혁명을 계속하기 위해)
>To keep our great revolution alive.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네)
>Unfurl the banners, look at the screen; (국기를 펼치게! [[텔레스크린|스크린]]을 보게!)
>Never before has such glory been seen. (이런 영광은 보여진 적이 없다네!)
>
>Oceania, Oceania, Oceania, 'tis for thee. (오세아니아! 오세아니아! 그대를 위해!)
>Every deed, every thought 'tis for thee. (모든 행동, 모든 생각은 그대를 위해)
>Every deed, every thought 'tis for thee. (모든 행동, 모든 생각은 그대를 위해)
여담으로, 1956년 작 영화에서 윈스턴 스미스 역을 맡은 배우가 '''[[에드먼드 오브라이언]]''''''(Edmond O'brien)'''이다(...).[[중복|.]].[[중복|.]].[[중복|.]]. 그래서 오브라이언이 오코너(O'Connor)로 바뀌어 나온다.
현재 [[콜럼비아 픽처스]]에서 3번째 영화화를 준비한다고 하며, 감독은 [[제이슨 본 시리즈]]로 잘 알려진 [[폴 그린그래스]]라는 듯. 그런데 2018년 현재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 흐지부지된 것으로 보인다.
== 사회적 영향 ==
=== 다른 미디어나 현실에서 받은 영향 ===
《1984》 또한 그 이전의 디스토피아 소설인 [[멋진 신세계]], [[우리들]], [[강철군화]] 등의 영향을 받았다. 강철군화의 경우 키, 목소리, [[성형수술|얼굴 생김새 등을 바꾸어]] 전혀 다른 사람의 삶을 살게 한다는 부분은 형제단에 그대로 적용했다. 다만 강철군화에선 그런 사회주의 세력이 끝내 체제를 쓰러뜨리는 데(비록 수백 년 뒤지만) 성공하고, 멋진 신세계의 세계는 1984에 비하면 일반인이 살기에 그리 나쁘지 않지만[* 물론 이런 발상이 제일 무서운 것이다. 자세한 건 [[멋진 신세계]] 문서 참조.], 《1984》에선 그런 거 없다.
현실에서는 소련과 나치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듯하다. [[빅 브라더]]의 검은 머리와 콧수염 등의 묘사는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과 비슷하고, 그의 현학적 자문 자답식 어투 역시 그대로 베꼈다. 이는 스탈린이 어릴 적 신학교에서 배운 교리문답의 형식 그대로라고.[* 다만 이런 교리문답식은 스탈린 이전 공산주의자도 애용하던 형식이다. 기독교 문화권인 유럽 노동자에게 쉽고 익숙하기 때문.]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문하고 세뇌하는 과정도 공산권에서 흔하게 행해졌던 [[자아비판]]의 패러디라 할 수 있다. 쿠폰제의 경우엔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조르주 클레망소]] 치하 프랑스의 전시 배급 과정에서 빌려왔고, 윈스턴에게 트라우마를 준 전쟁 묘사들도 2차대전의 묘사에서 빌려와 윤색함은 당연하다. 위에서 언급한 신체조건은 딱 봐도 [[나치 독일]]의 [[우생학]]에서 따온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국민들 대부분이 [[전쟁]]에 열광하고, 전쟁을 사랑하며, 전쟁을 증오하는 반전주의자들은 반역자로 낙인찍어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모습은 1차대전 [[독일 제국]]과 2차대전 나치독일의 사회 모습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 파슨스네 남매를 비롯, 작중 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활동하는 '스파이단'도 공산권의 [[피오네르]]와 나치 독일의 [[히틀러 유겐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골드스타인의 염소 머리, [[유대인]] 느낌의 풍모, [[안경]] 등은 말년의 [[레프 트로츠키|트로츠키]]의 인상과 거의 일치한다. 정치적으로 실각하여 '사라진' 인물들의 기록과 사진을 지워내는 것도 작품 내 상상이 아닌 실제로 소련에서 자주 있던 일이다. 이것으로 볼 때 《1984》 역시 《[[동물농장(소설)|동물농장]]》처럼 소련을 전체주의 국가의 모델로 삼은 것은 확실해 보이나, 오웰의 의도는 소련만이 아니라 '''모든 국가들이 전체주의의 길을 걸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 심지어는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했고, 당시에 [[파시즘]]을 몰아냈다고 확신하던 1940년대 말의 [[영국]](과 [[미국]])이 작품의 배경이라는 것은 당대인들에겐 엄청난 충격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사실 작품이 시작하는 4월 날씨는 그다지 을씨년스럽지 않은데, 작가는 매우 을씨년스럽게 그린다. 이것이 의도적이라는 평이 있는데, 정상적 영국인이라면 이것이 뭔가 잘못된 징조라는 것, 또는 배경이 영국이 아니라고 받아들일 것이란 해석이다. 끝내 몇 페이지 뒤에서 '''[[사실은 지구였다|그런데 배경이 영국이다]]'''라고 드러난 순간, 충격에 빠진다는 것.
실제로 2차대전 중이나 이후 냉전기에도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은 소련을 매우 우호적으로 봤다. [[피터 드러커]] 자서전에서 당시 영국 지식인 사회의 분위기를 잘 묘사했다. 드러커가 공산주의에 회의적인 의견을 표했다가 씹힌 이야기. 그런 분위기가 전후 노동당 정부가 전투기용 최신 제트엔진을 소련에 선물한 데까지 이어졌으리라. 이런 사정들이 있어서 반공소설로만 읽으면 무리가 있다. 냉전기 서구 자본주의 진영 기준의 모범적 반공소설이라기보단, 스페인 내전에까지 참전할 정도로 사회주의자였던 작가 조지 오웰이 [[스탈린주의]]로 변질되고 망해버린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은 작품이다. 실제로 스탈린의 소련은 스페인 내전에서 사회주의 진영의 뒤통수를 쳤고, 이후 2차대전에서 폴란드 공산당도 배신한다. 역사상 최악 수준의 1인 숭배체제로의 변질도 이루어졌기 때문에, [[민주사회주의]]자였던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소설)]]과 1984로 소련을 크게 비판한다.
=== 다른 미디어에 미친 영향 ===
* [[겁스 무한세계]]의 세계 중에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이 실패하여 귀족정치가 판치는 콘월리스라는 세계의 연도가 [[1984년]]이다. 겁스 국문 2판(영문 4판) 캠페인북에 언급했다.
* 게임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는 나치가 세계정복에 성공한 1960년이 무대인데, 미국과 영국이 항복한 시기가 각각 '''1948년''' 6월과 12월이다. 전세계가 나치 치하에 놓였으며, 알 수 없는 갖가지 기술들로 철저하게 지배한다.
* 게임 [[하프라이프 2]]의 스토리 일부도 《1984》의 분위기에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특히 하프라이프 2 베타시절의 지도자를 보면 [[빅 브라더]]의 외모로 보나 직위를 보나 완벽한 [[오마주]], 원래 게임의 분위기도 소설처럼 훨씬 더 암울했다. 개발진들이 게임의 전체적인 테마를 변경해서 그나마 분위기가 밝아졌으나[* 예를 들면 시민들이 강제노동을 하는 장면을 줄이고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묘사를 했고, 공포스럽고 기괴하게 생긴 유닛들을 대량 삭제하였으며, 야외지역에서는 대부분 햇빛이 들어온다거나, 밤이더라도 대놓고 공포스러운 챕터인 [[레이븐홈]]을 제외하면 [[노바 프로스펙트|암울한 배경이 아닌 곳에서 신나게 싸우게 함으로서 배경적 심리효과를 줄였다.]] 심지어 후반부에는 억압당했던 시민들과 같이 싸우면서 혁명을 진전해나가는 밝고 신나는 분위기는 덤.] 특유의 암울함과 꿈도 희망도 안보이는 배경설정은 똑같다. 컨셉 변경 이전의 정보는 [[하프라이프 2/초기 설정]] 참고.
* 그리고 [[하프라이프 2]]의 [[맥 OS X]] 이식 기념 광고 역시 이 소설을 기반으로 한 [[Apple|애플사]]의 [[1984(TV 광고)|동명의 광고]]를 오마쥬한 것.
* "기요르기 달로스(Gyorgy Dalos)"라는 작가가 쓴 후속작으로 '''《1985년: 빅 브라더는 죽었다》'''[* 원제는 《1985: What Happens After Big Brother Dies》]라는 책이 있다. 2000년대, 1985년에 일어난 이야기를 관계자 증언과 보고서를 통해서 회상하는 이야기로서 전편의 인물[* '''윈스턴 스미스가 숙청되지 않고 살아있다(고 한다).''']들과 신어, 언어조작 등이 그대로 나온다. 빅 브라더가 사망한 뒤 내부 혁명으로 자유 민권화한 오세아니아를 그리는데... 민주정이 탄생한 그 다음 날 '''유라시아의 침공으로 박살나서 유라시아의 영구적 [[식민지]]'''로 바뀌는 결말이다. 작품의 집필 목적이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을 짓밟은 소련의 풍자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 [[라디오헤드]]의 곡 중 《2 + 2 = 5》는 1984의 내용 중에서 따온 것이다.
*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는 평소 조지 오웰의 작품들을 감명깊게 읽고 곡의 모티브로 자주 차용하였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The Holy Bible》 앨범에 수록한 《Faster》란 곡. 빅 브라더에 감화한 윈스턴의 시선 같은 가시돋친 가사가 인상적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는 《1984》에서 9를 Q로 바꿔서[* [[일본어]]로 9의 발음과 Q의 발음이 같다는 것에서 착안한 일종의 언어유희이다.] 제목을 삼은 듯하다. 작중에 등장하는 리틀 피플이라는 존재는 빅 브라더와 묘한 대칭을 이루는 듯.
* 미국의 지휘자이자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인 로린 마젤은 이 소설을 바탕으로 같은 이름의 [[오페라]]를 작곡했고, [[2005년]] 5월 3일 [[런던]] 코벤트 가든 왕립 오페라극장에서 직접 지휘를 맡아 초연했다. 기존 오페라 무대 형식에 첨단 무대 기술과 장비를 도입하는 등 현대적 발상으로 주목받았지만, 작품 자체는 비평가들에게 전반적으로 그다지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다만 작곡자의 이름값이 워낙 높고 지휘자로서도 투잡을 활발하게 뛰어서 세계 유수의 오페라 극장들을 돌며 계속 상연한다.
* 스타 트렉 TNG의 에피소드 "[[http://www.startrek.com/watch_episode/KerCIEs07LCW|Chain of Command, Part 2]]"의 내용은 카데시안 취조 기술자가 주인공인 [[장 뤽 피카드|피카드 선장]]을 고문하는데, 전등을 4개 켜놓고서 5개라고 말하고는 피카드가 4개라고 말할 때마다 고통을 가한다.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을 고문한 것처럼 피카드가 카데시안에게 정신적으로 굴복하도록 강요하려는 목적이다. 외부적인 요인으로 피카드가 석방되어야 하지만, 취조기술자는 그 사실을 숨기고 피카드에게 전등이 5개라고 말하면 풀어주겠다고 마지막으로 회유를 하고, 피카드는 전등을 바라보면서 고민한다. 그때 다른 카데시안들이 들어오고 피카드에게 돌려보내주겠다고 하자, [[http://www.youtube.com/watch?v=o_eSwq1ewsU|There are four lights!]](전등은 4개다!)라 외치고서 카데시안의 품을 벗어난다. 하지만, 엔터프라이즈로 복귀한 피카드는 카운셀러인 트로이에게 그 마지막 순간, 자신은 정말로 전등이 5개라고 믿었다고 고백한다.
* 애니메이션 《[[킬라킬]]》의 [[키류인 사츠키]]는 1화에서 등장하자마자 "공포야말로 자유, 군림이야말로 해방, 모순이야말로 진리"라는 말을 하는데, 오세아니아 당의 원칙을 패러디한 대사이다.
* 애니메이션 신조인간 [[캐산]]의 암울한 기계들의 지배를 받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최종보스 브라이킹보스는 빅 브라더 에서 따왔다. 만화 애니메이션 매체로서는 거의 최초로 1984를 오마주 하였다.
* 애니메이션 《[[보글보글 스폰지밥]]》의 시간여행 에피소드에서 [[맨레이]]가 비키니 시티를 정복한 모습이 1984를 오마주 하였다.
* 애니메이션 《[[PSYCHO-PASS]]》에서 악역인 [[마키시마 쇼고]]가 관심있게 읽는 책으로 등장한다.
* [[Apple|애플사]]의 TV 광고 [[1984(TV 광고)|1984]]도 유명하다.
* 영국 락 밴드 [[뮤즈(밴드)|뮤즈]]의 5번째 앨범인 [[The Resistance]]는 《1984》를 모티브로 했다. 덤으로 메인곡인 resistance 또한 1984의 모티브이다.
* 영국산 [[FPS|1인칭 시점 이동방식]] [[어드벤처]] 게임 《[[노멀리티]]》(1996)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세계관이지만, 이래봬도 모든 것을 주시하는 독재자가 지배한다는 기본 제재는 《1984》에서 영향을 받았다.
* 영화 《[[브라질(영화)|브라질]]》도 이 작품에 영향을 깊게 받았다. 아예 제작 초기에 정한 제목이 '''《1984 1/2》'''이었다.
* [[SCP 재단]]의 [[http://scpko.wikidot.com/scp-984-ko|SCP-984-KO]]가 이 소설을 직접적인 모티브로 삼았다.
* [[DC 코믹스]]에서 [[배트맨]]이 전세계의 초인들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O.M.A.C.|브라더 아이]] 역시 1984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 [[대체역사물|대체역사소설]]인 [[당신들의 조국]]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나치 독일]] 정권에 의해서 금서로 지정되었다는 언급이 나온다.
* [[복거일]]의 대체역사소설인 [[비명을 찾아서]]에도 등장한다. [[조선]]의 역사와 언어가 [[일본 제국|일제]]에 의해 완벽하게 말살된 사회를 살아가는 조선인 주인공 기노시타 히데요는 이 책에 등장하는 "과거를 통제하는 자는 미래를 통제한다. 현재를 통제하는 자는 과거를 통제한다."라는 구절을 회상하며, '''"그리고 현재는 [[일본인|내지인]]들이 통제한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 소설 내에서 조지 오웰은 본명인 에릭 아더 블레어로 등장한다.
* 《[[메탈기어 솔리드 V 더 팬텀 페인]]》에서 본 작품의 요소가 매우 다양하게 오마주되는데, 예를 들어 [[리볼버 오셀롯]]의 이중사고, 2부에서 마더베이스에 붙는 'BIGBOSS is Watching You!'라는 포스터 등이 그 예시다. 본 작품 자체도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언급되기도 한다. MGSV: TPP의 배경이 되는 시간대가 1984년도이기 때문.
* 영화 [[이퀄리브리엄]]의 세계관은 대표적인 1984의 영향을 받은 경우이다. 넷플릭스에서 방영중인 [[블랙 미러]] 시리즈에서도 비슷한 세계관을 볼 수 있다.
* [[높은 성의 사나이(드라마)|미드 높은 성의 사나이]]에서 일본이 식민지 주민들의 전화를 도청하며, 나치는 한술 더 떠 초소형 녹음기가 장착된 [[몰래카메라|몰카]]로 미 동부 주민들의 사생활을 통제한다.
* 헤비메탈밴드 [[주다스 프리스트(밴드)|주다스 프리스트]]의 1982년 곡 Electric eye의 가사는 당시 영국에 광범위하게 설치되기 시작한 CCTV를 묘사한 것으로 당시 대처 보수정권의 강력한 통제[* 이 곡이 발표된 해인 1982년 영국은 [[포클랜드 전쟁]]이 벌어졌다.]로 인한 사회 분위기를 타 이 소설에서 영감을 얻어 나왔다.
사실 이 작품 이후 감시와 사상의 억압 등의 묘사가 등장하는 '''모든 작품'''은 이 작품의 영향을 적든 많든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 정도로 대중매체에 큰 영향을 미친 소설이다.
== 기타 ==
* [[대한민국]]에는 [[반공]]작품으로 매우 적극적으로 수입하였다. 오웰의 전작인 《[[동물농장(소설)|동물농장]]》도 [[미군]]이 반공작품으로 분류해 [[한국]]에 세계 최초로 먼저 번역서를 출판했다. [[북한]]에서는 여전히 금서고, [[소련]]에서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조치에 따라 소련 붕괴 직전인 [[1989년]] [[2월 28일]]에야 수입하기 시작하였다.
* 여기서 카페 이름이나 노래로 나오는 밤나무(chestnut)는 [[마로니에]]를 가리키는 말이며, 우거진 밤나무 밑에서 사상죄에 해당되는 [[성관계]]를 저지를 수 있는 이유이다. 영국에서는 한국에 주로 알려진 밤나무(Sweet Chestnut)가 없다. 이 노래는 [[http://en.wikipedia.org/wiki/Under_the_Spreading_Chestnut_Tree|실제로 있는 노래로]] [[https://www.youtube.com/watch?v=DqwCi65-2ts|원래는 이렇게 밝은 느낌의 동요이지만]][*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멜로디이며, "커다란 꿀밤나무 밑에서... 정다웁게 얘기합시다"라는 한국어 가사로 번안되기도 하였다.] 작중에서는 숙청을 암시하는 가사로 바뀌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l9jbIP_93g&feature=youtube_gdata_player|암울하게 편곡한 버전]]
* [[CCTV]], 정확히는 대중을 끊임없이 감시하는 사회를 [[현실을 예견한 작품|예견]]하였다. 다행스럽게도 오웰이 예언한 전체주의 사회는 영미권에 다가가지는 않았으나[* 정작 영국은 한국과 더불어 손꼽히는 [[CCTV]] 운용국이다.], 그의 예언대로 국민들이 여러가지 장치를 통해 감시받고 있다는 점은 모순적이다. 그리고 [[중국]]은 [[세서미 크레딧]], 뇌파 감시 모자, 안면 인식 스캐너, [[스마트폰]] 검문 등을 도입하여 이를 현실로 이루어내고 있다.
* 캐나다의 만화가 [[기 들릴]]은 애니메이션 하청일로 [[북한]]에 갔을 때 이 책을 들고 가서, 자신의 안내원에게 이 책이 재미있으니 읽어보라며 빌려주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안내원은 며칠 뒤에 하얗게 질려서 잘 읽었는데 자기랑 안 맞는다며 책을 집어던지다시피 했다고 하였다.
[youtube(0oUdI-KFCyU)]
*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실제 [[1984년]] 1월 1일에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작품을 발표하였고,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생중계 쇼 프로그램 및 뉴욕, 샌프란시스코, 파리의 다원생중계로써 전세계 TV에 위성 생중계되었다. 훗날 이 작품은 인공위성 예술의 대표적 사례로 불리게 된다. 현대음악가의 전설로 남은 [[존 케이지]]가 등장하며,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 배우 [[이브 몽땅]]이 신나게 탭댄스를 추며 노래도 부르고, 현대무용의 거두이자 '뉴 댄스'의 창시자인 머스 커닝햄, [[살바도르 달리]]까지 출연하고, 후반부에는 첼로의 진지한 멜로디가 관객을 사로잡는다. 전반적인 스토리는 "오웰, 당신이 예측한 미래는 오지 않았고 우리는 잘 살고 있다. 또한 [[텔레비전]]은 텔레스크린이 되지 않을 것이며, 도리어 인류 문명에 기여할 것"이라는 뜻을 담은 작품이다.
* 벡님준은 이를 한번 더 셀프 패러디하여 2000년 밀레니엄 때는 또 다른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MBC에서 생중계로 중계하였는데 당시 중계를 맡았던 [[손석희]] 아나운서가 "여러분 이것은 TV가 고장난 것이 아닙니다" 라고 멘트를 쳤다(...)
* 2012년 6월, [[문명 2]] 1개 시나리오를 [[http://bbs.ruliweb.com/hobby/board/300007/read/801165|'''10년간 플레이'''하고]] [[http://www.reddit.com/r/gaming/comments/uxpil/ive_been_playing_the_same_game_of_civilization_ii/|조언을 구하는 글]]이 올라왔는데, 게임 내용이 3강체제의 끝나지 않는 전쟁, 전쟁을 빌미로 국민들을 착취하고, 그 불만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등 세계관이 1984와 매우 유사하여 보는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실제로 이에 관해 1984의 게임 버전 같다는 평이 많았으며, 이후 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팬아트와 팬픽션 등을 쓰는 [[http://www.reddit.com/r/theeternalwar|커뮤니티]]가 나오기도 하였다.
* 펭귄북스 UK[* 영국 버전이므로 미국 아마존 Prime으로는 구매할 수 없다.]에서 2013년 1월 3일부터 출간하는 1984는 위와 같은 표지로 출판된다. 저자와 제목란이 검은 바탕 위에 음각으로 인쇄되어 있어 잘 보이지 않는 아주 적절한 연출을 기용하였으며, 다른 몇몇의 책들이 이와 같은 표지로 발매했다.[[http://creativereview.co.uk/cr-blog/2013/january/great-orwell-penguin-david-pearson|#]] [[https://www.penguin.co.uk/books/57013/nineteen-eighty-four/|펭귄북스 공식 홈페이지]]
* 2013년 6월에 미국의 전직 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프리즘 폭로 사건|"미국이 전세계를 감시중이며, 1년에 960억 건의 정보를 인터넷에서 입수"한다고 폭로]]하면서 다시금 주목을 받아, 판매부수가 급격히 늘어났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이전에 비해 《1984》의 판매율이 90%로 급증했다고 한다.
* 2013년, 영국의 [[더 가디언]]에서 조사한 '읽지 않았으면서 읽었다고 거짓말한 책' 설문조사에서 26%로 당당히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https://www.theguardian.com/books/booksblog/2013/sep/09/have-you-ever-lied-about-a-book|기사(영어)]] 2위는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3위는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 한 미국 디자이너는 소설에서 등장한 '승리 진', '승리 담배' 등의 상표를 실제로 제작해 보았다. [[https://joshlafayette.com/1984|#]]
* [[을유문화사]]판 《1984》의 책 표지에는 [[이오시프 스탈린]]이 대문짝만하게 그려져 있다.
== 퍼블릭 도메인 ==
작가 사후 일정기간이 지나, 지적재산권이 만료되어 대한민국과 호주에서는 원문이 [[퍼블릭 도메인]]이다. 물론 번역본은 예외. 원문은 [[http://gutenberg.net.au/ebooks01/0100021.txt|여기]]서 다운받을 수 있다.
교육방송에서 제공하는 오디오북으로 무료로 다운로드 청취가능하다. [[http://pcast.ebs.co.kr/2013/ch01/bp0phpk0000000054/aod/mp3/20131230_210003_o.mp3|1화링크]][[http://www.podbbang.com/ch/1857|전편목록]]
== 관련 문서 ==
* [[21세기]]
* [[동물농장(소설)]]
* [[디스토피아]]
* [[북한]]
* [[빅 브라더]]
* [[스탈린주의]]
* [[전체주의]]
* [[조지 오웰]]
* [[주체사상]]
* [[멋진 신세계]]
[[분류:1984(소설)]] |
1984 LA 올림픽 | #redirect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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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 #redirect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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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 [include(틀:역대 동계올림픽)]
||<tablealign=center><:><width=30%> 13회 ||<:> {{{+1 → }}} ||<:><width=30%> 14회 ||<:> {{{+1 → }}} ||<:><width=30%> 15회 ||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 {{{+1 → }}} ||<:><#DCDCDC>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1 → }}}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tablealign=right><:> '''XIV Зимске олимпијске игре''',,([[세르비아어]]),, [br] '''XIV. zimske olimpijske igre''' ,,([[크로아티아어]]),, [br] '''XIV Зимски олимписки игри''',,([[마케도니아어]]),, [br] '''XIV Olympic Winter Games In Sarajevo'''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94px-1984_Winter_Olympics_logo.svg.png|width=200]] ||
||||||<:> [[파일:external/cdn.colorlib.com/sarajevo-1984-color-poster.jpg|width=200]] ||
||<:> 대회기간 |||| [[1984년]] [[2월 7일]] ~ [[1984년]] [[2월 19일]] ||
||<:> 개최국가/도시 ||||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유고슬라비아]]/[[사라예보]] ||
||<:> 마스코트 |||| 부코(Vučko) ||
||<:> 참가국 |||| 49개국 ||
||<:> 참가선수 |||| 1,272명[br](남자: 998명, 여자: 274명) ||
||<:> 경기종목 |||| 6개 종목 - 39개 세부 종목 ||
||<:> 개회 선언자 |||| 미카 슈필랴크[br],,유고슬라비아 대통령,, ||
||<:> 선수 선서 |||| 보얀 크리자이 ||
||<:> 심판 선서 |||| 드라간 페로비치 ||
||<:> 성화 점화 |||| 산다 두브라브치 ||
||<:> 개·폐회식장 |||| [[스타디온 아심 페르하토비치 하세]] ||
[목차]
[clearfix]
== 소개 ==
1984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의 [[사라예보]]에서 개최된 동계 [[올림픽]]. 당시에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구성하는 6개의 공화국 중 하나였다. 최초로 [[동유럽]], [[사회주의]]국가에서 개최된 동계 올림픽이었다.[* 하계 올림픽은 1980년 모스크바에서 사회주의 [[동유럽]]으로는 최초로 개최되었다. 두 번째로 동유럽에서 개최된 동계 올림픽은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 올림픽]]이다.] 또한 올림픽 중 처음으로 유고에서 치러진 올림픽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 유치 ==
'''이 때부터 [[스웨덴]]은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기 시작했다.''' 후보로는 [[유고슬라비아]]의 [[사라예보]], [[일본]]의 [[삿포로]], 스웨덴의 [[예테보리]]가 나왔다.
[[투표]] 결과...
|||||||||| 1984년 올림픽 유치 투표 과정 ||
|| 국가 || 도시 || 1차투표 || 2차투표 || 결과 ||
|| '''유고슬라비아''' || '''사라예보''' || 31 || '''39''' || '''유치 선정''' ||
|| [[일본]] || 삿포로 || '''33''' || 36 || 유치 탈락 ||
|| [[스웨덴]] || 예테보리 || 10 || || 유치 탈락 ||
스웨덴은 무려 1차 투표에서 쓴 잔을 마시는 굴욕을 겪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후 '''연속 6번'''이나 1차 탈락이 반복된다--
== 올림픽 이후: 보스니아 내전과 참상 ==
8년이 지난 1992년 [[보스니아 내전]]이 터졌고, 올림픽 경기가 치러졌던 경기장들은 대부분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보스니아 내전]] 초기인 [[1992년]]에 [[세르비아]]계가 [[무슬림]] [[보스니아]]인들을 대거 학살한 장소가 바로 이 올림픽 주경기장이었다. 그냥 집에서 끌어낸다고 하면 보스니아인들이 집에서 안 나오고 저항할테니 [[올림픽]] 경기장으로 '''유인해서 경기장에서 죽였다'''고 한다. 물론 [[1995년]] [[스레브레니차 학살]]이 워낙 규모도 크고 이건 정말 정신이 나갔지만...
[[파일:external/thumbnail.egloos.net/e0006522_57734625d4b7c.jpg]]
흰 오벨리스크는 이 나라 무슬림 특유의 묘비.
엄밀히 말해서 주경기장을 파서 묘지를 만든건 아니고 경기장 지척에 공동묘지를 조성한 것이다. 테니스장에서 길만 건너면 공동묘지가 나온다. 주경기장을 비롯한 보조경기장, 테니스장 등은 지금도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스포츠 단지 내에 공동묘지가 있는 건 평범한 일은 아니다.
[[파일:external/thumbnail.egloos.net/e0006522_5773462e8ebbe.jpg]]
봅슬레이 경기장이던 곳.
빙상 경기가 열렸던 장소는 [[세르비아군]]의 [[폭격]]으로 완전히 잿더미로 변했다가 하필이면 [[사라예보]] 시내에 있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무슬림]] 보스니아계+[[가톨릭]] [[크로아티아]]계)과 [[스릅스카 공화국]]([[세르비아]]계)의 '''경계선'''으로 당첨되면서 재건되지 못하고 있다. 보스니아 판 [[브란덴부르크 문]] 소리를 듣고 있다. 선수촌 단지는 대부분 철거되었지만, 일부 [[아파트]]에는 [[총탄]]과 '''핏자국'''이 남은 채로 보존되어서 [[보스니아 내전]]의 참상을 전하는 [[전시장]]처럼 쓰이고 있다.
이 경기장 단지는 직접 접근하기도 매우 어렵다.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와 [[크로아티아]]의 투지만이 나란히 올림픽 경기장 단지에 [[지뢰]]를 깔아놔서 올림픽 경기장 단지 안에 '''지뢰 경계선'''이 있다. [[관광]]할 때는 정해진 루트로만 다녀야 한다. 워낙 지뢰를 많이 깔아대서 [[지뢰제거]]도 사실상 불가능하고 한다. 그래도 관광객은 속칭 '''폐허 관광'''겸 해서 많이 온다고 한다. [[유럽]]에서 연인원 300만 명 정도가 관람한다고 한다. 하루에 1만 명 꼴이니까 의외로 폐허단지 치고 많이 온다. 사라예보 공항과 사라예보 기차역에서 출발하여 올림픽 단지를 관광하는 버스가 30분에 1대씩 운행되고 있다.
봅슬레이 부분은 완전히 버려졌지만, 스키장의 경우에는 현재 다시 재개발되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s-4.10|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성적]] ==
■ 1984 14회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1984 Winter Sarajevo Olympics)
* 기간: 2월 8일~2월 19일
* 규모: 49개국
* 종목: 39개
* 참가선수: 1,272명
* 개막일: [[1984년]] [[2월 7일]]
* 폐막일: [[1984년]] [[2월 19일]]
[[파일:대한민국동계올림픽성적10.png]]
== 기타 ==
* [[1980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처럼 [[보이콧]]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사실 [[유고슬라비아]]는 공산권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독자노선을 추구하는 비동맹 국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고슬라비아는 몇 달 뒤에 열린 LA 올림픽에는 [[루마니아]]와 함께 정상적으로 참가했다.
* [[중화인민공화국]]의 압력으로 공식 국호 사용을 제한당한 [[중화민국]]은 결국 타협하여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라는 이름으로 올림픽에 처음 참가하게 되었다.
* [[196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참가한 후 24년만에 다시 [[아프리카]]의 국가인 [[세네갈]]과 [[이집트]]가 참가하여 다시 오륜대회에 걸맞게 오대륙의 나라가 참가하였다.
* 개최국인 [[유고슬라비아]]는 이 대회에서 알파인 스키에서 [[은메달]] 하나만을 따는 처참한 성적을 보여주었다(일본과 공동 14위),[* 원래 유고슬라비아는 올림픽 개최하기 전까지 동계종목에서는 '''노메달'''이었다. 비록 하나 밖에 못땄지만. 최초로메달 땄으니 어느정도 성과를 거둔 샘이다.] 지난번 대회의 깜짝 스타 리히텐슈타인도 --버프가 끝나-- 동메달 2개(15위)로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8년 전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아무리 망했어도 동메달 1개로 15위 꼴찌를 기록한 [[오스트리아]]나 아예 메달도 못 딴 [[네덜란드]]만도 못했다. [[안습]]한 이야기들이다.
* 이 대회 7년 뒤인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급속한 붕괴 과정을 겪게 된다. --[[올림픽의 저주]]-- [[유고슬라비아 내전]] 참고.
* [[동독]]이 금메달 9개를 따며 동하계 올림픽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금메달 순위 1위에 올랐다.'''[* 통일 후 처음 참가한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는 [[동독]] 출신 선수들이 중심이 되어 많은 메달을 획득하여 종합 1위를 한다. 이후로도 통일 독일은 동계올림픽에서 몇차례 종합 1위를 한다.] [[피겨 스케이팅]]의 유명한 [[카타리나 비트]]를 위시하여, 여자 스피드스케이팅과 남자 봅슬레이 금메달과 은메달을 싹쓸이하는 등 초강세를 보였다. 동독의 [[버프]]로 [[소련]]도 이 대회에서는 고작(?) 금메달이 6개에 그쳤다. 다만 메달 개수 총합으로는 동독 9, 9, 6에 소련 6, 10, 9라 근소한 차로 소련이 1개 앞섰다.
*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는 여자부에서는 동독 선수들이 메달을 거의 휩쓸었다. 동독의 크리스티나 루딩은 500m, 1000m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2관왕이 되었으며, 4년 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다시 1000m에서 우승하며 2연패 위업을 달성하였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싸이클 개인추발에 출전, 은메달을 차지하였다. 남자부에서는 [[소련]], [[캐나다]], [[스웨덴]] 등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금메달을 땄으며, [[일본]] 선수가 처음으로 스피드스케이팅 올림픽 메달을 따기도 했다. 이 와중에 스피드 스케이팅 한 종목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네덜란드]]와 전 대회에서 [[에릭 하이든]]이 남자부 금메달을 싹쓸이했던 [[미국]]은 이 대회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서 노메달에 그쳤다.
* 피겨 스케이팅의 아이스 댄싱 종목에서 영국의 [[제인 토빌 / 크리스토퍼 딘]] 조가 '볼레로(Bolero)'를 연기하고 심판 전원 예술점 6.0 만점을 기록했다. 이 조의 '볼레로'는 피겨 스케이팅과 아이스 댄싱 종목을 대표하는 걸작 고전으로 회자되고 있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의 여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 연기를 직접 관전한 후 인터뷰에서 '[[제인 토빌 / 크리스토퍼 딘]] 조의 연기가 생각난다'고 말한 일화가 유명하다.
* 마스코트는 어린 [[늑대]]인 '브치코'였다. 여섯 개의 경쟁작 가운데 선정.
* [[대한민국]]은 동계올림픽 출전 사상 최대인 15명의 선수가 참가하였다. 바이애슬론에서는 남자부의 황병대가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성적은 [[안습]]. 특히 [[스키]] [[선수]] 3명이 사전 스키복 점검 규정을 알지 못해 '''모조리 실격''' 당하는 일까지 있었다.
* 개회식에서 선수단 입장 때 [[미국]]의 국명이 '''SAD'''로 나왔다. --슬픈 천조국-- 이유는 [[세르보크로아티아어]]로 미국의 국명이 Sjedinjene Američke Države(키릴 문자로는 Сједињене Америчке Државе)기 때문이다.
[[분류: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
1984(TV 광고) | [목차]
== 영상 ==
[youtube(2zfqw8nhUwA)]
>Today, we celebrate the first glorious anniversary of the Information Purification Directives. We have created, for the first time in all history, a garden of pure ideology—where each worker may bloom, secure from the pests purveying contradictory truths. Our Unification of Thoughts is more powerful a weapon than any fleet or army on earth. We are one people, with one will, one resolve, one cause. Our enemies shall talk themselves to death, and we will bury them with their own confusion. We shall prevail!
>
>오늘, 우리는 "정보 순수화 지령"의 영광스러운 1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모든 역사를 통틀어 최초로 순수한 이데올로기의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 모든 노동자들이 꽃을 피울 수 있고, 모순된 진실을 전하는 해충들로부터 안전합니다. 우리의 "사상 통일"은 어떤 함대, 군대보다도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입니다, 한개의 바람, 한개의 결의, 한개의 대의만이 있습니다. 우리의 적들은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고, 우리는 그들의 혼란을 통하여 그들을 무덤으로 몰고 갈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리라! (화면이 깨지고, 정적이 흐른다.)
> 1984년 1월 24일, 애플은 매킨토시를 공개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왜 1984(년)가 [[1984(소설)|1984]]가 되지 않을 것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 개요 ==
1984년 1월 22일 1983년 시즌 [[슈퍼볼]] XVIII에 '''딱 한번''' 방영[* 그런데 원래 슈퍼볼은 영향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광고비도 엄청나서 어지간한 대기업도 부담스러워 할 정도이다. 물론, 슈퍼볼에서 한 번만 광고를 내보내도 그 노출도와 영향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된 [[매킨토시 128K]]의 60초 TV 광고, '''[[리들리 스콧]]이 감독을 맡았으며'''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서 상도 많이 탔다.
[[매킨토시 128K]]의 출시된 해는 [[1984년]]인데, 이 해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소설)|1984]]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해이다. 이를 이용해서 애플은 [[IBM]]을 빅 브라더로 묘사하고, [[Macintosh(컴퓨터)|매킨토시]]를 구원자로 묘사한 1분짜리 광고를 1984년 슈퍼볼에 단 한번 공개했다.[* 정확히는 두번이다. 1983년 12월에 아이다호 주 남부를 대상으로 방송하는 지역 방송인 KMVT에서 새벽 1시(...)에 방송했었다. 하지만 홍보의 목적으로 방송하기 보다는 그냥 그해 시상식에 출품하려고 방송했다고 한다.] 이 광고를 만들때 든 비용은 90만 달러, 지금 돈으로 따지면 191만 5천달러이다. 광고 치고는 꽤 많은 돈이다.
많은 시청자에게 충격과 공포를 주며 [[Macintosh(컴퓨터)|매킨토시]]에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줬으며, 상도 많이 받았다. 칸 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이후로, 클리오상을 2번이나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 후속편 ([[시퀄]]) ==
=== [[1985년]] ===
[youtube(pw76XpN8WcA)]
광고에서 나오는 피리소리는 [[백설공주]]에서 일곱난쟁이들이 부르는 'Heigh Ho!'[* 다만 원래 이렇게 우울한 노래는 아니고 활기찬 노래다.]
[[1985년]] 슈퍼볼때 애플은 이 [[광고]]의 속편인 "[[나그네쥐|Lemmings]]"를 공개했는데, 1984 광고는 "[[Macintosh(컴퓨터)|매킨토시]]가 우리를 디스토피아로부터 구원해준다" 라는 메시지가 있는 반면 이건 "매킨토시 오피스 안쓰고 [[IBM]] 계속 쓰면 너 뒤짐."[* 정확히는 '우리가 매킨토시 오피스를 출시하는데 넌 그걸 사용할 수도 있고 ('''절벽으로 떨어지는 길로 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며''') 그냥 평소대로 일할 수도 있다.'] 이라고 협박하고 있다! 잡스와 스컬리 '''둘다 [[광고]]를 반대했는데[* 스컬리만 반대했다는 얘기도 있으나 스티브 잡스 자서전을 보면 둘다 반대했다고한다.] [[광고]] 제작사가 졸라서 방영했다.''' 결과는 관심도 못 끌고 그냥 [[공포영화]] 하나 탄생. 결국 이 [[광고]] 때문에 [[Macintosh(컴퓨터)|매킨토시]] 개발자 한명은 아예 사표를 내기까지 했다.(...)
확실히 기발하긴 하지만 너무 도발적이고 가식적인 모습때문에 욕을 먹을 일은 예견되어있었다. 댓글란에서도 너무 소름끼치고 우울하다는 평이 많다. 하지만 의외로 좋다는 평도 많은 편. 그런데 베스트댓글 중 하나가 ''''이제 500$짜리 [[iPad 2]] 사는 사람이 레밍스''''다.
그리고 31년 뒤 리들리 스콧은 [[https://www.youtube.com/watch?v=KDtxQRH8aI4|IBM Watson의 광고에 등장했다.]]
[youtube(PRtQa9EE0xI)]
근데 Tabco라는 회사에서 이 광고를 패러디 했다. 그것도 똑같이 도발적으로. ~~이런건 안따라해도 되는데~~ 단, 배경음은 I've Been Working on the Railroad로 바뀌었다.
== 패러디 ==
* 유튜브를 잠깐 찾아봐도 이 광고의 패러디나 촬영 뒷 이야기 등등 재밌는 동영상들이 많다. 패러디 중에는 [[퓨처라마]]로 만든 것도 있고, 뚱땡이가 화면을 향해 해머를 돌리는데 해머가 도리어 화면에 튕겨나가는 전개도 있다. 2016년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어느 [[버락 후세인 오바마|오바마]] 지지자가 저 광고를 소재로 힐러리 클린턴을 악의 축으로 묘사한 사례가 있다.
* [youtube(mMYsGdDssvk)]
[[2004년]]에 나온 이 [[광고]]는 [[Apple]]이 [[Macintosh(컴퓨터)|매킨토시]] 출시 20주년을 기념해 다시 방영한 것으로, 원작인 1984편을 '''완벽에 가깝게''' 리메이크 했다. 구원자가 ~~[[깨알같다|깨알같이]]~~ [[아이팟]]을 쓰고 있다는 것과 좀더 깨끗해진 화질이 유일한 차이다.
*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는 "매플"의 CEO "스티브 맙스"를 등장시켜 [[코믹 북 가이]]가 [[http://tvpot.daum.net/v/lLlaiQBd2hs$|망치로 모니터 깨기를 그대로 패러디했다.]][* 이때 한 대사는 "배신자! 너의 심장은 네가 입은 터틀넥 만큼이나 시커멀지어다!"(...)] 바트 심슨이 중대발표장에서 마이크를 바꿔끼고서 "니들 제품은 다 내가 오줌지린 거고 수익금은 몽땅 MS에 투자한 다음에 내 남친 빌 게이츠랑 돈방석에서 키스했다!" 라고 했으니.(...)
* [youtube(8BPFODsob1I)]
[[iOS]]가 폐쇄적인 플랫폼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오히려 애플이 빅 브라더가 되고 안드로이드 진영이 구원자가 되어야 하는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고[* 사실 원본 광고 방영 당시에도 매킨토시는 확장성이 적은 폐쇄적 컴퓨터였다.] 실제로 [[모토로라]]가 이 1984 광고를 비꼬는 광고를 만들어서 2011년 슈퍼볼 때 방영했다. 그럼데 정작 원본 광고만큼 무섭기는 커녕 재밌지도 않아서 애플빠든 애플까든 생각보다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 [[밸브 코퍼레이션]]은 대표작 [[하프라이프 2]]가 [[OS X]]에서도 지원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영상에서 [[http://youtu.be/2zkLh_QMFdQ|이를 오마주했다]]. 마침 하프라이프 2의 세계관 또한 1984를 오마주한 것이나 다름없기에 좌석에 앉아있던 시민들의 복장이나 [[월리스 브린]] 박사의 연설 화면이 원본 광고와 매우 흡사하다.
한편으로는 월리스 브린의 대사가 [[적절]]하게 [[헤비웨폰가이(팀 포트리스2)|샌드위치]]에서 끊기는 걸 보면 아무래도 노린듯.
* [[파일:external/derpicdn.net/864997.gif]]
전체주의적 주제를 다룬 [[My Little Pony: Friendship is Magic]] 시즌 5의 제2화에서도 패러디되었다.
* 2020년 8월 14일에는 [[에픽게임즈]]가 애플과의 법정 싸움에서 자사의 [[포트나이트/배틀로얄|포트나이트: 배틀로얄]]로 패러디하였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포트나이트/배틀로얄/사건 사고#1984|해당 문서 참고]].
[youtube(EVVTfGmv1BQ)]
[[분류:광고]] |
1984년 | ||<-13><tablealign=center><bgcolor=#a9a9a9> {{{#000000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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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align=right><bgcolor=#CBB8EE> '''세계 각 지역의 표기''' ||
|| [[서력기원|서기]] || 1984년 ||
|| [[대한민국 연호|대한민국]] || 66년 ||
|| [[단군기원|단기]] || 4317년 ||
|| [[불멸기원|불기]] || 2528년 ||
|| [[이슬람력]] || 1405년~1406년 ||
|| [[갑자|간지]] || [[계해]]년~[[갑자]]년 ||
|| [[주체사상|주체]] || 73년 ||
|| [[중화민국|민국]] || 73년 ||
|| [[일본]] || [[쇼와]] 59년 ||
|| [[히브리력]] || 5745년~5746년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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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122400209203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12-24&officeId=00020&pageNo=3&printNo=19456&publishType=00020|동아일보 선정 1984년 국내외 10대 뉴스]]
체신부에서는 1884년 우정총국 개국을 기준으로 '한국 우정 100년'을 성대히 맞이했고, 한국 천주교계에선 1784년 이승훈이 청나라에서 세례받고 귀국한 걸 기준으로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했다. 이에 따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역대 교황들 중 최초로 한국을 방문해 화제를 모았다.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첫 작품 <[[터미네이터(영화)|터미네이터]]>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개봉하여 유명세를 탔던 해이기도 했다. 이 영화는 3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유명세를 잇고 있는 중이며 2019년엔 6번째 작품인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까지 개봉했다.[* 3와 4는 각각 다른 감독으로 교체되었으며 4에서는 주연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배역에 출연하지 않는다.]
이 해 11월부터 일본 슈에이샤 만화잡지 [[소년 점프]] 52호에서 전설적인 만화로 추앙받는 [[드래곤볼]]이 첫선을 보였고, 한국 만화계에선 신인작가 신일숙 화백이 순정만화 <라이언의 왕녀>로 데뷔한 후 단숨에 스타반열에 들어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이 해에는 미국 [[LA]]에서 [[1984 LA 올림픽|하계올림픽]]이, 구(舊)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는데 특히 LA 하계올림픽에서는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대부분 불참하여[*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는 참가.] 반쪽짜리 대회로 전락하였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종합 10위를 달성하였다. 그리고 이해를 기점으로 합계출산율이 2.0명 아래로 떨어져(1.74명) 지금까지도 출산율이 2.0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 소련의 [[지구 최후의 날 기계]]인 '''죽음의 손''' 이 가동을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정치적 사정을 이유로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였던 대한민국이 이 해에 열렸던 LA올림픽에 참가함에 따라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국내에 올림픽 열기가 다시 달아오르게 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반대로 북한은 [[미국|불구대천의 원수국가]]에서 열리는 LA 올림픽에 불참했으며 4년 후 열리는 남한의 서울 올림픽에도 불참하였다. 북한이 올림픽에 다시 출전하게 된 것은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였다.
또 데이비드 스턴 총재가 수장으로 취임한 NBA의 세계화 원년이며 코트 위의 별들이 가장 많이 뜬 해이기도 하다. [[마이클 조던]], [[하킴 올라주원]], [[찰스 바클리]], [[존 스탁턴]], 샘 퍼킨스, 케빈 윌리스, 번 플레밍, 오티스 도프, 앨빈 로버트슨이 대표적이다.
영미권에서는 1984년 이라는 단어 자체가 '오래되고 정말 구식인' 것을 지칭하는 대표적인 밈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저 식당 인테리어는 너무 구려서 들어가면 1984년으로 돌아간 것 같아"라던가... [[대한민국]]에서 종종 쓰이는 [[쌍팔년도]]와 비슷한 맥락.
가장 최근에 '''음력 10월 윤달'''이 든 해였다. 날짜는 11월 23일부터 12월 21일까지.
== 사건 ==
=== 실제 ===
==== 1월 ====
* [[1월 1일]]
* 전두환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평화와 번영'을 강조하였다.
* 비디오 아트 예술가 [[백남준]]이 만든 작품 <굿모닝 미스터 [[조지 오웰|오웰]]>이 전세계 TV에 위성 생중계되었다.
* [[1월 4일]]: 서울지역 14개대 제적생 130여 명이 전원 복교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1월 5일]]
* 국토통일원은 1982년 말 기준 국내 GNP는 북한의 4.8배라고 밝혔다.
* '통일문제 교과서 분석사건 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월 6일]]
*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이하 노복)'가 결성되었다.
* [[자오쯔양]] 중공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다.
* [[1월 10일]]
* 리영희와 조승혁, 강만길 교수가 통일방안 강연 내용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 미국 정부는 남-북-중 3국과의 4자회담을 제의하였다.
* 북한 중앙인민위는 최고인민회의상설회의 연합회의에서 3자회담을 제의하였다.
* [[1월 11일]]
* 손재식 국토통일장관은 북측의 3자회담 제의에 대해 남북한 대표 각료급회담을 제의하였다.
* 문공부는 경북 안동 하회마을 및 주변 경승지 150만평 등 64건을 민속자료로 지정하였다.
* 국방부는 '[[국군체육부대]]'를 창설하였다.
* [[1월 13일]]
* 문교부는 표음주의 표기법을 채택한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개정안'을 최종 고시하였다.
* 서울 철강택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월 14일]]
* 문교부는 개정 국어로마자표기법을 제정하였다.
* 부산 부전동 대아관광호텔 헬스클럽에서 큰불이 나 38명이 죽고 7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부산 대아호텔 화재사고)
* 제1회 대통령배 전국남녀배구대회가 개최되었다.
* [[1월 16일]]: 소련측은 극동에 최신예 항공모함 노보로시스크호를 배치했다.
* [[1월 17일]]
* 전두환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폭력배제를 5공 행정지표로 설정한다고 밝혔다.
* 서울 영동운수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월 18일]]: 동아택시와 삼익택시 기사들이 노동조합을 각각 결성하였다.
* [[1월 19일]]: '노동자 생존권 보장을 윙산 민주노동자 블랙리스트 철폐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월 20일]]: 경제기획원은 390품목의 수입개방을 발표했다.
* [[1월 21일]]
* 전두환 대통령은 대간첩대책회의를 주재하였다.
* 유치송 민한당 총재는 연두기자회견에서 대통령직선제 개헌 및 전면해금을 촉구하였다.
* ICC는 1988년 장애자올림픽 개최지를 서울로 결정하였다.
* [[1월 22일]]
* LA 레이더스가 미국 NFL [[슈퍼볼]] XVIII에서 전 대회 우승팀 워싱턴 레드스킨스를 꺾어 통산 3회 우승을 달성하였다.
* 위 대회 TV생중계 도중 [[Apple|애플]] 매킨토시 128K 티저광고 <[[1984(TV 광고)|1984]]>가 방영되었다.
* [[1월 23일]]
* 전두환 대통령은 공직자 정화 자율추진 및 사회안정/질서 저해사범 엄단을 발표하였다.
* 정부는 제주도에 관광단지를 조성한다고 발표하였다.
* 서울시는 사치성업소 허가제한을 해제시켰다.
* [[1월 24일]]: 미국 애플 사가 [[Macintosh(컴퓨터)|매킨토시]] 128K를 시판하였다.
* [[1월 25일]]: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제7기 3차 회의에서 [[강성산]]을 새 총리직에 선출했다.
* [[1월 30일]]: 중공은 북한의 3자회담 제의에 거부 반응을 보였다.
* [[1월 31일]]
* 전두환 대통령은 건설부에 그린벨트 불합리 시정 및 기준지가 단일화를 지시하였다.
* 민한당은 정부의 제적생 선별심사복교방안 철회 및 전원복교를 촉구하였다.
* 김성배 건설장관은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분할해 균형개발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 2월 ====
* [[2월 1일]]
* [[팀 스피릿]] '84 한미합동훈련이 개시되었다.
* 서울 성부중개화물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2월 3일]]: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NASA 케이프 커네버럴 기지에서 발사하였다
* [[2월 4일]]
* 전두환-호크 간 한호정상회담이 청와대에서 개최되었다.
* 서울 상신운수 택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일본 TV아사히에서 <[[초전자 바이오맨]]>이 첫 전파를 탔다.
* [[2월 5일]]: 북한측은 팀 스피릿 '84 훈련에 대비하여 전군 동원태세령을 내렸다.
* [[2월 7일]]
* 미국 우주비행사 로버트 맥캔드리스 2세가 세계 최초로 우주 자유유영에 성공하였다.
* 김영남-우쉐쳰 간 제1차 북중외상회담이 개최되었다.
* [[2월 8일]]
* 법무부는 학원소요 관련 재소자 48명을 [[형집행정지]]로 석방시켰다.
* [[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유고 사라예보 아심 페르하토비치 하세 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 [[2월 9일]]
* 강원 고성군 통일전망대가 준공되었다.
* 안드로포프 소련 서기장이 세상을 떴다.
* [[2월 10일]]: 외무부는 주 레바논 대사관에 긴급 철수령을 내렸다.
* [[2월 11일]]: 각 대학 제적생들이 '제적생 복교추진 지역대표자전국협의회'를 결성하였다.
* [[2월 13일]]: [[안드로포프]]의 유고로 [[콘스탄틴 체르넨코]] 당 총무부장이 새 소련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되었다.
* [[2월 14일]]: 강만길-리영희 교수, 조승복 목사 등 3명이 검찰의 기소 보류로 석방되었다.
* [[2월 15일]]
* 진의종 국무총리는 남북화합과 통일기반 조성을 위한 양국간 직접대화, 서신교환, 상호왕래 등을 촉구하였다.
* '한국미술 5천년 유럽순회전'이 영국 런던에서 개최되었다.
* [[2월 17일]]
* 외무부는 한국의 양해 없이는 미-북 간 단독접촉은 없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 이란-이라크군 쌍방 50만 대군이 이틀째 대회전을 벌였다.
* [[2월 18일]]
* 영국국영동물연구소는 양과 염소의 태아세포를 조합한 신종동물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21800209204003&officeId=00020&publishDate=1984-02-18&isPopular=0|양염소]]'를 창조했다고 밝혔다.
* '경인지구 제적생총회'가 개최되었다.
* 삼미기업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2월 20일]]
* 정부는 농/수/축협 조합장 선출방식을 직선제로 개선한다고 밝혔다.
* 노동부는 국내 최초로 크롬중독 환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 '새세대심장재단'이 발족되었다.
* [[2월 25일]]
* 전두환 대통령은 [[김지하]], [[송건호]] 등 정치활동 규제자 202명을 추가 해금시킨다고 발표하였다.
* 한국 테니스 대표팀이 쿤밍 데이비스컵 출전을 위해 스포츠 사상 최초로 중공에 입국하였다.
* [[2월 28일]]
* [[진의종]] 국무총리는 현행 헌법으로 1988년에 정부를 이양한다고 밝혔다.
* 서울올림픽조직위는 올림픽 개최기간을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로 결정하였다.
* [[2월 29일]]
* 치안본부는 총/학장 요청 시에만 대학에 공권력을 투입한다고 결정하였다.
* 가농과 기농이 '농가부채 탕감운동'을 벌였다.
==== 3월 ====
* [[3월 1일]]
* 재무부는 중소기업의 신종기업어음 발행을 허용하였다.
* ICAO(국제 민간 항공 기구) 한국대표는 KAL 007기 희생자 배상을 소련에 촉구하였다.
* [[3월 2일]]: 법무부는 구속학생 159명을 포함한 재소자 1,176명을 특사로 가석방시켰다.
* [[3월 4일]]: 프로권투선수 오민근이 IBF 페더급 초대 챔피언결정전에서 미국의 캘빈 램킨스를 꺾어 타이틀을 차지하였다.
* [[3월 7일]]: 서울 현대상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3월 8일]]
* [[권이혁]] 문교장관은 1980년 5.17 내란 이후 데모 관련으로 군에 입대된 학생은 총 465명이라고 밝혔다.
* 정한주 노동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노동자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정했다.
* 서울대 등 6개대 제적학생들은 총회에서 각 대학별로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 구성을 결의하였다.
* [[3월 9일]]
* 농수산부는 소/돼지고기 500kg 기준 가격표시 등 37개 품목의 거래단위 미터법으로 표준화하였다.
* 대한광학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서울대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김일 전 북한 부주석이 사망했다.
* [[3월 10일]]
* 진의종 국무총리는 남북한 직접대화 재촉구 성명을 발표하였다.
*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가 설립되었다.
* 충남 서산A지구 방조제 물막이공사가 완료되었다.
* [[3월 11일]]: 청구화공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3월 12일]]
* 이원경 외무장관은 공산권과의 문화/체육 등 비정치적 교류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 권이혁 문교장관은 중/고교 보충수업 하루 1시간 이내 실시를 허용한다고 밝혔다.
* [[3월 13일]]
* 야당 의원들은 [[녹화사업]]으로 강제징집된 6명이 사망한 데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 문교부는 1985년부터 중학의무교육 실시지역을 도서벽지, 접적지역, 수복지역, 광산지역으로 각각 확정한다고 발표하였다.
* IMF는 한국 정부에 단기외채 축소를 촉구하였다.
* [[3월 14일]]: 장막성전 출신 이만희가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을 창시했다.
* [[3월 15일]]
* 국방부는 국회 국방위에서 1980년 이후 강제징집자 중 사망자가 5명이라고 발표하였다.
* 서울 방배동에서 빈민가 철거사태가 발생했다.
* [[3월 16일]]: 각 대학별로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3월 18일]]
* 육상선수 이홍열이 제55회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 14분 59초로 10년만에 한국 신기록을 달성하였다.
* 중공 정부는 다롄, 칭다오 등 10개 도시에 외국인 투자를 허용시켰다.
* [[3월 19일]]
* 민한당 지방의원 이용곤이 유옥우 의원 유고로 전국구 의원직을 승계하였다.
* 미국 정부가 물질특허제 도입을 한국측에 요청했다.
* [[3월 21일]]
* 팀 스피릿 '84 훈련 중이던 미군항모 키티호크호가 한반도 동해상에서 소련군 핵잠수함과 충돌했다.
* 서울대병원 산부인과에 '시험관아기클리닉'이 설치되었다.
*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표단은 제71차 제네바 IPU 회담 참석차 출국했다.
* [[3월 23일]]: 나카소네 일본 총리가 중공을 방문하였다.
* [[3월 24일]]
* 서울대는 학원자율화추진위를 인정한다고 결정하였다.
*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이하 해언협)'이 결성되었다.
* 경북 포항 부근에서 팀 스피릿 '84 훈련 중이던 미 해병대 헬기가 추락해 탑승객 29명 전원이 숨졌다.
* [[3월 26일]]: 구 야권인사 25명이 1차로 민한당에 입당했다.
* [[3월 27일]]
* '청계피복노조 복구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주)[[스타맥스]]가 설립되었다.
* [[3월 28일]]
* 연세대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고려대 학도호국단이 학원자율화 추진위원회 결성을 결의하였다.
* [[3월 29일]]: 미국 정부가 한국과의 무역에서 15개 품목의 관세특혜를 정지했다.
* [[3월 30일]]
* 서울대생 3천여 명이 '강제징집 사망자 한희철 추도식' 개최 후 교내시위를 벌였다.
* 에스콰이아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서강대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3월 31일]]: 문교부는 대학별 논술고사 실시 등 대입제도 보완책을 발표하였다.
==== 4월 ====
* [[4월 1일]]: 삼성반도체통신이 64K D램 공장을 준공하였다.
* [[4월 2일]]
* 안기부는 최은희-신상옥 부부가 1978년에 홍콩에서 납치돼 북한에 있다고 발표하였다.
* 한국이동통신서비스가 차량전화(카폰)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 [[4월 3일]]
* [[KBS2]]에서 <[[가족오락관]]>이 첫 전파를 탔다.
* 성대생들이 '강제징집 사망자 이윤성 추도식' 개최 후 가두시위를 벌였다.
* 경남 합천다목적댐이 착공되었다.
* 서울 문화교통 택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4월 4일]]: 서울지역 대학생 1천여 명이 강제징집 희생자 추도식을 개최되었다.
* [[4월 5일]]
* 문교부는 대학 초과모집비율을 자율화하기로 하면서 1985년부터 130% 비율로 학교별로 결정하도록 했다.
* 중국 청소년 남녀 농구대표팀이 아시아 청소년 농구대회 참가차 한국을 처음 방문하였다.
* 대일무역 적자가 29달러를 기록해 역조가 심화되었다.
* [[4월 6일]]
* 황낙주, 이필선 등 해금인사 20명이 민한당에 정식 입당하였다.
* 문교부는 졸업정원제를 1985년부터 사실상 폐지하기로 했다.
* 서울올림픽조직위는 88올림픽 마스코트 명칭을 '호돌이'로 확정하였다.
* [[4월 7일]]: 박대석 KBS 기자 등 취재기자 2명과 대한축구협회 관계자 4명이 광저우 AFC([[아시아 축구 연맹]]) 총회 참가차 처음으로 중공 땅을 밟았다.
* [[4월 8일]]
* '청계피복노조 복구대회'가 서울 명동성당 사도회관에서 개최되었다.
* 한-중 간 국제전화가 개통되었다.
* KBS2에서 <[[연예가중계]]>가 첫 전파를 탔다.
* [[4월 9일]]: 제1차 남북체육회담이 판문점 중립국감독위 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
* [[4월 10일]]
* 대검은 각종 수사보조자료 전산화 등 '검찰수사 과학화'를 결정하였다.
* '새마을방범봉사대'가 발족되었다.
* [[4월 12일]]
* 민청련 등 7개 기독청년단체들이 <대학생 강제징집 문제에 대한 공동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나카소네 일본 총리는 북한의 3자회담 제의에 대해 위장 평화공세라며 언급했다.
* [[4월 13일]]
* 전국 55개대생은 학원자율화를 요구하며 시위 및 농성을 벌였다.
* '고려대 학원자율화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4월 14일]]
* 청피노조는 서울 신당동에서 현판식을 열어 재결성을 선포하였다.
*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이하 해언협)'가 발족되었다.
* '민중문화운동협의회(이하 민문협)'가 결성되었다.
* [[4월 15일]]: 프로권투선수 서성인이 IBF 주니어페더급 세계타이틀전에서 필리핀의 보비 베르나를 꺾어 챔피언을 차지하였다.
* [[4월 17일]]
* 민청련은 산하에 '여성부'를 설치하였다.
* 고대생 1,500여 명이 '강제징집 사망자 김두황 추모식'을 개최하였다.
* 대한마이크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4월 19일]]
* 서울지역 17개대생이 '4.19 기념식'을 개최하였다.
* 경찰은 한신대 교내시위 도중 학장과 교수들에게 폭언과 구타를 가했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중공을 방문하였다.
* [[4월 20일]]: 연대생들은 '강제징집 사망자 정성희 추도식'을 개최하였다.
* [[4월 21일]]: 서울 성동경찰서는 청피노조 위원장 민종덕을 폭력행위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연행했다.
* [[4월 22일]]: 제1회 '전국 퍼스널컴퓨터 경진대회'가 개최되었다.
* [[4월 24일]]: '전태일기념관 건립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4월 26일]]
* 대학생과 신도 5백여 명이 명동성당 앞에서 십자가를 앞세우며 시위를 벌였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중공을 방문했다.
* [[4월 27일]]
* 정부는 외국인투자에 대해 문호개방 정책을 밝혔다.
* 서울 동해택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4월 28일]]
* 전북 완주 가농과 천주교회가 전국 최초로 KBS 시청료 거부를 선언했다.
* [[대불련]]이 <정법수호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4월 30일]]: 기청협 산하 '반폭력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5월 ====
* [[5월 1일]]
* 경기 과천에서 '[[서울대공원]] 개원식 및 국립현대미술관 기공식'이 개최되었다.
* 조정우 등 무소속 의원 3명이 국민당에 입당하였다.
* 15개 민주-민권-종교단체 대표들이 '청계피복노조 합법성에 관한 공개토론회' 및 '합법성 쟁취대회'를 개최하였다.
* 조지 슐츠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레이건의 방중 결과를 설명했다.
* [[5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했다.
* [[5월 4일]]: 서울시내 6개대 학추위는 학생 5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녹화사업]] 희생자 6명에 대한 합동위령제를 거행했다.
* [[5월 5일]]: 김일성-후야오방 1차 회담이 개최되었다.
*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울 [[여의도광장]]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대회 및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식]]을 집전했다.
* [[5월 7일]]: 아라파트 [[PLO]] 의장이 북한 평양을 방문하였다.
* [[5월 8일]]
* 신양제지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소련올림픽위원회는 [[1984 LA 올림픽]]에 불참한다고 발표했다.
* [[5월 9일]]: 제16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가 개최되었다.
* [[5월 10일]]
* 한미 양국은 제16차 안보협의회에서 미국의 한국 군사지원 강화 등 11항에 서명하였다.
* 국어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조각공원이 준공되었다.
* [[5월 11일]]: 문공부 조사단은 완도 보물선 2차 조사에서 청자 등 29,119점 및 선체조각 36개 등의 유물을 인양했다고 밝혔다.
* [[5월 12일]]: 문교부는 '고교 국어문법 통일안'을 발표하여 실용성 문장 중심으로 개편하도록 하였다.
* [[5월 13일]]: 미국 <캔자스시티 스타> 지는 미국산 병든 소가 한국에 수출된 사실을 보도하였다.
* [[5월 14일]]: 해운항만청은 해운업체 중 63개를 17개 그룹으로 통폐합시키는 '해운산업 합리화조치'를 발표하였다.
* [[5월 16일]]
* 은행감독원은 30대 대기업에 여신을 규제하라고 지시했다.
* 북한의 김일성이 소련 등 동구권 7개국 순방에 나섰다.
* [[5월 18일]]
* 김영삼-김대중 양김을 주축으로 한 '민주화추진협의회(이하 민추협)'가 발족되었다.
* 민청련은 서울에서 '광주항쟁 희생자 추도식' 개최 후 가두시위를 벌였다.
* 광주대교구 사제단이 '5.18 광주항쟁 4주기 추도미사'를 개최하였다.
* 서울 동부지역 4개대생 2,500여 명이 외대에서 '광주학살규탄대회' 개최 후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 [[5월 19일]]
* 농수산부는 전국 음식점에 정부미 의무사용을 실시하였다.
* 한일칼라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20일]]: 삼원기업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21일]]
* 서울시내 각 대학 총장들은 학원사태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 [[금강제화]]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22일]]
* 정부는 커피 등 326개 품목을 7월부터 수입자유화 조치를 내리도록 결정했다.
*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 [[당산역]] ~ [[을지로입구역]] 구간(을지로순환선)이 개통되었다.
*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 [[신설동역]] 구간이 [[성수지선]]으로 분리되었다.
* 국철 및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이 개통되었다.
* [[5월 23일]]
* 서울시는 65세 이상 노인부터 지하철 승차운임 면제를 실시하였다.
* [[현대엘리베이터]]가 설립되었다.
* 한국자수문화협의회가 설립되었다.
* [[5월 24일]]: 서울 상진택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25일]]
* 윌리엄 리브시 한미연합사령관은 주한미군을 계속 증원하는 중이라 밝혔다.
* 대구에서 택시기사 2천여 명이 사납금 인하와 부제 완화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이 사건은 이후 정치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 [[5월 26일]]: 노동부는 블랙리스트 해당자들이 1983년 말 기준으로 125개 업체에 근무 중이라고 밝히면서 581명이 해고되어 그 중 60명이 원직에 복직되었고, 재취업 57명에 소재불명이 428명이라고 발표하였다.
* [[5월 27일]]: 경용기계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31일]]: 서울시내 8개 대학 학도호국단과 18개대 학원자율화 추진위원회는 총장들의 5.21 공동성명에 대한 반박성명을 발표하였다.
==== 6월 ====
* [[6월 1일]]: 재무부는 외국인의 투자가 올 들어 8천만 달러로 급증했음을 밝혔다.
* [[6월 2일]]
* 강원 강릉지역 택시기사 150여 명이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강릉시청 앞에서 파업을 벌였다.
* 북한 조선올림픽위원회는 1984 LA 올림픽 불참 성명을 냈다.
* [[6월 4일]]
* 부산지역 택시기사 1천 5백여 명이 서면 로터리 일대에서 시위 도중 시 당국과의 협의로 해산하였다.
* 서울지역 택시회사 및 서울택시노조협의회 양대 대표는 택시의 하루 사납금을 2,500원 인하하기로 합의하였다.
* [[6월 5일]]
* 부산지역 택시기사들이 합의사항 미이행에 항의하며 서면 로터리에서 또다시 시위를 벌였다.
* 인도 정부군이 [[시크교]] 황금사원에서 무력제압에 돌입해 시크교도 수백명을 학살했다.
* [[6월 6일]]
* 소련의 프로그래머 알렉세이 파지노프가 개발한 컴퓨터 퍼즐게임 '''<[[테트리스]]>'''가 출시되었다.
* [[6월 7일]]
* 서울시 경찰국은 택시 운전사들의 집단 시위에 대비해 비상경계령을 내렸다.
* 농협은 서울 고덕 주공아파트 단지 내에 '농산물 슈퍼마켓'을 열었다.
* 서울 삼희통운 화물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8일]]: 가리봉전자와 삼양중기에서 노동조합이 각각 결성되었다.
* [[6월 9일]]: '대우어패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11일]]
* 국방부는 국회에서 군 입영 학생 중 사망자는 자살 4명, 사고 1명이라 밝혔다.
* 선일섬유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13일]]: [[문형태]] 전 의원이 [[정래혁]] 민정당 대표위원의 비리를 폭로하는 내용의 투서를 청와대, 민정당, 안기부 등지에 보냈다.(정래혁 사건)
* [[6월 14일]]
* 문교부는 해직 교수들의 원적 대학 복직 허용을 언급하였다.
* '한국미술 5000년전'이 서독 함부르크 미술공예회관에서 개최되었다.
* [[6월 20일]]: 민한당은 전국구 제1당에 1/2 우선배분을 제안했다.
* [[6월 22일]]
* 민한당은 선거제도에 대해 전면 재검토하자고 주장했다.
* 서울지검은 미화 20만 달러를 빼돌리려던 영락교회 회장 박조준 목사를 구속하였다.
* [[6월 23일]]: 서울 뉴코리아택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24일]]: 협진화학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25일]]
* 전두환 대통령은 투서 사건에 연루된 정래혁을 당 대표위원직에서 경질하고 새 대표위원에 권익현을, 사무총장에 이한동을 각각 임명하였다.
*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가 선종하였다.
* [[6월 27일]]
* [[88올림픽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 동인석재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28일]]
* 서울대생 3백여 명이 영등포 로터리에서 가두 시위를 벌였다.
* 정부는 외국인들의 증권시장 투자를 허용했다.
* [[6월 29일]]
* 정래혁 의원이 의원직 사퇴 및 민정당 탈당, 전 재산 사회환원 의사를 밝혔다.
* '민중민주운동협의회(이하 민민협)'이 결성되었다.
==== 7월 ====
* [[7월 1일]]
* 상공부는 공익/공해사업을 뺀 660개 업종의 외국인투자를 허용하였다.
* 중앙상선 소속 화물선 '원진호'가 이란 공군기에 피격되었다.
* [[7월 4일]]
* 이만섭 남북조절위 서울공동위원장대리는 남북한 당국 최고책임자회담 및 각료급회담 조속 개최를 촉구하였다.
* 민추협은 정래혁 사건 관련 성명을 발표하였다.
* 미국 <뉴욕타임스>는 벡텔그룹이 원전 건설계약과 관련해 한전으로부터 과다지불받았다고 보도하였다.
* [[7월 5일]]: 한양대는 리영희, 정창혁을 교수직에 복직하였다.
* [[7월 6일]]: 민한당은 정래혁 사건을 계기로 내각 총사퇴 촉구를 결의했다.
* [[7월 7일]]: 한-일 양국 외무장관들은 전두환 대통령의 가을 일본방문에 합의하였다.
* [[7월 8일]]
* IBF 페더급챔피언 서성인이 1차 방어전에서 파나마의 클레오 가르시아를 꺾어 타이틀을 지켜냈다.
* 한국칼라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9일]]: 압둘 디우프 세네갈 대통령이 전두환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였다.
* [[7월 10일]]
* 전두환 대통령은 디우프 세네갈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 정부는 '학생의 날'을 1984년부터 부활한다고 결정하였다.
* [[7월 11일]]: 국회 본회의는 선거법 개정안 등 13개 의안을 통과시켰다.
* [[7월 13일]]: 경기 성남 성아운수 택시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14일]]
* 효성물산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복권추진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7월 16일]]
* 서울 명동성당 여자 암달러상 피살사건이 발생하였다.
* IBRD는 한국의 금융자율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7월 17일]]: 모르와 프랑스 총리를 비롯한 내각 전원이 총사퇴했다.
* [[7월 18일]]
* 서울 영미교통과 범양교통에서 택시노조가 결성되었다.
* 국내 78개 여성단체를 주축으로 한 '가족법 개정을 위한 여성연합회'가 결성되었다.
* 소련의 [[우주 비행사]] 스베틀라나 사비츠카야가 여성의 세계 첫 우주 유영에 성공했다.
* [[7월 20일]]
* [[남부화물기지선]]이 개통되었다.
* 서울 하진기공 택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24일]]
* 서울 고려병원 의료진 23명이 냉각탑수 오염으로 레지오넬라균에 집단 감염되었다.
* 대왕제지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26일]]: 대지종합기술공사 대표 이정식이 제주 서귀포 부동산투기와 관련해 탈세 혐의로 전격 구속되었다.
* [[7월 27일]]
* 일본 지지통신은 한국의 외채가 414억 달러로 세계 3위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 미국 록밴드 [[메탈리카]]가 정규 2집 <[[Ride the Lightning]]>을 발매했다.
* [[7월 28일]]
* 국방부는 북한군 조병천 하사가 남한으로 귀순했다고 밝혔다.
* [[1984 LA 올림픽]] 개막식이 LA 메모리얼 콜로세움에서 개최되었다.
* [[7월 29일]]: MBC 강변가요제에서 이선희 등을 주축으로 한 '4막 5장'이 <[[J에게]]>라는 곡으로 대상을 수상하였다.
* [[7월 31일]]
* 유엔 사무차장은 남북한의 유엔가입을 지지했다.
* 서울 협진상운 택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8월 ====
* [[8월 1일]]: 가족법개정여성연합 산하 여성단체들이 전국 각지에서 서명운동을 전개하였다.
* [[8월 2일]]
* 농수산부는 '농촌지역 종합개발사업계획'을 발표하였다.
* 레슬링선수 김원기가 LA올림픽 그레코로만형 62kg급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8월 3일]]: 경제장관회의는 주택가의 향락업소 영업금지를 결정하였다.
* [[8월 5일]]
* 고대구로병원이 대동맥축착증 수술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 북한 평양방송은 김정일을 김일성의 공식 후계자로 지칭했다.
* [[8월 6일]]: 제2회 UN 인구회의가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되었다.
* [[8월 7일]]
* 유도선수 안병근이 LA올림픽 라이트급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라이프제화와 서울 택시업체 광일실업에서 노동조합이 각각 결성되었다.
* [[8월 8일]]
* 문교부는 사립중학교의 고교 승격을 허용하였다.
*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이 LA올림픽 결승전에서 미국에 55:85로 패해 은메달을 땄다.
* 강성산 북한 총리가 방중 도중 후야오방 총서기와 회담을 열었다.
* 후야오방 중공 총서기가 회담에서 '1국 2체제론'을 거론했다.
* [[8월 9일]]: 외무부는 모리타니 정부가 다이가 나우슈프 베이징 상주대사를 첫 남북한 겸임대사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 [[8월 10일]]
* 재무부는 정래혁 전 의원이 54억 8천 2백만 원 가량 부동산의 국가헌납 의사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 유도선수 하형주가 LA올림픽 하프 헤비급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8월 11일]]
* 은행감독원은 국내 진출 외국은행들이 1983년 순이익 542억원으로 호황을 누렸다고 밝혔다.
* 슈어프로닥츠와 서울 영원운수에서 노동조합이 각각 결성되었다.
* 부산 [[구덕터널]]이 준공되었다.
* [[8월 12일]]
* 복싱선수 신준섭이 LA올림픽 미들급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양궁선수 서향순이 LA올림픽 여자개인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레슬링선수 유원탁이 LA올림픽 자유형 68kg급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1984 LA 올림픽 폐막식이 미국 LA 메모리얼 콜로세움에서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종합 10위를 차지하였다.
* 동서기연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8월 13일]]
* 법무부는 중국민항기 납치범 등 6명을 형집행정지로 석방해 자유중국으로 출국시켰다.
* 경기 성남 성신운수와 동두천 중앙택시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8월 14일]]
* 법무부는 공안사범 714명을 포함한 재소자 1,730명을 광복절에 특별 사면한다고 밝혔다.
* 대법원은 명성그룹 사건 피고인 김철호의 상고를 기각해 징역 15년을 최종 확정지었다.
* [[8월 15일]]
* 국사편찬위원회는 경기 과천에 '국사관 기공식'을 개최하였다.
* '한국개신교 100주년 선교대회'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개최되었다.
* 유성기업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8월 16일]]
* LA올림픽 한국선수단이 서울 김포공항으로 귀국하였다.
* 경기 성남 대중산운 택시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8월 18일]]: [[한건수]]를 중심으로 한 '신민주당 창당 발기인대회'가 개최되었다.
* [[8월 20일]]
* 전두환 대통령은 남북경제협력 제의를 표명하며 북한에 기술, 물자 등을 무상으로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하였다.
* 한국반탁반공학생운동기념사업회가 설립되었다.
* [[8월 21일]]: 경기 남양주 창진운수 여승무원이 사측의 사표 압력으로 자살했다.
* [[8월 22일]]
* 북한기 항적 확인 중이던 관측병의 착오로 KBS라디오 등지에서 오전 10시 56분부터 2초간 경계경보사이렌이 방송되었다.
* 경기 남양주 창진운수 여승무원이 승차거부에 돌입하였다.
* [[8월 23일]]
* 정부는 공무원 봉급을 1985년부터 3%로 인상할 것이라고 했다.
* 일본은 한국의 비관세장벽 철폐 요구를 거절했다.
* [[8월 24일]]
* 동자부는 한국-인니 공동개발 중인 마두라유전이 경제성 있는 유전으로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 서울 목동 철거민 1천여 명이 목동과-신정동 일대 재개발지역 철거에 항의하며 양화대교를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
* [[8월 25일]]
* 북한측은 남한 정부의 남북한 경협제의를 거절했다.
* 서울 영부운수 택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8월 26일]]
* 한국 대표팀이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윌리엄스포트에서 열린 제38회 세계리틀야구선수권대회에서 미국을 꺾어 우승을 차지하였다.
* 필리핀 아키노 의원 암살조사위는 파비안 베르 참모총장이 아키노를 살해하도록 지시를 내린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 [[8월 27일]]: '전북민주화운동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8월 28일]]: 종전의 전태일기념관건립위가 '전태일기념사업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8월 29일]]: 대학생 3천여 명이 고려대 민주광장에서 '한일관계 대토론회' 개최 후 가두 시위를 하며 일본공보관에 돌을 던졌다.
* [[8월 31일]]
* 서울, 경기, 강원 등 한강유역에 시간당 50㎜ 가량의 집중호우가 내렸다.(한강 대홍수)
* 한일 정상간 직통전화전용 회선이 정식 개설되었다.
==== 9월 ====
* [[9월 1일]]
* 충남 천원군 성거면 망향의동산에서 'KAL기 피격참사 1주기 추모식 및 위령탑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 유니전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9월 2일]]
* 민주인사 77명이 '일본재침략저지 민족운동대회'를 개최하였다.
* 서울 한강유역 홍수피해 경보가 이틀만에 발령되었다.
* [[9월 3일]]
* 중앙재난대책본부는 한강 집중호우로 190명이 사망/실종되었다고 밝혔다.
* 정부는 수재민 구호와 긴급복구를 위해 3백억 원 긴급지원을 결정하였다.
* [[9월 4일]]
* 서울지역 19개대생들은 성균관대에서 전두환 방일 반대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 서울 청량리경찰서에 연행된 경희대 시위여학생 3명이 신체검사 명목으로 전경들에게 성추행을 당했다.(청량리경찰서 여대생 성추행사건)
* [[9월 5일]]: 서울 망원동 수재민 50여 명이 마포구청에 항의차 2차 시위를 벌였다.
* [[9월 6일]]
* [[전두환]] 대통령이 한국 국가원수로서는 역대 최초로 [[일본]]을 방문했다. 이는 1년 전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의 방한에 대한 답례였다.
* [[쇼와 덴노]]와 나카소네 일본 총리가 과거의 한일 양국간의 관계에 "유감"을 표명했다.
* 호남정유 자회사 여수에너지(주)가 설립되었다.
* 국내 민주인사 77명이 '일본 재침략 저지 민족운동대회'와 민중궐기대회를 개최하였다.
* 고려대 측은 학생회 부활운동을 계속할 시 비상조치를 강구한다고 공고하였다.
* 민추협은 전두환의 방일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서울대 총학생회 부활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서울 풍납동 수재민 2백여 명이 풍납금속 앞 네거리에서 생계대책을 요구하며 가두 농성을 벌였다.
* [[9월 7일]]: 서울 난지도 주민들이 수해 철거대책에 대해 항의시위를 벌였다.
* [[9월 8일]]
* 북한 조선적십자회 중앙위는 남한측에 수해물자 제공을 제의하였다.
*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합영법'을 제정한다고 밝혔다.
* [[9월 13일]]
* 씨름선수 이준희가 제5회 천하장사씨름대회 결승에서 우승하였다.
* 북한측은 앙골라에 지상군을 파견해 쿠바군을 지원했다.
* [[9월 14일]]: 한국양심범사면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9월 15일]]
* 전남 함평과 무안에서 '전두환 방일반대 및 5공정권 타도, 생고구마 전량 수매 보장을 목표로 한 농민대회'가 개최되었다.
* '숟가락 구부리기'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탄 초능력자 [[유리 겔러]]가 방한 중 KBS2에 출연했다.
* [[9월 16일]]: 외환은행이 '외화보통예금제'를 실시하였다.
* [[9월 17일]]
* '서울대복학생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임신현 등 민간인 4명이 서울대생들에게 '프락치' 혐의로 집단구타를 당했다.([[서울대 프락치 사건]])
* [[9월 18일]]
* 서울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21차 전국여성대회에서 <가족법 개정을 위한 특별결의 및 건의문>이 채택되었다.
* 1984 서울국제무역박람회가 개최되었다.
* 협진양행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9월 19일]]
* 서울 평화시장에서 열리려던 '청계피복노조 합법성 쟁취대회'가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자, 노동자와 학생 2천여 명이 가두 시위를 전개하였다.
* 국무회의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개정에 따라 [[학생의 날]]을 부활시켰다.
* KBS 소속 헬기가 단양팔경 취재 도중 충북 제원군 남한강 상류 나루터로 추락해 기자 3명 등 탑승자 5명이 목숨을 잃었다.
* 신문회관은 사원총회에서 '한국언론회관' 확대 개편을 골자로 한 새 정관을 마련하였다.
* [[9월 20일]]
* 고려대 총학생회가 유화조치 후 먼저 부활했다.
* 한국전통택견연구회가 설립되었다.
* [[9월 21일]]
* 제2차 일본 재침략 저지 민족운동대회가 개최되었다.
* 신생 독립국 [[브루나이]]가 [[유엔]]에 156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 [[9월 25일]]
* 연세대 총학생회가 부활하였다.
* 북한 조선적십자회는 남한에 수해물자를 29일과 30일에 전달한다고 통보했다.
*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가 노동시집 <노동의 새벽>을 발간하였다.
* [[9월 26일]]: 중-영 양국이 [[홍콩]]을 [[1997년]]에 반환하기로 합의하였다. 여기서 일국양제, 항인치항(홍콩은 홍콩이 다스린다)라는 원칙이 확립되었다.
* [[9월 27일]]: 서울대 총학생회가 부활하였다.
* [[9월 28일]]
* 서울대학교 학생 350명이 학원 프락치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민한당사에서 농성을 벌였다.
* 판문점 남북직통전화 시범통화가 개시되었다.
* [[9월 29일]]
* 서울 잠실에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이 개장했다.
* 대한적십자사가 [[판문점]]에서 북한 조선적십자회로부터 수해 구호물자를 [[1984년 북한의 대남 수해지원|인수하였다]].
==== 10월 ====
* [[10월 2일]]
* 정부는 6.25전쟁 부역자 관련 행정상 신원기록을 전부 삭제한다고 발표하였다.
* 문교부는 민한당 농성사태 등을 계기로 서울대와 고려대에 계고장을 보냈다.
* [[10월 3일]]: 정부는 국내기업의 외자도입 사전승인조건을 강화하였다.
* [[10월 4일]]
* 전두환 대통령은 소련 및 동구권과의 지속적인 개방과 교류증진 입장을 밝혔다.
* 서울시경은 서울대 경제학과생 [[유시민]]을 외부인 감금 혐의로 구속하고 백태웅 등 8명을 수배했다고 발표했다.
* 해언협은 해직언론인 복직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10월 5일]]
* 이해구 치안본부장이 학원사태 관련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 일본 도쿄에서 재일교포 1천여 명이 지문날인 제도 거부집회를 열었다.
* [[10월 6일]]: 현대중공업 선박해양연구소가 준공되었다.
* [[10월 7일]]: 깃발(MT) 계열 학생운동단체 '민주화추진위원회(이하 민추위)'가 결성되었다.
* [[10월 9일]]
* 프로야구팀 [[롯데 자이언츠]]가 [[198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꺾어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창단 2년만에 첫 우승을 달성했다.
* 통일문제연구소(이하 통문연)가 발족되었다.
* [[10월 12일]]
* 대학생 및 청피노조원 등 1,700여 명이 노동법 개정과 청피노조 인정 등을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0월 13일]]
* 보안사는 재일 모국유학생 6명을 간첩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 노복은 제3자 개입금지 철폐 요구를 담은 <노동법 개정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였다.
* 경북 청송제1보호감호소에서 보호감호 재소자 박영두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박영두 의문사 사건)
* [[10월 15일]]: 서울 망원동 수재민 23명이 유수지 수문붕괴사고와 관련해 서울시 및 현대건설을 상대로 손배소송을 냈다.
* [[10월 16일]]
* '민주통일국민회의(이하 국민회의)'가 결성되었다.
* 남아공 성공회 대주교 데즈먼드 투투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 [[10월 17일]]
* 대우어패럴 노조원들이 본사 옥상에서 집단 농성을 벌였다.
* 전남 주암댐 기공식이 개최되었다.
* 정부는 추곡 수매가를 3%로 올리기로 결정했다.
* [[10월 18일]]: 전남 진도 연륙교가 개통되었다.
* [[10월 19일]]
* 서울대 등 7개대생 1천여 명이 서울대에서 '민주화투쟁 실천대회'를 개최했다.
* 안기부는 1982년 10월부터 남해안으로 침투한 간첩 정해권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 [[10월 20일]]: 대우어패럴 노조원들이 서울 여의도 노총회관을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
* [[10월 22일]]: 환경청은 공해업소 569개를 적발했다고 발표하였다.
* [[10월 24일]]
* 서울대 학생들이 학생회장 이정우 등의 제명에 반발해 중간고사 거부 투쟁을 벌였다.
* 경찰은 서울대 측의 요청에 따라 전의경 등 경력 6,420명을 투입해 관악캠 구내에 상주시켰다.
* 한국 대표팀이 상하이 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주최국 중공을 꺾어 4연패를 달성하였다.
* [[10월 25일]]
* 외대생들은 폭력교수 퇴진을 요구하며 교내시위를 벌였다.
* 서울대는 학생들의 교내 자치활동을 전면 금지했다.
* 대우어패럴 노조원 80명이 한국노총 위원장실을 점거하여 사측의 노조탄압 중지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유니전이 어용노조를 결성했다.
* [[10월 26일]]
* 권이혁 문교장관은 서울대 경찰투입에 관한 담화를 발표했다.
* 필리핀 야당은 대미 단절을 선언했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마르코스를 지지할 것을 재천명했다.
* [[10월 27일]]: 유니전노조가 재결성되었다.
* [[10월 30일]]: KBS2에서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가 첫 전파를 탔다.
* [[10월 31일]]: [[인디라 간디]] 인도 총리가 시크교도 경호원에게 암살당했다.
==== 11월 ====
* [[11월 2일]]
* 국회는 학원문제 특위안을 부결시켰다.
* 국립진주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 성균관대 민주화추진위원회 및 총학생회 부활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1월 3일]]
* 전국 각 대학가에서 11년만에 학생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 '전국민주화투쟁학생연합(이하 민투학련)'이 결성되었다.
* [[11월 6일]]
* 종전의 신문회관이 '(사)한국언론회관'으로 출범되었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월터 만데일을 꺾어 재선에 성공하였다.
* [[11월 8일]]
* 한국의류시험검사소가 품질보증검사(Q마크) 업무를 실시하였다.
* 전남민주청년운동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11월 12일]]: 민주한국당은 학원자율회 단독안을 제출했다.
* [[11월 13일]]
* 전태일 열사 14주기 추모식이 개최되었다.
* 서울대생들이 구로공단과 남대문시장에서 노동 3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병무청은 소요학생 강제입영제를 폐지하는 지침을 하달하였다.
* [[11월 14일]]
* 서울 동작대교가 개통되었다.
* 서울 서초에서 '예술의전당 및 국립국악당 건립 기공식'이 개최되었다.
* 민투학련 소속 대학생 264명이 민정당 중앙당사를 점거하여 농성을 벌였다.(민정당 중앙당사 점거농성 사건)
* [[11월 15일]]
* 제1차 남북경제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렸다. 이때 남북은 협력위 설치 및 전용전화 이용에 합의하고 철도연결도 상호 제의하였다.
* 재일동포 바둑기사 조치훈이 제9기 명인전에서 오다케 히데오를 꺾어 우승을 차지하였다.
* [[11월 17일]]: 서울시경은 경찰의 여대생 성추행사건은 '낭설'이라고 밝혔다.
* [[11월 19일]]
* 야마모토 고이치, 고바야시 스스무 등 일본 사회당 중진 5명이 최초로 한국을 방문했다.
*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이 발족되었다.
* [[11월 20일]]
* 이날 열린 남북적십자회담 예비회담에서 남북 양국은 8차 본회담을 서울에서, 9차 본회담을 평양에서 각각 열도록 합의하였다.
* '전국학생총연맹(이하 전학련)'이 결성되었다.
* 민한당은 청량리경찰서 여대생 성추행 사건의 진상규명과 관련자 문책을 촉구하였다.
* 인천에서 [[경인선]] [[백운역(경인선)|백운역]]이 개통하였다.
* [[11월 21일]]: '여대생 성추행사건 대책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11월 22일]]
* 서울대생들이 양평동 철거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가입을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 [[11월 23일]]
* 정부 당국은 당월 20일 기준으로 노사 분규가 106건으로 한해 21%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 소련 관광객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망명을 요청했으나, 남북 양군 간에 총격전이 벌어져 국군 1명 및 북측 경비병 3명이 사망했다.([[판문점 총격사건]])
* 윤10월이 시작돼 [[12월 21일]]까지 이어졌다.
* [[11월 24일]]: 한국표준연구소 표준주파수국이 개국되었다.
* [[11월 25일]]: 대한축구협회 이사회는 '한국프로축구선수권대회' 창설에 합의하였다.
* [[11월 26일]]
* 북한의 김일성이 중공을 비밀리에 방문해 덩샤오핑, 후야오방 등과 회담을 열었다.
* 북-소 양국이 '국경선 통과에 대한 조약'을 가조인했다.
* 미국-이라크 양국이 17년 만에 외교를 재개하였다..
* [[11월 27일]]: 국내 환율이 당대 최고액인 820원을 기록했다.
* [[11월 28일]]: 재무부는 65년만에 독립공채를 상환키로 결정하였다.
* [[11월 30일]]
* 전두환 대통령은 [[이철승]], 이민우, 노승환, 문익환 등 정치활동 피규제자 84명을 3차로 해금시켰다.
* 민주 재야세력들은 '신당단일화 추진 8인 위원회'를 구성했다.
* 민경택시 소속 운전기사 박종만이 노조탄압 중지를 요구하며 분신 자살했다.
* 각 여성단체 회원 5백여 명이 서울 명동 YWCA 강당에서 '가족법 개정 촉구대회'를 개최하였다.
==== 12월 ====
* [[12월]] 중
* '광주민중문화운동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반공해운동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망원한국사연구실'이 결성되었다.
* 일본 캡콤 사가 <[[1942(게임)|1942]]> 아케이드판을 출시하였다.
* [[12월 3일]]: 인도 보팔 UCIL 공장에서 유독가스 '아이소사이안화메틸'이 새어나와 3787명이 사망했다.([[보팔 가스 누출 사고]])
* [[12월 4일]]: 체신부는 1985년 6월부터 TV 음성다중방송 실시를 결정하였다.
* [[12월 5일]]: 삼성전자가 미국 뉴저지 주 록스베리에 컬러TV 공장을 완공하였다.
* [[12월 7일]]
* 여류 산악인 김영자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하였다.
* 한국여성의전화 등 12개 여성단체들은 청량리경찰서 여대생 성추행 사건 관련 경찰들을 고발했다.
* [[12월 9일]]: 여성 동인운동 단체 '또 하나의 문화'가 결성되었다.
* [[12월 10일]]: 북한측은 1988 서울올림픽 단독개최 반대 및 남북체육회담 지속 의사를 밝혔다.
* [[12월 11일]]
* 민추협은 신당 참여를 결정했다.
* 북한측은 프랑스 파리에 총대표부를 설치하였다.
* [[12월 15일]]
*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장정구가 멕시코의 헤르만 토레스를 상대로 5차 방어에 성공하였다.
* 전남 여수~여천 돌산섬 간 '돌산연육교'가 완공되었다.
* 조선일보사가 <가정조선>을 창간하였다.
* 협진화섬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2월 17일]]
* [[김대중]]은 1985년 1월 말부터 귀국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 [[미국 상무부]]는 한국산 컬러TV 덤핑을 최종 확정지었다.
* [[12월 18일]]
* [[12대 국회|제12대 정기국회]]가 언론기본법 개정안 등 4개 법안을 통과시키고 폐회했다.
* '민족중흥동지회'가 발족되었다.
* [[영국|영]]-[[중국|중]] 양국이 [[베이징]]에서 [[홍콩|홍콩 반환협정]]에 정식 조인 후 <[[중영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 [[12월 19일]]
* 노동부는 10인 이상 업체에 대해 최저임금을 월 10만원 이상으로 의무화할 것을 결정했다.
* [[국군보안사령부]]가 3처 5과 (심사과) 를 폐지하면서 [[녹화사업]]이 종료되었다.
* [[민주한국당]] 소속 [[김현규]] 의원 등 9명이 집단 탈당했다.
*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이하 민언협)'가 설립되었다.
* 자실이 4년만에 재창립되었다.
* [[12월 21일]]
* '신한민주당 창당 발기인대회'가 개최되었다.
* 서울대·연세대생 2백여 명이 '전국대학연합 선거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 [[12월 22일]]
* 국토건설종합계획심의회는 치악산, 월악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 영국 서섹스 지역에서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소 133마리가 최초로 [[http://www.nytimes.com/1999/01/26/science/britain-details-the-start-of-its-mad-cow-outbreak.html?mcubz=0|발견되었다.]]
* [[12월 26일]]
*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정상화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사)문공회가 창립되었다.
* [[12월 27일]]: 미-영-서독 3국 과학자들이 태양풍 연구를 위해 세계 최초로 인공혜성을 발사하였다.
* [[12월 29일]]
* 임하 다목적댐이 착공되었다.
* 경찰은 전 서울대 총학생회장 이정우를 검거했다.
* [[12월 31일]]: '박물관법'이 제정되었다.
=== 가상 ===
* [[1984(소설)|1984]]의 배경연도.
* [[기묘한 이야기(미국 드라마)|기묘한 이야기]] 2의 배경연도.
* [[메탈기어 솔리드 V 더 팬텀 페인]]의 배경연도.
*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태엽 감는 새]]와 [[1Q84]]의 배경연도.
* [[원더우먼 1984]]의 배경연도.
* [[카미츄!]]의 추가 에피소드 후반부 배경연도.[* 1화 시작 시점이 [[1983년]]이고, 14화에서 [[히토츠바시 유리에]]가 읽고 있던 신문이 1월 1일자.]
* [[해리 포터: 호그와트 미스테리]]의 1학년 배경연도. 이 해부터 6학년 시점인 [[1989년]]까지 이어진다.
* [[GTA: 바이스 시티 스토리즈]]의 배경년도.
* [[겁스 무한세계]] 관련
* [[라이히-5]]에서 [[나치당]] 기관지 <폴키셰 베흐바흐터>가 최초로 [[인터넷]]을 통한 정보 제공을 시작했다.
* [[제임스 2세]]가 쫓겨나고 영국 본토와 북아메리카 식민지가 화해하여 [[대영제국]]을 이룩한 브리타니카-3의 현재 연도.
* 미국이 [[미국 독립전쟁]]에서 패한 뒤 세계적으로 귀족주의가 판을 치게 된 콘월리스 평행계의 현재 연도.
* [[기안대학교]]가 교육부의 인가를 받아 정식으로 개교하고 첫 학생을 받았다. - [[복학왕]]
* [[블라디보스토크]] 근해에서 미일 해상합동훈련 "FLEETEX'85"가 벌어지자, 소련은 이 훈련이 소련을 향한 선제공격 예행연습이라고 판단하고 [[일본을 공격한다]]. - [[워게임: 레드 드래곤]]
* [[사라 코너]]를 죽이기 위해 [[T-800]]이 미래에서 도착했고, [[카일 리스]]가 사라를 보호하기 위해 도착했다. - [[터미네이터(영화)|터미네이터]]
* 영국의 [[홍콩]] 조차 연장 요구를 중국이 받아들이지 않자, 덩샤오핑과 마가렛 대처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졌고 결국 홍콩을 놓고 영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였다. - [[워게임: 레드 드래곤]]
* 전면적 [[핵전쟁]]이 벌어져 세계가 멸망이나 다를 바 없는 상황에 처했다. - [[워게임: 유러피안 에스컬레이션]]
* [[컬럼비아(바이오쇼크 인피니트)|컬럼비아]] 비행선단이 뉴욕 습격을 시작으로 지상세계에 대한 전쟁을 개시했다. -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 탄생 ==
=== 실존 인물 ===
* [[1월 3일]] - [[하시모토 마이]]: [[일본]]의 [[성우]]
* [[1월 4일]] - [[오인혜]]: [[대한민국]]의 [[배우]]
* [[1월 5일]]
* [[유인영]]: [[한국]]의 [[배우]]
* [[나가사와 나오(배우)|나가사와 나오]]: [[일본]]의 [[배우]]
* [[1월 6일]]
* [[CuteG]]: [[대한민국]]의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 [[에릭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의 차남
* [[1월 8일]] - [[김정은]]: [[북한]]의 정치인
* [[1월 10일]]
* [[마루야마 호다카]]: 일본의 정치인
* [[술제이]]: 대한민국의 [[래퍼]]
* [[한주완]]: 대한민국의 [[배우]]
* [[1월 13일]]
* [[박영민(1984)]]: 한국의 [[프로게이머]]
* [[이현주(아나운서)|이현주]]: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1월 15일]] - [[요나가 츠바사]]: [[일본]]의 [[성우]]
* [[1월 16일]] - [[슈테판 리히슈타이너]]: [[스위스]]의 축구 선수
* [[1월 17일]]
* [[알베르토 몬디]]: [[비정상회담]] 출연자
* [[캘빈 해리스]]: [[영국]]의 [[DJ]]
* [[1월 18일]]
* [[조승희(범죄자)]]: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 [[최형우]]: [[한국]]의 [[야구선수]]
* [[하세베 마코토]]: [[일본]]의 [[축구선수]]
* [[1월 21일]] - [[박용근]]: [[한국]]의 [[야구]]선수
* [[1월 23일]] - [[아르연 로번]]: [[네덜란드]]의 축구선수
* [[1월 24일]]
* [[토보소 야나]]: [[일본]]의 여성[[만화가]]
* [[팔로알토]]: 대한민국의 래퍼. [[하이라이트 레코즈]] 수장
* [[1월 25일]]
* [[호비뉴]]: [[브라질]]의 축구선수
* [[카이지 탕]]: [[미국]]의 성우
* [[슈테판 키슬링]]: [[독일]]의 축구 선수
* [[1월 26일]]
* [[정혜원(성우)|정혜원]]: [[대한민국]]의 [[성우]]
* [[제리케이]]: 한국의 [[힙합]] [[MC]]
* [[1월 27일]]
* [[김태완(1984)|김태완]]: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최낙윤]]: [[대한민국]]의 [[성우]]
* [[2월 1일]]
* [[이여상]]: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대런 플레처]]: [[스코틀랜드]]의 축구 선수
* [[2월 3일]]
* [[김준(배우)]]: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배우
* [[유사랑]]: 대한민국의 재즈 [[가수]]
* [[2월 4일]] - [[고지후]]: 한국의 [[가수]]
* [[2월 5일]] - [[카를로스 테베스]]: [[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
* [[2월 8일]] - [[고영민]]: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2월 8일]] - [[문태유]]: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 [[2월 9일]] - [[한경(배우)|한경]]: [[중국]]의 가수, [[슈퍼주니어]]의 前 멤버
* [[2월 10일]]
* [[김효진(배우)|김효진]]: 대한민국의 배우
* [[박은석]]: 대한민국의 배우
* [[2월 13일]]
* [[미나(성우)|미나]]: [[일본]]의 [[성우]]
* [[브리나 펠렌시아]]: [[미국]]의 [[성우]]
* [[전태규]]: 대한민국의 [[프로게이머]]
* [[2월 14일]]
* [[엄지인]]: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한보람]]: 대한민국의 前 가수 및 써클 멤버, [[뮤지컬 배우]]
* [[2월 15일]] - [[윤종훈]]: 대한민국의 [[배우]]
* [[2월 17일]] - 함효주: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2월 18일]] - [[린아]] : 한국의 가수 겸 뮤지컬 배우. 소속 팀은 이삭 N 지연→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 [[2월 20일]] - [[코이데 케이스케]]: 일본의 배우
* [[2월 21일]]
* [[이석훈]]: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SG워너비]]의 멤버
* [[슬리피]]: 대한민국의 힙합 듀오 [[언터쳐블]]의 멤버
* [[2월 22일]]
*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 [[세르비아]]국적, [[첼시 FC]] 소속의 [[축구선수]]
* [[사토 진|사토 유우키]]: [[일본]]의 [[배우]]
* [[2월 23일]] - [[정유미(1984)|정유미]]: 한국의 배우
* [[2월 24일]]
* [[이주영(프로게이머)]]: 한국의 [[프로게이머]]
* [[박영린]]: [[한국]]의 [[배우]]
* [[2월 27일]]
* [[나가타 요리코]]: [[일본]]의 [[성우]]
* [[로타 셸린]]: [[스웨덴]]의 축구선수
* [[2월 29일]]
* [[강정우(배우)|강정우]]: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 [[시타라 마미]]: [[일본]]의 [[성우]]
* [[3월 2일]]
* [[정대세]]: 대한민국, [[북한]] 이중국적의 [[북한]] 국가대표 축구선수
* [[성혁]]: 대한민국의 배우
* [[전태수(배우)|전태수]]: 한국의 배우
* [[3월 3일]]
* [[김준호(야구)|김준호]]: [[한국]]의 [[야구]]선수
* [[요시자와 아키호]]: [[일본]]의 [[AV 여배우]]
* [[3월 4일]] - [[장위안]]: [[중국]]출신의 [[방송인]]
* [[3월 6일]] - [[베키(연예인)|베키]]: [[일본]]의 [[가수]], [[배우]], [[방송인]]
* [[3월 7일]]
* [[박외식]]: 전 [[프로게이머]], 감독
* [[마티유 플라미니]]: [[프랑스]]의 축구 선수
* [[3월 9일]] - [[사이먼 도미닉]]: 한국의 랩퍼, [[슈프림팀]]의 멤버
* [[3월 11일]] - [[노경은]]: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3월 13일]] - [[난리 유카]]: [[일본]]의 [[성우]], [[가수]]
* [[3월 15일]]
* [[이윤지]]: 대한민국의 배우
* [[타래]]: 대한민국의 래퍼
* [[3월 16일]]
* [[김민서]]: 한국의 배우
* [[유세례]]: 한국의 배우
* [[3월 17일]]
* [[강호철]]: 한국의 성우
* [[송은범]]: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주희(가수)|주희]]: 혼성그룹 [[8eight]]의 멤버
* [[지석훈]]: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3월 20일]] - [[페르난도 토레스]]: [[스페인]]의 [[축구선수]]
* [[3월 24일]] - [[박봄]]: 대한민국의 가수, [[걸그룹]] [[2NE1]]의 전 멤버
* [[3월 25일]]
* [[이토 미카]]: [[일본]]의 [[성우]]
* [[캐서린 맥피]]: [[미국]]의 [[가수]], [[배우]]
* [[3월 29일]] - [[모하메드 부아지지]]: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가 된 [[튀니지]]의 [[대학생]]
* [[3월 31일]] - [[박경수]]: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4월 5일]] - [[신민아]]: 대한민국의 배우
* [[4월 6일]] - [[마사토끼]]: [[대한민국]]의 [[만화가]], 스토리[[작가]]
* [[4월 11일]] - [[유연석]]: 대한민국의 배우
* [[4월 13일]] - [[미즈시마 히로]]: 일본의 배우
* [[4월 14일]]
* [[샤를 아믈랭]]: [[캐나다]]의 [[쇼트트랙]]선수
* [[이현(성우)|이현]]: [[대한민국]]의 [[성우]]
* [[4월 15일]] - 윤석현 : [[한국]]의 前 [[야구선수]]
* [[4월 16일]] - [[금단비]]: 대한민국의 배우
* [[4월 18일]]
* [[라모우 티에리 소쿠주]]: 미국의 [[종합격투기]]선수
* [[아메리카 페레라]]: 미국의 배우
* [[정병국(농구)|정병국]]: 대한민국의 前 농구선수
* [[4월 19일]] - [[이다해]]: 대한민국의 [[배우]]
* [[4월 20일]] - [[염따]]: 대한민국의 [[래퍼]]
* [[4월 21일]]
* [[나카무라 히카루]]: [[일본]]의 [[만화가]].
* [[강서은]]: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4월 24일]] - [[김정석(1984)|김정석]]: [[대한민국]]의 응원단장
* [[4월 26일]]
* [[카를로스 콘딧]]: 미국의 종합격투기선수
* [[남규리]]: 대한민국의 [[배우]], [[가수]]. [[씨야]]의 멤버.
* [[4월 28일]]
* [[오오하시 아유루]]: [[일본]]의 [[성우]]
* [[토요나가 토시유키]]: [[일본]]의 [[성우]], [[배우]]
* [[4월 29일]] - [[후옌찌]]: [[베트남]]의 [[성우]]
* [[5월 1일]]
* [[사샤 다완]]: [[영국]]의 [[배우]]
* [[코야마 케이치로]]: [[일본 아이돌]] [[NEWS]]의 멤버
* [[5월 3일]] - [[남상미]]: [[한국]]의 배우
* [[5월 4일]] - [[하야시 유우키]]: [[일본]]의 성우
* [[5월 5일]] - [[카나자와 타케시]]: [[일본]]의 [[야구선수]]
* [[5월 7일]] - [[칸베 미유키]]: [[일본]]의 [[성우]]
* [[5월 8일]] - [[막심 마르친케비치]]: [[러시아]]의 [[범죄자]], [[스킨헤드]]
* [[5월 10일]] - [[이희경(개그우먼)|이희경]]: [[한국]]의 [[개그우먼]]
* [[5월 11일]] -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스페인]]의 [[축구선수]]
* [[5월 14일]]
* [[연민지]]: 한국의 배우
* [[나윤권]]: 한국의 가수
* [[마크 저커버그]]: 미국의 [[프로그래머]] 및 [[CEO]], [[페이스북]]의 창립자
* [[제시카 분]]: [[미국]]의 [[성우]]
* [[5월 15일]] - 이현진: [[한국]]의 축구선수
* [[5월 19일]] - [[사토 타쿠야]]: [[일본]]의 [[성우]]
* [[5월 20일]] - [[김동현(범죄자)|김동현]]: [[한국]]의 [[축구선수]], [[범죄자]]
* [[5월 25일]] - [[이지숙]]: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 [[5월 28일]]
* [[오나미]]: [[한국]]의 [[개그우먼]]
* [[장미인애]]: [[한국]]의 전 [[연예인]]
* [[5월 29일]] - [[카멜로 앤써니]]: [[미국]]의 농구선수
* [[5월 31일]] - [[김종호(야구선수)|김종호]]: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6월 1일]] - [[윤호영(1984)|윤호영]]: 대한민국의 농구선수
* [[6월 4일]]
* [[한다 켄토]]: 일본의 배우, [[작곡가]], 가수
* [[허클베리피]]: 대한민국의 [[래퍼]]
* [[6월 8일]]
* 은빈: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
* [[6월 9일]]
* [[베슬리 스네이더르]]: [[네덜란드]] 출신의 축구선수
* [[율리에스키 구리엘]]: [[쿠바]] 출신의 야구선수
* [[션 리차드]]: 영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배우
* [[6월 14일]]
* [[김성원(코미디언)|김성원]]: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나주환]]: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이인(배우)|이인]]: 대한민국의 배우
* [[6월 15일]] - [[팀 린스컴]]: 미국의 야구선수
* [[6월 18일]] - [[츠지 아유미]]: 일본의 성우
* [[6월 21일]] - [[서영(배우)|서영]]: 한국의 배우
* [[6월 22일]] - [[오노 유우키(성우)|오노 유키]]: 일본의 성우
* [[6월 23일]]
* [[조민아(1984)|조민아]]: [[쥬얼리]]의 前 멤버
* [[더피]]: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 [[6월 24일]] - [[루시언 도지]]: 미국의 성우
* [[6월 26일]] - [[박정준]]: 한국의 야구선수
* [[6월 27일]]
* [[손호준]]: 한국의 배우
* [[호세 홀레바스]]: [[그리스]]의 축구 선수
* [[6월 29일]]
* [[크리스토퍼 이건]]: [[오스트레일리아]]의 배우
* [[한지혜]]: 대한민국의 배우
* [[6월 30일]] - [[노환수]] : [[한국]]의 前 야구선수
* [[7월 2일]] - [[블라디미르 발렌틴]] : [[네덜란드]]의 야구선수
* [[7월 3일]] - [[하나무라 사토미]]: [[일본]]의 [[성우]]
* [[7월 4일]]
* [[이제훈]]: 한국의 배우
* [[아카니시 진]]: 일본의 가수 겸 배우
* [[7월 5일]] - [[연우진]]: 한국의 배우
* [[7월 7일]] - [[후쿠다 세이지]]: 일본의 [[작사]]
* [[7월 8일]] - [[황지만]]: 대한민국의 배드민턴 선수
* [[7월 9일]] - [[코쿠류 사치]]: [[일본]]의 [[성우]], [[배우]]
* [[7월 12일]] - [[난죠 요시노]]: [[일본]]의 [[성우]]
* [[7월 13일]]
* [[요시다 히토미]]: [[일본]]의 [[성우]] 겸 [[배우]], [[가수]]
* [[이성열(야구선수)|이성열]]: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7월 14일]] - [[사미르 한다노비치]]: [[슬로베니아]]의 축구 선수
* [[7월 17일]] - [[김솔희]]: [[아나운서]]
* [[7월 18일]] - [[최성재]]: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성우 [[최병상]]의 아들
* [[7월 19일]] - [[미키광수]]: 대한민국의 [[개그맨]]
* [[7월 20일]] - [[오키 카나에]]: [[일본]]의 [[성우]]
* [[7월 21일]] - [[xaewon]]: 대한민국의 블로거
* [[7월 23일]]
* [[반도 아이]]: [[일본]]의 [[성우]]
* [[블레이크 셰퍼드]]: [[미국]]의 [[성우]]
* [[7월 25일]]
* [[레이디제인(가수)]]: [[대한민국]]의 가수
* [[이윤아(미스코리아)]]: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아나운서]] ^^[[음력]]^^
* [[임동혁]]: 대한민국의 가수
* [[7월 26일]] - [[김대우(1984)|김대우]]: [[한국]]의 [[야구선수]]
* [[7월 27일]] - 사카가미 슈세이: [[일본]]의 [[작가]] 겸 문예평론가
* [[7월 28일]] - [[윤규진]]: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7월 29일]] - [[안나 베소노바]]: [[우크라이나]] 국적의 [[리듬체조]]선수
* [[7월 30일]] - [[키무라 료헤이]]: 일본의 성우
* [[7월 31일]] - [[허도환]]: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8월 1일]]
*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독일]]의 축구선수
* [[유지원(아나운서)|유지원]]: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유현(축구선수)|유현]]: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8월 2일]]
* 조은유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딥플로우]]: 대한민국의 [[래퍼]]
* [[8월 3일]] - [[마일 예디낙]]: [[오스트레일리아]]의 축구 선수
* [[8월 7일]] - 와카바야시 타카츠구: 일본의 작곡가.
* [[8월 8일]] - [[유호린]]: 대한민국의 배우
* [[8월 11일]] - [[정재원(1984)|정재원]]: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8월 14일]] - [[조르조 키엘리니]]: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8월 18일]] - [[카나다 아키]]: 일본의 성우
* [[8월 21일]]
* [[이브 토레스]]: 미국의 前 [[프로레슬러]]
* [[이윤아(아나운서)|이윤아]]: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8월 23일]] - [[박정상]]: [[대한민국]]의 [[바둑]]기사
* [[8월 24일]]
* [[서지혜(배우)|서지혜]]: 배우
* [[손성윤]]: 대한민국의 배우
* [[예성(슈퍼주니어)|예성]]: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슈퍼주니어]]의 멤버
* [[8월 25일]]
* 송윤희 : [[대한민국]]의 은행원([[농협]]인)
* [[여윤미]]: 대한민국의 성우
* [[아유미(연예인)|아유미]]: 대한민국과 일본의 가수 겸 배우, [[슈가]]의 전 멤버
* [[8월 26일]] - [[최진호(1984)|최진호]]: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8월 27일]] - [[설리 문타리]]: [[가나]]의 축구 선수
* [[8월 28일]]
* [[사이토 후코]]: 일본의 성우
* [[소이현]]: 대한민국의 배우
* [[8월 29일]]
* [[김유리(1984)|김유리]]: 대한민국의 배우
* [[루드비히 고란손]] - [[스웨덴]]의 영화 음악 작곡가이자 힙합 프로듀서.
* [[9월 3일]] - [[서인영]]: [[대한민국]]의 가수
* [[9월 5일]] - [[이기인]]: [[대한민국]]의 [[정치인]].
* [[9월 6일]] - [[하마조에 신야]] - [[일본]]의 성우
* [[9월 7일]] - [[주앙 미란다]]: [[브라질]]의 축구 선수
* [[9월 8일]] - [[samfree]]: 일본의 [[보컬로이드]] [[프로듀서]]
* [[9월 9일]] - [[브렛 필]]: 미국의 야구선수
* [[9월 10일]] - [[신도 케이]]: [[일본]]의 [[성우]]
* [[9월 11일]] - [[야스다 쇼타]]: [[일본 아이돌]] [[칸쟈니∞]]의 멤버
* [[9월 12일]]
* [[김용준(SG워너비)|김용준]]: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SG워너비]]의 멤버
* [[마츠모토 마리카]]: [[일본]]의 [[성우]]
* [[주니오르 도스 산토스]]: 브라질의 종합격투기선수
* [[9월 14일]] - [[이민우(인터넷 방송인)]]: 한국의 인터넷 방송인
* [[9월 15일]] - [[헨리 찰스 앨버트 데이비드]]: [[영국]]의 [[왕족]]
* [[9월 19일]] - [[에바 마리]]: 미국의 프로레슬러
* [[9월 22일]]
* [[범키]]: 대한민국의 가수
* [[정용검]]: 대한민국의 스포츠 캐스터
* [[치아구 시우바]]: 브라질의 축구선수
* [[9월 23일]] - [[피직스]]: 대한민국의 비보이
* [[9월 27일]] - [[에이브릴 라빈]]: 캐나다의 가수
* [[9월 28일]]
* [[마티외 발부에나]]: [[프랑스]]의 축구 선수
* [[한보라]]: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 [[9월 29일]] - [[페어 메르테사커]]: [[독일]]의 [[축구선수]]
* [[9월 30일]] - [[솔비]]: 대한민국의 가수
* [[10월 1일]] - [[안미나]]: 대한민국의 배우
* 10월 2일 - [[토쿠다 마사히로]]: [[일본]]의 [[작곡가]]
* [[10월 3일]] - [[윤은혜]]: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배우, [[베이비복스]]의 前 멤버
* [[10월 6일]] - [[민경훈]]: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버즈(한국 밴드)|버즈]]의 멤버
* [[10월 7일]] - [[이쿠타 토마]]: 일본의 배우
* [[10월 8일]] - [[김대호(아나운서)|김대호]]: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10월 9일]] - [[임윤선(성우)|임윤선]]: 한국의 성우
* [[10월 10일]]
* [[쿠리야마 치아키]]: 일본의 배우
* [[호소가이 케이]]: 일본의 배우, 성우
* [[10월 12일]] - [[황정서]]: 대한민국의 배우
* [[10월 14일]] - [[전병두]]: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10월 16일]] - [[코바야시 미사]]: 일본의 성우
* [[10월 18일]] -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토고]]의 [[축구선수]]
* [[10월 19일]] - [[후지타 사키]]: [[일본]]의 [[성우]]
* [[10월 20일]] - [[박은영(개그우먼)|박은영]]: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10월 21일]]
* [[하세가와 요시아키]]: [[일본]]의 [[성우]]
* [[정우식(배우)|정우식]]: 한국의 [[배우]]
* [[10월 22일]]
* [[기안84]]: 한국의 [[웹툰 작가]]
* [[이호]]: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10월 23일]]
* [[이영아]]: 대한민국의 배우
* [[아인뚜언]]: 베트남의 성우
* [[10월 25일]] - [[케이티 페리]]: 미국의 팝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
* [[10월 27일]] - [[다니옐 수바시치]]: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
* [[10월 29일]] - [[이청아]]: 대한민국의 배우
* [[10월 31일]]
* [[민지아]]: [[한국]]의 [[배우]]
* [[아카바네 켄지]]: 일본의 성우
* [[11월 9일]]
* [[구혜선]]: 한국의 배우
* [[SE7EN]]: 대한민국의 가수
* [[11월 10일]] - [[카미야 유우]]: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 겸 [[소설가]]
* [[11월 12일]] - [[박산다라]](산다라박): 한국의 가수, [[2NE1]]의 전 멤버
* [[11월 15일]]
* [[제마 앳킨슨]]: [[영국]]의 모델, 영화배우
* [[허안나]]: 한국의 [[개그우먼]]
* [[11월 17일]]
* [[박한별]]: 한국의 [[배우]]
* [[하야마 이쿠미]]: 일본의 [[성우]]
* [[11월 19일]] - [[안영명]]: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11월 20일]]
* [[알리(가수)|알리]]: 대한민국의 [[가수]]
* [[이윤열]]: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 [[야마조에 타쿠]]: 일본의 정치인
* [[11월 22일]]
* [[스칼릿 조핸슨]]: [[미국]]의 [[배우]]
* [[시티 노르디아나]]: [[말레이시아]]의 가수, 배우
* [[11월 27일]] - [[킷타 이즈미]]: [[일본]]의 [[성우]]
* [[11월 28일]] - [[이현동#s-3]]: [[대한민국]]의 [[KNN]] [[아나운서]]
* [[11월 29일]] - [[서기수]]: [[한국]]의 [[프로게이머]]
* [[11월 30일]]
* [[계란계란]]: 대한민국의 [[동인작가]], [[웹툰 작가]]
* [[김지민(코미디언)|김지민]]: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나이젤 더용]]: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 [[12월 2일]] - [[윤학]]: 한국의 [[가수]]
* [[12월 5일]] - [[나탈리아 고둔코]]: 우크라이나의 前 리듬체조 선수
* [[12월 7일]] - [[산티 카솔라]]: [[스페인]]의 축구 선수
* [[12월 9일]] - [[마키구치 마유키]]: [[일본]]의 [[성우]]
* [[12월 11일]] - [[레이튼 베인스]]: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12월 13일]] - [[조용호(프로게이머)|조용호]]
* [[12월 15일]]
* [[바바 료마]]: [[일본]]의 배우
* [[마르틴 슈크르텔]]: [[슬로바키아]]의 축구 선수
* [[12월 21일]] - [[고창성]]: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12월 24일]]
* [[박태민]]: 대한민국의 前 프로게이머
* [[박지선]]: 개그우먼[* 프로필 상의 [[11월 3일]]은 음력 생일이다.]
* [[12월 25일]] - [[황정음]]: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서류 상 생일은 1985년 1월 25일.]
* [[12월 30일]] - [[르브론 제임스]]: 미국의 NBA 선수
* 일자불명
* [[변경석]]: [[변경석 살인 및 사체유기 사건]]의 범인.
* 후지이 시호: 일본의 게임 음악 작곡가
* [[최지인(작가)|최지인]]: 대한민국의 번역가, 작가, 의료인
=== 가상 인물 ===
* [[1월 1일]]: [[코토부키 미유키]] - [[도키메키 메모리얼 2]]
* [[1월 4일]]: [[이나호 신]] - [[메모리즈 오프 시리즈]]
* [[1월 31일]]: [[야마나카 사와코]] - [[케이온!]]
* [[2월 1일]]
* [[미사카 시오리]] - [[Kanon]]
* [[아다치 토오루]] - [[페르소나 4]]
* [[2월 2일]]: [[노무라 미키]] - [[Summer Pockets]]
* [[2월 9일]]: [[미타니 료이치]] - [[Summer Pockets]]
* [[2월 24일]]: [[시라유키 마호]]/[[시라유키 미호]] - [[도키메키 메모리얼 2]]
* [[2월 29일]]: [[키류 카스미]] - [[다카포]]
* [[3월 8일]]: [[삼성 라이온즈]]의 [[여자]] [[마스코트]] [[블레오|핑크레오]]
* [[3월 13일]]: [[타카무라 유이]] - [[마브러브 얼터너티브 토탈 이클립스]]
* [[3월 28일]]: [[히로세 코이치]]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4월 14일]]: [[신순애]] - [[오 나의 귀신님]]
* [[5월 15일]]: [[알파퀸|서지수]] - [[클로저스]]
* [[5월 22일]]: [[오해영|오해영(a.k.a. 흙해영)]] - [[또 오해영]]
* [[5월 28일]]: [[우희경]] - [[검은방]] 2
* [[6월 15일]]: [[유상일]] - [[회색도시|회색]][[회색도시2|도시]] [[회색도시 시리즈|시리즈]]
* [[6월 17일]]: [[카지 료지]] - [[신세기 에반게리온]]
* [[6월 28일]]: [[정은창]] - [[회색도시2]]
* [[7월 25일]]: [[나가이 요리토]] - [[사혼곡 2: 사이렌]]
* [[7월 29일]]: 미즈타니 마야 - [[노예전사 마야]]
* [[8월 5일]]: [[백인호(치즈인더트랩)|백인호]] - [[치즈인더트랩]](영화/[[치즈인더트랩(드라마)|드라마 동일]])
* [[8월 7일]]: [[코코(머메이드 멜로디 피치피치핏치)|코코]] - [[머메이드 멜로디 피치피치핏치]]
* [[8월 8일]]: [[키리가쿠레 슈라]] - [[청의 엑소시스트]]
* [[8월 15일]]: [[카라스마 타다오미]] - [[암살교실]]
* [[9월 10일]]: [[김경환(치즈인더트랩)|김경환]] - [[치즈인더트랩]]
* [[10월 14일]]: [[한소영(화이트데이 시리즈)|한소영]] - [[화이트데이 시리즈]]
* [[10월 28일]]: [[이주인 메이]] - [[도키메키 메모리얼 2]]
* [[11월 11일]]: [[아야사키 하야테]] - [[하야테처럼]][* 애니메이션 기준. 200x년으로 나와 있는데 여기서 가장 앞선 2000년을 기준으로 하고, 그 다음 하야테의 나이를 빼면 1984년생이 된다.]
* [[11월 22일]]: [[블랙 위도우(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블랙 위도우]]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11월 29일]]: [[카지로 준]] - [[사혼곡: 사이렌]]
* [[12월 24일]]: [[후루카와 나기사]] - [[클라나드]]
* 일자 불명
* 가란드 체트발트, 릭 앤더슨, [[스티브]], [[프란츠]](랄프 율겐스) - [[탑블레이드]]
* [[강석규]], [[남규만]], [[안수범]] - [[리멤버 - 아들의 전쟁]]
* [[구웅]], [[새이]], [[우기(유미의 세포들)#s-2|우기]], [[유미(유미의 세포들)|유미]] - [[유미의 세포들]]
* [[김기정(GM)|김기정]], [[이상용(클로저 이상용)|이상용]] - [[GM(웹툰)]], [[클로저 이상용]]
* [[또 오해영/등장인물#s-3.3|김희란]], [[오해영]] - [[또 오해영]]
* 메리 베스 윌리엄스[* 바이스 시티 스토리즈가 1984년이 배경이라 작중에서 '''갓난아기'''로 나온다. 역대 [[GTA 시리즈]] 인물 중 최연소 인물.] - [[GTA 바이스 시티 스토리즈]]
* [[시마부쿠로 리키야]] - [[용과 같이 3]]
* [[아키츠 마사토]] - [[명왕계획 제오라이머]]
* 에반 모스 - [[GTA 더 발라드 오브 게이 토니]]
* 윌리엄 헤들리 교수 - [[무한경비대]] 특무부[* 홈라인 기준. 출신 평행계는 불명이나 2차대전이 끝난 직후임을 생각하면 1900년대에 태어난 듯하다.]
* [[은자다카(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은자다카]] - [[블랙 팬서(영화)|블랙 팬서]]
* [[이희민]] - [[화이트데이 시리즈]]
* [[잭스 페어]] - [[파이널 판타지 7]]
* 장준호 - [[퇴마록]]
* [[최성재(오 나의 귀신님)|최성재]] - [[오 나의 귀신님]]
== 사망 ==
=== 실존 인물 ===
==== 1월 ====
* [[1월 2일]] - [[김영기]]: 대한민국의 교육자, 독립운동가
* [[1월 5일]] - 서순애: 시인 [[이상화(시인)|이상화]]의 부인
* [[1월 10일]]
* [[이진순]]: 대한민국의 연극인
* [[이현종]]: 제4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 [[수바나 푸마]]: 라오스 왕국의 마지막 총리, 수파누봉의 동생.
* [[1월 11일]] - [[유승원]]: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5.16 쿠데타 가담자 중 하나
* [[1월 13일]] - [[김명길]]: 대한제국 마지막 상궁 중 하나
* [[1월 14일]] - [[레이 크록]]: [[맥도날드]] 창업주, 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구단주
* [[1월 16일]]
*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
* [[최태욱]]: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1월 20일]]: [[조니 와이즈뮬러]]: 미국의 수영선수 출신 영화배우. [[타잔]] 역으로 유명하다.
* [[1월 22일]] - [[기예르모 캄파날]]: [[스페인]]의 전 축구 감독
* [[1월 25일]] - [[김지옥]]: 강령탈춤 기능보유자
* [[1월 28일]] - [[오송죽]]: 갓일 기능보유자
* [[1월 31일]] - [[하야시야 코소메]](4대): 일본의 라쿠고가
==== 2월 ====
* [[2월 4일]] - [[이정환]]: 대한민국의 소설가
* [[2월 6일]] - [[미하라 오사무]]: [[일본]]의 [[야구인]]
* [[2월 9일]] - [[유리 안드로포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 [[2월 10일]] - [[데이빗 본 에릭]]: 미국의 프로레슬러, 본 에릭가의 3남.
* [[2월 11일]] - [[최세훈]]: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아나운서
* [[2월 12일]] - [[톰 키팅]]: 영국의 복원미술가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작화가
* [[2월 13일]] - [[황민성]]: 제2대 천주교 대전교구장
* [[2월 24일]] - [[이화룡]]: 대한민국의 1세대 조직폭력배
* [[2월 27일]] - [[시몬 레케]]: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
==== 3월 ====
* [[3월 1일]]
* [[길영희]]: 초대 제물포고등학교 교장, 독립운동가
* [[재키 쿠건]]: <[[아담스 패밀리]]>의 '페스터 삼촌'으로 알려진 미국의 영화배우.
* [[3월 5일]] - [[윌리엄 파월]]: [[미국]]의 [[배우]]
* [[3월 7일]] - [[천칠봉]]: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 [[3월 15일]] - [[유옥우]]: [[대한민국]]의 [[정치인]]
* [[3월 24일]] - [[마누엘 플레이타스]]: [[파라과이]]의 [[축구인]]
* [[3월 25일]]
* [[나세진]]: 대한민국의 원로 의학자
* [[정순남]]: 승전무 기능보유자
* [[3월 26일]] - [[아메드 세쿠 투레]]: 초대 기니 대통령, 독립운동가
* [[3월 27일]] - [[조순(1913)|조순]]: [[대한민국]]의 [[정치인]]
==== 4월 ====
* [[4월 2일]]
* [[양달석]]: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 [[허원근]]: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녹화사업 피해자
* [[4월 5일]] - [[아서 해리스]]: 영국의 군인, [[드레스덴 폭격]] 당시 지휘관.
* [[4월 6일]] - [[오백룡]]: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 [[4월 9일]] - [[아메노모리 마사시]]: 일본의 성우
* [[4월 17일]] - [[한성기]]: 대한민국의 시인
* [[4월 24일]] - [[구용서]]: 초대 한국은행 총재 및 한국산업은행 총재, 제10대 상공부 장관
* [[4월 29일]] - [[박준규(1926)|박준규]]: [[대한민국]]의 [[정치인]]
==== 5월 ====
* [[5월 4일]] - [[최재희]]: 대한민국의 원로 철학자
* [[5월 11일]] - [[세키 타케시]]: 일본의 탤런트이자 코미디언
* [[5월 14일]] - [[송영집]]: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5월 15일]] - [[한도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5월 24일]] - [[황두연]]: 대한민국의 정치가
* [[5월 25일]] - [[이동훈]]: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 [[5월 28일]] - [[이수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5월 29일]] - [[빈스 맥마흔 시니어]]: [[WWE]] 창업주
==== 6월 ====
* [[6월 6일]] - [[우궈전]]: 중화민국의 외교관, 정치가.
* [[6월 16일]] -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
* [[6월 18일]] - [[김익준]]: 대한민국의 정치가
* [[6월 24일]] - [[클라렌스 캠벨]]: 제3대 [[NHL]] 총재. 리그 역사상 최장기 재임(31년) 총재
* [[6월 25일]] - [[노기남]]: 제10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 [[6월 26일]] - [[조제프 곤살레스]]: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
==== 7월 ====
* [[7월 2일]] - [[진봉현]]: 제22대 농림부 차관
* [[7월 3일]] - [[에르네스토 마스체로니]]: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
* [[7월 5일]] - [[김장환]]: 궁시장 기능보유자
* [[7월 18일]] - [[전원배]]: 대한민국의 철학자
* [[7월 19일]]
* [[서남동]]: 대한민국의 목사, 민중신학자
* [[장관주]]: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7월 24일]] - [[조제 마우루 지 바스콘셀루스]]: 브라질의 소설가
* [[7월 25일]]
* [[박영선]]: 당시 신민부 소속 독립운동가
* [[최현숙]]: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히라타 아키히코]]: 일본의 영화배우
* [[7월 27일]]
* [[윤몽룡]]: 1970년대 초반 고교야구의 스타로 알려진 야구인
* [[제임스 메이슨]]: [[영국]]의 배우
* [[7월 30일]] - [[유범수]]: 대한민국의 정치인
* [[7월 31일]] - [[이범만]]: 송파 산대놀이 기능보유자
==== 8월 ====
* [[8월 5일]] - [[리처드 버튼]]: [[영국]]의 [[배우]]
* [[8월 6일]] - [[아르키메데 마르텔리]]: 광주 [[살레시오중학교]], [[살레시오고등학교]] 설립자
* [[8월 9일]] - [[이기영(소설가)|이기영]]: 월북 소설가
* [[8월 16일]] - [[최은희]]: 대한민국 제 1호 여성 기자
* [[8월 19일]] - [[서정권]]: 대한민국의 원로 권투인
* [[8월 20일]] - [[김산(1898)|김산]]: 대한민국의 정치인
* [[8월 25일]] - [[이규백]]: 전 동산초등학교 교장
* [[8월 27일]] - 배상욱: 전 삼성물산 대표이사
==== 9월 ====
* [[9월 7일]] - [[조 크로닌]]: 1930년대 [[보스턴 레드삭스]]의 주전 유격수이자 팀 역사상 최장기 재임 감독(1935~1947)
* [[9월 10일]] - [[김세진]]: 제29대 상공부 차관
* [[9월 11일]]
* [[손낙범]]: 대한민국의 국문학자
* [[최응찬]]: 대한민국의 성우
* [[9월 13일]] - [[치바 아키오]]: 야구만화 <[[캡틴]]>, <[[플레이 볼]]>을 낳은 일본의 만화가
* [[9월 17일]] - [[스벤 요나손]]: [[스웨덴]]의 전 축구 감독
* [[9월 19일]]
* KBS 취재헬기 사고 희생자 5명
* 남정구, 박장하, 이희완 기자
* [[호토미 코고]]: 일본의 작곡가
* [[9월 24일]] - [[이해익]]: 제2대 경기도 도지사, 제16대 농림부 장관
* [[9월 25일]]
* [[윤상은]]: 구포은행, 경남은행 설립자이자 [[동아일보]] 창간 발기인 중 하나
* [[월터 피전]]: [[캐나다]], [[미국]]의 [[배우]]
* [[9월 26일]] - [[조성룡]]: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 10월 ====
* [[10월 1일]]
* [[블라고예 마르야노비치]]: [[유고슬라비아 왕국|유고슬라비아]](現 [[세르비아]])의 [[축구선수]]
* [[월터 앨스턴]]: 1960년대 전성기 시절 [[LA 다저스]] 감독
* [[10월 4일]] - [[이춘성]]: 제6대 문화공보부 차관
* [[10월 14일]] - [[박영두]]: 삼청교육대 출신 옥중 민주화 투사
* [[10월 20일]]
* [[폴 디랙]]: [[영국]]의 [[물리학]]자
* [[휴 린턴]]: 전 전주 결핵재활원장
* [[10월 22일]] - [[김수사]]: 재일 한국인 독립운동가
* [[10월 23일]] - [[오스카 베르너]]: [[오스트리아]]의 [[배우]]
* [[10월 26일]] - [[김영일]]: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
* [[10월 28일]] - [[장위돈]]: 대한민국의 외교관
* [[10월 29일]]
* [[강석진]]: [[동명그룹]] 창업주
* [[오경인]]: 제6대 서울특별시 교육감
* [[10월 31일]] - [[인디라 간디]]: 제3대 [[인도 총리]]
==== 11월 ====
* [[11월 2일]] - [[임용준]]: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임수경]] 전 의원의 둘째 오빠. 녹화사업의 희생자 중 하나.
* [[11월 8일]] - [[조두남]]: 가곡 <[[선구자]]>로 유명한 작곡가
* [[11월 15일]] - [[정태성(정치인)|정태성]]: 대한민국의 정치인
* [[11월 19일]] - [[마르틴 마르쿨레타]]: [[스페인]]의 전 축구 감독
* [[11월 26일]] - [[박수산]]: 대한민국의 만화가
* [[11월 28일]] - [[전수린]]: 일제시기 히트가요 <[[황성옛터]]>를 만든 원로 작곡가
* [[11월 30일]] - [[박종만]]: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12월 ====
* [[12월 4일]] - [[잭 머서]]: [[뽀빠이]] 역으로 유명한 미국의 성우
* [[12월 6일]] - [[맹은재]]: [[대한민국]]의 [[정치인]]
* [[12월 7일]] - [[오카와 하시조]](2대): 일본의 영화배우이자 가부키 배우
* [[12월 8일]] - [[김종삼]]: 대한민국의 시인
* [[12월 10일]] - [[이정규]]: 제7대 성균관대학교 총장
* [[12월 15일]] - [[최순우]]: 대한민국의 민속사학자, 제3대 [[국립중앙박물관]]장
* [[12월 16일]] - [[진양욱]]: 광주지역 향토 서양화가
* [[12월 18일]] - [[푸크 판헤일]]: [[네덜란드]]의 전 축구 선수
* [[12월 19일]] - [[김사복]]: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존 인물로 알려진 호텔택시 기사
* [[12월 28일]] - [[이토이 고로]]: 일본의 아나운서, 라디오 DJ
* [[12월 29일]] - [[윤창하(1908)|윤창하]]: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12월 31일]] - [[부완혁]]: 대한민국의 원로 언론인, 정치가
==== 일자 불명 ====
* [[박영복]]: 종묘제례악 기능보유자
* [[조향]]: 대한민국의 시인
* 한석진: [[남산케이블카]] 운영업체 '한국삭도공업' 창업주
=== 가상 인물 ===
* 일자불명
* 덕수의 어머니 - [[국제시장]]
* [[코이즈미 미카]] - [[초전자 바이오맨]]
* --[[카일 리스#s-2.1]] - [[터미네이터(영화)|터미네이터]]--
== 데뷔 ==
=== 가수 ===
* 한국
* [[길은정]]
* [[노래를 찾는 사람들]]
* [[김광석]]
* [[이선희]]
* [[임병수]]
* [[작은하늘]]
* [[최유나]]
* 해외
* 더 팻 보이즈
* 락웰
* [[레드 핫 칠리 페퍼스]]
* [[본 조비]]
* 소녀대
* [[오카다 유키코]]
* 월드 클래스 렉킹 크루
* [[닥터 드레]], DJ옐라
* [[펫 샵 보이즈]]
* [[Dead or Alive(밴드)|Dead or Alive]]
* [[A-ha]]
=== 예능인 ===
* 김상호
* 김선우
* 김재훈
* [[김한국]]
* 김혜정
* 이경애
* [[이봉원]]
* 임미숙
* 임성주
* [[조금산]]
* 조재호
=== 만화계 ===
* [[모리타 마사노리]] - <IT'S LATE>
* [[신일숙]] - <라이언의 왕녀>
* 유사랑 - <기린아>
* 이영일 - <영원한 제국>
* 장진영 - <계절풍>
* 전창진[* 그 농구감독하고는 동명이인.] - <1984>
=== 스포츠 ===
* [[공정배]]
* [[김진(농구인)|김진]]
* 마리오 르뮤
* '''[[마이클 조던]]'''
* 마이클 케이지
* [[박경훈]]
* 번 플레밍
* 샘 보위
* [[샘 퍼킨스]]
* '''[[스티브 영]]'''
* 앨빈 로버트슨
* 오티스 도프
* '''[[이봉걸]]'''
* '''[[이준희]]'''
* [[정삼흠]]
* 정종수
* 정호영
* [[제이 험프리스]]
* 제롬 커시
* 제프 터너
* '''[[존 스탁턴]]'''
* '''[[짐 켈리]]'''
* '''[[찰스 바클리]]'''
* 최철권
* 케빈 윌리스
* '''[[하킴 올라주원]]'''
=== 배우/성우 ===
* [[정미숙]] 등 [[KBS 성우극회]] 19기 성우.[* 다만 [[손원일(성우)|손원일]] 성우는 퇴사하고 이듬해인 1985년에 MBC 성우극회 10기로 재입사했다.]
== 히트작 ==
=== 영화 ===
* 국산
* 고래사냥
* 무릎과 무릎사이
* 어우동
* 수녀 아가다
* 수입
* 터미네이터
* 고스트버스터즈
* 그렘린
* 쾌찬차
* 007 옥토퍼시
=== 드라마 ===
* 금남의 집
* [[사랑과 진실]]
* [[조선왕조 500년]]: 설중매
=== 가요 ===
* 한국
* 강병철과 삼태기 - 행운을 드립니다
* 김수철 - '''못 다 핀 꽃 한송이'''
* 김연자 - 수은등
* 김학래 - 슬픔의 심로
* 김현식 - 사랑했어요, 어둠 그 별빛
* 벗님들 - 당신만이[* 원래는 1980년에 발표되었으나 1984년 재발매되어 인기를 끌었다.]
* 산울림 - 너의 의미
* 송골매 - 난 정말 모르겠네
* 심수봉 -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 옥슨 80 - 가난한 연인들의 기도
* 윤수일밴드 - '''아름다워'''
* 이규대 동아리 - 내 이름 (예솔아!)
* 이선희(4막5장) - '''[[J에게]]'''
* 이용 - 첫사랑이야
* 이은하 -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
* 임병수 - 약속
* 임희숙 -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 전영록 - 그대가 미워요,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 정태춘 - 떠나가는 배
* 조용필 - [[조용필 6집|눈물의 파티, 정의 마음]]
* 최혜영 - 그것은 인생
* 하남석 - 우는 아인 바보야
* 한마음 - 갯바위
* 현철 - 청춘을 돌려다오
* 해외
* [[마돈나(가수)|마돈나]] - Like A Virgin
* [[프린스(음악가)|프린스]] - Purple Rain, When Doves Cry
* [[퀸(밴드)|퀸]] - Radio Ga Ga
* Ray Parker Jr. - [[Ghostbusters OST|Ghostbusters]]
* Van Halen - Jump
* [[Wham!]] - Careless Whisper, [[Last Christmas]], Wake Me Up Before You Go Go
* [[Stevie Wonder]] -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 The Flying Pickets - Only You
* Yngwie Malmsteen - Rising Force, Icarus' Dream Suite Op. 4
=== 애니메이션 ===
* 더빙
* [[목장의 소녀 캐트리]]
* [[호호 아줌마]]
* 해외
* [[트랜스포머 G1(TV 시리즈)|트랜스포머 G1]]
* [[북두의 권/애니메이션|북두의 권]]
* [[유리가면/애니메이션|유리가면]]
=== 베스트셀러 ===
* 고래사냥 - 최인호 저.
== 출시 상품 ==
=== 자동차 ===
* 현대 RB520 리어엔진 버스
* 기아 봉고 킹캡
* 아시아 AM트럭
* 대우 BV113 시리즈 중 Q모델
=== 식음료 ===
* 동양제과
* 고래밥
* 농심
* 3월: 짜파게티
* 8월: 사라다스낵
* 12월: 해물탕면
* 롯데제과
* 1월: 인삼껌
* 8월: 쵸이스
* 10월: 칸쵸, 넛츠봉
* 11월: 레몬C
* 12월: 하비스트
* 동서식품
* 포스트 모닝후레이크/스위트 후레이크[* 출시 당시에는 '토스티스 훼미리/스위트 후레이크'였다. 1988년에 해당 명칭으로 변경됨.]
* 포스트 하니컴, 스타베리
* 파인음료
* 동서벌꿀[* 출시 당시부터 1년간 '동서석청'이었다.], 아카시아꿀, 잡화꿀
=== 생활용품 ===
* 애경유지
* 썬실크샴푸, 뉴크린엎, 향크린엎
== 최초 ==
=== 방송 프로그램 ===
* KBS
* [[가족오락관]]
* 방송의 현장
* [[연예가중계]]
* 청소년문학관
*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 행운의 스튜디오
* MBC
* 쇼! 스타 24시
* 야! 일요일이다
* 여기는 MBC
* 청춘만만세
* 유쾌한 스튜디오
* 차인태의 출발 새아침
* 텔레비안 나이트
=== 창간 ===
* 샘이깊은물
* 월간 객석
* 영레이디
* 음악세계
== 유행어 ==
* 나가 놀아라~/지구를 떠나거라~ - 김병조 (일요일밤의 대행진)
* 콩나물 팍팍 무쳤냐? - 이주일
* 잘 모르겠는데요~ - 심형래
* 이 손 안에 있소이다 - 변희봉 (조선왕조 500년)
== 달력 ==
[include(틀:일요일로 시작하는 윤년)]
[각주]
[[분류:1984년]] |
1984 AFC 아시안컵 싱가포르 | [include(틀: AFC 아시안컵)]
[목차]
== 개요 ==
1984 AFC ASIAN CUP
[[아시아 축구 연맹]] 주관의 [[AFC 아시안컵]] 8회 대회
== 경기장 ==
|| 도시 || 경기장 이름 || 수용인원 ||
|| 칼랑 || 나티오날 경기장 || 55,000명 ||
* 개막전과 3-4위 결정전, 결승전은 모두 칼랑에서 개최되었다.
== 진행 방식 ==
* 개최국 싱가포르와 지난대회 우승팀 쿠웨이트에게 자동 출전권이 주어졌다. 남은 8장의 본선 티켓을 놓고 21개국이 예선에 참가하였다.
* 아시안컵 예선은 4개조로 나뉘어 각 조 1,2위팀이 본선에 진출한다. 예선 역시 1982년 월드컵의 영향으로, 승부조작 방지를 위해서 마지막 경기는 같은날 같은시간에 치뤄졌다.
* 본선에선 5개팀 2개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실시하여 각 조 상위 1,2위팀이 4강에 진출한다. 4강부터는 토너먼트로 실시한다.
* 1984년 12월 1일 카타르와 시리아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결승전인 12월 16일까지 약 2주간 진행된다.
== 지역 예선 ==
기권팀은 취소선. 첫 예선 출전은 진한 표시
* 1조 :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이란, 필리핀, 태국, 시리아, --버마--
* 2조 : 인도, 말레이시아, '''네팔''',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스리랑카, 아랍 에미리트
* 3조 : 파키스탄, '''북예멘''', 대한민국, --바레인--, --일본--, --레바논--, --마카오--
* 4조 : 아프가니스탄, 중국, 홍콩, 요르단, 카타르, --브루나이--, --이라크--, --남예멘--
지역별로 서, 중, 동아시아로 예선이 진행되지 않고, 지역과 무관하게 조가 배정이 되기 시작했다.
=== 1조 ===
1984년 8월 6일~15일까지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 세냐얀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6일간 15경기가 개최되는 막장 일정을 자랑했던 예선이다.
|| 인도네시아 || 2 - 1 || 방글라데시 ||
|| 시리아 || 2 - 0 || 필리핀 ||
|| 이란 || 5 - 0 || 방글라데시 ||
|| 인도네시아 || 2 - 1 || 방글라데시 ||
|| 이란 || 3 - 1 || 시리아 ||
|| 태국 || 3 - 0 || 필리핀 ||
|| 시리아 || 2 - 1 || 방글라데시 ||
|| 인도네시아 || 1 - 0 || 필리핀 ||
|| 이란 || 5 - 0 || 태국 ||
|| 방글라데시 || 3 - 2 || 필리핀 ||
|| 인도네시아 || 0 - 1 || 이란 ||
|| 태국 || 3 - 2 || 시리아 ||
|| 태국 || 2 - 1 || 방글라데시 ||
|| 인도네시아 || 1 - 2 || 시리아 ||
|| 이란 || 7 - 1 || 필리핀 ||
1968년 개최국 참전+3연속 우승덕분에, 지역예선에 16년만에 등장하게 된 이란은 5경기 21골을 터뜨리며 5전전승으로 다른팀들과 수준이 다름을 보여줬다. 남은 한장의 티켓으로 5팀이 박터지게 싸웠고, 최종적으로 시리아, 인도네시아, 태국이 승점 6점을 기록하게 되었고, 골득실에서 태국이 탈락, 다득점에서 인도네시아가 탈락하면서 시리아가 본선에 진출했다. 시리아는 3골이상 넣은 경기가 없음에도 꾸준히 1~2골씩 넣어준 덕분에 본선진출을 했고, 필리핀은 방글라데시에게도 3-2로 패배해 조 최고의 승점자판기가 되었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이란 || 5 || 5 || 0 || 0 || 21 || 2 || 10 ||
|| '''2위''' || 시리아 || 5 || 3 || 0 || 2 || 9 || 8 || 6 ||
|| '''3위''' || 인도네시아 || 5 || 3 || 0 || 2 || 6 || 5 || 6 ||
|| '''4위''' || 태국 || 5 || 3 || 0 || 2 || 9 || 10 || 0 ||
|| '''5위''' || 방글라데시 || 5 || 1 || 0 || 4 || 6 || 13 || 2 ||
|| '''6위''' || 필리핀 || 5 || 0 || 0 || 5 || 3 || 16 || 0 ||
'''이란'''과 '''시리아'''가 본선에 진출했다.
=== 2조 ===
1984년 10월 19일~28일까지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에서 개최되었다.
|| 사우디아라비아 || 7 - 0 || 네팔 ||
|| 오만 || 1 - 1 || 스리랑카 ||
|| 사우디아라비아 || 1 - 0 || UAE ||
|| 스리랑카 || 4 - 0 || 네팔 ||
|| 사우디아라비아 || 5 - 0 || 스리랑카 ||
|| UAE || 8 - 0 || 오만 ||
|| 사우디아라비아 || 6 - 0 || 오만 ||
|| UAE || 11 - 0 || 네팔 ||
|| UAE || 5 - 1 || 스리랑카 ||
|| 오만 || 8 - 0 || 네팔 ||
개최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 에미리트의 전력은 다른 3팀과는 차원이 달랐다. 서로의 맞대결에서만 1-0의 승부가 났고, 각각 다른경기에서 엄청난 스코어를 선보이며 나란히 1, 2위를 차지하여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네팔은 첫진출국임을 확실히 보여주며 30점실점에 단한점도 얻어내지 못하고 승점0으로 첫 예선에서 맹폭을 당했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사우디아라비아 || 4 || 4 || 0 || 0 || 19 || 0 || 8 ||
|| '''2위''' || UAE || 4 || 3 || 0 || 1 || 24 || 2 || 6 ||
|| '''3위''' || 스리랑카 || 4 || 1 || 1 || 2 || 6 || 11 || 3 ||
|| '''4위''' || 오만 || 4 || 1 || 1 || 2 || 9 || 15 || 3 ||
|| '''5위''' || 네팔 || 4 || 0 || 0 || 4 || 0 || 30 || 0 ||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가 본선에 진출했다.
=== 3조 ===
1984년 10월 10일~19일까지 인도 캘커타에서 개최되었다.
|| 대한민국 || 6 - 0 || 북예멘 ||
|| 말레이시아 || 5 - 0 || 파키스탄 ||
|| 인도 || 4 - 0 || 북예멘 ||
|| 대한민국 || 6 - 0 || 파키스탄 ||
|| 인도 || 2 - 1 || 파키스탄 ||
|| 파키스탄 || 4 - 1 || 북예멘 ||
|| 대한민국 || 0 - 0 || 말레이시아 ||
|| 인도 || 2 - 0 || 파키스탄 ||
|| 말레이시아 || 4 - 1 || 북예멘 ||
|| 인도 || 0 - 1 || 대한민국 ||
대한민국은 말레이시아 전[* 대한민국은 아시안컵 예선, 본선에서 말레이시아를 만나면 유난히 고전했었다. 1976년 대회에서는 예선 첫경기부터 말레이시아에게 2-1로 패하며 예선 탈락의 단초가되었고, 지난 대회에서는 본선에서 만나 1-1무승부를 기록하고 이번에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을 제외하고는 무난히 승리를 거두며 가볍게 본선진출을 확정지었고, 인도는 한국에게는 패배했지만, 2위 싸움을 한 말레이시아와 앙숙 파키스탄까지 제압하며 한국의 뒤를 이어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본선에까지 진출했던 남예멘과는 달리 북예멘은 매우 무력했고, 18실점을하고 승점도 얻지못한채 탈락했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대한민국 || 4 || 3 || 1 || 0 || 13 || 0 || 7 ||
|| '''2위''' || 인도 || 4 || 3 || 0 || 1 || 8 || 2 || 6 ||
|| '''3위''' || 말레이시아 || 4 || 2 || 1 || 1 || 10 || 3 || 5 ||
|| '''4위''' || 파키스탄 || 4 || 1 || 0 || 3 || 4 || 14 || 2 ||
|| '''5위''' || 북예멘 || 4 || 0 || 0 || 4 || 2 || 18 || 0 ||
'''대한민국'''과 '''인도'''가 본선에 진출했다.
=== 4조 ===
1984년 9월 10~20일까지 중국 광저우에서 개최되었다.
|| 카타르 || 8 - 0 || 아프가니스탄 ||
|| 요르단 || 1 - 1 || 홍콩 ||
|| 중국 || 6 - 0 || 아프가니스탄 ||
|| 카타르 || 1 - 0 || 홍콩 ||
|| 중국 || 6 - 0 || 요르단 ||
|| 홍콩 || 0 - 0 || 아프가니스탄 ||
|| 중국 || 2 - 0 || 홍콩 ||
|| 카타르 || 2 - 0 || 요르단 ||
|| 중국 || 1 - 0 || 카타르 ||
|| 요르단 || 6 - 1 || 아프가니스탄 ||
개최국 중국이 전승으로 가볍게 조 1위를 찍었고, 카타르 마지막 중국전 전에 이미 본선 진출 확정을 지었다. 한참 전쟁을 치르면서 전력이 엉망진창인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무승부를 기록한 홍콩이 이조의 개그포인트.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중국 || 4 || 4 || 0 || 0 || 15 || 0 || 8 ||
|| '''2위''' || 카타르 || 4 || 3 || 0 || 1 || 11 || 1 || 6 ||
|| '''3위''' || 요르단 || 4 || 1 || 1 || 2 || 7 || 10 || 3 ||
|| '''4위''' || 홍콩 || 4 || 0 || 2 || 2 || 1 || 4 || 2 ||
|| '''5위''' || 아프가니스탄 || 4 || 0 || 1 || 3 || 1 || 20 || 1 ||
'''중국''', '''카타르'''가 본선에 진출하였다.
== 본선 진출국 ==
|| '''국가''' || '''진출 경위''' || '''진출 횟수'''[* 현대회 본선진출 제외 횟수] || '''최고 성적''' ||
|| [[싱가포르]] || 개최국 자동 진출 || 0회 || 첫 참가 ||
|| [[쿠웨이트]] || 전대회 우승 || 3회 || 우승(1회) ||
|| [[이란]] || 예선 1조 1위 || 4회 || 우승(3회) ||
|| [[시리아]] || 예선 1조 2위 || 1회 || 1라운드 ||
|| [[사우디아라비아]] || 예선 2조 1위 || 0회 || 첫 참가 ||
|| [[아랍에미리트]] || 예선 2조 2위 || 1회 || 1라운드 ||
|| '''[[대한민국]]''' || 예선 3조 1위 || 5회 || 우승(2회) ||
|| [[인도]] || 예선 3조 2위 || 1회 || 준우승 ||
|| [[중국]] || 예선 4조 1위 || 2회 || 3위 ||
|| [[카타르]] || 예선 4조 2위 || 1회 || 1라운드 ||
== 진행 경과 ==
=== 조별 리그 ===
==== A조 ====
|| 카타르 || 1 - 1 || 시리아 ||
|| 사우디아라비아 || 1 - 1 || 대한민국 ||
|| 쿠웨이트 || 1 - 0 || 카타르 ||
|| 사우디아라비아 || 1 - 0 || 시리아 ||
|| 쿠웨이트 || 0 - 0 || 대한민국 ||
|| 시리아 || 1 - 0 || 대한민국 ||
|| 사우디아라비아 || 1 - 1 || 카타르 ||
|| 쿠웨이트 || 3 - 1 || 시리아 ||
|| 카타르 || 1 - 0 || 대한민국 ||
|| 사우디아라비아 || 1 - 0 || 쿠웨이트 ||
대한민국에겐 '''역사상 최악의 본선'''으로 회자될수 있는 대회였다. 첫경기 사우디 아라비아전에서 득점한 이태호의 골 이후 단한골도 득점하지 못하며, 최하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대한민국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이 전부 중동팀인것이 특색. 사우디 아라비아가 무패를 달성했고, 쿠웨이트역시 최종전에만 패했을뿐 디펜딩 챔피언으로써의 위상은 충분히 지켰다. 쿠웨이트 시리아전을 제외하고 세골 이상이 나지 않았단 조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사우디아라비아 || 4 || 2 || 2 || 0 || 4 || 2 || 6 ||
|| '''2위''' || 쿠웨이트 || 4 || 2 || 1 || 1 || 4 || 2 || 5 ||
|| '''3위''' || 카타르 || 4 || 1 || 2 || 1 || 3 || 3 || 4 ||
|| '''4위''' || 시리아 || 4 || 1 || 1 || 2 || 3 || 5 || 3 ||
|| '''5위''' || 대한민국 || 4 || 0 || 2 || 2 || 1 || 3 || 2 ||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가 본선에 진출했다.
==== B조 ====
|| 이란 || 3 - 0 || UAE ||
|| 싱가포르 || 2 - 0 || 인도 ||
|| 중국 || 0 - 2 || 이란 ||
|| UAE || 2 - 0 || 인도 ||
|| 싱가포르 || 0 - 2 || 중국 ||
|| 이란 || 0 - 0 || 인도 ||
|| 싱가포르 || 0 - 1 || UAE ||
|| 중국 || 3 - 0 || 인도 ||
|| 싱가포르 || 1 - 1 || 이란 ||
|| 중국 || 5 - 0 || UAE ||
중국은 첫경기 이란에게 질때만해도 어려워보였으나, 이후 3경기를 모두 승리를 따내며 조1위를 따내는 쾌거를 거둔다. 이란이 2경기를 이긴후 내리 무승부를 두번이나하면서 2위로 처졌다. 개최국 싱가포르는 첫진출에 첫승리를 인도에게 따냈으나, 중국과 UAE에게 패배하며 본선진출에 실패했다. 인도는 본선 유일의 무득점 국가로 불명예 탈락했다. -- 지역예선 3조가 최약체였던 것이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중국 || 4 || 3 || 0 || 1 || 10 || 2 || 6 ||
|| '''2위''' || 이란 || 4 || 2 || 2 || 0 || 6 || 1 || 6 ||
|| '''3위''' || UAE || 4 || 2 || 0 || 2 || 3 || 8 || 4 ||
|| '''4위''' || 싱가포르 || 4 || 1 || 1 || 2 || 3 || 4 || 3 ||
|| '''5위''' || 인도 || 4 || 0 || 1 || 3 || 0 || 7 || 1 ||
'''중국'''과 '''이란'''이 본선에 진출했다.
=== 준결승 1경기 사우디아라비아 1 - 1(PK5 - 4) 이란 ===
1984년 12월 13일
4번째 우승을 노리는 이란과 본선 첫진출에 4강까지온 사우디의 대결로, 미드필더임에도 대회 두골로 공동선두에 올라와있었던 샤로흐 바이아니가 43분 선취골을 넣으며, 이란을 결승으로 인도하는 듯 했다. 그러다 후반들어 80분경, 또다른 바이아니 샤힌 바이아니의 자책골이 터지면서,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고, 연장전 끝에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사우디 선수들은 모두 성공, 이란은 4번째 키커 모하마드 판잘리의 실축으로 사우디에게 결승전 티켓을 양보하게 되었다.
=== 준결승 2경기 중국 1 - 0(연장전) 쿠웨이트 ===
1984년 12월 14일
이번 대회 예선까지 포함 8경기 7승 1패의 역대 최고의 성적을 보여준 중국과 디펜딩챔피언 쿠웨이트와의 대결로, 90분내에는 승부가 나지 않았고, 108분 리 후아윤의 골로 중국이 사상첫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 3-4위전 이란 1 - 1(PK 3 - 5) 쿠웨이트 ===
1984년 12월 16일
쿠웨이트의 알 하다드의 선취골로 끌려가던 이란이 80분에 모하마드카니의 골로 동점. 승부차기에서 이란의 4번째 키커 모크타리파르의 실축으로 쿠웨이트가 3위를 차지하게되었다.
=== 결승전 사우디아라비아 2 - 0 중국 ===
1984년 12월 16일
어느쪽이 우승하던 대회 첫 우승국이 탄생한 경기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전반에 한골, 후반에 한골을 넣으며 중국을 이기고 첫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table align=center><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
|| A || 4강 1경기 [br] '''사우디아라비아''' 1:1(5:4) 이란 ||<|3> C ||<|3> 결승 [br] '''사우디아라비아''' 2:0 중국 ||
|| B || 4강 2경기 [br] '''중국''' 1:0 쿠웨이트 ||
|| D || 3/4위전 [br] 이란 1:1(3:5) '''쿠웨이트''' ||
||<table align=center><rowbgcolor=#ffd700> '''{{{+2 1984 AFC 아시안컵 우승}}}''' ||
|| [[파일:external/www.worldstatesmen.org/sa.gif|width=200]] [br] '''사우디아라비아''' ||
|| 첫 번째 우승 ||
=== 결과 ===
|| 순위 || 국가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 || 승점 || 비고 ||
||<rowbgcolor=#ffd700> 1 || 사우디아라비아 || 6 || 3 || 3 || 0 || 7 || 3 || +4 || '''9''' || '''우승''' ||
||<rowbgcolor=#c0c0c0> 2 || 중국 || 6 || 4 || 0 || 2 || 11 || 4 || +7 || '''8''' || 준우승 ||
||<rowbgcolor=#b8860b> 3 || 쿠웨이트 || 6 || 2 || 2 || 2 || 5 || 4 || +1 || '''6''' || 3위 ||
||<rowbgcolor=#f0e68c> 4 || 이란 || 6 || 2 || 4 || 0 || 8 || 3 || +5 || '''8''' || 4위 ||
||<rowbgcolor=#ffa7a7> 5 || 카타르 || 4 || 1 || 2 || 1 || 3 || 3 || 0 || '''4'''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6 || 아랍에미리트 || 4 || 2 || 0 || 2 || 3 || 8 || -5 || '''4'''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7 || 싱가포르 || 4 || 1 || 1 || 2 || 3 || 4 || -1 || '''3'''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8 || 시리아 || 4 || 1 || 1 || 2 || 3 || 5 || -2 || '''3'''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9 || 대한민국 || 4 || 0 || 2 || 2 || 1 || 3 || -2 || '''2'''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0 || 인도 공화국 || 4 || 0 || 1 || 3 || 0 || 7 || -7 || '''1''' || 1라운드 ||
* 득점왕 : 쟈 쓔취안(중국), 나세르 모하마드카니(이란), 샤로흐 바이아니(이란) 3골.
* 베스트 골키퍼 : 압둘라 알데예아(사우디 아라비아)
* MVP : 쟈 슈취안(중국)
* 최단시간 득점 : 왈리드 아부 알셀(시리아), 1984년 12월 9일 대 쿠웨이트전 전반 6분.
* 페어플레이상 : 중국
== 그 외 ==
* 개최국 싱가포르는 B조 4위로 4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첫경기에서 인도를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둔걸로 위안을...싱가포르는 이후 단한번도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 대한민국은 조별리그에서 1차전 사우디아라비아와 1:1로 비겼는데 이태호 선수가 득점하였다. 이 골이 대한민국의 유일한 골이었다. 2차전 쿠웨이트와 0:0 무승부, 3차전 시리아에게는 0:1 패배, 4차전 카타르에게도 역시 0:1로 패배하며 2무 2패 조 최하위로 대회를 마감하였다. 1년전 열렸던 멕시코 청소년 월드컵 4강멤버들을 위주로 대표팀을 꾸려 예선도 가볍게 통과했지만, 정작 본선에서 이렇게 골을 못넣을줄은 아무도 예상을 못했다. 심지어 대한민국이외 다른팀은 전부 중동이었고, 개최국 싱가포르의 시차도 대한민국에게 훨씬 유리한 조건임에도, 1득점, 무승리로 본선탈락이라는 역대 최고의 흑역사를 찍었다.
* 사우디아라비아는 처음으로 진출한 이 대회에서 3승3무를 기록하며 무패로 처음 우승하였다. 그리고 아시안컵은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베스트 골키퍼로 뽑힌 압둘라 알데예아는 1990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의 골문을 지켰고 이후 사우디의 골문을 13년간 지킨 전설 '''모하메드 알데예아'''[* A매치 출장기록이 178경기로 골키퍼 세계 신기록이다.]의 형이다.
* 모든 팀이 승점 1점 이상 획득했고, 인도만이 무득점으로 대회를 마쳤다.
* 이대회부터 MVP가 신설되었고, 중국의 쟈 슈취안이 초대 MVP가 되었다. 지난 대회부터 뽑던 베스트 일레븐은 은근슬쩍 사라졌다.
* 중국은 아쉽게 우승을 놓쳤지만, 이 대회부터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며 2000년대 초반까지 아시아의 강호중 한 축으로 군림하게 된다. --물론 대한민국, 일본을 넘어서는건 아니고--. 쟈 슈취안은 중국의 최초이자 마지막 아시안컵 득점왕이자 MVP다.
* 자살골이 무려 4골이나 나온 대회다. 샤힌 바이아니(이란), 이브라힘 알루마이히, 무바라크 안베르(카타르), 이삼 마흐루스(시리아)가 주인공으로, 특히 샤힌 바이아니는, 준결승전 패배의 단초가 되는 자살골을 넣었다. 나머지 세사람은, 골이 지독히도 안터지던 A조 소속.
[각주]
[[분류:AFC 아시안컵]] |
1984년 한국시리즈 | [include(틀:역대 KBO 한국시리즈 목록)]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 bordercolor=#151B54><bgcolor=#ffffff><:>[[파일:external/41.media.tumblr.com/tumblr_o4a4woaUar1sqk8veo6_r1_400.png|width=200]][br] '''{{{#151B54 역대}}} [[KBO 한국시리즈|{{{#151B54 KBO 한국시리즈}}}]]''' ||
||<width=30%><:> [[1983년 한국시리즈|1983년]] [br] [[해태 타이거즈]] ||<:> {{{+1 ←}}} ||<width=30%><bgcolor=#FFFFFF><:> '''1984년''' [br] '''[[롯데 자이언츠]]''' ||<:> {{{+1 →}}} ||<width=30%><:>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 [br] [[삼성 라이온즈]] ||
||||<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221692><tablebgcolor=#ffffff><bgcolor=#FFFFFF>{{{#!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dimg.donga.com/40431052.2.jpg|width=100%]]}}}||
||||<:><bgcolor=#221692> '''{{{#ffffff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bgcolor=#87CEEB> [[롯데 자이언츠|'''{{{#ec1c24 롯데 자이언츠}}}''']] ||
||<:> '''{{{#87CEEB MVP}}}''' || '''[[유두열|{{{#87CEEB 유두열}}}]]''' ||
>'''아~ 볼... 아 스트락아웃입니다! 스트락아웃! 스트락아웃! 경기 끝났습니다. 한국 챔피언 롯데 자이언츠! 롯데가 6:4로 승리를 거뒀습니다!'''
>----
>[[MBC]] [[김용(아나운서)|김용]] 캐스터의 우승콜
[목차]
== 개요 ==
||<tablewidth=100%><-2><:><tablebordercolor=#edd36c><bgcolor=#00143f,#0b1966> {{{+2 {{{#edd36c '''1984'''}}} {{{#edd36c '''프로야구'''}}} {{{#ffffff '''한국시리즈'''}}}}}} ||
||<width=500><height=150><#87ceeb> [[파일:lotte_giants_primary.png|width=170]] ||<width=500><height=150><#007FFF> [[파일:samsung_lions_logo_1982.png|width=110]] ||
||<width=500><#87ceeb> [[롯데 자이언츠|{{{#ec1c24 {{{+1 '''롯데 자이언츠'''}}}}}}]] ||<width=500><#007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1 '''삼성 라이온즈'''}}}}}}]] ||
[youtube(uPfDIbjq2pw)]
1984년 9월 30일부터 10월 9일까지 진행되어, [[롯데 자이언츠]]가 '''에이스 [[최동원]]의 전무후무한 나홀로 4승으로 우승'''한 한국시리즈. 전기리그 1위팀이었던 [[삼성 라이온즈]]가 악명높은 '''[[져주기 게임]]'''으로 롯데를 한국 시리즈 파트너로 골랐다가 도리어 우승을 놓친 것으로 유명하다. 아울러 역사상 처음으로 최종 7차전에서 4승 3패로 우승팀이 결정된 한국시리즈다.
당시 삼성은 [[김시진]]과 [[김일융]]의 [[원투펀치]]에 더하여 [[황규봉]],[* 시즌 20승 이상을 했던 김시진과 김일융에는 미달했지만, 매년 10~15승씩을 기록했다.]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 통산 100세이브를 기록한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전문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단 마무리 투수로 전향한 건 1985년부터고 1984년까지는 선발로 활약했다.] 등의 쟁쟁한 투수진을 자랑했다. 롯데에는 [[임호균]][*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국가대표 출신으로 1983년도에 [[삼미 슈퍼스타즈]]에 입단, 12승을 거두며 '''[[장명부]]''' 다음가는 2선발로 명성을 떨쳤고, 84년 롯데로 이적해 그해 최동원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두자리 승수를 기록하며 이름값을 해준 투수였다.]이 나름의 역할을 했지만, [[최동원]]은 롯데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필승 [[에이스]]'''였기 때문에 초인적인 완투를 해야만 했다. 거기에 타선도 [[홍문종(야구)|홍문종]]과 [[김용희]], [[김용철(야구)|김용철]] 정도가 있던 롯데에 비해 [[이만수]], [[장효조]], [[정현발]] 등 강타자가 즐비한 삼성 타선이 훨씬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 진출팀 결정 ==
1984년 프로야구는 전기와 후기리그로 나누어 리그 100경기를 치렀고, 한국시리즈는 전기리그 우승 팀과 후기리그 우승 팀이 맞붙어 승부를 겨루는 시스템이었다. 이에 따라 한 팀이 전·후기리그를 제패하면 한국시리즈는 자연히 소멸되었던 것이 그 당시의 시스템.[* 실제로 [[김시진]]과 [[김일융]] 2명이 나란히 25승씩 50승을 합작했던 이듬해 [[1985년]]도에 [[삼성 라이온즈]]가 통합 우승을 달성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984년 당시 삼성은 [[김시진]], [[김일융]]의 투톱에 [[이만수]], [[장효조]]를 위시한 강력한 타선을 앞세워 전기리그에서 우승했다. 삼성은 이대로 후기리그까지 우승해 한국시리즈를 무산시킬 계획이었으나, 전기리그 우승으로 인해 분위기가 안이해있었던 삼성과는 달리 마지막 남은 한국시리즈 티켓을 거머쥐기 위해 다른 팀들이 치열하게 경기를 치르면서 선두 경쟁에서 밀려난다. 때문에 삼성은 계획을 바꿔 한국시리즈를 대비해 주전들의 체력을 안배하고 치열한 후기리그 순위 싸움에서 한발 물러서 관망하고 있었다.
막판 2연전만이 남고 어느 정도 한국시리즈 진출 팀의 윤곽이 보이자 삼성은 한국시리즈에 대비해 전력을 비축하는 한편, 손 쉽게 이길 수 있는 팀을 탐색했다[* 롯데도 마찬가지였지만 삼성 역시 이왕 한국시리즈에 올랐으니 우승해야한다는 당위성은 늘 갖고 있었다. 특히 KBO 창단 원년 한국시리즈에서 OB에 패한 쓰라린 기억을 갖고있었던 삼성에게 이 1984년의 한국시리즈는 반드시 우승을 이룰 수 밖에 없는 입장에 있었다. 물론 천신만고로 올라왔고 만년 하위권에서 맴돌던 롯데의 절박함이 더했다는게 함정이지만.]. 그리하여 선택된 팀이 전기리그에서 4위를 차지한 '''[[롯데 자이언츠]]'''. ~~[[김거김|OB 거르고 롯데]]~~ 전기리그에서 삼성이 9승 1패로 롯데를 호구잡고 완전히 압도해버린 데다, 최동원마저 정규시즌에서 삼성 상대로는 그리 잘 던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4년 정규시즌에 무려 27승이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찍은 최동원이었지만, 정규시즌 중에는 삼성 상대로는 그다지 강한 모습이 없었다. 져주기 경기 제외하고는 삼성 상대로는 2승 4패 3세이브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박영길]] 당시 타격코치만이 롯데 대신 [[OB 베어스|OB]]를 밀어줄 것을 주장했다. 박영길은 과거 [[롯데 자이언트]] 시절 감독으로서 [[1981년 코리안시리즈]]에서 말도 안 되는 최동원의 초인적인 활약상을 보았기에 그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롯데를 밀어주기로 결정했다. 당시 OB 베어스 감독이었던 [[김성근]]도 당황했다.
||<bgcolor=#ffffff>[[파일:external/ncc.phinf.naver.net/1%28%BC%F6%C1%A4%29.jpg|width=100%]]||
후기리그가 2경기 남은 시점에서도 리그 우승의 향방은 예측 불가 상태였는데, 위의 표를 보면 알겠지만 OB가 아무리 기를 써도 삼성이 대놓고 롯데를 봐주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롯데를 한국시리즈로 올리겠다고 결정이 났기 때문에 [[김영덕]] 감독은 남은 2경기에서 나쁜 의미로 역사에 길이 남을 [[져주기 게임]]에 나선다.
||<bgcolor=#ffffff>[[파일:external/eeeb4d668c7607e31e72895143f3cc68bbf6f90d6370f07f051b19c9f9802e8d.jpg|width=100%]]||
너무 표가 나다 못해 지켜보는 사람이 눈살을 찌푸리며 항의, 야유를 퍼부을 정도로 노골적인 게임을 치렀다. 안타 치고 고의로 [[오버런]]해서 주루사를 당하고, 수비할 때는 플라이성 타구를 일부러 안 잡아서 롯데 선수들을 진루시켜 주고, [[이만수]]의 타격왕도 노릴 겸 [[홍문종(야구)|홍문종]]이 칠 차례만 되면 무조건 [[고의사구]]로 출루시키질 않나[* 이만수의 타율이 .340으로 .339인 홍문종에 불과 1리(.001) 차이로 앞서 있어서 홍문종의 안타로 타율 역전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 결국 이만수는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는데도 불구하고 시즌 MVP를 최동원에게 내주었다.], 고의적인 실책으로 롯데 주자들을 계속 진루시켜 주는 등 그야말로 일부러 져주기 위한 발악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리그 마지막 2경기가 후기 리그 우승팀을 결정짓는 경기인 만큼 '''전국 방송 중계'''였기 때문에 더욱 지탄을 받았다. [[허구연]] 해설위원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중계를 맡았던 [[MBC]]는 대놓고 져주기 경기가 이어지자 중계를 중간에 끊을 것을 검토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허구연]] 해설위원의 조선일보 인터뷰[[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1953219840926m10214&set_date=19840926&page_no=2|#]]][* 이 일과 청보 감독 시절 삼성 상대로 관광당한 것으로 인해 [[허구연]]은 2013년까지만 해도 삼성 경기만 맡으면 말이 없어진다. 잘 하는 선수가 있어도 [[이승엽]], [[양준혁]] 정도만 칭찬했고 홈 구장이었던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의 시설도 매우 낡았으니... 이후 [[구자욱]] 등 새로운 신인이 등장하고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가 건립되자 어느정도 해소되었다. ~~대신 팀 성적이 추락했다~~]
물론 김영덕 감독은 공식적으로는 져주기를 부인했다. 선수들도 자기 기록이 달려있는데 어떻게 져주기를 할 수 있냐고. 하지만 이 때 삼성이 선발 출장 시킨 선수들은 후보급이었기에 기록을 세워준다는 변명도 무의미했다. 경기력이 형편없어도 그래도 후보급이었고 한국시리즈를 위한 체력 안배 차원이었으면 말이 될 텐데... '''[[넌씨눈|이 선수들이 감독의 뜻도 몰라주고 날아다녔다는 거]]'''(...)[* 후보급들의 목표야 주전으로 살아남는 것이니 그 심정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지만, 분위기 파악(?)을 못했다는게 잘못이었다. --활약도 눈치껏 해야한다...--]. 거기다 삼성이 후보 선수들을 선발로 출장시킨다는 소식을 듣자 롯데도 체력도 아끼면서 무난하게 2연승을 한다는 생각으로 똑같이 후보 선수들을 출전시킨다. 그러다보니 경기가 김영덕 감독의 의도대로가 아닌 삼성의 일방적인 경기로 기울기 시작하자 감독의 의중을 알만한 주전들이 나오고... 그 뒤로는 저 위에 나온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삼성이 역전패로 졌다. 23일 경기에서도 삼성은 3점을 먼저 내지만 어제와 비슷한 경기 운영을 보여주며 또 역전패.
한편 최종 2연전에서 해태도 OB를 상대로 져주기를 시전했다. 우리가 한국시리즈에 못 가도 제과업계 라이벌인 롯데가 한국시리즈로 가는 꼴은 절대로 볼 수 없다는 자세였다.[* 거기에다 해태는 전년도 우승팀이기도 했으니 이에 대한 우위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OB는 그 보답(?)으로 [[김일권]]에게 [[도루]]를 대량 허용하면서 김일권이 세 시즌 연속 도루왕에 등극하는데에 도움을 줬다. 하지만 롯데가 2승을 거둠으로써 결과적으로 실패. 물론 삼성의 져주기보다는 훨씬 덜 알려져 있다.
== 엔트리 ==
=== [[삼성 라이온즈]] ===
||<-3><bgcolor=#007fff><tablewidth=80%> '''{{{#ffffff 삼성 라이온즈 1984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bgcolor=#fecd00><width=10%><:> '''{{{#ffffff 감독}}}''' ||<width=10%> 1명 ||<width=80%> [[김영덕]] ||
||<bgcolor=#fecd00><width=10%> '''{{{#ffffff 코치}}}''' ||<width=10%> 4명 ||<width=80%> [[정동진]], [[박영길]], [[유백만]], [[우용득]] ||
||<bgcolor=#fecd00><width=10%> '''{{{#ffffff 투수}}}''' ||<width=10%> 7명 ||<width=80%> [[김시진]], [[김일융]], [[황규봉]],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 [[성낙수]], [[양일환]], [[송진호]] ||
||<bgcolor=#fecd00><width=10%> '''{{{#ffffff 포수}}}''' ||<width=10%> 2명 ||<width=80%> [[이만수]], [[송일수]] ||
||<bgcolor=#fecd00><width=10%> '''{{{#ffffff 내야수}}}''' ||<width=10%> 9명 ||<width=80%> [[함학수]], [[천보성]], [[배대웅]], [[김근석]], [[박승호(야구)|박승호]], [[김성래]], [[오대석]], [[정진호(1956)|정진호]], [[김한근]] ||
||<bgcolor=#fecd00><width=10%> '''{{{#ffffff 외야수}}}''' ||<width=10%> 6명 ||<width=80%> [[장효조]], [[허규옥]], [[장태수(1957)|장태수]], [[홍승규]], [[정현발]], [[김이수(야구인)|김이수]], [[황병일]] ||
=== [[롯데 자이언츠]] ===
||<-3><bgcolor=#87CEEB><tablewidth=80%> '''{{{#ed1c24 롯데 자이언츠 1984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bgcolor=#FFFFF0><:> '''{{{#ed1c24 감독}}}''' ||<:> 1명 || [[강병철]] ||
||<bgcolor=#FFFFF0><:> '''{{{#ed1c24 코치}}}''' ||<:> 3명 || [[도위창]], [[이희수(야구인)|이희수]], [[서말구]] ||
||<bgcolor=#FFFFF0><:> '''{{{#ed1c24 투수}}}''' ||<:> 8명 || [[최동원]], [[임호균]], [[배경환]], [[이진우(야구)|이진우]], [[천창호]], [[안창완]], [[이문한]], [[조용철]] ||
||<bgcolor=#FFFFF0><:> '''{{{#ed1c24 포수}}}''' ||<:> 2명 || [[심재원(야구선수)|심재원]], [[한문연]] ||
||<bgcolor=#FFFFF0><:> '''{{{#ed1c24 내야수}}}''' ||<:> 7명 || [[김용철(야구)|김용철]], [[김용희]], [[박영태]], [[정영기]], [[이광길]], [[김민호(1961)|김민호]], [[김성호(1960)|김성호]] ||
||<bgcolor=#FFFFF0><:> '''{{{#ed1c24 외야수}}}''' ||<:> 8명 || [[김성관]], [[유두열]], [[홍문종(야구)|홍문종]], [[박용성(야구선수)|박용성]], [[김재상]], [[조성옥]], [[김석일]], [[김한조]] ||
== 시리즈 전 분위기 ==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92400209209012&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9-24&officeId=00020&pageNo=9&printNo=19378&publishType=00020|사자 '야욕의 발톱' 팬들 가슴을 찢다]] - [[동아일보]]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92400329208001&officeId=00032&publishDate=1984-09-24&isPopular=0|야구냐 야바위냐 - 연이틀 팬 우롱한 '져주기 졸전']] - [[경향신문]].
* [[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1953119840925m1018&set_date=19840925&page_no=1|만물상#1]],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92500239101008&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4-09-25&officeId=00023&pageNo=1&printNo=19531&publishType=00010|만물상#2]] - [[조선일보]].
이런 기사들이 나올 정도로 삼성에 대한 여론은 온통 비난 일색이었고, 희대의 져주기 경기 때문에 KBO에서는 고의로 지는 경기가 없도록 규정을 손보겠다고 했다. [[박영길]]은 회고에서 "만일 삼성이 이 해 한국시리즈에서 승리했다면 이기기 위해서는 이런 변칙을 써서 이길 수 있다는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있기에 삼성의 패배가 오히려 약이 되었다." 라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롯데 자이언츠 [[강병철]] 감독은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는 미팅 자리에서 [[최동원]] 선수한테 1, 3, 5, 7차전 선발을 통보한다. 이건 너무 무리한 일정이라면서 반발하는 최동원 선수한테 강병철 감독은 나직히 한 마디를 남기는데...
>'''동원아... 우짜노? 여까지 왔는데...'''
그리고 최동원은 딱 한 마디를 남기고 마운드로 향한다.
>알겠심더. '''마, 함 해보입시더!'''[* 33년 후인 2017년, 롯데 자이언츠는 포스트시즌 캐치프라이즈로 이 문장을 걸어놓는다.]
김일융과 김시진의 확실한 [[원투펀치]]가 있는 삼성에 비해 롯데의 확실한 에이스는 [[최동원]]뿐이었다. 나머지는 삼성에 비하면 공기나 다름없었고 결국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롯데의 강병철 감독은 이런 극단적인 투수 기용을 선택한 것. 삼성은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를 무산시켜버렸을 정도로 전력이 탄탄했지만, 롯데로서는 한국시리즈가 언제 다시 올 지 모를 기회였다. 당시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최동원이 있었음에도 전기리그 4위를 하고, 그마저도 삼성이 져주기 게임을 해줘서 간신히 한국시리즈로 올라왔던 롯데로서는 이렇게 올라와서 진다면 그야말로 낭패였다. 특히 열성적인 부산팬들의 염원을 고려해서라도 반드시 우승해야 했던게 롯데의 사정이었다.
== 경기 결과 ==
* 당시 심판진 아시는 분은 작성바람.
=== 1차전 ===
||<-15><:><bgcolor=#87CEEB> {{{#ed1c24 '''한국시리즈 1차전 09.30(일) 18:0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ed1c24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87CEEB><:> '''[[롯데 자이언츠|{{{#ed1c24 롯데}}}]]''' ||<:> [[최동원]] ||<:> 0 ||<:> 2 ||<:> 0 ||<:> 2 ||<:> 0 ||<:> 0 ||<:> 0 ||<:> 0 ||<:> 0 ||<bgcolor=#dcdcdc><:> '''4''' ||<:> 7 ||
||<:><bgcolor=#007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김시진]] ||<:> 0 ||<:> 0 ||<:> 0 ||<:> 0 ||<:> 0 ||<:> 0 ||<:> 0 ||<:> 0 ||<:> 0 ||<bgcolor=#dcdcdc><:> '''0''' ||<:> 7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KBS1|[[파일:KBS_1973_-_19840815[1].png|width=45]]]] | 캐스터: 정도영 | 해설: 하일성''' ||
* '''승리''' : [[파일:attachment/lottegiantsoldlogo11.jpg|width=20]] [[최동원]] (9이닝 0실점 완봉승)
* '''패배''' : [[파일:samsung_lions_logo_1982.png|width=20]] [[김시진]] (3이닝 4실점(3자책))
* '''홈런''' : [[파일:attachment/lottegiantsoldlogo11.jpg|width=20]] 박용성(2회초, 2점)
* '''심판''' : 주심 이규석/1루 김광철/2루 김옥경/3루 황석중/좌선 /우선 오광소
각 양팀의 에이스 투수들이 맞붙어 투수전이 되리라 예상되었지만 의외로 김시진이 2회초에 박용성에게 투런을 허용당한데 이어 4회초 김용희에게 적시타를 두들겨맞고 박용성의 번트타구에 실책을 범하며 4실점을 하고 강판당했다. 2012년 3월 11일 MBC <히스토리, 후>에 따르면, 김시진은 한국시리즈 1차전을 앞두고 경기장으로 향하기 위해 차를 몰던 중 동네에서 놀던 꼬마와 접촉사고가 났는데, 이를 수습하기 위해 경기장에 늦게 도착했다고 한다. 다행히 꼬마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큰 경기에 앞서 마음을 여유롭게 먹을 겨를이 없었다는게 문제.
결국 경기는 최동원이 7개의 삼진을 잡으면서 '''한국시리즈 사상 최초의 [[완봉승]]'''으로 끝났다. 김시진 강판 이후 릴리프로 올라온 권영호가 6이닝 3피안타로 호투했고 삼성도 나름대로 최동원의 공에 대한 공략법을 가지고 있어서 7안타를 치며 분전했지만 산발로 끝나며 무득점에 그친다. 권영호의 경우에는 이후에도 선발 및 불펜으로 등판하여 준수한 투구를 보여준다.
이 경기가 김시진의 한국시리즈에서의 불명예의 시작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시진은 통산 124승을 거뒀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0승''' 7패를 기록했다.
||<tablealign=center><table width=100%><-7> '''{{{+1 역대 KBO 한국시리즈 완봉 달성자 명단}}}'''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dth=5%> '''순서''' ||<width=10%> '''달성자''' ||<width=10%> '''소속팀''' ||<width=10%> '''달성 일자''' ||<width=10%> '''달성 경기''' ||<width=10%> '''상대팀''' ||<width=10%> '''비고''' ||
||<#dcdcdc> 1 || [[최동원]] || [[롯데 자이언츠]] || 1984년 9월 30일 || [[1984년 한국시리즈#s-5.1|한국시리즈 1차전]] || [[삼성 라이온즈]] || 역대 최초 ||
||<#dcdcdc> 2 || [[문희수]] || [[해태 타이거즈]] || 1988년 10월 22일 || [[1988년 한국시리즈#s-4.3|한국시리즈 3차전]] || [[빙그레 이글스]] || ||
||<#dcdcdc> 3 || [[김태한]] || [[삼성 라이온즈]] || 1993년 10월 19일 || [[1993년 한국시리즈#s-5.2|한국시리즈 2차전]] || [[해태 타이거즈]] || 좌완 최초 ||
||<#dcdcdc> 4 || [[정삼흠]] || [[LG 트윈스]] || 1994년 10월 19일 || [[1994년 한국시리즈#s-4.2|한국시리즈 2차전]] || [[태평양 돌핀스]] || ||
||<#dcdcdc> 5 || [[이강철]] || [[해태 타이거즈]] || 1996년 10월 19일 || [[1996년 한국시리즈#s-3.3|한국시리즈 3차전]] || [[현대 유니콘스]] || ||
||<#dcdcdc> 6 || [[정명원]] || [[현대 유니콘스]] || 1996년 10월 20일 || [[1996년 한국시리즈#s-3.4|한국시리즈 4차전]] || [[해태 타이거즈]] || [[노히트 노런]] ||
||<#dcdcdc> 7 || [[정민태]] || [[현대 유니콘스]] || 2003년 10월 25일 || [[2003년 한국시리즈#s-3.7|한국시리즈 7차전]] || [[SK 와이번스]] || ||
||<#dcdcdc> 8 || [[다니엘 리오스]] || [[두산 베어스]] || 2007년 10월 22일 || [[2007년 한국시리즈#s-3.1|한국시리즈 1차전]] || [[SK 와이번스]] || 최소 투구수(99구) ||
||<#dcdcdc> 9 || [[아킬리노 로페즈]] || [[KIA 타이거즈]] || 2009년 10월 22일 || [[2009년 한국시리즈#s-3.5|한국시리즈 5차전]] || [[SK 와이번스]] || ||
||<#dcdcdc> 10 || [[양현종]] || [[KIA 타이거즈]] || 2017년 10월 26일 || [[2017년 한국시리즈#s-7.2.3|한국시리즈 2차전]] || [[두산 베어스]] || 최다 탈삼진(11K) ||}}}||
=== 2차전 ===
||<-15><:><bgcolor=#007fff> {{{#ffffff '''한국시리즈 2차전 10.01(월) 18:0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ffffff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87CEEB><:> '''[[롯데 자이언츠|{{{#ed1c24 롯데}}}]]''' ||<:> [[안창완]] ||<:> 1 ||<:> 0 ||<:> 0 ||<:> 0 ||<:> 1 ||<:> 0 ||<:> 0 ||<:> 0 ||<:> 0 ||<:><bgcolor=#dcdcdc> '''2''' ||<:> 5 ||
||<:><bgcolor=#007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김일융]] ||<:> 1 ||<:> 0 ||<:> 2 ||<:> 0 ||<:> 1 ||<:> 0 ||<:> 4 ||<:> 0 ||<:> - ||<:><bgcolor=#dcdcdc> '''8''' ||<:> 9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MBC|[[파일:mbc1981.png|width=50]]]] | 캐스터: 김용 | 해설: 허구연''' ||
* '''승리''' : [[파일:samsung_lions_logo_1982.png|width=20]] [[김일융]] (9이닝 1실점 완투승)
* '''패배''' : [[파일:attachment/lottegiantsoldlogo11.jpg|width=20]] [[안창완]] (2.1이닝 3실점)
* '''홈런''' : [[파일:samsung_lions_logo_1982.png|width=20]] [[장효조]](3회말, 2점)
* '''심판''' : 주심 /1루 황석중/2루 김광철/3루 /좌선 이규석/우선 김옥경
롯데의 2차전 선발은 신인투수 [[안창완]]으로, 84년 프로에 데뷔하여 불펜으로 뛰면서 27경기 70이닝 1.67이라는 좋은 성적을 냈다. 당시 불펜이 그랬지만 안창완도 2~3이닝씩 던졌고 선발로 뛰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의 선발 투수가 에이스 [[김일융]]이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결과가 예측된 경기였다. 3회말 [[장효조]]가 2점 홈런으로 기세를 제압하기 전까지는 1:1로 나름 팽팽한 경기였다. 이후에도 강병철 롯데 감독은 차례로 좌우 번갈아가며 임호균, 천창호, 배경환을 투입했지만 7회말 삼성이 4점을 득점하며 승부를 매듭지었다. 3회에 점수가 벌어지자 강병철 감독도 [[임호균]]을 구원으로 짧게 던지고 내려보내는 등 2차전에 더이상 큰 미련을 보이지 않으며 이후 경기를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 3차전 ===
||<-15><bgcolor=#87CEEB><:> {{{#ed1c24 '''한국시리즈 3차전 10.03(수) 18:00, [[구덕 야구장|{{{#ed1c24 구덕 야구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007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김시진]] ||<:> 0 ||<:> 0 ||<:> 0 ||<:> 1 ||<:> 0 ||<:> 0 ||<:> 1 ||<:> 0 ||<:> 0 ||<bgcolor=#dcdcdc><:> '''2''' ||<:> 7 ||
||<bgcolor=#87CEEB><:> '''[[롯데 자이언츠|{{{#ed1c24 롯데}}}]]''' ||<:> [[최동원]] ||<:> 0 ||<:> 1 ||<:> 1 ||<:> 0 ||<:> 0 ||<:> 0 ||<:> 0 ||<:> 0 ||<:> 1X ||<bgcolor=#dcdcdc><:> '''3''' ||<:> 6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KBS1|[[파일:KBS 1 logo[1].png|width=45]]]] | 캐스터: 이장우 | 해설: 하일성''' ||
* '''승리''' : [[파일:attachment/lottegiantsoldlogo11.jpg|width=20]] [[최동원]] (9이닝 2실점 완투승)
* '''패배''' : [[파일:samsung_lions_logo_1982.png|width=20]]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 (0.2이닝 1실점)
* '''심판''' : 주심 오광소/1루 /2루 황석중/3루 이규석/좌선 김동앙/우선 김광철
1차전 리턴매치. 롯데가 삼성 수비진들의 실책을 틈타 2회말, 3회말에 연달아 1점씩을 얻었고 최동원은 4회 1실점 이후 호투를 하다가 7회 득점권 상황에서 장효조에게 적시타를 맞는 바람에 1실점을 했지만 그외 삼성 타자들은 철저히 누르는 투구를 보여주고 있었다.
김시진은 1차전과 달리 산발 5피안타로 2실점만 내주며 7회까지 호투를 이어갔으나, 8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홍문종의 강한 타구에 왼쪽 발목을 맞으면서 쓰러져버리고 만다. 이후 긴급히 등판한 권영호가 8회를 무실점으로 마무리 지으나 9회말 1사 2루 상황에서 정영기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면서 롯데가 승리.
1차전 완봉 이후 이틀 쉬고 나온 최동원은 12탈삼진으로 당시 한국시리즈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과 함께 완투승을 거두며 시리즈 2승째를 거둔다.
=== 4차전 ===
||<-15><:><bgcolor=#007fff> {{{#ffffff '''한국시리즈 4차전 10.04(목) 18:00, [[구덕 야구장|{{{#ffffff 구덕 야구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007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김일융]] ||<:> 1 ||<:> 0 ||<:> 0 ||<:> 1 ||<:> 1 ||<:> 0 ||<:> 4 ||<:> 0 ||<:> 0 ||<:><bgcolor=#dcdcdc> '''7''' ||<:> 10 ||
||<bgcolor=#87CEEB><:> '''[[롯데 자이언츠|{{{#ed1c24 롯데}}}]]''' ||<:> [[임호균]] ||<:> 0 ||<:> 0 ||<:> 0 ||<:> 0 ||<:> 0 ||<:> 0 ||<:> 0 ||<:> 0 ||<:> 0 ||<:><bgcolor=#dcdcdc> '''0''' ||<:> 4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MBC|[[파일:mbc1981.png|width=50]]]] | 캐스터: 김용 | 해설: 허구연''' ||
* '''승리''' : [[파일:samsung_lions_logo_1982.png|width=20]] [[김일융]] (8이닝 무실점)
* '''패배''' : [[파일:attachment/lottegiantsoldlogo11.jpg|width=20]] [[임호균]] (4.1이닝 3실점)
* '''심판''' : 주심 김광철/1루 이규석/2루 /3루 김동앙/좌선 오광소/우선 황석중
최동원에 가려져 있지만 임호균은 1984년 롯데에서 최동원에 이은 제2선발로 활약하며 롯데의 후기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임호균이 최동원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었기에 최동원이 그렇게 활약할 수 있었다는 데에는 대부분의 팬들이 이견을 달지 않는다.] 임호균은 1984시즌 롯데의 투수진 중 최동원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2자리 승수를 거둔 투수였다. 10승 9패로 이중 3승은 친정팀 삼미를 상대로 거두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삼성의 선발은 [[김일융]]으로 투타 모두에서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한 삼성은 5회까지 3점을 먼저 내고 이후에도 정현발과 송일수의 홈런을 곁들여 4점을 더 보태 7:0으로 화끈한 완승을 거둔다.
삼성의 선발 김일융은 8이닝 4피안타 8탈삼진으로 롯데 타선을 가볍게 누르고 시리즈 2승을 따낸다.
=== 5차전 ===
||<-15><:><bgcolor=#007fff> {{{#ffffff '''한국시리즈 5차전 10.06(토)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ffffff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87CEEB><:> '''[[롯데 자이언츠|{{{#ed1c24 롯데}}}]]''' ||<:> [[최동원]] ||<:> 0 ||<:> 0 ||<:> 0 ||<:> 0 ||<:> 1 ||<:> 1 ||<:> 0 ||<:> 0 ||<:> 0 ||<:><bgcolor=#dcdcdc> '''2''' ||<:> 4 ||
||<:><bgcolor=#007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 ||<:> 0 ||<:> 0 ||<:> 0 ||<:> 0 ||<:> 0 ||<:> 2 ||<:> 1 ||<:> 0 ||<:> - ||<:><bgcolor=#dcdcdc> '''3''' ||<:> 6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KBS1|[[파일:KBS 1 logo[1].png|width=45]]]] | 캐스터: 이장우 | 해설: 하일성''' ||
* '''승리''' : [[파일:samsung_lions_logo_1982.png|width=20]] [[김일융]] (3이닝 무실점)
* '''패배''' : [[파일:attachment/lottegiantsoldlogo11.jpg|width=20]] [[최동원]] (8이닝 3실점 완투패)
* '''심판''' : 주심 김옥경/1루 김동앙/2루 이규석/3루 오광소/좌선 /우선
원래 김시진이 올라올 계획이었지만 3차전에 당한 부상이 회복되지 않았고 한국시리즈 들어 부진했기 때문에 권영호가 선발로 대신 등판한다.
경기 초반은 최동원이 5회까지 3안타만을 허용하며 무실점으로 던지고 있는 롯데가 2:0으로 리드를 잡아나갔으나 계속된 연투에 지친 최동원이 6회에 홍승규의 3루타와 장효조의 적시타로 인해 1점을 내줬고, 이후 장효조의 도루와 롯데의 실책으로 2-2 동점이 된다. 계속되는 연투에 지친 최동원을 구원 등판할 투수가 롯데에는 없었고 최동원은 8회까지 완투한다.
이 상황에서 7회에 삼성은 원래 6차전 선발로 내정했던 김일융을 투입하는 강수를 둔다. 그리고 김일융은 그 기대에 호응하듯 이후 3이닝을 무실점을 막았으며 그 사이 7회말에 대타 정현발이 솔로홈런을 날리면서 승부를 결정짓는다. 구원 등판한 김일융은 시리즈 3승을 먼저 거둔 반면, 최동원은 6피안타 6K로 호투했으나 [[완투패]]를 기록하게 된다.
최동원을 투입하고도 진 롯데로서는 이제 남은 길이 없었다. 애초에 최동원 하나만 믿고 가기로 한 시리즈였고, 그렇다고 다른 투수들을 쓰기에는 너무나도 불안했다. 반면 삼성은 최동원이 등판하지 않을 6차전만 잡으면 되기에 우승은 따놓은 당상인 듯했다. 1, 3, 5차전을 모두 완투한 투수가 6차전에 올라온다는 것 자체가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는 일이고, 설령 올라온다고 하더라도 전날 8이닝을 던진 투수가 제 컨디션일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렇게 [[경기는 삼성 쪽으로 기울고|시리즈는 삼성 쪽으로 기울어갔다.]]
=== 6차전 ===
||<-15><bgcolor=#87CEEB><:> {{{#ed1c24 '''한국시리즈 6차전 10.07(일)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ed1c24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074ca1>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김시진]] ||<:> 0 ||<:> 0 ||<:> 0 ||<:> 1 ||<:> 0 ||<:> 0 ||<:> 0 ||<:> 0 ||<:> 0 ||<bgcolor=#dcdcdc><:> '''1''' ||<:> - ||
||<bgcolor=#87CEEB><:> '''[[롯데 자이언츠|{{{#ed1c24 롯데}}}]]''' ||<:> [[임호균]] ||<:> 0 ||<:> 0 ||<:> 0 ||<:> 3 ||<:> 0 ||<:> 0 ||<:> 0 ||<:> 3 ||<:> - ||<bgcolor=#dcdcdc><:> '''6''' ||<:> -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MBC|[[파일:mbc1981.png|width=50]]]] | 캐스터: 김용 | 해설: 허구연''' ||
* '''승리''' : [[파일:attachment/lottegiantsoldlogo11.jpg|width=20]] [[최동원]](5이닝 무실점)
* '''패배''' : [[파일:samsung_lions_logo_1982.png|width=20]] [[김시진]](8이닝 6실점 완투패)
* '''심판''' : 주심 황석중/1루 이규석/2루 김동앙/3루 오광소/좌선 김옥경/우선 김광철
삼성의 선발은 부상으로 5차전을 거르고 나온 김시진. 사실 김시진은 부상이 회복되지 않은 채 나온 것이었다. 김시진이 회상하기를 진통제 먹고 던졌는데 공을 던지니까 진통제로도 막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시작되었지만 그걸 참으면서 자존심을 위해 던졌다고 한다. 무엇보다 [[김일융]]이 한국 시리즈 내내 호투하면서 최동원과 김일융의 대결구도가 흐르는 것도 김일융에게 라이벌 의식이 있었던 김시진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롯데는 일단 예정대로 2선발 [[임호균]]이 등판했다.
선취점은 삼성이 냈다. 이만수와 장효조의 적시타로 1점을 냈고 이제 에이스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올라온 김시진의 호투만 있으면 삼성이 이길 것 같았는데 4회말 1사 조성옥의 볼넷으로 인한 출루 이후에 롯데의 클린업 트리오인 홍문종, 김용철, 김용희가 연속 안타를 터트리고 그 후 김민호의 땅볼로 3점을 뽑아내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런데 4회까지 1실점으로 호투하고 있던 롯데 선발 임호균이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KBS N 스포츠에서 [[강병철]] 감독이 밝힌 이유는 임호균의 손가락 살이 까져서 공을 던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마땅히 구원투수로 올라올 선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최동원이 등판했다.'''
벼랑 끝에 몰린 롯데는 전날 완투한 최동원을 5회부터 다시 등판시켰다. 최동원이 등판한 5회 이후 삼성 타선은 최동원을 상대로 단 3안타만을 기록하며 맥없이 물러나고 만다. 이후 롯데 타자들이 최동원의 역투에 보답하듯 8회에 3점을 더 내며 6:1로 롯데가 승리한다.
에이스의 자존심을 찾으려 했던 김시진은 완투 끝에 '''한국시리즈 2패'''를 당한다. 5회부터 구원등판한 최동원은 5이닝 3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으로 구원승을 기록하며 시리즈 3승을 거둔다.
3:3의 시리즈 스코어로, 롯데와 삼성이 비슷한 상황인 것 같지만 롯데는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인 최동원과 임호균을 모두 소모했다. 삼성은 5차전에 3이닝을 던진 것을 제외하면 3일을 쉰 김일융을 7차전에 낼 수 있었기에, 여전히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었다.
=== 7차전 ===
||<-15><bgcolor=#87CEEB><:> {{{#ed1c24 '''한국시리즈 7차전 10.09(화)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ed1c24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87CEEB><:> '''[[롯데 자이언츠|{{{#ed1c24 롯데}}}]]''' ||<:> [[최동원]] ||<:> 0 ||<:> 0 ||<:> 1 ||<:> 0 ||<:> 0 ||<:> 0 ||<:> 2 ||<:> 3 ||<:> 0 ||<bgcolor=#dcdcdc><:> '''6''' ||<:> 7 ||
||<:><bgcolor=#007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김일융]] ||<:> 0 ||<:> 3 ||<:> 0 ||<:> 0 ||<:> 0 ||<:> 1 ||<:> 0 ||<:> 0 ||<:> 0 ||<bgcolor=#dcdcdc><:> '''4''' ||<:> 8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역대 한국프로야구 경기 중 최초로 KBS와 MBC에서 동시에 생중계한 경기.]: [[KBS1|[[파일:KBS 1 logo[1].png|width=45]]]] | 캐스터: 이장우 | 해설: 하일성''' [br] '''[[MBC|[[파일:mbc1981.png|width=50]]]] | 캐스터: 김용 | 해설: 허구연''' ||
* '''승리''' :[[파일:attachment/lottegiantsoldlogo11.jpg|width=20]] [[최동원]] (9이닝 4실점 완투승)
* '''패배''' : [[파일:samsung_lions_logo_1982.png|width=20]] [[김일융]] (7.1이닝 6실점)
* '''심판''' : 주심 이규석/1루 김옥경/2루 오광소/3루 김광철/좌선 황석중/우선 김동앙
==== 선발 수비 포지션 ====
||<table bordercolor=#87ceeb><#ffffff><table width=70%><table align=center><-5><:> [[롯데 자이언츠|[[파일:attachment/lottegiantsoldlogo11.jpg|width=50]]]] {{{+1 '''{{{#87ceeb 롯데 자이언츠의 선발 라인업}}}'''}}} ||
||<-5><#87ceeb> ||
||<:><rowbgcolor=#5e5e5e><width=15%> {{{#!wiki style="background-color:#00264F; margin : 2px ; border-radius : 3px ; display:inline-block ; color :#00264F; font-style: normal ; width:80px ; text-align: center"
{{{-1 '''[[김재상|{{{#CD002A 김재상}}}]]'''}}}}}} [br] {{{-3 [[좌익수|{{{#fff LF}}}]]}}} ||<width=15%> ||<width=15%><:> {{{#!wiki style="background-color:#00264F; margin : 2px ; border-radius : 3px ; display:inline-block ; color :#00264F; font-style: normal ; width:80px ; text-align: center"
{{{-1 '''[[홍문종(야구)|{{{#CD002A 홍문종}}}]]'''}}}}}} [br] {{{-3 [[중견수|{{{#fff CF}}}]]}}} ||<width=15%> ||<width=15%><:> {{{#!wiki style="background-color:#00264F; margin : 2px ; border-radius : 3px ; display:inline-block ; color :#00264F; font-style: normal ; width:80px ; text-align: center"
{{{-1 '''[[유두열|{{{#CD002A 유두열}}}]]'''}}}}}} [br] {{{-3 [[우익수|{{{#fff RF}}}]]}}} ||
||<rowbgcolor=#5e5e5e><:> ||<:> {{{#!wiki style="background-color:#00264F; margin : 2px ; border-radius : 3px ; display:inline-block ; color :#00264F; font-style: normal ; width:80px ; text-align: center"
{{{-1 '''[[정영기|{{{#CD002A 정영기}}}]]'''}}}}}}[br] {{{-3 [[유격수|{{{#fff SS}}}]]}}} || ||<:> {{{#!wiki style="background-color:#00264F; margin : 2px ; border-radius : 3px ; display:inline-block ; color :#00264F; font-style: normal ; width:80px ; text-align: center"
{{{-1 '''[[박영태|{{{#CD002A 박영태}}}]]'''}}}}}} [br] {{{-3 [[2루수|{{{#fff 2B}}}]]}}} || ||
||<rowbgcolor=#5e5e5e><:> {{{#!wiki style="background-color:#00264F; margin : 2px ; border-radius : 3px ; display:inline-block ; color :#00264F; font-style: normal ; width:80px ; text-align: center"
{{{-1 '''[[김용희|{{{#CD002A 김용희}}}]]'''}}}}}} [br] {{{-3 [[3루수|{{{#fff 3B}}}]]}}} || ||<:> {{{#!wiki style="background-color:#00264F; margin : 2px ; border-radius : 3px ; display:inline-block ; color :#00264F; font-style: normal ; width:80px ; text-align: center"
{{{-1 '''[[최동원|{{{#CD002A 최동원}}}]]'''}}}}}} [br] {{{-3 [[선발투수|{{{#fff SP}}}]]}}} || ||<:> {{{#!wiki style="background-color:#00264F; margin : 2px ; border-radius : 3px ; display:inline-block ; color :#00264F; font-style: normal ; width:80px ; text-align: center"
{{{-1 '''[[김용철(야구)|{{{#CD002A 김용철}}}]]'''}}}}}} [br] {{{-3 [[1루수|{{{#fff 1B}}}]]}}} ||
||<:><-2><rowbgcolor=#5e5e5e> {{{#!wiki style="background-color:#00264F; margin : 2px ; border-radius : 3px ; display:inline-block ; color :#00264F; font-style: normal ; width:80px ; text-align: center"
{{{-1 '''[[박용성(야구선수)|{{{#CD002A 박용성}}}]]'''}}}}}} [br] {{{-3 [[지명타자|{{{#fff DH}}}]]}}} ||<:> {{{#!wiki style="background-color:#00264F; margin : 2px ; border-radius : 3px ; display:inline-block ; color :#00264F; font-style: normal ; width:80px ; text-align: center"
{{{-1 '''[[한문연|{{{#CD002A 한문연}}}]]'''}}}}}} [br] {{{-3 [[포수|{{{#fff C}}}]]}}} ||<-2> ||
||<-5><#87ceeb> ||
||<table bordercolor=#007FFF><#ffffff><table width=70%><table align=center><-5><:> [[삼성 라이온즈|[[파일:samsung_lions_logo_1982.png|width=50]]]] {{{+1 '''{{{#007FFF 삼성 라이온즈의 선발 라인업}}}'''}}} ||
||<-5><#007FFF> ||
||<:><rowbgcolor=#5e5e5e><width=15%> {{{#!wiki style="background-color:#074CA1; margin : 2px ; border-radius : 3px ; display:inline-block ; color :#074CA1; font-style: normal ; width:80px ; text-align: center"
{{{-1 '''[[홍승규|{{{#C0C2C4 홍승규}}}]]'''}}}}}} [br] {{{-3 [[좌익수|{{{#fff LF}}}]]}}} ||<width=15%> ||<width=15%><:> {{{#!wiki style="background-color:#074CA1; margin : 2px ; border-radius : 3px ; display:inline-block ; color :#074CA1; font-style: normal ; width:80px ; text-align: center"
{{{-1 '''[[장태수(1957)|{{{#C0C2C4 장태수}}}]]'''}}}}}} [br] {{{-3 [[중견수|{{{#fff CF}}}]]}}} ||<width=15%> ||<:><width=15%> {{{#!wiki style="background-color:#074CA1; margin : 2px ; border-radius : 3px ; display:inline-block ; color :#074CA1; font-style: normal ; width:80px ; text-align: center"
{{{-1 '''[[장효조|{{{#C0C2C4 장효조}}}]]'''}}}}}} [br] {{{-3 [[우익수|{{{#fff RF}}}]]}}} ||
||<rowbgcolor=#5e5e5e><:> ||<:> {{{#!wiki style="background-color:#074CA1; margin : 2px ; border-radius : 3px ; display:inline-block ; color :#074CA1; font-style: normal ; width:80px ; text-align: center"
{{{-1 '''[[오대석|{{{#C0C2C4 오대석}}}]]'''}}}}}}[br] {{{-3 [[유격수|{{{#fff SS}}}]]}}} || ||<:> {{{#!wiki style="background-color:#074CA1; margin : 2px ; border-radius : 3px ; display:inline-block ; color :#074CA1; font-style: normal ; width:80px ; text-align: center"
{{{-1 '''[[배대웅|{{{#C0C2C4 배대웅}}}]]'''}}}}}} [br] {{{-3 [[2루수|{{{#fff 2B}}}]]}}} || ||
||<rowbgcolor=#5e5e5e><:> {{{#!wiki style="background-color:#074CA1; margin : 2px ; border-radius : 3px ; display:inline-block ; color :#074CA1; font-style: normal ; width:80px ; text-align: center"
{{{-1 '''[[김근석|{{{#C0C2C4 김근석}}}]]'''}}}}}} [br] {{{-3 [[3루수|{{{#fff 3B}}}]]}}} || ||<:> {{{#!wiki style="background-color:#074CA1; margin : 2px ; border-radius : 3px ; display:inline-block ; color :#074CA1; font-style: normal ; width:80px ; text-align: center"
{{{-1 '''[[김일융|{{{#C0C2C4 김일융}}}]]'''}}}}}} [br] {{{-3 [[선발 투수|{{{#fff SP}}}]]}}} || ||<:> {{{#!wiki style="background-color:#074CA1; margin : 2px ; border-radius : 3px ; display:inline-block ; color :#074CA1; font-style: normal ; width:80px ; text-align: center"
{{{-1 '''[[함학수|{{{#C0C2C4 함학수}}}]]'''}}}}}} [br] {{{-3 [[1루수|{{{#fff 1B}}}]]}}} ||
||<:><-2><rowbgcolor=#5e5e5e> {{{#!wiki style="background-color:#074CA1; margin : 2px ; border-radius : 3px ; display:inline-block ; color :#074CA1; font-style: normal ; width:80px ; text-align: center"
{{{-1 '''[[이만수|{{{#C0C2C4 이만수}}}]]'''}}}}}} [br] {{{-3 [[지명타자|{{{#fff DH}}}]]}}} ||<:> {{{#!wiki style="background-color:#074CA1; margin : 2px ; border-radius : 3px ; display:inline-block ; color :#074CA1; font-style: normal ; width:80px ; text-align: center"
{{{-1 '''[[송일수|{{{#C0C2C4 송일수}}}]]'''}}}}}} [br] {{{-3 [[포수|{{{#fff C}}}]]}}} ||<-2> ||
||<-5><#007FFF> ||
==== 선발 타순 ====
||<-3><bgcolor=#87CEEB> {{{#ed1c24 '''롯데 자이언츠'''}}} ||<-3><bgcolor=#007fff> {{{#ffffff '''삼성 라이온즈'''}}} ||
||<bgcolor=#FFFFF0> {{{#ed1c24 타순}}} ||<bgcolor=#FFFFF0> {{{#ed1c24 선수명}}} ||<bgcolor=#FFFFF0> {{{#ed1c24 포지션}}} ||<bgcolor=#fecd00> {{{#ffffff 타순}}} ||<bgcolor=#fecd00> {{{#ffffff 선수명}}} ||<bgcolor=#fecd00> {{{#ffffff 포지션}}} ||
|| 1 || [[김재상]] || [[좌익수|LF]] || 1 || [[홍승규]] || [[좌익수|LF]] ||
|| 2 || [[홍문종(야구)|홍문종]] || [[중견수|CF]] || 2 || [[장태수(1957)|장태수]] || [[중견수|CF]] ||
|| 3 || [[김용희]] || [[3루수|3B]] || 3 || [[장효조]] || [[우익수|RF]] ||
|| 4 || [[김용철(야구)|김용철]] || [[1루수|1B]] || 4 || [[이만수]] || [[지명타자|DH]] ||
|| 5 || [[유두열]] || [[우익수|RF]] || 5 || [[김근석]] || [[3루수|3B]] ||
|| 6 || [[박용성(야구선수)|박용성]] || [[지명타자|DH]] || 6 || [[함학수]] || [[1루수|1B]] ||
|| 7 || [[한문연]] || [[포수|C]] || 7 || [[오대석]] || [[유격수|SS]] ||
|| 8 || [[박영태]] || [[2루수|2B]] || 8 || [[배대웅]] || [[2루수|2B]] ||
|| 9 || [[정영기]] || [[유격수|SS]] || 9 || [[송일수]] || [[포수|C]] ||
|| SP ||<-2> [[최동원]] || SP ||<-2> [[김일융]] ||
==== 경기 내용 ====
[[https://www.youtube.com/watch?v=C7anXx1ow1M|7차전 6~9회 하이라이트]]
한국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7차전이 열리게 되었다. 당시 시리즈 시작 전부터 져 주기 게임으로 삼성에 대한 숱한 비난여론으로 화제가 되었던 시리즈였고,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가는 대접전으로 세간의 폭발적인 관심을 반영하듯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7차전은 입장 정원을 훌쩍 넘는 35,000명을 불러들였다.
원래 7차전은 10월 8일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이 날 서울에 비가 내려 7차전 날짜가 하루 밀렸다. 아무리 최동원이 무쇠팔이라 해도 5차전과 6차전 이틀간 13이닝을 던진 상황에서 7차전까지 연투를 했다면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 자락 가을비가 지쳐 있던 최동원의 어깨에 일말의 휴식을 준 셈이다. 결국 이 비가 사실상 양 팀의 승부를 가른 셈이 됐다.
최동원은 계속된 연투에 지쳐 구위가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삼성은 2회말 1사 만루에서 배대웅의 2루수 앞 땅볼과 송일수의 적시타로 먼저 3점을 내고 이후에도 오대석의 솔로 홈런을 더해 4점을 선취하며 승기를 굳히는 듯했다.
롯데의 반격은 3회초에 시작됐다. 박영태와 정영기의 출루 이후 나온 김재상의 1타점 적시타를 통해 추격을 시작한 롯데는, 이전 타석까지 한국시리즈 내내 19타수 1안타에 허덕이다가 겨우 중전 안타로 나간 유두열을, 장효조의 실책성 플레이로[* 일명 '장효조 만세 사건'이라 부르는 실책이였다. 라이온즈의 승리의 아이콘인 [[이재용]]과 달리 부친 [[이건희]]는 필패의 아이콘으로 유명한데, 당시 이기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겼다 싶어 직관을 오자마자 장효조의 실책이 터졌고 연이어 유두열의 홈런을 맞고 패배한 것에 트라우마가 생겨 그 이후로 직관을 잘 안 온다고 한다. 아무튼 장효조는 이 사건으로 인해 큰 경기에 약한 패배의 상징이라는 점이 찍혀 훗날 트레이드된다.] 나온 한문연의 3루타로 불러들이고 이어서 나온 정영기의 적시타를 통해 3:4까지 추격한다. 이 때 장효조가 적극적으로 앞으로 대시하면 잡을 수 있는 타구였으나, 바로 앞타석 한문연의 타구에 만세를 부른 실책으로 위축되어서인지 한 박자 늦게 타구를 쫓아가서 원바운드로 바로 앞에 떨어져 안타가 되어버렸다.
이후 '''운명의 8회'''. 롯데는 1사 이후 김용희와 김용철이 연속 안타로 출루하면서 1사 1, 3루라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었다. 이때 김일융은 3일을 쉬었다고는 하나 2,4차전 선발등판에 5차전 구원등판까지 하고 7차전에 출전했기 때문에 상당히 지쳐있었고, 이 경기에서는 최동원보다 안타를 더 많이 맞은 상황에서 위기가 계속되자 체력에 한계를 느끼고 몇번이나 덕아웃을 쳐다보며 구원요청을 하고 있었다. 그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김영덕 감독의 머리속은 굉장히 복잡했겠지만, 결국 시리즈 내내 호투했던 김일융의 관록과 노련함을 믿고 싶었는지 구원요청을 외면하고 만다.
그리고 다음 타석에는 [[유두열]]이 들어섰다. 볼카운트는 1-1. 롯데 응원석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합창으로 울려퍼지는 가운데, 김일융은 1루에 힘없는 견제구를 던진 뒤 최소한 장타만은 맞기 않기 위해 몸쪽으로 낮게 파고드는 패스트볼을 던졌다.[* 치지않고 가만 놔뒀으면 주심이 볼로 선언 할수도 있을 만큼 낮은 볼이었다.] 20타수 2안타[* 그래도 그 2개의 안타 중 하나가 7차전 당일, 그것도 8회 역전 홈런 바로 전 타석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름 타격감을 회복하고 있었던 상황인 셈.]라는 부진한 타격에 자신이 없었던 유두열은 병살타만은 치지 않길 바라면서 차라리 희생플라이라도 내자는 생각에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리고 백스핀이 걸린 타구는 왼쪽 담장을 훌쩍 넘겨 폴대 오른쪽을 살짝 지나갔다.''' 역전 쓰리런 홈런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점수는 이제 '''롯데 6 : 4 삼성.'''
이후 김일융은 바로 강판되고 몸을 풀고 있던 황규봉이 구원등판하지만 이미 분위기는 롯데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졌고, 거기에다 유두열의 역전 홈런을 계기로 힘을 얻은 최동원의 구위도 더욱 위력을 발휘했다.삼성은 8회 1사 3루, 9회 2사 3루의 기회를 잡고 역전을 노려보지만, 8회말에는 [[오대석]]의 깊은 2루수 플라이에 3루주자 [[함학수]]가 홈으로 언더베이스를 하다가 [[박영태]]의 정확한 송구로 아웃당했다. 이후 9회말 1사 1루에서 [[박승호(야구)|박승호]]가 좌중간 안타를 때려냈으나 [[송일수]]가 3루까지 가는 사이에 2루까지 가는 무리한 주루로 아웃되었다.
[[파일:최.jpg]]
8회말 함학수가 아웃되어 공수교대되는 순간, 최동원와 한문연이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 이 사진은 이듬해인 1985년도판 KBO의 프로야구 연감 표지를 장식했다.
2사에 몰린 삼성의 타석에는 장태수가 올라왔다. 풀카운트에서 최동원의 라이징 패스트볼이 들어오자 하프스윙 후 볼넷을 직감하고 1루로 뛰어갔지만, 주심 선에서 스윙이 인정되어 삼진 아웃이 되었다. 최동원은 방방 뛰며 환호하면서 포수 한문연과 힘차게 포옹하고, 순식간에 달려온 선수들과 기쁨을 함께 했다.
이로써 롯데 자이언츠의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 결정되고, '''최동원은 가을의 전설이 되었다.'''
== 기타 ==
>"그 다음날 생각해보니까, '이상하다. 내가 정말 4승을 할 수 있었던가?' 해 놓고도, 결과가 나와 있는데도, 제가 제 자신을 못 믿는 거 있죠."
>----
>최동원이 인터뷰를 통해 당시를 회상하며 (KBS 스포츠뉴스 1999년 10월 21일[*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롯데가 다시 삼성을 상대로 4승 3패의 역전 드라마를 쓰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비록 힘이 바닥나서 한화에게 졌지만~~ 직후의 일이다.] 중에서)
* 이 시리즈에서 최동원이 거둔 성적은 '''5경기 등판 4승 1패 4완투 2완투승 1완봉승 1완투패 1구원승 40이닝 투구 평균자책점 1.80 WHIP 1.08'''. 그런데 비록 최동원에 묻히긴 했으나 [[김일융]]도 2,4,5차전 승리, 7차전 패전으로 시리즈 3승 1패를 거뒀다. 7차전을 앞둔 상황에서 두 투수는 모두 3승을 거둔 상태. 즉 7차전은 '''시리즈 3승 투수간의 대결'''로, 누가 승리투수가 되든 4승 투수가 등장하는 경기였던 셈이다.
* 한국 시리즈에서 최동원의 첫 삼진 제물이었던 장태수는 7차전 9회말 2아웃에서 시리즈를 끝내는 마지막 삼진을 당하며 한국시리즈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이로 인해 늘 1984년 한국시리즈 영상이 나오면 항상 마지막 삼진을 당하는 타자로 등장을 하게 된다.
* 이 결과에 경악한 삼성은 다음 해인 1985년에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1985년 통합우승|한국시리즈조차 생략해 버리고 전후기 리그 통합 우승을 일궈낸다.]] 그것도 당시 롯데의 홈인 [[구덕 야구장]]에서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후 삼성은 18년 뒤인 2002년, 홈에서 [[LG 트윈스]]를 상대로 극적인 역전 한국 시리즈 우승을 이뤘다. 이는 원년 6개 멤버 구단들 가운데 가장 늦은 우승으로 기록된다.
* 이전에도 최동원은 혼자서 시리즈 우승을 일군 적이 있다. 정규시즌에서도 롯데 팀 전체가 소화한 324이닝 중 최동원 혼자서 206 이닝을 소화하는 괴력을 과시하기도 했고, [[1981년 코리안시리즈]]에서도 무승부 포함 6경기에 모두 등판해 3승 1세이브를 거두며 롯데의 우승을 이끈다. 팀이 소화한 6경기 54이닝 중 혼자서 42⅓이닝을 투구했다.
* 10월 25일 - 1차전 0:3 패, 9이닝 3실점 완투
* 10월 26일 - 2차전 4:5 패, 7이닝 무실점 구원
* 10월 27일 - 3차전 6:6 무, 6이닝 3실점 구원
* 10월 29일 - 4차전 7:4 승, 7이닝 3실점 1자책 선발승, 8회 2사 만루 구원(1루수)
* 10월 30일 - 5차전 5:3 승, 3이닝 무실점 구원
* 10월 31일 - 6차전 6:4 승, 9이닝 4실점 완투
당시 삼성 코치였던 [[박영길]]은 롯데 실업 감독 시절에 이러한 최동원의 원맨쇼를 직접 보았기 때문에 혼자서 롯데가 아닌 OB를 밀어줄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김영덕 감독을 위시한 나머지 삼성 코칭스태프는 페넌트레이스에서 최동원을 상대로 잘 공략했다면서 기각했다. 그리고 시리즈 후 결과는 어느 쪽이 옳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 최동원은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무엇이 가장 하고 싶냐는 질문에 "자고 싶다"라고 말했다. 우승 축하 파티 도중에 쌍코피를 터뜨릴 정도였으니... 당시 7차전의 해설을 맡았던 [[허구연]]도 그를 보고 무척 피곤해 보인다고 얘기했다.
* 한국시리즈 MVP는 한국 시리즈 4승을 한 최동원이 아니라 7차전에서 3점 홈런을 날린 유두열. --역시 인생한방-- 그리고 삼성의 이만수는 시즌에서 밀리고 최동원이 시즌 MVP를 가져갔다.[* 물론 이만수는 타격왕 밀어주기 논란 때문에 충분히 그럴 만 했다. 이해 최동원은 시즌 27승으로 다승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탈삼진은 별도의 수상을 하지 않았지만 탈삼진도 1위였다. 이해 최동원이 세운 탈삼진 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 [[김영덕]] 감독 항목을 보면 알수 있지만 OB에서 삼성으로 이적 과정에서 김영덕 감독과 OB 사이에는 악연이 있었던 것도 상대방 고를때 고려되었었던 점이라고 볼수 있다.[* 원래 삼성에서 영입 제의가 왔던 것은 OB의 투수코치로 있던 김성근이나 그걸 김영덕이 낼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해당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와전된 것이다.. [[김성근]]이 김영덕과 상의를 했는데 그냥 있으라 해서 있었더니 정작 김영덕이 선임되었다. 그리고 김성근은 OB 감독을 맡아 전년도 꼴찌를 승률 1위로 만드는 기적을 발휘한다. 그래봤자 한국시리즈 진출을 못했지만...]
* [[최동원]] 사후 방영된 다큐멘터리에서 [[김시진]]이 고백하길, 절친이기도 하지만 라이벌이었던 최동원을 이겨보는게 소원이었다고. 아마 때부터 최동원에 번번히 막혀서 우승을 못했었던 것이 큰 듯. 한양대 시절 연세대의 최동원에게 밀려서 우승 실패, 육군 경리단에 복무하면서 실업야구 우승을 노렸지만 코리안 시리즈 전경기 출장을 한 [[롯데 자이언트]]의 최동원에 밀려서 또 실패, 프로 들어와서 한국 시리즈 우승을 노렸지만 또다시 실패. ~~하지만 최동원은 못해 본 자이언츠 감독은 해봤다~~
* 7차전에 유두열은 원래 5번이 아닌 6번으로 내려고 했었으나 기록원의 실수로 박용성과 타순이 바뀌었다. 기록원이 다시 라인업을 적으려고 했으나 강병철 감독은 그냥 그대로 놔두라고 했다. 강병철 감독은 "왠지 그냥 바꾸고 싶지가 않았다" 라고 말했다.
* 유두열은 7차전의 홈런으로 인해 이듬해 '''공포의 1할타자'''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렇다고 1985년에 결코 못친 건 아니다. 팀내 최다 안타에 타율도 0.287을 기록했다.
* 7차전 4-3으로 지고 있던 유두열의 타석 때 강병철 감독이 잠시 타임을 부르고 유두열에게 "스퀴즈 사인을 낼지도 모르니 벤치를 주시하라" 고 말했다. 그때 유두열의 대답은... '''네에?''' 라고 놀라면서 반문했고, 이때 강병철 감독은 속으로 '그렇게 번트에 자신이 없나...' 라고 생각하면서 결국 스퀴즈 사인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유두열이 반문할만도 한게 당시 3루 주자가 김용희였기 때문이다. 김용희는 빠른 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작전 실패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던 듯.
*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롯데의 페넌트레이스 전후기 통합 승률은 전체 4위인 .510. 역대 한국시리즈 우승팀 중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팀인 [[두산 베어스]]의 .508에 이어 두번째로 낮은 승률이다. 또한 이 시리즈는 [[1999년 한국시리즈]]와 더불어 정규시즌 승률 4위팀이 우승한 유이한 시리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때가 전/후기 리그제라서 모르는 사람이 많다.~~ ~~99년도 매직/드림 양대리그제여서 4위인줄도 몰랐다~~
* 우승 이후 롯데는 자사그룹 중 하나인 [[롯데제과]]에서 만드는 [[빼빼로]] 광고에 우승 당시 멤버들을 기용한 광고를 제작하여 방영했다. [[https://youtu.be/xqihMQhC-WM|당시 광고영상]] 참고로 이때 돈을 제대로 주지 않았는지 당시 광고를 찍고 돈을 제대로 못 받았다는 유두열의 회고가 있다.[[http://sports.news.nate.com/view/20090810n07766|롯데 'V1의 주역' 유두열을 만나다]]
* 이후 [[롯데 자이언츠]]의 [[1992년 한국시리즈|두번째 우승]]까진 꼬박 8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 때도 [[염종석|안경잡이 우완 에이스]]는 팔이 빠져라 던져야 했고, 감독은 여전히 [[강병철]]이었다. 이후 모든 야구팬들은 '''롯데의 우승에는 안경 우완 에이스와 강병철, 그리고 혹사가 필요하다.'''는 미신 아닌 미신을 믿게 되었다.(…) ~~[[박세웅(1995)|세웅아! 도망쳐!]]~~
*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구단주였던 [[이건희]] 당시 부회장이 이 시리즈 이후 지금까지 야구장을 찾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야구장에 갈 때마다 삼성이 매번 져서(...). --[[아들]]은 [[이재용#s-5.7|야구장 갈 때마다 이기는데...]]-- 한국시리즈 1차전에 삼성 구단 대표자 자격으로 대구구장을 찾았는데 이날 삼성은 앞서 서술한대로 한국시리즈 사상 첫 완봉패의 희생양이 됐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이들의 입에서 회자되는 것이 7차전 직관. 이 부회장은 자신이 야구장에 갈 때마다 지는 것이 마음에 걸려 이날도 태평로 삼성 본관 집무실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삼성이 4:1로 앞서고 최동원의 구위가 떨어진 것을 확인한 이 부회장은 그때서야 잠실야구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잠실야구장 좌석에 앉자마자 발생한 사건은 '''장효조 만세 사건'''(...). 결국 삼성은 거짓말처럼 대역전패를 당했고 이후의 충격으로 그는 야구장 직관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에 아들이 아버지가 못 이룬 직관 우승의 꿈을 이뤘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야구사랑은 실로 대단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연습구장으로는 톱클래스인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경산 볼파크]]의 건립을 지시한 사람은 다름아닌 이 회장이었다. 생전에 병상에 누워 있었을때도 야구 중계는 거의 매일 시청했었다고 전해진다.]
* 한국시리즈가 전후기 우승팀의 대결로 치러진 시리즈에서 후기리그 우승팀이 승리한 유일한 시리즈.
* [[강병철]] 감독과 [[김영덕]] 감독은 8년후 다시 한국시리즈에서 재회한다. 물론 김영덕 감독은 [[빙그레 이글스|연거푸 준우승을 했던 충청권의 어느팀]]의 감독을 맡아 복수를 노렸으나 또다시 패.
* 경기가 마무리되고 선수단이 마운드로 뛰어나와 환호할 때, 손팻말을 든 관중 1명을 시작으로 관중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해 같이 펄쩍펄쩍 뛰면서 선수들의 등짝을 때려대거나 끌어안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어차피 우승 확정 순간이어서 딱히 제재하려 하지도 않았던 듯하지만 희귀한 장면인 건 사실이다.[* 80년대만해도 중요한 야구 경기가 끝났을 때 몇몇 관중들이 난입하는 일이 제법 있었다.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도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승리한 [[MBC 청룡]]의 [[백인천]] 감독이 승리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 어린 팬 한 명이 멀리 뒤에서 카메라를 보고 V싸인을 하는 모습도 보였으니. 옛날에는 이러한 장면을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메이저리그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행크 아론]]이 [[베이브 루스]]를 뛰어넘는 715호 홈런을 칠 때도 관중 두 명이 뛰어들어 같이 베이스를 돌았으며, [[1960년 월드 시리즈]]에서도 [[빌 매저로스키]]가 7차전 끝내기 홈런을 치자 피츠버그 관중들이 무더기로 몰려나오는 바람에 매저로스키가 손으로 이리치우고 저리치우며 홈을 밟았다. 심지어 비교적 최근인 [[1993년 월드 시리즈]]에서도 [[조 카터]]가 끝내기 홈런을 치자 소수지만 그라운드로 뛰어나오는 일반인들이 보인다.]
* 한국시리즈의 잠실 중립경기 규정(5-7차전 잠실 중립경기)이 이 해부터 확립되어 2014년까지 지속되었다. 이전에는 1차전 전기리그 우승팀 홈구장, 2차전 후기리그 우승팀 홈구장, 3-7차전 동대문야구장(1982), 잠실야구장(1983) 순으로 치러졌으나 1983년에 MBC 청룡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2~7차전을 잠실에서 치러야 하는 상황이 일어나면서 규정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플레이오프 및 단일리그 도입 등으로 1~4차전 경기장의 선택은 변경되었지만 5~7차전은 잠실에서 개최되었다. 단, 1998년부터는 서울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시에는 잠실은 중립구장이 아닌 서울팀 홈구장으로 치러졌다.[* 1,2,6,7차전 리그 1위팀, 3~5차전 플레이오프 승리팀. --애당초 이랬어야 정상인데...--][* 그런데 1999년에 양대리그가 되었다가 2001년에 단일리그로 넘어오면서 [[두산 베어스|서울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중립구장 규정(5~7차전 잠실)이 그대로 적용되면서 [[2001년 한국시리즈]]는 3~6차전이 잠실에서 열리는 상황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당시 리그 1위팀인 삼성 라이온즈는 본의아니게 손해를 본 셈이 되었다.]
* 이 해 [[한국시리즈]] 최종 7차전 날짜가 10월 9일인데 이는 역대 한국시리즈 중에 가장 빠른 날짜에 최종전이 열린 기록이다. 다만 이 당시만 해도 포스트시즌이라고는 전기리그 우승팀과 후기리그 우승팀이 맞붙던 [[한국시리즈]] 밖에 없었기에[* [[KBO 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 제도가 신설된 것은 1985년, [[KBO 준플레이오프|준플레이오프]] 제도가 생긴 것은 1989년, [[KBO 와일드카드 결정전|와일드카드 결정전]]이 탄생한 것은 2015년이다.] 이런 기록이 가능했다.
* 삼성 라이온즈는 이로부터 18년후에야 [[2002년 한국시리즈|구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낸다. 이는 원년 멤버구단들 가운데서는 가장 늦다.
== 관련 문서 ==
* [[삼성 라이온즈/1984년]]
* [[롯데 자이언츠/역사]]
* [[클래식 시리즈]]
== 둘러보기 ==
[include(틀:한국프로야구 역대 포스트시즌 목록)]
[[분류:KBO 한국시리즈]][[분류:삼성 라이온즈]][[분류:롯데 자이언츠]] |
1985 런던 월드 게임 | [include(틀:역대 월드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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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1985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월드 게임]]. 50개국에서 약 4,000여명의 선수가 참가하였다.
== 이모저모 ==
* 19개 종목(+4개 시범종목)에서 개최되었다.
* [[태권도]]가 [[1988 서울 올림픽]]에서부터 시범종목으로 올라갔기 때문에 이 대회까지는 [[태권도]]가 [[월드 게임]]에서 개최되었다.
* 종합 우승을 [[이탈리아]]가 했는데, 이탈리아는 이 대회에서 개최된 모든 정식 종목(대분류)에서 최소한 금메달을 하나씩은 목에 거는 [[괴력]]을 선보였다.
[[분류:월드 게임]][[분류:엘리자베스 2세 시대]] |
1985 월드 시리즈 | #redirect 1985년 월드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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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츠쿠바 엑스포 | [include(틀:역대 엑스포)]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60px-EXPO_1985.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xpo85_toshiba.jpg]] [[도시바]]관.[* [[오카다 유키코]]가 생전 이 전시관 광고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xpo85_ibm.jpg]]
[[미쓰비시 그룹|미쓰비시]] 미래관과 일본IBM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Tsukuba_Expo_Center02.jpg]] 츠쿠바 엑스포 센터
[youtube(9WSVOlmN56w)]
당시 풍경을 찍은 영상
{{{+1 国際科学技術博覧会}}} (科学万博)
{{{+1 The International Exposition, Tsukuba, Japan, 1985}}} (Expo '85)
[목차]
== 개요 ==
1985년 3월 17일에서 9월 16일까지 일본 [[이바라키현]] [[츠쿠바시]][* 당시에는 츠쿠바연구학원도시로 선정된 여러 정과 촌의 연합체일 뿐이었다.]에서 열렸던 [[인정박람회]].[* 물론 당시 기준으로는 [[인정박람회]]가 아니었지만 현행 엑스포 기준에서는 [[인정박람회]]로 간주된다.] 주제는 '''인간, 주거, 환경과 과학 기술'''이었다. 당시 엑스포 마스코트는 '코스모 호시마루'(コスモ星丸)라는 외계인 마스코트로 [[아이치현]]에 사는 한 중학생이 그린 그림을 채택한 것이라고 한다.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소니, 마쓰시타(현 파나소닉)등을 비롯한 수많은 일본의 대기업들이 전시관을 만들어 참여했으며 행사가 끝나고 제1박람회장은 완전 철거되어 기념공원이 세워졌고, 제2박람회장은 그대로 남아 츠쿠바 엑스포 센터로 재단장했다.
== 기타 ==
한국에서는 흔히 미디어물 [[현지화]]등의 영향때문에 [[1993 대전 엑스포]]를 [[1970 오사카 엑스포]]와 비교하는 경우가 있으나[*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격 행사였다는 점만 보면 그럴듯하게 보이긴 한다.] 학원도시에서 '과학'을 주제로 열린 인정박람회였다는 점과 근처에 있는 과학전시관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는 점만 보면 이쪽이랑 더 비슷하다.
1980년대를 배경하는 일본 영화, [[이니시에이션 러브]]에 이 엑스포의 비닐 가방이 초중반부, 책을 선물하는 장면에서 잠시 등장한다.
[[분류:인정박람회]][[분류:쇼와 시대]][[분류:이바라키현]][[분류:츠쿠바시]][[분류:엑스포]] |
1985년 | ||<-13><tablealign=center><bgcolor=#a9a9a9> {{{#000000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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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력기원|서기]] || 1985년 ||
|| [[대한민국 연호|대한민국]] || 67년 ||
|| [[단군기원|단기]] || 4318년 ||
|| [[불멸기원|불기]] || 2529년 ||
|| [[이슬람력]] || 1406년~1407년 ||
|| [[갑자|간지]] || [[갑자]]년~[[을축]]년 ||
|| [[주체사상|주체]] || 74년 ||
|| [[중화민국|민국]] || 74년 ||
|| [[일본]] || [[쇼와]] 60년 ||
|| [[히브리력]] || 5746년~5747년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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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12280009920400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5-12-28&officeId=00009&pageNo=4&printNo=6101&publishType=00020|매일경제신문 선정 1985년 국내외 주요 사건 모음]]
[[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서울 지하철 4호선]] 등 [[도시철도]]의 개통이 많았다. 특히 서울지하철 3호선과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은 노선 색깔(주황색)까지 똑같은데다가 '''빨리 개통하기 경쟁'''을 벌였다. 승자는 서울지하철 3호선이긴 한데, 약간의 부정행위가 있었다.
사실 이 해가 [[1966년]] 이후로 19년만의 윤2월이 돌아오는 해여야 했다.
밑의 사건 목록에서 보듯, 서울 지하철 4호선은 3개월 앞선 4월에 상계-한성대입구 구간을 개통했고, 서울 지하철 3호선은 '''7월에 [[구파발역]]-[[독립문역]] 구간만 부분 개통'''했기 때문. 원래 서울 지하철 3호선은 [[양재역]]까지 개통시키려 했는데 [[부산 도시철도 1호선]]한테 밀릴까봐 독립문역에서 끊어버린 것.[* 그래서 3호선 1단계 구간이 개통되었을 당시는 다른 노선과의 환승역이 전혀 없는, 완전히 동떨어진 노선이었다. 3호선 [[연신내역]]과 [[불광역]]이 [[서울 지하철 6호선]]과 환승역이 된 것은 2000년 12월 15일이었다.] 하지만 '''[[부산 도시철도 1호선]]도 이해에 1차 구간만 개통'''했고 1달 뒤인 비슷한 시기에 착공한 2차 구간은 '''2년 후인 [[1987년]]에 개통'''했으니 '''사실상 [[도찐개찐]]'''으로, 2차구간 개통까지 감안한다면 결국 [[서울 지하철 3호선]]이 '''이 해에 전구간 개통을 완료'''[* 3호선의 1기 전 구간이다. 이후 [[1993년]]에 [[수서역(수도권 전철)|수서역]]으로, [[2010년]]에 [[오금역]]으로 연장하였다.][*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의 [[다대포해수욕장역|다대포해수욕장]] 연장 구간은 2017년 4월 20일 개통하였다.]하였으니 --[[정신승리]]--'''최종 승리'''한 셈.
여담으로 이 해에는 후술할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총선]]의 대반전이나 국제그룹 해체, 서울 미문화원 점거사건을 빼곤 크게 이슈화 된 사건이 별로 없었는데, 그 중 하나가 앞서 나온 서울지하철 3~4호선 [[동호대교]], [[동작대교]]가 개통되고 [[63빌딩]]이 여의도 한복판에 완공되었다. 특히 신동아건설이 만든 [[63빌딩]]은 종전 한국 최고층 빌딩이던 종로 삼일빌딩을 뛰어넘은 고층빌딩이라 [[서울특별시|서울]] 사람들은 물론 멀리 시골이나 산골 등에서 원정방문을 온 사람들까지 이 빌딩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 때문에 [[여의도]]가 교통마비로 몸살을 앓았다는 일설이 있다. 특히 전망대 역할을 하였던 60층을 통해 [[서울특별시|서울]]의 전망을 바라볼 때 신기해 하거나 떨어져 죽을 것 같다는 여러가지 잡설들이 나돌기도......
[[일본 제국|일제]]의 강제명령으로 폐지되었던 음력 [[설날]]이 이 때부터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휴일로 부활하였다.[* [[2월 20일]]이 음력 1월 1일이었는데, 이보다 앞선 [[2월 12일]]의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총선]]용이라는 의혹도 있었다.] 그러나 휴일 수도 단 하루뿐이었던데다가 세간에서 봐도 민족의 대명절을 격하해서 지었다는 비난과 반발이 거세기도 했다. 결국 1989년 [[설날]]에 가서야 뒤늦게 공식적인 명절로 부활하였고 연휴로도 지정되었다.
그러나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1983년부터 시작된 유화 국면과 2.12 총선 당시 신민당의 약진을 틈타 서울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에 이어 '대우자동차 파업'과 대우어패럴 노조 등을 위시한 '구로동맹파업' 등 온갖 학생/노동운동이 일어나면서 전두환 정권은 '학원안정법'을 제정하고자 시도했고, '구미유학생 간첩단사건', '서울대 민추위 사건' 등을 만들어 초강경 태세로 접어들고자 했다. 7~8월에는 호남지역을 강타한 '괴저병' 파동으로 수산업계가 홍역을 맞았다. 경제계에선 1980년대 초반 10대 재벌 중 하나이던 국제그룹이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해체되는 수난을 겪었다.
한편 당시에는 부족한 인식으로 인해 묻혀졌지만, 한국 의학계에서는 먼 나라 이야기로만 치부되었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의 국내 감염 사례가 최초로 보고되면서 분수령을 맞기도 하였다. 6월에는 동성연애 전력이 있었던 53세의 미국인 영어교사가 국내 최초로 AIDS 감염 사례로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에는 중동에 파견근무를 나갔던 한국인 남성이 한국인 최초로 감염되었다. 이들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윤방부 교수의 주도로 초기대처를 받았고, 연세대학교 이원영 교수 등이 학술대회를 여는 등, 에이즈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이 이루어졌다.
일본에서는 코메디계와 가요계 두 곳에서 두 가지 큰 일이 있었다. 먼저 8월, 미국 진출로 대박을 쳐 일본 가요계의 한 획을 그은 [[사카모토 큐]]가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로 횡사했다. 그 뒤 9월, 코미디계에서는 [[더 드리프터즈]]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8시라구! 전원집합]] ([[8時だョ!全員集合]])이 15년 6개월 만에 종영했다. 이 두 사건으로 양계에서는 [[쇼와]]라는 시대가 끝나간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한다.
민간 항공업계에서는 재앙, [[흑역사]]로 꼽는 최악의 해이다. 5월 198명이 사망한 [[아에로플로트 8381편 공중충돌 사고]]를 시작으로 6월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329명 사망), 7월 [[아에로플로트 7425편 추락사고]](200명 사망)에 이어서 8월에는 대형사고가 3건이나 되는데 [[델타 항공 191편 추락 사고]](137명 사망),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520명 사망)[* 사망자 ''' 520명'''은 단일 항공기에 의한 사고로는 역대 최다 사망자 수. 전체 항공사고 최다 사망사건은 [[테네리페 참사]]], [[영국 항공 투어 28편 화재사고]](55명 사망)이며 1985년의 마지막 해 12월에는 [[애로우 항공 1285편 추락사고]](256명 사망)로 이어지는 대형 항공 사고가 연이어 터져서 유독 [[항공 사건사고]]가 많았던 해로 기록되었다. 9월에는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멕시코시티]]에 세 차례 대지진이 터져 2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격투게임계에선 세계 최고급 커리어를 걷는 선수들이 이 해에 많이 태어났다. 그들이 자란 시기가 격투게임의 전성기였지만,[* 일단 [[스트리트 파이터 2]]가 1991년에 출시, SNK가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대전액션들을 출시하면서 부흥하기 시작한 2D 대전액션의 전성기와 이들의 유년기가 얼추 맞아들어간다.] 그걸 떠나서 봐도 한 장르나 게임에서 가장 재능있는 선수들이 한 해에 몰려있단 점은 꽤 흥미로운 점이다. 그 외에도 이 해에 태어난 유명 축구 선수도 많은 편이다.
UN은 창설 40주년을 맞으며 이 해를 '세계 청소년의 해' 및 '국제연합의 해'로 지정했고, 체신부와 한국전기통신공사가 1885년 한성전보총국 개국을 기준으로 '한국전기통신 100년'을 성대히 맞이하였다. 연세대학교 역시 1885년 세브란스의과대학 설립 기준으로 '개교 100주년'을 성대히 맞이했다.
영화계에서는 그간 군사정권 하의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장미희]]가 주연으로 나온 <[[깊고 푸른 밤]]>이 흥행하여 1977년부터 국산 영화 관객동원 1위 영화였던 <[[겨울여자]]>의 기록을 뛰어넘었다.
중앙개발 산하 [[용인자연농원]]은 국내 최초로 다크라이드 기구인 [[지구마을]]을 10월 2일에 개장하여 향후 30년간 이 놀이공원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했고, 봉명산업은 경북 경주에 '[[경주월드|도투락월드]]'를 열었다.
== 사건 ==
=== 실제 ===
==== 1월 ====
* [[1월 1일]]
* 전두환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평화와 정의, 통일과 번영의 시대를 앞당기는 데 헌신하자고 요구하였다.
* 북한의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조건부 남북고위급 정치회담 가능성을 시사하였다.
* 종전의 한국원호복지공단이 '한국보훈복지공단'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 서울신문이 국내 메이저 신문 사상 최초로 활판을 버리고 CTS 제작을 실시하였다.
* [[1월 2일]]: 레이건-나카소네 간 미일정상회담이 LA에서 개최되었다.
* [[1월 6일]]: IBF 밴텀급챔피언 전주도가 박광구를 상대로 세계타이틀매치 5차 방어에 성공하였다.
* [[1월 7일]]
* (가칭) 신한민주당이 서울 용산/마포지구를 시작으로 지구당 창당작업에 착수하였다.
* 서강대는 서인석 교수를 한국인 1호 총장으로 임명하였다.
* 함석헌, 김재준, 김동길, 지학순 등 재야인사 22명이 '재야간담회'를 결성하였다.
* [[1월 9일]]: 북한측은 코트디부아르와 수교를 맺었다.
* [[1월 10일]]
* 이민우 신민당 창당준비위원장은 대전에서 연두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정부의 공명선거 보장을 촉구했다.
* 미국 NBC는 [[핵배낭]] 특수부대(SADM)가 경기도 의정부에 배치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 [[1월 11일]]: 충북 영동군 화신교통 소속 시외직행버스가 양강교 난간에 충돌 후 추락해 탑승객 39명 중 '''38명'''이 숨졌다.([[양강교 버스 추락사고]])
* [[1월 13일]]: 연세대 명예총장 용재 [[백낙준]] 박사가 세상을 떠났다.
* [[1월 14일]]
* 서울대생 5백여 명은 '민주총선 쟁취 국민연합' 주최로 민주총선 쟁취대회를 열고 농성을 벌였다.
* 경인지역 9개 사업장 해고노동자 10명이 민한당 총재실에서 점거농성하였다.
* 경동산업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월 15일]]: 브라질 민주노동당 후보 탕크레두 네베스가 대선에 당선하면서 21년간의 군정이 종식되었다.
* [[1월 16일]]: 부산지검은 신안군 유물 매매조직 두목 김동섭 등 관련자 12명을 검거하였다.
* [[1월 17일]]: 북-중 양국이 베이징에서 경제지원협정에 조인했다.
* [[1월 18일]]
* 국무회의는 구정을 '[[민속의 날]]'로 정하기로 의결하였다.
* [[신한민주당]]이 정식 창당되었다.
* [[1월 19일]]: '민주노동자 블랙리스트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월 21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재선 취임식을 가져 두번째 임기를 시작하였다.[* 1월 20일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백악관에서 간단하게 선서만 하고 그 다음날인 21일 취임식을 가졌다. 취임식 당일 날씨가 영하 20도 가까이 되면서 고령인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 의회건물 안 로텐다홀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 [[1월 22일]]: 고리원전 5호기가 준공되었다.
* [[1월 23일]]: '진도 노동조합 결성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1월 24일]]
* 문교부는 학도호국단을 폐지하고 새 학기부터 학생자치기구를 부활하기로 결정하였다.
* 미국 유인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플로리다 케이프 커네버럴 기지에서 발사되었다.
* [[1월 26일]]
* 민한당 중앙당사에서 13일째 농성 중이던 부당해고 노동자 10명이 노동부 앞에서 농성을 벌이다 강제 입원당했다.
* 경찰은 3개 식품회사 금품 요구 및 독극물 협박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였다.
* [[마더 테레사]] 수녀가 한국을 두 번째로 방문하였다.
* [[1월 29일]]: 화물선 '화평 에이스호'가 제주도 인근 해상에 침몰해 승조원 20명 중 7명이 숨졌다.
* [[1월 30일]]: [[OPEC]] 회원국들은 비상각료회의를 개최한 뒤 기준유가를 1.35달러로 내렸다.
* [[1월 31일]]
* 전남대 의대생 기혁이 광주 무등산 바람재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기혁 의문사 사건)
* 민주통일국민회의 경북지부가 세워졌다.
* 진도 노동자들은 사측이 어용노조를 세우자 '진도 노동조합정상화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2월 ====
* [[2월 1일]]: 조선 태종 4년(1404년)에 발간된 <삼공신회맹록>이 발견되었다.
* [[2월 2일]]
* [[동호대교]]가 개통되었다.
* [[일본]] [[TV 아사히]]에서 <[[전격전대 체인지맨]]>이 첫 전파를 탔다.
* [[2월 4일]]
* 서울 중구 및 종로 연설회에서 5백여 명의 군중들은 신민당 이민우 총재 연설 후 "민주회복"을 외치며 시위행진을 벌였다.
* 충남민주운동협의회가 세워졌다.
* [[2월 5일]]
* 전두환 대통령은 유세장에서의 연설방해 행위 등 정치폭력 엄단을 지시했다.
* 서울 종로 5가에서 국민회의 주최 '민주제도 쟁취 국민운동대회'가 경찰에 제지되어 학생, 노동자, 시민 등 1,500여 명이 파고다공원 앞에서 가두 시위를 벌였다.
* 중앙대생 이철우와 서울대생 서정호는 서울 동작지구 유세장에서 "군사독재 결사반대"를 외치며 민정당 허청일 후보에게 암모니아병을 던졌다.
* [[2월 6일]]
* 서울 종로 및 중구 유세장에 7만여 명의 청중이 모여 12대 총선 유세기간 중 최다 인파를 기록하였다.
* 건설부는 경기도 반월을 인구 30만 명의 서울 위성도시로 개발한다고 결정하였다.
* 동보전기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2월 7일]]: 프랑스 공산당이 사회당과 결별을 선언하였다.
* [[2월 8일]]: 김대중 일가가 미국 망명 3년만에 귀국하였다.
* [[2월 11일]]: [[그레고리오 알바레스|알바레스]] 우루과이 대통령이 12년만에 권좌에서 물러났다.
* [[2월 12일]]
* [[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
* 위 총선에서 여당인 민정당이 148석, 신민당이 67석, 민한당이 35석, 국민당이 20석을 각각 차지하였다.
* 대검은 총선 사범 590여 명 중 4명을 구속하고 5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 [[2월 13일]]
* 제일 등 4개 채권은행들이 '국제그룹 경영합리화방안'을 강구키로 결정했다.
* 서울중부경찰서는 국민회의 기관지 <민주통일> 1월호 3천 권을 압수했다.
* [[2월 14일]]: 뉴코아가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뉴코아백화점]]' 1호점을 열었다.
* [[2월 15일]]: 문교부는 '국어문법통일안'을 확정하였다.
* [[2월 18일]]
* 전두환 대통령은 국무총리직을 비롯한 12개 부처에 대한 개각을 단행하였다.
* 북한 평양에 일-북 합작 백화점 '락원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 [[2월 20일]]: 전두환 대통령은 치안본부, 철도청 등을 순시하며 '민속의 날' 근무상황을 점검했다.
* [[2월 21일]]: 재무부는 [[국제그룹]] 해체 및 국제상사, 연철 등 주력기업 매각을 결정했다.(국제그룹 해체사태)
* [[2월 22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해태제과 독극물투입 협박범을 검거했다.
* [[2월 23일]]: 민정당은 노태우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을 대표위원으로 임명했다.
* [[2월 25일]]
* 정부는 서남해안 4,415km²를 매립키로 결정하였다.
* 고려대 김준엽 총장이 정부의 압력으로 사퇴했다.
*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는 언론기본법 개정운동을 전개했다.
* [[2월 26일]]
*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여야대표회담 찬성을 표명하였다.
* 대법원은 1981년 윤보살 피살사건 살해혐의자 고숙종 여인에게 무죄를 확정하였다.
* [[2월 27일]]
* 유치송 민한당 총재가 총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양심수/구속학생 즉각 석방, 정치규제법 폐기 등을 촉구하였다.
* 손제석 문교장관은 전국대학총학장회의에서 학생의 정치참여 불가 입장을 밝혔다.
* 영창악기 노동자 1천여 명이 임금인상 요구 서명 및 농성을 벌였다.
* [[2월 28일]]
* 노신영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각 부처장관에 월1회 정례기자회견을 지시하였다.
* 보사부는 식품접객업소 명칭변경을 허가제로 바꾸기로 결정하였다.
* KNCC 제34차 총회는 '한국교회 평화통일 선언'을 발표하였다.
==== 3월 ====
* [[3월 1일]]
* KEDI는 국민학생들을 상대로 영어교육방송을 실시하였다.
* 김철을 중심으로 한 '사회민주당'이 창당되었다.
* 훌리오 상기네티가 새 우루과이 대통령직에 취임해 12년간의 군정이 종식되었다.
* 울산공대가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다.
* 상명여자사범대 천안캠퍼스가 개교되었다.
* [[3월 2일]]
* [[석탄공사]] 장성광업소 광부와 가족 5백여 명이 노조위원장 직선제를 요구하며 사흘간 농성을 벌였다.
* 일본 나고야TV에서 <[[기동전사 Z 건담]]>이 첫 전파를 탔다.
* [[3월 3일]]: 성원제강 노동조합과 동일제강 노동조합 결성 준비위원회가 각각 결성되었다.
* [[3월 4일]]
*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일본 <[[산케이신문]]>과의 기자회견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민주화일정 청사진 제시 후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국민당은 당무회의에서 김종철 총재에게 자퇴를 권고하였다.
* [[미국]]에서 [[AIDS]]가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 [[3월 6일]]: 전두환 대통령은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을 포함한 마지막 정치활동 피규제자 14명을 해금시켰다.
* [[3월 8일]]
*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제1회 한국여성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 <민족/민주/민중과 함께하는 '85 여성운동 선언>이 발표되었다.
* 공문연은 온산에서 발생한 괴질 집단 발병 사태가 공해병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였다. 자세한 정보는 [[온산병]] 항목 참조.
* [[3월 9일]]
* 대통령 직속 교육자문기구인 '교육개혁심의회'가 발족되었다.
* '해태제과 노동조합 민주화 추진위원회(이하 해태제과노민추)'가 결성되었다.
* 서울남부경찰서는 삼립식품에 세 차례 3천만 원을 요구한 독극물협박범을 검거하였다.
* [[3월 10일]]
* 노복은 서울 홍제동성당에서 근로자의 날 기념 미사를 지낸 뒤 노동악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체르넨코 소련 공산당 서기장 겸 최고회의 간부회의장이 세상을 떴다.
* [[3월 11일]]
* 전두환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 산하에 법무비서관실을 신설하였다.
*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은 현 대통령 임기 중 직선제 개헌 반대를 표명했다.
* [[체르넨코]]의 사망으로 고르바초프 당 서기가 새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하였다.
* [[3월 13일]]: 고려대 정경대 교수 25명은 김준엽 총장의 사퇴유감 표명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 [[3월 14일]]: 국무회의는 '학도호국단 설치령' 폐지를 의결했다.
* [[3월 15일]]
* 김영삼-김대중 양김은 해금 후 첫 공식 회담을 열어 야당을 신민당 중심으로 조기 통합할 것을 결의하였다.
* 고려대 안암캠에서 학생 5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정경대 및 문과대 교수 50명과 총학생회가 공동 상주가 되어 '민족고대정기 장례식'을 개최하였다. 이때 문과대와 정경대는 8일간 휴학하였다.
* [[일본]] [[TV 아사히]]에서 <[[거수특수 쟈스피온]]>이 첫 전파를 탔다.
* [[3월 20일]]
* 안기부는 김철 등 4개 간첩망 14명을 검거하고 8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하였다.
* '총장 사퇴 결사반대 고대 총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 서울 목동과 신정동 철거민 및 대학생 6백여 명이 '선 대책, 후 철거'를 요구하며 야간시위를 벌였다.
* [[3월 22일]]
* 한국측 어선 '제6어성호'가 소흑산도 근해에서 표류중인 중공 해군 어뢰정 1척을 구조하였다.([[중국 해군 어뢰정 망명사건]])
* 국민당은 전당대회에서 이만섭을 새 총재로 추대하였다.
* 정부는 '지방자치제연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서울시내 13개 대학교 학생대표들은 고려대 안암캠에서 '학원 민주화 대학 연합집회'를 개최했다.
* [[3월 23일]]: 서울 남대문시장에 화재가 발생하여 점포 420개가 소실되었다.
* [[3월 26일]]: 이민우 신민당 총재와 김영삼-김대중 민추협 공동의장은 신민당 중심의 야당 통합에 합의했다.
* [[3월 27일]]: 일본 이바라키현 츠쿠바군에서 [[1985 츠쿠바 엑스포]]가 개최되었다.
* [[3월 29일]]: 종전의 민민협-국민회의 양측이 통합하여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이하 민통련)'이 출범되었다.
* [[3월 31일]]
* 가수 방미가 제14회 TBS 도쿄음악제에서 은상을 수상하였다.
* [[WWE]]의 첫번째 [[레슬매니아]]가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개최되었다.
==== 4월 ====
* [[4월 1일]]: 휴전 이후 최초의 자주적 농민운동 조직 '함평농우회'가 발족되었다.
* [[4월 3일]]
* 민한당 12대 의원 당선자 21명이 신민당에 개별 입당했다.
* 조윤형 민한당 총재는 신민당에 무조건 합당될 것을 선언하였다.
* 서울교육대학교 총학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4월 4일]]: 협진화섬 어용노조 출범을 계기로 '협진화섬 노조탄압 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4월 8일]]: [[충북대]] [[천체관측]]동아리 '[[한별]]'이 창립되었다.
* [[4월 9일]]
* 대우차 노조원 2천여 명이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24일까지 파업/농성을 벌였다.
* 한국음향기기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북한은 남한의 국회와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간에 남북 국회회담을 열자고 제의했다.
* [[4월 10일]]
* 한국음향 노조위원장 박정희 등 18명이 민추협 사무실에서 농성하였다.
* '경인지역학생연합회(이하 경인학련)' 및 '반외세민족자주수호투쟁연합'이 결성되었다.
* 서울 구로 및 인천지역 해고노동자들이 '경인지역 노동탄압 저지 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4월 11일]]
* 사민당-신사당-한사당이 기자회견에서 사민당 중심의 통합을 선언하였다.
* 종전의 일본전전공사가 '[[NTT]]'로 민영화되었다.
* [[4월 12일]]: 청피노조원과 대학생 1천여 명은 경찰의 '제4차 청피노조 합법성 쟁취 및 노동운동 탄압저지 대회' 원천봉쇄에 항의하며 도심시위를 벌였다.
* [[4월 13일]]: 북한 중앙인민위는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을 차수로, 오극렬 등 8명을 대장으로 임명했다.
* [[4월 17일]]
* '전국학생연합(이하 전학련)'이 발족되었다.
* 전학련 산하기구 '민족통일 민주쟁취 민중해방투쟁위원회(이하 삼민투위)'가 발족되었다.
* [[4월 18일]]: 서울지법은 미혼 전직 여성직장인 이경숙의 교통사고 손배소송 재판에서 '여성 직장인의 정년은 25세'라고 판결해 파문이 일었다.
* [[4월 19일]]: 전국 56개대생 2만 6천여 명이 전학련 주최 '4.19 혁명 25주년 행사' 후 학교 안팤에서 시위를 벌였다.
* [[4월 20일]]
* 전국 38개 YMCA 지부는 '외채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 자구운동 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 [[서울 지하철 4호선]] [[상계역]] ~ [[한성대입구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 [[4월 22일]]: 기독교농민회는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미국 농축산물 수입개방요구 규탄집회'를 열었다.
* [[4월 23일]]: 전두환 대통령은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 [[4월 24일]]: 중공-인도네시아 양국이 단교 18년만에 공식회담을 열었다.
* [[4월 30일]]: 한국프로야구 [[삼미 슈퍼스타즈]]가 [[MBC 청룡]]과의 인천 홈경기에서 [[최계훈]]의 완봉 역투에 힘입어 4대0으로 승리하여 지긋지긋한 18연패의 늪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청보 핀토스|바로 그 시각...]][* 다음 날인 5월 1일 청보 핀토스가 삼미 슈퍼스타즈를 인수했다고 발표했지만 리그 참여는 6월 29일 후기리그 개막전부터 했다.]
==== 5월 ====
* [[5월 1일]]
* 노동자/학생 8백여 명이 '국제노동절'을 맞이해 서울 영등포 로터리에서 노학연대 가두 시위를 벌였다.
* 전남사회운동협의회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기록을 담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출간하였다. 집필자는 당시 광주에 기거하고 있던 [[황석영]].
* [[5월 2일]]: MBC 수사실화극 <[[수사반장(드라마)|수사반장]]>이 종영 7개월만에 다시 전파를 탔다.
* [[5월 3일]]
* 문공부와 경찰은 이념서적 및 유인물 합동단속을 실시해 대학가 서점과 출판사 등 8곳을 수색했다.
* 후야오방 중공 당총서기가 북한을 방문했다.
* '부산민주시민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아에로플로트 8381편 공중충돌 사고]]가 발생하여 2대의 기체 탑승자 총 198명이 사망하였다.
* [[5월 4일]]: 국내 최초의 진보 불교운동단체 '민중불교운동연합(이하 민불련)'이 결성되었다.
* [[5월 7일]]
* 서울대 삼민투가 결성되었다.
* 청년 170명이 광주시내 파출소 3개소를 습격했다.
* [[5월 8일]]
* 일본 경찰은 지문채취를 거부한 재일교포 이상호를 구속했다.
* 오리엔트가구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9일]]: 상일가구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10일]]: '국어순화추진회'가 설립되었다.
* [[5월 11일]]: 육상선수 장재근이 종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200m 결승에서 20초 73으로 아시아 신기록을 수립하였다.
* [[5월 16일]]
* 민통련 간부 및 회원 40여 명은 광주항쟁 관련 성명서를 발표한 뒤 분도회관에서 농성에 돌입하였다.
* 북-중 양국은 압록강/두만강 수자원공동개발에 합의했다.
* [[5월 17일]]
* 전국 80개대생 3만 8천여 명이 '광주사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단'을 요구하며 시위를 개최했다.
* 일조각 사장 한만년 등 출판계 인사 40명은 서적 단속에 항의하며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5월 20일]]
*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단절되었던 미-소 고위급 무역회담이 재개되었다.
* 실천문학사가 <민중교육>을 창간하였다.
* [[5월 22일]]: 북한측은 UN의 남북한 교차승인 반대 의사를 밝혔다.
* [[5월 23일]]: '''서울대 등 5개대생 73명이 서울미문화원 점거 후 광주항쟁에 대한 미국의 책임 인정 및 공개사과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 [[5월 26일]]: 대학생 73명 전원이 서울 미문화원 농성을 해제했다.
* [[5월 27일]]: 북한 조선적십자회 대표단 84명이 남북적십자회담 본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도착했다.
* [[5월 28일]]: 상공부는 대형 컬러TV, 전기밥솥, 밍크코트 등 235개 품목의 수입자유화를 발표하였다.
* [[5월 29일]]
* 경찰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집필자 [[황석영]]을 연행하였다.
* [[코나미]]가 <[[그라디우스]]>를 일본에 발매했다.
* 벨기에 헤이젤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리버풀 FC|리버풀]]-[[유벤투스]] 간 [[UEFA 챔피언스 리그|유러피언컵]] 결승전 경기 도중 양팀 팬들 간에 난투극이 발생해 39명이 죽고 434명이 다쳤다.([[헤이젤 참사]])
* [[5월 30일]]
* 신민당은 '5.18 광주사태 진상조사를 위한 국정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 [[서울]] [[여의도]]에 '[[63빌딩]]'이 완공되었다.
* [[5월 31일]]
* 신민당은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에 관한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 공해문제성직자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6월 ====
* [[6월]] 중: 지하조직인 '마르크스-레닌주의당(이하 ML당)'이 결성되었다.
* [[6월 1일]]
* 국회 본회의는 통일헌법 제정문제 협의 등을 담은 대북회신을 채택하였다.
* 이철 신민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의장에서 '민족동질성 회복을 통한 민족통일' 발언을 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 구로지역노조민주화추진연합(이하 구민련)이 발족되었다.
* 상공부는 화장품 등 65개 품목의 수입자유화를 발표했다.
* 페루의 좌익정당 '민중아메리카 중도좌익혁명동맹' 대표 [[알란 가르시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 [[6월 4일]]: 인천 한일스텐레스 노조원 2백여 명이 사측의 폐업 위협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
* [[6월 6일]]
* 신민당 [[문정수]] 의원이 밝힌 1981년 광주시 통계연보 중 1980년 6월 사망자수 2,627명이 쟁점화되었다.
* 영국령 홍콩 은행 '오버시즈 트러스트 뱅크'는 급작스러운 부실채권 문제 등으로 도산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 [[6월 7일]]: 전학련은 이날 서울대에서 '광주항쟁 및 군부독재에 대한 범국민 자유토론회'를 열었다.
* [[6월 8일]]
* 검찰은 압수대상 도서 280종 중 <옥중서신(김대중 저)> 등 78종을 해금시켰다.
* 경찰은 전학련 의장 김민석을 연행했다.
* [[6월 10일]]: 정부는 부실기업 주거래 은행에 연 3% 한국은행 특별융자를 지원키로 했다.
* [[6월 12일]]: '대전시립무용단'이 창단되었다.
* [[6월 13일]]: 국내 최초의 산재근로자 휴양소 '화성요양원'이 문을 열었다.
* [[6월 14일]]
* [[독일]], [[프랑스]], [[룩셈부르크]]가 [[솅겐 조약]]을 체결하였다.
* 재무부는 외국인 투자제한업종 수를 현행 339개에서 206개로 축소했다.
* 레바논 시아파 이슬람교 테러집단이 아테네발 로마행 TWA 847편 여객기를 납치해 이스라엘에 수감중인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했다.(TWA 847편 공중납치 사건)
* [[6월 15일]]: 민언협이 <[[말(잡지)|말]]> 지를 창간했다.
* [[6월 22일]]
* 대우어패럴 노조위원장 김준용을 비롯한 노조 간부 세 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 서울신문사가 <[[스포츠서울]]>을 창간하였다.
* [[6월 23일]]
*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이 일어나 탑승인원 328명이 전원 사망하였다.
* 대우어패럴, 효성물산, 가리봉전자, 선일섬유 4개 노조가 동맹 파업을 결의하였다.
* [[6월 24일]]
* 전경련 등을 주축으로 한 '경제법령정비민간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대우어패럴, 효성물산, 가리봉전자, 선일섬유 등 구로공단 기업노조들이 연대해 동맹파업을 벌였다.(구로동맹파업)
* [[6월 25일]]
* 세진전자, 남성전기, 로옴코리아 등지의 노동자 6백여 명이 구로동맹파업을 지지하며 농성을 벌였다.
* 서울 여의도고 교장은 <민중교육> 지의 불온성을 서울시 교육위원회에 제보했다.
* 충북대박물관 학술조사단은 충북 단양에서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 2만여 점을 발굴해냈다.
* [[6월 28일]]
* 보사부는 국내에서 미국인 에이즈 환자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 경찰은 민언협이 낸 <말> 창간호를 압수했다.
* [[6월 29일]]
* 치안본부는 서울대 등 9개 대학 캠퍼스에 경찰력 467명을 투입해 학생 66명을 연행하고 화염병 등 8만여 점을 압수했다.
* 대우어패럴, 부흥사 노조 농성이 비노조 사원들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 전국 110개 4년제 대학들이 문교부의 지시로 학생회관 등 자체비상점검을 실시했다.
* [[박배근]] 치안본부장은 "앞으로는 학교의 요청 없이도 공권력을 투입시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 [[6월 30일]]: 서울대 인문대 국문학과 4년생 우수열이 서울 용산1가 17번지 철로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우수열 의문사 사건) 그러나 사건 16년 뒤 2001년에 의문사위는 사건 진정을 기각했다.
==== 7월 ====
* [[7월 2일]]: 서울대 등 3개 대학생 2백여 명은 노조 탄압 중지를 요구하며 구로공단에서 시위를 벌였다.
* [[7월 3일]]: 제4차 한미경제협의회에서 미국은 한국의 금융/보험시장 개방을 강력히 요청했다.
* [[7월 5일]]: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의장이 남북국회회담 예비접촉 제의를 수락하였다.
* [[7월 8일]]
* 이날을 기준으로 중부지방 암소값이 76만원대로 폭락하였다.
* 대한마이크로전자 노조원 80여 명이 노조탄압 중지를 요구하며 여의도 노총회관에서 농성을 벌였다.
* [[7월 9일]]: 북-불 양국이 합작건설한 고려호텔이 평양 창광거리에 준공되었다.
* [[7월 10일]]
* 손제석 문교장관은 학원질서를 파괴하는 극렬 폭력사태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 '구속학생부모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김녹영 국회부의장이 세상을 떠났다.
* 전국 낙농육우 농민 5백여 명이 대한상의 국제회의실에서 농수산부 간부의 '85 낙농육우세미나' 불참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
*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제15회 하계 [[데플림픽]]이 개최되었다. 덧붙여 [[대한민국]] 선수단이 처음으로 출전하였다.
* 소련에서 [[아에로플로트 7425편 추락사고]]가 일어나 탑승인원 전원이 사망하였다.
*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정박중인 [[그린피스]]의 레인보우 워리어 호(Rainbow Warrior)가 프랑스 정보기관 [[대외안보총국]](DGSE)에 의해 격침되었다. 이 사건은 뉴질랜드와 프랑스 외교분쟁으로 확대되었다.
* [[7월 11일]]
* 충북 음성군 농민들이 "소값 하락 보상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가두 농성을 벌였다.
* 문공부는 경북 영풍군 순흥면에서 발견된 5세기 말 신라 채색고분벽화를 공개하였다.
* [[7월 12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 [[독립문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 [[7월 13일]]: 전 세계 19억명이 시청한 대규모 록 페스티벌인 [[라이브 에이드]]가 개최되었다.
* [[7월 15일]]
* 남북 양측은 판문점 적십자 실무회담에서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을 9월 중에 교환키로 합의하였다.
* 이경숙 씨 사건을 계기로 6개 여성운동 단체가 '25세 여성 조기정년제 철폐를 위한 여성단체 연합회(이하 25세 여조회)'를 결성하였다.
* [[7월 16일]]: 남농미술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 [[7월 17일]]: 전두환 대통령은 제헌절 경축사에서 평화적 정권교체가 역사적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 [[7월 18일]]
* 검찰은 전민련 삼민투위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전국 19개대생 86명 중 63명을 검거하고 56명을 구속했고, 이들 중 13명에 국보법을 적용시켰다.
* 영화제작사 (주)황기성사단이 설립되었다.
* [[7월 19일]]: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범내골역]] ~ [[범어사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 [[7월 20일]]
* 이원홍 문공장관은 제2회 예총 전국대표자회의에서 일부 민중문화가 반체제 도구화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 경찰은 민중미술 전시회 '한국미술 20대 힘' 개최지인 서울 아랍문화회관을 수색해 출품작 110점 중 30여 점을 강제 철거하고 작가 19명을 연행했다.('힘'전 사태)
* 치안본부는 유인물 <깃발> 제작과 관련하여 안병룡, 윤성주 등 민추위 간부 2명을 구속했다.
* [[7월 21일]]: 민문협은 '힘'전 관련 작가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7월 22일]]
* 무크지 <민중교육> 관련자 유상덕과 김진경 교사가 경찰에 연행되었다.(민중교육지 사건)
* 정부는 이현재 서울대 총장의 사표를 전격 수리하고 [[박봉식]] 교수를 새 총장직에 임명하였다.
* [[7월 23일]]
* 남북국회회담을 위한 제1차 예비접촉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방미 중인 리센녠 중국 국가주석과 미-중 간 핵 협력협정을 조입했다.
* [[7월 25일]]
* 서울중부경찰서는 자실 월간지 <민족문학> 5호에 배포금지 처분을 내렸다.
* 경향신문은 당일자 1판 기사에서 '학원안정법' 제정 추진 사실을 특종 기사로 보도했다.
* 안기부는 '학원안정법 추진' 특종보도를 실은 경향신문 1판 발행을 저지하고 이를 보도한 강신구 사회부장과 김지영 기자를 연행했다.
* [[7월 31일]]
* [[대구교도소]] 양심수 32명이 무더위 속 강제출역 및 집단배방에 항의하다 교도관들에 의해 집단으로 폭행당했다.(대구교도소 양심수 폭행사건)
*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1988 서울올림픽 분산개최를 요구하는 북한측의 요청을 거부하였다.
==== 8월 ====
* [[8월 1일]]
* 문인 401명이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학인 401인 선언>을 발표하였다.
* 신민당은 임시전당대회에서 이민우를 총재직에 선출하였다.
* 시흥군 과천면(현 [[과천시]])이 안양통화권(0343)에서 벗어나 서울통화권(02)으로 편입되었다.
* [[8월 2일]]
* 신민당은 임시전당대회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을 상임고문직에 추대하였다.
* [[델타 항공 191편 추락 사고]]로 137명이 사망하였다.
* [[8월 3일]]: 문공부는 혼천시계 등 과학문화재 3점을 국보로 지정하였다.
* [[8월 5일]]: 민정당은 고위당정회합에서 '학원안정법'을 제정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학원안정법 파동]]의 씨앗이기도 했다.
* [[8월 6일]]
* 대검 공안부는 <깃발>, <이화언론>, 민중민주화운동탄압대책위원회 관련자 9명을 구속하고 14명을 수배했다고 밝혔다.
* KBS1에서 특별보도 프로그램 <민중교육, 당신의 자녀를 노린다>가 방영되었다.
* 자실과 민문협, 민언협은 <민중교육>지 사건 관련 성명을 발표하였다.
* (주)하명중영화제작소가 설립되었다.
* [[8월 7일]]: 민주정의당은 '학원안정법' 시안을 공개했다.
* [[8월 8일]]: 이민우 신민당 총재와 [[김영삼]]-[[김대중]] 양 김씨가 회담을 열어 학원안정법 제정 추진을 저지하기 위해 재야단체와 공동 투쟁키로 결정했다.
* [[8월 9일]]: 안기부는 <민중교육>과 관련해 성동고 교사 윤재철을 연행했다.
* [[8월 12일]]
* 문교부는 <민중교육> 창간 관련교사 20명 중 10명 파면, 7명 사직 등의 징계조치를 내렸다.
* 민통련 등 39개 민주단체가 '학원안정법 반대 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도쿄발 오사카행 JAL 123편 B747기가 일본 군마현 다카마가하라산에 추락해 탑승객 524명 중 520명이 숨졌다.([[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 [[8월 13일]]
* 민추협은 '학원안정법 반대 투쟁위원회'와 함께 학원안정법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김수환]] 추기경은 이민우 신민당 총재에게 학원안정법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 필리핀 야당은 헌법 위반, 중범죄, 독직, 해외 재산도피 등의 혐의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을 국회에 발의시켰다.
* [[8월 15일]]
* 노동자 홍기일이 광주 금남로에서 <8.15를 맞이하는 뜨거움의 무등산이여>라는 전단을 뿌리며 분신을 감행했다. 이후 그는 7일 뒤 숨을 거두었다.
* 서울지역 12개 대학생들이 학원안정법 제정을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다.
* 성남지역 해고 노동자들이 '생존권 확보 투쟁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일본 내각총리대신|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총리 자격으로 직접 방문하여 참배를 강행하였다.
*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학원안정법 문제에 대해 전두환과 만나 영수회담을 맺었다.
* [[8월 16일]]: 이만섭 국민당 총재는 학원안정법 문제에 대해 전두환과 만나 영수회담을 맺었으나 전날과 동일하게 조율을 이끄는 데 실패했다.
* [[8월 17일]]
* 안병무와 김성식 등 대학교수 14명은 학원안정법 반대 서명운동을 전개하자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정부와 민정당은 긴급 당정회의를 열어 학원안정법의 입법을 보류하기로 결정하여 사실상 철회시켰다.
* <민중교육>지 관련자 김진경, 윤재철 교사, 송기원 실천문학사 주간이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 [[8월 19일]]: 서울시내 12개 대학생들은 청계천 일대에서 학원법 결사반대 야간 기습 가두시위를 강행했다.
* [[8월 23일]]: 문공부는 <민중교육>을 낸 실천문화사를 등록 취소시켰다.
* [[8월 24일]]: 중국 공군 경폭격기 일류신-28이 전북 이리시 신흥동 전북농조 간선수로에 불시착하였다.
* [[8월 25일]]: 구로동맹파업을 계기로 '서울노동운동연합(이하 서노련)'이 결성되었다.
* [[8월 27일]]: [[남북적십자회담]] 9차 본회담이 북한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 [[8월 29일]]: 신민당은 개헌추진운동을 전담할 '개헌추진본부'를 구성했다.
==== 9월 ====
* [[9월 1일]]: MBC는 보도특집 <학원에 뻗친 붉은 손길, 학원침투유학생간첩단>을 방영했다.
* [[9월 3일]]: 대법원은 법률신문에 <인사유감>을 기고한 서태영 서울민사지법 판사를 울산지방법원으로 발령시켰다.
* [[9월 4일]]
* 민언협, 자실, 민문협 3개 단체가 언론기본법을 철폐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민통련 등 22개 단체가 소값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이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김수현 등 경관 5명에게 16일 간 물고문과 전기고문 등을 당했다.
* 칠레의 11개 야당이 군정 종식을 요구하는 범국민 서명운동에 착수했다.
* [[9월 5일]]: 서울시내 7개 대학생이 고려대에서 전학련/삼민투 재건대회를 열었다. 특히 철야농성을 한 이들은 다음날에 '범국민 시국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 [[9월 6일]]
* 신민당 의원 박찬종, 조순형과 민추협 간부 16명이 범국민 시국 대토론회에 들어가려다 경찰에 의해 저지당했다.
* 경찰 측은 고려대에 진입해 전학련 삼민투위원장 [[허인회]]를 연행/구속시켰다.
* [[9월 7일]]
* 전태일기념관 현판식이 열렸다.
* <서노련신문>이 창간되었다.
* [[9월 9일]]: 안기부와 보안사는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합동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 [[9월 10일]]
* 경찰은 국민 대토론회 현장 방문사건과 관련하여 신민당의 박찬종, 조순형 의원 등 13명을 집시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 남북한 공연예술단 선발대 5명이 각각 서울과 평양을 방문하였다.
* [[대한변협]]은 법관 인사 파동 관련해 [[유태흥]] 대법원장 사퇴 건의문을 대법원에 보냈다.
* 치안본부는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을 국보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 [[9월 11일]]: 대학 당국은 학원안정법 반대서명 교수 14명에 자중각서를 강요했다.
* [[9월 13일]]
* 전국 10개대생 2,500여 명이 학원탄압 규탄 시위를 벌였다.
* [[닌텐도]]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일본에 발매했다.
* [[9월 17일]]: 경원대생 송광영이 학원안정법 제정에 항의하며 분신을 감행하였다. 이후 그는 한달 뒤인 10월 21일에 숨을 거두었다.
* [[9월 18일]]
* 서울시경은 민종덕 서노련 위원장을 집시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 미국 애플 사는 [[스티브 잡스]]를 CEO직에서 해임했다.
* [[9월 19일]]: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 리히터 규모 8.0의 강진이 발생해 9,500여 명이 숨졌다.([[1985년 멕시코시티 대지진]])
* [[9월 20일]]: 남북고향방문단이 서울과 평양에 각각 도착하였다.
* [[9월 21일]]: 남북예술공연단이 서울 국립극장과 평양대극장에서 각각 공연하였다.
* [[9월 22일]]
* 제1회 공인중개사 시험이 실시되었다.
* G5 국가 재무장관들이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미국 달러|달러화]] 가치를 '''40%''' 떨어뜨리는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 이후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일본]]은 금리를 2.5%까지 떨어뜨리게 되어, 그동안 불붙던 [[일본]]의 지가(토지 가격)상승이 폭발하게 된다. --그리고 [[1991년|6년 뒤]] [[일본]]은 [[망했어요]]--([[플라자 합의]])
* [[9월 24일]]: 서울시내 6개대생 2천여 명이 연세대 신촌캠에서 '전학련 복구대회 및 민중민주주의를 위한 삼민투위 결성식'을 열고 시위를 벌였다.
* [[9월 29일]]: 미국 ABC에서 <맥가이버>가 첫 전파를 탔다.
* [[9월 30일]]: 대생기업은 서울 여의도에 '[[63빌딩]]'을 개장하였다.
==== 10월 ====
* [[10월]] 중: 노르웨이에서 [[와레즈]] 릴리즈 겸 [[모듈 음악|데모씬]] 그룹 ~~면도날~~ Razor 1911[* 초기에는 Razor 2992라는 명칭이었고 나중에 1911로 개명됨. 1911은 [[16진수]]로 777이라 쓸수 있다. 또한 초창기에는 [[IBM PC]]보다 [[코모도어 64]]/[[아미가]] 소프트웨어가 주로 크래킹 대상이었다.]이 결성되었다.
* [[10월 1일]]
* 전두환 대통령은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전쟁억지력 확보'를 당부하였다.
* 이스라엘 공군이 튀니지에 있는 PLO 본부를 폭격해 156명의 사망자를 냈다.
* 북한 조선로동당 중앙위 정치국-중앙인민위 연합회의는 제1부총리에 연형묵, 부총리 겸 경공업위원장에 안승학, 부총리 겸 무역위원장에 김복신, 사회안전부장에 백학림, 인민봉사위원장에 공진태 등을 각각 임명했다.
* [[10월 2일]]: 중앙개발은 경기 [[용인자연농원]]에 국내 최초 [[다크라이드]] 기구 '[[지구마을]]'을 개장하였다
* [[10월 2일]]: [[미국]] 명배우 [[록 허드슨]]이 에이즈로 사망했다. 그는 에이즈로 사망한 최초의 스타였다.
* [[10월 7일]]
* 경찰은 민통련 등 25개 재야 민주단체 간부들과 학생들을 가택 연금했다.
* 팔레스타인 특공대가 이탈리아 여객선 '아킬레라우로 호'를 지중해에서 납치해 동료 50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 [[10월 8일]]: 서울지역 12개 대학생 2,500명과 지방 5개 대학생 900여 명, 전학련 남부지역평의회 소속 대학생 800여 명이 외채정권을 규탄하며 교내외에서 시위를 벌였다.
* [[10월 10일]]
* 고려대생 1백여 명이 서울 이태원에서 “외채정권 타도” 및 “IMF/IBRD 총회 결사반대” 등을 외치며 횃불시위를 벌였다.
* 미국 하원 본회의는 한국 등 12개국의 섬유류 대외 수출을 규제하는 젠킨스법을 통과시켰다.
* 미 공군 전투기가 이탈리아 여객선 납치범이 탄 이집트 B737기를 요격해 범인들을 이탈리아 당국에 인도하였다.
* [[10월 11일]]
* 제40차 IMF-IBRD 총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전학련은 IMF-IBRD 서울총회에 즈음해 '미국의 경제침략 규탄과 외채정권타도를 위한 범민중 궐기대회'를 개최하였다.
* [[10월 12일]]
* 전두환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평화적 정권교체 실현'을 표명했다.
* 서울대병원은 국내 최초로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다고 발표하였다.
* 수배 중이던 서울대생 우종원 군의 변사체가 경부선 철로변에서 발견되었다.(우종원 의문사 사건)
* <게게게의 키타로> 3기가 일본 후지TV에서 첫 전파를 탔다.
* [[10월 13일]]
* 원로 문학평론가 백철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 <빨강머리 앤> 애니판이 KBS2에서 더빙 방영되었다.
* [[10월 17일]]
* [[문익환]] 목사 등 재야인사 60여 명이 '민주화운동에 대한 고문수사 및 용공조작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충주 다목적댐이 준공되었다.
* 중앙일보사는 창사 25주년을 맞이해 '85타임캡슐'을 서울 남산 팔각정에 매설하였다. 이 캡슐은 2485년 개봉 예정이다.
* [[10월 18일]]: [[서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 [[양재역]] 및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 [[사당역]] 구간이 동시에 개통되었다.
* [[10월 20일]]
* 부산 [[청사포]] 앞바다에 침투한 반잠수정을 격침시켜 북한 잠수복 3벌을 수거했다.
* 국내 최초로 냉동정자를 이용해 인공수정된 시험관 아기가 고려대학교 구병삼 교수팀에 의해 탄생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임신의 인공조작에 의한 사회적 논란을 야기시켰다.
* [[10월 21일]]: 노신영 국무총리가 유엔 40주년 기념총회에서 한국 대표로서 처음으로 연설했다.
* [[10월 23일]]: 미국 상무부는 한국산 대미수출 사진앨범에 덤핑 마진율을 64.81%로 최종 판정했다.
* [[10월 29일]]
* 서울지검은 서울대 민추위원장 [[문용식]] 등 관련자 26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서울대학교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 서울시내 6개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삼민통일헌법쟁취위원회'를 발족했다.
* [[10월 31일]]: 법무부는 가정폭력범 5명에 대한 사형집행 허가를 발표하였다.
==== 11월 ====
* [[11월 3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한국 축구대표팀]]이 [[1986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일본]]을 1-0으로 꺾어 32년만에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지었다.
* [[11월 4일]]
* 삼민투위 부위원장 김동일 등 4명이 '수입개방 반대'를 외치며 새마을운동 중앙본부를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
* 서울지역 7개 대학생 14명이 '수입개방요구 전면철회' 등을 요구하며 주한 미국상공회의소를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
* 전국 21개대생 4,100여 명이 학생의 날을 맞이해 수입개방 철회 및 노동악법 철폐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파쇼헌법철폐투쟁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KBS1에서 <[[가요무대]]>가 첫 전파를 탔다.
* 재야 인사 60여 명이 '고문 및 용공조작 저지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고문공대위)'를 발족하였다.
* [[11월 6일]]
* '한국남극관측탐험대 발대식'이 개최되었다.
* 콜롬비아 좌익 무장단체가 보고타 대법원을 점거했다.
* [[11월 7일]]
* 기청협이 '반군부독재 민중민주헌법 쟁취 특별위원회'를 발족하였다.
* 콜롬비아 정부군이 대법원 점거 중이던 무장 게릴라들을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60여 명이 사망했다.
* [[11월 9일]]: 한국은행은 부실기업 특혜융자금이 그해 1월에서 9월까지 3조 6천 8백억 원에 이르렀다고 집계하였다.
* [[11월 10일]]
* 프로권투선수 장정구가 WBA 라이트플라이급 8차 방어전에서 멕시코의 헤르만 토레스를 상대로 12라운드만에 꺾어 챔피언 자리를 지켜냈다.
* '인천기독노동자총연맹'이 창립되었다.
* [[11월 11일]]
* 고문공대위는 민추협 사무실에서 연합농성에 돌입하였다.
* 서울시립대 등 4개대생 9명이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상황실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상황실 점거농성 사건)
* [[11월 12일]]: 이 날 낮 2시 11분 [[개기일식]]이 일어났다.
* [[11월 13일]]
* 전국 22개대 학생 1,500여 명이 전태일 열사 15주기를 맞이해 연합시위를 벌였다.
* 대전 제2국립묘지가 준공되었다.
* 콜롬비아에서 네바도 델 루이스 화산이 폭발해 2만여 명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갔다.
* [[11월 14일]]: 신민당 당기위는 국회부의장에 출마한 조연하, 김옥선 의원을 당명불복종을 이유로 제명시켰다.
* [[11월 15일]]: 영국-아일랜드-북아일랜드 3자가 신-구교도 간 분쟁해결을 위한 협정에 조인하였다.
* [[11월 16일]]: 임인규 출판문화협회장은 한미출판협회 저작권협상에서 저작물 복제만 규제하고 번역물은 제외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 [[11월 18일]]: 서울시내 14개대생 185명이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본관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점거농성 사건)
* [[11월 19일]]: 레이건-고르비 간 미소정상회담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되었다.
* [[11월 20일]]
* 민통련 등 23개 단체가 '민주헌법쟁취위원회(이하 민헌쟁위)'를 결성하였다.
*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1.0을 북미지역에 출시하였다.
* [[11월 21일]]
* NCC 회장단 및 6개 소속단체 회원 500여 명이 세종문화회관에서 미국의 과도한 저작권 보호 요구에 반대하며 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로 인해 재야인사 5명이 구속되었다.
* 서울시내 10개대생이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파쇼헌법 철폐를 위한 범국민 대토론회'를 열고 교내 시위를 전개하였다.
* [[11월 22일]]: '민족미술협의회(이하 민미협)'이 발족되었다.
* [[11월 23일]]
* 이란 전문가회의는 [[호메이니]] 후계자로 호세인 알리 몬타제리를 선출하였다.
* 이집트항공 648편 B737기가 지중해 상공에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에게 피랍된 후 몰타에 착륙했다.
* [[11월 24일]]: 이집트 제777부대가 여객기 구출작전 도중 화물칸을 폭파하는 바람에 인질 등 6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 [[11월 29일]]: 민정당은 조세감면규제법 등을 단독으로 기습 처리했다. 이에 신민당과 국민당 의원들이 무효를 주장하며 국회에서 농성을 벌였다.
==== 12월 ====
* [[12월 1일]]:
* [[금강개발산업]]이 서울 압구정동에 [[현대백화점]] 서울 1호점을 열었다.[* 서울 압구정 본점 개점보다 8년 앞선 1977년 8월 경남 울산시(현 [[울산광역시]]) [[현대중공업]] 본사 앞에 현대쇼핑센터(현 현대백화점 울산동구점)를 개점해 운영한 역사가 있다.]
* 파나마에서 열린 이베로-아메리카 국제기구(Organization of Ibero-American States)회의에서 [[1957년]] 기구 규정을 개정하고, 조직을 확대하였다.
* [[12월 2일]]
* 민정당이 예산안 및 '조세감면규제법 개정안' 등 7개 법안을 2분만에 단독으로 기습 처리했다.
* 신민당은 민정당의 예산안 통과 무효를 선언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 호남지역연합 삼민투위 소속 대학생 9명이 광주 미국문화원을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제2차 광주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 [[12월 3일]]
* 제10차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이 서울 쉐라톤호텔에서 개최되었다.
* '피스톨 박' [[박종규]] 전 청와대 경호실장이 세상을 떠났다.
* [[12월 4일]]
* 민추협은 개헌 추진운동의 일환으로 '1천만 명 서명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 백용현, 전명숙 등 감신대생 6명이 섬유노련 사무실을 점거해 <파쇼헌법 철폐하고 군부독재 타도하자>는 제하의 유인물을 뿌리며 농성을 벌였다.
* [[12월 8일]]: 프로권투선수 유명우가 WBA 주니어플라이급 타이틀 방어전에서 미국의 조이 올리보를 꺾어 벨트를 지켜냈다.
* [[12월 9일]]
* 보안사는 일본인 유학생 이바나 유타카를 간첩 혐의로 검거했다고 발표하였다.
* 서울시는 무크지 <창작과비평> 미등록 발행을 이유로 창작과비평사를 등록 취소시켰다.
* 과테말라 대통령 선거에서 기독교민주당 소속 후보 비니시오 세레소가 당선되면서 군부정권이 36년만에 종식되었다.
* [[12월 11일]]: 필리핀 야당은 대통령 선거에 단일 후보를 내보내기로 합의하여 대통령 후보에 [[코라손 아키노]], 부통령 후보에 살바도르 라우렐 전 상원의원을 선출했다.
* [[12월 12일]]
* 동아일보사가 <[[과학동아]]>를 창간하였다.
*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북한측이 NPT에 정식 가입했다.
* 연세대학교 이원영 교수의 주재로 한국 최초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때 외국인으로부터 전파된 국내 감염자의 숫자가 추가로 있다는 것이 밝혀져 의학계에 충격을 주었다.
* [[12월 13일]]: 한국보드세일링협회가 설립되었다.
* [[12월 16일]]: 문교부는 1986년 3월 1일부로 고교 학도호국단 폐지 및 학생회 부활을 최종 확정하였다.
* [[12월 19일]]
* 전 민청련 의장 [[김근태]]가 민추위 사건 첫 공판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받은 고문 사실을 폭로했다.
*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은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게 모든 핵실험을 중지시키는 조건으로 소련의 핵 실험장을 공개하도록 제의했다.
* [[12월 23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방소 중인 [[리펑]] 중국 부수상과 회담을 열어 양국의 관계 개선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 [[12월 26일]]: 황순원 등 지식인 2,853명이 <창비 등록취소 재고 건의문>에 서명하고 이를 문공부, 안기부, 청와대에 전달하였다.
* [[12월 27일]]: 북한의 김일성은 1988 서울올림픽 남북한 공동개최안을 언급했다.
* [[12월 28일]]
* 문교부는 <외래어표기법 개정안>을 확정/시행하였다.
* 치안본부는 8개 간첩단 11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 레바논 기독교-이슬람 양교 민병대 지도자들이 내전 종식을 위한 평화협정에 조인하였다.
* [[12월 31일]]
* 유한열 등 의원 12명이 신민당을 탈퇴하면서 신민당은 국회 단독 소집권을 상실했다.
* 국방과학연구소는 한국형 전투장갑차 K-200 개발에 성공하였다.
=== 가상 ===
*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의 배경연도.
* [[남영동1985]]의 배경연도.
* [[백 투 더 퓨쳐]]의 '현재' 연도.
* [[왓치맨]]의 배경연도. 원작 기준으로 [[리처드 닉슨]]은 '''5선''' 대통령이고, [[왓치맨(영화)|영화판]]에서는 3선 대통령이다.
* [[해리 포터: 호그와트 미스테리]]의 2학년 배경연도. [[1984년]]부터 6학년 시점인 [[1989년]]까지 이어진다.
*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반도체 칩을 노린 조선해방동맹이 선박을 탈취하려다 실패했다. 그리고 경찰이었던 주인공 사카모토 마사유키의 아버지인 사카모토 마사오가 이 사건 당시 조선해방동맹에 가담했다.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 소련군이 [[에버론]]을 침공하지만, [[NATO]]군의 작전으로 재탈환된다. - [[ARMA: 콜드 워 어썰트]]
* [[The Silver Eyes|FNaF: TSE]]에서 다섯 아이 사건이 발생한다.
== 탄생 ==
=== 실존 인물 ===
==== 1월 ====
* [[1월 3일]] - [[윰댕]]: 現 [[유튜브 크리에이터]]
* [[1월 4일]]
* [[정성룡]]: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 [[호리우치 마사토]]: [[일본]]의 [[작사#s-1|작사]]
* [[1월 5일]]
* [[윤소이]]: 대한민국의 배우
* [[허각]]: 대한민국의 가수
* [[허공]]: 대한민국의 가수
* [[1월 6일]] - [[서효림]]: 대한민국의 배우
* [[1월 7일]] - [[신다은]]: [[대한민국]]의 [[배우]]
* [[1월 9일]]
* [[홍대광]]: 한국의 가수
* [[후안프란(1985)|후안프란]]: [[스페인]]의 축구 선수
* [[1월 12일]] - [[샤인(가수)|샤인]]: 한국계 미국인 쌍둥이 듀오
* [[1월 14일]] - [[배정화]]: 한국의 배우
* [[1월 15일]] - [[클라라(배우)|클라라]]: 한국의 배우
* [[1월 16일]]
* [[이민기]]: 한국의 배우
* [[파블로 사발레타]]: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1월 17일]]
* [[강인]]: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슈퍼주니어]]의 前 멤버
* [[최성원(배우)|최성원]]: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최민우
* [[코사카 리유]]: [[일본]]의 가수
* [[1월 18일]]
* [[현우(배우)|현우]]: 대한민국의 배우
* [[리카르도 몬톨리보]]: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1월 19일]] - [[이시카와 리카]]: [[일본]]의 [[연예인]], [[모닝구 무스메]] 전 멤버
* [[1월 20일]] - [[이노우에 마리나]]: [[일본]]의 성우
* [[1월 21일]]
* [[사샤 피보바로바]]: [[러시아]]의 패션모델
* [[우규민]]: 한국의 야구 선수
* [[하라 유미]]: 일본의 성우
* [[1월 22일]] - [[나가타 아키라]]: [[일본]]의 [[남자|남성]] [[아이돌]] 그룹 [[RUN&GUN]]의 최장신/최고령 멤버
* [[1월 23일]]
* [[둥팡줘]]: [[중국]]의 [[축구선수]]
* [[산이]](정산): 한국의 래퍼
* [[1월 25일]]
* [[수현(배우)|수현]]: [[대한민국]]의 배우
* [[이유리(성우)|이유리]]: [[대한민국]]의 성우
* [[JJK]]: [[대한민국]]의 가수, 래퍼
* [[1월 26일]] - [[nao]]: [[일본]]의 가수, [[fripSide]]의 1대 보컬
* [[1월 28일]]
* [[장진용]]: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미야마 아야]]: [[일본]]의 [[여자 축구]]선수
* [[1월 29일]] - [[더 콰이엇]](신동갑) : [[1LLIONAIRE RECORDS]]의 래퍼
==== 2월 ====
* [[2월 1일]] - [[정정호]]: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2월 2일]]
* [[제시카 크리본]]: [[호주]]의 모델
* [[키리야마 렌]]: [[일본]]의 배우
* [[2월 3일]] - [[한승엽(게임 해설가)|한승엽]]: 대한민국의 프로게이머
* [[2월 5일]]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 [[2월 8일]] - [[서유리]]: [[대한민국]]의 성우
* [[2월 9일]]
* [[오재원]]: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이현승(기상캐스터)|이현승]]: [[한국]]의 [[기상캐스터]]
* [[서지훈(프로게이머)|서지훈]]: 한국의 프로게이머
* [[2월 10일]] - [[이소영(정치인)|이소영]]: 대한민국의 정치인
* [[2월 13일]]
* [[곽지민]]: [[대한민국]]의 [[배우]](본명 곽선희)
* [[박기웅]]: [[대한민국]]의 배우
* [[2월 14일]] - [[이해리]]: [[대한민국]]의 가수, [[다비치]]의 멤버
* [[2월 16일]] - [[홍텐]]: [[대한민국]]의 비보이
* [[2월 18일]]
* [[박성훈(배우)|박성훈]]: [[대한민국]]의 배우
* [[송재림]]: [[대한민국]]의 배우
* [[2월 19일]] - [[슈퍼스타K#s-7|김현지]]: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슈퍼스타K]] 출연자
* [[2월 21일]] - [[윤주희]] : [[대한민국]]의 배우
* [[2월 22일]] - [[코우사카 아츠시]]: [[일본]]의 성우
* [[2월 23일]] - [[아키타 카즈에]]: [[일본]]의 가수
* [[2월 26일]]
* [[후지모토 미키]]: [[일본]]의 가수
* [[페르난도 요렌테]]: [[스페인]]의 축구 선수
* [[2월 27일]] - [[서현진(배우)|서현진]]: [[대한민국]]의 배우
* [[2월 28일]] - [[지에구(1985)|지에구]]: [[브라질]]의 [[축구]] 선수
==== 3월 ====
* [[3월 1일]] - 남찬섭: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3월 3일]] - [[프셰므스와브 크롬피에츠]]: [[비정상회담]] 출연자
* [[3월 5일]]
* [[마츠야마 켄이치]]: [[일본]]의 배우
* [[솔루션스#s-2.3|박솔]]: 한국의 [[뮤지션]], [[밴드]] [[솔루션스]]의 멤버
* [[이현진(배우)|이현진]]: 한국의 배우
* [[3월 7일]] - [[윤승희]]: 한국의 성우
* [[3월 8일]] - [[정대훈]]: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3월 9일]] - [[JM(유튜버)|JM]] : [[대한민국]]의 [[유튜버]]
* [[3월 10일]]
* [[안젤리카 테세이라]]: [[브라질]]의 보디빌더
* [[장도연]]: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3월 11일]] - [[이다지]]: [[대한민국]]의 역사 강사
* [[3월 12일]] - [[화나]]: [[대한민국]]의 가수, 래퍼
* [[3월 13일]] - [[에밀 허쉬]]: [[미국]]의 [[배우]]
* [[3월 15일]]
* [[송창식(야구선수)|송창식]]: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이다희(배우)|이다희]]: [[대한민국]]의 배우
* [[3월 17일]] - [[오상준]]: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3월 19일]] - [[서홍준]]: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3월 20일]] - [[RADWIMPS#s-2.4|야마구치 사토시]]: 일본의 [[밴드]] [[RADWIMPS]]의 멤버
* [[3월 21일]] - [[김재호]] :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3월 23일]] - [[인생은 잠입|이선우]]: [[대한민국]]의 [[프로게이머]]
* [[3월 24일]]
* [[라나(프로레슬러)|라나]]: [[미국]]의 [[WWE]] 디바
* [[아야세 하루카]]: 일본의 배우
* [[3월 25일]] - [[Mad Clown]]: [[대한민국]]의 가수, 래퍼
* [[3월 26일]]
* [[김정모]]: 대한민국의 가수
* [[키이라 나이틀리]]: [[영국]]의 배우
* [[3월 28일]]
* [[장희영]] : [[대한민국]]의 가수, 前 [[가비엔제이]] 멤버
* [[스즈키 아키코]]: 일본의 피겨스케이팅 선수
* [[스티브 만단다]]: [[프랑스]]의 축구 선수
* [[3월 29일]] - [[키지마 류이치]]: [[일본]]의 성우
* [[3월 31일]] - [[이준석(정치인)|이준석]]: [[대한민국]]의 정치인
==== 4월 ====
* [[4월 2일]] - [[이수지]]: [[한국]]의 개그우먼
* [[4월 3일]] - [[심우연]]: 한국의 축구선수
* [[4월 4일]] - [[RADWIMPS#s-2.2|쿠와하라 아키라]]: 일본의 [[밴드]] [[RADWIMPS]]의 멤버
* [[4월 5일]] - [[차붐]]: [[대한민국]]의 래퍼
* [[4월 7일]] - [[이매진 드래곤스/멤버#s-5|벤 맥키]]: [[미국]]의 [[가수]], [[이매진 드래곤즈]]의 멤버
* [[4월 9일]] - [[야마시타 토모히사]]: 일본의 [[아이돌]] 가수
* [[4월 10일]] - [[바크하드 압디]]: 소말리아, 미국의 배우
* [[4월 12일]] - [[요시자와 히토미]]: [[일본]]의 연예인, [[모닝구 무스메]] 전 리더
* [[4월 16일]]
* [[안드레아스 그랑크비스트]]: [[스웨덴]]의 축구선수
* [[네이트 디아즈]]: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4월 17일]]
* 유민정 : [[대한민국]]의 [[연극]] [[배우]]
* [[임현주]]: MBC 아나운서
* [[4월 18일]]
* [[시마무라 유]]: [[일본]]의 성우
* [[우카시 파비안스키]]: [[폴란드]]의 축구 선수
* [[4월 19일]] - [[히라타 마나]]: 일본의 성우
* [[4월 21일]] - [[이태성]]: [[대한민국]]의 배우
* [[4월 22일]] - [[박성훈(프로게이머)|박성훈]]: 한국의 [[프로게이머]]
* [[4월 24일]] - [[나즈카 카오리]]: [[일본]]의 성우
* [[4월 30일]] - [[갤 가돗]]: [[이스라엘]] 출신의 [[배우]]
==== 5월 ====
* [[5월 1일]] - [[한신(성우)|한신]]: 대한민국의 성우
* [[5월 2일]]
* [[릴리 알렌]]: [[영국]]의 [[가수]]
* [[정주리]]: 한국의 [[코미디언]]
* [[5월 3일]]
* [[조정훈(야구선수)|조정훈]]: 한국의 [[야구]] 선수
* [[에세키엘 라베찌]]: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5월 4일]] - [[페르난지뉴]]: [[브라질]]의 축구 선수
* [[5월 5일]] - [[나카가와 쇼코]]: [[일본]]의 [[아이돌]]
* [[5월 6일]] - [[크리스 폴]]: [[NBA]]의 [[농구]] 선수
* [[5월 7일]] - [[박설아]]: [[동인(문화)|동인]]팀 [[대인배들]]의 [[일러스트레이터]], 프로 [[만화가]]
* [[5월 8일]]
* [[모창민]]: [[한국]]의 [[야구선수]]
* [[후지이 유키요]]: [[일본]]의 성우
* [[5월 11일]] - [[선우정아]]: [[대한민국]]의 가수
* [[5월 15일]] - [[김율]]: 한국의 성우
* [[5월 16일]] - [[오쿠라 타다요시]]: [[일본 아이돌]] [[칸쟈니∞]]의 멤버
* [[5월 17일]]
* [[윤희상]] : [[한국]]의 [[야구선수]]
* [[최대성]] : [[한국]]의 [[야구선수]]
* [[5월 19일]]
* [[나지완]]: 한국의 [[야구]] 선수
* [[벨라 팔코니]]: [[브라질]]의 피트니스 모델
* [[5월 18일]] - [[알리야 유수포바]]: 카자흐스탄의 前 리듬체조 선수
* [[5월 21일]] - [[서지수(프로게이머)|서지수]]: [[대한민국]]의 [[프로게이머]]
* [[5월 24일]] - [[RADWIMPS#s-2.3|타케다 유스케]]: 일본의 [[밴드]] [[RADWIMPS]]의 멤버
* [[5월 25일]]
* [[로만 레인즈]]: [[미국]]의 [[WWE]] 프로레슬러
* [[뎀바 바]]: [[세네갈]]의 축구 선수
* [[이삭(가수)|이삭]]: [[대한민국]]의 가수
* [[5월 27일]] - [[강형욱]]: 반려견 행동 전문가
* [[5월 28일]] - [[캐리 멀리건]]: [[영국]]의 [[배우]]
* [[5월 29일]]
*[[키라 그레이시]]: [[브라질리안 주짓수]], [[종합격투기 관련 인물]]
*[[이루기]]: [[대한민국 ]]의 [[피아니스트]] [[작곡가]]
* [[5월 31일]] - [[마츠자키 레이]]: [[일본]]의 성우
==== 6월 ====
* [[6월 1일]]
* [[정우람]]: 한국의 [[한화 이글스]] 소속 [[야구]] 선수
* [[알렉스 마에스트리]]: [[이탈리아]]의 [[야구]] 선수
* [[6월 2일]] - [[사와시로 미유키]]: [[일본]]의 성우
* [[6월 3일]]
* [[루카스 하렐]]: [[미국]] 출신의 야구선수
* [[우카시 피슈첵]]: [[폴란드]]의 축구 선수
* [[6월 4일]] - [[루카스 포돌스키]]: [[폴란드]] 출신의 [[축구선수]]
* [[6월 4일]]
* [[DEKAKIN]]: [[일본]]의 [[먹방]] [[유튜버]]
* [[아사리 료타]]: [[일본]]의 성우
* [[6월 7일]]
* [[미야케 마리에]]: [[일본]]의 성우
* [[이희근#s-2]]: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6월 15일]] - [[영기(1985)|영기]] : 대한민국의 코미디언이자 트로트 가수.
* [[6월 17일]] - [[이현욱(배우)|이현욱]]: [[대한민국]]의 [[배우]]
* [[6월 18일]] - [[정다혜]] - [[대한민국]]의 [[배우]]
* [[6월 20일]]
* [[정지원]]: [[한국]]의 [[아나운서]]
* [[아이부 사키]]: [[일본]]의 [[영화배우]]
* [[자리나 기지코바]]: 러시아의 前 리듬체조 선수
* [[6월 21일]]
* [[라나 델 레이]]: [[미국]]의 가수
* [[황목치승]]: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6월 22일]] - [[박석민]]: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6월 24일]] - [[배재민]]: [[대한민국]]의 [[철권 시리즈|철권]] 플레이어
* [[6월 26일]] - [[손은서]]: [[대한민국]]의 배우
* [[6월 28일]] - [[리야잔 우차쉬바]]: [[러시아]] 국적의 [[리듬체조]]선수
* [[6월 30일]]
* [[마이클 펠프스]]: [[미국]]의 [[수영]]선수
* [[박리나]]: [[대한민국]]의 성우
* [[팻 벤디트]]: [[미국]]의 [[야구]]선수
==== 7월 ====
* [[7월 1일]]
* [[레아 세두]]: [[프랑스]]의 [[배우]], [[모델]]
* [[사쿠라이 노리오]]: 일본의 만화가
* [[7월 5일]] - [[유재환(1985)|유재환]]: [[대한민국]]의 장내아나운서
* [[7월 5일]] - [[RADWIMPS#s-2.1|노다 요지로]]: 일본의 [[밴드]] [[RADWIMPS]]의 멤버
* [[7월 7일]]
* [[서우]]: [[대한민국]]의 배우
* [[장희문]]: [[대한민국]]의 성우
* [[7월 9일]] - [[애슐리 영]]: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7월 10일]]
* [[마리오 고메스]]: [[독일]]의 [[축구 선수]]
* [[박주영]]: [[한국]]의 축구 선수
* [[7월 11일]] - [[마에다 아키]]: [[일본]]의 배우
* [[7월 12일]] - [[나타샤 폴리]]: [[러시아]]의 슈퍼모델
* [[7월 13일]] - [[기예르모 오초아]]: [[멕시코]]의 [[축구 선수]]
* [[7월 14일]] - [[이광수(배우)|이광수]]: 한국의 배우
* [[7월 15일]]
* [[원성진]]: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 [[이원희]]: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7월 16일]]
* [[김장현|장현]]: [[대한민국]]의 가수, [[써니힐]]의 전 멤버
* [[히카사 요코]]: [[일본]]의 성우
* [[차예련]] : 대한민국의 배우.
* [[7월 17일]]
* [[이정동]]: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오현택]]: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임훈]]: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7월 19일]] - 김선경: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7월 20일]] - [[김지성(야구)]]: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개명 전 이름 김영관.
* [[7월 22일]] - [[이동휘(배우)]]: [[대한민국]]의 배우
* [[7월 26일]] - [[가엘 클리쉬]]: [[프랑스]]의 축구 선수
* [[7월 28일]] - [[마티외 드뷔시]]: [[프랑스]]의 축구 선수
* [[7월 29일]] - [[마망(가수)|마망]]: [[대한민국]]의 [[가수]]
* [[7월 31일]]
* [[장원준]] -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조윤경]]: 한국의 아나운서
==== 8월 ====
* [[8월 1일]] - [[게가드 무사시]]: [[네덜란드]]의 [[종합격투기]]선수
* [[8월 4일]]
* [[안토니오 발렌시아]]: [[에콰도르]]의 [[축구선수]]
* [[하승진]]: [[대한민국]]의 [[농구]]선수
* [[8월 5일]]
* [[신소율]]: [[대한민국]]의 배우
* [[살로몬 칼루]]: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선수
* [[8월 7일]] - [[로이크 페랑]]: [[프랑스]]의 축구 선수
* [[8월 9일]]
* [[홍진영]]: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필리피 루이스]]: [[브라질]]의 축구 선수
* [[8월 12일]]
* [[박권수]]: [[한국]]의 前 [[야구선수]]
* [[전민정]]: 한국의 전 배구선수
* [[8월 17일]]
* [[아오이 유우]]: [[일본]]의 배우
* [[최진행]]: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8월 18일]]
* [[강민호]]: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박노민]]: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양세형]]: [[대한민국]]의 [[개그맨]]
* [[8월 19일]] - [[르네 영]]: [[캐나다]]의 방송 진행자 겸 [[WWE]] 디바
* [[8월 20일]]
* [[김초롱(아나운서)|김초롱]]: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김용의]]: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알바로 네그레도]]: [[스페인]]의 축구 선수
* [[8월 24일]] - [[정순주]]: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8월 25일]] - [[임창민]]: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8월 26일]] - [[이용규]]: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8월 28일]] - [[장주희(기상캐스터)|장주희]]: [[한국]]의 [[기상캐스터]]
* [[8월 31일]]
* [[고준희]]: [[대한민국]]의 배우
* [[정훈(축구선수)]]: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 [[박한희]]: 대한민국의 [[변호사]]
==== 9월 ====
* [[9월 3일]]
* [[미야시타 유우야]]: [[일본 아이돌]] 그룹 [[RUN&GUN]]의 멤버
* [[카지 유우키]]: [[일본]]의 성우
* [[9월 4일]]
* [[윤석민(타자)|윤석민]]: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라울 알비올]]: [[스페인]]의 축구 선수
* [[9월 9일]] - [[루카 모드리치]]: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
* [[9월 10일]]
* [[김혜성(성우)|김혜성]]: [[대한민국]]의 성우
* [[로랑 코시엘니]]: [[프랑스]]의 축구 선수
* [[9월 11일]]
* [[서상원]]: [[대한민국]]의 모델 겸 운전기사, 경부선 고속도로 모델 [[한국도로공사]]
* [[히키사카 리에]]: [[일본]]의 성우
* [[9월 17일]] - [[키타야마 히로미츠]]: [[일본]]의 아이돌 [[Kis-My-Ft2]]의 멤버
* [[9월 19일]]
* [[르네 영]]: [[캐나다]]의 방송 진행자
* [[송중기]]: [[대한민국]]의 배우
* [[설정환]]: [[대한민국]]의 배우
* [[9월 23일]] - [[고토 마키]]: [[일본]]의 가수
* [[9월 28일]] - [[신동(슈퍼주니어)|신동]]: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 10월 ====
* [[10월 1일]]
* [[박상진]]: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아이바 히로키]]: 일본의 [[성우]]
* [[10월 6일]]
* [[강승현(야구선수)]]: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신송이]]: [[대한민국]]의 성우
* [[10월 8일]] - [[브루노 마스]]: [[미국]]의 [[가수]]
* [[10월 9일]] - [[L One]]: [[러시아]]의 래퍼
* [[10월 10일]]
* [[최유화]]: 한국의 배우
* [[t+pazolite]]: [[일본]]의 작곡가.
* [[10월 14일]] - [[디강]]: [[브라질]]의 [[축구선수]]
* [[10월 16일]] - [[다니엘 린데만]]: [[비정상회담]] 출연자
* [[10월 17일]] - [[카를로스 곤잘레스]]: [[베네수엘라]] 출신 [[야구]]선수
* [[10월 18일]]
* [[노미즈 이오리]]: [[일본]]의 성우
* [[요에니스 세스페데스]]: [[쿠바]] 출신의 [[야구]]선수
* [[10월 22일]]
* [[NAKAJIN]]: 일본 유명 [[밴드]] [[SEKAI NO OWARI]]의 멤버
* [[김민솔 (레이싱 모델)]]:대한민국의 레이싱모델
* [[정인영(방송인)|정인영]]: 한국의 前 [[아나운서]]
* [[아키노 하나]]: [[일본]]의 성우
* [[10월 24일]]
* [[개복어]]: [[대한민국]]의 前 [[아프리카TV]] [[BJ]], [[카카오TV PD]], 現 [[트위치]] [[스트리머]]
* [[웨인 루니]]: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 [[10월 25일]]
* [[박나래]]: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타카가키 아야히]]: [[일본]]의 성우
* [[10월 27일]] - [[홍인영]]: [[한국]]의 [[배우]]
* [[10월 31일]] - [[신성민]]: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 11월 ====
* [[11월 1일]] - 타카하시 료: [[일본]]의 [[작곡가]], [[베이시스트]], [[기타리스트]]
* [[11월 10일]] - [[알렉산다르 콜라로프]]: [[세르비아]]의 축구 선수
* [[11월 11일]] - [[레디]]: [[대한민국]]의 래퍼
* [[11월 14일]] - [[토마스 베르마엘렌]]: [[벨기에]]의 [[축구 선수]]
* [[11월 18일]] - [[이용진]]: [[대한민국]]의 [[개그맨]]
* [[11월 19일]] - [[액시스마이콜]] : [[리그 오브 레전드]] BJ
* [[11월 20일]] - [[남호연]] :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11월 21일]]
* [[김희원(코미디언)|김희원]]: 한국의 [[코미디언]]
* [[노형욱(배우)|노형욱]]: 한국의 [[배우]]
* [[칼리 레이 젭슨]]: [[캐나다]]의 [[가수]]
* [[헤수스 나바스]]: [[스페인]]의 축구선수
* [[11월 22일]] - [[아사모아 기안]]: [[가나 공화국|가나]]의 축구선수
* [[11월 23일]]
* [[김미혜 (레이싱 모델)]]:대한민국의 레이싱모델
* [[빅토르 안]]: 한국 '''출신'''의 [[러시아]] [[쇼트트랙]]선수(귀화 전 이름 안현수)
* [[11월 24일]]
* [[김꽃비]]: 한국의 [[배우]]
* [[김현기(1985)|김현기]]: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11월 26일]] - [[김하영(성우)|김하영]]: [[대한민국]]의 성우
* [[11월 27일]]
* [[김기리]]: 한국의 [[개그맨]]
* [[박수진]]: 한국의 [[가수]], [[연예인]]
* [[여주석]]: 한국의 개그맨, [[범죄자]]
* [[11월 30일]] - [[미야자키 아오이]]: [[일본]]의 배우
==== 12월 ====
* [[12월 1일]] - [[자넬 모네]]: [[미국]]의 [[가수]], [[배우]]
* [[12월 2일]] - [[윤성영]]: [[대한민국]]의 前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Homme', 現 [[리그 오브 레전드]] [[코치(스포츠)|코치]]
* [[12월 3일]] - [[아만다 사이프리드]]: [[미국]]의 [[배우]]
* [[12월 4일]] - [[김회성]]: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12월 5일]] - [[김준영]]: 대한민국의 [[프로게이머]]
* [[12월 6일]]
* [[토드 더피]]: [[미국]]의 [[종합격투기]]선수
* [[타이미]]: [[대한민국]]의 여자 [[힙합]][[가수]]
* [[12월 7일]] - [[딘 앰브로스]]: 미국의 [[프로레슬러]]
* [[12월 9일]]
* [[쿠지락스]]: 일본의 [[상업지]] 작가
* [[연제원]]: 한국의 웹툰 작가
* [[12월 10일]]
* [[닛타 에미]]: 일본의 성우
* [[찰리 아담]]: [[스코틀랜드]]의 [[축구선수]]
* [[12월 14일]] - [[야쿱 브와슈치코프스키]]: [[폴란드]]의 축구 선수
* [[12월 16일]]
* [[주다하]]: 한국의 [[레이싱 모델]]
* [[한선수]]: 한국의 [[배구]]선수
* [[12월 17일]] - [[권혁주(바이올리니스트)|권혁주]]: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
* [[12월 19일]]
* [[이충성]]/[[리 타다나리]]: [[한국계 일본인]] [[축구선수]]
* [[게리 케이힐]]: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12월 20일]] - [[엘리자베타 보야르스카야]]: 러시아의 [[배우]]
* [[12월 24일]] - [[최영아(기상캐스터)|최영아]]: [[대한민국]]의 [[기상캐스터]]
* [[12월 25일]] - [[나타나엘 데 소우자 산토스 주니오르]]: [[브라질]]의 축구선수
* [[12월 26일]] - [[아소 슈이치]]: 일본의 만화가
* [[12월 27일]] - [[아딜 라미]]: [[프랑스]]의 축구 선수
==== 일자불명 ====
* [[김다운]]: [[이희진(범죄자)|이희진]] 부모 살인사건의 범죄자.
=== 가상 인물 ===
* [[1월 1일]]: [[카자오카 마리]] - [[화이트 앨범 2]]
* [[1월 19일]]: [[유정(치즈인더트랩)|유정]] - [[치즈인더트랩]](영화/[[치즈인더트랩(드라마)|드라마 동일]])
* [[1월 21일]]: [[설지현]] - [[화이트데이 시리즈]]
* [[2월 7일]]: [[에어리스 게인즈버러]] - [[파이널 판타지 7]]
* [[2월 23일]]: [[이쓰키 마모루]] - [[사혼곡 2: 사이렌]]
* [[2월 28일]]: [[존 코너]] - [[터미네이터 시리즈]]
* [[3월 1일]]: [[노자키 스미레]] - [[도키메키 메모리얼 2]]
* [[3월 15일]]: [[뷰티 인사이드(드라마)#s-4.1|강사라]] - [[뷰티 인사이드(드라마)]]
* [[4월 2일]]: [[최건우]] - [[디지몬 세이버즈]]
* [[4월 7일]]: [[피탈리아 로페]] - [[신세기 GPX 사이버 포뮬러]]
* [[4월 16일]]: [[죠르노 죠바나]]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4월 17일]]: [[링컨 캠벨]]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5월 13일]]: [[이치노세 코토미]] - [[클라나드]]
* [[6월 8일]]: [[트리쉬 우나]] -[[죠죠의 기묘한 모험]]
* [[7월 14일]]: [[여승아]] - [[검은방#s-7]] 1
* [[7월 20일]]: [[이부키 후코]] - [[클라나드]]
* [[8월 5일]]: [[백인호(치즈인더트랩)|백인호]] - [[치즈인더트랩]](영화/[[치즈인더트랩(드라마)|드라마 동일]])
* [[8월 10일]]: 무나카타 미사오 - [[태양의 묵시록]]
* [[9월 1일]]: [[스테판 제반니]] - [[데스노트/애니메이션]]
* [[9월 6일]]: [[행크 앤더슨]]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 [[9월 9일]]: [[후지바야시 쿄]], [[후지바야시 료]] - [[클라나드]]
* [[9월 15일]]
* 제나 윌리터브 - [[플러스 내 기억 속의 이름]]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등장인물#s-2.4.3|크리스티나 워렌]]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 [[9월 25일]]: [[노무라 토모코]](명자) - [[GTO]]
* [[10월 9일]]: [[미즈코시 모에]] - [[다카포 시리즈|다카포]]
* [[10월 29일]]: [[아이자와 슈고]] - [[도키메키 메모리얼 Girl's Side]] 3rd
* [[10월 30일]]: [[오카자키 토모야]] - [[클라나드]]
* [[11월 7일]]: [[사기사와 미사키]] - [[다카포 시리즈|다카포]]
* [[11월 15일]]: [[마에하라 시노부]] - [[러브히나]]
* [[11월 21일]]: [[아카기 리츠코]] - [[신세기 에반게리온]]
* [[12월 8일]]: [[카츠라기 미사토]] - [[신세기 에반게리온]]
* 일자 불명
* [[GTO]]의 '''주 무대가 되는 3학년 4반 학생 대부분'''
* [[오 나의 귀신님/등장인물#s-3.2|강은희]], [[오 나의 귀신님/등장인물#s-2.1|허민수]] - [[오 나의 귀신님]]
* [[구해주]], [[손여리]] - [[이름 없는 여자]]
* [[나츠키 에리]] - [[태양의 묵시록]]
* [[데어데블(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데어데블]]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박율혜 - [[엄마와 딸 X2]]
* [[또 오해영/등장인물#s-2.3|박훈]] - [[또 오해영]]
* 문영래 - [[복학왕]], [[노병가]]
* [[시시오 가이]] - [[용자왕 가오가이가]]
* [[아쿠아맨(DC 확장 유니버스)|아쿠아맨]] - 영화 [[아쿠아맨(영화)|아쿠아맨]]
* [[오즈 우라라]] - [[마법전대 마지렌쟈]]
* [[유지민]] -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2017)]]
* [[이누이 타쿠미]] - [[가면라이더 555]]
* [[최신해]][* [[최산해]]의 누나.] - [[파워 디지몬]]
* [[최이슬(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 시리즈)|최이슬]] -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 시리즈]]
* [[카미노기 소류]], [[바라시마 신고]], [[가란 시가타르 쿠라인]] - [[역전재판 시리즈]]
* [[토마 놀슈타인]] - [[디지몬 세이버즈]]
* [[판나코타 푸고]] - [[죠죠의 기묘한 모험]][* 다만, 작중 나이가 16세이다. 죠르노와 트리시의 작중 나이가 15세인 걸 감안하면, 생일이 4월 16일 이전이라는 것만 추측할 수 있다.]
* [[하애진]], [[라시현]] - [[뷰티풀 군바리]]
* [[하치쿠지 마요이]] - [[이야기 시리즈]]
== 사망 ==
=== 실존 인물 ===
==== 1월 ====
* [[1월 3일]] - 유용대: 전 현대경제일보(현 [[한국경제신문]]) 주필
* [[1월 5일]]
* 최돈연: 대한민국의 원로 변호사
* 하종배: 전 국제신보 및 부산문화텔레비전방송(주) 사장
* [[1월 7일]]
* [[장덕진]]: 대한민국의 정치가
* [[쥘 반도렌]]: [[프랑스]]의 전 축구 감독
* [[1월 13일]] - [[백낙준]]: 제5대 국회의장, 초대 연세대학교 이사장, [[친일반민족행위자]]
* [[1월 15일]] - 한격만: 제4대 검찰총장, 전 대법관
* [[1월 16일]]
* 기혁: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재야 통일운동가 기세문의 아들
* [[김성배]]: 대한민국의 국어학자
* [[1월 19일]] - [[정헌조]]: 대한민국의 정치가
* [[1월 20일]] - [[이선구]]: 전 경향신문 사회부장
* [[1월 27일]] - [[김용주]]: (주)전방 창업주, 정치인 [[김무성]]의 부친.
* [[1월 30일]] - [[진승록]]: 서울대학교 법학대학 초대 학장
==== 2월 ====
* [[2월 3일]] - 강웅기: 대한민국의 화학공학자
* [[2월 14일]] - [[김의준]]: 대한민국의 정치가
* [[2월 20일]]
* [[이영춘]]: 전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장
* 클라렌스 내쉬: [[도날드 덕]] 목소리로 유명한 미국의 성우
* [[2월 24일]]
* [[안상홍]]: [[하나님의교회 예수증인회]] 설립자[*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의 [[하나님|아버지 하나님]]으로 유명하다.]
* [[이영일]]: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2월 25일]] - [[전수진]]: [[배화여자고등학교]] 제15대 교장이자 제8대 이사장
* [[2월 26일]] - 김난영: 대한민국의 탤런트, 방송작가 이남섭의 아내이다.
==== 3월 ====
* [[3월 2일]] - 앤 백스터: 1950년대를 풍미한 미국의 미녀 배우
* [[3월 7일]] - 임홍빈: 전 충남대학교 대학원장
* [[3월 8일]] - [[김용식(축구인)|김용식]]: 대한민국의 원로 축구인
* [[3월 9일]] - 해리 캐터릭: 1960년대 에버튼의 전성기를 이끈 축구감독
* [[3월 10일]] - [[콘스탄틴 체르넨코]]: 제5대 소련 [[서기장|공산당 서기장]]
* [[3월 12일]] - 유진 오먼디: 미국의 작곡가
* [[3월 17일]] - [[이윤용]]: 대한민국의 정치가
* [[3월 18일]] - [[이치조]]: 중요 무형문화재 제21호 '승전무' 기능 보유자
* [[3월 21일]] -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영국]]의 [[배우]]
* [[3월 28일]] - [[마르크 샤갈]]: 프랑스의 화가
* [[3월 30일]] - 카사키 시즈코: 일본의 배우이자 가수
==== 4월 ====
* [[4월 7일]] - 김지웅: 전 고려당 사장
* [[4월 8일]] - [[김정두(1918)|김정두]]: 대한민국의 정치가
* [[4월 10일]] - 김좌겸: 대한민국의 외교관, 제5대 제1무임소 장관
* [[4월 11일]] - [[엔베르 호자]]: [[알바니아]] 공산정권 시절 초대 서기장
* [[4월 12일]] - 미야구치 세이지: 일본의 배우
* [[4월 17일]]
* [[유자명]]: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장학엽: [[진로그룹]] 창업주
* [[4월 21일]] - 탕크레두 네베스: 브라질 군사정권 붕괴 이후 처음 당선된 민선 대통령 당선자. 그러나 취임을 앞두고 사망했다.
* [[4월 22일]] - [[소 다케유키]]: 일본의 영문학자, 시인, 화가이자 [[덕혜옹주]]의 남편으로 알려진 인물
* [[4월 25일]] - [[김대현]]: 동요 <자전거>를 만든 작곡가
==== 5월 ====
* [[5월 8일]] - [[김기진]]: 대한민국의 소설가, 시인
* [[5월 9일]] - [[에드먼드 오브라이언]]: [[미국]]의 [[배우]]
* [[5월 13일]] - 유판석: TC그룹 창업주
==== 6월 ====
* [[6월 8일]] - [[프리츠 켈러]]: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
* [[6월 9일]]
* 이균상: 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장
* 홍경모: [[한국방송공사]] 초대 사장이자 전 문화공보부 차관
* [[6월 10일]] - 유형진: 제12대 대한교육연합회장, 한국대학농구연맹 전 회장
* [[6월 11일]] - 윤욱현: 전 금성통신 및 금성계전(현 LS산전) 사장
* [[6월 12일]] - 서윤성: 대한민국의 방송작가. 주로 반공 드라마를 제작했다.
* [[6월 18일]] - 이숙종: [[성신여자대학교]] 설립자
* [[6월 20일]] - [[윤병구]]: 대한민국의 정치가
* [[6월 21일]]
* [[최준문]]: 동아그룹 창업주
* 헥터 보야디: 이탈리아계 미국인 요리사이자 인스턴트 식품 메이커 'Chef Boyardee'의 창업주
* [[6월 22일]] - [[강신명]]: [[숭전대학교]] 4대 총장
* [[6월 23일]] - 김치영: 초대 전매청장
* [[6월 27일]] - [[권중돈]]: 제10대 국방부 장관
* [[6월 30일]] - [[정한경]]: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7월 ====
* [[7월 5일]] - [[김규환]]: 대한민국의 언론인, 언론학자
* [[7월 8일]] - [[이응준]]: 초대 육군참모총장
* [[7월 9일]] - 김충극: 전 단국대학교 경영대학원장
* [[7월 11일]] - [[조르주 베리에스트]]: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
* [[7월 13일]] - 최영림: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 [[7월 14일]] - 여대영: 전 MBC 관현악단장
* [[7월 15일]] - [[김대진(1917)|김대진]]: 대한민국의 정치가
* [[7월 16일]]
* 최욱경: 대한민국의 여류 서양화가
* [[하인리히 뵐]]: [[독일]]의 [[소설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 [[7월 18일]] - 박생광: 대한민국의 원로 동양화가
* [[7월 22일]] - [[박동규(1916)|박동규]]: 제17대 재무부 장관
* [[7월 24일]] - 타코 하치로: 일본의 코미디언이자 권투선수
* [[7월 27일]] - 아마치 시게루: [[일본]]의 [[배우]]
* [[7월 30일]]
* 전억재: 전 천우사 사장
* [[조충훈]]: 제12대 전매청장, 제27대 재무부 차관
* [[7월 31일]] - [[장덕희]]: 제25대 농수산부 차관
==== 8월 ====
* [[8월 2일]] - 이남섭: 드라마 <[[여로]]>의 각본을 맡았던 방송작가
* [[8월 8일]] - [[이한용]]: 대한민국의 원로 언론인
* [[8월 12일]]
* [[이원영(1910)|이원영]]: 대한민국의 정치인,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
*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희생자 520명'''
* 나가노 하지무: 전 [[한신 타이거스]] 사장
* [[사카모토 큐]]: 아시아인 최초로 [[빌보드 차트]] 1위를 한 [[일본]]의 [[가수]]
* 우라카미 이쿠오: 전 하우스식품 사장
* 츠카하라 나카아키라: 오사카대학 대뇌생리학 교수
* 키타하라 요코: 다카라즈카 가극단 소속 연극배우
* 히모토 코린: 일본의 동인작가
* [[8월 13일]]
* 이우식: 대한민국의 전 대법관
* J. 윌라드 메리어트: 메리어트 호텔 창업주
* [[8월 16일]] - [[톨디 게저]]: [[헝가리]]의 전 축구감독
* [[8월 22일]] - 홍기일: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8월 25일]] - [[서맨사 스미스]]: 미국의 평화운동가
* [[8월 27일]] - 배상욱: 제28대 체신부 장관, 전 삼성물산 사장
==== 9월 ====
* [[9월 10일]] - [[조크 스타인]]: 스코틀랜드의 축구인
* [[9월 11일]] - [[나츠메 마사코]]: [[일본]]의 [[배우]]
* [[9월 12일]] - [[정상윤]]: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9월 13일]] - [[김용우(1912)|김용우]]: 제6대 국방부 장관, 제11대 대한적십자사 총재
* [[9월 17일]] - 서항석: 대한민국의 원로 연극인
* [[9월 21일]]
* [[손기업]]: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민후식: [[해태그룹]] 공동 창업주
* [[9월 25일]] - [[유봉영(1897)|유봉영]]: 전 조선일보 부사장
* [[9월 27일]] - 오오토모 류타로: 일본의 배우
* [[9월 28일]] - [[길재호]]: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가
* [[9월 30일]] - [[시몬 시뇨레]]: 프랑스의 배우
==== 10월 ====
* [[10월 2일]] - [[록 허드슨]]: [[미국]]의 [[배우]]
* [[10월 5일]] - 압두스 사타르: [[방글라데시]] 8대 대통령
* [[10월 6일]] - 최경명: [[봉산탈춤]] 기능 보유자
* [[10월 8일]] - [[카를 치셰크]]: 오스트리아의 전 축구 선수
* [[10월 10일]]
* [[오손 웰스]]: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영화감독
* [[율 브리너]]: [[미국]]의 배우
* [[10월 11일]] - 우종원: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10월 13일]]
* [[백철]]: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 [[카니에 에이지]]: 일본의 [[성우]]
* [[10월 18일]] - 다나카 쥰: 일본의 배우
* [[10월 21일]] - 송광영: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10월 22일]] - [[쉬스유]]: 중국의 군인.
* [[10월 30일]] - [[김명운]]: 전 건국대학교 농과대학 학장
==== 11월 ====
* [[11월 2일]] - 김익달: 학원사 및 학원밀알장학재단 설립자
* [[11월 10일]]
* 엄이경: [[동학농민운동]] 관련자 중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11120032920502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5-11-12&officeId=00032&pageNo=5&printNo=12348&publishType=00020|가장 마지막으로 생존한(향년 110세) 인물]]
* 스펜서 W. 킴볼: 제12대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회장
* [[11월 14일]] - [[구웨이쥔]]: 전 [[중화민국]] 국무총리, 외교관.
* [[11월 17일]] - 론 놀: 전 크메르공화국 대통령
* [[11월 21일]] - 양명문: 대한민국의 시인
* [[11월 24일]] - 모리스 포돌로프: [[NBA]] 초대 총재
* [[11월 28일]] - [[요제프 스미스티크]]: 오스트리아의 전 축구감독
* [[11월 29일]] - [[김정호(가수)|김정호]]: [[한국]]의 [[가수]]
==== 12월 ====
* [[12월 3일]]
* [[박종규]]: 제2대 대통령경호실장
* [[오상원]]: [[한국]]의 [[소설가]]
* [[12월 12일]]
* [[앤 백스터]]: 미국의 여배우
* [[12월 18일]] - 토아케 히사오: 일본의 배우
* [[12월 25일]]
* [[데이브 진코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전담 캐스터
* [[페르낭 아당]]: [[벨기에]]의 축구선수
* [[12월 26일]] - [[다이앤 포시]]: 미국의 여성 인류학자, 고릴라 보호운동가
* [[12월 29일]]
* 문재린: 대한민국의 개신교 목사, 독립운동가, [[문익환]] 목사의 부친.
* 추송웅: 대한민국의 탤런트, 연극배우, [[추상미]]의 부친.
* [[12월 31일]] - 타치카와 스미토: 일본의 성악가
=== 가상 인물 ===
* 사카모토 마사오[* 주인공 사카모토 마사유키의 아버지.]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 일자불명
* --[[닥터맨]] - [[초전자 바이오맨]]--
== 데뷔 ==
=== 가수 ===
==== 한국 ====
* 김승진
* [[김흥국]][* 다만 1989년까지는 무명가수에 지나지 않았다. 1989년에 [[호랑나비(노래)|호랑나비]]를 발표하면서부터 스타덤에 올랐다.]
* 높은음자리
* 다섯손가락
* [[들국화(밴드)|들국화]]
* 전인권
* [[이혜리(가수)|이혜리]]
==== 해외 ====
* [[건즈 앤 로지스]]
* [[데이비드 해셀호프]]
* [[메가데스(밴드)|메가데스]]
* [[세이키마츠]]
* 셰일라 마지드
* [[스쿨리 D]]
* 소년대
* 엘라 앤 더 보이즈
* [[엘라 아미누딘]]
* [[오냥코클럽]]
* [[화이트 라이온]]
* [[휘트니 휴스턴]]
* LL 쿨 J
* [[PsyᆞS]]
=== 예능인 ===
* [[김용(코미디언)|김용]]
* 김의환
* [[팽현숙]]
=== 만화계 ===
* [[가모우 히로시]] - <임기응변맨>
* [[강경옥(만화가)|강경옥]] - <현재진행형 ing>
* [[데라사와 다이스케]] - <이슈크>
* [[서영수]] - <노총각 시리즈>
* 손상헌 - <긴급구조대 출동>
* 오경아 - <호수>
* [[이로마]]
* 이명신 - <몽마르뜨 언덕>
* 이성운 - <새 신부에게 꽃다발을>
* 이은홍 - <함께 하는 우리들>
* 전후연
* 최영중 - <D.D.R.>
=== 스포츠 ===
==== 야구 ====
* [[선동열]]
* [[이강돈]]
* [[이순철]]
==== 축구 ====
* [[조지 웨아]]
* [[호마리우]]
==== 농구 ====
* [[마누트 볼]]
* 마리오 엘리
* 마이클 애덤스
* 벤와 벤자민
* 빌 웨닝턴
* 스퍼드 웹
* 웨이먼 티스데일
* 자비에 맥대니얼
* 찰스 오클리
* [[조 듀마스]]
* 존 배틀
* 존 콘칵
* [[칼 말론]]
* [[크리스 멀린]]
* 타이론 코빈
* 테리 포터
* [[패트릭 유잉]]
* [[핫로드 윌리엄스]]
* AC 그린
==== 배구 ====
* [[이도희]]
* 지경희
==== 씨름 ====
* 김칠규
* [[이만기]][* 제1회 천하장사 씨름대회에서 장사 타이틀을 따낸 것은 [[1983년]]이지만 이 때는 [[경남대학교]] 학생 신분이었다. 현대중공업 코끼리 프로씨름단으로 입단해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것이 1985년의 일이다.]
==== 권투 ====
* [[마이크 타이슨]]
* 이경연
== 은퇴 ==
=== 스포츠 ===
* 김강남-[[김성남]] 형제
* 김성관
* 김정미
* [[박찬숙(농구인)|박찬숙]] (1차 은퇴)
* 이미우
== 히트작 ==
=== 드라마 ===
* 국산
* 조선왕조 오백년: 임진왜란
* 더빙
* 전격 Z작전
* 출동! 에어울프
=== 영화 ===
* 깊고 푸른 밤
*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 백 투 더 퓨쳐
* 폴리스 스토리
* 강시선생
* 예스 마담
=== 가요 ===
* 한국
* 강병철과 삼태기 - 엄마에게 꾸중듣던 생각
* 고은희, 이정란 - 사랑해요
* 구창모 - '''[[희나리(노래)|희나리]]''', 문을 열어
* 김범룡 - '''바람 바람 바람'''
* 김수철 - '''[[젊은 그대]]''', 내일, 별리
* 김수희 - '''[[남행열차]]'''
* 김승덕 - 아베마리아
* 김원중 - 바위섬
* 나미 - '''빙글빙글'''
* 들국화 - '''[[행진(노래)|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매일 그대와]], 세계로 가는 기차, 사노라면
* 마음과 마음 - 그대 먼 곳에
* 박영민 -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 배따라기 -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아빠와 크레파스
* 설운도 - 나침반
* 송골매 - 하늘나라 우리 님
* 양희은 - 한계령
* 어우러기 - 밤에 피는 장미
* 오복 - J 그대는
* 윤시내 -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
* 이광조 - 사랑을 잃어버린 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 이동원 - 이별노래
* 이선희 - '''아! 옛날이여''', 갈등,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
* 이진관 - 인생은 미완성
* 임병수 - 사랑이란 말은 너무너무 흔해
* 전영록 - 불티
* 정광태 - 김치 주제가, 짜라빠빠, 힘내라 힘
* 정수라 - 도시의 거리, 눈물의 의미
* 조덕배 - 나의 옛날이야기
* 조용필 - [[조용필 7집|'''어제 오늘 그리고''', '''그대여''', '''여행을 떠나요''', '''미지의 세계''']]
* 주현미 - 비 내리는 영동교
* 최진희 - '''사랑의 미로'''
* 한마음 - 말하고 싶어요
* 해바라기 - 모두가 사랑이예요, 어서 말을 해, 이젠 사랑할 수 있어요
* 현이와 덕이 -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 혜은이 - 열정, 파란 나라
* 해외
* [[A-ha]] - [[Take On Me]]
* Angie Gold - Eat You Up[* 이듬해 일본의 오기노메 요코가 "ダンシングヒーロー"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2003년에는 양희승이 "화려한 싱글"로 리메이크했다. 2018년 오기노메 요코 버전을 다시 리메이크한 것이 셀럽파이브의 "셀럽이 되고 싶어".]
* George Benson -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
* Lionel Richie - Say You, Say Me
* Stevie Wonder - Part Time Lover
* Madonna - Into The Groove
* Phil Colins - One More Night
* Run–D.M.C. - King of Rock
* '''U.S.A. for Africa - [[We Are The World]]'''
* 오냥코 클럽 - セーラー服を脱がさないで
* 나카모리 아키나 - 飾りじゃないのよ涙は
=== 애니메이션 ===
* TV판 국내 더빙
* [[꼬마자동차 붕붕]]
* 천하무적 멍멍기사
* 비디오판 국내 더빙
* [[기갑함대 다이라가XV|지구방위군단XV]]
* 천하무적 가르비온
* 해외
* [[기동전사 Z 건담]]
* [[요괴 Q타로]](제3작)
* [[하이스쿨 기면조]]
* [[더티 페어]]
=== 베스트셀러 ===
* 단 - 김정빈 저.
*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 이해인 저.
* 지리산 - 이병주 저.
* 영웅시대 - 이문열 저.
== 유행어 ==
* 먼저 인간이 되어라~ - 김병조
== 최초 ==
=== 방영 프로그램 ===
* [[가요무대]]
* 중학생 퀴즈
* MBC 리포트 (1차)
=== 창간 ===
* 월간 만화광장
* 여성조선: 창간 당시 제호는 <가정조선>.
== 출시 상품 ==
=== 자동차 ===
* 현대자동차
* 포니엑셀/프레스토
* 스텔라 CXL
* 소나타 (Y1)
* RB600
* 에어로 고속버스(하이데크)
* 기아산업-아시아자동차
* 봉고타운
* 봉고 픽업
* AM919 에어로 큐빅
* 대우자동차
* BH120H 로얄슈퍼
=== 식음료 ===
* 농심
* 6월: 까만소
* 8월: 오징어집
* 10월: 소면
* 롯데제과
* 1월 24일: 뉴쥬시후레쉬, 뉴후레쉬민트, 뉴스피아민트
* 6월: 스크류바
* 8월 8일: 빅바, 미스터매너
* 12월 15일: 비엔나
* 동서식품
* 포스트 슈퍼크리스프
* 맥스웰하우스 쿨커피믹스
* 동서 보리차
=== 생활용품 ===
* 애경산업
* 럭스로얄비누, 포인트비누
=== 화장품 ===
* 애경폰즈
* 폰즈 콜드크림/영양크림, 맛사지크림, 크린싱크림, 바세린로션
== 달력 ==
[include(틀: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
[각주]
[[분류:1985년]] |
1985년 월드 시리즈 | [[분류:월드 시리즈]][[분류:준 리버스 스윕]]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ffffff><:>[[파일:external/content.sportslogos.net/d0f5924qi7galhvjgg5xn9fpc.gif|width=180]][br] '''[[월드 시리즈]] 일람''' ||
||<width=30%><:> [[1984년 월드 시리즈|1984년]][br][[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1 ←}}} ||<width=30%><#FFFF00><:> '''1985년[br][[캔자스시티 로열스]]''' ||<:> {{{+1 →}}} ||<width=30%><:> [[1986년 월드 시리즈|1986년]][br][[뉴욕 메츠]] ||
||<-2><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004687><tablebgcolor=#ffffff><#FFF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launiusr.files.wordpress.com/kansas_city_royals_1985_world_series_champions.jpg|width=600]]}}} ||
||<-2><#c09a5b><:> '''{{{#000000 1985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2><#004687><:> [[캔자스시티 로열스|'''{{{#ffffff 캔자스시티 로열스}}}''']] ||
||<:> '''{{{#000000 MVP}}}''' || '''[[브렛 세이버하겐|{{{#000000 브렛 세이버헤이겐}}}]]''' ||
||<tablealign=center><#ffffff><:> [[파일:external/content.sportslogos.net/d0f5924qi7galhvjgg5xn9fpc.gif|width=300]] ||
||<#ed174b><:> {{{#ffffff 1985 월드 시리즈 로고 }}} ||
[목차]
== 개요 ==
||<width=100%><-2><:><tablebordercolor=#ed174b><bgcolor=#ed174b> {{{+1 {{{#ffffff '''1985 MLB WORLD SERIES'''}}}}}} ||
||<width=500><height=150><#002c73> [[파일:attachment/KC_caplogo.png|width=130]] ||<width=500><height=150><#c41e3a> [[파일:St_Louis_Cardinals_Cap_Insignia.svg.png|width=120]] ||
||<width=500><#004687> [[캔자스시티 로열스|{{{#ffffff {{{+1 '''캔자스시티 로열스'''}}}}}}]] ||<width=500><#000066>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ffef00 {{{+1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1985년 10월 19일에 시작해 27일 7차전으로 끝난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월드 시리즈]] 경기. [[미주리]]주 연고팀들간의 대결이었기 때문에 "Show-me Series" (미주리주의 별명이 'Show-me'이다) 또는 양 시를 잇는 도로인 'I-70의 승부'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 양 팀 상황 ==
=== 1985년의 [[캔자스시티 로열스]] ===
1980년대의 로열스는 무려 10년 동안 6차례에 걸쳐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하며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비록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패하기는 했지만, 1980년에는 전통의 명가 [[뉴욕 양키스]]까지 수차례의 도전 끝에 물리치고 창단 첫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1985년의 로얄스는 에이스 [[브렛 세이버하겐]][* 성적:32전 20승 6패 평균자책점 2.87 158탈삼진.]의 눈부신 활약으로 91승 71패라는 성적으로 85년 시즌을 마감하고 동부지구 우승팀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ALCS에서 격돌했다. 초반 1승3패로 몰렸지만 내리 연승을 거둬 7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4대3 시리즈 스코어로 승리, 1980년에 이어 두 번째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룬다.
=== 1985년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세인트루이스에서 104번째, [[내셔널리그]]에서 94번째 시즌을 맞이한 카디널스는 그 해 신인왕으로 뽑힌 준족 빈스 콜먼과 내셔널리그 MVP를 차지한 윌리 맥기, 또 그라운드의 마법사로 불리는 수비의 신 [[아지 스미스]]가 포진해 내셔널리그를 평정하고 101승 61패로 [[뉴욕 메츠]]에 3게임 앞선 상황으로 시즌을 마친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NLCS를 6차전에서 마무리짓고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이 NLCS 역시 명작으로 유명한데 [[아지 스미스]]의 끝내기 홈런때 캐스터였던 잭 벅의 '''"Go crazy folks! Go crazy!"'''라고 외친 장면은 지금까지 야구중계 역사상 명언으로 기억된다.]
== 진행 ==
=== 1차전-5차전 ===
||||||||||||||||||||||||||||||<#c41e3a><:> {{{#ffef00 10월 19일, 로열스 스타디움 }}} ||
||<#dcdcdc> '''팀''' ||<#dcdcdc> '''1회''' ||<#dcdcdc> '''2회''' ||<#dcdcdc> '''3회''' ||<#dcdcdc> '''4회''' ||<#dcdcdc> '''5회''' ||<#dcdcdc> '''6회''' ||<#dcdcdc> '''7회''' ||<#dcdcdc> '''8회''' ||<#dcdcdc> '''9회''' ||<#dcdcdc> '''R''' ||<#dcdcdc> '''H''' ||<#dcdcdc> '''E''' ||
||<#dcdcdc>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0 || 0 || 1 || 1 || 0 || 0 || 0 || 0 || 1 ||<#dcdcdc> '''3''' || 7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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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전은 세인트루이스가 가져갔다. 존 튜더는 7안타에 1실점만을 하는 호투를 보여 카디널스의 3대 1 승리를 선사했다. 2차전은 로열스의 찰리 리브란트가 계속되는 포스트시즌의 불운아라는 사실을 다시금 입증하는 뼈아픈 경기였다. 2대 0으로 훌륭하게 경기를 이끌어 가던 리브란트는 갑자기 9회초에서 난조를 일으켜 무려 3점을 고스란히 카디널스에 헌납해주시는 [[대인배]]적 기질을 일으켜 4대 2로 다시 무릎을 꿇었다. 이후 하루 건너 뛰어 열린 3차전에서는 에이스 [[브렛 세이버하겐]]의 호투로 카디널스를 6대 1로 제압하고 시리즈 스코어 2대 1을 만든다. 이어 이튿날 열린 4차전에서는 1차전 선발 존 튜더가 다시 등판, 3대 0 [[완봉승]]을 거두고 3대 1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이에 5차전에서 로열스가 반격, 6대 1의 승리를 거두고 시리즈를 3대 2로 좁혔다. 그러나 카디널스는 아직 유리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었고 이런 상태에서 문제의 6차전으로 돌입했다.
=== 6차전 : 오심은 오심을 낳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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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차전에서 카디널스는 대니 콕스를 로얄스는 포스트시즌의 불운아 찰리 리브란트[* [[1991년 월드 시리즈]] 6차전에서 [[커비 퍼켓]]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은 그 선수다.]를 각각 등판시켰다. 이 6차전은 희대의 오심으로 얼룩진 경기로 유명한데, 이미 4회때 [[막장]]의 전조가 보였다. 4회말에 1루에 있던 [[프랭크 화이트]]가 도루를 시도했지만 명백하게 세이프로 보인 플레이를 아웃으로 선언해버리는 바람에 1대 0으로 앞서갈 기회를 놓치고 오히려 8회초, 카디널스가 브라이언 하퍼의 적시타로 1대 0으로 앞서게 됐다. 또다른 막장은 9회말에 일어났다. 마무리로 마운드에 등판한 신인 토드 워렐은 로열스의 선두타자 호세 오타를 맞이하고 오타의 바운드성 강한 타구를 1루수 잭 클락이 잡아 1루 커버에 들어선 워렐에게 토스했으나 1루심이었던 돈 덴킨저가 세이프로 선언한 것.
후에 비디오 판독결과, 오타는 당연하게 아웃감이었으나 세이프로 처리한 것이었다. 당연히 카디널스 측은 어필했고 또 당연히(...) 그 어필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다음 타자였던 스티브 발보니가 안타로[* 그 이전에 발보니가 파울 플라이를 쳤으나 1루수였던 잭 클락과 포수 [[대럴 포터]]의 콜 사인이 어긋나 놓쳐버리는 불상사까지 터졌다.] 무사 1,2루의 상황에서 오닉스 콘셉시온이 스티브 발보니를 대신해 대주자로 나서고 타자인 짐 선드버그가 첫 두 번의 번트실패를 한 뒤 세번째 번트는 투수앞으로 가져다대는 바람에 워렐이 2루주자 오타를 아웃시켜 1사 1,2루가 된 상황에서 로열스는 대타로 할 매크래를 내보내고 워렐의 제 2구를 포수였던 포터가 포구하지 못하는 바람에[* 이것 역시 후일담이 기가 막힌데 당시 투수였던 토드 워렐과 포수였던 포터의 사인 미스였다는 것이었다. 포수였던 포터는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안경이 흘러내리는 것을 바로 고치기 위해 마스크에 손을 갖다댄 것이 워렐로 하여금 슬라이더를 요구하는 사인으로 오인하고 던진 슬라이더가 포터 옆으로 빠져나간 것이었다고.] 위 주자를 진루시켜 1사 2,3루로 만들었고 결국 카디널스 덕아웃에서 매크래를 고의사구로 거르라는 신호를 보내 1사 만루를 만든다. 로얄스는 다시 대타로 대인 오르지를 대타로 내보내고 워렐의 2구를 받아쳐 우익수 앞으로 떨어지는 적시타로 주자 2명을 불러들여 2대 1 역전승으로 경기를 7차전으로 끌고간다. 카디널스에게 있어서 이 6차전은 사상 최고의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 7차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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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없는 이 7차전에서 로열스는 에이스 [[브렛 세이버하겐]]을 내세웠고 이에 질세라 카디널스 역시 에이스 존 튜더를 내세웠다. 2회에 2점, 3회에 3점을 추가한 로열스는 5회말에서 무려 6득점을 하면서 카디널스의 추격의지를 완전히 뭉개버렸다. 브렛 세이버하겐은 5안타 무실점으로 카디널스를 완벽하게 틀어막아 로열스는 창단 첫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카디널스 선수들은 6차전의 후유증이 컸던 까닭에 7차전에선 거의 '''될대로 돼라!!'''식의 플레이를 남발했고 특히 허조그 감독은 앙금이 여전히 남아있는 탓에 주심이던 덴킨저에게 툭하면 고함을 질러대는 등 평정심을 잃은 상태였다. 심지어 당시 카디널스의 선발이었던 존 튜더는 강판되어 덕아웃으로 들어와서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벽을 손으로 분질러 손을 상해하는 [[자해]]까지 했을만큼 엉망진창이었다.
== 기타 ==
* 6차전에서 브렛 세이버하겐은 경기전 인터뷰에서 산기가 임박한 아내에게 짧막한 사랑의 메세지를 보냈다. 그리고 그가 7차전에 등판했을 때는 한 아들의 아버지가 됐다. 그리고 현재는 손주까지 봤다.
* 로열스는 이 해에 2번이나 벼랑끝에 몰린 상황에서 (3대 1의 상황) 내리 3연승을 거두며 기사회생에 성공한 팀으로 기록을 올렸다.[* 패패승패승승승. 이 해의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와 월드 시리즈의 승패순서가 정확히 일치한다. 양대 챔피언십 시리즈와 월드 시리즈를 통틀어서 이 승패순서는 단 세 번 나왔는데, 그 중 두 번을 캔자스시티가 올린 셈.(나머지 한 번은 1958년 월드 시리즈에서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우승한 양키스이다.)] 그리고 월드 시리즈 7전 포맷이 2-3-2로 바뀐 1924년 이후 최초로 첫 두 게임을 홈에서 내준 뒤에 승리한 팀으로도 기록을 올렸는데 이듬해 [[뉴욕 메츠]]가 그 기록을 이어받는다.
* 이 해부터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가 5전 3선승에서 7전 4선승제로 변경되었다. 덕분에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4차전까지 3승 1패로 앞서고도 5~7차전을 [[캔자스시티 로열스]]에게 모두 패하면서 첫 월드 시리즈 진출은 1992년에 이루게 된다.
* 카디널스는 이 해의 월드 시리즈에서 수치스러운 기록을 남겼는데 '''.185'''라는 월드시리즈 최저 타율의 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 기록은 [[2001 월드 시리즈|16년 뒤]], [[뉴욕 양키스|어느 무시무시한 제국]]에 의해 깨어진다('''.183'''(...)).
* 6차전의 원흉(카디널스의 입장에서)이었던 돈 덴킨저 심판은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 심판진 로테이션상 7차전에서는 구심을 맡았는데 [[화이티 허조그]] 감독은 약간 또라이 기질이 있었던 [[호아킨 안두하르]]를 등판시켰다. 안두하르는 덴킨저 구심의 볼판정에 툭하면 위협적인 언사와 몸짓으로 덴킨저를 도발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퇴장당하는 사고를 저질렀는데 경기후 "그 빌어먹을 ㅆㅂ놈이 제대로 심판만 봤어도 여기까진 안왔다!"고 까자 덴킨저는 '''"댁님들이 .185를 쳐대지 않았음 여기까지 안왔을 거임"'''이라고 맞대응, 후일담에 [[화이티 허조그]] 감독이 6차전의 복수차 내보낸 것이라는 말도 있다.
* 다 이겼던 경기를 졌다는 분함을 이기지 못한 카디널스는 원정팀 화장실의 변기를 방망이로 때려 손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범인은 바로 안두하르였다.
* 아울러 덴킨저 심판은 월드시리즈 이후 살해협박같은 인신공격성 편지를 받는 등 집중 표적이 되었는데 자신도 이후에야 오심을 내린것을 알았다고.
* 월드 시리즈가 시작하기전 카디널스는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대참사'''를 겪는데 바로 신인이자 1번타자로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 있던 빈스 콜맨을 부상으로 잃은 것. 이 과정이 참 기가 막힌 것이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이었는데 당시 경기가 열릴 세인트루이스에 비가 내려 경기요원들이 방수포를 깔아놓는 과정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당시 카디널스는 자동 방수포 포장기계가 있어 자동으로 방수포가 깔리고 있는 중이었다. 당시 빈스 콜맨은 팀동료였던 테리 펜들턴과 담소중이었는데 우연하게 방수포 기계가 자신들을 향해 오고 있었고 이를 발견한 콜맨이 동료인 펜들턴을 구해내고 자신이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결국 이 부상으로 콜맨은 월드 시리즈를 결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게 연쇄반응을 일으켜 카디널스는 1번타자로 윌리 맥기를 세웠으나...
* 이 해 이후 로열스는 무려 '''29년'''동안 포스트시즌과 인연이 없었다. 필리스가 34년 연속, 컵스가 38년 연속 포스트시즌 실패할 때는 양 리그 1위만 가을야구를 하던 때이므로 어떤 면에서는 로열스의 기록이 더 치욕스러운 기록이다.
* 시간은 흘러 29년 뒤, 로열스는 [[캔자스시티 로열스/2014년#s-3|2014 포스트 시즌]]에서 8연승(와일드카드 결정전 승리-디비전 시리즈 3연승-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4연승, 2014년 10월 15일)을 거두며 29년만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1985년 월드 시리즈의 3연승을 포함하면 포스트 시즌 11연승 중.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에서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월드시리즈 진출을 놓고 다투고 있어 양팀 팬덤은 29년만에 월드시리즈 리매치를 은근히 기대했으나 결국 자이언츠가 NLCS 시리즈 전적 4-1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여 무산됐다.
* 참고로 이 해 일본과 한국에서도 창단 첫 우승이 나왔다.[[한신 타이거스]]가 [[양대리그]] 창설 35년 만에 첫 [[1985년 일본시리즈|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뤄냈으며, [[삼성 라이온즈]]가 가을야구 티켓을 독점하며 통합우승을 거두었다. 그 85동기는 나란히 90년대까지 우승을 못하다가 삼성은 2002년에 다시 우승을 차지했고, 로열스는 2015년에 성공했다. 심지어 같은 85동기인 삼성이 [[2013년 한국시리즈|13코시]]에서 이해 월시와 같은 패패승패승승승으로 우승했다. 한신만 [[커넬 샌더스의 저주|No 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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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 | [include(틀:역대 KBO 한국시리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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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개요 ==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이후 첫 우승이자 '''역대 최고 승률 우승'''으로, 이 해에는 규정상 전반기와 후반기를 모두 1위로 마쳐서 '''한국시리즈 없이 우승이 확정되었다'''. KBO가 포스트시즌 규칙을 어떠한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더라도 한국시리즈를 생략할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러한 유형의 우승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삼성 라이온즈는 '''시즌 최고 승률인 0.706을 기록'''했다. 시즌 전 스프링캠프를 당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훈련지였던 베로비치에서 가졌고, 다저스와 경기도 가졌었는데 이때의 경험이 통합우승의 밑거름이 된 것으로 보인다.
== 한국시리즈 규정 변경 ==
이미 1984년에 져주기 경기의 폐해를 경험한 KBO는 1985년 시즌에 앞서 규칙을 개정하게 된다.
>1) 연간 승률 1위팀이 전기리그 혹은 후기리그 한쪽만 제패하고 다른 기 리그의 우승팀과 연간 승률 2위팀이 다를 경우에는 그 두 팀이 플레이오프를 거쳐서 한국시리즈 진출.
>2) 연간 승률 1위팀과 2위팀이 각각 전, 후기리그를 우승하는 경우 두 팀끼리 한국시리즈.
>3) 1984년의 [[OB 베어스]]처럼 연간 승률 1위팀이 전후기리그 어느 쪽도 우승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 는 연간 승률 1위팀이 한국시리즈에 자동 진출하고 전, 후기리그 우승팀이 플레이오프를 거쳐서 한국시리즈에 진출.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4) 한 팀이 전후기 모두 우승하는 경우 포스트시즌 없이 시즌 우승팀으로 인정.]]'''
이렇게 새로운 규칙으로 바꾸어서 져주기 경기 사태를 방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한 팀이 [[아페르투라와 클라우수라|전, 후기리그]]를 모두 제패할 경우 '''한국시리즈 없이 해당 팀을 우승팀으로 결정한다'''는 규정을 남겨놨다는 점이다. 이는 리그가 출범한 1982년부터 존재하던 규정인데, 예나 지금이나 포스트시즌 흥행에 민감한 KBO가 애초에 이런 룰을 왜 만들었는지 의문.
== 전개 ==
1985년 프로야구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로 나누어 전년도보다 10경기 늘어난 55경기씩 총 110경기를 치렀다. 때문에 한국시리즈는 전기리그 우승 팀과 후기리그 우승 팀이 맞붙어 승부를 겨뤘다.
그런데 [[1984년 한국시리즈]] 때 최동원 하나를 못 이겨 우승을 놓친 [[삼성 라이온즈]]가 1985년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휩쓸게 되자 룰상 삼성 한 팀 빼고 전멸하게 되면서 경기할 방법이 없으니 플레이오프는 물론, 한국시리즈마저 소멸됐다. 이 사례는 [[김시진]]과 [[김일융]] 2명이 나란히 25승씩 50승을 합작했던 1985년 삼성 라이온즈가 완전 우승을 달성했던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 시즌 후 ==
1985년에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아 낭패를 보게 된 [[KBO 리그|KBO]]는 결국 1년 만에 [[1986년 한국시리즈|다음해 한국시리즈]]에서 규칙을 바꾸게 된다. 본래 전기에 우승한 팀은 후기에는 선수들의 체력 안배를 염두하는 쪽으로 선회를 했는데 삼성이 이 [[불문율]]을 깬 것.
이 때 삼성은 한국시리즈 규정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제안을 내놓는데 다름아닌 플레이오프 4강으로 치르는 것을 내놓았다. 사실 당시의 전력으로 볼 때 삼성은 4강에는 들 수 있는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 평가절하된 영광 ==
하지만 한국 야구팬 모두가 한국시리즈 우승이 진정한 우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우승은 KBO 역사에서 철저히 무시당하게 된다. 2002년 우승할때까지 모두가 삼성이 우승기록이 없다고 생각했으며, 1985년의 우승은 사실상 한국시리즈 없는 반쪽 우승으로 취급되었다. 따라서 삼성도 모두가 인정하는 제대로 된 우승을 원하였고, 2002년 우승할때까지 절치부심 하게 된다. 나중에 정규리그 우승의 가치가 상승하며 그나마 재평가 되었던 적도 있지만 오랜기간 1985년의 우승은 논외로 철저히 무시받게 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통합우승도 엄연히 KBO에서 정식으로 인정한 우승이라는 것이다.'''[* 한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종 순위 1위 ≠ 우승인 경우는 세 차례 있다. 2019-20 KBL의 [[원주 DB 프로미]], 2019-20 V-리그 남자부의 [[서울 우리카드 위비]], 여자부의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이 세 차례 모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시즌이 중단되었고 끝내 재개되지 못한 결과다.] 삼성이 규정을 만든 것도 바꾼 것도 아니고 그냥 매경기 최선을 다해서 규정대로 우승을 인정 받았으니 문제는 전혀 없다.
80-90년대 막강한 전력을 자랑했으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하면서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기 이전까지는 타 팀팬들로부터 우승 한 번도 못한 팀이 무슨 명문이냐는 조롱과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또, [[한국야구위원회|KBO]] 회의 등에서 삼성이 의견을 내면 다른 구단들이 우승 한번 못 해본 구단이 설친다며 면박을 당했다는 [[카더라]]도 있었다. 모두가 인정을 안하는 우승이였기에 삼성 내부에서도 이 우승은 곧 없는 취급을 받게 된다.
이후 삼성은 2001년까지 [[해태 타이거즈|해태]]에 3번이나 호구잡히고 준우승 횟수는 1986년부터 이때까지 5회였다. 또한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1999년의 참사]] 및 [[2001년 한국시리즈/4차전|포스트시즌 한 이닝 최다 실점]][* [[2001년 한국시리즈]] 4차전(vs 두산) 3회 12실점]의 피해자가 되는 등 전형적인 [[콩라인]]이 되었다. 그렇게 [[2002년 한국시리즈|'''17년이 지난 후'''에야]] 드디어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루어냈다. 이 우승때도 전국민이 삼성의 첫 우승으로 알고 있었으며 모두가 그렇게 말하였으며 1985년의 우승은 언급도 되지 못하였다. 당연히 삼성구단도 1985년 우승을 번외로 취급하였다. 이는 선수들도 마찬가지여서 이만수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 한 것이 은퇴할 때까지 큰 한으로 남아있었다고 하며. [[양준혁]]은 2002년에 와서야 삼성이 진정으로 우승을 맛봤다는 논지의 말을 남긴적도 있었다. 사실 한국시리즈 기준으로'''만''' 보면 삼성의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은 원년 창단 멤버 구단들 가운데서 가장 늦은 우승이다.
그래서 2002년 우승 당시에도 캐스터나, 해설진들은 모두 첫 우승이라고 했을 정도로 1985년 우승은 철저하게 묻혀 있었으며, 이것은 2005년에야 캐치프레이즈에서 '''V3'''를 언급하면서 정식으로 우승을 인정했다.
== 기타 ==
* 사실 1982년 당시 '''OB 베어스가 이렇게 우승하려고 했다.''' 그러나 삼성은 OB전 2연승을 추가하며 후기 우승은 삼성으로 확정되면서 나가리. 그리고 1984년 삼성도 전기리그를 우승한 뒤 후기리그까지 제패해 한국시리즈를 없애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상대 고르기로 선회했는데 그 대가는 [[최동원#s-3.3.2|망했어요......]]
* 해외 사례로는 전후기리그 제도를 [[KBO 리그|KBO]]보다 먼저 채용했던(1973~1982) [[퍼시픽리그]]에서도 똑같은 일이 있었는데, 바로 1970년대 퍼시픽리그 최강호팀 [[한큐 브레이브스]]가 1976, 1978년 전후기리그를 모두 우승하며 퍼시픽리그 [[플레이오프]][* 이 당시 제도는 전후기 우승팀이 5전 3선승제로 맞붙어서 우승팀이 [[퍼시픽리그]] 우승팀이 되고 [[일본시리즈]]로 진출하는 제도였다. 참고로 개최구장은 1~2차전은 전기 우승팀, 3~5차전은 후기 우승팀의 홈구장에서 개최하는 제도였다.]를 취소시켜 버린 바 있다. 물론 이때는 퍼시픽리그 플레이오프만 취소되는 거지 [[일본시리즈]] 자체가 취소되는 게 전혀 아니니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러나 [[퍼시픽리그]]는 가뜩이나 흥행도 안되는데 [[플레이오프]]까지 취소되어서 죽을 맛이었을 테지만.
* 통합 우승이 나오고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게 되면서 얼핏 보면 준우승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1985년 준우승 팀은 통합 및 후기 2위를 달성했던 '''[[롯데 자이언츠]]'''로 기록되었다. 이 때가 롯데의 첫 준우승이다. 아직도 많은 롯데팬들이 1995년 OB에게 한국시리즈에게 3-4로 석패할 때를 첫 번째 준우승이라고 알고 있으나, 잘못된 것이다. '한국시리즈' 준우승은 아니나[* 그러나 기록상 한국시리즈 준우승과 동일하게 취급한다. 준우승 수상도 했다.] 준우승은 준우승이다. 또한 '''전년도 준우승팀이 전년 우승팀을 2위로 내리고 우승한 최초의 시즌'''이다. 이 일은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일어났다.
* 상단 사진에 나온 파란색, 흰색 유니폼이 미묘하게 청백전같은 느낌을 주긴 하지만 실제로는 각각 1985년도 당시의 원정경기, 홈경기 유니폼이다.
* 삼성이 롯데 원정경기에서 매직넘버를 지웠기에 [[구덕 야구장]]에서 시즌 우승이 확정된 유일한 시즌이다. 부산 롯데가 사직으로 옮긴 이후 역사까지 합쳐도 대구 삼성 외에는 부산에서 한국시리즈 트로피를 들어 올린 팀이 없다. --이건 솔직히 [[롯데 자이언츠|여기]]의 탓이 크다--
* 이 해 삼성과 같은 해의 우승한 V1 동기로 [[한신 타이거스]]와 [[캔자스시티 로열스]][* 캔자스가 우승했던 [[1985년 월드 시리즈]]는 85동기인 삼성이 우승했던 [[2013년 한국시리즈]]랑 패패승패승승승 스코어가 똑같다.]가 있다. 이 중 캔자스와 삼성은 다시 우승하는 데 성공했지만 한신은...
== 관련 매체 ==
야구 만화가 [[최훈]]이 기억하는 1985년의 삼성. 아래에 달린 코멘트는 각 선수들의 이미지를 4 글자에 맞춘 것이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24&article_id=0000001150|원본]]은 [[김형준(기자)|김형준]] 칼럼
[[파일:attachment/sam1.jpg]]
* 일단뛰어 [[이해창(1953)|이해창]] : 언제나 어디론가 뛰고 있었다는 기억밖에 없다.
* 이번특화 [[허규옥]] : 희한하게도 내야수 [[배대웅]] [[천보성]]과 세트로 기억하고 있다.
* [[본좌라인|타격머신]] [[장효조]] : 장효조는 항상 1루에 있다.
* 난교타자 [[이만수]] : 공갈포라고 생각했었다.[* 최훈이 과거 [[마구마구]]의 요청으로 특별 카툰을 그릴 당시 이만수의 기록을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이미지와 달리 교타자인데다 볼넷당 삼진갯수도 그 [[양준혁]], [[장효조]]보다 적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내용의 포스트를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었다. 아마 이만수에게 "난 교타자"라는 설명을 붙인 것은 이러한 감상에서 비롯된 듯 하다. [[http://blog.naver.com/vanitygetz?Redirect=Log&logNo=110054154306&from=postView|포스팅 주소]]] ~~[[난교]] 타자 아니다~~ [* '난, 교타자' '교타자다' '교타자임' ~~교자타임~~ 등 평범한 표기가 얼마든지 가능했다는 점에서 노리고 썼다는 의심은 가능하다.]
[[파일:attachment/sam2.jpg]]
* 장타전문 [[박승호(야구)|박승호]] : 장효조 이만수 잘 넘기고 박승호에게 맞는 일이 꽤 있었다.
* 류수타법 [[김성래]] : 삼성 최고의 타자는 김성래라고 생각했다.
* 사이클링 [[이종두]] : 무조건 3할 치는 줄 알았다.
* 삼루의빛 [[김용국(야구)|김용국]] : 헬멧이 벗겨졌을 때의 임팩트는 무덤까지 가져갈 것 같다.
* 꽃남유격 [[정진호(1956)|정진호]] : 얼마전 정진호 코치가 현역 시절엔 꽃남이었단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정작 정진호 코치의 현역 시절 기억은 없다.
[[파일:attachment/sam3.jpg]]
* 원조노예 [[김시진]] : [[선동렬]], [[최동원]]보다 더 멋있었다.
* 삼색커브 [[김일융]] : 김일륭[* 당시에 김일륭이라 불렸던 것으로 추측된다.]: 공이 스트라이크존 안에 들어가는 걸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도 타자는 다 휘두르더라---)
* 불굴의지 [[황규봉]] : [[이선희(야구)|이선희]]와 언제나 세트.[* 아마 최훈이 언급하는건 원년인 1982년의 이선희를 뜻하는 듯 하다. 왜냐하면 82년 이후 이선희는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김유동]]에게 결승 만루[[홈런]]을 맞은 심리적 충격 때문이었는지 이듬해인 1983년부터 급격한 하향세를 탔으며 1985년에는 아예 [[MBC 청룡]]에서 뛰었다.]
* 초대소방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 : 눈이 나빠도 야구선수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주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한국프로야구 역대 포스트시즌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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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table align=right><table width=400><table bordercolor=#008c44><bgcolor=white> {{{+4 '''{{{#008c44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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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ght=40><bgcolor=#ee3224> {{{#ffffff ''' 참가팀 ''' }}} ||<-2> 24개팀 ||
||<-3><height=40><bgcolor=#008c44> {{{#ffffff ''' {{{+1 대회 결과 }}} ''' }}} ||
||<height=40><bgcolor=#ee3224> {{{#ffffff ''' 우승 ''' }}}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br]{{{-1 (2번째 우승)}}}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파일:Argentina AFA 1986-before WC.png|height=35]]]] ||
||<height=40><bgcolor=#ee3224> {{{#ffffff ''' 준우승 ''' }}}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서독]]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파일:Germany DFB 1978-1994.png|height=35]]]] ||
||<height=40><bgcolor=#ee3224> {{{#ffffff ''' 3위 ''' }}}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프랑스]]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파일:France FFF 1986.png|height=35]]]] ||
||<height=40><bgcolor=#ee3224> {{{#ffffff ''' 4위 ''' }}} ||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벨기에]] ||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파일:Belgium KBVB 1986.png|height=35]]]] ||
||<-3><height=40><bgcolor=#008c44> {{{#ffffff ''' {{{+1 수상 }}} ''' }}} ||
||<height=40><bgcolor=#ee3224> {{{#ffffff ''' 골든볼 ''' }}} ||<-2> [[디에고 마라도나]]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 ||
||<height=40><bgcolor=#ee3224> {{{#ffffff ''' 골든슈 ''' }}} ||<-2> [[게리 리네커]]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 ||
||<-3><height=40><bgcolor=#008c44> {{{#ffffff ''' {{{+1 이전·이후 대회 }}} ''' }}} ||
||<width=33%>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1982년[br]스페인]] ||<width=33%><bgcolor=#ee3224> {{{#ffffff ''' 1986년[br]멕시코 ''' }}} ||<width=33%>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1990년[br]이탈리아]] ||
[목차]
[clearfix]
== 개요 ==
[youtube(DvVyYywZ2XE)]
[youtube(3eDZV-p9DiI)]
[[1986년]] [[멕시코]]에서 개최된 13번째 [[FIFA 월드컵]]. 원래는 [[콜롬비아]]가 개최하려 했으나 1985년 11월 네바도 델 루이스 화산 폭발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데다가 국내 치안 문제 및 경제난으로 개최를 포기하는 바람에 대신 멕시코가 16년만에 다시 개최하게 된 월드컵이다. 사실 멕시코도 콜롬비아와 비슷한 이유로 경제 사정은 영 좋지 않았고 치안도 나빠졌지만 그래도 콜롬비아처럼 내전이 펼쳐지는 판이 아니었던데에다가 인프라는 그런대로 갖추어져 있기는 했다. 그래서 멕시코가 떠안게 된 것. 1985년에 멕시코 시티와 근교지역에 대지진이 일어나 거의 1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고 경제적 피해또한 엄청났지만 외채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복구하는데 성공을 거두면서 대회자체는 정상적으로 치러졌다. 허나 그와 별개로 이후의 멕시코도 사정이 그리 좋은 나라가 아니라는 점때문에 멕시코 내에서는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과 더불어서 씁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서독]]이 3:2로 패배하면서 준우승, 우승은 [[아르헨티나]]가 차지했다.
1986년 5월 31일부터 1986년 6월 29일까지 24개 본선진출국가가 [[멕시코]]의 12개 경기장에서 52경기를 치렀다. 11개 도시에 12개의 경기장이 지어졌다. 고산지대가 많은, 특히 [[멕시코 시티]]부터가 고지인 지형적 특성상 많은 선수단이 적응훈련에 힘썼다.
또한 이 대회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32년만에 본선에 진출한 대회이다. 또한 한국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월드컵 생중계가 이루어진 대회인데[* 이전 대회까지는 모두 녹화중계였다.] 이탈리아-불가리아의 개막전과 한국팀의 경기, 그리고 서독-아르헨티나의 결승전을 생중계했다. 물론 그 외 경기는 밤 시간에 여전히 녹화중계를 해줬다.
== 개최 경기장 ==
[[멕시코시티]] - [[에스타디오 아스테카]](Estadio Azteca) 114,600명 수용. 개막전과 결승전.
멕시코시티 - [[에스타디오 올림피코 우니베르시타리오]](Estadio Olímpico Universitario)[*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의 주경기장이었다.] 72,212명 수용.
[[과달라하라]] - [[에스타디오 할리스코]](Estadio Jalisco) 66,193명 수용.
[[푸에블라]] - [[에스타디오 쿠아우테목|에스타디오 콰우테모크]](Estadio Cuauhtémoc) 46,416명 수용.
[[산니콜라스데로스가르사]] - [[에스타디오 우니베르시타리오(UANL)|에스타디오 우니베르시타리오]](Estadio Universitario) 43,780명 수용.
[[케레타로]] - [[에스타디오 라 코레히도라]](Estadio La Corregidora) 38,576명 수용.
[[몬테레이]] - 에스타디오 테크놀로히코(Estadio Tecnológico)[* 2017년 철거됨.] 33,805명 수용.
[[레온]] - [[에스타디오 레온|에스타디오 누 캄프]](Estadio Nou Camp) 30,531명 수용.
[[네사우알코요틀]] - [[에스타디오 네사 86]](Estadio Neza 86) 34,536명 수용.
[[이라푸아토]] - [[에스타디오 세르지오 레온 차베스]](Estadio Sergio León Chávez) 31,336명 수용.
[[사포판]] - [[에스타디오 트레스 데 마르소]](Estadio Tres de Marzo) 30,015명 수용.
[[톨루카 데 레르도|톨루카]] - [[에스타디오 네메시오 디에스]](Estadio Nemesio Díez) 32,612명 수용.
==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지역예선|지역 예선]] ==
24개 팀을 뽑는 지역 예선에서 출전권 배당은 아래와 같았다. 이 때부터 아시아로부터 오세아니아의 출전권이 정식 분리되었다. 하지만 0.5장이라 예나 지금이나 출전하기 힘든건 매한가지.
|| 대륙 || 출전권 수 || 비고 ||
|| 남미 || 4 || ||
|| 북중미카리브 || 2 || 개최국인 멕시코 포함 ||
|| 아시아 || 2 || 동부와 서부에서 각 1팀씩 ||
|| 아프리카 || 2 || ||
|| 오세아니아 || 0.5 || 유럽과 대륙간 PO ||
|| 유럽 || 13.5 || 오세아니아와 대륙간 PO ||
|| 합계 || 24 || ||
하위 항목
*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지역예선]]
== 대회 엠블럼·[[마스코트]]·[[월드컵 공인구|공인구]] ==
=== 엠블럼 ===
[[파일:/image/etimesi/2010/06/17/1_13_Copy(36).jpg]]
멕시코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사용된 엠블렘.
서 있는 석상에 비친 그림자가 축구공을 차기 위해 폼을 잡고 있다.
보면 알겠지만 로고의 세계지도에 동아시아와 오세아니아는 아예없다..
=== [[마스코트]] ===
[[파일:external/www.theibug.com/Mexico-Pique-fifa-world-cup-1986-mascot.jpg]]
[[파일:mexico-mascot.jpg]]
마스코트는 피케. 멕시코 전통의 [[모자]] [[솜브레로]]를 쓴 매콤한 고추를 형상화했다. 월드컵 마스코트 중에서 식물을 형상화한 몇 안 되는 마스코트이다.
=== [[FIFA 월드컵/공인구|공인구]] ===
[[파일:external/ncc.phinf.naver.net/2-1.jpg]]
AZTECA(아스테카). [[아스텍]]의 이름을 딴 최초의 완전 인조가죽(합성수지) 공인구였다.
=== 주제가 ===
본 대회의 공식 주제가는 [[영국]]의 [[뮤지컬]] 배우이자 가수였던 스테파니 로렌스(Stephanie Lawrence)가 부른 [[https://www.youtube.com/watch?v=lgig3IbLz-4|A Special Kind of Hero]]이다. 곡 자체의 퀄리티는 괜찮지만 월드컵과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 주제가라기에는 좀 무겁고 장엄한 느낌이 들면서도 가수의 목소리 또한 경쾌하고 힘차기보다는 가늘고 잔잔한 느낌이라 월드컵 주제가로써는 인기가 별로 없었고, 노래가 명곡으로 재평가된 현재도 노래 자체가 너무 오래된 관계로 인지도는 별로 없는 편. 여담으로, 이 곡을 부른 스테파니 로렌스는 1949년생으로 당시에는 국제적으로 크게 알려진 편이 아니었지만 모국인 영국의 뮤지컬 바닥에서는 나름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었고, 풍부한 성량과 가창력으로 호평을 받았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는 갑자기 2000년에 과음으로 인해 요절했다.
한편 공식 주제가는 아니지만 유명세는 더욱 뛰어난 곡 있는데 응원곡인 [[https://youtu.be/Y8aIvD4N8GM|The Fans - Ole Ole]]이다. 듣자 마자 '[[마성의 BGM|아 이 노래!]]'라고 할 만한 유명한 그 곡이다.
== 우여곡절 ==
=== 개최국 변경 ===
이 대회는 원래 [[콜롬비아]]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1982년 10월 콜롬비아 측에서 재정악화를 이유로 개최를 포기해 버렸다. 그래서 FIFA는 부랴부랴 월드컵 개최국을 다시 정하느라 진땀을 뺐다. [[브라질]], [[미국]], [[캐나다]] 등이 개최 의사를 밝혔으나 결국은 1983년 5월, [[멕시코]]가 개최국으로 최종 선정되었는데, 정작 멕시코 역시 시간에 쫓긴데다가 고이율과 석유값 하락으로 외채가 불어나면서 경제적으로 크게 악화되었으며, 더군다나 1985년 [[멕시코 시티]]에서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는 악재가 연달아 터졌기 때문에 쫓기듯이 [[FIFA 월드컵]]을 준비해야 했다.
=== 치안 문제 ===
특히 불안정한 치안이 이슈화되었는데, 실제로 아르헨티나의 훌리건들과 잉글랜드의 훌리건들이 [[포클랜드 전쟁]]의 여파 때문에 멕시코 도로 한복판에서 수 많은 인원들이 모여서 백주대낮에 심하게 '''패싸움을 벌였다.''' 아르헨티나 및 잉글랜드 양쪽 모두 수많은 '''사상자'''가 났으며 이 때문에 '''전 경기에 경찰들이 대량으로 배치'''되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실제로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가 8강에서 만나자 경기장에는 아예 초대형 [[철책]]으로 양 팀의 응원석 자체를 격리시켰다.
== 흥미로운 팀들 ==
* 우승팀은 아르헨티나였다. [[디에고 마라도나]], [[호르헤 발다노]], [[호르헤 부루차가]]를 앞세운 아르헨티나[*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2014년 브라질 월드컵]]과 비슷해보이지만 차이점은 [[디에고 마라도나|마라도나]] 자리에 [[리오넬 메시|메시]]가 있고 [[호르헤 발다노|발다노]] 자리에 [[곤살로 이과인|이과인]]이 있으며 [[호르헤 부루차가|부루차가]] 자리에 [[앙헬 디마리아|디마리아]]가 있는데 마라도나-메시와 부루차가-디마리아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지만 문제는 발다노-이과인 자리에서 발다노와 이과인이 완전히 딴 판의 선수라는 것이다. 발다노는 몸싸움에 능수능란한 전형적인 돌격형 스트라이커지만 이과인은 위치선정으로 먹고사는 타겟터다.]는 한국과 불가리아를 쉽게 꺾고 16강에서는 이 대회 기준으로 세계에서 '''우승 경력이 있는 유일한 약체'''인 우루과이를 이긴 뒤 8강에서 [[잉글랜드]] 전에서 그 유명한 [[신의 손]]을 포함해 후반 6분과 10분 두 골을 득점한다(2-1). 4강전의 [[벨기에]]는 마라도나 단독에게 가볍게 2:0으로 발렸고, 결승전의 [[서독]] 역시 아르헨티나를 막을 수는 없었다.
* 서독은 조별리그부터 덴마크에 쳐잡히는 불운을 겪었으나 이후 팀을 재정비해 결승까지 올라갔다. 결승에는 불리한 입장에 처했을 때 투입한 루디 푈러의 활약으로 후반 29분, 35분(Völler의 골)에 골을 넣는 등 0:2에서 2:2까지 따라잡는데 성공하지만 고작 3분만인 후반 38분 부루차가에게 골을 내주면서 2:3으로 분패했다. 3-4위전에서 [[프랑스]]는 연장에서 두 골을 넣으며 4:2로 벨기에를 꺾었다. 그러나 서독은 이 월드컵에서 덴마크에 0:2로 패배한 이래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2010년 남아공 월드컵]] 세르비아전에서 0:1로 패배할 때까지 24년간 조별리그에서 무패행진을 달렸다. 그러나 그 세르비아전으로부터 8년, 이 월드컵으로부터 32년 후에 [[카잔의 기적|그 동안 모면해왔던 조별리그에서의 패배들을 몰빵해서 당하게 된다.]]
* 벨기에는 [[생존왕]]이었다. 지역예선에서도 죽을 쒔으나 [[플레이오프]]에서 그 네덜란드 상대로 혈투를 벌여 둘이 득실차까지 동률을 찍었으나 다득점으로 간신히 본선 진출, [[멕시코]]와 [[파라과이]]에 밀려 조 3위로 16강 진출, 그러나 승승장구한 끝에 4강까지 올라가는데 성공했다. 심지어 16강에서는 소련과 [[연장전]]까지 가는 난투극 끝에 4-3이라는 희대의 점수로 이겼고, 8강전 [[스페인]]을 상대로는 스페인 선수들이 집단으로 [[식중독]]에 걸리는 바람에 정상적으로 맞붙으면 감히 대들 수 없는 스페인이 빌빌거려 [[승부차기]]까지 끌고 가는 데 성공했고 결국 승부차기로 이겼다. 그러나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서 다시 스페인을 조별리그에서 만났을 때는 결국 1-2로 복수당했다. ~~물론 그래도 16강 진출은 했지만...~~
* [[소련]]은 [[헝가리]]를 6:0으로 신나게 털어버렸다. 5명의 선수가 골고루 득점했다. 2승 1무로 C조 1위로 진출했고, 16강전에서 [[이고리 벨라노프]]가 [[해트트릭|연장 이전에 2골, 연장에서 한골을 넣는]] 기염을 터트렸으나 연장에서 두 골을 먹혀 4:3으로 벨기에에게 석패했다. 그리고 이 경기가 지금까지 소련이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소련이란 이름으로 마지막으로 출전한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루마니아]]와 [[아르헨티나]]에 발리며 1승 2패, 조 4위로 탈락했기 때문.
* [[잉글랜드]]는 [[포르투갈]]에 0:1로 지고, 모로코와 비겼으나 기적같은 [[게리 리네커]]의 [[해트트릭]]으로 [[폴란드]]를 3:0으로 꺾고 1승 1무 1패로 F조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1승 2무를 거둔 [[모로코]]가 조 골 득실 1위.) 16강전에서도 [[파라과이]]를 3:0으로 [[떡실신]]시킨 잉글랜드였지만,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가 시전한 신의 손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래도 [[게리 리네커]]가 6골로 득점왕에 올라 체면은 살렸다. 의외로 마라도나는 [[신의 손]]을 포함해도 다섯 골을 기록했고, 베스트 플레이어만을 수상했다. 더불어 해외 베팅업체들은 아르헨티나가 꼼수로 이긴 경기라고 하여 경기를 인정하지 않고 그저 1:1로 경기를 비겼다고 하여 1:1로 베팅한 사람들에게만 배당금을 줬다. 하지만 정작 그 경기를 뛴 잉글랜드 선수들은 마라도나의 2번째 골을 맛봤기 때문에 절대 자신들이 비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 영국 방송에서 생중계를 해설하던 앵커가 그 두번째 골 이후 현자타임에 돌입한 채 "우리는 축구의 상식을 벗어난 선수를 상대하고 있다"고 인정해버렸다.]
* [[스페인]]은 8강전인 [[벨기에]]전을 하루 앞두고 선수들이 단체로 [[식중독]]에 걸렸다. 그 탓에 경기에서는 배가 너무 아파서 제대로 실력을 못냈고 그 결과 비교적 약한 팀인 벨기에에게 승부차기까지 끌려가서 결국 4강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멕시코]] 사람들은 [[몬테수마 2세|목테수마]]의 복수라며 이를 [[쌤통]]으로 여겼다. 그러나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다음 대회]]에서 스페인은 조별리그에서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E조#s-1.5|벨기에에게 확실히 앙갚음을 해주게 된다.]] --물론 스페인과 벨기에는 동반 16강에 진출했지만...--
* [[모로코]]는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조별 리그를, 그것도 1위로 통과했다. 그리고 모로코는 30년이 넘도록 다시는 월드컵 토너먼트를 못 넘고 있다.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16강에 다시 올라갈 뻔했으나 애매한 [[페널티 킥]]으로 이긴 노르웨이에게 밀려 탈락.
* [[1983년]] 청소년 축구에서 4강을 거둔 세대들이 본격 등장한 [[대한민국]]은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이래 32년만에 본선을 밟았다. 사실상의 첫 출전이었던것. 새로운 세대와 32년만의 본선진출에 기대감은 높았으나.... 32년만의 진출은 곧 경험부족이었다. 상대에 대한 분석은 전혀 없었고 현지 친선 경기 및 사전 준비도 거의 없었으며 선수들은 경기장에 들어서자 월드컵 본선 + 코쟁이 천지 + 거의 경험할 일이 없던 관중의 열기에 얼었다. 게다가 조편성 운이 없어서 '''이전 1978년, 1982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두 팀과 같이 묶였다.''' 아르헨티나전에서 [[허정무]]가 [[디에고 마라도나|마라도나]]를 발로 걷어찬 것이 이슈가 되었고, 결국 졌지만 마라도나가 있는 그 팀을 상대로 골을 넣는 등 3:1로 선전, [[불가리아]]와는 처절한 수중전 끝에 1:1로 비겼으며, [[이탈리아]]와는 편파 판정으로 인한 혼란속에서도 2:3으로 [[졌지만 잘 싸웠다]]. 비록 불가리아에 밀려서(한국 1무 2패, 불가리아 2무1패) 조 4위로 16강은 가지 못했지만, 1무 2패라는 숫자보다 경기 내용이 더 충실하며[* 전 경기 득실점 존재] 대한민국이 치른 경기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가 있었던[* 1차전: 대한민국 역사상 월드컵 첫 골, 2차전: 대한민국 역사상 월드컵 첫 승점, 3차전: 대한민국 역사상 월드컵 첫 멀티골] 월드컵이었다. [[차범근]]과 [[최순호]], [[박경훈]], [[조광래]], [[정용환]], [[허정무]] 등을 비롯한 걸출한 멤버들의 활약으로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도 경기력이 좋았다.
* 이탈리아는 [[알레산드로 알토벨리]]가 매 경기마다 골을 뽑아 리그전에서만 4골을 달성하며 1승 2무로 16강에 진출했으나 프랑스에 0:2로 패배당하는 쓴맛을 보고 탈락했다.
* [[브라질]]은 한골도 내주지 않으며 3승으로 D조 1위로 진출했고, [[폴란드]]를 16강에서 4:0으로 [[떡실신]]시켰으나 프랑스와의 8강전에서 1:1로 비기는 탓에 결국 승부차기에서 져서 떨어졌다. [[카레카]]가 5골을 벌었다.
* [[덴마크]]는 '''서독을 2:0으로 꺾고''', 무려 9골을 쏟아내며 (1골 실점) [[우루과이]]를 6:1로 바르는 등 E조에서 '''3전 전승으로''' 1위로 진출했으나 16강에서 스페인의 [[에밀리오 부트라게뇨]]에게 4골을 내주며 1:5로 [[역관광]]을 당해버렸다. [[프레벤 엘케어 라르센]]이 4골의 득점을 올렸다.
* [[파라과이]]는 [[벨기에]]와 [[이라크]]를 꺾으며 조별예선에서는 엄청나게 분전했으나 16강에서 [[잉글랜드]]에게 0:3으로 학살당했다.
== 대회 진행 ==
이번 대회부터 2차 리그를 폐지하는 대신 1차 조별리그 이후 각 조의 1, 2위를 차지한 12개 팀 이외에 6개의 조 3위 팀 중에 성적이 좋은 4개 팀이 16강에 진출하도록 변경했다. 자세한 방식은 [[와일드카드(스포츠)]] 참조. 이 방식은 [[1994 FIFA 월드컵 미국|1994년 미국 월드컵]] 때까지 계속되었다가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이르러서는 본선 진출국이 32개국으로 증가하면서 폐지되었다.
또한 이 월드컵부터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공식 규정을 변경했는데, 그 이유는 전 대회인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경기 중 서독과 오스트리아가 알제리와 칠레 전의 경기결과를 보고 난 뒤, [[히혼의 수치|그 결과에 따른 플레이를 했기]] 때문이다.
== 조 편성 ==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16강 진출국. 순서는 조별 리그 순위.
||<-5> 조별 라운드 ||
|| A조 || '''아르헨티나''' || '''이탈리아''' || '''불가리아'''[* 불과 2무 1패로 16강 진출] || 대한민국 ||
|| B조 || '''멕시코''' || '''파라과이''' || '''벨기에''' || 이라크 ||
|| C조 || '''소련''' || '''프랑스''' || 헝가리[* 1승을 거두고도 탈락했다.[[지못미]]...] || 캐나다 ||
|| D조 || '''브라질''' || '''스페인''' || [[북아일랜드]][* 북아일랜드가 출전한 마지막 월드컵 본선 경기] || 알제리 ||
|| E조 || '''덴마크''' || '''서독''' || '''우루과이'''[* 불과 2무 1패로 16강에 진출] || 스코틀랜드 ||
|| F조 || '''모로코''' || '''잉글랜드''' || '''폴란드''' || 포르투갈 ||
=== A조 ===
대한민국이 천신만고 끝에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이후 32년 만에 간신히 본선 무대로 진출했는데 조편성이 무지막지했다. '''[[디에고 마라도나]]''', [[호르헤 발다노]], [[호르헤 부루차가]], [[세르히오 바티스타]], [[네리 품피도]] 등 레전드들이 즐비한 우승국 아르헨티나, 전 대회 우승국으로 비록 전 대회 득점왕 및 MVP였던 [[파올로 로시]]가 부상으로 벤치를 지켜도[* 한국전에 대비한 [[쿵후축구|중국전에서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12년 후]], 한국도 [[황선홍|똑같은 전철]]을 밟게 되는데...~~] [[가에타노 시레아]], [[주세페 베르고미]], [[브루노 콘티]], [[마르코 타르델리]] 등 레전드들이 즐비한 자타가 공인하는 우승 후보 이탈리아와 한 조가 되었다. 그나마 만만한 게 불가리아였지만, 이들도 유럽 예선에서 [[미셸 플라티니]]가 있는 프랑스를 2-0으로 격파하기도 하며(원정에선 1-0으로 졌다.) 5승 1무 2패로 유고슬라비아, 동독 등을 제치고 프랑스와 같은 점수로 골득실에서 밀려 2위로 본선 진출한 나라였다.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width=30]] || [[아르헨티나]] || 3 || 2 || 1 || 0 || 6 || 2 || +4 || 5 || 결선 직행 ||
||<rowbgcolor=#ddffdd> 2 || [[파일:이탈리아 국기.svg|width=30]] || [[이탈리아]] || 3 || 1 || 2 || 0 || 5 || 4 || +1 || 4 || 결선 직행 ||
||<rowbgcolor=#ffffdd> 3 || [[파일: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국기(1971–1990).svg|width=30]] || [[불가리아]] || 3 || 0 || 2 || 1 || 2 || 4 || -2 || 2 || 경합 대상 ||
||<rowbgcolor=#ffdddd> 4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 [[대한민국]] || 3 || 0 || 1 || 2 || 4 || 7 || -3 || 1 || 탈락 ||
* 이탈리아 1 - 1 불가리아
* '''아르헨티나''' 3 - 1 대한민국
[youtube(x5tKkDAE7zY)]
[youtube(DfpdhFKSte4)]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는 ([[파올로 로시]]의 부상 결장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불가리아와 비기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한 반면, 그 전의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의 압도적인 능력으로 대한민국을 3-1로 완파했다. 대한민국이 아르헨티나를 상대하면서 [[허정무]]가 수비 도중에 공을 거둬내다가 [[마라도나]]를 걷어찬 사건은 전 세계에 화제의 사건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당시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박창선]]이 골을 넣으면서 대한민국의 월드컵 역사상 첫 번째 골이 기록된다.
* 이탈리아 1 - 1 아르헨티나
* 불가리아 1 - 1 대한민국
대한민국과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서는 [[김주성(축구)|김주성]]과 함께 대표팀의 막내이자 1983년 청소년 월드컵의 주역 중 한 명이었던 [[김종부]]가 동점골을 넣었다.
* '''아르헨티나''' 2 - 0 불가리아
* '''이탈리아''' 3 - 2 대한민국
[youtube(n80jRxPnY5U)]
아르헨티나는 불가리아를 쉽게 이기고 16강에 진출했다. 대한민국은 이탈리아전에서 주심 [[데이비드 소차]]의 편파판정에 시달린 끝에 패했다. 가장 압권은 전반 35분, [[알레산드로 알토벨리|알토벨리]]가 한국의 페널티 박스에서 '''[[할리우드 액션|지 혼자 페널티박스 안에서 자빠지는 쌩쇼를 했는데도]] [[페널티 킥]]을 준 것이다.''' 이에 한국 선수들은 당연히 항의했지만 주심은 항의하는 [[박경훈]]에게 옐로카드를 주는 것으로 쿨하게 씹었다. 그나마 '''이 페널티킥은 실축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이후 멕시코 현지 언론에서는 "심판이 이탈리아를 구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전에 이어 이 경기에서도[* 불가리아전에서는 불참.] [[최순호]]는 빛났고, 1981년 청소년 월드컵 이탈리아 전 때의 활약[* 이 당시 경기에서 이탈리아를 4:1로 이겼는데, 그때 최순호가 2골 2도움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과 이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은 것과 [[허정무]]의 만회골을 헤딩으로 어시스트 하는 등의 활약으로 인해 [[유벤투스 FC]]에서 어떻게든 최순호를 영입하려고 노력했었으나 여러 문제가 겹쳐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이때 불가리아는 2무1패, 고작 승점 2점으로 16강 진출을 했다. 만약 한국이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한국이 1골 이상을 넣고 무승부를 거뒀다면 '''불가리아를 밀어내고 조 3위를 차지해 16강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한국은 이탈리아전 [[조광래]]의 자책골이 들어간 것과, 위의 영상의 5분 57초에 나오는 [[정용환]]의 왼발 중거리 슛[* 이 슛은 정말 아깝게 골대를 빗나갔다.]이나 6분 58초에 나오는, [[김종부]]의 크로스 패스를 논스톱으로 때린 최순호의 슛[* 앞서 언급한 정용환의 중거리 슛과 함께 이 슛 역시 정말 아깝게 크로스바를 넘어갔는데, 최순호의 자세가 무너지지 않은 채로 슛을 쐈다면 골로 연결되는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이 골로 연결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게 되었다.
=== B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멕시코 국기.svg|width=30]] || [[멕시코]] || 3 || 2 || 1 || 0 || 4 || 2 || +2 || 5 || 결선 직행 ||
||<rowbgcolor=#ddffdd> 2 || [[파일:파라과이 국기.svg|width=30]] || [[파라과이]] || 3 || 1 || 2 || 0 || 4 || 3 || +1 || 4 || 결선 직행 ||
||<rowbgcolor=#ffffdd> 3 || [[파일:벨기에 국기.svg|width=30]] || [[벨기에]] || 3 || 1 || 1 || 1 || 5 || 5 || 0 || 3 || 경합 대상 ||
||<rowbgcolor=#ffdddd> 4 || [[파일:320px-Flag_of_Iraq_(1963-1991);_Flag_of_Syria_(1963-1972)_svg.png|width=30]] || [[이라크]] || 3 || 0 || 0 || 3 || 1 || 4 || -3 || 0 || 탈락 ||
* '''멕시코''' 2 - 1 벨기에
* '''파라과이''' 1 - 0 이라크
* 멕시코 1 - 1 파라과이
* '''벨기에''' 2 - 1 이라크
* 벨기에 2 - 2 파라과이
* '''멕시코''' 1 - 0 이라크
=== C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소련 국기.svg|width=30]] || [[소련]] || 3 || 2 || 1 || 0 || 9 || 1 || +8 || 5 || 결선 직행 ||
||<rowbgcolor=#ddffdd> 2 || [[파일:프랑스 국기.svg|width=30]] || [[프랑스]] || 3 || 2 || 1 || 0 || 5 || 1 || +4 || 5 || 결선 직행 ||
||<rowbgcolor=#ffffdd> 3 || [[파일:헝가리 인민 공화국 국기(1957–1990).svg|width=30]] || [[헝가리]] || 3 || 1 || 0 || 2 || 2 || 9 || -7 || 2 || 경합 대상 ||
||<rowbgcolor=#ffdddd> 4 || [[파일:캐나다 국기.svg|width=30]] || [[캐나다]] || 3 || 0 || 0 || 3 || 0 || 5 || -5 || 0 || 탈락 ||
* '''프랑스''' 1 - 0 캐나다
* '''소련''' 6 - 0 헝가리
* 프랑스 1 - 1 소련
* 캐나다 0 - 2 '''헝가리'''
* '''프랑스''' 3 - 0 헝가리
* 캐나다 0 - 2 '''소련'''
=== D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브라질 국기.png|width=30]] || [[브라질]] || 3 || 3 || 0 || 0 || 5 || 0 || +5 || 6 || 결선 직행 ||
||<rowbgcolor=#ddffdd> 2 || [[파일:스페인 국기.svg|width=30]] || [[스페인]] || 3 || 2 || 0 || 1 || 5 || 2 || +3 || 4 || 결선 직행 ||
||<rowbgcolor=#ffffdd> 3 || [[파일:북아일랜드 국기.png|width=30]] || [[북아일랜드]] || 3 || 0 || 1 || 2 || 2 || 6 || -4 || 1 || 경합 대상 ||
||<rowbgcolor=#ffdddd> 4 || [[파일:알제리 국기.png|width=30]] || [[알제리]] || 3 || 0 || 1 || 2 || 1 || 5 || -4 || 1 || 탈락 ||
* '''브라질''' 1 - 0 스페인
[youtube(EkE1L-BnBYs)]
* 알제리 1 - 1 북아일랜드
* '''브라질''' 1 - 0 알제리
* '''스페인''' 2 - 1 북아일랜드
* '''브라질''' 3 - 0 북아일랜드
[youtube(2c9zociu0uU)]
[youtube(s2gb-8vjNyw)]
* '''스페인''' 3 - 0 알제리
=== E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덴마크 국기.svg|width=30]] || [[덴마크]] || 3 || 3 || 0 || 0 || 9 || 1 || +8 || 6 || 결선 직행 ||
||<rowbgcolor=#ddffdd> 2 || [[파일:독일 국기.svg|width=30]] || [[서독]] || 3 || 1 || 1 || 1 || 3 || 4 || -1 || 3 || 결선 직행 ||
||<rowbgcolor=#ffffdd> 3 || [[파일:우루과이 국기.svg|width=30]] || [[우루과이]] || 3 || 0 || 2 || 1 || 2 || 7 || -5 || 2 || 경합 대상 ||
||<rowbgcolor=#ffdddd> 4 || [[파일:스코틀랜드 국기.png|width=30]] || [[스코틀랜드]] || 3 || 0 || 1 || 2 || 1 || 3 || -4 || 1 || 탈락 ||
* 서독 1 - 1 우루과이
* 스코틀랜드 0 - 1 '''덴마크'''
* '''서독''' 2 - 1 스코틀랜드
* 우루과이 1 - 6 '''덴마크'''
* 서독 0 - 2 '''덴마크'''
* 우루과이 0 - 0 스코틀랜드
월드컵 본선에 첫 출전하는 덴마크가 3전 전승으로 16강에 진출하였다. 우루과이를 6:1로 털어버린 것이 압권. 우루과이는 2무 1패로 득실 차 -5를 기록하는 형편없는 성적을 기록했지만 억세게 운 좋게 조 3위 팀 간 순위에서 4위에 들어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2무 1패'''를 한 팀이 2라운드에 진출한 사례는 현재까지 이 사례가 유일하다. ~~헝가리: 왜 나는 안 돼?~~ 여담으로 우루과이는 스코틀랜드와의 경기에서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세웠는데 호세 바티스타가 경기 시작 '''52초'''만에 퇴장당한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월드컵 최단 시간 퇴장이다.
스코틀랜드는 지역예선 도중 [[조크 스타인]] 감독이 사망하고 [[알렉스 퍼거슨]] 수석코치가 땜빵 감독이 되는 어수선한 상황이었기 때문인지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퍼거슨은 월드컵 직후 대표팀 감독직을 사임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감독으로 취임한다.
=== F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모로코 국기.svg|width=30]] || [[모로코]] || 3 || 1 || 2 || 0 || 3 || 1 || +2 || 4 || 결선 직행 ||
||<rowbgcolor=#ddffdd> 2 || [[파일:잉글랜드 국기.png|width=30]] || [[잉글랜드]] || 3 || 1 || 1 || 1 || 3 || 1 || +2 || 3 || 결선 직행 ||
||<rowbgcolor=#ffffdd> 3 || [[파일:폴란드 국기.svg|width=30]] || [[폴란드]] || 3 || 1 || 1 || 1 || 1 || 3 || -2 || 3 || 경합 대상 ||
||<rowbgcolor=#ffdddd> 4 || [[파일:포르투갈 국기.svg|width=30]] || [[포르투갈]] || 3 || 1 || 0 || 2 || 2 || 4 || -2 || 2 || 탈락 ||
* 폴란드 0 - 0 모로코
* '''포르투갈''' 1 - 0 잉글랜드
* 모로코 0 - 0 잉글랜드
* '''폴란드''' 1 - 0 포르투갈
* 폴란드 0 - 3 '''잉글랜드'''
* '''모로코''' 3 - 1 포르투갈
=== 각 조 3위끼리의 경합. ===
[[볼드|굵은 글씨]]는 조 3위로서 16강에 진출한 팀들. 당시에는 승리시 승점 2점, 무승부시 1점이었던 터라 우루과이나 불가리아는 고작 2무 1패로 16강에 올라간 반면 헝가리는 1승 2패로 탈락했다. 결국 이게 뭔가 불공평하다고 생각됐는지 1994년 월드컵 지역 예선 이후 [[FIFA]] 측은 승리시 [[승점]]을 2점에서 3점으로 격상시켰다. 하지만 출전국이 32개국으로 늘어난 현재까지도 1승 2패 팀이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이로부터 32년 후]] 1승 2패로도 진출할 수 있었던 팀이 있었다. 물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그 팀]]은 [[카잔의 기적|그 조의 최강자를 이겼음에도]] 다른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두]]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팀]]의 승패가 역으로 나오는 바람에 아쉽게 떨어졌다. 만일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2승을 했던 팀]]이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남은 한 팀]]까지도 마저 이겼다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1승 2패의 그 팀]]은 사상 최초로 그 성적으로의 16강 진출이 달성될 수 있었다.]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 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벨기에 국기.svg|width=30]] || '''벨기에''' || 3 || 1 || 1 || 1 || 5 || 5 || 0 || '''3''' || '''결선 진출''' ||
||<rowbgcolor=#ddffdd> '''2''' || [[파일:폴란드 국기.svg|width=30]] || '''폴란드''' || 3 || 1 || 1 || 1 || 1 || 3 || -2 || '''3''' || '''결선 진출''' ||
||<rowbgcolor=#ddffdd> '''3''' || [[파일: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국기(1971–1990).svg|width=30]] || '''불가리아''' || 3 || 0 || 2 || 1 || 2 || 4 || -2 || '''2''' || '''결선 진출''' ||
||<rowbgcolor=#ddffdd> '''4''' || [[파일:우루과이 국기.svg|width=30]] || '''우루과이''' || 3 || 0 || 2 || 1 || 2 || 7 || -5 || '''2''' || '''결선 진출''' ||
||<rowbgcolor=#ffdddd> 5 || [[파일:헝가리 인민 공화국 국기(1957–1990).svg|width=30]] || 헝가리 || 3 || 1 || 0 || 2 || 2 || 9 || -7 || 2 || 탈락 ||
||<rowbgcolor=#ffdddd> 6 || [[파일:북아일랜드 국기.svg|width=30]] || 북아일랜드 || 3 || 0 || 1 || 2 || 2 || 6 || -4 || 1 || 탈락 ||
== 결선 토너먼트 ==
=== 16강 ===
* 브라질 4 - 0 폴란드
[youtube(5Hq2bvABDto)]
[youtube(0Q9hK2ozeJE)]
전반 30분에 브라질의 [[소크라치스]]가 [[페널티 킥]]으로 선제득점을 하고, 후반에 3골이 연달아 터지면서 브라질이 무난히 8강에 진출했다.
* 프랑스 2 - 0 이탈리아
극초반에 프랑스의 [[미셸 플라티니]]가 선제골을 넣고 경기는 그대로 프랑스쪽으로 기울었다. 결국 스토피라의 추가골로 프랑스가 8강에 진출했다.
* 모로코 0 - 1 서독
모로코가 상당히 선전하였고, 경기 종료 일보 직전이 되어서야 [[로타어 마테우스]]가 [[라스트 미닛 골|간신히 골을 넣어]] 서독이 8강에 진출했다.
* 멕시코 2 - 0 불가리아
[youtube(BV5i-a4tArg)]
멕시코로서는 대진운이 상당히 좋았다.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상대로 힘을 다 빼서 지친 불가리아를 상대로 어렵지 않게 전반전에 한 골, 후반전에 한 골을 넣어 이기고 8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멕시코는 [[1994 FIFA 월드컵 미국/16강#s-10|8년 뒤 16강에서 불가리아를 또 만나서 진다]].--
* 아르헨티나 1 - 0 우루과이
우루과이는 이 월드컵에서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으나 상대가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였다. 우루과이는 서독과 비길 정도의 실력을 발휘했으나 전반전 막판에 아르헨티나의 페드로 파스쿨리의 골로 인해 아르헨티나가 8강에 간단하게 진출했다. 점수만 1 - 0이지 아르헨티나가 쏟아부은 유효슈팅은 20개가 넘었으며 우루과이는 점유 자체를 못했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징크스 중에 하나는 아르헨티나 혹은 브라질이 우루과이를 월드컵에서 이겼을 경우 우승을, 우루과이 역시 아르헨티나 혹은 브라질을 월드컵에서 이겼을 경우 우승을 하는 징크스가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랑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그리고 이 항목에 있는 월드컵.][* [[이탈리아인]]이 심판을 보는 경기에서 아르헨티나가 이긴 몇 없는 경기이다. 요상하게 아르헨티나는 심판이 이탈리아 사람이면 힘을 못쓰는 편이다.]
* 잉글랜드 3 - 0 파라과이
명불허전 [[게리 리네커]]의 원맨쇼였다. 리네커는 파라과이 상대로 2골 1어시스트를 달성하며 팀을 8강에 올렸다.
* 소련 3 - 4(연장) 벨기에
양팀은 정규시간에서는 2 - 2로 박빙의 혈투를 벌여서 연장전에 돌입했고, 결국 벨기에가 살아남아 8강에 진출했다.
* 덴마크 1 - 5 스페인
33분에 덴마크가 선제골을 넣어 조별리그에서의 돌풍을 이어가는 듯했으나 이후 무려 5실점을 하며 침몰해버렸다. 특히 [[에밀리오 부트라게뇨]]의 원맨플레이였는데 한 경기에 4골을 퍼부었다. 그렇게 스페인이 8강에 진출했다.
=== 8강 ===
8강전은 아르헨티나가 잉글랜드를 격파한 경기 이외의 모든 경기가 승부차기였다.
* 브라질 1 - 1 (승부차기 3 - 4) 프랑스
[youtube(Mb-7Kxl1MpM)]
[youtube(mRprp0YLZ7Y)]
[youtube(IZ6pRNMS4KE)]
시작하자마자 카레카의 선제골로 프랑스를 압도한 브라질이었으나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미셸 플라티니]]가 만회골을 넣어 경기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후반전에는 피터지게 겨루고도 득점이 없었으며 특히 브라질은 [[지쿠]]의 [[페널티 킥]] 실축으로 승리를 거의 쥐었다 날려버리고 말았다. 결국 최종 무승부가 되어 승부차기를 하게 되었다. 승부차기는 브라질의 선축으로 시작되었다.
||<|2> 순번 ||<-2> 브라질 ||<-2> 프랑스 ||
|| 선수 || 결과 || 선수 || 결과 ||
|| 1 || [[소크라치스]] || X || 야닉 스토피라 || O ||
|| 2 || 일레망 || O || [[마누엘 아모로스]] || O ||
|| 3 || [[지쿠]] || O || 브뤼노 벨롱 || O ||
|| 4 || 브랑쿠 || O || [[미셸 플라티니]] || X ||
|| 5 || 훌리오 세자르 || X || [[루이스 페르난데스]] || O ||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프랑스가 4강에 진출했다.
* 서독 0 - 0 (승부차기 4 - 1) 멕시코
멕시코가 서독 상대로 정말 무서운 화력을 보여주며 호각의 대결을 시전했다. 결국 승부차기를 하게 되었다.
승부차기는 서독의 선축으로 시작되었다.
||<|2> 순번 ||<-2> 멕시코 ||<-2> 서독 ||
|| 선수 || 결과 || 선수 || 결과 ||
|| 1 || 마누엘 네그레데 || O || 클라우스 알로프스 || O ||
|| 2 || 페르난도 카라르테 || X || [[안드레아스 브레메]] || O ||
|| 3 || 라울 세르빈 || X || [[로타어 마테우스]] || O ||
|| 4 ||<-2> 서독의 성공으로 멕시코에게는 기회가 안옴. ||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 O ||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서독이 4강에 진출했다.
* 아르헨티나 [[신의 손|2 - 1]] 잉글랜드
[youtube(Pl3AnYCeTrU)]
[youtube(Da_CDPRG2j0)]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는 키가 165cm밖에 안 된다. 반면 잉글랜드의 골키퍼 [[피터 쉴튼]]은 키가 185cm에 달했다. 그래서 헤딩경합이 아예 안되는 키 차이에다 더군다나 쉴튼은 골키퍼라서 손을 사용하는 게 가능했다. 이 상황에서 둘이 동시에 뛰어올라 마라도나가 골을 넣는데... 비디오 판독 결과 이는 [[신의 손]] 사건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뒤이어 마라도나는 환상적인 플레이로 아예 잉글랜드의 11명의 축구선수들을 완전히 농락한 끝에 다시 골을 넣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골과 세상에서 가장 추한 골이 동시에 나온 경기였다. 선제골을 부정하게 당했을 때 잉글랜드 선수들이 심판에게 항의한 것을 그대로 찍소리 못하게 만드는 놀라운 슛이었다. 이후 잉글랜드의 [[게리 리네커]]가 만회골을 넣었지만 경기를 뒤집지는 못하고 아르헨티나가 4강에 진출했다.
* 벨기에 1 - 1 (승부차기 5 - 4) 스페인
벨기에는 상대가 D조에서 브라질과 둘이 압도적 화력을 보인 바 있는 스페인이라는 점으로 인해 4강 진출이 좌절되었다고 지레 짐작하고 경험치나 쌓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스페인은 서독 따위보다 훨신 강팀이었는데 서독을 압살하고 3전 전승을 찍고 올라온 덴마크를 5-1이라는 엄청난 점수로 밀고 8강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필 경기 하루 전날 스페인 선수단 전체가 음식을 잘못 먹어서 집단 식중독을 일으켰고 이 때문에 스페인은 기권 일보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몸을 추스려 그래도 경기라도 뛰어봐야 하겠다는 의지로 이를 악물고 버티며 경기에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스페인은 아픈 배를 움켜쥐며 뛰는 통에 시종일관 벨기에에게 밀렸고 결국 전반전에 선제골마저 허용하고 말았다. 하지만 경기 종료 직전에 기어이 벨기에의 골문을 뚫는데 성공했고 이에 연장혈투와 승부차기까지 이어졌다.
승부차기는 스페인의 선축으로 시작되었다.
||<|2> 순번 ||<-2> 벨기에 ||<-2> 스페인 ||
|| 선수 || 결과 || 선수 || 결과 ||
|| 1 || 니코 클라에센 || O || 후안 안토니오 세뇨르 || O ||
|| 2 || [[엔조 시포]] || O || 엘로이 || X ||
|| 3 || 우고 부르스 || O || 첸도 || O ||
|| 4 || 파트리코 버르보트 || O ||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 O ||
|| 5 || 레오 판 데르 엘스트 || O || 빅토르 무뇨스 || O ||
이 승부차기에서 엘로이가 마치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년 월드컵]]에서의 [[호아킨 산체스]]처럼 유일하게 실축하는 바람에 벨기에가 4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 4강 ===
* 서독 2 - 0 프랑스
[youtube(5J5SrBKKsn8)]
명승부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서독의 일방적인 경기로 2 - 0으로 싱겁게 승부가 났다. 프랑스가 8강에서 연장전 혈투로 인해 지쳤기 때문이라고 서술되어 있었지만 서독 역시 8강에서 연장전에 승부차기까지 소화하고 올라왔으니 같은 조건이었고 변명의 여지는 없다. 또 [[미셸 플라티니|플라티니]]가 부상 후유증으로 진통제를 먹으며 뛰고 있어서 부진했다고 하는데 8강까지 플라티니의 활약은 나쁘지 않았고 플라티니의 부상 후유증 탓으로 돌린다면 프랑스가 플라티니의 원맨팀에 불과하다고 폄하하는 것 밖에는 안 된다. 초반부터 경기를 우세하게 끌고 가던 서독이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넣고 승기를 잡으며 막판에 골키퍼의 실책성 플레이를 틈타 한 골을 더 넣어 서독이 결승에 진출했다.
* 아르헨티나 2 - 0 벨기에
[youtube(kecR3RCb0No)]
전반전은 양팀 무득점으로 끝났지만 후반전에 마라도나가 잉글랜드전에서 보여준 두번째 골과 같은 행동을 두 번 반복했다. 이를 보고 벨기에 감독은 '''마라도나를 상대하려면 12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 3/4위전 ===
* 프랑스 4 - 2(연장) 벨기에
양팀이 주고받는 공방전을 벌였지만 2-2로 승부가 나지 않아 연장전을 했다. 벨기에가 지쳤는지 연장전은 프랑스가 압도하며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다. 프랑스가 3위를 차지했다.
=== 결승 ===
* 서독 2 - 3 아르헨티나
[youtube(f2_VbbIq6Hw)]
[youtube(Fw1zBZC--AY)]
아르헨티나의 호세 루이스 브라운[* 2019년 8월 13일 62세로 [[https://www.instagram.com/p/B1GD_JCIjm2/?igshid=hvgeggsvmtnh|세상을 떠났다.]] ]의 선제골이 일찌감치 터지면서 전반전을 1-0으로 종료했다. 후반전이 되어서도 역시 아르헨티나의 일방적인 경기로 흘러갔고 55분에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발다노]]가 추가골을 넣어 2-0이 되었다. 이에 서독의 [[프란츠 베켄바워]] 감독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망하고 있다가 [[루디 푈러]]를 비장의 카드로 투입했는데, 루디 푈러의 활약은 대단했다.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의 골을 어시스트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자신이 직접 골을 넣어 해결했다. 마라도나는 이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당황했다. 하지만 바로 수습하고 [[호르헤 부루차가]]의 골을 어시스트해서 다시 앞섰다. 이렇게 경기가 종료되면서 '''결국 아르헨티나가 우승했다.''' 훗날 마테우스가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초짜 감독이었던 베켄바워는 마라도나와 아르헨티나의 전력을 너무 높이 평가하고 두려워했다고 한다. 때문에 당시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마테우스를 마라도나의 전담 마크맨으로 붙이고 서독 대표팀으로서는 매우 생소한 수비 전술로 나오고 아예 공격을 포기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전원 수비로 임하다가 어쩌다가 세트 피스 기회가 나오면 그때 천운에 맡기는 것으로. 베켄바워의 이런 전략 때문에 전반에 실제 서독이 전혀 공격을 나서지 않았던 것. 그러나 그런 극단적인 수비 전술의 결과 2-0이라는 암담한 상황에 처했고, 결국 이래지나 저래지나 하는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베켄바워는 루디 푈러를 투입하며 맞불을 놓는 전술로 전환했고 그때부터 서독의 경기력은 완전히 달라지며 순식간에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 놓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결과를 내놓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고 결국 추가골을 내주며 패배했다. 마테우스에 따르면 경기가 끝나고 베켄바워는 자신의 전술적 선택을 매우 후회했다고 한다. 4년후 90년 월드컵 결승 리턴 매치 때 서독은 토너먼트에서 하던대로 경기에 임했고 경기력에서 아르헨티나를 압도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 대진표 ===
||<table align=center><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
|| A || 16강 1경기 [br] '''브라질''' 4:0 폴란드 ||<|2> I ||<|2> 8강 1경기 [br] 브라질 1:1(3:4) '''프랑스''' ||<|4> M ||<|4> 4강 1경기 [br] '''서독''' 2:0 프랑스 ||<|8> P ||<|8> 결승 [br] 서독 2:3 '''아르헨티나''' ||
|| B || 16강 2경기 [br] '''프랑스''' 2:0 이탈리아 ||
|| C || 16강 3경기 [br] 모로코 0:1 '''서독''' ||<|2> J ||<|2> 8강 2경기 [br] '''서독''' 0:0(4:1) 멕시코 ||
|| D || 16강 4경기 [br] '''멕시코''' 2:0 불가리아 ||
||<-6> {{{#white - }}} ||
|| E || 16강 5경기 [br] '''아르헨티나''' 1:0 우루과이 ||<|2> K ||<|2> 8강 3경기 [br] '''아르헨티나''' 2:1 잉글랜드 ||<|4> N ||<|4> 4강 2경기 [br] '''아르헨티나''' 2:0 벨기에 ||
|| F || 16강 6경기 [br] '''잉글랜드''' 3:0 파라과이 ||
|| G || 16강 7경기 [br] 소련 3:4 '''벨기에''' ||<|2> L ||<|2> 8강 4경기 [br] '''벨기에''' 1:1(5:4) 스페인 ||
|| H || 16강 8경기 [br] 덴마크 1:5 '''스페인''' || O || 3/4위전 [br] '''프랑스''' 4:2 벨기에 ||
== 우승 ==
[[파일:마라도나혼자.jpg]]
||<table align=center><rowbgcolor=#ffd700> '''{{{+2 1986 FIFA 월드컵 우승}}}''' ||
||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width=200]] [br]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000000 '''아르헨티나'''}}}]]''' ||
|| 두 번째 우승[br]★★ ||
== 결과 ==
|| 순위 || 국가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 || 승점 || 비고 ||
||<rowbgcolor=#ffd700> 1 ||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width=30]] '''아르헨티나''' || 7 || 6 || 1 || 0 || 14 || 5 || +9 || '''13''' || '''우승''' ||
||<rowbgcolor=silver> 2 || [[파일:독일 국기.svg|width=30]] 서독 || 7 || 3 || 2 || 2 || 8 || 7 || +1 || '''8''' || 준우승 ||
||<rowbgcolor=#b8860b> 3 || [[파일:프랑스 국기.svg|width=30]] 프랑스 || 7 || 4 || 2 || 1 || 12 || 6 || +6 || '''10''' || 3위 ||
||<rowbgcolor=#f0e68c> 4 || [[파일:벨기에 국기.svg|width=30]] 벨기에 || 7 || 2 || 2 || 3 || 12 || 15 || -3 || '''6''' || 4위 ||
||<rowbgcolor=#b2ccff> 5 || [[파일:브라질 국기.svg|width=30]] 브라질 || 5 || 4 || 1 || 0 || 10 || 1 || +9 || '''9''' || 8강 ||
||<rowbgcolor=#b2ccff> 6 || [[파일:멕시코 국기.svg|width=30]] 멕시코 || 5 || 3 || 2 || 0 || 6 || 2 || +4 || '''8''' || 8강 ||
||<rowbgcolor=#b2ccff> 7 || [[파일:스페인 국기.svg|width=30]] 스페인 || 5 || 3 || 1 || 1 || 11 || 4 || +7 || '''7''' || 8강 ||
||<rowbgcolor=#b2ccff> 8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잉글랜드 || 5 || 2 || 1 || 2 || 7 || 3 || +4 || '''5''' || 8강 ||
||<rowbgcolor=#cef279> 9 || [[파일:덴마크 국기.svg|width=30]] 덴마크 || 4 || 3 || 0 || 1 || 10 || 6 || +4 || '''6''' || 16강 ||
||<rowbgcolor=#cef279> 10 || [[파일:소련 국기.svg|width=30]] 소련 || 4 || 2 || 1 || 1 || 12 || 5 || +7 || '''5''' || 16강 ||
||<rowbgcolor=#cef279> 11 || [[파일:모로코 국기.svg|width=30]] 모로코 || 4 || 1 || 2 || 1 || 3 || 2 || +1 || '''4''' || 16강 ||
||<rowbgcolor=#cef279> 12 || [[파일:이탈리아 국기.svg|width=30]] 이탈리아 || 4 || 1 || 2 || 1 || 5 || 6 || -1 || '''4''' || 16강 ||
||<rowbgcolor=#cef279> 13 || [[파일:파라과이 국기.svg|width=30]] 파라과이 || 4 || 1 || 2 || 1 || 4 || 6 || +2 || '''4''' || 16강 ||
||<rowbgcolor=#cef279> 14 || [[파일:폴란드 국기.svg|width=30]] 폴란드 || 4 || 1 || 1 || 2 || 1 || 7 || -6 || '''3''' || 16강 ||
||<rowbgcolor=#cef279> 15 || [[파일: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국기(1971–1990).svg|width=30]] 불가리아 || 4 || 0 || 2 || 2 || 2 || 6 || -4 || '''2''' || 16강 ||
||<rowbgcolor=#cef279> 16 || [[파일:우루과이 국기.svg|width=30]] 우루과이 || 4 || 0 || 2 || 2 || 1 || 8 || -7 || '''2''' || 16강 ||
||<rowbgcolor=#ffa7a7> 17 || [[파일:포르투갈 국기.svg|width=30]] 포르투갈 || 3 || 1 || 0 || 2 || 2 || 4 || -2 || '''2'''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8 || [[파일:헝가리 인민 공화국 국기(1957–1990).svg|width=30]] 헝가리 || 3 || 1 || 0 || 2 || 2 || 9 || -7 || '''2'''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9 ||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width=30]] 스코틀랜드 || 3 || 0 || 1 || 2 || 1 || 3 || -2 || '''1'''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20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대한민국 || 3 || 0 || 1 || 2 || 4 || 7 || -3 || '''1'''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21 || [[파일:북아일랜드 국기.svg|width=30]] 북아일랜드 || 3 || 0 || 1 || 2 || 2 || 6 || -4 || '''1'''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22 || [[파일:알제리 국기.svg|width=30]] 알제리 || 3 || 0 || 1 || 2 || 1 || 5 || -4 || '''1'''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23 || [[파일:320px-Flag_of_Iraq_(1963-1991);_Flag_of_Syria_(1963-1972)_svg.png|width=30]] 이라크 || 3 || 0 || 0 || 3 || 1 || 4 || -3 || '''0'''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24 || [[파일:캐나다 국기.svg|width=30]] 캐나다 || 3 || 0 || 0 || 3 || 0 || 5 || -5 || '''0''' || 1라운드 ||
* 골든볼 -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
* 실버볼 - [[하랄트 슈마허]](서독)
* 브론즈볼 - [[프레벤 엘케어 라르센]](덴마크)
* 득점왕 - [[게리 리네커]](잉글랜드)
* 골든글러브(야신상) - 하랄트 슈마허(서독)
* 신인상 - [[엔조 시포]](벨기에)
* 페어플레이상 - 브라질
== 올스타팀 ==
[include(틀: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베스트11)]
== 한국측 중계진 ==
* KBS: 원종관(캐스터), 박병주(해설)
* MBC: [[송재익]](캐스터), 이우현(해설)
[각주]
[[분류: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지역예선 | [include(틀:상위 문서, top1=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목차]
== 개요 ==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의 지역예선을 다루는 항목.
== 유럽 ==
이탈리아가 디팬딩 챔피언 자격으로 지역예선에서 제외되고 본선에 자동 진출했다. 5개 팀으로 구성된 조는 2위까지 본선 직행. 4개 팀으로 구성된 조는 1위는 본선 직행 2위는 플레이오프행.
=== 1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폴란드 국기.svg|width=30]] ||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폴란드]] || 6 || 3 || 2 || 1 || 10 || 6 || +4 || 8 || '''본선 진출''' ||
||<rowbgcolor=#ffffdd> 2 || [[파일:벨기에 국기.svg|width=30]] ||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벨기에]] || 6 || 3 || 2 || 1 || 7 || 3 || +4 || 8 || 플레이오프 진출 ||
||<rowbgcolor=#ffdddd> 3 || [[파일: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 공화국 국기.svg|width=30]] || [[알바니아 축구 국가대표팀|알바니아]] || 6 || 1 || 2 || 3 || 6 || 9 || -3 || 4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4 || [[파일:그리스 국기.svg|width=30]] ||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그리스]] || 6 || 1 || 2 || 3 || 5 || 10 || -5 || 4 || 예선 탈락 ||
=== 2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독일 국기.svg|width=30]]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서독]] || 8 || 5 || 2 || 1 || 22 || 9 || +13 || 12 || '''본선 진출''' ||
||<rowbgcolor=#ddffdd> 2 || [[파일:포르투갈 국기.svg|width=30]] ||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포르투갈]] || 8 || 5 || 0 || 3 || 12 || 10 || +2 || 10 || '''본선 진출''' ||
||<rowbgcolor=#ffdddd> 3 || [[파일:스웨덴 국기.svg|width=30]] ||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스웨덴]] || 8 || 4 || 1 || 3 || 14 || 9 || +5 || 9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4 || [[파일:체코 국기.svg|width=30]] || [[체코 축구 국가대표팀|체코슬로바키아]] || 8 || 3 || 2 || 3 || 11 || 12 || -1 || 8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5 || [[파일:몰타 국기.svg|width=30]] || [[몰타 축구 국가대표팀|몰타]] || 8 || 0 || 1 || 7 || 6 || 25 || -19 || 1 || 예선 탈락 ||
=== 3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 || 8 || 5 || 2 || 1 || 22 || 9 || +13 || 12 || '''본선 진출''' ||
||<rowbgcolor=#ddffdd> 2 || [[파일:북아일랜드 국기.svg|width=30]] || [[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북아일랜드]] || 8 || 5 || 0 || 3 || 12 || 10 || +2 || 10 || '''본선 진출''' ||
||<rowbgcolor=#ffdddd> 3 || [[파일:루마니아 국기.svg|width=30]] || [[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루마니아]] || 8 || 4 || 1 || 3 || 14 || 9 || +5 || 9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4 || [[파일:핀란드 국기.svg|width=30]] || [[핀란드 축구 국가대표팀|핀란드]] || 8 || 3 || 2 || 3 || 11 || 12 || -1 || 8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5 || [[파일:터키 국기.svg|width=30]] ||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터키]] || 8 || 0 || 1 || 7 || 6 || 25 || -19 || 1 || 예선 탈락 ||
=== 4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프랑스 국기.svg|width=30]]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프랑스]] || 8 || 5 || 1 || 2 || 15 || 4 || +11 || 11 || '''본선 진출''' ||
||<rowbgcolor=#ddffdd> 2 || [[파일: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국기(1971–1990).svg|width=30]] ||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불가리아]] || 8 || 5 || 1 || 2 || 13 || 5 || +8 || 11 || '''본선 진출''' ||
||<rowbgcolor=#ffdddd> 3 || [[파일:동독 국기.svg|width=30]] || [[동독 축구 국가대표팀|동독]] || 8 || 5 || 0 || 3 || 16 || 9 || +7 || 10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4 ||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width=30]] || [[유고슬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유고슬라비아]] || 8 || 3 || 2 || 3 || 7 || 8 || -1 || 8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5 || [[파일:룩셈부르크 국기.svg|width=30]] || [[룩셈부르크 축구 국가대표팀|룩셈부르크]] || 8 || 0 || 0 || 8 || 2 || 27 || -25 || 0 || 예선 탈락 ||
=== 5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헝가리 국기.svg|width=30]] ||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헝가리]] || 6 || 5 || 0 || 1 || 12 || 4 || +8 || 10 || '''본선 진출''' ||
||<rowbgcolor=#ffffdd> 2 || [[파일:네덜란드 국기.svg|width=30]] ||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네덜란드]] || 6 || 3 || 1 || 2 || 11 || 5 || +6 || 7 || 플레이오프 진출 ||
||<rowbgcolor=#ffdddd> 3 ||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width=30]] ||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오스트리아]] || 6 || 3 || 1 || 2 || 9 || 8 || +1 || 7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4 || [[파일:키프로스 국기.svg|width=30]] || [[키프로스 축구 국가대표팀|키프로스]] || 6 || 0 || 0 || 6 || 3 || 18 || -15 || 0 || 예선 탈락 ||
=== 6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덴마크 국기.svg|width=30]] ||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덴마크]] || 8 || 5 || 1 || 2 || 15 || 4 || +11 || 11 || '''본선 진출''' ||
||<rowbgcolor=#ddffdd> 2 || [[파일:소련 국기.svg|width=30]] || [[소련 축구 국가대표팀|소련]] || 8 || 4 || 2 || 2 || 13 || 5 || +8 || 10 || '''본선 진출''' ||
||<rowbgcolor=#ffdddd> 3 || [[파일:스위스 국기.svg|width=30]] ||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스위스]] || 8 || 2 || 4 || 2 || 5 || 10 || -5 || 8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4 || [[파일:아일랜드 국기.svg|width=30]] ||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아일랜드]] || 8 || 2 || 2 || 4 || 5 || 10 || -5 || 6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5 || [[파일:노르웨이 국기.svg|width=30]] || [[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노르웨이]] || 8 || 1 || 3 || 4 || 4 || 10 || -6 || 5 || 예선 탈락 ||
=== 7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스페인 국기.svg|width=30]]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스페인]] || 6 || 4 || 0 || 2 || 9 || 8 || +1 || 8 || '''본선 진출''' ||
||<rowbgcolor=#ffffdd> 2 ||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width=30]] ||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스코틀랜드]] || 6 || 3 || 1 || 2 || 8 || 4 || +4 || 7 || 플레이오프 진출 ||
||<rowbgcolor=#ffdddd> 3 || [[파일:웨일스 국기.svg|width=30]] ||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웨일스]] || 6 || 3 || 1 || 2 || 7 || 6 || +1 || 7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4 || [[파일:아이슬란드 국기.svg|width=30]] || [[아이슬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아이슬란드]] || 6 || 1 || 0 || 5 || 4 || 10 || -6 || 2 || 예선 탈락 ||
스코틀랜드는 웨일스와의 경기 도중 감독 [[조크 스타인]]이 사망하였다. 잔여경기는 수석코치였던 [[알렉스 퍼거슨]]이 감독이 되어 치렀다.
=== 플레이오프 ===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팀들간 순위 경쟁에서 스코틀랜드가 3위가 되어 오세아니아의 호주와 경기를 하게 되었고 1위인 벨기에와 2위인 네덜란드가 맞붙게 되었다.
|| 팀 || 결과 || 팀 || 1차전 || 2차전 || 비고 ||
||<bgcolor=#ddffdd> '''벨기에''' || 2-2 ||<bgcolor=#ffdddd> 네덜란드 || 1-0 || 1-2 || 원정다득점 ||
1차전에서는 벨기에가 1-0으로 승리했고, 2차전에서 네덜란드가 2-1로 승리해서 승점과 골득실이 동일했으나,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벨기에가 본선에 진출.
== 아프리카 ==
=== 1라운드 ===
|| 팀 || 결과 || 팀 || 1차전 || 2차전 || 비고 ||
||<bgcolor=#ffdddd> 시에라리온 || 0-5 ||<bgcolor=#ffffdd> '''모로코''' || 0-1 || 0-4 || ||
||<bgcolor=#ffffdd> '''앙골라''' || 1-1 ||<bgcolor=#ffdddd> 세네갈 || 1-0 || 0-1 || 승부차기 4-3 ||
||<bgcolor=#ffdddd> 모리셔스 || 0-5 ||<bgcolor=#ffffdd> '''말라위''' || 0-1 || 0-4 || ||
||<bgcolor=#ffffdd> '''잠비아''' || 3-1 ||<bgcolor=#ffdddd> 우간다 || 3-0 || 0-1 || ||
||<bgcolor=#ffffdd> '''이집트''' || 2-1 ||<bgcolor=#ffdddd> 짐바브웨 || 1-0 || 1-1 || ||
||<bgcolor=#ffffdd> '''케냐''' || 5-4 ||<bgcolor=#ffdddd> 에티오피아 || 2-1 || 3-3 || ||
||<bgcolor=#ffdddd> 탄자니아 || 1-1 ||<bgcolor=#ffffdd> '''수단''' || 1-1 || 0-0 || 원정 다득점 ||
||<bgcolor=#ffffdd> '''나이지리아''' || 4-0 ||<bgcolor=#ffdddd> 라이베리아 || 3-0 || 1-0 || ||
||<bgcolor=#ffffdd> '''코트디부아르''' || 6-3 ||<bgcolor=#ffdddd> 감비아 || 4-0 || 2-3 || ||
||<bgcolor=#ffdddd> 베넹 || 0-6 ||<bgcolor=#ffffdd> '''튀니지''' || 0-2 || 0-4 || ||
||<bgcolor=#ffffdd> '''마다가스카르''' || ||<bgcolor=#ffdddd> --레소토-- || || || 레소토 기권 ||
||<bgcolor=#ffffdd> '''리비아''' || ||<bgcolor=#ffdddd> --니제르-- || || || 니제르 기권 ||
||<bgcolor=#ffffdd> '''기니''' || ||<bgcolor=#ffdddd> --토고-- || || || 토고 기권 ||
=== 2라운드 ===
* 가나, 알제리, 카메룬은 여기부터 출전한다.
|| 팀 || 결과 || 팀 || 1차전 || 2차전 || 비고 ||
||<bgcolor=#ffdddd> 기니 || 1-2 ||<bgcolor=#ffffdd> '''튀니지''' || 1-0 || 0-2 || ||
||<bgcolor=#ffdddd> 수단 || 0-4 ||<bgcolor=#ffffdd> '''리비아''' || 0-0 || 0-4 || ||
||<bgcolor=#ffdddd> 앙골라 || 2-3 ||<bgcolor=#ffffdd> '''알제리''' || 0-0 || 2-3 || ||
||<bgcolor=#ffffdd> '''이집트''' || 1-1 ||<bgcolor=#ffdddd> 마다가스카르 || 1-0 || 0-1 || 승부차기 4-2 ||
||<bgcolor=#ffdddd> 케냐 || 1-6 ||<bgcolor=#ffffdd> '''나이지리아''' || 0-3 || 1-3 || ||
||<bgcolor=#ffffdd> '''모로코''' || 2-0 ||<bgcolor=#ffdddd> 말라위 || 2-0 || 0-0 || ||
||<bgcolor=#ffdddd> 코트디부아르 || 0-2 ||<bgcolor=#ffffdd> '''가나''' || 0-0 || 0-2 || ||
||<bgcolor=#ffffdd> '''잠비아''' || 5-2 ||<bgcolor=#ffdddd> 카메룬 || 4-1 || 1-1 || ||
=== 3라운드 ===
|| 팀 || 결과 || 팀 || 1차전 || 2차전 || 비고 ||
||<bgcolor=#ffdddd> 나이지리아 || 1-2 ||<bgcolor=#ffffdd> '''튀니지''' || 1-0 || 0-2 || ||
||<bgcolor=#ffdddd> 이집트 || 0-2 ||<bgcolor=#ffffdd> '''모로코''' || 0-0 || 0-2 || ||
||<bgcolor=#ffffdd> '''알제리''' || 3-0 ||<bgcolor=#ffdddd> 잠비아 || 1-0 || 2-0 || ||
||<bgcolor=#ffdddd> 가나 || 0-2 ||<bgcolor=#ffffdd> '''리비아''' || 0-0 || 0-2 || ||
=== 최종 예선 ===
|| 팀 || 결과 || 팀 || 1차전 || 2차전 || 비고 ||
||<bgcolor=#ddffdd> '''모로코''' || 3-1 ||<bgcolor=#ffdddd> 리비아 || 3-0 || 0-1 || ||
||<bgcolor=#ffdddd> 튀니지 || 1-7 ||<bgcolor=#ddffdd> '''알제리''' || 1-4 || 0-3 || ||
최종예선은 4팀 전원 북아프리카가 진출했다. 알제리와 모로코가 본선에 진출했다.
== 남미 ==
1조에는 4개국, 2,3조에는 3개국이 편성되었다. 진출 방식은 1위는 본선 직행, 꼴찌는 지역예선 탈락이며 나머지는 플레이오프 토너먼트를 통해 본선 진출 여부가 결정된다. 볼드체는 톱시드.
* 1조 :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페루, 베네수엘라
* 2조 : '''우루과이''', 칠레, 에콰도르
* 3조 : '''브라질''', 파라과이, 볼리비아
=== 1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width=30]]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 || 6 || 4 || 1 || 1 || 12 || 6 || +6 || 9 || '''본선 진출''' ||
||<rowbgcolor=#ffffdd> 2 || [[파일:페루 국기.svg|width=30]] || [[페루 축구 국가대표팀|페루]] || 6 || 3 || 2 || 1 || 8 || 4 || +4 || 8 || 플레이오프 진출 ||
||<rowbgcolor=#ffffdd> 3 || [[파일:콜롬비아 국기.svg|width=30]] ||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콜롬비아]] || 6 || 2 || 2 || 2 || 6 || 6 || 0 || 6 || 플레이오프 진출 ||
||<rowbgcolor=#ffdddd> 4 ||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width=30]] || [[베네수엘라 축구 국가대표팀|베네수엘라]] || 6 || 0 || 1 || 5 || 5 || 15 || -10 || 1 || 예선 탈락 ||
=== 2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우루과이 국기.svg|width=30]] ||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우루과이]] || 4 || 3 || 0 || 1 || 6 || 4 || +2 || 6 || '''본선 진출''' ||
||<rowbgcolor=#ffffdd> 2 || [[파일:칠레 국기.svg|width=30]] ||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칠레]] || 4 || 2 || 1 || 1 || 10 || 5 || +5 || 5 || 플레이오프 진출 ||
||<rowbgcolor=#ffdddd> 3 || [[파일:에콰도르 국기.svg|width=30]] || [[에콰도르 축구 국가대표팀|에콰도르]] || 4 || 0 || 1 || 3 || 4 || 11 || -7 || 1 || 예선 탈락 ||
=== 3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브라질 국기.svg|width=30]]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 || 4 || 2 || 2 || 0 || 6 || 2 || +4 || 6 || '''본선 진출''' ||
||<rowbgcolor=#ffffdd> 2 || [[파일:파라과이 국기.svg|width=30]] ||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파라과이]] || 4 || 1 || 2 || 1 || 5 || 4 || +1 || 4 || 플레이오프 진출 ||
||<rowbgcolor=#ffdddd> 3 || [[파일:볼리비아 국기.svg|width=30]] ||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볼리비아]] || 4 || 0 || 2 || 2 || 2 || 7 || -5 || 2 || 예선 탈락 ||
=== 플레이오프 ===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의 [[토너먼트(스포츠)|토너먼트]]로 진행되었다. 여기서는 우승한 단 한팀만 본선에 진출하고 나머지 3팀은 지역예선 탈락이다.
==== 1라운드 ====
|| 팀 || 결과 || 팀 || 1차전 || 2차전 || 비고 ||
||<bgcolor=#ffffdd> '''파라과이''' || 4-2 ||<bgcolor=#ffdddd> 콜롬비아 || 3-0 || 1-2 || ||
==== 2라운드 ====
|| 팀 || 결과 || 팀 || 1차전 || 2차전 || 비고 ||
||<bgcolor=#ffffdd> '''칠레''' || 5-2 ||<bgcolor=#ffdddd> 페루 || 4-2 || 1-0 || ||
==== 플레이오프 결승 ====
|| 팀 || 결과 || 팀 || 1차전 || 2차전 || 비고 ||
||<bgcolor=#ddffdd> '''파라과이''' || 5-2 ||<bgcolor=#ffdddd> 칠레 || 3-0 || 2-2 || ||
== 북중미카리브 ==
=== 0차 예선 ===
|| 팀 || 결과 || 팀 || 1차전 || 2차전 || 비고 ||
||<bgcolor=#ffdddd> 파나마 || 0-4 ||<bgcolor=#ffffdd> '''온두라스''' || 0-3 || 0-1 || ||
||<bgcolor=#ffffdd> '''엘살바도르''' || 8-0 ||<bgcolor=#ffdddd> 푸에르토리코 || 5-0 || 3-0 || ||
||<bgcolor=#ffdddd> 엔티카바부다 || 2-5 ||<bgcolor=#ffffdd> '''아이티''' || 0-4 || 2-1 || ||
||<bgcolor=#ffffdd> '''수리남''' || 2-1 ||<bgcolor=#ffdddd> 가이아나 || 1-0 || 1-1 || ||
||<bgcolor=#ffdddd>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 0-4 ||<bgcolor=#ffffdd> '''미국''' || 0-0 || 0-4 || ||
||<bgcolor=#ffffdd> '''캐나다''' || ||<bgcolor=#ffdddd> --자메이카-- || || || 자메이카 기권 ||
||<bgcolor=#ffffdd> '''코스타리카''' || ||<bgcolor=#ffdddd> --바베이도스-- || || || 바베이도스 기권 ||
||<bgcolor=#ffffdd> '''트리니다드 토바고''' || ||<bgcolor=#ffdddd> --그레나다-- || || || 그레나다 기권 ||
=== 1차 예선 ===
과테말라는 1차 예선부터 출전한다.
==== 1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ffffdd> 1 || [[파일:온두라스 국기.svg|width=30]] || [[온두라스 축구 국가대표팀|온두라스]] || 4 || 2 || 2 || 0 || 5 || 3 || +2 || 6 || '''결선리그 진출''' ||
||<rowbgcolor=#ffdddd> 2 || [[파일:엘살바도르 국기.svg|width=30]] || [[엘살바도르 축구 국가대표팀|엘살바도르]] || 4 || 2 || 1 || 1 || 7 || 2 || +5 || 5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3 || [[파일:수리남 국기.svg|width=30]] || [[수리남 축구 국가대표팀|수리남]] || 4 || 0 || 1 || 3 || 2 || 9 || -7 || 1 || 예선 탈락 ||
==== 2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ffffdd> 1 || [[파일:캐나다 국기.svg|width=30]] || [[캐나다 축구 국가대표팀|캐나다]] || 4 || 3 || 1 || 0 || 7 || 2 || +5 || 7 || '''결선리그 진출''' ||
||<rowbgcolor=#ffdddd> 2 || [[파일:과테말라 국기.svg|width=30]] || [[과테말라 축구 국가대표팀|과테말라]] || 4 || 2 || 1 || 1 || 7 || 3 || +4 || 5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3 || [[파일:아이티 국기.svg|width=30]] || [[아이티 축구 국가대표팀|아이티]] || 4 || 0 || 0 || 4 || 0 || 9 || -9 || 0 || 예선 탈락 ||
==== 3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ffffdd> 1 || [[파일:코스타리카 국기.svg|width=30]] || [[코스타리카 축구 국가대표팀|코스타리카]] || 4 || 2 || 2 || 0 || 6 || 2 || +4 || 6 || '''결선리그 진출''' ||
||<rowbgcolor=#ffdddd> 2 || [[파일:미국 국기.svg|width=30]] ||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미국]] || 4 || 2 || 1 || 1 || 4 || 3 || +1 || 5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3 || [[파일:트리니다드 토바고 국기.svg|width=30]] || [[트리니다드 토바고 축구 국가대표팀|트리니다드 토바고]] || 4 || 0 || 1 || 3 || 2 || 7 || -5 || 1 || 예선 탈락 ||
==== 결선 리그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ddffdd> 1 || [[파일:캐나다 국기.svg|width=30]] || [[캐나다 축구 국가대표팀|캐나다]] || 4 || 2 || 2 || 0 || 4 || 2 || +2 || 6 || '''본선 진출''' ||
||<rowbgcolor=#ffdddd> 2 || [[파일:온두라스 국기.svg|width=30]] || [[온두라스 축구 국가대표팀|온두라스]] || 4 || 1 || 1 || 2 || 6 || 6 || 0 || 3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3 || [[파일:코스타리카 국기.svg|width=30]] || [[코스타리카 축구 국가대표팀|코스타리카]] || 4 || 0 || 3 || 1 || 4 || 6 || -2 || 3 || 예선 탈락 ||
캐나다가 본선에 진출하였다.
== 아시아 ==
동아시아 1팀, 서아시아 1팀을 본선에 보낸다는 방침으로 동아시아 팀과 서아시아 팀이 맞대결하는 일이 없도록 조를 편성하였다.
=== 1라운드 ===
==== 1그룹 ====
===== A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ffffdd> 1 ||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width=30]] ||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아랍에미리트]] || 2 || 1 || 1 || 0 || 1 || 0 || +1 || 2 || '''2라운드 진출''' ||
||<rowbgcolor=#ffdddd> 3 ||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width=30]] ||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사우디아라비아]] || 2 || 0 || 1 || 1 || 0 || 1 || -1 || 0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4 || [[파일:오만 국기.svg|width=30]] ||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오만]] ||<-9> 기권 ||
===== B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ffffdd> 1 || [[파일:이라크 국기.svg|width=30]] ||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이라크]] || 4 || 3 || 0 || 1 || 7 || 6 || +1 || 6 || '''2라운드 진출''' ||
||<rowbgcolor=#ffdddd> 3 || [[파일:카타르 국기.svg|width=30]] || [[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카타르]] || 4 || 2 || 0 || 2 || 6 || 3 || -3 || 4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3 || [[파일:요르단 국기.svg|width=30]] || [[요르단 축구 국가대표팀|요르단]] || 4 || 1 || 0 || 3 || 3 || 7 || -4 || 2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4 || [[파일:레바논 국기.svg|width=30]] || [[레바논 축구 국가대표팀|레바논]] ||<-9> 기권 ||
==== 2그룹 ====
===== A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ffffdd> 1 || [[파일:시리아 국기.svg|width=30]] || [[시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시리아]] || 4 || 3 || 1 || 0 || 5 || 0 || +5 || 7 || '''2라운드 진출''' ||
||<rowbgcolor=#ffdddd> 3 || [[파일:쿠웨이트 국기.svg|width=30]] || [[쿠웨이트 축구 국가대표팀|쿠웨이트]] || 4 || 2 || 1 || 1 || 8 || 2 || +6 || 5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3 || [[파일:북예멘 국기.svg|width=30]] || [[예멘 축구 국가대표팀|북예멘]] || 4 || 0 || 0 || 4 || 1 || 12 || -11 || 0 || 예선 탈락 ||
===== B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ffffdd> 1 || [[파일:바레인 국기.svg|width=30]] || [[바레인 축구 국가대표팀|바레인]] || 2 || 1 || 1 || 0 || 7 || 4 || +3 || 2 || '''2라운드 진출''' ||
||<rowbgcolor=#ffdddd> 3 || [[파일:남예멘 국기.svg|width=30]] || [[남예멘 축구 국가대표팀|남예멘]] || 2 || 0 || 1 || 1 || 4 || 7 || -3 || 0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4 || [[파일:이란 국기.svg|width=30]] ||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란]] ||<-9> 실격 ||
==== 3그룹 ====
===== A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ffffdd> 1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 4 || 3 || 0 || 1 || 8 || 1 || +7 || 7 || '''2라운드 진출''' ||
||<rowbgcolor=#ffdddd> 3 ||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width=30]] ||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말레이시아]] || 4 || 2 || 1 || 1 || 6 || 2 || +4 || 5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3 || [[파일:네팔 국기.svg|width=30]] || [[네팔 축구 국가대표팀|네팔]] || 4 || 0 || 1 || 3 || 0 || 11 || -11 || 0 || 예선 탈락 ||
한국은 말레이시아 원정에서 패하여 1차 예선 탈락 위기까지 몰렸는데, 말레이시아가 네팔 원정에서 비기고(홈에선 네팔을 개발살) 한국이 홈에서 말레이시아를 잡아서 2차 예선에 올라갈 수 있었다. 당시 말레이시아는 아시아 축구 강호급이었고, 말레이시아 원정만큼은 한국이나 일본도 고전할 정도였다.
===== B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ffffdd> 1 ||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width=30]] ||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인도네시아]] || 6 || 4 || 1 || 1 || 8 || 4 || +4 || 9 || '''2라운드 진출''' ||
||<rowbgcolor=#ffdddd> 2 || [[파일:인도 국기.svg|width=30]] || [[인도 축구 국가대표팀|인도]] || 6 || 2 || 3 || 1 || 7 || 6 || +1 || 7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3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 [[태국 축구 국가대표팀|태국]] || 6 || 1 || 2 || 3 || 4 || 4 || 0 || 4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4 || [[파일:방글라데시 국기.svg|width=30]] || [[방글라데시 축구 국가대표팀|방글라데시]] || 6 || 2 || 0 || 4 || 5 || 10 || -5 || 4 || 예선 탈락 ||
당시 네팔원정경기에서 2-0으로 승리..1골 PK 1골 자책골
==== 4그룹 ====
===== A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ffffdd> 1 || [[파일:영국령 홍콩 기.png|width=30]] ||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홍콩]] || 6 || 5 || 1 || 0 || 19 || 2 || +17 || 11 || '''2라운드 진출''' ||
||<rowbgcolor=#ffdddd> 2 || [[파일:중국 국기.svg|width=30]] ||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중국]] || 6 || 4 || 1 || 1 || 23 || 2 || +21 || 9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3 || [[파일:포르투갈 국기.svg|width=30]] || [[마카오 축구 국가대표팀|마카오]] || 6 || 2 || 0 || 4 || 4 || 15 || -11 || 4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4 || [[파일:브루나이 국기.svg|width=30]] || [[브루나이 축구 국가대표팀|브루나이]] || 6 || 0 || 0 || 6 || 2 || 29 || -27 || 0 || 예선 탈락 ||
===== B조 =====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ffffdd> 1 || [[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일본]] || 4 || 3 || 1 || 0 || 9 || 1 || +8 || 7 || '''2라운드 진출''' ||
||<rowbgcolor=#ffdddd> 3 || [[파일:북한 국기.svg|width=30]]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북한]] || 4 || 1 || 2 || 1 || 3 || 2 || +1 || 4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3 || [[파일:싱가포르 국기.svg|width=30]] || [[싱가포르 축구 국가대표팀|싱가포르]] || 4 || 0 || 1 || 3 || 2 || 11 || -9 || 1 || 예선 탈락 ||
=== 2라운드 ===
|| 팀 || 결과 || 팀 || 1차전 || 2차전 || 비고 ||
||<bgcolor=#ffdddd> 아랍에미리트 || 4-4 ||<bgcolor=#ffffdd> '''이라크''' || 2-3 || 2-1 || 원정 다득점 ||
||<bgcolor=#ffdddd> 바레인 || 1-2 ||<bgcolor=#ffffdd> '''시리아''' || 1-1 || 0-1 || ||
||<bgcolor=#ffffdd> '''대한민국''' || 6-1 ||<bgcolor=#ffdddd> 인도네시아 || 2-0 || 4-1 || ||
||<bgcolor=#ffffdd> '''일본''' || 5-1 ||<bgcolor=#ffdddd> 홍콩 || 3-0 || 2-1 || ||
=== 최종 라운드 ===
|| 팀 || 결과 || 팀 || 1차전 || 2차전 || 비고 ||
||<bgcolor=#ffdddd> 시리아 || 1-3 ||<bgcolor=#ddffdd> '''이라크''' || 0-0 || 1-3 || ||
||<bgcolor=#ffdddd> 일본 || 1-3 ||<bgcolor=#ddffdd> '''대한민국''' || 1-2 || 0-1 || ||
[youtube]
대한민국과 이라크가 본선에 진출했다. 참고로 이라크는 [[이란-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모든 홈경기를 중립지대에서 실시했다.
== 오세아니아 ==
이스라엘은 중동 국가들과의 갈등으로, 대만은 중국과의 갈등으로 아시아 축구연맹에서 추방당하여 이 대회에서는 부득이하게 오세아니아 지역예선에 편입되었다.
|| '''순위''' ||<-2>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진출여부''' ||
||<rowbgcolor=#ffffdd> 1 || [[파일:호주 국기.svg|width=30]] ||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호주]] || 6 || 3 || 4 || 2 || 20 || 2 || +18 || 14 || 플레이오프 진출 ||
||<rowbgcolor=#ffdddd> 2 || [[파일:이스라엘 국기.svg|width=30]] || [[이스라엘 축구 국가대표팀|이스라엘]] || 6 || 3 || 1 || 2 || 17 || 5 || +12 || 10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3 || [[파일:뉴질랜드 국기.svg|width=30]] || [[뉴질랜드 축구 국가대표팀|뉴질랜드]] || 6 || 3 || 1 || 2 || 13 || 6 || -7 || 10 || 예선 탈락 ||
||<rowbgcolor=#ffdddd> 4 || [[파일:대만 국기.svg|width=30]] || [[대만 축구 국가대표팀|대만]] || 6 || 0 || 0 || 6 || 1 || 34 || -33 || 0 || 예선 탈락 ||
호주가 스코틀랜드와의 대륙간 플레이오프에 진출.
== 유럽·오세아니아 플레이오프 ==
|| 팀 || 결과 || 팀 || 1차전 || 2차전 || 비고 ||
||<bgcolor=#ddffdd> '''스코틀랜드''' || 2-0 ||<bgcolor=#ffdddd> 호주 || 2-0 || 0-0 || ||
* 스코틀랜드가 2-0으로 호주를 누르고 본선에 진출하였다.
[[분류:FIFA 월드컵]] |
1986 멕시코 월드컵 | #redirect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
1986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 | [include(틀:역대 동계 아시안게임)]
[[파일:attachment/52224002447.jpg]]
개최국가 : [[일본]]
개최지역 : [[홋카이도]] [[삿포로]]
개회식 : [[1986년]] [[3월 1일]]
폐회식 : 1986년 [[3월 8일]]
[목차]
== 개요 ==
1986년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제1회 동계 [[아시안 게임]].
== 이모저모 ==
* 일본 올림픽위원회가 [[1982년]]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뉴델리 아시안 게임]]에서 제안했다. 그리고 [[1984년]] [[아시아올림픽평의회]]가 [[서울특별시]]에서 회의 끝에 동계 [[아시안 게임]]의 창설을 승인하고 동계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게 된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같은 해에 열린 셈. 동계 올림픽을 벌일 수 있는 나라가 일본 뿐이었던 만큼 전격 선택되었고, 인도 공화국이 개최를 포기하면서 4년 뒤 개최지도 삿포로였다(...)
* 첫 대회라 그런지 [[대한민국]], [[일본]], [[북한]], [[중화인민공화국]], [[인도]], [[몽골]], [[홍콩]] 7개국만 참가하였다.
* 일본이 총 35개의 금메달 가운데 29개, 은메달 역시 23개를 차지하는 등 "일본 국내 경기"라고 할 만큼 엄청난 싹쓸이를 한 경기였다. 국력도 국력이거니와 홈그라운드였으니까. 중국이 금 4, 은 5, 동 12로 2위, 한국이 금 1, 은 5, 동 12로 3위였으며 아직 국력이 남아있던 북한이 금 1, 은 2, 동 5로 4위를 차지했다. 이들 4개국 만이 메달을 땄다.
[[분류:동계 아시안 게임]] [[분류:쇼와 시대]] [[분류:삿포로시]] |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 [include(틀:역대 하계 아시안게임)]
||<-3><table align=right><table width=420><table bordercolor=#056fa9><bgcolor=#056fa9> {{{+4 '''{{{#ffffff 1986 서울 아시안게임}}}'''}}} ||
||<-3><bgcolor=#056fa9> {{{#fff 제10회 아시안게임[br]{{{+1 1986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br]X Asian Games'''[[상표|{{{#fff ™}}}]] '''Seoul 1986 }}} ||
||<-3><bgcolor=#ffffff,#191919> [[파일:attachment/51424002512.jpg|width=70%]] ||
||<-3><bgcolor=#ffffff,#191919> [[파일:poster_920538_z.jpg|width=70%]] ||
||<height=40><bgcolor=#056fa9> {{{#fff ''' 대회기간 ''' }}} ||<-2> [[1986년]] [[9월 20일]] ~ [[10월 5일]] ||
||<height=40><bgcolor=#056fa9> {{{#fff ''' 개최국 ''' }}} ||<-2> [[대한민국]]/[[서울특별시]] ||
||<height=40><bgcolor=#056fa9> {{{#fff ''' 참가국 ''' }}} ||<-2> 27개국 ||
||<height=40><bgcolor=#056fa9> {{{#fff ''' 참가인원 ''' }}} ||<-2> 3,345명 ||
||<height=40><bgcolor=#056fa9> {{{#fff ''' 경기종목 ''' }}} ||<-2> 27개 종목 - 296개 세부 종목 ||
||<height=40><bgcolor=#056fa9> {{{#fff ''' 개회선언 ''' }}} ||<-2> [[전두환]][br],,[[대한민국 대통령]],, ||
||<height=40><bgcolor=#056fa9> {{{#fff ''' 선수선서 ''' }}} ||<-2> [[김호철]], [[김진호(양궁)|김진호]] ||
||<height=40><bgcolor=#056fa9> {{{#fff ''' 성화점화 ''' }}} ||<-2> [[장재근]], [[박미선(육상선수)|박미선]] ||
||<height=40><bgcolor=#056fa9> {{{#fff ''' 개·폐회식장'''}}} ||<-2> [[서울올림픽주경기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1986년]] [[서울특별시]] 등 수도권 등지에서 개최된 제10회 하계 [[아시안 게임]].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개최된 종합 국제 스포츠 대회였던지라 그야말로 나라 전체가 심혈을 기울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국민적 기대가 컸는데 '''그 중 무엇보다도 [[1988 서울 올림픽|2년 뒤 같은 장소에서 열리게 될 올림픽]]을 대비한 최종 [[리허설]] 성격이 강한 대회였기에''' 정부와 서울특별시 또한 성공적인 개최에 필사적으로 사활을 거는 등, 여타 하계 아시안게임에 비해 그 무게감이 훨씬 높았다.[* 올림픽 직전에 아시안게임을 그리고 아시안게임 바로 직후에 딜레이 없이 바로 올림픽을 개최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그러한 유래를 깨버리고 개최된 것이 지금까지도 유일무이하게 제 10회 86년 서울 하계 아시안게임과 제 24회 88년 서울 하계 올림픽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또한 [[서울종합운동장|2년 후 올림픽이 열릴 장소]]를 그대로 썼으나, 선수촌의 경우에는 잠실종합운동장 건너편과 올림픽공원 동쪽에 각각 [[아시아선수촌|아시안게임 선수촌]]과 [[올림픽선수기자촌|올림픽 선수/기자촌]] 아파트를 건설했다. 그래서 아시안게임 때 잠실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은 그냥 도보로 이동하면 그만이었지만 올림픽 때는 ~~[[얄짤없다|얄짤없이]] [[서울특별시 시내버스/2004년 개편 전 목록/0번대#s-73|21-2번 버스]]를 타거나~~ 선수/기자들을 위한 셔틀버스를 타야 했다.
== 유치과정 ==
사실 서울 아시안 게임 개최는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 시절이었던 [[1970년]]에 개최될뻔 했었다. 하지만 1968년 1월 21일의 [[김신조 사건]]을 비롯한 북한의 대남 도발사태로 인해 남북간의 긴장 상태가 거셌던데다, 아시안 게임의 직접적인 개최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서울특별시청]]은 정부 시책에 맞춰 각종 건설사업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재정 여건 또한 [[영 좋지 않다|영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1960년대 후반에 ~~당대 건설업계에 빛을 준~~ [[김현옥]]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세운상가]] 건설이나 [[강변북로]] 건설, [[여의도]] 개발 사업, [[고가도로]]와 [[지하도]] 건설, ~~[[흑역사]]~~ [[시민아파트]] 건설 등 각종 건설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는데 이중 상당수가 단기적으로 수익을 기대해볼만한 사업이 아니었던지라.....] 이런 상황에서 동시에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게 될 경우 서울시의 재정이 바닥날 수 있었고, 또 지방자치제가 시행되기 이전이었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는 곧 '''대한민국 재정에 막대한 타격을 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올림픽의 유치권을 [[태국]]의 [[방콕]]에게 위임하면서 사실상 개최를 포기한다.[* 물론 여담으로 70년대 세계사적 관점에서는 ''''데탕트'''' 즉 '탈냉전'에 관한 미국과 소련의 언급이 차츰 늘어가는 국면을 보였지만 말이다. 물론 후에 80년대에 아프가니스탄 침공등과 같은 사태를 통해 국면이 급속도로 당시 냉각된다.]
그러다가 1977년 국민소득 1천 불과 수출 1억 불을 돌파하면서 신흥 개발 도상국으로서 발돋움하면서 엄청난 산업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던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 다시 한번 아시안 게임을 유치하여 개최해보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고, 또 1979년에 마침내 공식적으로 유치에 도전하는 것으로 확정된다. 그것도 '''[[1988 서울 올림픽|2년 후 열리게 될 하계 올림픽]]과 함께 말이다.'''
스포츠계에서 역사상 한 국가가 아시안 게임 유치와 올림픽 유치에 동시에 도전하는 일은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에 들어서도 굉장히 드문 일이지만, 과거 서울시에서는 대한민국이 종합 국제 스포츠 대회를 개최해본 경험이 없었던지라 '아시안게임을 통해 개최 능력을 보여준 뒤 올림픽까지 성공적으로 개최하겠다'는 명분으로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두 군데에 동시에 출사표를 냈다.[* 다만 이는 말 그대로 표면적인 주장이었을뿐, 실제 관계자들은 개최 가능성이 높지 않은 올림픽보다는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보였던 아시안 게임 유치에 사활을 걸 작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림픽 유치의 경쟁 상대는 [[1958 도쿄 아시안 게임|이미 세 번이나]] [[1964 도쿄 올림픽|큰 대회를]] [[1972 삿포로 동계올림픽|유치해 본]] [[일본|이웃 국가의]] [[나고야|대도시]]였기 때문.]
그렇게 1986년 아시안 게임 유치에 나선 서울의 경쟁 상대는 애초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하나였고[* 그런데 원래대로라면 1980년 4월에 서울로 확정났어야 했다. 왜냐하면 신청 마감일인 4월까지 유치 의사를 밝힌게 서울 하나뿐이었기 때문. 물론 앞서 언급했다시피 1970년의 개최 포기 전례가 있는데다 당시 [[OCA|AGF]] 자체가 한국을 비롯한 친서방 진영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제 3세계의 비동맹 국가들의 입김이 제법 셌던지라.....] '''여긴 [[이란-이라크 전쟁|얼마 전부터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서울의 개최가 거의 유력해보였다.[* 물론 이라크측은 [[정신승리|전쟁을 일찍 끝낼 것이니 바그다드 개최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문제가 많았다.]][[현실은 시궁창|알다시피 전쟁은 1988년까지 이어졌다. (...)]]] 그런데 유치 확정 발표가 되지 않은 미적미적거리던 상태가 이어지다가 1980년 10월 말에 갑자기 뜬금없이 개최 신청서를 접수한 곳이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북한]]의 [[평양직할시]].''' 한마디로 대한민국이 아시안 게임을 바로 자기들 바로 밑에서 개최하는 꼴을 눈 뜨고 볼 수 없다고 여겼던 예상치 못한 의외의 불청객의 등장이었고 이후 수많은 공작 활동으로 대회 운영까지 방해했다.(...)
그러나 서울이 1970년 대회 개최 포기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국가 차원의 높은 경제력과 실행력을 바탕으로 [[1988 서울 올림픽|올림픽 개최까지 염두하면서]] [[서울올림픽주경기장|야심차게 경기장을 만드는 등]]의 여러 진전된 모습을 보인데다, 바그다드와 평양은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란-이라크 전쟁|전쟁 중이거나]] 그저 이념 대결에만 몰두하는 일그러진 민낯 일색이었기 때문에 표 대결로 갈 경우 서울이 유력했다. 그리고 아시안 게임 개최지 선정을 한달여 앞둔 [[1981년]] [[9월 30일]]에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 총회 때 '''[[1988 서울 올림픽|1988년 올림픽 개최지가 서울로 확정됨에 따라]]''' 대세가 완전히 기울자 바그다드와 평양이 모두 유치를 포기해 서울이 1986년 아시안 게임의 개최를 확정한다.[* --덤으로 북한은 도대체 뭐하러 [[능라도 경기장]]을 지었는지 알쏭달쏭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물론 [[1989년]]에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때 써먹긴 했다만 결과적으로 막대한 돈만 뿌리고 실속은 전혀 없었던 대회였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1982년에 서울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회(SAGOC)가 발족되었으며, 이듬해에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로 통합되었다.
== 역대 조직위원장 ==
* SAGOC 위원장
* [[조상호]] (1982~1983)
* SLOOC 위원장
* [[노태우]] (1983~1986)
* [[박세직]] (1986~1988)[* 아시안 게임과 서울 올림픽 관련 총괄 역할을 담당.]
== 경기장 ==
* [[골프]] - 한양CC
* [[농구]] - [[잠실실내체육관]]
* [[레슬링]] - 국군체육부대 상무체육관
* [[배구]] - [[한양대학교]] 체육관
* [[배드민턴]] -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 [[복싱]] - [[잠실학생체육관]]
* [[볼링]] - 동서울볼링장[* 현재는 철거되어 두산아파트가 들어섰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12900209108004&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1-29&officeId=00020&pageNo=8&printNo=23722&publishType=00010|#]]]
* [[사격]] - 태릉국제사격장
* [[자전거/경기|사이클]] - 올림픽 벨로드롬
* [[수영]] - [[잠실종합운동장|잠실종합운동장 수영장]]
* [[승마]] - [[렛츠런파크 서울|과천 승마공원]], 원당종합마술경기장
* [[양궁]] - [[육군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화랑양궁장]]
* [[역도]] -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
* [[요트]] -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
* [[유도]] - 새마을88체육관 (現 [[KBS 아레나]])
* [[육상]] - [[잠실종합운동장]]
* [[조정(스포츠)|조정]] - 미사리 한강 조정 카누 경기장
* [[체조]] -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 [[축구]] - [[서울종합운동장]], [[동대문운동장]], [[구덕운동장]], [[한밭종합운동장]], [[무등경기장]], [[대구시민운동장]]
* [[카누]] - 미사리 한강 조정 카누 경기장
* [[탁구]] - [[서울대학교]] 체육관
* [[태권도]] -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 체육관
* [[테니스]] - 올림픽공원 테니스경기장
* [[펜싱]] -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
* [[하키]] - [[성남종합운동장]]
* [[핸드볼]] - [[수원실내체육관]]
당연한 얘기지만 2년 후 [[1988 서울 올림픽]]과 종목별 경기장이 거의 대부분 같다. 다만 유도, 태권도는 서울올림픽 때에는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 경기 결과 ==
[[대한민국]]은 금메달 93개, 은메달 55개, 동메달 76개를 획득하여 금메달 94개, 은메달 82개, 동메달 46개를 획득한 [[중국]]에게 '''한 끗 차이로''' 밀렸다. [[대한민국]]이 유일하게 [[아시안 게임]]에서 종합 우승을 할 수 있는 기회였으나 [[안습]].[* 승부가 마지막 날 밤에야 결정된 터라 그 날 밤에는 경기를 중계해주면서 금메달 숫자를 자막으로 속보 띄워주기도 했다. 우리나라로서는 [[허재]]가 중국과의 농구 결승전 도중 발목부상을 당해 5분밖에 뛰지 못해 금메달을 내준 것 등, 당일 중국과 금메달을 겨뤘던 경기들이 아쉬울 따름.] 금메달 수가 아닌, 전체 메달 수에서는 대한민국이 아시아 1위를 차지하게 되면서([[대한민국]] 224개, [[중국]] 222개) 역대급으로 엄청난 성과를 보인 아시안 게임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한 홈그라운드의 이점도 상당히 많이 또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이는 물론 편파 판정으로 변질되지만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아시안게임은 올림픽에 비해 개최국이 경기종목을 선정하는 방식에 있어서 권한이 더 많은 편에 속한다. 특히 [[양궁]] 같은 경우, 이미 당시 세계대회가 그랜드피타 방식[* 요즘의 올림픽 양궁을 생각하면 된다.]으로 경기를 했었는데, 이와 반대로 서울 아시안 게임의 경우에는 과거의 방식이었던 더블라운드 방식[* 육상이나 수영처럼 거리에 따라 세부종목을 많이 두는 방식. 당연히 금메달 수도 훨씬 많아서 [[김진호(양궁)|김진호]] 선수가 3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개인전 단체전 2개만 있는 요즘 방식에서는 3관왕은 불가능하다.]을 채택했었다.[* 당연히 다른 나라도, 자국에서 개최하는 아시안 게임에 자국에 유리한 경기종목을 많이 집어넣곤 한다.][* --그리고 [[2014 인천 아시안게임|28년 후]]에 초반 1위를 달리는데.....--]
그리고 [[대한민국]]은 '''복싱 12체급을 전부 우승'''하는 기염을 토한다[* 직전 대회인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서는 7체급 우승한 엄청난 복싱 강대국이었는데(금 못 딴 5명도 은이나 동을 땄다.) 이러한 본래의 실력에 개최국 버프까지 받은 셈. 다만 이 경우는 편파판정 논란이 발생할 정도로 말이 좀 많았다.][* 이 때 금메달을 딴 선수들이 [[김광선]], 문성길, [[신준섭]], 백현만 등 올드 복싱팬이라면 모두 알만한 이름이다.]. 도리어 태권도는 8체급 중 하나를 놓쳤다.
유도는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이 채택되었으며, 이때 [[일본]] 유도가 [[대한민국]]에 초전박살이 났다. 금메달 8개(7체급+무제한급, 남자부만 실시) 중 [[대한민국]]이 6개(+은 1, 동 1), [[일본]]이 2개를 가져갔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편파판정, 자국 버프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비판을 받는 경기이기도 하다.
유치경쟁에서 밀려서 감정이 상한 [[북한]]에 동조한 [[아프가니스탄]], [[베트남]], [[라오스]], [[몽골]], [[남예멘]], [[시리아]]가 대회를 보이콧하였다.[* 더군다나 당시 지구촌 전체가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도 지배적으로 영향을 끼치는데. 특히나 이에 극단적으로 보이콧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리고 당시 상황에 관하여 이야기해보자면 [[1980 모스크바 올림픽|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의 경우에는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자유주의 진영이 모두 불참하는 사태가 벌어지며 동시에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의 영토를 점령 중으로 1989년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지시로 철수할 때까지 사실상 [[소련]]이 지배했었다. 또 [[몽골]]/[[남예멘]]/[[베트남]]/[[라오스]]는 당시 사회주의 국가였으며(베트남, 라오스는 지금도 사회주의 국가이다.), [[시리아]]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랍 사회주의 정당인 [[바트당]]이 지배하는 나라.] 이처럼 시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사회주의 관련 불참국들은 [[1984 LA 올림픽|2년 전 올림픽]]에도 불참한 반면,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불참국들은 2년 후 열린 [[1988 서울 올림픽]]에 모두 참가하였다. ~~물론 [[북한]]은 죄다 [[보이콧]][[열폭|을 날렸지]]~~ 이에 따라 참가국 수가 직전 대회인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 직후 대회인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보다 적었다. 그냥 '''[[중국]] 빼고 공산권 몽땅 불참'''이라고 보면 맞다. 하지만 [[중국]] 하나 덕에 이들의 부재감이 사라진다.[* 사실 중국은 소련과 반목하는 사실상의 독자적인 노선을 지향했던 공산 국가였던데다 한국과는 [[1983년]] 5월의 [[중공 여객기 불시착 사건]]이 잘 해결되면서 관계가 그리 나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차기 대회]] 개최를 천명한 마당에 서울 대회에 불참하게 되면 모양새가 매우 안 좋았던데다 아시안 게임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올림픽 개최까지도 노리고 있었고 또한 중화민국과의 역사적 마찰을 통해서 80년대 후반까지 국가로서 인정받지 못하다가 비로소 인정받기 되었기에 두 말하지 않고 서울에서 개최된 두 대회 모두 참가했다.]
하지만 [[북한]]은 보이콧만으로도 모자라 이 대회를 방해할 목적으로 아랍계 테러범에게 사주를 내려 [[1986년]] [[9월 14일]],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를 일으키는 바람에 5명이 사망하고 33명이 중경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또한 그러고도 모자라 서울 올림픽마저도 보이콧한 상태에서 약 1년 뒤인 [[1987년]] [[11월 29일]]에는 [[1988 서울 올림픽]]의 개최를 방해할 목적으로 [[미얀마]] 상공에서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을 일으킨다. 이후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화합이라는 슬로건으로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과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에 공동 참가하는 등의 아이러니한 행보를 보인다.
== 메달 순위 ==
|| 순위 ||<-2> 국가명 || 금 || 은 || 동 || 합계 ||
|| 1 || [[파일:중국 국기.svg|width=30]] || 중국 || 94 || 82 || 46 || 222 ||
|| 2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 대한민국 || 93 || 55 || 76 || 224 ||
|| 3 || [[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 일본 || 58 || 76 || 77 || 211 ||
|| 4 || [[파일:이란 국기.svg|width=30]] || 이란 || 6 || 6 || 10 || 22 ||
|| 5 || [[파일:인도 국기.svg|width=30]] || 인도 || 5 || 8 || 23 || 36 ||
|| 6 || [[파일:필리핀 국기.svg|width=30]] || 필리핀 || 4 || 5 || 9 || 18 ||
|| 7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 태국 || 3 || 10 || 13 || 26 ||
|| 8 || [[파일:파키스탄 국기.svg|width=30]] || 파키스탄 || 2 || 4 || 3 || 9 ||
|| 9 ||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width=30]] || 인도네시아 || 1 || 5 || 14 || 20 ||
|| 10 || [[파일:영국령 홍콩 기.png|width=30]] || 영국령 홍콩 || 1 || 1 || 3 || 5 ||
|| 11 || [[파일:카타르 국기.svg|width=30]] || 카타르 || 1 || 0 || 3 || 4 ||
|| 12 || [[파일:레바논 국기.svg|width=30]] || 레바논 || 1 || 0 || 1 || 2 ||
|| 12 || [[파일:바레인 국기.svg|width=30]] || 바레인 || 1 || 0 || 1 || 2 ||
|| 14 ||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width=30]] || 말레이시아 || 0 || 5 || 5 || 10 ||
|| 15 || [[파일:이라크 국기.svg|width=30]] || 이라크 || 0 || 5 || 2 || 7 ||
|| 16 || [[파일:요르단 국기.svg|width=30]] || 요르단 || 0 || 3 || 1 || 4 ||
|| 17 || [[파일:쿠웨이트 국기.svg|width=30]] || 쿠웨이트 || 0 || 1 || 7 ||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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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파일:네팔 국기.svg|width=30]] || 네팔 || 0 || 0 || 8 ||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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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파일:오만 국기.svg|width=30]] || 오만 || 0 || 0 || 1 || 1 ||
== 마스코트 ==
|| [[파일:hodori_86_asian_games.jpg]] ||
공식적으로 아시안 게임에서 따로 마스코트를 지정하여 사용하는 일이 없이[*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백서에도 휘장만 올라와 있을 뿐 마스코트에 대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휘장사업 부문에서 88올림픽에서 사용할 마스코트인 호돌이를 사용했다는 것은 나온다.] 대신 [[1988 서울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를 홍보용으로 사용한다.[* 특히 호돌이는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기|오륜 메달]]을 목에 걸고 있어서 이 부분은 바꿔 쓰지 않았을까... 생각하겠지만 그냥 썼다. 사실 아시안 게임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승인 하에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주관하는 올림픽의 지역 버전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오륜 메달을 썼다고 크게 이상할 건 없다.] 또한 사실상 올림픽 리허설의 성격으로 치러진 대회였기 때문에 따로 아시안게임의 마스코트를 만들어봤자 비용만 지출되는 상황과 도리어 2년 후에 개최하게 될 가장 큰 규모의 하계 대회인 서울 올림픽 홍보에는 오히려 방해만 될 것으로 판단하여 그냥 만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올림픽 마스코트가 등장해야할 서울 아시안 게임의 개회식에서는 따로 아시안게임 관련 마스코트 없이 간접적으로 호돌이의 홍보와 묘사가 이루어지고 마지막 [[https://youtu.be/R4o8vFu_oWQ?t=6m3s|폐회식]]에서는 급기야 다음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베이징 대회]] 마스코트와 함께 등장했다.[* 해당 폐회식 영상에서도 호돌이를 88년 서울 올림픽의 대표 마스코트로 소개되었을 뿐이었으며 이를 아시안게임 마스코트라고 언급하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올림픽 리허설 대회라는 평가답게 아시안게임 홍보는 버리고 올림픽 홍보에만 집중한 셈이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91200209205020&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9-12&officeId=00020&pageNo=5&printNo=19985&publishType=00020|이러한 이유로 대회를 앞두고 아시아경기대회에 관련된 기념품은 찾기 힘들다고 언급하면서 그저 아직 기간이 2년이나 남은 상태에서 후에 개최될 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에 관련된 상품밖에 없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다.
여담으로 기업 후원사 선정에서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통합해서 받았기 때문에 후원기업들도 호돌이를 광고에 사용하면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동시에 내걸곤 했다. 이런 상황이니 설령 아시안게임 마스코트가 따로 있었다 하더라도 기업 입장에서는 올림픽에 보다 무게를 두고 홍보했을 것이기 당연했기 때문에 아시안게임 마스코트는 호돌이에 밀려 별로 사용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 [[파일:ag1986ms.gif]] ||
또한 이처럼 서울 아시안 게임의 마스코트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리그베다/나무위키 이전 버전이나 혹은 외국사이트와 여러 검색엔진 등에서 1986년 아시안게임 마스코트라는 설명이 붙은 채로 떠돌아다니던 것이 바로 위와 같은 자료 사진이었다,
허나 이것은 제 10회 서울 아시안게임이 개최되기 바로 전년도에 개최되었던 1985년 태국에서 열렸던 제13회 방콕 "동남 아시안 게임"의 마스코트였던 [[샴고양이]]. [[태국어]]로 Wichien-maat 라고 부른다. [[https://m.blog.naver.com/dkmales/220751366611|#]] 그리고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공신력이 제일 높은 OCA 공식 홈페이지가 느닷없이 서울 아시안 게임 마스코트로 해당 사진을 올려버리는 오류를 범한 탓에 이러한 잘못된 정보가 마치 사실처럼 유포되었다.
== 이모저모 ==
* 경기 끝나고 [[정수라]]가 부른 [[아! 대한민국]]이 지겹게 나와서 '''"이게 경기인가"'''하는 논란이 있었다.
* 폐막식 끝나자 마자 바로, 그러니까 다음 날도 아니고 그날 저녁도 아니고 폐막식 끝나고 바로다. [[땡전뉴스|전두환 대통령의 지도력 때문에 우승했다는 특별방송]]을 방영하는 바람에 바로 TV 끄고 시청료 안 내고 싶어졌던 사람들이 많았고, 실제로도 TV시청료를 일부러 안내는 가정이 급속히 늘었을때였다. 이때는 이미 전두환에 대한 국민감정이 극도로 나빠졌을 때인데 아시안 게임의 좋은 성적으로 고조되었던 기분이 저 방송들 때문에 순식간에 식어버리고 바로 TV 부숴버리고 싶다는 말이 많이 나왔다. 당시에도 한국 국민들은 스포츠와 정치를 연관시키는 건 좋아하지 않았는데 좋은 결과에 한껏 고양된 감정이 쿠데타로 집권한 국가원수에 대한 선전으로 이어져서 역효과만 난 방송이었다. TV를 보던 보수지향적 6,70대 노인들에게서도 쌍욕이 튀어나왔다는 증언이 있다.
* 정부가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정치 선전 자료로 지나칠 정도로 이용해 먹자 시인 [[김용택]]은 '''<팔유팔파>'''라는 시를 지어 이를 비판했다. 팔육팔팔의 오타가 아니고 진짜 제목이 팔유팔파다. 아마도 발음이 약하거나 어느정도 사투리 말씨가 흘러들어간 어느 서민을 화자로 하였기 때문에, 실감나는 구어체를 위해 서술한것으로 보인다. 아래 내용은 그 중의 일부다. 과장된 내용 같지만 진짜 저렇게 팔육[[1988 서울 올림픽|팔팔]]이 한국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줄 것처럼 선전해댔다.
>얘야팔유팔파오림픽이열리며는우리덜은뭐시그리좋다냐소값이나쌀값이나객지서노동일허는니동생임금이라도올라간다냐……그나저나오림픽이끝나며는저텔레비전속사람들이나왼갖치사와축사속의사람덜은무신소리로안정된선진조국과정의복지를위하여침을튀길까그러고우리덜은무신재미로살끄나무신희망으로와와절망하끄나. 해가떠도오림픽달이떠도오림픽빚이져도오림픽소값개값되어야도오림픽죽으나사나오림픽인디아아아아아그때는참말이제무슨절망으로아아대한민국아아대한민국허여무신재미로살끄나……그나저나팔유팔파오림픽이열리며는그누구의말대로거시기뭣이냐민족사의왼갖질곡과시련을극복하여그종지부를꽉찍을까그럴까우리하늘이저쪽끝에서저쪽끝까지훤하게갤까
* 이 대회에 참가한 [[아시아]] 국가들은 [[1988년 서울 올림픽|2년 뒤 같은 장소에서 올림픽을 경험하게 된다.]] 이 때가 역사상 유일하게 아시안게임과 하계 올림픽이 같은 장소에서 연달아 열린 특이한 사례라서 가능했던 것인데 한편으로는 [[https://www.youtube.com/watch?v=R4o8vFu_oWQ&feature=youtu.be&t=8m51s|아시안게임 폐회식날 전광판에]] '''[[1988 서울 올림픽|'1988년 서울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문구가 표기되기도..... 물론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1990년 북경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문구도 당연히 나왔다. 앞서 언급했듯 서울 아시안게임 자체가 2년 뒤 올림픽의 리허설 무대나 다름없다보니 이례적으로 아시안게임 폐회식날 올림픽이 홍보된 것.
* [[전두환]]의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 정권은 1986 아시안 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을 양대 행사로서 정권의 부족한 정당성을 땜질하고, 위세를 과시하며 국민들을 스포츠에만 눈에 돌리게 하는데 했다. 이때부터 내세운 슬로건이 '''"86・88"'''. 그러나 이 계획은 결국 [[1987년]] [[6월 항쟁]]으로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1988 서울 올림픽]] 항목 참조.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이 대회 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2:0으로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대한민국의 아시안게임 출전 사상 3번째이자 '''20세기 마지막 우승'''이었다. 이후로는 '''결승전에도 못 간채''' 동메달(3위) 3번에 그쳤다가[*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1990년]], [[2002 부산 아시안 게임|2002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2010년]]. 그 외에는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4위로]] [[2006 도하 아시안 게임|메달을 놓치거나]]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아예 준결승조차 못갔다.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28년 후에야]] 금메달을 획득했다!''' --[[서울특별시]]에서 우승하고 옆 동네 [[인천광역시]]에서 우승하는데 28년 걸렸다.--
* 한편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던 [[최순영(기업인)|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은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단에게 총 '''2억 5천만원'''의 포상금을 쐈다. 당시 물가를 감안하면 파격적인 액수였기에 화제가 되었다.[* 이때 당시 [[서울특별시]]에서 아파트 1채를 사려면 1,500만원에서 2,000만원 정도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일반 기업에서 과장급 직장인의 평균 연봉이 600만원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보통 축구 대표팀의 엔트리 인원이 25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1인당 1,000만원 정도의 포상금이 돌아간 셈이 된다.]
* 이 때를 계기로 [[철도]] 수송의 후진성이 다시 드러났다. 당시 여객철도차량의 노후화라든지, [[70년대]] 초 지어져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물동량이 시작된 [[경부고속도로]]를 필두로 한 도로교통의 급성장으로 철도교통이 얼마나 쇠락해갔던 것. 이런 후진성을 혁신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으로 [[새마을호]] PP 동차나 [[무궁화호]] NDC 동차 등이 속속 개발되었고, 나아가 1987년 12월 당시 민정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공식적으로 [[경부고속철도]]의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게 된다. 실제로 [[2010년대]] 기준으로 현재 볼 수 있는 여객 철도의 골격이 이 때를 전후해서 형성되었다. 그 이전의 것은 [[2004년]]을 기점으로 쇠퇴해 갔다. 그리고 아시안 게임 이후 탄생한 [[새마을호]] PP 동차가 32년을 달리고 [[2018년]]에, 무궁화호 NDC는 24년을 달리고 [[2010년]]에 잠들었다.
* 이시기 정부는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제5공화국|군사정권]] 치하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서울시와 수도권 내 군용 차량들의 운행을 최소화하는 등 모진 애를 썼다. 심지어 [[방위병]]들에게도 사복을 입히고 근무를 시켰다는 증언이 있다.
* 가수 [[조용필]]이 [[1985년]]에 이 대회를 앞두고 낸 [[조용필 7집|앨범]]에 "아시아의 불꽃"이라는 곡이 들어가 있다. 이 대회를 앞두고 조용필이 작곡한 것으로 보인다.
* [[태권도]]가 최초로 아시안 게임 정식 종목이 되었다. 남자부만 8체급으로 실시하였고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7체급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땄다.
* [[대만]]은 당시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과 정식 수교한 상태였지만 정작 아시안게임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1973년 11월 16일 AGF 총회에서 38:13 으로 중국 가입 및 대만 축출안이 가결됨에 따라 아시안게임 출전 자격이 없었기 때문인데[* 희한하게도 대만과 정식 수교 상태였던 대한민국조차 반대가 아닌 기권을 택했다. (...)] 운명의 장난인지 서울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중이던 1986년 9월 25일 [[OCA]] 총회에서 대만의 [[중화 타이베이|복귀가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대만의 아시안게임 복귀는 바로 다음 대회였는데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하필 개최국이.....]][* 사실 중국은 대만의 복귀가 확정되자마자 자국에서 열리는 1990년 아시안게임에 대만을 적극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뭐 대만의 출전 명칭인 Chinese Taipei를 중국어로 표기할 때 '''中國'''臺北('''중국''' 타이베이)이라고 표기하라는 압박을 하는 등 뒷끝이 작렬하긴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냥 '''中華'''臺北('''중화''' 타이베이)로 합의해주면서 최소한의 양보는 했는데, 사실 이는 중국이 아시안게임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1993년 IOC 총회에서 [[2000 시드니 올림픽|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노렸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론 [[2008 베이징 올림픽|8년 늦춰지긴 했지]]~~]
* 이때 조직된 자원봉사자회는 그대로 1988년까지 이어져 계속 활동했다. 다만 1986년 아시안 게임 때는 자원봉사자들의 외국인에 대한 과잉친절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당시 1986 아시안게임은 국가 규모로 여는 최초의 대형 스포츠 대회였기 때문에, 시대 분위기상 자원봉사자들이 사명감과 긍지에 불타올라 경기를 관람하러 온 사람들을 좌석 앞까지 일일이 들어주기도 하고, 알아듣지도 못 하는 영어에 무조건 예스를 연발한다거나, 심지어 외국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짐까지 들어주는 경우가 있었는데[* 중동에서는 남의 짐을 들어주면 하인 취급을 할 수도 있다.] 정작 내국인에 대한 친절은 이것보다 못하여 "비굴한 친절"이라며 조직위 내에서도 질타의 대상이 되었다. 이 점은 [[1988 서울 올림픽|서울 올림픽]]에 가서야 다소 개선된다. ~~그런데 정작 [[2014 인천 아시안게임|28년 뒤에 열린 아시안게임]]에서는 이보다 후퇴한 모습을 보여준다~~
* 개최일 전날이 [[추석]]연휴기간 마지막날이었다. 그래서 당시에 편성된 추석특집프로그램 중에서는 아시안게임 참가선수가 나오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DeY0NF8WfI|1986년, 1989년, 1996년에 나온 TV광고 영상]] 중에서 1분 29초 ~ 6분 23초 사이의 영상을 보면 서울아시안게임 특집프로그램 예고, 아시안게임 중계프로그램 예고, 아시안게임기간 중에 방송되는 특집 예능프로그램 예고와 추석특집프로그램 오프닝 영상이 나온다. 이중에서 추석특집 프로그램 오프닝 영상을 보면 '아시아경기대회 참가선수와 함께'라는 내용이 나온다.
* 2018년 공개한 1987년분 외교문서에 따르면 중국의 일부 고위층 인사가 선수로 위장, 참가해 우리측과 면담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69&aid=0000289474|관련기사]]
* 비인기 종목의 관중 동원을 위해, 주변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입장권을 나눠주고, 응원할 국가의 노래도 학교에서 가르쳤다. 해당 국가의 선수들은 뜬금없이 한국인 학생들이 자신들의 국가나 인기곡을 불러줘서 감동했을지도....당시 잠실 주변 중, 고등학교에 재학했던 사람들은, 응원할 국가의 노래 한 곡씩 외웠던 기억이 있다.
[각주]
[[분류:제5공화국]][[분류:하계 아시안 게임]][[분류:서울특별시]] |
1986 월드 시리즈 | #redirect 1986년 월드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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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월드컵 | #redirect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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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 ||<-13><tablealign=center><bgcolor=#a9a9a9> {{{#000000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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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align=right><bgcolor=#CBB8EE> '''세계 각 지역의 표기''' ||
|| [[서력기원|서기]] || 1986년 ||
|| [[대한민국 연호|대한민국]] || 68년 ||
|| [[단군기원|단기]] || 4319년 ||
|| [[불멸기원|불기]] || 2530년 ||
|| [[황기]] || 2546년 ||
|| [[이슬람력]] || 1407년 ~ 1408년 ||
|| [[갑자|간지]] || [[을축]]년 ~ [[병인]]년 ||
|| [[주체사상|주체]] || 75년 ||
|| [[중화민국|민국]] || 75년 ||
|| [[일본]] || [[쇼와]] 61년 ||
|| [[히브리력]] || 5747년 ~ 5748년 ||
|| [[에티오피아]] || 1978년 ~ 1979년 ||
[목차]
== 개요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122500329209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12-25&officeId=00032&pageNo=9&printNo=12693&publishType=00020|경향신문 선정 1986년 국내 10대 뉴스]]
[[수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이 해에는 비극적인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났고, 국내에서는 최악의 연쇄 살인사건으로 꼽히는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이 시작된 해이다.
일본에서는 [[아케이드 게임]] 잡지인 <[[게메스트]]>가 창간된 해이며, 아케이드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하이스코어 집계]]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이 해에 방영된 [[슈퍼전대 시리즈]]의 10번째 작품인 [[초신성 플래시맨]]은 3년 후, [[대한민국]]에서 1차 [[전대물]] 열풍을 불러오게 된다. 필리핀에서는 노란 머리띠를 맨 민중들이 마닐라 거리로 몰려들어 마르코스 독재정권을 퇴진시켜 '피플 파워'를 보여줬다.
특히 한국 서울에선 아시안게임과 IMF-IBRD총회를 개최하였다.[* 사실은 1970년에 처음 유치권을 획득하였지만 당시 [[북한]]의 위협과 경제사정 때문에 개최권을 반납하면서 이 때 가서야 치뤄졌다. 1970년 아시안게임은 [[태국]] 방콕에서 대신 개최.] 특히 2년 후인 1988년 같은 도시에서 하계올림픽이 열리기 때문에 그 당시 세간에서는 1988년 하계올림픽의 개최성공에 향방을 가릴 시험대의 대회라는 일설도 있다. 그 당시 참가했던 [[아시아]] 국가들은 2년 후 같은 도시에서 열렸던 하계올림픽에도 연이어 참가했다.[* [[북한]]은 두 대회 모두 불참했으며 당시 사회주의 국가였던 [[몽골]], [[라오스]], [[남예멘]] 등은 아시안게임에 불참했다. 캄보디아는 당시 국제 올림픽 위원회와 아시아 올림픽 평의회에 가입하지 않았다. [[중국]]은 아시안게임에서는 차기 개최국이었기 때문에 참가했으며 서울올림픽에도 연이어 참가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두환 정권의 초강경 민주세력 탄압이 벌어진 해이며 한 해동안 무려 2,500여명이나 되는 학생, 재야인사, 농민, 노동자가 구속되었다.
[[광주광역시|광주시]]가 [[전라남도]]에서 분리독립하여 [[직할시]]로 승격하였고, 경기도에서는 화성군 반월면 일부 지역 및 시흥군 수암-군자 2면이 통합되어 '안산시'가 되었고, 과천면 역시 시흥군에서 분리되어 시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충청남도에선 대천읍이 보령군에서 분리되어 시로 승격되었고, 전라남도에선 송정읍이 광산군에서 분리되어 시로 승격되었고, 금성시가 '나주시'로 변경되었다.
또한 [[한강]]종합개발사업이 완료된 해이기도 하며, 그래서 당시 언론 매체들은 특집기사, 특집기획 및 쇼 프로 등을 통해 정권 치적으로 선전하는가 하면, [[공익광고협의회]]에서는 '한강 시리즈'를 제작했다. 또 [[농심 신라면]]이 처음으로 시판되었던 해이기도 하다. 학교법인 이화학당 산하 학교들은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UN에서는 이 해를 '세계 평화의 해'로 지정했다.
== 개헌정국과 한파정국, 1986년 ==
1985년 2.12 총선으로 돌풍을 일으킨 선명 야당 신한민주당은 직선개헌을 위해 1천만 개헌 서명운동을 개시했다. 그러나 집권당인 민정당은 현행 헌법이 평화적 정권 교체를 위한 최선의 것이라 주장하여 아예 국회에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민당 측은 국회 밖으로 뛰쳐나와서라도 직선제 개헌을 추진하겠노라고 밝혔다.
신민당은 3월 11일 '개헌추진위원회 서울지부 결성대회'를 시작으로 전국 주요 대도시의 개헌 현판식을 추진하기 시작하자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들었다. 모처럼의 합법적 공간이 마련되자 그 동안 억눌려 온 국민들의 정치 열기가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대회를 시작으로 3월 23일 부산, 4월 5일 대구, 4월 19일 대전, 5월 3일 인천, 5월 10일 마산, 5월 31일 전주 등의 순서로 계획이 진행되어 갔다.
이후 3월 17일에 이민우 신민당 총재와 [[김영삼]]-[[김대중]] 양김, [[문익환]] 민통련 의장, [[박형규(목사)|박형규]] 목사, 이돈명 등이 회동해 신민당과 재야가 '민주화를 위한 국민연락기구(이하 민국련)'을 만들어 개헌 투쟁에서 공동보조를 맞추기로 했다. 이렇게 개헌 현판식의 대성황과 야당과 재야의 보조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그 열기를 더해가자 전두환 대통령은 4월 30알 여-야 영수회담에서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건의하면 임기 중에 개헌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다분히 정치적 발언으로서 야당을 국회 안으로 끌어들여 국민과의 연대를 차단하려는 속셈이 있었다. 게다가 그 개헌안도 내각제 개헌이었다!
그러나 5월 3일 인천대회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날 인천시민회관 일대에 학생, 노동자, 재야인사 등의 운동권 인사들이 모여들어 경찰과 투석전을 다섯 시간이나 벌여 인천에서의 개헌대회는 무산되었다([[인천 5.3 운동]]).
이 사건 이후 야당은 제도권 안에서 집권세력과 타협하는 쪽으로 돌아섰고, 운동권 세력에겐 혹독한 탄압이 가해졌다. 대표적으로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10.28 건대항쟁]], 서노련 사건, ML당 사건, 반제동맹당 사건, 민통련 사무실 폐쇄, 서울개헌대회 봉쇄 등이 있었으며 [[금강산댐]] 수공설, [[김일성 사망 오보 사건]] 등의 대중조작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렇게 정국이 얼어붙는 와중에 12월 24일 신민당에서 7개의 민주화조치를 선행하면 내각제를 받아들이자는 식의 이른바 '[[이민우 구상]]'이 나오면서 정국이 더 꼬일 대로 꼬여갔다.
여담이지만 이른바 '한파정국'이라는 표현답게 1986년 1~2월은 [[한파]]가 찾아왔다. 1월 5일 서울 최저기온 '''-19.2 °C''' 최고기온조차 '''-13.1 °C'''로 매우 추웠다.
== [[신라면]] 탄생, 매운맛 라면의 시대 ==
이 해는 그 유명한 농심 [[신라면]]이 탄생하여 출시하였던 해였다. 그 동안 라면은 [[삼양라면]]을 시작으로 라면시장이 번성했지만 신라면 이전에 매운맛을 내는 라면은 딱히 없었던 편이었는데 이 해 [[신라면]]이 출시되면서 라면시장에 변혁을 일으켰다.
초창기에서부터 매운맛을 상징하는 빨간색 바탕과 매울 신(辛)의 서체는 30년이 된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으며 포장 디자인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빨강색 바탕과 매울 신자 서체는 유지되고 있다. 이후 신라면과 유사한 매운라면들이 잇따라 등장하기도 하였지만 신라면의 명맥은 30년이 지나도 이어지는 중이다.
== 사건 ==
=== 실제 ===
==== 1월 ====
* [[1월 1일]]
* 전두환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거국일치의 확고한 결의로 통일과 선진의 길에 함께 나서자고 강조하였다.
* 북한의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남한측에 군사훈련 중지와 3자회담 수락을 촉구하였다.
*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공동으로 EC에 가입했다.
* [[동아일보]]사에서 과학잡지 <[[과학동아]]>를 창간하였다.
* [[1월 3일]]: 국방부는 북한군 하사 임종철이 귀순했다고 발표하였다.
* [[1월 5일]]: 신인가수 [[김완선]]이 KBS2 연예가중계 신인소개 코너에서 <오늘밤>으로 데뷔하였다.
* [[1월 7일]]
* 전두환 대통령은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을 단행하였다.
* 정부는 1985년 말 외채 총액을 465억 달러로 잠정 집계했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대 리비아 경제 제재조치'를 발표하였다.
* [[1월 8일]]
* 출판문화협회 등 9개 단체 회원 50여 명은 미국의 저작권보호 요구 반대 결의대회 후 성명서를 채택하였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자국 내 리비아 자산동결 명령을 내렸다.
* [[1월 12일]]: 삼육재활원 소속 지체장애인 5명이 장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라산을 정복하였다.
* [[1월 13일]]: 재야 지도자 22명이 <조국의 위기 타개를 위한 우리의 견해>라는 제하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1월 15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은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를 2000년까지 완전 폐기토록 하자는 전면 군축안을 제의했다.
* [[1월 16일]]: 전두환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개헌논의는 올림픽 뒤인 1989년에 하는 게 순리라며 이른바 '큰 정치'를 천명했다.
* [[1월 18일]]
* 구치소폭력인권유린조사위는 서울구치소 양심수 25명 폭행사건 해명과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였다.
*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J.C.STAFF]]가 설립되었다.
* [[1월 20일]]
* 서울형사지법은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관련자 양동화 등 2명에 사형 선고를 내렸다.
* 북한측은 팀 스피릿 '86 훈련을 계기로 남북회담 전반을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 영-불 양국은 1993년 완공을 목표로 도버해협 터널을 건설키로 합의했다고 발표하였다.
* [[현대차]]는 [[포니엑셀]] 및 프레스토 1천대를 미국에 처음 수출했다.
* [[1월 21일]]: '박종만 추모사업회'가 발족되었다.
* [[1월 24일]]: [[보이저(탐사선)|보이저]] 2호가 최초로 [[천왕성]]의 사진을 촬영하여 [[지구]]로 전송했다.
* [[1월 25일]]: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연두 기자회견에서 여당의 개헌논의 유보제를 거부했다.
* [[1월 27일]]: 경제기획원은 사회지표 조사 결과 1984년 중 제조업 근로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54.3시간으로 가장 길다고 발표했다.
* [[1월 28일]]
* 노동부는 1988년부터 최저임금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 (현지시간 기준)[[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 기지에서 [[NASA]] [[우주왕복선]] 챌린저가 [[STS-51-L]] 미션을 시작했으나, 발사 수십 초만에 고체 로켓 부스터의 이상으로 폭발해 탑승한 승무원 7명 전원이 사망했다.
* [[1월 31일]]: 레바논 주재 도재승 서기관이 이슬람 무장단체에 의해 피랍당했다.
==== 2월 ====
* [[2월 1일]]
* 재무부는 '중소기업 고충애로타개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문교부는 대/고입 입시내신을 위한 체력검사제도 폐지를 결의하였다.
* [[2월 2일]]: '광주지역노동자 생활임금투쟁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2월 4일]]: 경인지역 15개 대학 소속 1천여명의 학생들이 서울대 관악캠에 모여 '86 전학련 신년투쟁 및 개헌서명운동 추진본부 결성식'을 개최하고 시위를 벌였다.
* [[2월 7일]]
* 인천지역노동자연맹(이하 인노련)이 결성되었다.
*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 대선에서 코라손 아키노를 꺾어 또다시 당선되었다.
* [[장 클로드 뒤발리에]] 아이티 대통령이 집권 15년만에 민중의 저항에 못 이겨 해외로 망명했다.
* [[2월 8일]]: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개헌 서명운동자는 무조건 연행해 의법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 [[2월 9일]]: [[핼리 혜성]]이 [[태양]] 근일점을 통과했다. 핼리 혜성의 다음 근일점 통과 시기는 [[2061년]] [[7월 28일]]로 예상된다.
* [[2월 11일]]
* KNCC 등 기독교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KBS 시청료 거부 운동본부'가 발족되었다.
* 경찰은 '기독교민주헌법서명추진본부' 발대식을 막기 위해 민주인사들을 가택 연금했다.
* 경찰은 수배학생 검거 신고체제확립을 위해 특별호구조사를 실시했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필립 하비브를 특사로 필리핀에 파견해 여야 대표 및 종교지도자를 만나 화합 방안을 모색토록 지시했다.
* 동-서독 양국이 베를린에서 스파이 교환에 합의하였다.
* [[2월 12일]]
* 신민당과 민추협이 '1천만 개헌 서명운동'에 돌입하였다.
* 검찰은 시위학생 즉심/기소유예 축소 및 엄단방침을 천명했다.
* [[2월 13일]]: 검경은 개헌서명 연명부 압수를 위해 신민당 중앙당사 및 민추협 사무실을 야간수색했으나, 연명부 확보에는 실패했다.
* [[2월 15일]]: 문화재관리국은 전북 익산군 백제고분 1호분에서 금동관식 등 유물 10여점을 발굴하였다.
* [[2월 16일]]: 포르투갈 대선에서 사회당 당수 마리오 소아레스가 당선되어 60년만에 첫 민선대통령이 배출되었다.
* [[2월 18일]]: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전두환 대통령이 임기 중 민주화 일정을 밝히면 개헌 서명운동을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 [[2월 19일]]
* 경찰은 신민당 중앙당사를 봉쇄해 김영삼 고문 등 당직자들을 가택 연금했다.
* 원화 대 엔화 환율이 100엔에 502원이 되면서 처음으로 5백원대를 돌파했다.
* 우주정거장 [[미르 우주정거장|미르 코어 모듈]]이 소련 바이코누르 기지에서 발사되었다.
* [[2월 20일]]: 국제 원유가 하락으로 국내 석유값이 11.2%로 내렸다.
* [[2월 21일]]
* 중공 공군 조종사 진보충(陳寶忠)이 MiG-19기를 타고 서해 영공으로 넘어와 제3국으로 망명을 요청했다.
* 역사문제연구소가 설립되었다.
* 닌텐도는 세계 최초의 플로피디스크 게임기 '패미콤 디스크 시스템'과 <젤다의 전설>을 일본에 발매하였다.
* [[2월 24일]]
* 전두환 대통령은 3당회담을 열어 "1989년에 국민의 의사에 따라 개헌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 미국 정부는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였다.
* [[2월 25일]]
* 한국오토캠핑연맹이 설립되었다.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마르코스]] 대통령 부부가 민중 봉기로 권좌에서 축출되어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다.
* [[2월 26일]]: 신의주학생의거기념회가 설립되었다.
* [[2월 27일]]
* KNCC는 제35차 총회에서 <기독교방송의 보도/광고기능의 정상화 촉구 결의문>을 채택했다.
* 소가야문화보존회가 설립되었다.
* [[2월 28일]]: [[올로프 팔메|팔메]] 스웨덴 총리가 스톡홀름 거리에서 괴한의 총격으로 암살당했다.([[올로프 팔메 총리 암살사건]])
==== 3월 ====
* [[3월 1일]]
* 전두환 대통령은 삼일절 신년사에서 남북한최고책임자회담 연내 실현 기대를 밝혔다.
* 내무부는 '주민전산화 기본계획'을 발표하였다.
*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125개 성당에서 시국기도회를 개최되었다.
* [[일본]] TV아사히에서 <[[초신성 플래시맨]]>이 첫 전파를 탔다.
* 일본 닛테레에서 <[[기동전사 건담 ZZ]]>가 첫 전파를 탔다.
* [[3월 3일]]
* [[강성산]] 북한 총리가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을 면담했다.
* 유명 록밴드 [[메탈리카]]가 세 번째 정규 앨범 [[Master of Puppets]]를 미국 전역에 발매했다.
* [[3월 4일]]
*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인구 및 주택 센서스> 잠정 집계에서 1985년 11월 1일 기준 대한민국 인구가 40,466,577명이라고 기록되었다.
* 서울고등법원은 항소심에서 이경숙 씨에게 '여성 직장인의 정년은 55세'라는 판결을 내렸다.
* [[3월 5일]]: 문익환 민통련 의장은 재야/종교계 개헌서명자 303명의 명단을 공개하였다.
* [[3월 6일]]: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이 국보법 및 집시법 위반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 [[3월 7일]]: 이민우, 김영삼, 김대중 3자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1986년 가을에 직선제 개헌, 1987년에 대통령 선거 등 난국타개 6개항을 제시하였다.
* [[3월 8일]]
* '신민당 헌법개정추진위원회 서울지부 현판식'이 열렸다.
* 신민당은 KBS-TV 뉴스 안보기 및 시청료거부운동을 당론으로 확정하였다.
* KBO 제7구단 '빙그레 이글스'가 창단되었다.
* 여성생존권대책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장이 북한을 방문했다.
* [[3월 9일]]: 김수환 추기경은 9일간의 시국기도회를 끝내며 "민주화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길이며 개헌은 빠를수록 좋다"고 언급했다.
* [[3월 11일]]
* 제주~중문 간 고속화도로가 개통되었다.
* 서울 동숭동 흥사당 강당에서 '신민당 헌법개정추진위원회 서울지부 결성대회'가 열렸다.
* [[3월 13일]]
* 전두환 대통령은 사정협의회 전체회의에서 반사회적 집단행동에 대처하도록 지시했다.
* 노태우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은 박세직을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위촉하였다.
* 납북 영화배우 최은희와 영화감독 신상옥 부부가 오스트리아 빈 주재 미국대사관에 신변보호를 요청하였다.
* [[3월 14일]]
* KNCC는 <개헌서명운동과 민주화를 위한 범국민적 활동 지지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하원에 보낸 성명에서 어떤 형태의 독재정권도 반대한다고 언급했다.
* [[3월 17일]]
* 신흥정밀 노동자 박영진이 임금인상 및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농성 도중 경찰과 대치한 끝에 분신했다. 이후 그는 다음날 사망했다.
* 신민당과 민통련은 '민주화를 위한 국민연락기구(이하 민국련)'를 구성하였다.
* [[3월 18일]]: '서울대 반전반핵 평화옹호 투쟁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3월 19일]]: 서노련은 구로공단 가리봉 5거리 모세미용실을 점거해 생활임금 쟁취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3월 20일]]: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우익정치가 자크 시라크 RPR 총재를 총리직에 임명하였다.
* [[3월 21일]]
* 국회 국방위 의원들과 육군 수뇌부들이 요정 '회림'에서 회식 도중 집단 난투극을 벌였다.([[국회 국방위원회 회식 난투극 사건]])
* '반제반파쇼 민족민주 투쟁위원회(이하 민민투)'가 결성되었다.
* [[3월 23일]]
* 납북 영화인인 최은희-신상옥이 오스트리아의 빈의 미국 대사관에 신변 보호를 요청하며 서방 세계로 탈출하기에 이르렀다.
* 부산 대한극장에서 '신민당 헌법개정추진위원회 부산지부 결성대회'가 열렸다.
* [[3월 24일]]
* 서울시내 4개 대학생 1,400여 명이 호헌철폐와 전방입소 거부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 '부산지구 노동자 생존권확보투쟁 공동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3월 28일]]: 고려대 교수 28명이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3월 29일]]: '구국학생연맹(이하 구학련)'이 결성되었다.
* [[3월 30일]]
* 국내 석유값이 2차로 인하되었다(10% 인하).
* 광주 YMCA에서 '신민당 헌법개정추진위원회 전남지부 결성대회'가 열렸다.
==== 4월 ====
* [[4월 2일]]: 한신대 교수 42명이 시국성명서를 발표했다.
* [[4월 3일]]: '민주헌법 쟁취운동 범여성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4월 4일]]
* 서재필 의사 유품 5,600여 점이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독립기념관에 도착하였다.
* 성공회 정의실천사제단 신부 24명은 국민의 개헌 요구가 정당하다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4월 5일]]: 전두환 대통령이 영국, 서독, 벨기에, 프랑스 등 서유럽 4개국 순방차 출국하였다.
* [[4월 7일]]: 대한변협은 헌법개정연구위원회를 구성하며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4월 8일]]
* 신민당은 국회에 'KBS 시청료 폐지 법안'을 제출했다.
* [[일본]] 유명 아이돌 가수 [[오카다 유키코]]가 도쿄 선뮤직 빌딩에서 투신자살했다.
* [[4월 10일]]: '반미자주화 반파쇼 민주화투쟁위원회(이하 자민투)'가 결성되었다.
* [[4월 11일]]
* 성균관대 교수 35명과 서울대 교수 48명은 개헌과 관련한 내용의 시국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민가협 회원 등 100여 명은 서울구치소 앞에서 구속 학생에 대한 가혹행위 중단과 폭력교도관 처벌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을 벌였다.
* [[미국]] [[마이애미]]에서 [[FBI]] 총격전이 일어났다.
* [[4월 13일]]: 서울 명동성당이 일반 신도들을 대상으로 개헌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 [[4월 15일]]
* 감신대 교수 10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미군이 [[리비아 공습]]을 단행했다.
* [[4월 16일]]: 전남대 교수 43명이 "광주의 비극을 경험한 우리는 조국의 현실에 우려를 표명한다"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4월 17일]]
* 외대 교수 27명과 계명대 교수 49명이 각각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희대의 병맛 전쟁인 [[335년 전쟁]]이 막을 내렸다.
* [[4월 18일]]
* 연세대 교수 32명과 이화여대 교수 10명이 각각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전국 32개 대학 1만 1천여 명이 4.19 기념식 개최 후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 [[4월 19일]]: [[일본]] 신성사가 [[아케이드]] 게임잡지 <[[게메스트]]>를 [[http://legendius.web.fc2.com/gamest_famitsu/50th_anniversary.html|창간했다.]]
* [[4월 20일]]: 비동맹회의 101개국이 미군의 리비아 폭격을 비난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 [[4월 21일]]
* 성균관대 학생들이 전방입소 훈련을 거부하고 시위를 벌였다.
* 경기대 교수 14명과 전북대 교수 47명, 경남대 교수 30명이 각각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제5회 세계올림픽연합회(ANOC) 서울총회가 개막되었다.
* [[4월 23일]]: 인하대 교수 20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4월 24일]]: 서강대 교수 28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4월 25일]]
* 출판계 인사 80여 명이 <출판인의 자유와 권리 쟁취를 위한 선언>을 채택하였다.
* 'KBS-TV 시청료 폐지운동 여성단체연합'이 'KBS-TV 시청료 폐지 촉진대회'를 개최하였다.
* 숭전대 교수 14명과 장신대 교수 26명, 충북대 교수 32명, 덕성여대 교수 12명이 각각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4월 26일]]: '''[[소련]] [[우크라이나 SSR]]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실험 중 원자로 화재로 폭발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 [[4월 28일]]: 서울대생 김세진과 이재호가 신림동 4거리에서 전방입소를 거부하는 가두시위 도중 "반전반핵"을 외치며 온 몸을 불살랐다.([[김세진·이재호 분신사건]])
* [[4월 29일]]
* 전국 30개대생 3천여 명이 연세대 신촌캠에서 '전국 반파쇼민중민주투쟁 학생연합(이하 민민학련) 발대식'을 개최한 후 시위를 벌였다.
* 경희대 교수 19명과 충남대 교수 21명, 원광대 교수 24명, 경상대 교수 24명이 각각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4월 30일]]
* 전두환 대통령은 3당 대표 회담에서 여야가 합의하면 임기 내에 개헌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문교부는 개헌/민주화 등 시국선언 서명 교수를 28개대 763명으로 집계했다고 밝혔다.
==== 5월 ====
* [[5월]] 중: 전국노동자연맹 추진위원회(이하 전노추)가 결성되었다.
* [[5월 1일]]
* 서울지역 대학생 2백여 명이 독산동에서 가두시위를 하며 <5·1절 노동자해방투쟁의 날부터 광주민중항쟁까지>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배포하였다.
* 전국 천주교 수녀대표모임 한국여자수도자 장상연합회는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한 9일 기도'에 돌입하였다.
* 광명 철산동에서 서노련 주도로 '노동자해방투쟁의 날' 가두시위가 벌어졌다.
* 고문공대위는 ‘최근 고문 및 인권탄압 사례 보고대회’를 개최하였다.
* 민통련은 민국련에서 탈퇴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이란-이라크 양국이 6년여 간의 전쟁 종식을 위한 8개항 계획에 합의하였다.
* [[5월 2일]]
* 대처 영국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다.
* 서울 올림픽대로가 개통되었다.
* 서울대 대학원생 630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대한변협은 <1985년 인권보고서>를 발표해 고문과 수감자 폭행 등 인권침해 실태를 처음 폭로했다.
* [[5월 3일]]: '''학생, 노동자, 시민 등 5천여 명이 '신민당 개헌추진위원회 경기/인천지부 결성대회' 시작 전에 경찰과 격렬한 충돌을 벌이며 시위를 벌였다.'''([[인천 5.3 운동]]).
* [[5월 5일]]
* 경찰은 자민투와 민민투를 용공 좌익조직으로 규정해 주동자 27명을 전국에 수배했다.
* 서울대 시위진압 작전 도중 가스차 1대가 폭발해 탑승자인 이강호 경사가 순직했다.
* [[5월 6일]]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민주화/인간화의 복음을 선포한다>라는 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김문수 등 서노련 중심인물 6명이 보안사에 의해 강제 연행되었다.(서노련 사건)
* [[5월 7일]]: 조지 슐츠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 [[5월 8일]]
* [[민통련]]은 기자회견에서 [[인천 5.3 항쟁]] 관련 입장을 밝혔다.
*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는 <전국 목회자의 민주쟁취선언>을 발표하였다.
* 전국 20개 대학생 6천여 명이 "전방입소 반대", "독재타도"를 외치며 교내시위를 벌였다.
* [[5월 9일]]
* 조계종 승려 152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정의실현 법조인회(이하 정법회)'가 발족되었다.
* [[5월 10일]]
* 한국YMCA 중등교육자협의회 소속 교사 546명이 <교육민주화선언>을 발표했다.
* 흥사단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5월 12일]]
* 이민우 신민당 총재가 일본을 방문했다.
* '서노련 노동자가족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리비아 정부는 자국 주재 서유럽 7개국 외교관/대사관직원 36명에 출국명령을 내렸다.
* [[5월 13일]]
* 미국 SDI 계획에 참여 중이던 101개 대학교 소속 과학자 6천여 명이 해당 계획의 연구를 거부키로 했다.
* 일본 엔화 강세로 인해 국내 엔화 환율이 1백엔당 505원을 돌파했다.
* 자유중국 정부는 중공에 넘어간 점보화물기와 승무원 송환문제에 대해 중공과 직접 협상키로 결정하였다.
* [[5월 14일]]: '반제반파쇼투쟁 호남지역 대학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15일]]
* '반외세 반독재 민족민주헌법제정민중회의 쟁취 투쟁본부'가 결성되었다.
* 문교부는 <교육민주화선언> 참여교사 10명에 대해 사표를 종용했다.
* 신일고 학생들이 <교육민주화선언> 관련 교사들에 대한 학교측의 징계 조치에 항의하며 연좌농성을 벌였다.
* 김수환 추기경은 CBS 라디오 <오늘을 생각하며>에서 언론민주화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요구하였다.
* 검찰은 서노련을 용공이적단체로 규정하고 관련자들에 대해 국보법 및 집시법 위반, 소요죄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 고려대생 1천여 명이 비상 학생총회를 열어 전방입소 거부를 결의하였다.
* 'KBS-TV 시청료 거부 범시민운동 여성연합'이 발족되었다.
* 방송대 교수 16명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민주교육실천협의회(이하 민교협)가 발족되었다.
* [[5월 16일]]: 인천교도소 수감 양심수들이 소내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돌입하였다.
* [[5월 17일]]
* '반외세 반독재 민족민주헌법제정민중회의 쟁취 투쟁본부’측은 이날 개최되려던 ‘광주학살 원흉처단과 민족민주헌법제정민중회의 쟁취를 위한 민중대회’를 경찰이 원천봉쇄하자 기습 가두시위를 벌였다.
* 전국 주요 대학생들이 광주항쟁 6주년을 맞아 교내외 집회 및 시위를 벌였다.
* [[5월 18일]]
* 5.18 희생자 유족과 대학생 6천여 명이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광주항쟁 6주기 추모식을 벌인 뒤 시위를 벌였다.
* 명동성당 청년신도 1천여 명이 광주학살 진상규명대회와 추모미사 뒤 가두시위를 벌였다.
* 수원교도소 수감 양심수들이 금치조치 철회 및 운동시간 허용 등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 [[5월 20일]]: 서울대 원예과 1년생 이동수가 학생회관 4층 옥상 난간에서 “파쇼의 선봉 전두환을 처단하자” 및 “미제국주의 물러가라”를 외치며 분신자살했다.
* [[5월 21일]]: 박종진 서울대 민민투위원장 등 학생 21명이 부산 미국문화원을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제2차 부미방 사건)
* [[5월 22일]]: 북한측은 '고구려문화전'을 일본 도쿄에서 개막했다.
* [[5월 23일]]: [[문익환]] 민통련 의장이 서울대 강연과 관련해 구속되었다.
* [[5월 26일]]: KBS-TV 시청료거부운동본부는 서울 시내에서 기습 가두캠페인을 벌였다.
* [[5월 27일]]: 한신대는 대학 중에서 처음으로 광주항쟁 희생자 추모비를 세웠다.
* [[5월 29일]]: 주한미군노조는 미군 측의 한국인 노동자 감축에 항의하며 전국적 파업에 돌입했다.
* [[5월 30일]]
* 서노련 및 인노련 소속 해고 노동자 16명이 한미은행 영등포지점을 점거해 성조기를 불태우며 "독재타도", "미제축출", "8시간 노동제 쟁취" 등을 외쳤다.
* 노태우-이민우 여야 대표가 회담에서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구성에 합의했다.
* 전국 25개 출판사 대표 및 출판 관계자 70여 명이 외국인 저작권보호법 반대 궐기대회를 열었다.
* [[5월 31일]]
* 서울 YMCA 중등교육자회 등 4개 교육단체 소속 교사 350명이 명동성당에서 교육자율화를 결의하였다.
* 정부가 컬러TV 등 301개 품목에 대해 수입자유화 조치를 내리면서 자유화율이 91%로 올랐다.
* [[1986년 멕시코 월드컵]] 개막식이 에스타디오 아즈테카에서 개최되었다.
==== 6월 ====
* [[6월 2일]]
* (현지시간 기준)한국 대표팀이 멕시코 월드컵 A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강호 아르헨티나에 1-3으로 패했다.
* [[고리 원자력 발전소]] 5, 6호기가 준공되었다.
* 서울대 등 23개 대학교수 265명이 한신대 수유캠퍼스 회의실에서 <교수연합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북한 평양학생소년교예단이 일본 도쿄에서 첫 공연을 열었다.
* [[6월 4일]]
* 한신대 평교수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서울대 의류학과 제적생 [[권인숙]]이 노동현장에서 공활 도중 경찰에 연행되었다.
* [[6월 5일]]
* (현지시간 기준)한국 대표팀이 멕시코 월드컵 A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불가리아와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 '''권인숙 양이 부천경찰서에서 조사받던 도중 문귀동 경장에게 성고문을 당했다.'''([[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 공문연이 <'86 반공해선언>을 발표하였다.
* [[6월 8일]]
* 고려대생 9명이 주한 미국대사관 점거를 시도하다 전원 검거되었다.
* 발트하임 전 유엔 사무총장이 오스트리아 대선 2차 결선투표에서 당선되었다.
* 후야오방 중공 총서기가 당 지도자로서 처음으로 서유럽 4개국을 순방하였다.
* [[6월 9일]]: 반공협은 <한반도의 핵 볼모화 저지를 위한 반핵/반공해운동을 촉구한다>는 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6월 10일]](현지시간 기준): 한국 대표팀이 멕시코 월드컵 A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강호 이탈리아에 2-3으로 패해 16강행이 좌절되었다.
* [[6월 11일]]: IOC는 1988 서울올림픽의 남북 분산개최를 제의했다.
* [[6월 12일]]
* 서울지검 특수부는 사법연수원생 및 검사로 가장해 여성 50여 명을 농락한 백종각을 사기 및 공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 남아공 정부는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해 종교인과 학생 등 반인종차별주의자 검거를 자행했다.
* [[6월 14일]]: 건축가 김수근이 세상을 떴다.
* [[6월 16일]]: 권인숙은 인천소년교도소 송치 후 수감자들과 함께 성고문 가해자인 문귀동 구속 등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 [[6월 17일]]
* 서울구치소 수감 양심수들이 '이원집정부제 개헌음모 저지와 국가보안법-집시법 철폐를 위한 옥중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단식투쟁에 돌입하였다.
* 일본 정부는 외국인등록의 지문채취를 거부한 한국 유학생 김명식 씨에 대해 체류기간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 영남대 민민투위원장 최우식 등 학생 5명이 한미은행 대구지점에서 반미 점거농성을 벌였다.
* 북한측은 남-북-미 3자 군사당국자회담을 제의했다.
* [[6월 19일]]
* 전남 여천군 대미산 동굴에서 신호수 노동자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신호수 의문사 사건]])
* (현지시간 기준)NBA팀 보스턴 셀틱스 입단예정 선수 [[렌 바이어스]]가 자택에서 약물중독으로 숨졌다.
* [[6월 21일]]
* 여야 대표는 '헌법개정 특별위원회' 구성에 합의하였다.
* 호남 YMCA 중등교사협의회 교사 229명은 가톨릭센터에서 '교육민주화 실천대회'를 열고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 재야 사회과학출판사 연합체인 '한국출판문화운동협의회(이하 한출협)'가 발족되었다.
* 부산 송도매립지 앞바다에서 서울대생 김성수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김성수 의문사 사건)
* [[6월 23일]]: 단국대생 2백여 명이 ‘전방입소 거부 및 군사교육 전면철폐 투쟁선언대회’를 개최하였다.
* [[6월 24일]]
* 국회 본회의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 미국 하원은 출석 의원 413명 전원 찬성으로 한국의 민주화 결의안 및 북한의 인권개선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 북한 남포 서해갑문이 준공되었다.
* [[6월 25일]]
* 연세대생 오연호 등 총학 집행부가 <전국 애국 중/고 청년에게 보내는 글>이란 제하의 편지를 2천여 통이나 발송하였다.
* 미국 하원은 대 니카라과 반군 원조안을 승인했다.
* [[6월 26일]]: 정부는 '행정전산망 종합계획'을 확정/발표하였다.
* [[6월 30일]]
* 경찰은 자민투/민민투 관련자 6명을 검거하고 39명에 긴급수배 조치를 내렸다.
* 중공-포르투갈 양국은 마카오의 장래를 위한 회담을 열었다.
==== 7월 ====
* [[7월 1일]]: 한국생산성본부가 특별법인으로 재발족되었다.
* [[7월 2일]]: 인천지역 구속자 가족 30여명이 문귀동 경장의 성고문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
* [[7월 3일]]
* 권인숙은 성고문 가해자인 문귀동 경장을 강제추행 혐의로 인천지검에 고소하여 진상 규명을 요구하였다.
* 민통련은 "변태적 성고문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칠레 전역에서 민정 복귀를 촉구하는 총파업이 벌어졌다. 이에 군대가 시위대에 발포해 7명이 사망했다.
* [[7월 5일]]
* 권인숙의 변호인단 9명은 문귀동 경장과 옥봉환 부천경찰서장 등 성고문 관련 경찰 6명을 독직폭행 및 가혹행위로 고발하였다.
* 영등포구치소 여성 재소자 12명이 재소자 인권탄압과 소내 폭력에 항의하며 닷새째 단식농성을 벌였다.
* 경남 하동군 어민 150여 명이 포철 광양제철소 건설로 인한 양식장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파키스탄 인민당 등 반정세력이 70여개 도시에서 대통령 하야와 민주선거 실시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7월 8일]]: 일본 문부성은 1982년 역사왜곡 당시 핵심부분을 그대로 둔 채 지엽적으로 수정한 <고교 일본사> 교과서를 인가했다.
* [[7월 9일]]
* 신/구교단체 대표 10여 명이 '부천서 성고문 대책회의 및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양심수 강제징집 저지 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7월 10일]]: 민문협 및 '전국 인문과학 서적상연합회'는 민중가요 테이프 압수 조치와 관련해 성명을 발표하였다.
* [[7월 11일]]
* 'KBS-TV 시청료 거부 범국민투쟁본부' 임원단은 시내에서 시청료 거부 가두캠페인을 전개하였다.
* 국내 여성단체 및 종교단체들은 '부천서 성고문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피노체트 칠레 대통령은 1997년까지 정권을 이양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면서 반정부 인사 3천여 명을 검거했다.
* [[7월 14일]]: 독립기념관은 자유중국 측으로부터 인수한 상하이 임정의 대일선전 성명서 등 26점과 윤봉길 의사의 친필이력서 등 29점을 공개하였다.
* [[7월 15일]]: 교육개혁심의회는 대입본고사 5년후 부활, 고입 선 지원/후 시험 등 최종안을 확정하였다.
* [[7월 16일]]
* 인천지검은 부천서 성고문 사건에 대해 성적 모욕이 없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 부천경찰서는 문귀동 경장에게 파면, 옥봉환 서장에게는 직위해제 조치를 내렸다.
* 서울 상계동과 하왕십리 철거민 130여 명이 명동성당 입구에서 재개발 중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7월 18일]]: 부천서 성고문 사건 피해자인 권인숙의 변호인단은 기자 회견에서 "검찰이 진실을 찾아냈으나 발표 과정에서 왜곡/은폐했다"고 주장했다.
* [[7월 19일]]: 경찰은 신민당 등 33개 단체가 주최한 '고문/성고문/용공조작 범국민 폭로대회' 장소인 명동성당을 저지해 김대중 민추협공동의장 등 재야인사 12명을 가택 연금했다.
* [[7월 21일]]: 한미 양국은 통상협정을 일괄 타결하면서 그해 9월부터 양담배 판매를 공식 허용하고, 1987년 7월부터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로 했다.
* [[7월 25일]]
* 문공부는 도굴범으로부터 되찾은 [[고성군(강원도)|고성]] [[건봉사]] 사리탑 석가모니 진신 치아사리 8과를 공개하였다.
* 경주고분발굴조사단이 용강동 고분에서 신라시대 토용이 국내 최초로 발굴되었다.
* [[7월 26일]]: 인천 뉴송도호텔 사장 피습사건이 발생하였다.
* [[7월 27일]]: 이날 개신교 측이 주최하려던 '성고문 규탄 기도회'가 경찰에 의해 저지되었다. 결국 이들은 성공회 주변 및 새문안교회에서 산발적인 비상 기도회를 열었다.
* [[7월 28일]]
* 국무총리 행정조정실 청소년대책전문위원인 김형배가 부천서 성고문과 관련해 양심선언을 발표하였다.
*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블라디보스토크 선언'을 발표하며 당해 안에 아프간 주둔 소련군을 철수시키는 한편, 태평양 국가와의 경제관계를 증진하기로 했다.
* [[7월 30일]]: 국회 헌법개정특위가 1차 전체회의를 열었다.
==== 8월 ====
* [[8월 1일]]
* 서울대 등 9개 대학생들은 고려대에서 '민중 기만하는 헌법특위 분쇄 및 미제의 경제침탈 저지를 위한 애국 청년학도 총궐기대회'를 열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KBS 88예술단이 창설되었다.
* [[8월 2일]]: 북한측은 금강산발전소 건설준비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 [[8월 4일]]
* 신민당은 대통령 중심제 및 직선제를 골간으로 한 개헌안을 확정지었다.
* 충남 천원군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지붕이 크게 손상되었다.
* [[8월 5일]]: 등록취소 출판사 창비가 '창작사'란 사명으로 출판업을 재개하였다.
* [[8월 7일]]: 안춘생 독립기념관장은 기념관 복구에 6개월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 [[8월 8일]]
* 국토통일원은 남북한 국세비교에서 GNP는 811억 대 147억 불, 1인당 GNP는 1,999 대 762불로 집계하였다.
* MBC는 미아찾기 프로그램 <엄마 아빠 저 여기 있어요> 생방송을 개시하였다.
* [[8월 9일]]
* 인문사회과학서적상협의회는 연행된 서점 주인의 석방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제헌의회그룹(CA)이 결성되었다.
* [[8월 10일]]: 북한 황북 사리원 정방산 성불사가 복원되었다.
* [[8월 11일]]: 미-소 핵군축회담이 모스크바에서 개최되었다.
* [[8월 12일]]: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이하 유가협)'가 발족되었다.
* [[8월 13일]]: '출판문화탄압공동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8월 14일]]
* 신민당과 민추협이 '고문/성고문/용공조작 범시민 폭로대회'를 개최하였다.
* '8·15 민족해방절 기념식 및 기만적 헌법특위 분쇄와 망국 아주경기(아시안게임) 결사저지를 위한 백만학도 실천대회'가 개최되었다.
* 서울 강남 서진회관에서 서울목포파가 난투극 끝에 맘보파 조직원 4명을 살해했다.([[서진 룸살롱 집단 살인 사건]])
* 파키스탄 야당지도자 부토 여사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 [[8월 15일]]
* 전두환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측에 남북대화 수락을 촉구하였다.
* 경찰은 1986년 막사이사이상 수상자 제정구를 연행했다.
* [[8월 16일]]
* [[유한열]] 등 신보수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민중민주당(1986년)|민중민주당]]'이 창당되었다.
* 중공올림픽위원회는 서울아시안게임에 선수단 515명을 파견키로 공식 발표하였다.
* [[8월 18일]]: 소련-이스라엘 양국이 단교 19년만에 회담을 열었다.
* [[8월 20일]]: 영광원전 7호기가 상업운행을 개시하였다.
* [[8월 21일]]
* 인천지검은 성고문 가해자인 문귀동 경장을 기소유예시켰다.
* [[국립중앙박물관]]이 구 [[중앙청]] 건물에서 문을 열었다.
* [[8월 22일]]: 전경환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이 사표를 제출한 뒤 미국으로 도피했다.
* [[8월 23일]]: 민정당은 당직을 개편해 사무총장에 [[이춘구]], 원내총무에 [[이한동]], 중앙위의장에 임방현, 정책조정실장에 강경식을 각각 내정했다.
* [[8월 25일]]
* [[국립현대미술관]]이 경기도 과천으로 이전/개관했다.
* 의현 스님이 새 조계종 총무원장직에 선출되었다.
* [[8월 26일]]: 전두환 대통령은 외무부 등 10개 부처에 대해 개각을 단행하였다.
* [[8월 28일]]
* 전두환 대통령은 차관급 등 8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였다.
* '제3세대당 창당발기인대회'가 개최되었다.
* [[8월 29일]]
* 민교협 소속 초/중등 교사 3백여 명이 민중교육 사건 1주년을 맞이해 '민주교육 실천대회'를 열었다.
* 가농은 '미국농축산물수입저지본부' 및 지부들을 결성하였다.
* [[8월 30일]]: 대검은 민민투-자민투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관련자 180명을 검거하고 169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 9월 ====
* [[9월 1일]]
* 한미 통상협상 타결에 따라 수입 양담배 판매가 비로소 허용되었다.
* 성고문 피해자인 [[권인숙]]과 변호인 166명이 문귀동 경장에 대한 [[재정신청]]을 제출하였다.
* [[9월 2일]]: [[수도권 전철 1호선]] [[창동역]] ~ [[의정부역]] 구간이 개통되어 [[의정부시]]에 전철 시대가 열렸다.
* [[9월 3일]]: '총액출자 한도제'를 도입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마련되었다.
* [[9월 4일]]: 안기부는 이병설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등 7명을 간첩 혐의로 검거했다고 밝혔다.(진달래 사건)
* [[9월 6일]]
* 후지오 마사유키 일본 문부상이 "한일합방은 양국이 합의한 것이며 한국에도 책임이 있다"고 망언을 했다.
* 민언련과 정의구현사제단은 <[[말(잡지)|말]]>지 특집호 기사 '권력과 언론의 음모―권력이 언론에 보내는 비밀통신문'을 통해 5공 정권에 의한 [[보도지침]] 사례를 폭로하였다.(보도지침 폭로 사건)
* [[9월 7일]]
*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2천여 명은 합천 해인사에서 '불교 관계법 철폐 및 전면 개정을 위한 전국 승려대회’를 개최하였다.
* 뉴송도호텔 습격사건의 주범인 서방파 두목 [[김태촌]]이 검거되었다.
* [[9월 8일]]: '고려대 애국학생회'가 발족되었다.
* [[9월 10일]]: 한강종합개발사업이 4년만에 완료되었다.
* [[9월 11일]]
* 호남고속도로 4차선 확장공사가 완료되었다.
* 서울대 등 전국 28개 대학생 6천여 명이 '아시안게임 저지'와 '헌법특위 분쇄'를 요구하며 교내에서 시위를 벌였다.
* 연세대 등 5개 대학생 70여 명이 민정당 윤길중, 이세기 의원 사무실에 돌과 화염병을 투척하였다.
* [[9월 12일]]: 북한-아일랜드 양국 노동당 대표단이 평양에서 회담을 열었다.
* [[9월 13일]]: '공해반대시민운동협의회(이하 공민협)'가 발족되었다.
* [[9월 14일]]: '''서울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 쓰레기통에서 폭탄이 터져 5명이 사망하고 33명이 다쳤다.'''([[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
* [[9월 16일]]
* 정부는 제6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 서울지역 15개대 1,500여 명이 고려대 안암캠에서 '전학련 결성촉구 및 아시아경기 결사저지를 위한 애국청년학도 서울지역 실천대회'를 개최하였다.
* 김영삼 신민당 상임고문은 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학생들의 시위 자제를 요청했다.
* 각계 민주인사 207명이 나카소네 방한 반대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종교, 여성, 사회단체들은 서울아시안게임 반대 성명을 발표하였다.
* 불교 승려 5백여 명이 개운사에서 '불교관계악법철폐운동대책위원회 및 100만서명운동추진위원회 발대식'을 개최하였다.
* [[9월 17일]]: 외대-고려대생 등 5명이 나카소네 방한을 반대하며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관을 점거 농성하였다.
* [[9월 18일]]: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북한측에 1988 서울올림픽 2개 종목 수용을 촉구하였다.
*[[9월 19일]]: 화성 태안읍에서 71세 이완임 할머니 시신발견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이 시작됨.
* [[9월 20일]]
*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개막식이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 민주인사 17명이 나카소네 방한반대 성명을 냈다.
* 나카소네 일본 총리가 개막식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였다.
* [[GATT]] 가맹국 각료들이 [[우루과이]]의 푼타 델 에스테에서 새로운 다자간 무역 협상을 개시하기로 합의하였다.([[우루과이 라운드]])
* [[9월 21일]]: 전두환-나카소네 한일 양국 정상이 청와대 회담에서 무역 역조 시정방안을 협의하였다.
* [[9월 22일]]
* 사격선수 박정아 등 3명이 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산업정책심의회는 구 국제그룹 계열 7개사와 경남기업, 남광토건 등 28개 부실기업을 정리했다.
* [[9월 23일]]: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상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반도를 심각한 분쟁지역으로 언급하였다.
* [[9월 24일]]: 한국 남자탁구 대표팀이 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 [[9월 25일]]
* 노점상대책위는 아시안게임을 앞둔 무대책 철거에 항의하는 성명을 냈다.
* 민추협은 '대전교도소 집단폭행사건 조사단'을 구성하였다.
* [[9월 26일]]: IAEA 특별회의 52개 참가국이 <핵사고에 관한 국제협력증진협정>에 서명하였다.
* [[9월 29일]]: 신민당은 직선제 재개 합의를 촉구하며 헌법특위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 [[9월 30일]]
* 한국 남녀 하키팀이 서울아시안게임에서 동반으로 금메달을 땄다.
* 서울고검은 부천서 성고문 사건에 대한 재정신청을 기각했다.
==== 10월 ====
* [[10월 2일]]
* 서울 아시안게임 도중 이란 역도대표팀 선수 4명이 출국 직전에 이탈하여 주한 이라크 총영사관으로 도피하였다.
* '민주교육탄압저지 공동대책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10월 3일]]: 언더그라운드 락밴드 '[[부활(밴드)|부활]]'이 1<Rock Will Never Die>를 발표하며 메이저 무대에 발을 들여놓았다.
* [[10월 5일]]
* 한국 축구 대표팀이 서울아시안게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물리치고 통산 3번째 금메달을 땄다.
* 1986 서울 아시안게임 폐막식이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 한국 선수단이 동 대회에서 종합 2위를 차지하였다.
* [[10월 6일]]
* 삼성전자가 TV카메라 일체형 4mm VTR을 개발하였다.
* 제6차 중-소관계 정상화회담이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
* [[10월 9일]]: 신민당은 전북 군산에서 개헌대회를 개최했다.
* [[10월 11일]]: 치안본부는 북한 기관지 <민주조선>의 보도내용을 그대로 베낀 벽보가 서울대 관악캠에서 발견되었다고 밝혔다.([[서울대학교 민주조선 대자보 사건]])
* [[10월 14일]]
* 유성환 신민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우리의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라 발언해 파문이 일었다.([[유성환 국시론 파동]])
* 서울대 의대 부설 '간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 북한 조선올림픽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1988 서울올림픽 8개 종목 배정을 요구했다.
* [[10월 15일]]: 도서출판 풀빛이 <한국민중사> 1권(전근대편)을 출간하였다. 근현대를 다룬 2권은 다음달 25일에 나왔다.
* [[10월 16일]]: 민정당은 유성환 신민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기습적으로 단독 통과시켰다.
* [[10월 17일]]
* [[김운용]] 세계태권도연맹 총재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한국 위원으로 피선되었다.
* 경찰은 구학련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여 관련자 3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구국학생연맹 사건)
* [[10월 18일]]
* 신민당은 유성환 사건 해결을 위해 무조건 등원하기로 결정했다.
* 민중 영화집단 연합체인 '서울영상집단'이 결성되었다.
* 치안본부는 '전국노동자연맹추진위원회(이하 전노추)'를 전국적 농민운동의 지하비밀조직으로 규정해 발표했다.(전국노동자연맹추진위 사건)
* [[10월 19일]]: '박영진 열사 추모사업회'가 결성되었다.
* [[10월 20일]]
* 김수환 추기경은 로마 기자회견에서 전두환 대통령 측근과 김영삼-김대중 양김에게 정치야심을 버릴 것을 촉구하였다.(로마 기자회견 파문)
* 치안본부는 구학련 상부조직인 '노동해방전선'을 적발해 김영환 등을 수배했다고 발표했다.
* [[10월 21일]]
* 내외통신은 북측이 금강산수력발전소 댐 건설에 착공했다고 평양방송을 인용해 보도했다.(금강산댐 수공설)
*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전두환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을 제의했다.
* 민통련 등 40여개 사회/종교단체를 주축으로 한 '미·일 경제침략 저지 국민운동연합'이 결성되었다.
* [[10월 22일]]: 북한의 김일성은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과 회담을 열었다.
* [[10월 24일]]: 서울지검 공안부는 '마르크스-레닌주의당(ML당) 결성기도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노동자와 대학생 89명 등 101명을 검거했다고 했다.
* [[10월 25일]]
* 해태 타이거즈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꺾어 3년만에 통산 2회 우승을 달성하였다.
* 한강 유람선이 첫 운항을 개시하였다.
* KNCC 농어촌선교위는 "전노추는 용공조작 사건"이란 요지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10월 27일]]
* 검찰은 [[인천 5.3 항쟁]]의 배후로 지목된 [[이부영]]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 민불련 소속 승려 150여 명이 '10.27 법난 규탄 및 불교자유 쟁취대회'를 열어 시위에 돌입하였다.
* [[10월 28일]]
* '''경인지역 26개대생 2천여 명이 건국대 서울캠에서 '전국 반외세 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이하 애학투련) 결성식' 개최 후 철야 농성에 돌입하였다.'''([[10.28 건대항쟁]])
* '민주헌법쟁취노동자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0월 29일]]: 강릉교도소 수감 양심수들이 '옥중투쟁위원회' 결성 후 농성에 돌입하였다.
* [[10월 31일]]
* 경찰은 건국대 서울캠에서 '황소 31' 입체작전을 감행해 농성학생 1,500여명을 강제 연행했다.
* 연세대 의대 이원영 교수는 이날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대한미생물학회 보고에서 에이즈 병원체가 내국인에게서 처음 검출되었다고 발표하였다.
==== 11월 ====
* [[11월 1일]]
* 광주시가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직할시로 승격되었다.
* 1988 서울올림픽 기자촌/선수촌이 착공되었다.
* 한경이 비디오텍스 'KETEL'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 [[11월 3일]]: 검찰은 건대 점거농성사건 관련학생 중 1차로 1,265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는 근대적 사법체계 형성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 구속된 단일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 [[11월 4일]]: 김종철 국민당 고문이 향년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 [[11월 5일]]
* 김대중 신민당 상임고문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전제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부산산업대생 진성일이 건대항쟁 진압에 항의하며 분신자살했다.
* 미국 드라마 <맥가이버>가 MBC에서 더빙 방영되었다.
* [[11월 7일]]: 노동부는 인노련과 서노련에 해산 명령을 내렸다.
* [[11월 8일]]: 이날 발표된 내무부 자료에 의하면, 당해 들어 9월 말까지 사용한 최루탄이 31만 발, 구입비가 59억원으로 전년도보다 49% 증가했다고 보고되었다.
* [[11월 9일]]: MBC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이 첫 전파를 탔다.
* [[11월 12일]]
* 치안본부는 지하혁명조직 '반제구국노동자동맹당' 결성 시도를 한 조정식 등 관련자 15명을 검거하며 20여 명을 수배했다고 밝혔다.(반제동맹당 사건)
* 경찰은 민통련 사무실을 강제 폐쇄시켰다.
* [[11월 13일]]: 민민투 경인지역학생평의회 소속 대학생 및 노동자 5백여 명이 영등포에서 기습 시위를 벌여 경찰차 3대가 전소되었다.
* [[11월 15일]]: 재무부는 미국 생명보험회사의 한국 진출을 허용시켰다.
* [[11월 16일]]: [[조선일보]]가 김일성이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특종을 대대적으로 터뜨렸다.([[김일성 사망 오보 사건]])
* [[11월 17일]]: 국방부는 북측 대남방송에서 김일성 피격사망 사실을 보도했다고 밝혔다.
* [[11월 18일]]
* 국방부는 김일성 사망설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 바흐문트 몽골 공산당 서기장이 방북하자마자 김일성을 만났다. 이렇게 해서 김일성 사망은 오보가 되었다.
* KNCC 가맹 6개 교단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성회'를 개최하고 민정당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 [[11월 20일]]: 안기부는 '제헌의회그룹 사건'을 발표하였다.
* [[11월 24일]]: 문공부는 고려 사경 <감지은니묘법연화경> 및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을 각각 국보 234, 235호로 지정하였다.
* [[11월 25일]]: 문교부는 [[1988년]]부터 대입제도를 논술고사로 바꾸고 졸업정원제를 폐지하도록 한 '대입제도 개혁안'을 내놓았다.
* [[11월 26일]]: 국방-문공-통일-건설 4부 장관들은 합동담화에서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평화의 댐]]'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 [[11월 29일]]: 경찰은 신민당 주최 '대통령직선제 개헌쟁취 및 영구집권음모 분쇄 범국민대회'를 원천 봉쇄시켰다.
* [[11월 30일]]: WBA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 유명우가 아르헨티나의 마리오 데마르코를 상대로 3차 방어에 성공하였다.
==== 12월 ====
* [[12월 2일]]
* 구속된 정의평화위원회 소속 이돈명 변호사에 대한 변호인단에 사상 최대 규모인 283명이 등록되었다.
* 민정당이 1987년도 예산안 및 조세감면규제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 신민당은 의원 90명 중 87명의 사퇴서를 이민우 총재에게 제출했다.
*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에서 군인 2명이 탑승객 20명을 인질로 잡아 해병대와 18시간이나 대치했으나, 특수부대가 인질범을 사살하고 20명의 탑승객들을 구출했다.(추풍령휴게소 인질극 사건)
* 무명작가 아라키 히로히코가 지은 <[[죠죠의 기묘한 모험]]>이 <주간소년점프> 1987년 1/2 합병호에 처음 게재되었다.
* [[12월 3일]]
* 외무부는 한국이 남극조약 및 UN ENMOD 협약에 가입했다고 발표하였다.
* 신민당 측은 전면 장외 투쟁을 선언하며 무산된 개헌대회를 다시 개최키로 선언하였다.
* 포항공과대학교가 개교되었다.
* [[12월 5일]]
* 신민당 홍사덕 대변인의 '12대 국회 해산 및 총선 제의' 발표에 양김이 제동을 걸어 홍 대변인이 사퇴했다.
* 김태홍 민언련 사무국장과 신홍범 실행위원이 <말>지 보도지침 폭로 기사와 관련되어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되었다.
* [[12월 6일]]: 전북 김제군 금산사 본당인 대적광전이 화재로 전소되었다.
* [[12월 8일]]: 김수환 추기경은 인권회복미사 강론에서 "민주화와 인권이 존중받는 참다운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12월 9일]]
* 북한이 국제농업개발기금에 가입하였다.
* 중공 안후이성 허베이시 대학생 3천여 명이 민주화 요구 시위를 벌였다.
* [[12월 10일]]
* 국회 보사위는 신민당 불참 속에 노동관계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했다.
* 백기완 민통련 부의장이 집시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
* [[12월 11일]]
* '평화의댐 건설지원 범국민추진위원회 발기인대회'가 개최되었다.
* 신민당은 민정당의 단독 상임위원회 강행에 항의하며 국회 불참을 결정했다.
* [[12월 12일]]
* 특허법 및 저작권법 개정안이 국회 심의를 통과했다.
* 미국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가 한국을 방문하였다.
* [[12월 13일]]: 한국에스페란토협회가 설립되었다.
* [[12월 15일]]
* '평화의댐 건설지원 범국민추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가 보도지침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 [[베트남]] 공산당은 제6차 전당대회에서 '도이모이 개방 정책'을 발표/승인함으로써 [[사회주의]]를 사실상 포기하고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다.
* [[12월 16일]]: 경기 연천군 전곡리에서 12~30만년 전 구석기 주먹도끼가 온전한 형태로 출토되었다.
* [[12월 18일]]: 국회 본회의는 공정거래법 중 개정법률안을 의결하였다.
* [[12월 19일]]: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제8기 제1차 회의에서 국가주석에 김일성, 총리에 리근모를 선출했다.
* [[12월 24일]]
* 이민우 신민당 총재가 내각제 개헌협상 긍정적 검토 가능성을 밝혔다.([[이민우 구상]])
* 현대 엑셀/프레스토가 미 환경보호청 미국차 베스트10에 선정되었다.
* [[12월 25일]]: 북한측은 <금강산발전소 건설에 관한 백서>를 발표했다.
* [[12월 26일]]: '도시노점상복지회'가 결성되었다.
* [[12월 27일]]: 민정당, 신민당, 국민당 3당 대표가 회동을 열었다.
* [[12월 28일]]: 북한 평양 ~ 소련 모스크바 간 철도가 개통되었다.
* [[12월 29일]]: 건설업체 정우개발이 상은 법정관리에 들어가 부채 2천억 원의 지급이 동결되었다.
* [[12월 30일]]: 북한의 김일성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북 고위 정치/군사회담'을 제의했다.
* [[12월 31일]]: 개정 소비자보호법 및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이 제정되었다.
=== 가상 ===
* [[대체역사]] [[비상(소설)]]의 배경시작 연도.
* [[가면라이더 키바]] 과거 사이드의 배경연도.
* [[괭이갈매기 울 적에]] 게임판의 배경연도.
* [[써니(영화)|써니]] 과거 배경연도.
* [[출국(2018)|출국]]의 메인 배경연도.
* [[해리 포터: 호그와트 미스테리]]의 3학년 배경연도. [[1984년]]부터 6학년 시점인 [[1989년]]까지 이어진다.
* [[GTA 바이스 시티]]의 배경연도.
* [[WHITE ALBUM/애니메이션|WHITE ALBUM 애니메이션판]]의 배경연도.[* 원작의 배경보다 약 10년 정도 앞선 시점.]
* 일자 불명
* [[강철중]]이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은매달을 땄다.
* [[겐조 덴마]]가 [[요한 리베르토]]의 수술을 집도했다. - [[몬스터(만화)|몬스터]]
* [[미국]]에서 [[내전]]이 일어나 16개의 주가 연방에서 탈퇴했다. - [[슈퍼맨 레드선]]
* [[이현암]]과 [[월향]]이 만났다. - [[퇴마록]]
* [[4월 3일]] - [[소련]]이 [[샌프란시스코]]에 핵공격을 가한다. - [[핫라인 마이애미 2: 롱 넘버]]
* [[8월 2일]] - [[브라이트 윈 호]]가 야미섬 근해에서 실종. - [[사혼곡 2: 사이렌]]
== 탄생 ==
=== 실존인물 ===
* [[1월 1일]]
* [[성민(슈퍼주니어)|성민]]: 한국의 [[가수]],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 [[지조]]: 한국의 래퍼
* [[1월 3일]] - [[이보희(성우)|이보희]]: 한국의 [[성우]]
* [[1월 4일]] - [[제임스 밀너]]: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1월 5일]] - [[이국주]]: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1월 6일]]
* [[니키 로메로]]: [[네덜란드]]의 [[하우스]] [[DJ]]
* [[알렉스 터너]]: [[영국]]의 가수. [[악틱 몽키즈]]의 [[보컬]]/[[기타]]
* [[이리나 샤크]]: [[러시아]]의 [[모델]]
* [[1월 7일]] - [[김채하]]: 한국의 성우
* [[1월 8일]]
* [[다비드 실바]]: [[스페인]]의 [[축구선수]]
* [[윤성현(음악인)|윤성현]]: [[쏜애플]]의 보컬/기타
* [[1월 10일]] - [[킨들리 마이어스]]: [[미국]]의 모델
* [[1월 12일]]
* [[김수화]] :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한지은(레이싱 모델)]] : 대한민국의 레이싱모델
* [[1월 17일]] - [[태군]]: 대한민국의 가수, 본명 [[김태군]]
* [[1월 19일]]
* [[마키노 유이]]: 일본의 성우
*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1월 20일]]
* [[강승조]]: 한국의 축구선수
* [[이인석(성우)|이인석]]: 한국의 성우
* [[1월 22일]] - [[이파니]]: 한국의 방송인
* [[1월 26일]]
* [[김디도]]: 한국의 성우
* [[김재중]]: 한국의 그룹 [[JYJ]]의 멤버 겸 [[배우]]
* [[1월 27일]] - [[문유정]]: 한국의 성우
* [[1월 28일]] - [[장진용]]: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1월 30일]]
* [[시모다 아사미]]: [[일본]]의 성우
* [[루카스 비글리아]]: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2월 1일]] - [[정주원]]: 한국의 성우
* [[2월 3일]] - [[야나기하라 카나코(코미디언)|야나기하라 카나코]]: 일본의 [[코미디언]]
* [[2월 4일]] - [[40mP]]: 일본 [[보컬로이드]] 프로듀서
* [[2월 5일]] - [[민효린]]: 한국의 배우
* [[2월 6일]] - [[유노윤호]]: 한국의 가수, 그룹 [[동방신기]]의 멤버
* [[2월 9일]] - [[최진혁]]: 한국의 배우
* [[2월 10일]] - [[라다멜 팔카오]]: [[콜롬비아]]의 [[축구 선수]]
* [[2월 11일]] - [[허민(코미디언)|허민]]: 한국의 [[코미디언]]
* [[2월 12일]]
* [[발로리 커리]]: 미국의 [[배우]]
* [[통닭천사]]: [[대한민국]]의 [[스트리머]]. 웹툰작가 [[이말년]]의 여동생.
* [[2월 13일]] - [[소정환(성우)|소정환]]: [[대한민국]]의 성우
* [[2월 14일]]
* [[가오린]]: [[중국]]의 [[축구선수]]
* [[요시무라 하루카]]: [[일본]]의 [[성우]]
* [[2월 15일]]
* [[발레리 보지노프]]: [[불가리아]]의 [[축구선수]]
* [[코시미즈 아미]]: [[일본]]의 [[성우]]
* [[2월 16일]] - [[디에고 고딘]]: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
* [[2월 18일]]
* [[안도 사쿠라]]: [[일본]]의 [[배우]]
* [[이찬석]]: [[대한민국]]의 뷰티 쇼호스트
* [[2월 19일]] - [[마르타 비에이라 다시우바]]: [[브라질]]의 축구 선수
* [[2월 20일]] - [[우원식]] : [[한국]]의 前 [[야구선수]]
* [[2월 22일]] - [[최다니엘]]: 한국의 배우
* [[2월 23일]]
*[[카메나시 카즈야]] : 일본의 [[아이돌]] 그룹 [[KAT-TUN]]의 멤버
*[[베라 세시나]]
* [[2월 25일]] - [[전준우]]: 한국의 [[야구]]선수
* [[2월 26일]]
* [[채형직]] :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나초 몬레알]]: [[스페인]]의 [[축구 선수]]
* [[2월 27일]] - [[이지영(야구선수)|이지영]]: 한국의 야구선수
* [[2월 28일]]
* [[구재이]]: 한국의 배우
* [[김영신(축구선수)|김영신]]: 한국의 축구선수
* [[산페이 유코]]: 일본의 성우
* [[3월 3일]] - [[퓨어킴]]: 한국의 가수
* [[3월 4일]] - [[박민영(배우)|박민영]]: 한국의 배우
* [[3월 8일]] - [[다카마도노미야 쓰구코 공주]]: [[일본]]의 황족
* [[3월 10일]] - 산카쿠헤드: 일본의 [[만화가]]
* [[3월 11일]] - [[시노다 마리코]]: 일본의 [[연예인]], 그룹 [[AKB48]]의 前 멤버
* [[3월 13일]]
* [[다이토 슌스케]]: 일본의 배우
* [[요네하라 코우스케]]: 일본의 [[아이돌]] 그룹 [[RUN&GUN]]의--최단신--멤버
* [[3월 14일]] - [[곽정철]]: 한국의 야구선수
* [[3월 15일]] - [[김정수(1986)|김정수]]: 한국의 [[야구]] 선수
* [[3월 16일]]
* [[다카하시 다이스케]]: 일본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 [[이지연(1986)|이지연]]: 한국의 아나운서
* [[Puzzlet Chung|정경훈]]: 대한민국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 [[3월 17일]] - [[에딘 제코]]: [[보스니아]]의 축구 선수
* [[3월 20일]]
* [[차화준(1986)|차화준]] :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민경수]]: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 [[3월 22일]]
* [[나비(가수)|나비]]: 한국의 가수
* [[전보람]]: 한국의 가수, 그룹 [[티아라(아이돌)|티아라]]의 前 멤버
* [[3월 23일]] - [[이토끼]]: [[대한민국]]의 유투버
* [[3월 27일]] - [[마누엘 노이어]]: [[독일]]의 [[축구 선수]], [[골키퍼]]
* [[3월 28일]]
* [[레이디 가가]]: [[미국]]의 [[가수]]
* [[코미 나오시]]: [[일본]]의 [[만화가]][* 대표작으로 [[소년 점프]]에 연재된 [[니세코이]]가 있다.]
* [[츠나코]]
* [[3월 28일]] - [[곽광선]]: 한국의 축구선수
* [[3월 29일]] - [[유소영]]: 한국의 연예인, [[애프터스쿨]]의 前 멤버
* [[3월 30일]]
* [[김종민(야구선수)|김종민]]: 한국의 야구선수
* [[세르히오 라모스]]: [[스페인]]의 축구 선수
* [[3월 31일]] - [[안재홍(배우)|안재홍]]: 한국의 배우
* [[4월 4일]]
* [[은혁]]: 한국의 가수,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 [[에이든 맥기디]]: [[아일랜드]]의 축구 선수
* [[4월 6일]] - [[cosMo@폭주P]]: 일본 [[보컬로이드]] 프로듀서
* [[4월 7일]]
* [[DJ 소다]]: 한국의 [[DJ]], [[프로듀서]], [[방송인]]
* [[신고은(배우)|신고은]]: 한국의 배우이자 가수.
* [[전소민]]: 한국의 배우.
* [[시원(슈퍼주니어)|시원]]: 한국의 가수,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 [[4월 8일]]
* [[사와지리 에리카]]: 일본의 배우
* [[윤아영]]: 대한민국의 성우
* [[4월 9일]] - [[레이튼 미스터]]: [[미국]]의 [[배우]]
* [[4월 10일]] - [[신현빈]]: [[대한민국]]의 배우
* [[4월 11일]] - [[임인스]]: 한국의 [[웹툰]] 작가
* [[4월 12일]] - [[야마모토 아야노]]: 일본의 성우, [[배우]]
* [[4월 13일]] - [[미성(써니힐)|미성]]: 한국의 가수, [[써니힐]]의 멤버
* [[4월 15일]] - [[강은비]]: 한국의 배우
* [[4월 16일]]
* [[오카자키 신지]]: [[일본]]의 축구 선수
* [[디바제니]]: 한국의 카카오TV PD, 유튜버
* [[박상우]]: [[한국]]의 뮤지컬 배우 출신 현 [[롯데홈쇼핑]] 쇼호스트
* [[4월 17일]] - [[타케우치 에이지]]: 일본의 성우
* [[4월 19일]] - [[조미(슈퍼주니어-M)|조미]]: 중국의 가수, 그룹 [[슈퍼주니어 M]]의 멤버
* [[4월 20일]] - [[김선규(야구)|김선규]]: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4월 21일]] - [[고슬기]]: 한국의 축구선수
* [[4월 22일]] - [[앰버 허드]]: [[미국]]의 배우
* [[4월 24일]] - [[이경태(성우)|이경태]]: 한국의 성우
* [[4월 27일]] - [[제나 콜먼]]: 영국의 배우
* [[4월 29일]]
* [[변요한]]: [[대한민국]]의 [[배우]]
* [[이채영(배우)|이채영]]: [[대한민국]]의 [[배우]]
* [[4월 30일]] - [[고차원]]: 한국의 축구선수
* [[5월 2일]] - [[이왕기]]: [[한국]]의 [[야구선수]]
* [[5월 6일]] - [[권혁수(배우)|권혁수]]: 한국의 배우
* [[5월 7일]] - [[임형주]]: 한국의 [[성악가]], [[팝페라]] 가수
* [[5월 8일]] - [[김선호]]: 한국의 배우
* [[5월 8일]] - [[사토 사토미]]: 일본의 성우
* [[5월 11일]]
* [[마누엘 쉔카이젠]]: [[네덜란드]]의 [[프로게이머]]
* [[티아 밸러드]]: 미국의 성우
* [[아부 디아비]]: [[프랑스]]의 축구 선수
* [[5월 13일]] - [[로버트 패틴슨]]: 영국의 배우
* [[5월 16일]]
* [[메간 폭스]]: 미국의 [[영화배우]]
* [[요코오 와타루]]: 일본의 [[아이돌]]그룹 [[Kis-My-Ft2]]의 멤버
* [[5월 17일]] - [[카를로스 고리토]]: [[비정상회담]] 출연자
* [[5월 18일]] - [[케빈 앤더슨]]: [[남아공]]의 테니스 선수.
* [[5월 19일]] - [[정해철]]: 대한민국의 개그맨
* [[5월 21일]]
* [[김진호(SG워너비)|김진호]]: 한국의 가수, 그룹 [[SG워너비]]의 멤버
* [[마리오 만주키치]]: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
* [[박소진|소진]]: [[한국 아이돌]] 그룹 [[걸스데이]]의 멤버
* [[5월 24일]] - [[백옥담]]: 한국의 배우
* [[5월 25일]]
* [[우에노 주리]]: [[일본]]의 배우
* [[호죠 타카히로]]: [[일본]]의 前 배우
* [[5월 27일]] - [[라세 쇠네]]: [[덴마크]]의 축구 선수
* [[5월 29일]] - [[양훈]]: 한국의 [[야구]] 선수
* [[5월 29일]] - [[노민우]] :한국의 배우
* [[5월 31일]] - [[문택수]]: 한국의 [[웹툰 작가]]
* [[6월 1일]] - [[이장우(배우)|이장우]]: 한국의 배우
* [[6월 3일]]
* [[김혜선]] - [[한국]]의 [[미스코리아]]
* [[라파엘 나달]] - [[스페인]] 출신의 [[테니스]] 선수
* [[최효종]] - 한국의 [[코미디언]]
* [[6월 4일]] - [[박유천]]: 한국의 그룹 [[JYJ]]의 멤버 겸 [[배우]]
* [[6월 6일]] - [[김현중(SS501)|김현중]]: 한국의 가수 겸 배우, [[SS501(아이돌)|SS501]]의 멤버
* [[6월 11일]] - [[샤이아 라보프]]: 미국의 [[배우]], [[코미디언]]
* [[6월 13일]] - [[혼다 케이스케]]: 일본의 [[축구 선수]]
* [[6월 16일]] - [[페르난도 무슬레라]]: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
* [[6월 17일]] - [[유원상]]: 한국의 [[야구]] 선수
* [[6월 18일]] - [[가레스 듀크]]: [[영국]]의 수영선수다.
* [[6월 21일]]
* [[마츠모토 히로야]]: [[일본]]의 배우
* 황은영: [[도전 골든벨]]의 부산 대덕여고 40대 등극자
* [[6월 23일]] - [[윤진호(야구)|윤진호]]: 한국의 [[야구선수]]
* [[6월 25일]]
* [[마츠우라 아야]]: 일본의 가수
* [[이호석]]: 한국의 前 [[쇼트트랙]] 선수, 現 [[쇼트트랙]] 코치.
* [[이효영]]: 한국의 레이싱모델
* [[6월 26일]]
* [[브리트니 칼보우스키]]: 미국의 성우
* [[신정민]]: 한국의 [[프로게이머]]
* [[진해수]]: 한국의 [[야구]] 선수
* [[조정민]]: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6월 27일]]
* [[배영섭]]: 한국의 [[야구]]선수
* [[멜리사 리소]]: 미국의 모델
* [[샘 클라플린]]: 영국의 배우
* [[6월 28일]] - [[미모리 스즈코]]: 일본의 성우
* [[6월 30일]]
* [[알리샤 폭스]]: 미국의 [[프로레슬러]]
* [[홍수아]]: 대한민국의 배우
* [[프레디 과린]]: [[콜롬비아]]의 [[축구]] 선수
* [[아사키]]: [[BEMANI 시리즈/아티스트|BEMANI 시리즈의 작곡가]]
* [[7월 3일]] - [[김효기]]: 한국의 축구선수
* [[7월 4일]] - [[마스다 타카히사]]: [[일본 아이돌]] [[NEWS]]의 멤버
* [[7월 5일]] - [[Owl City |Adam Young]]: 원맨 밴드 프로젝트인 [[아울시티]]로 유명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 [[7월 9일]] - [[모치즈키 레이]]: 일본의 성우
* [[7월 10일]] - [[박병호]]: 한국의 [[야구]]선수
* [[7월 11일]]
* [[요앙 구르퀴프]]: [[프랑스]]의 [[축구 선수]]
* [[라울 가르시아]]: [[스페인]]의 축구 선수
* [[유은]]: 한국의 [[VJ#s-2|VJ]] 겸 [[개그우먼]]
* [[7월 15일]] - [[배두훈]]: 크로스오버계의 아이돌 [[포레스텔라]]의 멤버, 뮤지컬배우
* [[7월 16일]]
* [[루시아(가수)]]: 한국의 가수
* [[우노 미사코]] : [[AAA(일본 그룹)|AAA]] 멤버
* [[7월 17일]]
* [[다나(가수)|다나]]: [[천상지희 The Grace]] 멤버
* [[송제헌]]: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 [[7월 18일]]
* [[최희]]: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히토미(AV 배우)|히토미]]: 일본의 [[AV 여배우]]
* [[7월 21일]] - [[지아]]: 한국의 가수
* [[7월 23일]] - [[우치다 아야]]: 일본의 성우
* [[7월 24일]] - [[윤석민(투수)|윤석민]]: 한국의 [[야구]] 선수
* [[7월 25일]]
* [[정의윤]]: 한국의 [[야구]] 선수
* [[헐크(축구선수)|헐크]]: [[브라질]]의 축구 선수
* [[7월 29일]] - [[조해리]]: 한국의 [[쇼트트랙]] 선수
* [[7월 31일]]- [[유슬기]]: [[듀에토]] 맴버
* [[8월 2일]]
* [[오오사카 료타]]: 일본의 성우
* [[다카하기 요지로]]: 일본의 축구선수
* [[8월 3일]] - [[김국진(성우)|김국진]]: 한국의 성우
* [[8월 4일]] - [[주비]]: 한국의 가수, [[써니힐]]의 멤버
* [[8월 7일]] - [[김근배]]: 한국의 축구선수
* [[8월 9일]] - [[백인태]]: [[듀에토]] 맴버
* [[8월 11일]] - [[후쿠하라 카오리]]: 일본의 성우
* [[8월 12일]]
* [[김근환]]: 한국의 축구선수
* [[김홍일(범죄자)|김홍일]]: 한국의 범죄자
* [[8월 13일]]
* [[드미트리우스 존슨]]: [[UFC]] 소속의 [[이종격투기]] 선수
* [[황연주]] :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소속의 배구선수. 포지션은 왼손잡이 라이트 공격수. 기록의 여왕.
* [[8월 15일]] - [[황선희]]: 한국의 배우
* [[8월 16일]] - [[다르빗슈 유]]: 일본출신의 [[야구]] 선수
* [[8월 17일]]
* [[루디 게이]]: [[NBA]]의 [[농구]] 선수
* [[마르쿠스 베리]]: [[스웨덴]]의 축구 선수
* [[8월 18일]] - [[박슬기]]: [[대한민국]]의 [[방송]]인
* [[8월 21일]] - [[우사인 볼트]]: [[자메이카]]의 육상 선수, 총알 탄 사나이
* [[8월 23일]] - [[김지수(야구)|김지수]]: 한국의 [[야구선수]]
* [[8월 25일]]
* [[강의석]]: 대한민국의 이슈인
* [[노수산나]]: 대한민국의 배우
* [[8월 26일]] - [[정경선]]: 한국의 기업인
* [[8월 27일]]
* [[김필]]: 한국의 가수, [[슈퍼스타K6]] 준우승자
* [[세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
* [[8월 29일]]
* [[아오야마 히데키]]: 일본의 [[드러머]]
* [[이연주(치어리더)|이연주]]: 대한민국의 치어리더
* [[9월 1일]] - [[백은혜]]: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 [[9월 8일]] - [[주앙 무티뉴]]: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 [[9월 9일]] - [[조제 알도]]: [[브라질]]의 [[UFC]] 선수
* [[9월 10일]] - [[카미야마 류지]]: 일본의 [[아이돌]] 그룹 [[RUN&GUN]]의 최연소 멤버
* [[9월 11일]] - [[유한솔(아나운서)|유한솔]]: 전 [[G1방송]], 현 [[안동MBC]] 아나운서
* [[9월 12일]]
*[[백승희]] : [[한국]]의 [[배우]]
* [[나가토모 유토]]: 일본의 [[축구]] 선수
* [[쿠도 마유]]: 일본의 [[여성]] 가수
* [[9월 13일]] - [[이슬기(아나운서)|이슬기]]: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9월 14일]] - [[다카하시 아이]]: 일본의 [[여성]] 가수 겸 배우
* [[9월 16일]]
* [[차예린]]: [[대한민국]] 아나운서, 미스코리아
* [[여건욱]]: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9월 17일]] - [[마츠오카 요시츠구]]: 일본의 성우
* [[9월 18일]]
* [[킬리 하젤]]: 영국의 모델 겸 배우
* [[한그림]]: 한국의 배우
* [[9월 21일]] - [[린지 스털링]]: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 유튜버
* [[9월 22일]]
* [[박현준]]: 한국의 [[2012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승부조작범]]
* [[야하기 사유리]]: 일본의 성우
* [[9월 24일]]
* [[유지은]]: 현 [[대전MBC]] 아나운서
* [[9월 25일]]
* [[류준열]]: 대한민국의 배우
* [[최윤영(1986)|최윤영]]: 대한민국의 배우
* [[한동욱]]: 대한민국의 전 프로게이머
* [[9월 26일]] - [[윤시윤]]: 한국의 배우
* [[9월 27일]] - [[배슬기]]: 한국의 배우
* [[9월 30일]]
* [[니시지마 타카히로]]: [[일본]]의 [[가수]] 겸 [[배우]]
* [[올리비에 지루]]: [[프랑스]]의 축구선수
* [[이기홍(배우)|이기홍]]: [[한국계 미국인]] 배우
* [[라 레이나 쇼]]: [[아제르바이잔]]의 피트니스 모델
* [[10월 3일]]
* [[오카와 부쿠부]]: [[팝팀에픽]] 작가
* [[혼다 마리코]]: 일본의 성우
* [[10월 6일]] - [[유아인]]: 한국의 배우
* [[10월 7일]]
* [[케이틀린(프로레슬러)|케이틀린]]: 미국의 前 프로레슬러
* [[MAKO]]: 일본의 성우
* [[10월 10일]]: [[윤지연]]: [[대한민국]]의 방송인
* [[10월 12일]]
* [[크리스티안 스투아니]]: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
* [[리원량]]: [[중국]]의 [[의사]](~[[2020년]])
* [[10월 13일]] - [[오정복]]: [[한국]]의 前 [[야구]] 선수
* [[10월 14일]] - [[스윙스]]: 한국의 래퍼
* [[10월 15일]]
* [[DX(작곡가)|DX]]: 한국의 작곡가
* [[동해(슈퍼주니어)|동해]]: 한국의 가수,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 [[10월 16일]] - [[안효민]]: 한국의 성우
* [[10월 18일]]
* [[김하율]] - 한국의 레이싱모델
* [[오영종]] - 한국의 프로게이머
* [[10월 21일]]: [[강다솜]]: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10월 22일]] [[Chancellor]]:가수
* [[10월 24일]]
* [[드레이크(가수)|드레이크]]: [[캐나다]]의 [[래퍼]]
* [[오카모토 노부히코]]: 일본의 성우
* [[10월 28일]] - [[토요사키 아키]]: 일본의 성우
* [[10월 29일]] - [[One#s.5|ONE]]: 일본의 만화가
* [[10월 30일]] - [[김연지]]: 한국의 가수, 그룹 [[씨야]]의 멤버
* [[10월 31일]] - [[돌카스(인터넷 유명인)|돌카스]]: 인터넷 유명인
* [[11월 1일]] - [[곽범]]: [[한국]]의 [[코미디언]]
* [[11월 3일]] - [[허영생]]: 한국 아이돌 [[SS501(아이돌)|SS501]] 멤버
* [[11월 4일]]
* [[엄현경]]: [[한국]]의 배우
* [[장하영(1986)|장하영]]: [[16개월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의 피고인.
* [[11월 5일]]
* [[BoA]]: 한국의 가수
* [[캐스퍼 슈마이켈]]: [[덴마크]]의 축구 선수
* [[11월 7일]] - [[금민철]]: 한국의 야구선수
* [[11월 10일]] - [[Warak]]: 한국의 작곡가
* [[11월 11일]] - [[사카이 카나코]]: 일본의 성우
* [[11월 12일]] - [[이냐치오 아바테]]: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 [[11월 13일]]
* [[문채원]]: 한국의 배우
* [[사이토 유카]]: 일본의 성우
* [[조쉬 벨(1986)|조쉬 벨]]: 미국의 [[야구]]선수
* [[11월 14일]] - [[칼리스토(프로레슬러)|칼리스토]]: 미국의 프로레슬러
* [[11월 15일]] - [[놀리토]]: [[스페인]]의 축구 선수
* [[11월 16일]] - [[허유강]]: 한국의 [[야구]]선수
* [[11월 17일]] - [[나니]]: [[포르투갈]]의 축구선수
* [[11월 18일]] - [[홍성용]] -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11월 20일]]
* [[이병민]]: 한국의 [[프로게이머]]
* [[호리코시 코헤이]]: 일본의 만화가
* [[11월 23일]] - [[곽웅섭]]: [[대한민국]]의 [[프로게이머]]
* [[11월 26일]] - [[이토 카나에]]: 일본의 성우
* [[11월 28일]] - [[김은정(배우)|김은정]]: 대한민국의 배우
* [[11월 29일]] - [[전유수]]: 한국의 [[야구]]선수
* [[11월 30일]] - [[육식맨]]: 대한민국의 [[유튜버]]
* [[12월 8일]]
* [[양세찬]]: [[한국]]의 [[코미디언]]
* [[GRAY]]: 한국의 가수
* [[12월 9일]] - [[김준(축구선수)|김준]]: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K리그]] 최초의 아프리카계 한국인 선수.
* [[12월 10일]]
* [[도티|나희선]]: 유명 유튜브 크리에이터 및 샌드박스네트워크 CCO
* [[서미소랑]]: [[아나운서]] 및 [[치과의사]]
* [[12월 11일]]
* [[김새해]]: 한국의 성우
* [[스에요시 슈타]]: [[AAA(일본 그룹)|AAA]]의 멤버
* [[12월 12일]]
* [[큐리]]: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티아라(아이돌)|티아라]]의 멤버
* [[히다카 미츠히로]]: [[AAA(일본 그룹)|AAA]]의 멤버이자 래퍼
* [[12월 13일]] - [[이가라시 히로미]]: 일본의 성우
* [[12월 14일]] - [[장재호(프로게이머)|장재호]]: [[대한민국]]의 [[프로게이머]]
* [[12월 15일]]
* [[스네야나 오노프카]]: [[우크라이나]] 출신의 모델
* [[케일러 나바스]]: [[코스타리카]]의 [[축구선수]]
* [[12월 16일]]
* [[에모토 타스쿠]]: [[일본]]의 [[배우]]
* [[DECO*27]]: 일본 [[보컬로이드]] 프로듀서
* [[12월 18일]] - [[박성준]]: 대한민국의 프로게이머, 투신
* [[12월 19일]] - [[라이언 바벌]]: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 [[12월 24일]]
* [[최희서]]: 대한민국의 배우
* 모리 리요(森理世): 2007 [[미스 유니버스]] [[일본]] 대표이자 1위. 자세한 것은 [[김제니#s-2]] 항목 참조.
* [[이시하라 사토미]]: 일본의 배우
* [[나카무라 토모야]]: 일본의 배우
* [[이용(1986)|이용]]: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12월 25일]]
* [[김성환(축구선수)|김성환]]: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김수민(정치인)|김수민]]: 대한민국의 [[정치인]].
* [[스자키 아야]]: 일본의 성우
* [[12월 26일]]
* [[송가인]]: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위고 요리스]]: [[프랑스]]의 축구 선수
* [[12월 29일]] - [[김옥빈]]: 대한민국의 배우
=== 가상인물 ===
* [[1월 14일]] : [[토죠 아야]] - [[딸기 100%]]
* [[2월 14일]]: [[카렌(머메이드 멜로디 피치피치핏치)|카렌]], [[노엘(머메이드 멜로디 피치피치핏치)|노엘]] - [[머메이드 멜로디 피치피치핏치]]
* [[2월 26일]]: [[뚱이]] - [[네모바지 스폰지밥]]
* [[2월 28일]]: [[야가미 라이토]] - [[데스노트]][* 애니메이션에서는 [[1989년]].]
* [[4월 10일]]: 권기득 - [[노병가]]
* [[4월 15일]]: 최준호 아가토 - [[검은 사제들]]
* [[4월 18일]]: [[신죠 세리카]] - [[도키메키 메모리얼 3]]
* [[5월 3일]] : [[기타오오지 사츠키]] - [[딸기 100%]]
* [[5월 8일]]: [[하버트 웨스트 호프만]] - [[클로저스]]
* [[5월 11일]]: [[카와이 리카]] - [[도키메키 메모리얼 3]]
* [[6월 8일]]: [[아이자와 치토세]] - [[도키메키 메모리얼 3]]
* [[6월 20일]]: [[시라카와 코토리]] - [[다카포 시리즈|다카포]][* 다카포의 배경은 2002년 봄. 그리고 주인공들은 대부분 '''중3'''이다. 일본은 4월에 새 학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캐릭터들 대부분은 86년생이라 할수 있다.]
* [[7월 6일]] : [[무카이 코즈에]] - [[딸기 100%]]
* [[7월 14일]]: [[네모바지 스폰지밥]] - [[스폰지밥|네모바지 스폰지밥]]
* [[7월 18일]]: [[사이타마 나나코]] - [[다카포 시리즈|다카포]]
* [[7월 24일]]: 스즈키 나나 - [[7인의 나나]]
* [[8월 11일]]: [[클라우드 스트라이프]] - [[파이널 판타지 7]]
* [[8월 14일]]: [[오다 마리]] - [[도키메키 메모리얼 3]]
* [[9월 4일]]: [[요시노 사쿠라]] - [[다카포 시리즈]]
* [[9월 11일]]: [[마키하라 유키코]] - [[도키메키 메모리얼 3]]
* [[9월 16일]] : [[니시노 츠카사]] - [[딸기 100%]]
* [[9월 23일]]: [[양수연]] - [[검은방]] 2
* [[10월 12일]]: [[이즈미 호타루]] - [[도키메키 메모리얼 3]]
* [[10월 16일]] : [[하시모토 치나미]] - [[딸기 100%]]
* [[11월 5일]] : [[빈센조 까사노]] - [[빈센조]]
* [[11월 18일]]: [[무라사키 이즈미코]] - [[다카포 시리즈|다카포]]
* [[11월 23일]]: [[클라라 오스왈드]] - [[닥터후]]
* [[11월 26일]]: [[기후네 이쿠코]], [[다가와 유코]] - [[사혼곡 2: 사이렌]]
* [[11월 30일]]: '''[[연민정]]''' - [[왔다! 장보리]]
* [[12월 5일]]
* [[와타라이 카즈미]] - [[도키메키 메모리얼 3]]
* [[박다희]] - [[검은방]] 1
* [[12월 6일]]: [[아이시아]] - [[다카포 시리즈]][* DCSS 애니메이션을 보면 알겠지만 아이시아는 준이치의 반친구였다.]
* [[12월 8일]]: [[카츠라기 미사토]] - [[신세기 에반게리온]]
* [[12월 12일]]: [[양시백]] - [[회색도시|회색]][[회색도시 시리즈|도시 1]]
* [[12월 28일]]
* [[아사쿠라 준이치]], [[아사쿠라 네무]] - [[다카포 시리즈]]
* 일자 불명
* [[가브리엘 델라쿠르]] - [[해리 포터 시리즈]]
* [[오즈 츠바사]] - [[마법전대 마지레인저]]
* [[우츠기 미코토]] - [[용자왕 가오가이가]]
* [[이토노코기리 케이스케]] - [[역전재판 시리즈]]
* [[임시로]] - [[내딸 금사월]]
* [[정수아(뷰티풀 군바리)|정수아]], [[현봄이]], [[권정민]], 임진희, [[송세희]], [[황조은]], [[김효현]] - [[뷰티풀 군바리]]
* 진혁 - [[닥터 진]]
* [[하주빈]] - [[스피드왕 번개]]
* 한혜령[* [[빠른 생일]]이 아니라고 가정할 시.] - [[체육왕]]
== 사망 ==
=== 실존인물 ===
==== 1월 ====
* [[1월 2일]] - 빌 빅: 미국의 스포츠 프로모터, 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및 시카고 화이트삭스 구단주.
* [[1월 6일]] - [[이휘영]]: [[대한민국]]의 불문학자
* [[1월 10일]]
* [[야로슬라프 사이페르트]]: [[체코]]의 소설가
* [[에른스트 레너]]: [[독일]]의 전 축구감독
* [[1월 17일]] - [[한상준]]: 한국의 [[정치인]]
* [[1월 18일]] - [[정태성]]: 성창기업 창업주
* [[1월 19일]] - [[이민자]]: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 [[1월 24일]] - [[김성식]]: 대한민국의 서양사학자, 전 학교법인 숭실학원 이사장
* [[1월 28일]] - [[챌린저호]] 승무원 7인
* 그레고리 브루스 자비스: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
* 로날드 어윈 맥네어: 미션 스페셜리스트
* 마이클 존 스미스: 파일럿
* 샤론 크리스타 코리건 맥콜리프: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
* [[엘리슨 오니즈카|엘리슨 쇼우지 오니즈카]]: 미션 스페셜리스트,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 [[우주비행사]]
* 주디스 애를린 레스닉: 미션 스페셜리스트, [[미국]]의 두번째 여성 [[우주비행사]]
* 프랜시스 리차드 "딕" 스코비: 미션 지휘관
* [[1월 29일]] - [[윤인구(교육자)|윤인구]]: 초대 부산대학교 총장, 제3대 연세대학교 총장
==== 2월 ====
* [[2월 5일]] - [[송기창]]: 대한민국의 수의학자
* [[2월 7일]] - 홍순칠: 전 [[독도의용수비대]]장
* [[2월 17일]] - [[배상명]]: [[상명대학교]] 설립자, [[친일반민족행위자]]
* [[2월 28일]] - [[올로프 팔메]]: 전 [[스웨덴]] 총리
==== 3월 ====
* [[3월 10일]] - [[레이 밀랜드]]: [[영국]]의 [[배우]]
* [[3월 13일]] - [[오한섭]]: 대한민국의 농민운동가
* [[3월 16일]] - [[장이기]]: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가
* [[3월 18일]] - [[박영진]]: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3월 23일]] - [[에티엔 마틀레르]]: [[프랑스]]의 전 축구감독
* [[3월 27일]] - [[유영대]]: 제 4~5대 [[전북대학교]] 총장
* [[3월 30일]] - [[제임스 카그니]]: [[미국]]의 [[배우]]
==== 4월 ====
* [[4월 1일]] - [[신원균]]: KBS 공채 1기 성우
* [[4월 2일]] - [[서범석(1902)|서범석]]: 대한민국의 정치가
* [[4월 6일]]
* [[라이문도 오르시]]: [[아르헨티나]], [[이탈리아]]의 전 축구선수
* [[야마구치 타케히사]]: [[일본]]의 [[배우]]
* [[4월 8일]] - [[오카다 유키코]]: [[일본]]의 [[가수]]
* [[4월 14일]] - [[시몬 드 보부아르]]: [[프랑스]]의 [[철학자]], [[페미니스트]]
* [[4월 18일]] - [[천세봉]]: 북한의 소설가
* [[4월 24일]] - [[월리스 심프슨]]: [[영국]] [[에드워드 8세]]의 아내
* [[4월 25일]] - [[요코야 이사오]]: '빠삐자기방'의 원조격인 '피프 에레키반'으로 유명한 제약업체 [[피프]]의 전 회장
* [[4월 26일]] - [[브로데릭 크로포드]]: [[미국]]의 [[배우]]
* [[4월 30일]] - [[김상돈]]: 초대 민선 서울특별시장, 정치가
==== 5월 ====
* [[5월 1일]] - [[변형진]]: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5월 3일]] - [[김세진(열사)|김세진]]: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5월 7일]] - [[전재권]]: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 [[5월 9일]] - [[텐징 노르가이]]: 1953년에 [[에드먼드 힐러리]]와 함께 세계최초 에베레스트 산 등정에 공헌한 셰르파
* [[5월 20일]] - [[이동수]]: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5월 21일]] - [[박혜정]]: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5월 26일]]
* [[김상원]]: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이재호(열사)|이재호]]: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5월 27일]]
* [[이동식]]: [[죽음을 연출한 사진]] 사건의 주범
* [[김영희]]: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의 주범
==== 6월 ====
* [[6월 1일]] - [[박원선]]: 대한민국의 법학자
* [[6월 5일]] - [[이경환]]: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6월 7일]] - [[박시창]]: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6월 12일]] - [[선우휘]]: [[대한민국]]의 [[소설가]], [[언론인]]
* [[6월 13일]] - [[베니 굿맨]]: 미국의 클라리넷 연주자
* [[6월 14일]]
* [[김수근]]: 대한민국의 건축가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아르헨티나]]의 [[작가]]
* [[6월 18일]] - [[이제구]]: 전 서울대학교 의대 학장
* [[6월 19일]]
* [[신호수]]: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렌 바이어스]]: 미국의 농구선수
* [[6월 21일]] - [[김성수]]: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6월 24일]] - [[김세중(조각가)|김세중]]: 대한민국의 조각가
* [[6월 25일]] - [[라인홀트 뮌첸베르크]]: [[독일]]의 전 축구감독
* [[6월 26일]] - [[강상철]]: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6월 29일]] - [[이창환]]: 대한민국의 성우
==== 7월 ====
* [[7월 5일]] - [[오윤]]: 대한민국의 민중화가
* [[7월 6일]] - 신동훈: 제2대 인제대학 학장
* [[7월 7일]] - [[정인승]]: [[대한민국]]의 [[한글]]학자
* [[7월 10일]] - [[박태원(소설가)|박태원]]: 월북 소설가
* [[7월 13일]] - [[홍진기]]: 제9대 법무부 장관, 전 [[중앙일보]] 회장, 보광그룹 창업주.
* [[7월 15일]] - [[야부시타 다이치]]: 일본 최초의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 <[[백사전]]>을 만든 애니메이션 감독
* [[7월 17일]] - [[성좌경]]: 제4대 과학기술처 장관
* [[7월 23일]] - [[아돌포 발론체리]]: [[이탈리아]]의 전 축구감독
* [[7월 24일]] - [[윤제술]]: 대한민국의 교사, 정치인
* [[7월 29일]] - [[성금연]]: 대한민국의 가야금산조 명인
==== 8월 ====
* [[8월 2일]] - [[장병찬]]: 이천전기공업 창업주
* [[8월 12일]] - [[오카다 쿄코]]: [[가면라이더 스트롱거]]에서 '[[전파인간 태클]]'로 이름을 날렸던 배우
* [[8월 15일]] - [[김영신]] : KBO 최초의 영구결번.
* [[8월 21일]] - [[이병린]]: 대한민국의 변호사
* [[8월 25일]] - [[김학근]]: 대한민국의 성악가
==== 9월 ====
* [[9월 2일]] - [[백광하]]: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 [[9월 5일]] - [[신태익]]: 제2대 법제처장
* [[9월 11일]] - [[야마구치 타케히사]]: [[일본]]의 [[배우]]
* [[9월 13일]] - [[함인섭]]: 초대 [[강원대학교]] 학장, 제6대 농림부 장관
* [[9월 15일]] - [[야로슬라프 부르그르]]: [[체코]]의 전 축구 선수
* [[9월 18일]] - [[서용찬]]: 전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장
* [[9월 19일]] - [[조원세]]: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9월 27일]] - [[클리프 버튼]]: [[메탈리카]]의 전 [[베이시스트]]
==== 10월 ====
* [[10월 7일]] - [[이순석]]: 대한민국의 공예가
* [[10월 10일]] - [[김기철]]: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 [[10월 14일]] - [[도쿄 본타]]: 일본의 가수, 만담가, 예능인
* [[10월 16일]] - [[석상옥]]: 제9대 교통부 장관
* [[10월 20일]] - [[박태준(작곡가)|박태준]]: 대한민국의 작곡가
* [[10월 21일]] - [[김기수]]: 제3대 국립국악원장
* [[10월 22일]] - [[예젠잉]]: 중공의 군인.
* [[10월 27일]] - [[홍승만]]: 대한민국의 변호사
==== 11월 ====
* [[11월 1일]] - [[서영춘]]: [[한국]]의 [[코미디언]]
* [[11월 3일]] - [[김정수(1960)|김정수]]: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11월 4일]] - [[김종철(1920)|김종철]]: 대한민국의 정치가
* [[11월 5일]] - [[진성일]]: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11월 6일]] - [[박노식]]: 대한민국의 지리학자
* [[11월 21일]] - [[현신규]]: 대한민국의 원로 임학자
* [[11월 26일]] - [[김영의]]: 학교법인 이화학당 5대 이사장
==== 12월 ====
* [[12월 1일]] - [[바비 레인]]: 1950년대 초~중반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의 전성기를 빛낸 쿼터백
* [[12월 2일]] - [[아르비드 퇴른]]: [[스웨덴]]의 전 축구 선수
* [[12월 3일]] - [[박길진]]: [[원광대학교]] 초대~4대 총장
* [[12월 5일]] - [[김기홍]]: 전 한양대부속병원장
* [[12월 8일]] - [[정구충]]: 대한민국의 원로 의학자
* [[12월 9일]] - [[윤국노]]: 협동화학 창업주, 정치가
* [[12월 24일]] - [[임한영]]: 대한민국의 원로 교육학자
* [[12월 29일]]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소련]]의 [[영화 감독]]
=== 가상인물 ===
* [[4월 3일]]: 털보 - [[핫라인 마이애미 2: 롱 넘버]]
* [[8월 3일]]: [[나카지마 이치로]], [[야구라 이치코]] - [[사혼곡 2: 사이렌]]
* [[11월 29일]]: 하즈키 이와오 - [[쉔무 시리즈]][* 이 날은 아들인 료의 18번째 생일날이다!]
* 일자불명: [[빅터 밴스]] - [[GTA 바이스 시티]]
== 데뷔 ==
=== 가수 ===
==== 한국 ====
* [[강진(가수)|강진]]
* [[김완선]]
* 도시아이들
* 김창남
* 박혜성
* [[백두산(밴드)|백두산]]
* [[김도균]]
* [[부활(밴드)|부활]]
* [[이승철]], [[김태원(음악인)|김태원]]
* 서울시스터즈
* [[방실이]]
* 서울패밀리
* [[시나위(밴드)|시나위]]
* [[임재범]]
* 유미리
* [[유열(가수)|유열]]
* 이미키
* [[이윤수]]
* 이정석
* [[조갑경]]
==== 해외 ====
* [[뉴 키즈 온 더 블록]]
* 더그 E. 프레쉬
* [[람라 람]]
* [[레프트핸디드]]
* [[바비 브라운]]
* [[베이비페이스]]
* [[비욘드]]
* 솔트 엔 페파
* [[신데렐라]]
* 에릭 B & 라킴
* [[첨바왐바]]
* 테슬라
* 투 라이브 크루
* 루더 캠벨
=== 예능인 ===
* 곽재문
* 김영선
* 김정빈
* 김지은
* 김혜란
* 김호남
* 김황우
* 노유정
* [[박승대]]
* 박현웅
* 서원섭
* 이숙녀
* 이현순
* 임인하
* 전형진
* 정우진
* 조문식
* 하상훈
* [[한정호]]
=== 만화계 ===
* 김옥초 - <비의 영상>
* [[아오야마 고쇼]] - <조금만 더 기다려줘>
* 오금택 - <용봉이>
* [[오세영(만화가)|오세영]] - <탈바가지>
* 유광남 - <짝짓기>
* [[이미라]] - <바람의 방향>
* [[이은혜]] - <가을소나타>
* 이정애 - <페인팅 버드>
* [[이토 준지]] - <토미에>
* [[타케우치 나오코]] - <LOVE CALL>
* [[홍은영]] - <은색의 대지>
=== 스포츠 ===
==== 야구 ====
* [[김동기]]
* [[박노준]]
* [[배리 본즈]]
* [[장채근]]
==== 축구 ====
* 유동관
* [[이영진(1963)|이영진]]
* [[이흥실]]
* [[차상광]]
* 함현기
==== 농구 ====
* 강정수
* [[김성욱(농구)|김성욱]]
* 네이트 맥밀란
* [[데니스 로드맨]]
* 래리 크리스트코비악
* 로이 타플리
* 론 하퍼
* [[마크 프라이스]]
* [[브래드 도허티]]
* 스캇 스카일스
* 아딜잔
* 오티스 스미스
* [[유재학]]
* [[임달식]]
* [[전창진]]
* [[정덕화]]
* 제프 호나섹
* 조니 뉴먼
* 조니 도킨스
* 척 퍼슨
* 케빈 덕워스
* [[한기범]]
==== 배구 ====
* [[이경석(배구)|이경석]]
* 이종경
* 이채언
* [[한장석]]
==== 씨름 ====
* 장지영
== 은퇴 ==
=== 스포츠 ===
* [[배대웅]]
* [[안준호]]
* 정태균
== 히트작 ==
=== 영화 ===
* 국산
* [[뽕]]
* [[변강쇠]]
* [[씨받이(한국영화)|씨받이]]
* [[여곡성]]
* [[이장호의 외인구단]]
* 접시꽃 당신
* 외계에서 온 우뢰매
* 수입
* [[미션]]
* [[플라이]]
* [[용형호제]]
* 해외
* [[영웅본색]]
* [[탑건]]
=== 드라마 ===
* 그대의 초상
* 여심
* 꾸러기
* 내 마음 별과 같이
* 노다지
* 임이여 임일레라
* 첫사랑
* 풀잎마다 사랑
* [[한지붕 세가족]]
=== 가요 ===
* 한국
* 강병철과 삼태기 - 함
* 건아들 - 금연
* 구창모 - 아픈만큼 성숙해지고, 방황
* 김범룡 - 겨울비는 내리고, 그 순간, 그대는 미운 사람
* 김승진 - 스잔, 핑도는 눈물
* 김연자 - [[아침의 나라에서]], 씨름의 노래(천하장사)
* 김완선 - 오늘 밤
* 김학래 - 해야 해야
* 김현식 - '''비처럼 음악처럼'''
* 꾸러기들 -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
* 나미 - 슬픈 인연, 보이네
* 남궁옥분 - 재회
* 높은음자리 - '''바다에 누워''', 나 그리고 별
* 다섯손가락 - 새벽기차, 풍선
* 민해경 - 사랑은 이제 그만, 내 마음 당신 곁으로
* 바다새 - [[바다새]]
* 방미 - 사랑도 추억도
* 백두산 - 어둠 속에서, 말할걸
* 벗님들 - 다 가기 전에
* 부활 - '''[[희야(노래)|희야]]'''
* 서울시스터즈 - 첫차
* 설운도 - 원점
* 시나위 - 크게 라디오를 켜고
* 유미리 - 젊음의 노트
* 윤수일 - 황홀한 고백
* 윤시내 - 흔들리는 마음
* 이광조 - 오늘 같은 밤
* 이문세 - '''난 아직 모르잖아요, 소녀''', 빗속에서, 휘파람
* 이미키 - 이상의 날개
* 이선희 - 갈바람, 괜찮아
* 이은하 -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 이재성 - 촛불잔치
* 임병수 - 아이스크림 사랑
* 전영록 - 그대 우나봐, 내 사랑 울보
* 정수라 - 아버지의 의자, 난 너에게
* 정태춘, 박은옥 - 사랑하는 이에게
* 조용필 - '''[[허공#s-8|허공]], [[킬리만자로의 표범]]''', [[조용필 8집|'''그 겨울의 찻집''', 바람이 전하는 말]]
* 주현미 - 울면서 후회하네
* 최성수 - 남남
* 최진희 -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 한마음 - 친구라 하네
* 현철 - 추억의 테헤란로, 내 마음 별과 같이
* 혜은이, 최문정, 송영은 - 피노키오
* 홍수철 - 철없던 사랑
* 해외
* Bananarama - Venus
* Bon Jovi - Livin’ On A Prayer
* Dionne Warwick - That’s What Friends Are For (w/Stevie Wonder, Elton John, Gladys Knight)
* Modern Talking - Brother Louie
* Pet Shop Boys - West End Girls
* Run–D.M.C. - Walk This Way (feat. Aerosmith)
* Whitney Houston - Saving All My Love For You, The Greatest Love of All
* '''장국영 - 당년정(當年情)'''
* 나카모리 아키나 - DESIRE
* 소년대 - 仮面舞踏会
=== 베스트셀러 ===
* 숲속의 방 - 강석경 저.
* 야훼의 밤 - 조성기 저.
=== 개그 코너 ===
* 아르바이트 백과 - 유머 일번지
* 변방의 북소리 - 유머 일번지
* 최후의 심판 - 일요일밤의 대행진
=== 애니메이션 ===
* KBS 더빙
* [[고깔모자 삼총사]]
* [[명탐정 번개]]
* [[모래요정 바람돌이]]
* [[미미의 컴퓨터 여행]]
* [[빨강머리 앤/애니메이션|빨강머리 앤]]
* 샛별공주
* MBC 더빙
* [[혹성로보 단가드A|날아라 스타에이스]]
* [[만화 이솝이야기|이솝우화]]
* 비디오 더빙
* 나가자 우주함대
* [[환몽전기 레다|레다의 비밀]]
* 해외
* 마이 리틀 포니 앤 프렌즈
* [[드래곤볼(애니메이션)|드래곤볼]]
* [[메종일각/애니메이션#s-1|메종일각]]
* [[세인트 세이야/애니메이션#s-1|세인트 세이야]]
== 출시 상품 ==
=== 자동차 ===
* 현대자동차
* 엑셀/프레스토 AMX
* 엑셀 스포티
* 스텔라 APEX
* 에어로버스(이코노미, 로우데크)
* 그랜저
* 포터(AH)
* 그레이스
* 마이티
* 기아산업-아시아자동차
* 베스타
* AM 버스(AM927/AM928/AM929)
* 대우자동차
* BS105
* 로얄살롱 슈퍼
* 르망
* 르망 레이서
* BH115H
=== 식음료 ===
* 농심
* 2월: 오징어제트
* 10월: 쌀바람, 신라면
* 롯데제과
* 1월: 브이왔다
* 3월: 월드콘, 수박맛바
* 4월: 롱런바, 톡톡
* 5월: 봉봉비스켓
* 동서식품
* 맥스웰 오리지날 캔커피/카페오레 캔커피
* 동서 녹차: 다운령, 수이향, 진설향
* 동서 홍차믹스, 엽록차
* 동서 결명자차, 옥수수차
* 하이쿨, 맥스쿨, 아바쿨, 빅스타
=== 생활용품 ===
* 애경산업
* 비놀리아비누/샴푸, 포미
== 최초 ==
=== 방송 프로그램 ===
* 명랑 소극장
* 아침의 광장
* 천하한마당
* 화요일에 만나요
== 유행어 ==
* 큰 정치
* 마음을 비웠다
* 허튼소리
* 피플 파워
* 맞다고요~ - 배영만
* 어쩔 수가 없어 - 조정현
* 밥 묵으쓰요? - 이하원
* 세상에나~ 세상에나~/나 좀 키워주쇼! - 이홍렬
* 냉장고를 녹이는 남자/까~불고 있어 - 박세민
* 아, 아, 아르바이트~ 오늘은 OOO이죠 - 김정식, 장두석
* 음하하하하~/자연스럽게~ 띠용~ - 이경규
* 안녕하십니~까?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자 김보화 인사드리겠습니~다 - 김보화
* 마님! - 이대근
*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 오혜성(최재성)
* 이상하게 생겼네~ 롯데 스크류바~ 삐~삐~ 꼬였네~ 들쑥날쑥해~ - [[스크류바]] CF
* 나 오늘~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네 눈이 더 무섭다 - 김완선
== 달력 ==
[include(틀:수요일로 시작하는 평년)]
[[분류:1986년]] |
1986년 FIFA 월드컵 | #redirect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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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멕시코 월드컵 | #redirect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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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월드 시리즈 | [[분류:월드 시리즈]]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ffffff><:>[[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1986_World_Series.gif|width=180]][br] '''[[월드 시리즈]] 일람''' ||
||<width=30%><:> [[1985년 월드 시리즈|1985년]][br][[캔자스시티 로열스]] ||<:> {{{+1 ←}}} ||<width=30%><#FFFF00><:> '''1986년[br][[뉴욕 메츠]]''' ||<:> {{{+1 →}}} ||<width=30%><:> [[1987년 월드 시리즈|1987년]][br][[미네소타 트윈스]] ||
||<-2><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002b73><tablebgcolor=#ffffff><#FFF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metspolice.com/1986.jpg|width=600]]}}} ||
||<-2><#ff5910><:> '''{{{#ffffff 1986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2><#002b73><:> [[뉴욕 메츠|'''{{{#ffffff 뉴욕 메츠}}}''']] ||
||<:> '''{{{#000000 MVP}}}''' || '''{{{#000000 레이 나이트}}}''' ||
||<tablealign=center><#ffffff><:>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1986_World_Series.gif|width=300]] ||
||<#ed174b><:> {{{#ffffff 1986 월드 시리즈 로고 }}} ||
[목차]
>'''So the winning run is at second base, with two outs three and two to Mookie Wilson. (...) little roller up along first...behind the bag! It gets through Buckner! Here's comes Knight, and the Mets win it!'''
>'''(2사에 결승주자가 2루, 3볼 투 스트라이크의 무키 윌슨. (...) 1루 쪽으로 흐르는 타구, 1루 베이스 뒤로 빠집니다! 버크너 다리 사이로 빠지는 타구입니다! 2루주자 나이트 홈으로 들어오면서 메츠가 승리합니다!!!)''' '''-[[빈 스컬리]]의 10회말 메츠 공격 때-'''[* 소위 '국어책 읽기'식의 중립성 중계로 유명한 빈스 스컬리옹의 감정이 실린 중계였다. 아울러 2년 후인 [[1988년 월드 시리즈]] 1차전의 커크 깁슨의 끝내기 홈런에서도 이런 감정실린 음성을 듣게된다.]
>'''If one picture is worth a thousand words, you have seen about a million words, but more than that, you have seen an absolutely bizarre finish to Game 6 of the 1986 World Series. The Mets are not only alive, they are well, and they will play the Red Sox in Game 7 tomorrow!.'''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면 여러분들은 지금 수만가지를 보셨을겁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1986년 월드 시리즈 6차전의 오묘한 끝내기를 보신 것이라는 점입니다. 보시다시피 메츠는 기사회생했을 뿐 아니라 내일 저녁 마지막 승부인 7차전을 치르게 되겠습니다!)'''
>'''-6차전의 극적인 끝내기로 메츠가 승리한 후 경기종료 때-'''
== 개요 ==
||<width=100%><-2><:><tablebordercolor=#ed174b><bgcolor=#ed174b> {{{+1 {{{#ffffff '''1986 MLB WORLD SERIES'''}}}}}} ||
||<width=500><height=150><#002b73> [[파일:mets_primary_insignia.png|width=120]] ||<width=500><height=150><#002244> [[파일:attachment/보스턴 레드삭스/Boscap.png|width=90]] ||
||<width=500><#ff5910> [[뉴욕 메츠|{{{#ffffff {{{+1 '''뉴욕 메츠'''}}}}}}]] ||<width=500><#bd3039> [[보스턴 레드삭스|{{{#ffffff {{{+1 '''보스턴 레드삭스'''}}}}}}]] ||
'''미국 동부 최강팀들 간 한판 대결'''[* 실제로 당시 뉴욕 메츠는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1위, 보스턴 레드삭스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1위였다.]
1986년 10월 18일부터 시작해 10월27일까지 7차전으로 막을 내린 [[뉴욕 메츠]]와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월드 시리즈]]경기. 1969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로 첫 우승을 노리는 메츠와 [[밤비노의 저주]]를 끊기위한 레드삭스간의 치열한 사투로 상징되었던 이 경기는 결국 레드삭스의 삽질과 메츠의 탄탄한 불펜진들의 역투로 메츠에 구단의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는 대회가 되었고. 레드삭스는 그저 내후년에 다시 한번을 외치며 피눈물을 쏟고 돌아가야하는 보스턴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악몽과 멘붕을 동시에 가져다 준 대회였다[* 이게 어느 정도였냐면 시리즈가 끝난 뒤 보스턴의 스포츠 라디오 대담프로에서 한 노년 팬이 " 내 생전에 레드삭스 월드 시리즈 우승을 본다는건 꿈에서나 가능할 일이까보이.."라고 자조하셨을 정도. ~~[[마라카낭의 비극]]의 미국판이라 [[카더라]].~~]. 보스턴은 [[2004 ALCS|18년후에야 밤비노의 저주를 끊어버린다.]]
== 양팀 사정 ==
=== 1986 [[뉴욕 메츠]] ===
1984년과 1985년에 디비전 2위를 차지했던 뉴욕 메츠는 선수단에 변화를 가져왔다.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좌완 밥 오헤다를 데려오고[* 공교롭게도 이때 메츠가 오헤다를 데려오면서 레드삭스에게 넘긴 선수 중 한 명이 후에 저술할 캘빈 슈랄디였다. ~~신의 한 수~~]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팀 터플을 트레이드 해 데려왔는데 이때 [[머니볼]]의 실제 주인공 '[[빌리 빈]]'이 메츠에서 트윈스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이미 [[대럴 스트로베리]], 키스 헤르난데즈, [[게리 카터]], 월리 백맨, 무키 윌슨, 그리고 레이 나이트로 이뤄진 베테랑 야수진에 최연소 [[사이 영 상]] 수상으로 이름을 알린 [[드와이트 구든]], 시드 페르난데스의 선발진, 로저 맥도웰과 마무리 제시 오로스코로 이어지는 화려한 불펜진을 구축했고, 1984년부터 팀을 맡아온 [[데이비 존슨]] 감독의 지도력도 정점에 올라 그야말로 월드 시리즈 우승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시즌을 시작하기에 앞서 데이비 존슨 감독은 스프링 트레이닝 때 선수들에게 NL 동부지구를 장악하겠다고 말했다.
1986년 시즌 첫 시작은 그저 그랬다. 2승 3패로 시즌을 시작한 메츠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홈경기를 시작으로 그해 4월 24일에 있었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경기까지 무려 11연승을 올려 13승 3패로 4월을 마감하면서 승승장구해 갔다. 이어 8월에는 11경기 중 8경기를 이기고 그 후로도 계속 경기를 이겨나가면서 팀 사상 최고의 기록인 108승 54패로 2위인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무려 21.5경기차로 발라버리는 괴력을 발휘했다[* 당시 디비전 꼴찌였던 [[반달족|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차가 '''자그만치 44경기차였다'''. ]. 참고로 더 소름끼치는 것은 이 해에 메츠에게 위닝시리즈를 기록한 유일한 팀이 바로 2위였던 필리스였다. --역시 메츠의 철천지 웬수답다.--
이렇게 정규시즌을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끝낸 메츠는 서부지구 우승팀이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내셔널리그 챔피언 결정전을 치르게 되고, 6차전에서 무려 연장 16회까지 가는 접전끝에 7:6으로 애스트로스를 제압하고 구단 사상 세번째 월드시리즈 진출을 이뤘다[* 첫번째는 1969년, 두번째는 1973년이었다.].
=== 1986 [[보스턴 레드삭스]] ===
[[보스턴 레드삭스]] 역시 만만치 않았다. [[웨이드 보그스]], 돈 베일러, 드와이트 에반스, [[짐 라이스]], 그리고 데이브 헨더슨이 포진한 방망이는 거의 공포 수준이었는데다가 브루스 허스트, '휘발유통(Oil Can)' 데니스 보이드, 그리고 ~~지금은 [[영 좋지 않은]] 이미지지만~~ 전대미문의 정규이닝 20K를 찍고 시즌 종료 후 사이영상은 물론 MVP까지 석권하는 에이스 '''[[로저 클레멘스]]'''가 버티고 있는 선발진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여기에다가 [[마이크 그린웰]]이라는 신인이 [[좌익수]] 자리에서 포텐을 터뜨리려 하고 있었다.
이러한 방망이와 선발진의 강력한 조화는 아메리칸 리그를 초토화 시키는데 충분했고 마침내 95승 66패로 2위이면서 철천지 원수인 [[뉴욕 양키스]]를 5.5경기차로 따돌리고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우승팀이었던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 챔피언 결정전을 가졌다.
ALCS에서 레드삭스는 오히려 에인절스에게 완전히 밀릴 뻔 했다. 4차전까지만 해도 1승 3패로 뒤지고 있던 레드삭스는 5차전, 9회 초까지 2:5로 뒤진 상황에서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에인절스의 팀 최초 월드 시리즈 진출을 내줄 판이었으나]], 그 순간 돈 베일러의 2점 홈런으로 1점 차까지 육박했고, 그리고 1점을 지키러 나온 에인절스의 구원투수 도니 무어[* 이날의 패배 이후 도니 무어는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에 걸리며 1988년 은퇴했고, 3년 뒤인 1989년 부부싸움 중 홧김에 아내를 총으로 쏜 뒤 자살했다. 1986년의 월드 시리즈에서 어메이징 메츠, 빌 버크너의 알까기로 지금까지 알려져있지만, 이 도니 무어의 자살사건도 이후 큰 이슈가 되었다.]를 상대로 데이브 헨더슨이 투아웃 후 극적인 역전 2점 홈런을 시전하며 연장 사투 끝에 7:6으로 역전승을 거뒀다. 그리고 남은 2게임까지 연승하며 4승3패로 기사회생,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참고로 [[https://en.wikipedia.org/wiki/1986_American_League_Championship_Series|이 때의 승패 순서]]는 [[2016년 월드시리즈|30년 뒤에 치러지는 한풀이 월드 시리즈에서 똑같이 재현된다.]], 심지어 5차전에서 1점차 승리인 것도 공통점이다.]
== 진행 ==
당시 1·2·6·7차전은 메츠의 홈구장인 셰이 스타디움에서, 3·4·5차전은 레드삭스의 홈구장인 [[펜웨이 파크]]에서 열렸다.
=== 1차전 - 치명적 실책 하나, 보스턴 기선제압. ===
||||||||||||||||||||||||||||||<#002244><:> {{{#e81828 10월 18일, 셰이 스타디움}}} ||
||<#dcdcdc> '''팀''' ||<#dcdcdc> '''1회''' ||<#dcdcdc> '''2회''' ||<#dcdcdc> '''3회''' ||<#dcdcdc> '''4회''' ||<#dcdcdc> '''5회''' ||<#dcdcdc> '''6회''' ||<#dcdcdc> '''7회''' ||<#dcdcdc> '''8회''' ||<#dcdcdc> '''9회''' ||<#dcdcdc> '''R''' ||<#dcdcdc> '''H''' ||<#dcdcdc> '''E''' ||
||<#dcdcdc> '''[[보스턴 레드삭스]]''' || 0 || 0 || 0 || 0 || 0 || 0 || 1 || 0 || 0 ||<#dcdcdc> '''1''' || 5 || 0 ||
||<#dcdcdc> [[뉴욕 메츠]] || 0 || 0 || 0 || 0 || 0 || 0 || 0 || 0 || 0 ||<#dcdcdc> '''0''' || 4 || 1 ||
1차전 선발인 메츠의 론 달링과 레드삭스의 브루스 허스트는 6회말까지 용호상박의 호투를 보이면서 0:0의 팽팽한 승부를 이어갔다. 그러나 7회초 1사2루 상황에서 리치 겟맨의 평범한 2루수앞 땅볼을 메츠의 2루수 팀 터플이 고대로 가랑이 사이로 알을 까면서... 이날 경기의 유일한 득점이 이렇게 나오고 만다. 삭스의 허스트가 8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 캘빈 슈랄디가 1이닝 세이브를 따냈고, 메츠의 선발 론 달링은 7이닝 비자책 1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고 만다. 나중에 나온 말이지만, 이 경기가 어찌보면 6차전의 프리퀄 격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 2차전 - 불붙은 보스턴 타선, 닥터를 잠재우다. ===
||||||||||||||||||||||||||||||<#002244><:> {{{#e81828 10월 19일, 셰이 스타디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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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에서는 양 팀의 실질적인 에이스였던 [[드와이트 구든]]과 [[로저 클레멘스]]가 출격했지만 [[버틸 수가 없다]]! 둘 다 5회를 넘기지 못하는 멘붕경기를 펼친 가운데 장단 18안타를 폭발시킨 보스턴이 구든에게 5이닝 6실점 패전을 안기면서 9대 3으로 승리를 가져가면서 2승이라는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 속에 여유있게 홈으로 향하게 됐다.
=== 3차전 - 다익스트라의 원맨쇼. 메츠 반격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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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에서 열린 2연전에서 투수들이 무너지며 연패를 한 메츠였으나, 3차전에서는 선발투수 밥 오헤다의 7이닝 1실점 호투와 1회초에 터진 레니 다익스트라의 선두타자 홈런을 기점으로 하여 보스턴 선발 데니스 보이드를 장단 5안타 4득점으로 두들기며 일찌감치 경기를 가져오는데 성공한다. 다익스트라는 이날 5타수 4안타 1홈런 2득점으로 훨훨 날면서 보스턴 투수들을 앞장서서 두들겨패는데 일조한다.
=== 4차전 - 론 달링, 메츠를 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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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1승2패로 몰려있던 메츠는 선발투수 론 달링의 7이닝 무실점 역투와 해결사 안방마님 개리 카터의 2홈런 3타점 원맨쇼에 힘입어 시리즈를 원점으로 돌리는데 성공한다. 보스턴의 선발 알 니퍼는 6이닝 3실점으로 나름 잘 버텨줬으나 타선 지원의 미비로 패전 투수가 된다.
=== 5차전 - 괴력의 허스트, 130구 완투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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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dcdc> [[뉴욕 메츠]] || 0 || 0 || 0 || 0 || 0 || 0 || 0 || 1 || 1 ||<#dcdcdc> '''2''' || 10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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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팀이 상대팀 구장에서 2승을 주고 받은 가운데, 5차전에서 메츠는 [[드와이트 구든]]을 내세워 3승 2패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 했다. 당시 NL 사이영을 거의 확정하다시피 한 구든은 그러나 많은 이닝 소화로 무뎌져 있었고, 오히려 레드삭스의 브루스 허스트가 9이닝 2실점 130구 완투승을 거두면서 레드삭스가 4:2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제 메츠는 시리즈 전적 2승3패의, 한 판만 더 지면 준우승하는 기로에 선 채로 뉴욕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보스턴은 이제 지긋지긋한 [[밤비노의 저주]]를 끊기까지 단 1승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 6차전 - 보스턴의 우승을 좌절시킨 통한의 실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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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6차전. 보스턴은 [[로저 클레멘스]]를, 뉴욕 메츠는 밥 오헤다를 내세워 사투를 벌였다.
1회초와 2회초, 레드삭스가 득점해 2:0으로 앞섰으나 5회말 메츠의 반격이 성공, 2:2 동점을 이뤘다. 그러나 레드삭스는 7회초 레이 나이트의 실책으로 1점을 더 추가해 달아났지만 8회말에 메츠가 동점을 이뤄서 경기를 3:3 원점으로 돌리고 연장까지 경기를 끄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10회초 때 레드삭스는 데이브 헨더슨의 좌월 솔로홈런으로 4:3으로 역전하고[* 이때 메츠의 투수가 릭 아길레라였는데 훗날 프랭크 바이올라 트레이드 때 [[미네소타 트윈스]]로 트레이드 되어 트윈스의 간판 마무리 투수로 성장하게 된다.] [[웨이드 보그스]]의 2루타로 만든 2사 2루의 상황에서 주장이었던 마티 배럿의 적시타로 또 한 점을 더 추가해서 5:3으로 이닝을 마감한다. --그리고 당시 월드 시리즈 주관방송사였던 [[NBC(미국 방송)|NBC]]가 마티 배럿을 경기 MVP로 선정하고, [[시카고 컵스|최장기간 월드 시리즈를]] [[시카고 화이트삭스|우승 못한 팀]]을 자막으로 보여주는 등 설레발을 치기 시작한다.--
10회말 반격에 나선 메츠는 선두타자였던 월리 백맨과 다음 타자였던 키스 에르난데스가 나란히 플라이 아웃으로 2사에 주자가 없는 상황이 되자 레드삭스는 드디어 [[밤비노의 저주]][[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를 끊는가 싶었다]]. 그러나 [[게리 카터]]가 안타를 치고 나간 2사 1루의 상황에서 대타 케빈 미첼마저 안타로 2사 1·2루를 만들더니 다음 타자 레이 나이트가 우중간에 떨어지는 적시타를 쳐 한 점을 추가하여 5:4로 한 점차 승부를 만들어냈다.
이에 당황한 레드삭스는 그때까지 마운드에서 버티던--아니 장작을 쌓던-- 캘빈 슈랄디를 강판하고 전임 마무리였던 밥 스탠리를 등판시켜 급한 불을 끄려 했다. 그러나 스탠리는 다음 타자 무키 윌슨 타석 때 2사 1·3루 볼카운트 2-2 제7구 상황에서 폭투를 시전하면서 5:5 동점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만들어버렸고[* 이것은 포수 리치 갯맨의 잘못도 한몫 했다. 완전히 빠진 공도 아니었고 블로킹만 제대로 해줬다면 주자가 득점할 필요가 없는 공이었다. 글러브만 갖다 대다 놓친 공이니 사실상 [[포일(야구)|포일]] 수준.], 무키 윌슨의 평범한 땅볼을 [[빌 버크너]]가 잘 포구하겠지 싶었으나 '''[[알까기|뒤로 빠뜨리면서 포구에 실패]]''', 타구가 우익선상으로 흘러가는 것과 동시에 2루에 있던 레이 나이트가 홈으로 쇄도하여 경기를 뒤집어버렸다.
'''문제의 그 장면. 1분 10초부터 보자.'''
[youtube(l3UXgwqlDAo)]
[youtube(NObcKmgW5fA)]
한편, 이날 한 메츠 팬이 '''낙하산'''을 타고 경기장에 난입하는 소동도 있었다. 다만 평범한 일반인은 아니였고, 마이클 세르지오(Michael Sergio)라는 단역 배우였다.
=== 7차전 - Again 1969! 메츠, 또다시 기적을 완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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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벌어진 어처구니 없는 사태에 레드삭스 선수단의 분위기는 [[멘붕]]으로 치달았다.[* 아닌게 아니라 당시 중계 화면을 보면 레드삭스는 이미 덕아웃 뒷편에 샴페인까지 다 준비해놓고 우승을 만끽할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설레발]]은 죄악~~] 더구나 최고의 선발 클레멘스를 사용해버린 메츠는 5차전 완투를 거둔 브루스 허스트를 투입하는 초강수를 두며 7차전을 맞이했다. 한편 메츠는 4차전 호투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론 달링을 선발로 내세웠다.
우천으로 하루 쉬어간 7차전, 경기 초반 분위기는 이날도 보스턴이 잡았다. 보스턴은 2회초 메츠의 론 달링을 상대로 드와이트 에반스와 리치 겟맨의 백투백 홈런이 터지면서 먼저 3점을 앞서나갔다. [* 겟맨의 홈런은 메츠의 우익수 스트로베리가 담장 너머에서 글러브 안에 잡아냈으나 젖혀진 손목의 반동으로 인해 글러브에서 빠졌다. 이닝이 종료될때 방송사에서 클로즈업한 스트로베리의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은 덤.] 그러나 메츠의 데이비 존슨 감독은 연속홈런을 맞으며 불안감을 노출한 선발투수 론 달링을 4회 2사에서 4일전이었던 5차전에 구든을 구원하여 4이닝을 투구한 3선발 [[시드 페르난데스]]를 올리는 초강수를 두었고, 이 예상은 적중하여 페르난데스는 레드삭스의 타선을 6회까지 무피안타 1볼넷으로 틀어막는데 성공한다.
그 사이에 메츠 타선은 5회까지 허스트에게 또 꽁꽁 묶였으나, 앞선 5차전에서 무려 130구를 던진 허스트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허스트의 힘이 빠진 6회말 1사 만루 찬스를 얻은 메츠는 키스 에르난데스의 2타점 적시타와 게리 카터의 1타점 적시타[* 1루 주자 에르난데스가 타구판단 미스로 2루에서 포스아웃당하면서 공식기록은 1타점 땅볼]로 3:3 동점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결국 허스트는 6회말 종료 후 마운드를 내려가게 되는데 다음 투수가 누군고하니 바로 --메츠 스파이--캘빈 슈랄디.
아니나다를까 슈랄디는 겨우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아내는동안 홈런[* 레이 나이트의 홈런. 이 홈런은 시리즈 최초의 홈팀선수가 홈그라운드에서 친 홈런이 된다.]-안타-폭투-적시타-희생번트로 메츠에게 점수를 조공하면서 그대로 강판당한다. --그러니까 본인이 잡은 아웃카운트 하나조차도 희생번트였다는 말-- 뒤이어 올라온 조 삼비토를 상대로도 키스 에르난데스가 희생플라이를 치면서 보스턴의 3점 리드는 이제 메츠의 3점 리드로 뒤바뀌고 만다.
하지만 보스턴도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보스턴은 7회초 메츠의 로저 맥도웰[* 정규시즌 14승9패 22세이브 3.02]을 상대로 안타-안타-2타점 2루타로 6:5 한점차로 따라붙었으나 뒤이어 올라온 메츠의 마무리 제시 오로스코[* 정규시즌 8승6패 21세이브 2.33]를 상대로 6-7-8번 타순이 무기력하게 물러나면서 추격 동력을 상실하고 만다. 결국 8회초에 올라온 알 니퍼를 상대로 대릴 스트로베리의 1점홈런, 그리고 1사 1,2루 찬스에서 투수(!) 제시 오로스코가 내야수들을 살짝 비켜가는 1타점 적시타를 때리면서 메츠가 마침내 보스턴의 샴페인들을 모두 깨뜨려버리는데 성공한다. 결국 보스턴은 정상적으로 6차전에서 끝났다면 당연히 시리즈 MVP를 받았을 마티 배럿[* 6차전까지 타율 .418]이 오히려 9회 2사에서 오로스코에게 삼진당하며 또 다시 [[밤비노의 저주]]아래 시달리게 되고 만다. 메츠의 통산 2번째 우승이었다. 월드 시리즈 MVP는 6차전 결승득점 - 7차전 역전 솔로홈런을 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끈 레이 나이트[* .391 1홈런 5타점]가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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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나마라 보스턴 감독의 패착 ==
예리한 몇몇 스포츠 기자들과 전문가들은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을 버크너의 실책보다 '''당시 레드삭스의 감독이던 [[존 맥나마라]]의 작전 미숙'''에 있다고 보고있다. 특히 6차전에서 보인 그의 상식이하의 선수기용은 너도나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는데 왜 그런지는 대략 이렇다.
* 호투하고 있던 [[로저 클레멘스]]를 강판시킨 것.
6차전에서 보스턴은 로저 클레멘스를 선발로 내세웠다. 이미 2차전에서 5회를 넘기지 못한 탓에 체력이 많이 비축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언제든지 완투가 가능했고 본인 역시 완투를 희망했다. 그러나 맥나마라 감독은 7회를 마친 클레멘스가 손가락에 물집이 생겨서 더 던질수 없어 강판시켜달라고 자청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클레멘스는 그런 언급은 한 적도 없거니와 투수가 손가락에 물집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고 그 정도로는 교체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증언했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하지만 사실, 이건 반론이 가능한 것이 클레멘스의 7회초 종료시의 투구수는 무려 140개였다. 아무리 마운드 운용과 라루사이즘이 정리되지 않은 1980년대의 야구라지만 이정도면 마운드에서 버티는 것이 다행이다. 맥나마라는 모험과 정석 대신 정석을 택했던 것이다.
* 검증되지 않은 신인 대타
뭐 클레멘스가 7회에 강판된 것은 그럭저럭 넘어간다 치자면 그 이후는 더 아리송하다. 클레멘스의 타순[* 상기했듯 6차전은 메츠의 홈구장 셰이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내셔널리그 구장에서 열렸으니 당연히 투수도 타석에 들어서야 한다.]에서 1사 2루 찬스가 나오자 맥나마라는 대타를 기용하게 되는데, 대타로 신인이던 [[마이크 그린웰]]이 타석에 들어온다.[* 훗날 보스턴의 핵심 타선의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되지만 이땐 아직 신인이었다. 그리고 훗날 그는 [[한신 타이거스|열도의 호랑이굴]]에서 [[먹튀|반어법으로 역사에 큰 이름을 남긴다]].]. 이게 더 의아했던 이유는 그린웰이 시리즈 내내 '''무안타'''(...)행진 중이었고, 벤치에는 '''베테랑 강타자 [[돈 베일러]]가 대기'''하고 있었다는 점[* 베일러는 당시 불혹의 나이+소녀어깨라는 약점 때문에 시즌 내내 [[지명타자]]로만 출장했는데, 6차전이 메츠의 홈경기여서 선발 라인업에서 빠져 있었다.][* 이전 문서에서는 베일러의 타격감이 절정이라고 설명되어있었는데, 베일러의 1986년 월드시리즈 성적은 .182에 1타점 뿐이었다. 아마 [[짐 라이스]]와 헷갈린 모양.] 때문이다. 3:2, 단 1점 차로 앞선 1사 주자 2루 상황에서 승부에 쐐기를 박을 클러치 히트의 가능성이 높고 그만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 아닌, 큰경기 경험 없는 신인을 대타로 기용했다는 것은 확실히 정상적인 선수기용으로 보기가 어려웠다. ~~승부조작 의심 안 받은 게 다행이다~~ 결국 그린웰이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맥도웰의 싱커 3개에 시원하게 3구삼진을 당하며 보스턴은 절호의 기회를 놓쳤고, 8회 공격에서 메츠가 동점을 만들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리는 계기를 마련한 꼴이 됐다.
* 캘빈 슈랄디
맥나마라 감독은 클레멘스를 끌어내린 8회부터 마무리 캘빈 슈랄디에게 마운드를 맡겼다. 문제는 이 분이 '기복이 심했다는 점 + [[새가슴|소심남]]'이었다는 것. 잘할 때와 못할 때의 차이가 눈에 띄게 뚜렷했던데다 이상하게도 불안해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서 마무리로는 미덥지 못한 인상을 많이 보여왔던터라 보스턴 팬들을 자주 롤러코스터를 태웠다. 이 해의 월드 시리즈 영상에서 슈랄디 등판이후 유독 선수들이나 코칭스탭이 많이 올라가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비록 8회에 동점을 허용하긴 했어도 이후 메츠 타선을 잘 틀어막은 뒤 2점을 앞선 10회말 첫 두 타자를 잘 처리해 믿음직스런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지만,. 그 다음 내리 세 타자 연속안타를 허용, 5:4로 한 점차 추격까지 허용하고 난 후에 주자 둘을 두고--장작을 쌓아놓고-- 강판되었다. 이런 패턴이 다음 날인 7차전에서도 이어졌고 결국 보스턴은 패했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 맥나마라 감독은 희한할 정도로 슈랄디에게 집착했는데 마무리로서의 확실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 그를 시리즈 내내 기용한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처사였다. 물론 정규시즌 마무리 밥 스탠리도 마무리라고는 볼 수 없는 스탯(ERA 4.37 16세이브 5블론)이었고 이 시리즈 동안도 실점만 없었지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투수가 이정도로 마운드에서 벌벌 떨면서 경기를 망치는데도 끝까지 밀고 나간것은 누가봐도 감독의 옹고집이었다.
* 배려라고 쓰고 망신이라 읽는다
레드삭스는 이번 시리즈에서 경기 후반이 되면 1루수로 데이브 스테이플턴을 계속 기용해 왔다. 버크너의 공격력은 필요했으나, 버크너의 잔부상으로 인해 후반에 수비가 중요시되는 시기에는 수비불안이 있는 버크너보다는 수비가 좋은 스테이플턴으로 수비강화를 해 왔던것. 그런데 갑자기 이 중요한 경기에서 맥나마라는 스테이플턴을 놔두고 빌 버크너를 그대로 기용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버크너는 '''도저히 제대로 된 수비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는 점'''이다. 당시 레드삭스 팀 트레이너의 증언에 의하면 버크너의 상태는 도저히 경기를 뛰거나 수비를 할 만한 상태가 전혀 아니었다는 것이다. 허벅지에서부터 발목까지 정상이 아니었고, 발목은 아예 맛이 가버려 제대로 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 여담 ==
* 이 해 1월에 레드삭스가 아마추어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투수를 뽑았었는데 그 투수 이름은 '''[[커트 실링]]'''이었다. 다만 실링은 이런저런 트레이드로 타팀에서 고생하다가 2004년에야 빨간 양말을 신을 수 있었다. ~~멀쩡한 양말에 빨간 약을 발랐다는 얘기도 있지만 아무튼 뭐...~~
* 메츠의 베테랑 중 한 명이었던 1루수 키스 에르난데스는 사실 2년 연속 월드 시리즈 진출을 경험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본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이었다가 85년 시즌 때 메츠로 트레이드 되었기 때문. 이때 얼마나 원한에 서렸는지 [[오컬트]]에 관련된 서적들을 죄다 구했고 심지어 저주에 관한 주문까지 익혔다고 증언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것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1985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당시 카디널스의 붙박이 1번타자였던 빈스 콜맨이 부상으로 월드시리즈 출전이 좌절되었고 [[1985년 월드 시리즈|그 결과는]]....
* NLCS 메츠 대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시리즈에서 1986년 그야말로 인생투를 보여준 '스플리터의 장인' [[마이크 스캇]]에게 두 번이나 탈탈 털렸다.[* 스캇은 그가 등판한 두 경기 모두 완투를 하면서 단 1실점(1차전 완봉, 4차전 1실점)을 하는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비록 애스트로스는 메츠에게 시리즈 2승4패로 패퇴했으나 스캇은 이 놀라운 퍼포먼스로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그리고 이 해의 놀라운 성적으로 스캇은 [[사이 영 상]]까지 받게 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마이크 스캇은 1979년부터 1982년까지 메츠 소속의 선수였다.
* 이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는 [[https://en.wikipedia.org/wiki/1986_American_League_Championship_Series|1986 ALCS]]에서 자신에게 꺾인 에인절스와 상당히 비슷하게 월드시리즈에서 탈락했다. 특히 역전을 당하기 시작한 경기에서 1점차로 역전패를 당한 것과 그 뒤에 원흉이 된 사람이 고초를 겪은 건 덤[* 단 에인절스는 3승 1패에서 5차전 역전패, 6-7차전 완패로 간 반면, 보스턴은 3승 2패에서 6차전 역전패, 7차전 완패로 갔다.][* 빌 버크너는 상당히 많이 까였고, 도니 무어는 후유증으로 은퇴하고, 3년 뒤에 자살했다.]
* 월드시리즈가 시작되기 전 메츠는 'Let's go Mets'라는 뮤비를 찍었다. 당시에 유명한 인사들이 카메오 형식으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유튜브를 통해 볼 것. [[https://www.youtube.com/watch?v=Ymixm6PtVBA|동영상]]
* 월드시리즈 7차전이 있던 때가 공교롭게도 [[뉴욕 자이언츠]]와 [[워싱턴 레드스킨스]]와의 [[NFL]] 정규시즌 경기가 있었던 날이기도 했다. 당시 관중들은 휴대용 TV나 라디오를 준비해 가서 경기를 듣거나 시청했는데 메츠의 우승이 확실시 되자 뉴저지 러더퍼드 자이언츠 스타디움이 환호성으로 가득찼다. 당시 자이언츠 선수들은 처음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벙쪄있다가 메츠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전광판에 '경축, 뉴욕 메츠 1986년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메시지를 전광판에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뉴욕 자이언츠]] 역시 그 해에 구단 사상 첫 [[슈퍼보울]]에 진출, 우승했다.
* 메츠가 두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만끽하고 있는 동안 레드삭스 덕아웃에서 눈물지으며 울고있던 [[웨이드 보그스]]의 안쓰러운 모습을 보여줬는데, [[1996 월드 시리즈|그로부터 10년 뒤]], 그는 [[뉴욕 양키스]]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맛보는 감격을 얻었고, 너무나 감격에 겨웠던 나머지 뉴욕시경 기마경관의 말에 올라 경기장을 다니며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덕분에 한때 보스턴 팬들에게 제발로 양키스를 간 것도 모자라 양키스에서 월시 우승했다고 신나게 난리를 떤 최악의 역적으로 찍혀버렸지만(...)
* 운명의 6차전이 시작되기 전 셰이 스타디엄의 전광판에 '축, 보스턴 레드삭스 1986년 월드시리즈 우승'이란 오타가 등장했는데 결과는... ~~메이저리그판 [[펠레의 저주]]~~. 이와 관련된 또다른 일화가 있는데, 당시 레드삭스 감독이었던 맥나마라 감독의 증언에 따르면 보스턴의 승리가 확정적인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을 때 누가 뒤에서 자신에게 백허그를 시전해서 뒤돌아보니 투수였던 '휘발유 통' 데니스 보이드였다고. 그래서 "지금 시합중인데 무슨 짓이야, 자리로 돌아가!"라며 나무랐다는 것.
* 6차전이 끝나고 난 뒤 경기를 취재했던 ABC-TV 스포츠 기자였던 딕 섑(Dick Schapp)의 증언에 따르면 경기장에서 나오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공교롭게도 당시 '''내셔널리그''' 회장이던 바트 지어마티(Bart Giamatti) 회장과 동승하게 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지어마티 이 양반이 모태 [[보스턴 레드삭스]]팬이었다는 것. 그리고는 '''"맥나마라 이 우라질 X새X... 버크너를 계속 기용하다니 뭔 짓거리야!"'''라고 울분을 토하더라고. 다시 말하지만 '''내셔널리그''' 회장의 발언이다. ~~차라리 아메리칸 리그 회장을 맡지~~ 여담으로 3년 뒤인 1989년 지어마티는 제7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리그]] 커미셔너로 취임했지만[* 이해 [[피트 로즈]]의 도박 사건이 터졌다. 결국 로즈는 [[영구제명]] 크리.] 취임한지 1년도 안되어 그해 9월 1일 급작스럽게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그해 [[1989년 월드 시리즈|월드 시리즈]] 1차전 시구는 그의 아들이었던 마커스 지어마티가 맡았다.]
* 위에 나오 듯 6차전 1회초 때 어느 메츠 팬이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셰이 스타디움 그라운드로 내려오는 소란이 있었다.
* 그리고 [[2015년 월드 시리즈|29년 뒤의 월드 시리즈]]의 4차전과 5차전에서 [[뉴욕 메츠]]는 빌 버크너의 알까기에 대한 부메랑을 제대로 맞고 만다. 우승을 내준 것은 덤. 물론 [[캔자스시티 로열스|상대]]는 다르다.
* 훗날 2020년에 [[뉴욕 메츠]]의 새 구단주가 된 스티브 코헨은 누가 메츠 열혈 팬 출신 구단주 아니랄까, 6차전 당시 빌 버크너가 알까기를 했던 그 공을 41만 8000 달러에 매입해서 [[시티 필드]] 내의 구단 박물관에 전시해두는 데에 성공했다.
== 과연 [[빌 버크너]]는 원흉이었는가? ==
월드 시리즈가 끝난 후 많은 보스턴 일간지, 신문, 그리고 언론들은 보스턴의 충격적인 패배의 원인을 6차전에서 일어난 버크너의 실책으로 뽑았다. 또 실제로 보스턴 시민들의 버크너를 향한 증오는 엄청났다. 어느 정도였냐면 버크너가 보스턴의 한 바에 갔을 때 그를 알아본 한 사람이 버크너 쪽으로 과일 하나를 굴리고는 "그거 한번 잡아보쇼!"라고 빈정거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게다가 집 밖에다 쓰레기 봉지를 투척하기도 하고 거의 중범죄자 취급하는게 예사였을 지경이었다. 지역 언론들은 버크너의 실책을 보스턴 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플레이로 꼽아도 무리가 아니라고 할 만큼 버크너의 평가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보스턴은 87시즌 도중 버크너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트레이드 해 버리게 된다.
[[파일:external/espn.go.com/pg2_a_bucknercubs_400.jpg]]
그가 경기 당시 글러브 안에 배팅장갑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하필이면 [[시카고 컵스]] 장갑. [* 버크너는 이전에 시카고 컵스의 1루수였다.]이것을 보고 '''이중 저주''', 그러니까 [[밤비노의 저주]]와 [[시카고 컵스#s-2.2|염소의 저주]]가 더해져 버크너가 알까기를 했다는 분석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었다.
그러나 훗날 알려진 바에 따르면 버크너의 실책은 사실 비난받을 만한 것의 성질이 아니었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메츠의 코치였던 버드 해럴슨에 따르면 만약 버크너가 제대로 수비를 했었어도 무키 윌슨은 세이프 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고 한다. 무키 윌슨이 워낙에 준족이었던데다 베이스 커버에 들어갔어야 할 투수 밥 스탠리마저도 느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윌슨도 증언하기를 자신이 세이프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고 한다. 실제로 윌슨은 타석 때 [[용규놀이]]를 하며 풀카운트 9구까지 끌고가 어떻게든 1루로 살아나가려고 했다.[* 단 포구를 못한 것은 명백히 중대한 실수가 맞다. 포구만 했으면 1루에서 타자 주자가 세이프가 되더라도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그 다음 타자와의 승부가 어떤 결과를 낳을 지는 알 수 없으므로 포구만 해서 득점을 막기라도 했어야 했다.]
다시 말하면 패배의 원인을 특정 인물의 실책에서 찾으려는 것 자체가 옳지 못하다는 얘기다. 이 항목에 첨부된 동영상에서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버크너가 정상적으로 포구를 했었어도 무키 윌슨이 세이프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베이스 커버를 들어갔어야 할 밥 스탠리가 타구가 버크너 바로 앞까지 굴러간 상황에서도 1루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설사 버크너가 본인이 처리하겠다고 해도 준족을 자랑하는 윌슨을 단독으로 처리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여기에 중요한 건 버크너 본인이 8회쯤 되던 시점에서 맥나마라 감독에게 다른 선수로 교체할 생각이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직접 증언했다.
사실, 보스턴 팬들이 이 에러는 둘째치더라도 이 해 월드 시리즈에서의 빌 버크너를 욕하는건 그럴 수 있다. 주전 1루수가 시리즈 설적 .182 1타점에 그쳤기 때문이다. 뭐 여기서 결정적 실책까지 더했으니...
이후 버크너는 현역 은퇴 후 [[아이다호 주]]로 이주하여 부동산과 자동차 딜러 사업을 벌였다고 한다. 그가 투자한 부동산 택지 중 한 곳의 이름을 '[[펜웨이 파크]]'로 지었을 정도로 레드삭스에 대한 정은 여전히 남아있는 듯 하다. 그리고 2008년 레드삭스의 2007 월드시리즈 우승 기념 홈 개막전에 초청되어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레드삭스 팬들과 보스턴 지역 언론을 용서하겠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허나 그 후 루이소체 치매에 걸려 몇 년을 앓다가 결국 2019년 5월 27일 타계했다[* 향년 69세.]. 레드삭스의 구단주 존 헨리는 조의를 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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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한국시리즈 | [include(틀:역대 KBO 한국시리즈 목록)]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 bordercolor=#151b54><bgcolor=#ffffff,#191919> [[파일:external/41.media.tumblr.com/tumblr_o4a4woaUar1sqk8veo6_r1_400.png|width=200]][br] '''{{{#151b54,#abb1ea 역대}}} [[KBO 한국시리즈|{{{#151b54,#abb1ea KBO 한국시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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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터''': '''중견수 이동! 중견수 이동! 중견수 잡아냈습니다! 경기 끝났습니다. 경기 끝났습니다. 중견수 프라이 아웃! 해태 타이거즈, 86 프로야구, 우승! 해태 타이거즈, 86 프로야구 우승의 순간. 83년도에 이어서 86년도에, 3년만에 다시 우승을 쟁취하는 해태 타이거즙니다.'''
> ----
> MBC [[임주완]] 캐스터 우승콜
[목차]
== 개요 ==
||<tablewidth=100%><-2><:><tablebordercolor=#edd36c><bgcolor=#00143f,#0b1966> {{{+2 {{{#edd36c '''1986'''}}} {{{#edd36c '''프로야구'''}}} {{{#ffffff '''한국시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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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해태 왕조의 본격적인 서막을 알린 시리즈이자, 삼성의 슬픈 준우승 전설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한국시리즈. 승부 자체도 매 경기 접전 양상으로 벌어졌고, 두 번의 연장전과 5경기 모두 3점차 이내의 치열한 접전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1980년대의 거칠었던 관중 문화를 상징하는 사건들이 더 기억에 남으면서 시리즈의 치열했던 접전이 모두 묻혀버린 비운의 시리즈.
[[해태 타이거즈]]는 이 우승으로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팀이 되었고, 이 때를 기점으로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한다.
== 시리즈 전 상황 ==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1986년 1월에 열린 KBO 이사회였다.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사라져버리자, 김이 샐대로 샌 KBO는 어떻게든 한국시리즈를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안을 제시했고, 그 첫 시행이 바로 1986년이었다. 사실 1984년의 져주기 파동으로 이미 전체 승률 1위에게 한국시리즈 직행권을 주기로 의결한 바 있지만, 1985년에는 삼성이 그 대상인지라 한국시리즈가 사라져서, 어떻게든 한국시리즈를 만들려고 도입한 제도가 바로 아래와 같은 시스템이었다.
* 전기 1,2위와 후기 1,2위 팀에게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부여.
* 한 팀이 전후기 모두 2위 안에 들면 한국시리즈 직행
* 한 팀이 전후기 중 한 번만 2위 안에 들면 플레이오프 진출
* 포스트시즌 진출 팀이 네 팀이면 전기 1위와 후기 2위, 전기 2위와 후기 1위 간의 5전 3선승 플레이오프 후 한국시리즈 실시.
문제는 1986년에 전기리그 1위는 삼성, 후기리그 1위는 OB가 차지했지만, 전기리그 2위와 후기리그 2위는 해태가 차지했다는 점이었다. 정확히는 후기는 두 팀이 공동 1위였는데, 당시에는 공동 1위가 나오는 경우는 3전 2선승제로 리그 우승 팀을 가린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래서 두 팀은 포스트시즌 대진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우승결정전을 치렀고 여기서 해태가 져서 2위였다. 그래서 해태는 플레이오프를 거치지 않고, 바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삼성과 OB는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다. 그런데 플레이오프는 정말 치열한 접전이 되면서 5차전 끝에 간신히 삼성의 승리로 끝난다. OB 입장에서는 2승 1패로 앞선 상황을 못 끝낸 것이 천추의 한이 되었지만, 어쨌든 기다리던 해태는 정말 여유가 넘치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되고 말았다.
제도의 허점으로 해태가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긴 했지만 전후기 통합 승차가 불과 1.5경기이고 당시 해태와 삼성은 비슷한 투타의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방어율은 2.86대 2.95로 해태가 약간 앞섰지만 팀타율에서는 .274의 삼성이 .259의 해태보다 앞섰고 홈런수에서는 해태가 99개를 치며 74개의 삼성을 압도하는 장타력을 보여주었다. 길게 얘기할 것 없이 페넌트레이스에서 삼성은 득/실이 475/369, 해태는 474/372로 정말 용호상박의 전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팀간전적에서는 해태가 삼성에 11승1무6패의 우세를 보였다는 점, 입단 2년째에 방어율 0점대를 기록하며 압도적 구위를 자랑했던 [[선동열]]의 존재와 삼성은 플레이오프를 거쳐 체력소모를 했기 때문에 시작부터 해태의 우세가 점쳐졌다.
== 엔트리 ==
=== [[해태 타이거즈]] ===
||<-3><bgcolor=#f01e23> '''{{{#ffffff 해태 타이거즈 1986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colbgcolor=#000000> '''{{{#ffffff 감독}}}''' || 1명 || [[김응용]] ||
|| '''{{{#ffffff 코치}}}''' || 4명 || [[김인식]], [[임신근]], [[백기성]], [[박정일(야구선수)|박정일]] ||
|| '''{{{#ffffff 투수}}}''' || 9명 || [[이상윤(야구선수)|이상윤]], [[선동열]], [[김정수(1962)|김정수]], [[차동철]], [[신동수(1966)|신동수]], [[김대현(1962)|김대현]], [[방수원]], [[문희수]], [[김용남(야구)|김용남]] ||
|| '''{{{#ffffff 포수}}}''' || 2명 || [[김무종]], [[장채근]] ||
|| '''{{{#ffffff 내야수}}}''' || 8명 || [[김봉연]], [[김일환(야구)|김일환]], [[김성한]], [[서정환]], [[이건열]], 조충열, [[차영화]], [[한대화]] ||
|| '''{{{#ffffff 외야수}}}''' || 6명 || [[김일권]], [[김종모]], [[김준환]], [[김평호]], 송일섭, [[이순철]] ||
=== [[삼성 라이온즈]] ===
||<-3><bgcolor=#007fff> '''{{{#ffffff 삼성 라이온즈 1986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colbgcolor=#fecd00> '''{{{#007fff 감독}}}''' || 1명 || [[김영덕]] ||
|| '''{{{#007fff 코치}}}''' || 4명 || [[정동진]], [[박영길]], [[유백만]], [[우용득]] ||
|| '''{{{#007fff 투수}}}''' || 9명 || [[김시진]], [[니우라 히사오|김일융]], [[진동한]], [[양일환]],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 [[황규봉]], [[성준(야구선수)|성준]], [[송진호]], 김훈기 ||
|| '''{{{#007fff 포수}}}''' || 3명 || [[이만수]], [[손상득]], [[송일수]] ||
|| '''{{{#007fff 내야수}}}''' || 7명 || [[함학수]], [[김용국(야구)|김용국]], [[김성래]], [[이종두]], [[오대석]], [[배대웅]], [[박승호(야구)|박승호]] ||
|| '''{{{#007fff 외야수}}}''' || 6명 || [[장효조]], [[허규옥]], [[장태수(1957)|장태수]], [[이해창(1953)|이해창]], [[김동재]], [[홍승규]] ||
== 경기결과 ==
=== 1차전 ===
||<-17><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1차전, 10.19(일) 16:00, [[무등 야구장|{{{#ffffff 무등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R''' || '''H''' || '''E''' || '''B''' ||
||<bgcolor=#007fff><color=#373a3c>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양일환]] || 0 || 0 || 0 || 0 || 0 || 0 || 2 || 0 || 1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3''' || 6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선동열]] || 0 || 0 || 0 || 0 || 0 || 0 || 0 || 1 || 2 || 0 || 1X || '''4''' || 11 ||
||<-19><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MBC|[[파일:attachment/mbc86.jpg|width=50]]]] | 캐스터: 임주완 | 해설: 이호헌''' ||
해태는 1986년 괴물같은 활약을 선보인 [[선동렬]]을 앞세워 승리를 자신했지만, 2회 무사 1, 2루와 3회 1사 1, 3루 찬스를 날리면서 어렵게 경기를 끌어갔다. 반대로 삼성은 [[양일환]]을 선발로 내세운 후, 흔들리자 기교파 [[진동한]]을 내세웠고, 이게 먹히면서 대등하게 경기를 풀어갔다. 그리고 7회초 공격에서 [[김평호]]의 실책성 수비로 [[이만수]]가 2루타로 진루한 후, [[김성래]]의 2점 홈런으로 선취점을 뽑았다.
그런데 7회말 수비까지 잘 막은 진동한이 공수교대 때 덕아웃으로 들어가던 중 관중이 던진 소주병에 머리를 맞으면서 상황이 묘하게 꼬였다. 일단 삼성은 [[김시진]]을 8회부터 올렸지만, 8회말 해태는 김시진 상대로 [[김성한]]이 2루타를 치면서 추격했다. 그러나 믿었던 선동렬이 9회초 밀어내기를 기록하면서 경기는 삼성이 이기는 듯 했는데, 9회말 해태는 [[김일권]]의 3루타로 1점을 추격했고, 제구 난조를 보인 김시진 상대로 [[김성한]]이 행운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하면서 극적으로 동점을 이뤘다.
결국 연장 11회말 다시 김성한이 끝내기 안타를 치면서 해태가 4:3의 승리를 기록했다. 승리투수는 연장 10회부터 나온 김정수. 너무 아쉽게 어쩌면 억울하게 진 삼성의 [[김영덕]] 감독은 경기 종료 후, "진동한이 병에 맞지 않았다면.." 하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는데, 이게 3차전의 복선이 된다.
종전 양팀 총합 15개의 사사구를 넘어 17개의 사사구가 나왔으며 포스트시즌 한 팀 최다 탈삼진 기록(삼성 12개)[* 다만 이건 타이 기록이다. 이미 1984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최동원이 삼성타선을 상대로 9회까지 완투하며 12탈삼진을 먼저 기록하였다.] 이 나왔다. 김일권은 2개의 3루타를 기록하며 시리즈 개인 통산 최다 3루타를 기록했고, 패전투수가 된 김시진은 시리즈 통산 최다패전(3패)와 통산 최다실점(16점), 최다자책점(13점), 최다사사구(15개) 등 모든 불명예를 한몸에 안았다.
=== 2차전 ===
||<-15><bgcolor=#007fff> {{{#ffffff '''한국시리즈 2차전, 10.20(월), 18:00, [[무등 야구장|{{{#ffffff 무등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007fff><color=#373a3c>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김일융]] || 1 || 0 || 0 || 0 || 0 || 0 || 1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2''' || 8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차동철]] || 1 || 0 || 0 || 0 || 0 || 0 || 0 || 0 || 0 || '''1''' || 6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KBS1|[[파일:KBS 1 logo[1].png|width=45]]]] | 캐스터: 유수호 | 해설: 하일성''' ||
삼성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분투한 주역이자, PO에서 맹활약한 [[김일융]]을 선발로 내세웠고, 해태는 [[차동철]]을 선발로 내세웠다. 삼성이 1회 [[허규옥]]의 적시타로 먼저 선취점을 뽑자, 해태는 곧바로 2회 [[김준환]]의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그 뒤로는 팽팽한 투수전 양상이었다.
승부는 7회 갈렸는데, 무사 1루에서 볼넷으로 출루한 [[박승호(야구)|박승호]] 대신 대주자로 나온 발빠른 [[이해창(1953)|이해창]]이 보내기 번트로 진루해 1사 2루가 되었고, 여기서 과감하게 3루를 훔치면서 1사 3루가 되었다. 그리고 [[배대웅]]의 유격수 깊은 플라이 때, 과감하게 홈으로 대시하면서 결승점을 뽑아 삼성은 2:1로 승리하며 시리즈를 동률로 맞췄다. 김일융은 해태 타선을 산발 6안타로 틀어막으며 완투승을 거두면서 다시금 큰 경기에 강하다는 자신의 평가를 증명했다.
승리투수는 [[김일융]], 패전투수는 [[차동철]]이 되었다.
=== 3차전 ===
||<-15><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3차전, 10.22(수), 18:0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ffffff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이상윤(야구선수)|이상윤]] || 0 || 3 || 0 || 0 || 0 || 0 || 3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6''' || 8 ||
||<bgcolor=#007fff><color=#373a3c>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김시진]] || 3 || 0 || 0 || 0 || 0 || 0 || 2 || 0 || 0 || '''5''' || 6 ||
중계방송사는 MBC TV.
1회말 삼성은 [[김성래]]의 2점 홈런을 포함해서 먼저 3점을 냈지만, 해태는 2회초 공격에서 바로 [[김준환]]의 솔로 홈런과 1984년부터 3년간 홈런이 없던 [[차영화]]의 2점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해태의 김정수와 삼성의 [[김시진]]의 투수전 양상이었다.
승부는 7회초에 갈렸다. 김시진이 연속 볼넷으로 만든 1사 1,2루 기회에서 해태는 바뀐 투수 진동한 상대로 대타 김일환이 안타를 쳐서 1사 만루의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 하지만 해태 [[서정환]]이 친 타구는 2루수 땅볼로 병살 코스였지만, 2루수 김성래가 유격수 [[오대석]]에게 준다는 것이 그만 빠지면서 2실점하면서 승부가 기울었다. 여기에 [[김성한]]이 승부의 쐐기를 박는 1타점 적시타를 치면서 점수는 6:3.
삼성은 7회말 공격에서 [[함학수]]와 [[이만수]]의 적시타로 6:5까지 따라 잡았지만, 결국 역전에는 실패했고, 경기는 그대로 해태의 승리로 끝났다. 여기까지는 참 나름 접전인 한국시리즈 경기가 되었겠지만, 경기 종료 후 실책으로 인한 역전패의 허탈함, 1차전 광주에서 진동한이 맞은 일에 분노한 [[대구아재|대구 팬]]들이 '''경기장 밖에 주차되어 있던 7,000만원짜리 해태 구단버스'''(1985년식 [[기아 AM버스|AM919]] 모델이었다.)'''를 불태워 버리면서''' 이 경기보다는 경기 후의 대형 사고가 사람들의 입에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자세한 것은 [[해태 버스 방화 사건]] 참조.
2회에 이상윤 대신 구원등판한 김정수가 1차전에 이어 승리투수가 되며 팀의 2승을 모두 책임졌다. 세 번째 투수 [[차동철]]은 비록 2차전에선 6회까지 호투하고도 져 패전투수가 되었지만 7회 무사 1,2루에서 김정수를 구원하여 위기를 넘겨 세이브를 기록했다.
1차전 패전투수였던 김시진은 7회 1사까지 6피안타 4실점을 기록하며 또다시 패전투수가 되었다. 84년 한국시리즈 2패를 포함하여 통산 한국시리즈 전적은 4패가 되었다.
=== 4차전 ===
||<-17><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4차전, 10.23(목), 18:0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ffffff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R''' || '''H''' || '''E''' || '''B'''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선동열]] || 0 || 0 || 0 || 0 || 1 || 0 || 0 || 0 || 2 || 1 || 3 ||<colbgcolor=#dcdcdc,#222222> '''7''' || - ||
||<bgcolor=#007fff><color=#373a3c>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 || 0 || 0 || 0 || 0 || 0 || 2 || 0 || 1 || 0 || 1 || 0 || '''4''' || - ||
중계방송사는 KBS1 TV.
해태는 [[선동열]]을 선발로 내세웠고, 삼성은 선발이었던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가 부상을 당하는 불운 속에 [[양일환]]과 [[황규봉]]을 계투로 내보내면서 해태와 맞섰다. 선취점을 해태가 5회초 [[차영화]]의 솔로 홈런으로 뽑았지만, 삼성은 6회말 공격에서 2사 후 이만수와 김성래의 연속 안타로 2사 2,3루의 찬스를 잡은 후, 해태의 패스트볼과 서정환의 실책으로 손쉽게 역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8회말에는 [[김성래]]의 솔로 홈런에 힘입어 3:1까지 달아났다. 여기에 마운드에는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믿음직한 [[김일융]]까지. 그리고 해태는 3회, 4회, 6회, 7회, 8회에 총 5개의 더블플레이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태는 9회초 공격에서 김일융 상대로 [[이순철]]-[[김성한]]-[[김봉연]]-[[김준환]]이 안타 4개를 집중시키면서 기어이 2점을 뽑아내며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다. 여기에 10회초에는 [[서정환]]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내면서 승리하는가 싶었지만, 삼성도 10회말 공격에서 [[장태수(1957)|장태수]]의 내야안타로 동점을 만들면서 경기를 끈질기게 끌고 갔다. 하지만, 연장 11회초 2사 후, [[김준환]]의 안타와 [[한대화]], [[차영화]]의 볼넷으로 만든 만루 찬스에서 [[장채근]]이 몸에 맞는 공으로 밀어내기, [[서정환]]의 2타점 적시타로 결국 승부의 쐐기를 박아 7:4 승리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삼성의 [[김성래]]는 4차전까지 3홈런 5타점 4득점으로 날아다녔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홈런을 치는 날에 삼성이 지는 징크스에 울어야했다. 해태 유격수 [[서정환]]은 6회에 결정적인 에러를 2개 기록하며 패배의 원흉이 될 뻔 했지만 10~11회 연장에서 팀 승리에 결정적이었던 안타를 연속 기록하며 부진을 만회했다. 전날 세이브를 기록했던 차동철은 이번에는 7회부터 등판하여 승리투수가 되었다. 패전투수는 10회부터 올라왔던 [[진동한]].
한편 이 경기 후에도 대구 관중들의 분은 아직 식지 않아서 경찰이 최루탄을 쏴서 관중들을 해산시키기도 하였다.
=== 5차전 ===
||<-15><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5차전, 10.25(토), 16: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ffffff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007fff><color=#373a3c>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김시진]] || 2 || 0 || 0 || 0 || 0 || 0 || 0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2''' || 7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김정수(1962)|김정수]] || 1 || 0 || 3 || 0 || 0 || 0 || 0 || 1 || - || '''5''' || 8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KBS1|[[파일:KBS 1 logo[1].png|width=45]]]] | 캐스터: 정도영 | 해설: 하일성''' [br] '''[[MBC|[[파일:attachment/mbc86.jpg|width=50]]]] | 캐스터: 임주완 | 해설: 이호헌''' ||
해태는 시리즈 2승을 거두고 있던 김정수를 선발로, 삼성은 통산 KS 4패에 이번 시리즈 2패를 기록중이던 김시진을 선발로 내세웠다. 경기 시작은 삼성이 1회초 이해창의 2루타, [[장효조]]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그리고 [[이만수]]의 솔로 홈런을 포함해 2점을 내면서 먼저 앞서 나갔지만, 해태는 1회말 [[서정환]]의 안타와 [[김봉연]]의 볼넷으로 얻은 2사 1, 2루의 공격찬스에서 바로 [[김종모]]의 1타점 적시 2루타로 반격에 성공했고, 3회말 공격에서 2사 후에 한대화의 볼넷, [[김성한]]과 [[김봉연]]의 안타로 동점을 이룬 후, 김종모의 싹쓸이 좌중간을 가르는 3루타로 역전에 성공하며 4:2로 앞서 나갔다. 그리고 8회말에 [[김준환]]의 적시타로 다시 1점을 더 추가하면서 승리를 굳혔다.
김정수는 5이닝 2실점으로 삼성 타선을 막으면서 시리즈 3승을 거두었고, 이 3승으로 인해 1986년 한국시리즈 MVP가 되었다. 선동렬이 6회부터 나와 세이브를 챙기면서 마지막 우승 장면을 같이 했고, 김시진은 한국시리즈 3패를 더 적립하고 말았다. 통산 5패.
== 기타 ==
* 우승 후에 해태 [[김응용]] 감독은 5차전을 빼고는 나머지 3승은 우리가 잘 해서 이긴 것이 아니기에 다음 해에는 더 전력을 보강해서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고, [[1987년 한국시리즈|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 김정수는 이 때의 활약을 시작으로 한국시리즈에서만 7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 최다승 투수가 되었다. 그래서 별명도 가을까치.
* 반대로 김시진을 1984년에 이어 또 다시 한국시리즈에서의 악연을 풀지 못했고, 그 결과 한국시리즈 7패라는 기록을 남기고 만다.
* 3차전을 삼성이 패하면서 분노한 대구 시민들이 해태 버스 방화 사건을 일으키고 난 뒤부터 삼성은 '''한국시리즈 12연패(敗)'''라는 충격적인 기록을 작성하고 만다. 즉, 이 해 한국시리즈 3~5차전 내리 3연패를 하고, 87년과 90년에는 모두 '''4전 전패'''를 기록하는 바람에 그런 불명예 기록이 이어진 것이다. 이런 경악스런 연패 기록은 '''7년'''이 지난 [[1993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야 겨우 끊게 된다.
* 당시 방화사건이 터지면서 해태 매니저가 김응용 감독에 "감독님 불이 났습니다, 불이!"라며 울고불고 울상을 짓자 김응용은 "이 녀석아 불난집에 복 든다는 말 몰라?" 라며 대인배같이 받아쳤다고. 그리고 이 말은 사실이 되어 결국 해태가 승리했다.
* 이때 1차전 관중은 12,822명이었고, KBO 측에서는 극적으로 홈팀이 승리했기에 2차전은 그 이상의 관중이 들어올것이라 예상했지만 2차전 관중은 8,398명으로 집계되었고 실제 입장은 6천명 정도여서 내야는 찼지만 외야는 휑했다고 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당시는 예매를 구장에서도 했지만 추가로 서점이나 레코드 가게 등에 일정 티켓을 배부하여 경기 전전날까지 팔게 한 다음에 티켓 판매금과 남은 티켓을 회수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예매처마다 암표상들이 돌아다니면서 티켓을 빼돌렸던 것. 그러니 KBO는 예매가 매진되었다고 알고 있고 그 소식을 받은 언론들도 예매 전쟁이라고 기사를 연일 실어댔기에 실제로 야구를 보러와야할 관중들이 아예 경기장 오는걸 포기해 버린 것이다.
그러자 표가 많이 남아버린 암표상들은 경기운영본부로 쳐들어가서 남은 티켓을 환불해달라고 생떼를 썼다고 한다. 조폭처럼 협박을 해대기도 했다고 하지만 공권력을 동원해서 내쫓아버렸다.
* 재일교포 출신으로 삼성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김일융]]의 KBO 리그 고별무대가 되었다. 그리고 시리즈 직후 [[김영덕]] 감독은 재계약을 포기하며 팀을 떠나 1년의 휴식기를 거쳐 [[빙그레 이글스]]의 2대 감독이 되었는데 거기에서도 4번의 준우승을 추가하고 말았다.
== 관련 문서 ==
* [[해태 타이거즈]]
* [[삼성 라이온즈/1986년]]
* [[1985년 일본시리즈]][* 여기도 [[세이부 라이온즈|옆동네 라이온즈]]가 [[한신 타이거즈|타이거즈]]에게 안방에서 떡실신당한 시리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한국프로야구 역대 포스트시즌 목록)]
[[분류:KBO 한국시리즈]][[분류:해태 타이거즈]][[분류:삼성 라이온즈]][[분류:김응용]] |
1987년 | ||<-13><tablealign=center><bgcolor=#a9a9a9> {{{#000000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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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력기원|서기]] || 1987년 ||
|| [[대한민국 연호|대한민국]] || 69년 ||
|| [[단군기원|단기]] || 4320년 ||
|| [[불멸기원|불기]] || 2531년 ||
|| [[황기]] || 2647년 ||
|| [[이슬람력]] || 1408년 ~ 1409년 ||
|| [[갑자|간지]] || [[병인]]년 ~ [[정묘]]년 ||
|| [[주체사상|주체]] || 76년 ||
|| [[중화민국|민국]] || 76년 ||
|| [[일본]] || [[쇼와]] 62년 ||
|| [[히브리력]] || 5748년 ~ 5749년 ||
|| [[에티오피아]] || 1979년 ~ 1980년 ||
[목차]
== 개요 ==
[[목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지금(2021년)으로부터 [age(1987-01-01)]년 전이다.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12250020921302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7-12-25&officeId=00020&pageNo=13&printNo=20379&publishType=00020|동아일보 선정 국내외 10대 뉴스]]
* 경향신문 선정 10대 뉴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122900329215010&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7-12-29&officeId=00032&pageNo=15&printNo=13002&publishType=00020|국내]]
전년도까지만 해도 위축되던 한국 민주화운동 세력은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4.13 호헌조치]]를 계기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6월 9일 [[연세대학교]] [[이한열]] 학우가 시위 도중 [[최루탄]]을 맞아 쓰러지면서 다음날 전민항쟁으로 발전했고, 시위에 회의적이던 직장인 등 중산층들도 시위대열에 동참하게끔 했다. 6월 29일에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후보가 대통령 직선제 실시를 주요 골자로 한 선언문을 낭독해 민중들 앞에 항복하고 일약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부상하였다.
헌정사상 최초로 여야가 원만한 합의를 이룬 헌법 개정이 추진되어 직선제 개헌과 함께 대통령 임기를 단임 5년 고정, 국민 기본권을 대폭 개선한 내용을 담은 개헌안을 담아 [[1987년 국민투표]]가 93.5%지지로 통과되어 현재의 [[대한민국 제6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이로써 제1공화국 이래 지속된 권위주의 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한국의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순조롭세 정착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직선제를 쟁취한 [[김영삼|양]][[김대중|김]]의 '''후보 단일화 실패로''' [[전두환 정부]]의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결과가 되었다. 이 해는 [[김종필]]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네 후보들은 출신 지역의 [[지역감정]]을 고취하였고 이는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양상으로 흘러갔다.
[[6.29 선언]]을 계기로 노동운동권에선 7월 무노조왕국 [[현대그룹]]에 노동조합들이 속속 결성되어 충격을 안겨 주었고, 이후 전국 각지로 열기가 파급되어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 공기업, 언론사, 금융업체 등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를 막론하고 노조설립이 활발히 전개됐고, 기존 어용노조에도 민주파가 집권해 민주노조화되기도 했다. 이는 [[노동자 대투쟁]]으로 불린다. 학생운동권에서는 4월 '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서대협)'을 먼저 결성하고 8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을 결성해 서클 중심에서 대중조직(RO) 중심으로 탈바꿈했다. 문예운동권에선 자실이 '민족문학작가회의'로 발전되기도 했으며, 여성운동권에선 재야 여성운동단체들이 연합해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발족하기도 했다.
경제 분야에선 해운산업 합리화조치로 메이저 해운업체이던 범양상선과 [[대한선주]]가 부실화되었고, 특히 범양상선은 사주 박건석 회장이 투신자살하면서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한국전력공사]]는 1887년 [[경복궁]] 건청궁 전구 점등을 기준으로 '한국전기 100주년'을 성대히 기념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매우 의미있는 해인데 TV를 통해 방송국에서 직접 제작한 [[한국 애니메이션|국산 애니메이션]]이 처음 선보인 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해는 20세기에서 서로 다른 4개의 숫자가 나오는 마지막 해이며 이후로 [[2013년]]이 올 때까지 같은 숫자들이 계속 나왔다. [[https://i.pinimg.com/736x/70/53/43/705343ef3a31d1b40208657f7928ee6d--first-year-the-year.jpg|#]] 또한 가장 최근에 윤6월이 낀 해였으며 이후 윤6월은 [[2025년]]에야 다시 나온다.
국제연합은 이 해를 '세계 무주택자의 해'로 지정했다.
== 사건 ==
=== 실제 ===
==== 1월 ====
* [[1월 1일]]
* [[전두환]]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1988년 평화적 정권이양과 [[1988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평화와 안정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라 농수산부-산림청이 통합되어 [[농림수산부]]로 출범되었다.
* 상공부가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를 해제하였다. 이를 기점으로 기아산업이 다시 한 번 승용차 시장에 뛰어들고 현대-대우차도 상용차 시장에 다시 뛰어든다.
* [[1월 2일]]: [[리비아]]-[[차드]] 간의 [[리비아-차드 분쟁|토요타 전쟁]] 와중에 리비아 기갑여단이 차드군에게 완전히 괴멸당하여 전세가 완전히 차드에게 기울었다.
* [[1월 5일]]: 정부는 공직자 자녀들의 시위 가담을 막도록 하는 지침을 시달했다.
* [[1월 7일]]: [[이민우(1915)|이민우]] 신한민주당 총재가 양김씨에 대한 반발로 충남 온양으로 잠적했다.
* [[1월 8일]]: [[북한]] [[원산시]]는 국제항구 휴양도시화 작업을 완료했다.
* [[1월 10일]]
* 치안본부는 지하조직 '안산노동자해방투쟁위원회'를 적발해 방병규 전도사 등 11명을 구속하고 20명을 수배했다고 밝혔다.(안산 노동자해방투쟁위원회 사건)
* [[전남]] [[담양군]]의 한 여인이 광주 [[전남대병원]]에서 다섯 [[쌍둥이]]를 [[출산]]하였다.
* [[1월 11일]]: 리근모 북한 정무원 총리와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남북 정치/군사회담'을 27일에 개최하자고 제의했다.
* [[1월 12일]]
* [[전두환]]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중대결단 없도록 합의 개헌을 촉구했다.
*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한국 잡지 90년전'이 개최되었다.
* [[1월 13일]]: 고려개발 파동이 터져 사채시장이 마비되었다.
* [[1월 14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이 경찰 조사 도중 물고문으로 사망했다.'''('''[[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 [[1월 15일]]
* [[김만철]] 일가 11명이 선박을 이용해 [[탈북]]하였다.
* 대미환율이 860원 이하로 떨어져 수출업계 측이 비상이 걸렸다.
* [[칠레]] 피노체트 군사정권이 정당 결성을 허용했다.
* [[소련]]-[[아프간]] 양국이 [[소련군]] 완전철수에 합의하였다.
* [[1월 16일]]
* [[중앙일보]]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사회면에 처음 보도했다.
*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박종철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거짓 발표했다.
* 한국전산원이 개원되었다.
* 자오쯔양 중공 총리가 후야오방의 퇴임으로 총서기서리를 겸임하였다.
* [[1월 17일]]
* '''부산지검은 형제복지원장 박인근 등 5명을 특수감금과 강제노역 등의 혐의로 구속하였다.'''([[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 국사편찬위가 경기 [[정부과천청사]]로 이전하였다.
* [[1월 19일]]: 경찰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 조한경과 강진규를 구속했다.
* [[1월 20일]]
* 전두환 대통령은 박종철 고문치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종호 내무부 장관과 [[강민창]] 치안본부장을 경질하였다.
* 서울대 학생들은 박종철 군 추모식을 열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 [[1월 21일]]: 외무부는 탈북자 김만철 일가의 한국 인도를 [[일본 정부]]에 강력히 요청하였다.
* [[1월 22일]]
* [[필리핀]] 농민 1만여 명이 [[마닐라]]에서 토지개혁을 요구하며 시위를 했으나 보안군의 발포로 12명이 사망했다.
*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던 [[버드 드와이어]] [[펜실베이니아]] 주 재무장관이 기자회견장에서 권총으로 자결하였다.
* [[1월 23일]]
* 애학투 소속 9개 대학생 7백여 명이 [[고려대]]에서 '고 박종철 학우 추모제'를 열고 시위를 벌였다.
* [[대한예수교장로회]]는 기독교 대한감리회 등 KNCC 6개 가맹 교단장 및 총무 연석회의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와 관련해 고문철폐 캠페인을 실시하기로 결의하였다.
* [[1월 24일]]
* 검찰은 [[박종철]]이 경찰의 물고문으로 사망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고문사건 종식을 위한 우리의 선언>을 발표하며 책임자 엄단, 고문수사 기구 해체 등 4개 항을 제시하였다.
* [[1월 25일]]: 노복과 기노련 등 9개 노동운동 단체는 서울 영등포 성문밖교회에서 '고 박종철 동지 추모식 및 노동자대회'를 개최하였다.
* [[1월 26일]]
*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성당]]에서 '박종철 군 추모 및 인권회복을 위한 [[미사]]'가 봉헌되었다.
* 아프라카 8개 산유국들이 '아프리카석유생산국협회(APPA)'를 발족하였다.
* [[1월 27일]]
* [[서울지검]]은 김태홍, 신홍범, 김주언 등 보도지침 폭로사건 관련 기자 3인을 국가모독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 각계 민주인사 9천여 명이 '고 박종철 군 국민추도회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한국은행]]은 1986년 당시 경상수지 흑자가 46억 5천만 달러라고 잠정 발표했다.
* [[미국]]-[[몽골]] 양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1월 30일]]: [[북한]]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국제연락위 집행위원회'를 [[프랑스]] [[빠리]]에서 개막했다.
==== 2월 ====
* [[2월 1일]]: 정부는 한방의료보험 전국 확대를 실시하였다.
* [[2월 3일]]: 서울지검 공안1부는 '제헌의회그룹'을 적발해 최민, 김철수, 김성식 등 관련자 24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제헌의회그룹 사건)
* [[2월 7일]]
* '[[박종철]] 군 범국민 추도회'가 개최되었으나 경찰의 저지로 무려 798명이 연행되었다.
* [[충남]] [[대전시]]의 부랑인 수용시설 '성지원'에서 시설측의 구타와 강제 노역을 견디다 못한 원생 20명이 탈출하였다.(성지원 사태)
* [[2월 8일]]: [[북한]]을 탈출한 김만철 일가가 [[대만]] [[타이페이]]를 거쳐 [[서울]]에 도착하였다.
* [[2월 9일]]
* 박종철 군 범국민추도회 당시 연행된 798명 중 34명이 검찰에 구속되었다.
* [[현대그룹]]은 명예회장에 아산 [[정주영]] 그룹회장, 회장에 정세영 [[현대자동차]] 사장을 추대하였다.
* 릴리 주한미국대사가 이민우 신민당 총재와 정치현안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 [[2월 10일]]
* 릴리 대사-[[김영삼]] 신민당 고문 간 회담이 열렸다.
* 대전 성지원 사건을 조사하러 온 신민당 의원들이 원생 20여 명에게 폭행당했다.
* [[2월 11일]]: 대한변협은 <2.7 추도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2월 12일]]
* 보건사회부는 [[에이즈]] 양성환자가 사망했다고 처음 발표하였다.
* 검찰은 <한국민중사> 출판과 관련해 풀빛출판사 대표 나병식 등 관계자들을 연행했다.(한국민중사 사건)
* 북한은 [[스위스]] 로잔 남북체육회담에서 '[[1988 서울올림픽]] 4개 종목 북한 배정원칙'을 수락하였다.
* [[2월 13일]]
* [[김대중]]-[[김영삼]] 민추협 공동의장은 여야 지도자 회담과 선택적 국민투표를 제의했다.
* 한출협 등 6개 단체는 검찰의 나병식 풀빛출판사 대표 연행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
* [[2월 17일]]: 전매청이 역사상 최초로 국산담배 대미수출 계약을 체결하였다.
* [[2월 18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이 결성되었다.
* [[2월 19일]]: Apple이 창립 되었다.
* [[2월 20일]]
* 릴리 대사와 이만섭 국민당총재가 회견을 열어 정치현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 [[서울교대]] 학생 [[박선영(1966)|박선영]]이 학내 비민주적 학사운영과 미 제국주의 매판세력의 지배를 받는 조국의 암담한 현실에 분노/항의하는 유서를 남긴 채 자결했다.
* [[브라질]] 정부는 외채이자 지불을 90일 간 유예한다고 선언했다.
* [[2월 21일]]
* [[김대중]] 민추협 의장과 [[김영삼]] 신민당 고문은 신민당 전당대회를 4월에 개최하기로 하고 총재직에 김영삼을 추대키로 합의하였다.
* 대전 성지원생 221명이 집단 탈출하여 시위를 벌였으나 1시간 만에 220명이 경찰에 검거되었다.
* [[2월 21일]]: [[송광사]]가 '진조사상연구원'을 세웠다.
* [[2월 23일]]
* 보사부는 에이즈, 렙토스피라병, 만성B형간염을 [[전염병]]으로 지정/고시하였다.
* 신민당은 간부회의에서 내각제를 지지한 이철승 의원을 제명하였다.
* 국민당은 전당대회에서 이만섭 총재를 재선임하였다.
* [[2월 24일]]
* 서울지검 공안부는 지하조직 '민족해방노동자당'을 적발해 [[김영환(1963)|김영환]], 하영옥, 심진구 등 관련자 13명을 구속했다.(민족해방노동자당 사건)
* [[요하네스 케플러]] 시절 이후 최초로 육안으로도 관측 가능한 [[마젤란 은하]] 초신성 SN 1987A이 발견되어 전세계 [[천문학]]계가 술렁였다.
* [[2월 26일]]
* 치안본부는 지하조직 '노동자해방사상연구회'를 적발해 관련자 10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노동자해방사상연구회 사건)
* 제임스 베이커 미국 재무장관은 한국에 원화 절상을 요구했다.
* 자주 농민회 연합체인 '전국농민협회'가 결성되었다.
* [[2월 27일]] - 릴리 대사가 노태우 민정당 대표와 회견을 열었다.
* [[2월 28일]]
* 평화의 댐 1단계 공사가 시작되었다.
* [[일본]] [[TV아사히]]에서 <[[광전대 마스크맨]]>이 첫 전파를 탔다.
==== 3월 ====
* [[3월 1일]]: 탁구선수 양영자-현정화 조가 제41회 뉴델리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복식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 [[3월 2일]]
* 한영수를 중심으로 한 '제3세대당'이 창당되었다.
* <아침의 광장>의 후속으로 <생방송 전국은 지금>이 KBS2에서 첫 전파를 탔다.
* [[3월 3일]]: 이날 개최되려던 [[박종철]] 열사 49재와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의 개최가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자 전국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가두 시위가 열렸다.
* [[3월 4일]]: 서울 [[선린상업고등학교]] 학생 4백여 명이 민교협 소속 노웅희 교사의 전출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
* [[3월 5일]]
* 한국국방연구원이 설립되었다.
* 윌리엄 클라크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는 여야 인사와 개헌정국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 [[3월 6일]]
* '한국프로축구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조지 슐츠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하여 [[전두환]] 대통령과 현안을 논의했다.
* 신흥금속 노동자 표정두가 "내각제개헌 분쇄", "박종철을 살려내라" 등을 외치며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분신했다. 이후 그는 이틀 뒤에 숨을 거두었다.
* [[벨기에]] 지브뤼게에서 [[해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호 참사]]가 발생해 탑승객 193명이 사망했다.
* [[3월 9일]]: [[김영삼]]과 이민우 총재가 다시 만났으나 노선대립 조정에는 실패하였다.
* [[3월 11일]]: 서울 여의도 KOFEX에서 '한국 소프트웨어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 [[3월 12일]]: 코리아유로펀드가 설립되었다.
* [[3월 13일]]: WHO는 세계 에이즈 등록환자 수를 91개국 42,404명으로 집계했다.
* [[3월 14일]]: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민주화 정책 추진을 다짐하였다.
* [[3월 15일]]
* 제15회 동아마라톤에서 이종희 선수가 2시간 12분 21초로 한국 신기록을 수립하였다.
* [[헝가리]] [[부다페스트]] 시민 수천 명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3월 16일]]
* 정부는 농어촌 사채에 1조원을 지원키로 결정하였다.
* 일본 TV아사히에서 <[[초인기 메탈더]]>가 첫 전파를 탔다.
* [[3월 17일]]: 이민우 신민당 총재와 [[김영삼]] 고문이 직선제 개헌 등 4개 항에 합의하고 개헌노선 내분을 전격 수습했다.
* [[3월 19일]]: '경인지역 민족민주학생연맹(이하 민민학련)'이 재결성되었다.
* [[3월 21일]]: 한국여성노동자회(이하 여노회)가 발족되었다.
* [[3월 22일]]: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원생 1명이 직원들의 구타로 숨졌다.
* [[3월 23일]]
* 부산 형제복지원생 35명이 원생 구타치사사건을 계기로 집단 탈출하였다.
* 중공-포르투갈 양국이 마카오를 1999년 12월 20일부터 반환키로 합의하였다.
* [[3월 25일]]
* [[전두환]] 대통령이 [[노태우]] 민정당 대표에 정국 주도권을 부여하였다.
* 국사교육심의회가 '국사교육 개편시안'을 공고하였다.
*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인류진화연구단이 [[평양]] 상원군 옹곡리에서 [[구석기]] 시대 동굴유적을 발굴해냈다.
* [[3월 26일]]: 중공-[[포르투갈]] 간 [[마카오]] 반환조약이 가조인되었다.
* [[3월 27일]]: 백범 [[김구]] 암살범인 [[안두희]]가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민족정기구현회장 권중희에게 몽둥이로 응징을 당했다.
* [[3월 28일]]: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가 [[소련]]을 방문하였다.
* [[3월 29일]]: 한국사회경제학회(이하 한사경)가 발족되었다.
* [[3월 30일]]
* 대처-고르비 간 정상회담이 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 북한은 13일 전 남한 정부가 보낸 대북서한에 대한 회신에서 총리회담을 우선 개최하자고 주장했다.
* [[3월 31일]]: 소련에서 [[미르]]의 크반트-1 모듈이 발사되었다.
==== 4월 ====
* [[4월]] 중: CA그룹 분파인 '노동자해방투쟁동맹(이하 노해동)'이 결성되었다.
* [[4월 1일]]
* 종전의 전매청이 '한국전매공사'로 새로 출범되었다.
* 종전의 [[일본국유철도]]가 민영화되어 [[JR그룹]]으로 재탄생하고, 각 지역별로 분사되었다.
* [[4월 2일]]: 서울대생 학부모 130여 명이 건대 항쟁 등 시국사범에 대한 징계철회를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4월 4일]]
* 정부는 해외 건설업을 산업합리화 대상으로 지정하고 부실기업 18개를 정리할 것을 발표했다.
* [[경기도]] [[포천군]] 국립수목원에 '산림박물관'이 준공되었다.
* [[4월 6일]]: 자동차노련 서울택시지부 조합장 200여 명이 노조연맹회관 강당에서 업적급제 폐지와 완전 월급제 실시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개시하였다.
* [[4월 7일]]: 광복회 등 15개 단체가 안두희의 재수감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4월 8일]]
* [[김영삼]]-[[김대중]] 양김이 신당 창당을 선언하였다.
* [[충청북도|충북]] [[제천시|제천]]지역 택시기사들이 사납금 인하를 요구하며 도로를 점거해 시위를 벌였다.
* 서울시내 택시기사 1천여 명이 강남 [[테헤란로]]에서 가두시위를 벌였다.
* [[4월 9일]]
* 서울시내 택시기사 2천여 명이 시내 곳곳에서 가두시위를 벌였다.
*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2년간 군비지출 동결을 제의했다.
* 소련 우주정거장 미르 크반트-1 모듈이 도킹에 성공하였다.
* [[4월 10일]]
* [[김대중]] 고문이 가택 연금을 당했다.
*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은 [[유럽]]의 단거리 핵미사일 제거 회담 및 35개국 외무장관 군축 회담을 제의했다.
* [[4월 11일]]: 계몽문화재단과 금복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 [[4월 13일]]
* '''[[전두환]] 대통령이 현행 헌법으로 1988년에 정권을 교체하고 이를 위한 대통령 선거를 연내 실시한다는 특별담화를 발표했다.''''''([[4.13 호헌조치]])'''
* 중공-포르투갈 양국이 마카오 반환협정에 서명하였다.
* [[4월 14일]]
* KNCC와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4.13 호헌조치를 비판하였다.
* 서울 [[상계동]] 세입자 1백여 명이 강제철거에 맞서 시위를 벌였다.
* [[4월 16일]]: [[한국가스공사]]가 [[경기도]] [[평택]]에 LNG 기지를 준공하였다.
* [[4월 17일]]: [[미국 정부]]는 대일 보복무역을 발동하여 일제 전자제품에 3억 달러의 관세를 추가시켰다.
* [[4월 18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1988 서울 올림픽]]과 정권교체 후 내각제 합의개헌에 노력하겠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 [[4월 19일]]
* 외화도피 혐의로 검찰 조사 중이던 박건석 범양상선 회장이 사옥에서 투신자살해 파문이 일었다.
* 민통련 등 재야단체와 시민, 학생 등 3천여 명이 [[4.19]] 기념식 후 시위를 벌였다.
* [[4월 20일]]: 짝궁들 출신 댄스그룹 [[소방차(아이돌)|소방차]]가 정규 1집 앨범을 냈다.
* [[4월 21일]]
* [[천주교]] [[신부(종교)|신부]] 13명이 광주에서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 서지학자 천혜봉 교수가 김경숙 가전품 중에서 <월인석보> 11~12권을 발견해 학계에 공개하였다.
*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은 유럽과 아시아의 단거리 핵미사일 제거를 위한 동시 협상을 제의했다.
* [[4월 22일]]: [[고려대]] 교수 30명이 [[4.13 호헌조치]]를 반대하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4월 24일]]
* '용팔이' 김용남이 이끄는 폭력배 1백여 명이 통일민주당 서울 관악지구당 창당대회장을 습격했다.(통일민주당 창당방해 사건)
* 북한 정무원 대변인이 남북대화 전면거부 성명을 냈다.
* [[4월 27일]]
* 일우공영이 [[서울특별시]] [[강북구]] [[번동]]에 '[[드림랜드(서울)|드림랜드]]'를 개장하였다.
* 한국노총은 4.13 호헌조치를 지지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미국 달러화가 도쿄 외환시장 기준 137.25 엔으로 전후 최저 시세를 기록했다.
* [[4월 30일]]
* 가야문화연구원이 발족되었다.
*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었다. 그러나 레이건 측은 대일 보복관세 해제를 거부했다.
==== 5월 ====
* [[5월 1일]]
* 신민당을 탈당한 [[동교동계]]와 [[상도동계]] 의원들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 소련 정부가 '사기업법'을 발효시켰다.
* [[5월 2일]]: [[서울대]] 교수 122명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5월 3일]]: 프로권투선수 박종팔이 IBF 슈퍼미들급 7차 방어전에서 미국의 린델 홈스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두었다.
* [[5월 4일]]
* 정부와 민정당은 1988년 1월부터 지방자치제를 24개 지역에 시범실시하고 5월부터 전면 실시방안을 확정한다고 밝혔다.
* 세관원과 공항 직원이 낀 33억대 금괴 사건이 터져 관련자 7명이 구속되었다.
* [[5월 5일]]
* 대원동화가 제작한 국산 TV 애니메이션 1, 2호인 <[[떠돌이 까치]]>, <[[달려라 호돌이]]>가 각각 [[어린이날]] 특집으로 [[KBS1]]과 [[MBC]]에서 첫 전파를 탔다.
* [[남아공]] 전역에서 흑인 노동자와 학생 백만여 명이 백인 단독총선에 항의하며 파업 및 등교거부를 벌였다.
* [[5월 6일]]: '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서대협)'가 결성되었다.
* [[5월 7일]]: 포철 광양제철소 제1기가 준공되었다.
* [[5월 8일]]
* 화가 등 예술인 202명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민주당은 국회에 4.13 호헌조치 철회 건의안 및 범양상선 사건 국정조사 결의안을 제출했다.
* 금융노련 산하 13개 노조는 한국노총의 4.13 호헌조치 지지에 반박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5월 9일]]
* LOT 폴란드 항공 5055편이 수도인 [[바르샤바]]에 추락해 탑승인원 183명 전원이 사망했다.
* 북한측은 동/식물 50여종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 [[5월 10일]]: [[서머타임]] 제도가 26년만에 전국적으로 다시 실시되었다.
* [[5월 12일]]
* 영화인 97명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는 한국의 4.13 호헌조치 재고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 [[5월 14일]]
* 정부는 7개 공기업의 민영화 방안을 확정했다.
* 공개방청 코미디프로 <[[쇼 비디오 쟈키]]>가 KBS2에서 첫 전파를 탔다.
* [[5월 15일]]: 'KBS-TV 시청료 거부 범시민운동 여성연합'이 발족되었다.
* [[5월 17일]]
* KNCC 소속 6개 교단과 신자 1천 2백여 명은 4.13 호헌조치 철회를 요구하며 철야기도회를 열었다.
* 광주항쟁 7주기 추모제가 망월동 묘역, 민통련, 전국 62개 대학 등지에서 각각 거행되었다.
* 부산지역 노동자 황보영국이 "독재타도", "호헌분쇄", "민주헌법 쟁취" 등을 외치며 분신했다. 이후 그는 8일 뒤에 숨을 거두었다.
* [[5월 18일]]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5.18]] 추모미사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이 조작되었다고 폭로하였다.
*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가 의회를 해산시켰다.
* [[5월 19일]]: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미국이 한국-일본-필리핀에서 핵무기를 철수하면 유럽과 아시아의 중거리 미사일을 폐기하겠다고 결의했다.
* [[5월 20일]]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범은 따로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정토구현전국승가회와 민불련 등 [[승려]] 90여 명이 5.18 추모법회 중 경찰의 광주 원각사 난입에 항거하며 서울 개운사에서 농성을 벌였다.
* 북한의 [[김일성]]이 중공을 공식 방문해 [[덩샤오핑]] 주석, 자오쯔양 총서기서리와 정상회담을 열었다.
* [[5월 21일]]: 출판인 359명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5월 23일]]
*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 규탄 범국민대회 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대한변협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 진상은폐에 검찰 개입 의혹이 있다며 성명을 발표하였다.
* [[5월 24일]]: 국어연구소는 한글맞춤법 및 표준어 개정시안을 발표하였다.
* [[5월 25일]]
* 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진상조작과 관련해 현 정권 퇴진을 요구하였다.
* <민주화와 언론자유를 위한 동아일보 기자 시국선언>이 발표되었다.
* [[5월 27일]]
* 민주당, 재야 민주단체, 신-구교단체 등 발기인 2,191명이 직선제 관철을 위해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를 결성하였다.
* [[서울대]] 총학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조작 진상규명과 4.13 담화 철회를 요구하며 동맹휴업을 결의하였다.
* 예장총회는 6월 7일을 '나라를 위한 기도주일'로 정하고 4.13 호헌조치 철회를 위한 기도회를 열기로 결정하였다.
* [[5월 28일]]
*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이 설립되었다.
* [[서독]]의 19세 청년 마티아스 루스트가 "냉전을 중단시키는 평화의 가교가 되겠다"며 애인과 함께 단돈 1만6천달러 짜리 경비행기(4인승 [[세스나]]기)를 임대해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착륙했다. [[핀란드]] [[헬싱키]]를 이륙해 소련 영공 750km 날아 모스크바에 착륙하기까지 [[소련군]]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교신장비를 끈 관계로 핀란드의 경비행기 담당자도 그가 [[스웨덴]] [[스톡홀름]]에 도착하지 못하고 추락한 것으로 이해했다.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때문에 오히려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고. 정신감정 결과 과대망상증이 있었다고 한다.(…) 1991년 간호실습생을 흉기로 찔러 다시 철창 신세를 지기도 했다.] 무사히 착륙한 청년은 [[싸인]]은 물론 [[삐라]]까지 뿌리다가 [[KGB]]에 붙잡혀 14개월간 수감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레이더]] 1만개, 요격전투기 4,000여대, 지대공 미사일 1만 4,000여발을 자랑하던 소련의 방공망은 무용지물임이 만천하에 드러나 국제적 개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 [[5월 29일]]
* '호헌 철폐와 민주개헌 쟁취를 위한 서울지역학생협의회'가 구성되었다.
* 제30회 전국역사학대회에 참석한 교수 등 350여 명이 <한국민중사 사건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한국민중사>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 [[5월 30일]]
* 상공부는 7월부터 대형 승용차, 비디오테이프, 왜건, 지프차, 면도기, 중소형 컴퓨터 등 미국이 요청한 품목 46개를 포함한 170개 품목의 수입을 개방하기로 하여 수입자유화율이 93.6%로 올랐다.
*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사건 이틀 만에 소콜로프 국방장관과 콜두노프 방공군총사령관을 전격 해임했다.
==== 6월 ====
* [[6월 1일]]
* 중앙기상대가 전국 12개 도시에서 '강우확률예보제'를 처음으로 실시했다.
* 서울 내 13개 대학 학생회장 등 간부 20여명은 호헌철폐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 정부는 국제노동기구 총회에 이헌기 노동부장관 등 대표단 15명을 파견했다.
* 한국 유도대표팀이 제10회 이탈리아 오픈 유도대회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 이란 지도자 호메이니가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요청으로 재집권 후 이슬람공화당(IRP)을 해체시켰다.
* [[6월 2일]]
* 전두환 대통령은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추천했다.
* [[고건]] 내무부 장관은 지방 장관회의에서 인권 보호와 경찰의 신뢰회복 등을 강조했다.
* 서울지검은 통일민주당의 정강정책과 관련하여 창당 발기인인 이현 등 4명을 구인했다.
* 범민족올림픽추진위원회는 북한의 올림픽 방해 위협에 대해 숭고한 올림픽 정신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 [[6월 3일]]
* 전두환 대통령은 제4차 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남북최고책임자회담을 다시 촉구했다.
* 민정당 중앙집행위원회는 노태우 대표를 대통령 후보로 제청했다.
* 김동영 부총재 등 통민당 의원 5명이 [[이한기]] 총리서리에 김대중의 연금 해제를 건의했다.
* 서울형사지법은 1986년 보도지침 폭로사건 주도자 김태홍, 김주언, 신홍범에게 각각 징역 10개월과 집유 2년, 징역 8개월 및 집유 2년,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 [[6월 4일]]
* 제134회 임시국회가 개최되었다.
* 국본은 민정당에 6.10 전당대회를 즉각 중지하고 합의 개헌에 응하라고 성명을 냈다.
* 부산지검이 [[필로폰]] 밀매조직 3개파 30여 명을 구속했다.
* [[6월 5일]]
* [[김재광]] 의원 등 5명이 [[신한민주당|신민당]]을 탈당했다.
* 가수와 예술인 88명이 시국성명서를 냈다.
* 대한변협 소속 변호사 74명이 민주화와 개헌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국본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다.
* 국사교육심의회는 고조선의 최초국가 명기를 골자로 한 중/고교 국사 교과서 개편방향을 확정하였다.
* 한국공해문제연구소는 <87 반공해선언>을 발표하여 핵발전소 건설 중단 등을 촉구했다.
* [[한국은행]]은 1988년 1월부터 모든 은행에서 현금인출이 가능한 'CD 공동카드이용망'을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 [[6월 6일]]: 서울 내 29개 대학교 학생 수천여 명은 [[고려대학교]]에서 연합 대동문화제를 열며 시위를 벌였다.
* [[6월 7일]]: 프로권투선수 유명우가 WBA 주니어 플라이급 제5차 방어전에서 파나마의 베네딕토 무리요를 상대로 KO승을 선사했다.
* [[6월 8일]]
* 고건 내무부 장관과 정해창 법무부 장관은 합동으로 6.10 규탄대회를 강행하면 엄단하겠다고 담화했다.
* 김영삼 통민당 총재는 민정당에 전당대회를 취소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여/야 공동으로 민주화 선언을 제의했다.
* 경찰은 민추협과 전국 110개 대학을 수색했다.
* 우산유 버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 제16회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가 개최되었다.
* [[6월 9일]]
* 치안본부는 6.10 규탄대회에 대비해 재야인사들의 연금 및 대회 원천봉쇄를 전국 경찰에 지시했다.
* '''[[연세대]] 신촌캠 교문 앞에서 열린 '6·10 대회 출정을 위한 범연세인 총궐기 대회' 도중 경영학과 2학년생 [[이한열]]이 경찰이 직사로 쏜 [[최루탄]]에 맞아 실신했다.'''
* [[서울교대]] 1~3학년생은 구타를 이유로 정태수 학장의 퇴진을 요구한 동료 학생에 동조해 수업을 거부했다.
* 서방 G7 국가들이 [[1988 서울올림픽]] 공동 지원에 합의했다.
* 북한은 '비동맹각료특별회의'를 평양에서 개최했다.
* [[6월 10일]]
* 민정당은 서울 잠실체육관 전당대회에서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 노태우 후보는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1988년 대선과 올림픽 뒤 내각제 개헌을 관철시키겠다고 천명했다.
* '''국본은 전국 20개 도시에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는 [[6월 민주항쟁]]의 시발점이었다.'''
* '''학생과 시민 등 일부 시위대가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시작하였다.'''
* [[김영삼]] 통민당 총재는 민정당의 정치 일정 강행을 비난하고 구속자 석방 및 사면/복권을 촉구했다.
* [[창원]]공단 노동자들은 퇴근길에 “노동3권 보장하라”와 “[[쪽바리]]는 물러가라”등의 구호를 외치며 공단파출소를 부수고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
* 미 국무부는 한국의 시위 사태에 대해 논평하며 대화와 타협을 촉구했다.
* 헤비메탈 그룹 [[시나위(밴드)|시나위]]가 2집 <Down And Up>을 발표했다.
* [[6월 11일]]
* 농림수산부는 1986년도 농가부채 증가율이 농가 소득보다 2배 가량 올랐다고 발표했다.
* FIFA는 지역예선에 불참한 북한의 올림픽 축구 출전권을 최종 박탈했다.
* [[6월 12일]]
*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1988년 대선과 올림픽 뒤 의원 내각제로 합의 개헌되면 대통령 임기에 구애받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 이웅희 문공부 장관은 일부 야당 세력이 계속 폭력시위에 참가할 시 대응조치가 불가피하다고 정부의 입장을 발표했다.
* 6.10 시위대 중 4백여 명이 [[명동성당]]에서 3일째 철야농성을 벌였다.
* 경찰은 6.10 집회와 관련하여 [[양순직]] 통민당 부총재 13명과 시위 현장에서 연행된 3,854명 중 123명을 구속했다.
*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등 3개 여성단체는 '최루탄 추방운동'을 전개했다.
* [[연세대]]생 3천여 명은 '살인적 최루탄 난사에 대한 범 연세인 규탄대회'를 열어 교문 밖에서 시위를 했다.
* MBC는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민정당은 정을 주는 당"이란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코미디언 [[김병조]]에 대해 일시 출연정지 조치를 내렸다.
* [[경북]] [[경주시]]에서 [[신라]]시대 [[토용]] 11점이 발굴되었다.
* [[6월 13일]]
* 여/야 정당은 공전 둥인 134회 임시국회를 정상화하고 6.10 사태 등 논의에 합의했다.
* [[대전고등학교 야구부|대전고 야구부]]가 42년만에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 서울지검은 6.10 규탄대회 주도혐의로 양순직 통민당 부총재 등 국민운동본부 간부 13명을 구속했다.
* 통민당은 양순직 부총재 등을 즉각 석방하지 않으면 현 정권(전두환 정권)에 전면 투쟁하겠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 [[6월 14일]]: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는 서울올림픽 방송중계 중남미 지역 방영권을 292만 달러에 팔았다.
* [[6월 15일]]
* 경찰은 전국 59개 대학에서 과격시위자 916명을 연행했다고 발표하였다.
*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전국 사제단 [[미사]]에서 민주화를 위해 여야에 조건 없는 대화를 촉구했다.
* [[천주교]] [[사제(성직자)|사제]]들과 신자 8천여 명이 서울 명동에서 촛불 행진을 벌였다.
* [[명동성당]] 농성 중이던 학생과 시민들은 특별 미사와 촛불 가두행진을 연 뒤 자진 해산하였다.
* [[6월 16일]]
* [[문교부]]는 [[서울교대]]에 휴교령을 내렸다.
* 전국 8개 도시에서 17,400여명이 가두시위를 벌였다.
* 경남 거제군 [[해금강]] 해상에서 유람선 '극동호'에 큰불이 나 탑승자 29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되었다.([[극동호 유람선 화재 사건]])
* [[미국]]-[[폴란드]] 양국이 1981년 이후 처음으로 대사 교환에 합의하였다.
* [[6월 17일]]: 민추협 소속 1백여 명은 김대중 공동의장 연금에 항의하며 철야 농성을 벌였다.
* [[6월 18일]]
* '''국민운동본부는 '최루탄추방대회'를 개최하여 전국 16개 도시 247개소에서 150여만명이 참가했다.'''
* 부산 시위 도중 회사원인 이태춘 씨가 최루탄을 맞아 좌천동 고가다리 밑으로 추락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후 이씨는 6일 뒤에 병상에서 숨을 거두었다.
* 미국 하원 외교아태소위는 여야의 대화 재개를 촉구하는 내용의 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 [[6월 19일]]
* 이한기 국무총리서리는 시위사태가 계속되면 비상한 각오를 하겠다고 담화했다.
* 전국 79개 대학교에서 시위가 계속되었다.
* 제임스 릴리 주한미국대사는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전두환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 [[미국]] 국무부는 미국 국민들에게 시위 지역에 가지 말도록 '[[한국]] 여행 지침'을 발표했다. 이 조치는 당월 30일에 해제되었다.
* [[대전시]]에서 시위대가 탈취한 버스가 휴식중인 전경 대열을 덮쳐 박동진 일경이 숨지고 나머지 2명이 중상을 당했다.
* [[김영삼]] 통민당 총재는 [[전두환]] 대통령과의 회담을 공식으로 제의했다.
* [[6월 20일]]
*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시국 수습을 위해 신민당과 한국국민당 총재와 연쇄 대표회담을 개최했다.
* 국본은 26일에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 국민평화대행진(이하 국민평화대행진)'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 서울시내 51개 중/고등학교 교사 105명은 정치 민주화와 교육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국성명서를 발표했다.
* [[6월 21일]]
* 민정당 의원총회는 개헌 논의를 다시 열어 9월까지 합의가 안 되면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 한국 축구대표팀이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결승에서 호주를 승부차기로 꺾어 우승했다.
* 게스틴 시거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한국의 시위사태에 군을 투입하는 것은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천명했다.
* 소련의 지방 대의원/판사 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복수후보 투표를 실시했다.
* [[6월 22일]]
* 종교인 1천 5백여 명이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구국 기도회를 열어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 [[전두환]] 대통령은 [[윤보선]]과 [[최규하]] 두 전직 대통령을 청와대로 불러 시국수습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 경찰병력 40여명이 부산가톨릭센터에서 농성 후 귀가하던 버스에 최루탄을 난사하고 집단 폭행했다.
*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전두환 대통령의 개헌논의 재개와 구속자 석방, 김대중 연금해제 등을 수락했다고 발표했다.
* 미국 국무부는 군의 개입이 한국의 국익에 심각한 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6월 23일]]
* 게스틴 시거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한국을 방문하여 시위진압에 계엄령 및 군부 개입을 반대함을 표했다.
* [[영광 원자력 발전소]] 7, 8기가 준공되었다.
* [[6월 25일]]
* [[한국 정부]]가 생물무기금지조약(BWC)에 가입했다.
* 경찰은 김대중 민추협 공동의장의 연금을 해제했다.
* 전국 42개 대학에서 9천여 명의 학생들이 교내 집회와 가두 시위를 진행했다.
* [[6월 26일]]
* 전두환 대통령은 월산, 의현, 녹원 등 불교계 인사들과 요담했다.
* '''국본은 전국 34개 도시에서 '직선제 개헌 요구를 위한 국민평화대행진'을 개최하였다.'''
* 경찰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창립대회'를 봉쇄했다.
*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이하 인민노련)'이 결성되었다.
* [[6월 27일]]
* 민정당은 6.26 시위에 나타난 민의를 수렴하겠다고 성명을 냈다.
* 치안본부는 6.10 ~ 6.26까지 17일 동안 전국에서 시위 횟수가 연 2,145회나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 미국 상원 본회의는 '한국 민주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 [[6월 28일]]: 프로권투선수 [[장정구]]가 WBC 라이트플라이급 타이틀 10차 방어전에서 타이틀 방어 성공했다.
* [[6월 29일]]
*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 김대중 사면복권, 등 8개항의 시국수습을 위한 특별선언을 발표했다.'''('''[[6.29 선언]]''')
* 증권거래소는 6.29 선언에 따라 종합 주가지수가 7.04%나 올라 394.46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 [[6월 30일]]
*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는 민주화 공동 선언을 통한 '국민화해의 날' 제정을 정부와 여당에 제의했다.
* 국어연구소는 한글 [[맞춤법]] 및 표준어 개정안을 확정해 문교부에 제출했다.
* 문교부는 시위관련 징계 학생들과 해직 교사들의 복학 및 구제 등 학원안정 회복을 위한 종합 대책마련에 착수했다.
==== 7월 ====
* [[7월 1일]]
* '''전두환 대통령은 6.29 선언 내용을 전부 수용한다는 특별 담화문을 발표했다.'''
* 미국 하원은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6.29 시국 수습방안을 지지하는 내용의 대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 체신부와 KTA는 전국의 전화를 완전 자동화시켰다.
*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한국소비자보호원,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설립되었다.
* 제주 서귀포 시립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 [[7월 2일]]: 노동부는 노동조합의 설립제한 규정을 폐지하는 등 노동관계법의 개정을 결정했다.
* [[7월 3일]]
* [[연세대학교/신촌캠퍼스]]에서 서울시내 대학생 1만 5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시국 대토론회'가 열렸다.
* 인천 한국차량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5일]]
*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병상에 눕던 [[이한열]]이 결국 숨을 거두었다.'''
* 현대엔진[* 1989년에 [[현대중공업]]으로 합병.] 울산공장 노동자들이 민주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이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첫 신호였다.
* [[7월 6일]]
* '민주헌법쟁취노동자공동위원회(이하 민헌노위)'가 발족되었다.
* [[새마을호]] [[DHC]]동차가 상업운행을 시작했다.[* 2013년 1월 5일 종운.]
* [[7월 8일]]: '민주쟁취국민운동 전국농민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7월 9일]]
* [[연세대]] 총학은 [[이한열]] 학우 장례식을 신촌캠에서 '민주국민장'으로 거행하였다. 이들은 [[서울시청]]까지 운구 행렬을 벌였다.
* 이한열 열사 노제 이후 [[전두환]] 퇴진을 주장하는 일부 군중들이 광화문 네거리 쪽으로 향하려다 경찰의 최루탄 난사로 흩어졌다.
* 법무부는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련자 18명 및 [[광주민주화운동|광주사태]] 관련자 17명 등 시국사범 2,335명의 사면/복권을 단행한다고 발표하였다.
*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1988년 올림픽을 반드시 서울에서 열 것이라고 천명했다.
* [[7월 10일]]: 전두환 대통령이 민정당 총재직을 사퇴할 것을 선언하였다.
* [[7월 11일]]: [[유엔]]은 유고연방령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태어난 마테즈 가스파르를 '50억번째 인류'로 지정하였다. 이로써 세계 인구는 50억을 넘었다.
* [[7월 12일]]
* 한국노총 5개 산별연맹 산하 33개 단위노조 간부 112명이 '노동민주화실천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광주 해고노동자 복직운동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전 자실 사무국장 채광석 시인이 민주시민대동제 참여 후 귀가길에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었다.
* [[7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은 김정렬을 새 국무총리서리에 임명하는 등 8개 부처를 개각하였다.
* [[7월 14일]]
* 이웅희 문공장관은 언론기본법의 폐지 방침을 발표했다.
* 제4차 남북체육회담이 [[스위스]] 로잔에서 개막되었다.
* [[7월 15일]]
* 현대미포조선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자유중국 정부는 계엄령 해제 및 해외투자 자유화/외환규제 완화 조치를 내렸다.
* 제5호 태풍 셀마가 [[제주도]]를 통과했다.[* 이미 태풍이 한반도 남쪽에 접근한 상황에서 중앙기상대가 '''"태풍이 지나갔다"'''고(…) 전설적인 오보를 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세한 오보 내용은 [[대한민국 기상청]] 항목 참조.] 이 태풍으로 인해 사망자와 실종자 158명이 발생했다.
* MBC 소속 기자와 프로듀서들이 '방송민주화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7월 16일]]
* 현대미포조선 노조원들이 울산시청에 노조설립 신고서류를 내려다 사측에 압수당하는 바람에 1,500여명의 노동자들이 농성을 전개했다.
* KBS와 MBC 양대 방송사 소속 기자와 PD, 기술진들이 '방송민주화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7월 17일]]
* [[김대중]]은 불출마 선언을 무효로 한 뒤 출마여부를 검토한다고 선언하였다.
* 서울시철거민협의회(이하 서철협)가 결성되었다.
* [[7월 19일]]
* '서울지역해고노동자투쟁위원회(이하 서해투)'가 결성되었다.
* '인천지역해고노동자협의회(이하 인해협)'가 결성되었다.
* [[7월 20일]]
* 신문협은 정례회의에서 9월부터 일간지를 주 8면으로 증면한다고 결정하였다.
* 태백 한보탄광 노동자와 가족 6백여 명이 퇴직금 지급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7월 21일]]
* 권오성 등 현대중공업 소속 노동자 50여명이 어용노조 기습신고를 냈다.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가 발족되었다.
* 인천 남일금속 노동자들이 어용노조 설립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
* [[7월 23일]]
* 인천 우아미가구 노동자 7백여 명이 제수당 지급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태광산업 부산공장 노동자 1천여 명이 어용노조 해산과 보너스 누진제, 하기휴가 연장, 휴가비 지급 등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북한은 남북한 및 미국, 중립국감독위원회가 참가하는 다국 군축협상을 제의했으나, 미국 국무부가 이를 거부했다.
* [[7월 24일]]
* 현대자동차에 어용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한국중공업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25일]]
* 현대차 노동자 8천여 명이 어용노조 결성 보고대회에서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개시했다.
* '[[현대자동차]] 민주노조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자정에 현대차 측은 어용노조 임원진 사퇴와 [[이상범(정치인)|이상범]] 임시집행부 인정에 합의하였다.
* 김필수 등 현대중공업 노동자 11명이 모여 민주노조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조선공사 부산조선소 노동자와 가족 3,500여 명이 어용노조 퇴진을 외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한국도로공사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26일]]: [[현대중전기]]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27일]]
* 한국제지 안양공장 노동자 150여 명이 노조 결성 및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태광산업, 동양나이론, 동양포리에스텔, 풍산금속 울산공장 등지의 노동자 7천여 명이 파업농성을 벌였다.
* [[북한]] [[평양]]에 광복 1/2호 다리가 완공되었다.
* [[7월 28일]]
* 국제상사 부산공장 노동자 1천 5백여 명이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현중 노동자 1만 7천여 명이 어용노조 퇴진, 노동자의 기본생활개선 등 17개 요구사항을 내걸고 총파업을 벌였다.
* '현대중공업 노조개편 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7월 29일]]
* 대주상호신용금고 주주 김신일이 횡령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 여파로 [[임철순]] 민정당 의원이 8월 8일에 사퇴하였다.
* 풍산금속 노동자 700여 명이 밤샘 파업농성투쟁을 벌여 다음날에 어용노조를 퇴진시켰다.
* 고려투자금융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 [[7월 30일]]
* 현대미포조선 노동자 1천여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현대종합목재(현 현대리바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31일]]
*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이란 순례객들과 사우디 군경 사이에 대규모 유혈충돌이 발생했다.
* 효성중공업 창원공장 노동자 1천여 명이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주)화성 부산공장 노동자 6백여 명이 농성을 벌여 근로조건 개선을 쟁취하였다.
* 현중 노조개편대책위와 사측은 연말상여금 차등제 철폐, 두발 자유화, 새 노조 집행부 구성 등에 합의했다.
* 울산여객 등 6개 시내버스 운전사 400여명이 어용노조 퇴진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농성과 거리 시위를 벌였다.
* 금호석유, [[서울대병원]]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8월 ====
* [[8월 1일]]
* [[현대정공]]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현대정공 울산 1, 2공장 노동자 2,000여명이 도로와 회사를 점거하는 파업농성을 벌였다.
* 현대종합목재 노동자 1,500여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각 신문사들이 지방 주재기자제 부활에 따라 8년 만에 지방판을 다시 냈다.
* 만화가 오원석이 만든 <[[코망쇠 형제]]>가 소년동아일보에 처음으로 연재되었다.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설립되었다.
* [[8월 2일]]
* 향토사학자 홍순일은 북제주군 애월리 배무숭이 바닷가에서 대단위 물소금 제조 흔적을 발굴했다.
* 양궁선수 전인수-박정아가 서독 국제양궁대회에서 남/녀 개인전에서 각각 우승을 차지했다.
* [[8월 3일]]
* 한국은행원 일동은 [[한국은행]]의 헌법상 독립적 지위 보장 및 관련법 개정을 촉구하였다.
* 현대자동차 부산공장 노동자 3천여 명이 '울산 노조결성 보고대회' 뒤 파업농성을 벌였다.
* 고려아연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현대정공 노동자 6백여 명이 파업농성을 벌였다.
* 대우중공업 창원공장 노동자 8백여 명이 파업농성을 벌였다.
* 대성탄좌 장성광업소 노동자 350여 명이 상여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8월 4일]]
* 국본은 하반기 목표를 '군사독재 종식을 위한 선거혁명'으로 설정하였다.
* 논노패션 노동자 30여 명이 노동탄압에 항의하며 민정당 남재희 의원 사무실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 현대알루미늄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8월 5일]]
* [[노태우]] 민정당 총재 권한대행이 새 총재로 취임했다.
* 감사원은 새마을운동중앙본부에 감사를 실시하였다.
* 고려화학, 현대강관, 현대차, 럭키 울산공장 등지의 노동자들이 파업농성을 벌였다.
* 한국중공업 창원공장 노동자 2천여 명이 농성을 벌였다.
* 대한알루미늄, 현대강관에 노동조합이 각각 결성되었다.
* 정선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 노동자 6백여 명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8월 6일]]
* 민통련은 <가자! 민족통일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지역순회강연을 열었다.
* 대우중공업 인천공장 노동자 1천 6백여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부산파이프 포항공장 노동자 3백여 명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노동자 1천 5백여 명이 임금인상, 어용노조 퇴진, 보너스 인상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8월 7일]]
* 통일산업, 기아기공, 한일합섬 창원공장 등지의 노동자 3천여 명이 파업을 벌였다.
* 대우중공업 영등포공장과 군포공장 노동자 1천여 명이 파업농성을 벌였다.
* 원일기업 등 전주지역 택시업체 기사들이 운행을 거부하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 금강개발산업, 만도기계, 해성병원에 노동조합이 각각 결성되었다.
* [[8월 8일]]
* 민주정의당은 금지곡 대폭 해제 등의 조항을 담은 '문화예술 자율화 대책'을 확정했다.
* 삼미종합특수강, 삼미단조, 창원기화기 등의 노동자 7백여 명이 농성을 벌였다.
* 현대중전기 노동자 1천여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김대중]]이 통일민주당 상임고문으로 당적을 옮겼다.
* [[현대그룹]] 12개사 노조가 '현대그룹노동조합협의회'를 결성하였다.
* [[8월 9일]]: 광주지역 54개 노선 시내버스 운전기사 7백여 명이 운행을 거부하며 농성을 벌였다.
* [[8월 10일]]
* 국본은 '양심수 전원석방 및 민주화 쟁취 국민대회'를 개최하였다.
* 대우차 부평공장 노동자 1천 5백여 명이 파업농성을 벌였다.
* 서울 신촌운수 택시기사 40여 명이 연좌농성을 벌였다.
* [[8월 11일]]
* [[이헌기]] 노동부장관은 노사관계 정상화를 위한 특별담화를 발표하였다.
* 대우조선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8월 12일]]
* 김정렬 총리는 '노사관계부처장관 및 치안관계자 대책회의'를 열어 노사분규 중 시설파괴, 점거행위 등에 대해 엄단하겠다고 하였다.
* 앰네스티는 [[한국 정부]]에 양심수 석방을 촉구했다.
* 삼익악기 부평공장 노동자 1천 5백여 명이 임금인상 및 어용노조 퇴진을 외치며 농성을 벌였다.
* 쌍용중공업, [[서울지하철공사]], [[중앙대학교병원|중앙대부속병원]], [[한양대학교병원|한양대부속병원]], 인천세광병원, 한국보훈병원에 노동조합이 각각 결성되었다.
* 광주CBS 소속 직원들은 뉴스와 광고방송 부활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8월 13일]]
* 노민위는 한국노총 어용간부 퇴진을 요구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대우전자 광주공장 노동자 6백여 명이 기본급 지급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구미공단 오리온전기 및 오리온전자 노동자 1천여 명이 농성을 벌였다.
* 철도노조 부산사업소 노동자 2백여 명이 임금인상과 휴가비 지급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금성사 평택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다.
* [[8월 14일]]
* [[전북]] [[군산]] 및 [[강원도]] [[춘천]]지역 27개 택시업체 기사들이 파업농성을 벌였다.
* 대전지역 시내버스 기사들이 파업농성을 벌였다.
* 한국프랜지공업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삼양교통 해고노동자 정병두가 복직 및 살인적 배차제 폐지를 요구하며 분신하였다.
* [[8월 15일]]
* [[충남]] 천원군에 [[독립기념관]]이 개관하였다.
* <노동자신문>이 창간되었다.
* 한국 농구대표팀이 서울 국제초청 농구대회에서 우승컵을 차지하였다.
* [[8월 16일]]
* 국본 산하 노동자공동위는 ‘민족해방을 위한 노동자 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에서 '범민주 과도정부 수립'을 노동자들의 당면 투쟁목표로 제시하였다.
* 미국 디트로이트발 피닉스행 NWA 255편 MD-82기가 악천후로 귀환 도중 추락해 탑승객 148명 중 147명이 사망했다.([[노스웨스트 항공 255편 추락사고]])
* [[8월 17일]]
* 현대그룹 6개 노조 노동자 3만여 명이 사측의 휴업조치에 반발해 가두시위를 벌였다.
* 고려화학, [[한림대학교 의료원]]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북한은 사리원담사대학, 은률광업대학 등 10개 단과대 및 3개 전문대를 신설했다.
* [[8월 18일]]
* [[전두환]] 대통령은 '노사분규 관계장관 회의'에서 노사분규에 대한 불순세력 개입을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 철도노조와 우전노조 등은 '공무원노조협의회'를 구성하여 공무원들의 단체행동권과 단결권 등을 촉구하였다.
* 울산 현대그룹 소속 노동자 15,000여 명이 지역 내 그룹 연합시위를 벌였다.
* 공윤은 1975년 당시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던 <동백 아가씨> 등 186곡을 해금했다.
* 서울YWCA 어린이부가 국내 최초의 출판만화 민간감시단체 '어린이만화 모니터 모임'을 결성하였다.
* [[8월 19일]]
*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전대협)가 결성되었다.
* 동국제강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8월 20일]]
* 대검찰청은 노사분규에 대한 외부개입의 경우에 모두 구속한다는 방침을 결정하고 대검공안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노사분규중앙합동수사본부’와 차장검사를 본부장으로 하는 ‘지역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였다.
* 경희대부속병원, 고려대부속병원, 서울기독병원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8월 21일]]
*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좌경문제의 실체와 심각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확고한 입장을 가질 때”라는 입장을 밝혔다.
* 충남과 전북 지역에서 집중호우로 17명이 사망하였다.
* 한신대직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8월 22일]]
* 대한페인트잉크, 롯데쇼핑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가 가두시위 도중 가슴에 최루탄 파편을 맞아 병원으로 이송 도중 사망했다.
* 한국공항 노동자 2백여 명이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 <소년경향>이 4년 만에 폐간되었다.
* [[8월 23일]]
* 연세대 신촌캠 노천극장에서 5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완전 복직 및 해고 반대를 위한 전국 노동자대회'가 개최되었다.
* '전국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8월 24일]]: 김대중 통민당 상임고문은 '공화국 연방제 통일방안'을 제시하였다.
* [[8월 25일]]: 민청련은 제9차 총회에서 소수 선진청년조직 중심에서 청년대중조직으로 근본적 방향전환을 할 것을 결의하였다.
* [[8월 26일]]
* 노동부는 25일 기준으로 발생한 총 노사분규 업체 수를 2,078개라고 집계하였다.
* 서울민사지법은 1심에서 망원동 수재 사건은 '인재'라고 하여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 순천향대부속병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8월 27일]]
* 김정렬 국무총리는 좌경세력 척결을 위한 특별담화를 했다.
* 정관용 내무부 장관은 ‘좌경세력 활동사례’와 '좌경세력 척결을 위한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 대우조선 파업이 19일 만에 사측의 기본급을 5천원으로 올리는 임금협상 합의로 타결되었다.
* 대우조선 노조 측은 사망한 이석규 노동자의 장지를 유족, 김우중 회장과의 3자 면담에서 전북 남원으로 결정했다.
* 인제대부속 서울백병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제일제당은 국내 최초로 만성 B형 간염 치료제를 개발했다.
* [[8월 28일]]
*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 씨의 장례가 '민주국민장'으로 치뤄졌다. 그러나 장지인 광주 망월동으로 가던 도중 경찰의 진압으로 이석규의 시신이 탈취되어 남원 선산에 묻히고 말았다.
* 전국 13개 도시에서 이석규 열사 추모대회 및 가두시위가 전개되었으나 경찰에 의해 933명이 연행되었다.
* 한국데이타통신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동아생명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 [[빙그레 이글스]]의 선수 [[이강돈]]이 프로야구 사상 두 번째로 사이클링 히트를 성공했다.
* 북한 평양 보통강구역에 [[류경 호텔]]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폐건물~~
* [[8월 29일]]
* (주)오대양 용인공장에서 박순자 사장 등 32명의 시신이 발견되었다.([[오대양 집단 자살사건]])
* 맥스테크, 부천 세종병원, 대한지적공사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8월 30일]]
* 헌법학자이자 정치가인 현민 유진오 박사가 세상을 떴다.
* 고려대 측이 유진오의 빈소를 만들자 학생과 일부 교수들이 반발하였다.
* 금성통신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은 '8인 정치회담'을 열어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하고 부통령제는 신설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 [[8월 31일]]
* 이날 12호 태풍 '다이너'가 상륙하여 71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
* 광주기독병원, 한국무역협회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한국 청소년대표팀이 제4회 세계 남자청소년 배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 미국 유명가수 [[마이클 잭슨]]의 앨범 [[Bad]]가 미국 전역에 발매되었다.
==== 9월 ====
* [[9월]] 중: [[역사비평]]이 무크지로 창간되었다.
* [[9월 1일]]
* 민헌련과 민주인권연구회가 합쳐져 '헌정민권회'로 출범되었다.
*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설립되었다.
* 성운해운 소속 유조선 아스트로 페가서스 호가 페르시아 만에서 이란 미사일에 피격되었다.
* 연합철강 부산공장 노동자 1천여 명이 파업을 벌였다.
* 부천성가병원, 토개공, 대한화재에 노동조합이 결성/설립되었다.
* 문공부는 영화 시나리오 사전심의를 철폐했다.
* 국내 일간지들이 주 8면으로 증면되었다.
* 제1차 평양국제영화축전이 북한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 [[9월 2일]]
* 노태우와 김영삼은 회담을 열어 정치일정과 노사문제 자율원칙 등 5개항에 합의하였다.
* 이날을 기점으로 당년도 노사 분규가 3천 건을 돌파했다.
* 서울상공회의소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현대중공업 울산공장 노동자 2만여 명이 임금협상 결렬을 이유로 파업을 벌여 울산시청에 난입해 사무실을 파괴하고 방화를 했다.
* 조흥택시 노조위원장 이석구가 "노조탄압 중지하라"를 외치며 분신하였다. 이후 그는 17일 뒤에 숨을 거두었다.
* 현대정공 울산공장 노동자 2천여 명이 철야 농성을 벌였다.
*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서도 1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가두 시위를 벌였다.
* [[9월 3일]]
* 현대중공업 노동자인 채태창이 시위 중 차량을 통제하다 음주운전중인 트럭에 치여 숨을 거두었다.
* 경기 부천지역 택시기사들이 전면파업에 돌입하였다.
* 이대병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천하장사씨름대회가 일본 오사카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 [[9월 4일]]
* 서울지역 택시기사 4천여 명이 파업 중에 운행중인 택시에 투석을 하는 등의 과격 가두시위를 벌였다.
* 대우차 부평공장 파업에 경찰이 출동하여 135명의 노동자들이 전원 연행되었다.
*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에서도 경찰이 기습하여 노조 간부 1백여 명이 연행되었다.
* [[9월 5일]]
* 안기부와 보안사는 민주화 과정의 혼란을 틈타 정치권에 침투한 간첩혐의자 장의균 일당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장의균 간첩조작 사건)
*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 1만여 명이 연좌 농성을 벌였다.
* 방송심의위원회는 방송금지 가요 5백곡을 해제했다.
* KBS와 MBC 양사 소속 프로듀서들이 총회를 열어 '한국프로듀서협회'를 세웠다.
* [[9월 6일]]
* 검찰과 경찰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자동차 시위에 관련된 노동자 123명을 구속했다.
* 제13차 세계법률가협회가 개최되었다.
* [[9월 7일]]
* 민정당 중앙정책위원회는 '대통령 선거법', '국민투표법', '중앙선거관리위원회법' 3개 법안 개정안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 전경련은 과격 노사분규 수습안을 위한 '노사정여야 수습회의' 개최를 정부에 건의했다.
* 현대중공업이 파업 지속으로 인해 휴업했다.
* 한국문인협회는 월북 작가 [[정지용]]과 [[김기림]]의 작품 해금을 문공부에 건의했다.
*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이 서독을 방문했다.
* [[9월 8일]]
* 김대중 통민당 고문은 수십만 명의 환영인파 속에 광주를 방문했다.
* 치안본부는 '남로당 재건기도 사건'을 발표하였다.
* 내무부는 민방위 훈련 시간을 연 10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 조정했다.
* NWA 노조는 위탁직원 차별 철폐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이 요구는 10월 9일에 타결되었다.
* 이천전기 인천공장 노동자 4백여 명이 노사협의 결렬에 합의하며 재파업에 돌입하였다.
* [[9월 9일]]
* 파업 회사들의 택시들이 대부분 운행을 재개했다.
* 임권택 감독 영화 <씨받이>에 출연한 영화배우 [[강수연]]이 [[베네치아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9월 10일]]
* 현대중공업은 울산시청에 노조 해산을 명령할 것을 요청했다.
* 인천조선 노동자들이 휴업 기간을 무급 처리한 데 항의하며 재농성에 돌입하였다.
* 고려대학교는 1983년 12월 2일에 출교 처분된 학생 9백여 명을 구제할 것을 결정했다.
* [[9월 11일]]
* 재일동포 사업가인 김희수 씨가 중앙대학교를 인수했다.
* 강남성모병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3백여 명이 원고료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열었다.
* [[9월 12일]]
* '한국여성민우회'가 설립되었다.
* 미국 유명 팝가수 [[마이클 잭슨]]이 자신의 첫번째 월드투어인 'Bad World Tour'를 개시하였다.
* [[9월 13일]]
* 노태우 민주정의당 총재가 미국을 방문했다.
* 게스틴 시거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한국을 방문하여 정부 및 야당 지도자와 정국을 논의했다.
* 한국 청소년 여자배구 대표팀이 서울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여자배구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 [[9월 14일]]
* 서울대학교 측은 1984년 부활 이후 인정하지 않던 총학생회를 공식 인정하였다.
* 근로복지공사 중앙병원 및 산업재활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9월 15일]]
* 서울시경은 걸개그림 <백두의 산자락,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를 그린 전정호와 이상호 작가를 구속했다.
* 제4차 WHO 동남아시아 지역총회가 북한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 북한측은 KOC에 남북체육회담을 제의하였다.
* [[9월 16일]]
* 문공부는 10월부터 CBS에 광고방송과 뉴스를 부활하기로 결정했다.
* 정부는 해외여행 허가를 확대하도록 조치를 내렸다.
* [[광양제철선]] [[광양역]] ~ [[태금역]]구간이 개통되었다.
* [[9월 17일]]
* 외무부는 '대북한 외교관 접촉 완화지침'을 발표했다.
* 종전의 자실이 '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로 개편되었다.
* IOC는 서울올림픽 초청장을 167개 회원국에 발송했다.
* [[9월 18일]]
* 노태우 민주정의당 총재가 일본을 방문했다.
* 국본 산하 '민주쟁취 청년학생공동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여야가 합의한 직선제 개헌안이 발의되어 3일 뒤 공고되었다.
* 정부는 국산 전차 [[K-1 전차]]의 명칭을 '88전차'라고 이름짓는 명명식을 열었다.
* 보사부는 렙토스피라증 경보를 발령했다.
* 전경련은 노동자 쟁의 중 구속된 노동자에 대한 석방을 건의했다.
* 치안본부는 반정부 유인물과 관련해 24개 재야단체를 상대로 일제 수사를 벌였다.
* [[9월 19일]]: 서울적십자병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9월 20일]]
* 제8차 세계언론인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 안기부는 동아인쇄를 점거하고 <이후락 증언>이 실린 신동아 10월호의 발행을 제지했다.
* '고려대학교 노동조합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9월 21일]]
* <[[신동아]]>와 <[[월간조선]]> 기자 80여 명이 신동아 10월호에 게재된 <이후락 증언>에 대한 안기부의 인쇄중지조치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신동아-월간조선 탄압 사태).
* 전두환 대통령은 여야 의원 264명이 공동으로 국회에 낸 '헌법 개정안'을 공고했다.
* 제137회 정기국회가 열렸다.
* 서울대는 시국관련 제적 학생 257명의 복학을 허가했다.
* [[9월 22일]]
* 현대중공업의 노사분규가 해결되어 정상 조업에 들어갔다.
* 산업연구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9월 23일]]: 동아일보 편집/출판국 기자들은 신동아 기사삭제 사태와 관련하여 '편집/출판국 기자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9월 24일]]
* KOC는 북측의 남북체육회담 제의를 거부하며 IOC를 포함한 3자회담을 제의하였다.
* 북한의 김일성은 도이 무츠오 일본 사회당위원장과 회담을 열었다.
* 북한측은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의 비핵, 평화와 반제연대성을 위한 국제회의'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개최했다.
* [[9월 25일]]
* 문교부는 '대학자율화 실천계획'을 발표했다.
*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재파업에 들어갔다.
* 명신고 재학생 1,200여 명이 이사장 퇴진 등을 요구하며 밤 10시까지 농성을 벌였다.
* 제4회 월드컵 스카이다이빙 선수권대회가 열렸다.
* [[9월 27일]]
*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여성노동자 전진대회'를 개최되었다.
* '전국산업재해노동자연맹'이 결성되었다.
* 민주산악회는 부산 금정산 대중집회에서 김영삼을 통민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할 것을 결의했다.
*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이하 전교협)'가 결성되었다.
* [[9월 28일]]: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 [[9월 29일]]
* [[김영삼]]과 [[김대중]]의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회담이 최종결렬되었다.
* KTA가 서울 화곡전화국 목동분국에 1천만번째로 5백만개 회선을 추가 개통하였다. 이로써 국내 전화 회선은 총 1천만을 돌파하게 되었다.
* 체신부와 KTA가 '1000만 회선 돌파 기념식'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하였다.
* [[9월 30일]]: 국민당원 9명이 신당을 만들기 위해 당을 나갔다.
==== 10월 ====
* [[10월 1일]]
* 박찬종 의원 등 대통령후보단일화 촉구 서명의원 12명이 계보탈퇴를 선언했다.
* 최광수 외무장관은 미국 워싱턴에서 프랭크 칼루치 미국 대통령 안보담당 보좌관과 한반도 안보 및 한국의 정치발전 등에 대해 논의했다.
* 경제기획원은 1988~1997년까지 10명 이상 상주하는 섬 449곳을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 '전국사립대학교수협의회연합회(이하 사교련)'가 발족되었다.
* 일본사회당은 일본 정부에 대북한 관계 개선을 촉구했다.
* [[10월 2일]]
* 치안본부는 '성남지역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노선 현장활동가그룹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관련자인 윤영주 등 10명을 국보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 법무부는 개천절 특사로 일반형사범 1,561명을 가석방시켰다.
* 허담 북한 정치국원은 일본 <마이니치신문> 회견에서 북한은 언제나 미국과 대화에 응할 준비가 있다고 밝혔다.
* 북한 두만강 연구조사단은 연구 결과 강 길이가 548km였다고 확인했다.
* [[10월 3일]]
* 전두환 대통령은 개천절 경축사에서 좌경 민중혁명 노동자들의 행동은 민족의 이상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경고했다.
* 민정당은 전신전화채권제도를 1988년부터 전면 폐지한다고 발표하였다.
* 국본은 연세대 신촌캠 운동장에서 시국강연회를 개최하였다.
* [[10월 4일]]
* 박주봉과 김문수 선수가 중공 베이징 세계 배드민턴 선수권대회 남자 복식에서 우승했다.
* <[[가면라이더 BLACK]]>이 일본 MBS에서 첫 전파를 탔다.
* [[10월 5일]]
* '신민주공화당 창당 발기인 대회'가 서울 앰배서더호텔에서 열렸다.
* 농림수산부는 1986년 말 전국 농가 평균부채가 219만 2천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 정일권 전 총리 등 20여명이 '자유수호구국연합 발기인대회'를 열었다.
* [[10월 6일]]
* 국회 본회의가 속개됐다.
* 4당 대표는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선거에 대한 각 당의 입장과 정국운영 과정에 대해 연설했다.
* 정부는 세종문화상 수상자에 손보기(학술부문) 등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 국립중앙박물관이 경기 안양에서 12~14세기 고려청자 가마터를 발견했다.
* 태평양화학이 청보 핀토스를 50억원에 인수했다.
* [[10월 7일]]
* 제32진영호가 백령도 서쪽 공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에 피격돼 선원 11명이 숨졌다.
* JAL 한국지사 파업이 20일만에 중앙노동위 중재로 타결되었다.
* [[10월 8일]]
* 미 국무부는 제32진영호 격침사건과 관련해 국제 행위규범 위반이라고 북한을 비판했다.
* 미 국방부는 페르시아만에서 미군 헬기가 이란 함정 3척을 격침했다고 발표했다.
* [[10월 9일]]
* 김영삼 민주당 총재가 선거 선심중단과 공정보도를 촉구했다.
* 공진청은 품질표시 대상품목을 49개에서 95개로 확대했다.
* 대한조선공사 부산조선소 노동자 3천여명이 태업했다.
* [[10월 10일]]
* [[김영삼]] 민주당 총재가 대통령 출마를 공식 선언하였다.
* 민정당은 '장애인종합복지대책'을 확정했다.
* 은감원은 알아듣기 어려운 금융용어 1,300여 개를 쉬운 말로 변경키로 결정했다.
* [[10월 11일]]: 전국대학서클연합회가 결성되었다.
* [[10월 12일]]
* [[대한민국 국회]],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제9차 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254, 반대 4로 의결되었다.
* [[김영삼]] 민주당 총재는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6대원칙' 및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 5단계'를 제시했다.
* 김종하 KOC 위원장은 북한이 남북올림픽위원회 간의 직접대화 거부를 언급했다.
* [[10월 13일]]
* 민통련은 김대중 통일민주당 고문을 대통령으로 추천한다고 발표했다.
* 법무부는 서울구치소를 경기 시흥군 의왕읍 포일리로 이전한다고 발표하였다.
* 제68회 전국체전 개막식이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열렸다.
* [[10월 14일]]
* NWA 노조가 사측의 보복인사에 항의하며 재파업을 벌였다.
* 고려대학교 노동조합이 창립되었다.
* 양궁선수 김수녕이 전국체전 양궁 70m 싱글에서 비공인 세계기록을 수립했다.
* [[10월 15일]]
* 동자부는 다음날부터 국내 석유값을 평균 10.2%로 내린다고 밝혔다.
* 치안본부는 국민투표거부운동을 주도한 제적학생 11명을 구속했다.
* 1980년 공직자 숙정 당시 해직자들이 김종필 총리의 원상회복 어렵다는 답변에 반박성명을 냈다.
* 충북 음성군 관성복지원에 수용된 정신질환자 49명이 집단 탈출했다.
* [[10월 16일]]
* 도시노점상복지회가 '도시노점상연합회'로 바뀌었다.
* 검찰은 대선 모의투표 결과를 교내 게시판에 올린 중앙대생 3명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배했다.
* 남서울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 발족되었다.
* 법무부는 형사사건 피해자의 법정 진술권을 신설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 [[10월 17일]]
* 전두환 대통령은 개헌 국민투표일을 27일로 공고했다.
* 김영삼 민주당 총재는 부산 수영만 군중집회에서 후보단일화 등을 촉구하였다.
* 문공부는 김영삼 민주당 총재의 부산 수영만 군중집회 항공취재를 보안상의 이유로 불허했다.
* <생방송 심야토론: 전화를 받습니다>가 KBS1에서 첫 전파를 탔다.
* 한국 대표팀이 제4회 아시아레슬링선수권대회 그레코로만형에서 종합 우승했다.
* [[10월 18일]]: 인노련이 <정세와 실천>을 발간했다.
* [[10월 19일]]
* 민정-민주 양측이 8인 정치회담에서 대통령선거법 개정협상을 타결했다.
* 노태우 민정당 총재는 '동서고속전철'을 1990년부터 착공한다고 밝혔다.
* 정부와 민정당은 '남녀고용평등법안'을 마련했다.
* 현대엔진 노조위원장 권용목이 구속되었다.
* '자유수호구국연합회'가 발족되었다.
* (현지시간 기준)[[미국]]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순식간에 508포인트, 22.6%나 폭락했다.(검은 월요일 사건)
* 문공부는 판금도서 650종 중 431종을 해금하는 등의 '출판활성화조치'를 발표하였다.
* [[10월 20일]]
*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후보단일화가 실패했다.
* 감사원은 새마을운동중앙본부 감사결과를 서면으로 국회에 보고했다.
* 서울시경은 '애국크리스찬학생 공동투쟁위원회'를 적발해 정동회 위원장 등 관련자 9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 서울 여의도에 '럭키금성 트윈타워'가 준공되었다.
* 한민족윤리회의가 설립되었다.
* [[10월 21일]]
* 노태우 민정당 총재는 광주지구청년자원봉사단 발단식에서 5.18 치유조치를 마련했다.
* 수원대생 1천여명이 종합대 승격 누락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 [[10월 22일]]
* DJ-YS 양김은 또다시 회담을 열어 김영삼 총재 측이 후보 단일화를 위해 경선제를 제의하였으나, 김대중이 26일까지 대답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 삼성그룹이 경기도 용인군 기흥읍에 '삼성종합기술원'을 열었다.
* 북한 조선민항이 평양~모스크바~베를린 항로를 개설했다.
* [[10월 23일]]
* 한일 양국은 어업실무자회의에서 홋카이도 근해 조업중인 한국 어선을 1991년까지 철수하는 등의 어업협상을 타결했다.
* 선관위는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인수를 2,561만 9,648명으로 확정했다.
* 서울, 부산, 창원, 안양 등 해고노동자 11명이 '노동운동 탄압분쇄 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한국노총이 '노동법 개정촉구 중앙궐기대회'를 열었다.
* 세종대가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었다.
* 대한교련은 제49차 대의원대회에서 '교육자율화를 위한 교육선언'을 채택했다.
* 김유순 북한 조선올림픽위원장은 서울올림픽과 관련해 현 남한정부와 공동개최를 못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10월 24일]]
* 이철승 등을 중심으로 '자유민주총연맹'이 결성됐다.
* 서울 차병원은 국내 최초로 난소 없는 여성 인공임신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 전남대박물관은 운주사지에서 범어가 새겨진 기와를 발견한 후 사찰배치구조를 확인했다.
* [[10월 25일]]
* 고려대 안암캠 운동장에서 '민주쟁취 청년학생 공동위원회 창립대회' 및 '공정선거 보장을 위한 거국국민내각 쟁취 실천대회'가 열렸다.
* DJ-YS 양김이 고려대 거국국민내각 쟁취 실천대회에 참석했다.
* 해태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꺾어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2연패를 달성하였다.
* <[[뉴스비전 동서남북]]>이 KBS2에서 첫 전파를 탔다.
* [[10월 26일]]
* 김대중 민주당 고문은 김영삼 총재가 제의한 '대통령 후보단일화를 위한 전당대회'에서의 경선제를 거부했다.
* 일양약품 선수 이준희가 제13회 천하장사씨름대회에서 럭키금성 선수 이봉걸을 꺾고 우승했다.
* [[10월 27일]]
* '''제9차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진행됐다. 결국 압도적 찬성으로[* 투표율 78.2% / 찬성 94.5% vs 반대 5.5%] 개헌안이 최종 확정됐다.'''
* 상공부는 당년도 자동차생산량을 116만대로 집계했다.
* 국본 산하 노동자공동위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노동운동 탄압분쇄 결의대회’를 개최되었다.
* 민족통일애국운동청년단이 결성되었다.
* 노스웨스트항공노조는 임시총회에서 협상타결 때까지 단식농성키로 결의했다.
* [[10월 28일]]
* 정부와 민정당은 13대 대선일을 12월 16일로 확정했다.
* 김대중 민주당 고문이 대통령 출마 및 신당 창당을 공식 선언하였다.
* 서울운수노동조합협의회(이하 서울노협)가 결성되었다.
* [[10월 29일]]
* 전두환 대통령은 9차 개정 헌법을 공포했다.
* 치안본부는 지하신문을 제작한 고대생 변성관 등 4명을 국보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 검-경은 116개 서점에 영장 없이 자진수거 형식으로 미해금 판금도서 158종 825권을 압수했다.
* 경찰은 건대사태 1주년과 관련해 정치인 초청 통일문제강연회를 저지했다.
* [[헌법재판소]]가 창설됐다.
* 국본 산하 '민주쟁취 국민운동 천주교공동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한국은행은 무역금융융자단가 인하 등을 담은 '통화환수정책'을 확정했다.
* [[한국일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0월 30일]]
* 국회는 17조 4,644억 2,900만원 규모의 새 예산안을 의결했다.
* [[김대중]]을 주축으로 한 [[평화민주당]] 창당 발기인 대회가 열렸다.
* [[김종필]]을 주축으로 한 [[신민주공화당]]이 창당되었다.
* 김대중 평민당 준비위원장이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대통령 출마이유를 설명했다.
* 수산청은 중공 등 5개국과 어업협력 등 '원양어업 진흥대책'을 마련했다.
* 국립청주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 부산시립박물관은 부산직할시 두구동 임석부락 야산에서 신라토기 가마를 처음으로 원형 발굴했다.
* [[NEC]]는 16비트 게임기 [[PC엔진]]을 일본에 발매하였다.
* [[10월 31일]]
* 여야 3당 총재가 각각 서울, 인천, 전주에서 대중집회를 열었다.
* 정부와 민정당은 11월 2일부터 극동방송에 뉴스와 광고방송을 허용한다고 발표하였다.
* 송건호 민언협 의장 등 13명은 123명이 서명한 야당 대통령후보 단일화 촉구성명을 발표하였다.
* 부산시경은 부산대에서 북한을 찬양하는 전지 88장짜리 대자보를 압수했다.
* 경희대학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1월 ====
* [[11월 1일]]
* 김대중 평민당 창당준비위원장이 유세 도중 묵던 부산국제호텔 앞에서 괴청년 3명이 폭력사태를 일으켰다.
* [[대한민국 해병대사령부]]가 해체 14년만에 재창설되었다.
* 싱어송라이터 유재하가 교통사고로 25세에 요절했다.
* [[11월 3일]]
* 서울대 등 서대협 소속 10여개 대학생들이 명동 일대에서 가두 시위를 벌였다.
* 한겨레사회연구소가 설립되었다.
* [[11월 4일]]: 한주의통일한국당은 창당대회에서 신정일 한얼교 교주를 총재 겸 대통령후보로 추대하였다.
* [[11월 5일]]
* 종전의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에서 '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로 개칭되었다.
* 한출협은 '출판사 및 인쇄소의 등록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비민주적 독소조항이 있다며 항의성명을 발표하였다.
* [[11월 6일]]
* 이민우 신민당 총재가 정계 은퇴를 발표하였다. 이와 동시에 신민당은 사실상 와해되었다.
* <북한을 바로 알기 위하여>란 대자보를 붙인 연세대생 이병광이 국보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수배되었다.
* 나카소네의 후임으로 [[타케시타 노보루]]가 새 일본 총리가 되었다.
* [[11월 7일]]
* 한국텔레비전카메라기자회가 설립되었다.
* 종전의 대한권격협회가 '대한권격도협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 [[11월 8일]]: 전대협은 '군부독재 종식과 공정선거 보장을 위한 거국중립 내각 쟁취 범국민 결의대회'를 열었다.
* [[11월 9일]]
* 민주당은 임시전당대회에서 김영삼 총재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였다.
* 정승화 전 육참총장이 민주당에 입당하여 12.12 사태가 선거 쟁점으로 떠올랐다.
* [[11월 11일]]
* 국내 섬유류 수출이 1백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단일 업종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 '백기완 선생 대통령후보 임시추대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한산대첩기념제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11월 12일]]
* 평민당은 창당대회에서 김대중 총재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였다.
* 산업기지개발공사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1월 13일]]
* '군정 종식과 자주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에너지관리공단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 Five Nights at Freddy's 2 입질사건이 일어났다. --
* [[11월 14일]]
* 김영삼 민주당 총재의 광주 유세가 군중들의 난동으로 중단되었다.
*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가 발족되었다.
* [[11월 15일]]
* '민중대표 대통령후보 전국추대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서울구치소가 78년간의 현저동 시대를 마감하고 시흥군 의왕읍으로 이전하였다.
* 북한-중공이 공동 건설한 랴오닝성 태평만발전소가 조업을 개시했다.
* [[11월 16일]]: 낙동강 하구둑이 준공되었다.
* [[11월 18일]]
* '학살원흉 노태우 집권분쇄를 위한 학생투쟁연합'이 결성되었다.
* 농협중앙회가 '농업박물관'을 개관하였다.
* 동아일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1월 19일]]: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 [[11월 20일]]
* 민통련은 각계 인사 3천여 명과 함께 '김대중 선생 단일후보 범국민추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국본은 '공정선거감시 전국본부'를 발족하였다.
* [[11월 21일]]: 4.13 호헌조치에 반대한 의사들을 중심으로 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가 발족되었다.
* [[11월 22일]]: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WGN-TV와 WTTW-TV 등지에 괴한 2명이 전파납치를 시도했다.([[맥스 헤드룸 전파납치 사건]])
* [[11월 23일]]
* 백기완 전 민통련 부의장이 무소속 대통령 후보로 등록되었다.
* '군정종식·단일화쟁취 국민협의회(이하 국협)'가 결성되었다.
* '수도권지역노동자선거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민중정당 결성 및 군부독재 종식을 위한 전국학생 민중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민주쟁취천주교공동위원회는 '부정선거감시단 서울본부'를 발족하였다.
* [[11월 24일]]: 민통련 등 재야 7개 단체는 '광주학살 및 12·12 반란원흉 처단 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 [[11월 25일]]
* '군부독재 종식을 위한 투쟁본부'가 결성되었다.
* '민중대표 백기완 선생 선거운동 전국본부(이하 백본)'가 결성되었다.
* 김영삼, 김대중, 문익환 목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고려대 운동장에서 '민주쟁취 학생 공동위원회 창립 및 거국내각 쟁취 실천대회'가 개최되었다.
* [[11월 26일]]
* 서철협, 빈민활동가, 천도빈, 기빈협, 도노련 등은 3만여 인파가 모인 가운데 상계동에서 "노태우 철거 없이 빈민 생존보장 없다"는 구호를 내세우며 대규모 도시빈민대회를 개최하였다.
* 한국노총 자동차노련의 택시부문이 독립하여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이 결성되었다.
* 민교협 산하 '민주교수탄압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1월 27일]]
* '한국자유금융노동조합연합'이 결성되었다.
* 서울대학교강사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인천지역선거투쟁연합이 발족되었다.
* [[11월 28일]]
*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될 시 임기 중 중국과 수교하고 서해안 시대의 개막을 서두르겠다고 공약했다.
* 경찰은 국본의 '광주학살 및 12.12사태 진상규명 시민대회'를 봉쇄하고 157명을 연행했다.
* 남아프리카 항공 295편이 인도양 상공에 추락해 탑승인원 159명 전원이 사망했다.
* 대림엔지니어링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전국청년협의회총본부 등 26개 단체를 주축므로 한 '반공애국단체총연합회'가 결성되었다.
*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정기간행물의 등록의 관한 법률'과 '방송법'으로 분리되었다. 아울러 '범죄 피해자 구조법'도 제정되었다.
* [[11월 29일]]
*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의 광주 유세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하였다.
* '''바그다드발 서울행 KAL 858편 B-707 여객기가 버마 인근의 안다만 상공에서 폭발해 탑승객 115명 전원이 숨졌다.'''([[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이하 전대기련)'이 결성되었다.
* [[11월 30일]]: 중공-라오스 양국이 8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하였다.
==== 12월 ====
* [[12월 1일]]
* 호암 이병철 창업주의 3남인 이건희가 삼성그룹 회장직에 취임하였다.
* [[중앙일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서울대병원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였다.
* [[12월 2일]]
* 민정-민주-평민-공화 4당이 국내 최초로 TV를 통해 선거유세 대결을 펼쳤다.
* 재무부는 국내에 해외증권 투자펀드설치 등을 통해 자본시장의 국제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 서울지역제화공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2월 3일]]
* 중부고속도로 145.3km 구간이 개통되었다.
* 미-소 양국은 유인화성탐사계획을 공동으로 추진키로 하였다.
* [[12월 4일]]
*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었다.
*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2월 5일]]: 홍숙자 사회민주당 후보가 대통령 후보에서 사퇴했다.
* [[12월 7일]]: 한국전력기술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2월 8일]]
* 레이건-고르비가 미국 워싱턴에서 미소정상회담을 열어 중거리 핵 전략(INF) 폐기 협정에 조인했다.
* 한미친선군민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난민캠프에서 청년 4명이 이스라엘군 트럭에 치여 숨을 거두었다. 이는 제1차 인티파다의 씨앗이었다.
* [[12월 9일]]
* MBC 및 한국과학기술원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전국농어민후계자협의회(이하 전후협)'가 발족되었다.
*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2.0을 북미지역에 발매했다.
* [[12월 10일]]: 소련은 아시아-태평양 문제해결 방안의 공동 모색을 위한 전 아시아 국민회의를 제의했다.
* [[12월 11일]]
* 김영삼, 계훈제, 백기완 야권 3자가 서울 남산 외교구락부에서 비상정치협상회의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 문제에 대해 논의했으나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 민통련 등 75개 재야/학생단체는 김대중 후보 지지를 결의하였다.
* 전대협 소속 학생인 정화려 등이 대선에 대한 KBS의 왜곡/편파보도에 항의하며 KBS별관을 점거하였으나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KBS 별관 점거농성 사건).
* [[12월 12일]]
*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집권 시 대사면을 단행하고 국민 재신임의 방법으로 중간평가를 받겠다고 공약했다.
* '전국병원노동조합협의회(이하 병원노협)'가 결성되었다.
* [[12월 14일]]
* 백기완은 대학로에서 개최된 '군정 종식과 민주연립정부 쟁취 국민총궐기대회'에서 민주대연립 시도 좌절을 밝히며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 전국 55개 대학교수 355명이 김대중 후보 지지 성명을 발표하였다.
*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이하 마창노련)'이 결성되었다.
* 코리아헤럴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제3회 ASEAN 정상회담이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되었다. 이 회담에서 정상들은 경협을 다짐하고 동남아 비핵지대화를 추구하였다.
* [[12월 15일]]: 국본 전북본부 등 21개 재야단체와 시민 1만 5천여 명은 전주코아백화점 앞에서 '이규효 망언 전북도민 규탄대회'를 열고 가두행진을 벌였다.
* [[12월 16일]]
* '''17년만에 직선제로 전환된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치뤄졌다. 이 선거에서 [[야당]] 후보 김영삼과 김대중, 그리고 백기완을 위시한 야권 전체의 단일화 실패[* 다만 여기에는 평민당 김대중 후보측이 제기한 개표 조작설[* MBC 기사([[https://imnews.imbc.com/replay/1987/nwdesk/article/1799629_29505.html|#1]], [[https://imnews.imbc.com/replay/1987/nwdesk/article/1799657_29505.html|#2]]) 참고.] 등이 있다.]로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다.'''
* 공정선거감시단 소속 대학생 1천여 명이 서울 구로구청 앞에서 부재자투표함을 실은 트럭을 적발해 내 '부정선거'라 항의하며 구로구청 청사를 봉쇄하고 농성에 돌입하였다.(구로구청 부정선거 항의 점거농성 사건)
* 한국 남극과학기지 건설팀이 남극 킹조지 섬에서 공사를 시작했다.
* [[12월 17일]]
*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는 '민주화합추진본부'를 설치해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겠다고 언급했다.
* 허기수는 '구로구청 부정선거 규탄대회'에 참가한 후 부정선거에 항의하며 분신자살을 기도하였다.
* 통민당과 평민당은 대통령 선거를 무효라고 주장하여 선거 무효화 투쟁을 하기로 결정했다.
* 치안본부는 갑호비상근무령을 무기한 연기하고 선거 불복 집회를 원천 봉쇄했다.
* [[캡콤]]은 [[록맨 시리즈]] 제1작 <록맨>을 일본에 발매하였다.
* [[12월 18일]]
* 전두환 대통령은 다수의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고 담화했다.
* 경찰은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구로구청 농성에 대해 폭력진압을 감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915명의 연행자와 17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노태우 후보의 당선을 확정 공고했다.
* 성균관대학교강사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일본 스퀘어 사가 [[파이널 판타지 1]]을 발매했다.
* [[12월 19일]]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통민당과 평민당 등 야당에 대해 국민 화합과 정치 안정을 위해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을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이하 서고련)'이 결성되었다.
* [[12월 20일]]: 여객선 [[도나 파즈호 침몰 사고|도냐 파스호]]와 유조선 벡터호가 필리핀 마닐라 인근 해상에서 충돌하여 '''4,375명이 사망'''했다. 이 사고는 비 전시상황에서 발생한 전 부문의 해양사고 중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
* [[12월 22일]]
* 산악인 허영호가 이끄는 한국원정대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 한국화학연구소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2월 23일]]
* 경제기획원은 1985년 기준 성씨집계에서 총 성씨가 274개라고 발표하였다.
* 대법원은 '혼인에 관한 특례법 시행규칙'을 시행하였다.
* 광주 충장로 등지에서 학생과 시민 1천여 명이 선거무효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 [[12월 24일]]: 최저임금심의위는 전체 조업체의 최저임금액을 111,000 및 117,000원으로 이원화해 결정하였다.
* [[12월 27일]]: 서대협 주최 '부정선거 무효화 및 독재퇴진 결의대회'에 참석한 학생과 시민 2천여 명이 명동성당까지 진출해 시위를 벌였다.
=== 가상 ===
* '''[[1987(영화)|1987]]의 배경 연도'''
* [[개그 콘서트]]의 코너 [[대화가 필요해 1987]]의 배경연도.
* [[보통사람]]의 배경연도.
* [[비명을 찾아서]]의 배경 연도.[* 부제가 <경성(京城), 쇼와 62년>(= 서기 1987년)이며, 작품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1987년 한 해''' 동안 전개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죠죠의 기묘한 모험]] 제3부 [[스타더스트 크루세이더즈]]의 배경연도.
* [[트랜스포머 시네마틱 유니버스]] 리부트 세계관 중 [[범블비(영화)|범블비]]의 배경연도.
* [[파스포투트]]의 배경 연도.
* [[퍼펙트 게임(2011)|퍼펙트 게임]]의 배경연도.
* [[해리 포터: 호그와트 미스테리]]의 4학년 배경연도. [[1984년]]부터 6학년 시점인 [[1989년]]까지 이어진다.
* [[Five Nights at Freddy's 2|FNaF 2]]의 배경연도이자 '''Bite of '87'''(87년도 입질 사건)이 발생한 연도.
* [[6월 항쟁]]이 발생하자 북한은 간첩을 투입하여 남한 사회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대한민국 정부는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를 진압한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내전]] 직전까지 몰리게 되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북한이 전면적인 침공을 개시한다. - [[워게임: 레드 드래곤]]
* [[겁스 판타지|유르스]]의 도둑 길드가 비회원 사냥에 나섰다. - [[겁스 무한세계]]
* [[소련]]의 분리주의자들이 발사한 핵미사일을 막기 위해 [[행크 핌(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1대 앤트맨]]과 [[재닛 밴 다인(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1대 와스프]]가 출동했으나, 막상 수트의 축소화 능력으로도 [[티타늄]] 재질의 미사일 내부로 들어갈 수가 없어 곤경에 빠졌고, 결국 1대 와스프가 자신의 수트에 달린 소형화 조절기를 폭주시켜 미사일을 바다에 추락시킨 뒤, 본인은 조절기의 폭주로 인해 양자 영역에 빠져 실종되고 만다. - [[앤트맨(영화)|앤트맨]]
* [[칼 존슨]]이 [[산 안드레아스(3D 세계관)|산 안드레아스]]를 떠나 [[리버티 시티]]로 이주했다. 한편, 그의 형제 관계인 브라이언 존슨이 사망하고 산 피에로의 도허티 차고가 버려졌다.
* [[학교생활!]]의 배경지인 [[학교생활!#s-4.2|사립 메구리가오카 학원]]의 설립 연도.
== 탄생 ==
=== 실존인물 ===
==== 1월 ====
* [[1월 1일]]
* [[박헌도]]: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임종혁]]: 한국의 개그맨
* [[김준수(JYJ)|김준수]]: 한국의 그룹 [[JYJ]]의 멤버 겸 뮤지컬 배우
* [[1월 8일]] - [[고토 사오리]]: [[일본]]의 [[성우]]
* [[1월 10일]] - [[이토 치아키]]: [[AAA(일본 그룹)|AAA]]의 전 멤버
* [[1월 11일]]
* [[김영광(배우)|김영광]]: 한국의 배우
* [[제이미 바디]]: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1월 12일]]
* [[심재현]]: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
* [[살바토레 시리구]]: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1월 13일]] - [[이승기]]: 한국의 [[가수]]
* [[1월 14일]] - [[한동훈(프로게이머)|한동훈]]: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 [[1월 15일]]
* [[켈리 켈리]]: [[미국]]의 [[프로레슬러]] 출신 [[모델]]
* [[곽시양]]: 한국의 배우
* [[1월 16일]] - [[박주호]]: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1월 18일]] - [[김성기(1987)|김성기]]: 한국의 전 [[프로게이머]]
* [[1월 19일]]
* [[카네코 유키]]: 일본의 성우
* [[문현아(가수)|문현아]]: 한국의 가수
* [[1월 22일]] - [[배지현]]: [[대한민국]]의 [[프리랜서]] [[MC#s-1|MC]]
* [[1월 24일]]
* [[루이스 수아레스]]: [[우루과이]]의 [[축구선수]]
* [[모리노 마코]]: 일본의 [[성우]], [[배우]]
* [[1월 25일]] - [[후지와라 토모키]] - 한국의 보이그룹 [[에이스타일|AST'1]]의 멤버이자 일본의 배우/방송인.
* [[1월 27일]] - [[김선신]]: 한국의 [[아나운서]]
* [[1월 30일]] - [[아르다 투란]]: [[터키]]의 축구 선수
* [[1월 31일]] - [[박은호]]: [[브라질]] 출신의 [[축구 선수]], 본명은 Qerino da Silva Wagne.
==== 2월 ====
* [[2월 1일]]
* [[이자와 시오리]]: [[일본]]의 성우
* [[주세페 로시]]: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 [[2월 2일]]
* [[빅토리아(f(x))|빅토리아]]: 한국의 가수, [[걸그룹]] [[f(x)]]의 멤버
* [[헤라르드 피케]]: [[스페인]]의 축구선수
* [[2월 5일]]
* [[양동원]] :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변형태]] :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2월 6일]] - [[장누리]](Cain): [[대한민국]]의 前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現 [[리그 오브 레전드]] [[코치(스포츠)|코치]]
* [[2월 8일]] - [[카롤리나 코스트너]]: 이탈리아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 [[2월 9일]]
* [[이센스]]: 한국의 [[래퍼]], [[슈프림팀]]의 멤버
* [[마이클 B. 조던]]: [[미국]]의 [[배우]]
* [[2월 10일]] - [[김재춘(프로게이머)|김재춘]]: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 [[2월 11일]] - [[호세 카예혼]]: [[스페인]]의 축구 선수
* [[2월 12일]]
* [[타노 아사미]]: 일본의 성우
* [[한보름]]: 한국의 배우
* [[2월 14일]]
* [[에딘손 카바니]]: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
* [[타카모리 나츠미]]: 일본의 성우
* [[2월 15일]] - [[아사쿠라 아즈미]]: 일본의 성우
* [[2월 17일]]
* [[이보람]]: 한국의 [[가수]]. [[씨야]]의 멤버.
* [[황선일]]: 한국의 [[야구]]선수
* [[2월 18일]] - [[신아영]]: 한국의 [[아나운서]]
* [[2월 21일]]
* [[엘리엇 페이지]]: [[캐나다]]의 배우
* [[전상욱(프로게이머)|전상욱]]: 한국의 [[프로게이머]]
* [[2월 22일]]
* [[한효주]]: 한국의 배우
* [[세르히오 로메로]]: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2월 24일]] - [[김규종]]: 한국의 [[아이돌]] 가수 [[SS501(아이돌)|SS501]]의 멤버
* [[2월 25일]] - [[박정민(배우)|박정민]]: 한국의 배우
* [[2월 28일]]
* [[최정]]: 한국의 [[야구]]선수
* [[안토니오 칸드레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3월 ====
* [[3월 1일]] - [[김그림]]: 한국의 가수
* [[3월 3일]] - [[이정현(1987)|이정현]]: 한국의 농구선수
* [[3월 4일]] - [[원에스더]]: 한국의 성우
* [[3월 6일]] - [[케빈프린스 보아텡]]: [[가나]]의 축구 선수
* [[3월 9일]] - [[이창호(야구선수)|이창호]]: 한국의 야구 선수
* [[3월 10일]]
* [[김주현(배우)|김주현]]: 한국의 배우
* [[민병헌]] - [[한국]]의 [[야구선수]]
* [[레이 양]]: 대한민국의 피트니스 모델이자 방송인
* [[유우키 카나]]: 일본의 성우 및 가수
* [[3월 11일]]
* [[나가츠키 탓페이]]: 일본의 라이트노벨 작가
* [[오케이션]]: 한국계 미국인 래퍼
* [[3월 13일]] - [[채민지]]: 한국의 성우
* [[3월 15일]] - [[윤지유]]: 한국의 배우
* [[3월 17일]]
* [[신보라(개그우먼)|신보라]]: [[개그우먼]]
* [[정찬성]]: 한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3월 19일]]
* [[이주연(배우)|이주연]]: 한국의 배우, [[걸그룹]] [[애프터 스쿨]]의 전 멤버
* [[AJ 리]]: 미국의 前 [[프로레슬러]]
* [[3월 23일]]
* [[강남(가수)|강남]]: 일본 출신의 대한민국의 [[가수]]
* [[김정환(프로게이머)|김정환]]: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 [[성유미]]: [[한국]]의 아나운서
* [[3월 24일]]
* [[하미레스]]: [[브라질]]의 [[축구 선수]]
* [[넉살]]: [[대한민국]]의 래퍼
* [[3월 25일]]
* [[김수영(코미디언)|김수영]]: 한국의 개그맨
* [[류현진]]: 한국의 [[야구]] 선수, [[토론토 블루제이스]] 소속
* [[오다 노부나리]]: [[일본]]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 [[3월 26일]]
* [[정범모]] : [[한국]]의 [[야구선수]]
* [[한지우(배우)|한지우]]: [[대한민국]]의 배우
* [[YUI]]: [[일본]]의 가수
* [[3월 27일]]
* [[버스터 포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포수]]
* [[신영록]]: 한국의 축구선수
* [[임동혁(프로게이머)|임동혁]]: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 [[폴리나 가가리나]]: 러시아의 가수
* [[3월 28일]] - [[김이안]]: 대한민국의 배우
* [[3월 29일]] - [[디미트리 파예]]: [[프랑스]]의 축구 선수
* [[3월 31일]] - [[윤균상]]: 한국의 배우
==== 4월 ====
* [[4월 3일]]
* [[김도영]]: 대한민국의 성우
* [[박정민(SS501)|박정민]]: [[한국 아이돌]] 그룹 [[SS501(아이돌)|SS501]]의 멤버
* [[4월 4일]] - [[사미 케디라]]: [[독일]]의 [[축구선수]]
* [[4월 9일]] - [[블레이즈 마투이디]]: [[프랑스]]의 축구 선수
* [[4월 11일]]
* [[민서희]] : 대한민국의 레이싱모델
* [[박재혁(1987)|박재혁]]: [[한국]]의 [[프로게이머]]
* [[이재성(아나운서)|이재성]]: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4월 15일]] - [[Iyaz|Iyaz(아이야즈)]]: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가수]]
* [[4월 16일]] - [[구새봄]]: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4월 17일]] - [[메드히 베나티아]]: [[모로코]]의 축구 선수
* [[4월 19일]]
* [[마리아 샤라포바]]: [[러시아]]의 [[테니스]] 선수
* [[조 하트]]: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제임스 후퍼]]: [[영국]]의 탐험가, [[비정상회담]] 출연자
* [[4월 20일]]
* [[송채윤(작가)|송채윤]]: 대한민국의 前 배우, 現 웹툰 스토리 작가
* [[천우희]]: [[대한민국]]의 배우
* [[헤이든 패든]]: [[뉴질랜드]] 출신 [[WRC]] 랠리 드라이버
* [[4월 22일]]
* [[정은선]]: [[한국]]의 [[개그우먼]]
* [[광수]]: 한국의 [[래퍼]], [[슈퍼노바]]의 멤버
* [[다비드 루이스]]: [[브라질]]의 축구선수
* [[존 오비 미켈]]: [[나이지리아]]의 축구 선수
* [[4월 24일]]
* [[서준영]]: [[한국]]의 [[배우]]
* [[얀 베르통헨]]: [[벨기에]]의 [[축구 선수]]
* [[4월 25일]] - [[박재범]]: 한국의 가수
* [[4월 26일]] - 타치바나 아사미: [[일본]]의 [[작곡가]]
* [[4월 27일]]
* [[페이(1987)|페이]]: 한국의 가수, 걸그룹 [[miss A]]의 멤버
* [[윌리엄 모즐리]]: [[영국]]의 [[배우]]
* [[4월 28일]]
* [[김승혜]]: 한국의 개그우먼
* [[대쿠안 쿡]]: 미국의 농구 선수
* [[손영민]]: 한국의 야구 선수
* [[스테파니 코넬리우센]]: [[덴마크]]의 [[배우]]
* [[4월 29일]] - [[한기주]]: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5월 ====
* [[5월 1일]]
* [[레오나르도 보누치]]: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이시강]]: 한국의 前 가수, 現 배우
* [[5월 2일]] - [[강정호]]: 한국의 야구선수
* [[5월 4일]] - [[세스크 파브레가스]]: [[스페인]]의 축구선수
* [[5월 5일]] - [[이샘]]: 한국의 가수, 모델
* [[5월 6일]]
* [[문근영]]: 한국의 배우
* [[드리스 메르턴스]]: [[벨기에]]의 축구 선수
* 남진아: 한국의 개그우먼, 배우.
* [[5월 7일]]
* [[미야자키 히로무]]: 일본의 성우
* [[콘노 아사미]]: 前 [[모닝구 무스메]] 멤버, 現 [[TV 도쿄]] 아나운서
* [[5월 9일]]
* [[이상호(1987)|이상호]]: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 [[케빈 가메이로]]: [[프랑스]]의 축구 선수
* [[5월 10일]] - [[서효원(탁구)|서효원]]: 한국의 [[탁구]] 선수
* [[5월 11일]] - [[임슬옹]]: 한국의 가수, [[2AM]]의 멤버
* [[5월 12일]]
* [[타샤|오고은]]: 한국의 코스프레
* [[이세진(코미디언)|이세진]]: 한국의 코미디언
* [[5월 13일]] - [[신정락]]: 한국의 야구선수
* [[5월 15일]] - [[김보미(1987)|김보미]]: 한국의 배우
* [[5월 16일]] - [[한채이]] : 대한민국의 레이싱모델
* [[5월 20일]]
* [[톡식(밴드)|김정우]]: [[밴드]] [[톡식]]의 멤버.
* [[오세근]]: 한국의 [[농구]] 선수
* [[윤기원(축구선수)]]: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이하율]]: 대한민국의 배우
* [[5월 21일]] - [[고성현]]: [[대한민국]]의 [[탁구]][[선수]]
* [[5월 22일]]
* [[아르투로 비달]]: [[칠레]]의 [[축구 선수]]
* [[에구치 타쿠야]]: 일본의 성우, [[가수]]
* [[5월 23일]]
* [[브레이 와이어트|윈덤 로툰다]]: [[미국]]의 [[프로레슬러]]
* [[달의하루#3.1|ampstyle_]]: [[대한민국]]의 인디밴드 [[달의하루]]의 [[작곡가]]
* [[5월 24일]] - [[김혁민]]: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5월 26일]] - [[황창영]]: 한국의 성우
* [[5월 28일]] - [[후치가미 마이(성우)|후치가미 마이]]: 일본의 성우
* [[5월 29일]] - [[김시은(1987)|김시은]]: 대한민국의 배우
* [[5월 31일]]
* [[야나기나기]]: 일본의 [[우타이테]] 출신 [[가수]]
* [[차우찬]]: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6월 ====
* [[6월 3일]]
* [[나가사와 마사미]]: 일본의 배우
* [[한지은(배우)|한지은]]: 대한민국의 배우
* [[6월 5일]] - [[양의지]]: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6월 10일]] - [[J.Fla]]: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유튜버]]
* [[6월 11일]]
* [[곤살로 카스트로]]: [[독일]]의 [[축구 선수]]
* [[이승훈(프로게이머)|이승훈]]: 대한민국의 前 프로게이머
* [[DJ TOTTO]]: [[BEMANI 시리즈/아티스트|BEMANI 시리즈의 작곡가]]
* [[6월 12일]]
* [[류덕환]]: 대한민국의 [[배우]]
* [[애비 리 커쇼]]: [[호주]]의 [[배우]], [[모델]]
* [[6월 15일]] - [[윤성모]]: [[한국 아이돌]] 그룹 [[초신성(아이돌)|초신성]]의 멤버
* [[6월 17일]]
* [[츠지 노조미]]: [[일본]] [[걸그룹]] [[모닝구 무스메]] 前 멤버
* [[켄드릭 라마]]: [[미국]]의 뮤지션
* [[6월 19일]] - [[타무라 무츠미]]: 일본의 성우
* [[6월 21일]] - [[려욱]]: [[한국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 [[6월 22일]]
* [[오연서]]: 대한민국의 배우
* [[이민호(1987)|이민호]]: 대한민국의 배우
* [[6월 24일]]
* [[브리트니 팔머]]: [[미국]]의 [[UFC]] [[라운드걸]]
* [[리오넬 메시]]: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LiSA]]: 일본의 [[가수]]
* [[6월 25일]]
* [[고인규]]: 한국의 전 [[프로게이머]]
* [[후지가야 타이스케]]: [[일본]]의 아이돌, [[Kis-My-Ft2]]의 멤버
* [[6월 26일]]
* [[야스에 노부오]]: 일본의 정치인
* [[사미르 나스리]]: [[프랑스]]의 축구선수
* [[이은혜(레이싱 모델)|이은혜]]: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7월 ====
* [[7월 2일]] - [[루슬라나 코슈노바]]: [[카자흐스탄]]의 [[모델]]
* [[7월 3일]]
* [[장윤석(코미디언)|장윤석]]: 한국의 코미디언
* [[제바스티안 페텔]]: [[독일]]의 [[포뮬러 원|F1]] 드라이버, 2010/2011년 F1 챔피언
* [[7월 5일]] - [[지창욱]]: 대한민국의 배우
* [[7월 6일]] - [[김진현(축구선수)|김진현]]: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7월 8일]] - [[블라다 로슬아코바]]: [[러시아]]의 [[모델]]
* [[7월 11일]]
* [[크리스티나 발렌주엘라]]: [[미국]]의 성우
* [[카토 시게아키]]: [[일본 아이돌]] [[NEWS]]의 멤버
* [[7월 13일]]
* [[지혁]]: [[대한민국]]의 래퍼, [[슈퍼노바]]의 멤버
* [[백정현]]: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7월 15일]] - [[주영달]]: 대한민국의 前 프로게이머
* [[7월 16일]]
* 키라 버클랜드: Kira Buckland, 미국의 성우
* [[무사 뎀벨레]]: [[벨기에]]의 축구 선수
* [[7월 18일]] - [[정훈(야구선수)]]: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7월 19일]] - [[존 존스]]: [[미국]]의 종합격투기
* [[7월 23일]] - [[차유람]]: 한국의 [[당구]] 선수
* [[7월 24일]]
* [[서태훈]]: [[대한민국]]의 [[개그맨]].
* [[우왁굳]]: [[대한민국]]의 [[트위치]] [[스트리머]], [[유튜버]]
* [[7월 27일]] - [[마렉 함식]]: [[슬로바키아]]의 축구 선수
* [[7월 28일]]
* [[박소영(개그우먼)|박소영]]: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페드로 로드리게스]]: [[스페인]] 출신의 축구선수
* [[황재균]]: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7월 29일]] - [[김원주]]: 한국의 가수, [[포맨]]의 멤버
* [[7월 30일]] - [[SEIKIN]]: [[일본]]의 유명 유튜버
* [[7월 31일]] - [[원종현]] :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8월 ====
* [[8월 1일]]
* [[에블린 린]]: 미국의 [[포르노]] [[배우]]
* [[이아고 아스파스]]: [[스페인]]의 축구 선수
* [[8월 3일]] - [[김형준]]: 한국의 [[아이돌]] 가수 [[SS501(아이돌)|SS501]]의 멤버
* [[8월 4일]] - [[장근석]]: 대한민국의 배우
* [[8월 6일]] - [[하연주]]: 대한민국의 배우
* [[8월 7일]] - [[김세현(야구선수)|김세현]]: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8월 10일]] - [[아카사키 치나츠]]: [[일본]]의 성우
* [[8월 11일]] - [[아오이 쇼타]]: [[일본]]의 성우, 가수, 배우
* [[8월 14일]]
* [[한지완]]: 대한민국의 배우
* [[박연경]]: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손고운]]
* [[8월 16일]] - [[키타무라 에리]]: [[일본]]의 성우 및 탤런트
* [[8월 17일]] - [[브라이언 데카트]]: [[미국]]의 [[배우]] 및 [[트위치 스트리머]]
* [[8월 19일]] - [[박정욱]]: 대한민국의 前 프로게이머
* [[8월 21일]]
* [[김기범(배우)|김기범]]: 한국의 연기자, [[슈퍼주니어]] 전 멤버.
* [[김태훈(프로게이머)#s-1|김태훈]]: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 [[8월 22일]] - [[원종서]]: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 [[8월 23일]] - 알렉산드라 로치 : 영국 [[웨일스]]의 배우
* [[8월 24일]] - [[줄리안 퀸타르트]]: [[DJ]], [[비정상회담]] 출연자
* [[8월 25일]]
* [[유역비]]: [[중국]]의 [[배우]]
* [[블레이크 라이블리]]: [[미국]]의 [[배우]]
* [[8월 27일]] - [[천민희]]: [[대한민국]]의 [[배우]]
* [[8월 28일]] - [[박주희(배우)|박주희]]: 대한민국의 배우
* [[8월 30일]] - [[차오루]]: 한국의 걸그룹 [[FIESTAR]]의 중국 출신 멤버
==== 9월 ====
* [[9월 2일]] - [[테사 버츄 / 스캇 모이어|스캇 모이어]]: [[캐나다]]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 [[9월 5일]] - [[한상길]]: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 [[9월 8일]] - [[위즈 칼리파]]: 미국의 [[래퍼]]
* [[9월 9일]]
* [[정일우]]: 한국의 배우
* [[루피(래퍼)|Loopy]]: 한국의 [[래퍼]]
* [[알렉스 송]]: [[카메룬]]의 축구 선수
* [[9월 12일]] - [[Beenzino]]: 한국의 [[래퍼]]
* [[9월 13일]]
* [[카야노 아이]]: 일본의 성우
* [[G.NA]]: 한국의 가수
* [[9월 17일]] - [[타츠미 유이코]]: [[일본]]의 성우
* [[9월 18일]] - [[유민규]]: 한국의 배우
* [[9월 20일]] - [[가인(브라운 아이드 걸스)|가인]]: 대한민국의 가수, 걸그룹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멤버
* [[9월 22일]]
* [[톰 펠턴]]
* [[강승현(모델)|강승현]]: 대한민국의 [[패션모델]]
* [[9월 26일]]
* 하디 추판: 이란의 보디빌더
* [[9월 30일]]
*[[힐러리 더프]]: [[미국]]의 가수 겸 배우
* [[9월 30일]]
* [[이현정(코미디언)|이현정]]: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이주원(아나운서)|이주원]]: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주원]]: 대한민국의 배우
==== 10월 ====
* [[10월 2일]] - [[김새롬]]: 대한민국의 모델이자 방송인
* [[10월 3일]]
* [[요아리]]: 한국의 가수.
* [[류세라]][* 실제 태어난 날은 [[9월 3일]]. 부모님이 세라가 태어나기 전 남자 아기인 줄 알고 남자 이름을 지어놓았다가 여자 아기인 걸 알고 나서 이름을 뭘로 지을까 고민하느라 한달간의 텀이 생겼다고...]: 한국의 가수, 前 [[나인뮤지스]] 멤버
* [[10월 4일]] - [[라이언 쇼크로스]]: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10월 5일]] - [[소연(1987)]]: 한국의 [[가수]], [[티아라(아이돌)|티아라]]의 멤버
* [[10월 6일]] - [[최유라#s-2]]: 대한민국의 배우
* [[10월 7일]]
* [[로렌 메이베리]]: [[스코틀랜드]]의 [[신스팝]] 밴드 [[처치스]]의 메인 보컬
* [[마츠오카 유키#s-3]]: [[일본]]의 [[가수]], 전 [[AKB48]] 멤버
* [[10월 8일]]
* [[히라노 아야]]: [[일본]]의 성우
* [[나카무라 유이치(배우)|나카무라 유이치]]: [[일본]]의 배우
* [[10월 10일]]
* [[노래하는코트]] : [[대한민국]]의 [[유튜브]] 및 [[아프리카 TV]]에서 활동 중인 [[BJ]]
* [[배병우]] :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10월 11일]] - [[마스 외스트베르그]]: [[노르웨이]]의 랠리 드라이버
* [[10월 14일]]
* [[마피아 카지타]]: [[일본]]의 [[게임 기획자]], [[시나리오 라이터]]
* [[코타(써니힐)|코타]]: 한국의 가수, [[써니힐]]의 멤버
* [[10월 15일]]
* [[샹탈 스트랜드]]: [[캐나다]]의 성우
* [[오트 태나크]]: [[에스토니아]]의 랠리 드라이버
* [[10월 16일]] - [[승호]]: 한국의 가수, [[엠블랙]]의 멤버
* [[10월 20일]] - [[김성진(프로게이머)|김성진]]: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 [[10월 22일]]
* [[김소영(방송인)|김소영]]: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박하선]]: 대한민국의 배우
* [[10월 23일]]
* [[사와이 미유]]: [[일본]]의 성우이자 배우
* [[서인국]]: 한국의 가수이자 배우[* 호적상으로는 10월 30일.]
* [[안녕하신가영]]: 한국의 싱어송라이터
* [[10월 26일]] - [[빠니보틀]]: [[대한민국]]의 여행 [[유튜버]]
* [[10월 29일]]
* [[오가와 마코토]]: [[일본]]의 [[가수]], 전 [[모닝구무스메]] 멤버
* [[토브 로]]: [[스웨덴]]의 [[가수]]이자 [[작곡가]]이자 [[작사가]]
* [[10월 30일]]
* [[아쿠츠 카나]]: [[일본]]의 성우
* [[우치야마 유미]]: [[일본]]의 성우
* [[10월 31일]]
* [[야마이코 나바로]] : [[도미니카 공화국]]의 [[야구선수]]
* [[장미(성우)|장미]]: 대한민국의 [[성우]]
==== 11월 ====
* [[11월 1일]]
* [[정주희]] : 대한민국의 [[기상캐스터]]
* [[장시환]] :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11월 2일]] - [[하태균]]: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11월 3일]] - [[카메론]]: 미국의 프로레슬러
* [[11월 4일]]
* [[한규종]]: 대한민국의 [[프로게이머]], 플레잉 코치
* [[T.O.P]]: 대한민국의 가수, [[빅뱅(아이돌)|빅뱅]]의 멤버
* [[11월 5일]]
* [[건일]]: 한국의 가수, [[슈퍼노바(아이돌)|슈퍼노바]]의 멤버
* [[경수진]]: 대한민국의 배우
* [[11월 6일]] - [[지오(엠블랙)|지오]]: 한국의 가수, [[엠블랙]]의 멤버
* [[11월 9일]]
* [[문광은]]: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하야시 아키히로]]: [[일본]]의 [[배우]]
* [[홍성현]]: 한국의 [[코미디언]]
* [[11월 11일]] - [[주서은]]: 대한민국의 배우
* [[11월 13일]] - [[박지영(아나운서)|박지영]]: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11월 14일]] - [[진보라]]: [[대한민국]]의 피아니스트
* [[11월 16일]] - [[올리(영국남자)|올리버 존 켄달]]: [[영국]] 출신의 [[유튜버]] '영국남자'
* [[11월 18일]]
* [[윤박]]: 대한민국의 배우
* [[이다슬]]: 대한민국의 성우
* [[하라다 히토미]]: 일본의 성우, 가수
* [[11월 21일]] - [[손재범]]: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 [[11월 22일]] - [[마루앙 펠라이니]]: [[벨기에]]의 [[축구선수]]
* [[11월 23일]]
* [[마재윤]]: [[대한민국]]의 前 [[프로게이머]]
* [[옌리멍]]: [[중화권]]의 [[의료인]]
* [[11월 25일]] - [[윤태진]]: [[한국]]의 前 [[아나운서]]
* [[11월 29일]] - [[산드로 바그너]]: [[독일]]의 축구 선수
* [[11월 30일]] - [[김민정(방송인)|김민정]]: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12월 ====
* [[12월 1일]] - [[김설혜]]: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12월 4일]] - [[동호형]]
* [[12월 5일]] - [[seri#s-2]]: [[대한민국]]의 [[웹툰작가|웹툰 작가]]이자 국어 [[교사]]. 본명 [[이가영]]
* [[12월 6일]] - [[올가 카프라노바]]: 러시아의 前 리듬체조 선수
* [[12월 7일]]
* 고정아(레이싱 모델):한국의 레이싱모델
* [[박찬수]]: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 [[아론 카터]]: 미국의 가수
* [[박명수(1987)|박명수]]: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 [[12월 10일]] - [[곤살로 이과인]]: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12월 11일]] - [[김예원(배우)|김예원]]: 한국의 배우
* [[12월 16일]] - [[카네모토 히사코]]: [[일본]]의 성우
* [[12월 17일]] - 후카가와 쇼타: 일본의 [[작곡가]]
* [[12월 18일]]
* [[오오가메 아스카]]: [[일본]]의 성우이자 [[작사#s-1|작사]]
* [[후루카와 유우키]]: 일본의 배우
* [[12월 19일]] - [[카림 벤제마]]: [[프랑스]]의 축구선수
* [[12월 20일]] - [[사와시로 치하루]]: [[일본]]의 [[성우]]
* [[12월 22일]] - [[에데르]]: [[포르투갈]]의 축구선수
* [[12월 23일]]
*정민영 : [[대한민국]]의 [[가수]]
* [[류보프 차카시나]]: 벨라루스의 前 리듬체조 선수
* [[12월 25일]]
* [[츠보미(AV 배우)]]: [[일본]]의 [[AV 여배우]]
* [[도상우]]: 대한민국의 배우
* [[12월 26일]] - [[이명기]]: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가상인물 ===
* [[1월 10일]]: [[한세경]] - [[청담동 앨리스]]
* [[1월 15일]]: [[미하라 시키]] - [[도키메키 메모리얼 Girl's Side]]
* [[1월 17일]]: [[정석(디지몬 시리즈)|정석]] - [[디지몬 어드벤처]]
* [[1월 20일]]: [[아리사와 시호]] - [[도키메키 메모리얼 Girl's Side]]
* [[1월 21일]]: [[코노미야 타마키]] - [[다카포 시리즈|다카포]]
* [[2월 5일]]: [[가우스전자|건강미 - 가우스전자]]
* [[2월 6일]]: [[타치바나 에미]] - [[도키메키 메모리얼 3]]
* [[2월 14일]]: [[미즈코시 마코]] - [[다카포 시리즈|다카포]]
* [[2월 19일]]: [[쿠도 카나에]] - [[다카포 시리즈|다카포]]
* [[3월 13일]]: [[데스몬드 마일즈]] -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 [[3월 15일]]: [[텐도 진]] - [[도키메키 메모리얼 Girl's Side]]
* [[3월 20일]]: [[홍설]] - [[치즈인더트랩]](영화/[[치즈인더트랩(드라마)|드라마 동일]])
* [[3월 21일]]: [[쥬죠 시온]][* [[오토보쿠]]의 배경연도는 [[2005년]]이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고3들이다.] -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 [[3월 25일]]: [[로버트 길]] - [[스토브리그(드라마)|스토브리그]]
* [[3월 31일]] : [[미나미토 유이]] - [[딸기 100%]]
* [[4월 1일]] : [[키노모토 사쿠라]] - [[카드캡터 사쿠라]]
* [[4월 17일]]: [[http://www.keishicho.metro.tokyo.jp/sikumi/pipo/pipo.htm|삐뽀군]] - [[경시청]]
* [[4월 23일]]: [[모로보시 츠보미]] - [[UG☆얼티메이트 걸]]
* [[5월 3일]]: [[티파 록하트]] - [[파이널 판타지 7]]
* [[5월 5일]]: [[오영곤]] - [[치즈인더트랩]]
* [[5월 6일]]: 차상은[* [[복지카드]]에 적혀 있는 주민등록번호의 생년월일이 870506이다.] - [[허브]](영화)
* [[5월 12일]]: [[미야노코우지 미즈호]] = [[카부라기 미즈호]] -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 [[5월 22일]] : [[한지우]] -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 시리즈
* [[5월 25일]] : [[소토무라 미스즈]] - 딸기 100%
* [[6월 8일]]: [[미카도 마리야]] -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 [[6월 21일]]: [[장보라]] - [[치즈인더트랩]]
* [[7월 3일]]: [[코하루노 실크]] - [[UG☆얼티메이트 걸]]
* [[7월 18일]]: [[노리즈키 진]] - [[꿈의 라이브 프리즘 스톤|프리티 리듬 레인보우 라이브]]
* [[7월 26일]]: [[스다 쿄야]] - [[사혼곡: 사이렌]]
* [[8월 19일]]: [[리오 피츠]]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9월 4일]]: [[히비야 와타루]] - [[도키메키 메모리얼 Girl's Side]]
* [[9월 6일]]: [[마치오 마모루]] - [[역전재판 2]]
* [[9월 11일]]: [[제마 시먼스]]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9월 24일]]: 김태희 - [[커밍업]]
* [[10월 12일]]: [[오오토리 비비안]] - [[UG☆얼티메이트 걸]]
* [[10월 21일]]: [[이모나]] - [[치즈인더트랩]]
* [[11월 7일]]부터 [[11월 12일]] - 제레미 피츠게ㅣ제럴드 - [[Five Nights at Freddy's 2]]
* [[11월 13일]] - 프리츠 스미스 - [[Five Nights at Freddy's 2]]
* [[11월 16일]]: [[이츠쿠시마 타카코]] -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 [[11월 17일]]: [[다람이]] - [[네모바지 스폰지밥]]
* [[11월 27일]]: [[하나야 타이가]] - [[가면라이더 에그제이드]]
* [[12월 4일]]: [[스즈카 카즈마]] - [[도키메키 메모리얼 Girl's Side]]
* 일자 불명
* [[강번개]], [[조아라(스피드왕 번개)|조아라]], 황장군, 우공명, 박하늘, 칸(백천궁), 신미오, 마원형, 장네모, 허종지 외 다수의 학생들[* 방영년도인 1998년 기준으로 초등학교 5학년.] - [[스피드왕 번개]]
* [[박소림]], [[허정인]], [[우지영(뷰티풀 군바리)|우지영]], [[김세이]] - [[뷰티풀 군바리]]
* 타카나시 케이, 타카네 미치코 -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 [[호우즈키 토모에]] - [[역전재판]] [[소생하는 역전]]
* [[오 나의 귀신님/등장인물#s-2.3|서준]], [[오 나의 귀신님/등장인물#s-2.3|최지웅]] - [[오 나의 귀신님]]
* [[오키에]], [[최아라]] - [[퇴마록]]
* [[엑스파일]]의 코믹스 만화 시즌 10 #8 - Mr.X가 미시시피 주 클로소보로의 초등학교에서 총격전에 대하여 연루
* [[마리아(하야테처럼!)|마리아]] - [[하야테처럼!]]
* [[오바람]], [[봄이(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 시리즈)|봄이]], [[나빛나]], [[아이리스(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 시리즈)|아이리스]], [[시트론(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 시리즈)|시트론]], [[세레나(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 시리즈)|세레나]] -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 시리즈]]
* [[정석(디지몬 시리즈)|정석]] - [[디지몬 어드벤처]]
* 조제 - [[조제(영화)]]
* [[가면라이더 555]] - [[소노다 마리]]
* [[송나희]], [[윤규진(한 번 다녀왔습니다)|윤규진]] - [[한 번 다녀왔습니다]]
* [[뚝딱이]] - [[:분류:EBS 캐릭터|EBS 캐릭터]]
== 사망 ==
=== 실존인물 ===
==== 1월 ====
* [[1월 3일]]
* [[이순덕]]: 대한민국의 참교육 운동가
* [[이주홍]]: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 소설가, 만화가
* [[1월 7일]] - [[손소희]]: 대한민국의 여류 소설가, 김동리의 아내.
* [[1월 14일]] - [[박종철]]: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 [[1월 17일]] - [[구주퉁]]: 중화민국 국방부장.
* [[1월 21일]] - [[카지와라 잇키]]: 일본의 만화가
* [[1월 22일]]
* [[한원석]]: '제일파프' 및 '케펜텍'으로 유명한 [[제일약품]]의 창업주
* [[버드 드와이어]]: 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재무장관
* [[1월 24일]] - [[이성삼]]: 대한민국의 음악평론가
* [[1월 27일]] - [[김재준]]: 대한민국의 재야 장로교 목사
* [[1월 31일]] - [[신재덕]]: 대한민국의 피아니스트, 전 이화여대 음악대학장
==== 2월 ====
* [[2월 3일]] - [[노부히토]]: 히로히토 덴노의 동생
* [[2월 9일]] - [[이센스]]: [[대한민국]]의 래퍼
* [[2월 12일]] - [[이상무(정치인)|이상무]]: [[대한민국]]의 [[정치인]]
* [[2월 17일]] - [[김영선(1918)|김영선]]: [[대한민국]]의 [[정치인]]
* [[2월 20일]]
* [[김용권]]: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 [[박선영(1966)|박선영]]: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 [[2월 21일]] - [[앤디 워홀]]: [[미국]]의 팝아트 [[예술가]]
* [[2월 26일]] - [[김정연]]: 서도소리 예능보유자
==== 3월 ====
* [[3월 1일]] - [[노철승]]: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 [[3월 3일]]
* [[대니 케이]]: [[미국]]의 [[배우]]
* [[이승삼]]: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 [[3월 4일]] - [[오카와 타다히코]]: 일본의 요리연구가
* [[3월 6일]] - [[빔 라헌달]]: [[네덜란드]]의 전 축구 선수, 경찰
* [[3월 8일]] - [[표정두]]: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 [[3월 12일]] - [[우디 헤이스]]: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미식축구팀의 전설적인 감독
* [[3월 13일]] - [[채선엽]]: 대한민국의 성악가
* [[3월 16일]] - [[레몽 파셀로]]: [[스위스]]의 전 축구 선수
* [[3월 18일]] - [[밀로라드 아르세니예비치]]: [[세르비아]]의 [[축구 선수]], [[교수]]
* [[3월 19일]] - [[박필호]]: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 [[3월 24일]] - [[비센테 칼데론]]: 제21, 26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회장
* [[3월 27일]] - [[장재완]]: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 [[3월 28일]] - [[패트릭 트로턴]]: [[영국]]의 [[배우]]
* [[3월 30일]] - [[클린트 머친슨 주니어]]: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초대 구단주
* [[3월 31일]]
* [[강대진]]: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 [[김남중(언론인)|김남중]]: [[광주일보]] 창업주[* 전남일보 시절부터 따질 경우.]
==== 4월 ====
* [[4월 1일]]
* [[이기동(코미디언)|이기동]]: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카스가 테루오]]: 일본의 만담 콤비 '카스가 산큐-테루오'의 멤버
* [[4월 6일]] - [[장건일]]: 대한민국의 연극배우, 성우
* [[4월 12일]] - [[마이크 본 에릭]]: 미국의 프로레슬러이자 본 에릭가의 5남.
* [[4월 19일]] - [[박건석]]: 범양상선, 귀뚜라미범양냉방, 범양식품의 창업주
* [[4월 29일]] - [[이문환]]: 호남비료 및 [[아시아자동차]] 창업주
==== 5월 ====
* [[5월 19일]] - [[박성삼]]: 대한민국의 목공예가
* [[5월 25일]] - [[황보영국]]: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5월 26일]] - [[서영무]]: [[대한민국]]의 [[야구인]]
==== 6월 ====
* [[6월 2일]] - [[안드레스 세고비아]]: [[스페인]]의 [[기타리스트]]
* [[6월 8일]] - [[정경식]]: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6월 12일]] - [[파울 야네스]]: [[독일]]의 축구감독
* [[6월 13일]] - [[원종훈]]: 전 함안-밀양군수, 중앙일보 2대 사장, 동방생명 5대 사장
* [[6월 15일]] - [[이이동]]: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 [[6월 16일]] - [[츠루타 코지]]: 일본의 배우, 가수
* [[6월 17일]] - [[딕 하우저]]: 1985년에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야구감독
* [[6월 19일]] - 박동진 일경: 당시 충남도경 기동 2중대 소속 전투경찰.
* [[6월 22일]]
* [[윤일선]]: 서울대학교 제6대 총장
* [[프레드 아스테어]]: 미국의 댄서이자 배우
* [[6월 24일]] - [[이태춘]]: 당시 회사원이자 민주열사
* [[6월 25일]] - [[이재용]]: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6월 30일]] - [[리한훈]]: 중화민국의 군벌.
==== 7월 ====
* [[7월 5일]] - [[이한열]]: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 [[7월 9일]]
* [[장학섭]]: 진로 및 서광 창업주
* [[최태호]]: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
* [[7월 12일]] - [[채광석]]: 대한민국의 민중시인, 문학평론가
* [[7월 14일]] - [[찰리 카루소]] - [[WWE]] 인터뷰어
* [[7월 16일]] - [[토니 타니]]: 일본의 가수, 배우, 보드빌리언
* [[7월 17일]] - [[이시하라 유지로]]: 일본의 배우, 가수
* [[7월 20일]] - [[아리시마 이치로]]: 일본의 배우
* [[7월 22일]]
* [[송덕기]]: [[조선]]의 마지막 [[택견]]꾼
* [[김정애(가수)|김정애]]: 대한민국의 가수
==== 8월 ====
* [[8월 1일]] - [[김현욱]], [[박용선]], [[유인식]], [[이대용]]: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8월 7일]] - [[기시 노부스케]]: 제56~57대 일본 총리대신, 전범
* [[8월 9일]] - [[김흥배]]: [[한국외국어대학교]] 설립자
* [[8월 16일]] - [[노스웨스트 항공 255편 추락사고]] 희생자 148인
* [[닉 바노스]]: 미국의 농구선수
* [[8월 17일]] - [[루돌프 헤스]]: [[나치 독일]]의 [[정치인]], 부총통
* [[8월 22일]] - [[이석규]]: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8월 28일]] - [[유석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원로 언론인
* [[8월 29일]]
* [[리 마빈]]: [[미국]]의 [[배우]]
*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 당시 자살 신도 32명
* 박순자: 당시 오대양 사장
* [[8월 31일]] - [[이봉조]]: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작곡가
* [[8월 30일]] - [[유진오]]: [[대한민국]]의 소설가, 법학자, 정치인
==== 9월 ====
* [[9월 4일]] - [[사사키 츠토무]]: 일본의 예능인
* [[9월 6일]] - [[채남선]]: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9월 8일]] - [[최우혁]]: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 [[9월 15일]] - [[니시무라 에이이치]]: 일본의 정치인
* [[9월 19일]] - [[이석구]]: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9월 21일]] - [[자코 파스토리우스]]: 미국의 베이시스트, 재즈 베이스 연주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천재 뮤지션
* [[9월 30일]] - [[허버트 소블]]: [[미국]]의 [[군인]]
==== 10월 ====
* [[10월 10일]] - [[야로슬라프 보우체크]]: [[체코]]의 전 축구 선수
* [[10월 16일]] - [[김수배]]: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10월 24일]] - [[송금선]]: 전 학교법인 덕성학원 이사장
* [[10월 25일]] - [[정민섭]]: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작곡가, 가수 [[정여진(가수)|정여진]]의 아버지
* [[10월 26일]] - [[정희섭]]: 제12대 보건사회부 장관
==== 11월 ====
* [[11월 1일]] - [[유재하]]: 한국의 [[가수]]
* [[11월 3일]] - [[김성애]]: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11월 5일]]
* [[허건]]: 대한민국의 동양화가
* [[이먼 앤드류스]]: 영국의 유명 TV 토크쇼 <This is Your Life>의 진행자
* [[11월 17일]] - [[카와구치 히로시]]: 일본의 영화배우, 탤런트, 탐험가
* [[11월 19일]] - [[이병철]]: [[삼성그룹]], [[한솔그룹]], [[CJ그룹]], [[중앙그룹]] 창업주
* [[11월 30일]] - [[카를 브란트#s-6|아니 레본]]: [[카를 브란트]]의 아내
==== 12월 ====
* [[12월 4일]] - [[정연관]]: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가
* [[12월 5일]] - [[박응수]]: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12월 9일]] - [[세리자와 히로부미]]: 일본의 장기기사
* [[12월 10일]]
* [[박태영]]: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야샤 하이페츠]]: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바이올린]] 연주자
* [[12월 16일]] - [[심재환]]: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12월 20일]] - [[도나 파즈호 침몰 사고]] 희생자 4,375명
=== 가상인물 ===
* 일자불명
* [[두메이신]] - [[환원 -Devotion-]]
* 브라이언 존슨[* [[칼 존슨]]의 형제관계.] - [[GTA 산 안드레아스]]
* --[[대박사 리 케프렌]] - [[초신성 플래시맨]]--
* [[죠죠의 기묘한 모험]]
*[[무함마드 압둘]]
*[[이기(죠죠의 기묘한 모험)|이기]]
*[[카쿄인 노리아키]]
*[[죠셉 죠스타/스타더스트 크루세이더즈|죠셉 죠스타]][* 허나 나중에 부활한다.]
*[[DIO]]
* [[아스카 료(광전대 마스크맨)|아스카 료]] - [[광전대 마스크맨]]
* --[[재닛 밴 다인(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재닛 밴 다인(1대 와스프)]]--[* [[와스프(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스프]] 수트의 조절기 폭주로 인해 소립자 이하의 레벨까지 신체가 축소되어 실종되었으나, 후속작 <앤트맨과 와스프>에서 생존이 확인됐다.]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추재진 - 영화 [[보통사람]]
== 데뷔 ==
=== 배우 ===
* [[5월 25일]]: 최형선 - [[TV 문학관]] <생명채집>
* [[양동근]] - <탑리>
* [[글로리아 입]] - <합초대장부>
=== 가수 ===
* 한국
* [[문희옥]]
* 박성신[* 원로가수 박재란의 딸.]
* [[변진섭]]
* [[김종서(가수)|김종서]]([[시나위(밴드)|시나위]])
* [[소방차(아이돌)|소방차]]
* [[이상원]], 김태형, [[정원관]]
* [[수와진]]
* [[유재하]]
* [[이지연(1970)|이지연]]
* [[작은하늘]]
* 김성헌
* [[H2O]]
* 박현준, 강기영(달파란)
* 해외
* 부기 다운 프로덕션즈
* [[자이톤 사메온]]
* [[아이스-T]]
* [[카일리 미노그]]
* [[투 쇼트]][* 메이저 데뷔 기준.]
* DJ 재지 제프 & [[더 프레시 프린스]]
* MC 에이드
* [[Public Enemy]]
* [[나가이 마리코]]
* [[히카루GENJI]]
=== 예능인 ===
* [[김성은]]
* 김은태
* [[김종국(코미디언)|김종국]]
* 김진호
* 김혜정
* 문정숙
* 성낙앙
* 안숙희
* [[양종철]]
* 오성우
* [[오재미]]
* 윤혜영
* [[이경실]]
* 이선우[* 1990년에 가수로 재데뷔.]
* 이현주
* 이희구
* 정재윤
* 최형만
* 최홍림
=== 만화계 ===
* [[강도하]] - <뛰어라 빠가사리>
* 김미림 - <20C 천년공주>
* 김현자 - <바람이 남긴 흔적>
* 송현우 - <제대만평[* 제주대 학보인 제대신문에 연재된 만평이다.]>
* 아사미 유코[* <와일드 하프> 작가.] - <2001年夢中の旅>
* 오복이 - <야인>
* [[와츠키 노부히로]] - <티처 폰>
* [[원수연]] - <그림자를 등진 오후>
* [[케라 에이코]] - <3색 귤>
* 키무라 치카[* <[[사랑은 콩다콩]]> 원작자.] - <こたつむり伝説>
* [[토가시 요시히로]] - <뜻밖의 생일선물>
=== 스포츠 ===
==== 야구 ====
* [[강기웅]]
* [[김대중(야구 선수)|김대중]]
* [[김영직]]
* [[류중일]]
* [[박철우(야구)|박철우]]
* [[백인수|백인호]]
* [[이정훈(1963)|이정훈]]
* [[한용덕]]
==== 축구 ====
* [[김주성(축구)|김주성]]
* [[올리버 칸]]
==== 농구 ====
* 데릭 맥키
* 레지 루이스
* 마크 잭슨
* [[먹시 보그스]]
* 서대성
* [[스카티 피펜]]
* 아몬 길리엄
* 올든 팔리니스
* [[케니 스미스]]
* 켄 노먼
==== 배구 ====
* [[최천식]]
* 홍해천
==== 씨름 ====
* 황대웅
==== 권투 ====
* 최재원
== 은퇴 ==
=== 스포츠 ===
* [[11월 22일]]: 이준희
* 곽선옥
* 진효준
== 히트작 ==
=== 영화 ===
* 국산
*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 철수와 미미의 청춘스케치
* 수입
* [[플래툰]]
* [[더티 댄싱]]
* [[태양의 제국]]
* [[영웅본색]]
* [[천녀유혼]]
=== 드라마 ===
* 국산
* [[사랑과 야망]]
* [[사랑이 꽃피는 나무]]
* [[TV 손자병법]]
* [[토지(소설)|토지]]
* 더빙
* [[맥가이버]]
=== 가요 ===
* 한국
* 구창모 - 외로워 외로워
* 김범룡 - 카페와 여인, 현아
* 김연숙 - 그날
* 김완선 - 나 홀로 뜰 앞에서, 리듬 속의 그 춤을
* 김학래 - 하늘이여
* 김희애 - 나를 잊지 말아요
* 나미 - 사랑이란 묘한거야
* 도시아이들 - 달빛 창가에서
* 문희옥 - 빈손
* 민해경 -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
* 박혜성 - 경아
* 백두산 - 주연배우
* 벗님들 - 사랑의 슬픔
* 부활 - [[비와 당신의 이야기]], 회상 I
* 서울패밀리 - 내일이 찾아와도, 이제는
* 소방차 - 그녀에게 전해주오
* 송창식 - 참새의 하루
* 수와 진 - 새벽아침
* 시나위 - 새가 되어 가리
* 신형원 - 개똥벌레
* 심수봉 - 미워요
* 오승원 - 비누방울
* 유열 -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 유재하 - 사랑하기 때문에, 지난 날,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 이문세 - '''사랑이 지나가면''', '''그녀의 웃음소리뿐''', '''[[깊은 밤을 날아서]]''', '''이별 이야기(w/고은희)''', 가을이 오면
* 이선희 - '''알고 싶어요''', 영
* 이자연 - 당신의 의미
* 이재민 - 골목길
* 이재성 - 고독한 DJ, 그집앞
* 이정석 - 사랑하기에, 첫눈이 온다구요
* 임병수 - 난 어지러워요
* 임주리 - 립스틱 짙게 바르고
* 장덕 - 님 떠난 후
* 장혜리 - 추억의 발라드
* 전영록 - 이제 자야 하나봐, 하얀 밤에
* 전원석 - 떠나지마
* 정수라 - 내 사랑을 본 적이 있나요
* 조덕배 - 꿈에
* 조용필 - [[조용필 9집|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마도요]]
* 주현미 - 눈물의 블루스, 이태원 연가
* 최성수 - 애수, 풀잎사랑
* 최진희 - 가버린 사랑
* 티삼스 - 매일 매일 기다려
* 한마음 - 사랑살이
* 해바라기 - 내 마음의 보석상자, 너
* 해외
* [[마이클 잭슨]] - [[Bad]]
* [[휘트니 휴스턴]] - I Wanna Dance With Somebody
* Bill Medley, Jennifer Warnes - (I’ve Had) The Time of My Life
* [[릭 애스틀리]] - [[Never Gonna Give You Up]]
* Run–D.M.C. - It's Tricky
* Starship - Nothing’s Gonna Stop Us Now
* [[장국영]] - 奔向未來日子
=== 개그 코너 ===
*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 유머 일번지
* 남 그리고 여 - 유머 일번지
* 물장수 - 유머 일번지
* 동물의 왕국 - 쇼 비디오 쟈키
* 도시의 천사들 - 쇼 비디오 쟈키
* 예언가 식당 - 청춘만만세
* 88 DJ - 일요일밤의 대행진
=== 애니메이션 ===
* KBS
* [[마법의 아이돌 파스텔 유미|꽃나라 요술봉]]
* [[떠돌이 까치]]
* [[아기공룡 둘리]]
* [[She-Ra: Princess of Power(1985)|우주의 여왕 쉬라]]
* MBC
* [[메칸더 V]]
* [[마법의 천사 크리미마미|천사소녀 새롬이]]
* [[우주보안관 장고]]
* [[태양소년 에스테반]]
* 비디오
* [[뱀파이어 헌터 D(1985년)|우주인 뱀파이어]]
* [[달로스]]
* 해외
* [[닌자 거북이]]
* [[욕심쟁이 오리아저씨|DuckTales]]
* [[시티헌터]]
* [[오렌지 로드]]
=== 베스트셀러 ===
* 홀로서기 - 서정윤 저.
* 접시꽃 당신 - 도종환 저.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이문열 저.
* 사람의 아들 - 이문열 저.
* 태백산맥 - 조정래 저.
== 출시 상품 ==
=== 자동차 ===
* 현대자동차
* 스텔라 88
* 기아산업
* 프라이드 3도어
* 콩코드
* 파워봉고
* 점보타이탄
* 아시아자동차
* 토픽
* 대우자동차
* 수퍼살롱
* 바네트
* 엘프 2
=== 식음료 ===
* 농심
* 3월: 보글보글 도시락, 팥사리
* 4월: 콩사리
* 동서식품
* 맥심 커피믹스 스틱형
* 프리마엠
* 동서 홍차, 레몬차
* 동서 코코아, 코코아믹스
=== 생활용품 ===
* 애경산업
* 펩소던트 치약, 스파크
=== 화장품 ===
* 애경폰즈
* 바세린 베이비오일/크림/맛사지오일/썬
== 유행어 ==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탁치니 억하고 죽었다]]'''
* '''[[6.10 민주 항쟁|호헌철폐! 독재타도!]]'''
* 경사났네 경사났어/군졸이 군졸이 - [[심형래]] 外
* 숭구리당당 숭당당 수구수구당당 숭당당 - [[김정렬(코미디언)|김정렬]]
* 쑥쓰럽구만~/이 나이에 내가 하리?/어이구, 인물 났네, 인물 났어 - [[임하룡]]
* 잘 돼야 될 텐데~/잘 될 턱이 있나~/잘~ 될까?/어때~요? 좋~습니다! - [[김형곤]] 外
* 저는 회장님의 영원한 종입니다~ 딸랑딸랑딸랑~ - [[김학래]]
* 척 보면 압[* 정확한 발음은 애~앱에 가깝다.]니다 - [[황기순]]
* 일단~은/어~느 세월~에 - [[김보화]]
* 있을 때 잘해, 나는 봉이야~/아자! 아자! 가자! - [[최양락]]
* 약 오르지요~? - [[김용(코미디언)|김용]]
* 신이시여~ - [[주병진]]
* 괜찮았어? - [[최병서]]
* 반갑구만, 반가워요 - [[장두석]], [[조금산]]
*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셔~ - [[서세원]]
* 어디가 덧나?/당신은 짐승! - [[임미숙]]
* 밥 먹고 합시다! - [[양종철]]
* 우리 만수 - [[최주봉]]
*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 - [[이덕화]]
*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 - [[맥가이버]]
== 최초 ==
=== 방영 프로그램 ===
* KBS 1TV
* 가정저널
* 르포 20/20
* 뮤직박스 15
* 사회드라마
* 생방송 심야토론 - 최초 방영 당시 제목은 <생방송 심야토론: 전화를 받습니다>
* 쇼 비디오자키 - 1988년 2월 27일부터 2TV로 이동.
* 쇼특급
* 오늘의 명상
* 웃음꽃방
* 제6공개홀
* 즐거운 다큐멘터리
* 지구촌의 지금
* TV 기자실
* KBS 2TV
* 뉴스비전 동서남북
* 생방송 전국은 지금
* 일요추리극장
* 스타데이트
* 엄마의 방
* 올림픽 퀴즈
* 코미디 하이웨이
* TV 손자병법
* MBC
* 12시 올스타쇼
* 명화의 고향
* 웃으며 삽시다
* 퀴즈아카데미
* 한국영화초대전
=== 창간 ===
* 주간만화
* 행복이 가득한 집
== 달력 ==
[include(틀:목요일로 시작하는 평년)]
== 1987년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 ==
* [[Five Nights at Freddy's 2]]
* [[1987(영화)]]
* [[보통사람]]
* [[미운 오리 새끼]]
* [[변호인(영화)|변호인]][* 엔딩 한정]
* [[퍼펙트 게임(2011)|퍼펙트 게임]]
* [[범블비(영화)]]
[[분류:1987년]] |
1987년 대선 | #redirect 제13대 대통령 선거
|
1987년 한국시리즈 | [include(틀:역대 KBO 한국시리즈 목록)]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 bordercolor=#151b54><bgcolor=#ffffff,#191919> [[파일:external/41.media.tumblr.com/tumblr_o4a4woaUar1sqk8veo6_r1_400.png|width=200]][br] '''{{{#151b54,#abb1ea 역대}}} [[KBO 한국시리즈|{{{#151b54,#abb1ea KBO 한국시리즈}}}]]''' ||
||<width=30%> [[1986년 한국시리즈|1986년]] [br] [[해태 타이거즈]] || {{{+1 ←}}} ||<bgcolor=#ffffff,#191919><width=30%> '''1987년''' [br] '''[[해태 타이거즈]]''' || {{{+1 →}}} ||<width=30%> [[1988년 한국시리즈|1988년]] [br] [[해태 타이거즈]] ||
||<-2><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f01e23><tablebgcolor=#ffffff,#191919>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age/295/2012/10/26/144110472_dsc00797.jpg|width=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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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gcolor=#000000> '''{{{#ff0000 1987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
||<-2><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타이거즈}}}''']] ||
|| '''{{{#f01e23 MVP}}}''' || [[김준환|'''{{{#f01e23 김준환}}}''']] ||
>'''쳤습니다. 자 역시 [[이순철]]이 마감을 할 듯, 마감했습니다! 87년도 한국시리즈 제패는 83년에 이어서 또 다시 해태 타이거즈. 83년도, 작년 86년도, 금년 87년도, 그래서 82년 원년부터 시작된 한국시리즈, 토탈 여섯번중에 세번을 장식하는 해태 타이거즈입니다. 세번 우승을 하면서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하는 해태 타이거즈의 화려한 금자탑이 이룩됐습니다.'''
> ----
> 중계진 우승콜
[목차]
[youtube(V6FJg7LlMUA)]
자료화면에 나온 앵커는 [[손석희]].
== 개요 ==
||<tablewidth=100%><-2><:><tablebordercolor=#edd36c><bgcolor=#00143f,#0b1966> {{{+2 {{{#edd36c '''1987'''}}} {{{#edd36c '''프로야구'''}}} {{{#ffffff '''한국시리즈'''}}}}}} ||
||<width=500><height=150><#f01e23> [[파일:1411__haitai_tigers_cap-1982.png|width=110]] ||<width=500><height=150><#007FFF> [[파일:samsung_lions_logo_1982.png|width=140]] ||
||<width=500><#f01e23> [[해태 타이거즈|{{{#000000 {{{+1 '''해태 타이거즈'''}}}}}}]] ||<width=500><#007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1 '''삼성 라이온즈'''}}}}}}]] ||
1987년 10월 21일부터 10월 25일까지 진행되었던 한국시리즈.
해태가 '''4전 전승'''의 완승을 거두면서 통산 세 번째 우승이자, 프로야구 역사상 첫 연속 우승 첫 4승0패 우승의 금자탑을 세운 시리즈다. 반대로 삼성 입장에서는 원년 이래 계속되어 온 한국시리즈 부진의 늪이 계속되었던 시절의 일부다.
한국시리즈 MVP는 시즌 내내 부진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한 [[김준환]]이 선정되었다.
== 시리즈 전 상황 ==
1986년 전기리그 우승을 달성했지만, 후기리그 4위로 내려 앉으면서 PO을 치러야 했고,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패배한 [[삼성 라이온즈]]는 감독을 [[김영덕]]에서 [[박영길]]로 교체하고 1987년에는 독하게 우승을 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 결과는 1987년 팀 타율 3할[* 2014년에 삼성이 .301로 경신했고 2015년에 .302로 또 다시 신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2017년 [[KIA 타이거즈|KIA]]가 이 기록을 다시 갈아치우며 역대 한 시즌 최고타율의 주인은 바뀐 상태다.]과 전기 및 후기리그 동반 제패의 위업이었다. 이 해 삼성의 전력은 타력이 워낙 막강했다. 팀 타선은 1번부터 9번까지 쉬어갈 틈이 없었고,[* [[장효조]] 0.387 타격왕, [[이만수]] 0.344 타점왕, [[김성래]] 0.332 홈런왕, [[류중일]] 0.287 골글, [[김동재]] 0.318, [[오대석]] 0.326 [[허규옥]] 0.326, [[박승호(야구)|박승호]] 0.286 [[장태수(1957)|장태수]] 0.282 등 하위타선까지 0.25 이하는 한 명도 없는 지뢰밭 같은 타선이었다. 현재까지도 이렇게 강한 라인업은 보기 드문 편, 굳이 비교하려면 [[이대호/2010|이대호]]가 타격 7관왕을 차지한 2010년도 롯데 타선 정도가 비교가 되겠다. 이쪽도 모든 선수가 80득점을 넘겨버린 불방망이 타선.] 23승을 거둔 [[김시진]]을 필두로 한 마운드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해 득점 2위였던 [[롯데 자이언츠]]보다 무려 150득점을 더 했다.[* 한편으로는 [[선동열]]vs[[최동원]] 득점지원 드립 많이 치는데 롯데도 평균은 하는 팀이었다. 당시 막장이었던 빙그레와 청보를 생각하면..] 한마디로 87년의 삼성은 2014년 [[넥센 히어로즈]]와 비슷하게 타자들이 점수를 대량 뽑아주면 투수들이 무난하게 막아가는 스타일이었다. 다만 마운드는 [[김일융]]이 빠지면서 7팀 중 평자책 5위를 기록했던지라 투수가 중요한 단기전의 특성상 좋은 투수진은 아니었다.[* 김시진 외에는 정통파 투수가 없었으며 [[김일융]]이 일본으로 돌아간 데다가 [[황규봉]]이 코치로 승격한 공백이 컸다.]
전기리그 2위는 OB가 차지하면서 일찌감치 PO 진출권을 가져간 상황에서 전년도 우승팀인 해태는 다소 고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기리그 막판 삼성과의 2연전을 모두 이기면서 천신만고 끝에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냈다. 홈인 광주에서 전국체전이 열리는 바람에 홈 경기를 전주에서 치른 해태는 3차전까지 1승 2패로 지고 있었고, 4차전도 9회말 2아웃까지 한 점차로 지고 있었지만, OB 유격수 [[유지훤]]이 느린 내야 땅볼을 대시하지 못하고 처리하다가 내야 안타를 만들어주면서 극적으로 동점을 만들어 연장전에서 승리하고, 이어 5차전까지 이기면서 극적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막강한 전력에 충분한 휴식을 취한 삼성과 플레이오프에서 혈전을 치른 해태를 비교했을 때 [[1986년 한국시리즈|전년도]]와 달리 이번에는 삼성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 해 포스트시즌 일정이 좀 묘했는데, KBO가 짜 놓은 플레이오프 일정이 10월 7일부터 10월 12일까지였고 한국시리즈는 10월 21일부터 10월 29일까지였다. 즉, 플레이오프가 5차전까지 가더라도 PO 승자가 무려 '''8일'''을 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1위팀은 경기 감각적인 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와 다른 단일시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인데, 이 때문에 해태는 2위로 올라가 경기 경험을 쌓고 한국시리즈에 임하면 불리하지 않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삼성은 우려했던 경기 감각이 시리즈 내내 발목을 잡게 된다.
== 엔트리 ==
=== [[삼성 라이온즈]] ===
||<-3><bgcolor=#007fff> '''{{{#ffffff 삼성 라이온즈 1987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colbgcolor=#fecd00> '''{{{#007fff 감독}}}''' || 1명 || [[박영길]] ||
|| '''{{{#007fff 코치}}}''' || 5명 || [[정동진]], [[황규봉]], [[유백만]], [[우용득]], [[배대웅]] ||
|| '''{{{#007fff 투수}}}''' || 8명 || [[김시진]], [[김기태(재일교포)|김기태]], [[진동한]], [[양일환]],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 [[김성길]], [[성준(야구선수)|성준]], 김훈기 ||
|| '''{{{#007fff 포수}}}''' || 3명 || [[이만수]], [[손상득]], [[박정환(1957)|박정환]] ||
|| '''{{{#007fff 내야수}}}''' || 8명 || [[함학수]], [[김용국(야구)|김용국]], [[김성래]], [[이종두]], [[오대석]], [[류중일]], [[박승호(야구)|박승호]], [[김동재]] ||
|| '''{{{#007fff 외야수}}}''' || 6명 || [[장효조]], [[허규옥]], [[장태수(1957)|장태수]], 최무영, 구 윤, [[홍승규]] ||
=== [[해태 타이거즈]] ===
||<-3><bgcolor=#f01e23> '''{{{#ffffff 해태 타이거즈 1987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colbgcolor=#000000> '''{{{#ffffff 감독}}}''' || 1명 || [[김응용]] ||
|| '''{{{#ffffff 코치}}}''' || 4명 || [[김인식]], [[임신근]], [[백기성]], [[박정일(야구선수)|박정일]] ||
|| '''{{{#ffffff 투수}}}''' || 8명 || [[이상윤(야구선수)|이상윤]], [[선동열]], [[김정수(1962)|김정수]], [[차동철]], [[신동수(1966)|신동수]], [[김대현(1962)|김대현]], [[방수원]], [[문희수]] ||
|| '''{{{#ffffff 포수}}}''' || 3명 || [[김무종]], [[장채근]], [[이건열]] ||
|| '''{{{#ffffff 내야수}}}''' || 9명 || [[김봉연]], [[김성한]], [[서정환]], [[한대화]], [[차영화]], 김일환, 조충열, [[백인수|백인호]], [[박철우(야구)|박철우]] ||
|| '''{{{#ffffff 외야수}}}''' || 5명 || [[김준환]], 조재환, [[김종모]], [[이순철]], 송일섭 ||
== 경기 결과 ==
=== 1차전 ===
||<-15><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1차전, 10.21(수) 14:0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ffffff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김대현(1962)|김대현]] || 3 || 0 || 0 || 0 || 0 || 0 || 0 || 2 || 0 ||<colbgcolor=#dcdcdc,#222222> '''5''' || 7 ||
||<bgcolor=#007fff><color=#373a3c>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김시진]] || 1 || 1 || 0 || 0 || 0 || 0 || 0 || 0 || 1 || '''3''' || 11 ||
중계방송사는 KBS 1TV.
삼성은 선발로 [[김시진]]을, 해태는 선발로 김대현을 내세웠다. 승부는 1회초에 갈리고 말았다. 1회초 볼넷으로 나간 [[이순철]]이 도루를 시도했고, 삼성 포수 [[이만수]]의 송구가 뒤로 빠지면서 주자는 3루까지 진루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타석에 들어선 [[김성한]]이 친 우익수 뜬 공을 [[장효조]]가 [[히 드랍 더 볼]]을 시전하며 놓치는 바람에 해태는 먼저 선제 득점을 했고, 이어 [[한대화]]가 2점 홈런을 치면서 순식간에 점수는 3:0이 되었다. 삼성도 1회말과 2회말에 각각 한 점을 내면서 추격했지만, 3회부터 나온 해태의 [[차동철]]에게 8안타를 치고도 9회말에 한 점을 만회했을 정도로 꼼짝 못하고 눌리고 말았다.
1회 실책 속에 3점을 내준 김시진은 7회까지는 해태의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러나 8회초 김성한에게 솔로 홈런을 맞고, 이어 적시타를 또 내주면서 2점을 더 실점하며 경기가 기울고 말았다. 삼성은 9회말에 연속 3안타로 1점을 추격했지만, 차동철이 2사 1, 3루 위기에서 그 해 홈런왕이었던 [[김성래]]를 땅볼로 막아내면서 먼저 1승을 챙겼다. 안타는 삼성이 더 많았지만, 해태는 홈런과 상대 실수를 묶어 먼저 기선을 잡았다. 결국 [[김시진]]은 84 한국시리즈 2패, 86 한국시리즈 3패에 이어 87 한국시리즈에서도 패전을 적립하며 통산 KS 6패의 멍에를 짊어져야 했다.
=== 2차전 ===
||<-15><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2차전, 10.22(목) 14:0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ffffff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김정수(1962)|김정수]] || 1 || 1 || 0 || 0 || 0 || 0 || 0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2''' || 5 ||
||<bgcolor=#007fff><color=#373a3c>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김기태(재일교포)|김기태]] || 1 || 0 || 0 || 0 || 0 || 0 || 0 || 0 || 0 || '''1''' || 4 ||
중계방송사는 MBC TV.
해태는 선발로 김정수를 내세웠고, 삼성은 선발로 [[김기태(재일교포)|김기태]]를 내세웠다. 경기 자체는 치열한 투수전이라기에는 뭔가가 부족한 빈공의 연속이었다. 특히 삼성이 더 심했다. 해태가 1회 이순철이 나간 후, 도루 2개로 3루까지 진출한 후 [[김종모]]의 희생플라이로 가볍게 득점에 성공했고, 2회에도 2사 1, 3루에서 1루 주자 차영화의 도루를 잡겠다고 던진 이만수의 송구가 뒤로 빠지면서 또 한 점을 냈다. 삼성은 1회말 공격에서 이만수의 적시타로 점수를 냈지만, 그 이상의 점수는 다시는 내지 못했다.
기회 자체는 삼성이 훨씬 더 많았다. 선발 김정수 상대로 안타 4개, 사사구 8개를 얻어내면서 찬스를 무수히 잡았지만, 그 때마다 범타나 병살타로 물러나면서 찬스를 날렸다. 이날 놓친 찬스를 열거하면 3회 무사 1, 2루, 6회 2사 1, 2루, 7회 1사 2루 그리고 최후의 찬스였던 8회 1사 1, 3루였다. 하지만 8회 1사 1, 3루 찬스에서 삼성은 해태가 내세운 절망의 벽인 [[선동렬]]을 맞이해야 했고, 선동렬은 후속 타자를 삼진과 땅볼로 요리하면서 결국 팀의 승리를 지켰다. 김정수는 7과 3분의 1이닝을 던져 1실점으로 2차전 승리투수가 되었다. 패전 투수는 [[김기태(재일교포)|김기태]].
=== 3차전 ===
||<-15><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3차전, 10.24(토) 14:00, [[무등 야구장|{{{#ffffff 무등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007fff><color=#373a3c>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 || 2 || 0 || 0 || 0 || 0 || 0 || 0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2''' || 5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신동수(1966)|신동수]] || 0 || 0 || 2 || 1 || 1 || 0 || 0 || 0 || - || '''4''' || 9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KBS1|[[파일:KBS 1 logo[1].png|width=45]]]] | 캐스터: 정도영 | 해설: 하일성''' ||
삼성은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를, 해태는 신동수를 선발로 내세웠다. 먼저 기선을 잡은 것은 삼성이었다. 1회초 공격에서 [[이만수]]가 2점 홈런을 치면서 앞서 나간 것이다. 그러자 해태는 곧바로 투수를 [[문희수]]로 바꾸면서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해태는 3회말 공격에서 [[김성한]]의 2루타로 동점을 만든 후, 4회 [[김준환]]의 솔로 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5회말 [[김봉연]]의 안타로 다시 점수를 내면서 4:2로 앞서 나갔다.
삼성은 9회초 최후의 찬스를 잡았다. 1회 구원 등판한 후, 삼성의 타선을 요리하던 문희수 상대로 무사 1, 2루의 찬스를 잡은 것이다. 구원 등판한 [[차동철]] 상대로 2사 2, 3루의 기회를 잡은 삼성은 [[박승호(야구)|박승호]]가 친 타구가 1루 베이스를 맞고 빠지지 않고, 1루수 글러브에 들어가면서 동점을 만들 기회를 아깝게 놓치면서 시리즈 3패로 몰리고 말았다.
=== 4차전 ===
||<-15><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4차전, 10.25(일) 14:00, [[무등 야구장|{{{#ffffff 무등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007fff><color=#373a3c>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김시진]] || 0 || 1 || 0 || 0 || 1 || 0 || 0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2''' || 7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김대현(1962)|김대현]] || 0 || 2 || 0 || 1 || 3 || 3 || 0 || 0 || - || '''9''' || 14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KBS1|[[파일:KBS 1 logo[1].png|width=45]]]] | 캐스터: 정도영 | 해설: 하일성''' [br] '''[[MBC|[[파일:attachment/mbc86.jpg|width=50]]]] | 캐스터: 임주완 | 해설: 김소식''' ||
벼랑에 몰린 삼성은 김시진을 내세웠고, 해태는 김대현을 내세웠다. 삼성이 먼저 2회초에 [[이만수]]와 [[이종두]]의 연속 안타로 선제점을 냈지만, 해태는 2회말 공격에서 바로 김준환의 2점 홈런이 나와 간단히 역전했다. 그리고 4회 이순철의 적시타로 기어이 김시진을 강판시켰다. 삼성도 5회초에 기회가 있었다. 볼넷과 안타, 희생 플라이로 1점을 만회한 후, 2사 1, 3루의 찬스를 잡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1루 주자의 견제 때 홈을 파고들려던 작전이 실패하여 1루 주자가 먼저 아웃되면서 추가 득점에 실패, 결국 경기는 해태의 손에 기울고 만다.
해태는 곧바로 이어진 5회말 공격에서 무사 만루의 찬스를 잡아 밀어내기 볼넷과 안타와 상대 실책을 묶어 3점, 다시 6회말에 연속 5안타를 작렬하면서 또 다시 3점을 내며 승부를 완전히 굳혔다. 이 날 해태의 타자들은 14안타를 치면서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초의 선발전원안타 기록을 세웠다. 마운드에서는 5회부터 나온 김정수가 삼성의 타선을 묶으면서 경기가 끝나며 해태는 통산 세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정규시즌 0.204로 최악의 시즌을 보낸 [[김준환]]은 3, 4차전의 홈런 2방을 포함해 0.500 2홈런 4타점을 기록하며 한국시리즈 MVP가 되었다.
== 기타 ==
* [[1986년 한국시리즈|전년도]]에 있었던 [[해태 버스 방화 사건|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대구와 광주를 오가는 한국시리즈 매치업이 성사되었다. 거기에 1987년 이 해는 [[제13대 대통령 선거]]까지 있던 해여서 영호남 지역주의가 더욱 심각했던 해였다.
* 불과 4게임만에 싱겁게 끝나면서 KBO 직원들은 줄어든 입장 수입 때문에 대단히 아쉬워 했다 [[카더라]]. 이는 프로야구 역사상 4연승 싹쓸이로 끝난 첫번째 한국시리즈다.
* 삼성이 4전 전패를 하면서 [[1986년 한국시리즈|전년 한국시리즈]] 3~5차전에 이어 한국시리즈 7연패(敗) 늪에 빠졌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유일의 [[전패준]]이 나온 시리즈다.[* 삼성은 [[1990년 한국시리즈|1990년]]과 [[2010년 한국시리즈|2010년]]에도 4연패로 우승을 놓쳤지만, 그때는 모두 플레이오프를 거쳐서 올라왔다. 특히 1990년은 준PO-PO를 연속으로 패배 없이 올라왔으므로 [[전승준]]을 했다고 봐야 맞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한국시리즈 직행팀이 1경기도 못 건지고 싹쓸이를 당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는 전패준이다.]
* 전후기 우승을 한 팀이 1986년과 1987년에 모두 재미를 보지 못하자 전후기 우승팀에게 이점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이 말은 해태가 1988년 전후기 우승을 모두 독식하고, 한국시리즈에서도 우승하면서 사라졌고, 1989년부터는 단일 시즌이 되어 완전히 없어졌다.
* 해태-KIA가 2019년까지 총 11차례 거둔 우승 중에서 유일하게 홈인 [[광주광역시]]에서 우승을 결정한 시리즈다. [[한국시리즈]]의 [[중립구장 경기|잠실 중립 경기 규정]]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더구나 2013년을 끝으로 [[무등 야구장]]에서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지 않으면서 무등구장에서의 우승 헹가레는 이 때가 유일하게 되었다.[* 새 홈구장인 [[광주 KIA 챔피언스 필드]]는 [[2017년 한국시리즈]]를 치른 바 있으나 1, 2차전만 열렸다.]
* 1987년 후기리그 마지막 2연전에서 삼성은 우승을 확정지은 상태에서 해태에게 2연패를 당하면서 결과적으로 해태가 PO에 막차로 진출하게 도와준다. 그런데 1988년 PO에서 삼성이 빙그레에게 0:3으로 패하자 삼성그룹 비서실이 야구단을 감사했는데 여기서 1987년 후기리그 마지막 2연전에서 [[박영길]] 감독이 친구인 [[김응용]] 감독의 해태에게 전력을 다하지 않아 해태의 PO 진출을 도와주고 삼성의 우승을 좌절시켰다는 논리가 등장하면서 박영길 감독은 1988시즌 종료 후 해임되고 만다.
* 마찬가지로 1987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히 드랍 더 볼]]을 저지른 장효조는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만세 사건까지 포함이 되어 그룹 감사에서 한국시리즈 패전의 원흉으로 찍히면서 1988년 종료 후, 그 유명한 롯데와의 대형 트레이드에 포함되고 만다.
* 김시진 역시 이번 시리즈를 포함한 통산 3개의 한국시리즈에서 7전 7패라는 초라한 결과를 냈고 이후 다시는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다.[* 커리어 마지막 시즌이었던 1992년에 롯데가 우승했지만 이 해 1패에 그친 김시진은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그는 결국 1988년 롯데와의 대형 트레이드에서 1984년 한국시리즈 4승을 거둔 [[최동원]]과 맞트레이드되었다.
* 반대로 해태는 [[선동열]]이 어깨 부상으로 정상 가동이 힘들었지만, 다른 투수들의 눈부신 활약으로 이기면서 해태가 꼭 선동열 혼자의 팀만은 아님을 증명했다. 당시 선동열은 1987년 한국시리즈에서 2차전 세이브에서만 등판했을 뿐이었다.
* 특이하게 전 경기가 낮 경기로 치뤄진 유일한 한국시리즈이다.
* 최초로 서울 중립경기가 열리지 않은 한국시리즈이다. 이후 1991년과 2010년에도 한국시리즈는 잠실에서 열리지 않았다.
* 최초로 홈구단이 홈경기장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시리즈다. 이전까지는 동대문이나 잠실 중립에서 우승했고,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을 차지한 삼성은 부산에서 우승을 확정했다.
== 관련 문서 ==
* [[삼성 라이온즈/1987년]]
* [[해태 타이거즈]]
== 둘러보기 ==
[include(틀:한국프로야구 역대 포스트시즌 목록)]
[[분류:KBO 한국시리즈]][[분류:삼성 라이온즈]][[분류:해태 타이거즈]] |
1988 서울 올림픽 | [include(틀:역대 하계올림픽)]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2c3689><table bgcolor=#fff,#191919><bgcolor=#2c3689> {{{+4 ''' {{{#fff 1988 서울 올림픽 }}} ''' }}} ||
||<-3><bgcolor=#e42e28> {{{#fff 제24회 올림픽 경기대회[br]{{{+1 1988 서울 올림픽 경기대회}}}[br]Games of the XXIV Olympiad[[상표|{{{#fff ™}}}]] Seoul 1988 }}} ||
||<-3> [[파일:400px-Logo_JO_d'été_-_Séoul_1988.svg.png|width=30%]]
[* 이른바 '삼태극'으로 불리는 휘장이며, 이 엠블럼은 [[한국방송공사|KBS]] 신관 정면에도 붙어 있다.[[https://namu.wiki/w/파일:여의도KBS신관야간.jpg|#]] 올림픽 당시 국제 방송센터로 사용되었기 때문. 휘장 도안은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前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인 양승춘이 맡았다.] ||
||<-3><bgcolor=#000> {{{#!wiki style="margin: -5px -1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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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ght=40><width=100><bgcolor=#fa9e15> {{{#fff ''' 대회기간 ''' }}} ||<-2> [[1988년]] [[9월 17일]] ~ [[1988년]] [[10월 2일]]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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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ght=40><bgcolor=#fa9e15> {{{#fff ''' 참가선수 ''' }}} ||<-2> 8391명[br](남자: 6197명, 여자: 2194명) ||
||<height=40><bgcolor=#fa9e15> {{{#fff ''' 경기종목 ''' }}} ||<-2> 27개 종목[br](263개 세부 종목) ||
||<height=40><bgcolor=#fa9e15> {{{#fff ''' 개회선언 ''' }}} ||<-2> [[노태우]][br],,[[대한민국 대통령]],, ||
||<height=40><bgcolor=#fa9e15> {{{#fff ''' 선수 선서 ''' }}} ||<-2> [[허재]], 손미나[* 1964년생 핸드볼 선수.] ||
||<height=40><bgcolor=#fa9e15> {{{#fff ''' 심판 선서 ''' }}} ||<-2> 이학래[* 유도] ||
||<height=40><bgcolor=#fa9e15> {{{#fff ''' 성화 점화 ''' }}} ||<-2> 정선만, 김원탁, 손미정 ||
||<height=40><bgcolor=#fa9e15> {{{#fff ''' 개·폐회식장'''}}} ||<-2> [[서울올림픽주경기장]] ||
||<-3> [[https://www.olympic.org/seoul-1988| [[파일:400px-Logo_JO_d'été_-_Séoul_1988.svg.png|width=25]]]][* 한국어 관련 홈페이지(입장권, 스토어, 안내, 뉴스, 등등)는 폐쇄되었으며, 올림픽 위원회 공식 홈페이지만 남아있다.]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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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kBd8TEestXs)]}}} ||
|| 10분 만에 보는 1988 서울 올림픽 - MBC 스포츠탐험대 2020. 1. 18.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cS-MZlwLqYQ)]}}} ||
|| 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88/18 - KBS 스포츠 ||
>'''[[세계]]는 서울로, [[서울특별시|서울]]은 세계로'''
>----
>1988 서울 올림픽 공식 [[캐치프레이즈]][*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1984년 12월 표어를 공모했으며 총 48,019개의 응모작품 중에 홍재훈씨가 제출한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가 심사에서 최우수작으로 뽑혔으며 서울올림픽의 공식 문구로 선정되었다. [[https://mnews.joins.com/article/1978988#home|기사]]]
[[1988년]] 9월 17일[* 1970년대 이후 열린 하계 올림픽 중 가장 늦은 날짜에 열린 개회식이었다. 남반구에서 열린 [[2000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보다도 이틀이 늦다.]부터 10월 2일까지 16일간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일부 수도권 지역 및 각 종목별로 주요 도시 지역[* 축구 종목은 당시 수도권 뿐만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경기가 열렸고 요트 종목의 경우는 [[부산]] 수영만에서 경기가 진행된다.]에서 개최된 하계 [[올림픽]]. 대회의 정식 명칭은 '제24회 서울 올림픽 경기대회(Games of the XXIV Olympiad Seoul 1988)'이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아시아]] 대륙에서 개최된 2번째 [[하계 올림픽]],[* 첫 번째 대회는 [[일본]]의 [[1964 도쿄 올림픽]]이며, 3번째 대회는 [[중국]]의 [[2008 베이징 올림픽]]이다.][* 동계 올림픽을 포함하면 [[아시아]]에서 3번째로 개최된 대회. 그리고 서울 올림픽 이전 [[1972 삿포로 동계올림픽|1972년 삿포로 동계 올림픽]]이 있었다.] 특히 대회 운영방식면에서 [[1986 서울 아시안 게임|대륙별 종합 스포츠 제전]] 이후 곧장 2년 만에 치러졌던 전무후무 유일한 올림픽이며 그간 역사에서 아테네, 로마, 런던 등과 같이 여러 모종의 사정을 비롯하여 오랜 기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개최를 거두었던 일부 유럽의 도시들과도 그 의미가 엄연히 다를정도로 역사상 전례가 없는 대회로도 기록된다.
거기에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세계 최하의 빈국으로 전락했던 대한민국이 불과 30여년 만에 [[한강의 기적]]으로 일궈낸 눈부신 발전상을 자랑하는 '[[국위선양]]'의 장이었고, 특히 올림픽의 단순한 취지 및 보통적인 의미의 범주를 벗어나 여러 국가, 나아가 세계적으로도 [[냉전]] 종식의 밑거름이 되는 등 세계 역사의 흐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몇 안 되는 큰 의미를 지닌 대회이다.
== 대회 상징 ==
=== [[호돌이|마스코트]]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호돌이)]
[[파일:external/georgesjournal.files.wordpress.com/olympic_lore_seoul_1988_mascot_hidori_the_tiger.jpg|width=500]]
대회 마스코트의 이름은 '''[[호돌이]].''' [[로마자]]로 Hodori로 표기되었고. 동물 모티브는 당연하게도 [[호랑이]]. 그리고 당시 디자이너였던 김현의 작품이었다. 오로지 88년에 열릴 서울 올림픽을 위해 만들어진 상징적인 마스코트였고 이로 인해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의 마스코트 표기를 포기했으며 마지막 폐회식에서도 후에 올림픽의 대표 마스코트가 될 호돌이를 더욱 부각시키면서 강조했을 정도로 엄청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2008년 [[미국]]의 MSNBC [[2008 베이징 올림픽]] 특집 방송에서는 `역대 올림픽 최고의 마스코트’를 선정했는데, 20년 전 서울 올림픽의 마스코트였던 호돌이가 무려 '''3위'''를 차지했다. 이 순위는 당시의 시대적 혹은 정치적 관점을 배제하고, 오로지 외관으로만 평가한 기준으로 매겨진 순위였다.
=== [[손에 손잡고|주제가]]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손에 손잡고)]
||<|5><width=2%><bgcolor=#32a847><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d79802> ||<width=96%><bgcolor=#fbb132> ||<|5><width=2%><bgcolor=#ec281a>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OlxqzcOWMvk, width=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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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color=#000080> ||
다만 미국에서는 중계권자인 NBC[* NBC는 올림픽이 최초로 국제 중계된 [[1964 도쿄 올림픽]] 이래로 IOC에 있어 대회마다 10억달러 이상을 부담하는 최대의 돈줄이다. 이 때문에 서울 올림픽의 경기가 미국에서 보기 좋은 오전에 편성되기도 하는 등 상당한 압력을 행사한다. 이로 말미암아 다른 미국 방송사가 올림픽 중계에 나서는 것이 어려울 정도.]가 이와는 별도로 [[휘트니 휴스턴]]의 [[https://www.youtube.com/watch?v=96aAx0kxVSA|'One Moment in Time']]과 [[존 윌리엄스]][* 미국에서 개최된 [[1984 LA 올림픽|1984]], [[1996 애틀랜타 올림픽|1996]] (하계), [[1996 애틀랜타 올림픽|2002]](동계) 대회의 공식 주제곡을 작곡하였다. 곡명은 각각 Olympic Fanfare and Theme, Summon the Heroes, Call of the Champions이다.] 작곡의 [[https://www.youtube.com/watch?v=i4QQ2SvQcE8|'The Olympic Spirit']]을 중계방송 주제곡으로 사용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NBC는 주제곡을 앨범으로 발매하면서 이후 타국에 판매하여 수익을 창출해냈다고 한다.
== [[1988 서울 올림픽/유치 과정|유치 과정]]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1988 서울 올림픽/유치 과정)]
== 성화 봉송 ==
1988년 8월 23일 오전 [[그리스]] [[올림피아#s-1]] [[헤라 신전]] 마당에서 채화돼 그리스 지역 봉송을 마친 후 8월 24일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에서[* [[1896 아테네 올림픽|제1회 하계올림픽]] 주경기장.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양궁 경기장이자 마라톤 최종 골인 경기장으로 쓰였다.] 성화 인도식을 치르면서 성화가 조직위원회 측에 인계됐다. 8월 25일 아테네를 출발한 성화는 8월 27일 오전 11시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하면서 [[대한민국]] 국내 봉송을 시작했다.
제주도 일주 봉송을 마친 성화는 대형 크루즈선인 올림피아호를 통해 [[부산항]]까지 해상 봉송됐고 8월 28일부터 올림픽 개막 전날인 9월 16일까지 전국 각지를 돌며 올림픽 개막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당시 올림픽 성화봉송이 이뤄진 코스는 아래와 같다. 굵게 표시된 지역은 성화가 하룻밤을 묵으며 문화축제를 치렀던 곳이다.
* [[제주국제공항]] → [[서귀포시|서귀포]] → '''[[제주시|제주]]''' → '''[[부산광역시|부산]]''' → [[김해시|김해]] → [[창원시|창원]][* 현재의 [[창원시]]로 통합되기 훨씬 전이다. 당시에는 [[진해시]]로 성화가 들어와서 [[창원시]]를 지나친 뒤 [[마산시]]로 향했다.] → '''[[진주시|진주]]''' → [[사천시|사천]] → [[고성군(경상남도)|고성]] → [[통영시|통영]][* 현재의 [[통영시]]로 통합되기 훨씬 전이다. 당시는 [[통영시|통영군]]과 [[충무시]]로 나뉜 지역이었는데 성화는 통영군으로 들어와서 충무시로 향했다.] → [[여수시|여수]] → '''[[순천시|순천]]''' → '''[[목포시|목포]]''' → '''[[광주광역시|광주]]''' → [[담양군|담양]] → '''[[대구광역시|대구]]''' → [[영천시|영천]] → [[경주시|경주]] → [[울산광역시|울산]] → '''[[포항시|포항]]''' → [[영덕군|영덕]] → [[안동시|안동]] → [[영주시|영주]] → [[문경시|문경]][* 당시 명칭은 점촌시. 1995년 문경군과 통합돼 [[문경시]]가 됐다.] → [[상주시|상주]] → '''[[구미시|구미]]''' → [[김천시|김천]] → '''[[대전광역시|대전]]''' → [[순창군|순창]] → [[정읍시|정읍]][* 당시 명칭은 정주시. 1995년 정읍군과 통합돼 [[정읍시]]가 됐다.] → '''[[전주시|전주]]''' → [[익산시|익산]][* 당시 명칭은 이리시. 1995년 익산군과 통합돼 [[익산시]]가 됐다.] → [[군산시|군산]] → [[논산시|논산]] → '''[[공주시|공주]]''' → [[보령시|보령]][* 당시 명칭은 대천시. 1995년 보령군과 통합돼 [[보령시]]가 됐다.] → [[아산시|아산]][* 당시 명칭은 온양시. 1995년 아산군과 통합돼 [[아산시]]가 됐다.] → [[천안시|천안]] → '''[[청주시|청주]]''' → '''[[충주시|충주]]''' → [[제천시|제천]] → [[태백시|태백]] → [[삼척시|삼척]] → [[동해시|동해]] → '''[[강릉시|강릉]]''' → [[속초시|속초]] → [[고성군(강원도)|고성]] → [[인제군|인제]] → '''[[춘천시|춘천]]''' → '''[[원주시|원주]]''' → [[평택시|평택]][* 현재의 [[평택시]]로 통합되기 훨씬 전이다. 당시는 [[평택시]]와 [[송탄시]]가 나뉘어졌는데 성화는 평택시로 들어와서 송탄시를 거쳐서 나갔다.] → '''[[수원시|수원]]''' → [[성남시|성남]] → [[과천시|과천]] → [[안양시|안양]] → [[안산시|안산]] → [[광명시|광명]] → '''[[인천광역시|인천]]''' → [[부천시|부천]] → [[임진각]] → [[동두천시|동두천]] → '''[[의정부시|의정부]]''' →[* 의정부에서 서울로 오는 봉송로에는 [[동일로]]가 포함돼 있었고 그 길가에는 [[상계동]] 빈민촌이 있었다. 당시 [[서울특별시]]는 외국인들의 눈에 이 거리가 깨끗하게 보여야 한다는 이유로 빈민촌에 대한 강제 철거를 단행하는데 [[1988 서울 올림픽#s-16.1|그 이야기는 아래에 후술하고 있다.]]] '''[[서울광장|서울시청]]''' → [[서울올림픽주경기장]]
== [[1988 서울 올림픽/개회식|개회식]]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1988 서울 올림픽/개회식)]
== [[1988 서울 올림픽/참가국|참가국]]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1988 서울 올림픽/참가국)]
== 자원봉사 ==
[[레슬링]] 경기 자원봉사를 했던 어느 분이 사진과 같이 봉사도중 있던 일들을 블로그에 올렸다.
* [[http://blog.daum.net/intesa82/537|88 서울 올림픽 이야기(1)]]
* [[http://blog.daum.net/intesa82/538|88 서울 올림픽 이야기(2) 자원봉사]]
* [[http://blog.daum.net/intesa82/539|88 서울 올림픽 이야기(3) - 임시 출입증 관리계장]]
* [[http://blog.daum.net/intesa82/540|88 서울 올림픽 이야기(4) - 기념 뱃지(pin) 모으기]]
* [[http://blog.daum.net/intesa82/542|88 서울 올림픽 이야기(5) - 헝그리 스포츠, 레슬링]]
* [[http://blog.daum.net/intesa82/543|88 서울 올림픽 이야기(6) - 봉사 끝나고 열흘을 입원(끝)]]
* [[http://vc1365.tistory.com/577|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인터뷰]]
== 경비 활동 ==
서울시 경찰국은 1988년 5월 17일부터 1986 서울아시안게임 경비경찰조직 '88경비단'을 '88올림픽경비단'으로 개편했다. 이들은 요인경호대, 참가단 신변보호대, 제1~6지역대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경비대원은 근무복, 신변보호대원은 정장형 제복 및 목걸이형 신분증을 착용하였고, 공통적으로 가슴에 훈장형 기장을 달았다. 주 업무는 경기장 주변 경비, 선수단 신변보호, 대테러 작전수행 등으로 서울 및 지방 경기장 35개소, 선수촌 및 보도시설, 지정호텔, 주요 철도역 등 관련 시설 67곳, 연습장 73곳에 대한 시설경비와 각종 문화행사와 국제회의 경비 등을 담당했다. 대회 당시 투입된 경력은 전체 경찰관 중 총 47,194명이었으며, 예산은 국고에서 353억원, 조직위에서 47억원을 각각 보조받아 약 4백억원으로 전담부대 창설 및 운영, 장비보강 등에 투입했다.
치안본부는 치안 대책기구로 치안대책위원회, 실무대책위원회, 간사위원회 등을 운영하며 자문기관으로 자문위원회를 운영했으며, 대회치안대책의 집행 주관은 제2차장 산하에 6개 실무대책부 및 7개 지원단으로 각각 짰다. 특히 서울시경은 종합치안대책위원회, 실무대책위원회, 간사위원회 등을 두고 집행기구로서 특별대책위원회(대책본부)를 두되 핵심시설 전담 경비는 88경비단장이 맡으며, 관할서의 3선 경비는 제2부장, 각 기능별 지원은 각기 다른 부서장이 맡도록 했다. 대회를 전후해 올림픽상황실을 운영하며 모든 진행상황을 올림픽상황실에만 보고토록 했고, 대책본부는 소관기관별 문제발생 시 해결책을 강구토록 했다. 상황실은 상황처리반 및 일보생산반으로 나누어 2교대 격일근무제로 하고 1988년 7~10월까지 운영토록 했다.
올림픽 개/폐회식 동안 철저한 안전을 위해 개최 12시간 전부터 경찰, 소방, 통신, 대테러 등 합동검측반을 동원해 안전검측을 실시했고, 경기장 주변 도로 등지에는 교통정리를 위해 순찰차 52대, 사이카 74대를 각각 배치해 단계별 교통통제, 입/퇴장 승하차선 지정, 입/퇴장 시차제, 지정주차장제 등을 실시했다. 각종 우발적 사고에 대비해 대테러 특공대, 폭발물처리팀, 한전차, 구급차, 진압부대 등을 근접 배치해 출입문과 관람석에 관중 안전감시요원을 투입했다. 지방 선수분촌 경비는 선수, 임원 등 관계자 신변보호를 위해 시설주와 긴밀히 협조하며 안전활동을 수행하되 군/경 전담지역 책임한계를 구분해 경비를 맡았다. 공항/항만 경비도 군 주관 하에 군경합동으로 진행해 공항 내 청사, 화물청사, 자유지역 등은 경찰이, 기타 2~3선 지역은 군이 각각 맡았다. 그 외에 11개 기능 분야 경력의 집중 운용체계로 확립해내 전문성과 적응력을 고려해 핵심 경비 대상별로 배속/배분시켜 잔여 경력으로 중요도에 따라 증감/지원했다. 각 경비 대상별로 운용되는 경력은 해당 부대 지휘관이 맡았다.
올림픽 기간 중 북한의 방해공작이나 국제테러단체, 국내 반정부/반체제세력 등의 테러행위, 무장공비 침투 등에 대비키 위해 안전본부 산하에 군경합동 대테러 대응팀을 만들었으며, 시/도 대테러 대응팀은 시/도 국장이 맡아 운용했다.
* 출처: [[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44&pn=0&num=103219|유용원의 군사세계 게시글]], [[http://bemil.chosun.com/nbrd/gallery/view.html?b_bbs_id=10044&num=130223|당시 복제]], <국립경찰 오십년사(1995)> p425~431
== 종목 ==
* [[근대 5종]] - [[렛츠런파크 서울|과천 승마공원]], [[올림픽공원(서울)#s-2.5|올림픽 펜싱경기장]], [[올림픽공원(서울)#s-2.9|올림픽 실내 수영장]], 태릉 국제 사격장, [[올림픽공원(서울)|올림픽공원]] [[몽촌토성]](크로스컨트리 종목이라 몽촌토성 언덕을 오르내리며 뛰어다녔다. 최종 결승점은 88잔디마당.)
* [[농구]] - [[잠실실내체육관]]
* [[레슬링]] - [[국군체육부대|국군체육부대 체육관]]([[위례신도시]] 개발로 [[경북]] [[문경시]]로 이전. 2017년 현재 유일하게 전면 철거된 장소이다.[* 축구 경기가 열린 광주 [[무등경기장]]도 사실상 전면 철거되고, 현재는 아예 야구장으로 바뀌어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가 되었으나, 이쪽은 예산상의 문제로 성화대 주변의 극히 일부를 남겨놓고 구조 변경으로 처리해 만든 것이라 엄밀히 말하면 법적으로는 전면철거가 아니다. [[동대문운동장]]도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조명탑 2개가 남아 있으므로 역시나 '''전면''' 철거는 아니며, 2018년 현재 대구 시민운동장이 이 전철을 비슷하게 밟고 있는 중이다. 또한 문화재 문제로 인해 태릉 국제 사격장이 철거 예정이다.] )
* [[배구]] - [[한양대학교]] 체육관, 새마을체육관(현 [[KBS 아레나]]), [[잠실실내체육관]]
* [[복싱]] - [[잠실학생체육관]]
* [[사격]] - 태릉 국제 사격장
* [[자전거/경기|사이클]] - [[올림픽공원(서울)#s-2.8|올림픽 벨로드롬]], [[통일로]](도로경기)[* 정확히는 [[1번 국도]]-[[356번 지방도]]-[[39번 국도]]를 이용해 당시의 구파발-원당-벽제를 순환하였다. 현재 신도시 개발로 도로의 선형이 많이 바뀌어(특히 [[구파발역]] 인근) 당시의 도로와는 많이 다르다.]
* [[수영]](경영, [[다이빙]], [[수구]],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 [[올림픽공원(서울)#s-2.9|올림픽 실내 수영장]], [[잠실종합운동장|잠실 수영장]](잠실 종합운동장 지구에 위치)
* [[승마]] - [[렛츠런파크 서울|과천 승마공원]], 원당종합마술경기장, [[서울올림픽주경기장|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대회 마지막 날 장애물 개인전 결승전만 여기서 했다.)
* [[양궁]] - [[육군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화랑양궁장]]
* [[역도]] - [[올림픽공원(서울)#s-2.7|올림픽 역도경기장]]
* [[요트]] -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현재도 이 근처에 올림픽동산이라는 공원이 있다.)
* [[유도]](남자만 정식 종목, 여자는 시범종목) - [[장충체육관]]
* [[육상]] - [[서울올림픽주경기장|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한강 강변도로(마라톤)[[http://smile22.tistory.com/8|#]], 주 경기장 주변도로(경보)
* [[조정(스포츠)|조정]] - 미사리 한강 조정 카누 경기장
* [[체조]](기계체조 및 리듬체조) - [[올림픽공원(서울)#s-2.5|올림픽 체조경기장]]
* [[축구]] - [[서울올림픽주경기장|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 [[동대문운동장]], [[구덕운동장|부산 구덕운동장]], [[한밭종합운동장|대전공설운동장]], [[무등경기장|광주 무등경기장]], [[DGB대구은행파크|대구 시민운동장]]
* [[카누]] - 미사리 한강 조정 카누 경기장
* [[탁구]] - [[서울대학교]] 체육관 (이로써 [[서울대학교]] 체육관은 '''세계 최초의 올림픽 탁구 경기장'''으로 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 [[테니스]] - [[올림픽공원(서울)#s-2.10|올림픽 테니스 경기장]]
* [[펜싱]] - [[올림픽공원(서울)#s-2.6|올림픽 펜싱경기장]]
* [[하키]] - [[성남]] 공설운동장(현재의 [[성남종합운동장]])
* [[핸드볼]] - [[수원실내체육관]], [[올림픽공원(서울)#s-2.5|올림픽 체조경기장]](남자 결승전만)
== 시범 종목 ==
* [[야구]]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태권도]] - [[장충체육관]]
* [[배드민턴]] - [[서울대학교|서울대학교 체육관]]
* [[볼링]] - 로얄볼링장([[서울시]] [[중랑구]]의 중화동의 현 로얄스포츠센터. 리모델링을 하면서 볼링장은 사라졌다.)[* 건물 입구에 올림픽 볼링 경기를 개최한 기념비가 있다.]
== 특징 ==
* [[태권도]]가 처음으로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태권도는 이를 발판으로 [[2000 시드니 올림픽]] 때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 종목에 합류한다.
* [[탁구]]와 [[테니스]]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탁구는 올림픽 역사상 최초이고, 테니스는 1988년 당시 기준으로 64년만의 합류였다.
* [[배드민턴]]이 전시종목으로 채택되었고, 4년 후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정식 종목이 되었다. [[야구]] 역시 이 대회 시범종목이었다. 당시 한국은 야구에서 4위를 달성했다. 이때 금메달은 미국, 외팔 투수로 유명했던 [[짐 애보트]]가 결승전 선발에서 맹활약하면서, 한국에서도 그에 대한 이야기들이 신문에도 오르내렸다. 은메달은 일본, 동메달은 [[푸에르토 리코]].
* 한국은 금메달 12개를 포함해 사상 최초로 종합 순위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1위 [[소련]], 2위 [[동독]], 3위 [[미국]]).
* 미국의 맷 비욘디는 남자 수영에서 5관왕을 차지했다. 다만 이 중에서 세계신기록이 없다는게 흠. 동독의 크리스틴 오토는 여자 수영에서 6관왕의 위업을 달성하며, 한 대회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차지한 여자 선수가 되었다.
* 비욘디의 6관왕을 저지한 남자 접영 100M 금메달리스트는 남미의 소국 [[수리남]]의 안소니 네스티다. 그의 조국에는 당시 [[수영장]]이 단 하나였다고 한다. 그는 올림픽 역사상 첫 흑인 수영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 일본 수영선수 스즈키 다이치는 배영 100m에서 30m를 잠영으로 헤엄쳐 금메달을 땄다.
* 헝가리의 수영 선수 타마스 다르니는 한쪽 눈이 실명인데도 남자 개인 혼영 200m와 400m에서 2관왕을 차지하여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 여자 중장거리의 절대 강자로 등극하는 미국의 재닛 에번스가 처음 금메달을 딴 대회이기도 하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16세.
* 역도의 나임 술레이마놀루는 자기 몸무게의 3배가 넘는 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당시 체급이 -55Kg이었던 그는 자기보다 더 위 체급의 선수의 1위 기록을 능가하는 기록으로 우승하며, 세계를 경악시켰다. 그 전까지는 3배 넘는 무게는 들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기 때문인데, 이 선수는 용상에서 자기 몸무게의 3.18배인 190kg을 들어올려 당시의 과학적 통념을 깼다. 이 선수의 키는 겨우 147cm(...)였기 때문에 '포켓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 여자 테니스 단식 금메달 리스트인 [[슈테피 그라프]]는 슈퍼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 우승+ 올림픽 금메달. 이때까지 이를 모두 이룬 선수는 그라프만이 유일하다. 2013년 현재까지도 한 해에 슈퍼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는 그라프가 유일하다. 애초에 한 해에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 우승이라는 캘린더 슬램을 달성한 사람이, 오픈 시대 이후 [[마거릿 코트]], 그라프와 남자부의 [[로드 레이버]] 외에는 없는데, 거기에 4년에 한 번씩 하는 올림픽 금메달까지 겹치기란...
*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 팀은 한국의 구기 종목 중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했다.[* 참고로 남자 단체 구기 첫 금메달은 20년 뒤인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에서 나온다.] 남자팀은 은메달.
* [[레슬링]]에서는 그레코로만형에서 김영남이, 프리스타일에서는 한명우가 금메달을 차지했는데 김영남은 이 대회 후로 은퇴 예정이었고, 한명우는 국대 선발전에 탈락했다가 대회 직전에 최종 선발된 것이었기 때문에 두 선수 개인에게도 매우 뜻깊은 메달이었다.
* [[양궁]]에서는 17세의 나이로 국가대표가 된 [[김수녕]]이 여자 개인,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하여 2관왕에 올랐고 혼자 세계 신기록 3개를 갈아치웠다. 여자 개인전은 금, 은, 동 모두 한국이 가져갔다(...). 그리고 12년 뒤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 [[소련]]과 [[동독]] 및 [[서독]] 그리고 북예멘과 [[남예멘]]이 해당 국호를 사용한 마지막 대회로 기록되었다. [[소련]]의 경우 다음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때 독립국가연합으로 참가하였다가 1996년 애틀랜타 대회 때 각각 [[러시아]]와 후신 독립국들로 분할하여 참가하였고 [[동독]]과 [[서독]] 그리고 북예멘과 남예멘은 1990년 각각 동서 및 남북 통일화로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통일 국가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 여자 4×400미터 계주에서 소련의 세계신기록이 나왔는데 그 기록이 3분 15초 17이었다. 이 기록이 놀라운 이유는 [[2012 런던 올림픽]]까지도 깨지지 않는다는것 이다. 참고로 2012 런던 올림픽 해당 종목 1위 기록은 3분 16초 87(미국)이다. 스포츠 과학도 엄청나게 성장했을 텐데 그때 그 기록이 어떻게 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 당시 여자 펜싱은 플뢰레만 시행했다. 에페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 사브르는 2004 아테네 올림픽에 도입되었다. 또 사브르는 2004년에는 개인전만 진행했고, 단체전은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처음 시행되었다. 펜싱 여자 플뢰레는 개인전에서 서독 선수 3명이 모든 메달을 휩쓴데 이어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 부문에서 2관왕을 한 선수는 아냐 피히텔(Anja Fichtel)인데, 그녀는 당시 불과 20세였다. 여자 플뢰레 석권에 힘입은 서독은, 아언트 슈미트(Arnd Schmitt)의 남자 에페 금메달까지 합쳐 펜싱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획득하였다. 동독 또한 남자 플뢰레의 우도 바그너(Udo Wagner)가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독일은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펜싱에서 종합 1위를 달성하였다.
* [[복싱]] 미들급 금메달리스트였던 한국 박시헌의 결승전은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상대였던 미국 선수가 누가봐도 긴 리치와 빠른 스피드로 경기 내내 박시헌 선수를 압도하였으나 결과는 박시헌 선수의 승리였다. 모로코와 우루과이의 부심은 박시헌 승리, 소련과 헝가리의 부심은 존스의 승리, 우간다의 부심이 동점이지만 박시헌의 우세로 판정하였다. [[http://library.kspo.or.kr/images/front/library/pdf/%EB%B3%B5%EC%8B%B1.pdf|당시 기록.]] 이 판정은 올림픽 복싱 역사상 최악의 편파 판정 중에 하나로 꼽힌다. 박시헌 선수도 다소 당황해했으며, 마음놓고 기뻐하지도 못했다고. 당시 그 미국 선수는 프로로 전향해서도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했으나 메달이 바뀌지는 않았고, 후에 그는 90년대 초특급 스타가 된다. 그 선수가 바로 [[로이 존스 주니어]].
* 승마의 경우 당시 우리나라에는 방역 규정이 없어 승마만 다른 나라에서 개최할 뻔했다. 어떻게 보면 멜버른 대회[* 오스트레일리아가 아닌 유럽인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별도 개최] 이후 희대의 굴욕, 즉 흑역사가 될 뻔했다. 그러나 과천 경마공원을 짓고 또 방역 규정을 새로 만들어서 우리나라에서 승마 대회까지 개최하는 데 성공하였다.
* 컴퓨터가 광범위하게 사용된 첫번째 올림픽이기도 했다. 1984년도 경기까지만 해도 기록을 문서로 기록해 보관했으나, 1988년도 경기부터는 컴퓨터에 기록을 입력하고 컴퓨터 데이터로 기록을 관리하였다. 또한, 계측 부문에도 컴퓨터 측정 기술이 도입되어 1/100초 단위까지 측정하는 첫 번째 경기가 되었다.
* 1984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과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1,000미터 2연패를 차지한 동독의 크리스티나 루딩 로텐부르거는 1988년 서울올림픽 싸이클 개인추발에 출전해서 은메달을 차지했는데 이로써 동,하계 올림픽에서 모두 메달을 획득한 최초의 여성선수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s-3.11|대한민국 하계올림픽 성적]] ==
■ 1988년 24회 서울 올림픽 (1988 Summer Seoul Olympics)
* 기간: 9월17일~10월2일
* 규모: 160개국 13,600(여)명 참가.
* 종목: 근대5종, 농구, 레슬링, 배구, 복싱, 사격, 사이클, 수영, 승마, 양궁, 역도, 요트, 유도, 육상, 조정, 체조, 축구, 카누, 탁구, 테니스, 펜싱, 하키, 핸드볼, 야구(시범종목), 태권도(시범종목)
* ▶대한민국 참가 현황: 임원 125명, 선수 477명 참가.(근대5종, 레슬링, 배구, 복싱, 사격, 사이클, 수영, 양궁, 역도, 유도, 육상, 조정, 체조, 축구, 카누, 탁구, 테니스, 펜싱, 하키, 핸드볼)
* ▶대한민국 참가 성적: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 획득. 종합순위 4위.
* 금메달: 레슬링(그레코로만형 74kg) 김영남
* 금메달: 레슬링(자유형 82kg) 한명우
* 금메달: 복싱(라이트급) 박시헌
* 금메달: 복싱(플라이급) 김광선
* 금메달: 남자 양궁(단체) 박성수, 이한섭, 전인수
* 금메달: 여자 양궁(개인) 김수녕
* 금메달: 여자 양궁(단체) 김수녕, 왕희경, 윤영숙
* 금메달: 유도(60kg) 김재엽
* 금메달: 유도(65kg) 이경근
* 금메달: 남자 탁구(단식) 유남규
* 금메달: 여자 탁구(복식) 양영자, 현정화
* 금메달: 여자 핸드볼
* 은메달: 레슬링(그레코로만형 68kg) 김성문
* 은메달: 레슬링(자유형 68kg) 박장순
* 은메달: 복싱(헤비급) 백현만
* 은메달: 남자 사격(소구경 소총 복사) 차영철
* 은메달: 남자 양궁(개인) 박성수
* 은메달: 여자 양궁(개인) 왕희경
* 은메달: 역도(52kg) 전병관
* 은메달: 남자 탁구(단식) 김기택
* 은메달: 여자 하키
* 은메달: 남자 핸드볼
* 동메달: 레슬링(그레코로만형 52kg) 이재석
* 동메달: 레슬링(그레코로만형 62kg) 안대현
* 동메달: 레슬링(그레코로만형 82kg) 김상규
* 동메달: 레슬링(자유형 57kg) 노경선
* 동메달: 레슬링(자유형 90kg) 김태우
* 동메달: 복싱(페더급) 이재혁
* 동메달: 여자 양궁(개인) 윤영숙
* 동메달: 역도(82.5kg) 이형근
* 동메달: 유도(무제한급) 조용철
* 동메달: 남자 체조(도마) 박종훈
* 동메달: 남자 탁구(복식) 안재형, 유남규
대한민국은 종합 4위의 성적을 거뒀다.
[[파일:대한민국하계올림픽성적 11.jpg]]
참고로 소련 및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 이전까지 미국, 소련(현 러시아), 동독, 서독(현 독일) 4개국이 전통적으로 매우 강세였고 빅4를 형성했지만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이 4위를 차지하고 서독이 5위로 밀려나면서 올림픽 빅4 체제는 완전히 종식되었다.
== [[1988 서울 올림픽/폐회식|폐회식]]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1988 서울 올림픽/폐회식)]
== 개최 의의 및 결과 ==
=== 기묘한 위상 ===
[[1972 뮌헨 올림픽|사실상 실패했다고]] [[1976 몬트리올 올림픽|간주되었던 대회와]][* 1972년과 1976년은 올림픽 운영상 실패한 대회가 맞다.] [[1980 모스크바 올림픽|그간 반쪽짜리]] [[1984 LA 올림픽|올림픽들에 비해]] 동서 진영이 화합한 대회였지만 이와는 별개로 완벽하게 모든 IOC 국가가 참가한 것은 아니라서, [[쿠바]]와 [[에티오피아]][* 1974~1991년까지 사회주의 공화국. 사실 내전으로 인한 불참이었다.]를 비롯해 [[알바니아]][* 1945~1992년까지 사회주의 공화국, 공산권 가운데서도 폐쇄적인 정책을 펼쳤고 1980년대 후반에 다소 완화되었지만 그래도 공산권에서 폐쇄적인 정책이었다. 이때 4회 연속 올림픽 불참국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올림픽 참가에 관심이 없었을 가망성이 많다.], [[마다가스카르]][* 1975~1992년까지 사회주의 공화국.당초 참가 의사를 밝혔으나 마감 시한까지 선수단 명단을 제출하지 않아 최종 불참 처리됨. 북한의 로비가 있었으며 불참 해주는 조건으로 북한에게 쌀 1만톤을 요구했다고 함. [[응답하라 1988]]에서 [[성덕선]](혜리)의 올림픽 피켓 걸 출현이 좌절될 뻔한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후에 벌점자들의 대타로 우간다 선수들과 입장한다.], [[세이셸]][* 1979~1992년까지 사회주의 공화국. 이쪽은 당대에도 경제 상황이 괜찮았는데도 굳이 불참한 예이다. 다만 다당제 전환 이후로는 [[대전 엑스포]]에는 정상적으로 참여했다. (집권 정당이 교체된 것은 아니고 정권이 교체된 것은 먼 훗날의 일이다.)], [[니카라과]][* 쿠바의 지원으로 1979~1990년까지 사회주의 공화국. 사실 명목상으로는 다당제 민주국가였고 여타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는 다르게 야당 세력이 합법적으로 존재했던 나라였기에 참가가 가능했겠지만 콘트라 내전으로 인해 국가가 혼란했던 상황에 따른 불참에 가깝다.] 등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한 일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국가들은 이에 대한 참가를 거부하거나 포기하면서 총 7개국이 불참했다. 이들 외에 불참 국가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있는데 여긴 냉전과는 별개로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적 문제가 대두되면서 촉발되었던 사태로 인해 IOC에서 제명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데올로기적 면에서 동서화합의 올림픽이었던 동시에 마지막 보이콧이 벌어진 대회라는 기묘한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모든 IOC 국가의 참가가 실현된 것은 다음 대회인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이들 중 북한과 알바니아, 마다가스카르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는 선수단을 파견하게 된다.]
하지만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KAL기 폭파]] 등 북한의 온갖 방해와 로비에도 겨우 6개국 정도만 북한의 입장의 동조했을 뿐이고, 당시 대한민국과 외교관계가 전무했던 국가들이 오히려 대거 출전해 처음에 우려했던 것에 비하면 그래도 참가국을 늘리는데는 성공적이었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 올림픽 유치 열기의 시작 ===
서울 올림픽 전까지 본래 올림픽 유치는 국가적인 취지라기 보다는 '''도시간의 경쟁'''이었다. 경쟁 상대였던 나고야 역시 [[일본 정부]]가 나서서 유치전을 지휘했다기보다는 체육계 인사와 나고야 시 차원에서 올림픽 유치 위원회를 꾸리고 활동했다. 물론 실제 개최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많은 신경을 쓰기는 했다. 그리고 물론 [[1936 베를린 올림픽]]이나, [[1964 도쿄 올림픽]]처럼 정부 차원에서 대회를 주관하는 사례는 있었다.
그러나 유치 초기서부터 중앙정부에서 대규모 계획을 수립하고, 범 국가적인 역량을 동원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즉, 이전까지의 올림픽은 유치하면 정말로 좋지만, 실패하면 크게 문제가 되는 마치 양날의 검과 같은 사업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캐나다에서 열렸던 [[1976 몬트리올 올림픽]]이 사상 최악의 적자를 내면서 파산하게 된 모습을 바라보면서, 과거 뮌헨 올림픽에서 엄청난 테러사건과 또한 [[1980 모스크바 올림픽|반쪽]] [[1984 LA 올림픽|올림픽]]에 따른 당시까지도 전반적으로 만연했던 올림픽 개최에 관한 부정적 회의론이 급부상하고 이에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더더욱 부정적인 시선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당시 빈곤에서 막 빠져나와 고공으로 성장하던 [[개발도상국]] 대한민국이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것을 보고, 상황이 반대로 급변하기 시작했다. 즉 과거 빈민국에서 엄청난 성장을 통해 이제는 선진국 수준의 비슷한 경쟁력을 가지게 된 입장으로 단숨에 급부상한 한국을 바라보면서 다른 많은 국가들은 이제는 회의론을 벗어나 올림픽 개최 자체가 이제는 ''''나름대로 해 볼만한 시도로 여겨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과거에 이루어진 단순 수도 혹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도시 차원에서의 계획만이 아니라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올림픽 유치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또한 이것이 유치의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던 서울 올림픽의 사례들을 통해서, 한국과 크게 다를 것이 없던 개발도상국의 여러 국가들 혹은 기타 한국 이상의 경제력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던 여러 선진국들은 이제 올림픽 유치의 성공을 위해 국가적인 역량을 총동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한민국과 비슷하게 개도국이면서도 훗날 비슷한 행보를 보였던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중국]]이었는데 이는 본격적으로 국가로서 인정받은 80년대 후반 이후로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개최와 무려 2000년 올림픽이 개최되는 시드니와 유치전을 벌여 연장전까지 가는 박빙의 경쟁구도를 이루었으며 결국 그들의 올림픽 유치에 관한 노력은 후에 [[2008 베이징 올림픽]]으로 그 결실을 맺으면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다.
이런 추세는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영국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가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4 소치 올림픽|2014 동계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는 유력 도시였던 소치와 평창의 각 유치 지역별 국가 대표였던 블라드미르 푸틴과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진다. 급기야 IOC에서 "국가 원수의 프리젠테이션 금지를 명문화하자"는 이야기가 언급되었을 정도로 올림픽 유치 열기가 '''과열'''된 것이었다.
여하튼 서울의 이러한 성공적 올림픽 개최의 사례를 통해서, 이제는 국가적 위신을 높일 수 있다는데 착안한 다른 신흥 [[개발도상국]]들, 심지어 소위 [[선진국]]들까지도 개최에 국가적인 역량을 집결시키기에 이르게 된다. 이로써 올림픽 유치를 단순 도시 수준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개최 지원을 시작하게 된 것은 서울 올림픽이 최초는 아니었지만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고 그간 흔들리던 올림픽 개최 운동의 일대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 대한민국의 발전상 및 각종 영향 ===
==== 냉전 종식의 밑거름 ====
[include(틀:냉전)]
[[1980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이 냉전[* 사실상 그간 데탕트의 분위기가 깨지고 갑작스럽게 냉전이 다시 촉발되던 시기였다.]으로 인해 각각 진영에서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그저 반쪽 대회가 된 것과 비교하여 서울 올림픽은 사상 최다의 참가국(160개국), 최대 참가인원(8,465명)을 자랑했다. 이 대회는 특히나 과거 [[6.25 전쟁]], [[베트남 전쟁]]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 진영/[[자본주의]] 진영간의 첨예한 대립을 벗어나 [[냉전]]시대가 녹아가고 화해의 무드와 진정한 의미의 [[데탕트]]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로 확실하게 탈냉전 시대의 도래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이데올로기적 냉전의 연대기: 중공의 탄생과 6.25전쟁 => 도리어 동구권 국가들의 공산화와 이에 대한 미국의 유럽에 대한 마셜 플랜과 동시에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 실시와 쿠바사태 => 베트남 전쟁 => 탈냉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데탕트 논의와 자본주의 미국 & 공산주의 소련 세력과 별개인 제3세계의 출현 => 공산주의 국가인 [[중소결렬|소련과 중국의 대립]] & 공산 진영간의 [[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 발발 => &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에 대한 미국의 공작, 이후 소련의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개혁 개방 정책]]을 통한 소련의 급진적인 변화와 북한과 중국을 제외한 동구권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 직전의 변화가 시작되던 시점이 바로 서울 올림픽의 개최와 시기적으로 맞물린다. 실제로 90년대에 들어서 북한과 중국, 쿠바와 같은 일부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 국가를 제외하고 소련 & 유고슬라비아를 포함한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들은 전부 무너졌다.] 비록 북한은 올림픽을 반대하면서 불참을 선언 및 테러를 일으켰지만 남한에서의 올림픽 개최, 그리고 이후 냉전의 종식을 고하는 주제곡 '''"[[손에 손잡고]](Hand in Hand)"''' 또한 그러한 의미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손에 손잡고 가사중에 '''벽을 넘어서~'''라는 가사가 있다. 그리고 2년뒤인 1990년, [[독일 재통일|독일에서 진짜로 벽을 넘게된다.]]]
한편으로는 서울 올림픽이 동유럽 공산 정권 붕괴에 간접적인 기여를 했다고도 해석이 가능한데, 특히나 [[북한]]의 악의적인 선전으로 인해 [[대한민국]]을 '''헐벗고 굶주린 나라'''로 그동안 익히 알고 있었던 동구권의 [[동유럽]] 공산 국가들이 서울 올림픽을 통해 오히려 자국보다도 더 풍요로운 자유주의 진영이자 시장 경제 체제를 도입하면서 경제 성장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데서 시작된 것이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다만, 올림픽 개최 전부터 [[동유럽]]에서는 한국의 실상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올림픽이 개최되기 몇 년 전에 비공식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어느 동유럽의 체육인이 한국 코치의 집에 초대되어 식사 자리를 가졌는데, 며칠 후 갑자기 다시 한번 식사 대접을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당황한 한국 코치가 그 요구에 응한 이후 부랴부랴 부인에게 연락해서 다시 식사 자리를 함께 했는데, 그 동유럽 체육인이 매우 미안해하면서 자신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고 한다. '''"내가 듣기로는 한국이 헐벗고 못사는 나라인데 일개 체육인의 집이 너무 호화로워서 [[한국 정부]]가 선전을 위해 꾸민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무례를 알면서도 이렇게 갑자기 찾아왔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공산 국가인 중국과 베트남 역시 마찬가지로, 서울을 '''거지 떼가 득실거리고 판자촌이 난무하는 빈민가 천지'''로 여겼는데 정작 개회식 및 여러 보도를 통해 접한 서울의 모습이 도리어 자국의 번화한 도시보다 [[넘사벽]]급 이상으로 화려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특히 [[중국|당시의 중공]]이 [[1986 서울 아시안 게임|2년 전에 이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데, 한국'''·'''중국 수교 이후에 만난 한국인들에게 서울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언급한 중국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사실 이 시기 1인당 [[GNP]]를 보면 1987년 기준으로 소련과 동독 모두 한국보다도 높으면서도 거기에 2배 이상인 8,000달러~9,000달러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이외의 동구권 유럽 국가들은 '''과거 미국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봉쇄정책과 80년대에 들어서 등장한 오일쇼크와 관련된 여파를 겪으면서 10년 넘게 경제가 침체 중이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그나마 유일하게 살만했다는 소련도 1980년대 중반 유가의 하락으로 경제가 하락세에 접어들었고,[* 여담으로 소련 지금의 러시아 또한 여전히 막대한 땅덩어리에서 나오는 석유를 주 수출 상품으로 외화벌이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소련에 이어 2번째로 잘살고 있던 동독은 그나마 서독과의 교류를 통해 경제를 유지한 상태였다.
여기에 공산권 국가 특유의 '''고정환율'''에 의해 GNP 수치가 표기된 것도 고려해야 하는데, 일례로 1989년 당시 동독의 1인당 GNP는 무려 13,000달러로 같은 시기 6,000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IMF 통계 기준 5,927달러, 세계은행 통계 기준 5,817달러) 대한민국의 2.2배 남짓이었지만 이는 동독 마르크와 서독 마르크를 1:1로 환산한 결과에 불과하였고[* 당시 서독은 '''유럽 2위,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이었는데,(순위로는 미국, 일본, 소련, 독일 순서였다.) 바로 한 단계 높은 순위였던 소련의 경우는 그 특유의 '''통계 뻥튀기'''까지 겹쳐서 단지 시장 규모라는 몸집만 컸을 뿐 내실이 별로 좋지 않았기에 실질적으로는 서독이 유럽 최고의 경제 대국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러니 서독의 화폐에 감히 동독 마르크가 대등하다는 주장하는 것은 감히 있을 수도 없는 일.] 비공식 환율대로 환산하자면 4,500달러 수준으로 오히려 한국보다 더 낮았다. 물론 동독의 생필품이나 공공요금, 임대료가 월등히 싸다는걸 감안하면 동독의 구매력이 형편없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사치품을 사려고 한다면 발품을 팔아야 했다. 실제로 이 무렵 동독을 다녀온 서독 국민들은 '''"1인당 GNP 13,000달러의 나라가 왜 이리 못 사는가?!"'''라고 의아하게 여겼다고 한다. 즉, 동구권 유럽 국가들 중에서 가장 형편이 좋았던 소련과 이러한 소련을 제외한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위성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경제력이 부흥했던 동독의 실질적인 경제 상황도, GNP 지표 수치와는 다르게 오히려 한국보다 우세한 상황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이는 결국 지정학적으로 아시아의 조그마한 반도 국가이면서, 그것도 일제 치하 36년이라는 긴 식민지 강점기를 지난데다가 이에 그것도 모자라 올림픽이 개최되기 무려 30여년 전 [[6.25 전쟁]]으로 인해 결국 온 나라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면서 동시에 세계 최고의 빈민국가이자 더 이상 소생이 불가능한 상태로 전락했던 대한민국이 오히려 공산주의 이념의 국가보다도 더 부유한 경제를 꾸려가는 것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여담으로 과거 6.25전쟁 이후의 대한민국에 대한 평가는 21세기에 들어선 시점에서부터 지금의 아프리카 빈민 국가들만큼이나 혹은 그 이하 수준의 경제력과 동시에 전 국토가 초토화 상태에 이르렀을 정도로 매우 참담한 상황이었다. 그랬던 국가가 후에 개도국으로 성장하면서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면서 G20에 가입하고 또 세계 경제 면에서도 순위권에 있는 국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고로 그간 수십여 년간 고수해오던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감과 환멸감은 절정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들 국가들 역시도 이와 같은 시대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유시장 경제체재를 받아들이는 움직임을 보이게 되는 행보[* 대표적인 예로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루마니아 혁명]]과 동구권 각 국가의 혁명 그리고 사실 훨씬 그 이전에 벌어졌던 [[프라하의 봄]]이 있다.]를 이어가면서부터는 결과적으로 공산정권의 붕괴의 신호탄과 소련의 해체로 말미암아 이념의 대립 경쟁에서 사회주의의 패배라는 결과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이어 한국이 [[폴란드]] 및 [[오스트리아]],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체코]], [[슬로바키아]][* 당시의 통일 체코슬로바키아] 등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위시한 동구권(동유럽) 유럽 국가들과도 대대적인 수교를 펼치기 시작했던 시기 역시 1989년부터였으니, 사실상 88년 서울 올림픽의 영향이 아예 없었다고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이후부터 일이 수월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고로 이는 즉슨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로 인해 선진국과 기타 후진국들을 비롯한 정반대 이념을 가졌던 적성 국가들에게까지도 전쟁과 기아, 가난이라는 키워드로 그간 알려져 있던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크게 달라졌다는데에는 틀림없는 사실이었고, 도리어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외교력과 위상을 높이는데 큰 핵심을 담당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 독재정권의 종식 및 정치적 변화 ====
또한 전두환 5공화국 정권의 종식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올림픽 개최 시도 자체는 박정희 정권 말부터 시작됬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집권기간 내내 민주화 운동을 '좌경폭동'으로 매도하며 탄압했으나, [[6월 항쟁]] 이후 사실상 항복을 선언하였고, 이후에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을 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였다.'''
전두환 정부는 올림픽을 정권 정당성을 홍보하는 데 사용했다. 유치 성공 이후 아시안게임 및 올림픽 준비를 하면서 이를 이유로 야당과 민주화 운동 진영에서 논의되던 민주화 논의를 무시하고 있었다. [[4.13 호헌조치]]를 발표했을 때도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라는 이유가 들어가 있었다.
정작 87년 [[6월 항쟁]]이 일어나자 전두환 정부는 계엄령 선포 및 시위대 유혈진압을 계획한 바 있다. 그러나 이미 올림픽때문에 외신들이 많이 들어와 있고 [[김수환|김수환 추기경]],[[정의구현사제단]]과 같이 가톨릭계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에 계엄령을 선포했다간, 올림픽 개최가 취소와 더불어 개최지가 변경되면서 지금껏 모든 수고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결국 정부는 [[6.29 선언]]을 발표해 민주화 개헌을 추진해야만 했다. 정권 도움 되라고 유치한 서울 올림픽이 [[자가당착|오히려 정권의 명줄을 끊은 셈]].[* 세계적인 축제를 개최하는 것은 곧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과 마찬가지였음에도 이를 전두환은 너무 늦은 시기에 깨달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WMLSfimI7yw|알쓸신잡에서 유시민이 언급하는 올림픽이 6월 항쟁에 끼친 영향]]
전두환 정권이 시민들의 유혈진압으로 6월 항쟁을 끝났다면, [[교황청]]이 [[유럽]]과 [[남미]]의 [[가톨릭]] 국가들에게 서울에서의 올림픽 개최에 관한 전면적인 보이콧을 호소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앞서 상술했듯 IOC에서도 당시에 개최국 변경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었다고 한다. 가뜩이나 공산권에 대한 견제 효과를 노리던 같은 자유주의 진영이었던 미국의 입장에서는 서울 올림픽이 무산되면 뒷목잡을 일이라, 과거 [[5.18 민주화운동]] 때와는 다르게 묵인 없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전두환을 압박했고, 또한 올림픽 때문에 외신 기자들도 잔뜩 방문한 판국이라, 이처럼 올림픽만큼은 어떻게든 개최해야만했던 전두환은 결국 유혈진압을 포기하면서 사실상 항복을 선언한다.
어찌되었든 전두환 정권 때 올림픽이 유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태우가 '관중들이 전두환을 보고 야유를 하는걸 외국인들이 보면 국제망신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전두환을 올림픽 개최식에 참석못하게 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한다. '''이처럼 결국 전두환은 자기 집에서 TV로 노태우가 올림픽 개회선언을 하는 것을 그저 지켜만 봐야했다.'''[*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도 그대로 묘사되었다. 노태우가 개회식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재주는 누가 넘고 돈은 누가 번다더니"라며 분개해 하는 이순자, 착잡한 표정의 가신들, 그리고 회한으로 눈시울을 훔치는 전두환의 모습은 덤. 전임 대통령이자 개최에 큰 도움을 주었기에 전두환은 귀빈석에 위치시키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노태우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 그리고 이때부터 전두환과 노태우의 관계는 험악일로를 걷게된다. 이는 결국 화합의 대제전인 올림픽이 오히려 대한민국 군부 독재의 거물이었던 두 사람의 사이를 완전히 갈라놓았던 것. 그리고 또한 이것이 결국 [[백담사]]행의 서막을 올리게 된다. 그리고 시작은 불완전하였으나, 동시에 5공화국 종식과 더불어 독재 정권의 청산, 대통령 직선제와 비밀 투표 그리고 더 이후에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문민 정부 시절에 들어서는 아예 사회 전반적으로 엄청난 움직임으로까지 불씨가 거대하게 타오르며 번진다.[* [[하나회]] 해산,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
그리고 이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동구권과 [[소련]]의 붕괴는 국내의 일부 강경했던 좌파 그룹들의 속성을 더불어 크게 변화시켰다. 이후 [[사회주의]]보다는 사민주의를, 사민주의보다는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속성이 늘어났으며, 그 가운데 가장 격렬한 변화는 [[민중당(1990년)|민중당]] 계열에서 일어났다.[* 민중당 계열 그룹들은 1990년대 초반까지도 진보정당 운동에 매진하였다.(애초에 민중당이 창당된 것이 1990년도였고...) 이들이 보수로 돌아서게 된건 1996년 15대 총선을 전후해 김영삼이 이들 인사를 영입하면서부터였다.] 운동권 출신 재벌총수 이의범 [[SG그룹]] 창업주도 해당 올림픽을 계기로 [[https://www.mk.co.kr/news/business/view/2015/02/105294/|노동운동을 접었다고 밝혔다.]]
5공에 반대했던 인사들도 서울 올림픽에 대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은 1990년에 낸 자서전 <장정> 4권에서 올림픽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 한편, 3년 전 자신을 총장직에서 쫓아낸 전두환에 대해서도 "독재자로서 죄가 많지만, 올림픽 유치와 물가안정 등 공로도 있다"고 평가했다.[* 원 출처: <장정 4: 나의 무직 시절> p309~310.]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도 1988년 9월 22일 중앙일보 창간기념 특별 서면회견에서 "올림픽으로 고양된 국민의 자부심과 사회의 다양성, 민주화의 자신감은 소수 군인들의 쿠데타 및 좌경 민중혁명을 없앨 수 있다"고 발언했다.[* 원 출처: <김영삼 회고록 3: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 p157.]
==== 올림픽에 따른 각종 변화 ====
공산권뿐만 아니라 서방 세계에서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대한민국의 경이로운 발전상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예외적으로 [[일본]]의 경우는 이미 1970년대부터 중고등학생 수학여행단을 비롯하여 수많은 관광객이 방한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알거지 수준이었던 [[광복]] 직후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는 대한민국의 실상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지만[* 물론 직접 대한민국에 와본 경험이 없는 일본인들은 [[1986 서울 아시안 게임|2년 전]]에 이어서 또 다시 TV에 비친 서울과 그 외 대도시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일본에 감히 견줄 수준이 아닌 빈국으로 여겼는데 말 그대로 격차가 확 줄어버렸으니. 게다가 이때는 [[버블경제]]가 절정에 달한 시기라서 일본 경제가 최전성기 시절이었다.] [[미국]]이나 [[서독]],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등의 북미/유럽은 여전히 대한민국에 대한 정보가 한참 모자란 상황이었기 때문에 서울 올림픽은 서양인들에게 그야말로 엄청난 임팩트 그 자체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 들어서는 [[3저 호황]]에 따라 자산시장이 활성화되고 자가용이 차차 보급되기 시작했을때였고, 사실상 서울 올림픽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공산권이든 서방권이든 가리지 않고 대외적으로 세계에 광범위하게 알린 대회이자 기폭제였다는 사실에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엄청난 의의를 지닌 올림픽 개최의 성공과 동시에 [[개발도상국]]이었던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장은 수많은 국가들의 성장의 대표적인 본보기이자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국가적 위상을 끌어올리는 전환점이 되었다.] 서울 올림픽 이후 도래한 1990년대 대한민국은 [[IMF 사태|1997년 외환위기]]에 직면하기 이전까지는 마치 7~80년대 일본처럼 그저 미래가 긍정적이던 국가였다. 그리고 그만큼 당시 수많은 국민들이 이를 전부 깨닫지는 못했지만 지난 이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번영을 누렸다고 회자되었던 시기였다.
사실 이 하계 올림픽 대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될지에 대한 여부는 해외에서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미리 서두에서 부분적으로 설명이 되었지만 처음에는 정부 당국에서도 올림픽 개최에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1987년에 나온 [[대체역사물]] 소설 <[[비명을 찾아서]]>를 보면 저자인 복거일이 어떻게 서울 올림픽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예상보다 빠른 시기에 성공적으로 올림픽이 개최되고 끝나면서, [[한강의 기적|대한민국의 경제 발전 신화]]의 큰 이정표가 되었다. 즉 일본이 [[1964년|24년 전에]] [[1964 도쿄 올림픽|먼저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누린 것과 거의 똑같은 효과를 본 것이다. 무엇보다도 당시 기준으로 독립한 지 고작 반 세기도 안 되었고, 그나마도 [[6.25 전쟁|한 차례 전 국토가 폐허가 되는 끔찍한 전쟁]]까지 겪은 국가가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고 올림픽까지 개최했다는 것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서독, 일본, 대한민국, 중국이 바로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서독은 세계대전 후에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어 내었고 일본은 64년 도쿄올림픽 이후 선진국으로 진입, 대한민국 또한 일본과 독일과 같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중국은 [[모택동]] 사망 이후 [[등소평]]의 주도 하에 국가적으로 개혁 & 개방 시장 경제체재의 부분적 도입하였고 이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하여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에 들어서면서 초강대국 미국과의 양강 구도를 토대로 [[G2(외교)|G2]]체제를 성립한다.][* 애초에 일본과 독일, 그리고 중국은 처음부터 꽤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은 전통적인 유럽의 강자이고, 중국은 동아시아 전체를 휘어잡은 지역패권국이었으며, 2차대전 승전국이기도 했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이 홀로 그 미국과 맞짱을 시도했던 나라였다. 다시말해 옛날부터 강대국이었던 나라인 것. 그러나 한국은 그야말로 듣보잡 그 자체인 나라였다. 그런 나라가 올림픽을 개최할 수준까지 올라섰다는 것 만으로도 그 당시의 외국인들에게는 굉장히 놀라웠을 것이다.]
서울 올림픽의 성공과는 반대로 1989년 동구권 유럽 국가들의 붕괴, 1990년 [[동서독 통일|서독과 동독의 통일]], 1991년 소련의 붕괴로 공산진영은 자유진영과의 그간 체재 대결 구도에서 완전히 패배하면서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공중분해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한국의 [[운동권]]은 크게 쇠퇴하게 된다.[* 운동권은 특히 올림픽 개최를 [[3s정책]]의 일환으로 보고 반대 운동도 전개하고, 남북공동개최까지 주장했었던지라 그 충격이 더 컸던 것이었다.] 또한 본격적으로 혁신적인 정책보다 보수 안정을 추구하는 중산층이 늘어난 것도 올림픽의 여파라고 분석하는 경우도 있다.
당시 국내적으로는 80년대부터 엔화의 고점 현상과 [[3저호황]]도 함께 몰아닥쳤고 이 시기를 전후해 내수경제가 급신장했다. 기본적으로 3저호황의 영향이지만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 일어난 노동자 대투쟁으로 1988년 최저임금법 제정이 되어 임금이 높아진 영향도 있다.
특히 상업적인 부문에 있어서 광고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가처분소득이 크게 늘어나며 자가용 승용차가 1988년에 100만대를 돌파한것을 시작으로 본젹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외식부분도 괄목할 성장을 기록했으며 또한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이루워지면서 여가산업이 크게 번창하여 많은 부분에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삼저호황으로 이른바 1인 1차 시대라 부를수있는 마이카 시대가 열렸고 이에 따라 레저산업과 부동산 경제 활성화 및 각종 경제가 급성장한다.
올림픽 개최와 더불어 장발과 미니스커트 착용에 대한 단속이 중단되고 [[야간통행금지]] 조치가 전면 해체되는 등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이전에 비해 문화에 대한 제한이 상당부분 풀리고, 이미 앞서 언급된 내용처럼 프로 스포츠의 성행과 올림픽 준비과정에서 지하철과 도로, 경기장 건설, 서울 외곽지역 재개발 및 한강정비사업 등 각종 인프라 공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올림픽 자체만으로도 문화적인 부분에서 변화가 컸지만, 때 마침 올림픽을 앞두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그간 한국 언론과 문화계를 억누르던 각종 정치적인 검열과 법적인 규제가 부분적으로나마 철폐되거나 완화되었다.
90년대 중반 IMF이전까지 당시의 생활 환경부문에서 상당하게 변화했다. 사실 이 시기부터 대한민국이 일반 개발도상국을 넘어 선진국으로서 도약을 위한 변화를 많이 준비했다. 예를 들면, 그동안 경제발전에 집중했던 대한민국의 대기오염에 대한 실태와 개선 노력에 국가적으로 나선 계기가 이 올림픽 준비과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IOC에서 [[https://news.joins.com/article/22373189|올림픽에 관련하여 대기오염 문제에 대한]] 개선 및 각종 요구사항이 내려오기도 했다.[* 실제로 통계상 이 시기의 [[미세먼지]] 농도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06709&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지금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추정되고]] 심지어 이 때문에 몇몇 외국인 선수들은 [[일본]]에서 기다리다가 개막 직전에야 한국으로 왔다고 할 정도. 그러나 86년 아시안 게임 이전부터 중앙정부는 환경오염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였고 관련 법 제정 및 자체적으로 개최 기간 내에 차량 이용 자제를 부탁과 거기에 길거리 쓰레기 및 각종 규칙을 지켜줄 것을 신신당 당부하면서 언급하면서 당시 국민들이 이러한 규칙을 성실히 이행함에 따라서 이후 오히려 인식이 굉장히 좋아졌다.]
또한 서울 올림픽 유치 이전부터 이미 신군부 세력의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은 정부 출범 이후 [[3S정책|사람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떨어뜨려 놓기 위한 우민화 정책을 실시하였는데]], 그중 특히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장려하였고,[* 집권 3년차에 야구에서는 아마추어 스포츠를 규합하여 프로리그의 성격인 바로 [[KBO 리그|프로야구]]를 급조해서 출범시켰고, 연달아서 [[K리그]]의 전신이었던 슈퍼리그, 민속씨름, 다만 농구의 경우에는 당시에 프로농구라는 의미로 넘어가기 이전까지는 대학 농구와 실업 농구팀을 필두로 [[농구대잔치]]를 출범시켰다. 또한 여기에 스포츠 인재 양성을 위해 [[예술체육요원]]의 선발 범위를 더 넓히는 정책을 실시하여 수많은 스포츠인들을 양성한다.][* 지금이야 세월이 지나 나라가 발전해서 국가적으로 스포츠 시설 건설을 지원하지만 올림픽이 열리기 전만 하더라도 한국은 그야말로 스포츠 시설들이 부족한 국가였다. 현재를 기준으로 이 때 당시 지어진 시설들은 낙후되었겠지만 서울 올림픽 개최 전만 하더라도 여러 비인기 종목들의 시설들이 부족은커녕 없는 것도 많았었다. 그러나 올림픽 개최로 모든 올림픽 종목시설들이 건설되면서 현재도 이 때 당시 지어진 시설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봤을 때, 서울 올림픽은 스포츠 발전에 많은 이바지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국풍81]] 등 각종 대형급 문화 행사들을 연달아 기획했다.[* 이처럼 전두환 정권의 올림픽의 성공은 곧 3S정책의 달성해야 할 최대의 목표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이렇듯 프로 스포츠의 시대가 열렸고 비록 국민 우민화를 위한 기반으로 실시되었던 3S정책의 영향이지만 지금껏 적지 않은 프로구단들이 올림픽 당시에 지어진 시설을 썼거나 쓰고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명 한국 스포츠계 및 문화계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위에 서술했듯이 이 올림픽이 발목을 잡아 그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교통, 통신 면에서도 느낄 수 있다. [[서울 지하철 2호선]]과 [[서울 지하철 3호선]], [[서울 지하철 4호선]]. [[부산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면서 1기 지하철 계획을 성공적으로 완성하였으며 [[DHC 디젤동차|동차형 새마을호 열차]]가 올림픽 대비용으로 제작되었다. 카드형 [[공중전화]]도 서울 올림픽을 위한 중요한 시설이었다.
또한 민주화에 따른 언론기본법의 폐기에 따라 신문발행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어 각종 신문과 잡지들이 신규로 창간하거나 복간되었고 12면으로 묶여있던 지면제한도 폐지되어 16면으로 발행면수가 증가했다. 특히나 기존 신문기본법이 적용되었던 1987년까지는 자원 및 외화낭비 방지라는 명목으로 신문지면 제한을 해서 특정한 날이 아니면 신문지면을 1일 12면씩만 발행할 수 있었고, 신문과 잡지도 마음대로 발행하지 못했지만 이러한 규제가 풀려버림에 따라서, 언론계 입장에서는 광고비를 잔뜩 챙겨먹을 수 있는 철호의 기회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겨레를 뺀 주요 언론매체들은 올림픽 특수를 광고 수익과 연결시켜 신문 쪽수를 하루 8면씩[* 경제지는 +4면.] 증면시켜 막대한 광고비로 짭짤한 수익을 올렸으며, 올림픽 특수의 맛을 본 주요 신문사에서 광고수익의 증가를 위해 신문지면을 적극적으로 늘리기 시작하면서 1990년대 중반에 이를러서는 조중동한[* 1990년대까지는 한국일보가 발행부수 200만부를 넘어서는 메이저급 신문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과도한 투자를 한데다가 IMF 외환위기로 직격탄을 맞고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한겨레와 경향에도 밀리게 되었다.]에서 발행부수를 48면까지 늘리고 다른 여타 언론사에서도 기본 20~30면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에 따라서 신문광고 시장이 크게 번창했으며 신문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히 늘어났다.
다만 방송광고시장은 생각보다 성장을 못한 축이기는 한데 토요일 낮방송 허용을 제외하면 올림픽 이후로도 TV 방송시간 연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못했다는 것이지 자가용 보급으로 라디오 방송 수요가 다시금 늘어나면서 풍선효과로 라디오 광고시장은 크게 성장했고, 종교방송이 개국되기 시작했다.
또한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당시 공중 화장실 시설이 열악하기 짝이 없었던 데다가 설치했다 하더라도 관리가 잘 안되어 불결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기 매우 불편했는데, 올림픽을 앞두고 공중화장실 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충시켜놓았다.[* 물론 이용자의 의식 수준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닌지라 공중 화장실 자체의 불결 문제는 그로부터 14년 뒤인 [[2002 한일 월드컵]] 때를 앞두고 나서야 비로소 개선되었지만, 그 이전까지 시설 자체가 매우 열악했던 것에 비하면 [[상전벽해]] 수준으로 개선되었다.][* 이는 과거 시골의 푸세식 => 도시의 현대식 화장실로 격변하는 과정이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5월 20일에 도입된 [[바코드]]의 국가코드 880의 의미가 바로 이 서울 올림픽이 개최된 연도를 모티브로 하였다.
또한 [[패스트푸드]]가 활성화되어가기 시작하는 등 외식문화가 진화단게에 접어들었고, 자국에 찾아올 외국인 관광객이 우리나라 음식을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 전통 음식에 대한 홍보를 위해 서울시의 음식점 대부분에 필수적으로 점포밖에 음식 샘플을 비치하라는 당시 정부의 지시가 내려졌다.[* 그래서 당시 점주들이 이를 갖추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특히 9월에 올림픽이 개최되었기에 당시 날씨가 날씨였던지라 실제 음식을 두면 부패하기 때문에, 음식에 왁스를 넣고 가열하여 굳힌 모형음식 일명 '밀랍 음식모형 기술'을 일본에서 들여와 최초로 도입시켰고 거기에 [[커피]] [[자판기]]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게다가 올림픽 특수를 크게 탄 건 요식업, 숙박업, 관광/레저, 스포츠/여행장비 등 여가산업들이었는데, 당시 재벌기업들은 관광호텔 및 레저시설 건축 등 관광/레저사업과 스포츠용품/의류 등에까지 뛰어들었다. 당시 쌍용 계열인 용평리조트가 그간 10년 적자를 내다가 살아난 게 그 대표적인 예시였다. 이러한 대대적인 붐은 90년대 중반까지의 국민소득 향상에 근거한 '여가의 상품화'에 편승했다는 견해도 있지만, 당시 기업들이 급증하던 노사문제로 리스크를 겪을 제조업 대신 인력 적고 관리가 편한 레저산업을 택했다는 측면도 있다. 더 나아가 골프장 개장/허가 수도 1988년 들어 16개월 간 99개로 급증해 기업가들의 부동산 투기 열풍을 조성했다.
그리고 올림픽 유치를 기반으로 80~90년대부터는 스포츠 기업인 [[아디다스]], 그리고 라이벌이었던 [[나이키]] 및 외국 의류 기업 [[휠라|FILA]], [[게스(브랜드)|GUESS]]. 요식업계 기업인 [[맥도날드]], [[피자헛]] 등등을 포함해 분야를 막론하고 각종 수많은 외국 브랜드 기업들이 대규모로 새롭게 입점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현상은 서울 올림픽 이후였던 1990년대부터 급속도로 나타난다.]
==== 제3세계 세력과의 외교를 통한 저변 확대 ====
미국과 같은 서방 세력과의 교류와 협력이 돈독해지고 91년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던 것과 그간 '적성국가'로 여겨지던 소련을 포함한 동구권 국가들 및 중공과 같은 공산주의 체제 국가들과의 수교 뿐만 아니라 반대로 중동 지역의 경우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중동 건설에 관한 대대적인 붐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1980년대 초에는 이미 우리나라의 다수의 유수 기업들이 대거 진출하여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과 끈기로 현지인들에게 한국이란 나라를 대개 부지런한 국민성을 거론시킬 정도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었다.
거기에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전두환]]은 서울 올림픽 유치에 이바지하면서 성공을 도와주었던 국가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데 이는 즉 당시 미국과 유럽과 같은 선진국 및 강대국들 못지 않게 새롭게 [[중동]] 및 [[아프리카]] 등의 제3세계 국가들과의 외교에 저변활동을 늘리는 것과 같은 상당한 공을 들이게된다. 물론 박정희때에도 체제경쟁과 석유수급을 이유로 [[제3세계]] 국가들에게 손을 내밀었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축제를 개최한 만큼 더욱 공을 들이게 된것도 사실이었다. 또한 [[제5공화국(드라마)|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도 등장했던 1983년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을 중심으로 당시 국내 정세 및 현안이 너무 복잡했었던 까닭에 당시 전두환은 일정에 잡힌 제3세계 관련 순방외교를 취소하려고 했으나,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장이었던 노신영이 이들 제3세계 국가 덕분에 우리가 올림픽을 유치한 것을 생각하여 볼 때 절대 무시할 수 없다고 전두환을 설득해 결국 순방외교를 이어가게 한다. 심지어 북한과 수교국이었던 버마([[미얀마]]) 순방 도중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라는 초유의 참사가 있기도 했지만 순방은 계속되었다.[* 물론 이는 전두환이 국내를 비롯해 미국 등의 강대국들로부터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관한 지지기반을 잘 다지지 못해, 안 좋은 국내 여론을 잠식시키고 제3세계 국가들과의 외교를 통해 이를 만회해 보려는 속셈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국제적 지위향상과 더불어 외교노선 다변화에도 도움이 되는 등의 성공적이면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올림픽 유치 당시 참가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저가로 전세기를 띄워주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그 약속은 서울 올림픽 당시에 지켜졌다.][* 이전까지 [[아프리카]] 지역의 경우 한국 대통령이 현지 국가에 공식 방문한 사례는 [[전두환]]이 최초였다.][* 전두환 이후 [[대한민국 대통령]]의 아프리카 국가 정상들과의 만남은 2006년 3월 [[노무현]] 대통령에는 아프리카 3개국 ([[이집트]], [[나이지리아]], [[알제리]])의 국가 정상들이 종종 방한함으로써 이루어진 것뿐, 현지 방문은 없었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국력 신장과 더불어서 이후 동남아시아권 국가나 서남아시아권의 국가들과도 교류가 이어지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외교력은 한층 더 성장하였다.
==== 한국 전산 기술의 발전 ====
'자이온스'란 이름의 올림픽 전산 시스템을 국내에서 개발해 사용했다. [[카이스트]] 부설 시스템 공학센터에서 개발을 결정. 당시 88 올림픽까지는 5년 정도의 기간이 주어진 상황이었지만, 올림픽 조직위원장 노태우를 설득하기 위해 3개월 만에(…) 거의 완성된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것으로 64회 전국체전을 운영해 냈고 그리하여 올림픽 전산 시스템의 개발을 승인받았다. [[http://www.thisisgame.com/webzine/series/nboard/213/?series=110&page=1&n=56467|#1]] [[http://www.thisisgame.com/webzine/series/nboard/213/?series=110&page=1&n=56759|#2]] [[http://www.thisisgame.com/webzine/series/nboard/213/?series=110&page=1&n=57130|#3]]
다만 아쉽게도 이 전산 시스템은 올림픽이 끝난 후 관심도가 빠르게 사라졌고, 개발 인원들도 하나 둘 대기업 등으로 흩어지면서 사실상 일회성 시스템으로 끝나게 되었다.
== 총평 ==
이처럼 서울 올림픽은 국가적 차원에서 수많은 다변화의 과정을 가져왔다. 물론 과거 도시 재개발에 따른 철거민에 관한 문제와 노동자의 노동착취, 부동산 투기 등 당시 만연했던 한국 사회의 우울한 자화상과 각종 부정적인 문제점들을 모두 감추면서 묻어버렸다는 비판이 이어지기도 하나,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올림픽이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안전한 지지대와 사회 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또한, 서울 올림픽은 그동안 치러졌던 역대 올림픽 가운데서도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녔으면서, 대한민국의 역사, 올림픽 역사 나아가 세계사까지 송두리째 뒤바꿔놓은 올림픽으로 남게 되었다.
참고로 1970년대 말, 실제로 추진되었던 [[충남]]지역 [[세종특별자치시|신행정수도]] 건설 도시에 관한 계획에, '''1996년 올림픽 주 경기장 부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당초 계획은 새로 지어질 행정수도의 정책에 따라 [[1988년]], [[1992년]] 유치전에 참여하여 [[대한민국|국가]]와 [[세종특별자치시|신행정수도]]의 인지도를 높인 이후 1996년 올림픽 유치에 승부수를 띄우려는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만약 자국 내부의 사정에 따른 상황과 IOC의 의견을 수용해 1990년 중반대로 올림픽 개최를 연기했더라면, 그리고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1992년도 올림픽 개최지]]와 [[1996 애틀랜타 올림픽|1996년도 올림픽 개최지]], [[2000 시드니 올림픽|2000년도 올림픽 개최지]]가 어디였는지를 생각해보면, 당초 계획보다 경쟁을 피해 대회를 빨리 유치했었던 선택이 오히려 여러 방면에서 신의 한 수가 되었다는 관측이 많다.[* [[애틀랜타]]야 [[자본|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고]], [[바르셀로나]]는 당시 [[IOC]] 위원장인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의 고향이었던데다가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독재에서 벗어나 다시금 약진하던 [[스페인]]이었기 때문에 만일 올림픽 유치를 놓고 맞붙었다면 [[한국]]으로서는 쉽지 않은 상대였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그리고 1996년 올림픽의 경우에는 비록 [[미국]]의 상업적 로비에 놀아난 이유로 인해 [[애틀랜타]]가 유치했지만 경쟁국가 및 도시들 중 하나가 [[그리스]]의 [[아테네]]였다. 하필 1996년의 올림픽은 1896년에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인 아테네에서 올림픽이 부활하여 다시 아테네에서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한 근대 올림픽이 100주년을 맞는 해였다. 즉, 명분만 놓고 보면 당시 미국 월드컵을 개최한지 얼마 안된 상황에서 욕심을 내면서 유치전에 끼어들은 애틀랜타는 상대가 되지 못했던 상황이었고 거기에 실제로 전세계적으로 근대 올림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는 명분상 아테네에서 개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아 큰 지지를 얻었던 상황이었으며 실제 유치전의 흐름도 아테네가 주도했던 적이 있었다.] 서울이 1988년 개최에 도전하지 않고 1996년 개최에 도전했으면 1981년보다 1990년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더 좋았겠지만, 무조건 밀렸을 거라는 가설을 내세울 수 있다. 그리고 만약에 이를 더 미루었다면 역사가 바뀌지 않는 이상 엄청난 사건에 직면했을지도 몰랐을 것이고 거기에 더 이상 개도국의 후보지로서 여러 강점 및 메리트와 경쟁력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때문에, 당시 [[노신영]] 외무장관은 적극적으로 올림픽 유치를 시도하는데 특히 올림픽의 대륙 간 안배원칙을 고려할 때 구미권 즉 서양의 선진 국가들은 12년 만에 아시아에서 다시 올림픽이 열리는 걸 탐탁치 않게 여길 것이라는 점과 [[20세기]]가 지나면 [[중국]]이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견해는 21세기인 지금에 와서 보면 '''단순 예언 수준이 아니라 소스라칠 정도로 놀라운 엄청난 혜안이었던 것으로도 평가가 가능하다.'''
2020년 현재 시점에서 바라보면, 중국은 [[2000 시드니 올림픽]] 유치전에서 [[천안문 6.4 항쟁|과거의 만행 때문에]] 유치 실패로 발목을 잡혔지만 마지막 4차 투표에서 두 표 차로 뒤집히기 전까지 계속 선두를 유지했었다. 또한 [[2008 베이징 올림픽]]과 이후 일본의 [[2020 도쿄 올림픽]] 재유치, 게다가 21세기 들어 중국과 마찬가지로 급부상하는 국가인 [[인도]]와 지금까지 2번이나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을 유치해오면서 이제는 올림픽 유치 전쟁에도 뛰어들 준비가 된 [[인도네시아]]가 이를 검토 중에 있고, 또한 [[월드컵|타 메이저 대회]]에서 오일머니라는 엄청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하여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가 된 카타르와 같이 여러 중동 국가들마저도 국제대회 유치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1981년]] 당시 우리나라에서 지레 겁먹고 올림픽 유치를 포기했다면 사실상 '''한국에서의 올림픽 유치는 요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혹은 최악의 경우에는 21세기에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올림픽 유치에 실패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썼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서울 올림픽이 한국 스포츠계의 발전과 단순한 국제 대회라는 의미의 범주를 넘어, 대한민국과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다시 상기해본다면, 올림픽 개최가 제대로 성사되지 못했더라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판도와 역사가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실로 아찔한 대목이 아닐 수가 없다.
== 논란 ==
=== 강제 이주 및 여러 논란 ===
[[파일:external/www.mediaus.co.kr/8682_13969_3543.jpg|width=600]][* (<[[상계동 올림픽]]>의 캡처영상)]
>'''허울 좋은 86, 88올림픽이 없는 사람 다 죽여요. 살고 있는 주민들 다 쫓아내고 어쩌겠다는 거예요? 이건 재개발이 아니고 투기개발이요, 투기개발.'''
>- [[말(잡지)|말]] 1986년 7월 31일자 p49. <투기 개발에 저항하는 [[오금동(서울)|오금동]] 세입자들>.
허나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방면으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는데, '86, 88'이라는 마법의 주문 아래 경기장 건설 및 달동네 환경정비 및 재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수십만에 가까운 주민들이 한순간에 길거리로 내몰렸다. 심지어는 "성화봉송 중에 불량주택이 보이면 곤란하다"며, 전국 성화봉송 루트 주변 경관에 보여지는 판자집이란 판자집은 전부 무단으로 철거해버렸다. 또한 [[노숙자|부랑자]], [[거지]],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북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보이면 잡아다가 부랑자/장애인 보호시설에 수용시켰다.]] 사실 올림픽 개최 이후 장애인 올림픽인 [[패럴림픽]]이 열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올림픽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과 같은 인권 침해 문제도 발생했다.
이미 1982년부터 대규모 건설자본을 끌어들인 대대적 재개발사업 '합동재개발'이 실시되면서 올림픽 선수들이 입국하는 관문 공항인 [[김포국제공항]]과 주 간선도로가 되는 [[국회대로]] 주변의 판자촌 및 [[빈민가]]는 이때 모두 철거되어 자취를 감췄다.[* 애석하게도 이 문제는 이후의 올림픽 때도 그대로 반복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때도 서울올림픽 때와 비슷하게 올림픽을 명분삼아 베이징 도심지와 그 근교를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150만 명이 넘는 서민들이 당국과 철거용역에 의해서 내쫓겼다. 민주국가들에서 펼쳐진 올림픽이라도 이러한 문제점에서 그리 자유롭지 않아서 이후에 치러진 [[2012 런던 올림픽]]과 [[2016 리우 올림픽]] 때도 경기장 근처에 있는 빈민촌을 재개발하고 거기서 살던 빈민들은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든지 해야 했고, 심하면 당국과 건설업체에 의해 고용된 철거용역에 의해서 강제로 다른 곳으로 내쫓긴다거나 했다.][* 게다가 당시 달동네 터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조차도 서민용이 아니라 중산층 등 가진 자들을 위한 주택이었는데, 당국이 재개발 계획에 10평 미만짜리 소형 아파트까지 추가시킬 시 입주 예정자들이 집값 떨어진다고 반대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투기꾼들이 달동네에 몰려와 불량주택을 사서 세입자를 내쫓고, 건설업체 사주를 받는 재개발조합 임원들까지 달동네 공동체사회까지 침해해가며 가담했다.] 아울러 사격 경기가 열리는 태릉 국제사격장 인근의 빈민가 등 황량한 부지도 '''있어 보이기''' 위해 개발되었다. 이는 오늘날 각각 [[목동(서울)|목동]]과 [[상계동]]의 [[목동신시가지아파트|아파트]] [[주공아파트|단지]]로 재개발되는 곳인데, 이 과정을 통해 허허벌판&공장 지대이던 [[양천구]]와 [[노원구]]는 급격하게 풍경이 달라져 대규모 주거 단지이자, [[8학군]]에 버금가는 명문 [[학군]],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곳으로 탈바꿈한다. 아울러 [[부천시]]의 [[원미구|원미]], [[오정구|오정]] 일대도 역시 개발 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이처럼 빈민가에서 거주하던 사람들은 점점 밀리고 밀려나 난곡이나 시 밖으로 쫓겨났다.[* 이제 난곡도 [[2000년대]] 난곡뉴타운으로 재개발되었다. 여기 살던 빈민들은 '''아예 [[서울특별시]] 바깥으로 쫓겨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다룬 다큐 영화가 송환을 만든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이다. 이때 상계동 천막촌의 철거 이유는 '''성화 봉송이 이쪽으로 지나갈 수도 있으니까 보기 좋으라고.'''[* 그러면서 정작 주공아파트가 지어지고 나서 [[동일로]]에 신호등 설치도 안 하는 등 사건사고가 잇따라 터졌다.] 심지어 전국 도시 노점상도, 성남 모란시장 역시 폐쇄 대상에 올랐다.
철거민, 노점상 등 도시빈민들을 쫓아내면서 겉보기에는 도시 미관이 좋아졌지만, 이미 [[광주대단지사건]] 등을 통해 [[1970년대]]부터 끓어오르던 하층민들의 분노를 더욱 키우고 말았다. 이로 인해 1986년 10월 31일 신당 6동 강제철거 당시 철거민 2명이 분신을 기도했고, 12월 4일에는 철거민 1명이 자살하기도 했다. 1986년 한 해 동안 사망한 철거민은 모두 5명이었으며, 1986년 4월부터 1988년 2월까지 사망한 철거민은 모두 14명이었다.[* 출처: <가짐없는 큰 자유: 빈민의 벗, [[제정구]]의 삶(제정구를 생각하는 모임 저.)> 학고재. 2000. p180.]
그러나 철거민 문제가 비로소 본격화된 것이 된 계기가 바로 88올림픽 준비 과정이었다. 결국 그 분노는 그대로 폭발하여 올림픽 개막 1년 전인 1987년에 서울지역철거민협의회(서철협)을 탄생시켰고, 이는 1993년 [[전국철거민협의회]], 1994년에는 분파인 [[전국철거민연합]]으로 이어진 것이다. 1988년 6월 29일에 수도권 등 30여개 지역 주민들이 '반민중적 올림픽으로 탄압받는 도시빈민 규탄대회'를 열었고, 오후 8시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서민주택 보장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전개했으나, 올림픽 열기에 밀려 파급되지 못했다.
게다가 1988년 8월 5일부터 제정/시행된 [[http://law.go.kr/lsInfoP.do?lsiSeq=2452|'올림픽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법률']]에 따라서 현월 17일부터 올림픽 기간 중 전국 주요도시 특정구역에 [[https://news.joins.com/article/2267740|'평화구역']]이 선포되었고 해당 구역 내에서는 어떠한 집회/시위가 금지되었다. 그 증거로 8월 18일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광주지역 8개 재야단체들이 5.18 진상규명 투쟁을 벌이다 평화구역이란 이유로 경찰에 강경 진압되었고, 서울시내(당시 종로, 을지로, 충무로) 극장에서 열린 [[미국 영화]] 직배반대 투쟁도 휴관 형식으로 경찰과 대치해가며 시위를 펼쳤으나 이후 마찬가지로 무산되었다.
서양의 이목을 의식해 주요 도시에서 [[개고기]]가 금지된 때도 이 때. 수많은 서울 시내와 경기가 열리는 곳 주변, 대로변 [[보신탕]] 집들이 문을 닫았고, 보신탕이라는 이름 대신 사철탕, 영양탕, 보양탕 등으로 이름을 바꾸어 위성 도시나 변두리로 쫓겨나 음지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개고기 반대론자들은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한국의 개고기 문화가 근절되지 않으면 올림픽을 보이콧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동물보호 운동가인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의 농촌장터에서 개를 도살하는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한국인은 야만인”이라고 공격한 이후, 1995년 3월 한·불 정상회담 당시 파리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에게 “개고기 판매를 금지하라”고 요구했다. 1996년에는 2002 월드컵 조직위원회에 “월드컵 기간 동안에 개고기 판매를 금지한다는 각서를 써라”고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또한 2001년 MBC라디오 ‘시선집중’ 프로그램에서 손석희 진행자와의 국제전화 인터뷰 도중 “개를 먹는 사람에 대해 결코 존중해 줄 수 없다. 아무리 차이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거기에 한계가 있다”며 문화의 상대성을 인정하라는 손 씨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무시했다.
군대도 보여주기식 정책을 폈다. "군인들이 거리에 보이면 위압적이고 남북이 심각한 대치 상황인 것처럼 보여 안 된다"고 하여 군복 입고 출퇴근 하던 당시 방위병[* 현재의 공익근무요원이나 상근예비역에 해당]은 대회 기간 동안 평상복을 입고 다니게 했고, 군용 차량은 서울 시내 다니는 게 전면 금지되었다. 주둔지가 서울시내라 꼭 다녀야 하는 수방사 소속 차량은 얼룩무늬 위장색 위에 파란색이나 회색, 황토색 등 단색을 칠해 다니게 했고, 수도권 부대 병사들의 휴가 외출 외박도 안 줬다고 전해지고. 지역 부대 소속 장병들 또한 군복을 입고 서울시 주변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아예 금지시켰다고 한다.
위의 여러 가지 일들은 1988년 올림픽 직전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사실 올림픽의 예행 연습이라 할 1986년 아시안 게임 말고도 1983년 IPU 총회, 1986년 IMF 및 IBRD 총회 등의 국제행사가 우리나라에 개최된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도시 빈민들과 힘 없는 이들에게 장기간 고통을 주고, 외국인들에겐 쌍수 들어 환영하는 저자세를 보여줬다. 그러나 전두환-노태우 군사 정권 시절이라 [[월간 말]]이나 [[한겨레신문]]같은 재야 언론을 제외하고는 보도되지 못했고, "올림픽을 잘 치러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특히 중산층)가 너무나 강해 사회 구성원 중에 운동권에 가담한다든가, 자신에게 이러한 해당 사항이 직결되지 않는 이상 정부가 내세운 정책의 부당함과 힘 없는 이들의 고통에 관해 잘 직시하지 못했다.[* 영화 홀리데이의 모티브가 되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당시 희대의 키워드를 곰곰히 생각해보자.]
또한 서울 올림픽은 경제적 성공만 있었던 것이 아닌 문제도 분명히 있었다. 올림픽 개최 과정에서 막대한 돈을 풀게 됨에따라 부동산 투기가 횡행하게 되었고 [[노태우 정부]]의 200만호 건설 공약으로 서울 근교지역 및 지방 대도시 지역으로까지 투기열풍이 확산되었으며 대기업들도 비업무용 부동산 대량매입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1987년부터 1990년까지는 부동산 가격은 매년 20% 이상 올랐으며 전월세비도 급속하게 치솟아 서민들의 삶을 짓눌렀다. 서울올림픽 이후로는 만연한 부동산 투기로 엄청난 사회문제가 되면서 신도시 추가 건설 등[* [[일산신도시]]와 [[분당신도시]]도 이때 건설이 추진되었고 1991년부터 분양되기 시작했다.] 부동산 투기억제 정책을 폈지만 당장의 부동산 투기를 짓누르는 데 실패했으며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라 물가도 급속히 올라 1990년과 1991년에 걸쳐 물가상승률이 오일쇼크 이래 최고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올림픽 이후에 부동산 가격을 억제할려고 [[토지 공개념]] 3법을 도입한다거나 신도시 건설 규모를 확대하는 방책이 1991년부터 약효를 얻기 시작하면서 [[김대중 정부]] 초기까지 약 10년간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 될 수 있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물론 올림픽으로 인한 거품 경제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특히 주가지수가 올랐다가 폭락하는 등[* 1000까지 가는 기염을 토하지만 금세 바로 무너졌다,] 자산에서 버블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또한 이 문제는 [[1기 신도시|대규모 신도시 건설]] 등으로 일단 간신히 모면하기도 했으나 이때의 거품을 제대로 걷어내지 못하고 기업들도 기술투자 대신 무리한 사업다각화와 부동산 투기 등에 정신을 팔다 보니 결국 9년 뒤 [[1997년 외환 위기]]로 경제주권을 잠깐 잃었다.
=== 편파 판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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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서는 편파 판정 문제는 늘 끊이지 않을 정도로 논란이 일어난다. 특히 당시에는 주관적인 요소가 컸던 복싱에서 이 문제가 더욱 불거졌고, 복싱 역사상 가장 큰 이슈 중 2가지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발생했다.
먼저 한국 복싱선수 [[변정일]]이 편파 판정으로 탈락했는데 당시 32강 2회전에서 변정일은 2회 경고만으로 2점 감점됐지만 상대방 [[불가리아]] 선수는 8회 경고를 받았으나 일절 감점되지 않았다. 변정일의 탈락으로 관중들의 분노가 폭발해버렸다. [[http://photohistory.tistory.com/2819|당시 경기 영상]] 그러나 이때 한국 코치진이 링에 난입하여 심판진에 폭력을 행사하며 아수라장을 만드는 [[http://blog.naver.com/townsley?Redirect=Log&logNo=110105408500|촌극]]을 벌였고, 변정일은 67분 동안이나 링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면서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한 번 내려진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무식하게 주먹부터 쓰는 건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변정일은 경기 진행을 방해한 이유로 국제복싱연맹으로부터 5년간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고, 한국은 국제적 비난과 망신을 당하게되면서 당시 한국복싱연맹 회장과 김종하 대한올림픽협회장이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변정일의 경우는 1990년대에 프로로 전향하여 선수로서 나름대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유지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그보다 더욱 논란이 되는 사건이 나오고 마는데.(...)
||<|2><table width=700><width=50%> [[파일:external/cs424628.vk.me/COw5z1hswog.jpg|width=100%]] ||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0-002FD80200000258-733_468x378.jpg|width=100%]] ||
|| [[파일:external/www.bbc.co.uk/royjones86.jpg|width=100%]] ||
||<-2> 시상대에 올라서 금메달을 받고도 멋쩍게 [[로이 존스 주니어|존스]]의 손을 들어주는 [[박시헌]]. ||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중 불거진 [[2014 소치 동계올림픽/피겨 스케이팅 판정 논란|논쟁]] 등과 같은 경우에 "한국은 스포츠계에서 비열하게 장난친 전례가 있으므로 편파판정 당해도 싸다"라고 주장하는 측이 흔히 드는 예가 바로 1988 서울 올림픽 복싱 결승전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일 뿐이다. 후술할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이 편파판정의 수혜를 받은 박시헌 선수는 오히려 이 일로 인해 한국 복싱계에서 매장당했고, 무엇보다 '''편파판정의 수혜를 입은 선례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이후의 후배 선수들이 편파판정을 받아도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1988 서울 올림픽 복싱 라이트미들급 결승전에서 90년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권투 선수인 미국의 [[로이 존스 주니어]]가 한국의 [[박시헌]]을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진은 박시헌의 손을 들어줘 존스는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을 받게 된다. [[http://www.youtube.com/watch?v=iww6JSiofrg|당시 경기 영상 1부]] [[http://www.youtube.com/watch?v=kTDHleWhxP0|2부]]
이는 "88 서울 올림픽 복싱 강탈(robbery) 사건" 이라 불리고, AFP가 역대 올림픽 최악의 판정 2위에 선정된 바가 있다.[* 5위가 [[신아람]] 선수의 [[2012 런던 올림픽]] [[2012 런던 올림픽/사건사고#s-6.2|1초의 기적]], 4위가 [[2008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 여자 67kg 급 8강전, 3위가 [[2000 시드니 올림픽]] 남자 유도 100kg 이상급 결승전, 1위가 [[1972 뮌헨 올림픽]] 남자 농구 결승전] 당시 한국이 종합순위 4위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타국들이 흔히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이 사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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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박시헌은 안 그래도 16강전에서 석연찮은 판정으로 이탈리아 선수를 꺾고 올라왔는데, 결승전에서도 훗날 전설적인 복싱 선수로 거론되는 로이 존스 주니어에게 철저히 농락 당하고 말았다. 한국인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관중들은 물론이고 박시헌조차 존스의 우승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심판진 5명의 판정 결과 2:3으로 박시헌이 금메달을 따는 역대 최악의 판정이 나와버렸다.'''[* 당시 헝가리 심판의 노골적인 판정이 문제였는데, 실제로 이 대회에서 미국의 순위를 떨어뜨리려고 동구권 심판이 담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에 패배한 존스는 말할 것도 없고 얼떨결하게 금메달을 차지하게 된 박시헌조차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존스 선수는 그 이후 지속적으로 IOC에 제소했으나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52200329117014&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5-22&officeId=00032&pageNo=17&printNo=16111&publishType=00010|1997년 5월에 IOC 조사위원회가 이를 최종 기각했다.]] 우선 조사 결과 한국 측의 심판매수 흔적이 없었으며 비디오 분석에서도 로이 존스에 딱히 손을 들어줄 만한 결과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 존스의 유효타가 2배 더 많았다고 하지만 존스가 확실한 우위에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스텐딩 다운 판정 역시 박시헌이 바로 항의하고 나섰을 정도로 존스에 대한 판정 또한 석연치 않았다.
거기에 이때는 박시헌이 밀어붙이고 있었으며 마지막 라운드, 특히 종료 1분을 남겨두고는 박시헌이 경기를 주도하며 상당수 유효타를 성공시켰다. 거기에 홈 어드벤티지까지 감안하면 박시헌이 이기는 판정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즉 박시헌 선수 본인 잘못이 아니라 심판 잘못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경기에 대한 미국의 항의가 아마추어 복싱의 룰을 더욱 객관적으로 개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당시 19살 아마추어에 불과했던 로이 존스 주니어는 이를 계기로 미국 전체의 관심과 격려를 받았고 절치부심하여 이듬해 89년에 프로로 데뷔하면서부터 90년대 ~ 2000년대 복싱계를 미들급 타이틀 정복부터 시작하여 헤비급까지 평정하면서 복싱계에서 대스타로 발돋움하였고 이후 당대를 넘어 역대급 복서로도 평가받는 선수로 거듭난다.[* 다만 나이 들어서도 은퇴하지 않고 꾸준히 경기를 뛰면서 전적에 흠이 많이 가긴 했다.] 그리고 여담으로 2001년에 랩가수로 데뷔하였다.
박시헌 본인도 "조국이 나의 은메달을 뺏어갔다"며 자신의 패배를 시인했으나, 그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100300289110001&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10-03&officeId=00028&pageNo=10&printNo=122&publishType=00010/|차가웠으며]] 그는 한참이나 죄인 취급을 당해야 했다. 우리나라 여론은 미국에 공식 사과를 해야 한다는 둥 모금으로 금메달을 만들어서 보내주자는 둥 박시헌의 편은 아무도 없었고, 그는 그 이후로 복싱 인생이 꼬여 국내외로 비난에 시달리다 조기에 은퇴하였고 결국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면서 자살 고민까지 했다고 한다. [[http://www.nspna.com/news/?mode=view&newsid=49435|근황]]...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지못미]]. 다행히 [[2014 인천 아시안게임]]과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복싱팀 감독으로 활동하는 등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있는 듯하다.
미국 언론에선 틈만 나면 이 사건을 들먹이며 부당함을 주장하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양태영 오심 사건이 벌어지자 [[내로남불|귀신같이 태세전환하며 입을 닫았다.]][* 당시 미국 선수 풀햄이 마지막 크게 착지 실패를 하고도 0.049점을 양태영보다 더 얻어 금메달을 가져갔다. 이 오심으로 관련 심판3명이 징계를 받았으며, 체조종목 체점 체계까지 바뀌었을 정도로 대사건이었다.]
=== [[도핑]] 사건 ===
==== 벤 존슨의 약물 복용 사건 ====
[[파일:external/dimg.donga.com/19518617.1.jpg|width=600]]
[[벤 존슨(육상)|벤 존슨]]의 [[도핑|약물 복용 사건]]이 적발된 대회가 바로 서울 올림픽이다. [[칼 루이스]]와 벤 존슨의 대결과 관심이 높았던 100m 결승에서, 1위로 골라인을 통과한 것은 벤 존슨이었다. 하지만, 우승 직후 약물 검사에서 약물 복용 사실이 적발되면서 금메달을 박탈당하고, 금메달은 칼 루이스에게 넘어갔다. 다만, 그만 약물을 복용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칼 루이스도 약물을 복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남자 100m''' 경기는 올림픽에서 [[마라톤]], [[축구]]와 함께 가장 많은 세계적 관심이 쏠리는 핫 이슈 종목[* 육상 인기가 태생부터 좋지 못한 우리나라에서조차 2011년 대구 육상 선수권의 남자 100m 결승전은 가장 빨리 매진되었으며 암표가 가장 많이 들끓었던 종목이었다.]이라는 점을 감안하자. '''만약 남자 육상 100m가 아닌 다른 일반 종목이었으면 상대적으로 잠잠히 넘어갔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 위에도 나오는 당시 소련 팀이 낸 여자 1600미터 계주 신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모른다.] 그만큼 남자 육상 100m가 올림픽의 꽃이란 의미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6/01/2012060100077.html|조선일보 2012년 6월 1일 관련기사]]에 의하면 당시 메달을 박탈당한 벤 존슨이 "루이스의 음모로 인해 박탈당했다"고 주장에 따라 논란이 일었다.
다만 벤 존슨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수도 있던 것이 80년대까지는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권 국가대표 체육인들의 약물 복용이 만연했으며 한때 동독에서는 이를 적극 권장하기까지 했다. 물론 약물의 힘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려고 한 시도는 절대 정당화될 수 없지만, 벤 존슨의 경우는 서울 올림픽 당시 국내외 언론에서 지나치게 집중 포화를 퍼붓다 보니[*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한국은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던 나라여서 흑인인 벤 존슨이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100m 종목은 칼 루이스를 비롯하여 상위권에는 죄다 흑인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 흑인이라서 피해를 입었다는 건 어불성설.] 그 이후에도 전세계적으로 유명스타에서 졸지에 약물 스프린터라는 오명이 붙으면서 몰락하였고 출전한 대회에서도 요주의 대상으로 지목받게 되었으며 90년대에는 선수 자격까지 박탈당하여 다시는 트랙 위에 서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우여곡절이 많은 육상 커리어에 대해 반성을 많이 했는지 벤 존슨은 반(反) 도핑 전도사로 활약하며 자신의 금메달을 박탈당했던 곳인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을 찾아오기도 했다. 최근에는 [[트리비아의 샘]], 퀴즈 탤런트 명감, 수요일의 다운타운 등의 일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빨리 달리기와 관련된 것이 나오면 땔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쓸데없이 거창한 소개에 비하여, '''순방향으로 움직이는 무빙워크 위에서 달려도 10초대를 못 넘거나, 거대 송풍기를 등지고 달렸음에도 11초를 기록하는 등''' 최후에 고통받는 모습 같이 용두사미로 끝나버리는 게 다반사.
역으로, [[KIST]]에서 벤 존슨의 약물 복용 사건을 밝혀내어 우리의 [[도핑]]테스트 기술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도 하였다. 그냥 [[듣보잡]] 선수 하나 잡아낸 수준이 아니라 올림픽 최고의 스타를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린, 그리고 다시는 나와서는 안 될, '''역대급 월척'''이다. 사실 100m 경기 자체가 올림픽에서 중계권료와 광고료를 및 시간 비율과 주목도까지 모두 포함해보면 가장 비싼 종목임을 감안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사건(!) 덕분에 2002 월드컵, 2011 대구 육상선수권등의 주요 대회에서도 도핑테스트를 우리 손으로 할 수 있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벤 존슨의 유죄를 밝혀낸 당시 수장인 박종세 박사는 이후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인 1998년 3월에 식품의약품안전청장까지 올라갔는데 1999년 1월에 제약회사에 [[뇌물]]수수(...)로 인해 집행유예를 받아 [[흑역사]]가 되었다.[[http://mn.kbs.co.kr/news/view.do?ncd=3796729|#]] 이후에는 2000년에 바이오 벤처기업을 열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검색되는 근황은 없다.[[https://news.joins.com/article/377639|#]]
==== 기타 선수 논란 ====
여자 100m 우승자인 그리피스 조이너에 대한 약물 복용 의혹도 끊이지 않았다. 그녀의 100m 올림픽 미국대표 선발전 기록인 10초 49는 여자의 기록이라고는 믿기 힘든 엄청난 기록이었으며, 아직까지 깨어지지 않고 있는 기록이다. 하지만, 조이너 선수가 98년에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이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 외에도 역도 선수들의 약물 복용 적발이 많았던 것도 바로 이 대회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 대회 수영 6관왕을 차지했던 동독의 '크리스틴 오토' 역시 약물 복용 논란이 지금까지 끊이질 않고 있다.
10종 경기에 출전해 금메달을 수상했던 동독 선수 [[https://ko.wikipedia.org/wiki/%ED%81%AC%EB%A6%AC%EC%8A%A4%ED%8B%B0%EC%95%88_%EC%86%85%ED%81%AC|크리스티안 솅크]]는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529&aid=0000026667|2018년 9월에 도핑 사실을 자백했다.]] 그런데, 공소 시효가 끝나서 메달이 박탈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당시 소련 (현 러시아) 선수들에 대한 도핑 의혹 역시 끊이지 않았는데, 88올림픽 뿐만 아니라 이후의 2014 소치 동계 올림픽과 2016 리우 하계 올림픽까지 약물복용을 했다는 게 확실시되고 있다. 그리고, 그 의혹은 2016년 [[러시아 국가대표팀 도핑 스캔들]]이 발각되면서 더욱더 힘을 얻고 있다.
== 방송 ==
|| {{{#!wiki style="margin: -5px -1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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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BC(미국 방송)|NBC]] 올림픽 엔딩 ||
* 원래 대부분 개회식은 밤에 하는 것이 관례인데, 한국의 오전 11시가 미국의 프라임 시간인 저녁 시간대라서 NBC 방송의 요구로 대낮에 열렸다는 이야기가 많이 퍼져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서울올림픽까지는 모든 올림픽의 개회식이 낮에 열리는 것이 관례로 당장 바로 직전인 [[LA 올림픽]] 개회식도 현지시간 정오에 시작하였다. 이 관례는 2년 뒤에 열린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때 개회식을 저녁에 열면서 깨지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계속 개회식이 밤에 열리고 있다. 사실 밤에 개최하면 다양한 조명 효과를 연출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효과적이다. 중간에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개회식이 낮에 열렸기 때문에 서울올림픽은 개회식이 낮에 열린 마지막 하계 대회이다. 하지만 NBC의 요구로 주요 결승전이 한국의 프라임시간보다 약간 뒤인 오후 9시에 치러지진 것은 사실이며, 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몇몇 종목은 자정이 지난 후 결승전이 끝나기도 하였다.
* 1988년도 BBC Olympic Grandstand는 서방세계 제도권 방송사 타이틀에 한글이 등장한 거의 유일무이한 사례. 붉은색 한글로 '한국'이라고 써놓았는데 이 로고는 대회 내내 전 [[영연방]]에 방송되었다. [[https://youtu.be/eTIez7Trs6g?t=4m45s|관련 영상]]
* 미국 프로그램 [[젠장뉴스]]에서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한강대교 보수공사를 하던 도중에 군인들을 동원했는데 군용 헬리콥터가 장비를 운반하다가 추락하면서 폭발하여 군인 4명이 사망했다는 내레이션과 같이 [[http://www.youtube.com/watch?v=5PiZirhoh7Y|동영상]](33초부터)을 방영한 바 있다. 그런데 이건 올림픽 이전이 아니라 '''2001년 5월 29일에''' [[올림픽대교]] 위에 성화모양 상징물을 올려달라는 서울시의 협조 요청에 군이 응하여 [[치누크]] [[헬리콥터]]로 장식을 올리는 데는 성공했으나, 다리 위에서 하강 기류가 발생하여 뜨지 못하고 계속 하강하다가 결국 다리 구조물과 장식에 충돌하여 [[올림픽대교#s-4|추락 및 폭발한 사건]]이다. 이 프로그램이 잘못된 정보를 보여준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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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OO7x1Qnuk1k)]}}} ||
|| MBC의 개회식 당일날 ID 서울올림픽 개막 시간인 오전 10시 맞춰 북소리를 내는 것이 포인트. ||
* 개회식이 열린 1988년 9월 17일 [[MBC]] [[뉴스데스크]]의 [[강성구]] 앵커와 [[KBS 뉴스 9]]의 [[박성범]] 앵커 모두 [[https://imnews.imbc.com/replay/1988/nwdesk/article/1813930_29513.html|'''1988년 9월 17일'''을 강조하는]]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682420|멘트로 뉴스를 시작했다.]] 보통은 x월 x일 x요일로만 얘기하지만 올림픽 개회식이 대한민국 역사의 한획을 긋는거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막강한 존재감을 자랑하다보니.....
* [[KBS 뉴스 9]]의 경우 올림픽 기간동안 아예 올림픽 경기/행사 장면을 배경으로 오프닝을 내보냈다(위 영상). 특히 이 때 쓰인 오프닝 음악은 오히려 1990년대보다도 더 낫다는 평을 받는지라 올림픽 기간에는 더욱 그 간지를 자랑한다.
*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 대회 기간에는 방송 2사가 뉴스와 한두 개 정도의 드라마, 교양프로를 제외하고 하루 종일 올림픽 경기를 보여줬다. 심지어 올림픽 기간 중에는 교육방송인 [[KBS 3TV]](현재 EBS의 전신)조차도 매일 정규방송 말미에 외국인을 위한 올림픽 안내프로그램을 영어와 불어로 송출하고, 정규방송이 없던 아침~낮시간대에 사이클 도로경기, 승마 종합장애물 같이 경기시간 한참 걸리는 비인기 종목을 중계해 줄 정도였다. 케이블조차 없던 시절이다 보니[* 다만 케이블TV의 프로토타입이라고 할 수 있는 [[케이블 방송|중계유선방송]]에서 당대 지상파 방송프로그램이나 비디오 같은 것을 틀어주기는 했다.] 휴방러시 때문에 드라마광인 아줌마들도 짜증냈고,[* 다만 <TV 손자병법>으로 팬이 된 남성 시청자도 좀 있었다.] 양 방송사 통틀어 <[[메칸더 V]]>나 <또래와 뚜리>, <[[별나라 손오공]]> 같이 당대에 방영하던 만화영화 및 어린이 드라마를 못 봤던 [[국딩]]들도 짜증을 냈다. 하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는 이에 내색할 수 없는 분위기였던 터라...[* 그래서 비디오점이나 만화방, 만화잡지 파는 서점, 전자오락실 등의 매출액이 크게 증가했다는 후문이 있다.] 근데 거꾸로 평소에는 안 하던 낮 방송을 계속 해주니 낮에 [[AFKN]] 말고 우리말 방송을 볼 수 있다고 좋아하던 사람들도 있긴 했다. 당시에는 평일엔 아침 6~10시, 저녁 5:30~새벽 1시에만 방송을 하였다. (KBS 3TV는 오전방송 없이 4:30~12:00).
* 방송계 역시 서울올림픽 방송실시본부(SORTO)가 올림픽 방송제작용으로 신형 방송장비들을 개발해 방송기술 발전에 공헌했고, 방송사 내부에서도 올림픽을 앞두고 각종 방송시설을 들이면서 방송기술과 화면을 개선했다. 비디오 시장도 올림픽 전이던 1988년 4월 기준 VCR 보급대수 180만 대를 연말에 220~250만 대로 증가시켜 영화산업을 초월시켰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세계 최초로 HD방송을 한 올림픽'''이다.[* [[UHD]]의 경우 [[대한민국|같은 국가]]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세계 최초이다.][* [[NHK]]에서 MUSE 방식으로 시범방송한 것이 그것. 참고로 일본에서 아날로그 HD방송을 개시한 시기는 1989년이다.] 분명 영상을 보면 HD 영상소스가 존재한다. [[http://www.nhk.or.jp/digitalmuseum/nhk50years_en/categories/p40/index.html|출처]],[* NHK 공식 홈페이지 50주년 연표에 서울 올림픽을 HD로 제공했다고 영어로 적혀있다] [[https://archive.is/Rh5L|아카이브]], --[[https://www.youtube.com/watch?v=fvLH9ut_k0Y&feature=youtu.be|영상]]--[* 원래는 NHK의 영상을 올린 유튜브가 존재하였으나 저작권 문제로 해당 영상은 삭제되었다. --다만 이후 IOC에서 공식적으로 HD영상을 제공하여 당시 HD화질의 영상을 지금도 볼 수 있다.--IOC측의 영상 링크는 35mm 영화필름으로 촬영된 것으로, 당시 주로 사용되던 VHS보다는 고화질이지만, 필름을 스캔해도 화질이 좋은 편이라 HD급 화질로 업로드 된 것일 뿐 실제 NHK의 MUSE Hi-Vision HD영상은 아니다. 실제 NHK 영상은 거의 요즘의 HD영상과 같은 수준.]
* 2018년 9월 16일 14시 KBS1 88 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88/18]]' 방영. 자세한 내용은 [[88/18]] 항목을 참조.
== 한국 측 중계진 ==
* [[KBS1]]: [[박성범]], [[신은경(전직 방송인)|신은경]], [[이규원(아나운서)|이규원]], 최동호, 서기원, 김명숙
* [[KBS2]]: [[이창호#s-3]], [[정미홍]], 진성희
* [[MBC]]: [[김용(아나운서)|김용]], [[차인태]]
== 역대 조직위원장 ==
* [[김용식(공무원)|김용식]] (1981~1983)
* [[노태우]] (1983~1986)
* [[박세직]] (1986~1988)
== 스폰서 ==
* [[한국전기통신공사]]
* [[한국외환은행]][* 패럴림픽은 [[서울신탁은행]](現 하나은행)이 스폰서였다. 30년 뒤 [[평창올림픽]]에서는 우연히도 두 은행이 합쳐져 [[KEB하나은행|하나의 같은 은행]]으로서 스폰서가 되었다.]
* 반도스포츠
* [[삼성전자]]
* [[금성사]]
* [[농심]]
* [[동아연필]]
* [[롯데제과]]
* [[빙그레(기업)|빙그레]]
* [[대한항공]]
* [[현대자동차]]
* [[미쓰비시 자동차|미쓰비시자동차]]
* [[롯데쇼핑]]
* 조선무약
* 행남자기
* [[SKC]]
* [[아모레퍼시픽|태평양화학]]
* [[삼립식품]]
* [[쌍방울]]
* [[서울우유협동조합]]
* [[대상(기업)|서울미원]]
* [[인켈]]
* [[종근당]]
* [[국제그룹|국제상사]]
* [[금강제화]]
* [[제일제당]]
* [[오리엔트시계]]
* [[대웅제약]]
* [[호텔신라]]
* [[삼성물산]]
* [[롯데칠성음료]]
* [[오비맥주|동양맥주]]
* [[코오롱]]상사
* [[현대전자]]
* [[현대로템|현대정공]]
* [[삼성전자|삼성반도체통신]]
* [[한국야쿠르트|한국야쿠르트유업]]
* [[KR모터스|효성기계공업]](효성스즈끼)
* [[한국데이타통신]]
* [[한화(기업)|한국화약]]
* [[JXTG|쿄도석유]]
== 기타 ==
* '''[[소련]]'''이 붕괴 전 '''마지막'''으로 참여한 올림픽 경기이다.
* 일제의 강제징용등으로 소련으로 넘어갔다가 살게되었던 소련 측 선수단의 통역관들이 몇십년 만에 고향을 방문해 혈육들과 재회한 일들도 [[https://imnews.imbc.com/replay/1988/nwdesk/article/1814266_29513.html|화제가]] [[https://news.joins.com/article/2272173|되었다.]]
* 다이빙 종목 우승자인 그레그 루가니스는 당시 [[AIDS]] 보균자였다. 그는 다이빙 시합 도중 머리를 보드에 부딪혀 피를 흘렸는데, 이 당시 응급처치를 위해 의사가 별 보호장치 없이 그대로 그를 치료했다. 훗날 그가 AIDS 보균을 고백하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AIDS 약도 당시 가지고 다녔는데, 한국을 떠나 출국할 때, 검역장에서 걸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지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고 하니 공항에서 검역을 면제해 줬다고. 훗날 루가니스는 공식적으로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을 했고 [[LGBT]] 운동가로 활동중이다. 참고로 루가니스를 키워낸 코치가 바로 [[한국계 미국인]]이자 올림픽 영웅 [[새미 리]].
* 부대행사처럼 여겨지던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이 비로소 기틀을 잡은 것이 바로 서울 대회였다. 이 때부터 장애인 올림픽이 비로소 올림픽의 곁가지가 아니라 장애인들의 체육 행사로 자리잡게 되었기 때문에, 서울 장애인 올림픽은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실제 서울 장애인 올림픽의 심볼 마크가 그대로 국제 장애인 올림픽 기구의 심볼로 [[1994년]]까지 쓰였으며, 그 이후 모양은 바뀌었으나 태극 무늬는 2004년까지 심볼 모양에 남아있었다.
* 1988 서울 올림픽의 한국 선수단 유니폼은 한국 의상 디자이너계의 거장으로 유명했던 [[앙드레 김]]이 디자인을 했다. 하늘색 재킷과 흰색 바지/스커트 형식이다. 여기에 소품으로 태극선(태극 무늬의 둥근 부채)을 접목했다.
* 서울 올림픽도 흑자를 봤는데, 순수 입장 수입으로 인한 흑자보다는 올림픽 복권 수입 및 선수촌 아파트 분양을 통해 적자를 메우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올림픽 개최로 인한 경제적 이득은 약 4,30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파견된 공무원, 기업체 직원들은 막상 올림픽이 끝난 후에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 이미 그들 자리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가서 일하고 있었던 것. 그렇다고 그들을 실업자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정부에서 나서서 새로운 공공기관을 설립한다. 바로 [[국민체육진흥공단]]이다.
* 당시 소련 대표팀은 놀랍게도 엄청난 응원을 받았는데 특히 '''일본 대표팀과의 경기에서는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받았다.'''[* 당시는 [[일본 문화 개방]]도 되지 않은, 반일 감정또한 컸을때임을 감안해야 한다.] 당시에는 아직 냉전이 끝나지 않은데다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소련이 KAL 007기를 격추]]한 지 5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정부가 소련을 올림픽에 참가시키기 위해 국제적으로는 소련에 대한 비난을 중단하고 국내적으로는 소련에 대한 우호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노력했고,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로 결국 소련이 올림픽 참가를 결정하면서 국민들도 소련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당시 미국 NBC 취재진들이 한국의 집창촌이나 PX 유출 같은 것에만 사실상 한국을 폄하하는 식의 편파보도를 한데다가 주한미군들에 의해 벌어진 사건사고, 미국 선수들의 추태 그리고 미국정부의 한국 [[노태우 정부]]에 대한 정경유착 및 내정간섭 등이 겹쳐서 상대적으로 소련에 대한 감정이 괜찮아졌던것도 있다고 알려졌었지만 그 실체는 당시 운동권에 의한 조작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황순원의 손자이자 당시 운동권에서 활동하던 황성준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과 소련의 농구경기가 치러질때 자신이 현장지휘하는 운동권 인원을 대거 투입해서 현장에서 소련팀을 응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고, 그것이 성공하여 일방적인 소련응원분위기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 실제로 황성준은 그후 소련팀 응원이라는 사건을 자기 성과로 상부에 보고한 소련측 요원의 초청으로 소련을 방문하게 되고 그 것이 계기가 되어 소련에 몇년간 체류하게 되었다고 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A_tYf5Y2Oyo|증언영상]]
하지만 어찌되었던 간에 당시로써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1984년 LA 올림픽에서 소련이 불참한 명목상의 이유가 '선수들의 안전'이었기 때문에 정부가 소련을 올림픽에 참여하라고 설득하기로 결정한 이후 언론은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KAL 007기 격추사건]]을 보도하지 못했다. 올림픽이 코앞이던 1988년 9월 1일은 KAL기 격추사건 5주기였지만 언론은 KAL기 격추사건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소련이 북한을 버리고 올림픽 참가를 결정하면서 남북한의 체제경쟁에서 남한이 승리했음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은 운동권 학생들도 많았다. 특히 정통 사회주의자라고 자처하는 [[민중민주주의|PD]]계열이 그러했는데, 사실상 이 때와 이후 진행된 동구권 몰락과 더불어 PD계열이 약화되었다. [[김문수]], [[이재오]] 등의 PD 출신 보수 정당 정치인들이 사민주의를 거쳐 우파로 전향한 것도 이때쯤. 결정적으로 미국과 소련의 남자 농구 준결승전에서 한국인들이 일방적으로 소련을 응원하는 모습은 사회적으로 미국의 의미와 소련의 의미에 대한 고찰을 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소련인들은 멘붕하였고 "우리도 저나라처럼 해보자" 하고 마음먹고 옐친을 뽑았다가 신나게 말아먹고 말았다.--
* 1989년에 북한측은 서울 올림픽을 쫓아가려고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평양에서 개최했으나, 엄청난 비용부담 때문에 경제난으로 이어져 훗날 3대 실정 중 하나로 손꼽힌다.
* 소련 올림픽 농구 대표팀은 당시 아마추어인데도 세계 최강으로 인정받던 미국 농구 올림픽 대표팀[* 당시 해군 의무 복무 때문에 NBA 진출이 늦춰졌던 [[데이비드 로빈슨]]이 속해 있었다.]을 준결승에서 꺾고 결승에서도 승리해 [[금메달]]을 획득한다. 패배에 충격받은 미국은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프로농구([[NBA]]) 스타 선수들을 총출동시켜 우승을 차지한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소련 농구팀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해 소련 농구팀에게 설욕은 하지 못했지만 이 때부터 미국 농구 대표팀은 '[[드림팀]]'으로 불리게 된다. 이 때문에 1992년과 1988년 남자농구는 1-3위가 뒤바뀌었다. 1988년에는 소련, 유고슬라비아, 미국 순서였는데, 1992년엔 미국, [[유고슬라비아]]의 후신 중 하나인 [[크로아티아]], 소련의 후신 중 하나인 [[리투아니아]]가 나란히 1, 2, 3위를 차지했다.
* 당시 소련 대표팀의 기수는 그 유명한 '''[[알렉산더 카렐린]]'''이었다.
* 개막 1개월 전에 소련 외무부의 영사급 외교관들이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이들의 입국 [[비자]]는 [[일본]]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발급되었다.] 올림픽 폐막 후인 10월 10일까지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 머무르면서 소련 선수단과 관광객을 위한 영사관 업무를 진행했었다.[* 단, 전적으로 소련인들의 영사 업무만 진행했을 뿐,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의 소련 접촉은 일체 받지 않았다.] 미수교 상태인데다 대표부조차 없는 일체의 미교류 관계였기 때문에 이렇게 임시로 영사관을 만들었던 것. 소련 외 공산권 국가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자국민의 영사 업무를 진행했다.
* 이 당시 [[미국]]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감정은 [[반미|상당히 안 좋았는데]], 안 그래도 미국정부에서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노태우]] 당선에 대해 대놓고 축하 논평을 낸 것과[*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676981|KBS]],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87/1799666_19322.html|MBC]] 미국정부, 노태우 대통령단선 축하논평] 경상수지 적자가 벌어진다면서 감내놔라 배내놔라 하는 참견질, 일방적인 영화시장 개방, 미국정부의 한국 [[노태우 정부]]에 대한 정경유착 및 내정간섭 등으로 시달린 데다, 서울올림픽 직전에 주한미군 자녀가 임산부를 폭행하고 주한미군 병사가 택시운전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보도가 난데다가, 개회식 입장에서 미국 선수들이 자기 안방인 것 마냥 무질서한 분위기[* 카메라에 대고 술취한 눈빛으로 욕설을 한다던지, 트랙을 벗어나 이상한 곳으로 걸어간다던지 등등]를 보여주었고, 거기에다가 올림픽 방영권을 지니고 있는 미국 NBC 방송국이 올림픽 기간 내내 집창촌이나 미군 PX 물품 유출같은 한국의 안 좋은면만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한국을 폄하하는 보도를 한데다가 변정일 사건이 터졌을때도 마찬가지로 일방적으로 편파중계를 했고, 거기에 미국 선수 일부의 태극기 모욕, 그리고 미국 수영선수단이 절도를 하는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당연히 NBC와 미국 선수들의 이러한 행태에 국민들은 "미국이 한국을 아직도 후진국으로 생각하면서 내리깔고 무시한다!!"고 분노했고, 안하무인격인 [[미국]]에 대한 비난여론이 급속히 증폭되었다. 거기에다가 이 상황에서도 NBC 제작진이 한국과 변정일을 비웃는 티셔츠의 제작을 문의하는 일까지 알려지자 구설수에 올랐고, 결국 미국과 소련의 남자 농구 준결승전에서 한국관중들이 소련을 응원하는 사태가 터졌다. 그제서야 심각성을 깨달은 미국은 급히 한국인 달래기에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 정부]]와 정치권에서 무분별한 반미감정은 한미관계에 도움이 안된다면서 자제에 나서달라고 부탁했으며 미국 선수단이 폐회식 때 한국을 달래주는 제스쳐를 취하면서 겨우 무마되었지만 그래도 NBC가 사고를 치는 일만큼은 30년 뒤 한국에서 다시 [[평창 올림픽]]이 열렸을 때도 어김없이 재현되었다(...)
* 당시 공산권 국가들은 적극적인 체육 선수 육성을 통해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제법 선전한 편이었는데, 이 대회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장 여자 기계체조 단체전에서는 '''[[소련]]'''이 금메달을 따내면서 [[소련 국가]]가 연주되고 소련 선수 일부가 이를 대놓고 제창한 것도 모자라, 은메달과 동메달마저 각각 '''[[루마니아]]와 [[동독]]'''이 차지해서 '''유럽 공산권 3개국의 국기가 대한민국의 경기장에 휘날리는 풍경이 펼쳐졌다.''' 물론 정치와 스포츠는 철저히 분리하는 것이 올림픽 정신인데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무려 12년만에 공산권과 서방권이 한 자리에 모여서 '''당대 최대 규모의 올림픽'''이 치러진만큼 당시의 대한민국 정부나 국민이나 공산권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념하고, 서울 올림픽의 평화와 동서 화합의 정신을 살린다는 취지 아래 [[서울평화상]]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초기 수상자들은 완전 엉망이었다. 오늘날에는 좀 잠잠했지만, 수상 초기에는 정말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수상 재단도 내분에 시달렸다. IOC 위원장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가 있질 않나...
* 정부가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정치 선전 자료로 지나칠 정도로 이용해 먹자 시인 김용택은 '''<팔유팔파>'''라는 시를 지어 이를 비판했다. 팔육팔팔의 오타가 아니고 진짜 제목이 팔유팔파다. 아래 내용은 그 중의 일부다. 과장된 내용 같지만 진짜 저렇게 [[1986 서울 아시안 게임|팔육]]팔팔이 한국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줄 것처럼 선전해댔다.
>얘야팔유팔파오림픽이열리며는우리덜은뭐시그리좋다냐소값이나쌀값이나객지서노동일허는니동생임금이라도올라간다냐……그나저나오림픽이끝나며는저텔레비전속사람들이나왼갖치사와축사속의사람덜은무신소리로안정된선진조국과정의복지를위하여침을튀길까그러고우리덜은무신재미로살끄나무신희망으로와와절망하끄나. 해가떠도오림픽달이떠도오림픽빚이져도오림픽소값개값되어야도오림픽죽으나사나오림픽인디아아아아아그때는참말이제무슨절망으로아아대한민국아아대한민국허여무신재미로살끄나……그나저나팔유팔파오림픽이열리며는그누구의말대로거시기뭣이냐민족사의왼갖질곡과시련을극복하여그종지부를꽉찍을까그럴까우리하늘이저쪽끝에서저쪽끝까지훤하게갤까
* 서울 올림픽에 관련된 지명들이 [[서울특별시]] 시내에 여럿 남아 있다. [[올림픽대로]], [[올림픽대교]], [[올림픽공원(서울)|올림픽공원]], [[송파구]] [[오륜동(서울)|오륜동]], [[올림픽선수기자촌]], [[올림픽로]][* 올림픽 주경기장에서부터 암사동 선사유적지를 잇는 도로. [[테헤란로]]에서 이어지며,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울 지하철 8호선|8호선]]이 이 도로 지하를 달린다.], 88올림픽고속도로 등. 88올림픽고속도로는 대구와 광주를 잇는 고속도로로 물론 서울시에 위치하지는 않지만 이 고속도로 명칭 역시 서울올림픽을 기념한다는 취지로 명명되었다. 2015년 12월 22일 대격변급의 개량공사 완료 및 4차로 확장 개통과 함께 [[광주대구고속도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한양대학교/서울캠퍼스]] 내부에는 올림픽체육관 이란 이름의 체육관이 존재하는데 88올림픽 당시 학교측이 부지를 제공하는 대신 국비로 체육관을 짓기로 해 실제 올림픽 당시 경기장으로 활용되었다. 현재는 예술/체육대학 단과대 건물로 활용중이며 교내 행사 등에 자주 사용된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단 주경기장이 송파구에 있는데다가 처음 송파구가 분구되고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당시 여당이던 민주정의당이 올림픽을 기념한다며 송파구의 명칭을 올림픽구로 변경하려고 추진했지만 대부분의 지역주민들이 "5백년 역사가 담긴 많은 유적지와 송파 산대놀이, 송파 답교놀이, 송파 나루터 등으로 옛날부터 전국적으로 알려진 ’송파‘라는 이름은 구 이름으로라도 마땅히 남아 있어야 한다"며 맹렬하게 반대를 해 무산된 바가 있다. 다만 송파구는 1992년부터 서울올림픽의 개막일인 9월 17일을 송파구민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 IOC 홈페이지에는 제1회 올림픽부터 역대 올림픽 기념품을 파는 쇼핑몰이 있다. [[http://shop.olympic.org/en/product/olympiads/index/id/571/category/en-chf-olympic-games|'''88 올림픽의 기념품도 그대로 판매 중이다.''']]
* 당시 올림픽 기간에 추석연휴가 겹쳤는데(9월 24일~26일) 공교롭게도 30년 뒤에 한국이 개최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도 설 연휴(2월 15일~18일)가 겹치면서 한국은 자국에서 열린 올림픽 동안 자국 최대의 명절을 함께 하게 되었다.
* [[NIKE]]에서 1988 서울 올림픽 30주년을 기념하여 에어 조던 3 서울을 더 드로우 방식으로 발매할 예정이다. 3월 7~8일 동안 나이키 공식 홈페이지에서 응모를 하면 되고, 3월 9일에 발표를 한다. [[대한민국]](우리나라)에서만 발매하기에 외국인들도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 여의도 [[63빌딩]] 주차장 쪽으로 가면 올림픽 때 [[한화생명|대한생명]]이 세운 성화대가 있다.
* 이후 KBS스포츠국은 유튜브에 서울올림픽 30주년 기념하여 [[https://www.youtube.com/watch?v=cS-MZlwLqYQ|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곳곳에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자세한 건 [[88/18|항목 참조]]
* 개최 당시 기준으로 UN 비회원국에서 열린 몇 안 되는 하계 올림픽이다. 나머지는 [[1952 헬싱키 올림픽]]과 [[1972 뮌헨 올림픽]].[* 핀란드는 1955년 12월 14일에, 독일(당시 서독. 동독도 같은 날에 가입했다.)은 1973년 9월 18일에 각각 UN에 가입, 그리고 대한민국은 북한과 같은 날 1991년 9월 17일에 UN에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 2019년에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중국이 서울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단을 열차에 태워 한국에 보내려 했으나, 북한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중국 외교관의 증언이 나왔다.
*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학생 시위를 이유로 개최지를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미 의회에서 제기됐고, 당시 우리 정부가 이 같은 주장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했던 것으로 [[https://n.news.naver.com/article/421/0004554248|드러났다.]]
* 통상 올림픽은 개최지 이름을 먼저 표시하는 것이 관례이다. 런던 올림픽, 평창 동계 올림픽 등. 그러나 웬일인지 86 서울 아시안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은 유난히도 대중들 인식이나 매체에서도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과 같이 개최지를 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분류:1988 서울 올림픽]] |
1988 서울 올림픽/참가국 | [include(틀:상위 문서, top1=1988 서울 올림픽)]
[목차]
== 개요 ==
[[1988 서울 올림픽]] 당시의 참가국들을 정리하는 문서.
서울올림픽 참가국은 당시 [[IOC]] 회원국 기준으로 167개 회원국 중 160개국이 참가했다. 개회식 당시 선수단 입장은 한글의 '''[[가나다순]]'''으로 분류하였고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가 먼저 입장하였던 것을 시작으로 그 다음으로 [[아프리카]]의 [[가나 공화국|가나]]를 시작으로 해 가나다순 배열에 따라 입장하였다.
주최국인 [[대한민국]]은 마지막에 입장하였다. 현재 참가국 국기들은 서울 [[올림픽공원(서울)|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주변 국기 게양대에 게양되어 있다. 없어진 나라의 국기나, 바뀌어서 폐품이 되어 버린 국기도 발견할 수 있다. 1988년 당시 국기를 게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은 역시 단연 동구권 국가들과 [[아프가니스탄]].
== 목록 ==
※ 국가명은 서울 올림픽 당시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 입장 순서대로 나열한다.
||<table align=center> '''입장 순''' || '''한국어''' || '''영어''' || '''대륙''' ||
|| 1 || [[그리스]][* 올림픽 발상지이기 때문에 다른 올림픽 때도 맨 처음에 입장하는 관례에 따라 입장하였다.] || Greece || [[유럽]] ||
|| 2 || [[가나 공화국|가나]] || Ghana || [[아프리카]] ||
|| 3 || [[가봉]] || Gabon || [[아프리카]] ||
|| 4 || [[가이아나]] || Guyana || [[아메리카]] ||
|| 5 || [[감비아]] || Gambia || [[아프리카]] ||
|| 6 || [[과테말라]] || Guatemala || [[아메리카]] ||
|| 7 || [[괌]] || Guam || [[오세아니아]] ||
|| 8 || [[그레나다]] || Grenada || [[아메리카]] ||
|| 9 || [[기니]] || Guinea || [[아프리카]] ||
|| 10 || [[적도 기니]][* '기니'를 기준으로 배치한 듯.] || Equatorial Guinea || [[아프리카]] ||
|| 11 || [[나이지리아]] || Nigeria || [[아프리카]] ||
|| 12 || [[네덜란드]] || Netherlands || [[유럽]] ||
|| 13 || [[네팔]] || Nepal || [[아시아]] ||
|| 14 || [[노르웨이]] || Norway || [[유럽]] ||
|| 15 || [[파푸아뉴기니]][* 입장 순서를 정할 때 앞의 '파푸아'가 왜인지 몰라도 생략되었다.] || Papua New Guinea || [[오세아니아]] ||
|| 16 || [[뉴질랜드]] || New Zealand || [[오세아니아]] ||
|| 17 || [[니제르]] || Niger || [[아프리카]] ||
|| 18 || [[덴마크]] || Denmark || [[유럽]] ||
|| 19 || [[도미니카 공화국]] || Dominica Republic || [[아메리카]] ||
|| 20 || [[독일민주공화국]](동독)[* 동독이 참가한 마지막 올림픽이었다.] || German Democratic Republic || [[유럽]] ||
|| 21 || [[독일연방공화국]](서독)[* 1990년 독일연방공화국이 독일민주공화국을 흡수통일하면서 그대로 독일연방공화국이 되었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에는 독일로 새로 가입하게 된다. 따라서 독일연방공화국이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이름으로 참가한 마지막 올림픽이 된다.] || Federal Republic of Germany || [[유럽]] ||
|| 22 || [[라오스]] || Laos || [[아시아]] ||
|| 23 || [[라이베리아]] || Liberia || [[아프리카]] ||
|| 24 || [[레바논]] || Lebanon || [[아시아]] ||
|| 25 || [[레소토]] || Lesotho || [[아프리카]] ||
|| 26 || [[루마니아]] || Romania || [[유럽]] ||
|| 27 || [[룩셈부르크]] || Luxembourg || [[유럽]] ||
|| 28 || [[르완다]] || Rwanda || [[아프리카]] ||
|| 29 || [[리비아]] || Libya || [[아프리카]] ||
|| 30 || [[리히텐슈타인]] || Lichtenstein || [[유럽]] ||
|| 31 || [[말라위]] || Malawi || [[아프리카]] ||
|| 32 || [[말레이시아]] || Malaysia || [[아시아]] ||
|| 33 || [[말리]] || Mali || [[아프리카]] ||
|| 34 || [[멕시코]] || Mexico || [[아메리카]] ||
|| 35 || [[모나코]] || Monaco || [[유럽]] ||
|| 36 || [[모로코]] || Morocco || [[아프리카]] ||
|| 37 || [[모리셔스]] || Mauritius || [[아프리카]] ||
|| 38 || [[모리타니]] || Mauritania || [[아프리카]] ||
|| 39 || [[모잠비크]] || Mozambique || [[아프리카]] ||
|| 40 || [[몰디브]] || Maldive || [[아시아]] ||
|| 41 || [[몰타]] || Malta || [[유럽]] ||
|| 42 || [[몽고]][* [[몽골]]. 당시에는 한국에서 몽고(蒙古)를 정식 명칭으로 썼다.] || Mongolia || [[아시아]] ||
|| 43 || [[미국]] || United States of America || [[아메리카]] ||
|| 44 || [[바누아투]] || Vanuatu || [[오세아니아]] ||
|| 45 || [[바레인]] || Bahrain || [[아시아]] ||
|| 46 || [[바베이도스]] || Barbados || [[아메리카]] ||
|| 47 || [[바하마]] || Bahamas || [[아메리카]] ||
|| 48 || [[방글라데시]] || Bangladesh || [[아시아]] ||
|| 49 || [[버마]][* 현재의 [[미얀마]]. 그 다음해인 [[1989년]] 국호를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꾸게 된다. 이에 따라 다음 올림픽부터는 미얀마라는 이름으로 참가.] || Burma || [[아시아]] ||
|| 50 || [[버뮤다]] || Bermuda || [[아메리카]] ||
|| 51 || [[미국령 버진아일랜드|버진 제도]][* 미국령 버진 제도. 버진 제도라는 이름으로 먼저 국제올림픽위원회에 가입하여 영국령 버진 제도가 있는데도 올림픽에서는 그냥 버진 제도 하면 미국령 버진 제도를 말한다.] || Virgin Island || [[아메리카]] ||
|| 52 ||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영국령 버진 제도]] || British Virgin Island || [[아메리카]] ||
|| 53 || [[베냉]] || Benin || [[아프리카]] ||
|| 54 || [[베네수엘라]] || Venezuela || [[아메리카]] ||
|| 55 || [[베트남]] || Vietnam || [[아시아]] ||
|| 56 || [[벨기에]] || Belgium || [[유럽]] ||
|| 57 || [[벨리즈]] || Belize || [[아메리카]] ||
|| 58 || [[보츠와나]] || Botswana || [[아프리카]] ||
|| 59 || [[볼리비아]] || Bolivia || [[아메리카]] ||
|| 60 || [[부르키나파소]] || Burkina Faso || [[아프리카]] ||
|| 61 || [[부탄]] || Bhutan || [[아시아]] ||
|| 62 || [[불가리아]] || Bulgaria || [[유럽]] ||
|| 63 || [[브라질]] || Brazil || [[아메리카]] ||
|| 64 || [[브루나이]] || Brunei || [[아시아]] ||
|| 65 || [[미국령 사모아]] || American Samoa || [[오세아니아]] ||
|| 66 || [[서사모아]] || Western Samoa || [[오세아니아]] ||
|| 67 || [[사우디아라비아]] || Saudi Arabia || [[아시아]] ||
|| 68 || [[사이프러스]][* [[키프로스]]. 당시 대한민국과 미수교 상태였던 국가로, 당시 [[교과서]] 등에는 키프로스라 표기하는 경우도 많았으나, 이때는 [[영어]]식인 사이프러스로 표기. 현재 표준 표기는 '키프로스'이지만 한국 외교부에서는 '사이프러스'를 쓴다 단 그리스계만 참여했으며 터키계는 이듬해 세계청년학생축전에만 참가했다..] || Cyprus || [[유럽]][* 지리적으로 서아시아에 속하는 국가이지만, 국가올림픽위원회는 유럽올림픽위원회 소속이다.] ||
|| 69 || [[산마리노]] || San Marino || [[유럽]] ||
|| 70 || [[엘살바도르]][* '엘'은 잘라먹었다. 스페인어에서 el이 관사이므로 그냥 살바도르라 할 수 있지만 한국어 국명은 엘살바도르가 맞다.] || El Salvador || [[아메리카]] ||
|| 71 || [[세네갈]] || Senegal || [[아프리카]] ||
|| 72 ||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 Saint Vincent & the Grenadines || [[아메리카]] ||
|| 73 || [[소련]][* 소련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한 마지막 올림픽이었다. 1991년 말 소련이 해체되어 1992년 동하계 올림픽 때는 연합팀의 이름으로 참가하고, 독립국이 된 각 공화국들은 이후 별개의 국가로 국제올림픽위원회에 가입하게 된다. 당시 기수가 '''[[알렉산드르 카렐린]]'''이었다.] ||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 [[유럽]] ||
|| 74 || [[소말리아]] || Somalia || [[아프리카]] ||
|| 75 || [[솔로몬 제도]] || Solomon Islands || [[오세아니아]] ||
|| 76 || [[수단 공화국]] || Sudan || [[아프리카]] ||
|| 77 || [[수리남]] || Surinam || [[아메리카]] ||
|| 78 || [[스리랑카]] || Sri Lanka || [[아시아]] ||
|| 79 || [[스와질란드]] || Swaziland || [[아프리카]] ||
|| 80 || [[스웨덴]] || Sweden || [[유럽]] ||
|| 81 || [[스위스]] || Switzerland || [[유럽]] ||
|| 82 || [[시리아]] || Syria || [[아시아]] ||
|| 83 || [[시에라리온]] || Sierra Lenone || [[아프리카]] ||
|| 84 || [[싱가포르]] || Singapore || [[아시아]] ||
|| 85 || [[아랍 에미리트]] || United Arab Emirates || [[아시아]] ||
|| 86 || [[아루바]] || Aruba || [[아메리카]] ||
|| 87 || [[아르헨티나]] || Argentina || [[아메리카]] ||
|| 88 || [[아이슬란드]] || Iceland || [[유럽]] ||
|| 89 || [[아이티]] || Haiti || [[아메리카]] ||
|| 90 || [[아일랜드]] || Ireland || [[유럽]] ||
|| 91 || [[아프가니스탄]] || Afghanistan || [[아시아]] ||
|| 92 || [[안도라]] || Andorra || [[유럽]] ||
|| 93 || [[앤티가 바부다|안티과]][* 현재의 공식 한글 표기는 [[앤티가 바부다]].] || Antigua || [[아메리카]] ||
|| 94 ||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2010년]] 해체. 이 곳 출신 선수들은 네덜란드나 아루바 대표로 참가할 수 있다.] || Netherlands Antilles || [[아메리카]] ||
|| 95 || [[알제리]] || Algeria || [[아프리카]] ||
|| 96 || [[앙골라]] || Angola || [[아프리카]] ||
|| 97 || [[스페인|에스파냐]][* 당시 표준 표기는 에스파냐였다. 이 올림픽 다음으로 열렸던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최국이다.] || Spain || [[유럽]] ||
|| 98 || [[에콰도르]] || Ecuador || [[아메리카]] ||
|| 99 || [[영국]] || Great Britain || [[유럽]] ||
|| 100 || [[남예멘|예멘 민주 공화국]](남예멘)[* 남예멘이 참가한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이었다. 당시 정식 명칭은 예멘 민주 공화국이 아니라 예멘 인민 민주 공화국(PDR Yemen)이었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예멘 민주 공화국으로 가입되어 있어 그 이름으로 참가.] || Yemen Democratic Republic || [[아시아]] ||
|| 101 || [[예멘|예멘 아랍 공화국]](북예멘)[* 1990년 북예멘 중심으로 통일이 된 후 국호를 예멘 공화국으로 고치고, 예멘이라는 이름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에 가입되었으므로 이 이름으로 참가한 마지막 올림픽이 된다.] || Yemen Arab Republic || [[아시아]] ||
|| 102 || [[오만]] || Oman || [[아시아]] ||
|| 103 || [[호주|오스트레일리아]] || Australia || [[오세아니아]] ||
|| 104 || [[오스트리아]] || Austria || [[유럽]] ||
|| 105 || [[온두라스]] || Honduras || [[아메리카]] ||
|| 106 || [[요르단]] || Jordan || [[아시아]] ||
|| 107 || [[우간다]][* [[응답하라 1988]]에서 성덕선(혜리)이 [[마다가스카르]]의 불참으로 우간다의 피켓걸로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자세한 건 [[성덕선/작중 행보]] 참조.] || Uganda || [[아프리카]] ||
|| 108 || [[우루과이]] || Uruguay || [[아메리카]] ||
|| 109 || [[유고슬라비아]][* 당시 공식국명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었고, 국제올림픽위원회에는 유고슬라비아로 가입되어 유고슬라비아 이름으로 참가. 지금은 6개 혹은 7개([[코소보]] 참조)로 쪼개진 나라가 하나의 나라로 참가한 마지막 올림픽이다.] || Yugoslavia || [[유럽]] ||
|| 110 || [[이라크]] || Iraq || [[아시아]] ||
|| 111 || [[이집트]][* 당시 이라크 뒤에 오는 이란은 이라크와 [[이란-이라크 전쟁|8년째 전쟁중]]이었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집트가 이라크 다음으로 입장하게 되었다.] || Arab Republic of Egypt || [[아프리카]] ||
|| 112 || [[이탈리아]] || Italy || [[유럽]] ||
|| 113 || [[인도]] || India || [[아시아]] ||
|| 114 || [[이란]][* 앞에 이라크와 [[이란-이라크 전쟁|전쟁]] 때문에 싸움이 벌어질 수 있어서 입장 순서가 바뀌었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는 요르단과 이라크의 입장 순서를 바꾸어서 이라크와 이란을 떨어지게 했다.][* 당시는 이란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했으나, 그 후 올림픽위원회 국가명을 이란 이슬람 공화국(Islamic Republic of Iran)으로 변경하여, 그 이름으로 올림픽에 참가하고 있다. 당시 입장 때 국가표지판을 유일하게 남자가 들었는데, 여자가 아닌 남자로 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 Iran || [[아시아]] ||
|| 115 || [[인도네시아]] || Indonesia || [[아시아]] ||
|| 116 || [[일본]] || Japan || [[아시아]] ||
|| 117 || [[이스라엘]][* 원래대로라면 이라크-이란-이스라엘-이집트 식으로 끼이게 된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공식적으로는 [[중동전쟁]] 평화협정을 계기로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기는 하지만 이집트 국민들 다수는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라크, 이란, 이스라엘 세 나라가 서로 다 앙숙이어서 아예 이스라엘을 뒤로 뺐다. 인도네시아도 이슬람 국가이니.. 이스라엘과 이란은 왕정시절 국교 관계였으나, [[호메이니]] 집권 이후 단교하고 원수지간이 되었다.] || Israel || [[유럽]][* 지리적으로 아시아에 속하는 국가로 국가올림픽위원회도 원래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소속이었지만, 이슬람 국가들과의 관계 악화로 국가올림픽위원회가 유럽올림픽위원회 소속으로 옮겼다.] ||
|| 118 || [[자메이카]] || Jamaica || [[아메리카]] ||
|| 119 || [[자이르]][* 현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 콩고(Congo Kinshasa)로 국제올림픽위원회에 가입하여 그 이름으로 올림픽에 참가했다 자이르로 국호를 고치면서 자이르로 올림픽에 참가하다 1997년 콩고민주공화국으로 국명을 고치면서 이후로는 콩고민주공화국으로 올림픽에 참가중이다.] || Zaire || [[아프리카]] ||
|| 120 || [[잠비아]] || Zambia || [[아프리카]] ||
|| 121 || [[중앙아프리카공화국]] || Central African Republic || [[아프리카]] ||
|| 122 || [[중화인민공화국]] || People's Republic of China || [[아시아]] ||
|| 123 || [[지부티]] || Djibouti || [[아프리카]] ||
|| 124 || [[짐바브웨]] || Zimbabwe || [[아프리카]] ||
|| 125 || [[차드]] || Chad || [[아프리카]] ||
|| 126 || [[체코슬로바키아]][*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1993년]] 분리되었고,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부터 따로 출전하게 된다.] || Czechoslovakia || [[유럽]] ||
|| 127 || [[칠레]] || Chile || [[아메리카]] ||
|| 128 || [[카메룬]] || Cameroon || [[아프리카]] ||
|| 129 || [[카타르]] || Quatar || [[아시아]] ||
|| 130 || [[캐나다]][* 동년 겨울에 서울올림픽에 앞서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을 개최하였다. 그 당시까지는 동,하계올림픽이 동년에 열렸으나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부터 하계올림픽과 따로 열리게 되었다.] || Canada || [[아메리카]] ||
|| 131 || [[케냐]] || Kenya || [[아프리카]] ||
|| 132 || [[케이맨 제도]] || Cayman Islands || [[오세아니아]] ||
|| 133 || [[코스타리카]] || Costa Rica || [[아메리카]] ||
|| 134 || [[코트디부아르]] || Cote d'Ivoire || [[아프리카]] ||
|| 135 || [[콜롬비아]] || Colombia || [[아메리카]] ||
|| 136 || [[콩고 공화국|콩고]][* 콩고 공화국. 콩고 공화국이 현 콩고민주공화국보다 먼저 콩고라는 이름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에 가입하여 지금까지도 올림픽에서는 그냥 콩고라 하면 이 콩고 공화국을 의미하는 것이다. 1988년 당시의 정식 국명은 콩고 인민 공화국이었고, 1991년 콩고 공화국으로 개칭했으나, 국제올림픽위원회에는 계속 콩고로 가입되어 있다.] || Congo || [[아프리카]] ||
|| 137 || [[쿠웨이트]] || Kuwait || [[아시아]] ||
|| 138 || [[쿡 제도]] || Cook Islands || [[오세아니아]] ||
|| 139 || [[중화 타이베이|차이니스 타이페이]][* [[대만]]의 국제올림픽위원회 공식 가입명칭. 당시 [[대한민국]]의 수교국이었으나 [[국제올림픽위원회]]의 규정에 의해 중화 타이베이로 참가. 원래는 한글 이름을 '''타이베이 중국'''으로 할 예정이었으나 영어 발음을 그대로 옮긴 '''차이니스 타이페이'''로 고쳤다.(영어 발음대로니까 [[타이베이]]가 아니고 타이페이라고 했었다) 순서는 타이베이를 기준으로 해 쿡 제도와 태국 사이에 나왔다. 서울 올림픽뿐만 아니라 다른 올림픽에서도 입장 순서는 '중화'가 아닌 '타이베이'를 기준으로 하는 관습이 있다.] || Chinese Taipei || [[아시아]] ||
|| 140 || [[태국|타이]][* 사전 표기로는 타이가 타이베이/타이페이보다 먼저지만 실제로는 타이 앞에 나왔다.--'타일랜드'를 기준으로 한 건가--] || Thailand || [[아시아]] ||
|| 141 || [[탄자니아]] || Tanzania || [[아프리카]] ||
|| 142 || [[터키]] || Turkey || [[유럽]] ||
|| 143 || [[토고]] || Togo || [[아프리카]] ||
|| 144 || [[통가]] || Tonga || [[오세아니아]] ||
|| 145 || [[튀니지]] || Tunisia || [[아프리카]] ||
|| 146 || [[트리니다드 토바고]] || Trinidad and Tobago || [[아메리카]] ||
|| 147 || [[파나마]] || Panama || [[아메리카]] ||
|| 148 || [[파라과이]] || Paraguay || [[아메리카]] ||
|| 149 || [[파키스탄]] || Pakistan || [[아시아]] ||
|| 150 || [[페루]] || Peru || [[아메리카]] ||
|| 151 || [[포르투갈]] || Portugal || [[유럽]] ||
|| 152 || [[폴란드]] || Poland || [[유럽]] ||
|| 153 || [[푸에르토리코]] || Puerto Rico || [[아메리카]] ||
|| 154 || [[프랑스]] || France || [[유럽]] ||
|| 155 || [[피지]] || Fiji || [[오세아니아]] ||
|| 156 || [[핀란드]] || Finland || [[유럽]] ||
|| 157 || [[필리핀]] || Philiphines || [[아시아]] ||
|| 158 || [[헝가리]] || Hungary || [[유럽]] ||
|| 159 || [[홍콩]] || Hong Kong || [[아시아]] ||
|| 160 || [[대한민국]][* 개최국. 국제올림픽위원회에는 Korea로 가입되어 있으므로, 규정에 따르면 그냥 '한국'이라고 표기해야 한다.] || Korea || [[아시아]] ||
[[분류:1988 서울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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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 [include(틀:역대 동계올림픽)]
||<tablealign=center><:><width=30%> 14회 ||<:> {{{+1 → }}} ||<:><width=30%> 15회 ||<:> {{{+1 → }}} ||<:><width=30%> 16회 ||
||<:>[[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 {{{+1 → }}} ||<:><#DCDCDC>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1 → }}}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2><tablealign=right><:> '''{{{+1 XV Olympic Winter Games}}}'''
1988 Winter Olympics[br]'''{{{+1 Les XVes Jeux olympiques d'hiver}}}'''
Les Jeux Olympiques d'hiver de 1988 ||
||<-2><bgcolor=#ffffff><:>[[파일:attachment/1988_wolympics_logo.png|width=200]] ||
||<-2><:> [[파일:1988-Calgary-Olympics_Poster.jpg|width=200]] ||
||<:> 대회기간 || [[1988년]] [[2월 13일]] ~ [[1988년]] [[2월 28일]] ||
||<:> 개최국가/도시 || [[캐나다]] / [[캘거리]] ||
||<:> 대회 이념 || '''Peux tu le Sentir?'''[br]'''Can You Feel It?'''[br](느낄 수 있니?) ||
||<:> 공식 주제가 || Winter Games([[데이비드 포스터]]) ||
||<:> 마스코트 || 하이디&하우디 ||
||<:> 참가국 || 57개국 ||
||<:>참가선수 || 1,423명[br](남자: 1,122명, 여자: 301명) ||
||<:> 경기종목 || 10개 종목, 46개 세부 종목 ||
||<:> 개회 선언자 || 잔 마틸드 소베[br],,캐나다 총독,, ||
||<:> 선수 선서 || 피에르 하비 ||
||<:> 심판 선서 || 수잔나 모로 프랜시스 ||
||<:> 성화 점화 || 로빈 페리 ||
||<:> 개·폐회식장 || [[맥마흔 스타디움]] ||
[목차]
== 소개 ==
1988년 캐나다 캘거리서 개최된 동계[[올림픽]]. 여러모로 [[전설]]이 된 올림픽이다.
[[냉전]]시대의 스포츠는 동서 진영이 맞붙는 대리전이었고, 이 올림픽은 그런 대리전 양상이 전개된 사실상 마지막 올림픽이었다. 같은 해 9월에 열린 [[1988 서울 올림픽]]은 사상 최다의 참가국을 기록하며 동서 화합의 올림픽으로 역사에 남았다.
== 유치 ==
캐나다의 캘거리, [[스웨덴]]의 [[팔룬]], [[이탈리아]]의 [[코르티나담페초]] 세 지역이 공식적으로 후보로 뛰어들었다. 스웨덴은 이전 유치전에서 떨어진 데 대한 자격지심도 있었는지 열심히 준비했다.
|||||||||| 1988년 올림픽 유치 투표 과정 ||
|| 국가 || 도시 || 1차투표 || 2차투표 || 결과 ||
|| '''캐나다''' || '''캘거리''' || '''35''' || '''48''' || '''유치 선정''' ||
|| 스웨덴 || 팔룬 || 25 || 31 || 유치 탈락 ||
|| 이탈리아 || 코르티나담페초 || 18 || || 유치 탈락 ||
이 이후로 스웨덴의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총 6회 연속 탈락했다.
== 특징 ==
[[피겨 스케이팅]]은 여자 싱글의 카르멘 전쟁 Battle of the Carmens, 남자 싱글의 브라이언 전쟁 Battle of the Brians, 페어의 G&G로 정리된다. 최고의 화제거리는 단연 [[동독]]의 [[카타리나 비트]]였다. [[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카타리나 비트]]는 직후 4년 동안 유럽선수권, 세계선수권들을 모조리 제패하며 피겨 여제로 군림했다. 뿐만 아니라 냉전 시대 동구권이 낳은 최고의 스타였으며, 서구권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자랑했던 선수였다. 비트의 원탑 독주 체제였던 4년 동안, 단 한 번 비트가 2위였던 적이 있는데(1986 세계선수권), 그 때 비트를 꺾은 선수가 바로 [[미국]]의 흑인 스케이터인 [[데비 토머스]]였다.
올림픽에서 [[카타리나 비트]]와 데비 토마스는 둘 다 똑같이 [[비제]]의 [[카르멘]]을 롱프로그램 음악으로 선곡했고, 그래서 이 라이벌리는 '''카르멘 전쟁'''이라고 불렸다. 특히 이 둘의 라이벌리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의 대립, 백인vs흑인, 부드러운 피겨(비트)와 파워풀한 피겨(토머스)의 대립 등 수많은 화제성을 갖고 있었다.
[[카타리나 비트]]의 프로그램은 피겨 역사에 길이 남을 프로그램이었으며, 비트를 '영원한 카르멘'으로 자리잡게 했다. 오늘날 비제의 카르멘은, 피겨 스케이터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선곡하는 피겨계 최고의 단골 레퍼토리지만, 그 수많은 카르멘 프로그램 중에서도 카타리나 비트의 카르멘을 뛰어넘었다는 평을 받은 여자 스케이터는 단 한 명도 없다. 프리 프로그램 1위는 은메달리스트였던 [[캐나다]]의 [[엘리자베스 맨리]]였다.[* 당시에는 [[피겨 스케이팅]] 종목의 원류가 된 얼음 위에 도형 그리기 종목인 컴펄서리를 실시했으며, 채점 비중도 컴펄서리 3: 쇼트 2: 프리 5였다. 비트가 프리에서 2위였긴 하지만 컴펄서리 3위, 쇼트 1위를 했기 때문에, 컴펄서리 4위, 쇼트 3위였던 맨리는 프리에서 1위를 해도 비트가 프리에서 2위를 하면 뒤지는 상황이었고, 그대로 되었다.]
카르멘 전쟁은 비트의 승리로 끝났고, [[카타리나 비트]]는 [[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에 이어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이 기록은 역사상 유일하게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한 [[소냐 헤니]] 이후로 최고의 기록이며, 아직까지도 [[피겨 스케이팅]]에서 올림픽 2연패를 기록한 여자선수는 이 둘 밖에 없다. 한편 데비 토마스는 동메달을 따며 [[흑인]]으로는 최초로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피겨 스케이팅]]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캐나다의 엘리자베스 맨리는 은메달이었으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조아니 로셰트]]가 동메달을 획득하기까지 [[캐나다]]는 여자 싱글에서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하지 못했다.
남자 싱글 부문에서는 [[미국]]의 [[브라이언 보이타노]]와 [[캐나다]]의 [[브라이언 오서]], 두 명의 브라이언이 맞붙었는데 이것이 바로 브라이언 전쟁(Battle of the Brians). 의외로 승부가 싱겁게 끝난 카르멘 전쟁과 달리, 이 쪽은 채점 순간까지 박빙이었다. 결국 보이타노가 오서를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브라이언 오서]]는 [[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에 이어 2회 연속 은메달이었다.
페어 부문에서는, 전설적인 페어 조인 [[예카테리나 고르디바]]와 [[세르게이 그린코프]], 통칭 G&G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G&G는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또 다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그 다음 해인 1995년, 남편인 세르게이 그린코프가 아이스쇼 연습 중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s-4.11|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성적]] ==
■ 1988 15회 캘거리 동계올림픽 (1988 Winter Calgary Olympics)
* 기간 : 2월13일~2월28일
* 규모 : 57개국
* 종목 : 46개
* 참가선수 : 1,423명
* 개막일 : [[1988년]] [[2월 13일]]
* 폐막일 : [[1988년]] [[2월 28일]]
[[파일:대한민국동계올림픽성적11.png]]
== 기타 ==
* 개최국 [[캐나다]]는 앞선 [[1976 몬트리올 올림픽]]의 미숙한 경기운영으로 인한 논란, 금메달 획득 실패(은 2, 동 3)의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많이 노력했다. 하지만 [[캘거리]] 지역의 기온이 급상승하면서 [[스키]] 경기 진행에 차질을 빚었고, 기대했던 선수들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또 다시 개최국임에도 금메달을 하나도 못 따는 수모를 얻었다. 이것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비로소 깨지게 된다. 한편 [[노르웨이]]도 동계 스포츠 강국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여기서는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였다.
* [[피지]], [[괌]], [[과테말라]],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자메이카]] 등 열대지방 국가들도 많이 참가하여 당시까지 동계 올림픽 사상 최대인 57개국이 참가하였다. 특히 [[자메이카]] [[봅슬레이]] 선수들의 참가는 [[올림픽]] 정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 이야기는 나중에 [[쿨 러닝]]이라는 [[영화]]로 각색된다.
* 영국의 스키점프 선수 에디 에드워즈가 화제가 되었으며, [[쿨 러닝]]에 이어 [[독수리 에디]]로 영화화되었다.
* 대회 기간이 16일로 늘어났다.
*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이 처음으로 실내 경기장에서 치러졌다. 고지대에 외부 환경의 영향을 덜 받는 실내 경기장이었으므로 세계 신기록이 대량으로 작성되는 성과를 올렸다.
* 동독의 크리스티나 루딩은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1000미터에서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에 이어 2연패에 성공하였다. 이후 [[1988 서울 올림픽]] 싸이클 개인추발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차지하였다.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이 근지구력 훈련을 위해 가장 많이 하는 운동이 싸이클이기 때문에 그런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였다고 한다. 같은 해에 치러진 동계와 하계 올림픽에서 메달을 모두 딴 유일한 사례. 이후 동계와 하계 올림픽을 같은 해에 치르지 않는 것으로 바뀌면서 다시 동계와 하계 대회를 같은 해에 치르는 것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기록이 되었다.
* 종합 순위에서는 다시 소련이 동독을 제치고 1위를 하였다. 동독의 초강세종목인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 1개가 신설되는 등, 동독이 이번에도 종합 1위를 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 3종목을 예상외로 [[네덜란드]]의 이본네 판 헤닙이 석권하면서 동독 선수들은 은, 동메달로 밀렸다. 동독은 [[카타리나 비트]]가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2연패를 하는 등 좋은 성과를 내며 금메달 9개를 땄으나, 소련이 이번에는 11개나 되는 금메달을 따는데 성공하면서 종합 1위를 내줬다. [[스위스]]가 3위로 금 5, 은 5, 동 5라는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최후로 출전하여 은 2, 동 1이라는 지난번 자국 대회보다는 향상된 기량을 펼쳤다. [[리히텐슈타인]]은 동메달 1개로 일본과 공동 16위 꼴찌였다. 전대회 꼴찌의 [[오스트리아]]는 금 3, 은 5, 동 2로 메달 수 4위, 종합 6위로 괜찮은 성적을 올렸다.
* [[대한민국]]은 당시까지 동계올림픽 출전 사상 최다인 28명의 선수를 파견하여 첫 메달을 노렸다.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배기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 스탭으로 활동한 사람과는 동명이인이다. 그런데 해당 스탭도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출신이라고 한다.]는 유력한 메달 후보였으나, 500m에서 5위에 그쳐 근소한 차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그래도 당시까지 동계 올림픽 출전 사상 가장 높은 성적으로 큰 가능성을 남겼다. 그리고 시범종목으로 치러진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쇼트트랙]]에서는 금메달 2개를 따는 기염을 토했다. 이로써 메달 획득의 기초를 다지고 다음 대회인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쇼트트랙]]의 [[김기훈(쇼트트랙)|김기훈]]과 [[스피드 스케이팅]]의 [[김윤만]]이 메달을 땄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Olympics-hidy-howdy.jpg|width=100%]]
* 대회의 마스코트는 [[카우보이]] 스타일의 [[북극곰]] Hidy and Howdy(하이디와 하우디)였다.
* 이전 대회까지만 해도 카드 결제가 불가능했지만, 이대회 이후부터는 [[비자카드|카드]] 결제를 받기 [[https://usa.visa.com/dam/VCOM/global/about-visa/documents/visa-timeline-1976-2016.pdf|시작했다.]] 그리고 이 대회부터 [[비자카드]]가 올림픽 공식 파트너로 함께하는 중이다.
* 이 대회는 [[1988 서울 올림픽]] 이전에 열렸던 대회였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던 대회였다. 폐막식 때에는 [[1988 서울 올림픽]] 공연단이 올림픽을 예고하는 무대를 열기도 했다. 당시에는 [[손에 손잡고]]가 제정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주제가가 유력시되던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노래가 나왔다.
* [[캐나다]]는 22년 후 밴쿠버에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올림픽]]을 다시 한 번 개최하게 되었는데, 이 대회는 경제적으로 적자 손실을 보게 되었던 올림픽으로 기록되어서 [[캘거리]]의 흑자 재현을 이루지 못했다.
* 이 대회와 [[1988 서울 올림픽|서울 올림픽]]에서 나란히 종합 1위와 2위를 한 소련과 동독은 이 해의 올림픽을 끝으로 올림픽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독일]]은 1990년 동서통일화에 따라 동독과 서독으로 따로 참가하게 되었던 마지막 동계 올림픽이 됐다.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대회부터는 [[독일|독일연방공화국]]이라는 단일 국호와 선수단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소련]]도 소련이라는 국호와 소련 국기를 앞세우고 선수단을 입장시키게 되었던 마지막 동계 올림픽이 되었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1992년 동하계 대회에서 연합 팀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했고, 이후 소련을 구성했던 개별 공화국들이 각각 별개의 국가 이름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1956년]] 첫 출전 이후 7회나 우승을 차지했던 동계 올림픽 최강국 [[소련]]은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 [[북한]]은 당시 [[캐나다]]와 미수교 상태였지만, 이 대회에 [[피겨 스케이팅]]과 [[스피드 스케이팅]]에 6명의 선수가 참가하였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열렸던 [[1988 서울 올림픽|서울 올림픽]]에는 불참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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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 ||<-13><tablealign=center><bgcolor=#a9a9a9> {{{#000000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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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tablealign=right><bgcolor=#cbb8ee> '''세계 각 지역의 표기''' ||
|| [[서력기원|서기]] || 1988년 ||
|| [[대한민국 연호|대한민국]] || 70년 ||
|| [[단군기원|단기]] || 4321년 ||
|| [[불멸기원|불기]] || 2532년 ||
|| [[황기]] || 2548년 ||
|| [[이슬람력]] || 1409년~1410년 ||
|| [[갑자|간지]] || [[정묘]]년~[[무진]]년 ||
|| [[주체사상|주체]] || 77년 ||
|| [[중화민국|민국]] || 77년 ||
|| [[일본]] || [[쇼와]] 63년 ||
|| [[히브리력]] || 5748년~5749년 ||
|| [[에티오피아]] || 1980년~1981년 ||
[목차]
== 개요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122400099203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8-12-24&officeId=00009&pageNo=3&printNo=7022&publishType=00020|매일경제 선정 1988년 10대 뉴스]]
[[금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다.
대한민국이 정부수립 40년 이래 최대의 이벤트였던 '''[[1988 서울 올림픽]]'''을 개최했으며, 이를 계기로 '한강의 기적'은 절정을 이루었다. 또한 대한민국의 국제적 인지도가 본격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올림픽 당시 오후 수업이 있으면 올림픽 관람에 방해가 된다며 [[유치원]]의 수업도 오전 수업만 했다고 한다. 반면 철거민이나 노점상 등 도시빈민들은 올림픽 준비를 위한 '보여주기식' 강제철거와 이주로 한동안 고통을 받아 왔다.
[[제6공화국]] 헌법이 효력을 발하기 시작하였으며, 한국의 정치제도가 본격적으로 민주주의로 이행한 시기이며, 그동안 '광주사태'로 알려진 1980년 5.18 항쟁이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되기 시작했다. 4월 치러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로 38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되면서 [[노태우]]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해 물러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새로 발족한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으로서 상왕 노릇을 하려 했지만, 후임 노태우의 '5공 색깔 지우기'로 형 [[전경환]]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 등 5공 비리의 핵심 인물들이 줄줄이 구속됐고, 이에 따라 대국민 사과를 해서 민정당 명예총재 및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직에서도 물러났다. [[10월 유신]] 이후 16년 만에 부활한 [[국정감사]]에 이어 [[광주학살]], [[일해재단]] 비리, 1980년 언론대학살의 진상 등을 밝히기 위한 특별위원회가 설치되어, [[대한민국 국회]]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청문회'''[* 1988년 11월의 일해(日海) 청문회]가 치러지게 되었다. 당시 재벌총수, 언론인, 정치가 등 유명 인사들이 출석하여 TV로 생중계되는 등 [[올림픽]]에 버금가는 전 국민적 화제를 낳았으며, 국회의원 중에서는 [[노무현]] 등이 청문회의 스타가 되기도 했다. 그 후 11월,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이후 [[강원도]] [[설악산]]의 [[백담사]]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외교 면에선 헝가리 상주대표부 설치를 시초로 공산권 수교를 골자로 한 '북방정책'이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사회운동 면에선 학생 운동권은 6.10/8.15 남북학생회담 개최투쟁에 주력했고, 이를 전후해 대학가에선 '북한 바로알기 운동'이 퍼져갔다. 올림픽 폐막 뒤에는 각 재야단체들이 '전두환-이순자 부부 체포결사대'를 조직해 연희동이나 백담사까지 가서 가두시위를 전개했고, 시위가 벌어지는 곳은 언제나 최루탄 가스로 범벅이 됐다.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에 [[서울랜드]]가 개장하였으며,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COEX]]에 무역센터([[트레이드 타워]])가 완공되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다루는 가장 먼 시대이기도 하다.[* [[응답하라 1988]]이 방영되면서.]
[[쌍팔년도]]라고 자주 지칭되는 해이다. 하지만 쌍팔년도라는 단어는 원래 서기 1988년이 아닌 '''[[단군기원]] 4288'''년인 [[1955년]]을 뜻하는 단어로, 1988년 이전부터 사용되던 어휘였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6013000329203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6-01-30&officeId=00032&pageNo=3&printNo=9335&publishType=00020|50년대를 쌍팔년도로 표현했던 70년대 신문기사]]
[[여담]]이지만, 이 해에는 유난히 농작물이 풍작을 맞이했고, 해외여행 연령도 종전 50세 이상에서 40세 이상으로 확장됐고, 부부동반 여행도 허용되었다.
== 사건 ==
=== 실제 ===
==== 1월 ====
* [[1월 1일]]
* 전두환 대통령은 집권 마지막 신년사에서 대립과 앙금을 걷어내고 국민화합을 실천하자고 촉구하였다.
*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는 신년사에서 화합의 새 공화국을 건설하자고 촉구하였다.
* 국민연금제가 전국적으로 일제히 시행되었다.
* 문학과지성사가 <문학과 사회>를 창간하였다.
* 북한의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남북연석회의의 연내 개최를 제의하면서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와의 대화 용의가 있다고 천명했다.
* [[1월 5일]] - 한미 통상회담에서 미국측은 한국의 담배, 보험, 농산물 시장을 개방키로 했다.
* [[1월 7일]]
* 전국엽연초생산조합연합회 산하 43개 연합장 및 임직원 1백여 명이 수입개방 반대와 양담배 불매운동을 결의하였다.
* 호네커 동독 국가평의장이 프랑스를 방문하였다.
* [[1월 8일]] - 경찰은 이사진 개편과 학내민주화를 요구하며 넉달간 점거농성 중이던 조선대에 진입해 학생들을 강제 해산시켰다.(1.8 항쟁)
* [[1월 9일]] - 미-EC 무역 대표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 무역회의에서 한국 등 아시아 [[NICS]]에 통화평가 절상 및 무역흑자 감소를 촉구했다.
* [[1월 10일]] - 신인가수 [[신촌블루스]]가 1집 앨범 <그대 없는 거리>로 데뷔했다.
* [[1월 11일]]
* '민주화합범국민추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계훈제는 민통련 해체를 요구하며 민통련 부의장직을 사퇴하였다.
* '경기남부지역노동조합 임금인상 대책위원회(이하 임대위)'가 결성되었다.
* 북한 정무원 총리가 남북 고위급 정치/군사회담을 제의하였다.
* [[1월 12일]]
* 다케시타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여 레이건 대통령과 회담을 열었다.
* 동아일보는 황적준 박사의 일기를 입수해 경찰의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 사실을 특종 보도하였다.
* 북한 조선올림픽위원회가 서울올림픽 불참성명을 발표했다.
* [[1월 13일]]
* 경남 합천군 쌍책면 옥전고분에서 환두대도 등 유물 8백여 점이 발굴되었다.
* 북한 중앙인민위, 정무원, 사회단체 등이 연합회의를 열어 '남북연석회의 북측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 장징궈 중화민국 총통이 세상을 떴다.
* 리덩후이 중화민국 부총통이 총통직을 승계하였다.
* [[1월 14일]]
* 문교부는 새 한글 맞춤법/표준어 규정을 확정하고 1989년 3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하였다.
* [[현대중공업]]은 1987년 7~8월 파업과 관련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19명을 해고 조치했다.
* [[1월 15일]] - 안기부는 KAL808 폭파사건 범인 하치야 신이치-마유미가 김승일-김현희였다고 밝혔다.
* [[1월 16일]] - [[대검찰청]]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관련자인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을 구속하였다.
* [[1월 18일]]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전대협]] 공정선거감시단은 제13대 대선에서 선거부정이 당선에 영향을 미쳤다며 선거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하였다.
* 일본 닛산자동차가 고급 승용차 '[[닛산 시마|시마]]'를 출시하였다.
* [[1월 19일]] - '민주출판언론노동조합협의회(이하 민출노협)'가 결성되었다.
* [[1월 20일]] - 미 국무부는 KAL기 공중폭발 사건과 관련하여 북한을 국제적 테러 국가로 규정하는 등 3개항의 대북 제재조치를 발표하였다.
* [[1월 22일]]
* <월간중앙>이 8년 만에 복간되었다.
* 부산일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대한언론인회가 발족되었다.
* [[1월 25일]]
* CBS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민추위와 신지협의 다수파를 주축으로 한 '신당결성 전국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월 26일]]
* 서대협은 '미국의 수입개방 압력에 대한 시국 대토론 및 경제침탈 규탄대회'를 개최하였다.
* 양순직 등 평민당 의원 8명은 야권 통합을 요구하며 탈당했다.
* 경기 시흥군 의왕읍에 [[철도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 [[1월 29일]]
* 경찰대 총동창회와 재학생들은 경찰의 정치적 중립화에 대한 성명을 채택하였다.
* '민중의당 창당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반미청년회가 결성되었다.
* [[1월 31일]] - 서울 사당 2동 공터에서 '재개발 반대 및 임대주택 쟁취를 위한 도시빈민대회'가 개최되었다.
==== 2월 ====
* [[2월]] 중
* '인천지역노동자그룹'이 결성되었다.
*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이하 민자통)'가 결성되었다.
* [[2월 1일]] - '전국대학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2월 2일]]
* 평민당의 유제연, 김성수, 김성식 의원이 통일민주당으로 옮겨갔다.
* 국토개발연구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2월 3일]]
* 문동환 교수 등 97명이 평민당에 입당하였다.
* 전택노련 중앙위원 60여 명이 설립신고서 반려에 항의하며 노총회관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 [[2월 4일]] -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2월 5일]]
* '5.18 광주민중혁명 위령탑 건립 및 기념사업 범국민추진위원회'는 합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구성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 현대사회연구소와 조선대학교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2월 8일]]
* 김영삼 민주당 총재는 야권 단일화를 위해 총재직을 사퇴하고 당원으로써 백의종군을 선언하였다.
* 서울대병원 민병구 교수팀이 국내 최초로 인공심장을 개발하였다.
* 인하대학교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 [[2월 9일]] - 대법원은 [[권인숙]]의 변호인단이 낸 [[재정신청]]을 인정하였다.
* [[2월 10일]] - 민주당과 평민당은 '야권 단일화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2월 11일]] - 전교협은 해직교사 복직을 요구하는 교사와 학부모 4.245명의 연명청원서를 문교부에 제출하였다.
* [[2월 12일]]
* 팀 스피릿 '88 훈련이 개시되었다.
* 북한의 김일성은 부총리 겸 화학/공업위원장에 김환, 부총리 겸 건설건재공업위원장에 조세형, 국가계획위원장에 김달현을 각각 임명했다.
* [[2월 13일]]
*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분당 전 상태로 못 돌아간다고 말하고 야권 통합을 거부했다.
* 남극 세종과학기지가 준공되었다.
*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캐나다 맥마흔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 [[2월 16일]] - 정부는 대통령과 재직 1년 미만 장관을 제외하는 방법으로 전 각료에의 훈장수여 계획을 수정하였다.
* [[2월 17일]]
* 서울 종로구 청진동 삼송빌딩 9층 강당에서 '[[한겨레민주당]] 창당 발기인 대회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식'이 열렸다.
* [[아시아나항공]]의 전신인 (주)서울항공이 세워졌다.
* 태국-라오스 양국이 휴전협정에 조인하였다.
* [[2월 18일]] - 씨름선수 [[이만기]]가 통일장사씨름대회 결승에서 [[이봉걸]]을 꺾어 천하장사 타이틀을 되찾았다.
* [[2월 21일]]
* 현대엔진 노조 간부들이 사측의 노조에 대한 고발조치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 북한의 김일성은 인민군 총참모장 오극렬 대신 최광을 임명했다.
* [[2월 22일]]
* 보사부는 귀국 외항선원을 최종 검사한 결과 국내 최초로 에이즈 증세가 나왔다고 발표하였다.
* '충남민주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한국여성개발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2월 23일]]
* UPI-CIC 영화 비디오 배급 유한회사가 세워졌다.
* 쇼트트랙 선수 김성훈이 캘거리 동계올림픽 1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아프간 이슬람 반군 '무자헤딘'이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였다.
* [[2월 24일]]
* '국가원로자문회의법'이 제정되었다.
* 한기원 등 청년학생구국결사대 소속 대학생 5명이 서울 미국문화원에서 점거농성을 하다 경찰에 의해 1시간만에 연행되었다.
* 연세대 신학대생 [[안내상]]이 추가 검거 후 광주 미국문화원에 시한폭탄을 설치한 사실을 진술했다.
* [[2월 25일]]
* [[노태우]]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취임식이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개최되었다.
* 제9차 개정 [[대한민국 헌법|헌법]]이 시행되었다.
* [[2월 26일]]
* 한미 재무장관회담에서 미국은 자본 및 금융시장 조속 개방과 원화 평가절상 가속화를 강력히 요청했다.
* 논산훈련소는 훈련병 면회제도를 29년만에 부활시켰다.
* 광주 미국문화원 1층 도서관 진열장에서 시한폭탄이 발견되었다.
* 경북 영양군에서 주부 변월수가 자신을 성폭행한 강간범의 혀를 깨물어 저항했다.(변월수 사건)
* [[2월 27일]]
* 정부는 시국사범 1,731명을 포함한 7,234명을 복권했다.
* 원로 체육인 33명은 체육민주화와 자율화를 촉구하라고 성명을 냈다.
* 현대엔진은 노동자들의 농성을 이유로 무기한 휴업 조치를 내렸다.
* 현대사회연구소는 연구소 운영 민주화를 요구한 노조위원장 이희덕 등 연구원 26명을 집단 해고하였다.
* 맥스테크 파업이 노사 간 협상으로 55일 만에 종식되었다.
* 이라크 공군기가 이란 최대 정유소를 폭격했다.
* [[일본]] TV아사히에서 <[[초수전대 라이브맨]]>가 첫 전파를 탔다.
* [[2월 28일]] - 헝가리 라이코무용단이 미수교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 공연했다.
* [[2월 29일]] - 서울고법은 부천서 성고문사건 가해자 문귀동 경장을 인천지법에 재판회부하도록 결정하였다.
==== 3월 ====
* [[3월 1일]]
* 노태우 대통령은 삼일절 기념사에서 북한 동포들의 올림픽 참가를 호소하였다.
* '국어교육을 위한 교사모임'이 결성되었다.
* [[3월 2일]] - 이란 공군은 이라크의 도시들을 3일째 무차별 폭격했다.
* [[3월 5일]]
* 소련 정부는 국영기업에 경쟁을 보장하고 주식 발행을 허가하는 '사기업 장려법안'을 마련하였다.
* 티베트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반중시위로 유혈폭동이 발생했다.
* [[3월 6일]] - '민중의당'이 정식 창당되었다.
* [[3월 8일]]
* '완전소선거구제 국회의원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 종전의 청보 핀토스가 '태평양 돌핀스'로 출범되었다.
* [[3월 12일]] -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가 일본 전역에 개봉되었다.
* [[3월 14일]] - 중-월 양국군이 난사 군도에서 무력충돌을 벌였다.
* [[3월 15일]]
* [[연합통신]]과 [[경인일보]]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헝가리 시민들이 민주화와 언론자유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 [[3월 16일]] -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은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 지중해의 양국 함대의 동결을 제의했다.
* [[3월 17일]]
* 서울대 김수태 교수팀이 국내 최초로 간 이식수술에 성공하였다.
* 극동석유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3월 18일]]
* 경향신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일본 최초의 [[돔경기장]]인 '[[도쿄돔]]'이 구 고라쿠엔 구장 터에 개장되었다.
* [[3월 21일]]
* 검찰은 새마을본부 및 전경환 전 회장에 대한 집중수사에 착수하였다.
* 안기부는 '반미청년회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여 [[장원섭]], 윤은주 등 관련자 7명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 서울시경은 전대협 의장 권한대행 [[우상호]]를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 [[3월 22일]]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제2창업'을 선언하였다.
* [[3월 24일]]
* 헝가리 측이 동구권 국가 중 처음으로 서울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하였다.
* 한국노총 화학노련의 '고무/타이어' 부문이 독립하여 전국고무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고무노련)이 출범되었다.
* [[3월 25일]] - 경기도 안양시 비산동 비산종합상가 3층에 소재한 봉제공장 '그린힐'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공장 내 기숙사에서 잠자던 여성 노동자 20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고 당일 사망자는 19명이었으나 이후 1명의 사망자가 추가됨.].
* [[3월 29일]]
*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후보 김중기는 <김일성종합대학 청년학생에게 드리는 공개서한>에서 '남북한 국토종단 순례 대행진' 및 '민족 단결을 위한 남북한 청년학생 공동 체육대회'를 제안하였다.
* 한겨레민주당이 정식 창당되었다.
* 맥안산업이 [[맥도날드]] 한국 1호점을 서울 압구정에 개점하였다.
* 한양대학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3월 31일]]
*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이 구속되었다.
* 문공부는 월북작가 정지용과 김기림의 작품들을 공식 해금하였다.
==== 4월 ====
* [[4월 1일]]
* [[노태우 정부]]는 5.18 광주항쟁의 성격을 "광주 학생과 시민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 규정하며 유감을 표했다.
* 동양고압고무, 빙그레, 두산유리 노동자들이 노동쟁의를 벌였다.
*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노동자 1만여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을 벌였다.
* [[천호대교]] 버스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
* MBC 표준FM의 간판프로 <여성살롱>이 <여성시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4월 2일]]
* 외무부는 1989년 1월 1일을 기해 해외관광여행자의 연령제한을 철폐시킨다고 발표하였다.
* 민정당은 '농어촌의료보험 개선대책'을 마련하였다.
* [[4월 4일]]
* 검찰은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의 재산 해외도피 수사에 착수했다.
* 북한 김일성종합대 학생회는 '6.10 남북학생회담 실무회담'을 수락하였다.
* [[4월 6일]] - '전국언론노동조합협의회(이하 언노협)'가 결성되었다.
* [[4월 7일]]
*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창단되었다.
* 한국인삼연초연구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4월 10일]]
* 서대협은 해소를 결의하고 '학간 연대조직 재편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조직건설 과정에서 학생회 간에 이견이 생겨 서건추론과 서대협강화론, 서총협론 등으로 분리되었다.
*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성남지역제화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4월 11일]]
* KNCC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선언의 논란에 대하여>라는 제하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미국 산호세에서 게임 개발자 회의(GDC)가 [[https://books.google.co.kr/books?id=_n6oDQAAQBAJ&pg=PR11&lpg=PR11&dq=Game+Developers+Conference+1988+april+11&source=bl&ots=mdogrydBSW&sig=sJvvwwLLu9qjx9l4TZW76Fnz8qg&hl=ko&sa=X&redir_esc=y#v=onepage&q=Game%20Developers%20Conference%201988%20april%2011&f=false|처음 열렸다.]]
* [[4월 12일]] - '서울지역대학생연합 건설 추진위원회(이하 서건추)'가 결성되었다.
* [[4월 13일]]
* 전두환 전 대통령이 동생인 전경환의 비리 사태와 관련하여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 및 민정당 명예총재 등 모든 공직에서 사퇴했다.
* [[서울신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4월 14일]]
* '반민정당총선투쟁연합(이하 총투련)'이 결성되었다.
* 미국, 소련,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파키스탄 4국 외무장관들은 '아프가니스탄 국제평화협정'에 조인하였다.
* [[4월 16일]]
*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노동자들이 임금인상과 민주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하였다.
* '진주지역민주노동조합연합회(이하 진민노련)'가 결성되었다.
* 한국사회연구소가 세워졌다.
* [[4월 18일]] - 한국방송인단체총연맹은 총선에 즈음하여 공정방송, 외부간섭 배제, 자율저해 제도 혁파 등을 결의하였다.
* [[4월 19일]] - 한국중공업 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하였다.
* [[4월 20일]]
*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노동자 7백여 명이 노조 신고필증 교부를 요구하며 거제군청을 점거해 철야농성을 벌였다.
* 중공 정부는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는 경제계획을 발표하였다.
* [[4월 22일]] - 이날 건국대에서 전국 농민/학생 1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농축산물 수입저지 전국농민대회'가 열렸다.
* [[4월 23일]] - 한국방송작가협회가 설립되었다.
* [[4월 24일]] - '성남민주노조협의회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4월 25일]] - 제주MBC가 정파시간 도중 13대 총선 제주시 개표결과를 사전방송하고 말았다. 이에 방송사 측은 리허설 중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 [[4월 26일]] -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전국 각지에서 치러졌다. 이 선거에서 민정당은 87석으로 제1당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과반수 확보에는 실패해 1950년 총선 이후 38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등장하게 되었다.
* [[4월 27일]]
* 대우중공업 노조가 임금교섭 결렬을 이유로 무기한 파업에 돌입하였다.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림춘추 북한 부주석이 사망했다.
* [[4월 28일]]
* 서총련준비위는 '조국통일을 위한 특별위원회연합(이하 조통특위)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김세진-이재호 열사 4주기 추모식 및 추모사업회 발족식'이 서울대 관악캠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개최되었다.
* 노동부는 서울인쇄노조에 신고필증을 부여하였다.
* [[4월 29일]] - 대한무역진흥공사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4월 30일]] - 서울 구로공단 4개 업체 노조가 쟁의발생을 신고함에 따라 각 사업장에까지 파업이 확산되었다.
==== 5월 ====
* [[5월 2일]]
* 서울 및 4개 직할시 산하 총 50개구가 개정 지자체법 시행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로 격상되었다.
* 서울 종로구청은 청피노조에 설립 신고필증을 부여하였다. 이로써 전태일 열사의 후예인 청피노조는 탄생 18년, 투쟁 4년만에 합법화를 쟁취하였다.
* [[5월 3일]]
* 안기부는 '반제반파쇼한국민중전선(KPF) 사건'을 발표하며 관련자인 송운학 등 3명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 서울지역제화공노동조합이 신고필증을 쟁취하였다.
* 고려무역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4일]] - 전경련 산하 경제사회개발원이 발족되었다.
* [[5월 6일]] - 현대건설 노조 추진위원장 서정의가 사측에 의해 전남 목포로 청부납치당했다(서정의 납치 사건).
* [[5월 7일]] - 한국에너지연구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8일]] - 폴란드 레닌조선소 노조가 자유노조를 인정하라고 촉구하며 파업 및 시위를 벌였다.
* [[5월 11일]]
* 한덕개발이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권역에 '[[서울랜드]]'을 개장하였다.
*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4세 미국 국방부 차관은 오자복 국방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한국측의 방위비 분담 증액, 동북아 지역 미군 항공기의 정비용역 제공을 요구했다.
* [[5월 12일]]
* 가톨릭 주간지 <평화신문>이 창간되었다.
* 매일경제신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13일]]
* 대통령 자문기구 '행정개혁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서대협의 후신으로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이하 서총련)'이 새로 결성되었다.
* 서울대학교 강사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사회운동가 고정희가 정신병원에서 의문사를 당했다. 그러나 의문사위는 사건 13년 뒤인 2001년에 사건 진정을 기각하였다.
* 중앙관악관현악단이 설립되었다.
* [[5월 14일]] - '개천예술탑건립사업회'가 발족되었다.
* [[5월 15일]]
* 아프간 주둔 중이던 [[소련군]]이 철수를 개시하였다.
* 진보성향 종합일간지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었다.
* 서울대 화학과생 조성만이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확성기로 양심수 즉각석방 및 미군 철수 등의 구호를 외치고 할복 후 투신자살했다.
* [[5월 16일]] - '광주학살·부정비리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서울지역 민주투쟁연합(이하 서민투련)'가 결성되었다.
* [[5월 18일]]
* 민주당 등 야3당 총재들이 정국운영 5개항에 합의하였다.
* '광주학살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5월공동투쟁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한국경제신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19일]]
* 조성만 열사의 장례식이 서울 경희궁공원에서 '민주통일장'으로 거행되었다.
* 현대건설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20일]]
* KBS와 한국동력자원연구소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서총련 산하 애국청년결사대 소속학생 7명이 미국 대사관에 사제폭발물 4발을 투척했다가 전원 검거되었다.
* [[5월 21일]] - '현대그룹노동조합연합회(이하 현노련)'가 결성되었다.
* [[5월 24일]]
* 법무부는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사건으로 17년을 복역중인 서준식의 석방을 결정하였다.
* 치안본부는 '서울올림픽 88경비단'을 창설하였다.
* [[5월 25일]] - 노동부는 전택노련에 신고필증을 부여해 합법 노동조합으로 격상시켰다.
* [[5월 26일]]
* 가농 등 8개 농민단체 회원 3천여 명이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농축산물 수입반대 농민 결의대회'를 열었다.
* 노동부는 경기 부천시 아연도금공장에서 카드뮴 중독 사실을 국내 최초로 확인하였다.
* 한국방송촬영인연합회가 설립되었다.
* [[5월 27일]]
* 서울고법은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사건으로 구속/기소된 박형규 목사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 북한의 김일성은 남북공동 개최가 실현되지 않을 시 서울올림픽에 불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 [[5월 28일]]
* 국립중앙도서관이 서울 남산을 떠나 서초구 반포동 새 건물로 이전하였다.
* 노태우 대통령은 야 3당 총재와 영수회담을 열었다.
* 기존의 정법회와 청년변호사회가 통합하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결성되었다.
* [[조용필 10집]]이 발매되었다.
* [[5월 29일]]
* 헝가리 통상사절단 40명이 동구권 국가로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하였다.
* 서울시내 85개 노조가 모여 '서울지역노조협의회(이하 서노협)'을 결성했다.
* 전국 각계각층 67개 운동단체가 남북 공동 올림픽과 6·10 남북학생회담의 성사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 [[5월 30일]]
* 현대정공 노조원들이 정몽구 회장 등 간부들을 감금한 채 4백일 째 농성을 벌였다.
* 한국과학기술원 노조가 인사제도 개선 및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을 벌였다.
* 현대차노조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표단이 파키스탄, 말레이 등 3개국을 순방했다.
* [[5월 31일]] - 서총련 산하기구 '조국의 평화와 자주적 통일을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조통특위)'가 결성되었다.
==== 6월 ====
* [[6월 1일]]
* 서울지하철노조가 쟁의발생 신고를 냈다.
* 서울올림픽 선수촌 및 기자촌이 준공되었다.
* 광주일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3일]]
* 검찰은 <중간계층의 구성과 민주변혁에서의 지위>라는 논문을 쓴 서관모 교수를 소환하였다.
* 서노협·마창노련·사무금융노련 등이 중심이 되어 '노동법개정 전국노동조합특별위원회'를 결성했다.
* 서총련은 '제1회 서울지역대학생 통일노래한마당'을 경희대 서울캠에서 개최하였다.
* [[6월 4일]] -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을 위한 범국민 진상조사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6월 6일]] - 필리핀 상원은 핵무기 반입 및 핵 적재 함정의 기항 금지를 골자로 한 반핵 법안을 통과시켰다.
* [[6월 7일]] -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이하 전국노운협)'가 결성되었다.
* [[6월 8일]]
* 야 3당 총재들은 '6.10 회담 투쟁'과 관련하여 정부는 학생과 대화하고 학생은 회담 연기를 촉구하도록 하는 등의 공동 발표문 6개항에 합의하였다.
* 중공 베이징 대학생들이 민주화 요구 시위를 위해 천안문 앞에 집결하고자 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좌절되었다.
* [[6월 9일]]
* 오후 10시에 연세대 신촌캠에서 ‘6·10 남북청년학생회담 성사를 위한 백만학도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 교통개발연구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10일]]
* 연세대 신촌캠에서 전대협의 주도로 전국 2만여 명의 대학생들이 모여 ‘6·10 민주화투쟁 1주기 기념대회' 및 '판문점 출정식’을 열어 판문점까지 나아가려 했지만 경찰의 저지로 150여명이 부상당하고 1천여명이 연행되었다. 이로 인해 남북학생회담은 무산되었다.
* 포철이 국민주 1호로 증권거래소에 상장하였다.
* '부산지역노동조합연합회(이하 부노협)'가 결성되었다.
* 최광수 외무부 장관은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남북대회 및 불가침 협정 후 구체적 군축협상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하였다.
* 삼성신용카드가 카드 브랜드명을 '위너스카드'로 확정하였다.
* 한국사회연구소가 기관지 <동향과전망>을 창간하였다.
* [[6월 11일]] - 문공부는 초조본 대반야바라밀경 249권을 국보 제241호로 지정하였다.
* [[6월 14일]] - 고려대 등 3개 대학생 1천 2백여 명이 파주 임진각에서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염원제'를 거행하였다.
* [[6월 15일]]
* 전국 2백여 명의 법관들이 대법원 전면 개편을 주장하는 서명운동을 개시하였다.(법관 서명파동)
* 서울민사지법 소장법관 102명이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민통련은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준비 소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사월혁명연구소가 발족되었다.
* 청문회제도 신설을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이 제정되었다.
* <제일경제신문>이 창간되었다.
* [[6월 16일]] - 10개 학술단체는 검찰의 서관모 교수 소환에 대해 학문, 사상, 비판의 자유 침해라고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6월 17일]] - 국회는 광주특위 등 7개 특위구성결의안을 통과시켰다.
* [[6월 18일]]
*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인노협)'가 결성되었다.
* 한국교육개발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20일]] - 한국기업평가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21일]] - 서울올림픽조직위는 올림픽 공식가요 <손에 손잡고>를 발표하였다.
* [[6월 24일]] - 서울대생 1백여 명이 농촌활동 보조금을 요구하며 총장실에 난입하였다.
* [[6월 25일]] - '성남지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성남노협)'가 결성되었다.
* [[6월 27일]] - 여야가 합의해서 5공비리 특별위원회와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 [[6월 28일]] - 북한의 김일성이 몽골을 공식 방문하였다.
* [[6월 30일]]
* 대림산업이 건설 중이던 [[이란]] 칸간가스정제소 건설현장에 서 이라크군 전투기의 공습으로 현지에서 작업 중이던 한국인 건설노동자 13명이 사망하고 37명이 부상당했다.
*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 등 양심수 46명이 가석방되었다.
* 연세대학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
* [[7월 1일]]
* 노태우 대통령은 새 대법원장에 정기승, 감사원장에 김영준을 내정하고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했다.
* 사법연수원생 181명과 민변은 정기승 대법원장 지명 반대성명을 발표하였다.
* 한국이동통신이 국내 최초로 휴대전화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 [[7월 2일]]
* 국회는 노태우 대통령의 [[정기승]] 대법원장 내정자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다.
* 협성계공 노동자 문송면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다.
* 작가회의 회장단은 기자회견에서 '남북작가회담'을 제의하였다.
* 소련 공산당은 특별 당 대회에서 모든 간부의 10년 임기제를 채택하였다.
* [[7월 3일]]
* 이란항공 655편 A300기가 페르시아 만 호르무즈 해협 상공에서 미 해군 함정 빈센스 함에서 발사된 미사일에 격추되어 탑승자 290명이 전원 사망했다.([[USS 빈센스 함 사건]])
* 북한 조선로동당 연락사무소장 김춘삼이 사망했다.
* [[7월 4일]]
* 50개 재야 및 종교단체, 시민, 학생 등이 경찰의 보호/허용 하에 '통일염원 범국민 평화 대행진'을 2시간 동안 개최했다.
* 작가회의는 7.4 남북공동선언 16주년을 맞이해 남북작가회담을 제안하였다.
* 에너지경제연구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5일]] - 일본 리쿠르트사 미공개 주식을 나카소네 전 총리 등의 비서에게 양도한 사실이 발각되었다.([[리쿠르트 사건]])
* [[7월 7일]]
* [[노태우]] 대통령이 남북교류 제안과 미북관계 개선 협조를 담은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7.7선언)'을 발표했다.
* '호국청년연합회'가 창단되었다.
* [[7월 8일]] -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약칭을 '중공' 대신 '중국'으로 공식 호칭키로 결정하였다.
* [[7월 10일]] - 한국선박안전기술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11일]]
* 부일노조가 편집국장 추천제를 요구하며 전면 파업에 돌입하였다.
*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은 재래식 무기 감축의 장벽 제거를 위한 전 유럽 정상회담을 제의했다.
* 동아방송 회복준비위는 문공부에 (재)동아방송 설립허가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 북한 조평통은 남한측의 7.7선언을 거부하고 남북연석회의를 주장했다.
* [[7월 13일]]
* 아산미술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가 설립되었다.
* 갤럽조사연구소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15일]]
* '역사교육을 위한 교사모임'이 결성되었다.
* <인천일보>가 창간되었다.
* [[필립 글래스]]가 만든 [[지붕 위의 1000대의 비행기]]가 [[오스트리아]] [[빈 국제공항]]에서 세계 초연됐다.
* [[7월 16일]]
* '연구전문기술직노동조합협의회(이하 연전노협)'이 결성되었다.
* 정우엔지니어링, 한국가스안전공사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조지 슐츠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 [[7월 17일]] - 제40주년 제헌절 기념식이 사상 첫 국회 주관으로 치뤄졌다.
* [[7월 18일]] - 매일신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19일]]
* 문공부는 벽초 홍명희 등 북한정권 협력문인 5명을 뺀 나머지 월북문인 1백여 명의 해방 전 작품들을 해금했다.
* 전국 축협 조합원 3천여 명은 여의도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를 벌였다.
* '대한민국 팔각회'가 설립되었다.
* [[7월 20일]]
*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민주단체협의회(이하 조통협)'가 결성되었다.
* <경기교육신보>가 창간되었다.
* [[7월 22일]]
* 서건추는 해체와 동시에 서총련과의 통합을 결의하였다.
* '경기남부지역노동조합연합 안양지구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7월 23일]]
* 문송면의 죽음을 계기로 원진레이온 산재 피해자들이 '원진대책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일본 교도통신은 박철언 보좌관이 6월에 노태우 대통령의 특사로 소련과 중국을 방문했음을 보도했다.
* [[7월 25일]]
* KBS노조는 방송민주화와 정구호 사장 등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하였다.
* 버마의 군사독재자 우 네 윈 장군이 집권 26년만에 총리직에서 사퇴하고 군부 강경파인 세인 르 윈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 [[7월 26일]]
* 전국 철도기관사 1천 4백여 명이 부산행 직통열차 대전 교대, 시간외 수당 근로기준법 적용, 근로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을 벌였다.(7.26 철도기관사 총파업)
*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의장이 김재순 국회의장에게 남북연석회의 개최 및 불가침선언, 올림픽문제 토의를 제안하였다.
* [[7월 29일]] - 국회 5공특위는 일해재단 등 30건을 1차 조사대상으로 확정하였다.
* [[7월 30일]] -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의장이 미국 의회에 '평화협정회의'를 제안하였다.
==== 8월 ====
* [[8월]] 중: 서울문화사가 <우먼센스>를 창간하였다.
* [[8월 1일]]
* 문익환 등 각계 인사 1,014명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 및 범민족대회 추진본부 발기 취지문’을 발표했다.
* 전국도시노점상협의회 회원과 학생 1천 5백여 명은 고려대에서 '노점상 탄압 규탄대회'를 개최되었다.
* 연합철강 부산공장 노동자 2천여 명은 동국제강의 경영권 포기 등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 서울경제신문이 8년만에 복간되었다.
* [[8월 2일]]
* 전대협은 국토순례대행진 및 8.15 남북학생회담을 강행키로 결정했다.
* 서울신문노조 집행부 등 50명이 무기한 농성에 돌입하였다.
* [[8월 3일]]
*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세계대회 및 범민족대회 추진본부'가 결성되었다.
* '전국대학강사협의회(이하 전강협)'가 결성되었다.
* 방송위원회는 새 위원장직에 여해 [[강원용]] 목사를 선출하였다.
* 버마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여 날로 거세지는 민주화 요구 시위에 대한 무력 진압에 나섰다.
* 한국광고영상제작사협회가 설립되었다.
* [[8월 4일]] - 선반공 소창영이 [[MBC 뉴스데스크]] 방송 도중 스튜디오에 난입해 귓속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소리쳤다.([[내귀에 도청장치]] 사건)
* [[8월 5일]]
*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 직무대리 [[오홍근]] 기자가 출근 도중 괴한 3명에 의해 피습당했다.([[오홍근 테러 사건]])
* 헌법재판소법이 제정되었다.
* 한국청소년공연예술진흥회가 세워졌다.
* 전북일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8월 6일]]
* 치안본부는 전대협의 8.15 남북학생회담 추진을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원천 봉쇄할 것을 천명하였다.
* 울산지역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부산지역노동조합총연합(이하 부산노련)가 결성되었다.
* 가수 조용필이 중국 베이징에서 공연을 열었다.
* [[8월 7일]] - '제1기 통일선봉대 발대식'이 고려대 안암캠에서 전대협 주최로 개최되었다.
* [[8월 8일]] - 버마 전역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군부투쟁이 일어났다. 특히 랭군에서는 10만여 명의 시민들이 가두 투쟁을 벌였다([[8888 항쟁]]).
* [[8월 9일]]
* 캐나다인 [[NHL]] 선수 [[웨인 그레츠키]]가 [[에드먼턴 오일러스]]에서 [[LA 킹스]]로 이적되었다.
* 제30회 서울대 총연극회 정기공연에서 상연된 민중극 <통일밥> 작가 주인석이 국보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연행되었다.
* 전대협 주최 '국토순례대행진 출정식'이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었다.
* [[8월 10일]]
* 체신부와 한국전기통신공사는 소련 등 20개 미수교국과의 국제자동전화를 개통한다고 밝혔다.
* '삼청교육대 진상규명 전국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8월 11일]]
* 전국 22개 대학가에서 '8.15 남북학생회담 출정식'이 개최되었다.
* 언노협, 기협, 중앙일보 노조는 오홍근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 테러사건에 대해 진상규명과 배후규명 촉구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8월 12일]]
* 국회 광주특위는 최규하 전 대통령 증언채택안을 표결로 채택하였다.
* 전국 22개대생 6천여 명이 8.15 남북학생회담 출정식 및 저지규탄대회 후 가두시위를 벌였다.
* 대한변협은 남북학생회담 반대성명을 발표했다.
* 조선대 교수협이 이돈명 변호사를 새 총장으로 선출하였다.
* 종전의 서울항공이 '아시아나항공'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 '경기남부지역노동조합연합 안산지구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르 윈 장군이 집권 17일만에 버마 총리직에서 하야하였다.
* [[8월 13일]]
* 김영삼 민주당 총재가 8.15 남북학생회담과 관련해 폭력행위를 즉각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 현대차가 국내 자동차업계 최초로 엑셀 147대를 일본에 수출하였다.
* '전대협 2기 발족식'이 연세대 신촌캠 노천극장에서 개최되었다.
* [[8월 14일]]
* 프로권투선수 문성길이 WBA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태국의 카오코 갤럭시를 꺾어 챔피언으로 등극하였다.
* 20세기폭스코리아가 설립되었다.
* [[8월 15일]]
* 노태우 대통령은 광복절 기념사에서 '남북한 최고 책임자 회담'을 제의하였다.
* 서울시는 올림픽 기간을 전후해 집회금지 구역 '평화구역'을 37개동을 제외한 전 지역으로 확정하였다.
* 서울지검 특수1부는 최열곤 서울시교육감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하였다.
* 대학생 6천여 명이 연세대 신촌캠에서 '8.15 민족해방제 및 출정식'을 개최하였다. 그러나 경찰의 봉쇄로 학생 1,539명이 연행되었다.
* [[8월 16일]]
* 전대협은 연세대 신촌캠에서 ‘8·15 남북학생회담 원천봉쇄 규탄대회 및 통일염원제’를 개최하였다.
*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이 개최되었다.
* [[8월 17일]]
* 정부는 서울 올림픽 관련 시설과 성화봉송 루트가 포함된 전국 76개시 89개군을 '올림픽 평화지역'으로 선포하였다.
* 행정개혁위는 국가원로자문위 및 사회정화위 폐지안을 제출하였다.
* 서울 여의도 KBS 사옥 뒤편에 '국제방송센터(IBC)'가 문을 열었다.
* 재야문화운동단체 '우리마당' 사무실에 괴한 4명이 침입해 난동을 벌였다.(우리마당 피습사건)
* 전교협은 최열곤 서울시교육감 구속과 관련하여 청렴한 교육자 출신 교육감 선출 등 4개항을 촉구하였다.
* 동아컴퓨터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경기일보>가 창간되었다.
* [[8월 18일]]
* 한국예술실연자단체협의회가 설립되었다.
* 북한측은 노태우 대통령의 남북한 최고책임자 회담 제의에 관해 반대입장을 밝혔다.
* [[8월 19일]] - 마웅 마웅 법무장관이 새 버마 대통령 겸 당 의장직에 선출되었다.
* [[8월 20일]]
* 서울오페라단이 창단되었다.
* 이란-이라크 양국이 휴전협정을 발효시킴에 따라 8년간에 걸친 [[이란-이라크 전쟁|긴 전쟁]]이 끝났다.
* [[8월 21일]]
* 서울올림픽 국제학술회의가 <후기산업시대의 세계공동체>를 주제로 하여 개막되었다.
* 민가협은 서울 대학로에서 '양심수 전원석방 촉구 시민가요제'를 개최하였다.
* '전북노동조합연합회(이하 전북노련)'가 결성되었다.
* [[8월 23일]]: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가 스위스 글리온에서 개최되었다.
* [[8월 25일]]
* MBC노조가 공정방송의 제도적 보장을 요구하며 한국 방송사상 처음으로 파업에 돌입하였다.
* 한국노동연구원이 설립되었다.
* 미국 유명 록밴드 [[메탈리카]]가 네 번째 정규 앨범 <[[...And Justice for All]]>을 발매했다.
* [[8월 27일]] - 서울올림픽 성화가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 [[8월 29일]] - 제52차 국제PEN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9월 ====
* [[9월 1일]]
* 1988 서울올림픽 한국선수단 결단식이 개최되었다.
* <중도일보>가 15년만에 복간되었다.
* [[9월 2일]]
* 정부는 일반 공산권 자료를 전부 공개 후 <로동신문>과 영상자료 등은 제한공개하기로 결정하였다.
* 경찰은 [[자본론]]을 출간한 '이론과실천' 대표 김태경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 '전국민중민주운동연합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9월 3일]]
* 북한측은 1988 서울 올림픽에 불참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 서울 용산에서 한 임산부가 미군 10대 자녀들에게 구타당해 유산되었다.
* '올림픽을 빙자한 민중운동 탄압 규탄대회'가 개최되었다.
* 한국역사연구회가 설립되었다.
* '나라사랑청년회(이하 나사청)'가 결성되었다.
* [[9월 6일]]
* 한국생산성본부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북한의 김일성은 연방제 논의를 전제로 남북정상회담 용의를 밝혔다.
* [[9월 7일]] - 서울 역삼동 무역센터가 문을 열었다.
* [[9월 8일]]
* 전남 여수지역 국민학교 교사 21명이 국민학교 최초로 교사협의회를 발족하였다.
* '양심수 석방을 위한 서울시민 결의대회'가 개최되었다.
* 북한의 김일성은 고려연방제 통일안을 논의하기 위해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의했다. 이 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미군 철수와 남북 상호불가침 체결이 들어 있었다.
* [[9월 9일]]
* 서총련 서부지구 소속 대학생 40여 명이 한미행정협정 폐기 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 정문연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 2권을 발간하였다.
* [[9월 10일]]
* 국제인권옹호 한국연맹은 한미행정협정의 전면개정을 정부와 각 정당에 발송하였다.
* 종전의 반공협, 공민협, 공해추방운동청년협의회 등 3개 단체가 통합하여 '공해추방시민운동연합(이하 공추연)'이 결성되었다.
* '전두환-이순자 구속 처단 및 평화선 철폐 전국대회'가 개최되었다.
* 전국 대학생들은 연세대에서 '올림픽 단독개최 및 독재 연장음모 분쇄를 위한 수도권 청년학생 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 [[9월 11일]]
* 종전의 인천국민운동본부가 발전적 해체되어 '인천지역민족민주운동연합'으로 새로 출범하였다.
*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30만 명이 모여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9월 12일]]
* 대한항공 906편이 소련 영공을 처음 통과하였다.
* '전국화물운송노동조합연맹'이 결성되었다.
* '국제야외조각전'이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개최되었다.
* 신애전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9월 13일]]
* 민통련은 단독 올림픽 개최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전국수세폐지대책위원회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9월 14일]]
* 정문연이 '퇴계학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 '진보정당 건설 준비연합'이 결성되었다.
* '영어교육을 위한 교사모임'이 결성되었다.
* [[9월 15일]]
* [[헌법재판소]]가 발족되었다.
* '용인민주청년회'가 결성되었다.
* [[9월 16일]]
* 한국영화업협동조합 소속 업자 80여 명이 미국 UIP 직배에 반대하며 항의농성을 벌였다.
* 한국기계공업진흥회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9월 17일]]
* '''[[1988 서울 올림픽]] 개막식이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 서총련 소속 대학생 1백여 명은 단독올림픽 반대 전단을 살포하였다.
* 전국 도시노점상 3천여 명은 경희대에서 '노점상 올림픽 문화제'를 열어 노점상 강제단속 중지와 빈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였다.
* 전국화물운송노동조합연맹이 결성되었다.
* [[9월 18일]]
* 역도선수 전병관이 서울올림픽 52kg 결승에서 은메달을 땄다.
* 소 마웅 장군이 이끄는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가 쿠데타를 일으켜 버마 정부의 전권을 장악했다.
* [[9월 19일]]
* 영화감독 50여 명이 미국 UIP의 영화 직배에 항의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쇼와 일본 덴노가 각혈로 병세가 중해지기 시작했다.
* [[9월 20일]] - 레슬링선수 안대현이 서울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2kg급에서 동메달을 땄다.
* [[9월 21일]]
* 레슬링선수 김영남이 서울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4kg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레슬링선수 이재석이 서울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52kg급에서 동메달을 땄다.
* 대구지법 안동지원 형사합의부는 강간범의 혀를 깨문 변월수 여인에게 징역 6개월 및 집유 1년을 선고했다.
* 소 마웅 SLORC 위원장이 버마의 새 수상으로 취임하였다.
* [[9월 22일]]
* 권투선수 변정일이 불가리아 선수 흐리스토프와의 서울올림픽 복싱 2회전에서 편파판정으로 탈락했다.
* 세계복싱연맹은 변정일의 패배에 대한 한국팀의 제소신청을 기각했다.
* 여연은 성폭행범 혀를 깨문 변 여인의 유죄판결을 인정하지 못한다고 성명을 발표하였다.
* 대한무궁화중앙회가 발족되었다.
* [[9월 23일]] - 서울시내 32개 영화관이 미국 UIP 한국지사의 <위험한 정사> 직배에 항의하며 휴관했다.
* [[9월 24일]]
* 서울시경은 1987년 4월 통민당 관악지구당 창당방해사건 관련자인 '용팔이' 김용남을 구속하였다.
* 육상 100m 결승에서 캐나다 벤 존슨이 미국 칼 루이스를 물리치고 9.79로 세계신기록을 수립하였다.
* 체조선수 박종훈과 역도선수 이형근이 서울올림픽에서 각각 동메달을 땄다.
* 일본 수영선수 스즈키 다이치가 서울올림픽 남자배영 1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는 아시아인으로서 25년만이다.
* 미국 수영선수 트로이 델비 등 3명이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사자석고상을 훔치다가 경찰에 입건되었다.
* 미국영화 <위험한 정사>가 서울 명동 코리아극장 등 6개 영화관에서 개봉되었다. 이는 한국영화 사상 첫 외국영화 직배 사례였다.
* 버마 정부는 정식 국명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하였다.
* 북한-콜롬비아 양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 [[9월 25일]] - 유도선수 김재엽이 서울올림픽 유도 60kg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9월 26일]]
* 유도선수 이경근이 서울올림픽 유도 66kg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미국 NBC는 점증하는 한국인의 반미 감정을 우려해 자사 올림픽 취재팀에게 제복을 입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 [[9월 27일]]
* 캐나다 육상선수 벤 존슨이 100m 경기에서 금지약물을 사용한 사실이 밝혀져 기록이 취소되고 금메달이 박탈당했다. 당시 2위를 기록했던 칼 루이스가 금메달을 승계하였다.
* IOC 선수분과위는 약물복용에 반대하는 <서울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 하얏트호텔 석고상을 훔친 미국 선수 3명이 서울 용산경찰서에 출두해 해명하고 사과성명을 냈다.
* [[9월 29일]]
*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이 서울올림픽 여자핸드볼 결승에서 소련을 꺾고 금메달을 땄다.
* 레슬링선수 김태우가 서울올림픽 자유형 90kg급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민청련 부설 '민족민주운동연구소'가 세워졌다.
* [[9월 30일]]
* 양궁선수 김수녕-왕희경-윤영숙이 서울올림픽 개인전 결승에서 각각 금-은-동을 석권하였다.
* 탁구선수 현정화-양영자 조가 서울올림픽 여자 복식 결승에서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 한국 여자하키 대표팀이 서울올림픽 결승전에서 호주에 0-2로 패해 은메달을 땄다.
==== 10월 ====
* [[10월]] 중
* '전국노점상연합회'가 결성되었다.
* 민청련 산하 '동서울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하 동민청)'가 결성되었다.
* '민족통일민주주의노동자동맹'이 결성되었다.
* [[10월 1일]]
* 한국 양궁 대표팀이 서울올림픽 남녀 단체전 전부 금메달을 석권하였다.
* 탁구선수 유남규-김기택이 서울올림픽 남자탁구 단식 결승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휩쓸었다.
* 레슬링선수 한명우가 서울올림픽 자유형 82kg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소련 최고회의는 새 간부회의장에 그로미코 대신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선출하였다.
* [[10월 2일]]
* 권투선수 김광선과 박시헌이 서울올림픽 복싱 결승에서 각각 금메달을 땄다.
* 1988 서울올림픽 폐막식이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 한국 선수단이 종합 4위를 달성하여 역대 최고성적을 거두었다.
* [[10월 3일]] - 법무부는 개천절을 맞아 공안사범 52명을 포함한 재소자 1,026명을 가석방시켰다.
* [[10월 4일]]
* 노태우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남북정상회담 조속개최를 거듭 촉구하였다.
* 유고슬라비아 서울무역사무소가 개설되었다.
* [[10월 5일]] - 피노체트 칠레 대통령이 국민투표에서 반대표 53%를 받아 패배하여 1997년까지의 임기 연장에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야당 측의 사퇴 요구를 거부하였다.
* [[10월 6일]]
* 노동법 개정 노조특위가 전국노운협 노동법개정특위와 통합하여 '88 전국 노동법 개정 투쟁본부(이하 전국투본)'를 결성하였다.
* 서총련 소속 8개 대학생 23명은 5공 비리 관련자와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정호용 의원 사무실을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
* 서울 장애인올림픽 선수촌이 문을 열었다.
* [[10월 7일]] - 한국방송광고공사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 [[10월 8일]]
* 영등포교도소 재소자 [[지강헌]] 등 12명이 충남 공주교도소 이감 도중 호송버스에서 교도관을 찌르고 서울로 도주했다(지강헌 탈주사건).
* 서울시는 구 양정고 자리에 '손기정공원'을 조성하였다.
* [[10월 9일]]
* 서머타임제가 1년 만에 전국에서 일제히 해제되었다.
* 미국 드라마 <코스비 가족 만세>가 KBS2에서 더빙 방영되었다.
* [[서초동]] 꽃마을에 화재가 발생했다.
* [[10월 10일]]
* 광주-전남지역 일간지 <무등일보>가 창간되었다.
* 한국공업표준협회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0월 11일]] - 미국과 필리핀은 6개 미군 기지의 사용 대가로 1990~1991년에 5억 달러씩 지불하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하였다.
* [[10월 13일]] - 대림그룹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10월 14일]]
* 정부는 1991년부터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키로 하고 연내에 금리자유화를 실시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 광주 전남대와 조선대생 150명이 광주 미국 문화원을 기습 점거하였다.
* [[10월 15일]]
* 민통련 등 각 민주단체들은 '광주학살/5공비리 주범 전두환-이순자 구속 처벌을 위한 투쟁본부'를 결성하였다.
* 1988 서울장애자올림픽 개막식이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 밤 9시 40분경. 지강헌 일당 4명이 서대문구 북가좌동 고 모 씨의 집에 잠입해서 고 씨의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노태우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평양방문 용의 표명에 대해 국보법 선 폐지를 조건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 [[10월 16일]] - 지강헌의 자살과 부하들의 검거로 인질극이 종료되었다.
* [[10월 17일]] - '강제징집/삼청교육 사망자 유가족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10월 18일]]
* 노태우 대통령이 한국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한반도에 화해와 통일을 여는 길>이란 주제로 연설하였다.
* 한국석유개발공사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 [[10월 19일]] - '신애전자 노동조합 탄압 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0월 20일]] - 노태우-레이건 한미 양국 정상이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 [[10월 22일]] - 유고 연방의회는 시장경제체제를 대폭 도입한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10월 23일]] - <[[가면라이더 BLACK RX]]>가 일본 MBS에서 첫 전파를 탔다.
* [[10월 25일]]
* 주 헝가리 한국대표부가 부다페스트에 개설되었다.
* 삼청투위 측은 삼청교육대 진상규명을 위한 공정조사기구 구성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국철 [[안산선]] [[금정역]] ~ [[안산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 조선일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0월 26일]] - 경북대 등 학생 10명이 대구지검 공안검사실, 대구 미국문화원 등 4곳에서 시위 및 점거농성을 벌였다.
* [[10월 27일]]
* 정부는 납/월북 예술인 작품 중 1948년 8월 15일 이전에 낸 순수예술작품에 한해 해금시킨다고 발표하였다.
* 불교정토구현전국승가회는 10.27 법난 8주년을 맞이하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10월 28일]]
* 전국 각 대학별로 '광주학살/5공비리 주범 전두환-이순자 구속처벌 특별위원회'가 속속 결성되었다.
* '부정비리 주범 전/이 구속처벌 및 광주학살 5적 처단을 위한 서울지역 학생투쟁연합(이하 학투련)'이 결성되었다. 산하에 '전/이 체포결사대'도 같이 구성되었다.
* [[10월 29일]]
* 교통부는 김포공항의 심야비행을 전면 금지시켰다.
* [[세가]]는 16비트 게임기 '[[메가드라이브]]'를 일본에 발매하였다.
* [[10월 30일]] - '전국농민단체협의회(이하 전농협)'가 결성되었다.
==== 11월 ====
* [[11월]] 중 - 도서출판 서화가 순정만화잡지 <르네상스>를 창간하였다.
* [[11월 1일]] - 동자부는 2일 0시를 기해 석유류 제품 가격을 4.7%로 내리겠다고 발표하였다.
* [[11월 2일]]
* 국회 5공특위는 일해재단 관련 비리 조사를 위한 1차 청문회를 개최하였다. 이는 헌정사상 최초의 국회 청문회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 전대협은 '제1회 전국대학생 통일노래한마당'을 전남대 5.18 광장에서 개최하였다.
* [[11월 3일]]
* 노태우 대통령이 말레이 등 아-태 4개국 순방차 출국하였다.
* 전국 대학가에서 학생의 날을 맞이해 '전두환-이순자 구속을 위한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 [[11월 4일]]
* '외국기업노동조합협의회 결성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이화여자대학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1월 5일]]
* 전국 15개 도시에서 '전-이 구속을 위한 궐기대회'가 동시 개최되었다.
* '학술단체협의회(이하 학단협)'가 결성되었다.
* [[11월 8일]] - [[미국]] [[공화당(미국)|공화당]] 후보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가 41대 대선에서 [[민주당(미국)|민주당]] 후보 마이클 듀카키스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11월 10일]]
*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을 위한 준비모임'이 결성되었다.
* 박세길이 쓴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1권이 세상에 나왔다.
* [[11월 12일]]
* 민통련은 각 민주단체들과 함께 '반민주악법 개폐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검찰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와 관련해 형 전기환, 사촌동생 전우환, 동서 홍순두 등 세 명을 구속하였다.
* '구로역사연구소'가 결성되었다.
* [[11월 13일]] - 전국투본은 노동자 5만여 명이 연세대 노천극장에 모인 가운데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노동악법 개정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들은 폐막 뒤 여의도까지 가두 행진을 벌였다.
* [[11월 15일]] - 아라파트 PLO 의장이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이스라엘 멸망노선 대신 생존권을 인정한다는 공존공생의 의지를 밝혔다.
* [[11월 17일]]
* 전농협은 여의도광장에서 '농축산물 수입개방 저지 및 제값 받기 전국농민대회'를 개최하였다.
*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노동자 6백여 명이 구내식당에서 작업을 거부하고 농성을 벌였다.
* [[11월 18일]] - 국회 광주특위는 청문회를 열고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증인으로 출석시켜 발포명령자 여부에 대해 추궁하였다.
* [[11월 19일]]
* 서울 대학로에서 '전-이 구속을 위한 제2차 서울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 유고 최대민족인 세르비아인 130만 명이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민족차별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 [[11월 20일]] - 전교협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민주교육법 쟁취 전국교사대회'를 개최하였다.
* [[11월 21일]] - 국회 문공위는 1980년 언론사태 진상규명 청문회를 개최하였다.
* [[11월 22일]] - <전북도민일보>가 창간되었다.
* [[11월 23일]]
*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재임 중 일어났던 온갖 비리를 시인하며 사과 및 재산 전액 국가헌납 의사를 표명한 후 [[백담사]]로 은둔하게 되었다.
* 소련령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두 공화국에서 130만명의 군중시위로 인종분규가 확산되었다.
* [[11월 24일]]
* 비 공산주의계 인사인 [[네메트 미클로시]]가 헝가리 공산정권 총리로 취임하였다.
* '경기남부지역노동조합연합 수원지구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1월 25일]]
* 서울 여의도에서 상경 농민 1만여 명이 농협 민주화를 요구하며 연좌시위를 벌였다.
* 스위스 글리온에서 남북한 개신교 지도자들이 평화통일을 위한 공동성명과 기도문을 채택하였다.
* [[일본]] 도쿄도 아다치구 아야세에서 불량학생들이 여고생 후루타 준코를 납치했다.
* 고단샤 월간 애프터눈 2호에서 <[[오! 나의 여신님]]>이 처음으로 연재되었다.
* [[11월 26일]]
* 서총련 소속 학생 42명이 전두환-이순자 부부 처벌을 요구하며 민정당 연수원에서 기습 농성을 벌였다.
* 국내 원달러 환율이 1[[미국 달러|달러]]: 600원 대에 진입했다. [[3저호황]]의 정점이었다.
* 종전의 언노협이 발전적 해체되어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하 언노련)이 새로 결성되었다.
* [[11월 27일]]: 종전의 <일요일 밤의 대행진>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로 개편되어 MBC에서 새로이 전파를 탔다.
* [[11월 28일]]: 경기교육신보가 <기호일보>로 제호를 바꾸었다.
==== 12월 ====
* [[12월 1일]]
* 정부와 한은이 '금리자유화 계획'을 발표하였다.
*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이하 극협)와 민족건축인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소련 최고회의는 선거법 개정을 골자로 한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정치개혁안을 승인했다.
* 평화신문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 [[12월 2일]] - 주간지 <[[여성신문]]>이 창간되었다.
* [[12월 4일]] - 민족자주통일불교운동협의회(이하 통불협)가 결성되었다.
* [[12월 6일]] - 민교협 소속 교수 50명이 교육법 개정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12월 7일]] -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소련령 에스토니아]]에서 그동안 사용금지된 에스토니아어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12월 10일]]
* 전국건설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순복음교회 계열 종합일간지 <[[국민일보]]>가 창간되었다.
* 한겨레신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2월 11일]] - '외국기업노동조합협의회(이하 외노협)'가 결성되었다.
* [[12월 12일]]
* 국회 문공위는 허문도, 이진희, 이원홍 등을 증인으로 출석시켜 언론청문회를 속개하였다.
* 현중노조가 수당신설 인상 등 4개항 결렬을 이유로 총파업에 돌입하였다.
*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제8기 4차 회의에서 연형묵을 새 총리로 승인했다.
* [[12월 14일]] - KIST 등 7개 정부출연 연구기관 소속 연구원들이 연전노협의 주도 하에 처우 개선 및 연구 자율성 보장 등을 요구하며 연대파업을 벌였다.
* [[12월 15일]]
* 종전의 계간미술이 <월간미술>로 바뀌었다.
* 매일경제신문사가 국내 최초의 전자신문 'MEET' 서비스를 실시하였다.
* [[12월 16일]] - 강영훈 총리서리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 [[12월 17일]] - 병원노협의 후신인 '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이하 병원노련)'이 결성되었다.
* [[12월 19일]]
* 대한광업진흥공사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라지브 간디 인도 총리가 34년만에 처음으로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국경문제 등 현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 [[12월 21일]] - 프랑크푸르트발 디트로이트행 팬암 103편 B747–121기가 영국 스코틀랜드 로카비 상공에서 공중폭발로 탑승자 259명 전원을 비롯해 총 270명이 숨졌다.([[팬암 103편 폭파 사건]])
* [[12월 22일]] - 서울문화사가 주간 소년만화잡지 <[[아이큐 점프]]>를 창간하였다.
* [[12월 23일]]
*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이하 민예총)'이 결성되었다.
* 아시아나항공이 국내선 취항을 개시하였다.
* [[12월 26일]]
* 문공부는 '백제문화권 정비사업계획'을 발표하였다.
*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북한준비위 및 조선학생위가 축전 초청 관련 남북학생회담을 제의하였다.
* [[12월 28일]]
* 노태우 대통령은 불법시위, 각종 치안사범, 노사분규 등에 대해 공권력을 엄중 행사하도록 지시했다.
* '경기남부지역노동조합연합(이하 경기노련)'가 결성되었다.
* [[12월 30일]] -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상공부에 북한방문서를 제출하였다.
* [[12월 31일]]
* 상공부는 1989년 1월부로 농산물 등 14개 품목 등 22개 수입감시 품목들의 수입을 허용하면서 '수입 감시제도'를 없애기로 했다.
* [[방송문화진흥회]]가 발족되었다.
==== 일자 불명 ====
* <[[아타리 테트리스]]> 아케이드판이 미국에 출시되었다.
=== 가상 ===
* [[1월 16일]]: [[쿠죠 죠타로]]가 [[이집트]] [[카이로]]에서 [[DIO]]를 쓰러뜨림으로써, 전년도 11월 말부터 시작된 [[스타더스트 크루세이더즈|50여 일간의 이집트 원정]]에 종지부를 찍었다.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2월]] ~ [[3월]]: 작중 주요 무대중 하나인 홋카이도에서의 시간대이다. - [[나만이 없는 거리]]
* [[7월 16일]]: [[도쿄]] 중심지에 정체불명의 폭발이 일어나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제3차 세계대전]]을 거쳐 도쿄 재건 작업을 통해 [[네오 도쿄]]로 탈바꿈하게 된다. - [[AKIRA(1988)]][* 원작 만화판에서는 [[1982년]]에 발생한다.][* 또한, 이 날짜는 AKIRA가 일본에서 첫 상영된 날이다.]
* [[12월]]: [[키류 카즈마]]와 [[마지마 고로]]가 [[마키무라 마코토]]를 중심으로 한 카무로쵸 재개발 계획 이권 다툼에 휘말린다. - [[용과 같이 0]]
* 일자불명
* [[1988 서울 올림픽|1988 나고야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 [[라이히-5]]에서 허수아비 미국 대통령 조지 링컨 로크웰이 사망하고[* 같은 해 ~~진짜 대통령이었던~~ 국가안전기획국 국장 로이 콘도 사망했다.], [[쿠 클럭스 클랜|KKK]] 총장이던 [[루이지애나]] 주지사 [[데이비드 듀크]]가 39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 [[겁스 무한세계]]
* [[제3제국]]이 [[일본제국]]과의 ~~[[병림픽]]~~ [[핵전쟁]] 끝에 전세계를 정복하였으나 문명 상태가 정상이 아닌 라이히-4의 현재 연도. - [[겁스 무한세계]]
* [[에반젤린 A.K. 맥도웰]]이 등교 지옥의 저주에 걸려 [[마호라 학원]]에 갇히게 되었다. - [[마법선생 네기마]]
* [[스타로드(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피터 퀼]]이 [[욘두 우돈타(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욘두 우돈타]]가 이끄는 도적단 래비저스에게 납치되어 우주로 끌려갔다.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영화)|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마이클 드 산타|마이클 타운리]]가 처음으로 강도질을 시작했다. 이때 훔친 돈은 카서 시티[* [[맨헌트 시리즈]]의 배경이다.]의 중소 은행에서 1만 달러. - [[GTA 5]]
* [[라이프 온 마스(OCN)|라이프 온 마스]]의 배경연도.
* [[응답하라 1988]]의 1년차 배경연도. 이 해부터 [[1990년]]까지 3년 동안의 시간이 주요 배경이 된다.
* [[해리 포터: 호그와트 미스테리]]의 5학년 배경연도. [[1984년]]부터 7학년 시점인 [[1990년]]까지 이어진다.
== 탄생 ==
=== 실존 인물 ===
* [[1월 1일]]
*[[박두식]]: [[대한민국]]의 [[배우]]
*[[알리야 가라예바]]: 아제르바이잔의 前 리듬체조 선수
* [[1월 2일]]
* [[김시후]]: [[대한민국]]의 [[배우]]
* [[아케사카 사토미]]: [[일본]]의 [[성우]]
* [[나디아 나딤]]: [[덴마크]]의 축구선수
* [[1월 3일]]
* [[미즈구치 미카]]: [[일본]]의 [[작사#s-1]]
* [[야마모토 카즈토미]]: 일본의 성우
* [[조니 에반스]]: [[북아일랜드]]의 축구 선수
* [[1월 5일]] - [[나성용]]: [[한국]]의 [[기아 타이거즈]] 3군[* 재활군] 배터리코치[* 우리가 아는 [[나성범]]의 형이다]
* [[1월 7일]]
* [[임주은]]: 한국의 배우
* [[Hardwell]]: [[네덜란드]]의 [[DJ]]
* [[1월 9일]]: [[고명진(축구선수)|고명진]]: 한국의 [[FC 서울]] 소속 [[축구 선수]]
* [[1월 11일]] - [[최승준]]: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1월 12일]]
* [[김현수(1988)|김현수]]: 대한민국의 [[LG 트윈스]] 소속 [[야구]] 선수
* [[후루키 노조미]]: 일본의 성우
* [[1월 13일]]
* [[쿠로사키 마온]]:일본의 가수, 성우
* [[1월 14일]] - [[조르디]]: [[프랑스]]의 유명 [[가수]]
* [[1월 15일]] - [[Jun.K]]: 한국의 가수. [[2PM]]의 [[보컬]]
* [[1월 16일]]
* [[FKA Twigs]]: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 [[니클라스 벤트너]]: [[덴마크]]의 축구 선수
* [[최지성(프로게이머)|최지성]]: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 [[1월 22일]] - [[마르셀 슈멜처]]: [[독일]]의 축구 선수
* [[1월 25일]] - [[유주혜]]: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 [[1월 31일]] - [[김보겸]]: [[아프리카TV]]유명 게임 [[BJ]], [[유튜버]]
* [[2월 3일]]
* [[규현]]: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 [[그레고리 판데르빌]]: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 [[2월 4일]] - [[이재민(e스포츠)|이재민]](Zefa):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 [[2월 6일]]- [[전동석]]: [[뮤지컬]]배우
* [[2월 7일]]
* [[카고 아이]]: 일본의 가수, [[걸그룹]] [[모닝구 무스메]] 전 멤버
* [[이준(배우)|이준]](이창선): 연기자
* [[제이통]]: 한국의 가수, [[래퍼]]
* [[정수인(배우)|정수인]]: 한국의 배우
* [[2월 8일]]
* [[사사키 노조미(모델)|사사키 노조미]]: 일본의 [[모델]] 겸 배우
* [[헤나투 아우구스투]]: [[브라질]]의 축구 선수
* [[2월 9일]] - [[권성혁]]: 한국의 성우
* [[2월 10일]]
* [[니시 아스카]]: [[일본]]의 [[성우]]
* [[야마무라 히비쿠]]: 일본의 성우
* 현우진: 한국의 인강 강사
* [[2월 11일]] - [[폴킴]]: [[대한민국]]의 가수
* [[2월 12일]]
* [[니콜라스 오타멘디]]: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에이쿠라 나나]]: 일본의 배우
* [[오우사키 치요]]: 일본의 성우
* [[2월 14일]] - [[앙헬 디 마리아]]: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2월 15일]] - [[후이 파트리시우]]: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 [[2월 16일]] - [[김수현(배우)|김수현]]: 한국의 [[배우]]
* [[2월 18일]] - [[최강창민]]: 한국의 가수, 그룹 [[동방신기]]의 멤버
* [[2월 19일]] - [[이리노 미유]]: 일본의 성우
* [[2월 20일]]
* [[기보배]]: 한국의 여자 [[양궁]] 선수
* [[리아나]]: [[바베이도스]] 출신의 슈퍼스타
* [[2월 22일]] - [[고우리]]: 한국의 래퍼, 걸그룹 [[레인보우(아이돌)|레인보우]]의 멤버
* [[2월 23일]]
* [[Kevin]]: [[호주]]의 가수, 그룹 [[제국의 아이들]]의 멤버
* [[나래(스피카)|나래]]: 한국의 가수, 걸그룹 [[스피카(아이돌)|스피카]]의 멤버
* [[니콜라스 가이탄]]: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2월 26일]]
* [[김연경]]: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 [[은하선]]
* [[이연희(배우)|이연희]]: 대한민국의 배우
* [[2월 28일]] - [[최주환]]: 한국의 [[SK 와이번스]] 소속 야구 선수
* [[2월 29일]]
* [[손수현]]: 한국의 배우
* [[베네딕트 회베데스]]: [[독일]] [[분데스리가]] [[FC 샬케 04]] 소속 독일 출신 현역 [[축구 선수]]
* [[3월 1일]] - [[양현종]]: 한국의 [[기아 타이거즈]] 소속 [[야구]] 선수
* [[이상화(1988)]]: 한국의 前 [[kt wiz]] 소속 [[야구]] 선수
* [[3월 2일]]
* [[민지(스위치베리)|민지]]: 대한민국의 가수 겸 리포터, 호남선 고속도로 모델 [[한국도로공사]]
* [[이성은]]: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 [[3월 3일]] - [[김지원(아나운서)|김지원]]: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3월 6일]]
* [[시몽 미뇰레]]: [[벨기에]]의 [[축구 선수]]
* [[이승훈(스피드 스케이팅)|이승훈]]: 한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3월 8일]] - [[강형호]]: 크로스오버계의 아이돌 [[포레스텔라]]의 멤버
* [[3월 9일]] - [[이희성(1988)]]: 한국의 야구 선수
* [[3월 10일]]
* [[수잔 샤키야]]: [[비정상회담]] 출연자
* [[이반 라키티치]]: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
* [[3월 11일]]
* [[윤지웅]]: 한국의 前 [[NC 다이노스]]] 소속 야구 선수
* [[파비우 코엔트랑]]: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 [[3월 12일]]
* [[김지연(펜싱)]]: 한국의 [[펜싱]] 선수
* [[오오하라 모모코]]: 일본의 성우
* [[3월 13일]] - [[이재은(아나운서)|이재은]]: 한국의 아나운서
* [[3월 14일]]
* [[데구치 아키]]: 일본의 가수. [[SKE48]]의 전 멤버
* [[스테판 커리]]: [[미국]]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소속 농구 선수.
* [[3월 16일]]
* [[이두환]]: 한국의 야구 선수
* [[카타오카 아즈사]]: 일본의 성우
* [[3월 18일]] - [[손아섭]]: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 소속 야구 선수 --므찌나--
* [[3월 19일]] - [[클레이튼 커쇼]]: [[미국]]의 [[야구]] 선수
* [[3월 21일]] - 정혜경: [[대한민국]]의 [[기상캐스터]]
* [[3월 22일]]
* [[반소영]]: 한국의 배우
* [[로티플스카이]]: 한국의 가수, 본명 김하늘
* [[3월 23일]]
* [[곽승석]]: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 [[정병곤]]: 대한민국의 [[두산 베어스 2 * [[카타오카 아즈사]]: 일본의 성우
* [[3월 18일]] - [[손아섭]]: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 소속 야구 선수 --오빠 므찌나--
* [[3월 19일]] - [[클레이튼 커쇼]]: [[미국]]의 [[LA 다저스]] 소속 [[야구]] 선수
* [[3월 21일]] - 정혜경: [[대한민국]]의 [[기상캐스터]]
* [[3월 22일]]
* [[반소영]]: 한국의 배우
* [[로티플스카이]]: 한국의 가수, 본명 김하늘
* [[3월 23일]]
* [[곽승석]]: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 [[정병곤]]: 대한민국의 [[두산 베어스 2군]] 수비코치
* [[3월 25일]] - [[빅 션]]: [[미국]]의 [[래퍼]]
* [[3월 26일]] - [[유병수]]: 한국의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 [[축구]] 선수
* [[3월 27일]] - [[우치다 아쓰토]]: 일본의 [[FC 샬케 04]] 소속 축구 선수
* [[3월 29일]] - [[버블디아]]: 한국의 가수, 뮤지컬배우
* [[4월 3일]] - [[팀 크룰]]: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 [[4월 4일]] - [[은혁]]: 한국의 [[가수]]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 [[4월 5일]]
* [[양지원]]: 한국의 가수 겸 배우, 걸그룹 [[스피카(아이돌)|스피카]]의 멤버
* [[진영수]]: 대한민국의 전 [[프로게이머]]
* [[4월 8일]]
* [[장필준]] : [[한국]]의 [[삼성 라이온즈]] 소속 [[야구]] 선수
* [[노시현]] : [[대한민국]]의 가수, 前 [[가비엔제이]] 멤버
* [[4월 9일]] - [[유이(배우)|유이]]: 대한민국의 배우, 걸그룹 [[애프터스쿨]]의 前 멤버
* [[4월 11일]] - [[정범수(프로게이머)|정범수]]: 한국의 프로게이머
* [[4월 12일]] - [[마나베 아키히로]]: 일본의 [[작곡가]]
* [[4월 13일]] - [[naotyu-|치바 나오키]]: 일본의 [[동인음악]]가
* [[4월 14일]] - [[김신욱]]: 한국의 [[축구]] 선수
* [[4월 15일]] - [[누마쿠라 마나미]]: 일본의 성우
* [[4월 16일]]
* [[김나희(개그우먼)|김나희]]: [[한국]]의 [[개그우먼]]
* [[주일룡]]: [[중국]] 의 배우
* [[4월 18일]] - [[김소라(배우)|김소라]]: 한국의 배우
* [[4월 19일]] - [[코지마 하루나]]: 일본의 아이돌 가수, 걸그룹 [[AKB48]] 팀 A의 멤버~~코장군~~
* [[4월 22일]] - [[김선욱]]: 한국의 피아니스트
* [[4월 23일]] - [[야나세 사키]]: 일본의 [[그라비아]] 아이돌
* [[4월 27일]] - [[김민섭]]: [[한국]]의 [[고양 오리온스]] 소속 농구선수
* [[4월 28일]]
* [[후안 마타]]: [[스페인]]의 축구 선수
* [[하시영]] : 한국의 레이싱모델
* [[신지훈(배우)|신지훈]]: 한국의 배우
* [[4월 29일]] - [[윤하]]: [[한국]]의 가수
* [[5월 2일]] - [[Pile]]: 일본의 가수
* [[5월 3일]] - [[이유애린]]: [[한국]]의 가수,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멤버
* [[5월 4일]] - [[라자 나잉골란]]: [[벨기에]]의 축구 선수
* [[5월 5일]] - [[아델(가수)|아델]]: [[영국]]의 가수
* [[5월 6일]]
* [[유병재]]: [[한국]]의 방송인, 방송작가
* [[타일러 라쉬]]: [[비정상회담]] 출연자
* [[5월 9일]]
* [[이윤아(미스코리아)|이윤아]]: [[한국]]의 [[미스코리아]]
* [[백진우]]: [[한국]]의 前 [[한화 이글스]] 소속 야구 선수
* [[5월 10일]] - [[아담 랄라나]]: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5월 12일]] - [[마르셀루 비에이라]]: [[브라질]]의 [[축구 선수]]
* [[5월 18일]] - [[태양(빅뱅)|태양]]: 한국의 가수, 그룹 [[빅뱅(아이돌)|빅뱅]]의 멤버
* [[5월 21일]]
* [[김주리]]: [[미스코리아]]
* [[박규리]]: [[한국]]의 가수 겸 배우, 걸그룹 [[카라(아이돌)|카라]]의 前 멤버이자 리더, '''~~[[여신]]~~'''
* [[5월 23일]] - [[예정화]]: [[대한민국]]의 스포츠 트레이너
* [[5월 26일]] - [[후안 콰드라도]]: [[콜롬비아]]의 축구 선수
* [[5월 29일]] - [[무아트 알 카사스베]]: [[요르단]]의 [[군인]]
* [[5월 31일]] - [[이수혁(배우)|이수혁]]: 한국의 배우, 패션모델
* [[6월 1일]] - [[하비에르 에르난데스]]: [[멕시코]] 출신의 [[축구 선수]]
* [[6월 2일]]
* [[사이토 아야카]]: [[일본]]의 성우
* [[세르히오 아구에로]]: [[아르헨티나]] 출신의 [[축구선수]]
* [[이승기(축구선수)|이승기]]: [[대한민국]]의 [[전북 현대 모터스]] 소속 [[축구]] 선수
* [[주앙파울로]]: [[브라질]] 출신의 축구 선수
* [[6월 4일]] - [[허팝]]: [[한국]]의 [[유튜브]] [[크리에이터]]
* [[6월 7일]] - [[마이클 세라]]: [[캐나다]]의 배우
* [[6월 9일]]
* [[로런 랜다]]: 미국의 성우
* [[소크라티스 파파스타토풀로스]]: [[그리스]]의 축구 선수
* [[6월 11일]]
* [[구라이 부랄]]: [[터키]]의 [[축구 선수]]
* [[아라가키 유이]]: 일본의 배우
* [[6월 17일]] - [[전혜진(1988)|전혜진]]: [[한국]]의 배우
* [[6월 18일]] - [[금미]]: [[한국 아이돌]] 그룹 [[크레용팝]]의 멤버
* [[6월 19일]] - [[김건필]]: 한국의 [[야구]] 선수
* [[6월 21일]] - [[려욱]]: 한국의 [[가수]]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 [[6월 22일]] - [[포샤 더블데이]]: [[미국]]의 [[배우]]
* [[6월 24일]] - [[닉쿤]]: [[태국]] 출신의 [[한국]] [[아이돌]]이자 [[2PM]]의 멤버
* [[6월 25일]] - [[이슬비(컬링)|이슬비]]: [[대한민국]]의 [[컬링]] 선수
* [[6월 28일]]
* [[와케시마 카논]]: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첼리스트]], [[일러스트레이터]], [[패션 디자이너]]
* [[콘도 유이]]: [[일본]]의 [[성우]]
* [[6월 29일]] - [[에베르 바네가]]: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6월 30일]] - [[백두현(희극인)|백두현]]: 한국의 [[개그맨]]
* [[7월 1일]]
* [[김지효]]: [[한국]]의 기상캐스터
* [[김선형]]: [[한국]]의 [[서울 SK 나이츠]] 소속 [[농구]] 선수
*[[이특]]: 한국의 [[가수]]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이자 리더!
* [[7월 2일]]
* [[이청용]]: [[한국]]의 [[축구]] 선수
* [[최성훈(프로게이머)]]: [[한국]]의 [[프로게이머]]
* [[7월 6일]] - [[하라 나츠코]]: 일본의 배우 및 성우
* [[7월 8일]] - [[임상협]]: [[대한민국]]의 [[부산 아이파크]] 소속 [[축구]] 선수
* [[7월 9일]] - [[장다운]]: [[한국]]의 (前)[[개그우먼]] (現)[[유튜브 크리에이터]]
* [[7월 10일]] - [[후앙 후이밍]]: [[중국]]의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TooDming'
* [[7월 11일]] - [[이구치 유카]]: 일본의 성우
* [[7월 12일]]
* [[박인비]]: 한국의 [[골프]] 선수
* [[타네다 리사]]: 일본의 성우
* [[7월 14일]]
* [[윤용태]]: 한국의 [[프로게이머]]
* [[코너 맥그리거]]: 아일랜드의 [[종합격투기]] [[선수]]
* [[7월 15일]] - [[후지이 미나]]: 일본 출신의 배우
* [[7월 16일]]
* [[홍윤화]]: [[한국]]의 [[개그우먼]]
* [[세르히오 부스케츠]]: [[스페인]]의 [[축구 선수]]
* [[7월 17일]]
* [[아사다 마이]]: 일본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 [[맹기용]]: 한국의 [[요리사|쉐프]]
* [[7월 19일]]
* [[체라미 리]]: [[미국]]의 성우
* [[케빈 그로스크로이츠]]: [[독일]]의 축구 선수
* [[7월 21일]] - [[한으뜸(개그맨)]]: [[한국]]의 (前)[[개그맨]] (現)[[유튜브 크리에이터]]
* [[7월 22일]]
* [[김광현]]: 미국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 [[야구]] 선수
* [[요시타카 유리코]]: 일본의 배우
* [[센게 노리코]]: [[일본]]의 前 황족
* [[7월 24일]] - [[한승연]]: 한국의 가수, 걸그룹 [[카라(아이돌)|카라]]의 멤버
* [[7월 25일]] - [[파울리뉴]]: [[브라질]]의 축구 선수
* [[7월 26일]]
* [[아키모토 사야카]]: 일본의 배우, 아이돌 [[AKB48]] 팀 K의 전 멤버
* [[직 재스퍼]]: 대한민국의 가수 [[M.I.B]]의 멤버
* [[7월 28일]] - 박은미: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 [[7월 30일]]
* [[Don Mills]] : 한국의 래퍼
* [[박세영]] : 한국의 배우
* [[8월 1일]] - [[네마냐 마티치]]: [[세르비아]]의 축구 선수
* [[8월 2일]] - [[에고시 아키노리]]: 일본의 성우, 배우
* [[8월 4일]]
* [[송병구]]: 한국의 [[프로게이머]]
* [[올리버쌤]]: 미국의 유튜버
* [[8월 8일]]
* [[이은성]]: 한국의 배우
* [[베아트리스 엘리자베스 메리]]: [[영국]]의 공주
* [[니니]]: [[중국]]의 배우
* [[8월 9일]]
* [[김사연]]: 한국의 [[kt wiz]] 소속 야구선수
* [[김민주(미스코리아)|김민주]]: 2013 미스코리아 미
* [[야마모토 노조미]]: 일본의 성우
* [[윌리안]]: [[브라질]]의 축구 선수
* [[8월 11일]] - [[정노철]](Nofe): [[대한민국]]의 前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現 [[리그 오브 레전드]] [[코치(스포츠)|코치]]
* [[8월 13일]]
* [[곽석호]]: 한국의 [[프로게이머]]
* [[토미오카 미사코]]: 일본의 [[성우]]
* [[8월 17일]] - [[토다 에리카]]: 일본의 배우
* [[8월 18일]] - [[지드래곤]]: 한국의 가수, 그룹 [[빅뱅(아이돌)|빅뱅]]의 멤버이자 리더.
* [[8월 19일]] - [[송인화]]: 대한민국의 개그우먼,방송인
* [[8월 21일]] -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폴란드]]의 [[축구선수]]
* [[8월 23일]] - [[제레미 린]]: [[미국]]의 [[농구]] 선수
* [[8월 24일]]
* [[김연우(성우)|김연우]]: 한국의 성우
* [[루퍼트 그린트]]: [[영국]]의 배우
* [[요시다 마야]]: [[일본]]의 [[축구선수]]
* [[니콜라이 욘센]]: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노르웨이]]인
* [[8월 25일]] - [[황광희]]: 한국의 [[가수]] [[제국의 아이들]]의 멤버
* [[8월 28일]] - [[김강률]] : 한국의 [[두산 베어스]] 소속 [[야구]] 선수
* [[8월 29일]] - [[아카사카 아카]] : 일본의 [[만화가]]
* [[8월 30일]] - [[서연미]] : 한국의 [[기독교방송|CBS]] 소속 [[아나운서]]
* [[8월 31일]] - [[다비드 오스피나]]: [[콜롬비아]]의 축구 선수
* [[9월 2일]] - [[하비 마르티네스]]: [[스페인]]의 [[축구 선수]]
* [[9월 3일]] - [[제롬 보아텡]]: [[독일]]의 축구 선수
* [[9월 5일]] - [[누리 사힌]]: [[터키]]의 축구 선수
* [[9월 6일]] - [[NS윤지]]: 한국의 가수
* [[9월 8일]]
* [[김경모(프로게이머)]]: 한국의 [[프로게이머]]
* [[타렉 사피딘]]: [[벨기에]]의 [[종합격투기]] 선수
* [[9월 9일]]
* [[카쿠마 아이]]: 일본의 성우
* [[옥냥이]]: 한국의 스트리머
* [[9월 11일]] - [[이용대]]: 대한민국의 [[배드민턴]] 선수
* [[9월 13일]]
* [[오승아]]: [[한국 아이돌]] 걸그룹 [[레인보우(아이돌)|레인보우]]의 멤버
* [[이사배]]: 한국의 뷰티 크리에이터
* [[존박]]: 한국의 가수, 본명 박성규
* [[9월 14일]] - 일본의 아이돌, [[Kis-My-Ft2]]의 [[미야타 토시야]]
* [[9월 16일]] - 일본의 성우 [[하세가와 시즈카]]
* [[9월 18일]] - 일본의 성우 [[이시가미 시즈카]]
* [[9월 20일]] - [[일본]]의 가수, 걸그룹 [[Perfume]]의 멤버 [[놋치|오오모토 아야노]]
* [[9월 22일]] - 한국의 [[두산 베어스]] 소속 야구 선수 [[김재환(야구선수)|김재환]]
* [[9월 23일]] - 한국의 [[트위치 스트리머]] [[서새봄]]
* [[9월 25일]] - 일본의 성우 [[이세 마리야]]
* [[9월 26일]]
* 핀란드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키이라 코르피]]
* 한국의 배우 [[서윤아(배우)|서윤아]]
* [[9월 27일]] - 한국의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전 멤버 [[박은지(1988)|은지]]
* [[9월 28일]]
* [[임태훈(야구선수)|임태훈]]: 한국의 前 [[두산 베어스]] 소속 [[야구]] 선수
* 한국의 가수 [[죠앤(가수)|죠앤]]
* [[9월 29일]]
* 미국의 [[브루클린 네츠]] 소속 [[농구]] 선수 [[케빈 듀란트]]
* [[호주]]의 [[종합격투기]] 선수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
* [[9월 30일]] - 한국의 [[프로게이머]] [[우정호]]
* [[10월 1일]] - 한국의 범죄자 [[이찬희(범죄자)|이찬희]]
* [[10월 2일]] - [[정진호(1988)|정진호]] 한국의 [[한화 이글스]] 소속 [[야구]] 선수
* [[10월 3일]] - [[스웨덴]]의 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
* [[10월 4일]] - 한국의 래퍼, 걸그룹 [[원더걸스]]의 멤버 [[유빈]]
* [[10월 5일]] - 한국의 배우 [[길은혜]]
* [[10월 6일]] - 일본의 배우 [[호리키타 마키]]
* [[10월 7일]]
* 우타이테 [[KK]] / 싱어송라이터 [[카미키타 켄]][* 동일인물이다(...)]
* [[디에고 코스타]]: [[스페인]]의 축구 선수
* [[10월 8일]] - 한국의 요리사, 방송인 [[국가비]]
* [[10월 10일]] - [[이노베이터(래퍼)]] - [[래퍼]]
* [[10월 15일]] - [[독일]]의 축구 선수 [[메수트 외질]]
* [[10월 16일]]
* [[박현식]]: 전 연합뉴스TV 아나운서
* [[김강]] : 한국의 前 [[두산 베어스]] 소속 [[야구]] 선수 現 [[kt wiz]] 타격코치
* [[10월 17일]]
* [[마츠자카 토리]]: 일본의 배우
* [[아이바 아이나]]: 일본의 성우, 가수
* [[오오시마 유코]]: 일본의 배우, 걸그룹 [[AKB48]] 팀 K의 전 멤버
* [[10월 18일]] - 한국의 배우 [[황희(배우)|황희]]
* [[10월 19일]] - 일본의 성우 [[에노키 쥰야]]
* [[10월 20일]]
* 일본의 [[아이돌]] 가수, 걸그룹 [[모닝구 무스메]] 출신 [[니이가키 리사]]
* [[캔디스 스와네포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모델]]
* [[10월 24일]] - 일본의 성우, 가수 [[사쿠라가와 메구]]
* [[10월 28일]] - [[사쿠야 유아]]: 일본의 [[AV 여배우]]
* [[10월 29일]] - [[임치영]]: 한국의 前 [[SK 와이번스]] 소속 [[야구]] 선수
* [[10월 30일]] - [[강승현(게임 해설가)|강승현]]: 한국의 前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現 [[해설자|게임 해설가]]
* [[10월 31일]] - [[황승언(배우)|황승언]]: 한국의 [[배우]]
* [[11월 1일]] - [[이민지(배우)|이민지]]: 한국의 [[배우]]
* [[11월 2일]] - 황은전: 한국의 [[개그우먼]]
* [[11월 3일]] - [[소라루]]: 우타이테
* [[11월 5일]] - [[하라 사유리]]: 일본의 성우
* [[11월 6일]]
* [[김현우(레슬링)|김현우]]: 한국의 [[레슬링]] 선수
* [[엠마 스톤]]: 미국의 배우
* [[11월 7일]] - [[엘사 호스크]]: [[스웨덴]]출신의 [[패션모델]]
* [[11월 8일]] - [[전수진]]: 한국의 배우
* [[11월 9일]]
* [[김헌곤]]: 한국의 [[삼성 라이온즈]] 소속 [[야구]] 선수
* [[이현우(게임 해설가)|이현우]](CloudTemplar): [[대한민국]]의 前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現 [[해설자|게임 해설가]]
* [[11월 11일]]
* [[이성혜]]: 미스코리아
* [[코마츠 미카코]]: 일본의 성우
* [[11월 12일]] - 미국의 [[휴스턴 로케츠]] 소속 [[농구]] 선수 [[러셀 웨스트브룩]]
* [[11월 14일]] - [[저스틴 게이치]] -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11월 16일]]
* [[정영일(야구선수)|정영일]]: 한국의 [[SK 와이번스]] 소속 [[야구]] 선수
* [[치리스]]: 한국의 [[유튜버]]
* [[11월 17일]] - [[에릭남]]: 한국의 가수
* [[11월 18일]] - [[에이스타일#s-2.5|성인규]]: [[한국 아이돌]] A'st1([[에이스타일]])의 前 멤버
* [[11월 20일]] - [[두샨 타디치]]: [[세르비아]]의 축구 선수
* [[11월 21일]] - [[김대우(1988)|김대우]]: 한국의 [[삼성 라이온즈]] 소속 [[야구]] 선수
* [[11월 22일]]
* [[윤재인]]: [[한국]]의 [[아나운서]]
* [[제이미 캠벨 바우어]]: [[영국]]의 [[배우]]
* [[11월 24일]] - [[이재곤]]: 대한민국의 前 [[롯데 자이언츠]] 소속 야구 선수
* [[11월 25일]] - [[자히드 후세인]]: [[비정상회담]] 출연자
* [[11월 26일]]
* [[아타에 신지로]]: [[AAA(일본 그룹)|AAA]]의 멤버
* [[이쿠타 요시코]]: [[일본]]의 성우
* [[후지타 아야]]: [[일본]]의 성우
* [[11월 27일]] - [[이상헌#s-2]]: 한국의 [[프로게이머]]
* [[11월 29일]]
* [[김동건(e스포츠)]]: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 [[시모가마 치아키]]: 일본의 성우, 인형 아티스트
* [[11월 30일]] - [[아오이 에일]]: 일본의 가수
* [[12월 1일]]
* [[임시완]]: 한국의 가수, 배우 [[제국의 아이들]]의 멤버
* [[김신우]]: 한국의 성우
* [[12월 2일]]
* [[황도형]]: [[한국]]의 [[프로게이머]]
* [[알프레드 에녹]]: [[영국]]의 [[배우]]
* [[12월 6일]]
* [[시마자키 노부나가]]: 일본의 ~~꽃미남~~성우
* [[고은아(1988)|고은아]]: 한국의 배우[* [[음력]] [[10월 28일]].]
* [[12월 8일]] - [[이승우(1988)|이승우]]: 한국의 前 [[삼성 라이온즈]] 소속 야구 선수
* [[12월 10일]] - [[네벤 수보티치]]: [[세르비아]]의 [[축구선수]]
* [[12월 12일]] - [[은정(티아라)|은정]]: 한국의 가수, 걸그룹 [[티아라(아이돌)|티아라]]의 멤버
* [[12월 13일]] - [[이관형]](Heart): [[대한민국]]의 前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現 [[리그 오브 레전드]] [[코치(스포츠)|코치]]
* [[12월 14일]] - [[무라세 아유무]]: 일본의 [[성우]]
* [[12월 15일]] - [[스티븐 은존지]]: [[프랑스]]의 축구 선수
* [[12월 16일]]
* [[마츠 후멜스]]: [[독일]]의 [[축구]]선수
* [[박서준]]: [[대한민국]]의 [[배우]]
* [[송원석]]: [[대한민국]]의 [[배우]]
* [[12월 17일]]
* [[김민성]]: 한국의 [[LG 트윈스]] 소속 야구 선수
* [[진선유]]: 한국의 전직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 [[얀 좀머]]: [[스위스]]의 축구 선수
* [[12월 19일]]
* [[알렉시스 산체스]]: [[칠레]]의 축구 선수
* [[옥자연]]: 한국의 배우
* [[12월 21일]] - [[임현준]]: 한국의 [[삼성 라이온즈]] 소속 야구 선수
* [[12월 23일]]
* [[이관형]]: 프로게이머
* [[카메이 에리]]: 일본의 [[걸그룹]] [[모닝구무스메]]의 전 멤버
* [[카시유카|카시노 유카]]: 일본의 가수, 걸그룹 [[Perfume]]의 멤버
* [[12월 24일]]
* [[김재경]]: 한국의 가수, 걸그룹 [[레인보우(아이돌)|레인보우]]의 멤버이자 리더
* [[박진주]]: 한국의 배우
* [[12월 26일]] - [[노토 아리사]]: [[일본]]의 [[성우]]
* [[12월 27일]] - [[옥택연]]: 한국의 배우, [[2PM]]의 멤버
* [[12월 30일]] - [[나가사와 아즈사]]: 일본의 [[AV 여배우]]
=== 가상 인물 ===
* [[1월 1일]]: [[타이 카미야|신태일]] - [[디지몬 어드벤처]]
* [[1월 24일]] - [[마사키 모토하루]]: [[도키메키 메모리얼 Girl's Side]] 2nd
* [[2월 14일]] - [[이시즈에 카나타]] - [[D.D.D]]
* [[3월 10일]]: [[매튜(디지몬 시리즈)|매튜]] - [[디지몬 어드벤처]]
* [[3월 15일]] - [[모모미야 이치고]] - [[베리베리 뮤우뮤우]]
* [[3월 16일]] - [[아마카세 미하루]]: [[다카포 시리즈|다카포]]
* [[3월 22일]]: [[한소라]] - [[디지몬 어드벤쳐]]
* [[3월 27일]] - [[츠키시로 아리스]]: [[다카포 시리즈|다카포]]
* [[4월 4일]] - [[카스가 미소라]]: [[마법선생 네기마]]
* [[4월 6일]] - 키시타니 미사: [[탐정 갈릴레오]]
* [[4월 11일]] - [[하마토라#s-3.6|마오]]: [[하마토라]]
* [[4월 14일]] - [[아라라기 코요미]]: [[이야기 시리즈]]
* [[4월 21일]] - [[카구라자카 아스나]][* 애니판에서는 [[10월 23일]]생으로 되어있으나 여기서는 원작을 따른다.]: [[마법선생 네기마]]
* [[5월 10일]] - [[미야자키 노도카]]: [[마법선생 네기마]]
* [[5월 12일]] - [[요츠바 사츠키]]: [[마법선생 네기마]]
* [[5월 15일]] - [[카키자키 미사]]: [[마법선생 네기마]]
* [[5월 26일]] - [[오코우치 아키라]]: [[마법선생 네기마]]
* [[6월 1일]] - [[아카시 유우나]]: [[마법선생 네기마]]
* [[6월 9일]] - [[시이나 사쿠라코]]: [[마법선생 네기마]]
* [[6월 10일]] - [[나봉선]]: [[오 나의 귀신님]]
* [[6월 28일]] - [[사카키 슈지]]: [[절대가련 칠드런]]
* [[7월 2일]] - [[스카이(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퀘이크]]: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7월 5일]] - [[유키히로 아야카]]: [[마법선생 네기마]]
* [[7월 7일]] - [[센조가하라 히타기]]: [[이야기 시리즈]]
* [[7월 14일]] - [[하카세 사토미]]: [[마법선생 네기마]]
* [[8월 8일]] - [[쿠로카와 레이]]: [[프리티 리듬 레인보우 라이브]]
* [[8월 18일]]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등장인물/카라 루트#s-4.4|조셉 셀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 [[8월 18일]] - [[사오토메 하루나]]: [[마법선생 네기마]]
* [[10월 10일]] - [[루시 스틸만]]: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 [[10월 21일]] - [[무라카미 나츠미]]: [[마법선생 네기마]]
* [[11월 11일]] - [[아야사키 하야테]]: [[하야테처럼!]]
* [[11월 12일]] - [[나가세 카에데]]: [[마법선생 네기마]]
* [[11월 16일]]
* [[아야세 유에]]: [[마법선생 네기마]]
* [[조니 실버핸드]]: [[사이버펑크 2077]]
* [[11월 17일]] - [[타츠미야 마나]]: [[마법선생 네기마]]
* [[11월 21일]] - [[이즈미 아코]]: [[마법선생 네기마]]
* [[12월 3일]]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등장인물/코너 루트#s-6.3|개리 케이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 [[12월 6일]] - [[나루타키 후우카]] & [[나루타키 후미카]][* 일란성 쌍둥이.]: [[마법선생 네기마]]
* [[12월 26일]] - [[노가미 료타로]]: [[가면라이더 덴오]]
일자 불명
* [[강마루(신 구미호)|강마루]] - [[신 구미호]][* 작중 5학년으로 나온다.]
* [[기막힌 유산#s-3.1|공계옥]], [[기막힌 유산#s-3.1|부설악]] - [[기막힌 유산]]
* 노안숙, 최멸치 - [[복학왕]]
* [[뚝딱이]] - [[딩동댕 유치원]], [[모여라 딩동댕]], [[뚝딱tv]]
* [[르네 카디프 시시오]] - [[용자왕 가오가이가]] 시리즈
* 스가와라 키미에 -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 [[에디 골드]] - [[철권 시리즈]]
* [[타이 카미야|신태일]], [[매튜(디지몬 시리즈)|매튜]], [[한소라]], [[모치즈키 메이코]] - [[디지몬 시리즈]]
* [[하네카와 츠바사]], [[오이쿠라 소다치]] - [[이야기 시리즈]]
* [[오즈 카이]] - [[마법전대 마지렌쟈]]
* [[이현(클로저 이상용)|이현]] - [[클로저 이상용]], [[GM: 드래프트의 날]]
* [[프랭클린 클린턴]] - [[GTA 5]]
* [[편상호]] - [[리멤버 - 아들의 전쟁]]
* [[호우즈키 토모에]], [[자이몬 나오토]], [[오리나카 슈지]] - [[역전재판 시리즈]]
* [[태권왕 강태풍]]의 주인공 강태풍을 포함한 주요 등장인물.[* 방영년도인 2000년 기준으로 초등학교 6학년.]
* [[야마우치 사쿠라]] -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 사망 ==
=== 실존 인물 ===
==== 1월 ====
* [[1월 5일]] - [[피트 마라비치]]: 미국의 농구선수
* [[1월 7일]] - [[트레버 하워드]]: [[영국]]의 [[배우]]
* [[1월 8일]]
* [[이대건]]: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전석재]]: 효성여자대학교 설립자
* [[1월 9일]] - [[우노 쥬키치]]: 일본의 영화배우
* [[1월 13일]] - [[장징궈]]: 제6-7대 [[중화민국]] [[총통]]
* [[1월 14일]] - [[게오르기 말렌코프]]: [[소련]]의 [[정치인]]
* [[1월 19일]] -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소련의 지휘자
* [[1월 22일]] - [[김영철]]: 중요무형문화재 '줄타기' 기능보유자
* [[1월 30일]]
* [[박화성]]: 대한민국의 여류 소설가, 수필가
* [[이은성(작가)|이은성]]: 대한민국의 방송작가
==== 2월 ====
* [[2월 5일]] - [[헤더 오루크]]: 미국의 아역 배우
* [[2월 8일]] - [[피에트로 아르카리]]: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2월 15일]] -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 [[유대계 미국인]] [[물리학자]]
* [[2월 26일]] - [[강문봉]]: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 [[2월 29일]] - 이학응: 금속세공 입사장 기능보유자
==== 3월 ====
* [[3월 9일]] - [[김장수]]: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3월 10일]]
* [[오범근]]: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앤디 깁]] - [[영국]]의 가수
* [[3월 13일]] - [[파체스쿠]]: [[브라질]]의 전 축구선수
* [[3월 14일]] - [[루돌프 그람리히]]: 전 분데스리가 회장
* [[3월 18일]] - [[장기범]]: 대한민국의 원로 아나운서
* [[3월 25일]]
* [[김길호]]: 대한민국의 농민운동가
* [[유병진]]: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4월 ====
* [[4월 10일]] - [[곽현정]]: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4월 18일]]
* [[안토닌 푸치]]: [[체코]]의 전 축구 감독
* [[이경희]]: 전 건국대 농과대학장
* [[4월 19일]]
* [[권기옥]]: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여성 파일럿 1호
* [[김연규]]: 전 대한중기공업(현 [[세아베스틸]]) 회장
* [[4월 23일]] - [[가와카츠 덴]]: 전 [[난카이 전기철도]] 회장. 타계 전까지도 자신이 소유한 [[난카이 호크스]]에 애착을 보였다.
* [[4월 27일]] - [[림춘추]]: 제5~6대 북한 부주석
* [[4월 30일]] - [[최윤범]]: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5월 ====
* [[5월 1일]] - [[태완선]]: 제11대 경제기획원 장관, 전 대한중석 회장
* [[5월 5일]] - [[유진곤]]: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 [[5월 9일]] - [[신영일]]: [[들불야학]] 창립 멤버
* [[5월 11일]] - [[김중업]]: 대한민국의 건축가
* [[5월 13일]] - [[고정희]]: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5월 15일]] - [[조성만]]: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5월 18일]] - [[김인순]]: <[[여고 졸업반]]>으로 유명한 가수
* [[5월 23일]] - 키토 아야: <[[1리터의 눈물]]>의 실제 주인공
* [[5월 26일]] - [[최덕수]]: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5월 30일]] - [[장용훈]]: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5월 31일]] - [[안치웅]]: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6월 ====
* [[6월 5일]] - 최정호: 대한민국의 한글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 [[6월 6일]] - [[박래전]]: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동생.
* [[6월 9일]] - [[문용섭]]: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6월 23일]] - [[박인순]]: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6월 24일]] - [[우인수]]: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 [[6월 27일]]
* [[타오시성]]: 중화민국의 정치가, 소설가
* [[루이 베르시프]]: [[벨기에]]의 전 축구감독
==== 7월 ====
* [[7월 2일]]
* [[문송면]]: 협성계공 산재피해 노동자.
* [[오기 마사히로]]: 일본의 요리연구가, 영화평론가
* [[7월 6일]] - [[아즈마 하치로]]: 일본의 코미디언
* [[7월 8일]] - [[성완희]]: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7월 10일]] - 배용순: [[윤봉길]] 의사의 부인
* [[7월 15일]] - [[토레 셸레르]]: [[스웨덴]]의 전 축구 선수
* [[7월 17일]] - [[송철순]] :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7월 25일]] - [[주디스 바시]]: 미국의 아역 배우
==== 8월 ====
* [[8월 1일]]
* [[김용기(1909)|김용기]]: 대한민국의 기독교 농촌운동가, 가나안농군학교 설립자
* [[박종근]]: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 [[8월 4일]] - [[도코 도시오]]: 전 [[도시바]] 회장
* [[8월 12일]] - [[장 미셸 바스키아]]: 미국의 화가
* [[8월 13일]] - 에드워드 베넷 윌리엄스: 미국의 변호사, 전 [[볼티모어 오리올스]] 구단주
* [[8월 14일]]
* [[엔초 페라리]]: [[페라리]] 창업주
* [[정성규]]: 대한민국의 청년운동가
* [[8월 18일]] - [[오오바 히로시]]: 일본의 풍자만화가
* [[8월 22일]] - [[미야자키 츠토무#s-2.1|콘노 마리]]: 도쿄, 사이타마 유아 연쇄살인사건의 희생자
* [[8월 25일]]
* [[정영일(영화 평론가)|정영일]]: [[한국]]의 [[영화 평론가]]
* [[아트 루니]]: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전설적인 구단주
* [[8월 27일]] - [[김대현(1962)|김대현]]: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9월 ====
* [[9월 5일]] - [[게르트 프뢰베]]: [[007 시리즈]] 3탄 [[골드핑거]]에서 '오릭 골드핑거'로 분한 독일의 배우
* [[9월 13일]] - [[호리에 시노부]]: 일본의 탤런트
* [[9월 18일]] - [[허정(정치인)|허정]]: [[대한민국]]의 [[정치가]]
* [[9월 21일]] - [[김기인]]: 사회복지시설 주몽재활원 설립자
* [[9월 26일]]
* [[이원천]]: 코오롱그룹 창업주 [[이원만(1904)|이원만]]의 동생이자 원진레이온으로 유명한 [[원진그룹]]의 초대 총수
* [[브란코 제베치]]: 유고슬라비아의 전 축구감독
* [[9월 29일]] - [[허평만]]: 동부산업[* 1997년에 [[동부건설]]로 합병] 전 회장
==== 10월 ====
* [[10월 2일]]
* [[박정만]]: 1981 '한수산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보안사에서 고문을 당한 시인. 그의 일대기가 사후 1989년 3월 KBS1에서 <[[서러운 땅]]>이란 드라마로 방영된 바 있었다.
* [[이은택]]: 전 [[조선호텔]] 사장
* [[10월 3일]] - [[미야자키 츠토무#s-2.1|요시자와 마사미]]: 도쿄, 사이타마 유아 연쇄살인사건의 희생자.
* [[10월 7일]] - [[비로 샨도르]]: [[헝가리]]의 전 축구선수
* [[10월 9일]]
* [[야마카와 치아키]]: 일본 [[후지TV]] 소속 뉴스앵커
* [[재키 밀번]]: 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 [[바비 찰튼]]의 외당숙.
* [[10월 10일]]
* [[안병하]]: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라남도 경찰국장
* [[양영진]]: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10월 16일]]
* 안광술, 지강헌, 한의철: 지강헌 일당 3인
* [[압델라흐만 파우지]]: [[이집트]]의 전 축구감독
* [[10월 22일]] - [[헨리 암스트롱]]: 미국의 원로 권투인
* [[10월 31일]]
* [[존 하우스먼]]: [[루마니아]] 태생의 [[영국]], [[미국]]의 [[배우]]
* [[황승선]]: 전 성균관대학교 농구부 감독
==== 11월 ====
* [[11월 3일]] - [[박병철]]: 전 [[쌍용정보통신]](당시 쌍용컴퓨터) 사장
* [[11월 4일]] - [[미키 다케오]]: 제66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 [[11월 6일]] - [[이문철]]: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11월 7일]] - [[최병걸]]: <[[난 정말 몰랐었네]]>로 유명한 가수
* [[11월 9일]] - [[김소동]]: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 [[11월 12일]] - [[유지광]]: 이정재, 임화수와 함께 1950년대를 주름잡던 정치깡패
* [[11월 14일]] - [[배중손]]: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11월 15일]]
* 신재휴: 팔레스호텔 창업주, 제11~12대 국회의원
* [[윤극영]]: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
* [[11월 16일]]
* [[박재화]]: 전 [[롯데칠성음료|칠성한미음료]] 회장
* 정진석: 전 OB씨그램(현 [[디아지오|디아지오코리아]]) 사장
* [[11월 17일]] - [[이종림]]: 제5대 교통부 장관
* [[11월 22일]]
* [[강병철]]: [[강병철과 삼태기]]의 리더
* [[조태호]]: 제5대 [[정수장학회]] 이사장
* [[11월 23일]] - [[마사오카 겐조]]: 1942년에 장편 애니 <[[거미와 튤립]]>을 제작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자
* [[11월 25일]] - [[고정훈]]: 대한민국의 정치가
* [[11월 26일]] - [[심종석]]: 대한민국의 정치가
* [[11월 30일]] - [[빈체 예뇌]]: [[헝가리]]의 전 축구감독
==== 12월 ====
* [[12월 1일]] - [[고제경]]: 대한민국의 원로 언론인
* [[12월 2일]] - [[현석호]]: 제 9, 11, 23대 국방부 장관
* [[12월 8일]]
* 안준: 독립운동가 [[백관수]]의 아내
* [[유홍]]: 대한민국의 정치가
* [[12월 9일]] - [[미야자키 츠토무#s-2.1|난바 에리카]]: 도쿄, 사이타마 유아 연쇄살인사건의 희생자
* [[12월 16일]] - [[김용대]]: 전 울진군수, 월성군수
* [[12월 24일]] - [[안진생]]: 대한민국의 외교관이자 [[안중근]] 의사의 조카
* [[12월 26일]] - [[조경규]]: 광복단의 일원으로써 독립운동 자금 모금책으로 활동함
=== 가상 인물 ===
* [[1월 3일]]: [[은두르]]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1월 15일]]: [[펫 숍(죠죠의 기묘한 모험)|펫 샵]]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1월 16일]]: [[무함마드 압둘]], [[이기(죠죠의 기묘한 모험)|이기]], [[카쿄인 노리아키]], [[얼치기]], [[바닐라 아이스(죠죠의 기묘한 모험)|바닐라 아이스]], [[윌슨 필립스(죠죠의 기묘한 모험)|윌슨 필립스]], [[DIO]]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일자 불명
* 로이 콘[* [[라이히-5]]의 미국 국가안전기획국장~~이자 진짜 38대 미국 대통령~~.], 조지 링컨 로크웰[* [[라이히-5]]의 허수아비 38대 미국 대통령.] - [[겁스 무한세계]]
* 메레디스 퀼 - [[스타로드(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스타로드]]의 어머니
* 하야카와 히데히코[* 주인공 료의 아버지. 작중 기준으로 10년 전에 사망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그리고 이 작품의 배경은 1998년이다.] - [[프린세스 나인 키사라기 여고 야구부]]
* 야노 타쿠지, 아이카와 마리 - [[초수전대 라이브맨]]
== 데뷔 ==
=== 배우 ===
* [[김민정(1982)|김민정]] - MBC 베스트셀러극장 <미망인>
* [[정명현]] - KBS1 특집드라마 <따뜻한 남쪽나라>
=== 가수 ===
==== 한국 ====
* 김동환
* 김재기(작은하늘)
* 도건우(소방차)
* [[동물원(밴드)|동물원]]
* [[무한궤도(밴드)|무한궤도]]
* [[신해철]]
* [[박남정]]
* [[봄여름가을겨울]]
* [[세대교체]]
* 임주연, 조강석, 김준상
* [[세또래]]
* 이희정([[이가이]]), 우윤아, 김정임
* [[신촌블루스]]
* [[신효범]]
* [[양수경]]
* 여운
* 고상우
* 원준희
* [[이상우(가수)|이상우]]
* [[이상은(가수)|이상은]]
* 주병선
* 최호섭
* 통크나이
* [[김혜림(1968)|김혜림]]
* [[푸른하늘]]
* [[유영석]], [[윤상(가수)|윤상]]
==== 해외 ====
* 구미권
* 게토 보이즈
* 부시윅 빌, 스카페이스, 윌리 D
* 라이브 스쿼드
* [[런던 보이즈]]
* [[밀리 바닐리]]
* 비즈 마키
* [[빅 대디 케인]]
* 슬릭 릭
* 울트라마그네틱 MC즈
* 쿨 키스, 세드 지
* 정글 브라더스
* 토미 페이지
* EPMD
* MC 라이트
* [[MC 해머]]
* [[N.W.A]]
* [[아이스 큐브]], [[이지-E]], MC 렌
* Sir Mix-a-Lot
* 아시아
* [[완 라시다]]
* [[엘리펀트 카시마시]]
* [[파우지아흐 라티프]]
* [[wink]]
=== 예능인 ===
* 김형진
* [[박미선]]
* 손병재
* 이옥주
* 이웅호
* 정진수
=== 만화계 ===
* 강병호
* [[김광성]] - <자갈치 아지매>
* 김미상 - <오렌지샘의 겨울이야기>
* [[김상택]] - <경향만평>
* 김석천
* 김정진 - 만화광장 정치만평
* --[[박재동]]-- - <한겨레그림판>
* 백상아 - <나>
* 서정희[* 서세원 전 부인하고는 동명이인.] - <베네치아의 연풍>
* 서타영 - <저승에서 온 사나이>
* 안수길 - <판소리 소녀경>
* 장승태 - <무등만평>, <무돌이>
* 주완수 - <보통고릴라>
* 황재모 - <어느 개인 날 아침>
=== 스포츠 ===
* 축구
* [[윤상철]]
* 농구
* [[강을준]]
* 게리 그랜트
* 그랜트 롱
* 대니 매닝
* 댄 멀리
* 로니 세이컬리
* 로드 스트릭랜드
* 릭 스미츠
* 미치 리치몬드
* 버논 맥스웰
* [[브라이언 쇼]]
* 비니 델 네그로
* 앤드류 랭
* 앤소니 메이슨
* [[에이버리 존슨]]
* 윌 퍼듀
* 이호근
* [[존 스탁스]]
* 하비 그랜트
* 허시 호킨스
* [[허재]]
* 배구
* [[신영철(배구)|신영철]]
* 테니스
* [[마이클 창]]
== 은퇴 ==
=== 스포츠 ===
* [[김봉연]]
* [[김용달]]
* 임정명
* [[박수교]]
== 히트작 ==
=== 영화 ===
* 국산/수입
* 접시꽃 당신
* [[마지막 황제]]
* [[시네마 천국]]
* [[영웅본색 2]]
* 해외
* [[이웃집 토토로]]
* [[반딧불이의 묘]]
* [[공작왕]]
* [[AKIRA]]
* [[다이 하드]]
=== 드라마 ===
* 국산
* 인간시장
* 순심이
* 조선왕조 500년 - 인현왕후
* 모래성
*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 더빙
* 코스비가족 만세
=== 가요 ===
* 한국
* 강애리자 - 분홍 립스틱
* 김동환 - 묻어버린 아픔
* 김완선 - 나 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
* 김종찬 - 사랑이 저만치 가네, 토요일은 밤이 좋아
* 김학래 - 사랑하면 안 되나
* 김현식 - 언제나 그대 내 곁에
* 나훈아 - [[무시로]]
* 도시아이들 - 텔레파시
* 동물원 - 거리에서, 변해가네
* 민해경 - 그대 모습은 장미
* 바다새 - 사랑하고 싶어요
* 박남정 - 아! 바람이여
* 석미경 - 물안개
* 소리새 - 그대 그리고 나
* 소방차 - '''어젯밤 이야기''', 통화중, 일급비밀
* 송시현 - 꿈결같은 세상
* 수와 진 - 파초
* 시인과 촌장 - 가시나무
* 양수경 - 바라볼 수 없는 그대
* 여운 - 홀로된 사랑
* 유열 - 이별이래, 화려한 날은 가고
* 유익종 -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 이남이 - 울고 싶어라
* 이문세 -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광화문 연가]]''', '''[[붉은 노을]]''', 시를 위한 시
* 이상은 - '''담다디'''
* 이선희 - '''나 항상 그대를''', 사랑이 지는 이 자리
* 이정석, 조갑경 - 사랑의 대화
* 이지연 -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 난 사랑을 아직 몰라
* 이치현과 벗님들 - '''집시여인'''
* 임지훈 - 사랑의 썰물
* 작품하나 - 난 아직도 널
* 전영록 - '''저녁놀'''
* 전인권 - 사랑한 후에, 돌고 돌고 돌고
* 정수라 - '''[[환희 #s-4|환희]]'''
* 조덕배 -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을 거야
* 조영남 - [[화개장터]]
* 조용필 - [[조용필 10집|'''서울 서울 서울''', '''모나리자''', I Love 수지]]
* 조하문 - 이 밤을 다시 한번, 눈 오는 밤
* 주현미 - '''신사동 그 사람'''
* 최성수 - 동행, 해후, 기쁜 우리 사랑은
* 최성원 - 제주도의 푸른 밤
* 최진희 - 미운 사람
* 최호섭 - '''[[세월이 가면]]'''
* '''코리아나 - [[손에 손잡고]]''', The Victory
* 푸른하늘 - 겨울바다
* 한영애 - 누구 없소
* 홍수철 - 장미빛깔 그 입술
* [[핵폭탄과 유도탄들]] - [[라면과 구공탄]]
* 해외
* [[조지 마이클]] - Faith
* [[건즈 앤 로지스]] - Sweet Child O’Mine, Welcome to The Jungle
* [[카일리 미노그]] - The Locomotion, I Should Be So Lucky, Especially for You(w/제이슨 도노반)
* [[마이클 잭슨]] - Man in the Mirror, Smooth Criminal, The Way You Make Me Feel, Dirty Diana
* [[글로리아 에스테판]] - Conga
* [[밀리 바닐리]] - Girl You Know It's True
* [[릭 애스틀리]] - Together Forever
* [[티파니(가수)|티파니]] - I Saw Him Standing There, I Think We're Alone Now
* [[바비 브라운]] - My Prerogative
* Bobby McFerrin - '''Don't Worry, Be Happy'''
* [[히카루GENJI]] - パラダイス銀河
* [[나가부치 츠요시]] - とんぼ
=== 개그 코너 ===
* 영구야 영구야 - 유머 일번지
* 동작그만 - 유머 일번지
* 청춘을 돌려다오 - 유머 일번지
* 네로 25시 - 쇼 비디오 쟈키
* 쓰리랑 부부 - 쇼 비디오 쟈키
* 시커먼스 - 쇼 비디오 쟈키
* 최병서의 따따부따 - 일요일밤의 대행진
* 박미선의 별난 여자 - 일요일밤의 대행진
* 헬로우 일지매 - 일요일일요일밤에
=== 애니메이션 ===
* KBS
* 까치의 날개
* [[달려라 하니]]
* [[SF 서유기 스타징가|별나라 손오공]]
* 제트소년 마르스
* [[출동! 바이오 용사]]
* MBC
* [[독고탁]]의 비둘기 합창
* [[고바리안|무적로보트 고바리안]]
* [[무적의 실버호크]]
* 해외
* [[날아라 호빵맨]]
=== 베스트셀러 ===
* [[남부군]] - 이태 저.
* 홀로서기 - 서정윤 저.
* 접시꽃 당신 - 도종환 저.
== 출시 상품 ==
=== 자동차 ===
* 현대자동차
* 에어로 600
* 코러스
* 쏘나타(Y2)
* 기아산업-아시아자동차
* 트레이드/라이노
* 프라이드 5도어
* AM815 콤비
* 대우자동차
* 르망 GSi / 펜타5
* 쌍용자동차
* 코란도 훼미리
=== 식음료 ===
* 농심
* 2월: 사리곰탕면
* 4월: 범벅(짜장/카레/케찹), 닭다리, 벌집핏자
* 11월: 포스틱 - 출시 당시엔 '포테토 스틱'임.
* 동서식품
* 맥스웰 저가당 커피믹스 II
* 포스트 코코볼, 아몬드 후레이크, 현미 후레이크
* 동서 현미녹차, 녹차(티백제품), 민속차, 고려인삼차
* 동서 밤꿀, 밀감꿀, 싸리꿀, 1회용 컵꿀
* 탄산캔커피 맥스쿨
=== 생활용품 ===
* 애경산업
* 트리오(리뉴얼)
== 유행어 ==
* 보통 사람의 위대한 시대/나 이 사람, 믿어 주세요 - [[노태우]]
* 왜 나만 갖고 그래~ - [[최병서]] (따따부따 中 [[전두환]])
*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 유전무죄 무전유죄 - [[지강헌]]
*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증인은 지금 위증을 하고 있어요 - 5공 청문회
* 영구 없~다/띠리리리리리~ - [[심형래]] (영구야 영구야)
* 장사 하루 이틀 하나? - [[김형곤]]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 음메, 기죽어~ 음메, 기살어~/그거 하나 딱딱 못 맞춰?!/때릴 곳이 없는 게 아니라 빈틈이 없는 것이겠지~/내일 봐~요 - [[김미화]], [[김한국]] (쓰리랑 부부)
* 오~ 신이시여! 우리 로마를 버리시나이까?/셱셱셱!/아냐, 인마! - [[최양락]] (네로 25시)
* 골뱅이 하나 추가했어요/너 그렇게 사는 거 아냐~ - [[정명재]] (네로 25시)
* 망했다, 망했다 - [[장두석]], [[이봉원]] (시커먼스)
* 넌 내 거야~ - [[이경애]] (북청 물장수)
* 메기나 건빵이다 - [[이상운]] (동작그만)
*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빠른 시일 내~에, 믿어, 못 믿어? - [[김상호(코미디언)|김상호]] (미스터 주)
* 아니 이 사람아 뭘 그리 놀라~나/소사 소사 맙소사 - 김보화
*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 이홍렬 (참깨부부 들깨부부)
* [[코와붕가]] - [[닌자 거북이]]
== 최초 ==
=== 방영 프로그램 ===
* KBS
* 논픽션드라마
* 전국 어린이동요대회
* 비바청춘
* TV회견
* MBC
* 아침을 달린다
* 주부가요열창
=== 창간 ===
* 신문
* 경기일보
* 국민일보
* 기호일보
* 기독교연합신문
* 인천일보
* 평화신문
* 한겨레신문
* 한국대학신문
* 잡지
* 닌텐도 파워
* 르네상스
* 문학과 사회
* 아이큐 점프
* 우먼센스
* 영 챔피언
== 달력 ==
[include(틀:금요일로 시작하는 윤년)]
[[분류:1988년]] |
1988 AFC 아시안컵 카타르 | [include(틀: AFC 아시안컵)]
[목차]
== 개요 ==
1988 AFC ASIAN CUP
[[아시아 축구 연맹]] 주관의 [[AFC 아시안컵]] 9회 대회
== 경기장 ==
|| 도시 || 경기장 이름 || 수용인원 ||
|| 도하 || 알아흘리 경기장 || 20,000명 ||
|| 도하 || 카타르 SC 경기장 || 20,000명 ||
* 개막전과 3-4위 결정전, 결승전은 모두 [[도하]]에서 개최되었다.
== 진행 방식 ==
* 개최국 카타르와 지난대회 우승팀 사우디아라비아에게 자동 출전권이 주어졌다. 남은 8장의 본선 티켓을 놓고 20개국이 예선에 참가하였다.
* 아시안컵 예선은 20개 팀이 4개조로 나뉘어 각 조 1,2위팀이 본선에 진출한다. 이제 지역별로 조를 나누지 않고, 완전히 추첨으로 조를 편성하게 되었다.
* 본선에선 5개팀 2개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실시하여 각 조 상위 1,2위팀이 4강에 진출한다. 4강부터는 토너먼트로 실시한다.
* 1988년 12월 2일 이라크와 카타르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결승전인 12월 8일까지 약 2주간 진행된다.
== 예선 ==
기권 및 불참은 취소선, 예선 첫출전팀은 진한표시
* 1조 : 방글라데시, 중국, 인도, 북예멘, 태국, 아랍 에미리트
* 2조 : 일본, 요르단, 쿠웨이트,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이라크--
* 3조 : 홍콩, 이란, 네팔, 북한, 시리아, --싱가포르--
* 4조 : 바레인, 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남예멘, --버마--, --오만--
=== 1조 ===
1988년 2월 4일~17일까지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개최되었다.
|| UAE || 3 - 0 || 태국 ||
|| 중국 || 0 - 0 || 북예멘 ||
|| 방글라데시 || 0 - 0 || 인도 ||
|| UAE || 2 - 1 || 북예멘 ||
|| 중국 || 4 - 0 || 방글라데시 ||
|| 인도 || 0 - 1 || 태국 ||
|| UAE || 0 - 0 || 중국 ||
|| 북예멘 || 1 - 0 || 인도 ||
|| 태국 || 1 - 1 || 방글라데시 ||
|| UAE || 3 - 0 || 인도 ||
|| 중국 || 5 - 0 || 태국 ||
|| 북예멘 || 0 - 0 || 방글라데시 ||
|| 중국 || 1 - 1 || 인도 ||
|| 북예멘 || 3 - 3 || 태국 ||
|| UAE || 4 - 0 || 방글라데시 ||
개최국 UAE가 가장 안정적인 전력을 선보이며 4승 1무로 본선에 진출, 북예멘은 지난 예선의 무기력한 모습과는 달리, 인도에게 예선사상 첫승리를 따냈으나, UAE에게 피배하고, 나머지 경기를 모두 비겨버리며 본선진출은 실패했다. 중국은 지난 대회의 상승세를 그대로 이어받으며 무승부는 많았지만, 무패로 본선에 진출했다. 인도는 방글라데시에게도 비기며 예전과는 달리 전력이 매우 쇠퇴했음을 보여줬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UAE || 5 || 4 || 1 || 0 || 12 || 1 || 9 ||
|| '''2위''' || 중국 || 5 || 2 || 3 || 0 || 10 || 1 || 7 ||
|| '''3위''' || 북예멘 || 5 || 1 || 3 || 1 || 5 || 5 || 5 ||
|| '''4위''' || 태국 || 5 || 1 || 2 || 2 || 5 || 12 || 4 ||
|| '''5위''' || 방글라데시 || 5 || 0 || 3 || 2 || 1 || 9 || 3 ||
|| '''6위''' || 인도 || 5 || 0 || 2 || 3 || 1 || 6 || 2 ||
'''아랍에미리트'''와 '''중국'''이 본선에 진출했다.
=== 2조 ===
1988년 4월 7일~18일까지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개최되었다.
|| 말레이시아 || 4 - 0 || 파키스탄 ||
|| 쿠웨이트 || 1 - 0 || 일본 ||
|| 요르단 || 1 - 0 || 파키스탄 ||
|| 말레이시아 || 0 - 1 || 일본 ||
|| 쿠웨이트 || 0 - 0 || 요르단 ||
|| 말레이시아 || 0 - 0 || 요르단 ||
|| 쿠웨이트 || 3 - 0 || 파키스탄 ||
|| 일본 || 1 - 1 || 요르단 ||
|| 말레이시아 || 0 - 5 || 쿠웨이트 ||
|| 일본 || 4 - 1 || 파키스탄 ||
지난대회 4위 쿠웨이트는 여전히 강한 모습으로 무패로 조선두를 확정. 일본은 쿠웨이트에게 패했지만, 나머지경기에서 모조리 승점을 따내며 본선 첫 진출을 확정지었다. 특히 마지막 경기 파키스탄전을 앞두고, 요르단에 비해 승점 2점이 모잘랐으나 파키스탄을 4-1로 대파하며 요르단을 제쳤다. 요르단의 경우 총 2득점 1득점의 늪축구를 선보이며, 무패를 기록했지만, 결국 득점이 모자란게 화근이 되어 골득실에서 일본에게 밀려 탈락했다.[* 아시안컵 예선 사상 첫 무패 탈락]. 지난 대회부터 하향세를 기록하기 시작한 말레이시아는 이후 2007년이 될때까지 단 한번도 예선통과를 하지 못한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쿠웨이트 || 4 || 3 || 1 || 0 || 9 || 0 || 7 ||
|| '''2위''' || 일본 || 4 || 2 || 1 || 1 || 6 || 3 || 5 ||
|| '''3위''' || 요르단 || 4 || 1 || 3 || 0 || 2 || 1 || 5 ||
|| '''4위''' || 말레이시아 || 4 || 1 || 1 || 2 || 4 || 6 || 3 ||
|| '''5위''' || 파키스탄 || 4 || 0 || 0 || 4 || 1 || 12 || 0 ||
'''쿠웨이트'''와 '''일본'''이 본선에 진출했다.
=== 3조 ===
1988년 5월 25일~6월 4일까지 네팔, 카트만두의 다사라스 랑가살라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 네팔 || 0 - 0 || 홍콩 ||
|| 시리아 || 2 - 1 || 북한 ||
|| 이란 || 2 - 0 || 홍콩 ||
|| 네팔 || 0 - 1 || 북한 ||
|| 시리아 || 1 - 1 || 이란 ||
|| 북한 || 1 - 0 || 홍콩 ||
|| 네팔 || 0 - 3 || 시리아 ||
|| 이란 || 0 - 0 || 북한 ||
|| 시리아 || 2 - 0 || 홍콩 ||
|| 네팔 || 0 - 3 || 이란 ||
개최국 네팔은 홍콩과 함께 완벽한 승점 자판기였으나, 홍콩과 무승부를 기록하며, 역사적인 아시안컵 예선 첫 승점을 차지했다. 사실상 시라아와 이란과 북한의 3파전. 첫경기 시리아에게 당한 패배로 인한 차이를 끝까지 뒤집지 못한 북한이 3위로 탈락하게 되었다. 시리아가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이란도 무패로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시리아 || 4 || 3 || 1 || 0 || 8 || 2 || 7 ||
|| '''2위''' || 이란 || 4 || 2 || 2 || 0 || 6 || 1 || 6 ||
|| '''3위''' || 북한 || 4 || 2 || 1 || 1 || 3 || 2 || 5 ||
|| '''4위''' || 홍콩 || 4 || 0 || 1 || 3 || 0 || 5 || 1 ||
|| '''5위''' || 네팔 || 4 || 0 || 1 || 3 || 0 || 7 || 1 ||
'''시리아'''와 '''이란'''이 본선에 진출했다.
=== 4조 ===
1988년 6월 17일~22일까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되었다.
|| 인도네시아 || 1 - 0 || 남예멘 ||
|| 바레인 || 2 - 0 || 대한민국 ||
|| 대한민국 || 1 - 1 || 남예멘 ||
|| 인도네시아 || 0 - 0 || 바레인 ||
|| 바레인 || 2 - 0 || 남예멘 ||
|| 인도네시아 || 0 - 4 || 대한민국 ||
대한민국은 서전부터 바레인에게 패하고, 남예멘과도 비기며 탈락위기에 몰렸으나, 개최국 인도네시아와의 최종전을 대승하면서 어렵게 본선행 티켓을 얻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는 비기기만 했어도 첫 본선진출이 가능했음에도, 대패를 당하였고, 첫 본선 진출은 뒷날로 미룬다. 바레인이 무실점으로 예선을 가볍게 통과했며 본선 첫진출을 달성했고, 남예멘은 12년전의 돌풍을 재현하지 못하고, 마지막 대회 출전을 마쳤다.[* 2년뒤 북예멘에 흡수통일 되었기에, 남예멘 축구 국가대표팀의 아시안컵 도전사는 이 대회가 마지막이다.]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1위''' || 바레인 || 3 || 2 || 1 || 0 || 4 || 0 || 5 ||
|| '''2위''' || 대한민국 || 3 || 1 || 1 || 1 || 5 || 3 || 3 ||
|| '''3위''' || 인도네시아 || 3 || 1 || 1 || 1 || 1 || 4 || 3 ||
|| '''4위''' || 남예멘 || 3 || 0 || 1 || 2 || 1 || 4 || 1 ||
'''바레인'''과 '''대한민국'''이 본선에 진출했다.
== 본선 진출국 ==
|| '''국가''' || '''진출 경위''' || '''진출 횟수'''[* 1996년 대회 본선진출 제외 횟수] || '''최고 성적''' ||
|| [[카타르]] || 개최국 자동 진출 || 2회 || 1라운드 ||
|| [[사우디아라비아]] || 전대회 우승 || 1회 || 우승(1회) ||
|| [[아랍에미리트]] || 예선 1조 1위 || 2회 || 1라운드 ||
|| [[중국]] || 예선 1조 2위 || 3회 || 준우승 ||
|| [[쿠웨이트]] || 예선 2조 1위 || 4회 || 우승(1회) ||
|| [[일본]] || 예선 2조 2위 || 0회 || 첫 참가 ||
|| [[시리아]] || 예선 3조 1위 || 2회 || 1라운드 ||
|| [[이란]] || 예선 3조 2위 || 5회 || 우승(3회) ||
|| [[바레인]] || 예선 4조 1위 || 0회 || 첫 참가 ||
|| '''[[대한민국]]''' || 예선 4조 2위 || 6회 || 우승(2회) ||
== 본선 ==
=== 조별 리그 ===
|| '''순위''' || '''A조''' || '''승점''' || '''B조''' || '''승점''' ||
|| 1위 || '''대한민국''' || 8 || 사우디아라비아 || 6 ||
|| 2위 || 이란 || 5 || 중국 || 5 ||
|| 3위 || 카타르 || 4 || 시리아 || 4 ||
|| 4위 || 아랍에미리트 || 2 || 쿠웨이트 || 3 ||
|| 5위 || 일본 || 1 || 바레인 || 2 ||
=== 토너먼트 ===
||<table align=center><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
|| A || 4강 1경기 [br] '''대한민국''' 2:1 중국 ||<|3> C ||<|3> 결승 [br] 대한민국 0:0(3:4) '''사우디아라비아''' ||
|| B || 4강 2경기 [br] '''사우디아라비아''' 1:0 이란 ||
|| D || 3/4위전 [br] 중국 0:0(0:3) '''이란''' ||
||<table align=center><rowbgcolor=#ffd700> '''{{{+2 1988 AFC 아시안컵 우승}}}''' ||
|| [[파일:external/www.worldstatesmen.org/sa.gif|width=200]] [br] '''사우디아라비아''' ||
|| 2번째 우승 ||
== 그 외 ==
* 개최국 카타르는 A조 3위로 4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 대한민국은 조별리그에서 전승으로 통과하였고, 4강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중국에게 2:1로 승리하며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결승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만나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승부차기까지 갔으나 승부차기에서 3:4로 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김주성(축구)|김주성]] 선수가 대회 MVP에 선정되었고, 이태호 선수는 3골로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우리나라는 무패이며 승점도 11점으로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높았다. 하지만 이 이후 2015년 까지 한번도 결승전에 가지 못하고 거의 3등에 머물러야 했다. ~~이게 다 04년 빼고 매번 조2위, 조3위로 8강 가서 다른 조 1위 이란 만난 덕이지. 강팀 만나지 말라고 톱 시드 주면 뭘 하나. 알아서 강팀 만나려고 노력하는 걸.~~
[youtube(hDNvreYHf9s)]
참고로 이 대회 조별리그에서 2:0으로 이겼던 [[한일전]]에서 한 신인 공격수가 데뷔해서 골을 넣고, 당시 슈퍼스타였던 김주성의 골을 어시스트 하는데, 그가 바로 '''[[1990년대]]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 때까지 한국 축구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한 [[황선홍]]이다.'''
* 사우디아라비아는 작년 대회 우승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우승하며 대회 2연패를 달성하였다.
* 모든 팀이 승점 1점 이상씩 얻었다.
* 최우수 골키퍼는 중국의 장 후이캉이 차지했다.
== 결과 ==
|| 순위 || 국가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 || 승점 || 비고 ||
||<rowbgcolor=#ffd700> 1 || 사우디아라비아 || 6 || 3 || 3 || 0 || 5 || 1 || +4 || '''9''' || '''우승''' ||
||<rowbgcolor=#c0c0c0> 2 || 대한민국 || 6 || 5 || 1 || 0 || 11 || 3 || +8 || '''11''' || 준우승 ||
||<rowbgcolor=#b8860b> 3 || 이란 || 6 || 2 || 2 || 2 || 3 || 4 || -1 || '''6''' || 3위 ||
||<rowbgcolor=#f0e68c> 4 || 중국 || 6 || 2 || 2 || 2 || 7 || 5 || +2 || '''6''' || 4위 ||
||<rowbgcolor=#ffa7a7> 5 || 카타르 || 4 || 2 || 0 || 2 || 7 || 6 || +1 || '''4'''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6 || 시리아 || 4 || 2 || 0 || 2 || 2 || 5 || -3 || '''4'''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7 || 쿠웨이트 || 4 || 0 || 3 || 1 || 2 || 3 || -1 || '''3'''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8 || 아랍에미리트 || 4 || 1 || 0 || 3 || 2 || 4 || -2 || '''2'''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9 || 바레인 || 4 || 1 || 0 || 3 || 1 || 3 || -2 || '''2'''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0 || 일본 || 4 || 0 || 1 || 3 || 0 || 6 || -6 || '''1''' || 1라운드 ||
[각주]
[[분류:AFC 아시안컵]] |
1988년 서울 올림픽 | #redirect 1988 서울 올림픽
|
1988년 월드 시리즈 | [[분류:월드 시리즈]]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ffffff><:>[[파일:1200px-1988_World_Series_logo.svg.png|width=180]][br] '''[[월드 시리즈]] 일람''' ||
||<width=30%><:> [[1987년 월드 시리즈|1987년]][br][[미네소타 트윈스]] ||<:> {{{+1 ←}}} ||<width=30%><#FFFF00><:> '''1988년[br][[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1 →}}} ||<width=30%><:> [[1989년 월드 시리즈|1989년]][br][[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2><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005A9C><tablebgcolor=#ffffff><#FFF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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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cccccc><:> '''{{{#005A9C 1988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2><#005A9C><:> [[로스앤젤레스 다저스|'''{{{#ffffff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 '''{{{#000000 MVP}}}''' || '''[[오렐 허샤이저|{{{#000000 오렐 허샤이저}}}]]''' ||
||<tablealign=center><#ffffff><:> [[파일:1200px-1988_World_Series_logo.svg.png|width=300]] ||
||<#ed174b><:> {{{#ffffff 1988 월드 시리즈 로고 }}} ||
[목차]
== 개요 ==
||<width=100%><-2><:><tablebordercolor=#ed174b><bgcolor=#ed174b> {{{+1 {{{#ffffff '''1988 MLB WORLD SERIES'''}}}}}} ||
||<width=500><height=150><bgcolor=#083884> [[파일:LA_Dodgers_logo.png|width=130]] ||<width=500><height=150><#003831> [[파일:Oakland_Insignia.png|width=130]] ||
||<width=500><bgcolor=#CCCCCC> [[로스앤젤레스 다저스|{{{#005A9C '''{{{+1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width=500><#efb21e> [[오클랜드 애슬레틱스|{{{#ffffff {{{+1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1988년 10월 15일부터 20일까지 5차전으로 치뤄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월드 시리즈]]. 만화에서나 볼법한 극적인 1차전 승부, 그리고 단기전에서 [[오렐 허샤이저|한 명의 슈퍼에이스]]가 얼마나 위력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저스는 [[2020 월드 시리즈|이후 우승]]까지 32년이 걸렸다.'''
== 양 팀 상황 ==
=== 1988년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파일:external/nbchardballtalk.files.wordpress.com/dodgers-logo.png|wid=200&height=200&align=right]]
1987년의 [[안습]]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친 다저스는[* 73승 89패로 당시 서부지구 1위였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17게임 모자랐다.] 절치부심 팀을 제정비하기에 이른다. 당시 다저스 단장이었던 프레드 클레어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뉴욕 메츠]]의 3각 트레이드를 통해 유격수 알프레도 그리핀, 투수 제이 하웰과, [[1986년 월드 시리즈]]에서 [[뉴욕 메츠]]의 우승 주역 중 하나였던 제시 오로스코를 영입하고 1987년 12월 15일에는 마이크 데이비스를 영입했다. 이어 1988년 1월 29일에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커크 깁슨[* 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감독.]을 영입, 공격력을 강화했다. 이들은 [[마이크 마셜]], 존 셸비, 포수 [[마이크 소시아]]와 2루수 스티브 색스, 미키 해쳐 등의 기존 멤버들과 명품 에이스 [[오렐 허샤이저]]와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와 같은 거물급 선발진들이 포진한 다저스의 1988년 시즌을 열었다. 94승 67패로 [[신시내티 레즈]]에 7게임을 앞서 시즌을 마친 다저스는 그 해 100승 60패로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무려 15경기차로 제쳐버린 [[뉴욕 메츠]]와 [[내셔널리그]]챔피언 결정전을 치렀다[* 1986년 때와는 반대로 꼴지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무려 35.5경기차로 발라버렸다. ] NLCS를 시작하기 전 많은 전문가들이 1986년 시즌 이후 괴력을 자랑하고 있던 [[뉴욕 메츠]]가 무난하게 4번째 월드시리즈를 진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다저스는 '''"그런거 강아지나 송아지한테 줘버리셈!"'''하면서 당시의 최강팀 메츠를 7차전의 접전끝에 제압하고 1981년 이후 7년만의 월드 시리즈 진출을 일궈냈다.
=== 1988년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파일:external/www.logotypes101.com/Oakland_Athletics11.png|wid=200&height=200&align=right]]
명장 [[토니 라루사]]감독이 이끌었던 애슬레틱스는 핵폭탄급의 방망이로 [[아메리칸리그]]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약쟁이이자 고자질쟁이~~ [[호세 칸세코]], ~~그리고 약빨의 방망이~~ [[마크 맥과이어]]가 3번과 4번을 책임지고 특급 소방수 '[[박완규]]급 갈기머리' [[데니스 에커슬리]]가 주무기인 백도어성 슬라이더를 가지고 마침표를 마구 찍어내주시는 마운드는 상대편을 절망으로 몰아넣게 충분한 무시무시한 전력이었다. 이런 울트라 괴력을 발휘한 애슬레틱스는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서 104승 58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면서 같은 지구 라이벌이었던 [[시애틀 매리너스|마리오가 놀러가는 구단]]을 무려 35.5경기차로 여유있게 따돌렸다. 그리고 이어진 동부지구 우승팀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ALCS에서도 깔끔하게 4연승 싹슬이로 보스턴을 제치고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7차전까지 가는 대접전을 치른 다저스와 달리 체력을 아낀 것은 덤. 그래서 다수의 전문가들은 오클랜드의 우승을 예상하고 있었다.
== 1988 월드 시리즈 ==
=== 1차전 : 커크 깁슨의 역사적 끝내기 홈런 ===
||||||||||||||||||||||||||||||<#083c6b><:> {{{#ffffff 10월 16일, 다저 스타디움}}} ||
||<#dcdcdc> '''팀''' ||<#dcdcdc> '''1회''' ||<#dcdcdc> '''2회''' ||<#dcdcdc> '''3회''' ||<#dcdcdc> '''4회''' ||<#dcdcdc> '''5회''' ||<#dcdcdc> '''6회''' ||<#dcdcdc> '''7회''' ||<#dcdcdc> '''8회''' ||<#dcdcdc> '''9회''' ||<#dcdcdc> '''R''' ||<#dcdcdc> '''H''' ||<#dcdcdc> '''E''' ||
||<#dcdcdc>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 0 || 4 || 0 || 0 || 0 || 0 || 0 || 0 || 0 ||<#dcdcdc> '''4''' || 7 || 0 ||
||<#dcdcdc>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2 || 0 || 0 || 0 || 0 || 1 || 0 || 0 || 2X ||<#dcdcdc> '''5''' || 7 || 0 ||
1차전에서 다저스는 팀 벨처[*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애너하임 에인절스]] 소속이었던 1999년 박찬호와 난투극을 벌였던 그 투수로 잘 알려져 있다.]를 등판시켰다. 본디 허샤이저가 등판해야 했었으나 이전 챔피언전 7차전에 등판했던 까닭에 벨처가 등판했던 것. 애슬레틱스는 에이스 데이브 스튜어트를 등판시켰다.
다저스는 1회말 몸에 맞는 공과 스튜어트의 보크로 이뤄진 무사 2루에서 미키 해처가 2점 홈런으로 먼저 선취점을 얻었다. 그러나 곧이은 2회초에서 글렌 허바드의 안타, 월트 와이스의 삼진아웃으로 된 1사 2루 상황에서 벨처의 고질적 제구력 난조로 인해 투수이자 다음 타음타자 스튜어트와 카니 랜스포드를 보낸 가운데 데이브 헨더슨에게 안타, 그리고 뒤이어 [[호세 칸세코]]의 대형 만루홈런으로 4:2가 된다. 다저스는 이에 6회말에 1점을 추가하며 4:3으로 점수차를 좁혔으나 이후로는 동점은 실패했다. 9회말, 애슬레틱스의 철벽 마무리 [[데니스 에커슬리]]가 올라와 [[마이크 소시아]]를 유격수 플라이, 제프 해밀턴을 삼진으로 처리하고, 마이크 데이비스가 몸에 맞는 공으로 나간 뒤 2루 도루에 성공하자 [[토미 라소다]] 감독은 [[경기는 삼성 쪽으로 기울고|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는 심정으로 커크 깁슨을 대타로 낸다.]] 당시 깁슨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주루플레이가 불가능한 상황인지라 모험이었는데......
||[[파일:external/www.totalprosports.com/kirk-gibson-595x390.jpg]]
1차전, [[데니스 에커슬리|에커슬리]]에게 끝내기 홈런을 때려내고 환호하는 [[커크 깁슨]]||
'''깁슨은 투 스트라이크 쓰리볼의 카운트에서 우월 2점 홈런을 터뜨렸고 다저스는 5:4로 역전승을 일궈냈다.''''
{{{#!html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www.youtube.com/embed/0toCMwEBwLo"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깁슨의 끝내기 홈런, 햄스트링 부상때문에 깁슨이 절뚝거리며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Gibson...Swings, and a fly ball to deep right field! This is gonna be a home run! Unbelievable! A home run for Gibson! And the Dodgers have won the game, five to four; I don't believe...what I just saw!'''
>'''(깁슨..잡아 당깁니다, 우측으로 큰 타구! 홈런 입니다! 엄청납니다! 깁슨의 홈런! 그리고 다저스가 5대 4로 승리합니다. 보고도 믿겨지지 않습니다!)'''
> - 1차전 대타로 나온 커크 깁슨의 홈런 때 CBS 라디오 캐스터였던 잭 벅(Jack Buck)이 외친 중계장면-
[youtube(N4nwMDZYXTI)]
[[https://youtu.be/N4nwMDZYXTI|빈 스컬리 버전 영상]]
>'''High fly ball into right field, she is... GONE!!'''
>'''우익수쪽으로 날아가는 타구가.....넘어갔습니다!!'''
>'''In a year that has been so ''improbable'', the ''impossible'' has happened!'''
>'''일어날 성싶지 않은 일들이 많이 일어난 올해,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 - 다저스의 목소리 [[빈 스컬리]] 옹의 홈런콜 -[* 1986년 월드시리즈 6차전의 메츠 끝내기와 더불어 스컬리옹의 감정이 실린 멘트 중 하나였다.]
당대 최고의 마무리였던 에커슬리를 무너트리며 얻은 극적인 역전승으로 다저스는 기세를 탔고 결국 시리즈 전체의 향방이 갈리게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zDRSDlsPcKQ|1984년작 야구영화 <내추럴>(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끝내기 홈런 장면과 합성된 영상도 있다.]]
=== 2차전 ===
||||||||||||||||||||||||||||||<#083c6b><:> {{{#ffffff 10월 17일, 다저 스타디움}}} ||
||<#dcdcdc> '''팀''' ||<#dcdcdc> '''1회''' ||<#dcdcdc> '''2회''' ||<#dcdcdc> '''3회''' ||<#dcdcdc> '''4회''' ||<#dcdcdc> '''5회''' ||<#dcdcdc> '''6회''' ||<#dcdcdc> '''7회''' ||<#dcdcdc> '''8회''' ||<#dcdcdc> '''9회''' ||<#dcdcdc> '''R''' ||<#dcdcdc> '''H''' ||<#dcdcdc> '''E''' ||
||<#dcdcdc>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 0 || 0 || 0 || 0 || 0 || 0 || 0 || 0 || 0 ||<#dcdcdc> '''0''' || 3 || 0 ||
||<#dcdcdc>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0 || 0 || 5 || 1 || 0 || 0 || 0 || 0 || - ||<#dcdcdc> '''6''' || 10 || 0 ||
2차전에서 드디어 다저스의 에이스 허샤이저가 등판했다. 2회말 마이크 마셜[* 투수 [[마이크 마셜]]과 동명이인. 우익수와 1루수로 1981년부터 1991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 1981년과 1988년에는 다저스 소속으로 우승 반지를 획득.]의 석 점 홈런을 포함해 다저스가 대거 5득점했고, 그것으로 오클랜드는 사실상 이 날 경기를 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9이닝 동안 불과 3개의 안타만을 내주며 완봉승, 덧붙여 타석에서도 2루타 1개와 안타 2개를 쳐내며 3안타로 원맨쇼를 벌였다. 덕분에 허샤이저는 1924년 월드 시리즈 이래 64년만에 한 경기 3안타를 쳐낸 월드시리즈 등판 투수가 됐다. 다저스는 오클랜드를 6:0으로 제압하고 기분좋게 2승을 챙긴 채로 적지로 향한다.
=== 3차전 ===
||||||||||||||||||||||||||||||<#00563f><:> {{{#ffdf00 10월 19일, O.co 콜리세움}}} ||
||<#dcdcdc> '''팀''' ||<#dcdcdc> '''1회''' ||<#dcdcdc> '''2회''' ||<#dcdcdc> '''3회''' ||<#dcdcdc> '''4회''' ||<#dcdcdc> '''5회''' ||<#dcdcdc> '''6회''' ||<#dcdcdc> '''7회''' ||<#dcdcdc> '''8회''' ||<#dcdcdc> '''9회''' ||<#dcdcdc> '''R''' ||<#dcdcdc> '''H''' ||<#dcdcdc> '''E''' ||
||<#dcdcdc>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0 || 0 || 0 || 0 || 1 || 0 || 0 || 0 || 0 ||<#dcdcdc> '''1''' || 8 || 1 ||
||<#dcdcdc>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 0 || 0 || 1 || 0 || 0 || 0 || 0 || 0 || 1 ||<#dcdcdc> '''2''' || 5 || 0 ||
3차전에서 오클랜드는 다저스 출신의 [[밥 웰치]]를 선발로 내세웠다. 다저스의 선발이었던 존 튜더는 2회말에 갑작스런 어깨 통증을 호소하며 강판. 1-1로 팽팽하던 경기는 [[마크 맥과이어]]가 9회말 날린 끝내기 홈런에 힘입어 2-1 오클랜드의 승리로 끝나게 됐다. ~~그리고 시리즈 전적도 2-1~~ 다저스는 [[뉴욕 메츠]]와의 NLCS에서 부정투구를 한 혐의로 2경기 출장 정지를 먹은 불펜의 핵 [[제이 하웰]]이 이 날 복귀했는데, 복귀하자마자 끝내기 홈런을 맞으며 팀의 기대를 저버렸다.
3차전 당시 오클랜드의 승리투수는 [[릭 허니컷]]이었는데, 그는 이후 다저스의 투수코치로 일하고 있다.
=== 4차전 ===
||||||||||||||||||||||||||||||<#083c6b><:> {{{#ffffff 10월 20일, O.co 콜리세움}}} ||
||<#dcdcdc> '''팀''' ||<#dcdcdc> '''1회''' ||<#dcdcdc> '''2회''' ||<#dcdcdc> '''3회''' ||<#dcdcdc> '''4회''' ||<#dcdcdc> '''5회''' ||<#dcdcdc> '''6회''' ||<#dcdcdc> '''7회''' ||<#dcdcdc> '''8회''' ||<#dcdcdc> '''9회''' ||<#dcdcdc> '''R''' ||<#dcdcdc> '''H''' ||<#dcdcdc> '''E''' ||
||<#dcdcdc>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2 || 0 || 1 || 0 || 0 || 0 || 1 || 0 || 0 ||<#dcdcdc> '''4''' || 8 || 1 ||
||<#dcdcdc>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 1 || 0 || 0 || 0 || 0 || 1 || 1 || 0 || 0 ||<#dcdcdc> '''3''' || 9 || 2 ||
1988년 시즌 다저스 타선의 특징이었던 스몰볼~~이라 쓰고 점수 쥐어짜내기~~을 잘 보여준 경기.[* 말이 좋아 스몰볼이지 타선이 약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담에도 나왔듯이 전문가가 역대 최악의 타선을 보유한 월드시리즈 진출 팀이라고 깠을 정도니...] 양 팀 포수들의 수난이 많았던 경기이기도 한데 서로 사이좋게 [[포일(야구)|포일]]을 기록하면서 한 점씩을 허용했던 것. 한점차 승부였음을 감안했을 때 오클랜드 입장에서는 이날 포수의 포일과 더불어 3회초 실점으로 이어진 [[월트 와이스]]의 송구실책이 못내 아쉬웠다. 덧붙여 한 점 차까지 추격한 7회말 만루 찬스에서 믿었던 [[마크 맥과이어]]가 내야플라이로 물러난 것도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
어쨌든 다저스가 4차전을 4대 3으로 승리함으로서 월드시리즈 우승에 한 경기만 남겨놓게 됐다.
=== 5차전 ===
||||||||||||||||||||||||||||||<#083c6b><:> {{{#ffffff 10월 21일, O.co 콜리세움}}} ||
||<#dcdcdc> '''팀''' ||<#dcdcdc> '''1회''' ||<#dcdcdc> '''2회''' ||<#dcdcdc> '''3회''' ||<#dcdcdc> '''4회''' ||<#dcdcdc> '''5회''' ||<#dcdcdc> '''6회''' ||<#dcdcdc> '''7회''' ||<#dcdcdc> '''8회''' ||<#dcdcdc> '''9회''' ||<#dcdcdc> '''R''' ||<#dcdcdc> '''H''' ||<#dcdcdc> '''E''' ||
||<#dcdcdc>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2 || 0 || 0 || 2 || 0 || 1 || 0 || 0 || 0 ||<#dcdcdc> '''5''' || 8 || 0 ||
||<#dcdcdc>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 0 || 0 || 1 || 0 || 0 || 0 || 0 || 1 || 0 ||<#dcdcdc> '''2''' || 4 || 0 ||
[[오렐 허샤이저]]가 등판했고 '''그렇게 오클랜드는 멸망한다.''' 9개의 삼진을 곁들이며 9이닝을 불과 4피안타 2실점으로 막은 허샤이저의 다저스가 애슬레틱스를 5대 2로 제압하고 1981년에 이어 7년만에 월드 시리즈 우승을 만끽하게 된다.
== 이모저모 ==
* 이해 [[LA 레이커스]]가 NBA 우승팀이기도 했는데, 다저스의 우승과 함께 LA는 겹경사. 덧붙여 미국 스포츠 역사상 같은 도시를 연고지로 둔 NBA와 MLB 팀이 같은 해에 우승을 차지한 역대 최초의 해이기도 하다.
* 오클랜드는 믿었던 중심타선 [[호세 칸세코]]와 [[마크 맥과이어]]가 둘 다 시리즈에서 각각 1안타 만을 치면서 부진했던 것이 치명타.[* 그런데 그 안타가 다 홈런이었다. 칸세코 - 1차전 만루홈런, 맥과이어 - 3차전 끝내기 홈런)]
* 친정팀 복수전으로 유명해진 시리즈이기도 하다. 오클랜드의 마운드를 담당했던 데이브 스튜어트와 [[밥 웰치]]는 이전에 다저스 소속이었고. 1차전에서 활약한 마크 데이비스는 바로 전년도까지 오클랜드에서 선수로 뛰었었다.
* 월드 시리즈 프리게임과 포스트게임쇼를 진행했던 밥 코스타[* NBC-TV 소속의 스포츠 전문 캐스터이며 [[NFL]] 관련 프로중계는 물론 올림픽때마다 자주 뵐 수있는 분이다. ]는 "1988년의 다저스는 아마도 월드시리즈 사상 최약의 타선을 보유한 팀이 아닌가 생각이듭니다."라고 발언했다가 다저스 팀의 공분을 샀다. 특히 다저스의 명장 [[토미 라소다]]감독은 4차전을 마치고 마브 알버트와 가진 포스트게임 인터뷰에서 " 월드시리즈 MVP는 밥 코스타씨가 받겠군요."라고 비아냥댔을 정도.
* 이 해는 메츠에게는 상당히 아쉬운 해이기도 했다. 1986년에 이어 100경기 승을 두번째로 기록한 해였으면서 가장 우승후보로 유력한 팀이었지만 다저스에게 무릎을 꿇었던 경기였다. 이 해를 끝으로 메츠는 더이상의 괴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하향세를 걷게 된다.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이 해와 이듬해인 1989년, 그리고 1990년까지 3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룬다. 다저스에게 4-1로 월드 시리즈를 내 준 애슬레틱스는 이듬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베이 시리즈 'Bay Series"를 4경기 싹슬이로 우승했다. 그러나 1990년 [[신시내티 레즈]]와의 시리즈에서는 1989년 때와는 반대로 오히려 싹슬이 패를 당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 1차전에서 허벅지 부상 때문에 나올 수 없었던 커크 깁슨을 기용했는데 놀라운 사실은 그 날 다저스에서 벤치멤버로 기용할 수 있는 선수 중 마지막으로 남은 선수였다.
* 커크 깁슨은 이미 전달받은 스카우팅 리포트를 통해 애슬레틱스의 에커슬리가 쓰리볼 투 스트라이크 카운트까지 가면 다음 구종을 백도어 슬라이더로 던진다는 정보를 얻어냈고 이것이 그대로 적중해 승리할 수 있었다. ~~스카우팅 리포트의 진가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 다저스는 이 해 우승 이후 29년 동안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다가 29년만에 [[2017년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하지만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휴스턴 애스트로스]]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게 된다. 이듬해에도 [[2018년 월드 시리즈|2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보스턴 레드삭스]]에게 패배하면서 또다시 준우승에 머물게 되었다. 이로써 다저스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월드 시리즈 준우승을 기록한 구단이 되었다. 그리고 2년 뒤, 결국 [[2020년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32년만에 한을 푸는 데에 성공했다. |
1988년 한국시리즈 | [include(틀:역대 KBO 한국시리즈 목록)]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 bordercolor=#151b54><bgcolor=#ffffff,#191919> [[파일:external/41.media.tumblr.com/tumblr_o4a4woaUar1sqk8veo6_r1_400.png|width=200]][br] '''{{{#151b54,#abb1ea 역대}}} [[KBO 한국시리즈|{{{#151b54,#abb1ea KBO 한국시리즈}}}]]''' ||
||<width=30%> [[1987년 한국시리즈|1987년]] [br] [[해태 타이거즈]] || {{{+1 ←}}} ||<bgcolor=#ffffff,#191919><width=30%> '''1988년''' [br] '''[[해태 타이거즈]]''' || {{{+1 →}}} ||<width=30%> [[1989년 한국시리즈|1989년]] [br] [[해태 타이거즈]] ||
||<-2><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f01e23><tablebgcolor=#ffffff,#191919>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age/224/2009/09/10/%25B9%25E8%25B3%25CA_%25C7%25D8%25C5%25C2.jpg|width=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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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gcolor=#000000> '''{{{#ff0000 1988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
||<-2><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타이거즈}}}''']] ||
|| '''{{{#f01e23 MVP}}}''' || [[문희수|'''{{{#f01e23 문희수}}}''']] ||
>'''스윙! 아웃입니다! 경기 끝났습니다! 경기 끝났습니다. 해태 타이거즈가 빙그레 이글스에게 4:1로 승리를 거두면서 88프로야구 패권을 차지했습니다. 해태 타이거즈 4:1로 승리! 해태 타이거즈, 이번 88 패권을 차지함으로써 한국시리즈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합니다.'''
> ----
> 중계진 우승콜
[목차]
== 개요 ==
||<tablewidth=100%><-2><:><tablebordercolor=#edd36c><bgcolor=#00143f,#0b1966> {{{+2 {{{#edd36c '''1988'''}}} {{{#edd36c '''프로야구'''}}} {{{#ffffff '''한국시리즈'''}}}}}} ||
||<width=500><height=150><#ff6600> [[파일:빙그레모자로고.png|width=150]] ||<width=500><height=150><#f01e23> [[파일:1411__haitai_tigers_cap-1982.png|width=110]] ||
||<width=500><#ff6600> [[빙그레 이글스|{{{#000000 {{{+1 '''빙그레 이글스'''}}}}}}]] ||<width=500><#f01e23> [[해태 타이거즈|{{{#000000 {{{+1 '''해태 타이거즈'''}}}}}}]] ||
1988년 10월 19일부터 10월 26일까지 펼쳐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로 [[해태 타이거즈]]가 우승하면서 통산 4번째 우승이자, 최초의 3연패를 달성한 시리즈다. [[삼성 라이온즈]]가 [[2013년 한국시리즈]]를 우승하며 3연패를 가져가기 전까지 25년동안 깨지지 않았던 기록이다. 그야말로 해태가 당대 최강자로서의 위엄을 과시한 시리즈. 1986년과 1987년이 제도의 허점 때문에 해태가 유리했다는 말을 전후기 통합 우승 및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그런 말을 들어가게 만들었다.
시리즈 MVP는 1차전 세이브와 3차전 완봉승, 6차전 완투승을 거두면서 2승 1세이브로 맹활약한 [[문희수]]다.
[[https://www.youtube.com/watch?v=lqNp7SQOD4g| 1차전~ 6차전 하이라이트 영상]]
== 시리즈 전 상황 ==
1986년에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2위를 차지해 전후기리그 우승 없이 한국시리즈에 직행해서 우승을 차지했고, 1987년에는 후기리그에서 천신만고 끝에 2위를 차지한 후, 다시 PO에서 천신만고 끝에 우승한 해태였기 때문에 해태가 전력이 강한 것이 아니라 제도적인 허점에 힘입은 우승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1987 시즌 종료 후, 제도 변경에 대한 논의가 나올 때, [[김응용]] 감독은 "만일 제도가 바뀐다면 우리는 또한 그 바뀐 제도에 따라 우승할 것."이라면서 강한 자신감을 보여줬고, 그 결과는 1988년 전기리그와 후기리그에서 잇따라 우승하면서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승률은 그당시로써는 1986년보다 못했고(.639<.644) 무승부를 0.5승으로 포함한 그 이후의 제도(~1997)에서는 똑같았다.[* 무승부를 포함한다면 69승 39패처럼 된다. 차이라면 그 1986년도 최하위의 빙그레가 2위에 올랐다는 것. 당연히 상위팀들의 승률이 줄었다.]
한국시리즈 돌입 전 [[김성한]]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어 타선에 균열이 생겼다. 이 해 김성한은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30홈런을 친 타자였기에 해태 입장에선 부상으로 인한 그의 공백이 뼈아팠다.
한편 1988년에는 새로운 돌풍이 불었는데, 바로 [[빙그레 이글스]]의 대두였다. 1군 창단 첫 해인 1986년에는 꼴찌를 차지했지만, 198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전력을 강화하며 가능성을 보여 줬던 빙그레는 [[김영덕]] 감독을 영입한 후, 마침내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기존의 [[이상군]]과 [[한희민]]을 포함한 탄탄한 마운드를 비롯하여 [[이정훈(1963)|이정훈]], [[장종훈]] 같은 신예 타자들의 성장으로[* 장종훈은 연습생 출신이지만 1986년에 입단한 빙그레 창단 멤버이고, 이정훈은 1년 전인 1987년 신인왕 출신이다. 때문에 1988년 기준으로는 신인이 아니었다.] 전력이 급상승, 급기야 전기리그 2위와 후기리그 3위를 차지하며 PO에 진출했다. 그리고 PO에서 천하의 [[삼성 라이온즈]]를 3:0으로 완파하며 파죽지세로 한국시리즈를 노려보게 되었다.
== 경기결과 ==
=== 1차전 ===
||<-15><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1차전, 10.19(수), 18:00, [[무등 야구장|{{{#ffffff 무등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ff660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이동석(야구선수)|이동석]] || 0 || 0 || 0 || 0 || 0 || 0 || 0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0''' || 3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선동열]] || 0 || 0 || 0 || 0 || 0 || 1 || 1 || 0 || - || '''2''' || 7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MBC|[[파일:attachment/mbc86.jpg|width=50]]]] | 캐스터: 양진수 | 해설: 김소식''' ||
해태는 기선 제압을 위해 [[선동열]]을 내세웠고, 빙그레는 선동열 상대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 쌍두마차 [[이상군]]과 [[한희민]]을 아끼기로 결정한다. 그 대신 1988년에 선동열과 맞상대해 [[노히트 노런]]을 일궈낸 이동석을 선발로 올렸다. 빙그레의 구상은 제법 먹혔는데, 이동석은 해태 타선을 상대로 5회까지 무실점으로 잘 버텼다. 비록 6회말 [[이순철]]에게 솔로 홈런을 맞았지만 6이닝 1실점으로 잘 막았다. 그리고 7회 올라온 [[한용덕]]도 7회말에 [[서정환]]에게 적시타를 내주면서 1실점하기는 했지만, 분명 마운드는 기대 이상이었다.
문제는 선동열이 너무 사기였다는 점이었다. 이 날 선동열은 안타 3개만을 허용하며 삼진을 무려 14개를 잡으면서 빙그레 타선을 농락했다. 선동열의 삼진 14개는 한 투수가 기록한 한국시리즈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이었다. 완봉도 노리던 선동열은 그러나 8회 1사 후 손가락 물집으로 자진해서 마운드를 내려왔고, 후속 투수인 [[문희수]]는 9회 1사 1, 3루의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무실점으로 막으며 팀의 첫 승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 물집으로 선동열은 더 이상 한국시리즈 등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 2차전 ===
||<-15><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2차전, 10.20(목), 18:00, [[무등 야구장|{{{#ffffff 무등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ff660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한희민]] || 4 || 0 || 0 || 1 || 0 || 0 || 0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5''' || 7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이상윤(야구선수)|이상윤]] || 3 || 0 || 0 || 0 || 1 || 2 || 0 || 0 || - || '''6''' || 11 ||
중계방송사는 KBS 1TV.
빙그레의 선발은 [[한희민]], 해태는 [[이상윤(야구선수)|이상윤]]을 선발로 내세웠다. 빙그레가 구사한 전략에 따르면 이 경기는 한희민으로 잡아야 했는데, 일단 초반에는 맞는 듯 싶었다. 1회초에 이상윤의 제구 난조, 급히 1회에 올라온 [[김정수(1962)|김정수]]의 난조를 틈타 4점을 내면서 앞서 나간 것. 문제는 한희민도 똑같이 투구가 좋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1회말 공격에서 빙그레는 해태의 [[김준환]], [[김봉연]], [[서정환]]에게 잇따라 안타를 맞으며 3점을 내주고 만다.
4회초 빙그레는 [[이정훈(1963)|이정훈]]의 안타로 도망갔지만, 5회말에 해태가 바로 [[이순철]]의 안타로 추격에 성공했다. 5:4의 살얼음 승부를 가른 것은 실책이었다. 6회말 해태 공격에서 김봉연의 평범한 내야 뜬공을 빙그레 2루수 조양근이 놓치면서 경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평정심을 잃은 한희민을 급히 [[이상군]]으로 교체했지만, 이상군은 백인호에게 3루타를 맞고 동점을 허용했고, 이순철에게 역전 적시타를 내주며 결국 빙그레는 시리즈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 있었고, 잡아야만 했던 경기를 어이없이 놓치고 말았다. 이순철은 이틀 연속 결승타를 날리면서 김성한이 빠진 공백을 아주 훌륭하게 매웠다.
=== 3차전 ===
||<-15><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3차전, 10.22(토), 14:00,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ffffff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문희수]] || 0 || 1 || 0 || 0 || 0 || 2 || 0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3''' || 4 ||
||<bgcolor=#ff660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김대중(야구 선수)|김대중]]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6 ||
중계방송사는 MBC TV.
해태는 선발로 [[문희수]]를, 2차전에서 이상군을 소모한 빙그레는 선발로 [[김대중(야구 선수)|김대중]]을 올렸다. 해태나 빙그레 모두 공격이 딱히 신통하지는 않았지만, 집중타는 해태가 나왔고, 그걸로 경기가 갈렸다. 해태는 2회초 공격에서 1사 1,3루에서 나온 [[서정환]]의 땅볼로 선제점을 냈고, 6회초에 무사 2,3루 찬스를 잡아 내야안타와 희생플라이로 2점을 더해 낼 점수는 다 냈다. 반대로 빙그레는 6안타를 쳐서 해태보다 2개는 더 많이 쳤지만, 문희수에게 산발로 묶이면서 경기 내내 끌려다녔다. 빙그레는 7회말 1사 만루의 경기 중 유일한 찬스를 잡았지만 이 찬스를 놓치면서 결국 무득점으로 끝났다.
선발 문희수는 9이닝을 6안타 7탈삼진으로 호투하면서 [[최동원]]에 이어 한국시리즈 통산 2번째 완봉승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이 승리로 해태는 한국시리즈 10연승의 위업도 아울러 달성하게 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 width=100%> '''{{{+1 역대 KBO 한국시리즈 완봉 달성자 명단}}}'''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dth=5%> '''순서''' ||<width=10%> '''달성자''' ||<width=10%> '''소속팀''' ||<width=10%> '''달성 일자''' ||<width=10%> '''달성 경기''' ||<width=10%> '''상대팀''' ||<width=10%> '''비고''' ||
||<bgcolor=#dcdcdc,#222222> 1 || [[최동원]] || [[롯데 자이언츠]] || 1984년 9월 30일 || [[1984년 한국시리즈#s-5.1|한국시리즈 1차전]] || [[삼성 라이온즈]] || 역대 최초 ||
||<bgcolor=#dcdcdc,#222222> 2 || [[문희수]] || [[해태 타이거즈]] || 1988년 10월 22일 || [[1988년 한국시리즈#s-4.3|한국시리즈 3차전]] || [[빙그레 이글스]] || ||
||<bgcolor=#dcdcdc,#222222> 3 || [[김태한]] || [[삼성 라이온즈]] || 1993년 10월 19일 || [[1993년 한국시리즈#s-5.2|한국시리즈 2차전]] || [[해태 타이거즈]] || 좌완 최초 ||
||<bgcolor=#dcdcdc,#222222> 4 || [[정삼흠]] || [[LG 트윈스]] || 1994년 10월 19일 || [[1994년 한국시리즈#s-4.2|한국시리즈 2차전]] || [[태평양 돌핀스]] || ||
||<bgcolor=#dcdcdc,#222222> 5 || [[이강철]] || [[해태 타이거즈]] || 1996년 10월 19일 || [[1996년 한국시리즈#s-3.3|한국시리즈 3차전]] || [[현대 유니콘스]] || ||
||<bgcolor=#dcdcdc,#222222> 6 || [[정명원]] || [[현대 유니콘스]] || 1996년 10월 20일 || [[1996년 한국시리즈#s-3.4|한국시리즈 4차전]] || [[해태 타이거즈]] || [[노히트 노런]] ||
||<bgcolor=#dcdcdc,#222222> 7 || [[정민태]] || [[현대 유니콘스]] || 2003년 10월 25일 || [[2003년 한국시리즈#s-3.7|한국시리즈 7차전]] || [[SK 와이번스]] || ||
||<bgcolor=#dcdcdc,#222222> 8 || [[다니엘 리오스]] || [[두산 베어스]] || 2007년 10월 22일 || [[2007년 한국시리즈#s-3.1|한국시리즈 1차전]] || [[SK 와이번스]] || 최소 투구수(99구) ||
||<bgcolor=#dcdcdc,#222222> 9 || [[아킬리노 로페즈]] || [[KIA 타이거즈]] || 2009년 10월 22일 || [[2009년 한국시리즈#s-3.5|한국시리즈 5차전]] || [[SK 와이번스]] || ||
||<bgcolor=#dcdcdc,#222222> 10 || [[양현종]] || [[KIA 타이거즈]] || 2017년 10월 26일 || [[2017년 한국시리즈#s-7.2.3|한국시리즈 2차전]] || [[두산 베어스]] || 최다 탈삼진(11K) ||}}} ||
=== 4차전 ===
||<-15><bgcolor=#ff6600> {{{#ffffff '''한국시리즈 4차전, 10.23(일), 14:00,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ffffff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신동수(1966)|신동수]] || 2 || 0 || 0 || 0 || 1 || 0 || 0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3''' || 10 ||
||<bgcolor=#ff660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한희민]] || 0 || 1 || 3 || 0 || 3 || 0 || 7 || 0 || - || '''14''' || 20 ||
중계방송사는 KBS 1TV.
우승을 위해 해태는 신동수를, 벼랑 끝에 몰린 빙그레는 [[한희민]]을 내세웠다. 1회초 해태가 한희민 상대로 4안타를 작렬하며 2점을 뽑을 때만 해도 또 4:0으로 시리즈가 끝나는가 싶었다. 그러나 빙그레는 2회말 공격에서 1점을 만회한 후, 3회 [[유승안]]의 2루타를 포함해 신동수와 [[방수원]]을 두들기며 3점을 추가하며 경기를 뒤집었다. 해태가 5회초 공격에서 [[김준환]]의 적시타로 추격하자, 곧바로 5회말에 [[장종훈]]의 2점 홈런을 포함해 3점을 더 내면서 승부를 3:7까지 벌렸다.
빙그레는 더 이상의 해태의 추격을 막기 위해 [[이상군]]을 투입했고, 이상군은 기대대로 해태의 추격을 막아줬다. 이상군이 마운드에서 안정을 가져다 준 사이 7회말 공격에서 차동철을 공략하며 [[이강돈]], [[유승안]]의 홈런을 포함해 대거 7점을 작렬하면서 결국 3:14의 대승을 거두며 팀 창단 후 첫 한국시리즈 승리의 기쁨을 맛 봤다. 빙그레는 이 날 20안타를 치면서 해태의 마운드를 그야말로 초토화시켰다.
=== 5차전 ===
||<-15><bgcolor=#ff6600> {{{#ffffff '''한국시리즈 5차전, 10.25(화),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ffffff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ff660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이상군]] || 1 || 0 || 0 || 0 || 4 || 0 || 0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5'''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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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계방송사는 MBC TV.
4차전 종료 후, [[김응용]] 감독은 5차전 빙그레 선발로 이동석을 생각했지만, 빙그레는 4차전 구원으로 나온 이상군을 하루 쉬고 다시 투입시켰다. 그리고 이상군은 기대에 부응하며 7이닝을 4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해태 역시 가을의 남자 [[김정수(1962)|김정수]]를 올렸지만, 김정수는 1회초 김한근에게 적시타를 내주더니, 5회초에 [[강정길]]에게 솔로 홈런을 맞고, [[장종훈]]에게 안타를 맞은 후, 강판 당했다. 이어 올라온 이상윤도 [[이강돈]]에게 적시타, [[이정훈(1963)|이정훈]]에게 2타점 2루타를 맞으며 점수차는 5점이나 벌어지게 되었다. 이상군의 구위로 봐서는 사실상 뒤집을 수 없는 수치였고, 그나마 8회말 공격에서 [[한희민]] 상대로 3안타를 집중시켜 1점을 만회한 것이 다행이었다.
=== 6차전 ===
||<-15><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6차전, 10.26(수),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ffffff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문희수]] || 0 || 0 || 0 || 0 || 3 || 0 || 0 || 1 || 0 ||<colbgcolor=#dcdcdc,#222222> '''4''' || 10 ||
||<bgcolor=#ff660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이동석(야구선수)|이동석]] || 0 || 0 || 0 || 0 || 0 || 0 || 0 || 1 || 0 || '''1''' || 3 ||
[youtube(9yvwfxL6vFc)]
중계방송사는 KBS 1TV.
비록 3연승 후에 2연패를 당하기는 했지만, 해태는 그 사이 3차전의 영웅인 [[문희수]]는 푹 쉰 상태였고, 사흘을 쉰 문희수는 해태의 선발로 6차전에 나섰다. 반대로 3연패 후에 짜내기를 통해 2승을 만회한 빙그레는 투수진이 바닥이 난 상황이었고, 결국 1차전 선발 이동석에게 다시 기대를 걸 수 밖에 없었다.
이동석은 1회초와 3회초에 위기를 맞았지만, 그 때마다 해태 주자들을 홈에서 아웃시키면서 4회 1사까지는 간신히 무실점으로 해태 타선을 봉쇄했다. 4회초 이동석이 [[서정환]]에게 안타를 맞자 빙그레는 김대중을 등판시켰고, 김대중은 일단 4회는 무실점으로 넘겼다. 그러나 결국 5회초 공격에서 해태는 김대중 상대로 2사 만루의 찬스를 잡았고, 여기서 [[김준환]]의 2타점 적시타와 [[한대화]]의 안타로 3점을 내면서 사실상 승부를 결정지었다. 그리고 8회초에 [[김봉연]]의 2루타로 1점을 더 달아나면서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8회말 공격에서 빙그레가 조양근의 솔로 홈런으로 추격은 했지만, 이미 기세가 지울어진 다음이었다.
[[파일:external/www.choicenews.co.kr/19775_10172_4750.jpg]]
9회말, 빙그레의 마지막 타자 [[황병일]]을 삼진으로 아웃시키고 환호하는 문희수의 모습.
그렇게 해태는 3년 연속으로 프로야구의 왕좌를 차지했으며, 한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쓰리핏]]을 달성했다.
선발 문희수는 3안타 1실점으로 완투하면서 빙그레 타선을 봉쇄, 시리즈 2승 1세이브, 그 2승 모두 완투로 장식하면서 팀 우승의 일등공신이 되며 한국시리즈 MVP가 되었다.
숨겨진 뒷이야기로는 2:0으로 앞선 상황에서 선동열[* 당시 손가락 부상이 심해 등판할 수 없었다. 해태 주치의가 몸풀기를 하면서 겁주는 작전을 생각해냈다.]을 불펜에서 몸을 풀게 하는 허장성세를 했고, 이에 빙그레 타자들의 맨탈이 흔들렸다고 한다. 그러자 다음날 선동열을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내었다|죽은 공명]][[https://youtu.be/Hj6r0TVoS4w?t=27m2s|에 비유하는 기사]]가 나왔다.
== 기타 ==
* 3차전 종료 시점에 또 한국시리즈가 4:0이 될 것으로 우려한 야구계의 높으신 관계자가 해태 [[김응용]] 감독에게 4차전은 좀 적당히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물론 김응용 감독은 거절하기는 했는데, 시리즈가 4,5차전을 빙그레가 잡으면서 묘하게 흘러가고 결국 6차전에서 간신히 해태가 이긴 후, 김응용 감독이 그 관계자에게 "야구의 흐름도 모르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식으로 일갈했다.
* 1988시즌이 전후기 시스템이 마지막 시즌이기 때문에 해태는 이 시스템으로 펼쳐진 시즌의 최후의 우승자가 된다.
* [[이순철]]이 평생 잊지 못할 경기가 1988년 한국시리즈 6차전이라고 한다. 그 해 절친했던 후배 투수 김대현을 교통사고로 잃고, 자신은 옆자리 동승했지만 가벼운 상처만 입고 살아났기 때문이라고. 해태 선수단은 김대현의 영전에 우승 트로피를 바치며 넋을 위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5차전 이내에서 끝났다면 그가 MVP를 타지 않았을까.
* [[1982년 한국시리즈]] 이후 6년 만에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대전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였는데 4차전에서 거둔 승리는 역대 대전/충청 연고팀이 홈에서 거둔 역대 최초의 한국시리즈 승리다. 1982년 한국시리즈 때는 1차전 경기가 대전에서 열렸으나 15이닝 무승부로 경기가 끝났다.
* [[빙그레 이글스]]는 1986년 리그 데뷔 이후 불과 3시즌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는데 이는 순수 신생팀 중의 최단기간 한국시리즈 진출 기록이며 이 기록을 넘어선 팀은 없다.[* 그동안 리그 확장 과정에서 창단된 신생팀으로는 제8구단 [[쌍방울 레이더스]], 제9구단 [[NC 다이노스]], 제10구단 [[kt wiz]]가 있다. NC는 2013년 1군리그 데뷔 이후 4번째 시즌인 [[2016년 한국시리즈|2016년에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고]] 쌍방울과 kt는 한국시리즈 진출 경험이 없다. 해체 후 재창단 형태로 창단된 [[SK 와이번스]]는 4번째 시즌인 [[2003년 한국시리즈|2003년에 한국시리즈에 나갔고]] [[키움 히어로즈]]는 7번째 시즌인 [[2014년 한국시리즈|2014년에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 관련 문서 ==
* [[해태 타이거즈]]
* [[빙그레 이글스]]
== 둘러보기 ==
[include(틀:한국프로야구 역대 포스트시즌 목록)]
[[분류:KBO 한국시리즈]][[분류:해태 타이거즈]][[분류:한화 이글스]] |
1989 카를스루에 월드 게임 | [include(틀:역대 월드 게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60px-World_Games_1989_logo.png]]
[목차]
== 개요 ==
[[1989년]] [[서독]] [[카를스루에]]에서 개최된 [[월드 게임]]. 50개국에서 약 4,000여명의 선수가 참가하였다.
== 이모저모 ==
* 19개 종목에서 개최되었다.
* 종합 우승은 [[이탈리아]], 종합 2위는 [[소련]]였다.
* [[대한민국]]은 금메달 8개를 따서 [[이탈리아]], [[소련]], [[서독]]에 이어 4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다.
[[분류:월드 게임]] |
1989년 | ||<-13><tablealign=center><bgcolor=#a9a9a9> {{{#000000 '''해'''}}} ||
||<-2> {{{-2 [[1986년]]}}} ||<-2> {{{-2 [[1987년]]}}} ||<-2> {{{-2 [[1988년]]}}} ||<bgcolor=#a9a9a9> {{{#000000 '''1989년'''}}} ||<-2> {{{-2 [[1990년]]}}} ||<-2> {{{-2 [[1991년]]}}} ||<-2> {{{-2 [[1992년]]}}} ||
||<-13><bgcolor=#808080> {{{#09081c '''연대'''}}} ||
||<-3> {{{-2 [[1960년대]]}}} ||<-3> {{{-2 [[1970년대]]}}} ||<bgcolor=#a9a9a9> [[1980년대|{{{#000000 '''1980년대'''}}}]] ||<-3> {{{-2 [[1990년대]]}}} ||<-3> {{{-2 [[2000년대]]}}} ||
||<-13><bgcolor=#778899> {{{#c4b73b '''세기'''}}} ||
||<-3> {{{-2 [[18세기]]}}} ||<-3> {{{-2 [[19세기]]}}} ||<bgcolor=#a9a9a9> [[20세기|{{{#000000 '''20세기'''}}}]] ||<-3> {{{-2 [[21세기]]}}} ||<-3> {{{-2 [[22세기]]}}} ||
||<-13><bgcolor=#2f4f4f> {{{#ffd711 '''밀레니엄'''}}} ||
||<-6> {{{-2 [[제1천년기]]}}} ||<bgcolor=#2f4f4f> [[제2천년기|{{{#ffd700 '''제2천년기'''}}}]] ||<-6> {{{-2 [[제3천년기]]}}} ||
||<-2><tablealign=right><bgcolor=#cbb8ee,#231047> '''세계 각 지역의 표기''' ||
|| [[서력기원|서기]] || 1989년 ||
|| [[대한민국 연호|대한민국]] || 71년 ||
|| [[단군기원|단기]] || 4322년 ||
|| [[불멸기원|불기]] || 2533년 ||
|| [[황기]] || 2549년 ||
|| [[이슬람력]] || 1410년 ~ 1411년 ||
|| [[갑자|간지]] || [[무진]]년 ~ [[기사]]년 ||
|| [[주체사상|주체]] || 78년 ||
|| [[중화민국|민국]] || 78년 ||
|| [[일본]] || [[쇼와 시대|쇼와]] 64년 ~[br][[헤이세이 시대|헤이세이]] 원년 ||
|| [[히브리력]] || 5748년 ~ 5749년 ||
|| [[에티오피아]] || 1981년 ~ 1982년 ||
[목차]
== 개요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122600209218010&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9-12-26&officeId=00020&pageNo=18&printNo=20996&publishType=00020|동아일보 선정 1989년 국내외 10대 뉴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122600329215002&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9-12-26&officeId=00032&pageNo=15&printNo=13616&publishType=00020|경향신문 선정 1989년 국내외 10대 뉴스]]
1980년대의 마지막 해이자 [[일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1989년은 [[1989년 동유럽 혁명|동유럽 공산정권들이 도미노마냥 붕괴되면서]] 전세계 뉴스거리가 되었다. [[베를린 장벽]]과 [[철의 장막]]이 무너졌으며, [[폴란드 인민 공화국|폴란드]], [[헝가리 인민 공화국|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인민 공화국|루마니아]] 등 동유럽에 있던 모든 공산 독재 정권들이 몰락하였다. 대다수 동구권 국가들은 평화적으로 개혁/개방을 쟁취했으나 루마니아만 폭력으로 뒤늦게 쟁취해냈고, 같은 이유로 꿈과 희망에 가득찼던 당시 [[중국]] 대학생들이 [[천안문 6.4 항쟁|천안문 광장에서 피를 흘리기도 했다]].
반면 한국 정치/사회적으로는 진보세력의 탄압이 본격화된 해인데, 전년도 12월부터 노태우 대통령이 '법질서 수호'를 시사하는 담화를 한 후 1월 풍산금속 안강공장 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했다. 이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현장에선 언제나 경찰력이 투입됐고, 공안사건 수도 갈수록 늘어갔다. 동년 봄에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을 계기로 공안정국이 형성되어 역사를 거꾸로 걷기도 했다. 하반기 들어 5공 청산 요구가 대두하여 전두환 전 대통령을 국회로 불러내 증언케 했으나, 전두환 본인이 5.18 광주학살 등 신군부 때 죄과를 상당수 부인해 5공 청산은 실패로 돌아갔다. 교육계에선 진보적인 학교 교사들을 중심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결성하여 1961년 교원노조 해체 후 28년만에 교사 노동조합을 부활시켰으나, 이는 교육계과 일반 대중들 내부에서부터 논란을 불러일으켜 정부의 탄압으로 이어졌다.
[[대전시]]가 [[충청남도]]에서 분리되어 [[직할시]]로 승격됨과 동시에 이웃 대덕군을 편입했다. 그리고 경기도에선 군포-의왕 2개 읍이 시흥군에서 분리되어 시로 승격되었고, 시흥군 역시 시로 승격되었다. 또 미금읍 역시 남양주군에서 분리되어 시로 승격되었다. 동부읍 등 일부 지역이 광주군에서 분리되어 [[하남시]]가 출범되기도 했다. 1989년도 대학 입학생부터 [[교련]]이 교육과정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조선총독부]]의 명령으로 강제 폐지되었던 음력 [[설날]]이 이 때부터 공식적으로 국가 [[공휴일]]로 부활하였고 북한에서도 음력설이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이 때를 시작으로 그 동안 양력 설날([[새해 첫날|신정]])의 귀성 및 귀경 행렬이 음력 설날로 옮겨졌다. 1999년부터 신정 휴일이 단 하루로 축소됨에 따라, 이 때부터 오랫동안 이어져왔던 신정의 고향길 행렬이 완전히 사라졌다.[* 다만 이 날이 매년 새해 첫 날이기 때문에, 동해안 등으로 해맞이를 보러가는 행렬은 이어진다. 신정의 귀성 및 귀경 행렬이 되면 해맞이를 보러 가는 인파까지 섞였다고 할 수 있으나, 이 때부터 해맞이 행렬과 고향길 행렬이 사실상 분리되었다.] 그리고 여권법 시행령 개정으로 관광 허용 연령기준이 철폐돼 해외여행 자유화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졌다.
[[호텔롯데]] 측이 [[롯데월드 어드벤처]]를 먼저 [[서울]] [[송파구]] [[잠실]]에 개장해 한국에 실내 테마파크 시대를 개막했고, 또한 87년부터 이어진 부동산 열풍으로 집값이 급등하는 일이 벌어져서 노태우 정부의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지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 [[1기 신도시]]([[분당신도시|분당]], [[일산신도시|일산]], [[중동신도시|중동]], [[평촌신도시|평촌]], [[산본신도시|산본]]) 계획이 발표되어, 1996년까지 대대적인 [[신도시]] 건설이 이루어졌다.
[[일본]]에서는 [[쇼와 덴노]]의 사망으로 60여 년에 걸친 [[쇼와 시대]]가 끝나고 아들 [[아키히토]]가 황위에 오르면서 [[헤이세이 시대]]가 시작되었다. [[연호]]를 사용하는 일본 특성상 쇼와 64년인 1989년 1월 1일~7일에 태어난 사람들은 마지막 쇼와 시대 출생자들이 된다. 또한 만화계와 가요계에서 [[데즈카 오사무]], [[미소라 히바리]]라는 두 거물을 잃은 해였다. 그리고 일본의 [[거품경제]]가 절정으로 치달아 가고 있었다. 이미 [[주식시장]]에서는 [[잃어버린 10년#s-2|버블의 붕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국제 노동운동권에서는 1889년 노동절 지정을 기준으로 '메이데이 100주년'이라 하여 크게 기념하는데, 한국의 전국투본은 4.30 세계노동절 기념대회를 앞두고 기존의 3월 10일 근로자의 날을 '노동자 불명예의 날'로 규정하여 굴욕에 찬 지난날의 근로자 인생을 청산하고 한국전쟁 이후 단절되었던 5월 1일 노동절의 전통을 회복할 것을 선언해 메이데이 쟁취를 크게 알렸다.
== 주요 화제 ==
=== 공안정국, 1989년 ===
1988년 여소야대 정국으로 유화 분위기가 형성되던 시절인 1989년 3월 25일 [[문익환]]의 방북 사실이 알려지고, 같은 달 27일에 열리려던 '남북작가예비회담'이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고 30일에 당시 108일째 계속되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파업에 정부가 공권력을 전격 투입하면서 공안정국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4월 3일에는 안기부와 검찰, 경찰, 보안사 합동으로 '공안합동수사본부'가 조성되면서 대대적인 공안몰이에 들어갔다. 또 전민련과 전대협의 지도부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검거에 착수했으며 이로 인해 시인 고은과 전민련 조국통일위원장 이재오가 구속되었다.
공안정국이나 색깔논쟁 시 [[김대중]]보다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김영삼]]에게도 시련이 닥쳐오는데, 4월 14일에 강원 동해시 보궐선거 후보자 매수와 관련하여 서석재 의원이 구속되면서 야3당 공조체제가 와해돼 버린 것이다. 그리고 6월 27일에 [[서경원]]의 밀입북 사건이 밝혀지면서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더 큰 피해자가 되었다. 7월 27일에 안기부에서 구인장을 발부하자 김대중은 전 평민당 부총재 [[문동환(정치인)|문동환]]과 함께 검찰에 출도해 조사받는 수모를 겪기까지 했다.
이러한 일들이 속속 터지자 민정당은 모처럼 정국 주도권을 쥘 수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공안 약빨도 떨어지고 5공 청산 요구가 되살아나자 결국 오래 가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해 3당 합당으로 공안통치가 다시 시작되었다.
=== 음력 설의 부활 ===
>총독부령에 따라 내지인([[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전 조선인 또한 '''일본의 새해 명절(양력 1월 1일 신정)'''을 의무적으로 명절로 보낼 수 있도록 공포한다. 만약 이를 어기고 음력으로 명절을 보내어서 학교를 조퇴하거나 직장에서 조퇴하거나 노무를 멈추거나 그 외 조선식으로 세배 등을 하는 자는 총독부령에 따라 엄벌에 처할 것을 공포한다. 모든 경찰서 경찰과 주재소 순사들은 조선인들 중에 음력으로 명절을 보내는 자가 있는 경우 불문하고 체포하도록 한다.[br] - [[조선총독부]]
>1989년 음력 1월 1일을 전통 설 명절로 지정하고 그에 준하는 연휴를 지정한다.[br] - 1989년 내무부
이 해는 1896년부터 [[을미개혁]]에 따라 양력 설과 통합되었고 일제가 음력 설을 강제로 양력 설(신정)로 통합하게 되어서 폐지되었던 음력 설이 완전히 부활한 해였다. 일제는 한일 강제병합 이후 조선총독 훈령 공포에 따라 내지인(일본인)과 조선인 모두 '''일본식 명절(신정)'''을 보내도록 의무화하였으며 이를 통해서 음력 설에 차례를 지내거나 떡방아를 돌리는 자에 대해서 강제적인 단속과 처벌에 들어갔다. 또한 흰 옷을 입고 설 세배를 가거나 귀성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검은 먹물로 공격하였던 때가 있었다. 이전에는 신정은 3일 연휴로 지냈고 음력설 당일이 공휴일이 된것도 1985년 민속의 날로 지정된 이후부터였다. 이 때부터 설날과 추석이 3일 연휴가 된거다.
덧붙여 그 동안 연휴로 지정된 신정은 1990년부터 새해 첫날과 그 다음날만 쉬게 되었고, 1999년부터는 하루만 쉬게 되었다.
=== [[동유럽]] 국가들과의 수교 ===
[[1988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이 해는 대한민국이 그 동안 친북 및 [[공산주의]] 성향을 가진 동유럽 국가들과 잇따라 국교수립을 맺은 해였다. 이 해에는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와 수교를 맺었으며 이듬해에도 [[루마니아]],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 등과도 수교를 맺었고 드디어는 공산국가의 수장격인 [[소련]]과 국교를 수립하였다. 유일하게 [[동독]]은 1990년 10월 3일 동서통일이 되면서 동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대한민국과 영구적으로 미수교 상태의 나라가 되었다.
1945년 해방 및 남북분단 당시에만 했어도 대한민국은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와 단독 수교를 맺어왔으며 동유럽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였던 [[그리스]]를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와도 수교하지 않았다. 대신 [[동유럽]] 국가들은 [[북한]]과 단독수교를 하였으며 이들은 대부분 친북 성향을 가지며 국제사회에서도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이전해인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 대부분이 참가하면서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이 동유럽과의 교류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 해에 가서야 그 결실을 맺는다.
== 사건 ==
=== 실제 ===
==== 1월 ====
* [[1월 1일]]
* [[노태우]]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을 강조하였다.
* [[북한]] 지도자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남북정치협상회의' 제의 및 [[김수환]] 추기경 등 남한 재야인사 평양 초청 의사를 밝혔다.
* 여권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가 실시되었다.
* 몬트리올 의정서가 발효되었다.
* 공윤은 이날부로 무대공연물 각본/대본 사전심의를 폐지하였다.
* [[충남]] [[대전광역시|대전시]]가 [[대덕군]]을 편입하여 '''[[대전광역시|대전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충청남도에서 분리되었다.
* 매일경제신문사가 《매경PC저널》을 창간하였다.
* [[1월 2일]] - 풍산금속은 안강공장 폐쇄 후 경찰력 1,700여 명을 사업장 내에 투입토록 했다.
* [[1월 3일]]
* 김집 체육장관은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체육선수 파견 의사를 밝혔다.
* 서울지검은 KAL기 폭파범 [[김현희(1962)|김현희]]에게 국보법 등 죄목을 적용해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 미국 [[CBS(미국 방송)|CBS]]에서 <[[아세니오 홀|아세니오 홀 쇼]]>가 첫 전파를 탔다. 이 토크쇼의 호스트 [[아세니오 홀]]은 [[미국 흑인]] 최초의 레잇 나잇 [[토크쇼 호스트]]였다.
* [[1월 4일]]
* 산은 및 장기신용은행이 신탁업무 취급을 개시하였다.
* 울산경찰서는 현중 노조위원장 이형건 등 4명을 업무방해, 폭력행위 등의 혐의로 연행했다.
* 예총은 윤이상이 추진 중인 남북음악축전을 5~9월 내에 개최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 [[1월 5일]]
* 30사단 공병대대 이동균 대위와 김종대 중위가 군의 정치적 중립과 정치 군인의 각성을 촉구토록 하는 '명예선언'을 발표하였다.
* 민가협과 의문사진상규명위가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을 촉구하였다.
*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이하 민주법연)가 발족되었다.
* [[문교부]]는 3월부터 고졸 이상의 젊은이들에게도 '해외[[유학]]자유화' 조치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 [[1월 6일]]
* 민정당은 전두환 국회증언과 관련해 '선 서면질의 후 방문증언' 방침을 확정지었다.
* 문교부는 고졸 젊은이들의 해외유학을 허용하도록 시달했다.
* 부시 [[미국 대통령]] 지명자는 새 주한 미국대사에 도널드 그렉을 지명하였다.
* [[1월 7일]]
* 정부는 LPG 엔진 허용을 1톤 미만 미니버스와 미니트럭에도 허용키로 한다고 밝혔다.
* 검찰 5공비리특수부는 손제석 전 문교장관 소환 후 일해재단 설립경위 등에 대해 조사했다.
* [[쇼와 덴노]](히로히토)가 사망하여 아들 [[아키히토]]가 황위를 승계하였다.
* [[오부치 게이조]] 일본 내각관방장관이 새 연호 '헤이세이'를 공개하였다.
* [[노태우]] 대통령은 [[쇼와 덴노]]를 애도하는 조전을 보냈다.
* 외무부 관계자는 강영훈 국무총리를 조문사절로 파견할 것을 고려중이라고 밝혔다.
* '국제화학무기금지회담'이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되었다.
* 동 회담이 '화학무기 금지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 <전남일보>가 창간되었다.
* [[1월 8일]]
* 현대중전기 노조대의원 단합대회장 및 현해협 사무실이 구사대를 자처한 괴한 50명에게 습격당했다.(이하 현대중전기 노조 및 현해협 피습사건)
* [[헤이세이 시대|아키히토 황위 승계에 따라 헤이세이 원년이 시작되었다.]]
* [[1월 9일]]
* 국회 광주특위 정웅 의원 등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 주둔지였던 주남마을 현장 발굴 과정에서 변사체 1구를 발견했다.
* 검찰 5공비리특수부는 [[사공일]], [[최순달]] 등을 소환해 대한선주 정리 등을 조사하였다.
* [[1월 10일]]
* 울산경찰서는 현중 노동자 피습사건 관련자 한유동 현대엔진 전무와 재미 노조파괴전문가 제임스 리(이윤섭)을 구속하였다.
* 재불화가 고암 이응노 화백이 세상을 떴다.
* [[1월 11일]]
* 정부와 민정당은 '남북한교류특례법'을 제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북한측은 럭키금성상사 홍콩 현지법인과의 상담을 통해 한국산 TV 5만대를 주문하였다.
* 1980년 당시 해직된 언론인 770명의 숙정사유가 보안사 자료를 통해 공개되었다.
* [[1월 13일]] - [[소련]]을 방문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귀국 기자회견에서 '한-소 민간경협위원회' 발족을 제의하였다.
* [[1월 14일]]
* 국민은행이 '마이카 부금제'를 실시하였다.
* 북한측은 묘향산 일대를 자연보호구로 설정했다.
* [[1월 15일]] - 방글라데시 통기 부근에서 열차 충돌사고가 발생해 110명 이상이 죽고 1천 명이 부상당했다.
* [[1월 16일]]
* 5.18 당시 특전사 7공수 33대대 중사였던 최영신이 주남마을 양민학살에 대한 양심선언서를 발표하였다.
* [[미국 정부]]는 그해 9월부터 [[한국]]-[[일본]]-[[필리핀]] 등이 참가할 '육해공 통합 대규모 태평양군사훈련(PACEX)'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
* 연형묵 북한 총리는 강영훈 총리에게 '남북고위급 정치/군사회담'을 위한 대표단 파견을 촉구하는 편지를 전달했다.
* 제4회 중앙과학기술축전이 북한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 [[1월 17일]]
* [[노태우]]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중간평가 여야 의견으로 결정, 연내 지자체 실시, 남북정상회담 실현 등을 발표하였다.
* 제445차 군사정전위 본회의가 휴전 36년만에 판문점에서 비공개로 개최되었다.
* [[1월 18일]] - [[전남대]]생 50여 명과 [[조선대]]생 2백여 명은 광주 미국문화원과 광주지검을 기습해 "노태우 처단"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 [[1월 19일]]
* 삼성중공업 민주노조쟁취위 소속 노동자 6명 및 대학생 16명이 삼성그룹 본관 3층 테라스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 민청련이 '전국청년단체대표자협의회(이하 전청대협)'로 새로 출범하였다.
* '예술의전당 노동조합'이 발족되었다.
* [[1월 20일]]
* 대구고법은 강간범의 혀를 깨문 변월수에게 정당방위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하였다.
*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와 [[댄 퀘일]]이 새 [[미국 대통령]] 및 부통령직에 각각 취임하였다.
* [[1월 21일]]
* 민통련이 '전국민주민족운동연합(이하 전민련)'으로 새로 출범되었다.
* 전민련 조통위는 북한에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을 3월 1일 정오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 [[1월 23일]]
*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이 [[북한]]을 방문하였다.
* 블라디미르 골라노프 소련 연방상공회의소 부의장이 방한 중에 대한무역진흥공사를 찾아왔다.
* 김유순 북한 조선올림픽위원장은 김종하 KOC 위원장의 남북체육대표 접촉 수락을 통보하였다.
* [[1월 24일]] - 정부와 민정당은 구정연휴를 3일로 확정 후 명칭을 '설날'로 바꾼다고 밝혔다.
* [[1월 25일]] - 부산지역 일간지 <항도일보>가 창간되었다.
* [[1월 26일]]
* 국회 광주특위는 [[최규하]], [[전두환]] 두 전 대통령에게 동행명령장을 발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거부하였다.
* 북한 외교부는 핵무기 및 화학무기 철폐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 [[1월 27일]] - 장세동 前 대통령 경호실장[* 경호실장을 마치고 안기부장으로 이동했다]이 5공 비리와 관련되어 구속되었다.
* [[1월 28일]]
* '전국시설관리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농수산물유통공사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월 29일]] - 한국노총 금속노련 산하 서울, 경기, 인천 노동자 5만여 명이 대학로에서 노동운동 탄압분쇄 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 [[1월 30일]] - 북한의 김일성은 미국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 용의가 있음을 발표하였다.
* [[1월 31일]]
* 검찰은 전경환 전 새마을본부장 등 47명을 구속하였다.
* 동아건설 건설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 2월 ====
* [[2월]] 중
* '부천지역 임금인상 및 노동법 개정 투쟁본부'가 결성되었다.
* '서울노동자문화예술활동위원회(이하 서노문위)'가 결성되었다.
* [[2월 1일]]
* [[통일교]] 계열 일간지인 [[세계일보]]가 창간되었다.
* 국제신문이 언론통폐합 이후 폐간 9년만에 복간되었다.
* 일본 사회당이 한국을 공식 인정하였다.
* 전대협은 [[연세대]] 기자회견에서 정부 주도의 남북대학생교류회에 불참할 것을 선언하였다.
* 한국-헝가리 양국이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이는 첫 공산권 국가와의 수교였다.
* 법무부는 소련 등 14개 미수교국가에 대해 입국절차를 개선하였다.
* [[2월 2일]]
* 문교부는 대학생의 [[과외]] 교습을 허용한다고 발표하여 과외 규제가 처음으로 완화되었다.
* 전교협은 교원노조 결성을 선언하였다.
* 완구업체인 (주)삼모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이에 사측은 구사대를 풀어 폭력으로 노조 활동을 방해하였다.
*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귀국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측과 합의한 금강산 공동개발, 시베리아 개발 공동참가, 합자투자회사 설립 추진 등 3개 합의사항을 발표하였다.
* 북한 외교부는 헝가리와의 관계를 대리 대사급으로 격하시켰다.
* [[2월 3일]]
* 국내 최초로 5.18 민주화운동을 명확히 다룬 다큐멘터리 <어머니의 노래>가 MBC에서 방송되었다.
* 일월서각은 일본 구월서방과 남북한 간행물 상호 공급조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하였다.
* 서울지검은 1987년 KAL기 폭파범 김현희를 살인죄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하였다.
* 삼모 노조위원장 김혜련이 사측에 의해 강제 감금/해고당했다. 이후 그녀는 4월 19일에 구속되었다.
* [[2월 6일]] - [[일본 제국|일제]]에 의해서 강제로 폐지되었던 음력 [[설날]]이 이 해부터 다시 국가공휴일 및 연휴로 지정되어 부활하였다. 그 동안 양력설([[새해 첫날|신정]])에 주로 귀성 및 귀경길 행렬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 당시까지는 고향길 행렬이 한산하였다.
* [[2월 8일]]
* 판문점에서 '남북고위당국자회담 예비회담'이 건국 최초로 열렸다.
* '전문대학총학생회연합'이 결성되었다.
* 한국광고주협회가 설립되었다.
* [[2월 9일]]
* 국무회의는 '[[화염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의결하였다.
* 전국 35개대 총학대표는 [[서울대]]에서 등록금 동결을 요구하는 공동 투쟁성명을 발표하였다.
* 석남미술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 [[2월 10일]]
* 정부는 임시국무회의에서 '남북교류협력법안'을 의결하였다.
* '전국해직언론인 원상회복쟁취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2월 11일]] - 서울지검은 '인천·부천지역민주노동자회(이하 인부노회) 사건’을 발표하여 6일 뒤에 관련자 5명을 구속하였다.
* [[2월 13일]]
* 전국 90개군 농민 2만여 명이 '수세 폐지 및 고추 전량수매 쟁취를 위한 전국농민대회'를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하였다.
* 북한-모로코 양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2월 14일]] - 토지공개념위원회는 '고소득자 5%가 임야 84.1% 소유' 등지의 각종 토지소유 실태를 발표하였다.
* [[2월 15일]]
* 서총련 소속 대학생 15명이 [[주한미국대사관]]을 방문하여 한-미 팀 스피릿 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전달하였다.
* [[소련군]]의 마지막 부대가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아프간]]에서 철군을 완료한 후 9년동안 지속되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소련의 패배로 끝이 났다.
* [[2월 16일]]
* 대통령 직속 교육정책자문회의가 발족되었다.
* 정부는 사회정화위를 폐지하고 반공연맹을 '자유총연맹'으로 개편하였다.
* 전남대생 등 150여 명이 광주 미문화원을 기습하고 유인물을 뿌리며 시위를 벌였다.
* 우경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 [[2월 18일]]
* 전민련이 주최한 '서울시민 결의대회'가 경찰의 원천 봉쇄로 무산되었다.
* 일제의 강제 징용으로 소련 사할린에서 타향살이하던 우리 동포 9가족 17명이 40여년 만에 일시 귀국했다.
* [[2월 19일]]
* 전교협은 대의원회의에서 교원노조 결성을 결의하였다.
* WBA 밴텀급 챔피언 문성길이 일본의 고바야시 치아키를 KO로 꺾어 2차로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 [[2월 20일]]
* 대한변협은 정부의 남북교류특례법과 관련해 국보법 폐지 병행을 주장하였다.
* '범민족평화문화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밤 10시 43분부터 3시간 44분 동안 전국 각지에 개기월식이 발생했다.
* [[2월 21일]]
* '서울지역 민중교육운동 탄압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에서 발생한 노조와 구사대 간 충돌 과정에서 노조원 2명이 식칼에 찔려 부상을 입었다(현대중공업 노동자 식칼테러 사건).
* [[2월 22일]]
* [[호남대]]생 30여 명은 호화판 지방청와대로 악명이 높았던 전남도지사 공관에 기습해 방화하였다. 이로 인해 공관 1~2층이 전소되었다.
* 서울시내 9개 재야 청년단체가 [[쇼와 덴노]] 조문사절 파견을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 여연은 서울 종로 파고다공원에서 '[[히로히토]] 조문사절 파견 규탄대회'를 개최하였다.
* (주)삼모 측은 노조 탄압을 위해 신림/가리봉동 일대 조폭 '짧은머리파'를 라인에 배치하였다.
* [[2월 23일]]
* 강영훈 국무총리는 [[쇼와 덴노]]의 장례식에 참석키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 전대협은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공식 참가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 현대중공업 서울결사대가 이날부로 상경하였다.
* 당일자 [[주간조선]]에 <좌파에도 우파에도 손짓 / 수행의원들 추태 만발: [[김대중]] 총재 유럽순방 뒷얘기>라는 제목으로 [[평민당]]의 유럽순방 중 추태를 보도했다. 이는 '[[조평사태]]'의 발단이 되었다.
* [[2월 24일]]
* 현대중공업 서울결사대는 평민당과 통민당 당사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 쇼와 덴노의 국장이 일본 도쿄에서 거행되었다.
*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 811편 B747-122기가 [[태평양]] 상공에서 동체 일부 파손이 발생해 급히 호놀룰루에 착륙했으나, 승객 337명 중 9명이 숨졌다.([[유나이티드 항공 811편 사고]])
* [[2월 25일]]
* 전민련은 당일 '노태우 정권 규탄 범국민대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고 104명이 연행되었다.
* 서울지검 공안부는 북한 원전 <근대조선역사> 등 3종에 대해 출판사와 서점을 압수수색하였다.
* [[일본]] TV아사히에서 <[[고속전대 터보레인저]]>가 첫 전파를 탔다.
* [[2월 26일]] - 부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였다.
* [[2월 27일]]
* 부시 [[미국 대통령]]은 방한 후 한미정상회담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안보협력, 통상마찰, 북방정책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 전민련 회원 등 30여 명은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부시 방한 반대'를 외치며 [[주한미국대사관]]까지 행진하여 가두 시위를 벌였다.
* 정부와 민정당은 삼청교육대, 광주항쟁, 해직공무원 등에 대한 보상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 민교협 등 4개 단체는 전국 76대 교수 3,643명의 연명으로 교육관계법의 민주적 개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2월 28일]] - 체신부는 정권홍보 도구로 이용된 대통령 기념우표를 더 이상 발행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 3월 ====
* [[3월 1일]]
* [[노태우]] 대통령은 [[3.1절]] 기념식에서 '민주체제 전복세력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천명했다.
* '전국농민운동연합(이하 전농련)'이 결성되었다.
* 판문점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이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었다.
* 종래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대한민국 표준어|표준어]] 규정이 폐지되고, 새 [[맞춤법|한글 맞춤법]] 및 표준어 규정이 전면 시행되었다.[* 가장 유명한 예시로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뀌었다.]
* [[3월 2일]]
* '남북 고위당국자회담을 위한 제2차 예비회담'이 판문점에서 개최되었다.
* 문공부는 불교방송과 평화방송 설립을 인가하였다.
* PLO 대사관이 북한 평양에 개설되었다.
* [[3월 3일]]
* 평민당은 [[주간조선]]의 평민당 유럽순방 추태 관련기사에 대해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해당 기사가 '허위/왜곡'이라고 주장하며 공개 사과와 정정보도를 요구했다.
* 이상수 평민당 대변인은 '그동안 그들 당에 적대적인 입장으로 일관해 온 조선일보를 끝까지 규탄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 기아산업이 준중형급 승용차 '캐피탈'을 출시하였다.
* [[3월 4일]]
* 야당 3당이 총재회담을 열어 중간평가 조기실시 강행 시 불신임 연계투쟁을 할 것을 합의하였다.
* 작가회의는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의 조선작가동맹에 '남북작가예비회담'을 제의했다.
* '실향민중앙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3월 5일]]
* [[정병주]] 전 특전사령관이 실종 4개월만에 경기 양주군 송추유원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 프로권투 선수 김용강이 일본의 레오파드 타마쿠마를 상대로 WBC 플라이급 타이틀 2차 방어에 성공했다.
* '광주지역노동조합협의회(이하 광노협)'가 결성되었다.
* [[3월 6일]]
* 국회 법률 개폐특별위원회는 집회 및 시위에 대한 제한과 벌칙의 완화 등을 골자로 한 집시법 개정안을 의결시켰다.
* 서울지하철노조는 사측과의 합의각서 이행을 요구하며 무임승차를 실시하였다.
* [[경기도]] [[화성군]] 8개 마을 주민 7백여 명은 [[매향리]] 공군 사격장에서 사격장 이전 등을 외치며 농성을 벌였다.
* [[홍범도]] 장군의 초상화가 소련령 카자흐 공화국에서 발굴되었다.
* [[3월 7일]]
* 평민당은 [[김대중]] 총재 유럽순방 기사와 관련하여 [[조선일보]] [[방우영]] 사장과 [[주간조선]] 기자 부지영 등 5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였다.
* 이란측은 살만 루시디가 쓴 <악마의 시>에 대한 영국 정부의 출판금지 거부에 반발해 영국과의 단교를 선언하였다.
* [[3월 8일]]
* 국회 보사위는 '의료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전대협은 '[[노태우]] 퇴진투쟁 기간'을 선포하였다.
* 경찰은 [[현대그룹]] 사옥 앞 노동자들의 텐트 농성을 강제 해산하여 노동자 262명을 연행하였다.
*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광주는 말한다>가 KBS1에서 방송되었다.
* KBO는 구단주 회의에서 프로야구 [[쌍방울 레이더스|제 8구단]] 창설에 합의하였다.
* 갑을그룹이 [[영남일보]]를 인수하였다.
* [[3월 9일]]
* 판문점에서 열린 제1차 남북체육회담에서 단일 대표팀 단가로 [[아리랑]]을 쓰기로 합의하였다.
* 국회 본회의는 사회보호법, 집시법, 지자체법, 노동조합법 등 4개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폴란드 정부와 자유노조는 자유선거에 의한 양원제국회 및 대통령제 채택에 합의하였다.
* [[3월 10일]] - [[노태우]] 대통령은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의 회담에서 '신임 불연계 중간평가 국민투표안'을 시사하였다.
* [[3월 11일]]
* 평민-공화 양당은 [[김대중|총]][[김종필|재]]회담에서 '단순 정책평가' 양해에 동의했으나 민주당은 반대하였다.
* 전민련은 사회안전법 폐지 후 보호관찰법 제정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전대협은 서강대 메리홀에서 '평양축전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 [[3월 12일]]
* 쇼트트랙 선수 김기훈이 소피아 동계유니버시아드 쇼트트랙에서 3관왕을 차지하였다.
* 전국투본은 연세대 신촌캠에서 1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현대재벌 폭력테러 규탄 국민대회'를 개최하였다.
* [[3월 13일]]
* 남북대학생 교류추진위원회는 대학생들의 평축 참가 문제로 '남북 대학생 교류회담'을 제의하였다.
* '평민당 조선일보허위보도 대책위'는 [[주간조선]] 평민당 유럽순방 기사와 관련하여 조선일보에 87억 2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 중앙기상대는 '자동응답예보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실시하였다.
* [[3월 14일]]
* [[팀 스피릿]] '89 훈련이 개시되었다.
* 전민련 등 8개 재야민주단체가 주축이 된 '노태우 정권 퇴진을 위한 공동투쟁본부'가 결성되었다.
* KBS1에서 <[[남북의 창]]>이 첫 전파를 탔다.
* [[3월 15일]]
* 내무부는 인구 50만명 이상의 시에 구청제 실시를 골자로 한 '지방행정구역 개편안'을 확정하였다.
* [[김용갑]] 총무처 장관이 좌경세력과의 강경 대응을 주장하며 돌연 사퇴했다.
* [[3월 16일]]
* 서울지하철노조가 전면 파업을 전개하였다.
* 서울 성동구 군자차량기지에서 3천여 명의 노조원이 농성을 벌이다가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1,344명이 연행되었다.
* [[3월 19일]] - [[민가협]] 양심수후원회가 발족되었다.
* [[3월 20일]]
* 노태우 대통령은 중간평가를 사실상 취소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 소설가 [[황석영]]이 방북했다.
* 한국기독교사회운동연합이 결성되었다.
* [[3월 21일]] - 여야 대표들은 노태우 대통령에서 대한 중간평가 유보 대신 5공 청산과 광주문제 및 지방자치제 해결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 [[3월 22일]]
* 노태우 대통령은 공안장관회의에서 공공시설을 습격할 시 총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 한국피코 노조원 2백여 명이 주한미국상공회의소를 점거하여 임금 체불 후 도주한 미국인 사장을 규탄하였다.
* '''직경 1km 소행성'''이 지구가 '''6시간'''전에 통과한 곳을 지나갔다. 이 소행성이 날아올때 어떠한 방법이 없어서 [[NASA]]는 멍하니 지켜봐야만 했다고.
* [[3월 24일]]
* 노태우 대통령은 지자체법, 의보법,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 KNCC는 "경찰에 M16 소총을 지급하고 자위권 발동을 지시한 것은 국민에 대한 위협"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3월 25일]]
* [[문익환]] 목사, 정경모, 유원호 일행이 방북 후에 '통일을 논의하러 왔다'는 도착성명을 발표하였다.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이하 한철연)가 설립되었다.
* [[3월 27일]]
* 문익환 목사 일행과 황석영이 김일성과 회담을 열었다.
* 판문점 남북작가회담 예비회담이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고 고은 등 문인 20명이 연행되었다.
* [[3월 28일]] - '베이징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을 위한 제2차 남북체육회담'이 개최되었다.
* [[3월 29일]] - 일본 도쿄 코토쿠와카스 15호지 해변공원 정비공장 현장의 콘크리트 드럼통 속에서 후루타 준코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 [[3월 30일]]
* 경찰은 108일째 파업 중이던 현대중공업에 전의경 70개 중대 9천여 명을 투입해 농성을 강제 해산시켰다.
* 김영삼 통민당 총재는 회견에서 문익환 목사의 방북을 비판하였다.
* 다케시타 일본 총리는 북한측에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유감 의사를 표명하고 공식문서에 '북한' 국명을 쓰겠다고 밝혔다.
* [[3월 31일]]
* 전민련 등 40개 재야대표 2백여 명이 '문익환 환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노동문학사가 <월간 노동해방문학>을 창간하였다.
==== 4월 ====
* [[4월]] 중 - [[헝가리 인민 공화국|헝가리]] 측이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철조망을 철거했다.
* [[4월 1일]]
* 종합주가지수(현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1,000 포인트를 돌파했다.
* 반공연맹이 '[[한국자유총연맹]]'으로 출범하였다.
* [[마거릿 대처|대처]] 영국 총리가 인두세 도입을 시사하여 주민들의 반발을 받기 시작했다.
* 현대자동차가 소형차 '엑셀(X-3)'을 출시하였다.
* [[4월 2일]] - 문익환 목사가 허담 북한 조평통위원장과 함께 '자주적 평화통일' 9개항에 공동 서명하였다.
* [[4월 3일]] - 검/경/안기부 합동기구 '공안합동수사본부'가 구성되었다.
* [[4월 4일]]
* [[허형구]] 법무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국보법 개정안을 수정하는 대신, 현행 법률을 유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 경찰은 현대중공업 노조가 농성 중이던 오좌불 숙소에 전의경 2천명을 투입해 강제 해산시켰다.
* [[4월 5일]] - 베트남 정부는 캄보디아 주둔 베트남군의 무조건 철수를 결정하였다.
* [[4월 6일]] - '한국방송개발원'이 발족되었다.
* [[4월 8일]]
* 정부는 1989~1991년까지 농축산물 수입자유화 예시계획 및 보완대책을 발표하였다.
* 원로 연극인 이해랑이 세상을 떠났다.
* [[4월 9일]]
* 유남호-현정화 조가 제40회 도르트문트 세계탁구선수권대회 혼합복식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 쇼트트랙 선수 김기훈이 1989 세계 남녀 실내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남자 1,000m 결승에서 우승하였다.
* 한국서예협회가 설립되었다.
* [[4월 10일]]
* 공안합수부는 북한 원전 등 이념서적을 출판/판매한 출판사 11개와 서점 296개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 민주시인 김남주의 시선집 <사랑의 무기>가 출간되었다.
* [[4월 11일]]
* [[금성사]]노조 창원1지부 및 금성산전 노조가 전면파업에 돌입하였다.
* 한출협은 공권력의 북한 관련 서적 압수수색에 대해 출판탄압 중지와 출판인 석방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4월 12일]]
* [[이부영]], [[이창복]], 지선 스님, 조성우 등 전민련 간부들이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 북한은 이날로 예정된 제3차 남북총리회담 예비회담의 연기를 통보하였다.
* [[4월 13일]]
* [[문익환]] 목사와 유원호가 서울 [[김포공항]]으로 귀국하자마자 공안합수부에 의해 연행되었다.
* 전민련은 문익환 목사의 석방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4월 14일]]
* 호청련 자유민주수호결사대가 전민련 사무실에 난입해 30여분간 무단 점거했다(전민련 피습사건).
* 서노협 단병호 의장이 서울지하철 파업과 관련해 '제3자 개입금지' 위반 혐의로 고발되어 연행되었다.
* [[한겨레]] 논설고문 [[리영희]] 교수와 임재경 부사장이 방북 취재를 계획하다 공안합수부에 의해 '잠입 탈출죄'로 연행되었다.
* 북한 [[평양]] [[능라도]]에 15만명 수용규모를 지닌 '[[릉라도5월1일경기장]]'이 완공되었다.
* [[4월 15일]]
* [[후야오방]] 전 중국 총서기가 사망했다.
* 영국 요크셔 주 셰필드 힐즈브러 구장에서 열린 리버풀-노팅엄 간 FA컵 준결승전 도중 관중 대량난입으로 94명이 죽고 766명이 다쳤다.([[힐스버러 참사]])
* [[4월 16일]]
* 프로 권투선수 김봉준이 WBA 미니멈급 챔피언결정전에서 콜롬비아의 아구스틴 가르시아를 꺾어 타이틀을 차지하였다.
* 서노협 단병호 의장이 구속되었다.
* [[4월 18일]]
* [[김승훈]] 마티아 신부, 백기완 등 12명은 재야 민주인사 89명이 서명한 <현 시국에 대한 89인 선언>을 발표하였다.
* 북한의 김일성은 새 부총리직에 강희원 조선로동당 정치국원을 임명했다.
* [[4월 19일]]
* 영남일보가 폐간 9년만에 복간되었다.
* [[국제신문]]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 [[4월 20일]]
*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발족되었다.
* 전국투본과 서노협은 단병호 의장의 석방을 외치며 하루 동맹파업을 벌였다.
* 중국 천안문 광장에 10만여 명의 군중들이 운집했고, 민주화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천안문 6.4 항쟁|천안문 사태]])
* 중국 정부는 베이징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 [[4월 21일]]
* 대한제국 황녀 [[덕혜옹주]]가 세상을 떴다.
* [[닌텐도]]가 [[게임보이]]를 일본에 출시하였다.
* [[4월 22일]]
* 1달러 당 665.90원의 원화 시세를 기록했다. 이 달에만 6원이 하락하였다.
* 드라마 <사랑의 굴레>가 KBS2에서 첫 전파를 탔다.
* 제주지역 일간지 <한라일보>가 창간되었다.
* [[4월 23일]]
* 방북 중이던 황석영 작가는 북한 조선문학예술총동맹과 <남북의 문화예술을 통일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대한 합의서>를 채택하였다.
* 전국건설일용노동조합(이하 전일노련)이 결성되었다.
* [[4월 24일]]
* [[주일미군]]사령부는 일본에 있던 [[미 공군]] 일부 병력과 정찰기를 [[대구시]]로 이전한다고 발표하였다.
* [[이찬진]], [[김택진]] 등 4명의 컴퓨터학도들이 <한글 1.0>을 세상에 내놓았다.
* 자오쯔양 중국 총서기가 북한을 방문하였다.
* [[4월 26일]]
*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가 결성되었다.
* 일본 후지TV에서 《[[드래곤볼 Z]]》 애니판이 첫 전파를 탔다.
* [[4월 28일]] - 마산 및 창원지역 노동자 1만여 명이 5일째 구속자 석방과 고문 경찰관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었다.
* [[4월 30일]]
* '베트남참전전우회'가 발족되었다.
*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가 세상을 떴다.
*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개최 예정인 세계노동절 100주년 기념대회가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었다.
==== 5월 ====
* [[5월 1일]]
* 전국 노동자 5천여 명이 [[연세대]] 신촌캠에서 '세계 노동절 100주년 기념 전국 노동자대회'를 개최하였다.
* '성남지구노동조합총연합(이하 성남노련)'이 결성되었다.
* 공안합수부는 문 목사 방북사건과 관련해 김대중 평민당 총재를 소환하였다.
* 어린이드라마 <댕기동자>가 MBC에서 첫 전파를 탔다.
* [[고려대]] 문과대 교수 64명은 이준범 총장 사퇴요구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 대럴 윈필드가 [[말보로 맨]]에서 은퇴했다.
* [[5월 2일]]
* 국방부는 용산의 주한 미8군 골프장을 다음해까지 서울 교외로 이전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하였다.
* [[5월 3일]]
* 부산 동의대 도서관에서 피랍경찰 구출작전 도중 화재가 발생해 경찰 7명이 죽고 10여 명이 부상당했다([[5.3 동의대 사태]]).
* 전국대학원생대표자협의회(이하 전원협)가 결성되었다.
* [[5월 4일]] - 현기영, 천승세 등 문인 505명은 노태우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5월 6일]]
* [[임종석]] 전대협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5.3 동의대 사태를 계기로 비폭력 평화시위 원칙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 [[코리아세븐]]이 서울 방이동에 세븐일레븐 한국 1호점을 오픈하였다.
* [[5월 10일]] - 광주 청옥동 수원지에서 조선대 교지 편집위원장 이철규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이철규 의문사 사건]]).
* [[5월 11일]]
* 야 3당은 이철규 변사사건의 진상을 조속히 규명할 것을 요구하며 국회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교과교육을 위한 교사모임연합회'가 결성되었다.
* [[5월 14일]]
* 전교협은 서울 등 전국 10개 지역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발기인 대회'를 강행하였다.
* 경동산업 임금인상대책위원 출신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친목단체 '디딤돌'이 결성되었다.
* [[5월 15일]]
*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중국을 방문하였다.
* '전국기관차분회장협의회(이하 전기협)'가 결성되었다.
* <경상일보>가 창간되었다.
* [[5월 16일]]
* 여야 중진회의가 처음으로 가동되었다.
* '서울지역민주주의학생연맹(이하 서민학련)'이 결성되었다.
* [[5월 17일]]
* 이날 열린 제3차 한미 통상실무회담에서 양국은 외국인 투자제한 철폐 및 서비스시장 개방에 합의하였다.
* 중-소 양국은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군사, 경제, 사회분야 상호협력을 위한 18개항에 서명하였다.
* [[5월 18일]]
* 광주시민 15만 명은 항쟁 9주기를 기념하며 '이철규 사인 진상규명 및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집회/시위를 벌였다.
* 광주/전남지역 7개대 교수 854명은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5월 19일]] - 방북 일정을 급히 마친 [[자오쯔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단식농성 중이던 학생들에게 단식을 철회할 것을 요청했다. 자오쯔양이 사실상 이들을 지지하자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갔다.
* [[5월 20일]] - [[중국 정부]]가 [[베이징]]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 [[5월 23일]] - 소련 정부는 체코슬로바키아 주둔 소련군 철수를 개시하였다.
* [[5월 24일]] - [[일본 정부]]는 대북한 학술 교류를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고 발표하였다.
* [[5월 26일]] - 전대협 소속 학생대표 470명이 명동성당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하였다.
* [[5월 28일]]
* 종전의 전교협을 대신하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이는 1961년 이후 28년만의 교원노조의 부활이었다.
* 전교조 결성대회 주도교사 26명은 통민당사에서 교원노조 탄압 중지와 연행교사 석방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 [[5월 30일]] - 경제기획원과 한국은행은 5월 중 물가동향에서 물가가 전년도에 비해 6%나 올라갔다고 발표하였다.
==== 6월 ====
* [[6월 1일]]
* 내외경제가 복간되었다.
* 광주지역 대학생과 시민 4천여 명은 검찰의 이철규 익사 발표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 일본 NHK가 위성 TV채널 2개를 개국하였다.
* [[6월 2일]]
*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21세기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김영삼]] 통민당 총재가 소련 과학아카데미 산하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의 초청으로 소련을 방문하였다.
* 서총련 소속 34개대생 8백여 명은 [[고려대]] 안암캠에서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 준비위원회 발족식'을 열었다.
* [[6월 3일]] - [[이란]]의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6월 4일]]
* '''[[중국]] [[천안문 6.4 항쟁|베이징 계엄군이 천안문 시위를 유혈진압해 시민 수천여 명이 죽고 1만여 명이 부상당했다.]]'''
* [[폴란드 인민 공화국|폴란드]]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부분적 자유선거에서는 [[독립자치노동조합 '연대']]가 압승하고 공산당이 몰락했다. [[1989년 동유럽 혁명|동유럽 공산당 정권 붕괴의 시작이었다.]]
* [[6월 5일]] - [[문규현 바오로 신부]]가 다음날 평양 장충성당에서 열릴 '남북 공동 통일염원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방북했다.
* [[6월 6일]] - 북한 원산~금강산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 [[6월 8일]] - 노태우 대통령은 한국일보 창간 기념 특별 회견에서 임기 중 중간평가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6월 9일]]
* 윤영규 위원장 등 전교조 간부 5명이 구속되었다.
* [[서울대]] 등 서울시내 25개 대학 학생들은 '청년학생 6.10 1주년 기념대회 및 판문점 출정식'을 열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전대협은 연세대 신촌캠에서 '[[명동성당]] 구국단식투쟁 계승 및 6.10 회담 성사 결의대회 및 평양축전 참가 대표단 1차 발족식 및 북한 대표단 방문 환영대회'를 열었다.
* 대구/경북지역 6개대 교수 242명은 전교조 결성 지지성명을 발표하였다.
* [[6월 10일]] - 전대협이 제의한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예비회담'이 무산되었다.
* [[6월 12일]] - 고르바초프 소련 총서기가 [[서독]]을 방문하였다.
* [[6월 13일]]
* 정부는 남북교류협력에 대한 기본지침을 발표하였다.
* 서울 [[구로고]] 학생들은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징계철회를 요구하며 교내시위를 벌였다. 이때 동교 학생 유호철과 서윤석이 투신하여 중상을 입었다.
* [[6월 14일]]
* 전국노점상연합회 회원 2천여 명은 [[성균관대학교]]에서 생계보장과 양연수 회장 석방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 서총련 소속 8개대생 67명은 이철규 사인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평민당과 통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였다.
* [[6월 15일]] - 전교조 서울지부가 결성되면서 전국 14개 지부로 확립되었다.
* [[6월 16일]]
* 종전의 사회안전법이 보안관찰법으로 바뀌면서 보안감호제도가 폐지되었다.
* [[헝가리 혁명]] 당시 소련에 의해 처형당한 개혁파 지도자 [[너지 임레]]의 정식 장례식이 31년만에 [[헝가리 인민 공화국|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열렸다. 그동안 공산 정권 하에서 반동 폭동으로만 치부되던 헝가리 혁명이 민주화 운동으로 사실상 공식 인정되는 순간이었다.
* [[6월 17일]] - '환경과 공해 연구회'가 발족되었다.
* [[6월 18일]] - 버마 정부는 정식 국명을 '버마 연방 공화국'에서 '미얀마 연방 공화국'으로, 수도명을 '랭군'에서 '양곤'으로 각각 바꾸었다.
* [[6월 19일]] - 경제기획원 등 7개 경제부처 장관들이 합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하반기 경제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 [[6월 21일]] - 영화감독 등 영화인 2백여 명은 미국 UIP 직배 반대를 요구하며 대학로에서 시위를 벌였다.
* [[6월 22일]] - 동아엔지니어링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23일]] - 전대협은 학생 1천여 명을 모아 통일선봉대를 조직하여 제주에서 서울까지 '평축홍보 통일대장정'에 돌입하였다.
* [[6월 24일]]
* 광주 [[조선대]]생 4백여 명은 이철규 사인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광주지검을 습격하였다.
* 중국 정부는 자오쯔양 대신 새 총서기에 [[장쩌민]] 정치국원을 선출해 당 지도부를 개편했다.
* [[6월 27일]]
* 1988년에 방북한 서경원 평민당 의원이 안기부에 의해 전격 구속되었다.
* EC는 대륙 내 금융 통합에 합의하였다.
* [[6월 28일]] - 안기부는 평민당 서경원 의원의 방북 사실을 그가 방북한 지 1년 만에 '간첩활동'으로 발표했다.
* [[6월 29일]]
* 토지공개념을 명시한 '주택소유 상한제 및 개발이익 환수에 대한 법률안'이 입법 예고되었다. 이 법안은 7일 뒤에 공시되었다.
* [[한양대]] 서울캠에서 '평양축전 참가 출정식'이 개최되었다.
* 전대협은 한국외대 여학생 임수경을 평축 남한대학생 대표로 평양에 파견했다고 밝혔다.
* 대전 한국가톨릭농민회 습격사건이 발생했다.
* <전남매일신문>이 창간되었다.
* [[6월 30일]]
* [[한국외대]] 용인캠 불어과생 [[임수경]]이 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평양축전을 앞두고 방북했다([[임수경 방북 사건]]).
* 전대협은 한양대에서 평축 참가를 위해 '판문점 돌파 출정식'을 거행하였다.
* 경찰은 임종석 전대협 의장 체포를 위해 한양대에 진입하여 학생 2천여명을 연행했다.
==== 7월 ====
* [[7월 1일]]
* 대검은 전대협 평축준비위를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소속 간부 20여 명에 대해 검거령을 내렸다.
* 치안본부는 [[여익구]] 민불련 의장 등 핵심간부 5명을 국보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 문교부는 전교조에 단순 가담한 교사도 일괄 해임시키도록 전국 시/도 교육위원회에 지시했다.
* 제13회 세계청년학생축전이 북한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그러나 개최 과정에서 생긴 지나친 비용 증대로 인해 [[북한의 80년대 3대 실정]] 중 하나로 꼽힌다.
* [[7월 2일]] - 안기부는 서경원 방북 사건에 대한 불고지죄 혐의로 한겨레 기자 윤재걸의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하였다.
* [[7월 3일]] - 고속도로관리공단 노동조합이 발족되었다.
* [[7월 4일]]
* 전노련 소속 노점상 1천 5백여 명은 명동성당에서 정부의 대책없는 노점상 철거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 일본 자민당이 도쿄 도의원 선거에서 참패하였다.
* [[7월 5일]]
* 양궁선수 김수녕이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제35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 경인지역 14개대 교수 90명은 민교협 사무실에서 전교조 가입 성명을 발표하였다.
* 북한-잠비아 양국 당정대표단이 평양에서 회담을 열었다.
* [[7월 7일]]
* 전대협 대표 [[임수경]]은 북한 평양에서 조선학생위원장 김창룡과 '남북청년학생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소련 모스크바에서 사상 최초로 '한국주간' 행사가 개최되었다.
* [[7월 8일]]
* 김수녕-왕희경-김경욱 조가 로잔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 윌리엄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환태평양 경제협력을 위한 새 기구 구성을 제안하였다.
* KAIST 김명환 교수팀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슈퍼컴퓨터를 개발하였다.
* [[7월 9일]]
* 한국-이라크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전교조 측은 서울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부당징계 철회 및 전교조 합법성 쟁취대회'를 열었다.
* 부시 [[미국 대통령]]이 [[폴란드]]를 방문하였다.
* [[7월 11일]]
* 검찰은 한겨레 기자 윤재걸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를 적용해 안기부가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나 한겨레 측은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이를 거부했다.
* 부시 대통령이 [[헝가리]] 인민 공화국을 방문하였다.
* [[7월 12일]]
* 호텔롯데가 [[서울]] 잠실에 국내 최초의 실내 테마파크인 '[[롯데월드 어드벤처]]'를 개장하였다.
* 안기부는 수사요원 및 경찰 8백여명을 동원해 한겨레 편집국을 압수수색했다.
* [[7월 13일]]
* 전교조는 소속 교사들의 단식수업이 194개 학교로 확산되었다고 발표했다.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발족되었다.
* 환기재단이 발족되었다.
* [[7월 14일]] - 헌법재판소는 구 사회보호법 5조 1항 '필요적 보호감호' 부분을 위헌으로 판결하였다.
* [[7월 15일]]
* 서방 G7 국가 정상들은 중국에 민주화운동 탄압 종식을 강력히 촉구하고 동서관계/테러방지 및 인권문제 등 4개 주요의제에 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 중국-몽골 양국이 30년 만에 정상적으로 관계를 회복하였다.
* [[7월 17일]]
* 정부는 국가보안법 및 안기부법의 개정 방침을 철회하였다.
* 제21차 한미 연례협의회에서 한국은 방위비 분담증액 등에 동의하였다.
* [[7월 18일]]
* 서울형사지법은 장세동 전 대통령 경호실장에게 대통령경호실법 및 형법상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징역 10개월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하였다.
* 영화배우 강수연이 임권택 감독 작품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제16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 [[7월 19일]]
* 진관 스님 등 30여 명은 '불교탄압저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지선 스님 등 구속 불자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DC-10기가 수시티 공항 착륙 도중 유압계통 결함으로 비상착륙 후 대파되었다. 이 사고로 탑승객 296명 중 111명이 사망했다.([[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사고]])
* [[7월 20일]]
* 전노련이 [[동국대]]에서 '1백만 노점상 생존권 완전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었다.
* 광주시내 고교생 1만 5천여 명은 [[전남대]]와 [[광주대동고]]에서 '교원노조 지지 및 징계철회 요구 연합집회'를 개최하였다.
* [[7월 22일]]
* '부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이하 부노협)'가 결성되었다.
* 전국투본은 [[명동성당]]에서 '전교조 탄압 규탄 및 구속자 석방 촉구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 [[7월 23일]]
* 남북체육회담 북측대표단은 김상협 한적 총재에게 제2차 고향방문단/예술단 방문에 대한 한국측의 실무제의 요구를 수락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 서노문위가 '서울노동자문화예술단체협의회(이하 서노문협)'로 새로 창설되었다.
* [[7월 24일]] - (사)한국종이접기협회가 설립되었다.
* [[7월 26일]]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명동 가톨릭회관 기자회견에서 [[문규현 신부]]의 방북파견 및 [[임수경]] 방북 방어를 발표하였다.
* 서울시교육위는 전교조에 가입한 공립 초/중/고 교사 485명을 8월 1일부로 직위 해제시킨다고 밝혔다.
* 전교조 소속 교사 450여 명은 명동성당 내 성모동산 앞에서 '부당징계 철회 및 전교조 사수를 위한 단식농성 결단식'을 열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 영덕행 울릉도 관광 헬리콥터가 울릉도 인근 해상에 추락해 탑승인원 20명 중 14명이 사망했다.
* '광주지역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광고협)'가 결성되었다. 광고협은 결성 즉시 전교조 지지 성명을 발표하였다.
* [[7월 27일]]
* [[임수경]]과 [[문규현 신부]]가 판문점 통과를 요구하며 판문점 북측지역에서 단식농성을 벌였다.
*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 20명이 판문점으로 향하려다 연행되었다.
* 서울발 KAL 803편 DC-10-30 여객기가 리비아 트리폴리 공항 착륙 도중 악천후로 추락해 탑승인원 199명 중 80명이 사망/실종되고 나머지 119명이 부상을 입었다.([[대한항공 803편 추락 사고]])
* 안기부는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 문동환 전 부총재에 대한 구인장을 발부하였다.
* [[7월 28일]] - 당일 상경한 부산, 광주지역 노점상 5백여 명은 서울지역 노점상들과 연대해 노점상 철거 중지를 요구하며 야3당 당사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 [[7월 29일]] -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등 16개 천주교 단체들은 문규현 신부의 북한 파견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7월 31일]]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비상총회에서 [[문규현 신부]]의 북한 파견을 추인하고 국보법 폐지 등 4개항에 결의하였다.
* 전북 민교협 소속 교수 40여 명은 전교조 탄압 중지를 요구하며 시한부 단식에 돌입하였다.
*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를 평양축전에 보낸 [[홍성담]] 화백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연행되었다.
*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는 [[주한미군]] 감축안인 '넌-워너 수정안'을 상원에 제출하였다.
* 소련 정부는 반체제 작가의 작품 반입을 허용하였다.
==== 8월 ====
* [[8월 1일]] - 인의협 광주/전남지회는 영광원전 인근 주민들을 상대로 역학조사 결과 방사능 오염증세가 나타났다고 발표하였다.
* [[8월 3일]] - MBC는 [[박철언]] 정무 제1장관이 6월에 두 차례 방북했다고 보도하였다.
* [[8월 4일]]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7.7 선언의 유효 여부와 북한정부 인정 여부를 묻는 공개질의서를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냈다.
* 안기부는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 필름을 보낸 홍성담 화백 등 작가 7명을 구속하였다.
* 서진룸살롱 살인사건 가해자 고금석 등 7명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 '부산지역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부고협)'가 결성되었다.
* [[8월 5일]]
* 검찰은 전교조에 공안 차원의 수사방침을 천명하며 국가보안법 적용도 고려했다.
* 변형윤 등 [[서울대]] 교수 47명은 전교조 탄압 중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8월 6일]]
* [[한국 정부]]는 남북체육회담을 무기한 연기하였다.
* WBA 미니멈급 챔피언 김봉준이 도전자인 이삼중을 상대로 1차 방어에 성공하였다.
* [[8월 7일]]
* 박형규 목사 등 개신교계 인사 1천 5백여 명은 '전교조 대책 기독교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KNCC는 노태우 정부 첫 시국성명에서 방북인사 단순 사법처리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 대학생 10여 명이 석관동 안기부 청사 정문에 화염병을 투척하였다.
* 동양경제신문이 사원들의 노조설립에 맞서 폐업/폐간신청을 냈다.
* [[8월 8일]]
* 대법원은 강간범의 혀를 깨문 변월수 여인에게 '정당방위'를 인정하여 무죄를 확정하였다.
* 북한측은 제450차 군사정전위에서 임수경의 판문점 통과를 허용하라고 유엔군에 요구하였다.
* [[8월 12일]]
* 전교조는 교사와 재야단체 회원 1만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대국민 가두서명과 단체방문 서명운동을 개시하였다.
* 서울시내 26개 천주교 단체는 보안법 철폐 서명운동을 전개하였다.
* [[8월 13일]] - 서울 씨네하우스 등 5개 직배영화 상영관에 방화/최루가스 소동이 발생했다.
* [[8월 14일]]
* 배용균 감독 작품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이 제42회 스위스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 국사학자 두계 이병도 박사가 세상을 떴다.
* [[8월 15일]]
* 노태우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제시하였다.
* 임수경과 문규현 신부가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으나 안기부에 의해 연행되었다.
* 전남 여천군 거문도 바닷가에서 중앙대 안성캠 총학생회장 이내창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이내창 의문사 사건).
* 월간 <다리> 지가 복간되었다.
* [[8월 17일]]
* 특허청은 당해 첨단기술 공업 소유권 등록에서 외국인이 78%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보안법 철폐 범국민 서명운동'을 개시하였다.
* 전청대협은 [[임수경]]과 [[문규현 신부]]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민중 유화작품 <모내기>를 그린 신학철 화백이 구속되었다.
* [[8월 18일]] - 이날 개최된 영등포을구 재선거에서 민정당 나웅배 후보가 38.3%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 [[8월 19일]] - 대한항공 특별 전세기가 처음으로 중국 상하이에 도착하였다.
* [[8월 20일]] - 안기부는 '한미문제연구소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김현장과 김영애 부부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 [[8월 21일]]
* 상공부는 '뉴미디어 산업 육성계획'을 마련하고 국지정보통신망 구축에 앞서 뉴미디어시를 1990년부터 시범운영한다고 밝혔다.
*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소련침공 20주년 기념식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 [[8월 22일]]
* KNCC는 전교조 인정, 구속자 석방, 국보법 철폐를 주장하는 성명서를 채택하였다.
* 콜롬비아 정부는 갈란 상원의원 암살을 계기로 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 [[8월 23일]] - [[소련]] 산하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공화국에서 200만 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독-소 밀약 무효화 및 자치확대를 요구하며 이들 수도인 탈린(에스토니아)-리가(라트비아)-빌뉴스(리투아니아)를 잇는 총 600km의 인간사슬, 이른바 ''''발트의 길''''을 형성했다.
* [[8월 24일]] - [[폴란드 인민 공화국|폴란드 공산정권]]이 42년만에 무너지고 바웬사의 자유노조 정부가 수립되어 수백년간 이어져 온 러시아의 사슬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주 독립을 쟁취했다.
* [[8월 25일]]
* '지역/업종별 노동조합회의'는 9차 회의에서 전교조 지지 활동에 참여하기로 하는 등의 하반기 사업을 확정하였다.
* 미국의 [[보이저(탐사선)|보이저 2호]]가 [[해왕성]]과 그 위성 [[타이탄]]을 통과했다.
* [[8월 27일]] - 일본 자위대가 태평양 군사훈련에 참가하였다.
* [[8월 28일]]
* 정부와 민정당은 토지공개념 법안에 대해 재검토했다.
*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국민대생 김정환은 KNCC 인권위원회에서 보안사의 생매장 위협으로 학원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았다는 내용의 양심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8월 29일]] - 전대협은 각 대학별로 '임수경 사법처리 반대 및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청년학생 결의대회'를 열었다.
* [[8월 30일]]
* 노태우 대통령은 민정당 당직 개편을 단행하여 이종찬 대신 새 총장에 이춘구, 새 총무직에 이한동을 각각 임명하였다.
* KBS, MBC, CBS 3사 노조가 '방송악법 개폐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8월 31일]]
* KNCC 소속 목회자 1천여 명은 '전국교역자 비상시국 철야기도회'를 열어 공안정국 타개에 앞장서기로 결의하였다.
* 전자오락기 업체 남경실업이 노래방기기 업체 금영실업으로 바꾸었다.
==== 9월 ====
* [[9월 1일]]
* 강영훈 총리는 전국 주요 하천의 수질을 1급수로 향상시키는 '맑은물 종합대책'을 마련하였다.
* 서울 뚝섬 [[렛츠런파크 서울|경마장]]이 경기도 [[과천시]]로 이전했다.
* 상공부는 8월 중 무역수지에서 4억 3천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잠정 집계하였다.
* 부시-가이후 간 미일정상회담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개최되었다.
* 전교조 울산/울주지회 사무실에 괴청년 3명이 침입해 숙직 중이던 장인권 지회장대리를 구타했다.(울산 전교조 피습사건)
* 인천노동법률상담소가 문을 열었다.
* [[9월 2일]] - 경남 마산시 산호동 마창노련 사무실에 괴한 6~7명이 난입해 서종 홍보간사 등 상근자 5명을 집단폭행했다.(마창노련 피습사건)
* [[9월 4일]]
* 파업 중이던 경동산업 노동자들이 노조 탄압과 노동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집단 분신 및 할복을 벌였다. 이로 인해 노동자 강현중과 강이신 이사가 9일에, 노동자 김종하가 15일에 숨을 거두었다.
* [[동독]] [[라이프치히]]에서 [[에리히 호네커]]와 동독 공산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는 [[베를린 장벽]] 붕괴, [[동서독 통일|독일 통일]]의 단초를 마련한 소위 월요시위(Montagsdemonstrationen)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 [[9월 7일]] - 경찰측은 동국대 진입 후 공연 중이던 북한가극 <피바다>를 강제 중단시키고 관련자 118명을 연행하였다.
* [[9월 8일]] - MBC노조는 전날 보도 및 편집국장 선거제 단체교섭이 결렬되자 전면 파업에 돌입하였다.
* [[9월 10일]] - 소련의 외교거물 미하일 카피차와 게오르기 아르바토프가 한국을 방문하였다.
* [[9월 11일]]
* 노태우 대통령은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하였다.
* [[헝가리 인민 공화국|헝가리]] 정부가 [[오스트리아]]와의 서부 국경을 전면 개방하여, [[동독]] 주민들의 탈출이 시작되었다.
* [[9월 12일]] - 치안본부는 '안양민주노동자일동그룹(이하 안양PD그룹)'을 적발내 이기동 등 관련자 6명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안양민주노동자일동그룹 사건)
* [[9월 15일]]
* 한국인구보건원은 한국인 성인 표준체위를 남자 키 171cm, 체중 64kg/여자 160cm, 53kg으로 발표하였다.
* 서독 녹색당은 유럽의회와 앰네스티에서 임수경과 문규현 신부의 석방운동을 벌였다.
* [[9월 16일]] - 도널드 그레그가 새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하였다.
* [[9월 17일]]
* 노태우 대통령은 2년마다 시상하는 '서울평화상' 제정계획을 발표하였다.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국도 26호선 모래재 구간에서 진안발 전주행 전북여객 완행버스가 벼랑 밑으로 추락해 승객 26명이 사망하고 55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 [[9월 18일]]
* 문익환 목사가 8차 결심공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 서울 올림픽공원에 '평화의 문'이 세워졌다.
* 헝가리에 유학했던 북한 대학생들이 모두 철수하였다.
* [[9월 19일]]
* 이상훈 국방장관은 수도권 북방에 동원 사단 2개를 창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 댄 퀘일 미국 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 [[9월 21일]] - 정부는 1990년 예산안을 발표하였다(전년도 대비 19.7% 증가).
* [[9월 22일]]: 전자시보가 <전자신문>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 [[9월 23일]]
* 종전의 문예연과 민문연이 통합하여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이하 노문연)'이 결성되었다.
* '한국우주소년단'이 발족되었다.
* G7 재무장관 회담이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되었다.
* [[9월 24일]] - '전교조 사수 및 합법성 쟁취를 위한 제2차 국민대회'가 전국 21개 지역에서 동시 개최되었다.
* [[9월 25일]]
* 사할린 동포 39명이 한민족체전 재소동포 대표단과 함께 처음으로 방북하였다.
*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한강 유등제에 북한 불교도도 참석시키도록 의결하였다.
* [[베트남군]]이 [[캄보디아]]에서 철수를 완료하였다.
* 미-일-EC 등 24개국은 폴란드/헝가리의 민주화 요구를 위한 후원국 회의에서 1990년도에 3억불 이상의 신규원조금을 제공키로 했다고 발표하였다.
* [[9월 27일]] - 한국자동차협회는 <89년 자동차생산분석>에서 당해 자동차 수출이 전년도 대비 39%로 줄었으나, 내수는 유례 없는 호조로 50% 이상 신장했다고 밝혔다.
* [[9월 28일]]
* 종전의 도서윤리위가 '(사)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로 새로 발족되었다.
* 헝가리 정부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철폐하였다.
* 줄러 호른 헝가리 외무장관은 유엔 연설에서 한국의 유엔 가입을 지지하였다.
* [[9월 29일]]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 15명이 방북을 신청하였다.
* [[9월 30일]]
* '마산/창원지역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마창고련)'이 결성되었다.
* <옥천신문>이 창간되었다.
==== 10월 ====
* [[10월 1일]] - 북한측은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염화비닐공장을 착공했다. 그러나 이는 훗날 80년대 북한 3대 실정 중 하나로 꼽혔다.
* [[10월 2일]] - 동-서유럽 26개국이 프랑스 파리에서 '유레카 계획'을 발족하였다.
* [[10월 3일]]
* 멕시코 드라마 <천사들의 합창>이 KBS2에서 더빙 방영되었다.
* 일본 도쿄지법은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
* [[10월 4일]]
* 제44차 세계[[성체성사|성체]]대회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개막되었다.
* '자유지성 300인회'가 발족과 동시에 <자유 지성인 선언>을 채택하였다.
* 전쟁방지국민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10월 5일]] - [[티베트]] 자치정부 수반 [[달라이 라마 14세]]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 [[10월 7일]]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세계[[성체성사|성체]]대회 집전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였다.
* 헝가리 공산당이 '사회당'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 동독 정부는 동베를린에서 건국 4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 [[10월 8일]] - 남북총리회담 제3차 예비회담이 판문점에서 개최되었다.
* [[10월 9일]]
* 한국 정부가 남극조약협의당사국(ATCP) 지위를 획득하였다.
* 9월부터 [[동독]] [[라이프치히]]에서 벌어졌던 민주화/개혁개방 요구 시위가 이날을 기점으로 동독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 [[10월 10일]] - 소련 IMEMO 소장 블라드렌 마르티노프가 통민당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였다.
* [[10월 11일]]
*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국회 본회의 연설에서 6인 핵심인사 처리 및 전두환과 최규하 두 전직 대통령의 국회 증언으로 5공 청산을 종결시킬 것을 표명하였다.
* 한국항공우주연구소가 설립되었다.
* [[10월 12일]]
* MBC 드라마 <[[수사반장(드라마)|수사반장]]>이 19년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 한국방송기자클럽이 결성되었다.
* 남북교수/학술교류추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문을 열었다.
* [[10월 13일]]
* 노태우 대통령은 주한미군 감축을 고려할 수 없고 미군 주둔비용에 대한 분담금 증액에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 서총련 소속 11개대 학생 6명이 부시 방한과 관련해 미 대사관저에서 점거농성하였다.
* [[10월 14일]] - 연전노협의 후신으로 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이하 전문노련)이 새로 결성되었다.
* [[10월 15일]]
* 국방부는 군 구조 개편안을 마련하였다.
* 노태우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다.
* 서울 동양공전생 설인종이 연세대 '만화사랑' 동아리방에서 운동권 학생들에게 프락치 혐의로 고문당해 숨졌다.([[설인종 고문치사 사건]])
* [[10월 16일]]
* 치안본부는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이하 인민노련)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햤다.
* 박영식 연세대 교수 등 한국대표단이 소련 모스크바대와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하였다.
* 남북적십자 제3차 실무대표 접촉에서 양국은 제2차 고향방문단 및 예술단 방문에 상호 합의하였다.
* 필리핀 하원은 1991년 이후의 미군기지 전속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의결하였다.
* 소련 모스크바에서 '한국상품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 [[10월 17일]]
* 노태우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은 워싱턴 한미정상회담에서 현 수준의 한미 연합방위능력 유지에 합의하였다.
* 정부는 문공부를 문화부/공보처로, 환경청을 처로 승격시킨다고 발표하였다.
* 경찰은 설인종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된 연세대생 6명을 구속하였다.
* [[10월 18일]]
* [[동양그룹]] 창업주 서남 [[이양구]]가 세상을 떠났다.
* 호네커의 실각으로 에곤 크랜츠 정치국원이 새 동독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했다.
* [[평민당]]은 평민당의 유럽순방 추태에 대한 [[주간조선]]의 보도가 허위라고 주장하며 조선일보를 상대로 제기했던 소송을 조건없이 취하했다.
* [[10월 19일]]
* 야 3당은 총재회의를 열어 연내에 5공 청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시 노태우 정권 퇴진운동을 할 것을 결의하였다.
* 헝가리 의회는 다당제 도입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10월 20일]]
* 제3차 남북체육회담에서 남북 양국은 대표팀 단기 제정에 합의하였다.
* 국제언론문화사가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을 창간하였다.
* [[10월 21일]] - 지역/업종별 노조 대표자 회의는 1990년 1월부터 전노협을 결성키로 선언하였다.
* [[10월 22일]]
* 소련 IMEMO 대표단이 통민당의 초청으로 방한하였다.
* 한국유화시험검사소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0월 23일]]
* 시거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하였다.
* 소련 외무장관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는 나토와 바르샤바군 양대 협상과 2000년까지 소련의 외국기지를 철수할 것에 대한 용의를 밝히며 동유럽 국가에 내정간섭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하였다.
* [[헝가리 인민 공화국]]에서 공산정권이 붕괴되었다. 이 날은 [[헝가리 혁명]] 33주년이기도 했다.
* [[10월 24일]]
* 북한은 한반도에서 군비 축소를 위해 남한과 미국은 다국적군축협상 제안에 응할 것을 촉구하였다.
* 한국노사교육본부가 설립되었다.
* [[10월 25일]] - 제18차 남북국회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버렸다.
* [[10월 26일]] - 폴란드에서 개최된 바르샤바조약기구 외무장관회담에서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폐기하도록 하였다.
* [[10월 28일]]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한국 축구대표팀]]이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 부천서 성고문사건 피해자 권인숙이 서울 구로동에 '노동인권회관'을 열었다.
* [[1989 월드 시리즈]]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4승 스윕하고 우승했다.
* [[10월 29일]] - [[1989년 일본시리즈]]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4승3패로 킨테츠 버팔로즈를 이겼다.[* 여담으로 10월 24일 벌어진 3차전은 도쿄돔에서 로널드 레이건 前 미국 대통령이 시구했다.]
* [[10월 30일]]
* 제24차 아시아-태평양의원연맹(APU) 총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각계 인사 977명이 전두환 처벌 및 정호용 의원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였다.
* [[10월 31일]]
* 폴란드의 얀 마예프스키 외무차관 등 정부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 흥아해운 소속 화학제품 운반선 인천 파이오니어 호가 [[파나마]] 선적 컨테이너선 에버 가이드 호와 [[인천 파이오니어호-에버 가이드호 충돌사고|충돌/침몰해]] 9명이 실종되었다.
==== 11월 ====
* [[11월 1일]]
* 한국-폴란드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이날 상공부가 잠정집계한 10월중 수출입 실적에서 무역 수지가 1억 1백만 달러의 적자를 냈다.
* [[해태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에서 [[빙그레 이글스]]를 4승 1패로 이기고 '''전대미문의 [[1989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했다.
* <대구일보>가 폐간 17년만에 복간되었다.
* [[11월 3일]]
* 정부는 쌀 수매값을 통일벼 11%, 일반벼 12%로 인상하는 안을 확정하였다.
* 전국 97개 대학생 3만여 명이 학생의날 60주년을 맞이해 '공안통치 분쇄'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전개하였다.
* 기협은 '분단상황 극복과 언론의 역할'이란 세미나에서 올해 안에 남북언론인교류 실현 및 국가보안법을 철폐키로 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 서울지검은 공업용 우지를 사용한 삼양식품 등 5개 식품회사 대표와 관계자 10명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입건하였다([[우지 파동]]).
* [[11월 4일]]
* '국가보안법 폐지 천주교공동위원회(이하 천공위)'가 결성되었다.
* [[월레스와 그로밋]]의 첫 작품인 화려한 휴가(A Grand Day Out)를 브리스톨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처음으로 공개했다.
* [[11월 5일]] - 북한의 김일성이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했다.
* [[11월 6일]]
*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회의(APEC)'이 호주에서 개막되었다.
* 세계 60개국 환경장관회의가 네덜란드에서 개막되었다.
*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5차 회의에서 덩샤오핑이 장쩌민 총서기에게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물려주었다.
* [[11월 8일]] - 동독 정부는 당 정치국을 개혁파 중심으로 전면 개편하여 한스 모드로프를 새 총리로 임명하였다.
* [[11월 9일]]
* 북한 외교부는 한반도 비핵지대화 문제와 관련하여 남북한 및 미국 간 3자 회담 개최를 제안하였다.
* '''[[동독]] 동베를린에서 군중들이 [[베를린 장벽]]을 밤 사이 망치로 무너뜨렸다.'''
* 동독 정부는 베를린장벽 등 전 국경을 개방한다고 발표하였다.
* [[11월 10일]]
* 1987년 13대 대선 당시 독자적 민중후보 출마를 주장했던 재야 민주인사들에 의해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을 위한 준비모임'이 결성되었다.
* 베를린 장벽 붕괴로 동독의 국경이 완전 개방되었다.
*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불가리아]] 공산당이 [[토도르 지프코프|지프코프]] 서기장 퇴진과 동시에 사회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이는 불가리아에서 공산정권이 붕괴되는 순간이었다.
* [[11월 11일]]
* 서철협, 전노련 등을 중심으로 한 '전국빈민연합(이하 전빈련)'이 결성되었다.
* 인노협 의장 황재철이 구속되었다.
* [[11월 12일]]
* 한국 여자하키 대표팀이 제3회 인터콘티넨털 여자하키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 지역·업종별 노동조합 전국회의는 서울대에서 집회를 개최하고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 이 대회 도중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출범 선언문>이 공개적으로 유포되었다.
* [[11월 14일]] - '호국정신선양회'가 발족되었다.
* [[11월 15일]]
* 정부는 대출금리를 1% 포인트로 내리는 '경제활성화 종합대책'을 마련하였다.
*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냉전시대를 탈피하고 평화의 길을 선택할 것을 선언하였다.
* 워너브라더스코리아(주)가 설립되었다.
* 서울 한강에 [[올림픽대교]]가 개통되었다.
* 1990년대를 풍미한 Tseng Labs ET4000 [[VGA|그래픽 칩셋]]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 <경주신문>이 창간되었다.
* [[11월 16일]]
* 보사부는 우지사건과 관련된 5개사 제품 검사결과 무해하다고 발표하였다.
* 주한미군 단계적 감축안인 '넌-워너 수정안'이 미국 상원을 통과하였다.
* 남북 양국 적십자사는 제3차 실무회담에서 제2차 고향방문단 및 예술단 상호교환에 합의하였다.
* 제4차 남북체육회담에서 양국은 단일 대표팀 명칭을 '코리아'로 명명함에 합의하였다.
* 인노협 소속 45개 노조 노동자 5천여 명은 동맹파업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노동자 130여 명이 연행되었다.
* [[11월 17일]]
* [[토지 공개념]]에 대한 국회 심의가 착수되었다.
*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에서 10만여 명의 군중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벨벳 혁명]])
* [[11월 18일]] - 노태우 대통령이 서독-영국-프랑스-헝가리 4개국 순방차 출국하였다.
* [[11월 20일]]
* [[UN 아동권리협약]]이 제정되었다.
* WHO는 1989년 기준 세계 인구 수를 51억 1,200만 명으로 발표하였다.
* [[11월 22일]] - 레바논 대통령 르네 무아와드가 취임 17일만에 폭사당했다.
* [[11월 24일]]
* 기업공개 사전 예고제가 도입되었다.
* 안기부는 창작과비평에 연재된 황석영 북한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와 관련해 이시영 주간을 연행하였다.
* [[11월 25일]] - 이날 강릉행 대한항공 KE175편 포커 F38 여객기가 김포공항에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당시 외국인 승객 서너명이 창문을 깬 덕에 탑승객이 전부 탈출해 인명 피해는 없었다.
* [[11월 26일]] - 전민련은 ‘민운탄 분쇄 및 광주학살, 5공 비리주범 처벌을 위한 1989 민중대회’를 개최하려 했으나 경찰의 강제 진압으로 약식 개최되었다.
* [[11월 27일]] - 제2차 남북 고향방문단 및 예술단 연내 교환이 회담 결렬로 무산되었다.
* [[11월 28일]]
* 원로 한글학자 일석 이희승이 향년 93세로 사망했다.
*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10개항의 통독안을 발표하였다.
* 베를린 장벽 붕괴에도 요지부동이던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이 마침내 시위대에 굴복, 다당제 도입을 포함한 전면적인 정치 개혁을 선언한다.
* [[11월 29일]]
* 한-소 양국이 영사관계 수립에 합의하였다.
* 종전의 대한교련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로 개칭되었다.
* 구 성우구락부 회원들이 '성우회'를 창설하였다.
* [[11월 30일]]
* <민주일보>가 창간되었다.
* 체코슬로바키아-오스트리아 간 국경이 개방되었다.
==== 12월 ====
* [[12월 1일]]
*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삼풍백화점]]이 개장하였다.
* 한국보험개발원이 발족되었다.
* 외환시장운영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필리핀에서 [[코라손 아키노]] 정부 출범 뒤 6번째로 쿠데타가 발생하였다.
* [[12월 2일]] -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몰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동구권의 붕괴에 소련이 개입하지 않으며 [[냉전]]을 종식시키기로 합의했다.
* [[12월 3일]] - 동독 크렌츠 서기장 등 정치국 중앙위원 전원이 사퇴하였다.
* [[12월 6일]]
* 크렌츠의 후임으로 동독의 국가원수직에 만프레드 게를라흐가 취임하였다.
* [[닥터 후]] 올드 시즌이 중단되었다. 이후 다음 닥터까지 7년, 다음 시즌까지 16년을 기다려야 했다.
* [[12월 8일]]
* 한-소 영사관계 의정서가 발효되었다.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EC 정상회담이 열렸다.
* [[12월 10일]] - [[일본]] [[팔콤]] 사가 게임 <[[영웅전설]]>을 발매했다.
* [[12월 11일]] - 전교조 측은 명동성당에서 ‘전교조 합법성 쟁취 및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위한 결의대회'를 열었다.
* [[12월 13일]] - 전산망조정위는 고도 정보사회 구현을 위해 '정보사회 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 [[12월 14일]]
* 치안본부는 '반제애국청년회 사건'을 발표하며 김성기와 박동철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 [[칠레]]에서 16년만에 자유 총선거가 치뤄졌다.
* [[12월 15일]]
* 민정당-평민당-민주당-공화당 등 4당 총재 회담이 열려 5공 청산 11개항에 합의했다.
* 파나마 정부는 미국과의 '전쟁상태'를 선언했다.
* 마누엘 노리에가 파나마 대통령이 교황청에 망명을 요청했다.
* [[12월 16일]]
* 전국건설노동조합연맹(이하 건설노련)이 결성되었다.
* 전교조 산하 교육문예창작회가 결성되었다.
* 루마니아 티미쇼아라에서 차우셰스쿠의 독재에 항거하는 봉기가 처음 일어났다. 이후 이 불길은 루마니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 [[12월 17일]]
*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창립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미국]] FOX TV에서 [[심슨가족]]이 첫 전파를 탔다.
* [[12월 18일]] - 전국여성농민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2월 19일]] - 제147회 정기국회는 1990년도 예산안 및 가족법 개정안 등 30개 법안을 처리하였다.
* [[12월 20일]] - [[미군]]이 노리에가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파나마]]를 침공했다.
* [[12월 21일]] -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관제행사 폭파 사건을 계기로 봉기가 일어났다.
* [[12월 22일]] - 차우셰스쿠 정권 붕괴에 따라 코르넬리우 마네스쿠 구국전선 의장이 루마니아 정부의 전권을 장악하였다.
* [[12월 23일]]
* 법무부는 비전향장기수 37명 등 재소자 1,161명을 가석방한다고 발표하였다.
* 경제단체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정일형]]박사기념사업회'가 설립되었다.
* 외국 도피 시도를 하려던 차우셰스쿠 부부가 농부와 운전기사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 [[12월 25일]]
* 치안본부는 '인천지역노동자그룹 사건'을 발표하며 관련자인 김능구, 김영민, 정찬, 서경선을 구속하였다.
* 루마니아 공산정권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대통령 부부가 총살되었다. 이는 공산 [[독재]]에 허덕이던 민중들에게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다.
* [[12월 27일]] - 이집트-시리아 양국이 1977년에 단절된 외교관계를 재개한다고 공동 발표하였다.
* [[12월 28일]] - 한국-유고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12월 29일]]
* 외무부는 1989년 6월 말 기준 재외국민 수가 227만 2,912명이라고 발표하였다.
* 문공부는 노태우 대통령 일가를 비난한 <월간 노동해방문학>을 정간시켰다.
* [[닛케이 225]]가 사상 최고치인 '''38,915.87엔'''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 사진이|그러나 이 최고기록이 갱신되는 일은 없었다.]] [[잃어버린 10년|1980년대에 모든 돈을 쏟아부은 일본의 경제는 이어지는 시대에서 거짓말처럼 파행을 거듭했다.]]
* [[12월 30일]] - [[한국외환은행]]이 [[민영화]]되었다.
* [[12월 31일]]
*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회 광주특위 및 5공특위 연석회의에 출석해 125개 문항에 걸쳐 증언했으나, 관련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 노무현 민주당 의원이 전두환의 거짓 국회증언에 반발하며 명패를 집어던졌다.([[노무현 명패사건]])
=== 가상 ===
* [[월드 인 컨플릭트]]의 배경연도.
* [[응답하라 1988]]의 2년차 배경연도. [[1988년]]부터 [[1990년]]까지 3년 동안의 시간이 주요 배경이 된다.
* [[핫라인 마이애미]]의 배경연도.
* [[해리 포터: 호그와트 미스테리]]의 6학년 배경연도. [[1984년]]부터 7학년 시점인 [[1990년]]까지 이어진다.
* [[해동밀교]]가 붕괴되고, [[이현암]]·[[박신부]]·[[장준후]]가 만났다. - [[퇴마록]]
* [[해리 S. 트루먼]]이 [[미국 대통령|대통령]]이 되지 못해 전세계가 공산화되고 [[미국]]만이 [[자본주의]] 국가인 레닌-1의 현재 연도. 이 해에 공산권이 붕괴되기 시작했다는 걸 생각하면 일부러 노린 듯. - [[겁스 무한세계]]
== 탄생 ==
=== 실존 인물 ===
==== 1월 ====
* [[1월 1일]]
* [[배그린]]: [[한국]]의 [[배우]]
* [[블랙넛]]: [[한국]]의 [[가수]], [[래퍼]]
* [[산신(성우)|산신]]: [[중국]]의 [[성우]]
* [[1월 2일]]
* [[박상우(1989)|박상우]]: [[한국]]의 [[프로게이머]]
* [[이용찬]]: [[한국]]의 [[두산 베어스]] 소속 [[야구]] 선수
* [[1월 3일]]
* [[김성현(1989)|김성현]][* '''절대 [[김성현(1987)|내야수]]나 [[김성현(프로게이머)|프로게이머]]가 아니다.''']: [[한국]]의 '''전''' 야구인이자 [[흑역사]]가 된 선수
* [[우메다 아야카]]: [[일본]]의 [[아이돌]]
* [[1월 4일]] - [[박요한(성우)|박요한]]: [[한국]]의 [[성우]]
* [[1월 6일]] - [[미카미 시오리]]: [[일본]]의 성우
* [[1월 8일]] - [[김가은(1989년 1월)|김가은]]: [[한국]]의 [[배우]]
* [[1월 9일]] - [[이학주(배우)|이학주]]: [[한국]]의 [[배우]]
* [[1월 10일]] - [[솔지]]: [[한국]]의 가수, 前 2NB의 멤버, [[걸그룹]] [[EXID]]의 리더
* [[1월 11일]]
* [[고종욱]]: [[한국]]의 [[SK 와이번스]] 소속 야구 선수
* [[김정민(1989)|김정민]]: [[한국]]의 [[배우]]
* [[데이브(유튜버)|데이브]]: [[미국]]의 유튜버
* [[1월 12일]] - [[악셀 비첼]]: [[벨기에]]의 축구 선수
* [[1월 14일]]
* [[김재율]]: [[LG 트윈스]]의 내야수
* [[a_hisa|아이하라 히사]]: 일본의 [[작곡가]]
* [[1월 16일]] - [[타타카에! 핏쵸리나]]: [[일본]]의 유튜버, 성우
* [[1월 21일]] - [[헨리크 므키타리안]]: [[아르메니아]] 출신 [[축구 선수]]
* [[1월 22일]] - [[알렉산드르 소스윅]]: [[우크라이나]]의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Bly'
* [[1월 23일]] - [[이설(뮤지컬 배우)|이설]]: [[한국]]의 [[뮤지컬 배우]]
* [[1월 24일]] - [[기성용]]: [[한국]]의 [[축구 선수]]
* [[1월 25일]] - [[타베 미카코]]: 일본의 배우
* [[1월 30일]] - [[강한나]]: [[한국]]의 [[배우]]
==== 2월 ====
* [[2월 1일]]
* [[염문경]] : 대한민국의 배우
* [[정명호#s-1]]: 대한민국의 前 [[프로게이머]]
* [[쿠스다 아이나]]: 일본의 성우
* [[2월 2일]] - [[이반 페리시치]]: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
* [[2월 3일]] - [[멍지아]]: [[중국]]의 래퍼, 걸그룹 [[미쓰에이|miss A]]의 前 멤버
* [[2월 4일]]
* [[최원제]] : [[한국]]의 [[야구선수]]
* [[김민경]]: [[한국]]의 배우
* [[오오조라 나오미]]: [[일본]]의 성우
* [[은코시 존슨]]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회운동가.
* [[2월 5일]] - [[브리드컷 세라 에미]]: [[일본]]의 성우
* [[2월 8일]] - [[임한별]]: 한국의 가수
* [[2월 9일]]
* [[문준영]]: [[한국]]의 가수, 그룹 [[제국의 아이들]]의 멤버, DJ
* [[Juncoco]]: [[한국]]의 DJ
* [[2월 10일]] - [[선우예권]]: 한국의 피아니스트
* [[2월 12일]] - [[동현(보이프렌드)|동현]]: 한국의 가수, 그룹 [[보이프렌드]]의 멤버
* [[2월 13일]] - [[호프 빌]]: 미국의 피트니스 모델
* [[2월 15일]]
* [[아~쨩|니시와키 아야카]]: [[일본]]의 가수, [[걸그룹]] [[Perfume]]의 멤버
* [[모태범]]: 한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 [[해물파전(인터넷 방송인)]]: 한국의 [[아프리카TV]] [[BJ]]. 본명은 이한별
* [[2월 16일]] - [[엘리자베스 올슨]]: [[미국]]의 배우
* [[2월 17일]] - [[김나희(배구선수)]] :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소속의 배구선수. 포지션은 센터. 개명 전 이름은 [[김혜진(배구선수)]]
* [[2월 19일]]
* [[백청강]]: [[한국]]의 가수
* [[이새아]]: [[한국]]의 성우
* [[정유진(배우)|정유진]]: [[한국]]의 배우
* [[2월 21일]] - [[정준영]]: [[한국]]의 가수, [[성범죄자]][* [[정준영 등 도촬 및 음란물 유포 사건]]으로 인해 연예계에서 '''영구제명''' 당했다. 정준영의 인스타를 팔로우했던 동료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도 그를 모두 언팔함으로서 인간관계에서도 손절당했다.]
* [[2월 22일]] - [[윤주빈]]: [[한국]]의 배우
* [[2월 23일]]
* [[김수연(배우)|김수연]]: [[한국]]의 배우
* [[에드머]]: [[한국]]의 [[DJ]] 겸 [[유튜브]] [[트레저헌터]] 소속 [[크리에이터]]
* [[2월 24일]] - [[고영창]] : [[대한민국]]의 [[기아 타이거즈]] 소속 야구선수
* [[2월 25일]]
* [[김민하]]: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 소속 [[야구]] 선수
* [[모가미 모가]]: [[일본]]의 배우, 그룹 [[덴파구미.inc]]의 前 멤버
* [[윤해진]]: [[한국]]의 [[기아 타이거즈]] 소속 야구 코칭 스태프
* [[이상화(스피드 스케이팅)|이상화]]: [[한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 [[하나자와 카나]]: [[일본]]의 성우
* [[2월 26일]] - [[돼지저금통(유튜버)]]: [[한국]]의 유튜버 [[크리에이터]]
* [[2월 27일]] - [[구자철]]: [[한국]]의 [[축구]] 선수
* [[2월 28일]]
* [[김두현(개그맨)|김두현]]: 한국의 [[코미디언]]
* [[요리왕비룡|최지환]]: 한국의 [[아프리카TV]] [[BJ]] '요리왕비룡'
==== 3월 ====
* [[3월 1일]] - [[에마(프로레슬러)|에마]]: [[호주]] 출신 [[프로레슬러]]
* [[3월 2일]] - [[토비 알더베이럴트]]: [[벨기에]]의 축구 선수
* [[3월 3일]] - [[수미]]: [[한국]]의 [[가수]]
* [[3월 8일]] :신유정 : [[한국]]의 [[아나운서]]
* [[3월 9일]]
* [[태연]]: [[대한민국]]의 가수, [[걸그룹]] [[소녀시대]]의 리더이자 메인보컬
* [[치바 유다이]] : [[일본]]의 배우
* [[3월 10일]] - [[신희승]]: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 [[3월 11일]] - [[수현(유키스)|신수현]]: [[한국]]의 가수, 그룹 [[유키스]]의 멤버
* [[3월 13일]] - [[정주연]]: [[한국]]의 배우
* [[3월 16일]]
* [[블레이크 그리핀]]: [[미국]]의 [[농구]] 선수
* [[정소민]]: [[한국]]의 배우
* [[쿠도 하루카(성우)]]: 일본의 성우
* [[시오 월콧]]: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3월 17일]] - [[가가와 신지]]: [[일본]]의 [[축구]] 선수
* [[3월 18일]]
* [[서예화]]: [[한국]]의 배우
* [[니시노 카나]]: [[일본]]의 [[가수]]
* [[릴리 콜린스]]: [[미국]], [[영국]]의 [[배우]]
* [[3월 20일]]
* [[백용환]] : [[한국]]의 [[야구선수]]
* [[진명호]]: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 소속 [[야구]] 선수
* [[3월 21일]]
* [[사토 타케루]]: 일본의 배우
* [[신본기]]: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야구]] 선수
* [[조르디 알바]]: [[스페인]]의 축구 선수
* [[3월 28일]] - [[홍아름]]: [[한국]]의 배우
==== 4월 ====
* [[4월 1일]] - [[스기모토 유미]]: 일본의 배우
* [[4월 4일]]
* [[TRIPPY DOG]]: 한국의 래퍼
* [[민성준(개그맨)|민성준]]: 한국의 코미디언
* [[4월 5일]] - [[릴리 제임스]]: 영국의 배우
* [[4월 10일]] - [[박보미(개그우먼)|박보미]]: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4월 11일]] - [[강지영(아나운서)|강지영]]: [[한국]]의 [[아나운서]]
* [[4월 13일]] - [[자이언티]]: [[한국]]의 가수
* [[4월 14일]] - [[ELISA#s-2]]: 일본의 [[가수]]
* [[4월 16일]]
* [[잇키 치히로]]: [[일본]]의 성우
* [[다니 파레호]]: [[스페인]]의 축구 선수
* [[4월 18일]] - [[제시카(가수)|제시카]]: [[한국]]의 가수이자 디자이너, 그룹 [[소녀시대]]의 前 멤버
* [[4월 19일]] - [[박지훈]]: 모델 겸 및 배우(~[[2020년]])
* [[4월 21일]] - [[HIKAKIN]]: [[일본]]의 유명 유튜버
* [[4월 22일]] - [[야스퍼 실러선]]: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 [[4월 26일]]
* [[대성(빅뱅)]]: [[한국]]의 가수, 그룹 [[빅뱅(아이돌)|빅뱅]]의 멤버
* [[유성은]]: [[한국]]의 가수
* [[4월 27일]] - [[2012 런던 올림픽/펜싱|구본길]]: [[한국]]의 [[펜싱]] 선수
* [[4월 28일]]
* [[이세영(코미디언)]]: [[한국]]의 [[개그우먼]]
* [[김성규(인피니트)|김성규]]: [[한국]]의 가수, [[보이그룹]] [[인피니트]]의 멤버
* [[4월 29일]]
* [[하준호]]: [[한국]]의 [[kt wiz]] 소속 야구 선수
* [[도마고이 비다]]: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
* [[4월 30일]] - [[우영(2PM)|우영]]: 한국의 가수 그룹, [[2PM]]의 멤버
==== 5월 ====
* [[5월 2일]]
* [[안애경]]: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류윤식]]: [[대한민국]]의 [[배구선수]]
* [[5월 3일]] - [[허영무]]: [[한국]]의 프로게이머
* [[5월 4일]] - [[후지우라 메구]]: 일본의 [[AV 여배우]]
* [[5월 5일]]
* [[스즈키 유토]]: 일본의 성우
* [[최성훈(성악가)|최성훈]]: [[대한민국]]의 성악가, 크로스오버 그룹 [[라포엠]]의 멤버
* [[크리스 브라운]]:미국의 R&B 가수, 댄서, 래퍼.
* [[5월 6일]] - [[박진호(코미디언)|박진호]]: [[한국]]의 [[코미디언]]
* [[5월 7일]] - [[레이나(가수)|레이나]]: [[한국]]의 가수, 걸그룹 [[애프터스쿨]]의 멤버
* [[5월 10일]] - [[노을(1989)|노을]]: [[한국]]의 가수, 그룹 [[레인보우(아이돌)|레인보우]]의 멤버
* [[5월 11일]] - [[지오반니 도스 산토스]]: [[멕시코]]의 축구 선수
* [[5월 14일]]
* [[김창희(1989)|김창희]]: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 [[영국남자]]: [[영국]]의 유튜버
* [[지해]]: [[한국]]의 래퍼, 걸그룹 [[걸스데이]]의 前 멤버
* [[김가영(기상캐스터)|김가영]]: 한국의 [[기상캐스터]]
* [[5월 15일]] - [[써니(소녀시대)|써니]]: [[대한민국]]의 가수,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 [[5월 16일]]
* [[장범준]]: [[한국]]의 가수, 싱어송라이터
* [[김권]]: 한국의 배우
* [[5월 17일]]
* [[김성희(1989)|김성희]]: [[한국 아이돌]] 그룹 [[카라(아이돌)|카라]]의 전 멤버
* [[해금]]: [[한국 아이돌]] 그룹 [[BeBe Mignon]]의 멤버
* [[테사 버츄 / 스캇 모이어|테사 버츄]]: [[캐나다]]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 [[5월 19일]] - [[쿠보 유리카]]: [[일본]]의 탤런트, 성우
* [[5월 24일]] - [[이야마 유타]]: [[일본]]의 [[바둑기사]]
* [[5월 26일]] - [[예은]]: [[한국]]의 가수, 걸그룹 [[원더걸스]]의 멤버
* [[5월 30일]]
* [[에일리]]: [[한국]]의 가수
* [[효민]]: [[한국 아이돌]] 그룹 [[티아라(아이돌)|티아라]]의 멤버
* [[김가은(1989년 5월)|김가은]]: [[한국]]의 [[배우]]
* [[김동선]]: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의 3남
* [[이시카와 유이]]: [[일본]]의 성우, 배우
* [[5월 31일]]
* [[김다울]]: [[한국]]의 [[모델]]
* [[마르코 로이스]]: [[독일]]의 [[축구 선수]]
* [[바스 도스트]]: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 6월 ====
* [[6월 1일]] - [[Zomboy]]: [[영국]]의 [[덥스텝]] 아티스트
* [[6월 3일]] - [[한 메구미]]: 일본의 성우
* [[6월 5일]] - [[나카지마 메구미]]: 일본의 성우, 가수
* [[6월 7일]] - [[이형종]]: 대한민국의 [[LG 트윈스]] 소속 야구 선수
* [[6월 8일]] - [[츠다 미나미]]: 일본의 성우
* [[6월 13일]] - [[김윤환(1989)]]: 한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現 인터넷 방송인.
* [[6월 18일]]
* [[김태헌(제국의아이들)]]: 한국의 [[래퍼]], 그룹 [[제국의아이들]]의 멤버
* [[윤명준]]: 한국의 [[두산 베어스]] 소속 [[야구]] 선수
*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 [[가봉]]의 [[축구 선수]]
* [[6월 19일]]
* [[김승연(종합격투기)|김승연]]: 한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 [[박지훈(1989)|박지훈]]: 한국의 [[농구]] 선수
* [[6월 20일]] - [[하비에르 파스토레]]: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6월 22일]]
* [[정용화]]: 한국의 가수, 밴드 [[씨엔블루]]의 멤버
* [[안드레아스 미켈센]]: [[노르웨이]]의 랠리 드라이버
* [[6월 23일]] - [[타케타츠 아야나]]: 일본의 성우, 가수
==== 7월 ====
* [[7월 4일]] - [[윤두준]]: [[한국 아이돌]] 그룹 [[하이라이트(아이돌)|하이라이트]]의 멤버
* [[7월 5일]]
* [[션 오프리]]: [[미국]]의 모델
* [[데얀 로브렌]]: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
* [[7월 7일]]
* [[김범]]: 한국의 배우
* [[서한빛]]: 대한민국의 레이싱모델
* [[오선진]]: 한국의 [[한화 이글스]] 소속 야구 선수
* [[플레임TV|플레임]]: 한국의 [[스트리머]]
* [[7월 8일]] - [[손성아|성아]]: [[한국 아이돌]] 걸그룹 [[나인뮤지스]] 멤버
* [[7월 13일]] - [[미치시게 사유미]]: 일본의 [[아이돌]]
* [[7월 15일]]
* [[노진혁]]: 한국의 [[NC 다이노스]] 소속 야구 선수
* [[이범준]]: 한국의 [[LG 트윈스]] 소속 야구 선수
* [[홍성민]]: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 소속 야구 선수
* [[7월 16일]]
* [[가레스 베일]]: 영국 [[웨일스]]의 [[축구]] 선수
* [[김우빈]]: 한국의 [[모델]], [[배우]]
* [[임준섭]]: 한국의 [[기아 타이거즈]] 소속 야구 선수
* [[7월 19일]]: [[황보미(방송인)|황보미]]: 대한민국의 방송인, 前 아나운서
* [[7월 20일]]
* [[김수완]]: [[한국]]의 야구 선수
* [[이주승]]: [[한국]]의 배우
* [[7월 21일]] :[[서재덕]]: 한국의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소속 배구선수
* [[7월 22일]] - [[박민지]]: [[한국]]의 배우
* [[7월 23일]]
* [[다니엘 래드클리프]]: 영국의 배우
* [[과학쿠키]]: [[유튜브 크리에이터]]
* [[pH-1]]: [[한국]]의 하이어뮤직 소속 [[래퍼]]
* [[7월 25일]] - 주정경: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기상캐스터
* [[7월 28일]]
* [[권화운]]: 한국의 배우
* [[오타카 모에미|MoeMi]]: 일본의 성우
* [[7월 30일]] - 윤혜선: [[대한민국]]의 [[가수]]
==== 8월 ====
* [[8월 1일]] - [[티파니 영]]: 한국의 가수,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 [[8월 2일]] - [[나세르 샤들리]]: [[벨기에]]의 축구 선수
* [[8월 3일]] - [[쥘 비앙키]]: [[프랑스]]의 [[F1]] 드라이버
* [[8월 6일]] - [[야에하타 유키네]]: 일본의 성우
* [[8월 9일]] - 한국의 [[SK 와이번스]] 소속 야구 선수 [[한유섬|한동민]]
* [[8월 11일]]
* [[베카(1989)|베카]]: 미국의 前 래퍼, 걸그룹 [[애프터스쿨]]의 前 멤버
* [[자메즈]]: 한국의 래퍼
* [[8월 12일]]
* [[홍재경]]: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선예]]: 한국의 전 가수, 걸그룹 [[원더걸스]]의 전 멤버
* [[8월 13일]] - [[서정우(군인)|서정우]]: 한국의 [[군인]]
* [[8월 14일]] - [[안데르 에레라]]: [[스페인]]의 축구 선수
* [[8월 15일]] - [[오카다 마사키]]: 일본의 배우
* [[8월 16일]] - [[무사 시소코]]: [[프랑스]]의 축구 선수
* [[8월 17일]] - [[송창현]]: 한국의 [[한화 이글스]] 소속 야구 선수 [[송창현]]
* [[8월 21일]] - [[민주희]]: [[e스포츠 관련 인물]]
* [[8월 22일]] - [[서건창]]: 한국의 [[넥센 히어로즈]] 소속 야구 선수
* [[8월 24일]] - [[차바위]]: 한국의 [[농구]] 선수
* [[8월 27일]] - [[최재훈(야구선수)|최재훈]]: [[한국]]의 [[한화 이글스]] 소속 야구 선수
* [[8월 28일]]
* [[조권]]: [[한국]]의 가수, 그룹 [[2AM]]의 멤버
* [[조현아(가수)|조현아]]: [[한국]]의 가수, 그룹 [[어반자카파]]의 멤버
* [[세자르 아스필리쿠에타]]: [[스페인]]의 축구 선수
* [[8월 29일]] - [[공준호]]: [[한국]]의 성우
* [[8월 30일]]
* [[조윤준]]: [[한국]]의 [[LG 트윈스]] 소속 야구 선수
* [[비비 렉사]]: [[미국]]의 [[가수]], [[작곡가]]
* [[백목화]] : [[IBK기업은행]] 소속의 배구선수. 포지션은 레프트
* [[8월 31일]] - 한국의 배우 [[신혜선]]
==== 9월 ====
* [[9월 1일]] - [[다니엘 스터리지]]: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9월 2일]]
* [[Zedd]]: [[러시아]]계 [[독일인]] [[DJ]]
* [[알렉산드르 파투]]: [[브라질]]의 [[축구 선수]]
* [[9월 3일]] - [[장현승]]: [[한국]]의 가수, 그룹 [[비스트(아이돌)|비스트]]의 前 멤버
* [[9월 5일]] - 재이: [[한국]]의 가수, 그룹 [[FIESTAR]]의 리더
* [[9월 6일]]
* [[서정진(축구선수)|서정진]]: 한국의 축구선수
* [[김소은]]: 한국의 배우
* [[9월 7일]] - [[야마시타 다이키]]: 일본의 성우
* [[9월 8일]] - [[스웨덴]]의 DJ [[Avicii]][* 또한 [[Zedd]]도 89년 9월생이다! 특이하게도 두명다 한곡으로 히트를 낸 점에서 공통점이있다. [[Avicii]]는 Levels [[Zedd]]는 Clarity가 있다. 심지어는 최근에 나온 앨범들도 크게 흥행하지 못했다!]
* [[9월 10일]] - [[옹알님]]: 한국의 트위치스트리머
* [[9월 11일]] - [[일본]]의 [[가수]] [[쿠라모치 아스카]]
* [[9월 13일]] - [[독일]] [[분데스리가]]의 명문 팀 [[FC 바이에른 뮌헨]]의 [[축구 선수]] [[토마스 뮐러]]
* [[9월 14일]] - [[한국]]의 배우 [[이종석(배우)|이종석]]
* [[9월 16일]] - [[살로몬 론돈]]: [[베네수엘라]]의 축구 선수
* [[9월 17일]] - [[한국]]의 [[야구]] 선수 [[서상우]]
* [[9월 18일]] - 한국의 배우 [[이주빈]]
* [[9월 19일]] - 한국의 배우 [[서하준]]
* [[9월 21일]]
* [[한국]]의 [[기아 타이거즈]] 소속 야구 선수 [[박지훈(야구선수)|박지훈]]
*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김재훈(프로게이머)|김재훈]]
* [[9월 22일]]
* [[양정원]] - [[대한민국]]의 [[필라테스]] 강사, [[방송인]]
* [[효연]] -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 [[9월 25일]] - [[유요윳페]]: 일본의 [[VOCALOID]] 프로듀서
* [[9월 26일]]
* [[연상은]]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 [[권이슬]]: 한국의 [[온게임넷]] 소속 게임 [[아나운서]]
* [[키어런 깁스]]: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9월 27일]]
* [[박태환]]: 한국의 수영 선수
* [[오오쿠보 루미]]: 일본의 성우
* [[니와 미키호]]: 일본의 배우, 가수, 모델
* [[9월 28일]] - [[아망딘 앙리]]: 프랑스의 축구선수
* [[9월 29일]]
* [[후루카와 마코토]]: 일본의 성우
==== 10월 ====
* [[10월 1일]]
* [[이시구로 히데오]]: 일본의 배우
* [[정의택]]: 한국의 성우
* [[10월 3일]] - [[나성범]]: [[한국]]의 [[NC 다이노스]] 소속 야구 선수
* [[10월 4일]]
* [[구본상]]: 한국의 축구선수
* [[아리샤(인터넷 방송인)|아리샤]]: [[한국]]의 인터넷 방송인. 본명 고규림.
* [[이초희]]: 한국의 배우
* [[다코타 존슨]]: 미국의 배우
* [[10월 5일]]
* [[김상수(e스포츠)|김상수]]: [[대한민국]]의 前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Ssong', 現 [[리그 오브 레전드]] [[코치(스포츠)|코치]]
* [[박승현]]: 한국의 [[프로게이머]]
* [[오노 켄쇼]]: 일본의 성우, 배우, 가수
* [[10월 6일]]
* [[도재욱]]: [[한국]]의 프로게이머
* [[김보경(축구선수)|김보경]]: [[한국]]의 축구 선수
* [[천이슬]]: [[한국]]의 배우
* [[10월 8일]] - [[안가연]]: 한국의 코미디언, 웹툰 작가
* [[10월 9일]] - [[서윤아(레이싱 모델)]] : 대한민국의 레이싱모델.
* [[10월 10일]] - [[안나경]]: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10월 11일]] - [[헨리(가수)|헨리]]: 그룹 [[슈퍼주니어-M]] 멤버 출신 중국계 캐나다인 가수
* [[10월 13일]]
* [[전효성]]: 한국의 가수, 걸그룹 [[시크릿(아이돌)|시크릿]]의 멤버
* [[왕심린]]
* [[10월 16일]] - [[이장희(야구선수)|이장희]]: 한국의 [[야구]] 선수
* [[10월 19일]] - [[철구(인터넷 방송인)|철구]]: [[아프리카TV]] [[BJ]]. 본명 이예준.
* [[10월 20일]]
* [[임윤호]]: 한국의 배우
* [[김하음]]: 한국의 레이싱모델
* [[10월 21일]]
* [[May'n]]: 일본의 가수
* [[Cowsep]]: [[미국]]의 [[트위치]] 브로드캐스터
* [[로이조]]: 대한민국 인터넷 방송인. 본명 조봉준.
* [[10월 22일]] - 린지: 한국의 가수, 그룹 [[FIESTAR]]의 메인 보컬
* [[10월 24일]] - [[PewDiePie]]: [[스웨덴]]의 [[유튜버]]
* [[10월 29일]] - [[Masuo]]]: [[일본]]의 유명 [[유튜버]]
* [[10월 31일]]
* [[신용재]][* 호적상 생일은 하루 뒤인 11월 1일이다. --뭐야 이거?--]: 한국의 가수, [[4MEN]]의 멤버
* [[오버정우기]]
==== 11월 ====
* [[11월 2일]]
* [[구혜리]]:대한민국의 개그우먼, 배우
* [[여창동]]: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 [[11월 3일]] - [[김택용]]: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11월 4일]] - [[미야모토 카나코]]: 일본의 가수, 성우
* [[11월 6일]]
* [[유준희]]: 한국의 [[프로게이머]]
* [[Larval Stage Planning#s-2.1|키리시마 아이리]]: 일본의 [[아이돌]] 그룹 [[Larval Stage Planning]]의 멤버
* [[11월 8일]] - [[김승현(프로게이머)]]: [[한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現 인터넷 방송인.
* [[11월 10일]] - [[태런 에저턴]]: [[영국]]의 [[배우]]
* [[11월 11일]]
* [[한희]]: 한국의 야구 선수
* [[오미가와 치아키]]: 일본의 배우 겸 성우
* [[다나카 레이나]]: 일본의 가수
* [[아비게일 존슨]]: [[체코]]의 [[포르노]] 배우
* [[11월 16일]] - [[김세희]]: 한국의 [[아나운서]]
* [[11월 17일]] - [[최수임]]: 대한민국의 배우
* [[11월 18일]]
* [[브랜든 하틀리]]: [[뉴질랜드]]의 [[F1]] 드라이버
* [[마크 올브라이튼]]: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11월 21일]]
* [[신상문]]: 한국의 프로게이머
* [[파비안 델프]]: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11월 22일]]
* [[문가비]]: 한국의 모델
* [[크리스 스몰링]]: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11월 23일]] - [[케이(인터넷 방송인)]]: 대한민국 인터넷 방송인. 본명 박중규.
* [[11월 27일]]
* [[차명환]]: 한국의 [[프로게이머]]
* [[남보라]]: 한국의 배우
* [[11월 28일]] - [[윤서영]]: 대한민국의 기상캐스터, 아나운서
* [[11월 29일]] - [[안정광]]: 한국의 야구선수
* [[11월 30일]]
* [[이정수(쇼트트랙)|이정수]]: 한국의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 [[배유나]] : [[경북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소속의 배구선수. 포지션은 센터.
==== 12월 ====
* [[12월 1일]] - 후카사와 에리카: [[일본]]의 [[작곡가]]
* [[12월 2일]] - [[마테오 다르미안]]: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12월 5일]]
* [[유리(소녀시대)|유리]]: [[대한민국]]의 가수,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 [[예원]]: [[대한민국]]의 가수, 걸그룹 [[쥬얼리]]의 멤버
* [[12월 8일]] - [[이유영]]: [[한국]]의 배우
* [[12월 9일]] - [[정희철(제국의아이들)|정희철]]: [[한국]]의 래퍼, 그룹 [[제국의아이들]]의 멤버
* [[12월 11일]] - [[케빈 박]]: [[대한민국]]의 [[종합격투기]] 선수이자 [[가수]]
* [[12월 13일]] - [[테일러 스위프트]]: 미국의 가수
* [[12월 14일]]
* [[온유(샤이니)|온유]]: 한국의 가수, 그룹 [[샤이니]]의 리더
* [[양효진]] :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소속의 배구선수. 여자배구대표팀의 거미손이며, 포지션은 부동의 센터. 블로킹의 여왕.
* [[정우영(1989)|정우영]]: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12월 15일]] - [[애런 크레스웰]]: [[영국]]의 축구 선수
* [[12월 16일]] - [[P*Light]]: [[일본]]의 [[작곡가]]
* [[12월 17일]] - [[성의준]] : [[한국]]의 [[야구선수]]
* [[12월 18일]] - [[김선빈]]: [[한국]]의 [[기아 타이거즈]] 소속 야구 선수
* [[12월 19일]] - [[용준형]]: [[한국]]의 래퍼, 그룹 [[하이라이트(아이돌)|하이라이트]]의 전 멤버
* [[12월 20일]] - [[강봉성]]: [[한국]]의 배우
* [[12월 21일]] - [[김경남]]: [[한국]]의 배우
* [[12월 23일]] - [[방연지]]: [[한국]]의 [[CJ E&M 성우극회]]의 성우
* [[12월 25일]]
* [[노무라 카나코]]: [[일본]]의 성우
* [[로꼬]]: [[엠넷]]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SHOW ME THE MONEY(TV프로그램)]]의 초대 우승자
* [[12월 26일]]
* [[토쿠이 소라]]: [[일본]]의 성우
* [[곽윤기]]: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
* [[12월 27일]]
* [[부용찬]]: [[한국]]의 배구선수
* [[민찬기]]: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現 [[배우]]
* [[박강현]]: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 [[12월 29일]] - [[니시코리 케이]]: [[일본]]의 [[테니스]] 선수
* [[12월 30일]] - [[김태군]]: [[한국]]의 [[NC 다이노스]] 소속 야구 선수
* [[12월 31일]] - [[후쿠하라 아야카]]: [[일본]]의 성우
==== 일자불명 ====
* [[강민철]]: [[한국]]의 학원인
* [[김화평]]: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출연자
* [[김성수(범죄자)|김성수]]: [[한국]]의 범죄자
* 노부사와 노부아키: [[일본]]의 작곡가
=== 가상 인물 ===
* [[1월 6일]] - [[모리미 사키]]: [[동쪽의 에덴]]
* [[1월 7일]] - [[타키자와 아키라]]: [[동쪽의 에덴]][* 단, 이쪽은 애초 타키자와 아키라라는 사람의 정보 자체가 위조 여권을 통해 만든 정보이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1월 10일]] - [[아사쿠라 카즈미]]: [[마법선생 네기마]]
* [[1월 17일]] - [[사쿠라자키 세츠나]]: [[마법선생 네기마]]
* [[1월 29일]] - [[나바 치즈루]]: [[마법선생 네기마]]
* [[2월 2일]] - [[하세가와 치사메]]: [[마법선생 네기마]]
* [[2월 21일]] - [[1997년]] [[MBC]]에서 방영한 [[만화]] [[빨간망토 차차]]의 주인공 [[차차(빨간망토 차차)]]
* [[2월 28일]] - [[야가미 라이토]]: [[데스노트/애니메이션]][* 원작에서는 [[1986년]].]
* [[3월 3일]]
* [[카츠라 히나기쿠]]: [[하야테처럼!]]
* [[쿠기미야 마도카]]: [[마법선생 네기마]]
* [[3월 7일]] - [[사사키 마키에]]: [[마법선생 네기마]]
* [[3월 10일]] - [[장한솔]]: [[디지몬 어드벤처]]
* [[3월 16일]] - [[쿠페이]]: [[마법선생 네기마]]
* [[3월 17일]] - [[자지 레이니데이]]: [[마법선생 네기마]]
* [[3월 18일]] - [[코노에 코노카]]: [[마법선생 네기마]]
* [[4월]]: [[키타하라 하루키]] - [[화이트 앨범 2]]
* [[4월 1일]] - [[키노모토 사쿠라]]: [[카드캡터 사쿠라]][* 단 애니메이션판 한정. 원작의 사쿠라는 1987년생이다.]
* [[4월 5일]] - [[민지은]]: [[검은방|검은방 시리즈]]
* [[5월 7일]] - [[이미나(디지몬 시리즈)|이미나]]: [[디지몬 어드벤처]]
* [[5월 24일]] - [[호쇼 하논]]: [[머메이드 멜로디 피치피치핏치]]
* [[5월 28일]]: [[토우마 카즈사]] - [[화이트 앨범 2]]
* [[5월 30일]] - [[마지마 타로]]: [[도키메키 메모리얼 Girl's Side]] 2nd
* [[7월 1일]] - [[쌈, 마이웨이#s-2.1|최애라]]: [[쌈, 마이웨이]]
* [[7월 3일]] - [[나나미 루치아]]: [[머메이드 멜로디 피치피치핏치]]
* [[7월 30일]] - [[하워드 라이트]]: [[사이렌: New Translation]]
* [[8월 6일]]: [[이즈미 치아키]] - [[화이트 앨범 2]]
* [[8월 26일]] - [[스오인 카나]]: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 [[9월 2일]] - [[토우인 리나]]: [[머메이드 멜로디 피치피치핏치]]
* [[9월 7일]] - [[서준용]]: [[검은방]] 2
* [[9월 11일]] - [[김기태(클로저스)|김기태]]: [[클로저스]]
* [[9월 12일]]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등장인물/코너 루트#s-3.4|밴 콜린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 [[10월 17일]] - [[쌈, 마이웨이#s-2.1|고동만]]: [[쌈, 마이웨이]]
* [[10월 21일]] - [[백영수]]: [[스토브리그]]
* [[10월 27일]] - [[쌈, 마이웨이#s-2.1|백설희]]: [[쌈, 마이웨이]]
* [[11월 23일]] - [[히무로 히지리]]: [[프리티 리듬 레인보우 라이브]]
* [[12월 7일]] - [[고죠 사토루]]: [[주술회전]]
* 일자 불명
* [[다이몬 치카|최민지]], [[한지호(디지몬 시리즈)|한지호]]: [[디지몬 세이버즈]]
* [[미하마 치요]]: [[아즈망가 대왕]][* 일단 3월 생일이라는 힌트 정도는 나와 있다.]
* 박경수[* 설정상 08학번으로 개불대학교 복학생이다.] - [[체육왕]]
* 소심줄, 이폰팔[* 소심줄과 이폰팔, 두 14학번 학생은 장수생인 최멸치와 1살 연하로 6년 늦게 [[기안대학교]]에 입학했다.], 김성우[* 설정상 08학번으로 졸업생] - [[복학왕]]
* [[오 나의 귀신님/등장인물#s-4.2|신경모]]: [[오 나의 귀신님]]
* [[아야사토 치히로]]: [[역전재판]]
* [[카즈라 히미코]]: [[역전검사]]
* [[이인아]], [[남여경]], [[오정아(리멤버 - 아들의 전쟁)|오정아]]: [[리멤버 - 아들의 전쟁]]
* [[쌈, 마이웨이#s-2.1|김주만]]: [[쌈, 마이웨이]]
* [[정세아]]: [[뷰티풀 군바리]]
* [[윤진명]]: [[청춘시대]], [[청춘시대 2]]
* 박선미: [[알파 베스티어리]]
== 사망 ==
=== 실존 인물 ===
==== 1월 ====
* [[1월 1일]] - 이동준: (구)[[인천제철]] 창업주, 퇴계학연구원 설립자
* [[1월 5일]] - 후루타 준코: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의 희생자
* [[1월 7일]] - [[쇼와 덴노]]: [[일본]]의 제124대 [[천황]]
* [[1월 10일]] - [[이응노]]: 재불 서양화가
* [[1월 17일]] - [[김철준]]: 대한민국의 국사학자, 제6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
* [[1월 18일]] - [[닐스 악셀손]]: [[스웨덴]]의 전 축구 선수
* [[1월 23일]]
* [[살바도르 달리]]: [[스페인]]의 [[미술가]]
* [[타카하시 요시아키]]: 일본의 아이돌 가수
* [[1월 27일]]
* [[김현철(독립운동가)|김현철]]: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제6, 8대 내무부 장관, 전 내각 수반, 제3대 경제기획원장
* [[빌리발트 크레스]]: 독일의 전 축구 감독
* [[1월 31일]] - [[아쿠타가와 야스시]]: 일본의 작곡가
==== 2월 ====
* [[2월 3일]] - [[김성준]]: 대한민국의 권투선수. 전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 [[2월 4일]] - [[함석헌]]: [[대한민국]]의 종교인, 사상가, 교육자, 민주화 운동가
* [[2월 9일]] - [[데즈카 오사무]]: 일본의 [[만화가]], 애니메이션 제작자, [[무시 프로덕션]] 및 [[데즈카 프로덕션]] 창업주.
* [[2월 15일]] - [[박성수]]: '솔표' 브랜드로 유명한 조선무약 창업주이자 독립운동가, 전 성균관장
* [[2월 18일]] - [[정상률]]: 대한민국의 철거민 운동가
* [[2월 21일]] - [[알렉스 테포]]: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
* [[2월 26일]] - [[신상초]]: 대한민국의 정치인
* [[2월 27일]]
* [[바스 파우어]]: [[네덜란드]]의 전 축구 감독
* [[콘라트 로렌츠]]: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 [[2월 28일]] - [[박세영]]: 월북 시인. 북한 애국가의 작사자로 알려짐.
==== 3월 ====
* [[3월 3일]] - [[오오사카 시로]]: 일본의 배우
* [[3월 4일]] - [[정병주]]: 제3대 특전사령관
* [[3월 7일]] - [[기형도]]: 대한민국의 시인, 언론인
* [[3월 21일]] - [[박재홍(가수)|박재홍]]: 대한민국의 가수
* [[3월 22일]] - [[박암]]: 대한민국의 원로 영화배우
* [[3월 31일]] - [[장종훈]]: 대한민국의 재야 사회운동가
==== 4월 ====
* [[4월 3일]] - [[김윤기]]: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4월 5일]] - [[김명환]]: 대한민국의 판소리 고수
* [[4월 8일]]
* [[김창낙]]: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 [[남태현]]: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 [[이해랑]]: 대한민국의 원로 연극인
* [[4월 9일]] - [[최완용]]: 대한민국의 산재노동운동가
* [[4월 10일]] - [[아사다 테츠야#s-1]]: [[일본]]의 [[작사#s-1]].
* [[4월 15일]] - [[후야오방]]: 중국의 군인, 정치가, 그리고 [[천안문 6.4 항쟁|천안문 사태]]의 도화선이 된 인물
* [[4월 21일]] - [[덕혜옹주]]: 대한제국의 마지막 옹주
* [[4월 23일]] - [[김삼규]]: 대한민국의 언론인. '중립화통일론' 제창자.
* [[4월 24일]]
* [[송지영]]: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언론인
* 이무일: 무림페이퍼 창업주
* [[페데]]: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
* [[4월 26일]] - [[루실 볼]]: 미국의 코미디언
* [[4월 27일]] - [[마쓰시타 고노스케]]: [[파나소닉]]의 창업주
* [[4월 28일]] - [[석윤기]]: 월북 소설가
* [[4월 30일]]
* [[세르조 레오네]]: [[이탈리아]]의 [[영화 감독]]
* [[이방자]]: 대한제국의 [[황태자비]]
==== 5월 ====
* [[5월 3일]] - [[5.3 동의대 사태]] 순직경찰 6명
* 최동문 경위(추서계급): 당시 부산직할시 경찰국 형사기동대 소속.
* 박명환 경사(추서계급): 이하 동일.
* 정영환 경사(추서계급): 이하 동일.
* 조덕래 경사(추서계급): 이하 동일.
* 김명화 수경: 당시 동 경찰국 기동대 소속.
* 모성태 수경: 이하 동일.
* [[5월 4일]] - [[김종수]]: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5월 6일]] - [[이철규]]: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 [[5월 11일]] - [[후루야 츠나마사]]: 일본의 뉴스 앵커. TBS의 뉴스 프로그램 <JNN 뉴스스코프>를 1967년부터 1981년까지 진행했다.
* [[5월 16일]] - [[이상남]]: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5월 19일]]
* [[유열]]: <[[꼬치미]]> 등의 TV드라마 각본을 쓴 방송작가
* [[존 무초]]: 초대 주한 미국대사
* [[5월 21일]] - [[하라 이즈미]]: 일본의 원로 여배우
* [[5월 24일]] - [[조정식]]: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5월 26일]]
* 서원석 수경: 당시 부산직할시 경찰국 기동대 소속. 동의대 사태 당시 중상을 입고 23일만에 숨을 거두었다.
* [[돈 레비]]: '더티 리즈' 시절 [[리즈 유나이티드]]의 감독
* [[다카쓰카사 가즈코]]: 일본 [[쇼와 덴노]]의 3녀
* [[5월 29일]] - [[이상모]]: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6월 ====
* [[6월 2일]] - [[와타나베 타케오]]: [[일본]]의 [[작곡가]]
* [[6월 3일]] - [[아야톨라 호메이니]]: [[이란]] 혁명의 지도자
* [[6월 4일]]
* [[박진석]]: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천안문 6.4 항쟁]]의 희생자들
* [[6월 6일]] - [[미야자키 츠토무#s-2.1|노모토 아야코]]: 도쿄, 사이타마 유아 연쇄살인사건의 희생자
* [[6월 14일]] - [[이철경]]: 대한민국의 여성 교육자, 서예가
* [[6월 17일]] - [[미조구치 야스오]]: 일본의 아나운서
* [[6월 18일]] - [[이효상]]: 대한민국의 시인, 제 6대 1기~7대 2기 국회의장
* [[6월 24일]] - [[미소라 히바리]]: 일본의 국민[[가수]]
==== 7월 ====
* [[7월 2일]] - [[안드레이 그로미코]]: 소련의 외교관이자 정치가
* [[7월 10일]] - [[멜 블랭크]]: 미국의 원로 성우이자 배우
* [[7월 11일]] - [[로런스 올리비에]]: 영국의 원로 영화배우
* [[7월 15일]] - [[이낙선]]: 5.16 군사정변 가담 군인, 초대 국세청장, 제15~19대 대한배구협회장
* [[7월 16일]]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오스트리아]]의 [[지휘자]]
* [[7월 17일]] - [[이종대]]: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7월 18일]] - [[현시학]]: [[대한민국]]의 [[군인]]
* [[7월 24일]] - [[월터 딕]]: [[미국]]의 전 축구 선수
==== 8월 ====
* [[8월 5일]] - [[최성조]]: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8월 14일]] - [[이병도]]: [[대한민국]]의 [[사학자|국사학자]], 제7대 문교부 장관
* [[8월 15일]] - 이내창: 전 중앙대 안성캠 총학생회장, 민주화운동가
* [[8월 17일]] - [[김윤양]]: 진주 윤양병원 설립자, 전 경남일보 사장.
* [[8월 20일]] - [[조지 애덤슨]]: 영국의 자연주의자, 그리고 야생동물 보호의 선구자
* [[8월 23일]] - [[주선태]]: 1960~70년대를 빛낸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 [[8월 25일]] - [[갈홍기]]: [[대한민국]]의 목사 겸 정치인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 [[8월 27일]] - [[루이스 루스]]: [[브라질]]의 축구선수
==== 9월 ====
* [[9월 1일]] - [[카지미에시 데이나]]: 폴란드의 축구선수
* [[9월 2일]] - [[김병구]]: 대한민국의 재야 사회운동가
* [[9월 5일]] - [[이리에 도쿠로]]: 일본의 뉴스 앵커. TBS의 뉴스 프로그램 <JNN 뉴스스코프>를 1969년부터 1983년까지 진행했다.
* [[9월 9일]] - [[강현중]]: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9월 10일]] - [[김난초]]: 대한민국의 가야금 명인
* [[9월 15일]] - [[김종하]]: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9월 20일]] - [[천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
* [[9월 29일]] - [[어거스트 부시 주니어]]: 전 [[버드와이저|안호이저-부시]] 총수 및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구단주
==== 10월 ====
* [[10월 6일]] - [[베티 데이비스]]: 미국의 원로 영화배우
* [[10월 7일]] - [[한영숙]]: 승무 및 학춤 기능보유자
* [[10월 17일]] - [[김종호]]: 한국도자기 창업주
* [[10월 18일]] - [[이양구]]: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의 창업주
* [[10월 19일]] - [[황산덕]]: 대한민국의 형법학자이자 제10대 성균관대 총장, 제24대~25대 법무부 장관, 제22대 문교부 장관.
* [[10월 26일]]
* [[안데르스 뤼드베리]]: [[스웨덴]]의 전 축구 선수
* [[우라베 쿠메코]]: 일본의 원로 여배우
* [[10월 29일]] - 이재호: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11월 ====
* [[11월 5일]]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우크라이나]] 출신의 미국인 [[피아니스트]]
* [[11월 6일]]
* [[김덕보]]: 전 [[중앙일보]]-[[동양방송]] 대표이사, [[제일기획]] 회장
* [[마츠다 유사쿠]]: 일본의 영화배우
* [[11월 9일]] - [[레인 펜터]]: [[네덜란드]]의 전 축구 선수
* [[11월 12일]]
* [[임종국(1929)|임종국]]: [[한국]]의 문학평론가, [[친일반민족행위자]] 연구자
* [[하린두]]: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 [[11월 14일]] - [[지미 머피]]: [[맷 버스비]] 감독의 오른팔로 알려진 웨일스의 축구인
* [[11월 16일]] - [[최덕신]]: 외무부 9대 장관이자 전 천도교 교령
* [[11월 22일]] - [[르네 무아와드]]: 제8대 레바논 대통령
* [[11월 23일]] - [[시가 마리코]]: [[파스텔 유미]]로 유명한 일본의 성우이자 가수
* [[11월 27일]] - [[이희승]]: 대한민국의 국어학자, 시인, 수필가이자 독립운동가
* [[11월 29일]] - [[임태남]]: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12월 ====
* [[12월 9일]] - [[가이코 다케시]]: 일본의 대중적인 소설가
* [[12월 11일]]
* [[박봉술]]: 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
* [[이재식]]: 대한민국의 노점상 운동가
* [[12월 12일]] - [[타가와 스이호]]: 1930년대 인기 일본만화 <[[노라쿠로]]>의 작가
* [[12월 14일]] - [[안드레이 사하로프]]: 소련의 핵물리학자이자 인권운동가
* [[12월 16일]] - [[리 밴클리프]]: [[미국]]의 [[배우]]
* [[12월 17일]] - [[앨버트 웨드마이어]]: 미국의 장군
* [[12월 25일]]
* [[성내운]]: 대한민국의 교육학자, 민주화 운동가
* 이학수: 고려원양어업 창업주
*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루마니아]] 공산정권 시절 [[독재자]]
* [[엘레나 차우셰스쿠]]: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부인 --[[루마니아]] 국민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 [[빌리 마틴]]: 미국의 야구인
* [[12월 27일]] - [[박수웅]]: 대일화학공업 창업주
* [[12월 30일]] - [[원용석]]: 제6대 경제기획원장, 제6대 기획처장, 제20대 농림부 장관, (주)혜인 창업주
=== 가상 인물 ===
* 일자불명
* [[웬디 로슨]]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초수전대 라이브맨#s-4.2]]: [[대교수 비아스]], [[닥터 켄프|츠키카타 켄지]], [[닥터 마젠다|센다 루이]], [[닥터 아슈라|부스지마 아라시]]--
== 데뷔 ==
=== 배우 ===
* [[고현정]]
* [[변영훈]]
* [[최진실]] - [[조선왕조 오백년]]: 한중록
=== 가수 ===
==== 한국 ====
* [[강민주(가수)|강민주]]
* [[강수지]]
* [[김민교(가수)|김민교]]
* [[김현철(가수)|김현철]]
* [[디오니서스]]
* [[마로니에]]
* [[박정운]]
* [[블랙홀(밴드)|블랙홀]]
* 신수미
* [[신효범]]
* [[양혜승]]
* [[여행스케치]]
* [[이박사]]
* [[정석원(음악인)|정석원]] (무한궤도)
* [[제3세대]]
* [[최용준(가수)|최용준]]
* 푼수들
* [[유채영]]
* [[이승환]]
* 한가람
* [[조규만(가수)|조규만]]
* [[햇빛촌]]
* [[황치훈]]
==== 해외 ====
* [[갱 스타]]
* [[그린 데이]]
* [[Nirvana|너바나]]
* [[미스터 빅(밴드)|미스터 빅]]
* [[스키드 로우]]
* [[지아나 제인]]
* MC 900 ft. 지저스
* [[The D.O.C.]]
* [[X JAPAN]]
=== 예능인 ===
* 김종하
* 서승만
* 최왕순
=== 만화계 ===
* 강동헌 - <여자> 시리즈
* 강일구 - <해> 시리즈
* 권선이 - <내리사랑>
* 길문섭 - <토박이>
* 김기혜 - <열아홉의 가을>
* 김종민 - <깨비왕>
* 김준범 - <기계전사 109>
* 문계주 - <겨울풍경>
* [[오바타 타케시]] - <사이보그 짱 G>
* [[요시자키 미네]] - <메론☆사가>
* 우양숙 - <고교 장희빈>
* 유시진 - <지난 봄 이야기>
* 이강주 - <재수 없는 친구>
* 이동규 - <뛰는 놈 나는 분>
* 이해광 - <웃음별곡>
* 정재훈 - <홍대만평>
* 키리야마 코지[* <[[12지 닌자군단 닌쿠]]> 작가.] - <地球の上のいろんなあなた>
* 허정인 - <시간의 바다>
* [[CLAMP]] - [[성전(CLAMP)|성전]]
=== 스포츠 ===
==== 야구 ====
* [[김상엽]]
* [[송진우(야구)|송진우]]
* [[이강철]]
* [[조계현]]
==== 축구 ====
* [[고정운]]
* 공문배
* [[로이 킨]]
* [[지네딘 지단]]
==== 미식축구 ====
* [[트로이 에이크만]]
==== 농구 ====
* 글렌 라이스
* 닉 앤더슨
* 다나 배로즈
* 대니 페리
* [[데이비드 로빈슨]]
* 무키 블레이락
* 션 엘리엇
* [[숀 켐프]]
* 스테이시 킹
* [[유도훈]]
* [[이훈재]]
* 처키 브라운
* [[최병식]]
* 클리프 로빈슨
* [[팀 하더웨이]]
* 퍼비스 엘리슨
* 푸 리차드슨
* BJ 암스트롱
==== 씨름 ====
* [[강호동]]
== 은퇴 ==
=== 스포츠 ===
* [[1월 24일]] - [[양영자]]
* [[4월 23일]] - [[카림 압둘 자바]]
* [[8월 17일]] - [[윤동균]]: KBO 사상 은퇴식 거행 선수 1호.
* [[강두태]]
* 김미경
* [[김용희]]
* 나임 슐레이마놀루(1차)
* [[방수원]]
* [[서정환]]
* [[이운임]]
== 히트작 ==
=== 드라마 ===
==== 국산 ====
* KBS
* 왕룽일가
* 사랑의 굴레
* [[달빛가족]]
* [[무풍지대]]
* MBC
* 조선왕조 500년 - 한중록
* [[제2공화국(드라마)|제2공화국]]
==== 해외 ====
* 미국
* [[사인펠드]]
* 영국
* [[명탐정 푸아로]]
==== 더빙 ====
* 머나먼 정글
=== 영화 ===
* 국산
* 아제아제 바라아제
* [[서울무지개]]
* [[영구와 땡칠이]]
* 수입
* [[레인맨]]
*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 [[배트맨(1989년 영화)|배트맨]]
* [[첩혈쌍웅]]
* [[정전자|도신(정전자)]]
* 트윈스
=== 가요 ===
* 한국
* 김상아 - 사랑했어요
* [[김승진]] - 유리창에 그린 안녕
* [[김완선]] - 기분 좋은 날, 이젠 잊기로 해요
* [[김종찬]] - 당신도 울고 있네요
* 김지애 - 얄미운 사람
* [[김현철(가수)|김현철]] - [[춘천 가는 기차]]
* [[김혜림(1968)|김혜림]] - D.D.D
* [[김흥국]] - '''[[호랑나비(노래)|호랑나비]]'''
* [[나훈아]] - 갈무리
* [[노래를 찾는 사람들]] - [[사계(민중가요)|사계]],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 [[동물원(밴드)|동물원]] -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혜화동
* [[무한궤도(밴드)|무한궤도]] - '''[[그대에게]]''', 여름이야기,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 [[문희옥]] - 사랑의 거리
* [[민해경]] - 약속은 바람처럼, 존댓말을 써야 할지 반말로 얘기해야 할지
* [[바람꽃]] - 비와 외로움
* [[박남정]] - '''널 그리며''', '''사랑의 불시착'''
* [[박선주]] - 귀로
* [[변진섭]] - '''홀로 된다는 것''', '''너무 늦었잖아요''', '''새들처럼''',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 [[봄여름가을겨울]] -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 [[빛과 소금(밴드)|빛과 소금]] - 샴푸의 요정
* [[설운도]] - 마음이 울적해서
* [[세대교체]] - 사랑의 도전자
* [[소방차(아이돌)|소방차]] - 하얀 바람, 사랑하고 싶어
* [[신촌블루스]] - '''골목길'''(Vocal. 김현식), 아쉬움(Vocal. 엄인호, 정경화)
* [[안혜지(가수)|안혜지]] - 벌써 이 밤이 다 지나고
* [[양수경]] - '''그대는''',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
* 양하영 - 촛불 켜는 밤
* [[원준희]] - 사랑은 유리 같은 것
* [[유열(가수)|유열]] - 에루화
* 유익종 - 세상 가장 밝은 곳에서 가장 빛나는 목소리로
* [[이규석]] - 기차와 소나무
* 이동원, [[박인수(1938)|박인수]] - 향수
* [[이문세]] -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 [[이상우]] - 슬픈 그림 같은 사랑, 바람에 옷깃이 날리듯
* [[이상은(가수)|이상은]] - 사랑해 사랑해
* [[이선희]] - 나의 거리
* [[이승철]] -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마지막 나의 모습
* [[이정석]] - 여름날의 추억
* [[이지연]] - '''바람아 멈추어다오'''
* [[이태호]] - 미스 고
* [[장혜리]] -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 [[전영록]] - 아직 못다한 이야기, 바람에 실려간 사랑
* [[제3세대]] - 나 그대 사랑해요
* [[조갑경]] - 바보같은 미소
* [[조덕배]] -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 [[조용필]] - [[조용필 11집|Q]]
* [[주현미]] - '''짝사랑'''
* [[최성수]] - 후인
* [[최진희]] - 미련 때문에
* [[태진아]] - '''옥경이'''
* [[푸른하늘]] - 눈물 나는 날에는
* [[현철]] - '''봉선화 연정'''
* [[황치훈]] - 추억 속의 그대
* 해외
* [[데비 깁슨]] - Lost in Your Eyes
* [[런던 보이즈]] - Harlem Desire, London Nights
* [[마돈나]] - Like a Prayer
* [[밀리 바닐리]] - Baby Don't Forget My Number, Blame It on the Rain, Girl I'm Gonna Miss You
* [[바비 브라운]] - Every Little Step
* [[자넷 잭슨]] - Rhythm Nation
* [[마이클 볼튼]] -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
* 투 라이브 크루 - Me So Horny
* [[PRINCESS PRINCESS]] - Diamonds
* [[wink]] - 淋しい熱帯魚
* [[X JAPAN]] - [[紅(X JAPAN)|紅]]
* [[미소라 히바리]] - [[강물의 흐름처럼]]
* [[퀸(밴드)|Queen]] - [[I Want It All]]
=== 개그 코너 ===
* 고독한 사냥꾼 - 유머 일번지
* 탱자 가라사대 - 유머 일번지
* 달빛 소나타 - 쇼 비디오 쟈키
* 벌레들의 합창 - 쇼 비디오 쟈키
* 주병진의 미주알 고주알 - 일요일일요일밤에
* 서세원의 스타데이트 - 청춘행진곡
* 좌우로 정렬 - 청춘행진곡
* 청춘교실 - 청춘행진곡
=== 애니메이션 ===
* KBS
* [[달타냥의 모험]]
* [[무적의 왕자 라이온]]
* [[욕심쟁이 오리아저씨]]
* [[천방지축 하니]]
* [[2020 우주의 원더키디]]
* MBC
* [[머털도사]]
* [[고스트버스터즈|유령대소동]]
* 해외
* [[드래곤볼 Z]]
* [[란마 1/2/애니메이션|란마 1/2]]
=== 베스트셀러 ===
* 고삐 - 윤정모 저.
*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 [[마광수]] 저.
*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그렇게 살아라 - 필립 체스터필드 저.
* 백치애인 - 신달자 저.
*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 [[김우중]] 저.
* 시간의 모래밭 - 시드니 셀던 저.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이문열]] 저.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 임정진 저.
== 출시 상품 ==
=== 식음료 ===
* 농심
* 3월: 느타리라면
* 8월: 새우탕 큰사발면
* 9월: 우육탕 큰사발면
* 동서식품
* 맥스웰하우스 원두 분쇄 커피, 네오칸 이탈리안 골든블렌드
* 맥심 모카골드
=== 생활용품 ===
* 애경산업
* 트리오로얄, 크리오, 부라보, 썬로즈샴푸
=== 자동차 ===
* 현대 엑셀
* 현대 그랜저 3.0
* 대우 임페리얼
* 대우 BV113(2세대)
* 대우 BH120H 로얄슈퍼(페이스리프트)
* 기아 캐피탈
* 기아 베스타 4X4
* 기아 와이드 봉고
* 아시아 AM939
* 아시아 코스모스
=== 전자제품 ===
* 삼성전자
* 삼성 엑설런트 톱
* 삼성 히트세탁기
* 삼성 VTR 톱스타
* 삼성 특선냉장고 크린
*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 금성사
* 금성 비디오TV
* 금성 VTR 수퍼메리트
* 금성 PC 파트너
* 금성 환타지아
*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 금성 싱싱냉장고 액센트
* 금성 비디오무비 V1
* 금성 오븐레인지 캐러트
* 대우전자
* 대우 수퍼비전 PRO (DTQ-2173FW)
* 대우 한국형 전자동 전자렌지 (KOR-647G)
* 대우 한국형 전자렌지 (KOR-801G)
* 대우 VTR 탤런트Q (DVR-6238)
* 대우 디지탈 Hi-Fi VTR
* 대우 코로나 PC
* 대우 IC 냉장고 투투 (FR-264AV)
* 대우 아이큐 슈퍼
* 대우 워드프로세서 르모II
== 최초 ==
=== 방송 프로그램 ===
* KBS
* 역사탐험
* 쟈니윤 쇼
* 현장기록 요즘사람들
* MBC
* 쇼 네트워크
* 아하 복동네
* 여론광장
* 우정의 무대
* MBC 리포트 (2차)
* MBC 올스타쇼
=== 창간 ===
* 신문
* 경상일보
* 경주신문
* 교차로
* 동양경제신문
* 민주일보
* 부산매일신문: 창간 당시 제호는 <항도일보>.
* 세계일보
* 에너지경제신문
* 옥천신문
* 전남매일
* 전남일보
* 한라일보
* 잡지
* 시사저널
* 월간 노동해방문학
* 하이센스
* 한국논단
== 유행어 ==
* 걸레는 빨아도 걸레
* 그래~ 니 똥 굵다/내비둬, 그냥 이렇게 살다 죽을래/일생에 도움이 안 돼요/적어라, 적어/꼭 공부 못하는 것들이~/알~~~겠느냐? - [[김형곤]] (탱자 가라사대)
* 그래~ 내는 모른다, 니는 아나? - [[김용(코미디언)|김용]] (탱자 가라사대)
* 누가 물어 봤어? 아, 누가 물어 봤냐고~ - 조문식 (탱자 가라사대)
* 에그머니나~ - 하상훈 (탱자 가라사대)
* 날 샜어! - [[이경래]] (달빛 소나타)
* 내가 이 카페를 자주 찾는 이유는 이 곳에 오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 때문이지/에구에구에구~ 그날 난~ OOO했다~ - [[최양락]] (고독한 사냥꾼)
* 일주일만 젊었어도 - [[임하룡]] (청춘을 돌려다오)
* 얜 무슨 말을 못하게 해 - [[전유성]] (네로 25시)
* 아, 저 말입니까? - [[김학래]] (네로 25시)
* 영숙이! 숙제 했어?! - [[서세원]] (스타데이트)
* 귀신은 뭐 하는지 몰라~ 저 놈 안 잡아가고 - [[조정현(코미디언)|조정현]] (헬로우 일지매)
* 잘났어~ 정말! - [[고두심]] (드라마 사랑의 굴레)
* 여러분,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 [[자니 윤]]
* 따봉! - [[델몬트]] CF
* 싸랑해요, [[밀키스]] - [[주윤발]] (밀키스 CF)
* 맛이 어떠냐고 물으신다면~ 끝내줍니다! - [[메가톤바]] CF
*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 [[김우중]]
* 이게 뭡니까~ - [[김동길(1928)|김동길]]
*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 미국 <이코노미스트> 기사 중에서
== 달력 ==
[include(틀:일요일로 시작하는 평년)]
[[분류:1989년]] |
1989년 한국시리즈 | [include(틀:역대 KBO 한국시리즈 목록)]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 bordercolor=#151b54><bgcolor=#ffffff,#191919> [[파일:external/41.media.tumblr.com/tumblr_o4a4woaUar1sqk8veo6_r1_400.png|width=200]][br] '''{{{#151b54,#abb1ea 역대}}} [[KBO 한국시리즈|{{{#151b54,#abb1ea KBO 한국시리즈}}}]]''' ||
||<width=30%> [[1988년 한국시리즈|1988년]] [br] [[해태 타이거즈]] || {{{+1 ←}}} ||<bgcolor=#ffffff,#191919><width=30%> '''1989년''' [br] '''[[해태 타이거즈]]''' || {{{+1 →}}} ||<width=30%> [[1990년 한국시리즈|1990년]] [br] [[LG 트윈스]] ||
||<-2><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f01e23><tablebgcolor=#ffffff,#191919>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ncc.phinf.naver.net/9.jpg|width=100%]]}}} ||
||<-2> [[파일:A4etEfi.png|width=150]] ||
||<-2><bgcolor=#000000> '''{{{#ff0000 1989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
||<-2><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타이거즈}}}''']] ||
|| '''{{{#f01e23 MVP}}}''' || [[박철우(야구)|'''{{{#f01e23 박철우}}}''']] ||
>'''네! 스트락아웃! 스트락아웃 당하는 [[황대연]]! 경기 끝났습니다. 89 프로야구, 대망의 패권. 해태 타이거즈가 차지하면서 4연패의 위업을 달성하는 해태 타이거즈'''
> ----
> 중계진의 우승콜
[목차]
== 개요 ==
||<tablewidth=100%><-2><:><tablebordercolor=#edd36c><bgcolor=#00143f,#0b1966> {{{+2 {{{#edd36c '''1989'''}}} {{{#edd36c '''프로야구'''}}} {{{#ffffff '''한국시리즈'''}}}}}} ||
||<width=500><height=150><#f01e23> [[파일:1411__haitai_tigers_cap-1982.png|width=110]] ||<width=500><height=150><#ff6600> [[파일:빙그레모자로고.png|width=150]] ||
||<width=500><#f01e23> [[해태 타이거즈|{{{#000000 {{{+1 '''해태 타이거즈'''}}}}}}]] ||<width=500><#ff6600> [[빙그레 이글스|{{{#000000 {{{+1 '''빙그레 이글스'''}}}}}}]] ||
[[1989년]] [[10월 26일]]에 시작하여 [[11월 1일]]에 종료된 한국시리즈로 해태 타이거즈가 1988년에 이어 또 다시 빙그레 이글스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시리즈다. 해태는 이 우승으로 통산 5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및 당시로서는 전무했던 '''한국시리즈 4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반대로 빙그레는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고도 우승을 놓치면서 2년 연속으로 우승 문턱에서 물러났다.
시리즈 MVP는 18타수 8안타를 치면서 활약한 [[박철우(야구)|박철우]]가 선정되었다.
== 시리즈 전 상황 ==
1989년은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단일시즌 체제가 도입된 시즌이었다. 이미 1988년에 돌풍의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준 빙그레는 1989년에는 돌풍을 넘어 태풍을 일으켰다. 정규시즌 운용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김영덕]] 감독의 시즌 운용에 더해 [[이정훈(1963)|이정훈]], [[유승안]], [[고원부]], [[장종훈]], [[이강돈]]을 비롯한 막강한 타선이 시즌 내내 위력을 보이면서 타격왕과 타점왕 타이틀을 가져간 상황이었고, 마운드에서도 [[이상군]]과 [[한희민]]의 원투펀치가 여전히 건재한 상황이었다. 이 빙그레의 전력에 천하의 해태가 한 수 접고 들어가 2위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이 해 PO 일정이 좀 묘했는데, KBO가 짜 놓은 PO 일정은 10월 14일부터 10월 21일까지였고, 한국시리즈는 10월 26일부터 11월 3일까지였다. 즉, PO가 5차전까지 가도 PO 승자는 5일을 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1위팀은 경기 감각적인 면에서 불리할 수 있었다. 과거와 다른 단일시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인데, 이 때문에 해태는 2위로 올라가 경기 경험을 쌓고 한국시리즈에 임하면 불리하지 않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마침 PO 상대도 돌풍을 일으키며 올라온 [[태평양 돌핀스]]였고, 태평양은 이미 준PO에서 삼성과의 혈투 속에 그 해 19승을 거둔 [[박정현]]이 부상으로 이탈하는 등 투수진을 소모한 상황이었다. 해태는 가볍게 태평양을 3:0으로 스윕하며 올라갔지만, 그 속에서 타선이 생각보다 터지지 않는 것은 걱정거리였다. 반대로 빙그레는 껄끄러운 해태가 올라왔고, 경기 감각이 걱정되었지만 그래도 그 해 가장 강력했음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우려했던 경기 감각이 시리즈 내내 빙그레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 경기결과 ==
=== 1차전 ===
||<-13><bgcolor=#ff6600> {{{#ffffff '''한국시리즈 1차전, 10.26(목), 18:00,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ffffff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dcdcdc,#222222>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선동열]] || 0 || 0 || 0 || 0 || 0 || 0 || 0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0''' || 6 ||
||<bgcolor=#ff660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이상군]] || 1 || 0 || 0 || 0 || 0 || 0 || 0 || 3 || - || '''4''' || 5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KBS1|[[파일:KBS 1 logo[1].png|width=45]]]] | 캐스터: 이세진 | 해설: 하일성''' ||
승리 투수 : [[이상군]]
세이브 투수 : [[한희민]]
패전 투수 : [[선동열]]
홈런 : [[이강돈]](1회, 빙그레)
해태의 1차전 선발은 당연하지만 [[선동열]]이었고, 빙그레는 이에 맞서 팀의 에이스 [[이상군]]을 올렸다. 경기 시작과 함께 묘한 기운이 흘렀는데, 1회말 공격에서 [[이강돈]]이 선동열 상대로 백스크린을 넘기는 선두타자 홈런을 날린 것. 그 뒤로 빙그레는 [[선동열]]의 공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선동열]] 상대로 8개의 볼넷을 얻으면서 지독하게 괴롭혔다. 점수를 많이 뽑지 못하긴 했지만 자신들의 공격을 길게 가져가면서 이상군에게 여유를 준 것은 소득이었다. [[이상군]]도 팀의 기대에 부응하며 해태 타선을 요리했다.
해태는 8회초 2사 만루의 찬스를 잡았지만, [[백인호]]의 플라이로 물러났고, 위기를 넘긴 빙그레는 곧바로 8회말 공격에서 선동열 상대로 2사 1,2루의 찬스를 잡은 후, [[김상국]]의 2타점 2루타와 [[한대화]]의 실책을 묶어 3점을 뽑으면서 시리즈의 기선을 확실하게 제압했다. 시리즈 전 해태가 유리할 것이라던 전문가들의 예상 및 빙그레의 우려를 선동열을 눌러버림으로써 기우로써 종식시켰던 것.
=== 2차전 ===
||<-15><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2차전, 10.27(금), 18:00,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ffffff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조계현]] || 1 || 1 || 3 || 0 || 1 || 0 || 0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6''' || 10 ||
||<bgcolor=#ff660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한용덕]] || 4 || 0 || 0 || 0 || 0 || 0 || 0 || 0 || 0 || '''4''' || 10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MBC|[[파일:attachment/mbc86.jpg|width=50]]]] | 캐스터: 김용 | 해설: 김소식''' ||
승리 투수 : [[신동수(1966)|신동수]]
세이브 투수 : [[이강철]]
패전 투수 : [[송진우(야구)|송진우]]
해태의 선발은 [[조계현]], 빙그레의 선발은 [[한용덕]]이었다. 해태가 1회초에 2사 2루에서 [[박철우(야구)|박철우]]의 내야안타와 상대 송구 실수를 틈타 [[이순철]]이 홈을 파면서 먼저 선취점을 냈다. 그러나 빙그레는 조계현 상대로 1회말에 안타 4개와 볼넷 2개를 묶어 단숨에 4점을 내면서 승부를 뒤집었다. 해태도 정말 끈질겨서 2회 바뀐 투수 김대중 상대로 1점을 만회했고, 다시 3회초에는 빙그레의 3번째 투수 [[송진우(야구)|송진우]] 상대로 1사 만루의 찬스를 잡았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백인호]]의 타구는 유격수 앞 땅볼이 되면서 찬스가 날라가는가 싶었다.
그런데...
'''[[유격수]] [[장종훈]]이 그만 [[알까기|알을 까고 만다.]]'''[* 이날 경기에서 장종훈의 실책을 보고 [[유수호(1947)|해설진]]이 한 말이 '''"유격수 땅볼 병살 코스. 아, 놓쳤습니다! 알을 깠습니다. 3루 주자 홈인! 2루 주자 홈인! 4대 4 동점! 그리고 주자 3루! 1루! 유격수의 더블 플레이 코스에서 결정격인 실책입니다."''' 참고로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10인 장종훈 편에 나와 있다.]
이 통한의 알까기로 동점을 허용했고, 이어지는 찬스에서 희생플라이가 나오며 간단히 역전했다. 그리고 5회초에 다시 유격수 황대연이 병살 타구를 받아 1루로 송구한 것이 뒤로 빠지면서 또 실점했다. 반대로 해태는 선발 신동수가 역전 직후인 5회 1아웃까지를 소화하고, 그 뒤에 나온 [[이강철]]이 8회말 1사 2, 3루의 찬스를 내주기는 했지만 무실점으로 틀어 막으면서 결국 경기는 해태의 승리로 끝났다. 이 날 빙그레가 저지른 3개의 실책은 모두 득점과 연결되고 말았다.
이날 빙그레가 기록한 3실책의 후폭풍은 엄청났다. 단순히 이날 경기에서 패한 것 뿐만 아니라, 1차전을 선점해서 분위기를 탄 빙그레의 팀 분위기를 한순간에 흐트러뜨림은 물론 해태와 빙그레 양팀의 분위기까지 바꾸고 말았다. 결국 그것이 이후 빙그레의 4연패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이 2차전이 1989년 한국시리즈 전체를 결정한 경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2017년 한국시리즈|28년 후]]에도 반복된다.
=== 3차전 ===
||<-15><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3차전, 10.29(일), 14:00, [[무등 야구장|{{{#ffffff 무등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ff660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한희민]] || 0 || 0 || 0 || 0 || 0 || 0 || 0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0''' || 5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문희수]] || 0 || 1 || 0 || 1 || 0 || 0 || 0 || 0 || - || '''2''' || 7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KBS1|[[파일:KBS 1 logo[1].png|width=45]]]] | 캐스터: 정도영 | 해설: 하일성''' ||
승리 투수 : [[문희수]]
세이브 투수 : [[선동열]]
패전 투수 : [[한희민]]
빙그레는 선발로 [[한희민]]을, 해태는 1988년의 영웅 [[문희수]]를 선발로 내세웠다. 기선은 빙그레가 잡을 뻔 했다. 1사 3루에서 [[고원부]]의 플라이 때, 이정훈이 홈을 파고 들다가 그만 [[김종모]]의 송구에 아웃되면서 선제점을 뽑을 기회를 놓쳤다. 반대로 해태는 2회말에 [[한대화]]의 적시타로 [[박철우(야구)|박철우]]가 득점했고, 4회말에는 김종모의 적시타로 다시 박철우가 득점하면서 점수를 내 먼저 2:0으로 앞서 갔다.
[[문희수]]의 투구에 7이닝 무실점으로 철저하게 눌리던 빙그레는 8회 선두 타자가 나갔지만, 치고 달리기 때 허무하게 주루사를 당하면서 찬스를 날렸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빙그레는 9회초 선동열 상대로 무사 2,3루의 절호의 찬스를 잡았지만 여기서 [[고원부]]가 삼진, [[유승안]]이 땅볼, [[강정길]]이 플라이로 물러나면서 동점 찬스를 허무하게 날리며 경기를 패하고 말았다.
=== 4차전 ===
||<-15><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4차전, 10.30(월), 18:00, [[무등 야구장|{{{#ffffff 무등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ff660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이상군]] || 0 || 0 || 0 || 0 || 0 || 1 || 0 || 0 || 1 ||<colbgcolor=#dcdcdc,#222222> '''2''' || 7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김정수(1962)|김정수]] || 0 || 0 || 2 || 1 || 0 || 2 || 0 || 1 || - || '''6''' || 10 ||
중계방송사는 MBC TV.
승리 투수 : [[김정수(1962)|김정수]]
세이브 투수 : [[이강철]]
패전 투수 : [[이상군]]
홈런 : [[이순철]](3회 2점), [[한대화]](4회 1점), [[김성한]](6회 2점, 8회 1점)(이상 해태), [[장종훈]](9회 1점)(빙그레)
빙그레는 1차전의 영웅 [[이상군]]을 선발로 내세웠고, 해태는 가을의 남자 김정수를 선발로 내세웠다. 빙그레는 이상군을 믿었지만 불행히도 이상군은 사흘 휴식 후에 제 컨디션은 아닌 상황이었다. 그리고 [[김응용]] 해태 감독은 [[이상군]]의 변화구를 노리기 위해 타자들에게 타석 앞으로 좀 더 나갈 것은 지시한 상황이었다. 3회말 공격에서 해태는 [[이순철]] 선제 2점 홈런으로 먼저 기선을 잡았고, 4회말에는 [[한대화]]의 솔로 홈런으로 점수를 벌렸다. 빙그레 입장에서는 1회 1사 2루에서 [[이중화]]가 3루 도루를 시도하다가 잡힌 것과 2회 2사 1,2루에서 [[조양근]]의 타구를 잡아낸 해태 [[김종모]]의 호수비가 뼈아팠다.
6회초 빙그레는 [[유승안]]의 안타로 1점 추격했지만, 해태는 곧바로 6회말 공격에서 [[김성한]]의 2점 홈런으로 달아났고, 8회말에는 김성한의 연타석 홈런으로 승부를 완전히 굳혔다. 빙그레가 9회초 공격에서 [[장종훈]]의 솔로 홈런으로 1점 추격했지만 경기는 이미 뒤집을 수 없었다.
=== 5차전 ===
||<-15><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5차전, 11.01(수),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ffffff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19191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신동수(1966)|신동수]] || 2 || 0 || 2 || 1 || 0 || 0 || 0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5''' || 9 ||
||<bgcolor=#ff660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한희민]] || 0 || 1 || 0 || 0 || 0 || 0 || 0 || 0 || 0 || '''1''' || 5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KBS1|[[파일:KBS 1 logo[1].png|width=45]]]] | 캐스터: 이세진 | 해설: 하일성''' ||
[youtube(T5yeq7cms9M)]
승리 투수 : [[선동열]]
패전 투수 : [[한희민]]
홈런 : [[전대영]](2회 1점)(빙그레)
해태는 선발로 신동수를, 빙그레는 선발로 한희민을 내세웠다. 그러나 시리즈 도중 부상을 입은 한희민은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고, 해태는 그런 한희민을 가볍게 두들겼다. 1회초 공격에서 1사 만루의 찬스를 잡아 [[한대화]]의 희생플라이와 [[백인호]]의 2루타로 가볍게 2점을 냈다. 2회말 공격에서 빙그레가 전대영의 홈런으로 추격하자, 곧바로 3회초 공격에서 박철우의 2루타와 백인호의 스퀴즈로 다시 2점을 더 냈다. 그리고 4회초에는 빙그레의 실책으로 다시 1점 추가했다.
4회말 빙그레는 신동수를 상대로 무사 1,2루의 찬스를 잡았다. 그러나 이 때 등장한 것은 해태의 절망의 벽 선동열. 이미 3차전에서 무사 2,3루의 위기도 넘긴 선동열에게 무사 1,2루는 위기도 아니었다. 선동열은 4회 무사 1,2루에 등장해 9회까지 던지면서 삼진 10개를 잡으며 빙그레 타선을 침묵시켰다. 빙그레가 7회 무사 1,2루와 9회 1사 1,2루의 최후의 찬스를 잡았지만 결국 무득점으로 경기가 끝났고, 해태는 사상 초유의 한국시리즈 4연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한다.
== 기타 ==
* [[2017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패하기 전까지 타이거즈가 1차전에서 패한 유일한 시리즈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2017년 한국시리즈는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홈 구장]]에서 1차전 첫 패배였고, 89년 시리즈 1차전은 대전 원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리즈에서 1패 후 4연승을 그대로 재현해낸다.
* 5차전 9회말 선동렬에게 삼진을 당하며 시리즈의 마지막 타자가 된 [[황대연]]의 아들 [[황인준]]은 아이러니하게도 해태의 후신 KIA 타이거즈에 지명되었다.
* 정규리그 2위가 1위팀을 꺾고 뒤집기 우승을 기록해낸 최초의 한국시리즈이다. 이후 기록된 뒤집기 우승은 모두 정규리그 3위팀의 몫([[1992년 한국시리즈|92년 롯데]], [[2001년 한국시리즈|01년 두산]], [[2015년 한국시리즈|15년 두산]])이였다가, [[2018년 한국시리즈]] 때 [[SK 와이번스]]가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29년만에 리그 2위팀에 의한 뒤집기 우승에 성공했다.
* 이 때 해태가 달성한 한국시리즈 4연패라는 기록은 유일무이한 기록으로 남아있다가 훗날 삼성이 2011년~2014년까지 연속 우승하면서 타이 기록을 세우게 된다.[* 삼성은 통합4연패 기록이다.]
== 관련 문서 ==
* [[빙그레 이글스]]
* [[해태 타이거즈]]
== 둘러보기 ==
[include(틀:한국프로야구 역대 포스트시즌 목록)]
[[분류:KBO 한국시리즈]][[분류:한화 이글스]][[분류:해태 타이거즈]]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 [include(틀:역대 FIFA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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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ght=40><bgcolor=#009865> {{{#ffffff ''' 준우승 ''' }}}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파일:Argentina AFA 1990.png|height=35]]]] ||
||<height=40><bgcolor=#009865> {{{#ffffff ''' 3위 ''' }}}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파일:Italy FIGC 1986 1990.png|height=35]]]] ||
||<height=40><bgcolor=#009865> {{{#ffffff ''' 4위 ''' }}} ||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 ||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파일:England FA 1990.png|height=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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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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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youtube(1oe0webMVu0, width=400)]
||<table width=100%><width=33%> [youtube(6uVYWJwzBAM, width=100%)] ||<width=33%> [youtube(qpTtskCxLFs, width=100%)] ||<width=33%> [youtube(Xtcs-h7kvo8, width=100%)] ||
[[1990년]]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14번째 [[FIFA 월드컵]]. 이탈리아로서는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1934년]] 이후 56년 만에 개최하는 2번째 월드컵이다. [[냉전]]의 종식과 동구권의 해체 기운 속에 치뤄진 월드컵에서, 서독이 매우 의미있는 우승을 차지한 대회이다. 이 대회를 끝으로 서독과 [[동독]]은 그 해 10월 3일 [[독일|통일독일]]로 재탄생했고, 서독의 우승은 [[독일 재통일|조국 통일]]을 몇 달 앞에 둔 하나의 축포였다.
[[소련]], [[체코슬로바키아]]가 출전한 마지막 경기였고,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유고슬라비아]]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유고 내전]]으로 [[1994 FIFA 월드컵 미국|다음 대회]]의 출전 기회 조차 박탈당했다. [[루마니아]]는 전년도 크리스마스날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총살당한 다음 해였고..
축구경기적인 차원에서라면 당시 소위 '''압박축구'''라 불린 수비위주의 축구가 극에 달한 대회였다. 당시에만 해도 수비수들은 '도살자', '살인마' 같은 별명을 갖게 되는 것을 명예롭다고 생각하던 시기였으며, 어지간한 백태클 푹한번 담궈줘도 옐로카드는 커녕 구두 주의만 받고 끝나던 시절이었다. 주요리그에서도 열몇골 넣으면 득점왕 한번 넘볼수 있기도 했다. 그래서 최악의 득점난을 가져온 대회가 되었다.
당시 세계축구계는 [[사키이즘|압박축구]]로 인한 저조한 득점 현상을 축구계의 위기로 보았고, 이에 [[FIFA]]는 이 대회 이후 파울 규정 강화, 골키퍼에 백패스 등 시간지연행위 규제[* 이때까지만해도 수비수가 백패스 해준 공을 골키퍼가 손으로 잡을 수 있었다.], [[오프사이드]] 규제 완화, 승점제 변화 등 다양한 제도를 강구하게 되었다. 또 공격축구를 유도하기 위해 공인구 제작사인 아디다스사에 높은 반발력을 지닌 공인구를 개발하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축구의 변방으로 여겨지던 아프리카 대륙의 카메룬이 돌풍을 일으키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이 대회에서 카메룬의 활약으로 아프리카 출전국 수가 증가하고 아프리카 선수들의 유럽 리그 진출이 본격화되는 등 큰 변화를 이끌었다.
1990년 월드컵의 특징 중 하나는 빅매치가 너무 빨리 성사되어 강팀들이 조기에 나가떨어졌다는 것이다. 16강에서 아르헨티나 VS 브라질, 서독 VS 네덜란드 빅매치가 성사된 것.[* 게다가 두 경기는 같은 날에 열렸다.] 아르헨티나와 서독은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전대회]] 우승, 준우승국이며, 네덜란드는 [[UEFA 유로 1988]] 우승국이었다. 브라질 또한 1989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국이자 상당히 강력한 스쿼드를 가진 팀으로 3개 대회 연속 조별리그 3전 전승을 기록했고, 결국 다음 대회인 [[1994 FIFA 월드컵 미국|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우승을 이룬 우승 후보였다. 결국 16강에서 패한 브라질과 네덜란드는 조기에 짐을 싸야 했다.
== 유치과정 ==
유치 의사를 나타낸 것은 총 5개국이었다. 이 중 [[이란]]은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1978년 대회]]에서 자국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에 들떠 유치전에 나섰으나 해당 대회에서 탈락하고 다음 대회 본선 진출에도 실패한데다, 이슬람 혁명 크리까지 겹쳐 자진 포기했다.
나머지 국가들은 [[잉글랜드]], [[그리스]], [[소련]]이었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24년만에 도로 월드컵을 개최하려 한다는 부정적인 여론에 밀렸고, 그리스는 당시 월드컵 본선진출 경력이 없었던 것이 지적되었다. 결국 최종적으로 이탈리아와 소련이 결선투표를 진행했다.
그런데 개최지 투표가 진행되던 1984년은 [[미국]]과 소련이 서로 잡아먹을듯이 노려보며 전 인류가 '''[[핵전쟁]]과 인류멸망'''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런데 서방세계 국가가 중심이 되는 기구인 [[FIFA]]에서 소련 편을 들어줄 리 없었다. 결국 총 16표 중 [[이탈리아]]가 11표를 가져가며 월드컵 개최를 확정. 이탈리아는 그래도 [[공산당]]도 있고 공산권 국가랑도 제법 친해서...
만약 이때 소련에서 개최되었다면, '''다 망해가던 나라'''에서 참으로 암울한 대회를 했어야 했으니 결과적으론 다행이었다. 대신,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가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2018년 대회]]를 유치했으니까 [[러시아]] 입장에서도 1990년 월드컵 개최권을 가져가지 못했던 게 그야말로 [[새옹지마]]가 아닐까….
== 개최 장소 ==
* [[로마]] - [[스타디오 올림피코]][* [[SS 라치오]]와 [[AS 로마]]의 홈구장. [[1960 로마 올림픽]] 주경기장이기도 했다.] (73,603명 수용) : 결승전
* [[밀라노]] -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산 시로]][*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와 [[AC 밀란]]의 홈구장] (74,559명 수용) : 개막전
* [[나폴리]] - [[스타디오 산 파올로]][* [[SSC 나폴리]]의 홈구장] (59,978명 수용)
* [[토리노]] - 스타디오 델리 알피[* 과거 [[유벤투스 FC]]와 [[토리노 FC]]의 홈경기장. 철거 후 [[알리안츠 스타디움]]으로 재건축되었다.] (62,628명 수용)
* [[바리(이탈리아)|바리]] - [[스타디오 산 니콜라]][* [[FC 바리 1908]]의 홈구장] (51,426명 수용)
* [[베로나]] - [[스타디오 마르칸토니오 벤테고디]][* [[AC 키에보베로나]]와 [[엘라스 베로나 FC]]의 홈구장] (35,950명 수용)
* [[피렌체]] - [[스타디오 아르테미오 프란키]][* [[ACF 피오렌티나]]의 홈구장] (38,971명 수용)
* [[칼리아리]] - 스타디오 산텔리아[* [[칼리아리 칼초]]의 홈구장] (35,238명 수용)
* [[볼로냐]] - [[스타디오 레나토 달라라]][* [[볼로냐 FC]]의 홈구장] (34,520명 수용)
* [[우디네]] - [[스타디오 프리울리]][* [[우디네세 칼초]]의 홈구장] (35,713명 수용)
* [[팔레르모]] - [[스타디오 렌초 바르베라|스타디오 라 파보리타]][* [[US 팔레르모]]의 홈구장] (33,288명 수용)
* [[제노아]] - [[스타디오 루이지 페라리스]][* [[UC 삼프도리아]]와 [[제노아 CFC]]의 홈구장] (31,823명 수용)
1990년 당시 개보수를 통해 수용 규모도 확장하면서 월드컵을 잘 치뤘는데, 문제는 20년 넘게 이 때 지은 것을 별다른 보수 없이 그냥 우려먹었다는 것. [[세리에 A]]의 경기장 노후화 문제가 종종 나오는 것도 이 때 고친 경기장을 그대로 쓰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기장 노후화 논란은 월드컵 이후에도 많은 후유증을 남겼다. 위에 언급된 델리 알피(유벤투스 홈구장)의 경우 애초부터 설계상의 문제로 스탠드와 경기장 사이의 거리가 멀어서 말이 많은 상황에서 노후화까지 나타나 철거 후 지금의 새 구장을 만든 계기를 나타내었고 결승전을 치룬 스타디오 올림피코도 역시 현재 같은 연고지 구단인 [[AS 로마]]와 [[SS 라치오]]가 사용중에 있지만 이 구장 마저도 노후화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일어서 몇년 안에는 다른 새 구장으로 갈 것으로 보고있다. 이 외에도 개막전 경기를 펼친 산 시로와 산 파울로 등의 경기장들도 역시 노후화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빗발쳐서 노후화 논란 떡밥은 계속해서 이어질 전망이지만 여전히 대다수 구단들이 겪고 있는 재정적인 문제와 개판 행정으로 악명높은 이탈리아 지방 당국의 행정력을 본다면 해결기미는 일부 구단에서나 보여질 듯 싶다. 그나마 새 구장에서 좋은 모습 보여주고 있는 [[유벤투스 FC]]와 16-17 시즌 부터 새 구장 [[스타디오 델라 로마]]를 사용하는 [[AS 로마]]의 모습은 가장 큰 위안거리라 하겠다.
== 진출국 ==
● 표시는 개최국 자동진출, ★은 전 대회 우승국 자동진출이다. () 표시는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거친 팀이다.
* 남미(3.5장) :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콜롬비아]])
* 북중미(2장) : [[미국]], [[코스타리카]]
* 아시아(2장) : [[대한민국]], [[아랍 에미리트]]
* 아프리카(2장) : [[이집트]], [[카메룬]]
* 유럽(14장) : [[이탈리아]]●, [[루마니아]], [[스웨덴]], [[잉글랜드]], [[소련]],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서독]], [[스코틀랜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유고슬라비아]], [[스페인]], [[아일랜드]], [[벨기에]], [[체코슬로바키아]]
* 오세아니아(0.5장) : 진출 실패
1986년 대회와 이 대회에서 [[오세아니아 축구 연맹|OFC]] 소속이었던 [[이스라엘]]이 OFC에 주어진 0.5장의 티켓으로 남미 3위 콜롬비아과 플레이오프를 치렀는데, 1, 2차전 합계 0:1로 패하여 본선진출에 실패했다.
24개국 중 [[코스타리카]], [[아랍 에미리트]], [[아일랜드]] 3개국이 처녀 출전국이다. 이중 [[코스타리카]]는 [[멕시코]]가 출전정지 중징계를 받은 덕에 어부지리로 올라왔다.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멕시코 선수 중에 실제보다 나이가 많은 부정선수가 있는 것이 발각되어 FIFA가 멕시코의 1990년 월드컵 출전을 막은 것.
한편, 남미 예선에서 [[칠레]]가 실격당해 다음 대회까지 참여가 금지당했다. [[칠레]]는 [[브라질]]과의 원정 경기에서 [[골키퍼]]가 브라질 홈관중이 던진 폭죽이 근처에서 터지자, '''얼굴을 크게 다친 척''' 하고 미리 준비한 피를 얼굴에 묻혀 나뒹굴었고 [[칠레]]는 즉시 경기를 중단하여 선수단 철수. 그러나 이 사실이 뒤늦게 발각되어 칠레는 [[1994 FIFA 월드컵 미국|1994년 미국 월드컵]]까지 월드컵 참가 불가라는 중징계를 받은 것이다. 물론 폭죽을 던진 관중도 칠레에 매수되었다고 한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다루었다.[[https://youtu.be/K6qYVMczULc|영상]][[http://1boon.kakao.com/mbcsurprise/5934ac876a8e510001ad5c69|웹툰]] 이건 [[칠레]]의 [[자폭]]이었다. 제3국에서 재경기를 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는 명분으로 벌인 계획이었지만 오히려 이 계획 때문에 브라질이 손쉽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고(이 계획이 들통나면서 브라질은 공짜로 1점을 더 얻었다.) 칠레 측에게 매수당해 골키퍼에게 조명탄을 던진 그 [[브라질]] 관중은 오히려 이 덕에 모국에서 '행운의 소녀'라는 찬사를 받았고 잡지 화보랑 광고까지 찍었으며 브라질 여행사의 홍보 사절로 뽑혀 이듬해 열린 [[이탈리아]] 월드컵을 직접 관전하기도 했다. 게다가 제3국에서 재경기를 한다고 해서 칠레가 이길 거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 [[마스코트]]·[[월드컵 공인구|공인구]]·주제곡 ==
[[파일:ciao.png]]
[[파일:cropped_0506646__1_.jpg]]
마스코트의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안녕]]'을 뜻하는 챠오(Ciao). 로고처럼 이탈리아 삼색기의 색깔을 사용한 사각형 [[블럭]]들을 사람 모양으로 연결시켜 형상화하여 만든 인간형 마스코트. 머리는 그냥 '''[[축구공]]'''이다. 이탈리아 국기색이 첨가된 것 외에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다.
[[파일:1990-Etrusco-Unico-004.jpg]]
공인구는 [[에투르스코 유니코]](Etrusco Unico). 내부에 풀리우레탄 품이라는 층을 두어 완전방수가 가능해졌고, 공의 속도가 많이 상승했다. 디자인적으로는 지난 대회에 큰 차이는 없고, 그냥 사자문양을 집어넣은 정도.
주제곡은 우리에게는 [[1988 서울 올림픽]] 주제곡인 '[[손에 손잡고]]'의 작곡자로 유명한 [[조르조 모로더]]가 작곡한 Un'estate italiana(영어제목 'To be Number One'). 이전에 작곡한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1988 서울 올림픽]]의 주제곡과는 달리 자신의 조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이기 때문인지 가사에서부터 이탈리아를 크게 부각시켰다.
[youtube(OU9z0YGc7g0)]
== 대회 진행 ==
=== 조별 라운드 ===
최좌측이 조 1위, 최우측이 조 4위이다. 굵은 글씨로 표시된 나라가 16강 진출국.
|| A조 || '''이탈리아''' || '''체코슬로바키아''' || 오스트리아 || 미국 ||
|| B조 || '''카메룬''' || '''루마니아''' || '''아르헨티나''' || 소련 ||
|| C조 || '''브라질''' || '''코스타리카''' || 스코틀랜드 || 스웨덴 ||
|| D조 || '''서독''' || '''유고슬라비아''' || '''콜롬비아''' || 아랍에미리트 ||
|| E조 || '''스페인''' || '''벨기에''' || '''우루과이''' || 대한민국 ||
|| F조 || '''잉글랜드''' || '''아일랜드''' || '''네덜란드''' || 이집트 ||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A조]]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B조]]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C조]]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D조]]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E조]]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F조]]
A조에서는 별 다른 이변 없이 예상대로 흘러갔다. 개최국이자 최강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가 3전승, [[동유럽]]의 강호 [[체코 축구 국가대표팀|체코슬로바키아]]가 2승 1패로 각각 16강에 진출했다.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오스트리아]]는 1승 2패, 최약체 동네북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미국]]은 3전패로 탈락했다. 특히 체코슬로바키아에겐 5:1로 발렸다.
B조는 이번 대회 공인 [[죽음의 조]]였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디펜딩 챔피언]]에다 여전히 건재한 [[디에고 마라도나|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 그리고 [[1988 서울 올림픽]] 금메달 및 [[UEFA 유로 1988]] 준우승에 빛나는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소련]]이 유력한 16강 후보로 점쳐졌고, 20년 만에 본선에 올라온 [[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루마니아]]가 조 3위 자리에서 그나마 16강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당시 이탈리아, 서독과 함께 우승 후보 1순위, 소련은 4강까지 무난하게 올라갈 수 있는 국가로 꼽혔다.
그러나 첫 경기부터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가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카메룬]]에 0:1로 패하며 검은 돌풍이 시작되었다.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카메룬]]은 동유럽의 [[다크호스]] [[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루마니아]]까지 격파하여, 결사적이었던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소련]]에 4:0으로 대패하고도 2승 1패로 '''조 1위를 차지했다.''' 아르헨티나는 이후 소련에 이기고 루마니아에 비기며 간신히 1승 1무 1패, 루마니아도 소련을 잡으며 같은 1승 1무 1패가 되었으나 다득점에서 루마니아가 2위, 아르헨티나가 3위가 되었다. 무승부만 아니었으면 골득실로 승부를 겨루려던 소련은 마지막 경기에서 카메룬에게 한 골도 내주지 않으며 4골을 뽑아냈으나 1승 2패, 조 4위로 탈락하며 소련으로서의 마지막 대회를 초라하게 마무리했다. 카메룬 > 루마니아 = 아르헨티나 > 소련 > 카메룬이라는 [[뫼비우스의 띠]]가 탄생했다.
C조에선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이 [[양민학살]]을 하며 3전승으로 손쉽게 16강에 합류했다. 대회 첫 출전인 [[코스타리카 축구 국가대표팀|코스타리카]]는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스웨덴]],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스코틀랜드]]를 연파하고 브라질과도 접전 끝에 0:1로 패하는 강팀의 면모를 보이며 2승 1패 조 2위로 16강에 진출, 멕시코에 가려졌을 뿐 만만치 않은 북중미의 강호임을 인증했다. 매 경기마다 2:1로 패한 3패의 스웨덴은 탈락. 1승 2패의 스코틀랜드도 다르지 않았다.
D조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서독]]이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유고]]와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UAE]]를 각각 4:1, 5:1로 완파하는 독주를 보였고, 유고슬라비아는 아랍 에미리트를 4:1로 이기고 16강 진출의 명운이 걸린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콜롬비아]]전에서 1:0 신승, 2승 1패로 2위가 되었다. 콜롬비아는 서독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비기며 조 3위 자리를 따 냈다. 이 때 [[승점자판기]]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UAE]]는 첫 출전이었는데 조가 너무 안 좋았고, 이후로 다시는 월드컵에 출장하지 못하고 있다. 서독은 이 대회의 스타 플레이어 [[로타어 마테우스]]와 [[루디 푈러]]가 3골, [[위르겐 클린스만]]이 2골을 넣었다.
[youtube(V-NrMmOqN9I)]
E조도 D조와 매우 흡사했다.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스페인]]이 2승 1무,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벨기에]]가 2승 1패를 거두며 1, 2위를 차지했고, [[펠레의 저주|펠레가 우승후보로 지목한]]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우루과이]]는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스페인]]과 무승부를 거뒀으나,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벨기에]]에 3:1로 대패했다. 1무 1패로 탈락 위기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과의 마지막 3차전 후반 45분에 어느정도 오심 덕을 본 극적인 결승골(0:1)로 1승 1무 1패가 되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은 8강도 가능하다는 언플을 하다가 벨기에전에서 2:0, 스페인전에서 1:3, 우루과이전에서 0:1로 지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3전 3패 1득점 6실점으로 떡실신 당했다(…) 그나마 미드필더 [[황보관]]이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스페인]]전에서 114km/h 대포알 슛으로 1골을 넣어서 무득점 전패는 면했다. 참고로 스페인의 [[미첼 곤살레스]]는 무려 4골을 뽑아냈는데, 그중 3골이 한국전에서의 [[해트트릭]]이었다.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1986 멕시코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 상대팀 분석이란 것도 없었고 현지 적응도 거의 되지 않았다. 너무 압도적으로 지역예선을 통과한 것도 외려 발목을 잡은 셈이 되었는데, 최종예선 5득점 1실점[* 그나마 마지막 경기 주전들을 상당히 뺀 상태에서의 경기였다.] 3승 2무 무패, 1차예선까지 포함한다면 9승 2무 무패 30득점 1실점으로 잉글랜드와 함께 유이한 무패 진출국이었기에 외신들부터 엄청난 복병으로 지목하기 시작했고, 이에 스스로도 문제없다고 월드컵을 무시하며 쉽게 16강이니 8강에 간다느니 1승 설레발을 언론이 신나게 퍼부었다. [[이회택]] 당시 국대감독이나 [[김호곤]] 코치도 세월이 지나 그때 준비가 미흡하던 걸 이야기하며 아쉬워했다. 사실 이때만 해도 한국 국대감독은 '''무보수'''로 일하는 명예직이었다! 물론 식비나 교통비나 일부 승리수당이나 대회 상금을 얼마 정도 주는 보너스가 있었지만 정식 계약도 없고 그저 국대 감독이란 명예로만 연봉이니 그런 거 없이 일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1990 월드컵 전패 여파로 국대 감독도 정당한 계약을 맺자는 여론이 생겼고 결국 1992년부터 정식연봉 및 추가 수당을 주며 [[김호]] 감독이 처음으로 정식계약으로 국대 감독이 되었다.[* 후에 KBS에서 브라질 월드컵 개막 직전에 방영한 국가대표팀 관련 다큐멘터리인 ''''2014 브라질 월드컵 특집 다큐멘터리 : 대한민국 월드컵 도전사'''' [[https://youtu.be/OaHNfizXhIo|#]]를 보면 90년 월드컵에 참가한 당시 선수들의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하였던 전 국가대표 선수인 [[최순호]]와 [[김주성(축구)|김주성]], [[박경훈]]은 대회때 느낀 아쉬움을 여지없이 토로하였는데 그 중 [[박경훈]] 전 감독의 경우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압박축구로 나타났던 그때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게 결정적인 패인''''이라고 말하면서 세계 축구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한 우리 대표팀의 자세에 커다란 아쉬움을 드러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때 지역 예선에서 한국은 '''6전 전승에 25득점'''을 작렬시켜 아시아 무대를 거의 주름 잡았고 상대들도 거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다보니 쉽게 경기를 풀어갈 수 있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언론들의 설레발은 계속해서 펼쳐지게 되었고 그런 분위기에 적응된 대표팀도 역시 대회에 참여하며 나섰지만 결국 전패 탈락의 아픔을 느끼는 굴욕속에 대회를 마무리 짓게 된다.] 그런데 더 씁쓸한 건 이 당시 한국을 3전 전패로 몰아넣었던 스페인, 우루과이, 벨기에가 모조리 8강 진출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스페인은 유고슬라비아한테 1:2로, 우루과이는 이탈리아한테 0:2로, 벨기에는 잉글랜드한테 0:1로 각각 져서 8강 진출에 실패했다.]
F조는 상당히 특이한 결과가 나왔다.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가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이집트]]에 1:0로 이기며 1승 2무로 1위를 했다. 즉, 잉글랜드와 이집트간의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경기가 다 무재배였다.''' 1패를 떠안은 이집트는 탈락, 남은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네덜란드]]와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아일랜드]]는 똑같은 '''3무에 2득점 2실점'''으로 골득실과 다득점까지 같고, 서로 비겨서 승자승 원칙도 무의미했다. 결국 양국은 '''동전 던지기'''로 순위를 가려 아일랜드가 2위로 16강에 진출, 네덜란드가 3위가 되었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H조|28년 후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일본과 세네갈이 똑같이 1승 1무 1패에 골득실차 0, 승점도 똑같이 4였고, 서로의 대결도 비겼다. 하지만 그 대회부터 도입된 페어플레이 점수에서 일본(-4)이 세네갈(-6)보다 앞서서, 일본은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하고 세네갈은 조 3위로 탈락했다.] F조는 정말 골이 안터졌으니, 그나마 무승부들도 모두 1:1 아니면 0:0이었다. 비록 이집트는 탈락했어도 선전했다는 평을 받았으며 당시 이집트 독재자이던 무바라크도 격찬했다.[* 하지만 이집트는 1990년 대회 이후 28년간 월드컵에 나서지 못하였고 오히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휩쓸며 아프리카 대표로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에 나서기도 하였지만 최근 행보를 본다면 네이션스컵을 휩쓸었던 [[리즈 시절]]과는 거리가 멀어서 안습한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유독 월드컵 징크스가 큰 나라였으나, 28년만에 러시아 월드컵에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카메룬의 8강 진출 및 이집트의 선전을 이야기하며 아프리카 축구연맹은 피파에게 아프리카 참가국 수를 늘려달라는 요구를 하여 피파에서도 긍정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이후 각조 3위 6개국 중 상위 4개팀은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네덜란드, 우루과이가 되었다.
=== 결선 토너먼트 ===
||<table align=center><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
|| A || 16강 1경기 [br] '''이탈리아''' 2:0 우루과이 ||<|2> I ||<|2> 8강 1경기 [br] '''이탈리아''' 1:0 아일랜드 ||<|4> M ||<|4> 4강 1경기 [br] 이탈리아 1:1(3:4) '''아르헨티나''' ||<|8> P ||<|8> 결승 [br] '''서독''' 1:0 아르헨티나 ||
|| B || 16강 2경기 [br] 루마니아 0:0(4:5) '''아일랜드''' ||
|| C || 16강 3경기 [br] 스페인 1:2 '''유고슬라비아''' ||<|2> J ||<|2> 8강 2경기 [br] 유고슬라비아 0:0(2:3) '''아르헨티나''' ||
|| D || 16강 4경기 [br] 브라질 0:1 '''아르헨티나''' ||
||<-6> {{{#white - }}} ||
|| E || 16강 5경기 [br] '''서독''' 2:1 네덜란드 ||<|2> K ||<|2> 8강 3경기 [br] '''서독''' 1:0 체코슬로바키아 ||<|4> N ||<|4> 4강 2경기 [br] '''서독''' 1:1(4:3) 잉글랜드 ||
|| F || 16강 6경기 [br] '''체코슬로바키아''' 4:1 코스타리카 ||
|| G || 16강 7경기 [br] '''잉글랜드''' 1:0 벨기에 ||<|2> L ||<|2> 8강 4경기 [br] '''잉글랜드''' 3:2 카메룬 ||
|| H || 16강 8경기 [br] '''카메룬''' 2:1 콜롬비아 || O || 3/4위전 [br] '''이탈리아''' 2:1 잉글랜드 ||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16강]]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8강]]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4강, 결승]]
[youtube(eCjsBoJSs-E)]
16강에서도 검은 돌풍이 계속되었다. 카메룬이 남미의 강호 콜롬비아에 연장접전 끝에 2:1 승리를 거두고 8강에 진출한 것. 이탈리아는 우루과이에 2:0 승리를 했고, 아일랜드는 루마니아와 0:0으로 [[승부차기]]에서 5:4 승리를 거두었다. 유고슬라비아는 연장 끝에 스페인이라는 대어를 잡았고(2:1), 서독과 잉글랜드는 각각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승리했으며, 체코슬로바키아는 코스타리카에 4:1 압승을 거두었다.[* [[토마스 스쿠라비]]의 [[해트트릭]]] 아르헨티나는 영원한 라이벌 브라질에 1:0 승리를 거두며 8강 대진을 완성시켰다. 웃기는 건 E조에서 한국을 3전 전패로 몰아넣고 사이좋게 16강에 올라간 스페인, 벨기에, 우루과이는 각각 유고슬라비아, 잉글랜드, 이탈리아에 패해 모조리 탈락했다는 사실(...)
8강 첫 경기에서 이탈리아가 아일랜드에 이기고, 아르헨티나는 유고슬라비아에 승부차기로 승리했다.[* 유고슬로비아 쪽에서는 지난 경기에서 2골을 넣었던 [[드라간 스토이코비치]]가 실축했고 아르헨티나에서도 [[디에고 마라도나]]가 실축했다.] 서독은 [[로타어 마테우스]]의 [[페널티 킥]]으로[* 이 때 페널티킥 판정에 대해 심판에게 격렬히 항의하던 체코슬로바키아 선수가 축구화를 허공에 던져버려서 그대로 퇴장을 당했다(…)] 체코슬로바키아를 꺾었다. 가장 치열했던 8강전인 잉글랜드 대 카메룬의 경기에선 잉글랜드가 선취골을 넣고도 카메룬에 61분 페널티킥에 이어 65분 역전을 허용하여 패색이 짙었으나, 후반 38분 천금같은 리네커의 동점골에 이어 연장 전반 15분 또 리네커의 재역전골이 작렬하며 간신히 이겼다. 노장 [[게리 리네커]]의 마지막 활약이 돋보인 경기. [[펠레 스코어]]가 난 이 경기에서 카메룬의 동점골, 잉글랜드의 동점골 및 역전골은 모두 PK골이었다.
[[나폴리]]에서 벌어진 4강 제1경기. 자기를 응원하라는 ~~[[교주(종교)|교주]]~~ [[디에고 마라도나]]의 도발에 '''"마라도나!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우리의 조국입니다''''로 응수한 나폴리 팬들이 주목을 받았다. 이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초반 우세한 경기를 이끌어나가다 1:1 동점골을 허용하고,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 2명이 연달아 실축해 4:3으로 탈락했다. 이탈리아 [[승부차기]] [[징크스]]의 시작이 된 대회. 제2경기에서는 서독과 잉글랜드가 1:1로 비긴 후 역시 [[승부차기]]로 돌입, 잉글랜드의 마지막 키커 2명이 실축하여 서독이 승리했다. 이 경기에서 기록한 동점골은 리네커의 월드컵 마지막 골이다.
4강의 두 경기 모두 승부차기로 결과가 결정된 셈인데, 승리한 서독과 아르헨티나가 결승에서 맞붙었고 패배한 이탈리아와 잉글랜드는 3/4위전에서 맞붙었다. 3·4위전에서 이탈리아는 잉글랜드에 후반 41분 페널티 킥으로 승리하며 개최국의 체면을 살렸고, 다음날 열린 결승전에서 서독은 후반 43분 [[안드레아스 브레메]]의 PK골을 결승골로 가져가며 자국 역사상 3번째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다. 개인 수상 분야는 [[살바토레 스킬라치]]가 6골로 [[FIFA 월드컵/수상#s-2.1|득점왕]]과 MVP를 모두 차지했다.
== 우승 ==
[[파일:1990 서독.jpg]]
||<tablealign=center><rowbgcolor=#ffd700> '''{{{+2 1990 FIFA 월드컵 우승}}}''' ||
|| [[파일:독일 국기.svg|width=200]] [br]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000 '''서독'''}}}]]''' ||
|| 세 번째 우승[br]★★★ ||
== 화제의 팀들 ==
'''대한민국 - 아시아 축구의 한계'''
1990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이란과 당시 아시아 강호였던 쿠웨이트가 조기 탈락하는 이변이 발생한다. 쿠웨이트와 이란은 각각 아랍에미리트와 중국(!)에게 골득실에 밀리며 탈락하게 되고 일본마저 북한에 0-2로 패하면서 조기 탈락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네팔, 인도와 조편성이 되어 그야말로 허니 오브 꿀조에 편성되었다. 당연히 1차예선에서 대한민국은 전승을 찍어버렸고 최종예선에 진출한다.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대한민국, 아랍에미리트, 중국, 사우디, 카타르, 북한이 진출했는데, 대한민국은 3승 2무의 성적으로 조1위로 본선에 오르게 된다.
어쨌건 통산 3회 본선진출을 이룬 대한민국은 비록 전설 [[차범근]]이 은퇴를 했지만 [[최순호]], [[김주성(축구)|김주성]], [[이영진(1963)|이영진]], [[이태호(축구)|이태호]] 등 수준급 선수들이 발굴되었으며 실제 카타르에서 열린 [[1988 AFC 아시안컵 카타르]]에서 준우승을 기록하며 기세가 좋은 상황이였다. 더욱이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그 중동의 강호 이란을 3-0으로 두들겨 패버렸고, 일본도 2-0으로 압살시켰다. 비록 [[승부차기]] 끝에 사우디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이 후 열린 90년 월드컵 예선에서 사우디에 승리를 거두며 복수까지 했고 결과적으로나 내용적으로도 나름 준수했는데 단 1실점으로 틀어막았고 그 1실점 역시 같이 본선에 오른 아랍에미리트에 내 준 골에 불과했다.
하지만 본선에서는 그야말로 무기력한 경기 끝에, 3전 전패를 기록하게 된다. 1차 벨기에전 및 2차 스페인전은 두말할 것도 없이 거의 두들겨 맞았으며[* 그나마 스페인 전에서는 한골을 넣었다.] 마지막 우루과이전은 어느정도 선전했으나, 당시 심판을 본 [[이탈리아]] 국적의 [[툴리오 라네세]]의 노골적인 편파 판정 때문에 당시 대표팀 수비수인 前 여자대표팀 감독인 [[윤덕여]] 선수가 퇴장을 당하게 되고 결국 후반 인저리 타임에 우루과이의 [[다니엘 폰세카]]에게 골을 허용해 전패를 당하게 된다.[* 사실 이 골은 [[오프사이드]]였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이탈리아가 16강 상대로 만만한 우루과이랑 만나려고 억지로 우루과이의 승리를 안겨주었다는 설이 있다. 하필 이 경기 심판이 [[이탈리아인]]이었던지라 더더욱 그런 음모론이 잘 먹혔다. 만일 이 때 우루과이가 한국을 이기지 못했다면(즉, 그 오프사이드를 제대로 판정해서 0:0으로 비겼더라면) 오스트리아가 16강에 가게 되고 이탈리아의 대진 상대는 콜롬비아가 되었을 것인데 이 당시 콜롬비아의 전력은 우루과이보다 훨씬 더 막강하다는 평을 받았었다. 실제로 이 때 콜롬비아는 한국을 상대로도 비실거리다 심판 편파판정 덕에 겨우 1 : 0으로 이긴 우루과이와 달리 이 대회 우승팀인 서독과 무승부를 기록할 정도로 선전하기도 했다.] 믿었던 김주성이 오히려 부진했던데다가 아무리 유럽의 텃세가 심한 감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확실히 세계축구를 따라잡기에는 너무나도 머나먼 실력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대회였다. 특히 1, 2차전은 결과와 내용면에서 모두 완패를 당할 만했다. 그나마 대회 꼴찌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했을 정도였다.
'''카메룬 - 검은 돌풍의 원조'''
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카메룬의 선전을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조 편성 부터가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 동유럽의 절대 강자 소련, 만만찮은 동유럽의 다크호스 루마니아였으니 탈락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로저 밀러]]라는 위대한 스트라이커를 앞세운 카메룬은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니었다. 당시 감독이 [[발레리 니폼니시]]였다. 첫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를 잡더니''', 뒤이어 루마니아에 2:1 승리를 거두는 대 이변을 일으키자 축구 관계자들은 카메룬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비록 수비력 불안과 결사적이었던 소련의 공세로 마지막 경기에서 소련에 0:4 참패를 당했지만 순위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했고, 카메룬은 죽음의 조에서 당당히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그로부터 8년 뒤의 월드컵]]에서 같은 아프리카 국가인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나이지리아]]도 1990년때의 카메룬과 비슷하게 스페인과 불가리아를 잇달아 꺾은 뒤 마지막에 파라과이한테 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조 1위로 당당히 16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16강 콜롬비아전. 전후반 90분 내내 득점없이 연장전을 맞이한 카메룬은 맹렬한 공세를 펼치며 조제 밀라가 연장 후반 1분과 4분에 연속골을 터트리는 괴력을 선사했다. 콜롬비아가 연장 후반 15분에 1골을 간신히 만회했으나 이미 시간은 거의 다 흐른 뒤. 이로서 카메룬은 24개국 체제가 확고해진 이후에 처음으로 非유럽·중남미팀으로서 8강에 합류하는 신화를 썼다. 8강 상대는 축구종가 잉글랜드. 비록 선제골은 내줬으나 카메룬의 공격력은 막강했고, 후반 16분 PK골과 20분의 역전골로 유럽의 강호이자 축구종가인 잉글랜드마저 격침시키기 일보 직전까지 내달았다. 이제 8강이 아니라 4강이 문제였다. 그러나 카메룬의 수비 불안은 결국 발목을 잡아, 리네커에게 후반 38분 페널티 킥을 내주며 연장까지 흘러갔다. 결국 연장 전반 15분 역시 [[게리 리네커]]에게 [[페널티 킥]]으로 통한의 역전골을 허용하며 카메룬은 8강에서 신화를 멈췄다.
비록 카메룬은 8강에서 탈락했으나, FIFA와 세계 축구계는 [[아프리카]] 축구의 잠재성을 목격했다. 이후 FIFA는 [[1994 FIFA 월드컵 미국|1994 미국 월드컵]]에서 아프리카 티겟 수를 늘리는 것으로 화답했으며, 아프리카 국가들 역시 이에 화답하여, [[1994 FIFA 월드컵 미국|94년 대회]]와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98년 대회]] [[나이지리아]]의 2연속 16강,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02년 대회]] [[세네갈]]의 8강, [[2006 FIFA 월드컵 독일|06년 대회]]와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10년 대회]] [[가나 축구 국가대표팀|가나]]의 16강, 8강,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14년 대회]]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나이지리아]], [[알제리 축구 국가대표팀|알제리]] 2개 국가의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아프리카 검은 돌풍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근데 정작 카메룬은 그 이후로 단 한번도 조별리그를 통과해 본 적이 없다.'''[* 그래도 대회마다 기복이 심한 아시아 지역과 달리 아프리카는 매 대회마다 꾸준히 조별리그를 통과하는 팀이 나온다. 1998년에는 나이지리아가 스페인을 제치고 16강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으며, 2002년에는 세네갈의 8강 돌풍, 2006년과 2010년에는 가나의 분투가 있었다. 2014년에는 나이지리아와 알제리가 16장 진출. 하지만 2018년에는 단 하나의 아프리카 국가도 16강에 진출하지 못했다.]
'''아르헨티나 - 언더독이 된 디펜딩 챔피언'''
전 대회 우승팀인 아르헨티나는 이 대회에서는 개막전부터 카메룬에 지는 등 전반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마라도나가 건재했지만 전반적인 팀 전력은 약해졌는데 그 댓가로 조별예선에서 3위로 처지면서 16강부터 브라질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브라질과의 16강전은 경기 내내 브라질에게 두들겨 맞다가, [[세르히오 고이코체아]]의 신들린 선방에 단 한번의 역습찬스를 성공시켜 1-0으로 브라질을 격침하는데 성공한다. 브라질과의 16강전에서는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르헨티나-잉글랜드전에서 나온 마라도나의 하프라인 드리블 결승골에 비견할만한 엄청난 골이 나왔는데, 마라도나는 하프라인에서부터 드리블만으로 브라질 선수 3~4명을 따돌리고 다른 수비수들을 자신에게 집중시킨 후 [[클라우디오 카니자]]에게 골키퍼와 1:1을 만들어 주는 킬패스를 찔러넣어 결승골을 만들어 냈다. 참고로 마라도나는 왼발잡이로 오른발을 쓰는 일이 전무 할 정도로 없었는데 그 패스는 오른발로 했다.
8강에서도 유고슬라비아를 상대로 고전하다가 [[승부차기]] 끝에 간신히 이기고 4강에 올라왔고 이후에도 이탈리아와의 4강전, 서독과의 결승전까지 모두 경기 내용에서 밀리는 경기를 했다.
그러나 [[디에고 마라도나]]의 판단력과 [[클라우디오 카니자]]의 엄청난 스피드로 한두 번 되는 역습 상황을 살려 무승부를 이끌고, [[승부차기]]에서 [[세르히오 고이코체아]] [[골키퍼]]의 선방쇼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공식을 이어갔다. 실제 16강에서 브라질과의 경기는 브라질에게 무려 13번의 슛팅을 내 주고도 단 두 번의 슛팅에 마라도나의 킬 패스를 받은 카니지아의 딱 한방으로 브라질을 간신히 이겼고 이 후에도 8강 유고슬라비아전(0-0 무승부)과 이탈리아전(1-1무승부)에 밀리는 경기를 하면서도 가까스로 실점을 막거나 동점을 이끌어 내 [[승부차기]]에서 승리하였다. 이탈리아는 카니자에게 골을 허용하기 전까지 이 대회 예선부터 무실점 기록을 이어가고 있었으나, 첫 실점 후 멘붕 탓에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결승전에서도 서독에게 일방적으로 밀렸음에도 실점을 허용하지 않고 서독의 공격을 잘 막아냈으나 2명이 논란성있는 퇴장을 당했고[* 실제로 30분경 아르헨티나 선수 하나가 논란성이 있는 퇴장을 당했다. 참고로 아르헨티나에게는 월드컵에서 징크스가 하나 있는데 '''심판이 이탈리아 사람인 경기는 무조건 패배했다.''' 가장 최근이었던 2014년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이 징크스는 여지없이 들어맞았고 결국 0-1로 졌다.] 결국 후반 43분 서독의 [[안드레아스 브레메]]가 쏜 통한의 [[페널티 킥]]을 허용해 0-1로 패배하고 만다. 마라도나는 이 페널티킥 판정이 부당했으며, 월드컵을 도둑 맞았다는 주장을 하며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며, 시상식 내내 억울함의 눈물을 흘리는 마라도나의 모습이 전 세계에 중계되었다.
아르헨티나는 전 대회에 비해 전력이 많이 약화되면서 아슬아슬한 경기력을 보였고 토너먼트 내내 언더독으로 평가받았다. 마라도나는 상대방의 집중 견제에 시달리며 기록적인 횟수의 파울을 당했고 본인의 폼 또한 전 대회에 비하면 눈에 띄게 하락한 상태였지만 순간순간 번뜩이는 판단력으로 아르헨티나의 몇 안되는 찬스를 만들어냈다. 이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는 총 4득점 4실점을 했으며, 마라도나는 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마라도나와 더불어 골키퍼 [[세르히오 고이코체아]]도 언더독 아르헨티나의 결승행에 큰 공을 세운 선수였다. 사실 고이코에체아는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1986년 멕시코 월드컵]] 우승 주역이었던 [[네리 품피도]] 골키퍼의 부상으로 인해 자리를 메우게 된 백업 골키퍼였다. 하지만 약해진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공세를 펼치던 강팀들을 상대로 신들린 선방을 보여줬고 2연속 [[승부차기]] 승리를 견인하며 오히려 토너먼트에서는 마라도나에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줬다.
'''이탈리아 - 무관의 제왕'''
이탈리아는 지난 대회와 달리 일신한 스쿼드로 개최국 버프까지 받으며 전력상 충분히 우승후보라 불릴 만했다. 하지만 그 좋은 실력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와의 4강전에서 마라도나의 심리전에 말려들며 쩔쩔매다가 결국 승부차기에서 연달아 실축을 범하며 패배한다. 이 때의 [[승부차기]] 패배를 기점으로 이탈리아는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년 독일 월드컵]] 우승 전까지 승부차기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서독 - 게르만 삼총사, 조국을 최강의 팀으로 등극시키다!'''
대회 뚜껑을 열어보니 이 대회 명실상부한 최강 팀은 서독과 이탈리아[* 그러나 이탈리아는 4강전에서 우세한 경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의 역습에 당해 탈락.]였고, 서독은 [[로타어 마테우스]]를 중원 사령관으로 하여 당대 최고의 레프트윙 [[안드레아스 브레메]], [[1988 서울 올림픽]] 동메달 출신의 신예 [[위르겐 클린스만]]의 '''[[게르만 삼총사]]''', 가공할 공격력의 [[루디 푈러]] 등을 갖춘 막강 멤버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서독이 가장 고전한 경기는 4강 잉글랜드 전. 당시 잉글랜드는 조예선 성적도 시원잖았고 8강전은 심판의 과도한 [[페널티 킥]] 남발로 카메룬을 운으로 이겼다는 평도 있어 서독의 우세가 예상되었으나 막상 뚜껑을 여니 서독을 엄청나게 압박하며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선보여 명승부를 만들어 냈다[* 실제로 [[데이비드 플랫]]의 헤딩슛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크리스 워들]]의 슈팅이 서독 골키퍼의 손에 맞고 골대를 튕기고 나갔으며 또한 서독도 [[위르겐 클린스만]]과 [[루디 푈러]]가 비슷하게 골찬스를 놓칠 만큼 치열한 경기를 펼쳤다.]. 연장전에서도 서로 공격을 늦추지 않고 두 팀이 한번씩 골대를 맞춘 끝에 결국 승부를 내지 못하자 전문가들은 [[피터 쉴튼]]이란 노련한 골키퍼를 보유한 잉글랜드의 승리를 점쳤으나, 쉴튼은 1점도 방어를 하지 못했고 반면 잉글랜드 키커인 [[스튜어트 피어스|피어스]]가 가운데로 강하게 찬 것이 서독 [[보도 일그너]] 골키퍼의 발에 맞아 튕겨 나오면서 서독이 승리, 결승에 진출한다. 잉글랜드의 [[승부차기]] 연패 잔혹사는 바로 이 대회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처음부터 우승을 목표로 결승전을 위해 컨디션을 조절해오던 서독은 결승전을 대비해 이 경기에서 방심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측면도 분명히 있었다. 당시 잉글랜드는 예선부터 그리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 서독은 벤치 멤버인 올라프 톤을 선발 출전시키는 등 체력 안배를 위해 여유를 부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당시 거친 몸싸움으로 유명한 잉글랜드는 이 경기에서도 거친 반칙을 자주 사용했고, 때문에 결승을 염두에 두고 있던 서독 선수들이 상당히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태클이 들어올 만한 타이밍에서 위축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역시나 거친 태클이 들어와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또한 루디 푈러가 제 컨디션이 아니었고 결국 전반전에 통증을 호소하며 교체되었으며 교체로 들어온 신예 리들레는 대표팀 경험이 거의 없었다.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도 1-0이라는 스코어와 달리 상당히 일방적이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4년 전보다는 확실히 약해져있었다. 16강전에서 카레카의 브라질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다가 마라도나의 스루패스 한방으로 극적으로 8강에 오르는 등 [[디에고 마라도나|마라도나]]와 [[클라우디오 카니자|카니자]]에 의존해 꾸역꾸역 결승에 올라온 처지였다.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는 10백을 시전했고, 거친 경기 끝에 선수가 두 명이나 퇴장당하는 악재 속에서도 후반 43분까지 0-0으로 버텼으나 결국 경기 종료를 코앞에 두고 페널티 킥을 내줬다. 당시 서독의 전담 키커는 [[로타어 마테우스]]였으며, 실제 마테우스가 한골을 더하면 스킬라치에 이어 실버슈를 수상 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결승전에서는 예상을 뒤엎고 브레메가 페널티 킥을 맡았다. 그 이유가 마테우스가 전반전에 축구화가 찢어져 후반전을 앞두고 새 축구화를 신게되어서, 발 감각이 온전치 못함을 염려해 브레메에게 킥을 양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판단은 적중하여, 브레메는 [[페널티 킥]] 방어의 신 [[세르히오 고이코체아]]도 막지 못할 골대 좌측 구석 으로 정확히 공을 차넣어[* 실제 고이코체아는 정확히 방향을 읽고 빠르게 몸을 뻗었으나 킥이 워낙 구석으로 향해 아슬아슬하게 손이 닿지 못해서 결국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서독이 우승하게 된다. 사실 서독은 이전 대회인 86 월드컵 결승전에서 초보 감독 베켄바워가 마라도나와 아르헨티나의 전력을 너무 과대평가한 나머지 수비 전술로 임했고 그 결과 2-0까지 밀렸다. 결국 이판사판으로 루디 푈러를 투입하며 맞불을 놓았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며 2-2까지 따라잡았으나 결국 패하고 말았던 경험이 있었다. 베켄바워는 수비 전술로 임했던 자신의 선택을 무척 후회했고, 90년 결승전에서는 토너먼트 때 하던대로 임했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3개월 후 서독은 통일을 이룬다. 정식으로 통일 된 것이 3개월 뒤이고, 베를린 장벽은 월드컵 기간중에 붕괴되었다. 실제 마테우스도 결승을 앞두고 동독에 계신 할아버지를 위해 우승컵을 바치고 싶다고 인터뷰했다. 정말 서독의 입장에서 1990년은 '''서독 역사상 최고로 축복받은 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다.
당시 압박축구의 대세로 골 흉년이던 양상과는 달리 서독은 조별예선부터 4-1, 5-1 승부를 하며 대회 최다 골을 넣는 등 미드필더 5인방의 톱니바퀴 조직력을 앞세운 가장 화끈한 축구를 한 팀으로 잘 알려져 있다.
'''브라질 - 끝나지 않는 월드컵의 저주'''
[[1980년대]] 브라질은 [[지쿠]], [[소크라치스]], [[토니뉴 세레주]], [[호베르투 파우캉]] 등 새로운 황금세대들을 이끌고도 우승은 커녕 4강에도 들지 못했으며, 이 후의 황금세대들이 은퇴했지만 [[브란토 알레마오]], [[발도]], [[카레카]][* 1986년 월드컵 득점 3위], [[마우로 갈바오]], [[호마리우]] 등 새로운 신성들의 등장으로 1989년 [[코파 아메리카]]에 우승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즉 지난 대회 우승팀인 아르헨티나보다, 브라질이 경기력으로나, 실력으로나 훨씬 더 우승후보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브라질은 본선 조별리그 C조에서 3전 전승으로 16강에 올랐고 이에 비해 아르헨티나는 B조에서 1승1무1패에 승점이 같은 루마니아에 골득실에서 밀리며 조 3위로 추락, 간신히 16강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운명의 장난일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16강에서부터 조우하게 된다.
경기는 그야말로 브라질의 가패삼기로 아르헨티나를 압박하고 있었으며 바우두, [[카레카]], 물레르 등의 융단폭격으로 아르헨 골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나마 아르헨티나는 고이코체아의 신들린 선방과 골대로 인해 0-0 상황을 끌어가고 있었을 뿐이다. 후반에도 브라질의 일방적인 페이스로 경기가 흘러갔지만 후반 중반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부루차가|부루차가]]의 중거리 슛을 시작으로 아르헨티나의 경기력이 서서히 살아났고 특히 전반에 불안한 모습을 보인 아르헨티나 수비수인 로제리는 후반 중반을 이 후로 물레르와 카레카를 잘 막아내면서 점점 브라질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운명의 후반 36분 하프라인부터 치고 오는 마라도나의 번뜩이는 드리블에 5명이나 자리를 지키던 브라질 수비수들은 마라도나만 바라보며 뒷 공간을 파고 들어가는 아르헨티나 스트라이커인 카니자를 완전 방치해버렸고 마라도나는 그런 무방비 상태인 카니자에게 공을 전달했으며 카니자는 가볍게 골키퍼를 제치고 이 경기의 선제골이자 결승골을 뽑아내었다.
브라질이 수 차레 유효 슈팅에도 뚫리지 않는 아르헨티나 골문을... 아르헨티나는 단 두 차례의 기회만에 뚫어냈으니 파상공세를 퍼붓던 브라질 선수들은 심하게 동요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이제까지 아르헨티나의 공격을 잘 막아낸 리카르두 고메스는 이 한방에 이성을 잃으며 선제골 허용 이후 단 2분만에 퇴장까지 당하게 되고 결국 그렇게 경기는 1-0 아르헨티나의 승리로 끝이 났다.
'''네덜란드 - 오렌지 삼총사의 허무한 추락.'''
[[요한 크루이프]]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두 번의 결승진출로 축구 강호로 발돋움한 네덜란드는 1982년, 1986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면서 공백기가 있었으나 바로 [[UEFA 유로 1988]]에 우승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고 스쿼드 또한 만만치 않았는데 [[마르코 판바스턴]], [[루드 굴리트]], [[프랑크 레이카르트]] 등 말이 필요없는 [[밀란 제너레이션]]을 이끈 [[오렌지 삼총사]]와 [[로날드 쿠만]], [[빔 키프트]], [[반 티길렌]] 등 보좌하는 선수들의 네임드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본선에선 상당히 무기력했는데, 첫 경기 확실한 1승 카드인 이집트를 상대로 무승부를 내면서 뭔가 꼬이기 시작했다. 이어진 잉글랜드와의 2차전 이 때도 잉글랜드는 서독, 이탈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에 비해 모자랐지만 지금의 뻥튀기가 심하지 않는 그래도 어느정도 이름값하는 잉글랜드였다. 게다가 [[피터 쉴튼]], 테리 부처, [[폴 개스코인]], [[게리 리네커]] 등 우수한 선수들도 보유했으나 그래도 전력상 네덜란드가 근소하게 우세했는데도, 0-0으로 비기고 말았다.
마지막 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도 굴리트의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니얼 퀸에게 동점골을 허용해 3연속 무승부를 거두며 16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16강 상대는 숙명의 라이벌 서독, 참고로 이 경기전 서독의 감독인 [[프란츠 베켄바워]]는 기자가 '''“16강에서 네덜란드를 만난 것이 부담이 되지 않느냐?”'''란 질문에 '''“우린 조1위로 16강에 진출했고 조별예선에서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간신히 16강에 진출한 네덜란드가 부담이 될 것”'''이라고 디스하여 선수단을 동요시켰고, 결국 본 경기에서 레이카르트가 루디 푈러와 동반 퇴장을 당할 정도로 경기가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10대 10으로 진행된 경기에선 클린스만의 선취골과 브레메의 환상의 감아차기골로 서독이 2-0으로 리드하고 있었으며 네덜란드는 후반 45분 [[로날드 쿠만]]의 PK골로 만회골을 넣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그렇게 우승도 가능한 전력의 팀인 네덜란드는 브라질과 16강에서 조기 탈락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조별예선에서 부진했던 아르헨티나가 당시 기세 좋은 브라질을 16강에서 잡으며 8강에 진출한 것과 달리 네덜란드는 조별예선에서의 부진으로 결과적으로 4강이나 결승에서 만나야 할 서독을 너무 일찍 만나버렸고, 거기에 [[프란츠 베켄바워]]의 [[심리전]]에 말려버리면서 팀의 조직력도 와해되면서 서독에게 무기력하게 패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조별예선에서 선전을 했다면 서독에 비해 충분히 해 볼만한 루마니아나, 벨기에를 만났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네덜란드는 최소 4강까지 갔을 수 있을 것이다.
'''소련 - 마지막 월드컵'''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공산주의]]의 붕괴로 인해 소비에트 연방 역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바람에 휘청이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1991년도에 해체가 되었으니 사실상 마지막이나 다름 없는 월드컵이였다. 비록 과거 [[레프 야신]] 시절의 무적 포스는 아니였지만, 야신의 후계자인 [[리나트 다사예프]]의 맹활약으로 [[UEFA 유로 1988]]에 결승에 오를 만큼 저력만큼은 무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 편성부터가 [[죽음의 조]]였다.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와, 당시 동유럽의 강호 루마니아, 그리고 돌풍의 팀인 카메룬이었다.
루마니아와의 1차전에서 0-2로 완패당하고 이어진 디펜딩 챔프인 아르헨티나에게도 0-2로 패배당한다. 마지막 이변의 팀이라 불린 카메룬과의 3차전에서 전패만은 할 수 없다는 선수단의 결사항전에[* 참고로 소련이 카메룬을 이기고 '''루마니아와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 승부가 갈리면''' 1승 2패 동률이 되는 팀끼리 골득실을 비교해 볼 수는 있었다. 월드컵이라 상대전적이 아닌 골득실을 먼저 따졌기 때문이다.] 카메룬을 4-0으로 완파하면서 조 3위를 노렸지만, 하필 루마니아와 아르헨티나가 [[무재배]]를 하는 바람에 꼴찌 탈출에 실패했고, 결과적으로는 죽음의 조에서 [[꼴찌]]를 기록하면서 소련이라는 이름으로써의 마지막 월드컵을 망치고 만다.
'''아일랜드 - 지지만 않으면 된다.'''
'더티 리즈' 시절 [[리즈 유나이티드 FC]]의 레전드이자 잉글랜드 국대 출신인 [[잭 찰튼]] 감독의 지휘 하에 [[프랭크 스테이플턴]], [[크리스 휴튼]], [[로니 웰란]], [[믹 매카시]], [[존 올드리지]], [[나이얼 퀸]] 등의 우수한 선수들을 중심으로 견실하고 단순한 축구를 선보이며 조별 예선 3경기와 16강전을 통해 8강에 진출할 때 까지 4경기를 무재배했다. 요악하면 '무승 8강' 허정무식 축구의 원조라 할 수 있다.
== 기록실 ==
* 최다 득점 : 살바토레 스킬라치, 이탈리아. 6골.
* 최초 득점 : 프랑수아 오맘비크, 카메룬. 개막전 6월 8일 후반 22분.
* 최초 퇴장 : 에릭 위날다, 미국. 6월 10일 對 체코슬로바키아, 후반 7분.
* 최초 완전 무득점 경기 : 6월 13일 우루과이 對 스페인.
* 최초 승리 국가 : 카메룬 6월 8일 對 아르헨티나.
* 최초 다득점 국가 : 체코슬로바키아. 6월 10일 對 미국, 5골.
* 최초 페널티킥 : 미할 빌레크, 체코슬로바키아. 6월 10일 對 미국, 전반 39분.
* 최초 멀티골 : 토마시 스쿠라비, 체코슬로바키아. 6월 10일 對 미국. 전반 25분 및 후반 33분.
* 해트트릭
* 호세 미겔 곤살레스 마르틴 델 캄포, 스페인. 6월 17일 對 한국.
* 토마시 스쿠라비, 체코슬로바키아. 6월 23일 對 코스타리카.
* 최다 득점 경기 - 이 2경기는 최다득점차 경기 3개 중 하나이기도 하다.
* 6월 10일 체코슬로바키아 對 미국, 5 : 1.
* 6월 15일, 서독 對 아랍 에미리트, 5 : 1.
* 최다 득점차 경기 - 최다 득점 경기에 포함된 2경기 제외
* 6월 18일, 소련 對 카메룬, 4 : 0.
* 자책골 : 드물게도 자책골이 기록되지 않은 월드컵이다.
* 최초 역전승 : 6월 20일 코스타리카 對 스웨덴. 코스타리카 2 : 1 승.
총 115골이 터졌고, 경기당 2.21골로 엄청난 골가뭄에 시달렸던 대회이다. 이를 반영하여 다음 대회부터는 공인구를 공격적으로 바꾸고, 승리의 승점을 2점에서 3점으로 올려 무재배를 막았으며, 경기지연행위에 대해선 과감하게 반칙을 선언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 올스타팀 ==
[include(틀: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베스트11)]
== 한국측 중계진 ==
* MBC
* 캐스터: 최창섭, 송재익, 김충식
* 해설: 신문선, 이우현
== 결과 ==
|| 순위 || 국가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 || 승점 || 비고 ||
||<rowbgcolor=#ffd700> 1 || [[파일:독일 국기.svg|width=30]] '''서독'''[* 2006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에 우승을 내주고 3위를 했다.] || 7 || 5 || 2 || 0 || 15 || 5 || +10 || '''12''' || '''우승''' ||
||<rowbgcolor=silver> 2 ||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width=30]] 아르헨티나 || 7 || 2 || 3 || 2 || 5 || 4 || +1 || '''7''' || 준우승 ||
||<rowbgcolor=#b8860b> 3 || [[파일:이탈리아 국기.svg|width=30]] 이탈리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우승을 서독에 내줬으나 16년 후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우승을 한다.] || 7 || 6 || 1 || 0 || 10 || 2 || +8 || '''13''' || 3위 ||
||<rowbgcolor=#f0e68c> 4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width=30]] 잉글랜드 || 7 || 3 || 3 || 1 || 8 || 6 || +2 || '''9''' || 4위 ||
||<rowbgcolor=#b2ccff> 5 ||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width=30]] 유고슬라비아 || 5 || 3 || 1 || 1 || 8 || 6 || +2 || '''7''' || 8강 ||
||<rowbgcolor=#b2ccff> 6 || [[파일:체코 국기.svg|width=30]] 체코슬로바키아 || 5 || 3 || 0 || 2 || 10 || 5 || +5 || '''6''' || 8강 ||
||<rowbgcolor=#b2ccff> 7 || [[파일:카메룬 국기.svg|width=30]] 카메룬 || 5 || 3 || 0 || 2 || 7 || 9 || -2 || '''6''' || 8강 ||
||<rowbgcolor=#b2ccff> 8 || [[파일:아일랜드 국기.svg|width=30]] 아일랜드 || 5 || 0 || 4 || 1 || 2 || 3 || -1 || '''4''' || 8강 ||
||<rowbgcolor=#cef279> 9 || [[파일:브라질 국기.svg|width=30]] 브라질 || 4 || 3 || 0 || 1 || 4 || 2 || +2 || '''6''' || 16강 ||
||<rowbgcolor=#cef279> 10 || [[파일:스페인 국기.svg|width=30]] 스페인 || 4 || 2 || 1 || 1 || 6 || 4 || +2 || '''5''' || 16강 ||
||<rowbgcolor=#cef279> 11 || [[파일:벨기에 국기.svg|width=30]] 벨기에 || 4 || 2 || 0 || 2 || 6 || 4 || +2 || '''4''' || 16강 ||
||<rowbgcolor=#cef279> 12 || [[파일:루마니아 국기.svg|width=30]] 루마니아 || 4 || 1 || 2 || 1 || 4 || 3 || +1 || '''4''' || 16강 ||
||<rowbgcolor=#cef279> 13 || [[파일:코스타리카 국기.svg|width=30]] 코스타리카 || 4 || 2 || 0 || 2 || 4 || 6 || -2 || '''4''' || 16강 ||
||<rowbgcolor=#cef279> 14 || [[파일:콜롬비아 국기.svg|width=30]] 콜롬비아 || 4 || 1 || 1 || 2 || 4 || 4 || 0 || '''3''' || 16강 ||
||<rowbgcolor=#cef279> 15 || [[파일:네덜란드 국기.svg|width=30]] 네덜란드 || 4 || 0 || 3 || 1 || 3 || 4 || -1 || '''3''' || 16강 ||
||<rowbgcolor=#cef279> 16 || [[파일:우루과이 국기.svg|width=30]] 우루과이 || 4 || 1 || 1 || 2 || 2 || 5 || -3 || '''3''' || 16강 ||
||<rowbgcolor=#ffa7a7> 17 || [[파일:소련 국기.svg|width=30]] 소련 || 3 || 1 || 0 || 2 || 4 || 4 || 0 || '''2'''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8 ||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width=30]] 오스트리아 || 3 || 1 || 0 || 2 || 2 || 3 || -1 || '''2'''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8 ||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width=30]] 스코틀랜드 || 3 || 1 || 0 || 2 || 2 || 3 || -1 || '''2'''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20 || [[파일:이집트 국기.svg|width=30]] 이집트 || 3 || 0 || 2 || 1 || 1 || 2 || -1 || '''2'''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21 || [[파일:스웨덴 국기.svg|width=30]] 스웨덴 || 3 || 0 || 0 || 3 || 3 || 6 || -3 || '''0'''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22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대한민국 || 3 || 0 || 0 || 3 || 1 || 6 || -5 || '''0'''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23 || [[파일:미국 국기.svg|width=30]] 미국 || 3 || 0 || 0 || 3 || 2 || 8 || -6 || '''0'''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24 ||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width=30]] 아랍 에미리트 || 3 || 0 || 0 || 3 || 2 || 11 || -9 || '''0''' || 1라운드 ||
* 1위 : 서독
* 2위 : 아르헨티나
* 3위 : 이탈리아
* 4위 : 잉글랜드
* 골든슈 : [[살바토레 스킬라치]](이탈리아)
* 골든볼 : [[살바토레 스킬라치]](이탈리아)
* 실버볼 : [[로타어 마테우스]](서독)
* 브론즈볼 :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
* 신인상 :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유고슬라비아)
* 페어플레이상 : 잉글랜드
* 올스타팀
* GK : [[세르히오 고이코체아]](아르헨티나), [[루이스 가벨로 코네호]](코스타리카)
* DF : [[안드레아스 브레메]](서독), [[프랑코 바레시]](이탈리아), [[파올로 말디니]](이탈리아)
* MF :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 [[로타어 마테우스]](서독), [[드라간 스토이코비치]](유고슬라비아), [[폴 개스코인]](잉글랜드)
* FW : [[살바토레 스킬라치]](이탈리아), [[로저 밀러]](카메룬), [[위르겐 클린스만]](서독)
특이하게도 이 월드컵에서는 16강 탈락국 중 1무 2패를 거둔 팀들이 한 팀도 없었다. 20위 이집트의 2무 1패 밑으로 21위부터 24위까지는 죄다 3패(...)[* 그나마 조별리그 3차전인 대한민국 대 우루과이 경기에서 주심이 정상적으로 후반 막판에 나온 [[다니엘 폰세카]]의 골을 [[오프사이드]]로 처리하였더라면, 이 경기가 무승부로 끝났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이 이 월드컵에서 1무 2패를 거둔 유일한 팀이 되었을 것이다.]
== 여담 ==
* "성악가가 되지 않았다면 세리에 C 에서 뛰어도 좋으니 축구선수가 되었을것이다."라고 말했을정도로 축구를 열광적으로 좋아한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개막식 축하 행사로 또 다른 세계 3대 테너인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오 솔레미오'를 불렀다. 세계 3대 테너인 이 셋은 평상시 비교 당하기 싫어서 같이 부르는걸 주저했는데,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을 축하하기위해 파바로티가 불렀다고 한다. 이후에도 이 셋은 3Tenors라는 이름으로 1994년, 1998년, 2002년 월드컵 직전에 해당 국가에 가서 공연을 한 바 있다. 모두 지휘는 주빈메타가 담당했다. 2002년에는 우리나라에도 왔던 셈인데, 당시 파바로티의 컨디션이 너무 안좋았고, 레퍼토리 또한 94년 미국때와 완벽하게 똑같아서 욕 좀 먹었다. 이 때 세 명의 테너가 공연을 한 공연장은 '카라칼라 욕장' 즉, 로마시대에 목욕탕 자리였던 유적지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카라칼라]] 황제가 지었으며 로마 시대에 가장 큰 규모의 목욕탕이다. 단순히 목욕탕 기능 뿐만 아니라 체육관, 도서관 등의 기능도 갖춘 그 당시의 일종의 문화센터. 이 때 이후로 요즘에도 7,8월 여름 오페라 휴무기 때에는 이 유적지에서 야외 오페라 공연을 한다.
* [[피파 온라인 3]] 경기중 해설인 [[박문성]]의 말에 따르면, 개막식이 치루어진 밀라노에선 개막식의 일환으로 패션쇼도 함께 진행되었다고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no6GwAQ0Rjc|#]]
*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본격적인 월드컵 생중계 시대가 열린 대회이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60300209213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06-03&officeId=00020&pageNo=13&printNo=21137&publishType=00020|#]][* 지난 멕시코 대회만 해도 한국 출전 3경기와 개막전, 결승전만 생중계였다.] 다만 한국시간으로 새벽 4시에 벌어진 일부 경기는 녹화중계를 해줬다.
* 한국과 함께 본선에 진출한 UAE는 석유 부국답게 아부다비 왕국 국왕이 월드컵 본선에서 자국 대표팀이 단 한 골이라도 넣는다면 선수들 전원에게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사주겠더고 약속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주전 공격수 토마스 스쿠라비는 “우리는 롤스로이스는 고사하고 나라에서 자전거라도 한 대 사줬으면 좋겠다.” 라고 푸념하기도 하였다.
[각주]
[[분류: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 [include(틀:역대 하계 아시안게임)]
||<-3><table align=right><table width=420><table bordercolor=#087647><bgcolor=#087647> {{{+4 '''{{{#ffffff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 ||
||<-3><bgcolor=#087647> {{{#fff 제11회 아시안게임[br]第十一届亚洲运动会™[br]{{{+1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 }}}[br]XI Asian Games'''[[상표|{{{#fff ™}}}]] '''Beijing 1990 }}} ||
||<-3><bgcolor=#ffffff,#191919> [[파일:attachment/51524002547.jpg|width=70%]] ||
||<height=40><bgcolor=#087647> {{{#fff ''' 대회기간 ''' }}} ||<-2> [[1990년]] [[9월 22일]] ~ [[10월 7일]] ||
||<height=40><bgcolor=#087647> {{{#fff ''' 개최국 ''' }}} ||<-2> [[중국]]/[[베이징]] ||
||<height=40><bgcolor=#087647> {{{#fff ''' 참가국 ''' }}} ||<-2> 36개국 ||
||<height=40><bgcolor=#087647> {{{#fff ''' 참가인원 ''' }}} ||<-2> 6,122명 ||
||<height=40><bgcolor=#087647> {{{#fff ''' 경기종목 ''' }}} ||<-2> 27개 종목 - 308개 세부 종목 ||
||<height=40><bgcolor=#087647> {{{#fff ''' 개회선언 ''' }}} ||<-2> [[양상쿤]][br],,[[중화인민공화국 주석|중국 국가주석]],, ||
||<height=40><bgcolor=#087647> {{{#fff ''' 선수선서 ''' }}} ||<-2> 천룽찬 ||
||<height=40><bgcolor=#087647> {{{#fff ''' 성화점화 ''' }}} ||<-2> 쉬하이펑, 가오민, 장룽팡 ||
||<height=40><bgcolor=#087647> {{{#fff ''' 개·폐회식장'''}}} ||<-2> [[베이징 노동자 경기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11회 하계 [[아시안 게임]]. 이 시기 대한민국에서는 과거 중국의 지명이나 인명을 한국식 한자로 발음하는 편이 많았기 때문에 거의 [[북경 아시안게임]]이라고 일컬었다.
== 경기 ==
[[1986 서울 아시안 게임]]때까지만 해도 [[중화인민공화국]]이 앞서기는 했지만 압도하지 못했던 종합 성적이었다. 그런데 중국은 --홈 [[버프]]를 받은-- 이 대회에서부터 [[넘사벽]]의 성적으로 종합 1위를 싹쓸이하게 된다. 중국은 자그마치 금메달 183개, 은메달 107개, 동메달 51개를 받으며 2위인 한국(금 54, 은 54, 동 73)을 크게 앞질렀다.
일본은 3위 (금 38, 은 60, 동 76), [[북한]]은 4위 (금 12 , 은 31, 동 39) 였다. 이 기록은 중국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계속 깨지지 않다가 --역시 홈 버프를 받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금 199개, 은 119개, 동 98개)에서 깨지게 된다. 하지만 금메달 수 자체가 310개에서 477개로 1.5배 늘어난 것을 생각하면, 개최국이 금 메달의 60%를 싹쓸이 하는 아시안 게임은 전무후무했다.
[[대만]]은 [[중화 타이베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안 게임]]에 복귀하게 되었다. --[[지못미]] [[중국 국민당|국민당]]-- 대만은 은메달 10개, 동메달 21개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노골드라서 순위가 크게 떨어졌다 (16위). 메달 갯수로 치면 4위인 31개. --뭔가 냄새가 나는데-- [[인도]] 역시 은메달 8개, 동메달 14개에 비해 금메달은 1개에 그쳤다.
그리고 지난 대회와는 달리 보이코트가 없어 참가국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걸프전|침공]]했다는 이유로 참가 자격을 박탈당했다.[* 쿠웨이트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 본부가 있는 곳이며, 셰이크 파하드 알 아메드 알 자베르 알 사바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의장이 이라크군과의 교전 중 전사했다.][* 이후 이라크는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 복귀한다.] 당시 OCA 회원국 38개국중 유일한 불참국이었다.
== 메달 순위 ==
|| 순위 ||<-2> 국가명 || 금 || 은 || 동 || 합계 ||
|| 1 || [[파일:중국 국기.svg|width=30]] || 중국 || 183 || 107 || 51 || 341 ||
|| 2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 대한민국 || 54 || 54 || 73 || 181 ||
|| 3 || [[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 일본 || 38 || 60 || 76 || 174 ||
|| 4 || [[파일:북한 국기.svg|width=30]] || 북한 || 12 || 31 || 39 || 82 ||
|| 5 || [[파일:이란 국기.svg|width=30]] || 이란 || 4 || 6 || 8 || 18 ||
|| 6 || [[파일:파키스탄 국기.svg|width=30]] || 파키스탄 || 4 || 1 || 7 || 12 ||
|| 7 ||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width=30]] || 인도네시아 || 3 || 6 || 21 || 30 ||
|| 8 || [[파일:카타르 국기.svg|width=30]] || 카타르 || 3 || 2 || 1 || 6 ||
|| 9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 태국 || 2 || 7 || 8 || 17 ||
|| 10 ||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width=30]] || 말레이시아 || 2 || 2 || 4 || 8 ||
|| 11 || [[파일:인도 국기.svg|width=30]] || 인도 || 1 || 8 || 14 || 23 ||
|| 12 || [[파일:몽골 국기.svg|width=30]] || 몽골 || 1 || 7 || 9 || 17 ||
|| 13 || [[파일:필리핀 국기.svg|width=30]] || 필리핀 || 1 || 2 || 7 || 10 ||
|| 14 || [[파일:시리아 국기.svg|width=30]] || 시리아 || 1 || 0 || 2 || 3 ||
|| 15 || [[파일:오만 국기.svg|width=30]] || 오만 || 1 || 0 || 0 || 1 ||
|| 16 || [[파일:중화 타이베이 올림픽기.png|width=30]] || 중화 타이베이 || 0 || 10 || 21 || 31 ||
|| 17 || [[파일:영국령 홍콩 기.png|width=30]] || 홍콩 || 0 || 2 || 5 || 7 ||
|| 18 || [[파일:스리랑카 국기.svg|width=30]] || 스리랑카 || 0 || 2 || 1 || 3 ||
|| 19 || [[파일:싱가포르 국기.svg|width=30]] || 싱가포르 || 0 || 1 || 4 || 5 ||
|| 20 || [[파일:방글라데시 국기.svg|width=30]] || 방글라데시 || 0 || 1 || 0 || 1 ||
|| 21 || [[파일:네팔 국기.svg|width=30]] || 네팔 || 0 || 0 || 1 || 1 ||
|| 21 || [[파일:라오스 국기.svg|width=30]] || 라오스 || 0 || 0 || 1 || 1 ||
|| 21 || [[파일:포르투갈령 마카오 기.png|width=30]] || 마카오 || 0 || 0 || 1 || 1 ||
|| 21 || [[파일:미얀마 국기.svg|width=30]] || 미얀마 || 0 || 0 || 1 || 1 ||
|| 21 ||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width=30]] || 사우디아라비아 || 0 || 0 || 1 || 1 ||
== 마스코트 ==
|| [[파일:PanPan(1990_asian_games).jpg]] ||
[[판다]] 캐릭터로 이름은 판판(盼盼, Pànpàn)이다. 디자이너는 중국 국가1급 미술사 류중런(刘忠仁). 다만 서울 아시안 게임 때는 따로 이름이 없었는지 폐회식에 등장할 때 슝마오(Xiong Mao) 라고 했다. 슝마오는 중국어로 판다란 뜻이다.
== 이모저모 ==
* [[태권도]]가 정식종목에서 도로 탈락하였다. 대신 [[가라테]]와 [[우슈]]가 정식 종목으로 진입하여 한국측은 경악한다. 한국측의 강력한 항의와 [[1994년]] [[IOC]]에서 태권도를 [[2000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결정하면서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종목에 재진입한다. 다소 다른 얘기지만 우리의 효자종목 중 하나인 양궁도, 금메달 갯수를 전 대회의 12개에서 4개로 확 줄여버리는 등 중국의 노골적인 견제와 야욕이 돋보인 대회였다.
* 이 대회로 자신감을 얻은 중화인민공화국은 [[베이징]]에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하여 [[국제올림픽위원회]]에 [[2000년]] 올림픽 유치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호주]] [[시드니]]한테 져서 탈락하였다.[* 당시 중국 정부는 [[천안문 광장]]에 TV 스크린을 설치했을 정도로 기대감이 컸다고 한다. 실제로 1, 2, 3차 투표에서 베이징이 모두 1위를 했으니까. 그러나 결국 45대 43 이라는 근소한 표차로 시드니에게 패했다.] 그래도 11년 뒤인 [[2001년]]에는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유치하는데 성공하였다.
* 개막식에서는 대규모 카드 섹션이 펼쳐졌는데, 이는 [[1980 모스크바 올림픽]] 개막식에서 선보인 카드 섹션을 벤치 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 한국인들이 중국에 가서 [[우황청심환]]을 비롯한 한약재들을 싹쓸이한 나머지 [[메이드 인 차이나]] 저질 우황청심환이 판쳐서 상당수 국내 판매를 불허되었고, 결국 사재기 하던 이들의 자업자득으로 끝났다. ~~그때만 해도 중국산이 이럴 줄 몰랐지~~ 참고로 한중수교는 1992년에 이루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은 아직까진 미지의 나라, 신비의 나라였으며 중국싼 짝퉁의 위력이 온누리에 알려지기 한참 전이었다. 물론 자국산 짝퉁에 늘 시달려오던 중국인들은 이런 꼴들을 보고 어처구니없어 했다.
* 호칭 문제로 참가 여부가 불투명했던 [[중화민국|대만]]이 '''[[중화 타이베이|中华台北(중화 타이베이)]]'''라는 명칭으로 베이징에 입성. 영어로는 Chinese Taipei라서 문제될게 없었지만 한자표기를 놓고 중국측이 中国台北(중국 타이베이)로 표기할 것을 요구하자 이에 대만측이 발끈하여 中华台北(중화 타이베이)를 쓰겠다고 하여 옥신각신한 끝에 중국이 양보한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고히 하기 위해 대만을 압박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때문에 대만이 덜컥 불참해버리면 ~~이거 원해서 국제 스포츠계에서 깽판 친 것 아녔어?~~모양새가 안 좋아서 선택의 여지가 사실상 없었다. 어차피 '중화'라는 명칭을 쓴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대만이 중국과 한 핏줄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고. 중국과 중화의 어감상 차이에 대해서는 [[중화 타이베이|해당 항목]] 참조.] 다만 실제 개막식 현장에서는 대만 선수단이 환대받았는데, '''입장 순간 관중들의 박수 소리가 커졌고 __귀빈석의 [[장쩌민]] 중앙군사위 주석과 [[양상쿤]] 국가주석이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었을 정도.__''' [[https://youtu.be/MMjao6tV6rs?t=53m56s|해당 영상]]
* 아시안게임 개최 1년 전에 대회가 열리는 베이징에서 [[천안문 6.4 항쟁|중국인들이 현재까지도 떠올리기 주저하는 무시무시한 사태]]가 벌어져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지만 개최가 취소되거나 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진 않았다. --뻔뻔한건지 수습을 깔끔하게 한 건지-- --[[6월 항쟁|마치 한국에서 벌어진]] [[1988 서울 올림픽|상황과 너무나도 비슷하다.]]--[* 사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이라는 훌륭한 선례(?)가 있었기는 했다. 이때 경찰이 학생들을 상대로 학살을 벌이는 일이 벌어졌지만 올림픽 하루전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대규모 보이콧은 일어나지 않았다.]
* 남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대한민국의 김원탁은 2년 전 서울 올림픽에서 성화 최종 점화자 3인 중 한 명이었다.[* 서울올림픽 당시에는 [[건국대학교]] 재학생 신분이었다. 다른 두 명은 당시 [[서울예술고등학교]] 무용과 재학생이던 손미정과 흑산중학교 소흑산분교(현 가거도분교)의 체육교사였던 정선만.]
* 남자 유도 라이트급 은메달리스트 리창수(북한), 여자 유도 무제한급 동메달리스트 천링전(대만)은 후에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리창수가 탈북 후 남한에 오자 천링전이 찾아와서 결혼을 하게 되어 남한에 정착했다.
* [[1988 서울 올림픽]]에 이어 야구가 시범경기로 지정된 대회이기도 하다. 대만, 일본과 더불어 3개국만이 참가한 종목이라 [[KBO]]에서 출판한 [[한국야구사]]에서도 단신으로 언급되고 마는 대회로 대만이 금메달, 대한민국이 은메달, 일본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분류:하계 아시안 게임]][[분류:중국의 스포츠]][[분류:덩샤오핑 시대]][[분류:베이징시]] |
1990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 | [include(틀:역대 동계 아시안게임)]
[[파일:attachment/52324002449.jpg]]
* 개최국가 : [[일본]]
* 개최지역 : [[홋카이도]] [[삿포로]]
* 개회식 : [[1990년]] [[3월 9일]]
* 폐회식 : 1990년 [[3월 14일]]
[목차]
== 개요 ==
1990년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개최된 제 2회 동계 [[아시안 게임]].
== 이모저모 ==
* 원래 [[인도]]에서 개최하기로 했으나 기술적인 문제, 재정적자 등으로 개최권을 반납하여 긴급히 이전 대회인 [[1986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을 개최했던 [[일본]] [[삿포로]]로 개최지를 옮겼다.
* 이전 대회의 7개국에 [[이란]], [[필리핀]], [[대만]]이 참가하였다. 다만 대만은 [[1984 LA 올림픽]]이나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처럼 [[중화 타이베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할 수밖에 없었다.
* [[대한민국]]은 획득한 금메달 6개중 [[쇼트트랙]]에서 4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2개를 거두어 두 종목에 편중되는 현상을 보였다. 하지만 2위 중국의 금메달 9개, 은메달 9개, 동메달 8위에 비해 바싹 따라 잡은 것은 성과.
* 일본의 압도는 계속 되었다. 금 18, 은 16, 동 13으로 싹쓸이 비율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넘사벽인 1위였다. --하지만 4년 뒤...--
* 4위 북한이 노골드로 은 1, 동 4로 부진한 한편 몽골이 동메달 1개를 따서 체면 치레를 했다.
* 북한의 암담함은 계속된다. 5년 뒤 [[삼지연]]에서 개최하기로 한 동계 아시안 게임이 경제난으로 무산되고, 하얼빈과 강원 동계 아시안 게임을 보이콧 하면서 13년 뒤인 아오모리에서 다시 출전하게 된다.
[[분류:동계 아시안 게임]][[분류:1990년]][[분류:헤이세이 시대]][[분류:삿포로시]] |
1990 이탈리아 월드컵 | #redirect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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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 ||<-13><tablealign=center><bgcolor=#a9a9a9> {{{#000000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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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 [[제1천년기]]}}} ||<bgcolor=#2f4f4f> [[제2천년기|{{{#ffd700 '''제2천년기'''}}}]] ||<-6> {{{-2 [[제3천년기]]}}} ||
||||<tablealign=right><:><bgcolor=#CBB8EE> '''세계 각 지역의 표기''' ||
|| [[서력기원|서기]] || 1990년 ||
|| [[대한민국 연호|대한민국]] || 72년 ||
|| [[단군기원|단기]] || 4323년 ||
|| [[불멸기원|불기]] || 2534년 ||
|| [[황기]] || 2550년 ||
|| [[이슬람력]] || 1411년 ~ 1412년 ||
|| [[갑자|간지]] || [[기사]]년 ~ [[경오]]년 ||
|| [[주체사상|주체]] || 79년 ||
|| [[중화민국|민국]] || 79년 ||
|| [[일본]] || [[헤이세이]] 2년 ||
|| [[히브리력]] || 5750년 ~ 5751년 ||
|| [[에티오피아]] || 1982년 ~ 1983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 [youtube(mk1oXe3L4sQ)] ||
|| 일본인 관광객이 촬영한 1990년의 [[서울특별시|서울]].{{{-2 [* 당시엔 [[광화문광장]]이 아직 들어서지 않아서 [[이순신]] 동상 바로 옆으로 차가 다녔고 광화문 뒤로 [[조선총독부]] 건물이 아직 남아있었다. 또한 현재는 철거된 몇몇 [[고가차도]]가 등장한다.][* 영상의 설명란에는 1990년의 서울이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3번째 영상 중반부에서 [[현대 에어로시티|에어로시티]]가 잠깐 지나가는 점과 사람들의 복장, 도시의 분위기를 보아 1991년 겨울에서 92년 초 사이에 촬영한 영상인 듯 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XcTR2Ioo-k|영상2]], [[https://www.youtube.com/watch?v=bSZy4vhBRak|영상3]]) ||
[[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이 해의 이슈는 '''[[독일 재통일|독일통일]]'''이라는 사건 하나로 정리할 수 있다. 동시에 [[소련]]의 위성국이던 [[동유럽]] 국가들이 [[공산주의]]의 색채를 벗고 신 정부 출범과 함께 [[자본주의]] 체제로 대거 전향하게 되면서,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50여년 간 지루하게 계속되던 '''[[냉전]]'''이 사실상[* 사실상인 이유는 당연히 엄연하게 [[소련 해체|1991년 12월 26일]]이 냉전 종료일이기 때문.] 이 해를 기점으로 '''종료'''[* 동시에 [[미국]]이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 등극하면서 [[팍스 아메리카나]]가 시작되었다.]되었다. 그러나 냉전 동안 이념갈등으로 묻혀 있던 해묵은 과제인 민족주의가 목청을 높이면서 [[걸프 전쟁]],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대변되는 또 다른 '피바다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거품경제]]를 끝장내기 위해 [[4월]]에 '''대출 총량규제'''를 실시했다. 문제는 이게 버블의 '''절정'''에서 시행되는 바람에 [[잃어버린 10년]]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주가도 폭락해서 1989년에 4만 포인트에 육박했던 [[닛케이 지수]]는 2만엔대로 추락하며 자산시장의 거품이 단 1년만에 붕괴되었다. 아직은 고용시장에 칼바람이 본격적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1992년부터 일본 고용시장에 본격적인 칼바람이 들었기 때문에 단초가 되는 사건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비슷한 시기 한국과 대만에서도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 정치권에선 민정당이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함께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을 출범시켜 여대야소 체제를 만들었고, 민자당 독주체제 하에 활발하던 노동운동, 통일운동, 언론민주화 운동에 대해 공권력을 투입해 무차별적으로 짓밟았고, 하반기엔 민자당 내에서 내각제 개헌 문제로 3개 계파가 싸웠다. 경제/사회 분야에선 '경제활성화종합대책(4.4 조치)'을 발표해 금융실명제를 유보하고 제2금융권 실세금리를 1% 인하시키자, 이에 따라 물가를 비롯해 집세, 전세 등이 폭풍상승해 서민들을 벼랑 끝까지 몰아넣었다.
위와 같은 어지러운 상황 속에 공식 [[공휴일]]이 가장 많았던 해였다. 우선 [[새해 첫날|양력설]]이 하루에서 2일 연휴가 되었고([[1999년]]부터 도로 하루로 축소), [[1989년]]부터 3일 연휴가 된 [[설날]]과 [[추석]]이 있었다. 그 외에 [[1991년]] 공휴일에서 폐지되고 기념일이 된 [[국군의 날]]과 [[한글날]]은 아직 연휴로 존속했다. [[개천절]]이 추석과 겹치고 월요일이었던 설날이 일요일과 하루 겹치긴 했지만, '''휴일로만 1년에 52+19-2=69일이나 쉴 수 있었다.''' ([[근로자의 날]]까지 더하면 70일.) 게다가 원래도 휴일이 많았던 10월이 추석크리로 [[9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쉴 수 있었다.[* 월요일인 10월 8일 월차를 내고 한글날인 10월 9일까지 쉰다면 무려 '''10일'''!!!] 참고로 [[2013년]] 이후 현재, 공휴일은 15일 뿐으로, 이 때보다 4일 줄었다.
정부 수립 이래 [[대한민국]]이 오랜 적대국이자 [[북한]]의 동맹국이었던 [[소련]]과 공식 수교를 맺었던 해이기도 하다. 후에 [[소련]]은 [[러시아|러시아 연방]]으로 출범하여 남북한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언론계에선 KBS 사태와 방송법 날치기 등 정권의 방송장악 시도에도 불구하고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10년 만에 새 방송사들이 잇달아 개국했는데 서울시가 출범시킨 [[tbs 교통방송]]과 천주교와 불교의 종교방송인 [[가톨릭평화방송]], [[불교방송]] 등이 주인공이다. 또 법적으로 [[민영방송]] 설립과 운영도 다시 허용되기 시작하면서 [[태영건설]]이 대주주로 나선 [[SBS]]가 탄생하게 됐다. 그리고 재야 통일운동권에서도 뜻깊은 해이기도 한데, 남-북-해외 3자연대 민간 통일운동 행사인 '범민족대회' 첫 개최와 범민련 출범으로 대변된다.
[[여담]]으로 남자 출생성비가 가장 많은 해이기도 하다. '[[백말띠]]의 해' 라 하여 이때 태어나는 여아는 팔자가 드세다는 [[ㄴㄱ|일제가 박아놓은 근거없는 속설]]이 나돌고 있었기 때문에 116.5:100 라는 기록적인 성비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이 해 [[80-90년대의 여아 낙태 문제|엄청난 여아 낙태]]가 이뤄졌다. 더불어 1990년 1~3월에 태어난 여자아이는 1989년 12월로 일찍 [[출생신고]]를 하기도 했으며, 1990년 말에 태어난 여자아이는 음력 1991년까지 묵혀두다 출생신고를 하는 케이스가 종종 있었다.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많은 편.
[[독일]]에게는 이 해가 '''역사상 최고의 해'''가 된다. 전술한 바와 같이 [[독일민주공화국]]과 [[독일연방공화국]]이 통일했음은 물론 보너스로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이 해 개최된 월드컵]]에서 독일이 우승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독일이 아닌 서독이다.] 또한 동서 독일이 통일된 '''1990년 10월 3일 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이전 세대들과는 달리 구 동독과 구 서독 출신이 아닌 '''통일 독일연방공화국 출신'''이라는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2020년 기준으로 30세 이하에 속하는 독일 젊은이들이 그 대상이다.
이 해에 태어난 세대들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제7차 교육과정]]을 배우게 되었다. 즉 초등학교 제7차 교육과정을 경험한 첫 세대. 또한 이들은 초등학교 최고 학년으로 [[2002 한일월드컵]]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들은 고3 때~~ 역대급 흑역사만 남긴 저주받은~~[[수능 등급제]]가 도로 폐지되어 난이도가 매우 어려워진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
전 세계적으로는 [[팀 버너스리]] 박사가 고안한 [[월드 와이드 웹]]의 약자인 [[WWW]] 개념이 완성되어 발표된 해였으며, 이 해 12월에 최초의 웹 페이지를 선보인 후 이듬해부터 일반 공개되어 오늘날의 WWW 기반 인터넷으로 발전된 계기가 되었다.
이 해는 서울에서 가장 많은 강수량을 기록한 해였다. 그러나 10월에는 강수량이 '''0.0mm'''로 기상 관측 이래 최초로 강수일수가 없었다.[* 그외에도 [[2020년]] 10월과 [[2019년]] 1월도 강수량이 기록되지 않았다.]
== 주요 화제 ==
* 연합통신 선정 1990년 10대 뉴스: [[http://v.media.daum.net/v/19901208090700371?f=o|국내]] [[http://v.media.daum.net/v/19901208090700372?f=o|해외]]
=== 범죄와의 전쟁 선포 ===
1990년 10월 13일, 노태우 대통령은 범죄자들을 상대로 범죄와의 전쟁을 치러 근절시키겠다는 [[10.13 특별선언|특별선언]]을 하게 된다. 범죄자들과 전쟁을 선포하겠다는 내용은 전국에 TV로 생중계될 뿐더러 모든 일간지에 톱 기사로 실렸다.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자들에게 선전포고를 한 결과, 모든 조직을 뿌리 뽑지는 못했지만 양지에서 대놓고 활동하는 폭력배들은 대부분 소탕되었으며, 살아남은 몇몇 폭력배들도 음지에서만 활동하게 된다.
1990년 11월에는 "새질서 새생활 운동"이라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다가오는 21세기를 위해 변화된 시민의식을 갖자고 강조하였다.
=== [[안면도]] 핵폐기장 유치 파동 ===
1990년 11월 8일 그 날,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에서는 1만 5천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5일 전인 11월 3일에 과학기술처가 발표한 '안면도 핵폐기장 건설계획'에 반대하는 집회였다. 이들은 서산경찰서 안면지서와 서장 승용차에 불을 지르고 경찰차를 뒤엎었으며, 경찰관을 연금하는 등의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안면도 내 이장단들은 일제히 사퇴를 하였으며, 중고등학생들은 등교를 거부하고 자체 집회를 여는 등 반핵 운동에 가담했다. 이 시위로 주민 7명이 구속되었다.
결국 정부는 주민들의 조직적인 반대에 굴복하여 1993년에 핵폐기장 건설 계획을 백지화한 뒤 핵폐기장 후보지 선정을 지역 주민과의 협의 하에 민주적이고 공개적으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같은 투쟁은 1991년 전국 6개 지역 핵폐기장 선정 저지, 1995년 인천 굴업도 핵폐기장 유치 저지, 2005년 부안 핵폐기장 유치 저지로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경주 핵폐기장 유치 논쟁에서 보듯, 우리나라 에너지 사정상 핵발전소 및 핵폐기장 건설은 불가피하다는 정부의 입장과 핵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요구하는 환경단체의 대립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 한소 수교, 45년만의 앙금을 털어내며 ===
1990년은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이 오랜 적국이었던 [[소련]]과 국교를 수립한 해였다. 역사적으로 소련은 1945년 북한에 진주한 이래 [[대한민국]]을 친미 성향 국가로 보고 미국에 의한 정치적인 배후임을 인지하여 적국으로 규정하여왔다. [[대한민국]] 역시 1945년 해방 및 분단 이후 [[북한]]의 배후로 인정하여 소련을 적국으로 여겨왔으며, 1949년에는 [[서울]] 주재 소련 영사관을 폐쇄시키고 전 직원을 추방하였다. ([[주한러시아대사관]] 참고)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소련이 직접 군대를 파병하지는 않았지만 북한군에게 소련산 탱크와 무기 및 포탄들을 지급하는 군사적 지원을 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실상 간접적으로 북한을 도운 나라로 인식되어서 휴전 이후 대한민국이 적국으로 규정하여왔다. 당시 소련의 독재자인 [[이오시프 스탈린]]은 [[6.25 전쟁]]의 배후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이 영향력으로 북한군은 소련의 지원하에 남침을 하고 3일만에 서울을 함락시키게 되었다.
그러나 1988년에 들어서 서울 올림픽 때 소련이 참가를 하면서 점차 이 때부터 한소간의 오랜 앙금이 풀어지기 시작하였으며 소련이 한국 국적기의 소련 영공 통과를 승인하면서 유럽행 한국 국적 비행기들이 그 동안 태평양으로 돌아서 갔던 것을 소련 영공을 통과하는 직선거리로 변경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990년 역사적으로 [[노태우]]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간의 한소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대한민국과 소련의 역사적인 국교수립이 성사되었다.
=== [[독일 재통일|동서독 통일]] ===
1990년 10월 3일, 마침내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와 [[소련]]에 의해서 동서로 분단되었던 독일이 동서독 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동독과 서독은 [[베를린 장벽]]을 쌓으며 경계를 서게 되고 각각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친소와 친미로 나뉘어서 각자의 생활과 정치를 누려 왔다.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와 다른 점이 있다면 동서독은 [[6.25 전쟁]]과 같은 내전을 겪은 적이 없으며 동서독은 분단 와중에도 하나의 나라이자 민족임을 확인하고 동서 간의 통일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동서독 올림픽 단일팀 출전이 성사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989년 자유를 열망하는 동독과 하나 된 나라를 열망하는 서독이 서로 마음에 맞게 돼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에 동독이 완벽하게 자멸하며[* 이때 동독 상황은 군대와 경찰이 사실상 없어졌다. 끝나기 일보 직전 상황이었던 것.] 독일은 역사적인 통일을 이루게 된다.
독일의 통일은 21세기인 현재도 남북 분단과 한반도와 한민족에게는 교훈과 숙제를 주었다. 한반도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과 충돌이 있고 [[6.25 전쟁]]을 통해서 남북 간 서로의 앙금을 만들었으며 2000년과 2007년, 2018년에 남북정상회담도 있었지만 여전히 남북 간의 긴장과 충돌이 팽팽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 한국이 보는 독일 통일 ====
>동서독은 이미 자신들이 하나의 혈통이자 민족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서로 간의 동질감을 가졌고 그렇기 때문에 동서 통일도 될 수 있었던 것 같지요. 서독이 하나 된 조국을 열망했다면 동독에서는 탈공산 자유를 열망하였기 때문에 그래서 통일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br]- 1990년 통일 당시의 독일인
>동독인들은 이미 자유를 갈망해 왔기 때문에 장벽을 타고 서독으로 넘어오려고 했던 적도 있었지요. 이미 동독인들 마음속에는 자유에 대한 열망이 짙어지고 공산당에 대한 반감도 커져서 서독이 희망하였던 하나의 조국과 뜻이 맞아 보였기에 통일이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br]- 1990년 옛 동독 거주자 독일인
>저쪽 동네(독일)가 통일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언제 적이나 북쪽 고향을 갈 수 있을지 그저 슬퍼지기만 할 뿐이지요. 저쪽도 통일이 되어서 지들 가족도 만났는데 하루빨리 우리도 죽기 전에 북쪽 고향에 가서 가족들과 만나 봤으면 원이 없습니다.[br] - 1990년 실향민
>독일이라는 나라가 통일되었다는 소식 듣고 나는 그저 언제 통일되어서 북에 있는 고향에 갈 수 있을지 울고 싶었습니다. 우리도 하루빨리 저 사람들처럼 통일되어서 북쪽에 있는 고향에 가야 할 텐데....[br] - 1990년 실향민
한국의 입장에서는 먼저 통일한 독일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얻으려고 하고 있다. 동서 분단 와중에도 전쟁이나 분쟁을 벌이지도 않고 동서 간에 자유와 하나 된 조국을 열망하였고 동서 간의 통일을 위해 정치적, 행정적,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낸 독일의 통일 사례는 한국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아쉽게도 독일과는 다르게 한반도는 아직도 남북이 분단된 채로 언제 통일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있다.
그리고 지금 한반도에는 남북 분단으로 인해서 가족을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들도 존재하고 있다. 독일도 한때는 장벽 때문에 이산가족들이 있었지만 통일이 되면서 이들의 비극은 풀어지게 되었지만 한국은 현재 진행형이다.
>언젠가 한국도 우리나라(독일)처럼 통일이 되는 그날이 오게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도 분단을 겪어 왔지만 서로가 마음이 맞았고 합의를 이끈 덕분에 통일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동서로 분단되었다가 통일이 된 독일처럼 한국도 통일이 되는 그날이 오게 되어 평화를 맞이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도 통일을 했으니만큼 한국도 통일이 되는 날이 오길 기원합니다.
== 사건 ==
=== 실제 ===
==== 1월 ====
* [[1월 1일]]
* 노태우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전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증언으로 지난날의 문제를 마무리짓자고 천명하였다.
*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라 문공부가 문화부와 공보처로, 환경청이 환경처로 각각 바뀌었다.
* [[광주특위]]가 전두환의 증언(?)을 마지막으로 산회하였다.
* 하벨 체코 대통령은 2만여 명의 재소자들에 대해 40년 만에 첫 대사면령을 내렸다.
* [[1월 3일]] - [[마누엘 노리에가|노리에가]] 파나마 대통령이 [[미군]]에 무조건 항복했다.
* [[1월 6일]] - [[김포국제공항|서울]]-[[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파리]] 간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 영공을 처음으로 통과하였다.
* [[1월 10일]]
* 노태우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남북한 자유왕래를 제의하였다.
* 미국 타임 사와 워너 커뮤니케이션이 합쳐져 종합미디어그룹 '[[타임 워너]]'가 출범하였다.
* 리펑 중국 총리는 1989년 5월 20일 베이징에 발령된 계엄령을 해제시킨다고 발표하였다.
* [[1월 15일]]
* 한국-알제리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하였다.
* 대법원은 최근 빈발하는 시국사건 법정소란행위에 강력 대응하도록 각급 법원에 지시하였다.
*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보트 다크라이드인 [[신밧드의 모험(놀이기구)|신밧드의 모험]]을 파격적으로 오픈하였다.
* [[1월 16일]] - 현대그룹이 국내 기업으로서 최초로 소련으로부터 지사 설치를 승인받았다.
* [[1월 17일]] - 이날을 기점으로 서울시내 자동차 등록대수가 1백만 대를 돌파하였다.
* [[1월 18일]]
* [[MBC 청룡]]의 후신 구단 [[LG 트윈스]]가 창단되었다.
* 바웬사 폴란드 자유노조 지도자는 주 폴란드 소련군의 철수를 소련측에 요구하였다.
* [[1월 19일]] - 노동부는 [[전노협]]을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연대파업 등 주도시 제3자 개입금지 위반으로 엄단키로 결정하였다.
* [[1월 21일]] -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가 발족되었다.
* [[1월 22일]]
* 민정-민주-공화 3당 총재가 [[3당 합당]]을 선언하였다.
* 전국구 민주노조연합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전노협)'가 발족되었다.
* 제주신문이 폐업신고로 발행을 중단했다.
* [[1월 23일]]
* 전민련 등 재야단체들이 3당합당 반대 성명을 발표하였다.
* 남북회담 북측대표단은 장벽철거-자유왕래-전면개방 등을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 [[1월 24일]]
* 서울지검은 방송사 연예PD 6명을 배임수뢰 혐의로 구속 기소하였다.
* 서울대가 국내 최초로 '북한학개론' 강좌를 개설하였다.
* 법무부는 방청객들의 법정소란행위에 법정모독죄를 규정해 구속토록 결정하였다.
* [[1월 28일]] - 대법원은 피고인의 인권보호를 위해 무죄판결 사실 등을 신문/관보에 공시토록 결정하였다.
==== 2월 ====
* [[2월 2일]]
* 종전의 현노협이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이하 현총련)으로 새로 발족되었다.
* 데 클레르크 남아공 대통령은 27년째 복역 중이던 흑인 민권운동가 넬슨 만델라의 석방과 ANC의 합법화를 발표하였다.
* [[2월 4일]]: 일본 TV아사히에서 <[[특경 윈스펙터]]>가 첫 전파를 탔다.
* [[2월 7일]] - [[소련]] 공산당 중앙회의는 [[자본주의]]에 사실상 패했음을 인정했다.~~ [[GG]] 선언~~ 이로써 [[소련]]의 붕괴가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 [[2월 8일]] - 북한측은 UNDP 지원으로 농업과학원에 종자가공 및 저장시설을 완공했다.
* [[2월 9일]]
* 민정-민주-공화 3당은 합당 의결 후 당명을 [[민주자유당]]으로 확정지었다.
* 건설부는 부천 중동지역 164만 평에 신도시건설계획을 확정하였다.
* [[2월 10일]] - 제임스 더글라스가 [[마이크 타이슨]]을 쓰러뜨리고 헤비웨이트 복싱 챔피언이 된다. 타이슨은 이때까지 한번도 K.O.를 당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더글라스 역시 두 경기만에 챔피언 벨트를 내어준다.
* [[2월 11일]]
* '광산지역노동자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남아공 흑인 민권운동가 [[넬슨 만델라]]가 27년만에 출소하였다. 이로써 길고 긴 그의 옥중 투쟁이 끝난 것이다.
* [[2월 12일]] - 안기부는 '노동계급 사건'을 발표하여 안민규와 박태호를 구속하고 이미경을 불구속 입건하는 한편, 10여명을 수배하였다.
* [[2월 16일]] - '지방 문화방송 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2월 20일]] - 구로역사연구소가 엮은 저작 <바로보는 우리역사>가 세상에 나왔다.
* [[2월 21일]] - 외무부는 모스크바 주재 영사처 개설을 발표하였다.
* [[2월 22일]] - 체코-소련 양국이 주 체코 소련군 철수에 합의하였다.
* [[2월 25일]] -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배기태가 노르웨이 세계남녀 스프린트스케이트 선수권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였다.
* [[2월 27일]]
* 감사원은 KBS에 대한 특별감사를 근거로 법정수당 변칙지출 혐의를 지닌 [[서영훈]] 사장과 윤혁기 부사장, 김은곽 인사관리실장, 김부익 노무과장의 해임을 공보처에 통보하였다.
* 폴란드-이스라엘 양국이 23년만에 외교관계를 재개하였다.
==== 3월 ====
* [[3월 1일]]
* 노태우 대통령은 삼일절 기념사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제의하였다.
* 국방부는 종전의 전우신문을 <국방일보>로 개칭하였다.
* 만화가 김우영이 만든 <뚱딴지>가 소년조선일보에 처음으로 연재되었다.
* [[3월 2일]]
* KBS 이사회는 서영훈 사장과 윤혁기 부사장의 사표를 수리하였다.
* 일본 TV아사히에서 <[[지구전대 파이브맨]]>이 첫 전파를 탔다.
* [[3월 4일]] - 북한측은 노태우 대통령의 삼일절 대북제의를 거부했다.
* [[3월 6일]] - 서울 태평로 언론회관 앞에서 언노련과 KBS노조 공동주관 하에 '방송자주권 쟁취 규탄대회'가 개최되었다.
* [[3월 8일]] - 한필성-필화 남매가 일본 삿포로에서 분단 40년만에 상봉하였다.
* [[3월 11일]]
* 서울시경은 '북부지역노동자연맹(이하 북노련)'을 적발해내 왕해전 등 4명을 이적표현물 소지/탐독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북부지역노동자연맹(북노련) 사건)
* '범민족대회 유럽지역추진본부'가 결성되었다.
* 소비에트 리투아니아 공화국 의회는 탈소/독립 선언 후 국명을 '리투아니아 공화국'으로 변경하였다.
* [[3월 14일]] - 장쩌민 중국 총서기가 북한을 방문하였다.
* [[3월 15일]]
* [[KBO 리그|KBO]] 제8구단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되었다.
*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인민대회 비밀투표선거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피선되었다.
* [[소련]] 정부는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 [[3월 18일]]
* [[전노협]]은 경찰의 봉쇄 속에서도 '90 임투 전진대회'를 개최하였다.
* 제61회 동아마라톤에서 김완기 선수가 2시간 11분 34초를 기록해 12분의 벽을 넘었다.
* 쇼트트랙 선수 이준호가 제10회 네덜란드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였다.
* '범민족대회 북미주지역추진본부'가 결성되었다.
* 동독 전역에서 독일 재통일 찬반 자유총선거가 치뤄졌다. 이는 1933년 이후 57년만이었다.
* [[3월 19일]] - MBC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첫 전파를 탔다.
* [[3월 20일]] - 백기완과 이소선, 박형규, 계훈제 등 재야 원로 네 명이 기자회견에서 전민련 고문직 사퇴와 함께 ‘민중정당 건설을 위한 민주연합추진위원회’결성을 공식 제안하였다.
* [[3월 21일]]
* 조선일보사가 <[[스포츠조선]]>을 창간하였다.
* 한국노총직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나미비아]]가 [[남아공]]으로부터 독립했다.
* [[3월 22일]]
* 한국-체코슬로바키아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한국-불가리아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북한측은 나미비아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 [[3월 24일]]
* 서울 잠실 석촌호수 위에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가 문을 열었다.
* 영남일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3월 26일]] - 한-몽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3월 27일]] - 대한항공 여객기가 정기항공 사상 최초로 소련 모스크바에 기착하였다.
* [[3월 29일]] - [[한국화약그룹]]이 [[경향신문]]을 인수하였다.
* [[3월 30일]]
* 한국-루마니아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소련 아에로플로트 여객기가 정기항공 사상 최초로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하였다.
* '범민족대회 일본지역추진본부'가 결성되었다.
* [[3월 31일]] -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인두세 도입에 반대하는 시위 군중이 경찰과 대규모 충돌을 벌였다. 이는 [[마거릿 대처|대처]] 내각 붕괴의 서곡이었다.
==== 4월 ====
* [[4월]] 중 - 캡콤은 <[[전장의 이리 2]]>를 일본에 발매하였다.
* [[4월 1일]]
* [[1990 오사카 엑스포]]가 개최되었다.
* 일본 외무성은 재일한국인 3세에 대해 영주권을 부여키로 결정하였다.
* [[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역(서울)|교대역]]에 법원·검찰청이 부역명으로 고시되었고, [[서울 지하철 3호선]] 화물터미널역의 역명이 [[남부터미널역]]으로 변경되었다.
* 전서구를 이용한 [[인터넷]] 통신 방법이 제안됐다.
* [[4월 4일]] - 노태우 대통령은 금융실명제의 실시를 무기한 연기하였다.
* [[4월 6일]] - 영화집단 '장산곶매'가 소형영화 <[[파업전야]]>를 서울 한마당예술극장 등 4곳에서 개봉하였다.
* [[4월 7일]] - 전남 고흥 ~ 제주 간 해저통신 광케이블망이 개통되었다.
* [[4월 8일]] - 소련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 [[4월 9일]]
* 정부는 새 KBS 사장에 [[서기원]] 전 서울신문 사장을 임명하였다.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노동조합'이 발족되었다.
* [[4월 10일]]
* 박정수 IPU 한국대표단장은 IPU 총회에서 김국훈 북측 대표단장과 양국 의원의 상호 교환방문 원칙에 합의하였다.
* 서울 등 전국 12개 도시에서 'C3시스템 순찰차량 보강 발대식'이 개최되었다.
* 한국역사민속학회가 설립되었다.
* [[4월 11일]] - '민중정당 건설 전국노동자추진위원회(이하 전노추)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4월 12일]]
* KBS 비상대책위원회는 서기원 신임 사장의 첫 출근을 저지하는 투쟁을 벌였다. 이에 경찰 측은 전의경 1천여 명을 KBS 본사에 투입시켜 117명의 사원을 연행해 갔다([[1990년 KBS 사태]]).
* 치안본부 대공 3부는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노동자투쟁조직 사건(인천노동상담소 사건)'을 발표해 양재덕 등 관련자 7명을 연행하였다.
* [[4월 13일]]: 제71회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이 정부 주관으로 처음 거행되었다.
* [[4월 15일]]
* [[평화방송]]이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였다.
* 공추련 등 환경단체들이 참여한 '전국핵발전소추방운동본부'가 결성되었다.
* [[4월 17일]]: [[공주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강창구 등 9명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 [[4월 19일]]: [[전대협]] 4기 출범식이 광주 전남대에서 개최되었다.
* [[4월 21일]]: [[전노협]], [[전교조]] 등 14개 재야단체를 주축으로 한 '민자당 일당독재 분쇄와 민중기본권 쟁취를 위한 국민연합(이하 국민연합)'이 결성되었다.
* [[4월 24일]]
* [[미국]] NASA는 [[허블 우주 망원경]]을 발사하였다.
* 종전의 전농련과 전농협이 통합되어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으로 출범했다.
* [[4월 27일]]
* 치안본부는 '민족통일민주주의노동자동맹(이하 삼민동맹)'을 적발해내 박윤배, 김태진 등 관련자 14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민족통일민주주의노동자동맹 사건).
* 서울지하철노조 등 4개 노조가 참여한 '서울시투자기관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4월 28일]]
* 종전의 전강협이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이하 전강노)'으로 새로 발족되었다.
* 현대중공업 골리앗 농성이 경찰에 의해 강제 진압되었다.
* [[리버풀 FC]]가 풋볼 리그1 36라운드 홈경기에서 [[QPR]]을 꺾어 통산 18번째로 리그 트로피를 들어 당대 최다우승 신기록을 달성했다.
==== 5월 ====
* [[5월]] 중 - 미국 등 7개국을 주축으로 한 국제 정보인권운동 단체 '진보통신연합(APC)'이 발족되었다.
* [[5월 1일]]
* [[불교방송]]이 라디오 방송을 개시하였다.
* <[[PD수첩]]>이 MBC에서 첫 전파를 탔다.
* [[5월 2일]] - 데 클레르크 남아공 대통령과 만델라 ANC 지도자가 백인소수통치회담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에 합의하였다.
* [[5월 3일]] - 이화여대가 최초로 여자축구부를 창단하였다.
* [[5월 5일]]
* 서울 종묘에서 조선조 종묘제례가 거행되었다.
* 동/서독 및 미-영-불-소 4국 간에 통독을 위한 '2+4 회담'이 개막되었다.
* [[5월 6일]] - <열전 달리는 일요일>이 KBS1에서 첫 전파를 탔다.
* [[5월 7일]] - 장을병 등 57개대 교수 1,041명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5월 9일]] - 민자당은 전당대회에서 노태우 대통령을 총재에, 김영삼-김종필-박태준 의원을 최고위원에 각각 선출하였다.
* [[5월 10일]] - 아라파트 PLO 의장이 방북 도중 김일성과 회담을 열었다.
* [[5월 17일]] - 교통부는 수도권 신공항입지를 인천 영종도로 확정하였다.
* [[5월 18일]] - 동-서독 양국이 화폐/경제 통합협정에 조인하였다.
* [[5월 19일]] - 재소한인협회가 발족되었다.
* [[5월 21일]]
* 서울 성동경찰서는 '전교조 탄압 분쇄와 합법성 쟁취를 위한 창립 1주년 기념 전국교사대회'를 전교조 결성 이래 처음으로 허용시켰다.
* [[5월 22일]]
* [[남예멘|남]]-[[북예멘|북]] 예멘 양국이 '[[예멘|예멘 공화국]]'으로 [[예멘 통일|통일]]을 선언하였다.
* [[롯데그룹]]이 [[국제신문]]을 인수하였다.
*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3.0을 북미지역에 발매했다.
* [[5월 24일]]
*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을 공식 방문하였다.
* 아키히토 일본 덴노가 노태우 대통령 방일 환영 만찬에서 한-일 간의 불행한 과거가 있었다며 '통석의 념'을 금치 못한다며 우회적으로 사과 의사를 밝혔다.
* [[5월 26일]] - 문교부는 전국 645개 국교에 컴퓨터교실을 개설하였다.
* [[5월 27일]] - 전교조는 경희대 서울캠에서 '전교조 탄압 분쇄와 합법성 쟁취를 위한 창립 1주년 기념 전국교사대회'를 개최하였다.
* [[5월 28일]]
* 양궁선수 김수녕이 소련 국제양궁대회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하였다.
* 북한측은 판문점을 통해 한국전 참전 미군유해 5구를 미국측에 인도하였다.
* [[5월 29일]]
* 이부영, 고영구, 박계동, 제정구 등 야권통합파 14명은 민연추에 일괄사퇴서를 냈다.
* 북한측은 소련 타스통신 평양주재 특파원 1명을 추방했다.
* 보리스 옐친 소련 모스크바 제1서기장이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장에 당선되었다.
* [[5월 30일]] - 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이하 업종회의)가 발족되었다.
* [[5월 31일]] - 야권통합파를 중심으로 한 '범민주수권당 결성추진을 위한 통합추진회의(이하 통추)'가 결성되었다.
==== 6월 ====
* [[6월]] 중 - '민중당 건설을 위한 전국노동자추진위원회(이하 전노추)'가 결성되었다.
* [[6월 1일]]
* KAIST~미국 하와이대 간 인터넷망(HANA망)이 정식 개통되었다.
* 남아공 정부는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였다.
* 동독 정부는 7월 1일부터 서베를린 국경을 전면 개방키로 한다고 발표하였다.
* [[6월 2일]] - <[[제민일보]]>가 창간되었다.
* [[6월 3일]] - [[노태우]]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였다.
* [[6월 4일]] - KBS, MBC, CBS, PBC 등 방송 4사 노조는 '방송법 개악저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6월 5일]] -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 [[6월 8일]] - [[1990 이탈리아 월드컵]] 개막식이 밀라노 산시로에서 개최되었다.
* [[6월 9일]]
* 북한측은 제12차 '민족통일을 위한 범해외학자 토론회'를 개최했다.
* 임권택 감독 영화 <[[장군의 아들]]>이 개봉됐다.
* [[6월 10일]]
* [[연합통신]]은 2차 대전 당시 일본에 강제 징용된 3,500여 명의 한국인 명부가 홋카이도 등지에서 추가로 발견되었다고 보도하였다.
* [[불가리아]]에서 공산정권 붕괴 이후 첫 자유선거가 치뤄졌다.
* [[페루]] 대선 결선투표에서 일본계 이민2세인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당선되었다.
* [[6월 11일]]
* [[교통방송]]이 라디오 방송을 개시하였다.
* <대전매일>이 창간되었다.
* [[6월 12일]] - 한국 대표팀이 이탈리아 월드컵 E조 본선 1차전에서 벨기에에 2-0으로 패했다.
* [[6월 14일]]
*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미국 NBA 파이널에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4승 1패로 꺾어 백투백 우승을 달성하였다.
* 북한측은 소련 모스크바에서 '동의학 및 동의치료기술전람회'를 열었다.
* [[6월 15일]] - 이기택 등 구 통일민주당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꼬마)민주당'이 창당되었다.
* [[6월 16일]]
* 한국-콩고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민교협은 '[[사립학교법]]의 민주적 재개정을 위한 공동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6월 17일]]
* 한국 대표팀이 이탈리아 월드컵 E조 본선 2차전에서 스페인에 1-3으로 패했다. 이때 황보관이 쏘아올린 114km/h짜리 캐논 슛은 우리 국민들에게 큰 인상을 주었다.
* '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이하 전민동)'가 결성되었다.
* [[6월 21일]]
* 한국 대표팀이 이탈리아 월드컵 E조 본선 3차전에서 우루과이에 0-1로 패하여 16강 진출이 또 좌절되었다.
* 이란 북부 만질 시에서 진도 7.3~7.7의 강진이 발생해 35,000여 명이 죽고 10만여 명이 부상당했다.
* [[6월 22일]] - 치안본부는 석탑노동연구원장 장명국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 [[6월 23일]]
* 서울신문사가 여성 월간지 <퀸>을 창간하였다.
* [[몰도바]]가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 [[6월 25일]] - 이상훈 국방장관과 메네트리 주한미군사령관이 서울 용산 미군기지 지방이전 관련 합의각서를 교환하였다.
* [[6월 29일]]
* 노태우 대통령은 북한을 통한 운송수단과 물자반입 무제한 허용방침을 발표하였다.
* [[아키히토]] 일본 덴노의 차남 [[아야노미야 후미히토]] 친왕이 자신의 [[가쿠슈인]] 1년 후배인 [[가와시마 키코]]와 결혼했다.
==== 7월 ====
* [[7월 1일]]
* '음란 폭력성 조장매체 대책 시민협의회(이하 음대협)'가 결성되었다.
* 제주 신라호텔이 문을 열었다.
* 동-서독 경제통합과 동시에 국경검문소가 폐쇄되었다.
* [[7월 3일]] - '남북고위급회담을 위한 제7차 예비회담'이 판문점에서 개최되었다.
* [[7월 9일]] - 서독 국대가 1990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꺾어 우승하였다. 이는 독일 통일을 앞두고 국민들에게 큰 선물을 제공한 것으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았다.
* [[7월 10일]]
* 한국전기통신공사는 일본, 홍콩을 경유하는 'H-J-K 해저광케이블'을 개통하였다.
* 한국정신대연구소가 발족되었다.
* [[7월 11일]] - 정부는 팔당, 대청호 주변 54개 읍면을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으로 선포하였다.
* [[7월 16일]] - 정부는 교육세의 연구세 전환, 상속세/증여세 시효 10년 연장 등을 골자로 한 '세제개편안'을 마련하였다.
* [[7월 18일]] - 해위 [[윤보선]]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떴다.
* [[7월 19일]] - '서울지역대학생문예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20일]]
* 노태우 대통령은 8월 17일을 '민족대교류기간'으로 선포하고 남북한의 자유왕래 및 개방을 북측에 제의하였다.
* 허담 북한 조평통위원장은 노태우 대통령의 남북한 자유왕래 허용과 관련해 거부성명을 냈다.
* [[7월 25일]] - 연형묵 북한 총리는 강영훈 총리에게 한국 정부의 3부장관 회담제의를 거부한다는 내용의 전화통지문을 보냈다
* [[7월 27일]]
* [[벨라루스]]가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 닌텐도는 <[[닥터 마리오]]>를 일본에 발매하였다.
* [[7월 30일]] - 소련-알바니아 양국이 30년만에 외교관계를 재개하였다.
==== 8월 ====
* [[8월 2일]]
* [[이라크군]]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괴뢰정부를 수립했다. 이는 [[걸프 전쟁]]의 발단이 되었다.
* 파하드 알 사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이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침공 중 사망했다.
* 미국 정부는 쿠웨이트 침공을 계기로 이라크에 대한 통상거래를 중단하였다.
* 유엔 안보리는 이라크군의 즉각적/무조건적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 [[8월 3일]]
* '범민족대회추진본부(이하 범추본)'가 결성되었다.
* 제3회 조선학 국제학술토론회가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되었다.
* 동-서독 양국은 통합수도를 베를린으로 하도록 합의하였다.
* [[8월 4일]]
* 전국 시/군/구청은 '8.15 민족대교류' 증명서를 발급하였다.
* 정부와 민자당은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하 5.18 보상법)'을 17일부터 시행키로 합의하였다.
* EC는 이라크산 원유 수입을 전면 중단하고 대 이라크 무기판매를 금지시켰다.
* [[8월 6일]]
* '5.18 보상법'이 제정되었다.
* 유엔 안보리는 전면적인 이라크 경제 제재조치를 승인하였다.
* [[8월 7일]]
* 보사부는 국내 에이즈 감염자 수가 100명(남 82, 여 18)이라고 발표하였다.
* 일본 정부는 노태우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7만 9천여 명의 한국인 강제연행자 명부를 발표하였다.
* [[8월 8일]]
* 소설가 황석영이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대표 자격으로 방북하였다.
* 이라크 정부는 쿠웨이트 합병을 선언했다.
* 미국 정부는 사우디에 군 병력을 파견한다고 발표하였다.
* 중국-인도네시아 양국이 국교를 재개하였다.
* [[8월 10일]] - 미-영-불-서독 4국은 미국 주도 하의 다국적군에 가담키로 합의하였다.
* [[8월 12일]] - 정부는 민족대교류기간 중 북한이 선별 초청한 전민련,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 특정 재야단체와 취재기자 방북 허용을 결정하였다.
* [[8월 13일]]
* 범추본은 연세대 신촌캠에서 '제1차 범민족대회 학술제'를 개최하였다.
* [[고르바초프]] [[소련]] [[러시아 대통령|대통령]]이 [[스탈린]] 독재정권기 때 숙청된 희생자 전원을 사면/복권했다.
* 다국적군은 이라크에 대한 해상봉쇄를 개시하였다.
* [[8월 14일]]
* 노태우 대통령이 제의한 '8.15 민족대교류'가 남북 양국의 지속적 이견으로 사실상 무산되었다.
* 범추본은 연세대 신촌캠에서 '제1차 범민족대회 통일문화제'를 개최하였다.
* [[8월 15일]]
* 범추본은 '제1차 범민족대회 범민족회의'를 개최키 위해 판문점 진입을 시도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었다.
* 한호흥업 작품 《[[날아라 슈퍼보드]]》가 KBS2에서 첫 전파를 탔다.
* [[8월 20일]] - '한국영화 주간행사'가 소련에서 개막되었다.
* [[8월 22일]] - 치안본부와 보안사는 지하 이념조직 '혁명적노동자계급투쟁동맹(이하 혁사노)'를 적발하여 박대호 등 관련자 8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혁명적노동자계급투쟁동맹 사건)
* [[8월 24일]] - 국무회의는 한글날 및 국군의날 공휴일 제외, 익일휴무제 폐지 등의 내용을 담은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의결하였다.
* [[8월 25일]] - 김옥길 전 문교장관이 세상을 떴다.
* [[8월 28일]] -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이 제1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 [[8월 31일]]
* 전/현직 방송인 모임 '여의도클럽'이 창설되었다.
* 일본 시민단체 '미쓰비시 관련 전후문제 대책회'가 2차대전을 전후해 일본에 강제징용된 2,351명의 한국인 명단을 히로시마 법무국에서 추가로 발견하였다.
* 동-서독 양국이 '독일 통일조약'을 체결하였다.
==== 9월 ====
* [[9월 1일]]
* 법무부는 가정파괴/성범죄 근절을 위해 '특수강간죄'를 신설하였다.
*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설립되었다.
* 대우엔지니어링이 대우그룹으로부터 독립해 사원지주회사로 전환하였다.
* [[영동고속도로 섬강교 버스추락사고|강원여객 소속 시외버스가 영동고속도로 섬강교 아래에 추락해 버스에 타고있던 29명중 4명만 생존하는 대형 참사가 났다]].
* [[9월 2일]] - 대법원은 1984년 망원동 수재 사건에 대해 '천재'가 아닌 '인재'임을 최종 확정하였다.
* [[9월 5일]]
* 연형묵 북한 총리는 유엔 단일의석 가입, 밀입북 인사 석방, 팀 스피릿 훈련 중지 등을 남한 정부에 제의하였다.
* 한국-잠비아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한국-호주 양국이 범죄인인도조약을 체결하였다.
* '[[전노협]]후원회'가 결성되었다.
* [[9월 6일]] - 노태우 대통령은 연형묵 북한 총리를 면담해 김일성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 [[9월 7일]] - 북한 대건~봉창~한령 간 전기철도가 개통되었다.
* [[9월 10일]] - [[이란]]과 [[이라크]]가 [[이란-이라크 전쟁|양국 간 전쟁]]으로 인해 단절된 [[외교]]관계를 복구했다.
* [[9월 12일]]
* 서울과 경기 등 중부지역에서 집중호우가 발생해 [[경기도]] [[고양군]] [[행주대교]] 부근 [[한강]] 제방이 붕괴되고[* 무너진 제방을 복구하고 그 위에 도로를 건설하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자유로(경기도)|자유로]]다.] 83개 마을이 전부 침수되어 5만여 명의 주민이 대피했다.
* 중앙재난대책본부는 중부지역 집중호우로 사망자 127명, 실종자 30명, 이재민 18만 7천여 명, 재산피해 5,200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발표하였다.
* [[9월 14일]] - 이라크군이 쿠웨이트 주재 벨기에, 프랑스, 캐나다, 네덜란드 대사관 등지에 난입했다.
* [[9월 15일]] - 범민련 유럽지역본부가 결성되었다.
* [[9월 19일]]
* 북한측은 범민족통일음악회에 황병기 교수 등 남한 음악인 17명을 초청하였다.
* IOC는 중국 베이징 총회에서 프로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를 허용키로 결정하였다.
* [[9월 20일]] - 전국 대학가에서 반민자당 투쟁 선포식이 개최되었다.
* [[9월 21일]] - 녹십자가 세계 최초로 유행성출혈열 예방 백신 개발에 성공하였다.
* [[9월 22일]]
*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 개막식이 공인체육장에서 개최되었다.
* 남북한 양국은 베이징 체육대표자 실무회담에서 공동응원에 합의하였다.
* [[9월 25일]] -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제1회 서울평화상을 수상하였다.
* [[9월 26일]] - 대법원은 문규현 신부와 임수경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대로 징역 5년 및 자격정지 5년을 확정하였다.
* [[9월 28일]]: 서울 용산 구 육본 터에 [[전쟁기념관]]이 착공되었다.
* [[9월 29일]]
* [[장충식]] 남측 선수단장과 김형진 북측 체육지도위 부위원장은 체육회담에서 남녀통일축구대회를 10월 11일 평양, 13일 서울에서 각각 개최키로 합의하였다.
*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가 설립되었다.
* [[9월 30일]] - 육상선수 [[김원탁]]이 베이징 아시안게임 남자 마라톤에서 2시간 12분 56초로 금메달을 땄다.
==== 10월 ====
* [[10월 1일]]
* [[최호중]] 외무장관과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회담에서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 후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한-소 수교)
* 국군합동참모본부가 창설되었다.
* '''[[10월 3일]] - 동-서독 양국 총리는 양측 통합과 통일독일 출범을 선포하였다.([[동서독 통일|독일통일]])'''
* [[10월 4일]]
* 보안사 소속 윤석양 이병은 보안사 측이 재야 저명인사 1천 3백여 명의 명단을 보유하고 있다고 폭로하였다.'''([[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
* 한국-베냉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10월 7일]]
*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 폐막식이 중국 공인체육장에서 개최되었다.
* 한국 선수단이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종합 2위를 차지하였다.
* 범민련 일본지역본부가 결성되었다.
* [[10월 8일]] - 산악인 복진영, 김재수, 박창우 등을 주축으로 한 한국 등반대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산' 등정에 성공하였다.
* [[10월 9일]]
* [[이찬진]] 등 서울대 시절 선후배 4명이 '[[한글과컴퓨터]]'를 창립하였다.
* 대전 구성동에 '국립중앙과학관'이 문을 열었다.
* [[10월 10일]] - 미국 뉴욕에 '남북한영화제'가 개막되었다.
* [[10월 11일]]
* 북한 평양에서 남북통일축구대회 1차전이 개최되었다. 이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은 북한에 2-1로 패했다.
* 한국 국대 감독인 이회택이 경기 도중 40년 만에 잃어버린 부친을 만났다.
* [[10월 12일]]
* 정동성 체육장관과 김유순 북한 조선올림픽위원장이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에 합의하였다.
* 한국전기통신공사는 전국 전화가 1천 5백만 회선을 넘었다고 발표하였다.
* [[10월 13일]] - [[노태우]] 대통령은 공동체 질서를 파괴하는 범죄 및 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였다([[10.13 특별선언]]).
* [[10월 14일]] - 서울전통예술단원 14명과 기자 3명이 범민족통일음악회 참가를 위해 판문점을 거쳐 북한 평양에 도착하였다.
* [[10월 15일]] -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 [[10월 16일]]
*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 한국측 대표단이 북한 평양에 도착하였다.
* 제2차 북한 남극탐험대가 남극으로 출발했다.
* [[10월 17일]] -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이 북한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개최되었다.
* [[10월 18일]]
* '범민족통일음악회'가 북한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 산림청은 1991년 1월 1일을 기해 전국 모든 산에서 취사행위를 금지시킨다고 밝혔다.
* [[10월 21일]] - 북한측 선수단이 서울 남북통일축구대회 참가를 위해 판문점을 거쳐 서울에 도착하였다.
* [[10월 24일]]
* 유진음악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 [[북한]] [[평양]] 만류대구역에 '조선콤퓨터쎈터'가 세워졌다.
* [[10월 25일]] - 이리 디엔스트비에르 체코슬로바키아 부총리 겸 외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 [[10월 26일]] - 국립전주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 [[10월 27일]] - 국어정보학회가 설립되었다.
* [[10월 28일]]
* 프로야구팀 [[LG 트윈스]]가 [[삼성 라이온즈]]를 4연승으로 제압하고 [[1990년 한국시리즈|창단 첫 해에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 EC는 2000년까지 통화통합 및 단일화폐 사용 등의 실시에 원칙적으로 합의하였다.
* [[10월 30일]]
* '90 서울국제무역박람회가 삼성동 코엑스 종합전시장에서 개최되었다.
* 안기부 제1차장 김영수는 TV 기자회견에서 [[사노맹]] 관련자 40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 [[채널 터널|영국~유럽 간 해저터널]]이 관통되었다.
* [[10월 31일]] - 정부는 [[SBS|채널 6의 신규 민영방송사업자로 태영]]을 선정하였다.
==== 11월 ====
* [[11월 1일]]
* 경북 포항 괴동동에 국내 최초의 [[축구전용구장]] '[[포항 스틸야드]]'가 준공되었다.
* 제1회 세계복식컵탁구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국군통신사령부가 창설되었다.
* 대중가수 김현식이 간경화로 세상을 떴다.
* [[11월 2일]] - 과기처는 충남 태안군 안면읍 일대에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 [[11월 4일]]
* 케텔 진보통신운동단체 '바른 통신을 위한 모임'이 결성되었다.
* 북한-일본 양국이 국교정상화 예비회담을 개최하였다.
* [[11월 5일]]
*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개정에 따라 [[국군의 날]]과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 충남 태안군 안면도 주민들이 핵폐기장 건설계획 백지화를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11월 6일]] - EC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안을 채택하였다.
* [[11월 7일]] - 보리사브 요비치 유고 대통령이 동구권 국가원수로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하였다.
* [[11월 8일]] - 신규 민영방송사 31개사 지배주주들은 방송사 명칭을 '서울방송'으로 확정하였다.
* [[11월 10일]] - 진보개혁정당 '[[민중당(1990년)|민중당]]'이 창당되었다.
* [[11월 11일]] - 대전지검 서산지청은 안면도 핵폐기장 설치반대 시위 주동자 7명을 구속했다.
* [[11월 12일]] - 아키히토 일본 덴노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 [[11월 14일]] - 태영계열 민영방송사인 [[서울방송]]이 설립되었다. 이는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민영방송의 부활이었다.
* [[11월 16일]]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가 결성되었다.
*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이 제작한 <[[나홀로 집에]]>가 미국 전역에서 개봉되었다.
* [[11월 17일]] - 한국도로공사는 제2경인고속도로 건설계획을 발표하였다.
* [[11월 20일]]
* 치안본부는 '민중민주주의노동자동맹 사건'을 발표하며 김진철 등 8명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 이날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 통일기구 결성 3자 실무회담'에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의 결성을 공식화했다.
* [[마이클 크라이튼]]이 쓴 SF소설 <[[쥬라기 공원]]>이 미국 전역에 출간되었다.
* [[11월 21일]]
* 건설부는 수도권 외곽순환고속도로 건설 계획을 발표하였다.
* [[닌텐도]]는 [[슈퍼패미컴]]과 《[[슈퍼 마리오 월드]]》를 일본에 발매하였다.
* [[11월 22일]] -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가 사임했다.
* [[11월 23일]] -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소련 카자흐공화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 [[11월 24일]] - 종전의 전국산업재해노동자연맹과 산업재해노동자회가 통합하여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로 출범하였다.
* [[11월 25일]] - 국민연합은 '노태우 퇴진 90 민중대회'를 개최하였다.
* [[11월 26일]] - 정부와 민자당은 치안본부의 내무부 외청 독립을 위해 '경찰법 개정안'을 확정하였다.
* [[11월 27일]] - 북한-앤티가바부다 양국이 수교를 맺었다.
* [[11월 29일]] - 유엔 안보리는 이라크군이 [[1991년]] [[1월 15일]]까지 [[쿠웨이트]]에서 철군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 [[11월 30일]] - 치안본부는 독일 베를린에서 범민련 결성회의에 참석하고 귀국한 조용술 목사, 이해학 목사, 이창복, 조성우, 김희택 등 5명을 국보법 위반혐의로 구속하였다.
==== 12월 ====
* [[12월 2일]] - [[1932년]] 이후 통일 [[독일]]의 첫 전국 총선거에서 헬무트 콜의 기민-기사 연합이 승리했다.
* [[12월 3일]] - '대우그룹노동조합협의회(이하 대노협)'가 발족되었다.
* [[12월 7일]] - 주 필리핀 소련대사 올레그 소콜로프가 초대 주한 소련대사로 부임하였다.
* [[12월 9일]]
* ‘연대를 위한 대기업 노동조합 회의'가 결성되었다.
*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새 유고연방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 [[폴란드]] 자유 대통령 선거 2차 투표에서 바웬사 자유노조 지도자가 압승했다.
* [[12월 12일]]
* 인권변호사 조영래가 암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 공군 소속 UH-1H 헬기가 응급환자를 구조하기 위해 [[전라북도]] [[부안군]] 하왕등도로 향하다가 기상악화로 서해상에 추락하여 공군장병 6명이 순직하고, 구조를 기다리던 응급환자는 복통에 시달리다가 결국 사망했다. ([[공군 구조헬기 서해상 추락 사고]])
* [[12월 13일]] - 노태우 대통령이 소련을 방문하였다.
* [[12월 15일]] - 국회 본회의는 지방자치 관련 3개법안을 여야 합의로 의결하였다.
* [[12월 16일]] - 범민련 해외본부가 결성되었다.
* [[12월 20일]]
* 통일 독일의회가 베를린 라이히스타크에서 개원되었다.
*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세계 최초로 [[월드 와이드 웹]] 기반의 홈페이지를 내부망에 개설하였다.
* [[12월 21일]] - 한국전기연구소가 국내 최초로 자기부상열차를 개발하였다.
* [[12월 26일]]
* 안기부는 지하 이념조직 '자주민주통일그룹(이하 자민통)'을 적발하여 [[송갑석]] 전대협 의장과 최원극 등 관련자 31명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자주민주통일그룹 사건)
* 서울예술단이 설립되었다.
* [[12월 27일]]
* 정부는 1991년 1월부터 문교부를 교육부로 이름을 바꾼다고 발표하였다.
* 정부는 보안사를 기무사로 명칭을 바꾼다고 확정하였다.
* 교육방송 제작 업무가 [[KBS]]에서 [[한국교육개발원]]으로 이관되면서 [[KBS 3TV]]의 후신인 [[한국교육방송공사|EBS 교육방송]]이 개국하였다.
* [[12월 28일]] - 중앙기상대가 과기처에서 독립해 '기상청'으로 발족되었다.
* [[12월 30일]] -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은둔 769일만에 백담사에서 하산하였다.
=== 가상 ===
*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의 배경연도.[* 류의 생년인 [[1964년]]을 기준으로 역산한 것. 각 캐릭터들의 공개된 나이와 생년월일로 보아 1탄의 배경연도가 1987년, 2탄의 배경연도가 1991~1994년일 때 [[스트리트 파이터 2|1탄]]과 [[스트리트 파이터 2|2탄]] 사이의 [[평행우주]]로 볼 수 있다.]
* [[응답하라 1988]]의 3년차 배경연도. [[1988년]]부터 이 해까지 3년 동안의 시간이 주요 배경이 된다.
* [[해리 포터: 호그와트 미스테리]]의 7학년 배경연도. [[1984년]]부터 7학년 시점인 이 해까지 이어진다.
* 1차 기업 전쟁이 벌어진다. - [[사이버펑크 2020]], [[사이버펑크 2077]]
* 멀린-1에서 [[베를린 장벽]]이 문자 그대로 '''소멸'''되었다. - [[겁스 무한세계]]
* 브레이젤이 제자들과 함께 인페르시아와 전쟁을 치른다. - [[마법전대 마지렌쟈]]
== 탄생 ==
=== 실존인물 ===
* [[1월 1일]] - [[안소미]]: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1월 3일]] - [[정지우(1990)]]: [[대한민국]]의 [[유튜버]]
* [[1월 4일]] - [[토니 크로스]]: [[독일]]의 [[축구 선수]]
* [[1월 5일]] - [[양요섭]]: 한국 아이돌 그룹 [[하이라이트(아이돌)|하이라이트]]의 멤버
* [[1월 8일]]
* [[감스트]]: [[아프리카TV]] 종합 콘텐츠, [[피파온라인3]] [[BJ]]
* [[고장혁]]: 한국 [[KIA 타이거즈]] 소속의 야구 선수
* [[스에가라 리에]]: [[일본]]의 [[성우]]
* [[1월 9일]]
* [[손지현]]: [[한국]]의 배우, 한국의 아이돌 그룹 [[4minute]]의 멤버
* [[박세혁]]: 한국 [[두산 베어스]] 소속의 야구 선수
* [[이제동]]: 한국의 [[프로게이머]]
* [[1월 14일]] - [[아오키 시키]]: [[일본]]의 [[성우]], [[배우]]
* [[1월 17일]] - [[장성우]]: 한국 [[kt wiz]] 소속의 야구 선수
* [[1월 18일]] - [[나초 페르난데스]]: [[스페인]]의 축구 선수
* [[1월 24일]] - [[김민석(배우)]]: [[한국]]의 배우
* [[1월 25일]]
* [[여은]]: 한국 아이돌 그룹 [[멜로디데이]]의 멤버
* [[준호(2PM)]]: 한국 아이돌 그룹 [[2PM]]의 멤버
* [[1월 26일]] - [[정찬헌]]: 한국 [[LG 트윈스]] 소속의 야구 선수
* [[1월 30일]] - [[윤보라]]: 한국 아이돌 그룹 [[씨스타]]의 멤버
* [[1월 31일]]- [[야부 코타]]: 일본 아이돌 그룹 [[Hey! Say! JUMP]]의 멤버
* [[1월 31일]]- [[김보민(성우)|김보민]]: EBS 공채 25기 성우
* [[2월 2일]]
* [[홍종현]] - [[대한민국]]의 [[배우]]
* [[정하나(시크릿)|정하나]]: [[대한민국]]의 [[래퍼]], 한국 아이돌 그룹 [[시크릿(아이돌)|시크릿]]의 멤버[* 징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다시 본명으로 복귀]
* [[김정록(야구선수)|김정록]]: 한국의 前 야구 선수
* [[2월 3일]] - [[코하라 리코]]: [[일본]]의 [[성우]] 및 [[기타리스트]]
* [[2월 4일]] - [[토마츠 하루카]]: [[일본]]의 [[성우]] 및 [[가수]]
* [[2월 6일]] - [[채은성]]: 한국 [[LG 트윈스]] 소속의 야구 선수
* [[2월 8일]]
* [[세영(크로스진)|세영]]: 한국 아이돌 그룹 [[크로스진]]의 멤버
* [[백진희]]: [[대한민국]]의 [[배우]]
* [[2월 9일]]
* [[신상호(프로게이머)|신상호]]: [[대한민국]]의 [[프로게이머]]
* [[최낙타]]: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 [[2월 10일]] - [[수영(소녀시대)|수영]]: 한국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 [[2월 11일]]
* [[고아라]]: [[대한민국]]의 [[배우]]
* [[여의주]]: [[대한민국]]의 前 [[프로게이머]]
* [[찬성(2PM)]]: 한국 아이돌 그룹 [[2PM]]의 멤버
* [[2월 12일]] - [[박보영]]: [[한국]]의 배우
* [[2월 13일]]
* [[윤석영]]: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박지수(프로게이머)|박지수]]: [[대한민국]]의 前 프로게이머
* [[홍상삼]]: 한국 [[기아 타이거즈]] 소속의 야구 선수
* [[2월 15일]]
* [[노진용]]: 한국의 前 야구 선수
* [[코이와이 코토리]]: [[일본]]의 [[성우]]
* [[2월 16일]]
* [[더 위켄드]]: [[캐나다]]의 가수
* [[강장산]]: 한국 [[kt wiz]] 소속의 야구 선수
* [[2월 17일]] - [[허정협]]: 한국 [[키움 히어로즈]] 소속의 야구 선수
* [[2월 18일]]
* [[박신혜]]: 한국의 배우
* [[강소라]]: 한국의 배우
* [[2월 19일]] - [[이엘리야]]: 한국의 배우
* [[2월 20일]] - [[치로 임모빌레]]: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2월 21일]]
* [[강하늘]]: [[한국]]의 [[배우]]
* [[웰링톤 시리누 프리오리]]: [[브라질]] 출신의 축구선수
* [[2월 22일]] - [[윤수강|윤여운]]: 한국 [[NC 다이노스]] 소속의 야구 선수
* [[2월 24일]] - [[박해민]]: 한국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야구 선수
* [[2월 25일]] - [[김희석]]: 한국의 前 야구 선수
* [[2월 27일]]
* [[김영권]]: [[감바 오사카]] 소속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이승석]]: [[한국]]의 프로게이머
* [[마르타 토레혼]]: 스페인의 축구선수
* [[2월 28일]] - [[제바스티안 루디]]: [[독일]]의 축구 선수
* [[3월 2일]]
* [[승냥이(유튜버)|승냥이]] : [[한국]]의 유튜버, 범죄자
* [[이홍기|이홍기]]: [[한국]]의 가수, 밴드 [[FT아일랜드]]의 멤버
* [[3월 5일]] - [[대니 드링크워터]]: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3월 6일]] - [[박초아]]: [[한국]]의 가수, 한국 아이돌 그룹 [[AOA(아이돌)|AOA]]의 前 멤버
* [[3월 7일]] - [[최종훈(1990)|최종훈]]: [[한국]]의 가수, 범죄자, 밴드 [[FT아일랜드]]의 '''前''' 멤버
* [[3월 8일]] - [[아시에르 이야라멘디]]: [[스페인]]의 축구 선수
* [[3월 9일]]
* [[정연주(배우)|정연주]]: 한국의 [[영화배우]]
* [[데일리 블린트]]: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 [[3월 12일]] - [[오지환]]: 한국 [[LG 트윈스]] 소속의 야구 선수
* [[3월 14일]] - [[요한 루세시]]: [[스웨덴]]의 [[프로게이머]]
* [[3월 17일]] - [[타마모리 유타]]: 일본 아이돌 그룹 [[Kis-My-Ft2]]의 멤버
* [[3월 19일]] - [[장민재]]: 한국 [[한화 이글스]] 소속의 야구 선수
* [[3월 20일]]
* [[정경은]]: 한국의 [[배드민턴]] 선수
* [[마르코스 로호]]: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3월 21일]]
* [[앨리스(헬로비너스)|앨리스]]: 한국 아이돌그룹 [[헬로비너스]]의 멤버
* 보로콤: [[한국]]의 [[웹툰 작가]]
* [[3월 23일]]
* [[김상수(타자)|김상수]]: 한국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야구 선수
* [[유제니 빅토리아 헬레나]]: [[영국]]의 공주
* [[3월 24일]] - [[아오키 루리코]]: [[일본]]의 [[성우]]
* [[3월 26일]]
* 강동호 : 한국의 前 야구 선수
* [[시우민]]: 한국 아이돌 그룹 [[EXO]] [[EXO-M]] [[EXO-CBX]]의 멤버
* [[오하늬]]: 한국의 배우
* [[타카키 유야]]: 일본 아이돌 그룹 [[Hey! Say! JUMP]]의 멤버
* [[3월 28일]] -
* [[Dok2]]: [[한국]]의 힙합 래퍼
* [[이재호(프로게이머)|이재호]]: 한국의 프로게이머
* [[미카일 안토니오]]: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3월 29일]] - [[염보성]]: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前프로게이머. 現인터넷 방송인.
* [[3월 30일]]
* [[이기광]]: 한국 아이돌그룹 [[하이라이트(아이돌)|하이라이트]]의 멤버
* [[이성민(야구선수)|이성민]]: 한국의 前 야구 선수
* [[3월 31일]]
* [[방용국]]: [[한국]]의 [[래퍼]], 그룹 [[B.A.P]]의 멤버
* [[우병걸]]: 한국의 前 야구 선수
* [[4월 1일]] - [[정수민]]: 한국 [[NC 다이노스]] 소속의 야구 선수
* [[4월 2일]]
* [[엘린(크레용팝)|엘린]]: 前 [[크레용팝]]의 멤버. 現 [[아프리카TV]] [[BJ]]
* [[예브게니야 카나예바]]: [[러시아]]의 [[리듬체조]] 선수
* [[미랄렘 퍄니치]]: [[보스니아]]의 축구 선수
*[[소야(가수)]]: [[대한민국]]의 [[가수]]
* [[4월 3일]] - [[사리 판페이넨달]]: [[네덜란드]]의 축구선수
* [[4월 5일]]
* [[김정현(1990)|김정현]]: 한국의 배우
* [[미우라 하루마]]: 일본의 배우
* [[4월 6일]] - [[심문규]]: 한국의 [[코미디언]]
* [[4월 6일]]-[[서예지]]: 한국의 배우
* [[4월 7일]] - [[박동원]]: 한국 [[키움 히어로즈]] 소속의 야구 선수
* [[4월 8일]]
* [[나가쿠 유키]]: 일본의 성우.
* [[종현]]: 한국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
* [[chuggaaconroy]]: 유튜브 스타
* [[4월 9일]] - [[크리스틴 스튜어트]]: [[미국]]의 배우
* [[4월 10일]] - [[룰리냐]]: [[브라질]]의 [[축구선수]]
* [[4월 14일]]
* [[아리안나 폰타나]]: [[이탈리아]]의 [[쇼트트랙]] 선수
* [[정윤혜]]: 한국 아이돌 그룹 [[레인보우(아이돌)|레인보우]]의 멤버
* [[4월 15일]]
*[[엠마 왓슨]]: [[영국]]의 배우
*[[유소나]]: 대한민국 인터넷 방송인. 본명 유민서.
* [[4월 18일]] - [[보이치에흐 슈체스니]]: [[폴란드]]의 축구 선수
* [[4월 19일]]
* [[임수향]]: 대한민국의 배우
* [[힘찬]]: 한국 아이돌 그룹 [[B.A.P]]의 멤버
* [[4월 20일]]
* [[루한]]: [[중국]]의 가수 겸 배우이자 한국의 아이돌 그룹 [[EXO]]의 前 멤버
* [[오수호]]: 한국의 前 야구 선수
* [[4월 21일]] - [[샘 오취리]]: [[가나 공화국|가나]] 출신 [[한국]]의 [[방송인]]
* [[4월 23일]] - [[향이]]: 대한민국 인터넷 방송인. 본명 이유현.
* [[4월 24일]] - [[김태리]]: [[한국]]의 배우
* [[4월 25일]] - [[새미 라샤드]]: [[비정상회담]] 출연자
* [[4월 26일]] - [[김유미(1990)|김유미]]: 한국의 배우, 2012 미스코리아 진
* [[4월 29일]] - [[깡시]]: [[양띵]]의 남자친구이자 한국의 방송인
* [[5월 1일]] - [[강지혜]]: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 [[5월 2일]] - [[아이하라 코토미]]: [[일본]]의 [[성우]]
* [[5월 5일]] - [[송지은]]: 한국 아이돌 그룹 [[시크릿(아이돌)|시크릿]]의 멤버
* [[5월 7일]] - [[윤빛가람]]: [[한국]]의 축구 선수
* [[5월 10일]]
* [[카타야마 하루카]]: 일본의 가수
* [[살바도르 페레스]]: 미국의 야구선수
* [[5월 11일]] - [[우태운]]: 한국의 가수
* [[5월 14일]] - [[장영석]]: 한국 [[KIA 타이거즈]] 소속의 야구 선수
* [[5월 15일]] - [[이종현(가수)|이종현]]: [[한국]]의 기타리스트, 밴드 [[씨엔블루]]의 멤버
* [[5월 16일]] - [[토마스 브로디 생스터]]: [[영국]]의 배우
* [[5월 17일]] - [[알렉스 맞추켈리]]
* [[5월 18일]] - [[허가윤]]: 한국 아이돌 그룹 [[포미닛]]의 멤버
* [[5월 19일]] - [[김태훈(1990)|김태훈]]: 한국 [[SK 와이번스]] 소속의 야구 선수
* [[5월 20일]] - [[문선재]]: 한국 [[KIA 타이거즈]] 소속의 야구 선수
* [[5월 25일]] - 연다빈: 한국의 레이싱모델
* [[5월 26일]]
* [[김예하]]: 한국의 레이싱모델
* [[김향리]]: 재일교포 출신이자, [[일본]]의 성우
* [[5월 27일]]
* [[손석희(프로게이머)|손석희]]: [[대한민국]]의 프로게이머
* [[요나스 헥토어]]: [[독일]]의 [[축구 선수]]
* [[5월 28일]]
* [[류세미]]: 한국의 [[치어리더]]
* [[카일 워커]]: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5월 30일]] - [[윤아(소녀시대)|윤아]]: 한국 아이돌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 [[6월 1일]] - [[무라카와 리에]]: [[일본]]의 성우
* [[6월 2일]]
* [[황민경]]: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 [[잭 로던]]: 영국의 배우
* [[6월 3일]] - [[한지은(배우)|한지은]]: 한국의 배우
* [[6월 4일]] - [[전인환]]: 한국의 前 야구 선수
* [[6월 5일]] - [[차주영]]: 대한민국의 배우
* [[6월 7일]] - [[김진형(야구선수)|김진형]]: 한국 [[NC 다이노스]] 소속의 야구 선수
* [[6월 9일]] - [[조승수(야구선수)|조승수]] - 한국의 前 야구 선수
* [[6월 11일]] - [[고경표]]: [[대한민국]]의 배우
* [[6월 12일]] - [[구승민]]: 한국 [[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야구 선수
* [[6월 13일]] - [[박소라(코미디언)|박소라]]: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 [[6월 15일]] - [[리부]]: [[일본]]의 [[우타이테]]
* [[6월 17일]] - [[조던 헨더슨]]: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6월 18일]] - [[제레미 어바인]]: [[영국]]의 [[배우]]
* [[6월 19일]]
* [[주긴완]]: 한국의 前 농구 선수
* [[마츠바라 나츠미]]: 일본 아이돌 그룹 [[AKB48]]의 멤버
* [[6월 21일]]
* [[유승옥]]: [[대한민국]]의 모델
* [[고성희]]: [[대한민국]]의 배우
* [[숀 칩록]]: 미국의 성우
* [[제황]]: 대한민국 카트라이더 스트리머이자 유튜버
* [[에스테파니아 바니니]]: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6월 22일]] - [[이노오 케이]]: 일본 아이돌 그룹 [[Hey! Say! JUMP]]의 멤버
* [[6월 23일]]
* [[고원준]]: 한국의 前 야구 선수
* [[임지연]]: [[한국]]의 배우
* [[6월 24일]] - [[성영훈]]: 한국의 前 야구 선수
* [[6월 26일]] - [[미즈마 토모미]]: [[일본]]의 성우
* [[6월 29일]] - [[키무라 스바루]]: [[일본]]의 [[성우]]
* [[6월 30일]] - [[엔(빅스)|N]]: 한국 아이돌 그룹 [[빅스]]의 멤버
* [[7월 1일]] - [[사토 나츠키]]: [[일본]]의 네일리스트
* [[7월 2일]]
* [[안치홍]]: 한국 [[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야구 선수
* [[마고 로비]]: [[호주]] 출신 [[여배우]]
* [[대니 로즈]]: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7월 3일]] - [[이태양]]: 한국 [[한화 이글스]] 소속의 야구 선수
* [[7월 4일]] - [[김윤중(프로게이머)|김윤중]]: [[한국]]의 [[프로게이머]]
* [[7월 5일]] - [[경리(나인뮤지스)|경리]]: 한국 아이돌그룹 [[나인뮤지스]]의 멤버
* [[7월 6일]] - [[정용운]]: 한국 [[LG 트윈스]] 소속의 야구 선수
* [[7월 7일]]
* [[정준환]]: [[대한민국]]의 배우
* [[한지성(배우)|한지성]](~[[2019년]]): 한국의 배우
* [[7월 8일]] - [[케빈 트랍]]: [[독일]]의 축구 선수
* [[7월 10일]]
* [[강윤구]]: 한국 [[NC 다이노스]] 소속의 야구 선수
* [[성준(배우)]]: [[한국]]의 [[배우]]
* [[7월 12일]]
* [[노지훈]]: 한국의 [[가수]]
* [[베베(축구선수)]]: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 [[초아(크레용팝)|초아]], [[웨이(크레용팝)|웨이]]: 한국 아이돌 그룹 [[크레용팝]]의 멤버
* [[7월 13일]]
* [[다리오 뷘시]]: [[독일]]의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TLO'
* [[최천주]]: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Acorn'
* [[7월 14일]]
* 엄지아: 한국의 레이싱모델
* [[장예원]]: [[한국]]의 방송인
* [[7월 15일]] - [[신재욱]]: [[한국]]의 프로게이머
* [[7월 17일]] - [[J.R. 셀스키]]: [[미국]]의 [[쇼트트랙]] 선수
* [[7월 18일]]
* [[김지숙]]: [[한국]]의 가수, 걸그룹 [[레인보우(아이돌)|레인보우]]의 멤버
* [[로빈 데이아나]]: [[모델]] 출신 [[방송인]], [[비정상회담]] 출연자
* [[김봉진]]: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7월 21일]] - [[PD대정령]]: [[아프리카TV]]의 게임 방송 전문 [[BJ]]
* [[7월 23일]] - [[윤세현]]: 대한민국의 배우
* [[7월 24일]]
* [[대니 리]]: [[한국]]출신의 [[뉴질랜드]] [[골프]] 선수, 한국 이름 [[이진명]]
* [[김동엽(1990)|김동엽]] : 한국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야구 선수
* [[서리(인터넷 방송인)]]: 대한민국 인터넷 방송인. 본명 주예슬.
*[[7월 25일]] - [[이향]]: 한국의 아나운서
* [[7월 26일]] - [[마일로#s-5|마일로]]: [[한국]]의 [[웹툰작가]]
* [[7월 27일]] - [[아이다 아스카]]: [[일본]]의 [[AV 여배우]]
* [[7월 29일]] - [[신세경]]: [[한국]]의 배우
* [[7월 30일]]
* [[최재원(야구선수)|최재원]]: 한국 [[LG 트윈스]] 소속의 야구 선수
* 서지희: 한국의 배우
* [[8월 3일]] - [[강민경]]: [[한국]]의 가수, [[다비치]]의 멤버
* [[8월 6일]]
* [[니카이도 타카시]]: 일본 아이돌 그룹 [[Kis-My-Ft2]]의 멤버
* [[노수광]]: 한국 [[한화 이글스]] 소속의 야구 선수
* [[8월 9일]] - [[강별]]: 한국의 배우
* [[8월 10일]]
* [[루카스 틸]]: [[미국]]의 배우
* [[이성경]]: [[한국]]의 [[배우]], [[모델]]
* [[조정원]]: 한국의 前 야구 선수
* [[8월 12일]]
* [[마리오 발로텔리]]: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위삼 벤 예데르]]: [[프랑스]]의 축구 선수
* [[8월 13일]] - [[미야자와 사에]]: [[일본]]의 아이돌
* [[8월 14일]]
* [[안드레아스 바르사코풀로스]]: [[비정상회담]] 출연자
* [[아오이 츠카사]]: 일본의 AV 여배우
* [[8월 15일]] - [[제니퍼 로렌스]]: [[미국]]의 배우
* [[8월 16일]] - [[우치야마 코우키]]: [[일본]]의 성우
* [[8월 17일]] - [[신미래]]: [[한국]]의 [[가수]]
* [[8월 21일]]
* [[양띵]]: 한국의 인터넷 방송인
* [[아이카와 나츠키]]: [[일본]]의 성우
* [[8월 26일]] - [[허경민]]: 한국 [[두산 베어스]] 소속의 야구 선수
* [[8월 28일]] - [[보얀 크르키치]]: [[스페인]]의 축구 선수
* [[8월 29일]] - [[케빈 오]]: 한국계 미국인 가수이자 [[슈퍼스타K7]]의 우승자.
* [[8월 30일]] - [[진영화]]: [[한국]]의 프로게이머
* [[9월 1일]] - [[킴성태]]: 대한민국 인터넷 방송인. 본명 김성태.
* [[9월 4일]]
* [[Mckdaddy]]: [[대한민국]]의 래퍼
* [[9월 5일]]
* [[고무열]]: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 [[김연아]]: [[대한민국]]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 [[아이사카 유카]]: [[일본]]의 [[성우]]
* [[아카틴]]: [[일본]]의 [[우타이테]]
* 도아: [[아프리카TV]]의 [[BJ]]
* [[9월 6일]] - [[하민우]]: [[한국]]의 가수, 그룹 [[제국의 아이들]]의 멤버
* [[9월 8일]] - [[박건우(1990)|박건우]]: 한국 [[두산 베어스]] 소속의 야구 선수
* [[9월 9일]] - [[오덕페이트]]: [[한국]]의 [[오타쿠]]
* [[9월 11일]] - [[한국]]의 [[유튜버]] [[짱구대디]]
* [[9월 12일]]
* [[민영(브레이브걸스)|민영]]: 한국 아이돌 그룹 [[브레이브걸스]] 멤버
*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 한국의 前 야구 선수
* [[9월 14일]]
* [[박신영(방송인)|박신영]]: [[한국]]의 [[방송인]]
* [[더글라스 코스타]]: [[브라질]]의 축구 선수
* [[9월 15일]]
* [[밴쯔]]: 먹방 전문 유튜버
* [[모리야 아야코]]: [[일본]]의 前 황족
* [[9월 16일]]
* [[세리(달샤벳)|세리]]: 한국 아이돌 그룹 [[달샤벳]]의 멤버
* [[김재윤]]: 한국 [[kt wiz]] 소속의 야구 선수
* [[9월 17일]] - [[홍철]]: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 [[9월 18일]] - [[야마다 유우키]]: 일본의 배우
* [[9월 19일]]
* [[김용녀]]: 트위치 스트리머 겸 유튜버
* [[키어런 트리피어]]: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9월 21일]]: [[고미호]]: 러시아 출신 방송인
* [[9월 24일]] - [[태일]]: 한국 아이돌 그룹 [[블락비]]의 멤버
* [[9월 25일]] - [[아사다 마오]]: [[일본]]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 [[9월 29일]] - [[사쿠라 카오루]]: [[일본]]의 성우
* [[9월 30일]]
* [[허준혁(1990)|허준혁]]: 한국 [[두산 베어스]] 소속의 야구 선수
* [[마츠시타 사에코]]: [[일본]]의 [[AV배우]]
* [[김승규]]: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 [[10월 4일]] - [[이재학]]: 한국 [[NC 다이노스]] 소속의 야구 선수
* [[10월 5일]] - [[알리 마브쿠트]] [[아랍에미리트]]의 축구선수
* [[10월 6일]] - [[한선화]]: 한국 아이돌 걸그룹 [[시크릿(아이돌)|시크릿]]의 멤버
* [[10월 7일]]
* [[정수빈]]: 한국 [[두산 베어스]] 소속의 야구 선수
* [[천둥(가수)|천둥]]: 한국 아이돌 그룹 [[엠블랙]]의 前 멤버
* [[10월 8일]] - [[윤진솔|박세미]]: 한국의 가수, 걸그룹 [[쥬얼리]]의 멤버
* [[10월 9일]] - [[양종민]]: 한국 [[LG 트윈스]] 소속의 야구 선수
* [[10월 10일]] - [[하연수]]: 한국의 배우
* [[10월 11일]]
* [[JOO]]: 한국의 가수
* [[제바스티안 로데]]: [[독일]]의 축구 선수
* [[10월 13일]] - [[정주현]]: 한국 [[LG 트윈스]] 소속의 야구 선수
* [[10월 15일]]
* [[미즈하라 키코]] 일본의 [[모델]]: 및 배우
* [[전지윤]] [[한국]]의 가수, 걸그룹: [[4minute]]의 멤버
* [[10월 16일]] - [[사토 아미나]]: [[일본]]의 성우, 그룹 [[AKB48]]의 前 멤버
* [[10월 18일]] - [[김구현]]: [[한국]]의 [[프로게이머]]
* [[10월 19일]] - [[신성현]]: 한국 [[두산 베어스]] 소속의 야구 선수
* [[10월 20일]] - [[진(프로듀서)|진]]: 일본 [[보컬로이드]] 프로듀서
* [[10월 21일]] - [[릴카]]: 대한민국 인터넷 방송인.
* [[10월 23일]] - [[강지광]]: 한국 [[SK 와이번스]] 소속의 야구 선수
* [[10월 24일]] - [[일카이 귄도안]]: [[독일]]의 축구 선수
* [[10월 29일]] - [[최결]]: 한국의 성우
* [[10월 30일]] - [[주세종]]: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 [[11월 4일]]
* [[이학주]]: 한국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야구 선수
* [[이상민(야구선수)|이상민]]: 한국 [[키움 히어로즈]] 소속의 야구 선수
* [[11월 6일]]
* [[오오야 마사나]]: 일본 아이돌 그룹 [[SKE48]] 팀S의 멤버
* [[크리스 우]]: [[캐나다]][* 중국에서 캐나다로 귀화했다.]의 가수 겸 배우이자 한국의 아이돌 그룹 [[EXO]]의 前 멤버[* EXO 활동 당시 예명은 '크리스'였다.]
* [[11월 7일]] - [[다비드 데 헤아]]: [[스페인]]의 축구 선수
* [[11월 10일]] - [[레오(빅스)|레오]]: 한국 아이돌 그룹 [[빅스]]의 멤버
* [[11월 11일]]
* [[한가빈]]: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조르지니오 베이날뒴]]: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 [[11월 12일]] - [[마르셀 오즈나]]: [[도미니카 공화국]]의 야구 선수
* [[11월 13일]]
* [[김동은|김선민]]: 한국의 前 야구 선수
* [[11월 15일]]
* [[혼고 카나타]]: 일본의 배우
* [[김로렌]]: [[아프리카 TV]]의 [[리그 오브 레전드]] BJ
* [[11월 18일]] - [[배정근]]: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11월 19일]]
* [[조민규]]: 크로스오버계의 아이돌 [[포레스텔라]]의 멤버
* [[11월 20일]]
* [[신수인]]: [[대한민국]]의 [[치어리더]]
* [[11월 22일]]
* [[장동우]]: 한국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의 멤버
* [[이유비]]: [[한국]]의 배우
* [[서은광]]: 한국 아이돌 그룹 [[BTOB]]의 멤버
* [[11월 23일]] - [[에디 킴]]: [[한국]]의 [[가수]]
* [[11월 24일]] - [[세라 하일랜드]]: [[미국]]의 배우
* [[11월 25일]] - [[츠키미야 미도리]]: 일본의 성우
* [[11월 26일]]
* [[대니 웰벡]]: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오노 사키]]: [[일본]]의 성우
* [[11월 27일]] - [[임선주]]: 대한민국의 여자 축구 선수
* [[11월 29일]]
* [[이민혁(BTOB)|이민혁]]: 한국 아이돌 그룹 [[BTOB]]의 멤버
* [[김은정(컬링)|김은정]]: [[한국]]의 컬링 선수
*[[야오토메 히카루]] : 일본 아이돌 그룹 [[Hey! Say! JUMP]]의 멤버
* [[12월 3일]] - [[크리스티안 벤테케]]: [[벨기에]]의 축구 선수
* [[12월 6일]] - [[데니스 체리셰프]]: [[러시아]]의 축구 선수
* [[12월 7일]]
*[[야시엘 푸이그]]: [[쿠바]]의 야구 선수
*[[팡이요]]: 대한민국 인터넷 방송인. 본명 차윤호.
* [[12월 8일]] - [[토다 메구미]]: [[일본]]의 [[성우]]
* [[12월 10일]]
* [[마츠이 사키코]]: [[AKB48]]의 前 멤버
* [[박수범(프로게이머)|박수범]]: [[한국]]의 프로게이머
* [[조진세]]: 한국의 코미디언
* [[12월 11일]] - [[이홍구(야구선수)|이홍구]]: 한국 [[SK 와이번스]] 소속의 야구 선수
* [[12월 12일]]
* [[승리(인물)|승리]]: 한국 아이돌 그룹 [[빅뱅(아이돌)|빅뱅]]의 '''前''' 멤버
* [[빅터 모지스]]: [[나이지리아]]의 축구 선수
* 이민지: [[큐티섹시]]의 멤버, 현 IT기획자
* [[12월 14일]] - [[비범(블락비)|비범]]: 한국 아이돌 그룹 [[블락비]]의 멤버
* [[12월 18일]]
* [[정인욱]]: 한국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야구 선수
* [[안신애]]: 한국의 골프 선수
* [[12월 20일]] - [[타카하시 미나미(성우)]]: [[일본]]의 [[성우]]
* [[12월 21일]] - [[천관위]]: [[대만]]의 야구 선수
* [[12월 23일]]
* [[재효]]: 한국 아이돌 그룹 [[블락비]]의 멤버
* [[나카타니 요시노]]: 일본의 로컬 아이돌 [[Yamakatsu]]의 前 멤버
* 브리스 자 제제: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선수
* [[12월 26일]]
* [[데빈 부르크만]]: [[미국]]의 모델.
* [[아론 램지]]: [[웨일스]]의 축구 선수
* [[12월 28일]]
* [[이상은(코미디언)|이상은]]: 한국의 코미디언
* [[마르코스 알론소]]: [[스페인]]의 축구 선수
* [[12월 30일]] - [[권희동]]: 한국 [[NC 다이노스]] 소속의 야구 선수
* [[12월 31일]] - [[패트릭 챈]]: [[캐나다]]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 일자 불명
* 김신애: [[신애 사건]]의 피해자
* [[뻑가]]: 한국의 [[유튜버]][* 2019년에 30대가 되었다고 한다.]
* [[귀여우면 변태라도 좋아해 주실 수 있나요?|하나마 토모]]: 일본의 [[라이트 노벨]] 작가
=== 가상인물 ===
* [[2월 14일]]: [[오기소 세츠나]] - [[화이트 앨범 2]]
* [[2월 18일]] - [[카미오카 유카리]]: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 [[3월 1일]] - [[오오사와 마리아#s-2|오오사와 마리아]]: [[CANAAN]]
* [[3월 7일]] - [[최고다 이순신]]: [[이순신(최고다 이순신)|이순신]]
* [[4월 4일]] - [[만월을 찾아서]]: [[코야마 미츠키]][* 애니메이션 기준으로 4 월 4 일이고, 2003 년에 풀문 1 주년이니 2002 년에 12 살. 일본은 만 나이를 계산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1990 년생이다. 2003 년 13 살에 중학교로 입학하는 걸로 보면 우리나라 나이 - 1 을 하는 게 맞다. ]
* [[4월 19일]] - [[나나하라 카오루코]]: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 두 사람의 엘더]]
* [[5월 3일]]: [[코테가와 유이]] - [[투 러브 트러블]]
* [[5월 6일]] - [[아스카 모모코]]: [[꼬마마법사 레미]]
* [[5월 15일]] - [[니시모토 하루히]]: [[도키메키 메모리얼 Girl's Side]] 2nd
* [[6월 20일]] - [[오노다 치요미]]: [[도키메키 메모리얼 Girl's Side]] 2nd
* [[7월 7일]] - [[박심현]]: [[클로저스]]
* [[7월 15일]]: [[사와다 토시유키]] - [[Robotics;Notes]]
* [[7월 19일]] - [[사에키 테루]]: [[도키메키 메모리얼 Girl's Side]] 2nd
* [[7월 20일]] - [[할리 퀸(DC 확장 유니버스)|할리 퀸]]: [[수어사이드 스쿼드(영화)|수어사이드 스쿼드]]
* [[7월 30일]] - [[하루카제 도레미]]: [[꼬마마법사 레미]]
* [[8월 24일]] - [[카미치카 카오리]]: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 두 사람의 엘더]]
* [[9월 8일]] - [[조지나 스파크스]]: [[가십걸]]
* [[9월 15일]] - [[블레어 월더프]]: [[가십걸]]
* [[9월 18일]] - [[미나모토 코이치]]: [[절대가련 칠드런]]
* [[10월 6일]] - [[히카미 이타루]]: [[도키메키 메모리얼 Girl's Side]] 2nd
* [[11월 14일]] - [[세노오 아이코]]: [[꼬마마법사 레미]]
* [[11월 21일]] - [[시바 카츠미]]: [[도키메키 메모리얼 Girl's Side]] 2nd
* [[11월 26일]] - [[김미풍]]: [[불어라 미풍아]]
* [[12월 2일]] - [[히나타 나츠미]]: [[개구리 중사 케로로]]
* [[12월 8일]] - [[아카기 카즈유키]]: [[도키메키 메모리얼 Girl's Side]] 2nd
* [[12월 19일]] - [[하리야 코우노신]]: [[도키메키 메모리얼 Girl's Side]] 2nd
* [[12월 24일]] - [[토마리 신노스케]]: [[가면라이더 드라이브]]
* 일자불명
* [[GTA: Chinatown Wars/등장인물#s-1.10|신 샨]] - [[GTA: Chinatown Wars]]
* [[안도영]] - [[디지몬 프론티어]]
* [[오유민]], [[곽소룡]], [[은세나]], [[강재호(디지몬 시리즈)|강재호]], [[이성우(디지몬 시리즈)|이성우]], [[황주연]], 박해찬(우라조에 카이), 서나미(우에하라 미나미) - [[디지몬 테이머즈]]
* [[미나세 하츠네]] -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 두 사람의 엘더]]
* [[마키타 키요라]] -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 두 사람의 엘더]]
* [[장미래]]를 포함한 작중시점에서의 3학년 인물들 - [[여중생A]]
* [[우기(유미의 세포들) ]] - [[유미의 세포들]]
* [[미야나기 유우키]], [[오카 타카오]], [[보이(역전재판 시리즈)|반도 호텔의 보이]], [[아쿠비 힉스]], [[하미가키 쇼타로]] - [[역전재판 시리즈]]
* 조기탈[* 설정상 09학번이다.] - [[복학왕]]
* [[홍예지(디지몬 시리즈)|홍예지]] - [[파워 디지몬]]
* --[[F-22]] - [[비행고등학교]]-- [* YF-22가 1990년 9월 출고]
* [[피터 웨이랜드]] - [[에일리언 시리즈]]
* 김범, 염승현, 황찬성, 나혜미, [[이민호(거침없이 하이킥)|이민호]] - [[거침없이 하이킥]]
* [[나나미 켄토]] - [[주술회전]]
== 사망 ==
=== 실존인물 ===
==== 1월 ====
* [[1월 1일]] - [[에른스트 쿠초라]]: 독일의 전 축구감독
* [[1월 4일]] - 최귀동: 사회복지시설 [[꽃동네]] 창설에 도움을 준 거지 노인
* [[1월 5일]] - [[아서 케네디]]: [[미국]]의 [[배우]]
* [[1월 7일]]
* [[조 로비]]: 미국의 변호사, 초대 [[마이애미 돌핀스]] 구단주
* [[호레이스 스톤햄]]: 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주
* [[1월 13일]] - [[김완태(정치가)|김완태]]: 대한민국의 정치가
* [[1월 14일]] - [[김봉재]]: 전 중소기업중앙회장, 정치가
* [[1월 18일]] - [[서명학]]: 제9대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장
* [[1월 19일]] - [[오쇼 라즈니시]]: [[인도]]의 [[명상]]가
* [[1월 20일]] -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일본의 황족, 43대 총리대신
* [[1월 24일]] - [[아라킨]]: [[브라질]]의 축구선수
* [[1월 25일]]
* 이윤복: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의 실제 주인공
* [[에바 가드너]]: 미국의 영화배우
* [[1월 28일]] - 김옥윤: [[장면]] 박사의 부인
==== 2월 ====
* [[2월 4일]] - [[장덕]]: 혼성듀오 '현이와 덕이'의 멤버
* [[2월 10일]]
* [[박태선]]: [[천부교]] 창시자
* [[이남순]]: 대한민국의 약학자
* [[2월 16일]] - [[키스 해링]]: 미국의 화가, 사회운동가
* [[2월 19일]] - [[배주영]]: 대한민국의 참교육 운동가
* [[2월 24일]]
* [[최남현]]: 1960~70년대를 빛낸 대한민국의 배우
* [[맬컴 포브스]]: <[[포브스]]> 전 총수
==== 3월 ====
* [[3월 2일]] - [[박봉우]]: 대한민국의 시인
* [[3월 4일]] - [[신두영]]: 제7대 감사원장
* [[3월 5일]] - [[에드문트 코넨]]: [[독일]]의 전 축구감독
* [[3월 12일]] - 진 클라인: 제2대 [[샌디에이고 차저스]] 구단주
* [[3월 17일]] - [[무함마드 라티프]]: 이집트의 전 축구선수
* [[3월 28일]] - [[김용갑]]: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3월 30일]]
* [[남관]]: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 [[레프 야신]]: [[러시아]]의 [[축구선수]]
==== 4월 ====
* [[4월 1일]] - [[카를로스 페우셀레]]: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
* [[4월 4일]] - [[강민호]]: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4월 7일]]
* [[성기석]]: 대한민국의 방송기술자, 독립운동가
* [[모리 키미코]]: 1980년대를 풍미한 일본 코러스 그룹 [[슈가]]의 멤버
* [[4월 9일]] - [[나리타 미키오]]: 일본의 배우
* [[4월 11일]] - [[해롤드 발라드]]: 전 [[토론토 메이플리프스]] 및 해밀턴 타이거캣츠 구단주
* [[4월 12일]] - [[김재원]]: 대한민국의 고고학자이자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
* [[4월 15일]] - [[그레타 가르보]]: [[스웨덴계 미국인]] 영화배우
* [[4월 17일]] - [[안젤로 스키아비오]]: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 [[4월 23일]] - 폴렛 고다드 : 미국의 여배우[* [[모던 타임즈]]의 여주인공이다.]
* [[4월 24일]] -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4남
* [[4월 25일]] - [[덱스터 고든]]: [[미국]]의 [[음악가]]
* [[4월 30일]] - [[마리오 피치올로]]: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 5월 ====
* [[5월 3일]] - [[이영일]]: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5월 5일]] - 데이비드 커비: 당시 에이즈 환자. 그의 임종 모습이 [[베네통]] 인쇄광고에 실렸다.
* [[5월 13일]] - [[가토 코이치]]: 일본의 연예평론가
* [[5월 16일]]
*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미국의 가수이자 배우
* [[짐 헨슨]]: 미국의 극작가, 방송PD, 영화감독, '''[[머펫]]'''의 아버지
* [[5월 17일]]
* [[이원기]]: 대한민국의 철거민 운동가
* [[마누엘 아나톨]]: [[스페인]] 출신의 축구선수
* [[5월 19일]] - [[신장호]]: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5월 21일]] - [[김득수]]: 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
* [[5월 24일]] - [[박성은]]: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가
* [[5월 27일]] - [[타카미네 미에코]]: 일본의 배우이자 가수
==== 6월 ====
* [[6월 2일]] - [[렉스 해리슨]]: 영국의 영화배우
* [[6월 3일]]
* [[로버트 노이스]]: [[미국]]의 발명가, [[기업가]], [[인텔]] 공동 창업자
* [[신일선]]: [[일제강점기]] 조선의 여배우
* [[6월 4일]] - [[정성묵]]: 대한민국의 고등학생 운동가
* [[6월 5일]] - [[김수경]]: 대한민국의 고등학생 운동가
* [[6월 6일]] - [[김학수]]: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6월 7일]] - [[모윤숙]]: [[대한민국]]의 [[시인(문학)|시인]], [[친일반민족행위자]]
* [[6월 11일]] - [[올드르지흐 네예들리]]: [[체코]]의 [[축구선수]]
* [[6월 17일]] - [[데몬 히데]]: 일본의 배우이자 가수
* [[6월 20일]] - [[이정림]]: 대한유화 창업주
==== 7월 ====
* [[7월 2일]] - [[문종건]]: 전 상업은행, 조흥은행장
* [[7월 14일]]
* [[김진홍]]: 5공 시절 활동한 학생 민주화 운동가
* [[최태욱]]: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7월 15일]] - [[미야타 테루]]: 일본의 아나운서, 정치인
* [[7월 16일]] - [[와카하라 이치로]]: 일본의 가수
* [[7월 18일]]
* [[슈테판 참발]]: [[체코슬로바키아]](現 [[슬로바키아]])의 전 축구 감독
* '''[[윤보선]]: 제4대 [[대한민국 대통령]]'''
* [[7월 20일]] -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소련]]/[[아르메니아]]의 [[영화 감독]]
* [[7월 22일]] - [[윤반웅]]: 대한민국의 장로교 목사이자 민주화 운동가
==== 8월 ====
* [[8월 6일]] - [[김봉룡]]: 서울 강남의 대표 제과점이던 'ABC뉴욕제과'의 창업주
* [[8월 7일]] - [[최동]]: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8월 9일]] - [[조 머서]]: [[에버튼]]과 [[맨체스터 시티]]에서 신화로 추앙받는 축구인
* [[8월 15일]] - [[빅토르 최]]: [[소련]]의 고려인 [[록 음악]] [[뮤지션]]
* [[8월 16일]] - [[장현(1956)]]: [[한국]]의 [[가수]], 혼성듀오 현이와 덕이의 멤버
* [[8월 18일]] - [[벌허스 프레더릭 스키너]]: [[미국]]의 [[심리학]]자
* [[8월 19일]] - [[임철호]]: 제4대 대한민국 국회부의장
* [[8월 22일]] - [[그레이엄 영]]: [[영국]]의 [[연쇄살인마]]
* [[8월 23일]] - [[나익진]]: 사회복지법인 각당복지재단 설립자, 체신부 7대 차관, 상공부 11대 차관
* [[8월 25일]]
* [[김옥길]]: 제21대 문교부 장관, 제6대 학교법인 이화학당 이사장
* [[타키타 유우]]: 일본의 만화가
==== 9월 ====
* [[9월 1일]]
* [[이헌승]]: 전 조흥은행장
* 최봉: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탤런트
* [[9월 6일]] - [[박득순]]: 대한민국의 원로 화가[* 최규하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렸다.]
* [[9월 8일]] - [[심광보]]: 대한민국의 고등학생 운동가
* [[9월 11일]] - [[박성호]]: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9월 12일]] - 오원석: 대한민국의 참교육 운동가
* [[9월 18일]] - [[김신묵]]: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문익환]] 목사의 모친
* [[9월 21일]]
* [[쉬샹첸]]: 중화인민공화국의 군인.
* [[하츠이 코토에]]: 일본의 여배우이자 성우
* [[9월 26일]] - [[알베르토 모라비아]]: 이탈리아의 문학가
* [[9월 27일]] - [[유한섭]]: 비누 전문 메이커 '무궁화'의 창업주
* [[9월 28일]] - [[래리 오브라이언]]: 미국의 정치인이자 [[NBA]] 3대 총재
==== 10월 ====
* [[10월 1일]] - [[커티스 르메이]]: [[미국]]의 [[군인]]
* [[10월 2일]] - [[아쿠타가와 타카유키]]: 일본의 아나운서. 1978년판 [[서유기]]의 나레이터로 유명하다.
* [[10월 5일]] - [[조르제 부야디노비치]]: [[유고슬라비아 왕국|유고슬라비아]](現 [[세르비아]])의 축구선수
* [[10월 7일]] - [[이문희]]: 대한민국의 소설가
* [[10월 11일]] - [[아드리안 판말러]]: [[네덜란드]]의 전 축구 선수
* [[10월 14일]] - [[레너드 번스타인]]: [[미국]]의 [[지휘자]] 겸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 [[10월 15일]] - [[박충집]]: 대한민국의 영문학자
==== 11월 ====
* [[11월 1일]] - [[김현식]]: [[대한민국]]의 [[가수]]
* [[11월 4일]] - [[데이비드 스털링]]: [[영국]]의 [[군인]], [[SAS(특수부대)|SAS]]의 설립자
* [[11월 6일]] - [[양석천]]: 동료 코미디언 [[양훈]]과 콤비를 이뤄 1960년대를 풍미한 원로 코미디언
* [[11월 8일]] - [[최응현]]: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11월 11일]] - [[아틸리오 데마리아]]: [[아르헨티나]]/[[이탈리아]]의 축구선수
* [[11월 19일]] - [[안치순]]: 제9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 [[11월 23일]] - [[로알드 달]]: 영국의 동화작가
==== 12월 ====
* [[12월 2일]]
* [[에런 코플런드]]: 미국의 현대 작곡가
* [[하마구치 쿠라노스케]]: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 [[12월 6일]] - 김병곤: 1974년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 [[12월 10일]] - [[아먼드 해머]]: 미국 옥시덴탈 석유 회장이자 미-소 냉전 시기 두 나라간에 상호 가교를 놓게 한 막후 협상가
* [[12월 11일]] - [[유판순]]: [[명지대]] 축구부의 전설적인 감독, [[허정무]]의 스승
* [[12월 12일]] - [[조영래]]: [[대한민국]]의 인권 [[변호사]]
* [[12월 17일]] - [[박인기]]: 대한민국의 재야 청년운동가
* [[12월 19일]] - [[에드몽 델푸르]]: [[프랑스]]의 축구선수
* [[12월 21일]] - [[최정희]]: 대한민국의 소설가
* [[12월 27일]]
* [[권평국]]: 대한민국의 방송작가 겸 만화가, [[허어]] 화백[* 본명 권성국]의 동생.
* [[장욱진]]: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 [[12월 28일]] - [[이민재(교수)|이민재]]: 대한민국의 식물학자, 제12대 문교부 차관, 전 자연보호중앙회장
* [[12월 30일]] - [[야마자키 타다시]]: 일본의 작곡가, 배우, 성우
* [[12월 31일]] - [[타니구치 야스마사]]: 일본의 중창단 [[듀크 에이시스]]의 멤버
==== 일자 불명 ====
* [[김호남]] - [[박정희]]의 전처이자 승려.
=== 실존동물 ===
* [[11월 16일]] - 노던 댄서: 1961년 태어난 미국의 경주마
=== 가상인물 ===
* [[1월 22일]] - [[미야노코우지 사치호]] = [[카부라기 사치호]]: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미야노코우지 미즈호|주인공]]의 엄마.]
* [[12월 24일]] - [[토마리 신노스케]] - [[가면라이더 드라이브]]
== 데뷔 ==
=== 가수 ===
==== 한국 ====
* [[015B]] - [[7월 15일]]
* [[장호일]]
* 권성연 - 제11회 MBC 강변가요제
* [[신승훈]] - [[11월 1일]]
* [[심신]] - [[8월]]
* 야차
* 조진수, 김병수, 안원철
* [[윤상(가수)|윤상]] - [[11월 30일]][* 솔로 데뷔 기준.]
* [[윤종신]] - [[7월 1일]]
* 윤영아 - KBS 청소년 가요제
* [[현진영]] - [[8월 1일]]
==== 해외 ====
* [[머라이어 캐리]]
* [[바닐라 아이스]]
* 부야 트라이브
*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 [[Q-Tip]]
* [[카니발 콥스]]
* [[판테라]]
* 프리머스[* <사우스파크> 오프닝곡을 부른 밴드.]
* B.B.퀸즈
* H.W.A.
=== 배우 ===
* [[김민정(1982)|김민정]]
* [[김승우]]
* [[박상민(배우)|박상민]]
* [[신현준]]
* [[임창정]]
* [[이범수]]
* [[오달수]]
* [[최철호]]
=== 예능 ===
* 김민석
* [[김지선(개그우먼)|김지선]]
* 김찬
* 김현영
* 문형주
* 배동성
* 백현욱
* 서인석
* 서현선
* 안수미
* 최순석
* 최영준
=== 만화계 ===
* 강유선 - <작은 신부의 작은 일기>
* [[김은희(만화가)|김은희]] - <날개 달아주기>
* 김지윤 - <프로포즈>
* 박찬민 - <당신은 누구십니까>
* 시바타 아미 - <드래곤퀘스트 4컷 만화극장>
* [[야기 노리히로]] - <UNDEADMAN>
* [[오바나 미호]] - <창문의 저편>
* [[우스타 쿄스케]] - <ザ★手ぬきくん対物酢御くん>
* 이승희 - <사이보그의 사랑>
* 이영란 - <젊음의 초상>
* 장봉군
* 장태관 - <문>
* [[전극진]] - <벼랑(스토리 담당)>
* 조강연 - <사랑 공포증>
* 후지이 미호나[* <[[슈퍼갤즈]]> 원작자.] - <無邪気なままで>
=== 스포츠 ===
==== 야구 ====
* [[김경기]]
* [[김동수(야구)|김동수]]
* --[[이호성]]--
* [[노모 히데오]]
==== 축구 ====
* 김종건
* [[김현석]]
* 이영상
* [[하석주]]
==== 농구 ====
* ~~[[강동희]]~~
* [[게리 페이튼]]
* 데니스 스캇
* 데릭 콜먼
* 듀안 커즈웰
* 디 브라운
* 로이 보트
* 리오넬 시몬스
* 마무드 압둘 라우프
* [[세드릭 세발로스]]
* 안토니오 데이비스
* [[엘든 캠벨]]
* [[유영주]]
* [[전주원(농구)|전주원]]
* [[정은순]]
* [[제이슨 윌리엄스]](Jayson Willams)
* 타이론 힐
* 테리 밀스
==== 배구 ====
* [[마낙길]]
* 박수정
* [[서남원]]
==== 씨름 ====
* [[박광덕]]
== 은퇴 ==
=== 스포츠 ===
* [[김용운(야구)|김용운]]
* [[류중탁]]
* [[박미희]]
* [[이길환]]
* [[이문규]]
* [[이봉걸]]
* [[최동원]]
== 히트작 ==
=== 드라마 ===
==== 국산 ====
* KBS
* 겨울 나그네
* 서울뚝배기
*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 MBC
* 배반의 장미
* 똠방각하
* 몽실 언니
* 우리들의 천국
* 조선왕조 500년 - 대원군
==== 더빙 ====
* 마이애미의 두 형사
=== 영화 ===
* 국산
* [[비 오는 날의 수채화]]
* 그들도 우리처럼
*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 꼭지딴
* [[남부군]]
* [[장군의 아들]]
* [[나의 사랑 나의 신부]]
* 수입
* [[사랑과 영혼]]
* [[나 홀로 집에]]
* [[천장지구]]
* 도성
=== 가요 ===
* 한국
* [[강수지]] - '''보라빛 향기'''
* 강인원, [[권인하]], [[김현식]] - 비오는 날의 수채화
* [[김민우(가수)|김민우]] - '''사랑일뿐야''', '''입영열차 안에서''', 휴식같은 친구
* [[김수철(가수)|김수철]] - 정신차려
* [[김완선]] - 나만의 것
* 김지애 - 몰래한 사랑
* 김지연 - 찬바람이 불면
* [[나미(가수)|나미]] - '''인디안 인형처럼'''
* 동물원 -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
* [[민해경]] - '''보고 싶은 얼굴'''
* 박선주 - 소중한 너 (feat. 조규찬)
* 박성신 - 한번만 더
* 박영미 - 나는 외로움 그대는 그리움
* [[변진섭]] - '''너에게로 또 다시''', '''희망사항''', 숙녀에게, 로라
* [[봄여름가을겨울]] - 어떤 이의 꿈
* [[설운도]] - 혼자이고 싶어요
* [[소방차(아이돌)|소방차]] - 연애편지
* [[송골매(밴드)|송골매]] - 모여라
* [[송대관]] - 정 때문에
* [[신해철]] -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안녕
* [[여행스케치]] - 별이 진다네
* 예민 - 아에이오우
* 오석준 - 내일 일기,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
* 오.장.박(오석준, 장필순, 박정운) - 내일이 찾아오면
* [[이상은(가수)|이상은]] - 사랑할거야, 그대 떠난 후
* [[이선희]] - 한바탕 웃음으로, 겨울 애상
* [[이승철]] - '''마지막 콘서트''', 소녀시대
* [[이승환]] - 텅 빈 마음,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
* [[이은하]] - 돌이키지마
* 이정현 -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 임백천 - 마음에 쓰는 편지
* 조갑경 - 시계
* [[조용필]] - [[Sailing Sound|추억 속의 재회,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 조정현 -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 슬픈 바다
* 주병선 - 칠갑산
* [[주현미]] - 잠깐만
* 최성수 - 잊지 말아요
* 최용준 - 아마도 그건
* [[태진아]] - 거울도 안 보는 여자
* [[하춘화]] - 날 버린 남자
* [[해바라기(가수)|해바라기]] - 사랑으로
* 햇빛촌 - 유리창엔 비
* [[현진영]]과 와와 - 야한 여자
* [[현철]] - 싫다 싫어
* 홍서범 - 김삿갓
* [[015B]] - 텅빈 거리에서
* 해외
* [[마돈나(가수)|마돈나]] - Vogue
* [[머라이어 캐리]] - Vision Of Love, Love Takes Time 등[* 1990년 데뷔와 동시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1500만 장의 앨범 판매량, 4개의 [[빌보드 차트|빌보드]] 1위 곡을 배출했다.]
* [[MC Hammer]] - '''U Can't Touch This'''
* [[밀리 바닐리]] - All or Nothing
* [[뉴 키즈 온 더 블록]] - '''Step By Step'''
* Vanilla Ice - Ice Ice Baby
* [[휘트니 휴스턴]] - I'm Your Baby Tonight
* B.B.퀸즈 - おどるポンポコリン[* [[마루코는 아홉살]] 엔딩곡.]
=== 개그 코너 ===
* 맨손의 청춘 - 유머 일번지
* 내일은 챔피언 - 유머 일번지
* 꽃 피는 봄이 오면 - 유머 일번지
* VJ법정 김변호사 최변호사 - 쇼 비디오 쟈키
* 고슴도치 가족 - 쇼 비디오 쟈키
* 남남북녀 - 쇼 비디오 쟈키
* 일요진단 - 일요일일요일밤에
* 짱구네 집 - 청춘행진곡
* 병팔이랑 갑경이/민지랑 - 청춘행진곡
* 장군의 손자 - 청춘행진곡
=== 애니메이션 ===
* KBS
* [[날아라 슈퍼보드]]
* [[독수리 오형제]] (재더빙판)
* [[옛날 옛적에(애니메이션)|옛날 옛적에]]
* [[영심이]]
* [[He-Man and the Masters of the Universe|우주의 왕자 히맨]]
* MBC
* [[그림 명작동화]]
* 머털도사와 108요괴
* 머털도사와 또매
* 해외
* [[마루코는 아홉살]]
* [[심슨 가족]]
* [[타이니 툰]]
=== 베스트셀러 ===
* 만화로 보는 자본주의 공산주의 - 송병락 글, [[이원복]] 그림.
* 홀로서기 - 서정인 저.
== 출시 상품 ==
=== 자동차 ===
* 현대자동차
* 2월: 스쿠프
* 7월: 현대 중형트럭
* 10월: 엘란트라
* 기아자동차-아시아자동차
* 2월: 록스타
* 11월: 프라이드 베타
* 대우자동차
* 5월: 르망 임팩트
* 9월: 에스페로
=== 식음료 ===
* 농심
* 9월: 튀김우동 큰사발면
* 11월: 안성탕면 맛배기
* 동서식품
* 맥심 그랜디
* 맥심 커피믹스(파우치형)
* 프리마(업소용)
* 포스트 콘후레이크
* 동서 인삼드링크
* 동서 하니랜드애플/레몬
=== 생활용품 ===
* 애경산업
* 난비누
* 하나로샴푸
* 썬실크 스타일링무스
* 클로즈업 치약
* 뉴써프
* 울샴푸
=== 화장품 ===
* 애경산업
* 바세린썬 스크린 크림
* 폰즈 훼이셜폼
== 유행어 ==
* 물태우
* [[3당 합당|구국의 결단]] - 김영삼
* 지가요, ~했걸랑요 - 주현 (서울뚝배기)
* 실례합니다~ - 김애경 (서울뚝배기)
* 얼어죽을 - 김상순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 영양가 없는 소리 - 연규진 (똠방각하)
* 난 짬뽕!/난 리바이벌은 죽어도 안해 - 이창훈 (맨손의 청춘)
* 칙칙! 칙칙! - 심형래 (내일은 챔피언)
* 그럼 얘길허지~ - 김형곤 (꽃피는 봄이 오면)
* 똑같애~ 똑같애~ - 이경애 (고슴도치 가족)
* 물론~ 있지요~ - 최양락 (VJ법정 김변호사 최변호사)
* 요거이~ - 김지선 (남남북녀)
* 연습이었소~ - 최영준 (동궁마마는 아무도 못말려)
* 뻥이야 - 김영하 (청춘교실)
* 말도 안 된다~ 흥!/뭐가 안 되냐~ 흥! - 최병서, 최형선 (병팔이랑 민지랑)
* 씰~데 없는 소리하고 있어.../에이, 까먹었어... - 이재포 (장군의 손자)
* 오늘도 여러분의 시선을 하나~ 둘~ 모아~모아서 - 주병진 (일요일일요일밤에)
* 으아~/들이대~/아! 응애에요~/아! 빵긋~!/거의 나의 독무대에요 - 김흥국
* 아니, 난 그냥~ - 시릴로 (천사들의 합창)
* 낭만적이야~ - 라우라 (천사들의 합창)
* 그래~서! 500원입니다! - 최수종, [[구구콘]] CF
== 최초 ==
=== 방송 프로그램 ===
* 텔레비전
* KBS 1TV
* 여의도 법정
* 쇼 토요특급
* KBS 2TV
* 열전 달리는 일요일
*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 MBC
* PD수첩
* 파란 마음 하얀 마음
* 라디오
* 배철수의 음악캠프
== 달력 ==
[include(틀: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
[각주]
[[분류:1990년]] |
1990년 KBS 사태 | [[분류:노태우 정부/사건사고]][[분류:한국방송공사/사건사고]][[분류:파업]][[분류:대한민국의 검열]][include(틀:대한민국의 언론통제와 저항)]
[목차]
== 개요 ==
[[1990년]] 4월부터 6월까지 [[한국방송공사|KBS]] 사원들이 방송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한 파업투쟁. 'KBS 4월 투쟁'이라고도 불린다.
== 배경 ==
1987년 [[6월 항쟁]]과 [[6.29 선언]]을 계기로 방송민주화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거기에 [[노동자 대투쟁]]에도 영향을 받아 방송사 단위로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뉴스비전 동서남북(KBS2)>이나 <MBC를 말한다>, <어머니의 노래(MBC)>와 같은 현대사 재조명 다큐, 탐사보도 프로그램 등의 제작이 활성화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정부 여당은 과거 독재시절 시녀로만 보았던 방송인들의 방송민주화 운동에 대한 불만을 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불만은 1989년 3월 KBS1에서 <광주는 말한다>라는 [[5.18 민주화운동]] 관련 다큐멘터리를 전국적으로 전파를 탈 때 민주정의당 대변인 [[박희태]]의 성명을 통해 잘 드러났다. 그는 "우리가 믿고 사랑하던 KBS의 품위, 양식 깊이가 그 정도 밖에 안 되는지 실망치 않을 수 없다."고 하여 공영방송 KBS가 어떻게 그런 프로그램을 방송할 수 있냐는 식으로 실망을 품은 채 개탄한 것이다. 이로써 노태우 정권은 개탄을 넘어 위기의식을 느끼고 방송민주화운동을 주시하지 않고 탄압에 돌입했다.
== 발단 ==
1990년 2월에 감사원은 KBS 직원에 대한 법정수당 지급을 '예산 변칙 지출'로 몰았고, 이어 정부는 방송민주화에 호의적이었던 [[서영훈]] 사장을 비롯해 윤혁기 부사장 등 임원 및 간부 4명을 해임시키고 [[서기원]] [[서울신문]] 사장을 부임시켰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임명된 서기원 사장이 바로 낙하산이었으며, 1989년 서울신문 26일 파업 당시 노조에 강경한 입장을 내비친 인물이었다.
사실 KBS 특근수당 변칙지출 사건은 당사 직원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경리상의 실수로 절차상의 하자를 범한 채 1989년 12월에 몰아서 받은 기술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언론 왜곡보도로 KBS가 마치 노사합작으로 34억원을 횡령이라도 한 것처럼 세상에 퍼졌다. 이에 KBS 노조는 이러한 왜곡 보도에 대해 "악의에 찬 행위이거나 정확한 취재와 사실 확인에 게으른 언론이 일부 음모자들의 농간에 넘어간 선정주의"라고 비난했다.
사실 수상한 조짐은 서영훈 사장 해임 한달 전에도 있었는데, 그해 1월 24일에 검찰이 연예PD 6명을 배임수뢰혐의로 구속한 사건은 당시 신문들의 극성스런 선정주의적 보도경향에 힘입어 방송인들의 윤리성에 일대 치명타를 가했다. 당시 이 보도를 접한 사람들은 이를 우연의 일치로 보왔고 검찰의 선의를 믿고자 했으나, 나중에 해당 PD들은 검찰이 고문으로 공소사실의 대부분을 조작했다고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62500209202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2-06-25&officeId=00020&pageNo=2&printNo=21864&publishType=00020|폭로함으로써]] 이 사건의 정치적 흑막에 대한 의혹을 강하게 부각시킨 바 있었다. 그 증거로 해당 PD들은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회보 <프로듀서> 4월 1일자에서도 검찰이 방송에 대한 전문성의 이해가 전무한 상태에서 이들을 곡괭이로 때리거나 토끼뜀 등 온갖 기합을 주는 등 무리한 수사를 했다고 증언한 바 있었다.
게다가 2월 14일, [[최병렬]] 공보처장관이 대통령에 대한 새해 업무보고에서 새 민간 TV방송 설립을 위해 1990년대에 방송법을 개정하겠다고 말한 것이 밝혀지면서 KBS의 수당 변태지급 파문은 결코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의혹을 짙게 했다. 또 정부는 1989년 4월에 설립된 '방송제도연구위원회'를 독촉하여 예정보다 한 달을 앞당긴 3월 31일에 민방 신설을 골자로 하는 보고서를 확정 발표케 했다.
== 전개 ==
민주화 바람을 타고 노동활동이 활발해지던 때에[* 1990년도의 국가슬로건이 '산업평화 정착의 해'였을 정도. 1989년에 메이데이 100주년과 공안정국 등의 영향으로 노동쟁의가 최고조에 달했기 때문.] 1989년 공안정국과 1990년 1월 '3당 합당'에 따라 공안통치로 돌입해 분위기가 역전되어 같은 달 현대자동차 쟁의 중 '무노동 무임금' 원칙 적용, 3월 현대중공업 노조 골리앗 투쟁 강제진압과 같이 노동운동 탄압이 강해졌고, 새 사장 부임과 함께 군사정권 시절 관제방송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이에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노련)과 KBS 노조[* 지금의 제1노조에 해당. [[2009년]]에 파업했던 언론노조 KBS본부는 제2노조에 해당하며, 이 안의 역학관계는 복잡하다. 이 때만 해도 제1노조가 진보적 성향이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와 보수화되면서, 진보적 경향의 사원들이 갈라져 나간 것이 제2노조.]는 3월 6일 낮 12시 서울 태평로 언론회관 앞에서 '방송자주권 쟁취 결의대회'를 개최했고, 다음날 무소속 의원 [[이철]]은 <KBS 사태 진상보고서>를 통해 서영훈 사장 퇴임 전 정부의 외압과 안기부 개입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은 한겨레와 일부 지방지들을 제외한 모든 중앙지들이 보도를 외면했다.
3월 8일 KBS 이사회가 서영훈 사장의 사표를 수리한 후, 4월 3일 3차 투표를 통해 서기원 사장 임명제청을 결의했다. 다음날 KBS노조는 비상대책위원회를 확대 개편 후 농성을 확대해 4일에는 '서기원 출근저지 특별감시조'까지 만들었다. 당초 4월 11일에 취임하려던 서기원 사장이 저지조에 의해 출근을 못하자 서 사장은 12일부터 청원경찰과 각 본부장, 국/실장 등 2백여 명의 호위를 받아 사장실로 출근했고, 경찰 측은 백골단 3백여 명을 여의도 본사에 투입시켜 사원 117명을 강제연행해 갔다. 이에 13일 비대위 측은 전국비상사원총회를 통해 서기원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송출기술부를 빼고 무기한 제작거부 투쟁에 돌입하였으며, 25일에는 3,000여 명의 조합원이 참가한 가운데 남산에서 여의도까지 '언론민주화쟁취요구 평화행진'을 진행했다.
이에 경찰은 30일 오후 사원총회의 분위기가 정상화 방안을 거부하는 쪽으로 기울자, 여의도 KBS 본사 주변에 전의경 3천여 명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사원들의 투표 결과가 예상대로 부결 쪽으로 나타나자 개표 종료 2시 30분 만에 KBS에 들어갔다. 경찰측은 밤 11시 45분에 '여의도 진압작전'이란 명칭으로 KBS 농성 강제해산에 돌입해 50여분 만에 본관 2층 로비에서 사원 333명을 강제로 끌고 갔다.
[[KBS 9시 뉴스]] 역시 파업으로 4월 12일부터 별도 스튜디오에서 진행했고, [[박성범]] 보도본부장 겸 당시 KBS 9시 뉴스 앵커는 사원들의 파업 보도 요구를 묵살해서 KBS 사태를 보도하지 않자 노조원들이 스튜디오에 들어오면서 날씨와 스포츠 뉴스, 클로징도 하지 못한 채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694549|12분만에 방송이 조기 종료되어 버렸다.]] 그 다음 날인 13일은 9시 뉴스 중단을 단행해서 내용을 엄청나게 간추려버려 당초 45분짜리가 13분으로 줄어든 채 뉴스가 나간 후 방송이 중단되는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694565|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이러한 중단은 뉴스9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다. 정확히 24년 후, [[길환영]] 사장 퇴임을 위한 총파업때도 이 상황은 이어진다.]
타 방송사 노조들의 연대투쟁도 시작됐는데, MBC노조는 KBS 2차 경찰 투입 직후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었고, 그 결의에 따라 서울 본사는 5월 1일 10시에 비상총회를 열어 전면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19개 지방 MBC도 비대위의 결정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연대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이미 4월 23일부터 무기한 철야농성을 벌여왔던 CBS노조도 같은 날 MBC와 동시에 제작 거부에 돌입하여, 모든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음악만 내보냈다. 5월 2일엔 KBS-MBC 양 방송사 노조가 '구속동지 석방촉구 및 노태우정권 규탄대회'를 열었고, 5월 4일 안동수 비대위원장이 연행당하자 김철수 기획제작국 PD를 새 위원장으로 선출해 방송 정상화와 서기원 퇴진을 요구하며 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결과적으로 이 파업은 노조의 역할을 공고히 했다는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후술할 언론들의 편파보도로 인해 폭넓은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날이 갈수록 내부 분열까지 겹쳐 어려움을 겪은 KBS 노조는 5월 17일에 파업을 중단하고 방송 정상화에 임했고, 안동수 노조위원장 등 노조 측 14명은 구속되었다.
== 언론들의 반응 ==
=== 사설 ===
4월 12일 공권력 투입을 수반한 서기원의 사장 취임 이후 발생된 KBS 사원들의 방송파업에 대한 일간신문 사설 내용들도 하나같이 사원들에 대해 한결같이 비판 일변도였다. 한겨레만이 4월 14일자 사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41400289106002&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4-14&officeId=00028&pageNo=6&printNo=592&publishType=00010|<언론계가 힘을 모아 KBS 살리자>]]를 비롯해 19일자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41900289106008&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0-04-19&officeId=00028&pageNo=6&printNo=596&publishType=00010|<서기원씨 사퇴가 유일한 해결책>]], 21일자 사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42100289106003&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4-21&officeId=00028&pageNo=6&printNo=598&publishType=00010|<정권의 '방송 장악'은 허망한 꿈>]]까지 세 차례에 걸쳐 KBS 사원들의 입장을 지지했을 뿐 나머지 8개 중앙지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부도 잘못됐고 KBS 사원들 역시 잘못했다는 소위 '양비론'을 펼쳤다. 거의 모든 사설들이 천편일률적으로 KBS에 대한 정부의 공권력 투입은 성급했다는 것을 지적하는 한편, 파업을 하는 KBS 사원들에게도 '파업 그만하고 방송 정상화나 해라'는 식으로 본업 복귀를 촉구했다.
대표적인 예로 [[경향신문]]은 4월 14일자 사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41400329202002&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04-14&officeId=00032&pageNo=2&printNo=13707&publishType=00020|<KBS는 국민의 것이다>]]에서 "교조적인 논리에 얽매여 타협 없는 극한투쟁으로 치달을 경우 더 큰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는 식으로 KBS 사원들을 꾸짖었다. [[국민일보]] 역시 사설 [[http://news.kmib.co.kr/article/viewDetail.asp?newsClusterNo=01100201.19900414000000201|<방송은 일단 정상화시켜야>]]에서 "국가에 비상사태가 나거나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에는 방송이 중단되지 않아야 한다"며 "국민을 경시하고 우롱하는 처사는 당장이라도 중지해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도 같은 날 사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41400209202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04-14&officeId=00020&pageNo=2&printNo=21088&publishType=00020|<심심찮은 KBS 사태>]], [[중앙일보]] 사설 [[http://news.joins.com/article/2453273|<일단 방송은 제대로 하라>]], [[한국일보]] 사설 [[http://hankookilbo.com/v/94a7b68fcd274bd2901e24a68e33eaaa|<우려되는 KBS사태>]]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했고, 4월 15일자 [[서울신문]] 사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19900415002001&rftime=20150630&redirect=false|<방송은 정상화돼야>]], [[조선일보]] 사설 [[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2124619900415m1032&set_date=19900415&page_no=3|<KBS는 누구와 싸우나>]]에서도 파업을 맹비난하고 제작복귀를 촉구했다.
거기에 4월 19일 [[세계일보]] 사설 [[http://www.segye.com/newsView/19900419000019|<방송부터 정상화시켜라>]]에서 "국민들은 방송사 내부 분쟁으로 알 권리를 차단당하고 있는 셈"이라며 다른 문제는 뒤로 미루고 방송을 우선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20일자 경향신문 사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42000329202002&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04-20&officeId=00032&pageNo=2&printNo=13712&publishType=00020|<방송은 정상화해야>]], 중앙일보 사설 [[http://news.joins.com/article/2454726|<KBS사태 수습의 원칙>]]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폈다.
=== 칼럼 ===
대다수 중앙 일간지 칼럼들도 양비론을 펼치면서 KBS 사원들의 방송 정상화를 촉구했다. 다만 동아측 칼럼들만이 사설에 비해 비교적 KBS 사원들의 입장에 동조하는 성향을 보였다.
1990년 4월 15일, 서울신문 논설위원 송복 교수는 칼럼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19900415003002|<모두 제자리로 돌아가라>]]에서 "이번에 KBS 노조가 하고 있는 행동은 철저히 남의 영역에 대한 월권행위"라고 주장하고 KBS 사원들이 "어떻게 얼굴을 들고 활보할 수 있겠는가"라며 의문을 제기하는 등 KBS 사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 4월 18일자 홍사중 칼럼 [[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2124919900418m1053&set_date=19900418&page_no=5|<중단된 방송>]]에서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4월 17일 동아일보 <동아시론>에서 [[박권상]] 당시 [[시사저널]] 편집인은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41700209205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04-17&officeId=00020&pageNo=5&printNo=21091&publishType=00020|<KBS 사태의 실마리를 풀려면>]]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구체적인 주장의 개진 없이 사태해결 방법으로 영국 [[BBC]]처럼 우리 정부가 진정한 방송의 공영화를 스스로 정치철학으로 삼고 있느냐는 여부에 대한 확고한 의지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원론적인 주장을 폈다. 반면 같은 날 조선일보 <TV 주평>에서는 노사 양측이 방송민주화나 공영방송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독점하지 말라고 [[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2124819900417m11031&set_date=19900417&page_no=10|촉구했다.]]
4월 19일에 동아일보 생활부장 어경택은 '오늘과 내일'이라는 칼럼란에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41900209205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04-19&officeId=00020&pageNo=5&printNo=21093&publishType=00020|<서 사장 용퇴하시오>]]라는 칼럼을 내 서기원의 용퇴를 요구하면서 "사원들이 대적하고 있는 상대방은 파행방송에 따른 시청자들의 불만을 모아 그 비난의 화살을 제작을 거부하고 있는 사원들에게 돌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여 조속히 방송을 정상화하라는 충고를 했다. 거기에 당일 서울신문 '방송칼럼'은 "KBS의 사내 문제로 시청자 권리를 박탈당한 많은 시청자들의 분노의 표출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KBS 사원 대표 고희일은 같은 날 국회 문공위 증언에서 "녹슨 수돗물을 계속 가정에 보낼 수 없어 잠시 수도관 공사를 한 뒤 맑은 수돗물을 보내고자 하는 것이니 양해를 바란다."고 밝혔다.
== 이후 ==
KBS 사태를 진압한 노태우 정부는 그 여세를 몰아 6월 14일에 새로운 방송제도 개편안을 발표하고, 7월 11일과 14일에 방송법과 한국방송공사법, 한국방송광고공사법 등 방송 관련 3개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이 법안들의 핵심 골자는 민방 신설과 [[방송위원회]], [[한국방송광고공사]], [[한국교육방송공사|교육방송]]에 대한 정부의 통제 강화 등이었는데, 특히 개정 방송법은 방송위의 고유권한이던 방송정책 최고결정권을 공보처에 넘긴 채 방송내용 심의에만 국한시키도록 했고, 한국방송공사법은 KBS 이사회의 기능을 경영에만 국한시켜 사장이 직접 본부장을 임명토록 했다. 그리고 이사회는 매년 경영평가를 실시해 그 결과를 매년 공보처에 보고하고, KBS 경영과 관련해 공보처장관 요청도 신중히 검토토록 했다. 방송광고공사법 역시 '공익자금관리위원회'를 설치해 그 자리를 친정부 인사로 채우도록 했다.
이에 방송인들은 노태우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를 읽고 다시 저항에 나섰다. 7월 12일에 [[MBC]] 노조가 먼저 제작거부에 돌입하여 KBS, [[기독교방송|CBS]], [[PBC]] 등 나머지 3개 방송사 노조는 '연대 제작거부'라는 결의를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연대 제작거부 역시 한계가 있었고, 결국 4개 방송사 노조는 투쟁 3일 만에 '프로그램을 통한 투쟁'이라는 대안을 내건 채 제작을 재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프로그램 투쟁의 허점은 KBS는 물론이요 MBC에서도 곧 드러나고 말았다. 1989년에 부임한 MBC 최초의 방송인 출신 사장 [[최창봉]]이 1990년 3당 합당, KBS 사태, 방송법 날치기 통과 등으로 정권 눈치를 보며 태도를 바꾸었다. 최 사장은 8월 24일에 보도국장을 포함한 11명의 국장급 인사를 단행하면서 국장 추천제를 규정한 단체협약을 위반하더니, 9월 15일에는 [[PD수첩]] - '그래도 농촌을 포기할 수는 없다[* 9월 18일 방영 예정분.]' 편의 방송 취소에 항의한 안성일 노조위원장에게 6개월 정직, 김평호 노조사무국장에게 해고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9월 21일에 자신에 대한 노조의 불신임안이 가결되자 10월 6일에는 안 위원장까지 해고시켰다.
심지어 공정방송 최후의 보루였던 MBC 보도국 역시 노태우 정권에 굴복해 절망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세태를 보여주듯 10월 17일에 기자 일동이 발표한 성명서에는 "MBC 보도국이 다시 신분상승과 권력 배분을 위한 복마전이 돼 가고 있으며, 편집은 귓속말과 은밀한 전화로 이루어지고 눈치가 편집방향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이달 19일에 전체 MBC 보도국 소속 기자들도 "늘상 집권세력에 야합하려는 습기찬 음모와 알량한 기득권을 향유하려는 독기가 서려 있음"이라고 개탄했다.
10월 19일에 KBS 사태와 관련하여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된 KBS 전 노조위원장 안동수와 현 노조위원장 김철수는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선고공판에서 각각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이 적법절차에 따른 공정방송 추구 노력을 저버렸고 극단적 제작 거부로 인한 파행 방송이 국민생활 전반에 불안을 초래한 점은 실정법 차원에서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취지를 밝혔다.
1991년 1월 서기원 사장이 KBS 정상화를 이유로 사표를 제출했다가 반려됐고, 그 사이 지방선거에서도 민자당이 압승을 거두었고 1992년 총선 결과에도 민자당이 무소속 의원 확보로 과반은 넘게 차지하였기에 서기원 사장은 3년 임기를 다 채우고 물러났다. 한편 이 기간동안 노태우 정부에게 친화적인 논조로 되돌아오면서 KBS 9시 뉴스의 시청률은 내려앉아서 10%대를 기록하게 되었는데 그치게 되었다.[* 의외로 KBS 9시뉴스가 수위권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중장년층 이상 시청자층에게 압도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게 된것은 [[홍두표]] 시절부터였고 서기원 사장 때까지는 MBC 뉴스데스크가 똑같이 친정부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면에서 압도적이었다.]
== 여담 ==
재야 현대사학자 임영태는 해당 파업에 대해 방송인들의 의식구조를 변화시켰다고 해석했다. 5공 시절 언론인들은 권력에 굴종하며 높은 보수와 사회적 지위를 누려왔지만, KBS 파업 당시 이들에게도 공권력이 가차없이 폭력을 가함으로써 그때의 특권은 상대적인 것이었다고 깨달은 것이다. 이 상황으로 볼 때, 방송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진정한 스타는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이계진]] 아나운서도 파업에 참여하였다.
한편, KBS 사태 당시 대하드라마 <역사는 흐른다>를 비롯해 <[[TV 손자병법]]>, <울밑에 선 봉선화[* 당시 신인 탤런트 [[변영훈]]이 처음 비중있는 역을 맡은 사실상의 출세작.]> 등 각종 드라마들이 잠정 중단되었으며 이들 중 <울밑에 선 봉선화>에 출연해 온 [[김미숙]]은 이 작품이 잠정 중단된 후 <어둔 하늘 어둔 새>를 통해 MBC로 자리를 옮겼다.[* 이 작품에서 홍이숙 역을 맡았던 [[김보연]]은 <어둔 하늘 어둔 새>에 앞서 KBS 2TV <꽃 피고 새 울면>에 캐스팅되었으나 작가와의 불화로 출연을 중단한 데 이어 KBS 사태까지 발생하자 <어둔 하늘 어둔 새>로 발길을 돌렸다.]
아울러, 김미숙 외에도 [[전인화]], [[김희애]], [[조민수(배우)|조민수]], [[김영철(배우)|김영철]], [[최재성(배우)|최재성]] 등의 인기 배우들이 KBS 사태 후 MBC를 비롯한 다른 방송사로 자리를 옮겨야 했으며 [[김혜수]], [[이미연(배우)|이미연]], [[손창민]], [[하희라]] 등 대학교-대학원 학생 연기자들은 학점 만회에 전념해 왔다.
가요계에서는 [[조정현(가수)|조정현]]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가수로 꼽히는데,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가 골든컵을 놓치고 3주 수상에 그쳤으며[* 2주 1위 후 두달간의 파업 이후 1주 1위를 했다. 즉 그 기간 동안 여전히 가장 인기있는 노래였던 셈.] 후속곡인 <슬픈 바다>도 충분히 1위할만한 노래인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흘러버려 10위권 정도에 그쳤다.
KBS2의 주말 음악 프로그램 '쇼 특급'의 후속작인 '쇼 토요특급'은 1990년 3월 첫방송 예정이었으나 이 사태로 인해 방송이 연기되고 1990년 6월 첫방송되었다.
== 출처 ==
* <한국 현대사 산책 - 1990년대편 1권> - 강준만 저. 인물과사상사(2006) p50~58.
* <한국민주화운동사 연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6. p557
== 관련 자료 ==
* [[https://klmemory.osasf.net/items/show/392|서울대 김세진이재호기억저장소 자료]]
== 관련 문서 ==
* [[사건 및 사고 관련 정보]]
* [[한국방송공사/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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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한국시리즈 | [include(틀:역대 KBO 한국시리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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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정삼흠]]. 제 3구, 삼진 아웃! 경기 끝났습니다. 우승 LG입니다. 우승 LG. 준우승 삼성. 90 패권은 LG가 그야말로 4판을 연속적으로 우승하면서 경기를 마무리짓고 있습니다.'''
> ----
> 중계진 우승콜
[목차]
== 개요 ==
||<tablewidth=100%><-2><:><tablebordercolor=#edd36c><bgcolor=#00143f,#0b1966> {{{+2 {{{#edd36c '''1990'''}}} {{{#edd36c '''프로야구'''}}} {{{#ffffff '''한국시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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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Y084o00FSI|하이라이트 영상]]
1990년 10월 24일에 시작하여 4승 무패로 [[LG 트윈스]]가 첫 [[KBO 리그]] 정상에 오른 시리즈. [[MBC 청룡]] 시절부터 계속되었던 부진을 극복해내고,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우승이다. 구단의 소유주와 명칭을 바꾼 바로 이듬해에 우승한 최초의 (그리고 현재로서는 유일한) 시리즈. 그리고 단일리그 제도 변경 후 최초의 리그 우승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이면서[* 전후기리그 체제에서 단일리그 체제로 전환된 것은 바로 앞선 해인 1989년부터였다. 그러나 [[1989년 한국시리즈|그 해 한국시리즈]]의 패권은 정규리그 우승팀 [[빙그레 이글스]]가 아닌 2위팀 [[해태 타이거즈]]가 따냈다. 빙그레와 김영덕 감독에게는 해태 공포증, 준우승 콤플렉스로 두고두고 아쉬웠을 승부였고, 이는 1991년에 반복된다.] [[서울특별시]] 연고 구단의 첫 우승이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OB 베어스]]가 우승할 당시에는 [[충청도]] 광역 연고지였다. OB가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한 건 1985년부터.] 시리즈 MVP는 1차전과 4차전의 선발투수로 나서 2승을 거둔 [[김용수]].
내용 면에서는 너무 싱겁게 끝난 경기라서 재계 라이벌에게 무력하게 졌다는 이유로 준우승팀 삼성의 [[정동진]] 감독이 해임된 [[흑역사]]가 있기도 하다. 그리고 [[2010년 한국시리즈|20년 후]] [[선동열|똑같은 일]]이 삼성에 벌어진다.
== 시리즈 전 상황 ==
1990년 정규 시즌은 역대 손꼽히는 치열한 정규시즌 1위 쟁탈전이 벌어진 한 해였다. 시즌 종료를 한 달 남긴 시점까지는 [[빙그레 이글스]]의 우승이 누가봐도 유력했지만, 시즌 막판 [[김영덕]] 감독의 종신 감독설을 둘러싸고 [[김영덕]] 감독과 [[강병철]] 수석 코치 간의 묘한 갈등으로 팀 분위기가 흐뜨러지면서 빙그레는 결국 3위로 내려 앉았고, 그 틈을 타서 LG는 극적으로 막판 추격한 [[해태 타이거즈]]를 반 게임차로 제치고 정규시즌 1위를 달성했다.
세 팀이 정규시즌 마지막 날까지 물고 물리는 1위 대결을 벌이는 통에 웃은 것은 일찍 4위를 확정지은 [[삼성 라이온즈]]였다. 삼성은 준 PO에서 빙그레를 가볍게 2연승으로 완파했고, PO에서는 과거 두차례의 한국시리즈에서 고배를 마셨던 해태를 3연승으로 제압하면서 한국시리즈에서 오르는데 성공했다. 특히 공포의 존재였던 [[선동열]]을 1~2차전에서 연속으로 격파하여 선동열 공포증도 깨끗하게 지워버리면서 자신만만하게 한국시리즈에 임했다.
적당히 경기 감각을 살린 채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삼성과 1위로 푹 쉬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큰 경기 경험이 전무한 LG의 대결은 시작 전에는 접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중론이었다. 투수진은 [[김태원(야구선수)|김태원]]-[[김용수]]-[[정삼흠]]이 버틴 LG가 유리했지만 타선은 [[이만수]]-[[박승호(야구)|박승호]]-[[강기웅]] 등 한방을 갖춘 삼성이었기 때문에 해볼만 하다는 예측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시리즈가 열리자 시간적으로 우위를 가진 LG는 플레이오프까지의 기간 동안 삼성에 대한 전력 분석을 끝마친 상태였고,[* 덤으로 1990년 정규시즌 전적에서도 LG가 삼성보다 우세를 차지하여 LG 선수들이 삼성과의 대결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편이었다.][* 삼성은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했다.] 삼성은 LG의 작전에 말려들어가면서 '''한국시리즈 11연패'''라는 [[흑역사]]를 쓰고 만다. 동시에 최초의 [[전승준]]도 확정.[* 그리고 [[2003년 한국시리즈|13년 후]], [[SK 와이번스]]가 두 번째 전승준을 했다.]
== 엔트리 ==
=== [[LG 트윈스]] ===
||<-3><#c30452><tablewidth=80%> '''{{{#ffffff LG 트윈스 1990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000000><width=10%> '''{{{#ffffff 감독}}}''' ||<width=10%> 1명 ||<width=80%> [[백인천]] ||
||<#000000><width=10%> '''{{{#ffffff 코치}}}''' ||<width=10%> 6명 ||<width=80%> [[조창수]] [[김용달]] [[김인식(1953)|김인식]] 김봉기 최정기 정순명 ||
||<#000000><width=10%> '''{{{#ffffff 투수}}}''' ||<width=10%> 12명 ||<width=80%> [[정삼흠]] [[김신부]] [[차동철]] [[유종겸]] [[김태원(야구선수)|김태원]] [[김용수]] [[김기범(야구)|김기범]] [[문병권(야구선수)|문병권]] [[김건우(1963)|김건우]] [[이용철(야구)|이용철]] 이국성 [[최일언]] ||
||<#000000><width=10%> '''{{{#ffffff 포수}}}''' ||<width=10%> 2명 ||<width=80%> [[심재원(야구선수)|심재원]] [[김동수(야구선수)|김동수]] ||
||<#000000><width=10%> '''{{{#ffffff 내야수}}}''' ||<width=10%> 8명 ||<width=80%> [[김재박]] [[김상훈(1960)|김상훈]] [[김동재]] 유지홍 [[민경삼]] 나 웅 [[김선진]] [[이광은]] ||
||<#000000> '''{{{#ffffff 외야수}}}''' ||<width=10%> 6명 ||<width=80%> 신언호 [[박흥식(야구)|박흥식]] [[윤덕규]] [[김영직]] [[노찬엽]] [[양승관]] [[이병훈(야구)|이병훈]] ||
=== [[삼성 라이온즈]] ===
||<-3><#007FFF><tablewidth=80%> '''{{{#ffffff 삼성 라이온즈 1990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fecd00><width=10%> '''{{{#007FFF 감독}}}''' ||<:> 1명 || [[정동진]] ||
||<#fecd00><width=10%> '''{{{#007FFF 코치}}}''' ||<:> 7명 || [[우용득]] [[유백만]] [[김명성(1946)|김명성]] [[함학수]] [[배대웅]]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 [[천보성]] ||
||<#fecd00><width=10%> '''{{{#007FFF 투수}}}''' ||<:> 11명 || [[최동원]] [[성준(야구선수)|성 준]] [[이태일]] [[김상엽]] [[김성길]] 정윤수 홍성연 [[류명선]] [[이문한]] 오명록 [[이상훈(우완투수)|이상훈]] ||
||<#fecd00><width=10%> '''{{{#007FFF 포수}}}''' ||<:> 2명 || [[이만수]], [[박정환(1957)|박정환]] ||
||<#fecd00><width=10%> '''{{{#007FFF 내야수}}}''' ||<:> 8명|| [[김용철(야구)|김용철]] [[류중일]] [[김용국(야구)|김용국]] [[강기웅]] [[박승호(야구)|박승호]] [[최해명]] 이현택 [[정경훈]] ||
||<#fecd00><width=10%> '''{{{#007FFF 외야수}}}''' ||<:> 7명 || [[장태수(1957)|장태수]] [[홍승규]] [[강영수]] [[이종두]] [[정성룡(야구선수)|정성룡]] 김종갑 구 윤 ||
== 경기결과 ==
=== 1차전 ===
||<-999><#c30452><:> {{{#ffffff '''한국시리즈 1차전, 10.24(수),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ffffff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007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성준(야구선수)|성준]] ||<:> 0 ||<:> 0 ||<:> 0 ||<:> 0 ||<:> 0 ||<:> 0 ||<:> 0 ||<:> 0 ||<:> 0 ||<#dcdcdc><:> '''0''' ||<:> 4 ||
||<:><#c30452> '''[[LG 트윈스|{{{#ffffff LG}}}]]''' ||<:> [[김용수]] ||<:> 2 ||<:> 0 ||<:> 5 ||<:> 0 ||<:> 1 ||<:> 0 ||<:> 2 ||<:> 3 ||<:> - ||<#dcdcdc><:> '''13''' ||<:> 21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MBC|[[파일:attachment/mbc86.jpg|width=50]]]] | 캐스터: 임주완 | 해설: 김소식''' ||
삼성은 선발로 [[성준(야구선수)|성준]]을 내세웠고, LG는 선발로 [[김용수]]를 내세웠다. 경기는 초반에 갈렸다. 1회 안타 5개를 집중시켜 2득점하면서 삼성은 일찍부터 성준을 강판시키고, 최동원을 구원투수로 내세웠으나, 3회에 다시 집중타를 몰아치면서 5점을 뽑아 승부를 완벽하게 갈라 버렸다.[* 이 경기가 최동원의 마지막 경기였고, 최동원은 1990 시즌의 종식과 함께 은퇴했다.] 그리고 그 뒤로 여유있게 LG의 페이스. LG는 승부가 기울자, 주전들을 모두 빼고, 민경삼과 김동재, 유지홍 같은 벤치멤버들을 내세우고도 삼성 마운드를 폭격, 꾸준히 점수를 내면서 무려 21안타를 삼성을 상대로 쏟아부어 13점을 얻어내며 삼성의 마운드를 초토화시켰다. [[김상훈(1960)|김상훈]]이 3안타 3타점, [[이광은]]이 3안타 2타점, [[박흥식(야구)|박흥식]]과 [[김재박]], [[김동수(야구선수)|김동수]]도 2안타를 뽑아내면서 그야말로 삼성 마운드를 맹폭하며 가볍게 승리했다.
마운드에서는 김용수가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고, 뒤이어 경기 감각 조율차 8회부터 마무리 [[정삼흠]]을 올려 가볍게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면서 여유있게 승리를 결정지었다.
이 경기는 LG 트윈스 '''팀 최초의 포스트시즌 승리'''였다.[* 1983년에 이미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이 때는 1승도 올리지 못했다.(...)] ~~그리고 당시 7개팀 중 가장 뒤늦게 포스트시즌 1승을 거뒀다는 게 함정... 그래도 한풀이였는지 대승을 거두긴 했다.~~
=== 2차전 ===
||<-999><#c30452><:> {{{#ffffff '''한국시리즈 2차전, 10.25(목),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ffffff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R''' ||<:> '''H''' ||<:> '''E''' ||<:> '''B''' ||
||<:><#007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김성길]] ||<:> 1 ||<:> 0 ||<:> 0 ||<:> 0 ||<:> 0 ||<:> 1 ||<:> 0 ||<:> 0 ||<:> 0 ||<:> 0 ||<:> 0 ||<#dcdcdc><:> '''2''' ||<:> - ||
||<:><#c30452> '''[[LG 트윈스|{{{#ffffff LG}}}]]''' ||<:> [[김태원(야구선수)|김태원]] ||<:> 0 ||<:> 0 ||<:> 1 ||<:> 0 ||<:> 0 ||<:> 0 ||<:> 0 ||<:> 0 ||<:> 1 ||<:> 0 ||<:> 1X ||<#dcdcdc><:> '''3''' ||<:> - ||
중계방송사는 KBS 1TV.
삼성은 선발로 부시맨 [[김성길]]을 내세웠고, LG는 선발로 [[김태원(야구선수)|김태원]]을 올렸다. 경기는 1차전과 달리 삼성이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으며 팽팡한 접전 양상으로 이어졌다. 1회초 삼성은 1사 이후 이현택의 볼넷에 이어 [[박승호(야구)|박승호]]가 우익선상을 따라가는 1타점 2루타 날리며 먼저 선취점을 올렸다. 하지만 1회초 이어진 1사 2루 찬스를 놓쳤다. 그리고 2회초 1사 1,2루 찬스에서 더블 스틸을 시도하다가 3루에서 아웃되었고, 이어진 2사 2루 찬스도 [[류중일]]의 안타 때, 2루 주자가 우익수 김영직의 홈송구에 홈에서 아웃되면서 달아날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그리고 LG는 곧바로 3회말 공격에서 선두타자 김상훈과 박흥식이 나가며 무사 1,2루를 만들었지만, 노찬엽이 병살타를 치면서 기회를 날리는 듯했다. 하지만, 다음타자 김동수가 2사 3루 상황에서 중전안타를 쳐내며, 바로 동점을 만들었다.
삼성은 6회초 박승호가 솔로 홈런을 치면서 다시 앞서 나갔고, 계투진을 동원해서 1점을 지키려 했다. 특히 6회말 2사 만루의 위기를 넘기면서 완벽히 삼성의 페이스로 가져오는 듯 했다. 그러나 삼성은 더이상의 추가점을 뽑지 못했고 9회말 LG의 대반격이 시작되었다. 선두타자인 박흥식이 유격수 키를 살짝 넘긴 빚맞은 안타로 포문을 열었고 [[윤덕규]]의 좌전안타로 무사 1,2루의 찬스를 잡았다. 하지만 여기서 [[김상훈(1960)|김상훈]]이 6-3으로 이어지는 병살타를 치면서 경기는 삼성의 승리로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3회말과 같은 상황이 다시 일어났다. 2사 3루에서 '영감' [[김영직]]이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극적인 동점 적시타를 치면서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연장 11회말 공격에서 [[이병훈(야구)|이병훈]]이 이태일의 4구를 잡아당겨 좌익선상에 떨어지는 2루타로 포문을 열었고 윤덕규의 중전안타와 김상훈의 고의사구로 1사 만루를 만들고, 여기서 김영직이 바뀐 투수 정윤수를 상대로 2-3 풀카운트에서 볼을 골라내 끝내기 밀어내기를 기록하며 2차전도 승리를 가져 갔다.
=== 3차전 ===
||<-999><#c30452><:> {{{#ffffff '''한국시리즈 3차전, 10.27(토), 14:0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ffffff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c30452> '''[[LG 트윈스|{{{#ffffff LG}}}]]''' ||<:> [[김기범(야구)|김기범]] ||<:> 0 ||<:> 3 ||<:> 0 ||<:> 0 ||<:> 0 ||<:> 0 ||<:> 0 ||<:> 0 ||<:> 0 ||<#dcdcdc><:> '''3''' ||<:> 6 ||
||<:><#007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성준(야구선수)|성준]] ||<:> 0 ||<:> 0 ||<:> 0 ||<:> 0 ||<:> 0 ||<:> 0 ||<:> 0 ||<:> 0 ||<:> 2 ||<#dcdcdc><:> '''2''' ||<:> 5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MBC|[[파일:attachment/mbc86.jpg|width=50]]]] | 캐스터: 양진수 | 해설: 김소식''' ||
홈으로 돌아온 삼성은 1차전 선발 [[성준(야구선수)|성준]]을 다시 기용했고, LG는 좌완 김기범을 내세웠다.[* 당초 [[문병권]]이 선발투수인 것처럼 연막작전을 펼쳤다고 한다. 선발예고제가 도입되기 이전이라 가능했던 작전.] 승부는 2회초에 갈리는데 2회초 공격에서 LG는 4번 노찬엽과 5번 김동수가 각각 안타와 볼넷으로 걸어나갔고, 6번타자 이광은이 몸에 맞는 공으로 나가면서 무사 만루의 찬스를 만들었다. 여기서 [[이병훈(야구)|이병훈]]이 빗맞은 땅볼 타구를 날렸는데 전진수비를 하던 3루수의 키를 넘겨버리면서 외야까지 굴러가버렸다. 2타점 적시타. LG가 먼저 앞서 나갔다. 그리고 이어진 찬스에서 [[김영직]]의 희생플라이로 추가점을 내면서 3:0으로 앞서 나갔다.
그 뒤로는 줄곧 투수전의 연속이었다. LG는 2회부터 구원등판한 삼성의 [[이태일]]의 투구에 말리면서 그 뒤로 이렇다할 찬스를 잡지 못했다. 삼성도 LG 선발 김기범을 전혀 공략하지 못하여 7회 투아웃까지 안타 2개로 완전히 눌렸다. 삼성은 그나마 9회말 2아웃에서 [[이만수]]가 2점 홈런을 쳐 한가닥 희망을 살리려 애썼지만, 너무 늦은 추격이었다. 곧바로 다음 타자 강기웅이 [[정삼흠]]에게 우익수 플라이로 아웃되었고, 결국 3차전도 LG의 승리로 끝났다.
=== 4차전 ===
||<-999><#c30452><:> {{{#ffffff '''한국시리즈 4차전, 10.28(일), 14:0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ffffff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c30452> '''[[LG 트윈스|{{{#ffffff LG}}}]]''' ||<:> [[김용수]] ||<:> 0 ||<:> 0 ||<:> 4 ||<:> 0 ||<:> 2 ||<:> 0 ||<:> 0 ||<:> 0 ||<:> 0 ||<#dcdcdc><:> '''6''' ||<:> 13 ||
||<:><#007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 [[김상엽]] ||<:> 0 ||<:> 0 ||<:> 0 ||<:> 0 ||<:> 0 ||<:> 2 ||<:> 0 ||<:> 0 ||<:> 0 ||<#dcdcdc><:> '''2''' ||<:> 6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KBS1|[[파일:KBS 1 logo[1].png|width=45]]]] | 캐스터: 정도영 | 해설: 하일성''' ||
LG는 1차전 승리의 주역인 [[김용수]]를, 삼성은 [[김상엽]]을 선발로 내세웠다. 먼저 기회를 잡은 것은 삼성이었다. 2회말 무사 1,2루의 찬스를 잡았지만, 여기서 [[이만수]]의 잘맞은 타구를 LG의 좌익수 [[윤덕규]]가 호수비로 잡아내 2루 주자까지 아웃시키면서 순식간에 삼성의 찬스가 날라갔다. 반대로 LG는 3회초 공격에서 [[김재박]]의 볼넷을 시작으로 연속 2안타로 1점을 먼저 낸 후, 3번 [[김상훈(1960)|김상훈]]의 투수 앞 땅볼을 김상엽이 잘 잡고도 어디로 던질지 머뭇거리다가 주자와 타자를 모두 살려주는 보이지 않는 실책을 저지른 것을 틈 타, [[노찬엽]]의 희생플라이와 [[김동수(야구선수)|김동수]], [[이광은]]의 연속 안타로 추가 3점을 내면서 승부를 갈랐다. 그리고 5회초에 [[김영직]]의 안타와 김상훈의 3루타로 다시 점수를 내면서 점수를 6:0으로 벌리면서 우승을 사실상 예약했다.
||<:><tablealign=center> [[파일:1990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순간.jpg|width=300]] ||
||<:> 4차전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 삼성의 5번 타자 [[이종두]]를 3구 삼진으로 처리하여 우승을 확정했다.] 환호하는 [[정삼흠]]과 [[심재원(야구선수)|심재원]] ||
삼성은 6회말 두 점을 추격했지만, 경기를 뒤집을 힘은 없었고, 결국 경기는 6:2 LG의 승리로 끝나면서 LG는 전신인 [[MBC 청룡]]을 포함해서 사상 첫 우승의 감격을 맛 봤다. 시리즈 2승을 챙긴 [[김용수]]는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반대로 삼성은 1986년부터 이어진 한국시리즈 연패를 11로 늘리면서 한국시리즈에서 약한 징크스를 그대로 가져가고 말았다.
== 후일담 ==
*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삼성 라이온즈]]의 [[정동진]] 감독은 4전 4패로 무기력하게 재계 라이벌에게 패한 책임을 지고 경질되었다. 그리고 후임으로 들어온 감독은 당시 [[태평양 돌핀스]]의 돌풍을 이끈 [[김성근]] 감독. 그러나 김성근 감독은 재임 2년 동안 PO에는 올랐지만, 삼성과는 영 맞지 않은 성과를 내면서 삼성 시절을 본인 감독 경력의 [[흑역사]]로 남기고 만다. 그리고 멀리보면 이 [[정동진]] 감독의 갑작스런 해임이 이후 [[556#s-7|삼성의 3년간의 암흑기]]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 [[정동진]] 감독은 1년을 쉬고 92년부터 태평양의 감독이 되었고,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또 LG에 4연패로 고배를 마셨다. 결국 정동진 감독은 현재까지 LG가 차지한 2차례의 우승을, 그것도 1승도 건지지 못한채 내주는 ~~LG 우승의 숨은 주역~~ 기록을 남겼다.
* 재계 라이벌이자 전자 라이벌이 격돌한 시리즈답게 양 그룹은 자사 직원들도 동원하면서 자존심 대결을 그야말로 총력전 수준으로 벌였다.
* 3차전 9회말 주자가 1루에 나간 상황에서 [[정삼흠]]은 가급적 [[이만수]]를 피하는 방향으로 승부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백인천]] 감독은 정면 승부를 지시했고, 결과는 2점 홈런. 비록 3:2로 이기기는 했지만 LG 입장에서는 아찔한 순간이었는데, 뒤에 백인천 감독은 투수 리드가 약한 이만수가 계속 홈런을 치면서 상대가 라인업에서 빼지 못할테니까 일부러 맞은 것이라고 말했다.백인천의 이 말 때문에 이만수는 지금까지도 수비가 약한 포수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니게 된다. 물론 위에서도 적었듯, 이만수가 4차전에 선발출장하지 않을 가능성은 극히 낮았고(사실상 0%에 가까웠다) 홈런 레이스를 보면 알 수 있듯 일부러 홈런을 치라고 던져줘도 치기 힘든 만큼, [[백인천]] 감독의 면피 + 자기 과시용 발언일 가능성도 있다.
* [[삼성 라이온즈]]로서는 무려 5번째 한국시리즈 좌절([[1982년 한국시리즈|82]], [[1984년 한국시리즈|84]], [[1986년 한국시리즈|86]], [[1987년 한국시리즈|87]], 90)이자 LG에게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헌납하게 되었다. 하지만 12년 후 양 팀의 한국시리즈 리턴매치였던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두 팀의 역사가 바뀌게 된다.
* [[1990년]]은 [[KBO 리그]]를 포함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월드시리즈]], [[일본프로야구]] [[일본시리즈]]도 모두 시리즈 전적 4승 0패로 끝난 해였다. 이 해 [[1990년 월드 시리즈|월드시리즈]]에서는 [[신시내티 레즈]]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일본시리즈에서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가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각각 4승 0패로 제압했다. 이후 [[2005년]]에도 [[한국시리즈]], [[일본시리즈]], [[월드 시리즈]]가 모두 시리즈 전적 4승 0패로 끝났다.
* 이 시리즈 종료 후 [[FC 서울|럭키금성 황소]]가 [[K리그/1990년|프로축구에서 우승했다]]. 그러자 [[LG그룹|럭키금성 그룹]]은 야구와 축구에서 모두 우승을 거둬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10100289111013&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11-01&officeId=00028&pageNo=11&printNo=763&publishType=00010|우승! 또 우승!]]이라고 광고를 내기도 했다.
* [[LG 트윈스]] 팬덤에서 1990년 한국시리즈는 첫 우승이라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워낙 오래전에 치뤄진 한국시리즈에다가 다소 싱겁게 결판이 났다는 점에서 별로 화제에 오르지 못하는 편이다.[* 또한 후술하겠지만 당시 LG가 청룡에서 팀이 바뀐지 불과 1년만에 이룬 우승이라서 이후 등장할 1990년대 스타 선수들로 대표되는 LG의 새로운 팀 정체성이 형성되기 이전이었다는 점도 있다. 쉽게 말해 1990년의 우승은 'LG의 우승'이라기 보다 '청룡의 우승'에 더 가까웠던 셈.] 신인 3인방과 신바람 야구로 대표되는 역대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던 [[1994년 한국시리즈|1994년]]이나 극적이고 치열했던 [[2002년 한국시리즈|2002년]]에 비해 좀 묻히는 감이 있다.
* 1994년 한국시리즈가 [[김재현(1975)|김재현]], [[유지현]], [[서용빈]] 등 신예들의 폭발력으로 이룬 우승이었다면, 1990년 한국시리즈는 [[MBC 청룡]]의 한을 풀어버리는 우승이었다. 청룡의 초대 감독이었던 [[백인천]]이 선수단을 이끌고 [[김재박]], [[정삼흠]], [[심재원(야구선수)|심재원]], [[김용수]], [[김상훈(1960)|김상훈]] 등 청룡의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우승했기 때문이다.
* 한국시리즈를 포함해 1990년에 치뤄진 포스트시즌이 모두 한 팀의 싹쓸이 연승으로 끝났다. 준PO와 PO는 삼성 라이온즈가 2연승과 3연승으로, 한국시리즈는 LG 트윈스의 4연승으로 끝났다. 이는 KBO 리그에 단일리그와 준PO가 도입된 이래로 최초다.
== 관련 문서 ==
* [[LG 트윈스/1990년]]
* [[삼성 라이온즈/1990년]]
== 둘러보기 ==
[include(틀:한국프로야구 역대 포스트시즌 목록)]
[[분류:KBO 한국시리즈]][[분류:LG 트윈스]][[분류:삼성 라이온즈]] |
1990년대 | [include(틀:회원수정)]
||<-13><tablealign=center><bgcolor=#808080> {{{#09081c '''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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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 [[제1천년기]]}}} ||<bgcolor=#2f4f4f> [[제2천년기|{{{#ffd700 '''제2천년기'''}}}]] ||<-6> {{{-2 [[제3천년기]]}}} ||
[목차]
== 개요 ==
||<bgcolor=#FFF,#000> [youtube(sMhXWR5PCgo)] ||
||<bgcolor=#FFF,#000> 위 영상은 1990년대의 시작 직전 [[1980년대]] 마지막 날([[1989년]] [[12월 31일]])의 [[제야의 종]] 타종식 영상이다. ||
[[서기]] [[1990년]]부터 [[1999년]]까지를 가리키는 말.
[[세계]]적으론 '''[[냉전]]이 종식'''되고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가 확립된 시기. 그리고 [[대한민국]]에선 [[1980년대]] 후반부터 이어지고 있던 [[경제]] 호황이 정점을 찍었던 [[황금기]]이자, 동시에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한 최악의 경제적 시련기이기도 했다.
[[1990년]], [[독일 재통일|동서독 통일]]과 이듬해 발생한 [[소련|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사건 등, 체제 경쟁에서 [[공산주의]] 진영이 몰락하고, 자유([[자본주의]]) 세계가 승리하면서 세계 질서는 미국 주도로 재편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 이후 50여 년간 지속되어 온 냉전 체제가 종식되고 드디어 인류에게 평화의 시대가 찾아 오는가 했지만, 냉전 시절 잠자고 있던 극단적-폐쇄적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려 [[콩고 전쟁]]·[[걸프 전쟁]]·[[유고슬라비아 내전]]·[[체첸 분쟁|체첸 사태]]·[[보스니아 전쟁|보스니아 내전]]·[[코소보 전쟁]] 등이 세계 각지에서 터졌다.[* 특히 1994년 상반기에는 [[보스니아]], [[르완다]], 하반기에는 [[체첸]]이 각각 내전을 겪으며 '''현실에 지옥도가 펼쳐져 폐쇄적 민족주의의 단점을 제대로 드러냈다.''']
또한, 1990년대는 '''정보 혁명'''[* 과거 [[선사 시대]]의 [[농업 혁명]], [[18세기]]의 [[산업 혁명]]과 더불어 인류 문명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3대 혁명 중 하나에 해당된다. '''그 첨병은 바로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로 평가받는다. 대중들에게 정보통신(IT) 기술이 본격적으로 전파된 것이 이 시대로, [[휴대전화]], [[무선호출기]], 고성능 컴퓨터 등의 통신 기기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특히 '''[[월드 와이드 웹]]의 등장'''은 세계인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국경 없는 세계'를 만들어냈으나, 그 이면엔 불법사이트 범람, 미디어파일 저작권 문제, 짧은 디지털자료 수명 등 새로운 문제가 산재했다. 1990년대가 20년 넘은 과거가 된 [[2010년대]] 이후, 90년대를 뭉뚱그려 '아날로그'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늘었지만, 따지고 보면 1990년대가 우리가 흔히 보는 '멀티미디어'와 '디지털'이 시작된 시기인 셈이다.[* 이로 인해 연령대별로 '아날로그' 감성에서 떠올리는 시기가 다르기도 한데, 2020년대 기준 기성세대가 된 50대 이상은 [[1980년대]]나 90년대 초까지를 아날로그로 꼽는데(이들에게는 컴퓨터와 인터넷은 떠오르는 '디지털'의 상징이었을 수밖에 없다), 30-40대는 1990년대, 20~30대 젊은이들은 심지어 [[2000년대]]까지도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있다고 평가하며 이견이 드러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90년대~2000년대가 일종의 '''과도기'''에 해당하기 때문.] 인터넷을 필두로 한 정보 혁명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격변을 가져왔고 결국 [[2010년대]]에 스마트폰 등 '스마트'가 붙은 IT기기들이 일상생활 속 남아있는 아날로그 기기들까지 대체하면서 완전히 정착되었으며, 전자 및 IT업계도 1994~1997년까진 '멀티미디어'를 슬로건에 강조시켰고,[* 예시: '멀티미디어의 삼성전자', '하이미디어(LG전자)', '멀티미디어의 뉴프론티어(현대전자)' 등.] 1998~1999년을 기점으로 제품명이나 슬로건 등지에 '사이버'나 '디지털'을 갖다붙였다.[* 예시: 삼성 디지털(삼성전자), DIGITAL ez LG(LG전자) 등.]
1993년 [[북미자유무역협정]] 출범과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 1995년 [[세계무역기구]] 출범으로 금융과 경제 영역에서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화가 아주 활발히 진행되어 경제 장벽을 무너뜨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경제 정글'을 만들어냈는데, 미국은 이런 환경에서 아주 극적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는데 물론 중남미 지역은 그런거 없었다. 게다가 구미권은 이에 그치지 않고 전세계 경제체제를 미국/유럽식 경제체제로 포맷시키도록 만드는 데 앞장섰고, 이에 따라 '아시아의 네 마리 용'처럼 현지 특화 자본주의나 독자적 경제체제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1997년 동남아 경제위기 및 한국 외환위기가 터졌고, 무한경쟁에 따라 빈부격차도 점점 커져 2000년대 들어 20:80 사회로 고정되는 데 기여했다. 또 새천년을 앞두고 세계 도처에서 '반세계화 시위'도 터졌다. 신자유주의가 무르익다 보니 세계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유일한 승자처럼 인식돼왔고,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도 저서 <역사의 종말>에서 인류의 역사는 자본주의에서 끝난다고 전망했다.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보수주의가 정국을 주도했던 1980년대와 달리 전세계적으로 ‘신진보주의(신자유주의를 가미한 진보)’의 시대였다. [[빌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가 대표적으로, 1990년대 말 [[유럽]]은 대부분 제3의 길 성향의 사민주의 정권이 집권했다. 이른바 ‘장밋빛 유럽’. 다른 한편으로 서구권 등 선진국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정치적 올바름(PC)' 운동이 처음으로 정치권의 주류에 진입해, 일본 자민당, 이탈리아 줄리아노 아마토 내각 등 부패정권을 투표로서 몰아냈고, 미국에선 [[빌 클린턴]] 정부의 주도로 '흑인(Black)'을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 American)'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 경제는 점차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북유럽 국가들 중 냉전의 수혜자였던 핀란드가 소련 붕괴로 경제불황을 겪었고, 스웨덴도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겪었다. 서유럽 선진국조차도 과도한 복지비용, 강성 노조, 실업률 증가, 공장 해외이전 등 문제점이 폭로되며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져갔다.
[[북한]]은 1990년대 초 소련 등 공산주의 정권 붕괴에도 나라 문을 단단히 닫고 살았고, 1992년 IAEA 핵사찰을 받아들인 후 처음으로 핵개발 의혹이 불거졌다. 1994년 반세기 가까이 집권하던 [[김일성]]이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김정일]]이 뒤를 이어 1997년 정식 집권 전까지 '유훈통치'란 비정상적 체제로 돌입했다. 하지만 동구권 붕괴와 제3차 7개년 계획 실패, 각종 자연재해, 수교국 감소 등으로 인한 경제난으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어 중국과 러시아 파견 노동자를 통한 본격적인 북한 주민의 이탈이 시작됐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태국]]을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을 습격한 [[외환위기|아시아 금융위기]]로 인도네시아에서는 30년간 집권한 수하르토 정권이 퇴진하였고, 1999년에 동티모르가 국민 투표로서 독립을 선언하는 단초를 마련했다. 말레이시아는 외환위기를 헤지펀드 등 해외 금융업계의 농간이라 보고 해외 금융자본을 철저히 봉쇄했다.
동남아에선 미얀마나 라오스 등 몇몇 국가들을 빼고 '민주화와 평화' 진전의 시대가 도래했는데, 필리핀은 1992년 피델 V. 라모스 전 국방장관이 첫 자유선거로 대통령에 취임해 공산당을 합법화시켜 내전 종식의 기반을 마련했고, 마르코스 독재 때 무너진 경제 재건에 주력했다. 태국 국민들은 1992년 5월에 목숨까지 걸고 수친다 내각을 퇴진시켜 군부정권을 60년 만에 종식시켰고, 캄보디아는 1993년 UN 감독 하에 독립 이래 최초로 자유선거를 치뤄 입헌군주국으로 회귀 후 50여 년에 걸친 내전을 종식시켜 '킬링필드' 이미지를 벗었다.
해체된 구소련 지역에게는 그야말로 [[헬게이트]]의 시대였다. 체제전환의 진통과 외국 자본 및 재벌들의 약탈에 나라는 만신창이가 되었고, [[유럽 연합]]에 편입되어 구제를 받을 수 있었던 [[발트 3국]]조차도 정치 및 경제적으로 엄청난 고생을 하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9천 달러에 육박하던 러시아권의 경제는 이 시기 바닥을 찍게 되었으며, [[2000년]] 푸틴의 집권으로 그나마 상승세를 그리는 중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세력권은 쪼그라들었고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었으며 인구는 줄었고, 아직 독립을 못한 무슬림 자치구 체첸과 타타르스탄, 불교도 자치구 칼미크 공화국 등이 자주독립운동을 끈질기게 요구하여 러시아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구소련에 속했던 나라들 말고도 공산권에 속했던 여러 나라들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체질개선을 하느라 여러 성장통을 겪어야만 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그래도 비교적 그 정도가 덜한 편이었지만, 역시 힘들었고, [[폴란드]]도 심한 경기 부침을 겪어야 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내전]]까지 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유고슬라비아]]는 전술한 대로 폐쇄적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려 [[1991년]]부터 [[1999년]]까지 1990년대 내내 전쟁터였던 셈이다. 심지어 쿠바도 1995년 보트피플 사태까지 터졌다. 냉전 시기 중립을 유지해 소득을 챙겼던 스위스와 핀란드도 혼란과 경제위기로 몰아닥쳤다.
반면 [[아프리카]]는 이 시기를 즈음해 '폐쇄적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며 소말리아, 르완다, 라이베리아, 콩고민주공화국, 앙골라 등을 비롯해 내전이 일어나면서 지옥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부족전쟁이 주 원인인데[* 교양만화가 이원복 교수 등 일부 학자/전문가들이 언급했듯, 식민지 시절 열강이 멋대로 그은 경계선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나마 이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지만 적대 관계를 청산한 것은 아니다. 북쪽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진짜 무시무시한 폭풍]]이 몰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도 소련군 철수 후 군벌들이 대립하다 1997년에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해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로 만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부호 출신인 오사마 빈 라덴은 '알카에다'의 수장으로서 1998년 케냐 및 탄자니아 주재 미국대사관 테러를 계기로 반미 무장투쟁의 선봉으로 점차 올라섰다.
||[youtube(D_s6OEz8W7Y)]||
||[[https://m.youtube.com/watch?v=jnQu3sIhJws&t=481s| ]][[https://m.youtube.com/watch?v=oS91TOhPMfk&t=54s| ]][[https://m.youtube.com/watch?v=jxKTgCtSAcc&t=3160s| ]][[https://m.youtube.com/watch?v=49OkXdLpOME&t=204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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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youtube.com/watch?v=0JUIBVigHMs| ♭]]'''||
이 시대에 어린이집, 유치원을 다닌 세대는 [[1984년]]~[[1997년]]생, 이 시대의 주를 이룬 학창세대는 [[1972년]]~[[1992년]]생[* 빠른 1993년생 포함]까지일 것이다.
=== 대한민국: '''[[문화|천]][[응답하라 1994|국]]에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지]][[1997년 외환 위기|옥]]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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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는 [[1988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세계에 위상을 떨치는 데 성공하였고, 사회적으로도 독재 시대의 종식과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는 장및빛 경제, 1996년 OECD 가입 등으로 인해 대체로 반은 '''‘좋은 시절’'''로 기억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경제적 호황과 별개로 시민의식은 이를 뒤따라가지 못해 [[성수대교 붕괴 사고]],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의 여러 인재(人災)로 인한 참극이 잇달아 일어났던 시기이기도 하다. 인권의식, 권위주의와 부조리도 지금 기준으로 여전히 열악하던 시기다.
1990년대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비해 정치적, 사회적으로 굵직한 '역사적'이라 할만한 사건은 많이 없었다. 물론 그와 별개로 1970-80년대 고도 성장기의 반작용(부실공사, 안전의식 부재) 격으로 벌어졌던 대형사고는 참 많이 일어났다. 사실 정치적으로 변동이 없었다고 보기에도 뭐한 게, 1990년 3당 합당 시기 이후부터 PK지역이 보수권으로 넘어가고, 중산층이 보수화되는 등의 변화는 엄연히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국민 대다수가 정치에 무관심한 탓인지 그 이전 시대에 비해 눈에 띄는 정치·사회적인 사건이 눈에 덜 띄었던 것은 사실이다.
박정희-전두환의 군사독재가 종식됨으로써 [[제6공화국]] 체제하의 형식적 민주주의가 확립되어 더 이상의 정치 체제상의 변동이 없을 뿐 아니라 [[공산권]]의 몰락과 [[북한]]과의 군사적 격차가 현저히 커짐에 따라 안보적 위기 역시 줄어들었다.
||[youtube(l8wMCieScIk)]||
|| [[1993년]]의 서울 [[중구(서울)|중구]] [[명동]] 거리.[* 뒷부분에는 [[종로]]와 [[성신여대입구역]] 근처의 모습도 나온다.] ||
{{{+1 ''' 정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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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토론 합의, this=문단, 토론주소1=TacitTranquilDeadProfit, 합의사항1=정치적 중립성을 기해 공신력 있는 자료를 토대로 서술하는 것(#50))]
전체적으로는 '''보스 정치''', '''3김 정치'''로 대표되는 시절로, 정당 간 정책대결은 커녕 거물급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이합집산이 비일비재했다. 그럼에도 [[문민정부]] 때 [[하나회]]를 해체했고, [[전두환|전임]] [[노태우|대통령]]을 비자금 횡령 혐의로 감옥으로 보내버리는 등 군정의 잔재가 어느 정도 척결되는 등의 변화는 있었기는 했다.[* [[2018년]] 6월 22일자로 마지막으로 살아있었던 [[김종필]]이 별세하면서 3김 정치는 막을 내렸다.]
1988년 출범 이래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주도권을 못 잡은 노태우 대통령은 1990년 1월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함께 '3당 합당'을 선언하고 다음달 민주자유당을 창당함으로서 민자당 중심의 '여대야소' 정국으로 흘러갔고, 노동운동과 학생운동 등 재야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공안통치'로 돌입했다. 또 같은 시기 내각제 개헌을 둘러싸고 민정-민주-공화 3개 파벌이 싸우면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또 그해 하반기에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서 복무하던 윤석양 이병이 재야인사 같은 민간인 사찰내용을 담은 디스켓 등 자료들을 폭로하여 양심선언하자, 노태우 정권은 '10.13 특별선언'을 발표하여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 국민들의 관심을 그쪽으로 돌리려고 했다.
1991년 초 수서사건과 강경대 구타치사 사건으로 학생운동 등 재야운동 열기가 살아나 노태우 정권은 위기에 처할 듯 했으나, 김지하 시인의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칼럼 파문과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정원식 총리 계란투척 사건 등을 계기로 정국이 노 정권에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면서 재야운동은 쇠퇴해갔으며, 동년 지방자치제 부활에 따른 지방 기초의회 선거에서 민자당이 독차지했다. 그러나 1992년 14대 총선으로 여당인 민자당이 과반수에서 1석이 모자란 149밖에 차지하지 못해 사실상 져서 다시 여소야대 구도가 이뤄졌다. 이 시기에 1960년 4.19 혁명과 유신시대 민주화 주역들이 점차 금뱃지를 달기 시작했다.
동년 12월, 14대 대선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가 김대중 민주당 후보를 꺾어 민간인으로서 최초로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성공했으며, 1993년 3월에 정식 취임하여 '문민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는 집권 첫해부터 과감히 개혁 드라이브를 시동하여 자신을 포함한 모든 공직자들의 재산을 공개했고, 군부에서 하나회를 숙청시킨 후 안기부도 개혁했다. 또 금융실명제를 실시해 투명한 금융거래의 기반을 닦으면서 집권 초 지지율이 90%대나 올라 김영삼 대통령은 연예인까지 능가하는 인기스타가 됐다.
1994년 3월에 전교조 교사 1천여명을 복직시킨 뒤 1995년에는 첫 지방선거를 비교적 깨끗하게 치러 민선 지자체장 시대를 열였다. 또 부동산실명제도 마련해냈다. 문민정부는 집권 초기만 해도 신군부 처단과 진상규명에 대해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며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1995년 7월에는 신군부 인사들이 [[불기소처분]]됐으나, 그해 10월 노태우 비자금 폭로를 계기로 '[[역사 바로 세우기]]'에 시동이 걸려 11월엔 노태우가, 12월 전두환이 각각 구속됐다. 12월에는 5.18 특별법과 공소시효특례법 등이 국회를 통과했다. 1997년 4월에 대법원은 전두환에 무기, 노태우에 징역 17년을 각각 때렸으나 이마저도 1997년 12월에 사면되고 말았다.
그러나 문민정부는 후반기에 실정을 거듭했다. 취임 초기부터 장/차관들을 많이 갈아치우는가 하면 YS의 차남 김현철이 이곳저곳에서 월권행위를 하고 여러 의혹사건에 연루돼 위신이 추락했고, 1996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은 혼탁한 선거상황 속에서 새정치국민회의와 통합민주당의 부진을 틈타 '여대야소' 정국으로 회귀해 노동운동과 한총련 등 학생운동에 대해서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뒤이어 12월 24일에는 안기부법 및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하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공동으로 총파업을 일으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97년 초부터 한보그룹이 부도나고 김현철마저 5월에 구속됐다. 그해 하반기에는 외환위기가 터져 국가가 파산 위기까지 이르자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YS는 1998년 2월 '실패한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를 떠났다.
1997년 12월에 열린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보수의 원로 JP와 함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꺾어 헌정사상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달성했고, 국민회의-자민련이 손을 잡은 '국민의 정부'가 수립됐다. DJ는 자민련과의 사상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개혁 정책을 밀어붙여 경제 회복과 더불어 IMF 구제금융을 졸업하기 위해 IMF의 권고를 받아들여 공기업과 금융기관 민영화에 주력하고 외국자본을 받아들이는 등 과감한 개혁을 시작했다. 1998년 5월 제2차 지방선거에선 국민회의가 서울을 포함한 271석을 확보하여 우위를 점했으나, 보수 등지에서는 '호남정권'이라 보며 안 좋은 소리를 했으며 취임 초부터 조폐공 파업유도 사건과 옷로비 사건, 보광그룹 탈세 사건 등 온갖 스캔들에도 시달려야 했다.
남북관계 면에서 진전을 보인 시기이기도 한데, 1990년 9월 남북고위급회담 본회담을 시초로 남북통일축구대회를 여는 등 체육교류도 활발했으며 1991년 9월 17일엔 북한과 함께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그해 12월에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체결되어 좀더 가까워지는 듯했으나, 1992년 미국의 북한 핵문제 제기로 남북관계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1993년 출범한 김영삼의 문민정부는 북한의 NPT 탈퇴 등 대북관계 악화 속에서도 종전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보완한 '3단계 3기조 통일방안'을 만들어 진보인사 한완상을 통일부총리로 임명하고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를 북으로 송환시켜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점차 쟁점화된 북핵문제 때문에 같은 해에 새로 출범한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초장부터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했고, 문민정부도 같이 강경론으로 나가자 북한 역시 강경책으로 대응하며 49년만에 제2의 6.25 전쟁이 일어날 뻔했으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하여 김일성과 협상을 성사시켜 일단은 진정됐다.
동년 6월 17일에 김일성이 카터에게 남북정상회담을 열겠다고 뜻을 전했고, 김영삼도 이를 받아들여 역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듯했으나 7월 8일에 김일성이 갑작스레 사망하여 무산되고 말았다. 사망 당시 국회에서 김일성 조문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자 정부는 조문을 불허했고, 이에 북한이 남북정상회담 준비 당시 중단했던 대남 비방방송을 재개하여 남북관계는 또 파탄났다. 1995년 북한이 대홍수를 맞을 당시 문민정부가 대북 쌀 지원을 함으로서 숨통이 트이는 듯 했으나 '인공기 사건'과 '삼선비너스호 선원 억류 사건' 등으로 정부 차원의 쌀 지원은 실패했고,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으로 대북 경협마저 얼어붙는 등 김영삼 집권 말까지 남북관계는 언제나 파탄 상태였다. 당시 문민정부의 통일 정책은 독자적이고 일관적인 비전과 철학 없이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변화하는 편이었다.
1998년에 출범한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취임사에서 이전 정권들이 해왔던 대북 강경책을 버리고 '햇볕정책'을 창안했으며, 그해 6월에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떼 500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넘었고, 10월에는 소떼 501마리를 몰아 판문점을 또 넘어 금강산 관광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초기에 북한은 김대중 정부를 냉담하게 봤기 때문에 1998년엔 속초와 여수에서 잠수정 침투 사건이 터졌고, 1999년에 제1차 연평해전과 금강산 관광객 억류 사건이 터져 보수 언론으로부터 햇볕정책 자체가 시험대에 올랐으나, 김대중 대통령은 화해와 협력노선을 포기하지 않고 남북통일농구대회 같은 교류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여 화해 무드를 계속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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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부터 시작된 3저 호황 효과와 더불어 1988 서울올림픽, 북방정책의 성공으로 한국의 위상은 겉으로 성장했으나, 정작 서민들은 이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1989년 하반기부터 물가는 날로 치솟아 1990년 정부 발표 기준으로 소비자물가가 10%로 올랐지만 체감지수는 더했다. 예컨대 자장면 값이 1986년 기준 700원에서 1990년 기준 1,700원으로 치솟는가 하면, 100원짜리 라면도 아예 자취를 감춘 것이다.
아무리 3저 호황이 1988년 이후부터 시들어지긴 했지만[* 하지만 이 당시 시중 자금이 부동산으로 대거 몰려든 덕택에 집값과 전월세비 상승폭이 임금 상승률을 추월할 정도로 폭등해 실제 일반인들 체감은 이에 못미쳤다. 물론 자가용이 한창 대중화되어갔고, 해외여행 자유화에 따라 해외여행객도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어쨌든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느낌이 들기는 들었다.] 후광은 1990년대 중반까지는 갔으므로 장및빛 경제를 예상하는 현상이 높았다. 또 한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구간인 [[베이비붐 세대]] [[386세대]]가 이미 결혼도 하고 어느 정도 아이들도 성장한 상태로서(물론 1965년 이후 386 후반생들은 제외) 본격적인 경제 활동을 하면서 어느 때보다 보기 힘들었던 소비의 규모가 커졌으며 샐러리맨 월급이 처음으로 백만 원을 넘어섰다 1995년에 [[1인당 GDP]] 1만 달러를 돌파해 염원하던 국민소득 만 불(萬弗) 시대에 접어 들었고[* 그 해에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국민소득은 2만 달러 초반대였고 미국, 독일은 2만 달러 후반대였으며 일본만이 3만 달러가 넘던 시기였다.] 1995년에는 [[국내총생산]] 세계 11위를 차지하였으며 1996년에는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OECD]] 회원국이 되었다. 물론 명목상 달러화 기준으로 한국의 소득수준은 여전히 전통적인 [[미국|서]][[영국|구]][[프랑스|선]][[독일|진]][[이탈리아|국]]의 비해 40~ 60% 수준이었지만 80년대 20 ~30%대 소득 수준에 비하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따라잡았다.
또한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당시에 사회문제점으로 꼽혔던 부동산 가격의 폭발적인 상승도 1991년을 정점으로 [[1기 신도시]] 분양 및 [[토지 공개념]] 3법으로 대표되는 부동산 값 억제정책으로 하락세로 접어들었고 이후로 부동산 가격이 90년대 내내 안정세를 보였던데 반해 소득증가율은 두자릿수대를 유지했기 때문에 소득이 오르면 곧바로 소비 및 저축의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과정을 거쳤으며 1990년대 [[환율]]은 1달러=700~800원대를 선점해(1981년에 1달러에 600~700원 하던 수준의 환율을 경제적 호황의 후광으로 1990년 중반까지 700~850원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유지해옴) 소비자물가지수가 1994년을 제외하면 OECD 평균을 밑도는 정도로 굉장히 안정되었고 서민들의 생활비 부담도 적었던 시절이다. 또 1970년대부터 증가하기 시작한 중산층이 1980년대는 더욱 두터워졌으며 이 층들이 1990년 중반까지도 유지해 당시 자기가 중산층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70%가 넘었다.(이 수치도 IMF이후로 확 줄어든다.) 하지만 지나친 저환율 정책으로 인해 경상수지 적자는 1990년 이래로(1993년에 소폭의 흑자를 낸 것을 제외하면) 매년 적자를 기록했으며 1997년부터 외환보유고는 점점 바닥이 나고 있다가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발생하는데... 그 파장으로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하루 아침에 수십만 명의 실업자가 양산되었으며 환율은 급속도로 올라가 1996년 13,137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1998년에는 8,083달러로 떨어졌다가 마지막 해인 1999년에 10,410달러로 소폭 증가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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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적으로는 이 시기의 청소년과 대학생들은 [[1980년대]]의 '''이념적인 면에서 탈피하여 자유로운 사고'''를 했으며, 특히 이 시기에 등장한 X세대[* 더글러스 커플랜드라는 캐나다 작가의 소설에서 유래한 단어로, 원래 뜻은 1970년대 풍요로운 세상에서 태어나 석유파동의 후유증을 보며 자란 뒤 실업률이 급증한 상태에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는 꿈은 포기했으나 옷차림 등을 통해 개성을 표현하려는 욕구는 넘쳐났던 세대를 가리키는 단어였다.(출처는 이원복의 현대문명진단 3권 'X세대와 Y세대' 편과 시사저널 1993년 8월 19일자 기사) 다만 한국에서는 사회 분위기가 보수적이었던 데다 1996년경까지 호황기였던 관계로 뭔가 다른 의미가 된 것.]는 개성을 중시하고 대중 문화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대중 문화는 본래 취향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며 그러한 과정이 수용자의 개성을 확정짓는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이 당시까지는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선택' 범위가 그리 많지 않아서, 개성을 추구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획일적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음반시장도 세계 수위권에 들 정도가 되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전자/통신혁명은 더욱 세를 불려 위성방송, PC통신, 케이블TV, 인터넷 등으로 나타났으며, 더 나아가 1998년 사이버 가수 '아담' 및 사이버 작가 '새파란'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여하튼 덕택에 학교 그러나 X세대는 주체적인 문화를 창조하기보다는 '''상업문화의 소비주체'''로 전락하며 사회의 질을 떨어뜨리는 데에 일조하였다는 비판 역시 공존한다.[* 이 시기의 문화 소비에 대해 일명 '명품세대'라는 용어도 있다.] 이 시대의 구호가 “서른 잔치는 끝났다.” 문화적으로 자유로워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학교는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을 강요하는 데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던 문제인 과도한 사교육 문제나 학생인권 침해는 이 시대에도 별반 다를 건 없고 '''오히려 일부 부문에서 악화'''되기까지 했다.
우선 1986년에 교복의 부활이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일단 1990년대 초반까지는 교복을 착용하지 않는 학교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데 반하여 1990년대 초반부터 교복이 대부분의 학교에서 부활하면서 교복을 지정하지 않은 학교를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 되었고,[* 19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에 방영된 [[영심이]]나 [[달려라 하니]], [[천방지축 하니]], 사랑이 꽃피는 교실, 푸른교실과 1990년대 중후반에 방영된 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 학교 시리즈, [[사춘기(드라마)]], [[나(드라마)|나]]를 보면 등장인물로 나오는 학생들의 복장이 확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991년 [[UN 아동권리협약]] 가입이나 1995년 '5.31 교육대개혁' 같은 정부의 교육개혁 조치에도 불구하고 '''교육환경은 19세기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학교에서 빠따 같은 것이 잘만 돌아다니고 개성이 충만한 청소년들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멸시했으며, 교무실만 에어컨을 상시에 틀어놓은 채 교실에는 선풍기만 주야장천 틀어놓는 전근대적 교육환경을 고집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일본처럼 가출하거나 장기결석, 자퇴생들이 점차 늘어났는데, 에세이스트 김현진이나 소프트웨어 개발자 이상협, 최연소 KMTV VJ 전한해원 등 자퇴생 출신 유명인이 1990년대 후반 들어 주목받았다.([[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78099|시사저널 기사]])
또 야간자율학습이 적용된 건 마찬가지였으며 방과후 학원 혹은 학습지 여러 개 시키기, 선행학습 등의 사교육도 1990년대에도 변함없이 진행되었으며[* 애초에 서슬 퍼런 5공화국 시절에도 과외는 금지시켰지만 멀쩡히 운영하고 있던 학원들까지 죄다 문을 닫게 할 수 없는 노릇인지라 학원들이 운영하였고 그 덕택에 사교육 문제는 여전히 문제점이었으니 당연한 수순일 수밖에 없기는 했다.], 경제력의 향상과 더불어 사교육비는 지속적으로 향상되었기 때문에 사교육비 문제가 엄청난 사회적 문제가 되어갔다. 이에 대한 안티테제로 '대안교육' 및 '공동체교육'이 확산됐다.
교과 내용 면에서 변화가 좀 있었는데, 1994년 '국민교육헌장'이 교과서 앞표지에서 사라지고 고교 교련교과 중 군사훈련 부분이 사라졌으며, 국사 교과서에서도 5.16 군사혁명이 '군사정변', 4.19 의거가 '혁명' 등으로 각각 바뀌었다. 1997년부터 반공소년 [[이승복]] 이야기도 도덕 교과서에서 빠졌다. 그러나 국어 교과서에 월북 문인 해금작품이나 재야 문인 작품 등은 싣지 않았고, 국사 역시 좌익 항일투쟁 등은 일절 다루지 않았다.
노태우 정권기 내내 탄압받았던 전교조도 문민정부 때도 존속했으나, 합법화가 안 돼서 여전히 정부와 대립했다. 그러나 1994년 정부가 전교조 해직교사 1,490명 중 1,329명을 복직해 새 전기를 맞이했다. 이들은 전교조 탈퇴를 전제로 복직이 됐지만, 해직까지 감수하며 여전히 전교조 활동을 지속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후 노사정 합의를 거쳐 1999년 교원노조법 제정에 따라 합법화됐다.
1980년대 후반 '참교육 운동' 때 성행하던 고등학생운동은 1990년대 초반 들어 정부와 학교의 탄압으로 점차 쇠퇴를 겪어 직선제 자주학생회도, 동아리도 급속히 와해되어 교내에서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었다. 이에 불구하고 비공개 조직들을 중심으로 소규모나마 활동하긴 했다. 반면 고운 1세대들은 졸업 후 1991년 관악지역 청소년운동단체 '참배움일꾼청소년회(참일청)'를 시초로 1990년대 초반 동안 '청소년단체 샘', '푸른벗', '희망', '나눔터' 등 지역 청소년조직이 발족돼 문화활동을 하며 정치/사회투쟁을 했지만, 1994년 주사파 파동 시기 '청소년단체 샘 사건', '<새날열기> 사건' 등 공안사건이 터져 정치적인 고등학생운동이 와해됐다.
그러나 1995년 춘천고 학생 최우주가 강제자율학습 및 보충수업 폐지 민원을 청와대, 교육부, 강원도교육청 등에 올리고 관련 글을 하이텔에 게시하면서 학생 개인의 인권침해 문제와 입시교육, 교육구조 문제 등이 PC통신 토론방의 주 화제로 떠올랐다. 이러한 움직임으로 하이텔에 '중고등학생복지회'가 결성돼 '청소년 인권운동'이 탄생했다. 초기 학복회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청소년 인권운동은 활동방향 및 지속성에 난항을 겪었고, 단체 자체가 언론에 알려짐에 따라 학교측의 탄압도 빈번했다. 1998년 교육부가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맞이해 '학생인권선언'을 제정했지만 학생 및 일선 교사가 배제된 모호한 조항이라 흐지부지됐고, 11월 3일 나우누리 및 하이텔 학복회가 '중고등학생인권선언'을 발표했다.
다만 [[2020년대]] 현재와 비교하면 1990년대의 문화 및 사회풍토는 지금에 비해 '''여전히 보수적인 면'''이 많았고, 촌지, 주6일 근무+야근이나 갑을 문제, 여성 혐오,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한 유소년층의 성비불균형, 장애인과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차별 같은 '''사회부조리들'''도 여러모로 강했기도 했다. 특히 [[1997년 외환 위기|IMF 외환위기]] 이전은 '단군 이래의 최대 호황'이라는 표현이 회자되고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넘고 그 여세를 타서 [[OECD]]에 가입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을 정도로 한국 경제가 부흥하고 있던 시기였지만 그러면서도 점진적으로 진보화되었기는 했지만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경향이 여전히 강했고 단군이래 최대호황기라고 불리던 시기라 해도 이전시기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워진 사회적인 부조리도 많았기도 했다. [[개인주의]]는 2020년 현재는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조금씩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동급 취급 하면서 배척하려는 분위기가 여전히 어느 정도 있었고 당대 신문기사에서도 오렌지족이 어쩌니 하는 기사들도 많이 나왔으며 샴페인, 과소비 타령도 많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신토불이가 강조되었던 것은 단순히 민족주의의 영향이라기는 어폐가 있고 당대 농촌이 인구감소와 저소득 문제, 수입 농산물 유입 등으로 지속적으로 지속적으로 황폐화되던 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하려던 노력의 산물이었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1980년대까지는 그래도 농촌지역 인구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어도 그나마 수는 되었지만, 이것도 인구유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무력했던 데다가 1980년대 이후로 저출산 현상까지 나타나면서 농촌 지역 자체의 인력이 부족해지게 된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농어촌 지역의 지속적인 황폐화를 막지 못한 채 아예 지방소멸 얘기까지 나올 지경이 되었지만 말이다.
한마디로 외환위기 전까지는 한국의 황금기이며 재미교포가 한국으로 일하러 오던 시대다. 명목상 경제지표는 2000년대 이후가 1990년대보다 더 성장했으나 이 당시의 희망찬 사회 분위기와 정서는 되돌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이는 단순히 물가 상승으로 인한 숫자 놀음이라는 평가도 많다.
1991년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이 '산업연수생'이란 이름으로 입국이 허용되어 매년 수십만의 외노자들이 들어오고 불법체류자들도 대량 양산되는 계기가 되는데[* 1990년대부터 기업주들이 싼 임금의 유혹으로 인한 이기주의가 팽배하여 외노자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는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노동자들의 임금 하향화의 원인이 되었다. 또한 1980년대의 호황취업경기도 1990년대 초반부터는 서서히 서늘해지기 시작한다. 결정적으로 1996년에는 노동법 날치기 통과로 '변형근로제'가 도입돼 [[1997년 외환 위기]]로 가속화되어서 비정규직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학교 입학률도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대학교들도 전국에 우후죽순 생겨났다. 인구 분포에서도 청소년층이 줄고[* 사실 이는 당연한 것이 1980년대 산아제한 정책의 영향으로 출산율이 1.5명대까지 줄어들면서 1984년부터 1990년까지 출생아수가 60만 명대까지 떨어졌고, 이 시기에 태어난 세대들이 한창 학창생활을 보냈을 때가 1990년대 ~ 2000년대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1980년대의 저출산 경향]] 참조. 물론 당대에는 [[남아선호사상]]을 제외하면 그다지 큰 문제로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농어촌지역이나 탄광촌에서 고령화와 인구감소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러나 이에 비례해서 인구정책이 따라온 것은 아니라서 산아제한 정책은 1996년도에 와서야 폐지되었다.] [[386세대]] - [[X세대]]를 위시한 성인층이 급격히 증가하고 노년층도 급격히 증가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대학진학률이 증가하였고[* 사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대학진학률은 20-30%대 정도의 수준이었고 대학에 입학하는 것 자체가 위낙에 빡센 일이었기 때문에 덜했던 정도였다. 물론 대입시험 보느라 생고생했던 사람은 많았지만.] 상고와 공고를 천시하고 인문계를 중시하는 풍토가 만연하게 되고, '대학만능론'[* '사람은 무조건 대학을 가야 한다', '대학 안 가면 사람 새끼가 아니다'라는 용어.]은 2000~2010년대 이후 사회의 [[독극물|독]]이 되고 있다.[* 1990년대~2000년대 당시 중학교에서는 인문계를 중시하고 상고와 공고를 천시했으며, 인문계고교에서는 무조건 대학 입학만 중시하고 학생의 진로와 생각을 편협하게 만드는 교육을 북한처럼 세뇌교육 형식을 통해 교육했다(한국판 북한 학교). 학부모들도 역시 이에 격렬하게 동조하였고 당연하게도 당대에도 많은 사회문제가 되었지만 이후에도 대학을 가야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기 쉽다는 메리트 때문에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상고와 공고 출신들도 상당수가 취업이 아닌 진학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1990년대는 한국인의 삶과 가치관이 가장 크게 변화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안정된 민주주의와 경제적 풍요,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 휴대전화 등의 정보기기 보급에 의한 정보기술의 발전 속에서 한국인들의 삶은 은밀히, 그러나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까지의 [[권위주의]]적이고 무거운 사회 분위기를 떨쳐내고 좀 더 다양하면서도 깃털처럼 가벼운 사회 분위기로 바뀌었다.[* 대통령 존영이 관공서에서 사라지고, 대통령의 호칭이 각하에서 님으로 바뀐 것도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부터였다.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에 따르면, 연설문에서도 권위적인 면을 줄이려고 노력했다고 나와있다.] 더불어 경제적 풍요와 넘쳐나는 상품들 속에서 더 소비지향적인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사람들의 의식 역시도 좀 더 다양성에 대해 관대해지고 소비 트렌드에 민감해졌다.
1990년대는 1980년대까지의 [[대한민국]]과 단절하면서, 이후 시대인 [[밀레니엄]] 이후 시대의 모든 사회적 요소들의 맹아를 품고 있었던 시대이기도 하다. 21세기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예능]], [[아이돌]], [[한류]], [[IT]]산업, [[온라인 게임]], 개인용 [[PC]], 한국산 [[블록버스터]], [[핵가족]], [[휴대폰]], [[오타쿠]], [[엽기]], [[패러디]], [[해외여행]] 등등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무수한 문화 요소들이 모두 이 시대에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즉, 한국의 새로운 시대를 연 시대라고 보아도 되겠다. 2000년 이후의 한국 사회는 사실상 1990년대의 연장선상에 가깝다. 그렇다 보니 2010년대에 30~40대에 접어든 세대는 2010년대의 10대~20대 문화에 잘 적응하는데 비해 50대 이상 세대에서는 적응을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시기 영상세대들은 메시지보다 이미지를, 활자보다 영상을, 편지보다 전자통신을 더 선호했다. 의사소통 매체는 유선전화 외에도 무선호출기, 휴대폰, PC통신 등으로 다양화됐고, 영상매체 발달 및 대중문화의 변화는 연예인 등 영상 스타들에 대한 열기를 불러일으켰으며, 신세대들 사이에 신체조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나타났다. 영화배우나 TV 탤런트, 광고모델, 스포츠 스타들이 영상시대 최대 우상들이었고, 다이어트는 젊은 여성 뿐만 아니라 중년 여성, 그리고 남자들에게도 필수적 문제로 받아들여졌다.
영상문화의 열기는 X세대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었다. '애인 같은 아내'라 불리는 미시족의 등장과 그들의 현시적 문화 욕구가 중년층에게 파급되었다. 1996년 유동근-황신혜가 주연으로 나온 MBC 드라마 <애인>이 인기를 얻자 '애인과 배우자가 공존할 수 있다'며 너도나도 애인 열풍에 휩싸였다. 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도 여기에 연계돼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운동권]][* 1991년 분신정국 후 점차 약해지다 이후 X세대들의 입학, 1996년 [[연세대 사태]]로 운동권은 NL이고 PD고 간에 헤드샷을 맞아 쇠퇴하고 말았다.], 절대적 [[빈곤]] 등 이전 시대의 산물들이 확실하게 몰락해 버렸으며, UN에 가입하고 경제적 수혜국에서 지원국으로 지위가 바뀌는 등 국제적 위상도 올라갔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 당시의 분위기 역시 오늘 날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바로 더 이상 한국이 무한히 성장하기만 하는 국가가 아닐 것이라는 자각, 무절제한 소비에 대한 경각심, 그리고 기업과 국가의 경제가 제대로된 운용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우려 등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1970년대 오일쇼크 때도 있었기는 했지만 너무 간격이 멀고(...) 1990년대 초반에도 [[3저호황]]이 끝나고 해서 중소기업들의 파산률이 크게 늘어나고 경상수지도 적자로 돌아섰으며 물가도 급상승하는 테크를 밟았지만 그래도 성장률은 5% 이상 정도의 수준은 유지하기는 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언론학자 [[강준만]] 교수는 2006년 낸 <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편 1권 머릿말에서 이 시기를 '이념에서 소비로 넘어가는 시기'라고 정의했다.
2010년대와는 달리 [[1994년 폭염]]과 1993년 여름의 [[이상 저온]] 현상을 제외하면 대부분 이례적인 더위, 추위가 딱히 없어서 살기 좋았던 시대이기도 하다.
=== 미국: '''[[1920년대|20's]]''' 시즌 2 ===
{{{+1 ''' 정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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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부터 동구권 및 소련이 몰락하자 미국은 초강대국이 됐지만, 경제난 때문에 구 공산권 국가들을 물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적극 도와주지 못한 채 미국에 도전하는 또 다른 세력들과 쉴새없이 싸워야 했다. 1990년에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집권하는 이라크가 중동의 석유자원을 차지한다는 야심을 보여 페르시아만 확보를 위해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미국을 도발했다. 이에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대통령이 석유자원을 되찾고자 영국, 프랑스, 한국, 독일 등을 끌어들여 다국적군을 결성하고 이라크에게 쿠웨이트 철수를 요청했지만 후세인은 이를 씹었다.
이에 미국 정부는 전쟁을 선언했고, 1991년 1월 17일 다국적군이 사우디로 모인 뒤 노먼 슈워츠코프 사령관의 지휘를 받으며 최첨단 무기와 미국인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사막의 폭풍 작전'으로 1991년 2월 28일에 이라크군을 굴복시켰으나, 후세인 대통령을 처단하지 못했다. 걸프전 승리로 부시의 지지율은 91%까지 올랐으나 1990년부터 시작된 불경기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져 서민들과 중산층들이 부시에게 등을 돌렸고, 1992년 초에는 부시 대통령이 방일 중 졸도하는가 하면 로스엔젤레스 폭동으로 국가가 혼란스러워지기도 했다.
이 상황 속에서 민심은 경제 회복을 앞세운 '아칸소 촌뜨기'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기울었으며, 클린턴 후보는 국방예산 감축, 중산층에 대한 세금 감면, 러시아 및 CIS 국가들에 대한 경제원조 등을 공약으로 내걸어 11월 대선 초반에 지지율 89%를 달성했으나 무소속 후보 로스 페로가 부시의 표 19%를 잠식해 43%라는 득표율로 겨우 당선됐다.
그는 취임 초기부터 주변의 우려와 정적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IT산업 활성화로 경제가 호경기를 맞아 국민들의 사랑을 무한정으로 받았으며, '흑인'을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바꾸거나 여성에게 고위직을 대폭 개방하는 등 인권 향상과 정치정의 향상에도 기여했다. 사회적으론 가정법을 개선해 여성의 권익을 더욱 보호하며 환경보호를 촉진했고, '범죄 삼진아웃제'를 마련하여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노력했다. 국방 면에선 불필요한 외국 내정간섭을 자제하고 1992년부터 터진 보스니아 내전에 나토군을 투입한 후 내전을 제어시켜 '세계경찰' 포스를 보여줬고, 1994년에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특사로 보내 북한의 도발을 누그러뜨리고 제네바 협정을 맺는 데 공헌했다.
그러나 1995년 말에 1996년 예산안을 국회가 통과시키지 않자 정부가 파업을 하는 이례적 사건이 터졌고, 1996년 중간선거 들어서 밥 돌이 이끄는 공화당이 당선되면서 사생활 논란 등에 시달렸으며 부동산 스캔들 '화이트 워터게이트'까지 터지는 악재가 있었다. 11월 대선에선 로스 페로와 콜린 파웰 같은 제3의 후보 등장이 예견됐으나 이들은 전부 출마를 포기했고, 클린턴 대통령은 49%라는 저조한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밥 돌 공화당 후보를 꺾어 재선에 성공했다. 2기 재임기 때도 순탄치 않아 1998년에 모니카 르윈스키 및 폴라 존스 스캔들이 터진 데다 클린턴 대통령 역시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의 추적으로 궁지에 몰렸으며, 청문회에서 그가 거짓말을 한 게 밝혀지자 1999년 2월 탄핵 위기까지 갔다가 상원에서 부결돼 대통령 자리를 겨우 지켰다.
{{{+1 ''' 경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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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부터 집권한 부시 행정부 때는 걸프전 승리로 정치적 지지율은 올랐으나, 경제는 갈수록 악화일로를 걸었다. 부시 대통령은 이미 전임 레이건으로부터 국가부채 2조 7천억불을 떠안게 되자 이를 해결키 위해 세금을 올렸지만 국민들은 레이건의 약속을 안 지켰다며 등을 돌렸다. 같은 시기 일본의 버블경제 붐으로 대일 무역적자 폭이 벌어지자 일본 기업들이 무차별 미국 시장을 휩쓸어 미국 입장에선 위기를 겪었다. 1991년 CIA 산하 RIT연구소 소속 앤드류 도허티(Andrew Dougherty)가 써서 파문을 일으킨 보고서 <Japan 2000>은 [[https://www.nytimes.com/1991/06/05/news/cia-report-on-japan-economy-creates-furor-at-institute.html|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 바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오만한 일본이 경제적으로 약한 미국을 무시했고, 일본은 미국의 모든 정보를 훔쳐서 온갖 로비 장치를 총동원해 반일정책을 격침시킨다는 식이다. 다만 다른 쪽에선 CIA가 탈냉전 시기에 할 일이 없어지자 새로운 적을 만들기 위한 자충수라고 비판을 하기도 했다. 정작 저자인 도허티는 발표 1주일 후 RIT연구소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1993년 클린턴 행정부가 출범한 후 IT와 서비스업,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 굴뚝 없는 '3M[* 맥도날드, 마이크로소프트, 미키 마우스의 영문 첫글자를 줄인 단어다.]' 산업들이 호황을 이루면서 불경기에 시달리기 시작한 일본을 따라잡았다. 경제호황에 고무된 클린턴 행정부는 캐나다, 멕시코와 함께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고, 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글로벌화를 진전시켜 '미국식 자본주의'를 전 세계에 맞추자고 강요했다. 그러나 이는 개발도상국으로부터 반발을 일으켜 반미 및 반세계화 시위를 야기시켰다.
이는 아래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다우 존스 지수 그래프]]를 통해 그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ow_jones.png]][* 잘 보면 1990년대 미국은 1980년대 일본의 버블경제 미국판이라 봐도 무방하다.]
1990년대의 미국은 종종, [[제1차 세계 대전]]의 승전 직후인 1920년대와 비견되기도 하며, 두 시대는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다만, 1920년대는 미국이 세계의 유일의 초강대국이 아니었고, 패권 국가들 중의 하나로 올라서게 된 시기였지만, 1990년대는 [[제2차 세계 대전]] [[냉전|이후 약 50여 년간 지루하게 대결해 왔던]] [[소련]] 및 동구권의 붕괴를 지켜보며 미국이 1극의 국가로 등장하게 되었으므로 대개 1920년대보다 1990년대를 더 화려하게 보는 경향[* 이 무렵 [[할리우드]]에선 [[에어 포스 원(영화)|에어 포스 원]], [[아마겟돈]], [[진주만(영화)|진주만]] 등 미국 중심 사관의 영화들이 전성기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는 냉전에서 승리한 당시 미국민들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이 짙다.
[[1990년]] 이후, [[중국]]이 G2로 떠오르기 전까지 약 20년간은 세계의 정세를 미국이 자유자재로 통제 가능했던 시기였으며, 심지어 [[이라크 전쟁]]과 [[세계금융위기]]를 겪은 이후부터 현재까지도 여전히 경제력과 군사력를 종합한 국력이 세계 1위이다.
=== 일본: [[잃어버린 10년/일본|잃어버린 10년]] ===
||[youtube(kxYHz5MTi-k)]||
||1990 - Yokohama Walkabout 横浜散歩 (901208) ||
||[[파일:일본주식.png]]||
||([[1988년]]~[[2010년]])일본의 [[주식]] 시장 흐름 ||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으로 더 이상 호황을 누리지는 못하게 되었다.
||[[파일:일본부동산.gif]]||
||([[1980년]]~[[2010년]])일본의 [[집|주택]] 시세 흐름 ||
1990년대 일본의 부동산 폭락은 매우 유명한 거품붕괴의 선례가 되었다.
[[1990년]], 일본은 [[주식]]과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10년간의 장기불황에 접어든다. [[대기업/일본|많은 기업]]과 은행이 도산했고 평균 성장률은 0%에 달했다.
||{{{#!html
<iframe title='이웃 나라 이야기 2부 - 필패신화_0653' width='640px' height='360px' src='http://videofarm.daum.net/controller/video/viewer/Video.html?vid=nVqaaCQ12Zw$&play_loc=undefined&alert=true' frameborder='0' scrolling='no' ></iframe>}}}||
||이웃 나라 이야기 2부 필패신화 ||
해당 시기를 일본인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 칭한다. 이 불황은 [[2010년대]]까지도 지속되어 '''잃어버린 20년''' 또는 '''잃어버린 30년'''라는 명칭으로 대체되었다.
|| 1.경기부양 || → || 2.부동산 거품 양산 || → || 3.거품 붕괴 || → || 4.경기 침체/1번 경기부양으로 무한 반복 ||
이후 일부 경제학자들이나 관련 전문가들은 1990년대 일본의 부동산, 주식 폭락을 예로 들면서 경기 부양으로 인한 거품양산과 그로 인한 거품붕괴, 침체의 사이클에 대하여 설파하게 된다.[* [[http://danmee.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0/15/2013101503266.html|어설픈 경기 부양과 인구 감소로 집값 폭락한 일본]]] 만화가 이원복 교수는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 1권에서 1990년대 일본 암흑기 형성 원인으로 경직된 관료주의, 정경유착으로 인한 부정부패, 고품질로 인한 고비용, 낮은 소비율, 연공서열 및 종신고용제의 폐해 등 후진국적 요소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980~1989)일본과 주요 국가의 명목 GDP 흐름[* [[http://www.imf.org/external/pubs/ft/weo/2014/02/weodata/weorept.aspx?pr.x=31&pr.y=13&sy=1990&ey=1999&scsm=1&ssd=1&sort=country&ds=.&br=1&c=924%2C132%2C134%2C158%2C112%2C111%2C542&s=NGDPD&grp=0&a=|(1990~1999)일본과 주요 국가의 명목 GDP 흐름]]]||<|2>1990년||<|2>1991년||<|2>1992년||<|2>1993년||<|2>1994년||<|2>1995년||<|2>1996년||<|2>1997년||<|2>1998년||<|2>1999년||
||단위: 10억 달러(약 1조 원) ||
||[[미국]] 전체 [[명목 GDP]] || 5,979|| 6,174|| 6,539|| 6,878|| 7,308|| 7,664|| 8,100|| 8,608|| 9,089|| 9,660||
||<bgcolor=#40E0D0>[[일본]] 전체 [[명목 GDP]] ||<bgcolor=#40E0D0> 3,103||<bgcolor=#40E0D0> 3,536||<bgcolor=#40E0D0> 3,852||<bgcolor=#40E0D0> 4,414||<bgcolor=#40E0D0> 4,850||<bgcolor=#40E0D0> 5,333||<bgcolor=#40E0D0> 4,706||<bgcolor=#40E0D0> 4,324||<bgcolor=#40E0D0> 3,914||<bgcolor=#40E0D0> 4,432||
||[[독일]] 전체 [[명목 GDP]] || 1,547|| 1,815|| 2,068|| 2,008|| 2,152|| 2,525|| 2,437|| 2,159|| 2,181|| 2,133||
||[[프랑스]] 전체 [[명목 GDP]] || 1,278|| 1,279|| 1,411|| 1,331|| 1,404|| 1,610|| 1,614|| 1,462|| 1,512|| 1,502||
||[[영국]] 전체 [[명목 GDP]] || 1,024|| 1,069|| 1,112|| 998|| 1,080|| 1,181|| 1,243|| 1,384|| 1,477|| 1,518||
||[[중국]] 전체 [[명목 GDP]] || 404|| 424|| 499|| 641|| 582|| 756|| 892|| 985|| 1,045|| 1,100||
||'''[[대한민국]]''' 전체 [[명목 GDP]] || 284|| 332|| 356|| 391|| 458|| 559|| 603|| 560|| 376|| 486||
일본은 성장 동력이 꺾여 오히려 경제규모가 줄어든 연도([[1996년]], [[1997년]], [[1998년]])도 있었던 시기다. 그래도 거시경제면으로 바라보면 경제의 규모는 여전히 세계2위였다. 하지만 미국과의 격차는 점차 고착화되었으며 미약하지만 차이가 벌어졌다. 게다가 유럽 국가들이 조금씩 일본을 추격하고 있었으며 한국과 중국도 경제 성장기에 접어든다. 그렇다고 국민들로부터 개혁하자는 목소리가 있지만, 보수 기득권층과 경직된 관료주의로 난항을 겪었다.
정치적으로는 변화에서 회귀로 대변되는 시기인데, 만년 여당 자민당은 1991년 교와 스캔들, 1992년 사가와규빈 스캔들까지 각각 터져 국민들의 신임을 잃었다. 이에 일부 자민당 의원들이 신생당, 일본신당, 신당사키가케 같은 새 정당들을 만들어 공산당을 뺀 타 야당과 연합했고, 1993년 7월 총선에서 자민당을 쓰러뜨려 정권을 잡아 호소카와 모리히로 중심 연립정권을 수립했다. 그러나 연립정권조차 자민당만큼 국정수행을 할 역량이 딸리다 보니 1년도 못 가 무너져 1994년 자민당이 사회민주당과 연합정권을 수립해 혼미상태로 접어들었고, 1996년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집권 후 자민당 독주체제로 자리잡았다.
사회 면에선 1995년은 비극의 해였는데, 고베 대지진으로 충격을 준 데 이어 옴진리교 사린가스 살포사건, 쿠니미츠 경찰청장 피습 사건으로 '안전 신화'가 무너졌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 중화권 ===
[[중국]]은 [[장쩌민]] 주석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을 이어받아 경제는 계속 성장했고, 특히 상하이, 베이징, 광둥성 등 경제특구와 대도시들이 성장했으며 1997년과 1999년에 영국령 홍콩과 포르투갈령 마카오를 각각 반환받아 자존심을 굳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공업우선 정책 때문에 농촌이 급속도로 몰락했고, 농민들은 입에 풀칠하고자 저임금까지 마다하며 공업지대로 몰려들었으나 일자리는 이를 충족치 못했다. 거기에 폭력조직 '삼합회'의 손까지 뻗쳐져 중국 전 대륙에 임금착취가 판을 쳤다. 이런 풍토 속에서 기업가들은 폭군화되며 관료들도 봉건영주화돼 있으며, 부정부패도 판을 치는 데다 물가가 20%나 오르는가 하면 실업자가 1억이나 증가하는 등 사회불안이 이어지자 중국 농민들은 점차 반발했다. 이에 중국 정부는 반체제 인사들을 거듭 탄압하여 인권 문제가 전세계 여론의 도마에 올랐고, 2000년 베이징 올림픽 유치운동 당시 이러한 문제가 더욱 부각됐다.
반면 홍콩은 1997년 반환을 전후해 새 역사의 전환기에 섰다. 반환을 앞둘 당시 중국 본토에선 기대감이 커졌으나 정작 홍콩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는데, 특히 언론 분야에서 두려움이 더 컸다. 영국 점령시기 동안 언론의 자유를 맘껏 휘두르던 홍콩 언론들은 반환을 앞두고 중국 정부로부터 해코지를 당할까봐 불안에 떨었고,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예처럼 중국 신화사통신에 검열을 의뢰하거나 1995년에 중국의 장기적출 문제를 풍자한 시사만화 <릴리 웡> 작가 래리 페인을 해고하는 등 자체검열 움직임도 있었다. 그래도 1997년에 반환한 중국 정부는 '1국가 2체제'를 내세워 홍콩에겐 중국 영토임을 인정하는 대가로 영국 식민지 때와 같은 독자성을 보장해 주기는 했다.
== 문화 ==
=== 출판계 ===
1980년대 후반까지 우위를 점하던 이념서적은 1990년 동구권 및 소련 붕괴, 1993년 문민정부 출범 등으로 쇠락해 출판계도 가벼움, 일상성, 구체성을 지향하는 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주류인 문예물은 순수 문예물보다 대중성을 지향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됐는데,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이우혁의 <퇴마록> 같은 가공소설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또 양귀자 역시 정통 문예물에서 벗어난 <천년의 사랑>을 내기도 했다. 정통 작가들 중 이청준도 <서편제>나 <축제>가 영화화되면서 또다시 전성기를 맞이했고,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및 <아리랑>도 여전히 호응을 얻었다. 시 분야에선 정호승의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나 최영미 작품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호응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류시화 작품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은 문단들의 외면 속에서도 베스트셀러 지위를 유지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성행한 에세이, 전기류, 신변잡기류 등 '비소설 부문'도 여전히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1995년 전여옥 작 <일본은 없다>가 히트치면서 한동안 책 제목에까지 '있다'나 '없다' 붐을 형성시키기도 했고, 1996년 경기불황 속에서도 <좀머 씨 이야기> 같이 여유와 잔잔함을 추구하는 책도 인기를 얻었다. 1997년 외환위기를 즈음해 '몇 가지'류 책들이 성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비소설류는 영상문화 도래 및 감성세대 등장, 불황으로 기성소설에 무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청량제가 되어 주었다.
심지어 개인용 컴퓨터 보급과 1994년 세계화 선언, 해외여행 붐 등의 영향으로 <컴퓨터 길라잡이> 류 컴퓨터 관련 도서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등 어학도서, 여행/관광/레저스포츠 등 여가 관련 도서도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거기에 퇴조할 것처럼 보였던 인문/사회교양계도 1994년 유홍준 교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히트로 활기를 되찾았고, 당시 사람들도 풍요로운 현대 속에서 과거를 돌아보자는 경향에 따라 박영규 저서 <한권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등 새로운 인문교양서가 뜨기도 했다.
출판물은 날로 꾸준히 늘어나는데도 출판사 경영실태는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1993년 기준 등록출판사 수는 총 8,380개이나, 1년 동안 한 권도 내지 않은 무실적 출판사만 5,708개로, 전체 출판사 중 60%에 이르렀다. 발행 실적있는 출판사도 연평균 3.7종이며 체제/제도적 측면에선 낙후성을 못 벗어났다. 1995년부터 영상매체 발달과 식상한 기획, 독서보다 해외여행으로 외양을 다지는 대중들의 생활패턴에도 영향을 미쳐 출판계가 불황에 빠졌고, 1997년 3월 고려원 부도를 시초로 서적도매상이 서서히 부도나 출판 기반까지 위협했다. 이에 출판계도 김대중 정부에 긴급지원을 요청하며 자구책을 마련했다. 트렌드도 IMF 여파로 점차 달라져, 1998년 들어 주로 경제서적이 많이 출판되고 정영진의 <청년 박정희>나 이인화의 <인간의 길>,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등 박정희 관련 서적이 상당수 나왔다. 이 와중에 김진명 소설 <하늘이여 땅이여>와 이우혁의 <왜란종결자> 등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1999년 들어 독일 베텔스만 사가 외국 출판사로서 한국에 현지법인 형식으로 처음 진출했고, '예스24'나 '알라딘' 등 인터넷 서적쇼핑몰이 문을 엶으로서 온라인 책 판매가 활기를 띠었다. 당년도 출판계에선 '101가지 이야기'나 'XX하지 마라' 같은 명상서/수행서가 인기를 끌었는데, <영어공부 절대로 하자 마라>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무소유>, <풍경>, <만행> 등이 대표적이었다.
=== 문학 ===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반에 걸친 변혁기를 지나 그 열기가 가라앉으면서 한국 문학은 한동한 방향감각을 상실했다. 이에 따라 민중/노동문학이 쇠퇴하고 개인적 일상과 삶의 의식에 따른 내면추구와 탈정치화가 대세가 됐다. 이러한 변화/모색 과정에서 가장 선풍을 일으킨 건 1994년 [[최영미]] 작가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였는데, 최영미 자신도 운동권 출신이었지만 경직된 이념과 사회성에 얽매이지 않고 감각적 언어와 내밀한 고백체로 엮어 문단계에 돌풍을 일으켜 '최영미 신드롬'으로 호평받았지만, 운동권과 일부 평론가들은 "운동의 패배주의를 확산시키고 상업성에 영합했다"고 매몰차게 비판을 가했다. 이런 시대적 상황으로 '후일담 문학'이란 말이 유행했는데, 이 말은 평론가 김윤식 교수가 공지영, 박일문, 김영현 등의 작품들을 평하면서 처음 쓰기 시작했고, 해당 문학은 운동의 중심 및 분류, 실제 과정보다 운동권 주변 및 운동권들의 후일담을 다룬 것이다.
위와 같은 모색기를 지나 신경숙을 비롯해 공지영, 윤대녕, 김소진, 구효서, 은희경, 공선옥, 김인숙, 이청해, 채영주 등 '30대 신진 작가'들의 활동이 크게 주목을 받았고, 조정래도 <태백산맥>에 이어 <아리랑>, <한강> 등을 내며 건재를 과시했다. 그 외에 송기숙, 한승원, 한수산, 이청준, 홍성원, 최인훈, 최명희, 김남일, 김주영, 이순원 등 중진 작가들 역시 꾸준히 창작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소설과 달리 시는 꾸준한 창작활동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호응이 떨어져 침체기를 겪었고, 이념/사회성 대신 문명 비판적인 환경시 및 생명시 등 신서정시가 강세를 뚜렷이 나타냈다. 특히 미당 서정주, --고은--, 구상, 조병화, 황동규, 정현종, 김지하, 김혜숙, 허영자, 김후란 등 원로/중진들의 시에서 더 큰 경향을 드러냈으며, 일부 신인들에게도 이러한 경향을 나타냈다. 그 외에도 곽재구가 <첫눈>, 전영애가 <카프카, 나의 카프카>, 정호승이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를 내는 등 여전히 건재를 과시했다. 같은 시기 이종록, 신정숙, 임후성, 서림 등 참신한 감수성을 지닌 신세대 시인들의 활약도 흥미를 더했고, 진보 문인 박노해, 백무산, 박영근 등은 1980년대식 급진성 대신 차분하게 삶을 응시하는 쪽으로 변화해갔다.
1990년대 들어 개방화/자유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문단계에서 '표현의 자유' 문제가 더욱 부각을 받았다. 1992년 <[[즐거운 사라]]> 작가 마광수 교수, 1997년 <[[내게 거짓말을 해봐]]> 작가 장정일이 음란문서 제조죄로 각각 법정구속되었다. 특히 장정일은 성에 대한 사회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코자 했으나 공안의 잣대에 걸렸고, '표현의 자유'는 여전히 사법적 판단 대상이었다. 그리고 진보 문인에 대한 법정구속도 여전해 1991년 박노해를 비롯해 1993년 [[황석영]], 1996년 김하기가 각각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감옥에 갔고, 소설가 조정래도 <태백산맥> 이념시비 때문에 1994년부터 11년간 법적 갈등에 돌입하게 됐다. 1996년 [[이문열]] 작가가 페미니즘이나 여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선택>을 내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1998년 들어선 IMF 여파로 문학계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고학력 주부 및 사무직 여성이 독자층에서 대거 이탈해 시는 거의 빈사 상태였고, 소설 역시 시장이 위축됐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이혜경 창작소설집 <그날에>나 이치은 장편소설 <권태로운 자들> / <소파씨의 아파트에 모이다> 등 양질의 작품이 나왔고, 대중소설 쪽으로 전환한 양귀자의 <모순>도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했다. 이어 박완서, 은희경, 공지영, 김형경, 신경숙 등도 시대적 욕망을 반영한 작품들을 내놨다.
1999년 문학계는 영상매체 확장에 따른 위기감이 확산되는 중에 새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20~30대 청년작가군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향의 완성도 높은 작품이 무수히 나왔지만 문학계 전반은 사회적 파장을 지닐 만한 뜨거운 논쟁이나 새 세기를 준비하는 움직임은 없었다. 위와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검은 이야기 사슬> 등을 낸 정영문, <청동거울을 찾아라>의 민경현,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의 김영하 등 독특한 상상력을 지닌 신예 작가들의 활약이 돋보였고, 강석경의 <내 안의 깊은 계단>, 최인석 창작집 <나의 사랑 나의 귀신>, 이경자 장편소설 <정은 늙지도 않아> 등도 하반기 독서시장에서 화제를 일으켰다. 또 당년도 베스트셀러는 말 그대로 '여인천하' 였는데, 신경숙의 <기차는 7시에 떠나네>가 28만 권을 기록한 걸 비롯해 은희경 창작집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가 18만 권, 전경린 장편소설 <내 생애에 꼭 하나뿐일 특별한 날> 및 공지영 창작집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가 각각 11만 권을 돌파했다. 반면 시집은 황지우의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가 8만 5천 권을 기록했다.
반면 판타지 소설계는 이우혁의 <퇴마록>이 히트한 후 1998년부터 사이버 공간을 벗어나 서점에까지 큰 반향을 일으켰고, 1999년 들어 상업적 성공으로 문학출판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떠올랐다. 이 즈음 이영도의 <드래곤라자> 등이 5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히트했다. 또 문화관광부는 1999년 문예진흥원을 통해 외환위기 이후 생활고를 겪는 문인들을 위해 상/하반기 걸쳐 지원금 10억 원씩을 보탰다.
1999년 문학계에 새로 불거진 이슈는 바로 <문학과 사회> 및 <문학동네> 등 유력 문학계간지들이 겪은 '문학권력 논쟁'이었다. 김정란 시인은 <인물과 사상> 12권 기고문 '그들의 문학 - 그 치명적 얽힘: 권성우, 고종석의 글에 대한 발론'에서 <문학동네>를 "특정 언론매체와 결탁한 상업주의의 온상"이라 비판했고, 권성우 등도 <문예중앙> 여름호에서 <문학과 사회>에 대해 "특정 학연 등을 중심으로 한 문학계의 권력집단"이라 질타했다.
=== 음악 ===
==== 서양 음악 ====
1990년대를 평정했던 음악은 흑인음악이다. [[마이클 잭슨]]이 1980년대에 음악계에서 흑인의 장벽을 깨부순 이후 그동안 인기는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묻히는 음악이었던 [[힙합]]은 'Golden Era'라 불리는 시대를 맞아 [[스눕 독]], [[2Pac]]과 [[노토리어스 B.I.G.]]으로 대표되는 황금기가 시작됐으며, [[갱스터 랩]]이 힙합 문화에서도 우위를 점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힙합 문화가 한국에도 수입되어서 한국 힙합씬이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수많은 [[R&B]] 가수들이 탄생해 대중음악과 결합하였다. 그전까지는 대중음악과 거리가 멀었던 [[R&B]]음악들이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셀린 디옹]]의 3대 디바와 [[보이즈 투 멘]], [[마이클 볼튼]] 등의 남성가수들에 의해서 팝과 일체화 되었고 본격적인 대중음악의 절정기를 만들어내었다. R&B는 1990년대 가장 인기 있었던 장르 중 하나로 R&B 가수인 머라이어 캐리는 명실 상부 1990년대 아이콘에 등극하며 데뷔와 동시에 센세이션한 인기를 누렸고 1990년대 가장 성공한 가수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되었다. 같은 R&B 가수인 휘트니 휴스턴 역시 1990년대 초중반까지 엄청난 인기를 과시하며 인기를 이어나갔다.
[[록 음악]]의 경우, 록 음악의 헤게모니가 하드 록에서 출발한 메탈 계열에서 [[펑크 록]]에서 출발한 [[얼터너티브 록]]로 완전히 돌아선 시기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변화는 아직까지 유효하다. [[얼터너티브 록]] 쪽에서 [[너바나]]의 <[[Nevermind]]>, [[펄 잼]]의 <[[Ten]]> 등의 명반이 등장하였으며, [[스매싱 펌킨스]]와 같은 그룹도 1990년대 초부터 후반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얼터너티브 락은 현재까지도 락 씬을 주도하고 있다. 물론 1990년대 초반까지는 [[메탈]]의 기세도 여전히 등등해서 [[건즈 앤 로지스]]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메탈리카]]도 [[Metallica(음반)|Metallica]]를 발매하며 대중적 인기를 드높였다. 그러나 1990년대 초가 지나면서 메탈의 인기는 식어갔으며, 그나마 [[판테라]] 정도가 자존심을 지켰다. 하지만 오히려 [[노르웨이]], [[스웨덴]]등의 북유럽에서는 [[Darkthrone]], [[메이헴(밴드)|Mayhem]] 같은 밴드의 [[블랙 메탈]]과 [[멜로딕 데스 메탈]]필두로 메탈이 얼터니티브와 관계없이 기세등등했다.
1990년대 중반에 오면 [[1980년대]] 끝무렵에 [[더 스미스]], [[스톤 로지스]] 등을 통해 비롯된 [[브릿팝]] 음악이 본격적으로 부상한다. [[스웨이드]]를 시작으로 [[블러(밴드)|블러]], [[오아시스(밴드)|오아시스]] 등이 커다란 인기를 끌었으며, [[라디오헤드]]는 1990년대 중후반 <[[The Bends]]>와 <[[OK Computer]]>라는 명반을 내놓음으로써 1990년대 록 음악을 집대성하고 'Radioheadism'이라는 음악 풍조를 탄생시키기까지 한다. 이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져, [[콜드플레이]]와 [[Muse]], [[엘보우]], [[킨]]과 같은 밴드들에게 영향을 준다.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이 시기에 매우 발전했다. [[펫 샵 보이즈]] 류의 신스팝이나 [[테크노]] 등에 머무르던 일렉트로니카는 이 무렵 [[레이브]]문화의 흥성을 시작으로 정말 다양한 스타일로 분화되게 된다. [[프로디지]], [[케미컬 브라더스]] 등의 메가 히트 밴드들이 등장하였으며. [[에이펙스 트윈]]은 비단 일렉트로니카만이 아닌 대중 문화 전반에 큰 흔적을 남겼다.
==== 한국 음악 ====
대중음악계에선 [[음반]]의 100만 장 판매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200만 장이 넘게 팔리는 더블밀리언 앨범도 볼 수 있었다. 여러모로 '''음반판매량의 황금기'''나 다름없었던 시절이다. 이후 오프라인 음반시장은 [[ADSL]]의 보급으로 2000년에 정점을 찍었다.[* 이후 추락을 거듭하여 2007년부터는 800억대 선까지 내려왔으나 온라인 음반시장은 자리를 잡아가면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음반판매량에 있어서는 댄스와 발라드음악이 절대적으로 그 비중을 차지하던 시대였다. 따라서 힙합문화의 도입을 제외한다면 장르적 다양성은 차라리 1980년대가 나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럼에도 [[전람회]], [[015B]]와 같이 대학생들이 가요계에 데뷔하는 경우가 있었다.[* 확실히 이건 [[MBC 대학가요제]]의 공이 컸다. (그런데 015B는 전신이었던 [[무한궤도#s-2|무한궤도]]부터 생각하자면 1988년 데뷔다.) 하지만 대학가요제로 대학생이 가수로 데뷔하는 건 대학가요제가 만들어진 시기인 1970년대 후반부터 있었다. 단지 1970년대 후반의 대학생들이 아마추어의 풋풋함이 있었다면 1980년대 후반 이후 등장한 대학생 가수들은 등장부터 이전 선배들과는 다른 프로 뮤지션으로서 데뷔했다는 차이가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음악그룹)|듀스]], [[김건모]], [[신승훈]] 등의 아티스트가 등장하였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경우 댄스, 랩 장르의 뮤직을 주류로 이끌었으며 기존 가요와 다른 파격적 시도들을 함으로써 명실공히 1990년대 한국 가요계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김건모]], [[신승훈]] 역시 각자의 장르[* 김건모의 경우 레게 팝을 비롯한 흑인 음악과 댄스곡, 신승훈은 정통 발라드]에서 걸출한 실력과 압도적인 위치를 뽐냈고 서태지 못지않은 인기와 히트곡들, 엄청난 상업성을 누리며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의 3대장의 위치를 가졌다.
[[듀스(음악그룹)|듀스]]는 1993년에 데뷔하여 매니아층을 만들었고 대표적 곡인 '여름안에서', '우리는' 등을 내놓고 인기를 누려가고 있었으나 1995년 11월 20일 김성재의 의문사로 이후 듀스는 중단되었다. 이현도가 미발표곡 등을 담은 <Deux Forever>라는 베스트 앨범을 끝으로 듀스는 해체되었다.
[[뮤직비디오]] 문화 등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 시대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도 1990년대였다. 서태지가 음악이 아닌 비주얼적인 면에서도 세일즈 포인트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뮤직비디오]] 제작시장이 갖추어지기 시작하며, 이는 1995년 m.net이나 KMTV 같이 케이블 TV 시대를 맞아 생겨난 음악 채널들의 탄생과도 궤를 같이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음악시장에서 뮤직비디오라고 할만한것은 없었으며,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같은 음악 쇼 프로그램에서 즉석무대를 갖춰주는 일종의 유사 뮤직비디오들이 그나마 갖출 수 있는 가수들의 비주얼 판촉수단이었다. [* 거꾸로 말하면, 한국에서 [[레이저디스크]]가 영 힘쓰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특히 이러한 분위기가 팽배했던 1980년대 이전 가수의 평가기준은 순수하게 가창 실력 및 음악 그 자체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조용필 등이 이러한 시스템 하의 최대수혜자(중 하나)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 문단은 [[독자연구]]/[[집단연구]]임을 밝힌다.] 이에 따라 가요 프로그램 립싱크도 무분별하게 증가하면서 '립싱크 논란'이 가요계나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크게 제기되었다. 이로 인해 1997년 KBS2 <가요 톱10>이 립싱크 표시를 붙여 구분시키고,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이 국내 최초로 올 라이브 무대로 전환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2년에 데뷔하였고, '[[서태지와 아이들 1집|난 알아요]]', '[[서태지와 아이들 2집|하여가]]' 등을 내놓으며 승승장구했지만 1994년에 '[[서태지와 아이들 3집|교실이데아]]'라는 곡을 [[백마스킹|거꾸로 돌리니]] '피가 모자라'가 들린다며 여론이 시끄러웠다. 그 뒤 그들은 '[[서태지와 아이들 4집|Come back home]]'으로 활동하며 '시대유감' 사전검열 문제에 저항해 '''1990년대 대한민국 최고의 문화 아이콘으로 등극했고,''' 이들의 음악들은 한결같이 기성 가수들의 것과 달리 내용/형식 면에서 차별성과 독창성을 지녔고, 우리 사회 속의 온갖 억압적 요소들에 얽매인 청소년들에게 강렬한 감동을 주었다.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은 '창작의 고통'을 이유로 [[1996년]] 1월 성균관 유림회관에서 은퇴 선언을 했고, 태지보이스를 따르던 벗들은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사업회(서기회)'란 비영리 문화단체를 세워 그의 자유와 도전정신을 기렸다.
그 이후부터는 서태지의 영향을 받은 [[H.O.T.]]를 필두로 한 1세대 [[아이돌]] 음악의 [[홍수]]가 시작되었으며, 심지어 '[[IDOL]]' 등과 같이 중~고등학생까지 가수판에 뛰어들기도 했다. 다만, 이들은 태지보이스만큼 독창성 및 대중화에 독특한 전략을 지니지 못했고, 초창기였던 만큼 일본과 영미권 음악산업을 데드 카피하는 악습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었고 이에 대한 비판 역시 직면했었다. 지금은 한류다 뭐다 해서 아이돌 음악의 위상이 나아지긴 했지만 이때는 현재와 같은 아이돌 문화가 걸음마를 떼던 단계였던지라 성숙하지는 않았던 셈이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로 음반판매량이 줄고 주요 음반도매상들이 연쇄 도산했고, 50만 장 이상을 찍은 음반이 1997년 15개에 비해 1998년 들어 H.O.T., 서태지 등 10개에 불과했다. 이보다 더 타격을 받은 건 데뷔앨범을 내려던 신인 댄스그룹들이었다.
1995년 홍대 일대의 클럽 [[드럭]]을 중심으로 [[펑크 록]] 위주의 인디문화가 태동하기 시작했고, 이듬해인 [[1996년]] 11월 기념비적인 앨범인 Our Nation Vol.1이 발매되고 '스트리트펑크쇼' 등을 통해 새로운 문화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7년에 황신혜밴드가 펑크 음악을 대중화시키기도 했으나 외환위기로 인해 록이나 펑크 같은 실험적 음악들이 쇠퇴했고, 대신 박진영의 <Honey>나 엄정화의 <Poison> 같은 복고풍의 가벼운 댄스팝이 히트를 쳤다. 그 해에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가 110만 장을 기록해 히트곡으로 급부상했고, H.O.T.의 <열맞춰>와 김건모의 <사랑이 떠나가네>, 신승훈의 <지킬 수 없는 약속> 등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특히 김종환의 2년 연속 빅 히트는 성인가요의 존재를 확인시켜줬는데, 창법과 가사가 진부하긴 해도 당대 가요계 변방이던 주부층의 강력한 구매력이 메꿔줬다.
1999년 들어서 mp3 등 신종 음악매체가 등장하여 기존 음악유통 및 제작시스템에 변화를 불어넣었고, 기존 대형 음반사들도 mp3 시장에 연거푸 뛰어들었다. 이 시기 들어 뮤지션들도 인터넷을 통해 데뷔하거나 음반을 홍보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미국 버클리음대 유학생인 신인래퍼 조PD는 인터넷에 노래를 업로드해 뭇 청소년들의 각광을 받았으며, 한 매니저가 음반을 냈으나 욕설 때문에 19금 딱지를 받아 '표현의 자유' 논란도 불거졌다. 다만 그는 인터넷으로 인한 가수 시스템의 변화를 예고해 수많은 신인들도 인터넷에 음반을 홍보해왔다. 심지어 오락실에서도 음악과 비디오게임을 조합한 'DDR' 역시 한국에서 유행했는데, 이는 n세대가 디지털 첨단기술로 음악의 DIY를 즐기고 있음을 보여줬다.
새 천년을 앞두고 조용필은 각 언론들이 실시한 '20세기 한국 최고의 가수'로 선정됐고, 그의 히트곡 <돌아와요 부산항에> 역시 20세기 최고의 노래로 선정됐다. 그는 11월 중순에 대중가수로서 최초로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해 큰 주목을 받았으며, 티켓 1만여 장이 공연 한 달 전에 매진될 정도로 변함 없는 인기를 과시했다. 동년 대중가요계에서 두드러진 가수는 단연 조성모인데, <후회>와 <슬픈 영혼식>을 불러 최단시간 내에 100만 장을 넘었고, 1~2집이 연속 밀리언셀러 반열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특히 <슬픈 영혼식>은 한 해 200만 장이 넘게 팔렸다.
1990년대 중후반 구미권에 열풍을 불러일으킨 테크노도 1999년 한국에 상륙했는데, 이 장르는 '기계와 인간의 조화'라는 기본 이념과는 달리 단순한 형식을 모방하는 데 그쳤다. 그래도 전국 곳곳에 테크노 클럽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그 안에서 젊은이들이 고개를 흔들어내는 춤 때문에 일명 '도리도리춤'이란 신조어까지 나왔다. 해외 뮤지션 내한공연 중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의 콘서트가 수차례 연기 끝에 그해 6월 25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개최됐으나 부진한 흥행성적을 냈다.
민중 노래판에선 [[조국과 청춘]], [[꽃다지]], 희망새, 천지인 등이 크게 활약했다. 특히 1992년부터 활동한 서총련 노래단 '조국과 청춘'은 종전 대학 노래패 단위 창작활동에서 '지역 대학생 노래단 중심'으로 바꾸는 데 일익했으며, 이들의 성공은 부경총련 '좋은친구', 경기남부총련 '천리마', 남총련 '한반도' 등 지역별 대학생 노래단 탄생에 자양분이 됐다. 또 '천지인'이라는 노래패는 민중가요 사상 최초로 락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래 신세대 열풍과 연세대 사태 등으로 민중가요의 영향력은 서서히 빛을 잃어 갔다.
일제 및 독재시기 산물이던 '음반 사전심의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때 이루어졌는데, 민중가수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1990년 <아, 대한민국...>, 1993년 <'92 장마, 종로에서>라는 두 음반을 사전심의 없이 냄에 따라 불법 딱지를 받은 데서 기인했다. 이에 그는 1993년 이후 음반 사전검열제를 타파키 위해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을 하고 음비법 개정을 위해 국회 문공위 소속 의원들을 찾아다니는가 하면, 일반 국민 여론형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 '시대유감 사건'을 계기로 기폭제가 되어 1996년 6월 7일 개정 음비법 시행에 따라 사전심의제가 사라졌고, 10월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정했다.
국악/클래식계 입장에선 의미있는 시대였는데, 1993년 <서편제>의 성공으로 판소리에 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고, 국악계와 언론이 전통음악 전체로 눈을 쏠리게 만들면서 1994년을 '국악의 해'로 정하게끔 만들었고, 1994년 들어 국악의 해 외에 '동학농민운동 100주년' 및 '서울 정도 600주년', '중요 무형문화재 지정 30주년' 등이 맞물려 이를 기념하는 대형 행사 및 무대가 펼쳐졌고,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백혜선, 제니퍼 고, 엘린 문이 참가자 284명 중 3, 2, 4위를 각각 따내 큰 주목을 받았고,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엣 강이 폴란드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첼리스트 장한나가 프랑스 파리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각각 우승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도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독주회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 그해 9월에 한국 최초로 '윤이상 음악제'가 서울, 부산, 광주 등 3곳에서 공연됐으나, 정작 윤이상 작곡가가 안기부와의 마찰로 조국에 오지 못했음에도 무난히 잘 치러졌다. 당시 연주됐던 곡은 오페라 <꿈>과 <교향악 제3번>, <클라리넷 5중주>, 실내악 작품 등 10곡이었다.
1990년대 들어 [[조수미]], [[장영주]], [[정경화]], 정명훈, [[백건우]], [[백혜선]], [[신영옥]], [[홍혜경]], 유진 박 등 해외파나 교포 스타들이 떠올랐고, 임헌정 부천필하모닉 상임지휘자 등 국내파도 떠올랐는데, 이들은 '세계화 시대의 도래'를 실감케 할 뿐더러 일부 계층만이 아닌 모든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은 게 당대 특이점이었다. 재야사학자 임영태의 견해에 의하면, 그 요인으로는 TV와 같은 영상 매체의 발달, 국민들의 국제화에 대한 의식 진전, 생활수준 향상에 따른 문화적 욕구 증진 등이 꼽힌다.
클래식 음반 중에선 1994년 조수미 1집 <새야 새야>가 히트를 치기 시작해 1996년 <디어 아마데우스>, <베스트 앨범> 등 2개 음반이 10위권 안에 들었다. 신영옥 앨범 <아베 마리아>가 발매 2달 만에 6만 장이나 팔려 1996년 12월 판매순위 1위에 올랐고, 장한나 데뷔앨범도 6만 장이나 팔려 1996년 국내 클래식 앨범 판매순위 10위권에 들었다.
1996년 국악계에선 가장 큰 성과로는 서울 서초동에 국악전용극장 '예악당'이 문을 연 걸 꼽을 수 있다. 9월 4일엔 서울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공연된 김덕수-안숙선 합동공연 <공감>은 제목에 걸맞게 관객들의 공감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 일본 음악 ====
음악 팬들에겐 '''J-POP의 전성기'''로 회자되는 시대로, [[일본]]도 한국과 비슷하게 다양한 장르들의 음악이 여럿 나왔으며, 음반 판매량이 최고를 기록하던 시기였다. 일본이 장기적 경제 불황에 빠져들었던 상황을 고려해보면 상당한 성과라고 볼 수 있는 부분. 물론 장기적 경기 침체가 오히려 음악과 같은 대중문화 소비를 늘렸다는 분석도 여럿 있다. [[Mr. Children]], [[B'z]], [[Spitz]]와 같은 록밴드들이나 [[시부야계]] 아티스트들이 크게 인기를 끌었으며 1980년대 후반부터 활동한 [[X JAPAN]]을 통해 [[비주얼계]] [[록 음악]]도 성행했었다.
또한 에이벡스의 Super Eurobeat 시리즈가 컴필레이션 앨범의 딜레마와 한계를 딛고 오리콘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아무로 나미에]]와 [[V6]]가 [[유로비트]] 장르로 1990년대 중후반을 휩쓰는 등 유로비트도 약진했었다. 그리고 이는 2000년 5월에 발매되었던 슈퍼 유로비트 110집이 '''70만 장'''이라는 어마어마한 판매량과 '''오리콘차트 3주간 1위'''라는 엄청난 성과를 내게 되는 씨앗이 되었다.
=== 게임 ===
콘솔 게임계에서는 1990년대 초중반엔 [[게임보이]], [[슈퍼패미컴]], [[메가드라이브]], [[PC엔진]] 등의 16비트 콘솔 게임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콘솔 전쟁이 1980년대보다 상당히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16비트 콘솔 싸움은 결과적으로 [[슈퍼패미컴]]이 승리하였지만 1980년대에 [[패미컴]]이 온갖 게임 시장을 장악하던 때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치열한 싸움이었다.
1990년대 초중반때만 해도 후반 때와는 달리 1980년대 전반의 게임들과 같은 선상에 있거나 약간 상위호환에 있는 편이였다. 실제로 1991년 출시된 희대의 명작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등장이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계기를 제외하면 게임의 역사에서는 본격적으로 게임이 발달하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 때부터 1990년대 초중반까지를 같은 세대로 취급된다.
그러나 이것이 딱히 문제점인 것도 아니며 이때부터 게임이 점차 더 대중적으로 변모했기 때문에 1980년대 전반 게임들의 장점들과 스타일을 지니면서 더 대중적이고 더 세련된 모습을 보이게 되어 1990년대만의 특징을 부여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16비트에서 32비트로 넘어가기 시작한 [[플레이스테이션|5]][[세가 새턴|세]][[닌텐도 64|대]] 콘솔 시대로, 이 시기에 비디오 게임의 비약적인 그래픽 상승 경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PC에서는 [[둠 시리즈]]가 그래픽 혁명, [[미스트(게임)|미스트]] 시리즈가 [[CD]]ROM의 대용량 매체를 적극 활용한 인터랙티브 혁명을 이끌어 냈고, 콘솔 쪽에서는 32비트 게임기들이 보다 제대로 된 폴리곤 그래픽 지원과 [[CD]]ROM 매체를 이용한 [[FMV|풀모션 비디오]][* 게임외적인 부분의 CG/실사동영상을 재생하는 용도가 메인이었지만 몇몇 게임은 이러한 풀모션 비디오를 배경에 일부 박아넣는 식의 연출 용도로 활용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파이널 판타지 7]]에서 이런 기법이 많이 사용되었다.] 활용으로 3D 게임의 중흥기를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 중후반은 [[세가 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 [[PC-FX]]등의 게임기들이 경합하며 만들어낸 2D 게임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특히 [[세가]]와 [[소니]]의 너 죽고 나 죽자식의 치열한 무한경쟁이 수없이 많은 2D 수작 게임들이 탄생한 배경이 되었다. 1990년대말 [[플레이스테이션 2]]와 [[드림캐스트]]가 등장하며 보다 완연한 3D게임 시대가 열렸으나 그전까지만해도 폴리곤 기술은 텍스쳐의 해상도도 낮고 해서 아직 조악한 수준이었으며 [[1999년]]까지는 2D의 우세가 지속된다. 그나마 새턴과 플스의 초반 싸움에서 새턴이 플스하고 호각을 뜬 이유도 새턴이 2D 쪽에서는 확실히 우위를 점했기 때문. [[파이널 판타지 7|그 게임]] 이후로 새턴이 밀릴때에도 2D 격투게임/슈팅게임의 이식률이 좋은 새턴은 이쪽 장르 매니아들에게 여전히 수요가 높았었다. 2000년대 초반, 6세대 콘솔의 등장을 거치면서 3D 구현기술이 발전해 [[2002년]]쯤에는 완전한 3D의 우세가 굳혀졌다.
휴대용 게임의 경우엔 '''[[게임보이]]'''가 1990년대 초 중반을 주름잡았고 전 세계를 평정했다.[* 물론 이후론 [[PSP]], [[닌텐도 DS]] 등의 등장으로 인해 인기가 많이 사장되었지만 당시로선 저렴하고 휴대성이 좋은 게임기론 게임보이가 유일했기에 저연령층에서 인기가 좋았다.] [[게임보이 컬러]]가 출시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게임보이는 여전히 흑백 8비트 그래픽으로 작동되었다. 하지만, '''당시로선 성능이 매우 좋았던 혁명적인 휴대용 게임기'''였다.
PC 게임계는 한동안 DOS 2D 디스켓 게임 일색에 그래픽카드도 ATi 등의 2D 그래픽카드 위주였으나, 1991년 세계 최초로 <호버탱크 3D>란 3D 게임이 등장했다. 1994년 들어 CD 지원 게임이 점차 나오고 1995년 들어 윈도우 지원 게임들도 등장했다. 같은 해에 3dfx 사가 '부두 그래픽카드'를 개발하면서 풀 3D 게임 제작편수가 늘었고, 게이머들도 게임 소프트웨어를 고를 때 CPU, 운영체제 외에 그래픽카드도 필수 요건에 넣기 시작했다. '부두 시리즈'의 성공으로 엔비디아 등 후발주자들도 그래픽카드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3년 미국 웨스트우드 스튜디오가 세계 최초로 RTS 게임 <듄 2>를 제작했고, 뒤이어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도 1994년 <워크래프트>를 제작했다. 1997년 케이브독은 세계 최초로 3D 그래픽 RTS <토탈 어나힐레이션>을 개발했다. 1998년 이전까지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가 우세였다가 이후 <스타크래프트>가 압살했다.
한편 90년대 말 한국 게임업계는 IMF폭탄을 맞은 직후[* 때마침 야간/할인시간정액제가 실시되어 요금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스타크래프트]]의 등장으로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 많던 당구장이 우수수 폐업하고, 그 자리에 PC방이 들어섰다. 오락실 게임이 죽어가던 와중에 청소년들은 또다른 게임 문화에 순식간에 적응했고 IMF 극복기에 절정에 달해 상가 건물은 조금만 규모가 커도 한 건물에 PC방이 두 개씩 들어가 있는 광경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IT 투자 붐(거품이었다)이 게임 업계에도 흘러들어 [[아트록스(게임)|아트록스]], [[아마게돈(게임)|아마게돈]] 따위의 스타 아류작이 수도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기 일쑤였을 정도로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컸고 스타크래프트를 능가하는 국산 RTS를 만들려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하였다. 90년대 초부터 중소규모 업체 위주로 소소하게 이어져 오던 게임 개발업계는 거품이 꺼짐과 동시에 확실하게 가지치기를 당해 현재는 소위 3N이라는 업체들만이 살아남아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 패키지 게임 시장도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편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e스포츠]]가 태동하는 기반이 되었고 이 무렵 최초의 프로게이머라 할 수 있는 [[신주영]],[[이기석]] 등의 인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1994년 KBS2 <생방송 게임천국>을 시초로 유료 ARS 게임도 어린이들 사이에 성행했고, PC통신에선 머드게임이 유행했다가 1996년 넥슨이 <바람의 나라>를 국내 최초로 내놓으면서 인터넷 기반 온라인 게임이 생겨났다. 이후 1999년 ADSL 보급과 더불어 온라인 게임이 집집마다 보급될 토양을 마련해 주었다. 90년대 말 한국 오락실 게임은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그 시기에 나온 댄스 리듬게임인 [[DDR]]과 [[펌프잇업]]은 반짝인기를 얻었다.
=== 패션 ===
1990년대 패션은 크게 초반, 중반, 후반에 따라 나뉘어 진다.
1990년대 초반은 주로 해외 교포 출신의 [[오렌지족]]들과 [[압구정]] 문화가 유행을 선두했으며, 이들을 통해 게스, 캘빈 클라인 등 해외 브랜드가 국내에 소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과장됨이 핵심이던 80년대와 달리 90년대부터는 헤어와 패션 전반적으로 훨씬 자연스러운 느낌을 추구했다. 그리고 [[X세대]]의 등장과 함께 [[유니섹스]] 패션이 자리잡았고 여성들은 배꼽티와 핫팬츠를 입으면서 성적으로도 개방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은 경제 호황기를 타고 국내 패션 브랜드가 최전성기를 누린 시기였다. 닉스, 스톰 같은 국내 브랜드가 명품 브랜드 뺨치는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젊은층에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특히 스톰은 [[소지섭]], [[김하늘]], [[송승헌]] 등 톱스타들이 모델로 데뷔한 스타 등용문이었으며, 브랜드 팬클럽까지 생길 정도로 매니아 층이 있었다. 이 시기에 10, 20대를 보낸 사람이라면 '292513=STORM'이라는 브랜드 명을 아직도 기억할 것이다. [* 그러나 이 브랜드들은 모두 IMF 시기에 회사가 망하거나 인수되면서 현재는 사라졌다.]
여성들의 메이크업 변화도 크게 두드러지는데, 이 시기 여성들의 화장은 진한 파운데이션과 벽돌같은 어두운 색 [[립스틱]]이 기본 스타일로 기존 원색 위주의 화장과는 차원이 다른 과감한 다크 컬러가 유행했다. 90년대 중후반부터는 이게 더욱 심화되어 거의 특수분장 수준의 회갈색, 회보라 같은 엄청난 색상의 립스틱이 유행하기도 했다.[* 곧이은 2000년대에는 이런 90년대의 과감한 메이크업에 대한 반동으로 옅고 자연스러운 화장을 추구하게 된다. 다시 좀 더 진하고 과감한 화장이 유행하는 2010년대 기준으로 보면 2000년대 중반의 화장은 거의 [[쌩얼]]에 가까워 보일 정도.]
또 그전까지 국내에서는 생소했던 [[힙합]] 패션이 [[MTV]]와 아이돌을 통해 전파되면서 바지통이 넓은 힙합 바지와 실버 액세사리가 유행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청소년 문화가 급성장하기 시작했는데, 청소년의 패션취향도 다양해짐에 따라 강남에서는 힙합패션이, 강북에서는 복고패션이 유행하며 갈래가 나뉘기도 했다. 1997년에는 박찬호의 맹활약으로 LA 다저스 모자가 유행한 적 있었다.
1990년대 말에는 세기말의 분위기를 타고 장식이나 화려함을 최소화한 디자인에 채도와 명도가 낮은 어두운 톤의 미니멀리즘 룩이 유행했다. 특히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로 방송국에서 자체적으로 연예인들의 [[염색]]이나 화려한 의상과 액세사리에 규제를 가하는 바람에 모자나 두건으로 머리를 가리는등 한동안 패션 암흑기를 겪기도 했다.
=== 영화 ===
1990년대 초반 들어 국산 영화계에선 우일영상(대우), 미도영화사(선경), 드림박스(삼성) 등처럼 재벌의 영화참여가 늘어났고, 1993년 <서편제>가 120만 관객을 동원해 대 히트를 기록했다. 여기엔 시대적 상황이란 변수가 끼어 있었는데, 이 시기 불어닥친 개방화 열풍은 다른 쪽에서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고, 감동적인 비극적 스토리 및 예술에 대한 집념이 뒷받침되어 신비감과 비극미를 더해 주었다. 이 영화는 국악 등 한국 문화에 대해 새롭게 재조명할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국산 영화 역시 잘 만들면 외국과 경쟁할 수 있다는 걸 일깨워 주었다. 이후 1994년 <투캅스>, 1996년 <은행나무 침대>, 1997년 <접속> 등으로 상업적 히트가 이어졌으며, 1996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꽃잎>처럼 사회성을 지닌 영화도 탄탄한 작품성에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이미 1994년 <태백산맥>도 히트를 쳤으나, 이는 원작 소설의 인기에 편승했다.
이와 더불어 홍상수, 강제규, 양윤호, 정병각, 한지승, 임순례, 이민용, 이창동, 송능한, 장윤현, 이경영 등 젊은 세대의 감성을 대변하는 신진 감독들이 등장해 국산 영화의 새 발전을 예고했다. 배우로는 한석규, 최민수, 박상민, 박중훈, 심혜진, 황신혜, 최진실, 이덕화, 문성근 등이 크게 활약했다.
이 시기 국산 영화계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은 국내 최초의 국제 독립영화제 '1995 서울국제독립영화제' 개최였다. 출품작 중 가장 주목받는 작품으론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배용균 감독의 <검으나 희나 땅에 백성>, 그리고 변영균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낮은 목소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2> 등이었다. 1996년에는 국내 최초 종합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1997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각각 개봉되어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1996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공연윤리위원회]]의 영화 사전심의가 위헌으로 판결나 '가위질 시대'가 끝을 고했던 것 역시 큰 주목을 받았다. 반면 장산곶매 등 운동권 영화집단들은 1990년 독립영화 <파업전야>를 만들어 '완성된 민중영화'를 선보였고, 이는 1991년 <어머니 당신의 아들>, 1992년 <닫힌 교문을 열며>로 이어졌다.
문민정부 시기 5년 동안 국산 영화가 수 많은 성과를 거뒀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 영화 직배체제의 잠식으로 토종 영화계가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1988~1989년 직배반대 투쟁에도 불구하고 국산 영화 제작은 1988년 87편에서 1997년 59편으로 줄었고, 토종 영화자본 역시 빈약해져갔다. 반면 미국영화 직배 수는 1997년 53편으로 늘어나 세계 10대 영화수입국이 됐고, 이에 따라 로열티가 매년 30% 가량 증가해 직배 활동 시작 이래 1996년까지 5개사 송금액은 무려 1,367억 원, 1997년 기준 1,600억 원으로 각각 증가했다. 결국 1988년 직배반대 투쟁에 나섰던 영화인들 사이에선 "한국이 쇳덩이(자동차)를 팔려고 미국혼(영화)까지 사들였다"고 신랄히 비판했으며, 이는 영화가 상품이나 오락 차원을 넘어 인간의 사고와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한국은 준비되지도, 원치도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영화시장을 개방해 미국 우월주의를 비롯해 미국의 세계지배 이념, 인종차별, 성 도착, 폭력, 살인, 전쟁 등 우리 정서상 해로운 것까지 들여오는 역효과를 낳았다. 이렇게 되자 김영삼 시기 5년 동안 국산은 <서편제>만 1백만 관객을 돌파했지만, 수입영화 쪽은 <스피드>, <쥬라기 공원> 등 10여 편에 달했다. 평균으로 쳐도 1년에 2편씩 1백만 이상을 동원한 셈이다. 위와 같은 위기상황 속에서도 몇몇 영화인들은 영화직배에 대해 "미국의 문화 침략에 대한 자각을 일으키면서도 영화시장을 키우는" 순기능도 있다고 견해를 제시했다. 또한 제작편수는 줄어도 희소가치가 생겨 미국 메이저 영화와 맞설 수 있는 측면도 있다.
또 공권력에 의한 영화탄압도 여전했는데, 노태우 시절 1990년 <파업전야> 상영 당시 민중영화가 상영되는 대학가나 재야단체마다 경찰 병력이 들이닥쳐 필름을 압수하고자 했고, 문민정부 초기에도 1994년 <해적> 등과 같이 가위질 수난도 있었다. 1996년 영화 사전검열 위헌판정 후 1997년 공윤이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로 출범되고 같은 해 개정 영화진흥법에서 '등급 외 전용관'을 명문화했지만, 여당 등의 반대로 전용관이 허용이 안 되어 등급외 영화들은 영화관에 내걸리지 못했다. 게다가 하반기 들어 '제1회 서울퀴어영화제'가 취소되고 제주 4.3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 헌트>가 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하여 서준식 인권운동사랑방 대표가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에 서준식의 변호인단 103명이 "<레드 헌트>는 미군정 자료 및 역사학계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4.3 사건을 객관적으로 다뤘으며, 영화학과 교수들의 추천을 받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것이니만큼 이적표현물로 볼 수 없다"고 보석 신청을 해 구속 3개월 만에 서준식이 풀려났다. 그러나 완전히 무죄로 판정되기까지는 약 6년이 걸렸다.
1998년 들어서도 외국 영화들은 겉으로 화려하나 실속 없는 영화가 판을 쳤다. 수입작 중 <타이타닉>이 서울 232만 명을 기록해 최고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그 외에 <아마겟돈> 및 <딥 임팩트>가 각각 135만 및 76만 명을 동원해 크게 성공했다. 애니메이션 중에 월트 디즈니 작품 <벅스 라이프> 및 <뮬란>이 각각 90만 명을 돌파해 건재를 과시했다. 반면 국산 영화계는 외환위기 여파로 지각변동이 일었는데, 삼성, SK, 현대 등이 영화사업을 정리하고 산은캐피탈, 일신창업투자 등 금융권이 그 자리를 메꿨다. 동년도 제작편수는 1996년 64편, 1997년 59편에 이어 43편으로 감소했으나, <여고괴담>, <처녀들의 저녁식사>, <퇴마록>, <조용한 가족> 등 공포물이 성공하고 <편지>나 <8월의 크리스마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등 멜로영화들도 건재를 과시했다.
또 동년도 대형 이슈는 바로 일본 영화 개방이었다. 문화관광부가 11월 20일부로 '일본 대중문화의 단계적 개방 방침'에 따라 <하나비> 및 <카게무샤> 등 국제영화제 수상작 2종이 들어왔으나, 업계의 시장 10% 잠식 예상과는 달리 흥행은 실패했다. 그리고 '스크린쿼터 사수투쟁'도 이슈거리였는데, 미국측이 연초부터 한미투자협정 협상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축소'를 요구하자 7월 27일 각 영화계 인사들이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11월 제3차 실무협상에서 해당 문제가 논의되자 이들은 12월 1일 광화문 등 도심에서 시위를 벌였다. 영화인들은 철야 농성에 돌입했고,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들도 '우리영화 지키기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협의회'를 구성해 문화예술계 인사와도 연대했다.
이 와중에도 한국 영화는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을 과시해 <8월의 크리스마스>를 비롯해 <아름다운 시절>, <강원도의 힘> 등이 칸 영화제 공식부문에 초청됐으며, 특히 <아름다운 시절>은 도쿄국제영화제 등 4개 영화제에서 상 5개를 받았다. 1999년 들어 강제규 감독 작품 <쉬리>가 서울관객 244만 8천 명을 기록해 <타이타닉>의 흥행기록을 깼다. 이 작품의 흥행은 일약 뉴스거리가 됐고, 일본과 동남아 등지에 수출됐다. 또 내용상으론 냉전 시대 사고방식에 고착됐음에도 불구하고 밀도와 긴장감, 풍부한 볼거리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틀을 제시했다는 평도 이어졌다. 뒤이어 <주유소 습격사건> 등 국산 영화들이 흥행하여 1998년까지 20%대였던 시장점유율을 40%까지 끌어올리기도 했다.
결국 [[쉬리(영화)|쉬리]]의 개봉으로, 한국의 영화계는 어마어마한 발전들을 겪게 된다.
해외 영화계는 흥행, 작품성 양면으로 엄청난 전성기를 맞게 된다. 펄프 픽션, 쇼생크 탈출 등 기라성같은 걸작들과 쥬라기 공원, 라이온 킹 같은 초메가히트 클래식 블록버스터들이 나오며, 1990년대를 최고의 전성기로 꼽는 팬들이 많다.
=== 언론 ===
==== 정치적 측면 ====
노태우 때까지만 해도 권력의 눈치를 보며 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언론은 1993년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유례 없이 강해졌다. 그러나 문민정부 시절 '권력이 언론 눈치를 본다'라 할 정도로 불렸기에 '밤의 대통령'이라고도 불렸다. 방송은 직/간접적으로 정부의 통제를 받았으나, 신문/뉴스통신은 서울신문과 연합통신을 빼곤 상당수가 민영이라 '언론재벌'까지 오르는 경우도 있고, 소유로 보면 정부로부터 독립돼 있으나 5공 때 정권의 언론통제로 눈치를 보다가 1987년 6.29 선언 뒤 언론 자율권이 확대되어 문민정부 들어선 완전히 자율권을 행사했다. 그렇다고 해도 '언론자유 형성'이라고 보긴 어려웠는데, 이미 1980년대에 확대된 상업주의와 언론 권력화가 합쳐져 수익성을 노리며 여론 조작 및 통제를 일삼아 영향력을 행사했고, 권력 대신 기업 차원에서 기자들의 편집권 및 언론자유를 빼앗았기에 1980년대 후반부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문민정부 들어서도 언론은 여전히 상업주의 논리에 따라 돌아갔다.
김영삼 시절 언론이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던 것은 대선 당선의 일등공신이 '언론'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부 장악으로 편파보도가 불가피한 방송과 달리 신문들은 하나같이 차기 정권에서 영향력을 행사코자 특정 후보를 밀어줬다. 대표적인 예로 1992년 14대 대선 때 <조선일보>가 정주영 네거티브 보도로 김영삼 득표율 상승에 공헌했고, 1997년 15대 대선 때 <중앙일보>도 이인제를 공격하며 이회창을 밀어줬다.
또 언론은 정부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도 사안에 따라 정반대 주장을 폈는데,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들의 김영삼 개혁정책 공격이 그 예였다. 그래서 문민정부 내내 '개혁의 적은 언론이다'란 말이 나왔다. 심지어 국내 정치문제 외에도 남북관계 및 외교에도 의제설정을 하며 친재벌적 주장을 했는데, 언론이 재벌이고 재벌이 언론을 소유하는 현실상 당연할지 모르나 언론의 본래 이념인 '불편부당과 시시비비'로 본다면 부적절하다. 1994년 주요 언론에 대한 세무조사가 실시됐지만 시민사회단체의 공개 요구에도 불구하고 공개되지 않았다.
심지어 1990년대 중후반기 보수언론이 했던 '이승만 살리기'나 '박정희 신드롬' 조장 등에서 보듯 역사관 문제까지 제기됐는데, 언론이든 사람이든 역사 해석은 다를 수 있고 주장은 자유지만, 명백히 드러난 사실조차 자의적으로 해석/왜곡하는 것은 언론의 역사해석 범주를 벗어난 문제이다. <월간조선>이 저질렀던 1993년 한완상 저작 왜곡 및 1998년 최장집 사건처럼 비이성적 매카시즘 조장 및 노골적인 반개혁주의 선동 등 언론의 반사회/반 역사적 반동화가 드러나기도 했다.
이러한 보수언론의 반개혁적 태도에 저항하는 진보 진영의 움직임도 여전했는데, <한겨레신문>은 제도언론으로서 정론직필을 고수했고, 대중 정론지 포지션을 점차 확립했다. <월간 말>이나 <시사저널> 외에 1991년 <사회평론 길>도 더 창간했고, 강준만 전북대 교수도 1997년에 무크지 <인물과 사상>을 냈으며 문부식 등 3명도 같은 해 <당대비평>을 창간했다. 그 외에 시민사회단체들도 방송모니터 활동 등 언론감시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갔다.
1997년 외환위기 뒤 재벌언론의 분리가 점차 진행되기 시작했다. 1998년 <문화일보>와 <경향신문>이 현대와 한화로부터 분리해 사원주주제로 태어났고, 1999년 <중앙일보>와 <국제신문>이 삼성과 롯데 품을 각각 벗어났다. 1999년은 언론 역사상 소용돌이가 크게 몰아친 해인데, 그해 10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보광그룹 탈세 혐의로 구속되자, 중앙일보 측은 '언론 탄압'이라 주장했다. 동월 25일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이 <성공적 개혁추진을 위한 외부환경 정리방안>이란 문건을 발표하면서 '정부의 언론장악 음모'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정언유착 구조화가 처음 드러났다.
==== 상업적 측면 ====
이 시기 언론시장에서 눈여겨볼 만한 점은 신문의 독자 확보 경쟁이 치열했다는 점이다. 특히 신문사의 생명은 광고인데, 1950년대 구독수입이 76.1%, 광고수입이 21.5%였던 게 1970년대에는 55.1% / 44.8%로, 1980년대에는 34.2% / 60.2%로 각각 늘면서 광고수입이 구독수입을 앞섰다. 신문사들은 광고 확보에 혈안이 됐고, 이는 증면 및 부수 확대 경쟁으로 이어졌다. 더불어 경품 경쟁도 과열되기도 했다. 이러한 무한경쟁은 1996년 7월 조선일보사 남원당지국장 살해사건으로 이어져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이처럼 신문사 간 무한경쟁이 벌어졌던 원인으로 '재벌의 언론참여'가 가장 컸는데, 기존에 삼성 외에 현대, 한화, 대우, 롯데, 갑을, 대농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언론사업에 뛰어들었고, 기존 거대언론들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로써 문민정부 시기에 '언론재벌 vs 재벌언론' 구도가 더 가속화되었다. 이 치열한 무한경쟁은 신문사들이 점차 막대한 빚을 지게 만들었고, 1997년 외환위기 후 어떤 업종보다 먼저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다.
1990년대 초반 신문사들은 CTS 시스템 구축으로 납활자나 펜, 잉크 등을 완전히 추방시켰고, 지방 분공장을 신설해 전국 동시 발매를 시도하며 지방신문 시장을 점차 공략했다. 심지어 1990년 민영방송 설립 허용을 전후해 방송사업 진출에도 의욕을 보였으나, 당시에도 여전히 정간법상 신방겸영이 금지되어 있기에 대신 인터넷, 전광판 등 유사방송매체(뉴미디어) 사업에 진출했다. 이 분야의 선구자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였다. 신문사들이 유사방송매체에 주력코자 한 건 미래 미디어사업에서 종이신문이 사양화될 거라는 예측에서 나왔다.
=== 드라마 ===
경기 호황이 이어지면서 드라마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 시대. 최초의 해외 올 로케이션([[여명의 눈동자]]),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질투(드라마)|질투]]),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한 최초의 호러 드라마([[M(드라마)|M]]), 역대 최고의 마스터피스 사극([[용의 눈물]]) 등 기념비적인 작품들이 나왔고 중화권을 대상으로 드라마 수출이 시작되었다.
90년대 초반에는 질투, [[사랑을 그대 품안에]] 같은 트렌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 80년대 후반에 시작된 트렌디 드라마 장르가 한국에 이식된 것으로 비슷했던 한일 양국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했다. 드라마의 소재도 스포츠([[마지막 승부]], [[아이싱(드라마)|아이싱]]), 군대([[파일럿(드라마)|파일럿]], [[창공]], [[신고합니다]]), 불륜([[애인(드라마)|애인]]) 등 다양해졌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과거에 다루지 못했던 민감한 사회 문제를 재조명한 드라마도 많았다. [[아들과 딸]]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히 박혀 있던 성차별 문제를 다뤘고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는 국내 최초로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삼았다.
1990년 피플미터의 도입으로 객관적인 시청률 집계가 가능해지면서 이 때부터의 시청률을 공식 기록으로 삼는다. 따라서 공식적인 역대 드라마 시청률 1위는 [[첫사랑(KBS)|첫사랑]](65.8%)이다. 그 외에도 [[사랑이 뭐길래]](64.9%), 모래시계(64.5%), [[젊은이의 양지(드라마)|젊은이의 양지]](62.7%), [[그대 그리고 나]](62.4%), 아들과 딸(61.1%)이 6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즉 공식적으로 시청률 60% 이상을 기록한 드라마 8편 중 6편이 1990년대에 나왔다.[* [[허준(드라마)|허준]]의 경우 방송 시작은 1999년이지만 최고 시청률(63.7%)은 2000년에 기록했다.]
=== 방송 ===
1990년 3당 합당 후 노태우 정권은 이때를 기회삼아 방송 장악에 매진했다. 우선 방송민주화를 위해 진력하던 서영훈 KBS 사장을 해임하고 서기원 전 서울신문 사장을 KBS 사장에 꽂아넣어 관영방송화를 기도했다. 이에 양심적 방송인들은 방송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 4월부터 총파업을 벌였지만, 공권력의 무력진압과 구속, 해직 등을 당해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이어 정부는 7월에 방송법을 날치기 통과시켜 민영방송을 허용하는 한편, 방송정책 의결권을 공보처가 맡고 방송위원회는 심의만 맡는 식으로 정부 주도의 방송장악 체계를 구축했다.
날치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민영 종합방송이 다시 허가되었으며, 10월 새 민방 사업자로 [[태영]]이 선정되어 11월 14일 서울방송([[SBS]])이 출범했다. SBS는 1991년 3월 20일 AM 라디오, 12월 9일 TV을 개국했고 1996년 11월 14일에는 FM 방송을 시작했다. SBS는 수도권 지역 민방으로 개국했기 때문에 한동안 지방에서는 볼 수 없었다. 1995년 5월 14일 [[KNN|부산]], [[TBC|대구]], [[광주방송|광주]], [[대전방송|대전]] 지역민방이 개국하면서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1997년 [[울산방송|울산]], [[청주방송|청주]], [[전주방송|전주]] 지역민방의 개국으로 네트워크를 확대했다. 반면 [[인천방송]]은 최초로 비 SBS계 지역민방으로서 처음 개국했다.
KBS의 교육 채널[* [[KBS 3TV]], [[EBS FM|교육FM]].]이 [[한국교육방송공사|EBS]]로 독립한 것도 이 시기다. 1990년 12월 27일 KBS의 교육방송 편성권이 제작처인 [[한국교육개발원]]으로 이관되면서 독립된 교육방송이 출범했고, 기존 KEDI 교육방송본부는 '교육방송원'으로 승격했다가 1997년 '한국교육방송원법' 제정으로 한국교육방송원으로 독립했다. 단, 송신은 2019년 현재도 KBS가 맡는다.
1995년 3월 1일 케이블TV 방송 출범을 전후해 각 지역별로 점차 케이블SO들이 우후죽순 설립됐는데, 이들은 대기업이나 향토기업들이 출자한 것이다. 채널들 중 뉴스전문채널 [[YTN]]과 훗날 종합편성채널로 전환되는 경제채널 [[MBN]], 음악 전문 채널 [[엠넷]] 등을 비롯한 20개 채널이 개국했다. 같은해 8월 1일에는 한국 최초의 홈쇼핑 채널인 [[CJ오쇼핑|삼구쇼핑]]이 개국했고 12월 1일 [[투니버스]] 등 5개 채널이 추가 개국했다. 다만 이 시기에는 아직 케이블 방송 보급률이 낮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96년 1월 14일 '무궁화 위성 2호' 발사에 성공하자 7월 1일 KBS가 디지털 위성 TV 시험방송을 개시했고 1997년 8월 27일에는 EBS가 위성 방송을 개시했다. 이런 와중에 기존 언론재벌과 재벌언론들이 전광판, 문자방송 등 유사방송매체(뉴미디어) 사업을 개시했으며, 삼성과 LG, 현대, 대우, 진로 등 유력 재벌들도 영상산업에 적극 진출하여 1990년 약 1조 2천억원에서 1995년 3조 1천억원으로 확대되어 2000년에 4조 9천억원대로 오를 지 모른다고 전망할 정도로 '블루오션 마켓'이 됐다. 이들의 영상산업 진출은 CATV는 물론 영화제작, 외국영화 수입, 멀티미디어 등지에 걸쳐 이뤄졌는데, 특히 CATV 시장에 진출하면 SO를 운영하지 않고도 프로그램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프로그램 공급자로 성장하면 위성방송 채널을 종전의 지상파 방송사로 감당할 수 없을 때 프로그램 공급능력을 지닌 영상업체들이 유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대기업들이 점차 CATV에 손을 떼자 동양그룹과 제일제당그룹 등 신흥 미디어재벌들이 대두하기 시작했고, 1999년에는 여야 간 공방 속에서도 '통합방송법'이 통과되어 방송위원회가 방송정책 결정권을 되찾기에 이르렀다.
또 이 시기에 특기할 만한 건 TV 매체가 정치권에서도 위력을 보인 것이었다. 1987년 처음 시도된 TV정치는 1992년 14대 대선과 1997년 15대 대선 때도 본격화됐는데, 14대 대선 때 김영삼 후보 측의 소극적 태도 및 방송사의 무성의로 토론회를 못 열었으나 후보자 및 지지자의 TV유세와 공정선거를 위한 TV 토론회 등이 열려 본격적으로 'TV 정치시대' 개막을 알렸다. 1995년 선거법 개정으로 방송 연설, 경력 방송, 후보자 토론 무제한 허용 등 TV 정치방송 활성화가 이루어지면서 제1회 지방선거 때 첫 막을 올렸다. 이로써 후보들은 유세장보다 방송을 이용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으며, 광역단체장 후보 55명 중 46명이 TV 연설 및 광고를 이용했고 광고는 총 105회, 연설은 60회나 방영됐다. 방송 3사 중 가장 많은 광고/연설을 유치한 MBC는 선거 특수로 15억여 원을 벌었다.
이들 중 관심을 끈 건 국내 최초로 개최된 후보자 토론회 생방송이었는데, 특히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조순-박찬종-정원식 3파전이 더 관심을 쓸었으나, 후보자의 실속보다 말빨 등 겉만 부각되는 '감각 의존 선거'가 될 여지도 있고, 군소 후보들에 대한 푸대접 문제까지도 거론됐다. 15대 대선 들어서는 'TV 정치'의 위력을 여지없이 보여줬는데, 김대중-이회창-이인제 3파전 토론은 국민들의 높은 관심 속에서 공정히 진행됐다. 비록 정책 토론보다 상대 약점 물고 늘어지기에 치중했다는 비판이 있지만, 중요 쟁점문제들이 대다수 거론되어 후보자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높였다.
이러한 TV 정치시대 개막과 더불어 연예인들의 정치진출이 전보다 더 늘어났는데, 신영균, 최희준, 변웅전, 이주일, 정동영, 변웅전, 이윤성 등 대스타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대다수 국회에 진출했다. 낙선자까지 포함한다면 정계진출을 시도한 연예인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 예능 ===
1990년 MBC [[일밤|일요일일요일밤에]]가 정통 코미디에서 토크 버라이어티로 포맷을 변경하면서 기존의 쇼와 코미디와는 다른 버라이어티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 특히 1991년에 시작된 [[몰래카메라(일밤)|몰래카메라]]는 폭발적인 인기와 더불어 오락 프로그램의 범위를 스튜디오 밖으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예능은 스튜디오 녹화와 주로 야외에서 진행되는 코너들로 구성되었다. 메인 MC는 안정적인 진행 실력을 갖춘 非개그맨[* [[임백천]], [[최수종]], [[이수만]], [[이문세]] 등]이 주로 맡았고[* [[이홍렬]], [[서세원]] 등 진행력이 좋은 개그맨들도 메인 MC를 많이 맡았다.], 개그맨들은 주로 메인 MC 옆에서 코너와 웃음을 담당했다. 90년대 초반에는 몰래카메라, 인생극장(이상 일밤), 금촌댁네 사람들(슈퍼 선데이) 등 콩트 코미디적 요소가 강한 코너들이 편성되다가 90년대 후반 들어 영파워 가슴을 열어라(기쁜 우리 토요일), 고향에서 온 편지(좋은 세상 만들기), 캠퍼스 영상가요(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등 일반인 참여 코너들이 등장했다.
1989년 [[자니윤]] 쇼에서 시작된 토크쇼 장르도 90년대 주류 예능 장르였다. 특히 SBS [[이홍렬쇼]]는 '쿠킹토크 참참참', '칵테일 토크' 등 색다른 시도로 평일 심야 예능 사상 최초로 시청률 30%, 2시간 편성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외에도 [[이승연]]이나 [[김혜수]] 등 여배우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도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는 시트콤 장르가 처음 등장한 시기다. 1993년 SBS <오 박사네 사람들>을 필두로[* 1990년 KBS2에서 인기 개그 코너 쓰리랑 부부의 후속작으로 방영된 <쓰리랑 가족>을 최초의 시트콤으로 보기도 한다.] [[LA 아리랑]], [[순풍 산부인과]] 등 가족 시트콤이 SBS를 통해 방송되었다. 또 1996년에는 MBC에서 한국 최초의 청춘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이 방영되었다.
방송 환경의 변화로 80년대까지 주류를 이뤘던 장르들은 변혁의 시기를 맞았다. 90년대 중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같은 정통 가요쇼가 버라이어티로 포맷을 변경하면서 10대 위주의 순위제 가요 프로그램이 주도권을 가져왔고, 1998년에는 순위제 프로그램의 본좌였던 [[가요톱10]]이 폐지되고 몇달 후 [[뮤직뱅크]]가 신설되었다. 순위제 프로그램의 인기는 1세대 아이돌의 전성기가 끝나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다. 다른 한편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음악성을 갖춘 뮤지션들이 출연하는 [[열린음악회]]와 [[심야 음악프로그램]]들이 첫선을 보였다.
코미디의 경우, 1991년 KBS, MBC의 중견 개그맨들이 SBS로 스카우트되면서 이듬해 [[청춘행진곡]](MBC)과 [[유머 1번지]](KBS)가 연이어 폐지되었다. MBC는 이후 [[오늘은 좋은 날]], [[웃으면 복이 와요]]로 코미디 패권을 되찾는데 성공했지만 KBS는 [[감자골]] 사태 등 세대교체에 어려움을 겪으며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개그맨들을 스카우트한 SBS도 90년대 중반들어 버라이어티와 시트콤에 집중하면서 코미디에 대한 관심이 떨어져 갔고 결국 1998년 IMF를 계기로 코미디를 폐지했다. 90년대 후반 KBS가 [[코미디 세상만사]]로 명맥을 잇다가 1999년 9월 [[개그 콘서트]]를 런칭하면서 공개 코미디 시대에 돌입한다.
=== 만화, 애니메이션 ===
[[한국 만화]]와 [[한국 애니메이션|애니메이션]]은 양적 전성기를 맞은지 불과 몇년 만에 급격한 변화와 쇠퇴를 겪었다. 80년대 후반에 정립된 [[만화잡지]]와 TV 애니메이션이 90년대 초 황금기를 맞았고,[* 지금도 깨지지 않는 [[날아라 슈퍼보드]]의 최고 시청률(42.8%)이 이 무렵에 세워진 기록이다.] 잡지 플랫폼도 인기투표 순위나 신인작가 공모 등 일본 소년만화 잡지의 방식들을 받아들였다. 만화가 인맥구도도 종래의 문하생 출신 중심에서 동인 출신으로 점차 바뀌었고, 연령도 10대 후반 ~ 20대로 하향화되어 작품 성향도 동년배 독자들의 관심을 공유하는 쪽으로 전환되었다. 시사만화계에선 --박재동-- 화백의 성공을 계기로 박시백, 박순찬, 김용민, 백무현, 장봉군 등 젊은 진보 시사만화가들이 탄생했으며 중도/보수신문 쪽에선 김상택, 신경무, 양만금, 조대현, 김송번, 배계규 등이 나름 활약했고, 학습만화계에선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가 스테디셀러 지위에 올랐다.
1990년 [[공주대학교]]에 처음으로 [[만화학과]]가 생겨 만화가 학문으로 점차 인정받기 시작했다. 1995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을 시초로 한국에서도 제대로 된 만화행사를 치르기 시작했으며 1998년 경기도 부천시가 지자체로서 최초로 '부천만화정보센터'를 열어 만화/애니메이션 진흥사업도 꽃피기 시작했다.
위와 같이 양적으론 관심이 증폭했는데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기성세대의 부정적 인식과 정부/기업 차원에서 지원한 소위 대작 애니메이션의 잇따른 실패, 일본 출판만화 무차별 정발, 그리고 IMF 사태로 인한 시장 규모 축소로 고난의 시기를 맞았다. 특히 [[1997년 청소년보호법 파동]]으로 성인만화 시장은 사실상 쑥대밭으로 전락했다.
한편, [[일본 애니메이션]]은 제3차 아니메 붐으로 기억되는 [[전성기]]를 맞았다. 1992년부터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시리즈/애니메이션|세일러 문]], [[크레용 신짱/애니메이션|크레용 신짱]], [[슬램덩크(만화)/애니메이션|슬램덩크]],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 시리즈|포켓몬스터]] 같은 세계구급 인기작이 쏟아져 나왔지만 어떤 평론가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높아서가 아니라, '[[캐릭터]] 붐'이었다는 평을 내리기도 했다. 2000년 이후에 몰아닥친 캐릭터 [[모에]] 붐에 빠진 아니메 오타쿠들이 자라나는 시기였다. 각 방송사들이 황금시간대(저녁 7시대)의 애니메이션 편성을 줄이는 대신 심야 애니메이션이 활성화되는 등 저출산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분명 이 시기의 일본 애니메이션은 작품성에서 타 시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95년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1997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는 골수 팬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메시지로 오히려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공각기동대]]와 [[카우보이 비밥]]도 뛰어난 완성도로 찬사를 받았다. 반면 1991년 CATAS 중단으로 사실상 중단 상태였던 애니메이션 제작 디지털화는 1992년 <북두의 권> 게임 데이터 작성을 계기로 진전을 보았고, 마침내 1997년 도에이동화가 업계 최초로 <게게게의 키타로> 64화를 '레타스프로' 소프트웨어로 제작해 디지털화를 완수해냈다. 이로써 셀과 물감, 필름이 주류이던 애니메이션 공정은 점차 컴퓨터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일본 만화]]에서도 다양한 인기작들이 나왔는데 위에서 언급된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시리즈/애니메이션|세일러 문]], [[크레용 신짱/애니메이션|크레용 신짱]], [[슬램덩크(만화)/애니메이션|슬램덩크]] 등은 원작이 만화인 작품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만화 잡지인 [[소년 점프]]는 90년대 초반 [[드래곤볼]], [[슬램덩크(만화)|슬램덩크]], [[유유백서]][* 이 중 드래곤볼은 [[1980년대]]에 연재가 시작되었다.] 등으로 황금기를 누리다가 이 세 작품이 모두 연재를 종료한 1995~1997년 시점에는 [[점프 암흑기|암흑기를 겪게 되고,]] 경쟁지 <주간 소년 선데이>가 [[명탐정 코난]]과 [[소년탐정 김전일]]로 상승세를 거듭했다. 이후 1998년에 [[원피스(만화)|원피스]]와 1999년에 [[나루토]]가 흥행에 성공하며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는 큰 굴곡을 겪었다. [[나카요시]], [[리본(잡지)|리본]] 등 소녀 만화 잡지들도 전성기를 맞았으며, 그 중 세일러문을 배출한 나카요시는 1993년 월 발행 200만부를 돌파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 게임제작사 에닉스가 <소년 간간>을, 미디어웍스가 <월간 코믹 전격대왕>을 각각 창간해 틈새시장을 형성했다.
미국 출판만화계는 침체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미 DC 코믹스는 1989년 영화화 이후부터 시작된 배트맨 붐과 1991년 만화책 <슈퍼맨의 죽음> 700만부 달성 등으로 잠깐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반면 1980년대까지 수많은 영웅들을 배출하며 번성했던 마블 코믹스는 코믹북 시장 사양화와 사주 로버트 페렐만의 문어발식 M&A로 1996년에 파산 선고를 받아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1997년 칼 아이칸을 거쳐 토이 비즈에 인수된 마블은 타개책으로 주력업종인 만화책 출판에서 영상 중심의 '종합 콘텐츠 플랫폼'으로 바꾸고자 했다.
영미권 극장 애니계는 단연 '디즈니 천하'라고 할 수 있는데, 1989년 <[[인어공주(애니메이션)|인어공주]]>로 침체기를 벗어난 월트 디즈니 엔터테인먼트가 1991년 <[[미녀와 야수(애니메이션)|미녀와 야수]]>, 1992년 <[[알라딘(애니메이션)|알라딘]]>, 1994년 <[[라이온 킹]]>, 1995년 <[[포카혼타스(애니메이션)|포카혼타스]]>, 1996년 <[[노틀담의 꼽추(애니메이션)|노틀담의 꼽추]]>, 1997년 <[[헤라클레스(애니메이션)|헤라클레스]]>, 1998년 <[[뮬란]]> 등을 잇따라 발표해 극장 애니 시장을 사실상 압살했고, 특히 <미녀와 야수>는 종전 디즈니 프린세스들이 지녔던 고전적 여성상을 탈피했다. <알라딘>은 사상 최초로 유색인종 디즈니 프린세스를 배출했다.
3D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도 디즈니와 함께 세계 최초로 풀3D 장편애니 <토이 스토리>를 제작해 대혁명을 이뤄냈다. 1998년에 신생 영화사 드림웍스도 최초로 장편애니 <개미>를 제작해 디즈니의 아성에 도전했다.
TV애니계에선 1991년 니켈로디언 측이 <더그의 일기>, <야! 러그래츠>, <렌과 스팀피> 3종을 처음으로 내놓아 사이코틱한 애니 '닉툰'을 확립시켰고, 이에 타임 워너가 니켈로디언과 디즈니 채널에 맞서기 위해 '카툰네트워크'를 개국해 1990년대 중후반에 <덱스터의 실험실>, <핑키와 브레인>, <파워퍼프걸> 등을 히트시켰다. FOX와 워너브라더스도 1990년과 1995년에 각각 'FOX Kids'와 'WB Kids'를 각각 개국하고 1990년대 중후반부터 일본 애니메이션 편성을 점차 확대했다. 성인취향 애니 쪽은 <심슨가족> 붐 속에서도 음악채널 MTV는 1993년 <비비스와 벗헤드>, 오락채널 코미디 센트럴은 1997년 <사우스파크>를 각각 방송해 나름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 미술 ===
노태우 정부 때까지 천대받던 민중미술도 1994년 들어 국립현대미술관이 '민중미술 15년전'을 열면서 예술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는 1994년 미술계를 통틀어 가장 큰 사건이었다. 다만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민중미술은 80년대와 같은 영향력을 지니지 못했다. 같은 해 동학농민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전(예술의전당)', '새야 새야 파랑새야(광주시립미술관)' 등의 대형 기획전도 열려 역사의 해석과 역사의 조형적 해석을 다시 점검하는 계기가 됐다.
1995년 9월에는 '미술의 해'에 걸맞게 제1회 광주비엔날레를 성대히 치렀다. 이 축제는 일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두달 동안 관람인원 163만명이란 경이로운 성과를 기록했으며, 이로써 미술 올림픽 성격을 확립하여 180여억원을 투자한 대가도 충분히 찾았다.
=== 연극/춤 ===
춤 분야에선 1994년 10월 발레리나 강수진이 존 크랭코 안무작 <지젤>을 갖고 내한공연을 해 각광받았다. 특히 강수진이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였기에 당대 얼마 안되는 해외파로서 큰 화제를 모았다. 연극에선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이 히트를 쳤고, 훗날 불후의 명작 뮤지컬이 될 <지하철 1호선>도 탄생했다. 반면 1993년에 여배우의 전라 출연으로 파문을 일으킨 연극 <마지막 시도>가 상연됐고, <미란다>는 1994년에 외설시비로 검찰에 고발돼 법적 공방까지 벌어졌다.
1996년 연극계의 가장 큰 수확은 뮤지컬 <명성황후(이문열 원작, 윤호진 연출)>였다. 1995년 말부터 1996년 초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상연한 이 뮤지컬은 박동우의 뛰어난 무대미술, 김현숙이 공들인 의상, 김희갑의 음악실력 등이 시너지를 크게 일으켜 창작 뮤지컬 사상 초유의 전회 매진 기록을 달성했다. 이 작품은 1997년 미국 상륙에도 성공했다.
=== 스포츠 ===
이 시대 한국에서 가장 성과가 있는 건 뭐니뭐니해도 '스포츠'다. 한국은 1980년대부터 이미 스포츠 강국이었고, 1990년대에도 그 지위를 유지하여 마라톤과 프로야구, 월드컵에서 각각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줬다.
당대 마라톤에선 단연 돋보이는 아이콘이 '황영조'와 '이봉주'인데, 그 둘은 동갑내기에 명성 있는 '코오롱 사단'의 일원이었다. 황영조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리 마라톤 역사상 최초로 태극기를 달고 금메달을 따 손기정 때 '일장기의 한'을 풂과 동시에 '몬주익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이후 부상에 시달리다가 1994 보스턴 마라톤에서 2시간 8분 9초로 한국 최고기록을 달성해 재기했고,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남자부에서도 일본의 하야타 토시유키를 제쳐 2시간 11분 13초로 4년 전 베이징 아시안게임 때 김원탁에 이어 2연패를 달성했다. 그러나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국내 선발전에서 부진하여 예비선수로 선출됐고,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뒤를 이은 이봉주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스페인 선수 마르틴 피스에게 2위로 은메달을 땄음에도 '포스트 황영조'로 등극했으며, 12월 1일 일본 후쿠오카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불굴의 투지로 스페인의 알베르토 후스타도를 4초 차로 제쳐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서 스타가 됐다. 1998년 4월 19일 네덜란드 로테르담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7분 44초로 8분대를 깨서 황영조의 기록까지 뛰어넘었지만, 성적은 스페인의 론세로에 이은 2위였다. 그가 이렇게 한국 최고의 마라토너로 등극한 건 가난한 생활환경과 짝발이란 핸디캡, 정봉수 감독의 독사같은 지옥훈련을 견뎌내는 성실함이 한몫을 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1986 멕시코 월드컵에 이어 1990 이탈리아, 1994 미국, 1998 프랑스까지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4회 연속 진출이란 경이로운 기록을 보여줬는데, 특히 1993년에 열린 미국 월드컵 예선에선 일본에게 밀리다가 이라크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월드컵 티켓을 따내기도 했고,(도하의 기적) 본선에선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스페인과 볼리비아를 상대로 끈질기게 버텨 2무를 기록했고, 댈러스에서 열린 독일전에선 무더위 속에서도 상대 독일을 궁지에 몰아넣는 듯했으나 아쉽게 2-3으로 져서 16강을 못 갔다.
1997년 IMF 한파 속에 열린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전에서도 아시아 국가들 중 1등으로 또 월드컵 티켓을 따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줬고, 당시 팀을 지휘한 차범근 감독은 전 국민의 영웅이 되어 방송과 광고 섭외가 늘었고, 국대 선수들과 응원단 '붉은악마' 멤버들이 입은 유니폼도 많이 팔렸다. 그러나 본선에선 멕시코전 때 하석주의 백태클로 1-3으로 졌고, 네덜란드에도 0-5로 지는 부진한 모습을 보여 국민의 분노를 사 차범근 감독이 쫓겨났고, 마지막 벨기에전에서 이임생의 부상투혼으로 최선을 다했으나 1-1로 패해 16강을 또 못 갔다.
그 외에 국민적 관심을 모은 건 박찬호와 선동열, 이종범 등 프로야구 선수들의 해외진출이었다. 이중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은 1996 시즌 때 주니치 드래곤즈에 이적료 3억엔 및 연봉 1억 5천만엔으로 이적해 순수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했다. 초반에 고전하다 1997년 시즌 때 1승 38세이브로 포텐이 터져 '나고야의 태양'으로 등극했다. 이적 당시 엄청난 연봉과 이적료 외에도 시즌당 25세이브포인트에 2천만엔, 40세이브포인트에 5천만엔 등 별도 상여금을 지불하는 조건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1997년 당시 전 야구팬들의 관심은 한국프로야구보다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활약에 더 쏠렸다. 1994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는 초기에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는 등 무명시절을 보내다 1996 시즌엔 다저스 주전 자리에 처음으로 올랐고, 1997 시즌에 선발투수로서 14승을 달성해 '코리안 특급'이란 별칭이 붙어 수많은 방송과 광고에 출연하는 등 '국민의 우상'으로 등극했다. 해태 선수 이종범도 1998년에 선배 선동열을 따라 주니치로 갔다. 농구에선 NBA 열풍, MBC 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인기폭증 등으로 인해 저변이 더욱 높아졌으며, 이것은 1997년 프로농구 출범에 자양분이 됐다.
실업에선 '허동택 트리오'를 앞세운 기아 농구단이 현대-삼성 양강 틀을 깨며 1988/89 시즌 첫 우승 이래 1992/93 시즌까지 5연속 농구대잔치 우승을 이뤘고, 1994/95 및 1995/96 시즌 두 차례 연속 우승을 이루며 농구대잔치 최다 우승 기록을 달성했다. 뒤이어 프로농구 출범 후 1997 시즌 및 1997/98 시즌 두 차례 우승을 이뤄 90년대 농구판을 장식했다.
대학농구 역시 형님뻘인 실업농구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80년대 후반부터 날을 매섭게 세운 연세대 농구부가 문경은-우지원-김훈-석주일-이상민-서장훈 라인업으로 1993/94 농구대잔치에서 상무를 꺾어 대학팀으로서 최초로 우승을 달성했고, 라이벌 고려대도 전희철-김병철-신기성-양희승-현주엽 라인업으로 1994/95 시즌 대학농구판에서 연세대를 앞지르고 1995/96 시즌에는 제1~2차 대학농구연맹전, MBC배, SBS배 고교대학농구최강전까지 석권해 대학농구판 그랜드슬램을 따냈다. 이들의 인기 덕에 여학생들은 콘서트장 외에도 연세대와 고려대 농구선수들을 보려고 농구장으로 찾아갔다.
남자배구에선 1991년 한양대 배구부의 대통령배 우승을 빼곤 1995/96 시즌까지 고려증권-현대자동차써비스 일색이었는데, 현대차는 마낙길, 하종화, 강성형, 박종찬, 임도헌 등 스타들이 포진한 반면, 고려증권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지원 속에서도 이성희, 박삼용, 이수동 등을 중심으로 조직력 배구를 구사했다.
그러다가 1996/97 시즌부터 김세진과 신진식이 이끄는 신생팀 삼성화재가 슈퍼리그를 우승하며 양강체제를 뚫어 왕조의 시작을 알렸다. 여자부에선 이도희, 장윤희, 정선희, 홍지연, 박수정 등이 이끄는 호남정유 여자배구단이 1991~1999년까지 9연속 대통령배-슈퍼리그 우승을 이뤄 현대와 미도파 양강체제를 종식시켰으며, 스쿼드 중 대다수가 국대에 차출돼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일본을 꺾어 금메달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 외 종목에서도 대한 건아들의 활약은 더 두드러졌다. 탁구선수 현정화가 1993년 5월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제4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탁구사상 최초로 여자개인 단식 금메달을 땄고,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선 금63, 은53, 동63개로 2위를,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선 금7, 은15, 동 5개로 10위를 각각 기록했다.
또 특기할 만한 점은 남북한 체육교류가 전보다 더욱 활성화됐다는 점인데, 1990년엔 서울과 평양에서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리고 1991년 4월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분단 이래 처음으로 남북 양측이 단일 선수단을 꾸려 출전했으며 6월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도 단일팀으로 출전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에 제1차 연평해전 등 어수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8월에는 남북노동자 통일축구대회, 9월과 12월엔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통일농구대회가 열렸다.
정책적 측면에선 '탈 엘리트 체육'의 모습이 보인 때이기도 했다. 노태우 때까지만 해도 엘리트 중심이었다가 1993년 문민정부 출범 후 엘리트 체육 일색에 대해 반성하자는 움직임이 보여 생활체육의 필요성이 증대됐고, 김영삼 대통령은 문화부와 체육청소년부를 합쳐 '문화체육부'로 출범시키고 '국민체육진흥 5개년 계획'을 발표하여 생활체육 육성에 힘썼고,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전 방문을 빼곤 태릉선수촌 방문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 스포츠 외교에도 힘을 기울여 1996년에는 2002 월드컵의 한국-일본 공동유치를 성사시켰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출범 후 문화체육부가 '문화관광부'로 바뀌면서 '체육'이 빠졌고, 체육 관련 부서도 2개에서 1개로 축소됐다. 거기에 전년도부터 제7차 교육과정이 시행된 뒤 체육수업 시수도 줄어 청소년의 체력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 김대중 정부 정책자문위원을 했던 박세호 전 대한배구연맹 사무총장의 [[https://news.joins.com/article/1680295|증언에 따르면]] 박찬호나 박세리가 성과를 거둬도 김대중 대통령은 축전을 안 보냈고, 국무총리를 시켜 훈장을 주는 게 고작이었을 정도로 체육에 무관심했다고 한다.
=== 두뇌스포츠 ===
1990년대 두뇌스포츠 중 단연 돋보이는 건 '바둑'이다. 이 시기 동안 한국은 동양증권배와 응씨배, 진로배, 후지쯔배, 삼성화재배 등지의 국제기전에서 중국, 일본을 제치고 '바둑 최강국'의 실력을 과시했다. 물론 중국도 만만치 않았지만 여전히 세계 최강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국내 무대에선 이창호 9단이 1인자 자리를 굳힌 가운데 조훈현 9단, 유창혁 9단, 서봉수 9단 등이 그 뒤를 좇았다.
1993년 한 해 동안 한국은 잉씨배 등 4대 기전을 모두 석권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는데, 국내 무대에선 이창호 당시 6단이 12개 타이틀을 석권한 반면에 조훈현 9단, 서봉수 9단, 유창혁 6단이 더 부진했다. 1994년에도 이창호 7단은 13개 타이틀을 차지해 1인 독주를 또 이어간 반면, 조훈현 9단이 5관왕, 유창혁 6단이 2관왕에 올랐으며 서봉수 9단도 대망의 1,000승을 달성했지만 무관에 그쳤다. 같은 해엔 진로배(2월 23일)와 동양증권배(7월 22일, 조훈현 9단), 후지쯔배(8월 6일, 조훈현 9단)를 각각 석권해 여전히 강세를 보였다.
1995년에도 이창호의 독주는 지속되어 타이틀전에선 16연속 우승했고, TV바둑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했다. 한국은 진로배에서 3연패를 달성하여 세계대회 8연속 우승 신기록을 세웠으며 서봉수 9단도 신사배 국제바둑대회에서 우승해 2년만에 슬럼프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국제대회에선 중국에게 연패했으며, 이는 오히려 마샤오춘 9단이 아시아의 스타가 되는 계기를 제공케 했다.
1996년에는 중국에게만 밀리던 한국 바둑이 다시 국제대회 7개 중 6개를 우승하여 '준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등 바둑 최강국으로서의 모습은 건재하다고 과시했다. 특히 제4회 진로배에선 4연패를 기록하고 이창호 9단이 제7회 동양증권배까지 차지하며 국제기전 5관왕을 차지했다. 유창혁 9단도 응씨배에서 우승하며 제1회 삼성화재배에서 준우승했다. 같은 시기 교육부가 새 대학입학전형제를 발표하며 바둑대학 설립 붐이 일어 경기대학교와 경희대학교가 1997학년도부터 바둑 특기생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명지대학교 역시 바둑대학 설립에 앞서 체육학과에 바둑지도학 전공을 열었다.
1997년에도 한국 바둑은 여전히 강세였으며, 이창호 9단의 1인 독주는 여전했다. 이와 함께 신예 기사들과 맹활약을 펼친 가운데 조훈현과 서봉수 9단이 나름 선전했다. 특히 이창호에 대한 도전은 조훈현 9단을 필두로 서봉수 9단, 최명훈 6단, 이성재 4단 등 신-구 세력이 타이틀을 향해 돌진했다. 같은 해 이창호는 국내에서 타이틀 3~4개를 잃었지만 국제대회에선 제1회 LG배와 제2회 삼성화재배를 각각 차지했다. 서봉수도 제5회 진로배에서 필마 단기로 일본과 중국 선수들을 무찌르며 국제대회 사상 전무후무한 9연승 신화를 기록했다.
조훈현 9단도 제15기 KBS 바둑왕전에서 이창호로부터 타이틀을 뺏었고, 패왕전과 배달왕전까지 석권하며 동양증권배까지 우승해 6관왕에 올랐다. 또 정수현 9단도 명지대에 개설된 바둑학과 교수로 임용돼 세계 최초의 바둑교수가 나왔다. 반면 재일교포로서 일본 무대에서 활동하는 조치훈 9단의 활약도 주목받았는데, 그는 1996년 기성, 명인, 본인방 등 상위 3개전을 차지하여 대삼관을 달성했고, 1997년에도 이를 차례로 방어하여 대삼관 2연패를 달성했다.
1998년에는 IMF 여파로 진로배와 동양증권배가 사라지는 등 일부 악재가 있었지만, 이창호 9단은 마지막 동양증권배와 후지쯔 등 세계대회 2관왕, 국내대회 7관왕으로 여전히 독주했다. 이에 조훈현 9단은 국수전 및 패왕전을, 유창혁 9단도 배달왕을 각각 차지해 체면치레를 했으나 최명훈 6단은 테크론배 및 박카스배 결승에서 이창호에게 막혔고, 이성재 5단도 세계대회 8강 진출과 신인왕전 우승을 일궜으나 조훈현 9단에겐 패왕전 도진기에서 2승 3패로 졌다. 그 외에 안영길 2단이 최다 기록인 19연승을, 목진석 4단이 54승으로 최다승을 각각 기록해 나름 선전했다. 여류 프로기사 중 중국계 한국인 주부기사 황염 2단이 여류 세계대회와 여류국수전을 석권해 주목을 받았고, 대만인 기사 장정핑이 외국인으로서 최초로 입단대회를 거쳐 단증을 땄다. 같은 시기 조치훈 9단도 일본 무대에서 대삼관 3연패를 달성한 데 이어 생애 1천승에 본인방 10연패까지 달성해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1999년에도 이창호 9단의 독주는 여전하여 국내대회 6개를 차지하며 세계무대에선 삼성화재배와 LG배를 석권했고, 한국기원으로부터 바둑문화상 최우수기사상을 통산 5년 연속으로 받아 화제를 모았다. 유창혁 9단은 국내무대에서 배달왕 2연패와 왕위전을 각각 차지하며 후지쯔배도 우승했고, 조훈현 9단도 제18기 KBS 바둑왕전 및 제1회 춘란배를 우승해 건재를 과시했다.
=== 기타 ===
그 유명한 공전절후의 수집품인 [[띠부띠부씰]]이 나왔던 시기였다.
[[2010년대]] 들어 [[건축학개론]], [[응답하라 시리즈]] 등 1990년대를 추억팔이하는 영상물이 많이 제작되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맞은 1970년대, 1980년대 초중반 출생들이 주요한 소비세력으로 진입한다는 의미. 또한 오버뮤직씬에서는 [[UV]], 인디뮤직씬에서는 1990년대 K-POP을 컨셉으로 한 [[기린(가수)]][* 후자의 경우, 정확히는 1990년대 초중반의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음악그룹)|듀스]] 같은 뉴 잭스윙, 힙합, [[브레이크]]비트성 댄스 뮤직이다.]이라는 아티스트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서울의 이태원과 홍대 등을 시작으로 밤과 음악사이라는 1990년대 가요를 튜닝해주는 주점형 클럽 체인점도 이런 맥락에서 히트치고 있다. 설립 자체는 2005년이지만 근년의 1990년대 복고풍 붐에 이어서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카더라.
묘하게 [[세기말]]적 분위기가 감돌기도 하였는데 1990년대 초에는 [[다미선교회]]가 시한부 종말론([[휴거]]) 소동을 일으켰다. 1990년대 말로 갈수록 [[노스트라다무스]] 떡밥과 [[Y2K 문제]] 등이 이런 분위기에 일조했다. 한국에서도 IMF 시대라는 경제적 원인이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이 시기 젊은이들의 패션을 다룬 뉴스 영상이 갑자기 [[2016년]]에 재발굴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 문서 참고.
이때부터 [[드래곤]]과 [[공룡]]이 한국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드래곤 하트]], [[드래곤 라자]], [[쥬라기 공원]] 등의 영화 및 소설과 [[쥐라기 월드컵]], [[포켓몬스터]] 같은 아동 만화에서 드래곤이나 공룡급의 몬스터가 등장하여 대한민국 전국으로 알려져 퍼져나갔다. 이후 수 많은 [[용덕후]]와 [[공룡덕후]]들이 늘어났다.
==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 ==
* [[건축학개론(영화)|건축학개론]]
* [[그놈 목소리(영화)|그놈 목소리]]
* [[나의 소녀시대]]
* [[담보(영화)|담보]]
* [[돼지의 왕]][* 주인공인 황경민, 정종석이 15년 전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김철이 존재했을 당시의 중학교 시절을 회상한 시기로, 김철이 "부모? 야, 내가 '''국민학교 때''' 아빠라는 인간은 사업 망하자마자 도망쳐버렸어. 우리 버리고..."라고 말하는데 그 대사를 봤을 때 '[[국민학교]]'라는 단어는 [[1995년]]까지 사용했다. 그리고 일부 장면에서는 [[워크맨]]도 언급했다.]
* [[도박묵시록 카이지]]
* [[몬스터(만화)|몬스터]]
* [[무한도전]] - 개그학개론([[이나영]]) 특집, [[무한도전 특별기획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시리즈
*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 [[별종]]
* [[사생결단]]
* [[사인펠드]]
*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 [[시월애]]
* [[아마가미]]
* [[아이, 토냐]]
*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 [[에덴의 동쪽(드라마)|에덴의 동쪽]](드라마) 후반기
* [[엔젤아이즈]]
* [[월플라워]]
* [[유열의 음악앨범]]
* [[여피사이코]]
*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 [[이 세상 끝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소녀 ~YU-NO~]]
* [[ISLAND(게임)|ISLAND]]
* [[GTA 산 안드레아스]], [[GTA 리버티 시티 스토리즈]]
* [[1999, 면회]]
* [[캡틴 마블(영화)|캡틴 마블]]
* [[코리아(영화)|코리아]]
* [[타짜(영화)|타짜]]
* [[핫라인 마이애미 2]]
* [[7번방의 선물]]
* [[폭력써클]]
* [[프렌즈]]
* [[프리즌]]
* [[프리퀀시]] [* 영화 자체는 2000년에 나왔지만 극중 배경은 1999년과 1969년을 오간다. 리메이크판에서는 과거 시점이 1996년으로 변경.]
* [[하이스코어 걸]]
* [[허스토리]]
* [[히트맨(2016)|히트맨]]
* [[해리포터 시리즈]]
* [[호텔 르완다]]
* [[회색도시2]]
* [[Fate/Zero]]([[제4차 성배전쟁]])
== 이 시대에 시작된 것들 ==
* [[개그콘서트]]
* [[금융실명제]]
* [[내비게이션]]: 현대적인 GPS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1990년 마쓰다 코스모에 장착된 게 시초이며, 한국에선 1997년부터 현대 다이너스티 등 고급차 위주로 처음 도입됐다.
* [[노래방]][* 노래반주기 자체는 [[1986년]]에 [[ASSA노래방]]을 통해 최초로 나왔지만, 노래방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연도는 [[1991년]]이다.]
* [[넥슨]]
* [[대전액션게임]][* 물론 [[오락실]]은 [[2000년대]] 시망했지만.]
* '''[[대학수학능력시험]]'''
* 대한민국 게임회사들([[넥슨]], [[엔씨소프트]] 등)
* [[한국 아이돌]]
* [[한국 판타지 소설]]
* [[도시형버스]]의 냉방화[* 1995년 4월부터 출고되는 입석형 버스에는 [[에어컨|냉·난방장치]]가 설치돼서 나온다.]와 [[서울특별시 시내버스/2004년 개편 전 목록#s-12.1.11|몬드리안 도색]]
* [[동인 음악]], [[동인 게임]]
* [[드림콘서트]]
*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
* 문명 공존론: 1998년 독일 국제정치학자 하랄트 뮐러가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에 반박하고자, 저서 <문명의 공존>을 통해 창안했다.
* 문명 충돌론: 1996년 미국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저서 <문명의 충돌>을 통해 창안했다.
* '''[[뮤직뱅크]]''': 전신프로그램인 가요톱텐이 IMF 여파로 강제종영되고 시청자들의 수많은 항의전화에 대책으로 내놓은[* 정확히 말하면 대책으로 내놓은 2번째 프로그램이다. 1번째는 브라보 신세대...] 프로그램이다.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시청의 보편화
* [[반세계화]]
* [[반일]]
* [[배틀넷]]
* [[블랙 데이]]
* 비운동권, 반운동권 총학생회: 1989년 이후 알음알음 생기다가 1997년 한총련 5기 출범식 사태 후 급속히 늘었다.
* [[빼빼로데이]]
* [[사회복무요원]]: 창설 당시에는 '공익근무요원'이었다.
* 서울지방경찰청 제5기동단: 통칭 특수기동대.
* [[양판소]]
* [[온라인 게임]]
* '''[[월드 와이드 웹]]'''
* '''[[우등석|우등고속버스]]''': 1992년부터 운행 개시.
* '''[[Microsoft Windows|윈도우]]''': 정확히는 한국어판 윈도우를 말하며, 최초의 윈도우인 윈도우 1.0은 1985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출시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윈도우가 처음 선을 보인 것은 1990년 5월 2.1버전이 한국어화되면서부터다.
* [[음성채팅]]
* '''[[인터넷]]'''
* [[인터넷 소설]]: 당시에는 통신 소설이라고 불렀다.
* [[장례식장]]: 최초로 현대식 장례식장이 등장한 건 1983년부터지만, 1990년대 중후반부터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직행좌석버스]](대표적인 예로 [[분당신도시|분당]]에서 [[서울/강남|강남]]을 거쳐 [[서울역]]까지 가는 [[경기광주 버스 1005-1|1005-1]]번. 1005-1번은 2018년 10월 28일에 폐선되었다.)
* [[짬짜면]]
* 청각장애인 TV자막방송: 1998년에 시험방송 후 1999년 2월 12일부터 개시했다.
* '''[[초등학교]]''': 1996년 [[국민학교]]의 명칭이 초등학교로 변경되었다. 다만, 영어 과목은 1997년에 3~6학년에 한해 도입되었다.
* [[초월이식]]
* '''[[편의점]]'''
* 폴리카보네이트 진압방패: 1997년부터 경찰청에 도입됨.
* [[할인마트]]
* [[화이트데이]]
* '''[[PC방]]''': [[2000년대]]의 상징이지만 1990년대에 시작되었다.
* [[케이블방송]]([[MBN]], [[YTN]], [[엠넷]], [[투니버스]], [[OCN]], [[캐치온]] 등)
* [[SBS]]
* [[EBS]]
* [[출구조사]]: 사실 영미권이나 프랑스 등지에선 이미 1970년대에 대중화가 되었지만, 선거법 문제 때문에 상당히 늦게 도입되었다.
* 청소년보호법
* 청소년 유해매체 지정제도
* [[준법서약제도]]
* [[HTS]]
* 인터넷 검색엔진
* [[인터넷 검열]]
* 인터넷 쇼핑몰
*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 [[디아블로 시리즈]]
* [[워크래프트 시리즈]]
* [[ATi]], [[NVIDIA]]로 대표되는 3D 가속 지원 그래픽 카드
* [[DVD]]: 1996년 11월 일본 도시바에서 DVD 플레이어가 처음으로 발매되었다.
* [[K-131]]
* [[가변 전압 가변 주파수 제어|VVVF]]제어 전동차 : 1993년에 최초로 도입.
* [[1기 신도시]]
* [[1인 승무]]: 서울도시철도공사 노선이 개통하면서 1인 승무가 최초로 시작되었다.
* 확장 자동차 번호판
* [[SUV]]
==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 ==
※ '''이전 시대에 나와 지속적으로 쓰인 것'''들을 적을 것.
* [[경양식]]
* [[국민교육헌장]]: 1994년 교과서 속표지에서 삭제됨.
* 그룹 기획조정실/비서실: 1998년 이후 상당수 재벌그룹들이 '구조조정본부'를 조직하면서 자취를 감춘 바 있었다.
* 납활자 인쇄: 신문업계에선 1994년 동아일보를 끝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 [[대한뉴스]]
* 도트 프린터: 1993년경부터 멀티미디어 바람을 타고 컬러 프린터가 널리 보급되면서 점차 쇠퇴했다.
* 민무늬 전투복/기동복: 국군에선 1992년, 경찰에선 1993년, 소방/교정기관에선 1996년에 각각 사라졌다.
* [[백골단]]: 1997년 진압복 개선 이후 점차 사라졌다.
* [[소련]] 및 [[바르샤바 조약기구]]: 1991년에 해체되었다. '''그 와 함께 [[냉전]]도 종결되었다.'''
* 신정 연휴: 1989년 음력설 연휴 시행 후 1990년 이틀 연휴가 됐으나, 1999년부터 1월 1일 당일만 공휴일로 바뀌면서 사라짐.
* 비디오물 사전검열: 1998년 위헌 판정 후 이듬해에 음비게법 제정으로 사라짐.
* 영화 사전검열: 1996년 영화진흥법 시행 후 위헌 판정되어 사라짐.
* 음반 사전검열: 1996년 개정 음비법 시행 후 위헌 판정되어 사라짐.
* [[만화 검열제]]: 1997년 청소년보호법 시행 후 '청소년 유해매체 지정제'가 도입되면서 사라짐.
* [[오디오]]
* [[운동권]]: [[1991년]] 발생한 [[1991년 연쇄 분신 파동|연쇄 분신 파동]]과[* 일명 [[분신정국]]] [[1996년]] [[연세대 사태]]를 거쳐 사실상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 이념서적
* [[최루탄]]: [[1999년]]부터 무최루탄 원칙이 발표되었고, 다음 해인 [[2000년]]부터 한국 내에서는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사용하고 있다.
* [[타자기]]: 1990년대 PC의 대중화로 관공서, 가정, 사무실 일선에서 점차 사라졌다.
* [[학력고사]]: 1994학년도부터[* 1993년 8월과 11월 시행.]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시행으로 폐지되었다.
* [[협궤|협궤열차]]: [[1995년]] [[12월 31일]] [[수인선]] 협궤열차를 끝으로 운행이 중단됐으나, 수인선 자체는 [[2012년]] 통근전철로 부활한다.
* [[LP]]: [[CD]]가 등장하면서 망했다. 하지만 LD, 배타맥스, VHS, 카세트 테이프, VCD 등이 시대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단종된 것과 달리 이쪽은 쇠퇴한 뒤에도 한시적으로 생산 중이다.
* [[VCD]]
* [[사상전향제도]]: 1998년 '준법서약제도' 도입으로 사라짐.
* 산아제한 정책: 1990년대 들어와서도 출산율이 다소 반등하기는 했어도 2명대를 지속적으로 밑돌게 되자 1996년도에 전면적으로 폐지되었다.
* [[항공기관사]]: [[보잉 747-300|B747-300]]까지만 해도 조종실에 이 포지션이 존재하였으나 [[보잉 747-400|-400]]을 시작으로 조종실이 디지털화되고 이 포지션의 역할을 기장,부기장이 대신하게 되고 항공기관사가 탑승하는 기종의 퇴역으로 사라져갔다.
* 도농통합 행정정책에 따라 폐군 및 통합된 시군 단위 지역들
* 경북 금릉군 : [[김천시]]와 통합.
* 강원 명주군 : [[강릉시]]와 통합
* 강원 춘천군 : [[춘천시]]와 통합
* 강원 원주군 : [[원주시]]와 통합
* 경북 영천군 : [[영천시]]와 통합
* 경북 영풍군 : [[영주시]]와 통합
* 경북 경산군 : [[경산시]]와 통합
* 전북 이리시 / 익산군 : [[익산시]]로 통합
* 경북 안동군 : [[안동시]]와 통합
* 전남 승주군 : [[순천시]]와 통합
* 전남 여천시 / 여천군 : [[여수시]]와 통합[* 1995년 1월에 통합된 다른 시와 다르게 1998년 4월에 통합됨.]
* 경남 장승포시 / 거제군 : [[거제시]]로 통합
* 경남 삼천포시 / 사천군 : [[사천시]]로 통합
* 경남 충무시 / 통영군 : [[통영시]]로 통합
* 경남 진양군 : [[진주시]]로 통합
* 충북 중원군 : [[충주시]]로 통합
* 충북 제천군 : [[제천시]]와 통합
* 전북 김제군 : [[김제시]]와 통합
* 전북 남원군 : [[남원시]]와 통합
* 전북 옥구군 : [[군산시]]와 통합
* 경북 상주군 : [[상주시]]와 통합
* 경기 미금시 / 남양주군 : [[남양주시]]로 통합
* 경기 송탄시 / 평택군 : [[평택시]]로 통합
* 경북 영일군 : [[포항시]]와 통합
* 경북 선산군 : [[구미시]]와 통합
* 경북 경주군 : [[경주시]]와 통합
* 충남 온양시 / 아산군 : [[아산시]]로 통합
* 충남 공주군 : [[공주시]]로 통합
* 충남 천안군 : [[천안시]]로 통합
* 충남 서산군 : [[서산시]]로 통합
* 충남 대천시 / 보령군 : [[보령시]]로 통합
* 통폐합된 정부부처들
* 건설부: 1994년 교통부와 통합됨.
* 경제기획원: 1994년 재무부와 통합됨.
* 교통부: 1994년 건설부와 통합됨.
* 내무부: 1998년 총무처와 통합됨.
* 동력자원부: 1993년 상공부와 통합됨.
* 문화부: 1993년 체육청소년부와 통합됨.
* 상공부: 1993년 동력자원부와 통합됨.
* 재무부: 1994년 경제기획원과 통합됨.
* 체육청소년부: 1993년 문화부로 통합됨.
* 총무처: 1998년 내무부와 통합됨.
* 다른 은행과 합병되거나 IMF로 퇴출된 은행들
* 경기은행
* 대동은행
* 동남은행
* 동화은행
* 보람은행
* 한국장기신용은행
* 충청은행
* 평화은행
* 충북은행
* 강원은행
* [[대우그룹]]: 1999년 IMF로 인해서 국내 재벌로서는 부도 및 파산이 확정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우의 계열사들은 자동으로 분리, 분산되어져서 다른 그룹에 인수되거나 자강으로 운영되었다.
* [[삼풍건설산업]]: 1995년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회사가 사라졌다.
* [[조선총독부 청사]] : 일제 잔재 중 하나였으며, 김영삼 정부 지시로 경복궁 2차 복원계획에 따라 1995년에 해체되었다.
* [[뉴코아그룹]], [[신동아그룹]], [[동아그룹]], [[한보그룹]], [[한신공영그룹]], [[고합그룹]], [[극동그룹]], [[기아그룹]], [[거평그룹]], [[대농그룹]], [[동국무역그룹]], [[신동방그룹]], [[우성그룹]], [[한일그룹]], [[해태그룹]] 등 7~80년대를 풍미했던 재벌들 : IMF 등으로 해체되었다.
== 이 시대에 나온 말들 ==
* [[고딩]]
* [[장풍]]
* 쏘다: 밥이나 술 등을 사 주다.
* [[짱]]
* X파일
* [[X세대]]
* [[386세대]], [[486세대]]
* [[방콕#s-2|방콕]]
* [[10.13 특별선언|범죄와의 전쟁]]
== 이 시대의 상징들 ==
=== 인물 ===
공식적으로 제명된 인물은 취소선 처리함.
==== 대한민국 ====
===== 정/관계 =====
* [[노태우]]
* [[김영삼]]
* [[김대중]]
* [[김종필]]
* [[전두환]]
* [[정주영]]
* [[박철언]]
* [[이회창]]
* [[이인제]]
* [[이기택]]
* [[조순(1928)|조순]]
* [[이종찬(1936)|이종찬]]
* [[박찬종]]
* [[김윤환]]
* [[박태준]]
* [[최형우(정치인)|최형우]]
* [[이홍구(정치인)|이홍구]]
* [[이수성(정치인)|이수성]]
* [[이한동]]
* [[박준규(1926)|박준규]]
* [[강삼재]]
* [[김덕룡]]
* [[정원식]]
* [[홍인길]]
* [[권영해]]
* [[강인덕(1932)|강인덕]]
* 오인환
* 김숙희
* 박영식
* 안병영
* [[김현철(1959)|김현철]]
* [[이병태(군인)|이병태]]
* [[이경식]]
* [[강경식(1936)|강경식]]
* [[한승주]]
* [[김재순]]
* 김태정
* 김효은
* 박일룡
* 이무영
===== 군부 =====
* 윤용남
* 이광학
* 김도윤
* 이재문
* 임종린
* 이병무
* 전도봉
===== 재계 =====
* 강말길 LG유통 사장
*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
* 강진우 롯데쇼핑 사장
* [[구본무]] LG그룹 회장
* [[구자경(기업인)|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 구자홍 LG전자 부회장
* 김낙준 금성출판사 회장
* 김광호 삼성전자 부회장
*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
*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
* [[김석원(기업인)|김석원]] 쌍용그룹 회장
* 김석준 쌍용그룹 회장
* 김선홍 기아그룹 회장
* 김성필 성원토건 회장
* 김용대 동방그룹 회장
*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 김주진 아남그룹 회장
*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김웅세 롯데물산 및 호텔롯데 월드사업부 사장
* 김의철 뉴코아그룹 회장
* 김태구 대우자동차 사장
* 나승렬 거평그룹 회장
* [[담철곤]] 동양제과 부회장
* 류찬우 풍산그룹 회장
* 류호담 아이템풀 회장
* 박건배 해태그룹 회장
* 박경복 하이트맥주 회장
* 박문덕 하이트맥주 사장
* 박상희 미주그룹 회장
* 박성철 신원그룹 회장
* 박성훈 재능교육 회장
*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
*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
*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
* 박주탁 수산그룹 회장
*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사장
* 박창호 갑을그룹 회장
* [[배순훈]] 대우전자 회장
* 백영기 동국무역 회장
* 백욱기 동국무역 명예회장
* 서성환 태평양그룹 회장
* [[손경식]] 제일제당그룹 회장
* [[손길승]] SK그룹 회장
*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 [[신명수]] 신동방그룹 회장
* 신영환 신성 회장
* 신유호 신성 명예회장
* 안병균 나산그룹 회장
*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 [[윤세영]] 태영건설 회장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이기덕 산내들그룹 회장
* 이기화 태광그룹 회장
*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 이맹기 대한해운 회장
* 이봉녕 쌍방울그룹 회장
* [[이수빈(기업인)|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 이수영 동양화학공업 회장
* 이순국 신호그룹 회장
* 이순목 우방그룹 회장
* 이영자 새한그룹 회장
* 이용태 삼보컴퓨터 회장
*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 이의철 쌍방울그룹 부회장
*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 이장한 종근당 회장
* 이재관 새한그룹 부회장
* 이준용 대림그룹 회장
* 이헌조 LG인화원 회장
* 이회림 동양화학공업 명예회장
* 장성원 호텔롯데 사장
* 장수홍 청구그룹 회장
*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 장진호 진로그룹 회장
* 장치혁 고합그룹 회장
* 전락원 파라다이스그룹 회장
* 전성원 현대자동차 부회장
* 전윤수 성원그룹 회장
* 정몽구 현대그룹 경영자협의회 의장
*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
*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 정몽헌 현대그룹 경영자협의회 의장
* 정문원 강원산업 회장
* 정보근 한보그룹 회장
* 정상영 KCC그룹 회장
*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
* 정인욱 강원산업 명예회장
*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
*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
*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
*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 최명재 파스퇴르유업 회장
* 최병민 대한펄프 회장
*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
* 최용권 삼환기업 회장
* [[최종현]] SK그룹 회장
* 허동수 LG칼텍스정유 사장
* 허영선 삼립식품 회장
* 허영인 태인샤니그룹 회장
* 허정섭 한일시멘트 회장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 허태학 삼성에버랜드 사장
*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 스포츠 =====
{{{+1 ''' 선수 ''' }}}
----
* 야구
* 박찬호
* 선동열
* 이종범
* 이강철
* 이순철
* 이호성
* 양준혁
* 김상엽
* 박충식
* 김상진 (1970년생)
* 김상진 (1977년생)
* 박철순
* 김형석
* 김상호
* 이만수
* 류중일
* 장종훈
* 한용덕
* 구대성
* 이상훈
* 김동수
* 송구홍
* 한대화
* 서용빈
* 유지현
* 마해영
* 임수혁
* 김경기
* 김동기
* 이숭용
* 박경완
* 최태원
* 타이론 우즈
* 펠릭스 호세
* 축구
* 황보관
* 김주성
* 황선홍
* 홍명보
* 서정원
* 고정운
* 신태용
* 박남열
* 윤정환
* 윤정춘
* 김기동
* 유상철
* 김현석
* 김종건
* 최인영
* 이운재
* 이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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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문배
* 이영상
* 윤상철
* 차상광
* 이영익
* 이영진
* 이영표
* 이민성
* 하석주
* 우성용
* 뚜레
* 알렉산더
* 신의손
* 마니치
* 라데 보그다노비치
* 샤샤
* 윤성효
* 고종수
* 안정환
* 김도훈
* 농구
* 김현준
* 김진
* 강을준
* 서대성
* 유도훈
* 최병식
* 허재
* 김유택
* --강동희--
* 한기범
* 이훈재
* 김영만
* 이민형
* 김상식
* 정인교
* 문경은
* 이상민
* 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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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범
* 표필상
* 정재근
* 서장훈
* 전희철
* 김병철
* 신기성
* 현주엽
* 조니 맥도웰
* 에릭 이버츠
* 정은순
* 유영주
* 전주원
* 조혜진
* 이강희
* 양정옥
* 남자배구
* 이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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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동
* 마낙길
* 하종화
* 윤종일
* 강성형
* 박종찬
* 임도헌
* 이상렬
* 김성채
* 구본왕
* 김철수
* 신영철
* 신진식
* 김세진
* 손석범
* 석진욱
* 최태웅
* 백승헌
* 이영택
* 이경수
* 이효섭
* 이인구
* 차승훈
* 심연섭
* 여자배구
* 지경희
* 김영숙
* 이인숙
* 장윤희
* 이도희
* 홍지연
* 박수정
* 정선혜
* 김귀현
* 김성희
* 우형순
* 김남순
* 구민정
* 최광희
* 강혜미
* 장소연
* 정은선
* 양숙경
* 유연경
* 어연순
* 씨름
* 김경수
* 박광덕
* 백승일
* 신봉민
* 이태현
* 바둑
* 조훈현 9단
* 서봉수 9단
* 이창호 9단
* 유창혁 9단
* 기타
* 황영조
* 이봉주
* 권은주
* 전병관
* 여홍철
* 심권호
* 박세리
{{{+1 ''' 지도자 ''' }}}
----
* 야구
* 김응용
* 이광환
* 김인식
* 김재박
* 김성근
* 정동진
* 김용희
* 축구
* 박종환
* 허정무
* 박성화
* 고재욱
* 김호
* 차범근
* 이차만
* 발레리 니폼니시
* 남자농구
* 최인선
* 최희암
* 박한
* 최부영
* 김용근
* 신선우
* 여자농구
* 최경덕
* 김태환
* 임영보
* 김재웅
* 정주현
* 이병국
* 김동욱
* 정태균
* 진성호
* 배구
* 진준택
* 강만수
* 송만덕
* 김남성
* 최삼환
* 양인택
* 신치용
* 김철용
* 류화석
* 김형실
* 이임
* 씨름
* 이준희
* 박진태
* 황경수
* 김학룡
* 기타
* 정봉수
{{{+1 ''' 구단 ''' }}}
----
* 야구
* [[해태 타이거즈]]
* [[LG 트윈스]]
* [[현대 유니콘스]]
* [[한화 이글스]]
* 축구
* [[천안 일화 천마]]
* [[포항 스틸러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남자 실업/프로농구
*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 [[대전 현대 걸리버스]]
* 상무 농구단
* 남자 대학농구
* 연세대학교 농구부
* 고려대학교 농구부
* 한양대학교 농구부
* 경희대학교 농구부
* 명지대학교 농구부
* 여자 실업/프로농구
* 삼성생명 페라이언
* 현대산업개발 레드폭스
* 국민은행 빅맨
* SK증권 여자농구단
* 서울은행 여자농구단
* 신세계 쿨캣
* 남자 실업배구
* [[고려증권 배구단]]
* 현대자동차 배구단
* [[삼성화재 배구단]]
* 상무 배구단
* 여자 실업배구
* LG정유 여자배구단: 한국 여자배구 사상 전무후무한 슈퍼리그 연속 9연패를 달성함.
* SK케미칼 여자배구단
* 한일합섬 여자배구단
* 대학배구
* 한양대학교 배구부: 1996~1999년까지 한국 남자 대학배구 역사상 최다승인 63연승을 달성함.
* 성균관대학교 배구부
* 경기대학교 배구부
* 씨름
* LG투자증권 황소
* 현대중공업 코끼리
* 청구 청룡
{{{+1 ''' 해설위원 ''' }}}
----
* 하일성
* 허구연
* 조중연
* 신문선
* 이용수
* 강신우
* 유희형
* 한창도
* 방열
* 신동파
* 김승규
* 오관영
* 김영준
* 이만기
* 김재열
* 노영하 9단
===== 방송/연예계 =====
{{{+1 ''' 가수 ''' }}}
----
* '''[[서태지와 아이들]]'''
* '''[[김건모]]'''
* '''[[신승훈]]'''
* '''[[H.O.T.]]'''
* [[신해철]]
* [[김광석]]
* [[박진영]]
* [[룰라]]
* [[터보(그룹)|터보]]
* [[DJ DOC]]
* 더 블루 (김민종, 손지창)
* [[구본승]]
* [[R.ef]]
* [[S.E.S.]]
* [[ZAM]]
* [[젝스키스]]
* [[태사자(아이돌)|태사자]]
* [[NRG(아이돌)|NRG]]
* [[김광석]]
* [[서지원]]
* [[조관우]]
* [[솔리드]]
* [[육각수(가수)|육각수]]
* [[변진섭]]
* [[박완규]]
* [[N.EX.T]]
* [[UP]]
* [[듀스(음악그룹)|듀스]]
* [[쿨(혼성그룹)|쿨]]
* [[자자(혼성그룹)|자자]]
* [[영턱스클럽]]
* [[투투(가수)|투투]]
* [[클론(가수)|클론]]
* [[패닉(가수)|패닉]]
* [[콜라(가수)|콜라]]
* [[지누션]]
* [[업타운]]
* [[현진영]]
* [[최용준(가수)|최용준]]
* [[스티브 유|유승준]]
* [[허니패밀리]]
* [[드렁큰타이거]]
* [[베이비복스]]
* [[핑클]]
* [[박상민]]
* [[이정현(멀티 엔터테이너)|이정현]]
* [[박미경]]
* [[신효범]]
* [[코요태]]
* '''[[엄정화]]'''
* [[김현정]]
* [[양파(가수)|양파]]
* [[스페이스 에이]]
* [[김흥국]]
* [[편승엽]]
* [[현철]]
* [[송대관]]
* [[태진아]]
* [[설운도]]
* [[김국환]]
* [[배일호]]
* [[김혜연]]
{{{+1 ''' 배우 ''' }}}
----
* 남배우
* [[최수종]]
* [[한석규]]
* [[심은하]]
* [[최민수]]
* [[이병헌]]
* [[신현준]]
* [[김민종]]
* [[손지창]]
* [[구본승]]
* [[박상원]]
* [[안성기]]
* [[박중훈]]
* [[유인촌]]
* [[임성민(남배우)|임성민]]
* [[강남길]]
* [[이덕화]]
* [[문성근]]
* [[송승환]]
* [[권해효]]
* [[장동건]]
* [[유동근]]
* [[박근형]]
* [[최불암]]
* [[김무생]]
* [[전운]]
* [[이순재]]
* [[장용]]
* [[김세윤(탤런트)|김세윤]]
* [[김인문]]
* [[김상순]]
* [[이낙훈]]
* [[남성훈]]
* [[오지명]]
* [[독고영재]]
* [[정보석]]
* [[최재성(배우)|최재성]]
* [[정흥채]]
* [[김흥기]]
* [[권용운]]
* [[박광정]]
* [[박영규(배우)|박영규]]
* [[박상민(배우)|박상민]]
* [[이민우(배우)|이민우]]
* [[박진성(배우)|박진성]]
* [[윤다훈]]
* 김응석
* [[임동진]]
* [[안재모]]
* [[노영국]]
* [[김보성]]
* [[이창환]]
* [[변영훈]]
* [[석광렬]]
* [[송승환]]
* [[서인석]]
* [[심양홍]]
* [[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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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혁]]
* [[강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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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철]]
* [[이한위]]
* 태민영
* [[박병호(배우)|박병호]]
* [[배용준]]
* [[류시원]]
* [[이창훈(1966)|이창훈]]
* [[선동혁]]
* [[최종원]]
* [[이종원]]
* [[이일재]]
* [[나한일]]
* [[박철]]
* [[유퉁]]
* 여배우
* [[김희선]]
* [[최진실]]
* [[심혜진]]
* [[황신혜]]
* [[하희라]]
* [[정선경]]
* [[고소영]]
* [[김혜수]]
* [[이본]]
* [[김예분]]
* [[박상아(배우)|박상아]]
* [[채시라]]
* [[장서희]]
* [[이영애]]
* [[김희애]]
* [[오연수]]
* [[최명길]]
* 오수민
* 진희진
* 엄수진
* [[신은경]]
* [[이상아]]
* [[김혜자]]
* [[양희경]]
* [[정재순]]
* [[선우은숙]]
* [[전원주]]
* [[강부자]]
* [[여운계]]
* [[김수미]]
* [[윤여정]]
* [[김자옥]]
* [[방은진]]
* [[진희경]]
* [[한고은]]
* [[최강희(배우)|최강희]]
* 아역
* [[정명현]]
* [[홍경인]]
* [[정준]]
* [[서재경]]
* [[양동근]]
* [[장근석]]
* [[정태우]]
* [[김성민(1991)|김성민]]
* [[이태리(배우)|이민호]]
* [[김수정(1976)|김수정]]
* 최형선
* [[이재은(1980)|이재은]]
* [[김민정(1982)|김민정]]
* [[노희지]]
* [[김성은(1991)|김성은]]
* [[신세경]]
{{{+1 ''' 코미디언 ''' }}}
----
* [[서세원]]
* '''[[주병진]]'''
* '''[[이경규]]'''
* [[임하룡]]
* '''[[이홍렬]]'''
* [[최양락]]
* [[이봉원]]
* [[김미화]]
* [[정재환]]
* 최형만
* '''[[이경실]]'''
* [[오재미]]
* [[이창훈(코미디언)|이창훈]]
* 서현선
* '''[[김국진]]'''
* [[김용만]]
* [[박수홍]]
* '''[[남희석]]'''
* [[양원경]]
* [[이창명]]
* [[최성훈]]
* '''[[이영자]]'''
* '''[[신동엽]]'''
* '''[[이휘재]]'''
* [[강호동]]
* [[김한석]]
* '''[[서경석]]'''
* [[이윤석]]
* [[박명수]]
* [[전철우]]
* [[홍기훈]]
* [[틴틴파이브]]
* [[홍록기]]
* [[표인봉]]
* [[이동우]]
* [[김경식]]
* [[이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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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세대 [[리듬 게임]] - DDR, 비트매니아, 파라파라같은 리듬게임의 태동기.
* '''[[WWF]] 프로레슬링'''
* [[KOF]] - [[스트리트 파이터]]가 1980년대 후반을 상징한다면, 1990년대는 [[KOF]]가 있다. [[철권 시리즈]]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는 [[2000년대]]로 보는 것이 맞는다.
* 멀티미디어 산업
* CD롬 드라이브가 장착된 컴퓨터
* [[3차원|3D]] 그래픽 산업의 확대
* [[플레이스테이션|5]][[세가 새턴|세]][[닌텐도 64|대]] 콘솔 게임기 및 게임상에서의 폴리곤 구현기술 발전
* 3D CG를 십분 활용한 영화의 중흥.
* 풀 3D 애니메이션
* [[3dfx|3Dfx]]의 [[Voodoo]] 그래픽카드와 3D그래픽 API[[글라이드]]
* 휴대용 [[CD 플레이어]]
* [[세가 피코]]: 한국에선 1995년 삼성전자가 발매하여 1990년대 후반까지 영유아들의 필수 교육용 게임기로 자리잡았다.
* [[VHS]] [[비디오]]
* [[PC통신]]
* [[PC통신 유머게시판]][* 당시 전뇌회선상 유머의 주 매개체였다. 인터넷 보급은 90년대 말이 되어야 보급이 되었다.]
* [[최불암 시리즈]][* 이 외에도 PC통신으로 시작된 유머 시리즈들은 많지만,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기에 언급해본다.]
* [[만득이 시리즈]]
* [[참새 시리즈]]
* [[사오정 시리즈]]
* [[YS는 못말려]]
* 동호회 및 소모임[* 오늘날의 포털 사이트 카페 서비스 같은 개념이다.]
* [[CRT]]
* 수퍼플랫 브라운관
* CDMA/[[PCS]]: 1990년대 말을 풍미했던 2G기반 이동통신 시스템.
* [[가요톱10]]([[손범수]] MC 시절): 물론, 가요톱10은 1980년대에도 인기가 있었지만. 1990년대도 손범수 MC의 활약 덕분에 여전히 인기가 많았다. 이후 1998년 2월에 프로그램이 폐지되었다.
* [[가족오락관]]
* [[게임북]](장석준 작)
* '''[[머라이어 캐리]]''' : '''1990년대 전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가수이다. 한국에서의 인기 역시 엄청났다.'''
* '''[[김건모]]''' : '''2집으로 한국 가요사 최초로 대상 그랜드슬램을 달성 했다.''' 그야말로 1990년대를 지배한 가수.
* [[날부핀]]
* 남성용 [[줄무늬 팬티]]
* [[남자셋 여자셋]]
* [[농구대잔치]]
* '''[[드래곤볼]]''' - 물론, [[1980년대]]에도 인기가 많았던 작품이고 2000년대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 '''[[다마고치]]''' - 사실상 모든 초중고등학생들은 다 갖고 있었다고 봐도 된다.
* '''[[벽돌]]'''
* [[펜들럼 시리즈]]
* '''[[대전 엑스포]]'''
* [[미니카]]
* 줄로 감는 [[팽이]]
*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한국에서는 스타크래프트 때문에 잘 와닿지 않지만, 의외로 게임 완성도와 재미를 떠나 세계적으로 [[오카리나]]라는 악기의 인기를 견인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 '''삐삐 ([[무선호출기]])'''
* [[사쿠라 대전]] - 1990년대 미소녀 게임 전성시대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 '''[[서태지와 아이들]] - 1990년대 초중반 가요계에 대변혁을 가져와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킨, 청소년들과 X세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영원한 우상.'''
* '''[[H.O.T.]] -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 대중 음악의 아이콘이자 1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
* [[스티브 유]]
* [[어린이 영화]]
* '''[[디즈니 만화동산]]'''
* '''[[옛날 어린이들은]]'''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 1990년대 말 세계 최강의 꽃미남으로 이때부터 신드롬을 일으켰다. 당시 현지에서 톰 행크스와 함께 가장 유명한 배우에 속했으며, 지금도 할리우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최고 스타.
* [[요요]]
* [[닛산 스카이라인 GT-R|일]][[닛산 페어레이디 Z|본]][[마쯔다 RX-7|제]] [[혼다 NSX|스]][[토요타 수프라|포]][[닛산 실비아|츠]][[토요타 셀리카|카]][[토요타 MR 시리즈|들]]
* [[공도 레이싱]]
* '''[[사인펠드]]'''
* '''[[시티폰]]'''
* [[우정의 무대]]
* [[줄리아나 도쿄]]
* [[중국제 테트리스 게임기]] / 열쇠고리 테트리스 게임기
* '''[[플로피디스크]]'''[* 다만 90년대 중반 이후로 주도권을 CD에게 내줘야만 했다.]
* [[700 서비스]]
* [[문구점 TCG]]
* '''[[1997년 외환 위기]]'''
* [[IMF 괴담]]
* [[Y2K 문제]]
* [[쫄티]]
* [[트윈픽스]]
* '''[[마이클 잭슨]]'''
*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시리즈|세일러문 시리즈 애니]]
* [[순풍 산부인과]]
* '''[[신세기 에반게리온]]'''
* '''[[슬레이어즈]]'''
* '''[[슬램덩크(만화)|슬램덩크]]'''
* [[슈퍼 마리오 시리즈]] - 1980년대의 작품이지만, 1990년대에도 여전히 인기가 있었다.
*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 [[판관 포청천]]
* '''[[아이큐 점프]]''' - 당시 드래곤볼을 부록으로 껴팔았기 때문에 인기가 대단했었다. 가격은 1.500원
* '''[[소년챔프]]''' - 아이큐 점프가 드래곤볼로 재미를 보자 슬램덩크를 부록으로 껴팔았다. 가격은 역시 1.500원
* [[용자 시리즈]]
* 음성사서함
* [[메가드라이브]]
* '''[[슈퍼패미컴]]'''
* '''[[게임보이]]'''
* '''[[동급생]], [[프린세스 메이커]]를 비롯한 [[미연시]] 게임.'''
* '''[[따조]]''' - 1995년 [[치토스]]에서 끼워파는 부록이었다. [[띠부띠부씰]]이 나오기 이전에는 어린 아이들에게 메가히트급의 인기가 있었던 수집품이었다.
* '''[[띠부띠부씰]]''' - 1997년의 포켓몬스터 무인편 애니메이션을 소재로 한 스티커. 1990년대의 학생들(특히 초등학생)에게는 그야말로 "[[따조]]? [[그거 먹는 건가요]]?" 수준으로 이 수집품에 미쳤었고 그에 따른 사회적인 파장도 어마어마했다.
* [[몰래카메라]] -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이경규]]가 진행하던 코너.
* 500원짜리 [[해적판]] [[만화책]]
* '''[[포켓몬스터]]''' - 1990년대 후반기를 상징하는 전설의 애니메이션.
* '''[[토이 스토리 시리즈]] - [[3D 애니메이션]]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
* '''[[마카레나]]''' - 짧은 시간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탄 댄스.
* [[무스]]
* [[신창원|신창원 티셔츠]]
* 브릿지 (블리치-탈색)
* '''[[텔레토비]] - 1997년, 영국 [[BBC]]에서 제작한 전설적인 유아교육 프로그램.'''
* '''[[파라파라]]''' - 다만, 한국에서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이었다.
* '''[[프렌즈]]'''
* 귀찌[* 귀를 뚫지 않고 귓바퀴에 끼워 거는 식의 악세사리.]
* '''[[MD 플레이어]]'''
* [[철권 시리즈|철권]] 열쇠고리
*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 휠체어리프트: 1988년 종합운동장역에 처음 4대가 보급됐으나, 일반화된 건 1998년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정부터이다.
=== 이 시대의 유행어 ===
* [[당근]]
* '''[[고딩]]''' - "고등어"에서 파생된 단어. 초반에는 '고딩'만 쓰이게 되었으나, 2000년대 들어 '초딩', '중딩', '대딩'이라는 말도 나오게 되었다.
* '''[[따봉]]'''
* [[엠창]]
* [[레게]]
* [[냉무]]
* [[방가방가]]
* [[ㅋㅋ]]
* 명퇴
* 세계화
* 신한국 창조
* 가랏! [[몬스터볼]]! -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명대사. [[2000년대]]에도 유행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AW3_YEwRgok|밤새지 마란말야]] - [[김국진]]의 [[SK하이닉스|현대전자]] 컴퓨터 CF의 유행어다.
* [[https://www.youtube.com/watch?v=KpTORs8SkCA|사랑해요 밀키스]] - 1990년대 롯데칠성의 탄산음료 [[밀키스]] 광고 때 영화배우 [[주윤발]]의 유행어. 이 대사 덕분에 그 당시 밀키스 매출이 급상승했다. 정확히는 1980년대 후반에 나왔다.
* 아, 응애에요 - [[김흥국]]이 했던 멘트.
* 에네르기파 -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명대사다. 물론, 드래곤볼은 1980년대 만화라서 그때도 유행했던 대사였다.
* '''[[짱]]'''
* '''[[오렌지족]]'''
* [[왕따]]
* [[다구리]]
* [[일진]]
* [[빠순이]] - 사실, 오빠부대라는 말은 이미 조용필이 가요계를 평정하던 1970~80년대에도 있었다.
* [[롱다리]] ↔ [[숏다리]]
* [[날라리]]
* [[GG]]
* [[사오정]]
* 아싸라비아 콜롬비아
* 아이~조아! 이제~ 그만!: [[꼬꼬마 텔레토비|텔레토비]]의 유행어.
* [[https://www.youtube.com/watch?v=58-BhAKjTZM|잘 자 내꿈꿔]][* 당시 이렇게 개작해서 많이 하곤 했다.] - [[조성모]], [[이정현(멀티 엔터테이너)|이정현]]의 [[KT|통신사]] CF의 명대사다.
* 캡[* 캡틴의 줄임말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어원은 [[일진]]문화에 두고있다는 게 씁쓸하다.], 캡숑
* [[펩시맨]]!
* [[판관 포청천|개작두(용작두)를 대령하라]] - 드라마 [[판관 포청천]]의 명대사다.
* [[몰래카메라]]였습니다! -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에서 나온 유행어다.
* [[https://www.youtube.com/watch?v=D9oCFAPuH-8|저. 이번에 내려요.]] - 캔커피 [[레쓰비]] CF의 유행어다.
== 1990년대생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1990년대생)]
== 1990년대에 들어가는 해 ==
[[1990년]] - [[1991년]] - [[1992년]] - [[1993년]] - [[1994년]] - [[1995년]] - [[1996년]] - [[1997년]] - [[1998년]] - [[1999년]]
== 참고/관련 문헌 ==
* 대한민국 50년사: 하권 - 임영태 저. 들녘. 1998.
* 대한민국사: 1945~2008 - 저자/출판사 동일. 2008.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개정증보 3판) - [[서중석]] 글/그림. 웅진지식하우스. 2020. p462~475.
* 이원복 교수의 현대문명진단 - 이원복 글/그림. 조선일보사. 1993~1998. p90~91(2권), p26~27/82~83/240~241(3권).
* 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편: 3당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전 3권) - [[강준만]] 저. 인물과사상사. 2006.
*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 2~3탄 - 이원복 글/그림. 김영사. 2004~2005. p238~243(11권)
[[분류:1990년대]] |
1991 FIFA 여자 월드컵 중국 | [include(틀:역대 FIFA 여자 월드컵)]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WC1991_emblem.jpg|align=right&width=250]]
1991년 11월 16일부터 11월 30일까지 중국 5개 도시에서 펼쳐진 제1회 여자 월드컵이다.
[목차]
== 개최지 선정 ==
전통적인 여자축구 강호인 중국에서 여자 월드컵의 첫 대회가 열렸다. 처음에는 세계여자축구선수권대회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 지역예선 ==
대륙별로 주어진 티켓 및 지역예선 방식은 다음과 같다.
|| 연맹 || 티켓수 || 비고 ||
|| 유럽(UEFA) || 4장 || 독자적인 월드컵 지역예선 존재. ||
|| 아시아(AFC) || 3장(개최국 포함) || AFC 여자 아시안컵이 지역예선 겸임. ||
|| 북중미카리브(CONCACAF) || 1장 || 북중미 여자 북중미카리브 챔피언십이 지역예선 겸임. ||
|| 남미(CONMEBOL) || 1장 || 남미 여자축구 챔피언십이 지역예선 겸임. ||
|| 아프리카(CAF) || 1장 || 아프리카 여자축구 챔피언십이 지역예선 겸임. ||
|| 오세아니아(OFC) || 1장 || OFC 여자 챔피언십이 지역예선 겸임. ||
=== 유럽 ===
유럽예선은 총 18개국이 참가하였다. 18개국은 3~4개국씩 1개 조로 편성되어 총 5개 조로 나뉘어 지역예선을 치룬다. 각 조 1위 팀과 2위팀 중 상위 3팀이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토너먼트에서 상위 5개팀이 본선에 진출한다.
* 1조 : '''네덜란드''',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 2조 : '''스웨덴''', 프랑스, 폴란드
* 3조 : '''노르웨이''', 잉글랜드, 핀란드, 벨기에
* 4조 : '''독일''',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 5조 : '''스위스''', 이탈리아, 덴마크, 스페인
굵은 색이 각 조 1위를 차지한 국가이다. 추가로 2위팀 중 잉글랜드, 헝가리, 이탈리아가 추가로 토너먼트에 진출하였다.
8강에서는 노르웨이,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이 각각 헝가리, 스웨덴, 네덜란드, 잉글랜드를 물리치고 본선 티켓을 손에 넣었다. 4강 진출에 실패한 4개 국가 중 가장 상위인 스웨덴도 본선 티켓을 획득하였다.
* 본선 진출국 : 노르웨이,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스웨덴
=== 아시아 ===
* 총 9개국이 2개조로 나누어 조별리그를 치러 각조 1,2위팀이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토너먼트에서 2위까지 본선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A조 : '''중국''', '''대만''', 태국, 대한민국
B조 : '''일본''', '''북한''',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A조에서는 3승을 차지한 중국이 1위, 1승1무1패를 차지한 대만이 2위로 4강에 진출하였다. B조에서는 4승을 차지한 일본이 1위, 3승1패를 차지한 북한이 2위로 4강에 진출하였다. 4강 1경기에서는 중국이 북한에게 1:0으로 이겼고, 2경기에서는 일본이 승부차기까지가는 접전 끝에 대만에게 5:4로 이겼다. 결승전에서는 중국이 일본에게 5:0으로 이기며 3번째 아시안컵 정상에 올랐다. 중국이 우승하면서 본선 티켓이 3위까지 넘겨졌고, 3/4위전에서는 북한이 대만에게 승부차기 끝에 5:4로 이기며 마지막 티켓을 획득하였다.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A조에서 무득점 전패 조 최하위를 기록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하였다.
* 본선 진출국 : 중국, 일본, 북한
=== 북중미카리브 ===
북중미카리브 여자 챔피언십에 출전한 8개국 중 우승팀칸 본선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A조 : '''미국''', '''트리니다드 토바고''', 멕시코, 마르티니크
B조 : '''캐나다''', '''아이티''', 코스타리카, 자메이카
4강 1경기에서 캐나다가 트리니다드 토바고에게 6:0으로 승리하였고, 2경기에서 미국이 아이티에게 10:0으로 승리하였다. 결승전에서 미국이 캐나다에게 5:0으로 승리하며 본선에 진출하였다.
* 본선 진출국 : 미국
=== 남아메리카 ===
남미 여자축구 챔피언십에서 리그를 벌여 우승팀만 본선에 진출한다.
'''브라질''', 칠레, 베네수엘라
브라질이 전승으로 1위를 차지하며 본선에 진출하였다.
* 본선 진출국 : 브라질
=== 아프리카 ===
아프리카 여자 챔피언십 우승팀만 본선에 진출한다.
* 예선 라운드 결과 : 나이지리아, 카메룬 최종 라운드 진출
홈앤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졌다. 1차전에서 나이지리아가 카메룬에게 2:0로 이겼고, 2차전에서도 4:0로 이기며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다.
* 본선 진출국 : 나이지리아
=== 오세아니아 ===
OFC 여자 챔피언십 우승팀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
'''호주''',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홈앤어웨이 방식으로 리그 결과 호주, 뉴질랜드 똑같이 3승 1패로 동률을 이뤘으나 골득실이 27인 뉴질랜드가 20인 호주를 제치고 본선에 진출하였다.
* 본선 진출국 : 뉴질랜드
== 경기장 ==
|| 도시 || 경기장 || 수용 인원 ||
||<|3> [[광저우]] [br] [br] || [[톈허 스타디움|톈허 경기장]] || 60,000 ||
|| 광둥 인민 경기장 || 25,000 ||
|| 잉퉁 경기장 || 15,000 ||
|| [[포산]] || 뉴플라자 경기장 || 14,000 ||
|| [[장먼]] || 장먼 경기장 || 13,000 ||
|| [[중산]] || 중산 경기장 || 12,000 ||
== 본선 진출국 ==
|| 연맹 || 티켓수 || 진출국 ||
|| 유럽(UFFA) || 5장 ||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
|| 아시아(AFC) || 3장(개최국 포함) || 중국, 일본, 대만 ||
|| 북중미카리브(CONCACAF) || 1장 || 미국 ||
|| 남미(CONMEBOL) || 1장 || 브라질 ||
|| 아프리카(CAF) || 1장 || 나이지리아 ||
|| 오세아니아(OFC) || 1장 || 뉴질랜드 ||
== 본선 진행 ==
=== 조별 리그 ===
* A조 : '''중국''', '''노르웨이''', 스위스, 뉴질랜드
개최국 중국은 2승1무로 조1위 노르웨이는 2승1패로 조2위를 차지하며 조별리그를 통과하였고, 스위스는 1승1무1패로 3위, 뉴질랜드는 3패로 4위를 차지하였다.
* B조 : '''미국''', '''스웨덴''', 브라질, 일본
미국이 전승으로 조1위, 스웨덴이 2승1패로 조2위를 차지하며 조별리그를 통과하였다. 브라질은 1승2패로 3위, 일본은 전패로 4위를 차지하였다.
* C조 : '''독일''', '''이탈리아''', 대만, 나이지리아
독일이 전승으로 1위, 이탈리아가 2승1패로 2위를 차지하며 조별리그를 통과하였다. 대만은 1승2패로 3위, 나이지리아는 전패로 마감하였다.
* 3위간 순위결정 : '''스위스''', '''대만''', 브라질
스위스가 1승1무1패 승점3점, 대만이 1승2패 승점2점, 브라질이 1승2패 승점2점을 기록하여 가장 먼저 덴마크가 8강에 진출하였다. 승점이 같은 대만과 브라질은 골득실도 -6으로 같아서 다득점이 2골인 대만이 1골을 넣은 브라질에 앞서 8강에 올랐다.
=== 토너먼트 ===
8강 1경기 미국이 대만에게 6:0 대승을 거뒀다.
8강 2경기 독일이 스위스에게 3:1으로 승리하였다.
8강 3경기 스웨덴은 개최국 중국에게 1:0으로 승리하였다.
8강 4경기 노르웨이는 이탈리아에게 3:2로 승리하였다.
4강 1경기 미국이 독일에게 5:2로 대파하였다.
4강 2경기 노르웨이가 스웨덴에게 4:1으로 대승하였다.
3/4위전에서는 스웨덴이 독일에게 3:0로 이기며 3위를 차지하였다.
[youtube(NyrJW6-F5Hk)]
결승전에서는 미국이 노르웨이에게 3:2로 승리하며 초대 챔피언이 되었다. 미국은 전승으로 우승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table align=center><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
|| A || 8강 1경기 [br] '''미국''' 7:0 대만 ||<|2> E ||<|2> 4강 1경기 [br] '''미국''' 5:2 독일 ||<|4> G ||<|4> 결승 [br] '''미국''' 2:1 노르웨이 ||
|| B || 8강 2경기 [br] '''독일''' 2:1 스위스 ||
||<-4> {{{#white - }}} ||
|| C || 8강 3경기 [br] 중국 0:1 '''스웨덴''' ||<|2> F ||<|2> 4강 2경기 [br] 스웨덴 1:4 '''노르웨이''' ||
|| D || 8강 4경기 [br] '''노르웨이''' 3:2 이탈리아 || H || 3/4위전 [br] '''스웨덴''' 4:0 독일 ||
||<table align=center><rowbgcolor=#ffd700> '''{{{+2 1991 FIFA 여자 월드컵 우승}}}''' ||
|| [[파일:미국 국기.svg|width=200]] [br] '''미국''' ||
|| 첫 번째 우승 ||
== 결과 ==
|| 순위 || 국가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 || 승점 || 비고 ||
||<rowbgcolor=#ffd700> 1 || 미국 || 6 || 6 || 0 || 0 || 25 || 5 || +20 || '''12''' || '''우승''' ||
||<rowbgcolor=#c0c0c0> 2 || 노르웨이 || 6 || 4 || 0 || 2 || 14 || 10 || +4 || '''8''' || 준우승 ||
||<rowbgcolor=#b8860b> 3 || 스웨덴 || 6 || 4 || 0 || 2 || 18 || 7 || +11 || '''8''' || 3위 ||
||<rowbgcolor=#f0e68c> 4 || 독일 || 6 || 4 || 0 || 2 || 13 || 10 || +3 || '''8''' || 4위 ||
||<rowbgcolor=#b2ccff> 5 || 중국 || 4 || 2 || 1 || 1 || 10 || 4 || +6 || '''5''' || 8강 ||
||<rowbgcolor=#b2ccff> 6 || 이탈리아 || 4 || 2 || 0 || 2 || 8 || 5 || +3 || '''4''' || 8강 ||
||<rowbgcolor=#b2ccff> 7 || 스위스 || 4 || 1 || 1 || 2 || 7 || 6 || +1 || '''3''' || 8강 ||
||<rowbgcolor=#b2ccff> 8 || 대만 || 4 || 1 || 0 || 3 || 2 || 15 || -13 || '''2''' || 8강 ||
||<rowbgcolor=#ffa7a7> 9 || 브라질 || 3 || 1 || 0 || 2 || 1 || 7 || -6 || '''2'''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0 || 나이지리아 || 3 || 0 || 0 || 3 || 0 || 7 || -7 || '''0'''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1 || 뉴질랜드 || 3 || 0 || 0 || 3 || 1 || 11 || -10 || '''0'''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12 || 일본 || 3 || 0 || 0 || 3 || 0 || 12 || -12 || '''0''' || 1라운드 ||
[[분류:FIFA 여자 월드컵]][[분류:1991년 축구]][[분류:중국에서 개최된 축구 대회]][[분류:덩샤오핑 시대]] |
1991 월드 시리즈 | #redirect 1991년 월드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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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 ||<-13><tablealign=center><bgcolor=#a9a9a9> {{{#000000 '''해'''}}} ||
||<-2> {{{-2 [[1988년]]}}} ||<-2> {{{-2 [[1989년]]}}} ||<-2> {{{-2 [[1990년]]}}} ||<bgcolor=#a9a9a9> {{{#000000 '''1991년'''}}} ||<-2> {{{-2 [[1992년]]}}} ||<-2> {{{-2 [[1993년]]}}} ||<-2> {{{-2 [[1994년]]}}} ||
||<-13><bgcolor=#808080> {{{#09081c '''연대'''}}} ||
||<-3> {{{-2 [[1970년대]]}}} ||<-3> {{{-2 [[1980년대]]}}} ||<bgcolor=#a9a9a9> [[1990년대|{{{#000000 '''1990년대'''}}}]] ||<-3> {{{-2 [[2000년대]]}}} ||<-3> {{{-2 [[2010년대]]}}} ||
||<-13><bgcolor=#778899> {{{#c4b73b '''세기'''}}} ||
||<-3> {{{-2 [[18세기]]}}} ||<-3> {{{-2 [[19세기]]}}} ||<bgcolor=#a9a9a9> [[20세기|{{{#000000 '''20세기'''}}}]] ||<-3> {{{-2 [[21세기]]}}} ||<-3> {{{-2 [[22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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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력기원|서기]] || 1991년 ||
|| [[대한민국 연호|대한민국]] || 73년 ||
|| [[단군기원|단기]] || 4324년 ||
|| [[불멸기원|불기]] || 2535년 ||
|| [[황기]] || 2551년 ||
|| [[이슬람력]] || 1412년 ~ 1413년 ||
|| [[갑자|간지]] || [[경오]]년 ~ [[신미]]년 ||
|| [[주체사상|주체]] || 80년 ||
|| [[중화민국|민국]] || 80년 ||
|| 일본 || [[헤이세이]] 3년 ||
|| [[히브리력]] || 5751년 ~ 5752년 ||
|| [[에티오피아]] || 1983년 ~ 1984년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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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700209215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1-12-27&officeId=00020&pageNo=15&printNo=21691&publishType=00020|동아일보 선정 1991년 국내외 10대 뉴스]]
[[http://naver.me/FDmhMKO9|<해외스포츠화제>-AP통신, 91년 결산(연합뉴스)]]
[[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전년도에 일어난 [[독일 재통일|독일 통일]]을 기점으로 연쇄적인 동구권 붕괴가 시작되어 이 해에 결국 [[미국]]과 세계의 군사 경제, 문화의 패권을 두고 경쟁했던 초강대국 '''[[소련]]이 붕괴'''되었고 [[공산주의]] 진영이 와해되었으며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냉전]]의 종료'''. 그리고, 일본의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1980년대 거품경제]]가 꺼지기 시작하면서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된 바로 그 해이다.
1917년 [[블라디미르 레닌]]의 [[10월 혁명|공산혁명]]으로 탄생했던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 연방]]이 출범하였다. 러시아 연방 출범 이후 출생한 세대들은 소련 출신들이 아닌 '''러시아 연방 출신들'''이거나 옛 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유럽 및 중앙아시아 독립국가 출신으로 분리한다. 소련이 해체됨에 따라 소련에 속했던 여러 지역이 독립 국가로 탄생했으며 이 때부터 '중앙아시아'라는 지명이 첫선을 보였다. [[발트 3국]]([[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도 함께 독립했다.
[[1990년|지난 해]] 8월 2일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가 계속 철군하지 않자, 결국 새해 초반,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이 선전포고를 하고 이라크를 침공한 '''[[걸프 전쟁]]'''이 일어났다.[* 이 해에 '''[[신승훈]]'''이 방송 데뷔(음반 데뷔는 1990년 11월 1일)를 했는데 자신의 데뷔 생방송이 걸프전 뉴스 속보 때문에 결방됐다고 아쉬워 한 적이 있었다.]
[[동양방송]] 강제 폐국 이후 11년 만에 또 다른 [[민영방송]]사인 [[SBS]]가 개국[* '개국'한 해는 맞는데, '창립'된 해는 아니다.]한 해이다. 신방겸영 금지 시절 유일한 민간 [[지상파]] 방송사였다.
한반도에서도 이런 바람이 불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4월의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7~8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의 공동 출전, 9월 17일 남북한 정식 '''[[UN]]에 동시 가입'''[* 이전까지는 [[대한민국]]은 [[소련]]과 [[중국]]이, [[북한]]은 [[미국]]이 줄기차게 거부권을 행사해왔기 때문에 가입이 힘들었다. 이 때문에 정부 수립 이후 UN 가입까지 43년이나 걸린 것이다. 이 날 [[대한민국]], [[북한]]과 함께 UN에 가입한 국가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일명 [[발트 3국]]), [[마셜 제도]], [[미크로네시아 연방]]이다. 사실 이 때 소련은 한국과 수교한 상태였던 데다가 결정적으로 [[8월 쿠데타]]로 인해 해체 일보직전의 상태였기에 다른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으므로 거부권을 행사할래야 행사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12월 13일 [[남북기본합의서|남북 기본 합의서]] 발표까지... 그 남북 관계 활성화를 위해 남북이 단일팀을 구성하여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하였다. 차후에 그 실화를 담아 [[코리아(영화)|영화화]] 되어 나오기도 했다.
이 해는 30년만에 지방자치제가 부활된 해로서, 3월 26일에 기초의회 의원선거가, 6월 20일에 광역의회 의원선거가 각각 치러졌는데, 당시 수서 비리 사건과 강경대 군 치사 사건 등으로 위기에 몰렸던 집권여당 [[민주자유당]]이 [[1991년 연쇄 분신 파동]]에 대한 국민들의 싸늘한 시각으로 두 선거에서 모두 압승을 거두었다.[* 민자당이 광역의회 의원선거에서 승리한 후 [[한보그룹]] 회장 정태수 등 수서 비리와 관련된 인사들이 대거 집행유예로 풀려났으며, 채권은행들은 한보측 담보에 대한 가압류를 해제하고 특혜 대출을 재개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외환위기|6년 후에...]]]
정부는 기업의 생산성을 늘리기 위해 [[국군의 날]] 및 [[한글날]]을 이 해부터 공휴일에서 제외했는데, 제외 당시 노동자 계층으로부터 "일할 시간만 늘린다"며 불만을 표했다만, 한글날은 이후 [[2013년]]에 다시 공휴일로 부활했다. 또 '해외투자기업연수생 제도' 도입으로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가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해는 우리나라 역사상 흉악 범죄 사건이 연이어 터진 때인데, 3대 영구 미제 사건 중 두 사건인 [[개구리 소년]] 사건과 [[이형호 유괴 사건]],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서커스소녀 심주희 감금학대 사건, [[여의도광장 차량질주 사건]] 등이 터진 해이기도 하다. 심지어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낙동강에서 페놀오염 사태]]가 터져 국민들에게 환경오염 문제를 각성시키기도 했다.
--[[SBS]]가 개국했음에도--[* [[SBS]] TV는 연말에 개국했고, 3월에 라디오가 먼저 개국했다.] [[MBC]]가 전성기를 보냈던 시절 중 한 해인데, 대표적으로 '''초대형 히트'''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여명의 눈동자]]와 [[이경규]]의 상징이자, 당시 큰 화제를 불러모아 예능의 대표적인 포맷 중 하나가 된 [[몰래카메라]]가 [[MBC]]에서 방영을 시작했다.
해외 게임계에서는 [[스트리트 파이터 2]]가 나와서, [[대전액션게임]] 붐의 시작을 알렸다. 또한 이 해 '''[[문명 1]]'''이 나와서 [[문명하셨습니다|문명하시는 분들]]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명 1이 나온 날짜는 불명.
한편 문화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이 해를 '''[[연극]]의 해'''로 지정하였다.[* [[1990년]]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 교수의 제안으로 1990년대의 각 연도마다 문화부/문화체육부/문화관광부에서는 예술 분야의 한 장르를 선정하여 해당 분야와 관련된 각종 기획 및 행사를 지원한 바 있다.]
세계 고전음악계에선 모차르트 서거 200주기를 성대하게 맞이하면서 음반, 책, 관광상품 등 관련 수익상품들이 날개 돋힌 듯 팔려 매상을 올렸으며,[* 해당 현상은 [[이원복]] 교수 만화 <[[현대문명진단]]> - '모차르트, 錢(돈)차르트' 편에 수록되었다.] 록 장르에서 기념비적인 명반이 쏟아져나온 해이다. [[너바나]]의 <[[Nevermind]]>, [[건즈 앤 로지스]]의 <[[Use Your Illusion]]>, [[펄 잼]]의 <Ten>, [[메탈리카]]의 <[[Metallica]]>, [[U2]]의 <[[Achtung Baby]]>,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Blood Sugar Sex Magik]]>,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의 <[[Loveless]]>, [[슬린트]]의 <[[Spiderland]]>가 모두 이 해에 나왔다! 반대로 록 역사상 최고의 프런트맨 중 하나로 평가받는 [[퀸(밴드)|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사망한 해이기도 하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특이하게 출산율이 올랐던 시대[* 1991년 ~ 1995년.]의 산물이자 [[베이비붐 세대]]의 직계자식세대인 '''N세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이다. 특히나 직전년이였던 1990년이 '''경오년'''이였는데 백말띠는 팔자가 드세다라는 근거없는 속설 때문인지 [[출생신고]]를 늦게 한다든지의 편법을 써서 신생아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1990년: 649,738명, 1991년: 709,275명. 전년대비 6만명 가까이 증가했다.][* [[여담]]이지만 한때 잠시나마 여초현상이 두드러졌던 때도 있는데, 1월 하순~2월경에 등록한 신생아들이 그렇다. 이유는 알겠지만 바로 전년도에 태어난 아이들이 음력 1990년 12월 말까지 묵혀두다가 이때 출생신고를 한 것.] 또한 이때부터 산아제한 정책이 다소 완화된 것도 한 몫 했다.
한편으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1기 신도시]] 물량공급이 본격적으로 확대됨에 따라서 1980년대를 떠들썩했던 부동산 열풍이 잠잠해졌다.
이 해 이후 태어난 [[정신건강의학과]] 사유의 [[사회복무요원]]은 [[기초군사훈련]]을 받지 않는다.
== 사건 ==
=== 실제 ===
==== 1월 ====
* [[1월 1일]]
* 노태우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금년 지방선거는 민주발전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 북한의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남북한 대표와 각 정당, 사회단체가 참가하는 '민족통일 정치협상회의'를 열자고 제의하였다.
* [[1월 4일]]: 한미 양국은 한국측의 주한미군 범죄 재판권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주한미군 지위협정 개정 합의서>에 서명하였다.
* [[1월 7일]]: 한국노총은 노동조합법 12조(정치활동 금지)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제소하였다.
* [[1월 12일]]: '공명선거 실천 기독교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월 13일]]: [[소련군]]이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로 진입해 독립을 요구하던 시위대를 강제진압했다. 이로 인하여 13명이 사망하고 700여명이 부상당했으나, 결국 소련은 리투아니아에서 쫓겨나게 된다.
* [[1월 14일]]
* 한국의료지원단 선발대 26명이 걸프전 다국적군 지원을 위해 사우디로 출발하였다.
* 북한 대성산 일대에서 고구려 벽화무덤이 발굴되었다.
* [[1월 15일]]
* 남북한 양국은 판문점 남북체육회담에서 일부 국제대회에 단일팀을 파견한다는 원칙에 합의하였다.
* 원로 언론인 겸 역사학자 천관우가 세상을 떴다.
* [[1월 16일]]: 미국이 통보한 최후통첩시간이 지나, [[미군]]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이 이라크에 공격을 위한 [[걸프 전쟁#s-3.3|사막의 폭풍 작전]]을 개시했다. 이는 항목의 서곡이었다.
* [[1월 17일]]
* 향토문화진흥원이 설립되었다.
* 이라크군 측이 [[이스라엘]]을 향해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했다.
* [[1월 18일]]
* 교통부는 자가용 승용차 10부제 운행을 실시하였다.
* 마창노련은 '코리아타코마의 체불임금 해소와 회사 정상화를 위한 지역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1월 20일]]: 일본 TV 아사히에서 <[[특구지령 솔브레인]]>이 첫 전파를 탔다.
* [[1월 23일]]: '범민련 남측본부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월 25일]]
* '서울민주청년단체협의회(이하 서청협)'가 결성되었다.
* 범민련 북측본부가 결성되었다.
* [[1월 26일]]: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시아드 바레 군부 독재 정권이 통일소말리아회의(USC) 반군 세력의 공격을 받아 붕괴되었다.
* [[1월 29일]]: 서울 압구정에서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 [[1월 30일]]
* 전북 남원에서 30대 여성 김부남이 어릴 적 자신을 성폭행했던 가해자를 살해했다.([[김부남 사건]])
* 제1차 북-일 국교정상화 회담이 개최되었다.
* 북한-태국 양국이 대사급 외교각서를 조인하였다.
* 북한 금강산에서 금동불상 3개가 발굴되었다.
==== 2월 ====
* [[2월 1일]]
* 48개 대기업 재단을 주축으로 한 '기업재단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남아공 정부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공식적으로 폐지할 것을 선언하였다.
* [[2월 2일]]: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이 터졌다.
* [[2월 3일]]: 민주당은 임시전당대회에서 이기택을 총재로 추대하고 재야민주연합 측과 통합하였다.
* [[2월 5일]]: 경기지역 일간지 <중부일보>가 창간되었다.
* [[2월 7일]]: '공명선거 실천 시민운동협의회(이하 공선협)'가 발족되었다.
* [[2월 8일]]: 미국의 게임업체 '실리콘 & 시냅스'가 설립되었다.
* [[2월 12일]]: 남북한 양국은 제4차 남북체육회담에서 축구 및 탁구 단일대표팀 구성에 합의하였다.
* [[2월 14일]]: 검찰은 수서택지분양사건과 관련해 한보그룹 회장 정태수를 뇌물공여 및 국토이용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수감시켰다.
* [[2월 15일]]: 일본 TV아사히에서 <[[조인전대 제트맨]]>이 첫 전파를 탔다.
* [[2월 16일]]: 국회 건설위 소속 오용운 등 여야 의원 5명 등이 수서택지비리와 관련되어 구속되었다.
* [[2월 17일]]: 보사부는 농어촌 총각 결혼난 해소책으로 중국교포 처녀와의 성혼사업 추진을 결정하였다.
* [[2월 22일]]: (사)한국문화연구원이 설립되었다.
* [[2월 24일]]
* 부시 미국 대통령이 걸프전에 지상군 투입을 선언하였다.
* 태국에서 순톤 콩솜퐁과 수친다 끄라쁘라윤 장군 등이 17번째로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 [[2월 26일]]: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철수함으로서 걸프 전쟁이 끝났다.
* [[2월 27일]]
* 친일역사 연구단체인 '반민족문제연구소'가 설립되었다.
* 임종국 선생의 유고집 <실록 친일파>가 출간되었다.
* 북한 조선축구협회는 제6차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참가와 관련해 FIFA와 AFC에 통보하였다.
* [[2월 28일]]: 부시 미국 대통령이 걸프전 전투 전면중지를 선언하고 이라크에 휴전조건 5개항을 제시하였다.
==== 3월 ====
* [[3월 1일]]: 지금의 [[국가중심국공립대학교]]인 [[강릉원주대학교|강릉대학교]], [[공주대학교]], [[군산대학교]], [[목포대학교]], [[순천대학교]], [[안동대학교]], [[창원대학교]] 등이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다.
* [[3월 3일]]
* 소련 산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발트 3국)에서 독자적인 연방 탈퇴 선거가 실시되어 주민 중 80% 이상이 탈퇴를 찬성했다.
*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로드니 킹이 체포 과정에서 백인 경찰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 이는 [[LA 폭동|1년 후]]의 씨앗이 되었다.
* 이라크측은 다국적군과의 회담에서 휴전조건을 수락하였다.
* [[3월 4일]]: 종전의 국민생활체육협의회가 '한국체육진흥회'로 바뀌었다.
* [[3월 9일]]: 한국박물관협회가 발족되었다.
* [[3월 11일]]
*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가 안기부에 의해 검거되었다.
* KBS 라디오서울이 이 날 오후 5시 방송을 종료했다.
* [[3월 13일]]
* 서울 잠실 한강 배수로에서 유괴 피해자 이형호 군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유괴 44일 만이었다.
* 공추련 반핵평화위 소속 일부 의원들을 주축으로 한 '반평화운동연합(이하 반평)'가 결성되었다.
* [[3월 14일]]: 공군 C-123 수송기가 훈련비행 도중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 이견마을 뒷산에 추락하여 공군 장병 5명이 순직하였다.
* [[3월 16일]]: (사)어린이문화진흥회가 설립되었다.
* [[3월 17일]]
* 소련 정부는 발트 3국 등 6개 지역을 뺀 각 지역에서 연방제 존속을 묻는 국민투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시되었다. 투표 직후 73%의 찬성으로 통과되면서 리투아니아의 국방장관은 체포되었다가 수시간 만에 풀려났다. 반면 우크라이나 키예프,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등에서는 찬반이 팽팽하거나 반대가 더 많았다(우크라이나 전체는 27% 반대). 고르바초프 측은 일단은 판정승을 거두었으나 불안은 그치지 않았다.
* 유고연방 세르비아 공화국 정부가 연방집단지도체제에서 이탈했다.
* [[3월 20일]]: [[SBS|서울방송]]이 수도권 지역에서 라디오 방송을 개시하였다.
* [[3월 21일]]
* 검찰은 발암물질인 페놀 325t을 방류해 낙동강 상수원을 오염시킨 두산전자 구미공장 관계자 6명을 구속하였다.
* 조선맥주 노조가 설립 36년만에 전면 파업에 돌입하였다.
* 북한측은 UNDP 원조 하에 농업과학원 벼 육종 현대화시설 및 평양남새(채소)과학연구소 연구시설을 준공했다.
* [[3월 26일]]
* 전국 시/군/구 기초의회 의원 선거가 30년만에 실시되었다.([[1991년 지방선거]])
* [[대구광역시|대구]] 이곡동 성서국교생 5명이 마을 뒷산으로 개구리를 잡으러 집을 나섰다가 실종되었다.([[개구리 소년]] 사건)
* 건설중이던 [[팔당대교]]가 강풍에 붕괴되었다.
* [[3월 28일]]: [[전노협]]은 '코리아타코마노조 지원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하였다.
* [[3월 31일]]
* 남북한 양국 음악인들은 '한겨레 울림 특별연주회'를 일본 도쿄에서 개최되었다.
* 일본 교도통신은 태평양전쟁 중 오키나와로 징용된 한국인 1,600명분의 명단이 발견되었다고 보도하였다.
* 바르샤바조약기구 연합군사령부가 공식 해체되었다.
* [[알바니아 인민 공화국]]에서 68년만에 자유 선거가 실시되었다. 이는 2년 전부터 시작된 [[1989년 동유럽 혁명|동구권 자유화의 물결]]이 기어이 폐쇄 공산국가 알바니아에 상륙한 순간이었다.
==== 4월 ====
* [[4월]] 중: 캡콤은 [[스트리트 파이터 2]]의 첫 번째 버전 아케이드판을 일본에서 가동시켰다.
* [[4월 1일]]
* 미국 코미디 채널과 Ha!가 통합되어 '코미디 네트워크'로 출범하였다.
* 일본 JSB가 유료 위성TV채널 'WOWOW'를 개국하였다.
* [[4월 3일]]: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마지막 사건(10차 사건)이 발생했다.
* [[4월 4일]]
* 평민당과 신민주연합당이 통합을 선언하였다.
* 서노문협 의장 박인배가 노동가요 테이프를 불법으로 제작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 북한측은 태국 주재 대사관을 신설함과 동시에 주 중앙아프리카 대사관을 폐쇄시켰다.
* [[4월 9일]]
* 평민당과 신민당준비위는 통합전당대회에서 '신민주연합당'을 출범시켰다.
* 4월회가 사단법인 형태로 새로 발족되었다.
* [[4월 12일]]
* 통계청은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1990년 11월 1일 기준 국내인구는 4,352만 199명 및 1,135만 7,160가구라고 발표하였다.
* (사)한국차문화협회가 설립되었다.
* [[4월 13일]]: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설립되었다.
* [[4월 14일]]
* 경북 의성군 양평면 일대에서 진도 3.1의 지진이 발생했다.
* 재일 민단-조총련계 동포 3천여 명이 도쿄도 아라카와구에서 분단 이래 처음으로 '91 아라카와 놀이마당'을 공동으로 개최하였다.
* [[4월 19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소련 지도자로서는 유일하게 제주도를 방문하였다.
* [[4월 24일]]: 남북 단일팀이 제41회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개막식에 출전하였다.
* [[4월 25일]]
* 노태우 대통령은 페놀오염사건과 관련해 허남훈 환경처장관을 경질하였다.
* (사)한국화랑협회가 설립되었다.
* [[4월 26일]]: 명지대 경제학과생 강경대가 구속된 총학생회장 석방요구 시위 도중 백골단의 집단구타로 숨을 거두었다.
* [[4월 27일]]
* IPU 한국대표단이 평양 IPU 총회 참석을 위해 판문점을 거쳐 방북하였다.
* '고 강경대 열사 폭력살인 규탄 및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이하 범국민대책회의)'가 결성되었다.
* 노태우 대통령은 강경대 사망사건과 관련해 안응모 내무부장관을 경질하였다.
* [[4월 29일]]
* 전국 60여개 대학에서 '고 강경대 열사 폭력살인 규탄과 공안통치 분쇄를 위한 범국민대회'가 개최되었다.
* 치안본부는 강경대 사망과 같은 사태가 없도록 시위대에 폭행하지 말도록 지시를 내렸다.
* 전남대 식품영양학과생 박승희가 학생회관에서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친 후 분신을 감행했다. 이는 [[분신정국]]으로 이어지는 발단이 되었으며, 그녀는 5월 19일에 숨을 거두었다.
* 제148차 IPU 이사회가 북한 평양에서 개막되었다.
* [[4월 30일]]
* 노재봉 총리는 강경대 구타치사 사건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였다.
* 리덩후이 대만 총통이 43년만에 '전시 비상 총동원시기'를 종식시킨다고 선포하였다.
* 알바니아 공산독재정권 해체에 따라 노동당이 사회당으로 개칭되었다. 이때 제1서기장 라미즈 알리아가 대통령직에 앉았다.
==== 5월 ====
* [[5월]] 중: 진보 월간지 <길>이 창간되었다.
* [[5월 1일]]
* [[전노협]]은 연세대 신촌캠에서 '세계노동절 102주년 기념대회'를 개최하였다.
* 안동대 민속학과생 김영균이 집회 도중 분신을 감행했다. 이후 그는 하루 뒤 숨을 거두었다.
* 전남대 교수 714명이 공안정국 철폐와 전면적 민주화를 요구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공문교육연구원(현 교원그룹)에서 어린이·청소년 대상 과학잡지 <[[과학소년]]>을 창간하였다.
* [[5월 2일]]
* 노태우 대통령은 강경대 구타치사 사건에 대해 유가족에게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대국민사과를 발표하였다.
* 현대전자는 닌텐도 게임보이를 '미니겜보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출시했다.
* [[5월 3일]]
* 정부는 경찰의 교내진입을 억제하되, 총장이나 학장이 요구할 시에만 이를 허용한다고 밝혔다.
* 전국사립대총학장협의회는 일련의 학원사태와 관련해 학생의 자제 및 정부의 평화집회 제도적 보장을 촉구하였다.
* 경원대 전산과생 천세용이 국기 게양대 난간에서 분신 후 투신자살했다.
*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은 직업병 재발 방지와 고 김봉환 노동자의 직업병 인정 등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에 돌입하였다.
* 리펑 중국 총리가 북한 평양에 도착하였다.
* [[5월 4일]]
* 범국민대책회의는 전국 주요 도시에서 '백골단 해체와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대회'를 개최하고 가두시위를 전개하였다.
* 이상연 내무장관은 시위진압 방법을 안전해산 위주로 전환시키고 사복체포조를 무술경관으로 대체시킨다고 발표하였다.
* 서울시경 1기동대 1중대 소속 박석진 일경이 양심선언을 발표하였다.
* 한국 민자역사 1호인 롯데백화점 영등포역사점이 문을 열었다.
* [[5월 5일]]
* 남북탁구단일팀이 지바 탁구선수권대회에서 종합 3위를 차지하였다.
* 시인 김지하는 이날자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라는 제하의 칼럼을 발표하였다.
* KBS는 '제1회 대학개그제'를 개최했다.
* [[5월 6일]]
* 북한 축구대표팀이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단일팀 구성을 위해 판문점을 거쳐 서울에 도착하였다.
* 서울구치소 수감 중이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가 경기 안양병원 마당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박창수 의문사 사건).
* [[전노협]] 등 6개 단체가 '고 박창수 위원장 옥중살인 규탄과 노동운동 탄압분쇄 전국노동자대책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5월 7일]]
* 산악인 허영호가 이끄는 '오로라탐험대'가 세계에서 11번째로 남극점 등정에 성공하였다.
* 경찰은 안양병원 영안실에 백골단을 투입해 박창수 노조위원장의 시신을 탈취하고 부검을 개시했다.
* 유고 군부는 내전상태를 선포하였다.
* [[5월 8일]]
*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이 서울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분신 후 투신자살했다.
* 서강대 총장 박홍 신부는 기자회견에서 분신자살의 배후에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 범국민대책회의는 '고 박창수 위원장 사인규명 진상조사단'을 구성하였다.
* [[5월 9일]]
* 이날 전국에서 50만 명이 참여한 가운데 '민자당 해체와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대회'가 개최되었다.
* 민족문학작가회의는 김지하 시인을 영구 제명시켰다.
* [[5월 10일]]
* 민자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국가보안법과 경찰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처리시켰다.
* 성남피혁 노동자 윤용하가 "분신 책임 전가말라"는 유서를 남기고 전남대에서 분신을 감행했다. 결국 그는 이틀 뒤 숨을 거두었다.
* [[5월 11일]]
* 로버트 스칼라피노가 이끄는 '미국 아시아협회 대표단'이 북한 평양을 방문하였다.
* 허담 전 북한 외무상이 사망했다.
* [[5월 14일]]
* 범국민대책회의가 개최하려던 강경대 열사의 민주국민장이 경찰의 봉쇄로 무산되자 50만명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전교조 해직교사 120명이 명동성당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 [[5월 15일]]: 범국민대책회의는 정식 명칭을 '공안통치 분쇄와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로 개편하였다.
* [[5월 16일]]: 북한-바하마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 [[5월 18일]]
* 범국민대책회의는 강경대 열사의 민주국민장을 다시 개최하였다.
* 천주교 신자 이정순이 연세대 철교에서 분신 후 투신자살했다.
* 전남 보성고 학생 김철수가 교내 운동장에서 분신을 감행했다. 이후 그는 6월 1일에 숨을 거두었다.
* 광주 천일여객 버스기사 차태권이 차고에서 분신을 기도했다.
* [[5월 20일]]
* KBS1에서 <[[6시 내고향]]>이 첫 전파를 탔다.
* KBS2에서 <한바탕 웃음으로>와 <소문난 부부>가 첫 전파를 탔다.
* 북-일 국교정상화 제3차 회담이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
* [[5월 21일]]
* 라지브 간디 인도 총리가 [[타밀족]] 소녀의 폭탄에 암살당했다.
* [[에티오피아]] 반군은 30년만에 [[내전]]을 종식시켰다.
* [[5월 22일]]
* 노재봉 총리가 시국과 관련해 사표를 제출하였다.
* 노동자 정상순이 광주 전남대병원 영안실 옥상에서 분신을 감행했다. 결국 그는 7일 후 숨을 거두었다.
* [[서울대]] [[음대]] 입시부정 사건이 발생했다.
* [[5월 25일]]
* 노태우 대통령은 노재봉 대신 [[정원식]]을 새 총리로 앉혀 개각을 단행하였다.
* 성대 불어불문학과생 김귀정이 경찰의 폭력적 시위진압 과정에서 압사당했다.
* 범국민대책회의와 성대 민주동문회가 '고 김귀정 열사 폭력살인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범국민대책회의는 전국에서 17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공안통치 민생파탄 노태우 정권 퇴진 제3차 국민대회'를 개최하였다.
* 33년간의 옥살이로 위암말기 판정을 받은 비전향 장기수 왕영안이 석방되었다.
* [[5월 27일]]: (사)한국놀이문화협회가 설립되었다.
* [[5월 29일]]
* 서울지검은 '김기설 분신자살 사건'과 관련해 전민련이 제출한 수첩과 강기훈의 자술서 및 김씨 유서가 동일 필적이라고 밝혔다.([[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 독일연방철도가 고속철도 [[인터시티익스프레스|ICE]]를 개통하였다. 이로서 독일은 [[유럽]]에서 둘째로 고속철도를 놓게 된 것이다.
* [[5월 31일]]
*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발족되었다.
* 일본 교도통신은 1943년 3월 기준으로 일본에 강제연행된 한국인 수가 약 28만 3천명에 달했다고 외무성 극비문서를 인용해 보도하였다.
==== 6월 ====
* [[6월 1일]]
* 문화부는 <종합국어통일어사전> 편찬을 추진하였다.
* 경복궁 1차 복원공사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 전대협 5기 출범식이 부산대에서 개최되었다.
* 종전의 코미디 네트워크가 [[코미디 센트럴]]로 개칭되었다.
* [[6월 2일]]
* 범국민대책회의는 전국에서 15,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노태우정권 퇴진 제4차 국민대회'를 개최하고 가두시위를 전개하였다.,
* 전국투본은 서울 명동성당에서 2,5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고 박창수 위원장 공작살인 안기부 해체 및 노태우 정권 퇴진을 위한 수도권노동자대회'를 개최하였다.
* [[6월 3일]]: [[정원식]] 국무총리 내정자가 외대에서 마지막 강의를 마치던 도중 학생들에 의해 밀가루와 계란 세례를 당했다(정원식 계란투척 사건).
* [[6월 4일]]: 정부는 정원식 총리 폭행사건을 계기로 학내폭력 엄중 대처계획을 발표하였다.
* [[6월 5일]]
* 치안본부 대공3부와 기무사는 지하 이념조직 '민족해방활동가조직'을 적발해내 관련자 18명을 체포하고 이 중에서 방민수 등 12명을 국보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민족해방활동가조직 사건).
* 전국 63개 총-학장들은 정원식 폭행사건 관련 긴급회의에서 대학폭력 추방을 결의하였다.
* 북한의 여성 독립운동가, 정치가인 허정숙이 사망했다.
* [[6월 6일]]: [[형집행정지]]로 이미 석방된 [[문익환]] 목사가 검찰에 재수감되었다.
* [[6월 7일]]: 노태우 대통령은 대학 내 폭력추방 및 안정대책 수립을 지시하였다.
* [[6월 8일]]: 범국민대책회의는 전국에서 3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6.10 항쟁 계승 및 노태우정권 퇴진 제5차 국민대회'를 개최하였다.
* [[6월 12일]]
* 범국민대책회의는 김귀정 열사의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 소련 러시아 공화국에서 국민투표가 개시되어 대통령에 [[보리스 옐친]], 부통령에 알렉산드르 루츠코이가 당선되었다.
* [[시카고 불스]]가 미국 NBA 파이널에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4승 1패로 꺾어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하였다. 특히 이 파이널은 '''[[마이클 조던|MJ]] vs [[매직 존슨|MJ]]'''로 알려져 있었다.
* [[6월 13일]]
* 대한항공 376편 B727-281기가 대구공항 착륙 중 바퀴가 미처 나오지 못한 채 동체착륙 사고를 일으켰다.([[대한항공 376편 동체착륙 사고]])
* ICFTU는 한국, 중국, 필리핀을 노조 탄압국으로 지목했다.
* [[6월 15일]]: [[필리핀]] 루손 섬에 있는 [[피나투보 화산|피나투보]] [[화산]]이 대폭발을 일으켜, 100억 톤에 달하는 화산재를 분출했다.
* [[6월 17일]]: 독일 베를린에서 32개국 한인조직 대표 280명이 참가한 가운데 '해외 한민족대표자 회의'가 개최되었다.
* [[6월 20일]]: 정원식 계란투척 사건을 계기로 민자당이 광역의회 의원 선거에서 압승하였다.
* [[6월 21일]]: 남북한 단일 탁구대표팀이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8강에 진출하였다.
* [[6월 22일]]: 한국어문회가 설립되었다.
* [[6월 23일]]
* 미-북 양국은 공동회의에서 미군유해 반환문제에 합의하였다.
* 세가 아메리카가 《[[소닉 더 헤지혹 1]]》을 북미지역에 출시하였다.
* [[6월 24일]]
*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이 유서 대필 공방 끝에 검찰에 자진 출두하였다.
* 북한은 판문점에서 6.25전쟁 때 실종되었던 미군 유해 11구를 미국측에 인도하였다.
* [[6월 25일]]: 유고 산하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양국이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 [[6월 27일]]: 안기부는 전대협이 독일 베를린 '남북해외청년학생 통일대축전'에 경희대생 박성희 등 2명을 파견했다고 밝혔다.
* [[6월 29일]]
* 노태우 대통령이 미국-캐나다 순방차 출국하였다.
* 재야 인사와 학생 1,000여 명은 '6.29 선언 파산선고와 노동운동 탄압규탄 제6차 국민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건대에서 정권 규탄대회를 개최하였다.
*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의 장례가 '전국노동자장'으로 거행되었다.
==== 7월 ====
* [[7월 1일]]
*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해체되었다.
* 유통시장 2단계 개방조치가 시행되면서 국내 유통시장이 전면 개방되었다.
* [[7월 10일]]
* 4년 전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과 관련하여 전직 오대양 직원 6명이 경찰에 자수하면서 해당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시작되었다.
* 북한 중앙인민위는 회령군을 시로 승격시켰다.
* [[7월 11일]]: [[악마의 시]]의 번역자였던 이가라시 히토시가 살해당했다.([[악마의 시 번역자 피살사건]])
* [[7월 12일]]: 권오대 포항공대 교수팀이 '광소자'를 처음으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 [[7월 13일]]: 민주일보가 경영난으로 인해 폐간되었다.[* 폐간신고는 5일 후에 하였다.]
* [[7월 14일]]: 우리노동문제연구소와 안양노동상담소 등 28개 노동관련 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전국노동단체연합(이하 전국노련)'이 결성되었다.
* [[7월 19일]]: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과거 [[스페인 제국]]과 포르투갈 식민지 국가들이 모여 제1회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의(Ibero-American Summit)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는 [[1949년]] 설립되고 1985년 확대된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 정상들의 회의로 영연방의 뒤를 잇는 정치,경제,사회,문화협력 공동체가 탄생하였다.
* [[7월 22일]]: 미국의 [[연쇄살인자]] [[제프리 다머]]가 경찰에 검거되었다.
* [[7월 25일]]
* 한국 축구대표팀이 셰필드 유니버시아드 결승전에서 네덜란드를 꺾어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 한미 양국은 전시접수국지원 협정안에 가서명하였다.
* [[7월 31일]]: 미-소 양국은 모스크바 정상회담에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 서명하였다.
==== 8월 ====
* [[8월 1일]]: 종전의 치안본부가 내무부에서 독립하여 '경찰청'으로 승격하였다.
* [[8월 2일]]
* 전대협은 북한 조선청년위와 독일 베를린에서 회담을 열어 국토종단대행진에 남북한 양국 대표를 교환/파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쌀 3천 톤을 실은 '콘돌호'가 라진항을 통해 북한에 인도하였다.
* [[8월 5일]]: 전대협 대표 박성희가 북한 평양 도착 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 [[8월 6일]]: 유엔 안보리는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 신청안을 이의 없이 승인하였다.
* [[8월 7일]]: [[강원도]] [[고성군(강원도)|고성군]]에서 제17회 세계잼버리대회가 개최되었다.
* [[8월 10일]]: 전대협 대표 성용승이 북한 평양에 도착하였다.
* [[8월 11일]]
*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유엔가입 권고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 <[[렌과 스팀피|렌 & 스팀피 쇼]]>가 미국 니켈로디언에서 첫 전파를 탔다.
* [[8월 13일]]: 미국 유명 록밴드 [[메탈리카]]가 정규 5집 앨범 <[[Metallica(음반)|Metallica]]>를 발매했다.
* [[8월 14일]]
* '제2차 범민족대회 전야제'가 경희대 노천극장에서 개최되었다.
* 종군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일제에 의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면서 위안부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 일본 [[NTT]]가 [[NTT도코모]]를 세웠다.
* [[8월 15일]]
* 노태우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합작공장 건설 등의 구체적 대북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 경찰은 전대협의 범민족대회 사수 및 북측대표단 환영대회 개최를 저지하였다.
* [[8월 18일]]: 소련 군부 내 보수파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고르바초프 [[러시아 대통령|대통령]]을 실각시켜 납치·연금했다.([[8월 쿠데타]])
* [[8월 19일]]: 중국 옌지에서 '한민족 과학기술자 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 [[8월 21일]]: 소련 쿠데타 실패에 따라 최고회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복권을 결의하였다.
* [[8월 22일]]
* 대한불교조계종은 7대 종정에 성철 스님을 재추대하였다.
* 양궁선수 김수녕이 제36회 폴란드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하였다.
* 12호 [[태풍]] '글래디스'가 한반도 남부에 상륙했다.
* [[8월 23일]]: 태풍 '글래디스'의 영향으로 부경권 일대에 집중호우가 발생해 44명이 사망/실종되었다.
* [[8월 24일]]
* 한국 남녀 양궁팀이 폴란드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동반 우승하였다.
* [[우크라이나]]가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직을 사임했다.
* [[8월 25일]]
* 미국 육상선수 칼 루이스가 제3회 도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결승에서 9초 86으로 세계신기록을 수립하였다.
* [[리누스 토발즈]]가 [[유즈넷]] 뉴스에 새 [[운영 체제|OS]]를 만들고 있다고 공개했다.
* [[8월 26일]]: 경찰청 보안국은 지하 이념조직 '반제반파쇼민중민주주의혁명그룹'을 적발해 박성인과 고민택 등 13명을 구속하고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반제반파쇼민중민주주의 혁명그룹 사건)
* [[8월 27일]]: [[몰도바]]가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 [[8월 30일]]: [[아제르바이잔]]이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 [[8월 31일]]: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했다.
==== 9월 ====
* [[9월 1일]]: KAL 007기 희생자 추모식이 참사 8년만에 사할린 근해에서 개최되었다.
* [[9월 2일]]: 부시 미국 대통령은 라트비아 등 발트 3국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 [[9월 6일]]
* 소련측은 라트비아 등 발트 3국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시민들이 공산당 불법화 및 일리에스쿠 정권 퇴진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 [[9월 8일]]: [[북마케도니아|마케도니아]]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유고 연방]]으로부터 독립했다.
* [[9월 10일]]
* 제156회 정기국회가 개회되었다.
* 종전의 신민당과 (꼬마)민주당이 합쳐져 '[[민주당(1991년)|민주당]]'이 출범되었다.
* 북한 평양에서 제7차 77그룹 아시아지역 각료회의가 개최되었다.
* [[9월 12일]]: 제2회 세계한민족체전이 서울 잠실에서 개최되었다.
* [[9월 13일]]: 북한측은 캄보디아에 주재 대사관을 개설했다.
* [[9월 17일]]
* (현지시간 기준)유엔 총회는 남북한 양국의 [[국제연합|UN]] 동시가입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날 남북한 양국과 함께 UN에 가입한 국가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마셜 제도]], [[미크로네시아 연방]]이다.]'''
* 문화부는 일제강점기 및 6.25 전쟁 중에 밀반출되어 해외에 흩어진 문화재가 11,985점이라고 밝혔다.
* 이날 밤 서울대 대학원생 한국원 씨가 우연히 시위 현장을 지나가다 진압을 위해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아 숨졌다.
* [[아르메니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 <[[피구왕 통키]]> 애니판이 일본 TV도쿄에서 첫 전파를 탔다.
* [[9월 19일]]
* 노태우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 및 멕시코 방문을 위해 출국하였다.
* '살기좋은 구로지역 만들기 여성회(이하 살구여성회)'가 결성되었다.
* [[9월 20일]]: 북한-그레나다 양국이 외교관계 재개에 합의하였다.
* [[9월 23일]] ~ [[9월 24일]]: (현지시간 기준)현대 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주말이라 할 수 있는 날. [[너바나]]의 [[Nevermind]], [[프라이멀 스크림]]의 [[Screamadelica]],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의 [[The Low End Theory]],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Blood Sugar Sex Magik]], [[픽시즈]]의 [[Trompe le Monde]]가 한번에 발매된 임팩트 대중성 평론 영향력 모두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는 주간.[* [[카이어스]]의 데뷔앨범 Wretch의 발매일이기도 하고, [[블러(밴드)|블러]]의 데뷔앨범 [[Leisure]]의 미국 발매일이기도 하다. 앨범 그 자체로는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하지만 음악사적으로는 의미를 갖는 일.]
* [[9월 25일]]: 북한-리투아니아 양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9월 29일]]: '전청협 결성 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10월 ====
* [[10월 1일]]: 북한-라트비아 양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10월 3일]]: 한국-부룬디 양국이 수교에 합의하였다.
* [[10월 4일]]: 김일성-장쩌민 간 북중정상회담이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
* [[10월 7일]]: [[MBC]]에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가 첫 전파를 탔다.
* [[10월 8일]]: 국립중앙박물관은 소련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공동으로 '스키타이 황금전'을 개최하였다.
* [[10월 9일]]: [[전노협]], 업종회의 등을 주축으로 한 'ILO 기본조약 비준과 노동법 개정을 위한 전국노동자공동대책위원회(이하 ILO공대위)'가 결성되었다.
* [[10월 10일]]: 닛폰애니메이션이 제작한《[[축구왕 슛돌이]]》가 일본 TV도쿄에서 첫 전파를 탔다.
* [[10월 11일]]: '전국지역의료보험노동조합총연합(이하 의보총련)'가 결성되었다.
* [[10월 13일]]
* 프로야구팀 해태 타이거즈가 빙그레를 꺾어 한국시리즈 통산 6회 우승을 달성하였다.
* 어린 고아를 입양하여 감금해 수년간 가혹한 곡예훈련을 시킨 서커스업자 심동선이 구속되었다(서커스소녀 심주희 감금학대 사건).
* [[10월 15일]]: 국회 본회의는 <쌀 등 기초식량 수입반대 결의안> 및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지원을 위한 의원단 파견 결의안>을 의결하였다.
* [[10월 22일]]: 14세기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가 미국 뉴욕 소더비경매장에서 176만 달러(한화 13억 2천만 원)에 낙찰되었다.
* [[10월 23일]]: 남북 양국 총리들은 제4차 평양 남북고위급회담 1차 공개회의 기조연설에서 새 합의안을 제시하였다.
* [[10월 25일]]
* 문화부는 태백산 천제단을 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지정하였다.
* [[컴파일(게임 회사)|컴파일]]은 <[[뿌요뿌요]]>를 [[MSX2]] 및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FDS]]용으로 일본에 발매하였다.
* [[10월 26일]]: '외국인 산업기술연수 사증 발급 등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이 제정되었다.
* [[10월 30일]]: 북한 강원도 [[평강역]] 구내 화약고가 폭발해 120명이 숨졌다.([[평강역 폭발사고]])
==== 11월 ====
* [[11월 1일]]
* 서울경찰청은 제2단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 정부는 '해외투자기업연수생제도'를 도입하였다.
* 현대문화신문사가 석간일간지 <[[문화일보]]>를 창간하였다.
* <광주매일>이 창간되었다.
* [[11월 3일]]: 이스라엘-요르단-팔레스타인 3자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평화회담을 열었다.
* [[11월 6일]]
* 삼성그룹은 신세계백화점과 전주제지를 계열사에서 분리키로 결정하였다.
* 태풍 '셀마'가 필리핀을 덮쳐 사망자 3천명, 실종자 3천명을 냈다.
* [[11월 9일]]: 프랑스의 원로 샹송가수 [[이브 몽땅]]이 세상을 떴다.
* [[11월 12일]]: 인도네시아군이 딜리 산타크루즈 공동묘지에서 독립운동가 세바스티앙 고메스의 추모를 위해 평화행진하던 동티모르 주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이 총격으로 사망자 271명, 부상자 278명, 실종자 270명을 냈다.(산타크루즈 대학살)
* [[11월 18일]]
* '국제사회주의자들(IS)'가 결성되었다.
* 제5차 북-일 수교회담이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
* [[11월 19일]]: 가천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 [[11월 20일]]: 민자당은 '제주도개발특별법안'을 확정하였다.
* [[11월 21일]]: 유엔 안보리는 케야르 대신 이집트의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를 새 사무총장직에 선출하였다.
* [[11월 23일]]: [[MBC]]에서 [[주말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첫 전파를 탔다.
* [[11월 24일]]: 영국 유명 록밴드 [[퀸(밴드)|퀸]]의 프런트맨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를 고백한 지 하루도 안 되어 사망하였다.
* [[11월 25일]]: 서울 라마다 올림피아호텔에서 남북 여성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이란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이는 분단 이래 남북 여성대표 간의 첫 교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 [[11월 26일]]
* 학고재는 <분류두공부시언해> 25권 중 12권을 발견/공개하였다.
* 미국 유명가수 [[마이클 잭슨]]의 앨범 [[Dangerous]]가 미국 전역에 발매되었다.
* [[11월 30일]]: 통일교 총재 문선명과 세계일보 사장 박보희가 중국을 거쳐 북한을 방문하였다.
==== 12월 ====
* [[12월 1일]]
* 전민련의 후신으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약칭 전국연합)이 새로 결성되었다.
* 서총련, 서청협 등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민족통일서울연합(이하 서울연합)'이 결성되었다.
* [[12월 3일]]: '전국도시철도노동조합연맹'이 결성되었다.
* [[12월 4일]]: [[미국]] [[항공사]] [[팬 아메리칸 항공]]이 운항을 종료했다
* [[12월 5일]]: 도서출판 대원이 어린이/청소년 대상 주간 [[만화잡지]] <[[소년챔프]]>를 창간하였다.
* [[12월 6일]]
*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보상요청소송을 도쿄지방재판소에 제기하였다.
* 통일교 총재 문선명이 김일성 북한 주석과 회담을 열었다.
* [[12월 8일]]: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이 [[독립국가연합]]을 결성했다.
* [[12월 9일]]
* 한국통신이 [[한국경제신문]]으로부터 [[PC통신]] '[[케텔]]'을 인수하였다.
* [[SBS|서울방송]]이 수도권 지역에서 텔레비전 방송을 개시하였다.
* 외무부는 한국 정부가 ILO에 가입했다고 발표하였다.
*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가 폐간되었다.
* [[12월 10일]]
*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이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SBS에서 [[드라마]] <고독의 문>이 첫 전파를 탔다.
* [[12월 11일]]: SBS에서 <사랑의 징검다리>와 <남편은 요리사>, <코미디 전망대>가 첫 전파를 탔다.
* [[12월 13일]]: 남북 양국 총리는 5차 고위급회담에서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이하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하였다. ~~[[노태우|물태우]]의 몇 안 되는 업적 중 하나~~
* [[12월 14일]]: SBS에서 <생방송 행복찾기>가 첫 전파를 탔다.
* [[12월 15일]]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이하 천정연)'이 결성되었다.
* '한국노동자정당 건설 추진위원회(이하 노정추)'가 발족되었다.
* <[[SBS 인기가요]]>가 첫 전파를 탔다.
* [[12월 16일]]
* 육상선수 이창우가 제22회 요미우리 국제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하였다.
* SBS 최초의 사극 <유심초>가 첫 전파를 탔다.
* 카자흐 공화국이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 [[이집트]] ~ [[사우디아라비아]] 간 경유 여객선 살렘 익스프레스(Salem Express)호가 홍해 해상에 침몰해 최소 500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사망자를 남겼다.
* [[12월 17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기존 연방체제 해체 후 1992년 1월 1일을 기해 독립공동체를 출범시키기로 합의하였다.
* [[12월 20일]]: 미국 정부는 2차대전 중 한국인 위안부 동원에 일본이 개입했다는 내용의 공식문서를 공개하였다.
* [[12월 21일]]: 소련 산하 11개 공화국이 연방 소멸 및 독립국가연합 창설에 합의/서명하였다.
* [[12월 23일]]: 북한-키프로스 간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 [[12월 24일]]: 러시아 공화국이 [[UN]]에 가입해 소련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 [[12월 25일]]
* 북한 조선로동당 중앙위는 제6기 19차 총회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승인한 후 김정일을 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했다.
*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소비에트 연방 대통령으로서의 활동을 중단한다"고 선언 후 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이로써 소련은 69년만에 붕괴 수순을 밟게 되었다.
* [[12월 26일]]
* 북한은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한편 남북 양국이 핵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갖지 말 것을 남한 정부에 제의하였다.
* '''[[소련]]이 공식적으로 완전 해체되었다. 그리고 완벽하게 [[냉전]]이 종료되었다.'''
* [[12월 27일]]: [[대한민국 정부]]는 [[러시아]] 연방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 [[12월 28일]]: 북한측은 라진-선봉지역을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선정하였다.
* [[12월 30일]]
* 한국 정부는 구소련 산하 10개국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 경북 울진군민 1천여 명이 핵폐기장 설치 항의시위를 벌이며 군청, 한전, 파출소를 습격했다.
*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설립되었다.
* [[12월 31일]]
* 서울신문사는 <[[선데이 서울]]>을 23년만에 종간시켰다.
* 남북 양국은 핵관련 3차 대표접촉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합의하였다.
* '청소년기본법'이 제정/시행되었다.
=== 가상 ===
* 7~8월: [[무인도 이야기]]의 시작 시점.[* [[무인도 이야기 3]]로부터의 역산.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대략 [[7월 29일]]부터 [[8월 18일]] 사이의 어딘가이다.]
* [[6월 6일]]: 모스크바의 체르노톤 연구소에서 의문의 대폭발이 일어나 비밀리에 개발중이던 [[생물학 무기]] '루시퍼 알파'가 상승기류를 타고 대기중에 퍼졌다. 이로 인해 유라시아 대륙 인구의 80%(전세계 인구의 절반 가량)가 사망하였고, 후일 이 바이오하자드는 '대참사'라고 불리게 되었다. - [[스내쳐]][* [[메가CD]]판은 유일한 해외판인데다 발매일자가 늦은 등의 이유로 모든 사건들이 5년씩 미뤄졌다. 즉, 대참사는 1996년으로, 주인공의 활약 시기는 2047년 12월로 수정되었다.]
* [[8월 18일]]: 소련내의 강경파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고르바초프와 옐친을 구금하고 정권을 차지한다. 동유럽의 동맹국들이 몰락하자 쿠데타 정부는 중국,북한과 관계를 강화한다. - [[워게임: 레드 드래곤]]의 2차 한국전쟁 캠페인
* [[8월 19일]]: 소련의 [[쿠데타]]가 성공적으로 끝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실각하고 보수 강경 정권이 들어섰다. 이후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재침공한다. - [[풀 메탈 패닉]]
* 일자 불명
* [[겁스 무한세계]] 관련
* [[공룡]]들이 현생 인류와 유사하게 현대 문명을 이룩한 도마뱀 나라의 현재 연도.
* [[1888년]] 거대 운석이 충돌하여 전 세계가 멸망하고 [[뉴질랜드]]만 살아남은 [[루시퍼]]-1의 현재 연도.
* [[덩국맨]]이 O.D.G에서 퇴출당하고 [[홍콩행 게이바|백호를 데리고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 [[그놈 목소리(영화)|그놈 목소리]]의 배경연도.[* 실제로 1991년에 발생한 [[이형호 유괴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 오버킬]]의 배경연도.
*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배경연도[* 주인공인 류의 탄생연도가 1964년 기준으로 27세일 때, 제작 연도와 어느정도 일치한다.]
* [[폭력써클]]의 배경연도.
* [[폴링 다운]]의 배경연도
* [[하이스코어 걸]] 초반부의 배경연도.
* [[핫라인 마이애미 2: 롱 넘버]]의 배경연도
== 탄생 ==
=== 실존인물 ===
* [[1월 1일]] - [[스테이시 마틴]]: [[프랑스]]의 [[배우]].
* [[1월 2일]]
* [[정유지]]: [[대한민국]]의 가수, 뮤지컬 배우. [[걸그룹]] [[베스티]]의 전 멤버.
* [[정진하(개그맨)|정진하]]: 한국의 [[코미디언]].
* [[1월 3일]]
* [[구하라]]: [[대한민국]]의 [[가수]], [[걸그룹]] [[카라(아이돌)|카라]]의 前 멤버.
* [[조유영]]: [[한국]]의 방송인, 전 [[아나운서]].
* [[1월 7일]]
* [[안우연]]: 한국의 [[배우]]. 본명 안병호.
* [[에당 아자르]]: [[벨기에]]의 [[축구선수]].
* [[클레망 그르니에]]: [[프랑스]]의 축구선수.
* [[1월 8일]]
* [[신수지]]: 대한민국의 전 리듬체조 선수.
* [[신지민]]: 대한민국의 전 가수, [[걸그룹]] [[AOA(아이돌)|AOA]]의 前 멤버.
* [[스테판 사비치]]: [[몬테네그로]]의 축구 선수.
* [[1월 9일]] - [[페르난다 리즈]] - [[브라질]] [[여성]] [[모델]]
* [[1월 10일]]
* [[등유(우타이테)]]: 일본의 작가, [[니코니코 동화]]의 [[우타이테]].
* [[홍현호]]: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1월 12일]] - [[서이안]]: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서지혜.
* [[1월 15일]] - [[마르크 바르트라]]: [[스페인]]의 축구 선수.
* [[1월 17일]]
* [[이기섭]]: 한국의 가수, 그룹 [[유키스]]의 前 멤버.
* [[에사페카 라피]]: 핀란드의 랠리 드라이버.
* [[1월 18일]] - [[지용환]]: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 [[1월 19일]]
* [[신노열]]: 대한민국의 [[프로게이머]].
* [[Ugly Duck]]:대한민국의 래퍼. 본명 선주경.
* [[1월 21일]] - [[조수향]]: 대한민국의 배우.
* [[1월 24일]] - [[기리보이]]: 대한민국의 [[래퍼]]. 본명 홍시영.
* [[1월 26일]] - [[알렉스 산드루]]: [[브라질]]의 축구 선수.
* [[1월 27일]] - [[강성규]]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1월 28일]]
* [[김재민]]: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정형식]]: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1월 29일]] - [[이정현(코치)|이정현]](Poohmandu): [[대한민국]]의 前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現 [[리그 오브 레전드]] [[코치(스포츠)|코치]].
* [[1월 30일]] - [[김정우(프로게이머)|김정우]]: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전 [[프로게이머]].
* [[2월 3일]] - [[염혜선]]: [[대한민국]]의 [[배구선수]].
* [[2월 4일]] - [[아이자와 유우키]]: 대한민국의 일본 국적의 [[유튜버]].
* [[2월 5일]] - [[안다]]: 대한민국의 [[가수]], 본명 원민지.
* [[2월 8일]] - [[남우현]]: 대한민국의 가수, 보이그룹 [[인피니트]]의 멤버.
* [[2월 11일]]
* [[서은우]]: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김별.
* [[ELO]]: 대한민국의 가수, 본명 오민택.
* [[2월 12일]]
* [[장경환]]: [[대한민국]]의 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 [[정종현]]: 대한민국의 [[프로게이머]].
* [[히로나카 아야카]]: [[일본]]의 [[아나운서]].
* [[2월 13일]] - [[엘리아큄 망갈라]]: [[프랑스]]의 축구 선수.
* [[2월 14일]] - [[김형석(1991)|김형석]]: [[대한민국]]의 배우.
* [[2월 16일]] - [[세르히오 카날레스]]: [[스페인]]의 축구 선수.
* [[2월 17일]]
* [[에드 시런]]: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 [[보니 라이트]]: [[영국]]의 [[배우]].
* [[2월 18일]] - [[박기량(치어리더)|박기량]]: 한국의 [[치어리더]].
* [[2월 19일]] - [[리야드 마레즈]]: [[알제리]]의 축구 선수.
* [[2월 20일]] - [[릴샴]]: [[대한민국]]의 래퍼. 본명 김하슴.
* [[2월 21일]]
* [[김호드]]: 한국의 [[만화가]].
* [[세카이(EXILE)|세카이]]: 일본의 가수, 그룹 [[FANTASTICS from EXILE TRIBE]]의 멤버.
* [[솔라]]: 대한민국의 가수, 걸그룹 [[마마무]]의 멤버. 본명 김용선.
* [[지소연(축구선수)|지소연]]: 한국의 축구 선수.
* [[리야드 마레즈]]: 알제리의 축구 선수.
* [[2월 24일]]
* [[나혜미]]: [[대한민국]]의 [[배우]].
* [[에밀리 디도나토]]: [[미국]]의 [[모델]].
* [[2월 26일]]
* [[이창섭(BTOB)|이창섭]]: 대한민국의 가수, 보이그룹 [[BTOB]]의 멤버.
* [[CL]]: 대한민국의 가수, 걸그룹 [[2NE1]]의 전 멤버.
* [[2월 27일]]
* [[서준(1991)|서준]]: 대한민국의 배우.
* [[렌부츠 미사코]]: [[일본]]의 [[배우]].
* [[2월 28일]] - [[야마키타 사키]]: 일본의 성우.
* [[3월 1일]]
* [[최은정(모델)|최은정]]: 한국의 모델 겸 가수
* [[노력왕먼치]]: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본명 이도흥.
* [[3월 3일]]
* [[홍지윤(배우)|홍지윤]]: 대한민국의 배우.
* [[박초롱]]: 대한민국의 가수, 걸그룹 [[Apink]]의 멤버.
* [[3월 8일]] - [[윤지성]]: 대한민국의 가수, 보이그룹 [[Wanna One]]의 전 멤버.
* [[3월 10일]]
* [[김영미]]: 한국의 [[컬링]] 선수.
* [[미르(엠블랙)|미르]]: 한국의 가수, 그룹 [[엠블랙]]의 멤버. 본명 방철용.
* [[요네즈 켄시]]: [[일본]]의 가수.
* [[정소라]]: 대한민국의 방송인, 2010 [[미스코리아]] 진.
* [[3월 11일]]
* [[링링(1991)|링링]]: 중국의 가수, 일본 걸그룹 [[모닝구무스메]]의 전 멤버.
* [[알레산드로 플로렌치]]: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3월 13일]]
* [[권나라]]: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배우, 걸그룹 [[헬로비너스]]의 前 멤버.
* [[일라이(1991)|일라이]]: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미국]]의 [[래퍼]], 그룹 [[유키스]]의 前 멤버.
* [[3월 16일]] - [[이진아(가수)|이진아]]: [[대한민국]]의 가수.
* [[3월 17일]] - [[한지안]]: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김희진.
* [[3월 18일]] - [[이토 세츠오]]: [[일본]]의 [[성우]].
* [[3월 21일]] - [[앙투안 그리즈만]]: 프랑스의 축구선수.
* [[3월 23일]] - [[센가 켄토]]: 일본의 가수, 보이그룹 [[Kis-My-Ft2]]의 멤버.
* [[3월 27일]]
* [[오승윤]]: 한국의 배우.
* [[정유정(성우)|정유정]]: 한국의 성우.
* [[3월 28일]]
* [[류혜영]]: 한국의 배우.
* [[이호원]]: 한국의 배우. 보이그룹 [[인피니트]]의 전 멤버.
* [[3월 29일]]
* [[아이린(레드벨벳)|아이린]]: 대한민국의 가수, 걸그룹 [[레드벨벳]], [[레드벨벳-아이린&슬기]]의 멤버. 본명 배주현.
* [[은골로 캉테]]: [[프랑스]]의 축구 선수.
* [[4월 2일]]
* [[Quavo]]: [[Migos]]의 멤버.
* [[김상욱(프로게이머)|김상욱]]: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 [[임정우]]: 한국의 [[야구]]선수.
* [[4월 3일]] - [[혜미(나인뮤지스)|혜미]]: 한국의 가수,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멤버. 본명 표혜미.
* [[4월 5일]]
* [[김정수(1991)]]: 한국의 [[야구]] 선수.
* [[나다니엘 클라인]]: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4월 8일]] - [[타카하시 미나미]]: 일본의 가수, 탤런트. 걸그룹 [[AKB48]]의 전 멤버이자 1대 총감독.
* [[4월 10일]] - [[잇섭]]: 대한민국의 IT 유튜브 크리에이터. 본명 황용섭.
* [[4월 11일]]
* [[마노 에리나]]: [[일본]]의 배우, 전 아이돌 가수.
* [[티아고 알칸타라]]: [[스페인]]의 축구 선수.
* [[에인슬리 로드리게즈]]: [[미국]]의 피트니스 모델.
* [[4월 14일]] - [[김용지]]: 대한민국의 배우.
* [[4월 15일]]
* [[아리오카 다이키]]: 일본의 가수, 보이그룹 [[Hey! Say! JUMP]]의 멤버.
* [[소니쇼]]: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 [[4월 17일]] - [[정보경]]: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
* [[4월 20일]] - [[노나카 미사토]]: 일본의 가수, 걸그룹 [[AKB48]]의 전 멤버.
* [[4월 22일]]
* [[사이토 소마]]: [[일본]]의 성우.
* [[김인재]]: 한국의 [[오버워치]] 프로게이머.
* [[4월 23일]]
* [[신대근]]: 한국의 프로게이머.
* [[자이언트 핑크]]: [[대한민국]]의 래퍼. 본명 박윤하.
* [[4월 25일]] - [[정인선]]: [[대한민국]]의 [[배우]]
* [[4월 29일]]
* [[김희진(배구선수)|김희진]]: 한국의 [[배구]]선수.
* [[스즈키 마리야]]: 일본의 가수, 걸그룹 [[AKB48]]의 전 멤버.
* [[정혜성]]: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정은주.
* [[쭈니]]: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 [[4월 30일]]
* [[이쿠타 테루]]: 일본의 성우.
* [[트래비스 스캇]] - 미국의 래퍼, 디자이너.
* [[5월 2일]]
* [[유정(브레이브걸스)|유정]]: 걸그룹 [[브레이브걸스]]의 멤버. 본명 남유정.
* [[정진운]]: [[한국 아이돌]] 그룹 [[2AM]]의 멤버.
* [[5월 3일]] -
* [[울산큰고래]]: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 [[서사무엘]]: 대한민국의 가수.
* [[5월 4일]] - [[김세연(아나운서)|김세연]]: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5월 5일]] - [[라울 히메네스]]: [[멕시코]]의 축구 선수.
* [[5월 6일]] - [[안은진(배우)|안은진]]: 대한민국의 배우.
* [[5월 7일]] - [[저스디스]]: 대한민국의 래퍼. 본명 허승.
* [[5월 10일]] - [[이민지(미스코리아)|이민지]]: 대한민국의 배우, 2015 미스코리아 진.
* [[5월 11일]] - 카와사키 료: 일본의 [[작곡가]].
* [[5월 13일]] - [[프란시스 코클랭]]: [[프랑스]]의 축구 선수.
* [[5월 15일]] - [[소율(가수)|소율]]: 대한민국의 가수, 걸그룹 [[크레용팝]]의 전 멤버.
* [[5월 16일]] - [[애슐리 와그너]]: [[미국]]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 [[5월 17일]] - [[김창혁]]: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5월 22일]] - [[수호(EXO)|수호]]: 대한민국의 가수, [[EXO]], [[EXO-K]]의 멤버. 본명 김준면.
* [[5월 26일]] - [[조아영(배우)|조아영]]: 대한민국의 배우, 걸그룹 [[달샤벳]]의 전 멤버.
* [[5월 27일]] - [[우치다 히로키]]: [[일본]]의 [[각본가]].
* [[5월 28일]]
* [[지동원]]: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 [[알렉상드르 라카제트]]: [[프랑스]]의 축구 선수.
* [[5월 29일]]
* [[하야미 사오리]]: 일본의 [[성우]].
* [[왕대륙]]: 대만의 [[배우]].
* [[5월 30일]] - [[Yuly]]: 일본의 [[로컬 아이돌]] [[Yamakatsu]]의 멤버.
* [[6월 1일]] - [[조병세(프로게이머)|조병세]]: 한국의 프로게이머.
* [[6월 2일]] - [[해나(뮤지컬 배우)|이해나]]: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걸그룹 [[마틸다(아이돌)|마틸다]]의 전 멤버.
* [[6월 3일]]
* [[박수호]]: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 [[조이현(1991)|조이현]]: 대한민국의 배우, 걸그룹 [[파이브돌스]], [[DIA(아이돌)|DIA]]의 전 멤버.
* [[6월 4일]]
* [[시윤(1991)|김시윤]]: 대한민국의 가수, [[한국 아이돌]] 그룹 [[유키스]]의 前 멤버.
* [[로렌초 인시녜]]: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6월 6일]]
* [[손동운]]: 대한민국의 가수, [[하이라이트(아이돌)|하이라이트]]의 멤버.
* [[시로타 리카]]: 일본의 [[AV 여배우]], [[일본 아이돌]] 그룹 [[AKB48]]의 전 멤버. 본명 요네자와 루미(米沢瑠美).
* [[장재인]]: 대한민국의 가수.
* [[6월 7일]] - [[릴보이]]: 대한민국의 래퍼, 그룹 [[긱스(가수)|긱스]]의 멤버. 본명 오승택.
* [[6월 8일]] - [[스테파니 미초바]]: 독일의 모델.
* [[6월 11일]] - 오혜선: [[한국]]의 [[기상캐스터]].
* [[6월 13일]] - [[강시라]]: 한국의 가수.
* [[6월 14일]]
* [[코스타스 마놀라스]]: [[그리스]]의 축구 선수.
* [[송다은(배우)|송다은]]: 대한민국의 배우.
* [[6월 15일]] - [[나카무라 아츠키]]: 일본의 성우 및 가수.
* [[6월 16일]]
* [[신우(B1A4)|신우]]: [[한국 아이돌]] 그룹 [[B1A4]]의 멤버. 본명 신동우.
* [[임영웅]]: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6월 18일]] - [[가진동]]: [[대만]]의 배우이자 마약 사범.
* [[6월 19일]]
* 다케자와 미기와: 일본의 가수, 그룹 [[Goose house]]의 멤버.
* [[네타 리브킨]]: 이스라엘의 前 리듬체조 선수
* [[6월 20일]] - [[칼리두 쿨리발리]]: [[세네갈]]의 축구 선수.
* [[6월 21일]]
* [[민(1991)|민]]: 대한민국의 가수, [[걸그룹]] [[miss A]]의 전 멤버. 본명 이민영.
* [[안승민]]: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장하나(코미디언)|장하나]]: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6월 24일]]
* [[쿠와하라 유우키]]: [[일본]]의 [[성우]].
* [[키타하라 리에]]: 일본의 배우, 걸그룹 [[AKB48]], [[NGT48]]의 전 멤버이자 NGT48의 1대 캡틴.
* [[김민구]]: 한국의 [[농구]]선수
* [[6월 25일]] - [[빅터 완야마]]: [[케냐]]의 축구 선수.
* [[6월 26일]] - [[하나에 나츠키]]: 일본의 성우.
* [[6월 27일]]
* [[박민하(1991)|박민하]]: 대한민국의 배우.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전 멤버.
* [[이원근]]: 대한민국의 배우.
* [[야마자키 하루카]]: 일본의 성우, 가수
* [[6월 28일]]
* [[강민혁(가수)|강민혁]]: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밴드 [[씨엔블루]]의 드러머.
* [[서현(소녀시대)|서현]]: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본명 서주현.
* [[케빈 더 브라위너]]: [[벨기에]]의 [[축구 선수]].
* [[6월 29일]] - [[석현준]]: 한국의 [[축구]]선수.
* [[6월 30일]] - [[카호]]: 일본의 배우.
* [[7월 1일]]
* [[정명훈(프로게이머)|정명훈]]: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現 [[리그 오브 레전드]] [[코치(스포츠)|코치]].
* [[루카스 바스케스]]: [[스페인]]의 축구 선수.
* [[7월 2일]] - [[김고은]]: 대한민국의 배우.
* [[7월 3일]]
* [[이타노 토모미]]: 일본의 가수, 배우. 걸그룹 [[AKB48]]의 전 멤버.
* [[김종규(농구)|김종규]]: 한국의 농구선수.
* [[남태희]]: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 [[7월 6일]] - [[백상현]](따효니):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하스스톤]] 프로게이머.
* [[7월 7일]] - [[최태준]]: 대한민국의 배우.
* [[7월 8일]]
* [[버질 판데이크]]: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 [[강태리]]: 대한민국의 모델, 기업인.
* [[7월 10일]]
* [[마에다 아츠코]]: [[일본]]의 [[배우]], 걸그룹 [[AKB48]]의 전 멤버.
* [[김윤희]]: [[한국]]의 [[리듬체조]] 선수.
* [[알리나 막시멘코]]: [[우크라이나]]의 [[리듬체조]] 선수.
* [[7월 11일]] - [[사카구치 켄타로]]: 일본의 배우, [[모델]].
* [[7월 12일]] - [[하메스 로드리게스]]: [[콜롬비아]]의 [[축구 선수]].
* [[7월 14일]] - [[JIHO GIVENCHY|지호지방시]]: [[대한민국]]의 한국계 미국인 [[래퍼]]. 본명 정지호.
* [[7월 15일]]
* [[양석환]]: 한국의 야구 선수.
* [[카시와기 유키]]: 일본의 가수, 걸그룹 [[AKB48]]의 멤버.
* [[다닐루]]: [[브라질]]의 축구 선수.
* [[히오카 나츠미]]: 일본의 성우.
* [[7월 19일]]
* [[정대현(좌완투수)|정대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박상면(프로게이머)|박상면]]: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Shy'.
* [[7월 20일]] - [[캐틀린 런크]] : [[미국]]의 피트니스 모델.
* [[7월 23일]]
* [[이호준(프로게이머)|이호준]]: 한국의 프로게이머.
* [[이광진]]: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크리스티아네 엔들레르]]: 칠레의 축구선수.
* [[김성은(1991)|김성은]]: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 [[세글자]]: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본명 전승환.
* [[7월 24일]] - [[황병영]]: 한국의 프로게이머.
* [[7월 27일]]
* [[마츠이 레나]]: 일본의 배우. 걸그룹 [[SKE48]]의 전 멤버.
* [[하루바 네기]]: 일본의 [[만화가]].
* [[7월 30일]]
* [[벤(가수)|벤]]: 대한민국의 가수. 걸그룹 [[베베미뇽]]의 전 멤버. 본명 이은영.
* [[송승혁]]: 대한민국의 가수, 보이그룹 [[Apeace]]의 멤버. 본명 송승일.
* [[지율]]: 한국의 배우, 걸그룹 [[달샤벳]]의 전 멤버. 본명 양정윤.
* [[다리아 콘다코바]]: 러시아의 前 리듬체조 선수
* [[7월 31일]] - [[문선엽]]: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8월 1일]] - [[정민수(프로게이머)|정민수]]: 대한민국의 전 [[스타크래프트2]] 프로게이머.
* [[8월 2일]] - [[관절(만화가)|관절]]: 대한민국의 웹툰 작가, 인터넷 방송인.
* [[8월 5일]]
* [[김지수(축구선수)|김지수]]: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위하준]]: [[대한민국]]의 [[배우]].
* [[8월 3일]] - [[마스다 유카]]: 일본의 탤런트, 걸그룹 [[AKB48]]의 전 멤버.
* [[8월 7일]]
* [[마이크 트라웃]]: [[미국]]의 [[야구]]선수.
* [[이지영(1991)|이지영]]: 한국의 배우.
* [[8월 8일]] - [[조엘 마티프]]: [[카메룬]]의 축구 선수.
* [[8월 9일]]
* [[헤이즈(가수)|헤이즈]]: [[대한민국]]의 가수. 본명 장다혜.
* [[오지은(1991)|오지은]]: [[대한민국]]의 전 [[아나운서]].
* [[알렉사 블리스]]: [[미국]]의 레슬러. 본명 알렉시스 렉시 카우프먼.
* [[로복]]: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본명 정지복.
* [[8월 11일]]
* [[조현영]]: 걸그룹 [[레인보우(아이돌)|레인보우]] 멤버
* [[효기심]]: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본명 최영효.
* [[8월 13일]] - [[박종훈]]: 한국의 [[야구선수]].
* [[8월 15일]] - [[토죠 타이키]]: 일본의 야구선수.
* [[8월 16일]]
* [[권리세]]: 한국의 가수,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의 멤버.
* [[훈(유키스)|훈]]: 한국의 가수, 보이그룹 [[유키스]]의 멤버. 본명 여훈민.
* [[이재도]]: 한국의 농구선수.
* [[이반나 린치]]: 아일랜드의 배우
* [[8월 19일]] - [[달총]]: 대한민국의 가수. 본명 임혜경.
* [[8월 20일]] - [[한호정]]: 2015 미스코리아 미.
* [[8월 21일]] - [[주리온]]: 대한민국의 유튜브 크리에이터.
* [[8월 22일]] - [[조보아]]: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조보윤.
* [[8월 24일]]
* [[이영한]]: 대한민국의 전 프로게이머.
* [[임태규]]: 대한민국의 전 프로게이머.
* [[8월 26일]]
* [[김민석(가수)|김민석]]: [[한국]]의 가수, 그룹 [[멜로망스]]의 보컬.
* [[딜런 오브라이언]]: [[미국]]의 배우.
* [[8월 27일]] - [[이성열(인피니트)|이성열]]: 한국의 가수, 보이그룹 [[인피니트]]의 멤버.
* [[9월 1일]] - [[김민영]]:대한민국의 모델.
* [[9월 2일]] - [[유니스(DIA)|유니스]]: 한국의 가수, 걸그룹 [[DIA(아이돌)|DIA]]의 멤버. 본명 허수연.
* [[9월 4일]]
* [[신동원]]: 한국의 프로게이머.
* [[엄준식]]: 한국의 前 카카오TV PD.
* [[9월 5일]] - [[류제홍]]: 한국의 오버워치 프로게이머.
* [[9월 8일]] - [[박소담]]: 대한민국의 배우.
* [[9월 9일]] - [[오스카(축구선수)|오스카]]: [[브라질]]의 [[축구 선수]].
* [[9월 10일]] - [[문예원]]: 대한민국의 배우.
* [[9월 11일]] - [[민지(스위치민지)|민지]]: 한국의 가수 겸 리포터.
* [[9월 12일]]
* [[강한울(야구선수)]]: 한국의 야구선수.
* [[토마 뫼니에]]: [[벨기에]]의 축구 선수.
* [[9월 14일]]
* [[홍나영]]: [[한국]]의 [[개그우먼]].
* [[나나(배우)|나나]]: 한국의 가수, 걸그룹 [[애프터스쿨]], [[오렌지캬라멜]]의 전 멤버. 본명 임진아.
* [[시바사키 노리코]]: [[일본]]의 성우.
* [[9월 15일]] - [[이정신]]: 대한민국의 가수, 기타리스트. 밴드 [[씨엔블루]]의 멤버,
* [[9월 17일]]
* [[코토부키 미나코]]: 일본의 성우.
* [[미나 마수드]]: 캐나다의 배우.
* [[9월 18일]] - [[김현목]]: 대한민국의 배우.
* [[9월 20일]]
* [[심동섭]]: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정혁(모델)|정혁]]: [[대한민국]]의 모델.
* [[9월 22일]] - [[두경민]] : 한국의 [[농구]]선수.
* [[9월 23일]]
* [[Key(샤이니)|Key]]: 대한민국의 가수, 보이그룹 [[샤이니]]의 멤버. 본명 김기범.
* [[코바야시 다이키]]: [[일본]]의 [[성우]].
* [[9월 24일]] - [[그냥노창]]: 대한민국의 래퍼. 본명 노창중.
* [[9월 25일]] - [[조현우]]: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9월 26일]] - [[김진우(WINNER)|김진우]]: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위너]]의 멤버.
* [[9월 27일]]
* [[시모나 할렙]]: [[루마니아]]의 [[테니스]] 선수.
* [[마르첼 할슈텐베르크]]: [[독일]]의 축구선수.
* [[9월 28일]] - [[토마루 치요]]: [[일본]]의 [[성우]].
* [[10월 2일]] - [[호베르투 피르미누]]: [[브라질]]의 축구 선수.
* [[10월 3일]]
* [[박성균]]: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타카죠 아키]]: 일본의 탤런트. 걸그룹 [[AKB48]]의 전 멤버. 본명 타카하시 아키.
* [[10월 4일]] - [[노동건]]: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10월 5일]] - [[코무로 케이]]: [[일본]]의 법무사. 일본 황족 [[마코 공주|아키시노노미야 마코]]의 약혼녀.
* [[10월 7일]]
* [[니콜(가수)|정니콜]]: 미국 국적의 대한민국의 가수. 걸그룹 [[카라(아이돌)|카라]]의 前 멤버
* [[레이(EXO)|레이]]: 중국의 가수, 보이그룹 [[EXO]], [[EXO-M]]의 멤버. 본명 장이씽(张艺兴).
* [[10월 10일]]
* [[김슬기]]: 대한민국의 배우.
* [[제르단 샤키리]]: [[스위스]]의 축구 선수.
* [[10월 11일]]
* [[조소진]]: 대한민국의 가수.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전 멤버.
* [[토비 폭스]]: 미국의 음악가, 게임 개발자.
* [[하루나 루나]]: 일본의 가수, 모델. 본명 이토 아야(伊藤 彩).
* [[니시야마 코타로]]: 일본의 성우.
* [[10월 13일]]
* [[강아랑]]: [[대한민국]]의 [[기상캐스터]]. [[미스춘향]] 출신.
* [[오왼]]: 대한민국의 힙합 가수. 본명 김현우.
* [[10월 15일]] - [[나카야 사야카]]: 일본의 성우. 걸그룹 [[AKB48]]의 前멤버
* [[10월 16일]] - [[장예인]]: [[한국]]의 [[방송인]], 전 아나운서.
* [[10월 18일]] - [[마후마후]]: 일본의 작가, 니코니코 동화의 남성 우타이테.
* [[10월 22일]] - [[최고기]]: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본명 최범규.
* [[10월 23일]]
* [[곽진언]]: 대한민국의 가수.
* [[권진영(축구선수)]]: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신(크로스진)]]: 한국의 가수, 그룹 [[크로스진]]의 멤버. 본명 신원호.
* [[마코 공주|아키시노노미야 마코]]: 일본의 황족.
* [[에밀 포르스베리]]: [[스웨덴]]의 축구 선수.
* [[10월 26일]] - [[이이다 리호]]: 일본의 방송인, 그라비아 모델.
* [[11월 1일]] - [[김선웅]]: 대한민국의 배우.
* [[11월 5일]] - [[김원식(축구선수)]]: 한국의 축구선수.
* [[11월 8일]]
* [[BUMZU]]: 대한민국의 [[가수]]. 본명 계범주.
* [[피글로그]]: 대한민국의 유튜브 크리에이터. 본명 김성희.
* [[이민아]]: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11월 9일]]
* [[문성현]]: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애슐리(레이디스 코드)|애슐리]]: 대한민국의 가수,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의 멤버. 본명 최빛나.
* 미야타 마리노(宮田麻里乃): 2009 미스 재팬 우승자.
* [[11월 13일]] - [[맹세창]]: 대한민국의 배우.
* [[11월 15일]] - [[송필근]]: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11월 16일]]
* [[박형식]]: 대한민국의 배우. 보이그룹 [[제국의아이들]]의 전 멤버.
* [[윤하운]](Maknoon):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 [[카사이 토모미]]: 일본의 가수. 걸그룹 [[AKB48]]의 전 멤버.
* [[11월 18일]]
* [[진영(1991)|진영]]: 한국의 배우, 프로듀서. 보이그룹 [[B1A4]]의 전 멤버.
* [[나카지마 유이]] - 일본의 성우.
* [[스텔라장]] : 대한민국의 가수, 싱어송라이터
* [[11월 20일]]
* [[이슬아(바둑)|이슬아]]: 대한민국의 [[바둑기사]].
* [[딘딘]]: 대한민국의 [[래퍼]]. 본명 임철.
* [[11월 21일]]
* [[배우희]]: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걸그룹]] [[달샤벳]]의 전 멤버.
* [[이시이 마크]]: 일본의 성우.
* [[디에고 뎀메]]: 독일의 축구선수.
* [[11월 25일]]
* [[모모노 하루나]]: 일본의 성우.
* [[케빈(1991)|케빈]]: 한국의 가수, 그룹 [[유키스]]의 前 멤버. 본명 우성현.
* [[11월 26일]] - [[마놀로 가비아디니]]: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11월 27일]]
* [[김도우(프로게이머)|김도우]]: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 [[이상이]]: 대한민국의 [[배우]].
* [[12월 1일]] - [[쑨양]]: [[중국]]의 [[수영]]선수.
* [[12월 2일]]
* [[가영(스텔라)|김가영]]: 대한민국의 가수, 걸그룹 [[스텔라(아이돌)|스텔라]]의 전 멤버.
* [[찰리 푸스]]: [[미국]]의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
* [[정다래]]: [[대한민국]]의 전 국가대표 수영선수.
* [[12월 3일]] - [[한요한]]: 대한민국의 래퍼, 작곡가.
* [[12월 7일]] - [[테이크원]]: 한국의 가수, 래퍼. 본명 김태균.
* [[12월 9일]]
* [[민호]]: 한국의 가수 겸 배우. 보이그룹 [[샤이니]]의 멤버. 본명 최민호.
* [[눈파티]]: 대한민국의 블로거, 인터넷 방송인. 본명 성진영.
* [[12월 10일]]
* [[김민철(프로게이머)|김민철]]: 대한민국의 [[프로게이머]].
* [[LE]]: 대한민국의 가수, 프로듀서. 걸그룹 [[EXID]]의 멤버. 본명 안효진.
* [[김명준(배우)|김명준]]: 대한민국의 배우.
* [[12월 11일]] - [[조재읍]]: 한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 [[12월 14일]]
* [[동하(배우)|동하]]: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 김형규.
* [[Offset]]: 미국의 가수. 그룹 [[Migos]]의 멤버. 본명 키아리 켄드렐 세퍼스 (Kiari Kendrell Cephus)
* [[선바]]: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본명 김선우.
* [[12월 15일]]
* [[최영준(축구선수)]]: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 [[기가P]]: 일본의 [[보컬로이드]] 프로듀서.
* [[12월 16일]]
* [[이자혜]]: 한국의 만화가, 웹툰 작가.
* [[정새미나]]: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12월 17일]] - [[이재진(FT아일랜드)|이재진]]: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밴드 [[FT아일랜드]]의 멤버.
* [[12월 18일]]
* [[정다정(작가)|정다정]]: 대한민국의 [[만화가]].
* [[미야시타 유우]]: 일본의 작가, 니코니코 동화 우타이테.
* [[12월 19일]]
* [[우에사카 스미레]]: 일본의 성우.
* [[펑티모]]: 중국의 가수, 인터넷 방송인.
* [[12월 20일]]
* [[문광욱]]: 대한민국의 [[군인]].
* [[조르지뉴]]: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12월 25일]] - [[아이미(성우)|테라카와 아이미]]: 일본의 성우, 가수.
* [[12월 26일]] - [[사코 토모히사]]: 일본의 가수.
* [[12월 28일]] - [[오오야 시즈카]]: 일본의 가수, 걸그룹 [[AKB48]]의 멤버.
* [[12월 29일]] - [[강민희(가수)|강민희]] : 대한민국의 가수, 걸그룹 '미스에스'(Miss $)의 멤버.
* [[12월 31일]]
* [[김나영(1991)|김나영]]: [[대한민국]]의 가수.
* [[김성철(배우)]] : 한국의 뮤지컬 배우.
* 일자불명
* [[남경읍(1991)|남경읍]]: 대한민국의 범죄자, [[n번방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의 공범
* 시부에 카나: 일본의 작곡가
* 야쿠 유우키: 일본의 [[라이트 노벨]] 작가
* [[https://blog.naver.com/hugspa|그대만을]]: [[네이버 지식iN 자살 사건]]의 당사자.
=== 가상인물 ===
* [[1월 10일]]: [[토도 타츠코]] - [[도키메키 메모리얼 Girl's Side]] 2nd
* [[1월 19일]]: [[척 배스]] - [[가십걸]]
* [[1월 18일]]: [[안승범]] - [[검은방|검은방 시리즈]]
* [[2월 2일]]: [[미즈시마 히소카]] - [[도키메키 메모리얼 Girl's Side]] 2nd
* [[2월 14일]]: [[후지와라 하즈키]] - [[꼬마 마법사 레미]]
* [[2월 19일]]: [[바네사 에이브람스]] - [[가십걸]]
* [[2월 22일]]: [[코모리 타쿠]] - [[도키메키 메모리얼 Girl's Side]] 2nd
* [[2월 23일]]: [[크리스토퍼 웨더필드]] - [[도키메키 메모리얼 Girl's Side]] 2nd
* [[3월 3일]]: [[세가와 온푸]](진보라) - [[꼬마 마법사 레미]]
* [[3월 6일]]: [[사이렌지 하루나]] - [[투 러브 트러블]]
* [[3월 12일]]
* [[미카도 치토세]]: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 두 사람의 엘더]]
* [[키사키노미야 치하야]] = [[미카도 치하야]]: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 두 사람의 엘더]]
* [[4월 1일]]: [[아이언 피스트(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아이언 피스트]]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4월 2일]]: [[미나모토 사쿠라]] - [[좀비 랜드 사가]]
* [[4월 5일]]: [[네이트 아치볼드]] - [[가십걸]]
* [[4월 12일]]: [[금사월]], [[강찬빈]], [[오혜상]] - [[내 딸, 금사월]]
* [[4월 20일]]: [[댄 험프리]] - [[가십걸]]
* [[4월 23일]]: [[비행고등학교]] - --[[F-22]]--[* F-22 랩터의 도입승인일, 공식은 아니다. --아마--][* 참고로 시제기 시절부터 계산하면 1990년 9월생.]
* [[4월 28일]]: [[한기남]] - [[클로저스]]
* [[5월 8일]]: [[키리조 미츠루]] - [[페르소나 3]]
* [[5월 14일]]: [[고은비(디지몬 프론티어)|고은비]] - [[디지몬 프론티어]]
* [[5월 19일]]: [[하시다 이타루]] - [[Steins;Gate]]
* [[6월 6일]]: [[아마치 쇼타]] - [[도키메키 메모리얼 Girl's Side]] 2nd
* [[6월 13일]]: [[버스데이(하마토라)|버스데이]] - [[하마토라]]
* [[6월 22일]]: [[이윤호]] - [[거침없이 하이킥|하이킥 1]]
* [[6월 23일]]: [[소닉 더 헤지혹]] -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
* [[7월 2일]]: [[코토부키 츠무기]] - [[케이온!]]
* [[7월 11일]]: [[영은수]] - [[비밀의 숲]]
* [[7월 12일]]: [[민주영]] - [[베리드 스타즈]]
* [[7월 14일]]: [[세레나 반 더 우드슨]] - [[가십걸]]
* [[7월 20일]]: [[와타라이 후미]]: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 두 사람의 엘더]]
* [[7월 30일]]: [[서정우(디지몬 시리즈)|서정우]] - [[파워 디지몬]]
* [[8월 12일]]: [[케이리·그란세리우스]] -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 두 사람의 엘더]]
* [[8월 15일]]: [[힘쎈여자 도봉순]] - [[도봉순]], [[도봉기]]
* [[8월 21일]]
* [[우정훈]] - [[디지몬 프론티어]]
* [[타이나카 리츠]] - [[케이온!]]
* [[9월 3일]]: [[레시오]] - [[하마토라]]
* [[9월 21일]]: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등장인물/카라 루트#s-4.5|즐라트코 앤드로니코브]]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 [[9월 22일]]: [[사나다 아키히코]] - [[페르소나 3]]
* [[9월 28일]]: [[사소 우타노]] -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 두 사람의 엘더]]
* [[10월 18일]]: [[쿠스노키 유아]] - [[CHAOS;HEAD]]
* [[11월 9일]]: [[키요타키 케이카]] - [[용왕이 하는 일!]]
* [[11월 12일]]
* [[선우현]] - [[디지몬 프론티어]]
* [[선우윤]] - [[디지몬 프론티어]]
* [[11월 20일]]: [[유피 키사라기]] - [[파이널 판타지 7]]
* [[11월 27일]]: [[히라사와 유이]] - [[케이온!]]
* [[12월 3일]]: [[산젠인 나기]] - [[하야테처럼!]]
* [[12월 12일]]: [[레이제이 아와유키]] -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 두 사람의 엘더]]
* [[12월 14일]]: [[오카베 린타로]] - [[Steins;Gate]]
* [[12월 26일]]: [[마나베 노도카]] - [[케이온!]][* 뭐 위에서 보면 알겠지만 연도와 날짜가 전부 [[소련]] 해체일과 같다(...)]
* 일자불명
* [[구세준(언니는 살아있다)|구세준]], [[양달희]] - [[언니는 살아있다!]]
* 김남정, 이혁수 - [[복학왕]], [[패션왕]]
* 김도란 - [[하나뿐인 내편]]
* [[논다 키쿠조]], [[로메인 레타스]], [[아크로]], [[로우 시류]] - [[역전재판 시리즈]]
* [[류 켄이치로]] - [[태양의 묵시록]]
* [[랠리 샤이안]] - [[사일런트 뫼비우스]][* [[일본어 위키백과]]를 참조했다. 참고로 작중에 등장하는 가이아 프로젝트가 실행된 [[1999년]] 당시 랠리의 나이는 8세였다.]
* [[리키(디지몬 시리즈)|리키]], [[신나리]] - [[디지몬 어드벤처]], [[파워 디지몬]]
* [[아라라기 카렌]] - [[이야기 시리즈]][* 6월 말이라는 언급은 나왔다.]
* 은형탁 - [[커밍업]]
* [[최산해]] - [[파워 디지몬]]
* [[트레이시 드 산타]] - [[GTA 5]]
* [[혼고 카즈토]] - [[진 연희무쌍]][* 게임에서는 [[2008년]]이라는 언급이 나오고 당시 카즈토는 고2.]
* [[히나타 후유키]] - [[개구리 중사 케로로]]
* [[김과장/등장인물#s-5|오광숙]] - [[김과장]]
== 사망 ==
=== 실존인물 ===
==== 1월 ====
* [[1월 5일]] - 김봉환: [[원진레이온 사태]] 피해자
* [[1월 7일]]
* [[박지국]]: 전 멕시코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
* [[요제프 슈트로]]: [[오스트리아]]의 전 축구감독
* [[1월 9일]] - [[페르난다 리즈]] : 브라질 여성 모델
* [[1월 11일]] - [[마츠야마 에이타로]]: 일본의 배우
* [[1월 15일]] - [[천관우]]: 대한민국의 언론인, 역사학자
* [[1월 26일]] - [[한복남]]: [[대한민국]]의 [[가수]]
* [[1월 29일]] - [[이노우에 야스시]]: 일본의 소설가
==== 2월 ====
* [[2월 1일]]
* [[박기성]]: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지미 맥도널드]]: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음향효과 기술자이자 [[미키 마우스]]의 2대 성우
* [[2월 2일]] - [[이나바 쇼이치]]: "100명이 올라타도 안심이다!"란 광고 대사로 일본 전역에서 인지도를 높인 창고 제작업체 [[이나바 창고]]의 창업주
* [[2월 3일]] - [[남현진]]: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 [[2월 6일]] - [[대니 토마스]]: 미국의 코미디언
* [[2월 19일]] - [[김정숙]]: 대한민국의 여류 조각가
* [[2월 20일]] - [[송종호]]: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 [[2월 21일]] - [[마곳 폰테인]]: 영국의 발레리나
* [[2월 23일]] - [[정한모]]: 대한민국의 시인, 제27대 문화공보부 장관
==== 3월 ====
* [[3월 9일]] - [[신용길]]: 대한민국의 참교육 운동가
* [[3월 14일]] - [[하워드 애시먼]]: 디즈니의 걸작 애니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에 등장하는 음악들을 작곡한 영화음악 작사가이자 극작가
* [[3월 19일]] - [[유재라]]: 전 유한재단 이사장. 그녀는 부친 [[유일한]] 박사에 이어 자신이 스스로 모은 2백억 원의 전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고 빈 손으로 떠났다. 그녀의 뜻을 기리기 위해 '유재라 봉사상'이 제정되었다.
* [[3월 26일]] - [[강두태]]: 대한민국의 배구선수
==== 4월 ====
* [[4월 1일]] - [[마사 그레이엄]]: '현대무용의 개척자'로 일컬어지는 미국의 무용가
* [[4월 3일]] - [[그레이엄 그린]]: <[[권력과 영광]]>, <[[제3의 사나이]]>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 [[4월 5일]] - [[셔우드 홀]]: 캐나다의 선교사, 사회복지활동가
* [[4월 8일]] - 데드: [[노르웨이]]의 [[밴드]] [[메이헴(밴드)|메이헴]]의 [[보컬]]
* [[4월 11일]] - [[최석채]]: 전 [[문화방송]]ㆍ[[경향신문]] 회장, 제4대 5.16장학회 이사장.
* [[4월 20일]] - [[욤자깅 체뎅발]]: 몽골 공산정권 시절의 독재자
* [[4월 26일]] - [[강경대]]: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4월 27일]] - 김영환: 당시 한겨레문제연구소 연구원
* [[4월 28일]] - 김광길: 대한민국의 비전향 장기수. 1988년 석방.
==== 5월 ====
* [[5월 2일]] - [[김영균]]: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5월 3일]] - [[천세용]]: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5월 6일]] - [[박창수]]: 전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민주화 운동가
* [[5월 8일]]
* [[김기설]]: 당시 전민련 사회부장.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도화선이 된 인물
* [[루돌프 제르킨]]: 체코 출신 미국의 피아니스트
* [[5월 11일]] - [[허담]]: 전 북한 외무상
* [[5월 14일]] - [[장칭]]: [[마오쩌둥]]의 아내이자 [[4인방]]의 리더
* [[5월 15일]] - [[아베 신타로]]: 제113대 일본 외무대신, [[아베 신조]]의 부친
* [[5월 18일]] - [[이정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가
* [[5월 19일]]
* [[박승희]]: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이관구]]: 대한민국의 원로 언론인
* [[5월 23일]]
* [[김선환]]: 대한민국의 수의학자
* [[빌헬름 켐프]]: 독일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 [[5월 25일]] - [[김귀정]]: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5월 28일]] - [[김만술]]: 1953년 당시 '베티고지의 영웅'으로 알려진 군인
* [[5월 29일]] - [[정상순]]: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6월 ====
* [[6월 2일]] - [[김철수]]: 대한민국의 고등학생 운동가
* [[6월 5일]]
* [[김은석]]: 대한민국의 배구선수
* [[허정숙]]: 북한의 정치가, 독립운동가, 전 보건상
* [[6월 9일]] - [[클라우디오 아라우]]: 칠레의 피아니스트
* [[6월 10일]] - [[딕 미네]]: 일본의 재즈/블루스 전문 가수
* [[6월 15일]] - [[이진희]]: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6월 24일]] - [[석광수]]: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6월 27일]] - [[유재관]]: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7월 ====
* [[7월 1일]]
* [[마이클 랜던]]: 1970년대를 풍미한 외화 [[초원의 집]]으로 얼굴을 알린 미국의 배우
* [[알프레드 에이센베이세르]]: [[루마니아]]의 [[축구 선수]], 피겨 스케이터
* [[7월 3일]] - [[도밍고 타라스코니]]: [[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
* [[7월 5일]] - [[나카무라 노부오]]: 일본의 배우
* [[7월 15일]] - [[조풍연]]: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 수필가, 언론인
* [[7월 19일]] - [[이창희(기업인)|이창희]]: [[새한그룹]] 창업주
* [[7월 24일]] -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폴란드 출신의 유대계 미국인 소설가. 197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 [[7월 28일]] - [[박재을]]: [[갑을그룹]] 및 [[KBI그룹]] 공동 창업주
==== 8월 ====
* [[8월 1일]] - [[김창근]]: 대한민국의 정치가, 제33대 교통부 장관
* [[8월 3일]] - [[고재욱]], [[류영하]]: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 [[8월 5일]]
* [[폴 브라운]]: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초대 감독, [[신시내티 벵갈스]] 초대 감독 및 구단주
* [[혼다 소이치로]]: [[혼다]] 창업주
* [[8월 11일]] - [[코노 모토히코]]: 일본의 영화평론가
* [[8월 19일]]
* [[김동영(정치인)|김동영]]: 제12대 제1정무장관
* [[손석용]]: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 [[8월 22일]] - [[김처칠]]: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8월 27일]] - [[마이크 나우멘코]]: 구소련의 록가수
* [[8월 30일]] - [[장 팅겔리]]: 프랑스의 조각가, [[니키 드 생팔]]의 남편
==== 9월 ====
* [[9월 12일]] - [[크리스 본 에릭]]: 미국의 프로레슬러이자 본 에릭가의 막내.
* [[9월 17일]] - [[임신근]]: [[한국]]의 [[야구인]]
* [[9월 18일]] - 한국원: 당시 서울대 대학원생으로 학생시위가 한창이던 때에 파출소 앞에서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함.
* [[9월 23일]] - [[파오위캉]]: 홍콩의 선박 재벌
* [[9월 24일]] - [[닥터 수스]]: 미국의 동화작가
* [[9월 25일]] - [[클라우스 바르비]]: '리옹의 도살자'로 알려진 나치 독일의 전범
* [[9월 28일]] - [[마일스 데이비스]]: [[미국]]의 [[재즈]] 트럼펫 연주자
==== 10월 ====
* [[10월 2일]] - [[윌리엄 셰이]]: 미국의 변호사, [[뉴욕 메츠]] 창단 제안자
* [[10월 17일]] - [[테네시 어니 포드]]: 미국의 컨트리뮤직 가수
* [[10월 18일]] - 손용화: 소파 [[방정환]]의 부인
* [[10월 19일]] - [[정비석]]: [[대한민국]]의 [[소설가]]
* [[10월 22일]] - [[카스가 하치로]]: 일본의 엔카 가수
* [[10월 28일]] - [[세바스티앙 고메스]]: 동티모르의 독립운동가
==== 11월 ====
* [[11월 1일]] - [[진 티어니]]: [[미국]]의 [[배우]]
* [[11월 2일]]
* [[경진호]]: [[대한민국]]의 [[성우]]
* 정정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동농 [[김가진]]의 며느리
* [[11월 5일]] - [[로버트 맥스웰]]: 전 미러 그룹, [[더비 카운티]], [[옥스포드 유나이티드]] 회장
* [[11월 7일]] - [[양용찬]]: 대한민국의 청년운동가.
* [[11월 9일]] - [[이브 몽땅]]: 이탈리아 출신의 프랑스 유명 샹송 가수
* [[11월 12일]] - 동티모르 산타크루즈 대학살 희생자 250여명
* [[11월 18일]] - [[신금봉]]: 태화그룹 공동 창업주, 학교법인 오산학원 13대 이사장
* [[11월 21일]] - 최인정: 대한민국의 비전향 장기수. 1988년 석방.
* [[11월 22일]] - 정창원: 코미디언 이주일의 외아들
* [[11월 23일]]
* [[우에하라 켄]]: 일본의 영화배우
* [[클라우스 킨스키]]: [[독일]]의 ~~[[영화배우]]~~
* [[11월 24일]]
* 에릭 카: 전 KISS 드러머
* '''[[프레디 머큐리]]''': [[퀸(밴드)|퀸]]의 [[보컬리스트]]
* [[11월 29일]] - [[쑹스룬]]: [[중국]]의 [[군인]]
==== 12월 ====
* [[12월 4일]] - [[클리프 배스틴]]: [[이안 라이트]], [[티에리 앙리]] 이전 최다 득점을 기록했던 [[아스날 FC]]의 스트라이커
* [[12월 7일]] - [[권미정]]: 대한민국의 노동투사
* [[12월 8일]] - [[신형식]]: 제12대 건설부 장관
* [[12월 10일]] - [[쉬츠 죄르지]]: 헝가리의 전 축구감독
* [[12월 11일]] - [[탁은주]]: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 [[12월 13일]] - [[이상희(공군)|이상희]]: [[대한민국]]의 [[군인]]
* [[12월 24일]] - [[김기팔]]: 대한민국의 방송작가
=== 가상인물 ===
* [[12월 16일]]: [[하워드 스타크]], 마리아 스타크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12월 28일]]: '''등장인물 전원''' - [[핫라인 마이애미 2]]
== 데뷔 ==
=== 가수 ===
==== 한국 ====
* [[김국환]]
* '''[[김장훈]]'''
* 박준희
* 윤익희
* [[양준일]][* 방송 데뷔 기준. 앨범은 1990년 11월에 발매되었다. 가수 본인 또한 데뷔년도를 91년도라 하기도 한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 이색지대
* [[이범학]]
* [[이현우(가수)]]
* 제갈민
* [[지석진]]
* 지평권
* [[편승엽]]
==== 해외 ====
* 영미권
* 리더스 오브 더 뉴 스쿨
* [[버스타 라임스]]
* [[리키 마틴]]
* [[마스터 P]]
* [[블러(밴드)|블러]]
* [[사이프러스 힐]]
* B-리얼, 센 도그
* 오거나이즈드 컨퓨전
* [[테이크 댓]]
* [[로비 윌리엄스]]
* [[투팍 샤커]]
* [[DJ 퀵]]
* GZA: 데뷔 당시 예명은 '더 지니어스'.
* 일본
* 루이 마리
* [[니시카와 타카노리]]
* [[타카하시 요코]]
* [[SMAP]]
* [[사카이 이즈미]]
=== 배우 ===
* [[이병헌]]
* [[한석규]][* MBC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한 년도다. 이 전엔 KBS 성우로 일했었다.]
* [[염정아]]
* 배도환
* 노현희
* 김정난
* 손현주
=== 예능인 ===
지금도 전설의 황금기수로 불리는 KBS 7기가 데뷔한 해이다.
* 금병완
* 김광현
* '''[[김국진]]'''
*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
* '''[[김용만]]'''
* 김재원
* 나경훈
* 남진아
* '''[[남희석]]'''
* 박병득
* '''[[박수홍]]'''
* 박채규
* '''[[신동엽]]'''
* 신재수
* [[양원경]]
* 엄정필
* '''[[유재석]]'''
* 윤국일
* [[윤기원(배우)|윤기원]]
* '''[[이영자]]'''
* 이영재
* 이재성
* 장지연
* 전창걸
* 전효실
* 정헌범
* 최성훈
* 최승경
* 한상우
* 한상진
* 한송이
* 황창주
=== 만화계 ===
* 강기연 - <J씨의 하루>
* 강모림 - <고니의 몽상일기>
* 강주배 - <정글소년 멍키>
* 김수영 - <추억 속에 새긴 이름>
* 김숙희 - <내사랑 라니타>
* 김옥선 - <안녕, 친구>
* 김용철
* 나금미 - <사랑의 푸시맨>
* 문흥미 - <이것이 사랑입니까?>
* 박상용 - <내일은 챔피언>
* 서지원[* 가수 서지원과 동명이인.] - <사랑의 약속>
* 송은아 - <동주 아빠는 둘>
* 신인철 -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 안백룡 - <소오갈 선생>
* 이경미 - <마법의 책>
* [[이빈]] - <나는 깍두기>
* 이영아 - <나는 비밀이거든요?>
* 이우진 - <빅사이즈>
* 이태행 - <아이언 솔져>
* 임재학 - <이야기 좀 합시다>
* 최정 - <어느 초병의 하루>
=== 스포츠 ===
==== 야구 ====
* [[박경완]]
* [[강병규]]
* [[박정태]]
* [[송구홍]]
* [[김상진(1970)|김상진]]
* [[전준호(1969)|전준호]]
* [[김기태(1969)|김기태]]
* [[김원형]]
* [[조규제]]
==== 농구 ====
* 그렉 앤써니
* 대럴 암스트롱
* 데일 데이비스
* 덕 스미스
* [[디켐베 무톰보]]
* [[래리 존슨]]
* 릭 폭스
* 바비 필스
* [[스테이시 오그먼]]
* [[스티브 스미스]]
* 케니 앤더슨
* 크리스 개틀링
* 테럴 브랜든
==== 씨름 ====
* 김정필
== 은퇴 ==
=== 스포츠 ===
* [[11월 7일]]: [[매직 존슨]](1차 은퇴)
* [[유재학]]
* [[이광은]]
* [[이만기]]
== 히트작 ==
=== 드라마 ===
* KBS
* 옛날의 금잔디
* MBC
* 까치며느리
* 여명의 눈동자
* 행복어사전
=== 영화 ===
* 경마장 가는 길
* 터미네이터2
=== 가요 ===
* 한국
* 강수지 - 흩어진 나날들, 시간 속의 향기
* 김광석 - 사랑했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 김상배 - 몇미터 앞에 두고
* 김성호 - 회상, 웃는 여잔 다 예뻐
* 김완선 -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가장무도회
* 김정수 - '''당신'''
* 김현식 - '''[[내 사랑 내 곁에]]''', 추억만들기, 사랑 사랑 사랑
* 김혜림 - 이젠 떠나가 볼까
* 나훈아 - 영영
* 노사연 - '''만남'''
* 박남정 - 여인이여
* 박정수 - 그대 품에서 잠들었으면
* 박학기 - 아름다운 세상
* 방실이 - 서울탱고
* 송대관 - 우리 순이, 네가 뭔데
* 신승훈 - '''[[미소 속에 비친 그대(노래)|미소 속에 비친 그대]]''', 날 울리지마
* 신해철 -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재즈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
* 심신 - 그대 슬픔까지 사랑해, 오직 하나뿐인 그대
* 양수경 - 당신은 어디 있나요,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 양준일 - 리베카
* 양희은 -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원미연 - 이별여행
* 유현상 - 여자야
* 윤상 - 이별의 그늘, 한 걸음 더
* 윤익희 - 사랑느낌
* 이문세 - 옛사랑
* 이범학 - 이별 아닌 이별
* 이상우 -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 이젠
* 이선희 -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그리운 나라
* 이재영 - 유혹
* 임재범 - 이 밤이 지나면
* 전유나 - 너를 사랑하고도
* 조갑경, 홍서범 - 내 사랑 투유
* 조영남 - 도시여 안녕
* 조용필 - 꿈
* 주현미 - 추억으로 가는 당신
* 최영준과 노사사 -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 태진아 - 미안 미안해, 선희의 가방
* 현진영과 와와 - 슬픈 마네킹
* 015B -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이젠 안녕
* 해외
* [[Michael Jackson]] - [[Black or White]], [[Dangerous]]
* [[Mariah Carey]] - [[Emotions]]
* Geto Boys - Mind Playing Tricks on Me
* Iron Maiden - Fear of the Dark
* MC Hammer - Too Legit to Quit
* [[너바나(미국 밴드)|Nirvana]] - '''[[Smells Like Teen Spirit]]'''
* Queen -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 The Show Must Go On, Innuendo, Bohemian Rhapsody[* 재발매 기준.]
* 2 Unlimited - Get Ready For This
=== 개그 코너 ===
* 괜찮아유 - 유머 일번지
* 부채도사 - 유머 일번지
* 밤이면 밤마다 - 유머 일번지
* 추억의 책가방 - 유머 일번지
* 봉숭아 학당 - 한바탕 웃음으로
* 내 사랑 꼬마신랑 - 한바탕 웃음으로
=== 애니메이션 ===
* KBS
* [[옛날 옛적에(애니메이션)|은비까비의 옛날옛적에]]
* MBC
* [[타이니 툰|말괄량이 뱁스]]
* [[키다리 아저씨]]
* [[흙꼭두장군]]
* 국내 비디오
* [[드래곤볼(애니메이션)|드래곤볼]]
* 해외
* [[금붕어 주의보]]
=== 베스트셀러 ===
* 소설 동의보감(상) - 이은성 저.
== 유행어 ==
* 괜찮아유~ - 최양락 (괜찮아유)
* 배트맨~/하늘에서 눈이 내려와~요/선생님 저요~! 저요~! - 이창훈 (봉숭아 학당)
* 띠용~~~ - 오재미 (봉숭아 학당)
* 실례 실~례합니다~ 실례 실례하~세~요~/그렇다~ 아니다~ - 장두석 (부채도사)
* 보소, 문디 - 김미화, 이봉원 (밤이면 밤마다)
* 안녕하셔요~ - 임하룡 (추억의 책가방)
* ~해서 너 먹고 사는 데 지장 줬냐? - 배삼룡 (꽃피는 봄이 오면)
* 그게 아니고 - 김인문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 이래도 되는 거야, 이거? - 이경규
* 한 방이면 훅 가 - 신경숙
*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 [[미스터 손]]
* 왜 그러셔~ - [[저팔계(날아라 슈퍼보드)|저팔계]]
* 나방~~~/너 왜 우리 엄마 욕해? - [[사오정(날아라 슈퍼보드)|사오정]]
* 손이 가요, 손이 가 - [[새우깡]] CF
* 빨래 끝~! - [[옥시크린]] CF
* I’ll Be Back - [[T-800]]([[아놀드 슈워제네거]])
== 최초 ==
=== 방영 프로그램 ===
* KBS 1TV
* 아침마당 - 최초 방영 당시 제목은 <이계진의 아침마당>
* 6시 내고향
* 도전 차차차
* KBS 2TV
* 토요대행진
* 한바탕 웃음으로
* MBC
* 몰래카메라(일요일일요일밤에)
* 퀴즈여행 달려라 지구촌
* MBC 베스트극장
* SBS
* 남편은 요리사
* 만화잔치(1차)
* 사랑의 징검다리
* 생방송 행복찾기
* 웃으며 삽시다: 최초 방영 당시 제목은 <토요일 6시 웃으면 좋아요>.
* 코미디 전망대
* 출발 서울의 아침
* 자니윤 이야기쇼
=== 창간 ===
* 댕기
* 사회평론 길
* 코믹챔프: 창간 당시 제호는 <주간 소년챔프>
== 출시 ==
=== 자동차 ===
* 현대자동차
* 스쿠프 터보
* 그레이스 그랜드살롱
* 엑셀 밴
* 에어로시티 520 / 540
* 쏘나타 (Y2 마이너체인지)
* 에어로버스(마이너체인지)
* 현대정공
* 갤로퍼
* 기아자동차-아시아자동차
* 프라이드 팝
* 하이토픽
* AM937
* 대우자동차
* BS106
* 뉴 르망(F/L)
* 르망 이름셔
* 브로엄: 출시 당시 명칭은 '슈퍼살롱 브로엄'임.
* 대우조선공업 국민차사업부(대우국민차)
* 티코, 다마스, 라보
* 쌍용자동차
* SB33 / 66 버스
=== 식음료 ===
* 농심
* 4월: 육개장 신라면
* 11월: 면볶이
* 롯데칠성음료
* 마하쎄븐
* 일화
* 맥켄레이
* 동서식품
* 맥스웰 레귤러캔 블루마운틴/킬리만자로/아라비카/콜롬비아 블렌드
* 액상프리마(휘핑 프리마)
* 동서녹차 캔 포장제품
* 맥스웰 블랙터치
=== 생활용품 ===
* 애경산업
* 난이랑비누
* 유아오일비누
* 에브리스샴푸
* 썬실크 헤어트리트먼트
* 럭스 뷰티샤워
* 바이오트리오
* 썬
=== 화장품 ===
* 애경산업
* 유아 베이비로션
== 관련 문헌 ==
* [[http://theme.archives.go.kr/viewer/common/archWebViewer.do?bsid=200041076842&gubun=search|1992 연합연감]]
* [[http://theme.archives.go.kr/viewer/common/archWebViewer.do?bsid=200041024967&gubun=search|1992 동아연감]]
== 달력 ==
[include(틀: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
[각주]
[[분류:1991년]] |
1991년 연쇄 분신 파동 | || {{{#!html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www.youtube.com/embed/P6NRW5Y_0lk"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목차]
== 개요 ==
[[1991년]]의 [[대한민국]]을 잇달아 뒤흔든 연쇄 [[분신]]자살 사건이자 민자당 공안통치 분쇄투쟁. 일명 '[[분신정국]]' 혹은 '1991년 5월 투쟁'이라고도 한다.
== 사건의 배경 ==
[[1987년 대선]]에서 당선되어 [[1988년]]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은 자신을 "보통 사람"이라 선전하면서, 군부 정권 출신이라는 자신의 약점을 커버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과거의 구태가 번복되고 제주MBC에서 리허설 사고까지 터지며 민정당이 참패하고 [[통일민주당|민주]], [[평화민주당|평민]], [[신민주공화당|공화당]]의 야 3당이 과반 의석을 넘게 차지하는 [[여소야대]]의 결과가 벌어졌다.
여소야대 구도가 되면서 민정당과 군부정권 출신들은 잇다른 [[12.12]], [[5.18]] [[청문회]]와 [[대한민국 제5공화국|5공]]비리 청문회에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민주화 흐름을 타고 [[4.19 혁명]] 이후와 마찬가지로 [[남북통일]]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1989년]] [[문익환]] 목사와 대학생 [[임수경]] 양, 소설가 [[황석영]]의 잇단 [[방북]], 평민당 [[서경원]] 의원 방북 사건은 노태우 정권을 긴장시켰다. 이에 따라 재야와 운동권에서 일던 통일 논의도 [[공안정국]]을 조성해서 눌러버렸으며 더욱이 노태우 대통령은 선거 공약으로 중간평가를 제시한 상황이라 그야말로 정권은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으로 치달았다.
결국 [[노태우]] 정권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꼼수로 인위적 정계개편을 시도한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민주자유당]]을 출범시킨 [[3당 합당]]이었다.[* [[1990년]] 5월. 물론 합당 당일 [[서울역]]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3당 합당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노태우]] 정권은 그동안 ~~물태우라 불린 원한을 씻고자~~ 끌려다니던 것에서 벗어나 초강경 자세로 돌변했고, 5공 청산은 유야무야 되어버렸다.
그해 4월에는 골리앗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을 헬기까지 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하는가 하면, KBS 서영훈 사장 해임을 시작으로 언론통제에도 나서는 모습을 보였으며[* 다만 KBS를 제외하면 대개 기자들이나 언론사 간부들에게 돈을 뿌려주는식으로 언론통제를 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 외의 이야기는 [[KBS 사태]] 문서를 참조.] 이에 항의한 KBS 노조에 대해서는 공권력을 투입해 짓밟고 언론 민주화운동을 제도적으로 저지하기 위해 방송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뒤 6월에는 복직서명을 주도한 [[전교조]] 교사 1천여 명을 중징계시켰다. 또 7월 20일 노태우가 '민족 대교류의 날' 특별성명 발표 후 23일에 제1회 범민족대회를 허용했지만 막상 8월 15일에 개최된 범민족대회는 아예 봉쇄해버렸다. 또 강영훈 총리 대신 [[노재봉]]이 총리가 되면서 탄압이 더 격화되었다.
상황이 이리되자 노태우 정권의 공안통치가 다시 일상화되었다. 노동쟁의 현장에는 으레 공권력과 구사대가 투입되었고, 대학 역시 경찰병력이 수시로 진격했다. 이에 따라 시국 관련 구속자([[양심수]]) 숫자도 나날이 증가했는데, 노태우 대통령은 구미권 순방 때마다 한국 인권상황을 묻는 현지 기자들에게 누누이 "한국엔 양심수는 하나도 없다"고 밝혔지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측 발표에 따르면 1990년 11월 10일 기준 양심수 숫자는 1,295명이었다.
[[1991년]] 봄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수서비리]]'[* [[강남구]] [[수서동]] [[수서역(수도권 전철)|수서지구]] 택지분양 과정에서 일어난 6공화국 최대 비리사건. 수서지구 택지를 [[한보그룹]]에 특별분양하는 과정에서 정, 재, 관계의 지도층 인사들이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가 드러나 구속되면서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관련자들이 무더기로 구속됐지만 관련 피고인 9명 중 6명이 집행유예로 풀려나 단순 독직사건으로 축소된 채 마무리돼 6공의 대표적인 의혹사건으로 남았다.]과 함께 국보법과 경찰법 개정안 등 각종 법안 날치기, 내각제 개헌을 둘러싼 당내 3대 계파 간[* 민정-민주-공화파로 일컬어짐.] 갈등, 그리고 [[1988 서울 올림픽]] 직후부터 고삐가 풀린 물가가 지속적으로 올랐으며[* 물론 지금 기준에서야 당시가 호황기였던 사실이었지만, 사실 그렇다고 해도 물가상승률이 상당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특히 80년대 후반기 이후로 3저호황으로 유동성이 넘치게 되면서 유동자금들이 대거 부동산으로 쏠린 바람에 부동산 광풍이 불면서 부동산 값이 연 20% 이상 폭등하고 있었던데다가 1990년 4월 4일 '경제활성화 종합대책'으로 인해 전월세비가 하늘로 치솟고 물가상승률도 90년에 8.6%로 1981년 이후로 9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높이 뛰는 전세값을 견디다 못한 서민들이 비관 자살하는 일이 터질정도로 사회불안이 심각해졌다. 거기에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까지 터지며 민심 또한 6공정부를 떠나고 있었다. 이에 따라 합당 이후 1990년 2차례 치러졌던 재보궐선거에서도 모두 민자당이 패배했을 정도로 민자당의 지지율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며 이로 인해서 6월 지방선거에서 부진할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사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를 보면, 집권 첫해에 40-50%대를 기록한 걸 제외하면 노태우 정부의 지지율은 내내 낮은 수준이었다. 물론 무응답층의 비율이 상당하긴 하지만 부정평가 역시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1991년]] [[4월 26일]], [[명지대학교]] 학생이던 [[강경대]] 열사[* 현재 민주열사로 인정을 받았다.]가 데모를 막으려 출동한 서울시경 제4기동대 94중대 소속 전경대원들에게 집단으로 구타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94중대는 전경사복중대로 소위말하는 [[백골단]]이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42700289101001&edtNo=3&printCount=1&publishDate=1991-04-27|#]]] 이 때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거의 죽고 죽이는 살벌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당시 [[경찰청 의무경찰|전투경찰]]에 복무하던 박석진 일경이 시위 진압 현장을 이탈하여 [[양심선언]]을 하고 [[양심적 병역거부|복귀를 거부하여]] 이슈가 되기도 했다. [[http://softart.tistory.com/5086|#]] 또 강경대 치사사건에 대해 옥중 단식농성하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 노동자가 5월 6일에 안양병원 마당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강경대 군의 죽음은 [[1987년]] [[6월 항쟁]]을 정점으로 치닫게 한 [[이한열]] 군의 죽음과 오버랩 되면서 대학가와 운동권은 크게 격앙되기 시작했다. 이에 운동권에서 정권에 대한 항의로 선택한 수단이 바로 [[분신]]자살이었다. 다른 한편 재야 단체들은 '고 강경대 열사 폭력살인 규탄 및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이하 범대위)'를 결성해 대정부 투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 정부의 대응 ==
강군 치사사건에 대한 파장에 놀란 노태우 정부는 여론을 의식하는 듯 돌파구를 마련코자 했다. 강군 사망 후 4월 27일에 노태우 대통령은 안응모 내무장관을 경질시키고, 검찰이 강군 살해전경 5명을 잡아들였다. 노 대통령은 당일 성명에서 강군 사망에 대해 유감을 밝히면서도 "과거와 달리 민주화된 세상에서 폭력시위를 하는 건 용납못한다"고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42800329101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1-04-28&officeId=00032&pageNo=1&printNo=14034&publishType=00010|언급했다.]]
이후 당월 29일에에 노재봉 총리가 치안장관회의에서 사과 의사를 밝혔다. 5월 2일에 노 대통령은 김영삼 민자당 최고위원과의 정례회담에서 사과 의사를 밝혔지만, 하루 뒤 청년회의소 다과회에서 "강경대 사망은 과거 민주화투쟁 중 희생과는 다르다"는 식으로 발언했다. 같은 날 국무회의에서도 전경 및 백골단 해체는 없다고 하며 '최루탄 발사 예고제' 및 백골단의 진압복 착용, 경찰의 교내진입 자제 등을 시사했다.
이상연 내무장관도 5월 4일 기자회견에서 무술경관 대체, 경찰서 집회허용 심사위원회제 도입 등을 등을 담은 '집회/시위 안전관리개선대책'을 발표했지만, 시사저널 5월 16일자 기사에선 '미봉책'이라며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Print/106439|달가워하지 않았다.]]
== 잇따른 분신 자살 ==
'''분신자살 관련자 명단'''[* 수록 순서는 분신한 날짜 순으로 하였음][* 각 인물 정보는 당대의 신문과 2015년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가 편찬한 <민주화운동 백서(인명편)>를 종합함][* '관련자'라고 한 이유는 생존자도 있기 때문이다.]
|| # || 이름 || 나이 || 신분 || 분신일자 || 분신장소 || 사망일자 || 참고 ||
|| 1 || 박승희 || 20 || 전남대학교 2학년 || 4월 29일 || 전남대학교 대학 본부 건물 뒤 || 5월 19일 || 제16차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 ||
|| 2 || 김영균 || 20 || 안동대학교 2학년 || 5월 1일 || 안동대학교 학생회관 앞 || 5월 2일 || 제15차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 ||
|| 3 || 천세용 || 20 || 경원대학교 2학년 || 5월 3일 || 경원대학교 공대 건물 2층 || 5월 3일 || 제20차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 ||
|| 4 || 김기설 || 26 || 전민련 본부 사회부장 || 5월 8일 || 서강대학교 본관 옥상 || 5월 8일 || 제23차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 ||
|| 5 || 윤용하 || 22 || 서울직장민주화청년연합 회원 || 5월 10일 || 전남대학교 대강당 화장실 || 5월 12일 || 제9차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 ||
|| 6 || 이정순 || 39 || 식당 근로자 || 5월 18일 || 연세대 정문 앞 철교 || 5월 18일 || 제23차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 ||
|| 7 || 김철수 || 18 || 보성고등학교 3학년 || 5월 18일 || 보성고등학교 운동장 || 6월 2일 || 제20차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 ||
|| 8 || 차태권 || 32 || 운전기사 || 5월 18일 || 광주 전일여객 차고 || 생존[* 차태권은 복부와 손에 2도 화상을 입고 병원에 옮겨져 2시간 만에 퇴원했다.] || 단순 해프닝에 불과 ||
|| 9 || 정상순 || 25 || 건설업 || 5월 22일 || 전남대학교병원 영안실 옥상 || 5월 29일 || 제18차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 ||
명지대생 강경대의 죽음은 1991년 5월을 그야말로 피로 물들였다. 강경대가 죽은 지 사흘 뒤인 4월 29일, [[전남대학교]] 학생 박승희가 강경대 사망을 규탄하는 집회현장에서 [[분신]]했다. 이어 5월 1일에는 [[안동대학교]] 학생 김영균, 5월 3일에는 [[경원대학교]] 학생 천세용, 5월 8일에는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이 [[서강대학교]] 옥상에서 유서를 남기고 [[분신]] 후 투신자살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김기설의 [[분신]]자살은 또 다른 사건을 불러 일으켰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참조.], 거기에 5월 12일에는 서울직장민주화청년연합 회원 윤용하가, 5월 18일에는 [[연세대학교]] 학생 이정순, 전남 [[보성고등학교(전남)|보성고등학교]] 학생 김철수, 광주의 운전기사 차태권[* 그는 김철수의 분신 소식을 듣고 "고등학생이 분신하는 마당에 우리가 살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분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고 가벼운 화상으로 끝났다.]이 분신을 택했다. 이때까지 무려 8명이 분신자살을 택하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이 중 분신자살한 8명 중 4명이 '고운(고등학생운동)' 세대 출신이었으며, 2006년 당시 [[성균관대학교]] 석사 이수 중이던 양돌규 씨는 <민주주의 이행기 고등학생운동의 전개과정과 성격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쓰면서 당시 투쟁의 핵심은 고운 세대가 죽음으로 항거했다고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51924.html|해석했다.]]] 결국 24일에는 노재봉 총리가 물러나고 정치적 성향을 가지지 않은 정원식이 총리가 되었지만 시위는 멈출 줄 몰랐다.
잇단 분신자살에 노태우 정권은 크게 당황해 4월 26일부터 5월 6일까지 열흘에 한 번 꼴로 각 언론사 정치부장(4.26 점심), 주필(4.30 저녁), 편집부장(5.2 저녁), 경제부장(5.3 점심), 사회부장(5.6 점심)들을 불러 ~~밥 한끼 사주면서~~ 회동을 가졌다. [[청와대]]에 다녀온 언론사 간부들의 지시였는지[* 이상할 것도 없는 게, 이때는 아예 정부차원에서 명절 때마다 기자들에게 떡값도 돌리기도 했다라는 후문도 나올 지경이었다. 일단 [[전두환]] 때처럼 대놓고 탄압을 하기에는 좀 뭐하니까 돈을 뿌려대는식으로 선회한것.] 이런 회동으로 인해 모 신문의 데스크는 경찰 기자들에게 <공부 좀 합시다>라는 제목의 면학 분위기 촉구 기사를 쓰도록 지시했다. 이에 경찰기자들이 이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방송은 여전히 노태우 정권에 충성해왔다. (원 출처 : <언론노보> 1991년 5월 8일자.)
각 방송사[* [[KBS]], [[MBC]], [[기독교방송|CBS]], [[PBC]], [[교통방송|TBS]], [[불교방송|BBS]]. 사건당시 [[SBS]]는 AM라디오밖에 없고 수도권 방송사였다. 나머지 4개 방송사는 당시 신문사로부터 뉴스를 제휴받아 방송하고 있었다.]도 학생들을 비난하는 뉴스를 내보냈다가 노조의 반발에 직면했고, 이렇게 되다가는 1991년 6월 20일에 치러질 광역의원 선거에서 부동층들이 대거 신민당이나 민주당, 무소속으로 쏠려서 민자당이 대패할것이라는 위기감이 감돌았다. 특히 KBS 노조는 1991년 5월 6일자 <언론노보>에 낸 성명서에서 "노 정권의 말기적 폭력성에 규탄의 소리가 드높은 시점에 태평성대인 양 [[청와대]]에 충성스런 몸짓을 취하는 게 부끄럽다"면서 "더 이상 KBS를 공영방송이라 부를 수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거기에 MBC 노조도 같은 날 나온 특보에서 "MBC가 돌 맞기 일보 직전에 처해 있다"고 비판했다.
== [[김지하]]와 [[박홍 신부]]의 카운터 어택 ==
이러한 상황 와중에 분위기를 반전시킨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김지하]] 시인과 [[박홍 루카 신부]]의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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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정권에 맞서다가 감옥에 갔다온 뒤 [[김지하]]는 1991년 5월 5일에 [[조선일보]]에 칼럼을 게재해서 [[분신]]자살을 맹비난했다. 이 때의 칼럼 제목이 <[[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pdf_ReadBody.jsp?Y=1991&M=05&D=05&ID=9105050301|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임팩트가 워낙 컸던지라 아직까지도 [[김지하]] 하면 회자되는 칼럼이다. 김지하의 이 칼럼이 신문에 발표된 이후, 사회 각계에서는 이를 둘러싼 맹렬한 논쟁이 일어났다. 어쨌든 이 칼럼 제목은 꽤 임팩트가 컸고, 그 후로도 상당히 회자되었다. 그리고 민주화 투사이던 김지하는 이 때부터 점점 보수화되어 간다.
김지하의 맹비난 이후 [[노태우]] 정권은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이어 [[서강대]] 총장 [[박홍 루카 신부]]는 5월 8일 서강대 메리홀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라며 [[매카시즘]]적인 [[종북]] 간첩 [[음모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 카운터 어택을 [[조선일보]]가 나서서 협공해주면서, 사태는 점점 운동권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갔다.
이들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인물들로 간주되었던 인물들이라, 국민들의 눈에는 '''"민주화 선배들이 저렇게 말하는걸 보니 이건 문제가 많구나"'''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또한 사람의 생명에 대한 [[한국인]]들의 정서[* 1991년 3월부터 산발적인 시위가 있었지만, 사태가 이처럼 커진 데에는 보수, 중도, 진보를 막론하고 '''"어떠한 이유로도 사람이 죽어서는 안 된다"'''라는 [[한국]]적 정서가 있었다. 즉 경찰의 쇠파이프에 대학생이 '''죽었다'''는 것에 정치적 관점과 상관 없이 많은 시민들이 분노해서 마치 87년 6월 항쟁을 연상할 정도로 대규모 시위로 발전했으며, 동시에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것 또한 똑같은 이유(생명의 소중함)로 일반 시민들에게 분신정국이 점차 거부감을 느끼게 된 것. 즉 죽음 때문에 시위가 커졌고, 죽음 때문에 상황이 반전된 것.]에 죽음이 어울리지 않다 보니, 여론이 점점 운동권쪽에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또한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운동권 정파소속이 아닌 일반 시위참여자들이나 일반 시민들로 하여금 매주 주말 도심이 마비되는 시위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쨌건 이 비판은 생명에 대한 존중심에서 나온 것이지만,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선 [[노태우 정부]]를 돕는 결과를 낳아 많은 이들을 분노하거나 불편하게 만들었다. 대학가의 일부 사회과학 서점에서는 [[김지하]] 책 불매운동이 퍼졌고, 김지하가 소속된 '민족문학작가회의'[* 현 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에서는 [[김지하]]에게 제명 처분을 내리기까지 했다. 작가회의 청년위원회 부위원장인 김형수 시인은 5월 8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50800289103005&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5-08&officeId=00028&pageNo=3&printNo=919&publishType=00010|우리 그것을 배신이라 부르자 - 젊은 벗이 김지하에 답한다]]>라는 칼럼을 통해 "김지하는 지금 세상을 두 눈이 아닌 한 눈으로 보고 있다."고 공개 비판했다.
그러나 작가회의의 제명 처분에 대해 회원들 사이에서 논쟁이 일기도 했다. 제명 처분이 46:1이라는 압도적인 다수로 결정됐는데, 이에 이의를 제기한 쪽이 적었음에도 말미암은 것이다.
특히 소설가 [[이창동]]은 5월 19일자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564529|기고문을]] 통해 "한쪽으로는 양심수 석방을 외치면서 어떻게 동료 문인의 양심을 단죄한단 말입니까?"라고 하여 재야 문인들의 김지하에 대한 부정적 매도에 대해 반발했다.
반면 아동문학가이자 시인인 [[이오덕]]은 3일 뒤 동 신문 [[http://news.joins.com/article/2565526|기고문에서]] "한 사람이 한 말은 표현과 양심의 자유가 되고, 더 많은 사람의 말은 표현도 양심도 아니란 말인가"라고 하여 재반박했다.
해당 사태는 11년 뒤 [[문부식(시인)|문부식]]의 '동의대 사태' 관련 조선일보 칼럼 기고파문 때도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914.html|재현되었다.]]
== 필살기,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
이런 상황에 결정적인 필살기로 등장했던 것이 바로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이었다. 검찰은 "5월 8일 분신자살한 김기설은 자기 의지로 분신자살한 게 아니라, 운동권에서 온갖 협박과 감언이설로 분신자살하라고 내몰았으며, 그 증거가 강기훈이 김기설의 유서를 대필한 것이다."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이런 검찰의 발표는 [[김지하]]와 [[박홍 신부]]의 카운터 어택과 일치하는 맥락이라서 국민들의 시선은 운동권에 급속도로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강기훈은 자신은 김기설의 유서를 대필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으나 국과수 감정인 김형영은 강기훈의 필적이 맞다고 감정했고 결국 이것이 결정적 증거로 채택되어 강기훈은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 6개월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014년 2월, 재심 끝에 강기훈 씨가 무죄 판결을 받으며 사건 자체가 조작의 결과였다는 점이 인정되었다. 2015년 5월 14일 대법원 무죄 확정판결했다.
== 운동권의 자멸, 정원식 계란세례 사건 ==
이런 가운데 유서 조작 사건에 이어, 운동권이 반전된 여론에 쐐기를 박는 사건을 터트리는데, 바로 1991년 6월 3일의 [[정원식]] 총리에게 밀가루 셰례와 계란, 짱돌 세례를 퍼부은 사건이었다.
당시 [[한국외대]] 시간강사였던 정원식은 1988년 말부터 1990년까지 문교부 장관으로 재직했는데, 그는 부임하자마자 사학분규 등 각종 학내 문제에 대해 무자비한 강경대응으로 일관하여 1989년 초에 [[http://mnews.joins.com/article/2323025|'학원안정 4단계 방안']], '5.6 조치' 등의 학생운동 탄압 조치를 실시했고, 그 해에 전교조가 결성되자마자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면서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들을 대량해직시키고 전교조에 가입한 인사들을 상대로 인신공격을 하거나, 1990년 세종대 학원자주화투쟁에 집단유급으로 대처하는 행보를 보였기에 [[운동권]]에서는 꽤나 악명이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러다가 1990년에 문교부 장관을 그만두고 나서는 1991년 3월부터 덕성여대, 외대 대학원 등지에서 시간강사를 맡다가, 노재봉 총리 사임으로 새 [[국무총리]]로 임명되어 6월 3일 오후 6시 30분경에 시간강사로서 마지막 강의를 하던 차였다.
그러나 정원식의 총리직 수락에 불만을 품은 운동권 학생들은 정원식이 문교부 장관을 하면서 [[전교조]]를 탄압했다는 과거 이력을 겨냥해 '''"학우 여러분, 전교조 선생님들을 학살한 정원식이가 지금 우리 학교에 와 있습니다."'''라고 교내방송을 통해 부르짖었고 이에 정원식이 당초 90분으로 예정된 강의를 50분만에 중단하고 나오자 어느새 강의실 복도는 2백여 명의 학생들로 가득 찼다.
정원식은 경호원들에 의해 가까스로 현장을 탈출했지만, 결국 학생들은 ~~훈훈한 사제의 정을 담은~~ '''[[계란]], [[밀가루]] 세례를 퍼부었다.''' 단순히 계란만 던진 정도가 아니라 15명이 주도적으로 가방으로 머리를 때리고 강제로 교실에서 끌고나와 운동장으로 끌고가서 폭행하는 등 육체적인 폭력 행위도 있었다. 정원식의 수업을 듣던 대학원생들과 운동권 학생들간의 격렬한 몸싸움도 벌어졌다.
그런데 현장에는 새 총리 지명자를 인터뷰하려는 기자들이 몰려있던 터라 이 광경은 고스란히 전파와 사진으로 전국에 '''생생히 중계되었다.''' 이 광경에 국민들은 스승에게 저런 짓거리를 하는 놈들이 어디있느냐며 '''운동권을 [[패륜]]적인 집단으로 규정'''하여, 운동권은 스스로의 평판을 깎아내리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최악의 실책을 범하게 되었다.
원래 주요 언론에선 사건 당일엔 정원식 총리서리가 봉변을 당했다는 정도로 가볍게 넘어갔으나 방송이 나간 후 즉각 전국에서 "스승에게 저런 패륜적인 짓을 할 수가 있냐"는 시청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고 다음날부터 매우 대대적인 보도를 하게 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 75%의 국민들이 반인륜적, 반도덕적이라 하였고 83%의 국민들이 충격적이었다고 운동권에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거기에 정부는 다음날 대책회의를 소집하여 이 사건을 '인륜을 저버린 패륜아적 범죄', '공권력과 정부 권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반인륜적 행동'으로 규정했다. 또 정부는 "이번 사건의 배후에는 조직적 반체제 좌경 용공세력이 있다."며 "현 시점을 법질서 확립의 마지막 기회로 삼아 체제 도전세력을 철저히 추적/색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구영 검찰총장도 정원식 폭행사건을 공권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간주해 엄단할 것을 서울지검에 지시했다. 이어 경찰은 오후 외대 주변에서 검문검색을 실시해 학생 310명을 연행해 이중 64명을 철야조사했고, 외대 총학생회장 정원택, 부학생회장 김경하, 학보 편집장 홍용희, 문화부장 백경인, 상경대 학생회장 박상우 등 5명을 수배했다.
== 결말과 평가 ==
[[운동권]]은 6월에 대대적인 저항을 하려 했으나 국민들의 시선은 이미 싸늘해질대로 싸늘해진 뒤였다. 80년대에는 데모하던 학생들을 숨겨주던 국민들은, 이때는 '''오히려 물을 끼얹거나 [[소금]]을 뿌리면서 내쫒고, 더 나아가 경찰에 신고까지 하는''' 정도였다니 말 다했다. 5월 25일에 열린 '공안통치 민생파탄 노태우 정권 퇴진 제3차 국민회의' 도중 [[성균관대학교]] 학생 김귀정이 토끼몰이식 시위진압 도중에 최루탄 속에서 구타당한 뒤 압박/질식사하면서[* 즉 방법만 달랐지 경찰에 의해 학생이 사망한 것은 동일하다.] 6월 2일 노태우 정권 퇴진 제4차 국민대회까지 발생했지만 이 사건이 정국을 반전시키는데 끼친 영향은 별로 없었다. 6월 29일에 범대위 측은 명동성당 농성을 해제했다.
오히려 재야 운동권은 6월 5일에는 '민족해방활동가조직 사건', 6일 [[문익환]] 목사 재수감, 8월 3일 박성희-성용승 방북사건, 8월 26일 '반제반파쇼 민중민주주의혁명그룹 사건' 등의 민주인사 구속과 공안사건으로 타격을 입었고, 구속 시국사범([[양심수]]) 숫자도 늘어나 1991년 한 해 동안에만 무려 1,352명이 되었으며 국보법 위반자는 전체의 40%에 달했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반감은 그대로 선거로 나타났다. 6월 20일에 치뤄진 [[1991년 지방선거|광역의회 선거]]에서 투표율이 크게 저조하게 나왔고 이 투표율 저조현상이 신민련-민주당간의 후보분열과 함께 시너지 작용을 하면서 민자당은 득표율이 상당히 낮았음에도 (40.6%) 전국의석 564석(총 의석수 868석)을 확보하며 압승을 거두었고 호남과 제주를 제외한 전 지역의 도의회, 시(특별시, 직할시)의회를 민주자유당이 장악하는 결과를 낳았다.[* 참고로 [[1991년]] 광역의원 선거 투표율이 58.9%로 1991년 기초의원 선거때보다(55.0%) 다소 높긴했지만, 당시 대통령 선거 투표율이 80%를 넘고 국회의원 총선 투표율이 70%를 넘던 시절이라는걸 생각해보자.]
결과적으로 여름방학과 2학기가 되어서도 학생운동세력은 크게 위축되었고 심지어 1991년 9월 [[서울대학교]] 인근 고시촌에서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총에 맞아 대학원생 [[http://archives.kdemo.or.kr/PhotoView?pPhotoId=00756270|한국원]]이 사망[* 경찰의 '''총탄'''에 의한 사망이다. 쇠파이프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물론 조준사격이 아닌 위협사격이였지만 공포탄이 아닌 실탄을 장착했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맞다.]했을 때에도 그해 봄과 같은 대규모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 그러다보니 운동권 세력은 늦가을에 있을 각 학교 총학생회 선거에 주력함과 동시에 이듬해(1992년)에 있을 [[제14대 대통령 선거]]정국을 위해 일단 한발 물러선다. 전민련 역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으로 바꾸어 새 진용을 짜게 되었다.] 그나마 다음해 치러진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에서 민자당이 과반수 확보를 못한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라려나...[* 다만 이건 반감이 완화되어서라고 보기에는 뭐하고, 집권당인 민자당에서 공천과정에서 사고를 너무 많이 터트려서 민자당 후보 상당수가 무소속으로 출마해버린데다가 선거과정에서 흑색선전 유인물 배포나 부재자 투표에서 부정선거 등 대놓고 막장짓을 한 영향때문이었다. ] ~~물론 민중당도 광탈했긴했지만~~
그후 20년이 흐른 [[2010년대]]에 와서도 그 때의 [[분신]]정국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노태우 정권에 대한 정당한 항의였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옳은 투쟁이었다고 해도 분신이란 수단은 잘못되었다는 평가[* 백번 양보해서 [[분신]]이라는 수단이 옳더라도 전체적인 정국흐름에 둔감해서(즉 민중의 생각을 파악하지 못해) 결국 역풍을 맞게 되었다는 평가]가 공존하는 상황.
[[윤이상]]은 이 소식을 접하고 말년의 걸작이라 불리는 "화염속의 천사"라는 곡을 작곡했다. 이 곡은 한국에서 그야말로 한두 번 정도밖에 공연되지 않았을 정도인데, 처음 이 곡이 초연되었을때는 정치적 논란을 감수한 과감한 행동이었다고 평가받을 정도였다.
한편 이 사건의 원인이 되었던 [[강경대]], 분신을 선택해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승희를 비롯한 8명의 학생과 시민들, 경찰의 강경진압 도중 사망한 [[김귀정]], 그리고 분신정국 도중 의문사한 박창수는 나중에 '''모두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이들 중 박창수를 제외한 모두가 2000년대 초에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되었다. 박창수는 2014년에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되었다.]
또한 이 사건은 [[초원복집 사건]]과 더불어 [[신문]]과 방송의 여론 규정과 의제 설정 기능이 강력하게 작동한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386세대]]의 세대 구분에서 80년대 학번이 아닌 90, 91학번을 넓은 의미의 386세대로 보는 의견이 있는데 바로 이 사건을 전후로 해서 대학가 학생운동의 위세가 많이 차이나기 때문이다.[* 1992년은 위에서 언급한 대선정국 ~~자기들 성향에 좀 미흡하지만 [[김대중|당선 가능한 후보]] 비판적 지지 vs 운동권이 보기에 [[백기완|당선가능성은 낮지만]] 민중후보 지지~~ 이 있었고 1993년 문민정부 이후부터 2000년대까지 과격시위는 멈추지 않았다.]
[[분류:1991년/사건사고]][[분류:노태우 정부/사건사고]][[분류:한국 민주화운동]] |
1991년 월드 시리즈 |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bgcolor=#ffffff,#191919> [[파일:1991_WorldSeries_Logo.png|width=180]][br] '''[[월드 시리즈]] 일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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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개요 ==
||<width=100%><-2><:><tablebordercolor=#ed174b><bgcolor=#ed174b> {{{+1 {{{#ffffff '''1991 MLB WORLD SERI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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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0월 19일부터 27일까지 7차전으로 치뤄진 [[미네소타 트윈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월드 시리즈]]. 박진감 그리고 감동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역대 월드 시리즈의 최고 명승부들 가운데 하나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경기라는 평가다. 이 시리즈의 별칭은 맞상대를 한 두 팀 모두다 전년도에 소속된 지구 꼴지(브레이브스는 NL 전체 꼴지)를 했던 팀이 맞붙었기 때문에 '''신데렐라 시리즈'''. 참고로 이 경기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 7차전까지 진행된 이 시리즈의 경기 중에서 한 점차 승부로 결정지은 것이 5경기.
* 마지막 타선 끝내기로 결정지어진 경기가 4경기
* 그리고 연장전으로 이어진 경기가 3경기
그럼에도 (근래 온라인상에서 의미가 왜곡된, '부정적 의미에서의') [[대첩(야구)|대첩]]급 경기는 전혀 없었고 손에 땀을 쥐는 경기의 연속이었던 그야말로 월드 시리즈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미국 스포츠 채널인 ESPN에서 선정한 역대 월드 시리즈 중 최고의 시리즈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칼튼 피스크]]의 극적인 6차전 끝내기 홈런으로 유명한 [[보스턴 레드삭스]]와 [[신시내티 레즈]]가 대결한 [[1975년 월드 시리즈]]이다.][* 이 기록은 조만간 바뀔 전망이다. [[2016년 월드 시리즈|25년후의 시리즈]]로 인해..].
[[파일:external/www.posters.ws/kirby_puckett_1991_world_series_home_run.jpg]]
6차전 끝내기 홈런을 친 [[커비 퍼켓]]
== 경기 전 ==
=== 1991년의 [[미네소타 트윈스]] ===
1990년을 74승 88패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무려 29경기를 뒤진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한 미네소타는 오프시즌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서 뛰던 강타자 [[칠리 데이비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뛰던 [[잭 모리스]]를 자유계약 선수로 영입한 것. 이미 4년 전이었던 1987년 월드 시리즈에서 활약한 수훈급 선수들이 방출되거나 다른 팀으로 이적한 가운데 중요한 것은 1989년 [[사이 영 상]] 수상자였던 프랭크 바이올라를 [[뉴욕 메츠]]로 보내고 케빈 태파니, 릭 아길레라 같은 신진급 유망주들을 데리고 온 것이 커다란 수확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여기에 [[커비 퍼켓]], 켄트 허벡. 그렉 개그니, 그리고 신인 2루수 척 노블락[* 참고로 노블락은 1991년 신인왕을 수상했다. --그리고 꽤 지난 후에 [[블래스 신드롬|1루 송구를 제대로 못하게 되는데]]...--]이 가세한 공격진은 앞의 두 거물급 선수를 영입함으로서 그 위력을 배가시켰고, 이러한 선수층을 바탕으로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8경기 차로 따돌리고 서부지구 우승을 확정짓고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ALCS를 시리즈 스코어 4대 1로 제압하고 4년 만에 월드 시리즈 진출을 확정짓게 된다.
=== 1991년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역시 만년 약체로 지내다가 [[바비 콕스]] 감독의 지휘아래 강팀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 기간 브레이브스 역시 많은 내부 변화를 가져왔는데 특별히 볼 것은 이 해 1월에 [[뉴욕 양키스]]로 부터 [[디온 샌더스]]를 데리고 온 것. 이미 미식축구와 야구 두 종목을 뛰던 그는 이미 [[애틀랜타 팰컨스]]에서 선수로 뛰고 있던 중이었으므로 같은 곳에서 두 종목을 뛸 수 있었던 것. 라파엘 벨리아드, 제프 블라우저, 비니 카스티야, [[데이비드 저스티스]] 그리고 테리 펜들턴이 가세한 브레이브스의 라인업은 매서운 펀치력이 돋보였고 [[존 스몰츠]], [[톰 글래빈]], 스티브 에이버리, 알레한드로 페냐에 [[시카고 컵스]]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한 마이크 바일렉키 등의 선발진은 최고의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전력을 힘입어 브레이브스는 91년 시즌을 94승 68패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단 한 게임을 앞선 상태에서 시즌을 마치고 동부지구 우승팀인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파이리츠를 NLCS에서 따돌리고 월드시리즈 승선의 기쁨을 맛본다.
== 경기 진행 ==
=== 1차전 ===
||<-13><bgcolor=#072754> {{{#c6011f,#fe3856 10월 19일, 메트로 돔}}} ||
||<rowbgcolor=#dcdcdc,#222222> '''팀'''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R''' || '''H''' || '''E''' ||
||<colbgcolor=#dcdcdc,#222222>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0 || 0 || 0 || 0 || 0 || 1 || 0 || 1 || 0 ||<colbgcolor=#dcdcdc,#222222> '''2''' || 6 || 1 ||
|| '''[[미네소타 트윈스]]''' || 0 || 0 || 1 || 0 || 3 || 1 || 0 || 0 || - || '''5''' || 9 || 1 ||
1차전에서 미네소타는 [[잭 모리스]]를, 애틀랜타는 찰리 리브란트를 등판시켰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라면 '''선발투수 모두 월드 시리즈에 등판했던 경력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잭 모리스는 1984년 대회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소속으로, 찰리 리브란트는 1985년 대회에서 [[캔자스시티 로열스]] 소속으로 나왔었다. 미네소타는 3회에 1점, 5회에 3점, 그리고 6회에 1점을 추가, 6회초와 8회초에 각각 1점을 얻는데 그쳤던 브레이브스를 5대 2로 제압하고 1승을 먼저 챙겼다.
=== 2차전 ===
||<-13><bgcolor=#072754> {{{#c6011f,#fe3856 10월 20일, 메트로 돔}}} ||
||<rowbgcolor=#dcdcdc,#222222> '''팀'''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R''' || '''H''' || '''E''' ||
||<colbgcolor=#dcdcdc,#222222>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0 || 1 || 0 || 0 || 1 || 0 || 0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2''' || 8 || 1 ||
|| '''[[미네소타 트윈스]]''' || 2 || 0 || 0 || 0 || 0 || 0 || 0 || 1 || - || '''3''' || 4 || 1 ||
이튿날 있었던 2차전에서는 칠리 데이비스, 스캇 레이우스 등이 홈런포를 쏘아올리고 태파니가 8회까지 건실하게 마운드를 지켜나가 마무리 릭 아귈레라가 세이브로 마무리해 3대 2로 2연승을 기록한다.
=== 3차전 ===
||<-16><bgcolor=#003366> {{{#ffffff 10월 22일, 애틀랜타-풀턴 카운티 스타디움}}} ||
||<rowbgcolor=#dcdcdc,#222222> '''팀'''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11회''' || '''12회''' || '''R''' || '''H''' || '''E''' ||
||<colbgcolor=#dcdcdc,#222222> [[미네소타 트윈스]] || 1 || 0 || 0 || 0 || 0 || 0 || 1 || 2 || 0 || 0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4''' || 10 || 1 ||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0 || 1 || 0 || 1 || 2 || 0 || 0 || 0 || 0 || 0 || 0 || 1 || '''5''' || 8 || 2 ||
애틀랜타로 옮긴 3차전에서는 12회 연장까지 가는 혈투를 벌인 끝에 애틀랜타가 마이크 렘키의 1점 적시타로 미네소타에 5대 4 1점차 승리를 얻어 시리즈 스코어 2대 1을 만들었다.
=== 4차전 ===
||<-13><bgcolor=#003366> {{{#ffffff 10월 23일, 애틀랜타-풀턴 카운티 스타디움}}} ||
||<rowbgcolor=#dcdcdc,#222222> '''팀'''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R''' || '''H''' || '''E''' ||
||<colbgcolor=#dcdcdc,#222222> [[미네소타 트윈스]] || 0 || 1 || 0 || 0 || 0 || 0 || 1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2''' || 7 || 0 ||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0 || 0 || 1 || 0 || 0 || 0 || 1 || 0 || 1 || '''3''' || 8 || 0 ||
4차전에서는 미네소타가 2회초에 1점 선취점을 내고 애틀랜타가 3회말에 1점으로 동점을 만들었다가 미네소타가 7회초에 1점을 다시 얻어 앞서는가 싶은 것을 7회말에 애틀랜타가 동점을 이뤄 2대 2 동점의 균형을 이루던 상황에서 9회말에 애틀랜타가 제리 윌라드의 [[끝내기(야구)|끝내기]] 희생타로 3대 2로 승리, 시리즈 스코어를 원점으로 돌렸다.
=== 5차전 ===
||<-13><bgcolor=#003366> {{{#ffffff 10월 24일, 애틀랜타-풀턴 카운티 스타디움}}} ||
||<rowbgcolor=#dcdcdc,#222222> '''팀'''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R''' || '''H''' || '''E''' ||
||<colbgcolor=#dcdcdc,#222222> [[미네소타 트윈스]] || 0 || 0 || 0 || 0 || 0 || 3 || 0 || 1 || 1 ||<colbgcolor=#dcdcdc,#222222> '''5''' || 7 || 1 ||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0 || 0 || 0 || 4 || 1 || 0 || 6 || 3 || - || '''14''' || 17 || 1 ||
5차전은 2차전 선발로 나왔던 태파니와 글래빈이 다시 등판했다. 그러나 애틀랜타는 태파니를 일찌감치 두들겨서 5대 0으로 만들었다. 이에 반격에 나선 미네소타도 6회초에 글래빈을 두들겨 5대 3까지 쫓아갔으나 7회말 무려 6득점을 얻은 애틀랜타는 8회말에 3점을 다시 추가, 8회와 9회에 각가 1점을 얻은 것에 그친 미네소타를 14대 5로 대파, 시리즈 3승 2패의 유리한 성적으로 미네소타로 향한다.
=== 6차전 : We will see you tomorrow Night![* 다시 말하면 "마지막 7차전에서 뵙겠습니다!"란 뜻] ===
||<-15><bgcolor=#072754> {{{#c6011f,#fe3856 10월 26일, 메트로 돔}}} ||
||<rowbgcolor=#dcdcdc,#222222> '''팀'''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11회''' || '''R''' || '''H''' || '''E''' ||
||<colbgcolor=#dcdcdc,#222222>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0 || 0 || 0 || 0 || 2 || 1 || 0 || 0 || 0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3''' || 10 || 1 ||
|| '''[[미네소타 트윈스]]''' || 2 || 0 || 0 || 0 || 1 || 0 || 0 || 0 || 0 || 0 || 1X || '''4''' || 8 || 2 ||
6차전에서 애틀랜타는 스티브 에이버리를, 미네소타는 스캇 에릭슨을 각각 선발로 내세웠다. 미네소타는 1회말 척 노블락이 안타로 나간뒤 커비 퍼켓이 적시 3루타를 때려 노블락을 불러들이고 2사 3루의 상황에서 당시 15타수 무안타로 부진했음에도 지명타자로 나선 셰인 맥이 적시타를 뿜어내 퍼켓을 불러들여 2대 0으로 앞서가고 있었다.
애틀랜타는 5회초 반격을 시작 2대 2로 동점을 이뤘으나 5회말 댄 글래든이 사구로 나간 뒤 2루로 도루하고 노블락의 우익선상의 안타로 3루로 진루한 뒤, 퍼켓의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홈으로 들어와 3대 2로 균형을 깼다. 그러나 브레이브스는 7회초 1사 만루의 상황에서 론 갠트가 친 병살성 땅볼을 타자주자였던 갠트가 전력질주로 세이프로 만들어 렘키의 득점을 인정, 3대 3의 균형으로 11회말로 돌입한다.
11회말의 미네소타의 공격에서 애틀랜타의 콕스 감독은 찰리 리브란트를 마운드에 세우고 커비 퍼켓을 공략하게 했다. 퍼켓은 투 볼 원 스트라이크의 상황에서 리브란트가 던진 제 4구째를 통타. 좌중간 담장을 넘기는 끝내기 홈런을 장식해 시리즈 스코어 3대 3을 만든다.
=== 7차전: 전설의 마지막 장 ===
||<-14><bgcolor=#072754> {{{#c6011f,#fe3856 10월 27일, 메트로 돔}}} ||
||<rowbgcolor=#dcdcdc,#222222> '''팀'''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R''' || '''H''' || '''E''' ||
||<colbgcolor=#dcdcdc,#222222>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0''' || 7 || 0 ||
|| '''[[미네소타 트윈스]]''' || 0 || 0 || 0 || 0 || 0 || 0 || 0 || 0 || 0 || 1X || '''1''' || 10 || 0 ||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두 팀은 에이스를 투입시켜 승부를 짓기로 한다. 미네소타는 [[잭 모리스]]를 그리고 애틀랜타는 [[존 스몰츠]]를 각각 등판시킨다. 월드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명 투수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미네소타의 선발 잭 모리스는 '''무려 10회동안''' 한 점도 허용하지 않는 전설적인 투구를 선보이고 미네소타에게 연장 10회말을 선사한다. 릴리프로 마운드에 등판한 알레한드로 페냐에게 글래든은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로 2루까지 진루, 무사 2루의 상황을 만든 상황에서 노블락이 희생번트로 글래든을 3루로 진루시킨다. 이 와중에서 애틀란타는 6차전의 영웅 퍼켓을 고의사구로 걸러보내는데는 성공했으나 3차전이후 좀처럼 타격이 살아나지 않던 켄트 허벡까지 고의사구로 걸러보내는 다소 의아한 결정을 내린다. 이렇게 1사 만루의 상황에서 미네소타 감독이었던 톰 켈리는 무릎부상으로 결장한 진 라킨을 투입했다. 그리고 라킨은 중견수 깊숙한 끝내기 적시타로 화답 1대 0으로 시리즈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 기타등등 ==
* 1991년의 월드 시리즈는 각 경기가 홈팀의 승리로 끝난 보기 드문 사례였다.[* 재미있게도 미네소타는 1987년 월드시리즈 우승 때도 홈경기였던 1,2,6,7차전에서 모두 승리했다.] 이 기록은 [[2001 월드 시리즈|10년 후]]의 대회에서 재현된다. 한편 이와는 정 반대의 사례가 [[2019 월드 시리즈|28년 후]] 사상 처음으로 벌어졌다.
* 이 대회의 중계는 잭 벅과 팀 매카버가 맡았다. 잭 벅은 6차전의 커비 퍼켓의 끝내기 홈런에서 "And we'll see you tomorrow night, (그리고 저희는 내일 저녁에 뵙겠습니다.)"라는 코멘트를 날렸는데 그의 아들 [[조 벅]]이 [[2011 월드 시리즈|20년 후의 WS경기]] 때 이것의 오마주를 시전한다. 경기 중간에 '월드 시리즈 6차전이 끝내기 홈런으로 끝난 것은 몇번인가?'라는 퀴즈가 나왔는데, 그날 해설을 맡았던 매카버가 '내가 기억 나는건, 너희 아버지와 1991년 월드 시리즈 중계할때 커비 퍼켓이 끝내기 홈런 친 게임이다'라고 언급했다. 11회초가 끝나고 매카버가 조 벅에게 "이거 네 아버지가 그 멘트했을 때랑 비슷한 상황인데?"라고 말했는데 공교롭게도 11회말 정말 똑같이 끝내기 홈런이 나와 조 벅이 아버지의 멘트를 그대로 했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그 때도 끝내기 홈런은 11회 말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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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월드 시리즈 6차전을 중계한 아버지 잭 벅과 2011년 월드 시리즈 6차전을 중계한 조 벅을 비교한 영상||
* 이때를 시점으로 애틀란타는 1990년대 월드 시리즈의 단골손님이 되었지만, 성적은 좋지 못했다. 바로 이듬해인 1992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게 패했지만, 2년 후인 1995년에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겨루어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 다음해인 1996년 대회에서는 [[뉴욕 양키스]]에게 패하고, 3년 후인 1999년 대회에서 다시 만난 [[뉴욕 양키스]]와의 대결은 아예 1승도 못 건지고 준우승에 그쳤다. 즉, 5번 올라가서 1번 우승. ~~그래도 한번이라도 우승한 게 어디야. 수십년 동안 올라가지도 못하는 팀들이 수두룩한데~~
* 가을의 전설을 시전한 잭 모리스는 이듬해에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해 또 다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고 상대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안녕하세요 또 만났군요.]]였다. 그리고 또다시 우승. 당시 켈리 감독은 그를 9회 때 강판시키려 했으나 그가 거절, "내 고향 사람들 앞에서 내 손으로 우승을 챙기고 싶다."는게 그 이유였다.
* [[민훈기]] 기자가 이 시리즈 때의 경험을 [[허구연]] 해설위원의 [[돔드립]] 만큼이나 상당히 자주 언급한다. 본인이 쓴 칼럼이나 해설한 경기에서 자주 보고 들을 수 있을 정도니(...) 직접 출장가 취재한 경기라서 더욱 그런지는 몰라도 [[허구연]]의 야구 인프라, 돔구장 드립 못지않게 남발되는 떡밥이다.
[[분류:월드 시리즈]] |
1991년 지방선거 | [[분류:1991년]][[분류:노태우 정부]]
[include(틀:대한민국의 주요선거)]
||<tablebordercolor=#4169E1><#ffffff><tablealign=center><-5> '''[[대한민국 지방선거|{{{#black 대한민국 지방선거}}}]]''' ||
|| [[1960년]] [[12월 12일]]/[[12월 19일]]/[[12월 26일]]/[[12월 29일]] ||<|2> → || [[1991년]] [[3월 26일]]/[[6월 20일]] ||<|2> → || [[1995년]] [[6월 27일]] ||
|| [[1960년 지방선거]] || '''1991년 지방선거'''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9><tablewidth=100%><#eeeeee><table align=center><:> '''1991년 지방선거/광역의원 선거 결과'''||
||<#003990><width=20%><:> '''[[민주자유당|{{{#ffffff 민주자유당 }}}]]''' ||<#70BA86><width=20%><:> '''[[신민주연합당|{{{#FFFFFF 신민주연합당 }}}]]''' ||<#DA2C43><width=20%><:> [[민주당(1990년)|{{{#ffffff 민주당}}}]] ||<#FFA500><width=20%><:> [[민중당(1990년)|{{{#ffffff 민중당 }}}]] ||<#808080><width=20%><:> [[무소속|{{{#ffffff 무소속}}}]] ||
||<:> '''564석''' ||<:> '''165석''' ||<:> 21석||<:> 1석 ||<:> 115석 ||
||<:> '''65.1%''' ||<:> '''19.1%''' ||<:> 2.4%||<:> 0.1% ||<:> 13.3%||
||<-4><tablewidth=60%><#eeeeee><table align=center><:> '''1991년 지방선거/기초의원 선거'''||
||<:> '''4,304석'''[* 기초의원직에 정당공천제가 실시되지 않아 후보자들 및 당선자들의 소속 정당을 알 수 없다.] ||
[목차]
== 개요 ==
[[1991년]] [[3월 26일]]과 [[6월 20일]] 2번에 걸쳐 치러진 [[대한민국 지방선거|지방선거]]. 투표율은 각각 55.0%, 58.9%를 기록했다.
국내에서 1960년 이후 31년만에 부활된 지방선거다. 다만 기초의원과 광역의원을 선출한 날이 달랐고[* 이건 이전 지방선거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선거 단위를 전국에서 동시에 치룬 선거는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최초다.] 지방자치단체장도 선출하지 않았다.
== 과정 ==
일단 지방선거제를 하자는 주장 자체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신한민주당]]이 하고 있었지만[* 과거 지방선거는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실질적인 지방자치제를 통일 이후로 유예하는 내용의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 헌법이 도입되고,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에서는 [[지방의회]]를 [[재정자립도]]에 따라 설치하도록 했지만 결국 설치되지 못한 상태였다.],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로도 여당 민주자유당은 예상보다 지지율이 낮다는 점 때문에 선거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1987년 [[6월 항쟁]]에 따라 개헌이 될때 지방의회의 설치가 [[헌법]]에 규정되면서 지방선거가 부활되었다.
[Youtube(l3DdN_9gr0s)]
[Youtube(vdIkCfwYF9s)]
오늘날과 달리 기초의원과 광역의원을 선출하는 날이 달랐고, 지방자치단체장은 선출하지 않았다. 이유는 1992년 6월에 단체장 선거를 치를 예정이었지만, 당시 대통령 [[노태우]]가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경제에 미치는 부담을 이유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3년 후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던 것. 노태우가 공약했던 중간평가 역시 1989년 이미 유야무야 되었다.
사실 민자당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정당과 민주당, 공화당의 조직이 합쳐지며 그야말로 거대한 정당 조직력을 갖추기는 했지만, 그 지지층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고 부동산 값과 물가상승 문제에 날치기, 당권투쟁 등까지 겹쳐 1990년 양대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할 정도로 민자당의 지지율이 저조했던 탓에[*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꼬마민주당과 민자당, 평민당의 지지율이 서로 엇비슷하게 나올 지경이었다.] 당장 지방선거 치르는 것을 썩 내켜하지 않아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것을 당시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단식투쟁을 하고 합의를 보는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야 지방의회 선거나마 치러질 수 있었던 것.
여하튼 이렇게 선거가 치러지기 직전 민자당은 거듭되는 날치기와 당 내분으로 지지율이 낮았던 상황이었고, 평화민주당을 확대 개편한 신민주연합당의 지지율도 그리 높지는 않던 상황이었지만 민자당과는 대체로 비슷한 수준이었고, 제3당인 꼬마 민주당도 선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덕택에 당초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이 부진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었'''다.
한편, 지방의원 선거는 1961년 이후 기존의 시읍면단위[* [[일본]]의 [[시정촌]]제를 본따서 군은 단체격이 없었다.]에서 시군단위로 행정 사무를 처리하는 제도가 도입되었으므로,[* 개정법이 시행되기는 했지만, 그 직전에도 정부에서 군 자치제를 도입하려고 했었다.] 부활되기 전과 달리 기초의원은 시군구단위로, 광역의원은 시도단위로 선출했다.
기초의원선거는 3월 26일, 광역의원은 6월 20일 선출하였다. 참고로 3월 26일에는 선거일을 맞아 학교가 쉰다고 [[도룡뇽]] 알을 주우러 간 몇몇의 학생이 실종되는 일명 [[개구리 소년]] 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또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5월에 일어나면서 선거 분위기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유서대필 사건은 사건 발생 23년 만에 강기훈 씨가 최종 무죄판결을 받으며 공안조작 사건으로 마무리 되었다.] 신민주연합당의 상징색은 초록색, 꼬마민주당의 상징색은 파란색이었다.
최초로 한자가 기재되지 않은 투표용지가 사용된 선거이다. [[14대 대선]]에서는 투표용지에 한자가 다시금 병용되었지만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부터는 투표용지에 한글과 아라비아 숫자만 기재된다.
== 결과 ==
기초의원 선거는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과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으로 당시 노태우 정권과 민자당 지지율이 크게 저조했음에도 불구하고,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거대한 지역 조직력과 야권 분열, 투표율 저조에[* 특히 20대 층에서 투표율이 37%로 비교적 저조하게 나온 원인도 있다. ~~원조 20대 개X끼론~~] 힘입어 예상 외 보수계의 우세로 나타났다. 시군구의회 260곳 중 190곳에서 보수계가 과반을 차지했고, 기초의원 4,333명 가운데 과반에 조금 못미치는 인원(2142명)이 민자당원이었고, 신민당은 785명에 그쳤다.[*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는 시군구의회선거에서 정당에서 따로 공천을 하지 않았으나 '''각 정당에 소속된 당원들은 출마가 가능했다'''.] 다만 신민당이 지원한 [[무소속]] 후보까지 합치면 902명 정도가 당선되었으니 아주 대패까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기대했던 서울에서 참패한데다가 전북 일부에서도 민자당에게 의석을 내주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으며 민주당 직접 당선자 33명에 지원 당선자까지 합쳐도 126명의 당선자를 내는데 그치며 역시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얻었다.
이후 치러진 광역의원 선거에서도 [[강경대]] 치사 사건 및 잇달은 분신 정국으로 민자당이 수도권 및 주요 대도시 지역에서 열세일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을 비롯한 검찰의 언론플레이와 선거 직전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일명 [[정원식]] 국무총리 서리 [[밀가루]] 투척 사건이 터지면서 강성층에 대한 대중의 반감으로 투표 열기가 가라앉게 되고, 역시 기초의원 선거와 마찬가지로 야권 분열에 투표율도 저조하게 나오며 광역의원 선거에서도 민주자유당이 당초 열세 지역으로 예측되었던 수도권에서 의석을 싹쓸이하여 868석 가운데 2/3인 564석을 휩쓸어 당초 목표인 550석을 웃돌았다. 지역적으로도 호남과 제주도를 제외한 11개 지역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단, 득표율은 40.6%에 그쳤다.) 반면 [[평민당]]의 후신인 신민주연합당(신민당)은 최소목표인 200석(기본 목표는 220석)에 못 미치는 165석을 얻는 참패를 당했고, 수도권에서 민자당에게 1당을 내준데다가 7개 시도의회에서 1석도 얻지 못하는 치욕을 당하게 되었다, [[민주당(1990년)|민주당]](별칭 꼬마 민주당) 역시 득표율은 선전했지만 비례대표 의석이 없던 특성 때문에 고작 21명의 당선자만 내는데 그치는 참패를 당했으며 진보 민중정당을 표방한 [[민중당(1990년)|민중당]]도 43명의 공천자를 냈지만 강원도 정선에서 당선자 1명을 내는 데 그치고 말았다.
개표 초반에는 군인표가 무소속과 야당에게 쏠리면서 대구 등 기존 여당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지역에서 신민당과 민주당, 민중당, 무소속 후보가 대약진하고 민자당이 참패할 것으로 나왔지만, 투표율이 낮게 나온 탓에(...) 개표가 진행되면서 민자당이 호남과 제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요 지역에서 역전하게 됐고 선거 결과는 민자당의 낙승으로 나타나게 된다.
반면 무소속은 경기, 강원 충남 등 중부권과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115명이 당선되어 돌풍을 일으켰는데, 특히 제주도에서는 민자당을 제쳐 과반수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이들 무소속 인사 중 상당수는 민자당 공천에서 탈락해 반발 출마한 친여 인사들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무소속 후보 중 화제가 된 시민연대회의 측은 서울지역 공천자 15명이 전원 낙선했고 [[전교조]] 역시 광주와 제주에서 각각 1명의 당선자밖에 못 냈다. [[http://elecinfo.nec.go.kr/neweps/ezpdfwebviewer/ezpdf/customLayout.jsp?contentId=2F6570646174612F455030362F4D4F4E323030362F30312F4D4F4E303132303036303638342F4D4F4E303132303036303638345F30303031532E706466|시도의회의원]], [[http://elecinfo.nec.go.kr/neweps/ezpdfwebviewer/ezpdf/customLayout.jsp?contentId=2F6570646174612F455030362F4D4F4E323030362F30312F4D4F4E303132303036303638352F4D4F4E303132303036303638355F30303031532E706466#|구시군의회의원]].
결과적으로 이 지방선거는 [[신민주연합당]]에게 [[민주당(1990년)|꼬마민주당]]과의 합당 없이는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교훈을 주었다. 결국 1991년 두 당이 통합하여 [[민주당(1991년)|민주당]]이 창당되었으며, 다음해 [[14대 총선]]의 결과는 민자당의 득표가 비슷한 상황에서 (통합)민주당의 득표는 29.2%로 7%를 더할 수 있게 되었다.[* 나머지 7%는 박찬종의 [[신정치개혁당]](2%)이나 [[정주영]]의 [[통일국민당]](17.4%) 등으로 흩어졌다. [[14대 대선]]의 결과도 거의 같았는데, 결과적으로 김영삼-김대중의 득표차가 8.2%였던 상황에서 박찬종이 6.4%나 되는 득표를 올린 것을 감안하면 단일화 실패의 탓을 무시할 수 없다.]
=== 군소정당의 의미있는 성과 ===
사실 [[민주당(1990년)|꼬마민주당]]은 참패를 거둔 것만은 아니었다. 압도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바로 앞 선거인 [[13대 총선]]와 비교하면 득표율에서는 민자당이 결코 이득을 본 선거가 아니었던 것. 앞선 13대 총선에서 4당의 득표는 노태우의 민정당 34%, YS의 민주당 24%, DJ의 평민당 19%, JP의 공화당 16%였다. 그리고 이 상황을 그대로 대입한다면 [[3당합당]]으로 창당한 민자당은 34 + 24 + 16 = 74%의 어마어마한 득표율을 올려야했다. 그러나 실상은 지방선거의 특성상 무소속에 22.4%가 쏠리면서 민자당의 득표는 고작 40%에 그쳤다. 그리고 신민당은 21.9%로 고작 3%를 더 득표하며 부진했던 반면, 꼬마 민주당은 전국적으로 14.3%라는 혁혁한 득표를 올렸다. 옛 통민당 지지자의 과반 이상을 흡수한 것이다.
또한 꼬마 민주당은 양당의 쏠림 현상이 심각한 [[전라도|호남]], [[대구광역시|대구직할시]],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를 제외하고는 전국에서 모두 의석을 확보했다. 특히 인천, 충남에서는 각각 무려 3석, 4석을 확보해 민자당에 비해서는 매우 부족하지만 2당이 되었다. 다만 서울의 1석은 아쉬운 결과였다. 신민당은 서울에서도 고작 132석 중 21석을 확보하는데 그쳤으며, 수도권과 호남, 대전(2석), 경남(1석)을 제외한 전국에서 전멸했다.
한편, 진보정당인 [[민중당(1990년)|민중당]]은 42명이 출마하여 상당히 높은 득표율을 확보했지만(선거구당 13.3%) 전국적으로 출마한 것이 아닌데다가 당시 광역의원 비례대표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강원도]] 정선군 제2선거구에 출마했던 [[성희직]] 1명의 당선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는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때에도 이어저 65명이 출마해 선거구별 득표율 6.5%를 획득했지만 당시엔 1인 2표제가 아니었고, 전체 득표로는 1.5%였으므로 정당 자체가 해산되었다.] 전체 득표로는 0.8%에 그쳤다. 민중당은 14대 총선과 대선에서 백기완(무소속 출마)을 내세웠는데, 거의 비슷한 1%대를 득표하며 "재야" 세력의 한계를 드러냈으며, 이후 [[제15대 대통령 선거]]까지 5년간 재야, 노동세력의 존재감은 거의 사라졌다.
=== 눈에 띄는 후보들 - 최동원과 이선희, 그리고 허경영 ===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348378_STD.jpg]]
부산직할시(현 [[부산광역시]]) 시의원 선거에서 당시 갓 은퇴한 야구선수 [[최동원]][* 선수협 파동이 계기가 되어 최동원은 1988 시즌이 끝나고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 되었으나, 1990 시즌이 끝나고 은퇴했다. 얼마 되지 않아서 바로 지방선거에 나오게 된 것.]이 "건강한 사회를 향한 새정치의 강속구"라는 슬로건과 함께 꼬마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지역구는 [[서구(부산)|서구]]. 하지만 큰 표차로 낙선했다. 최동원이 상도동계와 안면이 있었고 이전에 김영삼이 직접 최동원을 섭외하려고 시도까지 한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소신 출마였던 셈. 게다가 당시 서구는 김영삼 본인의 지역구였다. 때문에 최동원이 사망하지 않았다면 민주당계의 차기 부산 시장감으로 거론되었을지 모른다는 [[떡밥]]이 간간히 흘러나오고는 했었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06256|#]]
[[파일:서울시의원_이선희.png]]
가수 [[이선희]]는 전성기 시절에 민주자유당의 서울시의원([[마포구]])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http://blacktv.tistory.com/1151|#]] 구호는 "실천하는 마포의 딸". 하지만 야당세가 강한 전통 야당 텃밭 마포구에 일종의 인기성 저격 공천을 한 것이라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애초 민자당이 이선희의 성향과도 맞지 않아 결국 민주당으로 옮기고 임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정치계를 은퇴했다. 여담으로 그 와중에도 가수 활동은 했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허경영]]'''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이력을 거쳐 무소속으로 서울 [[은평구]](갈현동) 기초의원(구의원) 선거에 출마한 전력이 있다.(...) 결과는 다행히 21.1%를 득표하고 3위로 낙선.[[http://k05078.tistory.com/82|#]] 하지만 3개월 뒤 민중당으로 또 출마하는 끈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축지법 도사가 되었다.--
[[김을동]]도 꼬마민주당 후보로 동대문구에 출마했다. [[한나라당]]에 입당한 이후로는 보수정당쪽 정치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김두한|아버지]]가 말년에 [[신민당(1967년)|신민당]] 소속 정치인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어쨌든 김을동 자체는 이전부터 네임밸류가 있던데다가 비슷한 시기에 [[장군의 아들]]이 히트를 치다보니 후광효과가 기대되었는데 결국 투표율 저조와 야권단일화 실패로 낙선했다.
=== 지역별 광역의원 선거 결과 ===
||<-5><bgcolor=#EEEEEE><table align=center><table width=70%><:>'''[[서울특별시의회]] 선거 결과[br](총 재적 132석)'''||
||<bgcolor=#003990><width=33%><:>[[민주자유당|{{{#FFFFFF 민주자유당}}}]]||<#70BA86><width=33%><:> [[신민주연합당|{{{#FFFFFF 신민주연합당 }}}]]||<bgcolor=#DA2C43><width=33%><:>[[민주당(1990년)|{{{#FFFFFF 민주당}}}]]||
||<:>'''110석'''||<:>21석||<:>1석||
||<-5><bgcolor=#EEEEEE><table align=center><table width=70%><:>'''인천직할시의회 선거 결과[br](총 재적 27석)'''||
||<bgcolor=#003990><width=25%><:>[[민주자유당|{{{#FFFFFF 민주자유당}}}]]||<bgcolor=#DA2C43><width=25%><:>[[민주당(1990년)|{{{#FFFFFF 민주당}}}]]||<#70BA86><width=25%><:> [[신민주연합당|{{{#FFFFFF 신민주연합당 }}}]]||<bgcolor=#808080><width=25%><:>[[무소속|{{{#FFFFFF 무소속}}}]]||
||<:>'''20석'''||<:>3석||<:>1석||<:>3석||
||<-5><bgcolor=#EEEEEE><table align=center><table width=70%><:>'''[[경기도의회]] 선거 결과[br](총 재적 117석)'''||
||<bgcolor=#003990><width=25%><:>[[민주자유당|{{{#FFFFFF 민주자유당}}}]]||<#70BA86><width=25%><:> [[신민주연합당|{{{#FFFFFF 신민주연합당 }}}]]||<bgcolor=#DA2C43><width=25%><:>[[민주당(1990년)|{{{#FFFFFF 민주당}}}]]||<bgcolor=#808080><width=25%><:>[[무소속|{{{#FFFFFF 무소속}}}]]||
||<:>'''94석'''||<:>3석||<:>2석||<:>18석||
||<-5><bgcolor=#EEEEEE><table align=center><table width=70%><:>'''강원도의회 선거 결과[br](총 재적 54석)'''||
||<bgcolor=#003990><width=25%><:>[[민주자유당|{{{#FFFFFF 민주자유당}}}]]||<bgcolor=#DA2C43><width=25%><:>[[민주당(1990년)|{{{#FFFFFF 민주당}}}]]||<#FFA500><width=25%><:> [[민중당(1990년)|{{{#ffffff 민중당 }}}]]||<bgcolor=#808080><width=25%><:>[[무소속|{{{#FFFFFF 무소속}}}]]||
||<:>'''34석'''||<:>1석||<:>1석||<:>18석||
||<-5><bgcolor=#EEEEEE><table align=center><table width=70%><:>'''대전직할시의회 선거 결과[br](총 재적 23석)'''||
||<bgcolor=#003990><width=25%><:>[[민주자유당|{{{#FFFFFF 민주자유당}}}]]||<#70BA86><width=25%><:> [[신민주연합당|{{{#FFFFFF 신민주연합당 }}}]]||<bgcolor=#DA2C43><width=25%><:>[[민주당(1990년)|{{{#FFFFFF 민주당}}}]]||<bgcolor=#808080><width=25%><:>[[무소속|{{{#FFFFFF 무소속}}}]]||
||<:>'''14석'''||<:>2석||<:>1석||<:>6석||
||<-5><bgcolor=#EEEEEE><table align=center><table width=70%><:>'''[[충청남도의회]] 선거 결과[br](총 재적 55석)'''||
||<bgcolor=#003990><width=33%><:>[[민주자유당|{{{#FFFFFF 민주자유당}}}]]||<bgcolor=#DA2C43><width=33%><:>[[민주당(1990년)|{{{#FFFFFF 민주당}}}]]||<bgcolor=#808080><width=33%><:>[[무소속|{{{#FFFFFF 무소속}}}]]||
||<:>'''37석'''||<:>4석||<:>14석||
||<-5><bgcolor=#EEEEEE><table align=center><table width=70%><:>'''충청북도의회 선거 결과[br](총 재적 38석)'''||
||<bgcolor=#003990><width=33%><:>[[민주자유당|{{{#FFFFFF 민주자유당}}}]]||<bgcolor=#DA2C43><width=33%><:>[[민주당(1990년)|{{{#FFFFFF 민주당}}}]]||<bgcolor=#808080><width=33%><:>[[무소속|{{{#FFFFFF 무소속}}}]]||
||<:>'''31석'''||<:>2석||<:>5석||
||<-5><bgcolor=#EEEEEE><table align=center><table width=70%><:>'''광주직할시의회 선거 결과[br](총 재적 23석)'''||
||<#70BA86><width=50%><:> [[신민주연합당|{{{#FFFFFF 신민주연합당 }}}]]||<bgcolor=#808080><width=50%><:>[[무소속|{{{#FFFFFF 무소속}}}]]||
||<:>'''19석'''||<:>4석||
||<-5><bgcolor=#EEEEEE><table align=center><table width=70%><:>'''전라남도의회 선거 결과[br](총 재적 73석)'''||
||<#70BA86><width=33%><:> [[신민주연합당|{{{#FFFFFF 신민주연합당 }}}]]||<bgcolor=#003990><width=33%><:>[[민주자유당|{{{#FFFFFF 민주자유당}}}]]||<bgcolor=#808080><width=33%><:>[[무소속|{{{#FFFFFF 무소속}}}]]||
||<:>'''67석'''||<:>1석||<:>5석||
||<-5><bgcolor=#EEEEEE><table align=center><table width=70%><:>'''전라북도의회 선거 결과[br](총 재적 52석)'''||
||<#70BA86><width=50%><:> [[신민주연합당|{{{#FFFFFF 신민주연합당 }}}]]||<bgcolor=#808080><width=50%><:>[[무소속|{{{#FFFFFF 무소속}}}]]||
||<:>'''51석'''||<:>1석||
||<-5><bgcolor=#EEEEEE><table align=center><table width=70%><:>'''[[부산광역시의회|부산직할시의회]] 선거 결과[br](총 재적 51석)'''||
||<bgcolor=#003990><width=40%><:>[[민주자유당|{{{#FFFFFF 민주자유당}}}]]||<bgcolor=#DA2C43><width=40%><:>[[민주당(1990년)|{{{#FFFFFF 민주당}}}]]||
||<:>'''50석'''||<:>1석||
||<-5><bgcolor=#EEEEEE><table align=center><table width=70%><:>'''경상남도의회 선거 결과[br](총 재적 89석)'''||
||<bgcolor=#003990><width=25%><:>[[민주자유당|{{{#FFFFFF 민주자유당}}}]]||<#70BA86><width=25%><:> [[신민주연합당|{{{#FFFFFF 신민주연합당 }}}]]||<bgcolor=#DA2C43><width=25%><:>[[민주당(1990년)|{{{#FFFFFF 민주당}}}]]||<bgcolor=#808080><width=25%><:>[[무소속|{{{#FFFFFF 무소속}}}]]||
||<:>'''73석'''||<:>1석||<:>1석||<:>14석||
||<-5><bgcolor=#EEEEEE><table align=center><table width=70%><:>'''대구직할시의회 선거 결과[br](총 재적 28석)'''||
||<bgcolor=#003990><width=35%><:>[[민주자유당|{{{#FFFFFF 민주자유당}}}]]||<bgcolor=#808080><width=35%><:>[[무소속|{{{#FFFFFF 무소속}}}]]||
||<:>'''26석'''||<:>2석||
||<-5><bgcolor=#EEEEEE><table align=center><table width=70%><:>'''경상북도의회 선거 결과[br](총 재적 87석)'''||
||<bgcolor=#003990><width=33%><:>[[민주자유당|{{{#FFFFFF 민주자유당}}}]]||<bgcolor=#DA2C43><width=33%><:>[[민주당(1990년)|{{{#FFFFFF 민주당}}}]]||<bgcolor=#808080><width=33%><:>[[무소속|{{{#FFFFFF 무소속}}}]]||
||<:>'''66석'''||<:>5석||<:>16석||
||<-5><bgcolor=#EEEEEE><table align=center><table width=70%><:>'''[[제주특별자치도의회|제주도의회]] 선거 결과[br](총 재적 17석)'''||
||<bgcolor=#808080><width=35%><:>[[무소속|{{{#FFFFFF 무소속}}}]]||<bgcolor=#003990><width=35%><:>[[민주자유당|{{{#FFFFFF 민주자유당}}}]]||
||<:>'''9석'''||<:>8석||
[[분류:전국동시지방선거]] |
1991년 한국시리즈 | [include(틀:역대 KBO 한국시리즈 목록)]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 bordercolor=#151b54><bgcolor=#ffffff,#191919> [[파일:external/41.media.tumblr.com/tumblr_o4a4woaUar1sqk8veo6_r1_400.png|width=200]][br] '''{{{#151b54,#abb1ea 역대}}} [[KBO 한국시리즈|{{{#151b54,#abb1ea KBO 한국시리즈}}}]]''' ||
||<width=30%> [[1990년 한국시리즈|1990년]] [br] [[LG 트윈스]] || {{{+1 ←}}} ||<bgcolor=#ffffff,#191919><width=30%> '''1991년''' [br] '''[[해태 타이거즈]]''' || {{{+1 →}}} ||<width=30%> [[1992년 한국시리즈|1992년]] [br] [[롯데 자이언츠]] ||
||<-2><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f01e23><tablebgcolor=#ffffff,#191919>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91VVV.jpg|width=100%]]}}} ||
||<-2> [[파일:wuokE4a.png|width=150]] ||
||<-2><bgcolor=#000000> '''{{{#ff0000 1991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
||<-2><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타이거즈}}}''']] ||
|| '''{{{#f01e23 MVP}}}''' || [[장채근|'''{{{#f01e23 장채근}}}''']] ||
>'''스트락아웃. 경기 끝났습니다. 한국시리즈의 패권은 해태 타이거즈로 넘어갔습니다. 빙그레 이글스와 해태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해태 타이거즈가 5:4로 4차전까지 승리를 장식해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 ----
> MBC 양진수 아나운서의 우승콜
[목차]
== 개요 ==
||<tablewidth=100%><-2><:><tablebordercolor=#edd36c><bgcolor=#00143f,#0b1966> {{{+2 {{{#edd36c '''1991'''}}} {{{#edd36c '''프로야구'''}}} {{{#ffffff '''한국시리즈'''}}}}}} ||
||<width=500><height=150><#ff6600> [[파일:빙그레모자로고.png|width=150]] ||<width=500><height=150><#f01e23> [[파일:1411__haitai_tigers_cap-1982.png|width=110]] ||
||<width=500><#ff6600> [[빙그레 이글스|{{{#000000 {{{+1 '''빙그레 이글스'''}}}}}}]] ||<width=500><#f01e23> [[해태 타이거즈|{{{#000000 {{{+1 '''해태 타이거즈'''}}}}}}]] ||
1991년 10월 9일에 시작하여 [[스윕|4승 무패]]로 [[해태 타이거즈]]가 우승한 시리즈. 전년도에 우승을 하지 못한 것을 바로 되갚으면서 최강자로서 다시 해태가 군림하는 계기가 된 시리즈이자, 1990년대 4차례 통합 우승의 첫 발을 내딛은 순간이기도 하다.
시리즈 MVP는 팀의 주전 포수로서 15타수 7안타 8타점을 친 [[장채근]]이다.
== 엔트리 ==
=== [[해태 타이거즈]] ===
||<-3><tablewidth=80%><bgcolor=#f01e23> '''{{{#ffffff 해태 타이거즈 1991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width=10%><colbgcolor=#000000> '''{{{#ffffff 감독}}}''' ||<width=10%> 1명 ||<width=80%> [[김응용]] ||
||<width=10%> '''{{{#ffffff 코치}}}''' ||<width=10%> 8명 ||<width=80%> [[백기성]], [[유남호]], [[김봉연]], [[서정환]], [[차영화]], [[이상윤(야구선수)|이상윤]], 김경훈, 조충열 ||
||<width=10%> '''{{{#ffffff 투수}}}''' ||<width=10%> 12명 ||<width=80%> [[선동열]], [[김정수(1962)|김정수]], [[신동수(1966)|신동수]], [[문희수]], [[조계현]], [[이강철]], [[송유석]], [[강태원]] ||
||<width=10%> '''{{{#ffffff 포수}}}''' ||<width=10%> 2명 ||<width=80%> [[장채근]], [[정회열]] ||
||<width=10%> '''{{{#ffffff 내야수}}}''' ||<width=10%> 8명 ||<width=80%> [[김성한]], [[한대화]], [[박철우(야구)|박철우]], [[윤재호(야구선수)|윤재호]], [[홍현우]], 김태완, [[백인수|백인호]] ||
|| '''{{{#ffffff 외야수}}}''' ||<width=10%> 6명 ||<width=80%> [[김종모]], [[이순철]], [[이건열]], [[김성규(야구선수)|김성규]], ~~[[이호성]]~~ ||
=== [[빙그레 이글스]] ===
||<-3><tablewidth=80%><bgcolor=#ff6600> '''{{{#ffffff 빙그레 이글스 1991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width=10%><colbgcolor=#000000> '''{{{#ffffff 감독}}}''' ||<width=10%> 1명 ||<width=80%> [[김영덕]] ||
||<width=10%> '''{{{#ffffff 코치}}}''' ||<width=10%> 6명 ||<width=80%> [[김명성(1946)|김명성]], [[이희수(야구인)|이희수]], [[함학수]], 송일섭, [[황병일]], [[정구선]] ||
||<width=10%> '''{{{#ffffff 투수}}}''' ||<width=10%> 9명 ||<width=80%> [[한용덕]], [[한희민]], [[송진우(야구)|송진우]], [[이동석(야구선수)|이동석]], [[진정필]], [[김대중(야구)|김대중]], [[장정순]], [[김인권(야구선수)|김인권]], [[김홍명]] ||
||<width=10%> '''{{{#ffffff 포수}}}''' ||<width=10%> 3명 ||<width=80%> [[김상국]], [[양용모]], [[유승안]] ||
||<width=10%> '''{{{#ffffff 내야수}}}''' ||<width=10%> 8명 ||<width=80%> [[강정길]], [[전대영]], [[장종훈]], [[강석천]], [[황대연]], [[조양근]], [[지화동]], [[김용선(야구)|김용선]] ||
|| '''{{{#ffffff 외야수}}}''' ||<width=10%> 6명 ||<width=80%> [[이정훈(1963)|이정훈]], [[이강돈]], [[이중화]], [[임주택]], [[진상봉]], 임성우[* 4차전 9회말 2사 상황에서 선동열에게 삼진을 허용한 타자다.] ||
== 시리즈 전 상황 ==
전년인 1990년 간발의 차로 정규시즌 우승에 실패하고, PO에서 [[삼성 라이온즈]]에게 충격적인 3연패를 당한 후, [[김응용]] 감독은 바로 지리산에 칩거하며 팀의 문제점을 분석했고, 그 결과를 통해 1991년에는 그야말로 칼을 갈고 나오며 시즌을 임했다. 그렇지 않아도 강해진 전력에 독기를 품은 해태는 1991년에 시즌 전체를 지배하다시피 했다. 시즌 초반 [[김성한]]의 부상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5월부터 치고 나간 해태는 압도적인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다. 618득점/409실점으로 [[피타고리안 승률]]을 이용해 기대승률을 따지면 역대 2위(.695)[* 피타고리안 승률은 팀득점의 제곱 ÷ (팀득점의 제곱 + 팀실점의 제곱)으로 단순히 득점/실점을 따져 기대승률을 구하는 공식. 점수를 많이 이기고 적게 주는 팀이 높은 승률을 올리는 건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이기에 그팀이 전력에 비해 얼마나 좋은 승률을 올렸는지 가늠하는 지표이기도 하다.]로 91승을 거둔 00년의 현대보다 더 높았다.[* 1위는 82년 [[삼성 라이온즈]]이며 당시는 한팀이 80게임만을 치뤘다.]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실제승수보다 피타고리안 승률이 현저히 낮으려면 크게 이기고 작게 지는 경기가 많아야 한다. 실제로 그해 해태는 1점차 승부에서 7승 18패로 8개구단 중 압도적인 꼴찌를 기록한다. 전체 패배의 43%가 1점차 패배였던 것이다. 피타고리안 승률에 의하면 87승 1무 38패 또는 86승 3무 37패 쯤을 거두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79승 5무 42패로 거기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1점차 승부에서 약하다는 점과 빙그레와 8승 3무 7패로 호각이라는 점 때문에 페넌트레이스에서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하고도 분위기의 차이는 그정도로 대단하지는 않았다.
빙그레 역시 전력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최고의 전력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타선은 이 해 35홈런을 친 [[장종훈]]을 위시하여 여전히 강했지만, 마운드의 원투펀치인 [[이상군]]과 [[한희민]]이 그동안 무리한 대가를 치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 자리를 [[송진우(야구)|송진우]]와 [[한용덕]]이 등장해 메우고 있었지만, 마운드의 높이에서는 해태에 비해 분명 약했고, 여기세 PO에서 준PO에서 4경기나 치루면서 전력을 소모한 삼성 상대로 생각보다 시원하게 이기지 못하면서 앞선 1989년과는 달리 이 번 시리즈는 해태가 절대 우세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분위기대로 결과가 나왔다.
== 경기 결과 ==
=== 1차전 ===
||<-14><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1차전, 10.09(수), 18:00, [[무등 야구장|{{{#ffffff 무등 야구장}}}]]'''}}} ||
||<rowbgcolor=#dcdcdc,#222222>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gcolor=#ff660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한희민]] || 0 || 1 || 1 || 0 || 0 || 0 || 0 || 2 || 0 ||<colbgcolor=#dcdcdc,#222222> '''4''' || 8 || 2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선동열]] || 0 || 3 || 1 || 0 || 0 || 2 || 0 || 3 || - || '''9''' || 6 || 0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KBS1|[[파일:KBS 1 logo[1].png|width=45]]]] | 캐스터: 이장우 | 해설: 하일성'''[*타사중계1 MBC 라디오: 고창근 - 허구연] ||
해태는 선발로 [[선동열]]을 내세웠고, 빙그레는 선발로 [[한희민]]를 내세웠다. 한용덕을 가급적 선동열과 붙이지 않으려는 전략이었는데, 일단 2회초에 강정길의 홈런으로 먼저 앞서기는 했다. 허나 해태는 2회말에 바로 [[한대화]]의 홈런과 [[장채근]]의 적시타로 앞서 나갔고, 그 뒤로도 빙그레가 점수를 만회할 때마다 추가점을 내면서 상대를 압박했다. 사실 빙그레도 4회부터 나온 장정순의 호투로 분위기를 반전시켰지만, 그 장정순은 6회에 교체되었고, 그 때 여지없이 2점을 실점하면서 스스로 경기를 그르쳤다.
빙그레의 타선은 나쁘지 않았다. 찬스도 잘 잡았고, 무엇보다 선동열 상대로 4점을 내면서 끈질기게 공략했다. 만일 정상적으로 [[한용덕]]이 나왔다면, 승부는 정말 알 수 없었던 일. 어쨌거나 해태는 마운드에서 선동열이 9이닝 4실점으로 완투하며 시리즈 첫 승을 따냈다.
여담이지만, 이날 빙그레의 경기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김영덕 감독은 경기 도중 덕아웃에서 호통치는 장면이 중계화면에 잡히기도 했었다.[* 자세한 내막을 소개하자면, 6회초 빙그레의 공격때 무사 1,2루에서 3번타자 장종훈이 2루 땅볼로 간발의 차로 아웃된 사이에 2루주자 이정훈과 1루주자 이중화가 각각 3루, 2루로 진루하였고, 1사 2,3루에서 4번 강정길이 유격수 플라이, 그리고 후속타자 이강돈이 1루 땅볼로 맥없이 물러나버렸다. 안타 하나면 동점도 가능했는데 중심타자들이 제 역할을 못해주니 감독 입장에선 분노 폭발할 만 했던 상황.]
=== 2차전 ===
||<-14><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2차전, 10.10(목), 18:00, [[무등 야구장|{{{#ffffff 무등 야구장}}}]]'''}}} ||
||<rowbgcolor=#dcdcdc,#222222>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gcolor=#ff660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한용덕]] || 1 || 1 || 0 || 0 || 0 || 0 || 0 || 0 || 0 ||<colbgcolor=#dcdcdc,#222222> '''2''' || 7 || 3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김정수(1962)|김정수]] || 0 || 1 || 1 || 0 || 6 || 1 || 2 || 0 || - || '''11''' || 13 || 1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MBC|[[파일:attachment/mbc86.jpg|width=50]]]] | 캐스터: | 해설: 허구연, 김소식''' ||
해태는 선발로 [[김정수(1962)|김정수]]를 내세웠고, 빙그레는 선발로 [[한용덕]]을 내세웠다. 경기 초반 빙그레는 제구 난조를 보인 김정수를 공략하고, [[이건열]]의 실책을 묶어 먼저 2점을 냈다. 하지만 해태는 곧바로 2회말 한 점을 만회한 후, 실책의 당사자인 이건열이 3회말 홈런으로 동점에 성공했다. 그리고 마운드도 2회부터 [[이강철]]로 교체하여 더이상 실점을 하지 않았다. 여기에 3회와 4회, [[이순철]]의 잇딴 호수비로 실점 위기를 넘겼다.
승부는 5회말에 갈렸다. 2사 후에 이건열의 역전 홈런을 신호탄으로 제구가 흔들린 한용덕을 공략하면서 한용덕을 마운드에서 끌어 내린다. 후속 투수는 그 해 8승을 거둔 신인 김인권이었다. 그러나 신인으로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여기서 해태는 한대화와 장채근의 연속 적시타를 묶어 대거 6득점에 성공했다. 그리고 7회말과 8회말에도 점수를 추가하면서 빙그레를 대파하면서 기선을 확실하게 제압했다.
=== 3차전 ===
||<-14><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3차전, 10.12(토), 14:00,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ffffff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dcdcdc,#222222>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문희수]] || 0 || 0 || 0 || 0 || 0 || 0 || 0 || 4 || 0 ||<colbgcolor=#dcdcdc,#222222> '''4''' || 4 || 1 ||
||<bgcolor=#ff660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송진우(야구)|송진우]] || 0 || 1 || 0 || 0 || 0 || 0 || 0 || 0 || 0 || '''1''' || 8 || 0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KBS1|[[파일:KBS 1 logo[1].png|width=45]]]] | 캐스터: 정도영 | 해설: 하일성'''[*타사중계3 MBC 라디오: 송인득 - 김소식] ||
홈으로 돌아온 빙그레는 [[송진우(야구)|송진우]]를 기용했고, 해태는 [[문희수]]을 내세웠다. 빙그레는 2회말 1점을 얻어 앞서갔고 송진우는 8회 2사까지 퍼펙트를 이어갔다. 그때까지 해태는 송진우를 전혀 공략하지 못하며 철저히 끌려가는 상황이었다. 빙그레 입장에서는 2회 점수를 낸 후, 무사 1, 3루 찬스와 3회 무사 1, 2루의 찬스를 놓친 것이 아쉬웠지만, 송진우의 구위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경기를 이기는 데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8회 2아웃 이후 대타 정회열 타석에서 충분히 잡을 수 있었던 파울플라이를 놓친 것이 화근이 되었고, 2-2에서 회심의 공을 볼로 판정하면서 결국 정회열은 볼넷을 얻어 출루했다. 퍼펙트가 깨진뒤 송진우는 홍현우에게 안타를 맞으며 노히트노런도 무산되었고 이어 장채근에게 역전 2타점 2루타, 윤재호에게 3루타를 허용하며 연속 3실점을 하고 강판된다. 그 후 구원등판한 장정순이 이건열에게 안타를 맞고 추가 1실점을 하여 결국 1:4로 빙그레가 패했다. 이로써 빙그레는 1, 2, 3차전을 모두 내주며 말 그대로 벼랑끝에 몰렸다.
=== 4차전 ===
||<-14><bgcolor=#f01e23> {{{#ffffff '''한국시리즈 4차전, 10.13(일), 14:00,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ffffff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
||<rowbgcolor=#dcdcdc,#222222>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fff 해태}}}]]''' || [[김정수(1962)|김정수]] || 0 || 0 || 0 || 0 || 0 || 0 || 0 || 3 || 2 ||<colbgcolor=#dcdcdc,#222222> '''5''' || 7 || 0 ||
||<bgcolor=#ff660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한용덕]] || 1 || 0 || 0 || 1 || 0 || 0 || 0 || 2 || 0 || '''4''' || 8 || 1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MBC|[[파일:attachment/mbc86.jpg|width=50]]]] | 캐스터: 양진수 | 해설: 허구연, 김소식''' ||
[youtube(nRhCMv3uQQc)]
빙그레는 [[한용덕]]을 이틀 쉬고 내보내는 도박을 걸었고, 이 도박은 7회까지는 먹혔다. 빙그레가 1회 이정훈의 홈런과 4회 연속 2루타로 2: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빙그레는 한 끗이 부족했다. 8회초에 무사 1,2루 찬스를 잡은 해태는 보내기 번트가 아니라 강공을 선택했고, 이 작전이 적중하여 대타 김태완의 동점 2루타로 동점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뒤는 보내기 번트와 땅볼로 역전했다.
빙그레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아 8회말 선동열 상대로 [[강석천]]이 역전 2점 홈런을 치면서 승부를 다시 뒤집었다. 아웃카운트 3개만 잡으면 잠실로 가는 상황에서 구원으로 나온 한희민은 [[장채근]]에게 동점 적시타를 허용했고, 3루수 실책이 나오면서 1사 1,2루의 찬스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이순철이 역전 적시타를 치면서 결국 9회초 다시 2실점하여 빙그레는 패배했다. 반대로 해태는 불리했던 경기를 기어이 뒤집으면서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에 복귀하며 통산 6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빙그레는 잡을 수 있었던, 아니 잡아야만 했던 경기를 또다시 최악의 역전패로 장식하면서 해태와의 한국시리즈 맞대결 [[삼연벙|3전 3패]]를 당했고, 안방에서 상대방의 우승을 지켜보는 치욕을 당하고 말았다.[* 이글스의 역사상 5번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에서 홈그라운드인 대전에서 마무리된(패배로) 것은 1991년이 유일하다.]
== 기타 ==
* 앞선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무승부로 4차전이 치러졌다.[* 두번째 오버시리즈는 [[2004년 한국시리즈]]였는데, 이때는 시간이 10:00 이후에 무승부일 경우, 더 이상의 진행을 안해서 무승부가 속출하다 보니 7차전을 넘기는 촌극이 나온 탓이었다.][* 준PO 4차전은 [[2005년]] 5전 3선승제로 바뀌면서 나왔다.] 플레이오프에서는 3승 1패가 나왔다. 한국시리즈는 해태가 4차전만에 스윕하면서 포스트시즌 모든 시합이 4차전만에 끝났다는 진기록을 남겼다.[* 이후 [[KBO 리그/2016년 포스트시즌|2016년 포스트시즌]]에서 2차전이 최종전인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제외하고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가 모두 4차전에서 끝났다. 공교롭게도 이 때 [[양의지|한국시리즈 MVP]]도 포수였다.] 그리고 [[1990년 한국시리즈|전년 시리즈]]에 이어 '''2년 연속 [[스윕]]'''으로 끝난 유일한 시리즈다.
* 포스트시즌 전체를 기준으로 역사상 최초로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단 한 경기도 열리지 않은 시리즈'''이다.[* 서울 연고였던 OB, LG는 진작에 4강 탈락했고, 한국시리즈가 5차전까지 갔으면 잠실에서 열릴 가능성도 있었는데, 해태가 스윕으로 막은 것이다. 더불어 이 당시에는 플레이오프 5차전마저 잠실 중립 경기가 있었는데 빙그레가 3승 1패로 이겨서 5차전이 치뤄지지 않았다.][* 한국시리즈 한정으로는 [[1987년 한국시리즈]] 이후 두 번째로 서울에서 단 한경기도 안열리고 끝난 시리즈이다. 이후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세번째로 서울에서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고 끝났다.][* 한편 서울에서 열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2020년에는 대규모 전염병의 유행으로 일정이 지나치게 밀리자 한국시리즈 전 경기를 [[고척 스카이돔]]에서 중립경기로 치르기로 결정하면서 역사상 4번째로 한국시리즈가 잠실에서 한 경기도 열리지 않게 되었다.] 3차전 8회 2아웃 정회열 타석의 2-2에서 바깥쪽 직구에 대한 볼 판정은 지금도 논란거리이다. 송진우 본인은 아직도 그 공을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경기를 본 기자들은 그 공은 스트라이크를 줘도 할 말이 없는 공이었다고 인정한다. 반대로 당시 주심인 이규석 씨는 아직도 그 공은 볼이라고 확신하고 있고, 이후 [[http://news.donga.com/View?gid=52145188&date=20130108|당시 포수였던 유승안의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유승안]]의 인터뷰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 3차전이 대역전패로 끝나자 그 공 하나로 경기가 바뀌었다고 생각한 대전의 일부 관중 + 잠실 경기 표를 미리 산 암표상이 합세해서 심판 숙소를 점거하고, 심판과 한 판 뜬 사건이 벌어졌다. 21세기인 지금이야 대전 '''보살'''팬으로 성향이 완전히 바뀌었지만 이 당시만해도 [[마산아재]], [[대구아재]], 도원아재, 광주아재 저리가라 할 정도로 성깔있는 '''[[대전아재]]'''들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악명높은 [[대구아재]], [[마산아재]]들과는 달리 대전아재들은 2000년대를 끝으로 직관이 줄어들음으로서 세대교체가 되어 자연스럽게 보살 응원 문화로 바뀌었다. 실제로 2010년대 이후의 한화 홈구장은 10대부터 40대까지 다채로운 연령대가 오지만, 80~90년대에 한참 날렸던 대전아재 세대에 속한 50~60대들은 별로 직관을 하지 않고 야구 얘기가 나와도 무덤덤하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굳이 추론하자면 오랜 암흑기로 인한 체념 + 영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점잖은 충청의 지역 성향이 작용함에 따라 대전아재들의 야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포기하면 편해]]로 바뀐것일지도 모른다.]어쨌든 결과는 의외로[* 심판들은 거의 모두 전직 야구선수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운동선수 출신은 웬만한 사람들보다 완력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심판의 승리. 대신에 경찰에 가서 치료비는 다 물어줘야 했다고 한다.
* 김영덕 당시 빙그레 감독의 '큰 경기에 약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죽하면 4차전까지 내주며 홈에서 시리즈가 끝나자, 대전의 빙그레 홈 관중들이 "앞으로 빙그레는 정규시즌만 김영덕 감독에게 맡기고, 한국시리즈는 감독을 따로 써라"고 성토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듬해 롯데와의 한국시리즈마저 패하며 김영덕 감독은 두고두고 큰 경기에 약한 감독으로 남게 되었다.
* 빙그레는 한국시리즈에서 해태를 상대로 이 시리즈까지 세번 맞붙어서 모두 패했다. 빙그레-한화 이글스의 첫 우승이 늦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해태 때문이었다.[* 하지만 삼성은 이미 1985년에 통합우승으로 V1을 달성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한정 첫 우승은 통합 우승 이후 [[2002년 한국시리즈|17년이나 지난 후에서야 했다.]] '''[[김응용|그것도 자신들을 해태 시절 그렇게 한국시리즈에서 괴롭힌 감독]] 휘하에서.'''] 해태가 너무 강했다. 하필 빙그레의 전성기가 해태의 최전성기와 일치했던 것이 컸다. 거기다 세번 맞붙으면서 시리즈 전적도 2:4(1988년), 1:4(1989년), 0:4(1991년)으로 계속 맞붙을수록 승수가 줄어들면서 더 호구잡혔다. 때문에 빙그레-한화팬들은 삼성팬 못지 않게 해태-기아에 대한 반감이 높았다. 하지만 이후 빙그레-한화와 해태-기아가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일은 약 30년이 되도록 없다.[* 1994년, 2006년에 만난 적도 있긴 하나 둘 다 한국시리즈가 아닌 준플레이오프였다. 그리고 1994년에는 2승 스윕으로 한화가 해태를 눌렀으나 플레이오프에서 태평양에게 스윕패로 탈락했고, 2006년에는 2승 1패로 한화가 KIA를 누르고 플레이오프에서 현대를 연파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해태-KIA는 한국시리즈에서는 극강이어도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이상하게 단 한번도 승리를 못할 정도로 약했다. 그건 준플밖에 못올라올 정도면 그해의 전력이 별로였다는 의미라고 볼수 있다.]
* 별 것 아니지만, 우승 엠블럼에 오타가 있다. 'SERIES'가 'SERI''''SE''''로 적혀져있고, 20년이 넘게 지났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당시 우승 횟수는 6회인데 별도 6개가 아니라 7개가 표시되어 있었다.
* 온라인 야구게임 마구마구에서 해태 타이거즈 년도덱들은 인기가 없었지만 블랙카드와 베테랑, 듀얼포지션 등이 패치되면서 현재 91년 해태덱은 큰 인기를 자랑한다.
== 관련 문서 ==
* [[해태 타이거즈]]
* [[빙그레 이글스]]
== 둘러보기 ==
[include(틀:한국프로야구 역대 포스트시즌 목록)]
[[분류:KBO 한국시리즈]][[분류:해태 타이거즈]][[분류:한화 이글스]] |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 [include(틀:역대 하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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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 서울 올림픽]] || {{{+1 → }}} ||<bgcolor=#dcdcdc,#030303>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 {{{+1 → }}} || [[1996 애틀랜타 올림픽]] ||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1e629f><bgcolor=#1e629f> {{{+4 ''' {{{#fff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 ''' }}} ||
||<-3><bgcolor=#f2b92c> {{{#fff 제25회 올림픽 경기대회[br]{{{+1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경기대회}}}[br]Juegos Olímpicos 1992[br]Games of the XXV Olympiad[[상표|{{{#fff ™}}}]] Barcelona 199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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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ght=40><bgcolor=#ea4b38> {{{#fff ''' 슬로건 ''' }}} ||<-2> '''Amigos Para Siempre''',,([[스페인어]]),,[br]'''Amics Per Sempre''',,([[카탈루냐어]]),,[br]'''Friends Forever'''[br](영원한 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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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ght=40><bgcolor=#ea4b38> {{{#fff ''' 개회선언 ''' }}} ||<-2> [[후안 카를로스 1세]][br],,[[스페인 국왕]],, ||
||<height=40><bgcolor=#ea4b38> {{{#fff ''' 선수 선서 ''' }}} ||<-2> 루이스 도레스테 블랑코 ||
||<height=40><bgcolor=#ea4b38> {{{#fff ''' 심판 선서 ''' }}} ||<-2> 에우헤니 아센시오 ||
||<height=40><bgcolor=#ea4b38> {{{#fff ''' 성화 점화 ''' }}} ||<-2> 안토니오 레보요 ||
||<height=40><bgcolor=#ea4b38> {{{#fff ''' 개·폐회식장'''}}} ||<-2> [[에스타디 올림픽 류이스 콤파니스|에스타디 올림픽 데 몬주익]][* 한때 [[RCD 에스파뇰]]의 홈구장으로 쓰였다. 현재 에스파뇰은 코르네야라는 새 경기장으로 구장을 이전한 상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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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 ==
||<|5><width=2%><bgcolor=#32a847><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d79802> ||<width=96%><bgcolor=#fbb132> ||<|5><width=2%><bgcolor=#ec281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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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제 25회 하계 [[올림픽]] 대회. 오랜 [[보이콧]]의 역사가 끝난 대회이자,[*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남아공과의 스포츠 교류 문제 때문에 아프리카 국가들이 집단 불참,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아프카니스탄 침공에 반발한 미국 주도로 서방 진영 대거불참, 1984년 LA 올림픽은 모스크바에 대한 보복으로 공산권 국가 대거 불참, 1988년 서울 올림픽도 북한과 이에 동조한 친북 국가([[알바니아]], [[쿠바]], [[니카라과]], [[에티오피아]], [[마다가스카르]], [[세이셸]])들 불참.] [[냉전]]의 종식으로 동서 대립이 없는 가운데 펼쳐진 최초의 대회다.[* 하지만 모든 국가가 참여한 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라이베리아, 소말리아, 브루나이가 자국 사정으로 불참했으며, 브루나이는 폐막식에 임원단 1명을 보냈다. --1명을 임원'단'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넘어가자--]
== 유치 ==
||<-8> 1992년 올림픽 유치 투표 과정 ||
|| 국가 || 도시 || 1차투표 || 2차투표 || 3차투표 || 결과 ||
|| '''[[스페인]]''' || '''[[바르셀로나]]''' || '''29''' || '''37''' || '''47''' || '''유치 선정''' ||
|| [[프랑스]] || [[파리(프랑스)|파리]] || 19 || 20 || 23 || 유치 탈락 ||
|| [[호주]] || [[브리즈번]] || 11 || 9 || 10 || 유치 탈락 ||
|| [[유고슬라비아]] || [[베오그라드]] || 13 || 11 || 5 || 유치 탈락 ||
|| [[영국]] || [[버밍엄]] || 8 || 8 || || 유치 탈락 ||
||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 5 || || || 유치 탈락 ||
유치 운동이 벌어지던 시점에는 그래도 세계 경제가 그럭저럭 회복한 상황이기도 했기 때문에 [[1988 서울 올림픽]] 당시보다는 유치전에 뛰어든 나라가 많았다. 사실 이 시점에서는 이 대회가 냉전의 종식 이후 벌어지는 최초의 대회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유치는 비교적 손쉽게 바르셀로나의 승리로 끝났다.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의 고향이 바르셀로나다. 그렇다고 사마란치가 노골적으로 바르셀로나를 편들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의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프랑코 독재 이후 달라진 스페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스페인 정부의 절실함이 겹치면서 바르셀로나는 비교적 손쉽게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이때 미국도 절실히 올림픽 유치를 원했다. 왜냐하면 1992년이 바로 아메리카 대륙 발견 500년 기념해라서 절실했지만, 스페인은 더욱 절실했고, 결국 유치에 성공했다.[* 게다가 콜롬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도달이 당시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통한 것이었고, 이후 스페인 강대국화의 시작이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점에서도 더더욱 스페인의 올림픽 유치 명분을 키우는 셈이 되었다.] 게다가 이미 1984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때문에 후보에 넣었어도 대륙별 순환개최 때문에 안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 특징 ==
[[1972 뮌헨 올림픽]] 이후로 IOC 회원국 전체가 참여한 대회였다. [[1980 모스크바 올림픽]] 이후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은 [[북한]]과 [[쿠바]]도 참가했다. 거기다 통일된 [[독일]]과 통일된 [[예멘]]이 참가한 올림픽이기도 했다. [[아파르트헤이트]] 논란으로 참가정지를 당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인종 차별의 종식과 함께 다시 올림픽에 참가했다.[* 다만 국기가 아닌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f/f6/South_African_Olympic_Flag.svg/750px-South_African_Olympic_Flag.svg.png|올림픽 위원회 깃발]]을 들고 참가하였다. 이유야 당연히 당시 깃발이 아파르트헤이트를 연상시키기 때문. 이후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2년 뒤에 열린 동계 올림픽]] 때도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9/96/South_African_Olympic_Flag_1994.svg/360px-South_African_Olympic_Flag_1994.svg.png|바뀐 위원회 깃발]]을 들고 참가하였으며, [[넬슨 만델라]]가 취임하면서 현재의 국기로 교체되었다.]
[[소련]]은 해체되었으나 [[발트 3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단일 팀[* 구 소련 국가 대부분이 독립국가연합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이 팀을 '독립국가연합 팀'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으나 공식 호칭은 그냥 '단일 팀(영어 Unified Team, 불어 Équipe unifiée)'이다. 약칭 EUN. 단 [[유로 1992]]의 구 소련 팀은 '독립국가연합'이란 이름으로 참가했다.][* MBC의 고창근 캐스터가 중계방송시 이 팀을 언급할 때 'EUN'이라고 언급했다.]'이란 이름으로 단일 팀을 구성하여 참가했으며, 금메달 45개, 은메달 38개, 동메달 29개로 [[미국]]을 그야말로 박살내며 종합 1위를 차지했다. 개최국 [[스페인]]은 홈[[버프]]를 받아서 6위를 하고 [[한국]]은 스페인에 이어서 7위를 했다.
그에 반해 동유럽의 스포츠 강호였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유고슬라비아]]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인해 유고 연방내 수많은 국가들이 분리독립하여 붕괴되면서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나마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 같은 유고 연방에서 독립되어 나온 다른 나라들이 출전했던데 반해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주도국이였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신 유고연방]]은 [[보스니아 내전]] 과정에서의 학살 지원 문제로 발목이 잡혀 올림픽 출전이 금지되고 말았다. 이들은 개인 자격으로만 참가할 수 있어서 국기가 아닌 오륜기를 들고 참가했다. 신 유고연방의 올림픽 출전 금지는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전쟁, 내전 상황속에서도 올림픽 대회에 당당히 참가했던 [[아프가니스탄]]이나 [[스리랑카]], [[레바논]], [[모잠비크]], [[앙골라]]와는 대조적이었다.
[[1988 서울 올림픽|직전 대회]] 개최국이자 종합 4위를 기록했던 [[대한민국]]은 이 대회에서 '''금12 은5 동12'''로 종합 7위에 올라 지난 대회 성적이 결코 홈그라운드의 유리함 덕분만이 아님을 증명하는 선전을 했다. '''특히 대회 시작 후 첫 금메달([[사격(스포츠)|사격]], 여갑순)과 마지막 금메달(마라톤, [[황영조]])을 따냈으며''', 황영조의 마라톤 금메달은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를 달고 획득한 마라톤 첫 금메달이었다.[* 그리하여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역대 올림픽 폐막식에서 애국가가 연주된 몇 안 되는 올림픽이다. 올림픽 남자 마라톤 메달리스트에 대한 시상은 올림픽 폐막식 도중에 하기 때문이다. 올림픽 폐막식에서는 개최국의 국가, 차기 대회 개최국의 국가, [[자유의 찬가|그리스 국가]], 그리고 해당 대회 남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의 국가가 연주되는데, 한국의 애국가가 올림픽 폐막식 도중에 울린 경우는 첫 번째는 당연하지만 [[1988 서울 올림픽]]과 [[2018 평창 동계올림픽]]때고, 두 번째는 [[1984 LA 올림픽]]과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해당한다. 그리고 네 번째 경우가 바로 이 황영조가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했던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인 것.][* 참고로 동계 올림픽의 경우는 크로스컨트리 스키 여자 30km과 남자 50km 메달리스트에 대한 시상식을 폐막식 도중에 실시한다.] 황영조는 이 금메달로 몬주익의 영웅[* 마라톤의 골인지점이자 마라톤 금메달 시상식이 열린 곳이 몬주익 올림픽 주 경기장이었기 때문이다. [[1988 서울 올림픽]]으로 따지면 '잠실의 영웅'인 셈이다.]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또한 한국에서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카퍼레이드]]를 했던 마지막 대회이기도 하다.[[https://www.youtube.com/watch?v=ZKSCfaNvk-Y|당시 카퍼레이드를 다룬 대한뉴스 영상]][* 이후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다시 카퍼레이드를 하려 했지만 반발이 심해 취소되고, 대신 도보 행진으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 비판이 많았다. 이 때문에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강제적인 면을 없애고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선수들만 참가하도록 방식을 바꿨지만 이 역시 좋은 평을 받지는 못했다.]
이 대회의 진가는 성화봉송식 마지막 장면에 있다. [[https://youtu.be/1iIovkT_340?t=20m|'''불화살'''을 이용해 성화를 점화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까지는 베를린 대회 이래 별 특색없이 최종 성화주자 1인이 계단을 이용해서 점화했으나, 직전 대회였던 [[1988 서울 올림픽]]에서는 [[http://www.youtube.com/watch?v=9-77-fyhJ2U|'3명이 엘리베이터'를 사용해서 성화대에 점화]]해 의미도 담고[* 원래 [[손기정]] 옹이 점화할 예정이었으나 너무도 뻔하게 예상되었던지라 경기장 진입 주자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손기정]]-[[임춘애]]-최후의 3인(김원탁, 정선만, 손미정)으로 되었는데 각기 체육계, 교육계, 문화계를 대변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특히 지극히 평범한 세 사람을 성화 점화주자로 내세운 것은 서울올림픽 개최 당시 [[노태우 정부]]의 캐치프레이즈였던 '[[보통 사람들|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뜻도 있다.] --[[비둘기]]도 굽고-- 변화도 주었다. 이후로는 매회 획기적인 성화대 점화 방식을 내비치는 것이 경기대회의 전통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대회의 불화살 점화식은 세계인에게 성화 점화를 하나의 이벤트로 각인시킨 것이었다.
사실 불화살은 성화대 안에 명중한 것이 아니라 성화대 위를 지나갔다. 스쳐도 화살의 불이 가스에 이어붙는 식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별탈없이(?) 안전하게 점화되었다.[* 성화봉송 당시 만일의 대비를 위해 소방관들이 배치해 있었다고 한다. ] 이 화살은 안전하게 회수되어 기념으로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성화를 점화한 사람은 스페인의 [[휠체어]] 양궁 선수인 안토니오 레보요다.[* 잘 서있기에 왜 휠체어를 타는지 궁금할 수도 있을 텐데, 의족을 사용했다고 한다. 영상을 잘 보면 오른쪽 다리의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을 볼 수 있다.[[https://spoliveofficial.tistory.com/tag/%EC%95%88%ED%86%A0%EB%8B%88%EC%98%A4%20%EB%A0%88%EB%B3%B4%EC%9A%94|#]]]
성화 점화 후 대회 주제가 <Amigos Para Siempre>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초대형 오륜기가 몬주익 스타디움 중앙에서부터 펼쳐져 각국 선수단 전체를 뒤덮은 장면은 역대 올림픽 개회식을 통틀어 빼놓을 수 없는 감동적인 명장면이다.
[[바르셀로나]]는 올림픽을 기점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떠오르게 됐다. 이전까지는 [[프란시스코 프랑코|프랑코]] 총통의 탄압으로 말미암은 스페인의 [[흑역사]]로 인지도가 낮아 숨겨진 여행지였으나, 바르셀로나 올림픽 내내 보여준 아름다운 항구와 시가지의 모습에 반하여 많은 여행객들이 몰렸다고 한다. 올림픽이 가져다 준 긍정적인 효과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의 지역 감정이 상당부분 치유된 모습이 확인된 대회다. 축구 대표팀은 카탈루나의 특징을 고려해서 바르셀로나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축구 예선 경기를 치렀는데, 승승장구하며 결승에 오르자 결국 바르셀로나에 가서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처음에는 혹시나 [[누 캄프]]에서 야유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축구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스페인 국기를 흔들면서 열광적으로 대표팀을 응원했고, 경기에서 스페인이 승리하며 축구 금메달을 가져갔다. 지역감정 문제가 어느 정도 남았더라도 극단적인 대립은 없다는 점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장면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기간 내내 주경기장 및 공식 시설에는 스페인 국기가 아닌 카탈루냐 깃발이 휘날려 여전히 지역주의/분리주의 문제가 여전히 강고하게 남아있음을 보여줬다.
== 주제가 ==
공식 주제가는 [[호세 카레라스]]와 [[세라 브라이트먼]]이 듀엣으로 부른 <Amigos para Siempre(영원한 친구)>. KBS와 MBC에서는 애국가 직후(오프닝업)/직전(방송 클로즈다운) 때 가사 해석판을 붙여 올림픽 기간 동안 틀어주었다.[* MBC의 경우는 가끔 이전 대회의 [[손에 손잡고]]를 함께 틀어주기도 했다.]
[youtube(OmUS9vu-O1s)]
바르셀로나 폐회식에서 <Amigo para Siempre>를 부르는 호세 카레라스와 사라 브라이트먼. ~~오오 사라 여신~~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일본 애니메이션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 한국어판 주제가(MBC 방영)의 후렴부가 이 노래의 [[표절]]이 아니냐는 시비가 있었다. 그런데 좀 흠좀무한 것이 나디아 한국판 주제가 작곡가가 그 유명한 '''마상원'''.[* 80년대 유명 만화주제가의 작곡과 번안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어떤 것은 일본 원판보다도 낫다는 평까지 들을 정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더더욱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는 마상원악단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원래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제가는 <Amigos para Siempre>가 아니라 [[프레디 머큐리]]와 몽셰라 카바예 듀엣이 부른 <Barcelona(바르셀로나)>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 올림픽 직전인 [[1991년]] 11월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사망하자, 올림픽 정신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 지금에야 이게 뭔소린가 싶겠지만, 한마디로 [[동성애자]](프레디는 동성애자가 아니라 [[양성애자]]였다만)가 부른 주제곡은 안된다 이거다. 당시에는 에이즈는 동성애자들이나(?) 걸리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었다. 당대 사회의 보수성을 볼 수 있는 단면.]로 부랴부랴 IOC에서 <Amigos para Siempre>로 갈아치워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주관방송사인 에스파냐 TVE나 미국 NBC, 한국의 방송사들이 줄창 아미고스 빠라 시엠쁘레를 틀어주고 있을 때에도 BBC는 꿋꿋하게도 공식 주제가가 아닌 프레디의 <바르셀로나>를 올림픽 특집중계(Grandstand)[* BBC Olympic Grandstand는 축구의 BBC MOTD와 마찬가지로 레전드급 프로그램이다. 직역하면 올림픽 중계석. ~~뭔가 KBS에서 본 것 같다면 당신의 착각입니다~~ 각 대회 때마다 오프닝들이 장난 아니니 [[유튜브]]에서 꼭 찾아보자. 특히 서울 올림픽 Grandstand 오프닝과 2002 한일월드컵 오프닝은 꼭 보자. ITV가 2002 월드컵 방송 오프닝에 게이샤와 검도 등 완전 일본풍으로만 제작했다가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이후에 한국 국대가 승승장구하자 부랴부랴 [[안정환]]의 반지키스를 집어넣은 것에 비하면 정말 [[간지]]가 철철 넘치는 게 BBC이다.] 타이틀로 사용했다. [[https://youtu.be/XwqlsT3c1kc|#]] ~~프레디 머큐리는 영국 사람이니깐요~~
[youtube(FqhpUfkfODI)]
생전의 [[프레디 머큐리]]와 몽셰라 까바예가 무대에서 부른 풀 버전. 라이브는 아니다. 아미고스 빠라 시엠쁘레도 보컬 자체는 까레라스와 브라이트먼이라는 두 레전드급의 포스가 절절 넘쳐나지만, BGM이나 곡의 긴박감은 <바르셀로나> 쪽이 나은 편이다.
[youtube(ck2jpaLoOMA)]
그런데 최근 유튜브 올림픽스 계정[* 2014년경부터 IOC는 OBC라는 자체 방송시스템을 통해 올림픽 관련 영상기록들을 관리하고 있다.] 올라온 바르셀로나 올림픽 공식 기록영화에 보면 오프닝을 상기의 Barcelona로 쓰고 있다.
[youtube(jjNeHVAMYyQ)]
[[라포엠]]이 해당 곡을 리메이크하였다.
==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s-3.12|대한민국 하계올림픽 성적]] ==
■ 1992년 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2 Summer Barcelona Olympics)
* 기간 : 7월25일~8월9일
* 규모 : 172개국 15229(여)명 참가.
* 종목 : 근대5종, 농구, 다이빙, 레슬링, 배구, 배드민턴, 복싱, 사격, 사이클, 수영, 승마, 야구, 양궁, 역도, 요트, 유도, 육상, 조정, 체조, 축구, 카누, 탁구, 테니스, 펜싱, 하키, 핸드볼, 태권도(시범종목), 로울러하키(시범종목), 페로타(시범종목)
* ▶대한민국 참가 현황 : 임원 97명, 선수 247명 참가.(레슬링, 배구, 배드민턴, 복싱, 사격, 사이클, 수영, 야구, 양궁, 역도, 유도, 육상, 조정, 체조, 축구, 카누, 탁구, 테니스, 펜싱, 하키, 핸드볼)
* ▶대한민국 참가 성적 : 금메달 12개, 은메달 5개, 동메달 12개 획득. 종합순위 7위.
* 금메달 : 레슬링(57kg) 안한봉
* 금메달 : 레슬링(74kg) 박장순
* 금메달 : 남자 배드민턴(복식) 김문수, 박주봉
* 금메달 : 여자 배드민턴(복식) 정소영, 황혜영
* 금메달 : 남자 사격(소구경 소총 복사) 이은철
* 금메달 : 여자 사격(공기소총 10m) 여갑순
* 금메달 : 여자 양궁(개인) 조윤정
* 금메달 : 여자 양궁(단체) 김수녕, 이은경, 조윤정
* 금메달 : 역도(56kg) 전병관
* 금메달 : 여자 유도(72kg) 김미정
* 금메달 : 남자 육상(마라톤) 황영조
* 금메달 : 여자 핸드볼
* 은메달 : 레슬링(자유형 48kg) 김종신
* 은메달 : 여자 배드민턴(단식) 방수현
* 은메달 : 남자 양궁(개인) 정재헌
* 은메달 : 여자 양궁(개인) 김수녕
* 은메달 : 남자 유도(60kg) 윤현
* 동메달 : 레슬링(그레코로만형 52kg) 민병갑
* 동메달 : 여자 배드민턴(복식) 길영아, 심은정
* 동메달 : 복싱(60kg) 홍성식
* 동메달 : 복싱(75kg) 이승배
* 동메달 : 남자 유도(71kg) 정훈
* 동메달 : 남자 유도(78kg) 김병주
* 동메달 : 남자 체조(도마) 유옥열
* 동메달 : 남자 탁구(단식) 김택수
* 동메달 : 남자 탁구(복식) 강희찬, 이철승
* 동메달 : 남자 탁구(복식) 김택수, 유남규
* 동메달 : 여자 탁구(단식) 현정화
* 동메달 : 여자 탁구(복식) 현정화, 홍차옥
대한민국은 종합 7위의 성적을 거뒀다.
[[파일:대한민국하계올림픽성적 12.jpg]]
== 기타 ==
||<rowbgcolor=#ffffff> [[파일:코비_cobi_올림픽마스코트.png|height=300px]] || [[파일:external/2818b9fac6011b0acedcb20c85ddafee205a0aa08329a6b1206bb255a7d43f0e.jpg|height=300px]] ||
* 대회 마스코트인 [[코비#s-7|코비(Cobi)]]. 모티브는 카탈로니안 셰퍼드. 역대 올림픽 마스코트 2위를 차지했는데 마스코트 중에서는 우표, 기념주화, 메달 등 기념품이 가장 많이 제작되었다. 디자이너는 스페인의 국민 디자이너인 [[하비에르 마리스칼]]이며 2014년 2월, 예술의 전당에서 마리스칼展이 열리면서 이 마스코트도 한국에서 다시 소개되었다.
* 개회식 때 입장식에서는 참가국의 국기 색깔을 모티브로 한 의상을 입은 피켓걸들이 해당 국가의 국호가 영어와 프랑스어로 새겨진 커다란 [[비비빅]] 모양의 피켓을 앞세우고 각국 기수와 선수단을 이끌었다. 단, 소련 해체로 인한 '[[독립국가연합|단일 팀(EUN)]]'이 입장했을 때는 먼저 'UNIFIED TEAM'(영어), 'Équipe unifiée'(프랑스어)라고 새겨진 피켓을 든 피켓걸이 먼저 입장하고 오륜기를 든 기수가 뒤따라 입장한 다음 단일팀을 이룬 국가의 이름이 영어로 새겨진 작은 피켓 3개가 나란히 입장하고 해당 국가의 국기들을 앞세운 기수들이 나란히 입장한 다음 선수단이 자신들의 국적에 해당하는 소형 국기를 흔들며 입장했다.[* 공교롭게도 EUN 다음으로 입장한 국가가 구 소련을 구성하고 있었던 [[에스토니아]]였고 그 다음 순서로 입장한 국가가 바로 구 소련의 적성국가였던 [[미국]]이었다. [[1988 서울 올림픽]] 때도 원래대로라면 [[이라크]] 다음에 [[이란]]이 입장했어야 했지만 양국이 전쟁중이어서 이 두 나라 사이에 다른 나라들이 낑겨서(?) 입장했고(하지만 바르셀로나에서는 이 두 나라가 연달아 입장했다.), 훗날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남북 동시입장이 무산되자 [[대한민국]] 다음에 [[북한]]이 입장했어야 했지만 그 당시가 [[박왕자 씨 피살사건]]이 터진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이어서 남북한 사이에 다른 나라들이 낑겨서 입장한 바 있었다.]
* 인류 역사상 최강의 농구팀으로 영원히 회자되는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s-2.1|드림팀 1기]]'''가 바로 이때 미국 대표팀이다. 사상 최고의 선수 [[마이클 조던]]을 필두로 훗날 [[크리스찬 레이트너]]를 제외한 전원이 개인자격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스타들로만 구성된 초호화 라인업이었는데 '''적당히 연습하면서도''' 모든 경기에서 30~40점차로 압도적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당시 유럽 농구 에이스였던 토니 쿠코치는 조던과 피펜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막아 공조차 잡기 힘든 정도였다. 이 드림팀의 등장으로 당시 FC바르셀로나에게도 드림팀이란 별명이 생겼다. 주요 선수로 호마리우, 스토이치코프, 과르디올라, 쿠만이 있었고 감독이 지금의 바르샤를 있게한 요한 크루이프였다.
* '단일 팀'의 남자 체조선수 비탈리 셰르보[* 국적은 [[벨라루스]]. 단일 팀 체조 선수들은 그대로 소련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렀다. 그도 마찬가지.]는 6관왕에 올랐는데 단체전을 제외한 5개의 금메달을 개인종목에서 획득하며 하계올림픽 최초의 개인종목 5관왕을 달성했다.[* 동계올림픽은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서 미국의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에릭 하이든]]이 달성했다. 이 대회에서 하이든은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에 걸려있던 5개의 메달을 모두 싹쓸이하며 사상 초유의 [[전관왕]]에 오른다.]
* 여자 유도 57kg급에 출전한 스페인의 미리암 블라스코는 결승전에서 영국의 니콜라 페어브라더와의 대결에서 이겨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23년이 지난 2015년에 두 사람은 [[동성결혼|결혼한다.]]
* [[복거일]]의 [[대체역사소설]] [[비명을 찾아서]]에서는 [[일본 제국]]의 [[식민지]]인 [[조선]]의 [[경성부|게이조(경성)]]와의 올림픽 유치경쟁에서 바르셀로나가 패배했다. 그리하여 소설 속의 [[평행우주]]에서는 '''1992 게이조(경성) 올림픽'''이 열릴 예정이다.[* 소설 속 [[평행우주]]의 현재 연도가 [[1987년]]이기 때문에 [[1992년]]의 올림픽 개최는 미래의 일이다.]
* 자덕들에게도 의미있는 올림픽. 기존의 크로몰리 프레임을 이용한 퍼슛형 자전거로 겨루던 경기에서 카본파이버로 만들어진 신기하게 생긴 자전거가 나타나 상을 휩쓸어버렸다. 그 자전거가 [[로터스(자동차)|로터스]] 108이며, 당시 선수는 크리스 보드만. 콜나고, 치넬리 등 전통있는 유명 자전거 회사들이 크롬 몰리브덴 파이프와 러그로 정성스레 만들던 자전거에서, 자동차 제조사인 로터스가 신소재인 카본파이버를 이용해 유체역학적인 디자인으로 상을 휩쓸자 엄청난 논란이 되었다. 결국 돈 없는 선수팀은 최신 기술의 고가의 자전거를 쓰기 어렵게 되고, 이는 선수의 수준과는 관련없이 자전거 빨로 우승해버리는 도핑과 다름없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 로터스 108은 자전거만 1천만 원 이상이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휠부터 마빅 디스크휠과 삼발이라 휠값도 비쌌겠지만, 어쨌든 휠값 빼도 자전거 자체도 비싼데다가 연구비용도 많이 들어갔다.] 그래서 로드바이크 경기는 리컴번트와 같이 과학적인 연구로 빠르게 만든 자전거를 금지시키고 있다. 이제는 철인 3종 경기에서나 그런 자전거가 가끔 보인다. 구조 자체가 썩 안정적이지 않아 대중화되지는 못 했지만.
[[박수동]] 작가의 '5학년 5반 삼총사'라는 작품에서 '뚝배기'라는 캐릭터가 '마라톤'편에서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은 못나가지만 1992 올림픽에선 금메달을 따고말거다'라는 대사를 하였다 그리고 [[황영조]]가 금메달을 딴것으로 보아 [[황영조]]=뚝배기? 라는 드립이 있는데, 이것은 옛날 만화를 다시 복간하면서 대사를 수정한대서 생긴 오해다. 처음 저 작품이 나왔을때의 대사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못나가지만 1984년 올림픽에선 금메달을 따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화가 이후에 재출간 될때마다 저 연도는 자꾸만 올라갔다. 1980년은 그대로인데, 이후 연도가 84=>88=>92로 출간년도에 따라 자꾸만 올라간것. 그냥 옛날의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초판의 연도대로 했으면 좋았을텐데 굳이 연도를 바꿔서 생긴 어색한 촌극인셈.
[[분류:하계올림픽]][[분류:스페인에서 개최된 올림픽 대회]] |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 [include(틀:역대 동계올림픽)]
||<tablealign=center><width=30%> 15회 || {{{+1 → }}} ||<width=30%> 16회 || {{{+1 → }}} ||<width=30%> 17회 ||
||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 {{{+1 → }}} ||<bgcolor=#dcdcdc>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 {{{+1 → }}} ||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
||<-2><tablealign=right><tablewidth=390px><bgcolor=#ffffff> '''Jeux olympiques d'hiver de 1992'''[br]'''XVI Olympic Winter Games''' ||
||<-2><bgcolor=#ffffff>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69px-1992_Winter_Olympics_logo.svg.png|width=150]] ||
||<-3><bgcolor=#ffffff> [[파일:external/colorlib.com/Albertville-winter-Olympics-poster-1992.jpg|width=100%]] ||
|| 대회기간 ||<-2> [[1992년]] [[2월 8일]] ~ [[1992년]] [[2월 23일]] ||
|| 개최국가/도시 ||<-2> [[프랑스]]/알베르빌 ||
|| 대회 이념 ||<-2> '''A la Pointe de la Performance''' [br] '''At the Peak of Performance''' [br] (공연의 절정) ||
|| 마스코트 ||<-2> 마지크 ||
|| 참가국 ||<-2> 67개국 ||
|| 참가선수 ||<-2> 1,801명[br](남자: 1,313명, 여자: 488명) ||
|| 경기종목 ||<-2> 7개 종목, 57개 세부 종목 ||
|| 개회 선언자 ||<-2> [[프랑수아 미테랑]][br],,[[프랑스 대통령]],, ||
|| 선수 선서 ||<-2> 쉬르야 보날리 ||
|| 심판 선서 ||<-2> 피에르 보르나 ||
|| 성화 점화 ||<-2> [[미셸 플라티니]] [br] 프랑수아시릴 그랑주 ||
|| 개·폐회식장 ||<-2> 테아트르 드 세레모니 ||
[목차]
== 소개 ==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에서 개최된 [[동계올림픽]]. 하계[[올림픽]]과 개최연도가 같은 마지막 동계올림픽이다. 그리고 [[윤년]]에 개최된 마지막 동계올림픽이기도 하다.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부터는 [[하계올림픽]]과 2년씩 번갈아서 하게 조정되었다.
프랑스에서 [[1968 그르노블 동계올림픽]] 이후 24년만에 3번째로 열린 동계올림픽이다.
동계 패럴림픽과 동계올림픽이 같은 장소에서 열린 첫 번째 대회로, 이 대회부터 동계 패럴림픽과 본올림픽이 같은 장소에서 열리게 되었다.
== 유치 ==
[[올림픽]] [[IOC]] 투표 사상 치열한 경합이 벌어진 [[경선]]이었다. [[단일화]]도 없이 각자도생으로 경쟁하는바람에 6차 투표까지 나왔다.
||<-11> 1992년 올림픽 유치 투표 과정 ||
|| 국가 || 도시 || 1차투표 || 2차투표 || 3차투표 || 4차투표 || 동점자투표 || 최종투표 || 결과 ||
|| '''[[프랑스]]''' || '''[[알베르빌]]''' || 19 || '''26''' || '''29''' || '''42 ''' || || '''51''' || '''유치 선정''' ||
|| [[불가리아]] || [[소피아]] || '''25''' || 25 || 28 || 24 || || 25 || 탈락 ||
|| [[스웨덴]] || [[팔룬]] || 10 || 11 || 11 || 11 || 41 || 9 || 탈락 ||
|| [[노르웨이]] || [[릴레함메르]] || 10 || 11 || 9 || 11 || 40 || || 탈락 ||
|| [[이탈리아]] || [[코르티나담페초]] || 7 || 6 || 7 || || || || 탈락 ||
|| [[미국]] || [[앵커리지]] || 7 || 5 || || || || || 탈락 ||
|| [[독일]] || [[베르히테스가덴]] || 6 || || || || || || 탈락 ||
== 메달 ==
||<-6> 1992년 올림픽 메달 순위 ||
|| 순위 || 국가 || 금 || 은 || 동 || 합계 ||
|| 1 || [[독일]] || 10 || 10 || 6 || 26 ||
|| 2 || [[독립국가연합]] || 9 || 6 || 8 || 23 ||
|| 3 || [[노르웨이]] || 9 || 6 || 5 || 20 ||
|| 4 || [[오스트리아]] || 6 || 7 || 8 || 21 ||
|| 5 || [[미국]] || 5 || 4 || 2 || 11 ||
|| 6 || [[이탈리아]] || 4 || 6 || 4 || 14 ||
|| 7 || '''[[프랑스]]''' || 3 || 5 || 1 || 9 ||
|| 8 || [[핀란드]] || 3 || 1 || 3 || 7 ||
|| 9 || [[캐나다]] || 2 || 3 || 2 || 7 ||
|| 10 || [[대한민국]] || 2 || 1 || 1 || 4 ||
|| 11 || [[일본]] || 1 || 2 || 4 || 7 ||
이 대회는 [[소련]] 붕괴 직후 [[독립국가연합]](EUN) 이름으로 참가한 유이한 올림픽 대회이다. 1992년 이후로는 독립국가연합 연합팀으로 나오지 않고 각 국가 이름으로 나오게 되었다. 독일은 통일팀으로 출전했다.
아직까지는 지난 대회까지 1위, 2위를 차지한 소련과 [[동독]]의 위세가 남아 있는 결과였다. 하지만 노르웨이와 오스트리아의 성장이 매우 두드러졌고, 국가 간의 메달 기록이 비등해진 대회였다. 종목이 36개(84년), 49개(88년)였던 그 전까지의 대회와 달리 57개 종목에서 메달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북한]]은 동메달 1개를 기록했다([[스페인]]과 동일, 공동 19위). [[룩셈부르크]]도 은메달 2개로 16위, [[중국]]은 은메달 3개로 15위의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다. 반면 전년도 3위 [[스위스]]는 금 1, 동 2(14위), 5위 [[스웨덴]]은 금 1, 동 3(13위), 7위 [[네덜란드]]는 금 1, 은 1, 동 2(12위)로 나란히 부진한 결과였다.
==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s-4.12|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성적]] ==
■ 1992 16회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1992 Winter Albertville Olympics)
* 기간 : 2월08일~2월23일
* 규모 : 64개국
* 종목 : 57 개
* 참가선수 : 1,801명
* 개막일 : [[1992년]] [[2월 8일]]
* 폐막일 : [[1992년]] [[2월 23일]]
* 쇼트트랙 남자 1,000m 김기훈 (금메달)
*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김기훈, 모지수, 송재근, 이준호) (금메달)
*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 김윤만 (은메달)
* 쇼트트랙 남자 1,000m 이준호 (동메달)
대한민국은 종합 10위의 성적을 거뒀다.
[[파일:대한민국동계올림픽성적12.png]]
== 기타 ==
[youtube(GpVvTBmaqIg)]
*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 출전한 [[김윤만]] 선수가 [[대한민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동계 올림픽 메달(은메달)을 따서 11번째 참가 끝에 [[대한민국]]에게 최초로 동계 올림픽 메달을 안겨다 준 선수가 되었다. 1위와의 격차는 불과 0.01초. 또한 쇼트트랙에서는 남자 1000m 종목에 출전한 [[김기훈(쇼트트랙)|김기훈]] 선수가 1위를 차지해 대한민국 최초의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 [[독일]]의 마르크 키르히너는 [[바이애슬론]]에서 전 경기에서 메달을 딴 첫 선수가 되었다. 남성 10km 스프린트와 7.5km * 4 계주에서 금메달 2개, 남성 20km에서는 은메달.
* 한국 외에도 중국과 뉴질랜드가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동계올림픽 메달을 획득하였다. 특히 뉴질랜드의 안네리스 코베르거는 알파인 스키 여자 슬라롬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최초의 남반구 출신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북한도 쇼트트랙의 황옥실 선수가 여자 5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여 28년만에 동계올림픽 메달을 획득하는데 성공한다.
* 마스코트는 마법사 '마지크'(Magique)였다.
[[파일:external/www.theolympicdesign.com/11mascot.jpg]]
* [[스키점프]] 종목 경기가 경기 도중에 갑자기 취소되는 경기 사고가 있었다.
* 동계와 하계올림픽 개최주기 변경에 따라 동계와 하계가 동년에 열리는 마지막 대회이다. 다음 동계올림픽인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은 2년 후 1994년 2월에 개최하여 1996년 [[미국]]에서 열렸던 [[1996 애틀랜타 올림픽]]과 분리개최하게 되었다.
* 스피드스케이팅 경기를 실외에서 치룬 마지막 대회였다.
[[파일:external/41.media.tumblr.com/tumblr_ney57nxuTK1u33qn2o1_500.jpg]]
*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는 미국의 [[크리스티 야마구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초 여자싱글에서는 [[토냐 하딩]]과 [[이토 미도리]]간에 트리플악셀 매치가 성사될 것처럼 보였으나, 뚜껑을 열었더니 야마구치의 우아함과 3-3점프의 승리였다. [[크리스티 야마구치]]와 [[이토 미도리]]의 경쟁은 피겨스케이팅 라이벌리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역사는 되풀이되어서 이 경쟁 구도를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가 계승하게 되었다.
* [[크리스티 야마구치]]는 1988년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였으며, 여자싱글에서 주니어 월드챔피언이 올림픽 챔피언까지 오른 첫 사례로 기록되었다. 이후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김연아]](2006년 주니어세계선수권 우승)가 그 뒤를 이었다. 둘 다 주니어 우승 4년 후 올림픽 금메달을 수상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 은메달리스트는 일본의 [[이토 미도리]]였으며, 이는 일본이 피겨에서 얻은 최초의 올림픽메달이었다. 그녀의 은메달 직후 일본은 얼음폭풍 프로젝트를 기획, 국가적으로 피겨스케이팅 인프라 확장에 나선다. 이 범국가적 육성프로젝트 결과, 일본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아라카와 시즈카]]의 올림픽 금메달과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아사다 마오]]의 은메달, [[다카하시 다이스케]]의 동메달,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하뉴 유즈루]]의 금메달이라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분류: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
제7기동군단 헬기 추락 사고 | [[분류:1992년 항공사고]] [[분류:노태우 정부/항공사고]] [[분류:대한민국 육군/사건사고]]
[include(틀:사건사고)]
||||<table align=right><bgcolor=#00529c> {{{#fff '''항공사고 요약도'''}}} ||
||<colcolor=#000000,#dcdcdc> '''발생일''' ||1992년 2월 14일 ||
|| '''유형''' ||기상악화 ||
|| '''발생 위치'''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 ||
|| '''기종''' ||UH-1H ||
|| '''소속''' ||[[대한민국 육군]] ||
|| '''기체 등록번호''' ||- ||
|| '''출발지''' ||[[강원도]] [[홍천]] ||
|| '''도착지''' ||[[포항시]] ||
||<|2><bgcolor=#fac832,#fac832> '''{{{#black 탑승인원}}}''' ||승객: 6명 ||
||승무원: 4명 ||
||<|2><bgcolor=#fa4b4b,#fa4b4b> '''사망자''' ||승객: 6명 ||
||승무원: 1명 ||
||<|2><bgcolor=#2d7628,#2d7628> '''생존자''' ||승객: 0명 ||
||승무원: 3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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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개요 ==
1992년 2월 14일, 경북 선산에서 발생한 지휘관 헬리콥터 추락사건.
1992년 2월 14일 오전 9시 45분경 [[대한민국 육군|육군]] 204항공대 소속 [[헬리콥터]] UH-1H가 부대 순시를 위해 [[제7기동군단]]장인 [[대한민국 육군|육군]][[중장]] [[이현부]] [[장군]]과 동반한 [[참모]]들을 태우고 [[포항시]]로 이동하던 도중,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 장천면 상림리 [[마을]] 뒷편에 있는 삼정산 7부 [[능선]]에서 테일로터의 프로펠러가 분리되어 헬리콥터가 균형을 잃고 인근 [[과수원]]으로 추락했다.
이 과정에서 참모들과 [[당번병]]들은 [[군단장]]을 살리기 위해 군단장의 몸을 겹겹이 껴안았지만 대부분 [[사망]]했다. 부조종사 이수호 [[대위]]는 헬리콥터 폭발을 막기 위해 [[배터리]]를 분리하려고 시도했다. [[조종사]] 이지성 대위는 끝까지 [[조종간]]을 잡고 [[착륙]]을 시도했다. 그러나 헬리콥터는 완파되었고 탑승자는 대부분 사망했다. 이현부 장군은 [[서울특별시]]의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으며 다른 순직자들은 [[대전광역시]]의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이후 군은 사고의 원인을 기상 불량이라고 발표했으나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대중의 관심이 그다지 기울여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사망자 ==
* 이현부 중장(50, [[육군사관학교|육사]] 20기) - 제7기동[[군단]]장
* 허정봉 [[대령]](49, [[단기간부사관|단기]] 3기) - 군단 [[작전참모]]
* 이원일 대령(50, 학군 11기) - 군단 [[군수참모]]
* 노용건 대령(진)(40, [[육군사관학교|육사]] 30기) - 군단 [[감찰]]참모[* 부친 정보상세화를 위해 아들이 변경합니다. 92년 2월 진급발표, 전출예정이셨던 작전참모 후임자로 7군단 배속되셨었습니다.]
* 한황진 [[소령]](32, 육사 37기) - 군단 [[비서실장]]
* 서상권 [[중위]](25, 육사 45기) - 군단장 [[전속부관]]
* 조규성 [[상병]](22) - 당번병
== 부상자 ==
* 이지성 대위(35, 3사 15기) - 조종사
현장에서는 살았지만 사고 후유증으로 사고당일로부터 1개월 후 사망했다.
* 이수호 대위(진)(27, 학군 26기) - 부조종사
* 문기남 상병(22) - 당번병
== 기타 ==
군단 본부대에서 사령부로 가려면 본래 덤프중대 쪽을 멀리 돌아서 가야했는데, 그것이 불편했던지 산등성이를 따라서 통신단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뚫어놓았는데, 이에 대해서 그 길을 뚫을 당시에 점쟁이가 뚫으면 안 된다고 경고를 했다는 유치한 괴담이 군단사령부 참모부 대대로 내려온다. 고참들이 야근 처음가는 신병들에게 반드시 들려주며 골려주곤 한다.
당시 김영삼 문민정부의 [[하나회]] 숙청에 불만을 가진 하나회 및 잠재세력들이 7군단장을 주축으로 뭉쳐 쿠데타 모의를 하는 정황이 있어 김영삼이 조용히 숙청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고 하는데, 이 사건은 연도를 보면 알지만 노태우 정부 말기에 일어난 일이다. 이 사고가 일어난 때에는 김영삼은 아직 민자당의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한 상태였고[* 사건 당시 김영삼은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이었다.] 이후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 선거|14대 대선]]에서 당선되어 [[1993년]] 2월에 취임한 만큼 근거 없는 낭설. |
1992년 | ||<-13><tablealign=center><bgcolor=#a9a9a9> {{{#000000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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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align=right><bgcolor=#CBB8EE> '''세계 각 지역의 표기''' ||
|| [[서력기원|서기]] || 1992년 ||
|| [[대한민국 연호|대한민국]] || 74년 ||
|| [[단군기원|단기]] || 4325년 ||
|| [[불멸기원|불기]] || 2536년 ||
|| [[황기]] || 2552년 ||
|| [[이슬람력]] || 1413년~1414년 ||
|| [[갑자|간지]] || [[신미]]년~[[임신(간지)|임신]]년 ||
|| [[주체사상|주체]] || 81년 ||
|| [[중화민국|민국]] || 81년 ||
|| [[일본]] || [[헤이세이 시대|헤이세이]] 4년 ||
|| [[히브리력]] || 5752년~5753년 ||
|| [[에티오피아]] || 1984년~198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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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 연합통신 선정 1992년 10대 뉴스: [[http://v.media.daum.net/v/19921222073000586?f=o|국내외]] [[http://v.media.daum.net/v/19921215171100793?f=o|스포츠]]
[[수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다.
[[일본]]이나 [[미국]] 등지에서는 이 해 전후로 태어난, 즉, [[세계 대전]]과 [[냉전]]을 겪지 않은 사람들을 ‘'''신인류'''’라고 부른다. 사실상 소련이 이 해 1월에 멸망했다고 보면 된다.
한국 정치권에선 민자당은 14대 총선에서 당선했지만, 과반수를 넘지 못해 2년 만에 '여소야대' 시대가 다시 도래했고, 하반기 들어 헌정사상 최초로 중립내각이 수립되고 12월 대선에선 민자당 후보 김영삼이 민주당 후보 김대중을 꺾어 '최초의 민간후보 당선'을 이뤄냈다. 경제 분야에선 주식시장을 외국인들에게 개방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사회 분야에선 전년도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최초 증언을 계기로 [[위안부 문제|위안부 및 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을 중심으로 [[수요집회]]가 시작되면서 정신대와 위안부 문제가 쟁점화됐고, UN 리우환경회의를 전후해 전 국민들이 '환경 보호'를 목청껏 외치기 시작했다.
외교 분야에선 [[대한민국|한]]-[[중국|중]] 양국이 [[한중관계|공식 수교한 해이다]]. 반대로 [[대만]]은 마지막 대국(大國) 수교국인 대한민국과 [[단교]]하여 상주 [[대사관]]까지 철수시켰다.[* 다만 단교 이후에도 서울과 부산에 [[타이베이 대표부]]가 남아서 사실상의 대사관 업무를 보고 있다.] 전년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로 호전될 뻔했던 남북관계는 미국의 북핵문제 제기로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역사학계에선 [[조선]] 건국 600주년을 기념하기도 했다.
1991년 [[슬로베니아]], [[북마케도니아|마케도니아]]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으로부터 독립한 데 이어, 1992년 초에는 [[크로아티아]]가 [[세르비아]]를 주축으로 한 유고슬라비아와의 전쟁 끝에 독립한다. 이에 고무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또한 1992년 2월 초 독립을 선언하나, 이에 반발한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가 스르프스카 공화국을 건국하고,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한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이 스르프스카 공화국을 지원하며 4월 1일, [[보스니아 내전]]이 발발한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 도중 일어난 최대 규모의 대학살이 벌어져 극단적 민족주의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었다.''' 태국 민중들은 전년도에 쿠데타로 집권한 수친다 총리의 당선에 반발해 처절한 희생으로 군부정권에 저항해 60년 군부체제를 끝장냈다.
한편 [[유엔|UN]]은 이 해를 '세계 우주의 해'로[* 유엔 총회에서 승인은 되었지만 공표되지 못했다.], 문화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춤]]의 해'''로 각각 지정하였다. 스페인에선 그 해에 바르셀로나 올림픽, 세비야 엑스포,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500주년이라는 겹경사가 터졌다.
[[롯데 자이언츠]]에게는 최고의 해로 기억되는데 [[남두오성]]이라는 별명의 소총타선과 [[윤학길]], [[염종석]]을 앞세워 두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냈기 때문. 문제는 그러고 [date] 현재까지 우승을 못하고 있다. 우승은 고사하고 마지막 한국시리즈 진출도 [[1999년]]이다.(...) 한편 한국시리즈 상대였던 [[빙그레 이글스]]는 페넌트레이스에서 무시무시한 활약을 하고도 롯데 돌풍에 안타깝게 또 한 번 우승을 놓쳤다. 둘 다 긴 암흑기를 [[8888577|겪었]][[5886899678|다는]] 점에서 팬들에게는 상당한 추억으로 남는 해.
또한 경기도 고양군이 신도시 건설로 인한 인구급증으로 이 해 2월 1일부로 시로 승격되었고, [[대학입학 학력고사]]가 치러진 마지막 해이다. [[1993년|이듬해]]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 체제로 대학입시가 개편된다. 중간중간 자잘한 변동은 있지만 기본 틀은 2010년대 중반까지 계속 유지되어오고 있다.
축구계로 넘어가자면 이해에는 2020년 현재 주목받는 굉장히 많은 신성들이 태어난 해였다. 당장 하단의 탄생 항목에는 [[네이마르 주니오르]], [[손흥민]], [[황의조]]뿐이지만 이 외에도 [[이스코 알라르콘]], [[마리오 괴체]], [[다비드 알라바]], [[티보 쿠르투아]], [[스테판 엘 샤라위]], [[이케르 무니아인]], [[베른트 레노]], [[필리페 쿠티뉴]], [[크리스티안 에릭센]], [[에릭 라멜라]], [[루카스 모우라]], [[코케]], [[알바로 모라타]], [[존조 셸비]], [[마르크안드레 테어슈테겐]], [[모하메드 살라]], [[알리송 베케르]] (...) 등이 있다. --헉헉, 많다--[* 여담이지만 바로 전년도인 [[1991년]]에도 [[케빈 더브라위너]], [[버질 반다이크]], [[에덴 아자르]], [[알렉스 산드루]], [[리야드 마레즈]], [[앙투안 그리즈만]], [[은골로 캉테]], [[티아고 알칸타라]], [[알렉상드르 라카제트]], [[코스타스 마놀라스]], [[칼리두 쿨리발리]], [[하메스 로드리게스]], [[조르지뉴]]같은 유명한 선수들이 많이 태어났다.]
1983년 이후 출생아수가 가장 많은 해이니 만큼 프로게이머 역시 신성들이 가장 많이 태어난 해이다. '''[[이영호]]''', [[김대엽]], [[어윤수]], [[정윤종]], [[주성욱]], [[김준호(프로게이머)|김준호]] 등이 이에 해당된다. 당장 위키피디아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연예계에서는 前 [[원더걸스]]의 [[안소희|소희]], [[선미]], 前 [[포미닛]]의 [[현아]], 前 [[씨스타]]의 [[소유(가수)|소유]][* 다만 소유는 빠른 년생이다.], [[EXID]]의 [[하니(EXID)|하니]], [[걸스데이]]의 [[유라]], [[마마무]]의 [[문별]], 前 [[애프터스쿨]]의 [[박수아|리지]], [[AOA(아이돌)|AOA]]의 [[e.NA|유나]] 등이 있다.
이해 3월[* 1992년 1, 2월생 중 유예자 포함.]부터 이듬해(1993년) 2월까지 태어난 학생들이 1990년대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마지막 세대가 된다.
게임계에서는 [[1991년|지난 해]]에 출시된 [[스트리트 파이터 2]]가 1992년 게임계에서는 가히 스트리트 파이터의 해라고 해도 이상할게 없을 정도로 인기의 절정에 이르러 [[스트리트 파이터 2 대쉬|첫번째 버전업판]]이 나왔으며, 이 해를 기점으로 SNK의 [[용호의 권]]을 선두로, 동 회사의 [[아랑전설 2]], ADK의 [[월드 히어로즈]], 미국에서는 [[모탈 컴뱃]]이 나오는 등 스트리트 파이터 2에서 본격적인 기틀을 잡은 [[대전 액션 게임]]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90년대를 풍미한 격투게임 장르 붐이 터진해다.
주말 공휴일이 7일이나 되었다. 삼일절, 식목일, 부처님오신날(5월 10일)은 일요일이었고, 현충일, 광복절, 개천절은 토요일이었다. 추석은 9월 10일(목)~12일(토)로 추석 다음날이 주말과 겹쳤지만, 설날은 2월 3일(월)~5일(수)로 주말과 이어져 있다.[* 공교롭게도 [[2026년]] 공휴일의 요일 배치와 똑같다. 설날은 2월 16일(월)~18일(수)로 주말 바로 다음이고, 추석은 9월 24일(목)~26일(토)로 목금토일 연휴이다. 삼일과 부처님오신날(5월 24일)은 일요일이고, 현충일, 광복절, 개천절은 토요일이다. 차이점이라면 신정 다음날, 식목일, 제헌절이 공휴일에서 빠지고 한글날이 공휴일이 된 점.]
==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와 열풍 ==
이 해는 전설적인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1집 타이틀곡 '''[[난 알아요]]'''를 필두로 대한민국 가요계의 판도를 뒤집으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은 기성세대의 보수적인 문화를 거부하고 개성있고 파격적인 시도를 갈망하는 신세대의 상징 그 자체로, 10대~20대들에게 전무후무한 지지를 받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후 2~4집 활동에서도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며 1990년대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남긴 음악적 자양분은 이후 대한민국 아이돌에게 계승되어 [[K-POP]]을 이끄는 뿌리가 되었으며, 그들의 영향력은 은퇴한지 25년이 지난 2021년 현재까지도 인정받고 있다.
== 한중 교류시대의 개막 ==
또한 이 해는 한국과 중국이 정식 수교를 맺었던 해로 이 때부터 한중간의 교류시대가 개막되기도 하였다.[* 사실 이미 노태우 정부가 출범하는 1988년부터 경제, 민간 차원의 비정치적 분야에 한해 한국과 중국의 비공식적 교류가 확대되었고, 이미 전년도인 1991년에 들어서면서 중국산 농산물이 국내에 대거 수입되어 이에 농민들이 반발하기도 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이미 일본, 미국에 이은 한국의 주요 교역국으로 부상한 상태였다.] 그 동안 냉전시절 중공이라 불리며 한국 내에서 중국을 적대하였던 편이었지만 이 때를 계기로 적대관계에서 벗어나 교류를 통한 관계로 개선되어졌다.
== 사건 ==
=== 실제 ===
==== 1월 ====
* [[1월 1일]]
* 노태우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1992년은 한민족공동체 건설 원년이자 경제회복 활력의 해라고 강조하였다.
* 경북 영일군 청하면 주민 1천여 명은 청하삼거리 국도에서 핵폐기장 설치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 북한의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지난 달에 채택한 남북기본합의서를 성실히 이행할 것을 강조했다.
*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 4개국 순방에 돌입하였다.
* [[1월 2일]]: 경찰은 경남 영일군 방사성폐기물설치반대투쟁위원회에 전의경 병력을 투입해 집행부를 강제 해산시켰다.
* [[1월 3일]]
*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경영일선 은퇴선언 후 당월 중순에 신당 창당발기 의사를 밝혔다.
*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은 대통령 연두기자회견 전에 정치일정을 담판짓기로 결정했다.
* 권호경 KNCC 총무가 북한을 방문했다.
* 경남 영일군 내 이장 30명이 핵폐기장 반대시위 과잉진압에 항의해 집단 사퇴서를 냈다.
* 정부는 임금안정 및 인력난 해소키 위해 기업의 인원감축을 적극 유도/지원키로 결정했다.
* 국내 주식시장이 외국인에게 처음 개방되었다.
* [[1월 4일]]
* 노태우 대통령은 민자당 당무회의에서 김영삼 대표에 대권승계를 방침한다고 밝혔다.
* 노태우 대통령은 경제장관에 기업자금의 정치권 유입을 철처히 차단토록 지시했다.
* 공정거래위는 당년도 독과점사업자 352개사를 지정했다.
* 대한변협은 시국사범 접견시 시간제한/입회녹음 철폐를 법무부에 요구키로 결정했다.
* 서청협 회원들이 '부시 방한반대 시위'를 벌였다.
* [[1월 5일]]: 강원 양양군민 2천여 명이 양양국교에서 '방사성폐기장 설치 반대 국민회의'를 개최하였다.
* [[1월 6일]]
* 노태우-부시 간 한미정상회담이 청와대에서 열렸다.
* 전농 등 6개 농어민단체들이 전국 각지에서 쌀 시장개방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 그루지아 대통령이 아르메니아로 피신하여 내전이 종식되었다.
* [[1월 7일]]
* 국방부는 당년도 팀 스피릿 한미합동훈련을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 충남 안면도 주민 5천여 명이 '방폐장 설치 반대 궐기대회'를 열었다.
* 북한측은 IAEA 핵안전협정 서명 후 핵사찰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 [[1월 8일]]
*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3공 이후 2년 전까지 청와대에 정치자금을 냈다고 주장했다.
* 여연 회원들이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신대 사과를 요구하며 첫 [[수요집회]]를 개최하였다.
*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부시]] [[미국 대통령]]이 [[일본 총리 관저]] 환영만찬 도중 [[졸도]]했다.
* [[1월 9일]]
* 노태우 대통령은 김영삼-김종필-박태준 최고위원 3명과 회동에서 정치일정을 매듭짓기로 합의했다.
* 민주당은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정치자금 헌납 발언과 관련해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했다.
* 환경처는 국토개발사업 시 녹지의무조성 등을 담은 제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 환경부문(녹색계획)을 발표했다.
* 현총련은 사측의 노조탄압 중단 성명을 냈다.
* 북한측은 우크라이나와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 [[1월 10일]]
* 노태우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지자제장 선거 연기 및 대권후보 자유경선 등을 선언했다.
* 정부는 유엔 결의에 따라 남아공 경제제재조치를 해제시켰다.
* '통일국민당 창당 발기인대회'가 개최되었다.
* 북한측은 투르크메니스탄과 수교했다.
* [[1월 13일]]
* '안양사랑청년회'가 발족되었다.
* 가토 고이치 일본 관방장관이 정신대 국가관여 사실을 시인했다.
* [[1월 14일]]
* 현대차노조는 쟁의돌입 결의 후 노조간부 연행 시 전면파업키로 결정했다.
* 캄보디아 정부는 정당 결성 및 언론자유화를 보장하고 전쟁포로와 정치범 290명도 석방키로 결정하였다.
* [[1월 15일]]
*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북한 평양에 도착했다.
* EC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독립국가로 승인하였다.
* [[1월 16일]]
* 미야자와 일본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다.
* 엘살바도르 정부군-FMLN 양측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내전 종식을 선포하였다.
* [[1월 17일]]
* 정부는 2월 1일부터 공무원 승용차 10부제를 전면 실시한다고 밝혔다.
* 미야자와 일본 총리는 방한 중 국회 연설에서 정신대문제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국인들에게 사과 의사를 밝혔다.
* 충북 충주에서 김보은이 남자친구 김진관과 함께 성폭행 가해자인 의붓아버지를 살해했다.([[김보은 양 사건]])
* [[1월 18일]]
* 교육부는 일제 말기 국교 및 중고교 학적부를 토대로 종군위안부 동원 실태조사에 착수하였다.
* 태평양전쟁유족회 소속 유족 등 3백여 명은 일본 사법부에 손배소송 등을 결의하였다.
* [[1월 19일]]: 노동자정당건설추진위는 '(가칭)한국노동자당 창당 발기인대회'를 개최하였다.
* [[1월 21일]]
* 윤형섭 교육장관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부분 수정을 강력 촉구한다고 선언했다.
* 정부는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에 철저한 진상규명 및 보상요구를 결정했다.
* 교육부는 부천 서울신대 입시문제지 도난사건으로 다음날로 예정된 후기대 입시를 [[2월 10일]]로 연기하였다.
* 경상대박물관 발굴팀이 경남 합천군 성산리 대형토분 6호에서 가야시대 유물 205점을 발굴해냈다.
* [[1월 22일]]
* 노태우 대통령은 후기대 입시문제지 도난사건으로 물러난 윤형섭 대신 [[조완규]]를 새 교육부장관에 임명했다.
* 한-미 양국은 북한에 대한 IAEA의 핵사찰 기한설정에 합의하였다.
* 경찰은 후기대 입시문제지 도난사건 진범을 발표하였다.
* 전국 대학생들이 삼당합당 2주년을 맞이해 반민자당 시위를 벌였다.
* 미-북 차관급 회담이 뉴욕에서 열렸다.
* [[1월 23일]]
* 한국소비자연맹 등 전국 405개 시민단체들을 주축으로 한 '공명선거실현 민간단체연합'이 발족되었다.
* 중국측은 한국상품전시회장에 '대한민국' 국명 및 국기 게양을 허용시켰다.
* [[1월 25일]]: 공선협 출범식이 서울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개최되었다.
* [[1월 26일]]
*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북한 남포에 2백만 평짜리 남북합작공단 건설 계획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 전노협은 제3차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전국연합 참여 결의 후 단병호 위원장을 재선출했다.
* [[1월 27일]]: 서울대 교수 등 각계인사 61명이 정주의 정치자금 헌납발언과 관련해 청와대에 사실확인을 촉구했다.
* [[1월 28일]]
* 국방부는 '신 국방정책 및 군사전략'에서 대북 주적개념을 주변 열강 등 군사적 위협을 겨냥하는 방향으로 수정키로 결정했다.
* 권정달 전 민정당 사무총장이 14대 총선 출마준비 중 돌연 출국했다.
* 서울신대 경비과장이 후기대 입시문제지 도난 혐의로 경찰 조사 도중 자살했다.
* 북한측은 카자흐스탄과 수교했다.
* 싱가포르 ASEAN 정상회담은 UR협상 조기타결을 촉구하는 '싱가포르 선언'을 채택했다.
* [[1월 30일]]
* 전 민청련 의장 [[김근태]]가 서울민사지법에서 고문피해 사실을 인정받아 국가배상 판결을 받았다.
* 한국 축구대표팀이 자력으로 바르셀로나 올림픽 본선진출을 확정지었다.
* 경남 울산시 지역신문 <[[울산매일]]>이 창간되었다.
* 북한측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IAEA 핵안전협정에 서명하였다.
* 북한측은 몰도바 및 아제르바이잔과 수교를 맺었다.
* 전유럽안보협력회의는 독립국가연합 가맹국 중 러시아를 뺀 10개국의 가입을 승인하였다.
==== 2월 ====
* [[2월 1일]]
* 민자당과 민주당은 14대 총선후보 공천자 목록을 발표하였다.
* 각급 행정기관과 정부투자기관들은 업무용/자가용 차량 10부제 운행을 실시하였다.
* 부시-옐친 한러양국 정상들이 '캠프 데이비드 선언'을 발표했다.
* [[2월 2일]]: 일본 TV아사히에서 <[[특수 엑시드래프트]]>가 첫 전파를 탔다.
* [[2월 3일]]
* 가토 고이치 일본 관방장관이 2차대전 당시 한국인 출신 군위안부 보상대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북한 김정일이 동유럽 공산권 붕괴는 일시적 현상이며 북한은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겠다고 밝혔다.
* 북한측은 벨로루시와 수교했다.
* [[2월 5일]]
* 국방부와 병무청은 현역병 복무기간을 1~5개월씩 단계적으로 감축키로 결정했다.
* 북한측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정식 승인했다.
* 북한측은 타지키스탄과 수교했다.
* [[2월 6일]]: 동아일보는 일본군 위안부 관계 비밀전보문서가 방위청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고 보도했다.
* [[2월 7일]]
* 민중당과 한국노동당(가칭)이 통합을 공식 선언했다.
* 이동춘 성화대도서관 부관장이 덴노 칙령으로 정신대 동원한 사실을 일본국회도서관 법령집에서 확인했다.
* EC가맹 12개국은 '유럽동맹' 창설을 골자로 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체결하였다.
* [[2월 8일]]
* 통일국민당은 창당대회에서 대표최고위원에 정주영, 최고위원에 김광일-김동길을 각각 선출했다.
* 남북 양국은 두만강개발회담 실무접촉에서 라진-선봉지구 개발에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합의하였다.
* 이금주 태평양전쟁유족회 광주지부 부지부장이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희생자 410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프랑스 테아트르 드 세레모니에서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하계올림픽 개최연도가 동일한 마지막 동계올림픽이었다.
* [[2월 9일]]
* 사설 감정인들이 국과수의 허위 감정을 폭로했다.
* 검찰은 국과수 문서분석실장 김형영을 뇌물수수 및 지문 등 허위감정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
* 북한측은 우즈베키스탄과 수교를 맺었다.
* '국제기자기구(IOJ) 아-태사무국 개막식'이 북한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 러시아 모스크바 시민 12만 명이 옐친 정부의 가격자유화 및 경제개혁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다.
* [[2월 10일]]
* 교통부는 시내버스 요금을 인상한다고 밝혔다.
* 한국역술인협회가 발족되었다.
* [[2월 11일]]: 재무부는 동월 3일에 미국 재무부 대변인이 한국에 금융시장 완전 개방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 [[2월 12일]]
* '조국평화통일불교협의회(이하 평불협)'가 결성되었다.
*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범국민투쟁본부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2월 14일]]
* 육군 204항공대 소속 UH-1H 헬기가 경남 선산군 삼정산 인근 과수원으로 추락해 이현부 7군단장 등 장교 7명이 죽고 나머지 1명이 중상을 입었다.([[1992 제7기동군단 헬기추락 사건]]).
* 전국연합 등 15개 단체가 국보법 철폐 투쟁 본격화를 선언했다.
* [[2월 15일]]
* 인기소설 <[[우동 한 그릇]]> 영화판이 일본에서 개봉되었다.
* 대전교도소 수감 비전향장기수 42명이 사상전향제도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 서울지검은 김형영 국과수 문서분석실장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했다.
* [[2월 17일]]
* 노태우 대통령은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서명하였다.
* 미국 인기 록그룹 '뉴 키즈 온 더 블록' 내한공연 도중 청소년 관중 1명이 죽고 40여 명이 부상당했다.
* [[2월 18일]]
*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 남측 대표단이 북한 평양에 도착하였다.
* 북한 지도자 김일성은 남북기본합의서 및 비핵화선언을 비준하였다.
* 국민독서문화진흥회가 설립되었다.
* [[2월 19일]]
* 정원식 총리와 연형묵 북한 총리는 6차 평양 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선언 등 합의서 본문을 교환/발효시켰다.
*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김윤만이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남자 1,000m 결승에서 은메달을 차지하였다.
* 북한 황해북도 황주직물공장 현대화공사가 완료되었다.
* 북한 평양에서 제2차 조선영화축전이 개막되었다.
* 미국 정부는 우즈벡,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과 수교한다고 발표하였다.
* [[2월 20일]]
* 정원식 총리는 고위급회담 도중 김일성 북한 주석을 예방해 1시간 50분동안 면담했다.
* 민언련 등 5개 단체가 연대하여 '선거보도 감시 연대회의'를 결성하였다.
* [[2월 21일]]
* 쇼트트랙 선수 김기훈이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남자 1,0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 강원일보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 유엔 안보리는 '유엔보호군(UNPROFOR)' 14,000명 파병을 담은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 [[2월 22일]]: 《[[공룡전대 쥬레인저]]》가 일본 TV아사히에서 첫 전파를 탔다.
* [[2월 23일]]: 전청대협이 '한국청년단체연합회(이하 한청협)'으로 새로 출범하였다.
* [[2월 24일]]: 한국은행은 1991년도 경상수지적자가 88억 3천만 불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 [[2월 25일]]
* 서울경찰청은 '국제사회주의자들(IS) 사건' 관련자 10명을 구속하고 9명을 불구속입건, 3명을 각각 훈방시켰다고 밝혔다.
* 미국 DEC사가 64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DEC Alpha]]'를 발표하였다.
* [[2월 26일]]: 지역민주노조운동 단체 '부천/시흥 공동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2월 27일]]
* '유서대필 사건 강기훈씨 무죄 석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범민련 해외본부가 독일 베를린에서 일본 도쿄로 이전하였다.
* [[2월 29일]]
* 국방부는 월남전 당시 국군 전사자가 4,624명이라고 최초 공개하였다.
* 유고 세르비아계는 '세르비아 공화국' 수립을 선언하였다.
==== 3월 ====
* [[3월 1일]]
* 노태우 대통령은 삼일절 기념사에서 남북 양측은 기본합의서 및 비핵화공동선언을 실천해 통일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 한국리서치는 전국 65개 도시 15~59세 남녀 1,484명 조사 결과 64.7%가 일본에 호감이 없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 일본 교도통신은 한국인 출신 일본군 위안부 추모 위령제를 오키나와섬 도카사키섬에서 열었다고 보도하였다.
* [[3월 2일]]: 제46차 유엔 총회는 카자흐스탄 등 CIS 가맹국과 산마리노의 유엔 가입을 승인하였다.
* [[3월 3일]]: 노태우 대통령은 총선 관련 위법행위를 법에 따라 엄단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
* [[3월 5일]]: 전남 나주시에 [[전남과학고등학교]]가 개교되었다.
* [[3월 7일]]
* 재무부는 일제 때 징용되어 사망한 군인/군속 명단을 영구 보존키 위해 독립기념관과 정부기록보존소 등에 이관하였다.
*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애니판이 [[일본]] [[TV 아사히]]에서 첫 전파를 탔다.
* [[3월 8일]]
* 여야 3당이 20년만에 처음으로 정당연설회를 열었다.
* 정부는 서울평화상을 국제적인 상으로 격상시키기 위한 별도 재단을 설립키로 결정했다.
*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4월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IAEA와 서명한 핵안전협정을 비준시킬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 [[3월 9일]]
*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이 설립되었다.
* 북한 금강산국제그룹 박경윤 회장이 5월 1일부터 남한국적 한국인들에게 북한관광 문호를 개방키로 했다고 밝혔다.
* [[3월 10일]]: 교육부는 전국 124개대가 '학사 제적제도'를 부활했다고 밝혔다.
* [[3월 11일]]
* 공보처는 기업/언론사 등 뉴스프로그램 참가 범위를 규정한 '종합유선방송법 시행령'을 발표했다.
* 박광재 KNCC 인권위원장 등 593명이 국보법 철폐요구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 현대건설은 청와대 신축공사관련 잔금 225억여 원 청구소송을 서울민사지법에 제기했다.
* 국제신앙위원회는 한경직 목사를 1992년 템플턴상 수상자로 선정/발표하였다.
* [[3월 12일]]: 이용만 재무장관은 현대그룹이 기업-정치를 분리해 기업경영에 전념토록 하자고 촉구했다.
* [[3월 13일]]
*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선거법상 후보자 정당연설회 개최 등은 균등기회 보장이 없는 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 전주 우석대가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다.
* [[3월 14일]]: 한국자동차협회는 한국이 세계 9위 자동차생산국으로 부상했다고 밝혔다.
* [[3월 15일]]: '민족민주열사 추모(기념)단체 연대회의'가 결성되었다.
* [[3월 16일]]
* 경찰청은 5~15내 채취지문 식별가능한 지문자동분류장비를 개발해 활용에 착수했다.
* IAEA는 20일부터 7일간 북한 영변원자로 정기사찰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 [[3월 17일]]
* 한-미 양국 정부는 주한미군이 운영한 포항 ~ 의정부 간 송유관 소유/운영권을 한국에 이관키로 합의했다.
* 수산청은 조업자율규제선에 따라 금지된 서해, 동해, 공해상 일부 어장을 개방한다고 밝혔다.
* [[3월 18일]]
* 한-러 양국 외무장관들이 부산 및 블라디보스토크에 각각 총영사관을 설치키로 합의했다.
* 삼성출판박물관이 조선조 최초 법전 <경국대전> 초간본 '신묘대전' 2권을 공개했다.
* [[3월 19일]]
*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영부인 프란체스카 도너가 92세로 사망했다.
* 서울백병원 이혁상 교수팀이 뇌사자 간 생체이식에 성공하였다.
* 러시아 <이즈베스티야> 편집위원 안드레이 일리슈는 KAL 007기 발포명령자가 코르누코프 사령관이었다고 발언했다.
* [[3월 20일]]: 중앙개발이 국내 최초로 용인 자연농원에 '와일드 사파리'를 개장하였다.
* [[3월 21일]]: 검찰은 홍사덕 민주당 후보 비방유인물을 살포한 안기부 직원 4명을 구속했다.
* [[3월 22일]]
* 육군 9사단 소속 이지문 중위가 공선협 전국본부 사무실 기자회견에서 군 부재자 투표 과정에서 공개투표 등 여당 지지 강요 등 부정행위가 있다고 [[군 부재자투표 부정 폭로 사건|주장했다.]]
* 민자당 선거운동 알바생이 국민당 명의 종교관련 흑색선전물은 민자당이 보냈다고 주장했다.
* 육상선수 김재룡, 김완기 선수가 제63회 동아마라톤에서 한국 마라톤 역사상 최초로 2시간 9분대를 기록하였다.
* 태국 친군부 정당 사마키탐 및 자트타이당이 총선에서 당선되었다.
* [[3월 23일]]: 반도음반은 '서태지와 아이들' 첫 정규앨범을 발매하였다.
* [[3월 24일]]
*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전국 각지에서 일제히 치뤄졌다.
* NATO-WTO 양측 가맹국 외무장관들이 CSCE 회의에서 '상호영공사찰' 조약에 조인했다.
* [[3월 25일]]
* 전날 총선 개표 결과 [[민자당]]이 149석으로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며 여소야대 구도가 재현되었다.
* 김종필 민자당 최고위원이 총선 패배에 책임지며 사의를 표명했다.
* [[3월 26일]]: 민주-국민 양당이 법률대로 1992년 중 지자제 실시를 정부에 촉구하였다.
* [[3월 27일]]
*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자당 최고위원은 차기 대통령 선출 위한 전당대회를 5월에 열기로 합의하였다.
* 문화재관리국은 경복궁 복원공사 사전발굴공사에서 1395년경 조성된 걸로 추정되는 어정을 발견하였다.
* 한국노총, 전노협, 업종회의 등 노동단체들이 총액임금제 및 임금인상률 5% 억제 방침에 반발하며 공동투쟁을 선언했다.
* 한국전통예악개발보급총연합회가 설립되었다.
* 게이츠 미 CIA 국장은 북한이 소련 무기지원중단 및 연료난 등으로 남침 기도하거나 핵무기 개발에 매진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3월 28일]]
* 김영삼 민자당 최고위원이 대통령후보 경선출마를 선언하였다.
* 노태우 대통령은 민자당 총재 자격으로 14대 총선결과와 관련해 김윤환 사무총장 및 나웅배 정책위의장을 각각 경질했다.
* 노동부는 직종별 남녀분리모집 및 여성취업 기회 제한 등을 처벌하는 '남녀고용평등 업무처리규정'을 확정했다.
* [[3월 29일]]
* SBS에서 <꾸러기 대행진>이 첫 전파를 탔다.
* 종합주가지수가 3개월여 만에 600선이 무너졌다.
* [[3월 30일]]
* 노태우 대통령은 서동권 안기부장 등 4개 부처 장관을 경질했다.
* 민주당 당선자대회는 총선 시 부정선거 책임을 물어 노태우 대통령 대국민사과 및 정원식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였다.
* 선관위는 총선 유효튜표 2% 이상을 얻지 못한 민중당 및 공명민주당의 등록을 취소했다.
* 아동문학가 이오덕이 <우리글 바로쓰기>를 발간하였다.
* [[3월 31일]]
* 노태우 대통령은 민자당 총선 당선자 149명과 당선대회에서 3.24 총선의 민의에 승복하자고 당부했다.
* 정대철 민주당 의원은 육군 26사단 모 중사의 공개투표 관련 녹음테이프를 공개하였다.
* 정주영 국민당 대표는 본인이 지닌 현대그룹에 대한 주권을 무조건 행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SBS]]에서 <[[그것이 알고 싶다|미스터리 다큐멘터리 그것이 알고 싶다]]>가 첫 전파를 탔다.
* 유엔 안보리는 미국 팬암기 폭파사고 관련 용의자 2명의 인도를 거부한 리비아에 대해 항공로 폐쇄, 전면 무기금수, 외교관계 축소 등의 제재결의안을 채택하였다.
==== 4월 ====
* [[4월 1일]]: 서울경찰청 보안부는 '국제사회주의자들(IS) 사건' 관련자 40명을 검거하고 이중 19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 [[4월 4일]]: 범민련은 제1차 공동의장단회의에서 공동결의문 및 합의서를 발표하였다.
* [[4월 6일]]
* 한미합작 애니 <외계소년 위제트>가 KBS2에서 첫 전파를 탔다.
* MBC에서 [[드라마]] <분노의 왕국>이 첫 전파를 탔다.
* 미국과 EC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독립국가로 승인하였다. 이를 계기로 스르프스카 측이 봉기해 [[보스니아 내전]]이 시작되었다.
* [[4월 8일]]
* 통합 민중당 제15차 중앙위원회는 전희식이 주장한 새 정치조직체 전환안을 42대 1로 확정지었다.
* 북한 평양 ~ 개성 간 고속도로가 완공되었다.
* [[4월 9일]]
* 국방부는 군 관련 41개 법률 중 '북괴' 등 북한을 자극할 소지가 있는 용어나 조항 정비에 착수하였다.
* 법무부는 모계주의도 도입한 '국적법 개정안'의 입법을 예고하였다.
*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제9기 제3차 회의에서 핵안전협정을 비준하고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했다.
* 경찰청 보안국은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당준비위' 관련자 5명을 국보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 수친다 태국군 최고사령관이 신임 총리로 취임했다.
* 살리 베리샤 알바니아 민주당 총재가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공산정권 대신 민주 공화국이 출범했다.[* 이 과정에서 베리샤가 공산정권 시기 인사들을 일신했다. 하지만 그도 코드정치와 부정부패 및 언론탄압을 자행하여 졸지에 야당인 사회당이 오히려 민주화 정당이 되어 버렸다. 참고로 베리샤는 1997년에 발생한 [[1997년 알바니아 금융사기 사건|대형 피라미드 사기 사건]]의 여파로 알바니아 전역이 무정부 상태에 놓이자 책임을 지고 대통령 직에서 사임했다가 2005년 내각제 하에서 총리로 다시 권좌에 복귀한다. 그러나 [[2013년]] 총선에서 에디 라마(Edi Rama)가 이끄는 사회당에게 패하면서 마침내 [[총리]]에서도 물러났다.]
* [[4월 10일]]
* 정부는 쌀을 제외한 14개 농산물의 수입을 허용하는 UR 협상 이행계획서를 GATT에 제출하였다.
* '총액임금제 저지를 위한 전국노동조합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4월 11일]]
* 신예 아이돌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MBC <특종 TV연예>에서 [[난 알아요]]를 대중적으로 소개하였다.
* 전국연합 등 재야 17개 단체를 주축으로 한 '국가보안법 철폐 범국민투쟁본부'가 결성되었다.
* 종전의 한겨레사회연구소와 한국사회연구소가 통합되어 '한국사회과학연구소'로 출범하였다.
* [[4월 12일]]
*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가 "당시 암살사건의 배후는 김창룡이었다"고 고백하였다.
* 범민련 남측본부 및 북측본부 준비위원회가 각각 결성되었다.
* 북한 평양 통일거리가 완공되었다.
* 북한 평양 ~ 개성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 [[4월 13일]]
* 이상옥 외무장관은 쳰지천 중국 외교부장과 한중 수교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 법무부는 외국인범죄 근원/지속적 대처를 위해 '외국인수용소'를 설치키로 결정했다.
* <[[크레용 신짱]]> [[짱구는 못말려(애니메이션)|애니판]]이 일본 TV아사히에서 첫 전파를 탔다.
* 북한측은 김일성에게 대원수 칭호를 수여했다고 발표했다.
* [[4월 14일]]
* 민주당은 안두희의 백범 암살증언과 관련해 14대 국회 개원 시 여야합동조사단 구성 및 진상규명을 제의했다.
* 헌법재판소는 국보법 위반사범 구속기간 연장조항이 고무찬양 및 불고지죄에 적용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 국방부는 군 부재자 투표 부정사건과 관련해 통신사령부 예하부대 중대장 등 3명을 구속수사했다고 밝혔다.
* [[주대환]], [[노회찬]] 등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당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북한 지도자 김일성은 북한의 최우선 과제가 한반도 통일을 위한 회담 및 대일외교관계 수립이라고 언급했다.
* [[4월 15일]]
* 이상옥 외무장관이 장쩌민 중국 주석을 예방했다.
* 이우재, 이재오, 장기표 등 민중당 핵심 간부들은 민중당 해체를 선언하는 광고를 신문에 냈다.
* 몬트리올 의정서 조약국회의 실무회의는 오존층 파괴물질인 프레온가스 등의 생산을 1996년 1월 1일까지 전폐시킨다고 밝혔다.
* [[4월 16일]]
* 노태우 대통령은 통일 이후에도 미군이 한국에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 세계자유교원연맹 및 국제자유교원연맹이 한국 정부의 전교조 교사 1,500명 해직이 부당하다고 ILO에 제소했다.
* [[4월 20일]]: 서울고법은 유서대필사건 항소심에서 대필혐의자 강기훈에게 징역 3년 및 자격정지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 [[4월 21일]]
* 이우재, 이재오, 장기표 등이 '민주개혁과 사회진보를 위한 협의회(이하 민사협)'를 결성하였다.
* 북한측은 김정일에게 원수 칭호를 수여했다고 밝혔다.
* [[4월 25일]]
* 법무부는 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정부 차원의 대일배상청구 가능/필요성 의견서를 정부에 촉구했다.
* 법무부는 남북합의서에 대해 신사협정일 뿐, 국보법에 대한 구속력이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 [[4월 27일]]
* 유고연방 의회가 새 헌법을 채택함으로써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구 유고연방]]이 49년만에 공식 해체되었다.
* 닌텐도는 <[[별의 커비]]>를 일본에 출시하였다.
* 북한 평양에서 궤도전차화 1~2단계 공사가 완료하였다.
* [[4월 28일]]: 세르비아-몬테네그로는 '신유고연방' 정부를 수립하였다.
* [[4월 29일]]
* 안기부는 백태웅 등 사노맹 주요 간부 39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 미국 LA 일대에서 [[LA 폭동|대규모 인종폭동이 발생했다.]]
* LA 재미 한인동포 상점 450여개 업소가 분노한 흑인 군중들에 의해 약탈/방화 등의 피해를 입었다.
* [[4월 30일]]
* 주미 한국대사관은 미 국무부에 재미동포 보호를 위해 미국 정부의 예방조처 및 협조를 공식 요청했다.
* 서울대 보건대학원은 원진레이온 전현직 노동자 208명 역학조사 결과 이황화탄소 중독자 32명이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 5월 ====
* [[5월 1일]]
* 보사부는 국내 80세 이상 장수인구가 38,4262명이라고 밝혔다.
* 서울 종로에 [[영풍문고]] 1호점이 문을 열었다.
* 주LA 한국총영사관은 인종폭동으로 교포 1명 사망, 중경상 30명, 재산피해 1억 2,700만 불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 박종상 주LA 총영사는 NBC에 한-흑 갈등 확대가능 장면 보도 자제를 요청했다.
* 한국은행은 당년도 2월 말 기준 외채가 401억 8천만 불이라고 밝혔다.
* 중국 정부는 한국선주협회 등에 한국 국적 선박의 입항을 전면 허용한다고 밝혔다.
* [[5월 2일]]
* 노태우 대통령은 LA 인종폭동과 관련해 부시 미 대통령에게 미국 정부의 배려 및 지원을 요청했다.
* 그레그 주한미대사는 미 정부가 재미한인 보호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성명을 냈다.
* 노재원 코트라 베이징주재 대표와 정홍업 중국 국제상회 회장이 '한중투자보장협정'에 서명했다.
* ILO공대위는 한양대 서울캠에서 '세계노동절 103주년 기념대회'를 열었다.
* 미국 LA 교민 10만여 명이 '한인타운 재건과 평화를 위한 대집회' 후 거리시위를 벌였다.
* [[5월 3일]]
* 법무부는 간통죄 완전 폐지 대신 벌금형 신설 및 법정형 감해 존속시킨다고 밝혔다.
* 교육부는 중고생에 학기 중 학원수강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 전교조는 국민학생 대상 조사결과 50%가 가출, 41.6%가 자살충동이 있었다고 답했다.
* EC 가맹 12개국 및 EFTA 가맹 7개국 외무장관들은 '유럽경제지역(EEA)' 설치에 합의하였다.
* [[5월 4일]]
* 공보처는 종합유선방송에 종교채널을 허용키로 결정했다.
* 외무부는 LA 인종폭동과 관련해 현지에 정부실태조사단을 파견한다고 밝혔다.
* 건설부는 건설시장 개방에 대비해 '입찰자격 사전심사제 도입' 등 입찰/계약 구조적 개선에 착수했다.
* 미국 LA시 당국은 인종폭동으로 재미 한인 중 사망 1명, 부상자 46명, 방화 및 약탈 피해업소 1,669개, 재산피해 총 3억 790만 불로 추산한다고 밝혔다.
* 일본 슈에이샤 <주간소년점프>에 <[[죠죠의 기묘한 모험]]> 4부 연재가 개시되었다.
* [[5월 5일]]
* 이용만 재무장관이 아시아개발은행 총회에서 선진국의 개도국 개방에 대해 무리한 요구라고 경고했다.
* 모스크바대 북한유학생 김명세가 러시아 정부에 망명을 요청했다.
*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 북측대표단이 판문점을 경유해 서울에 도착했다.
* [[5월 6일]]
*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이 서울에서 개막되었다.
* 무협은 1991년 말 한국이 주요 선진국으로부터 수입규제를 총 71건이나 받았다고 밝혔다.
* 박형규 등 KNCC 소속 목사 1,004명이 '남북합의서 국회비준 동의를 촉구하는 1004인 선언'을 발표했다.
* 미국 <워싱턴포스트> 지가 북한이 핵폭탄제조용 플라토늄 생산을 처음 시인했다는 IAEA 제출명세서를 인용해 보도했다.
* [[5월 7일]]
*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은 군사/경제교류협력 등 4개 기본합의서 이행기구를 발족키로 결정했다.
* 환경처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외래어류 방생으로 생태계 파괴 및 하천 오염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 한국통신은 방송통신위성 '무궁화호' 입찰 결과 미국 맥도널더글라스 사로 선정되었다고 밝혔다.
* 부시 미국 대통령이 LA 인종폭동 현장을 둘러보고 피해복구 자금 6억 불을 지원키로 한다고 밝혔다.
* [[5월 8일]]
*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 북측대표단이 본국으로 귀환했다.
* 경찰은 동아대, 전남대 등지에서 북한 인공기가 등장함에 따라 수사에 착수했다.
* [[5월 9일]]
* 정부는 유엔환경개발회의 <환경규제선언> 등에 대비해 정부특별대책기구를 설치/운영키로 결정했다.
* 대학생 및 재야단체 회원 2만여 명이 전국 9개 도시에서 '민자당 해체와 민주대개혁을 위한 국민대회'를 열었다.
* 전국연합은 반민자당 범민주연대기구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회의' 구성을 제의했다.
* [[5월 10일]]
* 한전은 전날 전원공급계통 차단기 고장으로 고리원전 1기 운전을 정지한다고 발표했다.
* 북한은 핵사찰 문제와 관련해 주한미군 핵무기 및 기지 전면사찰을 포함한 동시사찰을 주장했다.
* [[5월 11일]]
* 경찰청은 승용차에 어린이 안전의자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결정했다.
*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가 설립되었다.
* 이태진 서울대 규장각 관장이 일제가 구한말 체결시킨 을사조약과 정미7조약은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 필리핀 정/부통령 및 국회의원 자유선거가 13년만에 다시 개최되었다.
* 한스 블릭스 IAEA 사무총장이 북한 원자력시설 첫 사찰을 위해 평양에 도착했다.
* [[5월 12일]]
* 정부는 8.15 이산가족 남북교환방문과 관련해 2년 전 방북신청자 37,408명 중 150여 명을 우선 선발키로 결정했다.
* 남북한핵통제위 4차 회의는 상호사찰 위한 사찰정안 관련 별도 협의 개시에 합의했다.
* 정주영 국민당 대표가 독과점 배제 및 전문성 제고를 위해 재벌해체 및 기업 전문화를 주장했다.
* [[5월 13일]]
* 건대생 1백여 명이 대동제 행사 도중 교내 만국기 게양 시 인공기를 태극기/단일기와 동시 게양해 파문을 일으켰다.
* 북한측은 6.25 전쟁 실종미군 유해 15구를 판문점 통해 주한유엔사에 인도했다.
* 제7차 북-일 수교회담이 개막되었다.
* 프랑스 국민의회가 마스트리히트 조약 비준을 위한 헌법수정안을 가결시켰다.
* [[5월 14일]]
* 목포대생 5백여 명이 총학생회장 검거와 관련해 목포경찰서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 이삼로 북일수교회담 북측대표가 자국이 플루토늄을 증식해왔다는 카네기재단 보고서를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 [[5월 15일]]
* 국민당 임시전당대회는 정주영 대표를 14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 통일원은 통일안보교육체계를 남북화해/협력시대에 맞게 보완한 '새 통일교육지침'을 마련키로 결정했다.
* 안기부는 사노맹이 사회주의체제 건설을 기도한 지하혁명조직이라고 밝혔다.
* 경향신문사가 시사주간지 <뉴스메이커>를 창간했다.
* 독일 베를린지검은 호네커 전 서기장 등 구 동독 간부 6명을 탈출자 사살명령을 내린 혐의로 기소하였다.
* CIS 가맹국 정상들이 '집단안전보장조약' 등 13개 문서에 조인했다.
* [[5월 16일]]
* 전대협은 기자회견에서 각 대학 인공기 게양을 잠정 유보한다고 밝혔다.
* 교육부는 감사 결과 경산대가 1986년부터 2년 간 82명을 부정입학/편입시켰다고 밝혔다.
* [[5월 17일]]
* 이종찬 민자당 의원이 대선후보 경선과 관련해 불공정상황이 계속된다 하여 경선 거부 후 당내투쟁 전개키로 선언했다.
* 원진대책위 회원 3백여 명이 원진레이온 정문 앞에서 '산업재해 추방 결의대회'를 열었다.
* 문화부-교육부는 '중고교 학예활동 활성화방안'을 마련키로 결정했다.
* 태국 국민 10만여 명이 방콕 시내에서 수친다 총리 퇴진 및 민주회복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태국 경찰이 반군부 시위대에 집단발포해 50여 명을 사살했다.
* [[5월 18일]]
* '광주민중항쟁 계승과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범국민대회'가 금남로에서 개최되었다.
* 경찰청은 체신부 및 한통의 협조를 받아 '112 신고 전화번호/위치자동표시 시스템'을 설치키로 결정했다.
* [[5월 19일]]
* 민자당 전당대회는 김영삼 대표를 차기 대통령후보로 선출했다.
* 대학생 등 수만 명이 전국 22개 지역에서 반민자당 집회를 열었다.
* 대법원은 긴급구속장제가 헌법이념에 역행한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 [[5월 20일]]: 태국 국왕 라마 9세가 수친다 총리를 불러다 훈계를 내려 중재안을 내렸다.
* [[5월 21일]]
* 국무회의는 '환경보전을 위한 국가 선언'을 제정키로 의결했다.
* 환경처는 '환경과학기술개발 10개년 계획'을 확정했다.
* 철도청은 7월 1일부터 새마을호 열차 객실 내 금연 조치를 내린다고 밝혔다.
* 수친다 태국 총리가 라마 9세 국왕의 제안에 따라 개헌 및 시위 체포자 석방/사면 등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 [[5월 22일]]
* 정부와 민자당이 지자제선거를 1995년 혹은 1998년에 실시한다고 밝혔다.
* 서울형사지법은 홍사덕 민주당 의원 비방전단 살포한 안기부 직원 4명에 집유를 선고했다.
* 대간첩대책본부가 강원 철원군 DMZ에서 북한 무장침투조 3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 전택노련 대표자 1,200여 명이 여의도 노총회관에서 '회사택시 제도 개선을 위한 전국 노조대표자 결의대회'을 열었다.
* 제46차 유엔 총회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 3개국의 유엔 가입을 승인하였다.
* [[5월 23일]]
* 한-러 양국이 에너지자원협력위원회 설치에 합의했다.
* 교통부는 인천 영종도 신공항건설 사업 관련 계획을 최종 확정했다.
* '북한 현대미술전'이 분단 이래 최초로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개최되었다.
* 범국본 소속 회원 5백여 명이 '국보법 철폐 및 정치/사상의 자유 쟁취 결의대회'를 열었다.
* [[5월 24일]]
* 선관위는 14대 총선 비용조사와 관련해 각 정당들의 비협조로 고발사인이 1건도 없었다고 밝혔다.
* 북한측은 남한 반정부시위와 관련해 이들의 투쟁구호가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 [[5월 25일]]
* 노태우 대통령이 정무1장관에 김용채를 임명했다.
* 민주당 전당대회는 김대중과 이기택을 공동대표로 선출했다.
* 국방부는 월남전 참전 고엽제 피해자 신고접수 및 심사작업에 본격 착수하였다.
* 범선인학원정상화추진위 소속 교수 등 250여 명이 학원정상화 방안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IAEA 사찰단은 북한에 대한 핵사찰을 본격적으로 실시한다고 밝혔다.
* [[5월 26일]]
* 민주당 전당대회는 김대중 공동대표를 차기 대통령후보로 선출했다.
* 북한-오만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설정하였다.
* [[5월 27일]]: 월남전 참전단체들이 고엽제 피해에 대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
* [[5월 28일]]
* 선관위는 군부재자 투표 직접관리 등을 담은 '대통령선거법 개정의견 시안'을 발표했다.
* 정원식 총리는 경기 김포, 연천, 동두천 등지 지하기계음 관련 보도와 관련해 조사/검토를 지시했다.
* 이상배 총무처장관이 대전 정부제3청사 건립 추진 중이며 1998년 이전까지 11개 외청을 이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 보사부는 일부 의약품의 메틸알콜 검출사건과 관련해 국립보건원 재감정 결과 검출 없었다고 밝혔다.
* [[5월 29일]]
* 제460차 군사정전위가 북한, 중국 불참으로 무산되었다.
* 전교조, 전대협 등 재야노동단체들이 ILO총회에 대표를 파견했다.
* 경제5단체들이 UNCED를 계기로 '기업인 환경선언'을 채택했다.
* 광주지역 대학생 9백여 명이 전대협 출범식 참가를 위해 강제로 열차 정차 후 탑승해 상경했다.
* [[5월 30일]]: '제6기 전대협 출범식'이 한양대 서울캠 종합운동장에 7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 [[5월 31일]]
* 전대협 소속 대학생들이 서울 태평로 및 종로 등지에서 점거농성 후 자진해산했다.
* 전교조가 '교육대개혁과 해직교사 원상복직 위한 전국교사대회'를 열었다.
==== 6월 ====
* [[6월 1일]]
* 정부와 민자당이 지자제 선거를 1995년 6월 30일 이전까지 치르기로 최종 확정지었다.
* 정부는 북한 핵개발 의혹이 불식되지 않는 한 남북관계 진전 안된다고 대북 입장을 최종 정리했다.
* MBC에서 드라마 <질투>가 첫 전파를 탔다.
* 국립전주박물관 학술조사단이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에서 삼국시대 제사유적을 발굴했다.
* 일본 도쿄지법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및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 41명의 대일피해보상소송 1차 공판을 열었다.
* 남아공-러시아 양국이 1956년 단교 후 36년만에 외교관계를 재수립하였다.
* [[6월 2일]]
* 정부는 조속한 핵사찰 규정 마련을 촉구하는 대북성명을 냈다.
* 한국인 종군위안부 피해자 5명이 일본 정부 관계자들에게 처음으로 2차대전 때 일본군에게 당한 만행을 폭로하고 사과 등 대책을 촉구하는 요망서를 제출하였다.
* 국사편찬위는 광주/전남지역 초중고 등 291개교 학적부 조사결과 14개교에서 73명이 '군 위안부'로 동원되었다고 발표했다.
* 안영경 전 KAIST 시스템공학연구실장이 '펜 컴퓨터'를 개발했다.
*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한미 양국의 1993 팀스피릿 훈련 재개방침을 긴장격화 위한 공모라고 비난했다.
* [[6월 3일]]
* 민주당 초선의원 12명이 비리성 자금 거부 및 화환 안 보내기 운동 등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 건설부는 전국 최고 땅값이 서울 중구 명동2가 33번지 평당 1억 4,214만원이라고 발표했다.
* 보사부는 평가입원 및 가퇴원제도 등을 추가한 '정신보건법 수정안'을 발표했다.
* [[6월 4일]]
* 정부는 원자력협력담당 대사직 신설 후 초대 대사에 정근모 전 과기처장관을 임명했다.
* 국방부는 서울 근교 지하 기계음 관련 땅굴 존재여부를 조사한 결과 땅굴이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 NATO는 군사활동을 전 유럽으로 확대키로 결의했다.
* [[6월 5일]]
* 노태우 대통령은 20회 세계 환경의 날 기념식에서 '환경보전을 위한 국가선언'을 선포했다.
* 민자당은 환경기술개발원 설치 등을 담은 '환경종합대책'을 발표했다.
* 남북적십자 실무대표들은 8.15 이산가족 문제 및 예술단 교환 문제를 핵문제와 관계없이 추진키로 합의했다.
* [[6월 6일]]
* 주거권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은 경희대에서 김수환 추기경 등 1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무주택자의 날 선포식'을 개최하였다.
* '서울지역전문대총학생회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MBC에서 [[드라마]] <마포 무지개>가 첫 전파를 탔다.
* 서울 방배동 지하철4호선 남태령 제10공구가 공사 도중 무너져 노동자 3명이 숨지고 1명이 부상당했다.
* [[6월 7일]]
* 25개 사립단과대들이 '대학'에서 '대학교'로 명칭을 변경했다.
* 안기부는 독일 건설회사 파견근무 중이던 북한 건축설계사 김영성이 귀순 후 입국했다고 밝혔다.
* [[6월 8일]]
* 정주영 국민당 대표가 "국보법은 경찰관계법 등으로 대체 가능하므로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 삼성그룹이 1996년부터 프레온가스 사용중단할 계획을 발표했다.
* 서울 서초3동 '꽃마을' 비닐하우스촌 주민 1백여 명이 서초구청 앞에서 철거반대 시위를 벌였다.
* [[6월 9일]]
* 신정당 임시전당대회는 박찬종 대표를 14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 일본 참의원 본회의는 자위대 해외파병 허용을 담은 '유엔평화유지활동 등에 대한 협력에 관한 법률(PKO법)'을 통과시켰다.
* 정부는 일본자위대 해외파병에 대해 신중을 기하라고 촉구했다.
* 국방부는 월남전 참전자 중 고엽제 중독 후유증환자의 전공상 심의규정을 확정했다.
* 서울시교육청은 중고생 학원수강을 전면 허용키로 결정했다.
* 남북정치분과위 5차 회의가 부속합의서안 내용 절충작업에 실패했다.
* 한미연례안보협 안보정책검토소위는 북핵문제 및 주한미군 연기 등에 대해 협의했다.
* 서울시는 포장마차 일제 정비에 따라 7월부터 모두 철거키로 결정했다.
* 일본 도쿄시내에서 시민 1만여 명이 PKO법안 통과 반대시위를 벌였다.
* [[6월 10일]]
* 전국 각지에서 6월 항쟁 기념식 및 민자당 타도 결의대회가 열렸다.
* 교육부는 인천 선인학원에 관선이사를 파견했다.
* 서울지검은 의약품 검출 메틸알콜 의혹사건이 보사부의 행정실수라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 한스 블릭스 IAEA 사무총장이 북한 영변 핵재처리시설물 건설 중임을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 [[6월 11일]]
* 정부는 북핵 재처리시설 존재 공식화에 따라 향후 한반도 핵문제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선정했다.
* 정부와 민자당은 성폭력범죄 근절키 위해 무고소 처벌가능 등 처벌기준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 축협 및 축산농민 5천여 명이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축산물 개방반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6월 12일]]
* 남북적십자사 실무대표들은 8.15 이산가족 노부모 방문 및 예술단 방문일정에 합의하였다.
* 외무부는 북핵 재처리시설 건설과 관련해 비핵화선언 위반이라며 중단을 촉구했다.
* 제주국제마약회의는 유엔마약류퇴치계획 지원 등을 담은 '제주선언'을 채택했다.
* 남북적십자사 실무대표들은 8.15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단이 8월 25 ~ 28일까지 서울-평양 교환방문토록 합의했다.
* 북한 외교부 대변인은 을사조약 날조와 관련해 담화를 발표했다.
* 정부는 대기업의 종합유선방송사업 배제 등을 담은 '종합유선방송법 시행령'을 확정했다.
* 정부는 지자체장 선거 공고시한 만료 및 관련 연기 불가피성을 알리는 신문광고를 냈다.
* 선관위는 군부재자 영외투표 등을 담은 '대통령선거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 브라질 리우에서 '유엔환경개발회의'가 개막되었다.
* [[6월 13일]]
* 정원식 총리가 유엔환경개발회의 연설에서 남북한 DMZ 공동 생태계조사 및 '동북아환경협약기구' 설치를 제의했다.
* 정원식 총리가 기후변화협약 및 생물다양성협약에 서명했다.
* 북한 외교부가 IAEA를 탈퇴한다고 발표했다.
* [[6월 14일]]
* 리우 유엔환경개발회의는 '기후변화협약'을 체결했다.
* 시카고 불스가 미국 NBA 파이널에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4승 2패로 꺾어 창단 첫 백투백을 달성하였다.
* [[6월 15일]]
* 전노련 회원 1,500여 명이 '노점상 생존권 쟁취대회'를 열었다.
* 일본 중의원 본회의는 PKO법안을 통과시켰다.
* [[6월 17일]]
* 대우그룹이 '고등기술연구원'을 세웠다.
* 남북 양국은 프랑스표준협회에서 '기계화를 위한 한글의 로마자표기에 대한 단일안'을 마련하였다.
* [[6월 18일]]
* 교육부는 방학 중 해외여행 신고를 의무화하도록 지시했다.
* 중국 정부는 한국인 방중 시 정식비자를 발급하겠다고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
* 오창림 북한대사는 영변 건설 중인 방사화학실험실과 관련해 과학연구계획을 중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 [[6월 19일]]
* 남북군사분과위 5차 회의는 기본합의서 불가침분야 부속합의서를 장(章)별로 만드는 데에 합의했다.
* 민주당은 지자체장 연내 실시에 대한 정부측 의지표명 전제되지 않을 시 여야 접촉을 중단키로 결정했다.
* [[6월 20일]]
* 외무부는 9월부터 사할린 거주 무연고 동포 1세대 150여 명의 영구 귀국을 받아들인다고 발표하였다.
* 외무부는 중국 정부가 금성사 등 3개 기업 베이징지사 설치를 허가했다고 밝혔다.
* 한국은행은 1원 및 5원짜리 동전 제조발주를 중단키로 결정했다.
* 체코시민민주당과 민주슬로바키아운동 양측 당수가 체코슬로바키아 분리협정에 조인하였다.
* [[6월 21일]]
* 미국 <워싱턴 타임스>지는 망명 북한 외교관 고영환이 "북한 영변 핵시설은 전시용이며, 지하에 동일시설을 건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 '해직교사복직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교육부는 현직 교사들의 교사추진위 결성을 위법으로 규정 후 관련 교사들을 엄중 문책키로 결정했다.
* [[6월 22일]]
* 노태우 대통령은 지자체장 선거 연기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 정부는 지구정상회담 협약 서명을 계기로 '환경기술 투자 확대' 등 중점과제를 추진키로 결정했다.
* 경찰청은 경찰관 비리 및 사고 빈발로 '복무기강 확립 및 사고방지 대책'을 전국 지방경찰청에 지시했다.
* 북적 실무대표는 핵 상호사찰 및 남북관계 진전 연계한다는 남측 입장에 변화 없는 한 노부모 교환방문단이 성사될 수 없다고 밝혔다.
* [[6월 23일]]
* 민주당은 '김종필-오히라 메모' 공개에 따른 1965년 한일협정 의혹 조사 규명키 위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 대법원은 주민이 지자체 행정업무 정보공개 요구 시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 서울시는 '주택지역 쓰레기분리수거 정착 위한 세부시행계획'을 발표했다.
* [[6월 24일]]
* 국무회의는 뉴스프로그램 공급업 허가권을 공보장관이 부여하는 '종합유선방송법 시행령'을 심의/의결하였다.
* 대법원은 검사가 피고인에게 진술거부권 고지 않은 채 받은 진술이 유죄증거가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 [[6월 25일]]
* 노태우 대통령은 새 통일부총리에 최영철을 임명했다.
* 민주-국민 양당 대표들이 지자체장 선거 연내 관철 등에 합의했다.
* 동자부는 휘발유 소비자가격 22.7% 인상 등으로 기름값을 평균 13.4%로 올렸다.
* 경찰청은 범죄경력조회에서 [[불기소처분]]/[[무죄]]확정판결 삭제 등 범죄경력조회제를 개선키로 결정했다.
* 드미트리 볼코고노프 러시아 대통령 군사보좌관이 1983년 KAL기 피격사건 관련 자료를 한국에 제공하겠다고 언명했다.
* [[6월 26일]]
* 노태우 대통령이 지방선거를 1995년에 실시하는 대신 대통령선거법 개정을 제시했다.
* 정부는 남북한 상호사찰 없이 경협 등 전 분야별 공위 가동도 어렵다는 입장을 북측에 공식으로 전달했다.
* 제3차 평양컵 국제축구경기대회 및 제12차 국제예술체조경기대회가 북한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 [[6월 27일]]
* 교육부는 1995학년도부터 시행할 제6차 중학교 교육과정을 확정/발표했다.
* 보사부가 전국에 콜레라 주의보를 발령했다.
* [[6월 29일]]
* 제157회 임시국회가 열렸다.
* 최세창 국방장관은 한국의 PKO 참여와 관련해 해당국 요청 및 국회 동의 시 반대 이유가 없다고 발언했다.
* 교육부는 1994학년도부터 전문대 입시일자 자유화 등 '전문대 입시제도개선안'을 마련했다.
* [[6월 30일]]
* 경부고속철도 대전~천안 시험구간이 착공되었다.
* 교육부가 제6차 중학교 교육과정을 고시했다.
* 1992 한국문화통신사, 가야문화전, 한국의 밤 행사가 일본에서 개최되었다.
* 한라산 국립공원사무소는 7월 1일부터 구두/슬리퍼 착용 등산객에 한라산 등반 불허 결정을 내렸다.
* 제24차 북-미 양국 베이징 접촉이 이루어졌다.
* 러시아 정부는 1995년까지 3년 동안 주요 기업들의 절반을 민영화하기로 경제개혁 목표를 설정했다.
==== 7월 ====
* [[7월 1일]]
* 한국-우크라이나 양국이 과학기술협정에 서명했다.
* 방송위는 알콜성분 17도 이상 소주 및 양주의 광고방송을 금지하는 새 방송심의규정을 시행하였다.
* [[7월 2일]]
* 정부는 관계장관회의에서 수산자원 보호를 위해 주요 연안지역에 '블루벨트'를 설치키로 결의했다.
* 은감원은 중국은행 서울사무소 설치를 인가했다고 밝혔다.
* 미국 정부는 유럽 등 전 세계 지상 및 해상에 배치된 전술핵무기 2,400기 철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 [[7월 3일]]
* 국방부는 유엔 평화유지활동과 관련해 보병부대 1개 대대 및 의료지원단 등의 파견을 준비 중이라고 공식 확인했다.
* 정부 정신대문제 실무대책반은 종군위안부 피해자 신고접수자가 6월 25일 기준 390명으로 집계되었다고 발표하였다.
* 일본 정부는 최초로 한국인 '위안부'를 공식인정한 <종군위안부 관련 조사결과>를 확정하였다.
* 월북 국어학자 홍기문이 사망했다.
* [[7월 4일]]
* 정부는 차관급 이상 7백여 명 재산공개 방침코자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 상공부는 삼성중공업-일본 닛산디젤 간 기술도입 계약 신고서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 정부는 제2금융권의 기금출연을 법제화하기로 결정했다.
* [[7월 5일]]: 서울 강남경찰서는 제일생명 예탁금 250억 원 중 230억을 횡령한 국민은행 압구정지점 대리를 구속했다.(국군정보사령부 부지 불하 사기사건)
* [[7월 6일]]
* 국방부는 정보사 부지사건 핵심인물인 전 합참 군사자료과장을 중국에서 압송했다고 밝혔다.
* 일본 정부는 일제 말 '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당시 정부의 관여 사실을 인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 IAEA가 제2차 북핵 특정사찰을 개시했다.
* [[7월 7일]]
* 정원식 총리는 고령이산가족 중 희망자에 한해 부양자/배우자가 있는 쪽에 정착하는 문제를 우선 협의하자고 북한에 제의했다.
* 통일원은 1955년 이후 미귀환 납북자가 278명이라고 밝혔다.
* 연합통신은 뉴스통신사로서 최초로 국내 방송사에 국내외 뉴스를 육성으로 전달하는 '음성서비스'를 실시하였다.
* 한국수출보험공사가 설립되었다.
* IAEA 제2차 임시사찰단이 북한 평양에 도착하였다.
* [[7월 8일]]
* 여야 3당 사무총장들이 국회 의장단 구성 및 회기를 결정했다.
* 검찰은 정보사 부지 사기사건으로 조사받던 합참 군사자료과장을 구속했다.
* [[7월 9일]]
* 유창순 전경련 회장은 연말 대선 시 기업에 정치자금 모집 않겠다고 언명했다.
* 정부는 중소기업 범위를 자산 최고 6백 억/종업원 5백 명으로 확대한 '중소기업기본법 시행령 개정안'을 확정했다.
* 국무회의는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의결했다.
* 국제앰네스티는 북한이 정치범 1천명을 집단수용한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 [[7월 10일]]
* 청와대는 9월 16~18일까지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공식 방문한다고 밝혔다.
* 남북 정치분과위는 위원장 접촉 후 상호 체제 인정 등 8개 의제에 합의했다.
* 검찰은 정보사 부지 사기사건과 관련해 성무건설 회장 등 3명을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 '전국도시빈민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7월 11일]]
* 통계청은 당일 0시를 기준으로 국내 인구가 세계 23위인 4,376만 4,117명으로 집계되었다고 밝혔다.
* 국방부는 정보사 부지 사기사건에 이용된 허위매매 계약서 등을 건설업체 부사장이 준비했다고 밝혔다.
*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가 조직되었다.
* [[7월 12일]]
* 민주당은 전국지구당 위원장 및 전국구 의원 연수회의에서 '깨끗한 정치를 위한 6대 요강'을 결의했다.
*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대변인은 정원식 총리가 제의한 이산가족 고향 정착사업을 거부한다고 담화했다.
* 일본 방위청은 '환태평양 합동 군사훈련(RIMPAC 92)'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 [[7월 13일]]: 제주 서귀포 및 남제주군 일대에 최고 475mm짜리 집중호우가 발생했다.
* [[7월 14일]]
* 민주당 조사단은 김종필-오히라 메모 진상조사를 위해 이상옥 외무장관 방문 후 '1965 한일협정 전후 외교문' 공개를 요구했다.
* 자동차 업계 측은 현대차가 업계 최초로 승용차 4천여 대를 프랑스에 수출했다고 밝혔다.
* 경인고속도로 11.7km 및 경부고속도로 서울-수원 구간 18.5km 구간이 왕복 8차선으로 확장됐다.
* 제5차 남북적십자회담 실무대표들은 노부모 방문단 및 예술단 교환 관련 실무대책을 논의했다.
* 닌텐도가 콘솔게임 사상 최초로 마우스 지원 게임 <[[마리오 페인트]]>를 일본에 발매하였다.
* [[7월 15일]]
* 정부는 PKO 활동을 위해 국군 의료지원부대 및 군 옵저버 병력을 파견키로 결정했다.
* 최각규 경제부총리는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발족 및 기술이전수용협의회를 구성키로 한다고 밝혔다.
* 북한측은 제4차 화폐교환을 실시해 새 100~1원짜리 주화를 유통시켰다.
* [[7월 16일]]
* 정부는 김달현 북한 부총리가 19일에 서울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 교육부는 민자당 측의 전교조 관련 해직교사 복직 검토와 관련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 유엔인권위는 국보법 수정이 필요하다고 박수길 주 제네바 대사에게 전달했다.
* [[7월 17일]]: 전북 지방에 평균 150mm 이상 집중호우로 호남 평야 4,600ha가 침수됐다.
* [[7월 18일]]
* 정부는 남북 핵 상호사찰 문제 협의와 관련해 일방이 지정하는 대상에 24시간 전 통고로 사찰케 하는 특별사찰 관철키로 결정했다.
* 국방부는 한-러 간 기본관계조약 체결에 앞서 북-러 간 군사동맹조약 폐기를 러시아에 요구했다.
* 단대부고 김경욱, 조성순 교사가 전교조 해직자로서 처음으로 복직됐다.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 <[[붉은 돼지]]>가 일본 전역에 개봉되었다.
* [[7월 19일]]
* 김달현 북한 부총리 일행이 판문점을 거쳐 서울을 방문하였다.
* 재일한인 전후보상요구회 회원 1백여 명이 오사카 집회 후 도쿄까지 600km 가두시위에 돌입했다.
* 북한측은 <조선국제문제연구소 비망록>에서 일본의 군국화 및 핵무장화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 [[7월 20일]]
* 대법원은 서울 노원을 선거구 14대 총선투표지 재검표 결과 임채정 민주당 후보가 당초 당선자 김용채 의원보다 172표 더 얻은 걸로 확인했다.
* 무협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무역관'을 열었다.
* 현대건설 이라크사무소는 현지 정부가 모든 건설장비 강제 징발을 통보해 왔다고 본사에 타전했다.
* 김달현 북한 부총리는 경제5단체장과의 회담에서 남측 경제5단체장들을 북한에 초청하고 싶다고 밝혔다.
* 보스니아 내전으로 사라예보 국제공항이 폐쇄되었다.
* [[7월 21일]]
* 이동복 남북고위급회담 대변인은 핵문제 미해결 시 경제교류 어렵다는 기본 입장을 강조했다.
* 김영삼-정주영 야당 양측 대표들이 국회공전 타결키 위해 회담을 열었으나, 합의 없이 종결됐다.
* 정대협,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등 8개 단체들이 '일본군국주의 부활 저지와 전후책임을 확실히 하는 연대회의'를 발족했다.
* [[7월 22일]]
* 정부 당국은 남북경협과 관련해 해주/장단 등이 유력한 남북 합작공단 후보지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노태우 대통령은 정보산업 진흥을 위해 정부산업기획단 설치 및 발전계획 보고를 최각규 경제부총리에게 지시했다.
* 임채정 민주당 후보가 서울 노원을구 선거에 비로소 당선됐다.
* '국제음악애호가협회'가 발족되었다.
* [[7월 23일]]
* 노태우 대통령은 30대 재벌총수와 간담회에서 북한 진출과 관련해 과당경쟁 자제를 요청했다.
* 노태우 대통령은 의원직 상실로 물러난 김용채 대신 김종호를 정무1장관에 임명했다.
* 민주당은 대통령 임기 말 강행 중인 경부고속전철 등 6개 사업이 정치자금 조성에 관여된다며 사업 중단을 주장했다.
* 외무부는 가질 주한 이라크 대사에게 이라크 내 건설업체 장비 징발 중단을 요구했다.
* 국보법철폐범투본은 서울, 부산 등 5개 도시에서 단식투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 정부는 평화유지 협력을 위해 캄보디아에 보병을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 제99차 바르셀로나 IOC 총회는 김운용 집행위원을 새 부위원장에 선출하였다.
* 체코-슬로바키아 양국 총리는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분할에 합의하였다.
* [[7월 24일]]
* 노태우 대통령은 김달현 북한 부총리와 요담에서 핵문제 및 정-경-군협력분과위 부속합의서 타결 시 경협이 가능하다고 정부 입장을 재천명했다.
* 정부와 민자당은 남북관계의 실질적 발전을 위해 핵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고 원칙을 재확인했다.
* 대법원은 김기설 유서대필 혐의자 강기훈에 원심대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 김달현 북한 부총리가 청주, 부산, 창원 등지 산업단지를 시찰했다.
* [[7월 25일]]: 남북한 양국이 제7차 적십자회담 실무접촉에서 이산가족 노부모 방문단 칠 예술단 관련 교섭을 벌였다.
* [[7월 26일]]
*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이 스페인 몬주익 주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 사격선수 여갑순이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공기소총 10m 종목에서 대회 첫 금메달을 땄다.
* 학교법인 명지학원 설립자 방목 유상근 박사가 소천하였다.
* [[7월 27일]]
* 동아일보는 1950년 6.25전쟁 발발과 관련해 스탈린과 시티코프 소련대사 간의 전문을 처음 보도하였다.
* 역도선수 전병관이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부 56kg급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7월 28일]]: 역도선수 김미정이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부 72kg급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7월 29일]]: 사격선수 이은철이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소구경소총복사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7월 30일]]
* 레슬링선수 안한봉이 바르셀로나 올림픽 그레코로만형 57kg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경남]] [[남해군]] 남해본섬의 창선대교가 붕괴되어 다리를 건너던 주민 2명이 사망했다.([[남해 창선대교 붕괴사고]])
* [[7월 31일]]
* [[조지아]]가 [[유엔]]에 가입하였다.
* 경기 고양에서 신[[행주대교]] 공사 도중 상판 860m 및 교각 10개 가량이 붕괴되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불과 하루 전에 남해 창선대교 붕괴사고가 일어났던지라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 8월 ====
* [[8월 1일]]
* 제158회 임시국회가 민주-국민 양당 불참 하에 개최되었다.
* '1992년 범민족대회 남측 추진본부'가 결성되었다.
* 북한측은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 피해자보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 국립충주박물관 고분군발굴조사단이 충북 충주시 단월동 고분군에서 고려청자 20여 점 및 청동병 등 유물을 출토해냈다고 밝혔다.
* [[8월 2일]]
* 검찰은 창선대교 및 신행주대교 붕괴사고를 계기로 건축토목공사현장을 단속키로 결정했다.
* 양궁선수 조윤정이 바르셀로나 올림픽 양궁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 [[8월 3일]]
* 노동부는 1991년 기준 산재노동자 수를 128,169명으로 집계했다.
* 남아공 흑인노동자들은 ANC 주도 하에 백인정권의 흑인탄압정책에 항의하며 일제 농성에 돌입하였다.
* 농성 중이던 남아공 흑인노동자 36명이 경찰과의 충돌로 숨을 거두었다.
* [[8월 4일]]
* 양궁선수 김수녕, 조윤정, 이은경이 바르셀로나 올림픽 단체전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배드민턴 선수 황혜영, 정소영, 박주봉, 김문수가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녀 복식에서 각각 금메달을 땄다.
* [[8월 6일]]: 레슬링선수 박장순이 바르셀로나 올림픽 자유형 74kg에서 금메달을 땄다.
* [[8월 8일]]:
*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이 바르셀로나 올림픽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 [[지한별 실종 사건]]이 발생했다.
* [[8월 9일]]
* 육상선수 황영조가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다.
*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폐막식이 몬주익에서 개최되었다.
* 한국 선수단이 동 대회에서 종합 7위를 달성하였다.
* [[8월 10일]]
* 정대협은 제네바 UNHCR 회의에서 '군 위안부' 문제 소개 후 일본 정부의 조치/촉구결의안 채택을 요청하였다.
* 서울경찰청은 3차 범민족대회 개최예정 장소인 중앙대-숭실대 압수수색 과정에서 태재준 전대협 의장 등 71명을 연행했다.
* [[8월 11일]]
* 국산 1호 [[인공위성]] '[[우리별 위성|우리별 1호]]'가 [[프랑스령 기아나]]의 [[기아나 우주센터]]에서 발사에 성공하였다.
* 김수환 추기경 등 천주교 신도 8만여 명은 사형제 폐지 촉구 탄원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였다.
* 한국, 대만,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 여성단체 대표들을 주축으로 한 '강제종군위안부 문제 아시아연대'가 결성되었다.
* 미국-캐나다-멕시코 3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타결을 선언하였다.
* [[8월 12일]]: '조선인 강제연행 조사를 위한 일본측 대표단'이 북한 평양에 도착했다.
* [[8월 13일]]
* 경찰청은 1991년 기준 교통사고 사망자를 13,429명으로 집계했다.
* 최문형 한양대 교수가 을미사변은 일제 수뇌부가 사전계획한 음모였다고 관련 자료를 공개하였다.
* [[8월 14일]]: 종합유선방송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8월 15일]]
* 노태우 대통령은 광복절 기념사에서 남북한은 고향방문사업 정례화 위해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밝혔다.
* 박종원 감독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개봉되었다.
* 제3차 범민족대회 남측행사가 서울대 관악캠에서 개최되었다.
*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이하 범청학련)'이 결성되었다.
* [[8월 16일]]
* MBC-북한예술단 양측이 분단 이래 처음으로 러시아 사할린에서 '통일예술제'를 공동 개최하였다.
* 북한 평양 만경대구역에 '태권도전당'이 준공되었다.
* [[8월 17일]]
* 외무부는 베트남 하노이에 주월 한국대표부를 설치하였다.
* 종합주가지수 470선이 붕괴되었다.
* 건설부는 신행주대교 붕괴사고와 관련해 시공사 벽산건설에 4달간 신규수주를 중지키로 결정했다.
* [[8월 18일]]: 동자부는 '에너지효율 등급 표시제'를 9월부터 단계적으로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 [[8월 19일]]: 남북고위급회담 정치분과위는 화해분야 부속합의서 채택을 위한 절충에서 4개항에 합의하였다.
* [[8월 20일]]
*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은 선경의 제2이동통신 최종사업자 선정에 불복한다고 선언했다.
* 해군 충무공해전 유물발굴단이 이틀 전 경남 통영군에서 '별황자총통'을 발견했다고 발표하였다.
* 주한 미 공군은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한국에 처음으로 배치하였다.
* [[SK그룹|선경그룹]]의 [[SK주식회사#s-5|대한텔레콤]]이 제2이동통신 이동전화부문의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 [[8월 21일]]
* 남북고위급회담 교류협력분과위는 부속합의서 내용 관련 11개항에 합의하였다.
* 내무부는 '1시군 1특화산업' 육성방안에 따라 전국 각지의 고속도로마다 지역특산물 상설매장을 열었다.
* 재향베트남고엽제희생자전우회는 흥사단 강당에서 참전피해자 피해사례 공개 후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 [[8월 22일]]
* 김대중-정주영 2개 야당 대표들은 선경의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 백지화를 위한 공동투쟁에 합의하였다.
* 대만 외교부는 한-중 수교일을 기해 한국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할 것을 발표했다.
* [[8월 23일]]: 쳰지천 중국 외교부장이 이상옥 외무장관과 회담에서 중국이 남북한 합의한 상호사찰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 [[8월 24일]]
* 노태우 대통령이 한중수교 관련 특별담화에서 평화통일의 외적 장애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 '''이상옥 외무장관과 첸지천 중국 외교부장은 양국 정부의 외교관계 수립 등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한-중 수교)
* 한-중 수교와 함께 대만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 [[8월 25일]]
* [[노태우]] 대통령은 민자당 총재직을 사퇴하고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에게 당 전권을 승계하였다.
*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신당 창당설과 관련해 결코 정치 참여는 없다고 밝혔다.
* 당일 사망한 이광호 전 서울대 의대 학장의 시신이 본교에 기증되었다.
* [[8월 26일]]
* 김대중 민주당 대표가 '난국수습을 위한 비상정치회의' 소집을 제의하였다.
* 서울시교육청이 첫 민선 교육감을 선출하였다.
* 대만 정부는 한중수교에 반발하며 무역보복조치를 실시했다.
* 세라노 과테말라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 [[8월 27일]]
* 서울 이태원에 '주한 중화인민공화국 대사관'이 문을 열었다.
* 선경그룹은 제2이동통신사업권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 닌텐도는 SFC 게임팩 <[[슈퍼 마리오 카트]]>를 일본에 출시하였다.
* [[8월 28일]]
* 체신부는 제2이동통신사업 관련 문제를 차기 정부에 맡긴다는 방침을 확정하였다.
* 북한-태국 양국이 정기항공노선을 개설하였다.
* 경찰청은 본청 및 지방경찰청 외사과에 '경찰통역센터'를 실시키로 결정하였다.
* [[8월 29일]]
* 정부는 남북교류 활성키 위해 한국기업의 북한주민 접촉신청 39건 중 34건을 일괄 승인하였다.
* 종전의 대학노협과 대학노동조합연합이 '전국대학노동조합연맹(이하 대학노련)'으로 통합되었다.
* 북한측은 일본에 약탈문화재 반환을 요구했다.
* [[8월 31일]]
* 한준수 전 연기군수가 3.24 총선 관련 조직적 관권부정선거를 폭로하고 증거물로 공문서 15종 등을 공개하였다.
* 안기부는 전 민중당 대표 김낙중을 간첩 혐의로 구속했다.
* 정부는 대만에 실무협상 및 민간사절단을 파견해 단교 중인 양국관계 재정립문제를 협의키로 결정하였다.
* IAEA 사찰단이 북한 평양에 도착하였다.
==== 9월 ====
* [[9월 1일]]: 롯데리아가 '불고기버거'를 출시하였다.
* [[9월 2일]]
* MBC노조는 보도관련 인사 3인 추천제 존폐 문제와 관련해 공정방송 쟁취 파업투쟁에 돌입하였다.
* 대처 전 영국 총리가 한국을 방문하였다.
* [[9월 3일]]: 이종찬 의원을 중심으로 한 '새정치국민연합'이 결성되었다.
* [[9월 4일]]
* 지방 MBC 노조들이 파업을 결의하였다.
* 전국 6개 지역 70여개대생 4백여 명은 고려대에서 '민중대통령 추대를 위한 전국학생추진위원회 발기인 대회'를 열었다.
* 훗날 모조품으로 밝혀져 등록취소된 [[귀함별황자총통]]이 국보 제274호로 지정되었다.
* [[9월 7일]]: 김정렬 전 국무총리가 사망했다.
* [[9월 14일]]
* 유엔 안보리는 내전 중인 보스니아에 유엔평화유지군 추가 파병 계획안을 승인하였다.
* 닌텐도는 북미판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2를 <[[슈퍼 마리오 USA]]>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출시하였다.
* [[9월 15일]]
* 11개 지방 MBC 노조들이 부분 파업에 돌입하였다.
* 한국조세연구원이 설립되었다.
* [[9월 16일]]: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이 북한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 [[9월 17일]]: 남북 양국은 평양 고위급회담 폐막과 동시에 화해-불가침-교류협력 등 3개분야 부속합의서를 발효시켰다.
* [[9월 18일]]: 노태우 대통령은 중립선거관리 내각 구성 및 민자당 당적이탈을 발표하였다.
* [[9월 20일]]
* 노태우 대통령이 제47회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하였다.
* [[프랑스]]에서 [[마스트리히트 조약]] 비준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투표 결과 51.05%의 찬성으로 비준안이 통과되었다.
* [[9월 23일]]
* 한국-대만 양국은 각자의 대사관을 철수시켰다.
* 중국 지린성 용정중학교에 윤동주 시비가 제막되었다.
* [[9월 24일]]
* 서울지검은 '시한부 종말론'을 내세워 신도들로부터 34억원을 뜯어낸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를 구속하였다.
* SNK는 격투게임 [[용호의 권]]을 일본에서 가동시켰다.
* [[9월 25일]]: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가 사단법인으로 출범되었다.
* [[9월 27일]]: 노태우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였다.
* [[9월 28일]]: 안기부는 장기표 전 민중당 정책위원장 부부 등 6명을 국보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 [[9월 30일]]
* 한-중 양국 정상은 베이징에서 정상회담 관련 8개항의 공동언론발표문을 발표하였다.
* '한국청년지도자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미국 정부는 수빅만 미 해군기지를 필리핀에 공식 반환하였다.
==== 10월 ====
* [[10월 1일]]: [[미국]] 타임워너가 애니메이션 채널 '[[카툰네트워크]]'를 개국하였다.
* [[10월 3일]]
* 인공위성 '우리별 1호'가 개천절을 맞이해 낮 12시 49분에 음성방송을 성공적으로 실시하였다.
* MBC에서 드라마 <아들과 딸>이 첫 전파를 탔다.
* [[10월 4일]]
*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에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여 15명이 사망하였다([[원주 왕국회관 화재 사고]]).
* [[10월 5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는 외국인투자법과 합작법, 외국인기업법을 결정하였다.
* [[10월 6일]]: 안기부는 지하당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을 적발해 황인오 등 관련자 95명을 검거하고 이중 62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 [[10월 8일]]
* 한국 정부가 유엔총회 산하 제1위원회(군축/안보담당) 부의장국에 피선되었다.
* '전국 구속/수배 해고노동자 원상회복 투쟁위원회(이하 전해투)'가 결성되었다.
* [[10월 9일]]: [[노태우]] 대통령은 [[현승종]]을 총리직에 앉히는 등 중립내각 개편을 단행하였다.
* [[10월 10일]]
* 교통부는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가 5백만 2,387대라고 발표하였다.
* <[[유유백서]]> 애니판이 일본 후지TV에서 첫 전파를 탔다.
* [[10월 12일]]
* [[미국]], [[캐나다]]를 연결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 잠수함 [[장보고급 잠수함]]의 2번함인 SS062 이천(1200t급) 진수.
* [[벨기에]]의 보두앵 1세 국왕이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다.
* [[10월 14일]]: '''[[롯데 자이언츠]]가 한국시리즈에서 [[빙그레 이글스|빙그레]]를 꺾고 [[1992년 한국시리즈|통산 두 번째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이후 롯데는 우승은 고사하고 한국시리즈도 20년이 넘게 가지 못하고 있다. --롯데 해체전에 오기나 할까--
* [[10월 15일]]
* '공정방송 쟁취를 위한 전국 방송인 결의대회'가 개최되었다.
* <[[바람 속의 소녀 금발의 제니]]>가 일본 TV도쿄에서 첫 전파를 탔다.
* [[10월 16일]]: EC 12개국 정상들은 영국 버밍엄 긴급회담에서 '버밍엄 선언'을 채택하였다.
* [[10월 18일]]: 민중대통령후보대책위는 민중진영 독자후보로 백기완을 선출하였다.
* [[10월 20일]]: 박세길 저작 <다시쓰는 한국현대사>가 총 3권으로 완간되었다.
* [[10월 24일]]: (사)의성허준기념사업회가 설립되었다.
* [[10월 28일]]
* 경찰청은 10.28 휴거일을 맞아 관련 교회에 경찰력을 배치하였다.
* [[다미선교회]] 등 전국 166개 종말론 신봉교회 신도 8천여 명이 자정에 [[휴거]]집회를 열었으나, 결국 '''불발에 그쳤다.'''
* 경기도 동두천에서 윤금이 씨가 주한미군 병사 케네스 마클 이병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다([[윤금이씨 살해사건]]).
* [[10월 29일]]: 서울지검은 외설시비를 빚은 소설 <즐거운 사라> 저자 마광수 교수와 출판사 대표 장석주를 구속하였다.
* [[10월 30일]]: 국회 정치관계특위는 군 부재자 투표부정 방지를 위해 영외투표에 합의하였다.
* [[10월 31일]]
* [[노태우]] 대통령은 팀 스피릿 훈련과 관련해 북한이 핵 위협을 해소하지 않는 한 지속한다고 발표하였다.
* 북한측은 팀 스피릿 훈련 시 남한과 체결한 협정을 중단시킨다고 발표했다.
* [[SBS]]에서 [[드라마]] <[[모래 위의 욕망]]>이 첫 전파를 탔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갈릴레이에 대한 재판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함에 따라, 갈릴레이 사후 350년 만에 그의 명예가 회복되었다.
==== 11월 ====
* [[11월 2일]]
* IAEA 제4차 핵사찰단이 북한 평양에 도착하였다.
* 영국 [[찰스 왕세자]] 내외가 3박 4일 일정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 [[11월 3일]]: 제42대 미국 대통령 선거가 50개 주 전역에서 실시되었다.
* [[11월 4일]]: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빌 클린턴]]이 대선에서 부시 공화당 후보의 재선임 시도를 봉쇄해 승리를 거머쥐었다.
* [[11월 5일]]: 전국 50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축이 된 '주한미군의 윤금이씨 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윤금이공대위)'가 발족되었다.
* [[11월 6일]]: 제8차 북-일 수교회담이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
* [[11월 7일]]: 경기 동두천 주한미군 2사단 포병연대 정문 앞에서 '주한미군 케네스 리 마클 이병의 윤금이 살인만행 시민 규탄대회'가 개최되었다.
* [[11월 8일]]: 노태우 대통령은 일본 교토에서 미야자와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열어 한반도 정세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 [[11월 9일]]: SBS에서 [[드라마]] <관촌수필>이 첫 전파를 탔다.
* [[11월 12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은 '쌀 전량수매/학교급식 완전실현 1992 전국여성농민대회'를 개최하였다.
* [[11월 14일]]: 전국 15개 대도시에서 '공정선거 실현과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대회'가 개최되었다.
* [[11월 17일]]
* 이종찬 의원을 중심으로 한 '새한국당'이 창당되었다.
* 윤금이공대위는 서울 기독교회관 2층에서 윤금이 씨의 추모식과 시민 규탄대회를 개최하였다.
* [[11월 19일]]: MBC에서 <오늘은 좋은날>이 첫 전파를 탔다.
* [[11월 20일]]: 나토 및 서유럽동맹은 신유고연방에 대한 유엔의 금수조치를 강화키 위해 아드리아해 해상봉쇄를 명령하였다.
* [[11월 26일]]: <강원도민일보>가 창간되었다.
* [[11월 27일]]: 대전 대덕연구단지가 20년 만에 준공되었다.
==== 12월 ====
* [[12월 1일]]: 한국-남아공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12월 3일]]: 유엔 안보리는 소말리아 군사개입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 [[12월 8일]]: 한-미-러-일-ICAO 등 5자를 주축으로 한 'KAL기 진상규명 국제회의'가 개최되었다.
* [[12월 9일]]
* <피구왕 통키> 애니판이 SBS에서 더빙 방영되었다.
*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나눔운동'이 결성되었다.
* [[12월 12일]]: SNK는 [[대전 액션 게임]] <[[아랑전설 2]]>를 일본에 발매하였다.
* [[12월 13일]]
* 대한변협은 "1991년도에 인권침해가 심해졌다"고 발표하였다.
* IAEA는 북한에 대해 제5차 비정기사찰을 진행하였다.
* [[12월 14일]]: 정주영 국민당 대표와 이종찬 새한국당 대표가 양당 합당을 선언하였다.
* [[12월 18일]]: [[제14대 대통령 선거]]가 전국 각지에서 일제히 치뤄졌다.
* [[12월 19일]]
* 민자당 대선후보 [[김영삼]]이 14대 대선에서 당선되었다. 이것은 32년만의 민간출신 후보 당선이었다.
* 김대중 민주당 대선후보는 대선 패배와 관련해 의원직을 사임하고 정계 일선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하였다.
* 제1회 한국어문회 주관 [[한자능력검정시험]]이 시행되었다.
* [[12월 22일]]
* 마지막 [[대학입학 학력고사|학력고사]] 전기 대학 입시가 치러졌다. 대통령 선거로 인해 이전 학력 고사 때보다 일자가 며칠 밀렸다.
* [[한국]]-[[베트남]]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바른만화연구회의 후신으로 '우리만화협의회(약칭 우만협)'이 발족되었다.
* [[12월 28일]]
* 민중대통령후보선거대책본부가 해체되고 '진보적 정당 창당추진위원회 구성을 위한 수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브라질]]의 여배우 [[다니엘라 페레즈 살인사건|다니엘라 페레즈]]가 살인되는 사건이 있었다.
* [[12월 29일]]
* 미-러 양국은 제2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II)을 타결하였다.
* 부정축재 혐의로 [[탄핵]] 위기에 몰린 페르낭두 콜로르 지 멜루 [[브라질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 [[12월 3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일자 불명 ====
* '미국프로농구전직선수협회(NBRPA)'가 창설되었다.
=== 가상 ===
* 멀린-1의 [[미국]]에서 [[마법사]]들이 [[천사]] 소환의식 도중 [[홈라인]]의 셔틀을 소환하게 되고, [[무한경비대]]가 셔틀을 찾기 위해 멀린-1에 가게 되면서 양측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홈라인 [[2015년]]) - [[겁스 무한세계]]
* [[일본 제국]]의 [[식민지]]인 [[일제강점기|조선]]에서 [[경성부|게이조우(京城)]] [[올림픽]]이 열릴 예정이다. - [[비명을 찾아서]]
* 1991년 소련 공산당 보수파들이 [[8월 쿠데타]]를 성공시킨 뒤 이미 해체된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대체하기 위해 남은 동맹국인 [[중국]], [[북한]]에 군사적인 지원을 하게 되고, 이를 예의주시하던 미국은 초계임무를 띤 [[엔터프라이즈급 항공모함|USS 엔터프라이즈 호]]를 [[동해]]에 파견하지만, 엔터프라이즈가 [[소련 해군]]의 [[알파급]] [[잠수함]]이 쏜 [[어뢰]]에 피격되어 기동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고 2차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 [[워게임: 레드 드래곤]]
*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의 한 아파트에서 은조부가 [[트차카]] 왕에게 살해당하다 - [[블랙팬서(영화)|블랙팬서]]
* [[아즈키쨩]]의 5학년 배경연도(원작 기준)
*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원작소설의 배경 연도.
* [[엑스맨: 다크 피닉스]]의 배경 연도.
* [[허리케인 하이스트]]의 배경 연도.
* [[허스토리]]의 배경 연도.
* [[GTA 산 안드레아스]]의 배경 연도.
== 탄생 ==
=== 실존 인물 ===
==== 1월 ====
* [[1월 1일]]
* [[잭 윌셔]]: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이중권]]: [[한국]]의 축구선수
* [[1월 2일]]
* [[강병의]]: [[한국]]의 야구선수
* [[조재걸]]: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Watch'
* [[파울로 가사니가]]: [[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
* [[1월 3일]]
* [[금교진]]: [[한국]]의 축구선수
* [[박소현(아나운서)|박소현]]: [[한국]]의 아나운서
* [[이초홍]]: 트위치 스트리머 겸 유튜버
* [[김호은]]
* [[1월 4일]]
* [[이호진(e스포츠)|이호진]](Hojin): [[대한민국]]의 前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 [[크리스 브라이언트]]: [[미국]]의 [[야구 관련 인물(MLB)|야구 선수]]
* [[1월 7일]] - [[모한]]: [[중국]]의 가수. 걸그룹 [[SNH48]]의 멤버
* [[1월 8일]]
* [[아이언(가수)|아이언]](~[[2021년]]): [[한국]]의 힙합가수
* [[코케]]: [[스페인]]의 축구선수
* [[1월 9일]]
* [[힘쎈너구리]]: 배틀그라운드 유튜버
* [[1월 10일]]
* [[강민국]]: [[한국]]의 [[야구 관련 인물(KBO)|야구 선수]]
* [[블레어 윌리엄스]]: [[비정상회담]] 출연자, 방송인
* [[시메 브르살리코]]: [[크로아티아]]의 축구선수
* [[크리스찬 아추]]: [[가나]]의 축구선수
* [[홍현호]]: [[한국]]의 개그맨
* [[코코(인터넷 방송인)|김아영]]: [[한국]]의 라디오 BJ
* [[1월 11일]]
* [[다니엘 카르바할]]: [[스페인]]의 축구선수
* [[이승훈(WINNER)|이승훈]]: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위너]]의 멤버
* [[1월 13일]] - [[산티아고 아리아스]]: [[콜롬비아]]의 축구 선수
* [[1월 14일]]
* [[동하(배우)|동하]]: [[한국]]의 배우
* [[이시야 하루키]]: [[일본]]의 남성 성우
* [[서유림]]: [[한국]]의 치어리더
* [[1월 15일]]
* [[이경민(프로게이머)|이경민]]: [[한국]]의 [[프로게이머]]
* [[조슈아 킹]]: [[노르웨이]]의 축구선수
* [[요엘 펠트만]]: [[네덜란드]]의 축구선수
* [[1월 16일]]
* [[김장우]]: [[한국]]의 야구선수
* [[이은지(코미디언)|이은지]]: [[한국]]의 개그맨
* [[1월 17일]] - [[페드루 엔리케 올리베이라]]: [[브라질]]의 축구선수
* [[1월 18일]] - [[허송연]]: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1월 19일]]
* [[김태훈(축구선수)|김태훈]]: [[한국]]의 축구선수
* [[로건 러먼]]: [[미국]]의 [[배우]]
* [[1월 20일]] - [[괴칸 퇴레]]: [[터키]]의 축구선수
* [[1월 22일]]
* [[사노 유리코]]: [[일본]]의 아이돌
* [[신우치 마이]]: [[일본]]의 아이돌
* [[뱅상 아부바카]]: [[카메룬]]의 축구선수
* [[1월 23일]]
* [[도까]]: [[한국]]의 가수
* [[크라이그 섹스톤]]: [[아일랜드]]의 축구선수
* [[치스가 하루카]]: [[일본]]의 성우, 가수
* [[1월 24일]]
* [[위종비]]: [[중국]]의 게임개발자
* [[펑신둬]]: [[중국]]의 아이돌
* [[1월 25일]] - [[오효주]]: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1월 26일]]
* [[사샤 뱅크스]]: 미국의 [[프로레슬러]]
* [[조섭]]: [[유튜버]]
* [[마빈 플라텐하르트]]: [[독일]]의 축구선수
* [[1월 29일]]
* [[펠리피 바헤투 다 시우바]]: [[브라질]]의 축구선수
* [[황희두]]: [[한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現 사회운동가
* [[1월 30일]] - [[유예빈]]: 2013 미스코리아 진
* [[1월 31일]]
* [[MARiA]]: [[일본]]의 가수
* [[권경원]]: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 [[부나 사르]]: [[프랑스]]의 축구 선수
* [[크리스토퍼(가수)|크리스토퍼 니센]]: [[덴마크]]의 가수
==== 2월 ====
* [[2월 1일]] - [[이치미치 마오]]: [[일본]]의 [[배우]] 겸 [[성우]]
* [[2월 3일]] - [[표예진]] : [[대한민국]]의 배우
* [[2월 5일]]
* [[네이마르 주니오르]] : [[브라질]]의 축구선수
* [[덩썬웨]] : [[중국]]의 리듬체조 선수
* [[스테판 더 프레이]] : [[네덜란드]]의 축구선수
* [[이대훈]]: 한국의 [[태권도]] 국가대표
* [[2월 6일]]
* [[도도(축구선수)|도도]] : [[브라질]]의 축구선수
* [[정유라(핸드볼 선수)|정유라]] : [[대한민국]]의 핸드볼선수
* [[2월 7일]]
* [[야지마 마이미]]: [[일본]]의 가수, [[걸그룹]] [[큐트]]의 멤버
* [[세르지 로베르토]] : [[스페인]]의 축구선수
* [[최윤섭]]: [[대한민국]]의 前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Locodoco', 現 [[리그 오브 레전드]] [[코치(스포츠)|코치]]
* [[하마 켄토]] : [[일본]]의 성우
* [[2월 8일]]
* [[김도혁]] : [[한국]]의 축구선수
* [[윤평국]] : [[한국]]의 축구선수
* [[브루노 마르틴스 인디]] : [[네덜란드]]의 축구선수
* [[칼 젠킨슨]] :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 [[2월 10일]] - [[나카가와 하루카]] : [[일본]]의 아이돌
* [[2월 11일]]
* [[김동준(제국의아이들)|김동준]]: 한국의 가수, 그룹 [[제국의아이들]]의 멤버
* [[테일러 로트너]]: 미국의 배우
* [[2월 12일]] - [[소유(가수)|소유]]: 한국의 가수, 걸그룹 [[씨스타]]의 멤버
* [[2월 13일]]
* [[이케빈]] : [[한국]]의 야구선수
* [[임창우]] : [[한국]]의 축구선수
* [[진용진]] : [[한국]]의 유튜버
* [[2월 14일]]
* [[유정(라붐)|유정]]: 한국의 가수, 걸그룹 [[라붐(아이돌)|라붐]]의 멤버
* [[이주영(배우)|이주영]] : [[한국]]의 배우
* [[크리스티안 에릭센]] : [[덴마크]]의 축구선수
* [[프레디 하이모어]] : [[영국]]의 배우
* [[2월 15일]]
* [[래환]] : [[빅스타(아이돌)|빅스타]] 소속 아이돌
* [[보라 킴]]: [[프랑스]]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YellOwStaR'
* [[2월 16일]] - [[이규성(배우)|이규성]]: 대한민국의 배우
* [[2월 17일]] - [[전호진]]: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Lilac'
* [[2월 18일]]
* [[럭키루시]]: [[유튜버]]
* [[이예훈]]: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 [[2월 19일]] - [[쿠와바라 미즈키]] : [[일본]]의 아이돌
* [[2월 20일]]
* [[김상원]] : [[한국]]의 축구선수
* [[동네겜방누나]] - [[한국]]의 인터넷방송인 BJ
* [[오태선]] : [[한국]]의 야구선수
* [[최영환]] : [[한국]]의 야구선수
* [[2월 21일]]
* [[양다일]] : [[한국]]의 가수
* [[필 존스]] :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 [[2월 23일]]
* [[사마라 위빙]] : [[호주]]의 배우
* [[카세미루|카를루스 헨리케 카세미루]]: 브라질의 [[축구 선수]]
* [[키리아코스 파파도풀로스]] : [[그리스]]의 축구선수
* [[2월 24일]]
* [[오윤석]] : [[한국]]의 야구선수
* [[이종호(축구선수)|이종호]] : [[한국]]의 축구선수
* [[2월 25일]]
* [[박민호]] : [[한국]]의 야구선수
* [[이정현(야구선수)|이정현]] : [[한국]]의 야구선수
* [[2월 26일]]
* [[필독]] : [[빅스타(아이돌)|빅스타]], [[UNB]] 소속 아이돌
* [[시노자키 아이]]: 일본의 가수이자 [[그라비아]] 배우
* [[2월 27일]]
* [[김민혁(1992년 2월)|김민혁]] : [[한국]]의 축구선수
* [[율(JJCC)|율]] : [[한국]]의 가수
* [[존조 셸비]] :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 [[칼럼 윌슨]] :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 [[짱재영]] : [[대한민국]]의 유튜버
* [[2월 28일]]
* [[나플라]] : [[미국]]의 래퍼
* [[세바스티안 비드룬드]] : [[스웨덴]]의 [[오버워치]] [[프로게이머]] 'Chipshajen'
* [[2월 29일]]
* [[사피르 타이데르]] : [[프랑스]]의 축구선수
* [[홍정오]] : [[대한민국]]의 [[유튜버]]이자 [[사기꾼]]
==== 3월 ====
* [[3월 1일]] - [[김소혜(1992)|김소혜]] : [[한국]]의 배우
* [[3월 2일]]
* [[김태훈(1992)|김태훈]] : [[한국]]의 야구선수
* [[김진영(야구선수)|김진영]] : [[한국]]의 야구선수
* [[3월 3일]]
* [[우사 미하루]] : [[일본]]의 성인배우
* [[페르난두 루카스]] : [[브라질]]의 축구선수
* [[하라구치 후미히토]] : [[일본]]의 야구선수
* [[3월 4일]]
* [[곽민선]] : 한국의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 [[베른트 레노]] : [[독일]]의 축구선수
* [[에릭 라멜라]]: [[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
* [[한유리]] : [[한국]]의 레이싱모델
* [[3월 5일]] - [[시미즈 미사토]] : [[일본]]의 모델
* [[3월 6일]]
* [[오아연]] : [[한국]]의 배우
* [[곽규미]] : [[한국]]의 성우
* [[츠구나가 모모코]]: 일본의 [[가수]], [[컨트리걸즈]]의 플레잉매니저
* [[3월 7일]]
* [[윤일록]] : [[한국]]의 축구선수
* [[임현식(BTOB)|임현식]] : 한국의 가수, 그룹 [[BTOB]]의 멤버
* [[최민구]] : [[한국]]의 야구선수
* [[3월 8일]]
* [[문우람]] : [[한국]]의 범죄자
* [[박계현]] : [[한국]]의 야구선수
* [[3월 9일]]
* [[김종필(1992)|김종필]] : [[한국]]의 축구선수
* [[인준]] : [[한국]]의 아이돌
* [[3월 10일]]
* [[안진범]] : [[한국]]의 축구선수
* [[최오백]] : [[한국]]의 축구선수
* [[최호주]] : [[한국]]의 축구선수
* [[최정훈]] : 밴드 [[잔나비]]의 보컬
* [[3월 11일]]
* [[오준혁]] : [[한국]]의 야구선수
* [[토야마 나오]]: [[일본]]의 성우
* [[한석종]] : [[한국]]의 축구선수
* [[3월 12일]]
* [[사쿠라이 하루나]]: 일본의 성우
* [[소년공화국]]멤버 선우
* [[3월 13일]]
* [[엘(인피니트)|엘]]: 한국의 배우 겸 가수, 그룹 [[인피니트]]의 멤버
* [[채보미]] : [[한국]]의 인터넷 방송인
* [[카야 스코델라리오]] : [[영국]]의 배우
* [[3월 17일]] - [[대원(1992)|대원]] : [[매드타운]]소속 아이돌
* [[3월 18일]] - [[테라다 타쿠야]]: [[아이돌]] 그룹 [[크로스진]]의 멤버
* [[3월 20일]]
* [[산들]]: 한국의 가수, 그룹 [[B1A4]]의 멤버
* [[이원재(1992)|이원재]] : [[한국]]의 야구선수
* [[3월 21일]]
* [[미즈사와 에레나]]: [[일본]]의 배우
* [[조르디 아마트]] : [[스페인]]의 축구선수
* [[허영주]]
* [[3월 22일]] - [[박정준(1992)|박정준]] : [[한국]]의 야구선수
* [[3월 23일]] - [[카이리 어빙]] : [[미국]]의 농구선수
* [[3월 25일]]
* [[Machico]] - [[일본]]의 가수
* [[이성곤]] : [[한국]]의 야구선수
* [[3월 26일]]
* [[박선주(축구선수)|박선주]] : [[한국]]의 축구선수
* [[최용주]] : 한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3월 27일]]
* [[마르크 무니에사]] : [[스페인]]의 축구선수
* [[유우키 아오이]]: 일본의 성우
* [[3월 28일]] - [[박승희]]: 한국의 [[쇼트트랙]] 선수
* [[3월 29일]]
* [[유재혁]] : [[한국]]의 야구선수
* [[조우리]] : [[한국]]의 배우
* [[3월 30일]] - [[전혜성]] - 탈북자
* [[3월 31일]] - [[크리스티안 마테니아]] : [[독일]]의 축구선수
==== 4월 ====
* [[4월 1일]] - [[지안(IN2IT)|지안]] - [[한국]]의 가수, 그룹 [[IN2IT]]의 멤버
* [[4월 2일]]
* [[김태호(1992)|김태호]] : [[한국]]의 축구선수
* [[홍아란]] : [[청주 KB 스타즈]]의 [[농구]] 선수
* [[4월 3일]]
* [[사노 가쿠]]: 일본의 [[배우]]
* [[야마다 나나]]: 前 [[일본 아이돌]] 그룹 [[NMB48]]의 멤버
* [[오오바 미나]]: [[일본 아이돌]] 그룹 [[SKE48]]의 멤버
* [[4월 5일]] - [[김현수(1992)|김현수]] - [[한국]]의 축구선수
* [[4월 6일]]
* [[켄(빅스)|켄]]: [[한국]]의 가수, 그룹 [[빅스]]의 멤버
* [[구자룡]] : [[한국]]의 축구선수
* [[오오기 히토시]] - [[비정상회담]] 출연자
* [[이유진(1992)|이유진]] : [[한국]]의 배우
* [[허찬미]] : [[한국]]의 가수
* [[4월 7일]]
* [[윌리엄 카르발류]] : [[포르투갈]]의 축구선수
* [[헬가 러브케이티]] : [[러시아]]의 모델
* [[4월 8일]]
* [[매튜 라이언]] : [[오스트레일리아]]의 축구선수
* [[손현종]] : [[대한민국]]의 배구선수
* [[4월 9일]]
* [[양기훈]] :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유권]]: 한국의 [[가수]], 그룹 [[블락비]]의 멤버
* [[4월 10일]]
* [[데이지 리들리]]: 영국의 배우
* [[사디오 마네]]: [[세네갈]]의 축구선수
* [[4월 11일]]
* [[김민지(배우)|김민지]] : [[한국]]의 배우
* [[손별이]] : [[한국]]의 개그맨
* [[이정호(1992)|이정호]] : [[한국]]의 야구선수
* [[콩샤오인]] : [[중국]]의 아이돌
* [[4월 13일]]
* [[김완철]] : [[한국]]의 아이돌
* [[염강륜]] : [[한국]]의 축구선수
* [[4월 15일]]
* [[방태수]]: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 [[YunB]]: [[한국]]의 래퍼
* [[4월 15일]] - [[이철우(모델)|이철우]] : 대한민국의 모델 겸 배우
* [[4월 16일]]
* [[김지훈(1992)|김지훈]] : [[한국]]의 야구선수
* [[김진영(야구선수)|김진영]] : [[한국]]의 야구선수
* [[김희정(1992)|김희정]] : 한국의 [[배우]]
* [[4월 17일]]
* [[슈코드란 무스타피]] : [[독일]]의 축구 선수
* [[진호(펜타곤)|진호]] : 한국의 가수, 그룹 [[펜타곤(아이돌)|펜타곤]]의 멤버
* 윤아라 : 대한민국의 방송연예인 겸 쇼핑몰대표
* [[4월 18일]]
* [[백승원]]
* [[원창연]]
* [[코우다 유메하]]
* [[클로이 베넷]]
* [[4월 19일]] - [[김혜림(1992)|김혜림]]: [[한국]]의 [[프로]] [[바둑기사]]
* [[4월 21일]]
* [[이스코|이스코 (프란시스코 로만 알라르콘 수아레스)]]: [[스페인]]의 [[축구 선수]]
* [[작 피더슨]]: [[미국]]의 [[야구 관련 인물(MLB)|야구 선수]]
* [[웨슬리 스미스 아우베스 페이토사]]
* [[4월 23일]]
* [[김성대]]: 대한민국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규빈(OnlyOneOf)|규빈]]: 한국의 보이그룹 [[OnlyOneOf]]의 멤버
* [[4월 24일]]
* [[엔리케 세데뇨 마르티네스]]: [[스페인]]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xPeke'
* [[이민규(축구선수)|이민규]]
* [[쥬시(래퍼)|쥬시]]
* [[4월 26일]] - [[야마모토 켄]]: 일본의 [[애니메이터]]
* [[4월 28일]]
* [[타나카 아이미]]
* [[4월 29일]]
* [[DAGames|윌리엄 알렉스 라이언]]: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이자 게임 유튜버.
* [[사나고]]: 대한민국의 유튜버
* [[송희채]] : [[한국]]의 배구선수
* [[4월 30일]]
* [[김호령]]: 한국의 [[야구 관련 인물(KBO)|야구 선수]]
* [[마르크안드레 테어슈테겐]]: [[독일]]의 축구 선수
* [[사토 세이라]]
==== 5월 ====
* [[5월 1일]]
* [[하니(EXID)|하니]]: 한국의 가수, [[EXID]]의 멤버
* [[G2(래퍼)|G2]]: 한국의 가수
* [[김원균]]: 축구 선수
* [[새미 아메오비]]
* [[아임(가수)|아임]]
* [[윤병준]]
* [[5월 2일]]
* [[선미]]: 한국의 [[가수]], [[원더걸스]]의 멤버
* [[김선재(아나운서)|김선재]] - [[한국]]의 [[아나운서]]
* [[5월 3일]] - [[크러쉬]]: 한국의 [[가수]]
* [[5월 4일]] - [[이우(가수)|이우]]: 한국의 가수.
* [[5월 6일]]
* [[김지선(배우)|김지선]]
* [[백현]]: 한국의 [[가수]], 그룹 [[EXO]], [[EXO-K]] [[EXO-CBX]] [[SuperM]]멤버
* [[요시자와 유키]]
* [[우사미 타카시]]
* [[쁘띠허브]]: 한국의 트위치 스트리머이자 유튜브 크리에이터
* [[5월 7일]] - [[야마다 유키]]: 일본의 성우
* [[5월 8일]]
* [[올리비아 컬포]]: [[미스 USA]]
* [[이원영(1992)|이원영]]: [[한국]]의 [[프로]] [[바둑기사]]
* [[5월 9일]]
* [[구대영(축구선수)|구대영]]
* [[야리슈나 아얄라]]: [[푸에르토리코]]의 보디빌더
* [[5월 10일]] - [[윤주열]]
* [[5월 11일]]
* [[아사이 아야카]]: 일본의 성우
* [[티보 쿠르투아]]: [[벨기에]]의 축구 선수
* [[파블로 사라비아]]: [[스페인]]의 축구 선수
* [[5월 12일]]
* [[손준호(축구선수)|손준호]]
* [[에리크 두름]]
* [[5월 13일]]
* [[강로한]] : 한국의 야구 선수
* [[이창윤]]
* [[조민우(축구선수)|조민우]]
* [[5월 14일]]
* [[조수애]]
* [[5월 15일]]
* [[김대엽]]: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 [[유창식]]: 한국의 [[야구 관련 인물(KBO)|야구 선수]]
* [[5월 16일]]
* [[이민준]]
* [[5월 17일]]
* [[윤찬희(1992)|윤찬희]] -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BJ
* [[홍나실]] - 한국의 기상캐스터
* [[5월 19일]]
* [[김서연]]: 2014 미스코리아 진
* [[샘 스미스]]: 영국의 [[가수]]
* [[5월 20일]]
* [[바츨라프 카들레치]]
* [[헤로니모 루이]]
* [[5월 21일]]
* [[안예은]]
* [[야마시타 세이이치로]]
* [[5월 22일]]
* [[강석#s-2|강석]]
* [[엘리아스 페르난지스 지 올리베이라]]
* [[5월 23일]]
* [[박철호(농구)|박철호]]
* [[오약희]]
* [[5월 25일]] - [[안소진|소진]]: 한국의 가수 연습생이자 [[DSP미디어]]의 [[카라 프로젝트]] 참가자
* [[5월 27일]]
* [[GRACE]]: 한국의 [[가수]]
* [[제이손 무리조]]
* [[5월 28일]]
* [[시바사키 가쿠]]: [[일본]]의 [[축구 선수]]
* [[톰 캐롤]]
* [[히라지마 나츠미]]
* [[5월 29일]]
* [[에리카 린드벡]]
* [[한그루]]: 한국의 배우
==== 6월 ====
* [[6월 1일]]
* [[Lynn]]: [[일본]]의 성우
* [[미사키 로라]]
* [[6월 3일]]
* [[마리오 괴체]]: [[독일]]의 [[축구 선수]]
* [[제이드 카길]]: [[미국]]의 피트니스 모델
* [[6월 4일]] - [[윤상호(축구선수)|윤상호]]
* [[6월 6일]]
* [[사샤 루스]]: [[러시아]]의 [[모델]]
* [[현아]]: 걸그룹 前 [[원더걸스]], [[포미닛]] 출신 솔로가수
* [[6월 7일]]
* [[이현석(야구선수)|이현석]]
* [[최은지(배구선수)|최은지]]
* [[6월 10일]] - [[케이트 업튼]]
* [[6월 11일]]
* [[강현우(프로게이머)|강현우]] - 프로게이머
* [[다비데 차파코스타]]: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6월 12일]]
* [[김현욱(성우)|김현욱]]: 한국의 성우
* [[필리피 코치뉴]]: [[브라질]]의 축구 선수
* [[6월 13일]]
* [[김진수(축구선수)|김진수]]: 한국의 축구선수
* [[파비안 셰어]]
* [[6월 14일]] - [[박신아]]: 한국의 배우
* [[6월 15일]]
* [[모하메드 살라]]: [[이집트]]의 [[축구 선수]]
* [[박용우(프로게이머)|박용우]]
* [[6월 16일]]
* [[이태희(1992)|이태희]]
* [[투탁]]
* [[6월 18일]] - [[셔누]]: 한국의 가수, 보이그룹 [[몬스타엑스]]의 멤버
* [[6월 19일]] - 정성철 - [[오늘]]소속 아이돌
* [[6월 21일]] - [[J.Seph]] 한국의 혼성그룹 [[KARD|카드]] 멤버
* [[6월 22일]] - [[스즈키 에리]]: 일본의 성우
* [[6월 23일]]
* [[낭팔리 망디]]
* [[신민기(야구선수)|신민기]]
* [[조래훈]]
* [[6월 24일]]
* [[데이비드 알라바]]: [[오스트리아]]의 축구 선수
* [[박준오]]
* [[신세진]]
* [[6월 26일]]
* [[박준표]]: 한국의 [[야구 관련 인물(KBO)|야구 선수]]
* [[요엘 캄벨]]
* [[제넷 맥커디]]
* [[6월 27일]]
* [[안소희]]: 한국의 배우, 걸그룹 前 [[원더걸스]]의 멤버
* [[이동훈(1992)|이동훈]]
* [[6월 28일]] - [[코하라 코노미]]: 일본의 [[성우]]
* [[6월 29일]] - [[야카타 미키]]
* [[6월 30일]]
* [[나하나]]: 한국의 뮤지컬 배우
* [[심바(JJCC)]]: [[한국]]의 아이돌
==== 7월 ====
* [[7월 1일]]
* [[박혁|박건우]]
* [[애런 산체스]]
* [[7월 3일]]
* [[호시노 나미]]
* [[7월 4일]]
* [[강혜인]]: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 [[7월 5일]]
* [[알베르토 모레노]]: [[스페인]]의 축구 선수
* [[이영호]]: 한국의 [[프로게이머]]
* [[7월 6일]]
* [[베이비소울]]: 한국의 가수, 걸그룹 [[러블리즈]]의 멤버
* [[소유미]]: [[대한민국]]의 [[가수]]
* [[연태]]: 한국의 가수, 그룹 [[IN2IT]]의 멤버
* [[7월 7일]]
* [[상민(크로스진)|상민]]: 한국의 래퍼, 그룹 [[크로스진]]의 멤버
* [[토니 가른]]: [[독일]]의 [[모델]]
* [[7월 8일]]
* [[고동빈]]: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Score'
* [[문경찬]]: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박경]]: 한국의 래퍼, 그룹 [[블락비]]의 멤버
* [[손흥민]]: 한국의 [[축구 선수]]
* [[스카이 페레이라]] : [[미국]]의 가수
* [[이엄지]]: [[대한민국]]의 [[치어리더]]
* [[7월 9일]]
*[[김승현(1992)|김승현]]
*[[레바]]: 대한민국의 만화가 겸 스트리머
* [[7월 11일]]
* [[모하메드 엘네니]]
* [[주성욱]]: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 [[7월 12일]]
* [[장동윤]]: 한국의 [[배우]]
* [[우도환]]: 한국의 [[배우]]
* [[7월 14일]]
* [[요나스 호프만]]
* [[윤영삼]]
* [[이현호(야구선수)|이현호]]
* [[7월 15일]]
* [[무토 요시노리]]: 일본의 [[축구 선수]]
* [[유강남]]: 대한민국의 [[야구 관련 인물(KBO)|야구 선수]]
* [[최정문]]: 대한민국의 방송인, [[모델]]
* [[쿠스미 코하루]]: 일본의 가수
* [[Porter Robinson]]: 미국의 [[DJ]]
* [[7월 16일]]
* [[송윤준]]
* [[설하윤]]
* [[7월 17일]]
* [[우메모토 마도카]]
* [[하시모토 치나미(성우)|하시모토 치나미]]
* [[7월 19일]]
* [[김진아(치어리더)|김진아]]
* [[은지(브레이브걸스)|은지]]: 한국의 가수, 걸그룹 [[브레이브걸스]]의 멤버
* [[7월 20일]]
* [[노진규]]: 한국의 [[쇼트트랙]] 국가대표
* 이찬동 : [[브로맨스(그룹)]] 소속 아이돌
* [[7월 21일]] - [[Andrew Rayel]]: [[몰도바]]의 [[DJ]]
* [[7월 22일]]
* [[니토 모에노]]
* [[셀레나 고메즈]]
* [[지산준]]: 한국의 인터넷 방송인
* [[7월 23일]]
* [[대니 잉스]]: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이후림]]
* [[7월 24일]] - [[디오나탄 테세이라]]: 축구 선수
* [[7월 24일]] - [[윤은서]]: 한국의 성우
* [[7월 25일]]
* [[나카마타 시오리]]
* [[Porter Robinson]]
* [[7월 28일]] - [[조가은|가은]]: 한국의 [[디자이너]], [[걸그룹]] [[달샤벳]]의 전 멤버
* [[7월 29일]]
* [[지브릴 시디베]]: [[프랑스]]의 축구 선수
* [[홍영기(1992)|홍영기]]
* [[7월 30일]] - [[케빈 폴란트]]
* [[7월 31일]]
* [[박수아]]: 한국의 [[가수]] 겸 [[배우]], 걸그룹 [[애프터스쿨]]의 전 멤버
* [[호세 페르난데스(1992)]]
==== 8월 ====
* [[8월 2일]]
* [[찰리 XCX]]
* [[홍성갑]]
* [[8월 3일]] - [[칼리 클로스]]
* [[8월 4일]]
* [[고병재]]: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 [[이우찬]]: [[한국]]의 [[야구 관련 인물(KBO)|야구 선수]]
* [[8월 5일]] - [[이종성(축구선수)|이종성]]
* [[8월 6일]] - [[오오니시 사오리]]: 일본의 성우
* [[8월 7일]]
* [[김재유]] - 야구 선수
* [[모재]]
* [[장기용]]: [[대한민국]]의 [[모델]] 겸 [[배우]]
* [[표승주]]
* [[한지원]]
* [[8월 8일]]
* [[아이다 리카코]]
* [[요시프 드르미치]]
* [[8월 9일]]
* [[케이빈]]
* [[아르투르 블로흐]]: [[폴란드]]의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Nerchio'
* [[류호정]]: 대한민국의 정치인
* [[8월 10일]]
* [[고아성]]: 한국의 배우
* [[오자와 아리]]: 일본의 성우
* [[유제호]]
* [[이재성]]
* [[주현상]]
* [[Neru]]: 일본의 [[VOCALOID]] 프로듀서
* [[8월 11일]]
* [[강경학]]([[강시학]]): 한국의 [[야구 관련 인물(KBO)|야구 선수]]
* [[사노 아오이]]
* [[연분홍]]
* [[8월 12일]]
* [[알렉스 추]]
* [[카라 델러빈]]
* [[권광진]]: [[한국]] 보이그룹 [[N.Flying]]의 前 멤버
* [[8월 13일]]
* [[루카스 모라]]: [[브라질]]의 축구 선수
* [[아오키 카논]]: [[일본]]의 트랜스여성 유튜버
* [[이호종]]: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Flame'
* [[이고르 클레베르 가르시아 시우바]]
* [[8월 14일]] - [[정윤종]]: 한국의 [[프로게이머]]
* [[8월 16일]]
* [[김민혁(1992년 8월)|김민혁]]
* [[이영]]: [[한국 아이돌]] [[걸그룹]] [[애프터스쿨]]의 前 멤버
* [[8월 17일]] - [[페이지(프로레슬러)|페이지]]: [[영국]]의 [[프로레슬러]]
* [[8월 18일]] - [[김준호(프로게이머)|김준호]]: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 [[8월 20일]]
* [[박태진]]: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Winged'
* [[데미 로바토]]
* [[시라이시 마이]]: [[일본 아이돌]] 걸그룹 [[노기자카46]]의 멤버
* [[8월 22일]]
* [[흥민이]]
* [[김종길(W24)|김종길]]: 대한민국의 가수, 보이밴드 [[W24]]의 멤버
* [[8월 23일]] - [[양현(야구선수)|양현]]: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8월 24일]] - [[제메르송]]
* [[8월 25일]]
* [[나츠야키 미야비]]: [[일본 아이돌]] 걸그룹 [[베리즈코보]]의 멤버
* [[보르하 바스톤]]
* [[리카르도 로드리게스]]: [[스위스]]의 [[축구 선수]]
* [[8월 26일]] - [[황승빈]]: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 [[8월 27일]]
* [[고리키 아야메]]
* [[마츠무라 사유리]]
* [[제리(타히티)|제리]]
* [[킴 페트라스]]
* [[8월 28일]] - [[황의조]]: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 [[8월 29일]] - [[노아 신더가드]] : 야구 선수
* [[8월 31일]] - [[니콜라스 탈리아피코]]: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9월 ====
* [[9월 1일]] - [[혜림]]: 한국 아이돌 걸그룹 [[원더걸스]] 출신 멤버
* [[9월 2일]] - [[다미안 마르티네스]]
* [[9월 3일]] - 이케다 요시야: 일본의 [[작곡가]]
* [[9월 4일]]
* [[레뱅 퀴르자와]] - [[프랑스]]의 축구 선수
* [[박은빈]]: 한국의 배우
* [[9월 5일]]
* [[차선우]]: 한국의 [[가수]], [[그룹]] [[B1A4]]의 전(前)멤버 '''바로'''.
* [[EK]] : 대한민국의 래퍼
* [[오기소 시오리]]
* [[정중지]]
* [[최소라]]
* [[9월 6일]]
* [[강다현(배우)|강다현]]: 한국의 배우
* [[금새록]]: 한국의 배우
* [[9월 7일]] - [[마르틴 힌터에거]]
* [[9월 8일]]
* [[정우용]]: 한국의 [[프로게이머]]
* [[황팅팅]]
* [[9월 9일]] - [[이이다 유우코]]: 일본의 성우
* [[9월 10일]]
* [[무하메드 베시치]]
* [[형독]] : 트위치 스트리머, 前 [[카트라이더]] 준 프로게이머
* [[이강(축구)|이강]]
* [[9월 11일]]
* [[송하림]]: 한국의 성우
* [[이진욱(축구선수)|이진욱]]
* [[9월 14일]]
* [[지코]]: 한국의 [[래퍼]], 그룹 [[블락비]]의 멤버
* [[유진(1992)|유진]]: 한국의 [[가수]], 걸그룹 [[브레이브걸스]]의 멤버
* [[9월 16일]]
* [[김성한(프로게이머)]]
* [[닉 조나스]]: 미국의 가수
* [[구본택]]: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Expession'
* [[문선민]]
* [[9월 17일]]
* [[신창무]]
* [[9월 18일]]
* [[브랜든 하밀]]
* [[엠버(f(x))|엠버]]: [[한국 아이돌]] 걸그룹 [[f(x)]]의 래퍼
* [[김하경(배우)|김하경]]: 한국의 배우
* [[9월 19일]] - [[디에고 레예스]]
* [[9월 20일]]
* [[긍정인]]: 트위치 스트리머, 前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
* [[이중선]]: 트위치 스트리머, 前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
* [[9월 21일]]
* [[첸(EXO)|첸]]: [[한국 아이돌]] 그룹 [[EXO]], [[EXO-M]] [[EXO-CBX]]의 멤버
* [[알리레자 베이란반드]]
* [[우치다 유우마]]: 일본의 [[성우]]
* [[9월 22일]]
* 김재오: [[Be.A]]소속 아이돌
* [[9월 24일]]
* [[세발문어]]: [[한국]]의 [[일러스트레이터]]
* [[어윤수]]: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이자 [[홍진호]]보다 더 위대한 프로게이머~~ (해당 문서 참조)
* [[최현진]]
* [[9월 25일]]
* [[김장미]]: 한국의 [[사격]]선수
* [[주노플로]]
* [[9월 26일]]
* [[유아라]]: 한국의 배우, 걸그룹 [[헬로비너스]]의 前 멤버
* [[이주용(축구선수)|이주용]]
* [[9월 27일]]
* [[그라니트 자카]]: [[스위스]]의 축구 선수
* [[박광룡]]
* [[이풍운]]
* [[9월 28일]] - [[루이스 알베르토]]: 스페인의 축구선수
* [[9월 29일]] - [[홍건희]]
* [[9월 30일]] - [[에즈라 밀러]]: 미국의 배우
==== 10월 ====
* [[10월 1일]]
* [[수현(스누퍼)|수현]] - 그룹 [[스누퍼]]의 멤버
* [[10월 2일]]
* [[김상준(프로게이머)|김상준]]
* [[서진용]]
* [[알리송 베케르]]: [[브라질]]의 축구 선수
* [[10월 5일]]
* 나리 : 그룹 [[와썹]]의 멤버
* [[이지수(아나운서)|이지수]]: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케빈 마그누센]]
* [[홍민기(프로게이머)|홍민기]]: 한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CJ 엔투스 프로스트]] 소속
* [[10월 6일]] - [[고추참치(인터넷 방송인)]]
* [[10월 7일]] - [[페노메코]]
* [[10월 9일]] - [[박용지]]
* [[10월 10일]]
* [[야노 아나니제]]
* [[정진기]]
*[[벤 필립스]]
* [[10월 11일]]
* [[Cardi B]]: [[미국]]의 [[래퍼]]
* [[10월 12일]]
* 김민경 - 모스테이블뮤직.
* [[김진우(Apeace)|김진우]]
* [[조시 허처슨]]: 미국의 배우.
* [[카이론 듀크]]: 영국의 창던지기 선수.
* [[해나 퍼거슨]]: 미국의 모델.
* [[류경수(배우)|류경수]]: 대한민국의 배우
* [[10월 13일]]
* [[김대중(축구선수)|김대중]]
* [[문수빈]]: 한국의 배우
* [[에런 디스뮤크]]: 미국의 성우
* [[10월 14일]]
* [[심성영]]
* [[아메드 무사]]: [[나이지리아]]의 축구 선수
* [[10월 15일]]
* [[정경두(프로게이머)|정경두]]: 한국의 前 프로게이머
* 최수정 - 모스테이블뮤직
* [[10월 16일]]
* [[브라이스 하퍼]]
* [[10월 18일]]
*[[조디악]]: 인터넷 방송인
* [[10월 19일]]
* [[김지원(배우)|김지원]]: 한국의 배우
* [[벤코]]
* [[소행성612]]: 前 아프리카 BJ, 現 트위치 스트리머
* [[정효준]]
* [[10월 20일]]
* [[다니엘 강]] - 골프 선수
* [[마티아 데 실리오]]: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BM(KARD)|BM]]: 한국의 혼성그룹 [[KARD|카드]] 멤버
* [[하윤경(배우)|하윤경]]
* [[10월 21일]]
* [[등륜]]: 중국의 배우
* [[PewDiePie|마르지아 비소닌]]: 이탈리아의 유투버
* [[이수진(치어리더)|이수진]]
* [[10월 22일]]
* [[루벤 파르도]]
* [[21 Savage]]: [[미국]]의 [[래퍼]]
* [[10월 23일]]
* [[김도현(야구선수)|김도현]]
* [[알바로 모라타]]: [[스페인]]의 [[축구 선수]]
* [[10월 24일]]
* [[김명찬]]: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 [[10월 25일]]
* [[마이크 판데르호른]]
* [[10월 26일]]
* [[김도희(성우)|김도희]]: 한국의 성우
* [[10월 27일]]
* [[강찬용]]: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Ambition'
* [[스테판 엘 샤라위]]: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이케다 쥰야]]: 일본의 배우
* [[최유정(배구선수)|최유정]]
* [[카토오노 타이코우]]: 일본의 배우
* [[정호원]]: 대한민국의 가수, 보이밴드 [[W24]]의 멤버
* [[10월 28일]]
* [[김기민]]: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 무용수
* [[10월 29일]]
* [[사공엽]]
* [[10월 30일]]
* [[원상연]]: [[대한민국]]의 前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Mafa', 現 [[리그 오브 레전드]] [[코치(스포츠)|코치]]
* [[조예찬]]
* [[10월 31일]]
* 호준 - 그룹 [[탑독]]의 멤버
* [[허샤오위]]
* [[서이라]]: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
* [[유이뿅]] : [[아프리카 TV]]에서 방송하는 일본인 [[BJ]]
* [[이승협]]: [[한국]] 보이그룹 [[N.Flying]]의 멤버
==== 11월 ====
* [[11월 1일]] - [[필립 코스티치]]
* [[11월 4일]] - [[캡(틴탑)|C.A.P]]: 한국의 래퍼, 그룹 [[틴탑]]의 멤버
* [[11월 5일]]
* [[마르코 베라티]]: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이다인]]
* [[11월 6일]]
* [[유라]]: 한국의 가수, 걸그룹 [[걸스데이]]의 멤버
* [[유수빈]]: 한국의 배우
* [[11월 10일]]
* [[DEAN]]: 한국의 가수
* [[페이튼 로이스]]: [[오스트레일리아]]의 여성 [[프로레슬러]]
* [[윌프리드 자하]]: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11월 11일]]
* [[최민환]]: 한국의 가수, [[밴드]] [[FT아일랜드]]의 멤버.
* [[11월 12일]]
* [[우에하라 아이]]: 일본의 前 [[AV 여배우]], 現 유튜버
* [[츠네오카 모이]]: 일본의 로컬 아이돌 [[Yamakatsu]]의 멤버
* [[11월 15일]]
* [[미네기시 미나미]]: 일본의 걸그룹 [[AKB48]]의 멤버
* [[바비 우드]]
* [[케빈 비머]]: [[오스트리아]]의 축구 선수
* [[트레버 스토리]]
* [[11월 16일]]
* [[동규(스펙트럼)]]: 대한민국의 가수 [[스펙트럼(아이돌)|스펙트럼]]의 멤버
* [[한이석]]: [[대한민국]]의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 [[마르첼로 브로조비치]]: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
* [[11월 18일]]
* [[루팅(SNH48)]]
* [[쿠도 하루카(골프선수)|쿠도 하루카]]: 일본의 [[골프]] 선수.
* [[11월 19일]]
* [[제임스 타코우스키]]: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저우 항]]: [[중국]]의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iAsonu'
* [[11월 20일]]
* [[단발머리(걸그룹)|염지나]]: 前 [[단발머리(걸그룹)]] 멤버
* [[마티아 페린]]: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 [[윌프리드 자하]]
* [[임찬규]]: 한국의 [[야구 관련 인물(KBO)|야구 선수]]
* [[11월 21일]]
* [[사시하라 리노]]: 일본 아이돌 걸그룹 [[HKT48]]의 멤버
* [[오자키 리사]]
* [[11월 23일]]
* [[마일리 사이러스]]
* [[배진호]]
* [[은비(레이디스 코드)|은비]](~[[2014년]]): 한국의 가수,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의 前 멤버
* [[이지훈(프로게이머)|이지훈]](Easyhoon):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 [[11월 26일]]
* [[이혜성(방송인)|이혜성]]: [[한국방송공사|KBS]]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 [[마르첼로 브로조비치]]
* [[11월 27일]]
* [[찬열]]: 한국의 래퍼, 그룹 [[EXO]], [[EXO-K]] [[EXO-SC]]의 멤버
* [[강한울(프로게이머)]]: 게이머
* [[11월 28일]]
* [[박지수(1992)|박지수]]
* [[주시은]]: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 [[11월 30일]]
* [[스즈미야 코토네]]: 일본의 AV 배우
==== 12월 ====
* [[12월 1일]]
* [[마르코 판힝컬]]
* [[배혜지]]: [[한국]]의 [[기상캐스터]]
* [[와카나 나오]]
* [[12월 2일]] - 박지원: [[대한민국]]의 [[모델]]
* [[12월 3일]]
* [[빌리 오르반]]
* [[이민규(배구선수)|이민규]]
* [[최현정(야구선수)|최현정]]
* [[12월 4일]]
* [[박승욱]]
* [[진(방탄소년단)|진]]: 한국의 가수, 그룹 [[방탄소년단]]의 멤버
* [[12월 6일]] - [[양학선]]: [[한국]]의 [[체조]] 선수
* [[12월 7일]] - [[채희선]]: [[한국]]의 유튜브 크리에이터 겸 리포터.
* [[12월 8일]]
* [[요코야마 유이]]: 일본의 걸그룹 [[AKB48]]의 멤버
* [[유재필]]: 한국의 코미디언
* [[한두열]]
* [[12월 9일]] - [[녹두로]]: 트위치 스트리머 겸 유튜버
* [[12월 12일]] - [[타나베 미쿠]]
* [[12월 14일]]
* [[미야이치 료]]
* [[양희수]]
* [[윤조]]: 한국 아이돌 걸그룹 [[헬로비너스]]의 前 멤버
* [[코지마 미나미]]
* [[12월 15일]]
* [[정다흰]] : [[한국]]의 [[야구선수]]
* [[알렉스 텔리스]]
* [[제시 린가드]]: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12월 16일]]
* [[시마다 하루카]]: [[일본]]의 가수, [[AKB48]] 멤버
* [[KIDOH]]: 한국의 가수
* [[12월 17일]]
* [[성준(소년공화국)|성준]]: [[소년공화국]] 멤버
* [[금조(나인뮤지스)|금조]]: [[한국]] 아이돌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멤버
* [[12월 18일]] - [[공혁준]]
* [[12월 19일]] - [[이케르 무니아인]]
* [[12월 20일]]
* [[박대호]]
* [[이세영(배우)|이세영]]: 대한민국의 배우
* [[12월 21일]]
* [[서출구]]
* [[파뿌리(유튜버)|진렬이]]
* [[12월 22일]]
* [[문별]]: 한국 아이돌 걸그룹 [[마마무]]의 멤버
* [[조혜정]]: 한국의 배우
* [[12월 23일]]
* [[김희찬(배우)|김희찬]] : 한국의 배우
* [[미나미 리오나]]
* [[양세종(배우)|양세종]] : 한국의 배우
* [[제프 슐루프]]
* [[12월 24일]]
* [[노구치 유리]]: 일본의 성우
* [[세르주 오리에]]: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선수
* [[12월 25일]] - [[김성현(프로게이머)|김성현]]
* [[12월 26일]] - [[김성수(축구)|김성수]]
* [[12월 28일]] - [[라라 판라위번]](~[[2020년]]): 네덜란드의 前 쇼트트랙 선수
* [[12월 29일]]
* [[미슬라프 오르시치]]
* [[스즈키 카츠히로]]: [[일본]]의 [[배우]]
* [[이창재]]
* [[12월 30일]] - [[e.NA|유나]]: 한국 아이돌 걸그룹 [[AOA(아이돌)|AOA]]의 멤버
==== 일자 불명 ====
* [[세자(인터넷 방송인)]] : 한국의 BJ이자 유튜버.
* [[박지영(1992)|박지영]] :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의사자.
=== 가상 인물 ===
* [[1월 13일]]: [[정준혁(지붕뚫고 하이킥)|정준혁]] - [[지붕뚫고 하이킥]]
* [[1월 15일]]: [[아키야마 미오]] - [[케이온!]]
* [[2월 14일]]: [[라라 크로프트(리부트)]] - [[툼 레이더(2013)|툼 레이더 리부트]] 시리즈[* 리부트 이전 라라는 [[1968년]]생이다.]
* [[3월 7일]]: [[미즈노 아이]] - [[좀비 랜드 사가]]
* [[3월 8일]]: [[아오이 세나]] - [[CHAOS;HEAD]]
* [[3월 21일]]: [[티미 터너]] - [[티미의 못말리는 수호천사]]
* [[4월 8일]]: [[스즈키 쥰]] - [[케이온!]]
* [[6월 2일]]: [[절대가련 칠드런/THE UNLIMITED -효부 쿄스케- 등장인물|앤디 히노미야]] - [[절대가련 칠드런]]
* [[6월 3일]]: [[센고쿠 나데코]] - [[이야기 시리즈]]
* [[6월 21일]]: [[니시죠 타쿠미]] - [[CHAOS;HEAD]]
* [[6월 27일]]: [[J(제로게임)|인제이]] - [[제로게임]][* 연재 시작 년도인 2016년을 기준으로 25세이다.]
* [[7월 3일]]: [[사키하타 리미]] - [[CHAOS;HEAD]]
* [[7월 5일]]: [[홍시영]] - [[클로저스]]
* [[7월 14일]]: [[코오리야마 아키]] - [[도키메키 메모리얼 4]]
* [[7월 25일]]: [[마키세 크리스]] - [[Steins;Gate]]
* [[7월 26일]]: [[히이라기 마히루]] - [[종말의 세라프]]
* [[8월 7일]]: [[휴가 사키]] - [[두 사람은 프리큐어 Splash Star]]
* [[8월 28일]]: [[이치노세 구렌]] - [[종말의 세라프]]
* [[10월 9일]]: [[타케바 유카리]] - [[페르소나 3]]
* [[10월 10일]]: 데보라 하퍼 - [[바이오하자드6]]
* [[10월 14일]]: [[사츠키 유우]] - [[도키메키 메모리얼 4]]
* [[11월 11일]]
* [[나카노 아즈사]] - [[케이온!]]
* [[후지사키 유스케]], [[츠바키 사스케]] - [[스켓]]
* [[11월 13일]]: [[오리하라 코즈에]] - [[CHAOS;HEAD]]
* [[11월 16일]]: [[스기우라 코하루]] - [[화이트 앨범 2]]
* [[11월 18일]]: [[김유정(클로저스)|김유정]] - [[클로저스]]
* [[11월 19일]]: [[유메노 우타]] - [[부탁해! 마이멜로디]]
* [[11월 20일]]: [[미쇼 마이]] - [[두 사람은 프리큐어 Splash Star]]
* [[11월 22일]]: [[히이라기 신야]] - [[종말의 세라프]]
* [[12월 22일]]: [[야마기시 후카]] - [[페르소나 3]]
* 일자 불명
* [[강세호]] - [[지붕뚫고 하이킥]]
* [[궁그매|루비]] - [[유미의 세포들]]
* 김지노 - [[복학왕]]
* [[나루호도 류이치]], [[미츠루기 레이지]] - [[역전재판 시리즈]][* 둘 다 93년생인 [[야하리 마사시]]와 같은 반이었던 적이 있으므로 최소한 [[빠른 생일]]은 아니다.]
* [[노영웅]], [[한광수]] - [[프로야구생존기]]
* 무나가타 미하루 - [[태양의 묵시록]]
* [[아라라기 츠키히]][* 4월 초라는 언급은 나왔다.], [[오노노키 요츠기]][* 육체는 100년 전에 죽은 12살 가량의 소녀의 것이지만, 요츠기로서는 이때 태어났다.] - [[이야기 시리즈]]
* [[페르소나 3]]의 [[주인공]] ([[주인공(페르소나 3)|남]]/[[여주인공(페르소나 3)|녀]])[* 유카리나 후카와 동급생이므로 최소한 빠른 생일은 아니다.]
* [[쿠죠 죠린]]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사망 ==
=== 실존 인물 ===
==== 1월 ====
* [[1월 5일]] - [[이규연(성우)|이규연]]: 대한민국의 성우
* [[1월 23일]] - [[박단마]]: 대한민국의 가수
* [[1월 26일]] - [[호세 페레]]: 푸에르토리코, 미국의 배우
* [[1월 30일]] - [[이재형(정치인)|이재형]]: 제12대 국회의장
==== 2월 ====
* [[2월 10일]] - 알렉스 헤일리: 소설 <[[뿌리(소설)|뿌리]]>로 알려진 작가
* [[2월 16일]] - [[김경승]]: 대한민국의 조각가
* [[2월 21일]] - [[김홍기]]: 칠보물산, 홍산문화재단, 홍산박물관 설립자
* [[2월 22일]]
* 김승두: 전 KBS 국제부장
* [[이동녕(1905)|이동녕]]: 봉명그룹 및 아세아그룹 창업주
* [[2월 24일]] - [[욘 러푸슈나누]]: [[루마니아]]의 축구선수
* [[2월 26일]]
* 강인수: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진 R. 요키: 전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주 및 사장, 톰 요키의 아내
==== 3월 ====
* [[3월 9일]]
* [[메나헴 베긴]]: 제7대 이스라엘 총리.
* [[실비우 빈데아]]: 루마니아의 전 축구 감독
* [[3월 11일]] - 박복실: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3월 12일]] - [[신순우]]: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3월 16일]] - 알로이시오 슈월츠: 미국의 천주교 신부, 부산 알로이시오중학교 및 소년의집 설립자로 한국명은 소재건임.
* [[3월 17일]] - 이상은: (주)대유 2대 회장
* [[3월 19일]] - [[프란체스카 도너]]: [[오스트리아]] 출신 [[대한민국 영부인]], [[이승만]] 전 대통령의 아내
* [[3월 23일]]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 4월 ====
* [[4월 2일]] - [[와카야마 토미사부로]]: 일본의 배우, 가수
* [[4월 3일]] - [[이병주]]: 대한민국의 소설가
* [[4월 5일]]
* 최남수: 대한민국의 경찰관
* 샘 월튼: [[월마트]]의 창업주
* [[4월 6일]] - [[아이작 아시모프]]: [[미국]]의 [[SF]] [[소설가]]
* [[4월 15일]] - [[장익환]]: 대한민국의 지휘자
* [[4월 25일]] - [[오자키 유타카]]: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 [[4월 27일]]
* [[최규남]]: 제5대 서울대학교 총장
* [[올리비에 메시앙]]: [[프랑스]]의 [[작곡가]], [[오르간|오르가니스트]]
* [[4월 28일]] - 박현민: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 5월 ====
* [[5월 4일]] - [[어거스트 헬레망]]: [[벨기에]]의 전 축구 선수
* [[5월 6일]] - [[마를레네 디트리히]]: 독일의 [[영화배우]]
* [[5월 10일]] - [[워너 닐센]]: [[미국]]의 전 축구 감독
* [[5월 11일]] - [[이즈미 타쿠]]: 일본의 대중음악 작곡가
* [[5월 25일]] - [[필립 하비브]]: 제9대 미국 국무부차관 및 제10대 주한 미국대사, 일명 '냉전시대 분쟁 해결사'.
* [[5월 27일]] - 하세가와 마치코: <[[사자에상]]>으로 유명한 일본의 여류 만화가
* [[5월 28일]] - [[김창환]]: 제5대 [[정수장학회]] 이사장
* [[5월 31일]] - [[김을한]]: 대한민국의 언론인, [[덕혜옹주]] 전 약혼자 김장한의 형
==== 6월 ====
* [[6월 10일]] - 나카무라 하치다이: 일본의 작곡가
* [[6월 15일]] - [[레오 할러]]: [[네덜란드]]의 전 축구 선수
* [[6월 21일]] - [[리셴녠]]: 제4대 중국 국가주석
* [[6월 22일]] -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 <[[25시]]>로 유명한 루마니아의 작가
* [[6월 26일]]
* [[버디 로저스]]: 미국의 프로레슬러이자 초대 WWE 챔피언, 원조 '네이처 보이'
* [[폴가르 줄러]]: [[헝가리]]의 전 축구감독
* [[6월 30일]]
* [[배기면]]: 전 [[한양대학교]] 축구부 감독
* [[오수미]]: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 7월 ====
* [[7월 3일]] - [[홍기문]]: 월북 국어학자. 벽초 [[홍명희]]의 장남.
* [[7월 4일]] - [[아스토르 피아졸라]]: [[아르헨티나]]의 [[탱고]] [[작곡가]]이자 [[반도네온]] 연주자
* [[7월 5일]]
* [[이상호]]: <[[갈비씨]]>로 유명한 원로 만화가
* [[오미 토시로]]: 일본의 가수, 작곡가, 영화감독
* [[7월 26일]]
* 유상근: 학교법인 명지학원 설립자
* 오오야마 야스하루: 일본의 장기기사
* [[7월 27일]] - 주우길: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7월 30일]] - 조 슈스터: [[슈퍼맨 시리즈]]의 공동 원작자
==== 8월 ====
* [[8월 4일]] - [[마츠모토 세이초]]: 일본의 소설가
* [[8월 7일]] - 이복순: 살아생전 김밥 도시락 장사를 해서 모은 50억 원을 충남대학교에 기증한 '김밥 할머니'. 2010년부터 초등학교 국어 4학년 1학기 교과서에 그녀의 일화가 실렸다.
* [[8월 11일]] - [[장충준]]: 제12대 국회의원
* [[8월 12일]] - [[존 케이지]]: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 작곡가
* [[8월 21일]] - [[이시드로 랑가라]]: [[스페인]]의 전 축구 감독
* [[8월 26일]] - 박영준: 전 전남대 대학원장
* [[8월 29일]] - 박태순: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8월 30일]] - 고샤 히데오: 일본의 영화감독
* [[8월 31일]] - 금수현: 대한민국의 음악평론가, 작곡/작사가, 성악가
==== 9월 ====
* [[9월 2일]] - [[남정임]]: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 [[9월 7일]] - [[김정렬(1917)|김정렬]]: 제19대 국무총리
* [[9월 10일]] - [[율리우 보돌라]]: 루마니아 또는 헝가리의 전 축구감독
* [[9월 11일]] - [[신범식]]: 제8대 문화공보부 장관
* [[9월 12일]] - [[안소니 퍼킨스]]: 미국의 영화배우
* [[9월 23일]] - [[제임스 밴 플리트]]: [[미국]]의 [[군인]]
* [[9월 25일]]
* 마츠오 가즈코: 일본의 가수
* [[케메니 티보르]]: [[헝가리]]의 전 축구감독
==== 10월 ====
* [[10월 1일]]
* 게르트 바스티안: 전 [[NATO]] 사령관, 반전/반핵운동가
* 페트라 켈리: 독일 녹색당 창당주역이자 환경운동가, 게르트 바스티안의 동거녀이자 정치적 동지.
* [[10월 6일]] - [[덴홈 엘리어트]]: [[영국]]의 [[배우]]
* [[10월 8일]] - [[빌리 브란트]]: 독일연방공화국 제4대 수상
* [[10월 13일]] - [[타이치 키와코]]: 일본의 여배우
* [[10월 14일]] - [[타마카와 료이치]]: 일본의 배우, 성우, 코미디언
* [[10월 15일]] - 문승필: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 [[10월 22일]] - [[앙드레 판데베이어]]: [[벨기에]]의 전 축구 감독
* [[10월 28일]] - 윤금이: [[주한미군 윤금이씨 살해사건]] 피해자
==== 11월 ====
* [[11월 3일]] - 김선호: 대한민국의 철거민 운동가
* [[11월 4일]] - 임희진: 대한민국의 참교육 운동가
* [[11월 7일]] - [[알렉산데르 둡체크]]: [[체코슬로바키아]] 4대 공산당 서기장이자 1968년 '[[프라하의 봄]]'의 주도자
* [[11월 14일]]
* [[에른스트 하펠]]: 오스트리아의 축구인
* [[요프 판넬런]]: [[네덜란드]]의 전 축구 선수
* [[11월 22일]] - 장상문: 전 UN대사, 제4대 외무부 차관보, 초대 불교방송 사장
*[[11월 30일]] - [[로베르토 이라녜타]]: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선수
==== 12월 ====
* [[12월 3일]] - 서현수: 앰배서더호텔그룹 창업주, '한국 역도의 창시자' 서상천의 아들.
* [[12월 9일]] - [[빈센트 가데니아]]: [[미국]]의 [[배우]]
* [[12월 13일]]
* 최성근: 대한민국의 참교육 운동가
* [[알렉산다르 티르나니치]]: [[유고슬라비아 왕국|유고슬라비아]](現 세르비아)의 [[축구 선수]]
* [[12월 14일]] - [[서효원(작가)|서효원]]: [[대한민국]]의 [[무협지]] [[작가]]
* [[12월 21일]] - [[알버트 킹]]: [[미국]]의 [[재즈]][[가수]]
* [[12월 22일]] - [[이광웅]]: 대한민국의 재야 시인, 참교육 운동가
* [[12월 24일]] - 페요: [[스머프]]의 아버지로 알려진 벨기에의 만화가
* [[12월 27일]] - [[김정파]]: 대한민국의 만화가
* [[12월 28일]] - 다니엘라 페레즈: [[브라질]]의 여배우.
==== 일자 불명 ====
* 이우치 이사오: 일본의 문화재 연구가
=== 가상 인물 ===
* [[4월 7일]]: 양경종[* 가상인물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 [[노르망디의 한국인]]
* [[5월 22일]]: 마야(마리야 요바노비치) - [[안녕 요정]]
* [[6월 4일]]: [[퀴리너스 퀴럴]]
* [[9월]]: 성송주[* 성시원의 언니다.] - [[응답하라 1997]]
* 일자불명
* [[고재춘]] - [[자이언트(드라마)|자이언트]]
* [[은조부]]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빅 스모크]], [[라이더(GTA 산 안드레아스)|라이더]] - [[GTA 산 안드레아스]]
* [[부크]] - [[엑스맨: 다크 피닉스]]
== 데뷔 ==
=== 가수 ===
==== 한국 ====
* 강지훈
* [[김민종]]
* [[김준선]]
* [[김원준]]
* [[N.EX.T]]
* [[ZAM]]
* [[조진수]], 윤현주, 황현진
* [[3월 14일]][* 토토즐 출연 기준.]: '''[[서태지와 아이들]]'''
* '''[[서태지]]''', [[이주노]], [[양현석]]
* [[8월 1일]]: [[하수빈]]
* [[10월 29일]]: [[김건모]]
* [[12월]] 중: [[박진영]]과 NG
* 박진영
* [[손지창]]
* [[신성우]]
* [[장현철]]
* [[피노키오]]
==== 해외 ====
* [[9월 16일]]: SUPER MONKEYS
* [[아무로 나미에]]
* 파사이드
* 레드맨
*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 스파이스 1
*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
* [[라디오헤드]]
* [[커먼]]
* [[크리스 크로스]]
* [[피트 록]] & CL 스무스
* [[R. 켈리]]
* [[UGK]]
* 번 B, 핌프 C
=== 스포츠 ===
==== 야구 ====
* [[페드로 마르티네스]]
* [[스즈키 이치로]]
* [[염종석]]
* [[정민철]]
==== 축구 ====
* '''[[개리 네빌]]'''
* '''[[니키 버트]]'''
* '''[[서정원]]'''
* '''[[홍명보]]'''
==== 농구 ====
* 덕 크리스티
* 데이비드 웨슬리
* [[라트렐 스프리웰]]
* 라폰소 엘리스
* 로버트 오리
* 말릭 실리
* [[박상관]]
* 브라이언트 스티스
* [[브렛 파브]]
* 비탈리 포타펜코
* '''[[샤킬 오닐]]'''
* [[알론조 모닝]]
* 애덤 키프
* [[이상범(농구)|이상범]]
* [[이창수]]
* [[정재근(농구)|정재근]]
* 짐 잭슨
* [[크리스찬 레이트너]]
* 클라렌스 위더스푼
* [[페자 스토야코비치]]
* [[표필상]]
* 해롤드 마이너
==== 배구 ====
* 정은선
==== 씨름 ====
* 백승일
* 이태현
=== 배우 ===
* [[고소영]]
* [[곽도원]]
* [[레나 헤디]]
* [[엄정화]] - 영화 [[결혼 이야기]]
* [[장동건]]
=== 예능인 ===
* 권영찬
* 김경민
* [[김경식]]
* 김재원
* [[김한석]]
* 박수림
* 손동환
* 유정화
* [[윤정수]]
* 이세레나
* 이은주
* [[이창명]]
* [[이휘재]]
* 장명준
* [[장미화]]
* 장태준
* [[정선희]]
* [[진나이 토모노리]]
* [[허동환]]
=== 만화계 ===
* 강신재
* 강신호 - <마골패 블루스>
* 강재신 - <잃어버린 전쟁>
* 강현준 - <1992, 여름>
* 권찬호 - <귀여운 연인>
* 기민 - <비>
* 김선정 - <항상 내 곁엔>
* 김정수 - <야구인 B볼>
* 박산하 - <하늘마왕>
* 소주완, 지상월[* 창작물로서의 데뷔.] - [[협객 붉은매]]
* [[손태규]] - <공형사>
* 신지상 - <메메와 구쉬키의 감자밭 이야기>
* [[양재현]] - <몽몽정녀유혼>
* 어숙일 - <가을느낌>
* [[오다 에이치로]] - <WANTED>
* [[유시진]] - <지난 봄 이야기>
* [[이명진]] -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 이애림 - <빌리의 코딱지>
* 이영숙 - <이니스프리 호수섬>
* 이우영 - [[검정고무신]]
* 이유정 - <밤하늘에 별이>
* 이정희 - <사랑하기 때문에>
* [[이충호]] - <고독한 전사>
* 이태호 - <블랙 코브라>
* 이향우 - <웰컴 투더 헬>
* [[이현숙]] - <친구 만들기>
* 전세훈 - <노노 보이>
* 최미르 - <네오 에일리언 1009>
* 최상 - <작은 하마 콩고>
* 최성호 - <땅꼬마>
* 한승준 - <엔젤>
* 한신우 - <책과 함께 잠들다>
* [[현용민]] - <정신나간 사나이>
* 홍연식
== 은퇴 ==
=== 가수 ===
* [[김완선]]
=== 스포츠 ===
* [[8월 18일]]: [[래리 버드]]
* 강정수
* [[강호동]]
* [[김광수(1959)|김광수]]
* [[김시진]]
* [[김용철(야구)|김용철]]
* [[김재박]]
* [[김종모]]
* 비니 존슨
* [[유두열]]
* [[장효조]]
* [[정덕화]]
== 히트작 ==
=== 드라마 ===
* [[KBS]]
* 형
* [[삼국기]]
* [[MBC]]
* [[사랑이 뭐길래]]
* [[질투(드라마)|질투]]
* [[아들과 딸]]
* [[여자의 방]]
* [[SBS]]
* 두려움 없는 사랑
* [[관촌수필]]
=== 영화 ===
* 국산
* [[결혼 이야기(1992)|결혼 이야기]]
* 미스터 맘마
* [[하얀전쟁]]
* 수입
* [[보디가드(미국 영화)|보디가드]]
* [[인어공주(애니메이션)|인어공주]]
* [[미녀와 야수(애니메이션)|미녀와 야수]]
* [[배트맨 리턴즈]]
=== 가요 ===
* 한국
* [[강산에]] - ...라구요, 예럴랄라, 할아버지와 수박
* [[강수지]] - 내 마음 알겠니
* [[김광석]] - 나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
* [[김국환]] - 타타타,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
* [[김민종]] - 또 다른 만남을 위해
* [[김완선]] - 애수
* [[김종서]] - 대답 없는 너, 지금은 알 수 없어(My Love)
* [[김흥국]] - 59년 왕십리
* [[노영심]] -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 [[문주란]] -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 [[박광현(가수)|박광현]] - 함께
* [[박정운]] - 오늘 같은 밤이면
* [[박준하#s-4]] - 너를 처음 만난 그때
* 박준희 - 눈 감아봐도
* [[변진섭]] - 그대 내게 다시
* [[봄여름가을겨울]] -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아웃사이더
* '''[[서태지와 아이들]] - [[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 이 밤이 깊어가지만,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 [[설운도]] - 다함께 차차차
* [[손지창]] - 혼자만의 비밀
* [[신성우]] - 내일을 향해
* [[신승훈]] - '''[[보이지 않는 사랑]]''', 우연히, 가을빛 추억
* [[심신]] - 욕심쟁이
* [[양수경]] - 사랑은 차가운 유혹, 한번 더 생각해봐요
* [[여행스케치]] - 옛 친구에게
* [[예민]] -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
* [[오석준#s-3]] - 웃어요
* 유승범 - 질투
* [[윤상(가수)|윤상]] - 가려진 시간 사이로
* [[윤영아(가수)|윤영아]] - 미니데이트
* [[이덕진]] - 내가 아는 한 가지
* [[이상우(가수)|이상우]] - 하룻밤의 꿈, 오! 사라
* [[이승환]] -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너를 향한 마음
* [[이오공감]] - 한 사람을 위한 마음, 프란다스의 개
* [[이현우(가수)|이현우]] - '''꿈''',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
* [[장혜진(가수)|장혜진]] - 키작은 하늘
* [[조정현(가수)|조정현]] - 비애
* [[태진아]] - 사랑은 토요일 밤에, 노란 손수건
* [[하수빈]] - 노노노노노
* [[현진영]] - '''[[흐린 기억속의 그대]]'''
* [[B612]] - 나만의 그대 모습
* [[N.EX.T]] - 도시인, 인형의 기사 Part 2
* [[015B]] - 아주 오래된 연인들
* 92 내일은 늦으리 참가가수들 - 더 늦기 전에
* 해외
* [[닥터 드레]] feat. Snoop Doggy Dogg - Nuthin' but a 'G' Thang
* [[휘트니 휴스턴]] - '''[[I Will Always Love You]]'''
* [[보이즈 투 멘]] - End Of The Road
* [[머라이어 캐리]] - I'll Be There[* [[잭슨 파이브]]의 곡을 리메이크]
* Jordy - Dur Dur D’etre Bebe
* Kris Kross - Jump
* Peabo Bryson, Regina Belle - '''[[A Whole New World]]'''
* [[바비 브라운]] - Humpin' Around
* Sir Mix-a-Lot - Baby got Back[* 2006년 들어서야 <웃음을 찾는 사람들> 코너 '나몰라패밀리' 덕에 한국에서 알려진 곡이다.]
* 2 Unlimited - Twilight Zone
* [[Rage Against The Machine]] - [[Killing In The Name]]
=== 개그 코너 ===
*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유머 일번지
* 총각파티 - 한바탕 웃음으로
* 횡설수설 한바탕 - 한바탕 웃음으로
* 신부교실 - 청춘행진곡
* 레일맨 - 토요일 7시 웃으면 좋아요
* 철없는 아내 - 토요일 7시 웃으면 좋아요
* 랄랄라 선생님 - 토요일 7시 웃으면 좋아요
* 삼순이 블루스 - 토요일 7시 웃으면 좋아요
* 코미디 모의국회 - 코미디 전망대
=== 애니메이션 ===
* KBS
* [[날아라 슈퍼보드|날아라 슈퍼보드 3기]]
* [[다람쥐 구조대]] (디즈니 만화동산)
* [[외계소년 위제트]]
* [[정글북: 소년 모글리|정글북]]
* MBC
*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나디아]]
* [[마이티 마우스(애니메이션)|마이티 마우스]]
* [[더 울트라맨|울트라맨]]
* [[펭킹 라이킹]]
* SBS
* [[거북이 특공대]]
* [[몽키삼총사]]
* [[마이티 오봇츠|천하무적 오보트]]
* [[로보텍|출격 로보텍]]
* 국내 비디오
* [[거리의 무법자]]
* 해외
* [[배트맨 디 애니메이티드 시리즈]]
* [[엑스맨]]
*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애니메이션 1기)|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 [[짱구는 못말려(애니메이션)|크레용 신짱]]
* [[유유백서/애니메이션|유유백서]]
* [[마법의 리본]]
=== 베스트셀러 ===
*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양귀자]] 저.
* 나는 한국인이야 - 신세용 저.
* 소설 목민심서 - 황인경 저.
* 벽오금학도 - [[이외수]] 저.
* 소설 토정비결 - 박정렬 저.
*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 - 김영희 저.
* 매월당 김시습 - [[이문구]] 저.
* 오직 이 길밖에 없다 - [[구자경(기업인)|구자경]] 저.
* W이론을 만들자 - 이면우 저.
=== 히트상품 ===
한국능률협회 및 언론사 선정기준을 근거로 작성한다.
* 현대 엘란트라
* 롯데 델몬트 프리미엄쥬스
* 대우 공기방울세탁기
* 빙그레 메로나
* 국제전화 002
* 삼성전자 LDP
* 주택은행 차세대 주택종합통장
* MAI 그립볼
* 럭키 한스푼
== 출시 상품 ==
=== 자동차 ===
* 현대자동차
* 뉴 그랜저(2세대)
* 스쿠프(F/L)
* 기아자동차
* 세피아
* 프라이드 밴
* 포텐샤
* 하이 베스타
* 와이드 봉고 2700
* 와이드 복사
* 대우자동차
* 르망 밴
* BH120F 로얄 크루저
* 아시아자동차
* 타우너
=== 식음료 ===
* 농심
* 2월: [[알새우칩]]
* 7월: [[오징어 짬뽕]]
* 9월: V안성탕면
* 11월: 모듬해물탕면
* 동서식품
* 맥스웰 프리미엄RB 모카/킬리만자로/아메리칸 프리미엄 블렌드, 콜롬비아 슈프림
* 맥스웰 Restage/화인
* 동서 스트레이트커피
* 아이스프리마
* 우롱차(180ml)
* 삼립식품(SPC삼립)
* 8월: [[누네띠네]]
=== 생활용품 ===
* 애경산업
* 우유비누, 헤어포인트, 크린티 치약, 팍스
=== 화장품 ===
* 애경산업
* 그린알로에
== 유행어 ==
* [[우리가 남이가]]
* 대발아 - 이순재
* 아름다운 밤이에요 - 장미희
* 아, 글씨! - 백일섭
* 난~ 알아요! - 서태지
*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 오리온 초코파이 CF
* 제비 몰러 나간다~/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 - 박동진, 솔표 우황청심원 CF
* 어느 것이 하늘빛이고 어느 것이 물빛인가 - 김주영 작가, 칠성사이다 CF
* 보~람찬! 하루일을! 끝마치고서~ - 이경규 (몰래카메라)
* 두구두구두구두구 댕~ - 오재미 (봉숭아 학당)
* 안녕하시렵니까? - 신동엽 (레일맨)
* 살아 살아 내 살들아/알라뷰 - 이영자
* 내 청춘 돌리도~ 물리도~ - 이봉원 (코미디 모의국회)
* 웬 OO? 뭔 XX? 왕 @@? - 최양락 (코미디 모의국회)
* 누가 나 좀 말려줘요~ - 김은우 (코미디 모의국회)
* 밑줄 쫙~/랄랄랄라~ - 최형만 (랄랄라 선생님)
* 이런 기분 처음이야/영원히 잊지 못할 거에요 - 박미선 (철없는 아내)
* 이럴 줄 알았니? - 박수홍 (총각파티)
* ~했습니꺄? - 김용만 (봉숭아 학당)
* 다리 좀 놔주세요~ - 엄정필 (봉숭아 학당)
== 최초 ==
=== 방영 프로그램 ===
* KBS
*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 디즈니 만화동산
* 지구촌 영상음악
* 출발 시간여행
* MBC
* 오늘은 좋은 날
* 웃으면 복이 와요 (2차)
* 이야기쇼 만남
* 도전 추리특급
* SBS
* [[그것이 알고싶다]]: 최초 방영 당시 제목은 <미스터리 다큐멘터리 그것이 알고싶다>.
* 꾸러기 대행진
== 관련 문헌 ==
* [[http://theme.archives.go.kr/viewer/common/archWebViewer.do?bsid=200041025014&gubun=search|1993 동아연감]]
== 달력 ==
[include(틀:수요일로 시작하는 윤년)]
[각주]
[[분류:1992년]] |
1992 AFC 아시안컵 일본 | [include(틀: AFC 아시안컵)]
[목차]
1992 AFC ASIAN CUP
[[아시아 축구 연맹]] 주관의 [[AFC 아시안컵]] 10회 대회
[youtube(C-tDyQRm50g)]
== 경기장 ==
|| 도시 || 경기장 이름 || 수용인원 ||
|| 히로시마 || 히로시마 빅 아치 || 50,000명 ||
|| 히로시마 || 빙고 스포츠 파크 경기장 || 9,245명 ||
|| 히로시마 || 미요시 경기장 || 13,800명 ||
* 개막전과 3-4위 결정전, 결승전은 모두 [[히로시마]]에서 개최되었다.
== 진행 방식 ==
* 개최국 일본과 지난대회 우승팀 사우디아라비아에게 자동 출전권이 주어졌다. 남은 6장의 본선 티켓을 놓고 20개국이 예선에 참가하였다.
* 아시안컵 예선은 6개조로 나뉘어 각 조 1위팀이 본선에 진출한다.
* 본선에선 4개팀 2개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실시하여 각 조 상위 1,2위팀이 4강에 진출한다. 4강부터는 토너먼트로 실시한다.
* 1992년 10월 29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결승전인 11월 8일까지 약 2주간 진행된다.
== 본선 진출국 ==
||<:>'''국가'''||<:>'''진출 경위'''||<:>'''진출 횟수'''[* 1992년 대회 본선진출 제외 횟수]||<:>'''최고 성적'''||
||<:>[[일본]]||<:>개최국 자동 진출||<:>1회||<:>1라운드||
||<:>[[사우디아라비아]]||<:>전대회 우승||<:>2회||<:>우승(2회)||
||<:>[[카타르]]||<:>예선 1조 1위||<:>3회||<:>1라운드||
||<:>[[아랍에미리트]]||<:>예선 2조 1위||<:>3회||<:>1라운드||
||<:>[[이란]]||<:>예선 3조 1위||<:>6회||<:>우승(3회)||
||<:>[[북한]]||<:>예선 4조 1위||<:>1회||<:>4위||
||<:>[[중국]]||<:>예선 5조 1위||<:>4회||<:>준우승||
||<:>[[태국]][*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한국]]의 방만한(?) 준비로 탈락한 대신 올라간 팀. 당시 한국은 실업팀(!)을 보냈다고 한다.]||<:>예선 6조 1위||<:>1회||<:>3위||
== 진행 경과 ==
=== 조별 리그 ===
||<:>'''순위'''||<:>'''A조'''||<:>'''승점'''||<:>'''B조'''||<:>'''승점'''||
||<:>1위||<:>일본||<:>5||<:>사우디아라비아||<:>5||
||<:>2위||<:>아랍에미리트||<:>5||<:>중국||<:>5||
||<:>3위||<:>이란||<:>4||<:>카타르||<:>2||
||<:>4위||<:>북한||<:>1||<:>태국||<:>2||
=== 토너먼트 ===
||<table align=center><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width=5%> 경기 ||<width=20%> 대진표 ||
|| A || 4강 1경기 [br] '''일본''' 3:2 중국 ||<|3><:> C ||<|3><:> 결승 [br] '''일본''' 1:0 사우디아라비아 ||
|| B || 4강 2경기 [br] '''사우디아라비아''' 2:0 아랍에미리트 ||
|| D || 3/4위전 [br] '''중국''' 1:1(4:3) 아랍에미리트 ||
||<table align=center><rowbgcolor="#FFD700"> '''{{{+2 1992 AFC 아시안컵 우승}}}''' ||
|| [[파일:external/www.worldstatesmen.org/jp.gif|width=200]] [br] '''일본''' ||
|| 첫 번째 우승 ||
== 그 외 ==
* 개최국 일본은 아시안컵에서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었다.
* 일본은 1992년부터 [[J리그]]를 야심차게 창설하면서 일본 축구 역사상 최초의 황금세대를 구축하는데 성공했고, 자국에서 개최한 아시안컵까지 우승하면서 크게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이 기세를 몰아 [[1994 FIFA 월드컵 미국|미국 월드컵]] 본선진출을 노렸다. [[도하의 기적|하지만, 경기 종료 1분 전 이라크에게 충격과 공포의 동점골을 한 방 얻어맞는 바람에 그만 일본 축구 역사상 최초의 본선진출이 눈 앞에서 좌절되어버린다.]] 결국, 본선진출 실패로 인해 당시 일본의 아시안컵 첫 우승을 이끈 한스 오프트 감독은 감독직을 사퇴하게 된다.
* 대한민국은 아시안컵 예선 6조에서 1승1패를 기록, 2승을 기록한 태국에게 밀리며 2위로 본선에도 오르지 못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이 예선에 실업/대학 선수들로 출전시켜 팬들의 비난을 면치 못했다. 이걸 주도한 사람이 [[허승표]]와 [[신문선]]으로 이후 이들은 대한축구협회에 발을 붙이지 못했다. 대부분 [[태국 쇼크]]하면 98년 아시안게임때의 충격패를 기억하지만, 6년전에 일어난 원조 태국 쇼크인 셈. [[AFC]]도 분노하여 명색이 아시아 최고를 겨루는 대회 예선에서 이런 장난하면 월드컵 예선 실격같은 징계를 하겠다고 경고했기에 이제 더 이상 이럴 수도 없게 되었다. ~~이제는 월드컵 예선이 아시안컵 예선을 겸하기 때문에 이럴 이유도 없고 [[역적|실제로 이런다면...]]~~ ~~우리가 아시안컵에 소홀한다는 인식이 생기게 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정작 1992년 이 대회 빼면 헛소리다.~~ 이게 독이 되었는지 몰라도 이후로는 [[2군]]에 해당되는 B팀을 따로 보내지 않고 있다.
* 북한은 1980년 대회 4위 이후 12년만에 본선에 진출하였지만 1무 2패 조 최하위로 대회를 마감하였다.
* 모든 팀이 승점 1점 이상 얻었다.
* 최우수선수는 일본의 [[미우라 카즈요시]]가 차지했다.
== 결과 ==
|| 순위 || 국가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 || 승점 || 비고 ||
||<rowbgcolor=#FFD700><:> 1 || 일본 || 5 || 3 || 2 || 0 || 6 || 3 || +3 || '''8''' || '''우승''' ||
||<rowbgcolor=#C0C0C0><:> 2 || 사우디아라비아 || 5 || 2 || 2 || 1 || 8 || 3 || +5 || '''6''' || 준우승 ||
||<rowbgcolor=#B8860B><:> 3 || 중국 || 5 || 1 || 3 || 1 || 6 || 6 || 0 || '''5''' || 3위 ||
||<rowbgcolor=#F0E68C><:> 4 || 아랍에미리트 || 5 || 1 || 3 || 1 || 3 || 4 || -1 || '''5''' || 4위 ||
||<rowbgcolor=#FFA7A7><:> 5 || 이란 || 3 || 1 || 1 || 1 || 2 || 1 || +1 || '''3'''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6 || 카타르 || 3 || 0 || 2 || 1 || 3 || 4 || -1 || '''2'''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7 || 태국 || 3 || 0 || 2 || 1 || 1 || 5 || -4 || '''2''' || 1라운드 ||
||<rowbgcolor=#FFA7A7><:> 8 || 북한 || 3 || 0 || 1 || 2 || 2 || 5 || -3 || '''1''' || 1라운드 ||
[각주]
[[분류:AFC 아시안컵]][[분류:헤이세이 시대]] |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 #redirect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
1992년 한국시리즈 | [include(틀:역대 KBO 한국시리즈 목록)]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 bordercolor=#151B54><#ffffff> [[파일:external/41.media.tumblr.com/tumblr_o4a4woaUar1sqk8veo6_r1_400.png|width=200]][br]'''{{{#151B54 역대}}} [[KBO 한국시리즈|{{{#151B54 KBO 한국시리즈}}}]]''' ||
||<width=30%> [[1991년 한국시리즈|1991년]][br][[해태 타이거즈]] || {{{+1 ←}}} ||<#ffffff><width=30%> '''1992년'''[br]'''[[롯데 자이언츠]]''' || {{{+1 →}}} ||<width=30%> [[1993년 한국시리즈|1993년]][br][[해태 타이거즈]] ||
||<-2><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221692><tablebgcolor=#ffffff><#fff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20120204000008_0.jpg|width=100%]]}}} ||
||<-2><#221692> '''{{{#ffffff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
||<-2><#87CEEB> [[롯데 자이언츠|'''{{{#red 롯데 자이언츠}}}''']] ||
|| '''{{{#87CEEB MVP}}}''' || [[박동희(야구선수)|'''{{{#87CEEB 박동희}}}''']] ||
>'''쳤습니다! 박정태 잡아서 베이스 태그! 경기 끝났습니다. 경기 끝났습니다. 그래서 92 한국시리즈는 롯데 자이언츠로 패권이 돌아갔습니다. 84년도부터 정말 절치부심, 정상등극을 노렸던 롯데 자이언츠가 8년만에 이룩하는, 그런 또다른 쾌거입니다.'''
>----
>MBC [[임주완]] 캐스터의 우승콜
[목차]
== 개요 ==
||<tablewidth=100%><-2><:><tablebordercolor=#edd36c><bgcolor=#00143f,#0b1966> {{{+2 {{{#edd36c '''1992'''}}} {{{#edd36c '''프로야구'''}}} {{{#ffffff '''한국시리즈'''}}}}}} ||
||<width=500><height=150><#87ceeb> [[파일:lotte_giants_primary.png|width=170]] ||<width=500><height=150><#ff6600> [[파일:빙그레모자로고.png|width=150]] ||
||<width=500><#87ceeb> [[롯데 자이언츠|{{{#red {{{+1 '''롯데 자이언츠'''}}}}}}]] ||<width=500><#ff6600> [[빙그레 이글스|{{{#000000 {{{+1 '''빙그레 이글스'''}}}}}}]] ||
[youtube(6djJhOOwTVA)]
'''준플레이오프 ~ 한국시리즈 까지의 하이라이트'''
[youtube(xzH8nqRzr1k)]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의 보도와 중계 일부 모음
[[페넌트레이스]] 1위 [[빙그레 이글스]]와 3위 [[롯데 자이언츠]]가 맞붙었던 한국시리즈다. 1984년 이후 두 번째로 롯데 자이언츠가 우승한 한국시리즈다.[* 거기다 공교롭게도 양팀의 사령탑이 1984년 시리즈 때와 같은 감독들이었다 롯데는 강병철, 빙그레는 [[김영덕]]이다. 이쯤되면 악연도 이런 악연이 없다.] 이후 롯데는 우승 기록이 없어 현재까지도 '''응답하라 1992'''[* 원래 AGAIN 1992였지만 [[응답하라 시리즈]]가 엄청나게 떴기 때문.]를 외치는 롯데팬들이 많다.
원년 OB우승 이후 [[삼성 라이온즈]] 및 [[빙그레 이글스]]에서는 번번이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만 기록한 [[김영덕]] 감독은 다승구원왕이란 역사에 다시 나오기 힘든 타이틀을 차지한 [[송진우(야구)|송진우]] 외 [[한용덕]], [[정민철]], [[이상군]] 등 쟁쟁한 투수진과 전성기 시절의 [[장종훈]], [[이정훈(1963)|이정훈]], [[이강돈]] 등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막강한 전력을 구축하고 기다렸지만….
정규시즌 3위를 기록한 롯데는 [[삼성 라이온즈]]와 준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고, 선동열이 부상으로 빠진 [[해태 타이거즈]]와 5차전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플레이오프마저 승리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롯데 투수진은 [[윤학길]]-[[염종석]]-[[박동희(야구선수)|박동희]]의 트로이카가 투수진의 핵심이었고, 타선은 [[남두오성]]이라 불리는 [[박정태]], [[김민호(1961)|김민호]], [[전준호(1969)|전준호]], [[김응국]], [[이종운]] 등 상대적으로 장타보다는 머신건 타선에 가까웠다. 한번 분위기를 타면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팀 특성에 제대로 분위기를 타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1984년 한국시리즈]]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최동원이 하드캐리했던 1984년 때와 달리 염종석, 윤학길, 박동희의 제대로 된 3선발 체제가 구축되어 있었고 전준호, 이종운, 그리고 김응국의 3할대 타자들이 즐비했던 그야말로 제대로 된 팀이었다.]
== 엔트리 ==
=== [[빙그레 이글스]] ===
||||||<tablewidth=80%><#ff6600> '''{{{#ffffff 빙그레 이글스 1992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000000><width=10%> '''{{{#ffffff 감독}}}''' ||<width=10%> 1명 ||<width=80%> [[김영덕]] ||
||<#000000><width=10%> '''{{{#ffffff 코치}}}''' ||<width=10%> 5명 ||<width=80%> [[이희수(야구인)|이희수]], [[김명성(1946)|김명성]], [[함학수]], [[정구선]], [[송일섭]] ||
||<#000000><width=10%> '''{{{#ffffff 투수}}}''' ||<width=10%> 9명 ||<width=80%> [[한희민]], [[이상군]], [[송진우(야구)|송진우]], [[지연규]], [[김인권(야구선수)|김인권]], [[김홍명]], [[한용덕]], [[장정순]], [[정민철]] ||
||<#000000><width=10%> '''{{{#ffffff 포수}}}''' ||<width=10%> 2명 ||<width=80%> [[김상국]], [[양용모]] ||
||<#000000><width=10%> '''{{{#ffffff 내야수}}}''' ||<width=10%> 8명 ||<width=80%> [[지화동]], [[조양근]], [[강정길]], [[전대영]], [[강석천]], [[이종호(야구선수)|이종호]], [[장종훈]], [[김용선(야구)|김용선]] ||
||<#000000> '''{{{#ffffff 외야수}}}''' ||<width=10%> 6명 ||<width=80%> [[이중화]], [[이정훈(1963)|이정훈]], 성군철, [[이강돈]], [[진상봉]], [[임주택]] ||
=== [[롯데 자이언츠]] ===
||||||<tablewidth=80%><#00Bfff> '''{{{#ed1c24 롯데 자이언츠 1992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fffff0><width=10%> '''{{{#ed1c24 감독}}}''' ||<width=10%> 1명 ||<width=80%> [[강병철]] ||
||<#fffff0><width=10%> '''{{{#ed1c24 코치}}}''' ||<width=10%> 5명 ||<width=80%> [[이재환(야구)|이재환]], [[도위창]][* 참고로 도이 쇼스케 코치는 롯데의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 때도 팀과 같이 했다.], [[이충순]], [[권두조]], [[김용희]] ||
||<#fffff0><width=10%> '''{{{#ed1c24 투수}}}''' ||<width=10%> 9명 ||<width=80%> [[윤학길]], [[이상번]], [[박동희(야구선수)|박동희]], [[김태형(1972)|김태형]], [[박동수(1961)|박동수]], [[김상현(1968)|김상현]], [[윤형배]], [[염종석]], [[김종석(1964)|김종석]] ||
||<#fffff0><width=10%> '''{{{#ed1c24 포수}}}''' ||<width=10%> 3명 ||<width=80%> [[김선일(야구)|김선일]], [[강성우]], [[고정식(야구)|고정식]] ||
||<#fffff0><width=10%> '''{{{#ed1c24 내야수}}}''' ||<width=10%> 7명 ||<width=80%> [[박영태]], [[김민호(1961)|김민호]], [[한영준]], [[공필성]], [[박정태]], [[박계원]], [[김민재(내야수)|김민재]] ||
||<#fffff0> '''{{{#ed1c24 외야수}}}''' ||<width=10%> 7명 ||<width=80%> [[장효조]], [[조성옥]], [[최계영]], [[김응국]], [[이종운]], [[김종헌]], [[전준호(1969)|전준호]] ||
== 경기 ==
=== 1차전 ===
||<-13><#00Bfff> {{{#ed1c24 '''한국시리즈 1차전, 10.08(목), 18:00,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ed1c24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
||<#dcdcdc> '''팀''' ||<#dcdcdc> '''선발''' ||<#dcdcdc> '''1''' ||<#dcdcdc> '''2''' ||<#dcdcdc> '''3''' ||<#dcdcdc> '''4''' ||<#dcdcdc> '''5''' ||<#dcdcdc> '''6''' ||<#dcdcdc> '''7''' ||<#dcdcdc> '''8''' ||<#dcdcdc> '''9''' ||<#dcdcdc> '''R''' ||<#dcdcdc> '''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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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MBC|[[파일:mbc86.png|width=50]]]] | 캐스터: 임주완 | 해설: 허구연''' ||
롯데는 [[해태 타이거즈]]와 플레이오프를 5차전까지 치르며 [[윤학길]]과 [[염종석]]이 모두 5차전에 투입되었고, 그런 상황에서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 투수로 플레이오프 3차전을 시원하게 말아먹은 [[박동희(야구선수)|박동희]]가 선발 투수로 나서게 되었다. 1차전은 어쩔 수 없이 버리는 경기로 가져가겠다는 [[강병철]] 감독의 전략이었다.
한편 빙그레는 롯데와 해태가 플레이오프를 치루는 동안 서로 피터지게 싸우면서 총력전을 펼치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하고 있었는데, 해태가 아닌 롯데가 올라오길 내심 바라고 있었다. 해태가 그동안 번번히 우승을 가로막았기에 껄끄로웠기 때문. 뿐만아니라 롯데는 정규시즌 3위였고, 그해 빙그레는 정규시즌에서 롯데를 상대로 13승 5패라는 압도적인 전적을 기록했다. 특히 원투펀치인 송진우와 정민철 모두 롯데에 극강한 모습을 모이고 있었다. 실제로 롯데가 원투펀치를 모두 5차전에 투입하는 총력전 끝에 해태를 꺾고 한국시리즈로 올라오자 빙그레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빙글레의 선발 투수는 당연히 에이스 송진우. 송진우는 그 해 19승을 거두며 다승왕과 구원왕을 모두 석권하며 커리어 하이를 찍고 있었다. 1차전을 질 거라 생각한 빙그레의 팬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롯데는 원투펀치를 모두 플레이오프 5차전에 투입했기 때문에 2차전 역시 4선발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고, 빙그레 팬들은 1차전은 물론이고 2차전까지 정민철을 내세워 여유롭게 이긴 후 3차전에서 롯데의 에이스 윤학길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1회 초부터 2번 조성옥의 번트시도 때 '''주루방해'''판정을 받으며 흔들린 송진우는 폭투를 범하고 '자갈치' 김민호에게 2타점 적시타를 얻어맞으며 무너졌다.
롯데는 6회 [[이종운]]이 투런홈런을 뽑으며 승리에 쐐기를 박았고,[* 결정적으로 이 홈런으로 굳히기를 하지 않았다면 후반에 빙그레의 맹추격으로 보아 투수진이 얇았던 롯데는 고전했을 가능성이 크다.] 선발 박동희는 8회까지 8안타에 '''폭투 3개'''를 범하며 4실점하는 등 영 불안한 투구를 보였지만, 위력적인 구위를 바탕으로 '''탈삼진 10개'''를 잡아내며 한국시리즈 첫 승을 올렸다.
=== 2차전 ===
||<-13><#00Bfff> {{{#ed1c24 '''한국시리즈 2차전, 10.09(금), 18:00,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ed1c24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
||<#dcdcdc> '''팀''' ||<#dcdcdc> '''선발''' ||<#dcdcdc> '''1''' ||<#dcdcdc> '''2''' ||<#dcdcdc> '''3''' ||<#dcdcdc> '''4''' ||<#dcdcdc> '''5''' ||<#dcdcdc> '''6''' ||<#dcdcdc> '''7''' ||<#dcdcdc> '''8''' ||<#dcdcdc> '''9''' ||<#dcdcdc> '''R''' ||<#dcdcdc> '''H''' ||
||<#00Bfff> '''[[롯데 자이언츠|{{{#ed1c24 롯데}}}]]''' || [[윤형배]] || 0 || 0 || 0 || 0 || 0 || 0 || 0 || 0 || 3 ||<#dcdcdc> '''3''' || 7 ||
||<#ff660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정민철]] || 0 || 0 || 0 || 0 || 0 || 0 || 0 || 0 || 2 ||<#dcdcdc> '''2''' || 8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KBS1|[[파일:KBS 1 logo[1].png|width=45]]]] | 캐스터: 정도영 | 해설: 하일성''' ||
1차전 버리는 경기에서 승리한 [[강병철]]은 2차전에서 연습생(=신고선수) 출신인 윤형배를 내세우며 또다시 2차전을 버리는 경기로 가져간다.
빙그레 선발 정민철은 늘 그래듯이 안정적인 피칭을 보여주며 무실점 피칭을 이어갔다. 롯데 선발 윤형배 또한 1차전 승리 덕에 부담없이 던진 탓에, 1차전 선발 박동희같은 위력적인 구위는 아녀도 수비진의 분전에 힘입어 꾸역꾸역 무실점 피칭을 이어갔다.
두 투수 모두 양팀 선수들의 신들린 호수비에 힘입어 8회까지 서로 무실점을 이어가나 9회초 김영덕은 전날 선발이었던 송진우를 다시 마운드에 올리는 강수를 둔다. 하지만 송진우는 4연속 안타를 맞으며 자멸했고, 급히 구원등판한 한용덕도 2실점을 추가로 허용하며 롯데가 3:0으로 앞서나갔다.
9회말 이에 분노한 장종훈이 선두타자 안타를 치고 나가며 윤형배를 두들기는 듯 했으나... 윤학길이 등판해 비록 2실점[* 이때 해프닝이 있었는데, 1사 1, 3루에서 대타로 나와 중견수 키를 넘기는 적시타를 때린 진상봉은 '''1루까지 밖에 못갔다.''' 진상봉은 맞는 순간 홈런인줄 알고 환호를 했는데 결국 타구는 그라운드 안에 떨어진 것이다. 결국 빙그레는 더 이상 점수를 내지 못하고, 흥분한 대전 관중들은 빙그레의 버스와 구장 유리창에 돌을 던지며 분노했다. ]하긴 했지만 불을 끄고 팀 승리를 지켜냈다. 어쨌든 적지에서 2연승이란 뜻밖의 수확을 거둔 롯데는 기분 좋게 홈 사직으로 갈 수 있었다.
[[파일:/image/109/2013/04/30/201304301005775873_517f1ad204d8c_59_20130430155408.jpg]]
한편 경기 직후 빙그레 응원 관중 500여 명은 대전구장의 창문과 정문의 유리창을 박살내고 빙그레 버스에 [[해태 버스방화 사건|불을 지르진 않았지만]] 돌과 오물을 던졌다. 관중들은 "김영덕 물러가라"를 외치며 소란을 피우다 경찰과 몸싸움까지 벌였다. 홈인 대전구장에서 빙그레가 예상외로 무력하게 1, 2차전 스윕을 당해서 실망한 것도 있었지만, [[2007년 한국시리즈]] 이전까지 초반 2연패 후 우승한 팀은 '''단 한 팀도''' 없어서 사실상 우승이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자세한 내용은[[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23614|이 기사]]를 볼 것.
한화팬들은 [[5886899678|한화가 암흑기를 찍는 동안]]은 대전 '''보살팬'''이 됐지만 이땐 [[대구아재]], [[마산아재]], [[부산아재]], [[광주아재]], [[인천아재]] 못지 않은 '''[[대전아재]]'''로 유명했다.~~그냥 모든 팀 팬들이 마산아재급이었단 말 아닌가~~
=== 3차전 ===
||<-13><#ff6600> {{{#ffffff '''한국시리즈 3차전, 10.11(일), 14:00, [[사직 야구장|{{{#ffffff 사직 야구장}}}]]'''}}} ||
||<#dcdcdc> '''팀''' ||<#dcdcdc> '''선발''' ||<#dcdcdc> '''1''' ||<#dcdcdc> '''2''' ||<#dcdcdc> '''3''' ||<#dcdcdc> '''4''' ||<#dcdcdc> '''5''' ||<#dcdcdc> '''6''' ||<#dcdcdc> '''7''' ||<#dcdcdc> '''8''' ||<#dcdcdc> '''9''' ||<#dcdcdc> '''R''' ||<#dcdcdc> '''H''' ||
||<#ff660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한용덕]] || 1 || 0 || 2 || 0 || 0 || 0 || 0 || 0 || 2 ||<#dcdcdc> '''5''' || 10 ||
||<#00Bfff> '''[[롯데 자이언츠|{{{#ed1c24 롯데}}}]]''' || [[윤학길]] || 0 || 0 || 1 || 1 || 1 || 0 || 0 || 1 || 0 ||<#dcdcdc> '''4''' || 9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MBC|[[파일:mbc86.png|width=50]]]]''' ||
중계방송사는 MBC TV.
이제 드디어 에이스인 윤학길을 출격시키며 여유롭게 이기겠다 다짐했건만... 윤학길은 3회까지 3실점으로 흔들렸다. 그러나 김영덕이 '''또''' 송진우를 기용하면서 급기야 8회말 송진우가 역전을 허용(여기서 지면 송진우는 3연패), 스코어 4:3으로 3차전도 롯데가 이기는 듯 싶었다.[* 어찌보면 송진우는 불쌍하다고 할 수 있다. 송진우는 4⅓이닝 동안 3안타 1실점으로 1, 2차전 모두 나온 투수치고는 매우 호투했고, 7회와 8회에는 무사 1루에서 두번이나 롯데의 번트타구를 잡아 1루주자를 아웃시키는 호수비를 하기도 했다. 사실 8회의 역전 점수도 조양근의 중계플레이 미스만 아니었어도 이닝이 끝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1, 2차전에 합쳐서 4점이나 분식회계를 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9회초 빙그레의 마지막 공격에서 지화동이 동점 적시타를 때려내고 (이 사이에 김응국의 실책으로 지화동은 3루까지 진루) 2아웃 이후 임주택의 내야안타 때 홈을 밟아 빙그레가 역전했다.
9회말, 롯데는 1사 1, 2루란 마지막 기회를 잡았지만 고정식의 삼진과 김응국의 도루 실패로 송진우는 첫 승을 따내고 윤학길은 완투패를 기록했다. 빙그레는 1989년 한국시리즈 1차전 이후 한국시리즈 10연패에서 탈출했다.
한국시리즈 3차전의 시구는 부산 감천국민학교(현 감천초등학교) 6학년 야구선수가 했는데, [[김사율|그는 20년 뒤에 롯데의 마무리투수가 된다.]]
=== 4차전 ===
||<-13><#00Bfff> {{{#ed1c24 '''한국시리즈 4차전, 10.12(월), 18:00, [[사직 야구장|{{{#ed1c24 사직 야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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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Bfff> '''[[롯데 자이언츠|{{{#ed1c24 롯데}}}]]''' || [[염종석]] || 2 || 1 || 1 || 1 || 0 || 0 || 0 || 1 || - ||<#dcdcdc> '''6''' || 15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KBS1|[[파일:KBS 1 logo[1].png|width=45]]]][* 중계방송 도중 KBS 뉴스 9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다가 8회말 김응국 타석부터 다시 이어서 중계.] | 캐스터: 이장우 | 해설: 하일성''' ||
1992년의 괴물신인 염종석과 정민철이 나란히 맞붙었다. 2차전에서 17타자를 범타 처리하며 신들린 투구를 보여주었던 정민철은 이번에는 2회에 조기강판하고, 염종석도 6회 집중안타로 불안불안하게 가다가 결국 강판됐다. 염종석의 이날 부진은 어머니가 해주신 장어탕을 먹고 배탈이 나서 컨디션이 엉망인 탓이라 알려졌지만 실상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6051802311|팔꿈치 통증 때문이다.]][* 이 시즌 염종석은 고졸신인 첫해임에도 포스트시즌까지 포함해서 235이닝을 넘게 던지는 기록적인 혹사를 당했다.]
그리고 올라온 건 '''박동희'''. 박동희는 9회초에 양용모와 이강돈의 적시타[* 이때 좌익수였던 김응국이 펜스에 부딪히면서 김종헌으로 교체되기도 했다.]로 2점을 허용했으나 마지막 타자 임주택을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며 8회말 전준호와 조성옥의 연속 안타로 얻은 1점을 잘 지켜 세이브를 기록했다.
여담으로 시즌동안 거의 벤치멤버로만 있던 조성옥은 정규시즌의 한을 풀며 이날 '''5타수 5안타'''를 기록했다.
=== 5차전 ===
||<-13><#00Bfff> {{{#ed1c24 '''한국시리즈 5차전, 10.14(수),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ed1c24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dcdcdc> '''팀''' ||<#dcdcdc> '''선발''' ||<#dcdcdc> '''1''' ||<#dcdcdc> '''2''' ||<#dcdcdc> '''3''' ||<#dcdcdc> '''4''' ||<#dcdcdc> '''5''' ||<#dcdcdc> '''6''' ||<#dcdcdc> '''7''' ||<#dcdcdc> '''8''' ||<#dcdcdc> '''9''' ||<#dcdcdc> '''R''' ||<#dcdcdc> '''H''' ||
||<#00Bfff> '''[[롯데 자이언츠|{{{#ed1c24 롯데}}}]]''' || [[윤형배]] || 2 || 0 || 2 || 0 || 0 || 0 || 0 || 0 || 0 ||<#dcdcdc> '''4''' || 7 ||
||<#ff660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한용덕]] || 0 || 0 || 0 || 1 || 0 || 1 || 0 || 0 || 0 ||<#dcdcdc> '''2''' || 3 ||
||<-15><bgcolor=#dcdcdc> '''중계방송사: [[MBC|[[파일:mbc86.png|width=50]]]] | 캐스터: 임주완 | 해설: 허구연''' [br] '''[[SBS|[[파일:SBS_CI_1991_-_1994[1].png|width=35]]]] | 캐스터: 유협 | 해설: 김동엽''' ||
선발투수는 각각 윤형배와 한용덕. 롯데는 1회와 3회에 각 2점씩 총 4점을 뽑아 앞서나가며 빙그레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승부처라고 판단한 강병철 감독은 6차전까지 갈 경우 선발로 내정한 박동희를 4회에 조기등판시키는 모험수를 감행했다. 그리고 그 박동희가 9회까지 마운드를 지키며 1984년에 이어 8년만이자 통산 2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한편 이 경기는 SBS에서 처음으로 중계된 [[KBO 한국시리즈]] 경기다.[* 포스트시즌까지 포함하면 이 해 플레이오프 5차전이 SBS의 첫 중계다. 당시엔 플레이오프 5차전이 잠실 경기였기에 가능했다. 이날 MBC는 경기 종료 후 뉴스데스크를 방송했고, SBS는 8시 50분쯤 SBS 8 뉴스로 넘긴 다음 9회 말에 현장을 다시 연결해 우승 장면을 중계했다. 한편 KBS 1TV도 메인 뉴스 도중 경기장 현장을 연결해 우승 장면을 라디오 중계와 함께 내보냈다.]
이날 패배 이후 [[김영덕]] 감독은 라커룸에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0&aid=0002020076|펑펑 울었다고]] 한다.
== 평가 ==
빙그레의 강점은 죽고, 약점은 극대화됐으며 롯데의 강점은 극대화되고 약점은 커버된 시리즈였다. 정규 시즌 맞대결은 13승 5패로 빙그레가 절대 우세였단 것이다. 몇 번의 한국시리즈 실패가 빙그레로선 새가슴으로 작용하고 만 셈이다.
=== [[롯데 자이언츠]] ===
롯데는 해당 정규시즌 홈런 수 꼴찌였을 정도로 장타력이 부족했으나, 강력한 컨택과 주루 능력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이는 앞서 말한 빙그레의 수비 불안과 겹쳐 위력이 배가 됐다. 어지간한 단타에도 득점권의 모든 주자가 득점에 성공했으니...
2승 1세이브를 기록한 롯데의 [[박동희(야구선수)|박동희]]가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됐지만, 당해 포스트 시즌 전체를 보면 염종석의 활약이 돋보였다. 그 결과 기자단 투표로 결정되는 그 해 투수 골든글러브는 염종석이 수상했다. 당시 2차스탯이라는 개념 자체도 없었던 시절이라 염종석의 수상은 당시로선 이변으로 여겨졌다.[* 염종석 외에 후보로 거론된 송진우와 오봉옥은 현재는 보편화된 2차스탯을 적용할 경우 염종석에 한참 떨어지는 성적이다. (염종석 17승 9패 6세이브 204.2이닝 ERA 2.33 war 8.40, 송진우 19승 8패 17세이브 191.1이닝 ERA 3.25 war 5.19, 오봉옥 13승 0패 2세이브 126.2이닝 ERA 3.55 war 3.23) 염종석의 92년 WAR은 역대 신인투수 1위로 06 류현진 조차 능가한다. (염종석 8.40, 류현진 7.78)] 물론 당시 송진우의 다승왕은 김영덕 감독 특유의 밀어주기의 산물이라 여론이 좋지 않았던 덕을 본 것도 있었다.[* 시즌 종반 염종석 17승 [[이강철]] 18승 송진우 18승인 상황에 염종석이 등판해 공동 다승왕이 가능한 상황에서 염종석은 포스트시즌을 위해 쉬었고, 이강철은 이미 마지막 등판을 마친 상황이었으며 송진우는 팀이 이기고 있는 상황에 잘 던지던 선발 한희민을 내리고 4회부터 등판해 19승을 채웠고 인터뷰에서도 밀어주기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이 때문에 [[강병철]] 감독은 1984년엔 [[최동원]], 1992년엔 [[염종석]]을 제물로 우승과 바꿨다는 점에서 우승했어도 탐탁지 않게 여기는 팬들이 많다. 그렇지만 이 우승이 롯데 역사에서 지금까지 마지막 우승인 데다 1984년 못지 않게 임팩트가 컸던 탓에[* 1984년은 '''[[최동원]]'''이 혼자 미친 데다 [[유두열]]의 뜬금포에 힘입은 우승이라 친다면 1992년은 투타 전체가 미친 활약을 보였다. 특히 타자들의 활약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시절을 그리워하는 팬들도 많다.
그런데 3년후 [[1995년 한국시리즈]] 다시 도전하려고 했으나 [[OB 베어스]] 한국시리즈가 우승하면서 롯데 자이언츠가 한국시리즈 준우승하고 말았다.
=== [[빙그레 이글스]] ===
당시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며 페넌트레이스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빙그레였고 우승을 달성한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었다. 그러나 막상 시리즈에 들어서니 시즌 내내 위엄을 보였던 다이너마이트 타선은 홈런 하나도 기록 못한 채 침묵하고, 에이스 송진우는 분전했으나 김영덕 감독의 무리한 기용이 겹쳐 부진했으며, 그 대신 팀의 유일한 약점이던 불안한 수비가 발목을 잡았다.[* 1992년 당시 빙그레는 정규시즌(126경기)에서 132개의 실책을 기록했다.]
결국 이때 우승을 하지 못한 후 [[이정훈(1963)|이정훈]], [[장종훈]], [[이강돈]], 강정길 등 주축 멤버들의 전성기도 끝남과 동시에 빙그레의 [[리즈 시절]]도 끝나고 말았다. 이듬해인 1993년에는 5위로 추락하고 [[한화그룹]]의 회장직 승계과정에서 팀명도 한화로 바뀐 뒤 빙그레 시절의 강력함은 모두 잃어버리고 리그 중위권 팀으로 전전했다. 이글스가 첫 우승을 달성한 건 [[1999년 한국시리즈]]. 공교롭게도 상대팀도 [[경기는 삼성 쪽으로 기울고|삼성을 힘겹게 꺾고 올라온]] '''롯데'''였는데, 그들 상대로 승패 순서를 완벽하게 재현하면서[* OOXOO, 이때도 홈 3차전에서 유일한 패배를 기록했고 '''잠실'''에서 승부가 결정났다.] 되갚았다.
== 여담 ==
* 김영덕 감독과 롯데 자이언츠 그리고 [[강병철]]의 악연이 드러난 경기로,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었던 [[1984년 한국시리즈|1984년]]엔 '''져주기''' 신공으로 롯데를 택했다가 지고, 1992년에도 롯데에게 또 졌다. 특히나 두 번 다 김영덕 감독의 팀들이 롯데보다 전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2번 다 패배했다.
사실 이 둘은 사이가 좋았다. [[김인식]], [[이광환]], [[강병철]], [[김영덕]]은 [[한일은행 야구단]]의 선후배 사이로 끈끈한 사이였다.[* 이중 김인식, 이광환은 김영덕과 아직도 친분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빙그레 이글스의 차기감독을 약속하고 강병철을 수석코치로 데려온 김영덕이 물러나지 않자 둘 사이에 금이 갔다.[* 당시 빙그레는 감독파와 수석코치파가 나뉘어 있었을 정도.] 강병철이 롯데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다시는 마주치지 않는 남남이 되어버렸고 강병철은 한국시리즈에서 2번이나 김영덕을 물먹이는 데 성공한다. 그 이후, 1993시즌이 끝나고 [[한화 이글스]]는 김영덕 감독이 물러난 감독 자리에 후임감독으로 강병철 감독을 영입하게 된다.
* 빙그레는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는 동안 보너스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1983년 [[MBC 청룡]]의 경우처럼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4번째 한국시리즈인 만큼 보너스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고 줘도 늦지 않다는 구단과 페넌트레이스 우승 보너스는 줘야한다는 선수들 사이의 냉기류가 흐르며 분위기가 나빠졌다.
* 준플레이오프 통과팀 및 시즌 승률 3위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단 세 번의 시리즈 중 하나. 이후 [[두산 베어스]]가 [[2001년 한국시리즈]],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정규리그 1위 팀인 삼성을 상대로 업셋에 성공했다.
* 롯데는 준플레이오프를 투수 2명만 쓰고 끝낸 데 이어, 한국시리즈에서도 투수 '''4명'''만 쓰고 '''5경기'''를 했다.[* 1차전 박동희-염종석, 2차전 윤형배-윤학길, 3차전 윤학길(완투), 4차전 염종석-박동희, 5차전 윤형배-박동희 이 순서대로.]
* 강병철 감독은 1992년 포스트시즌에서 KBO리그의 손꼽히는 명장들인 김성근, 김응용, 김영덕 세 감독을 [[도장 깨기]]로 연달아 이기며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해태에 이어 두 번째로 2회 우승을 차지한 팀이 됐다.
* 롯데의 1984년과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모두 경험한 사람으로서는 [[강병철]] 감독, [[도위창]] 코치, [[김용희]] 코치[* 1984년은 선수로 1992년은 코치로 우승을 경험했다.][* 1995년에 감독으로 한국시리즈에 올라왔지만 준우승을 하였다. 만약 우승을 했으면 한팀에서 선수, 코치 그리고 감독으로 모두 우승하는 진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현재까지 KBO 리그 출신 감독 중에서 [[원 클럽 플레이어|한 팀에서 선수부터 코치, 감독으로 뛰면서]] 우승을 차례대로 경험한 사람은 [[김태형(1967)|김태형]] 딱 1명이다. 다만 [[2001년 한국시리즈]] 당시는 전업 코치가 아니라 플레잉코치였다.], 그리고 [[박영태]], [[김민호(1961)|김민호]], [[조성옥]] 선수가 있다. 만약 엔트리에 들지 못한 사람도 포함한다면 [[한문연]] 선수도 있다.
* 이 한국시리즈 경험자 중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사람은 송진우, 김민재, 전준호다. 모두 2009년에 은퇴했다.[* 김민재는 이해 플레이오프에서 대수비로 2경기 출장했고, 한국시리즈에 출전한적은 없다.]
* 롯데의 2번째 우승 이후 '''무려 28년 동안''' PK권 연고 프로야구단의 KS 우승 기록이 없었다가, [[2020년 한국시리즈]]에서 [[NC 다이노스]]가 우승하며 이 기록을 끊게 된다. [[이동욱(야구)|감독]]이 롯데 선수 출신인 것은 덤.[* 반면 (같은 경상도 연고 팀이지만) [[삼성 라이온즈|TK 연고 팀]]은 그 사이 KS 7회 우승을 달성했다.]
== 관련 문서 ==
* [[빙그레 이글스]]
* [[롯데 자이언츠/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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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한국프로야구 역대 포스트시즌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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