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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6월 14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65번째([[윤년]]일 경우 166번째) 날에 해당한다.
{{6월달력}}
{{특정날짜요일|6|14}}
== 사건 ==
* [[1381년]] - 영국의 [[리처드 2세]]가 [[영국 농민반란|농민반란]]의 지도자들을 만나다.
* [[1775년]] - [[미군]] 창설.
* [[1777년]] - 벳시 로스의 도안인 초기 미국의 국기가 2차 필라델피아 [[대륙 회의]]에서 채택됨.<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714495&cid=43938&categoryId=43956 <nowiki>[네이버 지식백과] 국기 (미국의 정부와 정치, 2004., 미국 국무부 |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과).</nowiki>]...성조기는 1777년 6월 14일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제2차 대륙회의에서 결의안 채택의 결과에서 유래한다. 결의안 내용: “미합중국 국기에는 적색과 백색의 13줄을 번갈아 두고, 합중국은 13개의 별로서 청색 바탕에 백색으로 새로운 집합체를 대표할 것으로 결의함.”뉴욕 시는 헌법비준과 함께 미국의 첫 수도가 되었다. 조지 워싱턴은 유서 깊은 시청 발코니에서 선서를 하고 미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ref>
* [[1800년]] - [[마렝고 전투]]-[[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하다.
* [[1907년]] - [[노르웨이]]가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다.
* [[1909년]] - [[소네 아라스케]]가 제2대 [[한국통감]]에 취임했다.
* [[1950년]] - [[대한민국]] [[유네스코]] 가입.
* [[1951년]] - 미국 인구 통계청에 [[UNIVAC I]] 도입.
* [[1982년]] - [[포클랜드 전쟁]]이 끝나다.
* [[1993년]] - [[서울특별시]]에서 [[한강 영화촬영 헬기 추락 사고]] 발생
* [[2013년]] - [[하산 로하니]]가 [[이란의 대통령]]으로 선출되다.
* [[2017년]] - 영국 런던의 24층 임대아파트 [[그렌펠 타워 화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다.
== 문화 ==
* [[2002년]] - 대한민국이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D조 1위를 차지해 [[FIFA 월드컵|월드컵]] 출전 48년 만에 처음으로 16강 진출.
* [[2009년]] -
**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제13회 [[동성애자]] [[축제]]에 350만명이 참가해 열렸다.
** [[일본]] [[나고야]] 인근의 고마키 파크 아레나에서 열린 제1회 동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허재]] 감독)이 일본(홈팀)과의 경기에서 68대 58로 우승했다.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가 [[올랜도 매직]]과의 [[미국 농구 협회]] 경기 결승에서 4승 1패로 우승했다. 팀 통산 15번째 우승이다.
* [[2010년]] -
**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f(x)]], 정규 1집 리패키지 "[[피노키오 (음반)|Hot Summer]]" 발매.
** [[일본]] 소행성 탐사선 [[제20호 과학위성 하야부사|하야부사]]에서 분리된 캡슐이 7년 1개월만에 [[오스트레일리아]] 남쪽 사막 지역에 착륙하다.
* [[2013년]] - 한국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이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350호 만루홈런을 날렸다.
== 탄생 ==
* [[1602년]] - 이탈리아 출신의 추기경, 정치가 [[쥘 마자랭]]. (~[[1661년]])
* [[1736년]] - 프랑스의 과학자 [[샤를 드 쿨롱]]. (~[[1806년]])
* [[1770년]] - 조선의 문신, 시인, 외교관 [[이현상 (1770년)|이현상]]. (~[[1822년]])
* [[1811년]] - 미국의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 (~[[1896년]])
* [[1856년]] - 러시아의 수학자 [[안드레이 마르코프]]. (~[[1922년]])
* [[1868년]] - 오스트리아의 생화학자 [[카를 란트슈타이너]]. (~[[1943년]])
* [[1870년]] - 그리스의 왕비 [[조피 폰 프로이센 왕녀]].
* [[1894년]] - 룩셈부르크 여대공 [[마리아델라이드]]. (~[[1924년]])
* [[1899년]] - 일본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1972년]])
* [[1903년]] - 미국의 수학자 [[알론조 처치]]. (~[[1995년]])
* [[190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지태]]. (~[[1982년]])
* [[1917년]] - 노르웨이의 수학자 [[아틀레 셀베르그]]. (~[[2007년]])
* [[1919년]] - 영국의 배우 [[준 스펜서]]. (~[[2024년]])
* [[1922년]] - 대한민국의 언론인, 국회의원 [[최세경]]. (~[[1997년]])
* [[1925년]] - 일본의 바둑 기사 [[후지사와 히데유키]]. (~[[2009년]])
* [[1928년]] - 아르헨티나 출신의 사회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 (~[[1967년]])
* [[1936년]] - 대한민국의 정치가 [[권정달]].
* [[1943년]] - 대한민국의 성우, 배우 [[조명남 (성우)|조명남]].
* [[1946년]] - 미국의 제45대 대통령, 전 부동산업자 [[도널드 트럼프]].
* [[1947년]] - 대한민국의 배우 [[홍순창]].
* [[1948년]] - 대한민국의 동양철학자 [[김용옥]].
* [[1949년]] - 잉글랜드의 음악가 [[앨런 화이트 (예스 드러머)|앨런 화이트]]. (~[[2022년]])
* [[1951년]] - 러시아의 영화 감독 [[알렉산드르 소쿠로프]].
* [[1957년]] - 미국의 소설가 [[모나 심프슨]].
* [[195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성낙인 (정치인)|성낙인]].
** 독일의 총리 [[올라프 숄츠]].
* [[196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정보석]].
* [[1965년]]
** 대한민국의 가수 [[장혜진 (가수)|장혜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고정식 (야구인)|고정식]].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윤상철]].
* [[1967년]] - 대한민국의 성우 [[전인배]].
* [[1968년]]
** 대한민국의 골프 선수 [[최경주]].
** 미국의 종합 격투기 선수이자 배우 [[테일러 윌리]]. (~[[2024년]])
* [[1969년]] - 대한민국의 가수, 싱어송라이터 [[김현철 (가수)|김현철]].
* [[1970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나운]].
* [[1971년]]
** 일본의 배우 겸 희극인 [[마에다 켄]].
** 일본의 야구 선수 [[마에다 도모노리]].
* [[197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장진영 (배우)|장진영]]. (~[[2009년]])
* [[197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서린]].
* [[1976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해준]].
** 일본의 성우 [[미즈시마 타카히로]].
* [[1977년]]
** 대한민국의 배우 [[홍수민 (1977년)|홍수민]].
** 대한민국의 만화가 [[임달영]].
* [[197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지은 (1978년)|이지은]].
* [[1981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박은태]].
* [[198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서재경]].
** 중국의 피아니스트 [[랑랑]].
* [[1983년]]
** 일본의 배우 [[벳푸 아유미]].
** 일본의 배우 [[아라키 히로후미]].
** 프랑스의 배우 [[루이 가렐]].
* [[1984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나주환]].
** 대한민국의 배우 [[이인 (배우)|이인]].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성원 (희극인)|김성원]].
* [[1989년]] - 미국의 배우, 가수 [[루시 헤일]].
* [[199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송다은 (배우)|송다은]].
** 그리스의 축구 선수 [[코스타스 마놀라스]].
** 잉글랜드의 가수 [[제시 넬슨 (가수)|제시 넬슨]].
* [[1992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신아 (1992년)|박신아]].
** 대한민국의 래퍼 [[노스페이스갓]].
* [[1994년]]
** 대한민국의 가수 [[태일 (1994년)|태일]] ([[NCT (음악 그룹)|NCT]]).
** 대한민국의 배드민턴 선수 [[이소희 (배드민턴 선수)|이소희]].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한선태]].
** 일본의 펜싱 선수 [[야마다 마사루]].
* [[1995년]] - 대한민국의 가수 [[최찬이]] ([[더 맨 블랙]]).
* [[1998년]]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박건호 (바둑 기사)|박건호]].
** 일본의 배우 [[나카가와 타이시]].
* [[1999년]]
** 대만의 가수 [[쯔위]] ([[트와이스]]).
** 대한민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김민석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김민석]].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유신 (1999년)|김유신]].
* [[2000년]]
** 대한민국의 배우 [[남대정]].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창평]].
* [[2001년]] - 대한민국의 가수 [[숨비]].
* [[2003년]]
** 대한민국의 가수 세은 ([[스테이씨]]).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세민 (야구 선수)|김세민]].
* [[2013년]] - 대한민국의 아역 배우 [[유준후]].
== 사망 ==
* [[918년]] - 후고구려의 군주 [[궁예]]. ([[869년]]~)
* [[1692년]] - 조선의 소설가 [[김만중]]. ([[1637년]]~)
* [[1920년]] - 독일의 사회경제학자 [[막스 베버]]. ([[1864년]]~)
* [[1944년]] - 나치 독일의 군인 [[프리츠 비트]]. ([[1908년]]~)
* [[1946년]] - 영국의 TV 발명가 [[존 로지 베어드]]. ([[1888년]]~)
* [[1967년]] - 미국의 체육 선수 [[에디 이건]]. ([[1897년]]~)
* [[1986년]] -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1899년]]~)
* [[1986년]] - 대한민국의 건축가 [[김수근]]. ([[1931년]]~)
* [[1991년]] - 영국의 배우 [[페기 애시크로프트]]. ([[1907년]]~)
* [[1995년]] - 미국의 환상소설가·과학소설가 [[로저 젤라즈니]]. ([[1937년]]~)
* [[1996년]] - 미국의 재즈 가수 [[엘라 피츠제럴드]]. ([[1917년]]~)
* [[2007년]] - 유엔의 제4대 사무총장이자 오스트리아의 제9대 대통령 [[쿠르트 발트하임]]. ([[1918년]]~)
* [[2015년]] -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가 [[차오스]]. ([[1924년]]~)
* [[201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형우]]. ([[1921년]]~)
* [[2020년]] - 인도의 영화배우 [[수샨트 싱 라즈풋]]. ([[1986년]]~)
* [[2021년]] - 니카라과의 제53대 대통령 [[엔리케 볼라뇨스]]. ([[1928년]]~)
== 기념일 ==
* 국기의 날(Flag Day): [[미국]]
* [[세계 헌혈자의 날]](World Blood Donor Day)
* [[:en:Sepandārmazgān|여성의 날]](Women's Day): [[이란]]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6월 13일]] 다음날: [[6월 15일]] - 전달: [[5월 14일]] 다음달: [[7월 14일]]
* 음력: [[음력 6월 14일|6월 14일]]
* [[366일|모두 보기]]
== 각주 ==
{{각주}}
{{열두달}}
[[분류:6월 14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6월 15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66번째([[윤년]]일 경우 167번째) 날에 해당한다.
{{6월달력}}
{{특정날짜요일|6|15}}
== 사건 ==
* [[기원전 763년]] - [[메소포타미아]] 역사의 연대기를 수정하는 데 사용되었던 [[일식]]을 [[아시리아|아시리아인]]들이 기록하다.
* [[844년]] - [[루트비히 2세 (이탈리아)|루트비히 2세]]가 [[교황 세르지오 2세]]에 의해 [[이탈리아의 군주|이탈리아의 왕]]이 되다.
* [[1215년]] - [[마그나 카르타]]가 승인되다.
* [[1389년]] - [[세르비아]]와 [[오스만 제국]]간의 [[코소보 전투|제 1차 코소보 전투]]가 벌어진다.
* [[1667년]] - [[루이 14세]]의 주치의인 [[진 데니스]]가 어린 양의 피를 인간에게로 [[수혈]]을 하다.
* [[1752년]] - [[벤저민 프랭클린]]이 [[번개]]가 [[전기]]라는 것을 밝혀내다.
* [[1888년]] - [[빌헬름 2세]]가 즉위하다.
* [[1960년]] -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의 헌정사#%EC%A0%9C3%EC%B0%A8%20%ED%97%8C%EB%B2%95%EA%B0%9C%EC%A0%95|제3차 헌법개정]]이 이루어졌다.
* [[1977년]] - [[스페인]]에서 첫 민주주의 선거를 하며 [[스페인의 민주화|민주화]]를 향해 가다.
* [[1985년]] - [[예르미타시 미술관]]에 전시중이던 [[렘브란트]]의 그림 다나에가 칼과 황산에 의해 훼손되다.
* [[1999년]] - [[제1연평해전]] 발생.
* [[2000년]] -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이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하다.
* [[2006년]] -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회장은 [[2008년]] 7월부터 일상적인 회사업무에서 손을 떼고 자선사업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 [[2009년]] - [[영국]] [[바클레이즈]] 그룹의 자산운용사 '바클레이즈 글로벌 인베스터스(BGI)'가 [[미국]]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에 3억8천만 파운드(한화 약 7천873억원)에 매각 되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넷판이 전했다.
* [[2011년]] - [[대한민국]]에서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서방사)가 창설되다.
* [[2014년]] - [[케냐]] [[라무 섬]] 인근 해안 소도시 [[음페케토니]]에서 테러가 발생해 48명이 사망하였다.
== 문화 ==
* [[1954년]] - [[유럽 축구 연맹]]이 [[스위스]] [[바젤]]에서 결성되었다.
* [[2004년]] - [[한국 정교회]]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청]]의 결정에 따라 수도 대교구로 승격됐다.
* [[2018년]] - 게임 [[어몽 어스]]가 출시되다.
* [[2020년]] -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SK텔레콤]]의 2G CDMA 서비스 종료를 승인하였다.
== 탄생 ==
* [[1330년]] -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의 장남 [[에드워드 흑태자]]. (~[[1376년]])
* [[1569년]] - 조선의 의사, 관료 [[이희헌 (조선)|이희헌]]. (~[[1651년]])
* [[1594년]] - 프랑스의 화가 [[니콜라 푸생]]. (~[[1665년]])
* [[1843년]] - 노르웨이의 작곡가 겸 피아노 연주자 [[에드바르 그리그]]. (~[[1907년]])
* [[1900년]] - 대한민국의 첫 번째 영부인 [[프란체스카 도너]]. (~[[1992년]])
* [[1914년]] - 소련의 정치인 [[유리 안드로포프]]. (~[[1984년]])
* [[1926년]] - 일본의 아이누 문화 연구가 [[가야노 시게루]]. (~[[2006년]])
* [[1930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함태호]]. (~[[2016년]])
** 다게스탄 공화국의 제1대 대통령 [[마고메달리 마고메도프]]. (~[[2022년]])
* [[1936년]] - 프랑스의 영화배우 [[클로드 브라쇠르]]. (~[[2020년]])
* [[1939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정장현]]. (~[[2021년]])
* [[1934년]] - 대한민국의 만화가 [[정운경 (만화가)|정운경]]. (~[[2023년]]) (~[[2021년]])
* [[1940년]]
**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김도언 (1940년)|김도언]].
** 대한민국의 배우 [[최불암]].
* [[1946년]]
** 대한민국의 성우 [[기영도]].
** 네덜란드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요하네스 본프레러]].
* [[1949년]] - 미국의 배우 [[짐 바니]]. (~[[2000년]])
* [[1951년]] - 과테말라의 제47대 대통령 [[알바로 콜롬]]. (~[[2023년]])
* [[1953년]]
** 중국의 최고지도자, 공산당 총서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 [[시진핑]].
**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전순옥]].
* [[1954년]]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허장회]].
* [[1957년]] -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이규형 (1957년)|이규형]]. (~[[2020년]])
* [[1961년]] - 대한민국의 기자 출신 정치인 [[민형배]].
* [[1963년]] - 미국의 배우 [[헬렌 헌트]].
* [[196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혜훈]].
** 덴마크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미카엘 라우드루프]].
** 미국의 배우 [[코트니 콕스]].
** 대한민국의 가수 [[류계영]].
* [[196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전해룡]].
* [[1967년]] - 일본의 성우 [[우에다 유지]].
* [[196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오달수]].
* [[1969년]]
** 독일의 전 축구 선수 [[올리버 칸]].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장원진]].
** 미국의 래퍼, 배우 [[아이스 큐브]].
* [[197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조민희 (배우)|조민희]].
* [[1971년]] - 대한민국의 농구코치 [[위성우]].
* [[1972년]] - 오스트레일리아의 배우 [[포피 몽고메리]].
* [[1973년]] - 미국의 배우 [[닐 패트릭 해리스]].
* [[1979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최환인]].
* [[1980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염기정]].
* [[1981년]]
** 대한민국의 뮤직 비디오 감독 [[쿨케이]].
** 일본의 배우 [[쿠보타 유키]].
** 대한민국의 가수 [[박시연 (가수)|박시연]].
* [[1982년]] - 대한민국의 VJ 월리.
* [[198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성태준]].
** 대한민국의 성악가 [[고훈정]].
* [[1984년]]
** 미국의 야구 선수 [[팀 린스컴]].
** 대한민국의 배우 [[조용준 (배우)|조용준]].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영우 (축구 선수)|김영우]].
* [[1985년]]
** 대한민국의 의사 [[민혜연]].
** 대한민국의 희극인, 가수 [[권영기]].
* [[1986년]] - 미국의 배우 [[스토야]].
* [[1987년]]
** 대한민국의 가수 [[성모 (가수)|성모]] ([[초신성 (음악 그룹)|초신성]]).
** 미국의 야구 선수 [[조쉬 린드블럼]].
* [[1988년]]
** 스웨덴의 축구 선수 [[한나 폴케손]].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김보경 (아나운서)|김보경]].
* [[1989년]] - 대한민국의 가수 지유 ([[투엑스]]).
* [[199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조혜진 (1990년)|조혜진]].
* [[1991년]] - 일본의 배우 [[다케다 리나]].
* [[1992년]] - 이집트의 축구 선수 [[모하메드 살라]].
* [[1993년]]
** 일본의 전 가수 [[아리하라 간나]] ([[℃-ute|°C-ute]]).
** 대한민국의 래퍼 [[비와이]].
** 스페인의 배드민턴 선수 [[카롤리나 마린]].
* [[1994년]]
** 일본의 배우 [[히다카 리나]].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유혜인]].
** 대한민국의 가수 [[여린 (1994년)|여린]].
** 미국의 펜싱 선수 [[리 키퍼]].
** 베네수엘라의 테니스 선수, 모델 [[미셸 베르톨리니]].
* [[1995년]]
** 대한민국의 래퍼 [[버피 (래퍼)|버피]] ([[매드타운]]).
** 케냐의 육상 선수 [[이매뉴얼 코리르]].
** 대한민국의 유튜버 [[문복희]].
* [[1996년]]
** 노르웨이의 싱어송라이터 [[오로라 (가수)|오로라]].
** 대한민국의 가수 [[호시]] ([[세븐틴 (음악 그룹)|세븐틴]]).
* [[1997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거연]].
* [[1998년]]
** 대한민국의 가수 [[임지수]].
** 대한민국의 스포츠 지도자 [[정민 (프로게이머)|정민]].
* [[1999년]]
** 대한민국의 가수 더쇼 MC [[여상 (가수)|강여상]] ([[에이티즈]]).
** 중화인민공화국의 다이빙 선수 [[천이원]].
* [[2000년]] - 대만의 첼로 연주자 [[어우양나나]].
* [[2004년]] - 미국의 배우 [[스털링 제린스]].
== 사망 ==
* [[1341년]] - 동로마 제국의 황제 [[안드로니코스 3세]]. ([[1297년]]~)
* [[1383년]] - 동로마 제국의 황제 [[요안니스 6세]]. ([[1292년]]~)
* [[1849년]] - 미국의 제11대 대통령 [[제임스 K. 포크]]. ([[1795년]]~)
* [[1861년]] - 조선의 가톨릭 신부 [[최양업]]. ([[1821년]]~)
* [[1888년]] - 독일 제국의 제2대 황제 겸 프로이센 왕국 [[프리드리히 3세 (독일 황제)|프리드리히 3세]]. ([[1831년]]~)
* [[1889년]] - 루마니아의 시인 [[미하이 에미네스쿠]]. ([[1850년]]~)
* [[1971년]] - 미국의 화학자 [[웬들 메러디스 스탠리]]. ([[1904년]]~)
* [[198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영호 (1913년)|이영호]]. ([[1913년]]~)
* [[1994년]] - 대한민국의 화가 [[박영선 (화가)|박영선]]. ([[1910년]]~)
* [[2000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환성]]. ([[1981년]]~)
* [[2002년]] - 태권도의 창시자 [[최홍희]]. ([[1918년]]~)
* [[2013년]] - 제2차 세계대전의 유일한 소련군 조선인 참전자 [[정상진 (1918년)|정상진]]. ([[1918년]]~)
* [[2019년]] -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정치인 [[프란코 체피렐리]]. ([[1923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아이스하키선수 [[조민호 (아이스하키 선수)|조민호]]. ([[1987년]]~)
* [[2022년]] - 미국의 영화배우 [[모린 아서]]. ([[1934년]]~)
* [[2022년]] - 일본의 시인 [[모리사키 가즈에]]. ([[1927년]]~)
* [[2023년]] - 잉글랜드의 영화배우 [[글렌다 잭슨]]. ([[1936년]]~)
* [[2024년]] - 이탈리아의 축구인 [[케빈 캠벨]]. ([[1970년]]~)
== 기념일 ==
* [[:en:Global Wind Day|세계 풍력의 날]]
* [[:en:Public_holidays_in_Denmark|리유니온 데이]]([[:en:Flag Day|국기의 날]]): [[덴마크]] [[덴마크의 발데마르 2세|발데마르 2세]]가 1219년 [[:en:Battle of Lyndanisse|린다니스 전투]]에서 승전한 것을 기념하는 날.
* [[:en:List_of_U.S._states_by_date_of_statehood|연방편입일]]: [[아칸소주]]
* [[:en:Arbor_Day|식목일]]: [[코스타리카]]
* [[:en:Public_holidays_in_the_Philippines#Local_holidays|카가얀데오로 헌장의 날]]: [[필리핀]] [[카가얀데오로]]
* [[노인 학대|노인 학대 예방의 날]]: 대한민국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6월 14일]] 다음날: [[6월 16일]] - 전달: [[5월 15일]] 다음달: [[7월 15일]]
* 음력: [[음력 6월 15일|6월 15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6월 15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6월 16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67번째(윤년일 경우 168번째) 날에 해당한다.
{{6월달력}}
{{특정날짜요일|6|16}}
== 사건 ==
* [[1397년]] - [[조선]], 각도의 병마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를 없애고 각 진(鎭)에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설치하였다. ([[음력 5월 21일]])
* [[1592년]] - [[옥포 해전]]이 일어났다.
* [[1846년]] - [[교황 비오 9세]]가 255대 로마 교황에 취임했다.
* [[1897년]] - [[미국]]과 [[하와이]] 간의 합병 조약이 체결됐다.
* [[1903년]] - [[로알 아문센|아문센]]의 [[북서항로]] 개척이 시작되다.
* [[1931년]] - [[사이토 마코토]]가 [[조선총독]]에서 물러났다.
* [[1987년]] - [[극동호 화재]] 사고가 일어났다.
* [[2014년]] - 쌍둥이 토네이도(Twin Tornadoes)가 미국 [[네브래스카주]] 북동부 [[:en:Pilger, Nebraska|필거]](Pilger) 마을을 강타,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다.
* [[2020년]] -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의해서 폭파되다.
== 문화 ==
* [[1461년]] - [[세조 (조선)|세조]]의 명으로 [[간경도감]]이 설치되다.
* [[1903년]] - [[포드 자동차 회사]]가 세워지다.
* [[1911년]] - [[IBM]]의 전신인 [[전산제표기록회사]](CTR)가 세워지다.
* [[1924년]] - [[황푸 군관학교]]가 세워지다.
* [[1952년]] - [[한국항공대학교]]가 세워지다.
* [[1963년]] -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 소련의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는 우주선 보스토크 6호를 타고 지구를 48바퀴, 70시간 50분 동안 비행하다.
* [[2004년]] - 디지털정보 보존 운동 [[e하루616]]이 시작되다.
* [[2016년]]
** 걸그룹 [[포미닛]]이 데뷔 7년만에 전격 해체되었다.
** [[상하이 디즈니랜드]]가 개장하다.
* [[2018년]] - [[수도권 전철 서해선]] [[소사역]] ~ [[원시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 [[2022년]] - [[누리호]] 2차 시험 발사
== 탄생 ==
* [[1313년]] - 이탈리아의 소설가 [[조반니 보카치오]]. (~[[1375년]])
* [[1756년]] - 러시아의 푸카초프 반란 지도자 [[살라와트 율라예프]]. (~[[1800년]])
* [[1862년]] - 대한민국 최초의 종합대학교 숭실대학교의 설립자, 초대 학장 [[윌리엄 M. 베어드]]. (~[[1931년]])
* [[189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도연 (1894년)|김도연]]. (~[[1967년]])
* [[1902년]] - 미국의 세포유전학자 [[바버라 매클린톡]]. (~[[1992년]])
* [[1920년]] - 미국의 언론인 [[존 하워드 그리핀]]. (~[[1980년]])
* [[1926년]] - 과테말라의 정치인, 군인, 대통령 [[에프라인 리오스 몬트]]. (~[[2018년]])
* [[1929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최명헌]]. (~[[2023년]])
* [[1930년]] -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 [[오자복]]. (~[[2017년]])
* [[1931년]] -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 [[이광노]]. (~[[2016년]])
* [[1934년]] - 미국의 배우 [[빌 코브스]]. (~[[2024년]])
* [[1937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조기상]]. (~[[2021년]])
** 불가리아의 마지막 국왕이자 총리 [[시메온 삭스코부르크고츠키]].
* [[1949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백성운]].
* [[1957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유정복]].
* [[195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성우 [[이경영 (1958년)|이경영]].
* [[1959년]] - 미국의 전 프로레슬링 선수 [[얼티미트 워리어]].
* [[1960년]] - 대한민국의 프로듀서 [[김영희 (1960년)|김영희]].
* [[1962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축구 감독 [[손웅정]].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대현 (1962년)|김대현]]. (~[[1988년]])
* [[1965년]] - 대한민국의 변호사 [[이인형]].
* [[1966년]] - 체코의 창 던지기 선수 [[얀 젤레즈니]].
* [[1967년]] - 독일의 전 축구 선수, 축구 감독 [[위르겐 클로프]].
* [[1969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박재용]].
** 미국의 래퍼 [[MC 렌]].
* [[197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진도희 (1971년)|진도희]].
** 미국의 래퍼 겸 영화배우 [[투팍 샤커]]. (~[[1996년]])
* [[1972년]]
** 미국의 배우 [[존 조]].
** 미국의 소설가 [[앤디 위어]].
* [[1973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백현주]].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설종진]].
** 카메룬의 전직 축구 선수 [[미셸 펜세]].
* [[1974년]] - 영국의 배우 [[조셉 메이]].
* [[1977년]] - 대한민국의 전 배우 [[유민 (1977년)|유민]].
* [[1978년]] - 독일의 배우 [[다니엘 브륄]].
* [[1983년]]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이현민 (농구 선수)|이현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신영 (축구 선수)|김신영]].
** 대한민국의 기업인 [[김슬아]].
* [[1984년]]
** 대한민국의 펜싱 선수 [[전희숙]].
** 미국의 야구 선수 [[조너선 브록스턴]].
* [[1985년]]
** 대한민국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박빛나]].
** 대한민국의 배우 [[강민정 (1985년)|강민정]].
** 대한민국의 프로게이머 [[지영훈 (프로게이머)|지영훈]].
* [[1986년]]
** 대한민국의 가수 [[하주연]] ([[쥬얼리]]).
**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 [[페르난도 무슬레라]].
** 미국의 배우 [[캣 데닝스]].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고새롬]].
* [[1987년]]
** 대한민국의 성소수자 [[최한빛]].
** 미국의 가수 [[다이애나 디가모]].
* [[1988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김나연 (아나운서)|김나연]].
** 대한민국의 가수, 싱어송라이터 [[G.Soul]].
* [[1991년]]
** 대한민국의 가수 [[신우]].
**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임영웅]].
** 우즈베키스탄의 복싱 선수 [[파즐리딘 가이브나자로프]].
**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한태인]].
** 필리핀의 사회자, 배우, 가수 [[라이언 방]].
* [[1992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태희 (1992년)|이태희]].
** 대한민국의 힙합 [[투탁]].
* [[1993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보검]].
* [[1994년]] - 대한민국의 수영 선수 정동원.
* [[1995년]]
** 대한민국의 가수 [[기희현|희현]].
** 대한민국의 배우 [[주다영]].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이우정 (농구 선수)|이우정]].
** 일본의 배우 [[아카오 히카루]].
* [[1996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강다은]].
** 일본의 배우 [[사토 칸타]].
* [[1997년]]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소드 (프로게이머)|소드]].
**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재넌]].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진성 (1997년)|김진성]].
** 일본의 양궁 선수 [[가와타 유키]].
** 미국의 모델, 배우 [[카밀라 모로네]].
** 뉴질랜드의 배우 [[KJ 아파]].
** 프랑스의 축구 선수 [[장케뱅 오귀스탱]].
* [[1998년]] - 일본의 축구 선수 [[도안 리쓰]].
* [[1999년]]
** 대한민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김민선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김민선]].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홍현석]].
** 중국 태생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쉬후이 (축구 선수)|쉬후이]].
* [[2000년]] - 중국의 가수, 래퍼 [[판청청]].
* [[2001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명현]].
* [[2002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의리]].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강현구 (야구 선수)|강현구]].
** 콩고 민주 공화국의 방송인 [[파트리샤 욤비]].
* [[2005년]]
**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송지아.
** 일본의 아이돌 [[타시로 스미레]].
== 사망 ==
* [[1926년]] - 일제강점기의 정치인 [[나수연]]. (1861년~)
* [[1958년]] - 헝가리의 정치인 [[너지 임레]]. (1896년~)
* [[1968년]] - 대한민국의 시인 [[김수영 (1921년)|김수영]]. (1921년~)
* [[1977년]] - 대한민국의 물리학자 [[이휘소]]. (1935년~)
* [[1977년]] - 미국의 로켓과학자 [[폰 브라운]]. (1912년~)
* [[2004년]] - 태국의 정치인 [[타놈 끼띠카쫀]]. (1911년~)
* [[2006년]] - 대한민국의 배우 [[한영숙 (성우)|한영숙]]. (1951년~)
* [[2017년]]
** 독일의 정치인 [[헬무트 콜]]. (193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윤소정 (배우)|윤소정]]. (1944년~)
* [[2022년]] - 미국의 만화가 [[팀 세일]]. (1956년~)
* [[2023년]]
** 일본의 야구해설가 [[기타벳푸 마나부]]. (1957년~)
** 미국의 경제학자 [[대니얼 엘즈버그]]. (1931년~)
** 대한민국의 의사 [[주석중]]. (1962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조각가 [[권경숙 (1927년)|권경숙]]. (1927년~)
** 미국의 육상선수 [[로버트 슐]]. (1937년~)
**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 [[천정가오]]. (1952년~)
== 기념일 ==
* [[:en:International Day of the African Child|아프리카 어린이의 날]]
* [[:en:Youth_Day|청소년의 날]]: [[남아프리카 공화국]]
* [[:en:Sussex Day|서섹스 데이]]: [[:en:Sussex|서섹스]]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6월 15일]] 다음날: [[6월 17일]] - 전달: [[5월 16일]] 다음달: [[7월 16일]]
* 음력: [[음력 6월 16일|6월 16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6월 16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6월 17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68번째([[윤년]]일 경우 169번째) 날에 해당한다.
{{6월달력}}
{{특정날짜요일|6|17}}
== 사건 ==
* [[1291년]] - 술탄 [[:en:Al-Ashraf Khalil|알 아슈라프 칼릴]]이 이끄는 무슬림 군대가 십자군의 최후 거점 도시인 [[아크레]]를 함락하다.
* [[1462년]] - [[가시 공작 블라드|블라드 3세]]가 [[:en:The Night Attack|야간 공격]](the night attack)으로 [[메흐메트 2세]]의 암살을 시도하고 [[왈라키아]]로부터 그의 군대를 축출하다.
* [[1863년]] - [[미국 남북전쟁]] 중 [[게티즈버그 전역]]: [[앨디 전투]]
* [[1863년]] - [[미국 남북전쟁]] 중 [[게티즈버그 전역]]: [[미들버그 전투]] ( ~ 6월 19일)
* [[1895년]] - [[대만총독부]]가 세워졌다.
* [[1931년]] - [[우가키 가즈시게]]가 제6대 [[조선총독]]으로 취임했다.
* [[1953년]] - [[:en:Kirov wolf attacks|키로프 늑대 공격]](Kirov wolf attacks)이 한 아이(Sasha Grachev)를 공격한 것을 마지막으로 끝나다.
* [[1953년]] - [[1953년 동독 봉기]]가 일어났다.
* [[1972년]] -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사임의 계기가 되었던 [[워터게이트 사건]]이 일어났다.
* [[2008년]] - [[강화도 모녀 납치 살해 사건]]이 일어났다.
* [[2011년]] - [[인천광역시]] [[교동도]]에서 [[해병대 민항기 오인 사격 사건]] 발생.
* [[2014년]] - [[나이지리아]] 중부 [[플래토주]]에서 무장괴한이 마을 습격을 피해 무슬림 주민들이 탄 배가 전복을 해서 100명이 사망하였다.
== 문화 ==
* [[1906년]] - [[만세보]]가 창간됐다.
* [[1954년]]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첫 월드컵 경기가 개최되었고, 이 경기에서 [[헝가리]]에게 9:0으로 패배하였다.
* [[2021년]] - [[인천공항]] 제 4활주로가 개통되었다.
== 탄생 ==
* [[1239년]] - 잉글랜드의 국왕 [[에드워드 1세]]. (~[[1307년]])
* [[1818년]] - 프랑스의 작곡가 [[샤를 구노]]. (~[[1893년]])
* [[1882년]] - 러시아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1971년]])
* [[1888년]] - 나치 독일의 상급대장 [[하인츠 구데리안]]. (~[[1954년]])
* [[1898년]] - 네덜란드의 판화가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1972년]])
* [[1900년]] - 나치 독일의 정치가 [[마르틴 보어만]]. (~[[1945년]])
* [[1920년]] - 일본의 영화배우 [[하라 세츠코]]. (~[[2015년]])
* [[1936년]] - 영국의 영화감독 [[켄 로치]].
* [[194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음악가 [[차도균]].
**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 애컬로프]].
* [[1942년]] - 이집트의 법학자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 [[1943년]] - 미국의 가수 [[배리 매닐로우]].
* [[1945년]] - 대한민국의 천주교 수녀이자 시인 [[이해인 (수녀)|이해인]].
* [[1959년]] - 일본의 성우 [[야오 카즈키]].
* [[1960년]] - 미국의 배우 [[토머스 헤이든 처치]].
* [[196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한위]].
** 프랑스의 배우 [[드니 라방]].
** 일본의 성우, 배우 [[야마데라 코이치]].
* [[1963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민경욱]].
** 대한민국의 권투 선수 [[신준섭]].
** 미국의 배우 [[그레그 키니어]].
* [[1965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유상호]].
** 대한민국의 배우 박현. (~[[2024년]])
* [[1966년]] - 대한민국의 배우 [[라재웅]].
* [[1969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임수혁]]. (~[[2010년]])
* [[1971년]] - 멕시코의 가수, 배우 [[파울리나 루비오]].
* [[1974년]] - 미국의 랩퍼 [[크레이지 본]].
* [[1975년]] - 스페인의 축구 선수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
* [[1978년]]
** 대한민국의 전 가수 [[김무경]] ([[유비스]]).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축구 지도자 [[기우성 (축구인)|기우성]].
* [[1979년]] - 대한민국의 가수 [[강지]].
* [[1980년]] - 미국의 테니스 선수 [[비너스 윌리엄스]].
* [[198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조한선]].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강영식 (야구 선수)|강영식]].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최지해]].
* [[1982년]]
** 영국의 성우 겸 배우 [[아서 다빌]].
** 영국의 배우 [[조디 휘태커]].
* [[1983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오원종]].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서성종]].
** 일본의 가수, 배우 [[니노미야 카즈나리]]. ([[아라시 (음악 그룹)|아라시]])
** 일본의 배우 [[카자마 슌스케]].
* [[1984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류근지]].
* [[1985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이승현 (아나운서, 1985년)|이승현]].
** 대한민국의 봅슬레이 선수 [[원윤종]].
** 대한민국의 배우 [[이현욱 (배우)|이현욱]].
* [[1986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유원상]].
* [[1987년]]
** 일본의 전 가수, 배우 [[쯔지 노조미]].
** 미국의 힙합 가수 [[켄드릭 라마]].
* [[198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전혜진 (1988년)|전혜진]].
* [[1990년]]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조던 헨더슨]].
* [[1991년]]
** 대한민국의 배우 [[문동혁]].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장민철]].
** 대한민국의 디자이너 [[김현지 (디자이너)|김현지]].
** 일본의 배우 [[하루 (배우)|하루]].
* [[199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서아]].
** 중화인민공화국의 펜싱 선수 [[쑨이원]].
* [[1993년]] - 대한민국의 치어리더 출신 필라테스 강사 [[장세희 (치어리더)|장세희]].
* [[1994년]]
** 대한민국의 가수 [[현신영]].
** 대한민국의 배우 [[이승일 (배우)|이승일]].
** 벨라루스의 레슬링 선수 [[이리나 쿠라치키나]].
* [[1995년]] - 프랑스의 축구 선수 [[클레망 랑글레]].
* [[199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최성은]].
** 대한민국의 가수 [[옐로 (가수)|옐로]].
* [[1997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정보민]].
** 대한민국의 배우 [[이은재 (배우)|이은재]].
* [[1999년]] - 대한민국의 배우 현서.
* [[200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용승 (가수)|용승]].
** 미국의 육상 선수 [[마사이 러셀]].
* [[2001년]]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유리언 팀버르]].
* [[2002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영빈]].
* [[2004년]] - 일본의 배우, 가수 [[스즈키 후쿠]].
* [[2005년]] - 일본의 스케이트보드 선수 [[나카야마 후나]].
== 사망 ==
* [[676년]] - 제77대 로마의 교황 [[교황 아데오다토 2세]]. ([[621년]]~)
* [[1031년]] - 고려의 제8대 국왕 [[현종 (고려)|현종]]. ([[992년]]~)
* [[1631년]] - [[샤 자한]]의 아내 [[뭄타즈 마할]]. ([[1593년]]~)
* [[1649년]] - 조선의 16대 국왕 [[인조 (조선)|인조]]. ([[1595년]]~)
* [[1696년]] - 폴란드의 국왕 [[얀 3세 소비에스키]]. ([[1629년]]~)
* [[1734년]] - 프랑스 [[루이 14세]]시대의 장군 [[클로드루이엑토르 드 빌라르 공작|클로두루이엑토르 드빌라르 공작]]. ([[1653년]]~)
* [[1889년]] - 웨일스의 기업인 [[존 휴스 (기업인)|존 휴스]]. ([[1814년]]~)
* [[1968년]] - 우루과이의 전 축구 선수 [[호세 나사시]]. ([[1901년]]~)
* [[1995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김동리]]. ([[1913년]]~)
* [[2002년]] - 독일의 전 축구 선수 [[프리츠 발터]]. ([[1920년]]~)
* [[2004년]] -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가 [[전부일 (1924년)|전부일]]. ([[1924년]]~)
* [[2008년]] - 일본의 범죄자 [[미야자키 쓰토무]]. ([[1962년]]~)
* [[2009년]] - 대한민국의 정치가 [[조세형 (1931년)|조세형]]. ([[1931년]]~)
* [[2015년]] - 터키의 제9대 대통령 [[쉴레이만 데미렐]]. ([[1924년]]~)
* [[2018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태호 (희극인)|김태호]]. ([[1967년]]~)
**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 [[조남기]]. ([[1927년]]~)
* [[2019년]] - 이집트의 제5대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 ([[1951년]]~)
* [[2020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홍사덕]]. ([[1943년]]~)
** 브라질의 지도자 [[파울리뉴 파이아캉]]. ([[1953년]]~)
* [[2021년]] - 잠비아의 제1대 대통령 [[케네스 카운다]]. ([[1924년]]~)
* [[2022년]] - 프랑스의 영화배우 [[장루이 트랭티냥]]. ([[1930년]]~)
* [[2024년]] - 이탈리아의 군인 [[클라우디오 그라치아노]]. ([[1953년]]~)
== 기념일 ==
* [[:en:World_Day_to_Combat_Desertification_and_Drought|세계 사막화 방지의 날]]
* [[:en:Icelandic National Day|독립기념일]]: [[아이슬란드]]
* [[:en:Bunker_Hill_Day#Commemorations|벙커힐 데이]]: [[:en:Suffolk_County,_Massachusetts|서포크 카운티 매사추세츠 주]]
* [[:en:Occupation of the Latvian Republic Day|라트비아 공화국 점령일]]: 1940년 소련의 라트비아 점령을 상기하는 날, [[라트비아]]
* [[:en:Zemla Intifada|Zemla Intifada Day]]: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
*
== 같이 보기 ==
* 전날: [[6월 16일]] 다음날: [[6월 18일]] - 전달: [[5월 17일]] 다음달: [[7월 17일]]
* 음력: [[음력 6월 17일|6월 17일]]
* [[366일|모두 보기]]
{{위키공용분류}}
{{열두달}}
[[분류:6월 17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6월 18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69번째([[윤년]]일 경우 170번째) 날에 해당한다.
{{6월달력}}
{{특정날짜요일|6|18}}
== 사건 ==
* [[618년]] - [[당 고조|이연]]이 [[당나라]]를 건국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다.
* [[1815년]]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뒤 황제의 지위를 잃다.
* [[1895년]] - [[조선]]의 [[조선의 행정 구역|지방제도]]에서 [[팔도|8도]]를 폐지(칙령 제97호)하고 [[이십삼부|23부]]로 개편하는 칙령(칙령 제98호)이 반포되다.
* [[1946년]] 조선총독부 간부 테에세에 카나라즈 (일본명 丁 性必) 조선 광복 이후 은신하다가 민중들에게 잡혀 맞아서 객사
* [[1953년]] -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통일 없는 정전"에 반대하며 반공포로석방을 단행하다.
* [[2012년]] - [[:en:Salman_bin_Abdul-Aziz_Al_Saud|살만 빈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로 임명되다.
* [[2018년]] - [[세계 보건 기구]](WHO)에서 질병 부문에서 [[트랜스젠더]]를 삭제하다.
* [[2021년]] - [[이란]]에서 13대 대선이 열리다.
== 문화 ==
* [[1981년]] - 미국 공군의 [[스텔스기]] [[F-117 나이트호크]]가 첫비행에 성공했다.
* [[2002년]] - [[2002년 FIFA 월드컵]] 16강전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설기현]]의 동점골과 [[안정환]]의 골든골로(2:1) 격파해서 8강에 진출했다
* [[2012년]] - [[고양종합터미널]] 개장.
== 탄생 ==
* [[1799년]] - 영국의 천문학자 [[윌리엄 라셀]]. (~[[1880년]])
* [[1868년]] - 헝가리의 군인, 정치가 [[호르티 미클로시]]. (~[[1957년]])
* [[1886년]] - 영국의 산악인 [[조지 맬러리]]. (~[[1924년]])
* [[1901년]] -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의 막내 딸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1918년]])
* [[1911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서정원 (1911년)|서정원]]. (~[[1977년]])
* [[1913년]] - 대한민국의 역사학자 [[김성칠]]. (~[[1951년]])
* [[1917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황산덕]]. (~[[1989년]])
* [[1918년]] - 미국의 경제학자 [[프란코 모디글리아니]]. (~[[2003년]])
* [[1924년]] - 대한민국의 군인 [[오영환 (군인)|오영환]]. (~[[2007년]])
* [[1929년]] - 독일의 철학자,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
* [[1934년]] - 일본의 만화가 [[요코야마 미츠테루]]. (~[[2004년]])
* [[1942년]]
** 영국의 가수 [[폴 매카트니]].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 [[타보 음베키]].
**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자친토 파케티]]. (~[[2006년]])
** 미국의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 (~[[2013년]])
* [[1946년]] -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파비오 카펠로]].
* [[1949년]]
** 폴란드의 정치가 [[레흐 카친스키]]. (~[[2010년]])
** 폴란드의 정치가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 미국의 삽화가, 아동문학 작가 [[크리스 반 알스버그]].
** 대한민국의 공무원, 정치인 [[한덕수]].
* [[1950년]] - 동독의 허들선수 [[안넬리 에르하르트]]. (~[[2024년]])
* [[1952년]]
** 대한민국의 전 가수, 기업인, SM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이수만]].
** 대한민국의 배우 [[전인택]].
** 이탈리아, 미국의 배우 [[이사벨라 로셀리니]].
* [[1954년]]
** 미국의 배우 [[캐슬린 터너]].
** 소련의 역도 선수 [[빅토르 마진]]. (~[[2022년]])
* [[195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유동근]].
* [[1957년]]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미겔 앙헬 로티나]].
* [[1959년]] - 대한민국의 드라마본부 [[구본근]].
* [[1960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정호 (1960년)|김정호]].
* [[196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경표]]. (~[[2023년]])
** 일본의 프로레슬링 선수 [[미사와 미쓰하루]]. (~[[2009년]])
* [[1964년]] - [[사담 후세인]]의 장남 [[우다이 후세인]]. (~[[2003년]])
* [[1967년]] - 대한민국의 배우 [[지수원]].
* [[196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정우 (1968년)|김정우]].
* [[1972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문동환 (야구인)|문동환]].
** 대한민국의 배우 [[김영희 (1972년)|김영희]].
* [[1973년]] - 일본의 성우 [[카카즈 유미]].
* [[1974년]] - 대한민국의 축구 감독 [[빈첸초 몬텔라]].
* [[1975년]] - 미국의 경찰관 [[카일 딩켈러 살인 사건|카일 딩켈러]]. (~[[1998년]])
* [[1976년]]
** 미국의 컨트리 가수 [[블레이크 셸턴]].
** 일본의 성우 [[신가키 타루스케]].
* [[1977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정준 (1977년)|이정준]].
* [[1979년]] - 일본의 성우 [[코바야시 유미코]].
* [[1980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종욱 (야구인)|이종욱]].
* [[1981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엄정욱]].
** 미국의 연예 기획자 [[스쿠터 브론]].
* [[1983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사희]].
* [[1984년]]
** 대한민국의 모델 [[이혜정 (모델)|이혜정]].
** 일본의 성우 [[츠지 아유미]].
* [[198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정다혜]].
* [[1986년]]
** 영국의 배우 [[리처드 매든]].
** 프랑스의 테니스 선수 [[리샤르 가스케]].
* [[1987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사훈]].
** 터키의 영화 배우 [[에즈기 아사롤루]].
* [[1988년]]
** 대한민국의 가수 [[금미]] ([[크레용팝]]).
** 알제리의 축구 선수 [[이슬람 슬리마니]].
* [[1989년]]
** 대한민국의 래퍼 [[김태헌]] ([[제국의 아이들]]).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윤명준]].
** 가봉의 축구 선수 [[피에르에므리크 오바메양]].
** 대한민국의 가수 [[이민 (가수)|이민]].
* [[199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소영.
* [[1991년]]
** 대만의 배우, 가수 [[커전둥]].
** 일본의 배우 겸 가수 [[오카모토 레이]].
* [[199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셔누]] ([[몬스타엑스]]).
* [[1993년]] - 일본의 가수 [[나카쓰카 도모미]].
* [[199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오채이]].
** 미국의 래퍼 [[테이크오프 (래퍼)|테이크오프]]. (~[[2022년]])
** 스페인의 육상 선수 [[알바로 마르틴]].
* [[1995년]]
** 대한민국의 가수 [[호 (가수)|호]].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마리오 에르모소]].
** 일본의 아이돌, 배우 [[마츠무라 호쿠토]].
** 대한민국의 가수 [[최향 (가수)|최향]].
* [[1996년]]
** 일본의 배우 [[미요시 아야카]].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문석종]].
* [[1997년]]
** 대한민국의 가수 [[블루우즈]].
** 대한민국의 전직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 [[김승태 (프로게이머)|김승태]].
** 모로코의 축구 선수 [[아민 하리트]].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라파 미르]].
* [[1998년]] - 슬로바키아의 소프라노 [[파트리치아 야네치코바]]. (~[[2023년]])
* [[1999년]] - 대한민국의 가수 [[아린]] ([[오마이걸]]).
* [[2001년]]
** 일본의 가수 [[야부키 나코]] ([[HKT48]] 팀H, [[AKB48]] 팀B, [[아이즈원]]).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캐니언 (프로게이머)|캐니언]].
** 조지아의 유도 선수 [[일리아 술라마니제]].
* [[2002년]] - 대한민국의 인플루언서 [[태리 (인플루언서)|태리]].
* [[2003년]]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이지수.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준영 (2003년 6월 18일)|박준영]].
* [[2006년]] - 네덜란드의 공주 [[오라녜나사우 여백작 자리아]].
* [[2013년]] - 대한민국의 아역 배우 [[김시하]].
=== 미상 ===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1944년]])
== 사망 ==
* [[1408년]] - 조선의 초대 국왕 [[태조 (조선)|태조]]. (1335년~)
* [[1650년]] - 독일의 천문학자 [[크리스토프 샤이너]]. (1575년~)
* [[1902년]] - 영국의 소설가 및 사상가 [[새뮤얼 버틀러 (소설가)|새뮤얼 버틀러]]. (1835년~)
* [[1928년]] - 노르웨이의 탐험가 [[로알 아문센]]. (1872년~)
* [[1936년]] - 러시아의 작가 [[막심 고리키]]. (1868년~)
* [[1974년]] - 구 소련의 군인 [[게오르기 주코프]]. (1896년~)
* [[1985년]] - 일본의 기업인 [[나가노 가즈오|나가노 카즈오]]. (1952년~)
* [[1998년]] -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김진규 (배우)|김진규]]. (1923년~)
* [[2010년]] - 포르투갈의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 (1922년~)
* [[2011년]] - 소련과 러시아의 활동가, 인권 운동가 [[옐레나 본네르]]. (1923년~)
* [[2015년]] - 일본의 성우 [[타테카베 카즈야]]. (1934년~)
* [[2018년]] - 미국의 가수 [[XXX텐타시온]]. (1998년~)
* [[2020년]]
** 영국의 가수 [[베라 린]]. (1917년~)
** 미국의 음악프로듀서 [[엘링턴 조던]]. (1940년~)
* [[2021년]]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잠피에로 보니페르티]]. (1928년~)
** 인도의 육상 선수 [[밀카 싱]]. (1929년~)
** 일본의 가수 [[테라우치 타케시]]. (1939년~)
* [[2023년]]
** 파키스탄의 자선가 [[샤자다 다우드]]. (1975년~)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임지혜 (레이싱 모델)|임지혜]]. (1986년~)
** 미국의 기업인 [[스톡턴 러시]]. (1962년~)
** 영국의 사업가, 조종사, 탐험가 [[해미시 하딩]]. (1964년~)
* [[2024년]]
** 미국의 야구선수 [[윌리 메이스]]. (1931년~)
** 프랑스의 영화배우 [[아누크 에메]]. (1932년~)
** 미국의 색소폰연주자 [[제임스 챈스]]. (1953년~)
** 우즈베키스탄의 외교관 [[비탈리 펜]]. (1947년~)
== 기념일 ==
* 건설의 날: [[대한민국]]
* [[:en:Public_holidays_in_Egypt#Other holidays|영국군 철수의 날]](Eid el-Galaa): 1956년 이집트에서의 영국군 완전 철수를 기념하는 날, [[이집트]]
* [[:en:National Day#S|국경일]](National Day): 1993년의 다당제 도입을 기념하는 날, [[세이셸]]
* [[:en:Waterloo Day|워털루 데이]]: [[영국]]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6월 17일]] 다음날: [[6월 19일]] - 전달: [[5월 18일]] 다음달: [[7월 18일]]
* 음력: [[음력 6월 18일|6월 18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6월 18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6월 19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70번째([[윤년]]일 경우 171번째) 날에 해당한다.
{{6월달력}}
{{특정날짜요일|6|19}}
== 사건 ==
* [[1419년]] - [[조선]]이 [[왜나라|왜]]의 [[쓰시마섬|대마도]]를 정벌하다.
* [[1917년]] - [[영국]]이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다.
* [[1923년]] - [[미국-영국 채무협정]] 체결. 미국에 대한 영국의 [[제1차 세계 대전]] 채무를 46억 달러로 확정하다.
* [[1953년]] - [[미국]]에서 [[로젠버그 부부]]가 [[소련]]의 [[간첩]] 혐의로 [[사형]]이 집행되다.
* [[1960년]]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내한하다.
* [[1961년]] - [[쿠웨이트]]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다.
* [[1965년]] - [[우아리 부메디엔]]이 [[알제리 혁명 위원회]]의 의장으로 취임하다.
* [[2005년]] - [[연천 군부대 총기 난사 사건]](530GP 사건)이 일어나다.
* [[2009년]] - [[:en:War_in_North-West_Pakistan|북서 파키스탄 전쟁]]: [[파키스탄]] 군대가 [[탈레반]]에 대하여 [[:en:Operation_Rah-e-Nijat|Rah-e-Nijat 군사작전]]을 시작하다.
* [[2014년]] - [[스페인]]의 [[펠리페 6세]]가 즉위하다.
== 문화 ==
* [[1846년]] - 미국 뉴저지 주에서 최초의 [[야구]] 경기가 열리다.
* [[1897년]] - 국내 최초로 체육 대회가 [[훈련원]] 자리(오늘날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리다.
* [[1907년]] - [[UP 통신]]이 세워지다.
* [[1978년]] - 대한민국에서 혼{{.cw}}분식 장려정책이 공식적으로 폐지되다.
* [[2014년]] - 대한민국의 4인조 걸그룹 마마무가 데뷔하였다.
== 탄생 ==
* [[기원전 384년]]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22년]])
* [[1556년]] - 영국의 왕 [[제임스 1세 (잉글랜드)|제임스 1세]]. (~[[1625년]])
* [[1623년]] - 프랑스의 수학자, 신학자 [[블레즈 파스칼]]. (~[[1602년]])
* [[1861년]] - 필리핀의 독립운동가 [[호세 리살]] (~[[1896년]])
* [[1866년]] - 독일의 법학자 [[에른스트 폰 벨링]]. (~[[1932년]])
* [[1903년]] - 미국의 야구 선수 [[루 게릭]]. (~[[1941년]])
* [[1909년]] - 일본의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 (~[[1948년]])
* [[1924년]] - 영국의 외교관 [[에드워드 유드]] (-[[1986년]])
* [[1926년]] - 대한민국의 관료 [[이규호 (1926년)|이규호]]. (~[[2002년]])
* [[1927년]] - 대한민국의 배우 [[하연남]].
* [[1929년]] - 대한민국의 비전향 장기수 [[안영기 (1929년)|안영기]]. (~[[2009년]])
* [[1930년]] - 미국의 배우 [[제나 롤런즈]]. (~[[2024년]])
* [[1940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장훈]].
* [[1945년]]
** 버마의 사회운동가 [[아웅산 수 찌]].
** 스르프스카의 대통령 [[라도반 카라지치]].
* [[1947년]]
** 인도의 소설가 [[살만 루시디]].
** 대한민국의 배우 [[윤여정]].
* [[1948년]] - 영국의 가수 [[닉 드레이크]]. (~[[1974년]])
* [[1951년]] - 알카에다의 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 (~[[2022년]])
* [[1955년]] - 대한민국의 성우 [[신흥철]].
* [[1957년]] - 스웨덴의 정치가 [[안나 린드]]. (~[[2003년]])
* [[195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최일화 (배우)|최일화]].
* [[1960년]] - 대한민국의 학원인 [[오성식]].
* [[196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최재호 (배우)|최재호]].
* [[1962년]] - 미국의 가수 [[폴라 압둘]].
* [[1963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일우 (1963년)|김일우]].
* [[1964년]]
** 영국의 총리 [[보리스 존슨]].
** 대한민국의 정치인 [[박정현 (1964년 6월)|박정현]].
* [[196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요리사 [[김호진 (배우)|김호진]].
** 미국의 언론인, 사회자, 작가 [[라라 스펜서]].
* [[1970년]] - 대한민국의 성우 [[주유랑]].
* [[1971년]] - 대한민국의 가수 신용.
* [[1972년]]
** 미국의 축구 선수 [[브라이언 맥브라이드]].
** 프랑스의 배우 [[장 뒤자르댕]].
** 대한민국의 언론인, 정치인 [[조수진 (정치인)|조수진]].
** 일본의 성우 [[나미키 노리코]].
* [[1973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강영수 (1973년생 야구 선수)|강영수]].
** 일본의 아이돌 [[나카자와 유코]].
* [[1975년]]
** 영국의 배우 [[휴 댄시]].
** 우즈베키스탄의 체조 선수 [[옥사나 추소비티나]].
* [[1976년]] - 미국의 배우 [[라이언 허스트]].
* [[1977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장하나 (1977년)|장하나]].
* [[1978년]]
** 일본의 가수 [[Revo]].
** 독일의 농구 선수 [[덕 노비츠키]].
** 미국의 배우 [[조이 살다나]].
* [[1979년]]
** 대한민국의 성우 [[정영웅]].
**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배우 [[김수근 (배우)|김수근]].
* [[1980년]] - 캐나다의 배우 [[로런 리 스미스]].
* [[1981년]]
** 대한민국의 음악가 [[신재평]].
** 미국의 배우 [[리키김]].
* [[1982년]]
** 캐나다의 전 프로게이머이자 방송인 [[기욤 패트리]].
** 일본의 가수 [[사사키 아야카]].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임태현]].
** 대한민국의 양궁 선수 [[박미경 (양궁 선수)|박미경]].
* [[1983년]]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윤혜숙]].
** 아일랜드의 배우 [[에이든 터너 (1983년)|에이든 터너]].
* [[1984년]] - 미국의 배우 [[폴 다노]].
* [[1985년]]
** 스웨덴의 축구 선수 [[린다 포르스베리]].
** 일본의 축구 선수 [[마스다 지카시]].
** 대한민국의 희극인 [[정주리]].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호세 에르네스토 소사]].
* [[1986년]] - 아이슬란드의 축구 선수 [[라그나르 시귀르드손]].
* [[1987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주영 (1987년 6월)|김주영]].
** 일본의 성우 [[타무라 무츠미]].
* [[1988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건필]].
**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문문]].
* [[1989년]]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박지훈 (농구 선수)|박지훈]].
** 대한민국의 배우 [[인병국]].
** 미국의 가수 [[질리언 허비]].
* [[1990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범수 (1990년)|김범수]].
** 일본의 배우 [[마쓰바라 나쓰미]].
** 대한민국의 전 기상캐스터 [[전소영]].
* [[1991년]]
**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 [[안드레이 크라마리치]].
** 덴마크의 축구 선수 [[카트리네 베예]].
* [[1992년]] - 도미니카공화국의 야구 선수 [[오스카르 타베라스]]. (~[[2014년]])
* [[1993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서예일]].
* [[1994년]] - 대한민국의 가수 [[서사랑]].
* [[1995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박아론]] ([[W24]]).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유희운]]. ([[KT 위즈]])
** 대한민국의 전직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데이드림 (프로게이머)|데이드림]].
** 대한민국의 유튜브 [[슈기]].
* [[1996년]]
** 대한민국의 가수 [[임도화]] ([[AOA (음악 그룹)|AOA]]).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주현 (1996년)|박주현]].
* [[1997년]]
** 대한민국의 가수 [[최윤선 (1997년)|최윤선]] ([[소나무 (음악 그룹)|소나무]]).
** 대한민국의 가수 [[이지호 (가수)|이지호]].
* [[1998년]]
** 일본의 패션 모델, 배우 [[히로세 스즈]].
** 이스라엘의 유도 선수 [[라즈 헤르슈코]].
* [[1999년]] - 대한민국의 치어리더 [[이지원 (치어리더)|이지원]].
* [[2001년]] - 요르단의 태권도 선수 [[자이드 카림]].
* [[2002년]] -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 [[이준환 (유도 선수)|이준환]].
== 사망 ==
* [[404년]] - [[동진]](東晉)의 정치가, 환초(桓楚)의 건국자 [[환현 (동진)|환현]]. (369년~)
* [[1606년]] - 일본의 센고쿠 시대 무장 [[사카키바라 야스마사]]. (1548년~)
* [[1918년]] -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전투기 조종사 공군 [[프란세스코 바라카]]. (1888년~)
* [[1960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이종건 (1906년)|이종건]]. (1906년~)
* [[1986년]] - 프랑스의 배우이자 [[희극인]] [[콜루슈]]. (1944년~)
* [[2011년]] - 대한민국의 전 가수 [[이은미 (1987년)|이은미]]. ([[아이리스 (2인조 음악 그룹)|아이리스]]) (1987년~)
* [[2014년]] - 코트디부아르의 전 축구 선수 [[이브라힘 투레]]. (1985년~)
* [[2016년]] - 미국의 배우 [[안톤 옐친]]. (1989년~)
* [[2017년]] - 인도의 추기경 [[이반 디아스]]. (1936년~)
* [[2020년]] - 대한민국의 소설가 [[조해일]]. (1941년~)
* [[2020년]] - 영국의 영화배우 [[이언 홈]]. (1931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교수 [[주선애]]. (1924년~)
* [[2023년]] -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이원세]]. (1960년~)
* [[2023년]] - 대한민국의 세무공무원 [[이주성 (1949년)|이주성]]. (1949년~)
* [[2024년]] - 일본의 성우 [[미와 카츠에]]. (1943년~)
== 기념일 ==
* [[:en:World Sauntering Day|세계 산책의 날]](World Sauntering Day)
* [[:en:Juneteenth|준틴스 데이]]: [[아프리카계 미국인]]
* [[:en:Public_holidays_in_Hungary|독립기념일]]: [[헝가리]]
* [[노동절]]: [[트리니다드 토바고]]
* [[:en:Public_holidays_in_the_Philippines#Local_observance|숲의 향연]](Feast of Forest): [[필리핀]] [[팔라완섬]]
* [[:en:Public holidays in the Philippines#Local_observance|라구나 데이]]: [[필리핀]] [[라구나주]]
* [[:en:José Gervasio Artigas|아르티가스 장군]] 탄신일& [[:en:Public_holidays_in_Uruguay|네버어겐 데이]]: [[우루과이]]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6월 18일]] 다음날: [[6월 20일]] - 전달: [[5월 19일]] 다음달: [[7월 19일]]
* 음력: [[음력 6월 19일|6월 19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6월 19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6월 20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71번째([[윤년]]일 경우 172번째) 날에 해당한다.
{{6월달력}}
{{특정날짜요일|6|20}}
== 사건 ==
* [[451년]] - [[카탈로니아 평원의 전투]]: [[플라비우스 아이티우스]]가 훈족의 [[아틸라]]와 싸우다.
* [[1667년]] - [[교황 클레멘스 9세]], 제238대 로마 교황 즉위.
* [[1685년]] - [[:en:Monmouth Rebellion|몬머스 반란]]: [[제1대 몬머스 공작 제임스 스콧|제임스 스콧]]이 [[브리지워터 (서머싯주)|브리지워터]]에서 자신이 잉글랜드의 국왕임을 선언했다.
* [[1789년]] - 테니스 코트의 서약, [[삼부회]]의 평민위원들이 테니스 코트에 모여 서약을 하다.([[프랑스 혁명]])
*1791년 - 프랑스 혁명: 루이 16세와 왕실일가들이 파리 튈르리 왕궁을 탈출하여 해외 망명시도하다.
*1792년 - 프랑스 혁명: 파리시민들이 왕궁을 습격하다.(이유:왕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반발, 왕실이 적국과 내통 의심)
* [[1837년]] - [[빅토리아 (영국)|빅토리아 여왕]]이 영국 왕위를 승계받다.
* [[1960년]] - [[세네갈]]이 독립했다.
* [[1975년]] -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에서 [[이팔국 아내 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 [[2004년]] -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 [[한국 정교회]] 제1대 교구장 착좌.
== 문화 ==
* [[1962년]] - [[양화대교]]가 착공됐다.
* [[2003년]] - [[위키미디어 재단]]이 창립되다.
* [[2004년]] -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수도 대주교가 초대 [[한국 정교회]] 수도 대주교에 착좌했다.
* [[2008년]] - 12년간 무정차 통과역으로 방치되었던 [[서울 지하철 5호선]] [[마곡역]]이 영업을 시작했다.
* [[2013년]] - [[삼성 라이온즈]] 소속 [[이승엽]]이 개인 통산 최다 352호 홈런을 날렸다. 이는 한국 선수 최다 신기록이었다.
== 탄생 ==
* [[1469년]] - 제6대 밀라노의 공작 [[잔 갈레아초 스포르차]]. (~[[1494년]])
* [[1566년]] - 폴란드의 국왕 [[지그문트 3세 바사]](스웨덴 왕 시기스문드). (~[[1632년]])
* [[1634년]] - 사보이아의 공작 [[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 디 사보이아 공작]]. (~[[1675년]])
* [[1819년]] - 프랑스의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 (~[[1880년]])
* [[1873년]] - 대한제국의 군인, 정치가 [[이동휘]]. (~[[1935년]])
* [[1902년]] - 대한민국의 시인 [[정지용]]. (~[[1950년]])
* [[1905년]] - 미국의 작가 [[릴리언 헬먼]]. (~[[1984년]])
* [[1924년]] - 미국의 음악가 [[쳇 앳킨스]]. (~[[2001년]])
* [[1925년]] - 대한민국의 금융인 [[양재봉]]. (~[[2010년]])
* [[1926년]] - 미국의 군인 [[오디 머피]]. (~[[1971년]])
* [[1928년]] - 미국의 배우 [[마틴 랜다우]]. (~[[2017년]])
* [[1930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안유수]]. (~[[2023년]])
* [[1931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이맹희]]. (~[[2015년]])
* [[1933년]]
**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언론인 [[이도형 (1933년)|이도형]]. (~[[2020년]])
** 미국의 영화배우 [[대니 아이엘로]]. (~[[2019년]])
* [[1941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한대현]]. (~[[2024년]])
* [[1949년]]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라이오넬 리치]].
* [[1952년]] - 미국의 배우 [[존 굿맨]].
* [[1957년]] - 대한민국의 성우 [[이진화 (성우)|이진화]].
* [[195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장정희]].
* [[1960년]] - 대한민국의 교육가 출신 정치인 [[구논회]]. (~[[2006년]])
* [[196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장세진]].
* [[196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전수환]]. (~[[2023년]])
* [[1967년]]
** 대한민국의 배우 [[손종학]].
** 오스트레일리아의 배우 [[니콜 키드먼]].
** 대한민국의 기업인 [[한성숙]].
* [[1968년]]
** 미국의 영화 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스]].
** 폴란드의 총리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2023년]])
** 일본의 성우 [[치바 잇신]].
** 일본의 소설가 [[사기사와 메구무]]. (~[[2004년]])
* [[1969년]] -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축구 감독 [[파울루 벤투]].
* [[197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조문정]]. (~[[1994년]])
* [[1971년]]
** 미국의 배우 [[조시 루커스]].
** 미국의 배우 [[조디 화이트]].
* [[1972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상아]].
** 대한민국의 가수 [[후니 (가수)|후니]].
* [[1975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오준호 (정치인)|오준호]].
** 일본의 가수, 배우 [[사카이 가즈요시]].
* [[1976년]] - 베트남의 모델 [[응우옌투투이]]. (~[[2021년]])
* [[1977년]]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축구 감독 [[김성근 (축구인)|김성근]].
* [[1978년]]
** 대한민국의 가수, 드러머 [[달리 (음악가)|달리]] ([[노브레인]]).
** 대한민국의 배우 [[정가은]].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프랭크 램파드]].
* [[1979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이승민 (아나운서)|이승민]].
* [[1983년]]
** 일본의 배우 [[미카미 마사시]].
** 대한민국의 가수 [[길구]].
** 미국의 야구 선수 [[라이언 브론]].
* [[198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연두]].
* [[1985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정지원 (1985년)|정지원]].
** 대한민국의 정치인 [[장종하]]. (~[[2023년]])
** 일본의 영화배우 [[아이부 사키]].
* [[1986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태현 (1986년)|김태현]].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루카 치가리니]].
* [[1987년]]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하현정]].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김수지]].
* [[1989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전우엽]] ([[KIA 타이거즈]]).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하비에르 파스토레]].
* [[1990년]]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서아란]].
** 대한민국의 가수 [[케이플라워]].
* [[1991년]]
** 대한민국의 전 프로게이머 [[HW4NG]].
** 세네갈의 축구 선수 [[칼리두 쿨리발리]].
* [[1992년]] - 대한민국의 양궁 선수 [[김우진 (양궁 선수)|김우진]].
* [[1993년]]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차정아]].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헬리오스 (프로게이머)|헬리오스]].
** 보스니아의 축구 선수 [[세아드 콜라시나츠]].
* [[1994년]]
** 대한민국의 배우 [[강태오]] ([[서프라이즈 (그룹)|서프라이즈]]).
** 대한민국의 래퍼 [[머쉬베놈]].
** 중화민국의 배드민턴 선수 [[다이쯔잉]].
* [[199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지원 (1995년)|이지원]].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최양비]].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김예지 (배구 선수)|김예지]].
* [[1997년]] - 대한민국의 골프 선수 [[이승민 (골프 선수)|이승민]].
* [[1998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동하.
* [[2000년]] - 이라크의 축구 선수 [[모하나드 알리]].
* [[2001년]]
** 미국의 배우 [[배기스 지여르나]].
**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곤살루 하무스]].
* [[2002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장재영 (2002년)|장재영]].
** 대한민국의 가수 [[선샤인 (가수)|선샤인]].
* [[2004년]] - 대한민국의 래퍼 [[김상민그는감히전설이라고할수있다]].
== 사망 ==
* [[1597년]] - 네덜란드의 항해사이자 탐험가 [[빌럼 바런츠]]. ([[1550년]]~)
* [[1837년]] - 영국 하노버 왕가의 5번째 국왕 [[윌리엄 4세]]. ([[1765년]]~)
* [[1870년]] - 프랑스의 비평가 [[쥘 드 공쿠르]]. ([[1830년]]~)
* [[1916년]] - 대한제국의 정치인, 외교관, 을사오적 [[박제순]]. ([[1858년]]~)
* [[1951년]] - 대한민국의 시인, 문학가 [[김상용 (시인)|김상용]]. ([[1902년]]~)
* [[1965년]] - 미국의 정치인 [[버나드 바루크]]. ([[1870년]]~)
* [[1994년]] - 미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존 패럴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존 패럴]]. ([[1906년]]~)
* [[2001년]] - 대한민국의 화가 [[김인승 (화가)|김인승]]. ([[1910년]]~)
* [[2005년]] - 미국의 과학자 [[잭 킬비]]. ([[1923년]]~)
* [[2010년]] - 이란의 테러리스트 [[압돌말렉 리기]]. ([[1979년]]~)
* [[2013년]] - 미국의 배우 [[제임스 갠돌피니]]. ([[1961년]]~)
* [[2016년]] - 대한민국의 외교관 [[김재섭 (외교관)|김재섭]]. ([[1945년]]~)
* [[2017년]] - 대한민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양승춘]]. ([[1940년]]~)
* [[2018년]] - 오스트레일리아의 골프 선수 [[피터 톰슨 (골프 선수)|피터 톰슨]]. ([[1929년]]~)
* [[2021년]]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루이스 델 솔]]. ([[1935년]]~)
* [[2023년]] - 대한민국의 성악가 [[최성봉]]. ([[1990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문병하]]. ([[1932년]]~)
** 캐나다의 영화배우 [[도널드 서덜랜드]]. ([[1935년]]~)
** 일본의 권투 선수 [[오기와라 치하루]]. ([[1957년]]~)
** 미국의 영화배우 스모스 선수, 종합 격투기 선수 [[테일러 윌리]]. ([[1968년]]~)
== 기념일 ==
* [[세계 난민의 날]](World Refugee Day)
* [[:en:Flag Day (Argentina)|국기의 날]]: [[아르헨티나]]
* [[:en:West Virginia Day|웨스트버지니아 데이]]: [[웨스트버지니아주]]
* [[:en:List of holidays by country#Eritrea|순교자의 날]]: [[에리트레아]]
* [[:en:Public holidays in Azerbaijan#Other observances|가스 섹터 데이]](Day of the gas sector): [[아제르바이잔]]
*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6월 19일]] 다음날: [[6월 21일]] - 전달: [[5월 20일]] 다음달: [[7월 20일]]
* 음력: [[음력 6월 20일|6월 20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6월 20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6월 21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72번째([[윤년]]일 경우 173번째) 날에 해당한다.
{{6월달력}}
{{특정날짜요일|6|21}}
== 사건 ==
* [[1863년]] - [[미국 남북전쟁]] 중 [[게티즈버그 전역]]: [[어퍼빌 전투]]
* [[1919년]] - 독일 대양함대, 스카파플로우에서 [[독일 대양함대 자침 사건|집단으로 자침]]
* [[1947년]] - 대한민국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가입.
* [[1949년]] - [[농지개혁법]]이 제정됐다.
* [[1955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인]] [[이운용]]과 [[이인선]]이 [[대한민국]]으로 [[귀순]]했다.
* [[1962년]]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전신인 대한무역투자공사가 세워졌다.
* [[1963년]] - [[교황 바오로 6세]]가 262대 교황 임기를 시작되었다.
* [[1989년]] - 계엄사령관 딩솅비(丁性必), [[천안문]] 6.4 항쟁 당시 "마오쩌둥 만세 공산당 만세" 외치며 시위대 7469명 학살
* [[2003년]] - [[하마스]]의 지도자 압달라 카와스메(Abdallah Kawasmeh)가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서 이스라엘군에 피격되어서 사망하였다.
* [[2014년]] - [[강원도 (남)|강원도]] [[고성군 (남)|고성군]] 소재 [[동부전선]] [[대한민국 22보병사단|22사단]] [[일반 전초|GOP]]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다
== 문화 ==
* [[1957년]] - [[킨키 일본 철도]]가 첫 냉방 특급의 운전 개시되었다.
* [[1985년]] - 프로야구팀 [[삼미 슈퍼스타즈]], 인천에서 마지막 경기(대 [[롯데 자이언츠]], 16:6으로 패).
* [[2004년]] - 미국의 한 회사가 개발한 최초의 민간 [[우주선]] [[:en:SpaceShipOne|스페이스쉽 원]]이 [[우주여행|우주비행]]에 성공하다.
* [[2006년]] - 새로 발견한 [[명왕성]]의 [[위성]]을 [[닉스 (위성)|닉스]]와 [[히드라 (위성)|히드라]]로 명명하다
* [[2014년]] - [[인천국제공항철도]] [[청라국제도시역]]이 개통되었다.
== 탄생 ==
* [[590년]] - 제74대 로마의 교황 [[교황 마르티노 1세]]. (~[[655년]])
* [[1002년]] - 제152대 로마의 교황 [[교황 레오 9세]]. (~[[1054년]])
* [[1737년]] - 이치노세키 번의 4대 번주 [[다무라 무라타카]]. (~[[1782년]])
* [[1788년]] - 나폴레옹의 양자 [[아우구스테 폰 바이에른 왕녀]]. (~[[1851년]])
* [[1816년]] - 영국의 통신 사업가 [[파울 율리우스 로이터]]. (~[[1899년]])
* [[1880년]] - 미국의 아동심리학자 [[아널드 게젤]]. (~[[1961년]])
* [[1892년]] -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 (~[[1971년]])
* [[1900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군인, 정치인 [[최용건]]. (~[[1976년]])
* [[1904년]] - 대한민국의 시인, 문학평론가, 번역가 [[박용철 (시인)|박용철]]. (~[[1938년]])
* [[1905년]] - 프랑스의 철학자, 문학가, 작가 [[장 폴 사르트르]]. (~[[1980년]])
* [[1908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매헌 [[윤봉길]]. (~[[1932년]])
* [[1915년]] - 독일의 천문학자 [[빌헬름 글리제]]. (~[[1993년]])
* [[1920년]] - 일본의 야구 선수 [[구스노키 야스오]]. (~[[2000년]])
* [[1921년]]
** 미국의 배우 [[주디 홀리데이]]. (~[[1965년]])
** 미국의 배우 [[제인 러셀]]. (~[[2011년]])
* [[1927년]] - 미국의 정치인, 클리블랜드의 첫 흑인 시장 [[칼 스토크스]]. (~[[1996년]])
* [[1932년]] - 아르헨티나의 음악가 [[랄로 시프린]].
* [[1933년]] -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가 [[박준병 (1933년)|박준병]]. (~[[2016년]])
* [[1935년]] - 프랑스의 문학가 [[프랑수아즈 사강]]. (~[[2004년]])
* [[1938년]] - 미국의 배우 [[론 엘리]]. (~[[2024년]])
* [[1940년]] - 대한민국의 요리연구가 [[심영순]].
* [[1941년]] - 미국의 배우 [[조 플래허티]]. (~[[2024년]])
* [[1942년]] - 일본의 스키점프 선수 [[아오치 세이지]]. (~[[2008년]])
* [[1944년]] - 영국의 영화감독 [[토니 스콧]]. (~[[2012년]])
* [[1945년]] - 페루의 변호사 [[루이스 카스타녜다 로시오]]. (~[[2022년]])
* [[1947년]] - 이란의 변호사 [[시린 에바디]].
* [[1948년]] - 폴란드의 판타지 소설가 [[안제이 삽코프스키]].
* [[1953년]] - 파키스탄 정치인 [[베나지르 부토]].
* [[1954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조수호]]. (~[[2006년]])
* [[1955년]] -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행정가 [[미셸 플라티니]].
* [[1961년]] - 인도네시아의 정치인, 제7대 대통령 [[조코 위도도]].
* [[1962년]]
** 한국계 러시아의 대중음악가수 [[빅토르 초이]]. (~[[1990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김용국 (야구인)|김용국]].
** 대한민국의 정치인 [[명현관]].
* [[1963년]] - 일본의 만화작가, 명탐정 코난의 작가인 [[아오야마 고쇼]].
* [[1964년]] - 미국의 배우 [[데이비드 모리시]].
* [[1965년]]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방송인, 배우, 기업인 [[임지연 (미스코리아)|임지연]].
** 미국의 영화감독 [[더 워쇼스키스|라나 워쇼스키]].
* [[1966년]] - 대한민국의 핸드볼 선수 [[김춘례]].
* [[1969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변우영]].
* [[1971년]] - 폴란드의 배우 [[토마시 카롤라크]].
* [[1976년]] - 오스트레일리아의 전 축구 선수, 축구 감독 [[레네 아우프하우저]].
* [[1979년]]
** 일본의 배우 [[유민 (1979년)|유민]].
** 미국의 배우 [[크리스 프랫]].
** 그리스의 축구 선수 [[코스타스 카추라니스]].
* [[1980년]] - 대한민국의 배우 [[함재석]].
* [[1981년]] - 대한민국의 전 배구 선수 [[김사니]].
* [[1982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대호]].
** 영국의 왕세자 [[웨일스 공 윌리엄]].
**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박정훈 (영화 감독)|박정훈]].
* [[1983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방원]].
* [[198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서영 (배우)|서영]].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강승화]].
* [[1985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황목치승]].
** 미국의 가수 [[라나 델 레이]].
* [[1986년]]
** 미국의 가수 [[라나 델 레이]].
** 일본의 배우 [[마츠모토 히로야]].
** 대한민국의 배우 [[이재원 (배우)|이재원]].
**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선수 [[셰이크 티오테]]. ([[2017년]]~)
* [[1987년]] - 대한민국의 가수 [[려욱]] ([[슈퍼주니어]]).
* [[1988년]] - 대한민국의 가수 겸 모델 [[한담희]].
* [[1990년]]
** 대한민국의 모델 [[유승옥]].
** 대한민국의 배우 [[고성희]].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에스테파니아 바니니]].
** 크로아티아의 원반던지기 선수 [[산드라 엘카세비치]].
* [[1991년]]
** 대한민국의 가수 [[민 (가수)|민]] ([[미스에이]]).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안승민]].
** 대한민국의 희극인 [[장하나 (희극인)|장하나]].
**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 [[PERC%NT]].
* [[199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재호]].
** 대한민국의 가수 [[제이셉]].
** 대한민국의 래퍼 [[리비도 (래퍼)|리비도]].
** 일본의 패션 모델, 배우 [[오카모토 아즈사]].
* [[1993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인호 (가수)|인호]] ([[인투잇]]).
* [[1994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한승택]].
** 일본의 가수 [[오카이 지사토]] ([[°C-ute]]).
* [[1995년]]
** 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 [[BOYCOLD]].
** 일본의 배우, 모델 [[바바 후미카]].
** 대한민국의 배우 [[김동규 (배우)|김동규]].
* [[1996년]]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박준영 (농구 선수)|박준영]].
* [[1997년]] - 미국의 가수 [[리베카 블랙]].
* [[1998년]] - 일본의 성우 [[코노 히요리]].
* [[1999년]] - 대한민국의 가수 하지.
* [[2001년]] - 대한민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정재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정재원]].
* [[2007년]] - 대한민국의 [[송종국]]의 딸 [[송지아 (2007년)|송지아]].
* [[2010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윤예지.
== 사망 ==
* [[1377년]] - 잉글랜드의 국왕 [[에드워드 3세]]. ([[1312년]]~)
* [[1527년]] - 이탈리아의 정치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 ([[1469년]]~)
* [[1582년]] - 일본의 센고쿠 시대 무장 [[오다 노부나가]]. ([[1534년]]~)
* [[1879년]] - 조선 후기의 실학자 [[최한기]]. ([[1803년]]~)
* [[1908년]] - 러시아의 작곡가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1844년]]~)
* [[1914년]] -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겸 급진적 평화주의자 [[베르타 폰 주트너]]. ([[1843년]]~)
* [[1919년]] - 독일의 법학자 [[프란츠 폰 리스트]]. ([[1851년]]~)
* [[2013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영화 배우 [[남철]]. ([[1934년]]~)
* [[2018년]] - 미국의 칼럼니스트이자 평론가 [[찰스 크라우트해머]]. ([[1950년]]~)
* [[2019년]] - 키프로스의 제9대 대통령 [[디미트리스 흐리스토피아스]]. ([[1946년]]~)
* [[2020년]]
** 이라크의 축구 선수 [[아흐메드 라디]]. ([[1964년]]~)
** 칠레의 가톨릭 주교 [[베르나르디노 피녜라]]. ([[1915년]]~)
* [[2021년]] - 대한민국의 역사학자 [[김보한]]. ([[1960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언론인 [[김대곤]]. ([[1948년]]~)
** 미국의 영화배우 [[제임스 라도]]. ([[1932년]]~)
**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요안 반데르발스]]. ([[1920년]]~)
* [[2024년]]
** 이라크의 군인 [[살라흐 아부드 마흐무드]]. ([[194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조학자]]. ([[1935년]]~)
** 미국의 수필가 [[프레더릭 크루스]]. ([[1933년]]~)
== 기념일 ==
* [[대한민국의_기념일#기타_법령에_따른_기념일|해양조사의 날]]: 대한민국
* [[:en:Go_Skateboarding_Day|스케이트보드의 날]]
* [[:en:World Hydrography Day|세계 수로의 날]]
* [[:en:National Aboriginal Day|원주민의 날]]: [[캐나다]]
* [[아버지날]](Father's Day): [[이집트]],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 [[우간다]]
* [[:en:Public_holidays_in_Togo|순교자의 날]]: [[토고]]
* [[:en:World Humanist Day|월드 휴머니스트 데이]]
* 세계 기린의 날 ([[:en:List of environmental dates]]
* [[국제 요가의 날]]
* [[페트 드 라 뮈지크]] (음악 축제)
== 같이 보기 ==
* 전날: [[6월 20일]] 다음날: [[6월 22일]] - 전달: [[5월 21일]] 다음달: [[7월 21일]]
* 음력: [[음력 6월 21일|6월 21일]]
* [[366일|모두 보기]]
{{위키공용분류}}
{{열두달}}
[[분류:6월 21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6월 22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73번째([[윤년]]일 경우 174번째) 날에 해당한다.
{{6월달력}}
{{특정날짜요일|6|22}}
== 사건 ==
* [[1486년]] - [[조선]], 여외 정병(旅外正兵)을 혁파하여 보인(保人)으로 하도록 함.([[음력 5월 21일]])
* [[1815년]] - [[나폴레옹 2세]], [[프랑스]]의 황제로 즉위.
* [[1940년]] - [[프랑스]]가 [[나치 독일]]의 공세에 [[파리시]]를 빼앗기고 항복.
* [[1941년]] - 독일, [[바르바로사 작전]]을 발동하여 소련을 침공.
* [[1944년]] - 소련, [[바그라티온 작전]] 개시. 독일 중부집단군 격파.
* [[1965년]] - [[한일기본조약]] 조인.
* [[1998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잠수정이 [[대한민국]]의 [[동해안]]에서 어선 그물에 걸려 좌초.
== 문화 ==
* [[1894년]] - [[파리시|파리]]-[[루엔]](Rouen)간 최초의 [[자동차 경주]] 개최.
* [[1973년]] - [[남해대교]]가 개통되었다.
* [[1978년]] - [[명왕성]]의 위성 [[카론 (위성)|카론]] 발견.
* [[1985년]] - [[서울신문|서울신문사]]의 [[스포츠서울]] 창간.
* [[1986년]] - [[아르헨티나 대 잉글랜드 (1986년 FIFA 월드컵)|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1986년 FIFA 월드컵 경기]] 도중 [[신의 손]] 사건 발생. 경기결과는 [[디에고 마라도나]]의 맹활약으로 아르헨티나가 잉글랜드를 2:1로 꺾고 4강에 진출함.
* [[2000년]] - [[한국교육방송공사]] 창립.
* [[2002년]] - [[2002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스페인에 승부차기 끝에 PK 결과 5-3으로 승리하여 아시아 최초로 4강에 진출한다. (터키도 일한 만시즈의 결승골로 세네갈을 1:0으로 꺾고 4강에 진출함.)
* [[2005년]]
**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1세]]가 방한하였다.
** [[장성화물선]] [[안평역]] ~ [[장성화물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 [[2010년]] -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나이지리아]]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끝에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 [[2014년]]
**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 3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대한민국에 11번째로 [[남한산성]]이 등재되었다.
** [[SBS TV]]의 [[도전 1000곡]] 마지막 방송.
* [[2015년]] - [[동의보감]], 대한민국 국보로 승격.
* [[2017년]] - [[하이패스]] 전용 나들목 [[경부고속도로]] [[옥산IC]]의 부산방향 진출입로가 개통되었다.
== 탄생 ==
* [[1766년]] - 조선의 후궁 [[원빈 홍씨]]. (~[[1779년]])
* [[1767년]] - 독일의 언어학자 [[빌헬름 폰 훔볼트]]. (~[[1835년]])
* [[1793년]] - 일본 에도 막부의 12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요시]]. (~[[1853년]])
* [[1805년]] - 이탈리아의 정치인 [[주세페 마치니]]. (~[[1872년]])
* [[1864년]]
** 독일에서 활동한 러시아의 수학자 [[헤르만 민코프스키]]. (~[[1909년]])
** 대한민국의 기업가 [[박승직]]. (~[[1950년]])
* [[1877년]] - 영국의 생물학자 [[줄리언 헉슬리]]. (~[[1975년]])
* [[1898년]] - 독일의 소설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1970년]])
* [[1906년]] - 미국의 영화 감독, 영화제작자 [[빌리 와일더]]. (~[[2002년]])
* [[1910년]] - 영국의 군인, 산악인 [[헌트 남작 존 헌트]]. (~[[1998년]])
* [[192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장동휘]]. (~[[2005년]])
* [[1928년]] - 일본의 배우 [[사사키 스미에]]. (~[[2019년]])
* [[1933년]] - 미국의 정치인 [[다이앤 파인스타인]]. (~[[2023년]])
* [[1936년]] - 대한민국의 배우 [[곽경환]]. (~[[2022년]])
* [[1940년]] - 이란의 영화감독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2016년]])
* [[1947년]] - 프랑스의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 (~[[2022년]])
* [[1948년]]
** 대한민국의 공무원, 정치인 [[배덕광]]. (~[[2023년]])
** 폴란드의 축구인 [[프란치셰크 스무다]]. (~[[2024년]])
* [[1949년]]
** 미국의 배우 [[메릴 스트립]].
** 미국의 배우 [[린지 와그너]].
* [[1953년]] - 미국의 가수 [[신디 로퍼]].
* [[195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정치인 [[정한용]].
** 대한민국의 희극인 [[이홍렬]].
* [[1957년]] - 대한민국의 행정학과 교수 [[김인철 (행정학자)|김인철]].
* [[1959년]] - 대한민국의 가수 [[현숙]].
* [[1960년]] - 미국의 소비자 운동가 겸 환경 운동가 [[에린 브로코비치]].
* [[1962년]] - 홍콩의 영화 감독, 배우 [[주성치]].
* [[1963년]] - 미국의 종합 격투기 선수 [[랜디 커투어]].
* [[1964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배종옥]].
** 일본의 배우 [[아베 히로시]].
** 미국의 소설가 [[댄 브라운]].
* [[1965년]] - 독일의 영화 감독 [[우베 볼]].
* [[1967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이해진]].
** 대한민국의 공무원 [[김종훈 (1967년)|김종훈]].
* [[1968년]]
** 일본의 소설가 [[유미리]].
** 대한민국의 골프 선수 [[최경주]].
** 대한민국의 의원 [[김창원 (1968년)|김창원]].
* [[1969년]] - 대한민국의 산악인 [[박무택]]. (~[[2004년]])
* [[1971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강상수]].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창원 (축구인)|김창원]].
* [[1974년]] - 일본의 성우 [[나이토 료]].
* [[1975년]] - 일본의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
* [[1976년]] - 일본의 성우 [[카와하라 요시히사]].
* [[1977년]]
** 일본의 성우 [[오노 료코]].
** 프랑스의 농구 선수 [[프레데리크 바이스]].
* [[1979년]] - 스페인의 가수 [[레이레 마르티네스]].
* [[1980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조현민 (희극인)|조현민]].
* [[1981년]] - 대한민국의 성우 [[오민혁 (성우)|오민혁]].
* [[1982년]]
** 대한민국의 성우 [[배영규]].
** 미국의 전 야구 선수 [[이언 킨슬러]].
** 사우디아라비아의 전 축구 선수 [[하마드 알몬타샤리]].
** 이탈리아의 배우 [[바르바라 론치]].
* [[1983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박민영 (아나운서)|박민영]].
** 대한민국의 안무가, 퍼포먼스 디렉터 [[손성득]].
** 대한민국의 전 배우 [[이효정 (1983년)|이효정]].
* [[1984년]]
** 일본의 성우 [[오노 유우키]].
** 중화인민공화국의 사격 선수 [[궈원쥔]].
* [[1985년]]
** 일본의 배우, 모델 [[가토 로사]].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석민]] ([[NC 다이노스]]).
** 베트남의 가수, 배우 [[하리원]].
* [[1986년]] - 대한민국의 모델 [[백하나]].
* [[1987년]]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김시연]].
**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배우 [[오연서]].
** 대한민국의 배우 [[이민호 (1987년)|이민호]].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이민재 (농구 선수)|이민재]].
* [[1988년]] - 미국의 배우 [[포샤 더블데이]].
* [[1989년]]
** 대한민국의 가수 [[정용화]] ([[씨엔블루]]).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여름 (축구 선수)|여름]] ([[광주 FC]]).
* [[1990년]]
** 일본의 가수 [[이노오 케이]] ([[Hey! Say! JUMP]]).
** 대한민국의 가수 [[호림 (가수)|호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서보민 (축구 선수)|서보민]].
* [[1991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서준.
* [[1992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이가은 (희극인)|이가은]].
* [[1993년]]
** 독일의 축구 선수 [[로리스 카리우스]].
** 러시아의 전 리듬체조 선수 [[다리야 드미트리예바 (체조 선수)|다리야 드미트리예바]].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김서준 (1993년)|김서준]].
* [[1994년]] - 중화인민공화국의 사격 선수 [[궈원쥔]].
* [[1995년]] - 대한민국의 모델 김아영.
* [[1996년]]
**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 [[공상정]].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로드리 에르난데스]].
* [[1997년]] - 미국의 가수 [[다이너 제인]] ([[피프스 하모니]]).
* [[1998년]]
**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김재원 (인터넷 방송인)|김재원]].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김진영 (1998년)|김진영]].
* [[2001년]]
** 프랑스의 유도 선수 [[막심가엘 응가야프 앙부]].
** 대한민국의 가수 유.
* [[200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예령]].
* [[2009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최연우 (2009년)|최연우]].
* [[201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서윤. (버비)
=== 미상 ===
*대한민국의 가수 이상정.
== 사망 ==
* [[947년]] - 오대십국시대 오월의 제3대 국왕 [[전홍좌]]. ([[928년]]~)
* [[1611년]] - 영국의 항해가 [[헨리 허드슨]]. ([[1565년]]~)
* [[1797년]] - 프랑스의 정치인 [[프랑수아 루이 부르동]]. ([[1758년]]~)
* [[1940년]] - 독일인 기상학자 [[블라디미르 쾨펜]]. ([[1846년]]~)
* [[1951년]]
** 대한민국의 시인 [[김상용 (시인)|김상용]]. ([[1902년]]~)
** 일제 강점기의 페미니스트 작가, 언론인 [[김명순 (1896년)|김명순]]. ([[1896년]]~)
* [[1969년]] - 미국의 가수이자 배우 [[주디 갈런드]]. ([[1922년]]~)
* [[1974년]] - 프랑스의 작곡가 [[다리우스 미요]]. ([[1892년]]~)
* [[1987년]]
** 대한민국의 병리학자 겸 해부학자 [[윤일선]]. ([[1896년]]~)
** 미국의 영화배우 [[프레드 아스테어]]. ([[1899년]]~)
* [[2002년]] - 일본의 축구 선수 [[오카다 요시오]]. ([[1926년]]~)
* [[2004년]] - 대한민국의 통역사 [[김선일 (통역사)|김선일]]. ([[1970년]]~)
* [[2005년]] - 북제주군의 마지막 군수 [[신철주]]. ([[1938년]]~)
* [[2015년]] - 미국의 작곡가 [[제임스 호너]]. ([[1953년]]~)
* [[2018년]] - 헝가리의 정치인 [[네르시 레죄]]. ([[1923년]]~)
* [[2019년]]
** 미국의 소설가 [[주디스 크란츠]]. ([[1928년]]~)
** 브라질의 축구 선수 [[탈리스 리마 지 콘세이상 페냐]]. ([[1995년]]~)
* [[2020년]] - 미국의 영화감독 [[조엘 슈매커]]. ([[1939년]]~)
* [[2021년]] - 일본의 영화배우 [[리 레이센]]. ([[1942년]]~)
* [[2022년]] - 에스토니아의 육상 선수 [[유리 타르마크]]. ([[1946년]]~)
* [[2023년]]
** 미국의 경제학자 [[해리 마코위츠]]. ([[1927년]]~)
** 독일의 클라리넷 연주자 [[페터 브뢰츠만]]. ([[1941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언론인 [[김춘길]]. ([[1940년]]~)
** 아르메니아의 영화배우 [[랄라 므나차카냔]]. ([[1957년]]~)
** 헝가리의 체조 선수 [[코바치 피테르]]. ([[1959년]]~)
== 기념일 ==
* [[:en:Anti-Fascist Struggle Day|반 파시스트 투쟁의 날]]: [[크로아티아]]
* [[:en:Public_holidays_in_Belarus|위대한 애국전쟁 희생자 추모의 날]](Day of Remembrance of the victims of the Great Patriotic War): [[벨라루스]]
* [[교사의 날]]: [[엘살바도르]]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6월 21일]] 다음날: [[6월 23일]] - 전달: [[5월 22일]] 다음달: [[7월 22일]]
* 음력: [[음력 6월 22일|6월 22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6월 22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6월 23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74번째([[윤년]]일 경우 175번째) 날에 해당한다.
{{6월달력}}
{{특정날짜요일|6|23}}
== 사건 ==
* [[1305년]] - [[프랑스]]와 [[플랑드르|플레밍]] 간에 [[아티쉬르오르주]](Athis-sur-Orge)에서 평화 조약이 맺어졌다.
* [[1314년]] -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2세]]와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1세]] 간에 [[베녹번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로버트 1세가 승리를 거두었다.
* [[1532년]] -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5세]]에 대항하는 비밀 조약이 잉글랜드의 [[헨리 8세]]와 프랑스의 [[프랑소와 1세]]간에 맺어졌다.
* [[1565년]] - [[오스만 제국]] [[해군]] 제독이자 [[해적]]이었던 [[터굿 레이스]]가 [[몰타 공방전]] 중에 전사하다
* [[1661년]] - 잉글랜드의 [[찰스 2세]]와 포르투갈의 카타리나가 결혼하다.
* [[1683년]] - [[윌리엄 펜]]이 [[펜실베이니아주]]의 [[레니 레나페]] 인디언과 우호 조약을 체결하다.
* [[1713년]] - [[아카디아]]의 프랑스인 거주민들이 양국으로부터 영국에 충성을 맹세하거나 [[캐나다]] [[노바스코샤주]]에서 떠나라는 요구를 받다. [http://www.acadian-cajun.com/acadia5.htm]
* [[1757년]] - [[플라시 전투]]. [[로버트 클라이브]]가 지휘하는 3,000명의 영국군이 [[플라시]]에서 [[시라지 웃다울라]](Siraj Ud Daulah)가 이끄는 강력한 50,000명의 인도군을 물리치다.
* [[1758년]] - [[7년 전쟁]]: [[크레펠트 전투]]. 영국군이 프랑스군을 [[독일]]의 [[크레펠트]]에서 이기다.
* [[1760년]] - [[7년 전쟁]]: [[란데슈트 전투 (1760년)|란데슈트 전투]].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간에 벌어진 전투. 오스트리아가 승리했다.
* [[1794년]] - 러시아 황제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예카테리나 2세]]가 유대인들에게 [[키에프]] 거주허가를 하다.
* [[1865년]] - [[미국 남북전쟁]]: [[오클라호마 준주]]의 [[토슨 요새]]에서 [[남부동맹]]의 [[스탠드 왜티]] 장군이 남군 부대 중 마지막으로 항복하다.
* [[1888년]] - [[프레데릭 더글러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공화당의 미국 대통령 선거 경선 후보로 지명되다.
* [[1895년]] - [[조선]]의 [[조선의 행정 구역|지방제도]]를 [[이십삼부|23부]]로 개편하는 칙령(칙령 제98호)을 시행하다.
* [[1940년]] - [[제2차 세계 대전]]: 나치 독일 [[아돌프 히틀러]]가 점령한 프랑스의 [[파리시]]를 방문하다.
* [[1941년]] - [[리투아니아 행동주의자 전선]](Lithuanian Activist Front)이 소비에트 연방로부터 [[리투아니아의 1941년 독립|독립을 선포하다]]. 그러나 이 독립은 몇 주 후 독일군이 점령하면서 짧은 시간만 지속되었다.
* [[1942년]] - [[제2차 세계 대전]]: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가스실]]에서 최초로 처형당할 첫 번째 유태인들이 [[파리시]]에서 열차에 실리다.
* 1942년 - [[제2차 세계 대전]]: 나치 독일의 [[포케볼프 Fw-190]]이 [[웨일스]]에 실수로 착륙하여 연합군에 노획되다.
* [[1945년]] - [[제2차 세계 대전]]: 일본군이 [[오키나와섬|오키나와]] 주요 섬의 남쪽 마부니 지역에서 미국군에 대한 조직적 저항이 끝나다.
* [[1958년]] - [[네덜란드 개혁 교회]]가 여성 성직자를 받아들이다.
* [[1961년]] - [[남극조약]]이 발효되다.
* [[1967년]] - [[냉전]]: 미국 [[미국의 대통령|대통령]] [[린든 B. 존슨]]과 소비에트 연방 수상 [[알렉세이 코시긴]]이 [[뉴저지주]] [[글래스보로 (뉴저지주)|글래스보로]]에서 만나 [[글래스보로 정상 회담]]을 가지다.
* [[1973년]] - [[박정희]] 대통령, [[6·23 평화통일 외교정책 선언]]
* [[1985년]] -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en:Air_India_Flight_182|인도 항공 182편]]이 섬 해안 근처에 추락, 탑승인원 329명 전원이 사망하다.
* [[2016년]] -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인 [[브렉시트]]가 거행되었다.
== 문화 ==
* [[1894년]] -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의 주도로 [[국제 올림픽 위원회]]가 [[파리시]]의 [[파리 대학|소르본느]]에서 설립되다.
* [[1989년]] - [[서울아산병원]]이 설립되었다.
* [[1991년]] - [[소닉 더 헤지혹|소닉]]이 출시되다.
* [[1995년]] - [[반구대 암각화]] 문화재 지정.
* [[2004년]] - [[경남도립미술관]]이 개관하였다.
* [[2005년]] -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청]]의 [[한국 정교회]] 관할 50주년 기념 대영광식이 거행되었다.
* [[2009년]] -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 원|5만원권]]이 시중에 유통된다.
* [[2010년]] - [[대한민국]]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에 올랐다.
* [[2014년]] - 미국 IT잡지 [[:en:Computerworld|컴퓨터월드]]가 마지막 호를 끝으로 47년 만에 종이매체 발간을 중단하다.
* [[2018년]] - 호주 프로야구 팀 [[질롱코리아]]가 설립되었다.
* [[2020년]] - [[백자 동화매국문 병]]이 국보에서 해제되다.
== 탄생 ==
* [[기원전 47년]] - 이집트의 왕 [[프톨레마이오스 15세 필로파토르 필로메토르 카이사르|프톨레마이오스 15세 파토르 필로메토르 카이사르]]. (~[[기원전 30년]])
* [[1534년]] - 일본 센고쿠 시대의 무장 [[오다 노부나가]]. (~[[1582년]])
* [[1668년]] - 이탈리아의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 (~[[1744년]])
* [[1703년]] - 폴란드의 [[루이 15세]]의 왕비 [[마리아 레슈친스카]]. (~[[1768년]])
* [[1763년]] - 나폴레옹 1세의 황후 [[조제핀 드 보아르네]]. (~[[1814년]])
* [[1878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동삼]]. (~[[1937년]])
* [[1879년]] - 이집트의 여성운동가 [[후다 샤아라위]]. (~[[1947년]])
* [[1894년]]
** 영국의 국왕 [[에드워드 8세]]. (~[[1972년]])
** 미국의 동물학자 [[알프레드 킨제이]]. (~[[1956년]])
* [[1911년]] - 영국 출신 미국의 광고인 [[데이비드 오길비]]. (~[[1999년]])
* [[1912년]] -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 (~[[1954년]])
* [[191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두한]]. (~[[1972년]])
* [[1922년]]
** 대한민국의 신학자 [[안병무]]. (~[[1996년]])
** 대한민국의 의학자, 교수 [[현봉학]]. (~[[2007년]])
* [[1931년]] - 대한민국의 요리연구가 [[한정혜]]. (~[[2022년]])
* [[1937년]] - 핀란드의 정치가 [[마르티 아티사리]]. (~[[2023년]])
* [[1940년]] - 미국의 육상 선수 [[윌마 루돌프]]. (~[[1994년]])
* [[1943년]]
** 미국의 전산학자 [[빈튼 서프]].
** 미국의 음악가 [[제임스 리바인]]. (~[[2021년]])
* [[1944년]] - 스위스의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 (~[[2023년]])
* [[1947년]] - 캐나다의 경제학자 [[스탠리 웡 (경제학자)|스탠리 웡]]. (~[[2016년]])
* [[1949년]] - 미국의 영화 제작자 [[로런 슐러 도너]].
* [[1956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최순실]].
* [[1957년]]
** 대한민국의 현대미술 작가 [[박이소]].
** 미국의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
* [[1959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출신 정치인 [[한선교]].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개호]].
* [[1963년]] - 중국의 소설가 [[류츠신]].
* [[1966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정현 (1966년)|이정현]].
** 대한민국의 법조인 [[박준선 (1966년)|박준선]].
** 대한민국의 정치인 [[임미애]].
* [[1968년]]
** 대한민국의 현 야구 코치, 전 야구 선수 [[송구홍]].
** 대한민국의 야구 심판, 전 야구 선수 [[강광회]].
**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겸 작곡가 [[오태호]].
** 대한민국의 기업가 [[이재용]].
* [[1971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유의동]].
* [[197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얀 (가수)|얀]].
**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 [[지네딘 지단]].
** 미국의 배우 [[셀마 블레어]].
* [[1973년]]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이민성]].
* [[1974년]]
** 대한민국의 TV조선 방송기자 [[엄성섭]].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영철 (희극인)|김영철]].
** 대한민국의 가수 [[Ryu (가수)|Ryu]].
** 오스트레일리아의 배우, 영화 감독 [[조엘 에저턴]].
* [[1976년]] - 프랑스의 축구 감독, 전 축구 선수 [[파트리크 비에라]].
* [[1977년]]
** 미국의 가수 [[제이슨 므라즈]].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경원 (야구 선수)|이경원]].
* [[1978년]] - 대한민국의 전 루지 선수 겸 정치가 [[이용 (루지 선수)|이용]].
* [[1981년]] - 대한민국의 래퍼 [[디테오]] ([[브라운 후드]], [[소울다이브]]).
* [[1982년]] - 대한민국의 가수, 뮤지컬 배우 [[이비 (가수)|이비]].
* [[1983년]] - 대한민국의 기상캐스터 [[이호원 (기상 캐스터)|이호원]].
* [[1984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조민아]].
** 영국의 가수 [[더피]].
** 우즈베키스탄의 테니스 선수 [[아크굴 아만무라도바]].
* [[1986년]]
** 대한민국의 골프 선수 [[홍란]].
** 대한민국의 스턴트맨, 무술감독 [[김선웅 (1986년)|김선웅]].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윤진호 (야구인)|윤진호]].
* [[1987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예슬]].
** 잉글랜드의 배우 [[에드워드 홀크로프트]].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동민 (1987년)|김동민]].
** 프랑스의 농구 선수 [[난도 드 콜로]].
* [[1988년]]
** 노르웨이의 축구 선수 [[이사벨 헬로브센]].
* [[1989년]]
** 일본의 성우 [[타케타츠 아야나]].
** 스웨덴의 축구 선수 [[크리스토페르 노르드펠트]].
** 잉글랜드의 가수 [[로런 베넷]].
* [[199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임지연]].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고원준]].
* [[1992년]] - 세네갈의 축구 선수 [[남팔리스 멘디]].
* [[199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송지수]].
** 오스트레일리아의 허들 선수, 모델 [[미셸 제너커]].
* [[1994년]]
** 대한민국의 모델, 배우 [[정호연]].
** 태국의 가수 [[민트 (태국의 가수)|민트]].
** 대한민국의 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갱맘]].
* [[1995년]] - 대한민국의 연극배우 한지아.
* [[1997년]] - 대한민국의 크레이지싱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 [[문호준]].
* [[1998년]]
** 대한민국의 가수 [[신지훈 (가수)|신지훈]].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할로우 (프로게이머)|할로우]].
* [[2000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현수]].
* [[2003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한.
* [[2004년]]
** 일본의 배우, 가수 [[아시다 마나]].
** 러시아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 [[200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채미]].
== 사망 ==
* [[79년]] - 로마 제국의 9대 황제 [[베스파시아누스]]. (9년~)
* [[1582년]] - 일본 센고쿠 시대의 무장 [[시미즈 무네하루]]. (1537년~)
* [[1659년]] - 조선의 제17대 국왕 [[효종 (조선)|효종]]. (1619년~)
* [[1945년]] - 일본제국의 군인 [[조 이사무]]. (1895년~)
* [[1989년]] - 독일의 법학자 이자 나치 친위대 장교 [[베르너 베스트]]. (1903년~)
* [[1993년]] - 독일의 천문학자 [[빌헬름 글리제]]. (1915년~)
* [[1996년]] - 그리스의 정치인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1919년~)
* [[201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前 국무총리 [[김종필]]. (1926년~)
* [[2019년]] - 미국의 음악가 [[데이브 바솔로뮤]]. (1918년~)
* [[2021년]]
** 대한민국의 무술가 [[김윤상 (무술가)|김윤상]]. (1934년~)
** 미국의 기업인 [[존 매커피]]. (1945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조순]]. (1928년~)
** 독일의 영화배우 [[에른스트 야코비]]. (1933년~)
* [[2023년]]
** 대한민국의 역사학자 [[강만길]]. (1933년~)
** 미국의 영화배우 [[마지아 딘]]. (1922년~)
** 대한민국의 기자 [[이연제]]. (199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최명헌]]. (1929년~)
** 미국의 영화배우 [[프레더릭 포러스트]]. (1936년~)
== 기념일 ==
* [[:en:United_Nations_Public_Service_Awards|UN 공공행정의 날]](United Nations Public Service Day)
* [[:en:International Widows Day|국제 미망인의 날]](International Widows Day)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6월 22일]] 다음날: [[6월 24일]] - 전달: [[5월 23일]] 다음달: [[7월 23일]]
* 음력: [[음력 6월 23일|6월 23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6월 23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6월달력}}
{{특정날짜요일|6|24}}
'''6월 24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75번째([[윤년]]일 경우 176번째) 날에 해당한다.
== 사건 ==
* [[79년]] - [[티투스]]가 로마 황제가 되다.
* [[1340년]] - [[백년 전쟁]]: [[슬로이스 해전]]이 일어나다.
* [[1497년]] - [[이탈리아]] 출신의 영국 탐험가 [[존 캐벗]]이 [[북아메리카]](뉴펀들랜드)를 발견하다.<ref>최희일 <한 권으로 보는 캐나다 역사 100장면> 가람기획 2001년 p35...북미대륙을 영국땅이라고 주장한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ref><ref name=":02">진 프리츠 <삐딱하고 재미있는 세계 탐험이야기> 푸른숲 2003 p112</ref>
* [[1571년]] -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가 [[마닐라]]에 시청을 설치하고 [[에스파냐령 필리핀]]의 [[수도]]로 정하다.
* [[1597년]] - [[네덜란드인]]들이 최초로 [[자와섬|자바섬]]에 상륙하다.
* [[1662년]] - [[네덜란드]]가 [[마카오]]의 무력 점령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다.
* [[1812년]] - [[나폴레옹 전쟁]]: [[프랑스 제1제국|프랑스 제국]]의 [[대육군]]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의 지휘 아래 [[네만강]]을 건너면서 [[러시아 원정]]의 시작을 알리다.
* [[1880년]] - [[캐나다의 국가]]가 [[퀘벡 (도시)|퀘벡]]에서 처음으로 연주되다.
* [[1894년]] - [[프랑스]]의 대통령 [[마리 프랑수아 사디 카르노]]가 암살당하다.
* [[1910년]] - [[대한제국]]의 경찰권이 조약에 따라 [[일본 제국]]에 이양되다.
* [[2009년]] - [[대한민국]]에서 첫 [[안락사|존엄사]]가 실시되다.
* [[2022년]] - [[미국 연방 대법원]]이 49년 만에 [[로 대 웨이드 사건|로 대 웨이드 판결]]을 공식적으로 폐기했다.
== 문화 ==
* [[2003년]]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영국]]을 국빈 방문하다. 러시아의 국가원수로서는 [[1844년]]의 [[니콜라이 1세]] 이래로 159년 만에 영국을 방문하다.
* [[2004년]] - 대한민국, [[천주교 의정부교구]]를 설립하다.
* [[2013년]] - [[대한민국]]에서 [[SK텔레콤]]이 세계 최초로 LTE-A 서비스를 실시하게 되다.
* [[2014년]] - [[NC 다이노스]]의 투수 [[찰리 쉬렉]]이 [[LG 트윈스]]를 상대로 [[KBO 리그]] 14년만에 [[송진우]] 선수에 이어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였다.
* [[2015년]] - 영화 [[연평해전 (영화)|연평해전]]이 개봉되다.
== 탄생 ==
* [[1768년]] - 프랑스의 장군 [[루이 라자르 오슈]]. (~[[1797년]])
* [[1892년]] - 대한민국의 화가 [[김은호]]. (~[[1979년]])
* [[1893년]] - 미국의 기업인 [[로이 O. 디즈니]]. (~[[1971년]])
* [[1897년]] - 대한민국의 비행사 [[박경원 (비행사)|박경원]]. (~[[1933년]])
* [[1901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윤세주]]. (~[[1942년]])
* [[1909년]] - 대한민국의 피아니스트 김경석. (~[[1956년]])
* [[1919년]] - 대한민국의 지휘자 [[임원식]]. (~[[2002년]])
* [[1930년]] - 프랑스의 영화 감독 [[클로드 샤브롤]]. (~[[2010년]])
* [[1932년]] - 일본의 제12대 재무재신 [[후지이 히로히사]]. (~[[2022년]])
* [[1942년]] - 오스트리아의 작가 [[게르하르트 로스]]. (~[[2022년]])
* [[1944년]] - 영국의 기타 연주자 [[제프 벡]]. (~[[2023년]])
* [[1945년]] - 대한민국의 성우 겸 배우 [[김기현 (성우)|김기현]].
* [[1949년]] - 독일의 적군파 대원 [[브리기테 몬하우프트]].
* [[195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조양자]].
* [[1961년]] - 영국의 가수, 작곡가, 음악가 [[커트 스미스]].
* [[1962년]]
** 인도의 기업가 [[고탐 아다니]].
** 멕시코의 과학자 출신 정치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 [[1964년]] - 영국의 사업가 [[해미시 하딩]]. (~[[2023년]])
* [[196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손현주]].
* [[1966년]] -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밀레나 베르톨리니]].
* [[1967년]] - 대한민국의 언론인 [[정승훈]].
* [[1968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은수 (배우)|김은수]].
** 대한민국의 시인 [[조기영]].
** 독일의 사격인 [[크리스티안 클레스]].
* [[197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지진희]].
* [[1972년]]
** 대한민국의 성우 [[유호한]].
** 대한민국의 배우 [[김여진]].
* [[1973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방송인 [[이상민 (가수)|이상민]].
* [[1974년]]
** 대한민국의 SBS 아나운서 [[박찬민]].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대희 (희극인)|김대희]].
* [[1975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성연 (배우)|박성연]].
* [[1977년]] -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 [[최선호 (유도 선수)|최선호]].
* [[1978년]]
** 일본의 축구 선수 [[나카무라 슌스케]].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후안 로만 리켈메]].
* [[1979년]]
** 대한민국의 배우 [[민지영]].
** 대한민국의 정치인 [[권성주]].
* [[1980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재정 (배우)|박재정]].
** 대한민국의 배우 [[박혜상 (1980년)|박혜상]]. (~[[2010년]])
* [[1983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경진 (희극인)|김경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근철]].
** 대한민국의 배우 [[박혜영 (1983년)|박혜영]].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송광민]].
* [[1984년]]
** 미국의 성우 [[루시언 도지]].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철민 (1984년)|김철민]].
** 미국의 농구 선수 [[J. J. 레딕]].
* [[1985년]]
** 대한민국의 철권 프로게이머 [[배재민]].
** 대한민국의 전 농구 선수 [[신혜인]].
* [[1987년]]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종진 (1987년)|박종진]].
** 일본의 축구 선수 [[모리타 신지]].
** 일본의 가수 [[LiSA]].
** 잉글랜드의 다이빙 선수 [[니컬러스 로빈슨 베이커]].
* [[1988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조소현]].
** 미국의 가수 [[닉쿤]] ([[2PM]]).
* [[1990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성영훈]].
* [[1991년]]
** 일본의 가수 [[키타하라 리에]].
** 일본의 성우 [[쿠와하라 유우키]].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김민구 (농구 선수)|김민구]].
** 카타르의 육상 선수 [[무타즈 이사 바르심]].
* [[1992년]]
** 오스트리아의 축구 선수 [[데이비드 알라바]].
** 대한민국의 스타그래프트 [[박준오]].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신세진]].
** 대한민국의 작곡가 신슬기.
* [[1993년]]
** 대한민국의 래퍼 하랑 ([[오프로드 (음악 그룹)|오프로드]]).
** 우즈베키스탄의 복싱 선수 [[하산보이 두스마토프]].
** 우즈베키스탄의 복싱 선수 [[아브두말리크 할로코프]].
* [[1994년]] - 일본의 성우 [[엔도 유리카]].
* [[1995년]] - 대한민국의 가수 선 ([[BXK]]).
* [[1996년]]
** 영국의 배우 [[해리스 디킨슨]].
** 대한민국의 가수 [[정진우 (1996년)|정진우]].
** 일본의 축구 선수 [[사카모토 마사키]].
* [[1997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최범경]].
** 중화인민공화국의 복싱 선수 [[창위안 (권투 선수)|창위안]].
* [[1999년]] -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 [[다르윈 누녜스]].
* [[2004년]]
** 대한민국의 모델 [[린애]].
** 대한민국의 가수 [[기석 (2004년)|기석]].
* [[2006년]] - 일본의 바둑 기사 [[우에노 리사]].
== 가상인물 ==
* [[쓰르라미 울적에]] - [[호죠 사토코]]
== 사망 ==
* [[79년]] - 로마의 제국 황제 [[베스파시아누스]]. (9년~)
* [[1768년]] - 루이 15세의 왕비 [[마리아 레슈친스카]]. (1703년~)
* [[1860년]] - 베스트팔렌 왕국의 국왕 [[제롬 보나파르트]]. (1784년~)
* [[1908년]] - 미국의 제 22,24대 대통령 [[그로버 클리블랜드]]. (1837년~)
* [[1986년]] - 대한민국의 조각가 [[김세중]]. (1928년~)
* [[1989년]] - 일본의 가수 [[미소라 히바리]]. (1937년~)
* [[2007년]] - 캐나다의 프로레슬링 선수 [[크리스 벤와]]. (1967년~)
* [[2009년]] - 대한민국의 성악가 [[오현명 (성악가)|오현명]]. (1924년~)
* [[2015년]] - 미국의 장교 [[안수산]]. (1915년~)
* [[2017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박원웅]]. (1940년~)
* [[2019년]] - 미국의 영화배우 [[빌리 드래고]]. (1945년~)
* [[2021년]]
** 필리핀의 제15대 대통령 [[베니그노 아키노 3세]]. (1960년~)
** 베트남의 군인 [[쩐티엔키엠]]. (1925년~)
* [[2023년]]
** 홍콩의 법조인 [[양톄량]]. (1929년~)
** 미국의 육상 선수 [[딘 스미스 (육상 선수)|딘 스미스]]. (1932년~)
== 기념일 ==
* [[카라보보 전투]] 승전 기념일: [[베네수엘라]]
* [[배넉번 전투]] 승전 기념일: [[스코틀랜드]]
* [[전자정부의 날]]: [[대한민국]]
== 같이 보기 ==
* 전날: [[6월 23일]] 다음날: [[6월 25일]] - 전달: [[5월 24일]] 다음달: [[7월 24일]]
* 음력: [[음력 6월 24일|6월 24일]]
* [[날짜의 목록|모두 보기]]
== 각주 ==
<references/>
{{위키공용분류}}
{{열두달}}
[[분류:6월 24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6월 26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77번째([[윤년]]일 경우 178번째) 날에 해당한다.
{{6월달력}}
{{특정날짜요일|6|26}}
== 사건 ==
* [[1284년]] -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인 [[하멜른]]의 아이 130명이 사라졌다고 추정하는 날이다.
* [[1541년]] - [[잉카 제국]]을 정복한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피살되었다.
* [[1830년]] - [[영국의 윌리엄 4세|윌리엄 4세]]가 영국과 하노버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 [[1843년]] - [[난징 조약]]에 따라 [[홍콩섬]]이 영국에 할양되었다.
* [[1862년]] - [[미국 남북전쟁]], [[반도전역]] 남군, 북군에 대해 반격 개시. 남군의 A.P.힐이 제일 먼저 전투를 개시했으며 치카호미니 강을 도하, 미케닉스빌로 진격하였다.
* [[1926년]] - [[한국의 독립운동가]] [[여운형]]이 광동에서 [[한인혁명군]]을 조직했다.
* [[1949년]] - [[한국의 독립운동가]] [[김구]]가 [[안두희]]에게 저격당하였다.
* [[1950년]] - [[개성, 문산 전투]]와 [[고랑포 전투]]가 끝났다.
* [[1953년]] - 일본인들이 미국 선박으로 위장한 배를 타고 [[독도]]를 점거했다.
* [[1960년]] - [[마다가스카르]]가 독립했다.
* [[1982년]] - [[국제 연합]]이 [[레바논]]에 주둔한 이스라엘군의 전면 철수를 결의했다.
* [[1987년]] - 대한민국에서 6·26 국민평화 대행진이 일어났다.
* [[2000년]]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파티마 제3의 비밀 내용을 공개했다.
* [[2008년]] - [[북한]]이 [[중화인민공화국|중국]]에 핵 신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미국]]은 북한에 대한 [[테러 지원국]] 해제를 의회에 통보하였으며 [[적성국교역법]]이 종료되었다.
* [[2012년]] - 게임 [[냥코대전쟁]] 일본판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 [[2014년]] - [[북한]]이 [[강원도]] [[원산시]] 북쪽 동해상에서 단거리 미사일 3발을 발사하였다, 게임 [[냥코대전쟁]] 한국판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 [[2015년]]
** [[튀니지]]의 휴양지 [[수스]]의 해변에서 테러범이 총기를 난사해 최소 38명이 사망하는 등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 미국 연방 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 [[2020년]] - [[한국방송공사|KBS]] 장수 코너 [[개그콘서트]]가 방영이 종료되었다.
== 문화 ==
* [[1965년]] - 서울 FM(현 [[KBS 제2FM]]) 방송 시작.
* [[1997년]] - [[KBS 영상사업단]] 파파파 유치원 하나둘셋가 출시되다.
* [[2016년]] - [[파나마 운하]]가 102년만에 확장 개통되었다.
== 탄생 ==
* [[1730년]] - 프랑스의 천문학자 [[샤를 메시에]]. (~[[1817년]])
* [[1819년]] - 미국의 군인, 남북 전쟁 북군의 장군 [[애브너 더블데이]]. (~[[1893년]])
* [[1824년]] - 영국의 수리물리학자, 공학자 [[제1대 켈빈 남작 윌리엄 톰슨]] (~[[1907년]])
* [[1892년]] - 미국의 소설가 [[펄 S. 벅]]. (~[[1973년]])
* [[1920년]] - 대한민국의 철학자 [[안병욱]]. (~[[2013년]])
* [[1931년]]
** 대한민국의 작가 김경란. (~[[2023년]])
**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이민정. (~[[1961년]])
* [[1933년]]
** 대한민국의 군인 [[이상훈 (1933년)|이상훈]]. (~[[2023년]])
** 이탈리아의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2014년]])
* [[1934년]] - 미국의 작곡가 [[데이브 그루신]].
* [[1937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조경목]]. (~[[2024년]])
** 태국의 영화배우 [[솜밧 메타니]]. (~[[2022년]])
* [[1943년]] - 대한민국의 성우 [[황원]]. (~[[2023년]])
* [[194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정영석 (1946년)|정영석]]. (~[[2024년]])
* [[1952년]] - 김정은의 모친 [[고용희]]. (~[[2004년]])
* [[1957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오병윤]].
* [[1964년]] - 핀란드의 자동차 경주 선수 [[톰미 매키넨]].
* [[1966년]]
** 프랑스의 배우 [[대니 분]].
** 노르웨이의 축구 심판 [[톰 헨닝 외브레뵈]].
** 대한민국의 성우 [[김혜미]].
** 일본의 성우 [[미나구치 유코]].
* [[1967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허수경]].
* [[1968년]]
**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파올로 말디니]].
** 일본의 성우 [[치바 잇신]].
* [[1969년]] - 영국의 밴드 [[콜린 그린우드]].
* [[1970년]]
** 미국의 영화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
** 미국의 배우 [[닉 오퍼먼]].
** 소련의 전 리듬체조 선수 [[마리나 로바치]].
** 일본의 만화가 [[코노미 타케시]].
* [[1972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강인권]].
* [[1973년]] - 대한민국의 전 농구 선수, 농구코치 [[전희철 (농구인)|전희철]].
* [[1974년]]
** 대한민국의 성우 [[김혜주]].
** 대한민국의 배우 [[이필모]].
** 미국의 야구 선수 [[데릭 지터]].
** 콩고민주공화국의 축구 선수[[장카송고 반자]]. (~[[2024년]])
* [[1976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최거룩]].
** 대한민국의 기자 [[김세의]].
** 우크라이나의 정치인, 기업인 [[알렉산드르 자하르첸코]].
* [[1977년]]
** 잉글랜드의 배우 [[줄레이카 로빈슨]].
** 대한민국의 작가 김현영.
* [[197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최규환 (배우)|최규환]].
* [[1979년]]
** 일본의 성우 [[미즈하라 가오루]].
** 대한민국의 만화가 [[정철연]].
** 대한민국의 방송기자, 전 아나운서 [[전종환]].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라이언 테더]].
* [[1980년]]
** 대한민국의 전 기자, 아나운서 [[전종환]].
** 미국의 배우, 음악가 [[제이슨 슈워츠먼]].
* [[1981년]] - 일본의 성우 [[콘도 카나코]].
* [[1982년]] - 대한민국의 쇼핑호스트 정수현.
* [[1983년]] - 브라질의 축구 선수 [[펠리피 멜루]].
* [[1984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정준 (1984년)|박정준]].
** 대한민국의 배우 [[김동원 (1984년)|김동원]].
** 프랑스의 싱어송라이터 [[인딜라]].
** 미국의 배우 [[오브리 플라자]].
**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화배우 [[원장]].
** 일본의 전 축구 선수 [[마키 유키]].
* [[198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손은서]].
** 대한민국의 가수, 모델 [[김라나]].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다니엘라 사바티노]].
* [[1986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조정민 (가수)|조정민]].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신정민]].
** 미국의 성우 [[브리트니 카바우스키]].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진해수]].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제이슨 펀천]].
* [[1987년]]
** 프랑스의 축구 선수 [[사미르 나스리]].
** 대한민국의 배우 [[정하윤]].
** 그리스의 축구 선수 [[파나요티스 코네]].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이은혜]].
* [[1988년]]
** 대한민국의 연극배우 채수연.
** 대한민국의 전 배구 선수 [[최홍석]]. (~[[2024년]])
** 일본의 아이돌 [[나카니시 리나]].
* [[1989년]] - 대한민국의 배우 [[한서진 (1989년)|한서진]].
* [[1990년]]
** 사우디아라비아의 축구 선수 [[야흐야 알셰흐리]].
** 대한민국의 배우 [[나무 (배우)|나무]].
* [[1991년]]
** 일본의 성우 [[하나에 나츠키]].
**대한민국의 래퍼 [[안수민]].
* [[1992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준표]].
** 대한민국의 배우 [[최윤라]].
** 코스타리카의 축구 선수 [[조엘 캠벨]].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제넷 매커디]].
** 일본의 배우 [[호리이 아라타]].
** 프랑스의 농구 선수 [[뤼디 고베르]].
* [[1993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박승연]].
** 미국의 가수 및 배우 [[아리아나 그란데]].
** 스페인의 축구 선수 [[아만다 삼페드로]].
* [[1994년]]
** 대한민국의 래퍼 [[샵건]].
** 캐나다의 유도 선수 [[카트린 보슈맹피나르]].
* [[1995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정주후]].
* [[1996년]] -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배우 [[방수진]] ([[와썹]]).
* [[1997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백예린]].
** 오스트레일리아의 배우 [[제이컵 엘로디]].
* [[1998년]] -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윤솜]].
* [[1999년]] - 대한민국의 오버워치 프로게이머 [[게구리]].
* [[2000년]] - 대한민국의 유튜버 원츄.
* [[2001년]]
** 벨라루스의 체조 선수 [[이반 리트비노비치]].
** 대한민국의 가수 정수.
* [[200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지우 (배우)|이지우]].
** 대한민국의 배우 [[안은정]].
* [[2003년]]
** 대한민국의 가수 [[수연이]].
** 대한민국의 아이돌 [[채린 (2003년)|채린]].
* [[2005년]]
** 네덜란드의 공주 [[네덜란드 공주 알렉시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장경 (배우)|이장경]].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애슐리 필립스]].
* [[2007년]] - 대한민국의 가수 원희.
== 사망 ==
* [[1830년]] - 영국의 국왕 [[조지 4세]]. ([[1762년]]~)
* [[1922년]] - 모나코의 생물학자 [[알베르 1세 (모나코)|알베르 1세]]. ([[1848년]]~)
* [[1936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나창헌 (1896년)|나창헌]]. ([[1896년]]~)
* [[1943년]] - 미국의 병리학자, 혈청학자 [[카를 란트슈타이너]]. ([[1868년]]~)
* [[1949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구]]. ([[1876년]]~)
* [[1946년]] - 일본제국의 정치인 [[마쓰오카 요스케]]. ([[1880년]]~)
* [[1962년]] - 대한민국의 가수 [[남인수]]. ([[1918년]]~)
* [[1984년]] -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 ([[1926년]]~)
* [[1994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이우석]]. ([[1896년]]~)
* [[2003년]] - 카메룬의 축구 선수 [[마르크비비앙 푀]]. ([[1975년]]~)
* [[2005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진해]]. ([[1941년]]~)
* [[2007년]] - 독일의 축구 선수 [[유프 데어발]]. ([[1927년]]~)
* [[2011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정정숙]]. ([[1982년]]~)
* [[2015년]]
**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진도희 (1949년)|진도희]]. ([[1949년]]~)
** 러시아의 정치인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1929년]]~)
* [[2016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성민 (배우)|김성민]]. ([[1973년]]~)
* [[2019년]]
** 프랑스의 영화배우 [[에디트 스코브]]. ([[1937년]]~)
** 미국의 영화배우 [[맥스 라이트]]. ([[1943년]]~)
* [[2020년]]
** 대한민국의 트라이애슬론 선수 [[최숙현]]. ([[1998년]]~)
** 미국의 영화배우 [[타린 파워]]. ([[1953년]]~)
** 미국의 디자이너 [[밀튼 글레이저]]. ([[1929년]]~)
* [[2022년]] - 미국의 영화배우 [[메리 마라]]. ([[1960년]]~)
* [[2023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미정 (경기도의원)|김미정]]. ([[1970년]]~)
** 영국의 영화배우 [[니콜라스 코스터]]. ([[1937년]]~)
** 프랑스의 소설가 [[이자벨 라캉]]. ([[1954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안유수]]. ([[1930년]]~)
* [[2024년]]
** 일본의 배우, 성우 [[마츠노 타이키]]. ([[1967년]]~)
** 독일의 물리학자 [[피터 암브루스터]]. ([[1931년]]~)
== 기념일 ==
* [[:en:International Day in Support of Victims of Torture|세계 고문 피해자 지원의 날]]
* [[:en:International Day against Drug Abuse and Illicit Trafficking|세계 마약남용 및 불법 인신매매 방지의 날 ]]
* [[:en:Public holidays in Azerbaijan|육군과 해군의 날]]: [[아제르바이잔]]
* [[:en:Flag_of_Romania|국기의 날]]: [[루마니아]]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6월 25일]] 다음날: [[6월 27일]] - 전달: [[5월 26일]] 다음달: [[7월 26일]]
* 음력: [[음력 6월 26일|6월 26일]]
* [[366일|모두 보기]]
{{열두달}}
[[분류:6월 26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6월 27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78번째([[윤년]]일 경우 179번째) 날에 해당한다.
{{6월달력}}
{{특정날짜요일|6|27}}
== 사건 ==
* [[678년]] - [[교황 아가토]], 79대 로마 교황으로 취임했다.
* [[1743년]] -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뎃팅겐 전투]].
* [[1759년]] - [[7년 전쟁]] : [[제임스 울프]] 이끄는 [[영국군]]이 [[누벨프랑스]]의 수도 [[퀘벡]]의 포위를 시작했다.
* [[1862년]] - 미국 [[미국 남북 전쟁|남북전쟁]], [[반도전역]] 게인스 밀에서 남북군 전투. 북군 패배. 북군 철수 시작.
* [[1917년]] - 중립이었던 그리스가 전 [[동맹국]]에 [[선전 포고]]를 하다.
* [[1950년]] - [[한국 전쟁]] : [[보도연맹 사건]] . [[유엔 안보리]]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탄핵 결의안이 통과된다.
* [[1954년]] - [[변영태]]가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국무총리]]의 임기를 시작했다.
* [[1974년]] -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소련]]을 방문.
* [[1976년]] - [[텔아비브]]에서 [[파리 (프랑스)|파리]]행 [[에어 프랑스]] 항공기가 납치되어 [[우간다]]의 [[엔테베 국제공항]]에 강제 착륙되었다. 이후 [[7월 3일]] [[이스라엘]] 특수부대가 기습침투하여 인질들을 구출하였는데 이것이 유명한 [[엔테베 작전]]이다.
* [[1977년]] - [[지부티]]가 독립했다.
* [[1980년]] -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근해에서 [[이타비아 항공]] 소속 항공기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미사일에 격추, 추락.
* [[1991년]] - [[유고슬라비아 내전]]: [[슬로베니아]]의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 선언을 통해 열흘간 전쟁이 발발.
* [[1995년]] - [[대한민국]]에서 지방의회 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선출하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되다.
* [[2007년]] -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엘리자베스 2세]]에 사표를 제출했다.
* [[2008년]] - [[북한]] 영변 냉각탑 폭파.
* [[2013년]] - [[전두환 추징법]]이 반대 2표, 기권 4표로 국회 본회의에 통과하였다. 이로서 이 법은 2020년 10월까지 시효가 연장된다.
* [[2014년]] -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장클로드 융커]] 전 [[룩셈부르크]] 총리를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으로 지명하였다.
== 문화 ==
* [[1967년]] - [[런던]]의 [[바클리스]] 은행(Barclays Bank)에 세계 최초의 [[현금 자동 입출금기|ATM]] 설치.
* [[1974년]] - [[유로콥터 AS350 에퀴아이]] 초도비행.
* [[1984년]] - [[88올림픽고속도로]]가 개통했다.
* [[1990년]] - [[서울 지하철 5호선]] 착공.
* [[1998년]] -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개항.
* [[2012년]] - [[대한민국]]의 [[스위치백]] 구간인 [[영동선]] [[통리역|통리]]~[[심포리역|심포리]]~[[흥전역|흥전]]~[[나한정역|나한정]]~[[도계역|도계]] 구간이 폐선되었다.
* [[2013년]] - [[중부내륙고속도로]] [[남여주 나들목]] 구간이 개통되었다.
* [[2017년]] - [[롯데 자이언츠]] 가 역사적인 역전승 경기를 가져간 날이다.
* [[2018년]] -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이 [[대한민국]]에 패함으로써 [[1938년]] 이후 80년만에 [[월드컵]] 본선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였다.
== 탄생 ==
* [[1350년]] - 동로마 제국의 황제 [[마누일 2세 팔레올로고스]]. (~[[1425년]])
* [[1462년]] - 프랑스의 왕 [[루이 12세]]. (~[[1515년]])
* [[1550년]] - 프랑스의 왕 [[샤를 9세]]. (~[[1574년]])
* [[1880년]] - 미국의 작가, 장애인 복지활동가, 교육자 [[헬렌 켈러]]. (~[[1968년]])
* [[1905년]] - 중화권의 배우, 무술가 [[관더싱]]. (~[[1996년]])
* [[1914년]] - 영국의 작가 [[로버트 에이크먼]]. (~[[1981년]])
* [[1920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이장균]]. (~[[1997년]])
* [[1925년]] - 대한민국의 성우 [[이춘사]].
* [[1929년]] - 대한민국의 비전향장기수 [[신광수 (1929년)|신광수]].
* [[1930년]] - 폴란드의 배우, 영화 감독 [[리샤르트 론체프스키]]. (~[[2020년]])
* [[1932년]] - 대한민국의 외교관 [[노재원]]. (~[[2006년]])
* [[193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한갑수 (1934년)|한갑수]].
* [[1940년]] - 미국의 수학자 [[대니얼 퀼런]]. (~[[2011년]])
* [[1941년]]
** 일본계 미국 정치인 [[마이크 혼다]].
** 폴란드의 영화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1996년]])
* [[1943년]] - 독일과 루마니아의 [[키라 폰 프로이센 왕녀]]. (~[[2004년]])
* [[1944년]] - 미국의 작사자 [[윌 제닝스]]. (~[[2024년]])
* [[195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용복]].
** 프랑스의 가수 [[다니엘 비달]].
* [[1953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신창현 (정치인)|신창현]].
** 일본의 애니메이션 미술감독 [[야마모토 니조]]. (~[[2023년]])
* [[1955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순례]].
** 프랑스의 영화배우 [[이자벨 아자니]].
* [[1956년]] - 일본의 야구 선수 [[니시모토 다카시]].
* [[1957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차영화]].
* [[1959년]] - 폴란드의 영화감독 [[야누시 카민스키]].
* [[1962년]] - 중국의 배우 [[양조위]].
* [[1964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준규 (배우)|박준규]].
* [[1965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언론인 [[신동욱 (방송인)|신동욱]].
* [[1966년]]
** 미국의 영화감독 [[J. J. 에이브럼스]].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코치 [[고정운]].
** 대한민국의 배우 [[김보성 (배우)|김보성]].
** 대한민국의 가수 [[이정현 (1966년)|이정현]].
* [[1970년]] - 대한민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최무배]].
* [[1974년]]
** 러시아의 장군 [[안드레이 수호베츠키]]. (~[[2022년]])
** 미국의 배우, 가수 [[크리스천 케인]].
* [[1975년]] - 미국의 배우 [[토비 매과이어]].
* [[1977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정종철]].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라울 곤살레스]].
* [[1979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규리 (1979년 6월)|김규리]].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조현수 (야구 선수)|조현수]].
** 대한민국의 댄서 [[하휘동]].
* [[1980년]]
** 대한민국의 희극인 [[노우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정성훈 (1980년)|정성훈]].
* [[1981년]] - 브라질의 축구 선수 [[클레베르 산타나]]. (~[[2016년]])
* [[1982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축구 선수 [[리한재]].
* [[1983년]]
** 대한민국의 전직 광주 북구의회의원 [[최유진 (1983년)|최유진]].
** 러시아의 가수, 배우 [[알수]].
* [[198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손호준]].
** 그리스의 축구 선수 [[호세 홀레바스]].
** 뉴질랜드의 배우 [[에마 라하나]].
* [[1986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배영섭]].
** 영국의 배우 [[샘 클라플린]].
** 미국의 가수, 배우, 희극인, 작가 [[드레이크 벨]].
* [[1987년]]
** 대한민국의 컬링 선수 [[김지선 (컬링 선수)|김지선]].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최수진 (축구 선수)|최수진]].
* [[198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양진성]].
** 독일의 축구 선수 [[첼리아 샤시치]].
* [[1989년]]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강하빈]].
* [[1990년]]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이아린 (레이싱 모델)|이아린]].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조인선]].
* [[199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원근]].
** 대한민국의 전 가수 [[민하|박민하]]. ([[나인뮤지스]])
** 일본의 성우, 가수 [[야마자키 하루카]].
* [[199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영화배우 [[안소희]].
** 대한민국의 태권도 선수 [[인교돈]].
** 일본의 배우, 패션 모델 [[혼다 츠바사]].
* [[1993년]] - 대한민국의 가수 [[러비]].
* [[1994년]] - 대한민국의 가수, 뮤지컬배우 [[이서영 (1994년)|이서영]] ([[헬로비너스]]).
* [[1995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조이현 (야구 선수)|조이현]].
* [[1996년]] - 대한민국의 치어리더 [[손지해]].
* [[1997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세진 (1997년)|박세진]].
**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 [[이하림]].
** 대한민국의 배우 [[서범준]].
* [[1998년]] - 대한민국의 가수 [[건희 (가수)|건희]] ([[원어스]]).
* [[1999년]] - 대한민국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규은]].
* [[2000년]] - 대한민국의 베드민턴 선수 [[정나은]].
* [[2001년]] - 로블록스 유튜버 [[주피코]] (TRUZ 캐릭터: 마테츠 [MATETSU])<ref>오늘 6월 27일은 마테츠의 생일이야.</ref>
* [[2008년]] - 대한민국의 [[포철고]] 학생 민유빈.
* [[200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임한빈]].
=== 미상 ===
*대한민국의 가수 [[디이어]].
*대한민국의 가수 migoo.
== 사망 ==
* [[1458년]] - 아라곤의 왕 알폰소 5세. ([[1396년]]~)
* [[1574년]] -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 [[조르조 바사리|조르지오 바사리]]. ([[1511년]]~)
* [[1636년]] - 일본 센고쿠 시대의 장수 [[다테 마사무네]]. ([[1567년]]~)
* [[1831년]] - 프랑스의 수학자 [[소피 제르맹]]. ([[1776년]]~)
* [[1985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권중돈]]. ([[1912년]]~)
* [[1999년]] - 그리스의 독재자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1919년~)
* [[2001년]] - 핀란드의 화가, 소설가 [[토베 얀손]]. (1914년~)
* [[2005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창남]]. (1957년~)
* [[2007년]] - 대한민국의 인터넷 작가 [[러브풀]]. (1980년~)
* [[2016년]]
**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 [[오세종]]. (1982년~)
**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1928년~)
* [[2017년]]
** 대한민국의 마라톤 선수 [[서윤복]]. (1923년~)
** 스웨덴의 배우 [[미카엘 뉘크비스트]]. (1960년~)
* [[201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최돈웅]]. (1935년~)
** 미국의 가수 [[조지프 잭슨]]. (1928년~)
** 미국의 소설가 [[할런 엘리슨]]. (1934년~)
* [[2020년]]
** 세르비아의 축구 감독 [[일리야 페트코비치]]. (1945년~)
** 아르헨티나의 영화배우 [[린다 크리스털]]. (1934년~)
** 미국의 기업인 [[잭 휘태커]]. (1947년~)
* [[2022년]] - 미국의 영화배우 [[조 터켈]]. (1927년~)
* [[2023년]]
** 스위스의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 (194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윤석민 (1938년)|윤석민]]. (1938년~)
* [[2024년]]
** 카메룬의 축구 선수 [[란드리 눈게모]]. (1985년~)
** 미국의 영화배우 [[마틴 멀]]. (1943년~)
== 기념일 ==
* [[독립기념일]]: [[지부티]]
* [[:en:Helen Keller Day|헬렌켈러의 날]]: [[미국]]
* [[:en:AIDS.gov|국립 HIV 테스트의 날]](NHTD): [[미국]]
* [[:en:Mixed Race Day|혼혈인의 날]]: [[브라질]]
* [[:en:Public holidays in Canada|캐나다 다문화의 날]](Canadian Multiculturalism Day): [[캐나다]]
* [[:en:Armed Forces Day (United Kingdom)|국군의 날]](formerly Veterans' Day): [[영국]]
* [[:en:Public holidays in Tajikistan|국민 화합의 날]]: [[타지키스탄]]
== 같이 보기 ==
* 전날: [[6월 26일]] 다음날: [[6월 28일]] - 전달: [[5월 27일]] 다음달: [[7월 27일]]
* 음력: [[음력 6월 27일|6월 27일]]
* [[날짜의 목록|모두 보기]]
{{위키공용분류}}
{{열두달}}
[[분류:6월 27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6월 28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79번째([[윤년]]일 경우 180번째) 날에 해당한다.
{{6월달력}}
{{특정날짜요일|6|28}}
== 사건 ==
* [[678년]] - [[교황 아가토]], 79대 로마 교황으로 취임.
* [[1841년]] - [[아돌프 아담|아돌프 샤를르 아담]]의 발레곡 《[[지젤]]》이 초연되다.
* [[1914년]] - [[제1차 세계 대전]]: [[오스트리아-헝가리|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페르디난트가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하다.
* [[1919년]] - [[제1차 세계 대전]]: [[베르사유 조약]]이 맺어져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다.
* [[1921년]] - [[자유시 참변]]이 일어났다.
* [[1942년]] - [[제2차 세계 대전]]: [[스탈린그라드 전투#청색 작전|청색 작전]]이 시작되다.
* [[1950년]] - [[한국 전쟁]]: 대한민국군이 [[한강 인도교 폭파|한강 인도교를 폭파하다]]. [[서울특별시|서울시]]가 북한 인민군에게 점령당하다.
* [[1956년]] - [[1956년 포즈난 시위]]:포즈난의 6월이라고도 알려진 1956년 포즈난 시위는 폴란드 인민공화국에 대한 대규모 시위 중 첫 번째 시위였다.
* [[1969년]] - [[스톤월 항쟁]]: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술집 스톤월 인을 경찰이 단속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 [[1991년]] - [[코메콘]]이 해체됐다.
* [[2004년]] - [[이라크]], [[쿠르드어]]를 [[아랍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
* [[2005년]] - [[레드 윙스 작전]]이 개시되다.
* [[2006년]] - [[몬테네그로]], [[유엔]] 가입.
* [[2013년]] - [[야넬힐 산불]]:미국 야넬 지역에서 2013년 6월 28일 발생한 산불이다.
== 문화 ==
* [[1971년]] - [[천주교 제주교구|천주교 제주지목구]] 설립.
* [[2012년]] - [[쿤밍 창수이 국제공항]] 개항.
* [[2016년]] - [[걸그룹]] [[구구단 (음악 그룹)|구구단]]이 데뷔하였다.
* [[2017년]] - [[대한민국]] 최초로 [[대한항공]]이 [[노플라이 제도]](No-Fly)를 도입.
* [[2020년]] - [[KBS1]] [[도전! 골든벨]]이 이 날을 마지막으로 종영.
* [[2022년]] - 남자 버츄얼 그룹 싸이코드가 데뷔하였다.
== 탄생 ==
* [[1476년]] - 제223대 로마의 교황 [[교황 바오로 4세]]. (~[[1559년]])
* [[1491년]] -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8세]]. (~[[1547년]])
* [[1577년]] - 독일 태생으로 17세기 바로크를 대표하는 벨기에의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 (~[[1640년]])
* [[1644년]] - 에도 시대 전기의 다이묘로서 가이 고후 번 초대 번주 [[도쿠가와 쓰나시게]]. (~[[1678년]])
* [[1703년]] - 감리교회의 창시자 [[존 웨슬리]]. (~[[1791년]])
* [[1712년]] - 프랑스의 철학자 [[장자크 루소]]. (~[[1778년]])
* [[1815년]] - 독일의 작곡가 [[로베르트 프란츠]]. (~[[1892년]])
* [[1824년]] - 프랑스의 의사 [[폴 브로카]]. (~[[1880년]])
* [[1867년]] - 이탈리아의 극작가 [[루이지 피란델로]]. (~[[1936년]])
* [[1873년]] - 프랑스의 의사, 생물학자 [[알렉시 카렐]]. (~[[1944년]])
* [[1875년]] -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르베그]]. (~[[1941년]])
* [[1883년]] - 프랑스의 정치가 [[피에르 라발]]. (~[[1945년]])
* [[1902년]] - 프랑스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피에르 브뤼네]]. (~[[1991년]])
* [[1923년]] - 대한민국의 군인 겸 정치가 [[김계원]]. (~[[2016년]])
* [[1928년]] - 영국의 물리학자 [[존 스튜어트 벨]]. (~[[1990년]])
* [[1933년]] - 대한민국의 금융인 [[이경식 (1933년)|이경식]]. (~[[2021년]])
* [[1934년]] - 대한민국의 민속학자 [[심우성]]. (~[[2018년]])
* [[1935년]] - 대한민국의 성우 [[김소원 (1935년)|김소원]].
* [[1940년]] - 방글라데시의 은행가 [[무함마드 유누스]].
* [[1942년]] - 대한민국의 신부 [[함세웅]].
* [[1943년]] - 미국의 고인류학자, 루시의 발견자 [[도널드 조핸슨]].
* [[1944년]] - 대한민국의 성우 [[탁재인]].
* [[1948년]] - 미국의 배우 [[캐시 베이츠]].
* [[1950년]] - 대한민국의 시인, 문학평론가 [[이동순]].
* [[195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안인숙]].
* [[1955년]]
** 대한민국의 가수 [[하춘화]].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오종훈]].
** 미국의 바리톤 가수 [[토머스 햄프슨 (성악가)|토머스 햄프슨]].
* [[1966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정치인 [[김연주 (방송인)|김연주]].
** 미국의 배우 및 영화감독 [[메리 스튜어트 마스터슨|메리 스튜어트 매스터슨]].
** 미국의 배우 [[존 큐색]].
* [[1967년]] - 대한민국의 기자 [[엄경철]].
* [[1969년]] - 스위스의 전 축구 선수 [[스테판 샤퓌자]].
* [[1971년]]
**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 [[파비앵 바르테즈]].
** 미국의 배우 [[아일린 퀸]].
** 일본의 성우 [[키무라 아키코]].
**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미국의 기업인 [[일론 머스크]].
* [[1973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홍지민]].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김형남]].
* [[1975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수진 (배우)|김수진]]. (~[[2013년]])
* [[1976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정현 (배우)|김정현]].
** 사우디아라비아의 전 축구 선수 [[나와프 알 테미아트]].
* [[1978년]] - 대한민국의 배우 [[하지원]].
* [[1979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최재웅]].
* [[1980년]] - 대한민국의 가수 [[하동균]].
* [[1981년]]
** 대한민국의 작가 [[김수영 (기업인)|김수영]].
** 대한민국의 가수 [[지원이]].
** 미국의 영화감독 [[존 와츠]].
* [[198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정겨운]].
* [[1983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영광 (축구인)|김영광]].
* [[198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오현철 (배우)|오현철]].
** 대한민국의 [[최서후]].
* [[1986년]] - 일본의 성우 [[미모리 스즈코]].
* [[1987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재섭 (정치인)|김재섭]].
* [[1988년]]
**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와케시마 카논]].
** 일본의 성우 [[콘도 유이]].
**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 [[박정훈 (1988년)|박정훈]].
** 대한민국의 희극인 [[이수빈 (희극인)|이수빈]].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수진 (1988년)|김수진]].
* [[1989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민식 (1989년)|김민식]].
** 미국의 육상 선수 [[조 코백스]].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오보람]].
* [[1991년]]
** 대한민국의 가수, 뮤지컬 배우 [[서현 (가수)|서현]] ([[소녀시대]]).
** 대한민국의 가수 [[강민혁 (가수)|강민혁]] ([[씨엔블루]]).
** 벨기에의 축구 선수 [[케빈 더 브라위너]].
** 대한민국의 배우 [[이재우 (1991년)|이재우]].
** 대한민국의 가수, 뮤지컬 배우 [[가람 (가수)|가람]].
* [[1992년]]
** 스웨덴의 축구 선수 [[오스카르 힐리에마르크]].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정우재 (축구 선수)|정우재]].
* [[199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태리 (배우)|이태리]].
** 대한민국의 가수 [[정대현]]. ([[B.A.P]])
* [[1994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찬호.
* [[1995년]]
** 대한민국의 골프 선수 [[김시우 (골프 선수)|김시우]].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안영준 (농구 선수)|안영준]].
** 일본의 야구 선수 [[세키네 다이키]].
** 벨기에의 축구 선수 [[자종 드나예]].
* [[1996년]]
**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조엘 카스트루 페레이라]].
** 크로아티아의 테니스 선수 [[도나 베키치]].
* [[1997년]] - 대한민국의 탁구 선수 박재현.
* [[1999년]]
** 체코의 테니스 선수 [[마르케타 본드로우쇼바]].
** 대한민국의 가수 백지.
* [[2000년]] - 중화인민공화국의 양궁 선수 [[양샤오레이]].
* [[2001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형준 (2001년)|박형준]].
* [[2005년]] - 일본의 아이돌 [[야마자키 메이]].
* [[200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가연 (배우)|이가연]].
== 사망 ==
* [[202년]] - 후한 말기의 군인 [[원소 (후한)|원소]]. (?~)
* [[548년]] - 비잔티움 제국의 황후 [[테오도라]]. ([[500년]]~)
* [[767년]] - 제93대의 교황 [[교황 바오로 1세]]. ([[700년]]~)
* [[928년]] -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루도비쿠스 3세 카에쿠스]]. ([[880년]]~)
* [[1194년]] - 남송 제2대의 황제 [[남송 효종]]. ([[1127년]]~)
* [[1813년]] - 프로이센의 장군이자 군사이론가 [[게르하르트 폰 샤른호르스트]]. ([[1755년]]~)
* [[1836년]] - 미국의 제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 ([[1751년]]~)
* [[1981년]] - 캐나다의 스포츠 선수 [[테리 폭스]]. ([[1958년]]~)
* [[2019년]] - 독일의 영화배우 [[리사 마르티네크]]. ([[1972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공무원 [[윤미량]]. ([[1959년]]~)
** 튀니지의 영화배우 [[히쳄 로스텀]]. ([[1947년]]~)
* [[2024년]] - 미국의 야구 선수 [[올랜도 세페다]]. ([[1937년]]~)
== 기념일 ==
* [[:en:Tau|타우]]의 날
* [[철도의 날]]: 대한민국
* [[:en:Constitution_Day_(Ukraine)|제헌절]]: [[우크라이나]]
* [[:en:Public_holidays_in_Vietnam|가족의 날]]: [[베트남]]
* [[1956년 포즈난 시위#기념|포즈난 전사자 추도일]]: [[폴란드]]
* [[:en:Soviet_Occupation_Day,_Moldova#Soviet_Occupation_Day|몰도바 점령일]]: 1940년 소련에 의한 몰도바의 점령을 상기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날, [[몰도바]]
== 같이 보기 ==
* 전날: [[6월 27일]] 다음날: [[6월 29일]] - 전달: [[5월 28일]] 다음달: [[7월 28일]]
* 음력: [[음력 6월 28일|6월 28일]]
* [[366일|모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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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6월 28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6월 29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80번째([[윤년]]일 경우 181번째) 날에 해당한다.
{{6월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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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
* [[64년]] - [[성 베드로]]가 순교하다.
* [[1613년]] - [[런던]]의 [[글로브 극장]]이 화재로 소실되다.
* [[1862년]] - [[미국 남북전쟁]]: 남군의 매그루더 장군, 새비지에서 북군의 섬너와 교전하여 남군이 패배하다.
* [[1976년]] - [[세이셸]]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 [[1987년]] -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가 [[6·29 선언]]을 하다.
* [[1995년]] -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어나 502명의 사망자와 6명의 실종자, 937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 [[2002년]] - [[제2연평해전]]: 연평도 근해에서 남북 해군 사이에 전투가 일어나 대한민국 해군 6명이 전사하다.
* [[2010년]] - [[세종특별자치시|세종시]]의 수정안이 부결됐다.
* [[2014년]] -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동]]에서 [[현대백화점]] 천호점 1층 천장이 붕괴되어서 6명이 부상당하였다.
* [[2014년]] - [[이슬람 국가|이슬람]]에서 [[카리브 제도|카리프]]를 선포하였다.
== 문화 ==
* [[2010년]] -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소녀시대]], 두번째 미니앨범 "[[소원을 말해봐 (Genie)]]" 발매.
* [[2011년]] - 오후 2시,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지상파 아날로그 TV방송이 종료되었다.
* [[2012년]] - [[목포대교]] 개통.
== 탄생 ==
* [[1475년]] - [[에르콜레 1세 데스테]]의 딸이자 밀라노의 공작부인 [[베아트리체 데스테]]. (~[[1497년]])
* [[1482년]] - 포트투갈의 여왕 [[마리아 다라곤 왕녀]]. (~[[1517년]])
* [[1818년]] -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안젤로 세키]]. (~[[1878년]])
* [[1849년]] - 러시아의 정치인 [[세르게이 비테]]. (~[[1915년]])
* [[1880년]] - 독일의 군인 [[루트비히 베크]]. (~[[1944년]])
* [[1900년]] - 프랑스의 소설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1944년]])
* [[1906년]] - 나치 독일 무장친위대의 장교 [[하인츠 하르멜]]. (~[[2000년]])
* [[1911년]] - 네덜란드의 군인 [[네덜란드 여왕 부군 베른하르트]]. (~[[2004년]])
* [[1925년]] - 이탈리아의 제11대 대통령, 정치인 [[조르조 나폴리타노]]. (~[[2023년]])
* [[1929년]] - 이탈리아의 저널리스트, 작가, 정치적 인터뷰너 [[오리아나 팔라치]]. (~[[2006년]])
* [[1933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범준 (1933년)|이범준]]. (~[[2011년]])
* [[1935년]] - 일본의 야구 선수, 야구 감독 [[노무라 가쓰야]]. (~[[2020년]])
* [[1936년]] - 미국의 야구 선수 [[하먼 킬러브루]]. (~[[2011년]])
* [[1941년]] - 일본의 배우, 가수 [[바이쇼 치에코]].
* [[1943년]] - 미국의 가수 [[리틀 에바]]. (~[[2003년]])
* [[195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임희숙]].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유병호 (바둑 기사)|유병호]].
* [[1957년]] - 대한민국의 배우 [[안해숙]].
* [[1962년]] - 대한민국의 서예가 [[신승원]].
* [[1969년]] - 일본의 변호사, 정치인 [[하시모토 도루]].
* [[1970년]]
** 대한민국의 배우, 무술감독 [[서범식]].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박상수 (야구인)|박상수]].
* [[1971년]] - 일본의 성우 [[노다 준코]].
* [[1972년]]
** 미국의 평화운동가 [[서맨사 스미스]]. (~[[1985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백현진]].
** 미국의 디스크자키 [[DJ 섀도]].
* [[1973년]]
** 대한민국의 배우 [[홍승범 (1973년)|홍승범]].
** 푸에르토리코의 전직 야구 선수 [[페드로 발데스]].
* [[1975년]] - 대한민국의 치과의사 겸 희극인 [[김영삼 (1975년)|김영삼]].
* [[1976년]] - 일본의 배우 [[이가와 하루카]].
* [[1977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전 아나운서 [[강수정]].
** 잉글랜드의 배우 [[줄레이카 로빈슨]].
* [[1978년]]
** 미국의 가수 [[니콜 셰르징거]] ([[푸시캣 돌스]]).
** 미국의 음악가 [[샘 패러]]. ([[팬텀 플래닛]])
* [[197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희준]].
* [[1980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송승준]].
* [[198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나은 (배우)|이나은]].
** 스페인의 자동차 경주 선수 [[페르난도 알론소]].
* [[1982년]]
** 대한민국의 배우 [[권율]].
** 미국의 배우 [[릴리 레이브]].
** 미국의 성우 [[매슈 머서]].
* [[1983년]]
** 대한민국의 쌍둥이 가수 [[강주희 (가수)|강주희]], [[강승희 (가수)|강승희]] ([[윙크 (음악 그룹)|윙크]]).
** 대한민국의 배우 [[주성민 (배우)|주성민]].
** 일본의 배우 [[오가와 마키]].
* [[1984년]]
** 대한민국의 배우 [[한지혜]].
** 대한민국의 배우 [[유설아]].
** 아이슬란드의 축구 선수 [[에밀 하들프레드손]].
** 호주의 배우 [[크리스토퍼 이건]].
* [[1986년]] - 스페인의 축구 선수 [[호세 마누엘 후라도]].
* [[1987년]]
** 일본의 배우 [[사이토 야스카]].
**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 [[김성민 (유도 선수)|김성민]].
* [[1988년]]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에베르 바네가]] ([[세비야 FC]]).
** 미국의 야구 선수 [[브룩스 레일리]].
** 홍콩의 가수 겸 배우 [[리옌스야]].
* [[1989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쇼핑호스트 김수지.
* [[1990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배우 [[손승원]].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조인영 (레이싱 모델)|조인영]].
* [[1991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석현준]] ([[AFC 아약스]]).
** 오스트레일리아의 축구 선수 [[제이슨 데이비드슨]].
* [[1992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배소빈]].
** 일본의 가수 [[야카타 미키]] ([[SKE48]]).
* [[1993년]]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인섹]].
* [[1994년]]
** 대한민국의 가수 [[동호 (가수)|동호]].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이영]].
** 미국의 배우 [[커밀라 멘데스]].
** 캐나다의 육상 선수 [[앨리샤 뉴먼]].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레안드로 파레데스]].
** 에스토니아의 가수 [[엘리나 보른]].
* [[199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최리 (배우)|최리]].
** 대한민국의 발로란트 프로게이머 [[에스더 (프로게이머)|에스더]].
** 일본의 야구 선수 [[오타케 고타로]].
* [[1996년]] - 대한민국의 골프 선수 이지현.
* [[1997년]] - 대한민국의 역도 선수 [[박주효]].
* [[1999년]]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서명진]].
* [[2002년]] - 헝가리의 사격 선수 [[메사로시 에스테르]].
* [[2003년]]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주드 벨링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조재훈 (2003년)|조재훈]].
** 대한민국의 가수 김예린.
* [[2004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정현 (2004년)|김정현]].
* [[2007년]] - 미국계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케이시 페어]].
== 사망 ==
* [[64년]] - 초대의 교황 [[베드로]]. ([[1년]]~)
* [[226년]] - [[조조]]의 아들이자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초대 황제 [[조비]]. ([[187년]]~)
* [[1509년]] - 영국 플랜태저넷 왕가의 방계 종친이자 [[헨리 7세]]의 어머니 [[마거릿 보퍼트]]. ([[1443년]]~)
* [[1575년]] - 일본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무장 [[바바 노부하루]]. ([[1515년]]~)
* [[1725년]] - 에도 중기의 무사 [[아라이 하쿠세키]]. ([[1657년]]~)
* [[1779년]] - 독일의 화가 [[안톤 라파엘 멩스]]. ([[1728년]]~)
* [[1875년]] -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1세 (오스트리아)|페르디난트 1세]]. ([[1793년]]~)
* [[1895년]] - 영국의 생물학자 [[헉슬리]]. ([[1825년]]~)
* [[1940년]] - 스위스의 화가 [[파울 클레]]. ([[1879년]]~)
* [[1944년]] - 대한민국의 승려, 시인, 독립운동가 [[한용운]]. ([[1879년]]~)
* [[1950년]] - 한국의 극작가 [[함세덕]]. ([[1915년]]~)
* [[1957년]] - 일본의 군인 [[하시모토 긴고로]]. ([[1890년]]~)
* [[1986년]] - 대한민국의 성우 [[이창환 (성우)|이창환]]. ([[1933년]]~)
* [[1995년]] - 미국의 배우 [[라나 터너]]. ([[1921년]]~)
* [[2002년]] - 대한민국의 군인, 참수리 357호 정장 [[윤영하]]. ([[1973년]]~)
* [[2003년]] - 미국의 배우 [[캐서린 헵번]]. ([[1907년]]~)
* [[2007년]] - 타이완의 영화감독 [[에드워드 양]]. ([[1947년]]~)
* [[2015년]] - 체코의 축구 선수 [[요세프 마소푸스트]]. ([[1931년]]~)
* [[2018년]]
** 폴란드의 육상 선수 [[이레나 셰빈스카]]. ([[1946년]]~)
** 스웨덴의 약리학자 [[아르비드 칼손]]. ([[1923년]]~)
** 미국의 소설가 [[스티브 딧코]]. ([[1927년]]~)
* [[201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전미선]]. ([[1970년]]~)
** 스위스의 축구 선수 [[플로리야나 이스마일리]]. ([[1995년]]~)
* [[2020년]]
** 미국의 영화배우 [[칼 라이너]]. ([[1922년]]~)
** 에티오피아의 가수 [[하찰루 훈데사]]. ([[1985년]]~)
* [[2021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재윤 (1965년)|김재윤]]. ([[1965년]]~)
** 미국의 영화배우 [[스튜어트 데이먼]]. ([[1937년]]~)
** 미국의 정치인 [[도널드 럼즈펠드]]. ([[1932년]]~)
* [[2022년]] - 대한민국의 교육학자 [[권대봉]]. ([[1952년]]~)
* [[2023년]] - 미국의 영화배우 [[앨런 아킨]]. ([[1934년]]~)
* [[2024년]]
** 모로코 국왕의 국왕 [[랄라 라티파]]. ([[1944년]]~)
**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 [[시핑 (정치인)|시핑]]. ([[1911년]]~)
** 일본의 소설가 [[양석일]]. ([[1936년]]~)
** 대한민국의 성악가 [[조민웅]]. ([[1987년]]~)
== 기념일 ==
* [[:en:Independence_Day|독립기념일]]: [[세이셸]]
* [[:en:Veterans_Day_(Netherlands)|재향군인의 날]]: [[네덜란드]]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 [[가톨릭]]
*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전날: [[6월 28일]] 다음날: [[6월 30일]] - 전달: [[5월 29일]] 다음달: [[7월 29일]]
* 음력: [[음력 6월 29일|6월 29일]]
* [[366일|모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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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6월 29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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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직자 정보
| 제목모양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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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조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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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직 ---------->| 집사임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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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 = [[한세대학교|순복음 신학교(現 한세대학교)]] 목사 안수
<!---------- 개인정보 ---------->| 출생이름 = 조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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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지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울산군]] (현 대한민국 [[울산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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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계장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 국적 = 대한민국
| 종교 =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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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 = 아버지 조두천, 어머니 김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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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력 = [[#약력|약력 단락]] 참고
| 상훈 = [[#상훈|상훈 단락]] 참고
| 모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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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문장 = <!---------- 비고 ---------->
| 각주 =
}}
'''조용기'''(趙鏞基, [[1936년]] [[2월 14일]] ~ [[2021년]] [[9월 14일]])는 [[대한민국]]의 [[개신교]]
[[여의도순복음교회|여의도 순복음교회]]의 목사이다. 세계 최대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설립하였고, 원로목사로 재직중 2021년 9월 14일, 1년여에 걸친 뇌출혈로 투병중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여의도순복음교회 설립자 조용기 목사 별세(종합)|url=https://www.yna.co.kr/view/AKR20210914018851005|출판사=연합뉴스 |날짜=2021-09-14 }}</ref> 본관은 [[함안 조씨|함안]]이며, [[울산광역시|울산]] 출신이다.
== 약력 ==
* [[1958년]] [[한세대학교|순복음 신학교]](現 한세대, 당시2년제) 수료
* [[1958년]] 대조동순복음교회(불광동) [[최자실]]전도사와 공동으로 천막교회 설립
* [[1959년]] 천막성전 건립 및 확장(성도 50명)
* [[1960년]] 순복음중앙부흥회관 준공, 헌당예배)
* [[1960년]] 조용기 전도사 목사 안수
* [[1965년]] 조용기 목사, 김성혜 사모와 결혼
* [[1966년]] 기독교대한 하나님의 성회 총회장 (~ [[1978년]])
* [[1966년]] 기독교대한 하나님의 성회 총회장 (~ [[1978년]])
* [[1968년]]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학사 학위
* [[1968년]] 미국 베다니 성서대 명예신학박사
* [[1976년]] 국제교회성장연구원 (C.G.I) 총재
* [[1978년]] 미국 캘리포니아 성서대 명예문학박사
* [[1988년]] [[국민일보]] 이사장, 회장
*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고문
* [[1990년]] 미국 리전트대 명예목회학박사
* [[1999년]] 사단법인 선한사람들 (NGO) 이사장
* [[2004년]] 재단법인 아가페(기독교교도소) 대표고문
* [[2008년]] 재단법인 사랑과행복나눔 이사장
* [[2010년]] 출산장려국민운동본부 총재
* [[2010년]] 국민일보 회장 겸 발행인
* [[2011년]] 재단법인 영산조용기자선재단 이사장
* [[2021년]] 9월 14일, 서울대병원에서 별세<ref>[https://www.youtube.com/watch?v=3A59jHQX-9M|여의도순복음교회 설립자 조용기 목사 별세…향년 86세 / 연합뉴스] 2021.9.14 연합뉴스</ref>
== 행적 ==
그는 학교 근처의 미군 기지에 자주 다니기 시작했고, 친구였던 병사들로부터 영어를 배웠다. 그는 영어를 빨리 익혀, 육군 기지 사령관의 통역이 되었고, 또한 학교 교장의 통역이 되었다.하나님이 그를 목사로 부르시는 것을 감지한 조씨는 미국 전도사 켄 타이즈의 통역관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1956년 서울 순복음성경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장학금을 받았다. 그러던 중 장모이자 측근이 된 최자실목사를 만났다. 1958년 3월에 졸업했다. 조용기 원로목사는 한국과 세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영적 거장이다. 그는 세계 최대의 교회의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창립하고 이끌어 오셨으며 세계를 100여 차례를 돌며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그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50년이 넘도록 목회생활을 감당하고 있으며, 오산리 최자실 금식 기도원과 한세대학교, 엘림복지타운, 국민일보, 심장병 어린이 돕기, 미자립농어촌교회 돕기, NGO 사역과, 사랑과 행복 나눔 재단을 설립하여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섬기고 있다. 영산을 통해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진행하고 있는 영적 사업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러한 큰 교회를 세워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그가 제시하는 4차원의 영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조용기 목사은 4차원의 영성에 가장 기초되는 생각, 믿음, 꿈, 말의 네 가지 요소를 통하여 영성훈련을 해 나갈 때 우리의 인생이 변화 된다고 주장한다. 보이지 않는 4차원의 세계의 변화를 가져오게 될 보이는 세계인 3차원의 변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영산은 늘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며 성령과의 인격적인 교제와 충만함을 통해서 그는 선교사역과 치유사역과 전인구원과 봉사의 사역을 잘 감당하며 교회를 확장시켜 왔다.
예전에 옥한흠 목사님이 저를 찾아와 안수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려고 미국으로 가려 하는데 눈앞에 성령의 은혜가 있다는 음성을 듣고 저를 찾아 왔다는 겁니다.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은사가 필요한데 자신은 사람을 회개 감화시키는 은사를 갖고 싶다고 해요. 둘이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옥 목사님은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천국에 갔습니다. 제가 장례식장에 가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교회나 목회자들이 사명과 은사를 받도록 전력을 기울인다면 한국교회와 세계는 달라질 것입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xcdNgmKd0AE 생애] ==
조용기는 [[1936년]] [[2월 14일]] [[대한민국]] [[경상남도]] [[울산군]] 삼남면 교동리에서 아버지 조두천과 어머니 김복선의 5남 4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부산공업고등학교 재학 중인 17세이던 2학년 때 폐결핵으로 인하여 죽음을 눈앞에 두다가 고향 [[울산]] 진장에 내려가 휴양을 하며 부산으로 통원 치료를 받았다.[[1956년]] 서울로 올라와서 순복음 신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였다. 그러던 가운데 같은 학교에서 만난 [[최자실]] 목사의 딸 김성혜와 [[1965년]] [[3월 1일]] 결혼하였고 3명의 자녀를 두었다.
조용기 목사는 20세에 대조동 천막촌에서 최자실 전도사와 공동으로 목회를 시작하여, 교인 약 78만 명에 이르는, 세계 개신교 최대 교회인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당회장 목사로 목회했다. [[일본어]], [[영어]]에 능숙하며, 해외에서의 [[오순절교회]] 선교활동을 통해 [[개신교]] 선교에 공헌했다. [[2008년]] 5월, 당회장 목사로서의 임기를 마쳤고, 이후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목사로서 활동하였다.
조용기목사는 2021년 9월 14일, 1년여에 걸친 뇌출혈로 투병중 서울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3A59jHQX-9M 여의도순복음교회 설립자 조용기 목사 별세…향년 86세 / 연합뉴스] 2021.9.14 연합뉴스</ref>
== 목회 활동==
조용기목사는 [[일어]], [[영어]]에 능숙해 해외에서의 [[오순절주의|오순절교회]] 선교활동을 통해 [[개신교]] 선교에 공헌했다.
그의 나이 20세에 [[불광동]] 천막촌에서 전도사로 목회를 시작하여, 현재는 교인 약 81만명에 이르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위임목사]]로 목회활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조용기 목사가 속한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헌법에 따르면 담임 목사의 정년은 70세이며, 교회가 원할 경우 75세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는 [[2006년]] [[2월 14일]]로 정년을 맞게 되었는데, 교회가 정년 연장을 압도적인 찬성률(99.7%)로 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년 퇴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2006년 1월1일 첫 예배에서 조용기 목사는 성도들의 줄기찬 요구를 차마 떨치지 못했다며 은퇴를 번복하고 목회활동을 좀 더 이어나간다고 밝혔다.<ref>2021년 현재 조용기 목사는 건강상으로 설교에 참여하지 않고 2년 임기위 부목사들이 조용기 목사를 대신하여 사역하고있다.</ref>
평소 반공을 지론으로 삼았으나 최근들어 대북관이 변화하여 북한에 인도적 지원에 나서 , 2007년 평양에 [[조용기 심장병원]]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 '''뉴욕, 5월18일 '조용기 목사의 날' 선포'''
미국 뉴욕시가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의 뉴욕성회를 기념해 5월 18일(현지시간)을 '조용기 목사의 날'로 제정했다
*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독교계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한반도 평화는 시대적 요청이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이 주도하는 게 아니다. 역사의 주관자인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한반도 평화를 선물로 주실 것이라 확신한다. 앞으로 있을 북·미회담이 좋은 결과를 도출해 여의도순복음교회가 기도하고 있는 평양심장병원 공사가 재개되고 올 연말이 되기 전에 준공식을 개최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꿈과 희망이긴 하지만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재단법인 순복음선교회는 조용기 원로목사가 총재, 이영훈 위임목사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교회 산하 기관으로, 지난 2007년 9월과 10월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 계약서, 합의서를 체결하고 같은 해 12월 ‘조용기심장병원’을 착공했다.
2021년 6월 25일 조용기심장병원이 북한에서 완공되었다. 심병장환자및 북한선교를 위해 조용기 목사는 수고했다.
* '''40년 목회 여정을 걸어오셨다. 목회가 무엇이라 보는가.'''
“돌아가신 모친께서는 생전에 매주 토요일이면 전화를 주셨다. 그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회는 하나님의 일이다. 너는 겸손해라. 기도하고 주님께 맡겨라.’ 그렇다. 목회는 하나님의 일이다. 목회자는 그저 심부름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일이란 성도로 부르신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람답게 만드는 일이다. 예수님의 제자로 만드는 일이 목회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그들이 구원받게 하고 예수 닮은 사람으로 바꿔놓는 게 목회다. 이는 평생 사역이다.”
* '''여의도순복음교회나 목사님의 북한 방문이 계획돼 있는가.'''
“평양심장병원 건축 재개가 확정되면 이른 시일 내 북한을 방문해 공사 현장을 돌아보고 근로자들도 격려하고자 한다. 아울러 진정한 통일을 원한다면 넓은 마음과 포용,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말하고 싶다. 남북관계가 평화롭기 위해선 서로 배려하며 상호 체제를 인정해야 한다. 남북이 끝까지 적국이라고 생각한다면 한반도 평화는 요원할 뿐이다. 체제와 사상이 달라도 그들은 같은 민족이다. 모든 장벽을 뛰어넘어 하나가 돼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 상훈 ==
* [[1982년]] [[대통령]] 표창([[대한민국 행정안전부|내무부]]) - 홀트학교 건립기금 및 장애아동 복지사업
* [[1994년]] [[적십자]][[헌혈]]유공자 금장([[대한적십자사]])
* [[1995년]] 제1회 환경대청상 금상(한국기독교환경대책협의회)
* [[1996년]] 국민훈장 무궁화장([[대한민국 보건복지부|보건복지부]]) - 심장병 어린이 시술지원 및 소년소녀가장 돕기
* [[2005년]] 더 패밀리 오브 맨 메달리온 상 The Family Of Man (미국 뉴욕기독교교회협의회)
* [[2007년]] 자랑스런 한국인 인증서 수여 (미연방 의회)
== 저서==
* 평신도를 위한 요한계시록강해 - 서울서적. 1976.
* 오늘의 만나(전 2집) - 서울말씀사. 1978.
* 행복한 사람 - 영산출판사. 1980.
* 말씀과 믿음(전 3권) - 서울서적. 1981.
* 로마서 강해 - 서울말씀사. 1982.
* 갈라디아서 강해 - 서울서적. 1983.
* 가난해야 좋은 신자인가? - 영산출판사. 1983.
*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사람 - 서울서적. 1984.
* 조용기 에세이 절대절망 절대희망 - 금하. 1984.
* 골로새서 강해 - 서울서적. 1984.
* 에베소서 강해 - 서울서적. 1984.
* 빌립보서 강해 - 서울서적. 1984.
* 오늘의 양식(전 2권) - 서울서적. 1984.
* 사랑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 서울서적. 1984.
* 야고보서 강해 - 서울서적. 1985.
* 희망을 향하여 행진하라 - 서울서적. 1985.
* 구약 성경공부(전 6권) - 서울서적. 1985.
* 네가 낫고자 하느냐? - 서울서적. 1985.
* 조용기 목사 설교예화(전 2권) - 서울서적. 1986.
* 고난을 딛고 서라 - 서울서적. 1986.
* 삶의 궁극적 의미 - 서울서적. 1986.
* 당신의 기도를 진단해 보라 - 서울서적. 1987.
* 새벽의 명상 - 서울서적. 1987.
* 목회서신 강해: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 서울서적. 1988.
* 베드로 전·후서 강해 - 서울서적. 1989.
* 요한1·2·3서, 유다서 강해 - 서울서적. 1989.
* 하나님의 눈 사람의 눈 - 서울서적. 1990.
* 고린도후서 강해 - 서울서적. 1990.
* 평신도를 위한 다니엘서 강해 - 서울서적. 1990.
* 데살로니가 전·후서 강해 - 서울서적. 1991.
* 승리의 생활 - 서울서적. 1991.
* 사도행전 강해(전 2권) - 서울서적. 1991.
* 하나님의 말씀(전 6권) - 서울서적. 1991.
* 고린도전서 강해 - 서울서적. 1992.
* 삶과 기쁨 - 서울서적. 1992.
* 창세기 강해(전 2권) - 서울서적. 1993.
*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A] - 서울서적. 1993.
* 한국 십대에게 고함[A] - 예루살렘. 1993.
* 나는 이렇게 기도한다 - 서울서적. 1995.
* 교회성장, 진정 원하십니까? - 서울서적. 1995.
* 우리시대의 전도서(전 3권) - 서울서적. 1995.
* 우리시대의 지혜서(전 2권) - 서울말씀사. 1995.
* 조용기목사 설교전집(전 20권) - 서울말씀사. 1996.
* 나는 이렇게 설교한다: 성공적인 목회 설교. 서울말씀사. 1996.
* 목사님, 십일조는 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 서울말씀사. 1996.
* 4차원의 영적 세계 - 서울말씀사. 1996.
* 일독성경(전 4권) - 서울말씀사. 1996.
* 365일 해설일독성경(전 4권) - 서울말씀사. 1996.
* 365일을 말씀과함께(전 6권) - 서울말씀사. 1996.
* 하나님의 말씀(전 6권) - 서울말씀사. 1996.
* 목사님, 병 고침은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나요? - 서울말씀사. 1997.
* 성령론 - 서울말씀사. 1998.
* 기도 - 서울말씀사. 1998.
* 오늘의 말씀(전 4권) - 서울말씀사. 1998~1999.
* 21세기를 선도하는 영적 지도자 - 서울말씀사. 1999.
* 아들아, 네가 험한 길을 살았구나! - 서울말씀사. 1999.
* 누가복음 강해(전 2권) - 서울말씀사. 1999.
* 잠언 강해(전 2권) - 서울말씀사. 1999.
* 산을 옮기는 믿음 불을 내리는 기도 - 서울말씀사. 1999.
* 하나님은 2등도 기억하십니다 - 국민일보. 1999.
* 일대일 양육 교재 - 서울말씀사. 1999.
* 말씀과 믿음 - 서울말씀사. 2000.
* 착하고 충성된 일꾼(전 2권) - 서울말씀사. 2000.
* 꿈꾸는 사람 - 서울말씀사. 2000.
* 하나님의 말씀 문제집: 평신도 성경학교 교재 - 서울말씀사. 2001.
* 믿음의 에너지를 활용하라 - 서울말씀사. 2002.
* 잠언으로 여는 365일(전 2권) - 서울말씀사. 2002~2003.
* 철도원 이야기 - 서울말씀사. 2002.
* 갈릴리 이야기 - 서울말씀사. 2002.
* 하나님의 손에 상처입은 사람 - 서울말씀사. 2002.
* 구역예배공과(전 14권) - 서울말씀사. 2002~2008.
* 은혜로운 주해성경 - 서울말씀사/생명의말씀사. 2002.
* 자다가 깨어날때 - 서울말씀사. 2002.
* 매일 10분 가정예배를 위한 오늘의 양식 1,2월 - 서울말씀사. 2003.
* 믿음의 씨앗 - 서울말씀사. 2003.
* 기독교 교리와 실천 갈라디아서·빌레몬서 - 서울말씀사. 2003.
* 신유론 - 서울말씀사. 2003.
*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 서울말씀사. 2003.
* 성공하기 원하십니까? - 서울말씀사. 2003.
* 꿈꾸는 토마토 - 서울말씀사. 2003.
*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 서울말씀사. 2003.
* 쉬운 일독 성경 1~12월 - 서울말씀사. 2003~2004.
* 고난주간 새벽설교 예수여, 예수여! - 서울말씀사. 2003.
* 나귀타신 왕 - 서울말씀사. 2003.
* 순종과 불순종의 역사 사무엘(전 2권) - 서울말씀사. 2003.
* 들풀 - 서울말씀사. 2003.
* 매일 10분 가정예배를 위한 오늘의 말씀(전 6권) - 서울말씀사. 2004.
* 새로운 피조물 6일간의 변화 - 서울말씀사. 2004.
* 불같이 생수같이 - 서울말씀사. 2004.
* 새로운 자화상: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 서울말씀사. 2004.
* 꿈을 품고 사는 사람 - 서울말씀사. 2004.
* 보혈의 신비 - 서울말씀사. 2004.
* 조용기 목사 칼럼: 창조를 위한 초월 - 서울말씀사. 2004.
* 사계의 노래 - 서울말씀사. 2004.
* 희망목회 45년: 구역 소그룹 이야기 - 교회성장연구소. 2004.
* 천국은 확실히 있다!(번역) - 토마스 주남 저. 서울말씀사. 2004.
* 십자가를 통한 다섯 가지 만남 - 서울말씀사. 2005.
* 천국의 증인 - 서울말씀사. 2005.
*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 서울말씀사. 2005.
* 야훼 하나님을 바라보라 - 서울말씀사. 2005.
* 주제별 모범 기도 - 서울말씀사. 2005.
* 살리시는 하나님 - 서울말씀사. 2005.
* 나의 교회성장 이야기 - 서울말씀사. 2005.
* 치료하시는 예수님 - 서울말씀사. 2005.
* 설교는 나의 인생 - 서울말씀사. 2005.
* 일어나 빛을 발하라(옥한흠, 최봉오와 공저) - 두란노서원. 2006.
* 10분 설교 - 서울말씀사. 2006.
* 받은 복과 누리는 복: 조용기 목사의 요약설교 및 예화집 - 서울말씀사. 2007.
* 5분간의 명상 - 서울말씀사. 2007.
* 그래도 사랑해야지: 사랑과 행복 나눔 - 서울말씀사. 2008.
* 행복을 주는 말 - 교회성장연구소. 2009.
* 마음 하늘: 하나님이 머무시는 그 곳 - 교회성장연구소. 2009.
* 예비하시는 하나님 - 서울말씀사. 2010.
*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서울말씀사. 2010.
* 구역예배공과(전 7권) - 서울말씀사. 2010~2013.
* 도약하는 삶 - 서울말씀사. 2010.
* 그래도 사랑합니다(강준민 등 15명과 공저) - 마음의숲. 2010.
* 도우시는 성령님 - 서울말씀사. 2011.
* 내일을 찾는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 서울말씀사. 2011.
* 신앙생활(이영훈 목사와 공저) - 서울말씀사. 2011.
* 성령님과 함께하는 성공적 구역 - 서울말씀사. 2011.
*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비결 - 서울말씀사. 2011.
* 하늘의 수레를 끄는 기쁨 - 서울말씀사. 2012.
* 행복을 주는 믿음 - 교회성장연구소. 2013.
* 꿈과 성취 - 서울말씀사. 2014.
*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 - 서울말씀사. 2017.
* 신령한 사람 - 서울말씀사. 2018.
* 보고 믿고 말하라 - 서울말씀사. 2014.
== 같이 보기 ==
* [[여의도순복음교회]]
* [[최자실]]
* [[김성혜]]
== 각주 ==
<references />
== 외부 링크 ==
* [http://davidcho.fgtv.com/ 조용기 목사 개인 홈페이지]
{{전거 통제}}
[[분류:1936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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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넘어옴|아인슈타인}}
{{과학자 정보
| 이름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원어이름 = Albert Ei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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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난 날 = {{출생일|1879|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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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연방 교육 디플로마, 1900)<br /> [[취리히 대학교]] (박사. 1905)
| 배우자 = [[밀레바 마리치]] (결혼 1903, 이혼 1919)<br />[[w:Elsa Einstein|엘사 로웬탈]] (결혼 1919, 사망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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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권 = 독일 제국 (1879-1896)<ref group="노트" name=KOW/><br />[[무국적]] (1896-1901)<br />[[스위스]] (1901-1955)<br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1911-1912)<br />[[프로이센 왕국]] 독일 제국 (1914-1918)<ref group="노트" name=KOW/><br />[[바이마르 공화국]] (1918-1933)<br />[[미국]] (1940-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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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물리학]],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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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 Swiss Federal Institute of Intellectual Property|스위스 특허국 사무소]] (1902–1909)
* [[베른 대학교]] (1908–1909)
* [[취리히 대학교]] (1909–1911)
* [[프라하 카렐 대학교]] (1911–1912)
*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1912–1914)
*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 (1914–1933)
*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1914–1933)
* [[카이저 빌헬름 협회]] (디렉터, 1917–1933)
* [[w: German Physical Society|독일 물리학회]] (회장, 1916–1918)
* [[레이던 대학교]] (방문, 1920)
*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1933–1955)
*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방문, 1931–1933)
* [[옥스퍼드 대학교]] (방문, 1931–1933)
* [[브랜다이스 대학교]] (디렉터, 1946–1947)
}}
| 학위 논문 = ''[http://e-collection.library.ethz.ch/eserv/eth:30378/eth-30378-01.pdf 분자 크기의 새로운 결정(Eine neue Bestimmung der Moleküldimensionen)]'' (1905)
| 지도교수 = [[알프레드 클라이너]]
| 기타 지도교수 = [[w:Heinrich Friedrich Weber|하인리히 프리드리히 웨버]]
| 지도학생 =
| 주요 업적 = [[일반 상대성이론]]<br />[[특수 상대성이론]]<br />[[광전효과]]<br />[[질량-에너지 등가성|''E = mc<sup>2</sup>'' (질량-에너지등가성)]]<br />[[플랑크-아인슈타인 관계식|''E = hf'' (플랑크-아인슈타인 관계식)]]<br />[[브라운 운동]]<br />[[아인슈타인 장 방정식]]<br />[[보즈-아인슈타인 통계]]<br />[[보스-아인슈타인 응축]]<br />[[중력파]]<br />[[우주 상수]]<br />[[통일장 이론]]<br />[[EPR 역설]]<br />[[앙상블 해석]]<br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딴 것들의 목록|다른 개념들 목록]]
| 수상 = [[w:Barnard Medal for Meritorious Service to Science|바나드 메달]] (1920)<br/>{{노벨상 딱지|물리학상|1921}} [[노벨 물리학상]] (1921)<br/>[[마테우치 메달]](1921)<br>[[왕립학회 회원]] (1921)<ref name=Whittaker>Whittaker, E. (1 November 1955). "[https://doi.org/10.1098%2Frsbm.1955.0005 Albert Einstein. 1879–1955"]. ''Biographical Memoirs of Fellows of the Royal Society''. 1: 37–67.</ref><br/>[[코플리 메달]] (1925)<ref name=Whittaker/><br/>[[왕립천문학회 금메달]] (1926)<ref>[https://ras.ac.uk/sites/default/files/2021-03/Gold%20Medal%202021.pdf "The Gold Medal"] (PDF). Royal Astronomical Society. [https://web.archive.org/web/20211220130005/https://ras.ac.uk/sites/default/files/2021-03/Gold%20Medal%202021.pdf Archived] (PDF) from the original on 20 December 2021.</ref><br/>[[막스 플랑크 메달]] (1929)<br/>
[[w:Member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미국 과학 아카데미 회원]] (1942)<ref>[http://www.nasonline.org/member-directory/deceased-members/20001817.html "Membership directory"].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https://web.archive.org/web/20211220080311/http://www.nasonline.org/member-directory/deceased-members/20001817.html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 December 2021.</ref><br/>[[w:Time 100: The Most Important People of the Century|《타임》 세기의 사람]] (1999)
| 서명 = Albert Einstein signature 1934.svg
| 영향받음 = [[에른스트 마흐]]<br/>
[[그레고리오 리치쿠르바스트로]]<br/>[[헨드릭 로런츠]]
<br/>[[헤르만 민코프스키]]
| 영향줌 = 거의 모든 [[현대물리학|현대 물리학자]]들
| 서 명 = '''서 명'''
}}
{{물리우주론|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llang|de|Albert Einstein}}, {{IPA|[ˈalbɛʁt ˈʔaɪnʃtaɪn]}}; {{IPA-en|ǽlbərt áinstain}};<ref>Wells, John (3 April 2008). Longman Pronunciation Dictionary (3rd ed.). Pearson Longman.</ref> [[1879년]] [[3월 14일]]~[[1955년]] [[4월 18일]])은 독일 태생의 [[이론물리학자]]로서<ref name=nobel>[http://nobelprize.org/nobel_prizes/physics/laureates/1921/einstein-bio.html "Albert Einstein – Biography"]. Nobel Foundation.</ref>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중의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상대성 이론]]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양자역학]] 이론의 발전에도 중요한 공헌을 했다. 상대성 이론은 양자역학과 함께 현대 물리학의 두 기둥이다.<ref name=Whittaker/><ref>Yang, Fujia; Hamilton, Joseph H. (2010). ''Modern Atomic and Nuclear Physics''. World Scientific. p. 274.</ref> 상대성 이론에서 나온 그의 [[질량-에너지 등가]]식 <math>E = mc^2</math>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방정식"으로 불린다.<ref>Bodanis, David (2000). E = mc2: A Biography of the World's Most Famous Equation. New York: Walker.</ref> 그의 작업은 [[과학 철학]]에 미친 영향으로도 유명하다.<ref>Howard, Don A., ed. (2014) [First published 11 February 2004]. [http://plato.stanford.edu/entries/einstein-philscience/#IntWasEinEpiOpp "Einstein's Philosophy of Scienc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The Metaphysics Research Lab, Center for the Study of Language and Information (CSLI), Stanford University.</ref><ref>Howard, Don A. (December 2005). [http://www3.nd.edu/~dhoward1/vol58no12p34_40.pdf "Albert Einstein as a Philosopher of Science"] (PDF). Physics Today. 58 (12): 34–40.</ref> 그는 1921년 "이론 물리학에 대한 공로, 특히 [[광전 효과]] 법칙의 발견"<ref name=Nobel21>"The Nobel Prize in Physics 1921". Nobel Prize. Retrieved 11 July 2016</ref>으로 양자 이론 발전의 중추적인 단계에 대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ref name=AEN> "The Nobel Prize in Physics 1921". Nobel Prize. Retrieved 11 July 2016.</ref> 그의 지적 업적과 독창성은 "아인슈타인"이 "천재"와 동의어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ref name=genius>[http://wordnetweb.princeton.edu/perl/webwn?s=Einstein "Result of WordNet Search for Einstein"]. 3.1. The Trustees of Princeton University.</ref>
'기적의 해(annus mirabilis)'로 묘사되는 1905년에는 4개의 [[기적의 해 논문|논문]]을 발표했다.<ref name=Galison>Galison (2000), p. 377.</ref> 이 논문들은 각각 [[광전 효과]]와 [[브라운 운동]]을 설명하고, [[특수 상대성이론]]과 그에 기반한 질량-에너지 등가성을 설명한다. 특수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에 관한 개념을 일부 수정함으로써 [[고전역학]]과 [[전자기장|전자기학]]을 조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다음으로 그는 1915년 자신의 특수 상대성이론을 확장하여 중력을 기하학적으로 설명하는 [[일반 상대성이론]]을 발표, 1917년에는 일반 상대성이론에 근거하여 우주의 구조와 진화를 연구하는 현대 우주론의 기반을 마련하였다.<ref name=Background>[https://web.archive.org/web/20120516052710/https://www.nobelprize.org/nobel_prizes/physics/laureates/2011/advanced-physicsprize2011.pdf "Scientific Background on the Nobel Prize in Physics 2011. The accelerating universe"] (PDF). Nobel Media AB. p. 2.</ref><ref>Overbye, Dennis (24 November 2015). [https://ghostarchive.org/archive/20220101/https://www.nytimes.com/2015/11/24/science/a-century-ago-einsteins-theory-of-relativity-changed-everything.html "A Century Ago, Einstein's Theory of Relativity Changed Everything"]. ''The New York Times''.</ref> 그는 [[통계역학]]과 양자 이론의 문제를 계속 다루었고, 이는 입자 이론과 분자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또한 빛의 열적 특성과 빛의 [[광자]] 이론의 기초가 된 복사의 양자 이론을 연구했다.
한편 그의 후반부 연구 경력 대부분은 두 가지의 궁극적으로 실패한 시도에 집중되어 있다. 첫째, 그는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을 통해 새로운 양자 역학에 대하여 코펜하겐 해석이 과학에 본질적인 무작위성을 도입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고 숨은 변수 해석, 앙상블 해석, EPR 역설 등을 제시했다.<ref>Robinson, Andrew (30 April 2018). "Did Einstein really say that?". Nature. 557 (30)</ref> 둘째, 자신의 기하학적 중력 이론을 전자기학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일반화함으로써 [[통일장 이론]]을 고안하려 시도했다. 이러한 상황이 고착화됨에 따라 그는 현대 물리학의 주류에서 밀려나고 점차 학계에서 고립되었다.
아인슈타인은 [[독일 제국]]에서 태어났지만 1895년 스위스로 이주하여 이듬해 ([[뷔르템베르크 왕국]]의 시민으로서)<ref group="노트" name=KOW/> 독일 시민권을 포기했다. 1897년, 17세의 나이로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의 수학 및 물리학 교직 과정에 입학하여 1900년에 졸업했다. 1901년에 스위스 시민권을 취득하여 평생 유지했으며, 1903년 그는 베른에 있는 [[w:Swiss Federal Institute of Intellectual Property|스위스 특허국 사무소]]에서 정규직을 확보했다. 1905년에, 그는 [[취리히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14년에, 아인슈타인은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와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훔볼트 대학교]]에 합류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1917년, 아인슈타인은 [[카이저 빌헬름 협회|카이저 빌헬름 물리학 연구소]]의 소장이 되어, 이번에는 프로이센인으로 다시 독일 시민이 되었다.
1933년, 아인슈타인이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했다. 아인슈타인은 새로 선출된 [[나치 독일|나치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여;<ref>Levenson, Thomas (9 June 2017). [https://www.theatlantic.com/science/archive/2017/06/einstein-germany-and-the-bomb/528534/ "The Scientist and the Fascist"]. ''The Atlantic''.</ref> 미국에 정착하여 1940년에 미국 시민이 되었다.<ref>Paul S. Boyer; Melvyn Dubofsky (2001). [https://archive.org/details/oxfordcompaniont00paul_0 ''The Oxford Companion to United States History'']. Oxford University Press. p. [https://archive.org/details/oxfordcompaniont00paul_0/page/218 218].</ref>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에 그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잠재적인 [[우란프로옉트|독일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해 경고하고 미국이 [[맨해튼 계획|유사한 연구]]를 시작할 것을 권고하는 [[아인슈타인-실라르드 편지|편지]]에 서명했다. 아인슈타인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연합국|연합국]]을 지지했지만 일반적으로 [[핵무기]] 아이디어를 비난했다.<ref>[https://wiseinternational.org/nuclear-monitor/802/albert-einstein-nuclear-weapons "Albert Einstein on nuclear weapons | Wise International"] {{웨이백|url=https://wiseinternational.org/nuclear-monitor/802/albert-einstein-nuclear-weapons |date=20221023091507 }}. ''wiseinternational.org''. Retrieved 23 October 2022.</ref>
== 생애와 경력 ==
{{참고|en:Einstein family}}
=== 어린 시절과 교육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879년 3월 14일 [[독일 제국]]의 [[뷔르템베르크 왕국]]<ref group="노트" name=KOW>독일제국에서, 시민들은 27개 연방군(''Bundesstaaten'') 중 하나의 독점적인 대상이었다.</ref> [[울름]]의<ref name=nobel/> 세속적인 [[아슈케나즈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ref>[https://www.jewishvirtuallibrary.org/albert-einstein "Albert Einstein (1879–1955)"]. Jewisth Virtual Library.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9 March 2017.</ref><ref>Isaacson, Walter (2009). [https://www.theatlantic.com/magazine/archive/2009/12/how-einstein-divided-americas-jews/307763/ "How Einstein Divided America's Jews"]. ''The Atlantic''.</ref> 그의 부모는 세일즈맨이자 엔지니어인 [[w:Hermann Einstein (Albert's father)|헤르만 아인슈타인<sub>Hermann Einstein</sub>]]과 [[w:Pauline Koch (Albert's mother)|파울린 코흐<sub>Pauline Koch</sub>]]였다. 1880년에 가족은 [[뮌헨]]으로 이사했고 아인슈타인의 아버지와 그의 삼촌인 야콥<sub>Jakob</sub>은 [[직류]]를 기반으로 전기 장비를 제조하는 회사인 전기기술 공장 J. 아인슈타인 회사(Elektrotechnische Fabrik J. Einstein & Cie)를 설립했다.<ref name=nobel/>
[[파일:Albert Einstein at the age of three (1882).jpg|섬네일|위오른쪽|왼쪽|1882년의 아인슈타인 (3세)]]
[[파일:Albert Einstein as a child.jpg|섬네일|왼쪽|1893년의 아인슈타인 (14세)]]
알베르트는 5세부터 3년 동안 뮌헨에 있는 [[w:Catholic school|가톨릭 초등학교]]에 다녔다. 8세에 그는 루이트폴트 김나지움(Luitpold Gymnasium)-지금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김나지움(Albert Einstein Gymnasium)으로 알려짐-으로 옮겨져 7년 후 독일 제국을 떠날 때까지 고급 초등 및 중등 학교 교육을 받았다.<ref>Stachel (2002)], pp. 59–61.</ref>
1894년 헤르만과 야콥의 회사는 장비를 [[직류]](DC) 표준에서 보다 효율적인 [[교류]](AC) 표준으로 변환할 자본이 부족하여 뮌헨 시에 전기 조명을 공급하려는 입찰에서 실패했다.<ref>Barry R. Parker (2003). Einstein: ''The Passions of a Scientist'', Prometheus Books, p. 31</ref> 손실은 뮌헨 공장의 매각이 불가피했다. 업무를 찾아서, 아인슈타인 가족은 처음에는 [[밀라노]]로, 몇 달 후에는 [[파비아]]로, 이탈리아로 이주했다. 파비아에서 아인스타인 가족은 서로 다른 시기에 [[우고 포스콜로]], [[w: Contardo Ferrini|콘타르도 페리니<sub>Contardo Ferrini</sub>]], [[w: Ada Negri|아다 네그리<sub>Ada Negri</sub>]]가 살았던 중세 건물인 [[w: Palazzo Cornazzani|코르나자니 궁전(Palazzo Cornazzani)]]에 정착했다.<ref>Univerty of Pavia. [http://musei.unipv.eu/msu/our-museums/historical-figures/albert-einstein/ "Einstein, Albert"]. ''Museo per la Storia dell'Università di Pavia''. University of Pavia. Retrieved 7 January 2023.</ref>가족이 파비아로 이사했을 때 당시 15세였던 아인슈타인은 뮌헨에 머물면서 루이트폴트 김나지움에서 학업을 마쳤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전기 공학]]을 공부하기를 원했지만 아인슈타인은 당국과 충돌하고 학교의 통제와 교수법을 분개했다. 그는 나중에 엄격한 [[암기]]에서 학습 정신과 창의적 사고가 사라졌다고 썼다. 1894년 12월 말, 그는 파비아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고, 의사의 진단서를 사용하여 그를 보내도록 학교를 설득했다.<ref>Fölsing (1997), pp. 30–31.</ref>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그는 "자기장에서 [[에테르]] 상태에 대한 조사"라는 제목의 짧은 에세이를 썼다.<ref>Stachel et al. (2008), vol. 1 (1987), doc. 5.</ref><ref>Mehra, Jagdish (2001). [https://books.google.com/books?id=o1XVCgAAQBAJ&pg=PA1 "Albert Einstein's "First Paper""]. ''Golden Age Of Theoretical Physics'', The (Boxed Set Of 2 Vols). World Scientific.</ref>
아인슈타인은 어렸을 때부터 수학과 물리학에 뛰어났고 동료들보다 몇 년 앞서 수학적 수준에 도달했다. 12세의 아인슈타인은 한 여름 동안 대수와 유클리드 기하학을 독학으로 배웠다.<ref>Bloom, Howard (2012). [https://books.google.com/books?id=xlEupJb4ojIC ''The God Problem: How a Godless Cosmos Creates''] (illustrated ed.). Prometheus Books. p. 294.</ref> 아인슈타인은 또한 12세에 [[피타고라스 정리]]에 대한 독자적인 증명을 발견했다.<ref>''The Three-body Problem from Pythagoras to Hawking'', Mauri Valtonen, Joanna Anosova, Konstantin Kholshevnikov, Aleksandr Mylläri, Victor Orlov, Kiyotaka Tanikawa, (Springer 2016), p. 43, Simon and Schuster, 2008</ref> 가족 가정 교사인 [[w: Max Talmey|막스 탈무드<sub>Max Talmud</sub>]]는 12세의 아인슈타인에게 기하학 교과서를 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인슈타인]은 책 전체를 공부했다. 그 후 그는 고등 수학에 전념했다 ... 곧 그의 수학적 천재성의 비상이 너무 높아서 따라갈 수 없었다."라고 말한다.<ref name=Isaac17>Isaacson (2007), p. 17.</ref> 기하학과 대수학에 대한 그의 열정으로 인해 12세 소년은 자연을 "수학적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ref name=Isaac17/> 아인슈타인은 12세에 [[미적분학]]을 독학하기 시작했으며 14세 때 그는 "[[적분]] 및 [[미적분학]]을 마스터했다"고 말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p. 16-17</ref>
13세에 철학(과 음악)에 더 진지하게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Calaprice & Lipscombe 2005]], p. 8</ref> 아인슈타인은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을 접하게 되었다. 칸트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가 되었고 그의 가정교사가 말하기를: "당시 그는 아직 열세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지만, 평범한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칸트의 저술이 그에게 분명해 보인 듯했다."<ref name=Isaac17/>
[[파일:Albert Einstein's exam of maturity grades (color2).jpg|섬네일|위오른쪽|아인슈타인의 입학 증명서 1896년<ref group="노트">마투라 증명서에 있는 아인슈타인의 점수: 독일어 5; 프랑스어 3; 이탈리아어 5; 역사 6; 지리 4; 대수 6; 기하학 6; 기술 기하학 6; 물리학 6; 화학 5; 자연사 5; 예술 및 기술 도면 4.
척도: 6 = 매우 좋음, 5 = 좋음, 4 = 충분함, 3 = 부족함, 2 = 나쁨, 1 = 매우 나쁨.</ref>]]
1895년, 16세의 나이로 아인슈타인은 [[취리히]]에 있는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연방 폴리테크닉 학교]](나중에 Eidgenössische Technische Hochschule, ETH) 입학 시험에 응시했다. 그는 시험의 일반 부분에서 요구되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Stachel et al. (2008)]],vol. 1 (1987), p. 11</ref> 물리학과 수학에서 뛰어난 성적을 받았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Fölsing 1997]], pp. 36–37</ref> 폴리테크닉 학교 교장의 조언에 따라 그는 1895년과 1896년 스위스 [[아라우]]에 있는 [[w:Old Cantonal School Aarau|아르고비안 칸토날 학교]]([[김나지움]])에 다니며 중등 교육을 마쳤다. [[w:Jost Winteler|요스트 빈텔러<sub>Jost Winteler</sub>]] 교수의 가족과 함께 숙박하는 동안 그는 윈텔러의 딸인 마리<sub>Marie</sub>와 사랑에 빠졌다. 알베르트의 여동생 [[w:Maria "Maja" Einstein (Albert's younger sister)|마야<sub>Maja</sub>]]는 나중에 윈텔러의 아들 파울<sub>Paul</sub>과 결혼했다.<ref name=H&C93>[[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Highfield & Carter 1993]], pp. 21, 31, 56–57.</ref> 1896년 1월 아버지의 승인을 받아 아인슈타인은 [[군 복무]]를 피하기 위해 [[w:German nationality law|독일 뷔르템베르크 왕국 시민권]]을 포기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Fölsing 1997]], p. 40</ref> 1896년 9월, 그는 [[w:Grading systems by country|1-6의 등급]]에서 물리학 및 수학 과목에서 최고 6등급을 포함하여 대부분 좋은 성적으로 스위스 [[w:Matura|마투라(Matura)]]에 합격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Stachel et al. 2008]], vol. 1 (1987), docs. 21–27.</ref> 17세에 그는 연방 폴리테크닉 학교에서 4년제 수학 및 물리학 교육 디플로마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한 살 연상인 마리 윈텔러는 선생 직을 위해 스위스의 [[w:Olsberg, Aargau|올스베르그(Olsberg)]]로 이사했다.<ref name=H&C93/>
아인슈타인의 미래 아내인 [[밀레바 마리치]]라는 이름의 20세 [[세르비아인]]도 같은 해 폴리테크닉 학교에 등록했다. 그녀는 교사 디플로마 과정의 수학과 물리학 분야에 있는 6명의 학생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아인슈타인과 마리치의 우정은 로맨스로 발전했고 둘 다 관심을 가진 학과-외 물리학에 관한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데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인슈타인은 마리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녀와 함께 공부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썼다.<ref name=Gagnon>Gagnon, Pauline (19 December 2016). [https://blogs.scientificamerican.com/guest-blog/the-forgotten-life-of-einsteins-first-wife/ "The Forgotten Life of Einstein's First Wife"]. ''Scientific American Blog Network''. Retrieved 17 October 2020</ref> 1900년에 아인슈타인은 수학과 물리학 시험에 합격하고 연방 교육 디플로마를 받았다.<ref>Stachel et al. (2008), vol. 1 (1987), doc. 67.</ref> 마리치가 [[기적의 해 논문]]으로 알려진 그의 랜드마크 1905년 논문들 이전에 아인슈타인과 협력했을 수 있으며,<ref name=Gagnon/><ref>Troemel-Ploetz, D. (1990). "Mileva Einstein-Marić: The Woman Who Did Einstein's Mathematics". ''Women's Studies International Forum''. 13 (5): 415–432.</ref><ref>Walker, Evan Harris (February 1989). [https://web.archive.org/web/20120119093653/http://philosci40.unibe.ch/lehre/winter99/einstein/Walker_Stachel.pdf "Did Einstein Espouse his Spouse's Ideas?"] (PDF). ''Physics Today''. 42 (2): 9–13.</ref> 몇 가지 개념을 함께 개발했음을 나타내는 목격자 증언과 여러 서한들이 수년에 걸쳐 있지만, 이 문제를 연구한 일부 물리학 역사가들은 그녀가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ref>Pais (1994), pp. 1–29</ref><ref>Holton, G., ''Einstein, History, and Other Passions'', Harvard University Press, 1996, pp. 177–193</ref><ref>Stachel (2002), pp. 49–56.</ref><ref>Martinez, A. A., "Handling evidence in history: the case of Einstein's wife", School Science Review, 86 (316), March 2005, pp. 49–56.[https://web.archive.org/web/20110811141225/https://webspace.utexas.edu/aam829/1/m/Maric_files/EvidenceMaric.pdf "PDF"]</ref>
=== 결혼과 자녀 ===
[[파일:Albert Einstein and his wife Mileva Maric.jpg|섬네일|[[밀레바 마리치]]와 아인슈타인 1912년]]
아인슈타인과 마리치 사이의 초기 서신은 1987년에 발견되어 출판되었으며, 그 결과 부부에는 마리치가 부모와 함께 머물고 있던 [[노비사드]]에서 1902년 초에 태어난 [[w:Lieserl Einstein (Albert's daughter)|"리제를<sub>Lieserl</sub>"]]이라는 딸이 있음이 밝혀졌다. 마리치는 실명과 운명이 알려지지 않은 아이 없이 스위스로 돌아왔다. 1903년 9월 아인슈타인의 편지 내용은 그 소녀가 입양을 포기했거나 유아기에 [[성홍열]]로 사망했음을 시사한다.<ref>J. Renn & R. Schulmann, Albert Einstein/Mileva Marić: The Love Letters, 1992, pp. 73–74, 78</ref><ref>Calaprice & Lipscombe (2005), pp. 22–23.</ref>
아인슈타인과 마리치는 1903년 1월에 결혼했다. 1904년 5월에 그들의 아들 [[한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스위스 [[베른]]에서 태어났다. 그들의 아들 [[w:Eduard "Tete" Einstein (Albert's second son)|에두아르트<sub>Eduard</sub>]]는 1910년 7월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부부는 1914년 4월 베를린으로 이사했지만 마리치는 이전에 가까운 관계에도 불구하고<ref name=Gagnon/> 아인슈타인의 주요 낭만적 매력은 이제 [[w:Elsa Einstein|엘사 뢰벤탈<sub>Elsa Löwenthal</sub>]]<ref>Stachel (1966).</ref>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아들과 함께 취리히로 돌아왔는데; 그녀는 모계로는 그의 사촌이었고 부계로는 육촌이었다.<ref name=Calap>Calaprice & Lipscombe (2005), p. 50.</ref> 그들은 1919년 2월 14일에 이혼했고, 5년 동안 떨어져 살았다.<ref>Smith, Dinitia (6 November 1996). [https://www.nytimes.com/1996/11/06/arts/dark-side-of-einstein-emerges-in-his-letters.html "Dark Side of Einstein Emerges in His Letters"]. ''The New York Times''.</ref><ref>Stachel (2002), p. 50.</ref> 이혼 합의의 일환으로 아인슈타인은 마리치에게 노벨상 상금을 주기로 동의했다.<ref>"Volume 9: The Berlin Years: Correspondence, January 1919-April 1920 (English translation supplement) page 6". einsteinpapers.press.princeton.edu. Retrieved 4 October 2021</ref>
2015년에 공개된 편지에서 아인슈타인은 초기 연인인 마리 윈텔러에게 자신의 결혼 생활과 그녀에 대한 강한 감정에 대해 썼다. 그는 1910년에 아내가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 쓰기를: "나는 매 순간마다 진심 어린 사랑으로 당신을 생각하고, 남자만이 할 수 있는 너무 불행합니다." 그는 마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에 대해 "잘못된 사랑"과 "잃어버린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ref>Wüthrich, Urs (11 April 2015). [http://www.bernerzeitung.ch/region/bern/Die-Liebesbriefe-des-untreuen-Einstein/story/11875058 "Die Liebesbriefe des untreuen Einstein"] [The love letters of the unfaithful Einstein]. ''BZ Berner Zeitung'' (in German). Bern, Switzerland.</ref>
아인슈타인은 1912년부터 그녀와 관계를 가진 후,<ref name=Calap/><ref name=Hoffmann>Hoffmann, Dieter (2013). ''Einstein's Berlin: In the footsteps of a genius''.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pp. 2–9, 28.</ref> 1919년에 [[w:Elsa Einstein|엘사 뢰벤탈]]과 결혼했다.<ref>Calaprice, Kennefick & Schulmann (2015), p. 62.</ref><ref>Calaprice, Kennefick & Schulmann (2015), p. 62.</ref> 그들은 1933년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엘사는 1935년에 심장 및 신장 문제 진단을 받았고, 1936년 12월에 사망했다.<ref>Highfield & Carter (1993), p. 216.</ref>
1923년, 아인슈타인은 절친한 친구 한스 뮈삼<sub>Hans Mühsam</sub>의 조카인 베티 노이만<sub>Betty Neumann</sub>이라는 비서와 사랑에 빠졌다.<ref>Highfield, Roger (10 July 2006). [https://www.telegraph.co.uk/news/worldnews/northamerica/usa/1523626/Einsteins-theory-of-fidelity.html "Einstein's theory of fidelity"]. ''The Daily Telegraph''.</ref><ref>Overbye, Dennis (17 April 2017). [https://web.archive.org/web/20170418100011/https://www.nytimes.com/2017/04/17/science/albert-einstein-genius-national-geographic-channel.html "'Genius' Unravels the Mysteries of Einstein's Universe"]. ''The New York Times''.</ref><ref>[https://www.natgeotv.com/za/special/genius-albert-einsteins-theory-of-infidelity "Genius Albert Einstein's Theory of Infidelity"]. NatGeo TV.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3 September 2020.</ref><ref>[https://www.jpost.com/health-and-science/getting-up-close-and-personal-with-einstein "Getting up close and personal with Einstein"]. ''The Jerusalem Post | JPost.com''.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3 September 2020.</ref> 2006년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발표한 한 권의 편지에서,<ref>[https://www.hindustantimes.com/india/einstein-secret-love-affairs-out/story-QVSHrfMYJzCRcIlbBCJKAM.html "Einstein secret love affairs out!"]. ''Hindustan Times''. 13 July 2006.</ref> 아인슈타인은 마가레테 레바흐<sub>Margarete Lebach</sub>(금발의 오스트리아인), 에스텔라 카체넬렌보겐<sub>Estella Katzenellenbogen</sub>(플로리스트 사업의 부유한 소유자), 토니 멘델<sub>Toni Mendel</sub>(부자 유태인 과부)와 에델 미카노프스키<sub>Ethel Michanowski</sub>(베를린 사교계 명사) 등 6명의 여자와 엘사와 결혼한 상태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선물을 받았다고 기술했다.<ref>[http://www.nbcnews.com/id/13804030/ns/technology_and_science-science/t/new-letters-shed-light-einsteins-love-life/ "New letters shed light on Einstein's love life"]. NBC News. 11 July 2006.</ref><ref>[https://economictimes.indiatimes.com/magazines/panache/albert-einstein-may-have-had-the-iq-but-he-needed-to-work-on-his-eq/articleshow/64849211.cms?from=mdr "Albert Einstein may have had the IQ, but he needed to work on his EQ"]. ''The Economic Times''.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8 February 2021.</ref> 나중에, 그의 두 번째 아내 엘사가 사망한 후, 아인슈타인은 마르가리타 코넨코바<sub>Margarita Konenkova</sub>와 잠시 관계에 있었다. 코넨코바는 유명한 러시아 조각가 [[w:Sergey Konenkov|세르게이 코넨코브<sub>Sergei Konenkov</sub>]](프린스턴 [[w:Institute for Advanced Study|고등연구소]]에서 아인슈타인의 청동 흉상을 만든)와 결혼한 러시아 스파이였다.<ref>Pogrebin, Robin (1 June 1998). [https://www.nytimes.com/1998/06/01/us/love-letters-by-einstein-at-auction.html "Love Letters By Einstein at Auction"]. ''The New York Times''.</ref><ref>[https://www.independent.co.uk/news/einsteins-letters-show-affair-with-spy-1162418.html "Einstein's letters show affair with spy"]. The Independent. 2 June 1998.</ref><!--{{Failed verification|date=November 2022|reason=The sources do not definitively say that Margarita Konenkova is actually a Russian spy, only vaguely corroborated by the NYT quote "According to a book by a former Soviet spy master ..."}}-->
아인슈타인의 아들 에두아르트는 약 20세에 쇠약을 앓았고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ref>Robinson, Andrew (2015). [https://books.google.com/books?id=Px4_CQAAQBAJ&pg=PA144 ''Einstein: A Hundred Years of Relativi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pp. 143–145.</ref> 그의 어머니는 그를 돌보았고 그는 또한 여러 기간 동안 망명 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그녀가 사망한 후 영구적으로 수용되었다.<ref>Neffe (2007), p. 203.</ref>
=== 특허국 사무소 ===
[[파일:Einstein patentoffice.jpg|섬네일|위오른쪽|1904년의 아인슈타인 (25세)]]
1900년에 졸업한 후 아인슈타인은 거의 2년 동안 교직을 구하며 절망적인 시간을 보냈고, 1901년 2월에 [[스위스]] 시민권을 취득했지만,<ref>Fölsing (1997), p. 82.</ref> 의학적 이유로 [[w:Conscription in Switzerland|징집]]되지 않았다. [[w:Marcel Grossmann|마르셀 그로스만<sub>Marcel Grossmann</sub>]]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그는 [[베른]]의 [[w:Swiss Federal Institute of Intellectual Property|스위스 특허국 사무소]]에<ref>J. J. O'Connor; E. F. Robertson (May 2010). [http://www-history.mcs.st-and.ac.uk/Biographies/Grossmann.html "Grossmann biography"]. ''MacTutor''. School of Mathematics and Statistics, University of St Andrews, Scotland. Retrieved 27 March 2015</ref><ref>Isaacson (2007), p. 63.</ref> [[w:Patent examiner|보조 심사관 - 레벨 III]]로 취직했다.<ref>[https://web.archive.org/web/20160830195148/https://www.ipi.ch/en/about-us/einstein/einstein-at-the-patent-office.html "Einstein at the patent office"] (official website). Berne, Switzerland: Swiss Federal Institute of Intellectual Property, IGE/IPI. 6 February 2014.</ref><ref name=FAQ>[https://www.ige.ch/en/about-us/the-history-of-the-ipi/einstein/faq "FAQ about Einstein and the Institute"] (official website). Berne, Switzerland: Swiss Federal Institute of Intellectual Property, IGE/IPI. 27 May 2014</ref>
아인슈타인은 자갈 선별기 및 전기-기계적 동기화 타자기를 포함한 다양한 장치에 대한 [[w:Patent application|특허 출원]]들을 평가했다.<ref name=FAQ/> 1903년 스위스 특허청에서 그의 직위는 영구적이 되었지만, 그는 "기계 기술을 완전히 마스터"할 때까지 승진하지 못했다.<ref>Galison (2000), p. 370.</ref> 특허청에서의 그의 작업 대부분은 전기 신호의 전송과 시간의 전기-기계적 동기화에 관한 질문과 관련되어 있다. 두 가지 기술적 문제는 결국 아인슈타인이 빛의 본질과 공간과 시간의 근본적인 연결에 대한 급진적인 결론을 내리게 한 [[w:Einstein's thought experiments|사고 실험]]에서 두드러지게 나터난다.<ref name=Galison/>
베른에서 만난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아인슈타인은 1902년 자조적으로 명명한 "[[w:Olympia Academy|올림피아 아카데미(The Olympia Academy)]]"라는 이름의 소규모 토론 그룹을 시작했는데, 이 그룹은 과학과 철학을 논의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모였다. 때때로 그들은 주의 깊게 들었지만 참여하지 않은 마리치와 합류했다.<ref>Highfield & Carter (1993), pp. 96–98.</ref> 그들의 독서에는 [[앙리 푸앵카레]], [[에른스트 마하]] 및 [[데이비드 흄]]의 저술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그의 과학적 그리고 철학적 견해에 영향을 끼쳤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p. 79–84</ref>
=== 첫번째 과학 논문들 ===
[[파일:Einstein_thesis.png|섬네일|위오른쪽|왼쪽|alt=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박사 학위 논문 표지 이미지|1905년에 방어된 알베르트트 아인슈타인의 박사 학위 논문 표지 이미지]]
1900년 아인슈타인의 논문 "모세관 현상으로부터의 결론(Folgerungen aus den Capillaritätserscheinungen)"이 《[[물리학 연보]](Annalen der Physik)》 저널에 게재되었다.<ref name=E1901>[[#출판물]]: Einstein (1901).</ref><ref>Galison, Peter (2003). Einstein's Clocks, Poincaré's Maps: Empires of Time. New York: W. W. Norton</ref> 1905년 4월 30일, 아인슈타인은 [[w:Pro forma|프로-포르마(pro-forma)]] 지도교수 역할의 실험 물리학 교수인 [[알프레드 클라이너]]와 함께<ref name=E1905b/> 학위논문 "분자 크기의 새로운 결정(A New Determination of Molecular Dimensions)"<ref name=E1905b>Einstein (1905b), "Meinem Freunde Herr Dr. Marcel Grossmann gewidmet (Dedicated to my friend, Dr. Marcel Grossmann)".</ref>을 완성했다. 그의 논문은 1905년 7월에 받아들여졌고, 아인슈타인은 1906년 1월 15일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ref name=E1905b/><ref>Einstein (1926b), chap. "A New Determination of Molecular Dimensions"</ref><ref>Mehra, Jagdish (28 February 2001). [https://books.google.com/books?id=o1XVCgAAQBAJ ''Golden Age Of Theoretical Physics, The (Boxed Set Of 2 Vols)'']. World Scientific.</ref>
또한 1905년, 아인슈타인의 [[w:Annus mirabilis|기적의 해]](annus mirabilis)라고 불리는 해에, 그는 [[광전 효과]], [[브라운 운동]], [[특수 상대성이론]], [[질량-에너지 등가|질량과 애너지의 등가성]]에 관한 [[기적의 해 논문]]들을 발표했는데, 그것들은 26세의 나이에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가 되었다.<ref>May, Andrew (2017). Clegg, Brian (ed.). ''Albert Einstein, in 30-Second Physics: The 50 most fundamental concepts in physics, each explained in half a minute''. London: Ivy Press. pp. 108–109.</ref>
=== 교육 경력 ===
1908년이 되자 최고의 과학자로 인정받게 되어 [[베른 대학교]]의 강사로 임명되었다. 이듬해 취리히 대학에서 [[전기역학]]과 상대성 원리에 대한 강의를 한 후 [[알프레드 클라이너]]는 그를 이론물리학 교수직에 추천했다. 아인슈타인은 1909년에 부교수로 임명되었다.<ref>"Associate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Zurich und professor in Prague (1909–1912)" (digital library). Einstein Online (in German and English). Bern, Switzerland: ETH-Bibliothek Zurich, ETH Zürich, www.ethz.ch. 2014. Retrieved 17 August 2014</ref>
아인슈타인은 1911년 4월 [[프라하]]에 있는 독일 [[w:Charles University|찰스 페르디난트 대학교(Charles-Ferdinand University)]]의 정교수가 되었는데, 이를 위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시스라이타니아|오스트리아]] 시민권을 받아들였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 136</ref><ref>von Hirschhausen, Ulrike (2007). [http://econstor.eu/bitstream/10419/49610/1/569197996.pdf "Von imperialer Inklusion zur nationalen Exklusion:Staatsbürgerschaft in Österreich- Ungarn 1867–1923"] (PDF) (WZB Discussion Paper). ZKD – Veröffentlichungsreihe der Forschungsgruppe, "Zivilgesellschaft, Citizenship und politische Mobilisierung in Europa" Schwerpunkt Zivilgesellschaft, Konflikte und Demokratie, Wissenschaftszentrum Berlin für Sozialforschung. Berlin, Germany: WZB Social Science Research Center Berlin. p. 8. Archived (PDF) from the original on 9 September 2015. Retrieved 4 August 2015. Eine weitere Diskontinuität bestand viertens darin, dass die Bestimmungen der österreichischen Staatsbürgerschaft, die in den ersten Dritteln des Jahrhunderts auch auf Ungarn angewandt worden waren, seit 1867 nur noch für die cisleithanische Reichshälfte galten. Ungarn entwickelte hingegen jetzt eine eige-ne Staatsbürgerschaft.</ref>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 그는 11개의 과학 저술을 썼으며 그 중 5개는 복사 수학과 고체의 양자 이론에 관한 것이었다.
[[파일:Einstein-with-habicht-and-solovine.jpg|섬네일| 올림피아 아카데미 설립자: [[w:Conrad Habicht|콘라드 하비히트<sub>Conrad Habicht</sub>]], [[w:Maurice Solovine|모리스 솔로비네<sub>Maurice Solovine</sub>]]와 아인슈타인]]
1912년 7월, 그는 취리히에 있는 모교로 돌아왔다. 1912년부터 1914년까지 [[취리히 공과대학교]]에서 이론물리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분석 역학과 [[열역학]]을 가르쳤다. 그는 또한 [[연속체 역학]], 열 분자 이론, 중력 문제를 수학자이자 친구인 [[w: Marcel Grossmann|마르셀 그로스만<sub>Marcel Grossmann</sub>]]과 함께 연구했다.<ref>[https://web.archive.org/web/20140821032349/http://www.library.ethz.ch/en/Resources/Digital-library/Einstein-Online/Professor-at-the-ETH-Zurich-1912-1914 "Professor at the ETH Zurich (1912–1914)"] (digital library). Einstein Online (in German and English). Zurich, Switzerland: ETH-Bibliothek Zurich, ETH Zürich, www.ethz.ch. 2014.</ref>
1914년 10월에 "[[93인의 성명서]]"-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군국주의와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수의 저명한 독일 지식인이 서명한 문서-가 출판되었을 때, 아인슈타인은 그 내용을 반박하고 평화적인 "[[w:Manifesto to the Europeans|유럽인들에게의 성명서(Manifesto to the Europeans)]]"에 서명한 몇 안 되는 독일 지식인 중 한 명이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Scheideler 2002]], p. 333</ref>
[[파일:19191125 A New Physics Based on Einstein - The New York Times.png|섬네일|오른쪽|1919년 11월 25일,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는 5월 29일 [[프린시페섬]](아프리카)와 [[w: Sobral, Ceará|소브랄(Sobral)]] (브라질)의 일식 관측에 근거한 "아인슈타인 이론"(특히 중력에 의한 빛의 굽힘)의 확인을 보도했는데, 그 발견이 1919년 11월 6일에 [[왕립 학회]]와 [[왕립천문학회]]의 런던에서의 공동 회의에 발표된 후였다.([https://timesmachine.nytimes.com/timesmachine/1919/11/25/96868705.html?pageNumber=17 전문])<ref>"A New Physics, Based on Einstein". The New York Times. 25 November 1919. p. 17</ref>]]
1913년 봄, 아인슈타인은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 회원 자격과 베를린 대학교 교수직을 포함하는 제안으로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유혹을 받았다.<ref name=Hoffmann/> 1913년 7월 3일 그는 베를린에 있는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다. [[막스 플랑크]]와 [[발터 네른스트]]는 다음 주 취리히에서 그를 방문하여 아카데미에 합류하도록 설득하고 곧 설립될 [[w:Kaiser Wilhelm Society|카이저 빌헬름 물리학 연구소(Kaiser Wilhelm Institute for Physics)]]의 소장직을 추가로 제안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Stachel 2002]], p. 534</ref> 아카데미 회원에는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유급 급여와 강의 의무가 없는 교수직이 포함되었다. 그는 7월 24일 공식적으로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이듬해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베를린으로 이사하기로 한 그의 결정은 또한 그가 낭만적인 관계를 시작한 사촌 엘사 근처에 살 것이라는 전망에 영향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은 1914년 4월 1일 자신의 [[w: Dahlem (Berlin)|달렘(Dahlem)]] 아파트로 이사한 후<ref name=Hoffmann/><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Weinstein 2015]], pp. 18–19</ref> 아카데미와 베를린 대학에서 자신의 직위를 맡았다.<ref>[https://www.jstor.org/stable/1687520 "Albert Einstein: His Influence on Physics, Philosophy and Politics JL Heilbron – 1982, Published by: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via JSTOR"]. JSTOR 1687520.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2 November 2021</ref> 그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카이저 빌헬름 물리학 연구소의 계획이 연기되었다. 그 연구소는 1917년 10월 1일에 아인슈타인을 책임자로 하여 설립되었다.<ref>[https://web.archive.org/web/20170131021344/https://www.mpg.de/dossier/einstein/in-berlin "Director in the attic"]. Max-Planck-Gesellschaft, München.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31 January 2017</ref> 1916년 아인슈타인은 [[w:German Physical Society|독일 물리학회(German Physical Society)]](1916-1918)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Calaprice & Lipscombe 2005]], "Timeline", p. xix</ref>
1911년 아인슈타인은 1907년 [[등가 원리]]를 사용하여 태양의 중력에 의해 [[중력 렌즈|다른 별에서 오는 빛]]의 편향을 계산했다. 1913년에 아인슈타인은 중력장을 나타내기 위해 [[시공간]]의 [[곡률]]을 사용하여 이러한 계산을 개선했다. 1915년 가을,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이론을 성공적으로 완성했으며, 이를 이용해 [[w: Tests of general relativity#Perihelion precession of Mercury|수성의 근일점 세차 운동(Perihelion precession of Mercury)]]을 계산했다.<ref name=Hoffmann/><ref>Weinberg, Steven (1972). ''Gravitation and Cosmology: Principles and applications of the general theory of relativity''. John Wiley & Sons, Inc. pp. 19–20.</ref> 1919년, [[1919년 5월 29일 일식]] 동안 아서 에딩턴 경이 그 편향 예측을 확인했다. 이러한 관측은 국제 언론에 발표되어 아인슈타인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 1919년 11월 7일, 영국의 주요 신문인 《더 타임즈》는 "과학의 혁명 – 우주의 새로운 이론 – 전복된 뉴턴적 아이디어"라는 제목의 배너 제목을 인쇄했다.<ref>Andrzej, Stasiak (2003).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1315907 "Myths in science"]. ''EMBO Reports''. 4 (3): 236. doi:10.1038/sj.embor.embor779.</ref>
1920년에 그는 [[네덜란드 왕립 예술 과학 아카데미]]의 외국인 회원이 되었다.<ref>[http://www.dwc.knaw.nl/biografie/pmknaw/?pagetype=authorDetail&aId=PE00000116 "Albert Einstein (1879–1955)"]. Royal Netherlands Academy of Arts and Sciences. Retrieved 21 July 2015</ref> 1922년에 그는 "이론 물리학에 대한 공로, 특히 [[광전 효과]]의 법칙을 발견한 공로"로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ref name=Nobel21/> [[일반 상대성이론]]은 여전히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는데, 수상이유서에도 기재된 광전 연구를 '설명'으로 취급하지 않고 단지 '법칙의 발견'으로 취급하였는데, 이는 광자의 개념이 1924년 [[사티엔드라 나트 보스]]에 의한 [[흑체|플랑크 스펙트럼(planck Spectrum)]]이 도출이 될 때까지는 기이한 것으로 여겨져서 여전히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w:List of fellows of the Royal Society elected in 1921|1921년 왕립학회 외국인 회원(ForMemRS)]]으로 선출되었다.<ref name=Whittaker /> 그는 또한 1925년에 [[왕립 학회]]로부터 [[코플리 메달]]을 받았다.<ref name=Whittaker />
아인슈타인은 1933년 3월 프로이센 아카데미에서 사임했다. 베를린에 있는 동안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업적에는 일반 상대성이론 완성, [[아인슈타인-더 하스 효과]] 증명, 복사 양자 이론 및 [[보스-아인슈타인 통계]]에 기여가 포함되었다.<ref name=Hoffmann/>
=== 1921–1922: 해외 여행 ===
[[파일:Einstein Albert Elsa LOC 32096u.jpg|섬네일|왼쪽|두번째 부인 엘사와 아인슈타인 1921년]]
[[파일:Albert Einstein (Nobel).png|섬네일|왼쪽|위오른쪽|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아인슈타인의 공식 초상화 1921년]]
아인슈타인은 1921년 4월 2일 처음으로 뉴욕시를 방문하여 [[w:John Francis Hylan|존 프랜시스 하일런<sub>John Francis Hylan</sub>]] 시장의 공식 환영을 받은 후 3주간의 강의와 리셉션을 가졌다.<ref>Falk, Dan, One Hundred Years Ago, Einstein Was Given a Hero’s Welcome by America’s Jews, Smithsonian, April 2, 2021</ref> 그는 [[컬럼비아 대학교]]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여러 차례 강의를 했으며 워싱턴에서는 [[백악관]]을 방문할 때 [[미국국립과학원|미국 과학 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Sciences)의 대표자들과 동행했다. 유럽으로 돌아온 그는 영국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제1대 홀데인 자작 리처드 홀데인|홀대인 자작]]의 손님으로서 런던에서 저명한 과학자, 지식인, 정치인을 만났고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강연을 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Hoffmann 1972]], pp. 145–148</ref><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Fölsing 1997]], pp. 499–508</ref>
그는 또한 1921년 7월에 "미국에 대한 나의 첫인상(My First Impression of the U.S.A.)"이라는 에세이를 출판했는데, "[[w:Democracy in America|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 (1835)에서 자신의 인상을 발표한 [[알렉시 드 토크빌]]과 마찬가지로 미국인의 몇 가지 특징을 간략하게 설명하려고 했다.<ref>"As Einstein Sees American", Einstein's World, a 1931 reprint with minor changes, of his 1921 essay</ref> 그는 자신의 일부 관찰에 의하여 놀랐던 것이 분명하다. "방문객을 놀라게 한 것은 삶에 대한 즐겁고 긍정적인 태도이다 ... 미국인은 친절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낙관적이고 또한 시기하지 않는다."<ref>Holton (1984), p. 20</ref>
1922년, 그는 싱가포르, [[스리랑카|실론]], 일본을 방문하여 수천 명의 일본인에게 일련의 강의를 하며 6개월간의 소풍 및 연설 여행의 일환으로 아시아와 팔레스타인으로 여행했다. 첫 공개 강연을 마친 후, 그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인 [[고쿄|황궁]]에서 황제와 황후를 만났다.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일본인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겸손하고 총명하며 사려 깊고 예술에 대한 진정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p. 307-308</ref> 1922~23년 아시아를 방문한 자신의 여행 일기에서 그는, 2018년에 재발견되었을 때 외국인 혐오 및 인종 차별적 판단으로 묘사되었던, 중국, 일본 및 인도 사람들에 대한 몇 가지 견해를 표현한다.<ref>Flood, Alison (12 June 2018). [https://www.smithsonianmag.com/smart-news/einsteins-travel-diaries-reveal-his-deeply-troubling-views-race-180969387/ "Einstein's travel diaries reveal 'shocking' xenophobia". The Guardian. Retrieved 13 June 2018</ref><ref>Katz, Brigit. "Einstein's Travel Diaries Reveal His Deeply Troubling Views on Race". ''Smithsonian Magazine''.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5</ref>
아인슈타인은 극동 여행으로 인해 1922년 12월 스톡홀름 시상식에서 노벨 물리학상을 직접 받을 수 없었다. 대신 만찬 연설은 독일 외교관이 진행했는데, 그는 아인슈타인은 과학자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 평화주의자이자 활동가라고 칭송했다.<ref>The Nobel Prize in Physics 1921: Albert Einstein. Banquet Speech by R. Nadolny (in German). Retrieved 9 December 2015 via Nobelprize.org</ref>
돌아오는 길에 그는 12일 동안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팔레스타인]]을 방문했는데, 그의 그 지역의 유일한 방문이었다. 그는 영국 고등판무관 [[허버트 새뮤얼]] 경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대포 경례를 받는 등 물리학자라기보다는 마치 국가원수처럼 환영받았다. 리셉션에서 그 건물은 그를 보고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아인슈타인은 청중과의 대화에서, 유대 민족이 세계에서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행복을 표현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 308</ref>
아인슈타인은 1923년 2주 동안 스페인을 방문하여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을 잠깐 만났고 [[알폰소 13세]]로부터 스페인 과학 아카데미(Spanish Academy of Sciences)의 회원이라는 디플로마를 받았다.<ref>Montes-Santiago, J. (16 July 2017). "[The meeting of Einstein with Cajal (Madrid, 1923): a lost tide of fortune]". ''Revista de Neurología''. 43 (2): 113–117</ref>
[[파일:League of Nations Commission 067.tif|섬네일|upright=1.3|오른쪽|1924년의 아인슈타인; 1922년부터 1932년까지 위원으로 있었던 국제 지적 협력 위원회 회의에서]]
1922년부터 1932년까지 아인슈타인은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 연맹]]의 [[w:International Committee on Intellectual Cooperation|국제 지적 협력 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on Intellectual Cooperation)]](1923~1924년에 몇 달 동안 중단됨)의 일원이었으며,<ref>Grandjean, Martin (2018). [https://tel.archives-ouvertes.fr/tel-01853903/document Les réseaux de la coopération intellectuelle. La Société des Nations comme actrice des échanges scientifiques et culturels dans l'entre-deux-guerres] [''The Networks of Intellectual Cooperation. The League of Nations as an Actor of the Scientific and Cultural Exchanges in the Inter-War Period''] (in French). Lausanne: Université de Lausanne.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12 September 2018. Retrieved 18 September 2018. pp. 296–302</ref> 이는 과학자, 연구원, 교사, 예술가 및 지식인 사이의 국제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였다.<ref>Grandjean, Martin (2017). "Analisi e visualizzazioni delle reti in storia. L'esempio della cooperazione intellettuale della Società delle Nazioni". Memoria e Ricerca (2): 371–393. doi:10.14647/87204. See also: Martin Grandjean (2017). "French version". Memoria e Ricerca (2): 371–393. doi:10.14647/87204.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7 November 2017. Retrieved 1 December 2017. (PDF) and [http://www.martingrandjean.ch/complex-structures-and-international-organizations/ "English summary"]. [https://web.archive.org/web/20171107004313/https://halshs.archives-ouvertes.fr/halshs-01610098v2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 November 2017.</ref> 원래 스위스 대표로 봉사할 예정이던 사무총장 [[제16대 퍼스 백작 제임스 에릭 드러먼드|에릭 드러먼드]]는 가톨릭 활동가인 [[w:Oskar Halecki|오스카 할레키<sub>Oskar Halecki</sub>]]와 [[w:Giuseppe Motta|주세페 모타<sub>Giuseppe Motta</sub>]]의 설득으로 대신 그를 독일 대표로 임명하여 [[w:Gonzague de Reynold|곤자그 드 레이놀드<sub>Gonzague de Reynold</sub>]]가 스위스 대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했으며, 그곳에서 그는 전통주의 가톨릭을 승진시켰다.<ref>Shine, Cormac (2018). "Papal Diplomacy by Proxy? Catholic Internationalism at the League of Nations' International Committee on Intellectual Cooperation". The Journal of Ecclesiastical History. 69 (4): 785–805. doi:[https://doi.org/10.1017%2FS0022046917002731 10.1017/S0022046917002731]</ref> 가치. 아인슈타인의 전 물리학 교수 [[헨드릭 로런츠]]와 폴란드 화학자 [[마리 퀴리]]도 위원회 위원이었다.<ref>[https://www.jstor.org/stable/1651869 "The Committee on Intellectual Cooperation of the League of Nations"]. ''Science''.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64 (1649): 132–133. 6 August 1926.</ref>
=== 1925: 남아메리카 방문 ===
1925년 3월과 4월에 아인슈타인은 남미를 방문하여 [[아르헨티나]]에서 약 한 달, [[우루과이]]에서 일주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일주일을 보냈다.<ref>Tolmasquim, Alfredo Tiomno (2012). "Science and Ideology in Einstein's Visit to South America in 1925". In Lehner, Christoph; Renn, Jürgen; Schemmel, Matthias (eds.). ''Einstein and the Changing Worldviews of Physics''. pp. 117–133. doi:[https://doi.org/10.1007%2F978-0-8176-4940-1_6 10.1007/978-0-8176-4940-1_6].</ref> 아인슈타인의 방문은 [[w:Julio Rey Pastor|훌리오 레이 목사<sub>Julio Rey Pastor</sub>]], [[w:Jakob Laub|야곱 라웁<sub>Jakob Laub</sub>]], [[w:Leopoldo Lugones|레오폴도 루고네스<sub>Leopoldo Lugones</sub>]]를 포함한 여러 아르헨티나 학자들의 지원을 받아 호르헤 더클라우트<sub>Jorge Duclout</sub>(1856-1927)과 마우리시오 니렌슈타인<sub>Mauricio Nirenstein</sub>(1877-1935)<ref>Gangui, Alejandro; Ortiz, Eduardo L. (2008). "Einstein's Unpublished Opening Lecture for His Course on Relativity Theory in Argentina, 1925". ''Science in Context''. 21 (3): 435–450. arXiv:[https://arxiv.org/abs/0903.2064 0903.2064].</ref>에 의해 시작되었다. 아인슈타인과 그의 아내의 방문은 아르헨티나에서는 아르헨티나-독일 문화원(Argentine-Germanic Cultural Institution)의 소액 기부와 함께 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 평의회(Council)와 아르헨티나 히브리어 협회(Asociación Hebraica Argentina)의 재정 지원을 받았다.<ref>Gangui, Alejandro; Ortiz, Eduardo L. (2016). "The scientific impact of Einstein's visit to Argentina, in 1925". arXiv:[https://arxiv.org/abs/1603.03792 1603.03792] [physics.hist-ph].</ref>
=== 1930–1931: 미국 여행 ===
[[파일:Albert Einstein and a Salvation Army band.jpg|섬네일|1926년 캘리포니아에서 [[로즈 퍼레이드]]에서 공연하기 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구세군]] 밴드.]]
1930년 12월, 아인슈타인은 두 번째로 미국을 방문했는데, 원래는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교]]의 연구원으로 2개월간의 방문이었다. 첫 번째 미국 여행에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은 후, 그와 그의 주선자들은 그의 사생활 보호를 목표로 했다. 상을 받거나 공개적으로 연설하라는 전보와 초대가 쇄도했지만, 그는 모두 거절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 368</ref>
뉴욕에 도착한 후 아인슈타인은 [[차이나타운]], 《뉴욕 타임즈》 편집자들과의 오찬,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의 카르멘 공연 등 다양한 장소와 행사로 안내되어 도착하자마자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는 [[w:Jimmy Walker|지미 워커<sub>Jimmy Walker</sub>]] 시장으로부터 도시의 열쇠를 받았고 아인슈타인을 "정신의 지배자"라고 묘사한 컬럼비아 대학교의 총장을 만났다.<ref name=Isaacson370>[[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 370</ref> 뉴욕 [[리버사이드 교회]]의 목사인 [[w:Harry Emerson Fosdick|해리 에머슨 포스딕<sub>Harry Emerson Fosdick</sub>]]은 아인슈타인에게 교회를 안내하고 입구에 서 있는 교회가 아인슈타인을 위해 만든 실물 크기의 동상을 보여주었다.<ref name=Isaacson370/> 또한 뉴욕에 머무는 동안, [[하누카]] 축제 기간 동안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15,000명의 군중과 합류했다.<ref name=Isaacson370/>
[[파일:Albert Einstein and Charlie Chaplin - 1931.jpg|섬네일|왼쪽|위오른쪽|1931년 1월 [[할리우드]] 《[[시티 라이트]]》 시사회에서 아인슈타인과 [[찰리 채플린]]]]
다음으로 아인슈타인은 캘리포니아로 가서 [[칼텍]] 총장과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밀리컨]]을 만났다. 아인슈타인이 뚜렷한 [[평화주의자]]<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 373</ref>이고 밀리컨은 "애국적인 군국주의에 대한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그 와의 우정은 "어색했다". 칼텍의 학생들에게 연설하는 동안 아인슈타인은 과학이 종종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경향이 있음을 지적했다.<ref name=Isaacson374>[[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 374</ref>
전쟁에 대한 이러한 혐오감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평화주의로 유명한 작가 [[업턴 싱클레어]]와 영화배우 [[찰리 채플린]]과 친구가 되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수장인 [[w:Carl Laemmle|칼 램믈<sub>Carl Laemmle</sub>]]은 아인슈타인에게 그의 스튜디오를 안내하고 그를 채플린에게 소개했다. 그들은 채플린이 아인슈타인과 그의 아내 엘사를 저녁 식사를 위해 그의 집으로 초대하는 즉석 접촉을 가졌다. 채플린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아인슈타인의 겉모습이 그의 "비범한 지적 에너지"가 나오는 "매우 감정적인 기질"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Chaplin 1964]], p. 320</ref>
채플린의 영화 [[시티 라이트|《시티 라이트(City Lights)》]]는 며칠 후 할리우드에서 초연될 예정이었고 채플린은 아인슈타인과 엘사를 특별 게스트로 초대했다. 아인슈타인의 전기 작가인 [[월터 아이작슨]]은 이것을 "축복의 새 시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라고 묘사했다.<ref name=Isaacson374/> 채플린은 나중에 베를린으로 여행을 갔을 때 그의 집에 있는 아인슈타인을 방문하여 그의 "소박한 작은 아파트"와 그의 이론을 쓰기 시작했던 피아노를 회상했다. 채플린은 그것이 "나치에 의해 점화용 나무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Chaplin 1964]], p. 322</ref>
=== 1933: 미국으로의 이주 ===
[[파일:Einstein-cartoon1.jpg|섬네일|위오른쪽|"평화주의"의 날개를 펼친 아인슈타인의 만화(찰스 R. 맥컬리<sub>Charles R. Macauley</sub>, 1933년경)]]
1933년 2월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 아인슈타인은 독일의 새 총리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한 [[나치]]의 집권으로 독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Fölsing 1997]], p. 659.</ref><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 404</ref>
1933년 초 미국 대학에 있는 동안 그는 패서디나에 있는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교]]에서 세 번째 2개월간 방문 교수직을 맡았다. 1933년 2월과 3월에 [[게슈타포]]는 베를린에 있는 그의 가족 아파트를 반복해서 습격했다.<ref>[https://newspapers.ushmm.org/events/albert-einstein-quits-germany-renounces-citizenship "Albert Einstein Quits Germany, Renounces Citizenship"]. ''History Unfolded: US Newspapers and the Holocaust''.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17 April 2021</ref> 그와 그의 아내 앨사는 3월에 유럽으로 돌아갔고 여행 중에 독일 의회가 3월 23일 [[전권 위임법]]를 통과시켜 히틀러 정부를 '사실상' 법적 독재 정권으로 전환시켰고 그들이 배를린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그들은 그들의 오두막이 나치에 의해 습격당했고 아인슈타인의 개인 범선이 압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3월 28일 벨기에 [[앤트워프]]에 도착한 아인슈타인은 즉시 독일 영사관으로 가서 여권을 양도하고 공식적으로 독일 시민권을 포기했다.<ref name=Isaacson407-410>[[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p. 407-410</ref> 나치는 나중에 그의 배를 팔고 그의 오두막을 [[히틀러 청소년단]] 캠프로 개조했다.<ref>Richard Kroehling (July 1991). [http://www.pbs.org/wnet/americanmasters/albert-einstein-how-i-see-the-world/585/ "Albert Einstein: How I See the World"]. ''American Masters''. PBS. Retrieved 29 May 2018</ref>
==== 난민 신분 ====
[[파일:Einstein's landing card (5706142737).jpg|섬네일|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방문 카드(1933년 5월 26일), 그가 [[옥스포드]]를 방문하기 위해 [[오스텐더]](벨기에)에서 [[도버]](영국)에 상륙했을 때.]]
1933년 4월,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독일 정부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을 포함하여 유태인이 공직에 있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을 통과시켰음을 발견했다.<ref name=Isaacson407-410/> 역사가인 [[w:Gerald Holton|제럴드 홀턴<sub>Gerald Holton</sub>]]은 어떻게 "동료들이 거의 들리지 않는 항의를 제기한" 상황에서 수천 명의 유대인 과학자들이 갑자기 대학 직위를 포기하고 그들이 고용된 기관 목록에서 이름이 삭제되었는가를 기술한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Holton 1984]]</ref>
한 달 후, 아인슈타인의 저술은 [[베를린 분서|나치 책 불태우기]]에서 [[w:German Student Union| 독일 학생회(German Student Union)]]의 표적이 된 서적들 중 하나였으며 나치 선전 장관 [[요제프 괴벨스]]는 "유대인 지식주의는 죽었다"고 선언했다.<ref name=Isaacson407-410/> 한 독일 잡지는 그를 적의 목록에 포함시켰다. 독일 정권은 "아직 교수형에 처하지 않음"이라는 문구를 사용하여 그의 머리에 현상금 5,000달러를 제안했다.<ref name=Isaacson407-410/><ref name=Fred>Fred Jerome; Rodger Taylor (2006). [https://books.google.com/books?id=4d79VQdOfFUC&pg=PR10 Einstein on Race and Racism]. Rutgers University Press. p. 10.</ref> 독일에서 영국으로 이미 이주한 물리학자 친구인 [[막스 보른]]에게 보낸 후속 편지에서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썼다. "... 그들의 잔인함과 비겁함의 정도가 놀라움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ref name=Isaacson407-410/> 미국으로 건너간 후 그는 책 불태우기를 "대중 계몽을 기피하고" 또한 "세상 무엇보다 지적 독립을 하는 사람들의 영향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감정 폭발"이라고 묘사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Einstein 1954]], p. 197</ref>
아인슈타인은 이제 영구적인 집도 없었고 자신이 어디에서 살고 일할지 확신할 수 없었으며 여전히 독일에 있는 수많은 다른 과학자들의 운명에 대해서도 똑같이 걱정했다. 1933년 4월 영국의 자유당 정치인 [[윌리엄 베버리지]]가 학자들이 나치의 박해를 피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설립한 [[w:Council for At-Risk Academics|학술 지원 위원회(Academic Assistance Council)]]의 도움으로 아인슈타인은 독일을 떠날 수 있었다.<ref name=Keyte>Keyte, Suzanne (9 October 2013). "3 October 1933 – Albert Einstein presents his final speech given in Europe, at the Royal Albert Hall". Royal Albert Hall.</ref> 그는 벨기에의 데한(De Haan)에 집을 빌려 몇 달 동안 살았다. 1933년 7월 말,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그와 친구가 된 영국 국회의원 사령관 [[w:Oliver Locker-Lampson|올리버 로커-램슨<sub>Oliver Locker-Lampson</sub>]]의 초청으로 약 6주 동안 영국을 방문했다.<ref>Robinson, Andrew (2019). [[:en:Einstein_on_the_Run|Einstein on the Run]]. Yale University Press.</ref> 로커-램슨은 [[w:Roughton, Norfolk|노퍽 로턴(Norfolk, Roughton)]] 교구에 있는 로턴 히스(Roughton Heath)의 목조 오두막에 있는 [[w: Cromer|크로머(Cromer)]] 집 근처에 머물도록 그를 초대했다. 아인슈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로커 램슨은 두 명의 경호원을 그의 외딴 오두막에서 지켜보게 했다. 1933년 7월 24일 《데일리 해랄드(Daily Herald)》에 엽총을 들고 아인슈타인을 지키는 사진이 실렸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 422</ref><ref>[http://collection.sciencemuseum.org.uk/objects/co8223551/professor-einstein-with-commander-locker-lampson-gelatin-silver-print-photograph "Professor Einstein with Commander Locker-Lampson"], from the original on 6 September 2017. ScienceMuseum.org, UK</ref>
로커-램슨은 아인슈타인을 집으로 데려가 [[윈스턴 처칠]]을 만났고 나중에는 [[오스틴 체임벌린]]과 [[로이드 조지]] 전 총리를 만났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p. 419-420</ref> 아인슈타인은 유대인 과학자들을 독일에서 내보내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영국 역사가 [[w:Martin Gilbert|마틴 길버트<sub>Martin Gilbert</sub>]]는 처칠이 즉시 대응했고 그의 친구 물리학자 [[w:Frederick Lindemann, 1st Viscount Cherwell|프레데릭 린데만<sub>Frederick Lindemann</sub>]]을 독일로 보내 유대인 과학자를 찾아 영국 대학에 배치했다고 지적했다.<ref name=Gilbert>Gilbert, Martin. ''Churchill and the Jews'', Henry Holt and Company, N.Y. (2007) pp. 101, 176</ref> 처칠은 나중에 독일이 유태인을 몰아낸 결과로 "기술적 표준"이 낮아져서 연합군의 기술이 앞서게 된 것을 관찰했다.<ref name=Gilbert/>
아인슈타인은 나중에 [[터키]] 수상 [[이스메트 이뇌뉘]]를 포함한 다른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연락하여 1933년 9월 실직한 독일계 유대인 과학자들을 배치해 달라는 편지를 썼다. 아인슈타인의 편지의 결과로 터키에 초청된 유대인들은 결국 "구원된 개인 1,000명"을 넘어섰다.<ref>Reisman, Arnold (20 November 2006). [http://hnn.us/article/31946 "What a Freshly Discovered Einstein Letter Says About Turkey Today"]. History News Network, George Mason University.</ref>
로커-램슨은 또한 영국 시민권을 아인슈타인에게 연장하기 위한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는데, 이 기간 동안 아인슈타인은 유럽에서 일으키고 있는 위기를 설명하는 공개석상에서 여러 번 등장했다.<ref name=Clark>[[알베르트_아인슈타인#인용된_저술|C;ark 1971</ref> 그의 연설 중 하나에서 그는 독일의 유대인 대우를 비난하는 동시에 다른 곳에서 시민권을 거부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시민권을 증진하는 법안을 발의했다.<ref>"Denunciation of German Policy is a Stirring Event", Associated Press, 27 July 1933</ref> 연설에서 그는 아인슈타인을 영국에서 임시 쉼터를 제공받아야 하는 "세계의 시민"으로 묘사했다.<ref group=노트>"독일에 있는 그들의 지도자들은국가의 치열한 경쟁자들(cut-throats)과 불량배들을 몰아내지 않았다. 국가는 자기 문화의 정석을 선택했고 또한 그것을 억제해왔다. 국가는 심지어 그의 가장 영광스러운 시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배신했다. 그는 이타적인 지식인의 가장 좋은 본보기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세계 시민에 가까운 그 남자는 집이 없다. 우리가 그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ref><ref>"Stateless Jews: The Exiles from Germany, Nationality Plan", ''The Guardian'' (UK) 27 July 1933</ref> 그러나 두 법안 모두 실패했고, 아인슈타인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고등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로부터의 초기의 제안을 받아들여, 미국 [[뉴저지 주|뉴저지]] [[프린스턴]]에서 상주 학자(resident scholar)가 되었다.<ref name=Clark/>
====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상주 학자 ====
[[파일:Einstein-formal portrait-35.jpg|섬네일|위오른쪽|오른쪽|프린스턴에서 찍은 아인슈타인의 초상화 1935년 (56세)]]
1933년 10월 3일, 아인슈타인은 런던의 [[로열 앨버트 홀]]에서 꽉 찬 청중 앞에서 학문적 자유의 중요성에 대해 연설했고, 《타임스》는 그가 내내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고 보도했다.<ref name=Keyte/> 4일 후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나치 독일을 탈출한 과학자들의 피난처가 된 것으로 알려진 고등연구소<ref name=Clark/><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Fölsing 1997]], pp. 649, 678.</ref>에 자리를 잡았다.<ref name=Arntzenius>Arntzenius, Linda G. (2011). [https://books.google.com/books?id=zHHguITir80C&pg=PA19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Arcadia Publishing. p. 19.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6 September 2015.</ref> 당시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을 포함한 대부분의 미국 대학에는 1940년대 후반까지 지속된 [[w:Jewish quota|유대인 할당제(Jewish quotas)]] 때문에 유대인 교수진이나 학생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었다.<ref name=Arntzenius/>
아인슈타인은 아직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1931년 5월부터 1933년 6월까지 [[크라이스트 처치 (옥스퍼드)]]를 포함한 여러 유럽 대학에서 제의를 받았고, 그곳에서 1931년 5월부터 1933년 6월까지 3번의 짧은 기간 동안 머물렀고, 5년 연구 장학금(크라이스트 처치의 "학생 자격"이라고 부름)을 제안받았다.<ref>[http://www.oxfordchabad.org/templates/articlecco_cdo/aid/457396/jewish/Albert-Einstein.htm "Oxford Jewish Personalities"]. Oxford Chabad Society.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12 January 2016.</ref><ref>[http://www.oxfordtimes.co.uk/leisure/history_heritage/9617968.How_Einstein_fled_from_the_Nazis_to_an_Oxford_college/ "How Einstein fled from the Nazis to an Oxford college"]. ''The Oxford Times''. 2012.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 April 2015.</ref> 그러나 1935년에 그는 미국에 영구적으로 남아 시민권을 신청하기로 결정했다.<ref name=Clark/><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Fölsing 1997]], pp. 686–687</ref>
아인슈타인의 고등연구소와의 제휴는 1955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ref>[http://www.ias.edu/people/einstein/in-brief "In Brief"].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10 September 2009.</ref> 그는 새로운 연구소에서 ([[존 폰 노이만]], [[쿠르트 괴델]] 및 [[헤르만 바일]]<ref>Weyl, Hermann (2013). Pesic, Peter (ed.). [https://books.google.com/books?id=Dd-vAAAAQBAJ ''Levels of Infinity: Selected Writings on Mathematics and Philosophy'']. Dover Publications. p. 5. By 1933, Weyl... left for the newly-founded Institute for Advanced Studies at Princeton, where his colleagues included Einstein, Kurt Gödel, and John von Neumann.</ref>과 함께) 처음으로 선택된 4명 중 한 명이었으며, 그곳에서 그는 곧 괴델과 친밀한 우정으로 발전했다. 두 사람은 자신의 일을 의논하면서 함께 긴 산책을 하곤 했다. 그의 조수인 [[w:Bruria Kaufman|브루리아 카우프만<sub>Bruria Kaufman</sub>]]은 나중에 물리학자가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아인슈타인은 [[통일장 이론]]을 개발하고 또한 [[양자역학|양자 물리학]]에 대한 [[코펜하겐 해석|수용된 해석]]을 논박하려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 제2차 세계대전과 맨해튼 계획 ====
{{참고|아인슈타인-실라르드 편지}}
[[파일:München-2021-Deutsches_Museum-Einstein.jpg|섬네일|[[뮌헨]]의 [[독일 박물관]]에 있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대리석 흉상]]
1939년에 망명한 물리학자 [[실라르드 레오]]를 포함한 헝가리 과학자 그룹이 워싱턴에 진행 중인 나치 원자폭탄 연구에 대해 경고하려고 시도했다. 그룹의 경고는 과소평가되었다. 아인슈타인과 실라르드는 [[에드워드 텔러]]와 [[유진 위그너]]와 같은 다른 난민들과 함께 "독일 과학자들이 [[w:German nuclear weapons program|원자폭탄 개발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미국인들에게 경고하고 히틀러가 그러한 무기에 의지할 것 이상일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을 그들의 책임으로 여겼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 630</ref><ref>Gosling, F. G. (2010). [http://energy.gov/management/downloads/gosling-manhattan-project-making-atomic-bomb "The Manhattan Project: Making the Atomic Bomb"]. U.S. Department of Energy, History Division. p. vii. Retrieved 7 June 2015</ref> 미국이 위험을 인지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유럽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기 몇 달 전인 1939년 7월, 실라르드와 위그너는 아인슈타인을 방문하여 평화주의자인 아인슈타인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원자폭탄의 가능성을 설명했다.<ref>Lanouette, William; Silard, Bela (1992). [https://archive.org/details/geniusinshadowsa00lano/page/198 ''Genius in the Shadows: A Biography of Leo Szilárd: The Man Behind The Bomb''].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pp. 198–200</ref> 그는 실라르드와 함께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미국이 관심을 갖고 자체적인 핵무기 연구에 참여할 것을 권고하는 [[아인슈타인-실라르드 편지|편지]]를 작성하여 지원을 요청했다.
이 서한은 "거의 틀림없이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직전에 핵무기에 대한 진지한 조사를 실시하기 위한 핵심 자극제"라고 믿어진다.<ref>Diehl, Sarah J.; Moltz, James Clay (2008). [https://books.google.com/books?id=3PN-NEfl_U0C&pg=PA218 Nuclear Weapons and Nonproliferation: A Reference Handbook]. ABC-CLIO. p. 218.</ref> 편지 외에도 아인슈타인은 [[w:Members of the Belgian royal family|벨기에 왕실]] 및 벨기에 여왕 어머니와의 인맥을 이용하여 백악관 집무실에 개인 사절을 보낼 수 있었다.<ref>Hewlett, Richard G.; Anderson, Oscar E. (1962). [https://www.governmentattic.org/5docs/TheNewWorld1939-1946.pdf ''The New World, 1939–1946''] (PDF). University Park: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pp. 15–16.</ref> 어떤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의 편지와 루즈벨트와의 만남의 결과로서 미국이 [[맨해튼 계획]]를 시작하기 위해 "막대한 물질적, 재정적, 과학적 자원"을 사용하여 폭탄 개발을 위한 "경쟁"에 들어갔다고 말한다.
아인슈타인에게 "전쟁은 질병이었다 ... [그리고] 그는 전쟁에 대한 저항을 요구했다." 루즈벨트에게 보낸 편지에 서명함으로써 일부 사람들은 그가 그의 평화주의 원칙에 어긋났다고 주장한다.<ref>Einstein, Albert (1952). "On My Participation in the Atom Bomb Project".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8 August 2015. Retrieved 7 June 2015 – via atomicarchive.org</ref> 죽기 1년 전인 1954년, 아인슈타인은 그의 오랜 친구 [[라이너스 폴링]]에게 말하기를, "나는 인생에서 한 가지 큰 실수를 저질렀다-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원자폭탄을 만들 것을 권고하는 편지에 서명했을 때였는데; 그러나 독일인이 그들을 만들 위험이 있다는 몇 가지 정당성-독일인이 그것들을 만들 위험이 있었다 ..."<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Clark 1971]], p. 752.</ref> 1955년에 아인슈타인과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을 비롯한 10명의 다른 지식인과 과학자는 핵무기의 위험을 강조하는 [[w:Russell–Einstein Manifesto|한 선언문]]에 서명했다.<ref>Einstein, Albert; Russell, Bertrand (9 July 1955). [https://pugwash.org/1955/07/09/statement-manifesto/ ''The Russell-Einstein Manifesto'']. London.</ref>
==== 미국시민권 ====
[[파일:Citizen-Einstein.jpg|섬네일|[[w:Phillip Forman|필립 포만<sub>Phillip Forman</sub>판사]]로부터 [[미국 시민권]]을 받는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1940년에 미국 시민이 되었다. 뉴저지주 프린스턴에 있는 고등 연구소에서 경력을 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유럽과 비교할 때 미국 문화의 [[능력주의]]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그는 사회적 장벽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를 인정했고, 그 결과, 개인이 더 창의적으로 격려받았으며, 이는 그가 자신의 조기 교육에서 소중하게 여겼던 특성이라고 말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 432</ref>
아인슈타인은 프린스턴에 있는 [[전미 흑인 지위 향상 협회|전미 유색인종 발전 협회]](NAACP)에 가입하여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시민권]]을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그는 인종차별을 미국의 "최악의 질병"으로 간주했으며,<ref name=Fred/><ref name=Francis>Francis, Matthew (3 March 2017). [https://www.smithsonianmag.com/science-nature/how-celebrity-scientist-albert-einstein-used-fame-denounce-american-racism-180962356 "How Albert Einstein Used His Fame to Denounce American Racism"]. ''Smithsonian Magazine''.</ref> 이를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것으로 보았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Calaprice 2005]], pp. 148–149</ref> 그의 참여의 일환으로 그는 인권 운동가 [[W. E. B. 듀보이스]]와 교신했고 1951년 재판에서 그를 위하여 증언할 준비가 되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Robeson 2002]], p. 565</ref> 아인슈타인이 듀보이스의 증인이 되겠다고 제안했을 때 판사는 사건을 기각하기로 결정했다.<ref name=Harvard>[http://news.harvard.edu/gazette/story/2007/04/albert-einstein-civil-rights-activist/ "Albert Einstein, Civil Rights activist"], ''Harvard Gazette'', 12 April 2007</ref>
1946년 아인슈타인은 [[w:Historically black colleges and universities|역사적으로 흑인 대학]]이었던 펜실베니아의 [[링컨 대학교]]을 방문하여 명예 학위를 받았다. 링컨은 미국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대학 학위를 수여한 최초의 대학이어서; 졸업생으로는 [[랭스턴 휴스]]와 [[서굿 마셜]]이 포함된다. 아인슈타인은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해 연설하면서 "나는 그것에 대해 침묵할 생각이 없다"고 덧붙였다.<ref>Jerome, Fred (December 2004). "Einstein, Race, and the Myth of the Cultural Icon". ''Isis''. 95 (4): 627–639. Bibcode:[https://ui.adsabs.harvard.edu/abs/2004Isis...95..627J 2004Isis...95..627J].</ref> 프린스턴의 한 거주자는 아인슈타인이 한때 흑인 학생을 위해 대학 등록금을 지불한 적이 있다고 회상한다.<ref name=Harvard/> 아인슈타인은 "내 자신이 유대인이므로, 아마도 흑인들이 차별의 희생자로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f name=Francis/>
=== 개인적인 견해 ===
==== 정치적 견해 ====
{{본문|en:Political views of Albert Einstein}}
[[파일:Einsteinwiezmann.PNG|섬네일|upright=1.2|오른쪽|1921년 뉴욕에 도착한 아인슈타인과 아내 [[w:Elsa Einstein|엘사 아인슈타인]] 및 미래의 [[이스라엘의 대통령]] [[하임 바이츠만]], 그의 아내 [[w:Vera Weizmann|베라 바이츠만<sub>Vera Weizmann</sub>]], [[w:Menachem Ussishkin|메나헴 어시킨<sub>Menahem Ussishkin</sub>]]과 벤자이온 모신슨<sub>Ben-Zion Mossinson</sub> 등 시온주의 지도자들]]
1918년 아인슈타인은 [[w:Liberalism|자유주의]] 정당인 [[독일민주당]]의 창당원 중 한 명이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Rowe & Schulmann 2007]], p. 83.</ref> 말년에 아인슈타인의 정치적 견해는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그는 "[[w:Why Socialism?|왜 사회주의인가?]]"와 같은 에세이에서 자세히 설명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Einstein]] 1949]</ref><ref>Rowe, David E.; Schulmann, Robert (8 June 2007a). David A., Walsh (ed.). [http://hnn.us/articles/39445.html "What Were Einstein's Politics?"]. ''History News Network''.</ref> [[볼셰비키]]에 대한 그의 견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뀌었다. 1925년에 그는 '잘 규제된 정부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고 그들의 통치를 '인류 역사의 비극이자 공포의 체제'라고 불렀다. 그는 나중에 보다 균형 잡힌 견해를 채택하여 그들의 방법을 비판했지만 칭찬했는데, 이는 1929년 [[블라디미르 레닌]]에 대한 그의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그의 방법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와 같은 사람들은 인류 양심의 수호자이자 재건자이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Rowe & Schulmann 2013]], pp. 412, 413</ref> 아인슈타인은 종종 물리학이나 수학 이론과 관련이 없는 문제에 대해 판단과 의견을 제시하도록 요청받았다.<ref name=Clark/> 그는 세계 연방의 틀에서 민족 국가의 힘을 견제하는 민주적 [[세계 정부]]의 아이디어를 강력하게 옹호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p. 487, 494, 550</ref> 다른 그는 "나는 인간이 지금까지 발견한 가장 끔찍한 위험을 제거할 수 있는 다른 가능한 방법이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세계 정부를 지지한다."라고 썼다.<ref>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4 (February 1948), No. 2 35–37: 'A Reply to the Soviet Scientists, December 1947'</ref> FBI는 1932년에 아인슈타인에 대한 비밀 문서를 작성했으며 그가 사망할 당시 그의 FBI 파일 길이는 1,427페이지였다.<ref>Waldrop, Mitch (19 April 2017). [http://news.nationalgeographic.com/2017/04/science-march-einstein-fbi-genius-science/ "Why the FBI Kept a 1,400-Page File on Einstein"]. ''National Geographic''</ref>
아인슈타인은 편지를 주고 받은 [[마하트마 간디]]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간디를 "다음 세대를 위한 롤 모델"로 묘사했다.<ref>[https://web.archive.org/web/20120117104005/http://www.gandhiserve.org/streams/einstein.html "Einstein on Gandhi (Einstein's letter to Gandhi – Courtesy:Saraswati Albano-Müller & Notes by Einstein on Gandhi – Source: The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Gandhiserve.org. 18 October 1931.</ref> 최초의 관계는 1931년 9월 27일 [[w:Wilfrid Israel|윌프리드 이스라엘<sub>Wilfrid Israel</sub>]]이 인도 손님 [[w:V. A. Sundaram|V. A. 순다람<sub>V. A. Sundaram</sub>]]을 데리고 카푸트 마을에 있는 여름 별장에서 친구 아인슈타인을 만났을 때 이루어졌다. 순다람은 간디의 제자이자 특사였는데, 윌프리드 이스라엘은 1925년 인도에서 인도 지도자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를 만났다. 방문하는 동안 아인슈타인은 간디에게 짧은 편지를 썼고 그 편지에 간디는 곧바로 답했다. 결국 아인슈타인과 간디는 바라던 대로 만날 수 없었지만, 그들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은 윌프리드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어졌다.<ref>[http://streams.gandhiserve.org/einstein.html Einstein's letter and Gandhi's answer] {{웨이백|url=http://streams.gandhiserve.org/einstein.html |date=20140609031152 }}, gandhiserve.org</ref>
==== 시오니즘과의 관계 ====
[[파일:Albert Einstein Head.jpg|섬네일|위오른쪽|1947년의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1925년에 개교한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설립을 도운 대표적인 지도자였으며,<ref>Dennis Overbye (25 January 2005). [https://www.nytimes.com/2005/01/25/science/brace-yourself-here-comes-einsteins-year.html "Brace Yourself! Here Comes Einstein's Year"]. ''The New York Times''. Hebrew University ... which he helped found"</ref> 최초의 이사회 중 한사람이었다. 그 이전인 1921년에 그는 생화학자이자 [[w:World Zionist Organization|세계 시오니스트 기구(World Zionist Organization)]] 회장인 [[하임 바이츠만]]으로부터 계획된 대학을 위한 기금 마련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 290</ref> 그는 또한 초기 프로그램에 대해 다양한 제안을 제출했다.
그 중 미개발 토지를 정착시키기 위해 먼저 농업 연구소를 만들 것을 조언했다. 그는 화학 연구소와 미생물학 연구소가 국가 발전의 3분의 1을 저해하고 있는 "악"이라고 불렀던 [[말라리아]]와 같은 다양한 진행 중인 전염병과 싸우기 위해 이를 따라야 한다고 제안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Rowe & Schulmann 2007]], p. 161.</ref> 동양학 연구소의 설립은 히브리어와 아랍어로 제공되는 언어 과정을 포함하는 국가와 역사적 기념물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위하여 중요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Rowe & Schulmann 2007]], p. 158.</ref>
아인슈타인은 [[민족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1948년에 [[이스라엘]]로서 그의 도움 없이 세워질 독립된 유대 국가의 창설에 반대했다. 아인슈타인은 [[알리야]]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있는 기존 아랍인들과 함께 살 수 있다고 느꼈다.<ref>Rosenkranz, Ze'ev (2011). Einstein Before Israel: Zionist Icon Or Iconoclast?. Princeton University Press. pp. 4–5.</ref>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2년 11월 이스라엘 대통령 바이츠만이 사망하자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은 [[w:Ezriel Carlebach|에즈리엘 칼레바흐<sub>Ezriel Carlebach</sub>]]의 역설로 아인슈타인에게 [[이스라엘의 대통령]]의 대체로 의례적 지위를 제안했다.<ref>[https://web.archive.org/web/20080518022224/http://www.time.com/time/magazine/article/0,9171,817454,00.html "ISRAEL: Einstein Declines"]. ''Time''. 1 December 1952</ref><ref>Rosenkranz, Ze'ev (6 November 2002). ''The Einstein Scrapbook''. Baltimore, Maryland: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p. 103.</ref> 이 제안은 워싱턴 주재 이스라엘 대사인 [[w:Abba Eban|아바 에반<sub>Abba Eban</sub>]]에 의해 제시되었는데, 그는 이 제안이 "유대인이 그 아들들 중 누구에게나 안식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존경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f name=Isaacson522>[[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 522</ref>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에 "슬프고 부끄럽다"고 썼다.<ref name=Isaacson522/>
==== 종교적 및 철학적 견해 ====
{{본문|en:Religious and philosophical views of Albert Einstein}}
[[파일:03 ALBERT EINSTEIN.ogg|섬네일|오른쪽|1943년 4월 11일 유대인 연합의 호소를 위한 아인슈타인의 연설 시작 (육성):<br/>
"Ladies (기침한다) and gentlemen, our age is proud of the progress it has made in man's intellectual development. The search and striving for truth and knowledge is one of the highest of man's qualities though often the pride is most loudly voiced by those who strives the least, and certainly, we should take care not to make the intellect our goal. ..."<br/>라디오 국립 라플라타 대학교(Radio Universidad Nacional de La Plata), 아르헨티나]]
아인슈타인은 다양한 원본 저작물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적 견해에 대해 이야기했다.<ref>Hitchens, Christopher, ed. (2007). "Selected Writings on Religion: Albert Einstein". [[:en:The_Portable_Atheist|The Portable Atheist: Essential Readings for the Nonbeliever]]. Da Capo Press. p. 155</ref> 그는 [[바뤼흐 스피노자]]의 철학에 나오는 비인격적인 [[범신론]]적 신에 대해 공감한다고 말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 325</ref> 그는 인간의 운명과 행동에 관여하는 [[w:Personal god|개인 신]]을 믿지 않았고, 그 견해를 순진하다고 묘사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Calaprice 2000]], p. 218</ref> 그러나 그는 자신을 [[불가지론]]자,<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Calaprice 2000]], p. 218</ref> 또는 "깊이 종교적인 비신자"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해서 "나는 무신론자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밝혔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 340</ref><ref>182] [http://farm3.static.flickr.com/2687/4496554935_0b573db853_o.jpg "Letter to M. Berkowitz, 25 October 1950"]. Einstein Archive 59–215.</ref> [[내세]]를 믿느냐는 질문에 아인슈타인은 "아니요. 그리고 한 번이면 충분합니다."라고 대답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Isaacson 2007]], p. 461</ref>
아인슈타인은 주로 영국과 미국 양국의 비종교적 [[w:Secular humanism|휴머니스트]] 및 [[w:Ethical movement|윤리 문화(Ethical Culture)]] 그룹과 제휴했다. 그는 [[w:First Humanist Society of New York|뉴욕 제일 휴머니스트 협회(First Humanist Society of New York)]] 자문 위원회에서 봉사했으며,<ref>Dowbiggin, Ian (2003). ''A Merciful End''.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Dowbiggin, Ian (9 January 2003). p. [https://books.google.com/books?id=E1AKtIEIIvUC&pg=PA41 41].</ref> 영국에서 《[[w:New Humanist|신 휴머니스트 (New Humanist)]]》를 출판하는 [[w:Rationalist Association|합리주의자 협회(Rationalist Association)]]의 명예 준회원이었다. [[w:Ethical movement|뉴욕 윤리 문화 협회(New York Society for Ethical Culture)]] 창립 75주년을 맞아서, 그는 윤리적 문화라는 개념이 종교적 이상주의에서 가장 가치 있고 영속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개념을 구현했다고 천명했다. 그는 "'윤리적 문화'가 없으면 인류의 구원도 없다"고 말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Einstein 1995]], p. 62</ref>
1954년 1월 3일자 철학자 [[w:Eric Gutkind|에릭 거트킨드<sub>Eric Gutkind</sub>]]에게 보낸 독일어 편지에서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썼다:
<blockquote>나에게 [[w:God (word)|신이란 단어]]는 인간의 나약함의 표현이자 산물에 지나지 않으며, [[성경]]은 영예롭지만 여전히 유치한 원시적인 전설의 모음집이다. 아무리 미묘하게 (나를 위해) 이것을 바꿀 수 있더라도 해석이 없다. ... 나에게 [[유대교]]는 다른 모든 종교와 마찬가지로 가장 유치한 미신의 화신이다. 그리고 내가 기꺼이 속해 있고 깊은 유대감을 갖고 있는 [[유대인]]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 나는 그들에 대해 '[[w:Jews as the chosen people|선택]]'된 것을 볼 수 없다.<ref>Dvorsky, George (23 October 2012). [Dvorsky, George (23 October 2012). "Einstein's 'I don't believe in God' letter has sold on eBay..." io9.com. "Einstein's 'I don't believe in God' letter has sold on eBay..."] ''io9.com''</ref></blockquote>
아인슈타인은 오랫동안 채식주의에 동조했다. 1930년 [[w:ProVeg Deutschland|독일 채식 연맹(Deutsche Vegetarier-Bund)]]의 부회장인 헤르만 후트<sub>Hermann Huth</sub>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blockquote>나는 외적인 환경 때문에 엄격한 채식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원칙적으로는 오랫동안 그 원인을 고수해 왔다. 심미적 및 도덕적 이유로 채식주의의 목적에 동의하는 것 외에도, 인간의 기질에 순전히 신체적 영향을 미치는 채식주의 생활 방식이 인류의 운명에 가장 유익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ref>[https://ivu.org/history/northam20a/einstein.html "Albert Einstein (1879–1955)"]. International Vegetarian Union (IVU).</ref></blockquote>
그는 그의 삶의 마지막 부분에서만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1954년 3월에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그래서 저는 지방도, 고기도, 생선도 없이 살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꽤 기분이 좋다. 제가 보기에 인간은 육식동물로 태어나지 않은 것 같다."<ref>[https://aretheyvegan.com/alberteinstein/ "Was Albert Einstein vegan?"]. ''AreTheyVegan.com''. 27 March 2020.</ref>
==== 음악의 사랑 ====
[[파일:Wanda von Debschitz-Kunowski Albert Einstein beim Geigenspiel 1927.jpg|섬네일|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아인슈타인 (1927년에 출판된 이미지)]]
아인슈타인은 어린 나이에 음악의 감상을 발전시켰다. 그의 후기 잡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blockquote>"나는 물리학자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음악가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종종 음악 속에서 생각한다. 나는 음악 속에서 백일몽을 꾼다. 나는 음악의 관점에서 내 삶을 본다 ... 나는 인생에서 대부분의 기쁨을 음악으로부터 얻는다."<ref>Duchen, Jessica (28 January 2011). [https://www.independent.co.uk/arts-entertainment/classical/features/the-relative-beauty-of-the-violin-2196313.html "The relative beauty of the violin"]. ''The Independent''.</ref><ref>[https://web.archive.org/web/20150828225916/http://www.pha.jhu.edu/einstein/stuff/einstein%26music.pdf "Einstein and his love of music"] (PDF). Physics World. January 2005.</ref></blockquote>
그의 어머니는 피아노를 꽤 잘 치셨고 아들이 [[바이올린]]을 배우기를 원했으며, 아들에게 음악에 대한 사랑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w:Culture of Germany|독일 문화]]에 동화되도록 도왔다. 지휘자 [[w:Leon Botstein|레온 보스타인<sub>Leon Botstein</sub>]]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은 5세 때 연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그 나이에는 그것을 즐기지는 않았다.<ref name=music> Peter Galison; Gerald James Holton; Silvan S. Schweber (2008). [https://archive.org/details/einsteinforstcen00gali Einstein for the 21st Century: His Legacy in Science, Art, and Modern Culture]. Princeton University Press. pp. [https://archive.org/details/einsteinforstcen00gali/page/n181 161]–164.</ref>
그가 13살이 되었을 때 [[w:List of sonatas by Wolfgang Amadeus Mozart|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발견하고 [[모차르트]]의 작곡에 매료되어 음악을 더 열심히 공부했다. 아인슈타인은 "체계적으로 연습한 적" 없이 스스로 연주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사랑은 의무감보다 더 나은 스승이다."라고 말했다.<ref name=music/> 17세 때 그는 [[w:Beethoven's violin sonatas|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하던 중 아라우에서 학교 시험관에게 들었다. 심사관은 나중에 그의 연주가 "놀랍고 '위대한 통찰력'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보스타인은 쓰기를, 시험관을 놀라게 한 것은 아인슈타인이 "음악에 대한 깊은 사랑과 부족했던 자질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음악은 이 학생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ref name=music/>
그 이후로 음악은 아인슈타인의 삶에서 중추적이고 영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자신이 전문 음악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인슈타인이 실내악을 함께 연주한 사람들 중에는 소수의 전문가들이 있었고 그는 개인 청중과 친구들을 위해 연주했다. [[실내악]]은 베른, 취리히, 베를린에 살면서 막스 플랑크와 그의 아들과 함께 연주하는 동안 그의 사회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는 때때로 모차르트 작품의 [[쾨헬 번호]] 1937년 판의 편집자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그 판은 먼 관계였을지도 모르는 [[w:Alfred Einstein|알프레드 아인슈타인<sub>Alfred Einstein</sub>]]에 의해 준비되었다.<ref>Article "Alfred Einstein", in [[:en:The_New_Grove_Dictionary_of_Music_and_Musicians|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ed. Stanley Sadie. 20 vol. London, Macmillan Publishers Ltd., 1980.</ref><ref>''The Concise Edition of [[:en:Baker's Biographical Dictionary of Musicians|Baker's Biographical Dictionary of Musicians]], 8th ed. Revised by Nicolas Slonimsky. New York, Schirmer Books, 1993.</ref>
1931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에서 연구하는 동안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졸너<sub>Zoellner</sub> 가족 음악원을 방문하여 [[w:Zoellner Quartet|졸너 사중주단(Zoellner Quartet)]] 단원들과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작품 일부를 연주했다.<ref>Cariaga, Daniel, [https://articles.latimes.com/1985-12-22/entertainment/ca-20526_1_life-estate "Not Taking It with You: A Tale of Two Estates", ''Los Angeles Times''] 22 December 1985.</ref><ref>[http://www.rrauction.com/albert_einstein_signed_photo_to_joseph_zoellner.cfm "Relaxed Einstein signs for a fellow violinist before sailing to Germany for the last time"]. ''RR Auction''. 2010</ref> 생애의 마지막 부근에, 젊은 [[w:Juilliard String Quartet|줄리어드 사중주단(Juilliard Quartet)]]이 프린스턴에서 그를 방문했을 때, 그는 그들과 함께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그 사중주단은 "아인슈타인의 정합과 억양의 수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ref name=music/>
==== 재미있는 성격 ====
아인슈타인은 성격이 대단히 재미있다. 1951년 [[기자 (직업)|기자]]가 차에 탑승한 아인슈타인을 사진 촬영하자 갑자기 사진을 이렇게 찍으면 유명해질 것이라면서 [[메롱]]을 한 채로 사진을 찍었다. 훗날 이 사진은 [[2009년]]에 [[뉴햄프셔]]에서 7만4324달러(한화 약 9400만원)에 낙찰되었다.
=== 사망 ===
1955년 4월 17일, 아인슈타인은 1948년 [[w:Rudolph Nissen|루돌프 니센<sub>Rudolph Nissen</sub>]]에 의해 외과적으로 보강되었던 [[복부대동맥류]]의 파열로 인한 [[내출혈]]을 경험했다.<ref>[http://www.medscape.com/viewarticle/436253 "The Case of the Scientist with a Pulsating Mass"]. ''Medscape''. 14 June 2002.</ref> 그는 이스라엘 건국 7주년을 기념하는 텔레비전 출연을 위해 준비하고 있던 연설의 초안을 병원에 가지고 갔지만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살지 못했다.<ref>Albert Einstein Archives (April 1955). [http://alberteinstein.info/vufind1/Digital/EAR000020078#page/1/mode/1up "Draft of projected Telecast Israel Independence Day, April 1955 (last statement ever written)"]. Einstein Archives Online.</ref>
아인슈타인은 "원할 때 가고 싶다.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무미건조하다. 내 몫을 다했다, 갈 때가 됐다. 우아하게 하겠다"며 수술을 거부했다.<ref>Cohen, J. R.; Graver, L. M. (November 1995). "The ruptured abdominal aortic aneurysm of Albert Einstein". ''Surgery, Gynecology & Obstetrics''. 170 (5): 455–458. PMID [https://pubmed.ncbi.nlm.nih.gov/2183375 2183375].</ref> 그는 다음날 아침 [[w:Penn Medicine Princeton Medical Center|펜 메디신 프린스턴 병원(Penn Medicine Princeton Medical Center)]]에서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거의 마지막까지 일을 계속했다.<ref>Cosgrove, Ben (14 March 2014). [https://web.archive.org/web/20141112114029/http://time.com/3494553/the-day-albert-einstein-died-a-photographers-story/ "The Day Albert Einstein Died: A Photographer's Story"]. ''Time''.</ref>
부검하는 동안 프린스턴 병원의 병리학자인 [[w:Thomas Stoltz Harvey|토머스 스톨츠 하비<sub>Thomas Stoltz Harvey</sub>]]는 미래의 [[신경과학]]이 무엇이 아인슈타인을 그렇게 지능적으로 만들었는지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족의 허락 없이 보존을 위해 [[w:Albert Einstein's brain|아인슈타인의 뇌]]를 적출했다.<ref>[https://www.npr.org/templates/story/story.php?storyId=4602913 "The Long, Strange Journey of Einstein's Brain"]. NPR. Retrieved 3 October 2007</ref> 아인슈타인의 유해는 [[뉴저지 주]] [[트렌턴]]에서 화장되었고<ref>Cosgrove, Benjamin; Morse, Ralph (14 March 2014). [https://www.life.com/history/the-day-albert-einstein-died-a-photographers-story/ "The Day Albert Einstein Died: A Photographer's Story"]. ''Life''.</ref> 그의 유골은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 흩어져 있다.<ref>O'Connor, J. J.; Robertson, E.F. (1997). [http://www-history.mcs.st-andrews.ac.uk/Biographies/Einstein.html "Albert Einstein"]. ''The MacTutor History of Mathematics archive''. School of Mathematics and Statistics, University of St. Andrews.</ref><ref>Late City, ed. (18 April 1955). Written at Princeton, NJ. [http://select.nytimes.com/gst/abstract.html?res=F60C1EFC3D55107A93CBA8178FD85F418585F9 "Dr. Albert Einstein Dies in Sleep at 76; World Mourns Loss of Great Scientist, Rupture of Aorta Causes Death, Body Cremated, Memorial Here Set"]. ''The New York Times''. Vol. CIV, no. 35, 514. New York (published 19 April 1955). p. 1.</ref>
1965년 12월 13일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기념 강연에서 핵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아인슈타인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는 거의 완전히 세련됨이 없었고, 완전히 세속적이지 않았습니다. ... 그에게는 항상 어린아이와 같은 동시에 매우 완고한 놀라운 순수함이 있었습니다."<ref>Oppenheimer, J. Robert (March 1979). [https://books.google.com/books?id=7goAAAAAMBAJ&pg=PA38 "Oppenheimer on Einstein"].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35 (3): 38</ref>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개인 기록 보관소, 도서관 및 지적 자산을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 기증했다.<ref>Unna, Issachar (22 June 2007). [https://www.haaretz.com/1.4945718 "An Ongoing Power of Attraction"]. ''Haaretz''.</ref>
== 과학적 경력 ==
아인슈타인은 평생동안 수백 권의 책과 소논문을 출판했다.<ref name=nobel/><ref name=Paul>Paul Arthur Schilpp, ed. (1951). ''Albert Einstein: Philosopher-Scientist''. Vol. II. New York: Harper and Brothers Publishers (Harper Torchbook edition). pp. 730–746.. His non-scientific works include: ''About Zionism: Speeches and Lectures by Professor Albert Einstein'' (1930), ''"Why War?"'' (1933, co-authored by Sigmund Freud), ''The World As I See It'' (1934), ''Out of My Later Years'' (1950), and a book on science for the general reader, ''[[w:The Evolution of Physics|]]'' (1938, co-authored by Leopold Infeld).</ref> 그는 300편 이상의 과학 논문과 150편의 비과학 논문을 발표했다.<ref name=Background/><ref name=Paul/> 2014년 12월 5일, 대학과 기록 보관소는 30,000개 이상의 고유 문서로 구성된 아인슈타인의 논문을 발표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Stachel et al. 2008]]</ref><ref>Overbye, Dennis (4 December 2014). [https://ghostarchive.org/archive/20220101/https://www.nytimes.com/2014/12/05/science/huge-trove-of-albert-einstein-documents-becomes-available-online.html "Thousands of Einstein Documents Are Now a Click Away"]. The New York Times. Retrieved 4 January 2015</ref> 아인슈타인의 지적 업적과 독창성은 "아인슈타인"이라는 단어를 "천재"와 동의어로 만들었다.<ref name=genius/> 그는 혼자서 한 작업 외에도 [[보스-아인슈타인 통계]], 아인슈타인 냉장고등을 포함한 추가 프로젝트에서 다른 과학자들과 협력했다.<ref name=ILorentz> [http://www.lorentz.leidenuniv.nl/history/Einstein_archive/ "Einstein archive at the Instituut-Lorentz"]. ''Instituut-Lorentz''. 2005.</ref><ref>Pietrow, Alexander G.M. (2019). "Investigations into the origin of Einstein's Sink". ''Studium''. 11 (4): 260–268. arXiv:[https://arxiv.org/abs/1905.09022 1905.09022]</ref>
아인슈타인의 글에서 그가 그의 첫 번째 부인 밀레바 마리치와 협력했다는 증거가 있다. 1900년 12월 13일, 알베르트의 이름으로 서명된 모세혈관에 관한 첫 번째 문서가 제출되었다. 그의 이름으로만 출판하기로 한 것은 상호간의 결정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ref name=Gagnon/>
=== 1905 - 기적의 해 논문들 ===
[[기적의 해 논문|기적의 해(Annus Mirabilis) 논문]]들은 아인슈타인이 1905년 《물리학 연보》 과학 저널에 발표한 [[광전 효과]]([[양자역학|양자 이론]]을 일으켰음), [[브라운 운동]], [[특수 상대성]]이론 그리고 [[질량-에너지 등가|E = mc<sup>2</sup>]]에 관한 4편의 논문들이다. 이 네 작업들은 [[현대 물리학]]의 기초에 크게 기여했으며 [[공간]], 시간 및 [[물질]]에 대한 관점을 변경했다. 그 4편의 논문들은:
{| class=wiki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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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제목 <small>(Translated Title)</small> !!초점 분야 <small>(Area of focus)</small> !! 제 출 <small>(Received)</small> !! 출 판 <small>(Published)</small> !! 중 요 성 <small>(Significance)</sm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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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 생성과 변형에 관한 발견적 관점에서"<ref name=1905a>[[#출판물]]: Einstein, Albert (1905a)</ref> || [[광전 효과]] || 3월 18일 || 6월 9일 || 에너지는 불연속적인 양([[양자]])으로만 교환된다고 제안하여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를 해결했다.<ref>Das, Ashok (2003). ''Lectures on quantum mechanics''. Hindustan Book Agency. p. 59.</ref> 이 아이디어는 양자 이론의 초기 개발에 중추적이었다.<ref>Spielberg, Nathan; Anderson, Bryon D. (1995). [https://archive.org/details/sevenideasthatsh00spie_874 ''Seven ideas that shook the universe''] (2nd ed.). John Wiley & Sons. p. 263</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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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의 분자 운동론에서 요구하는 고정 액체에 매달린 작은 입자의 운동에 관하여"<ref>[[#출판물]]: Einstein, Albert (1905c)</ref> || [[브라운 운동]] || 5월 11일 || 7월 18일 || [[통계 물리학]]의 적용을 뒷받침하는 [[원자론]]에 대한 경험적 증거를 설명했다.
|-
|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하여"<ref name=E1905d>[[#출판물]]: Einstein, Albert (1905d)</ref> || [[특수 상대성이론]] || 6월 30일 || 9월 26일 || 빛의 속도는 관찰자의 운동과 무관하다는 경험적 증거에 기반한 분석 결과 역학에 변화를 도입하여 전기 및 자기에 대한 맥스웰 방정식을 역학의 법칙과 조화시켰다.<ref>Major, Fouad G. (2007). [https://books.google.com/books?id=tmdr6Wx_2PYC ''The quantum beat: principles and applications of atomic clocks''] (2nd ed.). Springer. p. 142</ref> "[[에테르|빛 전달 에테르]]"의 개념을 믿지 않았다.<ref>Lindsay, Robert Bruce; Margenau, Henry (1981). [https://books.google.com/books?id=dwZltQAACAAJ ''Foundations of physics'']. Ox Bow Press. p. 330.</ref>
|-
| "물체의 관성은 그 에너지 함량에 따라 달라지는가?"<ref>[[#출판물]]: Einstein, Albert (1905e)</ref> || [[질량-에너지 등가]] || 9월 27일 || 11월 21일 || 물질과 에너지의 등가, 'E = mc<sup>2</sup>' (그리고 암시적으로 중력이 빛을 "구부리는" 능력), "[[불변 질량|정지 에너지]]"의 존재, 핵 에너지의 기초.
|}
=== 통계 역학 ===
==== 열역학적 요동과 통계 물리학 ====
{{본문|통계역학|en:Thermal fluctuations|통계 물리학}}
1900년 《[[물리학 연보]]》에 제출된 아인슈타의 첫 번째 논문<ref name=E1901/><ref name=Kuepper>Kuepper, Hans-Josef. [http://www.einstein-website.de/z_physics/wisspub-e.html "List of Scientific Publications of Albert Einstein"] {{웨이백|url=http://www.einstein-website.de/z_physics/wisspub-e.html |date=20130508071317 }}. Einstein-website.de.</ref>은 [[모세관 현상]]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1901년에 "Folgerungen aus den Capillaritätserscheinungen"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는데, 이것은 "모세관 현상으로부터의 결론"으로 번역된다. 그가 1902-1903년에 발표한 두 개의 논문(열역학)은 통계적 관점에서 [[원자]] 현상을 해석하려고 시도했다. 이 논문은 브라운 운동에 관한 1905년 논문의 기초가 되었으며, 브라운 운동이 분자가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거로 구성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903년과 1904년에 그의 연구는 주로 유한 원자 크기가 확산 현상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었다.<ref name=Kuepper/>
==== 임계 유백광의 이론 ====
{{본문|en:Critical opalescence}}
아인슈타인은 임계점에서 유체의 밀도 변화를 다루면서 열역학적 요동 문제로 되돌아갔다. 일반적으로 밀도 요동은 밀도에 대한 자유 에너지의 2차 도함수에 의해 제어된다. 임계점에서 이 도함수는 0이므로 큰 요동이 발생한다. 밀도 요동의 효과는 모든 파장의 빛이 산란되어 유체가 유백색(milky white)으로 보이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을 [[레일리 산란]](Rayleigh scattering)과 관련시켰는데, 이는 요동 크기가 파장보다 훨씬 작을 때 발생하며 하늘이 파란색인 이유를 설명한다.<ref>Levenson, Thomas. [v "Genius Among Geniuses"]. ''Einstein's Big Idea''. Boston: WBGH. Retrieved 20 June 2015 – via NOVA by Public Broadcasting Service (PBS)</ref> 아인슈타인은 밀도 요동의 처리로부터 임계 유백광(critical opalescence)을 정량적으로 도출했으며, 그 효과와 레일리 산란이 어떻게 물질의 원자적 구성에서 비롯되는지 보여주었다.
=== 특수 상대성이론 ===
{{본문|특수상대론의 역사}}
아인슈타인의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하여(Zur Elektrodynamik bewegter Körper)"<ref name=E1905d/>는 1905년 6월 30일에 접수되어 같은 해 9월 26일에 출판되었다. 그것은 역학 법칙에 변화를 도입함으로써 [[맥스웰 방정식]](전기 및 자기 법칙)과 뉴턴 역학 법칙 사이의 충돌을 조정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Fölsing 1997]], pp. 178–198.</ref> 관찰적으로는, 이러한 변화의 효과는 고속(물체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곳)에서 가장 분명하다. 이 논문에서 발전된 이론은 나중에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논문은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관찰자의 프레임에서 측정할 때 움직이는 물체에 의해 운반되는 시계가 [[시간지연|지연]]되는 것처럼 보이고 물체 자체가 운동 방향으로 수축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논문은 또한 당시 물리학의 주요 이론적 실체 중 하나인 [[에테르]]에 대한 아이디어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f group=노트>아인슈타인은 [[:en:Translation:On_the_Electrodynamics_of_Moving_Bodies|그의 논문]]에서 쓰기를: "'발광성 에테르'의 도입은 지금까지 불필요하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며, 개발될 개념에 따르면, 우리는 특별한 성질을 가진 '절대 정지 공간'을 도입하지 않을 것이며, 속도 벡터를 전자기 과정이 발생하는 지점과 연관시키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ref>
[[질량-에너지 등가]]에 관한 그의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방정식의 결과로 'E = mc^2'을 생성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Stachel 2002]], pp. vi, 15, 90, 131, [https://books.google.com/books?id=OAsQ_hFjhrAC&pg=PA215 215]</ref> 상대성 이론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1905년 연구는 수년 동안 논란이 있었지만 [[막스 플랑크]]를 비롯한 주요 물리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졌다.<ref group="노트">전 세계의 상대성 이론 수용과 그에 따른 다양한 논쟁에 대한 논의는 Glick, Thomas F., ed. (1987). The Comparative Reception of Relativity. Kluwer Academic Publishers. ISBN 978-90-277-2498-4.의 문헌을 참고할 것.</ref><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Pais 1982]], pp. 382–386.</ref>
아인슈타인은 원래 [[운동학]](움직이는 물체에 대한 연구)의 관점에서 특수 상대성 이론을 구성했다. 1908년, [[헤르만 민코프스키]]는 특수 상대성 이론을 기하학적 용어로 [[시공간]] 이론으로 재해석했다. 아인슈타인은 1915년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민코프스키의 형식주의를 채택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Pais 1982]], pp. 151–152.</ref>
=== 일반 상대성이론 ===
==== 일반 상대성이론과 등가 원리 ====
{{본문|en:History of general relativity}}
{{참고|상대성이론|아인슈타인 방정식}}
[[파일:1919 eclipse positive.jpg|섬네일|위오른쪽|오른쪽|[[아서 에딩턴]]이 찍은 일식 사진 1919년]]
일반 상대성이론(GR)은 1907년에서 1915년 사이에 아인슈타인이 개발한 [[중력|중력 이론]]이다. [[일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질량 사이의 관측된 중력 인력은 질량에 의한 [[시공간]]의 뒤틀림에 기인한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현대 [[천체물리학]]의 필수 도구로 발전했다. 그것은 중력 인력이 너무 강해 빛조차 빠져 나갈 수 없는 우주 영역인 [[블랙홀]]에 대한 현재 이해의 토대를 제공한다.<ref>Fraknoi, Andrew; et al. (2022). [https://openstax.org/details/books/astronomy-2e ''Astronomy 2e''] (2e ed.). OpenStax. pp. 800–815.</ref>
아인슈타인이 나중에 말했듯이, 일반 상대성이론을 개발한 이유는 [[특수 상대성이론]] 내에서 관성적 운동의 선호가 만족스럽지 않은 반면, 처음부터 운동 상태(심지어 가속된 상태라도)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더 만족스러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ref>[[#출판물]]: Einstein, Albert (1923)</ref> 결과적으로, 1907년 그는 특수 상대성에서 가속도에 관한 논문을 출판했다. "상대성 원리와 그로부터 도출된 결론"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는 [[자유 낙하]]는 실제로 관성 운동이며 자유 낙하하는 관찰자에게는 특수 상대성 규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등가 원리]]라고 한다. 같은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또한 [[중력시간지연|중력 시간지연]], [[중력적색편이|중력 적색편이]] 및 [[중력렌즈|빛의 휘어짐]] 현상을 예측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Pais 1982]], pp. 179–183.</ref><ref>[[#출판물]]: Stachel et al. (2008), pp. 273–274, vol. 2: The Swiss Years: Writings, 1900–1909.</ref>
1911년, 아인슈타인은 1907년 기사를 확장한 "중력이 빛의 전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On the Influence of Gravitation on the Propagation of Light)"이라는 또 다른 논문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그는 무거운 물체에 의한 빛의 굴절 정도를 추정했다. 따라서 일반 상대성 이론의 이론적 예측은 처음으로 실험적으로 테스트될 수 있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Pais 1982]], pp. 194–195.</ref>
==== 중력파 ====
1916년, 아인슈타인은 [[파동]]으로 전파되는 시공간의 [[곡률]]에 잔물결이 발생하여 소스에서 바깥쪽으로 이동하여 중력 복사로서 에너지를 전달하는 중력파를 예측했다.<ref>[[#출판물]]: Einstein, Albert (1916)</ref><ref>[[#출판물]]: Einstein, Albert (1918)</ref> 중력파의 존재는 중력의 물리적 상호 작용의 유한 전파 속도 개념을 가져오는 [[로런츠 공변성]]으로 인해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가능하다. 대조적으로, 중력의 물리적 상호 작용이 무한한 속도로 전파된다고 가정하는 [[만유인력의 법칙|뉴톤적 중력 이론]]에서는 중력파가 존재할 수 없다.
중력파에 대한 최초의 간접적인 탐지는 1970년대에 밀접하게 공전하는 한 쌍의 [[중성자별]] PSR B1913+16의 관찰을 통해 이루어졌다.<ref name=found>Nadia Drake (11 February 2016). "[https://web.archive.org/web/20160212083049/http://news.nationalgeographic.com/2016/02/160211-gravitational-waves-found-spacetime-science/ Found! Gravitational Waves, or a Wrinkle in Spacetime]". ''Nadia Drake''. ''National Geographic''.</ref> 궤도 주기의 붕괴에 대한 설명이 중력파를 방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ref name=found/><ref>[https://www.nobelprize.org/nobel_prizes/physics/laureates/1993/press.html "Gravity investigated with a binary pulsar-Press Release: The 1993 Nobel Prize in Physics"]. Nobel Foundation</ref> 아인슈타인의 예측은 2016년 2월 11일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의 연구원들이 [[중력파 관측|중력파에 대한 최초의 관측]]을 발표했을 때 확인되었다.<ref>Abbott, Benjamin P.; et al. (LIGO Scientific Collaboration and Virgo Collaboration) (2016). [https://www.ligo.caltech.edu/system/media_files/binaries/301/original/detection-science-summary.pdf "Observation of Gravitational Waves from a Binary Black Hole Merger"]. '' Phys. Rev. Lett.'' 116 (6): 061102</ref> 예측 후 거의 100년이 지난 2015년 9월 14일 지구에서 감지되었다.<ref name=found/><ref>[http://space.mit.edu/LIGO/more.html "Gravitational Waves: Ripples in the fabric of space-time"]. LIGO | MIT. 11 February 2016. Retrieved 12 February 2016.</ref><ref>[https://news.mit.edu/2016/ligo-first-detection-gravitational-waves-0211 "Scientists make first direct detection of gravitational waves"]. ''Jennifer Chu''. MIT News. 11 February 2016.</ref><ref>Ghosh, Pallab (11 February 2016). [https://www.bbc.com/news/science-environment-35524440 "Einstein's gravitational waves 'seen' from black holes"]. ''BBC News''.</ref><ref>Overbye, Dennis (11 February 2016). "[https://www.nytimes.com/2016/02/12/science/ligo-gravitational-waves-black-holes-einstein.html Gravitational Waves Detected, Confirming Einstein's Theory]". The New York Times. ISSN 0362-4331. Retrieved 12 February 2016</ref>
==== 구멍 논쟁 및 초안 이론 ====
일반 상대성이론을 개발하는 동안 아인슈타인은 이론의 [[게이지 이론|게이지 불변성]]에 대해 혼란스러워했다. 그는 일반 상대론적 장 이론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 논증을 공식화했다. 그는 완전히 일반적으로 공변하는 텐서 방정식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일반 선형 변환에서만 불변하는 방정식을 찾았다.<ref>Norton, John (1984). [https://www.jstor.org/stable/27757535 "How Einstein Found His Field Equations: 1912-1915"]. ''Historical Studies in the Physical Sciences''. 14 (2): 253–316.</ref>
1913년 6월, Entwurf('초안') 이론은 이러한 조사의 결과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일반 상대성이론보다 덜 우아하고 더 어려운 이론의 스케치였으며, 추가 게이지 고정 조건으로 보완된 운동 방정식과 함께 한다. 2년 이상의 집중적인 연구 끝에 아인슈타인은 구멍 논쟁(hole argument)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ref>van Dongen, Jeroen (2010) ''Einstein's Unific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23</ref> 1915년 11월 그 이론을 폐기했다.
==== 물리 우주론 ====
{{본문|물리 우주론}}
[[파일:MillikanLemaitreEinstein.jpg|섬네일|오른쪽|아인슈타인이 [[로버트 밀리컨|밀리컨]]과 [[조르주 르메트르]]와 더불어,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에서, 1933년]]
1917년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이론을 우주 전체의 구조에 적용했다.<ref>[[#출판물]]: Einstein, Albert (1917a)</ref> 그는 일반 장방정식이 수축하거나 팽창하는 동적인 우주를 예측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에는 동적 우주에 대한 관측 증거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이론이 정적 우주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새로운 용어인 [[우주 상수]]를 장방정식에 도입했다. 수정된 장방정식은 이 시대에 [[마흐의 원리]]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이해에 따라 닫힌 곡률의 정적 우주를 예측했다. 이 모형은 아인슈타인 세계 또는 [[w:Einstein's static universe|아인슈타인의 정적 우주(Einstein's static universe)]]로 알려지게 되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Pais 1982]], pp. 285–286.</ref><ref>North, J.D. (1965). ''The Measure of the Universe: A History of Modern Cosmology''. New York: Dover. pp. 81–83</ref>
1929년 [[에드윈 허블]]이 성운의 후퇴를 발견한 후,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정적 모형을 포기하고 우주의 두 가지 동적 모형인 1931년의 [[w:Friedmann–Einstein universe|프리드만-아인슈타인 우주(Friedmann–Einstein universe)]]<ref name=E1931>[[#출판물]]: Einstein, Albert (1931)</ref><ref name=O'Raifeartaigh>O'Raifeartaigh, C; McCann, B (2014). [http://repository.wit.ie/2867/1/cosmic.pdf "Einstein's cosmic model of 1931 revisited: An analysis and translation of a forgotten model of the universe"] {{웨이백|url=http://repository.wit.ie/2867/1/cosmic.pdf |date=20200929102551 }} (PDF). ''The European Physical Journal H''. 39 (2014): 63–85.</ref>와 1932년의 [[w:Einstein–de Sitter universe|아인슈타인-드 시터 우주(Einstein–de Sitter universe)]]를 제안했다.<ref>[[#출판물]]: Einstein & de Sitter (1932).</ref><ref>Nussbaumer, Harry (2014). "Einstein's conversion from his static to an expanding universe". Eur. Phys. J. H. 39 (1): 37–62</ref> 이 각각의 모형에서 아인슈타인은 우주 상수가 "어쨌든 이론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주장하면서 우주 상수를 폐기했다.<ref name=E1931/><ref name=O'Raifeartaigh/><ref>Nussbaumer and Bieri (2009). Discovering the Expanding Univers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144–152and Bieri (2009). Discovering the Expanding Univers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144–152</ref>
많은 아인슈타인 전기에서 아인슈타인은 만년에 우주 상수를 그의 "가장 큰 실수"로 언급했다고 주장한다. 천체물리학자 [[w:Mario Livio|마리오 리비오<sub>Mario Livio</sub>]]는 최근 이 주장이 과장된 것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ref>Zimmer, Carl (9 June 2013). [https://ghostarchive.org/archive/20220101/https://www.nytimes.com/2013/06/09/books/review/brilliant-blunders-by-mario-livio.html "The Genius of Getting It Wrong"]. ''The New York Times''</ref>
2013년 말 아일랜드 물리학자 [[w:Cormac O'Raifeartaigh|코맥 오레이피어타이<sub>Cormac O'Raifeartaigh</sub>]]가 이끄는 팀은 허블이 성운의 후퇴를 관측한 사실을 알게 된 직후에 아인슈타인이 우주의 [[정상우주론]]을 고려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ref>Castelvecchi, Davide (2014). [https://doi.org/10.1038%2F506418a "Einstein's lost theory uncovered"]. ''Nature News & Comment''. 506 (7489): 418–419.</ref><ref>[http://blogs.discovermagazine.com/outthere/2014/03/14/135th-birthday-einstein-still-full-surprises/ "On His 135th Birthday, Einstein is Still Full of Surprises"] {{웨이백|url=http://blogs.discovermagazine.com/outthere/2014/03/14/135th-birthday-einstein-still-full-surprises/ |date=20140318005847 }}. ''Out There''. 14 March 2014.</ref> 1931년 초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지금까지 간과된 원고에서 아인슈타인은 우주 상수와 관련된 과정인 물질의 지속적인 생성으로 인해 물질의 밀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팽창하는 우주 모형을 탐구했다.<ref name=O'Raifeartaigh2>O'Raifeartaigh, C.; McCann, B.; Nahm, W.; Mitton, S. (2014). "Einstein's steady-state theory: an abandoned model of the cosmos" (PDF). Eur. Phys. J. H. 39 (3): 353–369</ref><ref name=Nussbaumer/> 그가 논문에서 언급했듯이 "다음으로는, 나는 후벨<sub>Hubbel</sub>의 [원문대로 표기] 사실을 설명할 수 있고 밀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정한 방정식 (1)에 대한 해에 주의를 기울이고 싶다" ... "물리적으로 제한된 부피를 고려한다면, 물질의 입자는 계속해서 떠나갈 것이다. 밀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물질의 입자가 공간으로부터 부피에 지속적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은 호일<sub>Hoyle</sub>, 본디<sub>Bondi</sub> 및 골드<sub>Gold</sub>보다 수년 전에 팽창하는 우주의 [[정상우주론|정상-상태 모형]]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ref>Hoyle (1948). [https://doi.org/10.1093%2Fmnras%2F108.5.372 "A New Model for the Expanding Universe"]. ''MNRAS''. 108 (5): 372</ref><ref>Bondi; Gold (1948). [https://doi.org/10.1093%2Fmnras%2F108.3.252 "The Steady-State Theory of the Expanding Universe"]. ''MNRAS''. 108 (3): 252.</ref>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정상 상태 모델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래서 그는 그 아이디어를 빠르게 포기했다.<ref name=O'Raifeartaigh2/><ref name=Nussbaumer>Nussbaumer, Harry (2014). "Einstein's aborted attempt at a dynamic steady-state universe". ''In memoriam Hilmar Duerbeck''. p. 463. arXiv:[https://arxiv.org/abs/1402.4099 1402.4099].</ref><ref>Amir Aczel (7 March 2014). "Einstein's Lost Theory Describes a Universe Without a Big Bang". The Crux</ref>
==== 에너지 운동량과 유사텐서 ====
{{본문|en:Stress–energy–momentum pseudotensor}}
일반 상대성이론은 동적인 시공간을 포함하기 때문에 보존된 에너지와 운동량을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뇌터 정리]]는 이러한 양을 [[w:Translational symmetry|병진 불변성(translation invariance) ]]을 갖는 [[라그랑지안]]에서 결정하도록 허용하지만 [[w: General covariance|일반 공변성(general covariance)]]은 병진 불변성을 [[게이지 대칭]]으로 만든다. 뇌터의 처방에 의해 일반 상대성이론 내에서 파생된 에너지와 운동량은 이러한 이유로 실제 텐서를 만들지 않는다.<ref>Byers, Nina (23 September 1998). "E. Noether's Discovery of the Deep Connection Between Symmetries and Conservation Laws". arXiv:[https://arxiv.org/abs/physics/9807044 physics/9807044].</ref>
아인슈타인은 이것이 근본적인 이유 때문에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중력장은 좌표 선택에 의해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그는 비공변(non-covariant) 에너지 운동량 유사텐서(pseudotensor)가 사실 중력장에서 에너지 운동량 분포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 주장했다. 유사텐서와 같은 비공변 객체의 사용은 1917년 [[에르빈 슈뢰딩거]]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심하게 비판되었지만. 아인슈타인의 접근 방식은 [[레프 란다우]] 및 [[w:Evgeny Lifshitz|예프게니 립시츠<sub>Evgeny Lifshitz</sub>]] 및 기타 사람들에 의해 반향되었다.<ref>Goldberg, J. N. (1958). "Conservation laws in general relativity". ''Physical Review''. 111 (1): 315–320. Bibcode:1958PhRv..111..315G.</ref>
==== 웜홀 ====
1935년에 아인슈타인은 [[w:Nathan Rosen|나단 로젠<sub>Nathan Rosen</sub>]]과 협력하여 종종 [[w:Einstein–Rosen bridges|아인슈타인-로젠 다리(Einstein–Rosen bridges)]]라고 불리는 [[웜홀]]의 모형을 만들었다.<ref>[[#출판물]]: Einstein & Rosen] (1935)</ref><ref>[https://journals.aps.org/general-relativity-centennial "2015 – General Relativity's Centennial"]. American Physical Society. 2015.</ref> 그의 동기는 "중력장이 기본 입자들의 구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Do Gravitational Fields play an Important Role in the Constitution of the Elementary Particles?)"라는 논문에 요약된 프로그램에 따라 중력장 방정식의 해로 전하를 가진 기본 입자들을 모델링하는 것이었다. 이 해는 [[슈바르츠실트 계량|슈바르츠실트 블랙홀]]을 잘라내어 붙여 두 패치(patch) 사이에 다리를 만든다. 이러한 해에는 물리적 몸체가 없는 시공간 곡률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아인슈타인과 로젠은 점 입자의 개념을 피하는 이론의 시작을 제공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나중에 아인슈타인-로젠 다리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ref>Lindley, David (25 March 2005). "Focus: The Birth of Wormholes". ''Physics''. 15. doi:[https://doi.org/10.1103%2Fphysrevfocus.15.11 10.1103/physrevfocus.15.11].</ref>
==== 아인슈타인-카르탕 이론 ====
{{본문|아인슈타인-카르탕 이론}}
[[파일:Albert Einstein photo 1920.jpg|섬네일|위오른쪽|오른쪽|[[베를린 대학교]] 연구실에서의 아인슈타인, 1920년]]
스피닝하는(spinning) 점 입자를 일반 상대성에 통합하기 위해 아핀(affine) 연결은 [[비틀림]]이라고 하는 비대칭 부분을 포함하도록 일반화될 팔요가 있다. 이 수정은 1920년대에 아인슈타인과 카르탕<sub>Cartan</sub>에 의해 이루어졌다.
==== 운동의 방정식 ====
{{본문|en:Einstein–Infeld–Hoffmann equations}}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중력은 [[시공간]]의 곡률로 재해석됩니다. 궤도와 같은 구부러진 경로는 신체를 이상적인 직선 경로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의 결과가 아니라 다른 질량의 존재에 의해 자체가 구부러진 배경을 통해 신체가 자유롭게 낙하하려는 시도이다.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속담이 된 [[존 아치볼드 휠러]]의 말은 이론을 요약한다: 시공간은 물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려주고, 물질은 시공간이 어떻게 휘는지 알려준다."<ref>Wheeler, John Archibald (18 June 2010). [https://books.google.com/books?id=zGFkK2tTXPsC&pg=PA235 ''Geons, Black Holes, and Quantum Foam: A Life in Physics'']. W. W. Norton & Company.</ref><ref>Kersting, Magdalena (May 2019). [https://doi.org/10.1088%2F1361-6552%2Fab08f5 "Free fall in curved spacetime—how to visualise gravity in general relativity"]. ''Physics Education''. 54 (3): 035008.</ref> [[아인슈타인 방정식|아인슈타인 장 방정식]]은 시공간의 곡률을 물질과 에너지의 분포와 연관시키면서 이론의 후반부를 다룬다. [[측지선|측지 방정식]]은 자유 낙하하는 물체가 [[w:Geodesics in general relativity|구부러진 시공간에서 가능한 한 똑바른 선(lines that are as straight as possible in a curved spacetime)]]을 따라간다는 전반부를 다룬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을 이론을 완성하기 위해 장 방정식에 추가하여 가정해야 하는 "독립적인 기본 가정"으로 간주했다. 이것이 일반 상대성이론이 원래 제시된 방식의 단점이라고 생각한 그는 장 방정식 자체에서 이를 도출하기를 원했다. 일반 상대성이론의 방정식은 비선형이기 때문에 블랙홀과 같은 순수한 중력장으로 만들어진 에너지 덩어리는 새로운 법칙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 자체에 의해 결정되는 궤적을 따라 움직인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은 장 방정식이 블랙홀과 같은 단일 해의 경로를 측지선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물리학자와 철학자 모두 장 방정식을 [[중력 특이점]]의 운동에 적용하여 측지선 방정식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을 자주 되풀이했지만 이 주장은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ref>Tamir, M (2012). [http://philsci-archive.pitt.edu/9158/1/Tamir_-_Proving_the_Principle.pdf "Proving the principle: Taking geodesic dynamics too seriously in Einstein's theory"] (PDF).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Modern Physics''. 43 (2): 137–154.</ref><ref>Malament, David (2012). [http://philsci-archive.pitt.edu/5072/1/GeodesicLaw.pdf "A Remark About the 'Geodesic Principle' in General Relativity"] (PDF). In Frappier, M.; Brown, D.; DiSalle, R. (eds.). Analysis and Interpretation in the Exact Sciences. The Western Ontario Series in Philosophy of Science. Vol. 78. Springer. pp. 245–252. doi:[https://doi.org/10.1007%2F978-94-007-2582-9_14 10.1007/978-94-007-2582-9_14].</ref>
=== 구 양자 이론 ===
{{본문|en:Old quantum theory}}
==== 광자와 에너지 양자 ====
[[파일:Photoelectric effect in a solid - diagram.svg|섬네일|오른쪽|광전 효과. <br/>왼쪽에서 들어오는 광자는 금속판(아래)을 때리고 오른쪽으로 날아가는 것으로 묘사된 전자를 방출한다.]]
1905년 논문에서,<ref name=1905a/> 아인슈타인은 빛 자체가 국부적인 입자([[양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했다. 아인슈타인의 빛 양자는 막스 플랑크와 닐스 보어를 포함한 모든 물리학자들에 의해 거의 보편적으로 거부되었다. 이 아이디어는 오로지 1919년 [[로버트 앤드루스 밀리컨|로버트 밀리컨]]의 광전 효과에 대한 상세한 실험과 [[콤프턴 산란]] 측정과 더불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아인슈타인은 주파수 ''f''의 각 파동은 각각 에너지가 ''hf'' 인 [[광자]]의 집합과 관련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여기서 ''h''는 [[플랑크 상수]]다. 그는 입자가 파동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이 아이디어가 특정의 실험 결과, 특히 광전 효과를 설명할 것이라고 제안한다.<ref name=1905a/>
==== 양자화된 원자 진동 ====
{{본문|아인슈타인 모형}}
1907년, 아인슈타인은 격자 구조 속의 각 원자가 독립적인 조화 진동자인 물질 모형을 제안했다. 아인슈타인 모형에서는 각 원자는 독립적으로 진동한다-각 발진기에 대해 동일한 간격의 양자화된 상태의 시리즈이다. 아인슈타인은 실제 진동의 주파수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양자역학이 고전역학의 비열(specific heat)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특별히 분명한 증명이었기 때문에 이 이론을 제안했다. [[피터 디바이]]는 이 모형을 개선했다.<ref>Celebrating Einstein [https://www.osti.gov/accomplishments/nuggets/einstein/solidcolda.html "Solid Cold"]. U.S. DOE., Office of Scientific and Technical Information, 2011</ref>
==== 보스–아인슈타인 통계 ====
{{본문|보스-아인슈타인 통계}}
1924년, 아인슈타인은 인도의 물리학자 [[사티엔드라 나트 보스]]로부터 빛이 구별할 수 없는 입자의 가스로 이해될 수 있다고 가정한 계산 방법에 기반한 [[통계]] 모형에 대한 설명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은 보스의 통계가 제안된 빛 입자뿐만 아니라 일부 원자에도 적용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보스의 논문 번역본을 《물리학 연보》에 제출했다. 아인슈타인은 또한 그 모형과 그 함축을 설명하는 자신의 기사들을 발표했는데, 그중 하나가 일부 입자가 매우 낮은 온도에서 나타나야 하는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현상이다.<ref>[[#출판물]]: Einstein, Albert (1924)</ref> 1995년이 되어서야 [[에릭 얼린 코넬]]과 [[칼 위먼]]이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의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w:JILA|천체물리학 실험실 공동연구소]](JILA) 연구소에서 제작한 [[초저온 원자|초냉각]] 장비를 사용하여 실험적으로 이러한 응축수가 생성되었다.<ref>[https://web.archive.org/web/20070610080506/https://www.nist.gov/public_affairs/releases/n01-04.htm "Cornell and Wieman Share 2001 Nobel Prize in Physics"]. 9 October 2001.</ref> 보스-아인슈타인 통계는 지금 모든 [[보손]]의 집합의 동작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스케치는 [[라이덴 대학교]] 도서관의 아인슈타인 아카이브(Einstein Archive)에서 볼 수 있다.<ref name=ILorentz/>
==== 파동-입자 이중성 ====
[[파일:Albert Einstein photo 1921.jpg|섬네일|위오른쪽|미국 방문 중의 아인슈타인]]
특허청 사무소는 1906년 아인슈타인을 기술 심사관 2급으로 승진시켰지만 그는 학문을 포기하지 않았다. 1908년에 그는 베른 대학교의 [[w:Privatdozent|프리바트도젠트(Privatdozent)]]가 되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Pais 1982]], p. 522.</ref> "복사의 구성과 에센스에 대한 우리 견해의 발전(Über die Entwicklung unserer Anschauungen über das Wesen und die Konstitution der Strahlung)"에서, 빛의 [[양자화]], 그리고 1909년의이전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막스 플랑크의 에너지 양자가 잘 정의된 [[운동량]]을 가져야 하고 어떤 면에서는 독립적인 [[점입자|점같은 입자]]로 작용해야 함을 보여주었다. 이 논문은 광자 개념(광자라는 이름은 1926년 [[길버트 뉴턴 루이스]]에 의해 나중에 소개되었지만)을 소개하고 [[양자역학]]에서 [[파동-입자 이중성]] 개념에 영감을 주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복사의 파동 입자 이중성을 물리학이 새롭고 통합된 토대를 필요로 한다는 그의 확신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로 보았다.
==== 영점 에너지 ====
1911년부터 1913년까지 완성된 일련의 작업에서 플랑크는 자신의 1900년 양자 이론을 재구성하고 "두 번째 양자 이론"에서 [[영점 에너지]](zero-point energy)의 개념을 도입했다. 곧 이 아이디어는 아인슈타인과 그의 조수 [[오토 슈테른]]의 관심을 끌었다. 회전하는 이원자 분자의 에너지에 영점 에너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가정하고 수소 기체의 이론적인 비열을 실험 데이터와 비교했다. 숫자는 잘 맞았다. 그러나, 연구 결과를 발표한 후, 그들은 영점 에너지 개념의 정확성에 대해 더 이상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즉시 지지를 철회했다.<ref>[[#출판물]]: Stachel et al. (2008), pp. 270ff, vol. 4: The Swiss Years: Writings, 1912–1914.</ref>
==== 자극 방출 ====
1917년 상대성이론에 대한 연구의 정점에 있던 아인슈타인은 [[메이저]](maser)와 [[레이저]](laser)를 가능하게 하는 물리적 과정인 [[자극 방출]](stimulated emission)의 가능성을 제안한 논문을 《물리 저널(Physikalische Zeitschrift)》에 발표했다.<ref>[[#출판물]]: Einstein, Albert (1917b)</ref> 이 논문은 n개 광자를 가진 모드로의 빛의 방출은 빈 모드로의 빛의 방출과 비교하여 통계적으로 향상된다면 빛의 흡수 및 방출 통계가 오직 플랑크의 분포 법칙과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논문은 원자 전이(atomic transitions)의 통계에 간단한 법칙이 있다는 것을 최초로 보여준 논문이었기 때문에 이후의 양자역학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ref>Duncan, Anthony; Janssen, Michel (2019). [https://www.worldcat.org/oclc/1119627546 ''Constructing quantum mechanics. Volume 1, The scaffold : 1900-1923''] (1st ed.).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pp. 133–142.</ref>
==== 물질파 ====
아인슈타인은 [[루이 드 브로이]]의 작업을 발견하고 그의 아이디어를 지지했는데,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다. 이 시기의 또 다른 주요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물질파|드 브로이 파동]]이 [[w:Old quantum theory|보어와 소머펠트의 양자화 규칙(quantization rules of Bohr and Sommerfeld)]]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논문은 1926년 슈뢰딩거의 연구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ref>Hanle, Paul A. (July 1979). [https://pubs.aip.org/aapt/ajp/article/47/7/644-648/1051199 "The Schrödinger‐Einstein correspondence and the sources of wave mechanics"]. ''American Journal of Physics''. 47 (7): 644–648.</ref><ref>aman, V. V.; Forman, Paul (1969). [https://www.jstor.org/stable/27757299 "Why Was It Schrödinger Who Developed de Broglie's Ideas?"]. ''Historical Studies in the Physical Sciences''. 1: 291–314.</ref>
=== 양자역학 ===
==== 양자역학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반대 ====
[[파일:NYT May 4, 1935.jpg|섬네일|위오른쪽|오른쪽|1954년 5월 4일자 《뉴욕타임즈》 헤드라인]]
아인슈타인은 광전 효과에 관한 1905년 논문을 시작으로 양자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물리학자들의 수용에도 불구하고 1925년 이후에 진화해온 현대 양자역학에 불만을 갖게 되었다. 그는 양자역학의 무작위성이 결정주의의 결과라기 보다는 근본적인 것이라는 것에 회의적이어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했다.<ref>Andrews, Robert (2003). The New Penguin Dictionary of Modern Quotations. Penguin UK. p. 499</ref> 그는 생이 마칠 때까지, 양자역학이 불완전하다고 계속 주장했다.<ref>Pais, Abraham (October 1979). [http://ursula.chem.yale.edu/~batista/classes/vvv/RevModPhys.51.863.pdf "Einstein and the quantum theory"] (PDF). ''Reviews of Modern Physics''. 51 (4): 863–914</ref>
==== 보어 대 아인슈타인 ====
{{본문|보어-아인슈타인 논쟁}}
[[파일:Niels Bohr Albert Einstein by Ehrenfest.jpg|섬네일|위오른쪽|오른쪽|[[닐스 보어]]와 아인슈타인 1925년]]
보어-아인슈타인 논쟁은 [[양자역학]]에 관한 일련의 공개적 논쟁으로 양자역학의 창시자인 [[닐스 보어]]와 아인슈타인 사이의 논쟁이었다. 그들의 논쟁은 [[과학 철학]]에 대한 중요성 때문에 기억된다.<ref>Bohr, N. "Discussions with Einstein on Epistemological Problems in Atomic Physics". The Value of Knowledge: A Miniature Library of Philosophy. Marxists Internet Archive.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13 September 2010. Retrieved 30 August 2010. From Albert Einstein: Philosopher-Scientist (1949), publ.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49. Niels Bohr's report of conversations with Einstein.</ref><ref>[[#출판물]]: Einstein, Albert (1969)</ref><ref>Schlosshauer, Maximilian; Kofler, Johannes; Zeilinger, Anton (1 August 2013). "A snapshot of foundational attitudes toward quantum mechanics".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Part B: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Modern Physics''. 44 (3): 222–230. arXiv:[https://arxiv.org/abs/1301.1069 1301.1069].</ref> 그들의 논쟁은 양자역학에 대한 이후 [[양자역학의 해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 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 역설 ====
{{본문|EPR 역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그것이 정확한 예측을 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자연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고 믿었다. 수년에 걸쳐 그는 이 효과에 대해 여러 가지 주장을 제시했지만 그가 가장 선호한 것은 1930년 보어와의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인슈타인은 두 물체가 상호 작용하도록 허용된 다음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 두 객체에 대한 양자역학적 설명은 [[파동함수]]로 알려진 수학적 실체이다. 두 물체의 상호작용 전을 설명하는 파동함수가 주어지면 [[슈뢰딩거 방정식]]은 상호작용 후 두 물체를 설명하는 파동함수를 제공한다. 그러나 나중에 [[양자 얽힘]]이라고 불리는 것 때문에 한 물체를 측정하면 그것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다른 물체를 설명하는 파동함수의 즉각적인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더욱이, 첫 번째 물체에 대해 수행할 측정의 선택은 두 번째 물체에 대해 어떤 파동함수가 발생할 수 있는지에 영향을 미친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영향도 첫 번째 물체에서 두 번째 물체로 순식간에 빠르게 전파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물리학이 한 가지를 다른 것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으며 그러한 즉각적인 영향으로 인해 의문이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 물체의 실제 "물리적 상태"는 첫 번째 물체에 대한 조치로 즉시 변경될 수 없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파동함수가 진정한 물리적 상태일 수 없으며 단지 불완전한 설명일 뿐이라고 결론지었다.<ref name=Howard>[[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Howard 1990]]</ref><ref name=Harringan>[[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Harrigan & Spekkens 2010]]</ref>
이 주장의 더 유명한 버전은 1935년에 아인슈타인이 [[w: Boris Podolsky|보리스 포돌스키<sub>Boris Podolsky</sub>]]와 [[w: Nathan Rosen|네이선 로젠<sub>Nathan Rosen</sub>]]과 함께 [[EPR 역설]]로 알려진 것을 설명하는 논문을 발표했을 때 나왔다.<ref>[[#출판물]]: Einstein, Podolsky & Rosen (1935).</ref> 이 사고 실험에서 두 입자는 그들을 설명하는 파동 함수가 얽히는 방식으로 상호 작용한다. 그러면 두 입자가 아무리 떨어져 있더라도 한 입자의 정확한 위치 측정은 다른 입자의 위치 측정 결과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식으로든 다른 입자를 방해할 필요 없이 한 입자의 정확한 운동량 측정은 다른 입자의 운동량에 대해 동등하게 정확한 예측을 초래할 것이다. 그들은 첫 번째 입자에 취해진 어떤 조치도 다른 입자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상대성 이론]]에서 금지하는 빛보다 빠르게 전달되는 정보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중에 "현실의 EPR 기준"으로 알려진 원리를 이용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시스템을 방해하지 않고, 물리적 양의 값을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즉, [[확률]]이 일치하면), 그 양에 해당하는 실재의 요소가 존재한다"고 가정했다." 이것으로부터 그들은 두 번째 입자가 양을 측정하기 전에 위치와 운동량의 명확한 값을 가져야 한다고 추론했다. 그러나 양자 역학은 이 두 가지 관찰 가능 항목이 [[관측가능량|호환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므로 둘 모두에 대한 동시 값을 어떤 시스템에도 연결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로젠은 양자 이론이 현실에 대한 완전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결론지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Peres 2002]]</ref>
1964년에 [[존 스튜어트 벨]]은 양자 얽힘에 대한 분석을 훨씬 더 발전시켰다. 그는 측정이 얽힌 쌍의 분리된 두 입자에 대해 독립적으로 수행되면 결과가 각 절반 내의 숨겨진 변수에 의존한다는 가정은 두 측정의 결과가 어떻게 상관되는지에 대한 수학적 제약을 의미한다고 추론했다. 이 제약 조건은 나중에 [[벨 부등식]]이라고 한다. 벨은 양자 물리학이 이러한 부등식을 위반하는 상관 관계를 예측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숨겨진 변수가 양자 물리학의 예측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비국소"인 경우이다. 즉, 두 입자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어떻게든 순간적으로 상호 작용할 수 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Mermin 1993]]</ref><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Penrose 2007]]</ref> 벨은 숨겨진 변수의 측면에서 양자 현상을 설명하려면 비국소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EPR 역설은 "아인슈타인이 가장 좋아하지 않는 방식으로 해결된다"고 주장했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Bell 1966]]</ref>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은 개인적으로 EPR 논문의 주장이 지나치게 복잡하다고 생각했지만<ref name=Howard/><ref name=Harringan/> 그 논문은 《[[피지컬 리뷰]]》에 발표된 가장 영향력 있는 논문 중 하나가 되었다. 그것은 [[양자정보과학|양자 정보 이론]]의 발전의 중심으로 간주된다.<ref>[[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인용된 저술|Fine 2017]]</ref>
=== 통일장 이론 ===
{{본문|en:Classical unified field theories}}
일반 상대성에 대한 연구에 이어, 아인슈타인은 전자기학을 단일 실체의 측면으로 포함하기 위해 자신의 중력 이론을 일반화하려고 시도했다. 1950년, 그는 "일반화된 중력 이론에 대해서"이라는 제목의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논문에서 자신의 "[[통일장 이론]]"을 기술했다.<ref>[[#출판물]]: Einstein, Albert (1950)</ref> 이 작업으로 찬사를 받았지만 그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특히, 아인슈타인의 통일 프로젝트는 [[강한 상호작용|강한]] 그리고 [[약한 핵력]]을 수용하지 않았으며, 그의 사후 몇 년까지 잘 이해되지도 않았다. 주류 물리학은 통일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접근의 뒷전에 있었지만, 물리학자들은 여전히 [[모든 것의 이론]]을 추구한다.<ref>Goenner, Hubert F. M. (1 December 2004). [https://doi.org/10.12942/lrr-2004-2 "On the History of Unified Field Theories"]. ''Living Reviews in Relativity''. 7 (1): 2.</ref>
=== 기타 연구 ===
{{본문|w:Einstein's unsuccessful investigations}}
아인슈타인은 실패했고 또한 포기한 다른 조사들을 수행했었다. 이들은 [[힘]], [[초전도]] 및 기타 연구와 관련이 있다.
=== 다른 과학자들과의 협동 ===
[[파일:Solvay conference 1927.jpg|섬네일|upright=1.0|오른쪽|1927년 브뤼셀에서 열린 [[솔베이 회의]], 세계 최고 물리학자들의 모임. 아인슈타인이 한 가운데에 있다.]]
장기간의 공동 연구자 [[레오폴트 인펠트]], [[w:Nathan Rosen|나단 로젠<sub>Nathan Rosen</sub>]], [[w:Peter Bergmann|피터 버그만<sub>Peter Bergmann</sub>]] 등과의 공동 작업에 더해서, 아인슈타인은 또한 다양한 과학자와 일회성 공동 작업을 수행했다.
==== 아인슈타인-드 하스 실험 ====
{{본문|아인슈타인-드 하스 효과}}
1908년에 [[오언 윌런스 리처드슨]]은 자유 물체의 [[자기 모멘트]]의 변화가 이 물체를 회전시킬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효과는 [[각운동량 보존]]의 결과이며 [[강자성]] 물질에서 관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다.<ref>Richardson, O. W. (1908). [https://zenodo.org/record/1997325 "A Mechanical Effect Accompanying Magnetization"]. ''Physical Review''. Series I. 26 (3): 248–253.</ref> 아인슈타인과 [[반더르 요하너스 더 하스]]는 1915년에 효과에 대한 최초의 실험적 관찰을 주장하는 두 개의 논문을 발표했다.<ref>Einstein, A.; de Haas, W. J. (1915). "Experimenteller Nachweis der Ampereschen Molekularströme" [Experimental Proof of Ampère's Molecular Currents]. ''Deutsche Physikalische Gesellschaft, Verhandlungen'' (in German). 17: 152–170.</ref><ref>Einstein, A.; de Haas, W. J. (1915). [http://www.dwc.knaw.nl/DL/publications/PU00012546.pdf "Experimental proof of the existence of Ampère's molecular currents"] (PDF). ''Koninklijke Akademie van Wetenschappen te Amsterdam, Proceedings''. 18: 696–711.</ref> 이러한 종류의 측정은 [[자기화]] 현상이 자기화 축을 따라 물질 내 전자의 [[각운동량]]의 정렬([[w:Spin polarization|분극]])에 의해 야기됨을 입증한다. 이러한 측정은 또한 자화에 대한 두 가지 기여, 즉 전자의 궤도 운동과 스핀과 관련된 두 가지를 분리할 수 있게 한다.
==== 아인슈타인 냉장고 ====
1926년, 아인슈타인과 그의 전 제자인 실라르드 레오는 [[w:Einstein refrigerator|아인슈타인 냉장고]]를 공동 발명(1930년 특허)했다.<ref>Goettling, Gary. [https://web.archive.org/web/20050525082445/http://gtalumni.org/Publications/magazine/sum98/einsrefr.html Einstein's refrigerator] Georgia Tech Alumni Magazine. 1998. Leó Szilárd, a Hungarian physicist who later worked on the Manhattan Project, is credited with the discovery of the chain reaction</ref> 이 [[w:Absorption refrigerator|흡수식 냉장고]]는 움직이는 부분이 없고 열만 입력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혁명적이었다. 1930년 11월 11일, [https://patents.google.com/patent/US1781541 미국 특허 1,781,541]은 냉장고에 대해 아인슈타인과 실라르드 레오에게 부여되었다. 그들의 발명품은 즉시 상업적 생산에 투입되지 않았으며, 가장 유망한 특허는 스웨덴 회사인 일렉트로룩스(Electrolux)에 의해 취득되었다.{{refn|group=노트|2008년 9월 옥스포드 대학의 말콤 맥컬로크<sub>Malcolm McCulloch</sub>는 전기가 부족한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기기를 개발하기 위한 3년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고 그의 팀은 아인슈타인 냉장고의 시제품을 완성했다고 보고되었다. 그는 설계를 개선하고 사용된 가스의 유형을 변경하면 설계의 효율성이 4배 향상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인용되었다.<ref>Alok, Jha (21 September 2008). [https://www.theguardian.com/science/2008/sep/21/scienceofclimatechange.climatechange "Einstein fridge design can help global cooling"]. ''The Guardian''</ref>}}
== 비과학적 유산 ==
[[파일:Einstein-Oslofjord (cropped).jpg|섬네일|1920년 오슬로의 소풍에서 아인슈타인(왼쪽에서 두 번째). [[w:|하인리히 골드슈미트<sub>Heinrich Goldschmidt</sub>]]는 왼쪽에, [[w:Ole Colbjørnsen|올레 콜비욘센<sub>Ole Colbjørnsen</sub>]]은 중앙에, [[w:Jørgen Vogt|외르겐 포그트<sub>Jørgen Vogt</sub>]]는 일제 아인슈타인 뒤에 앉아 있다.]]
여행하는 동안 아인슈타인은 아내 엘사와 입양한 딸 마르고트<sub>Margot</sub>과 일제<sub>Ilse</sub>에게 매일 편지를 썼다. 그 편지들은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 기증된 서류에 포함되어 있었다. 마르고트 아인슈타인은 개인 편지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을 허용했지만 그녀가 사망한 후 20년(그녀는 1986년에 사망<ref>[https://www.nytimes.com/1986/07/12/obituaries/margot-einstein-86-is-dead-stepdaughter-of-physicist.html "Obituary"]. The New York Times. 12 July 1986.</ref>)이 될 때까지는 공개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히브리 대학의 [[w:Albert Einstein Archives|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기록보관소(Albert Einstein Archives)]]의 바바라 울프<sub>Barbara Wolff</sub>는 [[영국방송공사|영국방송공사(BBC)]]에 1912년에서 1955년 사이에 작성된 개인 서신이 약 3,500페이지가 있다고 말했다.<ref>[http://news.bbc.co.uk/2/hi/science/nature/5168002.stm "Letters Reveal Einstein Love Life"]. ''BBC News''. 11 July 2006.</ref>
아인슈타인의 [[퍼블리시티권]]은 2015년 캘리포니아 연방지방법원에서 소송이 제기됐다. 법원은 처음에 권리가 만료되었다고 판결했지만,<ref>[https://casetext.com/case/hebrew-univ-of-jerusalem-v-gen-motors-llc "United States District Court, Central District of California, Case No. CV10–03790 AHM (JCx)"]. 15 October 2012.</ref> 그 판결은 즉시 항소되었고 나중에 결정이 완전히 무효화되었다. 해당 소송에서 당사자 간의 근본적인 청구는 궁극적으로 해결되었다. 이 권리는 집행 가능하며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가 그 권리의 배타적 대표자이다.<ref>[https://www.pacermonitor.com/public/case/944657/The_Hebrew_University_of_Jerusalem_v_General_Motors_LLC "United States District Court, Central District of California, Case No.: CV-10-3790-AB (JCx)"]. 15 January 2015.</ref> 로저 리치먼 에이전시(Roger Richman Agency)의 뒤를 이은 [[w:Branded Entertainment Network|코비스(Corbis)]]는 대학의 대리인으로서 [[w:Trademark|그의 이름과 관련 이미지의 사용]]을 허가한다.<ref>[http://einstein.biz/ "Einstein"] {{웨이백|url=http://einstein.biz/ |date=20080819220424 }}. Corbis Rights Representation.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19 August 2008.</ref>
[[알래스카]] [[w:Mount Einstein|추가치 산맥(Mount Einstein)]]에 있는 [[w:Mount Einstein|아인슈타인 산(Mount Einstein)]]은 1955년에 명명되었다.
뉴질랜드의 [[w:Paparoa Range|파파로아 산맥(Paparoa Range)]]에 있는 아인슈타인 산은 1970년 [[w:Department of Scientific and Industrial Research (New Zealand)|과학 산업 연구부(Department of Scientific and Industrial Research)]]에 의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ref>[https://gazetteer.linz.govt.nz/place/3694 "Place name detail: Mount Einstein"]. ''New Zealand Gazetteer''. New Zealand Geographic Board. Retrieved 21 August 2022.</ref>
== 대중문화에서 ==
{{본문|en:Albert Einstein in popular culture}}
아인슈타인은 1919년 그의 일반 상대성이론이 확증된 후<ref>Missner, Marshall (May 1985). "Why Einstein Became Famous in America". ''Social Studies of Science''. 15 (2): 267–291. doi:[https://doi.org/10.1177%2F030631285015002003 10.1177/030631285015002003].</ref> 가장 유명한 [[W:Scientific celebrity|과학적 유명인]] 중 하나가 되었다.<ref>Halpern, Paul (2019). [https://physicstoday.scitation.org/doi/10.1063/PT.3.4183 "Albert Einstein, celebrity scientist"]. ‘’Physics Today‘’. 72 (4): 38–45.</ref><ref>Fahy, Declan (2015). [https://skepticalinquirer.org/2015/07/a-brief-history-of-scientific-celebrity/ "A Brief History Of Scientific Celebrity"]. ''Skeptical Inquirer''. Vol. 39, no. 4.</ref> 일반 대중은 그의 연구에 대한 이해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널리 인정받고 칭송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기간에 [[w:The New Yorker|《더 뉴요커》]]는 "도시 이야기(Talk of the Town)" 특집에서 아인슈타인이 미국에서 너무 유명해서 거리에서 아인슈타인이 "그 이론"을 설명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중단될 것이라고 말하는 삽화를 출판했다. 그는 마침내 끊임없는 문의를 처리하는 방법을 알아 냈다. 그는 질문자들에게 "죄송해요, 미안! 항상 나는 아인슈타인 교수로 착각된다네."라고 말했다.<ref>Libman, E. (14 January 1939). [https://www.newyorker.com/magazine/1939/01/14/disguise-2 "Disguise"]. The New Yorker</ref>
아인슈타인은 많은 소설, 영화, 연극 및 음악 작품의 주제이거나 영감을 받아 왔다.<ref>McTee, Cindy. [http://www.cindymctee.com/einsteins_dream.html "Einstein's Dream for orchestra"]. Cindymctee.com.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18 April 2017. Retrieved 17 July 2010.</ref> 그는 [[w:Absent-minded professor|정신이 없는 교수]]를 묘사할 때 가장 좋아하는 모델이다. 그의 표현력이 풍부한 얼굴과 독특한 헤어스타일은 널리 모방되고 과장되었다. [[타임 (잡지)|《타임》]]의 프레데릭 골든<sub>Frederic Golden</sub>은 아인슈타인이 "만화 작가의 꿈이 이루어진 사람"이라고 썼다.<ref>Golden, Frederic (3 January 2000). [https://web.archive.org/web/20060221080452/http://www.time.com/time/time100/poc/magazine/albert_einstein5a.html "Person of the Century: Albert Einstein"]. ''Time''.</ref>
많은 인기 있는 [[인용]]들이 종종 그에게 [[w:False attribution|잘못 귀속(false attribution)]]된다.<ref name=Novak>Novak, Matt (16 May 2015). [https://www.gizmodo.com.au/2015/05/9-albert-einstein-quotes-that-are-totally-fake/ "9 Albert Einstein Quotes That Are Completely Fake"]. Gizmodo.</ref><ref>[https://www.snopes.com/fact-check/false-einstein-humiliates-professor/ "Did Albert Einstein Humiliate an Atheist Professor?"]. Snopes. 29 June 2004</ref> 예를 들어, 그가 "광기의 정의는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잘못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ref name=Novak/>
== 수상과 서훈 ==
{{본문|en:Einstein's awards and honors}}
아인슈타인은 수많은 상과 서훈을 받았으며 1922년에는 "이론물리학에 대한 공로, 특히 광전 효과의 법칙을 발견한 공로"로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1921년의 지명자 중 누구도 [[알프레드 노벨]]이 설정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1921년도 상은 이월되어 1922년에 아인슈타인에게 수여되었다.<ref name=Nobel21/>
== 출판물 ==
=== 과학적 ===
{{추가 정보|en:List of scientific publications by Albert Ei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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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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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instein, Albert (1979). [https://archive.org/details/autobiographical1979eins Autobiographical Notes]. Paul Arthur Schilpp (Centennial ed.). Chicago: Open Court.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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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lbert Einstein House|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하우스]], 프린스턴
* [[w:Einstein's thought experiments|아인슈타인의 사고 실험]]
* [[아인슈타인 표기법]]
* [[w:The Einstein Theory of Relativity|《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 교육 영화
* [[w:Frist Campus Center|프리스트 캠퍼스 센터]], [[프린스턴 대학교]] - 302호실이 아인슈타인과 연관된다. (그곳은 한동안 팔머 물리실험실(Palmer Physical Laboratory)이었다.)
* [[w:Heinrich Burkhardt|하인리히 부르하르트<sub>Heinrich Burkhardt</sub>]]
* [[w:Bern Historical Museum|베른 역사 박물관]] (아인슈타인 박물관)
* [[w:History of gravitational theory|중력 이론의 역사]]
* [[w:List of coupled cousins|사촌간 커플 목록]]
* [[w:List of German inventors and discoverers|독일 발명가 및 발견자 목록]]
* [[w:List of Jewish Nobel laureates|유대인 노벨상 수상자]]
* [[w:List of peace activists|평화 활동가 목록]]
* [[상대성 이론 우선권 논쟁]]
* [[w:Sticky bead argument|끈끈한 구슬 논쟁(Sticky bead argument)]]
* [[w:Heinrich Zangger|하인리히 장거<sub>Heinrich Zangger</s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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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 ==
{{각주|group="노트"}}
== 각주 ==
{{각주}}
=== 인용된 저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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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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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librivox.org/author/1035 Works by Albert Einstein] at [[w:LibriVox|LibriVox]] (public domain audio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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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alberteinstein.info/ Albert Einstein Archives Online (80,000+ Documents)] {{웨이백|url=http://www.alberteinstein.info/ |date=20110811112756 }} at [[w:WebCite|WebCite]] ([http://www.nbcnews.com/id/46785542 MSNBC, 19 March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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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ias.edu/scholars/einstein Home page of Albert Einstein at The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 [https://albert.ias.edu/ Albert – The Digital Repository of the IAS], which contains many digitized original documents and photograp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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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 Hello World Program.png|섬네일|오른쪽|402px|[[C (프로그래밍 언어)|C 프로그래밍 언어]]로 작성된 단순한 컴퓨터의 프로그램의 [[소스 코드]]. [[컴파일]]되어 실행되었을 때 헬로 월드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프로그래밍 언어'''(programming language)는 [[컴퓨터]] 시스템을 구동시키는 [[컴퓨터 소프트웨어|소프트웨어]]를 작성하기 위한 형식언어로 주로 [[고급 프로그래밍 언어|고급 언어]]일수록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말할 때 프로그래밍 언어를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곧 소프트웨어를 작성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를 가리키는 때가 많고 이때 프로그래밍 언어와 소프트웨어를 구분하지 않고 소프트웨어를 프로그래밍 언어로 보기도 한다.{{출처|날짜=2010-8-31}} 예를 들면 [[델파이]]는 프로그래밍 언어인 오브젝트 파스칼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작성하기 위한 소프트웨어일 뿐이지만 델파이를 별개의 프로그래밍 언어로 보는 때가 더 많다.{{출처|날짜=2010-8-31}}
== 역사 ==
{{본문|프로그래밍 언어의 역사}}
최초의 컴퓨터는 종종 프로그래밍 언어의 도움 없이 프로그래밍되었는데 이는 프로그램들을 절대적인 [[기계어]]로 작성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십진이나 이진 형태의 프로그램들은 [[천공 카드]]나 [[자기 테이프 데이터 스토리지|자기 테이프]]로부터 읽거나 컴퓨터 [[프론트 패널]]의 스위치를 켜고 끔으로써 불러들였다. 절대적인 기계어는 나중에 [[1세대 프로그래밍 언어]](1GL)로 명칭이 정해졌다.
다음 단계로 이른바 [[2세대 프로그래밍 언어]](2GL), 곧 [[어셈블리어]]가 개발되었으며 여전히 특정 컴퓨터의 [[명령어 집합|명령어 집합 구조]]와 밀접하게 관계되었다. 프로그램을 훨씬 더 인간이 읽기 쉽게 만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주소 계산 시 따분하고 오류가 발생할 경향이 있는 프로그래머를 안심시켜 주었다.
최초의 [[고급 프로그래밍 언어]], 즉 [[3세대 프로그래밍 언어]](3GL)는 1950년대에 작성되었다. 컴퓨터용으로 설계될 초기의 고급 프로그래밍 언어는 [[Plankalkül]]였으며, [[콘라트 추제]]가 1943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의 [[Z3]]용으로 개발될 것이었다. 그러나 1998년, 2000년까지 구현되지 않았다.<ref>[[Raúl Rojas|Rojas, Raúl]], et al. (2000). "Plankalkül: The First High-Level Programming Language and its Implementation". Institut für Informatik, Freie Universität Berlin, Technical Report B-3/2000. [http://www.zib.de/zuse/Inhalt/Programme/Plankalkuel/Plankalkuel-Report/Plankalkuel-Report.htm (full text)] {{웨이백|url=http://www.zib.de/zuse/Inhalt/Programme/Plankalkuel/Plankalkuel-Report/Plankalkuel-Report.htm# |date=20141018204625 }}</ref>
[[4세대 프로그래밍 언어]](4GL)는 3세대 프로그래밍 언어 보다 내부 컴퓨터 하드웨어의 상세한 부분을 더 고급적으로 추상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5세대 프로그래밍 언어]](5GL)는 프로그래머가 작성한 [[알고리즘]]을 이용하지 않고 프로그램에 주어지는 제약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언어이다.
=== A언어부터 C언어까지 ===
C언어의 C는 약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역사와도 관련 있다. 통상 A언어부터 B언어, C언어 순으로 발전해 왔다고 일컬어진다.
* A언어: 과거에는 ALGOL을 의미했다. (ALGOL은 Algorithm Language의 약자로, 알고리즘 연구개발을 위해 만들어졌다.) 현재는 특정 프로그래밍 언어를 지칭한다기 보다, 구조화된 프로그래밍 언어를 지칭하는 용어로 이용한다.
* B언어: 켄 톰슨(Ken Thompson)이 DEC사의 PDP-7으로 어셈블리어로 [[유닉스]]라는 운영 체제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후 이 운영 체제를 고급언어로 다시 만들기 위해 마틴 리차드(Matin Richards)의 BCPL(Basic CPL, CPL = Combined Programming Language)을 바탕으로 B라는 언어를 만들게 되었다. 이 언어는 [[자료형]]이 없었는데 이는 C언어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 C언어: 켄 톰슨이 만든 B언어를 보고 그의 동료였던 [[데니스 리치]]가 1972년에 B언어에 데이터 유형 개념을 추가하여 만든 언어이다. 이후 유닉스의 구현 언어로 B언어를 제치고 C언어가 채택되면서 이듬해인 1973년에 C언어로 구현된 유닉스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 구조 ==
{{출처 필요 문단|날짜=2009-06-18}}
컴퓨터 프로그램은 데이터(data)와 명령어(instruction),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데이터는 일련의 바이트 형식으로 저장된다. 프로그래밍 언어는 이런 바이트들을 유용한 형태로 정리한다. 사용자는 필요에 따라 데이터를 다음과 같이 선언(declaration)할 수 있다.
<syntaxhighlight lang="c"> int MyData; // 정수형 데이터 </syntaxhighlight>
이와 같이 선언하면, 컴퓨터 메모리의 한 영역을 'MyData'라는 이름의 정수(integer) 타입으로 저장한다. 메모리의 어느 영역에 데이터를 저장할 것인가는 [[컴파일러]]가 결정한다. 일반적으로 사용자는 컴파일러의 내부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몰라도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MyData'는 간단한 변수(variable)이고, 한 개의 정수만 변수에 담을 수 있다. 여러 개의 변수를 만들고 싶으면 아주 간단하게 배열(array)을 만들 수 있다.
<syntaxhighlight lang="c"> int MyArray[100]; // 100개의 정수형 변수 선언 </syntaxhighlight>
소프트웨어 공학의 발달로 보다 복잡한 자료형들이 필요해졌다. 예를 들어, 사각형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료형을 정의한다고 하자. 한 사각형을 정의하려면 너비, 높이, 색과 같은 여러 정보가 동시에 필요하다. 따라서, 위와 같은 변수나 배열의 선언만으로는 이런 정보들을 잘 정의하기가 어렵다. C 언어와 같은 고급 언어(high-level language)는 보다 정교한 자료형의 선언을 지원하여 여러 가지 다른 형식의 데이터 선언들을 한데 엮은 새로운 자료형을 만들 수 있다.
<syntaxhighlight lang="c">
struct rectangle {
int width; // 사각형의 너비를 픽셀 단위로 저장
int height; // 사각형의 높이를 픽셀 단위로 저장
color_type color; // 사각형의 색 정보를 저장
};
</syntaxhighlight>
이러한 데이터들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에게 지시를 내려야 한다. 컴퓨터는 현재 실행하고 있는 지시의 내용과 다음에 실행할 지시의 위치만 알고 있다. 컴퓨터 언어는 컴퓨터의 하드웨어를 직접 제어하는 초기의 어셈블리와 같은 언어에서부터 시작하여 현재에는 [[C (프로그래밍 언어)|C 언어]]와 같은 고급 언어(high-level language)로 발전되어 왔다. 프로그램 언어가 상위 레벨로 발전될수록 프로그램은 좀 더 인간의 언어에 가까운 형태가 된다. 이에 따라 프로그램 언어의 학습과 프로그램의 구현이 보다 수월해진다.
프로그래머는 상위 레벨의 지시문으로 프로그램을 작성하면 [[컴파일러]]가 이 지시문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기계어로 번역한다. 지시문들을 한데 묶어 놓은 것들을 함수(function)라 한다. 함수는 특정한 동작을 일반적인 형태로 정의해 놓은 지시문의 집합이다. 똑같은 동작이 필요하면 지시문을 다시 작성할 필요없이 함수의 매개변수를 이용하여 계속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C (프로그래밍 언어)|C 언어]]는 검색, 정렬, 입출력에 관련된 다양하고 풍부한 표준 함수(standard functions)를 제공한다. 이런 표준 함수가 제공되는 덕분에 사용자는 해당 함수를 만드는 데 드는 노력을 절약할 수 있다. 연결된 함수들을 한데 묶어 놓은 것은 모듈(module)이라 하고, 모듈들의 상호 연결로 하나의 프로그램이 구성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듈들을 재사용할 수 있게 모아둔 것을 [[라이브러리]]라 한다.
== 비교 ==
{{본문|프로그래밍 언어의 비교}}
== 주요 프로그래밍 언어의 목록 ==
{{본문|프로그래밍 언어 목록}}
* [[저급 프로그래밍 언어|저급 언어]]
** [[기계어]]
** [[어셈블리어]]
* [[고급 프로그래밍 언어|고급 언어]]
** [[베이직]]
** [[C (프로그래밍 언어)|C]]
** [[C 샤프|C#]]
** [[C++]]
** [[D (프로그래밍 언어)|D]]
** [[F 샤프|F#]]
** [[파이썬]]
** [[루비 (프로그래밍 언어)|루비]]
** [[자바 (프로그래밍 언어)|자바]]
** [[코틀린 (프로그래밍 언어)|코틀린]]
** [[파스칼 (프로그래밍 언어)|파스칼]]
** [[프롤로그]]
** [[포트란]]
** [[코볼]]
** [[리스프]]
** [[펄]]
** [[R (프로그래밍 언어)|R]]
** [[그루비 (프로그래밍 언어)|그루비]]
** [[스칼라 (프로그래밍 언어)|스칼라]]
** [[occam]]
** [[스위프트 (프로그래밍 언어)|Swift]]
** [[하스켈]]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난해한 프로그래밍 언어]]
== 각주 ==
{{각주}}
{{프로그래밍 언어의 유형}}
{{주요 프로그래밍 언어}}
{{컴퓨터 과학}}
{{전거 통제}}
[[분류:프로그래밍 언어| ]]
[[분류:프로그래밍 언어 분류]]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대륙 정보
|그림 = {{Switcher|[[파일:Europe orthographic Caucasus Urals boundary (with borders).svg|frameless]]|국경 표시|[[파일:Europe orthographic Caucasus Urals boundary.svg|frameless]]|국경 숨기기|default=1}}
|면적 = 10,180,000 km<sup>2</sup><ref>6,220,000km<sup>2</sup> 러시아 유럽 영토 제외한 면적</ref>
|인구 = 738,849,000명<ref>{{웹 인용|url=http://www.worldatlas.com/geoquiz/thelist.htm |제목=List of continents by population |출판사 =Worldatlas.com |날짜= |확인날짜=2010-06-01}}</ref>
|밀도 = 72.5명/km<sup>2</sup>
|나라 = 50개국
|나라_목록 =
|속령 =
|언어 = {{상세|유럽의 언어}}
|시간대 = [[UTC±00:00|UTC+0]]에서 [[UTC+6]]까지
|인터넷 = [[.eu]] ([[유럽 연합]])
|도시 =
<!--1-->|{{국기모양|러시아}} [[모스크바]]<!--15,885,000-->
<!--2-->|{{국기모양|튀르키예}} [[이스탄불]]<!--13,187,000-->
<!--3-->|{{국기모양|프랑스}} [[파리]]<!--10,975,000-->
<!--4-->|{{국기모양|영국}} [[런던]]<!--10,149,000-->
|{{국기모양|독일}} [[루르 지방]]<!--6,722,000-->
{{국기모양|스페인}} [[마드리드]]<!--6,183,000-->
<!--7-->|{{국기모양|이탈리아}} [[밀란]]<!--5,264,000-->
<!--8-->|{{국기모양|러시아}} [[상트페테크부르크]]<!--5,132,000-->
<!--9-->|{{국기모양|스페인}} [[바르셀로나]]<!--4,656,000-->
}}
[[파일:Europe-Asia border (geographic).png|섬네일|250px|널리 받아들여지는 '''유럽'''의 정의:<br />- 녹색은 지리적 유럽<br />- 진한 파랑색은 문화적 유럽 (옅은 파랑색은 유럽 국가의 아시아 부분)]]
'''유럽'''({{llang|en|Europe}}, {{Llang|de|Europa}}, {{Llang|fr|Europe}}, {{Llang|es|Europa}})은 [[대륙]] 중 하나로, [[우랄산맥]]과 [[캅카스산맥]], [[우랄강]], [[카스피해]], [[흑해]]와 [[에게해]]의 물길을 [[분수령]]으로 하여 [[아시아]]와 구분한 지역을 일컫는다.
[[중국어|중국식]] [[한자어]]로는 '''구라파'''(歐羅巴)라 표기한다. 북쪽으로는 [[북극해]], 서쪽으로는 [[대서양]], 남쪽으로는 [[지중해]], 동남쪽으로는 [[흑해]]와 그와 비롯한 물길과 마주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계는 과거의 [[고전 고대]] 시대의 개념으로서 이해하기에는 모호하므로, [[자연지리학]]으로서의 유럽은 [[문화]]와 [[정치]]적 요소를 포함하여 정의한다.
유럽은 10,180,000 km<sup>2</sup> 또는 [[지구]] [[표면]]의 2%, 육지의 약 6.8% 지역으로 표현된다. 유럽은 약 50개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과 인구로서 [[러시아]]가 가장 크고, [[바티칸 시국]]이 가장 작다. [[인구]]는 많은 편이며, [[아시아]]의 각 지역들과 [[아프리카]] 다음으로 세 번째로 많다. [[세계 인구]]의 약 11% 인 7억 3천 9백만 명이다.
유럽은 [[서구 문화]]의 기원이며,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에서 비롯하고 있다. 15세기 이후부터 세계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펼쳤으며, [[식민주의]]를 시작하였다. 16세기에서 20세기 사이에 [[아메리카]], 대부분의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시아]]의 많은 부분을 통제하였다. [[대영 제국]]은 [[산업혁명]]을 시작하여 경제, 문화, 사회의 급진적인 발전을 이루어냈다.
[[파일:Sentiero_del_Viandante_DSC_6340_(14020554463).jpg|섬네일|리에르나의 [[비안단테 트레일]]에서 벨라지오를 바라본 코모 호수의 가장 상징적인 전망]]
== 어원 ==
[[파일:Anaximander world map-en.svg|섬네일|[[아낙시만드로스]](기원전 6세기)의 세계 지도.]]
‘유럽’이란 이름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에우로페]]({{Llang|el|Εὐρώπη}})에서 왔다. 에우로페는 [[페니키아]]의 [[공주]]로, [[제우스]]가 하얀 [[황소]]로 둔갑하여 [[크레타|크레타섬]]으로 유괴해 [[미노스]], [[라다만튀스]], [[사르페돈]]을 낳았다. [[호메로스]]가 쓴 문헌에서 에우로페는 크레테의 신화에서 등장하는 여왕으로 나오지, 지명을 일컫는 말이 아니었다. 후대에 '에우로페'는 그리스 중북부를 일컫게 되며, 기원전 500년경에 그 의미는 북쪽 땅으로 확대된다.
에우로페({{Llang|el|Εὐρώπη}})의 어원설 중 하나에 따르면 이 이름은 [[그리스어]]로 넓다를 뜻하는 eur-와 눈을 뜻하는 op- 또는 opt-가 결합하여 넓게 보는, 시각의 넓음을 뜻하는 Eurṓpē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넓다는 말은 재구성된 [[원형 인도-유럽 종교]]에서 [[지구]]를 이르는 별칭적인 형용사이다.<ref>{{서적 인용|author=M. L. West |title=Indo-European poetry and myth |publisher=Oxford University Press |location=Oxford [Oxfordshire] |year=2007 |pages=178–179 |isbn=0-19-928075-4 |oclc= |doi= |accessdate=}}</ref> 다른 설에서는 이 말이 사실 [[아카드어]] 낱말 erubu(내려가다, 해 지다)<ref name="Etymonline: European">{{웹 인용| url=http://www.etymonline.com/index.php?term=European| title=Etymonline: European| accessdate=2006-09-10}}</ref>나 그 [[동계어]]인 페니키아어 낱말 ereb(저녁, 서쪽), 아랍 [[마그레브]], 히브리어 낱말 ma'ariv 등 [[셈어]] 낱말에서 나온 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음운론적으로 에우로페라는 이름과 다른 셈어 형태의 낱말 사이에 연관성이 적다는 주장도 있다.<ref>{{서적 인용|author=M. L. West |title=The east face of Helicon: west Asiatic elements in Greek poetry and myth |publisher=Clarendon Press |location=Oxford |year=1997 |pages=451 |isbn=0-19-815221-3 |oclc= |doi= |accessdate=}}</ref>
대부분의 세계 주요 언어에서도 이 지역을 일컬을 때 에우로페에서 파생된 말을 쓰고 있다. 가령 [[중국어]]에서는 음차어 歐羅巴({{zh|p=ōulúobā}})의 축약어인 歐를 써서 歐洲라 부른다. 한편 일부 [[튀르크어족]]에서는 Avrupa 또는 Evropa라는 공식 명칭이 있으나 일상적으로는 Frengistan([[프랑크인]]의 땅)이라 부른다.<ref name="davison">{{저널 인용|author=Davidson, Roderic H. |title=Where is the Middle East? |journal=Foreign Affairs |volume=38 |pages=665–675 |year=1960}}</ref>
== 역사 ==
{{본문|유럽의 역사}}
=== 선사 시대 ===
유럽에서 최초로 거주한 [[사람과]]는 기원전 180만년에 [[조지아]]에 거주했던 [[호모 에렉투스]]이다. 기원전 15만년에 등장하여 기원전 2만 8천년에 멸종한 [[네안데르탈인]] 또한 유럽에 최초로 거주한 사람과로 여겨진다. 현생 인류는 약 5만년 전 [[후기 구석기 시대]]에 처음 유럽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석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류는 가축을 기르고 농작물을 재배했으며 도구를 만들 정도로 진화했다. 특히 기원전 7,000년경부터는 [[발칸반도]], [[지중해]] 연안, [[다뉴브강|도나우강]] 유역, [[라인강]] 유역에 사람이 거주했고 기원전 4,500년경부터 기원전 3,000년경 사이에 신석기 문명이 서유럽과 북유럽 등으로 확산되었다.
기원전 3,200년경부터 유럽에서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특히 [[그리스]] [[크레타]]에서 일어난 [[미노아 문명]]은 유럽 최초의 문명으로 여겨진다. 미노아 문명은 [[미케네 문명]]으로 이어졌고 기원전 1,200년경부터는 [[철기 시대]]를 맞게 된다.
=== 고대 ===
[[고대 그리스]]는 서양 문명의 발상지로 여겨진다. 철학 분야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역사 분야에서는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서사시 분야에서는 [[호메로스]], 희곡 분야에서는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의학 분야에서는 [[히포크라테스]], [[갈레노스]], 과학 분야에서는 [[피타고라스]], [[에우클레이데스]], [[아르키메데스]]가 유럽의 문화에 기여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폴리스]]라고 부르는 도시 국가가 설립되었는데 [[아테네]]는 세계에서 최초로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한 국가로 여겨진다.
고대 그리스의 뒤를 이어 등장한 [[고대 로마]]는 법률, 정치, 언어, 기술, 건축 분야에서 큰 성과를 이룩했다. 기원전 27년에는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제국]]의 수립을 선언했다. 로마 제국은 기원후 180년까지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라고 부르는 유럽의 평화, 번영, 정치적 안정을 맞았다.
313년에는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했으며 330년에는 로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나중에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이름을 바꿈)으로 옮겼다. 392년에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정해졌고 395년에는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되었다. 476년에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만다.
=== 중세 전기 ===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계기로 유럽에서는 [[고트인]], [[반달족]], [[훈족]], [[프랑크인]], [[앵글인]], [[색슨인]], [[슬라브족]], [[아바르족]], [[불가르인]], [[바이킹]], [[페체네그인]], [[쿠만인]], [[헝가리인]]과 같은 수많은 민족들의 전쟁과 이주가 진행되었다.
[[동로마 제국]]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에 재통일된 로마 제국임을 표명했다. 특히 6세기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는 유럽의 법률에 큰 영향을 끼친 [[로마법 대전]]을 제정했고, 로마와 이탈리아를 수복하기도 했으며, 콘스탄티노폴리스에 [[하기아 소피아]]를 건립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에는 수많은 민족들이 옛 서로마 제국의 영역을 지배했는데 프랑크인의 왕이었던 [[클로도베쿠스 1세]]는 프랑크인을 하나로 통일했다. [[카롤루스 1세 마그누스]] 국왕은 서유럽의 대부분을 정복했으며 800년에는 교황으로부터 서로마 황제라는 칭호를 받았다. 843년에 체결된 [[베르됭 조약]], 879년에 체결된 [[메르센 조약]]에 따라 프랑크 왕국은 [[동프랑크 왕국]], [[서프랑크 왕국]], [[중프랑크 왕국]] 3개 왕국으로 분할되었고 962년에는 [[신성 로마 제국]]이 등장했다.
동유럽, 중앙유럽에는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국가들, 슬라브족 국가들이 등장했는데 [[폴란드]], [[보헤미아]], [[헝가리]], [[키예프 공국]], [[불가리아 제1제국]], [[크로아티아 왕국 (중세)|크로아티아 왕국]]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 중세 중기와 후기 ===
1054년에 일어난 [[동서 교회의 분열]]을 계기로 기독교는 동로마 제국의 [[동방 정교회]], 옛 서로마 제국의 [[로마 가톨릭교회]]로 분열되었다. 1066년에는 [[노르만인]]이 프랑스를 정복했다.
1095년에는 [[교황 우르바노 2세]]의 명령에 따라 [[이슬람교]] 세력이 장악한 [[예루살렘]], [[거룩한 땅]]을 탈환하기 위한 차원에서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었다. 13세기와 14세기에는 [[몽골 제국]]이 동유럽을 침공하면서 크게 파괴되었다. 14세기에는 극심한 대기근, [[흑사병]]의 확산으로 인해 유럽의 인구가 크게 감소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봉건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던 서유럽의 몇몇 국가들에서는 왕권 강화를 위한 차원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1337년부터 1453년까지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에서는 [[백년 전쟁]]이 일어났고 1378년부터 1417년까지 로마 교황과 아비뇽 교황 사이에서는 [[서방 교회의 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 근대 ===
근대에 들어서면서 유럽의 문화 분야에서는 고전 문화의 부흥을 의미하는 [[르네상스]]가 등장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한 예술가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있다. 종교 분야에서는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전개하면서 교회의 힘이 약화되었다. 루터의 종교 개혁은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의 분열로 이어지게 된다.
15세기에는 [[포르투갈]], [[스페인]]이 신대륙을 탐험하면서 신항로 개척에 나섰다. 1492년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고 1498년에는 [[바스쿠 다 가마]]가 [[동양]]으로 가는 해양 항로를 발견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프랑스, 네덜란드, 잉글랜드 또한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한 과정에 나서게 된다. 16세기와 17세기 유럽의 과학 분야에서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요하네스 케플러]],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과 같은 과학자들이 등장했다.
=== 18세기와 19세기 ===
18세기 유럽의 지식인 사회는 [[계몽주의]] 사상의 등장을 계기로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게 된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귀족정]], [[성직자]]들의 권력 독점에 반감을 갖고 있던 국민들이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프랑스 혁명은 [[절대주의]]의 종식과 [[자유주의]]의 등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유럽 내에서 [[프랑스]]의 세력을 확장하고 프랑스 혁명의 사상을 전파했지만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전하면서 몰락하고 만다. 1815년에는 유럽의 5대 [[강대국]]이었던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가 [[빈 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는 유럽 내에서의 세력 균형을 형성하는 한편 유럽의 정치 질서를 [[반동주의]], [[보수주의]] 체제로 회귀하는 성격을 가졌다. 유럽 내에서 반동주의, 보수주의에 대한 반감은 [[1848년 혁명]]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유럽 내에서 [[국민 국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도시의 빠른 성장, 생산량 증가, 인구 증가, 일자리 증가, 경제·사회 분야의 개혁으로 이어졌다.
=== 20세기와 현재 ===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일어난 [[제1차 세계 대전]]은 유럽의 [[삼국 협상]]([[프랑스]], [[러시아]], [[영국]]) 진영과 [[동맹국 (제1차 세계 대전)|동맹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불가리아 왕국]], [[독일 제국]], [[오스만 제국]]) 진영 사이에 일어난 치열한 [[전쟁]]이었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차르]] 체제가 종식되었고 [[사회주의]] 체제가 수립되었다. 1919년에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에 중대한 제재 조치를 부과하는 내용의 [[조약]]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전과 함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이 붕괴되면서 새로 독립한 국가들이 형성되면서 유럽 국가 간의 경계선도 새로 확립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전과 함께 유럽에서는 큰 변화를 맞게 된다. 1919년 독일에서는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었고 1922년 [[이탈리아]]에서는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즘]] 정권이 수립되었다. 1929년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을 계기로 유럽에서는 경제 위기를 겪게 되었고 1933년 독일에서는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잡게 된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어난 [[제2차 세계 대전]]은 유럽을 중심으로 벌어진 치열한 전쟁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 이후에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 간의 [[냉전]]이 시작되었다. 1989년에 일어난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냉전 체제의 붕괴로 이어졌다.
== 유럽의 나라들 ==
{{유럽 위치지도}}
{{-}}
{| class="wiki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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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명 !! 국명 (공용어 표기) !! 공용어 !!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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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그리스}} || Ελλάδα || [[그리스어]] || [[아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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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네덜란드}} || Nederland || [[네덜란드어]] ||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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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노르웨이}} || Norge(보), Noreg(뉘) || [[노르웨이어]] ([[보크몰]], [[뉘노르스크]]) || [[오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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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덴마크}} || Danmark || [[덴마크어]] || [[코펜하겐]]
|-
| {{국기|독일}} || Deutschland || [[독일어]] ||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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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라트비아}} || Latvija || [[라트비아어]] || [[리가]]
|-
| {{국기|러시아}} || Россия || [[러시아어]] || [[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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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루마니아}} || România || [[루마니아어]] || [[부쿠레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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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튀르키예}} || Türkiye || [[튀르키예어]] || [[앙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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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포르투갈}} || Portugal || [[포르투갈어]] || [[리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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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폴란드}} || Polska || [[폴란드어]] || [[바르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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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프랑스}} || France || [[프랑스어]] || [[파리 (프랑스)|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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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헝가리}} || Magyarország || [[헝가리어]] || [[부다페스트]]
|}
== 유럽의 지역 구분 ==
[[파일:Europe_subregion_map_world_factbook.svg|섬네일|300px|The World Factbook에 따른 구분
{{범례|#007FFF|[[북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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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urope subregion map UN geoscheme.svg|right|섬네일|300px|[[유엔]] 통계국에 따른 유럽의 구분
{{범례|#FF8080|[[동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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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Europe topography map ko.png|섬네일|300px|유럽의 지형도]]
[[파일:Supranational European Bodies-en.svg|섬네일|300px|유럽의 정치적 통합 현황]]
유럽의 일반적 정의는 지리 또는 정치 등으로 나눌 수 있다.
=== 남유럽 ===
* {{국기|그리스}}
* {{국기|몰타}}
* {{국기|몰타 기사단}}
* {{국기|바티칸 시국}}
* {{국기|산마리노}}
* {{국기|스페인}}
** {{국기|카탈루냐}}
** {{국기|바스크}}
* {{국기|안도라}}
* {{국기|이탈리아}}
* {{국기|키프로스}}
* {{국기|튀르키예}}
* {{국기|포르투갈}}
** {{국기|아소르스 제도}}
=== 동유럽 ===
* {{국기|러시아}}
* {{국기|루마니아}}
* {{국기|몬테네그로}}
* {{국기|몰도바}}
* {{국기|벨라루스}}
* {{국기|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국기|북마케도니아}}
* {{국기|불가리아}}
* {{국기|세르비아}}
* {{국기|슬로바키아}}
* {{국기|슬로베니아}}
* {{국기|아르메니아}}
* {{국기|아제르바이잔}}
* {{국기|알바니아}}
* {{국기|우크라이나}}
* {{국기|조지아}}
* {{국기|체코}}
* {{국기|코소보}}
* {{국기|크로아티아}}
* {{국기|폴란드}}
* {{국기|헝가리}}
=== 북유럽 ===
* {{국기|노르웨이}}
** {{국기그림|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 [[얀마옌섬]]
* {{국기|라트비아}}
* {{국기|리투아니아}}
* {{국기|덴마크}}
** {{국기|페로 제도}}
* {{국기|스웨덴}}
* {{국기|아이슬란드}}
* {{국기|에스토니아}}
* {{국기|핀란드}}
** {{국기|올란드 제도}}
=== 서유럽 ===
* {{국기|네덜란드}}
* {{국기|독일}}
* {{국기|룩셈부르크}}
* {{국기|리히텐슈타인}}
* {{국기|모나코}}
* {{국기|벨기에}}
* {{국기|스위스}}
* {{국기|아일랜드}}
* {{국기|영국}}
** {{국기|잉글랜드}}
** {{국기|스코틀랜드}}
** {{국기|웨일스}}
** {{국기|북아일랜드}}
** {{국기그림|영국}} [[채널 제도]], {{국기|저지섬}}, {{국기|건지섬}}, {{국기|맨섬}}, {{국기|지브롤터}}
* {{국기|오스트리아}}
* {{국기|프랑스}}
** {{국기|코르시카}}
== 지리 ==
유럽은 [[유라시아]] 서쪽의 1/5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유라시아 전체 면적의 19.2%에 달한다. 유럽은 다른 대륙에 비해 대륙과 접하고 있는 해안선의 비율이 더 높은 편이다. 유럽의 해상 경계선은 북쪽으로는 [[북극해]], 서쪽으로는 [[대서양]], 남쪽으로는 [[지중해]], [[흑해]], [[카스피해]]로 구성되어 있다.
유럽의 지형은 비교적 작은 지역 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남쪽 지역은 산악 지대가 많은 반면 북쪽 지역은 [[알프스산맥]], [[피레네산맥]], [[카르파티아산맥]]을 거쳐 언덕이 많은 고지대를 지나 넓고 낮은 북쪽 평원으로 내려간다. 동쪽에 위치한 넓은 저지대는 유럽 대평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심에는 북독일 평원이 자리잡고 있다. 고지대는 영국과 아일랜드섬의 서부 지역에서 노르웨이의 피오르 지대까지 뻗어 있다.
[[이베리아반도]]와 [[이탈리아반도]]와 같은 하위 지역은 [[중앙유럽]] 본토 자체와 마찬가지로 자체적으로 복잡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수많은 고원, 강, 계곡과 같은 지형이 분포하고 있다. 다수의 분지는 일반적인 경향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지만 아이슬란드, 영국, 아일랜드와 같은 지역은 특별한 경우이다. 전자는 그 자체로 유럽의 일부로 간주되는 북쪽 바다에 있는 육지이고 후자는 해수면이 상승하여 그들을 고립시킬 때까지 한때 본토와 결합되었던 고지대 지역이다.
=== 기후 ===
유럽은 주로 [[온대]] 지방에 위치하고 있다. 기후는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인해 같은 위도에 위치한 전 세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온화하다. 멕시코 만류는 유럽의 중앙 난방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이는 유럽의 기후를 다른 곳보다 더 따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멕시코 만류는 유럽 해안에 따뜻한 물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대서양에서 대륙을 가로질러 부는 [[편서풍]]을 따뜻하게 한다.
유럽의 기후는 크게 [[건조 기후]], [[온대 기후]], [[냉대 기후]], [[한대 기후]]로 나뉜다. 북서유럽은 [[서안 해양성 기후]](비가 많이 온다. 영화 킹스맨에서 등장인물들이 우산을 쓰고 다녔던 것을 생각하면 쉽다), 중앙유럽, 동유럽은 [[대륙성 기후]], 남유럽은 [[지중해성 기후]]를 띠고 있다. 그 외에 이베리아반도 내륙 일부 지방은 [[스텝 기후]], [[스칸디나비아반도]]는 타이가 기후, 스칸디나비아반도 북부 해안은 툰드라 기후, 알프스 산맥 지대는 [[고산 기후]]를 띤다.
=== 식생 ===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까지는 지중해에서 북극해에 이를 정도로 유럽의 약 80~90%가 삼림으로 뒤덮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럽 곳곳에서 삼림 [[벌채]]와 목초지의 확장이 진행되었고 인류가 거주하면서 유럽의 식생 또한 변화가 진행되었다.
유럽의 식생은 기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기후대마다 서로 다른 특색을 갖고 있다. 서안 해양성 기후 지대에는 [[느릅나무]], [[너도밤나무]], [[갈참나무]], [[박달나무]]와 같은 낙엽 활엽수가 많은 편이며 지중해성 기후 지대에는 [[올리브|올리브나무]], [[포도|포도나무]], [[코르크나무]]와 같은 상록 활엽수가 많은 편이다. 유럽 내륙 지대에는 활엽수와 침엽수의 혼합림이 분포하고 있고 [[타이가]], [[툰드라]] 지대에는 [[전나무]], [[소나무]], [[참나무]], [[가문비나무]]와 같은 상록 침엽수가 분포하고 있다.
== 정치 ==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 유럽은 정치, 경제, 군사 등의 여러 분야에서 동서 진영으로 갈라졌다. 1947년에는 미국이 [[마셜 플랜]]에 따른 서유럽 국가들에 대한 경제 원조를 시행했고 1949년에는 소련이 미국의 마셜 플랜에 대응하기 위해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와 함께 [[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를 결성했다. 1949년에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 국가들이 소련의 군사력에 대응하기 위해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를 결성했고 1955년에는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이 미국의 군사력에 대응하기 위해 [[바르샤바 조약 기구]]를 결성했다. 한편 유고슬라비아는 1948년에 코민포름에서 제명된 이후부터 [[비동맹 운동]]의 맹주 역할을 했다.
1952년에는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6개국이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ECSC)를 결성했고 1958년에는 [[유럽 경제 공동체]](EEC), [[유럽 원자력 공동체]](EURATOM)를 결성했다. 이들 기구는 1967년을 기해 단일 기구로 통합되었고 1993년에 출범한 [[유럽 연합]](EU)으로 이어지게 된다. [[1989년 혁명]]을 계기로 동유럽 국가들은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되었고 1991년 냉전 종식을 계기로 경제 경제상호원조회의, 바르샤바 조약 기구는 해체되었다.
유럽 연합은 유럽 27개국이 가입한 국가 연합으로서 정치·경제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외에 유럽 연합에 가입한 19개국은 [[유로존]]에 소속되어 있으며 유럽 26개국은 국경 통행이 자유로운 [[솅겐 지역]]에 소속되어 있다. 그 외에 유럽에는 [[유럽 평의회]], [[독립 국가 연합]], [[유럽 안보 협력 기구]], [[발트 의회]], [[북유럽 이사회]], [[비셰그라드 그룹]]과 같은 기구가 존재한다.
== 언어 ==
{{상세|유럽의 언어}}
유럽에서는 주로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 중에서 [[로마 제국]]의 공용어였던 [[라틴어]]에서 파생된 [[로망스어군]], 스칸디나비아 남부에서 사용되던 언어에서 파생된 [[게르만어군]], 슬라브족이 사용하던 언어에서 파생된 [[슬라브어파]]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슬라브어파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원어민이 분포하는 어파로서 중앙유럽, 동유럽, 동남유럽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로망스어군은 남유럽, 서유럽, 동유럽에 위치한 루마니아, 몰도바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고 게르만어군은 브리튼 제도(영국, 아일랜드), 북유럽에서 널리 사용된다. 그 외에 [[발트어파]]([[라트비아어]], [[리투아니아어]]), [[켈트어파]]([[아일랜드어]], [[스코틀랜드 게일어]], [[웨일스어]], [[콘월어]], [[맨어]], [[브르타뉴어]]), [[그리스어]], [[아르메니아어]], [[알바니아어]]가 존재한다.
[[튀르크어족]]([[튀르키예어]], [[아제르바이잔어]], [[타타르어]], [[크림 타타르어]], [[바시키르어]], [[추바시어]] 등)은 동유럽, 동남유럽의 일부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우랄어족]]([[핀란드어]], [[헝가리어]], [[에스토니아어]], [[우드무르트어]], [[마리어]], [[에르자어]], [[코미어]] 등)은 핀란드, 헝가리, 에스토니아, 러시아의 일부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고 [[카르트벨리어족]]([[조지아어]] 등)은 조지아에서 널리 사용된다. [[몰타어]]는 [[셈어파]]에 속하는 언어이고 [[바스크어]]는 유럽에서 사용되는 언어 중에서 드물게 [[고립어]]에 속하는 언어이다.
== 문화 ==
유럽의 문화는 세계의 음악, 미술, 건축, 문학, 영화, 과학, 철학, 종교, 패션, 요리, 스포츠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문화로 여겨지고 있으며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기독교]], [[유대교]], [[르네상스]], [[인문주의]], [[계몽주의]]에서 유래된 정치적 사고, [[프랑스 혁명]]에서 유래된 공통된 문화적, 정신적 유산
* [[산업화]], [[식민주의]]를 통해 다른 대륙으로 확산된 풍부하고 역동적인 문화
* [[인권]]과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법률, 존중으로 표현되는 개인의 특정 개념
* 서로 다른 정치적인 질서, 서로에게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는 다양한 생각
* 유럽 이외의 민족, 국민, 국가에 대한 존중
== 종교 ==
유럽에서 종교는 역사적으로 예술, 문화, 철학, 법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종교는 [[기독교]]인데, 유럽에 거주하는 기독교 신자의 비율은 76.2%에 달한다. 유럽의 기독교는 종파에 따라 [[로마 가톨릭교회]], [[개신교]], [[동방 정교회]], [[성공회]], [[루터교]] 등으로 나뉜다. 기독교는 4세기 후반에 로마 제국에서 국교로 공인되면서부터 서양 문화와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유럽에서 기독교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종교는 [[이슬람교]]로 유럽에 거주하는 이슬람교 신자의 비율은 6%에 달한다. 유럽에 거주하는 이슬람교 신자는 터키, 알바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아제르바이잔, 러시아와 같이 발칸반도, 동유럽에 분포하고 있다. 유럽에 분포하고 있는 소수 종교로는 [[유대교]], [[불교]], [[힌두교]], [[현대 이교]] 등이 있다. 유럽은 [[세속주의]] 영향이 비교적 강한 곳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불가지론]], [[무신론]]을 표방하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 같이 보기 ==
* [[유러피언 게임]]
* [[유로리전]]
* [[유럽의 깃발 목록]]
* [[근대성]]
* [[범유럽주의]]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분류-줄}}
* {{두피디아|101013000729548}}
* [http://en.wikivoyage.org/wiki/Europe Wikivoyage 유럽]
{{유럽}}
{{대륙}}
{{지역}}
{{전거 통제}}
[[분류:대륙]]
[[분류:유럽|*]]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도시 정보
| 이름 = 과테말라시티
| 지위 =
| 정식표기 = Ciudad de Guatemala
| 한자 =
| 별명 =
| 표어 =
| 그림 = Montage Guatemala City2.jpg
| 그림설명 =
| 시기 = Bandera de la Ciudad de Guatemala.svg
| 휘장 = Escudo de Armas de la Ciudad de Guatemala.svg
| 슬로건 =
| 지도 =
| 지도설명 =
| 위치지도 = 과테말라
| 위도= 14.613333
| 경도= -90.535278
| 지형도 =
| 나라 = {{국기나라|과테말라}}
| 행정구역 = [[과테말라주]]
| 자치구 =
| 지역 =
| 청사소재지 =
| 방언 =
| 설립일 = 1776년
| 인구 = 2,450,212
| 인구년도 = 2018
| 인구밀도 = 4,722.76
| 광역인구 = 5,103,685
| 면적 = 692
| 세부면적 =
| 해발 = 1,500
| 기후 =
| 시간대 = UTC-6 (Central America)
| 우편번호 =
| 지역번호 =
| 웹사이트 = http://www.muniguate.com/
}}
'''과테말라시티'''({{llang|es|Ciudad de Guatemala|시우다드 데 과테말라}}, {{문화어|과떼말라}})는 [[과테말라]]의 [[수도]]로 [[과테말라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완전한 이름은 '''누에바 과테말라 데 라 아순시온'''({{llang|es|Nueva Guatemala de la Asunción}})이며 줄여서 '''갸떼'''(Guate)라고도 불린다.
== 기후 ==
{{Weather box|location = 과테말라시 (199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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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oter = 대중 종교와 세계 종교는 왼쪽 위부터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시크교]], [[유대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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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宗敎)는 초월적, 선험적 또는 영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는 이들로 이루어진 신앙 공동체와 그들이 가진 [[신앙 체계]]나 문화적 체계(cultural system)를 말한다. 종교인들은 주로 [[초월]]적인 대상, 세계에 대한 궁극적인 진실, 사람은 어떠한 [[도덕]]을 지키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각자의 믿음을 갖고 있다. 종교는 인간과 비롯한 존재의 우주적 질서에 대한 나름의 설명을 제공하려 하기도 한다.<ref>Clifford Geertz, "Religion as a cultural system".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s: selected essays, Geertz, Clifford''. London: Fontana Press. 1993 pp. 87–125.</ref> 인본주의를 비롯한 근현대 철학에서 많은 학자가 종교를 비이성적인 것으로 비판하였으나 심리학적으로는 종교가 삶의 불확실성을 줄여주고 심신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효과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ref name = "hani"/> 전근대 시절에도 지배층 출신 사람들은 종교를 이용할 뿐 딱히 믿지 않았다는 증거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피지배층 역시 진정으로 종교를 믿었는가에 대해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 종교의 어원 ==
종교(宗敎)는 본래 [[산스크리트어]]를 번역한 불교용어다. 중국에 불교를 전래할 때 능가경에 "근본이 되는 가르침"이라는 의미인 "시단타 데사나"(Siddhanta Desana)를 종교로 한역한 용어다. 한편, '신과 인간을 잇는다.'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릴리전"(religion)을 종교로 번역해 지금에 이른다. 조상신(示)을 모시고 제사하는 종갓집(宀)에 사용하는 '으뜸 종(宗)'에 '가르칠 교(敎)'를 사용한다. 즉 '으뜸인 가르침'을 뜻한다.
=== 동양적 어원 ===
종(宗)은 죽은 내 조상(祖上)과 현재 살아있는 내 성씨(姓氏) 가족(家族) 전체를 의미하며 '집'(면, 宀)과 '보다' 또는 '살피다'(시, 示)라는 뜻이 결합한 글자로 살아서는 부모가 자녀들 문제를 해결하고, 죽어서는 부모가 가족 문제를 도와주길 바라는 소망을 제사로 나타낸다. 말뚝에 제물을 걸어 놓으면 죽은 부모 '귀신'(신, 神)이 나타난다는 뜻으로, 적장자(嫡長子)인 종손(宗孫)이 사는 조상 제사를 지내는 집을 의미한다.
교(敎)는 '점괘'(효, 爻), '아들'(자, 子), '치다' 또는 '때리다'(복, 攵)라는 뜻이 결합한 글자로 점친 결과를 아들에게 때려서 가르친다는 뜻이다. 정확한 의미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100% 일치하는 혈족(血族)인 대종(大宗) 성(姓)의 적장자(嫡長子)를 중심으로, 아버지는 일치하고 어머니 혈통은 다르지만 한지붕 아래서 시(豕)돼지 키우면서 함께 사는 가족(家族)인 수많은 후처(後妻) 소종(小宗) 씨(氏) 적장자(嫡長子) 소종가(小宗家)들이 연합한 것이 국가(國家)이다. 가족(家族) 문제를 구성원이 함께 논의 해법 찾는 과정에서, 의견이 충돌하고 양쪽 말이 모두 일리가 있어 한쪽에 손을 들기 어려울 때, 군대 권력을 가진 왕이자 조상 제사를 모시는 사제인 적장자(嫡長子)가 점친 공정한 결과를 결정하면 가족들이 복종하며 자기 부모를 믿는 신앙(神仰)이다.
종(宗)은 가족 혈통 계보의 중심인 종손(宗孫), 보통 종손인 적장자(嫡長子)가 살고 가족 전체가 제사를 지내는 종가(宗家), 적장자(嫡長子)의 적처(嫡妻)를 의미하는 종부(宗婦), 성(姓) 혈족의 원뿌리를 의미하는 대종(大宗), 가족 성(姓)에서 씨(氏)로 독립한 소종(小宗) 글자들 쓰임새에서, 죽은 부모를 중심으로 가족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본처 큰아들 계보를 의미하는 '정실'(적, 嫡)을 뜻하는 글자는 '계집'(녀, 女), '밑둥'(적, 啇)의 합성으로, 제(啇)라는 글자는 '임금'(제, 帝)과,'ㅂ' 모양인 제사 그릇을 합친 글자로, 적장자(嫡長子)의 성씨(姓氏) 조상 제사를 모시는 여자를 의미한다.
종교(宗敎)는 가족 공동체인 국가의 중심인 왕의 공정한 가르침이고, 신앙(神仰)은 가족(家族) 성씨(姓氏) 조상 죽은 부모를 믿고 적장자인 왕의 공정한 결정을 따르는 것이다. 종(宗)은 성씨 글자가 사용된 상(商)나라 왕실 자성(子姓)이 수천년전 [[상나라]] 때부터 썼고, 많은 대종 성씨들이 5천년 이상 되었고, 불교 도래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용하던 개념으로 혈연 가족에 대한 믿음이다.
=== 서양적 어원 ===
유럽어에서 종교(religion)라는 라틴어 어원 "렐리기오"(religio)는 어원적 배경이 두 개 있다.
첫째는 치체로(고전 라틴어로는 '키케로', 교회라틴어로는 '치체로', Cicero, 신들의 본성에 대하여(De Deorum Natura), 2, 28, 72)와 연결하여 라틴어 '렐레고'(relego, 숭배하다)에서 왔다고 한다. '다시, 또'(레, re)와 '읽다'(레고, lego)와 합하여 ‘다시 읽다’, ‘반복 음미하다’, ‘주의깊이 관찰하다’(go over again, consider carefully)의 의미로 신에게 드리는 예배와 관계하여 지속적으로 살핀다는 뜻이다. 즉 신 또는 조상에 대한 숭배이다.
둘째는 [[락탄티우스]](Lactantius, Divinae Institutiones, 4, 28)와 연결하여 '다시, 또'(레, re)가 '묶다' 또는 '잇다'(리가레, ligare)와 합해 ‘다시 묶다’가 되었다는 견해이다.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견해를 따랐다. 즉 하나님께로 다시 결합하여(to reconnect) 하나님께 대한 경외(reverence for God, the fear of God)가 되었다.<ref>안명준, <한눈으로 보는 성경적 조직신학> (도서출판 기쁜날: 2014), 131.</ref>
== 정의 ==
종교와 관련하여 그 종교에 귀의하여 우러나오는 경건한 마음은 '''종교심'''(宗敎心)이나 '''신심'''(信心), '''신앙'''(信仰), '''불심'''(佛心)이라 하며, 종교적 신앙에 따르는 마음가짐은 '''종교의식'''(宗敎意識)이라 한다. [[기독교]]에서는 [[전례]] 또는 [[예전]]이라고 부르는 '''종교 의례'''(宗敎儀禮)는 종교에서 신앙의 대상을 예배하기 위한 여러 예식(Ceremonial: 의식에서의 [[성직자]]와 청중의 상징적인 행동과 시각적, 청각적인 상징)과 순서(Order: 고정된 순서), 의식(Ritual: 말이나 노래같은 음성을 표현되는 문서화된 의식과 기도문)을 가리키며 '''종교 의식'''(宗敎儀式)이라고도 한다.
종교개혁가 [[장 칼뱅]]은 경건은 종교를 낳는다고 했다. 경건이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결합된 것이라고 한다. 순수하며 참된 종교는 하나님에 대한 엄숙한 두려움과 결합된 신앙이라고 한다. 여기서 두려움이란 자발적인 경외를 내포하며, 성경에서 규정한 예배를 포함한다. (기독교강요, 1:2:2)
=== 종교에 대한 학자들의 정의 ===
종교는 고대로부터 신과 관계 속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현대 시대에 종교는 신과 곤련한 관점보다 인간의 내재적 요소 속에서 종교 본질을 찾으려고 한다. 학자들은 종교를 인간의 지, 정, 의, 도덕, 이성 등 각각 하나를 강조하며 설명한다.<ref>안명준, <한눈으로 보는 성경적 조직신학> (도서출판 기쁜날: 2014), 129-130.</ref>
* 뮬러 - 무한한 존재를 지각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덕성을 감화시킨다.
* 틸레 - 자기보다 우월한 존재를 존경하며, 믿고, 접촉을 갈망하는 것이다.
* 타일러 - 영적 존재에 대한 숭배와 신뢰이다(the belief in spiritual beings).
* 듀크하임 - 종교를 성스러운 것들과 관련된 믿음과 실천의 통합된 체제라고 한다(unified system of beliefs and practices relative to sacred things).
* 볼프 - 의지의 자유를 강조하며 도덕 종교를 말한다.
* 칸트 - 의지 곧 실천 이성에 기초를 두고, 종교를 이성의 한계 안에 가둔다.
* 헤겔 - 종교의 자리가 지성 속에 있다고 본다.
* 칼 맑스- 종교는 인간의 발전에 방해물로 인간은 스스로가 구원해야 한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자 눈물, 한숨"이라는 말(독일-프랑스 연보, 1844년)로 유명한데, 이는 종교가 인간이 현실에서의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진통제라는 뜻으로 쓴 말이다.
* 흄 - 종교가 없는 사람은 없다.
* 슐라이에르마허 - 종교란 무한자에 대한 절대 의존 감정이다.
* 하르낙 - 도덕적인 개념을 강조한다.
* 리츨 - 인간 의지를 강조함으로써 기독교를 인격적 종교로 만든다.
* 트뤌취 - 인격적 확신이다.
* 불리커 - 신적인 힘, 혹은 초자연적인 힘이다.
* 반 더 리우 - 마나(힘)이다.
* 오토 - 엄청나며, 동시에 매혹적인 신비의 체험이다.
* 화이트헤드 - 종교란 내적 요소들을 정화하는 믿음의 힘이다. 종교는 개인이 자신의 고독을 다루는 것이다.
* 스미스 - 종교 대신 신앙으로 본다.
* 유진 니다- 최종적이거나 최상의 관심사이다.
* 틸리히 - 궁극적 관심이다.
* 벌코프 - “종교는 인간 생활에 있어서 가장 깊은 근원과 접촉하고, 인간의 사상을 지배하며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고 인간의 행동을 지도하는 것”으로 말한다.
* 윌리엄 제임스 - 물질적인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관계가 종교의 핵심이다.
===비판적 관점===
* [[로버트 피시그]], [[리처드 도킨스]] -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 종교 기원 이론들 ==
* 자연 숭배 이론 - 자연의 신비와 능력에 대한 숭배에서 왔다.
* 정령 숭배 이론 – 영들이나 죽은 조상들의 영혼을 숭배하는 것에서 왔다.
* 심리학적 이론 - 감정적 상태에서 성장하였다. 밀러는 종교의 기원이 경외, 놀라움, 두려움에 대하여 즉각적인 감정 반응이다.
* 사회적 이론 - 사회적으로 발생했다. 듀크하임은 종교가 부족을 단결한다고 본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수메르 도시 국가들의 종교들은 정치적인 권력과 사회, 경제적인 질서를 신성하게 보았다.
* 인류학적 이론 - 포에르바하는 잘못된 자기의 투영의 과정에서 발생한다.
* 철학적 이론 – 이성이나 과학이나 철학에 뒤떨어졌다고 본다.
== 종교의 공통적인 특징 ==
일반적으로 종교는 아래와 같은 형식을 가진다. 이단과 같은 분파적 집단들은 다음의 요소들을 결여하고 왜곡한다.
* 초자연적인 것을 믿음
* 현상과 현실의 구분
* 도덕적 법전, 윤리적인 원리
* 감정
* 기도와 신과의 교통
* 세계관을 제공
* 삶의 총체적인 조직을 요구함
* 사회적인 조직체
* 평화와 복지의 내적인 조화 혹은 그 심리적 상태를 약속
* 도래할 시대를 가르침
== 세계의 종교 ==
인류의 종교 발전은 시대와 평행하게 흘러왔다. 아직도 고등문화 속에 남은 자연민족 신앙은 그 후에 나타난 더 높은 종교에 자연스러운 바탕이 되었다. 마적 외포(魔的畏怖), 무격적(巫覡的)인 신빙(神憑), 마적 열광과 황홀한 춤과 원시적 신비, 그리고 주술적이고 신성한 행사 등의 감정을 비롯하여 거기에서 일어나는 정령신앙(精靈信仰)이나 죽은 사람에 대한 의례(儀禮), 영혼숭배와 [[토테미즘]](totemism), 요술사와 주술사, 복술·[[점술]], 청정(淸淨)과 부정(不淨), 유치한 행위나 신성한 행위, 원시적 금욕, 공희(供犧)의 신비, 주물숭배(呪物崇拜) 등의 표상, 그리고 자연주술과 모든 자연의 주적 영화(呪的靈化) 등의 표상은 고등 종교 이전의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것에서 서서히 나타난 숭고한 신성, 신들의 숭배, 제사제도, 의례와 신전과 제사, 신성한 집단과 풍습 등의 표상이 있고, 또, 이런 표상에 속한 신화, 우주에 관한 계도적(系圖的)인 의례의 우화(寓話), 신화적인 원시적 사변(思辨) 등이 보여주는 넓은 상상의 활동세계을 펼친다. 이런 모든 요소는 서로 매우 다르나 완전히 개별적이고 관련 없이 집합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서로 관련하고 집결하여 하나의 그물처럼 전체를 이룬다. 어떤 기후나 토지에도 놀랄만큼 서로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유사성이 참으로 그 근본에는 통일적이고 합일적인 인간심리 일반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연적 신앙의 뒤를 이어 선종교(先宗敎)라고 부르는 더욱 높은 전이과정이 있다. 이 전이는 서양, 그 바탕인 [[그리스]] 문화에 나타났다. 기원전 800년부터 500년에 이르는 중요한 기간에 신학이 신화학(神話學)에서, 그리고 로고스(logos)가 신화(mythos)에서 분리했다. 그리고 신들에 관한 지식을 뜻했던 신학은 점차로 신에 관한 지식이 되는 동시에 [[형이상학]]의 최고점이 되었다. 신앙은 신을 마적 외포의 영역에서 나와서 [[물리학]]과 신비사상의 요소를 결합한 [[우주론]]이 되었다. 예컨대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크세노파네스, 아낙사고라스 등의 물리학은 모두 우주론적 신학이었다. 이 신학은 점점 신화적인 요소를 극복하거나 배제하고 나아가서는 신들의 세계를 신적 이념(Theion)에 종합하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절대자와 신성(神性)의 이념이 되었다. 따라서 신들은 그리스 비극작가(悲劇作家)들에게 세계와 습관을 지배하는 통일적인 힘이었으며, 본래 [[다신교]]적(多神敎的)인 생각에서만 의의를 갖던 신이란 표현은 절대적 신성인 이념이 되었다.
이것과 동시대적인 평행은 극동의 문화인 속에 있다. [[피타고라스]]가 교단(敎團)을 창시한 것이 기원전 약 530년이었는데, [[중국]]의 [[공자]]는 약 470년에 죽었고 공자와 동시대의 선배에 [[노자]](老子)가 있었다. 중국의 고대사 시대는 이들보다 이전에 3세기가 지나고 있었다. 동양의 발전이 서양의 그것과 다른 독자성과 개별성을 보여주나 그 차이는 동일한 종속(種屬) 내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에서도 얕은 신화적 단계의 극복이나 종교의 확연한 도덕화나 절대자에로의 정진(精進)이 있었다. 공자가 합리주의로 흐른 데 비해서 노자는 '도덕'으로 기울어졌다. 서양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합리주의적 유신론이 공자의 이론에 필적하고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가 노자의 도(道) 사상과 맞먹는다. 노자나 공자는 다 헤라클레이토스나 플라톤에서 인정되는 내적 신비의 빛을 말했다.
[[이스라엘]]도 이 세기에 [[여호와]]의 자연신화를 깨고 [[유일신]]을 찾았다. [[엘리야]](Elijah)로부터 제이 [[이사야]](Isaiah)와 [[에스겔]](Ezekiel)에 이르는 동안 종족적 종교로부터 개인적인 주관적 종교에로의 전이(轉移)가 있었다. 또한 [[페르시아]] [[조로아스터]](zoroaster)의 종교개혁 준비와 그 성과는 기원전 약 800년부터 큐로스왕 시대에 이르는 기간에 악마신앙과 다신교의 안개를 걷고 예언자적 신신앙(神信仰)과 도덕적 상반의 별견(瞥見)과 역사의 조만간의 종말에 관한 순수한 종교가 출현했다.
이 시대에 평행해서 [[고대인도]]는 혼돈된 공희(供犧)에서 [[바루나]](Varuna) 신앙을 성립시켰다. 더욱이 [[우파니샤드]] 경전의 내용은 그리스 신학의 그것과 다름이 없었다. 또 불타(佛陀) 시대에 일어난, 일체의 잡다(雜多)는 감각의 가상(假象)이며 무지(無知)에 지나지 않지만, 진지(眞智)는 운동·변화·성질(性質) 없이 시공(時空) 이외에 '제2자가 없는 유일자(唯一者)' 위에 나타난다는 사변(思辨)은 크세노파네스나 [[파르메니데스]]나 [[제논]]의 그것과 일치한다. 이것들은 모두 종교적 직관에 의한 신비적 몰아(神秘的沒我)의 특유한 체험을 말하는 것이다. 인도의 [[바라문]](婆羅門) 세계에서 그 사변(思辨)과 함께 실천적 종교생활이 발전하였다. 높은 관념의 발전보다 높은 종교에 한걸음 다가섰다. 구제(救濟)·해방(解放)·해탈(解脫)의 깊은 종교적 삼매(三昧)와 금욕적 실천과 생활태도에서의 세간(世間)과 자연적 존재양식을 멸시하는 경향이 생겼다.
== 사이비 종교 ==
사이비 종교란 일반적인 종교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전통적인 기존의 종교적 내용을 [[교주]]나 특정한 교리를 과장하여 주관적으로 변형시킨 형태이다. 기존 종교와 사회에서 충돌을 일으키는 이유는 가정과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고 그 단체에 속한 신자들에게 해를 많이 끼치기 때문이다. 사이비 종교의 피해로 생명을 잃기도 하고 많은 재산과 가족을 빼앗기는 사례가 너무 많아서 사회적인 관점에서는 법의 의한 엄격한 처벌이 요구된다. 이는 종교라는 허울을 뒤집어 쓰고 자신의 사적인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 이끄는 곳은 사이비이기 때문이다. 사이비는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지만 근본적(根本的)으로는 아주 다른 것으로 공자의 말에서 유래했다. 이와 비슷한 말로 이단이 있다. 이단(異端)은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道)를 말한다.
== 종교와 윤리 ==
{{문단 출처 필요|날짜=2020-03-03}}
종교에 명시된 [[종교적 교훈]]들은 [[윤리]]적 [[교훈]]과 일치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종교적 [[교훈]]은 반드시 [[윤리]]적 [[교훈]]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종교는 윤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종교적 교훈이 오히려 폭력적인 것이라고까지 말하기도하나, 좀 더 사실적으로는 종교적 교훈을 곧 윤리적 교훈으로 치환함과 동시에 폭력적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출처|이와 같이, 종교적 교훈과 윤리적 교훈을 운운하여 악용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종교적 교훈 자체가 폭력적이라는 오해가 널리 퍼져있고, 종교적 교훈을 윤리적 교훈으로 곧바로 치환하는 것이 '본래의 정의(定義)를 모른 채 내린 [[일반화의 오류]]'라하여 일반적인 오해가 오히려 더 굳혀지고 있는 양상을 볼 수 있다|날짜=2020-03-03}}.
니체는 인간이 만든 모든 법칙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신은 종교에서 믿는 신이나 인간을 초월한 어떤 것이 아니다. [[칸트]]는 3대 비판서에서 신이란 도덕률 혹은 도덕원리일뿐이라고 일축한다. 니체는 원래 존재하던 절대 법칙들, 규범들을 비판하며 부순다. 왜냐하면 이들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며, 전통적인 규범들은 생의 활력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특히 기독교의 겸손, 순종, 섬김, 봉사와 같은 가치들은 단지 노예 도덕인 것이다.
종교의 폭력성 혹은 베타성이 특히 기독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기독교 신자는 대체로 기독교만이 진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19세기의 문화인류학자 프레이저는 기독교가 어떤 신화적 발전 단계를 거치며 성장해왔는지 설명한다. 그의 《[[황금가지]]》에 의하면 기독교의 핵심 주제인 '살해되는 신'은 전세계 어디에나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주제라고 주장한다. 그뿐아니라 기독교가 가진 성찬, 세례, 예배 개념 등도 여러 문화와 종교에서 유사한 형태로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휴머니즘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느 종교라도 전체에 주체가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무신론의 입장에서, 종교는 단지 발전된 신화일 뿐이며, 거기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노예의 길로 보인다. 그래서 현대의 [[무신론]] 혹은 [[인문주의|휴머니즘]]의 입장에서는, 인간 자신이 그의 주체성을 잃지 않고 힘든 순간에 마음의 위안을 얻고, 다시 그 주체성을 회복하는 정도에서만 종교의 역할은 머물러야 한다고 보며, 더 나아가 종교적 교훈은 없으며, 그것은 인간 주체가 판단할 일이라는 것이다.
== 종교 통계 ==
=== 경제력 ===
2008년 Pew Research Center에 의하면 부유한 국가에 거주할수록 사람들이 삶에서 종교의 중요성을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ref>{{웹 인용|url=https://www.pewresearch.org/global/2008/09/17/chapter-2-religiosity/#wealth-and-religiosity|제목=Wealth and Religiousity|성=|이름=|날짜=2008-09-17|웹사이트=Pew Research Center|출판사=|확인날짜=2019-12-29}}</ref>
=== 학력 ===
2016년 [[퓨리서치센터]]가 [[아시아]](35개국), [[유럽]](36개국), [[남아메리카]](30개국), [[중동]] 및 [[북아프리카]](12개국), [[북아메리카]](2개국), [[아프리카]](36개국) 등을 대상으로 [[유네스코]] 국제표준교육분류법 자료와 [[퓨리서치센터]]의 종교별 인구 통계 자료 등을 종합해 발표한 '세계 종교와 교육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종교 신자 중 6억8000만 명(19%)이 정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으며 비신자가 정규 교육 과정을 통해 학교에 다닌 기간은 평균 8년6개월이지만 신자가 정규 교육을 받은 기간은 7년6개월이었다. 종교별로 정규 교육기간은 [[유대교]]가 13년 4개월로 가장 높고 [[기독교]] 9년3개월, [[불교]] 7년11개월, [[이슬람교]]와 [[힌두교]]가 각각 5년7개월이었으며 [[미국]]을 비롯한, [[이스라엘]], [[서유럽]] 지역의 신자들은 정규 교육을 받은 기간이 긴 반면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등의 신자들 교육 수준은 낮았다. [[미국]] 내 신자 중 대학 졸업자가 가장 많은 종교는 [[힌두교]]로 77%로 가장 높았고 다음이 [[유니테리안]](67%), [[유대교]](59%), [[미국성공회]](56%), [[미국장로교]] 및 [[불교]](각각 47%), [[연합감리교회]](46%), [[무슬림]](39%), [[장로교]](PCA·33%),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33%),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28%), [[오순절교단]](13%) 등이었다.<ref>[https://www.joongang.co.kr/article/21055675]</ref>
===심리===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정신과 미나 와이스먼 교수 연구팀은 "종교가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뇌피질]]이 더 두껍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종교가 심리적 안정을 주는 결과라고 주장했다.<ref name="hani">[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754475.html]</ref>
== 분류 ==
* [[아브라함의 종교|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 가장 큰 그룹으로, [[기독교]](그리스도교, Christianity), [[유대교]](Judaism), [[이슬람]](Islam)이 주로 차지하고 있다.
* [[인도]]의 종교 : [[힌두교]](Hinduism), [[불교]](Buddism), [[시크교]], [[자이니즘|자이니교]]를 들 수 있다.
* [[동아시아]]의 종교 : [[샤머니즘]], [[유교]], [[도교]], [[신토]](신도), [[천도교]], [[까오다이교]], [[일관도]]
* [[이란]]의 종교 : 이란에서 비롯한 것으로, [[조로아스터교]], [[야지디교]]를 포함한다.
* [[아프리카계 아메리카의 종교]]
* [[민족 종교|부족 종교]](Tribal Religion)
* [[신흥 종교]]
[[파일:Prevailing world religions map.png|섬네일|center|750px|세계의 주요 종교 분포도: 나라에 따라 가장 많은 신자의 수를 가진 종교를 대표적으로 표시]]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위키인용집}}
* [[세계의 주요 종교]]
* [[신흥 종교]]
* [[성직자]]
* [[예배]]
* [[전례]]
* [[무종교]]
* [[무신론]]
* [[세속 종교]]
== 참고 자료 ==
{{글로벌세계대백과}}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 {{Sep entry|concept-religion|The Concept of Religion|Kevin Schilbrack}}
* {{curlie|Society/Religion_and_Spirituality}}
{{신앙 체계}}
{{종교}}
{{전거 통제}}
[[분류:종교|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구별|워싱턴주}}
{{도시 정보
| 이름 = 컬럼비아특별구
| 정식표기 = District of Columbia
| 한자 =
| 별명 =
| 표어 =
| 그림 = DCmontage3.jpg
| 그림너비 = 280px
| 그림설명 = 위 왼쪽: [[조지타운 대학교]], 위 오른쪽: [[미국 국회의사당]], 가운데: [[워싱턴 기념탑]], 아래 왼쪽: 미국 남북전쟁 기념관, 아래 오른쪽: 워싱턴의 바실리카 성당
| 시기 = Flag of Washington, D.C.svg
| 시기이름 = [[워싱턴 D.C.의 기|시기]]
| 휘장 = Seal of the District of Columbia.svg
| 지도 = Washington, D.C. locator map.svg
| 지도설명 = 워싱턴 D.C.는 [[메릴랜드주]]와 [[버지니아주]] 사이에 위치해 있다.
| 지도너비 = 280px
| 위치지도 = 미국 워싱턴 D.C.
| 위치지도너비 =
| 위도도 = 38 | 위도분 = 53 | 위도초 = 42 | 남북 = N
| 경도도 = 77 | 경도분 = 2 | 경도초 = 12 | 동서 = W
| 나라 = {{국기나라 그림|Flag of the United States (Pantone).svg}} [[미국]]
| 방언 =
| 설립일 =
| 인구 = 705,749
| 인구년도 = 2019
| 인구밀도 =
| 광역인구 = 6,216,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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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면적 =
| 해발 =
| 시간대 = EST([[UTC-05]]) / EDT([[UTC-04]])
| 우편번호 = 20001-20098, 20201-20599
| 지역번호 = 202
| 웹사이트 = [https://dc.gov/ www.dc.gov]
| 단체장 = [[뮤리얼 바우저]] (민주당)
}}
'''워싱턴 D.C.'''({{llang|en|Washington, D.C.}})는 [[미국]]의 [[수도]]이다. 정식 명칭은 '''컬럼비아특별구'''({{llang|en|District of Columbia}})이다. 줄여서 '''D.C.'''라고도 불린다. [[조지 워싱턴]]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미국 어느 [[미국의 주|주]]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 행정 구역이다. 좁지만, 국제적으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 있는 세계 도시이며, 금융 센터로서도 중요성이 높다. 수도로서 기능하도록 설계된 계획도시다.
워싱턴 D.C.는 [[포토맥 강]]의 동쪽 유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포토맥 강을 경계로 [[버지니아주|버지니아]]와 접하고 그 이외 방향으로는 [[메릴랜드주|메릴랜드]]에 둘러싸여 있다. [[1790년]]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이곳을 수도로 정하고, 프랑스의 피에르 샤를 랑팡을 초청하여 새 수도의 설계를 의뢰하였다. 현재 잘 정비한 시원한 거리는 피에르 랑팡의 설계를 골격으로 하여 이어받은 것이다.<ref name="글로벌 워싱턴">《[[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북아메리카/미 국#워싱턴|워싱턴]]〉</ref> 인구는 약 70만 명인데, 주변 교외 지역에서 드나드는 통근자를 고려하면 주중 인구는 백만이 넘는다. 컬럼비아 구역을 포괄하는 [[워싱턴 대도시권]]의 인구는 약 620만 명으로, 미국의 대도시권 가운데 6번째로 큰 규모이다.
수많은 국가 기념물과 박물관과 더불어 [[미국 연방 정부]]의 3부의 중심 관청이 모두 이 곳에 있다. 워싱턴 D.C에는 174개 대사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세계은행]], [[국제 통화 기금]], [[미주 기구]], [[아메리카간 개발 은행]], [[범아메리카 의료 기구]]의 본부가 있다. 무역 협회, [[로비]] 단체, 직능 단체 등 여러 기관의 본부도 이곳에 있다.
워싱턴 D.C는 원래 컬럼비아 영역의 개별 지자체였으나, [[1871년 의회법]]으로 도시와 이 영토를 컬럼비아 구역이라는 하나의 단위로 합병하였다. 워싱턴 D.C의 법적 명칭이 '컬럼비아 구역'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워싱턴이라는 명칭은 [[미국 독립 전쟁]]의 지도자이자 [[미국의 대통령|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워싱턴 기념탑]](555[[피트]], 약 169.3m)의 높이 이상으로 건축물을 건설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어, [[뉴욕]]과는 달리 [[초고층 건물]]이 드물다. [[백악관]], [[펜타곤]], 연방 의사당 등 미국의 주요 정부 기관들이 소재해 있다.
== 역사 ==
17세기 초 유럽인들이 지역에 들어왔을 때 알곤 퀴안 어를 쓰는 피스캐터웨이 (코노이라고도 함) 부족들이 포토맥 강 주변에 살고 있었다. 1600년대 후반에 백인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해 들어와서 농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1749년에 백인 정착민들은 이 지역에 첫 번째 도시이며 버지니아 식민지가 된 [[알렉산드리아 (버지니아 주)|알렉산드리아]]를 세웠다. 이 당시 미국은 수도가 정해져 있지 않아서 [[뉴욕]], [[필라델피아]]를 비롯하여 여러 도시가 수도의 역할을 했었다. 1783년 의회는 영구적인 미국의 수도를 설치할 것을 의결했다. 주마다 자기 주에 수도를 두고 싶어 해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1790년 재정 장관인 알랙산더의 노력으로 이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미국의 수도는 어느 주에도 속하지 않는 땅에 설치하기로 제안하여 모든 주의 동의를 얻어냈다. 1790년 7월 9일, 의회는 [[포토맥강]]가에 미국의 수도 설립을 승인하는 거주법을 통과시켰다. 정확한 위치는 7월 16일 법안을 서명한 [[조지 워싱턴]] 대통령에 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워싱턴은 1791년 포토맥강 가의 땅을 수도구역으로 정했는데 지금의 워싱턴 DC 구역을 포함하여 포토맥강 서쪽의 30평방마일의 땅도 포함했었다. 메릴랜드 주와 강서쪽의 버지니아 주에서 해당 되는 땅을 연방정부에 기증하여 사각형 모양으로 된 각면이 16km (10마일)되며 면적은 259km<sup>2</sup> (100평방마일)에 해당되는 수도 구역이 정해지게 되었다.
연방정부가 임시수도였던 [[필라델피아]]에서 워싱턴 DC로 옮긴것은 1800년이다. 이때 도시 인구는 고작 8,000명에 불과했다. 1814년에 영국과의 전쟁에서 워싱턴 DC는 영국군에 의해 점령 당했고 [[의사당]]과 [[백악관]]을 포함한 많은 정부청사가 불타버렸다. 1819년 소실되었던 정부청사는 모두 복구되었다.
<ref>
{{서적 인용 |성=McAtee |이름=Waldo Lee|제목=A Sketch of the Natural History of the District of Columbia |url=http://books.google.com/books?id=v-BmnyhbDekC |연도=1918년 |출판사=H.L. & J.B. McQueen, Inc |출판위치= Washington, DC|언어=영어|쪽=7}}</ref>
의회는 워싱턴 DC의 도시 관리를 대통령의 권한 밑에 두었으나 1802년 시민이 시정 관리를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고 1820년에는 시장을 선거로 뽑게 됐다. 그러나 의회 의원이나 대통령 선거권은 시민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 도시의 발전 ===
1840년 당시의 도시인구는 약 5만 명으로 도시로서의 성장은 저조했으나 남북전쟁(1861-1865) 때에 인구가 6만 명에서 12만 명으로 급증했다. 이 전쟁 중에는 북군의 부대가 대거 주둔하여 남군의 침공에 대비했다. 많은 사람이 북군을 돕고 수도를 지키는 일을 도우려고 워싱턴 DC로 이주해왔고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흑인들이 이주해 옴으로서 인구가 급증했다. 전쟁이 시작될 때의 35만 명의 인구가 전쟁이 끝나는 1918년에는 45만 명으로 늘어났다.
전쟁이 끝난 후 의회는 워싱턴DC의 도시개발을 위해 도시 정부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1871년 도시를 관리할 지사를 대통령이 임명했으나 1874년에 의회는 도시 운영을 대통령이 임명한 행정관 세 사람에게 맡기도록 법을 개정했다. 워싱턴 DC는 미국에서 유일하게도 도시를 운영할 대표를 시민이 투표로 뽑을 수 없는 도시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은 또다시 워싱턴 DC 인구의 증가를 가져왔다. 그후 1930년 경제공황은 직업을 잃은 실업자로 전국의 도시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워싱턴 DC만은 예외였다. 연방정부는 이때 전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했기 때문에 1930년에서 1940년 사이에 인구가 48만5천 명에서 66만5천 명으로 늘어났다. 1950년에 와서 도시 인구는 80만 명으로 정점에 달했다. 그 후로는 도시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으나 도시 주변 인구가 급증해서 광역 인구는 1950년에서 1970년 사이에 150만 명에서 300만 명으로 늘어났다. 워싱턴 DC 인구는 흑인의 인구가 늘어났고 주변 도시는 백인 인구가 급증했다.
워싱턴 시민의 참정권에 대한 요구가 의회에 반영되어 1964년 헌법개정이 통과되어 처음으로 워싱턴 시민은 대통령 선거에 투표할 수 있게 되었다. 1973년 시정부 위원선거를 할 수 있도록 의회는 법 개정을 했다. 100년 만에 자치권을 갖게 되었다.<ref>{{서적 인용 |성= |이름=|제목=Washington DC History |연도=1978년 |출판사=World Book-Childcraft International, Inc. |언어=영어|쪽=Vol.21-70H}}</ref>
== 도시 경관 ==
[[파일:L'Enfant plan.svg|오른쪽|섬네일|[[피에르 샤를 랑팡]]의 워싱턴 D.C 도시 계획. 그림은 [[앤드루 엘리컷]]이 개정한 것이다.(1792년)]]
워싱턴 D.C.는 [[계획 도시]]이다. 워싱턴 도시 계획은 [[미국 독립 전쟁]] 당시 [[질베르 뒤 모티에 드 라파예트|라파예트]] 장군의 군사 공학자로 식민지에 최초로 도착한 프랑스 태생의 건축가, 공학자, 도시 계획가 [[피에르 샤를 랑팡]]이 주로 맡았다. 1791년 워싱턴 대통령은 랑팡에게 새 수도 배치 설계를 의뢰한다. 랑팡의 계획은 [[바로크]]식 도시 계획을 본보기로 삼아 사각형과 원형을 중심으로 넓은 가로 뻗어나가 개방 공간과 탁트인 경관을 보이는 방식이었다.<ref name=lenfant /> 랑팡은 도시 계획에 세세한 일까지 고집스레 간섭하여 수도 건설을 감독하기 위해 워싱턴이 임명한 세 위원 사이에 갈등이 생기자 1792년 3월 워싱턴 대통령은 랑팡을 해임하였다. 그리하여 랑팡과 함께 도시 측량 작업을 함께 하던 [[앤드루 엘리컷]]이 도시 계획을 완성하였다. 엘리컷은 가로 형태 등 당초 계획에 수정을 가하기는 하였지만, 랑팡은 워싱턴 시의 전체 설계를 맡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ref>{{서적 인용 |성=Crew |이름=Harvey W. |공저자= William Bensing Webb, John Wooldridge |제목=Centennial History of the City of Washington, D. C. |출판사=United Brethren Publishing House |연도=1892 |위치=[[Dayton, Ohio]] |url=http://books.google.com/books?id=5Q81AAAAIAAJ |쪽=101–3}}</ref> 워싱턴 시는 오늘날 북쪽 [[플로리다 가]]와 서쪽 록 크릭(Rock Creek), 동쪽 애너코스티아 강(Anacostia River)을 경계로 하고 있었다.<ref name=lenfant />
20세기 초에 들어 랑팡이 의도한 수도의 탁트인 공원과 장대한 국가 기념물의 경관은 빈민가나 아무렇게나 들어선 건물, 내셔널 몰(National Mall)의 기차역 때문에 어지러워졌다.<ref name=lenfant>{{웹 인용|url=http://www.nps.gov/nr/travel/wash/lenfant.htm|제목=The L'Enfant and McMillan Plans|확인날짜=2008-05-27|출판사=[[National Park Service]]}}</ref> 1900년 의회는 상원의원 [[제임스 맥밀런]]이 이끄는 [[합동 위원회]]를 꾸려 워싱턴의 국가 의식 핵심부를 꾸미는 일에 착수하였다. 이 [[맥밀런 계획]]은 1901년에 완성되었다. 이 계획에는 의사당 마당과 내셔널 몰의 경관을 새로이 바꾸고, 새로운 연방 관청 건물과 기념물을 건설하며, 빈민가를 철거하고 새로운 공원 체제를 세우는 것 등이 있었다. 위원회의 건축가들은 도시의 원래 배치를 보존하였고, 이들의 작업은 랑팡이 의도한 설계를 장대하게 완성하는 것으로 여겨졌다.<ref name=lenfant />
[[파일:DC satellite image.jpg|섬네일|왼쪽|위오른쪽|워싱턴 D.C.는 4 지구로 구획되어 있다.]]
1899년 12층짜리 카이로 아파트 건물(Cairo Apartment Building)이 들어서자 의회는 [[건물 고도 제한법]](Heights of Buildings Act)을 통과하여 어느 건물도 의사당보다 높게 짓지 못하도록 규정하였다. 이 법은 1910년에 개정되어 건물 고도를 인접 가로의 폭에서 6.1m를 더한 높이 이상으로 건설하지 못하도록 제한하였다.<ref name=buildheight>{{뉴스 인용 |이름=Michael |성=Grunwald |제목=D.C.'s Fear of Heights |date=2006-07-02 |url=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06/06/30/AR2006063001316.html |work=The Washington Post |쪽=B02 |확인날짜=2008-06-10 }}</ref> 오늘날 워싱턴 시의 건물 윤곽선(skyline)은 낮고 넓게 퍼진 모양새를 갖추어, 워싱턴 시가 "복잡하지 않고 바람이 잘 통하는" 거리에 "낮고 편리한" 건물들이 있는 "미국의 파리"가 되길 바라던 토머스 제퍼슨의 뜻을 따르고 있다.<ref name=buildheight/> 그러하여 [[워싱턴 기념탑|워싱턴 기념비]](Washington Monument)는 구역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tulsaworld.com/news/article.aspx?articleID=20080221_1_A2_hhpsp76588 |제목=Way back when: Today in history |이름=Gene |성=Curtis |date=2008-02-21 |work=[[Tulsa World]] |확인날짜=2008-07-02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0919170359/http://www.tulsaworld.com/news/article.aspx?articleID=20080221_1_A2_hhpsp76588# |보존날짜=2008-09-19 |url-status=dead }}</ref> 그러나 [[도시의 확산]] 현상으로 교통 및 주택 문제를 이유로 워싱턴의 고도 제한은 비난을 받았다.<ref name=buildheight/> 구역의 고도 제한 규정을 피하기 위해 시내와 가까운 곳의 높은 건물은 포토맥 강에서 [[버지니아주]]의 [[로슬린]]쪽에 건설되곤 한다.<ref>{{뉴스 인용 |이름=Annie |성=Gowen |제목=Planned Rosslyn Tower Might Be Hazard, FAA Says |date=2006-12-08 |url=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06/12/07/AR2006120701790.html |work=The Washington Post |쪽=B03 |확인날짜=2008-07-14 }}</ref>
컬럼비아 구역은 넓이가 제각각인 4개의 지구(quadrant)로 나뉘는데, 북서 지구(Northwest), 북동 지구(Northeast), 남동 지구(Southeast), 남서 지구(Southwest)가 바로 그것이다. 네 지구의 경계선은 [[미국 의회 의사당]]이 기준이다.<ref name=dcstreets>{{웹 인용|url=http://www.senate.gov/pagelayout/visiting/one_item_and_teasers/layout_of_washington.htm |제목=Layout of Washington DC |확인날짜=2008-07-14 |date=2005-09-30 |출판사=United States Senate }}</ref> 모든 도로 이름에는 지구 이름의 약자가 붙어 그 도로가 속한 지구를 표시한다. 워싱턴 시에서는 대부분 모든 거리가 격자 모양으로 뻗어있으며, 동서 방향 거리 이름에는 글자가 붙고, (가령 C Street SW) 남북 방향 거리 이름에는 숫자가 붙는다. (가령 4th Street NW)).<ref name=dcstreets /> 또 원형 교차점에서 대각선으로 뻗어나가는 도로 이름은 우선 미국의 주 이름을 따서 붙이는데, 미국의 50개 주 모든 이름으로 도로명이 있으며, [[푸에르토 리코]]와 컬럼비아 구역의 이름을 지닌 대로도 있다. 워싱턴의 어떤 가로는 특히 눈에 띄는데, 가령 [[펜실베이니아 거리]](Pennsylvania Avenue)는 [[백악관]]과 [[미국 의회의사당]]을 이어주며, [[K 거리]](K Street)는 여러 로비 단체의 건물을 잇고 있다.<ref name=kstreet>{{뉴스 인용 |이름=Jeffrey H. |성=Birnbaum |제목=The Road to Riches Is Called K Street |date=2005-06-22 |url=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05/06/21/AR2005062101632.html |work=The Washington Post |쪽=A01 |확인날짜=2008-06-17 }}</ref> 워싱턴에는 174개국 외국 대사관이 있으며, 이 가운데 59개는 [[매사추세츠 거리]](Massachusetts Avenue)에 있는데 이 거리는 비공식적으로 [[대사관길]](Embassy Row)이라 부르기도 한다.<ref>{{웹 인용 |url=http://www.state.gov/s/cpr/rls/dpl/ |제목=Diplomatic List |확인날짜=2009-04-12 |date=2008-02-25 |출판사=U.S. Department of State |보존url=https://www.webcitation.org/619r1uc1x?url=http://www.state.gov/s/cpr/rls/dpl/ |보존날짜=2011-08-23 |url-status=dead }}</ref>
== 기후 ==
{{Weather box
|location = 워싱턴 D.C. ([[로널드 레이건 워싱턴 내셔널 공항|내셔널 공항]])
|metric first = Y
|single line =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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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 mean F = 59.3
|Jan low F =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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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cipitation colour = green
|Jan precipitation inch =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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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 snow inch = 13.7
|unit precipitation days = 0.01 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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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 snow days = 0.1 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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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percentsun = 59
|Nov percentsun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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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 = [[미국 해양대기청]] (평년값: 1991년~2020년, 극값: 1872년~현재, 상대습도/일조: 1961년~1990년)<ref name="NWS Baltimore/Washington (LWX)">{{웹 인용 |url = https://w2.weather.gov/climate/xmacis.php?wfo=lwx |title = NowData – NOAA Online Weather Data |publisher = 미국 해양대기청 |access-date = May 24, 2021 |archive-date = 2015-07-24 |archive-url = https://web.archive.org/web/20150724075300/http://w2.weather.gov/climate/xmacis.php?wfo=lwx |url-status = }}</ref><ref name="Washington, D.C. Weatherbox NOAA txt">{{웹 인용 |url=https://www.ncei.noaa.gov/access/services/data/v1?dataset=normals-monthly-1991-2020&startDate=0001-01-01&endDate=9996-12-31&stations=USW00013743&format=pdf |publisher=미국 해양대기청 |title=Summary of Monthly Normals 1991–2020 |access-date=May 4, 2021}}</ref><ref name="WMO 1961–90 KDCA">{{웹 인용 | url = ftp://ftp.atdd.noaa.gov/pub/GCOS/WMO-Normals/TABLES/REG_IV/US/GROUP3/72405.TXT | title = WMO Climate Normals for WASHINGTON DC/NATIONAL ARPT VA 1961–1990 | access-date = July 18, 2020 | publisher = 미국 해양대기청
}}</ref><ref name="Apr trace snow">{{뉴스 인용|last1=Rogers|first1=Matt|title=April outlook: Winter be gone! First half of month looks warmer than average|url=https://www.washingtonpost.com/blogs/capital-weather-gang/wp/2015/04/01/april-outlook-winter-be-gone-first-half-of-month-looks-warmer-than-average/|access-date=May 24, 2021|work=[[워싱턴 포스트]]|date=1 April 2015 |quote=For reference, here are the 30-year climatology benchmarks for Reagan National Airport for April, along with our projections for the coming month:...Average snowfall: Trace; Forecast: 0 to trace}}</ref>
}}
== 문화 ==
=== 명소 ===
내셔널 몰은 워싱턴 시내에 있는 넓은 개방형 공원으로 동쪽의 미국 [[미국의회|국회 의사당]]과 서쪽의 [[링컨 기념관]]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내셔널 몰]]의 공원은 종종 정치 시위, 음악회, 축제, 대통령 취임식등의 장소로 이용된다. 내셔널 몰의 중앙에는 169m 높이의 [[워싱턴 기념탑]]이 있다.
워싱턴 기념탑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박물관이 모여 있고 서쪽에는 기념관이나 기념비등이 모여 있다.
워싱턴 기념탑에서 북쪽에는 프레지던트공원과 접해있고 백악관이 북쪽 끝에 있다. 워싱턴 기념탑은 서쪽편 에 있는 링컨 기념관에서 바라볼때 그 사이에 있는 리플렉팅 풀(Reflecting pool) 연못물에 기념탑이 반사되어 보이도록 설계되었다. 리플렉팅 풀과 기념탑 사이에는 제2차 세계 대전 기념관이 있다.
내셔널 몰의 서쪽에 있는 명소중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아 오는 곳은 링컨 기념관으로 매년 약 6 백만명의 방문객이 찾아 온다. 링컨 기념관 앞에서 보면 좌우로 베트남 용사 기념비와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가 있다. 한국전 기념비에는 스테인레스강으로 만든 19 군인병사의 조각상이 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쓰인 비석도 있다.
워싱턴 기념탐 남쪽에 타이달베이신(Tidal Basin)이라고 하는 반 인공 호수가 포토맥강과 연결되어 있는데 이 주변에는 벚꽃 나무가 줄 지어 있다. 프랭클린 델라 노 루즈 벨트 기념관, 조지 메이슨 기념관, [[제퍼슨 기념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기념관 및 D.C.1차 세계대전 기념관이 호수 주변에 있다.
내셔널 몰의 북쪽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은 독립 선언, 헌법 및 권리 장전등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며 미국 역사에 중요한 수천 개의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 [[미국 의회 도서관]]은 국회 의사당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 억 4,400 만 권이 넘는 책, 원고 및 기타 자료를 소장하고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다.
=== 박물관 ===
[[스미스소니언 협회|스미스소니언 인스티튜션]] (Smithsonian Institution)은 1846년 미 연방정부가 설립한 교육 재단으로 워싱턴 DC에 있는 여러 박물관 및 미술관을 관리하고 있다. 스미스 소니언은 미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고 운영되고 있으며 스미스 소니언에 속한 박물관은 입장료가 무료이며 주요 박물관은 아래와 같다.
* [[국립 자연사 박물관 (워싱턴 D.C.)|국립 자연사 박물관]]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내셔널몰(National Mall)의 북쪽에 있다. 지구를 주제로하는 모든것을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 [[국립항공우주박물관]]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박물관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비행기와 우주항공의 역사를 소개하는 박물관이다. 내셔널몰(National Mall)의 남동쪽에 있다. 스미소니언은 제2의 항공 우주 박물관을 워싱턴 D.C. 서쪽 덜레스 공항 남쪽 챤티리(Chantilly)에 스티븐 센터(Steven F . Udvar-Hazy Center)라는 이름으로 2003년에 세워서 내셔널몰에 있는 박물관에서 전시 못했던 많은 항공기와 우주항공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National Gallery of Art) 국립 미술관으로, 동서의 두 건물로 나누어저 있다. 서관은 미국미술과 서양미술이 전시되어 있고 동관은 현대 미술을 전시하고 있다. 두 건물은 지하도로 연결되어 있다.
* [[국립 아프리카 미술관]] (National Museum of African Art)
* [[국립 미국사 박물관]]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 [[국립 아메리카 인디언 박물관]] (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
* 아프리칸 아메리칸 역사문화 국립 박물관 (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
* [[국립우편박물관]] (National Postal Museum)
* [[프리어 미술관]] (Freer Gallery of Art)
* [[아서 M. 새클러 갤러리]] (Arthur M. Sackler Gallery)
* [[허시혼 미술관과 조각 정원]] (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 예술 산업관 (Arts and Industries Building)
스미스소니안에 속하지 않는 주요박물관으로 아래와 같은 주요한 박물관이 워싱턴 DC에 있다.
* [[국립 여성 예술가 미술관]] (National Museum of Women in the Arts)
* [[필립스 컬렉션]] (The Phillips Collection)
* 성경박물관 (Museum of the Bible)
*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 박물관 (National Geographic Society Museum)
* [[국제 스파이 박물관]] (International Spy Museum)
=== 예술 ===
워싱턴 D.C.는 미국 예술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공연 예술을 위해 세워진 [[존 F. 케네디 센터]](John F. Kennedy Center)에는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워싱턴 내셔널 오페라 및 워싱턴바레가 공연하고 있다.
케네디 센터 명예상(Kennedy Center Honors)은 매년 미국 문화 생활에 크게 기여한 공연 예술 분야의 예술가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링컨 대통령이 암살되었던 역사적 장소인 포드 극장 (Ford 's Theatre)은 박물관으로 뿐만 아니라 공연 장소로도 계속 운영되고 있다.
캐피틀힐 근처에 있는 머린 배랰스(Marine Barracks)에는 미 해병 군악대가 있다. 이 군악대는 1798년에 설립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단체이다. 미국의 행진곡 작곡자로 이름난 워싱턴 출신인 [[존 필립 수자]](John Philip Sousa)가 1880년부터 1892년까지 해병 군악대를 이끌었다.
1925년에는 해군 군악대가 설립되어 워싱턴 해군 야드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도시내에 있는 공식 행사와 연주회에 자주 연주하고 있다.
== 경제와 사회 ==
시가지는 포토맥강에 접하여 대서양과 수상 유통이 편리하나 주요 교통은 철도와 비행기를 이용한다. 이 도시는 전형적인 [[정치도시]]로서, 취업인구의 태반은 정부기관 또는 그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있으며, 3차산업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인종차별이 없는 연방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흑인이 증가하여, 시민의 과반수는 흑인이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일반 자치제와는 달리, 연방직할이기 때문에 시장(市長)이 없었고, 시민은 종래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선거에서도 선거권이 없었으나, 1962년부터 대통령 선거권을 얻게 되었으며(실제로 1964년부터 행사), 또한 1967년부터 정부가 임명하는 시장을 갖게 되었다.제2차 세계대전 후 연방정부의 역할이 늘어남에 따라 워싱턴도 확대되어, 20세기 초에는 30만 명 정도였던 것이 1975년에는 72만이 되었다.<ref name="글로벌 워싱턴"/>
=== 건축 ===
[[파일:WhiteHouseSouthFacade.JPG|섬네일|[[백악관]]은 [[미국 건축학회]]가 선정한 미국인이 좋아하는 건축에서 2위로 뽑혔다.]]
워싱턴의 건축은 대단히 다양하다. 2007년 [[미국 건축학회]](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가 선정한 "미국인이 좋아하는 건축" 순위에서 상위 10위 건물 가운데 여섯 곳이 컬럼비아 구역에 있다.<ref>{{웹 인용 |1= |url=http://favoritearchitecture.org/afa150.php |제목=America's Favorite Architecture |확인날짜=2008-07-03 |연도=2007 |출판사=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 and Harris Interactive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510000000/http://favoritearchitecture.org/afa150.php# |보존날짜=2011-05-10 |url-status=dead }}</ref>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백악관]] (The White House)
* [[워싱턴 기념탑]] (The Washington Monument)
* [[토머스 제퍼슨 기념관]] (The Jefferson Memorial)
* [[미국 의회 의사당]] (The Capitol)
* [[링컨 기념관]] (The Lincoln Memorial)
*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관]] (The Vietnam Veterans Memorial)
이 여섯 건물과 워싱턴의 여러 유명한 건물들은 [[신고전주의]], [[조지 왕 시대 풍]](Georgian Architecture), [[고딕 건축|고딕]], [[현대 건축|현대 양식]]을 모두 반영하고 있다. [[프랑스 제2제국]] 양식의 [[미국 옛 행정부 청사|옛 행정부 청사]]나 [[미국 의회 도서관]]과 같은 예외적인 건물도 있다.<ref name=nps>{{웹 인용|url=http://www.nps.gov/nr/travel/wash/sitelist.htm |제목=Washington, D.C. List of Sites |확인날짜=2008-06-05 |출판사=[[National Park Service]] }}</ref>
워싱턴 시내에서 바깥으로 가면 건축 양식은 더욱 다양해진다. 오래된 건물에는 [[앤 여왕 시대 건축 양식]], [[샤토 양식]], [[리차드슨식 로마네스크]], 조지 왕 시대 재현 양식, [[보자르]], 또 여러 가지 [[빅토리아 양식]] 등이 나타난다. 줄지어 선 미국식 집합 주택(Rowhouse)도 이 지역에서 특히 눈에 띄는데, 이런 건물은 [[미국 남북 전쟁]] 이후 발달하여 전형적으로 [[연방 건축 양식]]과 후기 빅토리아풍을 따른 것이다.<ref>{{웹 인용||url=http://www.loc.gov/rr/print/adecenter/essays/Scott.html |제목=Residential Architecture of Washington, D.C., and Its Suburbs |확인날짜=2008-06-05 |성=Scott |이름=Pamela |연도=2005 |출판사=Library of Congress }}</ref> 조지타운은 워싱턴 시를 건설하기 전에 생긴 곳으로, 컬럼비아 구역의 가장 오래된 건축을 보인다. 조지타운의 [[옛 석조 주택]](Old Stone House)는 1765년에 건설되어 이 도시에 현존하는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ref>{{웹 인용|url=http://www.nps.gov/history/nr/travel/wash/dc17.htm |제목=Old Stone House |확인날짜=2008-07-22 |출판사=[[National Park Service]] }}</ref> 그러나 오늘날 근처의 가옥 대부분은 1870년대 이후에 건설된 것으로, 당대 후기 빅토리아 풍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1789년에 개교한 [[조지타운 대학교]]는 주변 건축보다 더욱 특별하며, 로마네스크풍과 [[고딕 재현 양식]]이 섞인 특징을 보인다.<ref name=nps /> [[로널드 레이건 건물]]은 컬럼비아 구역에서 가장 큰 건물로, 총면적이 약 288,000 제곱미터에 이른다.<ref>{{웹 인용 |url=http://www.itcdc.com/about.php |제목=About the Ronald Reagan Building |확인날짜=2011-02-12 |date=2006-07-19 |출판사=Ronald Reagan Building and International Trade Center |보존url=https://www.webcitation.org/619r4Bdgq?url=http://www.itcdc.com/about.php |보존날짜=2011-08-23 |url-status=dead }}</ref>워싱턴 DC는 뉴욕보다 건물들이 낮은데 그 이유는 워싱턴 기념탑보다 더 높은 탑을 세우지 못하도록 미국법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 정치 ==
워싱턴 D.C는 [[미국 대통령 선거|대통령 선거]]에서 단 한 번도 [[공화당 (미국)|공화당]]이 승리하지 못한 유일한 지역이다. 대통령 선거마다 [[민주당 (미국)|민주당]] 후보가 90%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하며,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2016년 대선]]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이 지역에서 92.8%의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하였다.<ref>{{웹 인용|url=https://edition.cnn.com/election/2016/results/states/district-of-columbia/president|제목=Full 2016 election results: District of Columbia presidential race|언어=en|확인날짜=2018-06-23}}</ref>
== 교육 ==
[[1789년]]에 창립한 [[예수회]] [[사립 대학]]인 [[조지타운 대학교]]와 [[1821년]]에 창립한 사립대학 [[조지 워싱턴 대학교]]와 [[연합감리회교회]]에서 설립한 [[아메리칸 대학교]]가 있다.
워싱턴 대학이 워싱턴 DC에 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워싱턴 주와 다른 특별 자치구이다.
== 스포츠 ==
워싱턴 D.C.를 연고로 하는 프로스포츠팀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의 [[워싱턴 내셔널스]], NBA 농구의 [[워싱턴 위저즈]], NFL 풋볼의 [[워싱턴 커맨더스]], NHL 아이스하키의 [[워싱턴 캐피털스]], 메이저 리그 사커의 [[D.C. 유나이티드]], WNBA 여자농구의 [[워싱턴 미스틱스]]가 있다.
== 인구 ==
{{US Census population
|1800= 8144
|1810= 15471
|1820= 23336
|1830= 30261
|1840= 33745
|1850= 51687
|1860= 75080
|1870= 131700
|1880= 177624
|1890= 230392
|1900= 278718
|1910= 331069
|1920= 437571
|1930= 486869
|1940= 663091
|1950= 802178
|1960= 763956
|1970= 756510
|1980= 638333
|1990= 606900
|2000= 572059
|2010= 601723
|estyear=2019
|estimate=705749
|estref=<ref name="USCensusEst2019">{{웹 인용|url=https://www.census.gov/programs-surveys/popest/data/tables.2019.html|title=Population and Housing Unit Estimates|access-date=May 21, 2020}}</ref>
|footnote=출처:<ref name="histpop">{{웹 인용|url=https://www.census.gov/population/www/documentation/twps0056/tab23.pdf |title=Historical Census Statistics on Population Totals By Race, 1790 to 1990 |access-date=August 13, 2011 |date=September 13, 2002 |publisher=[[미국 인구조사국]] |url-status=dead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10804230047/http://www.census.gov/population/www/documentation/twps0056/tab23.pdf |archive-date=August 4, 2011 }}</ref><ref name=Census2010>{{웹 인용|url=http://www.census.gov/2010census/popmap/ipmtext.php?fl=11|archive-url=https://archive.today/20130217133628/http://www.census.gov/2010census/popmap/ipmtext.php?fl=11|url-status=dead|archive-date=February 17, 2013|title=Resident Population Data|year=2010|publisher=United States Census Bureau|access-date=January 6, 2013}}</ref> 비고:{{efn|Until 1890, the Census Bureau counted the City of Washington, Georgetown, and unincorporated portions of [[Washington County, D.C.|Washington County]] as three separate areas. The data provided in this article from before 1890 are calculated as if the District of Columbia were a single municipality as it is today. Population data for each city prior to 1890 are available.<ref>{{웹 인용|url=https://www.census.gov/population/www/documentation/twps0027/twps0027.html|title=Population of the 100 Largest Cities and Other Urban Places in the United States: 1790 to 1990|access-date=July 29, 2008|last=Gibson|first=Campbell|date=June 1998|publisher=[[미국 인구조사국]]}}</ref>}}
|align=none
}}
== 자매 도시 ==
워싱턴 D.C.에는 15개의 [[자매 도시]]가 있다.<ref name=Sunderland>{{웹 인용 |url=http://os.dc.gov/service/dc-sister-cities |title=DC Sister Cities |publisher=D.C. Office of the Secretary |access-date=August 13, 2019 |archive-date=November 4, 2015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51104133547/http://os.dc.gov/service/dc-sister-cities |url-status=live }}</ref> 파리는 [[코뮌]]의 자매 도시 정책에 따라 파트너 도시로 인정된다.<ref>{{웹 인용 |url=http://www.paris.fr/portail/accueil/Portal.lut?page_id=6587&document_type_id=5&document_id=16467&portlet_id=14974 |제목=Le jumelage avec Rome |확인날짜=2008-07-09 |출판사=Municipalité de Paris |language=프랑스어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1216141833/http://www.paris.fr/portail/accueil/Portal.lut?page_id=6587&document_type_id=5&document_id=16467&portlet_id=14974 |보존날짜=2008-12-16 |url-status=dead }}</ref>
* {{국기나라|태국}} [[방콕]] (1962년)
* {{국기나라|세네갈}} [[다카르]] (1980년)
* {{국기나라|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시|베이징]] (1984년)
* {{국기나라|벨기에}} [[브뤼셀]] (1985년)
* {{국기나라|그리스}} [[아테네]] (2000년)
* {{국기나라|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 (2000년)
* {{국기나라|남아프리카 공화국}} [[프리토리아]] (2002년)
* {{국기나라|대한민국}} [[서울특별시]] (2006년)
* {{국기나라|가나}} [[아크라]] (2006년)
* {{국기나라|영국}} [[선덜랜드]] (2006년)
* {{국기나라|이탈리아}} [[로마]] (2011년)
* {{국기나라|튀르키예}} [[앙카라]] (2011년)
* {{국기나라|브라질}} [[브라질리아]] (2013년)
* {{국기나라|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2013년)
* {{국기나라|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 (2018년)
== 각주 ==
{{각주}}
; 내용주
<references group="lower-alpha" />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 {{언어링크|en}} [https://dc.gov/ 공식 홈페이지] {{웨이백|url=https://dc.gov/DC/ |date=20140428182725 }}
* {{세계날씨|270}}
{{미국}}
{{미국 주제}}
{{전거 통제}}
[[분류:워싱턴 D.C.| ]]
[[분류:북아메리카에 위치한 수도]]
[[분류:계획도시]]
[[분류:미국 남부]]
[[분류:워싱턴 도시권]]
[[분류:계획 수도]]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파일:Panorámica interior del Teatro Colón (cropped).jpg|섬네일|연극무대의 모습.]]
[[파일:Harlekin Columbine Tivoli Denmark.jpg|섬네일|공연 중인 배우들.]]
'''연극'''(演劇) 또는 '''극'''(劇)은 [[배우]]가 무대 장치{{.cw}}조명{{.cw}}음악 등의 도움을 받아 연출자의 지도 아래 각본에 의해서 연기를 하여 [[관객]]에게 보이는 종합 예술이다.<ref name="글로벌-극">[[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문학 용어/문학의 종류/극|언어I·한국문학·논술 > 문학 용어 > 문학의 종류 > 극]],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연기의 내용은 액션 (인물에 의해서 연기되는 사건)으로서 통일되며, 액션은 몇 개의 막(幕)으로 구분되고, 막은 다시 몇 개의 장(場)으로 세분되어 하나의 극을 형성하고 있다.<ref name="글로벌-극"/> 구성으로서는 발단{{.cw}}상승부{{.cw}}정점{{.cw}}하강부{{.cw}}종결 (또는 파국)의 5부로 이루는 것이 일반적인데, 옛날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삼일치의 법칙|삼일치의 설]]이 취해져서 시간{{.cw}}장소{{.cw}}플롯의 통일이 필수조건으로 되어 있었다.<ref name="글로벌-극"/>
극은 [[비극]]{{.cw}}[[희극]]으로 대별되고, 이와는 달리 [[희비극|비희극]](悲喜劇){{.cw}}[[사극]](史劇){{.cw}}[[시극]](詩劇)으로 구분하기도 한다.<ref name="글로벌-극"/> [[비극]]은 후에 표현형식은 변했으나 항상 영원적인 것, 즉 생사{{.cw}}자유{{.cw}}필연{{.cw}}죄{{.cw}}신 등을 테마로 하고 있다.<ref name="글로벌-극"/> [[희극]]은 [[비극]]의 영원적{{.cw}}근원적인 것에 대해서 일시적{{.cw}}현세(現世)적인 것, 즉 인간의 성정(性情)이나 행위의 모순{{.cw}}약점 또는 사회의 병폐 등을 테마로 하고, 전체적으로 명랑 경쾌한 기분이 충만하고 있다.<ref name="글로벌-극"/> [[희극]] 중 단순한 것은 [[보드빌]] (대중 연극)이나 [[소극]](笑劇)이라 불린다.<ref name="글로벌-극"/>
== 서설 ==
연극은 인류역사와 더불어 태어나서 인류멸망과 함께 죽어갈 공동운명을 지니고 있다. 연극이란 인간이 인간의 행위를 모방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세계연극의 큰 테두리 안에서 볼 때 연극은 다른 어떤 문화적 산물에 못지않게 역사적·지역적·민족적 소산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숨쉬고 있는 동안 연극은 밤낮에 따라 죽음과 부활을 반복할 것이다. '자정에 죽은 연극은 솟아오르는 태양과 함께 다시 태어난다' 함은 인류역사가 계속되는 동안 연극도 계속된다는 뜻 이외에, 일단 끝난 공연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되 다시 상연된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태어난 연극은 전날 자정에 죽은 연극과 동일한 것은 아니며, 다만 내용이 같을 따름이다.
연극은 육안으로 보는 순간에만 존재한다고 함은 연극의 특징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시나 소설이 활자화되어 그 원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연극은 공연이 끝나는 동시에 사라져 버리고 오직 상연대본과 프로그램, 무대사진, 평론 그리고 그 공연을 본 관객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연극이 순간적인 시간예술임에도 강렬한 힘을 지니고 있음은 살아 있는 인간, 즉 배우가 인간의 체험을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모방하기 때문이다. 연극은 어떠한 과거의 사건이라 할지라도 '현재'시간에서 진행되게 마련이며, 관객은 과거를 현재에서 체험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현재'에서 하나의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들)의 행위를 모방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직접적이고 감동적인 것은 없다.
{{인용문|"……원래 연극의 목적이란, 예나 이제나 자연을 향해 거울을 들어올려 정과 사(邪)를 있는 그대로 보이고 시대의 양상을 뚜렷이 보여주는 것이니……"|햄릿}}
[[햄릿]]의 이 말은 연극이 인간의 행위를 모방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많은 석학들의 이론을 뒷받침해 준다. 물론 모방에 대한 해석은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르고, 또 다를 수밖에 없으나, 모든 예술에 있어서 그렇듯이 고전적 해석은 타당한 바탕을 이룬다고 하겠다. 키케로는 이렇게 말한다.
{{인용문|"연극은 인생의 모사(模寫)요, 관습의 거울이요, 진리의 반영이다(Drama is a copy of life, a mirror of custom, a reflection of truth)."|키케로}}
그의 이론에 따르면 결국 연극이란 인생을 거울에 비추어 본 것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곧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모방한다는 뜻이다. 원래 [[드라마]]는 [[희랍어]]의 행위·행동에 해당하는 말로서, 행동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배우가 인간의 행위를 그대로 모방한다는 것이 바로 연극의 이념이다.
이와 같은 모방론은 19세기 사실주의자들의 예술관과 일치된다고 할 수 있다.
{{인용문|"연극이 있는 그대로를 모방하는 것이니만큼, 자기도 영웅과 함께 쓸모없는 인간을, 그리고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평범한 다반사를 삽입했노라"|[[에밀 졸라]], <테레즈 라캉>의 서문에서}}
역시 [[프랑스]]의 [[보마르셰]]도 졸라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연극이란 한낱 인생의 축도(縮圖)에 불과하다. 이들은 '미러 오브 네이처(Mirror of nature)'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무릇 예술가는 많은 소재 가운데서 어떤 특수한 부분을 선택한다. 따라서 선택은 기계적이 아닌, 작가의 예술적 창조력을 필요로 한다. 선택은 기교로서의 '아트(art)'와 예술가로서의 '아트'가 합쳐진 곳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연극은 소재의 선택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인물대사 속에 무한한 의미를 암시할 수 있는 전달력을 작가가 지닐 일이다.
극작가는 아티스트(artist)여야 한다. 한 걸음 나아가 모방론에 대한 좀더 광범위한 해석이 있어야겠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본원칙은, 예술은 모방이라는 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모방설에 대한 해석은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르다. 가령 <크롬웰>의 서문에서 말한 [[위고]]의 견해로는, 거울이 편편한 것이어서는 안 되며,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출 수가 있는 포커싱 미러(focusing mirror)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약한 빛이 강해지고 불꽃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연극이란 그럴 때에 비로소 예술 구실을 하게 된다고 결론짓는다. [[사르세이]](Sarcey)나 [[에델린]](Hedelin)의 이론 역시 위고(Hugo)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발전적인 견해이다. 에델린의 "연극이란 있었던 사건 그대로를 상연하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것을 상연해야 한다"는 이론은 극작가의 사상과 철학에까지 언급한 것이 된다.
사실 고전적 이론으로, 과거를 다루는 것이 역사라면 문학은 당위의 세계를 그리는 것이어야 한다. 이와 같은 전제는 모방설에 대한 졸라나 보마르셰의 해석에 대해서 수정을 가하게 만든다. 당위의 세계를 그려야 한다는 이론을 부연하는 또 하나의 이론을 [[브륀티에르]]의 연극론에서도 볼 수 있으니, 연극은 어떤 목표를 향해 애쓰는 인간의 의지를 그려야 된다고 그는 말한다. 그 의지란 당위의 세계를 이룩하려고 노력하는 의지임을 말한다. 이와 같은 고전적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세계연극은 제 나름의 길을 걸어오고, 또 걸어갈 것이지만, 그들의 연극이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어떻게 다르건 간에 인류역사가 변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극 역시 많은 변화 속에서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는 진리를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이 순간에 막이 내려, 죽어버린 연극이 내일 다시 되살아날 것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연극은 인간의 기다림 속에서 영원히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 연극의 구성 요소 ==
연극의 3요소는 관객, 배우, 희곡, 그리고 연극의 4요소라 할 때는 관객, 배우, 무대, 희곡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연극의 요소를 이런 식으로 구분짓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연극은 배우, 관객, 희곡 이외에도 수많은 요소들이 상호 유기적으로 결합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종합 예술이기 때문이다.
=== 대사 ===
[[드라마]]에는 보충 설명이 있을 수 없으므로 드라마의 대사는 간결, 명료하면서도 그 대사 중에 시간, 장소, 상황, 인물 들의 관계에 대한 정보를 다 모아야하는 부담이 있다. 드라마의 대사는 자연스럽게 정보를 제공함과 동시에 등장 인물들의 태도, 견해, 성격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극작가는 토론, 논쟁, 물음 등의 대사 형식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행동을 추측하고 예견케하며 그에 대한 복선을 까는 역할도 해야 한다. 소설 작가는 소설 속의 내레이터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지만 극작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고 다만 서로 맞물려 짜여진 대사를 통해 이야기의 결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 행동 ===
행동이란 등장 인물들이 취하는 액션(상단 참조)들의 그 실체라 할 수 있다. [[작가]]가 특정 행동을 명시하기도 하나 많은 부분은 연출자와 [[배우]]에게 담당되어있다. [[희곡]]을 '읽을 때'에는 관객 (독자)가 스스로 연출자가 되어 상상의 무대 위에서 [[배우]]를 움직이고 그들에게 대사에 맞는 제스처를 부여해야 하지만, 배우들이 직접 연기를 하는 극중에서는 대사와 행동에 유의하며 눈에 보이는 것을 기반으로 극을 올바르게 즐기면 된다.
소설의 기법이 [[드라마]]에 차용되기 이전인 19세기 전반 이전에 쓰여진 [[희곡]]의 경우 희곡에 무대 지시 사항이 최소화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는 대사 속에 암시되어있는 행동에 유념하며 작품을 읽어야 한다.
=== 이야기 ===
사람들이 연극을 보러가는 주요한 이유는 즐기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관객|관중]]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름다운 대사나 고상한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주는 '재미'이다. [[드라마]]에도 간혹 회상의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는 근본적으로 시간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축으로 한다.
극적 행동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만 그저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라 극작가에 의해 미리 치밀하게 계산된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하는 [[관객]]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외에 [[플롯]]의 역동적 구성을 위해서는 ‘왜 어떤 일이 일어날까’하는 점이 필수적이다.
=== 인물 ===
많은 경우에 우리가 문학에서 느끼는 흥미는 그 속에 나오는 인물들에 관한 것이다. [[드라마]]는 살아있는 [[배우]]들에 의해 작품 속의 인물들이 표현되는 점에서 인물들은 관객들의 주요한 관심과 흥미의 대상이다. 등장 인물에는 주인공과 주인공과 맞서는 인물이 있다.
주요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을 구별하는 손쉬운 방법은 대사의 길이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차이는 주인공의 경우 복잡한 동기와 과거를 지닌, 충분히 개성화된 인물임에 반해 그렇지 않은 인물들은 이렇다할 개성이 부여되지 있지 않다. 그러나 주인공의 성격이 간단명료하게 정의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예는 거의 없다. 주인공에게 성격을 부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은, 비록 믿을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름과 외모이다. 예컨대 「[[오셀로]]」에서 이야고를 부르거나 그에 대해 언급할 때면 ‘정직한’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성격 부여의 또 다른 방법은 한 개인의 행동 양식이다. 어떤 인물이 자신의 성격과 행동 동기를 방백이나 독백을 통하여 밝혀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사 중에 사투리, 어휘의 선택, 문법 등 모든 것이 합해져서 한 인물의 과거와 지성이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인물이 다른 인물들에게 보이는 반응이나 다른 인물들이 그 인물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에서도 성격이 드러난다.
우리의 경험이 증명하듯 지나칠 정도로 일관성 있는 인물은 일반적으로 사실성이 희박해 보인다. 아마도 문학 작품 속에서 훌륭한 성격 설정이라 함은 수긍은 가되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인물들일 것이다. 그들의 동기는 복잡 미묘하고 일견 모순되는 듯이 보이기조차 한다.
== 휴극일 ==
연극을 쉬는 것을 '휴극'이라고 한다. 휴극일은 연극에 따라서 다른 요일에 휴극하는 것도 있지만, 보통 연극은 뮤지컬과 마찬가지로 [[월요일]]에 쉰다.
== 역사 ==
{{본문|연극의 역사}}
* 인간의 유희 본능과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써의 몸짓, 손짓 (원시적 언어, 율동)
* 고대 사회의 종교적 의식 ([[그리스]]의 연극, [[디오니소스]]를 찬미)
== 같이 보기 ==
* [[연기 (예술)]]
* [[행위 예술]]
* [[인형극]]
* [[극장]]
* [[극단]]
* [[세계 연극의 날]]
* [[대학연극]]
== 각주 ==
<references/>
== 참고 문헌 ==
*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분류=문학}}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 [http://www.e-stc.or.kr/ 서울연극센터]
* [http://webzine.e-stc.or.kr 연극인]
* [https://ducksticket.com 덕스티켓]
* [https://www.instagram.com/spotlight_performance/ 스폿라잇]
{{전거 통제}}
[[분류:연극| ]]
[[분류:공연 예술]]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For|로마의 동격 신|유피테르}}{{신 정보
|분류 = 그리스
|이름 = 제우스<br />{{lang|el|'''Ζεύς'''}}
|그림 = Jupiter Smyrna Louvre Ma1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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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신들의 왕]]<br>하늘 · 번개 · 천둥 · 법 · 질서 · 정의의 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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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행 금지 끝}}</div>
|탈것 =
|로마동등신 = [[유피테르]]
|원시인도유럽동등신= [[디에우스]], [[페르쿠노스]]
|인도동등신= [[디아우스]], [[인드라]]
|슬라브동등신= [[데이보스]]
|노르드동등신= [[튀르]]
|이집트동등신= [[아문]]
}}
{{그리스 신화}}
'''제우스'''({{llang|el|'''Ζεύς'''}}, Zeus) 혹은 '''유피테르'''({{llang|la|'''Iuppiter''', '''Iupiter'''}}), '''주피터'''({{llang|en|'''Jupiter'''}})는 [[그리스 신화]]의 [[남신]]이자 주신(主神)이다. [[로마 신화]]의 [[유피테르]]와 동일시된다. [[크로노스]]와 [[레아 (그리스 신화)|레아]]의 막내아들이며 [[포세이돈]], [[하데스]] 등과는 형제지간이다. [[올림포스의 12신]]의 첫 번째 세대에 속한다. [[번개]]와 [[독수리]]가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긴 수염이 나 있는 강인하고 위엄있는 [[남성]]의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상체는 나신이며, 한쪽 손에는 번개 혹은 홀(笏)을 들고 있다. 제우스는 [[번개]]나 [[비 (날씨)|비]] 같은 기상 현상을 주재할 뿐만 아니라 세계의 질서와 정의를 유지하며, 왕권 및 사회적 위계질서를 보장하기도 한다. 또한 호색한이기도 한 그는 [[헤라]]의 질투에도 불구하고 여신이나 인간 [[여성]] 그리고 [[님프]]들과 차례대로 어울리는데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제우스의 이러한 호색한적 측면은 우주 만물은 [[주신]]의 힘과 질서와 정의를 바탕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우주에 [[주신]]의 힘과 질서와 정의가 미치지 않는 영역이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신화에 나오는 이름난 영웅들은 대부분 제우스의 후손들(또는 사생아들)이다. 특기할 만한 점은 제우스와 헤라 사이의 적자들보다 제우스의 사생아들이 그 능력이 훨씬 뛰어났다는 것이다. 한 예로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남신인 [[헤파이스토스]]는 손재주는 모든 신들 중 가장 뛰어나며 착하였던 반면 못생긴데다가 절름발이였으며, [[아레스]]는 전쟁의 신임에도 불구하고 성급하였다. 이에 비해 [[헤라클레스]]는 모든 신들 중 가장 힘에 세었으며, [[아폴론]]은 멋지고 지혜가 많았던 데다가 예술과 예언에 능하였으며, (우라노스에게서 태어난 아프로디테는 사랑과 미의 여신이고)제우스에게서 태어난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는 미모가 뛰어났으며, [[헤르메스]]와 [[아테나]]는 지혜가 있었다.
== 신화 ==
=== 탄생 ===
[[파일:Altes Museum - Antikensammlung 058.JPG|섬네일|200px|제우스|대체글=]]
제우스가 태어나기 전에 그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불길한 예언을 들었다. 아버지 [[우라노스]]처럼 크로노스 자신도 아들에 의해 쫓겨난다는 것이었다. 이 운명을 피하기 위해 크로노스는 아내인 [[레아 (신화)|레아]]에게서 자식들이 태어나자마자 족족 삼켜버렸다. 자식을 잃을 때마다 고통스러웠던 레아는 한 명이라도 구하고자 여섯 번째 아이를 출산할 때 아이 대신 돌덩이를 강보에 싸서 남편에게 건넸다. 그 돌덩이의 이름이 바로 [[:en:Omphalos|옴팔로스]]이다. 그리고 진짜 제우스는 [[아말테이아]]에게 맡겼다. 그렇게 제우스는 남매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 유년기 ===
레아는 제우스를 숨기기 위해 가이아의 조언에 따라 아무도 찾을 수 없는 크레타섬의 깊은 숲 속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쿠레테스라 불리는 정령들이 아기를 안전하게 지키게 했다. 정령들은 칼을 부딪치고 청동 방패들을 요란하게 두드리면서 아기의 울음소리를 감추었다. 이런 식으로 레아는 제우스가 성장해 어른이 될 때까지 무사히 지켜낼 수 있었다. 그리고 제우스는 아말테이아라는 염소(또는 님프)의 젖을 먹고 자랐는데, 하루는 아말테이아의 뿔을 가지고 놀다가 부러뜨렸다고 전해진다. 이에 미안해진 제우스는 아말테이아의 부러진 뿔을 풍요의 뿔로 만들어 주었다. 나중에 제우스는 아말테이아가 죽자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그녀를 [[하늘]]로 올려보내 [[염소자리]]로 만들어 주었다.
=== 티탄족과의 싸움(티타노마키아) ===
어른이 된 제우스는 신탁의 예언대로 아버지 크로노스를 폐위하고 신들의 왕이 되기로 결심했다. 우선 동료를 모으기 위해 아버지가 삼킨 형제들과 누이들을 되찾고자 그는 오케아노스의 딸 메티스로부터 구토제를 구해 어머니 레아에게 건네주었다. 레아는 제우스로부터 구토제를 받고 남편인 크로노스에게 자신이 직접 담근 술이라며 속이고, 레아에게서 받은 구토제를 마신 크로노스는 예전에 삼킨 모든 자식과 돌을 토해냈다.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이 그들이었다. 구출된 그들은 제우스와 힘을 합쳐 크로노스를 포함한 티탄 신들과 전쟁을 벌였다.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자식들인 퀴클로페스 형제와 헤카톤케이르 형제의 도움까지 받고 막판에 자신의 아들인 헤파이스토스가 자신의 삼촌들인 퀴클로페스들과 같이 벼락을 발명하여 이 벼락이라는 무기까지 얻게 된 올림포스 신들은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어 티탄 12신들을 대지의 가장 깊은 곳인 타르타로스에 가두었다.
== 가족 ==
[[파일:James_Barry_001.jpg|섬네일|250px|유피테르와 유노 - 제임스 베리 (1773년)]]
=== 제우스의 변신 ===
{| class="wikitable"
|+
!연인
!변장
|-
|[[헤라]]
|뻐꾸기
|-
|[[에기나|아이기나]]
|독수리 혹은 불꽃
|-
|[[알크메네]]
|[[암피트리온]]
|-
|[[안티오페 (신화)|안티오페]]
|[[사티로스]]
|-
|아소피스
|불꽃
|-
|[[칼리스토 (신화)|칼리스토]]
|[[아르테미스]]
|-
|카시오페이아
|[[포이닉스 (신화)|포에닉스]]
|-
|[[다나에]]
|황금비
|-
|[[에우로페]]
|황소
|-
|에우리메두사
|개미
|-
|[[가니메데스|가니메데]]
|독수리
|-
|아이만드라
|비
|-
|[[라미아 (신화)|라미아]]
|댕기물떼새
|-
|[[레다]]
|백조와 별
|-
|만티아
|곰
|-
|[[므네모시네]]
|양치기
|-
|[[네메시스]]
|거위
|-
|[[페르세포네]]
|큰 뱀
|-
|[[세멜레]]
|불
|-
|탈리아
|큰 독수리
|}
=== 부인 및 연인과 아이들 ===
==== 신 ====
* [[헤라]] - 결혼과 가정, 여성의 여신으로 제우스의 7번째 부인이자 정실부인이다.
** [[헤파이스토스]] - 신들 중 최고의 손재주를 지녔다. 대장간과 불, 세공기술의 신이다. 렘노스에서 가장 크게 추앙받았다.
** [[아레스]] - 전쟁의 신이며 잔인하다. 살육과 광기, 야만의 신이다.
** 에일레이투이아 - 출산의 여신이다. 호메로스에서는 여러 여신을 일컫는 명사로 나온다.
** [[헤베]] - 청춘의 여신이다. 후일 신이 된 헤라클레스의 아내가 된다.
* [[메티스 (신화)|메티스]] - 오케아노스의 딸로 지혜가 뛰어났다. 제우스의 첫번째 아내로, 제우스가 가이아에게서 그녀가 밴 제우스의 자식이 새로운 권력자가 된다는 예언을 듣고, 그녀를 삼켜버린다.
** [[아테나]] - 지혜와 전쟁의 여신이다. 기술(특히 직조기술)과 학문의 여신이기도 하다. 제우스가 가장 사랑한 딸로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다. 도시국가 아테나이의 수호신이었다. 제우스의 방패(또는 흉갑) 아이기스를 지니고 완전무장한 채로 다녔다. 아레스가 무조건적이고 대책없는 전쟁신인데 비해 아테네는 전략적인 전쟁의 전쟁신이었다.
* [[데메테르]] - 대지와 곡식의 여신이다.
** [[페르세포네]] - [[하데스]]에 의해 납치되어 하데스의 아내가 되었다. 겨울 한철 동안 하데스와 동거하다가 봄이오면 지상으로 돌아와 어머니 데메테르와 함께 지냈다.
* [[디오네 (신화)|디오네]] - 오케아노스의 딸로, 도도네에서 제우스와 함께 그의 아내로 숭배받았다.
** [[아프로디테]] - 사랑과 아름다움, 풍요의 여신이다. 제우스와 디오네 사이에서 태어났다고도 하고, 바다에 떨어진 우라노스의 잘린 남근에서 태어났다고도 한다.
* [[레토]] - 제우스의 6번째 아내로 헤라 다음 가는 여신이었다.
** [[아폴론]] - 광명과 신탁, 궁술과 음악, 문학과 목축, 운동과 청소년의 신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미남 신이었다. 아버지인 제우스 못지않은 바람둥이 신이었다. 델포이와 델로스가 그의 성지였다.
** [[아르테미스]] - 사냥과 동물, 임신과 출산, 달과 처녀의 여신이다. 사냥을 즐기고 결혼을 거부하는 처녀신이었다. 에페소스와 델로스가 그녀의 성지였다.
* [[마이아 (신화)|마이아]] - 아틀라스와 플레이오네 사이에서 태어난 플레이아데스 여신들 중 하나였다.
** [[헤르메스]] - 신들의 사자로, 전령, 여행, 나그네, 장사, 사기, 도둑질, 지혜, 과학, 목축, 운동의 신이었다. 제우스의 전령이었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이었다.
* [[테미스]] - 법과 질서, 율법의 여신으로 티타니데스 중 하나이다.
** [[아스트라이아]] - 정의의 여신. 항상 저울을 들고 다녔다.
** [[네메시스]] - 복수(애정의 복수)의 여신이다. 하데스의 수하이다.
** [[호라이]] - 계절과 시간, 때(時)의 여신으로 에이레네, 디케, 에우노미아를 말한다.
** [[모이라이]] - 운명의 여신들로, 제우스조차 이들의 권한을 침범하지 못했다. 클로토, 라케시스, 아트로포스를 말한다.
* [[므네모쉬네]] - 기억력의 여신으로 티타니데스 중 하나이다.
** [[무사이]] - 단수는 무사로, 문학과 예술, 음악의 여신들이었다. 칼리오페(서사시), 클레오(역사, 역사시), 에라토(서정시, 연가), 탈리아(희극), 멜포메네(비극), 우라니아(천문학), 폴륌니아(신화, 무언극), 에우테르페(합창), 테릅시코레(춤, 합창)을 말한다.
* [[에우리노메]] - 오케아노스의 딸로 제우스의 3번째 아내이다.
** [[카리테스]] - 우아함과 미의 여신들로 아글라이아와 에우프로쉬네, 탈리아를 말한다.
==== 님프 및 인간 ====
* [[다나에]]
** [[페르세우스]] - 훗날 아테네의 신탁에 의하여 [[메두사]]를 참수한다.
* [[아이기나 (신화)|아이기나]]
** [[아이아코스]]
* [[알크메네]]
** [[헤라클레스]] - 힘이 가장 셌으며, 올림포스로 쳐들어 온 거인 [[기가스]]들과의 전쟁인 기간토마키아에서 큰 공을 세운다. 12과업을 세우고 올림포스로 올라가 신이 되었다.
* [[에우로페 (신화)|에우로페]]
** [[미노스]] - 크레테 섬의 왕이었으나, [[다이달로스]]의 꾐에 빠져 화상을 입어 죽는다.
** [[라다만튀스]]
** [[사르페돈 1세|사르페돈]]
* [[라오다미아]]
** [[사르페돈 2세|사르페돈]] -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했으나, [[아킬레우스]]의 친구인 [[파트로클로스]]에게 일격에 사살되었다.
* [[이오 (신화)|이오]]
** [[에파푸스]]
* [[라미아 (신화)|라미아]]
* [[레다]]
** [[폴뤼데우케스]]
** [[헬레네]] - 트로이아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 [[세멜레]] - 테베의첫 왕인 카드모스와 [[아레스]]와 [[아프로디테]] 딸 [[하르모니아]]의 딸이다.
** [[디오니소스]] - 술과 축제, 연극과 광기, 과일과 포도주, 풍요와 다산의 신이다. 자그레우스라고도 불리며,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태어났다. 동방에서 사튀로스와 마이나데스를 이끌고 신들의 대열에 가장 늦게 합류한 신이다. 담쟁이 덩굴 관을 쓰고 튀르소스라는 솔방울이 달린 지팡이를 가지고 다닌다.
* [[니오베]]
** [[아르고스]]
** [[펠라스고스]]
* [[올림피아스 (그리스)|올림피아스]]
** [[알렉산드로스 대왕]]
* [[칼리스토 (신화)|칼리스토]]
** [[아르카스]]
== 갤러리 ==
<gallery>
파일:Marie_Pierre_Abduction_of_Europa.JPG|에우로페를 납치하는 제우스
파일:Calyx-krater_olympian_assembly_MAN.jpg|신들의 집회, 왼쪽부터 아폴론, 제우스, 헤라
</gallery>
== 같이 보기 ==
* [[헤라]]
* [[디에우스 파테르]]
* [[인드라]] — 벼락을 무기로 쓰는 힌두교의 신.
* [[그리스 신들의 가계도]]
== 각주 ==
<references/>
== 외부 링크 ==
{{위키공용|Zeus}}
* [https://archive.today/20120530154410/homepage.mac.com/cparada/GML/Zeus.html Greek Mythology Link, Zeus]
* [https://web.archive.org/web/20100531022355/http://www.theoi.com/Olympios/Zeus.html Theoi Project, Zeus]
* [http://www.theoi.com/Cult/ZeusCult.html Theoi Project, Cult Of Zeus]
* [http://www.everythingimportant.org/altarOfZeus Pictures of the Altar of Zeus and its meaning in Scripture] {{웨이백|url=http://www.everythingimportant.org/altarOfZeus |date=20070205084503 }}
* [http://news.nationalgeographic.com/news/2007/01/070122-pagans-athens.html Photo: Pagans Honor Zeus at Ancient Athens Temple]
{{그리스 신들}}
{{전거 통제}}
[[분류:제우스| ]]
[[분류:그리스의 남신]]
[[분류:천둥의 남신]]
[[분류:천공의 남신]]
[[분류:정의의 남신]]
[[분류:올림포스 12신]]
[[분류:목성의 신]]
[[분류:최고신]]
[[분류:가이아의 배우자]]
[[분류:신화의 강간범]]
[[분류:크로노스의 자식]]
[[분류:아프로디테의 배우자]]
[[분류:행성의 남신]]
[[분류:신들의 왕]]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알찬 글}}
{{국기 정보
| 이름 = 연방기 ({{lang|de|Bundesflagge}})
| 그림 = Flag of Germany.svg
| 용도 = 국기, 민간기, 상선기 {{FIAV|110100}} {{FIAV|normal}}
| 비율 = 3:5
| 채택일 = 1949년 5월 23일
| 요소 = 검정색, 빨간색, 황금색 가로 줄무늬 [[삼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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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소2 = 제비 꼬리 모양을 한 민간기 가운데에 독일의 국장이 그려져 있음
| 국기_경계선2 = no
}}
'''독일의 국기'''({{llang|de|Flagge Deutschlands|플라게 도이칠란드}})는 [[독일]]의 [[독일의 국색|국색]]인 [[검정색]], [[빨간색]], [[황금색]]({{lang|de|Schwarz-Rot-Gold|슈바르츠-로트-골트}}) 3색의 가로 줄무늬가 같은 비율로 배치된 [[삼색기]]이다.<ref>{{웹 인용|url=http://www.gesetze-im-internet.de/bundesrecht/flaggano_1996/gesamt.pdf|제목=Anordnung über die deutschen Flaggen, dated 13.11.1996|언어=독일어|확인날짜=2012년 2월 14일|인용문=Die Bundesflagge besteht aus drei gleich breiten Querstreifen, oben schwarz, in der Mitte rot, unten goldfarben [연방기(독일의 국기)는 폭이 같은 3개의 가로 줄무늬로 구성되어 있다. 위쪽은 검정색, 가운데는 빨간색, 아래쪽은 황금색이다.]}}</ref> 이 기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였던 1919년에 처음 [[국기]]로 지정되었다. 별칭은 '''연방기'''({{lang|de|Bundesflagge|분데스플라게}})이다.<ref>http://bundesrecht.juris.de/gg/art_22.html,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 제22조 (Artikel 22 des Grundgesetzes für die Bundesrepublik Deutschland)</ref>
[[독일 연방]] 시대에 처음 등장한 흑적금 삼색기는 [[나폴레옹 전쟁]] 시대에 독일의 군인들이 입었던 황금색 단추, 빨간색 장식이 달린 검은 제복에서 유래되었다. 흑적금 삼색기는 1817년에 예나에서 결성된 학우회에서 암호 역할을 했고 1832년에 일어난 군중들의 시위에서 다시 등장했다. [[1848년 독일 혁명]]을 계기로 수립된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가 이 삼색기를 민주적인 통일 독일 국가의 기로 제안했지만 국기로서의 사용은 지속되지 않았다.
1918년에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전과 함께 독일 제국이 붕괴되면서 흑적금 삼색기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국기로 지정되었으나 1933년에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을 잡으면서 사라졌다. 1945년에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이후에 연방기는 1949년에 [[서독]]과 [[동독]] 쌍방의 국기로 지정되었다. 서독과 동독은 1959년까지 똑같은 국기를 사용했으나 동독은 1959년부터 국장을 추가한 국기를 사용했다. 1990년 10월 3일을 기해 서독과 동독이 [[독일의 재통일|재통일]]됨으로써 흑적금 삼색 연방기는 재통일된 독일의 국기가 되었다.
독일의 국기가 항상 흑적금 삼색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1866년에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 왕국]]을 맹주로 하여 형성된 [[북독일 연방]]은 검은색, 하얀색, 빨간색 삼색기를 국기로 지정했는데 이는 1871년에 [[독일의 통일]]을 계기로 형성된 [[독일 제국]]의 국기로도 사용되었다. [[나치 독일]]은 1933년부터 1935년까지 흑백적 삼색기를 다시 국기로 사용했고 1935년에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의 당기를 국기로 사용했다.
흑적금과 흑백적 삼색은 [[독일의 역사]]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현재 사용되는 흑적금 삼색기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 성립된 [[민주공화국]]과 관련이 있으며 독일의 단결과 자유를 상징한다. 이 자유란 독일이라는 국가의 자유 뿐 아니라 독일 국민의 개인적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ref name="Bundestag2004">{{웹 인용|url=http://www.bundestag.de/blickpunkt/105_Unter_der_Kuppel/0409014.html|제목=Schwarz Rot Gold. Symbol der Einheit|저자=[[독일 연방의회]] (Federal Parliament of Germany)|언어=독일어|날짜=2004년 12월 15일|확인날짜=2007년 5월 29일|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90707084427/http://www.bundestag.de/blickpunkt/105_unter_der_kuppel/0409014.html|보존날짜=2009년 7월 7일|url-status=dead }}</ref>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에 흑적금 삼색은 극우와 극좌 진영에 대하여 [[민주주의]], [[중도주의]], [[공화주의]]를 표방한 정당의 색깔이었다. [[독일 사회민주당|사회민주당]], [[독일 중앙당|중앙당]], [[독일 민주당|민주당]]의 당원들이 좌익과 우익의 극단분자들로부터 공화국을 수호하기 위해 결성한 준군사조직인 [[흑적금 국기단]]({{lang|de|Reichsbanner Schwarz-Rot-Gold}})은 그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듯 사람들에게 공화국과 그 국기, 그리고 [[바이마르 헌법]]에 대한 경의를 가르치려 했다.
== 기원 ==
[[파일:Maerz1848 berlin.jpg|섬네일|흑적금 삼색기의 기원: [[1848년 독일 혁명]](1848년 3월 19일 [[베를린]]).]]
독일과 흑적금 삼색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18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흑적금 삼색기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몰락 이후에 유럽에서 성립된 반동주의 질서에 대항하는 운동의 상징이었다.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는 흑적금 삼색을 [[독일 연방]]의 공식 색으로 선언했다. 아마도 빨간색은 [[한자 동맹]]을, 금색과 검은색은 당시 남부 독일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제국]](당시까지만 해도 “독일”의 일부로 간주됨)을 상징한 것으로 생각된다.
1848년 제정된 기의 색채 조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일설에는 [[카를스바트 결의]]에서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후작]]에 의해 금지된 급진 대학생 단체인 [[부르셴샤프트]]의 색이라고 하는데 이들 색상은 [[요하네스 브람스]]가 [[대학 축전 서곡]]에서 인용한 아우구스트 다니엘 폰 빈처의 시 〈예나 학생 동맹의 해산에 관하여〉(Zur Auflösung der Jenaer Burschenschaft)에도 등장한다.<ref>{{웹 인용|url=http://www.ingeb.org/Lieder/wirhatte.html|제목=Zur Auflösung der Jenaer Burschenschaft / Wir hatten gebauet ein stattliches Haus free midi mp3 download Strand Hotel Sechelt bed breakfast|웹사이트=www.ingeb.org}}</ref> 또다른 주장으로는 나폴레옹 정복군에게 맞서 저항한 대학생 단체인 [[뤼초프 자유군단]]의 제복(금색 단추에 빨간색 안단이 달린 검은색 옷이 다수였음)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도 한다. 이 해석들 가운데 무엇이 진실이든 간에, 흑적금 삼색은 이 짧은 기간 동안 독일의 국가색으로 받아들여졌고 [[바이마르 공화국]] 성립 당시에 재도입되어 대체로 [[사회적 자유주의]]를 의미하게 되었다.<ref>{{웹 인용|url=https://everythingaboutgermany.com/germany-country-information/the-flag-of-germany/|제목=The Flag of Germany|날짜=2011년 8월 25일|보존날짜=2010년 6월 29일|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00629012856/http://www.everythingaboutgermany.com/Germany-Flag.html|url-status=dead|저자=The German Tourists|웹사이트=Germany Tourism and Travel by Everything about Germany}}</ref>
== 기의 변형 ==
{{본문|독일의 기 목록}}
=== 민간기 ===
[[파일:Berlin reichstag CP.jpg|섬네일|“독일 통일기”는 [[독일 재통일]]의 국가기념물로, 1990년 10월 3일에 게양되었다. 이 기는 [[베를린]] [[국회의사당 (독일)|국회의사당]] 앞에서 나부끼고 있다.]]
검정, 빨강, 금색 3가지 색의 가로 줄무늬로만 구성된 독일의 국기 또는 연방기({{lang|de|Bundesflagge|분데스플라게}})는 1949년에 제정되어 독일(서독 시절 포함)의 헌법 역할을 하는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을 통해 도입되었다.<ref name="constitutionDE" /> 이후에 정부기와 군기가 새로 생기면서 단순한 삼색기는 현재 독일의 민간기와 상선기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비연방 당국이 연방 정부와의 연결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독일의 주]]들은 독일의 국기와 주기를 함께 사용한다.
=== 정부기 ===
[[파일:State flag of Germany.jpg|섬네일|왼쪽|[[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 주재 독일 대사관에 게양된 연방직무기]]
[[파일:Flag of Germany (unoff).svg|섬네일|오른쪽|국장을 추가한 형태를 띤 독일의 비공식 국기]]
독일의 정부기는 공식적으로 '''연방당국직무기'''({{llang|de|Dienstflagge der Bundesbehörden|딘스트플라게 데어 분데스베회르덴}}) 또는 '''연방직무기'''({{lang|de|Bundesdienstflagge|분데스딘스트플라게}})로 알려져 있다. 1950년에 도입된 정부기는 민간기 가운데에 연방방패({{lang|de|Bundesschild|분데스실트}})가 추가된 디자인인데, 방패는 검은색과 금색 줄무늬 너비의 1/5까지 덮는다.<ref name="flag1950" /> 연방방패는 [[독일의 국장]]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국장과의 차이점은 독수리와 방패의 모양이 다른 것인데 연방방패는 바닥이 둥글지만 국장의 방패는 바닥이 뾰족하다.
독일의 연방직무기는 연방 정부 당국에서만 사용될 수 있고 민간인이 사용하는 것은 불법으로 간주되어 벌금형에 처해진다.<ref>{{웹 인용|url=http://bundesrecht.juris.de/owig_1968/__124.html|제목=§ 124 OWiG: Benutzen von Wappen oder Dienstflaggen|저자=독일 연방 정부 (Federal Government of Germany)|언어=독일어|날짜=1968년 5월 24일|확인날짜=2008년 2월 24일}}</ref> 하지만 연방직무기와 비슷하게 생긴 기(예를 들어 연방방패 대신에 독일의 국장이 들어있는 디자인)의 개인적인 사용은 눈감아 주고 있는데 그러한 기는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자주 볼 수 있다.
=== 세로기 ===
[[파일:Flag of Germany (Hanging).svg|섬네일|왼쪽|upright=0.5|세로 민간기]]
[[파일:Flag of Germany (Hanging state flag).svg|섬네일|upright=0.5|세로 정부기]]
일반적인 가로기 이외에도 독일의 많은 공공 건물들은 세로기를 사용한다. 독일의 많은 시청들은 국기와 함께 시기를 게양하는데 그 이유는 독일의 많은 시기들이 세로 형태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로기의 비율은 따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 1996년에는 정부기를 세로로 배치한 디자인이 제정되었다. 정부기를 세로로 게양할 때에는 연방방패가 기의 중앙에 위치하고 검은색과 금색 띠 너비의 1/5 가량을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ref name="flag1996">{{웹 인용|저자=독일 연방 정부 (Federal Government of Germany)|url=http://bundesrecht.juris.de/flaggano_1996/BJNR172900996.html|제목=Anordnung über die deutschen Flaggen|웹사이트=Gesetze im Internet|언어=독일어|날짜=1996년 11월 13일|확인날짜=2008년 2월 26일}}</ref> 현수막처럼 게양할 때에는 오른쪽 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검은색 줄무늬가 왼쪽, 금색 줄무늬가 오른쪽을 향하도록 게양해야 한다. 세로 방향의 깃대에 게양할 때에는 검은색 줄무늬가 깃대와 접하고 있어야 한다.<ref name="hangingflag">{{웹 인용|url=http://www.fotw.info/flags/de_hoist.html |title=Flag hoisting formats and terminology (Germany, Austria, and adjacent countries)|웹사이트=Flags of the World|날짜=2001년 10월 26일|확인날짜=2008년 2월 24일|url-status=live|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0209123942/http://www.fotw.net/flags/de_hoist.html|보존날짜=2008년 2월 9일}}</ref>
=== 군기 ===
[[독일 연방방위군]]({{lang|de|Bundeswehr|분데스베어}})은 연방 정부에 소속된 조직이기 때문에 연방직무기는 육상 전투에서도 사용된다. 1956년에는 해군 함미기인 '''연방해군직무기'''({{lang|de|Dienst flagge der Seestreitkräfte der Bundeswehr|딘스트 플라게 데어 제슈트라이트크레프테 데어 분데스베어}})가 제정되었다. 이 기는 연방직무기의 오른쪽 끝 부분이 제비 꼬리 모양으로 갈라진 모양을 띠고 있다.<ref name="navyflag">{{웹 인용|url=http://www.gesetze-im-internet.de/bpr_sflaggenano/BJNR004470956.html|제목=Anordnung des Bundespräsidenten über die Dienstflagge der Seestreitkräfte der Bundeswehr|저자=독일 연방 정부 (Federal Government of Germany)|웹사이트=Gesetze im Internet|언어=독일어|날짜=1956년 5월 25일|확인날짜=2008년 2월 10일}}</ref> 이 함미기는 함수기로도 사용된다.
{{-}}
== 디자인 ==
[[파일:Flag of Germany - dimensions.svg|섬네일|upright=1.5|독일의 국기 규격]]
독일의 헌법인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 제22조는 독일의 국기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blockquote>연방기는 검은색, 빨간색, 금색이다. (Die Bundesflagge ist schwarz-rot-gold.)<ref name="constitutionDE">Basic Law for 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 (1949년 5월 23일). [http://www.documentarchiv.de/brd/1949/grundgesetz.html German version] and [https://web.archive.org/web/20080625041054/http://www.bundestag.de/htdocs_e/parliament/function/legal/germanbasiclaw.pdf English version (December 2000) (PDF)]. See Article 22. Retrieved on 24 February 2008. {{웹아카이브|url=https://web.archive.org/web/20080227112926/http://www.bundestag.de/htdocs_e/parliament/function/legal/germanbasiclaw.pdf|날짜=2008년 2월 27일}}</ref></blockquote>
1950년에 공개된 서독 정부의 설명에 따르면 연방기는 너비가 동일한 3개의 가로 줄무늬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가로세로비는 3:5이다.<ref name="flag1950">{{웹 인용|url=http://www.documentarchiv.de/brd/1950/deutsche-flaggen_ao.html|제목=Anordnung über die deutschen Flaggen|저자=독일 연방 정부 (Federal Government of Germany)|웹사이트=documentArchiv.de|언어=독일어|날짜=1950년 7월 7일|확인날짜=2007년 8월 9일}}</ref>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사용된 삼색기의 비율은 2:3이었다.<ref name="flag1921">{{웹 인용|url=http://www.documentarchiv.de/wr/1921/flaggen1921_vo.html|제목=Verordnung über die deutschen Flaggen|저자=Government of the German Reich|날짜=1921년 4월 11일|웹사이트=documentArchiv.de|언어=독일어|확인날짜=2007년 8월 9일}}</ref>
독일의 국기에 사용되는 색인 “검정-빨강-금색”이 색상 체계에서 정확히 어떤 색인지에 대해서는 국기 제정 당시에는 공식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ref name="FOTWcolor">{{웹 인용|url=https://www.crwflags.com/fotw/flags/de_color.html|제목=Colors of the Flag (Germany)|웹사이트=Flags of the World|날짜=1998년 8월 5일|확인날짜=2008년 2월 24일}}</ref><ref>{{웹 인용|url=https://www.crwflags.com/fotw/flags/de.html#his|제목=Historical Use of the Current Flag|웹사이트=Flags of the World|확인날짜=2019년 1월 8일}}</ref> [[독일 연방내각]]은 1999년 6월 2일에 독일 정부 브랜드 디자인을 도입하면서 독일의 국기에 사용되는 공식적인 사양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ref name="govt_design">{{웹 인용|url=http://styleguide.bundesregierung.de/index_de.html?Content=basiselemente/farben/primaerfarben_de.html|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70926233554/http://styleguide.bundesregierung.de/index_de.html?Content=basiselemente%2Ffarben%2Fprimaerfarben_de.html|보존날짜=2007년 9월 26일|제목=Primärfarben |work=Corporate Design Documentation|저자=독일 연방 정부 (Federal Government of Germany)|언어=독일어|날짜=2007년 12월 17일|확인날짜=2008년 2월 26일|url-status=dead}}</ref><ref>{{웹 인용|제목=Styleguide der Bundesregierung|url=https://styleguide.bundesregierung.de/sg-de/hidden/suche/farben-318376|웹사이트=Bundesregierung|확인날짜=2020년 6월 26일|보존날짜=2020년 6월 15일|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200615221640/https://styleguide.bundesregierung.de/sg-de/hidden/suche/farben-318376|url-status=live}}</ref>
{| class="wikitable"
|-
! 색상 체계
! colspan="2" style="width:250px;"|검정 ({{lang|de|Schwarz|슈바르츠}})
! colspan="2" style="width:250px;"|빨강 ({{lang|de|Rot|로트}})
! colspan="2" style="width:250px;"|금색 ({{lang|de|Gold|골트}})
|- align=center
| [[RAL (색공간 체계)|RAL]]
| rowspan="6" style="background:#000000; width:20px;"|
| 9005<br />흑옥색 (''Jet black'')
| rowspan="6" style="background:#FF0000; width:20px;"|
| 3020<br />적신호 (''Traffic 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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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1<br />[[유채]] 노랑 (''Rapeseed yellow'')
|- align=center
| [[HKS (색공간 체계)|H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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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ign=center
| [[CMYK]]
| 0-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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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ign=center
| [[팬톤]] (근사값)
| Black
| 485
| 7405{{efn|여기에 제시된 값은 다음과 같은 복잡한 조합에 대한 대안이다: 노랑 (765g), 빨강 032 (26g), 검정 (11g), 투명한 하양 (198g).}}
|- align=center
| [[웹 색상]]
| #000000
| #FF0000
| #FFCC00{{efn|온라인 사용을 위한 권장 RGB 값이다.}}
|- align=center
| [[RGB]]
| 0-0-0
| 2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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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telist}}
[[파일:Schwarz Rot Gold.svg|섬네일|{{FIAV|historical}} 금색 가로 줄무늬를 금속성 금색으로 표시한 독일의 국기. 이 버전은 독일 연방 정부가 1999년에 현재의 색상 체계를 도입하기 이전에 일부 공식 간행물에서 사용되었다.]]
=== 색상 ===
[[기학]]에서는 금색과 노란색을 거의 구별하지 않는다. [[문장학]]에서도 둘 다 ‘오르’(Or, [[프랑스어]]로 ‘금’이라는 뜻)라고 한다. 하지만 독일의 국기에서는 금색과 노란색이 구별된다. 이는 독일의 국기에 사용되는 색은 금색이지, 노란색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흑적금 삼색기가 국기로 채택되던 당시에 [[보수주의|보수파]], [[군주주의|왕당파]], [[극우|극우파]] 진영에서 공격을 받았는데 그들은 이들 색상을 “검은색-빨간색-누렁색”({{lang|de|Schwarz-Rot-Gelb|슈바르츠-로트-겔프}}), 심지어 “검은색-빨간색-겨자색”({{lang|de|Schwarz-Rot-Senf|슈바르츠-로트-젠프}}), “검은색-빨간색-똥색”({{lang|de|Schwarz-Rot-Scheiße|슈바르츠-로트-샤이세}})이라고 부르면서 공격했다.<ref name="Dreyhaupt2000">{{언어링크|de}} {{저널 인용|성=Dreyhaupt|이름=Rüdiger F.|연도=2000년|제목=Flags of the Weimar Republic|저널=Der Flaggenkurier|호=11|쪽=3-17}}</ref> 1933년에 나치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제국 시절인 1918년 이전에 사용되었던 흑백적 삼색이 재도입되었는데 나치당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명예를 떨어뜨리기 위해 과거 왕당파들과 마찬가지로 선전 과정에서 흑적금 삼색을 비하·경멸하는 표현을 사용했다.<ref name="court1959" />
1959년 11월 16일에 [[연방헌법재판소|독일 연방사법재판소]]({{lang|de|Bundesgerichtshof|분데스거리히츠호프}})가 독일의 국기 색을 “검은색-빨간색-노란색”이라고 부르는 행동이 나치 시절에 이루어진 민주주의의 상징에 대한 악의적인 모욕이라고 판결함으로써 금색이 아닌 노란색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불법이 되었다.<ref name="court1959">{{언어링크|de}} Federal Court of Justice of Germany (16 November 1959). 3 StR 45/59.</ref> 1968년에는 독일의 문장학자인 아르놀트 라보프(Arnold Rabbow)는 “독일의 국가색은 검은색-빨간색-노란색이지만 독일인들은 검은색-빨간색-금색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ref name="Rabbow1968">{{저널 인용|성=Rabbow|이름=Arnold|연도=1968년|제목=Schwarz–Rot–Gold oder Schwarz–Rot–Gelb?|언어=독일어|저널=Neue Heraldische Mitteilungen / Kleeblatt-Jahrbuch|위치=Hanover|호=6+7|쪽=30–32}}</ref>
== 국기 게양일 ==
[[파일:MuensterStadtweinhaus.jpg|섬네일|2006년에 [[요하네스 라우]] 전 독일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에 [[뮌스터]]에 위치한 슈타트바인하우스({{lang|de|Stadtweinhaus}})에 게양된 독일의 국기 끝 부분에 애도를 의미하는 검은 리본이 달려 있다.]]
독일에는 국기를 게양하는 날({{lang|de|Beflaggungstage|베플라궁스타게}})이 많다. 2005년 3월 22일에 제정된 독일의 연방 법령에 따라 다음과 같은 날짜에 공공 건물에서 반드시 국기를 게양해야 한다. 이날 모두가 공휴일인 것은 아닌데 공휴일은 5월 1일과 10월 3일뿐이다.
{| class=wikitable style="font-size:85%"
|-
! 날짜
! 명칭
! 사유
|-
| 1월 27일
| 국가사회주의 희생자 추념일<br />{{lang|de|Tag des Gedenkens an die Opfer des Nationalsozialismus}}
| 1945년에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가 해방된 날이다. 유엔에서는 이 날을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로 지정했다. (조기로 게양)
|-
| 5월 1일
| [[노동절]]<br />{{lang|de|Tag der Arbeit}}
| 독일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복지를 증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통해 제정했다.
|-
| 5월 9일
| [[유럽의 날]]<br />{{lang|de|Europatag}}
| 1950년에 [[유럽 연합]] 창설의 계기가 된 [[슈만 선언]]이 발표된 날이다.
|-
| 5월 23일
| [[제헌절]]<br />{{lang|de|Grundgesetztag}}
| 1949년에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이 제정된 날이다.
|-
| 6월 17일
| 1953년 6월 17일 기념일<br />{{lang|de|Jahrestag des 17. Juni 1953}}
| [[1953년 동독 폭동 사태]]를 기념하는 날이다.
|-
| 7월 20일
| 1944년 7월 20일 기념일<br />{{lang|de|Jahrestag des 20. Juli 1944}}
|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백작이 [[아돌프 히틀러]]의 암살을 기도한 [[7·20 음모]]를 기념하는 날이다.
|-
| 10월 3일
| [[독일 통일의 날]]<br />{{lang|de|Tag der Deutschen Einheit}}
| [[독일의 재통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
| [[대림절]] 2주 전 일요일
| [[국민 애도의 날]]<br />{{lang|de|Volkstrauertag}}
| 모든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애도하는 기념일이다. (조기로 게양)
|-
| colspan="3" align="center" | 출처: 독일 연방 정부<ref name="flagday">{{웹 인용|url=http://www.bmi.bund.de/SharedDocs/Standardartikel/DE/Ministerium/Protokoll/beflaggungserlass.html|날짜=2005년 3월 22일|확인날짜=2015년 3월 11일|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71216020447/http://www.bund.de/nn_58840/Microsites/Protokoll/Beflaggung/Beflaggungserlass-der-Bundesregierung/Beflaggungserlass-knoten.html__nnn%3Dtrue|보존날짜=2007년 12월 16일|제목=Beflaggungserlass der Bundesregierung|저자=독일 연방 정부 (Federal Government of Germany)|언어=독일어|url-status=dead}}</ref>
|}
일부 주에서는 특정 주별 기념일 이외에 [[독일 연방하원]] 및 [[유럽 의회]] 선거일에 국기를 게양하기도 한다. [[독일의 대통령]]이나 그 외의 유명한 정치인이 사망한 날과 같은 경우에도 공공장소에서 [[조기 (기례)|조기]] 형태로 기를 게양하며 이는 [[독일 연방내무부]]의 재량에 따라 선포할 수 있다.<ref name="flagday" /> 조기를 게양해야 할 때는 세로 방향으로 게양된 기는 내리지 않는다. 대신 깃대 꼭대기나(기둥에 걸려 있는 경우) 기와 들보가 만나는 양쪽 끝(현수막처럼 걸려 있는 경우)에 [[검은 리본]]을 달아서 애도를 표한다.<ref name="flagprotocol">{{웹 인용|url=http://www.crwflags.com/fotw/flags/de_law.html#pro|제목=Flag Protocol (Germany)|웹사이트=Flags of the World|날짜=2002년 2월 6일|확인날짜=2008년 2월 26일}}</ref>
== 역사 ==
=== 중세 ===
{{참고|신성 로마 제국의 기 목록}}
{{여러그림
| 정렬 = right
| 머리말 = [[신성 로마 황제]]의 기
| 크기 = 150
| 그림1 = Heiliges Römisches Reich - Reichssturmfahne vor 1433 (Nimbierter Adler).svg
| 설명1 = 14세기 ~ 15세기
| 그림2 = Banner of the Holy Roman Emperor with haloes (1400-1806).svg
| 설명2 = 15세기 ~ 19세기
}}
[[파일:Flag of the Holy Roman Empire (1200-1350).svg|섬네일|오른쪽|{{FIAV|001000}} {{FIAV|historical}} [[신성 로마 제국]]의 [[군기]] (13세기 ~ 14세기)]]
[[신성 로마 제국]](800년/962년 ~ 1806년)은 국기가 없었지만 검은색과 금색은 [[신성 로마 황제]]의 색으로 사용되었다. 황실기는 금색 바탕에 검은 독수리가 그려진 디자인을 띠고 있었는데 13세기 말에는 독수리의 발톱과 부리가 빨간색으로 칠해졌다. 15세기부터 쌍두 독수리가 사용되었다.<ref name="HRE">{{웹 인용|url=http://www.crwflags.com/fotw/flags/de_roman.html|제목=Holy Roman Empire|웹사이트=Flags of the World|확인날짜=2008년 2월 26일}}</ref>
=== 로이스그라이츠 후국 ===
1778년 5월 12일,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요제프 2세]]는 [[하인리히 9세 (로이스그라이츠)|하인리히 9세]]를 새로 만들어진 [[로이스그라이츠 후국]]의 통치자로 임명하였다. 이때 로이스그라이츠 후국이 채택한 국기는 오늘날의 독일 땅에 속한 독립국이 흑적금 삼색기를 사용한 최초의 사례이다. 로이스그라이츠 후국을 다스린 [[로이스 가문]]이 사용한 깃발은 오늘날 독일의 국기가 3:5 비율인 것과 달리 정사각형에 가까운 4:5 비율이었다.
1804년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제1제국]]의 수립을 선언했다. 이에 대응하여 [[합스부르크가]]에 속해 있던 신성 로마 황제인 [[프란츠 2세]]는 자신의 사유 영지였던 [[합스부르크 군주국]]을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선포하면서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1세가 되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국기는 신성 로마 제국의 국기에서 따온 검은색과 금색 줄무늬를 띠고 있었다. 1806년에 나폴레옹에 의해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면서 프란츠 2세는 마지막 신성 로마 황제가 되었고 그 뒤로도 검은색과 금색은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의 국기로 사용되었다.
{{여러그림
| 정렬 = left
| 머리말 = [[한자 동맹의 기]]
| 크기 = 100
| 그림1 = Hanse Lübeck.svg
| 설명1 = [[뤼베크]]
| 그림2 = Hanse Hamburg.svg
| 설명2 = [[함부르크]]
}}
이 시기에는 빨간색과 하얀색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성 로마 제국이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을 때에 흑금 황실기와 함께 군기가 게양되었다. “성 게오르기우스의 기”로 알려진 이 기는 빨간색 바탕에 하얀색 십자가가 그져져 있었는데 [[덴마크의 국기]]와 비슷한 편이고 [[잉글랜드의 국기]]와는 색 배치가 반대인 점이 특징이다.<ref name="HRE" /> 빨간색과 하얀색은 13세기부터 17세기 사이에 활동했던 [[한자 동맹]]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했다. 한자 동맹에 소속된 무역선은 적백 삼각기를 달았고 가맹 도시들은 빨간색과 하얀색을 상징 색으로 채택했다. 오늘날에도 [[함부르크]], [[브레멘]]과 같이 한자 동맹에 소속되어 있던 많은 도시에서 빨간색과 하얀색을 찾아볼 수 있다.
{{-}}
=== 나폴레옹 전쟁 ===
[[파일:Ferdinand Hodler 001'.jpg|섬네일|[[뤼초프 자유군단]]의 대학생들. [[페르디난트 호들러]] 작 (1909년)]]
1806년에 신성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 예하 공국들과 대공국들은 나폴레옹이 세운 괴뢰국들의 연합체인 [[라인 동맹]]에 합류했다. 라인 동맹에 가맹한 여러 제후국들이 자기들만의 기를 사용하기를 선호했기 때문에 동맹은 자체적인 기가 없었다. 대신 [[프랑스의 국기|프랑스의 파랑-하양-빨강 삼색기]],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던 나폴레옹의 황제기를 사용했다.<ref name="confR">{{웹 인용|url=http://www.crwflags.com/fotw/flags/de-rh806.html|제목=Unidentified 'Rhine Republic' Flag 1806 (Germany)|웹사이트=Flags of the World|확인날짜=2008년 2월 26일}}</ref>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 프랑스 점령군에 대한 독일의 저항은 검은색, 빨간색, 금색으로 상징되었다. 이 조합의 기원은 프로이센군의 의용군인 뤼초프 자유군단의 제복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부대들의 제복은 검은색에 빨간색 안감과 금색 단추가 달려 있었다. 흑적금 삼색은 신성 로마 제국 시절에 사용되기도 했지만 군복에 이 색을 차용한 것은 다분히 실용적인 이유였다.<ref name="Rabbow2007">{{저널 인용|성=Rabbow|이름=Arnold|연도=2007년|제목=Schwarz-Rot-Gold: Einheit in Freiheit|저널=Der Flaggenkurier|권=25|쪽=41-45|언어=독일어}}</ref> 자유군단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옷을 각자 조달해야 했는데 검은색으로 물들이는 것이 가장 편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금색 단추들은 찾기 쉬웠고 부대에 소속된 [[창기병]]들은 빨간색과 검은색 깃을 사용했다. 삼색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졌다.
{{인용문|'''피투성이'''(빨간색) 싸움을 통해 '''암흑'''(검은색)의 노예 상태를 벗어나서 자유의 '''광명'''(금색)을 찾으리라.<ref>{{언어링크|de}} Scheidler, Karl Hermann (1865-08-05) {{lang|de|''Illustrierte Zeitung''}}, Leipzig, 98</ref>}}
독일 각지에서 모인 뤼초프 자유군단의 구성원들은 주로 대학생과 지식인들이었고 뤼초프 자유군단과 삼색은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ref name="Rabbow2007" />
{{-}}
=== 독일 연방 ===
[[파일:Flag of Urburschenschaft.svg|섬네일|예나 우어부르셴샤프트가 채택한 기]]
1815년에서 1816년에 걸쳐 열린 [[빈 회의]]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 남아 있던 모든 독일계 국가들의 느슨한 연합체인 [[독일 연방]]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사라진 신성 로마 제국을 대체하기 위해 탄생한 독일 연방은 신성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2세를 연방 의장으로 추대했다. 연방은 자체적인 기가 없었지만 종종 흑적금 삼색기가 독일 연방의 기로 혼동되기도 한다.<ref name="GermConf">{{웹 인용|url=http://www.crwflags.com/fotw/flags/de1848.html|제목=German Confederation|웹사이트=Flags of the World|확인날짜=2008년 3월 2일}}</ref>
전쟁에서 돌아온 뤼초프 자유군단의 퇴역 군인들은 1815년 6월에 [[예나]]에서 [[우어부르셴샤프트]]({{lang|de|Urburschenschaft}}; “원조 학우회”) 형제단을 설립했다. 예나 우어부르셴샤프트는 자유군단의 제복 색을 따서 빨간색, 검은색, 빨간색을 띤 가로 줄무늬 가운데에 금색 참나무 가지가 그려져 있고 금색 테두리를 두른 기를 채택했다.<ref name="Rabbow2007" /> 유명한 체조 선수이자 [[부르셴샤프트]]({{lang|de|Burschenschaft}}; “학우회”) 설립자인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얀]]은 학우회를 위해 흑적금 삼색기를 제안했다. 몇몇 구성원들은 그 색상들이 자유의 빨간색이나 전쟁의 피로 장식된 황실의 흑금색의 부활이라고 해석했다. 보다 급진적인 학생들은 이 색상들이 노예 상태를 의미하는 검은 밤, 자유를 위한 피비린내 나는 투쟁, 자유의 금빛 새벽을 상징한다고 주장했다.<ref>Heinrich Treitschke, ''History of Germany in the Nineteenth Century'', English translation 1917. Volume 3, page 51.</ref> 뤼초프 자유군단에서 복무했던 메클렌부르크의 안톤 프롭슈탄(Anton Probsthan)은 회고록에서 자신의 친척인 [[예나]]의 아말리 니치케(Amalie Nitschke) 양이 부르셴샤프트 설립 당시에 기를 만들어 주었는데, 이를 위해 사라진 비밀 결사체인 반달리아(Vandalia)의 흑적금 3색을 선택했다고 주장했다.<ref>Heinrich Treitschke, ''History of Germany in the Nineteenth Century'', English translation 1917. Volume 3 Appendixes, page 603.</ref>
[[파일:Hambach Fest 4 Fahne.JPG|섬네일|1832년에 제작된 “최초의 깃발”(Ur-Fahne)]]
뤼초프 자유군단에서 복무했던 학생들이 여러 독일계 국가에서 모였었기 때문에 통일 독일 국가에 대한 구상은 이후에 연방 전역에서 형성된 우어부르셴샤프트와 유사한 부르셴샤프트 사이에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1817년 10월 18일에는 [[라이프치히 전투]] 4주년을 맞아 연방 전역에서 모인 학우회 조합원들과 대학생들이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현재의 [[튀링겐 자유주]])의 [[바르트부르크 성]]에 모여 자유롭고 통일된 독일 국가를 요구하였다.
[[바르트부르크 축제]]라 불린 이 행사에서 예나 우르부르셴샤프트의 금적흑 삼색기가 눈에 띄게 나타났다. 때문에 검정-빨강-금색 조합은 결국 통일 독일 국가에 대한 열망을 상징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상 유지를 원했던 오스트리아 제국은<ref>{{웹 인용|url=http://www.britannica.com/eb/article-33361|제목=Austria: The Age of Metternich|연도=2008년|웹사이트=Encyclopædia Britannica Online|확인날짜=2008년 3월 5일}}</ref> 1819년에 [[카를스바트 결의]]를 통해 모든 학생 조직의 활동을 금지시켰고 부르셴샤프트들의 시대는 끝나게 되었다.
[[파일:Hambacher Fest 1832.jpg|섬네일|왼쪽|1832년 5월에 열린 [[함바흐 축제]]를 묘사한 현대 그림]]
1832년 5월에는 약 30,000명의 군중들이 [[함바흐 축제]]에서 자유, 통일, 공민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바르트부르크 축제 이후에 검은색, 빨간색, 금색 조합은 이미 자유주의, 민주주의, 공화주의 운동의 상징으로 정착했고 함바흐 축제에서 이들 색을 가진 기들이 일제히 휘날렸다. 축제를 묘사한 현대의 그림들은 주로 금적흑 삼색기(현대 독일의 국기를 뒤집은 형태)를 묘사하곤 하지만 현재까지 남아 있는 기들은 흑적금 삼색기들이다. 당시 [[함바흐 성]]에서 내걸렸던 “최초의 깃발”({{lang|de|Ur-Fahne|우어파네}})은 현재 함바흐 성에 영구 보존되어 있는데 흑적금 삼색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기의 빨간색 띠 부분에는 “독일의 재탄생”({{lang|de|Deutschlands Wiedergeburt|도이칠란츠 비더게부르트}})이라는 글자가 수놓아져 있다.<ref>{{웹 인용|url=http://www.hambacher-schloss.de/html_en/The_exhibition/The_Hambach_Festival.htm|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40819212751/http://www.hambacher-schloss.de/html_en/The_exhibition/The_Hambach_Festival.htm|제목=The Hambach Festival|보존날짜=2004년 8월 19일|연도=2007년|웹사이트=Official website of Hambach Castle|확인날짜=2008년 2월 24일|url-status=dead}}</ref>
{{-}}
=== 1848년 혁명과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 ===
[[파일:Flag of the German Confederation (war).svg|섬네일|{{FIAV|000001}} {{FIAV|historical}} [[국민의회함대]]의 군기 (1848년 ~ 1852년)]]
[[파일:Image Germania (painting).jpg|섬네일|왼쪽|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가 소집된 파울 교회(Paulskirche) 내부에 전시된 [[게르마니아 (의인화)|게르마니아]] 그림]]
[[1848년 독일 혁명]] 기간 동안에 많은 혁명가들이 삼색기를 휘날리면서 거리로 뛰쳐나왔다. 자유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오랜 숙고 끝에 국가 의회가 구성되었다.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는 검정-빨강-금색을 독일의 국가색으로 공식 선언하고 흑적금 삼색기를 독일의 상선기로 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ref name="flag1848">{{웹 인용|url=http://www.documentarchiv.de/nzjh/1848/reichsflaggen1848_ges.html|제목=Gesetz betreffend die Einführung einer deutschen Kriegs- und Handelsflagge|저자=Frankfurt Parliament|웹사이트=documentArchiv.de|언어=독일어|날짜=1848년 11월 12일|확인날짜=2007년 8월 9일}}</ref> 해군기 역시 같은 색상을 사용했다.
[[파일:Maerz1848 berlin.jpg|섬네일|200px|1848년 3월 베를린의 혁명가들]]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는 1849년 5월부터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견제를 받기 시작했다. 1850년에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가 붕괴되고 오스트리아가 의장국을 맡은 [[독일 연방]]이 복원되면서 오스트리아는 삼색기를 포함한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의 움직임들을 억압했다. 다민족 제국이었던 오스트리아를 미래의 독일 국가에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한 [[독일 문제]]는 독일의 통일 운동에서 커다란 쟁점이 되었는데 오스트리아를 맹주로 하는 거대한 제국을 수립하자는 대독일주의,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게르만 민족이 거주하는 국가·지역끼리만 통합하자는 소독일주의가 대립하게 된다. 독일 연방 내에서 양강 체제를 형성하고 있던 프로이센 왕국과 오스트리아 제국 간의 경쟁은 1866년에 일어난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으로 이어졌는데 전쟁 기간 동안에 오스트리아를 지지한 남독일 국가들의 군인들이 흑적금 삼색기를 사용했다.<ref name="GermConf" /> 전쟁 결과 [[프로이센 왕국]]을 맹주로 하는 북독일 연합이 오스트리아를 격파하면서 소독일주의에 따른 독일의 통일을 위한 길로 나아가게 된다.
{{-}}
=== 북독일 연방과 독일 제국 (1867년 ~ 1918년) ===
[[파일:Flag of the German Empire.svg|섬네일|비율 2:3 {{FIAV|110110}} {{FIAV|historical}} [[북독일 연방]](1866년 ~ 1871년)과 [[독일 제국]](1871년 ~ 1918년)의 국기. [[바이마르 공화국]] 초기(1918년 ~ 1919년)에도 사용되었으며 1922년부터 1933년까지는 외무용으로 사용되었다.]]
{{참고|국가전쟁기}}
프로이센은 1866년 8월에 [[북독일 연방 조약]]을 체결하고 1867년에 [[북독일 연방 헌법]]을 비준함으로써 독일 연방의 비공식적인 계승자인 [[북독일 연방]]을 결성했다. 이 연합체는 맹주인 프로이센과 21개의 북독일 국가들로 구성되었다. 해운업계에서는 국제적으로 승인받을 수 있는 정체성을 갖기를 원했기 때문에 새로운 연방이 어떤 기를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북독일 연방의 국제 해운 활동은 사실상 프로이센과 과거 한자 동맹에 소속되어 있던 도시 국가인 [[브레멘]], [[함부르크]], [[뤼베크 자유시|뤼베크]]가 전담하고 있었다. 따라서 아돌프 죄트비어(Adolf Soetbeer) 함부르크 상공회의소 서기는 1866년에 [[프로이센의 국기|프로이센의 색]]인 검은색과 하얀색, [[한자 동맹의 기|한자 동맹의 색]]인 빨간색과 하얀색을 결합한 기를 제안했다. 이듬해에 제정된 북독일 연방 헌법은 흑백적 가로 줄무늬 삼색기를 상선기와 해군기로 채택했다.<ref name="NDBconst">{{웹 인용|url=http://www.documentarchiv.de/nzjh/ndbd/verfndbd.html|제목=Constitution of the North German Confederation|웹사이트=documentArchiv.de|언어=독일어|날짜=1867년 6월 27일|확인날짜=2008년 2월 24일}} 제55조 참조.</ref>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 국왕은 색상 선택에 만족했는데 빨간색과 하얀색은 프로이센 왕국의 전신인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했다.<ref name="Rabbow2007" /> 기에서 금색이 사라진 것 또한 새로운 독일 국가가 검은색과 금색을 상징색으로 정했던 오스트리아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계기로 남독일 국가들은 프로이센을 맹주로 하는 북독일 연방과의 동맹을 통해 1871년에 [[독일의 통일]]을 이끌어냈고 프로이센의 [[호엔촐레른 왕가]]가 독일의 황제 칭호를 받게 된다. [[독일 제국 헌법]]은 검정, 하양, 빨강을 국가색으로 정했고<ref name="GEconst">{{웹 인용|url=http://www.documentarchiv.de/ksr/verfksr.html|제목=Constitution of the German Empire|웹사이트=documentArchiv.de|언어=독일어|날짜=1871년 4월 16일|확인날짜=2008년 2월 24일}} 제55조 참조.</ref> 1892년에 제정된 조례는 북독일 연방에서 사용했던 삼색기를 독일 제국의 공식적인 국기로 지정했다. 흑백적 삼색기는 [[제1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18년에 독일 제국이 붕괴할 때까지 독일의 국기로 남아 있었다.
{{-}}
=== 바이마르 공화국 (1918년 ~ 1933년) ===
[[파일:Flag of Germany (3-2 aspect ratio).svg|섬네일|비율 2:3 {{FIAV|100000}} {{FIAV|historical}} [[바이마르 공화국]]의 국기 (1919년 ~ 1933년)]]
1918년에 있었던 독일 공화국의 선포와 그 이후에 일어난 [[독일 11월 혁명|11월 혁명]]에 이어 1919년 8월에 소위 [[바이마르 공화국]]이 탄생했다. 19세기에 있었던 반독재 운동과 신생 민주 공화국 사이의 연속성을 위해 1919년에 제정된 [[바이마르 헌법]]에 옛 흑적금 삼색기가 독일의 국기로 지정되었다.<ref name="WRconst">{{웹 인용|url=http://www.documentarchiv.de/wr/wrv.html|제목=Constitution of the Weimar Republic|웹사이트=documentArchiv.de|언어=독일어|날짜=1919년 8월 11일|확인날짜=2008년 2월 24일}} 제3조 참조.</ref> [[로이스그라이츠]] 후국, [[로이스게라]] 후국, [[발데크]] 후국을 비롯한 자그마한 독일계 제후국들과 발데크 후국을 계승한 공화국인 [[발데크 자유주]] 역시 기의 비율과 색 배치의 순서는 달라도 약 140년 전인 1778년부터 이어져 온 전통인 흑적금 삼색을 유지했다. 상선기에는 독일 제국 시절에 사용된 국기인 흑백적 삼색기가 유지되었으나 왼쪽 구석에 새로운 흑적금 삼색기가 추가되었다.
이러한 국기의 변화는 많은 독일인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는데 그들은 새로운 국기를 독일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결과에 따른 굴욕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독일 국가방위군]]({{lang|de|Reichswehr|라이히스베어}})은 [[독일 제국]] 시대의 군기를 사용하는 일이 더 많았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예전의 색상으로 회귀할 것을 요구했는데 왕당파와 극우주의자들은 새로운 국기를 다양한 멸칭(앞 부분의 [[독일의 국기#색상|색상]] 문단 참조)으로 비하하면서 반대 목소리를 훨씬 더 높였다. 결국 1922년에 타협안으로서 재외 공관용에 한하여 옛 흑백적 삼색기가 재도입되었다.<ref name="flag1921" />
독일 제국의 상징은 곧 왕당파와 국가주의자들의 상징이 되었으며 [[전선병사동맹 철모단]]을 비롯한 왕당파 국가주의 단체에서 사용되었다. 독일 제국 시절에 사용된 군기인 [[국가전쟁기]]({{lang|de|Reichskriegsflagge|라이히스크릭스플라게}}) 역시 유사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독일 국가인민당|국가인민당]](왼쪽 포스터 참조)과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 등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활동한 많은 국가주의 정당들은 제국 색상을 상징색으로 사용했으며 이것은 현대 독일의 극우 민족주의 정당인 [[독일 국민민주당]]까지 이어지고 있다.
1924년 2월 24일에 [[바이마르 대연정]]을 구성한 3개 정당([[독일 중앙당|중앙당]], [[독일 민주당|민주당]], [[독일 사회민주당|사회민주당]])의 당원들과 [[노동조합]]원들이 [[마그데부르크]]에 모여 [[흑적금 국기단]]({{lang|de|Reichsbanner Schwarz-Rot-Gold|라이히스바너 슈바르츠-로트-골트}})이라는 준군사조직을 결성했다. 이 조직의 목적은 극좌와 극우 양쪽에서 끊임없는 압박을 받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취약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단체를 통하여 흑적금 삼색기는 독일 민주주의의 상징일 뿐 아니라 정치적 극단주의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이것은 국기단의 초대 주석인 [[오토 회슬링]]의 말로 대표되는데 회슬링은 국기단의 임무를 “[[만자문]]과 [[붉은 별|소비에트의 별]]에 대한 투쟁”이라고 묘사하였다.<ref name="rbanner">{{웹 인용|url=http://www.landtag.rlp.de/icc/Internet-DE/med/623/623604fe-6922-3211-33e2-dcbf983c6eac,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제목=Symbol für Freiheit, Einheit und Demokratie|언어=독일어|확인날짜=2008년 1월 10일|저자=State government of Rhineland-Palatinate|연도=2007년|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0528045244/http://www.landtag.rlp.de/icc/Internet-DE/med/623/623604fe-6922-3211-33e2-dcbf983c6eac,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보존날짜=2013년 5월 28일|url-status=dead}}</ref>
공산주의자들과 국가사회주의자들 간의 폭력적인 갈등이 날이 갈수록 더해갔고 급격한 경제 불황, 극심한 초인플레이션, 공화국의 부패에 직면하여 독일인들 사이의 양극화는 계속하여 심화되었다. 결국 1933년에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국 총리({{lang|de|Reichskanzler|라이히스칸츨러}})가 되었고 [[나치의 권력 장악]]({{lang|de|Machtergreifung|마흐터그라이풍}})이 일어나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은 붕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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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치 독일과 제2차 세계 대전 (1933년 ~ 1945년) ===
{{참고|국가전쟁기|하켄크로이츠|나치 독일의 국기}}
[[파일:SS Bremen incident illustration.jpg|섬네일|왼쪽|250픽셀|1935년 7월 26일에 미국 뉴욕항에 정박 중이던 브레멘호를 습격한 반나치 시위대를 묘사한 삽화]]
[[파일:Flag of German Reich (1933–1935).svg|섬네일|비율 3:5 {{FIAV|110110}} {{FIAV|historical}} 나치 독일의 국기 (1933년 ~ 1935년). 독일 제국 시절에 사용된 국기와 배색은 같고 비율이 다르다.]]
[[파일:Flag of German Reich (1935–1945).svg|섬네일|비율 3:5 {{FIAV|110110}} {{FIAV|historical}} 나치 독일의 국기 (1933년 ~ 1945년)]]
1933년 1월 30일에 [[나치 독일|나치 정권]]이 수립되면서 흑적금 삼색기는 신속히 폐기되었다.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같은 해 3월 12일에 2개의 법적 국기를 제정했는데 하나는 독일 제국 시절에 사용된 흑백적 삼색기를 재도입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치당([[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당기였다.<ref name="flag1933">{{웹 인용|url=http://www.documentarchiv.de/ns/flaggen.html|제목=Erlaß des Reichspräsidenten über die vorläufige Regelung der Flaggenhissung|저자=Paul von Hindenburg|웹사이트=documentArchiv.de|언어=독일어|날짜=1933년 3월 12일|확인날짜=2010년 7월 17일}}</ref><ref name="historicalFlags">{{웹 인용|url=http://www.loeser.us/flags/germany_note_1.html|제목=The German Swastika Flag 1933–1945|저자=Fornax|웹사이트=Historical flags of our ancestors|확인날짜=2010년 7월 17일}}</ref>
독일국 대통령({{lang|de|Reichspräsident|라이히스프레지덴트}})이었던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죽고 아돌프 히틀러가 대통령과 총리를 합친 [[나치 독일의 총통|총통]]({{lang|de|Führer|퓌러}})으로 취임한 지 1년이 지난 1935년 9월 15일을 기해 나치당의 당기만이 독일의 유일한 국기로 지정되면서 2개의 국기 사용이 종료되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SS 브레멘 (1928년)|SS 브레멘]] 사건”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는 1935년 7월 26일에 나치당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미국 뉴욕에 정박 중이던 독일 상선 SS 브레멘(SS Bremen)에 난입하여 깃대에 걸려 있던 나치당기를 내려서 찢어버린 다음에 [[허드슨강]]에 던져 버린 사건을 의미한다. 이에 미국 주재 독일 대사관이 항의하자 미국 공무원들은 독일의 국기는 손상을 입지 않았으며 손상된 것은 일개 정당의 상징일 뿐이라고 반박했다.<ref>Brian Leigh Davis: Flags & standards of the Third Reich, Macdonald & Jane's, London 1975, {{ISBN|0-356-04879-9}}</ref>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당의 연례 당대회에서 새로운 국기법이 발표되었는데<ref name="flag1935">{{웹 인용|url=http://www.documentarchiv.de/ns/1935/flaggen1935_ges.html|제목=Reichsflaggengesetz|저자=Government of the German Reich|웹사이트=documentArchiv.de|언어=독일어|날짜=1935년 9월 15일|확인날짜=2007년 12월 23일}}</ref><ref>[http://www.time.com/time/magazine/article/0,9171,749071-2,00.html GERMANY: Little Man, Big Doings] {{웨이백|url=http://www.time.com/time/magazine/article/0,9171,749071-2,00.html |date=20130521135738 }}, ''TIME Magazine'', 23 September 1935</ref> [[헤르만 괴링]]은 흑백적 삼색기는 지나간 시절의 상징이며 “반동분자들”이 사용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ref name="time-magazine-1935-nazi-rally">[[헤르만 괴링]]의 성명, [[푈키셔 베오바흐터]]({{lang|de|Völkischer Beobachter}})에서 인용, 1935년 9월 17일 (독일어)</ref>
나치당의 당기 디자인은 히틀러가 당의 지도자가 되기(1921년 7월 21일) 약 1년 전인 1920년 중반에 제안했는데 빨간색 바탕에 하얀색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고 그 안에 검은색 [[하켄크로이츠]]([[만자문]])가 그려져 있는 디자인이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나치당의 당기가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했다. 먼저 독일 제국 시절에 사용했던 국기와 같은 색을 사용해야 한다. 히틀러의 의견에 따르면 이들 색상은 “영광스러운 과거와 독일 민족의 영광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는 존경받는 색상”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새로운 기는 … 거대한 포스터와 같은 효율성을 지녀야 한다.” 왜냐하면 “수백 수천 가지 경우에서 매우 눈에 띄는 엠블럼이야말로 운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제1요인”이기 때문이다. 나치당의 선전에서는 기가 상징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빨간색은 사회를, 하얀색은 운동의 국가적 사고를, 하켄크로이츠는 유대인에 대한 아리안 민족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다.”<ref>{{웹 인용|url=https://research.calvin.edu/german-propaganda-archive/pimpfhitler.htm|제목=The Life of the Fuehrer|웹사이트=research.calvin.edu}}</ref> 여러 사람들에 의해 여러 가지의 디자인이 제안되었지만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은 히틀러가 직접 만든 디자인이었다.<ref>{{서적 인용|제목=Mein Kampf, volume 2, chapter VII|성=Hitler|이름=Adolf|연도=1926년}}</ref>
하얀색 동그라미가 중앙에서 벗어난 디자인을 가진 하켄크로이츠기는 독일에 선적의 민간 선박의 [[상선기]]로 사용되었다가 [[전쟁해군]]({{lang|de|Kriegsmarine}},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 해군을 부르던 명칭)의 [[선수기]]로도 사용되었다.<ref>{{웹 인용|url=http://www.documentarchiv.de/ns/1933/flaggen-kauffahrteischiffe_vo.html|제목=Verordnung über die vorläufige Regelung der Flaggenführung auf Kauffahrteischiffen|저자=Government of the German Reich|웹사이트=documentArchiv.de|언어=독일어|날짜=1933년 12월 20일|확인날짜=2007년 12월 23일}}</ref> 해상에서 사용된 하켄크로이츠기는 앞면의 무늬가 뒷면에 그대로 비쳐 보였기 때문에 뒷면은 하켄크로이츠가 왼쪽을 바라보았다. 한편 국기는 양면 모두 하켄크로이츠가 오른쪽을 바라보는 기가 사용되었다.<ref>{{웹 인용|url=http://www.loeser.us/flags/germany_note_1.html|제목=Historical Flags of Our Ancestors - The German Swastika Flag|웹사이트=www.loeser.us}}</ref>
1933년부터 1938년까지 나치당은 하켄크로이츠기에 [[피의 기]]({{lang|de|Blutfahne|블루트파네}})를 닿게 함으로써 하켄크로이츠기를 “성스럽게” 만들곤 했다. 피의 기는 나치당의 준군사조직이 1923년에 실패한 [[뮌헨 폭동]]을 일으켰을 때에 사용한 하켄크로이츠기를 가리킨다. 이 의식은 [[뉘른베르크 전당대회]]가 열릴 때마다 행해졌는데 1938년에 열린 마지막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이후에도 이러한 행동을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 이후에 [[연합국 통제위원회]]에 의해 제정된 첫 번째 법으로 모든 나치 상징이 폐지되고 이와 관련된 법들을 모두 폐지했다.<ref>{{웹 인용|url=http://www.ena.lu/?doc=16808&lang=2|제목=Law N° 1 from the Control Council for Germany: Repealing of Nazi Laws|저자=Allied Control Council|웹사이트=European Navigator|날짜=1945년 8월 30일|확인날짜=2007년 12월 23일}}</ref> 이후 몇몇 국가에서는 하켄크로이츠기를 소유하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특히 독일에서는 하켄크로이츠기를 수입하거나 전시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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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 (1945년 ~ 1949년) ===
[[파일:Flag of Germany (1946-1949).svg|섬네일|비율 2:3 {{FIAV|000100}} {{FIAV|historical}} 독일의 상선기 (1946년 ~ 1949년)]]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이후에 점령된 독일 지역은 [[독일의 연합군 군정기|연합군의 분할 통치]]하에 놓였다. 이 당시에는 비록 독일 정부도 독일의 국기도 없었지만 독일의 선박들은 국제법에 따라 소속 국가를 알리는 상선기를 게양할 의무를 갖고 있었다. 결국 [[연합국 통제위원회]]는 [[국제 신호기]]에서 C를 상징하는 찰리(Charlie)에서 파생된 C-삼각기({{llang|de|C-Doppelstander}})로 알려진 기를 지정했는데 이 기는 끝 부분이 제비 꼬리 모양을 띠고 있었다. 위원회는 이 기에 대해 “어떠한 국적의 군함이나 상선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한 의식을 거행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했다.<ref>{{웹 인용|url=http://www.fotw.net/flags/de1945.html#law|제목=Law No. 39 of the Allied Control Commission|저자=Allied Control Council|웹사이트=Flags of the World|날짜=1946년 11월 30일|확인날짜=2008년 2월 26일|url-status=dead|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0312195426/http://www.fotw.net/flags/de1945.html#law|보존날짜=2008년 3월 12일}} 제1조 제3항 참조.</ref> 독일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국기|점령된 일본 지역]]에서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E를 상징하는 신호기에서 파생되어 끝 부분이 제비 꼬리 모양을 띤 기를 사용했다.
[[오데르-나이세선]] 서쪽에 위치한 독일의 주들은 연합군의 점령 지역을 따라 재편성되었고 새로운 주 정부들이 수립되었다. 1946년에는 미국 점령 지역 내에서 옛 [[뷔르템베르크주]]와 [[바덴 공화국]]의 북부 절반이 [[뷔르템베르크바덴주]]로 통합되었다. 뷔르템베르크바덴주는 검정-빨강-금색 삼색기를 주기로 채택했다.<ref>{{웹 인용|url=http://www.verfassungen.de/de/bw/wuerttemberg-baden/wuertt-b46-index.htm|제목=Constitution of Württemberg-Baden|언어=독일어|웹사이트=Verfassungen der Welt|날짜=1946년 11월 30일|확인날자=2008년 2월 24일|확인날짜=2014년 2월 12일|archive-date=2016년 3월 3일|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03233239/http://www.verfassungen.de/de/bw/wuerttemberg-baden/wuertt-b46-index.htm|url-status=dead}} 제45조 참조.</ref> 이러한 색상의 선택은 역사적으로 사용된 삼색기가 아니라 빨강-검정으로 구성된 뷔르템베르크주의 기에 금색을 추가한 간단한 양식이었다.<ref>{{웹 인용|url=http://www.fotw.net/flags/de-wb947.html|제목=Württemberg-Baden 1947–1952 (Germany)|웹사이트=Flags of the World|확인날짜=2008년 2월 24일|url-status=dead|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0312195401/http://www.fotw.net/flags/de-wb947.html|보존날짜=2008년 3월 12일}} 헌법위원회 논의의 인용문 포함.</ref> 공교롭게도 바덴주의 주기는 빨강-노랑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색상 선택이 두 기의 조합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 뷔르템베르크바덴주는 1952년에 현대의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일부가 되었으며 주기는 검정-금색으로 선정되었다.
전후에 만들어진 2개의 다른 주인 [[라인란트팔츠주]](프랑스 점령 지역), [[니더작센주]](영국 점령 지역)은 주기에 문장을 덧붙인 검정-빨강-금색 삼색기를 공통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ref>{{웹 인용|url=http://verfassungen.de/de/rlp/rlp47-index.htm|제목=Constitution of Rhineland-Palatinate|웹사이트=Verfassungen der Welt|언어=독일어|날짜=1947년 5월 18일|확인날짜=2008년 2월 24일|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0215024706/http://verfassungen.de/de/rlp/rlp47-index.htm|보존날짜=2008년 2월 15일|url-status=dead}}</ref><ref>{{웹 인용|url=http://verfassungen.de/de/nds/niedersachsen51.htm|제목=Preliminary constitution of Lower Saxony|웹사이트=Verfassungen der Welt|언어=독일어|날짜=1951년 4월 13일|확인날짜=2008년 2월 2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0311105823/http://verfassungen.de/de/nds/niedersachsen51.htm|보존날짜=2008년 3월 11일|url-status=dead}} 제1조 제2항 참조.</ref> 이들 2개 주는 다른 주들의 일부분에서 분리되어 새로 형성된 주였는데 이전의 주에서 가져올 색상 조합이 없었다. 따라서 흑적금 삼색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흑적금 삼색은 이전의 어느 주와도 특별히 관련이 없었고 옛 바이마르 공화국의 국기를 사용하는 것은 새로운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ref>{{웹 인용|url=http://www.crwflags.com/fotw/flags/de-rp.html|제목=Rhineland-Palatinate (Germany)|웹사이트=Flags of the World|확인날짜=2008년 3월 3일}}</ref><ref>{{웹 인용|url=http://www.crwflags.com/fotw/flags/de-ni.html|제목=Lower Saxony (Germany)|웹사이트=Flags of the World|확인날짜=2008년 3월 3일}}</ref>
{{-}}
=== 독일 분단 시기 (1949년 ~ 1989년) ===
{{참고|동독의 국기}}
{{여러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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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 Flag of Germany.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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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1 = 비율 3:5 {{FIAV|110110}} {{FIAV|normal}} [[서독]]과 [[독일의 재통일|재통일 이후의 독일]]의 국기 (1949년 ~ 현재)<br />[[동독]]의 국기 (1949년 ~ 1959년)
|그림2 = Flag of East Germany.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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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2 = 비율 3:5 {{FIAV|110110}} {{FIAV|historical}} 동독의 국기 (1959년 ~ 1990년)
}}
[[소련]]과 [[미국]]의 관계가 점점 악화되면서 1948년 3월에 영국, 프랑스, 미국 3개 서방 연합국은 회담을 가져 그들의 점령 지역을 하나로 통합하고 흔히 [[서독]]으로 알려진 독일 연방 공화국의 수립을 승인했다. 한편 동부에 위치한 소련의 점령 지역도 흔히 [[동독]]으로 알려진 독일 민주 공화국이 되었다. 서독이 새 헌법을 만들 준비를 하는 동안에 1948년 8월에 [[헤렌킴제]]에서 국가 상징을 무엇으로 할지에 대한 회의가 열렸다. 동독과 재통일하기 전까지는 국기를 만들지 말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국기를 정하기로 결정했다. 이 움직임은 1946년 11월에 동독의 [[독일 통일사회당]](SED, 통사당)이 헌법을 제안하면서 가속화되었는데<ref>{{서적 인용|성=Friedel|이름=Alois|제목=Deutsche Staatssymbole|언어=독일어|연도=1968년|출판사=Athenäum-Verlag|isbn=978-3-7610-5115-3}}</ref> 여기서 독일 공화국을 나타내는 색상인 흑적금 삼색을 국기로 하기로 결정했다.<ref>{{언어링크|de}} {{웹 인용|url=http://www.documentarchiv.de/ddr/1946/sed-verfassungsentwurf-ddr.html|제목=SED-proposed constitution of the German Democratic Republic|웹사이트=documentArchiv.de|날짜=1946년 11월 14일|확인날짜=2008년 2월 24일}}</ref>
{{여러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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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말 = {{FIAV|proposal}} 왼쪽에 있는 기는 1944년에 요제프 비르머가 제작한 “저항기” 디자인을 변형한 기로서 그의 동생인 에른스트 비르머가 제작했다. 오른쪽에 있는 기는 1948년에 서독의 보수주의 정당들이 서독의 국기로 제안한 기이다.
|그림1 = German Resistance Flag Proposal 1944.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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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1 =
|그림2 = Proposed German National Flag 1948.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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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Bundesarchiv Bild 183-34861-0007, Caroli, Langhammer, Nitzschke, Motzkus.jpg|섬네일|왼쪽|1955년 세계 복싱 선수권 대회에 등장한 동독의 국기]]
[[파일:German Olympic flag (1959-1968).svg|섬네일|1960년부터 1968년 올림픽까지 사용된 [[올림픽 독일 연합 선수단]]의 기]]
[[파일:Bundesarchiv Bild 183-M0925-406, New York, Fahnen vor dem UNO-Gebäude.jpg|섬네일|미국 뉴욕에 위치한 [[유엔 본부]] 앞에 나란히 게양된 서독과 동독의 국기 (1973년 촬영)]]
서독의 새로운 국기에 대한 많은 제안이 올라왔지만<ref name="proposals">{{웹 인용|url=https://www.crwflags.com/fotw/flags/de!1949.html |title=Proposals 1944–1949 (Germany)|웹사이트=Flags of the World|확인날짜=2008년 2월 24일}}</ref> 최종 경선에는 흑적금 삼색을 사용한 서로 다른 2가지 디자인으로 좁혀졌다. [[독일 사회민주당]](SPD, 사민당)은 옛 바이마르 공화국의 국기를 재도입하자고 주장했고 반대로 [[독일 기독교민주연합]]/[[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CDU, 기민련/CSU, 기사련) 및 [[독일당 (1947년)|독일당]] 등 보수주의 정당은 의회 위원회(Parlamentarischer Rat)의 위원이자 훗날 독일의 총리를 역임한 [[콘라트 아데나워]]의 조언자였던 어니스트 비르머가 제안한 디자인을 지지했다. 비르머의 제안은 그의 형제이자 [[7·20 음모]]에 관여했던 요제프 비르머가 1944년에 만든 “저항기” 디자인의 변형으로, 흑적금 삼색의 [[스칸디나비아 십자]]가 있는 기였다.<ref name="proposal1944">{{저널 인용|성=Rabbow|이름=Arnold|날짜=1983년 5월 ~ 8월|제목=A Flag Against Hitler. The 1944 National Flag Proposal of the German Resistance Movement|저널=Flag Bulletin|권=100}}</ref> 바이마르 공화국과 새로운 서독 정부 사이의 연속성을 주창하기 위해 최종적으로는 삼색기가 결정되었다. 1949년 5월 23일에 독일(서독)의 헌법인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이 제정되면서 흑적금 삼색기가 서독의 공식적인 국기가 되었다.<ref name="constitutionDE" />
1955년에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있던 [[자르 보호령]]이 서독에 합병할지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가 실시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www.ena.lu/saar-referendum-23-october-1955-022100041.html |title=The Saar referendum |work=European Navigator |date=1955년 10월 23일 |accessdate=2016년 3월 2일 |archive-date=2008년 3월 11일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80311132612/http://www.ena.lu/saar-referendum-23-october-1955-022100041.html |url-status= }}</ref> 자르는 1947년에 프랑스의 보호령으로 분리된 이후에 [[자를란트주의 기|파란색-빨간색 바탕에 하얀색 스칸디나비아 십자가 그려진 기]]를 사용하고 있었다.<ref>{{웹 인용|url=http://www.documentarchiv.de/de/saar/saarland47-index.htm|제목=Constitution of the Saarland|웹사이트=documentArchiv.de|날짜=1947년 12월 15일|확인날짜=2008년 2월 24일|언어=독일어}} 제61조 참조.</ref> 자르가 서독의 일부가 되면서 1956년 7월 9일에 흑적금 삼색기에 이날 새로 만들어진 자를란트주의 문장이 그려진 기를 주기로 채택했다.<ref>{{언어링크|de}} Government of the Saarland (9 July 1956) {{lang|de|''Gesetz Nr. 508 über die Flagge des Saarlandes''}} and {{lang|de|''Gesetz Nr. 509 über das Wappen des Saarlandes''}}</ref> 이 기는 1957년 1월 1일에 서독의 [[자를란트주]]로 편입되면서 공식적인 주기가 되었다.
1946년에는 소련 점령 지역에서 흑적금 삼색기를 국기로 사용할 것을 제안했으나 1948년에 열린 제2차 독일 인민 대표 회의에서 옛 독일 제국의 흑백적 삼색기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기는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2년 동안 소련에서 운영하던 독일의 반[[나치즘]] 조직인 [[자유 독일 국민위원회]]가 사용했던 색을 기반으로 선택한 것이었다.<ref name="proposals" /> 1949년에는 동베를린 시장을 역임했던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1894년)|프리드리히 에베르트 2세]]가 흑적금 삼색기를 1949년 10월 7일에 창설한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의 국기로 제안했고 동독 헌법 또한 이를 채택했다.<ref name="DDRconst">{{웹 인용|url=http://www.documentarchiv.de/ddr/verfddr1949.html|제목=Constitution of the German Democratic Republic|웹사이트=documentArchiv.de|날짜=1949년 10월 7일|확인날짜=2008년 2월 24일|언어=독일어}} 제2조 참조.</ref> 1949년부터 1959년까지 서독과 동독의 국기는 동일했다. 1959년 10월 1일에는 동독 정부가 흑적금 삼색기에 [[동독의 국장]]을 추가한 국기로 바꾸었다.<ref name="DDR1959">{{웹 인용|url=http://www.documentarchiv.de/ddr/1959/ddr-staatswappen-staatsflagge-aender_ges.html|제목=Gesetz zur Änderung des Gesetzes über das Staatswappen und die Staatsflagge der Deutschen Demokratischen Republik|언어=독일어|저자=Government of the German Democratic Republic|웹사이트=documentArchiv.de|날짜=1959년 10월 1일|확인날자=2008년 2월 24일}}</ref> 서독에서는 이러한 국기의 변화가 2개의 독일 국가를 분리시키려는 의도라고 판단했다. 서독과 서베를린에서는 바뀐 동독의 국기를 보여주는 것을 “국기 분리”({{lang|de|Spalterflagge}})라고 부르면서 헌법에 위반되는 행위라고 간주했고 1960년대 말까지 이러한 행위를 금지시켰다.
1956년부터 1964년까지 서독과 동독은 [[동계 올림픽]]과 [[하계 올림픽]]에서 [[올림픽 독일 연합 선수단]]이라는 단일팀으로 참여했다. 1959년에 동독의 국기가 바뀐 이후에 어느 쪽도 상대방 국가의 국기를 사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에 타협하여 1960년부터 1964년까지 흑적금 삼색기를 구성하는 빨간색 가로 줄무늬에 [[올림픽 상징]] 가운데 하나인 5개의 하얀색 고리를 덧댄 새로운 기를 사용했다. 동독과 서독은 1968년부터 갈라져 출전했으나 두 팀 모두 같은 독일 올림픽기를 사용했다. 1972년부터 1988년까지는 서독과 동독이 서로 각각의 국기를 사용하였다.
{{-}}
=== 1989년 ~ 현재 ===
[[파일:World Cup 2006 German fans at Bochum.jpg|섬네일|오른쪽|독일에서 개최된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독일의 국기를 흔들고 있는 독일의 축구 팬들의 모습. 독일 연방 공화국 역사상 이렇게 많은 국기를 동시에 볼 수 있었던 것은 처음이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일부 국기에는 독일의 국장을 포함하고 있는데 정부 당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정부기|정부기]]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1989년 11월에 일어난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에 많은 동독 국민들은 [[1956년 헝가리 혁명]]에 가담한 헝가리 국민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처형 당시의 루마니아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국기에 그려져 있던 국장을 잘라냈다.<ref>{{서적 인용|성1=Montserrat|이름1=Guibernau|제목=Belonging: Solidarity and Division in Modern Societies|출판사=Polity Press|날짜=2013년 7월 26일|isbn=978-0745655079|url=https://books.google.com/books?id=Oz_nkP8m8a0C&q=Montserrat+Guibernau+Belonging%3A+Solidarity+and+Division+in+Modern+Societies|쪽=95}}</ref> 동독의 국기에서 국장을 잘라내는 광범위한 행동은 순수한 흑적금 삼색기가 민주적인 통일 독일의 상징임을 암시했다. 마침내 1990년 10월 3일을 기해 동독 지역이 서독에 흡수되어 소멸되면서 흑적금 삼색기는 [[독일의 재통일|재통일]]된 독일의 국기가 되었다. 1998년에는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독재 정권 재평가 재단이 설립되었는데 이는 옛 동독 체제의 결과를 조사하는 것에 대한 독일 연방 정부의 직접적인 책임을 목적으로 했다. 이 단체의 로고는 옛 동독의 국기에서 공산주의 체제를 상징하는 문장을 제거한 형태를 띠고 있다.<ref>[http://www.stiftung-aufarbeitung.de/downloads/pdf/english.pdf Information pamphlet] {{웹아카이브|url=https://web.archive.org/web/20120227143044/http://www.stiftung-aufarbeitung.de/downloads/pdf/english.pdf|날짜=2012년 2월 27일}}</ref>
[[파일:2010 Thorpe Cup 20.jpg|섬네일|왼쪽|통일 독일의 국기 (1990년 ~ 현재)]]
[[독일 제국]] 시대에 사용된 옛 흑백적 삼색기는 독일이 평화적인 방식으로 민주적인 군주제 국가로 복귀하기를 원하는 군주주의자, 독일의 귀족 출신 인사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다.<ref name="pro-monarchy">[http://www.promonarchie.de/ Home page] of monarchist organisation {{lang|de|Tradition und Leben}}. See German section for more detailed text. Retrieved on 24 February 2008.</ref> 그러나 옛 국기의 이러한 쓰임은 극우주의 진영에 가려져 존재감이 미미하다. 독일에서는 앞서 언급한 [[만자문]], 번갯불 모양을 띤 [[룬 문자]]를 비롯한 [[친위대 (나치)|친위대]](SS) 휘장을 비롯한 나치 정권과 관련된 상징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극우주의 진영에서는 나치당이 1935년에 금지시켰던 옛 삼색기를 대신 사용하고 있다.<ref name="flag1935" /> 독일에서 출시되는 [[제2차 세계 대전]]과 관련된 비디오 게임에서는 나치당과 관련된 기가 1933년 이전의 바이마르 시대에 사용된 국기 또는 현재의 삼색기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
독일에서는 국기와 그 외의 국가 상징의 사용 빈도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대부분 상대적으로 낮았는데 이는 나치당의 국수주의 성향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ref>{{웹 인용|url=http://www.spiegel.de/international/0,1518,424373,00.html|제목=Dr. Strangelove: How Germans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Flag|저자=Sontheimer, Michael|웹사이트=Spiegel Online|날짜=2006년 6월 29일|확인날짜=2008년 3월 5일}}</ref> 국기는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에 참가하는 시민, 특별한 행사를 주최하는 공식 당국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바이에른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와 같은 일부 주 또는 [[바덴]], [[프랑켄]]과 같은 역사적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국기 대신 지역의 기를 널리 사용한다.
독일에서 개최된 [[2006년 FIFA 월드컵]] 동안에 국기의 대중적인 사용이 급격하게 증가했다.<ref>{{웹 인용|url=http://www.spiegel.de/international/0,1518,421241,00.html|제목=Germany flies the flag|저자=Young, Marc|웹사이트=Spiegel Online|날짜=2006년 6월 14일|확인날짜=2008년 2월 24일}}</ref> 독일의 국기가 인기를 끌었을 때에 많은 독일 국민들은 처음에는 놀라움과 불안감에 뒤섞여 환영했다. 독일의 국기를 흔드는 행동과 국가적 자부심이 나치당과 관련된 과거와 불가분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수십년이 넘는 공포는 대회가 끝난 이후에 독일인과 비독일인 모두에 의해 사라졌다.<ref>{{웹 인용|url=http://www.spiegel.de/international/0,1518,426063,00.html|제목=Germany's World Cup Recovery: From Humorless to Carefree in 30 Days|저자=Crossland, David|웹사이트=Spiegel Online|날짜=2006년 7월 10일|확인날짜=2008년 3월 5일}}</ref> 많은 독일인들이 해당 대회에서 자국의 국기를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한 과정으로 여겼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기는 대회가 끝난 이후에 사라졌으며 때로는 정부의 결정으로 인해 사라졌다.<ref name="faz2008">{{웹 인용|url=https://www.faz.net/aktuell/sport/fussball-wm-2006/deutschland-und-die-wm/nach-der-wm-die-party-ist-aus-flaggen-muessen-weg-1354035.html|제목=Nach der WM: Die Party ist aus: Flaggen müssen weg|웹사이트=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날짜=2006년 7월 11일|확인날짜=2019년 1월 5일}}</ref> 독일이 브라질에서 개최된 [[2014년 FIFA 월드컵]]에서 우승하면서 독일의 국기 사용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ref name="Spon2016">{{웹 인용|url=http://www.spiegel.de/kultur/gesellschaft/patriotismus-waehrend-der-fussball-em-schwarz-rot-kompliziert-a-1096553.html|제목=EM-Patriotismus: Schwarz-rot-kompliziert|성=Borcholte|이름=Andreas|웹사이트=Spiegel Online|날짜=2016년 6월 12일|확인날짜=2019년 1월 5일}}</ref> 그 이후에는 독일의 국기 색상 표시가 정기적으로 주요 스포츠 경기 기간으로 제한되었다. [[서양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 유럽인]](페기다), [[독일을 위한 대안]]을 비롯한 민족주의 진영에서 독일의 국기를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보여주면서 독일의 국기는 다시 일상 생활에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ref name="Spon2016" /> 그러나 독일의 주류 사회는 여전히 이들 색상의 사용에 조심스럽다.<ref name="Zeit2018">{{웹 인용|url=https://www.zeit.de/2018/43/deutschlandfahne-symbol-rechte-szene-unteilbar-demonstration|제목=Deutschlandfahne: Farbe bekennen|성=Lau|이름=Mariam|웹사이트=Zeit Online|날짜=2018년 10월 17일|확인날짜=2019년 1월 5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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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 [[독일의 국장]]
* [[프로이센의 국기]]
* [[한자 동맹의 기]]
* [[독일의 기 목록]]
* [[독일의 국색]]
* [[국가전쟁기]]
== 각주 ==
{{각주|2}}
== 참고 문헌 ==
* {{언어링크|de}} G. Anrich, A. u. G. Cronford: ''Das Flaggenbuch''. Otto Maier, Ravensburg 1983, {{ISBN|3-473-38851-3}}.
* {{언어링크|de}} Jörg-M. Hormann, Dominik Plaschke: ''Deutsche Flaggen. Geschichte, Tradition, Verwendung''. Edition Maritim, Hamburg 2006. {{ISBN|3-89225-555-5}}.
* {{언어링크|de}} Ottfried Neubecker: ''Heraldik''. Wolfgang Krüger Verlag, Frankfurt am Main 1977. {{ISBN|3-8105-1306-7}}.
* {{언어링크|de}} Peter Reichel: ''Schwarz-Rot-Gold. Kleine Geschichte der deutschen Nationalsymbole''. Beck, München 2005. {{ISBN|3-406-53514-3}}.
* {{언어링크|de}} W. Smith, O. Neubecker: ''Die Zeichen der Menschen und Völker. Unsere Welt in Fahnen und Flaggen''. Reich Verlag AG, Luzern 1975. {{ISBN|3-7243-0115-4}}.
* {{언어링크|de}} Veit Valentin, Ottfried Neubecker: ''Die deutschen Farben''. Leipzig 1929.
* {{언어링크|de}} Paul Wentzcke: ''Die deutschen Farben, ihre Entwicklung und Deutung sowie ihre Stellung in der deutschen Geschichte.'' (Quellen und Darstellungen zur Geschichte der Burschenschaft und der deutschen Einheitsbewegung, 9), Heidelberg 1927, 2. Aufl. 1955.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분류-줄}}
* [[Flags of the World]]의 [http://flagspot.net/flags/de.html 독일 국기]
* [http://www.flaggenlexikon.de/fdtlhi1r.htm All medieval flags of Germany]
* [https://web.archive.org/web/20140102193821/http://www.flagsforum.com/viewtopic.php?f=25&t=35 Imperial German Empire Army Colours]
* [https://web.archive.org/web/20090615104015/http://www.documentarchiv.de/wr/1921/flaggen1921_vo.html Verordnung über die deutschen Flaggen vom 11. April 1921]
* [https://web.archive.org/web/20090626050818/http://www.documentarchiv.de/brd/1996/deutsche-flaggen_ao.html Anordnung über die deutschen Flaggen vom 13. November 1996]
* [https://web.archive.org/web/20090511000457/http://www.bmi.bund.de/cln_137/SharedDocs/Standardartikel/DE/Ministerium/Protokoll/beflaggungserlass.html Beflaggungserlass der Bundesregierung vom 22. März 2005]
* [https://web.archive.org/web/20081104070118/http://www.styleguide.bundesregierung.de/ Corporate Design der Bundesregierung]
* [http://webarchiv.bundestag.de/cgi/show.php?fileToLoad=2446&id=1195 „Schwarz-Rot-Gold“ – Symbol der Einheit]
* [https://web.archive.org/web/20090604184716/http://www.flaggenkunde.de/deutscheflaggen/d-bund.htm Informationen zu den deutschen Flaggen mit weiterführenden Links und Literaturhinweisen]
* [http://www.flaggenlexikon.de/fdtlhi1r.htm Beschreibung der Reichsflagge des Heiligen Römischen Reiches]
* [https://web.archive.org/web/20090903015219/http://www.flaggenlexikon.de/fdtl-sr2.htm Entstehung und Ursprung der schwarz-rot-goldenen Flagge]
* Erardo Cristoforo Rautenberg: [https://web.archive.org/web/20160304191130/http://www.politische-bildung-brandenburg.de/sites/default/files/downloads/schwarz_rot_gold.pdf ''Schwarz-Rot-Gold: Das Symbol für die nationale Identität der Deutschen!''.] (PDF; 2,31 MB)
{{독일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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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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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 표}}
[[파일:Lipica horses (7198987762).jpg|섬네일]]
'''슬로베니아'''({{llang|sl|Republika Slovenija|레푸블리카 슬로베니야}}, {{llang|en|Republic of Slovenia}})는 [[중앙유럽]] 남부에 있는 [[나라]]로 [[알프스산맥]] 끝부분과 [[지중해]]와 접하고 있다.<ref>{{웹 인용|url=https://www.cia.gov/the-world-factbook/countries/slovenia/|title=Slovenia|website=[[월드 팩트북|The World Factbook]]|publisher=[[미국 중앙정보국]]}}</ref><ref name="cultures">{{서적 인용|url=http://zgs.zrc-sazu.si/Portals/8/Slo_Geo_Over/23.pdf |title=Gateway to Western, Central, and Southeastern Europe |first=Andrej |last=Černe |page=127 |series=Slovenia: A Geographical Overview |editor=Orožen Adamič, Milan |publisher=Association of the Geographical Societies of Slovenia |year=2004 |isbn=961-6500-49-X |quote=For centuries, the territory of Slovenia has been crossed by traditional transportation routes connecting northern Europe with southern, eastern, and western Europe. Slovenia's location in the northwestern part of the Mediterranean's most inland bay on the Adriatic Sea where the Alps, the plateaus of the Dinaric Alps, and the western margins of the Pannonian Basin meet gives [it] a relatively quite advantageous traffic and geographical position distinguished by its transitional character and the links between these geographical regions. In a wider macroregional sense, this transitional character and these links have not changed since prehistoric times.}}</ref> 서쪽으로는 [[이탈리아]], 서남쪽으로는 [[아드리아해]], 남동쪽으로는 [[크로아티아]], 북동쪽으로는 [[헝가리]], 북쪽으로는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수도는 [[류블랴나]]이다. 슬로베니아는 [[게르만]], [[라틴]], [[슬라브]]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어서 천년 가까이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등 주변 나라의 영향을 받았다.
슬로베니아 영토의 40% 가량은 산지나 고원 등 고지대로 국토 내륙 지방에 자리 잡고 있으며 크로아티아 등 주변 국가와 함께 [[발칸반도]]라는 삼각형 모양의 반도에 속한 국가 중의 하나이다.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트리글라우산]]이다. 인구 대다수는 공용어인 [[슬로베니아어]]를 쓰며, 그 밖 지역 공용어로 [[헝가리어]]와 [[이탈리아어]]가 있다.
슬로베니아는 [[유럽 연합]], [[유로존]], [[솅겐 조약]], [[유럽 안보 협력 기구]], [[유럽 평의회]], [[북대서양 조약기구]], [[유네스코]], [[세계 무역 기구]], [[경제 협력 개발 기구]], [[유엔]] 가입국이다.
== 역사 ==
서기 1000년경부터 [[아드리아해]] 연안을 통제해온 [[베네치아 공화국]]에 저항하기 위해 주변의 [[크로아티아]]·[[달마티아]]와 함께 1102년 헝가리 왕을 군주로 [[동군연합|받아들였다]].<ref name="조르주"/>{{rp|200}} 18세기 말, [[오스트리아]]는 슬로베니아를 계속 영유하였고 1919년, 슬로베니아는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하였다.<ref name="조르주"/>{{rp|201}} 예전에는 [[유고슬라비아]]의 영토였으나 1991년에 독립했다. 2004년 3월 29일에는 [[NATO]]에 가입했으며 2004년 5월 1일에는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 2007년 1월 1일에는 [[유로]]를 공식 통화로 지정했다. 현재는 정치가 안정되어 있다. 2008년 9월 22일에 슬로베니아는 총선에서 중도좌파 야당인 사회민주당이 승리했다.<ref>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4&sid2=233&oid=001&aid=0002276450 슬로베니아 총선, 중도좌파 야당 승리(종합)]</ref>
== 지리와 기후 ==
슬로베니아는 [[알프스산맥]], [[판노니아 평원]]이 있으며, 가장 높은 산은 [[트리글라우산]]으로 높이는 2,864m이다. 일부 지역이 [[아드리아해]]에 접해 있으나, 이 지역을 제외하면 내륙국이나 다름없다. 국토 전체의 보통 해발 고도는 해발 557m 이상이다. 거의 국가 절반 이상이 숲이다. 이 때문에 슬로베니아는 유럽 대륙에서 [[핀란드]], [[스웨덴]]에 이어 세 번째로 가장 많은 숲을 보유한 국가이다.
해안가는 지중해성기후가 어느 정도 나타나고 대륙 내부와 알프스 인근 지역에서는 여름에는 무덥고 겨울에는 추운 양상을 보인다. 평균 기온은 1월에 -2도, 7월에 영상 21도이다. 해안가의 평균 강수량은 1,000mm이고 알프스 인근에는 3,500mm 이상의 비가 내린다.
== 행정구역 ==
{{본문|슬로베니아의 행정 구역}}
[[수도]]는 [[류블랴나]]이다. 슬로베니아는 193개의 시(자치체)가 있다. 그중에서 특히 인구가 많은 11개의 시는, 특별시에 속해있다.
== 인구와 주민 ==
{{본문|슬로베니아의 인구}}
주민은 [[슬로베니아인]]이 89%, 남슬라브계([[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 [[보스니아인]], [[몬테네그로인]], [[마케도니아인]] 등)이 10%, 기타([[헝가리인]]이나 [[이탈리아인]], [[체코인]], [[알바니아인]], [[독일인]], 기타)는 0.5%이다.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은 2004년 기준([[Eurostat]] 추정) 1.22명으로 [[유럽연합]] 내에서 가장 적다. 2005년 기준 천명당출산율은 8.8명, 천명당사망율은 9.2명이다.
== 언어 ==
언어는 [[슬로베니아어]]가 공용어이다. 제2 언어로 [[영어]]가 보급되어 있다. [[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헝가리어]]도 쓰인다.
한편, 슬로베니아는 프랑스어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참관국이다.
== 종교 ==
종교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거의 대부분이다. 약간의 [[개신교]], [[세르비아 정교회]], [[이슬람교]], [[유대교]], [[불교]], [[조로아스터교]], [[도교]], [[힌두교]] 등도 있다. 가톨릭의 비율은 2002년 센서스에 따르면 57.8%이다. 가장 최근의 2005년 [https://en.wikipedia.org/wiki/Eurobarometer Eurobarometer Poll]에 따르면 37%의 슬로베니아인이 "신이 있다고 믿는다"고 답했으며, 46%는 "일종의 영혼이나 생명력이 있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그리고 16%는 "영혼이나 신, 생명력과 같은 것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 대외 관계 ==
* 대 대한민국 관계: [[대한민국]]은 1992년 슬로베니아를 승인했으며 동년 11월에 수교하였다. 대한민국은 주오스트리아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으며 슬로베니아는 대한민국 공관을 주일본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수도인 류블라냐에 [[코트라]]사무소가 상주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92년에 수교하였다. [[2002년 FIFA 월드컵]] 때 슬로베니아는 B조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대표팀을 [[대한민국]]으로 파견하였다. (A, B, C, D조는 대한민국, E, F, G, H조는 일본) 이 나라는 아직 한국과의 직항편을 개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제 3국을 경유해서 슬로베니아에 가야 한다.
* 대 헝가리 관계: 1102년에 슬로베니아는 [[크로아티아]], [[달마티아]]와 함께 [[동군연합|헝가리의 왕을 자신들의 군주로 받아들였다.]]<ref name="조르주"/>{{rp|200}}
* 대 오스트리아 관계: 예전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대 세르비아 관계: 슬로베니아는 예전엔 [[유고슬라비아]]를 구성하던 공화국의 하나였지만, 1991년에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뒤에 [[10일 전쟁]]이 일어났다. 유고슬라비아 분쟁과 10일 전쟁의 영향으로 세르비아와는 안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 대 러시아 관계: 슬로베니아는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후에 [[러시아]]와 수교를 했다. 미국과 유럽 연합과의 관계가 강하지만, 러시아와의 우호적인 관계도 유지하고 있다.
* 그 밖의 대외 관계: 슬로베니아는 [[미국]], 유럽 연합과의 관계가 매우 강하며, 2004년에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 그리고 공식 통화도 이후 [[유로]]로 바꿨다.
== 국기 ==
{{본문|슬로베니아의 국기}}
슬로베니아의 [[슬로베니아의 국기|국기]]는 슬로바키아의 [[슬로바키아의 국기|국기]]와 매우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다.
== 각주 ==
{{각주|
refs=
<ref name="조르주">조르주 뒤비 지음, 채인택 옮김, 《지도로 보는 세계사》, 생각의 나무 (2006)</ref>
}}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분류-줄}}
* {{언어링크|en}} [http://www.slovenia.si/ Slovenia.si]. Your gateway to information on Slovenia.
* {{언어링크|sl|en}} [http://www.vlada.si/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Slovenia]
* {{언어링크|en|sl}} [https://web.archive.org/web/20061109233204/http://www.slovenia.info/intro/ 슬로베니아 공식 여행 가이드]
* {{언어링크|sl|en}} [http://slovenia.hiking.flowiktionary.org 슬로베니아의 산맥]{{깨진 링크|url=http://slovenia.hiking.flowiktionary.org/ }}
* [https://overseas.mofa.go.kr/at-ko/brd/m_8469/list.do 주오스트리아 대사관의 슬로베니아 개관과 정세 게시판]
* [http://www.shoestring.co.kr/destinations/europe/slovani-text.htm 슬로베니아] {{웨이백|url=http://www.shoestring.co.kr/destinations/europe/slovani-text.htm |date=20041029190020 }}
* [https://web.archive.org/web/20050308203425/http://www.tourtotal.com/asp/information/info-hw/if-12000.asp?country_code=SI 해외여행(슬로베니아편)]
* [https://web.archive.org/web/20050519003957/http://mission.missionseed.net/info/oversea/europe_slovenia.html 슬로베니아 개요]
* [http://story.modetour.com/AreaInfo/AreaInfoNation.aspx?AreaCode=0204060000 슬로베니아 여행 관련 정보]
* {{언어링크|en}} [http://www.lonelyplanet.com/destinations/europe/slovenia/ 론리플래닛의 정보(슬로베니아편)]
* {{언어링크|en}} [http://www.cia.gov/cia/publications/factbook/geos/si.html CIA의 세계정보(슬로베니아편)] {{웨이백|url=http://www.cia.gov/cia/publications/factbook/geos/si.html |date=20050709233818 }}
{{슬로베니아}}
{{유럽}}
{{유럽 평의회}}
{{유럽 연합 회원국}}
{{북대서양 조약 기구}}
{{지중해 연합}}
{{OECD}}
{{프랑코포니}}
{{유고슬라비아 연대표}}
{{전거 통제}}
[[분류:슬로베니아| ]]
[[분류:슬라브어권]]
[[분류:슬로베니아어권]]
[[분류:세르비아어권]]
[[분류:크로아티아어권]]
[[분류:독일어권]]
[[분류:이탈리아어권]]
[[분류:유엔 회원국]]
[[분류:유럽 연합 회원국]]
[[분류:유럽 평의회 회원국]]
[[분류:북대서양 조약 기구 회원국]]
[[분류: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분류:지중해 연합 회원국]]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설명|[[이중 나선 (책)|이중 나선]]은 [[제임스 D. 왓슨]]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파일:VaticanMuseumStaircase.jpg|섬네일|바티칸 박물관의 계단]]
'''이중 나선'''(二重螺線, {{llang|en|double helix}})은 두 개의 서로 대칭인 [[나선]]이 같은 축 방향으로 놓여있는 모양이다.
[[파일:Dna-split.png|frame|left|DNA의 이중 나선 구조]]
[[DNA]]가 이중 나선 구조라는 것은 [[1953년]] [[제임스 D.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처음으로 발견했다.
{{와선}}
{{토막글|기하학}}
[[분류:DNA]]
[[분류:생물물리학]]
[[분류:나선]] |
'''리니지'''(lineage)는 [[영어]]로 “[[혈통]]” 또는 “계보”란 뜻이다.
== 만화 ==
* [[리니지 (만화)|리니지]]는 [[신일숙]]의 만화이다.
== 게이밍 ==
* [[리니지 (비디오 게임 시리즈)|리니지]]는 [[리니지 (만화)|만화]]를 바탕으로 만든 대한민국의 비디오 게임 시리즈이다.
** [[리니지 (비디오 게임)|리니지]]는 비디오 게임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 [[리니지 2]]: 2003년 비디오 게임
** [[리니지 W]]: 3D 모바일 게임
== 기타 ==
* [[조사 (불교)]](lineage)
* [[리니지OS]](LineageOS)
== 같이 보기 ==
* {{in title|리니지}}
{{동음이의}}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파일 포맷 정보
| 그림 = Feed-icon.svg
| 이름 = RSS
| 확장자 = .rss, .xml
| 매직 =
| MIME =
| 개발 =
| 종류 = [[사이버콘텐츠 중개상]]
}}
'''RSS'''({{lang|en|Rich Site Summary}})는 뉴스나 [[블로그]] 사이트에서 주로 사용하는 콘텐츠 표현 방식이다. 웹 사이트 관리자는 RSS 형식으로 웹 사이트 내용을 보여 준다. 이 정보를 받는 사람은 다른 형식으로 이용할 수 있다.RSS 리더에는 웹기반형과 설치형이 있다. 웹기반형 리더는 간단한 계정등록으로 어디에서든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RSS가 등장하기 전에는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해당 사이트를 직접 방문하여야 했으나, RSS 관련 프로그램(혹은 서비스)을 이용하여 자동 수집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사용자는 각각의 사이트 방문 없이 최신 정보들만 골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또한 RSS는 [[팟캐스팅]]과 같은 미디어 배포의 용도로도 사용된다. RSS 2.0의 〈enclosure〉태그 내에 [[MP3]] 나 [[퀵타임|MOV]] 등의 미디어 파일을 첨부하여 배포하면, 팟캐스팅 클라이언트를 이용해 파일을 내려 받아 감상할 수 있다.
RSS 2.0은 공식적으로 완료된 것으로 선언되었으며, [[하버드 대학교]]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다.
== 여러 표준 ==
RSS는 [[XML]] 기반의 표준이며, 여러 표준들이 존재한다. 표준들은 크게 [[RDF]] (또는 RSS 1.*)과 RSS 2.* 로 나뉜다.
* RDF (RSS 1.*)
** RSS 0.90
** RSS 1.0
** RSS 1.1
* RSS 2.0
** RSS 0.91
** RSS 0.92
** RSS 2.01
== Rss 2.0에서의 활용 예 ==
<syntaxhighlight lang="xml">
<?xml version="1.0" encoding="UTF-8"?>
<rss version="2.0">
<channel>
<title>제목</title>
<link>주소/</link>
<description>설명 (짤막하게)</description>
<item>
<title>제목</title>
<link>주소/글 주소</link>
<description>글 내용 전체(또는 일부)</description>
<pubDate>시간</pubDate>
<guid>주소/글 주소</guid>
</item>
<item>
<title>제목</title>
<link>주소/글 주소</link>
<description>글 내용</description>
<pubDate>시간과 날짜</pubDate>
<guid>주소/글 주소</guid>
</item>
</channel>
</rss>
</syntaxhighlight>
== 아톰과의 비교 ==
RSS와 [[Atom|아톰]] 모두 모든 주요 피드 리더가 널리 지원하고 있다. 아톰보다 더 일찍 피드리더 기능이 도입되면서 RSS가 널리 이용되어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러나 아톰은 라이선스가 덜 제한적이고 [[IANA]] 등록 [[인터넷 미디어 타입|MIME 타입]], [[XML 이름공간]], 상대 [[통합 자원 식별자|URI]] 지원, [[RELAX NG]] 지원과 같이 RSS에 비해 몇 가지 이점이 있다.<ref>{{서적 인용 | last= Sikos | first= Leslie | 제목= Web standards - Mastering HTML5, CSS3, and XML | publisher= [[Apress]] | year= 2011 | isbn= 978-1-4302-4041-9 | url= http://www.masteringhtml5css3.com | access-date= 2021-07-20 | archive-date= 2015-04-02 | archive-url= https://web.archive.org/web/20150402152305/http://www.masteringhtml5css3.com/ }}</ref> 기술적으로 아톰은 이 둘 사이에서 더 진보화된 신디케이션으로 간주된다.<ref>{{웹 인용| url= http://www.lesliesikos.com/tutorials/rss/ | 제목= RSS tutorial | last= Sikos | first= Leslie }}</ref>
아래의 표는 아톰과 동일한 RSS 요소를 요약해 놓은 것이다.
{| border="1" cellpadding="5" cellspacing="0"
|-
!scope="col" |RSS 2.0
!scope="col" |아톰 1.0
|-
|<code>author</code>
|<code>author</code>
|-
|<code>category</code>
|<code>category</code>
|-
|<code>channel</code>
|<code>feed</code>
|-
|<code>copyright</code>
|<code>rights</code>
|-
|<code>description</code>
|<code>subtitle</code>
|-
|<code>description</code>
|<code>summary</code> 또는 <code>content</code>
|-
|<code>generator</code>
|<code>generator</code>
|-
|<code>guid</code>
|<code>id</code>
|-
|<code>image</code>
|<code>logo</code>
|-
|<code>item</code>
|<code>entry</code>
|-
|<code>lastBuildDate</code> (<code>channel</code>에서)
|<code>updated</code>
|-
|<code>link</code>
|<code>link</code>
|-
|<code>managingEditor</code>
|<code>author</code> 또는 <code>contributor</code>
|-
|<code>pubDate</code>
|<code>published</code> (<code>entry</code>의 하부요소)
|-
|<code>title</code>
|<code>title</code>
|-
|<code>[[타임 투 리브|ttl]]</code>
|<code>-</code>
|}
== 같이 보기 ==
* [[에런 스워츠]]
* [[데이터 이동]]
* [[매시업 (웹 개발)]]
* [[웹서브]]
== 각주 ==
<references />
== 외부 링크 ==
{{위키공용|RSS}}
* 규격
** {{언어링크|en}} [http://my.netscape.com/publish/formats/rss-spec-0.91.html RSS 0.91 규격, 3판] {{웨이백|url=http://my.netscape.com/publish/formats/rss-spec-0.91.html |date=20001204093600 }}
** {{언어링크|en}} [https://web.archive.org/web/20081022105748/http://web.resource.org/rss/1.0/ RSS 1.0 규격]
** {{언어링크|en}} [http://inamidst.com/rss1.1/ RSS 1.1 규격]
** {{언어링크|en}} [http://www.rssboard.org/rss-specification RSS 2.0 규격] [http://blogs.law.harvard.edu/tech/directory/5/specifications/rss20ModulesNamespaces 모듈]
** {{언어링크|en}} [https://web.archive.org/web/20061112100137/http://msdn.microsoft.com/xml/rss/sse/ (제안) RSS를 위한 Simple Sharing Extensions] ([[마이크로소프트]])
** {{언어링크|en}} [http://rss-extensions.org rss-extensions.org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기업들이 제출한 RSS 확장 제안 목록] {{웨이백|url=http://rss-extensions.org/ |date=20080704185054 }}
** {{언어링크|ko}} [http://naearu.tistory.com/2982748 RSS 2.0 규격 번역문]
* 유효성 검사기
** {{언어링크|en}} [http://validator.w3.org/feed/ W3C Feed Validation Service, for Atom and RSS]
** {{언어링크|en}} [https://web.archive.org/web/20080227162320/http://www.feedvalidator.org/ Feed Validator for Atom and RSS]
* 디렉토리
** {{언어링크|en}} [http://blauerbote.com/index.php?k=Newsfeeds&s=kr&c=1 Blauer Bote Korea Newsfeeds]
* Article
** {{언어링크|ko}} [http://mwultong.blogspot.com/2007/02/rss-20-feed-utf-8.html RSS 2.0 피드(Feed) 작성 방법, 문법 기초]
{{데이터 교환}}
{{전거 통제}}
[[분류:XML 기반 표준]]
[[분류:RSS| ]]
[[분류:오픈 포맷]]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두 다른 뜻||여러 작품 속에 등장하는 21세기와 그 사건|작품 속 21세기|워드프로세서|21세기 워드프로세서}}
{{세기표}}
'''21세기'''(21世紀, {{llang|en|21st century}})는 [[2001년]] [[1월 1일]]부터 [[2100년]] [[12월 31일]]까지를 말하며, [[제3천년기]]의 첫 번째 세기이기도 하다.
== 개요 ==
21세기 초기는 산업사회의 끝자락으로 [[세계경제]]와 [[제3세계]] 소비주의, [[정부]]에 대한 불신, [[테러]]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 등이 부상하는 시기로 대표된다.<ref>{{뉴스 인용|title = Majority of Americans distrust the government|url = https://www.reuters.com/article/2010/04/19/us-americans-government-poll-idUSTRE63I0FB20100419|newspaper = Reuters|date = April 19, 2010|access-date = June 1, 2015|archive-date = 2015-09-24|archive-url = https://web.archive.org/web/20150924144931/http://www.reuters.com/article/2010/04/19/us-americans-government-poll-idUSTRE63I0FB20100419}}</ref><ref>{{웹 인용|title = Rational Extremism: Understanding Terrorism in the Twenty-first Century|author=David A. Lake|url = https://quote.ucsd.edu/lake/files/2014/06/Rational-Extremism.pdf|website = quote.ucsd.edu|accessdate = June 1, 2015}}</ref><ref>{{웹 인용|title = Working with Private Industry {{!}} Research Pages {{!}} The Stimson Center {{!}} Pragmatic Steps for Global Security|url = http://www.stimson.org/research-pages/working-with-private-industry/|website = www.stimson.org|accessdate = June 1, 2015|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60203085826/http://www.stimson.org/research-pages/working-with-private-industry/|보존날짜 = 2016-02-03|url-status = dead}}</ref> 2010년대 초 [[아랍의 봄]]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운동의 물결로 [[아랍 세계]]에는 희비가 엇갈리는 결과를 빚었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title = Arab Spring yields different outcomes in Bahrain, Egypt and Libya|url = https://www.washingtonpost.com/world/arab-spring-yields-different-outcomes-in-bahrain-egypt-and-libya/2011/12/15/gIQAY6h57O_story.html|newspaper = The Washington Post|date = December 15, 2011|access-date = June 1, 2015|issn = 0190-8286|first = Marc|last = Fisher}}</ref> 또한 지난 세기말에 비롯된 '디지털 혁명'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ref>{{웹 인용|title = Why The Digital Revolution Is Really Just Getting Started|url = https://www.forbes.com/sites/gregsatell/2014/04/05/why-the-digital-revolution-is-really-just-getting-started/|accessdate = June 1, 2015|first = Greg|last = Satell}}</ref> 이 시기 언저리에 태어난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자라면서 세기초의 주역으로 거듭나고 있다.<ref>{{웹 인용|title = Contrasting Generation Y and Z|url = http://www.huffingtonpost.com/tim-elmore/contrasting-generation-y-_b_5679434.html|website = The Huffington Post|accessdate = June 1, 2015}}</ref> 반면 [[종교]]의 경우 2010년 기준으로 무종교 인구가 11억 명에 도달하면서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ref>{{웹 인용|url=http://news.nationalgeographic.com/2016/04/160422-atheism-agnostic-secular-nones-rising-religion/|title=The World's Newest Major Religion: No Religion|date=April 22, 2016|publisher=|accessdate=March 21, 2018}}</ref><ref>{{웹 인용|url=http://www.pewforum.org/2012/12/18/global-religious-landscape-exec|title=The Global Religious Landscape|date=December 18, 2012|publisher=|accessdate=March 21, 2018}}</ref>
[[현대사]]적인 관점에서 21세기의 근본적인 시작점을 [[1991년]]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이 해는 [[단기 20세기]]의 끝으로, [[소련]]이 붕괴하고 [[미국]]이 [[초강대국]]에 등극하는 한편,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성장기에 돌입하고, [[브릭스]] 국가들이 국제정치와 경제스펙트럼에서 [[힘의 균형|균형]] 확대를 목표로 하던 해였기 때문이다.<ref>{{웹 인용|title = Why The U.S. Remains The World's Unchallenged Superpower|url = https://www.forbes.com/sites/realspin/2013/11/24/why-the-u-s-remains-the-worlds-unchallenged-superpower/|accessdate = June 1, 2015|first = Capital|last = Flows}}</ref><ref>{{뉴스 인용|title = Bric tries to shift power balance|url = http://news.bbc.co.uk/1/hi/8620178.stm|newspaper = BBC|date = April 15, 2010|access-date = June 1, 2015}}</ref>
디지털 통신기술이 전세계로 확대되면서 [[휴대전화]]와 [[인터넷]]의 과다사용을 비롯한 우려도 확산되었다.<ref>{{뉴스 인용|title=Workplace trends: Technology increases workplace stress|url=http://findarticles.com/p/articles/mi_qa3840/is_199910/ai_n8869850|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90206092116/http://findarticles.com/p/articles/mi_qa3840/is_199910/ai_n8869850|url-status=dead|archive-date=2009-02-06|work=Office World News|year=1999}}</ref> 2013년 기준으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인구 비중은 전세계 인구의 80%에 달하며,<ref>{{웹 인용|url=http://www.techi.com/2013/06/the-growth-of-mobile/|title=The growth of mobile|work=Techi.com|accessdate=October 6, 201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1103013730/http://www.techi.com/2013/06/the-growth-of-mobile/|보존날짜=2016-11-03|url-status=dead}}</ref> 2010년에는 개인용 컴퓨터를 소지한 사람이 33%,<ref>{{뉴스 인용|url=http://www.economist.com/node/15062710|title=It's a PC world: Global computer ownership will continue to rise in 2010|author=|publisher=The Economist|date=December 29, 2009|accessdate=January 6, 2015}}</ref> 2016년에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 46%로 추산됐다.<ref>{{웹 인용|url=http://www.internetlivestats.com/internet-users/|title=Internet Users|author=|publisher=InternetLiveStats.com|date=March 2016|accessdate=March 20, 2016}}</ref>
== 특징 ==
21세기는 20세기 후반에 태동되었던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대중화로, 인류가 일상생활에서 상시 디지털과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모바일 세상이라고 여겨진다. 이와 같은 모바일 체계가 구축된 건 [[2010년대]]부터로, [[애플]]의 [[아이폰]]을 기점으로 촉발된 스마트폰의 대중화가 시발점이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여 점차 대중화되어 갔지만, [[2000년대]]까지만 해도 디지털 시장은 각 분야별로 세분화되어 있었으며 당시의 휴대전화였던 피쳐폰은 기술적 한계로 기존의 디지털 시장 전체를 흡수하는데 실패했다. 이로 인해 2000년대까지는 스마트폰 이전의 디지털 시장과 아날로그 매체가 대중들에게 사용되었으나, 2010년대에 들어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를 필두로 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며 모바일 시스템 체계가 구축, 디지털 매체의 완전한 시장 장악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디지털 시장과 아날로그 매체는 인류의 삶에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며 인류가 스마트폰을 통해 상시 디지털 매체, 인터넷과 연결되어 있는 모바일 시대가 개막했다. [[2010년대]]부터 시작된 모바일 서비스의 발달은 [[2020년대]]에 들어 메타버스, 가상현실, 인공지능 등 인간의 역할까지 디지털 기술이 대체되는 고도의 컴퓨터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졌으며, 이러한 컴퓨터과학의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교육과 일상생활 역시 발전된 모바일 문화에 맞춰 변화하였다. 특히 2020년 들어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 현상으로, 교육계에서는 비대면 수업과 교육문화의 도입이 이루어졌으며 팬데믹이 장기화됨에 따라 하나의 교육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일상생활 역시 이전까지는 구상 단계로만 여겨졌던 재택근무와 비대면 교육, 비대면 근무 등이 코로나-19 팬데믹에 맞춰 모두 일괄 도입되었으며 이는 대면 없이도 행정적인 업무 처리가 가능할 만큼 디지털, 모바일 문화가 발전했음을 보여주었다. 한편 이러한 비대면 교육의 여파로, 성장중인 청소년들이 겪을 인간관계 형성의 어려움과 소통문제 등이 부작용으로 언급되며 교육계는 이에 따른 방안을 연구중에 있다.
21세기 시대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대표적인 세대는 [[Z세대]]와 [[알파 세대]]가 있다. 이들 세대 중에서도 Z세대의 중반 이후 세대인 2000년대 중반 무렵 ~ 후반에 태어난 세대는 아날로그 매체를 포함한 스마트폰 이전 시대상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세대로 분류되고 있으며, 알파 세대는 2010년대생부터 2020년대 중반생까지를 포함한다. 이 중 알파 세대의 경우 전원 21세기 도중에 출생한 세대이다.
== 시대상 ==
21세기의 첫 시대였던 [[2000년대]]는 1990년대 후반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한 디지털 매체와 아날로그 매체의 혼용기로, 스마트폰과 모바일 문화가 대중화된 2010년대 이후와는 매우 다른 시대상을 띄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아날로그 매체와 디지털 매체의 점유율이 비등했고, 2000년대 중반부터는 디지털 매체가 아날로그 매체를 앞섰으나 여전히 아날로그 매체의 대중성도 높았었다. 아날로그 매체는 2000년대 후반까지 대중들에게 사용되었으나, 2010년대 이후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함께 인류의 삶에서 퇴장한다. 한편 디지털 매체는 빠른 발전 속도를 기록, 점점 기존의 아날로그 매체에 맞서 시장 점유율을 넓혀나갔으며 스마트폰의 대중화 이전까지 아날로그 매체와 함께 대중적으로 사용되었다. 2000년대를 대표하는 디지털 매체로는 [[DVD]], [[PMP]], [[MP3 플레이어]], [[전자사전]], [[DMB]], [[초고속인터넷]], [[2세대 이동통신|2G]]/[[3세대 이동통신|3G]], [[피쳐폰]], 집전화, [[UMPC]], [[디지털 카메라]], [[USB]] 등이 있으며 2000년대까지 사용되었던 아날로그 매체는 [[필름카메라]]<ref>대중적인 사용은 2000년대 초반까지, 1회용 필름카메라로는 2000년대 후반까지 사용됨</ref>, [[비디오테이프]], [[카세트테이프]]<ref>대한민국의 음반시장에서는 2008년을 마지막으로 발매 중단</ref>, 아날로그 캠코더<ref>2000년대 초반까지 주로 사용</ref>, 영상 테이프, 필름영화 등이 있다. 2000년대는 1990년대 중~후반과 마찬가지로 인류가 인터넷과 상시 연결되어 있지 않았던 시대이며, 피쳐폰은 기술적 한계로 이러한 역할을 하지 못해 완전한 디지털화는 이루지 못했다.
[[2010년대]]에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었다. 스마트폰은 1992년 IBM에서 처음 개발한 이래 2002년 블랙베리 등 여러 모델이 발매되었으나, 실질적으로 세상을 완전 디지털화시키고 모바일 문화의 진입점을 제시한 현대적 스마트폰의 기준은 2007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애플의 아이폰이다. 2010년대부터 아이폰과 삼성전자의 갤럭시가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며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었으며 이로 인해 인류의 완전한 디지털화와 모바일 문화의 정착이 이루어졌다. 스마트폰은 모바일 운영체계에 탑재되어 기존의 전자시장을 전부 스마트폰 안에 포함시킨 일종의 소형 컴퓨터 기술이었으며 이로 인해 인류는 작은 휴대용 기기 하나로 모두 디지털 매체를 이용할 수 있는 시대를 맞게 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스마트폰 대중화 이전의 디지털 시장은 몰락을 맞이하였으며 아날로그 매체 역시 시장에서 완전히 도태되었다.
[[2020년대]]는 2010년대에 대중화된 모바일 문화가 다시 한번 고도의 발전을 맞고 있는 시기로 평가되고 있다. 기존 모바일 문화에서 한층 더 나아가 고도의 컴퓨터과학 기술이 발달, 메타버스와 인공지능 등이 인류의 삶에 생활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알파 세대]]의 시대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러한 모바일 문화에 익숙한 세대는 여가를 포함 일상생활 전체를 모바일 문화와 함께하고 있으며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 기성 세대에게 미래 공상으로 여겨지던 일들도 이들에게는 일상이자 놀이이다.
== 주요 사건 ==
* [[2001년]]
** [[9월 11일]] - 미국 [[9.11 테러]] 발생
** [[10월 7일]] -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년~2021년)|아프가니스탄 전쟁]] 발발
* [[2002년]]
** 2002년 [[2002년 FIFA 월드컵|한일 월드컵]] 개최
** 2002년 [[2002년 동계 올림픽|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 개최
** [[6월 29일]]- [[제2 연평해전]] 발발, [[북한]]이 [[NLL]]을 침범하여 무력 충돌 시도, 대한민국은 6명의 전사자와 18명의 부상자가 나옴
* [[2003년]]
** [[2월 1일]] - 우주왕복선 [[컬럼비아 우주왕복선|컬럼비아호]] 폭발
** [[2월 11일]] - 중증급성호흡기중후군 유행
** [[2월 18일]] -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발생
** [[3월 19일]] - [[이라크 전쟁]] 발발
* [[2004년]]
** 2004년 [[2004년 하계 올림픽|아테네 하계 올림픽]] 개최
* [[2005년]]
** [[4월 2일]]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 [[2006년]]
** 2006년 [[2006년 동계 올림픽|토리노 동계 올림픽]] 개최
** 2006년 [[2006년 FIFA 월드컵|독일 월드컵]] 개최
** 2006년 [[2006년 아시안게임|도하 아시안게임]] 개최
** [[8월 24일]] - [[명왕성]] 행성 자격 박탈(이유: 행성이 너무 왜소하고 다른 행성들과 달리 공전 길이가 다르기 때문.)→ 왜소성으로 전락.
** [[10월 22일]] [[최규하]] 전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 서거
** [[12월 30일]] - [[사담 후세인]] 처형
* [[2007년]]
** [[10월 4일]] -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
** [[12월 7일]] - [[삼성1호-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 사고|태안 기름 유출 사고]] 발생
* [[2008년]]
** [[2월 10일]] - [[숭례문 방화 사건]] 발생
** [[8월 8일]] - [[2008년 하계 올림픽|베이징 올림픽]] 개최
** [[9월 15일]] - 글로벌 금융위기
* [[2009년]]
** [[1월 20일]] -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행정부]] 출범
** [[5월 23일]] - [[노무현]] 전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 서거
** [[8월 18일]] - [[김대중]] 전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 서거
** [[2009년 인플루엔자 범유행|신종 플루 유행]]
* [[2010년]]
** [[3월 26일]] - [[천안함]]이 [[백령도]] 남쪽바다에서 북한의 어뢰정 공격으로 침몰하였다.
** [[11월 23일]] - [[북한]]의 포격으로 [[연평도 포격전|연평도 포격전 발생]]
* [[2011년]]
** [[3월 11일]] - [[일본]] [[도호쿠 대지진]](동일본대지진) 발생에 이어 [[후쿠시마 원전사고]]도 설상가상으로 연이어 발생.
** [[5월 2일]] - [[알카에다]] [[오사마 빈라덴]] 사살
* [[2012년]]
** 2012년 [[2012년 하계 올림픽|런던 올림픽]] 개최
** [[10월 12일]] - [[유럽 연합]]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
** [[12월 21일]] - 태양계 행성 정렬(이 현상은 13000년에 한 번 일어난다. 기원전 약 11,000년에 일어난 후 2012년에 일어났다.)
* [[2013년]]
** [[2월 11일]] -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8일을 기해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 [[3월 19일]] - [[아르헨티나]] 출신의 [[교황 프란치스코|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후임 교황으로 선출되어 [[교황 프란치스코|프란치스코]]로 명명하였다.
** [[12월 5일]] -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 타계
* [[2014년]]
** [[4월 16일]] -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으로 당시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절반 이상 가까이 사망.
** [[7월 14일]] - 명왕성 탐사선 [[뉴 허라이즌스]]가 [[명왕성]]에 도착
** [[7월 18일]] - 말레이시아항공 17편이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상공에서 격추당했다.
* [[2015년]]
** [[4월 25일]] - [[네팔]]에서 진도 7.8의 대지진이 발생하였다.
** [[11월 22일]] - [[김영삼]] 전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 서거
* [[2016년]]
** 2016년 [[2016년 하계 올림픽|리우 올림픽]] 개최
* [[2017년]]
** [[3월 10일]] - [[박근혜 대통령 탄핵|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판결]]
** [[5월 10일]] -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취임
* [[2018년]]
** [[2월 9일]] - [[대한민국]] [[강원도 (남)|강원도]] [[평창군]]에서 제23회 [[2018년 동계 올림픽|동계 올림픽]] 개최
** [[4월 27일]] -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 [[2019년]]
** [[4월 30일]] - 일본 천황 [[아키히토]](明仁)의 생전 퇴위
** [[12월 1일]]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중국 발생
* [[2020년]]
** [[3월 11일]] - WHO [[코로나19 범유행|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범유행]] 발표
** [[11월 2일]] - 화이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백신 만듦
** [[11월 3일]] - [[조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됨
* [[2021년]]
** [[1월 6일]] -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이 발생했다.
** [[10월 26일]] - [[노태우]] 전 대통령 [[서거]]
** [[11월 23일]] - [[전두환]] 전 대통령 [[서거]]
* [[2022년]]
** [[5월 10일]] -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취임
** [[7월 8일]] - 전 [[일본 총리]] [[아베 신조 피살 사건]]
** [[9월 8일]] -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 [[10월 29일]] - [[이태원 압사 참사]] 발생
* [[2023년]]
** [[9월]] 중 -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최
* [[2024년]]
** [[1월 1일]] - 일본 노토지방 지진 발생
== 예정 ==
* [[2025년]] 백두산 대분화,태양활동 극대기
* [[2027년]] [[ITER]] D-T 핵융합 가동 시작
* [[2030년]] [[FIFA 월드컵]] 100주년, [[우루과이]] 독립 200주년
* [[2045년]] [[광복]] 100주년
* [[20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100주년
* [[2050년]] [[한국전쟁]] 100주년
* [[2061년]] [[핼리 혜성]] 접근
* [[2065년]]까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해체
* [[2074년]] [[서울 지하철]] 개통 100주년
== 연대와 연도 ==
{{세기년대년도|19|20|21}}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아시아의 세기]]
== 각주 ==
{{각주}}
{{천년기}}{{21세기 유행}}
{{전거 통제}}
[[분류:21세기|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대한민국의 철도역 목록'''은 [[대한민국]]의 [[철도역]] 및 도시철도역을 정리한 목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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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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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9민주묘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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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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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남역]]
* [[가능역]]
* [[가락시장역]]
* [[가산디지털단지역]]
* [[가수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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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대포항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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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역]]
* [[마곡나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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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곡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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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정역 (김해)]]
* [[화원역]]
* [[황간역]]
* [[황길역]]
* [[황금역]]
* [[황등역]]
* [[회기역]]
* [[회덕역]]
* [[회룡역]]
* [[회현역]]
* [[횡성역]]
* [[횡천역]]
* [[효자역 (의정부)]]
* [[효자역 (포항)]]
* [[효창공원앞역]]
* [[효천역]]
* [[흑석역]]
* [[흑석리역]]
* [[흥국사역]]
* [[흥선역]]
{{div col end}}
{{ㄱㄴㄷ 바로가기}}
__NOTOC__
[[분류:대한민국의 철도역|*]]
[[분류:철도역 목록]]
[[분류:대한민국에 관한 목록|철도역]]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설명|[[오봉역 (경흥)|오봉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경흥군]]에 있는 [[회암선]]의 역이기도 하다.}}
{{철도역 정보
|역명 = 오봉
|배경색 = {{한국 철도 노선색|KR}}
|그림 = Obong Station.jpg
|그림설명 = 역사
|소재지 = [[경기도]] [[의왕시]] 오봉로 168 (이동 406)
|개업일 = [[1984년]] [[7월 20일]]
|관할 = [[한국철도공사]] 수도권광역본부
|종별 = 관리역
|등급 = 2급
|승강장 = 2면 20선
|노선1 = [[남부화물기지선]]
|영업거리1 = [[의왕역|의왕]] 기점 3.0 km
|전역1 = [[의왕역|의왕]]
|전거리1 = 3.0
}}
'''오봉역'''(Obong station, 五峯驛)은 [[경기도]] [[의왕시]] [[부곡동 (의왕시)|이동]]에 있는 [[남부화물기지선]]의 화물역이다. 근처에 있는 [[오봉산 (의왕)|오봉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 연혁 ==
* [[1983년]] [[6월 15일]] : 컨테이너 화물기지 준공
* [[1984년]] [[7월 20일]] : '''오봉역'''으로 영업 개시
* [[1992년]] [[3월 2일]] : '''의왕역'''으로 역명 변경
* [[1992년]] [[5월 14일]] : 화물 취급 제한 지정 해제
* [[1993년]] [[7월 1일]] : 의왕 컨테이너 내륙통관기지(ICD) 개장
* [[1995년]] [[5월 12일]] : 부곡 복합화물터미널 기공
* [[2004년]] [[6월 25일]] : '''오봉역'''으로 역명 환원
== 역 구조 ==
2면 20선의 구조로, 역사로부터 9개의 측선, 2개의 상부본선, 상본선, 하본선, 2개의 하부본선, 5개의 측선이 있으며 상본선과 하본선의 양쪽으로 [[쌍섬식 승강장]]이 있다.
그 외에 제1컨테이너기지에 8개선, 제2컨테이너기지에 3개선, 양회기지에 12개선, 2개의 인상선(역 구내에서 환차를 위해 쓰이는 선로), 2개의 수차선(수리 대상 열차용 선로) 등이 있다.
== 기타 ==
* 당초에는 [[남부순환선]]과 [[직결 운행]]하여 여객 취급을 할 계획에 대비하여 승강장, 지하 횡단 통로, 기타 여객 취급 관련 시설을 일부 만들어 놓았으나, 계획이 무산되어 현재 여객 취급 관련 시설은 여타 시설로 전용되고 있다.
* 의왕 기점 3.0km 위치에 있으나, 운임 계산시에는 4.4km가 적용된다.
{{남부화물기지선}}
[[분류:경기도의 철도역]]
[[분류:1984년 개업한 철도역]]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트랙백'''({{llang|en|trackback}})은 [[블로그]]에서 사용하는 주요 기능 중 한 가지로서, 간단히 역방향 연결 고리를 자동적으로 생성해 주는 기능을 말한다. 즉, 이 기능을 사용하며 A포스트에서 B포스트로 정보를 보내면 B포스트에 A포스트로 연결되는 고리가 자동으로 생기는데, 이런 과정을 트랙백이라고 부른다. 트랙백 기능은 블로그 이외에 [[위키위키]]나 뉴스 사이트에서 제공하기도 한다.
트랙백은 철저한 1인 미디어를 지향하는 블로그들 사이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주어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한다. 누군가의 블로그를 읽고 그에 대한 의견을 자신의 블로그에 써 넣은 후 트랙백을 주고 받으면 원래의 글 아래 자신의 블로그에 쓴 해당 글로 가는 연결 고리가 붙게 된다.
== 표준 ==
트랙백 표준은 2002년 Movable Type 블로깅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식스 어파트(Six Apart)에 의해 작성되었다. 그 후 대부분의 다른 블로깅 도구들도 이를 구현해 왔다. 식스 어파트는 2006년 2월에 트랙백 프로토콜을 향상시키기 위해 워킹 그룹을 출범하였으며, [[IETF]]는 이를 표준으로 등록하였다.
== 단점 ==
일부 개인이나 회사들은 트랙백을 사용하여 스팸 링크를 넣을 수 있는 특성에 대해 지적해 왔다. 댓글 스팸과는 달리 트랙백 스팸 필터의 개발이 상대적으로 늦었다. 현재의 블로그 도구들은 트랙백 스팸도 처리할 수 있지만 일부 블로거들은 트랙백 스팸 때문에 트랙백 기능을 막아 두기도 한다.
== 같이 보기 ==
* [[핑백]]
* [[검색 엔진 최적화]]
* [[스핑]]
== 외부 링크 ==
* [http://www.movabletype.org/docs/mttrackback.html 트랙백 통신 규약]
* [https://web.archive.org/web/20110417065047/http://www.dal.kr/blog/archives/000042.html 블로그 용어] 김중태 IT 문화원 1기 사전
* [http://www.mindcoach.pe.kr/entry/트랙백-먼댓글-이라는데-무얼까요-트랙백-명함입니다]{{깨진 링크|url=http://www.mindcoach.pe.kr/entry/%ED%8A%B8%EB%9E%99%EB%B0%B1-%EB%A8%BC%EB%8C%93%EA%B8%80-%EC%9D%B4%EB%9D%BC%EB%8A%94%EB%8D%B0-%EB%AC%B4%EC%96%BC%EA%B9%8C%EC%9A%94-%ED%8A%B8%EB%9E%99%EB%B0%B1-%EB%AA%85%ED%95%A8%EC%9E%85%EB%8B%88%EB%8B%A4 }} by in2web
* [https://web.archive.org/web/20100216000159/http://bloney.net/44 트랙백이란 무엇인가요?] by Bloney
{{전거 통제}}
[[분류:블로그]]
[[분류:영어계 외래어]]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베트남 표}}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small>({{vie|v=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hn=共和社會主義越南|pr=꽁화싸호이쭈응이어비엣남}}, {{한국 한자음|'''공화 사회주의 월남'''}}, {{문화어|윁남사회주의공화국}})</small>, 통칭 '''베트남'''<small>({{vie|v=Việt Nam|hn=越南|pr=비엣남}}, {{한국 한자음|'''월남'''}}, {{문화어|윁남}})</small>은 [[동남아시아]]의 국가이다. 주요 도시로는 [[하노이]], [[호찌민시]], [[다낭]], [[하이퐁]], [[호이안]], [[사파]], [[후에]] 등이 있다. 북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 서쪽으로는 [[라오스]] 및 [[캄보디아]]와 접하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남중국해]]와 만난다.
[[면적순 나라 목록|면적은 약 331.212km<sup>2</sup>이다]]. [[인도차이나반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로 최근 인구 통계에서는 1억30만<ref>{{웹 인용|url=http://www.goodmorningvietnam.co.kr/mobile/article.html?no=70060|제목=[굿모닝베트남미디어] [인구] 2023년 베트남 인구 1억30만명, 80만명 이상 증가|언어=ko|확인날짜=2024-09-13}}</ref><ref>{{웹 인용|url=https://nhandan.vn/dan-so-trung-binh-cua-viet-nam-nam-2023-dat-1003-trieu-nguoi-post789936.html|제목=Dân số trung bình của Việt Nam năm 2023 đạt 100,3 triệu người|날짜=2023-12-31|언어=vi|확인날짜=2024-10-09}}</ref>명이며, 세계에서 [[인구순 나라 목록|16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다. 나라의 명칭인 '''비엣남'''({{vie|v=Việt Nam|hn=越南}}, {{한국 한자음|월남}})은 1945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하며, 이 이름은 오늘날 베트남 북부와 중국 남부를 지배하였던 옛 베트남 왕조인 [[남월]]({{vie|v=Nam Việt|pr=남비엣}})의 명칭을 거꾸로 부른 이름이다. 베트남 [[수도]]는 [[하노이]]이고, 정부형태는 사회주의 공화제이며 공산당이 유일당이다.
고대 베트남은 [[938년]] [[박당 전투 (938년)|박당 전투]]에서 [[응오 왕조]]의 시조인 [[응오꾸옌]]({{vie|v=Ngô Quyền|hn=吳權}}, {{한국 한자음|오권}})이 [[오대 십국 시대|오대 십국]]의 하나인 [[남한 (십국)|남한]]과 싸워 이겨 독립하였다.<ref>{{웹 인용 |url=http://www.informatik.uni-leipzig.de/~duc/sach/dvsktt/dvsktt05.html |제목=KỷThuộc Tùy Đường |언어=vi |확인날짜=2012-10-21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0113034436/http://www.informatik.uni-leipzig.de/~duc/sach/dvsktt/dvsktt05.html |보존날짜=2013-01-13 |url-status=dead }}</ref> 독립 이후 베트남의 왕조들은 지속적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안을 따라 남쪽으로 국경을 넓혀갔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는 동안 베트남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로 편입하였다.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 지배 기간 동안 계속하여 독립 운동을 벌였고,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에는 일본이 지배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5년]] [[9월 2일]] [[호치민]]은 [[하노이]]의 [[바딘 광장]]에서 베트남 독립을 선언하고 [[베트남 민주공화국]] 수립을 선언하였다.<ref>전국역사교사모임,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2》, 휴머니스트, 2005년, {{ISBN|89-5862-071-4}}, 221쪽</ref> 그러나 프랑스는 베트남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프랑스와 베트남 사이에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일어났다.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베트남군이 대승을 거두고 프랑스군이 철수를 하면서 베트남은 독립을 맞았다.<ref name="ReferenceA">김정형, 《역사 속의 오늘》, 생각의나무, 2005년, {{ISBN|89-8498-420-5}}, 167쪽</ref> 그러나 서구 열강은 [[제네바 협정 (1954년)|제네바 협정]]을 통해 베트남을 다시 북위 17도를 기준으로 남북으로 나누었고, 약속하였던 전국 선거를 거부한 채 [[응우옌 왕조]] 마지막 황제 [[바오 다이]]를 왕으로 내세워 [[베트남국]]을 수립하였다.<ref name="avalon.law.yale.edu">[http://avalon.law.yale.edu/20th_century/inch022.asp Indochina - Midway in the Geneva Conference: Address by the Secretary of State, May 7,1954], Yale Law School</ref> 베트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응오딘지엠]]의 [[쿠데타]]로 무너지고 [[베트남 공화국]]을 세워 남북 대결을 시작하였다. [[미국]]은 [[도미노 이론]]을 내세우며 베트남 정치에 개입하였으며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다.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것보다 훨씬 많은 폭탄을 [[북베트남]] 지역에 투하하였고 막강한 화력과 인력을 동원하였다. 하지만 베트남의 끈질긴 저항과 전세계와 미국 내의 반전 여론에 밀려 결국 1973년 [[파리 협정 (1973년)|파리 협정]]을 맺고 철군하였다. 1975년 북베트남은 [[사이공]]을 점령하였고, 1976년 7월 2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였다.<ref name="ReferenceB">전국역사교사모임,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2》, 휴머니스트, 2005년, {{ISBN|89-5862-071-4}}, 252-253쪽</ref> 전쟁 후 베트남은 전후 복구와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통한 발전을 도모하였으나, 1979년 [[크메르 루주]]와 전쟁을 치렀고,<ref name="ReferenceC">최호근, 《제노사이드》, 책세상, 2005년, {{ISBN|89-7013-527-8}}, 제3부 세계사의 제노사이드 , 제4장 혁명의 이름으로 일어난 제노사이드</ref> [[중화인민공화국]]과도 국경분쟁으로 [[중국-베트남 전쟁]]을 치르는 등 순탄하지 않았다.<ref>지오 찬성, 김태완 역, 《중국의 외교정책》, 오름, 2001년, {{ISBN|89-7778-143-4}}, 84쪽</ref> 1992년 [[베트남 공산당]]은 [[도이 머이]]를 시작하여 혼합 경제를 도입하였고,<ref>{{웹 인용 |url = http://news.bbc.co.uk/2/hi/asia-pacific/3752682.stm |제목= Vietnam's new-look economy |출판사 =BBC |날짜 = 2004-10-18 |인용문 = But in 1986 a new set of leaders, following China's example, put aside the old dogmas and embraced the free market. }}</ref> 2000년에는 거의 모든 나라와 수교를 맺었다.
== 명칭 ==
베트남인의 명칭 월족(越族)은 화남 지역에 월나라와 초나라를 건국한 [[백월]](百越)이며 베트남의 국명 비엣남(Việt Nam 越南, 월남)은 베트남 북부에서 아시아 남부에 이르렀던 기원전 2세기의 고대 국가 [[남비엣]]에서 유래하였다.<ref>Woods, L. Shelton (2002). Vietnam: a global studies handbook. ABC-CLIO. p. 38. {{ISBN|1-57607-416-1}}.</ref> 비엣(월, 越, Việt)은 [[백월]](Bách Việt, 百越)족을 뜻하는 말이다.<ref>Yue-Hashimoto, Oi-kan (1972). Phonology of Cantones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1. {{ISBN|978-0-521-08442-0}}. "As a term referring to peoples, Yue is an abbreviation of Bai-Yue (百越 or 百粵, literally hundred Yue's)."</ref> 비엣남이란 낱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6세기 베트남의 시인 [[응우옌빈끼엠]]의 시 삼짱찐(Sấm Trạng Trình, 讖狀程, 섬상정)이다. 이후 비엣남은 점차 베트남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이 되어, 1905년 베트남의 [[판보이쩌우]](Phan Bội Châu, 潘佩珠)와 중국의 [[량치차오]](梁啓超)가 일본의 요코하마에서 월남의 식민지화에 대해 나눈 대담은 《[[월남망국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ref>고병권•오선민, [http://www.translating-society.de/conference/papers/9/ 내이션 이전의 인터내셔널「월남망국사」의 조선어 번역에 대하여],코뮤넷 수유너머 "『월남망국사』는 월남의 판보이쩌우(潘佩珠, Phan Boi Chau)와 중국의 량치차오(梁啓超, Liang Ch'i Ch'ao)가 1905년 일본의 요코하마에서 나눈 대담을 상하이 광지서국(廣智書局)에서 펴낸 책이다."</ref> 비엣남은 1945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베트남 민주 공화국]] 이후 공식적인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
한국어권에서는 월남과 베트남이라는 나라이름을 사용하며, [[대한민국 표준어]]에서는 1965년까지 비에트남과 베트남으로 불렸으나, 이 중 베트남이라는 표현을 관습상 용례로 인정하여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하고 현재에 이른다.<ref>{{웹 인용|url=https://stdict.korean.go.kr/search/popup/historyList.do?word_no=146905&hist_seq=1|제목=베트남|성=|이름=|날짜=2017-05-22|웹사이트=표준국어대사전|출판사=국립국어원|확인날짜=2020-07-12|인용문=‘Vietnam’은 영어에서 [viètnɑ́ːm]으로 발음하나 관용을 존중하여 ‘베트남’으로 표기한다. 또한 ‘베트남’은 오랜동안 한국 한자음으로 ‘월남(越南)’으로 사용하여 ‘월남’도 허용한다.}}</ref> 이에 반해 [[문화어]]에서는 이곳의 언어에 대해 윁남어란 표현을 사용한다.<ref>{{웹 인용|url=https://opendict.korean.go.kr/dictionary/editHistoryList?word_no=465616&sense_no=430675&viewType=confirm#|제목=윁남어|성=|이름=|날짜=2016-10-03|웹사이트=우리말샘|출판사=국립국어원|확인날짜=2020-07-12}}</ref>
== 역사 ==
{{본문|베트남의 역사}}
[[파일:DrumFromSongDaVietnamDongSonIICultureMid1stMilleniumBCEBronze.jpg|섬네일|[[동손 문화]]의 송다 청동북]]
[[파일:Vietnam territorial expansion (900–1760 AD).gif|섬네일|'''베트남의 영토 확장'''<br /> 중세 이후 베트남은 이웃한 [[라오스]], [[캄보디아]]를 대상으로 정복 전쟁을 벌여 계속하여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였다.<br /> <div style="background-color:orange;width:15px;height:15px;float:left;"></div> 900년<br />
<div style="background-color:yellow;width:15px;height:15px;float:left;"></div> 1100년<br />
<div style="background-color:lightgreen;width:15px;height:15px;float:left;"></div> 1475년<br />
<div style="background-color:green;width:15px;height:15px;float:left;"></div> 1650년<br />
<div style="background-color:lightblue;width:15px;height:15px;float:left;"></div> 1760년]]
=== 선사 시대 ===
본래 [[백월]](百越)족은 양쯔강 화남 지역과 베트남 북부 지역에서 고대 월나라, 초나라 등을 건국하였다. 중국에서는 고대 월나라를 남만(南蠻)이라고 불렀다. 베트남 지역에서는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살았며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인도네시아 제도]]에 이르는 지역에 산재한 목재 문화 유적을 많이 발굴한다.<ref>양승윤 외, 《인도네시아 사회와 문화》,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1997년, {{ISBN|89-7464-123-2}}, 27-28쪽</ref> 베트남의 건국신화인 락롱꿘, 어우꺼 신화는 약 4,500년 전 락롱꿘({{vie|v=Lạc Long Quân|hn=貉龍君|ex=용(龍)의 우두머리}})과 어우꺼({{llang|vi|Âu Cơ}})가 결혼하여 많은 베트남 부족들의 선조가 태어났다고 말한다.<ref>배양수, [http://vietnamkorea.org/bbs/data/file/menu8/614b38f3_hoanghae.pdf 문학작품을 통해 본 베트남]{{깨진 링크|url=http://vietnamkorea.org/bbs/data/file/menu8/614b38f3_hoanghae.pdf }}, 《황해문화 2002년 가을호》 (통권36호)"「락롱꿘, 어우꺼 신화」에 따르면, 베트남인들은 산신의 딸인 어우꺼와 바다 신의 아들인 락롱꿘의 결혼하여 태어났다."</ref>
=== 고대 ===
본래 [[백월]](百越)족은 양쯔강 유역의 화남 지역에서 장강(長江) 문화를 만들었으나 현재 베트남 영토에서 최초의 문명은 [[동선 문화]]이다. [[동선 문화]]는 [[기원전 300년]] 경 [[청동기]] 문명으로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발생하였으며 베트남 북부를 비롯한 인도차이나 반도 여러 곳을 지배하였다.<ref>메이슨 플로랜스, 버지니아 젤러스 [2003년 11월 17일]. 《론리플래닛:베트남》, 책임감수 최하나, 초판, 서울: 인그라픽스</ref> [[마강]]과 [[홍강]] 유역에서 기원전 1200년 경 습식 벼농사와 정교하게 만든 북과 같은 청동 주물들을 발견하였다. 동선 문화의 청동 무기, 도구, 북과 같은 유물들을 만든 청동 주물 기술은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독자기술이다.<ref>전국역사교사모임,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1》, 휴머니스트, 2005년, {{ISBN|89-5862-070-6}}, 160쪽</ref><ref>Keith Weller Taylor, [https://www.google.co.kr/books?id=rCl_02LnNVIC&pg=PA313&lpg=PA313&dq=birth+of+vietnam+taylor+bronze+casting&source=bl&ots=J1alBMhDK7&sig=Kn7m6ipW0W2Jy9EaZyIK5SNu5AI&hl=en&ei=JG7ESda9NJKWsQP4p8T-Bg&sa=X&oi=book_result&ct=result&redir_esc=y#v=onepage&q=birth%20of%20vietnam%20taylor%20bronze%20casting&f=false The Birth of Vietnam], 313p</ref> 동선 문화는 독자적인 청동기 문화를 이루었고, [[홍방 왕조]]는 베트남 최초의 국가인 [[반랑]](문랑, {{llang|vi|Văn Lang}}, 文郎)을 세웠다.<ref>Patricia M. Pelley Postcolonial Vietnam: New Histories of the National Past 2002 Page 151 "As a result of this historiographical maneuver, the mythical antiquity of Vietnam actually predated the mythical antiquity of China: the Hồng Bàng dynasty (2879–258 BCE.) preceded the Xia dynasty (2205–1766 BCE.) by more than six centuries."</ref>
기원전 257년 [[홍방 왕조]]가 무너지고 [[툭판 왕조]]을 세워으며, 툭판 왕조는 다시 기원전 208년 [[남비엣]]에게 멸망당하였다. 기원전 111년 중국 [[한나라]] [[한무제|무제]]는 [[남비엣]]을 정복하였다. [[기원전 111년]]부터 [[10세기]] 초까지 대부분 시기에 베트남은 중국 왕조들이 지배하였다.<ref>{{웹 인용 |url=http://asia.msu.edu/seasia/Vietnam/History/chinesecolonization.html |제목=Chinese Colonization (200BC - 938AD) |확인날짜=2010년 4월 28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70825192025/http://www.asia.msu.edu/seasia/Vietnam/History/chinesecolonization.html |보존날짜=2007년 8월 25일 |url-status=dead }}</ref> [[쯩 자매]]와 [[바찌에우]]와 같은 산발적인 독립운동이 잠시 성공하였으나 중국이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 중세 ===
[[938년]] [[박당 전투 (938년)|박당 전투]]에서 [[응오 왕조]]의 시조인 [[오권|응오꾸옌]](吳權)이 [[오대 십국 시대|오대 십국]]의 하나인 [[남한 (십국)|남한]]과 싸워 이겨 독립하였다.<ref>[http://www.informatik.uni-leipzig.de/~duc/sach/dvsktt/dvsktt05.html K ỷ T h u ộ c T ù y Đ ư ờ n g] {{웨이백|url=http://www.informatik.uni-leipzig.de/~duc/sach/dvsktt/dvsktt05.html |date=20130113034436 }}(베트남어)</ref> 그러나 응오 왕조는 오래 가지 못하였고, [[딘 왕조]]가 그 뒤를 이었다.
이후, 베트남에서는 [[전 레 왕조]], [[리 왕조]], [[쩐 왕조]], [[호 왕조]]와 같은 왕조들이 그 뒤를 이었다. 호 왕조는 1406년부터 1407년까지 있넜던 [[명나라]]의 침공을 막지 못하였고, 베트남은 역사상 네 번째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ref>Chan, Hok-lam (1990). "The Chien-wen, Yung-lo, Hung-hsi, and Hsüan-te reigns, 1399-1435". The Cambridge History of China (Volume 7): The Ming Dynasty, 1368-1644 (Part 1).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ISBN|0-521-24332-7}}.</ref>
=== 근대 ===
1418년 농민들을 규합하여 독립 전쟁을 벌인 [[후 레 태조]]는 명나라를 축출하고 1428년 [[대월국]]의 황제가 되었다. 이렇게 세웠던 [[후 레 왕조]]를 잠시 [[막 왕조]]이 지배하였으나, 부흥 운동에 성공하여 1778년까지 베트남을 다스렸다. 부흥 운동 이후 후 레 왕조는 사실상 독립적인 정부를 구성하는 두 가문인 [[찐 주]]와 [[응우옌 주]]가 남북조로 나누었다. 1777년 격화한 농민 항쟁을 막지 못해 레 왕조는 결국 멸망하고 [[떠이선 왕조]]를 세웠다.<ref>양승윤, 《동남아와 아세안》,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1998년, {{ISBN|89-7464-096-1}}, 214-215쪽</ref>
후 레 왕조가 멸망한 후 남부 실권자였던 응우옌 주는 [[떠이선 왕조]]를 격파하고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를 세웠다.
응우옌 왕조 2대 황제 [[민망제]]가 [[로마 가톨릭|천주교]] 선교사 박해사건을 일으키자, [[영국]]과 경쟁하여 일찌기 [[인도차이나]]로 진출을 꾀하던 [[프랑스]] [[나폴레옹 3세]]는 [[로마 가톨릭|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삼아,<ref>[[조선]] [[병인양요]]와 유사</ref> [[1858년]] [[다낭]]을 공격하고 이듬해에 [[사이공]]을 점령하였다. 그 후 프랑스는 베트남 북부 및 중부를 공략하여 [[1884년]]에는 베트남 전국토를 [[프랑스]]로 식민지로 선언했다. [[청나라]]와 벌인 [[청불 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는 베트남을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지 강점하였다.<ref>[[상인]]과 군대와 더불어 [[천주교]]를 이용하여 [[식민지]]를 늘리는 행동은 [[제국주의]] 시대 서방 강대국들이 사용하던 식민지 경영 방식이었다. 그 실례로 영국의 [[개신교]] 선교사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미개한 [[아프리카]]를 [[상인]]들과 [[군대]]가 드나드는 [[영국]]의 식민지로 만들어 선교활동을 쉽게 하겠다."{{출처|날짜=2011-07-06}}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주장했으며, 실제로 [[탐험]]활동으로 영국의 식민지를 늘렸다.</ref>
=== 현대 ===
[[파일:French indochina 1952 05 2.png|200px|섬네일|프랑스군의 정찰, 1952년]]
==== 인도차이나 전쟁 ====
{{본문|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제1차 세계 대전인 [[1884년]] 프랑스가 베트남을 보호국으로 하자, 민족 독립을 표방하는 반(反)프랑스운동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프랑스 세력에 대항하는 베트남 [[독립운동]]을 [[20세기]]에 들어 활발히 진행했다. [[중화민국]], [[일본]] 등지에 베트남 독립운동 단체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호찌민]]이 주도하여 [[베트남 공산당]]을 결성했다. 공산당은 그 후 각파의 정치세력을 규합하였고, [[비엣민]]을 설립하며 1차 세계 대전이 끝났다.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일어난 [[민족자결주의]] 영향을 받아 [[1927년]] [[베트남 국민당]]과 [[1930년]][[인도차이나 공산당]]을 조직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일본]]이 베트남에 침입하자, [[민족주의]] 세력들 중 가장 조직력이 뛰어났던 [[공산주의]] 계열은 [[베트남 독립연맹]](비엣민)을 결성하였다. 일본 통치로 최소 40만 명의 목숨을 잃는 사건<ref>1945年ベトナム飢饉</ref>이 베트남에서 발생했다. 일본 제국은 동북아와 달리 동남아를 개발할 생각이 없이 자원만을 독식하며 베트남 경제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1945년]] 8월 [[전쟁]]이 끝나자 비엣민을 중심으로 [[베트남 민주 공화국]]응 성립하였다. 그러나 프랑스는 [[전쟁]] 전의 지배권을 되찾고자 다시 군대를 파견하자 [[호찌민]]이 이끌던 민족 세력, [[비엣민]]([[월맹]])과 남북으로 대립하였다. 이로 인해 [[1946년]] 말부터 양국 사이에는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일어났다.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베트남군이 대승을 거두고 프랑스군이 철수를 하면서 베트남은 독립을 맞았다.<ref name="ReferenceA"/> 그러나, 서구 열강은 [[제네바 협정 (1954년)|제네바 협정]]으로 베트남을 다시 한번 북위 17도를 기준으로 남북으로 나누었고, 약속하였던 전국 선거를 거부한 채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 [[바오 다이]]를 왕으로 내세워 [[베트남국]]을 수립하였다.<ref name="avalon.law.yale.edu"/> 베트남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응오딘지엠]]의 [[쿠데타]]로 붕괴하고 [[베트남 공화국]]과 남북으로 대립하였다.
==== 월남전 ====
{{본문|베트남 전쟁}}
[[파일:OperationBaker1967Vietcongaceofspades.ogv|섬네일|200 px|right|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콩의 시체에 스페이드 에이스 카드를 넣어서 문제가 된 영상이다.]]
베트남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으로 분단되었고 [[1964년]]부터 [[1975년]]까지 베트남은 [[미국]]에 맞서서 [[베트남 전쟁]](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치러야 했다. [[미국]]은 [[도미노 이론]]을 주장하며 베트남에 개입하였으며 [[통킹만 사건]]이라는 자작극을 벌여 [[베트남 전쟁]]을 개시하였다.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것보다 훨씬 많은 폭탄을 [[북베트남]] 지역에 투하하였고 막강한 화력과 인력을 동원하였으나, 베트남의 끈질긴 저항과 전쟁을 계속하는 동안 일어난 전 세계와 미국 내의 반전 여론에 밀려 결국 1973년 [[파리 협정 (1973년)|파리 협정]]을 맺고 철군하였다. 1975년 북베트남은 [[사이공]]을 점령하였고, 1975년 베트남의 전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베트남은 공산주의 체제인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였다.<ref name="ReferenceB"/>
==== 전후 시대 ====
전쟁 후 베트남은 전후 복구와 계획 경제체제를 통한 발전을 도모하였으나, 1979년 [[크메르 루주]]와 전쟁을 치렀고,<ref name="ReferenceC"/> [[중화인민공화국]]과도 국경분쟁으로 [[중국-베트남 전쟁]]을 치르는 등 순탄하지 않았다.<ref>지오 찬성, 김태완 역, 《중국의 외교정책》, 오름, 2001년, {{ISBN|89-7778-143-4}}, 84쪽</ref> 1992년 [[베트남 공산당]]은 [[도이 머이]]를 시작하여 혼합 경제를 도입하였고, 2000년에는 거의 대부분의 국가와 수교를 맺었다.<ref>[http://news.bbc.co.uk/2/hi/asia-pacific/3752682.stm Vietnam's new-look economy]</ref>
== 자연 환경 ==
{{본문|베트남의 지리}}
[[파일:Ha Long Bay in 2019.jpg|섬네일|200px|세계유산, [[하롱베이]]]]
[[파일:Thác Bản Giốc.jpg|섬네일|200px|right|북베트남의 [[반지옥 폭포]]
<ref>[https://www.google.com/maps/place/Ban+Gioc+Waterfall/@22.753601,106.5986642,9.25z/data=!4m5!3m4!1s0x36b58d5626a7c29f:0x28c5c44a92ca7edb!8m2!3d22.8553194!4d106.7225925?hl=ko 구글 지도]</ref> ]]
[[파일:Son Doong Cave 5.jpg|섬네일|200px|right|[[선도옹 동굴]]]]
=== 지리 ===
베트남은 인도차이나 반도에 동단에 남북으로 약 1,650km에 걸쳐 길게 뻗어 있다. [[남중국해|동해]]에 면해 있으며 최대 너비는 약 650km로 이 길이는 라오스와 맞닿은 북부 국경에서 통킹 만에 이르는 거리이다. 국토는 크게 북부 고원 지대, [[홍강 삼각주]], [[안남산맥]], 해안 저지대, [[메콩강 삼각주]]의 다섯 지역으로 이루어진다.
* 북부 고원 지대
::북서부에 있는 산악 지대로 [[중국]]과 [[라오스]] 영토 안까지 뻗어 있다. 이 지역의 산들은 대부분 숲이나 밀림으로 덮여 있어 인적이 드물거나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산인 [[판시팡산]](3,143m)도 이 지역에 있으며, [[몽족]] 등 소수민족이 경작하는 계단식 논과 판시팡산으로 운행하는 케이블카가 있는 [[사빠]] 등이 위치한 [[라오까이성]]도 있다.<ref>[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8931364&memberNo=19760810 나만 알고 싶은 여행지 베트남 싸파(사파) 절경 BEST 3 -알에이치코리아,네이버포스트]</ref>
* [[홍강 삼각주]] (송코이 강 삼각주)
::북부 고원 지대에서 통킹 만까지 뻗어 있으며 거의 전역이 해발 3m 이하의 저지대이다. [[홍강 삼각주]]는 베트남 북부에서 주요한 농경 지대로 옛부터 베트남 민족의 활동 무대였다.
* [[안남산맥]](쯔엉썬 산맥)
::북부 고원 지대에서 서부 지역을 가로질러 [[호찌민시]]에서 북쪽으로 약 80km 떨어진 지점까지 뻗어 있다. 중부 지역은 대부분이 안남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평야는 해안에 접해서 대상(帶狀)으로 좁게 달리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산맥이 해안으로 바싹 다가서 있으므로 좋은 항만이 없다. 이 산맥의 고지에는 [[타이족]] 이외에 [[먀오족]]·모이족·몬타냐족 등 많은 부족이 살고 있다.
* 해안 저지대
::베트남의 중동부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산지에서 남중국해 쪽으로 비스듬히 비탈져 있고 송코이강 삼각주에서 [[메콩강 삼각주]]까지 펼쳐져 있다. 해안 저지대 거의 전역에서 쌀을 생산한다. 해안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 [[메콩강 삼각주]]
::베트남의 남부 지역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메콩강 삼각주는 해발 3m 요 농업 지대이다. 베트남 민족은 17세기에 들어와서 선주민인 [[크메르족]]을 쫓아내고 이 미래의 곡창 지대를 지배하게 되었다.<ref>{{글로벌세계대백과2|제목=[[: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시아/베트남#베트남의 자연|베트남의 자연]]}}</ref>
=== 기후 ===
[[파일:Koppen-Geiger Map v2 VNM 1991–2020.svg|섬네일|300x300px|베트남 기후 지도]]
베트남 북부는 아열대 기후이고, 중부와 남부 지역은 열대 기후입니다. 열대 계절풍으로 5월부터 10월까지는 많은 비를 몰고 오며, 11월부터 4월까지는 동북 건조기간이 된다. 북부 일부 지역은 사계절이 나타나고 습도가 90%의 비중을 차지한다. 남부 지방은 일년 내내 건조하고 여름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린다. 중부 지방에는 베트남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과 가장 습한 지역이 자리잡고 있다. 산악 지방은 삼각주나 해안 저지대보다 대체로 기온이 낮고 비가 더 많이 온다.<ref>{{글로벌세계대백과2|제목=[[: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시아/베트남#베트남의 기후|베트남의 기후]]}}</ref>
== 정치 ==
[[파일:vietnam national convention center.jpg|섬네일|200px|right|베트남 국립 컨벤션 센터]]
{{참고|베트남 역대 지도자}}
옛 월맹은 [[1969년]] [[호찌민]]이 세상을 떠난 뒤 [[쯔엉찐]] 국민의회 상임위 주석, [[레주언]] 베트남 공산당 제1서기, [[팜반동]] 총리 등 3인을 중심으로 집단지도 체제를 채택했다. 구 월맹은 월남이 [[공산주의]] 국가가 된 후 월남 임시혁명정부와 함께 1여 년간의 남북통일 준비작업을 끝내고 [[1976년]] [[4월 25일]] 30년 만에 처음으로 국가최고 권력기구인 492석의 남북단일 국민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거를 실시했다.
이 선거로 인구 10만 명당 1석을 기준으로 하는 배분원칙에 따라 북베트남에서 249석, 남베트남에서 243석을 선출했다. 남북 베트남의 18세 이상의 유권자들이 참가한 총선은 남북 베트남의 [[공산주의]] 정권이 전국의 노동자·농민·여성·산악부족 및 그 밖의 소수인종에서 선정한 후보자 중에서 국민의회 대표들을 선출했으며 야당후보는 없었다.
총선거를 통해 구성된 남북베트남단일국민의회는 [[1976년]] 7월 역사적인 통일 베트남 수립을 선포하고 국호를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으로 하였다. 수도는 [[하노이]]로 정하는 한편 초대 주석으로 구 월맹의 마지막 주석 [[똔득탕]]을, 그리고 2명의 부주석으로는 [[응우옌르엉방]] 및 [[응우옌흐우토]]를 선출하였다. 또한 옛 월남 수도 [[사이공]]을 [[호찌민시]]로 개칭하고 국기는 종래의 월맹기였던 [[금성홍기]]를 그대로 쓰기로 하였다.
국민의회는 통일 베트남의 새 헌법을 마련할 36명의 헌법기초위원회를 구성하는 동시 새 헌법이 공포될 때까지 [[1959년]]도 월맹 헌법을 계속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입법기관으로 국민의회가 있고 각 성(省)에 각급 인민회의가 있다. 단원제이며 임기는 5년, 매년 2회 소집된다. 주석, 부주석과 간부의원 15명으로 구성되는 상임위원회가 실질적인 입법기능을 행사한다.
[[1991년]] 6월 제7차 당대회에서 도이모이 건의에 중심 역할을 해온 [[도므어이]]가 총서기로 선출됐으며, 동 8월의 내각개편에서 개혁파인 보반끼엣 총리로 선출됐다. [[1996년 6월]]의 공산당 전당대회에서도 ‘도이모이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을 재확인했다. [[2001년 4월]] [[농득마잉]] [[서기장]]이 취임했다.<ref name="글로벌 정치">{{글로벌세계대백과2|주소=http://donation.enc.daum.net/wikidonation/ency.do?vol=006&code=002001006000000000#002001006000006000|제목=[[: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시아/베트남#베트남의 정치|베트남의 정치]]}}</ref> 농득마잉은 2011년 1월에 은퇴했다. 농득마잉의 후임인 [[응우옌푸쫑]] 은 2024년 7월 사망할 때까지 13년 동안 사무총장직을 맡았다. 서기장 재임 기간 동안 쫑은 베트남 정치 역사상 전례 없는 수준으로 수많은 고위 관리들의 부패를 척결한 광범위한 반부패 캠페인을 추구하였다. "대나무 외교"로 알려진 쫑의 외교 정책은 베트남과 미국, 베트남과 중화인민공화국 간 관계 균형을 맞추려는 의도에서 추진되었다. 쫑은 호찌민 이후 영향력이 지대한 베트남 지도자 가운데 한 명으로 간주된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24-07-19/vietnam-s-most-powerful-leader-party-chief-trong-dies-at-80?srnd=homepage-asia|제목=Vietnam’s Most Powerful Leader, Party Chief Trong, Dies|날짜=2024-07-19|뉴스=Bloomberg.com|언어=en|확인날짜=2024-10-08}}</ref>2024년 8월, [[또람]]이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다.<ref>{{웹 인용|url=https://dangcongsan.vn/thoi-su/dong-chi-to-lam-duoc-bau-giu-chuc-tong-bi-thu-ban-chap-hanh-trung-uong-dang-cong-san-viet-nam-674161.html|제목=Đồng chí Tô Lâm được bầu giữ chức Tổng Bí thư Ban Chấp hành Trung ương Đảng Cộng sản Việt Nam|언어=vi|확인날짜=2024-10-08}}</ref>
=== 행정 구역 ===
{{본문|베트남의 행정 구역}}
[[파일:VietnameseProvincesMapTiengViet1.png|right|섬네일|200px|베트남의 행정구역 구분]]
베트남의 행정 구역은 63개 성({{vie|v=tỉnh|pr=띤|hn=省}})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인 [[하노이]]를 포함하여 [[껀터]], [[다낭]], [[하이퐁]], [[호치민시|호치민]]은 성과 같은 급의 직할시이다.
베트남 정부는 가끔씩 지방을 8개의 지역으로 구분짓는다. 이러한 지방 구분은 항상 사용되는 것은 아니며, 대체 분류로 가능하다.
=== 사법 ===
베트남 사법부의 최정점에는 상소심과 사법심사를 담당하는 최고인민법원이 있고 베트남 의회에 보고를 하는데, 의회는 사법부의 예산을 통제하고 대통령이 제안한 최고인민법원 판사 후보와 대검찰청 검사 후보를 확정한다. 대검찰청은 체포영장을 발부하는데, 때로는 소급적용을 하기도 한다. 최고인민법원 산하에, 지방법원과 군사법원, 행정, 경제, 노동법원이 있다. 지방법원은 제1심을 관할하는 법원이다. 국방부는 군사법원을 관할하는데, 일반법원과 같은 절차를 적용한다. 군 판사와 담당 직원들은 국방부와 최고인민법원이 선출하는데 감독책임은 최고인민법원에게만 있다. 헌법에는 판사와 담당 직원(행정 능력이 떨어짐)들의 독립성을 규정하고 있으나, [[미국 국무부]]는 베트남의 사법부의 독립성이 부족하며 이것은 부분적으로, 베트남 공산당이 판사를 선택하고 그들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욱이, 공산당은 국가나 당의 지배적인 지위를 위협할 만한 판결의 결과에 영향을 주기 위해 모색한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향상할 목적으로, 정부는 지방법원을 법무부에서 최고인민법원으로 2002년 9월에 이관하였다. 그러나, [[미국 국무부]]는 앞서 말한 목적이 실제로 이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베트남 사법부는 또한 법조인의 부족과 초보적인 재판절차로 인하여 방해받고 있다. 사형 집행은 부패 또는 마약밀매 사건의 경우 자주 집행되고 있다. 베트남의 형법은 전통적인 유교 사상, 나폴레옹 법전 그리고 호치민 사상이 영향을 끼친 결과이다.<ref>{{웹 인용 |url=http://lcweb2.loc.gov/frd/cs/ |제목 =미국 국회도서관 |인용문 = Vietnamese legal thought with regard to the treatment of criminals is the result of three major influences: classic Confucianism, the Napoleonic Code, and Marxism-Leninism. }}</ref> 일본이 베트남과 협력하여 베트남의 법제를 정비하고 법률가 양성시스템을 선진국형으로 구축하여 지원한 사업은 현재까지 대단히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ref>{{웹 인용 |url =http://sggpaper.tistory.com/entry/120%ED%98%B8-%EC%9D%BC%EB%B3%B8%EC%9D%98-%EB%B2%A0%ED%8A%B8%EB%82%A8-%EB%B2%95-%EC%A0%95%EB%B9%84-%EC%A7%80%EC%9B%90%ED%99%9C%EB%8F%99%EA%B3%BC-%EC%8B%9C%EC%82%AC%EC%A0%90 |저자=김정식 |출판사 = 서강대학원 신문 |날짜 = 2012-04-10 |제목 = 일본의 베트남 법 정비 지원활동과 시사점 |인용문 = 일본이 베트남과 협력하여 베트남의 법제를 정비하고 법률가 양성시스템을 선진국형으로 구축하여 지원한 사업은 현재까지 대단히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ref>
=== 대외 관계 ===
{{본문|베트남의 대외 관계}}
2023년 12월 기준, 베트남은 191개 국가와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ref>{{웹 인용|url=https://media.chinhphu.vn/viet-nam-den-voi-the-gioi-va-the-gioi-den-voi-viet-nam-102231229095321584.htm|제목=Việt Nam đến với thế giới và thế giới đến với Việt Nam|성=media.chinhphu.vn|날짜=2023-12-29|언어=vi|확인날짜=2024-09-14}}</ref>. [[1992년]] [[중화인민공화국]]과 스프래틀리 군도 영유권을 놓고 분쟁이 있었다. [[미국]]과는 [[1975년]] 이후 계속되어 왔던 대 베트남 금수조치가 [[1994년]] 2월 해제되고, [[1995년 1월]] 양국간에 상호연락사무소가 개설된 데 이어 동 [[7월 11일]]에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졌다. 또 [[1995년 1월]] [[독일]]과 정치·경제 협정을 체결하였으며, 동 4월에는 [[오스트리아]]와 4개 경제협정을 체결했다. [[대한민국]]과는 [[1992년]] 수교했다. [[수단]]과는 1969년 8월 26일에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ref name="외교부">{{웹 인용|url=http://www.mofa.gov.vn/en/cn_vakv|제목=List of countries which maintains diplomatic relations with the Socialist Republic of Vietnam (as of December 2007)|확인날짜=2009-07-08}}</ref> 한편 [[유엔]] 등 국제기구들에 대한 외교도 활발히하여 [[1976년]] 9월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IBRD)에 가입했으며 [[1995년 7월]]에는 [[아세안]](ASEAN)의 7번째 회원국이 되었다<ref name="글로벌 정치"/>.베트남은 2007년 1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으며 이 기구의 150번째 회원국이다<ref>{{웹 인용|url=https://baochinhphu.vn/dau-an-tich-cuc-tren-hanh-trinh-doi-moi-va-hoi-nhap-quoc-te-cua-viet-nam-102220110083625022.htm|제목=Dấu ấn tích cực trên hành trình đổi mới và hội nhập quốc tế của Việt Nam|성=baochinhphu.vn|날짜=2022-01-10|언어=vi|확인날짜=2024-10-06}}</ref>.
=== 군사 ===
{{본문|베트남 인민군}}
베트남의 군사조직은 육군, 해군, 공군, 그리고 국경 수비대로 구성되어 있다. [[1950년]] 이후 [[인도차이나 전쟁]]을 통해 [[프랑스]], [[미국]], [[중국]] 등 열강에 승리를 거두었고, [[캄보디아]]와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함으로써 군사력을 증명하였다.
베트남군은 상비군이 약 448,500명, 예비군이 504만 명이다<ref>{{웹 인용|url=https://baohatinh.vn/15-quoc-gia-co-quan-thuong-truc-dong-nhat-the-gioi-post153934.html|제목=15 quốc gia có quân thường trực đông nhất thế giới|성=Tĩnh 24h|이름=Báo Hà Tĩnh-Tin tức Hà Tĩnh mới nhất, tin nhanh Hà|날짜=2018-05-04|언어=vi|확인날짜=2024-09-20}}</ref>(2018년 기준).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지만 국방비가 없어서 힘든 상황이다. 베트남 해군은 킬로급 잠수함 등을 운용 중이다.
[[UAV]] 연구제작 프로젝트에서 5종의 UAV를 개발하였고 대량 양산에 들어갈 것이다.
== 경제 ==
{{본문|베트남의 경제}}
베트남은 정부개발원조와 외국투자가 경제를 이끈다. 공산화 이후 경제 기반이 무너져 어려운 상황이던 1986년 "[[도이 머이]]"를 주창하며 실용주의적 경제 정책을 도입하였다. 1980년대말, 외국인 재산 투자를 보호하는 법률을 개정하였고, 1990년대부터 [[ASEAN]] 등 국제 사회에서 활동하였다. 개혁 기간 동안 10%에 가까운 경제 성장률을 거듭하다가 2000년대 중반 이후 침체기가 되었다. 세계금융위기로 일시적으로 추락하였던 GDP의 성장율은 2009년 5.3%, 2010년 6%(예상)로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한다. 베트남의 [[GDP]]는 1,446억 달러이며 1인당 GDP는 1,700달러다. 중국의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기업들이 새로운 투자대상국으로 베트남을 주목한다. [[WTO]]가입을 정부의 중요 목표로 세워서 2007년 1월, WTO에 가입하였다. [[넥스트 일레븐|NEXT11]]과 [[VISTA]] 일원으로 활동하며 투자기관들이 발전 예상 국가로 여긴다. 노동인구의 66%가 농업 등 제1차산업에 종사하나, 근래에는 제2차, 제3차산업이 급성장한다. 관광업이 빠르게 성장하여 중요한 외화 수입원이다. 베트남은 [[쌀]], [[후추]], [[커피]]의 세계 3대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대한민국과 무역도 활발하다. 21세기 현재 베트남은 중국, 태국 등과 더불어 미래에 유망한 나라 중 하나이다. 2023년 베트남의 GDP는 $4,300억<ref name=":1">{{웹 인용|url=http://www.goodmorningvietnam.co.kr/mobile/article.html?no=70046|제목=[굿모닝베트남미디어] 2023년 베트남 GDP 5.05% 달성|언어=ko|확인날짜=2024-09-14}}</ref>, 1인당 GDP는 $4,284.<ref name=":1" />
=== 경제사 ===
[[파일:Downtown Hanoi at night.jpg|섬네일|right|200px|밤에 하노이의 모퉁이]]
[[파일:Đường chân trời Hải Phòng nhìn từ Bắc sông Cấm.jpg|섬네일|right|200px|하이퐁시의 한 모퉁이]]
[[파일:DJI 0124-HDR.jpg|섬네일|right|200px|밤에 호치민시의 한 모퉁이]]
[[1975년]] 공산화로 통일한 베트남은 오랜 전쟁 탓에 국토는 황폐하고 공산주의 전파에 실패하여 경제 기반이 무너졌고 베트남 국민의 생활은 어려웠다. 북부 베트남의 주요 수출품은 석탄·목재·해산물·차 등이었고, [[석탄]]·[[철광석]]·[[인회석]]·[[크롬]]·[[주석 (원소)|주석]] 등의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남부 베트남의 주요 수출품은 쌀과 고무, 새우, 녹차 등이었다. [[1980년]]에는 [[태풍]]으로 역사상 최대의 인명 피해가 발생해 베트남 경제가 타격을 받았다. 이후 1990년대부터 베트남 정부는 국민들의 먹을거리를 해결하기 위하여 계획경제 작업을 중지하고, 새로운 경제 정책, 《[[도이 머이]]》를 추진하여 실행하였다.
[[1992년]] 12월 베트남 공산당 제12차 전당대회에서, 부분적인 혼합경제제도를 도입하는 실용주의 경제정책 《[[도이 머이]]》를 실행하여 중국과 사실상 마찬가지로 개혁, 개방노선으로 전환하였다.
제4차 5개년 계획 ([[1987년]]~[[1992년]])의 골간으로 1992년까지 2,300만 톤의 식량 생산, 5년간 70%의 수출증대를 선정하는 등 경제의 개방화를 적극 추진했다. [[1992년]] 12월 《외국인 투자법》를 공표하였고, [[1993년]] 《토지법》을 개정해서 토지상속권과 담보권, 사용권을 인정하였다. 다만 토지의 소유권은 공적인 의미에서 국가가 지속적으로 보유한다. [[1994년]] 《파산법》 을 발효하였고, [[2000년]] 1월에는 기업법을 발표했다. 1996년 베트남 공산당 제8회 대회에서 2020년까지 공업국 진입을 목표로, "공업화와 현대화"를 2대 전략으로 하는 정치보고를 채택하였다.
또한 [[1995년]] [[ASEAN]] 및 AFTA 가입을 시작으로, [[1998년]]에는 [[APEC]]에 가입하였고, [[2000년]] 7월에는 베트남-미국 무역협정에 서명하였다. [[2000년]] 7월에는 호치민시에 최초로 〈증권거래센터〉를 개설했으며, [[2005년]] 하노이로 확대 개설하였다. [[2007년]] 1월에는 [[WTO]]에 정식으로 가입하였고, [[2008년]] 12월에는 베트남-일본 경제연대협정(EPA)에 공식 서명하였다.
《[[도이 머이 정책]]》 이후 베트남 경제는 [[1992년]] 이래 연평균 8%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달성했으며 [[1995년]], [[1996년]]에도 9% 이상의 고속성장을 지속했다.<ref>{{글로벌세계대백과2|제목=[[: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시아/베트남#베트남의 산업|베트남의 산업]]}}</ref> [[2008년]] GDP 성장률은 6.23%로 최저 성장을 기록하였고, 2009년은 5%로 하향조정하였다. 이후 베트남 경제는 세계 경제의 침체로 인해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현재는 과거 가난에서 크게 벗어났으며 빠르게 경제 발전을 하지만 빠른 경제 발전의 후유증도 함께 겪는다. 2004년부터 빠르게 물가가 상승하여, 2008년에는 22.97%로 최고의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였다. 더욱이 국제 원자재 가격의 급등과 베트남 동화의 평가절하 등으로 인플레이션율이 2008년 25%를 초과할 정도로 상승하면서 위기의 상황이 왔었다.
토지 사유화 및 농지 전용을 인정한 이후 골프장 건설과 같은 개발 사업이 크게 늘어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2010년 기준 베트남의 골프장 개발 허가 수는 140여 곳에 달한다.<ref>(http://www.iadi.or.kr/news/articleView.html?idxno=116 {{웨이백|url=http://www.iadi.or.kr/news/articleView.html?idxno=116 |date=20131203110758 }} 베트남 농지에 들어서는 수많은 골프장), (재)국제농업개발원, 2010년 5월 1일</ref> 경작지 감소와 그에 따른 고용 감소를 우려한 베트남 정부는 2008년 이후 농지 전용 억제 정책을 유지한다.<ref>(http://www.mofat.go.kr/webmodule/htsboard/template/read/korboardread.jsp?typeID=24&boardid=11683&seqno=2944&c=&t=&pagenum=1&tableName=TYPE_KORBOARD&pc=&dc=&wc=&lu=&vu=&iu=&du= {{웨이백|url=http://www.mofat.go.kr/webmodule/htsboard/template/read/korboardread.jsp?typeID=24&boardid=11683&seqno=2944&c=&t=&pagenum=1&tableName=TYPE_KORBOARD&pc=&dc=&wc=&lu=&vu=&iu=&du= |date=20130324095644 }} 농지 전용 억제에 대한 총리 결정), 대한민국 외교통상부</ref><ref>{{웹 인용| url=https://premiatnc.com/kr/%eb%b2%a0%ed%8a%b8%eb%82%a8-%eb%b2%95%ec%9d%b8%ec%84%a4%eb%a6%bd/ |제목=베트남 법인 요약, 2021 |author=premiatnc.com}}</ref>
=== 산업 ===
2023년 베트남 경제 구조를 보면 농림어업 부문이 11.96%를 차지한다. 산업 및 건설 부문은 37.12%를 차지한다. 서비스 부문은 42.54%를 차지한다. 상품세(상품보조금 제외)는 8.38%를 차지한다.<ref>{{웹 인용|url=https://thuvienphapluat.vn/chinh-sach-phap-luat-moi/vn/ho-tro-phap-luat/tai-chinh/59209/kinh-te-viet-nam-nam-2023-xep-hang-bao-nhieu-tren-the-gioi|제목=Kinh tế Việt Nam năm 2023 xếp hạng bao nhiêu trên thế giới?|확인날짜=2024-09-21}}</ref> 하지만 여전히 전체 노동인구의 27.6%가 농림, 수산업에<ref>{{웹 인용|url=https://tapchitaichinh.vn/thuc-trang-luc-luong-lao-dong-o-viet-nam-hien-nay.html|제목=Thực trạng lực lượng lao động ở Việt Nam hiện nay|성=Nẵng|이름=Vương Phương Hoa-Trường Đại học kinh tế Đà|날짜=2023-08-19|언어=vi|확인날짜=2024-09-21}}</ref> (2022년 기준) 종사를 하며 이들은 쌀, 고무, [[사탕수수]], [[커피]], 열대 과일 등과 새우 등의 수산물 등을 생산한다, 물고기. 메콩 삼각주에서 생산하는 쌀은 국민 주식인 동시에 수출품목의 대종을 이루었다. [[1992년]] 자급을 달성한 이래, [[중화인민공화국]]과 [[인도]], 방글라데시를 이은 [[쌀]] 생산국이다. 남부에서는 2년 7모작이며, 세계 3위 쌀 수출국이기도 하다. 그 외에 [[커피]]와 [[차 (음료)|차]], [[향신료]]도 유명하다.
커피는 현재 브라질에 이어 세계 제 2위의 생산량(162만톤<ref name=":0">{{웹 인용|url=https://stockbiz.vn/tin-tuc/kim-ngach-xuat-khau-ca-phe-cua-viet-nam-nam-2023-cao-ky-luc-dat-424-ty-usd/22747886|제목=Kim ngạch xuất khẩu cà phê của Việt Nam năm 2023 cao kỷ lục, đạt 4,24 tỷ USD|확인날짜=2024-09-15}}</ref>, 2023년)에 달한다. 대부분 인스탄트 커피, 캔과 펫트병에 들어가는 청량음료, 제과 용도로 사용하는 값이 싼 로브스타 종(카네포라 종)인데, 레귤러 커피에 사용하는 고급품인 아라비카 종의 재배도 시작하였다. 또한 현지에서는 기본적으로 식민지 지배를 받아 프랑스의 방식을 따른 베트남 커피를 마신다. 베트남은 석탄, 석유를 중심으로 한 동력자원, 주석을 중심으로 한 광물자원의 혜택을 입었다. 북부 하롱(홍게이)에서 나오는 석탄은 상급 무연탄으로, 19세기말부터 홍게이탄으로 채굴을 시작하였다. 2023년에 채굴된 석탄의 양은 3,904만톤이다. 베트남은 중국과 서방 세계와 합작으로 이룬 석유개발로 산유국이 되어 1,660만톤의 원유를 생산한다. 천연가스 채취량은 126천조 줄이다. 광물자원은 북부 삼각주 주위의 구릉지대를 중심으로 생산한다. 현재 아연, 금, 크롬, 철, 주석, 인이 채굴되고 있다. 베트남의 희토류 매장량은 2022년 약 2,200만톤<ref>{{웹 인용|url=https://vnbusiness.vn/viet-nam/viet-nam-co-tru-luong-dat-hiem-dung-thu-2-the-gioi-nhung-khai-thac-moi-dat-1-000-tan-quang-nam-1096410.html|제목=Việt Nam có trữ lượng đất hiếm đứng thứ 2 thế giới nhưng khai thác mới đạt 1.000 tấn quặng/năm?|확인날짜=2024-09-23}}</ref>에 이를 것으로 추산돼 중국(4,400만톤)에 이어 세계 2위다. 그러나 베트남의 희토류 채굴 및 가공 상황은 아직 기술 부족으로 인해 제한적이다.
;무역
주요 수출 품목은 농산물, 휴대폰 및 부품, 기계 장비 및 부품, 섬유, 의류 및 신발이다. 쌀은 810만톤(2023년)을 수출해서 인도와 태국에 이어 세계 제3위 수출국이었으나, 현재는 수출 일부 제한 조치를 하였다. 커피는 2023년 42,4억 달러<ref name=":0" /> 이상을 수출한 세계 제2위 수출국이며, [[후추]]는 2023년 267천톤<ref>{{웹 인용|url=https://vneconomy.vn/nam-2024-ho-tieu-xuat-khau-se-tang-gia-do-san-luong-giam-va-ton-kho-thap.htm|제목=Năm 2024, hồ tiêu xuất khẩu sẽ tăng giá do sản lượng giảm và tồn kho thấp|성=Khôi -|이름=Chu|날짜=2024-01-10|언어=vi|확인날짜=2024-09-15}}</ref> 수출하여 세계 1위 수출국이다.
==== 유통업 ====
베트남 유통업태는 특히 도시지역에서 과거 몇 년 동안 전통적인 재래시장과 현대적인 수퍼마켓과 쇼핑센터로 점진적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추세로 수입상품 취급을 확대하였다. 2023년에 베트남에는 1,241개의 슈퍼마켓과 254개의 현대 무역 센터가 있을 것이다.<ref>{{웹 인용|url=https://vioit.org.vn/vn/chien-luoc-chinh-sach/thi-truong-noi-dia---mot-nam-nhin-lai-5726.4050.html#:~:text=M%E1%BA%A1ng%20l%C6%B0%E1%BB%9Bi%20b%C3%A1n%20l%E1%BA%BB%20truy%E1%BB%81n,t%C3%A2m%20th%C6%B0%C6%A1ng%20m%E1%BA%A1i%20(TTTM).|제목=Thị trường nội địa - Một năm nhìn lại|성=bmweb|확인날짜=2024-09-15}}</ref>
베트남의 관점에서 한국은 2023년까지 베트남의 3대 수출시장, 2대 수입시장, 3대 무역 상대국이 된다.<ref>{{웹 인용|url=https://baochinhphu.vn/hop-tac-kinh-te-viet-nam-han-quoc-nang-tam-ca-chat-va-luong-102240630145735179.htm#:~:text=(Chinhphu.vn)%20-%20H%C3%A0n,Nam%20(sau%20Trung%20Qu%E1%BB%91c).|제목=Hợp tác kinh tế Việt Nam - Hàn Quốc: Nâng tầm cả chất và lượng|성=baochinhphu.vn|날짜=2024-07-01|언어=vi|확인날짜=2024-09-15}}</ref> 2023년 투자국 순위로 1대 투자국이며, 베트남에 투자건수는 총 9863건이며, 총 등록액은 860억 달러였다.<ref>{{웹 인용|url=https://ttdn.vn/hoi-nhap-va-phat-trien/kinh-te-dau-tu/han-quoc-dung-so-1-trong-so-144-quoc-gia-vung-lanh-tho-dau-tu-vao-viet-nam-96125|제목=Hàn Quốc đứng số 1 trong số 144 quốc gia, vùng lãnh thổ đầu tư vào Việt Nam|성=Acomm(http://www.acomm.com.vn)|이름=Copyright(c) 2019|언어=vi|확인날짜=2024-09-15}}</ref>
==== 서비스업 ====
2023년 말 현재 베트남 전화 가입자수는 모두 1억0,112만여명으로 이 가운데 80%가 휴대전화 서비스 가입자이다. 비엣텔 등 일부 선도 회사들은 매년 30% 이상의 높은 신장세이다. 정보통신부는 2009년 8월, 8번째 서비스업체로 인도차이나 텔레콤 사업허가를 승인했고, 2010년 6월에는 VTC가 정부로부터 이통 서비스 허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베트남 이동통신 시장은 비나폰, 모비폰, 비엣텔, S-Fone 등 선발 4개업체들과 EVN텔레콤, 베트남모빌, 비라인, 인도차이나텔레콤, VTC 등 후발 5개사들 간에 치열한 고객확보 경쟁이 일어났다.<ref>{{뉴스 인용 | 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6/28/2010062801260.html | 제목 = 베트남에 9번째 이통사 VTC 출범 | 출판사 = 조선일보 | 날짜 = 2010-06-28 }}{{깨진 링크|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6/28/2010062801260.html }}</ref>
=== 교통 ===
{{본문|베트남의 교통}}
베트남의 현대적 교통 체계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수확한 농산물을 운송하려고 발전하였다. [[베트남 전쟁]] 결과 파괴된 교통 체계를 재건하고 현대화하였다. 가장 일반적인 교통 수단은 도로 운송이며, 도시 간 이동에 일반 시외버스와 오픈 투어 버스(Open tour bus)를 이용할 수 있다. 2,654km의 단선 철도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연결하며 [[하노이]]와 [[호찌민시]] 간을 연결하는 철로가 중요하다. 베트남 차량은 [[우측통행]]을 하며 2륜차가 매우 많다. 2022년 기준 이륜차와 경유차에 적용하는 환경법이 없다.
== 사회 ==
베트남은 2006년 '5대 부정부패' 사건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교통부 고위 관리들이 외국의 자금을 지원받아 도로를 건설하는 프로젝트(PMU18)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700만달러를 사적으로 유용해 파장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교통부 장관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도 했다. 베트남 교통경찰과 토지 등록 사무소, 세관 및 세무서에서도 흔히 뇌물을 요구하거나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ref>{{뉴스 인용|제목="베트남 소규모 부패만연, 심각"-WB |url=http://news.mt.co.kr/view/mtview.php?no=2007020623244970161&type=2|출판사=머니투데이 |저자=이경호 |날짜=2007-02-06 |확인날짜= 2010-05-01}}</ref>
=== 주민 ===
[[파일:FlowerHmong Vietnam (pixinn.net).jpg|200px|섬네일|몽족 여인]]
{{본문|베트남의 인구|베트남의 민족목록|재베트남 한국인}}
베트남의 인구는 약 1억30만(2023년)으로, 그 85~86%가 베트남인이다. 그 밖에 타이인·중국인·크메르인 등이 있으며 산악지대에는 미오·랭이·몬타냐 등 많은 부족이 살고 있다.<ref name="글로벌 베트남 주민">{{글로벌세계대백과2|제목=[[: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시아/베트남#베트남 주민|베트남 주민]]}}</ref> 베트남은 다민족 국가로서 베트남 정부가 공인하는 민족의 수가 54개에 이른다. 최대 민족은 [[킨족]](京族) 또는 비엣족(越族)으로 보통 [[베트남인]]이라고 할 때 다수종족인 이 킨족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킨족은 베트남 전체의 85~86%를 차지한다. [[므엉족]]과 같은 대부분의 소수 민족은 킨족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국토의 2/3를 덮고 있는 산악지대에서 발견된다. 킨족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과 정체(政體)를 거친 북부인과 남부인은 여러 가지 면에서 대조적인 신체적 특징과 정치, 경제적 대립의식을 갖고 있다. 각각의 소수민족은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참족과 같이 역사상 독립국가였다가 베트남에 흡수된 민족도 있고, 민족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산간지역에서 생활을 하는 민족도 있다. [[호아족]]과 [[크메르 크롬]]은 저지대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킨족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소수 민족은 [[몽족]], [[다오족]], [[따이 족 (베트남)|따이족]], 그리고 [[눙족]]이 있다. [[1978년]]에서 [[1979년]]에 45만명의 중국계 소수 민족이 베트남을 떠났다.<ref>{{웹 인용|url=http://www.state.gov/r/pa/ei/bgn/4130.htm|제목=Background Note:베트남}}</ref> 또한, 최근 베트남에 대한 한국인의 투자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한국계 미국인의 수도 그에 따라 증가했다. 베트남 통계에 따르면 2023년까지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17만 명에 이를<ref>{{웹 인용|url=https://overseas.mofa.go.kr/vn-ko/wpge/m_22685/contents.do|제목=베트남 개관주베트남 대한민국 대사관|확인날짜=2024-09-14}}</ref> 것으로 추산되며 이 숫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 언어 ===
{{본문|베트남어}}
베트남의 공식 언어는 [[베트남어]]이며 [[로마자]]로 적는다. 베트남어는 [[단철어]](單綴語)로 [[성조]]에 6성이 있다. [[중국]]의 영향으로 [[한자]]가 사용되고 있었으나, [[19세기]]부터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받으면서 베트남어의 [[로마자 표기법|로마자 표기]]가 추진되어 현재 한자는 별로 쓰이지 않는다.<ref name="글로벌 베트남 주민"/> [[꾸옥 응으]]({{vie|v=quốc ngữ|hn=國語}})로 불리는 이 [[로마자 표기]]는 [[16세기]]부터 [[로마 가톨릭]] [[선교사]]들이 현지어를 로마자로 옮겨 적으려는 작업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예수회]]의 [[알렉상드르 드 로드]]는 [[포르투갈어]] 철자법을 바탕으로 최초의 [[안남어]] 사전을 만들어냈다.
베트남어는 [[민난어]]처럼 동아시아의 언어들 중에서 중국어와 유사한 문자 체계에서 [[로마자]]로 변경한 흔치 않은 언어 중 하나이다. 이 로마자 표기법은 현지인들의 교육에 널리 사용되었으며 [[1945년]] 이후 베트남이 독립한 뒤 공식 표기법이 되었다.
베트남에서는 [[15세기]] 말에 [[한자]]와 비슷한 문자인 [[쯔놈]]이 발생하였지만, 그 사용은 한문에 익숙한 일부 지식인층에 국한되었고, 널리 보급되지 않았으며 [[20세기]] 이후에는 사용이 끊어졌다. 이는 프랑스의 식민 정책과 관련이 있다. 프랑스 식민통치자들은 베트남을 지배할 때 베트남의 전통적인 [[유교]] 사상을 말살하기 위해서 [[베트남어]]를 로마자로 표기하는 [[꾸옥 응으]]를 사용하게 하였다.<ref>{{서적 인용|제목=《상식밖의 세계사》|저자=안효상|출판사=새길}}</ref> 그러나 처음에 프랑스 식민지배에 대한 반감으로 로마자에 거부감을 표시하던 베트남의 독립운동가들은 베트남 [[민중]]들에게 새로운 지식과 근대사상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한문이나 [[쯔놈]]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여 로마자의 편의성을 인정하고, 이후 로마자를 베트남어의 새 문자로 적극 받아들여 오늘날에는 전통적인 한자문화를 완전히 대체하였다.
베트남은 55종에 달하는 [[언어]]의 다양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은 다시 6, 7개 정도의 언어 집단으로 나뉜다.
[[외국어]]로는 [[영어]]를 가장 많이 선호하며, 일부 엘리트 층들은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을 구사한다. 현재 [[프랑스어]]는 식민 지배에 대한 반감 및 프랑스어의 쇠퇴 등으로 인해 거의 감소 추세에 있지만, 베트남은 이미 프랑스어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다.
=== 교육 ===
초등교육은 5년제의 의무교육이다. 중등교육은 전기 4년제, 후기 3년제이다. 베트남의 대학에는 국가대학(총리 직할 학교), 국립대학(지방종합대학), 전문대학(교육훈련성, 후생성, 문과정보성, 인민위원회 등의 소관), 민립 대학이 있으며, 1학기 등록금이 현재 600만동인 약 30만원 선이다.
== 문화 ==
=== 지방의 문화차이 ===
중국 남부 지방과의 오랜 교류로 인하여, 베트남 문화를 특징짓는 한 가지 요소는 재정적 책임이다. 베트남에서 [[교육]]과 자수성가는 높은 가치를 부여받는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과거 제도|과거 시험]]을 통과하는 것만이 베트남 사람이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유일한 것이었다. 베트남이 오늘날의 영역으로 통합된 것은 근대의 일로, 그 전에는 [[유교]] 및 한(漢)문화의 영향을 받은 북부와 베트남의 주 종족인 킨 족외에 인종적으로 말레이계에 속하는 참파인의 국가였던 참파가 있었던 중부문화권, 그리고 크메르 제국의 영역에 속했던 남부 등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 북부, 중부, 남부의 차이는 언어 및 풍속, 문화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존재한다.
중국의 유교 영향을 많이 받았음에도, 베트남에서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이라는 상하 개념은 없고, 서로 스스럼없이 대한다.<ref>{{뉴스 인용 |제목 = 베트남엔 선후배가 없다? |url = http://www.hani.co.kr/section-021019000/2006/09/021019000200609150627042.html |출판사 = 한겨레21 |저자 = 하재홍 |쪽 = |날짜 = 2006-09-15 |확인날짜 = 2008-07-18 |archive-date = 2011-08-12 |archive-url = https://web.archive.org/web/20110812074305/http://www.hani.co.kr/section-021019000/2006/09/021019000200609150627042.html |url-status = }}</ref>
===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영향 ===
공산주의 시대에 베트남의 문화적 삶은 정부가 통제하는 미디어와 [[공산주의]]적 프로그램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수십 년 동안 외국 문화의 영향은 차단되고 [[소련]], [[중화인민공화국]], [[북한]] 등 [[공산주의]] 국가의 문화를 음미하고 공유하는 것이 강조되었었다. 1990년대 이래로, 베트남은 [[일본]], [[유럽]], [[미국]]의 [[문화]]와 [[미디어]]에 대폭적으로 노출되기 시작하였다. 베트남에는 1945년 9월 2일에 하노이에서 설립된 국영방송국인 [[베트남의 소리]]가 있다.
=== 이름 ===
[[베트남의 성명|베트남인의 이름]]은 성, 가운데 이름, 그리고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과 사실상 마찬가지로 그들의 성씨 제도는 [[중국]]에서 도입된 것이다. 한자가 폐지되면서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쓸 수 있는 베트남인은 소수이지만, 이름 뒤에는 한자의 의미가 숨어 있다. 결혼 후에도 자신의 성을 그대로 유지한다.<ref>고등학교 기술·가정 교과서 '천재교육' 2.가정 생활 문화 - 세계 여러 나라의 가족 생활 문화 - 베트남의 가족 생활 문화</ref>
=== 문학 ===
18세기의 작가 응우옌 주에 의해 저술된 대서사시 [[쭈엔 끼에우]]는 베트남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6.8조의 연서체로 분량은 총 3,254행에 달한다. 특히 이 작품은 쯔놈으로 쓰여진 자료중의 최대의 것으로 베트남의 국민문학으로 불린다.
=== 의상 ===
[[파일:Áo dài (33645199761).jpg|섬네일|220px|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여성 2명]]
베트남의 민속 의상 중 가장 대중적인 것은 여성들이 입는 [[아오 자이]]이다. [[아오 자이]]는 현재에는 명절이나 결혼 등 행사, 일상의상 등으로 입는다. 흰색 [[아오 자이]]는 베트남 전역에서 여학생의 교복으로 지정된 경우가 많고 학생 이외에는 다양한 색상의 원단으로 아오 자이를 만들어 입는다. 예전에는 성별 구분 없이 [[아오 자이]]를 입었으나 현재에는 여성용 의복으로 한정된다. 단, 전통 문화 행사에서는 남성이 입는 경우도 있다.
=== 요리 ===
[[파일:Pho-Beef-Noodles-2008.jpg|섬네일|200px|베트남 쌀국수]]
{{본문|베트남 요리}}
주 요리의 재료는 대개 [[쌀]]과 [[간장]], [[생선 소스]] 등이다. 대체적으로 음식의 맛은 달거나 맵거나 시거나 감칠맛이 나며 향채 풀로 인한 민트향과 바질향이 나기도 한다. 유명한 음식은 베트남 쌀국수이다. 고수를 넣어 먹기도 한다.
=== 음악 ===
베트남의 [[음악]]은 세 지역, 북부, 중부, 남부 지방 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북부 지방의 전통 음악은 베트남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음악이고, 보다 전통적이며 엄격한 형식을 가진다. 베트남의 전통 음악은 몽골의 침입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때 베트남 사람들은 중국의 [[경극]] 극단을 붙잡아 두었다. 중부 지방의 전통 음악은 우울한 멜로디 등 참파 문화의 영향을 보여 준다. 남부 지역의 음악에서는 자유방임적인 삶의 태도가 묻어난다. 베트남의 전통 현악기인 [[단 짜인]]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현은 철제이고, 각각의 V자 모양으로 된 다리에 의해 지지되어 있다.
=== 종교 ===
{{본문|베트남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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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종교 구성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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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분율 막대|[[무종교]], [[무신론]] 및 [[전통종교]] |gray|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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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Cao Dai My Tho.JPG|섬네일|200px|까오다이교의 한 사원]]
베트남의 종교로는 [[불교]], [[기독교]]([[로마 가톨릭교회]], [[개신교]]) 등이다. 베트남은 대승불교권 국가이다. 그 외에 [[까오다이교]]와 [[호아하오교]] 같은 [[신흥 종교]]도 있다. [[까오다이교]]는 1926년 베트남 남부의 터이닌에서 응오반쩨우에 의해 창시된 불교, 기독교와 토속신앙이 혼합된 유일신 사상이며, [[호아하오교]]는 베트남 남부에서 기원한 불교에 바탕을 둔 신흥 종교이다. 1939년 후인 푸 소가 창시하였다. 발원지인 메콩 강 삼각주 지역을 중심으로 대략 200만명의 신자가 있다고 추산된다. 베트남은 과거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었지만 예로부터 베트남에서 가장 많이 믿는 종교가 중국, 인도의 영향을 받은 [[불교]]였기 때문에 [[불교]]나 [[유교]]만은 탄압하지 못했다. 현재는 극히 제한적인 종교 활동은 허용되고 있는데, 정부의 허가 없이 찬송가를 부르는 것은 불법이며, 집회는 사전 신고를 하여야 하고 선교는 불법이다. 이것은 [[공산주의]] 국가의 종교 정책이 탄압 정책에서 [[종교]]를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실용 정책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특이하게 대승 불교권인데도 [[석가탄신일]]은 [[음력 4월 15일]]이다.
=== 생활 ===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개인 별 소득 차가 크지 않다. 남녀 평등 사상이 확산되고, 보통 자녀 수가 많다.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농촌에 거주한다(급속한 이농 현상). 여성의 사회 활동이 활발하고 여성 [[노동자]]의 고용을 장려하고 있다(소득 감면 혜택이 주어진다.). 가사 노동을 부부가 분담하며 유교 전통이 드러난다(장손을 중시하고 아들에게 유산 등을 상속하는 행위). 연애 결혼이 증가 추세에 있다.<ref>고등학교 기술·가정 교과서 '천재교육' 2.가정 생활 문화 - 세계 여러 나라의 가족 생활 문화 - 베트남의 가족 생활 문화</ref>
=== 공휴일 ===
베트남에는 1월 말~2월 초에 뗏이라 해서 최장 7일 간의 연휴가 있으며 음력 공휴일은 [[음력 3월 10일]]에 있는 훙왕 기일 하나뿐이고 1년의 마지막 공휴일은 [[9월 2일]] 독립기념일이다. 즉, [[10월]]부터 [[12월]]까지 공휴일이 없는 셈이다. 양력 4월 30일 남부 해방 기념일과 양력 5월 1일은 노동자의 날도 공휴일이다.
==인구 밀도==
호치민 시티 1km² 당 4.375명
다낭 시티 1km² 당 960명
하노이 시티 1km² 당 2.511명
북부 지방 1km² 당 302명
중부 지방 1km² 당 175명
남부 지방 1km² 당 558명
== 같이 보기 ==
* [[베트남 관련 문서 색인]]
== 각주 ==
; 내용
{{각주|group="주"}}
; 출처
<references />
== 외부 링크 ==
{{위키공용과 분류|Việt Nam|베트남|Vietnam}}
{{위키인용집|베트남의 속담}}
{{위키여행|vi:Việt Nam|베트남{{언어링크|vi}}}}
* {{언어링크|vi|en|zh}} [https://en.baochinhphu.vn/ 베트남 정부 포털]
* {{언어링크|ko|vi}} [http://vnm-hanoi.mofa.go.kr/ 주베트남 대한민국 대사관]
* {{언어링크|ko|vi}} [http://vnm-hochiminh.mofa.go.kr/ 주호치민 대한민국 총영사관]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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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코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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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베트남|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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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정보
|분류 = 그리스
|이름 = 포세이돈<br />{{lang|el|Ποσειδών}}
|그림 = 0036MAN Poseidon.jpg
|그림툴팁 =
|그림설명 = BC 200년 경에 만들어진 [[밀로스섬|밀로스]]의 포세이돈 <br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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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바다, 지진, 폭풍, 말의 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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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Louvre neptune RF3006.jpg|섬네일|오른쪽|250px|포세이돈]]
'''포세이돈'''({{llang|el|Ποσειδών}}, {{llang|en|Poseidon}})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지진]]·[[돌풍]]의 [[신|남신]]이다. [[로마 신화]]의 '''넵투누스'''({{llang|la|Neptūnus}})에 해당한다. [[크로노스]]와 [[레아 (그리스 신화)|레아]] 사이에 태어났으며, [[제우스]] 및 [[하데스]] 등과는 형제지간이다. [[올림포스의 12신]]의 첫 번째 세대에 속한다. [[돌고래]], [[물고기]], [[말 (동물)|말]], [[소]]가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주로 [[트리아이나]]를 들고 물고기나 돌고래 떼와 함께 긴 머리카락과 수염을 날리며 파도를 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성미가 급하고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툭하면 다른 신들이나 [[인간]]들과 다투었다. 아내는 [[가이아]], [[데메테르]], [[암피트리테]]이며 자식애가 강해서 [[영웅]]들과 갈등이 많은 신으로 유명하다. 특히, 제우스의 아들과 많은 신경전이 있었다고 한다. 자주 싸우면서 숙부를 언제나 남편으로 삼고 싶었던 전쟁의 여신 [[아테나]]의 구애를 받았으나 단칼에 거절하였다. 아내와 자식애가 유독 엄청나게 많은 신으로 매우 유명하다고 한다.
== 신화 ==
=== 탄생 ===
포세이돈의 아버지인 [[크로노스]]는 어느 날 불길한 예언을 들었다. 아버지 [[우라노스]]처럼 크로노스 자신도 아들에 의해 쫓겨난다는 것이었다. 이 운명을 피하기 위해 크로노스는 아내인 [[레아 (그리스 신화)|레아]]에게서 자식들이 태어나자마자 족족 삼켜버렸다. 그중에는 포세이돈도 포함되어 있었다.
=== 티탄족과의 싸움 ===
자식을 잃을 때마다 고통스러웠던 그의 어머니 [[레아]]는 한 명이라도 구하고자 여섯 번째 아이인 [[제우스]]를 출산할 때 돌덩이를 강보에 싸서 남편에게 건넸다. 그리고 진짜 [[제우스]]는 [[아말테이아]]에게 맡겼다. 그렇게 [[제우스]]는 남매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제우스]]는 나중에 장성해서 아버지 [[크로노스]]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는 아버지가 삼킨 형제들과 누이들을 되찾고자 [[메티스 (신화)|메티스]]로부터 구토제를 구해 어머니 [[레아]]에게 건네주었다. [[레아]]에게서 받은 구토제를 마신 [[크로노스]]는 예전에 삼긴 모든 자식과 돌을 토해냈다.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이 그들이었다. 구출된 그들은 [[제우스]]와 힘을 합쳐 [[크로노스]]를 포함한 [[티탄 (신화)|티탄 신]]들과 전쟁을 벌였다.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자식들인 [[퀴클롭스]] 형제와 [[헤카톤케이레스]] 형제의 도움까지 받은 [[올림포스]] 신들은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어 티탄 신들을 대지의 가장 깊은 곳인 [[타르타로스]]에 봉인하였다.
=== 포세이돈의 여자와 부성애 ===
포세이돈은 자신의 형제인 제우스와 맞먹을 정도로 수많은 여자들과 동침을 하였는데, 아내는 무려 셋을 두었다. 첫 번째 아내는 자신의 할머니인 [[가이아]]였고 두 번째 아내는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 있다가 똑같이 티탄족과 싸우면서 그렇게 아내로 취한 [[데메테르]]였고 세 번째 아내는 [[트리톤 (신화)|트리톤]]을 낳은 돌고래자리의 주인인 [[암피트리테]]였다. 그 외에도 많은 여자들과 동침을 하여 무시무시한 바다 괴물들을 낳았는데, 포세이돈과 관련하여 유명한 여자들은 아테나의 신전에서 포세이돈과 동침한 [[메두사]]에게 저주를 내린 [[아테나]]와 아름다웠지만 아테나에 의해서 참혹하게 변한 [[메두사]] 등이 있다. 그의 대부분의 자식들이 영웅들의 표적이 되었고 그 영웅들에게 해일과 지진을 일으켜서 못살게 굴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오디세우스]]가 있다. 포세이돈은 아내와 자식애가 누구보다 강한 신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 까닭이 자녀들이 못생기고 추하다고 질타를 받을까봐 우려를 해서 그런 것이라고 전해진다. 포세이돈은 제우스와 맞먹을정도로 여성에 대한 욕심이 대단한 남성신으로 묘사된다.
==== 부성애 ====
[[파일:"Гнев Посейдона" В.Косов 137х198 х.м. 2016 г.jpg|대체글=블라디미르 코소프(Vladimir Kosov)의 그림에 나타난 포세이돈의 분노|섬네일|255x255픽셀|블라디미르 코소프(Vladimir Kosov)의 그림에 나타난 포세이돈의 분노]]
자식들이 제우스에 비해서 흉측하고 항상 괴물들만 태어나자, 불안해진 포세이돈은 자식을 자신의 손으로 지키고자 결심하였다. 어느 날 유명한 [[안드로메다 (신화)|안드로메다]] 공주의 어머니인 [[카시오페이아]] 왕비가 포세이돈의 아내와 자식들이 안드로메다 공주에 비해서 별볼일없다고 세 치 혀를 내밀면서 자신과 딸자랑을 하자 몹시 기분이 나빠진 포세이돈이 그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안드로메다 공주를 끔찍한 바다괴물한테 시집을 보내라고 명령하였다. 결국에 어머니의 어리석음에 딸만 애꿎은 희생을 치르게 되었는데, [[메두사]]를 처리하고 온 [[페르세우스]]가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해내자, 그녀의 부모를 별자리로 만들었으나 거꾸로 매달아서 형벌을 줬다고 한다. 포세이돈은 페르세우스한테 매우 안 좋은 감정이 있던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의 유명한 일대기로 그가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을 무사히 치르고 외딴섬에 쉬러 잠시 배를 섬에 안착시키고 이상한 동굴속에 음식들이 가득한 걸 보고 가져가고자 하였지만 그곳에는 포세이돈의 아들인 [[폴리페모스]]가 있었다. 신탁에서 오디세우스가 폴리페모스의 적이 될 암시를 하였고 신탁의 예상대로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하자 엄청나게 분노하여 해일을 일으켜서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아주 심하게 늦추기도 하여서 오디세우스를 지지하던 올림포스 신들한테 있어서는 커다란 장애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한편,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아들인 [[안타이오스]]를 죽이자 제우스와 헤라클레스한테 몹시 안 좋은 감정으로 매우 화를 냈다고 한다. 그리하여 자신한테는 소중한 딸이자 바다의 여신이기도 한 식탐의 여왕인 [[카리브디스]]의 목숨을 구제를 해줬던 제우스 못지않은 어쩌면 제우스보다 뛰어난 부성애를 지니고 있었다고 기록에 남겨졌다.
=== 아테나와 힘겨루기 ===
==== [[아테네]] 시 ====
포세이돈과 아테나는 하나의 도시를 놓고 겨룬 적이 있다. 심판은 그 도시의 주민들이 결정하기로 하고 겨루는 내용은 주민들에게 얼마나 더 필요한 물건을 선물로 주느냐였는데 포세이돈은 말(馬)을 너무나 좋아하는 신답게 여기에서도 말을 꺼냈다. 아테나는 [[올리브]]나무를 꺼냈는데 이 도시 사람들은 올리브가 말보다 훨씬 쓸모있다고 판단하여 아테나의 승리로 판정해줬다. 이 도시는 아테나에게 봉헌되었고 도시 이름은 그녀의 이름을 따서 '아테네'라 불리게 되었다.
==== 메두사 ====
포세이돈은 인간인 [[메두사]]와 서로 연인이었는데 [[아테네]]의 신전까지 [[메두사]]를 데리고 가서 사랑을 나눴다. 이에 분노한 [[아테나]]는 [[메두사]]를 흉칙한 괴물로 만들었다.<ref>포세이돈이 서열상 [[아테나]]보다 훨씬 위였으므로 [[아테나]]는 포세이돈에게 벌을 줄 수 없었]를 죽여버린다. 이에 대해 포세이돈은 메두사를 그렇게 만들어버린것도 있지만 아테나와 페르세우스한테 심한 악감정이 있었던걸로 보인다.
== 부인 및 연인과 아이들 ==
* [[가이아]]
** [[카리브디스]]
** [[안타이오스]]
* 아에트라
** [[테세우스]]
* [[암피트리테]]
** [[트리톤 (신화)|트리톤]]
* [[데메테르]]
** [[오리온]]
** [[데스포이나]]
* [[테오파네]]
** [[황금 양]]
* [[스킬라]]
* [[메두사]]
** [[크리사오르]]
** [[페가수스]]
* [[리비에]]
** [[라미아 (신화)|라미아]]
== 같이 보기 ==
* [[암피트리테]]
* [[데스포이나]]
* [[데메테르]]
* [[에렉테우스]]
* [[그리스 신들의 가계도]]
* [[트리아이나]]
* [[선형문자 B]]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위키공용|Poseidon}}
* {{언어링크|en}} [https://web.archive.org/web/20011211182537/http://homepage.mac.com/cparada/GML/ Greek Mythology resource]
* {{언어링크|en}} [http://www.theoi.com/Olympios/Poseidon.html Theoi.com: Poseidon]
* {{언어링크|en}} [https://web.archive.org/web/20070320130412/http://www.androphile.org/preview/Library/Mythology/Greek/ The story of Poseidon and Pelops]
* {{언어링크|en}} [http://www.csun.edu/~hcfll004/mycen.html Gods found in Mycenaean Greece]
{{그리스 신들}}
<!-- 말 -->
<!-- 말 -->
<!-- 지진 -->
{{전거 통제}}
[[분류:포세이돈| ]]
[[분류:그리스의 남신]]
[[분류:물의 남신]]
[[분류:바다와 강의 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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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가뭄의 남신]]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번역 확장 필요|en|Nupedia}}
{{웹사이트 정보
| 이름 = 누피디아
| 로고 = Nupedia logo and wordmark.png
| 그림 = Nupedia.GIF
| 설명 = 옛날 버전의 누피디아 대문
| 주소 = http://nupedia.wikia.com
| 영리적 = 비영리
| 종류 = [[인터넷 백과사전]]
| 시작일 = [[2000년]] 3월
| 언어 =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 제작자 = [[지미 웨일스]]와 [[래리 생어]]
| 현재 상태 = [[2003년 9월]] 폐쇄
}}
'''누피디아'''({{llang|en|Nupedia}})는 [[월드 와이드 웹]]을 기반으로 하고, 전문가의 검증을 통해 문서가 작성되는 [[자유 콘텐츠]] [[백과사전]]이었다. [[2000년]] 3월에 시작되어<ref name="hive">{{웹 인용||url=http://www.theatlantic.com/doc/200609/wikipedia/|제목=The Hive|성=Poe|이름=Marshall|출판사=The Atlantic|작성월=September|연도=2006|확인날짜=2007-01-01}}</ref> [[2003년 9월]]까지 운영되었고, 현재 [[위키]]를 기반으로 하는 백과사전인 [[위키백과]]의 전신으로 여겨진다.
위키백과와는 달리, 누피디아는 [[위키]]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대신 광범위한 규모의 [[동료평가]]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 특징이며, 다른 전문적인 백과사전에 필적하는 수준의 문서를 제작하도록 노력하였다. 누피디아는 전문가들의 자유 콘텐츠 지원을 통해 운영되었다. <!--Before it ceased operating, Nupedia produced 25 articles that completed its review process (three articles also existed in two versions of different lengths), and 74 more articles were in progress.-->
CNET은 [[2008년]] 6월, 누피디아를 현존하지 않는 [[웹사이트]] 중 [[인터넷]]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것 중 하나였다고 평가했다. 또한 [[위키백과]]보다도 훨씬 뛰어난 웹사이트라고 했다.<ref>{{웹 인용|url=http://crave.cnet.co.uk/0,39029477,49296926-5,00.htm|제목=The greatest defunct Web sites and dotcom disasters|출판사=CNET|날짜=2008-06-05|확인날짜=2009-02-2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0822182406/http://crave.cnet.co.uk/0%2C39029477%2C49296926-5%2C00.htm|보존날짜=2008-08-22|url-status=dead}}</ref>
== 역사 ==
<div class="thumb left"><div class="thumbinner" style="width:240px;">
{| cellpadding="15" cellspacing="3" style="width:240px; background:#000066; text-align:center; font-family:Times New Roman,Times; color:#cccccc;"
| <span style="font-size:x-large">'''''Nupedia'''''</span><br /><span style="font-size:small;font-family:Arial,Helvetica">The open content encyclopedia.</span>
|}
<div class="thumbcaption"></div>HTML에 기반했던 누피디아 로고</div></div>
== 같이 보기 ==
* [[온라인 백과사전 목록]]
* [[위키 목록]]
== 각주 ==
<references/>
== 외부 링크 ==
* {{위키문헌-줄|en:Nupedia Open Content License|언어=en|{{언어링크|en}} 누피디어의 자유 콘텐츠 라이선스}}
* http://nupedia.wikia.com {{웨이백|url=http://nupedia.wikia.com/ |date=20191018233431 }}
* [http://web.archive.org/web/*/www.nupedia.com/ Earlier versions of Nupedia] ([[인터넷 아카이브]] 출처)
* [[래리 생어]], [http://features.slashdot.org/article.pl?sid=05/04/18/164213&tid=95&tid=149&tid=9 The Early History of Nupedia and Wikipedia: A Memoir Part 1] and [http://features.slashdot.org/article.pl?sid=05/04/19/1746205&tid=95 Part 2]. [[:en:Slashdot|슬래쉬닷]], 2005년 4월
* [http://nunupedia.sourceforge.net/ NuNupedia project page on Sourceforge] (currently broken, as of July 2008)
{{위키백과 둘러보기}}
{{토막글|웹사이트}}
[[분류:2000년 설립된 단체]]
[[분류:2003년 폐지]]
[[분류:자유 온라인 백과사전]]
[[분류:위키백과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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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i maqian.jpg|섬네일|사마천]]
'''사마 천'''({{zh-stp|s=司马迁|t=司馬遷|p=Sīmǎ Qiān|h=쓰마첸}}, [[기원전 145년]]경 - [[기원전 86년]]경)은 [[중국]] [[전한]](前漢) 시대의 [[역사가]]이다. [[산시성 (섬서성)|산시성]] 용문(龍門)(현재 [[위남시]] [[한청시]])에서 태어났다. [[자 (이름)|자]]는 '''자장'''(子長)이며, 아버지인 [[사마담 (전한)|사마담]]의 관직이었던 [[태사령]](太史令) 벼슬을 물려받아 복무하였다. 태사공(太史公)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후에 이릉 사건에 연루되었다. 이릉 장군이 [[흉노]]와의 [[전쟁]]에서 중과부적으로 진 사건에서 [[이릉]]을 변호하다 [[전한 무제|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궁형]]을 받게 된 것이었다. 사마천은 《[[사기 (역사서)|사기]]》의 저자로서 [[동양]] 최고의 역사가의 한 명으로 꼽히어 중국 '역사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진다. 실제 사마천의 [[사기 (역사서)|사기]]는 [[역사]]를 사가가 해석한 글로 존중받는다.<ref>《상식밖의 세계사》/안효상 지음/새길</ref>
사마천(司馬遷)은 [[중국|중국(中國)]] 역사상 최초의 체계적인 이론을 가진 논자(論者)이다.
탁월하고 비범하며 스스로 때를 놓치지 않으며 천하에 왕후장상(王侯將相)의 공명을 세우는 힘이 대표적이다.
== 생애 ==
=== 학문 ===
[[주나라]]의 역사가 집안인 사마 가문의 후손이며, 아버지인 사마담은 전한의 천문, 달력, 기록을 맡아 처리하는 부서의 장관인 태사령으로 천문과 달력에 밝고, 고전에도 통달하였다. 20세경 [[낭중]](郎中)이 되어 무제를 수행하여 강남(江南)·산둥(山東)·허난(河南) 등의 지방을 여행하였다.
=== 태사령 ===
사마천이 36살 때인 [[기원전 110년]], 사마담은 [[타이 산|태산]]에서 거행된 무제의 [[봉선]] 의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한 것을 분하게 여기다가 병이 나서 죽었는데, 죽을 때 아들 사마천에게 생전부터 편찬하던 역사서의 편찬을 완료해 줄 것을 부탁한다. [[기원전 108년]], 사마담이 세상을 떠나자 사마천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태사령이 되었다.
=== 태초력 ===
사마천의 나이 42살쯤 역법을 개정하여 [[태초력]]을 [[기원전 104년]] 무제 (태초 원년)에 완성하였다. 그 후 부친의 유언에 따라 역사서를 편찬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 이릉 변호와 궁형 ===
[[기원전 99년]] 무제의 명으로 [[흉노]]를 정벌하러 떠났던 장군 [[이릉]]이 패하여 포로가 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 보고받은 무제는 진노하여, 이릉의 처분 문제를 결정하기 위한 중신 회의 열었다. 신하 모두 이릉을 비난하고는 이릉의 가족 모두 [[능지|능지 처참]]하자고 주장하였으나, 사마천은 이릉의 충절과 용맹을 찬양하고 두둔했기에 이릉을 질투한 [[이광리]]의 모함을 받아서 무제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사마천은 태사령의 직책에서 파면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사마천은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당시 사형을 면하는 것은 두 가지 방법, 즉, 어마어마한 벌금을 내거나 [[궁형]]을 받는 것 둘뿐이었다. 이 벌금의 액수라는 것이 당시 기준으로 50만 전이었는데 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서 정병 5천 명을 1년 동안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 총합<ref>5천 명의 병력의 녹봉, 숙식 비용, 장비 사용비용, 군마 관리비용 모두 총합한 금액</ref>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이 때문에 사마천이 태사령이라는 직책으로 받는 녹봉으로 이 벌금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궁형을 받느니, 죽음을 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회 풍조였으나, 사마천은 《사기》의 완성을 위해 궁형을 받아들였다(궁형으로 인하여 고환이 제거되어 그의 초상화에는 수염이 없다). 궁형으로 죽음을 모면한 사마천은 아버지의 대부터 편찬중이었던 역사서 《사기》의 편찬을 완료하였다.
사실 이는 [[한 무제]]가 객관적인 평가를 한 게 아니라 [[이광리]]가 [[이릉]]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인데 이광리의 여동생이 한 무제의 후궁이었다.
=== 중서령 ===
그 후 무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 최고의 관직인 [[중서령]](中書令)에 임명되었다.
무제의 신임을 얻는 과정에서 사마천에게는 다소 억울한 부분이 있었다.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 이후 [[이광리]]는 무제를 폐하고 자신의 여동생이 낳은 무제의 서자인 창읍왕 [[유박]]을 천자에 제위시키기 위해 난을 일으켰다가 무제에게 진압당했으며 이 때문에 무제가 이광리의 구족을 멸했다. 단순히 이런 일 때문에 무제는 사마천을 위로하고 다시 중용했다.
== 업적 ==
그가 중국 최초의 임금인 황제(黃帝)에서 무제에 이르는 역사를 인물별로 나누어 쓴 <[[사기 (역사서)|사기]]> 130권은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획기적인 역사책이다. 이런 형식을 [[기전체]]라고 하는데, 연대순으로 써가는 [[편년체]]와 함께 역사 기록 방법의 하나이다.
== 저서 및 작품 ==
{{위키공용과 분류|Sima Qian}}
* 《[[사기 (역사서)|사기]](史記)》
* 〈[[보임안서]]〉 (報任安書)(《한서》 권62, 〈열전〉32, 사마천; 《문선》 권41)
* 〈비사불우부〉(悲士不遇賦)(《예문유취》 권30, 〈인부(人部)〉14, 원(怨))
== 각주 ==
<references/>
{{전임후임|
|전임자 = 아버지 [[사마담 (전한)|사마담]](司馬談)
|후임자 = (사기 완성)
|대수 = 2
|직책 = 역사서 '''사기'''(史記) 편찬자
|임기 = '''BC 110년''' - '''BC 104년'''}}
{{전거 통제}}
[[분류:기원전 145년 출생]]
[[분류:기원전 86년 사망]]
[[분류:전한의 재상]]
[[분류:한나라의 중서령]]
[[분류:한나라의 환관]]
[[분류:한나라의 역사가]]
[[분류:한나라의 시인]]
[[분류:한나라의 작가]]
[[분류:중국의 점성술사]]
[[분류:고대의 점성술사]]
[[분류: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분류:기원전 1세기 중국 사람]]
[[분류:기원전 1세기 시인]]
[[분류:사마씨]]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넘어옴|오디세이}}
[[파일:Odyssey-crop.jpg|섬네일|그리스어 《오디세이아》의 글머리]]
{{그리스 신화}}
《'''오디세이아'''》({{llang|grc|Ὀδύσσεια|오뒤세이아}}, {{llang|el|Οδύσσεια|오디시아}})는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로서 저자는 일반적으로 [[일리아스]]의 저자인 [[호메로스]]로 전해지고 있다. 시의 주제는 [[트로이아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의 10년간에 걸친 귀향 모험담이다. 때문에 서양 문학사에서는 모험담의 원형으로 주목된다. [[일리아스]]와 마찬가지로 시는 총 24편으로 나뉘며, [[6각운]](Hexametre)로 작곡되었다.
== 줄거리 ==
=== 제1권 ===
트로이가 멸망한 지 벌써 10년이 되어 가나, 이타케 군주인 오디세우스는 바다 위를 떠다니며 아직도 귀국 허가가 없어 칼립소의 섬에 억류당한 채이다. 여러 신들이 이를 불쌍히 여겨, 제우스의 명령으로 헤르메스를 님프 칼립소에게로 보내어 그를 놓아 줄 것을 허락하는 한편, 고향 이타케 섬으로 아테나 여신이 몸소 찾아가,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부친의 행방을 찾으러 그리스 본토로 갈 것을 권고한다. 그 이타케 섬, 그의 성에서는 주인이 오랫동안 행방 불명된 동안에 이웃 여러 섬과 이타케에서 구혼자들이 몰려와, 그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며 그 아들의 나이 어림을 기회로 매일같이 향연을 계속해 오디세우스의 재산을 탕진하고 있었다.
그 용사의 이야기를 해 다오. 뮤즈 여신이여. 지모(智謀)가 뛰어나며, 트로이의 거룩한 성시(城市)를 함락시킨 뒤, 참으로 숱한 섬과 나라들을 방황해 온 그 사나이의 이야기를, 자신의 생명을 건지고, 동료들의 귀국 길도 열어 놓으려 애쓰는 동안 숱한 종족이 살고 있는 나라들과 그 기질들에 맞서 분별 있게 행동하고, 해상(海上)에서 무수한 고뇌를 가슴 깊이 되씹기도 여러 번이 있었지.
허나, 무척이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부하들을 구원하지는 못했었다. 어쩔 수 없는 자업 자득이었으니, 그들은 신의 노여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어리석은 자들이라,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태양신의 소유물인 소를 마구 잡아먹고 있었으니, 태양신이 그들로부터 귀국의 날을 빼앗았던 것이다. 그러한 내력을, 어느 대목부터라도 좋으니 제우스의 따님이신 뮤즈 여신이여, 우리한테도 이야기해 다오.
다른 대장들로서 준엄한 죽음의 운명을 벗어난 용사들은 이미 모두 다 고향에 돌아가 있었다. 전쟁에서도, 험한 바닷길에서도 운수 좋게 벗어나서, 그런데 오디세우스만은, 고국에 돌아가 아내를 만나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는데도, 여신들 사이에서도 세력 있는 님프 칼립소가, 주위에 텅빈 동굴 속에서 그와 결혼하기를 갈망하여 붙잡아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세월이 흘러, 여러 신들이 정해 놓은 이타케 섬으로 돌아갈 그의 귀국 날이 돌아왔으나, 그 때에도 아직 온갖 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던지, 다시 관의 길이 시작되었다. 즉 다른 신들은 그를 불쌍히 여겼으나, 포세이돈은 아직도 노여움을 풀지 못해 신이나 다름없는 오디세우스가 자기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몹시 싫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침 이즈음 포세이돈은, 먼 곳에 살고 있는 아이티옵스 족들에게로 떠나고 없었다. 이 아이티옵스(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인간 세계의 맨 끝에 살고 있었다. 두 갈래로 나뉘어, 한쪽은 해가 저무는 서쪽 끝에, 또 다른 한쪽은 해가 솟는 동쪽 끝에. 그 나라로, 황소와 새끼양의 제물을 바치는 제사에 참여하려고 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포세이돈이 잔치에 앉아서 즐거워하는 동안, 다른 신들은 올림푸스에 있는 제우스 대신(大神)의 궁전에 모여 있었는데, 인간들과 신들의 어버이 신인 제우스가 맨 먼저 좌중에 의논의 말을 꺼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슴 속에 용맹했던 아이기스토스가 떠올랐으므로 (그를 아가멤논의 아들이며 천하에 그 이름을 떨친 오레스테스가 죽여 버렸던 것이다.) 그 일을 생각하면서 불사의 신들 가운데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허 참, 정말 무슨 까닭으로 인간들은 우리 신들한테 죄를 뒤집어씌운단 말인가. 재앙이란 재앙은 모두 우리한테서 일어난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인간 자신들의 분수를 벗어난 행동 때문에 타고난 운명보다도 더한 쓰라린 꼴을 당하는 것을.
이번 일만 하더라도, 아이기스토스는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의 정실(正室)인 클뤼타임네스트레와 밀통해서는, 아가멤논이 트로이에서 귀국하자 살해하기에 이르렀지. 그것도 이내 자신의 파멸을 부르는 것인 줄 알면서도 말이지, 우리가 미리 저 훌륭한 파수꾼, 아르고스의 살해자인 헤르메스를 사절로 보내어 경계하라고 했는데도 말이야. 아가멤논을 살해하면 안 된다, 또 그 아내를 탐내면 안 된다고 하였는데도.
왜냐 하면 그런 짓을 하면, 곧장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에 의해 복수를 받을 것은 뻔한 일이니까. 지금은 나이가 어리고 타국에 가 있지만, 얼마 뒤면 어른이 되어 제 나라가 그리워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헤르메스를 시켜 말했는데도, 내가 애써 잘 하라고 걱정해서 말해 주었는데도, 아이기스토스의 얼빠진 마음을 설득하지는 못했던 게야. 그래서 그는 이제 만사를 오직 한 번의 행동으로 앙갚음 당하고 만 셈이란 말이지." (후략)
=== 제2권 ===
[[텔레마코스]]는 다음 날 아침 시민회의를 열어 구혼자들이 [[이타카섬|이타케]] 성을 떠날 것을 요구하지만, 구혼자들의 두목 노릇을 하는 [[안티노오스]]는 이를 간단히 무시한다. 텔레마코스는 또한 이타케 주민들에게 오디세우스의 생사를 확인을 위한 여행에 필요로 하는 배 한 척을 마련해 주기를 간청하지만 거절당한다. 실망한 텔레마코스에게 [[아테나]]가 오디세우스의 옛 친구인 [[멘테스]]의 모습으로 나타나 여행에 필요로 하는 배와 식량 등을 마련해 주리라 약속한다. 저녁이 되어 그는 아테나가 변신한 멘토르와 함께 어머니 페넬로페 몰래 스파르타로 떠난다.
=== 제3권 ===
필로스에 도착하여 텔레마코스는 해안에서 [[네스토르]]를 만난다. 네스토르는 오디세우스의 아들에게 [[트로이전쟁]]에 관해 이야기를 건네준 뒤, 오디세우스의 안부는 [[스파르타]]의 군주 [[메넬라오스]]에게 알아보라고 텔레마코스에게 조언한다.
=== 제4권 ===
메넬라오스의 성에서 텔레마코스와 페이시스트라토스는 환영을 받는다. [[헬레네]]는 텔레마코스에서 겉모습에서 오디세우스의 아들임을 알아차린다.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눈 후,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메넬라오스는 트로이전쟁에서 오디세우스의 활약을 높이 칭찬한다. 다음날 아침 메넬라오스는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의 행방을 물어보기 위해 방문하였다는 것을 알고는, 이집트의 바다신 [[프로테우스 (신화)|프로테우스]]에게서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오디세우스는 [[오기기아]] 섬에 머물고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해 준다. 한편 이타케에서는 안티노오스와 구혼자들은 여행에서 돌아오는 텔레마코스를 암살할 음모를 꾸민다.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의 전령으로부터 이 음모를 전해 듣고는 구원해 줄 것을 아테나에게 기도한다.
=== 제5권 ===
<small>(무대바뀜)</small>오디세우스의 장래에 대해 신들이 회의한 끝에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칼립소의 섬으로 보낼것으로 결정했다. 오디세우스를 남편으로 삼기 위하여 수많은 구혼을 오디세우스에게 하는 칼립소에게 헤르메스는 오디세우스를 귀향시키라는 제우스의 명령을 전달한다. 칼립소는 엄한 명령에 복종을 하여 오디세우스에게 귀향 채비를 갖추라고 하며 도끼를 주었다. 얼마 후 오디세우스는 스스로 만든 뗏목을 타고 귀향 길에 오르지만, 그를 저주하는 [[포세이돈]]이 일으킨 풍랑에 휩쓸려 온갖 죽을 고생을 한 끝에 바다의 요정 [[로이코테아]]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져 전설적인 섬 [[파이아케스]]에 이른다. 허기와 피로로 기진 맥진한 오디세우스는 해안에서 숲덩굴을 찾아 몸을 가린 후 풀숲에서 깊은 잠에 빠진다.
=== 제6권 ===
알키노오스가 지배하는 파이아케스족의 섬으로 풍랑에서 목숨을 건진 후 오디세우스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동안 아테나는 알키노오스의 딸 나우시카아의 꿈에 나타나 날이 밝으면 시녀들을 거느리고 해변으로 나가 밀린 빨래를 하라고 충고한다. 여신의 뜻대로 공주는 바로 오디세우스가 잠을 자고 있는 해변에 이르러 빨래를 마친 후 시녀들과 공놀이를 했는데, 공이 잠자는 오디세우스에게 떨어져 그가 잠에서 깨어나 주변을 둘러본다. 다른 처녀들은 발가벗은 낯선 남자를 보자 모두 달아나지만 나우시카아 공주는 그대로 대면하여 이야기를 듣는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처한 딱한 상황을 공주에게 솔직히 털어놓으며 도움을 청한다. 공주는 오디세우스가 평범한 남자가 아님을 직감하고 그에게 먹을 것과 입을 옷을 내어 주고 길을 알려 준 후 먼저 가라고 말한다.
=== 제7권 ===
나우시카아를 뒤따라 그녀의 아버지의 궁전에 다다른 오디세우스는 아테나의 도움으로 안개에 쌓여 궁전에 스며들어 알키노오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왕실에 모여 있던 여러 신하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을 보고 어수선 해 하는 틈을 타 오디세우스는 왕비 [[아레테]]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 하면서 도와줄 것을 청한다. 알키노오스는 오디세우스를 술자리에 초대하여 환영을 한다. 아레테는 오디세우스가 입고 있는 옷을 눈여겨 보고는 어디서 옷을 얻었는가 묻자, 오디세우스 나우시카아를 해변에서 만난 사실을 솔직히 이야기한다. 밤이 늦어 모두들 잠자리를 찾는다.
== 번역 ==
* 호메로스 저, 천병희 역, 오뒷세이아, 숲, 2006(제1판)/2015(제2판, 희랍어 원전 번역)
== 외부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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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호메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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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문학사}}
[[파일:Houghton MS Gr 20 - Theogeny, 10.jpg|섬네일|[[헤시오도스]]의 《[[일과 날]]》의 [[그리스어]] 사본 서문]]
'''고대 그리스 문학'''은 초창기부터 [[동로마 제국]] 시절까지 [[고대 그리스어]]로 쓰인 [[문학]]을 의미한다.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고졸기 그리스]] 초기 [[미케네 시대]]에 쓰인 두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들 수 있다. 이 두 서사시와 《[[호메로스 찬가]]》, [[헤시오도스]]의 두 시집 《[[신통기]]》와 《[[일과 날]]》은 고전기부터 헬레니즘 시대, 로마 시대까지를 관통하는 그리스 문예 전통의 중요한 기초를 이룬다.
서정시인 [[사포 (시인)|사포]], [[알카이오스 (시인)|알카이오스]], [[핀다로스]]는 초창기 그리스 시 전통 형성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아이스킬로스]]는 자신의 작품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최초의 그리스 비극작가이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에 관하여 남긴 비극, 특히 《[[오이디푸스왕|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 (소포클레스)|안티고네]]》로 유명하다. [[에우리피데스]]는 비극 양식의 경계를 확장한 희곡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구 희극’ 양식으로 작품을 쓴 반면, 이후의 극작가 [[메난드로스]]는 ‘신 희극’의 선구자였다. 기원전 5세기를 살았던 사학자, [[헤로도토스|할리카르나소스의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는 자신들의 생애와 태어나기 이전의 사건들을 다룬 역사책을 저술하였다. 철학자 [[플라톤]]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중심으로 여러 철학적 주제들을 다룬 대화편을 남긴 한편,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후대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될 수많은 논문을 남겼다.
후대의 주요 작가로는 [[아르고나우타이]]의 항해기를 다룬 서사시인 《[[아르고나우티카]]》를 쓴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 수학의 새 지평을 연 논문을 저술한 [[아르키메데스]], 주로 전기와 수필을 남긴 [[플루타르코스]]가 있다. 기원후 2세기의 작가 [[루키아노스|사모사타의 루키아노스]]는 주로 풍자 작품을 쓴 그리스화된 시리아인이었다.
고대 그리스 문학은 이후의 그리스 문학과 더불어 서구 문학에 있어 풍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많은 고대 로마 작가들은 그리스의 선학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르네상스 이후로도 [[단테 알리기에리]], [[윌리엄 셰익스피어]], [[존 밀턴]],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유럽의 여러 작가들은 고전적 주제와 동기에 있어 많은 영감을 얻었다.
==고졸기 그리스 문학==
{{본문|고졸기 그리스 문학}}
===호메로스 서사시===
그리스 문학의 시발점에는 [[호메로스]]의 기념비적인 두 작품,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자리잡고 있다. 호메로스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불명이다. 《일리아스》는 10년간의 트로이아 전쟁 말미의 10일간을 다루는 담화이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그리스 영웅의 이상을 구체화한 [[아킬레우스]]가 서있다.
《오디세이아》는 트로이아 전쟁의 전사 중 하나였던 [[오디세우스]]의 모험에 대한 이야기이다. 10년간의 전쟁 이후, 그는 또 다시 10년이라는 세월을 아내와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항해하는데 쓰게된다. [[페넬로페]]는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그려지며, 호메로스는 그녀를 서약, 겸양, 순결과 오디세우스와의 결혼동안 보인 존경을 바탕으로 그녀를 이상적 여성으로 그리고 있다.
10년간의 항해에서 오디세우스는 동료들 모두와 배를 잃고 거지로 가장하여 고향 이타카로 돌아온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두 작품 모두 고대의 전설을 기초로 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간단하고 직설적인 언어로 말해진다. 호메로스의 언어는 [[이오니아 그리스어|이오니아 방언]]을 기초로 하여 아에올리스와 아티카의 방언이 조금 섞인 고어체이다. 아티카 방언이 섞인 이유는 기원전 6세기 아테나이의 호메로스 서사시 판본 때문이다. 서사시의 운문은 6보격이다.
===호메로스풍 찬가===
===그밖의 고졸기 서사시===
===헤시오도스 시===
고졸기의 다른 위대한 시인은 바로 [[헤시오도스]]이다. 호메로스와 다르게 헤시오도스는 자기 자신을 시 속에서 언급한다. 하지만 그밖의 어떤 자료도 그에 관해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는 중앙 그리스의 [[보이오티아현|보이오티아]] 주민이였고, 기원전 700년 경에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헤시오도스의 두 장편인 《[[일과 날]]》과 《[[신통기]]》이다. 일과 날은 그가 잘 알고있던, 가난에 고통받는 시골 생활의 충실한 묘사이다. 이 시는 또한 농부들을 위한 규칙들을 설명하고있다. 신통기는 창조와 신에 관한 체계적인 담화이다. 이 시는 생생하게 먼 옛날 황금기부터 시작한 인류사를 묘사하고있다.
===고졸기 시===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작품은 고전 전반에 걸쳐 찬사를 받고있으며 고대 [[그리스 신화]]의 창립자적인 글로 많은 고대 독자들에게 읽혔다. 호메로스는 영웅적인 과거의 이야기를 말했으며, 헤시오도스는 신화 창조 담화와 동시대 일상의 현실적인 면을 포괄했다. 호메로스는 [[이오니아]]에서, 헤시오도스는 [[보이오티아현]]에서 유행했다. 보이오티아의 시가 영웅의 이야기를 담은 호메로스의 시와 달랐던 이유는 보이오티아의 거친 자연환경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낭만이나 수사([[파토스]])보다 농업, 역법, 점괘 등 당시 삶을 살아가는 데 직접적으로 중요한 것들이 더 가깝게 다가왔던 것이다.<ref>{{서적 인용|제목=Hesiod, the Homeric Hymns, and Homerica|성=Hugh G. Evelyn-White|이름=|날짜=1914|판=|출판사=|쪽=|장=Introduction}}</ref>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고전기 그리스 문학==
{{본문|고전기 그리스 문학}}
===시===
서정시라는 말은 리라(λύρα)라는 악기와 함께 합창단이나 개인이 부른 곡에서 유래되었다. 하지만 그 어원과는 달리 여기서 말하는 서정시는 4개의 장르로 나눠지는데 그 중 2개는 키타라가 아닌 플루트가 반주되는 장르이다. 이 두 장르는 만가와 단장격 시이다. 두 장르 모두 이오니아 방언으로 쓰였다. 만가는 만가 대구법로 쓰였고 약강격 시는 약강 삼보격으로 쓰였다. 첫 서정시인은 기원전 7세기경의 중요한 약강격 시인인 파로스의 아르킬로코스로 추정된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의 고전시인의 경우처럼 조각들로로만 남아있다. 몇몇 단편들은 그가 매우 험난한 인생을 산 것을 전해준다.
많은 서정시들은 아이올리스 방언으로 쓰여졌다. 각 서정시마다 매우 다양한 시 보격이 사용되었다. 서정시인들중 가장 유명한 이들은 “9명의 서정시인”이라고 불린다. 그중에서 레스보스의 사포 (기원전 630년 경 - 기원전 570년 경)은 가장 널리 찬송되는 시인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그녀의 시는 호메로스의 시만큼의 존경을 받았다. 그중 “아프로디테의 송가”만이 현대에까지 원형 그대로의 완결된 모습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포와 더불어 그녀의 동시대인인 레스보스의 알카에우스 역시 서정시 만가로 유명하다. 알크만이 쓴 시는 듣기 불쾌하다고 여겨진 도리아 방언으로 쓰였음에도 아름답다고 여겨진다. 후대의 시인인 테베의 핀다로스는 제창 서정시로 유명하다.
===희곡===
현존하는 모든 고대 그리스 희곡은 아테나이 출신의 극작가들이 썼으며 오로지 아티카 방언만이 사용되었다. 합창공연은 모든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전통이었다. 아테나이인은 테스피스라는 이름의 남자를 합창단장과 상호작용하기 위해서 연기자를 첫번째로 도입한 희곡의 창시자로 여긴다. 훗날 극작가들은 스토리텔링을 더 자유롭게 하고자 연기자의 수를 3명으로 늘렸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 따른 아테나이의 깨어난 국가정신은 과거의 영웅적 전설적 주제를 바탕으로 한 수많은 비극작품에서 표현되었다.
완전히 남아있는 모든 그리스 비극은 대체로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나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전통적으로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으로 추정된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레수스」를 쓴 작가는 여전히 확실치 않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는 아이스퀼로스의 아들인 에우포리온의 작품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아이스퀼로스]]가 썼다고 여겨지는 남아있는 비극은 일곱 작품이 있다. 이 희곡들 중 세 작품,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코이포로이)》, 《자비로운 여신들(에우메니데스)》은 오레스테이아 3부작으로 묶인다.
[[소포클레스]]의 작품은 총 일곱 작품이 현존하는데, 그중 가장 호평받은 작품에는 오이디푸스와 그의 자식들의 이야기를 다룬 테바이 3부작이 있다. 테바이 3부작은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로 구성된다. 이 희곡들은 보통 “3부작”으로 불리지만 순차적으로 쓰이지 않았다. 내용적으로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인 안티고네는 소포클레스의 초기 활동시기인 기원전 441년 작성되어 연대상으로는 처음 쓰였다. 셋 중 가장 유명한 오이디푸스 왕은 그의 활동시기 중반부인 기원전 429년경 쓰였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내용상으로 2번째이나 사실은 소포클레스의 마지막 작품이며 소포클레스 사후, 기원전 401년에야 공연되었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희곡은 모두 열아홉 작품이다. 그중 잘 알려진 희곡에는 메데아, 히폴뤼투스와 바카애가 있다. 레수스는 가끔씩 에우리피데스의 아들의 작품이나 에우리피데스의 사후 복제작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에우리피데스는 비극 문학의 경계선을 늘렸으며 그의 작품 내의 많은 요소들은 비극적이라기보다 희극적이다. 그의 작품인 알케스티스를 예로 들자면, 이 작품은 문제극으로 분류되며 희극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점 등을 들어 진정한 비극보다는 희비극으로 특징을 더 갖고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역사===
고전기에 활동한 유명한 두 역사가는 바로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이다. 헤로도토스는 흔히 “역사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의 저서 《[[역사 (헤로도토스)|역사]]》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산문 문학 가운데 하나이다. 투키디데스의 저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사도행전의 저술가들과 비잔티움의 역사가 [[프로코피오스]]같은 후대 작가들과 역사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고대 그리스의 세번째 역사가, [[크세노폰|아테네의 크세노폰]]은 투퀴디데스가 다룬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난 기원전 411년을 시작점으로 하는 역사서, 《[[헬레니카]]》를 저술했으며, 기원전 362년까지의 역사를 다뤘다. 크세노폰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아나바시스 (크세노폰)|아나바시스]]》를 들 수 있는데, 이 세밀한 작품은 키루스 2세가 형을 황좌에서 끌어내리려는 내전에서 키루스 2세를 도와 그리스 용병으로 참여했던 본인의 1차사료를 바탕으로 쓰였다.
===철학===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많은 철학자들은 기원전 5세기와 4세기경에 살았다. 그리츠 초기의 철학자들 중 밀레토스의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와 아낙시메네스들을 묶어 "밀레토스 철학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철학자들의 글은 킬리키아의 심플리키우스가 보존한 아낙시만드로스의 단편조각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다.
철학자 사모스의 피타고라스의 삶에 관해서는 매우 적은 것만이 알려졌으며 현재까지 그가 쓴 글 중 현존하는 것은 없으나 그의 제자 아크라가스의 엠페도클레스의 인상적인 시 전집이 남아있다. 에페수스의 헤라클리토스와 압데라의 데모크리토스의 많은 단편 조각들 역시 남아있다.
==헬레니즘 시대의 고대 그리스어 문학==
{{본문|헬레니즘기 그리스 문학}}
이 시대는 테오클리토스가 시작한 <목가>라는 전원생활을 묘사한 짧은 시형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문학 양식은 탄생하지 않았고 전시대의 문학 양식을 연구 모방하고 있다. 그런 뜻에서 의고(擬古)문학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특색은 시가 비근한 생활에서 제재를 취한 사실성과 세부적 표현기교가 뛰어나다는 점에 있다. 산문은 광범위한 분야에서 뛰어난 작품이 다수 출현하고 있으나 문체의 면에서는 한때의 풍부한 맛이나 건강한 맛은 없으며 고르기아스(그리스 변론가, 기원전 483-기원전 376)의 형식을 추종하는 관능적(官能的)인 것으로 과장이 많은 아시아니즘에서 얼마간 그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제위 기원전 336-기원전 323)의 동방 정벌에서 비롯되는 헬레니즘 시대는 아프리카·소아시아 전체에 걸친 세계 제국시대였다. 문화의 중심도 아테네보다는 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 소아시아의 페르가몬, 안티오크 등으로 옮겨져 그리스 문화는 민족을 초월하여 세계화했다. 문학의 무대도 국제적 성격을 띠어 세계 시민적 일상생활에서 생겨난 보편적 감정이 서술되기에 이른다.
종래의 그리스 문화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헤로도토스(Herodotos)의 <역사>를 낳은 민족 통일의식에 바탕을 두고, 폴리스(도시국가)라는 확고한 기반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것에 비해 그리스 문화의 세계화·보편화라는 헬레니즘의 적극적인 면은 그와 같은 창조의 기반을 잃고 세계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표면상 그리스적인 것이긴 하나, 전 시대의 그리스 문학과는 전적으로 이질적인 것으로 전 시대 문학의 모방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소극적인 면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러나 헬레니즘 문학이 다음 시대의 그리스 문학 및 로마 문학 형성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이 컸던 것은 절대적이었으며 그런 점에서 고전기 그리스 문학보다 앞섰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 등 각 지역은 도서관이 건립되어 방대한 양의 고전작가 작품들이 수집, 보존되었다. 이와 병행해서 이들 작품의 사본을 분류 교정 및 진본 여부를 구별하는 문헌학이 발달했다. 또한 아폴로도로스(아테네의 문법가, 기원전 2세기?)의 신화 연구에서 볼 수 있듯이 옛 문물을 고증하는 학문도 생겨났다. 이들 학문은 모두 당시의 문학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 현학적(衒學的) 냄새를 덧붙이기조차 했다. 칼리마코스의 <아이티아>나 아폴로니오스의 <아르고나우티가>등이 그러한 예에 속한다.
서사시는 자연과학 등 본래의 서사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제재를 취급한 것이 많이 출현했는데 아라토스(Aratos)의 <파이노메나(Phainomena)> 등이 바로 그것이다.
비극에서는 별로 취할 점이 없는 것에 반해 희극에서는 이 시대에 '신희극'이라 불리는 단계에 접어들어 에우리피데스의 영향을 크게 받아 아티카의 '고희극'과는 전혀 성격을 달리하는 '풍속희극'이 완성되었다. 필레몬, 디피로스(기원전 340?-기원전 289?), 메난드로스 등이 대표적 작가들이다.
당시의 과학적 지리학의 발달과 병행해서 헤카타이오스(그리스의 역사가, 기원전 550?-기원전 475?) 이래의 지지(地誌)의 전통은 이 시대에도 계승되어 스큐락스 및 스큐무노스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세계 여행기(世界旅行記)·항해기(航海記) 등이 저술되었다.
역사 서술은 티마이오스(기원전 356?-기원전 260?)의 <시칠리아사(史)>에 의해 대표되는 고증 취미에서 무비판적으로 과거의 역사를 나열한 것이나, 두리스(기원전 340?-기원전 280?)의 <사모스섬 연대기>, 그리고 퓨라르코스와 같이 역사적 진실보다는 극적(劇的)인 효과를 노린 것 등 비과학적인 것이 많았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히에로니무스나 폴리비오스(기원전 201?-기원전 120?)와 같은 뛰어난 역사가도 있었다. 특히 폴리비오스는 로마를 이 시대의 역사의 중심으로 잡고 세계적 시야에 서서 비판적·과학적 역사를 서술하여 그리스·로마를 가릴 것 없이 후세 사가(史家)들에게 훌륭한 모범이 되었다.
기원전 3세기가 헬레니즘 문학의 최전성기였으며 그 후 시들기 시작하여 기원전 30년에는 헬레니즘 문화의 최대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가 로마에게 함락당하는 것과 함께 헬레니즘 시대는 끝이 났다.
==로마 시대의 고대 그리스어 문학==
{{본문|라틴 문학}}
===철학===
에픽테토스 (55년 - 135년경)은 스토아 학파의 도덕철학자이다. 그의 강의는 제자 아리안에 의해 '강연'과 '엔케이디온'으로 정리되었다.
== 고대 그리스문학 형태 ==
=== 서사시 ===
* [[호메로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 [[헤시오도스]]
=== 연극 ===
* [[비극]]
** [[아이스퀼로스]]
** [[소포클레스]]
** [[에우리피데스]]
=== 서정시 ===
* [[애정시]]
** [[사포 (시인)|사포]]
* [[전원시]]
** [[테오크리토스]]
=== 산문 ===
* [[철학]]
**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 [[소크라테스]]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
* [[웅변]]
** [[데모스테네스]]
** [[이소크라테스]]
** [[리시아스]]
** [[아이스키네스]]
* [[역사]]
** [[헤로도토스]]
** [[투퀴디데스]]
** [[크세노폰]]
** [[폴뤼비오스]]
* [[그리스 신화]]
** [[올림피오도로스]]
* [[의학]]
** [[히포크라테스]]
== 각주 ==
<references />
{{그리스어}}
{{글로벌|제목=헬레니즘 문학|주소=https://ko.wikisource.org/wiki/글로벌_세계_대백과사전/언어II·세계문학·논술/남서_유럽_문학/그리스·로마_문학#헬레니즘_문학}}
{{전거 통제}}
[[분류:고대 그리스 문학|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출처 필요|날짜=2013-5-2}}
{{다른 뜻 넘어옴|키케로}}
{{공직자 정보
|이름 = 키케로
|원어명 = Cicero
|그림 = Bust_of_Cicero_(1st-cent._BC)_-_Palazzo_Nuovo_-_Musei_Capitolini_-_Rome_2016.jpg
|그림설명 =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br />([[카피톨리니 미술관]] 소장)
|직책 = [[집정관]]<br />([[기원전 63년]])<br />[[파테르 파트리아이]]·[[임페라토르]]
|직책2 = [[콰이스토르]]<br />([[기원전 75년]])
|직책3 = [[아에딜리스|아이딜리스]]<br />([[기원전 69년]])
|직책4 = [[프라이토르]]<br />([[기원전 66년]])
|직책5 = [[프로콘술]]<br />([[기원전 51년]])
|출생일 = [[기원전 106년]] 1월 3일
|출생지 = [[아르피눔]]
|사망일 = [[기원전 43년]] 12월 7일 (향년 63세)
|사망지 = [[포르미아]]
|부모 = <small>(父)</small>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br /><small>(母)</small> 헬비아
|배우자 = 테렌티아 ([[기원전 79년]] - [[기원전 46년]])<br />푸블릴리아 ([[기원전 46년]] - [[기원전 45년]])
|자녀 = [[툴리아 키케로니스]]<br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미노르]]
}}
'''키케로'''({{llang|la|Marcus Tullius Cicero}})는 [[기원전 106년]] [[1월 3일]] [[이탈리아]] [[아르피눔]]에서 태어나 [[기원전 43년]] [[12월 7일]]([[율리우스력]]) [[포르미아]]에서 사망한 [[로마]]의 [[정치인]], [[변호사]]이자 [[라틴어]] [[작가]]이다.
이탈리아 유산 계급 출신의 [[로마 시민권|로마 시민]]이던 키케로는 [[노빌리타스|귀족 계층]]에 속하지는 않았는데, 귀족들은 원칙적으로 그에게 주요 정치적 역할을 주지 않고자 했다. 동시대인 [[폼페이]], [[율리우스 카이사르]]와는 달리 키케로는 군인 경력에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수사학]]과 [[법학]]을 건실히 다지고 나서 그는 변호사로서의 소질을 충실히 발휘하여 기원전 63년에는 최고 행정직, [[집정관]]이 되어 출세하는데 성공했다. 야망가들로부터 위협받고 있던 위기의 공화정에서 키케로는 세 치 혀로 [[카틸리나 음모]]를 막았는데, 이 연설이 바로 [[카틸리나 반박문]]이다. 허나 본인도 자랑스럽게 여긴 이 성공은 기원전 58년 음모가들을 재판 없이 처형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망명길로 몰아넣었다. 기원전 57년 로마로 돌아온 키케로는 폼페이와 카이사르가 주름잡은 정계에서 더 이상 주요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
기원전 49년 발발한 [[카이사르 내전|내전]] 와중, 키케로는 망설이며 폼페이파에 합류했으나, 결국 카이사르의 권력을 달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으며, 이후로는 [[안토니우스]]에 대항하여 [[옥타비아누스]]와 손을 잡게 된다. 안토니우스를 향한 키케로의 거침없는 반대는 결국 기원전 43년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훌륭한 연설가이던 키케로는 [[고전 라틴어]] 표현의 전형으로 평가받은 풍부한 작품들을 집필하였으며, 이 중 대부분은 현재까지 전해진다. 키케로는 정계에서 활동을 멈춘 시기 동안 [[수사학]] 저서 집필과 [[고대 그리스 철학|희랍 철학]] 이론의 라틴어 수용에 헌신했다. [[중세]] 동안 부분적으로 잊혀졌던 키케로의 작품들은 [[카롤링거 르네상스]], 이후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고전주의|고전 시기]]에 다시 조명받았다. 허나 [[19세기]]와 [[20세기]] 전반 동안, 키케로는 그저 희랍 철학자들을 집대성한 인물로만 평가받았다. [[피에르 그리말]]은 더 긍정적으로 키케로가 희랍 철학의 일부를 우리에게 전해준 귀중한 중개인이었다고 평가한다. 정치 생활에서의 평가는 보통 박하다. 난투장의 중심에서 방황하는 지식인으로, 로마로 온 출세한 이탈리아인으로, 다재다능한 기회주의자로 평가받으며, [[테오도어 몸젠]]과 [[제롬 카르코피노]]에 따르면 [[폼페이]]의, 이후 [[카이사르]]의 "잠복한 군주정의 수동적인 도구"로 평가받기도 한다.
== 생애 ==
=== 학문 ===
키케로는 [[기원전 106년]] [[라티움]] 지역 [[아르피눔]]의 [[에퀴테스|기사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들의 출세를 바라던 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일찍 로마로 유학하여 관료가 되기 위한 [[수사학]], [[웅변술]]을 스카이볼라 밑에서 익히면서 전설적인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세계관에 큰 감명을 받았다. [[철학]]적으로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파이드로스]]에서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91년에서 88년까지 군복무를 했다.
기원전 88년에서 82년에 걸쳐 키케로와 같은 고향 출신인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당시의 원로원의 후원을 받던 [[술라]] 사이에서 벌어진 내전 동안 키케로는 [[아카데미학파]]의 [[필론]] 밑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익히게 된다. 26세에 아버지 살인 혐의로 고소된 [[키케로의 로스키우스 변론|로스키우스]]를 성공적으로 변호함으로써 로마의 정계에 알려진다. 79년에서 77년 사이에 [[아테네]], [[소아시아]] 지방과 그리고 [[로도스섬]]을 두루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힌다.
=== 정치 ===
기원전 75년 31세의 나이로 [[재무관]]에 선출된다. 5년 뒤 [[안찰관]]에 선출되어 재임 기간 동안 유명한 [[베레스 반박문]]을 쓰고, 기원전 66년 [[법무관]]에 선출되어 당시 정계의 실권자 [[폼페이우스]]를 지지하는 [[키케로의 폼페이우스 변론|변론]]을 쓴다. 43세의 나이로 (기원전 63년) 이른바 지방 신출내기(''homo novus'')로서 로마 최고 관직인 [[집정관]]에 선출되었다. 집정관 재임시 [[카틸리나]] 역모 사건을 적발하고 [[원로원 최종권고]](''senatus consultum ultimum'')를 선포한 뒤, 일당 5명을 붙잡으면서 로마를 위기에서 건졌지만, 이때 재판도 없이 혐의자를 처형한 문제로 나중에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존 원로원 체제의 문제점을 공격하는 도구로 그 사건을 이용했다.
그러나 기원전 60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그리고 [[크라수스]]가 [[제1차 삼두정치]] 협약을 하게 되자 공화국 체제를 고수하는 키케로는 이들 실권자로부터 따돌림을 받는다. 더군다나 키케로에게 개인적으로 유감이 있는 [[클로디우스]]는 이 기회를 틈타 키케로가 집정관 재직시 [[카틸리나]]의 모반 가담자 5명을 불법으로 처형한 사실을 들추어내어 고소를 함으로써 키케로를 약 1년 6개월 동안 (기원전 58년 3월 - 기원전 57년 8월) 로마에서 추방시킨다. 귀향 허가를 받아 로마로 돌아와 정계에 거리를 두면서 주로 저작활동을 한다. 이 시기([[기원전 55년]] - [[기원전 51년|51년]])에 키케로는 《[[웅변가에 관하여]]》(''De Oratore''), 《[[키케로의 국가론]]》(''De re publica''), 《[[법론]]》(''De legibus'')등을 썼다.
기원전 49년 폼페이우스와 율리우스 카이사르 사이에 벌어진 [[카이사르 내전|로마 공화정의 내전]]에서 키케로는 어느 편에 가담할 것인가 하는 갈등 끝에 결국 원로원파인 폼페이우스 진영에 가담한다. 기원전 48년 8월 9일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에게 패배함으로써 내전이 끝나자 키케로의 운명은 카이사르의 말 한마디에 달리게 된다.
카이사르는 [[로마]]로 입성한 후 키케로를 사면해 주면서 심지어 로마를 위해 계속 정치 활동을 해 줄 것을 권고한다. 그러나 점점 눈에 드러나 보이는 일인 독재 정치에 무력감과 회의를 느끼면서 주로 철학을 주제로 한 책을 쓰는 데 시간을 보낸다.
정치적 불만과 함께 기원전 45년에는 사랑하던 딸 툴리아가 사망함으로써 키케로는 삶의 보람을 거의 상실하게 된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키케로는 공화정을 되살리고자 하는 작은 희망으로 특히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탄핵하는 [[필리피카이]](philippicae)를 발표하여 일인 독재와 폭력 정치를 규탄한다.
기원전 43년 안토니우스를 배척하기 위한 수단으로 키케로는 카이사르의 양자이자 법적 상속자인 젊은 [[옥타비아누스]]를 과소 평가하여 정치적으로 기만하지만, 곧 [[제2차 삼두정치]]에서 자신의 노력이 헛되었음을 실감한다.
=== 안토니우스에게 죽임을 당하다 ===
[[기원전 43년]] [[12월 7일]] 모든 희망을 버리고 로마를 피신하던 키케로는 [[제2차 삼두정치]]에 의해 살생부 명단에 올라가게 되고, 그 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안토니우스]]의 사주를 받은 부하에 의해 [[가에타|카이에타]]에서 암살당했다. 키케로는 머리와 두 손이 잘려 죽었는데, 안토니우스는 키케로의 머리와 두 손을 로마 광장에 내다 걸었다. [[공화주의]] 신념을 잃지 않고, 글로써 안토니우스를 규탄한 키케로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 카이사르와의 친분 ==
{{인용문3|right|나를 잘 이해해주는 당신이 하는 말이니까, 내 행동에선 어떤 의미의 잔인성도 찾아볼 수 없다는 당신의 말은 믿어야 할거요. 그렇게 행동한것 자체로 나는 이미 만족하고 있지만 당신까지 그리 찬성해주니 만족을 넘어 기쁘기 한량없소.내가 석방한 사람들이 다시 나한테 칼을 들이댄다해도, 나는 그런 일로 마음을 어지럽히고 싶지는 않소. 내가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내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거요. 따라서 남들도 자기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오.|카이사르의 답장|카이사르의 내전에서의 관용을 칭찬한 키케로의 편지에 대해}}
철저한 공화주의자인 키케로와 공화정에 반발을 가지고 있는 카이사르와는 정치적으로 반대의 입장이었으나 편지를 주고 받을 정도로 상당한 친분이 있던것으로 알려져 있다.
망명지에서 돌아온 키케로는 [[갈리아]]에서 카이사르에게 친구와 친지들의 인사 청탁(人事請託) 편지를 자주 쓰곤 했고, 카이사르는 기꺼이 응했다.
동생인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자, 카이사르에게 동생을 청탁했다. 그리하여 퀸투스 키케로는 카이사르 휘하의 군단장으로 종사하며 갈리아에서 전공을 세웠다.
== 키케로와 고전 라틴어 ==
정치가로서 키케로는 역사의 거센 흐름에 좌절되었다고 일반적으로 평가되는 반면, 문학자로서 그의 이름은 [[고대 라틴어문학|라틴어 문학사]]에 길이 남아있다. 이른바 [[라틴어|고전 라틴어]]는 키케로에 의해서 비로소 그 틀이 잡혀졌으며 그의 라틴어 문체는 곧 고전 라틴어의 표본으로 간주되고 있다.
[[유럽]]의 대부분의 지역이 4세기 중엽까지 로마 제국의 정치적, 문화적 영향 밑에 있는 동안 라틴어는 이들 지역에서 이른바 관용어로서 쓰이게 되었으며, 로마제국의 멸망 후 중세기를 거쳐 18세기에 이르기까지 라틴어는 계속 문어로서 두루 쓰여졌다. 라틴어 문어를 올바로 쓰고 배우는 첫과정에서 언제나 키케로의 변론문을 라틴어의 표본으로 삼았으며 이와 같은 전통은 오늘날까지 라틴어를 배우는 데에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
=== 키케로의 문체 ===
{{빈 문단}}
== 키케로의 철학 사상 ==
-->
== 관련 문헌 ==
=== 저서 ===
[[파일:Marci Tullii Ciceronis Opera Omnia.tif|섬네일|''Opera omnia'', 1566]]
'''변호문'''
* [[베레스 반박문]](''In Verrem'', 기원전 70년)
* 폼페이우스의 지휘권에 관하여 (''De imperio Cn. Pompei'', 기원전 66년):
* [[무레나 변호문]] (''Pro Murena'', 기원전 66년)
* [[카틸리나 반박문]] (''In Catilinam'', 기원전 63년)
* [[아르키아 변호문]] (''Pro Archia'', 기원전 62년)
* [[필리피카이]] (''Philippicae orationes'', 기원전 44년)
'''수사학'''
* 브루투스 (''Brutus'')
* 웅변가론 (''De oratore'')
* 웅변가 (''Orator'')
'''철학저서'''
* [[투스쿨란의 대화]] (''Tusculanae disputationes'')
* [[키케로의 국가론]] (''De re publica'')
* [[의무론]] (''De officiis'')
* [[최선과 최악에 관하여]] (''De finibus bonorum et malorum'')
* [https://oll.libertyfund.org/titles/cicero-on-the-nature-of-the-gods 신의 본질에 관하여 (''De natura deorum, On the Nature of the Gods'')]
* 아카데미카 I, II (''Academica I, II'')
'''서한'''
== 같이 보기 ==
* [[로렘 입숨]]
* [[번역]]
{{포털|철학}}
{{위키공용분류}}
{{위키인용집}}
{{플루타르코스}}
{{윤리학}}
{{전거 통제}}
{{기본정렬:키케로, 마르쿠스 툴리우스}}
[[분류: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
[[분류:기원전 106년 출생]]
[[분류:기원전 43년 사망]]
[[분류:로마 공화국의 집정관]]
[[분류:로마 공화국의 원로원 의원]]
[[분류:고대 로마의 작가]]
[[분류:고대 로마의 철학자]]
[[분류:고대 로마의 법률가]]
[[분류:고대 로마의 수사학자]]
[[분류:정치 이론가]]
[[분류:인문주의자]]
[[분류:회의주의자]]
[[분류:망명자]]
[[분류:암살된 사람]]
[[분류:킬리키아 총독]]
[[분류:툴리우스 씨족]]
[[분류:고대 로마의 에퀴테스]]
[[분류:고대 로마의 재무관]]
[[분류:로마 공화국의 법무관]]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연도표기원후|1983}}
{{기년법|1983}}
'''1983년'''은 [[토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 사건 ==
* [[1월 11일]] -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의 현직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공식 방문해 [[전두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짐, 총 40억달러의 경제협력 지원에 합의.
* [[1월 14일]] - [[청량리 가스 폭발 사고]] 발생.
* [[2월 25일]] - 리웅평([[이웅평]])이 [[대한민국]]으로 귀순하다.
* [[5월 5일]] - 중화인민공화국의 민항기가 6명의 납치범에 의해 공중 납치되어 당시 적성국이던 대한민국 [[춘천시]] 공군비행장에 불시착하다.
* [[6월 30일]] - [[KBS 1TV]], 이산가족 찾기 방송 시작. (~[[11월 14일]])
* [[8월 5일]] - 중국 여객기, 한국비행정보구역 첫 통과.
* [[8월 6일]] - [[여의도]]에 6.25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만남의 광장' 개설.
* [[8월 7일]] -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조종사 손천근(孫天勤), [[Mig-21]] 몰고 한국으로 귀순(8월 20일 [[중화민국]]으로 망명).
* [[8월 21일]] - 필리핀의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가 [[마닐라 공항]]에서 피살되다.
* [[9월 1일]] -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 상공에서 격추되어 탑승객 269명 전원 사망.
* [[9월 8일]] - [[대한민국 국회|대한민국 제118회 임시국회]], [[소비에트 연방]]의 [[대한항공 007편|KAL기 격추]] 규탄 결의안 채택.
* [[9월 9일]] - [[대한민국]] 고리 원전3호기 준공.
* [[9월 19일]] - [[세인트키츠 네비스]]가 독립하다.
* [[9월 22일]] - [[대구 미국문화원 폭발 사건]] 발생.
* [[9월 23일]] - 세인트키츠 네비스, 유엔 가입.
* [[9월 25일]] - 38명의 [[급진주의적 아일랜드 공화국군 (1969년)|IRA]] 포로가 형무소 식사 화물 자동차를 납치, 앤트림주의 HM 형무소 미로로 도주.
* [[9월 26일]] - 1983년 핵무기 신호 오인 사건 발생.
* [[10월 8일]] - [[대한민국]] [[전두환]] 대통령, 버마(현 [[미얀마]]) 등 서남아ㆍ대양주 6개국 순방 시작.
* [[10월 9일]] -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 [[전두환]] 대통령이 버마를 방문 중에 아웅산 묘소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서석준]] 부총리 등 17명의 수행원이 순직하고 15명이 부상당했다.
== 문화 ==
* 대한민국, 1983년 정보산업의 해 선포.
* [[1월 15일]] - 대한민국의 동전, 지폐의 디자인을 변경함(5000원권은 [[2006년]] [[1월 2일]]부터 생산중지, 1000원권과 10000원권은 [[2007년]] [[1월 22일]]부터 생산중지).
* 2월 - [[삼성전자]]에서 국산 개인용 [[8비트 컴퓨터]], [[SPC-1000]] 시판.
* [[2월 5일]] - [[과학전대 다이너맨]] 방송 시작.
* [[2월 7일]] - [[공익광고협의회]] 명칭 변경.
* [[2월 22일]]
** [[한국방송광고공사]]의 공익광고향상자문위원회가 설립되었다.
** 대한민국의 인쇄공익광고 시작.
** [[공익광고협의회]] 로고를 사용하다.
* [[4월 2일]] - [[북한산]]이 15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다.
* [[4월 14일]] - 제1회 [[천하 장사 씨름 대회]] 열림.
* [[4월 18일]] - [[미국]]의 케이블 채널인 [[디즈니 채널]]이 방영을 시작하다.
* [[5월 26일]] -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부근의 [[커클랜드 (워싱턴주)|커클랜드]]에서 [[짐 시네갈]]이 [[코스트코]]를 창업하다.
* [[5월 31일]] - [[현대자동차]]에서 [[현대 스텔라|스텔라]]를 출시하다.
* [[6월 12일]] - [[멕시코]]에서 개최한 [[FIFA U-20 월드컵|20세이하 세계청소년축구대회]](현 [[FIFA U-20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4강에 진출하였다.
* [[6월 20일]] - [[대한민국 교육부|문교부]]가 [[체벌]]을 금지하다.
* [[7월]] - [[한국GM|대우자동차(한국GM의 전신)]]에서 [[대우 프린스|로얄 프린스]] 출시.
* [[7월 15일]] - [[닌텐도]]에서 [[가정용 게임기]] [[패밀리 컴퓨터]] 발매.
* [[8월 3일]] - [[삼성반도체]], 64KD램 개발 성공.
* [[8월 18일]] - [[한국가스공사]]가 설립되었다.
* [[8월 27일]] - 대한민국, [[국제기능올림픽]] 5연패.
* [[9월 16일]] -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 [[을지로입구역]] 구간 개통.
* [[9월 17일]] - 바네사 윌리엄스, 흑인 최초로 [[미스 아메리카]]에 선발.
* [[10월 5일]] - 폴란드 [[자유노조]]의 [[레흐 바웬사]]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다.
* [[11월 1일]] - 대한민국에서 새 [[주민등록증]] 발급 개시.
* [[11월 22일]] - 대한민국에서 1984학년도 [[학력고사]] 실시.
* [[12월 15일]]
** 여의도백화점 개점.
** [[경향신문]] '소년경향' 창간.
* [[12월 17일]] - [[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역 (서울)|교대]] ~ [[서울대입구역]] 구간 개통.
== 탄생 ==
{{분류 참고|1983년 출생}}
=== 1월 ===
* [[1월 1일]]
** 대한민국의 전 양궁 선수 [[박성현 (양궁 선수)|박성현]].
** 스페인의 축구 선수 [[다니엘 하르케]]. (~[[2009년]])
** 자메이카의 육상 선수 [[밀레인 워커]].
* [[1월 2일]] - 미국의 배우 [[케이트 보즈워스]].
* [[1월 4일]] - 대한민국의 골프 선수 김선아.
* [[1월 5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여성 (축구 선수)|이여성]].
* [[1월 6일]]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태원 (희극인)|김태원]].
** 대한민국의 래퍼 [[미쓰라 진]] ([[에픽하이]]).
** 대한민국의 국악인, 가수 [[이봉근 (국악인)|이봉근]].
** 대한민국의 방송인 [[김이브님]].
** 대한민국의 배우 [[서정욱 (배우)|서정욱]].
* [[1월 7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윤승균]].
** 대한민국의 희극인 [[장효인]].
** 대한민국의 레이싱모델 출신 배우 [[구지성]].
* [[1월 8일]] - 대한민국의 배우 [[송유현 (1983년)|송유현]].
* [[1월 10일]] - 대한민국의 화가 해연.
* [[1월 11일]]
** 대한민국의 성우 [[백경훈]].
** 대한민국의 가수 [[길정화]].
* [[1월 12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동현 (1983년)|이동현]].
** 대한민국의 연출가 [[정철민]].
* [[1월 13일]]
**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제 카스트루]].
** 대한민국의 당구 선수 [[김가영]].
* [[1월 14일]] - 대한민국의 마술사 최영두.
* [[1월 15일]] - 대한민국의 가수 [[이오타 (가수)|이오타]].
* [[1월 16일]] - 우크라이나의 축구 선수 [[안드리 루솔]].
* [[1월 17일]]
** 스페인의 축구 선수 [[알바로 아르벨로아]].
** 대한민국의 기상캐스터 [[오하영 (기상 캐스터)|오하영]].
* [[1월 18일]]
** 대한민국의 배우 [[정유미 (1983년)|정유미]].
** 대한민국의 방송인 [[오정연]].
** 대한민국의 배우 [[진서연]].
* [[1월 19일]] - 일본의 가수 [[우타다 히카루]].
* [[1월 20일]]
** 대한민국의 트로트가수 [[선경 (가수)|선경]].
** 대한민국의 배우 [[강예빈]].
** 일본의 가수, 배우 [[야구치 마리]].
* [[1월 21일]] - 대한민국의 배우 [[유건 (대한민국)|유건]].
* [[1월 22일]]
** 대한민국의 배우 [[이동하 (배우)|이동하]].
**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 [[스티페 라피치]].
* [[1월 23일]] - 대한민국의 음악가 [[필터 (음악가)|필터]].
* [[1월 24일]]
** 대한민국의 배우 [[문보령]].
** 대한민국의 배우 [[양조아]].
** 미국의 가수 [[다이앤 버치]].
* [[1월 25일]] - 대한민국의 기상캐스터 [[김혜선 (기상캐스터)|김혜선]].
* [[1월 26일]]
** 대한민국의 격투기 선수 [[이수환 (킥복싱 선수)|이수환]].
** 대한민국의 배드민턴 선수 [[이재진]].
* [[1월 27일]] - 대한민국의 배우 [[최윤슬]].
* [[1월 28일]]
** 일본의 애니메이터 [[호리구치 유키코]].
** 브라질의 싱어송라이터, 배우 [[산지 레아 리마]].
* [[1월 29일]] - 대한민국의 배우 [[오태경 (배우)|오태경]].
* [[1월 30일]]
** 대한민국의 배우 [[김재인 (1983년)|김재인]].
** 대한민국의 성우 [[문지영 (성우)|문지영]].
* [[1월 31일]]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파비오 콸리아렐라]].
=== 2월 ===
* [[2월 2일]]
** 대한민국의 범죄자 [[고유정 (범죄인)|고유정]].
** 대한민국의 희극인 [[조승희 (희극인)|조승희]].
* [[2월 3일]]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곽용섭]].
** 중국의 바둑 기사 [[구리 (바둑 기사)|구리]].
* [[2월 4일]]
** 대한민국의 가수 [[백명훈]].
** 대한민국의 소셜 벤쳐 공부의 신 설립자 [[강성태]].
* [[2월 5일]]
** 대한민국의 희극인 [[박상철 (희극인)|박상철]].
** 대한민국의 탁구 선수 [[윤재영]].
* [[2월 6일]]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충수]].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류상문]].
* [[2월 7일]]
** 대한민국의 배우 [[손석구]].
** 대한민국의 배우 [[차승호]].
* [[2월 8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고효준]].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최성국 (1983년)|최성국]].
** 대한민국의 배우 [[지주연]].
** 대한민국의 배우 [[김기정 (1983년생 배우)|김기정]].
* [[2월 10일]] - 대한민국의 가수 반.
* [[2월 11일]]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라파얼 판 데르 파르트]].
* [[2월 12일]]
** 대한민국의 희극인 [[안시우]].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광석 (축구 선수)|김광석]].
** 대한민국의 배우 [[한은선]].
* [[2월 13일]] - 대한민국의 배우 [[금호석]].
* [[2월 14일]]
** 프랑스의 축구 선수 [[바카리 사냐]].
** 대한민국의 배우 [[성훈 (1983년)|성훈]].
* [[2월 15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최준석 (야구 선수)|최준석]].
** 대한민국의 배우 [[이진희 (배우)|이진희]].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롤란도 비안키]].
** 대한민국의 가수 [[도은영]]. (~[[2015년]])
* [[2월 16일]] - 대한민국의 가수 [[오종혁]] ([[클릭비]]).
* [[2월 17일]]
** 대한민국의 가수 [[마이노스]].
** 일본의 야구 선수 [[가타오카 야스유키]].
* [[2월 19일]]
** 일본의 가수 [[나카시마 미카]].
** 일본의 배우 [[야마구치 쇼고]].
** 일본의 성우 [[사사키 노조미 (성우)|사사키 노조미]].
** 불가리아 출신의 전직 스모 선수 [[고토오슈 가쓰노리]].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김호영 (1983년)|김호영]].
** 대한민국의 배우 [[김다인 (1983년생 배우)|김다인]].
* [[2월 20일]] -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 [[니콜라스 스폴리]].
* [[2월 21일]] - 프랑스의 영화배우, 감독 [[멜라니 로랑]].
* [[2월 22일]] - 대한민국의 배우 [[진혜경]].
* [[2월 23일]]
** 영국의 배우 [[에밀리 블런트]].
** 대한민국의 배우 [[정지아]].
** 대한민국의 가수 [[차은성]].
* [[2월 24일]] - 대한민국의 배우 [[민아령]].
* [[2월 25일]]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박유영]].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방승환]].
**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 [[에두아르두 다 시우바]].
* [[2월 26일]]
**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페페 (1983년 2월생 축구 선수)|페페]].
** 네덜란드의 배우 [[라우라 더부르]].
* [[2월 27일]] - 미국의 배우 [[케이트 마라]].
=== 3월 ===
* [[3월 1일]]
** 케냐와 멕시코의 배우 [[루피타 뇽오]].
** 대한민국의 배우 [[황지현]].
** 대한민국의 가수 [[권정열]].
* [[3월 2일]]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배우 [[이하늬]].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이세돌]].
* [[3월 4일]] - 대한민국의 가수 정병걸.
* [[3월 5일]]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염정훈]].
* [[3월 6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길훈]].
* [[3월 7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진우 (1983년 3월)|김진우]].
** 앙골라의 축구 선수 [[마누슈]].
* [[3월 8일]] - 브라질의 축구 선수 [[안드레 산투스]].
* [[3월 9일]]
** 대한민국의 배우 [[이은형 (배우)|이은형]].
** 미국의 축구 선수 [[클린트 뎀프시]].
* [[3월 10일]]
** 대한민국의 배우 [[류현경]].
** 미국의 컨트리 가수 [[캐리 언더우드]].
** 일본의 가수, 배우 [[성선임]].
* [[3월 11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영후 (축구 선수)|김영후]].
** 대한민국의 배우 [[최우석 (배우)|최우석]].
** 대한민국의 배우 [[정시연]].
* [[3월 12일]]
** 대한민국의 만화가 [[서나래]].
** 대한민국의 성우 [[남도형]].
* [[3월 13일]] - 대한민국의 배우 [[조현식]].
* [[3월 14일]] - 대한민국의 변호사 박종현.
* [[3월 17일]]
** 대한민국의 성우 [[강호철]].
**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하울 메이렐르스]].
** 대한민국의 희극인 [[남영환]].
* [[3월 18일]] - 대한민국의 건설던트 이세희.
* [[3월 19일]]
** 대한민국의 모델 배우 [[배정남]].
** 미국의 프로레슬링 선수 [[맷 사이달]].
* [[3월 20일]]
** 대한민국의 가수 [[안진경 (가수)|안진경]].
** 일본의 축구 선수 [[가와시마 에이지]].
* [[3월 21일]] - 대한민국의 래퍼 [[아웃사이더 (래퍼)|아웃사이더]].
* [[3월 22일]]
** 브라질의 축구 선수 [[안데르송 히카르두 두스 산투스]].
** 대한민국의 모델 [[예학영]]. (~[[2022년]])
* [[3월 23일]]
** 대한민국의 모델 [[한혜진 (1983년)|한혜진]].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황인지]].
* [[3월 25일]]
** 대한민국의 배우 [[강경준]].
** 중화인민공화국의 레슬링 선수 [[성장 (레슬링 선수)|성장]].
* [[3월 26일]]
**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방송인 [[이상미 (1983년)|이상미]].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김수형 (축구 선수)|김수형]].
** 대한민국의 레슬링 선수 [[정지현 (레슬링 선수)|정지현]].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윤화평]].
* [[3월 27일]] -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송영전]].
* [[3월 28일]]
** 대한민국의 작가, 변호사 [[서동주]].
** 대한민국의 가수, 뮤지컬 배우 [[손준호 (배우)|손준호]].
* [[3월 29일]]
** 대한민국의 모델 [[지호진]].
** 일본의 배우 [[스즈키 료헤이]].
* [[3월 30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염기훈]].
** 영국의 태권도 선수 [[세라 스티븐슨]].
* [[3월 31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유세영]].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윤원일 (1983년)|윤원일]].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김민아 (아나운서)|김민아]].
** 대한민국의 축구 심판 [[김종혁 (축구 심판)|김종혁]].
=== 4월 ===
* [[4월 1일]]
** 프랑스의 축구 선수 [[프랑크 리베리]].
** 미국의 배우, 성우, 모델 [[맷 랜터]].
* [[4월 2일]]
** 대한민국의 배우 [[김재욱 (배우)|김재욱]].
** 대한민국의 펜싱 선수 [[오은석]].
** 멕시코의 배우 [[라우라 카르미네]].
* [[4월 3일]]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송병일]].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벤 포스터 (축구 선수)|벤 포스터]].
** 대한민국의 성우 [[이재현 (성우)|이재현]].
** 대한민국의 성우 [[김도담]].
* [[4월 4일]] - 대한민국의 가수 [[테이]].
* [[4월 5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진이]].
* [[4월 6일]]
** 대한민국의 래퍼 [[무웅]] ([[배치기]]).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손대영]].
* [[4월 7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수연 (1983년)|김수연]].
** 대한민국의 방송인, 전 아나운서 [[문지애]].
**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 [[프랑크 리베리]].
* [[4월 8일]]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엣손 브라프헤이트]].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제이 (1983년)|제이]].
** 대한민국의 배우 [[기은세]].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김은경 (농구 선수)|김은경]].
* [[4월 10일]]
** 대한민국의 가수, 래퍼 [[길미]].
** 미국의 배우 [[제이미 정]].
** 미국의 배우 [[라이언 메리먼]].
* [[4월 11일]] - 대한민국의 성우 [[김현지 (성우)|김현지]].
* [[4월 12일]] - 대한민국의 DJ 긴조.
* [[4월 13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신화용]].
** 칠레의 축구 선수 [[클라우디오 브라보]].
* [[4월 14일]]
** 스코틀랜드의 축구 선수 [[제임스 맥패든]].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손호광]].
* [[4월 15일]]
** 브라질의 배우 [[앨리스 브라가]].
**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오성미]].
* [[4월 16일]]
** 미국의 가수 [[마리에 디그비]].
** 대한민국의 희극인 [[이은형 (희극인)|이은형]].
** 대한민국의 기자 안지현.
* [[4월 17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정규 (야구 선수)|박정규]].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조원희]].
* [[4월 18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장남석]].
** 베네수엘라의 야구 선수 [[미겔 카브레라]].
* [[4월 19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우선]].
* [[4월 20일]]
** 일본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나가시마 게이이치로]].
** 오스트레일리아의 모델 [[미란다 커]].
* [[4월 21일]]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장성규]].
** 대한민국의 가수 [[마르코 (1983년)|마르코]].
* [[4월 23일]]
** 대한민국의 멀리뛰기 선수 [[정순옥 (육상 선수)|정순옥]].
** 슬로바키아의 테니스 선수 [[다니엘라 한투호바]].
* [[4월 24일]]
** 브라질의 축구 선수 [[조제 카를루스 페헤이라 필류]].
** 대한민국의 배우 [[한수연]].
** 대한민국의 성우 [[남도형]].
** 대한민국의 희극인 [[정진욱 (희극인)|정진욱]].
* [[4월 25일]]
** 뉴질랜드의 중거리 육상 선수 [[닉 윌리스]].
** 대한민국의 해머던지기 선수 [[강나루]].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여효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김기표 (야구 선수)|김기표]].
* [[4월 26일]]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경욱 (희극인)|김경욱]].
* [[4월 28일]]
** 대한민국의 가수 [[아이삭 스쿼브]].
** 미국의 전 야구 선수 [[데이비드 프리즈]].
* [[4월 29일]]
** 터키의 축구 선수 [[세미흐 셴튀르크]].
** 스웨덴의 축구 선수 [[헤드비그 린달]].
* [[4월 30일]]
** 대한민국의 양궁 선수 [[윤미진]].
** 대한민국의 배우 [[강예솔]].
=== 5월 ===
* [[5월 1일]]
** 대한민국의 배우 [[박해진]].
** 대한민국의 성우 [[한신 (성우)|한신]].
** 프랑스의 수영 선수 [[알랭 베르나르]].
* [[5월 2일]]
** 대한민국의 배우 [[윤승훈 (배우)|윤승훈]].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최재수]].
* [[5월 3일]]
** 대한민국의 배우 [[동현배]].
** 대한민국의 배우 [[박재랑]].
* [[5월 4일]] - 일본의 만화가 [[안베 마사히로]].
* [[5월 5일]] - 영국의 배우 [[헨리 카빌]].
* [[5월 6일]]
** 브라질의 축구 선수 [[다니에우 아우베스]].
** 대한민국의 배우 [[김효선 (배우)|김효선]].
** 미국의 배우 [[개버레이 시디베이]].
* [[5월 7일]] - 대한민국의 가수 [[김상혁 (가수)|김상혁]] ([[클릭비]]).
* [[5월 8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문주원]].
** 대한민국의 배우 [[이상엽]].
** 대한민국의 자전거경기 선수 [[한송희 (1983년)|한송희]].
** 일본의 가수 [[나오토]] ([[ORANGE RANGE]]).
* [[5월 9일]]
** 대한민국의 모델, 배우 [[장희진 (1983년)|장희진]].
** 일본의 배우 [[마쓰다 류헤이]].
** 일본의 종합격투기 선수 [[아오키 신야]].
* [[5월 10일]] - 대한민국의 피아니스트 박종현.
* [[5월 11일]]
** 대한민국의 배우 [[박희본]].
** 핀란드의 기타리스트 [[마티아스 쿠피아이넨]].
* [[5월 12일]]
** 미국의 인터넷 소설가 [[트각트각]].
** 아일랜드의 배우 [[도널 글리슨]].
** 러시아의 전 리듬체조 선수, 정치인 [[알리나 카바예바]].
* [[5월 13일]]
**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선수 [[야야 투레]].
**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영탁]].
** 대한민국의 작곡가 [[멜로우 키친]].
* [[5월 14일]]
** 미국의 배우 [[앰버 탬블린]].
** 대한민국의 국악인 [[전영랑]].
* [[5월 16일]]
** 레바논의 가수 [[낸시 아즈람]].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홍민희]].
** 대한민국의 정치인 [[장철민 (정치인)|장철민]].
* [[5월 17일]] - 대한민국의 희극인 [[강유미]].
* [[5월 18일]]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대성 (희극인)|김대성]].
**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 [[게리 오닐]].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이지선 (미스코리아)|이지선]].
* [[5월 19일]]
** 러시아의 이종격투기 선수 [[루슬란 카라에프]].
** 대한민국의 배우 [[김흥수 (배우)|김흥수]].
* [[5월 20일]] - 대한민국의 전 기상캐스터 출신 MC [[박은지 (방송인)|박은지]].
* [[5월 21일]]
** 일본의 성우 [[시미즈 카오리]].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이경환 (야구 선수)|이경환]].
** 대한민국의 가수 [[손대희]].
* [[5월 23일]] -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하이디 레인지]].
* [[5월 24일]] - 대한민국의 가수 원우.
* [[5월 25일]]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남지연 (배구인)|남지연]].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정홍준]].
* [[5월 26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배기종]].
** 도미니카공화국의 야구 선수 [[오넬리 페레스]].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데미 더 제이우]].
* [[5월 28일]]
** 대한민국의 배우 [[허형규]].
** 미국의 축구 선수 [[스티브 크로닌]].
* [[5월 29일]] - 대한민국의 가수 키비.
* [[5월 30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류제국]].
** 대한민국의 만화가 [[조석]].
** 대한민국의 성우 [[김영은 (성우)|김영은]].
** 대한민국의 배우 [[권다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배구 선수 [[안젤코 추크]].
* [[5월 31일]] - 대만의 배우 [[천옌시]].
=== 6월 ===
* [[6월 1일]]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채윤아]].
* [[6월 3일]]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기욱]].
** 대한민국의 작곡가 [[신사동호랭이]]. (~[[2024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태근. (~[[2024년]])
* [[6월 4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문수호]].
** 코트디부아르의 전 축구 선수 [[에마뉘엘 에부에]].
* [[6월 7일]] - 영국의 가수, 배우 [[리 라이언]].
* [[6월 8일]]
** 벨기에의 테니스 선수 [[킴 클리스터스]].
** 일본의 성우 [[미야노 마모루]].
** 미국의 가수 [[그렉 (가수)|그렉]].
* [[6월 9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장원삼]].
** 대한민국의 수학자 [[허준이]].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승재 (1983년)|이승재]].
* [[6월 10일]]
** 대한민국의 기자 [[서복현]].
** 대한민국의 만화가 [[가스파드]].
* [[6월 11일]]
**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 [[서호진]].
** 미국의 랩가수 [[2 피스톨스]].
* [[6월 12일]]
** 나이지리아의 종합격투기 선수 [[앤디 올로건]].
** 캐나다의 축구 선수 [[크리스틴 싱클레어]].
** 폴란드의 모델 [[아냐 루비크]].
* [[6월 13일]] - 대한민국의 전 골프 선수 [[배재희]].
* [[6월 14일]]
** 일본의 배우 [[벳푸 아유미]].
** 일본의 배우 [[아라키 히로후미]].
** 프랑스의 배우 [[루이 가렐]].
* [[6월 15일]]
** 대한민국의 배우 [[성태준]].
** 대한민국의 성악가 [[고훈정]].
* [[6월 16일]]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이현민 (농구 선수)|이현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신영 (축구 선수)|김신영]].
** 대한민국의 기업인 [[김슬아]].
* [[6월 17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오원종]].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서성종]].
** 일본의 가수, 배우 [[니노미야 카즈나리]]. ([[아라시 (음악 그룹)|아라시]])
** 일본의 배우 [[카자마 슌스케]].
* [[6월 18일]] - 대한민국의 배우 [[김사희]].
* [[6월 19일]]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윤혜숙]].
** 아일랜드의 배우 [[에이든 터너 (1983년)|에이든 터너]].
* [[6월 20일]]
** 일본의 배우 [[미카미 마사시]].
** 대한민국의 가수 [[길구]].
** 미국의 야구 선수 [[라이언 브론]]
* [[6월 21일]] - 대한민국의 배우 [[김방원]].
* [[6월 22일]]
** 대한민국의 안무가, 퍼포먼스 디렉터 [[손성득]].
** 대한민국의 전 배우 [[이효정 (1983년)|이효정]].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박민영 (아나운서)|박민영]].
* [[6월 23일]] - 대한민국의 기상캐스터 [[이호원 (기상 캐스터)|이호원]].
* [[6월 24일]]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경진 (희극인)|김경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근철]].
** 대한민국의 배우 [[박혜영 (1983년)|박혜영]].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송광민]].
* [[6월 25일]] - 대한민국의 레이싱모델, 가수 [[이효영]].
* [[6월 26일]] - 브라질의 축구 선수 [[펠리피 멜루]].
* [[6월 27일]]
** 대한민국의 전직 광주 북구의회의원 [[최유진 (1983년)|최유진]].
** 러시아의 가수, 배우 [[알수]].
* [[6월 28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영광 (축구인)|김영광]].
* [[6월 29일]]
** 대한민국의 쌍둥이 가수 [[강주희 (가수)|강주희]], [[강승희 (가수)|강승희]] ([[윙크 (음악 그룹)|윙크]]).
** 대한민국의 배우 [[주성민 (배우)|주성민]].
** 일본의 배우 [[오가와 마키]].
* [[6월 30일]]
** 영국의 가수 [[셰릴 (가수)|셰릴]].
** 일본의 야구 선수 [[오치 다이스케]].
** 우크라이나의 전 육상 높이뛰기 선수 [[드미트로 데미야뉴크]].
** 영국의 배우 [[구구 음바타로]].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이강주 (배구 선수)|이강주]].
** 캐나다의 희극인, 작가, 사회자, 배우 [[캐서린 라이언]].
=== 7월 ===
* [[7월 1일]] - 대한민국의 가수 [[이특 (가수)|이특]] ([[슈퍼주니어]]).
* [[7월 2일]]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미셸 브랜치]].
** 벨기에의 축구 선수 [[알리너 젤러르]].
* [[7월 3일]]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이자연 (아나운서)|이자연]].
** 일본의 전 축구 선수 [[히라마쓰 다이시]].
** 대한민국의 사격 선수 [[한승우 (사격 선수)|한승우]].
* [[7월 4일]]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김용재 (아나운서)|김용재]].
** 대한민국의 모델 [[이미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황동채]].
* [[7월 5일]]
** 미국의 가수 [[이루]].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문규현 (야구인)|문규현]].
* [[7월 7일]]
** 대한민국의 모델, 배우 [[임은경]].
** 대한민국의 성우 [[박희은 (성우)|박희은]].
* [[7월 8일]] - 일본의 성우 [[나카츠 마리]].
* [[7월 9일]] - 대한민국의 성우 [[이명호 (여자 성우)|이명호]].
* [[7월 10일]]
** 대한민국의 가수 [[김희철]] ([[슈퍼주니어]]).
** 이란의 배우 [[골시프테 파라하니]].
* [[7월 11일]] - 스웨덴의 가수 [[마리 세르네홀트]].
* [[7월 12일]]
** 대한민국의 배우 [[하지은 (배우)|하지은]].
** 대한민국의 배우 [[최상학]].
** 대한민국의 의사, 수필가 [[남궁인]].
* [[7월 13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희수 (야구인)|박희수]].
** 중화인민공화국의 허들 선수 [[류샹]].
* [[7월 14일]] - 중화인민공화국의 수영 선수 [[위청 (수영 선수)|위청]].
* [[7월 15일]] - 대한민국의 배우 [[최재환]].
* [[7월 16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양영동]].
** 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 [[소울피쉬]].
* [[7월 17일]]
** 대한민국의 배우 [[김진우 (1983년 7월)|김진우]].
** 중국의 싱어송라이터 [[쉐즈첸]].
* [[7월 18일]] - 대한민국의 미술인 홍지연.
* [[7월 19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대형]].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이정옥 (배구인)|이정옥]].
** 북한의 전 축구 선수 [[김영준 (축구인)|김영준]].
* [[7월 20일]]
** 대한민국의 리포터 [[고다혜]].
** 대한민국의 배우 [[최우리]].
* [[7월 21일]] - 대한민국의 미술사학가 김지혜.
* [[7월 22일]] - 독일의 배우 [[마리암 자리]].
* [[7월 23일]] - 대한민국의 성우 [[조경이]].
* [[7월 24일]]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다니엘레 데 로시]].
* [[7월 25일]] - 대한민국의 전 바둑기사 [[홍꽃노을]]. (~[[2004년]])
* [[7월 26일]] - 대한민국의 가수 [[김동명 (가수)|김동명]]. ([[부활 (밴드)|부활]])
* [[7월 27일]]
** 대한민국의 배우, 모델 [[최여진]].
** 마케도니아의 축구 선수 [[고란 판데프]].
** 알바니아의 축구 선수 [[로리크 차나]].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조동찬]].
* [[7월 28일]]
** 베네수엘라의 정치인, 공학자 [[후안 과이도]].
** 대한민국의 모델 [[이현이]].
* [[7월 29일]]
** 대한민국의 배우 [[김동욱 (1983년)|김동욱]].
**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장태희 (가수)|장태희]].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치곤]].
** 세르비아의 축구 선수 [[블라디미르 스토이코비치]].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윤성귀]].
** 대한민국의 프로듀서 [[최다은 (1983년)|최다은]].
* [[7월 30일]]
** 브라질의 축구 선수 [[안드레 루이스 타바레스]].
** 대한민국의 배우, 체육가, 방송인 [[박재민 (방송인)|박재민]].
* [[7월 31일]] - 대한민국의 배우 [[박진우 (1983년)|박진우]].
=== 8월 ===
* [[8월 2일]]
** 몬테네그로의 축구 선수 [[제난 라돈치치]].
** 대한민국의 가수 [[정아]]. ([[애프터스쿨]])
* [[8월 3일]] - 미국의 영화감독 [[로버트 에거스]].
* [[8월 4일]]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강동구 (축구 선수)|강동구]].
** 미국의 배우, 영화감독 [[그레타 거윅]].
** 대한민국의 배우 [[손여은]].
** 일본의 성우 [[테라사키 유카]].
* [[8월 5일]] - 대한민국의 배우 [[윤진서]].
* [[8월 6일]]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로빈 판 페르시]].
* [[8월 7일]] - 베네수엘라의 전 축구 선수 [[다니 미겔]].
* [[8월 9일]] - 미국의 성우 [[애슐리 존슨]].
* [[8월 10일]]
**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마츠하시 미키]].
** 대한민국의 레이싱모델 [[이현진 (레이싱 모델)|이현진]].
* [[8월 11일]]
** 중화인민공화국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런후이]].
** 호주의 배우 [[크리스 헴스워스]].
** 대한민국의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과학자)|궤도]].
* [[8월 12일]]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이동걸 (1983년)|이동걸]].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클라스얀 휜텔라르]].
** 일본의 성우 [[아스미 카나]].
* [[8월 13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신승현]].
** 대한민국의 인권 운동가 [[김기홍 (1983년)|김기홍]]. (~[[2021년]])
* [[8월 14일]]
** 미국의 배우 [[밀라 쿠니스]].
** 타이완의 테니스 선수 [[루옌쉰]].
* [[8월 15일]]
**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 [[박혜원 (쇼트트랙 선수)|박혜원]].
** 일본의 성우 [[혼다 요코]].
** 프랑스의 태권도 선수 [[글라디스 에팡그]].
** 일본의 야구 선수 [[나카무라 다케야]].
* [[8월 16일]] - 대한민국의 가수 [[정준일]].
* [[8월 17일]] - 미국의 야구 선수 [[더스틴 페드로이아]].
* [[8월 18일]]
** 대한민국의 모델 [[배성희]].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최효진 (축구 선수)|최효진]].
** 레바논의 싱어송라이터 [[미카 (가수)|미카]].
** 일본의 성우 [[카나다 아키]].
* [[8월 19일]]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금나나]].
** 대한민국의 장애인 수영 선수 [[김지은 (수영 선수)|김지은]].
** 대한민국의 모델 [[장서진]].
** 도미니카 공화국의 야구 선수 [[후안 세데뇨]].
** 일본의 드러머 [[반도 사토시]].
* [[8월 20일]]
** 미국의 배우 [[앤드류 가필드]].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경선 (야구 선수)|김경선]].
** 러시아의 축구 선수 [[유리 지르코프]].
** 대한민국의 성우 [[김소희 (성우)|김소희]].
* [[8월 21일]]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전주리]].
** 오스트레일리아의 축구 선수 [[스콧 맥도널드]].
* [[8월 22일]]
** 대한민국의 성우 [[김진수 (성우)|김진수]].
** 대한민국의 연극배우, 뮤지컬 배우 [[이정수 (1983년)|이정수]].
* [[8월 23일]]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영희 (희극인)|김영희]].
** 대한민국의 만화가 [[주동근]].
* [[8월 24일]]
** 대한민국의 배우 [[라선영]].
** 미국의 야구 선수 [[브렛 가드너]].
* [[8월 25일]]
** 대한민국의 방송인, 전 아나운서 [[김석류]].
** 일본의 가수 [[오호리 메구미]].
** 잉글랜드의 스쿼시 선수 [[제임스 윌스트롭]].
* [[8월 26일]] - 일본의 야구 선수 [[이마에 도시아키]].
* [[8월 27일]] - 타이완의 영화배우 [[천보린]].
* [[8월 28일]]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멜라니아 가비아디니]].
* [[8월 29일]] - 스페인의 축구 선수 [[샤비 프리에토]].
* [[8월 30일]]
** 대한민국의 레이싱모델 [[김유하 (레이싱 모델)|김유하]].
** 대한민국의 성우 [[김정훈 (성우)|김정훈]].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정다은 (아나운서)|정다은]].
** 일본의 가수 [[마츠모토 준]] ([[아라시 (음악 그룹)|아라시]]).
**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시모네 페페]].
* [[8월 31일]]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강동진 (배구 선수)|강동진]].
** 대한민국의 희극인 [[성현주]].
** 대한민국의 배우 [[정경호 (1983년)|정경호]].
** 대한민국의 기업인 [[조현민 (기업인)|조현민]].
** 일본의 댄서 [[NAOTO]].
=== 9월 ===
* [[9월 1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종민 (1983년)|이종민]].
** 스페인의 축구 선수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2019년]])
** 대한민국의 펜싱 선수 [[김정환 (펜싱 선수)|김정환]].
* [[9월 2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조진수]].
** 대한민국의 펜싱 선수 [[김정환 (펜싱 선수)|김정환]].
* [[9월 3일]]
** 대한민국의 배우 [[김주영 (1983년)|김주영]].
** 대한민국의 방송인 [[지누리]].
** 대한민국의 성우 [[이제인 (성우)|이제인]].
** 일본의 삽화가 [[키시다 메루]].
* [[9월 4일]]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김학민]].
** 일본의 가수 [[나카마루 유이치]] ([[KAT-TUN]], 같은그룹멤버인[[우에다 타츠야]]와친구).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조동찬]].
* [[9월 5일]] - 대한민국의 배우 [[김형민 (배우)|김형민]].
* [[9월 6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염동균]].
* [[9월 7일]]
** 대한민국의 가수 [[배다해]].
** 터키의 축구 선수 [[메멧 토푸즈]].
* [[9월 8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신용운]].
** 대한민국의 배우 [[최성준 (1983년)|최성준]].
** 스위스의 축구 선수 [[디에고 베날리오]].
**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배우 [[이하린 (1983년)|이하린]].
* [[9월 9일]]
** 대한민국의 배우 [[김정화 (1983년)|김정화]].
** 미국의 배우 [[조 카잔]].
** 미국의 야구 선수 [[에드윈 잭슨]].
* [[9월 10일]]
** 대한민국의 래퍼 [[탁 (가수)|탁]] ([[배치기]]).
** 대한민국의 가수 [[차수경]].
* [[9월 11일]] - 대한민국의 리포터 [[강지은 (리포터)|강지은]].
* [[9월 12일]] - 대한민국의 수영 선수 [[유정남]].
* [[9월 13일]] - 타이의 이종격투기 선수 [[카오클라이 카엔노르싱]]
* [[9월 14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성길]].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연경흠]].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정민혁]].
** 대한민국의 희극인 [[이광득]].
** 영국의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
* [[9월 15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고창현]].
** 대한민국의 배우 [[임성언]].
** 일본의 배우, 모델 [[히라타 유카]].
* [[9월 16일]]
** 대한민국의 배우 [[김성은 (1983년)|김성은]].
** 짐바브웨의 수영 선수 [[커스티 코번트리]].
* [[9월 17일]]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양승은]].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허웅 (1983년)|허웅]].
* [[9월 18일]]
** 대한민국의 배우 [[민우혁]].
** 대한민국의 앵커 [[안보라 (1983년)|안보라]].
* [[9월 19일]] - 미국의 가수 [[이먼 (가수)|이먼]].
* [[9월 20일]]
** 대한민국의 배우 [[김민수 (1983년)|김민수]].
** 미국의 래퍼 [[데이 데이]] ([[DMTN]]).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정훈 (희극인)|김정훈]].
** 대한민국의 배우 [[김태희 (1983년)|김태희]].
** 일본의 가수, 배우 [[이토 유나 (1983년)|이토 유나]].
* [[9월 22일]]
** 대한민국의 전 수영 선수 [[조희연 (수영 선수)|조희연]].
** 대한민국의 가수 [[계피 (음악가)|계피]].
* [[9월 23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윤길현]].
* [[9월 24일]] - 대한민국의 가수 [[듬듬맨]].
* [[9월 25일]]
** 대한민국의 가수 [[손담비]].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하은주]].
** 미국의 배우, 가수 [[도널드 글로버]].
** 일본의 세포생물학자 [[오보카타 하루코]].
* [[9월 26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철호 (1983년)|김철호]].
**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히카르두 콰레스마]].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용석 (희극인)|김용석]].
* [[9월 27일]]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전혜빈]].
** 대한민국의 힙합 MC [[라임어택]].
** 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 [[알이에스티]].
** 대한민국의 안무가 [[김현 (안무가)|김현]].
* [[9월 28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승렬 (1983년)|이승렬]].
** 일본의 필드하키 선수 [[다나카 세렌]].
* [[9월 29일]] - 대한민국의 배우 [[윤승아]].
* [[9월 30일]]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용현 (희극인)|김용현]].
=== 10월 ===
* [[10월 1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안지만]].
** 대한민국의 희극인 [[양상국]].
** 몬테네그로의 축구 선수 [[미르코 부치니치]].
** 미국의 수영 선수 [[에릭 섄토]].
* [[10월 2일]]
** 대한민국의 배우 [[황보라]].
** 일본의 축구 선수 [[후쿠모토 미호]].
* [[10월 3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재성 (축구 선수)|김재성]].
** 미국의 배우 [[테사 톰슨]].
** 브라질의 종합격투기 선수 [[치아구 아우베스]].
** 일본의 배우 [[스즈키 히로키 (1983년생 배우)|스즈키 히로키]].
* [[10월 4일]]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박지은 (바둑 기사)|박지은]].
** 일본의 가수 [[우에다 타츠야]] ([[KAT-TUN]], 같은그룹멤버인 [[나카마루 유이치]]와친구).
* [[10월 5일]]
** 미국의 배우 [[제시 아이젠버그]].
** 미국의 모델, 패션 디자이너, 사업가 [[니키 힐튼]].
** 러시아계 한국인 방송인, 모델, 연극 배우 [[라리사 (1983년)|라리사]].
* [[10월 6일]]
** 대한민국의 가수 [[문지은]].
** 도미니카 공화국의 야구 선수 [[레다메스 리즈|리즈]].
* [[10월 8일]] - 대한민국의 배우 [[이상희 (1983년)|이상희]].
* [[10월 9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병규 (1983년)|이병규]].
** 대한민국의 역도 선수 [[장미란]].
* [[10월 10일]] - 대한민국의 가수 명지.
* [[10월 11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현승 (야구 선수)|이현승]].
** 대한민국의 성우 [[장병관]].
* [[10월 12일]]
** 대한민국의 배우, 전 가수 [[이지현 (1983년)|이지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장경태]].
** 영국의 전 축구 선수 [[칼턴 콜]].
* [[10월 13일]]
** 대한민국의 역도 선수 [[김민재 (역도 선수)|김민재]].
** 미국의 야구 선수 [[크리스 세든]].
** 일본의 축구 선수 [[미야자키 유카 (축구 선수)|미야자키 유카]].
** 대한민국의 가수 [[크리스 리 (가수)|크리스 리]].
** 대한민국의 배우 [[한태윤]].
* [[10월 14일]]
** 대한민국의 피아니스트 [[윤한]].
** 대한민국의 배우 [[강기영]].
** 중국의 배드민턴 선수 [[린단]].
** 대한민국의 가수, 희극인 [[이상구 (희극인)|이상구]].
* [[10월 15일]]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병진 (1983년)|이병진]].
**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디바제시카]].
* [[10월 16일]] - 일본의 축구 선수 [[고바야시 유스케 (1983년)|고바야시 유스케]].
* [[10월 17일]]
** 영국의 배우 [[펄리시티 존스]].
** 일본의 전 배우 [[미우라 리키]].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김선우 (1983년)|김선우]].
* [[10월 18일]]
**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임주연 (가수)|임주연]].
** 대한민국의 희극인 [[송왕호]].
** 대한민국의 희극인 [[최서인]]. (~[[2017년]])
** 터키의 이종격투기 선수 [[괵한 사키]].
** 브라질의 축구 선수 [[단치]].
* [[10월 19일]]
** 스웨덴의 배우 [[레베카 페르구손]].
** 대한민국의 배우 [[주종혁 (1983년)|주종혁]].
** 대한민국의 가수 [[김기태 (1983년)|김기태]].
* [[10월 20일]]
** 일본의 배우 [[야마다 타카유키]].
** 네덜란드의 전 축구 선수 [[미셸 보름]].
* [[10월 21일]] - 도미니카공화국의 전 축구 선수 [[앤디 마르테]]. (~[[2017년]])
* [[10월 22일]] - 대한민국의 가수 [[별 (가수)|별]].
* [[10월 23일]]
** 괌의 축구 선수 [[제이슨 컨리프]].
** 대한민국의 작곡가 [[프로페서 피]].
* [[10월 24일]] - 대한민국의 배우 [[최영우]].
* [[10월 25일]]
** 대한민국의 배우 [[한여름 (1983년)|한여름]].
** 일본의 황족 [[미카사노미야 요코 여왕]].
** 일본의 성인 비디오 여배우 [[아카네 호타루]]. (~[[2016년]])
* [[10월 26일]] -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뮤지컬 배우 [[박소리]].
* [[10월 27일]]
** 대한민국의 배우 [[이중문]].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가수 [[윤형렬]].
** 싱가포르의 바이올린 연주자 [[버네사 메이]].
* [[10월 28일]]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김서련]].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조순권]].
* [[10월 29일]]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진유현]].
** 프랑스의 축구 선수 [[제레미 마티외]].
** 대한민국의 배우 [[김지아 (1983년)|김지아]].
* [[10월 30일]] - 대한민국의 가수 [[김명훈 (가수)|김명훈]].
* [[10월 31일]]
** 대한민국의 기업인 [[김동관 (1983년)|김동관]].
** 일본의 야구 선수 [[이와타 미노루]].
** 프랑스의 축구 선수 [[크리스토프 자예]]
=== 11월 ===
* [[11월 1일]]
** 대한민국의 배우 [[오의식]].
** 대한민국의 배우 [[한다민]].
** 일본의 그라비아 아이돌 [[오구라 유코]].
** 아일랜드의 배우 [[대니엘 라이언]].
* [[11월 2일]] - 대한민국의 작곡가, 기타리스트 [[김임춘]].
* [[11월 3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조용형]].
* [[11월 4일]]
**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김다나]].
** 대한민국의 성우 [[박고운]].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민기 (희극인)|김민기]].
** 대한민국의 배우 [[심진보]]. (~[[2018년]])
* [[11월 5일]]
** 대한민국의 희극인 [[안영미 (희극인)|안영미]].
** 대한민국의 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최연성]].
** 영국의 모델 [[얼렉서 청]].
* [[11월 6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권혁 (야구 선수)|권혁]].
** 대한민국의 정치인 [[배현진]].
* [[11월 7일]]
** 대한민국의 전 아나운서 [[차다혜]].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동원 (축구 선수)|이동원]].
** 대한민국의 배우 [[유일한 (배우)|유일한]].
* [[11월 8일]]
** 대한민국의 배우 [[김해인]].
** 대한민국의 가수 [[이현 (1983년)|이현]].
** 러시아의 축구 선수 [[파벨 포그레브냐크]].
* [[11월 9일]] - 대한민국의 배우 [[엄태구]].
* [[11월 10일]]
** 미국의 컨트리 가수 [[미란다 램버트]].
** 대한민국의 가수 [[조현민 (가수)|조현민]].
** 대한민국의 배우 [[전수지]].
* [[11월 11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치우]].
** 독일의 축구 선수 [[필리프 람]].
** 일본의 성우 [[스즈키 타츠히사]].
** 일본의 영화배우, 모델 [[아오이 소라]].
** 일본의 야구 선수 [[야마구치 데쓰야]].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혜선 (희극인)|김혜선]].
* [[11월 12일]] - 대한민국의 가수 [[지클레프]].
* [[11월 13일]] - 대한민국의 배우 [[김현준 (1983년생 배우)|김현준]].
* [[11월 14일]] - 대한민국의 가수 복태.
* [[11월 15일]]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욘 헤이팅아]].
** 대한민국의 가수 [[니나 (대한민국의 가수)|니나]].
* [[11월 16일]].
** 대한민국의 가수 [[K (가수)|K]].
** 미국의 격투기 선수 [[벤 헨더슨]].
* [[11월 17일]] - 미국의 야구 선수 [[라이언 브론]].
* [[11월 18일]]
**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 [[마이클 도슨 (축구 선수)|마이클 도슨]].
** 노르웨이의 사업가 [[욘 레크 요한센]].
* [[11월 19일]]
** 미국의 배우 [[애덤 드라이버]].
** 일본의 이종격투기 선수 [[사토 다쿠미]].
* [[11월 20일]] - 대한민국의 배우 [[서현우]].
* [[11월 21일]]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기업인 [[김유미 (2006년 미스코리아)|김유미]].
** 대한민국의 배우 한이진.
** 미국의 프로레슬링 선수 [[벨라 트윈스]], [[니키 벨라]].
* [[11월 22일]]
** 대한민국의 배우 [[김지우 (1983년)|김지우]].
** 일본의 모델, 배우 [[아시나 세이]]. (~[[2020년]])
* [[11월 23일]] -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 [[전다혜]].
* [[11월 24일]]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임유진 (배구 선수)|임유진]].
** 대한민국의 배우 [[하수호]].
** 캐나다의 배우 [[카린 바나스]].
* [[11월 25일]]
** 대한민국의 기업인 박민규.
** 대한민국의 배우 [[한시윤]].
* [[11월 26일]]
** 일본의 성우 [[카토 에미리]]
** 일본의 가수 [[마루야마 류헤이]] ([[칸쟈니∞]]).
* [[11월 27일]]
** 대한민국의 배우 [[이주은 (배우)|이주은]].
** 대한민국의 기자 [[박준우 (기자)|박준우]].
* [[11월 28일]]
** 대한민국의 가수 [[하현곤]] ([[클릭비]]).
** 영국의 배우 [[이먼 엘리엇]].
* [[11월 29일]] - 대한민국의 배우 [[이규형 (배우)|이규형]].
* [[11월 30일]]
** 프랑스의 배우 [[기욤 구익스]].
** 스페인의 배우 [[카를라 니에토 헬리]].
=== 12월 ===
* [[12월 1일]]
** 대한민국의 배우 [[서장원 (배우)|서장원]].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손주인]].
* [[12월 3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권오규 (축구인)|권오규]].
* [[12월 4일]] - 대한민국의 가수 [[김경록 (가수)|김경록]] ([[V.O.S]]).
* [[12월 5일]]
** 대한민국의 만화가 [[이말년]].
** 대한민국의 배우 [[승효빈]].
* [[12월 6일]]
** 대한민국의 성우 [[김민정 (성우)|김민정]].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박용욱]].
* [[12월 8일]]
** 대한민국의 가수 [[유호석]] ([[클릭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배힘찬]].
* [[12월 9일]] -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의 딸 문다혜.
* [[12월 11일]]
** 대한민국의 배우 [[온주완]].
** 대한민국의 배우 [[지안 (배우)|지안]].
* [[12월 13일]]
** 대한민국의 희극인, 쇼호스트 [[복현규]].
** 아랍에미리트의 우주인 [[하자 알만수리]].
* [[12월 14일]]
** 대한민국의 배우 [[강기화]].
** 프랑스의 축구 심판 [[스테파니 프라파르]].
* [[12월 15일]]
** 중화인민공화국의 탁구 선수 [[왕하오 (1983년생 탁구 선수)|왕하오]].
** 대한민국의 희극인 [[장유환]].
* [[12월 16일]]
** 대한민국의 성우 [[김나율]].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오승원]].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최형우 (야구 선수)|최형우]].
** 일본의 성우 [[키쿠치 미카]].
* [[12월 17일]]
** 프랑스의 랠리 선수 [[세바스티앵 오지에]].
** 대한민국의 배우 [[김보강]].
** 일본의 작곡가 [[사이토 고스케]].
** 대한민국의 희극인 [[이원구 (희극인)|이원구]].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최지은 (아나운서)|최지은]].
* [[12월 18일]] - 대한민국의 배우 [[서승아]].
* [[12월 20일]]
** 대한민국의 희극인 [[김신영]].
** 대한민국의 가수 [[나인 (가수)|나인]].
** 미국의 배우 [[조나 힐]].
** 일본의 성우 [[테라시마 타쿠마]].
** 태국의 가수, 배우, 트랜스여성 [[벨 눈티타]].
** 네덜란드의 모델 [[라라 스톤]].
* [[12월 21일]]
** 미국의 배우 [[스티븐 연]].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최윤영 (2003년 미스코리아)|최윤영]].
* [[12월 22일]]
** 오스트레일리아의 모델 [[제니퍼 호킨스]].
** 일본의 성우 [[카노 유이]].
* [[12월 23일]]
** 대한민국의 희극인 [[정지민]].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조성민 (농구 선수)|조성민]].
* [[12월 24일]] - 대한민국의 가수 [[노민혁]] ([[클릭비]]).
* [[12월 25일]]
** 중화민국의 배우 [[계륜미]].
** 대한민국의 정당인 [[김지혜 (1983년)|김지혜]].
* [[12월 26일]]
** 대한민국의 방송인 [[원자현]].
** 일본의 가수 [[타카하시 유우]].
* [[12월 27일]] - 대한민국의 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박정석 (프로게이머)|박정석]].
* [[12월 30일]]
** 대한민국의 성우 [[신경선]].
**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나인 (가수)|나인]].
** 미국의 기업인, 프로그래머, 인스타그램 공동 창업자 [[케빈 시스트롬]].
* [[12월 31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신종길]].
** 대한민국의 힙합 프로듀서 [[에이조쿠]].
** 일본의 가수 [[이치이 사야카]].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로빈 판페르시]].
=== 미상 ===
* 대한민국의 가수 [[김병수 (가수)|김병수]].
* 대한민국의 배우 [[손지윤]].
* 대한민국의 배우 [[이태승]].
* 대한민국의 소설가 [[박성호 (1983년)|박성호]].
* 대한민국의 배우 [[송민서]].
* 대한민국의 촬영 감독 [[엄성탁]].
* 대한민국의 화가 [[박이도]].
* 대한민국의 디자이너 [[김주완 (1983년)|김주완]].
* 대한민국의 가수 젬마.
== 사망 ==
[[파일:Umberto II, 1944.jpg|섬네일|120px|[[움베르토 2세]]]]
[[파일:Ninoy Aquino 3.jpg|섬네일|120px|[[베니그노 아키노 2세]]]]
[[파일:Jerzy Andrzejewski 1949.jpg|섬네일|120px|[[예지 안제예프스키]]]]
[[파일:Minister Dong Whie Kim, Bestanddeelnr 927-9493.jpg|섬네일|120px|[[김동휘 (외교관)|김동휘]]]]
{{분류 참고|1983년 사망}}
=== 1월 ===
* [[1월 2일]] - 대한민국의 법조인 [[사광욱]]. (1909년~)
* [[1월 4일]] -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이헌구 (1905년)|이헌구]]. (1905년~)
* [[1월 9일]]
** 대한민국의 정치인 [[박순천]]. (1898년~)
** 대한민국의 관료 [[이선근]]. (1905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강량욱]]. (1903년~)
* [[1월 19일]] - 브라질의 축구 선수 [[가린샤]]. (1933년~)
* [[1월 24일]] - 미국의 영화 감독 [[조지 큐커]]. (1899년~)
* [[1월 25일]] - 대한민국의 협객 [[이성순]]. (1916년~)
=== 2월 ===
* [[2월 7일]] - 미국의 사회학자 [[카를 C. 짐머만]]. (1897년~)
* [[2월 10일]] -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이종찬 (1916년)|이종찬]]. (1916년~)
* [[2월 25일]] - 미국의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 (1911년~)
=== 3월 ===
* [[3월 1일]]
** 영국의 작가 [[아서 쾨슬러]]. (1905년~)
** 미국의 정치인 [[밀드레드 팩스턴 무디]]. (1897년~)
* [[3월 3일]] - 벨기에의 만화가 [[에르제]]. (1907년~)
* [[3월 9일]] - 스웨덴의 생리학자 [[울프 폰 오일러]]. (1905년~)
* [[3월 18일]] - 이탈리아 왕국의 마지막 왕 [[움베르토 2세]]. (1904년~)
=== 4월 ===
* [[4월 4일]] - 미국의 배우 [[글로리아 스완슨]]. (1899년~)
* [[4월 19일]] - 폴란드의 작가 [[예지 안제예프스키]]. (1909년~)
=== 5월 ===
* [[5월 5일]]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봉조 (1907년)|김봉조]]. (1907년~)
* [[5월 14일]] - 멕시코의 대통령 [[미겔 알레만 발데스]]. (1900년~)
* [[5월 25일]] - 리비아의 국왕 [[이드리스 1세]]. (1889년~)
* [[5월 29일]] - 대한민국의 정치인 [[권태희]]. (1907년~)
=== 6월 ===
* [[6월 23일]] - 대한민국의 기업인 [[장영근]]. (1897년~)
* [[6월 25일]] - 아르헨티나의 작곡가 [[알베르토 히나스테라]]. (1916년~)
=== 7월 ===
* [[7월 1일]] - 미국의 건축가 [[버크민스터 풀러]]. (1895년~)
* [[7월 3일]]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유승준 (정치인)|유승준]]. (1910년~)
* [[7월 4일]] - 아일랜드의 연쇄 살인범 [[존 보드킨 애덤스]]. (1899년~)
* [[7월 5일]]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육홍균]]. (1900년~)
* [[7월 29일]] - 스페인의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 (1900년~)
=== 8월 ===
* [[8월 21일]] - 필리핀의 정치인 [[베니그노 아키노 2세]]. (1932년~)
=== 9월 ===
* [[9월 3일]] -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피에로 스라파]]. (1898년~)
* [[9월 16일]] -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정인섭]]. (1905년~)
* [[9월 28일]] - 대한민국의 군인 [[김동한 (1919년)|김동한]]. (1919년~)
=== 10월 ===
* [[10월 9일]]
** 대한민국의 외교관 [[김동휘 (외교관)|김동휘]]. (1932년~)
** 대한민국의 공무원 [[김재익 (1938년)|김재익]]. (1938년~)
** 대한민국의 외교관 [[이범석 (1925년)|이범석]]. (1925년~)
** 대한민국의 부총리 [[서석준]]. (1938년~)
** 대한민국의 외교관 [[함병춘]]. (193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심상우]]. (1938년~)
* [[10월 11일]] - 대한민국의 기업인 [[방대룡]]. (1938년~)
* [[10월 17일]] - 프랑스의 작가 [[레몽 아롱]]. (1905년~)
=== 11월 ===
* [[11월 10일]] - 스위스의 의리학자 [[펠릭스 블로흐]]. (1905년~)
* [[11월 16일]]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찬우]]. (1918년~)
* [[11월 22일]] - 대한민국의 교육인 [[황신덕]]. (1898년~)
* [[11월 23일]] - 우크라이나의 작가 [[미콜라 바잔]]. (1904년~)
=== 12월 ===
* [[12월 5일]] - 미국의 영화감독 [[로버트 올드리치]]. (1918년~)
* [[12월 18일]] - 대한민국의 정치인 [[송진백]]. (1905년~)
* [[12월 25일]] - 스페인의 미술가 [[호안 미로]]. (1893년~)
* [[12월 27일]] - 대한민국 출신의 영화배우 [[김염]]. (1910년~)
== 노벨상 ==
* '''경제학상''': 제라르 드브레 - [[미국]]
* '''문학상''': [[윌리엄 골딩]] - [[영국]]
* '''물리학상''':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 윌리엄 A. 파울러 - [[미국]]
* '''생리학 및 의학상''': [[바바라 매클린톡]] - [[미국]]
* '''평화상''': [[레흐 바웬사]] - [[폴란드]]
* '''화학상''': 헨리 타우비 - [[캐나다]]
== 달력 ==
{{연간달력|1983}}
=== 음양력 대조 일람 ===
{| class="wikitable"
|-
! 음력월 !! 월건 !! 대소 !! 음력 1일의<br />양력 월일 !! 음력 1일<br/>간지
|-
| [[음력 1월|1월]] || [[갑인]] || 대 || [[2월 13일]] || [[임신 (간지)|임신]]
|-
| [[음력 2월|2월]] || [[을묘]] || 소 || [[3월 15일]] || [[임인]]
|-
| [[음력 3월|3월]] || [[병진 (간지)|병진]] || 대 || [[4월 13일]] || [[신미 (간지)|신미]]
|-
| [[음력 4월|4월]] || [[정사 (간지)|정사]] || 소 || [[5월 13일]] || [[신축]]
|-
| [[음력 5월|5월]] || [[무오]] || 소 || [[6월 11일]] || [[경오]]
|-
| [[음력 6월|6월]] || [[기미]] || 대 || [[7월 10일]] || [[기해]]
|-
| [[음력 7월|7월]] || [[경신]] || 소 || [[8월 9일]] || [[기사 (간지)|기사]]
|-
| [[음력 8월|8월]] || [[신유]] || 소 || [[9월 7일]] || [[무술 (간지)|무술]]
|-
| [[음력 9월|9월]] || [[임술]] || 대 || [[10월 6일]] || [[정묘]]
|-
| [[음력 10월|10월]] || [[계해]] || 소 || [[11월 5일]] || [[정유 (간지)|정유]]
|-
| [[음력 11월|11월]] || [[갑자]] || 대 || [[12월 4일]] || [[병인]]
|-
| [[음력 12월|12월]] || [[을축]] || 대 || [[1984년]] [[1월 3일]] || [[병신]]
|}
{{위키공용분류}}
{{전거 통제}}
[[분류:1983년|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도시 정보
| 정식표기 = Freie und Hansestadt Hamburg
| 이름 = 함부르크 자유 한자시
| 별명 =
| 시기 = Flag of Hamburg.svg
| 휘장 = Wappen der Hamburgischen Bürgerschaft.svg
| 표어 =
| 그림 = Hamburg montage.jpg
| 그림너비 = 300px
| 그림설명 = 함부르크의 모습
| 위치지도 = 독일
| 위도 = 53.565278
| 경도 = 10.001389
| 나라 = {{국기나라|독일}}
| 행정구역 = 함부르크 시
| 지역 =
| 방언 =
| 설립일 =
| 인구 = 1,906,411
| 인구년도 = 2021
| 인구밀도 = 2,500
| 광역인구 = 5,425,628
| 면적 = 755.22
| 세부면적 = 291.5
| 해발 =
| 시간대 = CET (UTC+1)<br />CEST (UTC+2)
| 우편번호 = 20001–21149<br />22001–22769
| 지역번호 = 040
| 웹사이트 = http://www.hamburg.de/
}}
'''함부르크'''({{llang|de|Hamburg}} {{IPA|[ˈhambʊʁk]}}, {{llang|nds|Hamborg}}, {{IPA|['hambɔːx]}})는 [[독일]] 북부에 있는 주이며 [[도시]]이다. 독일 최대의 항구 도시이자 제2의 대도시이다. 정식 이름은 '''함부르크 자유 한자시'''({{llang|de|Freie und Hansestadt Hamburg}}; {{llang|nds|Free un Hansestadt Hamborg}})이다. [[알스터강]], [[빌레강]]과 [[엘베강]]이 흐른다. 북쪽으로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남쪽으로는 [[니더작센주]]와 접한다. 도시의 기원은 [[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950년 즈음에 [[엘베강]] 유역에 함마부르크가 건립되고, 중세에는 [[한자 동맹]](Hansa-Städtebund)의 일원이 되었다. 현재 [[독일]] 연방 정부 조직 형태상 함부르크는 지방 자치주에 해당한다. 시민은 [[개신교]]가 많고, 정치적으로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세력이 강하다. 면적은 755km<sup>2</sup>.
== 역사 ==
기원전과 로마 시대에 [[켈트 족]]과 색슨 족([[게르만족|게르만 족]]의 일파)이 살고 있었으며, 825년 하마부르크 성이 함부르크 지방에 건설된 뒤 번창을 시작했다. [[프리드리히 1세 (신성 로마 제국)|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또는 [[프리드리히 1세]])는 독일의 왕으로 선출된 뒤 1189년 이 도시에게 무역특권과 사용료 면제, 운항 특권을 인정했다. 중세가 지나고 르네상스 까지, [[스페인]], [[노르웨이]], [[포르투갈]], [[영국]]과 [[네덜란드]]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르네상스 이후에도 빛나는 황금기를 맞이해, [[뤼베크]] 다음으로 한자 동맹에서 중요한 항구 자리를 차지해, 특권을 맘껏 누렸다. 그 후 20세기에는 서독의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라는 명예를 얻었고, 21세기 초에도 꾸준히 증권거래소, 은행 등으로 붐비는 도시이다.
== 스포츠 ==
함부르크는 때때로 '[[독일]] 스포츠의 중심지'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 지역에서 [[푸스발-분데스리가|1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축구팀인 [[함부르크 SV]]이 있고, 지역 라이벌팀인 [[FC 장크트 파울리]]가 있다.
[[파일:Port hamburg panorama.jpg|700px|장크트 미카엘 교회에서 바라본 함부르크의 파노라마]]
[[파일:Landungsbrücken, Hamburg.JPG|섬네일|오른쪽|함부르크 전경]]
== 인구 ==
{{historical populations|align=left
|950|500
|1430|16000
|1840|136956
|1900|705738
|1910|931035
|1920|1026989
|1930|1145124
|1940|1725500
|1950|1605606
|1961|1840543
|1970|1793640
|1980|1645095
|1990|1652363
|2000|1715392
|2010|1786448
|2012 <small>(census)</small>|1734272
|2013|1746342
|2014|1762791
|2015|1787408
|2016|1860759
|footnote=Population size may be affected by changes in administrative divisions.}}{{-}}
== 기후 ==
{{Weather box
| location = 함부르크 ([[함부르크 공항]], 1991년~2020년)
| metric first = Yes
| single line = yes
| Jan record high C = 14.4
| Feb record high C = 17.2
| Mar record high C =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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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ar record high C =
| Jan record low C =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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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ar record low C = -29.1
|Jan high C = 4.2
|Feb high C =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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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ar high C = 13.6
|Jan mean C = 2.1
|Feb mean C = 2.4
|Mar mean C =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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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mean C = 2.9
|year mean C = 9.7
|Jan low C =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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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low C =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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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ar low C = 5.7
| precipitation colour = green
|Jan precipitation mm = 66.7
|Feb precipitation mm = 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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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precipitation mm =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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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ar precipitation mm = 770.5
| unit precipitation days = 1.0 mm
|Jan precipitation days =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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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 precipitation days = 1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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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 snow days = 1.0 cm
|Jan snow days =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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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urce 1 = [[세계기상기구]]<ref name=WMO>{{웹 인용
| archive-url = https://web.archive.org/web/20231012155627/https://www.nodc.noaa.gov/archive/arc0216/0253808/1.1/data/0-data/Region-6-WMO-Normals-9120/Germany/CSV/Hamburg-Fuhlsbuettel_10147.csv
| archive-date = 12 Octobe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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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 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 Climate Normals for 1991–2020
| work = 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 Climatological Standard Normals (1991–2020)
| publisher = [[미국 해양대기청]]
| access-date = 12 October 2023}}</ref>
| source 2 = 독일 기상청<ref>{{웹 인용
| url = http://www.dwd.de/bvbw/appmanager/bvbw/dwdwwwDesktop?_nfpb=true&_pageLabel=_dwdwww_klima_umwelt_klimadaten_deutschland&T82002gsbDocumentPath=Navigation%2FOeffentlichkeit%2FKlima__Umwelt%2FKlimadaten%2Fkldaten__kostenfrei%2Fausgabe__monatswerte__node.html%3F__nnn%3Dtrue
| title = Ausgabe der Klimadaten: Monatswerte
| url-status = dead
| access-date = 24 June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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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chive-date = 12 June 2014
}}</ref>
}}
== 출신 인물 ==
{{참고|분류:함부르크 출신}}
== 자매 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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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넘어옴|프루스트}}
{{작가 정보
| 이름 = 마르셀 프루스트
| 원어이름 = Marcel Proust
| 그림 = Otto Wegener Proust vers 1895 bis.jpg
| 설명 = ''[[1895년]]경의 마르셀 프루스트, [[오토 베게너]] 촬영.''
| 국적 = [[프랑스]]
| 출생명 = 발랑탱 루이 조르주 외젠 마르셀 프루스트<br />Valentin Louis Georges Eugène Marcel Proust
| 출생일 = {{출생일|1871|7|10}}
| 출생지 =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22|11|18|1871|7|10|df=y}}
| 사망지 =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
| 직업 = [[작가]]
| 수상 = [[공쿠르상|1919년 공쿠르상<br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서〉로 수상]]
| 부모 = [[아드리앵 프루스트]] (父)<br />[[잔 프루스트|잔 클레망스 프루스트]] (母)
| 형제 = [[로베르 프루스트]] (弟)
| 주요 작품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913년 - 1927년)
**〈[[스완네 집 쪽으로]]〉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서]]〉
**〈[[게르망트 쪽]]〉
**〈[[소돔과 고모라 (프루스트)|소돔과 고모라]]〉
**〈[[갇힌 여자]]〉
**〈[[사라진 알베르틴]]〉
**〈[[되찾은 시간]]〉
| 장르 = [[대하소설]], [[수필]], [[파스티슈]]
| 학력 = 리세 콩도르세<br />[[파리정치대학|사립정치학교]] (ELSP)
}}
'''마르셀 프루스트'''({{lang|fr|Marcel Proust}}, [[1871년]] [[7월 10일]]~[[1922년]] [[11월 18일]])는 [[프랑스]]의 [[작가]]이다. 프루스트의 주요 작품으로는 [[1913년]]부터 [[1927년]]까지 출판된 연작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있다.
교양있고 유복한 가정([[아드리앵 프루스트|프루스트의 아버지]]는 [[파리 대학교 의학부]] 교수였다)에서 태어난 마르셀 프루스트는 어린 시절 허약한 아이였으며 [[천식]]으로 인한 심각한 호흡기 문제로 전 생애에 걸쳐 고통받았다. 프루스트는 젊었을 때부터 귀족들의 살롱에 드나들면서 그곳에서 예술가들과 작가들을 만나며 사교계의 딜레탕트로 유명세를 떨쳤다. 집안의 재산덕에 프루스트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끝내 미완으로 남은, 《[[장 상퇴유]]》라는 제목으로 작가 사후 [[1952년]]에 출판된 소설을 1895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1900년 프루스트는 [[존 러스킨]]의 발자취를 따라 예술 작품들을 알아가고자, 계획하던 소설 집필을 중단하고, 대신 [[베네치아]]와 [[파도바]]로 여행을 떠나 그곳에 관한 글을 썼으며 러스킨이 저술한 두 권의 책, 《[[아미앵의 성서]]》와 《[[참깨와 백합]]》을 번역했다.
1907년부터 프루스트는 1913년부터 사후 1927년까지 7권으로 출판된 자신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쓰기 시작했으며 2권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로 [[1919년]]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1922년 11월 18일 기관지염을 치료받지 못한 나머지 사망했다. 프루스트는 파리 [[페르 라셰즈 묘지]]에 매장되었고 이 거장에게 경의를 표한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에 참석했다. 뒤이은 세대의 작가들은 프루스트를 최정상 작가 반열에 올리며 그를 진정한 문학의 신화로 만들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작품은 작가의 고유한 세계를 그려야 하는 예술의 역할처럼 당시의 시대상과 감성적인 기억의 주된 성찰을 보여준다. 그 뿐 아니라 작품은 [[동성애]]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프루스트적 묘사로 흐릿하게 그려낸, 실패라는 감정과 존재의 허무에 관한, 사랑과 질투의 성찰이기도 하다. 또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200명 이상의 등장인물]]이 나오는 광대한 인간 희곡이다. 프루스트는 신랄한 문체로 경이롭고 때로는 냉소적으로 다뤄지는 세계, 유년시절 [[일리예콩브레|콩브레]]의 레오니 숙모네 집과 파리 [[문학 살롱|살롱]]들, 귀족과 부르주아의 사회가 대조되는 것처럼 작품내에서 보여지는 장소들을 재창조했다. 이러한 사회적 무대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익살극의 주인공처럼 묘사한 각양각색의 등장 인물들에 의해 생동감있게 그려진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실존 인물들에게서 모티브를 따온, 시대를 그린 회화이자 로망 아 클레로 탄생했다. 프루스트의 특징은 형성의 과정에서 창조의 나선을 따라, 항상 잡을 수 없는 실재의 전체성에 도달하기를 추구한, 문장을 길게 늘린 그의 문체에서도 찾을 수 있다.
== 생애 ==
=== 가족과 어린 시절 ===
[[파일:96 rue Jean-de-La-Fontaine, plaque Proust, Paris 16e 2.jpg|섬네일|파리 [[라퐁텐 가]] 명판.]]
[[파일:Robert et Marcel Proust 1876 bis.jpg|섬네일|로베르와 마르셀 프루스트, [[1876년]] [[3월]]]]
마르셀 프루스트는 [[파리 (프랑스)|파리]] (16구역 오퇴유 구) 라 퐁텐가 96번지에 위치한 외종조부 루이 베유의 주택에서 태어났다. 이후 이 주택은 팔렸고 다른 건물을 짓느라 헐렸으나, 그 다음 지어진 건물 역시 [[모차르트 대로]] 건설로 인하여 헐렸다.
어머니 [[잔 클레망스 베유]](1849년, 파리-1905년, 파리)는 [[메스 (프랑스)|메스]] 출신의 [[알자스]][[로렌]]계 [[유대인]] [[주식 중개인]] 나테 베유(1814년, 파리-1896년, 파리)<ref name=":0">{{웹 인용|언어=fr|제목=마르셀 프루스트의 가계|url=http://www.perche-gouet.net/histoire/pdf/28196-01/Ascendance%20Marcel%20Proust.pdf}}</ref>와 아델 베른카스텔(1824년, 파리-1890년, 파리)의 딸로, 아들에게 다채롭고 깊은 교양을 주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때로는 귀찮게까지 애정을 쏟았다. 그의 아버지 [[아드리앵 프루스트]] 박사는 [[외르에루아르주|외레루아르]] 일리에 출신 집안에서 태어난 파리 대학교 의학부 교수였으며, 전염병 대책에서 정부에게 자문을 한 명망있는 위생학자였다<ref name=":0" />. 마르셀은 1873년 5월 24일 태어난 남동생 로베르가 있었다. 로베르는 후에 외과 의사가 되었다. 프루스트의 대부는 예술품 수집가 외젠 뮈티외였다.
1870년 공성과 1871년 [[파리 코뮌]] 시절 그를 임신한 어머니가 처했던 궁핍한 생활 탓에 그가 허약하게 태어났다고 여겨진다<ref name="Grunspan p21">Cyril Grunspan, ''Marcel Proust : Tout dire'', Portaparole, 2005, 21p.</ref><ref>Julia Kristeva, invitée de Marc-Alain Ouaknin, « Proust, être juif entre la Madeleine et la Victoire », ''Les Talmudiques'', France-Culture, 2013년 10월 9일.</ref>. 파리 코뮌의 혼란으로부터 프루스트의 부모는 오퇴유로 피난간다. 프루스트는 고통스런 유년기를 보냈지만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ref name="Grunspan p21" />.
[[파일:CasinCaillebotte.jpg|섬네일|왼쪽|[[귀스타브 카유보트|카유보트]]와 콩브레의 분위기.]]
{{인용문2|마르셀 프루스트가 태어나기 조금 이전, [[파리 코뮌|코뮌]] 시기에, 프루스트 박사는 자선 병원에서 돌아오던 중 폭도들의 총탄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임신중이던 프루스트 부인은 남편이 막 도망쳐 온 위험했던 상황에 관해 듣자 그 충격으로부터 벗어나길 힘들어 했다. 부인이 얼마 안되어 낳은 자식은 매우 허약해서, 남편은 아이가 오래 살지 못할까봐 불안해했다. 그들은 아이를 무지 신경썼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지성과 감성의 신호를 보였으나, 아이의 건강은 계속 허약한 채였다.<ref>[[조르주 카타위]], 「프루스트」 , 《라퐁-봉피아니 작가 사전》, III 권, [[1990년]], 793쪽. {{ISBN|2221501748}}.</ref>}}
프루스트는 허약했고 봄은 그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계절이었다. 아름다운 봄날에 분비되는 꽃가루는 그의 천식을 더 악화시켰다. 아홉 살 때 부모님과 불로뉴 숲을 산책하면서 프루스트는 천식 발작 증세를 호소했고 그의 호흡기는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자식에게 최후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산책 도중 언제라도 천식 발작으로 인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프루스트의 전 생애에 걸쳐 봄이 올 때마다 도사렸다<ref>{{서적 인용|저자1=[[프랑수아 베르나르 미셸]]|제목=마르셀 프루스트 교수''Le professeur Marcel Proust''|출판사=[[갈리마르 출판사]]|연도=2016|쪽수=11|isbn=}}</ref>.
프루스트의 아버지는 천주교 신자이고 친정 부모의 뜻에 따라 천주교로 개종하지 않은 어머니는 유대교 신자라는 두 종교가 결합된 환경 속에서<ref>{{서적 인용|언어=영어 |저자1=윌리엄 C. 카터 |제목=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sous-titre=A Life, with a New Preface by the Author |출판사=[[Yale University Press]] |연도=2013-04-16 |pages totales=1000 |쪽수=5 |isbn=978-0-300-19179-0 |url=https://books.google.fr/books?id=aYaT_pCoA08C&pg=PA8&dq=Catherine+Virginie+Torcheux |consulté le=15 juin 2019}}.</ref>, 프루스트는 파리 생 루이 당탱 교회에서 천주교 세례를 받았으나, 종교와 관련하여 자신을 규정하지 않고자 했다. (스스로는 적어도 유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프루스트는 자신이 가톨릭 교도라고 글에서 쓴 적이 있으며, 그의 장례식 역시 교회에서 치뤄졌다. 그럼에도, 편지에서 그는 "신봉자(croyant)"는 아니라고 언급한 바 있다. 확고한 드레퓌스 지지자였던 프루스트는 당대 만연한 반유대주의에 민감했으며, 몇몇 유명 작가들로부터 반유대주의적인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
{{갤러리
|align=center
|width=100
|height=100
|파일:Docteur Adrien Proust Paul Nadar.jpg|마르셀 프루스트의 아버지, 의학 박사 아드리앵 프루스트, 1890년경.
|파일:Madame Adrien Proust.jpg|마르셀 프루스트의 어머니, 잔, 1890년.
|파일:Proust et sa nourrice vers 1875.jpg|마르셀과 유모, 1875년경.
|파일:Frères Proust.jpg|프루스트 형제와 친할머니 비르지니 프루스트, 1876년경.
|파일:Robert et Marcel Proust.jpg|로베르와 마르셀, 1876년경.
|파일:Marcel Proust, 1880s.jpg|마르셀, 1880년경.
|파일:Marcel Proust, 1885.jpg|마르셀, 1885년경.
|파일:Robert Proust 1887.jpg|동생 로베르, 1887년경.
}}
=== 젊은 시절 ===
[[파일:Marcel Proust 1887.jpg|섬네일|1887년 3월, 15살의 젊은 마르셀, [[폴 나다르]] 촬영.]]
프루스트는 초등교육으로 [[마리 파프 카르팡티에]]의 수업을 받았는데, 작곡가 [[조르주 비제]]와 [[주느비에브 알레비]]의 아들인 [[자크 비제]]가 여기서의 동창생이었다. 주느비에브는 먼저 삼촌 집에서 살롱을 열었는데 그곳에는 여러 예술가들이 모였다. [[1886년]] 변호사 에밀 스트로스와 재혼하고 나서 그녀는 자신의 살롱을 열었으며, 프루스트는 그곳의 단골이었다.
[[파일:Proust Condorcet 1888-1889.jpg|왼쪽|섬네일|리세 콩도르세에서의 프루스트(2열 왼쪽에서 첫번째), 1888년-1889년.]]
마르셀 프루스트는 [[1882년]] [[리세 콩도르세]]에 입학해서 공부를 계속 해나갔다. 그는 5학년 때 유급했으나 1884년 12월에는 처음으로 우등생 명부에 이름이 올라갔다. 그는 종종 건강상을 이유로 결석했지만, 소설 장 상티유에서 서술한 것처럼 [[빅토르 위고]]와 [[뮈세]]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철학 수업에서 [[알퐁스 다를뤼]]의 제자였고, 이 무렵 자크 비제와 친하게 지냈다. 그는 학교에서 문학 잡지를 함께 만들던 [[페르낭 그레그]], [[자크 베녜르]]와 [[다니엘 알레비]] (자크 비제의 6촌)와 교우관계를 쌓기도 했다.
그의 첫사랑은 당시 [[러시아 제국]]의 폴란드인 외교관의 딸 [[마리 드 베나르다키]]였다.<ref group="alpha">그녀는 이후 미하일 [[라지비 가문|라지비]] 부인이 되었다.</ref> 목요일 오후마다 둘은 후에 대통령이 되는 [[펠릭스 포르]]의 두 딸, 앙투아네트와 뤼시 펠릭스 포르 고요와 [[레옹 브룅슈비크]], [[폴 베나제]], 모리스 에르베트와 함께 [[샹젤리제 공원]]에서 놀았다. 프루스트는 1887년 마리 드 베나르다키와 절교하게 되었다. 이로써 그의 첫 사랑, 어머니를 제외한 타인에게 사랑을 받고 사랑을 준 첫사랑은 실패했다. 베나르다키는 프루스트가 이후 찾고자 했던 그가 잃어버린 첫 소녀(''jeune fille'',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 꽃핀 소녀들의 그늘과 그 책의 주제)였다.
[[파일:LyceeCondorcet.jpg|왼쪽|섬네일|[[장 베로]], <[[리세 콩도르세]]의 외출''La Sortie du lycée Condorcet''>.]]
프루스트의 첫 문학 활동은 리세 고학년 때에 이뤄졌다. 시간이 지나 1892년, 그레그는 콩도르세 동창들과 함께 소규모의 잡지 <향연''Le Banquet''>을 창간했고 프루스트는 이 잡지에 글을 썼다. 그 후 파리의 여러 살롱들을 드나들며 사교계 출세를 하려던 그는 [[스노비즘]]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들었다. 이후 그는 소설가 [[알퐁스 도데]]의 아들인 6살 연상의 뤼시엥 도데와 친분을 쌓았다. 젊음은 훗날의 작가 프루스트를 사로잡았다. 그들은 1895년 수업에서 만났다. 서로에게 적어도 애정을 보인 그들의 관계는 [[장 로렌]]의 신문 기사에서 밝혀졌다.
[[파일:Marcel Proust et Lucien Daudet.jpg|섬네일|마르셀 프루스트(사진 속 앉은 이), 로베르 드 플레르(왼쪽), 뤼시엥 도데(오른쪽)]]
마르셀 프루스트는 국가의 부름을 받고 1889년부터 1890년까지 오를레앙의 76 보병연대에서 복무하였고, 거기서 좋은 추억을 쌓았다. 그는 로베르 드 빌리와 친구가 되었다. 파리에서 그의 절친한 친구가 된 가스통 아르망 드 케야베와 프루스트가 반한 그의 약혼녀 잔 푸케를 알게 된 것도 이 시절이었다. 그는 소설 속 등장인물 로베르 드 생루와 질베르트를 이들을 모델로 창작했다. 그는 마담 아르망 드 카야베의 살롱에 초대받기도 했다. 그는 끝까지 이 살롱의 단골이었고,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였던 [[아나톨 프랑스]](베르고트의 모델)를 이곳에서 만나게 된다.
전역 후 사회에 나와서 그는 [[파리정치대학|사립정치학교]]<ref group="alpha">사립정치학교(École libre des sciences politiques)는 현 파리정치대학으로 1945년부터 국립대학이 되며 이름을 바꿨음</ref>에서 그가 '박식하다'고 평가한 알베르 소렐과 아나톨 르루아 보리외의 강의를 들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외무고시나 [[국립고문서학교]](École des chartes)에 합격하겠다고 나섰다. 후자에 더 관심을 들인 그는 국회도서관 사서 샤를 그랑장에게 글을 썼고, 먼저 소르본에서 학위를 따기로 결정한다. 소르본에서 프루스트는 6촌<ref group="alpha">마르셀 프루스트의 외할아버지, 나테 베유의 여동생 아델라이드 베유(1818-1892)의 딸, 로르 라자뤼(1848-1898)의 딸, 루이즈 노이베르거(1871-1944)로 프루스트에게는 6촌뻘</ref>의 남편인 [[앙리 베르그송]]의 수업을 들었다. 그는 베르그송의 결혼식에서 참석하기도 했다. 프루스트의 작품에서 베르그송의 영향은 종종 중요하게 생각되며 프루스트는 그것을 옹호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1895년 3월 문학사 학위를 받는다.
1896년 그는 [[세기말]] 문체로 쓴 시, 산문, 단편 모음집, <[[즐거움과 나날들]]''Les Plaisirs et les Jours''>을 출간하였다. 이 모음집에는 프루스트와 작곡가 친구 [[레날도 안]]과 함께 살롱에 드나들던 [[마들렌 르메르]]의 삽화가 수록되었다. 그는 1894년 봄에 샹송 그리스를 부른 쥘 마스네의 제자이자 레이날도 안의 부인인 르메르와 만났다. 23살의 프루스트와 20살의 레이날도 안은 1894년 여름 샤토 드 레베이옹에서 열린 파티에서 보았다. 이 책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고 비평가들은 책에 대해 호된 비판을 가했다. 특히 작가 장 로렌은 가차없는 평가를 내렸다. 그는 새벽에 총을 들고 결투하겠다고 말했다. 그에 맞서 마르셀 프루스트는 입회자인 화가 장 베로와 함께 똑같이 총 들고 그를 만나러 갔다.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끝났지만, 어느 누구도 막 등단한 이 작가를 보고 슬퍼하지 않았다. 이 책은 프루스트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권이 나온 뒤에도 그가 사교계 딜레탕트라는 평을 듣게 했다.
=== 《장 상퇴유》 집필 ===
{{미완성 문단}}
[[파일:Montesquiou, Robert de - Boldini.jpg|섬네일|[[로베르 드 몽테스키우]], [[조반니 볼디니]] 작.]]
[[파일:Chateau de reveillon depuis les marronniers.JPG|섬네일|마들렌 르메르의 샤토 드 레베이용. 프루스트는 1894년부터 1895년 사이에 두 차례 이곳에 오래 머물렀다. 이 곳은 소설 ''장 상퇴유''와 [[베르뒤렝 부인]]의 ''라 라스펠리에''에 영감을 주었다.]]
집안의 재산은 프루스트에게 쉬운 삶을 보장해줬으며 그를 부르주아의 포부르 생 제르맹과 포부르 생 오노레의 귀족 사회로 구성된 살롱을 자주 드나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프루스트의 친구 기슈 공작 아르망 드 그라몽의 장모이자 시인의 사촌인 [[그레퓔 백작부인]], 엘렌 스탕디슈 부인 (결혼 전 성은 페뤼스 데 카르), 바그람 공주 (결혼 전 성은 로트쉴드), 오송빌 백작부인과 만났듯이 1894년부터 1900년 초 사이에 프루스트는 귀족적인 살롱에서 유명한 [[로베르 드 몽테스키우]]를 소개받고 그와 만나게 된다.
[[1895년]]부터 [[1899년]]에 걸쳐서 3인칭 형식의 자서전적인 장편소설 《장 상퇴유》를 시도하였으나 미완으로 그쳤다.
=== 존 러스킨의 미학 ===
{{미완성 문단}}
[[존 러스킨]]의 <아미앵의 성서>와 <참깨와 백합>을 번역하였다(1904, 1906). 후에 《모작과 잡록》(Pastiches et mélanges, 1919)과 《시평집》(1927)에 수록될 평론을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활동은 모두 '유일하고 참다운 글'을 쓰기 위한 준비라 할 수 있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집필 ===
{{미완성 문단}}
양친을 여읜 정신적 타격을 극복하며 프루스트는 1906년 《생트뵈브에 반하여》(Contre Sainte-Beuve, 1954)을 쓰기 시작하였으며, 이것은 곧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집필로 이어졌다. 이후 프루스트는 죽을 때까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집필에 몰두하였고, 총 일곱 권으로 구성된 이 방대한 분량의 작품은 1913년부터 1927년에 걸쳐 출간되었다. 그는 대전 이후 출간된 제2권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로 1919년 [[공쿠르상]]을 받아 일약 유명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 걸작을 통하여 20세기 최대 작가의 한 사람이 되어 널리, 그리고 깊이 영향을 끼쳤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문장은 1907년 쓰였다. 15년 동안 프루스트는 오스만 대로 102번지 2층의 코르크로 덮인 방에 은둔하여 살았다. 프루스트는 부모의 사망 이후(아버지는 1903년, 어머니는 1905년), 1906년 12월 27일부터 1919년 떠날 때까지 이곳에서 거주하였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1905년 12월부터 1906년 1월까지, 프루스트는 신경 쇠약으로 인하여 의사 알리스와 폴 솔리에가 있던 빌랑쿠르의 요양소에 머물렀다. 이 요양소는 1924년 앙브루아즈-파레 병원이 되었다.
닫힌 문 안에서, 프루스트는 작품을 끊임없이 수정, 삭제하며 첫 페이지에 인쇄공이 꺼려하던 "롤페이퍼(paperolles)"를 붙여가며 내용을 첨가하길 멈추질 않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필했다. 장장 4세대에 걸친 200명이 넘는 인물들이 그의 펜에서 탄생했다.
부모의 사망 이후 프루스트의 건강은 천식으로 인하여 더욱 나빠졌다. 프루스트는 집필 작업에 기진맥진했는데, 낮에는 자면서 오직 밤에만 가끔씩 외출했으며, 보통 리츠(Ritz)에서 혼자서, 또는 친구들하고 밥을 먹었다. 프루스트의 핵심 작품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1913년부터 1927년까지에 걸쳐 출간되었다.
== 작품 ==
=== 《즐거움과 나날》 ===
[[파일:Marcel Proust vers 1892.jpg|섬네일|프루스트, 1892년 경.]]
《[[즐거움과 나날]]》은 [[1896년]] [[칼만-레비]]에서 출간된 마르셀 프루스트의 단편 소설과 산문시 모음집이다. 이 모음집은 [[퇴폐주의]]와 특히 댄디 [[로베르 드 몽테스키우]]의 작품에 큰 영향을 받았다. 《즐거움과 나날》은 프루스트의 첫 작품으로, 이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쓸 무렵 작가는 《즐거움과 나날》이 재판되는 것을 막으려고도 했다.
=== 《장 상퇴유》 ===
1895년, 프루스트는 [[19세기]] 말 파리에 사는 젊은이에 관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초안으로 평가받는 《[[장 상퇴유]]》는 완성된 작품이 아니었다. 프루스트는 스스로가 직접 경험하였던 [[드레퓌스 사건]]을 작중 환기시킨다. 프루스트는 반역죄로 기소당한 드레퓌스 대위에 대한 탄원서를 처음 퍼뜨린 이들 가운데 하나로, 아나톨 프랑스의 청으로 여기에 서명하였다.
=== 러스킨 저서 번역 ===
{{위키문헌|fr:La Bible d'Amiens|아미앵의 성서}}
{{위키문헌|fr:Sésame et les lys|참깨와 백합}}
프루스트는 [[존 러스킨]]의 《[[아미앵의 성서]]''La Bible d'Amiens'', (1904)》를 번역하였으며, 이를 지난해에 사망한 아버지에게 헌정하였다. 이 작품은 프루스트의 두번째 러스킨 번역, 《[[참깨와 백합]]''Sésame et les Lys'', 1906》과 함께 [[앙리 베르크손]]과 같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허나 프루스트는 이 번역본에 만족하지 못했는데, 두 작품 모두 편집에 있어 실패였다.
하지만 미래의 작가에게 있어 이 번역은 개성이 뚜렷해진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또한 번역 대상의 글보다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한 풍부한 주석과 긴 서문을 번역본에 함께 실었다. 뿐만아니라 러스킨을 번역하며 프루스트는 러스킨의 미학적 태도를 비판하며 그에게서 떨어져나갈 수 있었다. 이는 특히 《아미앵의 성서》 서문의 마지막 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앞의 세 장에서 보여준 찬사하고는 대조를 이룬다. 프루스트는 특히 러스킨의 미학적 우상숭배를 비판했는데, 이는 곧 [[로베르 드 몽테스키우]]에게 보낸 비판과도 동일하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 스완의 견해를 공유한다. 프루스트에게 있어, 작가가 그것에 관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을 사랑하는 것은 예술로부터 탈선하는 것이다. 우리는 작품 그 자체를 사랑해야만 한다.
[[파일:Prince Edmond de Polignac.jpg|섬네일|''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어선 사람: [[에드몽 드 폴리냑]] 공, 브랑코방 공비, 마르셀 프루스트, 콩스탕탱 브랑코브뉘(안나 드 노아유의 형제), 미상, 레옹 들라포스. 둘째줄: 몽주나르 부인, [[위너러타 싱어|폴리냑 공비]], 안나 드 노아유 백작부인. 맨 앞줄: 엘렌 카라망시메 공비(안나 드 노아유의 자매), [[아벨 에르망]], 1901년 이전]]
=== 《생트뵈브에 반하여》 ===
《[[생트뵈브에 반하여]]''Contre Sainte-Beuve''》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1954년 작가 사후에 출판된 모음집으로, 짧게 서술된 대목들과 프루스트 본인이 비판하면서도 찬탄한, [[발자크]]와 [[플로베르]]같은 작가를 다룬 간략한 수필(또는 수필 초벌)을 한데 모아놓은 선집이다. 여기서 프루스트는 [[샤를 오귀스탱 생트뵈브]]와 그가 주장한 비평론, 즉 작가의 작품은 무엇보다 작가가 살아온 삶의 반영이요, 작품은 오직 작가의 생애를 통하여만 설명될 수 있다는 비평 방식을 공격한다. 이 같은 비평론에 반대하며 프루스트는 자기 고유의 시학을 창설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되찾은 시간> 작중 프루스트적 화자에 의하여, 또는 등장 인물들에 의하여 일부 반복되었던 소설 내에서 표출된 사상의 실현이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생트뵈브에 반하여》에서 나온 여러 서술 대목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작중에서 전개되기도 하였다.
=== 《모작과 잡록》 ===
《모작과 잡록》은 프루스트가 1919년 NRF에서 출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08년부터 주로 <르 피가로>에 게재된 기사나 서문의 모음집으로, 가스통 갈리마르의 부탁으로 이를 한 권으로 모아 펴낸 것이다.
이 작품에 수록된 러스킨의 《참깨와 백합》 번역본의 서문, "독서 여행"이라는 부분은 1993년 10-18에서(ISBN 2-2640 1811-9), 2017년 갈리마르에서(ISBN 978-2-07-270534-2) 따로 발췌되어 출간되기도 하였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빈 문단}}
== 영향 ==
[[자크 드 라크르텔]]에 따르면, "마르셀 프루스트에게 가장 깊이 영향을 주었으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방향을 제공한 두 작가로는 의심할 여지 없이 [[루이 드 루브루아 드 생시몽|생시몽]]과 [[오노레 드 발자크|발자크]]를 들 수 있다."<ref>{{웹 인용|langue=|저자1=자크 드 라크르텔|제목=생 시몽과 프루스트|url=https://www.revuedesdeuxmondes.fr/wp-content/uploads/2016/11/3d216c526b2003580c6884518d087a60.pdf|웹사이트=revuedesdeuxmondes.fr|périodique=|date=|consulté le=}}</ref>
== 작품 목록 ==
[[파일:Marcel Proust (Père Lachaise).jpg|섬네일|페르-라셰즈 묘지에 위치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무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전작 ===
==== 프루스트 생전 출판 ====
[[파일:John Ruskin - La Bible d'Amiens - 001.jpg|섬네일|[[존 러스킨]], 《[[아미앵의 성서]]》, 마르셀 프루스트가 1904년 번역하였으며 주석을 달고 서문을 썼음.]]
* 《[[즐거움과 나날들]]''Les Plaisirs et les Jours''》, 칼만-레비, [[1896년]]
* 《[[아미앵의 성서]]''La Bible d'Amiens''》, 존 러스킨의 《아미앵의 성서''The Bible of Amiens''》 번역본, 메르퀴르 드 프랑스, 1904년
* 《[[참깨와 백합]]''Sésame et les Lys''》, 존 러스킨의 《참깨와 백합''Sesame and Lilies''》 번역본, 메르퀴르 드 프랑스, [[1906년]] 이 두 권의 러스킨 번역서는 [[제롬 바스티아넬리]](Jérôme Bastianelli)의 비평과 함께 합본으로 나왔음, 부캥 총서, [[로베르 라퐁 출판사|로베르 라퐁]], 2015년
* 《[[모작과 잡록]]''Pastiches et Mélanges''》, NRF, 1919년
==== 프루스트 사후 출판 ====
* 시평집 (Chroniques), 1927년
* [[장 상퇴유]] (Jean Santeuil), 1952년
* [[생트 뵈브에 반대하여]] (Contre Sainte-Beuve), 1954년
* 후작부인의 고통 (Le chagrin de la marquise), 1961년
* 샤르댕과 렘브란트 (Chardin et Rembrandt), Le Bruit du temps, 2009년
* [[되찾은 월간지]] (Le Menseul retrouvé), précédé de « Marcel avant Proust » de [[Jérôme Prieur]] (sous-titré ''Inédits''), [[éditions des Busclats]], 2012년 11월
* 할머니의 죽음 (Mort de ma grand-mère), 작가 베르나르 프랑이 결말을 썼음, Grenoble, [[Éditions Cent Pages]], 2013년 {{ISBN|978-2-9163-9041-3}}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원 판본 ====
[[파일:Proust 1913.jpg|섬네일|《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913년 자비출판으로 나온 [[베르나르 그라세 출판사]] 판. 1917년, 프루스트는 [[갈리마르 출판사|갈리마르]]로 출판사를 옮겼다.]]
* 1권 〈스완네 집 쪽으로〉(''Du Côté de chez Swann''), Grasset, [[1913년]]
** 1부 : ''<콩브레> (Combray)''
** 2부 : ''<스완의 사랑> (Un amour de Swann)''
** 3부 : ''<고장의 이름 : 이름> (Noms de Pays : le nom)''
* 2권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서〉(''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 NRF, [[1918년]], [[공쿠르상]] 수상작
** 1부 : ''<스완 부인의 주변> (Autour de Mme Swann)''
** 2부 : ''<고장의 이름 : 고장> (Noms de Pays : le pays)''
* 3권 〈게르망트 쪽〉(''Du côté de Guermantes''), NRF, [[1921년]] - [[1922년]]
* 4권 〈소돔과 고모라〉(''Sodome et Gomorrhe''), NRF, [[1922년]] - [[1923년]]
* 5권 〈갇힌 여자〉(''La Prisonnière''), NRF, 1923년
* 6권 〈사라진 알베르틴〉(''Albertine disparue''), NRF, [[1925년]]
* 7권 〈되찾은 시간〉(''Le Temps retrouvé''), NRF, [[1927년]]
==== 한국어 번역서 ====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김창석 역, 국일미디어 {{ISBN|9788974251802}} [총 11권, 완역]
*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이형식 역, 펭귄클래식 {{ISBN|9788901238890}} [총 12권, 완역]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김희영 역, 민음사 [현재 총 8권, 예정]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ISBN|978-89-374-8561-9}}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 스완네 집 쪽으로 2》{{ISBN|978-89-374-8562-6}}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1》{{ISBN|978-89-374-8563-3}}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2》{{ISBN|978-89-374-8564-0}}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 게르망트 쪽 1》{{ISBN|978-89-374-8565-7}}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 - 게르망트 쪽 2》{{ISBN|978-89-374-8566-4}}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 - 소돔과 고모라 1》{{ISBN|978-89-374-8567-1}}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8 - 소돔과 고모라 2》{{ISBN|978-89-374-8568-8}}
== 참고 문헌 ==
=== 포괄적인 서적 ===
{{본문|마르셀 프루스트/참고문헌}}
[[파일:Proust Tadié.jpg|섬네일|<마르셀 프루스트. 생애''Marcel Proust, biographie''> 1부, [[장 이브 타디에]] 저, 2011년판.]]
* [[피에르 아브라암]], <프루스트''Proust''>, 리데르, 1930
* [[피에르 아술린]], ''Autodictionnaire Proust'', Omnibus, 2011
* [[제롬 바스티아넬리]], ''Dictionnaire Proust-Ruskin'', [[Éditions Classiques Garnier|Classiques Garnier]], 2017, {{isbn|978-2-406-06716-0}}
* [[사뮈엘 베케트]], <프루스트''Proust''>, 1930년 영어로 저술된 수필로, 프랑스어로는 1990년 [[미뉘 출판사]]에서 É. 푸르니에가 번역하였음.
* Annick Bouillaguet, Brian G. Rogers (dir.), ''Dictionnaire Marcel Proust'', [[Éditions Honoré Champion|Honoré Champion]], coll. « Dictionnaires et références », 2004
* [[조르주 카타위]], ''Marcel Proust, Proust et son Temps, Proust et le Temps'', préface de [[Daniel-Rops]], [[Éditions Julliard|Julliard]], 1953
* [[피에트로 시타티]], ''La Colombe poignardée, Proust et la Recherche'', [[갈리마르 출판사|갈리마르]], 1997
* [[앙투안 콩파뇽]], ''Proust entre deux siècles'', Le Seuil, 1989
* [[앙투안 콩파뇽]] et autres, ''Un été avec Proust'', Éd. des Équateurs, 2014
* [[Ernst Robert Curtius]], ''Marcel Proust'', Paris, La Revue Nouvelle, 1928
* [[질 들뢰즈]], <프루스트와 기호들''Proust et les signes''>, [[프랑스 대학 출판부|PUF]], 1970
* [[Ghislain de Diesbach]], ''Proust'', [[Éditions Perrin|Perrin]], 1991
* [[Roger Duchêne]], ''L'Impossible Marcel Proust'', [[Éditions Robert Laffont|Robert Laffont]], 1994
* [[Jean-Paul Enthoven|Jean-Paul]] et [[Raphaël|Raphaël Enthoven]], ''Dictionnaire amoureux de Marcel Proust'', Plon/Grasset, 2013
* [[미셸 에르망]], ''Marcel Proust'', [[Librairie Arthème Fayard|Fayard]], 1994
* [[Ramon Fernandez (écrivain)|Ramon Fernandez]], ''À la gloire de Proust'', Éditions de La Nouvelle Revue Critique, 1943 rééd. [[Éditions Grasset|Grasset]] sous le titre ''Proust'', 2009 {{ISBN|9782246075226}}.
* [[Luc Fraisse]], ''L'Éclectisme philosophique de Marcel Proust'', Paris, [[Presses de l'université Paris-Sorbonne|Presses universitaires de Paris-Sorbonne]], coll. Lettres françaises, 2013.
* [[Laure Hillerin]], ''Proust pour Rire - Bréviaire jubilatoire de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Flammarion, 2016.
* [[Edmond Jaloux]], ''Avec Marcel Proust'', La Palatine, Genève, 1953
* [[Julia Kristeva]], ''Le Temps sensible : Proust et l'expérience littéraire'', Folio Essai, 2000
* [[Giovanni Macchia]], ''L'Ange de la Nuit (Sur Proust)'', [[갈리마르 출판사|갈리마르]], 1993
* [[Diane de Margerie]], ''Proust et l'obscur'', [[Éditions Albin Michel|Albin Michel]], 2010
* [[Diane de Margerie]], ''À la recherche de Robert Proust'', [[Groupe Flammarion|Flammarion]], 2016
* [[클로드 모리악]], ''Proust par lui-même'', coll. « Écrivains de toujours », [[Éditions du Seuil|Seuil]], 1953
* [[프랑수아 모리악]], ''Du côté de chez Proust'', [[Éditions de la Table ronde|La Table ronde]], 1947
* [[앙드레 모루아]], <프루스트를 찾아서''À la recherche de Marcel Proust''>, [[Hachette Livre|Hachette]], 1949, étude et biographie littéraire<ref>{{웹 인용|url=http://sefarad.org/kore/035/html/page7.html|제목=À la recherche de Marcel Proust|확인날짜=2020-10-03|archive-date=2020-07-20|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00720225445/http://sefarad.org/kore/035/html/page7.html}}</ref>
* Ouvrage collectif, ''Proust'', [[Hachette Livre|Hachette]] (coll. « Génies et réalités »), c1965, 1972
* {{서적 인용|저자1=[[조지 D. 페인터]] |번역자=[[조르주 카타위]] (서문 역시 저술) |제목=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출판사=[[메르퀴르 드 프랑스]] |연도=1992 |원본연도=1966-1968 |format livre=2 vol. initialement |isbn= |id=페인터}} édition revue, en un volume, corrigée et augmentée d'une nouvelle préface de l'auteur
* [[가에탕 피콩]], ''Lecture de Marcel Proust'', [[Mercure de France]], 1963
* 제롬 피콩, ''Marcel Proust, une vie à s'écrire'', Flammarion, 2016
* [[Léon Pierre-Quint]], ''Marcel Proust, sa vie, son œuvre'', [[Éditions du Sagittaire|Sagittaire]], 1946
* [[장 프랑수아 르벨]], <프루스트에 관하여''Sur Proust''>, [[그라세 출판사|그라세]], "카이예 루주" 총서, 1987
* [[Jean-Pierre Richard (critique littéraire)|Jean-Pierre Richard]], ''Proust et le monde sensible'', [[Éditions du Seuil|Seuil]], 1974
* [[Ernest Seillière]], ''Marcel Proust'', Éditions de La Nouvelle Revue critique, 1931
* 안 시몽, ''Proust ou le réel retrouvé'', 파리, [[프랑스 대학 출판부|PUF]], 2000
* {{서적 인용|저자1=[[장 이브 타디에]] |제목=Marcel Proust |출판사=[[갈리마르 출판사|갈리마르]] |collection=NRF/Biographie |année=1996 |isbn=}}
* 장 이브 타디에, <프루스트부터 뒤마까지''De Proust à Dumas''>, 갈리마르("블랑슈" 총서), 2006
* [[Edmund White]], ''Marcel Proust'', [[Éditions Fides|Fides]], 2001
* [[Gilbert Romeyer-Dherbey]], ''La Pensée de Marcel Proust'', Classiques Garnier, 2015
=== 도상적인 저서 ===
[[파일:45 rue de Courcelles, Paris 8e 2.jpg|섬네일|마르셀 프루스트가 1906년 12월부터 2층("피에르 발코니")에서 거주한 [[쿠르셀 가]] 45번지 건물.]]
* [[조르주 카타위]], ''Proust, documents iconographiques'', éditions Pierre Cailler, collection « Visages d'hommes célèbres », 1956, 248 pages illustrées de 175 photos relatives à Marcel Proust.
* Collectif, ''Le Monde de Proust vu par Paul Nadar'', édition du Centre des monuments nationaux / Éditions du Patrimoine, 1999 - {{ISBN|9782858223077}}
* [[Pierre Clarac]] et [[André Ferré]], ''Album Proust'', Gallimard, collection ''[[Albums de la Pléiade]]'', 1965.
* Eric Karpeles, ''Le musée imaginaire de Marcel Proust - Tous les tableaux de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traduit de l'anglais par Pierre Saint-Jean, Thames and Hudson, 2017
* [[앙드레 모루아]], ''Le Monde de Marcel Proust'', [[Hachette Livre|Hachette]], 1960
* Mireille Naturel et [[Robert Proust|Patricia Mante-Proust]], ''Marcel Proust. L'Arche et la Colombe'', [[Éditions Michel Lafon|Michel Lafon]], 2012.
* Jérôme Picon, ''Marcel Proust, album d'une vie'', Textuel, 1999.
* Henri Raczymow, ''Le Paris retrouvé de Marcel Proust'', Parigramme, 2005.
* Henri Raczymow, ''À la recherche du Paris de Marcel Proust'', Parigramme, juin 2020.
=== 개별 연구 ===
* [[셀레스트 알바레]] (et [[Georges Belmont]]), ''Monsieur Proust'', Robert Laffont, 1973.
* Jacques Bersani (éd.), ''Les Critiques de notre temps et Proust'', Garnier, 1971.
* Catherine Bidou-Zachariasen, ''Proust sociologue. De la maison aristocratique au salon bourgeois'', Descartes, 1997.
* [[모리스 블랑쇼]], « L'étonnante patience », chapitre consacré à Marcel Proust dans le ''Livre à venir'', Gallimard, 1959.
* [[브라사이]], ''Marcel Proust sous l'emprise de la photographie'', Gallimard, 1997.
* [[Étienne Brunet (linguiste)|Étienne Brunet]], ''Le Vocabulaire de Marcel Proust, avec l'Index complet et synoptique de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3 vol., 1918 p., Genève-Paris, Slatkine-Champion, 1983 (préface de J.Y. Tadié). {{ISBN|2051004749}} {{ISBN|9782051004749}}.
* [[Alain Buisine]], ''Proust et ses lettres'', Presses Universitaires de Lille, coll. « Objet », 1983.
* [[장 이브 타디에]], ''Marcel Proust : La cathédrale du temps'', Paris, Gallimard, coll. « [[Découvertes Gallimard]]/Littératures » ([[Liste des volumes de « Découvertes Gallimard » (2e partie)|{{nº|381}}]]), 1999, rééd. 2017
* [[Philippe Chardin]], ''Proust ou le bonheur du petit personnage qui compare'', [[Éditions Honoré Champion|Honoré Champion]], 2006.
* 필리프 샤르댕, ''Originalités proustiennes'', [[Éditions Kimé|Kimé]], 2010
* 필리프 샤르댕, 나탈리 모리악 디에르 공저, ''Proust écrivain de la Première Guerre mondiale'', Dijon, EUD, 2014.
* [[Józef Czapski]], ''Proust contre la déchéance : Conférence au camp de Griazowietz'', Noir sur blanc, 2004 et 2011.
* [[Serge Doubrovsky]], ''La Place de la madeleine, Écriture et fantasme chez Proust'', Mercure de France, 1974.
* [[Robert Dreyfus (écrivain)|Robert Dreyfus]], ''Souvenirs sur Marcel Proust'' (accompagnés de lettres inédites), Paris, Grasset, 1926.
* [[Maurice Duplay (1880-1978)|Maurice Duplay]], ''Mon ami Marcel Proust'' : souvenirs intimes. Cet ouvrage contient notamment une lettre de Marcel Proust à Maurice Duplay, Editions Gallimard, 1972
* Clovis Duveau, ''Proust à Orléans'', édité par les Musées d'Orléans, 1998.
* [[미셸 에르망]], ''Le Bottin proustien. Qui est dans « La Recherche » ?'', Paris, La Table Ronde, 2010.
* [[미셸 에르망]], ''Le Bottin des lieux proustiens'', La Table ronde, 2011.
* [[Luc Fraisse]], ''L'Œuvre cathédrale. Proust et l'architecture médiévale'', José Corti, 1990, 574 pages.
* 루이 고티에 비냘, ''Proust connu et inconnu'', Robert Laffont, 1976.
* 장 미셸 앙리, ''Marcel Proust à Évian. Étape d’une vocation''. Chaman édition, Neuchâtel, 2015.
* Geneviève Henrot Sostero, ''Pragmatique de l'anthroponyme dans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Paris, Champion, 2011.
* 안 앙리, ''La Tentation de Proust'', 파리, PUF, 2000, {{ISBN|2-13-051075-2}}
* Laure Hillerin, ''La [[Élisabeth de Riquet de Caraman-Chimay|comtesse Greffulhe]]. L'ombre des Guermantes'', Flammarion, 2014.
* 필리프 콜브, <마르셀 프루스트 서한집. 연보와 비평''La correspondance de Marcel Proust, chronologie et commentaire critique''>, 일리노이 대학 출판부, 1949
* Elisabeth Ladenson, ''Proust lesbien'' (préface d'[[Antoine Compagnon]]), Ed. EPEL 2004.
* Luc Lagarde, ''Proust à l'orée du cinéma'', L'âge d'Homme, 2016
* Nathalie Mauriac Dyer, ''Proust inachevé, le dossier Albertine disparue'', [[Éditions Honoré Champion|Honoré Champion]], 2005.
* {{서적 인용|언어=프랑스어|이름1=마리|성1=미게 올라니에|제목=La Mythologie de Marcel Proust|장소=파리|출판사=[[Les Belles Lettres]]|collection=Annales littéraires de l'Université de Besançon|연도=1982|pages totales=425|isbn=2-251-60276-3|lire en ligne=https://books.google.com/books?id=JyclwDDFWU0C&printsec=frontcover}}.
* [[Christian Péchenard]], ''Proust à Cabourg'' ; ''Proust et son père'' ; ''Proust et Céleste'', in ''Proust et les autres'', [[Éditions de la Table ronde]], 1999.
* [[Léon Pierre-Quint]], ''Comment travaillait Proust'', Bibliographie, Les Cahiers Libres, 1928.
* [[Georges Poulet]], ''L'Espace proustien'', Gallimard, 1963.
* [[Jérôme Prieur]], ''Proust fantôme'', Gallimard, 2001 et 2006
* [[Jérôme Prieur]] ''Marcel avant Proust'', suivi de Proust, Le Mensuel ''retrouvé'', éditions des Busclats, 2012
* Henri Raczymow, ''Le Cygne de Proust'', [[Éditions Gallimard|Gallimard]], coll. L'un et l'autre, 1990.
* Henri Raczymow, ''Notre cher Marcel est mort'' ''ce soir'', Arléa-Poche, 2014.
* Jean Recanati, ''Profils juifs de Marcel Proust'', Paris, Buchet-Chastel, 1979.
* [[Thomas Ravier]], ''Éloge du matricide : Essai sur Proust'', Gallimard, coll. « L'Infini », Paris, 2008, 200 p. {{ISBN|978-2-07-078443-1}}
* [[Jacqueline Risset]], ''Une certaine joie. Essai sur Proust'', [[Hermann (éditions)|Éditions Hermann]], 2009.
* [[장 이브 타디에]] (dir.), ''Proust et ses amis'', Colloque [[fondation Singer-Polignac]], Gallimard, « Les cahiers de la NRF », 2010.
* Nayla Tamraz, ''Proust Portrait Peinture'', Paris, Orizons, coll. Universités/Domaine littéraire, 2010
* Davide Vago, ''Proust en couleur'', coll. « Recherches proustiennes », [[Éditions Honoré Champion|Honoré Champion]], 2012 {{ISBN|9782745323927}}
* [[Stéphane Zagdanski]], ''Le Sexe de Proust'', Gallimard, 1994 {{ISBN|2070738779}}
== 같이 보기 ==
* [[프랑스 문학]]
== 각주 ==
=== 내용주 ===
<references group="alpha" />
=== 참조주 ===
{{각주}}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 [https://www.amisdeproust.fr 마르셀 프루스트 친우회 웹사이트]
* [https://www.perche-gouet.net/histoire/pdf/28196-01/Ascendance%20Marcel%20Proust.pdf 마르셀 프루스트의 선조 가계도]
{{마르셀 프루스트}}
{{전거 통제}}
{{기본정렬:프루스트, 마르셀}}
[[분류:마르셀 프루스트| ]]
[[분류:1871년 출생]]
[[분류:1922년 사망]]
[[분류:20세기 프랑스 소설가]]
[[분류:파리 출신]]
[[분류:공쿠르상 수상자]]
[[분류:게이 작가]]
[[분류:프랑스의 수필가]]
[[분류:프랑스의 성소수자 작가]]
[[분류:19세기 성소수자 사람]]
[[분류:20세기 성소수자 사람]]
[[분류:명언가]]
[[분류:19세기 수필가]]
[[분류:20세기 수필가]]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출처 필요|날짜=2013-5-24}}
[[파일:Odysseus bjuder cyklopen vin, Nordisk familjebok.png|right|섬네일|250px|오디세우스가 외눈박이 거인을 취하게 하려 포도주를 건네고 있다.]]
{{그리스 신화}}
'''오디세우스'''({{llang|grc|Ὀδυσσεύς|오뒤세우스}}; {{llang|la|Ulixes|울릭세스}}, {{문화어|오듀쎄우스}})는 [[그리스 신화]]상의 영웅으로, [[이타카섬|이타카]](Ithaca)의 영주, [[트로이아|트로이]] [[트로이 전쟁|전쟁]]의 [[영웅]], [[트로이 목마]]의 고안자이다. 그의 이름을 딴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이다. 20년 간의 파란만장한 유랑 끝에 고향에 돌아와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와 함께 그의 정실한 아내 [[페넬로페]]를 넘보던 도당들에게 복수. 오디세우스는 유랑자, 간계와 변장의 화신자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명성이 보존되고 있다.
오디세우스는 [[아테나]]의 총애를 받던 영웅 중의 한명이었다. 아테나는 그에게 지혜로운 호의를 베푸는데, 그가 [[오디세이아]]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 동안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절제된 도움을 준다. 하지만 오디세우스의 배가 난파되어 오기기아 섬의 [[칼립소 (신화)|칼립소]]와 7년 동안 있게 되자 보다 못한 아테나는 제우스에게 간청하여 칼립소가 오디세우스를 풀어주도록 한다.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의 행방을 알아낼 수 있게 오디세우스의 친구로 변신하여 [[필로스]]의 [[네스토르]]에게 찾아가는 여행을 도와주기도 한다.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섬|이타카]]로 돌아왔을 때는 변장을 하여 그를 시험한다.
== 일화 ==
트로이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죽은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놓고 오디세우스와 장사 [[아이아스 (대)|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가 물망에 올랐다.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사람들은 지혜와 용기를 같이 갖춘 오디세우스가 용맹은 있으나 지혜는 거의 없는 아이아스보다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고 아킬레우스의 갑옷은 오디세우스에게 상으로 지급되었다. 이 판정에 불만을 품은 아이아스는 분개하여 아가멤논과 오디세우스가 짜고 자기를 놀렸다고 생각하고 일원 모두를 암살하려 했으나 아테나가 아이아스를 미치게 만들어서 가축들을 아가멤논과 오디세우스인 줄 착각하게 했고 가축들을 죽이고 제정신으로 돌아온 아이아스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다. 그 후 오디세우스가 갑옷을 차지하였다.
{{위키공용분류}}
{{일리아스 인물}}
{{전거 통제}}
[[분류:오디세우스| ]]
[[분류:그리스 신화의 영웅]]
[[분류:그리스 신화의 왕]]
[[분류:오디세이아의 등장인물]]
[[분류:일리아스의 등장인물]]
[[분류:아이올로스 가]]
[[분류:트로이아 전쟁]]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파일:Urauffuehrung Concerto.jpg|섬네일]]
'''협주곡'''(協奏曲), 또는 '''콘체르토'''({{llang|it|concerto}})는 [[관현악단]]이 협주 악기 독주자(soloist)와 함께 연주하는 [[서양 고전 음악]]으로, [[악곡의 형식|악곡의 한 형식]]이다. 오늘날 의미하는 '협주곡'은 [[바로크 음악|바로크 시대]]에 [[합주 협주곡]]과 함께 발생하였다. 합주 협주곡은 바로크 시대에 국한되지만, 협주곡은 오늘날에도 음악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 3악장 형식으로 구성된다.
== 어원 ==
협주곡의 이탈리아어 표현인 concerto는 중세 [[라틴어]]({{llang|la|concertare}}; 합동 참여하다, 경연하다)에서 나온 말이다. 이것은 음악가의 집합 ({{lang|en|consort}})으로 해석될 수 있다. 협주곡을 라틴어 concertare에 준거하여 해석한다면, 여러 음성 간의 경연으로 풀이할 수 있으며, 이 뜻이 16세기 이후 [[바로크]] 시대의 협주곡에 사용된 이래 현대의 협주곡의 일반적 의미로 통용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서 지칭하는 음성의 개념은 인간의 육성을 포함한 악기의 소리라고 이해하여야 한다.
== 협주곡, 연주회 구분 ==
영어에서는 협주곡을 concerto, 연주회를 concert라고 한다. 독일어에서는 일반적으로 '''Konzert'''라 부르지만, 혼동을 굳이 피하려면 협주곡은 Instrumentalkonzert라고 해야 한다.
== 종류 ==
협주곡은 대부분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나타 형식]]을 취한다. 반면 3악장의 소나타 형식을 취하지 않고, 환상곡, 교향곡의 형식을 취하는 곡들도 많다. 바로크 시대에는 두 대 이상의 악기가 동시에 협연을 하는 [[합주 협주곡]]이 많이 등장하였다. 합주 협주곡은 같은 악기 또는 종류가 다른 두 개 이상의 악기가 오케스트라나 앙상블과 협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형식 ==
[[악곡의 형식]] 면에서 보면 협주곡은 독주악기(또는 독주악기군)와 [[관현악]]을 위한 [[소나타]]이다. 전형적인 것으로는 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3악장으로 되어 있고,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 제2악장은 [[리트 형식]], 제3악장은 [[론도 형식]]을 취하는 것이 상례이다. 한편, 협주곡의 제1악장에서는 처음에 관현악이 2개의 주제를 [[으뜸조]]로 제시하고, 계속하여 독주악기가 이것을 반복하나, 그 때에 제2주제는 소나타 형식의 정형에 따라 [[딸림조]] 또는 병행조를 취하는 것이 고전적 협주곡의 원칙이다(예외로 [[피아노 협주곡 4번 (베토벤)|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4번]]이 있다). 또 제1악장, 또는 끝악장의 [[코다]] 직전에 독주자만이 혼자 연주하는 [[카덴차]]가 있다. 이런 것은 독주자의 기교를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화려한 주구(走句)를 많이 써서 자유롭고 즉흥적 스타일로 쓰였다. 이전에는 카덴차는 연주자의 즉흥에 맡겨져 있었으나 [[베토벤]] 이후로는 작곡가가 미리 쓴 것에 따라 연주하게 되었다.
== 시대별 협주곡의 양식 ==
시대별로 발전한 협주곡의 양식은 다음과 같다.
=== 바로크 시대의 협주곡 ===
[[바로크 음악|바로크 시대]]는 협주곡이란 양식이 처음으로 등장한 시대이다. 이 시대에는 지금과는 달리 합주협주곡의 형식을 띠었다. 협주곡의 명칭이 붙은 곡은 16세기 전반 [[이탈리아]]에서 맨 처음 나타났으나, 17세기 중엽까지는 일정한 악곡 형식을 갖지 않았으며, 주로 이 말은 기악의 반주가 있는 성악곡을 뜻하였다. 이러한 것으로는 교회에서 연주하는 교회협주곡과 궁정에서 연주되는 실내협주곡이 있었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전반경에 기악만으로 된 협주곡이 생겼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합주협주곡'(콘체르토 그로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관현악이 2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콘체르티노라고 하는 독주자의 그룹(보통 [[바이올린]] 2, [[첼로]] 1, [[쳄발]]로 1)과, 리피에노 또는 그로소라고 하는 관현악의 그룹이 서로 협주한다는 형식이다.
바로크시대의 작곡가 중 한 사람인 [[코렐리]]는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가운데 가장 먼저 합주 협주곡의 양식을 도입했고, [[비발디]]는 기악 합주 협주곡의 작곡에 능숙해서, 독주 파트의 기교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이 양식은 후에 [[헨델]], [[바흐]]가 계승한다). 바로크 시대의 협주곡들은 대부분 [[쳄발로]]와 [[오르간]]을 위해 쓰인 협주곡이 많고, [[바이올린]]이나 [[첼로]]의 협주곡에도 오르간이나 쳄발로가 쓰일 정도로 이 두 악기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 고전파 시대의 협주곡 ===
이 시대에는 우리가 알고있는 독주 협주곡이 발달하게 된 시대이다. [[고전파 음악|고전파 시대]]의 협주곡은 보편적으로 오케스트라가 동기를 제시하며 시작하였으나, 이것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처음으로 독주자가 곡의 서두를 맡음으로서 새로운 형식이 탄생되었다. 독주악기로는 [[피아노]], [[첼로]]가 가장 많이 쓰이나, 그 밖에 [[비올라]], [[플루트]], [[클라리넷]], [[호른]], [[파곳]], [[오보에]], [[트럼펫]] 등도 많이 쓰인다. 이후 이 형식은 [[프란츠 리스트|리스트]], [[로베르트 슈만|슈만]], [[차이콥스키]] 등이 계승하게 된다. 또한 고전파 시대에 들어 새로 도입된 개념은 [[카덴차]]가 있다. 카덴차는 협주곡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독주악기의 즉흥적이고 기교적인 부분을 말한다. 대부분의 카덴차는 [[악장 (악곡의 부분)|악장]]의 [[동기 (음악)|동기]]를 발전시키면서 진행된다. 고전파 시대의 카덴차는 주로 독주자 자신의 즉흥성에 의지했다고 한다.또한 고전파 음악의 카덴차는 연주자에 따라 생략하기도 한다.
[[고전파 음악|고전파]]의 협주곡 양식과 형식은 [[모차르트]]에 의하여 확립되었다. 그는 모든 종류의 악기를 독주악기로 써서 50여의 협주곡을 썼다. 그것의 약 반수는 [[피아노 협주곡]]이며, 그 밖에는 [[바이올린]] 7곡, [[호른]] 4곡, [[플루트]], [[파곳]], [[오보에]], [[클라리넷]] 등의 협주곡이다. [[베토벤]]은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5번 (베토벤)|제5번 협주곡 《황제》]]를 비롯하여 5곡의 [[피아노 협주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1곡, 바이올린과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3중 협주곡이 하나 있다.
=== 낭만파 시대의 협주곡 ===
[[낭만주의 음악|낭만파 시대]]의 협주곡은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조화를 이룬다. 오케스트라가 주제를 연주하면 독주악기는 그 주제를 발전시켜서 연주하는 식이다. 또한 낭만파 시대에 들어와서 발전된 새로운 협주곡의 형식은 연속된 악장을 가진 협주곡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형식의 협주곡은 1악장부터 마지막 악장까지 쉬는 부분없이 계속 이어지는 형식이다.
낭만파의 협주곡은 [[프란츠 리스트|리스트]], [[파가니니]], [[루빈스타인]], [[차이콥스키]]에게서 볼 수 있는 독주자로서의 명인적인 기교를 과시하는 경향과 [[브람스]]와 같은 [[교향곡]]적 경향으로 나뉘었다. 그 밖에 [[펠릭스 멘델스존|멘델스존]], [[로베르트 슈만|슈만]], [[쇼팽]], 그리고 [[세사르 프랑크]], [[스크랴빈]], [[거쉰]], [[에런 코플런드]] 등에 의한 많은 걸작이 있다. 한편 콘체르티노라든가 콘체르토 시튀크라는 것은 어느 것이나 자유로운 1악장 형식의 소규모의 곡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카를 마리아 폰 베버|베버]]의 《클라리넷과 호른을 위한 콘체르티노》, 《피아노를 위한 콘체르토 시튀크》 등이다.
=== 근대의 협주곡 ===
이 시대에는 협주곡의 형식이 고도로 발전된 시기이다. 이 시대에는 이전의 음악의 양식을 유지하며 새로운 형식들을 취하는 곡들이 많이 생겨났으며, 대표적으로는 협주곡의 소나타 형식을 벗어나 교향곡,환상곡,광시곡의 형식을 취한 곡들 이 몇몇 있었다는 것이다
=== 현대의 협주곡 ===
현대의 협주곡은 오케스트라의 편성이 기존의 편성과 다른 경우가 많다. 어떤 곡의 경우 독주 바이올린의 음을 돋보이고자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파트를 모두 없애버린 곡도 있는가 하면, 어떤 곡은 [[불협화음]]의 조화로 듣는이에게 불안한 느낌을 주는 곡들도 많다. 동양의 작곡가들은 동양의 전통적인 음을 서양의 악기로 표현함 으로서 묘한 조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독주 협주곡]]
* [[합주 협주곡]]
* [[피아노 협주곡]]
* [[바이올린 협주곡]]
== 참고 문헌 ==
* {{글로벌세계대백과}}
{{악곡의 형식}}
{{전거 통제}}
[[분류:협주곡|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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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정보
|이름 = 야구
|그림 = Wrigley field 720.jpg
|그림크기 = 270px
|그림설명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리글리 필드]] 경기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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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 하드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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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 [[1992년 하계 올림픽|1992년]] ~ 현재<ref>하계 올림픽은 [[2012년 하계 올림픽|2012년(런던)]] · [[2016년 하계 올림픽|2016년(리우)]] · [[2024년 하계 올림픽|2024년(파리)]] 종목 제외된다.</ref>
}}
'''야구'''(野球, {{lang|en|Baseball}})는 두 팀이 [[야구공]]과 [[야구 방망이]], [[야구 글러브]]를 사용해 승패를 겨루는 [[구기 종목]]이다. 야구 경기의 최종적인 목표는 [[투수]]가 던지는 공을 [[타자]]가 [[야구의 경기 용구#방망이|방망이]]로 타격해서, [[내야]]의 각 꼭짓점에 놓여 있는 [[야구장#베이스|루]](壘, Base)를 모두 밟은 뒤 마지막으로 홈, 즉 본루(本壘, Home Plate)를 밟아서 [[득점 (야구)|득점]]하는 것이다. 공격과 수비가 완전히 분리된 스포츠다.<ref name=kborule>
{{웹 인용
|url = http://www.koreabaseball.com/About/PlayRule1.aspx#n101
|제목 = 한국야구위원회 : 경기규칙
|확인날짜 = 201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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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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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날짜 = 201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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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f>
공격 팀은 9명의 [[타자 (야구)|타자]]가 순서대로 나와서 수비 팀의 [[투수]]가 던지는 공을 타격해 각 루를 밟은 뒤 홈에 들어와야 하며, 동시에 수비 팀은 공격 팀의 타자, 주자들을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해 [[아웃 (야구)|아웃]]시켜 실점을 막아야 한다. 공격 팀의 타자들은 [[안타]]<ref group="내용주">도착한 루에 따라 1루타, 2루타, 3루타가 되며, 외야 펜스를 넘기거나 타자가 야수에 의해 아웃되기 전에 홈으로 돌아오면 [[홈런]]이 된다.</ref>를 쳤을 경우 갈 수 있는 루에 멈추거나 홈으로 들어와 득점할 수 있다. 공격 팀이 아웃 세 번을 기록할 경우 수비 팀은 공격 팀으로, 공격(타자) 팀은 수비 팀으로 교대된다. 이때 양 팀이 공격과 수비를 한 번씩 끝내는 것을 [[이닝]](Inning, 회)이라고 하며, 일반적으로 한 경기는 9개의 이닝 동안 진행된다. 이닝은 초(Top)와 말(Bottom)로 구성되며, 중립 구장이 아닌 한 일반적으로 홈 팀이 말에 공격하는, 즉 홈 팀이 후공을 한다. 9이닝이 끝날 때까지 더 많은 득점을 한 팀이 이기게 되며, 만일 9이닝까지도 승부가 안 날 경우 [[KBO 리그]]와 [[일본 프로 야구]]에선 12회까지 연장 승부를 하며 12회까지도 승부가 안 나면 무승부로 처리된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경우는 무승부 없이 승부가 날 때까지 하는 끝장승부다.
프로·세미프로·아마추어·청소년 야구는 [[북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카리브 제도|카리브 해]],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에서 열린다. 북아메리카의 미국, 캐나다와 중앙아메리카의 멕시코, 니카라과, 파나마, 남아메리카의 베네수엘라, 카리브 해의 쿠바와 푸에르토리코, 도미니카 공화국, 그리고 동아시아의 일본과 한국, 대만 등지에서 인기가 많다. 대신 야구의 인기는 국지적이라 이외의 대륙에선 인기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야구의 근대적인 틀은 1845년 미국의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창시한 니커보커스 규칙과 1857년 야구 기자이자 역사가였던 [[헨리 채드윅]]과 [[닥 애덤스]]에 의해 만들고 발전되어 1860년 그 규정집이 완성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야구의 원형이 북미 대륙에 건너 온 [[영국]],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가지고 들어온 [[크리켓]]이나 [[라운더스]]와 같이 공과 방망이를 사용하는 구기 경기에서 시작되었다는 데 의견을 함께한다.
== 명칭의 유래 ==
[[파일:Kanae Chuman.jpg|섬네일|150px|정치인, 야구인인 [[주만 가나에]] 선생]]
야구의 명칭의 유래는 [[1871년]] [[미국]]에서 [[일본]]으로 방문하여 일본 [[제일고등학교 (일본)|제일고등중학교]]<ref>현재의 [[도쿄 대학]] 교양학부, [[지바 대학]] 의학부, 지바 대학 약학부에 해당한다.</ref>의 외국인 교사로 활동하는 [[호레이스 윌슨]]이 'baseball'이라는 운동 종목을 학생들에게 가르쳤고, [[1894년]] 제일고등중학교에서 재학 중이던 [[주만 가나에]] 관료가 'baseball'을 일본어 '야구'({{llang|ja|野球, やきゅう|야큐}})로 번역하였고 이 말이 한반도로 들어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본래 야구의 근원은 고위 [[관료]]들이 좋아한 [[귀족]] 스포츠라고 볼 수 있다. [[주만 가나에]] 선생은 '''"야구는 작은 정치이며, 야구는 과학이다."'''라고 했다. 일반 국민들은 관료들이 야구를 즐겨했기 때문에 야구를 "품위있는 운동", "우아한 운동"이라고 칭했다. 이에 앞서 4년 전인 [[1890년]] 일본의 문학가 [[마사오카 시키]]가 '배터(batter)', '러너(runner)', '베이스 온 볼스(base on balls)', '스트레이트(straight)', '플라이 볼(fly ball)', '쇼트스톱(shortstop)' 등의 미국식 야구 용어를 '[[타자 (야구)|타자]]', '[[주자]]', '사구 (四球, [[대한민국]]에선 사구 대신 [[볼넷]]으로 사용)', '직구'(대한민국에서는 [[포심 속구|포심 패스트볼]], [[속구]], [[컷 패스트볼]]로 또 다르게 부름), '[[타구#뜬공|플라이]]'(대한민국에서는 뜬공으로도 부름), '단차'(短遮, 이후에는 주만 가나에의 교육에 따라 [[유격수]]로 번역함)로 번역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SK 와이번스의 ‘야큐(野球)’ 실험
|url = http://www.sports2.co.kr/feature/feature_view.asp?AID=171211
|출판사 = [[스포츠 2.0]]
|저자 = 박동희
|쪽 =
|날짜 = 2007-03-23
|확인날짜 = 2009-01-01
}}{{깨진 링크|url=http://www.sports2.co.kr/feature/feature_view.asp?AID=171211 }}</ref> 때때로 야구를 비슷한 경기인 [[소프트볼]](softball)에 대비하여 하드볼(hardball)로 부르기도 한다.
== 역사 ==
{{본문|야구의 역사}}
=== 야구의 기원 ===
야구의 기원은 확실하게 짚어내기가 힘들다. 1344년에 출간된 프랑스의 한 책에 성직자들이 야구와 흡사한 라 술(La soule)이라는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담은 삽화가 실려있다.<ref>Block (2005년), p.106~108.</ref> 원래 야구는 [[미국]]의 [[애브너 더블데이]]라는 [[군인]] 출신의 인물이 [[1839년]]에 쿠퍼스타운에서 창안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직접 야구를 창안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으며, [[광산]] 기술자 출신의 애브너 그레이브스의 증언이 있었으나 별로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에 야구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ref>야구의 역사, 조지 벡시 p. 59</ref>
방망이와 공을 이용한 경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리디아인]], [[페르시아인]], [[인도인]], [[이집트인]], [[그리스인]], [[로마 제국|로마인]] 등에 의해 의식이나 오락으로 행해졌다. 이런 경기들은 정해진 규칙없이 여러 지역에서 행해졌다. 이런 여러 가지 배트와 공을 이용하는 경기를 통해서 야구는 두드러진 발전을 할 수 있었다. 이런 발전을 통해서 [[1774년]]에 [[독일]]에서 프리드리히 구츠무츠가 존 뉴베리에서 출간한 《작고 귀여운 포켓북》(A Little Pretty Pocket-book)이라는 시집에서는 최초로 'Base-ball'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기도 했다.<ref>야구의 역사, 조지 벡시 p.36</ref>
방망이와 공을 이용해 하는 경기는 영국에서 여러 가지 종류로 발전하는데, 영국 동남부에서는 [[크리켓]]으로, 남서부에서는 원홀 캣(또는 원 오캣)의 이름으로 발전했으며, 야구와 흡사한 경기인 [[라운더스]]도 있었다. 이런 종류의 경기들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옮겨와 두가지 형태로 진화했는데, [[뉴욕]] 주변에서 행해진 타운볼은 각각 9명의 선수로 이루어진 두 팀이 하는 경기로 정비되었다.
[[파일:Alexander Cartwright (PP-69-3-004).jpg|섬네일|160px|알렉산더 카트라이트]]
[[루셔스 애덤스]]등은 야구의 기본적인 규칙을 확립했다. 특히 [[1845년]]에는, [[미국]] [[뉴욕]]의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니커보커 규칙]]을 만들었으며, 이 규칙은 오늘날 현대 야구의 규칙으로 진화하게 된다.<ref>Early Innings: A Documentary History of Baseball, 1825-1908, 설리번 p.292</ref> 그는 또한 [[라운더스]]에서 사용되었던 소프트한 공을 더 작지만 하드한 공으로 교체했다.<ref>{{저널 인용
| 인용 =
| 저자 = 쥘 티곌
| 날짜 =
| 연도 = 2002
| 제목 = Past Time: Baseball as History
| 저널 = NINE: a Journal of Baseball History and Culture
| volume = 10
| issue =
| 쪽 = 170–171
| pmid =
| doi = 10.1353/nin.2002.0012
| id =
| url = http://muse.jhu.edu/journals/nine/v010/10.2gmelch.html
| 형식 =
| 확인날짜 = 2008-06-25
|issn=1188-9330 }}</ref> [[1846년]]에 [[뉴욕 니커보커스]]가 창단되었다. [[1953년]] [[6월 3일]], [[미국 의회]]는 공식적으로 카트라이트가 근대 야구의 발명가임을 인정했다.
카트라이트가 소속된 구단인 [[뉴욕 니커보커스]] 팀이 [[1845년]]에 경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의 역사상 공식적인 첫 경기로 현재 알려지고 있는 것은 [[1846년]] [[6월 19일]] [[뉴저지주]]의 '호보켄'에서,<ref>Early Innings: A Documentary History of Baseball, 1825-1908, 설리번 p.80</ref> '뉴욕 나인'<ref>야구의 역사, 조지 벡시 p. 32</ref> 이 '니커보커스' 팀을 4이닝 동안 23 대 1로 이긴 경기이다.<ref>Early Innings: A Documentary History of Baseball, 1825-1908, 설리번 p.95</ref>
=== 미국에서의 발전 ===
[[1860년대]] 이미 [[미국]]에서는 야구가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았으며 선수들은 연봉을 받고 생활하는 프로 선수였으나 아마추어 선수처럼 생활해야 했다. 아마추어 시대는 [[1871년]] [[3월 17일]], 전미프로야구선수협회가 창설됨으로써 그 막을 내렸다. [[1869년]], 최초의 프로 야구 팀 [[신시내티 레드 스타킹스]](Cincinnati Red Stockings)가 창단되었으며 [[1875년]]에는 [[내셔널 리그 (야구)|내셔널 리그]](연봉 상한제 있음)가 창설되었다. [[1882년]]에는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American Association)이 창설되었고 [[1901년]]에는 이를 전신으로 하는 [[아메리칸 리그]](연봉이 무제한임)가 창설되어 양대 리그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1903년]]에는 양 리그의 우승 팀간의 승자를 겨루는 [[월드 시리즈]](여기에서 월드(World)는 "월드신문사"의 이름으로써 신문사에서 스폰서를 해주기 때문에 월드시리즈라는 이름이 쓰인다고 한다)가 처음으로 치러졌으며, [[1933년]]에는 올스타전이 처음으로 치러졌다.<ref>{{백과사전 인용
| 백과사전 = 두산백과사전
| 제목 = 메이저 리그
| url = http://www.encyber.com/search_w/ctdetail.php?gs=ws&gd=&cd=&d=&k=&inqr=&indme=&p=1&q=%B8%DE%C0%CC%C0%FA%B8%AE%B1%D7&masterno=61605&contentno=61605
| 확인날짜 = 2008-12-14
}}</ref>
이후 많은 제도의 발전이 있었다. [[브랜치 리키]]는 [[1920년]]에 대규모의 팜 시스템(Farm System)을 도입했다.<ref>야구의 역사, 조지 벡시 p. 106</ref> [[1975년]]에는 [[커드 플러드]] 등 여러 선수들의 희생으로 [[자유 계약 제도]]가 도입되었다. [[1980년]]에는 선수협 위원들의 노력으로 연봉 상한선이 폐지되는 등 선수들의 권익이 향상되었다.<ref>야구의 역사, 조지 벡시 p. 249</ref>
[[파일:JackieRobinson1945.jpg|섬네일|왼쪽|140px|재키 로빈슨]]
메이저 리그 야구에서는 [[1947년]] 이전까지 [[흑인]]이 선수로 활동하지 못했다. 그 대신 흑인들은 [[1920년]]에 설립된 [[니그로 리그 베이스볼]]에서 선수로 뛰었고, [[1924년]]에는 최초의 [[니그로 월드 시리즈]]가 치러졌다. 메이저 리그 야구에서 흑인이 최초로 선수로 뛴 것은 [[1947년]]으로, [[재키 로빈슨]]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브루클린 다저스]]에 입단해 10년 동안 팀에 몸담았으며, [[1962년]]에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최초의 흑인 선수가 되었다.<ref>Late Innings: A Documentary History of Baseball, 1945-1972, 설리번 p.162</ref>
[[투수]]는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경기에서 타석에 섰다. 1970년대 초반, [[지명타자]](designated hitter, DH) 규칙이 고안되었으며,<ref>Late Innings: A Documentary History of Baseball, 1945-1972, 설리번 p.239</ref>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1973년]]부터 이 규칙이 적용되었다. 지명타자 규칙에 따르면 투수가 타석에 서지 않게 되며 지명타자는 타석에만 서면서 수비는 하지 않는다. [[내셔널 리그 (야구)|내셔널 리그]]에는 지명타자 제도가 적용되지 않았고, 지금도 투수가 타석에 선다.
메이저 리그 야구는 [[1980년대]] 초반까지 불법이었던 약물 복용이 흔했고, 이 시기가 되어서야 알려졌다. 또한 여러 선수들이 약물로 인해 사망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는 선수들이 근육강화제를 사용했으며, 이 때문에 [[2005년]] [[3월 17일]], [[미국 의회]]는 스테로이드 사용에 관한 청문회가 열렸다. 이 때문에 메이저 리그 야구는 [[2006년]]부터 약물 복용이 처음 발각되었을 때에는 50경기, 두 번째에는 100경기, 세 번째로 발각이 되면 영구 제명이 된다는 '[[삼진 아웃]]' 제도를 적용하기 시작했다.<ref>야구의 역사, 조지 벡시 p. 257</ref>
메이저 리그 야구는 점점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었는데, 팀이 미국 동부에서 우주로 많이 옮겨갔으며, [[캐나다]]에서도 [[1969년]] [[몬트리올 엑스포스]]<small>(현 [[워싱턴 내셔널스]])</small>가, [[1977년]]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리그에 참가했다.<ref>{{백과사전 인용 | 백과사전 = 두산백과사전 | 제목 = 토론토 블루 제이스 | url = http://100.naver.com/100.nhn?docid=741594 | 확인날짜 = 2009-04-23 }}{{깨진 링크|url=http://100.naver.com/100.nhn?docid=741594 }}</ref> 현재는 [[내셔널 리그 (야구)|내셔널 리그]] 15팀, [[아메리칸 리그]] 15팀으로 팀 수 (목표는 모든 리그 16팀씩 32팀)가 유지가 되고 있으며, 경기 수는 한 시즌 당 162경기로 치러진다.
=== 세계의 야구 ===
[[파일:Baseball pictogram.svg|섬네일|200px|야구의 [[픽토그램]].<ref>위키백과에서 야구인 토막글의 픽토그램이기도 하다.</ref>]]
야구는 미국의 대표적인 스포츠 중 하나이며,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팬들의 지지에 기반한 야구 체계가 갖추어져 있다. [[캐나다]] 야구의 역사는 미국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데, 1877년 프로 리그와 국제 협회에서 두 나라로 이루어진 특색 있는 팀을 만들기도 했었다.
세계적으로 미국과 캐나다가 아닌 다른 공식적인 최초의 야구 리그는 [[쿠바]]의 야구 리그이다. 쿠바는 오랜 전통을 유지하며 1930년대 후반부터 국제 경기에서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는 팀이라는 명예를 얻게 된다.
쿠바의 야구 리그가 만들어진 후 야구 리그가 생긴 국가는 다음과 같다. [[제1차 세계 대전]] 후에 야구 리그가 만들어진 국가는 1922년 [[네덜란드]], 1934년 [[오스트레일리아]], 1936년 [[일본]], 1938년 [[푸에르토리코]]이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야구 리그가 만들어진 국가는 1948년 [[이탈리아]], 많은 [[라틴 아메리카]]의 나라들 중 가장 두드러진 나라, 1945년 [[베네수엘라]], 1945년 [[멕시코]], 1951년 [[도미니카 공화국]]과 1982년 [[대한민국]], 1990년 [[중화민국]], 2003년 [[중화인민공화국]] 순으로 만들어졌다. 2019년 기준으로 [[세계 야구 소프트볼 연맹]]에 총 127개국이 가입하고 있다.<ref name="ibaf">{{웹 인용|url=http://www.wbsc.org/members/all/baseball/0/|제목=Members - WBSC|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WBSC|확인날짜=2019-08-21|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90720165429/http://www.wbsc.org/members/all/baseball/0/|보존날짜=2019-07-20|url-status=dead}}</ref>
현재 야구는 [[미국]], [[일본]], [[대한민국]] 등의 국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이다. MLB의 겨울 리그 프로그램으로 [[푸에르토리코]], [[베네수엘라]], [[도미니카 공화국]], [[오스트레일리아]]에 겨울 리그가 존재하고, [[멕시코]]는 MLB 하위 트리플 A에서 리그 참여를 하고있다. MLB는 [[푸에르토 리코]], [[베네수엘라]], [[도미니카 공화국]], [[멕시코]]가 참여하는 캐러비언 시리즈를 4년에 한번씩 개최하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 [[네덜란드]],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니카라과]]에도 대회가 존재한다.
공식적 첫 야구 리그였던 [[쿠바]]의 야구 리그는 1961년 쿠바 혁명으로 폐지되었다.
한편 [[2000년 하계 올림픽]] 이후 야구 종목에서 알루미늄 배트의 사용이 금지된 데다가, 2005년 7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2012년 하계 올림픽]]에 관한 117번째 회의에서 야구, 소프트볼 종목 삭제에 관한 투표가 진행되어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 야구, 소프트볼 종목을 제외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선수들이 출전하지 않기 때문이다.<ref>{{뉴스 인용|url=http://nbcsports.msnbc.com/id/8504326/site/21683474/|저자=|제목=They'rrre out! Baseball, softball out of Olympics|날짜=2005-07-09|출판사=NBCSports.com|확인날짜=2012-05-11|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0812052814/http://nbcsports.msnbc.com/id/8504326/site/21683474/|보존날짜=2008-08-12|url-status=dead}}</ref>. 또한 2009년 8월 회의에서 [[2016년 하계 올림픽]]에도 야구 종목을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이 회의에서는 빅스타 선수가 참여하는 8팀, 짧은 5일 간의 경기 방식으로 바꾸라고 요구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washingtontimes.com/news/2009/aug/13/ioc-board-backs-golf-rugby-2016-olympics/|저자=|제목=IOC: Add golf, rugby to 2016 Olympics|날짜=2009-08-13|출판사=NBCSports.com}}</ref> 그런데 [[2020년 하계 올림픽]]에서 야구가 부활하였다.
==== 대한민국 ====
[[파일:Chun Doo-hwan 1983 (cropped).JPEG|섬네일|150px|야구팬 [[전두환]] 전 대통령]]
1999년 [[대한야구협회]]와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공동 출간한 "한국야구사"에서는 한국에 야구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05년으로 당시 선교사로 온 미국인 질레트(P. L. Gillett)가 [[황성기독교청년회]] 회원들에게 야구를 가르친 것이 그 시초라고 나와 있지만 정확하지 않다.<ref>이후 1905년에서 1년 빠른 1904년으로 정정되었다.</ref> 현재까지 알려진 한반도에서 열렸던 최초의 야구 경기는 1896년 4월 23일 [[한성부]]에 거주하는 미국인들과 미국 해병대원들의 친선경기로 알려져 있다. 그 같은 사실은 서재필이 창간했던 「독립신문」의 영자판인 「THE INDEPENDENT(인디펜던트)」 제9호 1896년 4월 25일치 기사로 확인됐다. 「THE INDEPENDENT(인디펜던트)」 제35호 1896년 6월 25일치 기사에는 그해 6월 23일 오후 3시에 훈련원에서 경기를 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그 경기에 미국으로 귀화했던 서재필이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이라는 미국이름으로 6번 타자, 중견수로 출장 2득점을 한 기록도 남아 있다.
1906년 2월 11일 [[훈련원]] 터에서 [[황성기독교청년회|YMCA팀]] 대 덕어(독일어)학교팀 사이에 경기를 진행했는데 한국인들이 팀을 이루어 최초로 진행한 경기였다.《[[황성신문]]》1909년 3월 21일자에는 이러한 〈야구단 운동가〉라는 노래가 소개돼 있을 정도로 야구는 큰 인기를 누렸다.<ref>{{서적 인용 |제목= 한국 근대사 산책4(러일전쟁에서 한국군 해산까지) | 저자= 강준만 |연도= 2007 |출판사=인물과사상사 |쪽= 198 |ISBN=978-89-5906-074-0 |인용문= 한국에 야구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05년으로, 당시 선교사로 온 미국인 질레트(P. L. Gillett)가 황성기독청년회 회원들에게 야구를 가르친 것이 그 시초이다. 1906년 2월 11일 훈련원 터에서 YMCA팀 대 덕어(독일어)학교팀 사이에 최초의 야구경기가 열렸다. <sup>20)</sup> 『황성신문』1909년 3월 21일자엔 다음과 같은 〈야구단 운동가〉라는 노래가 소개돼 있을 정도로 야구는 큰 인기를 누렸다. "무쇠 골격 돌 근육 소년 남아야/애국의 정신을 분발하여라/다달았네 다달았네 우리나라에/소년의 활동 시대 다달았네 /(후렴) 만인 대적(對敵) 연습하여 후일 전공 세우세/절세 영웅 대사업이 우리 목적이 아닌가"<sup>21)</sup>}}</ref>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도 [[3S 정책]]에 야구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난 정치인이 안 됐으면 야구 선수를 했지 싶다"할 정도로 야구 사랑이 남달랐고 프로야구를 '''한국 최초'''로 출범해서 현재 한국에 야구가 대중화가 된 것도 그의 뜻이었다.<ref>{{뉴스 인용
|제목=스포츠 통치수단 활용한 전두환…프로야구·축구 출범
|url=https://www.chosun.com/sports/sports_general/2021/11/23/DOYLSS6CCJDV7C6F6RMBWZZWO4/
|출판사=朝鮮日報
|날짜=2021-11-23}}</ref>
== 규칙과 경기 진행 ==
[[파일:Baseball diamond ko.png|섬네일|350px|오른쪽|야구장의 구조]]
{{본문|야구 규칙}}
야구 경기는 두 팀이 서로 겨루는데,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 두 팀은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가면서 진행한다. 그리고 공격 팀이 공격을 진행하면서 세 번의 [[아웃]]을 기록하면 공격 팀은 수비 팀으로, 수비 팀은 공격 팀으로 바뀐다. 그리고 공수교대가 2번 이루어지는 것을 [[이닝]](inning, 회)이라고 하며, 일반적인 경기는 9이닝으로 구성되어 진행된다. 그리고 한 이닝은 초(初, 선공)와 말(末, 후공)로 구성된다. 한 이닝에 두 팀은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가면서 경기를 진행하는데, 주로 원정팀이 초에 공격하며, 홈팀이 말에 공격한다. 단 9회 초가 끝나고 9회 말로 넘어가는 시점에 홈팀이 앞서고 있어 승패가 바뀔 가능성이 없는 경우엔 9회 초에 경기를 끝낸다. 9회 말이 끝나도 동점 상황이 유지될 야구 경기의 목표는 경기를 치르면서 상대 팀보다 더 많은 점수([[득점 (야구)|득점]])를 얻어 승리하는 것이다. 공격하는 팀의 선수들은 사각형 형태의 [[야구장|내야 다이아몬드]] 꼭짓점에 있는 네 개의 베이스를 돌면 득점을 할 수 있다. 타자는 [[홈플레이트]] 옆에서 타격을 하며 누상에 출루하면 반드시 시계반대방향으로 1루, 2루, 3루, 그리고 홈플레이트를 거쳐야 하며, 홈을 밟으면 득점이 된다. 반면 필드에서 수비를 보는 다른 팀은 [[아웃 (야구)|아웃]]을 잡고 공격 팀이 점수를 내는 것을 막아야 한다. 아웃을 잡힌 선수는 배팅 오더에 따라 자신의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공격을 할 수 없다. 세 개의 아웃카운트가 채워지면, 양 팀은 공격과 수비 역할을 교대하는 공수교대를 하며, 경기는 초에서 말로, 말에서 초로 바뀌게 된다. 9이닝동안 경기가 진행되다가 9회가 다 끝나도 점수가 같을 경우에는 연장전을 치러 승부를 낸다. 연장전을 치르는 방식도 대회에 따라 상이한데, [[프리미어 12]]와 같은 국제 대회에서는 주로 [[승부치기]]를 적용하지만,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는 정규 이닝의 경우와 동일하게 연장전을 치른다.보통 한국 리그경기에서는 연장전에 가게 되면 12이닝까지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에 무승부로 처리를 하고 [[프리미어12]]와 같은 국제 대회는 12이닝동안 승부가 가려지지 않으면 승부치기를 한다. 어린이 야구에서는 9이닝보다 적은 이닝으로 경기가 이루어지는게 보통이다.<ref>Thurston (2000), p. 15; {{웹 인용|url=http://mlb.mlb.com/mlb/official_info/official_rules/foreword.jsp|title=Official Rules/Foreword|accessdate=2009-02-02|publisher=Major League Baseball}} {{웹 인용|url=http://mlb.mlb.com/mlb/downloads/y2008/official_rules/01_objectives_of_the_game.pdf|title=Official Rules/1.00—Objectives of the Game (Rules 1.01–1.03)|accessdate=2009-02-02|publisher=Major League Baseball}} {{웹 인용|url=http://mlb.mlb.com/mlb/downloads/y2008/official_rules/02_definition_of_terms.pdf|title=Official Rules/2.00—Definitions of Terms|accessdate=2009-02-02|publisher=Major League Baseball}} {{웹 인용|url=http://mlb.mlb.com/mlb/downloads/y2008/official_rules/04_starting_ending_game.pdf|title=Official Rules/4.00—Starting and Ending a Game (Rule 4.10)|accessdate=2009-02-02|publisher=Major League Baseball}}</ref>
=== 경기 용구 ===
{{본문|야구 장비}}
야구를 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야구 방망이|방망이]](배트), [[야구공]], [[야구 글러브|글러브]]가 필요하다.
* [[야구 방망이|방망이]]는 공격을 할 때 필요한 도구로, 보통 [[알루미늄]]이나 [[나무]]로 만든다. 배트는 길고 딱딱한 나무 막대기이고, 손잡이 부분을 제외하고 지름은 약 2인치(5 센티미터)이다. 손잡이 부분은 지름이 약 1인치(2.5 센티미터)이다. 프로 야구 경기에서는 목재로 된 야구 방망이를 이용해야 한다.
* [[야구공]]은 주먹 정도의 크기이고 빨간색 실이 들어간 흰색(다른 색일 수도 있다) 공이다. [[소프트볼]]의 경우, 보통 [[주먹]] 두 개 정도 크기의 흰색 줄무늬가 있는 흰색이나 노란색 공을 사용한다.
* [[야구 글러브|글러브 또는 미트]]는 수비할 때 필요한 도구로, 가죽으로 만들어졌으며, 선수의 [[손]]에 착용한다. [[야구 글러브|글러브]]의 모양은 사용하는 선수의 포지션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 [[야구화]]는 야구를 할 때 신는 신발이다.
* [[야구장]]은 모든 야구장은 다이아몬드와 모서리, [[야구 필드|베이스]](루)가 있으며, 같은 방식의 경기를 진행한다. 야구장은 크게 [[내야]]와 [[외야]]로 구별된다. [[파일:Baseball.jpg|섬네일|230px|야구공]]
=== 포지션 ===
{{본문|야구의 포지션}}
{{참고|수비번호}}
[[파일:야구 수비위치.svg|섬네일|왼쪽|300px|야구의 포지션]]
이닝에서, 수비를 할 때 9명의 수비수들은 각자의 수비 위치에 선다. 다이아몬드의 중심의 투수판에 서 있는 선수를 [[투수]]라고 하며, 그리고 홈 플레이트 뒤에 앉아 있는 선수를 [[포수]]라고 하는데 이 둘을 [[배터리 (야구)|배터리]]라고 부른다. 나머지 수비수들은 [[야수]]라고 부르는데 야수는 위치에 따라 내야수와 외야수로 분류되며 [[내야]] 안에 있는 4명의 수비수들을 [[내야수]]라고 한다. 내야수 중 3명은 1, 2, 3루에 서 있는데 이들은 각각 [[1루수]], [[2루수]], [[3루수]]라고 말하며 각 루와 그 주변을 수비하는 역할을 한다. 나머지 한 명은 [[유격수]]로, 2루와 3루 사이를 서면서 그 사이를 수비한다. 이때 [[유격수]]와 [[2루수]]의 조합을 '''키스톤 콤비네이션''' 혹은 '''키스톤 콤비'''라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3명의 선수는 [[외야]]에 서는데, 이들을 [[외야수]]라고 하며, 위치에 따라 [[좌익수]](왼쪽), [[중견수]](가운데), [[우익수]](오른쪽)로 구분해서 부른다.
[[지명타자]]는 공격만 하고 수비는 하지 않는데, 이는 투수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규칙으로 지명타자는 투수 대신 공격을 한다.
경기에서 홈플레이트 옆에 있는 타석에 서 공격을 하려는 선수를 '타자'라고 부르며, 타자는 배트를 잡고 있으며, 투수가 투수판에서 홈플레이트 쪽으로 공을 던지면 타자는 배트로 공을 쳐서 점수를 내려고 한다. 타자가 공을 치고 난 후에 타자는 배트를 놓고 1루를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2, 3루, 홈까지 갈 수 있다. 홈까지 돌아오거나 아웃이 된 경우에는 [[덕아웃]]으로 돌아간다.
[[투수]]는 [[타자]]가 베이스에 나가지 못하게 막기 위해 투수판에서 공을 던지는데, 공을 어디에 던지느냐에 따라 '스트라이크'(strike)와 '볼'(ball)로 구별된다. [[타자]]는 [[삼진 (야구)|스트라이크가 3개가 되면 아웃]]되고, [[볼넷|볼이 4개가 되면 1루로 나갈 수 있다.]]
스트라이크가 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 투수가 공을 던졌는데 스트라이크 존(strike zone)을 통과한 경우.
* 타자가 공을 보고 방망이를 휘둘렀으나 맞지 않은 경우.(헛스윙)
* 타자가 공을 쳤으나 파울 라인이나 파울 폴(foul pole)을 기준으로 필드 바깥쪽으로 공이 날아간 경우. 이 경우를 파울(foul) 이라고 하며 스트라이크 카운트가 추가된다. 하지만 2 스트라이크 상태에서 파울이 된 경우에는 스트라이크가 추가되지 않는다.
* 타자가 공을 쳤으나 포수가 바로 공을 잡았을 경우에는 파울 팁(foul tip)이라고 하여 파울과 같이 스트라이크 카운트가 추가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파울과는 달리 2 스트라이크 상태에서도 스트라이크 카운트가 추가된다.
=== 아웃 ===
{{본문|아웃 (야구)}}
타자가 1루 이상에 또는 주자가 자신의 다음 베이스 이상에 진루하는 것을 실패할 때, 이를 아웃이라고 한다.
* 타자가 친 공이 노바운드(친 공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상태)로 야수들의 글러브나 미트에 들어간 경우
* 스트라이크를 3번 당한 경우(스윙하거나 그냥 보고만 있는 경우)
*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번트가 파울이 된 경우(스리번트 아웃)
* 타자가 친 공을 야수가 잡은 후 타자가 1루에 닿기 전에 1루수에게 던진 후 잡은 경우
* 타자가 친 공을 야수가 잡은 후 타자가 1루에 닿기 전에 1루수에게 던진 후 잡은 공으로 타자를 [[태그]] 하는 경우
* 타자가 친 공을 야수가 잡은 후 주자를 태그한 경우
* 타자가 친 공을 야수가 잡은 후 주자가 진루해야 할 루로 갈때 포스아웃 하는 경우(단, 포스아웃 당할 주자의 원래의 루로 다음 주자 혹은 타자가 주루해야 하는 경우)
* 타자가 친 공에 주자가 맞은 경우
* 타자가 2루타 이상의 장타를 쳤는데 베이스를 밟지 않고 진루한 때 수비측이 그에 대해 어필(항의)을 한 경우(누의 공과)
*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타자가 공에 맞았지만 배트를 휘두른 경우
* 타자가 친 공을 노바운드로 야수가 잡은 후, 주자가 원래의 루에 귀루하여 터치하지 않고 진루했을 때 주자나 베이스를 공으로 터치한 경우<ref>이 경우 포스아웃이 아닌 어필아웃이다.</ref>
* 노아웃이나 1아웃 주자 1,2루나 만루일때, 타자가 친 공이 내야수들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내야안의 경우라 판단 될 경우 ([[인필드 플라이]])
* 타자가 공을 쳤고 수비수가 충분히 잡을 수 있는데 주자 혹은 타자가 쳐서 수비를 방해한 경우
* 타순이 엉켜서 상대편이 어필한 경우 (예를 들어 3번타자가 나와야 할 때 4번타자가 나와서 타격을 해서 안타 등이 나왔는데 어필하면 3번타자는 아웃이고 4번타자는 다시 쳐야 한다.)
* 2스트라이크 이후에 투수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 선언되거나 타자가 헛스윙을 하였는데 포수가 노바운드로 잡지 못하여 공을 타자에게 태그하거나 타자가 1루 베이스를 밟기 전에 1루에 던진 경우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낫아웃]])
* 노아웃 혹은 1[[아웃 (야구)|아웃]]에서 1루 주자가 있을 때 제3스트라이크가 선언되면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이 적용되지 않고 그대로 스트라이크 아웃이 된다.
* 주자가 선행주자를 추월한 경우
* 주자나 타자가 태그를 피하기 위해 루와 루사이를 연결하는 가상의 직선에서 91.4cm 이상 떨어져 주루했을 때 (타구를 처리하는 야수를 피해 달린것과 원심력 때문에 밀려난 것은 상관없다.) ([[스리피트라인 아웃]])
* 타격할 때 양 발이 타석에서 떨어진 상태에서 타격이 되었을 경우 (부정타격)
* 고의적으로 몸에 공을 맞추었을 경우
* 삼중살
=== 진루 ===
타자 또는 주자가 자신의 다음 베이스 (타자의 경우에는 1루) 또는 그 이상에서 세이프되는 것을 진루라고 한다.
* [[안타]] : 히트(Hit)라고도 한다. 인플레이 상황에서 타구가 수비수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갔을 때 안타라고 하며, 잡을 수 있는 공을 놓칠 때는 실책이라고 한다. 타자가 친 공이 땅바닥에 튀기지 않고 담장을 넘어가면 전광판에 안타라고 표시되지만, 주로 [[홈런]]이라고 하며<ref>홈런도 안타의 일종인 것은 맞다.</ref>, 모든 루를 돌아 홈플레이트를 밟고 득점할 수 있다.
* [[볼넷]] (Base On Balls) : 스트라이크 존에서 나간 공(볼)이 4개일 경우 1루로 진루하는 것
* [[야수 선택]] (Fielder's choice) : 야수의 기술적 실책이 아니라 두뇌적 실책에 의해서 주자가 진루하는 경우이다. 평범한 땅볼이 된 공을 잡은 야수가 1루에 타자 주자를 아웃시키는 대신, 선행주자를 아웃시키려고 다른 루에 송구하여 타자 주자가 1개 또는 그 이상을 진루한 경우에 타자에게 주어지는 기록을 말한다.
* 실책 : 에러(Error)라고도 한다. 수비수가 잡아서 타자를 아웃을 시킬 수 있는 타구를 놓칠 때 쓰이는 말이다. [[폭투]], [[도루]] 견제 때는 실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2 [[스트라이크 (야구)|스트라이크]]에서 헛스윙 [[삼진 (야구)|삼진]]이 될 때, 그 공을 포수가 놓쳐서 그 사이에 타자가 1루에 무사히 갈 때는 [[낫아웃]]이라고 한다.
* [[몸에 맞은 볼]]({{llang|en|Hit By Pitch Ball}}) : 타자의 몸에 공이 맞았을 때 1루로 진출할 수 있다.(스윙을 하지 않았을 경우) 정식 명칭은 '몸에 맞은 볼'이나 '힛바이피치볼'이지만 보통 '데드볼' 또는 '사구(死球)'라고도 부른다.
* 타자가 친 공이 야수가 충분히 노바운드로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경우에 관중들이 공을 잡은 경우.
* 노아웃이나 1아웃 주자 1,2루나 만루일때, 타자가 친 공이 내야수들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내야안의 경우라 판단 될 경우 ([[인필드 플라이]]).
* 타자가 공을 쳤고 수비수가 충분히 잡을 수 있는데 주자 혹은 타자가 쳐서 수비를 방해한 경우
* 타순이 엉켜서 상대편이 어필한 경우 (예를 들어 3번타자가 나와야 할 때 4번타자가 나와서 타격을 해서 안타 등이 나왔는데 어필하면 3번타자는 아웃이고 4번타자는 다시 쳐야 한다.)
* 2스트라이크 이후에 투수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 선언되거나 타자가 헛스윙을 하였는데 포수가 노바운드로 잡지 못하여 공을 타자에게 태그 1루 베이스를 밟기 전에 1루에 던진 경우 ([[낫아웃]])
* 노아웃 혹은 1[[아웃 (야구)|아웃]]에서 1루 주자가 있을 때 제3스트라이크가 선언되면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이 적용되지 않고 그대로 스트라이크 아웃이 된 경우
== 야구의 인원 ==
=== 선수 ===
[[파일:Jacob's Field Fultz and Betancourt in the Bullpen.jpg|섬네일|175px|오른쪽|[[구원 투수]]가 몸을 풀고 있으며, 투수 코치가 그들을 살펴보고 있다.]]
최대 선수 수는 리그 또는 수준에 따라 다르다. 메이저 리그 야구 팀은 선수 명단을 시즌 중 25명까지 등록할 수 있으며 시즌 후반 9월부터 확장 로스터를 통해 40명까지 등록이 가능하고 포스트 시즌 기간에는 다시 25명으로 축소가 된다.
* 8명의 [[야구의 포지션|포지션 선수]](position players)는 포수, 4명의 내야수, 3명의 외야수로 구성 된다.
* 5명의 [[선발 투수]](starting pitchers)는 선발 로테이션을 구성한다.(6인도 있다.)
* 6명의 [[구원 투수]](relief pitcher)에는 [[마무리 투수]]가 포함되며, 팀의 불펜을 구성한다.
* 1명의 백업 포수
* 2명의 백업 내야수
* 2명의 백업 외야수
* 1명의 지명타자, 또는 2번째의 백업 포수, 또는 7번째 구원 투수(seventh reliever)
==== 수비번호 ====
{{본문|수비번호}}
=== 그 외 ===
팀의 [[야구 감독|감독]] 또는 수석 코치는 선수 명단, 타순, 선발 투수를 정하고, 특히 구원 투수의 경기 중의 등판 시점과 같은 선수교체 등과 같은 팀의 중요한 전술을 구상한다. 감독은 2명 또는 그 이상의 [[야구 코치|코치]]들의 도움을 받는다. 코치들은 타격 코치, 야수 코치, 투수 코치, 트레이닝 코치로 전문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경기에선 팀이 공격을 할 때 1루 코치와 3루 코치가 경기장에 서 있는데 그들은 파울선의 밖에 정해진 장소에 서서 경기 중에 주자의 방향에 조언하고 경기 중단시에 감독의 지시를 타자와 주자에게 전달한다.<ref>클레온 왈푸드 "Most 'Signs' Given by Coaches Are Merely Camouflage", ''Baseball Digest'', 1960년 12월 ~ 1961년 1월, pp. 47–49.</ref>
== 심판 ==
{{본문|야구 심판}}
[[파일:DSC 0041 Mike Reilly.jpg|섬네일|오른쪽|160px|야구의 주심]]
야구 경기에서 [[심판 (스포츠)|심판]]은 4명인데, 주심, 1루심, 2루심, 3루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주심은 [[포수]] 뒤에 서 있는데, [[스트라이크 존]]을 통해서 [[스트라이크 (야구)|스트라이크]]와 [[볼]]을 판정한다. 주심은 본루에서 아웃인지 세이프인지 판단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머지 1루심, 2루심, 3루심은 루 근처에서 서 있으며, 아웃인지 세이프인지 판정한다. 또한 타자가 하프 스윙 시에 주심이 스트라이크를 선고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감독 또는 포수는 누심에게 조언을 받을 것을 요청할 수 있다. 좌우측 선심이 없는 경우 1, 3루심은 타자가 친 공이 외야에서 파울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도 한다. 보크나 타임의 선언은 4심이 모두 동등한 권한을 갖는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야구]]에서는 보통 4명의 심판을 두는데, '''올스타전'''이나 [[포스트 시즌]] 경기와 같이 중요한 시합의 경우 외야에 좌측 선심과 우측 선심을 추가하여 6명의 심판을 둔다. 그리고 [[2008년]] [[8월]]부터는 비디오 판독제를 도입하기로 했다.<ref>{{뉴스 인용|url=http://isplus.joins.com/sports/mlb/200806/15/200806151943317336010900000109010001090101.html|저자=허진우|출판사=[[일간스포츠]]|제목=메이저 리그, 오는 8월 비디오 판독제 도입 추진|날짜=2008-06-15}}{{깨진 링크|url=http://isplus.joins.com/sports/mlb/200806/15/200806151943317336010900000109010001090101.html }}</ref>
== 야구의 기본기와 전술 ==
=== 기본기 ===
야구는 기본적으로 [[야구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기인데, 공을 처리하는 것은 투구, 타격, 주루, 포구와 같은 동작으로 이루어진다.<ref name="동작">{{서적 인용 |저자=하일성 |제목=최신 야구교실 |날짜=1995-05-01 |출판사=국일미디어 |쪽=19 |ISBN=978-89-7425-228-1}}</ref> 이에 따른 신체의 동작도 손(어깨), 발(다리), 눈, 입, 귀, 머리를 통해서 행해진다.<ref name="동작"/> 손과 발은 투구, 타격, 주루, 포구에 필요한 수단이며, 눈은 잘볼 수 있는 수단이다.<ref name="동작"/> 또한 야구는 단체스포츠이기 때문에 서로의 기분을 이해하고 동료의 플레이가 쉽게 되도록 서로 협조하는 팀워크가 필요하다.<ref>야구교실, 하일성 p.23</ref>
투구는 [[투수]]가 투수판을 밟고 타자에게 공을 던지는 행위를 뜻한다.<ref name="투구">{{백과사전 인용 | 백과사전 = 두산백과사전 | 제목 = 투구 | url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71800 | 확인날짜 = 2016-07-12}}</ref> 투수는 좋은 투구를 위해서는 스피드와 제구가 좋은 공을 던져야 하고, 기본적인 [[속구]] 이외에도 [[커브]], [[포크볼]]과 같은 변화구를 던질줄 알아야 한다.<ref>야구교실, 하일성 p.46</ref> 또한 투수는 일반적인 [[와인드업 포지션]]과 주자 견제를 위한 [[세트 포지션]]을 사용한다.<ref name="투구"/>
타격은 [[타자]]가 투수가 던진 공을 쳐내는 행위를 뜻한다. 스윙의 각도에 따라서 [[다운 스윙]], [[레벨 스윙]], [[어퍼 스윙]]으로 나뉜다.<ref>{{백과사전 인용 | 백과사전 = 두산백과사전 | 제목 = 타격방법 | url = http://www.encyber.com/search_w/ctdetail.php?gs=ws&gd=&cd=&d=&k=&inqr=&indme=&p=1&q=%C5%B8%B0%DD&masterno=788684&contentno=788684 | 확인날짜 = 2010-11-30}}</ref> 다운 스윙은 위에서 밑으로 내려치는 타법이며,<ref>{{백과사전 인용 | 백과사전 = 두산백과사전 | 제목 = 다운스윙 | url = http://100.naver.com/100.nhn?docid=788268 | 확인날짜 = 2010-11-30 }}{{깨진 링크|url=http://100.naver.com/100.nhn?docid=788268 }}</ref> 레벨 스윙은 수평으로 휘두르는 타법으로 가장 이상적이며,<ref name="스윙">{{서적 인용 |언어=한국어 |저자=조해연 |제목=조해연의 우리말 야구용어 풀이 |쪽=49 |연도=2007 |출판사=지성사 |isbn=8978891489}}</ref> 어퍼 스윙은 밑에서 위로 올려치는 타법으로 가장 비효율적이다.하지만 이용만 잘 한다면 레벨,다운 스윙보다 효율적일수 있다.<ref name="스윙"/>
[[주루]]는 루 상에 나간 [[주자 (야구)|주자]]의 플레이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주루는 득점을 위해 홈으로 들어오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다. 주루를 위해서는 주루 감각과 [[도루]], 투수의 견제시 대비가 중요하다.
=== 전술 ===
야구 경기에서 팀은 승리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전술을 사용한다. 예컨대, 일반적으로 우[[타자]]는 좌완 [[투수]]에게 강하며, 좌타자는 우완 투수에게 강하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week.com/id/146842 |웹사이트=뉴스위크 |제목=Southpaw’s Revenge |날짜 = 2008-07-18 |확인날짜=2009-02-08 |형식= |저자 = 앤드류 배스트}}</ref> 만약 상대 팀의 선발 투수가 좌완 투수일 때, 보통 좌타자 대신 우타자를 많이 기용하며, 좌타자는 기용되지 않거나 하위타선에 배치된다. 이런 점 때문에 우완 투수일 때는 좌타석, 좌완 투수일 때는 우타석에 서서 양손을 사용하는 [[스위치 히터]](양손타자)가 생겨났다.<ref>{{뉴스 인용|제목='내 맘대로 타격' 스위치 타자의 세계|url=http://www.sportsseoul.com/news2/baseball/pro/2008/0926/20080926101010100000000_6048791039.html|출판사=[[스포츠서울]]|저자=이상주|쪽=|날짜=2008-09-26|확인날짜=2009-02-2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18040050/http://www.sportsseoul.com/news2/baseball/pro/2008/0926/20080926101010100000000_6048791039.html|보존날짜=2012-01-18|url-status=dead}}</ref>
[[파일:The bunt.jpg|오른쪽|섬네일|275px|타자가 번트를 시도하고 있다.]]
[[번트#희생 번트|희생 번트]]는 루 상에 나가 있는 [[주자]]의 진루를 목표로 하는 전술로, 주로 아웃 카운트가 유리한 무사 1루, 무사 2루, 무사 1·2루일 때 시도한다.<ref>{{뉴스 인용 |제목=무사 1루, 희생 번트 대지 말라 |url=http://www.sports2.co.kr/people/people_view.asp?AID=169077 |출판사=[[스포츠 2.0]] |저자=최민규 |쪽= |날짜=2006-12-27 |확인날짜=2009-02-24 }}{{깨진 링크|url=http://www.sports2.co.kr/people/people_view.asp?AID=169077 }}</ref> [[스퀴즈 플레이]]는 주자가 3루에 있을 때, 번트를 대서 3루 주자가 득점하기 위한 전술이다.<ref>Baseball Strategies: Your Guide to the Game Within the Game, 스탤링스, 베넷, 42–43, 47–48.</ref> [[플라이아웃#희생 플라이|희생 플라이]](일명 태그업)은 주자가 3루에 있을 때, 타자가 뜬공을 쳐 내면, 야수가 뜬공을 잡았을 때 3루주자는 득점하는 전술이다.<ref>Baseball Strategies: Your Guide to the Game Within the Game, 스탤링스, 베넷, p. 45.</ref> [[도루]]는 투수가 투구를 하는 사이에 주자가 다음 루로 가려고 시도하는 것으로, 주로 발이 빠른 주자가 시도한다. [[히트 앤 런]](Hit and run)은 투수가 투구를 하는 사이 주자는 다음 루로 주루하며, 타자는 투수가 던진 공을 무조건 쳐서 최대한 많이 진루하려는 것이다. 런 앤 히트(Run and hit)는 투수가 투구를 하는 사이 주자가 다음 루로 주루하는 것은 같지만, 타자는 투수가 던진 공을 원하면 타격하는 전술이다. 런 앤 히트 작전이 시도됐을 때 타자가 타격하지 않았을 경우 주자의 도루 시도가 된다.
[[고의사구]]는 경기의 승부처(클러치)일 때, 잘 치는 타자가 나왔을 경우 그 타자를 [[볼넷]]으로 거르고 다음 타자와 상대해 더 큰 실점을 막으려는 전술이다. 루 상에 발이 빠르고 도루 가능성이 높은 주자가 나가있을 경우에는 투수가 포수에게 공을 하나 완전히 빼서 투구를 하는데, 도루를 대비해 주자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피치 아웃). 투수가 투구 전 또는 포수가 투구 후에 주자를 견제하기 위해서 주자가 있는 루의 야수에게 견제구를 던지기도 한다. 주자가 3루에 있을 때 내야 땅볼을 홈에 송구하기 위해서, 또는 타자가 번트한 공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야수들이 홈플레이트 쪽으로 이동해 수비를 한다.<ref>{{백과사전 인용 | 백과사전 = 두산백과사전 | 제목 = 전진수비 | url = http://100.naver.com/100.nhn?docid=788633 | 확인날짜 = 2009-02-24 }}{{깨진 링크|url=http://100.naver.com/100.nhn?docid=788633 }}</ref> 수비 위치는 [[타자]]의 타격 성향의 따라서 이동될 수 있다. [[타자]]가 장타를 쳤을 때, [[외야수]]는 잡은 공을 베이스에 있는 야수에게 송구하지 않고 보통 [[2루수]] 또는 [[유격수]]에게 송구를 하는데, 이를 중계 플레이라고 하며, 주자의 득점이나 진루를 방지하는 플레이이다.
전술의 지시는 보통 감독, 코칭스태프, 또는 선수간의 사인으로 전달되는데, 대부분 손짓으로 이루어진다. 사인의 종류에는 [[플래시 사인]], [[블록 사인]], [[키 사인]] 등이 있다.<ref>야구교실, 하일성 p.306</ref> 메이저 리그 야구에서는 9이닝을 기준으로 한 경기에 오가는 사인이 평균 1000여건 정도이다.<ref>{{뉴스 인용 |제목=사인, 또 하나의 야구 묘미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67&aid=0000000008& |출판사=송재우 칼럼 |저자=송재우 |쪽= |날짜=2007-06-01 |확인날짜=2009-02-24}}</ref>
경기는 모두 전술대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며, 선수가 혼자서 독단적으로 플레이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발이 빠른 주자들은 [[덕아웃]]에서의 사인 지시 없이 자신의 판단으로 [[도루]]를 시도하는데, 이를 '그린라이트'(green light)라고 한다.<ref>{{백과사전 인용
| 백과사전 = 표준국어대사전
| 제목 = 그린라이트
| url = http://krdic.naver.com/detail.nhn?kind=newword&docid=876
| 확인날짜 = 2009-02-23
}}</ref>
== 야구의 고유한 스타일 ==
야구는 [[미국]]의 [[스포츠]] 중에서 여러 가지 면에서 독특한 특징을 갖는 스포츠이다. 이러한 독특함이 오랜기간 지속해 올 수 있었던 매력이자 미국인의 정신에 강한 연대감을 갖게 하는 큰 요인이다. 또한 많은 미국인들은 야구가 기술과 타이밍 그리고 열정, 전략의 최상의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자였던 [[모리스 라파엘 코언]]은 야구를 국민적 종교라고 묘사하기도 했다.<ref>Cohen, Morris Raphael, "Baseball as a National Religion" (1919), in Cohen, ''The Faith of a Liberal'' (Transaction, 1993 [1946]), pp. 334–336: p. 334.</ref> 이 점에서, 야구는 그의 사촌격인 [[크리켓]]과 유사한데, 많은 영연방 국가에서 크리켓과 그것과 관련된 문화는 미국 문화에서의 야구의 역할과 비슷한 지위와 영향력을 가진다.
=== 시간적 요소 ===
[[농구]], [[아이스하키]], [[미식축구]], 그리고 [[축구]]는 모두 경기 시간이 정해져 있고, 보통 상대 팀에 직접적으로 저항해서 경쟁하는 것보다 정해져 있는 시간에서 공격에서 많은 시간을 차지한 팀에 의해 끝난다. 이와 반대로 야구는 경기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팀은 마지막 타자가 나가기 전까지는 이길 수 없고 반격은 시간 제한을 받지 않는다. 비록 단체 종목과 반대되는 개인 종목들 중에서 경기 시간제한이 없어서 미국의 전문직들에게 인기가 많은 다른 스포츠로는 [[테니스]]와 [[골프]]가 있다.
최근 수십 년간, 관찰자들은 매년 야구 경기를 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꾸준히 증가한 것에 대한 정당성을 들어 프로 야구의 게임 길이를 비판해 왔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게임 시간은 전형적으로 1시간 반 정도였다(1시간 반으로 정해졌다). [[1920년대]]에는 평균 2시간 미만으로 변한 것이 [[1960년대]]에는 결국 2시간 38분으로 늘어났다.<ref name = "bgylnq">[http://www.usatoday.com/sports/baseball/columnist/bodley/2004-02-26-bodley_x.htm 할 보드레이, "Baseball wants just a few more minutes", USA투데이, 2004년 2월 26일]</ref> [[1975년]]에는 평균 2시간 25분으로 줄어 들었지만,<ref name = "xttyxo">{{웹 인용 |url=http://www.time.com/time/magazine/article/0,9171,988721,00.html |제목=제프 그린필드, "Midnight Baseball", 타임, 1998년 7월 13일 |확인날짜=2008년 12월 28일 |archive-date=2008년 12월 1일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81201150035/http://www.time.com/time/magazine/article/0,9171,988721,00.html |url-status=dead }}</ref> [[21세기]]에 들어서면서 2003년 시즌 종료 직후 조사한 결과 평균 2시간 46분대가 되는 것으로 밝혀져 경기 시간이 더욱 길어지게 된 것으로 판명되었다.<ref name = "bgylnq"/>
경기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하프 이닝(half inning; 공수교대시간) 사이의 TV 광고, 늘어나는 반칙과 투구 인터벌, 그리고 느린 경기 흐름 때문이었다. 결국 메이저 리그는 하프 이닝 사이의 쉬는 시간의 최대 시간을 정하는 반면 심판이 더욱 엄격하게 [[스트라이크 존]]과 시간 규칙을 선수들이 지키게 강요하도록 교육했다.<ref name = "bgylnq"/><ref name = "xttyxo"/> [[2008년]], [[일본프로야구]]는 [[2007년]]부터 과거 10년간의 평균 경기 시간이었던 3시간 18분의 6%([[교토 의정서]]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에서 따온 것이다)인 12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ref>{{뉴스 인용 |제목=경기시간 단축운동을 벌이고 있는 일본 야구계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64&aid=0000000075& |출판사=야큐 리포트 |저자=신인하 |쪽= |날짜=2008-05-08 |확인날짜=2009-02-26}}</ref>
이러한 제한 시간이 없는 특징 때문에 야구계 일각에서는 승부가 연장으로 이어질 시에 빠르게 승부를 낼 수 있는 규칙으로서 이른바 [[승부치기]]를 도입하는 것이 논의되고 있기도 하다. 실제 [[2008년 하계 올림픽|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승부치기 제도가 실시된 바 있으나, 승부치기 제도가 일반적인 것은 아니며 전 세계 거의 대부분의 프로 야구 리그에서는 아직 승부치기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공식적인 규칙에 명기되어 있기는 하지만 루(Base) 상에 주자가 없을 경우 [[투수]]는 12초 안에 투구해야 하며 이를 어길 시 그 투구는 '볼(Ball)'로 판정이 된다는 경기 촉진룰의 적용은 매우 드물고 아주 만약의 상황에만 시행된다. 그러나 2010년도 프로야구에서는 이 12초룰을 적용키로 하여 투수에 유리한 룰이 아니냐며 타자들이 반발하고 있는 추세다. [[심판 (스포츠)|심판]]은 또한 주자가 있을 경우에도 투수의 투구 지연 행위를 볼(Ball)로 판정할 수 있는 권리도 가지고 있는데 이 규칙 또한 매우 드물고 만약의 상황에만 시행된다. 공식 규칙 중에는 또한 주심이 타자에게 타격행위가 끝나지 않았을 경우 타자석을 벗어나지 않도록 요청할 수 있는 규칙이 있다. 그 이외의 다른 규칙으로는 '규칙위반을 하는지 주시하라'가 있다.
=== 개인과 팀 ===
야구는 근본적으로 팀 스포츠이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정도로 훌륭한 실력을 가졌으며 높은 연봉을 받는 두, 세 명 정도의 선수를 보유할 정도로 재정이 좋은 지역 연고 구단이라 하더라도 기량이 우수한 선수들이 반드시 성공을 기대할 수는 없으며, 여전히 선수 개인들은 강한 압박과 시험에 놓이게 된다. [[투수]]는 반드시 훌륭한 투구를 해야하며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시합에 질 위험이 크고, [[타자]]는 극히 짧은 순간에 어떤 구질인지, 스윙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감독과 코치가 어떤 작전을 수행할지를 선수들에게 사인을 줄 수는 있지만, 그 어느 누구도 투수가 투구하는 것을, 타자가 타격하는 것을 도와 줄 수는 없다. 타자가 직선타구를 치게 되면, 최종 수비자인 [[외야수]]들은 볼을 잡아야 할지, 바운드 볼로 처리해야 할지를 혼자서 결정한다. 야구의 역사에서는 영웅적 대접을 받는 선수와 비난을 받는 선수들이 많다 - 시합의 승부처(클러치)에서 한 선수가 적시 안타를 치거나 또는 공을 잡아 [[플라이 아웃]] 시킬 수도 있지만, 또는 그 반대로 예상치 못한 [[삼진 (야구)|삼진]] 아웃을 당하거나 수비에서 실책을 해서 모두에게 뚜렷이 각인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야구에서 모든 선수들이 주자로 뛸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야구에서는 단거리 달리기가 매우 중요하다. 굳이 주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포지션에서 뛰어난 단거리 달리기 능력이 요구된다. 단거리를 빠른 속도로 달리는 능력이야말로 야구의 기본기이다.
== 경기장 ==
{{본문|야구장}}
{{참고|야구 필드}}
[[파일:Wrigleyboard 8 27 05.jpg|섬네일|오른쪽|[[리글리 필드]]의 득점판. [[2005년]] [[7월 27일]], [[시카고 컵스]] - [[플로리다 말린스]]의 경기]]
야구 규칙에 따르면 경기장에 대한 규정은 다음과 같다.<ref name="kborule"/><ref>
[http://mlb.mlb.com/mlb/official_info/official_rules/objectives_1.jsp MLB 공식 웹사이트].</ref>
* [[본루]]에서 [[1루]], 1루에서 [[2루]], 2루에서 [[3루]], 3루에서 본루까지의 거리는 각각 27.432[[미터|m]](90[[피트]])이다. 내야의 중앙 부근에 본루로부터 25.4[[센티미터|cm]](10[[인치]])의 높이가 되도록 흙을 쌓아 올려 그곳에 투수판을 놓고 투수판 앞 15.2 cm(6인치)되는 지점으로부터 본루를 향해 18.28 cm(6피트)되는 지점까지, 경사도는 12:1이여야한다. 본루로부터 백 스톱까지의 거리 및 루선으로부터 파울지역에 있는 펜스, 스탠드 또는 플레이에 방해가 되는 시설까지의 거리는 18.288m(60피트) 이상이 되어야 한다. 내야는 한 변이 27.432m(90피트)인 [[정사각형]]이고 외야는 1루선과 3루선을 연장한 파울 라인 사이의 지역이다. 본루부터 페어지역에 있는 펜스, 스탠드 또는 플레이에 방해가 되는 시설까지의 거리는 76.199m(250피트) 이상이어야 한다. 경계선을 포함한 내야 및 외야는 페어지역이고 다른 지역은 파울지역이다.
** [[1958년]] [[6월 1일]] 이후 프로야구를 위해 건설하는 경기장은 본부로부터 좌우의 펜스, 스탠드 또는 좌우의 페어지역 위에 있는 플레이에 방해가 되는 시설까지의 거리는 99.058m(325피트) 이상, 중견의 펜스까지의 거리는 121.918m(400피트) 이상이여야한다.
* [[본루]]는 [[오각형]]의 흰색 고무판으로 표시한다. 이 오각형을 만들 때에는 먼저 한 변이 43.2 cm(17인치)인 정사각형을 그려, 이 중 한 변을 골라 이에 이웃한 양쪽의 변을 21.6 cm(8.5인치)로 줄인다. 이 변에서 밑변의 중심으로 각 30.5 cm(12인치)의 변을 2개 만든다. 30.5 cm(12인치)의 두 변이 만나는 곳을 1루선과 3루선의 교차점에 두고, 43.2 cm(17인치)의 변을 투수판 쪽으로 해서 그 표면이 지면과 수평이 되도록 고정시킨다.
* 1루, 2루, 3루는 흰색 캔버스 백으로 표시하고 땅에 올바르게 고정시킨다. 1루와 3루의 캔버스 백은 완전히 내야 안쪽으로 들어가게 설치하고, 2루의 캔버스 백은 2루지점에 그 중심이 놓이도록 설치한다. 캔버스 백은 그 속에 부드러운 재료를 넣어서 만들고 그 크기는 38.1 cm(15인치) 평방, 두께는 7.6 cm(3인치)에서 12.7 cm(5인치)까지 허용된다.
* 투수판은 가로 61 cm(24인치), 세로 15.2 cm(6인치)의 직사각형 흰색 고무 평판으로 만든다. 투수판은 그 앞쪽면 중앙으로부터 본루까지의 거리가 18.44m(60피트 6인치)가 되게 한다.
* 본거지 구단은 1루선과 3루선으로부터 적어도 7.62m(25피트) 떨어진 곳에 본거지 구단 및 방문 구단용으로 각 1개씩의 선수용 벤치를 설치하여야 하며, 이 벤치는 양 옆과 뒷 쪽을 둘러싸고 지붕을 씌워야 한다.
== 기록 ==
{{본문|야구 기록}}
많은 [[스포츠]] 중에서 혹은 그보다 휠씬 더, 야구에서의 기록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야구 기록은 미국 프로 야구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의 태동과 함께 유지되어 왔으며 생각컨대 이전보다 더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단장, 스카우터, 감독 그리고 선수들은 자신이 속한 팀의 승리를 위한 다양한 전략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 기록을 연구한다.
야구에서의 기록은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스포츠]]들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른 운동 경기들에서의 플레이는 유동적이고 다양한 결과를 보여주지만, 야구에서의 플레이는 제한된 결과만을 갖기 때문이다.
모든 세대의 야구팬은 다음과 같은 전통적인 야구 기록에 대해 알고 있으며 또한 그 내용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다.
=== [[타격]] 기록 ===
* [[안타]]
** [[단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수'(打數, '''A'''t-'''b'''ats, '''AB''')는 타자가 타석에서 타격행위를 완료한 총 횟수를 의미한다. 타수에는 타자가 타격행위를 완료하지 않은 타석은 제외하는데 볼넷과 몸에 맞는 볼이 그러한 경우이다. 그 외 번트도 이에 포함된다.
* '[[야구의 기록#타율|타율]]'(打率, Batting Average, '''AVG''')은 '안타'의 수를 '타수'로 나눈 값이다.<ref name=ba>{{뉴스 인용 |제목=타율 〉출루율 진기록 나왔다 |url=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5160237 |출판사=[[동아일보]] |저자=문상열 |쪽= |날짜=2008-05-16 |확인날짜=2008-01-02 }}</ref> 이것은 타자의 타격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기본적인 통계수치이다.
이 외에 다른 기록으로는 장타율, 출루율 등이 있다.
=== 투구 기록 ===
* 투수의 '[[평균자책점]]'('''E'''arned '''R'''un '''A'''verage, '''ERA''', 일본 야구에서는 '방어율'(防禦率)이란 용어를 사용)은 투수가 투구한 총 이닝과 허용한 자책점을 평균적으로 환산하여 9 이닝당 자책점(투구와 관련없는 수비행위로 인한 실점은 제외)으로 보여주는 통계수치이다. 약어로는 'ERA'로 표기한다.
* 투수의 '[[이닝]]'(Inning, '''IP'''(Inning Pitched))은 투구의 기본단위이다. 보통 양팀의 공수교대를 1이닝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투수가 얼마나 던졌는지를 가늠하는 것도 이닝이다. 투구수와는 상관없이 1-아웃카운트를 잡았을 경우 1/3이닝 2-아웃카운트를 잡았을 경우 2/3이닝이라 표현, 3명의 타자를 아웃시키면 1이닝으로 표현된다. (또는 0.3, 0.7, 1로 표현) 연속성은 상관이 없이 기록된다. 투구에 의한 아웃이 아니라, 견제사에 의한 아웃도 인정되므로 투구수 없이 이닝을 기록할 수도 있다. 이것은 주로 투수의 내구력과, 지구력에 대한 척도가 되곤 한다.
* [[사사구]]
** [[볼넷]]
** [[몸에 맞은 공]]
이 외에 투구 기록으로는 WHIP와 승리/패배 등이 있다.
=== 주루 기록 ===
* '[[도루]]'('''S'''tolen '''B'''ases, '''SB''')는 투수의 투구행동시 다음 루(壘, plate)로의 진루를 하는 행위이다. 얼마나 빠른지에 대한 수치적인 기준이 되며, 도루가 많을수록 공격의 효율성이 좋아진다. 또한 득점과 연결될 확률이 높아진다.
=== 세이버매트릭스 ===
{{본문|세이버매트릭스}}
미국 야구 연구 협회(The Society for American Baseball Research, SABR)는 야구 선수의 성과와 팀 기여도를 보다 더 잘 측정하고 상대적 가치에 관한 좀 더 추상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기 위해 혁신적인 통계 수치를 개발해왔다('세이버매트릭스'란 용어는 학문의 분야와 고안된 특정 통계수치를 의미한다).
몇몇 세이버매트릭스 신봉자들이 야구계의 주류로 편입함에 따라 '세이버매트릭스'의 통계기록은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야구의 기록#OPS|OPS]]'(출루율과 장타율을 합한 것)는 타율보다 타자들의 성과를 더 잘 측정한다고 세이버매트릭스를 믿는 사람들이 말하는 다소 복잡한 공식이다. 타자의 '출루율 : (안타 + 볼넷 + 사구) / (타수+볼넷 +사구 + 희생플라이)'<ref name="ba"/> 과 '장타율 : 총루타수 / 타수'<ref>{{백과사전 인용
| 백과사전 = 두산백과사전
| 제목 = 장타율
| url = http://100.naver.com/100.nhn?docid=788550
| 확인날짜 = 2009-01-03
}}{{깨진 링크|url=http://100.naver.com/100.nhn?docid=788550 }}</ref>를 더한 값이다.<ref>{{뉴스 인용
|제목= 마이리그 Tip - 타율 대비 최고 생산성의 타자는?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24&aid=0000000936&
|출판사=김형준 칼럼
|저자=김형준
|쪽=
|날짜=2008-09-03
|확인날짜=2009-01-03
}}</ref>
* '[[WHIP]]'(투구이닝 당 허용한 볼넷과 안타의 합)<ref>{{뉴스 인용
|제목 = 롯데 자이언츠, 가을에도 야구한다
|url = http://www.sports2.co.kr/feature/feature_view.asp?AID=189908
|출판사 = [[스포츠 2.0]]
|저자 = 이호영
|쪽 =
|날짜 = 2008-12-16
|확인날짜 = 2009-01-02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81222011917/http://www.sports2.co.kr/feature/feature_view.asp?AID=189908
|보존날짜 = 2008-12-22
|url-status = dead
}}</ref> 은 투수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통계수치이다.
=== 특정 상황에 따른 통계기록 ===
특정 상황에서 좀 더 세밀한 통계수치는 더욱 중요해진다. 예를 들어, 좌완 투수의 공을 잘 치는 타자의 경우 감독은 왼손 투수를 상대하기 위해 그 선수에게 좀 더 많은 기회를 줄 것이다. 득점상황에서 더 잘 치는 타자들이 나왔을 경우 상대팀 감독은 득점권 타율이 낮은 타자와 승부하기 위해 그 타자를 고의사구로 내보내려고 할 것이다.
다른 통계 기록들도 있는데, 타자의 경우 타수, 안타수, 장타수 그리고 타점이 있고, 투수의 경우는 투구 이닝수, 9이닝 당 삼진수, 볼넷, 투구 수 등이 있다.
== 야구 단체 ==
[[파일:World Map WBSC.png|섬네일|오른쪽|350px|[[국제 야구 연맹]]에 가입된 국가]]
국제 야구 경기를 주관하는 [[세계 야구 소프트볼 연맹]]은 [[2013년]] [[국제 야구 연맹]]과 [[국제 소프트볼 연맹]]의 통합으로 출범되었으며, 127개국이 가맹하고 있다. 그리고 대륙 별로도 연맹이 조직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이 소속되어 있다.
* {{범례|#66EE66|[[아프리카 야구·소프트볼 협회|WBSC 아프리카]] - 18개국}}
* {{범례|orange|[[팬아메리칸 야구 연맹|WBSC 아메리카]] - 31개국}}
* {{범례|#FF6666|[[아시아 야구 연맹|WBSC 아시아]] - 24개국}}
* {{범례|#6666FF|[[유럽 야구 연맹|WBSC 유럽]] - 40개국}}
* {{범례|yellow|[[오세아니아 야구 연맹|WBSC 오세아니아]] - 14개국}}
== 야구 대회 ==
세계의 주요 야구 대회에는 [[야구 월드컵]], [[대륙간컵 (야구)|대륙간컵]]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대회들은 아마추어 선수들만 참가하고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는 참여하지 않는다. [[올림픽 야구]] 또한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들은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세계의 축구 잔치인 월드컵과 달리 마땅한 국제대항전 야구대회가 없는 실정이다. [[유니버시아드 야구]],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유스 베이스볼 월드 챔피언십은 대학, 청소년을 위한 대회이다. 여자 야구 대회로는 [[여자 야구 월드컵]]이 있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사무국은 야구의 열기 확대를 위해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선수들도 참가하는 프로 야구 대회인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을 [[2006년]]에 개최했지만 메이저 리그의 스타 선수들은 대체로 참가하지 않으면서 대회의 권위는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 대회는 [[2009년]]에 제2차 대회를 연 이래로 4년마다 개최되고 있다.
=== 야구 리그 ===
야구가 대중화되면서, 야구인과 야구 팀의 숫자도 함께 늘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야구 팀간의 경기인 리그 경기도 대중화되고 있다. 여기서는 주로 [[프로리그]]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 북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
{{본문|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마이너 리그 베이스볼}}
세계 야구에서 가장 큰 규모의 프로 야구 리그는 미국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로, [[내셔널 리그 (야구)|내셔널 리그]] 15팀, [[아메리칸 리그]] 15팀, 총 30개의 팀으로 각각 서부, 중부, 동부 지구로 나뉘어 있다.
* [[내셔널 리그 (야구)|내셔널 리그]]
** 동부 지구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마이애미 말린스]], [[뉴욕 메츠]], [[필라델피아 필리스]], [[워싱턴 내셔널스]]
** 중부 지구 - [[시카고 컵스]], [[신시내티 레즈]], [[밀워키 브루어스]], [[피츠버그 파이리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서부 지구 -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콜로라도 로키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아메리칸 리그]]
** 동부 지구 - [[볼티모어 오리올스]],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양키스]], [[탬파베이 레이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 중부 지구 - [[시카고 화이트삭스]], [[클리블랜드 가디언즈]],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캔자스시티 로열스]], [[미네소타 트윈스]]
** 서부 지구 - [[휴스턴 애스트로스]],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시애틀 매리너스]], [[텍사스 레인저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밑으로는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마이너 리그]]에 트리플 A, 독립 트리플 A, 더블 A, 클래스 A 어드밴스드, 클래스 A, 클래스 A 쇼트 시즌, 루키 어드밴스드, 루키등의 하위 리그들이 각 연고지마다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메이저 리그와는 별개로 독립리그들이 북중미권에 여럿 있다.
==== 일본 프로 야구 ====
{{본문|일본 프로 야구}}
[[일본 프로 야구]]는 세계에서 2번째로 출범한 리그로, 현재는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 양대 리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센트럴 리그에는 [[지명타자]] 제도가 없고 퍼시픽 리그에는 지명타자 제도가 있다.
* [[센트럴 리그]]
** [[요미우리 자이언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주니치 드래건스]], [[한신 타이거스]], [[히로시마 도요 카프]]
* [[퍼시픽 리그]]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지바 롯데 마린스]], [[오릭스 버펄로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미국의 마이너 리그처럼, 일본도 2군 리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여러 독립 리그도 존재한다.
==== 대한민국 (KBO 리그, KBO 퓨처스리그, 독립리그) ====
{{본문|KBO 리그|KBO 퓨처스리그|한국야구독립리그|코리아 드림 리그}}
1982년 세계에서 3번째로 프로 리그가 출범했으며, 2015년 시즌부터는 [[KBO 리그]]라는 명칭이 공식 제정되었다. 주관 기구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이다.
1982년 기준으로 [[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OB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해태 타이거즈]], [[MBC 청룡]], [[삼미 슈퍼스타즈]]의 6개 팀으로 리그가 진행되었다.지금은 10개이다.
[[KBO 리그]]는 [[KBO 퓨처스리그]]라는 명칭으로 2군 리그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퓨처스 리그에는 [[상무 야구단|상무]]가 추가로 참여하고 있으며, 이 팀은 [[국군체육부대]] 소속으로 군 입대 선수들만 소속되어 있다. 또한 KBO 리그의 [[키움 히어로즈]]는 [[고양 히어로즈]], [[NC 다이노스]]는 [[창원 다이노스]]라는 별도의 팀 명칭을 [[KBO 퓨처스리그|퓨처스리그]]에 한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한국의 독립리그는 [[한국독립야구연맹]]이 주관하는 [[한국야구독립리그]]와 [[코리아 드림 리그]]가 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고양 원더스 (2011-2014)|고양 원더스]]가 있었고, 현재는 [[연천 미라클]], [[저니맨 외인구단]], [[파주 챌린저스]]가 있다.
==== 대만 프로 야구 ====
대만 프로 야구는 [[중화 직업봉구 대연맹]]의 주관으로 개최되며, 1990년부터 리그 경기가 시작되었다. 대만 리그의 경우, 잇달은 승부 조작 사건과 모기업의 경영난 문제로 참가 팀 수가 자주 변화하였으며, 2015년 기준으로 [[유니 세븐일레븐 라이온즈]], [[중신슝디 엘리펀츠]], [[EDA 라이노스]], [[Lamigo 몽키스]] 4개 팀이 참여하고 있다.
한동안 [[타이완 메이저 리그]]도 함께 개최되었으나, 현재는 중화 직업봉구 대연맹에 흡수되었다.
==== 중국 야구 ====
1986년 중국야구연맹이 창설되었고 2002년 4팀이 참가한 [[중국야구리그]]가 탄생되었다. 2005년, 2009년에 각각 한 팀씩 늘어나기 시작 해 확장을 이어갔으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야구가 올림픽 종목에서 퇴출 당하고 2009년 일본이 스폰서에서 철수하면서 위기를 맞게되어 결국 2012년부터 2년동안 리그가 열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2014년부터 부동산 재벌 헝다그룹이 스폰서로 참여하면서 리그가 재개 되었고 상금규모도 확대되었다. 또한 중국정부는 2025년까지 지도자 6000명, 심판 등 야구관련 전문인력 1만 명을 양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또한 지금 야구장 규모는 3000~4000석정도인데 3년 내에 여러 곳에 1만2000석 규모 구장을 건설 하며 구단 수는 20개까지 늘릴 예정이다.
==== 유럽 야구 ====
[[혼크발 호프트클라시|네덜란드]], [[이탈리안 베이스볼 리그|이탈리아]], [[베이스볼 분데스리가|독일]], [[디비시옹 엘리트|프랑스]], [[엑스트랄리가|체코]], [[스페인 디비젼 데 호너|스페인]], [[오스트리아 야구리그|오스트리아]] 등 이러한 국가들은 세미프로리그이며 그 외에도 아마리그로 운영되고 있는 국가들이 존재한다.
==== 기타 야구 리그 ====
[[오스트레일리안 베이스볼 리그|오스트레일리아]], [[푸에르토리코 베이스볼 리그|푸에르토리코]], [[도미니카 윈터 베이스볼 리그|도미니카 공화국]], [[파나마]], [[콜롬비아 프로야구 리그|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프로페셔널 베이스볼 리그|베네수엘라]], [[니카라과 프로페셔널 베이스볼 리그|니카라과]], [[캐나다]] 등에도 세미 프로리그가 있고 [[베트남]], [[필리핀]]에도 야구리그가 있다. [[쿠바]]는 공산 국가 특유상 프로 리그는 없지만 아마추어 국제대회에서는 상당한 실력을 보인다.
야구 리그는 난이도에 따라, 예를 들어서 아마추어, 프로에 따라서, 또는 성별에 따라, 나이에 따라서 리그가 다르다. [[어린이]] 프로그램은 야구 규칙에 보다 더 쉬운 규칙을 적용하고 더 작은 구장에서 경기를 치르며, 코치나 기계로부터 보다 더 쉬운 투구를 한다. 또한 아마추어, 논-프로도 공식 야구 규칙에서 변형된 규칙을 사용한다.
==== 동호인 야구 (사회인 야구) ====
대한민국, 일본 등지에서는 전문 선수가 아니더라도 동호인들이 취미로 자체적인 야구 리그를 조직하여 주말 등을 이용하여 소규모 야구장 등을 중심으로 자체적인 야구 경기를 개최하고 있는데, 이것을 동호인 야구 또는 사회인 야구라고 부른다.
동호인 야구단과 리그가 형성되는 구심점은 지역, 직업, 직장, 공유하는 야구 이외의 관심사 등이 있다.
== 관련 문화 ==
* [[:분류:야구 문화]]
=== 영화 ===
{{본문|경기 장소:야구 영화}}
* [[슈퍼스타 감사용]]
* [[글러브 (영화)|글러브]]
* [[미스터 고]]
* [[머니볼 (영화)|머니볼]]
* [[퍼펙트 게임 (2009년 영화)|퍼펙트 게임]](2009)
* [[퍼펙트 게임 (2011년 영화)|퍼펙트 게임]](2011)
*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 [[나는 갈매기]]
* [[루키 (영화)|루키]]
* [[그들만의 리그]]
* [[YMCA 야구단]]
* [[굿바이 홈런]]
* [[외야의 천사들]]
* [[사랑을 위하여 (1999년 영화)|사랑을 위하여]]
* [[꿈의 구장]]
*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 [[이장호의 외인구단]]
* [[19번째 남자]]
* [[날 미치게 하는 남자]]
* [[투수 공을 던집니다]]
=== 드라마 ===
* [[2009 외인구단]]
* [[루키즈]]
* [[약해도 이길 수 있습니다]]
* [[스토브리그 (드라마)|스토브리그]]
=== 예능프로그램 ===
* [[천하무적 야구단]]
* 최강 야구
=== 만화 ===
* [[:분류:야구 만화]]
* [[다이아몬드 A]]
* [[크게 휘두르며]]
* [[H2 (만화)|H2]]
* [[메이저 (만화)|메이저]]
* [[공포의 외인구단]]
* [[최훈 프로야구 카툰]]
* [[라이징 패스트볼]]
* [[제 7구단]]
=== 게임 ===
* [[마구마구]]
* [[슬러거 (온라인 게임)|슬러거]]
* [[신야구]]
* 컴투스 프로야구
* MLB 9이닝스
* 이사만루(2020.3.31 서비스 종료)
* 프로야구 H3
* 프로야구 스타
* 넷마블 프로야구
* 컴프야 V22
=== 야구광 캐릭터 ===
* [[찰리 브라운]]
* [[야마모토 타케시 (가정교사 히트맨 REBORN!의 등장인물)|야마모토 타케시]]
* [[크게 휘두르며의 등장인물 목록]]
== 같이 보기 ==
* [[시리즈 (야구)|시리즈]]
* [[벤치 클리어링]]
* [[야구 감독]]
* [[야구 코치]]
* [[지명 타자]]
* [[대타]]
* [[대주자]]
* {{임시링크|야구 포지셔닝|en|Baseball positioning}}
* {{임시링크|내야 시프트|en|Infield shift}}
{{col-begin}}
{{col-3}}
=== 야구 규칙/경기 진행 ===
* [[콜드게임]]
* [[일시정지경기]]
* [[야구 장비]]
* [[야구의 포지션]]
** [[수비번호]]
* [[야구의 기록]]
* [[야구의 점수 기록]]
* [[야구장]]
* 포스트 시즌
{{col-3}}
=== 야구 문화 ===
* [[:분류:야구 문화]]
* [[:분류:야구 영화]]
* [[:분류:야구 게임]]
* [[:분류:야구상]]
* [[야구 은어]]
* [[야구 카드]]
* [[야구 명예의 전당]]
* [[스피드건]]
* [[한국야구위원회|KBO]]
{{col-3}}
=== 관련 스포츠 ===
* [[방망이와 공을 이용하는 경기]]
* [[마운드볼]]
* [[오이나]]
* [[소프트볼]]
* [[크리켓]]
* [[스틱볼]]
* [[원 홀캣]]
* [[타운볼]]
* [[라프타]]
* [[스툴볼]]
* [[티볼]]
{{col-end}}
== 참고 문헌 ==
* {{서적 인용 |제목=야구의 역사 |저자=조지 벡시 |연도=2007 |출판사=을유문화사 |id=8932430799}}
* {{서적 인용 |제목=Early Innings: A Documentary History of Baseball, 1825-1908 |저자=설리번 딘 |연도=1997 |출판사=U of Nebraska Press |id=0803292449}}
* {{서적 인용 |제목=Late Innings: A Documentary History of Baseball, 1945-1972 |저자=설리번 딘 |연도=2002 |출판사=U of Nebraska Press |id=0803292856}}
* {{서적 인용 |제목=Baseball Strategies: Your Guide to the Game Within the Game |저자1=잭 스탈링스 |저자2=밥 베넷 |연도=2003|출판사=American Baseball Coaches Association/Human Kinetics|ISBN=0-7360-4218-0, OCLC 50203866}}
* {{서적 인용 |제목=최신 야구교실 |저자=[[하일성]] |연도=1995 |출판사=국일미디어 |ISBN=978-89-7425-228-1}}
== 각주 ==
{{각주}}
; 내용주
<references group="내용주" />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위키낱말사전|야구}}
{{포털|야구}}
;야구 조직/리그
* {{언어링크|en}} [http://www.mlb.com 메이저 리그 야구 공식 홈페이지]
* {{언어링크|en}} [http://www.milb.com 마이너 리그 야구 공식 홈페이지]
* {{언어링크|en}} [http://www.ibaf.org 국제 야구 연맹]
* {{언어링크|en}} [http://www.baseballsoftballuk.com 영국 야구 연맹]
* {{언어링크|ko}} [http://www.korea-baseball.com 대한 야구 협회]
;야구 기록
* {{언어링크|en}} [http://baseball.wikia.com 위키아 야구]
* {{언어링크|en}} [http://www.baseball-reference.com 베이스볼-레퍼런스 공식 홈페이지]
* {{언어링크|en}} [http://www.thebaseballcube.com 더베이스볼큐브 공식 홈페이지]
* {{언어링크|en}} [http://www.baseball-almanac.com 야구-연감 공식 홈페이지]
;야구 뉴스/그 외
* {{언어링크|en}} [http://www.cycleback.com/museumbb.html 초기 야구 온라인 박물관 홈페이지]
* {{언어링크|en}} [http://memory.loc.gov/ammem/spaldinghtml/spaldinghome.html 스팔딩 가이드 회의 도서관 공식 홈페이지]
* {{언어링크|en}} [https://web.archive.org/web/20161021191508/http://www.probaseballarchive.com/ 야구 신문 기록 홈페이지]
* {{언어링크|en}} [https://robbinsathletics.com/baseball-in-shanghai-another-american-sport-exported-to-china/ 중국의 야구] {{웨이백|url=http://www.robbinssports.com/articles/baseball-in-shanghai-china.php |date=20081121190541 }}
* {{언어링크|en}} [http://www.sportscollectorsdaily.com 온라인 야구 뉴스/잡지] {{웨이백|url=http://www.sportscollectorsdaily.com/ |date=20180918213710 }}
* {{언어링크|en}} [http://www.hksportsfields.com 야구 경기장 구조, 설계]{{깨진 링크|url=http://www.hksportsfields.com/ }}
* {{언어링크|en}} [http://www.mister-baseball.com 유럽 야구 및 소프트볼 뉴스·정보] {{웨이백|url=http://www.mister-baseball.com/ |date=20181010113247 }}
{{둘러보기 상자 묶음
|제목 = 야구와 관련된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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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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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잉글랜드에서 시작된 스포츠]]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인터넷 키워드 서비스'''는 영문으로 표현되는 [[웹 브라우저]]의 주소창에 키워드를 입력하여 해당 [[웹 사이트]]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이다. 인터넷 키워드는 도메인 주소에 비해 짧고 편리하며 기억하기 쉬운 장점이 있으나 국제 표준이 정해지지 않아 다수의 민간 기업들에 의해 사설 서비스 방식으로 운영되는 단점이 있다. 인터넷 키워드를 한글로 표시한 것을 '''한글 인터넷 주소'''라고 한다.
== 개요 ==
인터넷은 4자리 숫자로 구성된 [[IP 주소]]로 운영된다. 그러나 사람은 숫자를 기억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를 보다 편하고 쉽게 외울 수 있도록 제정한 것이 도메인이다. 도메인은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므로 전 세계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다. 이 도메인도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사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따라 생겨난 서비스이다. 현재 표준으로 인정받은 [[다국어 도메인]]이 나오기 전 통용되던 방식이다.
=== 차이점 ===
현재 표준으로 지정된 [[다국어 도메인]]과 '''인터넷 키워드 서비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점(.)으로 구분되는 계층구조가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서 '위키백과'를 들어 표현한다면 다국어 도메인으로는 '위키백과.org' 또는 '위키백과.한국' 등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인터넷 키워드 서비스로는 '위키백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 서비스 방식 ==
[[파일:Basic web.JPG|섬네일|right|300px|기본적인 웹 접속 방식]]
인터넷 키워드 서비스는 크게 두가지 방식으로 운영된다.
=== DNS 후킹 방식 ===
일반적으로 DNS에 주소 대신 이러한 키워드가 전송될 경우 오류를 일으키게 된다. 이때 브라우저는 "없는 사이트"라는 오류를 보여주거나 자신들이 운영하는 검색 사이트의 검색 결과([[인터넷 익스플로러 6]]의 경우 [[MSN|msn]]) 등을 보여준다. 이때 DNS 서비스 업체와 제휴를 맺어 "없는 사이트"라는 오류를 일으키지 않고 자신들의 회사에서 운영하는 데이터베이스에서 해당 키워드와 매칭된 사이트로 이동하도록 한다.
=== 플러그인 후킹 방식 ===
주소창에 일반적인 도메인 형식이 아닌 키워드 형식의 단어가 입력된 경우 자동으로 플러그인이 자신들의 도메인 키워드 서비스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 문제점 ==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서비스는 표준화된 서비스가 아니므로 브라우저와 [[ISP]], [[DNS]] 환경, [[플러그인]] 설치 여부 등에 의하여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고, 이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사이트 운영자가 이러한 인터넷 키워드를 구입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이용자의 접속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다.
=== 브라우저 별 문제점 ===
==== [[인터넷 익스플로러]] ====
[[인터넷 익스플로러 6]]까지는 DNS [[후킹]] 방식에 큰 제한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 익스플로러 7]]부터는 [[다국어 도메인]]을 제외하고 이러한 키워드 형식이 주소창에 입력되었을 때 DNS에 키워드를 보내지 않고 사용자가 지정한 검색 사이트로 키워드를 보내게 되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인터넷 키워드 서비스 업체는 플러그인을 추가 배포하는 것으로 해결하였으나 이는 DNS 후킹 방식에 비해 이용자 수를 대폭 하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 [[구글 크롬]] ====
위에서 밝힌 [[인터넷 익스플로러]] 사례와 같이 [[다국어 도메인]]을 제외하고 이러한 키워드 형식이 주소창에 입력되었을 때 DNS에 키워드를 보내지 않고 사용자가 지정한 검색 사이트로 키워드를 보낸다.
== 서비스 인프라 ==
현재 [[대한민국]]에서 키워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중 가장 큰 업체는 [[넷피아]]와 [[디지털네임즈]]가 있고, 그외 다수의 플러그인 후킹 방식의 업체들이 난립하고 있다. [[넷피아]]는 플러그인 배포와 별도로 [[ISP]]인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티브로드]], [[온세텔레콤]]과 제휴를 맺어 DNS 후킹 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네임즈]]는 플러그인 후킹 방식을 주력으로 [[KT]]와 제휴를 맺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위 두 업체는 특허와 ISP 계약에 관해 상호 비방과 소송전을 다수 벌인 바 있다.
== 같이 보기 ==
* [[도메인 이름]]
* [[넷피아]]
[[분류:대한민국의 인터넷]]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파일:Jesus-College-MS-111 00480 240v (cropped) Diarhebion.jpg|thumb]]
'''속담'''(俗談)은 예로부터 한 민족 혹은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말하여져서 굳어진 어구로 전해지는 말이다. [[명언|격언]](格言)이나 [[명언|잠언]](箴言)과 유사하다. 속담은 그 속담이 통용되는 공동체의 의식 구조를 반영하기 때문에<ref>{{저널 인용 |인용 = 이는 곧 속담 속에서 확인되는 모든 현상들이 바로 그 속담을 사용하는 민족의 정신과 의식을 반영한다는 것으로 유명하다.|저자 = 이동용 |날짜=2003-09 |제목 = 독일 속담과 독일인의 의식구조 |저널 = 독일문학 |volume = 제 87권 |쪽 = 294쪽 |출판사 = 한국독어독문학회 |url = http://kgg.german.or.kr/kr/kzg/kzgtxt/87-15.pdf |확인날짜 = 2010년 10월 11일 |형식 = [[PDF]]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11130100849/http://kgg.german.or.kr/kr/kzg/kzgtxt/87-15.pdf# |보존날짜 = 2011-11-30 |url-status = dead }}</ref> [[언어학]]이나 [[문화인류학]] 등에서 연구 대상으로 많이 삼고 있다. [[문학|문학 작품]]에도 많이 등장한다.
== 예 ==
# [[:wikt:가는 날이 장날이다|가는 날이 장날이다]]
# [[:wikt:남의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남의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
# [[:wikt: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 [[:wikt:마른 하늘에 날벼락|마른 하늘에 날벼락]]
# [[:wikt: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 [[:wikt: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
# [[:wikt:아는 길도 물어 가랬다|아는 길도 물어 가랬다]]
# [[:wikt: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 [[:wikt: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 [[:wikt: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 [[:wikt: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 [[:wikt:티끌 모아 태산|티끌 모아 태산]]
# [[:wikt:핑계 없는 무덤 없다|핑계 없는 무덤 없다]]
# [[:wikt:하늘의 별 따기|하늘의 별 따기]]
# [[:wikt:싼 게 비지떡|싼 게 비지떡]]
# [[:wikt: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
# [[:wikt: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wikt:서당개 삼년이면 풍월 옮는다|서당개 삼년이면 풍월 옮는다]]
# [[:wikt: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 [[:wikt:바늘가는데 실간다|바늘가는데 실간다]]
# [[:wikt:말이 말을 만든다|말이 말을 만든다]]
# [[:wikt:세살 버릇이 여든살까지 간다|세살 버릇이 여든살까지 간다]]
# [[:wikt: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wikt:낫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낫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 진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라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
#살은 쏘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
#호랑이가 호랑이를 낳고 개가 개를 낳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바늘 구멍으로 하늘 보기
#원숭이 볼기짝인
#원숭이 이 잡아먹듯
#원숭이 흉내[입내] 내듯
#원숭이의 고기 재판하듯
#원숭이 똥구멍같이 빨갛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잔나비 잔치
#잔나비 띠는 재주가 있다
#잔나비 밥 짓듯한다
#나무 잘 타는 잔나비 나무에서 떨어진다.
#대신 집 송아지 백정 무서운 줄 모른다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위키낱말사전|속담}}
{{위키인용집|한국 속담}}
* [[명언]]
* [[잠언]]
* [[표어]]
* [[법언]]
* [[격률]]
* [[인터넷 밈]]
* [[잰말 놀이]]
== 각주 ==
{{각주}}
{{전거 통제}}
{{토막글|언어학}}
[[분류:속담| ]]
[[분류:언어학]]
[[분류:문학]]
[[분류:구전]]
[[분류:문화인류학]]
[[분류:문학 장르]]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바이오스'''({{lang|en|'''BIOS'''; Basic Input/Output System}})는 [[운영 체제]] 중 가장 기본적인 [[소프트웨어]]이자 [[컴퓨터]]의 [[입출력]]을 처리하는 [[펌웨어]]다. [[사용자 (컴퓨팅)|사용자]]가 컴퓨터를 켜면 시작되는 [[프로그램]]으로 [[주변기기|주변 장치]](하드웨어)와 컴퓨터 운영 체제(소프트웨어) 사이의 [[데이터]]의 흐름을 관리한다. 펌웨어(firmware)의 한 종류로서 IBM호환 컴퓨터의 경우에 전원이 공급되면 시작되는 부팅 절차에서 하드웨어 초기화를 수행하고, 운영체제나 응용 프로그램에게 런타임 서비스([[컴퓨터 프로그램]]의 [[실행 (컴퓨팅)|실행]]을 지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바이오스 펌웨어는 PC에 내장되어 있어서 전원이 인가되면 실행이 시작되는 최초의 프로그램이다. 바이오스라는 이름은 1975년도에 사용된 CP/M 운영체제의 Basic Input/Output System에서 유래하였다. 원래는 IBM의 소유였으나 많은 회사들이 원본 프로그램을 분석(리버스 엔지니어링)하여 호환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현대 PC에서 바이오스는 하드웨어 부품을 초기화하고 검사하는 역할, 부트로더 또는 대용량 저장장치에 저장된 운영체제를 RAM으로 읽어오는 기능을 수행한다. [[파일:Award BIOS setup utility.png|섬네일|바이오스 설정 유틸리티]]
[[파일:POST of ASUS P5KPL on SyncMaster 740N 20081006.jpg|섬네일|일반적인 바이오스 포스트(Power-On Self-Test) 과정의 첫 단계]]
[[파일:Elitegroup 761GX-M754 - AMIBIOS (American Megatrends) in a Winbond W39V040APZ-5491.jpg|섬네일|150x150픽셀|바이오스가 들어간 롬(ROM)]]
넓은 의미로 [[컴퓨터]]에 탑재된 프로그램 중에서 [[컴퓨터 하드웨어|하드웨어]]와 가장 낮은 수준에서 입출력을 담당하는 프로그램을 가리킨다. 좁은 의미의 정의에선 [[IBM-PC]] 호환 기종에 탑재된 것을 말하며, 보통 이 뜻으로 쓰인다. 바이오스는 컴퓨터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중간 형태를 가지는 [[펌웨어]]의 일종으로, 대부분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제어하고 하드웨어에 의해 변경되거나 생성된 정보를 소프트웨어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등 인간의 [[신경망]]과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 역사 ==
{{인용문3|right|
<pre>/* C P / M B A S I C I / O S Y S T E M (B I O S)
COPYRIGHT (C) GARY A. KILDALL
JUNE, 1975 */
[...]
/* B A S I C D I S K O P E R A T I N G S Y S T E M (B D O S)
COPYRIGHT (C) GARY A. KILDALL
JUNE, 1975 */</pre>
<!-- 일부 공백이 원래 인용에서 제거됨 -->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LLL)를 위한 [[CP/M 1.1]] 또는 [[CP/M 1.2]]의 [[PL/M]] 소스 코드의 BDOS.PLM 파일 헤더의 문구.<ref name="Kildall_1975_BDOS"/>
}}
바이오스(BIOS, Basic Input/Output System)라는 용어는 [[게리 킬달]]<ref name="Swaine_1997_Entrepreneurship" />이 발명하였으며, 1975년 [[CP/M]] 운영 체제에 처음 등장하였는데<ref name="Kildall_1975_BDOS" /><ref name="Kildall_1980_CPM" /><ref name="Fischer_2001_Ewing" /><ref name="Fraley_2007_Killian" />, 하드웨어와 직접 연결되는 부팅 시간 동안 불러들이는, 기기에 특화된 CP/M의 일부로 기술하고 있다.<ref name="Kildall_1980_CPM" /> (CP/M 기기는 일반적으로 ROM에 하나의 부트 로더만 있었다.)
== 저장 매체 ==
바이오스를 저장하는 매체로 초기에는 [[고정 기억 장치|롬]]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정보화의 발전 속도가 증가되고 새로운 기기나 매체의 발매 주기가 짧아짐에 따라 현재의 [[플래시 메모리]]가 바이오스의 주된 저장 매체로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플래시 메모리를 이용한 편리함은 [[1990년대]] 후반에 바이오스를 손상시키는 [[컴퓨터 바이러스|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수많은 컴퓨터를 무력화시키는 사태를 겪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CIH 바이러스]]를 들 수 있다. (다만 이 바이러스는 윈도 NT 계열 이후의 운영 체제에서는 동작하지 않으므로 현대에는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전까지 바이오스는 [[롬]]에 담겨 컴퓨터에 미리 맞춰진 형태로 제공되었다. [[롬 라이터]](ROM Writer)라고 불리는 기록 장치 없이는 바이오스의 내용을 바꿀 수 없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바이오스의 저장매체로 기존의 [[마스크 롬]]이나 [[이피롬]]이 아닌 플래시 메모리를 사용한 제품이 일반화되었는데, 이것으로 예상치 못했던 문제점을 해결하거나 새로운 장치나 기기를 지원하기 위해 별도의 기록 장치 없이 PC에서 프로그램을 실행해 바이오스의 내용을 간편하게 바꿀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바이오스의 내용을 갱신할 때 [[정전 (전기)|정전]] 등을 비롯하여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기록이 정상적으로 되지 못하면, 그 컴퓨터는 [[시동]]조차 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바이오스는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이어주는 신경망과 같은 프로그램으로 그 내용이 손상되면 BIOS 설정 화면을 띄울 수도 없다. 이렇게 손상된 바이오스를 복구하는 방법은 바이오스가 탑재된 플래시 메모리를 교환하는 방법 밖에 없다.
== 제어 ==
어댑터 카드의 펌웨어를 시동 과정에서 실행하기 위해 BIOS는 POST 과정 중에 메모리를 검사해서 실행할 펌웨어를 찾는다. 0xC0000h ~ 0xF0000h의 메모리 영역을 2킬로바이트 단위로 나누어서 각각의 첫 2바이트를 읽는데, 만약 2바이트의 값이 0xAA55h 일 경우 실행해야 하는 펌웨어이므로 4번째 바이트로 넘어가서 펌웨어의 코드를 실행한다.
이전에는 [[응용 소프트웨어]]가 주변 기기를 제어할 때 입출력 [[컴퓨터 하드웨어 포트|포트]]를 직접 만질 것 없이 바이오스가 제공하는 서브루틴을 불러 제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역할을 [[운영 체제]]가 대신 수행하여 응용 프로그램은 바이오스를 사용하지 않고, 운영 체제가 준비한 [[API]] 등을 거쳐 바이오스가 제공하는 기능을 사용하게 되었다.
== BIOS 외의 펌웨어의 실행 ==
{{본문|옵션 롬}} <!--[[:en:Option ROM]] 참고-->
BIOS (=메인보드의 [[펌웨어]])는 컴퓨터의 기본적인 하드웨어 장치들 (키보드, 플로피 디스크, 하드디스크) 에 접근해서 제어할 수 있다. 다만 여러 가지 제약사항이 있으며, 일부 플러그인 어댑터들(SCSI, NIC, 비디오 등)의 경우 BIOS 대신 독자적인 [[펌웨어]]를 장치에 포함시켜 그 장치용 펌웨어가 해당 장치를 제어하도록 한다. 이렇게 BIOS에서 호출하는 펌웨어를 [[옵션 롬]] 이라고 부른다.
== 같이 보기 ==
* [[펌웨어]]
* [[확장 펌웨어 인터페이스|EFI]]
== 각주 ==
{{각주|refs=
<ref name="Kildall_1975_BDOS">{{인용 | title = CP/M 1.1 or 1.2 BIOS and BDOS for Lawrence Livermore Laboratories | date = June 1975 | first = Gary A. | last = Kildall | authorlink = Gary Kildall}}</ref>
<ref name="Swaine_1997_Entrepreneurship">{{ 저널 인용 | first = Michael | last = Swaine | authorlink = Michael Swaine (technical author) | date = 1997-04-01 | title = Gary Kildall and Collegial Entrepreneurship | journal = [[Dr. Dobb's Journal]] | url = http://www.ddj.com/184410428 | accessdate = 2006-11-20}}</ref>
<ref name="Kildall_1980_CPM">{{ 웹 인용 | title = The History of CP/M, THE EVOLUTION OF AN INDUSTRY: ONE PERSON'S VIEWPOINT | first = Gary A. | last = Kildall | authorlink = Gary Kildall | date = January 1980 | publisher = [[Dr. Dobb's Journal]] of Computer Calisthenics & Orthodontia | pages = 6–7 | edition = Vol. 5, No. 1, Number 41 | url = http://www.retrotechnology.com/dri/CPM_history_kildall.txt | accessdate = 2013-06-03}}</ref>
<ref name="Fischer_2001_Ewing">{{웹 인용 | title = Gary Kildall's CP/M: Some early CP/M history - 1976-1977 | first = A. Joseph "Joe" | last = Killian | authorlink = Joe Killian | publisher = [[Thomas Fischer (IMSAI)|Thomas "Todd" Fischer]], [[IMSAI]] | year = 2001 | url = http://www.imsai.net/history/imsai_history/cp-m_history.htm | accessdate = 2013-06-03 |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21229064433/http://www.imsai.net/history/imsai_history/cp-m_history.htm | 보존날짜 = 2012-12-29 | url-status = dead }}</ref>
<ref name="Fraley_2007_Killian">{{ 웹 인용 | title = Oral History of Joseph Killian, Interviewed by: Bob Fraley, Edited by: Dag Spicer, Recorded: January 26, 2007, Mountain View, California, CHM Reference number: X3879.2007, | first1 = Bob | last1 = Fraley | first2 = Dag | last2 = Spicer | date = 2007-01-26 | publisher = Computer History Museum | url = http://archive.computerhistory.org/resources/access/text/2012/10/102658016-05-01-acc.pdf | accessdate = 2013-06-03 |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40714175258/http://archive.computerhistory.org/resources/access/text/2012/10/102658016-05-01-acc.pdf | 보존날짜 = 2014-07-14 | url-status = dead }}</ref>
}}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분류-줄}}
* {{두피디아|101013000713809}}
* {{네이버캐스트|7199}}
{{전거 통제}}
[[분류:바이오스| ]]
[[분류:펌웨어]]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학문 정보
|학문명 = 신학
|그림 = Volta della stanza della segnatura 04 teologia.jpg
|그림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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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
|연구 분야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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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神學, {{llang|en|theology|띠올러지}})은 전통적으로 [[하느님]]([[신]], The Divine, The God) 그 자체를 정경이나 이성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연구하거나 신과 관련된 [[교리]]와 [[방법론|방법]]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서방 기독교에서 쓰이는 신학이라는 낱말은 '''테오스'''({{llang|grc|θεός}}, {{해석|신}})에 '''로고스'''({{llang|grc|λόγος}}, {{해석|학문, 말}})가 결합된 단어이다. 한국어에서 특별한 수식어 없이 신학이라는 낱말을 쓸 때는 일반적으로 [[기독교 신학|그리스도교 신학]]을 가리킨다. 단어 의미로는 종교적 초월자로서 신 개념이 존재하는 모든 종교에서 다루는 신에 관한 학문을 신학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종교로는 [[기독교|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힌두교]], [[시크교]], [[바하이교]] 등이 있다.
== 그리스도교 신학 ==
{{본문|기독교 신학}}
'''신학'''은 신을 뜻하는 "Θεο(theo)"와 학문을 뜻하는 "λογία(logy)"의 합성어다. 용어 그대로 기독교의 신과 율법, 교리에 대한 모든 연구이며, 좁은 의미로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연구를 의미한다. 그리스도교의 성장과 함께 2-3세기부터 학문으로서 틀을 갖추기 시작하여, 중세시대에 유럽인의 관점에서 그리스도교의 신과 관련된 일체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신학이라는 용어는 원칙적으로 그리스도교 신학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나, 대개 그리스도교 신학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며 학문체계에서의 신학 역시 흔히 그리스도교 신학을 가리킨다<ref>{{웹 인용
|인용문 = 학문체계에서의~
|제목 = 신학
|url = 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13s3130b
|출판사 =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확인날짜 = 2008-03-21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10722133257/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13s3130b#
|보존날짜 = 2011-07-22
|url-status = dead
}}</ref>. 교파에 따라 [[개신교]] 신학, [[로마 가톨릭]] 신학, [[정교회]] 신학, [[성공회]] 신학 등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교 신학은 좀더 세밀하게 분류가 된다. 구약신학, 신약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선교신학, 그리스도교 상담학 등으로 나뉜다.
== 유대교 신학 ==
유대교에서는 역사적으로 전문 학문 기관보다는 유대교 공동체 중심으로 유대교 신학의 발달이 이루어져 왔다. 유대교 신학이 그리스도교 신학이나 이슬람 신학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출처|날짜=2011-07-16}}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학에 대응될 만한 유대교 신학은 주로 [[할라카]]와 [[미드라쉬]]에 대한 [[랍비]]들의 논의와 주석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 신학자 : [[마이모니데스]], [[아브라함 J. 헤셸]]
* 관련 주제 : [[탈무드]]와 [[카발라]]
== 이슬람교 신학 ==
이슬람교에서 그리스도교의 신학에 견줄 만한 학문적 논의를 가리키는 용어는 "[[칼람]]"(Kalam)이다. 그러나 이슬람교에서 칼람은 그리스도교에서 신학이 차지하는 위치에 비해 그 역할이 작은 편이다. 일부 이슬람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발달에 특기할 만한 영향을 미쳤다.{{출처|날짜=2011-07-16}}
== 힌두교 신학 ==
{{참고|힌두 철학|힌두교의 종파}}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조직신학]]
* [[기독교 신학]]
* [[신학자 (기독교)|신학자 (그리스도교)]]
* [[신학원리]]
* [[신학방법론]]
* [[기독교신학 작업]]
* [[구성주의 신학]]
* [[기독교 신학]]
* [[해석학적 신학]]
* [[장 칼뱅의 신학]]
* [[마르틴 루터의 신학]]
==참고 문헌==
* [[안명준]], 한눈에 보는 성경조직신학 (서울:기쁜날, 2014)
== 각주 ==
{{각주}}
{{종교}}
{{신학}}
{{전거 통제}}
{{토막글|종교}}
[[분류:신학| ]]
[[분류:종교학]]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파일:DNS schema.svg|온전한 자격을 갖춘 도메인 네임의 레이블 계층.|섬네일]]
'''도메인 네임'''({{lang|en|Domain name}}, {{문화어|령역이름}})은 넓은 의미로는 네트워크상에서 컴퓨터를 식별하는 [[호스트명]]을 가리키며, 좁은 의미에서는 [[도메인 레지스트리]]에게서 등록된 이름을 의미한다. 이를 통틀어서 ‘웹 주소’라고 (잘못) 부르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는 후자를 서술한다.
등록된 도메인 네임은 보통 [[호스트명]]의 일부분으로, [[도메인 네임 시스템|DNS]] 상에서 해당 호스트명 및 그 하위의 호스트명들은 일반적으로 해당 등록자에게 권한이 주어진다. [[도메인 레지스트리]]는 도메인 네임의 종류에 따라 [[국제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기관]](ICANN)과 해당 국가 기관으로부터 승인을 받아, 일반 사용자들의 도메인 등록을 위임받는 역할을 한다. 이런 도메인 네임은 숫자로 된 [[IP 주소]]에 비해 외우기 쉬우며, 여러 개의 IP 주소가 한 도메인에 대응되거나 ([[서브 도메인]]) 여러 도메인이 하나의 IP 주소로 대응되는 ([[가상 호스트]]) 것도 가능하다.
도메인 네임이 항상 호스트명인 것은 아니지만, 호스트명이 아닌 도메인 네임은 대부분 아무 곳에도 사용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도메인 레지스트리들은 호스트명과 같이 도메인 네임에 들어갈 수 있는 문자를 [[ASCII]]에서 0부터 9까지, a부터 z까지, 그리고 [[하이픈]]으로 등록을 제한하고 있다. [[국제화 도메인]](IDN)은 임의의 [[유니코드]] 문자열을 올바른 호스트명으로 변환하여 이 제한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한다. 다만 제한적으로 밑줄(_)로 시작하는 도메인은 [[SRV 레코드]]와 같이 올바른 호스트명이 아니어야 하는 도메인 네임을 위해서 쓰이기도 한다.
== 종류 ==
[[파일:Domains.jpg|섬네일|오른쪽|최상위 도메인의 이미지화]]
{{본문|최상위 도메인}}
도메인 네임은 그 [[최상위 도메인]]이 암시하는 관리 기관 및 등록 요건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뉜다.
* [[일반 최상위 도메인]](gTLD): ICANN이 관리하는 도메인으로 [[.com]], [[.org]], [[.net]] 등이 포함된다. 대부분 국가와 관계 없이 등록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 도메인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역사적인 이유로 [[.mil]]과 [[.gov]]는 미국 국가 기관의 제한을 받는다.
*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ccTLD): [[ISO 3166-1]]에 의하여 이름이 결정되고 각국의 [[NIC]]에서 관리하는 국가별 도메인이다.
* [[기반 최상위 도메인]](iTLD): 인터넷의 하부 구조를 위하여 사용되는 특수한 도메인이다. 유일하게 [[.arpa]]가 속하지만, [[루트 DNS]]의 [[vrsn-end-of-zone-marker-dummy-record.root]] 항목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다.
gTLD의 등록, 관리, 분쟁 및 법적인 문제 등 도메인 네임에 관한 모든 행정적인 절차 및 기술적인 관리는 ICANN에서 결정 및 시행한다. gTLD 중 가장 잘 알려진 .com, .net, .org는 본래 [[네트워크 솔루션즈]]에서 독점하고 있었으나 [[1999년]] 이후로는 경쟁체제로 전환되었다. [[.int]]는 본래 [[IANA]]가 인터넷의 하부 구조를 위해 사용하던 gTLD였으나, [[.arpa]]로 대체되고 현재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등의 [[국제 조약 기구]] 및 [[비정부조직]]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 같이 보기 ==
* [[국제화 도메인]]
* [[도메인 키워드 서비스]]
* [[Hpweb.com 사건]]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 {{dmoz|Computers/Internet/Domain_Names|도메인 네임}}
{{전거 통제}}
[[분류:도메인 네임 시스템|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생물 분류
|이름=악상어목
|색=동물
|그림=Scapanorhynchus raphiodon.jpg
|그림_설명=악상어목에 속하는 †''Scapanorhynchus'', [[마귀상어]]와 가까운 친척이다.
|계=[[동물|동물계]]
|문=[[척삭동물|척삭동물문]]
|강=[[연골어류|연골어강]]
|상목=[[상어|상어상목]]
|목='''악상어목'''<br />(Lamniformes)
|목_명명=Berg, 1958
}}
{{위키생물종|Lamniformes}}
{{위키공용분류}}
'''악상어목'''은 [[상어]]의 한 목으로 [[백상아리]]와 [[청상아리]]가 이 목에 속한다.
== 하위 분류 ==
* [[환도상어과]] (Alopiidae)
** [[환도상어속]] (''Alopias'')
*** [[환도상어]] (''Alopias pelagicus'') <small>Nakamura, 1935</small>
*** [[큰눈환도상어]] (''Alopias superciliosus'') <small>(Lowe, 1841)</small>
*** [[흰배환도상어]] (''Alopias vulpinus'') <small>(Bonnaterre, 1788)</small>
* [[돌묵상어|돌묵상어과]] (Cetorhinidae)
** [[돌묵상어|돌묵상어속]] (''Cetorhinus'')
*** [[돌묵상어]] (''Cetorhinus maximus'') <small>(Gunnerus, 1765)</small>
* [[악상어과]] (Lamnidae)
** [[백상아리속]] (''Carcharodon'')
*** [[백상아리]] (''Carcharodon carcharias'') <small>(Linnaeus, 1758)</small>
*** [[멸종|†]] [[메갈로돈]] (''Carcharodon megalodon'') <small>Agassiz, 1843</small>
** [[청상아리속]] (''Isurus'')
*** [[청상아리]] (''Isurus oxyrinchus'') <small>Rafinesque, 1810</small>
*** [[단순청상아리]] (''Isurus paucus'') <small>Guitart Manday, 1966</small>
** [[악상어속]] (''Lamna'')
*** [[악상어]] (''Lamna ditropis'') <small>Hubbs & Follett, 1947</small>
*** [[비악상어]] (''Lamna nasus'') <small>(Bonnaterre, 1788)</small>
* [[넓은주둥이상어|넓은주둥이상어과]] (Megachasmidae)
** [[넓은주둥이상어|넓은주둥이상어속]] (''Megachasma'')
*** [[넓은주둥이상어]] (''Megachasma pelagios'') <small>Taylor, Compagno & Struhsaker, 1983</small>
* [[마귀상어|마귀상어과]] (Mitsukurinidae)
** [[마귀상어|마귀상어속]] (''Mitsukurina'')
*** [[마귀상어]] (''Mitsukurina owstoni'') <small>Jordan, 1898</small>
* [[치사상어과]] (Odontaspididae)
** [[샌드타이거상어속]] (''Carcharias'')
*** [[샌드타이거상어]] (''Carcharias taurus'') <small>Rafinesque, 1810</small>
*** [[인도양샌드타이거상어]] (''Carcharias tricuspidatus'') <small>Day, 1878</small>
** [[치사상어속]] (''Odontaspis'')
*** [[범상어]] (''Odontaspis ferox'') <small>(Risso, 1810)</small>
*** [[큰눈뱀상어]] (''Odontaspis noronhai'') <small>(Maul, 1955)</small>
* [[강남상어과]] (Pseudocarchariidae)
** [[강남상어속]] (''Pseudocarcharias'')
*** [[강남상어]] (''Pseudocarcharias kamoharai'') <small>(Matsubara, 1936)</small>
* [[독수리상어과]] (Aquilolamnidae)
** [[독수리상어속]] (Aquilolamna)
*** [[독수리상어]] (Aquilolamna milarcae)
{{연골어류}}
{{악상어목}}
{{분류군 식별자|from=Q224470}}
{{전거 통제}}
{{토막글|물고기}}
[[분류:악상어목|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생물 분류
| 이름 = 돌묵상어
| 색 = 동물
| 상태 = EN
| 상태_기준 = iucn3.1
| 상태_출처 = <ref name="IUCN">{{Cite iucn |last1=Rigby|first1= C.L.|last2= Barreto|first2= R.|last3= Carlson|first3= J.|last4= Fernando|first4= D.|last5= Fordham|first5= S.|last6= Francis|first6= M.P.|last7= Herman|first7= K.|last8= Jabado|first8= R.W.|last9= Liu|first9= K.M.|last10= Marshall|first10= A.|last11= Romanov|first11= E. |last12=Kyne|first12= P.M. |title=''Cetorhinus maximus'' |year=2021 |amends=2019 |page=e.T4292A194720078 |doi=10.2305/IUCN.UK.2021-1.RLTS.T4292A194720078.en}}</ref>
| 그림 = Cetorhinus maximus by greg skomal.JPG
| 그림_크기 = 300px
| 계 = [[동물|동물계]]
| 문 = [[척삭동물|척삭동물문]]
| 강 = [[연골어류|연골어강]]
| 목 = [[악상어목]]
| 과 = '''돌묵상어과'''
| 속 = '''돌묵상어속'''
| 종 = '''돌묵상어'''
| 학명 = Cetorhinus maximus
| 학명_명명 = Gunnerus, 1765
| 지도 = Cypron-Range Cetorhinus maximus.svg
| 지도_설명 = 돌묵상어의 분포도
}}
'''돌묵상어'''({{llang|en|basking shark}}, {{학명|Cetorhinus maximus|케토리누스 막시무스}})는 [[악상어목]] 돌묵상어과에 속한 대형 바닷물고기이다. [[상어]] 가운데서는 [[고래상어]] 다음으로 큰 상어로 [[태평양]]·[[대서양]] 등지에 분포하는 상어이다. 갑각류와 플랑크톤, 작은물고기 등을 먹으며 4km/h로 순항 할 수 있다. 몸길이는 보통 10m가 넘는 길이로 자라며 몸무게는 20 t에 육박한다. 사람에게 확인된 최대 크기의 돌묵상어의 길이는 15m였다.
온순한 성질로 사람에게 전혀 해를 주지 않는다. 가끔 일광욕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돌묵상어를 basking shark(일광욕하는 상어)라고 부른다. 돌묵상어는 입을 크게 벌리고 플랑크톤을 새파라는 빗 모양 기관으로 걸러서 먹는데 새파는 겨울이 되면 떨어져 돌묵상어가 겨울잠을 잔다고 알려져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상어의 간에는 풍부한 기름이 들어있기 때문에, 상어기름을 얻기 위해 남획되고 있다. 이러한 남획과 낮은 번식률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 먹이 ==
돌묵상어는 입을 벌려 들어오는 [[동물성플랑크톤]], 작은 물고기, [[갑각류]] 등을 먹는데, 시간당 들어오는 물의 양은 2,000톤에 달한다.<ref name="FLMNH">{{웹 인용|url = http://www.flmnh.ufl.edu/fish/Gallery/Descript/Whaleshark/whaleshark.html|제목 = 고래상어|출판사 = Icthyology at the Florida Museum of Natural History|확인날짜 = 2006년 9월 17일|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60905043610/http://www.flmnh.ufl.edu/fish/Gallery/Descript/whaleshark/whaleshark.html|보존날짜 = 2006년 9월 5일|url-status = dead}}</ref> [[큰입상어]]나 [[고래상어]]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먹이를 찾아 나서지는 않지만 후각을 이용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오로지 아가미를 통해 물을 빼낼 뿐이며, 먹이를 빨아들이지는 않는다.<ref name="FLMNH"/>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분류-줄}}
* {{위키생물종-줄|Cetorhinus maximus}}
{{악상어목}}
{{분류군 식별자|from=Q185260}}
{{전거 통제}}
{{토막글|물고기}}
[[분류:악상어목]]
[[분류:거대동물]]
[[분류:1765년 기재된 물고기]]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출처 필요|날짜=2013-5-24}}
{{다른 뜻}}
[[파일:Hera Campana Louvre Ma2283.jpg|섬네일|루브르 박물관에서 나온 헬레니즘 원본의 로마 복제품인 캄파나 헤라]]
'''헤라'''({{llang|el|Ήρα, Hêra}})는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의 [[여신]]으로 주신 [[제우스]]의 아내이자 막내 누나이다. 결혼과 가정의 여신으로 숭배받았다. 로마 신화에서는 [[유피테르]]의 반려자인 [[유노 (신화)|유노]]에 해당된다.
헤라는 [[올림포스]] 신화가 자리잡기 전부터 모신(母神)으로 숭배받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 달리 헤라라는 이름의 어원은 [[그리스어]]나 [[인도유럽어]]에 속하지 않는 고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사모스 섬과 아르고스에는 기원전 8세기경에 지어진 헤라의 신전이 있다. 이는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신전이다.
[[공작새|공작]]은 헤라를 상징한다. 헤라는 종종 공작이 끄는 수레에 타거나 손에 여성과 풍요의 상징인 석류나 양귀비 씨앗을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 가족 ==
헤라의 아버지는 [[크로노스]]이며 어머니는 [[레아 (그리스 신화)|레아]]이다. 헤라는 남편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전쟁의 신 [[아레스]], 청춘(젊음)의 여신 [[헤베]], 출산의 여신 [[에일레이티이아]]를 낳았으며, 제우스가 여성과의 동침 없이 혼자서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낳자 자신도 남성과의 동침 없이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낳았다.
문제는 제우스와 헤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보다 제우스가 바람을 피워서 낳은 자녀들이 훨씬 우수하다는 점이었다. 전쟁 신 [[아레스]]는 매양 아테나에게 당하고 살기만 하며, 청춘의 여신 [[헤베]]는 [[헤라클레스]]에게 [[제우스]]의 민며느리가 되는 방식으로 시집갔다. 반면,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남매와 [[디오니소스]], [[아프로디테]]는 올림포스 12신으로서 헤라와 대등한 위치에 있다. 특히 이 중에서 [[아프로디테]]는 헤라나 아테네보다도 더한 미모를 인정받았다. 더군다나 올림포스 12신 중 과반수가 제우스의 내연녀이거나 제우스가 바람을 피워서 낳은 자녀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헤라클레스]]는 전무후무한 역사로 후에 신이 되었으며, [[페르세우스]] 역시 [[메두사]]를 처치하는 무훈을 세웠다. 하지만 페르세우스는 헤라가 도와준 적이 있다.
== 질투 ==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는 헤라의 질투를 즐겨 다루었다. [[제우스]]는 여러 인간 여인들이나 님프와 관계를 맺었고, 그 때마다 헤라는 남편의 애인들에게 복수를 했다. 헤라는 제우스와 그의 애인들 사이에 난 사생아들에게도 강한 증오심을 보였다. [[디오니소스]]의 어머니 세멜레, 큰곰자리 전설의 [[칼리스토 (신화)|칼리스토]], [[에우로페]], 그리고 영웅 [[헤라클레스]]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 같이 보기 ==
* [[아우둠블라]]
* [[파르바티]]
* [[비블리오테케]]
* [[로버트 그레이브스]]
* [[헤시오도스]]
* [[호메로스]]
* [[가이우스 율리우스 히기누스]]
* [[논노스]]
* [[오비디우스]]
* [[파우사니아스 (지리학자)]]
* [[핀다로스]]
{{위키공용분류}}
{{그리스 신들}}
{{전거 통제}}
[[분류:헤라| ]]
[[분류:그리스의 여신]]
[[분류:결혼의 여신]]
[[분류:가정의 신]]
[[분류:어머니 신]]
[[분류:양육의 신]]
[[분류:올림포스 12신]]
[[분류:제우스의 여인]]
[[분류:크로노스의 자식]]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기술'''(技術)은 [[과학]], [[공학]], [[기능]]과 관련하여 다양한 뜻으로 쓰인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과학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여 자연의 사물을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가공하는 수단. (예: 건축 기술)
# 사물을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이나 능력 (예: 운전 기술)
일반적으로 [[과학]]이나 [[산업]]에서 다루는 '기술'의 의미는 사전의 첫 번째 의미를 말하며, 이는 영어의 [[테크놀로지]]에 대응한다. 두 번째 의미는 영어의 'technique' (기법)에 대응한다. 첫 번째 의미를 분명하게 구별하여 가리키고자 할 때는 '[https://ko.wiktionary.org/wiki/%EA%B3%BC%ED%95%99%EA%B8%B0%EC%88%A0 과학기술]', 또는 '[https://ko.wiktionary.org/wiki/%EA%B3%BC%EA%B8%B0 과기]'(科技)라는 용어를 쓴다.
== 과학, 공학, 과학기술 ==
[[과학]]은 자연의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공학]]은 물건 등을 만들기 위해 과학적 지식을 응용하는 연구 학문이다. 과학기술은 사람의 필요에 따라 [[기계]], [[재료]], [[도구]] 등을 개발하고 사용하는 과정 등에 대한 일련의 지식 체계나 학문을 의미한다.
== 산업과 과학기술 ==
과학기술의 발달은 각종 [[산업]] 발달의 토대가 된다. 18세기 이전에는 기술(technique)은 과학의 도움보다도, 장인들의 경험에 의하여 느릿느릿 진화했다.<ref>{{서적 인용 |제목= 물질문명과 자본주의Ⅰ-2 일상생활의 구조 下 | 저자= [[페르낭 브로델]] |기타 = 주경철 옮김 |연도= 1995 |출판사=까치 |위치=서울 |장=제6장 기술의 보급: 혁명과 지체 |쪽= 618 |ISBN=89-7291-084-8|인용문= …18세기 이전에는 과학은 현실적인 해결 방안이나 적용에 대해서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 기술은 장인들의 경험으로부터 이끌어낸 요령들의 총합으로서 그럭저럭 구성되었으며 서두름 없이 느릿느릿 진화했다.… }}</ref>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달을 [[기술혁신]]이라고 하며 기술혁신은 산업 구조의 변화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된 결과 [[산업혁명]]이 촉발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최근 들어 급격한 [[정보화]]의 진행으로 정보 통신 산업이 크게 발달하고 있으며 [[통신]], [[인터넷]] 등을 주요 과학기술로 취급한다.
== 경제와 과학기술 ==
[[경제학]]에서는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와 과학기술의 관계를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개념을 중요하게 다룬다.
* [[적정 과학기술]](Appropriate technology)
* [[중간 과학기술]](Intermediate technology)
* [[과학기술 전략]](Strategy of technology)
* [[과학기술자본주의]](Technocapitalism)
* [[과학기술 특성]](Technological singularity)
* [[과학기술 수용 모델]](Technology acceptance model)
* [[과학기술의 라이프사이클]](Technology lifecycle)
* [[과학기술 전파]](Technology transfer)
== 사회와 과학기술 ==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생활과 환경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는 사회에 긍정적으로, 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현대 [[철학]]과 [[사회학]], [[생태학]], [[정치학]], [[환경운동]] 등에서는 기술에 의한 여러 영향을 다루고 있다. 아래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주요 이념이나 논점이다.
*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
*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
* [[사전예방원칙]] (Precautionary principle):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 선언|리우 선언]]
== 철학과 과학기술 ==
[[철학]]이란, 대상을 다시 한번 더 문제삼아 되돌아 보는 '반성적 사고'를 이른다.
기술은 본래, '어떠한 목적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산업화와 함께 기술(technique)과 과학이 결합함으로써 과학기술(technology)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대해 사람들은 우려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목소리가 모여 기술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형성하였으며, 이는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1970년대 드디어 기술철학회가 창립되었고, 과학기술에 대한 반성적 사고( [[기술철학]] )가 철학의 분과 학문으로 독립되었다.
==법학과 기술==
대한민국의 경우, [[:s:대한민국 기술의 이전 및 사업화 촉진에 관한 법률|기술의 이전 및 사업화 촉진에 관한 법률]]에서 기술에 관하여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기술이란 「특허법」 등 관련 법률에 따라 등록 또는 출원(出願)된 특허, 실용신안(實用新案), 디자인, 반도체집적회로의 배치설계 및 소프트웨어 등 지식재산, 이들이 집적된 자본재, 또한 이에 관한 정보, 이전 및 사업화가 가능한 기술적ㆍ과학적 또는 산업적 노하우를 말한다.<ref>동법 제2조 제1호 및 시행령 제2조</ref>
== 같이 보기 ==
* {{임시링크|셰리 터클|en|Sherry Turkle}} - MIT 교수겸 기술발전과 인간관계의 변화 연구가
* [[테크놀로지]]
== 각주 ==
* {{서적 인용|제목=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저자=한양대학교 과학철학교육위원회|출판사=한양대학교출판부|연도=2010}}
<references/>
== 외부 링크 ==
* {{위키인용집-줄}}
{{기술}}
{{전거 통제}}
[[분류:기술|*]]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전문가 필요|수학}}
[[파일:Integral as region under curve.svg|섬네일|190px|right]]
{{미적분학}}
'''미적분학'''(微積分學, {{lang|en|calculus}})은 [[수학]]의 한 분야로 [[극한]], [[함수]], [[미분]], [[적분]], [[무한급수]]를 다루는 [[학문]]이다. 미분은 [[도함수]]라는 정의역에서 미소한 차이에 대한 함수값의 차이 값의 비를 구한다. 그 값은 [[곡선]]의 기울기로 해석한다. 또 [[넓이]], [[부피]], [[길이]] 등은 곡선으로 제한된다. 여기서 "곡선"은 [[직선]]을 의미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또 극한을 구하는 과정을 유도하는 무한 과정 또는 궁극점(일반적으로 구하는 값)에 접근해 가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 2가지 방법은 수학적 해석학의 토대가 되고 있다. [[기하학]]이 모양에 중심을 둔 학문이고 [[대수학]]이 [[연산]]에 대한 수학이라면, 미적분학은 변화에 중점을 둔 수학이다. 미적분학은 크게 2개의 분야로 분류되는데, 미분과 적분이 바로 그것이다. 미분은 미소적인 변화를 다루는 분야이고, 적분은 미소적인 양의 집적을 다루는 분야이다.
미분의 기하학적 의미를 보면, 특정 함수 그래프의 어떤 점에서 [[접선]], 혹은 [[접평면]]을 구하는데 필요한 연산이다. 더 일반적으로, 미분은 원래는 어렵게 정의된 함수를 [[선형근사]]해서 다루기 쉬운 형태로 바꾸어 파악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미분은 [[선형사상]]이 된다. 그래서 [[선형 대수학]]에서 미분가능한 함수들의 [[선형공간]]을 다룰 때 중요한 [[선형사상]]으로 여겨진다. (단, 다변수 함수의 미분을 선형사상으로 취급하는 방식은 [[20세기]]에 들어서부터 확립됐다.) [[미분방정식]]은 이런 사고의 자연스러운 연장 선상에 있다.
적분은 기하학적으로 보면, 곡선 또는 [[곡면]]과 좌표축으로 둘러싸인 영역의 [[면적]]을 구하는 것에 해당된다.(단, 이때는 [[절댓값]] 기호를 씌워서 곡선 또는 곡면을 x축위로 꺾어올렸을때의 상태이다.)(실제 적분의 기하학적인 의미는 y좌표, 즉 길이들의 합이다.) 그러나 적분의 의미는 오랫동안 확실하게 파악되지 못하고 있었다. 적분의 확실한 [[정의]]를 내린 사람은 [[베른하르트 리만]]이 최초이다. 리만이 생각한 적분을 정식화한 것을 [[리만 적분]]이라고 한다. 적분 또한 [[선형사상]]이다.
미분과 적분은 완전히 별개의 개념이지만,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변수 (수학)|변수]]가 하나인 경우, 하나가 나머지의 [[역연산]]이 된다. 이를 [[미적분학의 기본정리]]라고 부른다.
== 역사 ==
=== 고대 시기 ===
적분을 이끌어내기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들은 고대에서부터 시작됐지만 이 시대의 방법들은 수학적으로 엄밀하지도 않고 체계적이지 않았다. [[모스크바 수학 파피루스]](Moscow mathematical papyrus)에서 적분의 목표 중 하나인 부피계산법들이 나와있으나 이것들은 방법으로서 설명이 부족하고 몇 가지는 틀렸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크니도스의 에우독소스]](Eudoxus)가 극한의 개념과 유사한 문제의 철저 검토법을 사용했고 [[아르키메데스]]는 이 방법을 발전시킨 발견적 교수법이라는 적분과 비슷한 방법을 만들었다. 중국에서는 [[유휘]]가 3세기에 원의 넓이를 구하기 위해 [[크니도스의 에우독소스]]와 같은 방법을 발명하였다.
=== 중세 시기 ===
14세기에 인도의 수학자들은 일부 삼각함수에 적용할 수 있는 미분과 비슷한 엄격하지 않은 방법을 제시했다. Sangamagrama의 Madhava및 Kerala 천문학 및 수학 학교 에서는 미적분학의 구성 요소를 명시했다. 이러한 구성요소를 포괄하는 완전한 이론은 이제 서구 세계에서 ''[[Taylor 계열]]'' 또는 ''[[무한 계열]] 근사''로 잘 알려져 있다.<ref>{{MacTutor |class=HistTopics | id=Indian_mathematics |title=인도 수학 개요}}</ref><ref>{{인용 도서 |last=Plofker |first=Kim |date=2009 |title=인도 수학 |title-link=인도 수학 (도서) |publisher=Princeton University Press |isbn=978-1-4008-3407-5 |location=Princeton |oclc=650305544 |author-link=Kim Plofker}}</ref>.
=== 근대 시기 ===
프랑스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는 무한소 오차항이 있어도 등호가 성립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adequality 개념을 소개했으며, 미분해서 0이 되는 곳을 구하여서 극대 극소를 찾는 법을 만들었다. 아일랜드 수학자 [[제임스 그레고리]](James Gregory)이 미적분학의 핵심 정리인 [[미적분학 기본정리]]의 증명을 출판하였으며, 영국 수학자 [[아이작 배로]](Issac Barrow)가 좀 더 일반적인 경우를 증명하였다. 무한소 미적분과 유한차 미적분의 결합은 두 번째 [[미적분학 기본정리]]가 증명되고 2년이 지나서 [[존 월리스]](John Wallis), [[아이작 배로]](Issac Barrow)와 [[제임스 그레고리]](James Gregory)에 의해 1670년경에 완성됐다.
이후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아이작 뉴턴]]이 당시 알려져 있던 미적분학을 좀 더 체계화하고 발전시켰다.
[[아이작 뉴턴]]은 그가 수리물리학 문제를 풀 때 사용했던 이상한 형태의 곱의 미분법, 연쇄법칙, 고계도 미분계수의 개념, 테일러 급수와 해석함수를 공개했다. 하지만 그가 출판물로 낼 때는 그 시대의 수학적 표현방법에 맞게 그의 아이디어와 동등한 의미를 지니는 기하적 표현으로 그의 아이디어를 적어냈다. 뉴턴은 그의 책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거론한 행성의 운동, 회전하는 유체 표면의 모양, 지구의 편평도, 사이클로이드에서 미끄러지는 물체의 운동 같은 문제들을 푸는 데 미적분을 사용했다. 뉴턴은 미적분과 함께 함수의 급수를 실수의 범위로 확장했고 테일러 급수의 원칙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가 이뤄낸 모든 발견을 출판하지는 않았고 이 시대에 무한소를 이용한 방법은 여전히 평이 좋지 않았다.
그의 아이디어들은 뉴턴이 자신을 표절했다고 고소한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에 의해서 참된 무한소 미적분으로 체계화됐다. 뉴턴은 그를 표절자로 여겼지만, 현재는 그도 독립적으로 얻은 것임이 밝혀졌다. 그는 무한소를 다루는 규칙들을 명확하게 정리했고 2계도 이상의 미분을 가능하도록 해줬으며 곱의 미분법과 연계법칙을 미분 적분 형태로 모두 만들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모두 미적분학에 기여한 자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둘의 미적분의 성격은 다르다. 뉴턴은 미적분을 물리학에서 활용한 첫 번째 사람으로, 라이프니츠는 오늘날 사용하는 미적분 표기법의 대부분을 만든 사람으로 여겨진다. 또 라이프니츠는 뉴턴과는 달리 형식을 중시해서 알맞은 표현법을 만들어내는데 며칠을 쓰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미적분에서 규정한 기본적인 사항들로는 미분과 적분의 법칙들, 2계도 이상에서의 미분, 다항 함수 급수의 근사에 대한 개념들이 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 이전에 미분과 적분이 역관계라는 [[미적분학의 기본정리]]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라이프니츠가 그의 결과를 발표하고 뉴턴이 그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권리를 주장하자 수학자들 사이에서는 어떤 사람을 우선권자로 인정을 해야 하느냐는 주제로 큰 논란이 일었다. 뉴턴이 최초로 결과를 이끌어 낸 사람이지만 출판을 한 것은 라이프니츠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뉴턴은 라이프니츠가 자신이 출판하지 않고 왕립학회에서 공유한 노트들에서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주장했다. 이 논란 때문에 영국 수학자들과 유럽 대륙의 수학자들이 오랫동안 갈라지게 되고 이는 영국 수학에 큰 손실을 초래했다. 현재는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논문에 대한 면밀한 조사 덕분에 그들이 독립적으로 결론을 이끌어 냈다는 것이 밝혀졌다. 라이프니츠는 적분에서부터 뉴턴은 미분에서부터 시작해서 결과를 도출해냈다.
이 시대 이후에 수많은 수학자들이 미적분학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첫 번째로 가장 성공적이었던 업적 중 하나로 [[마리아 아녜시]]가 1748년에 쓴 무한과 유한 분석이 있다.
=== 기초 ===
미적분학에서 기초(foundations)는 정확하고 엄밀한 공리와 정의들의 발전을 말한다. 초기 미적분학에서 사용한 무한소는 엄밀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었기에 많은 수학자들에게 특히 [[미셸 롤]]과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에게 맹렬하게 비난 받았다. 버클리는 그가 1734년에 출판한 《해석학자》({{llang|en|The Analyst}})라는 책에서 무한소를 ‘사라진 값들의 유령’({{llang|en|the Ghosts of departed quantities}})이라고 묘사했다. 미적분학의 엄밀한 기초를 도출해내는 일은 여러 수학자들이 제공했고 오늘날까지도 연구활동이 있는 분야다.
[[콜린 매클로린]](Colin Maclaurin)을 포함한 다수의 수학자들이 무한소의 사용이 정당하는 것을 증명하려고 시도했지만 그것은 150년이 지나서야 [[오귀스탱 루이 코시]]와 [[카를 바이어슈트라스]]에 의해서 증명됐고 무한소의 의미가 극히 작은 값이라는 관념을 막을 방법을 찾았다. 이것이 미분과 적분을 위한 기초를 놓았다. 코시의 필기에서 무한소의 형태로 적혀진 연속의 정의와 극한의 (ε-δ) 정의의 원형 등의 기초에 접근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코시의 업적에서 바이어슈트라스는 극한의 정의를 공식화 시키고 무한소의 개념을 없애버린다. 바이어슈트라스의 작업에 따라서 미적분학은 무한소가 아닌 극한에 기초하는 것이 일반적이게 됐다. [[베른하르트 리만]]은 바이어슈트라스의 개념을 사용해서 적분의 정확한 개념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발견의 기간 동안 미적분학의 아이디어들은 [[유클리드 공간]]과 [[복소평면]]에서 일반화됐다.
현대 수학에서 미적분학의 기초는 미적분학의 정리에 대한 완전한 정의와 증명들을 포함하는 실해석 분야에 포함되어 있고 미적분학의 범위는 엄청나게 확대됐다. [[앙리 르베그]]는 [[측도론]]을 만들어서 거의 모든 함수에서 적분을 가능하게 했다. [[로랑 슈바르츠]]는 어떤 함수도 미분시킬 수 있는 [[분포 (해석학)|분포]] 이론을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극한의 개념을 미적분학의 기초로 두지만 극한이 미적분학의 기초에 대한 유일한 접근법은 아니다. [[에이브러햄 로빈슨]](Abraham Robinson)의 [[비표준해석학]]이 대안책이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로빈슨의 접근법은 미적분학 초창기에 사용했던 개념인 무한소와 무한수로 실수체계를 늘린 체계를 사용한다. 그 결과로 나온 수를 [[초실수]]라고 부른다. 초실수는 미적분학의 일반적인 법칙들을 라이프니츠의 방식처럼 이끌어 낼 수 있다.
== 함수 ==
=== [[함수]]의 정의 ===
함수 <math>f</math> 란 집합 <math>D</math>안에 있는 원소 <math>x</math>가 집합 <math>E</math>에 있는 정확히 한 원소, <math> f(x)</math>에 대응되는 규칙을 말한다. 여기서 집합 <math>D</math>는 정의역이라하고 <math>E</math>는 공역이라고 한다. 또한 정의역에 있는 임의의 수를 나타내는 기호를 독립변수, 공역에 있는 원소를 나타내는 기호를 종속변수라고 한다.
=== 함수의 표현방법 ===
함수를 표현하는 방법에는 말로 설명하는 방법, 표를 이용하는 방법, 그래프를 이용하는 방법, 대수학적 식으로 표현하는 방법 등이 있다.
== 극한 ==
=== 극한의 정의 ===
<math> \lim_{x \to a} f(x)=L</math>는 <math>x</math>가 <math>a</math>로 다가갈 때 <math> f(x) </math>가 <math>L</math>로 다가간다는 것이다. 극한에는 좌극한과 우극한이 존재하는데 좌극한이란 <math> x</math>가 <math>a</math>보다 작은 곳에서 <math>a</math>로 다가갈 때 <math> f(x) </math>가 다가가는 값을 의미하고 우극한은 반대로 <math> x </math>가 <math> a</math>보다 큰 곳에서 다가간다. 좌극한과 우극한은 기호로 각각 <math> \lim_{x \to a^-}f(x)=L</math>, <math>\lim_{x \to a^+}f(x)=L</math>라고 표시한다. 극한값이 <math>L</math>라는 것과 좌극한과 우극한 모두 <math>L</math>라는 것은 필요충분조건이다.<math>\lim_{x \to a} f(x)=\infty</math>는 <math>x</math>가 <math>a</math>로 다가갈 때 <math>f(x)</math>는 무한히 커진다는 것이고 <math>\lim_{x \to a} f(x)=-\infty</math>는 무한히 작아진다는 것이다.
=== 엡실론-델타 논법 ===
{{본문|엡실론-델타 논법}}
극한의 더 정확한 수학적 정의는 '''엡실론-델타 논법'''이다. <math> \lim_{x \to a} f(x)=L</math>는 모든 양수 <math>\epsilon</math>에 대해 만약 <math> 0 < |x-a| < \delta </math> 면 <math> |f(x)-L| < \varepsilon </math>인 <math>\delta</math>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기호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math> \forall \varepsilon>0 \ \ \exists \, \delta \ \ s.t \ \ if \ \ 0<|x-a|<\delta \ \ then \ \ |f(x)-L|<\varepsilon </math>
이 방법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극한들을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 <math> \lim_{x \to a^-}f(x)=L</math>: <math> \forall \varepsilon>0 \ \ \exists \delta \ \ s.t \ \ if \ \ a-\delta<x<a \ \ then \ \ |f(x)-L|<\varepsilon </math>
* <math>\lim_{x \to a^+}f(x)=L</math>: <math> \forall \varepsilon>0 \ \ \exists \delta \ \ s.t \ \ if \ \ a<x<a+\delta \ \ then \ \ |f(x)-L|<\varepsilon </math>
* <math>\lim_{x \to a} f(x)=\infty</math>: <math> \forall M>0 \ \ \exists \delta \ \ s.t \ \ if \ 0<|x-a|<\delta \ \ then \ \ f(x)>M </math>
* <math>\lim_{x \to a} f(x)=-\infty</math>: <math> \forall N<0 \ \ \exists \delta \ \ s.t \ \ if \ 0<|x-a|<\delta \ \ then \ \ f(x)<N </math>
* <math>\lim_{x \to \infty} f(x)=L</math>: <math> \forall \epsilon>0 \ \ \exists N \ \ s.t \ \ if \ x>N \ \ then \ \ |f(x)-L|<\epsilon </math>
* <math>\lim_{x \to -\infty} f(x)=L</math>: <math> \forall \epsilon>0 \ \ \exists N \ \ s.t \ \ if \ x<N \ \ then \ \ |f(x)-L|<\epsilon </math>
* <math>\lim_{x \to \infty} f(x)=\infty</math>: <math> \forall M>0 \ \ \exists N \ \ s.t \ \ if \ x>N \ \ then \ \ f(x)>M</math>
=== 극한의 성질 ===
<math>c</math>가 상수이고 <math> \lim_{x \to a}f(x)</math> 와 <math> \lim_{x \to a}g(x)</math>가 존재할 때 다음 성질들을 만족한다.
* <math> \lim_{x \to a}[f(x)+g(x)]=\lim_{x \to a}f(x)+\lim_{x \to a}g(x)</math>
* <math> \lim_{x \to a}[f(x)-g(x)]=\lim_{x \to a}f(x)-\lim_{x \to a}g(x)</math>
* <math> \lim_{x \to a}[cf(x)]=c\lim_{x \to a}f(x)</math>
* <math> \lim_{x \to a}[f(x)g(x)]=\lim_{x \to a}f(x) \lim_{x \to a}g(x)</math>
* <math> \lim_{x \to a} \left [ \frac {f(x)}{g(x)} \right ]=\frac {\lim_{x \to a}f(x)} {\lim_{x \to a}g(x)} \ \ if \ \ \lim_{x \to a}g(x) \ne 0</math>
* <math> \lim_{x \to a}[f(x)]^n=[\lim_{x \to a}f(x)]^n</math>
=== 극한에 관한 정리 ===
* 만약 <math>a</math> 근처 <math> x</math>에서 <math> f(x)\le g(x) </math>이고 <math>f,g</math> 둘다 <math>a</math>에서 극한값이 존재한다면 <math>\lim_{x \to a}f(x) \le \lim_{x \to a}g(x)</math>이다.
* [[샌드위치 정리]](조임 정리): 만약 <math> a </math> 근처 <math> x</math>에서 <math>f(x) \le g(x) \le h(x)</math>이고 세 함수 모두 <math> a</math>에서 극한값이 존재하고 <math> \lim_{x \to a}f(x) =\lim_{x \to a}h(x)=L</math>이라면 <math> \lim_{x \to a}g(x)=L</math>이다.
== 연속 ==
{{본문|연속함수}}
{{참고|함수의 극한}}
===함수 <math>f(x)</math>가 <math>x=a</math>에서 연속===
<math>\mathbb{R} \to \mathbb{R}</math>에서 정의된 함수 <math>f(x)</math>가 다음의 조건을 만족할 때 <math>f(x)</math>는 <math>x=a</math>인 점에서 연속이라고 한다. (<math>a \in \mathbb{R}</math>)
* <math>x=a</math>에서 함숫값 <math>f(a)</math>가 존재한다.
* <math>x=a</math>에서 극한값 <math>\lim_{x \to a} f(x)</math>가 존재한다.
* <math>x=a</math>에서 함숫값과 극한값이 일치한다.
=== 함수 <math>f(x)</math>가 연속 ===
함수 <math>f(x)</math>가 정의역에 존재하는 모든 <math>x</math>에서 연속일 때, <math>f(x)</math>는 연속함수라고 한다.
정의역 이외의 <math>x</math>에 대해서 불연속이더라도, 함수의 연속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math>f(x)=\frac {1}{x}</math>은 <math>x=0</math> 이외의 모든 점에서 연속이다. <math>x=0</math>에서는 함숫값이 정의되지 않아 불연속이지만, <math>0</math>은 정의역에 있지 않는 수이므로 함수 <math>f(x)</math>는 연속함수이다.
{| class="wikitable bordered" style="width:500px;"
|-
! 함수의 그래프 !! 연속성
|-
| [[파일:Continuidad de funciones 04.svg|200px]]
| 연속이다.
|-
| [[파일:Continuidad de funciones 02.svg|200px]]
| 함숫값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불연속이다.
|-
| [[파일:Continuidad de funciones 03.svg|200px]]
| 함숫값과 극한값이 일치하지 않으므로 불연속이다.
|-
| [[파일:Continuidad de funciones 05.svg|200px]]
| 좌극한값과 우극한값이 일치하지 않아 극한값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불연속이다.
|}
===균등연속(Uniform Continuity)<ref name="Schaum's Advanced Calculus">Schaum's Advanced Calculus, 57쪽</ref>===
함수 f(x)가 모든 정의역에서 연속이면, 정의역의 모든점 <math>x_0</math>에 대해서 ε-δ 논법에 의해 모든 ε>0에 대해 0<|<math>x-x_0</math>|<δ를 만족하는 x가 |<math>f(x)-f(x_0)</math>|<ε가 되게 하는 δ>0이 존재한다. 만약 모든 <math>x_0</math>에 대해서 δ가 같다면, 즉, δ가 <math>x_0</math>에 변화에 따르지 않고 오직 ε의 변화에만 따른다면, 이 함수 f(x)가 균등연속(Uniformly continuous)이라고 한다.
=== 제거 가능한 불연속성 ===
[[파일:Discontinuity removable.eps.png|섬네일|200px|right|제거 가능한 불연속성을 지니는 함수]]
함수 f(x)가 <math>x=x_0</math>에서 불연속이지만 <math>f(x_0)</math>를 적절히 정했을 때 연속이 될 수 있다면, <math>f(x)</math>는 <math>x=x_0</math>에서 제거 가능한 불연속성을 지닌다고 표현한다.
예를 들어 <math>f(x)=\frac {\sin x} {x}</math>라면, <math>x=0</math>인 점에서 함숫값이 정의되지 않아 불연속이다. 그러나 <math>\lim_{x \to 0} f(x)=1</math>로 극한값이 존재하므로 만약 <math>f(0)=1</math>로 함숫값을 정하면 불연속성이 제거될 수 있다. 따라서 함수 <math>f(x)</math>는 x=0인 점에서 제거 가능한 불연속성을 지닌다.
== 미분 ==
===[[도함수|도함수]]===
그래프 <math> y=f(x)</math>에서 점<math>P(a,f(a))</math>을 통과하는 [[접선]]은 기울기 <math> m=\lim_{x \to a} \frac {f(x)-f(a)} {x-a}</math>를 가진다. 여기서 <math> x-a=h</math>라고 하면 <math>m=\lim_{h \to 0} \frac {f(a+h)-f(a)} {h}</math>가 된다. 함수 <math> f(x)</math>의 도함수 <math> f^'(x)</math>란 <math>m=\lim_{h \to 0} \frac {f(x+h)-f(x)} {h}</math>를 의미한다. 도함수 표현법에는 <math> f'(x)=y'=\frac {dy} {dx}=\frac{df} {dx}=\frac{d} {dx}f(x)=Df(x)=D_{x}f(x)</math> 등이 있다. 도함수를 한번 더 미분한 것을 [[이계도함수]]라고 한다. 이계도함수의 표현법에는 <math>y''=f''(x)=\frac {d}{dx}(\frac {dy}{dx})=\frac{d^2 y}{dx^2}</math> 등이 있다.이계도함수를 또 한번 더 미분한 것을 삼차도함수라고 하고 이것은 <math>y'''=f'''(x)=\frac {d}{dx} \left (\frac {d^2 y}{dx^2} \right )=\frac{d^3 y}{dx^3}</math> 등으로 표현한다. <math> f</math>를 <math>n</math>번 미분한 것은 <math>y^{(n)}=f^{(n)} (x)=\frac{d^n y}{dx^n}</math> 등으로 표현한다.
=== 미분 가능성 ===
함수 <math>f</math>가 <math> a</math>에서 미분 가능하다는 말은 <math>f'(a)</math>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구간<math>(a,b),(a,\infty), (-\infty,a), (-\infty,\infty)</math>에서 미분가능하다는 말은 구간 내의 모든점에서 미분가능하다는 것이다. 함수 <math> f</math>가 점 <math> a</math>에서 미분 가능하다는 말은 <math> a</math>에서 연속하다는 것이다. 미분 불가능한 경우에는 좌미분계수<math>\left ( m=\lim_{h \to 0^-} \frac {f(x+h)-f(a)} {x} \right ) </math>와 우미분계수<math>\left ( m=\lim_{h \to 0^+} \frac {f(x+h)-f(a)} {x} \right ) </math>값이 다르거나 불연속하거나 수직 접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직접선]]이란 <math>\lim_{x \to a}|f'(x)|=\infty</math>일 때 <math>a</math>에서 수직 접선을 가진다.
=== 미분의 성질 ===
<math>c</math>는 상수이고 <math>f,g</math>는 미분 가능할 때 다음을 만족한다.
* <math>\frac {d}{dx}(c)=0</math>
* <math>\frac{d}{dx}(x^n)=nx^{n-1}</math>
* <math>(cf)'=cf'</math>
* <math>(f+g)'=f'+g'</math>
* <math>(f-g)'=f'-g'</math>
* <math>(fg)'=f'g+g'f</math>
* <math>\left ( \frac{f}{g} \right )'=\frac{gf'-fg'}{g^2}</math>
=== 삼각함수의 미분 ===
<math>\lim_{\theta \to 0} \frac {\sin\theta}{\theta}=1</math>이다. 이것을 이용하여 삼각함수의 미분을 할 수 있다. 삼각함수들의 미분은 다음과 같다.
* <math>(\sin x)'=\cos x</math>
* <math>(\cos x)'=-\sin x</math>
* <math>(\tan x)'=\sec^2x</math>
* <math>(\csc x)'=-\csc x \cot x</math>
* <math>(\sec x)' = \sec x \tan x</math>
* <math>(\cot x)' = -\csc^2x</math>
=== [[연쇄법칙]] ===
<math> g</math>가 <math>x</math>에서 미분가능하고 <math>f</math>가 <math>g(x)</math>에서 미분가능하면 <math>F(x)=f(g(x))</math>는 <math> x</math>에서 미분가능하고 <math>F'(x)=f'(g(x))g'(x)</math>로 표현된다. 이것을 다른방식으로 표현하면 <math>y=f(u)</math>와 <math>u=g(x)</math>가 미분가능한 함수면 <math>\frac{dy}{dx}=\frac{dy}{du} \frac{du}{dx}</math>이다.
=== 음함수 미분법 ===
일반적으로 함수는 <math>y=f(x)</math>로 표현된다. 하지만 <math> x^2+y^2=25</math> 나 <math> x^3+y^3=xy</math>와 같이 표현되는 [[음함수]]도 존재한다. 이런 함수를 미분할 때는 이 함수를 <math> y=f(x)</math>형태로 바꿀 필요 없이 음함수 미분법을 사용하면 된다. 이 방법은 양변을 모두 <math>x</math>에 대하여 미분을 한 뒤, <math> y'</math>에 대한 방정식을 풀면 된다. 예를 들어 <math> x^2+y^2=25</math>는 양변을 <math>x</math>로 미분하면 <math>2x+2yy'=0</math>가 돼서 <math>y'=-\frac{x}{y}</math>가 된다.
=== [[지수]], [[로그]] 함수의 미분 ===
지수함수 <math> y=a^x</math>를 정의를 이용해 미분하면 <math>y'=a^x \lim_{h \to 0} \frac{a^h-1}{h}</math>이다. 이때 <math> f'(0)=\lim_{h \to 0} \frac{a^h-1}{h}</math>이므로 <math> f'(x)=f'(0)\,a^x</math>이다. 이때 <math> f'(0)=1</math>이 되는 <math> a</math>를 <math>e</math>라고 한다. 즉, <math> \lim_{h \to 0} \frac{e^h-1}{h}=1</math>이고 <math> (e^x)'=e^x</math>이다.<math>a^y=x</math>일 때, <math>\log_a{x}=y</math>라고 정의한다. 이때 <math>a</math>를 밑이라고 하는데 밑이 <math>e</math> 인 로그를 [[자연로그]]라고하고 <math>\ln</math>라고 표현한다. 즉, <math>\log_e{x}=\ln x</math>이다. <math> y=\ln x</math>를 <math>e^y=x</math>임을 이용하여 미분하면 <math> (\ln x)'=\frac{1}{x}</math>임을 알 수 있다. 이 자연로그의 미분을 이용하여 일반적인 밑을 가지는 지수, 로그 함수의 미분을 구하면 다음과 같다.
* <math>(a^x)'=a^x\ln a</math>
* <math>(\log_a{x})'=\frac{1}{x\ln a}</math>
== 적분 ==
===[[부정적분|역도함수(부정적분)]]<ref name="a">James Stewart Calculus 6e, 275쪽</ref>===
모든 <math>x\in I</math>에 대하여 <math>F'(x)=f(x)</math>일 때 [[함수]] <math>F</math>를 [[구간]] <math>I</math>에서의 <math>f</math>의 [[부정적분|역도함수(부정적분)]]라고 한다.
여기서 F가 f의 부정적분이면 일반적으로 F+C도 f의 부정적분이다. 여기서 C는 임의의 상수이다.
===[[정적분]]<ref name="b">James Stewart Calculus 6e, 300쪽</ref>===
[[함수]] f가 [[구간]] [a,b]에서 정의된 [[연속]][[함수]] 일 때, [[구간]] [a,b]를 동일한 n개의 폭 <math>\Delta_x=\frac {b-a} {n} </math>으로 분할하여, 이 n개의 부분구간들의 끝점들을
<math>x_0,x_1,...x_n</math>이라하자. <math>[x_{i-1},x_i]</math>에 속하도록 표본점 <math>{x_i}^*</math>을 잡자. 이 때 <math>\lim_{n \to \infty} \sum_{k=1}^{n}f(x_k) \Delta x</math>가 존재하면, 그 값을 a로부터 b까지의 f의 [[정적분]]<math>\int_{a}^{b} f(x)dx</math>이라고 하고, [[함수]] f는 [[구간]] [a,b]에서 [[적분]] 가능하다고 한다. 이 때 표본점은 각구간의 끝점 또는 중점으로 잡는다.
일반적으로 함수f가 구간 [a,b]에서 유한개의 불연속점을 가지면 f가 구간[a,b]에서 적분 가능하다.
===정적분의 성질<ref name="c">James Stewart Calculus 6e, 307쪽~309</ref>===
1. <math>\int_{a}^{b} f(x)\,dx=-\int_{b}^{a} f(x)\,dx</math><br />2. <math>\int_{a}^{b} cf(x)\,dx=c\int_{a}^{b} f(x)\,dx</math> (단, <math>c</math>는 임의의 실수)<br />3. <math>\int_{a}^{b} (f(x)+g(x))\,dx=\int_{a}^{b} f(x)\,dx+\int_{a}^{b} g(x)\,dx</math><br />4. <math>\int_{a}^{c} f(x)\,dx+\int_{c}^{b} f(x)\,dx=\int_{a}^{b} f(x)\,dx</math>
<br />5. <math>a \leq x \leq b</math>인 <math>x</math>에 대해서 <math>f(x)\geq0</math>이면 <math>\int_{a}^{b} f(x)\,dx\geq0</math>이다.
<br />6. <math>a \leq x \leq b</math>인 <math>x</math>에 대해서 <math>f(x)\geq g(x)</math>이면 <math>\int_{a}^{b} f(x)\,dx \geq \int_{a}^{b} g(x)\,dx</math>이다.
<br />7. <math>a \leq x \leq b</math>인 <math>x</math>에 대해서 <math>m \leq f(x) \leq M</math>이면 <math>m(b-a) \leq \int_{a}^{b} f(x)\,dx \leq M(b-a)</math>이다.
<br />8. <math>a\leq b</math>이면 <math> \left \vert \, \int_{a}^{b} f(x)dx \, \right \vert \leq \int_{a}^{b} \ |f(x)|dx </math>
===미적분학의 기본정리<ref name="d">James Stewart Calculus 6e, 315~320쪽</ref>===
함수 <math>f</math>가 구간 <math>[\,a,\,b\,]</math>에서 연속이면, <math>g(x)=\int_{a}^{x} f(t)dt</math>, <math>a \leq x \leq b</math>로 정의된 함수 <math>g</math>는 <math>[\,a,\,b\,]</math>에서 연속이고 <math>(\,a,\,b\,)</math>에서 미분가능하며, <math>g'(x)=f(x)</math>이다.
:{| class="toccolours collapsible collapsed" width="90%" style="text-align:left"
!증명:
|-
|<math>x</math>와 <math>x+h</math>가 <math>(\,a,\,b\,)</math>안에 있다고 하면
<math display="block">\begin{alignat}{2} g(x+h)-g(x)&=\int_{a}^{x+h}\,f(t)\,dt-\int_{a}^{x}\,f(t)\,dt\\ &= \int_{x}^{x+h} f(t)dt \end{alignat}
</math><br />따라서 <math>h \neq 0</math>인 <math>h</math>에 대해
<math display="block">\frac {g(x+h)-g(x)} {h} = \frac{1}{h} \int_{x}{x+h}\,f(t)\,dt \,\,\, \cdots\cdots \,\,\, (a)</math>이다.
이제 <math>h > 0</math>임을 가정하자. 극값정리(<math>\text{Extreme Value Theory}</math>에 의해) <math>f(u)=m</math>이고 <math>f(v)=M</math>인 <math>u,\,v</math>가 <math>[\,x,\,x+h\,]</math>안에 존재한다.
(<math>m,\,M</math>은 각각 함수 <math>f</math>의 <math>[\,x,\,x+h\,]</math>에서의 최솟값과 최댓값) 따라서<math display="block">mh \leq\int_{x}^{x+h} \,f(t)dt \leq Mh</math>이다.
<br /><math>(a)</math>에 의해 <math display="block">f(u) \leq \frac {g(x+h)-g(x)} {h} \leq f(v)</math>이고, <math>(f(u)=m,\,f(v)=M)</math>, <math>h<0</math>인 경우도 비슷한 방법으로 이 부등식을 얻을 수 있다.<br /><math>h</math>가 <math>0</math>에 가까워질때, <math>u,\,v</math>가 <math>[\,x,\,x+h\,]</math>안에 있으므로 <math>u,\,v</math>는 <math>x</math>에 근접하게 된다. 따라서<math display="block">\lim_{h \to 0}f(u)=\lim_{h \to 0}f(v)=f(x)</math>이다. 그러므로 압축정리에 의해서(<math>\text{Squeeze Theorem}</math>)<math display="block">\lim_{h \to 0} \frac{g(x+h)-g(x)}{h}=f(x)</math>이다.
|}
함수 <math>f</math>가 닫힌 구간 <math>[\,a,\,b\,]</math>에서 연속이면, <math>\int_{a}^{b} f(x)dx=F(b)-F(a)</math>이다.
<br />여기에서 <math>F</math>는 <math>f</math>의 임의의 역도함수, 즉 <math>F'=f</math>이다.
:{| class="toccolours collapsible collapsed" width="90%" style="text-align:left"
!증명:
|-
|<math>g(x)=\int_{a}^{x}f(t)dt</math>로 놓으면 위의 기본정리에 의해 <math>g'(x)=f(x)</math>이다.<br /><math>f</math>의 임의의 도함수 <math>F</math>는 <math>g</math>와 상수만큼 차이가 있다. <math>F(x)=g(x)+C</math> 여기서 C는 상수라고 하자.
<br />따라서 <math display="block">\begin{align}F(b)-F(a)&=[g(b)+C]-[g(a)+c]\\&=g(b)-g(a)=g(b)\\&=\int_{a}^{b}f(t)dt\end{align}</math>이다.
|}
===치환 법칙<ref name="e">James Stewart Calculus 6e, 333~336쪽</ref>===
함수 <math>u=g(x)</math>가 미분 가능하고, 그 치역이 구간 I이며 함수 f가 구간 I에서 연속이면,
<br /><math>\int_{}^{}f(g(x))g'(x)dx=\int_{}^{}f(u)du</math>이다.
<br />
<br />정적분에 대해 변형시키면,
<br />함수 g'이 [a,b]에서 연속이고, 함수 f가 <math>u=g(x)</math>의 치역에서 연속이면,
<br /><math>\int_{a}^{b}f(g(x))g'(x)dx=\int_{g(a)}^{g(b)}f(u)du</math>이다.
===부분적분법<ref name="g">James Stewart Calculus 6e, 489~492쪽</ref>===
{{본문|부분적분}}
두 미분가능한 연속 함수 <math>f(x)</math>와 <math>g(x)</math>에 대해서, 적분 구간이 <math>[a, b]</math> 일 때, 부분적분법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math>\int_a^b f(x) g'(x)\,dx = \left[ f(x) g(x) \right]_{a}^{b} - \int_a^b f'(x) g(x)\,dx</math>
이때 우변의 첫째 항은 다음을 나타낸다.
:<math>\left[f(x) g(x) \right]_{a}^{b} = f(b) g(b) - f(a) g(a).</math>
이 법칙은 다음과 같이 미분의 곱셈 법칙과 [[미적분학의 기본정리]]로 증명할 수 있다.
:{|
|-
|<math> f(b)g(b) - f(a)g(a)\, </math>
|<math>= \int_a^b \frac{d}{dx} ( f(x) g(x) ) \, dx </math>
|-
|
|<math>=\int_a^b f'(x) g(x) \, dx + \int_a^b f(x) g'(x) \, dx </math>
|}
부정적분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다.
:<math>\int f(x) g'(x)\,dx = f(x) g(x) - \int g(x) f'(x)\,dx</math>
또는, 짧게 줄여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한다.
:<math>\int u\,dv = u v - \int v\,du</math>
여기서, <math>u = f(x),\ v = g(x)</math>이고, <math>du = f'(x) dx,\ dv = g'(x) dx</math>이다.
=== 넓이 ===
[a,b]안의 모든 x에 대하여 f,g가 연속이고, <math>f(x)</math>≥<math>g(x)</math>일 때, 곡선<math>y=f(x)</math>,<math>y=g(x)</math>와 직선 <math>x=a</math>,<math>x=b</math>로 둘러싸인 영역의 넓이 A는
<br /><math>A=\int_{a}^{b}[f(x)-g(x)]dx</math>로 정의된다.
=== 부피 ===
S를 <math>x=a</math>와 <math>x=b</math>에 놓인 입체도형이라 하자. x를 지나고 x축에 수직인 평면 P<sub>x</sub>에 있는 S의 절단면의 넓이가 A(x)이고, A가 연속이라면
S의 부피(V)는
<br /><math>V=\int_{a}^{b}A(x)dx</math>이다.
<br />
<br />회전체의 경우, 위의 방법으로는 부피를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회전체의 부피의 경우, 아래와 같은 방법을 이용한다.
<br />곡선 <math>y=f(x)</math>와 <math>x=a</math>및 <math>x=b</math>로 둘러싸인 영역을 <math>y</math>축을 둘레로 회전시킬 때 생기는 회전체의 부피는 다음과 같다.
<br /> <math>V=\int_{a}^{b}2\pi xf(x)dx</math>
=== 속도와 거리 ===
수직선 위를 움직이는 점 P의 시각 <math>t</math>에서의 속도가 <math>v(t)
</math>이고, 시각 <math>t=a</math>에서의 위치가 <math>x_0</math>일 때, 다음이 성립한다.
# 시각 <math>t</math>에서 점 P의 위치 <math>x</math>는 <math>x=x_0 + \int_{a}^{t} v(t)dt</math>
# 시각 <math>t=a</math>에서 <math>t=b</math>까지 점 P의 위치의 변화량은 <math>\int_{a}^{b} v(t)dt</math>
# 시각 <math>t=a</math>에서 <math>t=b</math>까지 점 P가 움직인 거리 s는 <math>s=\int_{a}^{b} |v(t)|dt</math>
좌표평면 위를 움직이는 점 P의 시각 <math>t</math>에서의 위치 <math>(x,y)</math>가 <math>x=f(t)</math>, <math>y=g(t)</math>일 때, 시각 <math>t=a</math>에서 <math>t=b</math>까지 점 P가 움직인 거리 s는 다음과 같다.
<math>s=\int_{a}^{b} \sqrt{\biggl({dx \over dt}\biggr)^2+\biggl({dy \over dt}\biggr)^2}dt
=\int_{a}^{b} \sqrt{\{f'(t)\}^2+\{g'(t)\}^2}dt</math>
곡선 <math>x=f(t)</math>, <math>y=g(t)</math> <math>(a\leq t \leq b)</math>의 겹치는 부분이 없을 때 길이 <math>l</math>은 다음과 같다.
<math>l=\int_{a}^{b} \sqrt{\biggl({dx \over dt}\biggr)^2+\biggl({dy \over dt}\biggr)^2}dt
=\int_{a}^{b} \sqrt{\{f'(t)\}^2+\{g'(t)\}^2}dt</math>
곡선 <math>y=f(x)</math> <math>(a\leq x \leq b)</math>의 길이 <math>l</math>은 다음과 같다.
<math>l=\int_{a}^{b} \sqrt{1+\{f'(t)\}^2}dt</math>
== 급수 ==
{{본문|급수}}
급수(級數)란 수학에서 수열들의 각 항의 합을 의미한다. 즉, 급수란 여러 수들의 합연산으로 표현된다. 급수의 예로는 아래와 같은 등차수열의 합이 있다.
1 + 2 + 3 + 4 + 5 + ... + 99 + 100
급수에 더해지는 각 항들이 어떤 공식이나 알고리즘에 의해 표현되는 경우도 있다. 난수들로 이루어진 급수도 생각할 수 있다.
급수는 유한 급수와 무한급수로 나눌 수 있다. 유한 급수의 경우 기초적인 대수학의 법칙들만 사용하여도 그 값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무한급수는 그 정확한 합을 구하기 위해서는 해석학의 여러 정리들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등차수열들의 합으로 이루어진 급수의 경우,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math display="block">\sum_{n=0}^k \, (an+b);</math>
[[등비수열]]의 합으로 이루어진 급수의 경우,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math display="block">\sum_{n=0}^k a^{n}.</math>
=== 무한급수 ===
<math display="block">S_n = a_0 + a_1 + a_2 + \cdots + a_n,</math>
무한급수는 위의 <math>S_{n}</math>, 즉 급수의 부분합으로 이루어지는 [[수열의 극한|수열의 극한값]]으로 생각한다. <math>n</math>이 무한대로 갈 때, 그 극한이 유한한 값을 갖는다면 이 급수가 [[수렴급수|수렴]]한다고 한다. 만약 이 값이 무한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급수는 [[발산급수|발산]]한다고 한다.
무한급수의 수렴을 판정하는데는 비교판정법, 적분판정법, 일반항판정법, 멱근판정법, 비율판정법 등이 있다.
=== 멱급수 ===
주어진 수열 <math>\{a\}=(a_{0},\ a_{1},\ a_{2},\ \cdots)</math>와 변수 <math>x</math>에 대해서 <math>a(x)=a_{0}+a_{1}x+a_{2}x^{2}+\cdots</math><br />를 수열 a로부터 얻은 멱급수라고 부른다.
<br /><math>\rho \equiv \lim_{n \to \infty} \ \left \vert \frac {a_{n+1}} {a_n} \right \vert</math>가 존재한다고 하자.
이때, 이 수열의 멱급수는 <math>\ | \,x\, |<\frac {1}{\rho}</math>일 때 수렴한다.
=== 테일러 급수 ===
{{본문|테일러 급수}}
원점 <math>0</math>을 포함하는 구간I에 대해서 정의된 n번 미분가능한 함수 f:I→R 에 대하여<br /><math>T_nf(x) \equiv \sum_{k=0}^{n}\frac{f^{(k)}(0)x^k}{k!}</math>
<br /><math>f</math>의 <math>n</math>차 근사 다항식이라하고,<br /><math>R_nf(x)\equiv f(x)-T_nf(x)</math>
<br />를 <math>n</math>차 테일러 나머지 항이라고 하자.<br />그리고 원점 [[근방]]에서 정의된 무한번 미분 가능한 함수 <math>f(x)</math>에 대하여 [[멱급수]]
<br /><math>Tf(x) \equiv \sum_{n=0}^{\infty}\frac{f^{(n)}(0)x^n}{n!}</math>
<br />를 <math>f</math>의 테일러 급수라고 한다. 테일러 급수가 원래 함수에 수렴할 필요충분조건은
<br /><math>\lim_{n \to \infty}R_nf(x)=0</math>
이다.
== 교육 ==
{{세계화 문단|날짜=2021-01-24|1=대한민국}}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미적분학을 가르치고 있다.
=== 대한민국 ===
{{본문|대한민국의 고등학교 수학 교과목}}
[[대한민국]]에서는 고등학교의 "수학 II" 과목과 "미적분" 과목에서 미적분학을 배운다.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푸리에 급수]]
== 각주 ==
{{각주}}
{{수학 분야}}
{{전거 통제}}
[[분류:적분학]]
[[분류:미적분학| ]]
[[분류:독일의 발명품]]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번역 확장 필요|en|Silviculture}}
{{출처 필요|날짜=2014-09-14}}
'''임학'''(Silviculture)은 우리가 어떻게 산을 가꾸고 산에서 나는 여러 물자들을 경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가에 대해 연구하는 실용학문의 하나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산림에 관해 연구가 시작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가 않는다. 19세기의 [[산업혁명]] 이후 인구의 증가와 도시문명의 발달에 따라 집을 짓고 종이의 대량 생산에 따른 목재 수요의 급격한 증가는 산림이 가진 경제적 가치를 새로운 시각에서 평가하게 되었으며 이와 함께 산림의 보호와 육성은 국가적 관심사로 등장하게 되었다. 20세기에 중엽 이후에는 특히 메마른 도시 문명에서 벗어나 숲과 전원에서 휴양을 하고 여가를 보내고자 하는 도시인들의 관심은 잘 가꾸어진 산림의 또다른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하여 푸른 산을 가꾸는 일을 범국민적 운동으로서 삼고 있다.
이와 밀접한 혹은 산림학의 토대가 되는 분야로는 생물학의 여러 분과, [[생물환경학]], [[동물학]], [[식물학]] 등을 우선으로 하여 [[지리학]], [[지질학]], [[기상학]], [[경영학]], [[재정학]], [[법학]] ([[산림법]]) 등을 손꼽을 수 있겠다.
== 같이 보기 ==
* [[산림법]]
* [[임업]]
* [[숲]]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 {{dmoz|Business/Agriculture_and_Forestry/Forestry}}
{{전거 통제}}
{{토막글|학문}}
[[분류:농학]]
[[분류:벌채]]
[[분류:삼림경영학]]
[[분류:숲]]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파일:Rembrandt Self-portrait (Kenwood).jpg|섬네일|250px|[[렘브란트]]의 ''원이 두 개인 자화상'', c.1665–1669. [[런던]] 켄우드 하우스]]
[[파일:Jan Vermeer - The Art of Painting - Google Art Project.jpg|섬네일|250px|[[1666년]]부터 [[1668년]]까지 캔버스에 유화, 1.3×1.1m, 쿤스트 역사 박물관([[비엔나]], [[오스트리아]])에 의해 제작되었다.]]
'''미술'''(美術)은 공간적 또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로, 공간예술{{.cw}}조형예술 등으로 불린다. 시각적 방법 또는 조형적인 방법으로 사람의 감정이나 뜻을 나타내는 [[예술]]의 한 종류라고 말할 수 있다.
미술이라는 용어는 미(美)를 재현 또는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여러 재주 또는 기예를 뜻한다. 미술은 주로 사용하는 도구와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장르를 나눈다. [[판화]]를 포함한 [[회화]], [[조각]]이 전통적이고, 대표적인 미술의 장르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그 영역이 아니라 한층 넓어져, 물리적인 재료를 특정 장소에 설치하여 [[미술가]]의 뜻을 전하고자 하는 [[설치미술]], [[백남준]] 등 다양한 작가들이 새로운 뉴미디어 매체를 통해 선보이는 [[비디오 아트]], [[마르셀 뒤샹|마르쉘 뒤샹]] 이후 등장한, 개념 자체가 결과물이 되는 [[개념 미술|개념미술]], 특정 풍경이나 장소를 대상으로 하는 장소특정적 [[대지미술]] 등이 새로이 이 영역에 추가되었다. 이 외에도 새로운 매체와 소재가 발견됨에 따라 미술의 영역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미술이란 무엇이냐는 것을 알기 위하여 기초 지식인 여러 가지 사항이 다음에 이야기 되어야만 된다. 기초 지식이란 미술 작품의 성립, 표현과 환경, 표현과 사람, 표현과 연령, 표현의 태도·양식 등에 걸친 것이다.
== 역사 ==
{{본문|미술의 역사}}
== 개요 ==
=== 미술이란 용어에 대해서 ===
사람의 감정이나 뜻을 나타내는 것을 미술이라는 말로 표현했으나 용어 자체는 그때그때마다 달리 사용되었다. 우선 중국 [[당나라|당]](唐)시대에는 공예(工藝)라고 불렀고, [[명나라|명]]·[[청]](明·淸) 시대에는 서화(書畵)라는 말이 오늘의 미술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도 미술이라는 말이 들어오기까지는 역시 서화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따라서 서예와 그림 외의 미술 즉 [[공예]](工藝)나 [[건축]]이나 [[조각]] 같은 것은 지금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미술이 아니고 단순한 공예품·건축물·조각물에 지나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1960년]] 전후로 해서 서양의 [[미학]] 사상(美學思想)이 들어와 미술의 영토가 확대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1800년대에 서양 사람이 생각해 낸 미술을 둘로 구분, 순수 미술(純粹美術)과 응용 미술(應用美術)로 하여 그림·조각은 순수 미술, 공예·건축은 응용 미술이라고 규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1950년]] 전후해서 미술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자 미술이라는 말이 새로 생긴 미술적 현상을 가리키기에는 너무나 좁고 구식이기에 새로운 용어가 요구되어, 시각 예술(視覺藝術)·공간 예술(空間藝術) 또는 조형 미술(造形美術)과 같은 말이 생기고 사용되게 되었다. 시각 예술이라는 것은 미술이 사람의 시각 작용을 매개로 하는 예술이기에 그렇게 불렀고 공간 예술이라는 것은 미술의 성립이 그 공간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간 예술(時間藝術:음악·문학 등)과 대치되는 예술로 규정되었고, 조형 예술은 미술이 유형적(有形的)인 조형성을 기본 방법으로 하고 있기에 그렇게 불렀다. 이 새로운 용어들은 과학(科學)의 발달과 생활의 변모에 따라 생기는 새로운 미술현상, 예를 들면 사진(寫眞)이라든가 디자인이라든가, 꽃꽂이 같은 것도 아울러 표현할 수 있는 여유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이미 미술이라는 말은 시대적으로나 개념적으로 오늘의 유형 예술의 전부를 가리키기에는 좁은 의미의 내용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미술의 조건 ===
미술의 표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표현을 중심으로 표현 이전의 사상과 표현 이후의 작품이 있어 셋이 올바르게 갖추어져야 된다는 것이다. 가령 [[풍경화]](風景畵)를 그릴 때 늘 자기가 좋다고 보아 온 어느 자연 풍경이 있어 그것을 한번 그려보려는 마음이 우선 있어야 하고, 다음 어떻게 그리겠다는 표현의 방법이 마련되어 구체적으로 [[캔버스]]에다 유채로 그려 풍경화 작품을 남겨 놓아야 된다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표현 이전의 아이디어냐, 그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능력 즉 표현이냐는 것은 늘 예술상의 문제이지만, 모든 예술의 성립이 표현에서 비롯하므로 미술에서도 역시 표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예술이 표현인 것과 같이 미술도 표현이다. 미술 표현에 있어서는 재료도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미술 재료는 미술 표현의 매개체일 뿐더러 그 존립을 좌우하는 중요한 존재이다. 그러기에 미술 발전의 밑바닥에는 늘 재료의 발달이 뒤따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술은 본질적인 미학적 근거도 갖고 있으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적응하는 시대성도 또한 중요하다. 모든 시대를 통하여 미술은 리얼리티의 구현이라는 것은 그 시대의 모든 문화적 성과를 종합해서 미술이 성립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얼른 생각하기에는 미술은 자연 과학과 별개의 것이라고 하지만 어느 시대이건 가장 위대한 미술은 그 시대의 미술과 자연 과학의 일치에서 오는 종합적인 존재라는 것을 미술사(美術史)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 미술 작품의 성립 ==
=== 표현의 주제 ===
인간의 행동에는 그 행동을 일으키는 어떤 동인(動因)이 있어야만 한다. 그것은 미적 조형 활동(美的造形活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화가가 풍경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감동해서 그 감동을 캔버스 위에 표현한다고 하는 것도 동인일 것이며, 또한 건축가가 건축 의뢰를 받고 그 설계를 시작한다는 것도 하나의 동인일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작가에게 있어서 극히 행복한 경우일지 모르나 그것만이 순수한 동인으로서 예술적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것이라고 조급하게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작가가 그 주제에 대해서 얼마만큼의 정열을 쏟을 수 있었는가, 또한 표현의 기술을 통해서 얼마만큼 자신의 미적 감각을 발휘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주문을 받은 것이든 자발적인 것이든, 예술상의 타락은 작가가 자신의 예술적 양심에 반해서 대중이나 주문자나 혹은 비평가 등에 영합하려고 표현을 속이는 것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렘브란트는 단체 초상화를 평판적(平板的)인 기념 촬영으로 만들지 않았다. 야경(夜警)은 그의 예술적 의도에서 인물들을 광선의 교착 속에 두어 생활상의 분위기를 살렸는데, 이것은 주문자의 불평을 샀으나 지금은 네덜란드의 국보가 되어 있다.
=== 이미지 ===
우선 표현의 주제가 결정되면 작가는 그것에 대해 여러 가지 이미지를 갖는다. 이미지라는 말은 심상(心像), 즉 기억이나 상상에 의해서 마음에 떠오르는 상(像)을 뜻하는 것으로서 이미지가 풍부하면 표현도 풍부한 것이 되어, 조형(造形) 표현으로서는 극히 중요한 것이다. 다음으로 그 이미지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를 조사해 보거나 몇 가지 시작(試作)을 만들어 본다. 이 단계에 있어서 아이디어(idea)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이디어라는 말은 고안이라든가 착상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작가의 창조력과 아이디어에 의해서 이미지를 구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안이 나온다. 이 구체적인 안을 드림 디자인(dream design)이라고 한다.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자연 과학이나 물리학에 관한 연구를 했는데, 그 맹렬한 창조 정신에 의해서 건축 설계를 하거나 비행기의 고안을 하거나 기타 여러 가지 기계를 고안했다. 우선 몇 가지 안이 나오면 그 가운데 무엇이 가장 좋은가가 결정되어 설계도라든가 밑그림이 만들어진다. 디자이너나 건축 설계사의 일은 대체적으로 거기까지로서 다음은 시공자에게 넘어가는데 인쇄되는 것은 인쇄상의, 또 건축가는 시공의 재료나 시공상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 충분한 지식이 필요하며, 또한 시행 중에도 계획대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가 어떤가 감독된다. 17세기의 화가 루벤스는 밀리는 주문의 뒤를 댈 수가 없어서 많은 제자들을 두어, 자신의 데생 위에 분담하여 그리도록 하고 최후로 자기 자신이 손을 대서 완성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방대한 시스티나 성당의 대벽화를 거의 혼자서 목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까지 그려댔다. 이처럼 건축이나 대량 생산되는 공예품 따위의 특별한 것 이외는 대체적으로 마지막까지 작자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왜냐하면 그림 같은 것은 그림물감을 칠하는 방법이나 붓 하나하나에 작자의 마음이 담기고 제작 의도가 충분히 살려져서 작품과 작자 사이에 한 치의 간격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마음속에 그려진 이미지가 이렇게 해서 하나의 창작품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많은 고생이 거듭되고 또한 제작에의 정열이 지속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 에스프리 ===
산 피에트로 성당의 조영은 1세기 반에 걸쳐 전개된 대사업으로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상징이었다. 브라만테, 라파엘로, 페루치에 이어 72세의 미켈란젤로가 그 설계를 인계받았으며, 그가 죽은 후 대궁륭이 완성되고 베르니니가 내진의 대천개와 광장을 설계해서 완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형성된 미술 작품이 무엇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일까. 그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작품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작자의 의도나 작품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들고 있는 작자의 마음이 보는 사람의 마음에 통하기 때문이리라. 에스프리라는 말은 그 표현에 작자의 신경이 통하고 있어 개성적(個性的)이라는 것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시혼(詩魂)이라는 말로 표현해도 좋고 혹은 작품 속에 숨겨져 있는 인간성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A라는 어느 한 인간을 생각해 보자. A에게는 머리도 있고 몸뚱이도 있으며 손발도 있다. 그것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도 볼 수 있으며 그것들이 없어지면 A도 물론 소멸해 버리긴 한다. 그러나 A는 단지 머리와 몸뚱이·손발들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있는 무엇인가가 머리나 몸뚱이나 손발을 움직이게 해서 A다운 행동을 시킴으로써 머리나 몸뚱이나 손발을 특징지어 A라는 사람의 인상을 그와 접촉하는 사람에게 부여해 주는 것이다. 인간이 머리나 몸뚱이나 손발을 갖고 있는 것처럼 조형작품(造形作品)도 제각기 모양을 갖고 빛깔을 가지며, 재료를 갖고 또한 제각기 구성을 갖는다. 그것들은 눈으로 볼 수 있고 작품을 밖에서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의 양상을 특징지어주고 작품을 안에서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시대에, 어떤 지방에 살고 있던 어느 인간(작자)의 개성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작자의 인격이라고 해도 좋고, 또 인간성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작품은 그 가운데 작자의 피가 맥박치며 흐르고 있어서 모양이나 색깔 따위를 특징지어 주고 있는 생명체이다. 따라서 조형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작품은 안에서 지탱하고 있는 작자 자신의 인간성을 이해함과 동시에 작품을 밖에서 지탱하고 있는 조형성(造形性)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 표현과 환경 ==
=== 표현과 환경 ===
인간은 자신의 의지만으로써는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좋거나 싫거나 관계 없이 자기를 둘러싼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조형표현이라고 하는 인간의 행위도 유형 무형의 환경에서 영향을 받아 여러 가지 작품으로 이루어져 생겨나온 것이다. 표현에 영향을 미친 환경은 우선 시대의 차이이며, 다음에 작품을 낳은 풍토(風土)의 차이라 할 수 있다.
=== 표현과 시대 ===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인류 문화의 발달 정도가 달라지고, 정치나 종교나 생활양식 등이 달라지게 되므로 그들이 조형표현에도 영향을 끼쳐서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다른 조형이 생겨나게 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인류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그 시대와 미술이 어떻게 관계해서 변화하였는지의 개략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다.
인류 최초의 회화(繪畵) 유품은 지금으로부터 약 2만년 전의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라고 하는데 아직 농경의 기술을 모르고 동굴 속에서 살면서 수렵으로 생활하던 인류는 손쉬운 재료를 사용하여 동굴 벽에, 마치 어린이가 돌이나 나뭇조각을 가지고 지면(地面)이나 벽에 낙서를 하듯이 자기들 생활에 가장 가까운 동물의 가지가지 모습을 그렸을 것이다. 후세 사람들처럼 사실적(寫實的)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표현은 동물을 사랑하기도 하고 동물을 두려워하기도 하여, 동물의 생태나 습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기억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표현하였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원시적인 조형은 매우 솔직한 표현으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 강한 것이 무엇보다도 먼저 강조되었고 어린이의 표현처럼 심리적인 밸런스가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지나치다고 생각되리만큼 장식이 많은 것은 인간이 가진 장식본능의 발로이기도 하겠다.
이윽고 농경이 시작됨에 따라 살기 위한 집이 세워지게 되자 곡물을 저장하기 위한 옹기그릇 따위가 만들어지게 되어 여러 가지 조형활동이 성하게 된다. 집들이 모여서 마을이 생기고, 마을이 커지면 마을이 나뉘어 민족의 이동이 일어나고, 또한 지구의 지배자가 나와 나라와 통치자가 생긴다. 그리되면 풍토나 산물이나 또는 왕의 지배 면적의 대소 등에 따라서 문화의 발달에도 지속(遲速)의 차가 생겨 조형 활동에도 다양성을 띠게 된다.
가령 이집트왕은 태양의 아들(파라오)이라 불렸듯이, 산·강·새 따위 자연물이나 자연현상이 신격화되어, 왕이나 귀족의 궁전이나 분묘(墳墓)가 중심이 된 여러 가지 조형활동이 이룩된다. 이집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믿어서 왕이 죽으면 시체를 미라로 만들어 아름답게 장식된 관(棺)에 넣고, 분묘 벽에는 왕 생전의 공적을 표시하는 그림이 그려졌고, 왕의 상(像)을 문앞에 세웠으며, 실내에는 왕의 일용품이 놓였고 종자(從者)의 상 등이 만들어졌다. 자연신의 신앙은 마침내 신화(神話)를 낳았고 전설이나 신화가 사람들의 생활감정까지도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스에서는 우수한 대리석의 산출과 그 민족이 지닌 고유한 성이라 할 자유와 미를 사랑하는 심정에서, 신(神)을 인간이 가장 이상(理想)으로 하는 아름다운 형상으로 표현함으로써 진(眞)과 미가 일치되어 여러 가지 학문이 발전하였으며, 먼 후세까지의 규범이 될 만한 아름다운 조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자연신을 대신하여 그리스도교나 불교 등의 종교가 생기자, 이윽고 그들 종교를 중심으로 한 조형미술이 발달한다. 우상 숭배를 부정하는 회교에서는 여기저기에 특징 있는 교회를 세워, 그것을 이른바 아라비아 무늬로 장식하였으나 그림이나 조각은 그곳에 놓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는 교회의 건조와 함께 그리스도나 성모, 또는 사도들에 관한 많은 조각(그림)이 만들어졌다. 또한 비잔틴 사원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창문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붙여졌다. 종교개혁과 함께 일어난 르네상스는 유럽 미술의 가장 화려한 황금시대의 한 시기를 만들어 내었다.
인도에서 일어난 불교는 각지에 불교미술을 남기면서 인도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래되었다. 종교에 의하여 발달한 조형미술은 각지의 왕조나 권역자의 위엄을 나타내는 듯한 미술로 발전하거나, 또는 네덜란드 등과 같이 서민생활이나 생활주변의 자연으로 눈을 돌리게 하여 점차 근대화(近代化)가 이루어졌다. 유럽에서는 왕·왕자·왕비·공주 등의 초상(肖像)이 걸리거나 하였고, 또한 18세기가 되면 바티칸 궁전에는 장식 과잉이라고도 생각될 그러한 가구 등이 놓였다. 19세기로 접어들어 과학이 장족의 진보를 보이게 되자 조형미술도 급속하게 근대화로의 징조를 보인다. 빛의 과학적인 리얼리즘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상파(印象派)에서 후기인상파로, 더욱이 파리파(派)에 이르러 더욱 더 표현은 개성적인 성격이 짙어지고, 또한 표현을 위한 데포르메(變形)가 행해진다. 그리고 종래의 종교나 문학적인 정조(情操)에 예속된 느낌이 있었던 조형활동은 그 조형성이 존중되어 추상화가 촉진되었다. 이와 같이 시대와 더불어 조형미술도 변천해 왔으나 '역사는 반복된다'는 속담처럼, 그 진전 도상에서 이따금 과거로의 복귀(復歸)현상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것 그대로는 아니고, 새로운 시대정신에 의하여 순화(醇化)된 새로운 것의 탄생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미술은 전통의 계승과 함께 항상 새로운 것으로의 창조를 계속한다.
=== 풍토와 표현 ===
시대의 진전에 따라 표현의 양상이 다르듯이, 기후나 산물이나 민족이나 종교나 또는 생활양식 등이 다른 풍토의 차이에 의해서도 표현의 재료나 방법이 달라지게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 한 예로서 유럽과 한국을 비교하여 보자. 우선 유럽은 대륙의 일부로서 공기는 건조하고 투명하며, 그리스나 이탈리아 등에서는 양질의 대리석 따위가 산출되고 그리스도교를 신봉하였다. 이들의 영향을 받았음인지 서양인의 사물에 대한 사고방식은 합리적이어서, 사물을 대함에 계획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짙다. 이에 비하여 한국은 대륙에 이어진 반도 국가로서 기후가 온화하고 자연환경이 아름답다. 이러한 자연환경 때문인지 한국 사람은 평화를 사랑하고 자연을 존중하게 되었다. 고려자기나 조선백자는 한국의 풍토와 한국의 기호(嗜好)를 가장 잘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회화표현으로서는 유화(油畵)와 수묵화(水墨畵)의 차이를 들 수 있겠다. 유화의 도구는 즉흥적으로 그리기보다는 견고하게 캔버스 위에 그림물감을 덧칠해 나가는 데 적합한 재료이고, 또한 사실적인 표현에 적합한 재료이다. 즉 눈에 보이는 대로의 형상과 빛깔을 표현할 수도 있고, 또한 대상의 재질감(材質感)을 그림물감의 채색 방법의 차이에 따라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계획적으로 작업을 진행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반하여 수묵화는 심상적(心想的)인 풍경이나 인물을 오히려 즉흥적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그래서 우선 빛깔이 부정된다. 부정된다고는 하지만 먹의 농담(濃淡)에 의하여 빛깔의 느낌을 낼 수는 있는데, 묵색(墨色)이 중시되는 것은 현실의 빛깔과는 차원이 다른 빛깔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명암(明暗)·음영(陰影)에 의한 양감(量感)의 표현을 부정한다. 묘선(描線)이나 먹에 의하여 두께나 무게의 느낌을 내려고 한다.
=== 표현의 교류 ===
표현은 풍토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데 또한 생각지도 않았던 상사(相似)를 다른 풍토의 조형 속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 이것은 민족의 이동이나 민족간의 문화교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대 역사에 있어서 문화상의 커다란 변혁의 하나는 중국 남북조로부터의 불교 전래였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교의(敎義)만으로서의 전래가 아니라 철학에서, 문학에서, 그리고 건축을 비롯한 모든 조형문화의 전래이기도 하였다. 당시의 국제 국가였던 당(唐)나라는 조형미술에서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인도와의 문화교류가 이루어졌고, 또한 인도의 간다라 불상은 그리스·로마 조각의 영향을 받아서 극히 그리스식(式)이었다. 실크로드는 동서문화를 연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고, 중앙 아시아의 여러 가지 집기(什器)들이 고대한국에도 전래되어, 이것들이 당시 한국의 조형활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짐작할 만하다. 또한 20세기 초의 유럽 화가들은 동양회화에 흥미를 느꼈고 고갱은 색면(色面)으로써 대상을 파악하여 동양화가 특징으로 하는 그림물감의 평면도(平面塗)를 시도했다. 또한 선묘(線描)의 아름다움은 마티스 등의 그림에서도 살려져 있으며 1950년대에 세계를 휩쓴 앵포르멜의 회화기법도 동양화의 몰골법(沒骨法)과 깊은 유대를 가졌다. 교통기관이나 보도기관의 발달에 따라 문화교류는 더욱 왕성하게 되어 조형표현도 구역의 차이를 줄였다고는 하나 결국 그들이 지역의 전통 속에 흡수 융화되어 항상 새로운 문화가 계속하여 생겨나게 된다.
== 표현과 사람 ==
=== 표현과 개성 ===
아이들이 친구들의 얼굴을 그리면 그 작품은 친구의 얼굴을 닮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이상하게도 본인의 얼굴과도 닮은 데가 있다. 이와 같이 아이들 작품에는 남녀의 성별, 체격이 큰가 작은가, 강한가 약한가 등의 차이나, 마음이 대담한가 약한가, 또는 침착한가 거친가 하는 따위의 기질의 차이에서 지능의 정도 등이 화면에 그려지는 물체의 크기, 선(線)의 굵기, 또는 강약, 형상을 잡는 방법, 사용하는 빛깔, 또는 붓의 사용 방법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어른, 더군다나 그것이 전문가가 되면 여러 가지 경험이나 수업방법, 특히 본인의 의지 등에 따라서 갖가지 보상작용(補償作用)이 생겨, 어린이의 경우만큼 단적으로 드러나는 일은 없으나 성격이나 경험의 차이가 작품상에 나타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표현은 개성적으로 되고 또한 창조적으로 될 수 있다고 하겠다. 각인각색(各人各色)이란 말이 있는데 참으로 예술적 작품은 각인각색이다. 이 원인은 모든 사람이 다 그 성장과정이 다르고, 가지고 태어난 기질이 다르며, 지도자가 다르고, 이때까지의 경험이 다르며……요컨대 '사람' 그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같은 시대의 같은 지방에서 살던, 그리고 가능하다면 같은 종류의 작품을 비교하여 보면 잘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선 르네상스 최성기(最盛期)의 3인의 대표적인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고찰하여 보자. 다 빈치는 구식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수학이나 기타 학문을 즐기는 한편, 음악에 뛰어나고 그림그리기를 좋아하여 그의 신통한 재간을 발휘하였는데, 15세기풍의 사실주의를 발전시켜 명암(明暗)에 의한 입체감(立體感)과 공간의 표현에 성공하였고, 나아가서 그의 회화론에서 '훌륭한 화가는 두개의 주요 사물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사람과 그리고 그 혼(魂)의 의향(意向)이다'라고 말하였듯이 대상의 정신내용의 표출에까지 발전하였다. 그러나 자연의 이법(理法)을 추구하여 그 속에 숨겨진 참에 대한 추구가 <모나리자>에도, <암굴(岩窟)의 성모>에도 드러나 있다. 미켈란젤로도 조각가·화가·건축가·해부학자이자 동시에 시인이기도 하였으며, 이 점에서 다 빈치와 마찬가지로 르네상스가 요구하는 '초인(超人)'이었으나, 다 빈치가 속에 있는 진실을 탐구하려 한 데 반해서, 미켈란젤로는 건강하고 바위와 같이 굳게, 하늘과 같이 넓게, 분방(奔放)하면서도 사려깊이 르네상스를 연소시켜 불꽃을 드높였다. 그러한 정열이 29세로 <다비드>를 만든 뛰어난 조형 능력과 서로 어울려 시스티나 성당에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높은 비계를 걸어 놓고, 그곳에서 짐승처럼 돌아다니면서, 6년이 걸려서 저 대천장화(大天障畵)를 그리게 했다. 라파엘로는 다 빈치와 같은 발명적인 창조정신도, 그리고 미켈란젤로와 같은 초인적인 조형적 에너지도 갖지 않았으나, 그는 각 유파의 특질을 교묘하게 흡수하여, 멋진 조화 속에서 그것들을 통일하고 빼어난 기술과 어울려 부드럽고 아름다운 많은 성모상을 남기고 요절하였다.
=== 표현과 연령 ===
[[파일:Rembrandt Harmensz. van Rijn 144.jpg|150px|섬네일|렘브란트 자화상 1632년작. 이때 이미 렘브란트는 초상화가로서 성공했다.|왼쪽]]
표현이 작자의 경험이나 성격에 따라 개인차가 있다고 하는 것은, 동시에 개인에게 있어서도 연령에 따라 그 표현이 달라진다고 하겠다. 표현과 개인의 연령과의 관계는 지극히 개인차가 많아서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으나 대체적인 경향으로서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노년기는 이른바 원숙한 시기로서 거기에서는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기 자신의 취향을 제마음대로 발휘하는 시대이다. 개중에는 고령이 된 다음 더욱더 진가(眞價)를 발휘하는 사람도 있고, 또는 매너리즘에 빠져 버리는 사람도 있다. [[렘브란트]]는 청년기에서 만년기에 걸쳐 약 백 점에 가까운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데, 청년기·장년기의 표현의 차이가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알아보자.
[[파일:Rembrandt Harmensz. van Rijn 135.jpg|150px|섬네일|렘브란트 자화상 1669년작, 사망한 해이지만 다른 자화상에 나타난 그의 모습보다 젊어보인다.]]
렘브란트의 27세∼28세의 작품에서는 초상화가로서 호평을 받아 우쭐거리는 자세가 몸가짐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아직도 렘브란트의 특질을 충분하게는 발휘하고 있지 않다. 그의 57세∼58세 작품에서는 인생에 대한 체관(諦觀)이 지극히 사람이 좋은, 그리고 보는 견지에 따라서는 대범한 웃음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림물감이 두껍게 칠하여졌고 빛(光)과 빛깔이 완전히 융화되어 작품은 더욱더 심각성과 처절함을 덧붙이고 있다.
== 표현과 연령 ==
=== 표현과 성장 ===
모든 것이 성장하여 나아갈 때 거기에는 몇 개의 단계가 있다시피 당연히 그림을 그리는 힘의 발달에도 대체적인 순서와 단계가 있다. 그것이 그림의 발달단계이다. 이 발달단계 연구자에 따라서 다소의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로웬페르드(미국)의 연구를 기저(基底)로 한 다음의 6단계설이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연대(年代)의 진전에 따라 발달의 진보도 빨라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성의 있는 가정교육, 미술연구소나 아름다운 복제화(複製畵)의 보급,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하는 매스컴의 영향 등이 그 원인이라 생각된다.
# 척서기(擲書期):0세∼2세 반(무의미한 선을 그린다)
# 상징기(象徵期):2세 반∼3세(그리고 난 다음 뜻을 붙인다)
# 전도식기(前圖式期):3세∼5세(비슷하게 그린다)
# 도식기(圖式期):5세∼9세(소위 그림답게 그려진다)
# 사실전기(寫實前期):9세∼14세(형상이나 빛깔이 실물에 가깝게 그려진다)
# 사실기(査實期):14세∼20세(이른바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이상과 같이 나눌 수가 있다.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어떤 단계에 넣어야 좋을지 확실치 않은 것도 있으며, 또한 성격이나 능력의 차이, 환경의 차이 등에 따라서 발달이 반드시 일정하지는 않다. 개중에는 표현이 후퇴하는 그런 어린이조차 나오게 된다. 이러한 특례가 있으나 대체적인 발달의 자태는 역시 비슷한 단계를 밟아간다. 이처럼 어린이의 그림은 심신의 성장과 함께 자라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린이의 작품에는, 어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그러한 예술성은 없다고 생각하여야 된다.
=== 척서기 ===
이 척서기는 유아가 신경이나 근육 에너지의 과잉(過剩)을 자발적으로 소비하려고 하는, 무의식 속에서 나온 팔의 반복 운동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림으로서는 아무 뜻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에 이르기까지의 중요한 과정이다. 이 척서기에도 대체적인 발달 순서가 있다. 우선 처음으로 크레용을 잡은 유아는 점을 찍는다. 종이를 두들기듯이 점을 찍는다. 다음에 볼 수 있는 현상은 손목을 좌우로 흔들어서 그리는 횡선착화(橫線錯畵)이다. 이윽고 종선착화(縱線錯畵)에로 발달하여 간다. 이것은 손의 컨트롤이 팔꿈치까지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되었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팔의 활동이 숙달됨에 따라 선도 뚜렷해지고 마침내 원형착화(圓形錯畵)로 발전하여 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그것이 파상(波狀)과 원형의 혼합으로 되어 더욱 더 복잡하게 되어 간다.
=== 상징기 ===
2세 전후가 되면 그린 형상에 명명(命名)하는 어린이가 생겨난다. 그것이 상징기이다. 어른이 보기엔 단순히 선을 긁적거린 것으로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것을 어린이는 <기찻길> <버스> <멍멍> 따위로 이름을 붙이고 우쭐거리며 자랑스럽게 떠들고 있다. 이는 유아가 운동만으로 느끼고 있던 흥미에 시각적(視覺的)인 것이 곁들여져, 그린 것을 의미화(意味化)하는 단계이다. 단순한 운동적인 것에서 상상적인 것으로 발전했다는 증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는 척서기에 상상성(想像性)의 발달이 합쳐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어른이 성급하게 이 시기 어린이의 표현에서 시각적인 의미를 강제로 끌어 내려고 하거나 형상을 그리도록 강요하거나 하는 것은 잘못이다. 어른은 곁에서 어린이가 그리면서 말을 들어주고 그 표현을 격려하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시기의 그림은 성장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 전도식기 ===
이 시기의 표현은 설명 없이 대충 그것이로구나 하고 인정할 수 있는 그러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요컨대 어린이의 주위에 있는 사람이나 초목·기물 등을 조금씩 지식으로서 파악하여 그것 비슷하게 그려서 표시하게 된다. 표현은 물론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그 대상의 특징을 그려 표시하는 데서 진보가 보인다. 산·태양, 그리고 사람도 일정한 도식(圖式)으로 표시하고, 또는 부분을 그렸을 뿐인데 그 대상 전부를 표시하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상징기와 동일하게 생각되는 경향이 있으나, 상징기는 그려진 것이 무엇인지 거의 이해할 수 없는 데 반해서, 전도식기의 표현은 하여튼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리는 방법으로서는 예를 들면 인간의 경우에 얼굴은 동그라미, 눈은 점, 발은 한 쌍의 선으로 표시한다. 제재(題材)는 인물이 압도적으로 자기 자신과 어머니·아버지·동생 등의 순으로 많이 그려진다. 요컨대 일상 생활에서 자기자신과 관련성이 깊은 것일수록 자주 취급된다고 할 수 있겠다.
=== 도식기 ===
이 시기의 표현은 그림답게 되어 마침내 안정감을 갖추게 된다. 물론 실재(實在) 사물의 관계나 양(量)·형(形)을 베끼는 것은 아니고 기억에 의하여 도식으로 외워 그린다. 영향을 받기도 쉬어 형식에 대한 모방이 많았다. 이 시기의 표현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 뢴트겐 표현 ― 보이지 않았어야 될 부분이 명확히 표현된다. 선생님을 그릴 때 포켓의 지갑이나 지갑 속의 동전까지 그린다.
* 전개표현(展開表現) ― 시점(視點)을 이동시켜 표현한다. 군무(群舞)의 경우, 두세 사람은 서 있으나 다른 사람은 위를 보고 자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된다.
* 기저선(基底線)의 표현 ― 하늘·땅의 경계선을 강하게 표시한다. 하늘과 땅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병렬표현(竝列表現) ― 집·사람·나무·꽃 등을 일부분의 중복도 없이 나란히 그린다. 나열의 표현이다.
* 마음의 표현 ― 예를 들면 복수하는 뜻을 표시하는 경우, 짓궂은 동무를 그림으로 그리고, 그 위를 힘껏 개칠하여 문대 버리는 따위이다. 그 밖에 반항의 마음, 원망의 마음, 질투심 등을 솔직하게 표시한다. 이같이 이 시기는 조형표현이 크게 성장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 사실전기 ===
자유롭고 활발하게 그리면서 표시하여 온 과거의 연대와 비교하면 이 시기는 그리는 방법이 세밀하게 되어 한층 더 한 장의 그림 제작에 시간이 걸린다. 이것은 이 연대가 동료의식이 싹트는 시기로서 비판적·객관적으로 사물을 보게 되기 때문에 공간관계라든가 사물의 형상·빛깔 등을 점점 실물에 가깝게 그리려고 하는 데에 기인한다. 따라서 이것이 원인이 되어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데 실망을 느껴서 그림 그리는 것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아이가 적지 않다. 반면으로, 어른들의 흉내가 아니라 어린이다운 연구에서 묘미 있는 아동화를 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 사실기 ===
사실기에 이르기까지에는 대상을 보면서도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마음내키는 대로 그리고 있었으나, 14세쯤 되면 대상을 관찰하고 그것과 비슷하게 그리려고 하는 욕구가 강해진다. 그것은 이성(理性)의 발달에 의하여 객관적으로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形)이나 색채는 대상에 충실하게 표현된다. 그런데 지나치면 개념적·형식적인 그림을 그려 버리고, 더욱이 창조적인 표현이 차단되어 그림을 그리는 데 흥미를 잃는 자가 더욱 많아진다. 이것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인간으로서 급격한 발전을 이룩하는 데 반해서 그림을 그리는 힘이 그에 뒤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각하였던 대로 느꼈던 대로의 표현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만큼 이 시기를 어떻게 타개할 것이냐가 문제이다.
=== 유아화와 아동화 ===
연령상으로나 작품상으로 확실하게 구분할 수는 없다. 대개 연령적으로는 생후 1년 내지 1년 반에서 12세에 이르기까지의 어린이가 그린 그림을 아동화라 부르고 있다. 또한 15세까지의 중학생의 그림도 포함시켜 아동화라고 할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생각하는 방식으로서는 6세까지의 그림을 유아화, 12세까지의 그림을 아동화로 구분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작품으로 그것을 구분하기는 거의 곤란하다. 그런데 유아의 그림은 성장의 기록이라 생각하는 게 좋다. 이 사실은 전술한 바 발전단계, 더욱이 착화기가 그를 가장 현저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동화도 본질적으로 이와 다를 바 없다. 역시 생활의 기록이며 자기 주장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유아화나 아동화를 화가가 그린 예술작품과 같은 견지에서 본다는 것은 잘못이다. 어린이가 그림을 그리는 일과 어른이 그림을 그리는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 청년의 미술 ===
대학생·고교생은 물론 중학교 2∼3년생의 그림도 광의(廣義)로는 청년의 미술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회화에는 예술적인 가치가 없어서는 안 된다. 예술은 미의 독창(獨創)이다. 그러므로 예술작품은 남이 이미 한 것, 써서 헌 것이 되어 버린 것의 재현(再現)을 기피한다. 백합꽃을 그린 그림이 있다고 하자. 그것이 예술작품이기 위해서는 일상 우리들이 보고 있는 백합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신선한 미가 있어야 된다. 과연 백합에는 이러한 아름다움도 있었구나 하는,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빠뜨리고 보지 못하였던 미를 알아차리는 것과 같은, 그러한 것의 발견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색채에서, 구성에서, 기법에 있어서, 그들 전체에 관계되어 있는 심정(心情)에 있어서 '싱싱하고 신선한 것'이 요구된다. '싱싱하고 신선한 것'은 그 작품의 표현이 지금까지 본 일이 없으며, 또한 보는 사람에게 쾌감을 줄 수 있는 그러한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본 일이 없다고는 하나 변태를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새롭다'고 하는 것과 '변태'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 표현의 태도·양식 ==
=== 표현의 태도·양식 ===
미술작품은 시대에 따라 또는 사람에 따라서 가지가지 다른 양식(style)을 가지고 있다. 같은 종류의 표현양식이 모이면 유파(流派)가 생기고, 그것이 형식적으로 계승되면 양식이 생긴다. 미술표현의 양식 중 중요한 것을 살펴보자.
=== 원시적 양식 ===
원시적(原始的, primitive) 양식은 구석기시대나 중석기시대의 인류와, 문화의 세계를 접하지 않은 민족의 조형미술의 양식으로서, 유아의 조형표현에도 공통되는 점이 많다.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과장(誇張)되어 표현이 지극히 직절적(直截的)이다. 소박하고 치졸(稚拙)하기는 하나 힘과 매력이 넘친다.
=== 아르카이크 양식 ===
아르카이크(archaique) 양식은 미술 발전의 초기 단계에 나타난 양식으로서 표현은 생경(生梗)하지만 신비성(神秘性)이 풍부하다. 그리스 조각에서는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5세기 말까지를 아르카이크시대라 부르는데 고졸적(古拙的)인 표현양식을 갖고 직선적·정지적(靜止的)인 정면성(正面性)을 갖는다. 입에는 이른바 아르카이크 스마일(古拙的微笑)을 지니고 있다.
=== 고전적 양식 ===
고전적(古典的, classic) 양식은 주제나 표현의 양식·수법이 그리스·로마 예술을 모범으로 하는 경향의 예술을 말한다. 잘 정돈된 엄격한 형식으로서 냉정성과 명쾌성을 가지고 있다. 17세기의 푸생은 바로크 예술의 반동으로서 목가적(牧歌的)·고전적인 작품을 그렸다. 19세기에는 18세기의 장식성이 많은 루이 왕조의 예술의 반동으로서, 다비드와 그 제자 앵그르가 고전주의의 작품을 그렸다. 또한 피카소에서도 그리스 조각에서 배운 신고전주의 시대가 있었다.
=== 아카데믹 양식 ===
아카데미(academic) 양식은 플라톤이 아카데모스 신원(神苑)에서 플라톤 학파를 세웠고, 아카데미라는 말은 상원·학회·학교 등에 쓰이게 되었다. 관학풍(官學風) 등으로 번역되어, 미술적으로는 전통적이고 형식을 존중하며, 기초 기술을 중하게 여기는 태도를 말한다. 독창성이 결여되어 무기력한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져서 일정한 기술을 타성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사용할 경우도 있다.
=== 전통적 양식 ===
전통적(傳統的, orthodox) 양식은 정통(正統)이나 본도(本道)의 뜻을 갖는 말로서 전통적·정통파적인 기법을 가리켜 사용되는 말이다.
=== 사실적 양식 ===
사실적(寫實的, realism) 양식은 공상을 배격하고 가능한 한 현실에 즉응(卽應)하여 실재의 진실을 추구하려 하는 태도를 말한다. 사실적인 경향은 이집트 미술에서도, 그리스 미술에도 볼 수 있었는데 르네상스 미술은 사실(寫實)의 하나의 정점(頂點)에 달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사실적인 경향은 17세기에도 계승되어, 근대 쿠르베가 [[사실주의]]를 표방하였다. 구소련에서는 레빈 등이 사회적인 사상(事象)을 사실적으로 그려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선구가 되었고, 멕시코 회화에서도 특이한 사실주의가 눈에 띈다. 중국의 화조화(花鳥畵) 등에서 볼 수 있는 사실주의는 유럽과 다소 달라서 장식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
=== 낭만주의 ===
낭만주의(浪漫主義, romanticism)는 사실주의와 함께 서양미술의 커다란 저류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 표현은 동적(動的)이어서 감정의 격렬한 여파(餘波)가 느껴진다. 소용돌이치는 듯한 구도, 대비(對比)를 살린 배색(配色) 등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동적인 구도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나 그것을 이어받은 틴토레토의 작품에도, 그리고 17세기에는 루벤스 등의 작품에도 보이는데, 18세기 말에서 19세기에 걸쳐 제리코나 들라크루아 등이 고전파에 대항하여 낭만파를 세웠다. 낭만파는 현실 회피의 경향에서 그 주제도 주로 이야기, 사회적인 사변이나 전쟁 따위의 극적인 장면에서 구했다.
=== 환상적 양식 ===
환상적(幻想的, fantastic) 양식에서 상상력이나 환상력은 창조표현의 크나큰 요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블레이크, 고야, 모로, 앙리 루소, 샤갈, 폴 클레 등의 작품에는 환상적인 장면이 그려졌고 또한 키리코 등의 초현실파 작품에는 심상적(心象的)인 환영(幻影)이 표현되어 신비성이 느껴진다.
=== 상징적 양식 ===
상징적(象徵的, symbolic) 양식은 형상이나 빛깔이 갖는 의미를 단적으로 표시하려고 하는 것으로서, 가문(家紋)이나 마크 따위의 기호는 집이나 단체나 물품이나 그 밖의 의지(意志)를 상징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르동은 꽃이나 나비 등과 같이 어느 순간에 없어지는 것 속에서 영원한 아름다움과 생명을 호소하려고 즐겨 꽃이나 나비를 그렸다.
=== 장식적 양식 ===
장식적(裝飾的, decorative) 양식은 사물을 꾸미는 태도이다. 즐문토기(櫛紋土器) 등에도 그로테스크라고까지도 생각되리만큼 곡선의 무늬가 붙여져 있다. 사물을 아름답게 장식하려는 장식본능은 조형 본능의 커다란 기반을 이루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장식성은 조형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발휘되고는 있으나 모자이크·스테인드글라스·벽화 등은 건축에 적응하는 것이다. 장식성이 그 자체, 혹은 그 영역의 기능보다 선행하면 장식 과잉이 된다.
=== 자연주의 ===
자연주의(自然主義, naturalism)에 따르면 인간도 자연물의 하나이므로 자연 속에 둘러싸여서 생활하여 나가는 이상, 항상 자연에 순응하려고 하여 '자연으로 돌아가라'란 말이 반복되게 된다. 기물이나 건축장식 등에 동식물의 무늬를 붙이거나 또는 기물 따위의 형태 그것 자체를 동물 모양으로 모방하여 만드는 경우가 있는 것도 이러한 마음의 한 표현이다. 자연 현상으로서의 풍경이 독립하여 회화의 주제로서 취급된 것은 17세기 네덜란드로, 터너는 자연현상으로서의 대기(大氣)를 표현의 주제로서 취급하였고, 19세기 후반의 피사로, 모네, 시슬레 등에 의하여 일어난 인상파(impressionism)는 빛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자연의 표정을 포착하려고 하였다. 사실파 사람들이 자연이나 인생의 현실적인 진실을 파헤쳐 뽑아내려고 한 데 반하여, 인상파는 솔직하게 자연현상의 아름다움에 순응하려는 태도가 보인다. 세잔 등의 후기인상파는 인상파를 수정하여 사실파와는 다른 각도에서 사물의 본질에 접근했다.
=== 표현주의 ===
표현주의(表現主義, expressionism)는 20세기 전반에 독일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된 예술운동으로 고흐나 뭉크 등의 강렬한 개성표현에서 영향을 받아 자연묘사에 대응하여서 감정표현을 주안(主眼)으로 하고, 주관의 표현을 강조하였다. 개성표현의 강조는 이라고 말할 수 있다. 20세기 초기에 프랑스에서 생긴 야수파(fauvism)도 주관주의 미술이며, 마티스, 루오, 뒤피 등은 야수파를 대표하는 화가들이다. 거친 터치의 대담한 표현으로서 단순화(單純化)나 [[데포르메]](變形)를 볼 수 있다. 동양에서도 주관적인 경향이 짙은 작품이 지극히 많다.
=== 추상주의 ===
추상주의(抽象主義, abstractism)에는 입체파가 대표적이다. 20세기 초 세잔의 영향으로 피카소나 브라크는 자연의 형체를 해체하여, 그것을 화면 위에 새로운 질서에 의해서 재구성(再構成)하려는 이른바 입체파(cubism)를 일으켰다. 이탈리아에서는 자연의 형체를 해체하는 데에 시간의 요소를 받아들여 '미래파'를 일으켰다. [[칸딘스키]]는 자연의 대상과는 관계 없이 형상이나 빛깔이 갖는 성질을 살려서 이것들을 화면에 조립시켜, 음색(音色)이 다른 악기를 모아 교향곡을 만들듯이 새로운 질서와 통일을 도모하려 하였다. 다시 말하면 이지적·합리적인 화면 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것들에 대해서 가장 자유롭게, 부정형(不定形)을 가지고 자기 감정을 분방하게 표현하거나, 또는 완성된 결과 등을 문제 삼지 않고 그림물감을 마구 던져 칠하거나, 뿜어 칠하거나 하는 행동을 취할 때의 정신적인 긴장을 소중히 여기는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 따위도 생겼다.
=== 기능주의 ===
기능주의(機能主義, functionalism)는 인간생활과 조형표현과의 사이의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여 순수한 질서를 확립코자 하는 것인데, 기능적인 조형표현의 가장 기반이 된다고 할 수 있음과 동시에, 합리적인 추상주의와 연결된다. 설리번의 '형식은 기능에 따른다'고 하는 말은 기능주의의 의도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 같이 보기 ==
* [[동양 미술]]
* [[서양 미술]]
* [[한국 미술]]
* [[현대 미술]]
== 참고 문헌 ==
*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분류:미술|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Infobox protocol
| image = HTTP logo.svg
| standard = RFC 1945 HTTP/1.0 <small>(1996)</small><br />
RFC 2616 HTTP/1.1 <small>(1999)</small><br />
RFC 7540 HTTP/2 <small>(2015)</small><br />
RFC 7541 Header Compression <small>(2, 2015)</small><br />
RFC 7230 Message Syntax and Routing <small>(1.1, 2014)</small><br />
RFC 7231 Semantics and Content <small>(1.1, 2014)</small><br />
RFC 7232 Conditional Requests <small>(1.1, 2014)</small><br />
RFC 7233 Range Requests <small>(1.1, 2014)</small><br />
RFC 7234 Caching <small>(1.1, 2014)</small><br />
RFC 7235 Authentication <small>(1.1, 2014)</small>
| developer = 처음에는 [[CERN]]; [[IETF]], [[W3C]]
| introdate = {{시작 날짜와 나이|1991|df=yes}}
| newer =
}}
{{HTTP}}
{{IP스택}}
'''HTTP'''('''H'''yper'''T'''ext '''T'''ransfer '''P'''rotocol, {{문화어|초본문전송규약, 하이퍼본문전송규약}})는 [[WWW|W3]] 상에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통신 프로토콜|프로토콜]]이다. 주로 [[HTML]] 문서를 주고받는 데에 쓰인다. 주로 [[전송 제어 프로토콜|TCP]]를 사용하고 HTTP/3부터는 [[사용자 데이터그램 프로토콜|UDP]]를 사용하며, 80번 포트를 사용한다. [[1996년]] 버전 1.0, 그리고 [[1999년]] 1.1이 각각 발표되었다.
HTTP는 [[클라이언트]]와 [[서버]] 사이에 이루어지는 요청/응답(request/response) 프로토콜이다. 예를 들면, 클라이언트인 [[웹 브라우저]]가 HTTP를 통하여 서버로부터 웹페이지(HTML)나 그림 정보를 요청하면, 서버는 이 요청에 응답하여 필요한 정보를 해당 사용자에게 전달하게 된다. 이 정보가 모니터와 같은 출력 장치를 통해 사용자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HTTP를 통해 전달되는 자료는 http:로 시작하는 [[URL]](인터넷 주소)로 조회할 수 있다.
== 역사 ==
[[파일:Tim Berners-Lee CP 2.jpg|섬네일|[[팀 버너스 리]].]]
[[하이퍼텍스트]]라는 용어는 1965년 [[제너두 프로젝트]]에서 [[테드 넬슨]]이 만들었으며, 제너두 프로젝트는 《[[As We May Think]]》(1945년)라는 수필에서 마이크로필름 기반 정보 수신 및 관리 "[[메멕스]]" 시스템을 기술한 [[버니바 부시]]의 비전(1930년대)에 의해 영감을 받았다. [[팀 버너스 리]]와 그의 팀은 [[CERN]]에서 HTML뿐 아니라 웹 브라우저 및 텍스트 기반 웹 브라우저 관련 기술과 더불어 오리지널 HTTP을 발명하였다. 버너스 리는 최초로 "월드와이드웹" 프로젝트를 1989년에 제안하였으며, 이것이 현재의 [[월드 와이드 웹]]이다. 이 프로토콜의 최초 버전은 서버로부터 페이지를 요청하는 GET이라는 이름의 하나의 메소드만 있었다.<ref>{{웹 인용|last=Berners-Lee|first=Tim|title=HyperText Transfer Protocol|url=http://www.w3.org/History/19921103-hypertext/hypertext/WWW/Protocols/HTTP.html|publisher=[[World Wide Web Consortium]]|accessdate=31 August 2010}}</ref> 서버로부터의 응답은 무조건 HTML 문서였다.<ref>{{웹 인용|title=The Original HTTP as defined in 1991|url=http://www.w3.org/Protocols/HTTP/AsImplemented.html|publisher=[[World Wide Web Consortium]]|accessdate=24 July 2010|author=[[Tim Berners-Lee]]}}</ref>
문서화된 최초의 HTTP 버전은 '''[http://www.w3.org/pub/WWW/Protocols/HTTP/AsImplemented.html HTTP V0.9]'''(1991년)이다. [[데이브 레겟]]은 1995년 HTTP 워킹 그룹(HTTP WG)을 이끌었으며 확장된 조작, 확장된 협상, 더 보강된 메타 정보, 또 추가 메소드와 헤더 필드를 통한 더 효율적인 보안 프로토콜을 갖춘 프로토콜을 확장하기를 바랐다.<ref name="raggettprofile">{{웹 인용|last=Raggett|first=Dave|title=Dave Raggett's Bio|url=http://www.w3.org/People/Raggett/profile.html|publisher=[[World Wide Web Consortium]]|accessdate=11 June 2010}}</ref><ref>{{웹 인용|last=Raggett|first=Dave|title=Hypertext Transfer Protocol Working Group|url=http://www.w3.org/Arena/webworld/httpwgcharter.html|publisher=World Wide Web Consortium|accessdate=29 September 2010|first2=Tim|last2=Berners-Lee}}</ref> RFC 1945는 공식적으로 1996년 HTTP v1.0을 도입하였다.
HTTP WG는 1995년 12월 새로운 표준을 출간하기로 계획하였으며<ref>{{웹 인용|last=Raggett|first=Dave|title=HTTP WG Plans|url=http://www.w3.org/Arena/webworld/httpwgplans.html|publisher=World Wide Web Consortium|accessdate=29 September 2010}}</ref> 당시 개발 중인 RFC 2068(이른바 HTTP-NG)에 기반한 이전 표준 HTTP/1.1에 대한 지원이 1996년 초에 주요 브라우저 개발자들에 의해 빠르게 채택되었다. 1996년 3월, 이전 표준 HTTP/1.1을 지원한 웹 브라우저로 [[아레나 (웹 브라우저)|아레나]],<ref name="simon">{{웹 인용|title=Progress on HTTP-NG|url=http://www.w3.org/Protocols/HTTP-NG/http-ng-status.html|publisher=[[World Wide Web Consortium]]|accessdate=11 June 2010|author=[[Simon Spero]]}}</ref>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넷스케이프 2.0]],<ref name="simon" />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골드 2.01,<ref name="simon" /> [[모자이크 (웹 브라우저)|모자이크 2.7]], [[링크스 (웹 브라우저)|링크스 2.5]], [[인터넷 익스플로러 2|인터넷 익스플로러 2.0]]이 있다. 새로운 브라우저의 최종 사용자 채택 속도를 빨랐다. 1996년 3월, 한 웹 호스팅 회사의 보고에 따르면 인터넷 상에서 사용 중인 브라우저 중 40% 이상이 HTTP 1.1과 호환되었다. 같은 웹 호스팅 회사는 1996년 6월 기준으로 서버에 접근하는 모든 브라우저들 가운데 65%가 HTTP/1.1 호환이라고 보고하였다.<ref>{{웹 인용|work=Webcom.com Glossary entry|title=HTTP/1.1|url=http://www.webcom.com/glossary/http1.1.shtml|accessdate=2009-05-29|보존url=http://webarchive.loc.gov/all/20011121001051/http://www.webcom.com/glossary/http1.1.shtml|보존날짜=2001-11-21|url-status=dead}}</ref> RFC 2068에 정의된 HTTP/1.1 표준은 공식적으로 1997년 1월에 출시되었다. HTTP/1.1 표준에 대한 개선과 업데이트는 1999년 6월 RFC 2616으로 출시되었다.
2007년에 부분적으로 HTTP/1.1 사양을 개정하고 분명히 하기 위해 '''[http://trac.tools.ietf.org/wg/httpbis/trac/wiki HTTPbis 워킹 그룹]'''이 창설되었다. 2014년 6월, WG는 RFC 2616를 obsolete 처리하는, 업데이트된 6 파트 사양을 출시하였다:
* RFC 7230, ''HTTP/1.1: Message Syntax and Routing''
* RFC 7231, ''HTTP/1.1: Semantics and Content''
* RFC 7232, ''HTTP/1.1: Conditional Requests''
* RFC 7233, ''HTTP/1.1: Range Requests''
* RFC 7234, ''HTTP/1.1: Caching''
* RFC 7235, ''HTTP/1.1: Authentication''
[[HTTP/2]]는 2015년 5월 RFC 7540로 출판되었다.
== 메시지 포맷 ==
클라이언트와 서버 사이의 소통은 평문([[ASCII]]) 메시지로 이루어진다. 클라이언트는 서버로 요청메시지를 전달하며 서버는 응답메시지를 보낸다.
=== 요청 메시지 ===
클라이언트가 서버에게 보내는 요청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 요청 내용
:보기) GET /images/logo.gif HTTP/1.1
* 헤더
:보기) Accept-Language: en
* 빈 줄 (empty line)
* 기타 메시지를 포함하여 표시된다.
요청 내용과 헤더 필드는 <CR><LF>로 끝나야 한다. 즉, 캐리지 리턴([[Carriage Return]]) 다음에 라인 피드([[Line Feed]])가 와야 한다. 빈 줄(empty line)은 <CR><LF>로 구성되며 그 외 다른 [[화이트스페이스]](whitespace)가 있어서는 안된다.
==== 요약표 ====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text-align: center; font-size: 85%; width: auto; table-layout: fixed;"
|-
!scope="col"| HTTP 메소드
!scope="col"| RFC
!scope="col"| 요청에 Body가 있음
!scope="col"| 응답에 Body가 있음
!scope="col"| 안전
!scope="col"| 멱등(Idempotent)
!scope="col"| 캐시 가능
|-
!scope="row"| GET
| {{IETF RFC|9110}}
| {{Optional}}
| {{Yes}}
| {{Yes}}
| {{Yes}}
| {{Yes}}
|-
!scope="row"| HEAD
| {{IETF RFC|9110}}
| {{Optional}}
| {{No}}
| {{Yes}}
| {{Yes}}
| {{Yes}}
|-
!scope="row"| POST
| {{IETF RFC|9110}}
| {{Yes}}
| {{Yes}}
| {{No}}
| {{No}}
| {{Yes}}
|-
!scope="row"| PUT
| {{IETF RFC|9110}}
| {{Yes}}
| {{Yes}}
| {{No}}
| {{Yes}}
| {{No}}
|-
!scope="row"| DELETE
| {{IETF RFC|9110}}
| {{Optional}}
| {{Yes}}
| {{No}}
| {{Yes}}
| {{No}}
|-
!scope="row"| CONNECT
| {{IETF RFC|9110}}
| {{Optional}}
| {{Yes}}
| {{No}}
| {{No}}
| {{No}}
|-
!scope="row"| OPTIONS
| {{IETF RFC|9110}}
| {{Optional}}
| {{Yes}}
| {{Yes}}
| {{Yes}}
| {{No}}
|-
!scope="row"| TRACE
| {{IETF RFC|9110}}
| {{No}}
| {{Yes}}
| {{Yes}}
| {{Yes}}
| {{No}}
|-
!scope="row"| PATCH
| {{IETF RFC|5789}}
| {{Yes}}
| {{Yes}}
| {{No}}
| {{No}}
| {{No}}
|}
=== 응답 메시지 ===
응답 메시지는 다음으로 구성된다.
* 상태표시 행(status line): [[상태코드]](status code)와 reason message를 포함한다. (예. ''HTTP/1.1 200 OK''. 클라이언트의 요청이 성공적으로 전달되었음을 표시)
* 응답 헤더필드 (예.''Content-Type: text/html'')
* 빈 줄 (empty line)
* 기타 메시지
=== 예제 세션 ===
아래는 포트 80의 [[example.com|www.example.com]]에서 실행 중인 HTTP 클라이언트와 HTTP 서버 간의 샘플 변환이다. 모든 데이터는 줄 끝마다 [[새줄|2바이트 CR LF]] ('\r\n')를 사용하여 플레인 텍스트([[ASCII]]) 인코딩을 통해 송신된다.
==== 클라이언트 요청 ====
<syntaxhighlight lang="http">
GET /restapi/v1.0 HTTP/1.1
Accept: application/json
Authorization: Bearer UExBMDFUMDRQV1MwMnzpdvtYYNWMSJ7CL8h0zM6q6a9ntw
</syntaxhighlight>
==== 서버 응답 ====
<syntaxhighlight lang="http">
HTTP/1.1 200 OK
Date: Mon, 23 May 2005 22:38:34 GMT
Content-Type: text/html; charset=UTF-8
Content-Encoding: UTF-8
Content-Length: 138
Last-Modified: Wed, 08 Jan 2003 23:11:55 GMT
Server: Apache/1.3.3.7 (Unix) (Red-Hat/Linux)
ETag: "3f80f-1b6-3e1cb03b"
Accept-Ranges: bytes
Connection: close
<html>
<head>
<title>An Example Page</title>
</head>
<body>
Hello World, this is a very simple HTML document.
</body>
</html>
</syntaxhighlight>
== 응답 코드 ==
{{참고|HTTP 상태 코드}}
클라이언트가 서버에 접속하여 어떠한 요청을 하면, 서버는 세 자리 수로 된 응답 코드와 함께 응답한다. HTTP의 응답 코드는 다음과 같다.
{| border="1" cellpadding="4" style="width:100%" class="wikitable"
!width="100" bgcolor="#CCCCCC"|코드
!width="200" bgcolor="#CCCCCC"|메시지
!bgcolor="#CCCCCC"|설명
|-
|bgcolor="#DDDDDD"|1XX
|bgcolor="#DDDDDD"|Informational(정보)
|bgcolor="#DDDDDD"|정보 교환.
|-
|100||Continue||클라이언트로부터 일부 요청을 받았으니 나머지 요청 정보를 계속 보내주길 바람. (HTTP 1.1에서 처음 등장)
|-
|101||Switching Protocols||서버는 클라이언트의 요청대로 Upgrade 헤더를 따라 다른 프로토콜로 바꿀 것임. (HTTP 1.1에서 처음 등장)
|-
|bgcolor="#DDDDDD"|2XX
|bgcolor="#DDDDDD"|Success(성공)
|bgcolor="#DDDDDD"|데이터 전송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거나, 이해되었거나, 수락되었음.
|-
|200||OK||오류 없이 전송 성공.
|-
|202||Accepted||서버가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수락함.
|-
|203||Non-authoritavive Information||서버가 클라이언트 요구중 일부만 전송.
|-
|204||Non Content||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처리했으나 전송할 데이터가 없음.
|-
|205||Reset Content||새 문서 없음. 하지만 브라우저는 문서 창을 리셋해야 함. (브라우저가 CGI 폼 필드를 전부 지우도록 할 때 사용됨.) (HTTP 1.1에서 처음 등장)
|-
|206||Partial Content||클라이언트가 Range 헤더와 함께 요청의 일부분을 보냈고 서버는 이를 수행했음. (HTTP 1.1에서 처음 등장)
|-
|bgcolor="#DDDDDD"|3XX
|bgcolor="#DDDDDD"|Redirection(방향 바꿈)
|bgcolor="#DDDDDD"|자료의 위치가 바뀌었음.
|-
|300||Multiple Choices||최근에 옮겨진 데이터를 요청.
|-
|301||Moved Permanently||요구한 데이터를 변경된 URL에서 찾았음.
|-
|302||Moved Permanently||요구한 데이터가 변경된 URL에 있음을 명시. 301과 비슷하지만 새 URL은 임시 저장 장소로 해석됨.
<ref>이 메시지는 HTTP 1.0에서는‘Moved Temporarily’였다. 그리고 HttpServletResponse의 상수는 SC_FOUND가 아니라 C_MOVED_TEMPORARILY다. 이것은 매우 유용한 헤더인데 이 헤더를 통해 브라우저가 자동적으로 새 URL의 링크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이 상태 코드는 아주 유용하기 때문에 이 상태 코드를 위해 sendRedirect 라는 특별한 메서드가 있다. response.sendRedirect(url)을 사용하는 것은 response.setStatus(response.SC_MOVED_TEMPORARILY)과 response.setHeader("Location", url)를 쓰는 것에 비해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다. 둘째, sendRedirect을 써서 서블릿이 그 링크를 포함한 페이지를 자동으로 만들어 준다(자동으로 redirect를 따라갈 수 없는 오래 된 브라우저에서도 볼 수 있게 해 준다). 마지막으로, sendRedirect에서는 상대 URL이 절대 URL로 해석되기 때문에 상대 URL도 다룰 수 있다. 이 상태 코드는 종종 301번과 혼용된다. 예를 들어 <http://host/~user{{깨진 링크|url=http://host/~user }}> (마지막에 '/'가 빠짐)과 같이 오류가 있는 요청에 대해 어떤 서버는 301을 어떤 서버는 302를 보낸다. 기술적으로 브라우저는 원 요청이 GET이었다면 자동적으로 리다이렉션을 따라 가도록 되어 있다. 더 자세한 사항은 307 헤더를 보라.</ref>
|-
|303||See Other||요구한 데이터를 변경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있음.
|-
|304||Not modified||클라이언트의 캐시에 이 문서가 저장되었고 선택적인 요청에 의해 수행됨 (보통 지정된 날짜보다 더 나중의 문서만을 보여주도록 하는 If-Modified-Since 헤더의 경우).<ref>서버는 클라이언트에게 캐시에 저장된 이전 문서를 계속 사용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ref>
|-
|305||Use Proxy||요청된 문서는 Location 헤더에 나열된 [[프록시]]를 통해 추출되어야 함. (HTTP 1.1에서 처음 등장)
|-
|307||Temporary Redirect||자료가 임시적으로 옮겨짐.
|-
|bgcolor="#DDDDDD"|4XX
|bgcolor="#DDDDDD"|Client Error(클라이언트 오류)
|bgcolor="#DDDDDD"|클라이언트 측의 오류. 주소를 잘못 입력하였거나 요청이 잘못 되었음.
|-
|400||Bad Request||요청 실패. 문법상 오류가 있어서 서버가 요청사항을 이해하지 못함,<ref>클라이언트는 수정없이 요청 사항을 반복하지 않기 바람.</ref>
|-
|401.1||Unauthorized||권한 없음 (접속실패). 서버에 로그온 하려는 요청사항이 서버에 들어있는 권한과 비교했을 때 맞지 않음.<ref>이 경우, 여러분이 요청한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기 위해 서버 운영자에게 요청해야 할 것이다.</ref>
|-
|401.2||Unauthorized||권한 없음 (서버설정으로 인한 접속 실패). 서버에 로그온 하려는 요청사항이 서버에 들어있는 권한과 비교했을 때 맞지않음.<ref>이것은 일반적으로 적절한 www-authenticate head field를 전송하지 않아서 발생한다.</ref>
|-
|401.3||Unauthorized||권한 없음 (자원에 대한 ACL에 기인한 권한 없음). 클라이언트가 특정 자료에 접근할 수 없음.<ref>이 자원은 페이지가 될 수도 있고, 클라이언트의 주소 입력란에 명기된 파일일 수도 있다. 아니면 클라이언트가 행당 주소로 들어갈 때 이용되는 또 다른 파일일 수도 있다. 여러분이 접근할 전체 주소를 다시 확인해 보고 웹 서버 운영자에게 여러분이 자원에 접근할 권한이 있는지를 확인해 본다.</ref>
|-
|401.4||Unauthorized||권한 없음 (필터에 의한 권한 부여 실패). 서버에 접속하는 사용자들을 확인하기 위해 설치한 필터 프로그램이 있음.<ref>서버에 접속하는 데 이용되는 인증 과정이 이런 필터 프로그램에 의해 거부되었다.</ref>
|-
|401.5||Unauthorized||권한 없음 (ISA PI/CGI 애플리케이션에 의한 권한부여 실패). 이용하려는 서버의 주소에 ISA PI나 CGI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고, 권한을 부여할 수 없음.<ref>서버에 접속하는 데 이용되는 인증 과정이 이 프로그램에 의해 거부되었다.</ref>
|-
|402||Payment Required||예약됨.
|-
|403.1||Forbidden||금지 (수행접근 금지). 수행시키지 못하도록 되어있는 디렉터리 내의 실행 파일을 수행하려고 하였음.
|-
|403.2||Forbidden||금지 (읽기 접근 금지). 접근한 디렉터리에 가용한 기본 페이지가 없음.<ref>아니면 Eecute나 Script로 분한이 부여된 디렉터리에 들어있는 HTML페이지를 보려했을 때 발생한다.</ref>
|-
|403.4||Forbidden||금지 ([[SSL]] 필요함). 접근하려는 페이지가 SSL로 보안유지 되고 있음.<ref>이것을 보기 위해서 여러분은 주소를 입력하기 전에 먼저 SSL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ref>
|-
|403.5||Forbidden||금지 ([[SSL]] 128필요함). 페이지가 128비트의 SSL로 보안유지 되고 있음.<ref>이 자원을 보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브라우저가 SSL의 행당 레벌을 지원해야 한다. 여러분의 브라우저가 128비트의 SSL을 지원하는지를 확인해 본다.</ref>
|-
|403.6||Forbidden||금지 (IP 주소 거부됨). 사용자가 허용되지 않은 IP로부터 접근함.
|-
|403.7||Forbidden||금지 (클라이언트 확인 필요). 클라이언트가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지 확인 요함.<ref>여러분이 접근하려는 자료가 서버가 인식하기 위해 여러분의 브라우저에게 클라이언트 SSL을 요청하는 경우 발생한다. 이것은 여러분이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상용자임을 입증하는 데 사용된다.</ref>
|-
|403.8||Forbidden||금지 (사이트 접근 거부됨). 서버가 요청사항을 수행하고 있지 않거나, 해당 사이트에 접근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음.
|-
|403.9||Forbidden||접근금지 (연결된 사용자수 과다). 서버가 BUSY 상태에 있어서 요청을 수행할 수 없음.
|-
|403.10||Forbidden||접근금지 (설정이 확실 하지 않음).
|-
|403.11||Forbidden||접근금지 (패스워드 변경됨). 잘못된 암호를 입력했음.
|-
|403.12||Forbidden||접근금지(Mapper 접근 금지됨). 클라이언트 인증용 맵이 해당 웹 사이트에 접근하는 것이 거부됨.
|-
|404||Not Found||문서를 찾을 수 없음. 서버가 요 청한 파일이나 스크립트를 찾지 못함.
|-
|405||Method not allowed||메서드 허용 안됨. 요청 내용에 명시된 메서드를 수행하기 위해 해당 자원의 이용이 허용되지 않음.<ref>여러분이 요청한 자원에 적절한 MIME 타입을 갖고 있는지 확인해 본다.</ref>
|-
|406||Not Acceptable||받아들일 수 없음.<ref>요청 사항에 필요한 자원은 요청 사항으로 전달된 Acceptheader에 따라 "Not Acceptable"인 내용을 가진 Response 개체만을 만들 수 있다.</ref>
|-
|407||Proxy Authentication Required|| 프록시 서버의 인증이 필요함.<ref>해당 요청이 수행되도록 프록시 서버에게 인증을 받아야 한다. 프록시 서버로 로그온 한 후에 다시 시도해 본다.</ref>
|-
|408||Request timeout||요청 시간이 지남.
|-
|409||Conflict||요청을 처리하는 데 문제가 있음. 보통 PUT 요청과 관계가 있다. 보통 다른 버전의 파일을 업로드할 경우 발생함. (HTTP 1.1에서 새로 등장)
|-
|410||[[Gone]]||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없음.
|-
|411||Length Required||클라이언트가 헤더에 Content-Length를 포함하지 않으면 서버가 처리할 수 없음.(HTTP 1.1에서 새로 등장)
|-
|412||Precondition Failed||선결조건 실패. 헤더에 하나 이상의 선결조건을 서버에서 충족시킬 수 없음.<ref>현재 자원의 메타-정보가 하나 이상의 자원에 적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클라이언트 선결조건이 의도되었다.</ref>
|-
|413||Request entity too large||요청된 문서가 현재 서버가 다룰 수 있는 크기보다 큼.<ref>만약 서버에서 나중에 다룰 수 있다고 생각되면 Retry-After 헤더를 포함시켜야 한다.</ref> (HTTP 1.1에서 새로 등장)
|-
|414||Request-URI too long||요청한 URI가 너무 김.<ref>요청한 URI가 너무 길어서 서버가 요청 사항의 이행을 거부했다. 이렇게 희귀한 상황은 아래와 같은 경우에만 발생한다. 클라이언트가 긴 탐색용 정보를 가지고 POST 요청을 GET으로 부적절하게 전환했다. 클라이언트가 Redirection 문제를 접하게 되었다. 서버가, 몇몇 서버가 사용하고 있는 요청한 URI를 읽고 처리하는 고정된 길이의 메모리 버퍼를 이용해 보안체계에 들어가려는, 클라이언트에 의한 공격을 받고 있다.</ref>
|-
|415||Unsupported media type||요청이 알려지지 않은 형태임. (HTTP 1.1에서 새로 등장)
|-
|bgcolor="#DDDDDD"|5XX
|bgcolor="#DDDDDD"|Server Error(서버 오류)
|bgcolor="#DDDDDD"|서버 측의 오류로 올바른 요청을 처리할 수 없음.
|-
|500||Internal Server Error||서버 내부 오류.<ref>서버가 요청사항을 수행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요청해 본다.</ref>
|-
|501||Not Implemented||필요한 기능이 서버에 설치되지 않았음.<ref>서버가 요청사항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 오류가 발생한 URL을 확인한 후에, 문제가 지속될 경우에는 웹 서버 운영자에게 연락한다.</ref>
|-
|502||Bad gateway||게이트웨이 상태 나쁨.<ref>서버의 과부하 상태Gateway나 proxy로 활동하고 있는 서버가 요구 사항을 접수한 upstream 서버로부터 불명확한 답변을 접수 했을 때 발생한다. 만약 문제가 지속된다면 웹 서버 운영자와 상의해 본다.</ref>
|-
|503||Service Unavailable||외부 서비스가 죽었거나 현재 멈춘 상태 또는 이용할 수 없는 서비스.<ref>서버는 현재 일시적인 과부하 또는 관리(유지,보수) 때문에 요청을 처리할 수 없다. 이것은 약간의 지연 후 덜게 될 일시적인 상태를 말한다. Retry-After 헤더에 지연의 길이가 표시될 수도 있다. 만약 Retry-After를 받지 못했다면 클라이언트는 500 응답을 위해 하고자 했는 것처럼 응답을 처리해야 한다. 상태코드의 존재는 서버가 과부하가 걸릴때 그것을 사용해야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몇몇 서버는 접속을 거부하는 것을 바랄지도 모른다.</ref>
|-
|504||Gateway timeout||프록시나 게이트웨이의 역할을 하는 서버에서 볼 수 있음. 초기 서버가 원격 서버로부터 응답을 받을 수 없음. (HTTP 1.1에서 새로 등장)
|-
|505||HTTP Version Not Supported||해당 HTTP 버전을 지원하지 않음.
|}
== 같이 보기 ==
* [[HTTPS]]
* [[HTML]]
* [[월드 와이드 웹]]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 {{언어링크|en}} [[rfc:1945|IETF의 HTTP/1.0 기술 명세서 (1996년 5월)]]
* {{언어링크|en}} [[rfc:2616|IETF의 HTTP/1.1 기술 명세서 (1999년 6월)]]
* {{웹 인용 |url=https://www.w3.org/Protocols/History.html |title=Change History for HTTP |publisher=W3.org |access-date=2010-08-01}} A detailed technical history of HTTP.
* {{웹 인용 |url=https://www.w3.org/Protocols/DesignIssues.html |title=Design Issues for HTTP |publisher=W3.org |access-date=2010-08-01}} Design Issues by Berners-Lee when he was designing the protocol.
* [https://www.w3.org/Protocols/HTTP/AsImplemented.html HTTP 0.9 – As Implemented in 1991]
{{시맨틱 웹}}
{{URI 스킴}}
{{웹 인터페이스}}
{{전거 통제}}
[[분류:W3C 표준]]
[[분류:월드 와이드 웹]]
[[분류:인터넷 프로토콜]]
[[분류:네트워크 프로토콜]]
[[분류:HTTP| ]]
[[분류:응용 계층 프로토콜]]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파일:W3C® Icon.svg|섬네일|W3C 아이콘.]]
{{HTML}}
'''월드 와이드 웹 컨소시엄'''({{llang|en|World Wide Web Consortium}}, 축약형은 {{llang|en|WWW 또는 W3}}) 약칭 '''W3C'''는 [[월드 와이드 웹]]을 위한 표준을 개발하고 장려하는 조직으로 [[팀 버너스 리]]를 중심으로 1994년 10월에 설립되었다. W3C는 회원기구, 정직원, 공공기관이 협력하여 웹 표준을 개발하는 국제 컨소시엄이다. W3C의 설립취지는 웹의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프로토콜]]과 [[가이드라인]]을 개발하여 [[월드 와이드 웹]]의 모든 잠재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 웹 표준과 가이드라인 개발 ==
W3C는 설립목적인 웹 표준과 가이드라인 개발을 수행하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결과로 지난 10년간 80여개의 W3C 권고안을 발표하였다. W3C는 또한 교육과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여해 왔고, 그리고 웹에 관하여 토론할 수 있는 열린 포럼을 개최해 왔다. 웹의 모든 잠재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인 웹 기술은 상호 간의 호환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떤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에서도 웹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W3C의 이러한 목표를 "웹 상호운용성 (Web Interoperability)" 이라고 한다. W3C는 [[웹 언어]]와 프로토콜에 대한 공개(반독점적인) 표준을 제정하여 시장 분열과 웹의 분열을 피하고자 한다.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와 운영진은 W3C를 웹 기술에 대한 컨센서스를 이끌어내는 산업 컨소시엄으로 발전시켜왔다. 유럽 핵물리 연구기관(European Organization for Nuclear Research, CERN)에서 근무하던 1989년에 월드 와이드 웹을 개발한 팀 버너스리는 W3C가 창립된 1994년부터 현재까지 W3C Director 직책을 맡고 있다. W3C는 2004년 12월에 창립 10주년을 기념하여 웹과 W3C의 과거와 미래에 관한 심포지엄을 보스턴에서 개최했다.
== 국제적인 컨소시엄인 W3C ==
전 세계 곳곳에 위치한 다양한 분야의 기관들은 웹 표준화를 위해 벤더에 중립적인 기구인 W3C에 참여한다. 웹 표준 제정에 큰 공헌을 한 W3C의 기술전문직원과 회원은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점점 다양해지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그리고 사람들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면서, 웹이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W3C의 회원(테스티모니알 샘플), 직원, 초청전문가들은 함께 힘을 모아 기술을 설계해 나가고 있다.
W3C의 국제적인 활동은 또한 세계적으로 40여개가 넘는 [[국가]], 지역, 국제 기관과의 관계 (liaison)를 활성화하는 것을 포함하며, 이는 W3C의 월드 와이드 웹 개발의 국제적인 참여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 W3C 표준 ==
다음은 W3C가 제정한 WWW 관련 표준 목록이다.
* [[CSS]]
* [[공용 게이트웨이 인터페이스|CGI]]
* [[문서 객체 모델|DOM]]
* [[HTML]]
* [[자원 기술 프레임워크|RDF]]
* [[SVG]]
* [[SOAP]]
* [[SMIL]]
* [[WSDL]]
* [[XHTML]]
* [[XML]]
* [[XML 정보 집합]]
* [[XPath]]
* [[XQuery]]
* [[XSLT]]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 [http://www.w3.org/ World Wide Web Consortium]
* {{웹 인용 |url=http://w3c.or.kr/ |title=W3C 대한민국 사무국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90114105001/http://w3c.or.kr/ |보존날짜=2019-01-14 |url-status=dead}}
{{W3C 표준}}
{{전거 통제}}
{{토막글|인터넷}}
[[분류:1994년 설립]]
[[분류:웹 개발]]
[[분류:웹 서비스]]
[[분류:표준화 기구]]
[[분류:W3C 표준| ]]
[[분류:국제 비정부 기구]]
[[분류:기술 컨소시엄]]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Infobox character encoding
| name = ASCII
| alias = ISO-IR-006<ref>{{인용 |mode=cs1 |url=https://www.itscj.ipsj.or.jp/iso-ir/006.pdf |title=ISO-IR-006: ASCII Graphic character set |author=ANSI |author-link=American National Standards Institute |publisher=ITSCJ/[[Information Processing Society of Japan|IPSJ]] |date=1975-12-01 |access-date=2019-12-06 |archive-date=2016-10-07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61007000915/https://www.itscj.ipsj.or.jp/iso-ir/006.pdf |url-status=dead }}</ref>
| mime = us-ascii
| image = ASCII-infobox.svg
| caption = ASCII (1967년 및 그 이후)
| lang = [[영어]]
| extensions = * [[유니코드]]
* [[ISO/IEC 8859]] (시리즈)
* [[KOI-8]]
* [[OEM 코드 페이지|OEM]] (시리즈)
* [[Windows-125x]] (시리즈)
* [[EASCII|기타]]
| prev = [[보도 코드|ITA 2]], [[FIELDATA]]
| next = [[ISO 8859]], [[유니코드]]
| otherrelated = [[PETSCII]]
| classification = [[ISO 646|ISO 646 시리즈]]
}}
[[파일:USASCII code chart.png|섬네일|1972 프린터 사용 설명서에 개시된 아스키 코드 차트표]]
'''미국정보교환표준부호'''({{llang|en|American Standard Code for Information Interchange}}), 또는 줄여서 ASCII({{IPAc-en|pron|ˈ|æ|s|k|i}}, '''아스키''')는 영문 [[알파벳]]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문자 인코딩]]이다. 아스키는 [[컴퓨터]]와 통신 장비를 비롯한 문자를 사용하는 많은 장치에서 사용되며, 대부분의 문자 인코딩이 아스키에 기초를 두고 있다.
아스키는 7[[비트 (단위)|비트]] 인코딩으로, 33개의 출력 불가능한 제어 문자들과 공백을 비롯한 95개의 출력 가능한 문자들로 총128개로 이루어진다. 제어 문자들은 역사적인 이유로 남아 있으며 대부분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출력 가능한 문자들은 52개의 영문 알파벳 대소문자와, 10개의 숫자, 32개의 [[특수 문자]], 그리고 하나의 [[공백 문자]]로 이루어진다.
아스키가 널리 사용되면서 다양한 아스키 기반의 확장 인코딩들이 등장했으며, 이들을 묶어서 아스키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7비트 인코딩을 유지한 [[ISO/IEC 646]]과, 원래 아스키 코드 앞에 비트 0을 넣어 8비트 인코딩을 만든 IBM [[코드 페이지]]와 [[ISO/IEC 8859|ISO 8859]]가 있다. 이 인코딩들은 언어군에 따라 같은 숫자에 서로 다른 문자가 배당된 경우가 많다.
== 역사 ==
아스키 코드는 지금의 [[미국 국가표준 협회]](ANSI)의 전신인 [[미국 표준 협회]](ASA)가 주도한 X3 위원회가 개발했다. 그 아래의 X3.2 소위원회는 1960년 10월 6일 아스키 표준화 작업을 시작하여, 1963년 표준화 초판을 발간했고,<ref>Mary Brandel, "[http://edition.cnn.com/TECH/computing/9907/06/1963.idg/ 1963: The Debut of ASCII]", [[CNN]], 1999년 7월 6일 작성, 2018년 3월 22일 확인.</ref><ref>"American Standard Code for Information Interchange, ASA X3.4-1963", [[미국 표준 협회]] (ASA), 1963년 6월 17일.</ref> 1967년 개정했으며,<ref name="ASCII-1967">"Standard Code for Information Interchange, USAS X3.4-1967", [[미합중국 표준 협회]] (USASI), 1967년 7월 7일.</ref><ref name="Jennings_2016">Thomas Daniel Jennings, "An annotated history of some character codes or ASCII: American Standard Code for Information Infiltration", World Power Systems (WPS), 1999년 최초 작성, 2016년 4월 20일 개정, [https://web.archive.org/web/20160522024759/http://worldpowersystems.com/J/codes/#ASCII-1967 Internet Arichive]에서 2018년 3월 22일 확인.</ref> 가장 최근의 업데이트는 1986년에 있었다.<ref name="ASCII-1986">"American National Standard for Information Systems — Coded Character Sets — 7-Bit American National Standard Code for Information Interchange (7-Bit ASCII), ANSI X3.4-1986", [[미국 국가표준 협회]] (ANSI), 1986년 3월 26일.</ref>
== 제어 문자표 ==
제어할 때 쓰는 코드이다. 아직도 Serial 통신(RS-232, UART, USART...)이 적용된 곳에는 많이 사용되고 있다.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 center"
|-
! [[이진법]] !! [[팔진법]] !! [[십진법]] !! [[십육진법]] !! 약자 !! 설명 !! 한국어 설명
|-
| 000 0000 || style="background:lightblue;" | 000 || style="background:#CFF;" | 0 || style="background:lightblue;" | 00
| NUL || style="text-align:left;" | Null Character || NULL
|-
| 000 0001 || style="background:lightblue;" | 001 || style="background:#CFF;" | 1 || style="background:lightblue;" | 01
| SOH || style="text-align:left;" | Start of Header || 헤더 시작
|-
| 000 0010 || style="background:lightblue;" | 002 || style="background:#CFF;" | 2 || style="background:lightblue;" | 02
| STX || style="text-align:left;" | Start of Text || 본문 시작, 헤더 종료
|-
| 000 0011 || style="background:lightblue;" | 003 || style="background:#CFF;" | 3 || style="background:lightblue;" | 03
| ETX || style="text-align:left;" | End of Text || 본문 종료
|-
| 000 0100 || style="background:lightblue;" | 004 || style="background:#CFF;" | 4 || style="background:lightblue;" | 04
| EOT || style="text-align:left;" | End of Transmission || 전송 종료, 데이터 링크 초기화
|-
| 000 0101 || style="background:lightblue;" | 005 || style="background:#CFF;" | 5 || style="background:lightblue;" | 05
| ENQ || style="text-align:left;" | Enquiry || 응답 요구
|-
| 000 0110 || style="background:lightblue;" | 006 || style="background:#CFF;" | 6 || style="background:lightblue;" | 06
| ACK || style="text-align:left;" | Acknowledgment || 긍정응답
|-
| 000 0111 || style="background:lightblue;" | 007 || style="background:#CFF;" | 7 || style="background:lightblue;" | 07
| BEL || style="text-align:left;" | Bell || 경고음
|-
| 000 1000 || style="background:lightblue;" | 010 || style="background:#CFF;" | 8 || style="background:lightblue;" | 08
| BS || style="text-align:left;" | Backspace || [[백스페이스]]
|-
| 000 1001 || style="background:lightblue;" | 011 || style="background:#CFF;" | 9 || style="background:lightblue;" | 09
| HT || style="text-align:left;" | Horizontal Tab || 수평 탭
|-
| 000 1010 || style="background:lightblue;" | 012 || style="background:#CFF;" | 10 || style="background:lightblue;" | 0A
| LF || style="text-align:left;" | Line feed || 개행
|-
| 000 1011 || style="background:lightblue;" | 013 || style="background:#CFF;" | 11 || style="background:lightblue;" | 0B
| VT || style="text-align:left;" | Vertical Tab || 수직 탭
|-
| 000 1100 || style="background:lightblue;" | 014 || style="background:#CFF;" | 12 || style="background:lightblue;" | 0C
| FF || style="text-align:left;" | Form feed || 다음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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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력 가능 아스키 문자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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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법]] !! [[십진법]] !! !! 모양 !! 85진법 ([[아스키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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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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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011 || [[대괄호|<nowiki>[</no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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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100 || [[역슬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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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101 || [[대괄호|<nowiki>]</nowiki>]]
|-
|1011110 || [[윗꺽쇠|^]]
|-
|1011111 || [[밑줄 문자|_]]
|}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float:left;"
|- valign="bottom"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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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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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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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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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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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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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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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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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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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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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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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1011 ||style="background:lightblue;"| 153 ||style="background:#CCFFFF;"| 107 ||style="background:lightblue;"| 6B || [[k]]
|-
|1101100 ||style="background:lightblue;"| 154 ||style="background:#CCFFFF;"| 108 ||style="background:lightblue;"| 6C || [[l]]
|-
|1101101 ||style="background:lightblue;"| 155 ||style="background:#CCFFFF;"| 109 ||style="background:lightblue;"| 6D || [[m]]
|-
|1101110 ||style="background:lightblue;"| 156 ||style="background:#CCFFFF;"| 110 ||style="background:lightblue;"| 6E || [[n]]
|-
|1101111 ||style="background:lightblue;"| 157 ||style="background:#CCFFFF;"| 111 ||style="background:lightblue;"| 6F || [[o]]
|-
|1110000 ||style="background:lightblue;"| 160 ||style="background:#CCFFFF;"| 112 ||style="background:lightblue;"| 70 || [[p]]
|-
|1110001 ||style="background:lightblue;"| 161 ||style="background:#CCFFFF;"| 113 ||style="background:lightblue;"| 71|| [[q]]
|-
|1110010 ||style="background:lightblue;"| 162 ||style="background:#CCFFFF;"| 114 ||style="background:lightblue;"| 72|| [[r]]
|-
|1110011 ||style="background:lightblue;"| 163 ||style="background:#CCFFFF;"| 115 ||style="background:lightblue;"| 73 || [[s]]
|-
|1110100 ||style="background:lightblue;"| 164 ||style="background:#CCFFFF;"| 116 ||style="background:lightblue;"| 74 || [[t]]
|-
|1110101 ||style="background:lightblue;"| 165 ||style="background:#CCFFFF;"| 117 ||style="background:lightblue;"| 75 || [[u]]
|-
|1110110 ||style="background:lightblue;"| 166 ||style="background:#CCFFFF;"| 118 ||style="background:lightblue;"| 76 || [[v]]
|-
|1110111 ||style="background:lightblue;"| 167 ||style="background:#CCFFFF;"| 119 ||style="background:lightblue;"| 77 || [[w]]
|-
|1111000 ||style="background:lightblue;"| 170 ||style="background:#CCFFFF;"| 120 ||style="background:lightblue;"| 78 ||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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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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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1011 ||style="background:lightblue;"| 173 ||style="background:#CCFFFF;"| 123 ||style="background:lightblue;"| 7B || [[중괄호|{]]
|-
|1001011 || style="background:lightblue;" | 174 ||style="background:#CCFFFF;"| 124 ||style="background:lightblue;"| 7C || [[수직선||]]
|-
|1111101 ||style="background:lightblue;"| 175 ||style="background:#CCFFFF;"| 125 ||style="background:lightblue;"| 7D || [[중괄호|}]]
|-
|1111110 ||style="background:lightblue;"| 176 ||style="background:#CCFFFF;"| 126 ||style="background:lightblue;"| 7E || [[물결표|~]]
|}
{{-}}
== 같이 보기 ==
* [[이진법]]
* [[텍스트 파일]]
* [[유니코드]]
* [[제어 문자]]
* [[아스키 아트]]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 http://www.unicode.org/charts/PDF/U0000.pdf
* {{dmoz|Computers/Software/Globalization/Character_Encoding/Latin/ASCII|ASCII}}
{{문자 인코딩}}
{{전거 통제}}
[[분류:문자 집합]]
[[분류:문자 인코딩]]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imagemap>File:1960s montage.png|370x370px|thumb|right|'''윗줄''' :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군 병사,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주도한 '''[[비틀즈]]'''<br/>'''가운뎃줄''' : 임기 3년차에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암살]]당한 '''[[존 F.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 [[직업과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25만명의 군중]] 앞에서 "'''[[I Have a Dream]]'''" 연설중인 [[마틴 루터 킹 주니어]], 500만명이 모인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br/>'''아랫줄''' : 1961년 1500만 ~ 5500만의 사망자를 초래한 [[대약진운동]] 및 1966년 '''[[문화대혁명]]'''을 주도한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 '''[[스톤월 항쟁]]'''이 시작된 장소인 [[스톤월 인]], [[냉전]]기 [[우주 경쟁]] 당시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아폴로 11호|달을 걷는 모습]]'''.
rect 2 2 237 166 [[베트남 전쟁]]
rect 240 2 498 166 [[비틀즈]]
rect 2 169 192 296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
rect 196 169 317 296 [[직업과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
rect 321 169 497 296 [[우드스톡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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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t 241 300 497 486 [[아폴로 11호]]
</imagemap>
'''1960년대'''는 [[1960년]]부터 [[1969년]]까지를 가리킨다.
전후 세대([[베이비 붐]])를 맞이하게 된 연대이자 경제적으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발전 및 성장기의 과정을 거치는 시기였기 때문에 경제의 태동연대라고도 불린다. [[1968년 사회운동]]과 [[히피]]로 대표되는 저항의 시대로도 여겨지며 성적, 문화적, 정치적 자유주의가 확산된 때이기도 하다. 이때를 기점으로 서구권이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어 현재 시대의 자유주의적이고 개방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또한 현재 존재하는 여러 제품과 물건들의 기본 형태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잡혔다. 또 [[비틀즈]] 등 영국의 밴드들이 대중음악과 세계 문화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기도 했다.
== 사건 ==
{{참고|20세기 연표}}
{| align=right cellpadding=3 id=toc style="margin-left: 15px;"
| align="center"| <small>'''[[세기]]'''</small> <br /> [[18세기]] [[19세기]] - '''[[20세기]]''' - [[21세기]] [[22세기]]
|-
| align="center"| <small>'''[[연대 (연도)|연대]]'''</small> <br /> [[1940년대]] [[1950년대]] - '''1960년대''' - [[1970년대]] [[1980년대]]
|-
| align="center"| <small>'''해'''</small> <br /> [[1960년|1960]] [[1961년|1961]] [[1962년|1962]] [[1963년|1963]] [[1964년|1964]] [[1965년|1965]] [[1966년|1966]] [[1967년|1967]] [[1968년|1968]] [[1969년|1969]]
|}
* 이 시기에 [[냉전]]이 극에 치닫게 된다.
* [[미국]]의 격동기: 흑인 인권 운동, 여성 해방 운동, [[히피]] 운동,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진행되다. ([[젊은이의 반란]])
* [[미국]]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맬컴 엑스]], [[로버트 F. 케네디]]가 암살당하다.
* [[한국전쟁]]으로 [[일본]]의 경제가 급격히 발전하다.
* [[아프리카]]의 해: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하였다.
*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가 사망.
* [[미국]] [[뉴욕주]]에서 3일간의 최대의 록 축제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리다.
* [[4.19 혁명]]이 일어나다.
* [[베트남 전쟁]]이 극에 치닫게 되었다.
*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등 5개국,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 결성
* [[B-29 슈퍼포트리스]]가 퇴역했다.
* [[일본]]에서 전후 민주주의 운동이 발전하고 TV에서 [[철완 아톰]]이 방영되어 [[일본 애니메이션]]이 [[디즈니]]에 대항하는 하나의 문화 장르로 상승하는 초석을 만들었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최되어 [[교황청]] 차원에서 세계 평화에 일조하는 길을 열어 준다.
* [[타이]]의 전봇대를 사각으로 바꾸다.
* 이 시기에 수많은 독립국가들이 [[유엔]]에 가입하다.
* 이 시기에 [[가상화]]라는 정의가 나온다.
* 프랑스 [[68혁명]]이 일어난다.
*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일어난다.
* [[트위기]]가 패션의 아이콘이 된다.
* [[비달사순]]의 헤어컷이 큰 인기를 끈다.
*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일어난다.
*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여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달 표면을 걸은 최초의 인간이 되다.
== 같이 보기 ==
* [[베이비붐 세대]]
{{전거 통제}}
[[분류:1960년대|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 align=right cellpadding=3 id=toc style="margin-left: 15px;"
| align="center"| <small>'''[[세기]]'''</small> <br /> [[18세기]] [[19세기]] - '''[[20세기]]''' - [[21세기]] [[22세기]]
|-
| align="center"| <small>'''[[연대 (연도)|연대]]'''</small> <br /> [[1950년대]] [[1960년대]] - '''1970년대''' - [[1980년대]] [[1990년대]]
|-
| align="center"| <small>'''해'''</small> <br /> [[1970년|1970]] [[1971년|1971]] [[1972년|1972]] [[1973년|1973]] [[1974년|1974]] [[1975년|1975]] [[1976년|1976]] [[1977년|1977]] [[1978년|1978]] [[1979년|1979]]
|}
<imagemap>File:1970s decade montage.jpg|370x370px|thumb|right| '''윗줄''' : 1974년에 일어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합중국 대통령을 사임하고 백악관을 떠나면서 승리의 V를 내건 [[리처드 닉슨]]. 1975년 [[사이공 함락]]으로 베트남 전쟁이 종결된 후에 미 해군의 항공모함에 탑승하는 피난민.<br /> '''가운뎃줄''' : 1979년의 [[이란 혁명]]에서는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의 망명 후 [[루홀라 호메이니]]에 의해 이슬람 공화제 정체가 성립되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늦게까지 [[디스코]]의 인기가 극에 달했다. [[제1차 석유파동]]은 교통 정체를 일으켜 세계 경제에 손해를 입혔다.<br />'''아랫줄''' : 1970년 11월 [[1970년 볼라 사이클론]]에서는, 동파키스탄(1971년에 방글라데시로서 독립)의 벵골·델타 지대에서 약 50만명의 인명이 손실되었다. 1978년의 캠프·데이비드 합의에의 사인 후에 악수를 나누는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수뇌.
rect 1 1 289 193 [[워터게이트 사건]]
rect 291 1 593 193 [[사이공 함락]]
rect 375 198 572 408 [[1973년 석유 위기]]
rect 300 412 572 599 [[캠프 데이비드 협정]]
rect 150 412 295 599 [[1971년 방글라데시 집단학살]]
rect 1 412 149 599 [[1970년 볼라 사이클론]]
rect 1 196 180 408 [[이란 혁명]]
rect 184 196 372 408 [[디스코]]
</imagemap>
'''1970년대'''는 [[1970년]]부터 [[1979년]]까지를 가리킨다.
== 국제 정치 ==
[[파일:Cold War alliances mid-1975.png|섬네일|350px|1970년대 세계의 블럭화 현황. <br /> 청색 - [[서방권]] 동맹, 적색 - [[공산권]] 동맹, 녹색 - [[비동맹주의]] ]]
1970년대 세계는 여전히 [[냉전]]의 한 복판에 있었지만<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6317 냉전제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 미국과 중국 사이의 [[핑퐁 외교]]를 시작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두 진영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탕트]]가 시작되었다.<ref>[https://china.usc.edu/getting-beijing-henry-kissingers-secret-1971-trip Getting To Beijing: Henry Kissinger's Secret 1971 Trip],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July 21, 2011</ref> 냉전의 가장 첨예한 대립지였던 [[한반도]]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평화통일의 원칙에 합의하는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한다.<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8478 7·4 남북 공동 성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 그러나 이러한 긴장완화는 제한적이었으며 세계는 여전히 각종 전쟁과 무력 충돌을 겪고 있었다.<ref>김명섭,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824735 1972년 데탕트의 한계와 국제질서의 혼돈], 한국과 국제정치, 2022년</ref> [[1960년대]]부터 계속되오던 [[베트남 전쟁]]은 1973년 [[파리 평화 협정]] 이후 미군이 철수하면서 [[북베트남]]은 승리를 목전에 두었고 1975년 [[사이공 함락]]과 함께 종전을 맞았다.<ref>[https://m.khan.co.kr/people/people-general/article/201104292101135#c2b 1975년 사이공 함락], 경향신문, 2011년 4월 29일</ref> 이후로도 세계는 [[캄보디아 내전]]의 결과 [[크메르 루주]]가 집권하고<ref>[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7/06/19/1997061970107.html 20년 내전사 - 폴포트, 친미 론놀정권 축출땐 국민 "환영"], 조선일보, 1997년 6월 19일</ref>, [[칠레]]에서는 쿠데타를 통해 [[살바도르 아옌데]]의 정권을 붕괴시킨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독재 정치를 하는 것과 같은<ref>[https://m.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309111615001 칠레, 피노체트 군사 쿠데타 50주년…미국 개입 비밀문서 공개], 경향신문, 2023년 9월 11일</ref> 크고 작은 갈등이 이어졌으며, 이들 뒤에는 공산권이던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던 냉전체제에 따른 강대국의 개입이 있었다. 1979년 [[소련]]은 [[소비에트 연방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고<ref>[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603163.html 아프가니스탄, 패권의 경연장이자 무덤], 한겨레, 2013년 9월 12일</ref>, [[이란]]에서는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란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붕괴하고 [[신권 정치]]를 표방하는 이슬람 공화국이 세워졌다.<ref>[https://www.bbc.com/korean/articles/c6p954175eko '후회 아니면 옳은 일?'...45년 전, 이란 혁명을 돌아보다], BBC, 2024년 2월 11일</ref>
1970년대는 국제적 분쟁 뿐만 아니라 각국의 내부적 갈등이 폭력적으로 분출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탈리아]]는 극단적 정치 이념을 지닌 사람들이 테러 활동을 벌이는 [[납탄 시대]]를 겪었고<ref>이경일,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10804831 납의 시대 - 1970년대 이탈리아의 테러리즘 등장과 성격 변화를 중심으로 -], 대구가톨릭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7년</ref> 영국은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요구하는 [[IRA]]를 표방하는 여러 단체들과 갈등을 겪었다.<ref>[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918172.html 70년 적대 딛고…남북 아일랜드가 일군 ‘평화 프로세스’], 한겨레, 2019년 11월 23일</ref> 1960년대 말부터 전세계적인 영향을 끼친 청년 학생 운동의 일부가 1970년대를 거치며 극단화 하여 일본의 [[공산주의자동맹 적군파|적군파]]나<ref>[https://www.imaeil.com/page/view/2018081211105816301 잠깐상식 - 일본 '적군파'는 어떤 단체? 1970년 3월 요도호 공중납치 사건 일으켜], 매일신문, 2018년 8월 12일</ref> [[적군파 (독일)|독일 적군파]]<ref>[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11924.html 혁명의 이름으로 방화, 살인… 독일 적군파의 대표자], 한겨레, 2023년 10월 12일</ref>,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과 같은 테러 조직이 생겨나기도 하였다.<ref>[https://www.khan.co.kr/people/people-general/article/200811271822015 1970년 伊 ‘붉은 여단’ 창설], 경향신문, 2008년11월 27일</ref>
== 국제 경제 ==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계속하여 고도 성장을 이루던 국제 경제는 1970년대에 들어 위기를 맞았다. 이른바 자본주의의 "황금기"였던 이 시기가 지나고 1970년대 초반부터 이윤율이 하락하면서 경제위기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였고 1973년 일어난 [[중동전쟁]]과 그 여파에 따른 [[오일 쇼크]]로 국제 경제는 급격한 침체와 장기적인 불황을 겪었다.<ref>김수행 외, [https://s-space.snu.ac.kr/bitstream/10371/61812/1/41-3-1.pdf 1970년대 이후 장기불황과 자본의 대응], 경제논집, 제41권 제3호, 2002년</ref> 오일 쇼크와 경제 위기는 냉전 체제의 각 블럭이 긴장 완화 정책을 취하게 만든 원인이었고 이후 [[1980년대]]의 [[GATT]]를 뛰어넘는 강력한 국제무역기구의 필요와 [[자유무역]] 확대 움직임으로 이어졌다.<ref>[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547 75년 만에 위기 맞은 자유주의 무역 시스템], 시사인, 2022년 10월 5일</ref>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도 동아시지역은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였다. [[일본]]은 [[소득 배증 계획]]을 초과 달성하면서 1973년까지 "고도성장기"를 지냈고<ref>「戦後日本経済の時期区分」金子貞吉(2018年)、中央大学経済研究所年報 第50号(2018) pp.67-103</ref> [[대한민국]], [[홍콩]], [[싱가폴]], [[대만]]의 고도 성장 역시 이어져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다.<ref>[http://www.financialreview.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735 역사속 경제리뷰 - 아시아 네 마리 용], 파이낸셜 리뷰, 2023년 3월 7일</ref>
== 문화 ==
1970년대 대중문화의 세계적인 흐름은 미국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헐리우드]]는 1970년대 중반부터 감소하고 있던 영화 관객들의 발길을 다시 극장으로 돌리기 위해 막대한 자금력으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블록버스터]]를 제작하였고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975년작 [[죠스 (영화)|죠스]]는 최초의 블럭버스터 영화로 평가되며 이후 헐리우드의 영화 제작 기법은 전 세계에 영향을 주었다.<ref>[https://www.kmdb.or.kr/story/150/3288 블록버스터는 여전히 진화 중 ], 한국영상자료원, 2013년 7월 10일</ref> 전후의 헐리우드 부흥기는 [[뉴 할리우드|뉴 헐리우드]]로 불린다.
1970년대는 [[록 음악]] 과 [[헤비 메탈]]의 최대 전성기였다.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블랙 사바스]], [[딥 퍼플]], [[플리트우드 맥]], [[AC/DC]], [[이글스]], [[퀸 (밴드)|퀸]]과 같은 록 밴드가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다.<ref>[https://guitarriego.com/ko/jeonja-gita/60%EB%85%84%EB%8C%80-70%EB%85%84%EB%8C%80-80%EB%85%84%EB%8C%80-%EB%A1%9D%EC%9D%98-%EC%97%AD%EC%82%AC%EC%99%80-%EC%A7%84%ED%99%94/ 60년대, 70년대, 80년대 록의 역사와 진화], GUITARIEGO, 2022년 12월 9일</ref> 한편 댄스 음악에서는 [[디스코]]가 전 세계를 열광시겼다. 디스크 자키의 주도 아래 춤을 추는 디스코 문화는 전 세계에 댄스 클럽이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다.<ref>[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9921.html 자, 긴장을 내던지고 디스코, 디스코!], 한겨레21, 2015년 7일 16일</ref>
1970년대는 [[비디오 게임]]이 본격화 된 시기이기도 하다. 1977년 9월 출시된 [[아타리 2600]]는 [[컴뱃 (비디오 게임)|컴뱃]], [[팩맨]]과 같은 새로운 게임을 유행시켰다.<ref>[https://www.thisisgame.com/webzine/nboard/212/?n=57697 세상을 바꾼 아이디어(7) - 아타리(Atari) 2600], 디스이즈게임, 2015년 1월 26일</ref>
== 사건 ==
{{참고|20세기 연표}}
=== 전쟁 ===
[[파일:DakToVietnam1966.jpg|섬네일|베트남 전쟁에 투입된 미군]]
[[파일:Soviet troops boarding a helicopter in Afghanistan.jpg|섬네일|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된 소련군]]
* 냉전
1970년대는 1945년 이후 이어진 [[냉전]]의 한복판에 해당한다. 세계는 [[서방권]]과 [[공산권]]의 양진영과 [[비동맹주의]] 블럭으로 분할되었고 곳곳에서 전쟁이 있었다.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은 [[억지이론]]에 따라 [[핵무기]] 경쟁을 하면서도 [[핵전쟁]]으로 인한 공멸을 두려워하여 직접 충돌하지는 않았다.<ref>김일수 외,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549814 미국의 국가안보와 핵억지 전략의 변화: 트루먼-트럼프 행정부까지], 세계지역연구논총, 2019년</ref> 대신 지구의 곳곳에서는 이들이 대립이 배경이 되는 [[대리전]]이 일어났다.<ref>[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3110915180160485 냉전 시기 아시아는 왜 전쟁과 폭력으로 물들었나?], 부산일보, 2023년 11월 9일</ref>
** [[베트남 전쟁]]은 1975년 [[사이공 함락]]까지 계속되었다.
**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1989년까지 계속 되었다.
** 1975년 시작된 [[앙골라 내전]]은 신생독립국 [[앙골라]]에서 공산진영과 반공세력 사이에 벌어진 내전으로 세기를 바꾸어 2002년까지 지속되었다.
** 1967년 시작된 [[캄보디아 내전]] 역시 1975년까지 지속되었고 내전에서 승리한 [[크메르 루주]]는 수 많은 인명을 학살하여 캄포디아를 [[킬링필드]]로 바꾸었다.
** 1974년 시작된 [[에티오피아 내전]] 역시 이념 갈등을 배경으로 1991년까지 지속되었다.
** 1971년 시작된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의 결과 [[파키스탄]]은 [[서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으로 분리되었고 이후 서파키스탄은 파키스탄으로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국명을 바꾸었다. 1971년 서파키스탄의 무자비한 [[1971년 방글라데시 집단학살|집단 학살]]이 있었다.
**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은 남북의 군사적 긴장을 크게 높인 사건이었다.
* 1970년대 전쟁의 또 다른 한 축은 종교나 민족을 앞세운 폭력 대결이었다.
**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인도와 파키스탄은 지속적인 갈등을 보였고 1971년 인도가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에 개입함으로써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일어났다.
** [[이스라엘]] 건국 이후 지속된 [[아랍-이스라엘 분쟁]]은 197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1973년 [[이집트]]의 공격으로 시작된 [[욤키푸르 전쟁]]은 양측 모두 큰 희생을 치른 뒤 정전 협정을 맺었지만, [[아랍 석유 수출국 기구]]가 전쟁 당시 이스라엘을 지원한 나라에 대해 [[석유]] 금수 조치를 내리면서 [[1973년 석유 위기]]가 발생하였다. 이후 세계는 간간이 [[자원 무기화]]에 따른 위기를 겪고 있다.
** 1974년 [[튀르키예]]는 [[튀르키예의 키프로스 침공|키프로스]]를 침략하여 북부 지역을 점령하였다.
** 1975년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를 점령하였다.
** 1975년 시작된 [[레바논 내전]]은 1990년까지 이어졌고 다종교 다문화 사회인 레바논 내의 종교적 갈등 격화를 가져왔다. 레바논 내전은 또한 냉전에 따른 초강대국의 대리전 양상을 띄기도 하였다.
** 1977년 [[소말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으로 [[오가덴 전쟁]]이 일어났다. 지역 패권을 두고 일어난 이 전쟁에서 [[소련]]과 [[쿠바]]가 에티오피아를 지원하였고 그 결과 소말리아는 패전 이후 [[소말리아 내전]]의 상황에 놓이게 되어 이후 오랫동안 제대로 된 중앙 정부가 없는 권력 공백을 겪게 되었다.
** 1978년 [[동아프리카]]의 패권을 두고 [[우간다-탄자니아 전쟁]]이 일어났다.
*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는 [[탈식민지화]]의 물결로 각지에서 독립전쟁이 일어나 신생독립국들이 탄생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1970년대에 까지 이어져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과 같은 독립 운동이 지속되었다. 포르투갈은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해외 식민지를 포기하였다.
=== 정변 ===
[[파일:Galpón Victor Jara (cropped).jpg|섬네일|칠레의 가수 [[빅토르 하라]]는 1973년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반대하다 살해되었다.]]
1970년대는 [[쿠데타]]에 의한 정변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정변의 상당수는 미국이나 소련이 배후에 있었다.
* 1970년 [[시리아]], [[하페즈 알아사드]]
* 1971년 [[우간다]], [[이디 아민]]
* 1973년 [[칠레]],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 1974년 [[에티오피아]], [[아만 안돔]]/[[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 1975년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 육군]]
* 1976년 [[아르헨티나]],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국가재편성과정|프로세소]]
* 1979년 [[대한민국]], [[전두환]]/[[하나회]] ([[12·12 군사 반란]])
=== 스포츠 ===
* [[FIFA 월드컵]]
** [[1970년 FIFA 월드컵]] ([[멕시코]])
** [[1974년 FIFA 월드컵]] ([[서독]])
** [[1978년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 [[하계 올림픽]]
** [[1972년 하계 올림픽]] ([[뮌헨]]) - [[뮌헨 올림픽 참사|검은 9월단 사건]]이 일어났다.
** [[1976년 하계 올림픽]] ([[1976년 하계 올림픽]]) - [[양정모]]가 [[레슬링]]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 [[동계 올림픽]]
** [[1972년 동계 올림픽]] ([[삿포로]])
** [[1976년 동계 올림픽]] ([[인스부르크]])
=== 영화 ===
[[파일:Star Wars Logo.svg|섬네일|1977년 처음 등장한 《스타워즈》 시리즈는 최근까지도 계속되어 제작되고 있다.]]
1970년대의 영화 산업은 [[뉴 할리우드|뉴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 영화의 세계적 흥행과 [[홍콩 영화]], [[일본 영화]]와 같은 아시아지역 영화들의 독특한 발전이 있었다.
* 헐리우드 영화
** 1972년 《[[대부 (영화)|대부]]》
** 1975년 《[[죠스 (영화)|죠스]]》
** 1977년 《[[스타워즈]]》
** 1979년 《[[지옥의 묵시록]]》
=== 대한민국 ===
* 1970년 [[새마을운동]] 시작
*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 / [[유신헌법]]으로 [[박정희]]의 종신 집권
*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 1974년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 / [[육영수 저격 사건]] / [[민청학련 사건]]
* 1975년 [[인민혁명당 사건]] 관계자 사형
* 1976년 [[코리아게이트]] /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 [[에버랜드]](자연농원) 준공.
* 1977년 [[이리역 폭발 사고]]
* 1978년 [[세종문화회관]] 준공 / [[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
* 1979년 [[부마 민주 항쟁]] / [[10·26 사건]] / [[12·12 군사 반란]]
== 각주 ==
{{각주}}
{{전거 통제}}
[[분류:1970년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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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펙'''({{lang|en|Joint Photographic Experts Group; '''JPEG'''|[ˈdʒeɪpɛɡ]}}, {{문화어|합동사진전문가단체}}<ref>[http://unibook.unikorea.go.kr/?cate=1&sub_num=50&pageNo=53 북한자료센터: 남북한 IT용어 비교]{{깨진 링크|url=http://unibook.unikorea.go.kr/?cate=1&sub_num=50&pageNo=53 }}</ref>)은 정지 화상을 위해서 만들어진 [[손실 압축]] 방법 표준이다. 이 표준은 [[국제 표준화 기구|ISO]]와 [[ITU 전기통신 표준화 부문|ITU-T]]에서 제정하였다. JPEG를 사용하는 [[파일 형식]]들도 보통 JPEG 이미지라 불리며, .jpg, .jpeg, .jpe 등의 [[확장자]]를 사용한다. 1677만 7216색과 256색 그레이로 저장 할 수 있다.
JPEG 표준은 이미지가 어떻게 연속된 [[바이트]]로 바뀌는지만을 규정한다. 독립 JPEG 그룹(Independent JPEG Group; IJG)에서 만든 JPEG의 확장인 '''JFIF'''(JPEG File Interchange Format)는 JPEG 스트림을 저장과 전송에 적합한 형태로 담는 이미지 [[파일 형식]]이다. [[디지털 카메라]]의 사진 저장 방식으로는 다른 확장인 [[EXIF]] JPEG 형식이 더 자주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JPEG 파일이라고 할 때는 JFIF 형식이거나 EXIF JPEG 형식을 가리키지만, [[JNG]]와 같은 JPEG 기반의 다른 파일 형식도 존재한다.
손실 압축 형식이지만 파일 크기가 작기 때문에 웹에서 널리 쓰인다. 압축률을 높이면 파일 크기는 작아지지만 이미지 품질은 더욱 떨어진다.
JPEG/JFIF는 [[월드 와이드 웹|웹]] 상에서 사진 등의 화상을 보관하고 전송하는 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파일 형식이다. 하지만 이 압축 방법은 문자, 선, 세밀한 격자 등 고주파 성분이 많은 이미지의 변환에서는 [[GIF]]나 [[PNG]]에 비해 불리하며, 나쁜 품질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JPEG 표준에도 [[비손실 압축]] 방법이 정의되어 있지만 특허 문제와 압축률 등의 이유로 잘 사용되지는 않으며, [[PNG]] 등의 비손실 압축을 지원하는 포맷을 많이 사용한다.
== JPEG 표준 ==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width:80%;"
|+정적 이미지의 디지털 압축 및 코딩 – 파트<ref name="jpeg-sc29">{{웹 인용|url=http://kikaku.itscj.ipsj.or.jp/sc29/29w42901.htm |title=Programme of Work, (Allocated to SC 29/WG 1) |author=ISO/IEC JTC 1/SC 29 |accessdate=2009-11-07 |url-status=dead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31012300/http://kikaku.itscj.ipsj.or.jp/sc29/29w42901.htm |archivedate=2013-12-31 |df= }}</ref><ref name="jpeg-jpeg">{{웹 인용| url=http://www.jpeg.org/jpeg/index.html | title=Joint Photographic Experts Group, JPEG Homepage | author=JPEG | accessdate=2009-11-08}}</ref><ref>{{웹 인용|url=http://www.iso.org/iso/iso_catalogue/catalogue_tc/catalogue_tc_browse.htm?commid=45316 |title=JTC 1/SC 29 – Coding of audio, picture, multimedia and hypermedia information |author=ISO | accessdate=2009-11-07}}</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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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width:15%;"| ISO/IEC 표준
! style="width:10%;"| ITU-T Rec.
! style="width:8%;"| 최초 출시일
! style="width:8%;"| 마지막 개정일
! style="width:30%;"| 제목
|-
| Part 1
| [http://www.iso.org/iso/iso_catalogue/catalogue_tc/catalogue_detail.htm?csnumber=18902 ISO/IEC 10918-1:1994]
| [http://www.itu.int/rec/T-REC-T.81 T.81 (09/92)]
| {{dts|abbr=on|1992-09-18}}
|
| Requirements and guidelines
|-
| Part 2
| [http://www.iso.org/iso/iso_catalogue/catalogue_tc/catalogue_detail.htm?csnumber=20689 ISO/IEC 10918-2:1995]
| [http://www.itu.int/rec/T-REC-T.83 T.83 (11/94)]
| {{dts|abbr=on|1994-11-11}}
|
| Compliance testing
|-
| Part 3
| [http://www.iso.org/iso/iso_catalogue/catalogue_tc/catalogue_detail.htm?csnumber=25037 ISO/IEC 10918-3:1997]
| [http://www.itu.int/rec/T-REC-T.84 T.84 (07/96)]
| {{dts|abbr=on|1996-07-03}}
| {{dts|abbr=on|1999-04-01}}
| Extensions
|-
| Part 4
| [http://www.iso.org/iso/iso_catalogue/catalogue_tc/catalogue_detail.htm?csnumber=25431 ISO/IEC 10918-4:1999]
| [http://www.itu.int/rec/T-REC-T.86 T.86 (06/98)]
| {{dts|abbr=on|1998-06-18}}
| {{dts|abbr=on|2012-06-29}}
| Registration of JPEG profiles, SPIFF profiles, SPIFF tags, SPIFF colour spaces, APPn markers, SPIFF compression types and Registration Authorities (REGAUT)
|-
| Part 5
| [http://www.iso.org/iso/iso_catalogue/catalogue_tc/catalogue_detail.htm?csnumber=54989 ISO/IEC 10918-5:2013]
| [http://www.itu.int/rec/T-REC-T.871 T.871 (05/11)]
| {{dts|abbr=on|2011-05-14}}
|
| JPEG File Interchange Format (JFIF)
|-
| Part 6
| [http://www.iso.org/iso/home/store/catalogue_tc/catalogue_detail.htm?csnumber=59634 ISO/IEC 10918-6:2013]
| [http://www.itu.int/rec/T-REC-T.872 T.872 (06/12)]
| {{dts|abbr=on|2012-06}}
|
| Application to printing systems
|}
== 압축 과정 ==
JPEG 표준 안에는 많은 선택사항들이 있지만, 그중 대부분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아래 설명은 [[픽셀]]당 24비트 (빨강, 초록, 파랑 각 8비트씩)의 색상정보를 가진 데이터를 변환하는 일반적인 방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다. 아래 설명한 방식에선 [[손실 압축]] 방식을 사용한다.
=== 색공간 변환 ===
우선 각 [[픽셀]]의 RGB 데이터를 [[YCbCr]]이라는 다른 [[색공간]] 데이터로 변환한다. 이 색공간은 [[NTSC]]나 [[PAL]] 방식의 컬러 [[텔레비전]] 전송에 쓰이는 색공간과 유사하다. Y 성분은 픽셀의 [[루마 (비디오)|루마]]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Cb와 Cr 성분은 색차 정보(chroma components)를 가지고 있다. 사람의 눈이 색상 성분보다 휘도 성분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색상 정보를 더 많이 압축하기 위해서 YCbCr 색공간으로 변환한다.
색공간 변환 시 제한된 정밀도 (채널당 8 비트) 때문에 정보가 완전히 보전되지 않는다. 따라서 뒤에서 [[양자화 (정보 이론)|양자화]]를 전혀하지 않더라도 원본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즉, JPEG 저장시 화질을 100%으로 하더라도 원본과 차이가 있게 된다.
=== [[크로마 서브샘플링]] ===
때로는 Cb와 Cr 성분의 수를 줄인다. (이를 "다운 샘플링", 혹은 "크로마 서브샘플링"이라 한다.) 이어지는 설명은 각 성분에 대한 것으로, 성분별로 같은 절차가 진행된다.
=== 양자화 ===
사람의 눈은 명도에 대해 비교적 넓은 영역에서 작은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고주파의 명도 변화에서는 그 구별 능력이 떨어진다. 이 사실에 근거하여 고주파 성분의 정보의 많은 부분은 버릴 수 있다. 이런 작업은 주파수 영역의 각 성분에 대해 특정 상수로 나누고 정수 몫만을 취함으로써 수행된다. 이 작업이 전체 압축 과정에서 가장 손실이 큰 부분이다. 이 방법으로 고주파 성분들은 거의 0이나 0에 근접한 양수, 혹은 음수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주파수는 전자기파의 주파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격자 상에 늘어 놓았을 때의 공간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에 주의한다.) 그런데 정지 영상의 특성상 평균적으로 픽셀값이 확 변하는 곳이 적다(에너지 집중 현상으로 인해 대부분 저주파수에 모여있다. 그래서 양자화를 할 때 가중치 양자화를 적용함으로써 에너지가 큰 저주파는 많이 살려내고, 에지가 거의 없어서 잘라내도 총합 에너지엔 거의 차이가 없는 고주파를 많이 제거한다.).
=== 엔트로피 부호화 ===
이 과정은 [[비손실 압축]] 방식으로서, 8×8 격자의 성분들을 저주파부터 지그재그로 일렬로 세운 뒤. 반복된 0에만 [[반복 길이 부호화|RLE]]를 적용하고, 그 결과들에 대해 [[허프만 부호화]]를 한다. 표준은 허프만 부호화 대신에 더 압축률이 좋은 [[산술 부호화]]도 가능하다고 기술하지만 산술 코딩은 인코딩, 디코딩시의 지연, 경제성 등의 이유를 들어 잘 쓰이지 않는다.
== 압축 해제 과정 ==
압축 해제된 JPEG 데이터를 얻는 과정은 압축 과정을 역으로 취함으로써 이루어진다.
== 규격서 ==
규격은 합동 그룹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ISO와 ITU-T 양측에서 나오고 있다.
* [[ITU-T]]권고 T.81
* [[JIS]] X 4301
* ISO/IEC 10918-1:1994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JPEG 2000]]
* [[MPEG]]
* [[VCEG]]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 [http://www.w3.org/Graphics/JPEG/itu-t81.pdf JPEG Standard (JPEG ISO/IEC 10918-1 ITU-T Recommendation T.81)] at W3.org
* [http://on-demand.gputechconf.com/gtc/2012/presentations/S0273-Fast-JPEG-Coding-on-the-GPU.pdf JPEG compression and decompression on GPU.]
{{압축 형식}}
{{그래픽 파일 포맷}}
{{전거 통제}}
[[분류:JPEG| ]]
[[분류:ISO 표준]]
[[분류:그래픽 파일 포맷]]
[[분류:오픈 포맷]]
[[분류:화상 압축]]
[[분류:손실 압축 알고리즘]]
[[분류:ITU-T 권고]]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이동보호-무기한}}
{{다른 뜻}}
{{영유권 분쟁 중인 섬 정보
|이름=독도
|다른이름=리앙쿠르 암초,<br/>다케시마(일본 주장),<br/>우산도, 가지도, 삼봉도, 호넷 섬
|그림=Dokdo Photo.jpg
|그림설명=북쪽에서 본 독도. 왼쪽이 동도, 오른쪽이 서도.
|지도=Dokdo Map Ko.PNG
|좌표=동도 {{좌표3|37|14|26.8|N|131|52|10.4|E}}<br /> 서도 {{좌표3|37|14|30.6|N|131|51|54.6|E}}
|면적=동도 73,297m²<br /> 서도 88,740m²<br /> 기타 암초 25,517m²
----총 187,554m²
|최고점=서도 대한봉
|높이=168.500m
|위치=[[동해]]
|구성도서=91개 섬
|주요도서=동도(東島){{·}}서도(西島)
|나라=대한민국
|행정구역이름=도
|행정구역=[[경상북도]]
|행정구역1이름=군·읍·리
|행정구역1=[[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나라2=일본
|나라2행정구역이름=현
|나라2행정구역=[[시마네현]]
|나라2행정구역1이름=군·정
|나라2행정구역1=[[오키군]] [[오키노시마정]]
}}
'''독도'''(獨島)는 [[동해]]의 남서부, [[울릉도]]와 [[오키 제도]] 사이에 위치한 [[섬]] 또는 [[암초]]이다. '''리앙쿠르 암초'''({{llang|en|Liancourt Rocks}})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동도 (독도)|동도]]와 [[서도 (독도)|서도]]를 포함해 총 91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울릉도에서 뱃길로 200리 정도 떨어져 있다.<ref>[http://www.dokdomuseum.go.kr/mor/sub_st_01_03_03.html 환경] {{웨이백|url=http://www.dokdomuseum.go.kr/mor/sub_st_01_03_03.html |date=20100201071306 }}, 독도박물관</ref> 현재 [[대한민국]]이 실효지배하고 있으나 [[일본]] 정부에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최종덕이 [[1965년]] [[3월]]부터 최초 거주한 이래로 김성도 부부 및 독도경비대원 35명, 등대 관리원 2명, 울릉군청 독도관리 사무소 직원 2명 등 약 40명이 거주하고 있다.<ref>2017년 9월 기준</ref> 또한, 2005년 [[동도 (독도)|동도]]에 대한 입도 신고제 도입 이후 2021년 4월 기준 약 200만 명이 방문하였고, 1일 평균 500명이 입도하고 있다.<ref>{{웹 인용|url=https://dokdo.mofa.go.kr/kor/introduce/residence.jsp|제목=주민 및 입도관련|출판사=외교부|확인날짜=2021-06-02}}</ref>
== 명칭 ==
독도는 한국어권에서 주로 쓰이며, 돌로 된 섬이란 뜻의 '돌섬'의 경상도 방언 명칭인 '''독섬'''을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쓰면서 '''독도'''(獨島)가 되었다. 일본어권에서는 다케시마라고 불리며, 과거에는 마쓰시마라고 불렸다. 국내 문헌에서는 독도를 일컫는 표현으로 우산도(于山島), 가지도(可支島), 삼봉도(三峰島) 등이 사용되기도 하였으며,<ref>{{저널 인용 |저자=허진영 |날짜=2011 |제목=유럽과 한국에서 <독도>명칭 변천에 관한 역사적 고찰과 새 한글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독도의 표기 문제 |url=https://www.riss.kr/link?id=A100150544 |저널=한국지도학회 |출판사=한국지도학회지 |권=11 |호=2 |issn=1598-6160}}</ref> 미국 문헌에서는 호넷 섬 또는 '호넷 아일랜드'(Hornet Islands)라는 명칭으로 독도를 부르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 |저자=김정석 |제목='독도는 한국땅'의 증거…美·日 도서관서 고지도 245점 발견 |url=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0068 |뉴스=[[중앙일보]] |위치=서울 |날짜=2023-05-04 |확인날짜=2024-07-08}}</ref>
제3국에서는 [[독도 분쟁]]을 감안할 때 [[1849년]]에 독도를 발견한 [[프랑스]] 선박인 '리앙쿠르 호'의 이름을 따서 '''리앙쿠르 암초'''({{llang|fr|Rochers Liancourt}}, {{llang|en|Liancourt Rocks}})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ref>{{웹 인용|url=https://mnews.joins.com/amparticle/3231838|제목=[분수대] 리앙쿠르|성=예영준|날짜=2008-07-21|출판사=중앙일보|확인날짜=2021-06-02}}</ref>
== 지리 및 지질 ==
[[파일:Location-of-Liancourt-rocks-ko.png|섬네일|250px|오른쪽|섬의 위치]]
이 섬은 [[동해]]의 해저 지형 중 [[울릉분지]]의 북쪽 경계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평균 수심 2,000m의 해양 평원에 솟아 있는 [[화산섬]]이다.<ref name="ReferenceA">김창환외, 지자기이상을 이용한 동해 독도 및 독도주변의 구조와 성인에 관한 고찰, 2002년 12월, Ocean and Polar Research, Vol.24, No.4, 491-500면 중 492면</ref> 두 개의 큰 섬인 동도(東島)와 서도(西島)를 중심으로 총 91개의 크고 작은 섬과 암초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도와 서도 사이의 거리는 151m이다. 일본에서는 동도를 오지마(男島), 서도를 메지마(女島)라고 부른다.<ref>{{웹 인용|url=https://imnews.imbc.com/replay/2017/nwtoday/article/4261752_31369.html|제목=日, 독도 11곳에 '제멋대로' 일본식 이름 표기|성=이동애|날짜=2017-04-05|언어=ko|확인날짜=2020-02-12}}</ref>
독도의 총 면적은 187,554m²로, 서도(西島)가 88,740m², [[동도 (독도)|동도]](東島)가 73,297m², 그 밖의 암초가 25,517m²이다. 서도의 최고 높이는 168.5m이고, 동도의 최고 높이는 98.6m이다. 2012년 11월부터 대한민국 정부 고시에 의거하여 서도의 최고봉은 '대한봉'(大韓峰), 동도의 최고봉은 '우산봉'(于山峰)으로 부른다.<ref>국토지리정보원고시 제2012-1268호, 《[http://gwanbo.korea.go.kr/jsp/drm/ezPDFView.jsp?ebookSeq=00000000000000001351215810778000&keyword=&sPage=95&tocSeq=00000000000000001351215850362000 지명의 제정] {{웨이백|url=http://gwanbo.korea.go.kr/jsp/drm/ezPDFView.jsp?ebookSeq=00000000000000001351215810778000&keyword=&sPage=95&tocSeq=00000000000000001351215850362000# |date=20131212201213 }}》, 국토지리정보원장, 2012-10-29</ref> 동도의 최고봉은 1950년대에는 '성걸봉'으로 불렸으며<ref>[http://news.joins.com/article/18453480 1956년 독도 등대엔 선명한 ROK], 《중앙일보》, 2015.08.15.</ref>, 2005년부터 고시 이전까지는 '일출봉'(日出峰)이라 불렸다.<ref>[http://news.joins.com/article/3147337 "독도 최고봉에 이름 없다는 사실에 큰 충격"], 《중앙일보》, 2008.05.15. ; 원래는 특별한 이름이 없었으나, 2005년에 안동립 동아지도 대표가 독도의 대축척 지도를 만들면서 이름을 붙였다.</ref> 동도와 서도 및 부속 도서는 대부분 수심 10m 미만의 얕은 땅으로 연결되어 있다.
독도의 [[동도 (독도)|동도]]는 동경 131도 52분 10.4초, 북위 37도 14분 26.8초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섬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약 87.4 km 떨어져 있으며, 일본 시마네현 [[오키 제도]]에서는 약 157.5 km 떨어져 있다. [[한반도]]에서의 거리는 약 216.8km이며, 일본 [[혼슈]]에서의 거리는 약 211km이다. 날씨가 좋으면 울릉도 동쪽 해안에서 육안으로 이 섬을 볼 수 있다.<ref name="SeeDokdo">[http://www.dkbnews.com/bbs/data/dica/1110987941/ul1.jpg 울릉도에서 보이는 독도] {{웨이백|url=http://www.dkbnews.com/bbs/data/dica/1110987941/ul1.jpg# |date=20050415080432 }} (도깨비뉴스).</ref><ref name="SeeDokdo2">[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447010 울릉도에서 독도 보인다…일본 거짓주장 들통] [[서울 방송|SBS]] 뉴스</ref>
독도는 약 460~250만 년 전에 형성된 해양섬 기원의 화산체로서, 섬 주변에 분포하는 지층들을 아래에서부터 괴상 [[응회각력암]], [[조면안산암]] I, 층상 [[라필리응회암]], [[층상응회암]], [[조면안산암]] II, 스코리아성 층상 [[라릴리응회암]], [[조면안산암]]III, [[각력암]], [[조면암]], 염기섬 암맥 등 총 9개의 화산암층으로 이루어져 있다.<ref name="ReferenceB">박찬 외, 독도 암석의 역학적 특성에 관한 연구, 2008년 2월, 터널과 지하공간, 제18권, 제1호, 69-79면</ref> 현재는 오랜 세월동안 침식되어 화산의 흔적은 찾기 힘들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0984&yy=2008 (여기는 독도) 깎이고 부서지며 460만년…화산섬 내력] {{웨이백|url=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0984&yy=2008 |date=20150725163753 }} 《매일신문》2008년 11월 7일</ref> 독도(특히 동도)의 지반은 불안정한데, 이것은 [[단층]]과 [[절리]], 균열, 그리고 불완전한 공사 등이 원인으로 추정된다.<ref name="ReferenceB"/> 독도는 지질학적으로 울릉도의 화산암류와 비슷한 전암 화학조성을 갖는 [[알칼리 현무암]], [[조면 현무암]], [[조면 안산암]] 및 [[조면암]]으로 구성되어 있다.<ref name="ReferenceA"/>
===서도===
높이 168.5m, 둘레 2.6km, 면적 88,740m² 5필지, 동도에 비해 높이가 높고 면적이 넓지만, 경사가 급한 편이라 [[필지]]가 적은 편이다.
==== 자연환경 - 지형====
* 대한봉: 서도의 정상
* 탕건봉: 서도 북쪽에 위치하여 봉우리 형상이 [[탕건]]을 꼭 닮아 붙여진 이름. 서도 최고봉과 북편에 위치함. 주로 주상절리임. 오른쪽으로 탕건봉이며, 탕건봉 상부는 [[주상절리]], 하부는 [[타포니]] 형태이다.
* 삼형제굴바위: 형상을 아우르는 명칭으로 3개의 동굴이 있어 현지 어민들의 구전에 의한 명칭 안파식 대상에 발달한 [[시스택]]으로 서도에는 속하지 않지만 서도 근방에 위치<ref>{{웹 인용 |제목=독도의 지형과 지질 |url=http://www.dokdomuseum.go.kr/page.htm?mnu_uid=676& |웹사이트=독도 박물관 |확인날짜=2020-11-24 |archive-date=2020-07-09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00709053511/http://www.dokdomuseum.go.kr/page.htm?mnu_uid=676& |url-status=dead }}</ref>
* 상장군바위
* 코끼리바위: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형상의 독특한 모양에 대하여 불리는 바위
* 김바위: 독특한 모양에 대한 일관된 명칭 구전으로 김은 [[해태]]를 의미함<ref>{{웹 인용 |제목=독도지명의 유래 |url=https://www.nifs.go.kr/dokdo/page?id=dd_01020100 |웹사이트=국립수산과학원 - 독도수산연구센터 |확인날짜=2020-11-24 |archive-date=2020-07-09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00709054225/https://www.nifs.go.kr/dokdo/page?id=dd_01020100 |url-status= }}</ref>
===동도===
높이 98.6m, 둘레 2.8km 면적 73,297m² 7필지. 서도에 비해 높이가 낮고 면적이 좁지만, 둘레가 크고 완만해 필지가 많은 편이다.
==== 자연환경 - 지형 ====
* 한반도 바위: 북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한반도 형상과 꼭 닮아 붙여진 이름. 실제 부속도서를 제외한 한반도의 형상이 보인다.
* 숫돌바위: 의용수비대원들이 생활할 당시 칼을 갈았다는 곳으로 바위의 암질이 숫돌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 선착장 근처에 노출되는 [[조면암맥]]. [[차별침식]]으로 주변의 [[응회각력암층]]은 침식되어 없어지고 수면상에 솟아있어 숫돌바위라 일컬으며 주상절리가 거의 수평으로 발달되어 있다.
* 얼굴바위: 사람의 얼굴과 흡사한 독특한 모양으로 현지어민들의 구전으로 붙여진 이름.
* 독립문바위: [[시아치]](왼쪽)와 [[해식동굴]](오른쪽) - [[절리밀도]]가 높은 해안가에 위치하는 [[기반암]] 지대에서 발달 한다. 아치의 형태가 대한민국의 지도를 닮아서 잘 알려진 곳이다.
* 천장굴: 분화구라고도 하였으나 학계에 의하면 침식에 의해 함몰로 생긴 천장동굴로 불린 명칭
* 물오리바위: 물오리서식지로서 현지어민들에 의해 불리는 명칭으로 물오리는 [[바다가마우지]]를 지칭함
* 춧발바위: 춧발은 갑, 곶 등이 튀어 나온 곳을 의미하는 현지 방언으로 구전되어온 명칭<ref>{{웹 인용 |제목=독도지명의 유래 |url=https://www.nifs.go.kr/dokdo/page?id=dd_01020100 |웹사이트=국립수산과학원 - 독도수산연구센터 |확인날짜=2020-11-24 |archive-date=2020-07-09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00709054225/https://www.nifs.go.kr/dokdo/page?id=dd_01020100 |url-status= }}</ref>
* 악어바위: 암석의 측면에서 형성된 풍화혈을 총칭하여 타포니라 한다. 집괴암을 구성하는 작은 역들이 염풍화 작용으로 인하여 기반암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면 구멍이 형성되어 있다.<ref>{{웹 인용 |제목=독도의 지형과 지질 |url=http://www.dokdomuseum.go.kr/page.htm?mnu_uid=676& |웹사이트=독도 박물관 |확인날짜=2020-11-24 |archive-date=2020-07-09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00709053511/http://www.dokdomuseum.go.kr/page.htm?mnu_uid=676& |url-status=dead }}</ref>
=== 행정 구역 ===
대한민국의 행정구역에서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96번지에 속하며 [[우편번호]]는 40240이다.<ref>이로 인해 대한민국에서는 이 섬을 대한민국의 최동단 영토로 본다.</ref><ref>개편 전의 우편번호는 799-805이다.</ref> 대한민국은 이 섬을 [[천연기념물]] 제336호 [[독도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울릉군은 국민 공모를 통해 도로명 주소법에 따른 이 섬의 도로명 주소를 '[[독도안용복길]]'(서도)과 '[[독도이사부길]]'(동도)로 정하였다. 일본이 주장하는 행정 구역에서는 [[시마네현]] [[오키군]] [[오키노시마정]]에 속해 있다.
== 기후 ==
[[파일:Dokdo 20080628-panorama.jpg|360px|섬네일|파노라마]]
난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로 연간 평균강수량은 1,240mm 정도, 연평균 기온 약 12℃<ref>1999년부터 2006년까지 연평균 12.8℃임. 이종범과 김재철, 울릉도와 독도 지역의 기후변화 추세와 그 요인, 2007년 6월, 한국자연보호학회지, 제1권, 19-28면 중 26면</ref>, 1월 평균기온 1℃, 8월 평균기온 23℃로 온난한 편이다. 연평균 풍속은 4.3m/s로<ref>1999년부터 2006년까지 연평균 5.2m/s로 매우 강한 바람이 붐. 이종범과 김재철, 울릉도와 독도 지역의 기후변화 추세와 그 요인, 2007년 6월, 한국자연보호학회지, 제1권, 19-28면 중 21면</ref> 겨울과 봄에는 북서풍이 빈번하고, 여름과 가을에는 남서풍이 빈번하여 계절에 따른 주풍향이 뚜렷하다.<ref>이종범과 김재철, 울릉도와 독도 지역의 기후변화 추세와 그 요인, 2007년 6월, 한국자연보호학회지, 제1권, 19-28면 중 22면</ref> 안개가 잦고 연중 날씨 중 흐린 날은 160일 이상이며 비 또는 눈 오는 날은 150일 정도로, 겨울철 강수량이 많다. 즉, 일 년 중 맑은 날은 불과 45일 정도밖에 없다.<ref>
{{웹 인용|url=http://www.dokdomuseum.go.kr/mor/sub_st_01_03_03.html|제목=지리생태자료|출판사=독도 박물관|확인날짜=2008-08-0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00201071306/http://www.dokdomuseum.go.kr/mor/sub_st_01_03_03.html|보존날짜=2010-02-01|url-status=dead}}</ref><ref>{{서적 인용|제목=하늘사랑|날짜=2008-08-05|출판사=[[대한민국 기상청]]|쪽=21}}</ref>
{| class="wikitable" style="margin: auto;"
|+ align="bottom" style="text-align:right; font-size:small;" | 출처: [[대한민국 기상청]] [[2003년]]~[[2007년]]
|-
!colspan="13"|울릉도와 독도의 날씨 <small>(2003 ~ 2007년 평균, 울릉도 기상대 관측)</small>
|-
|style="text-align:center"| 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style="text-align:center"| 평균기온
| 1.82 || 2.94 ||style="background:#F7FBDE"| 5.2 ||style="background:#FFEBDE"| 10.62 ||style="background:#FFEBDE"| 14.88 ||style="background:#FFEBDE"| 19.36 ||style="background:#FFC394"| 21.6 ||style="background:#FFC394"| 23.88 ||style="background:#FFEBDE"| 19.82 ||style="background:#FFEBDE"| 15.66 ||style="background:#FFEBDE"| 10.82 || 4.52
|-
|style="text-align:center"| 최고평균기온
| 4.88 ||style="background:#F7FBDE"| 6.12 ||style="background:#F7FBDE"| 9.06 ||style="background:#FFEBDE"| 14.7 ||style="background:#FFEBDE"| 18.62 ||style="background:#FFC394"| 23 ||style="background:#FFC394"| 24.52 ||style="background:#FFC394"| 27.14 ||style="background:#FFC394"| 22.84 ||style="background:#FFEBDE"| 19.12 ||style="background:#FFEBDE"| 14.16 ||style="background:#F7FBDE"| 7.44
|-
|style="text-align:center"| 최저평균기온
| -0.4 || 0.44 || 2.3 ||style="background:#F7FBDE"| 7.3 ||style="background:#FFEBDE"| 11.68 ||style="background:#FFEBDE"| 16.64 ||style="background:#FFEBDE"| 19.44 || style="background:#FFD7B5"| 21.58 ||style="background:#FFEBDE"| 17.62 ||style="background:#FFEBDE"| 13.24 ||style="background:#F7FBDE"| 8.38 || 2.26
|-
|style="text-align:center"| 강수량(mm)
|style="background:#C6DBF7"| 94.72 ||style="background:#C6DBF7"| 66 ||style="background:#C6DBF7"| 86.3 ||style="background:#8CB6E7"| 136.54 ||style="background:#528ED6"| 181.88 ||style="background:#8CB6E7"| 148.82 ||style="background:#10345A; color:white;"| 259.06 ||style="background:#528ED6"| 200.14 ||style="background:#10345A; color:white;"| 277.82 ||style="background:#8CB6E7"| 100.06 ||style="background:#8CB6E7"| 124.44 ||style="background:#528ED6"| 155.34
|}
== 자연 및 자원 ==
두 섬과 주변 섬들은 서로 분리된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해저 2천여 미터로부터 바다 위로 솟은 해산(海山)의 봉우리 부분에 해당된다.
{{-}}
=== 천연기념물 ===
==== 독도천연보호구역 ====
{{문화재 정보
| 이름 = 독도천연보호구역<br />(獨島天然保護區域)
| 국가 = 대한민국
| 유형 =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301호 ~ 제400호)#제301호 ~ 제400호|천연기념물]]
| 번호 = 336
| 지정 = [[1982년]] [[11월 16일]]
| 문화재청 = 16,03360000,37
}}
{{본문|독도천연보호구역}}
대한민국은 독도 섬 주변의 바다에 다양한 해양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섬 일대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이 섬을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1982년]]에 "독도 해조류([[바다제비]]·[[슴새]]·[[괭이갈매기]]) 번식지(獨島海鳥類-繁殖地)"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했고, [[1999년]]에 천연보호구역으로 명칭을 바꾸어 동식물 전체의 식생을 관리하게 되었다.
2005년 독도의 기존 토지 및 부속도서를 측량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지적공부를 정정하여 독도의 지적현황이 전체적으로 변경됨에 따라 [[2006년]] [[9월 14일]] 문화재청장은 문화재보호법 제6조에 의거 천연기념물 제336호로 지정된 《독도 천연보호구역》의 문화재구역을 당초 고시한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37필지 180,902평미터(보호구역)"을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01필지 187,554평방미터(지정구역)으로 정정고시하였다.<ref>문화재청고시제2006-80호,《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 제336호 독도천연보호구역) 문화재구역 정정 고시》, 관보 제16338호, 2006-09-14</ref>
2002년 경상북도는 환경부에 '[[울릉도]]·독도 해상국립공원' 지정을 건의했으나, 이는 울릉군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www.bosa.co.kr/umap/sub.asp?news_pk=48189 |제목=디지틀보사<!-- 봇이 따온 제목 --> |확인날짜=2010-01-28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911014829/http://www.bosa.co.kr/umap/sub.asp?news_pk=48189 |보존날짜=2011-09-11 |url-status=dead }}</ref><ref>{{웹 인용 |url=http://www3.knps.or.kr/www/webzine/webzine_view.asp?pnum=18&tnum=207 |제목=국립공원관리공단 - National Parks of Korea - 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봇이 따온 제목 --> |확인날짜=2010-01-28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20065430/http://www3.knps.or.kr/www/webzine/webzine_view.asp?pnum=18&tnum=207 |보존날짜=2011-11-20 |url-status=dead }}</ref><ref>{{웹 인용 |url=http://ug3.ulleung.go.kr/zb/zboard.php?id=active1&no=7# |제목=보관된 사본 |확인날짜=2010-01-28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831192710/http://ug3.ulleung.go.kr/zb/zboard.php?id=active1&no=7# |보존날짜=2011-08-31 |url-status=dead }}</ref>
==== 독도 사철나무 ====
{{문화재 정보
|이름 = 독도 사철나무<br />(獨島 사철나무)
|국가 = 대한민국
|유형 =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501호 ~ 제600호)|천연기념물]]
|번호 = 538
|지정 = [[2012년]] [[10월 5일]]
|문화재청 = 13,01680000,32
}}
{{본문|독도 사철나무}}
울릉군 독도리 30번지에 있는 [[독도 사철나무]]는 독도를 구성하는 2개 섬인 동도와 서도 중 동도의 천장굴 급경사 지역 위쪽 끝 부분에서 자라고 있으며, 강한 해풍과 극히 열악한 토양조건 등에서 자란 나무로 독도에서 생육하는 몇 안 되는 수목 중 가장 오래된 나무로 [[2012년]] [[10월 25일]]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538호로 지정되었다.<ref name="ReferenceC">문화재청고시 제2005-108호,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 지정 및 지형도면 고시(독도 사철나무 등 2개소)》, 문화재청장, 2012-10-05</ref>
=== 특정도서 ===
대한민국은 독도가 독특한 자연환경이 유지되고 있고, 해양생물상이 다양하고 풍부하여 [[:s:대한민국 독도 등 도서지역의 생태계보전에 관한 특별법|독도 등 도서지역의 생태계보전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 [[특정도서]]로 지정하였다.<ref>[http://gwanbo.mois.go.kr/ezpdf/customLayout.jsp?contentId=00000000000000001319021613402000&tocId=00000000000000001319021615619000&isTocOrder=N&name=%25ED%2599%2598%25EA%25B2%25BD%25EB%25B6%2580%25EA%25B3%25A0%25EC%258B%259C%25EC%25A0%259C2002-69%25ED%2598%25B8(%25ED%258A%25B9%25EC%25A0%2595%25EB%258F%2584%25EC%2584%259C%25EB%25B3%2580%25EA%25B2%25BD%25EC%25A7%2580%25EC%25A0%2595) 환경부고시제2002-69호(특정도서변경지정)], 제15088호 / 관보(정호) / 발행일 : 2002. 5. 1. / 77 페이지 / 202.4KB</ref>
* 지정일자 : 2000년 9월 5일
* 지정번호 : 제1호
* 면적 : 187,554m<sup>2</sup> (지번은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1 ~ 산96이고, 2000년 9월 5일 특정도서로 최초 지정 당시 면적은 180,902m<sup>2</sup>였다)
{{특정도서 행위제한}}
=== 국가지질공원 ===
[[2012년]] [[12월 27일]] [[대한민국의 환경부 장관|환경부장관]]은 자연공원법 제36조의3의 규정에 의거 울릉도·독도 국가지질공원을 인증 고시하였다.<ref>환경부고시제2012-249호《울릉도·독도 국가지질공원 인증》, 관보 제17917호, 2012-12-27</ref>
* 지질공원의 명칭 : 울릉도·독도 국가지질공원
* 지질공원의 구역 : 경상북도 울릉군 전 지역
* 지질공원의 면적 : 1,279 평방킬로미터
* 인증연월일 : 고시일
* 공원관리청: 경상북도
* 인증목적 : 울릉도·독도의 우수한 지질유산자원을 보전하고 교육·관광자원으로 활용하여 국민의 휴양 및 정서함양에 기여하고 지역경제 활성화 도모
* 지정명소 : 23개소(울릉도 19, 독도 4)
** 울릉도 : 19개소 ([[봉래폭포]], [[저동 해안산책로]], [[도동 해안산책로]], [[거북바위 및 향나무자생지]], [[국수바위]], [[버섯바위 (울릉군)|버섯바위]], [[학포 해안]], [[황토굴]], [[태하 해안산책로 및 대풍감]], [[노인봉]], [[송곳봉]], [[코끼리바위]], [[용출소]], [[알봉]], [[성인봉 원시림]], [[죽암몽돌해안]], [[삼선암]], [[관음도]], [[죽도 (울릉군)|죽도]])
** 독도 : 4개소 ([[숫돌바위]], [[독립문바위]], [[삼형제굴바위]], [[천장굴]])
=== 동물 ===
2005년과 2006년에 이루어진 실태조사를 통해 독도에서 관찰된 조류는 126종이다. 개체수가 가장 많은 종은 [[괭이갈매기]]이었고, 약 7,000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그리고 [[바다제비]], [[슴새]], [[참새]]가 서식하고 있는데,<ref>김창회 외, 독도의 조류상, 2007년 12월, 한국조류학회지, 제14권, 제2호, 113-125면</ref> 최근 슴새의 수는 감소하고 있는 반면 바다제비 수는 증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출처|날짜=2011-06-25}} 섬은 남북으로 왕래하는 철새들이 쉬어가는 주요 휴식처이다. 조류는 여러 가지의 천연 기념물이 있다. [[짐승]]은 [[1973년]] 경비대에서 [[토끼]]를 방목하였으나 지금은 한 마리도 서식하지 않는다. [[곤충]]은 7목 26과 37종이 서식하고 있다. 인근 [[해양]]에는 [[파랑돔]], [[가막베도라치]], [[일곱줄얼게비늘]], [[넙치]], [[미역치]], [[주홍감펭]] 등 다양한 어류가 서식하고 있다.<ref>[http://www.dokdomuseum.go.kr/mor/sub_st_01_03_03_01e.html 지리생태자료] {{웨이백|url=http://www.dokdomuseum.go.kr/mor/sub_st_01_03_03_01e.html# |date=20120117203052 }}, 독도박물관</ref> 또한 [[대구지방환경청]]은 지난 2007년 5월부터 6개월 동안 [[경북대학교]] 울릉도·독도연구소와 공동으로 네 차례에 걸쳐 이 섬의 생태계를 조사한 결과 이 섬에 [[무척추동물]] 26종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2007년]] [[12월 11일]]에 발표했다.<ref name="hani20071211" /> 2013년에는 시베리아의 텃새인 [[솔양진이]] 수컷 한 개체가 남한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동도에서 발견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www.sportsworldi.com/Articles/LeisureLife/Article.asp?aid=20131120021331&OutUrl=naver |제목=보관된 사본 |확인날짜=2013-11-20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24101648/http://www.sportsworldi.com/Articles/LeisureLife/Article.asp?aid=20131120021331&OutUrl=naver |보존날짜=2013-12-24 |url-status=dead }}</ref>
==== 바다사자(강치) ====
{{본문|바다사자}}
[[바다사자]](독도강치)는 [[동해]] 연안에 서식하던 [[강치]]의 아종이다. 현재 멸종되었다고 알려진 동물로,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들을 "가제" 또는 "가지"로 불렀으며 이 섬을 중심으로 동해에 수만 마리가 서식했다고 한다. 이들이 머물렀다는 [[가제바위]]가 독도에 남아 있다. [[러일 전쟁]] 전후로 가죽을 얻기 위해 시작된 일본인들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바다사자는 서서히 그 모습을 감추었으며 [[1974년]] [[홋카이도]]에서 새끼 강치가 확인된 이후로 목격되지 않는다.<ref>海洋동물의 樂團 獨島, 《경향신문》, 1976.8.3.</ref><ref>[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4463.html 「독도 바다사자 복원 검토」], 《한겨레》, 2006.2.23.</ref> [[1905년]] 일본 [[시마네현]]이 이 섬을 편입한 이후 일본인들의 어획이 시작되었지만, 1905년 이전에 울릉도에 살던 한국인들이 [[1904년]]과 [[1905년]]에 독도에서 강치를 잡아 매년 가죽 800관(600엔)씩 일본에 수출한 기록이 1907년 [[시마네현]] 다케시마 섬 조사단의 오쿠하라 헤키운이 쓴 책 '죽도 및 울릉도'에 나온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0252278 독도 '실효적 지배' 새 근거 1890년 이전부터 독도서 강치잡이] 2006-07-26. 국민일보</ref>
=== 식물 ===
박선주 등이 2008년과 2009년에 걸쳐 실행한 독도의 식물상 및 식생 조사에서는 독도의 식물은 29과 48속 49종, 1아종 3변종 총 53종류로 조사되었다. 이 중 특산식물은 [[섬기린초]]와 [[섬초롱꽃]] 2종류이고, 귀화식물은 [[갓]], [[방가지똥]], [[큰이삭풀]], [[콩다닥냉이]], [[흰명아주]], [[둥근입나팔꽃]] 6종류가 있다. 식생형은 주로 [[해국]]-[[땅채송화]], 해국-[[갯제비쑥]], [[왕호장근]]-[[도깨비쇠고비]], [[돌피]], [[물피]]군락 등으로 구분된다.<ref>박선주 외, 독도의 식물상과 식생, 2010년, 한국환경생태학회지, 제24권, 제3호, 264-278면</ref>
경사가 급하여 토양이 발달하지 못하였고, 비는 내리는 대로 배수되어 수분이 부족하여 자생하는 식물이 적으나 울릉도에서 씨앗이 날아와 50~60종의 풀과 나무가 있다. 이 섬에 사는 식물은 키가 작아 강한 바람에 적응하고 잎이 두껍고 잔털이 많다. 물론 가뭄과 추위에도 잘 견딘다. [[2007년]] 12월, 외부에서 들여와 직접 심은 나무 가운데 [[무궁화]], [[후박나무]], [[곰솔]], [[향나무]] 등이 대부분 말라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ref name="hani20071211">{{뉴스 인용|url=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256373.html|제목=독도서 해양무척추동물 26종 발견|저자=구대선|출판사=[[한겨레]]|날짜=2007-12-11|확인날짜=2007-12-13|archive-date=2012-05-16|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20516160000/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256373.html|url-status=}}</ref>
인근 얕은 바다에는 [[모자반]], [[대황]] 등의 해양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독도 사철나무]]는 독도에서 현존하는 수목 중 가장 오래된 나무로 독도에서 생육할 수 있는 수종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국토의 동쪽 끝 독도를 100년 이상 지켜왔다는 영토적·상징적 가치가 큰 점을 감안하여 [[2012년]] [[10월 5일]]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538호로 지정되었다.<ref name="ReferenceC"/><ref>{{뉴스 인용 |제목 = 독도 사철나무 천연기념물 지정 |url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5849468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김태식 기자 |날짜 = 2012-10-04 |확인날짜 = 2013-08-25 }}</ref>
=== 박테리아 ===
섬 일대는 '박테리아의 보고'로 불릴 만큼 다양한 종의 박테리아가 많이 서식하는 곳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5년 5종, 2006년 13종, 2007년 16종, 2008년 4종 등 2008년 기준으로 이 섬에서 발견된 신종 박테리아는 38종에 이른다. 발견된 신종 박테리아들의 학명에는 독도넬라 코린시스(Dokdonella koreensis), 동해아나 독도넨시스(Donghaeana dokdonensis) 등과 같이 '독도'나 '동해'의 명칭이 포함되었다. 독도에서 발견된 박테리아들로 인해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대한민국이 3년 연속으로 신종 세균 발표 건수 1위를 차지했다.<ref>[http://news.joins.com/article/aid/2008/07/22/3164322.html 독도는 신종 박테리아 '보물창고']{{깨진 링크|url=http://news.joins.com/article/aid/2008/07/22/3164322.html }}, 《중앙일보》, 2008-07-22</ref>
=== 매장 자원 ===
{{참고|메탄 하이드레이트}}
[[KAIST]] [[생명공학]]과의 조사에 따르면, 섬 근해 해저에 이른바 '불타는 얼음'으로 불리는 [[메탄 하이드레이트]](methane hydrate, 고체 천연가스 또는 메탄 수화물)가 확인된 양만 약 6억 톤가량 매장되어 있다고 밝혀졌다.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녹으면서 물과 [[메탄]] 가스를 발생시켜 효용가치가 큰 미래 청정자원으로 주요 선진국의 개발·연구 대상으로 주목받는 자원이다.<ref>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7221550515526&ext=na 독도 가치 어느 정도인가…천연가스만 150조원], 《중앙일보》, 2008-07-22</ref>
=== 해양 ===
독도 주변은 쿠로시오 지류인 따뜻한 대만남류와 찬 북한 해류가 만나는 지역으로, 영양염류가 풍부하며, 이로 인한 동·식물 플랑크톤이 다양하고, 경제적 가치가 높은 회유성 어족이 다량 분포하고 있다.
독도는 지형적으로 수심 2,068 m 정도 되는 동해 새중에서 분출한 화산성해산으로, 물위로 솟아있는 독도의 면적은 비록 작지만(0.186km<sup>2</sup>), 수면아래 독도의 면적을 합하면 울릉도의 2배 이상되는 거대한 [[해산]]이며, 동도와 서도를 중심으로 주변에 [[물개바위]]를 비롯한 크고 작은 32개 이상의 [[바위섬]]과 [[암초]]가 있어 단단한 바닥에 부착하여 생활하는 해양 [[저서생물]]에게 좋은 서식지를 마련하고 있다.
독도의 바다는 [[해류|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곳으로 생물종이 다양하고 수산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섬 주변에는 [[감태]], [[대황]], [[모자반]] 등 해조류를 비롯하여 [[게류]], [[고둥류]]가 넓게 서식하고 있고, 어류로서는 [[볼락]], [[자리돔]], [[도화돔]] 등의 냉온대성, 온대성 및 아열대성 생물종이 집합하여 서식하고 있다. 또한 독도의 섬효과를 통해 깊은 바다의 영양염류가 표층으로 [[용승]]되어 [[플랑크톤]]을 먹이로 하는 동해의 회유성 및 독도 정착성 어종의 치어와 유어들이 모여 사는 산란장 내지 성육장의 기능으로서도 중요한 어장이다.
==== 해양 생물 ====
[[국립수산과학원]]에서 동도와 서도 주변연안 및 수중생태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해양·자포동물 22종, [[고둥류]] 30종, [[극피동물]] 23종, [[갑각류]] 22종, [[갈조식물류]] 17종과 어류 17종 등 총 169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도 주변연안에서 서식하고 있는 갑각류 중에서 [[도화새우]], [[물렁가시붉은새우]], [[가시배새우]]를 통틀어 '[[독도새우]]'라고 부르고 있다.<ref>[http://news.joins.com/article/22094730 논란의 '독도새우' 어부 "낯선男, 국도서 만나자고···"], 《중앙일보》, 2017-11-08</ref>
==== 환경 오염 ====
독도에 하수처리시설이 설치된 이후, 그 오작동으로 인해 독도 경비대나 [[등대]] 관리자와 같은 거주자들로부터 발생한 오수가 바다에 그대로 쏟아지는 일이 반복돼 독도 부근은 심각한 [[바다 오염]]의 우려가 높다. 독도 부근 바다에서는 바닷물이 우윳빛으로 변하거나, [[해초]]들이 죽고 [[산호초]]가 석회화되는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ref>{{웹 인용 |url=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2521&yy=2007 |제목=보관된 사본 |확인날짜=2011-10-14 |archive-date=2015-04-02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50402110419/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2521&yy=2007 |url-status= }}</ref> 현재는 이러한 오염을 줄이기 위한 공공 단체와 시민 조직에 의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2703591</ref><ref>{{웹 인용 |url=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7210&yy=2010 |제목=보관된 사본 |확인날짜=2011-10-14 |archive-date=2015-04-02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50402121815/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7210&yy=2010 |url-status= }}</ref>
== 교통 ==
=== 선착장 ===
[[파일:Dokdo-Police boat.jpg|오른쪽|섬네일|300px|동도 선착장에 접안중인 해경 309정]]
동도에 선착장과 접안 시설([[1997년]] 11월 완공, [[1998년]] 8월 지적공부에 등록) 80미터로 500톤급 선박 접안이 가능하며, 유인 등대 1기가 설치되어 있다.
{| class="wikitable" style="margin: auto;"
|+ align="bottom" style="text-align:right; font-size:small;" | 출처: [[대한민국 외교부]] 독도 [[2005년]] ~ [[2015년]]
|-
!colspan="13" style="background:#FFD7B5"| 독도 연도별 입도 현황<small>(2005년~ 2015년)</small>
|-
|style="text-align:center"| 년도
! 2005년 !! 2006년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계
|-
|style="text-align:center"| 인원 수 (명)
| 41,134 || 78,152 ||101,428||129,910|| 135,376|| 115,074|| 179,621|| 205,778|| 255,838|| 139,892|| 178,785 || style="background:#F7FBDE"| 1,560,988
|}
=== 여객선 ===
대저해운에서 포항~울릉도~독도 구간을 1일 2회 운항한다. 단 풍랑 등 기상특보가 발생시 결항될 수 있다.
<ref>{{웹 인용 |url=http://www.daezer.com/sail/info.html |제목=보관된 사본 |확인날짜=2018-06-29 |archive-date=2018-06-29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80629102457/http://www.daezer.com/sail/info.html |url-status= }}</ref>
=== 헬기장 ===
{{본문|독도헬기장}}
동도에 있는 [[독도헬기장]]({{공항 코드||RKDD}})은 [[대한민국 경찰청|경찰청]]이 관할하는 [[헬리콥터]] 이착륙장이다. 동도에 있기 때문에 '동도 헬기장'으로도 불린다. [[2008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로부터 지명약어 RKDD를 부여받았다.<ref>{{웹 인용 |url=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search/YIBW_showSearchArticle.aspx?searchpart=article&searchtext=%eb%8f%85%eb%8f%84%20%ed%97%ac%ea%b8%b0%ec%9e%a5&contents_id=AKR20081014060300004# |제목=독도 헬기장에 국제약어 'RKDD' 배정, 연합뉴스 |확인날짜=2013-08-25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4071628/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search/YIBW_showSearchArticle.aspx?searchpart=article&searchtext=%eb%8f%85%eb%8f%84%20%ed%97%ac%ea%b8%b0%ec%9e%a5&contents_id=AKR20081014060300004# |보존날짜=2013-12-14 |url-status=dead }}</ref>
== 통신 ==
[[2013년]] [[6월 12일]]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 경북본부와 대구·경북 소재의 이통3사 및 협력사 공동 주관으로 독도에 입도해 독도의 [[전파]]환경을 측정한 결과 독도는 [[방송]], [[통신]]뿐 아니라 [[아마추어 무선]] 주파수까지 모두 양호하게 도달되며, 최신 초고속 광대역 통신인 [[롱 텀 에볼루션|롱텀에볼루션]](LTE)까지 끊김없이 전달된 것으로 조사됐다.<ref>{{뉴스 인용 |제목 = KCA, 최초로 독도 전파이용 환경 측정 |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46552 |출판사 = 이투데이 |저자 = 이재영 기자 | 날짜 = 2013-06-12 |확인날짜 = 2013-08-25}}</ref>
== 주요 시설 ==
=== 동도 ===
* 경비 초소: 1999년 건물 옥상(해발고도 95m)에 무인기상관측장비(Automatic Weather System, AWS)를 설치하여 독도의 기온, 풍향, 풍속, 강수량을 매시간 측정하여 그 자료를 무선통신으로 울릉도로 송신하고 있음<ref>이종범과 김재철, 울릉도와 독도 지역의 기후변화 추세와 그 요인, 2007년 6월, 한국자연보호학회지, 제1권, 19-28면 중 20면</ref>
* 막사 9동
* 접안시설(선착장) : 1997년 11월 건립, 최대 500톤급 접안 가능, 길이 80m, 넓이 1,945㎡. 보통 울릉도에서 관광을 목적으로 배를 타고 독도로 가는 경우 내리는 장소이다.
* 독도 등대 : 1954년 8월 최초 설치, 1998년 12월 증축 및 유인화(3명 근무), 등탑높이 15m, 넓이 161㎡, 광원거리 25마일, 디젤발전기 2기(75kw), 태양광발전(15kw)
* 위성 안테나 : 2000년 6월 설치, 인터넷위성기지국 2기
* 경비대 : 1997년 8월 증축(30명 근무), 숙소 1동 658㎡, 담수시설(27톤/1일 생산), 헬기장 1개소 400㎡, 케이블카 1기(300m, 1.5톤), (접안시설~경비대숙소 앞), 해수정화시설. 이곳에 근무하고 있는 경비대는 군인이 아닌 경찰이다.
* 등반로 : 796m(폭 0.8~1m)
* 해수정화시설<ref>{{웹 인용 |제목=외교부 독도 웹사이트 |url=https://dokdo.mofa.go.kr/kor/introduce/location.jsp|웹사이트=외교부 독도}}</ref>
=== 서도 ===
경비대 30여명이 생활하고 방문객들이 방문하는 경로인 동도와는 달리 주로 주민 숙소로 이용되는 서도는 시설물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 주민숙소 : 2011년 8월 증축 완료(주민, 울릉군청 직원 각2명 거주 - 2018년 주민 중 한 분이셨던 [[김성도]]씨가 사망함에 따라 현재는 [[김신열]]씨 혼자 거주하고 있다.), 1동 373제곱미터, 담수기 2기(4톤/1일 생산), 디젤발전기 2기 (50kh)
* 음용시설 : 물골 1톤/1일(3톤 저장 가능)
* 등반로 : 550m (폭 0.6~0.8m)<ref>{{웹 인용 |제목=외교부 독도 웹사이트 |url=https://dokdo.mofa.go.kr/kor/introduce/location.jsp|웹사이트=외교부 독도}}</ref>
=== 기타 ===
문화재청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독도 대포(大砲)의 문화재 지정을 추진했으나 좌절됐다. 당시 국무총리와 외교통상부 장관이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이후 이건무 전 문화재청장과 엄승용 전 문화재청 사적명승국장, 독도단체 및 문화재계 관계자들이 독도 대포의 영토주권 수호 상징성과 보존가치를 고려해 문화재 지정 재추진을 주장(서울신문 2014년 8월 15일자 8면)했으나 지금까지 정부나 지자체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ref>{{뉴스 인용 |성= |이름= |날짜= 2019-02-24 |제목= 독도 대포(大砲) 문화재 지정 안하나, 못하나 |url= http://go.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224500042§ion=local_govern§ion2=&page=1 |뉴스= 서울Pn |출판사= |위치= |확인날짜= 2019-02-25 }}</ref>
== 역사 ==
{{참고|독도의 역사}}
== 관련 법령과 정부 조직 ==
* [[:s:대한민국 독도 등 도서지역의 생태계보전에 관한 특별법|독도 등 도서지역의 생태계보전에 관한 특별법]]
* [[:s:대한민국 독도의용수비대 지원법|독도의용수비대 지원법]]
* [[:s:대한민국 독도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독도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
* [[독도지속가능이용위원회]] : 독도의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한 기본(시행)계획을 심의하기 위하여 설치된 [[대한민국 국토해양부]] 소속의 자문위원회이다.
== 관련 문화 ==
=== 전설 ===
독도와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여러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구멍바위'<ref>독도 서도의 동쪽 해안에 위치한 부속바위섬으로 위도 36˚14'30''에 위치해 있음. 권도경, 독도 광포전설의 존재양상과 그 지역적 정체성, 2008년, 선도문화, 제4권, 231-267면 중 238면</ref> 형성에 관한 전설이다. 전설에 따르면, 먼 옛날 힘센 노인 하나가 노인의 집 앞을 가리고 있던 바위를 묶어 배를 타고 옮기던 중에 다른 바위를 던져 바위에 구멍을 내고 난 후 독도에서 좌초되어 지금의 자리에 구멍바위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ref>독도 서도의 동쪽 해안에 위치한 부속바위섬으로 위도 36˚14'30''에 위치해 있음. 권도경, 독도 광포전설의 존재양상과 그 지역적 정체성, 2008년, 선도문화, 제4권, 231-267면 중 237면</ref>
=== 관광 ===
본래 이 섬은 대한민국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서 입도가 제한되었으나 [[2005년]] [[3월 24일]]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의 영유권 주장에 대항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입도 허가제를 신고제로 변경함으로써 동도 선착장에 한해서 하루 1,800명씩 일반인의 관광을 허용했다. 학술 조사와 같이 관광 이외의 목적으로 이 섬을 방문할 경우에는 14일 전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ref>
[http://dokdo.go.kr/kor/pages/submain.php?lcode=dokdo&mcode=04&scode=01&tcode= 사이버독도의 독도 관광 안내].</ref>
=== 기념 사업 ===
[[파일:Dokdo sk 1954.jpg|250px|섬네일|대한민국이 1954년에 발행한 독도 우표]]
고종이 대한제국칙령 제41호 1900년 10월 25일로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제정된 일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독도의 날]]이 기념일로 잘 알려져 있다.
[[1954년]] [[9월 15일]] [[대한민국]]은 3종의 독도 우표 3000만 장을 발행했는데 2환권과 5환권은 각각 500만 장, 10환권은 2000만 장이 팔렸다. 일본 외무성에서 독도 우표가 붙은 우편물을 받지 않겠다고 했으나, 만국우편연합(UPU) 규정중 '우편물 중계의 자유보장' 조항에 따라 허용하기로 하였다. 일본은 항의의 표시로 독도 우표가 붙은 한국 우편물에 먹칠을 해서 배달을 하였다. 대한민국은 이 섬을 도안으로 한 우표를 2002년과 2004년 1월 두 차례 더 발행했다. [[2002년]] [[8월 1일]] 내고향 특별우표 시리즈(32종)중 경북편에도 독도우표가 포함, 90만장이 발행되었으나 당시 일본의 항의는 없었다. [[2004년 1월]] 대한민국이 독도 우표 4종 224만장을 발행하자 가와구치 일본 외상은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입장과 한국의 우표발행이 만국우편연합헌장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주일 한국대사에게 항의하였다.
2004년 6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이 섬이 조선의 영토임을 보여주고 있는 고지도를 도안으로 한 우표를 발행하였으며 2006년 8월에는 도안이 약간 수정되어 대한민국에서 판매되기도 하였다.<ref>[http://www.donga.com/fbin/moeum?n=dokdo$j_618&a=v&l=6&id=200403280071 북한도 내달 독도우표 발행] {{웨이백|url=http://www.donga.com/fbin/moeum?n=dokdo$j_618&a=v&l=6&id=200403280071# |date=20050306081108 }}, 《동아닷컴》, 2004.3.28.</ref><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608180289 북한 '독도우표' 한국판매 시작]{{깨진 링크|url=http://www.donga.com/fbin/output?n=200608180289 }}, 《동아닷컴》, 2006.8.18.</ref>
[[대한결핵협회]]는 [[2006년]] [[크리스마스 실]]로 독도의 자연을 그린 '아이러브 독도'를 발행하였다.<ref>[http://www.knta.or.kr/korea/seal/seal_2006.asp 씰 구경하기] {{웨이백|url=http://www.knta.or.kr/korea/seal/seal_2006.asp# |date=20080224164536 }}, 대한결핵협회.</ref>
[[LPH-6111 독도|독도함]](獨島艦, LPH-6111)은 [[대한민국 해군]]의 [[독도급 대형수송함|독도급]] [[강습상륙함]]의 첫 번째 함이다. 독도의 이름을 함명으로 정하였다. 실제로는 [[LHD]](다목적 강습상륙함)의 기능을 갖고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LPH]](강습상륙함)라고 불리고 있다. [[2002년]] 10월 말에 [[한진중공업]]이 대한민국 해군으로부터 수주를 받아 건조를 시작한 뒤, [[2005년]] [[7월 12일]] 진수하였고 [[2006년]] [[5월 22일]]부터 시운전을 시작하여 [[2007년]] [[7월 3일]] 취역하였다.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 사고]] 수색구조 작전에 투입되었다.
=== 학문 ===
[[한국복지사이버대학]]에 2012년 독도학과가 개설되어 2014년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정치·경제·사회·문화·지리·환경·역사학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교육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 구축을 위해 전국 최초로 개설되었으며, 울릉군수와 독도경비대장 등 독도와 관련해 직·간접적으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여러 인사들뿐만 아니라, 교육계 전문가, 독도 관련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는 인사들이 재학 중이거나 졸업하였다.<ref>{{뉴스 인용 |저자=이현진 기자 |제목=[사이버대 이색학과⑤:한국복지사이버대학 독도학과]“제대로 배워 영토주권 지키자” |url=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40192 |뉴스= |출판사= |위치= |날짜=2014-11-03 |확인날짜=2015-08-22 }}</ref>
=== 대중 문화 ===
[[1982년]]에 [[한국방송]]의 PD였던 [[박문영]]은 이 섬을 주제로 한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을 만들어 코미디 프로그램인 《유머 일번지》를 통해 발표했는데, 곧 정광태의 정식 음반이 출시되면서 큰 인기를 모았다. 그 밖에도 [[박명수]]의 〈We Love 독도〉 등 수많은 연예인과 가수들이 독도에 관한 노래를 발표해 왔다.
[[2004년]]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공동으로 개발한 모바일 게임인 〈독도를 지켜라〉가 대한민국으로 수출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574650|제목=모바일게임 '이 섬을 지켜라' 남북공동개발|저자=이상헌 기자|출판사=연합뉴스|날짜=2004-02-23}}</ref> 이 게임은 [[대한민국 통일부|통일부]]로부터 외교적인 문제를 피할 것을 요청받아 〈섬을 지켜라〉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네티즌들의 항의로 다시 〈독도를 지켜라〉로 바뀌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06195|제목=통일부, '독도를 지켜라' 명칭 변경 오리발?|뉴스=오마이뉴스|날짜=2004-08-26}}</ref>
2016년에는 [[경상북도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애니메이션 <독도수비대 강치>를 제작했다.
== 각주 ==
{{각주|2}}
== 같이 보기 ==
{{Div col|cols=2}}
* [[독도 분쟁]]
* [[러스크 서한]]
* [[독도 헬기장]]
* [[독도밀약]]
* [[독도방어훈련]]
* [[독도의 날]]
* [[독도의 달]]
* [[독도함]]
* [[대한민국 독도향우회]]
* [[독도의용수비대]]
* [[평화선]]
* [[한일어업협정]]
* [[안용복]]
* [[우산도]]
* [[울릉도]]
{{Div col end}}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분류-줄}}
* {{두피디아|101013000709169}}
=== 대한민국 정부 기관 ===
* [http://www.dokdo.re.kr/ 독도종합정보시스템] - [[대한민국 국토해양부]]
* [https://dokdo.mofa.go.kr/ 독도] - [[대한민국 외교부]]
* [http://www.dokdo.go.kr/ 독도] {{웨이백|url=http://www.dokdo.go.kr/ |date=20080729180726 }} - [[경상북도청]]
* [http://dokdo.gbpolice.go.kr/ 독도경비대] - [[경북지방경찰청]]
* [http://www.ulleung.go.kr/mdokdo/ 독도관리사무소] - [[울릉군|울릉군청]]
* {{언어링크|ko|en|zh|ja}} [https://web.archive.org/web/20110728074807/http://www.dokdomuseum.go.kr/ 독도박물관] - [[울릉군|울릉군청]]
* {{언어링크|ko|en}} [http://www.korea.kr/archive/expDocView.do?group=S&docId=28342 대한민국정부의 독도에 대한 기본입장(한국어, 영어)] - 공감코리아
** {{언어링크|ja|zh}} [http://www.korea.kr/archive/expDocView.do?group=S&docId=28361 대한민국정부의 독도에 대한 기본입장(일본어, 중국어)] - 공감코리아
** {{언어링크|en}} [http://www.korea.net/Government/Current-Affairs/Others/view?affairId=83&subId=233&articleId=1012 Korean Government's Official Position on Dokdo] - KOREA.net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2&VdkVgwKey=16,03360000,37 독도 천연보호구역] - 대한민국 문화재청
* {{문화재청 문화재|16,05380000,37|독도 사철나무}}
=== 민간 단체 기관 ===
* {{언어링크|ko|ja|en|ru}} [http://dokdohistory.com/ 독도연구소] - [[동북아역사재단]]
* [http://www.dokdoinkorea.com/ 독도학회 홈페이지]
* [http://www.dokdonetwork.or.kr/ 독도수호국제연대]
* [https://web.archive.org/web/20080405004040/http://office.kbs.co.kr/dokdo/ KBS 실시간 웹캠 "여기는 독도입니다."], [[KBS]]
=== 개인 ===
* {{언어링크|en|ko|ja}} [http://www.dokdo-takeshima.com/ Historical Facts about Dokdo] - [[캐나다인]] 스티븐 바버(Steven Barber)의 독도 역사 및 영토 근거
* {{언어링크|en}} [http://dokdo-research.com/ Selected Research on Dokdo Island] - [[미국]]의 교사 마크 로브모(Mark S. Lovmo)의 문헌 연구
* [http://nm.nktech.net/cont/result_v.jsp?nat_id=NM-SK336&nation=S 독도 천연보호구역] {{웨이백|url=http://nm.nktech.net/cont/result_v.jsp?nat_id=NM-SK336&nation=S |date=20070929091253 }} - 남북의 천연기념물
* [http://www.cybertokdo.com/ 사이버독도닷컴] {{웨이백|url=http://www.cybertokdo.com/ |date=20070628164943 }}
* [https://web.archive.org/web/20120206044020/http://www.tanaka-kunitaka.net/takeshima/ 다케시마 문제]
=== 일본 외무성 ===
* [https://www.kr.emb-japan.go.jp/territory/takeshima/index.html/ 일본의 영토] {{웨이백|url=https://www.kr.emb-japan.go.jp/territory/takeshima/index.html/ |date=20201101062512 }} - [[일본 외무성]]
* [https://www.youtube.com/watch?v=fsAx8-NAYjk&t=20s/ 다케시마 - 법과 대화에 의한 해결을 지향하며(한국어)]
* [https://www.youtube.com/watch?v=TXg-NGVKuWI/ 竹島について(일본어)]
{{대한민국의 특정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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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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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A=[ɪŋlɪʃ]
|어순=SVOan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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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통4=[[앵글프리지아어]]
|계통5=[[앵글어]]
|공용나라={{국기나라|영국}}<br>{{국기나라|미국}}(28개 주)<br>{{국기나라|호주}}<br>{{국기나라|뉴질랜드}}<br>{{국기나라|캐나다}}<br>{{국기나라|아일랜드}} 외<br/>{{글 숨김|제목=51개국}}{{국기나라|몰타}}<br>{{국기나라|벨리즈}}<br>{{국기나라|바하마}}<br>{{국기나라|자메이카}}<br>{{국기나라|세인트키츠 네비스}}<br>{{국기나라|앤티가 바부다}}<br>{{국기나라|도미니카 연방}}<br>{{국기나라|세인트루시아}}<br>{{국기나라|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br>{{국기나라|바베이도스}}<br>{{국기나라|트리니다드 토바고}}<br>{{국기나라|가이아나}}<br>{{국기나라|감비아}}<br>{{국기나라|시에라리온}}<br>{{국기나라|라이베리아}}<br>{{국기나라|가나}}<br>{{국기나라|나이지리아}}<br>{{국기나라|카메룬}}<br>{{국기나라|수단}}<br>{{국기나라|남수단}}<br>{{국기나라|우간다}}<br>{{국기나라|케냐}}<br>{{국기나라|탄자니아}}<br/>{{국기나라|에티오피아}}<br>{{국기나라|르완다}}<br>{{국기나라|부룬디}}<br>{{국기나라|말라위}}<br>{{국기나라|잠비아}}<br>{{국기나라|짐바브웨}}<br>{{국기나라|보츠와나}}<br>{{국기나라|나미비아}}<br>{{국기나라|스와질란드}}<br>{{국기나라|남아프리카 공화국}}<br>{{국기나라|레소토}}<br>{{국기나라|세이셸}}<br>{{국기나라|모리셔스}}<br>{{국기나라|인도}}<br>{{국기나라|파키스탄}}<br>{{국기나라|말레이시아}}<br>{{국기나라|싱가포르}}<br>{{국기나라|필리핀}}<br>{{국기나라|팔라우}}<br>{{국기나라|미크로네시아 연방}}<br>{{국기나라|마셜 제도}}<br>{{국기나라|나우루}}<br>{{국기나라|키리바시}}<br>{{국기나라|파푸아뉴기니}}<br>{{국기나라|솔로몬 제도}}<br>{{국기나라|바누아투}}<br>{{국기나라|투발루}}<br>{{국기나라|피지}}<br>{{국기나라|통가}}<br>{{국기나라|사모아}}{{글 숨김 끝}}{{글 숨김|제목=속령}}{{국기나라|괌}}<br>{{국기나라|북마리아나 제도}}<br>{{국기나라|아메리칸사모아}}<br>{{국기나라|푸에르토리코}}<br>{{국기나라|미국령 버진아일랜드}}<br>{{국기나라|홍콩}}<br>{{국기나라|맨섬}}<br>{{국기나라|건지 섬}}<br>{{국기나라|저지 섬}}<br>{{국기나라|지브롤터}}<br> {{국기나라|버뮤다}}<br>{{국기나라|케이맨 제도}}<br>{{국기나라|영국령 버진아일랜드}}<br>{{국기나라|쿡 제도}}<br>{{국기나라|니우에}}{{글 숨김 끝}}{{국기나라|영연방}}<br/>{{국기나라|유럽 연합}}<br/>{{국기나라|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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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o2=eng
|iso3=eng
|지도=Anglospeak (subnational version).svg
|지도 설명=파란색은 모국어, 하늘색은 공용어
}}
'''영어'''(英語, {{llang|en|English, English language}})는 [[영국]]의 구성국인 [[잉글랜드]]에서 기원한 [[서게르만어군]] 언어이다. 오늘날에는 [[영국]]과 [[영연방]], [[북미]]의 국가를 중심으로 [[공용어|공식 언어]]뿐만 아니라 그 외 지역에서는 [[제2언어]]로 활용한다. 또한 영어는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쓰였으나, 19세기 그리고 20세기 초 [[대영 제국]]의 군사적, 경제적, 과학적,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영향과 20세기 [[우드로 윌슨|우드로 윌]][[파리 강화 회의|강화 회의]]에서 주장한 이래의 [[미국]]의 영향으로<ref>Ammon, pp. 2245–2247.</ref><ref>Schneider, p. 1.</ref><ref>Mazrui, p. 21.</ref><ref>Howatt, pp. 127–133.</ref>, 전 세계에서 가장 폭넓게 배우고, 활용하는 언어로 [[링구아 프랑카]]에 비유하기도 한다.<ref>Crystal, pp. 87–89.</ref><ref>Wardhaugh, p. 60.</ref>
영어는 [[서게르만어군]]의 방언이었던 [[앵글로색슨족]]의 언어가 여러 역사적 사건을 겪으면서 변화하면서 형성되었다. 5세기 무렵 [[브리튼 제도]]에 앵글로색슨족이 이주하면서 시작한 [[고대 영어]]는 이후 [[바이킹]]의 침입과 함께 전파된 [[고대 노르드어]]의 영향을 받았다.
영어는 [[서게르만어군]]의 방언이었던 [[앵글로색슨족]]의 언어가 여러 역사적 사건을 겪으면서 변화하면서 형성되었다. 5세기 무렵 [[브리튼 제도]]에 앵글로색슨족이 이주하면서 시작한 [[고대 영어]]는 이후 [[바이킹]]의 침입과 함께 전파된 [[고대 노르드어]]의 영향을 받았다.
[[노르만인의 잉글랜드 정복]] 이후 고대 영어는 단어와 철자법 등에서 [[노르만어]]의 영향을 받으며 [[중세 영어]]로 발전하였다. 영어({{lang|en|English}})라는 단어의 어원은 12세기 고대 영어인 ''Angl'' 또는 ''Engle''에서 파생했다.<ref>[http://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English English - Definition and More from the Free Merriam-Webster Dictionary<!-- 봇이 따온 제목 -->]</ref><ref group="주">Angles는 명사로서 "[[앵글족]]" 또는 형용사로서 "[[잉글랜드]]의"를 뜻한다.</ref>
[[근대 영어]]는 15세기 [[잉글랜드]]에서 있었던 [[대모음 추이]]가 기준이다. 이 무렵 여러 나라에서 유래한늘었다. 특히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하는 기술 용어들도 늘었다. 또한, 각국 국민들의 모국어 억양이 영어에 흡수되었다.
== 개요 ==
지구적 [[링구아 프랑카]]로서 언급된다.<ref>"[http://journals.cambridge.org/action/displayAbstract;jsessionid=92238D4607726060BCBD3DB70C472D0F.tomcat1?fromPage=online&aid=291932 Global English: gift or curse?]". Retrieved 2005-04-04.</ref><ref name=david>David Graddol (1997). "[http://www.britishcouncil.org/de/learning-elt-future.pdf. Retrieved 2007-04-15 The Future of English?] {{웨이백|url=http://www.britishcouncil.org/de/learning-elt-future.pdf.# |date=20110806063005 }}" (PDF). The British Council.</ref> 영어는 통신, 과학, 무역, 비행, 오락, 방송, 외교 등의 분야에서 [[국제어]]로서 사용되고 있다. 때문에 영어의 사용은 종종 [[언어 제국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ref>"[http://www.economist.com/world/europe/displayStory.cfm?Story_ID=883997 The triumph of English]". The Economist. 2001-12-20. Retrieved 2007-03-26.</ref> 영어는 [[대영제국]]의 팽창과 함께 [[브리튼 제도]]의 밖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초강국이 된 미국으로 인해 영어 사용의 세계화는 더욱 확산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전의 공용어로는 [[프랑스어]]가 꼽힌다.<ref name=david/>
의료나 컴퓨터 사용과 같은 여러 분야는 기초적인 영어 사용 능력을 전제로 한다. 이를 위해 수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영어를 배운다.<ref group="주">[[영어 교육]]을 참조할 것</ref>
영국의 [[언어학|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털]]은 전 지구적인 영어 사용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다른 언어가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고 말한다. [[북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를 포함한 지구 곳곳에서 영어 사용이 일반화됨으로써 각 지역의 [[자연어]]가 갖고 있던 언어 다양성이 감소하고 심지어 더 이상 쓰는 사람이 없는 [[사어]]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ref>Crystal, David (2002). Language Death. Cambridge University Press. doi:10.2277/0521012716. {{ISBN|0-521-01271-6}}.</ref> 이러한 영어의 영향은 [[역사언어학]]의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러 언어 공동체에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사용되고 있는 영어는 복잡하고 역동적인 [[언어 변화]]를 가져왔다. [[크리올 (언어학)|크리올]]과 [[피진]]은 이러한 영어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어족]]이다.<ref>Cheshire, Jenny (1991). English Around The World: Sociolinguistic Perspectiv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doi:10.2277/0521395658. {{ISBN|0-521-39565-8}}.</ref>
== 역사 ==
{{본문|영어의 역사}}
영어는 [[앵글로프리지아어]]와 [[저지 게르만어]]<ref group="주">유럽의 역사에서 "저지"는 오늘날의 [[네덜란드]]를 비롯한 인근 지역을 말한다.</ref>를 기원으로 하는 [[서게르만어군]]의 하나이다. 이 언어들은 [[로마 속주]] 시기 이후 5세기까지 오늘날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등의 지역에 해당하는 유럽 북서부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그레이트브리튼섬|브리튼섬]]으로 유입되었다. 이렇게 [[그레이트브리튼섬|브리튼섬]]에 정착한 [[게르만족]]의 하나가 [[앵글족]]으로 이들의 이름 앵글({{llang|en|Angles}})은 이들의 원래 거주하였던 곳의 지명 [[앵글른]]에서 유래한 것으로<ref>{{웹 인용 |url=http://www.anglik.net/englishlanguagehistory.htm |제목=Anglik English language resource |확인날짜=2009-12-23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20604161756/http://www.anglik.net/englishlanguagehistory.htm |보존날짜=2002-06-04 |url-status=dead }}</ref> 오늘날의 [[슐레스비히]] 인근 지역이다.<ref>[http://www.ansi.okstate.edu/breeds/cattle/angeln/index.htm Angeln] okstate.edu</ref> 브리튼이라는 이름은 [[베다 베네라빌리스]]의 《잉글랜드 교회사》에 최초로 등장한다.<ref>Bede, [http://www.fordham.edu/halsall/basis/bede-book1.html Ecclesiastical History of the English Nation, Book I] {{웨이백|url=http://www.fordham.edu/halsall/basis/bede-book1.html |date=20090830014333 }}</ref> 브리튼 섬에 이주해 온 앵글족은 새 정착지를 자신들의 땅이라는 의미의 [[잉글랜드]]({{llang|en|England, Engla + land}})로 불렀다. 영어({{llang|en|English}})역시 앵글족의 말이란 뜻이다.
[[앵글로색슨족]]은 [[덴마크]]와 [[윌란반도]]로부터 449년에 브리튼섬을 침공하였다.<ref>{{웹 인용 |url=http://www.utexas.edu/cola/centers/lrc/eieol/engol-0-X.html |제목=Old English Online |확인날짜=2016-02-20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220085927/http://www.utexas.edu/cola/centers/lrc/eieol/engol-0-X.html |보존날짜=2016-02-20 |url-status=dead }}</ref> 이전까지 이 지역에서 사용되던 언어는 [[켈트어파]]에 속한 [[브리튼어]]와 [[게일어]]였다.<ref>{{웹 인용 |url=http://www.englishlanguageexpert.com/articles/brief-history.php# |제목=A brief history of the English language |확인날짜=2009-12-23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00203213549/http://www.englishlanguageexpert.com/articles/brief-history.php# |보존날짜=2010-02-03 |url-status=dead }}</ref> 브리튼섬에 있었던 두 번의 침입은 영어에도 영향을 주었다. 하나는 8~9세기에 있었던 [[바이킹]]의 침입으로 이로 인해 영어는 [[북게르만어군]]의 영향을 받았다. 다른 하나는 1066년 있었던 [[노르만 정복]]으로 이로 인해 [[프랑스어]]와 [[노르만어]]가 유입되었다. 이런 역사적 사건들의 영향을 받으며 [[고대 영어]]가 형성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www.historyofenglish.net/ |제목=History of English, Chapter 5 "From Old to Middle English" |확인날짜=2009-12-23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91212010424/http://www.historyofenglish.net/ |보존날짜=2009-12-12 |url-status=dead }}</ref>
브리튼섬에 세워진 [[앵글로-색슨]]의 고대 왕국들에서는 저마다 고대 영어의 다양한 사투리가 쓰였다.<ref>David Graddol, Dick Leith, and Joan Swann, English: History, Diversity and Change (New York: Routledge, 1996), 101.</ref> 후기에는 색슨족이 들어와 [[저지 게르만어]]의 영향을 받았다. 영어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요소 가운데 하나는 [[기독교]]의 전파였다. 530년의 [[베네딕도 규칙서]]에서부터 1536년의 [[수도원 해체]]까지 브리튼섬에는 많은 [[기독교]] 수도원이 세워졌다. 초대 주교였던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기독교 성직자들은 수도원을 통해서 문자와 문학을 전파하는 학교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서유럽 [[중세]] 기간 동안 수도원은 [[브리튼 제도]]에서 지식의 보고였고 이들의 활동은 영어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기독교 수도사들은 중세 서유럽의 [[링구아 프랑카]]였던 [[라틴어]]를 사용하였고 영어 역시 라틴어의 영향을 받았다.<ref>{{웹 인용 |url=http://www.spiritus-temporis.com/old-english-language/latin-influence.html |제목=Old English language, Latin influence |확인날짜=2011-08-26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831001952/http://www.spiritus-temporis.com/old-english-language/latin-influence.html |보존날짜=2011-08-31 |url-status=dead }}</ref>
15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런던에서 쓰인 영어를 초기 근대 영어라 한다. 이 시기 영어는 [[철자법]]이 고정되고 [[어순]]이 확립되는 등의 변화를 겪었다. [[산업혁명]]과 과학의 발달은 라틴어와 그리스어 어근을 바탕으로 한 막대한 과학 어휘가 새로 만들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성립으로 영어는 [[그레이트브리튼섬|브리튼섬]] 전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되었으며 [[대영제국]] 시기 [[제국주의]] 정책에 따라 세계 곳곳에 영국의 [[식민지]]가 확장되자 영어 역시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시기 영어가 전파된 주요 국가로는 오늘날의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이 있다. 또한 영어는 [[영국]]이나 [[미국]]의 영향권 하에 있었던 [[파키스탄]], [[가나]], [[인도]],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 [[케냐]], [[우간다]], [[필리핀]] 등 많은 나라에서 공용어로 사용된다.<ref group="주">여러 공용어 중 하나인 경우도 있다.</ref>
1945년 [[유엔]]의 설립 이래 영어는 유엔의 공식 언어들 가운데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영어는 [[게르만어파]]의 언어 중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언어이며, 사실상 전 세계 언어 중에서 가장 폭넓게 쓰이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대영제국]]의 대외 팽창으로 인해 전 세계로 영어가 확산되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적 문화적 영향력이 증가한 데에 기인한다. 특히 근대에 들어 통신 기술의 발달로<ref>The English Language: A Guided Tour of the Language, David Crystal, Penguin 2002, {{ISBN|0-14-100396-0}}</ref> 영어는 다른 문화권에 영향을 주고 있다.
== 언어학적 특징 ==
=== 어족 ===
영어는 [[인도유럽어족]] [[게르만어파]] [[서게르만어군]]의 [[앵글로프리지아어]]에 속하는 언어이다. 현존하는 가장 가까운 관계의 언어로는 [[스코틀랜드]] 저지대와 [[북아일랜드]] 일부 지역에서 사용되는 [[스코트어]]와 [[네덜란드]]의 [[프리슬란트주]]와 [[독일]]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일부 지역에서 사용되는 [[프리지아어]]가 있다. 스코트어는 별개의 언어가 아닌 영어의 [[방언]]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스코트어와 프리지아어 외에 영어와 연관이 있는 언어로는 서게르만어군 중에서 비(非)앵글로프리지아어에 해당하는 [[독일어]], [[네덜란드어]], [[아프리칸스어]]와 [[북게르만어군]]에 속하는 [[스웨덴어]],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아이슬란드어]], [[페로어]] 등이 있다. 이들은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서 영어와 유사성을 보이기는 하지만 이미 오래전 서로 다른 언어로 분기되었고 영어와 스코트어는 [[그레이트브리튼섬]]에 고립되어 발달하여 [[어휘]], [[구문]], [[어의]], [[음운]] 등이 달라 서로 통용되지 않는다. 독일인, 더치(네덜란드, 벨기에 일부), 북유럽(핀란드 제외) 사람들은 어순이나 언어가 영어와 상당히 유사하여 진지하게 공부하지 않아도 영어로 의사소통하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데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아서 자연스레 영어를 잘한다. 이와 같은 관련 언어 가운데 굳이 친소를 가린다면 네덜란드어가 보다 영어와 유사한 편이다.<ref>A History of the Entlish Language|Page: 336 | By: Albert C. Baugh and Thomas Cable | Publisher: Routledge; 5 edition (2002년 3월 21일)</ref>
=== 단어 ===
영어는 [[라틴어]]와 [[프랑스어]]의 어휘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지리적 고립으로 인한 구문의 변화로 관련된 게르만어들과 다른 모습으로 발전하였다. 실제로 라틴어는 영어의 15%에서 30%에 달하는 어휘의 근원이 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exit"<ref group="주">exit - 명사: 출구 , 동사: 나가다</ref>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이에 해당하는 네덜란드어 "uitgang"이 보다 원래의 뜻을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uitgang은 "나가다"는 뜻의 "uit"과 "통로"를 뜻하는 "gang"의 합성어로 글자그대로 통로에서 나간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영어로 나타낸다면 "out-gangway"가 될 것이다.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movement"<ref group="주">movement - 명사: 운동, 이동</ref> 역시 이 보다는 독일어 Bewegung이 글자그대로 "be-way-ing" 즉 "길을 따라 움직이는" 또는 "방도에 맞추어 가는"의 의미를 잘 나타낸다고 할 것이다.
현대의 영어 사용자들도 많은 프랑스 단어를 읽을 수 있는데 이 역시 노르만 침공 이후 영어에 미친 노르만어와 프랑스어의 영향을 보여준다.
=== 어순 ===
영어의 어순은 다른 게르만어와는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중세 이후 노르웨이어, 스웨덴어와 같은 북게르만어군의 어순이 영어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다음은 영어와 북게르만어군 사이에서 보이는 어순의 유사성을 나타낸 예문이다. 맨 아래의 독일어와 {{llang|en|seen}}에 해당하는 단어의 어순을 비교해 보자. 한편, [[네덜란드어]]의 어순은 영어와 독일어의 중간 형태를 보인다.
* '''영어''' : I '''have''' still never '''seen''' anything in the square.
* '''노르웨이어''' : Jeg '''har''' likevel aldri '''sett''' noe i torget.
* '''스웨덴어''' : Jag '''har''' ännu aldrig '''sett''' något på torget.
* '''독일어''' : Ich '''habe''' noch nie etwas auf dem Platz '''gesehen'''.
* '''네덜란드어''' : Ik '''heb''' nog nooit iets '''gezien''' op het plein
* '''한국어''' : 나는 지금껏 그 광장에서 어떤 것도 '''보'''지 못하'''고 있다'''.
** {{llang|en|have}} = {{llang|no|har}} = {{llang|sv|har}} = {{llang|de|habe}} = {{llang|nl|heb}}
** {{llang|en|seen}} = {{llang|no|sett}} = {{llang|sv|sett}} = {{llang|de|gesehen}} = {{llang|nl|gezien}}
위의 예에서 네덜란드어는 다른 게르만어군에 비해 영어와 보다 유사한 형태를 띠는데 이는 동사의 [[시제]] 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col-begin}}
{{col-2}}
{| class="wikitable"
! 구분
! 기본형
! 과거형
! 과거분사
|-
|'''영어''' ||bring || brought || brought
|-
|'''네덜란드어''' ||brengen || bracht || gebracht
|-
|'''노르웨이어''' ||bringe || brakte || brakt
|}
{{col-2}}
{| class="wikitable"
! 구분
! 기본형
! 과거형
! 과거분사
|-
|'''영어''' ||eat || ate || eaten
|-
|'''네덜란드어''' || eten || at || gegeten
|-
|'''노르웨이어''' || ete || åt || ett
|}
{{col-end}}
=== 관련 어군과의 관계 ===
영어와 다른 연관 언어 사이에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는 단어가 유사한 [[음운]]을 갖는 [[거짓짝]]이 많이 있다. 일례로 {{llang|en|time(시간)}}과 {{llang|no|time(시각)}}을 들 수 있다. 또한 같은 의미를 지니는 낱말이 서로 다른 발음으로 변화한 것도 있는데 {{llang|en|enough}}와 {{llang|de|genug}}, 그리고 {{llang|da|nok}}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에도 영어는 다른 언어군들에 비해 게르만어파와 확연한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다. 영어와 게르만어파에 속하는 많은 언어에서는 "‑hood", "-ship", "-dom", "-ness"와 같은 접미사들이 공통적으로 사용된다. 다만 접미사의 활용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예를 들어 {{lang|en|Freedom}}에 해당하는 {{llang|de|Freiheit}}에 쓰인 접미사 "-heit"는 영어의 "-hood"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편 영어의 "-dom"에 해당하는 접미사에 독일어에서는 종종 "-tum"이 사용된다. 이러한 접미사의 사용은 [[아이슬란드어]], [[페로어]]와 같은 다른 도서 게르만어에서도 볼 수 있다. 이들 역시 영어와 같이 여타의 게르만어파에 속하는 언어들과는 다른 독자적인 방식으로 접미사를 사용하고 있다.
== 사용 인구 ==
{{참고|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별 영어 사용자 수}}
현재 약 3억 7천 5백만 명이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다.<ref>Curtis, Andy. Color, Race, And English Language Teaching: Shades of Meaning. 2006, page 192.</ref> 이는 [[중국어]]의 [[관화]], [[스페인어]] 다음으로 많은 수이다.<ref>[https://web.archive.org/web/19990429232804/http://www.sil.org/ethnologue/top100.html Ethnologue], 1999</ref><ref>[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fields/2098.html CIA World Factbook] {{웨이백|url=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fields/2098.html |date=20181226004215 }}, Field Listing — Languages (World).</ref> 공용어와 제1외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의 수를 합산하면 영어 사용 인구는 [[중국어]] 다음으로 많다.<ref>[http://www2.ignatius.edu/faculty/turner/languages.htm Languages of the World (Charts)] {{웨이백|url=http://www2.ignatius.edu/faculty/turner/languages.htm |date=20110927062910 }}, Comrie (1998), Weber (1997), and the Summer Institute for Linguistics (SIL) 1999 Ethnologue Survey. Available at [http://www2.ignatius.edu/faculty/turner/languages.htm The World's Most Widely Spoken Languages] {{웨이백|url=http://www2.ignatius.edu/faculty/turner/languages.htm |date=20110927062910 }}</ref><ref>Mair, Victor H. (1991). [http://sino-platonic.org/complete/spp029_chinese_dialect.pdf "What Is a Chinese "Dialect/Topolect"?] {{웨이백|url=http://sino-platonic.org/complete/spp029_chinese_dialect.pdf |date=20180510155608 }} Reflections on Some Key Sino-English Linguistic Terms" (PDF). Sino-Platonic Papers.</ref>
=== 사용자 ===
다음의 표는 영어를 사용하는 주요 나라의 영어 사용 인구수를 나타내고 있다.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text-align:center;"
|-
! 순위 !! 국가 !! 전체 !! 인구 중 비율 !! 제1언어 !! 공용어 !! 인구 !! class="unsortable" | 비고
|-
|1|| {{국기|미국}}||251,388,301||96%||215,423,557||35,964,744||262,375,152||출처: US Census 2000: [http://www.census.gov/prod/2003pubs/c2kbr-29.pdf Language Use and English-Speaking Ability: 2000], 표1. 집에서 영어를 사용하지는 않으나 영어에 능숙하다고 답한 사람은 공용어로서 영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봄. 조사 대상은 5세 이상
|-
|2|| {{국기|인도}} ||90,000,000||8%||178,598||65,000,000 ''제2언어''<br /> 25,000,000 ''제3언어'' ||1,028,737,436||1991년 자료에는 제2언어인 경우와 제3언어인 경우가 합산되어 있음.<ref>Census of India's [http://www.censusindia.gov.in/ Indian Census], Issue 10, 2003, pp 8–10, (Feature: Languages of West Bengal in Census and Surveys, Bilingualism and Trilingualism).</ref><ref>Tropf, Herbert S. 2004.
[http://www.lilaproject.org/docs/India%20and%20its%20Languages%20v1.0.pdf India and its Languages] {{웨이백|url=http://www.lilaproject.org/docs/India%20and%20its%20Languages%20v1.0.pdf |date=20080308101143 }}. Siemens AG, Munich</ref> 영어 화자가 곧바로 영어 사용자는 아님.<ref>이 경우 영어 화자와 사용자의 차이는 TESOL-India (Teachers of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영어 사용자는 영문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며, 영어 화자는 영문을 읽고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이다.</ref>
|-
|3|| {{국기|나이지리아}}||79,000,000||53%||4,000,000||>75,000,000||148,000,000|| 다음의 자료에서는 영어를 바탕으로 한 나이지리아 [[피진]]과 [[크리올 (언어학)|크리올]]의 사용자도 영어를 공용어로서 사용하는 사람의 수로 합산하였다. Ihemere, Kelechukwu Uchechukwu. 2006. "[http://www.njas.helsinki.fi/pdf-files/vol15num3/ihemere.pdf A Basic Description and Analytic Treatment of Noun Clauses in Nigerian Pidgin.] {{웨이백|url=http://www.njas.helsinki.fi/pdf-files/vol15num3/ihemere.pdf |date=20070610000126 }}" ''Nordic Journal of African Studies'' 15(3): 296–313.
|-
|4|| {{국기|영국}}||59,600,000||98%||58,100,000||1,500,000||60,000,000||출처: Crystal (2005), p. 109.
|-
|5|| {{국기|필리핀}} ||48,800,000||52%<ref name = "EthnoPhil" />||3,427,000<ref name="EthnoPhil">{{웹 인용 |url=http://www.ethnologue.com/show_country.asp?name=PH.# |제목=Ethnologue report for Philippines<!-- 봇이 따온 제목 --> |확인날짜=2009-12-28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212223214/http://www.ethnologue.com/show_country.asp?name=PH.# |보존날짜=2012-02-12 |url-status=dead }}</ref>||45,373,000||92,000,000||Total speakers: Census 2000, [https://web.archive.org/web/20080127174205/http://www.census.gov.ph/data/sectordata/sr05153tx.html text above Figure 7]. 63.71% of the 66.7 million people aged 5 years or more could speak English. Native speakers: Census 1995, as quoted by Andrew Gonzalez in [http://www.multilingual-matters.net/jmmd/019/0487/jmmd0190487.pdf The Language Planning Situation in the Philippines], Journal of Multilingual and Multicultural Development, 19 (5&6), 487–525. (1998). [[Ethnologue]] lists 3.4 million native speakers with 52% of the population speaking it as a additional language.<ref name = "EthnoPhil" />
|-
|6|| {{국기|캐나다}} ||25,246,220||85%||17,694,830||7,551,390||29,639,030||Source: 2001 Census – [http://www12.statcan.ca/english/census01/products/highlight/LanguageComposition/Page.cfm?Lang=E&Geo=PR&View=1b&Table=1a&StartRec=1&Sort=2&B1=Counts&B2=Both Knowledge of Official Languages] {{웨이백|url=http://www12.statcan.ca/english/census01/products/highlight/LanguageComposition/Page.cfm?Lang=E&Geo=PR&View=1b&Table=1a&StartRec=1&Sort=2&B1=Counts&B2=Both |date=20181016155721 }} and [http://www12.statcan.ca/english/census01/products/highlight/LanguageComposition/Page.cfm?Lang=E&Geo=PR&View=1a&Table=1a&StartRec=1&Sort=2&B1=Counts&B2=Both Mother Tongue] {{웨이백|url=http://www12.statcan.ca/english/census01/products/highlight/LanguageComposition/Page.cfm?Lang=E&Geo=PR&View=1a&Table=1a&StartRec=1&Sort=2&B1=Counts&B2=Both |date=20181016155718 }}. 모국어로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중에는 프랑스 역시 모국어로 사용하는 이중언어 사용자 122,660 명과 영어만을 사용하는 17,572,170 명이 합산되어 있다.
|-
|7|| {{국기|오스트레일리아}} ||18,172,989|| 92% ||15,581,329||2,591,660||19,855,288||출처: 2006 Census.<ref>{{웹 인용 |url=http://www.censusdata.abs.gov.au/ABSNavigation/prenav/ViewData?action=404&documentproductno=0&documenttype=Details&order=1&tabname=Details&areacode=0&issue=2006&producttype=Census%20Tables&javascript=true&textversion=false&navmapdisplayed=true&breadcrumb=TLPD&&collection=Census&period=2006&productlabel=Proficiency%20in%20Spoken%20English/Language%20by%20Age%20-%20Time%20Series%20Statistics%20(1996,%202001,%202006%20Census%20Years)&producttype=Census%20Tables&method=Place%20of%20Usual%20Residence&topic=Cultural%20& |제목=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확인날짜=2009-12-28 |archive-date=2021-08-16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10816141608/https://www.abs.gov.au/websitedbs/censushome.nsf/home/cowsredirect |url-status= }}</ref> 이 자료에는 집에서 영어만을 사용하는 주민과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타언어 사용자, 그리고 집에서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5%의 경우가 합산되어 있다.
|-
| colspan="8" | 특기사항: 합계 = 제1언어+공용어; First language + Other language; 백분율은 합계 기준
|}
=== 국가별 영어 교육 ===
{{참고|영어 교육}}
1. 대한민국(읽기, 말하기, 쓰기, 듣기)
-직접 교수법(Direct Methods)방식을 통해서 학생들을 주로 교육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러 가지 TESOL방식을 활용하여 더 생생한 영어를 가르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 발음 ==
{{본문|영어의 발음}}
{{참고|영어 국제 음성 기호}}
=== 모음 ===
다음은 [[북아메리카 영어]]를 기준으로 한 [[모음]]의 표기이다.
{| class="wikitable" style="border-width: 2px; border-spacing: 0; padding: 4px;"
![[국제 음성 기호]] !! 적요 !! 예시 단어
|-
! colspan="3" style="text-align:left; background:#dedede"| [[단모음]]
|-
| {{IPA|iː}} || [[전설 비원순 고모음]] || b'''ea'''d
|-
| {{IPA|ɪ}} || [[근전설 비원순 근고모음]] || b'''i'''d
|-
| {{IPA|ɛ}} || [[전설 비원순 중저모음]] || b'''e'''d<ref group="vn" >영국에서는 {{IPA|[e]}}와 가깝게 소리낸다.</ref>
|-
| {{IPA|æ}} || [[전설 비원순 근저모음]] || b'''a'''d<ref group="vn" >영국의 젊은층에서는 {{IPA|[a]}}에 가깝게 소리낸다.</ref>
|-
| {{IPA|ɒ}} || [[후설 원순 저모음]] || b'''o'''x<ref group="vn" name="n1">미국 영어 화자의 경우 {{IPA|/ɑː/}} 또는 {{IPA|/ɔː/}}로 소리내는 경우가 많다. [[영어 음운 변화의 역사]]를 참조할 것.</ref>
|-
| {{IPA|ɔː}} || [[후설 원순 중저모음]] || p'''aw'''ed<ref group="vn" name="n2">일부 북아메리카 영어 화자는 이 모음을 발음하지 못한다. [[영어 음운 변화의 역사]]를 참조할 것.</ref>
|-
| {{IPA|ɑː}} || [[후설 비원순 저모음]] || br'''a'''
|-
| {{IPA|ʊ}} || [[근후설 원순 근고모음]] || g'''oo'''d
|-
| {{IPA|uː}} || [[후설 원순 고모음]] || b'''oo'''ed<ref group="vn" name="n7">기호 <''U''>는 {{IPA|/uː/}}, [[ㅣ모음 역행동화]]의 {{IPA|/juː/}}를 표기하는데도 사용된다. 영국에서는 {{IPA|/t/}}, {{IPA|/d/}}, {{IPA|/s/}}, {{IPA|/z/}}의 뒤에 오는 '''U''' 모음이 [[ㅣ]] 모음 역행동화가 일어나 {{IPA|/juː/}}로 발음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IPA|[t͡ɕ]}}, {{IPA|[d͡ʑ]}}, {{IPA|[ɕ]}}, {{IPA|[ʑ]}}의 뒤에서도 일어나는데, 예를 들면 ''tune'', ''during'', ''sugar'', ''azure''등이 있다. 미국 영어에서는 이러한 발음 현상이 흔하지는 않으나 ''r''이 잇달아 오는 경우 {{IPA|/(t, d, s, z)juːr/}}의 발음이{{IPA|[tʃər]}}, {{IPA|[dʒər]}}, {{IPA|[ʃər]}}, {{IPA|[ʒər]}}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nature'', ''verdure'', ''sure'', ''treasure'' 등이 있다.</ref>
|-
| {{IPA|ʌ}} || [[후설 비원순 중저모음]], [[중설 근저모음]]<ref group="vn">후설 모음 기호 {{IPA|ʌ}}는 영어의 중설 근저모음을 대표음으로 삼아 만든 기호이다. 일반적으로 {{IPA|[ɐ]}}와 비슷한 소리를 내나 잉글랜드 북부에서는 {{IPA|[ʊ]}}에 가깝게 발음하기도 한다.</ref> || b'''u'''d.
|-
| {{IPA|ɜr}} || [[중설 비원순 중저모음]] || b'''ir'''d<ref group="vn" name="n3">북아메리카 영어에서는 {{IPA|[ɝ]}}로, 중설 장모음인 {{IPA|[ɜː]}}로 소리내는 경우가 많다.</ref>
|-
| {{IPA|ə}} || [[중설 중모음]] || Ros'''a''''s<ref group="vn" name="n4">많은 북아메리카 영어 화자의 경우 이것과 강세없는 모음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들은 ''roses'' 와 ''Rosa's''가 같은 발음으로 인식한다. 때문에 [[슈와]]를 단순히 {{IPA|/ə/}}로 나타내기도 한다.</ref>
|-
| {{IPA|ɨ}} || [[중설 비원순 고모음]] || ros'''e'''s<ref group="vn" name="n4"/><ref group="vn" name="n5">이 발음은 종종 {{IPA|/ə/}}나 {{IPA|/ɪ/}}로 변형되어 사용된다.</ref>
|-
! colspan="3" style="text-align:left; background:#dedede"| [[복모음]]
|-
| {{IPA|eɪ}} || [[전설 비원순 중고모음]]-<br /> [[근전설 비원순 근고모음]] || b'''ay'''ed<ref group="vn" name="n6">대부분의 미국인과 스코틀랜드인 그리고 아일랜드와 북잉글랜드에서 복모음 {{IPA|/eɪ/}}와 {{IPA|/oʊ/}}는 종종 단모음 {{IPA|[eː]}}과 {{IPA|[oː]}}로 대치되어 사용된다.</ref>
|-
| {{IPA|oʊ}} || [[후설 원순 중고모음]]-<br /> [[근후설 원순 근고모음]] || b'''o'''de<ref group="vn">영국과 북아메리카 일부에는 {{IPA|[əʊ]}}에 가깝게 소리낸다. 모음이 연달아 있을 경우 {{IPA|[ɵ]}} ({{IPA|[ɵʊ]}}는 강세가 없으면 {{IPA|[ə]}})로 축약되기도 한다.</ref><ref group="vn" name="n6"/>
|-
| {{IPA|aɪ}} || [[전설 비원순 저모음]] <br /> [[근전설 비원순 근고모음]] || cr'''y'''<ref group="vn" name="n8">캐나다와 같은 북아메리카지역 일부에서는 묵음 앞에서 {{IPA|/aɪ/}} 대신 {{IPA|[ʌɪ]}}로 발음하기도 한다. 이경우 ''writer'' 와 ''rider''는 자음보다는 모음에 의해 구분된다. 즉, {{IPA|[ˈɹʌɪɾɚ, ˈɹaɪɾɚ]}}와 같이 발음된다.</ref>
|-
| {{IPA|aʊ}} || [[전설 비원순 저모음]] <br /> [[근후설 원순 근고모음]] || c'''ow'''<ref group="vn">캐나다에서는 묵음 앞에서 {{IPA|[ʌʊ]}}로 발음한다.</ref>
|-
| {{IPA|ɔɪ}} || [[후설 원순 중저모음]] <br /> [[전설 비원순 고모음]] || b'''oy'''
|-
| {{IPA|ʊər}} || [[근후설 원순 근고모음]] <br /> [[중설 중모음]] || b'''oor'''<ref group="vn" name="n9">이 모음에 강세가 부여되면 {{IPA|[ʊə(r)]}}보다는 {{IPA|[ɔː(r)]}}로 발음되는 경우가 흔하다.</ref>
|-
| {{IPA|ɛər}} || [[전설 비원순 중저모음]] <br /> [[중설 중모음]] || f'''air'''<ref group="vn" name="n10">음절 끝에서 ''r''이 발음되지 않고 강세를 같는 경우 {{IPA|/ɛə/}}보다는 슈와가 되거나 단모음 {{IPA|[ɛː]}}로 발음된다.</ref>
|}
<references group="vn"/>
=== 자음 ===
다음은 [[국제 음성 기호]] 체계에 따른 영어 [[자음]]을 나타낸 것이다.
{| class="wikitable"
!
![[양순음]]
![[순치음]]
![[치음]]
![[치경음]]
![[후치경음]]
![[경구개음]]
![[연구개음]]
![[순음화 연구개음]]
![[성문음]]
|-
![[비강음]]
| style="text-align:center;"|{{IPA|m}}<br />{{IPA|m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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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 |{{I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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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IPA|ŋ}}<ref group="cn" name="c1">영국 북부 일부 지역에서 [[연구개 비음]] {{IPA|[ŋ]}}은 음소가 아닌 {{IPA|/n/}}의 [[변이음]]으로서만 사용된다. 이 경우에 연구개 비음은 오직 {{IPA|/k/}}와 {{IPA|/ɡ/}}의 앞에서만 나타난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연구개 비음은 [[음절 종음]]으로만 쓰인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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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열음]]
| style="text-align:center;"|{{IPA|p b}}<br />{{IPA|pʲ b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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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 |{{IPA|t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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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IPA|k 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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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찰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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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 |{{IPA|tʃ dʒ}}<ref group="cn" name="c4">{{IPA|/ʃ/}}와 {{IPA|/ʒ/}}, 그리고 {{IPA|/ɹ/}}의 소리는 일부 지역에서 [[순음화]]되어 발음된다. 그러나 화자 자신도 이러한 순음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스코틀랜드 영어]]에서는 <r>을 [[치경 전동음]]으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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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찰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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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IPA|f v}}
| style="text-align:center;"|{{IPA|θ ð}}<ref group="cn" name="c3">런던 토박이의 경우 [[치간음]]인 {{IPA|/θ/}}와 {{IPA|/ð/}}를 {{IPA|/f/}}와 {{IPA|/v/}}처럼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미국 흑인 영어에서 {{IPA|/ð/}}는 종종 {{IPA|/d/}}로 발음된다. 아일랜드에서는 {{IPA|/θ/}}와 {{IPA|/ð/}}가 치음으로 변이되기도 한다.</ref>
| style="text-align:center;"|{{IPA|s z}}
| style="text-align:center;"|{{IPA|ʃ ʒ}}<ref group="cn" name="c4"/>
| style="text-align:center;"|{{IPA|ç}}<ref group="cn" name="c5">[[무성 경구개 마찰음]] {{IPA|/ç/}}는 {{IPA|/j/}} 앞에 온 {{IPA|/h/}}가 강세를 갖는 경우 나타나는 변이음이다. ''human'' {{IPA|[çjuːmən]}}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강세가 주어질 때 {{IPA|/j/}}가 생략되고 원래의 자음인 {{IPA|/h/}}가 그대로 발음되는 경우도 있다.</ref>
| style="text-align:center;"|{{IPA|x}}<ref group="cn" name="c6">[[무성 연구개 마찰음]] /x/는 스코틀랜드나 웨일스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화자가 [[게일어]] 낱말인 ''loch'' {{IPA|/lɒx/}}나 독일어 ''Bach'' {{IPA|/bax/}} , ''Chanukah'' /xanuka/와 같은 단어를 말할 때 나타난다. [[남아프리카 영어]]에서도 /x/ 또는 {{IPA|[kx]}} 와 같은 발음이 사용된다. ''docker'' {{IPA|[dɒkxə]}}와 같은 낱말이 있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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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IP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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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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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 |{{IPA|ɾ}}{{#tag:ref|북아메리카 영어나 호주 영어에서 {{IPA|/t/}} 와 {{IPA|/d/}}가 약하게 발음될 때에 [[치경 탄음]] {{IPA|[ɾ]}}로 변이된다.<ref>{{저널 인용 |last=Cox |first=Felicity |year=2006 |제목=Australian English Pronunciation into the 21st century |url=http://www.shlrc.mq.edu.au/~felicity/Papers/Prospect_Erratum_v1.pdf |format=PDF |accessdate=2007-07-22 |journal=Prospect |volume=21 |pages=3–21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70724185054/http://www.shlrc.mq.edu.au/~felicity/Papers/Prospect_Erratum_v1.pdf |보존날짜=2007-07-24 |url-status=dead }}</ref> 많은 북아메리카 영어 화자들은 ''latter''와 ''ladder''를 모두 {{IPA|[leɾəɹ]}}로 읽는다. |group=cn|name=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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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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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 |{{IPA|ɹ}}<ref group="cn" name="c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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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IP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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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IPA|ʍ w}}<ref group="cn" name="c7">무성음 w {{IPA|[ʍ]}}는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영어에서 나타난다. 간혹 미국, 뉴질랜드, 영국의 영어 화자가 사용하기도 한다. 이 외의 영어 화자들은 {{IPA|/w/}} 대신 {{IPA|/f/}}로 발음한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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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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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 |{{IP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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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ferences group="cn"/>
=== 유성음과 유기음 ===
영어의 [[파열음]]이 [[유성음]]이나 [[유기음]]으로 발음되는데에는 뚜렷한 일반적인 규칙이 없으며 화자나 문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다만, 다음과 같이 규칙적으로 적용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 {{IPA|/p/, /t/, /k/}}와 같은 [[무성음|무성]] 파열음이나 {{IPA|/tʃ/}}와 같은 무성 [[파찰음]]이 단어의 첫음이 되거나 강세를 갖는 경우 유기음으로 발음 된다. 예를 들면 "spin"의 "p"는 첫음이 아니므로 {{IPA|[spɪn]}}으로 발음되고 "pin"의 "p"는 단어의 첫음이기 때문에 {{IPA|[pʰɪn]}}으로 발음된다. 마찬가지의 예로 crap {{IPA|[kʰɹ̥æp]}}과 scrap {{IPA|[skɹæp]}}을 들 수 있다.
** 일부 영어 화자는 강세가 없는 경우에도 유기음화된 발음을 하는 경우가 있다.
** [[인도 영어]]에서는 파열음이 유기음으로 발음되는 경우가 없다.
* 일부 영어 화자는 단어의 첫음으로 오는 유성파열음을 무성음으로 변이하여 발음한다.
* 일부 영어 화자는 단어의 끝에 오는 무성파열음을 [[성문 파열음]]으로 변이하여 발음한다. 예를 들면 "tap"은 {{IPA|[tʰæp̚]}}으로, "sack"은 {{IPA|[sæk̚]}}으로 발음한다.
* [[미국 영어]]의 [[사투리]]에서는 단어의 끝에 오는 유성파열음을 무성음으로 변이하여 발음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sad"은 {{IPA|[sæd̥]}}으로, "bag" {{IPA|[bæɡ̊]}}으로 발음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발음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 기타 발음 특징 ===
==== 억양과 성조군 ====
영어에는 독특한 [[억양]]이 있다. 다시 말하면 영어에서는 [[목소리]]의 [[음높이|높이]]가 [[통사론|구문]]을 이루는 요소로서 작용한다. 의문문, 감탄문, 반어법 등과 같은 특정 구문에는 이에 따르는 독특한 억양이 있다.
영어에서는 군을 이루는 단어가 하나의 억양 패턴을 형성하는데 이를 [[성조군]]이라 한다. 성조군은 단번에 발음되기 때문에 길이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보통 성조군을 이루는 단어의 수는 다섯 단어를 넘지 않으며 단숨에 발음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초 정도이다. 다음은 대표적인 성조군의 예이다.
: {{IPA|/duː juː ˈniːd ˈɛnɪθɪŋ/}} Do you need anything?
: {{IPA|/aɪ ˈdoʊnt ˈnoʊ/}} I don't, no
: {{IPA|/aɪ doʊnt ˈnoʊ/}} I don't know (이 경우 {{IPA|[ˈaɪ doʊnoʊ]}} 또는 {{IPA|[ˈaɪdənoʊ]}}와 같이 축약되어 발음되기도 한다. 짧게 축약하여 발음될 때에는 Don't와 Know가 마치 "dunno"와 같이 한 단어인 것처럼 들린다.)
==== 강세 ====
영어에서는 문장의 특정한 음절이나 단어, 성조군에 [[강세]]가 실린다. 이렇게 강세가 실린 음절을 핵심 음절이라 한다. 예를 들어,
: That | was | the | '''<u>best</u>''' | thing | you | could | '''<u>do</u>'''!
위 문장에서 강세가 놓이는 "best" 와 "do" 가 핵심 음절이 된다. 문장의 나머지 부분은 약하게 발음된다. 영어에서는 핵심 음절을 강하게 발음함으로써 화자의 의도를 들어낸다. 어디에 강세를 두는 가에 따라 의도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 '''John''' did not steal that money. (... "다른 누군가가 훔쳤다.")
: John did '''not''' steal that money. (... "존이 훔쳤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아니다" 또는 "그때 훔친 게 아니라 나중에 훔쳤다." )
: John did not '''steal''' that money. (... "훔친 게 아니라 번 거다.")
: John did not steal '''that''' money. (... "다른 돈을 훔쳤다.")
: John did not steal that '''money'''. (... "돈이 아닌 다른 것을 훔쳤다.")
다른 예를 들면
: '''I''' did not tell her that. (... "다른 사람이 말했다.")
: I did '''not''' tell her that. (... "내가 했다고 하지만 아니다" 또는 "지금 말할 거다")
: I did not '''tell''' her that. (... "난 그렇게 말한 적 없는데 그녀가 추측한 것이다" 등)
: I did not tell '''her''' that. (...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 I did not tell her '''that'''. (... "다른 것을 말했다")
핵심 강세는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 '''Oh''', really? (..."몰랐다")
: Oh, '''really'''? (..."안 믿겨" 또는 "정말이야?")
핵심 음절은 문장의 다른 부분에 비해 강하고 높게 발음된다. 또한 영어에는 문장 끝의 소리 높이가 올라가는 상승 성조와 내려가는 하강 성조가 있다. 두 [[성조]]를 합쳐 상승-하강 성조나 하강-상승 성조로 쓰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성조의 사용으로는 의문문에서 쓰이는 상승 성조이다. 영어에서 상승 성조는 화자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의 예문을 보면,
: When do you want to be paid?
:: Now? (상승 성조. 이 경우 "지금 받을 수 있을까요?" 또는 "지금 줄 수 있나요?"의 뜻이 된다.)
:: Now. (하강 성조. 이 경우 "지금 받았으면 좋겠네요"의 뜻이 된다.)
== 문법 ==
{{참고|영문법}}
영문법은 다른 [[인도유럽어족]]에 비해 [[어형 변화]]가 간결한 편이다. 예를 들면, 현대 영어에서는 독일어, 네덜란드어와 같은 다른 [[서게르만어군]]나 [[로망스어군]]과는 달리 문법상의 [[성 (문법)|성(性)]] 구분이 거의 없다. 또한 수·격·인칭·성에 따른 동사의 [[조화 (언어학)|조화]]도 극히 드문 편이다. [[격]]은 거의 사라져 [[대명사]]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게르만어파]] 특유의 [[동사변화]] 규칙도 많이 사라졌기 때문에 [[강한 동사변화]](예:speak/spoke/spoken)와 [[약한 동사변화]](예:love/loved/loved)는 이전 시기의 영어에 비해 엄격하지 않다.
이와 같은 변화로 인해 영어는 [[고립어 (언어유형학)|고립어]]와 같은 성격을 띠게 되어 [[양상 동사]]와 [[어순]] 등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한편, 영어는 [[의문문]], [[부정문]], [[수동태]]와 같은 [[태]]의 표현, 상황의 설명을 위한 상 등을 나타내기 위해 [[조동사]]를 사용한다.
== 품사 ==
영어의 [[품사]]는 총 8개로, 이들을 가리켜 "8품사" (8 Parts of Speech)라고 부른다.
* [[명사]](名詞, nouns)
* [[동사]](動詞, verbs)
* [[형용사]](形容詞, adjective)
* [[부사]](動詞, adverbs)
* [[접속사]](接續詞, conjunctions)
* [[전치사]](前置詞, prepositions)
* [[대명사]](代名詞, pronouns)
* [[감탄사]](感歎詞, interjections)
== 단어 ==
영어 단어는 수 세기에 걸쳐 변화를 겪어왔다.<ref>Joachim Grzega / Marion Schöner, [http://www1.ku-eichstaett.de/SLF/EngluVglSW/OnOnMon1.pdf English and General Historical Lexicology],Katholische Universität Eichstätt-Ingolstadt, Germany, July 2007</ref>
다른 [[게르만어파]]에 속하는 언어들과 마찬가지로 영어 역시 많은 단어가 [[원 인도유럽어]]에서 유래하였다.
{| class="wikitable"
! 영어
! [[네덜란드어]]
! [[독일어]]
! [[고트어]]
! [[라틴어]]
! [[그리스어]]
! [[산스크리트어]]
|-
| I (ic<ref group="n">[[고대 영어]]</ref>) || ik || ich || ik || ego || ego<br />({{lang|grc|ἐγώ}}) || aham
|-
| me || mij || mich, mir || mik, mīs || me || eme<br />({{lang|grc|ἐμέ}}) || mam
|-
| one || een || eins || ain || unus || oinos<br /> || ekam
|-
| mother || moeder || Mutter || || mater || meter<br />({{lang|grc|μήτηρ}}) || matr
|-
| mouse || muis || Maus || || mus || mys<br />({{lang|grc|μῦς}}) || mus
|}
<references group="n"/>
현대 영어에서도 [[대명사]], [[전치사]], [[접속사]], [[양상 동사]] 등은 거의 대부분 게르만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영어 구문과 문법의 기본적인 토대를 이루고 있다. [[고대 영어]]나 [[고대 노르드어]]와 같은 게르만어에서 유래한 이러한 단어들은 일반적으로 [[라틴어]]와 같은 언어에서 유래한 단어보다 짧다. 이에는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는데 우선 단어의 축약 현상이 있었다. 고대 영어의 hēafod가 현대 영어의 head로 고대 영어의 sāwol이 soul로 변한 것이나, 끝소리가 강세를 잃어 gamen이 game으로 ǣrende가 errand로 변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다른 이유는 [[노르만 정복]] 이후 라틴어나 프랑스어가 정치, 학문, 예술의 전 분야에서 사용되면서 음절이 긴 토박이말들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같은 뜻을 나타내는 데 토박이말보다는 라틴어를 사용하는 것이 보다 교양 있는 것으로 여겨지면서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조지 오웰]]은 《정치와 영어》라는 수필을 통해 이러한 단어 사용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ref>[http://www.mtholyoke.edu/acad/intrel/orwell46.htm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 {{웨이백|url=http://www.mtholyoke.edu/acad/intrel/orwell46.htm |date=20100715144246 }}(영어) George Orwell, 1946년</ref><ref group="주">한국어 역시 같은 이유로 많은 토박이말을 잃고 한자어로 대치되었다.</ref>
현대 영어에서도 여전히 게르만어에서 유래한 단어와 동의어인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를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come과 arrive, sight와 vision, freedom과 liberty 등이 그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여기에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동의어가 추가된다. 예를 들어 게르만어에서 유래한 oversee 대신 라틴어에서 유래한 supervise나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survey를 동의어로 사용할 수 있다. 이외에도 영어에는 다양한 출처에서 들여온 단어들이 있다. 예를 들어 warranty는 [[앵글로노르만어]]에서 온 것이고 guarantee는 페르시아계 프랑스어에서 온 것이다. 어떤 단어들은 이렇게 여러 곳에서 유래한 동의어들이 두루 쓰이기도 하는데 고대 영어에서부터 사용된 sick는 고대 노르드어에서 유래한 ill,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infirm, 라틴어에서 유래한 afflicted와 같은 단어들과 동의어군을 이루고 있다. 영어의 사용에서 이러한 동의어의 선택은 [[뉘앙스]]와 같은 것을 함께 전달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이든 게르만어에서 유래한 것이든 이제는 영어에서만 사용되는 단어들도 있다. 라틴어에서 유래하여 영어에서만 사용되는 것들로는 mountain, valley, river, aunt, uncle, move, use, push, stay 같은 단어들이 있고 게르만어에서 유래한 것으로는 , abandonment, debutant, feudalism, seizure, guarantee, disregard, wardrobe, disenfranchise, disarray, bandolier, bourgeoisie, debauchery, performance, furniture, gallantry와 같은 단어들이 있다. 앵글로-색슨어에서 나온 단어들로는 acknowledge, meaningful, understanding, mindful, behaviour, forbearance, behoove, forestall, allay, rhyme, starvation, embodiment와 같은 단어들이 있다. 한편, 유래를 밝히기 어려운 단어들 역시 많이 있다. 영어 단어를 가장 많이 만든 사람 중에는 [[셰익스피어]]가 있다. 실제로 셰익스피어의 희곡에는 단어에 수많은 주석이 달려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영어 단어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많은 단어가 [[HTTP 쿠키|cookie]](쿠키)나 [[URL]]과 같은 과학 기술 용어이다. 또한 [[속어]] 와[[슬랭]]의 사용으로 인해 단어가 가지고 있던 원래의 뜻에 새로운 의미가 더해지기도 한다. 때때로 사건으로 인해서 신문 등이 단어를 만들기도 한다.
=== 외래어의 유입 ===
Chaebol([[재벌]]), Panmunjom([[판문점]])과 같은 [[한국어 기원의 영어 단어]], Kancho([[윤하]]), Tonkatsu([[돈카쓰]]), Tofu([[두부]])와 같은 [[일본어 기원의 영어 단어]]와 같이 여러 문화와의 교류를 통해 외래어가 더해지고 있다.
=== 단어의 수 ===
영어 단어의 수를 명확히 산출할 수 없는 이유를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단어는 널리 확산되고 문화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 그 수를 한정 지어 산출할 수 없다. 어떤 방향에서든 중심적인 단어는 잘 정리되어 있으나 외연은 모두 확인하기 힘들다.
광대한 영어 단어의 수를 산출하는 데에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우선 영어는 [[프랑스어]]([[아카데미 프랑세즈]]), [[스페인어]]([[스페인 왕립 학술원]])등과 달리 공식적인 어문 기구가 없다. 또한 의료, 과학, 기술 분야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신조어]]가 계속하여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속어]]의 사용으로 인한 단어의 의미 변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끝으로 외국어 역시 다수의 영어 화자가 이를 사용할 경우 넓은 의미에서 영어로 취급된다.
1933년 [[옥스포드 영어 사전]] 제2판은 60만 단어 이상을 등재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본 사전에는 문학과 회화에서 사용되는 표준 영어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 분야의 신조어와 현재 사용되고 있는 속어등을 두루 수록하였다.
47만 5천여 중심 단어를 수록하고 있는 웹스터 사전은 매해 2만 5천여 단어를 추가로 등재하고 있다.<ref>Kister, Ken. "Dictionaries defined." Library Journal, 6/15/92, Vol. 117 Issue 11, p43, 4p, 2bw</ref>
글로벌 랭귀지 모니터에 따르면 2009년 6월 10일 현재 사용되고 있는 영어 단어의 수는 약 1백만 개에 이른다.<ref>[http://edition.cnn.com/2009/TECH/06/10/million.words/index.html#cnnSTCOther1 'English gets millionth word on Wednesday, site says']</ref>
== 한국의 영어 ==
[[대한민국]]에서 영어가 처음으로 교육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말기인 [[1883년]] [[동문학]]이 세워지면서부터였다.<ref>한국인이 영어와 처음 접촉한 것은 [[1816년]]이었으나, 그 당시에는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국내에 한 사람도 없었다.</ref><ref>당시 알파벳을 처음 본 [[조선]] 관리는 "그 모습이 산과 구름 모양의 그림 같아서 알 수 없었다."는 발언을 남겼다.</ref> 이후 [[1886년]] [[육영공원]]에서 [[영국]]인 교사들이 영어로만 [[영국 영어|영국식 영어]]를 가르치는 최초의 [[영어몰입교육]] (물론 [[직접식 교수법]])이 시작되고 [[배재학당]] (현재의 [[배재중학교]], [[배재고등학교]], [[배재대학교]]), [[이화학당]] (현재의 [[이화여자대학교]])에서도 영어 교육이 중시되고 [[1895년]] 설립된 [[관립 외국어 학교]]에서 영어 전공 학생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 다른 언어 전공 학생을 제치는 등 1910년까지 활발하게 교육되다가 [[1910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조선에서의 영어 교육을 대폭 축소해 암흑기에 빠졌다. 그 시기에 강사는 [[일본어]]에 능통해야 한다는 법 때문에 영어 강사들도 발음이 좋지 않은 일본인 강사로 채워졌다. 영어 교습법도 이 시기부터 [[직접식 교수법]]<ref>아예 [[한국어]]를 사용할 수 없는 외국인 ([[영국인]]) 강사를 채용하였다.</ref>에서 [[문법 번역식 교수법]]<ref>문법, 독해 중심의 교습법</ref><ref>소리가 사라지고 문자만 남은 [[사어]]를 학습하는 데는 매우 우수한 학습법이다.</ref>으로 바뀌었다. 이후 [[1920년]]~[[1941년]]까지는 영어가 다른 외국어에 비해 충실하게 교육되다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영어 교육이 다시 억압되었다.
===대한민국===
1946년 [[서울대학교]]의 설립으로 영어영문학과가 설립되어 영문학 (영미 시, 영미 소설, 영미 희곡) 연구가 시작되었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부터 영어는 [[미국 영어|미국식 영어]]로만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교육되었다. [[1960년대]] 이후 최초의 공인 영어 시험으로 [[TOEFL]]과 1980년대 [[TOEIC|TOEIC,]] [[G-TELP]]가 차례대로 소개되었다. [[1980년대]]에는 일제 시대식 [[영문법|문법]] 중심 교육 (문법 번역식 교수법)에서 독해/회화/듣기 중심 교육 (청각 구두식 교수법)으로 바뀌었다. [[1983년]]에는 중, 고등학교 시험에 영어 듣기 평가가 도입되고 [[1984년]]에는 [[학력고사]]에도 듣기 평가가 도입되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으로까지 이어졌다.<ref>수능에서는 문법과 단어 암기, 단어에서 강세의 위치, 제시된 단어의 [[발음 기호]]를 묻는 문제가 사라졌다.</ref><ref>초기 수능 영어 듣기 평가는 50문제 중 8문제 (16%)였으나 1996학년도 수능 ([[1995년]]) 때에는 50문제 중 10문제 (20%), 1997~1998학년도 수능 (1996~1997년)에는 55문제 중 17문제 (31%)로 늘어났다. 이후 6차 교육과정 시기에는 영어 듣기 문제가 50문제 중 17문제 (34%)로 늘어났고, 7차 교육과정 시기에도 이를 유지하다가 2014년 수능에서는 전체의 48%인 22문제로 늘어났으나 2015년 수능부터는 다시 17문제 (38%)로 환원된다. 2018년 수능 이후 영어는 상대평가 체제를 버리고 '''절대평가 체제로 전환''' 했으며 90점 이상이면 무조건 1등급이고 이후 10점마다 등급이 하나씩 깎인다.</ref> [[1999년]]부터는 기존 [[중학교]] 1학년부터 배우던 영어 교과<ref>그래서 과거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에는 ABC 등 철자법이 포함되어 있었다.</ref>를 [[초등학교]] 3학년부터 배우도록 확대하였고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영어 몰입 교육과 [[영어 공용화]] 논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TEPS]]는 물론 토종 영어 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TOSEL]]까지 개발하였다.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의 [[유치원]]에서도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또 [[대학]]에서는 [[영문학]]이나 영어 교육 전공이 아닌 [[교수]]들도 영어로 강의하게 하기도 하며, 대부분의 대학에서 영어를 교양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고 최소 2학기에서 최대 8학기까지 이수하게 하고 있다. [[카투사]]나 영어 [[통역병]]과 같이 지원 시 영어 공인 점수를 요구하는 병과도 있다. 교수법은 조선 시대에는 직접식 교수법으로, 일제 때는 문법 번역식 교수법으로, 현대에는 일부가 문법 번역식 교수법을 따르고 일부는 청각 구두식 교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고등 학교의 경우 영어 관련 교과목 수는 6개이다. (영어 I, 영어 II, 실용 영어 회화, 심화 영어 회화, 영어 독해와 작문, 심화 영어 독해와 작문)<ref>2014년 이후에는 14개 (기초 영어, 실용 영어 I, 실용 영어 II, 실용 영어 회화, 실용 영어 독해와 작문, 영어 I, 영어 II, 영어 회화, 영어 독해와 작문, 심화 영어, 심화 영어 회화, 심화 영어 독해 I, 심화 영어 독해 II, 심화 영어 작문)로 늘어난다.</ref> 현재 일부 학교에서는 원어민 교사<ref>주로 [[미국]] 출신. 그 다음은 [[캐나다]] 출신이며, 드물게 [[영국]],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도 있다.</ref>를 채용하여 청각 구두식 교수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공무원 시험]]에도 영어는 필수과목으로 들어가 있으나 2004년부터 5급, 2016년 이후 7급 영어가 공인영어로 대체되었다. 한국인이 구사하는 영어의 [[억양]]은 대개 [[캘리포니아주|캘리포니아]] 억양 혹은 이에 기반한 한국식이고, 그 다음이 표준 미국식 억양<ref>[[미네소타주]], [[위스콘신주]], [[미주리주]], [[아이오와주]], [[일리노이주]], [[인디애나주]], [[미시간주]], [[오하이오주]] 등 미국 중서부 지역</ref>이다. [[영국 영어]]를 구사하는 한국인은 그렇게 많지 않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영국 영어]]만 교육하며, 교육 방식도 [[대한민국]]과는 달리 [[영국]]의 교과서를 사용한다. 교육 시기도 늦어서 대개 중학교부터 영어를 배운다. [[유치원]] 과정에서는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 대한민국과의 큰 차이점이다. 또한 교과서에서도 김씨 일가 우상화 내용이 담겨 있고 남한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으로 묘사하고 있다.
== 영어의 분화와 각 영어의 [[방언]] ==
* [[영국과 미국 영어의 차이]] (American and British English differences)
* [[미국 영어]](美國英語, American English)
** [[미국 영어]] 중 미국 본토에서 사용되는 7개의 방언 (뉴잉글랜드, 뉴욕, 펜실베이니아 서부, 북부, 중부, 남부, 서부)
** [[필리핀 영어]]
** [[하와이 영어]]
** [[알래스카 영어]]
** [[캐나다 영어]](Canadian English)
* [[영국 영어]](英國英語, British English)
** [[홍콩 영어]]
** [[싱가포르식 영어]](Singpore English)
** [[인도네시아 영어]]
** [[말레이시아 영어]](Manglish)
** [[인도 영어]](Indian Inglish)
** [[호주 영어]]
** [[뉴질랜드 영어]]
** [[스코틀랜드 영어]](Scottish English)
** [[아일랜드 영어]]
** [[남극 영어]](南極英語, 영국식과 미국식의 중간형)
== 같이 보기 ==
* [[쉬운 영어]](플레인 잉글리시)
* {{임시링크|쉬운 영어 쓰기 운동|en|Plain English Campaign}}(Plain English Campaign, '''PEC''')
* {{임시링크|간결 영어|en|Simple English}}(Simple English)
* {{임시링크|간화 영어|en|Simplified English}}(Simplified English)
* [[영어권]]
* [[영어 사용자 수에 따른 나라 목록]]
*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별 영어 사용자 수]]
* [[영국 영어]]
* [[미국 영어]]
* [[영국 영어와 미국 영어의 차이]]
* [[토익]](TOEIC) / [[토플]](TOEFL) / [[아이엘츠]](IELTS)
* [[앵글리시]]
* [[인터랭귀지]](중간 언어)
*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 '엉터리 영어'라고도 함)
* [[잉그리시]](Engrish)
* [[한국어식 영어]](Konglish, 콩글리시)
* [[일본어식 영어]](Japlish, 재플리시)
* [[중국어식 영어]](Chinglish, 칭글리시)
* {{임시링크|비원어민의 영어발음|en|Non-native pronunciations of English}}(Non-native pronunciations of English)
== 각주 ==
;내용주
<references group="주"/>
;참조주
{{각주}}
==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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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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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prefixsuffix.com/ English language word roots, prefixes and suffixes (affixes) dictionary]
* [http://www.m-w.com/ Merriam-Webster's online dictionary]
* [http://www.macquariedictionary.com.au/ Macquarie Dictionary Online]
{{게르만어파}}
{{UN 공식 언어}}
{{유럽 연합의 공식 언어}}
{{인도의 언어}}
{{전거 통제}}
[[분류:영어| ]]
[[분류:굴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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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케냐의 언어]]
[[분류:케이맨 제도의 언어]]
[[분류:키리바시의 언어]]
[[분류:탄자니아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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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팔라우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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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필리핀의 언어]]
[[분류:홍콩의 언어]]
[[분류:SVO형 언어]]
[[분류:분석어]]
[[분류:문화 세계화]]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색}}
'''색 공간'''(色空間, {{lang|en|color space}})은 색 표시계(color system)를 3차원으로 표현한 공간 개념이다. 색 표시계의 모든 색들은 이 색 공간에서 3차원 좌표로 나타낸다.
여기서 색 표시계(color system)란 CIERGB, CIEXYZ, CIELAB, CIELUV 등의 색 체계를 말한다. 최근 디자인 학계나 산업계에서 색채 디자인 또는 시각 디자인을 연구하거나, 카메라, 스캐너, 모니터, 컬러 프린터 등의 컬러 영상 장비 개발 및 응용 단계에서 색 공간은 정확한 색을 재현하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색 디자인이나 디지털 색 처리에 기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색 공간인 CIELAB 색 공간은 먼셀 색 표시계의 기본 원리인 색의 3속성(색상, 명도, 채도)을 살림과 동시에 CIEXYZ 색 표시계의 불균등한 색 공간을 개선하기 위하여 개발된 것이다. 이 색 공간은 [[색상]](hue), [[명도]](lightness), [[채도]](chroma)를 3차원 공간의 각각의 기본 축으로 하는 공간이다. 여기서 CIELAB은 CIE 1976 L*a*b*의 약식 명칭이고, CIE 1976 L*a*b*은 공식 명칭이다.
== 색 공간의 이해 ==
색의 3속성인 색상(hue), 명도(lightness), 채도(chroma)를 3차원 공간의 각각의 축으로 형성된 색 공간은 컬러 디자인이나 컬러 공학 등의 학문 또는 산업분야에서 컬러를 다루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이해하여야 할 개념이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보라 등으로 구분되는 색을 나타내는 색상(hue)은 색 공간을 지구로 비유할 경우 적도 상에서 경도 즉, 색상각(hue angle)으로 표현, 0도~360도의 범위를 가지며, 시계 방향으로 변화된다. 또한 이 색 공간은 대응색(opponent color) 관계를 쉽게 나타낸다. 대응색 관계란 명도 축을 기준으로 대칭의 위치에 있는 두 색의 관계를 말하며 서로 보색 관계에 있을 나타낸다.
모든 색들의 밝고 어둠을 나타내는 명도(lightness)는 색 공간을 지구로 비유할 경우 남극과 북극을 연결하는 축으로서 남극을 검은색, 북극을 흰색으로 하며 그 사이에는 회색들로 배열된다.
모든 색들의 깨끗한 정도를 나타내는 채도(chroma, saturation)는 색 공간의 명도축을 0으로 하고 적도에 가까이 갈수록 커진다.
색 공간의 중요한 용도 가운데 하나는 색차 계산(color difference)이다. 이는 색 공간에 존재하는 두 점 즉, 두 색들 사이의 거리를 계산하여 공학적으로 활용한다. 예를 들면 컬러 영상 분할(color image segmentation)은 CIELAB 색 공간에서 색차 계산 결과를 이용하여 CIELAB 색 공간에서 영상 분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간혹 컬러 영상 분할에 관한 연구 논문들 중에는 RGB 데이터를 바탕으로 색차 계산한 결과를 가지고 RGB 데이터로 영상분할을 한 논문들이 발견되곤 하는데 이는 치명적인 오류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컬러 영상 장비에서 다루는 RGB는 시각의 RGB가 아니고 단지 코드에 불과할 뿐 아니라 균등색 공간(uniform color space)도 아니기 때문에 공학적인 계산은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색 공간의 응용에는 색감에 따른 색의 배열이나 배치(grouping)가 있다. 각종 산업 디자인에 흔히 쓰이고 있는 색감 즉, 따뜻한 색, 차가운 색 등의 배열이나 배치는 CIELAB 색 공간에서 좌표로 다룰 경우 개념이 분명해질 뿐만 아니라 정확성이 보장된다. 그러나 CIELAB 색 공간은 CIEXYZ 색 공간으로 변환한 다음 다시 RGB나 CMY 데이터로 변환해야 하는 필수적인 과정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이 쉽거나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는 [[색 이론]]을 적용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 자주 쓰이는 색 공간 ==
=== RGB 색 공간 ===
{{본문|RGB 가산혼합}}
[[파일:RGBCube b.svg|섬네일|200px|RGB 색 공간 모형]]
RGB 색 공간은 색을 혼합하면 [[명도]]가 올라가는 가산 혼합 방식으로 색을 표현한다. RGB 가산혼합의 [[삼원색]]은 [[빨강]]('''R'''ed), [[녹색]]('''G'''reen)<ref>정확한 [[색상]]은 [[라임색]]이다</ref>, [[파랑]]('''B'''lue)을 뜻한다. [[RGBA 색 공간|RGBA]]은 RGB와 동일하며, 알파('''A'''lpha)라는 투과도를 덧붙인 것이다. RGB 색 공간은 삼원색에 해당하는 세 가지 채널의 밝기를 기준으로 색을 지정한다. RGB 색 공간은 [[웹 색상]] 표현의 기본 원리이다.
=== CMYK 색 공간 ===
{{본문|CMYK 감산혼합}}
[[파일:Synthese-.svg|200px|섬네일|CMYK 색 공간의 원리]]
CMYK 색 공간은 인쇄과정에서 쓰이는 감산 혼합 방식으로, 흰 바탕에 네 가지 잉크의 조합으로 색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색을 혼합하면 명도가 낮아지기에 감산 혼합이라고 한다. CMYK는 인쇄에 쓰이는 4가지 색은 [[옥색]]('''C'''yan), [[마젠타|자홍색]]('''M'''agenta), [[노랑]]('''Y'''ellow), [[검정]](Blac'''k''')을 뜻한다.
=== HSV 색 공간 ===
{{본문|HSV 색 공간}}
[[파일:HSV cone.jpg|200px|섬네일|HSV 색공간 모형]]
HSV 색 공간은 [[색상]]('''H'''ue), [[채도]]('''S'''aturation), [[명도]]('''v'''alue)를 기준으로 색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감산 혼합이나 가산 혼합보다 색상의 지정이 직관적<ref>HSV 색 공간의 색은 '어둡고 흐린 파랑'과 같이 언어로 표현하기에 적합하다.</ref>이기 때문에 [[시각 예술]]에서 자주 쓰인다.
=== [[국제 조명 위원회|CIE]] 색 공간 ===
{{본문|CIE 1931 색 공간|Lab 색 공간}}
CIE는 국제 조명 위원회({{llang|fr|Commission internationale de l'éclairage}})를 프랑스어식으로 표기한 준말이며, CIE 색 공간이란 컬러 매칭 실험을 통하여 생성된 R, G, B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CIEXYZ 색 공간과 CIELAB 색 공간, 그리고 CIELUV 색 공간이 대표적인 색 공간이다.
여기서 CIEXYZ 색 공간은 '균등 색 공간'이 아니어서, 이를 수식적으로 변환하여 만들어진 것이 CIELAB 색 공간과 CIELUV 색 공간이며, 이 두 색 공간은 색차를 계산할 때 비교적 정확한 계산이 이루어진다.
여기서 '균등 색 공간'이란 '불균등 색 공간'의 대립 개념이며, 불균등 공간에서는 [[색상]]들을 나타내는 선, [[채도]]들을 나타내는 선들이 일정하지 않고 불규칙하게 배열되기 때문에 색 공간에서 두 점의 거리 즉, 색의 차이를 계산하면 정확하지 않다.
=== 상업적 색 공간 ===
* [[팬톤]] (Pantone)
* [http://coloro.kr/ 컬러로] (Coloro)
* [[먼셀 색상계]]
* [[NCS 색상계]]
=== 다른 색 공간 ===
* [[YIQ]]는 [[미국]]과 [[대한민국]] 컬러 텔레비전의 [[NTSC]] 방식에 쓰이는 색 공간이다. [[YIQ]]는 휘도(輝度, luminance)와 빨강과 파랑에 대한 두 가지 색차값으로 색을 나타낸다. 이 색 공간은 [[PAL]] 방식에서 쓰이는 [[YUV]]와 관련이 깊다. 실제로 YIQ 색 공간은 YUV 색 공간을 33도 돌려놓은 것일 뿐이다.
: [[RGB]]
: Y=0.299R + 0.587G + 0.114B
: I=0.596R - 0.274G - 0.322B
: Q=0.211R - 0.523G + 0.312B
* [[YCbCr]]은 [[MPEG]], [[JPEG]] 등과 같은 디지털 이미지 압축 형식에 많이 쓰인다.
* [[HLS]]는 HSV와 비슷하나, v대신에 밝기('''l'''ightness) 성분이 들어간다.
=== 전통적 색 공간 ===
* [[RG 색공간|RG]] 초기 컬러 필름
* [[RGK 색공간|RGK]] 초기 컬러 인쇄
초기 색 공간은 두 개의 성분을 갖고 있었다. 당시에는 청색광을 무시했다.
== 같이 보기 ==
* [[색 이론]]
* [[색 목록]]
== 각주 ==
<references />
== 참고 문헌 ==
* [[R. W. G. Hunt]], The Reproduction of Colour in Photography, Printing & Television, 5th Ed. Fountain Press, England, 1995. {{ISBN|0-86343-381-2}}
* Mark D. Fairchild, Color Appearance Models, Addison-Wesley, Reading, MA (1998). {{ISBN|0-201-63464-3}}
* 조맹섭, 디지털 컬러의 기본원리, 도서출판국제, 2006
* 조맹섭, 디지털 컬러 프로세싱, 도서출판국제, 2006
== 외부 링크 ==
* [http://www.poynton.com/ColorFAQ.html Charles Poynton's Color FAQ]
* [http://www.physics.sfasu.edu/astro/color.html Dan Bruton's Color Science] {{웨이백|url=http://www.physics.sfasu.edu/astro/color.html |date=20020802012056 }}
* [https://web.archive.org/web/20040126151457/http://www-swiss.ai.mit.edu/~jaffer/Color/index.html Color-Scheme - open source color space management package written in Scheme]
* [http://www.wackerart.de/mixer.html RGB-Color Mixer Java Applet] Java-Plugin required
* [https://www.withustools.com/tools/colorpicker/colorpicker.html RGB-Color-Code Copy]
{{색 공간}}
{{색 주제}}
{{사진술}}
{{압축 방식}}
[[분류:색 공간| ]]
[[분류:데이터 압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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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영상 처리]]
[[분류:측광학]]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세기표}}
[[파일:Punch Rhodes Colossus.png|섬네일|세실 존 로드의 케이프-카이로 철도 계획을 풍자한 그림. 영국의 아프리카 남북 분할의 상징이다.]]
[[파일:British troops capture Chin-Keang-Foo.jpg|섬네일|[[제1차 아편 전쟁]]의 전투기록화]]
'''19세기'''(19世紀, {{llang|en|19th century}})는 [[1801년]]부터 [[1900년]]까지의 기간이다. 19세기 동안 세계는 [[제국주의]]가 팽배하면서 여러 서구 열강들이 세계 곳곳을 점령하여 [[식민지]]로 삼았다.<ref>김인기, 《이야기로 풀어 쓴 세계사 4》, 지경사, 2008년, {{ISBN|8931920466}}, 228 - 230 쪽</ref> 이전 시기부터 진행되어 온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는 19세기에 전 세계로 확대되었는데, [[1884년]] [[벨기에]]의 국왕이 주최한 [[베를린 회의 (1884년)|베를린 회의]]에서 [[아프리카]]의 각지를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로 삼기로 결정한 [[아프리카 분할]]이 대표적인 사례이다.<ref>하영선, 변환의 세계정치, 을유문화사, 2008, {{ISBN|8932471266}}, 47쪽</ref> 19세기 세계적인 제국으로는 [[대영 제국]],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등이 있었으며, [[공화국]]이었던 [[프랑스]]와 [[미국]] 역시 제국주의적인 정책을 펼쳤다. 프랑스는 [[1885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세워 지금의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지역을 식민 지배하였다.<ref>다케미츠 마코토, 이정환 역, 《세계 지도로 역사를 읽는다》, 황금가지, 2001년, {{ISBN|8982733183}}, 99쪽</ref> 미국은 1898년 [[필리핀-미국 전쟁]]을 벌이고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았다.<ref>Wolters, W.G. (2004), [http://books.google.com/books?id=QKgraWbb7yoC&pg=PA1075 "Philippine War of Independence"], in Keat Gin Ooi, Southeast Asia: A historical encyclopedia from Angkor Wat to East Timor II, Santa Barbara, CA: ABC-CLIO, {{ISBN|1-57607-770-5}}</ref>
[[워털루 전쟁]] 종전 직후 유럽을 중심으로한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확대에 따라 세계 각지의 전통적인 국가들은 몰락하였다. 아프리카에 있던 [[이페]], [[에티오피아]], [[만딩고 제국]], [[송가이 제국]], [[다호메이]], [[콩고 왕국]], [[모노모타바 왕국]], [[보르누 왕국]]과 같은 여러 나라들은 식민지로 전락하였고<ref>모리무라 무네후유, 신은진 역, 대항해시대, 들녘, 2007, 71 - 73쪽</ref>,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제국이었던 [[청나라]]는 본격 서구 열강의 침입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아편 전쟁]] 이후 반식민지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ref>허원, 〈아편전쟁을 다시 본다〉, 《역사비평:1997년 겨울호》, 역사문제연구소, ISBN AAB1997120</ref> 일본은 [[1853년]]에 우라가 앞바다에 나타난 [[매슈 페리]]가 이끈 미국 해군 함대인 [[흑선]]의 등장 이후 미국과 불평등 조약인 [[가나가와 조약]]을 맺었고<ref>한상일, 《아시아 연대와 일본제국주의》, 오름, 2002년, {{ISBN|8977781485}}, 37쪽</ref>, 이후 [[메이지 유신]]으로 [[도쿠가와 막부]]가 붕괴된 이후 스스로 제국주의를 표방하고 [[일본 제국]]을 수립하였다.
[[한국의 역사]]에서 19세기는 [[조선]]의 [[조선 순조|순조]]부터 [[대한제국]]의 [[대한제국 고종|고종]]에 이르는 시기이다. [[정조]]의 사망으로 [[1800년]] 순조가 11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 (조선 영조)|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정순황후는 [[노론]] 벽파에 속하였으며,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당시 [[남인]] 사이에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전파되고 있던 [[천주교]]를 박해하여 [[신유사옥]]이 일어났다.<ref>한정주,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다산초당, {{ISBN|899255561X}}, 83쪽</ref> 순조는 1804년부터 친정을 하였으며 정순왕후의 세력을 견제하고자 노론 시파인 김조순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였고, 이후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이 [[비변사]]를 장악하여 [[세도정치]]가 이루어졌다. 이후 [[조선 헌종|헌종]], [[조선 철종|철종]] 시기에 이르기까지 세도정치가 계속되었다.<ref>한영우, 《다시찾는 우리역사》, 경세원, {{ISBN|89-8341-057-4}}, 439-441 쪽</ref> 19세기 조선은 지역 차별과 삼정의 문란 등으로 인해 각종 민란이 끊이지 않았다. 1811년 일어난 [[홍경래의 난]]은 서북 지역에 대한 차별이 주요 원인이었고<ref>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홍경래의 난</ref>, 이 외에도 가혹한 수탈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산으로 숨어 화전민이 되거나, 심할 경우 명화적이나 수적이 되는 일이 많았다.<ref>한영우, 《다시찾는 우리역사》, 경세원, {{ISBN|89-8341-057-4}}, 4441-442 쪽</ref> [[조선 후기의 농민 반란|조선 후기 민란]]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으며<ref>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조선 후기의 농민 반란</ref>, 특히 1862년 삼남지방의 [[임술농민항쟁]]은 매우 큰 사회적 충격을 가져왔다.<ref>한국사특강편찬위원회, 한국사특강, 서울대학교출판부, {{ISBN|89-7096-115-1}}, 230쪽</ref> [[1863년]] 철종이 후사없이 사망하자 [[조선 인조|인조]]의 후손인 고종이 즉위하였다.<ref>정교(鄭喬) 저, 조광(趙珖) 편, 《대한계년사 1》(소명출판, 2004년) 47~48쪽.</ref> 즉위 초기에는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하였으나, 일본의 [[대정봉환]]에 따른 국교 수립 요청과 [[운요호 사건]] 이후 [[강화도 조약]] 체결을 즈음하여 친정을 하였다.<ref>한국사특강편찬위원회, 한국사특강, 서울대학교출판부, {{ISBN|89-7096-115-1}}, 231쪽</ref> 1897년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로 즉위하여 연호를 광무라 하였다.<ref>고종실록 광무 1년 10월 13일</ref>
한편, 19세기는 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발견이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찰스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하여 생물 진화의 사실을 제시하고, 진화의 원인으로 [[자연 선택]]을 제시하였다.<ref>Wallace, A; Darwin, C (1858). [http://darwin-online.org.uk/content/frameset?itemID=F350&viewtype=text&pageseq=1 "On the Tendency of Species to form Varieties, and on the Perpetuation of Varieties and Species by Natural Means of Selection"]. Journal of the Proceedings of the Linnean Society of London. Zoology 3: 53–62. doi:10.1098/rsnr.2006.0171. Retrieved 2007-05-13</ref> [[루이 파스퇴르]]는 [[1861년]] 《자연발생설 비판》을 출간하여 발효와 부패는 미생물에 의한 것임을 증명하였고, [[백신]]을 통한 전염병 예방법을 확립하였다.<ref>David V. Cohn, Ph.D.,E, [http://pyramid.spd.louisville.edu/~eri/fos/interest1.html Louis Pasteur] {{웨이백|url=http://pyramid.spd.louisville.edu/~eri/fos/interest1.html |date=20130807000221 }}</ref> 생물학의 발전에 힘입어 [[서양]]의 [[의학]]역시 발전하여 사망률이 감소함에 따라 [[인구]]가 증가하였다. [[유럽]]의 인구는 19세기 동안 2억여 명에서 4억여 명으로 두 배가 되었다.<ref>[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387301/modernization/12022/Population-change Modernization – Population Change]. Encyclopædia Britannica.</ref> 물리학 분야에서는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맥스웰 방정식]]을 수립하여 [[전기]]와 [[자기]]가 동일한 현상임을 입증하고 [[전자기 복사]]를 예견하였다.<ref>타케우치 아츠시, 김현영 역, 《고교수학으로 배우는 맥스웰의 방정식》, 도서출판 홍, {{ISBN|89-5517-125-0}}</ref> [[조사이어 윌러드 기브스]]는 [[열역학]]의 여러 법칙의 확립에 기여하였다. 그가 도입한 [[기브스 자유 에너지]] 개념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기초 과학 법칙으로 사용되고 있다.<ref>박병각 외, 《물리 화학의 원리》, 학문사, 1999년, {{ISBN|8946741341}}, 129-130 쪽</ref>
19세기에는 여러 새로운 사상이 출현하였다. [[허버트 스펜서]] 등의 [[사회진화론]] 주장자들은 다윈의 자연선택 개념을 왜곡하여 사회에 도입하는 적자생존 논리로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를 옹호하기도 하였다.<ref>이른바 인간의 적자생존을 주장한 우생학과 관련해서는 다음 문헌을 참조할 것: Kevles, D (1998). In the Name of Eugenics: Genetics and the Uses of Human Heredity. Harvard University Press. {{ISBN|978-0674445574}}</ref><ref group="주해">[[자연 선택]]은 생물의 진화 과정에서 환경 요인이 압력으로 작용하여 결국 생물이 자연 환경에 [[적응]]하게 되는 [[진화]]의 과정이고, 스펜서의 적자생존은 우월한 민족이나 국가가 결국 다른 약소 민족이나 국가를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는 주장이다.</ref> 이러한 사회진화론은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를 적극 옹호하는 이론으로 사용되었다. 영국의 [[러디어드 키플링]]은 [[백인의 짐]]이라는 시를 발표하여 서구의 제국주의가 인류 역사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까지 하였다.<ref>Cody, David. [http://www.victorianweb.org/history/empire/Empire.html The growth of the British Empire]. The Victorian Web, University Scholars Program,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November 2000.</ref> 한편,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ref>《공산당 선언》, 강유원 옮김 (이론과실천, 2008) {{ISBN|978-89-313-6022-6}}</ref>과 《[[자본론]]》<ref>《자본론 1 상》,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01) {{ISBN|978-89-376-0317-4}}</ref><ref>《자본론 1 하》,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05) {{ISBN|978-89-376-0017-3}}</ref><ref>《자본론 2》,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04) {{ISBN|978-89-376-0317-4}}</ref><ref>《자본론 3 상》,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04) {{ISBN|978-89-376-0320-4}}</ref><ref>《자본론 3 하》,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04) {{ISBN|978-89-376-0321-1}}</ref>을 출간하여 이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ref>박영균, 《칼 마르크스》, 살림지식총서117, 살림, 2005년, {{ISBN|8952203712}}</ref> 마르크스의 작업은 그의 사상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사회학]]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ref group="주해">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평가하면서 “마르크스는 사회적 현실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인식에서 떠나 사회를 하나의 체계를 통하여 보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보여준 최초의 사람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 기 소르망, 강위석 역, 《20세기를 움직인 사상가들》, 한국경제신문사, 2003년, {{ISBN|8947520438}}, 133쪽</ref> 이 외에도 19세기에는 오늘날에도 주목 받고 있는 많은 철학자들이 독특한 사상을 발표하였다. [[쇠렌 키르케고르]], [[프리드리히 니체]],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와 같은 철학자들이 대표적이다.
== 시대 ==
* [[산업혁명]] 시대
* 유럽의 [[제국주의]] 시대
** [[영국]] - [[빅토리아 시대]]
** [[프랑스]] - [[부르봉 왕정복고]], [[7월 왕정]], [[프랑스 제2공화국]], [[프랑스 제2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
** [[독일]] - [[독일 제국]]
** [[러시아]] - [[러시아 제국]]
* 아프리카 북부와 중동 - [[오스만 제국]] 시대
* 중국 - [[청나라]] 시대
* 일본 - [[에도 시대]], [[메이지 시대]]
* 한국 - [[조선]] 시대
== 주요 사건 ==
* [[1801년]] - [[조선]]에서 [[신유박해]]가 일어남.
* [[1804년]] - [[나폴레옹]]이 [[프랑스제국]]의 황제가 되다.
* [[1811년]] - [[조선]]에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남.
* [[1814년]] - [[나폴레옹]]이 몰락하다.
* [[1815년]] - [[나폴레옹]]이 엘바섬에서 탈출해 [[백일천하]]하였지만 [[워털루전투]]에서 패배 후 [[세인트헬레나]]로 유배가다.
* [[1818년]]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출간.
* [[1830년]] - [[프랑스]]에서 [[7월 혁명]]이 일어나다.
* [[1832년]] - [[프랑스]]에서 [[6월봉기]]가 일어나다.
* [[1839년]] - [[청나라|청]] - [[영국]] 사이에 [[제1차 아편 전쟁]]이 일어남.
* [[1842년]] - [[청나라|청]] - [[영국]] 사이에 [[난징 조약]] 체결.
* [[1844년]] - [[새뮤얼 모스]]가 [[모스 부호]]를 사용하는 모스 통신기를 발명.
* [[1848년]] - [[나폴레옹3세]]가 [[나폴레옹]]의 조카임을 자처하며 국민투표로 대통령이 되다.
* [[1853년]] - [[미국]] - [[도쿠가와 막부]] 사이에 [[가나가와 조약]] 체결.
* [[1853년]] - [[러시아 제국]]과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 왕국]], [[오스만 제국]] 연합군 사이에 [[크림 전쟁]]이 일어남.
* [[1856년]] - [[제2차 아편 전쟁]]이 일어남.
* [[1859년]]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출간.
* [[1861년]] - [[루이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출간.
* [[1861년]] - [[미국]]의 북부와 남부 사이의 내전인 [[미국 남북 전쟁]]이 일어남.
* [[1862년]] - [[조선]]에서 [[임술농민봉기]]가 일어남.
* [[1866년]] - [[조선]] - [[프랑스]] 사이에 [[병인양요]]가 일어남.
* [[1867년]] - [[일본]] [[대정봉환]]으로 막부 정치 붕괴.
* [[1870년]] - [[프랑스]]와 [[프로이센]] 사이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일어남.
* [[1871년]] - [[파리 코뮌]]이 결성되나 진압됨.
* [[1871년]] - [[미국]] - [[조선]] 사이에 [[신미양요]]가 일어남.
*1871년 - 빌헬름 1세,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독일 제국 선포.
* [[1873년]] - [[제임스 맥스웰]] 《전자기론》출간.
* [[1876년]] - [[조선]] - [[일본]] 사이에 [[강화도조약]] 체결.
* [[1876년]] - [[미국]] - [[조선]] 사이에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 [[1882년]] - [[조선]]에서 [[임오군란]]이 일어남.
* [[1884년]] - [[조선]]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남.
* [[1885년]] - [[프랑스]]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세워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삼음.
* [[1884년]] - [[조선]]에서 [[고부농민봉기]]가 일어남.
* [[1889년]] - [[청나라]]의 국기가 황룡기로 채택됨
* [[1897년]] - [[대한제국 고종|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
* [[1898년]] - [[필리핀]] - [[미국]] 사이에 [[필리핀-미국 전쟁]]이 일어나 필리핀이 미국의 식민지가 됨.
* [[1899년]] - [[대한제국]] [[경인선]] 개통.
* [[1900년]] - [[타카미네 조이치]](高峰 譲吉)가 [[아드레날린]]을 발견.
== 주요 인물 ==
* [[김옥균]] ([[1851년]] - [[1894년]])
* [[나쓰메 소세키]] ([[1867년]] - ''[[1916년]]'')
* [[니콜라 테슬라]] ([[1856년]] - ''[[1943년]]'')
* [[대한제국 고종]] ([[1852년]] - ''[[1919년]]'')
* [[라마 5세]] ([[1853년]] - ''[[1910년]]'')
* [[레프 톨스토이]] ([[1828년]] - ''[[1910년]]'')
* [[로베르트 슈만]] ([[1810년]] - [[1856년]])
* [[루이 파스퇴르]] ([[1822년]] - [[1895년]])
* [[마리 퀴리]] ([[1867년]] - ''[[1934년]]'')
* [[명성황후]] ([[1851년]] - [[1895년]])
* [[메이지 천황]] ([[1852년]] - ''[[1912년]]'')
* [[벤저민 디즈레일리]] ([[1804년]] - [[1881년]])
* [[빅토리아 (영국)|빅토리아]] ([[1819년]] - ''[[1901년]]'')
* [[빈센트 반 고흐]] ([[1853년]] - [[1890년]])
* [[쇠렌 키르케고르]] ([[1813년]] - [[1855년]])
* [[시어도어 루스벨트]] ([[1858년]] - ''[[1919년]]'')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1788년]] - [[1860년]])
* [[안토닌 드보르자크]] ([[1841년]] - [[1904년]])
* [[알렉산드르 2세]] ([[1818년]] - [[1881년]])
* [[에바리스트 갈루아]] ([[1811년]] - [[1832년]])
* [[에이브러햄 링컨]] ([[1809년]] - [[1865년]])
* [[오토 폰 비스마르크]] ([[1815년]] - [[1898년]])
* [[요하네스 브람스]] ([[1833년]] - [[1897년]])
* [[율리시스 그랜트]] ([[1822년]] - [[1885년]])
* [[위안스카이]] ([[1859년]] - ''[[1916년]]'')
* [[윌리엄 글래드스턴]] ([[1809년]] - [[1898년]])
*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 ([[1806년]] - [[1859년]])
* [[이토 히로부미]] ([[1841년]] - ''[[1909년]]'')
* [[제임스 맥스웰]] ([[1831년]] - [[1879년]])
* [[존 데이비슨 록펠러]] ([[1839년]] - ''[[1937년]]'')
* [[주세페 가리발디]] ([[1807년]] - [[1882년]])
* [[지그문트 프로이드]] ([[1856년]] - ''[[1939년]]'')
* [[찰스 다윈]] ([[1809년]] - [[1882년]])
* [[카밀로 카보우르]] ([[1810년]] - [[1861년]])
* [[카를 마르크스]] ([[1818년]] - [[1883년]])
* [[토머스 에디슨]] ([[1847년]] - ''[[1931년]]'')
* [[페르디낭 드 레셉스]] ([[1805년]] - [[1894년]])
* [[펠릭스 멘델스존]] ([[1809년]] - [[1847년]])
* [[폴 고갱]] ([[1848년]] - ''[[1903년]]'')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1821년]] - [[1881년]])
* [[표트르 차이콥스키]] ([[1840년]] - [[1893년]])
* [[프란츠 슈베르트]] (''[[1797년]]'' - [[1828년]])
* [[프레데리크 쇼팽]] ([[1810년]] - [[1849년]])
* [[프리드리히 니체]] ([[1844년]] - [[1900년]])
*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1820년]] - ''[[1910년]]'')
* [[호세 리살]] ([[1861년]] - [[1896년]])
* [[홍수전]] ([[1814년]] - [[1864년]])
* [[흥선대원군]] ([[1820년]] - [[1898년]])
== 년대와 년도 ==
{{세기년대년도|17|18|19}}
== 같이 보기 ==
* {{임시링크|19세기 열강들의 국제관계|en|International relations of the Great Powers (1814–1919)}}
* [[3C 정책]] - 영국
** [[아프리카 종단 정책]] - 3C 정책중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부분정책
* [[3B 정책]] - 독일
* [[아프리카 횡단 정책]] - 프랑스
== 각주 ==
; 내용주
<references group="주해" />
; 참조주
{{각주}}
{{천년기}}
{{전거 통제}}
[[분류:19세기|*]]
[[분류:후기 근대]]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2||영국과 다른 나라들을 포함하는 기구|영연방}}
{{다른 뜻 넘어옴|UK}}
{{영국 표}}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ref group="주">{{llang|en|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문화어|대브리텐 및 북아일랜드 련합왕국}}</ref>, 약칭 '''영국'''<ref group="주">[[한자]]: 英國, 연합왕국(聯合王國), {{문화어|련합왕국}}, ({{llang|en|United Kingdom|유나이티드 킹덤}}, '''The UK''', '''U.K.''')으로도 해석하며, [[브리튼섬|브리튼]] ({{llang|en|Britain}})이라고도 부른다.</ref>은 [[유럽]] 본토 해안에서 북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입헌군주제|입헌군주국]]이다. [[북해]], [[영국 해협]], [[아일랜드해]] 및 [[대서양]]에 접했으며 [[그레이트브리튼섬]]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및 [[아일랜드섬]] 북부의 [[북아일랜드]]로 네 개의 [[영국의 구성국|구성국]]이 연합해 형성한 [[단일 국가]]이다.<ref group="주">연합국의 구성을 이루는 각 [[영국의 구성국|구성국]]들은 [[영국의 지방 자치|자치권]]을 보장받았지만 정치학적으로 영국은 [[미국]]과 같은 [[연방 국가]]가 아니다.</ref> 수도는 [[런던]]이고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수도는 각각 [[에든버러]], [[카디프]], [[벨파스트]]이다.
아일랜드섬의 영국령인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아일랜드 공화국]]과 국경을 맞대며 [[영국의 해외 영토|해외 영토]]까지 포함 시 [[스페인]](영국령 [[지브롤터]]), [[키프로스]]([[아크로티리 데켈리아]])와 국경을 공유한다. [[건지섬]], [[저지섬]], [[맨섬]]과 같이 본토의 일부는 아니나 영국의 군주가 지배하는 [[왕실속령]]들도 있다. 해외 영토 거주민들과 영국 본토 국민들은 서로 지역에 거주할 권리가 없으며 상호 간 이민도 자유롭지 않다.<ref>[http://ec.europa.eu/europeaid/where/octs_and_greenland/countries/bermuda_en.htm EU Relations with Bermuda] {{웨이백|url=http://ec.europa.eu/europeaid/where/octs_and_greenland/countries/bermuda_en.htm |date=20140315054016 }}, European Commission</ref>
영국은 입헌군주제를 기본으로 하여 근대적 [[의회제도]]와 [[의원내각제]]를 전 [[세계]]로 전파한 국가이며 [[산업혁명]]의 발원지로 제일 먼저 산업화를 이룬 나라이자 [[19세기]]와 [[20세기]] 초반 세계 인구와 영토의 1/4을 차지한 당대의 최강대국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상대적으로 국력과 위상이 쇠퇴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에 [[정치]], [[군사]], [[문화]], [[과학]], [[경제]] 등에 영향을 끼치는 [[강대국]] 중 하나로 남았으며 특히 대중 음악은 [[비틀즈]]와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 [[퀸 (밴드)|퀸]]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세계에 막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며 핵무기 보유국이고 2018년 기준으로 [[군사비 지출에 따른 나라 목록|군사비 지출]]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크다. 2023년 명목 국내총생산은 세계 6위였으며, 시가총액 기준 세계 50대 기업 중 [[로열 더치 쉘]], [[BHP 빌리튼]], [[보다폰]], [[HSBC]], [[BP]],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유니레버]]가 영국 기업이었다. 대졸자 초임 연봉은 2023년 기준으로 약 25,000 [[파운드 스털링|영국 파운드]]([[한화]] 약 3,767만원)이다.<ref>“졸업 후 연봉으로 대학 평가”…英 총리가 '칼' 빼든 이유",
《중앙일보》, 2023.07.23.</ref>
{{목차숨김|3}}
== 어원과 용어 ==
{{본문|브리튼 제도의 용어}}
영국의 정식명칭은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며, 약칭으로 '''브리튼'''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영국'''이라 부르는 것은 연합왕국의 구성국인 [[잉글랜드]]의 [[한자]] 표기에서 왔고, 다른 [[한자 문화권]]에서도 사용한다. 영(英){[[중국어]]발음은 잉([[병음]]: Yīng)}은 잉글랜드(England)의 잉(Eng)을 [[음역]]했고, 국(國)은 랜드(land)를 의역했다. [[한자 문화권]]에서 이 이름은 연합왕국 전체를 통칭하는 경우가 많지만 문맥에 따라서 여전히 잉글랜드만을 뜻하기도 하는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일본]]에서는 잉글랜드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잉글레스({{llang|pt|inglês}})의 음역인 '''이기리스'''({{llang|ja|イギリス}} 또는 {{lang|ja|英吉利}})로도 쓴다.
1707년에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은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으로 통합하였다. 현재 영국을 지칭할 때 흔히 쓰는 ‘유나이티드 킹덤’ 호칭은 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을 부를 때 사용했던 국명이다. 다만 1707년부터 1800년까지 정식 국명은 여전히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었다. 1801년에는 아일랜드 왕국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통합하면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을 구성하였다. 1922년에 [[아일랜드 자유국]]이 영국에서 떨어져 나가자, 영국은 [[북아일랜드|아일랜드 북부 지방 일부]]만을 통치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정식 명칭을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라고 바꾸었다.
영국은 현재 단일국가지만,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상당한 자치를 유지한다. 영국 총리의 웹사이트에도 영국을 설명할 때에 ‘국가 안의 국가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다만 완벽한 자치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정부 통계를 낼 때에 ‘지방’이나 ‘행정구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부른다. ‘그레이트브리튼’이라는 단어는 보통 그레이트브리튼 섬을 칭한다. 정치적으로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를 합쳐 부르는 단어다. 가끔씩 영국 전체를 느슨하게 묶어서 통칭하는 단어다.
‘브리튼’이라는 단어는 그레이트브리튼과 동의어로, 영국을 부를 때 사용하는 단어다. 다만 영국 정부는 'UK'를 ‘브리튼’보다 선호하며, 대사관이나 외교 업무를 제외하고 브리튼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영국 지리학회에서는 자국의 약칭을 ‘브리튼’이 아닌 ‘유나이티드 킹덤’이나 'UK'로 사용하도록 권고하며, ‘그레이트브리튼’이라는 단어는 은연 중에 북아일랜드를 제외하는 어감을 지녀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영국 대표적인 방송사인 [[영국방송공사|BBC]]의 경우, 영국을 칭할 때에 ‘브리튼’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 역사 ==
{{본문|영국의 역사}}
=== 연합왕국 성립 이전 ===
[[파일:BayeuxTapestry39.jpg|섬네일|300px|[[바이외 태피스트리]]에 묘사한 [[노르만인의 잉글랜드 정복]]]]
현생 인류는 대략 3만 년 전쯤부터 영국 지역에 살기 시작하였다. 선사시대가 끝나갈 무렵, 이들은 [[켈트족]]이라는 민족을 구성하며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켰고, 브리튼 섬에는 [[브리튼인]]이, 아일랜드에는 [[게일인]]이 등장하였다. 그러던 중 기원후 43년부터 로마인들이 브리튼 섬을 침공하였고, 이들이 약 400여 년 동안 브리튼 섬 남부를 지배하며 [[로만 브리튼|브리튼인들을 로마화]]했다. 이후에는 게르만계의 [[앵글로색슨인|앵글로 색슨족]]이 쳐들어왔고, 본래 섬에 거주하던 브리튼인들을 웨일스 지방으로 몰아낸 후에 섬의 주 지역들을 차지하였다. 앵글로색슨족은 약 10세기 경 [[잉글랜드 왕국]]으로 통합하였고, 5세기 경 아일랜드에서 이주하여 브리튼 섬 북서부에 살던 일부 게일인들은 [[픽트인|픽트족]]과 통합하어 9세기 경에 [[스코틀랜드 왕국]]을 건국하였다.
1066년, [[노르만인|노르만족]]이 프랑스 북부에서 건너와 [[노르만인의 잉글랜드 정복|잉글랜드를 침공]]하였고, 웨일스, 아일랜드 대부분을 점령하였으며 이후에는 스코틀랜드에 정착하였다. 이들은 스코틀랜드에 자리를 틀며 프랑스식의 봉건제를 지역에 정착시켰고, 본래 있던 앵글로색슨 지배계층들과 교류하며 섬의 엘리트층으로 떠올랐다. 이후 왕위에 오른 잉글랜드의 왕들은 웨일스 지방 정복에 성공하였으나, 스코틀랜드 합병에는 실패하여 1320년 스코틀랜드 독립을 반강제적으로 인정하였다. 이후 스코틀랜드는 1700년대에 합병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잉글랜드와 충돌을 반복하였다.
잉글랜드 역대 국왕들은 결혼과 전쟁 등을 반복하여 프랑스 본토 내에도 상당한 영토를 소유하였다. 게다가 프랑스 왕위계승권도 가졌기에 프랑스 내에서 일어나는 정치 다툼에 깊이 간여하였다. 가장 대표적 사건은 프랑스와 벌인 [[백년 전쟁|백년전쟁]]으로, 이때 스코틀랜드의 왕들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잉글랜드에 대항하였다. 이후 유럽에서 [[종교 개혁|종교개혁]]이 일어나 기독교 구교과 신교 간의 싸움이 치열해지자, 잉글랜드는 새로운 국교인 [[성공회]]를 조직하고 가톨릭 교회들이 지녔던 토지들을 몰수하고 왕권 강화에 활용하였다. 이때 즈음에 이르자 웨일스는 완전히 잉글랜드 왕국에 편입하였고, 아일랜드는 잉글랜드 왕위 하에 하나의 왕국으로 성립하였다. 한편 잉글랜드 왕국은 현재 북아일랜드 지방에 있는 가톨릭 교회의 토지들을 몰수하여 근왕파 귀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603년, 스코틀랜드의 왕인 [[제임스 1세 (잉글랜드)|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왕위를 물려받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왕국은 하나로 통합되게 되었다. 제임스 6세는 그의 궁정을 에든버러에서 런던으로 옮겼으나, 여전히 각각의 왕국들은 따로 노는 성향이 강했으며 정치적, 법적, 종교적으로는 제각각으로 활동했다. 17세기 중반에는 이 3개의 왕국들 모두가 내전에 휘말리게 되는데, 이때 잠시 왕정이 폐지되었으며 국왕 [[찰스 1세]]가 참수당했고 잠시동안 [[코먼웰스|커먼웰스]]가 세워지며 단명한 공화국이 창설되기도 했다. 또한 17세기, 18세기에는 섬이라는 영국의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영국 출신의 수많은 해적들이 활동하며 유럽과 캐리비안 해의 상선들을 약탈하여 악명을 떨쳤다.
단명한 공화정이 폐지된 이후 왕정이 복고되었으나, 전제군주정은 다시는 부활하지 못했다. 또한 가톨릭교도는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법이 통과되면서 로마 교황의 간섭도 타 유럽 국가들에 비하여 훨씬 뜸해졌고, [[권리장전 (영국)|권리장전]] 등 국왕의 권력을 제약하고 의회의 힘을 강화하는 법들이 연이어 통과되며 이후 영국은 의회제도와 입헌군주정에 기반한 국가로 도약하게 된다. 한편 1660년에는 왕립위원회가 창설되며 과학계에 대한 후원이 대폭 증가하였고, 왕실의 후원에 힘입어 해군력이 크게 증강되었으며 해외 식민지 탐사에 눈을 뜨게 되며 북아메리카와 캐리비안 지역에 대대적인 식민지 건설이 시작되었다.
===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왕국이 서로 몇 백년 동안 반목을 거듭한 끝에, 1707년 5월 1일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양국 의회가 통합법을 가결하며 마침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성립됨에 따라 두 왕국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18세기에는 첫 총리로 [[로버트 월폴]]이 취임하였고, 의회내각제에 기반하여 근대 민주주의의 기반을 닦아 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자코바이트의 난]]이 터지며 신교를 믿는 하노버 왕가를 몰아내고 가톨릭을 신봉하는 [[스튜어트가|스튜어트 왕가]]를 복구하려 시도하였으나, 결국 1746년에 대패하고 반란을 일으켰던 스코틀랜드인들은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한편 북아메리카에 설립한 영국의 식민지는 [[미국 독립 전쟁|독립전쟁]]을 일으켜 [[미국]]을 건국하며 떨어져나갔고, 영국은 어쩔 수 없이 이를 1783년에 인정하였다. 이후 영국의 관심은 아시아 쪽으로 옮겨갔고, 특히 영국이 아시아에 차지하고 있는 가장 부유하고 거대한 식민지인 [[인도]]에 집중되었다.
영국은 [[노예 무역|대서양 노예무역]]을 주도하며 1662년과 1807년 사이에 수많은 선박들을 이용하여 거의 330만 명의 흑인 노예들을 아프리카에서부터 실어날랐다. 노예들은 보통 북아메리카나 캐리비안 해역에 있는 거대한 플랜테이션 등으로 강제적으로 옮겨갔으며 심각한 탄압을 받으며 사탕수수나 목화 등을 재배하는 일에 동원되었다. 이들의 강제 노동은 18세기 영국의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들 중 하나였으며, 노예상인들은 이 과정에서 엄청난 이익을 남기며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노예무역의 반인륜적인 실태가 갈수록 폭로되자 결국 여론의 압박을 받은 의회가 1807년에 노예무역을 금했고, 1833년에는 대영제국 전체에서 노예제를 철폐하였다. 또한 이후에는 노예제 폐지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타 유럽 국가들도 노예를 거래하거나 사고파는 일을 그만두도록 압박하기도 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인권단체인 ‘반노예인터네셔널(Anti-Slavery International)'도 1839년 런던에서 처음으로 창설되었다.
[[파일:Queen Victoria by Bassano.jpg|왼쪽|섬네일|대영제국의 전성기를 다스린 [[빅토리아 (영국)|빅토리아 여왕]]]]
=== 대영제국과 1차 세계대전 ===
'유나이티드 킹덤‘, 즉 ’UK'라는 국명은 1801년에 그레이트브리튼 왕국과 아일랜드 정부가 서로 통합을 결정하면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창설되면서 정식으로 영국의 국명으로 결정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랑스가 결국 영국과 그 연합국들에게 패한 이후, 영국은 19세기 유럽의 최강자로 떠올랐고, 전세계의 제해권을 장악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으로 뻗어나갔다. 1830년대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였으며, 영국 상선들은 막강한 해군의 비호를 받으며 전세계를 이었다. 이 시기를 일컬어 영국 주도하의 평화, 즉 ‘팍스 브리타니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시기 영국의 국력은 매우 강대해지면서 ‘[[대영 제국|대영제국]]’이라고 불리기 시작하였고, 1815년에서 1914년까지 서구 열강들이 서로 균형을 유지하며 견제하는 소강상태 동안 세계의 패권을 쥐고 경찰국가 지위를 획득하였다. 또한 18세기에 대대적으로 일어난 산업혁명에서 주도권을 잡으며,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1853년에서 1856년까지는 [[오스만 제국]]과 손을 잡고 [[러시아 제국]]과 맞서 싸우며 [[크림 전쟁]]에 참가하였다. 영국은 이 전쟁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크게 넓히는 데에 성공하였고, 인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호주 등 세계 곳곳에 방대한 해외 영토를 건설하였다. 영국은 막강한 금력을 바탕으로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경제권을 손에 거머쥐었고, 자유무역과 작은정부를 지향하면서 점차 자본주의를 전세계에 전파하였다. 인구는 전례없는 속도로 증가하였고, 도시화가 급격히 일어났으며 사회의 빈부격차는 심각한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벤저민 디즈레일리|디즈레일리 총리]]가 이끄는 내각과 보수당은 제국을 먹여살릴 새로운 동력을 찾기 위하여 식민지 확장에 열을 올렸고, 이집트, 남아프리카 등 미개척지에 수많은 탐험원정대들을 파견하며 국력을 과시하였다. 한편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뉴질랜드]]는 영국의 통제를 받는 자치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시간이 흐르자 압도적이었던 영국의 산업화 속도도 독일과 미국 등 신흥 강대국들에게 따라잡혔고, 유럽과 미국과의 경제력 격차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편 1900년대 이후 아일랜드 지방의 사회개혁과 자치는 영국 정가의 최고 이슈로 급부상하였고, 이후 아일랜드의 독립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한편 1900년대 이후에는 무역조합들과 조그만 사회주의 단체들이 모여 결성한 [[노동당 (영국)|노동당]]이 등장하였고, 여성 투표권, 참정권 등을 요구하는 다양한 사회단체들이 등장하여 사회의 변혁기를 이끌었다.
영국은 [[제1차 세계 대전|제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 러시아, 미국과 함께 독일과 동맹국을 상대로 연합국 측에서 싸웠다. 영국은 거의 모든 식민지에서 병사들을 모집했고, 대부분을 유럽 전선에 투입하며 전세를 승리조로 이끌었다. 그러나 피해는 막대하였고, 영국은 한 세대에 달하는 젊은이들을 잃었으며 사회질서의 붕괴, 기존 질서에 대한 회의 등 여러 변화를 맞았다. 전후에는 독일과 오스만 제국의 영토들을 분할,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기 위하여 [[국제 연맹]]을 창설하는 데에 참가하였다. 대영제국은 세계대전 직후 그 국력의 절정기를 맞았다. 대영제국은 전세계 육지의 5분의 1을 다스렸으며, 전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그 신민들로 거느렸다. 그러나 세계대전의 피해도 만만치 않아서, 대략 250만 명의 사망자들을 내었으며 엄청난 양의 빚을 지게 되었다.
[[파일:Sir Winston Churchill (cropped).jpg|섬네일|윈스턴 처칠 총리]]
=== 제2차 세계대전 ===
1920년대 중반에 이르자 거의 대부분의 영국 국민들은 [[영국방송공사|BBC]]에서 송출하는 방송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텔레비전 방송이 1929년에 시범적으로 시작되었고, 1936년에는 처음으로 BBC 방송표가 결성되며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한편 1900년대 이후 계속되었던 아일랜드 민족주의는 1920년대 들어 그 절정을 찍었고, 결국 1921년에는 [[아일랜드]]가 대영제국에서 독립되어 나가는 결과를 낳았다. 다만 영국과의 분리를 바라지 않던 [[북아일랜드]] 지방은 여전히 영국에 남았다. 1928년에는 여성들에게 남성과 동등한 정치권과 선거권을 주었으며, 1920년대에는 빈부격차와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하며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발 [[대공황]]이 도래했고, 1차 세계대전 시절에 입은 내상을 완벽히 회복하지 못한 영국은 엄청난 양의 실업률과 사회적 불안정을 맞으며 불안한 1930년대를 보냈다. 이시기 영국에서는 수많은 공산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등장하였으며, 1931년에는 연립 정부가 구성되었다.
다만 이 같은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아직까지도 세계의 중심이었으며, 런던은 세계 경제계의 핵심 중 하나이었고 그 무력과 과학기술, 산업은 세계 최고수준이였고 최강이었다. 그러던 중 [[아돌프 히틀러|히틀러]] 주도의 [[나치 독일]]이 [[폴란드 침공|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도 이를 좌시하지 않고 1939년에 독일에 전쟁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였다. 1940년에는 [[윈스턴 처칠]]이 총리직에 올랐고, 내각을 이끌고 전쟁을 지속해나갔다. 다만 개전 초기에는 프랑스 등의 동맹들이 나치에게 쓸려나가며 홀로 외로운 전쟁을 계속하였으나, 처칠 총리가 산업을 독려하고 과학자, 기술자들에게 정부를 지지해줄 것을 호소하면서 점차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하였다. 1940년에는 왕립 공군이 [[영국 본토 항공전|영국본토방공전]]에서 독일의 [[루프트바페]]를 상대로 영공을 수호하는 데에 성공하였으나, 이과정에서 런던 등을 포함한 시가지가 엄청난 폭격을 당했다. 1941년에는 영국과 미국, [[소련]]이 대동맹을 맺었고, 점차 나치를 포함한 [[추축국]]을 상대로 대대적인 반격전에 나서며 유럽, 대서양,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등에서 엄청난 격전을 벌였다. 영국군은 1944년에 실시된 [[노르망디 침공|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유럽을 나치 치하에서 해방시키며 상당한 군공을 세웠다. 영국군은 유럽뿐만 아니라 미얀마, 태평양 등에서도 활약하였으며, 영국 태평양함대는 태평양에서 일본 함대와 맞서 싸우기도 하였다. 또한 영국 출신 과학자들은 [[맨해튼 계획|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하며 [[일본의 항복|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이끌어내는 데에 일조하였다.
=== 20세기 ===
2차 세계대전 시기동안, 영국은 미국, 소련, 중국과 함께 세계의 4대 강대국 측에 들었다. 이들은 전후에 세계평화와 신세계질서 구축을 위하여 [[유엔|국제연합]]을 창설하였고,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지위를 얻었다. 또한 [[IMF]], [[세계은행]], [[북대서양 조약 기구]] 등 세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국제기구들을 설립하였다. 영국은 2번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국력이 심각하게 약화되었고, 이 때문에 미국 주도의 경제재건프로그램인 [[마셜 플랜]]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대전이 끝난 이후 노동당이 이끄는 정부가 급진적인 개혁 정책들을 펼쳤고, 사회 전반을 바꾸기 위하여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수많은 주요 산업들과 자원들이 국유화되었고, 복지국가의 개념이 형성되었으며 거대한 규모의 국민복지제도가 설립되었다. 한편 해외 식민지들 사이에서는 점차 민족주의가 대두하였고, 한창 영국이 전쟁으로 약화된 틈을 타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였다. 결국 영국은 어쩔 수 없이 이들을 독립시킬 수밖에 없었고, 1947년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이후 30여 년 동안 대영제국의 거의 모든 식민지들이 독립을 얻어내었으며, 이들 대부분은 영국의 지원 하에 정부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독립 이후에도 영국 주도의 [[코먼웰스|코멘웰스]]에 가입하였고, 일부는 심지어 [[영국의 군주|영국 국왕]]을 최고 국가원수로 모시기도 한다.
영국은 핵무기를 가지게 된 3번째 국가였다. 다만 핵무기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1956년에 일어난 [[제2차 중동 전쟁]]에서 자국의 약화된 국력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고, 세계를 좌지우지하던 초강대국이 아닌,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의 눈치를 보는 국가로 위치가 격하되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1950년에는 노동력 부족 사태가 일어났고, 영국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언어가 통하는 커먼웰스 국가들에서 막대한 이민자들을 받아들였다. 이후 얼마지나지 않아 영국은 역사상 가장 다양한 민족들이 섞인 국가가 되었고, 사회 변동도 엄청나게 일어났다.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까지 영국은 경제가 꽤나 발전하였으나, 프랑스, 서독, 일본과 같은 경쟁국들에 비하면 딱히 좋은 성과를 보지 못했다.
전후 몇 십년 동안 유럽 통합에 대한 논의가 가속되던 차에, 영국은 1960년에 [[유럽 자유 무역 연합]]의 창립 회원국으로 참가하였으나, 1973년에는 [[유럽의 공동체]]에 합류하기 위하여 탈퇴하였다. 이후 EC가 1992년에 [[유럽 연합]]으로 전환되자, 영국은 12개의 창립 회원국들 중 하나로 참여하였으며 2007년 조인된 [[리스본 조약 (2007년)|리스본 조약]]에서 유럽 연합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한편 1960년대 후반부터 북아일랜드 지방은 불안정한 치안으로 인하여 큰 피해를 입고 있었는데, 1998년의 [[벨파스트 협정]]이 조인되면서 이도 끝났다. 1970년대에 점차 경제가 위축되고 산업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마거릿 대처]] 총리 주도의 보수당 정권은 규제 완화, 대규모 자본 투입과 같은 정책들을 실시하며 경제 회복을 꾀하였다. 이후 1984년부터는 북해에서 뽑아낸 석유를 팔아 얻은 대금들이 대거 영국으로 유입되며 영국의 경제는 점차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 21세기 ===
[[파일:Brexit Campaigners out side Parliament November 2016.jpg|섬네일|왼쪽|[[2016년 영국 유럽 연합 회원국 국민투표|유럽 연합 국민투표]] 결과 후 런던의 [[브렉시트]] 찬성 운동가들]]
영국은 21세기 초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미국의 접근법을 광범위하게 지지했다.<ref>{{뉴스 인용|last=McSmith |first=Andy |date=5 July 2016 |title=The inside story of how Tony Blair led Britain to war in Iraq |language=en |work=The Independent |url=https://www.independent.co.uk/news/uk/politics/chilcot-report-iraq-war-inquiry-tony-blair-george-bush-us-uk-what-happened-a7119761.html |access-date=17 February 2022}}</ref> 논쟁은 영국의 해외 군사 배치의 일부, 특히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년~2021년)|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이라크]]에서 둘러쌌다.<ref>{{뉴스 인용|last=Jackson |first=Mike |date=3 April 2011 |title=Military action alone will not save Libya |work=Financial Times |location=London |url=http://www.ft.com/cms/s/0/a6d31ca2-5e22-11e0-b1d8-00144feab49a.html#axzz1MN2vkt7a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10827133446/http://www.ft.com/cms/s/0/a6d31ca2-5e22-11e0-b1d8-00144feab49a.html#axzz1WEhSznZG |archive-date=27 August 2011 |url-status=live |url-access=subscription}}</ref>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2008년 미국발 국제금융위기]]는 영국 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2010년에 연립정부는 여러 정책들을 도입하여 금융위기로 인하여 촉발된 막대한 양의 공공부채를 줄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2014년에는 스코틀랜드 정부가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스코틀랜드 독립]]을 결정할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주민투표]]를 실시하였고, 이 투표에서 55.3%의 주민들이 독립을 거부하면서 스코틀랜드는 영국에 남게 되었다.
2016년에는 약 51.9%의 영국 국민들이 유럽 연합을 떠나기로 결정하면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즉 [[브렉시트]]가 현실화되었다. 이로 인하여 영국은 2020년 1월 31일까지만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남았고, 이후에는 유럽과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영국의 코로나19 범유행|코로나19 범유행]]은 2020년과 2021년에 {{임시링크|영국의 코로나19 범유행이 경제에 미친 영향|en|Economic impact of the COVID-19 pandemic in the United Kingdom|label=영국의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임시링크|코로나19 범유행이 영국 교육에 미친 영향|en|Impact of the COVID-19 pandemic on education in the United Kingdom|label=교육에 큰 지장}}을 초래했으며, {{임시링크|영국의 코로나19 범유행이 사회적으로 미친 영향|en|Social impact of the COVID-19 pandemic in the United Kingdom|label=사회와 정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ref name="GOVUK">{{웹 인용|url=https://coronavirus.data.gov.uk/ |title=Coronavirus (COVID-19) in the UK |website=[[gov.uk]] |publisher=Government of the United Kingdom |access-date=15 April 2020 |archive-date=14 April 2020 |archive-url=https://archive.today/20200414184317/https://coronavirus.data.gov.uk/ |url-status=live }}</ref><ref>{{웹 인용|title=Coronavirus and the impact on output in the UK economy: April 2020|url=https://www.ons.gov.uk/economy/grossdomesticproductgdp/articles/coronavirusandtheimpactonoutputintheukeconomy/april2020|access-date=2 August 2020|publisher=Government of the United Kingdom|website=ons.gov.uk|archive-date=2 August 2020|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00802031859/https://www.ons.gov.uk/economy/grossdomesticproductgdp/articles/coronavirusandtheimpactonoutputintheukeconomy/april2020|url-status=live}}</ref><ref>{{뉴스 인용|last=Walker|first=Andrew|date=10 June 2020|title=Coronavirus: UK economy could be among worst hit of leading nations, says OECD|work=BBC News|url=https://www.bbc.com/news/business-52991913|access-date=2 August 2020|archive-date=18 August 2020|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00818031423/https://www.bbc.com/news/business-52991913|url-status=live}}</ref>
2022년 9월 8일, 가장 오래 살고 {{임시링크|통치 기간에 따른 영국의 군주 목록|en|List of monarchs in Britain by length of reign|label=가장 오래 재위한 영국 군주}} [[엘리자베스 2세]]가 [[엘리자베스 2세의 죽음과 국장|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f>{{뉴스 인용|date=8 September 2022 |title=Queen Elizabeth II has died |work=[[BBC News]] |url=https://www.bbc.com/news/uk-61585886 |url-status=live |access-date=8 September 2022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20908173308/https://www.bbc.com/news/uk-61585886 |archive-date=8 September 2022}}</ref> 여왕 사후, 그녀의 장남인 웨일스 왕자 찰스는 [[찰스 3세]]로 [[영국 왕좌]]에 올랐다.<ref>{{뉴스 인용|date=8 September 2022 |title=King Charles III, the new monarch |work=[[BBC News]] |url=https://www.bbc.com/news/uk-59135132 |access-date=8 September 2022}}</ref>
== 지리 ==
{{본문|영국의 지리}}
[[파일:Satellite_image_of_Great_Britain.jpg|섬네일|위오른쪽|영국의 [[위성 사진]]]]
[[북대서양]]과 [[북해]] 사이에 위치하며, [[브리튼 제도]]와 [[아일랜드섬]]의 북동부에 자리잡은 북아일랜드로 이뤄진 섬나라이다. 서쪽으로 대서양이, 동쪽으로는 북해가 자리 잡고 있으며 남쪽의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 [[프랑스]]와 인접해 있다. 남북으로는 북위 49도에서 52도([[셰틀랜드 제도|세틀랜드 제도]]는 62도)에 이르며 동서로는 동경 2도에서 서경 8도사이에 놓여 있다.
[[국토]]는 [[그레이트브리튼섬]]과 [[아일랜드섬]]의 1/6을 차지하는 [[북아일랜드]] 및 그 주위에 분포되어 있는 몇 개의 속도군(屬島群)과 해외령을 포함한다. [[맨섬]]과 [[채널 제도]]는 왕실속령으로서 영국 정부의 국방 및 외교 관할을 받는다.
[[잉글랜드]]는 그레이트브리튼섬의 남부 저지대로 면적은 섬 전체의 약 56.7%인 130,410km<sup>2</sup>이다. [[스코틀랜드]]는 북부 고지대로 78,789km<sup>2</sup>이며, 서부 고지대인 [[웨일스]]는 20,758km<sup>2</sup>, [[북아일랜드]]는 14,160km<sup>2</sup>이다.
=== 기후 ===
중위도 대륙 서해안의 해양성 기후로서 [[멕시코 만류]](灣流)와 [[편서풍]] 때문에 [[위도]]에 비해서는 따뜻하다(1월의 기온 6∼3 °C). 그러나 [[겨울]]에는 간혹 섭씨 영하 10도까지 기온이 떨어지기도 하며 [[여름]]에는 섭씨 35도까지 오르기도 한다. 비는 서해안에는 많으나 동해안에는 적다. 또 습기가 많기 때문에 [[안개]]가 많으며 [[런던]]에서는 [[스모그]]가 1년에 90일간 생겨서 ‘안개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연평균 [[강우량]]은 서부와 북부의 산간 지방에서는 1600mm 이상이지만 중부와 동부 지역에서는 800mm 미만이다. 비는 연중 고루 내리는 편이지만 평균적으로 3월부터 6월까지가 비가 가장 적고 9월부터 1월까지가 가장 많은 시기이다.
=== 지형 ===
빙식지형이 많다. 지형적으로는 동남부의 [[저지]]와 북서부의 고지로 크게 나뉜다. 이 둘의 경계는 동부 해안 중앙부의 [[티스강]] 하구와 남부 해안의 라임만을 연결하는 선이다. 고지라고 해도 대부분은 고도 1,000m 이하의 낮은 산맥 및 구릉으로서 영국의 최고봉 벤네비스 산도 1,343m에 지나지 않는다. 고지는 지형과 지질이 다른 다음과 같은 [[지괴]](地塊)로 나뉜다. 스코틀랜드 고지와 [[북아일랜드]]는 주로 [[캄브리아기|캄브리아계]]의 가장 오랜 [[변성암]]으로 되어 있으며, 스코틀랜드 남부 산지, 캄브리아 산지(호수 지방) 및 [[웨일스]]는 주로 [[고생대]] [[실루리아기|실루리아계]]의 [[변성암]]으로 되어 있다. 페나인 산맥과 [[스코틀랜드 중앙 지구대]]는 고생대의 [[석탄기|석탄계]]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삼첩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 석탄층이 있어 영국의 탄전(炭田)을 형성한다. 웨일스 남부와 데번 코른월 지괴는 고생대 [[데본기|데본계]]로 되어 있다.한편 저지는 잉글랜드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해발 300m 이하의 낮은 [[구릉]]과 [[평야]]로 되어 있다. 구릉은 [[백악기|백악계]]와 제3계의 느리게 주름잡힌 새 지층으로 이뤄져 각지에 [[케스타]] 지형이 보인다. 영국은 제4기 [[플라이스토세]]에 유럽 대륙에서 뻗친 대륙 빙하에 덮여 있었으므로 산지에는 [[빙식]](氷蝕) 지형이 많으며, [[황토]]에 뒤덮인 [[황무지]]와 습지가 많다. 더구나 북쪽의 스코틀랜드 제도에는 [[피오르드]] 해안이 발달해 있다. [[템스강]](전체길이 350km)을 비롯하여 이 나라의 하천은 모두 짧으며 또 산지도 낮으므로 하천의 [[충적]](沖積)작용은 크지 않다. 그래서 [[템스강]] 하구부, 브리스틀 해협, 포스만 등처럼 묻혀 버린 [[삼각강]]이 많으며, 해안선은 [[굴곡]]이 많고 하천의 경사가 완만하므로 향항과 [[가항하천]](可航河川)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 행정 구역 ===
{{본문|영국의 행정 구역}}
영국의 행정구역은 중세 초기부터 그 경계가 설정되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고, 근대 초기에 들어서는 이미 현재의 행정구역이 완성되어 있었다. 또한 영국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등 여러 왕국들이 통합되어 만들어진 연합왕국이었기 때문에, 이 4개의 국가들은 서로 행정구역을 나누는 방식도 달랐으며 행정구 간의 위계도 차이가 있어 통합 초기에는 이를 일원화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영국의 지방자치단체 제도는 매우 복잡한데, 왕국들의 경제적, 사회적 특성에 따라 제도가 지역마다 모두 다르다. 일단 잉글랜드는 기본적으로 9개의 지역(region)으로 나누어진다. 이들 중 하나인 [[그레이터런던]]은 직접선거로 구성되는 지방의회를 독자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2011년부터 설립된 10개의 통합자치구역들 가운데에서 8개가 선출직 시장을 두고 있다. 지역의 하위 구역인 주나 면 단위의 단체들에서도 내각제를 채택하여 일부 독자 의회 제도를 실시하는 경우가 있다. 스코틀랜드의 경우, 32개의 주(council area)들로 나누어지며 글래스고, 에든버러, 던디, 에버딘은 독자적인 의회를 가지고 있다. 또한 최북단에 위치하여 스코틀랜드 전체 영토의 3분의 1이나 차지하지만 인구는 다 합쳐 보았자 20만 명 밖에 안되는 [[스코틀랜드 고지]]도 독자적인 의회를 가지고 있다. 지방의회들은 모두 투표로 인하여 직접선출되며, 국가로부터 월급을 지급받는다. 각각의 의회들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을 뽑을 권한이 있다. 웨일스는 총 22개의 주(unitary authority)들로 나누어져 있으며, 대도시인 카디프, 뉴포트 등의 지방들은 따로 분류한다. 선거는 매 4년마다 치러진다. 북아일랜드의 경우, 1973년 법에 따라 26개의 구(district)으로 나누어졌으며, 불안정한 정세 탓에 타 왕국과 비교했을 때 지방단체들의 권한이 상당히 약하다. 북아일랜드 지방의회는 하수 처리, 공공기물 관리 등에 그 권한이 한정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권한은 중앙정부에게 맡겨져 있다.
* [[잉글랜드의 행정 구역]]: 잉글랜드는 9개의 지역(region)으로 나뉘어 있다. 각 지역은 다시 48개의 주(county)로 나뉜다.
* [[스코틀랜드의 행정 구역]]: 스코틀랜드는 32개 주(council area)로 나뉜다.
* [[웨일스의 행정 구역]]: 웨일스는 22개 주(unitary authority)로 나뉜다.
* [[북아일랜드의 행정 구역]]: 북아일랜드는 26개 구(district)로 나뉜다.
==== 해외영토 ====
영국은 20세기까지만 해도 전세계에 식민지를 경영하며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였고, 이 잔재가 아직까지도 남아있어 해외 곳곳에 속령들이 많다. 영국은 14개의 [[영국의 해외 영토|해외영토]]가 있으며, 3개의 왕실령이 따로 존재한다.
14개의 해외영토에는 [[영국령 인도양 지역]],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 [[영국령 남극 지역]], [[케이맨 제도]], [[세인트헬레나]], [[핏케언 제도]], [[앵귈라]], [[몬트세랫]],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지브롤터]],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버뮤다]] 등이 있다. 이 중 남극의 경우에는 특정 국가가 독자적으로 점유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서 영국에서는 남극을 오직 과학적, 학문적 용도로만 사용한다고 한정하였다. 영국의 해외영토는 대략 1,600,000제곱킬로미터 정도이고, 인구는 다 합쳐보았자 25만 명도 되지 않는다. 이 해외영토들 중에서 워낙 바다에 위치한 섬들이 많다보니, 영국은 세계에서 5번째로 거대한 크기의 [[배타적 경제 수역|배타적경제수역]]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1999년 영국 정부에서는 ‘영국령 해외영토들은 영국에 머물기를 원하는 한 언제까지고 영국에 머물 것이다. 영국은 해외령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리할 것이다.’라고 해외 영토들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영국령에서 탈퇴하고자 하는 주민투표들이 실시된 적도 있는데, 예를 들어 1995년 버뮤다, 2002년에서 지브롤터가, 2013년에 [[포클랜드 제도]] 등에서 주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왕실속령|왕실령]]은 영국 국왕에 소속된 영토로, 단순한 영국의 해외 영토에 포함되지 않는다. [[채널 제도]]와 [[맨섬]] 등이 왕실령에 포함되는데, 영국 정부는 암묵적 합의에 따라 왕실령의 외교, 국방을 책임을 지며 영국 의회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국제적으로는 거의 영국의 영토로 인정받고 있다. 다만 정치 제도에는 약간 차이가 있어서, 왕실 하의 섭정위원회가 통치를 맡으며 행정수반으로 총독을 따로 두고 있다.
== 정부와 정치 ==
{{본문|영국 정부|영국 의회}}
[[파일:Parliament_at_Sunset.JPG|섬네일|300px|[[영국 의회]]의 의사당으로 쓰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궁전]]]]
영국은 근대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오래된 민주주의 역사에 걸맞게 세계에서 가장 체계적인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다. 영국은 [[웨스트민스터 시스템|웨스터민스터 시스템]]에 기반한 의회민주주의 입헌군주국이며, 영국 의회는 [[영국 상원|상원]]과 [[영국 하원|하원]]으로 나뉘며, 각각 793석, 650석의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국민들의 선거로 구성되는 서민원의 경우, 전국에 퍼져 있는 650개의 선거구에서 각각 의원들이 선출되며, 총선의 실시 또한 총리의 조언을 받아 국왕이 선포한다. 군주국을 표방하고 있는 영국답게, 상원과 하원을 통과한 모든 법안들은 효력이 발휘되기 전 국왕의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 다만 국왕이 실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입헌군주국이기 때문에, 실제로 국왕이 의회를 통과한 법안을 거부한 적은 없다.
영국의 국가수반은 [[영국의 총리|총리]]로, 하원에서 선출되며 보통 하원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한 정당의 지도자가 총리직을 맡는다. 총리는 내각을 구성할 수 있으며, 보통 내각 장관들은 국왕의 허가를 받아 임명된다. 총리는 제1재무경(First Lord of Treasury)을 겸직하며, 이 때문에 본래 제1재무경의 관저였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집무를 본다. 다만 총리가 재무부 장관직을 겸직한다는 것은 아니며, 재무부장관은 재2재무경(Second Lord of Treasury)직을 따로 겸직한다. 여당과 정권은 ‘국왕 폐하의 정부(His Majesty's Government)'라고 불리기도 한다. 반대로 제1야당의 경우에는 ’국왕 폐하의 야당(His Majesty's most loyal opposition)'이라고 불린다. 한편 총리가 거의 실권을 틀어쥐고 있기에, 형식적인 국가수반인 국왕은 관례적으로 총리의 뜻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전통으로 굳어져 왔다.
내각은 주로 총리가 여당이나 연정 정당에서 끌어온 인사들로 구성되며, 보통 하원 출신 인사들로 기용되지만 상원 출신 인사들도 항상 포함하고 있다. 현재의 총리는 2022년 10월 25일에 취임한 보수당 출신의 [[리시 수낵]] 총리이다.
한편 영국은 정치학적으로 [[연방 국가]]가 아니라 [[단일 국가]]이다.<ref>이는 영국의 국명인 United Kingdom이 복수형이 아닌 단수형인 것에서도 드러난다.</ref> 지방자치가 잘 발달되어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는 독자적인 의회와 행정부를 가지고 있으나, [[의회주권]]의 원칙에 따라 최종적인 [[주권]]은 [[웨스트민스터]]의 [[영국 의회]]가 가지며 각 지방정부들은 헌법적 사항을 단독 결정할 수 없다.<ref>{{저널 인용 |성=Burrows |이름=N. |doi=10.1111/1468-2230.00203 |제목=Unfinished Business: The Scotland Act 1998 |저널=The Modern Law Review |권=62 |호=2 |연도=1999 |쪽=241–260 [p. 249] |인용=The UK Parliament is sovereign and the Scottish Parliament is subordinate. The White Paper had indicated that this was to be the approach taken in the legislation. The Scottish Parliament is not to be seen as a reflection of the settled will of the people of Scotland or of popular sovereignty but as a reflection of its subordination to a higher legal authority. Following the logic of this argument, the power of the Scottish Parliament to legislate can be withdrawn or overridden...|issn = 0026-7961}}</ref><ref>{{저널 인용 |성=Elliot |이름=M. |doi=10.1093/icon/2.3.545 |제목=United Kingdom: Parliamentary sovereignty under pressure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Constitutional Law |권=2 |호=3 |연도=2004 |쪽=545–627, 553–554 |인용=Notwithstanding substantial differences among the schemes, an important common factor is that the U.K. Parliament has not renounced legislative sovereignty in relation to the three nations concerned. For example, the Scottish Parliament is empowered to enact primary legislation on all matters, save those in relation to which competence is explicitly denied ... but this power to legislate on what may be termed "devolved matters" is concurrent with the Westminster Parliament's general power to legislate for Scotland on any matter at all, including devolved matters ... In theory, therefore, Westminster may legislate on Scottish devolved matters whenever it chooses...}}</ref>
=== 주요 정당 ===
영국의 주요 정당은 크게 [[보수당 (영국)|보수당]], [[노동당 (영국)|노동당]], [[자유민주당 (영국)|자유민주당]], 이 3개의 정당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각 보수주의, 사회주의,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정당들로 알려져 있으며, 모두 역사가 최소 몇 십년에서 몇 백년에 달하는 유서깊은 정당들이다. 본래 영국의 정계는 19세기까지만 하여도 보수당과 자유당으로 양분되어 있었으나, 20세기 들어 자유당이 크게 위축되고 그 지지세를 새롭게 등장한 노동당에게 빼앗기면서 세가 크게 약해졌다. 21세기 현대의 자유당은 심지어 지역정당이자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을 추구하는 [[스코틀랜드 국민당]]보다도 의석 수가 적으며, 이 때문에 현대 영국의 정계는 크게 보수당과 노동당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 외에도 우파 연합주의 정당인 민주통일당, 아일랜드 통일을 주장하는 [[신 페인|신페인]], 웨일스 독립을 주장하는 [[플라이드 컴리]] 등 여러 지역정당들이 의석들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2019년]] [[12월]]의 영국 국회의원(하원) 총선거에서 10석 이상 확보한 정당을 순서대로 정렬했다.
* [[보수당 (영국)|보수당]](23.7%, 212석) : 현재 [[야당]](Her Majesty's Government), 전통적 [[중도 우파]] 정당
* [[노동당 (영국)|노동당]](76.3%, 413석) : 현재 [[집권여당]](Her Majesty's most loyal opposition), 전통적 [[중도 좌파]] 정당
* [[스코틀랜드 국민당]](7.2%, 47석) :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장, 스코틀랜드 지역정당
* [[자유민주당 (영국)|자유민주당]](1.7%, 11석) : 전통적 중도 좌파 정당, 19세기 영국 정계를 양분하던 정당이었으나, 20세기 들어 지지세가 급락하며 약화
영국은 [[의원내각제]], 즉 의회가 곧 내각이 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선거제도는 [[소선거구제]]만 채택하여 각 선거구마다 1명만을 뽑는 'First-past-the-post'방식으로 모든 의원을 선출한다. 법상 최장 5년마다 열리는 선거에서 의석수의 과반 이상을 확보한 당이 집권당이 되며, 이들이 내각(Cabinet)을 구성한다. 야당은 예비 내각(Shadow Cabinet)을 구성하여 집권시 어떤 정책을 실시할 것인가를 국민이 미리 알 수 있어 정치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보장하고 있다.
=== 영연방 ===
[[영연방]]은 느슨한 [[국가 연합]]이다. 53개 영연방 회원국 모두는 영국 국왕을 영연방의 수장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그 회원국들 중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자메이카]], [[바하마]], [[그레나다]] 등 다수 국가들의 왕이기도 하다. 국왕은 2년마다 열리는 영연방 정부 수반 회의에 참석하며 각국의 국가 수반으로 총독과 사적인 대화를 갖는다.
=== 대외 관계 ===
{{본문|영국의 대외 관계}}
영국은 [[UN 안보리]]의 상임 이사국이며, [[G7]]과 [[나토]]의 회원국이다. 2016년 6월 24일 영국은 국민투표를 실시해 EU를 탈퇴하기로 결정하였다. 현재는 브렉시트에서 과반수로 [[EU]]를 탈퇴하였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다른 유럽 나라들과 우호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영국은 1973년 [[유럽 경제 공동체]] 회원국이 되었다. 영국과 [[미국]]은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에 있다. [[미국]]과 [[유럽]] 외 영국은 [[영국 연방]], [[아일랜드]] 그 밖에 [[영어]] 사용 국가들과 친밀한 관계에 있다. 영국의 세계적인 존재와 영향력은 무역관계와 군사력 때문에 더 증폭되는데, 전 세계에 80여개의 군사 기지와 기타 파견군을 유지하고 있다.
중세 이후로, [[프랑스]]와 영국은 유럽대륙의 주도권 및 식민지 쟁탈을 놓고 서로 적대국인 경우가 많았으나 때로는 동맹을 맺기도 하였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프랑스가 앙탕트 코르디알({{llang|fr|entente cordiale}}) 정책을 펴면서, [[러일 전쟁]] 이후 프랑스 및 러시아와 동맹(삼국 협상)을 맺게 된다.
== 군대 ==
{{본문|영국군}}
{{Multiple image
| image1 = HMS Queen Elizabeth and HMS Prince of Wales meet at sea for the first time.jpg
| alt1 =
| caption1 = [[HMS 퀸 엘리자베스]]와 [[HMS 프린스 오브 웨일스]]
| image2 = Royal Navy Destroyer HMS Defender (D36).jpg
| caption2 = 영국 왕립해군 구축함 [[HMS 디펜더]]
| image3 = Royal Air Force Eurofighter Typhoon FGR4 MOD 45160575.jpg
| caption3 = 영국 왕립공군 [[유로파이터 타이푼]] 제트
| total_width = 300
| perrow = 2
| image4 = FV4034 Challenger 2 – TankFest 2017 (31403624768).jpg
| caption4 = 영국 육군 [[챌린저 2]] 주된 전투 탱크
}}
[[헌법]]에 의하여 1960년부터 [[모병제]]를 실시하였다. 2차 대전 후부터 1960년까지 평시 [[징병제]]가 시행된 적이 있었는데, 영국인들은 이를 'National Service'로 부르고 있다. 영국은 예로부터 해군이 강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공군인 'Royal Air Force'와 해군인 'Royal Navy'가 잘 알려져 있다.
근대국가의 출현과 동시에 징병제를 도입한 유럽 대륙과 다르게 영국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서야 징병제를 도입하였다. 트라팔가 해전 당시 영국 해군은 모집군이었지만 프랑스군은 징집병으로 구성되었었다. 이와 같은 경험 때문에 영국의 부속령 국가 및 옛 식민지 상당수는 징병제를 실시한 적이 없거나 그 경험이 상대적으로 일천한 편이다. 최근 '범죄자를 이라크로 보내자(send criminals to Iraq)' 등 일부에서 징병제 부활을 논의하고는 있지만(가끔은 유희적으로) 범죄자 등에 대한 훈육차원에서 논의될 뿐이며, 이 징병제 관련 논의가 진지하게 정치적으로 문제제기된 바는 없다.
세계 8위의 군사력이며 전략 원자력 잠수함들을 보유하고 있다. 핵 전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스키점프대 형태의 HMS 일러스트리어스 한척을 운용 중이다. 함재기로 수직이착륙 기능의 시 해리어를 운용했으나 지금은 모두 퇴역시키고 각종 헬기위주의 항공단이 구성됐다. 또 차기 항공모함 2척을 건조 중이다. 무인항공기 항공모함 UXV가 2020년에 실전배치된다. 영국군은 국방개혁, SDSR (전략적 국방안보 검토서)에 의해, 조직개편을 하고 있다.
영국 신속대응군의 핵심전력인 영국 해병대는 현 영국 국방개혁을 통해 조직편성과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 소폭으로 병력이 증가했으며, 장비와 편성이 개편되고 있다.
냉전체계 이후 안보환경 변화와 국가 재정 위기에 직면한 영국은 국방비 삭감을 결정한다. 이를 위해 현 국방력과 미래 안보환경 등을 전면 재검토하여 삭감, 퇴역 장비, 도입 장비 등을 새로 결정하게 된다.
이에 총리실 주재하, 5개월간의 검토기간으로 2010년 10월, SDSR(전략적 국방 안보 검토서 : Strategic Defence Security Review)이 발표된다. SDSR은 신안보 위협을 등급별로 분류하고, 사이버전, 테러 등과 같은 우선순위 위협에 대한 자원을 더 배분하는 대신 대규모 재래전에 소요되는 장비(기갑, 전투기, 함정, 대형장비 등) 등을 퇴역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SDSR을 바탕으로하는 현 영국군 국방개혁은 영국군 장군들의 반발과 국민 찬반 논란 속에 진행되고 있다. 현재 영국은 부분 징병제 국가이다. [[버뮤다]] 지역 시민을 징집하며, 영국 왕실과 이에 속한 귀족들인 왕실의 친·외가 친인척들의 남·여들은 영국군 장교로 복무하도록 영국 병역법에 규정되어 있다.
[[영국군]]은 흔히 ‘국왕 폐하의 군대(His Majesty's Armed Force)’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며, 크게 해군과 해상경비대, 육군, 그리고 공군 이 3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국 국방부가 군대를 총괄하며, 군 최고 책임자는 국방부 장관이다. 다만 공식적인 최고 명령권자는 영국 국왕으로, 모든 영국 군인들은 입대할 때부터 국왕에게 충성 맹세를 하고 입대한다. 영국 군대는 해외 영토와 왕실령 등을 포함한 영국 영토를 지킬 책임이 있으며, 그 외에도 UN의 국제 임무에도 나서기도 한다.
현재의 영국군은 대영제국 군대를 모체로 하며, 18세기, 19세기, 그리고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하여도 가히 세계 최강의 군대였다. 영국은 그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간섭하였으며, 식민지를 경영하며 막대한 부를 벌여들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식민지들이 독립해나가며 대영제국도 무너졌으나, 그 군사력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다만 이후 소련과 미국의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강력해지면서 영국의 군사력은 점차 밀려나게 되었다. 영국은 세계에서 4위에서 5위 정도로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으며, 전체 GDP의 2% 정도를 국방비에 사용하고 있다.
224,000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차 420대, 전술기 1,663대, 군함 99척 등을 보유하여 세계 5위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핵 보유 국가이기도 하다.
영국은 세계 3위의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 또한 [[항공모함]] 1척, [[이지스함]] 3척 등을 보유하여 강력한 해군을 보유하고 있다. 잠수함들도 있다. 그리고 유럽에서 [[네덜란드]]와 함께 유일하게 [[토마호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해군 전력도 추가로 [[항공모함]]을 건조 중이다.
=== 대외 관계 ===
{{본문|영국의 대외 관계}}
영국은 [[UN 안보리]]의 상임 이사국이며, [[G7]]과 [[나토]]의 회원국이다. 2016년 6월 24일 영국은 국민투표를 실시해 EU를 탈퇴하기로 결정하였다. 현재는 브렉시트에서 과반수로 [[EU]]를 탈퇴하였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다른 유럽 나라들과 우호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영국은 1973년 [[유럽 경제 공동체]] 회원국이 되었다. 영국과 [[미국]]은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에 있다. [[미국]]과 [[유럽]] 외 영국은 [[영국 연방]], [[아일랜드]] 그 밖에 [[영어]] 사용 국가들과 친밀한 관계에 있다. 영국의 세계적인 존재와 영향력은 무역관계와 군사력 때문에 더 증폭되는데, 전 세계에 80여개의 군사 기지와 기타 파견군을 유지하고 있다.
중세 이후로, [[프랑스]]와 영국은 유럽대륙의 주도권 및 식민지 쟁탈을 놓고 서로 적대국인 경우가 많았으나 때로는 동맹을 맺기도 하였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프랑스가 앙탕트 코르디알({{llang|fr|entente cordiale}}) 정책을 펴면서, [[러일 전쟁]] 이후 프랑스 및 러시아와 동맹(삼국 협상)을 맺게 된다.
== 인구 ==
{{본문|영국의 인구}}
=== 민족 ===
흔히 [[이베리아족]]으로 지칭되는 대서양 연안 구석기 인들이 최초로 영국에 정착한 제민족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이후 대륙으로부터 선진 기술을 지닌 [[켈트족]]이 정착하며 선주민과의 혼혈이 이뤄졌고 [[그레이트브리튼섬]]의 켈트화가 진행되었다. [[로마 제국]]의 브리튼 정복 이후 일부 로마인들이 건너왔다.
로마의 행정과 군사 체계가 붕괴되기 시작한 5 ~ 6세기 경부터 [[라인강]] 하류, [[플랑드르]], [[윌란반도]]에서 [[게르만]] 민족의 일파(一派)인 [[앵글인]], [[색슨인]], [[유트인]] 등이 그레이트브리튼섬을 침략했다. 초기 이들 민족은 선주민과의 혼혈을 엄격히 금지했던 것 같으나 결과적으로 혼혈이 진행되어 오늘날 영국인이 형성되었다. [[앵글로색슨족]]이 선주민을 완전히 대체했다는 주장이 오랫동안 믿어져 왔지만 근래 분자생물학적, 유전학적 연구에 따르면, 앵글로색슨족 이주민의 숫자는 선주민의 1/4정도 밖에 안 되었고 선주민을 완전히는 대체하지는 못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근래에는 구 영국 식민지였던 [[남아시아]]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와 [[카리브해]], [[아프리카]] (특히 [[가나]], [[나이지리아]] 등 [[서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영국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으며, [[헝가리]],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등 [[중앙유럽]]에서 온 주민도 소수로 존재한다.
=== 언어 ===
{{본문|영국의 언어}}
[[영국 영어]]가 쓰이고 있다. 그 외에 [[웨일스어]], [[스코트어]], [[스코틀랜드 게일어]], [[얼스터 스코트어]], [[아일랜드어]], [[콘월어]]가 소수에 의해 쓰이고 있다.
영국은 공식적으로 국어를 정하진 않았으나, 사실상(de facto)의 언어는 영어이다. 영국 인구의 95%는 오직 영어만을 할 줄 알며, 대략 5.5%에 달하는 국민들만이 최근의 이민자들이나 교육의 영향으로 외국어를 모어로 한다. 영어 외에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아시아계 언어는 인도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펀자브어, 우르두어, 벵골어, 힌디어, 구자라티어 등이 있다. 다만 2011년 통계 결과에 의하면, 최근 폴란드계 이민자들이 급증하며 폴란드어가 영국에서 2번째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라고 한다. 2019년의 경우에는 75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영어를 완전히 쓰지 못하거나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한다고 한다.
영국의 토착 민족인 켈트어의 후계 격으로는 웨일스어, 아일랜드어, 스코틀랜드어 등이 따로 존재하였으나, 18세기 후반에 들어서 영어에 밀려나 결국 완전히 소멸되었다. 다만 20세기 후반 들어서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고, 현재에는 소수의 사용자가 있다. 2011년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웨일스인 전체의 19% 정도만이 웨일스어를 조금이나마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잉글랜드에는 약 20만 명 정도의 웨일스어 사용자가 거주하고 있다고 하며, 북아일랜드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10.4% 정도만이 아일랜드어를 조금이나마 구사할 줄 안다고 하였다. 스코틀랜드의 경우에는 토착어의 소멸 정도가 워낙 심각하여, 전체 인구의 2%도 안되는 사람들만이 토착 스코틀랜드어를 구사할 줄 알며 현재도 영어 구사자의 비율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다만 스코틀랜드어를 사용하는 영국인들이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캐나다 등지에서 조금씩이나마 사용되고는 있으며, 웨일스어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 등지에서 사용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14세 이상의 청소년들은 무조건적으로 제2외국어를 배워야만 한다. 보통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가장 많이 배운다고 알려져 있다. 웨일스에 있는 모든 학생들은 16세가 넘었을 때부터 점차 웨일스어를 제2국어로 배워야하며, 아예 웨일스어를 모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 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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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종교 구성 (영국)<ref>[http://www.independent.co.uk/news/uk/home-news/less-religious-and-more-ethnically-diverse-census-reveals-a-picture-of-britain-today-8406506.html "Philby, Charlotte (12 December 2012). "Less religious and more ethnically diverse: Census reveals a picture of Britain today". The Independent (London)."]</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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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가진 국민의 절대다수가 기독교도이고, 국교는 [[잉글랜드 성공회]]이다. 종교별 분포도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는 대략 1,400여 년 전부터 이미 브리튼 섬에 전래되었다.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정체성을 기독교도로 규정하고 있으나, 20세기 들어서 이미 교회 참석율은 급격히 떨어졌으며 대부분 무슬림들로 구성된 이민자들이 영국으로 쏟아져들어오면서 영국 내부의 종교 분포도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이로 인하여 영국은 18세기까지만 하여도 완벽한 기독교 국가였던 데에 반하여, 현대에 들어서는 다종교 국가, 혹은 세속국가, 혹은 탈기독교 국가로 분류되기도 한다.
2001년의 조사 결과, 영국인의 71.6%가 자신들을 기독교도라고 밝혔으며 2.8%의 무슬림, 1.0%의 힌두교도, 0.6%의 시크교도, 0.5%의 유대교도, 0.3%의 불교도, 기타 종교 0.3% 정도가 그 뒤를 이었다. 대략 15% 정도의 사람들은 믿는 종교가 없다고 밝혔으며, 7% 정도는 잘 모르겠다고 응답하였다. 한편 기독교도 비율에 비하여 교회 참석률은 극히 저조하여서, 전체 인구의 10분의 1 정도만이 주말마다 교회에 참석하며 기독교도 비율은 그 와중에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2011년에는 10년 만에 12%p 정도나 기독교도 비율이 하락하였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였다. 이와 반대로 무슬림의 비율은 갈수록 급증하고 있어서, 매년 약 5%씩 급격한 증가세를 겪고 있으며 2001년에는 160만 명 정도였던 것에 반하여 2011년에는 270만 명으로 크게 증가하며 영국에서 2번째로 거대한 종교로 뛰어올랐다.
한편 기독교의 경우에는, 영국 성공회가 약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로마 가톨릭이 9%, 그 외에도 동방정교, 개신교 등의 종교들이 약 17%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며 18세와 24세 사이의 젊은 층의 71%가 자신이 종교가 없다고 밝혔다. 영국 성공회는 영국에서 발원한 기독교 분파로, 영국 의회에도 대표를 보유하고 있으며 영국 국왕이 최고 권위자이다. 스코틀랜드의 경우에는 스코틀랜드 국교회가 따로 있으나,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한편 영국 국왕은 무조건적으로 성공회 신자여야 하며, 즉위할 때에도 ‘신교를 지키겠다’는 맹세를 선서해야만 한다. 웨일스와 아일랜드에도 각각 국교회가 있었으나, 웨일스는 1920년에 국교회가 해체되었고 아일랜드는 그보다 이른 1870년에 해체되었다.
* [[잉글랜드 성공회]](Church of England): [[영국 기독교]]인들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영국의 국교이기도 하다. 흔히 [[성공회]](Anglican)를 영국 국교 또는 영국국교회라고 하는데 영국국교회 또는 영국국교는 잉글랜드 성공회만을 말한다. 영국 [[종교개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되었다. 전[[세계]] [[성공회]](Anglican Church또는 Episcopal Church)들이 대등한 위치에서 상통하는 [[세계성공회공동체]](Anglican Communion)의 모태다.
* [[로마 가톨릭교회]]: 영국 기독교인들의 소수를 차지하며 영국교회와 아일랜드 교회가 [[휘트비 회의]]로 합병된 [[5세기]]부터 영국 [[종교개혁]] 이전까지 영국 교회를 지배하였다.
* [[개신교]]: 역사적으로 [[장로교회]]([[스코틀랜드]] 종교개혁으로 형성되었으며, 스코틀랜드의 국교다.), [[감리교]], URC([[United Reformed & Methodist Church]]) 등이 있다.
=== 교육 ===
{{본문|영국의 교육}}
중세시대부터 전통을 가진 [[옥스퍼드 대학교]]나 [[케임브리지 대학교]] 등이 대표적이다.<ref name="education">{{웹 인용 |url=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84415&cid=40942&categoryId=31724|제목= 영국의 교육제도|저자= |날짜= |웹사이트= 두산백과|출판사= |확인날짜= 2015-05-09}}</ref> 의무교육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11년이며(1972년 이후)<ref name="education" /> 한국의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12, 13학년의 경우에 의무는 아니지만,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에게 매주 정부가 지원금을 준다.
대학 교육은 [[스코틀랜드]]는 전액 무상이나, [[잉글랜드]]를 포함한 나머지 국가들은 학비만 연간 약 1,500만원(9000파운드)에 달한다. 다만 무이자 대출을 받을 수 있으며 연봉이 약 3,500만원(21,000파운드) 이하 소득인 사람은 갚을 의무가 없고, 그 이상 소득인 사람은 매년 학비 대출금의 9%를 납부한다. 대학과정은 대부분 3년 과정이며 대학원 석사 과정은 2종류로 학습 과정과 연구 과정으로 각 1년씩이다. 박사과정은 대체로 3년 과정이나 실제 박사취득은 4년-5년이 걸린다. 일부 대학은 경영학 석사 과정과 같은 특성화 과정을 2년제로 운영하기도 한다. 대학의 학기는 대한민국의 연간 2학기제와 달리 연간 3학기제로 운영한다.
영국 교육의 역사는 잉글랜드의 귀족 및 왕족들을 교육하려고 설립한 [[옥스퍼드 대학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이에 반발한 교수들과 학생들이 캠브리지 지방에 모여서 설립한 [[캠브리지 대학교]]가 뒤를 이으며 이 두 대학은 현대 대학의 원형이 되었다. 스코틀랜드는 이러한 잉글랜드의 두 대학을 부러워했고, 잉글랜드와 달리 스코틀랜드의 수도사들을 교육할 목적으로 교황의 지원 하에 [[세인트앤드류스 대학교]], [[글래스고 대학교]], [[에딘버러 대학교]]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들 대학들은 [[서유럽]] [[중세시대]]에 설립하여서 중세대학 혹은 고대대학이라고 부른다. 이후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근대문명사회로 접어들었다. 사회 변화로 종교인이나 귀족의 양성만을 담당했던 고전적인 대학 기능을 바꿔야 했다. 과학자와 학자 등 각계 전문가들을 양성하자는 왕실과 의회의 결론이 공식화했다. 인류 산업혁명의 발상지 맨체스터 지역에 잉글랜드 왕립협회 회원들과 과학자들이 설립한 [[맨체스터 대학교]]를 시작으로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브리스톨 대학교]], [[킹스 칼리지 런던]] 등 근현대적인 교육 기관들을 설립했다. 그리고 이러한 근대 대학들의 설립은 당시 대영 제국 식민지였던 미국과, 호주, 캐나다 등의 나라들에 큰 영향을 주었다. 현재에도 유명한 [[하버드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토론토 대학교]] 등의 설립에 직접적인 동기이자 원인이었다 .
지금까지도 [[옥스퍼드 대학교]]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같은 영국의 전통적인 [[대학교]]는 졸업장 작성 권한을 지닌 대학교 본부에 느슨하게 연결된 [[대학]], 즉 단과대학의 연합체이다. 대학교 본부에는 대학교 전체를 대표하는 총장이 있으며 단과대학 학장 회의의 의장 역할을한다. 대학본부는 각 단과대학 졸업생에게 대학교 졸업장을 발부할 권한을 지닌다. 실제 대학교의 운영은 총장과 단과대 학장들이 정하고, 각 단과대학이 자체적으로 의사결정한다. 단과대학들은 각자 독자적인 학생 모집과 학과목을 운영하며, 같은 학과가 여러 단과대학에 있기도 하다. 단과대학의 연합으로 운영해야 하는 과정에 대해서만 공동과정을 진행한다. 일례로 옥스퍼드 대학교는 "경영대학원"이 있다. 이는 대학교 공동 과정으로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은 각 단과대학에서 일종의 파견한 학생들이다. 경영대학원 학생들이 시험이나 공식 모임에 착용하는 망토는 각자 소속한 단과대학 망토를 착용한다.
== 문화 ==
{{본문|영국의 문화}}
=== 문학 ===
{{본문|영국 문학}}
영국 문학은 근대에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현대 문학의 기틀을 잡았으며 현재에도 ‘영미 문학’의 주류를 이루며 전세계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문학계이다. 2005년 기준으로 영국에서는 약 206,000권이 넘는 책들이 출판되었으며, 2006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책들이 출판된 국가였다.
영국 출신의 시인이가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극작가들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엘리자베스 여왕이 ‘그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라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명성을 누렸다. 또한 그 외에도 20세기 최고의 소설가들 중 하나였던 [[애거사 크리스티|아가사 크리스티]]도 영국 출신의 작가이다. 한편 스코틀랜드 출신의 인물들도 영국 문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셜록 홈즈]]의 작가인 [[아서 코난 도일]] 경, 아동작가 J.M. 베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시인 [[로버트 번스]] 등이 있다. 최근의 경우를 들면 휴 맥더미드, 네일 M. 군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범죄문학의 전설 격인 이언 랜킨, 호러-코미디 작가인 아인 뱅크스 등이 유명하다.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든버러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학의 도시로 지정되기도 했을 정도였다.
영국에서 알려진 최고(最古)의 시인 [[어 고도딘]]은 영국 북부에 있는 [[헨 오글레드]] 지방에서 지어졌으며, 대략 6세기 후반 경에 작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웨일스 고어로 지어져 있으며,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아서왕|아서 왕]]의 전설을 담고 있는 시이다. 7세기 경에 헨 오글레드 지방과 웨일스 지방과 교류가 끊어지자, 웨일스 문화의 중심지는 자연스레 현재의 웨일스 지방으로 옮겨왔고 이후 웨일스에서는 아서 왕의 전설이 발전되어 전승되기 시작하였다. 웨일스가 배출한 중세 최고의 시인들 중 하나로 평가받는 다피드 압 귈림(Dafydd ap Gwilym)은 자연, 종교 등을 주제로 시들을 지었으며, 특히 사랑과 관련된 시들을 많이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당대 최고의 유럽 시인들 중 하나로 칭송받을 정도로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후의 시들은 19세기에 또다시 변혁의 바람이 불어닥칠 때 전까지 종교적인 색채들을 진하게 띠었다고 한다. 한편 영국의 시인인 [[딜런 토머스|딜런 토마스]]는 20세기 중반에 미국과 유럽 대륙 전체에서 이름을 떨쳤으며, 특히 그의 가장 대표적인 시인 ‘저 좋은 밤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는 수많은 영화들과 이후의 시들에도 영감을 주었을 정도로 유명하며, 가장 대표적인 영국 명언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웨일스 민족주의자이자 시인인 R.S 토마스는 1996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그 외에도 리처드 레웰린이나 케이트 로버츠 등이 유명한 웨일스계 소설가들이다.
영국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이후 영국으로 이민을 와 영국 국적을 취득한 유명 문학가들도 매우 많다. 가장 대표적으로 [[요한 콘라트 단하우어|요셉 콘라드]], [[T. S. 엘리엇|T.S 엘리엇]], [[가즈오 이시구로]] 등이 있다. 또한 아일랜드가 전부 영국의 통치 하에 놓여있었을 때에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영국계 시인들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로 [[오스카 와일드]], [[브램 스토커]], [[조지 버나드 쇼]] 등이 있다.
=== 음악 ===
{{본문|영국의 음악}}
영국 음악은 현대 세계 음악계를 장악하고 있는 영미권 음악의 시초로, 수많은 명가수들과 거장들을 배출해내왔고 현재까지도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영국 음악은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의 민속 음악에서부터 클래식 음악, 팝 음악까지 그 분야가 굉장히 다양한데, 먼저 클래식 음악부터 살펴볼 경우 [[윌리엄 버드]], [[헨리 퍼셀]], [[에드워드 엘가]], [[거스테이브 홀스트|구스타프 홀스트]], [[아서 설리번|아서 설리반]], [[레이프 본 윌리엄스]], [[벤저민 브리튼|벤자민 브리튼]] 등이 있다. 또한 [[BBC 교향악단|BBC 심포니 오케스트라]]나 [[런던 교향악단|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같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의 본고장이기도 하며, [[사이먼 래틀]], [[존 바비롤리]], [[맬컴 사전트|맬컴 사젠트]] 등 저명한 지휘자들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영화음악 작곡가들 중에서는 [[존 배리]], [[클린트 맨셀]], [[마이크 올드필드]], 존 포웰, [[크레이그 암스트롱]], [[데이비드 아널드|데이비드 아놀드]], 존 머피, 몬티 노먼 등이 있다. 한편 유명한 작곡가인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프리드리히 헨델]]은 이후 영국 시민권을 취득하여 현재 영국의 즉위식 곡을 집필했으며 대표작인 ‘[[메시아 (헨델)|메시아]]’를 영어로 쓰기도 했다. 또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같은 작곡가는 런던의 [[웨스트엔드오브런던|웨스트엔드]] 극장가를 20세기 후반까지 독점할 정도로 그 명성을 떨쳤으며, 상업적으로도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며 이름을 알렸다.
'[[팝 음악]]'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예 영국에서 유래되었다. 1950년대 중반, [[로큰롤]]을 젊은층들이 향유하기 시작하면서 이 새로운 퓨전 장르를 일컫기 위하여 ‘팝'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영국 팝 음악가들에는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비틀즈|비틀스]]와 [[롤링 스톤스|롤링스톤즈]] 등이 있고, 이들 덕분에 영국의 팝 음악은 1960년대에 엄청난 발전을 구가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록 음악에도 영국계 음악가들이 수없이 진출하였으며, [[헤비 메탈|헤비메탈]], [[하드 록]], [[뉴 웨이브 (음악)|뉴웨이브]], [[펑크 록|펑크]] 등 수많은 장르들을 개척하는 데에도 성공하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장르의 퓨전 록 장르들을 만들어내었으며, 전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데에도 성공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영국 음악가인 [[비틀스]]는 10억 장이 넘는 음반을 전세계에 팔았으며, 현대 음악의 전설로 남아있을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떨쳤다. 그 외에도 [[롤링 스톤즈]], [[핑크 플로이드]], [[퀸 (밴드)|퀸,]] [[레드 제플린]], [[비지스]], [[엘튼 존]] 등이 있는데, 이들 모두 전세계적으로 최소 2억장이 넘는 음반을 각각 판매한 명가수들이다. 90년대 이래 유명한 영국 가수들 가운데에는 [[조지 마이클]], [[오아시스 (밴드)|오아시스]], [[스파이스 걸스]], [[라디오헤드]], [[콜드플레이]], [[로비 윌리엄스]], [[아델]], [[에드 시런]], [[원 디렉션]] 등이 있다. 이들 덕분에 2016년 기준으로 영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악 장르는 팝으로, 33.4%의 국민들이 가장 즐긴다고 한다. 그 다음이 힙합 장르와 R&B라고 한다. 현대 영국 음악계는 동일한 영어권 국가인 미국 음악가들과 협업하여 랩 음악들을 함께 만들기도 한다.
=== 영화 ===
{{본문|영국의 영화}}
영국 영화계는 전세계적으로, 그리 역사적으로도 매우 유명하다. 가장 대표적인 영국 영화감독인 [[알프레드 히치콕]]은 수많은 명작들을 감독하였으며, 그의 대표작인 ‘[[현기증 (1958년 영화)|현기증]]’은 아직까지도 ‘고금 최대의 명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영국계 영화 프랜차이즈들도 전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경우가 매우 잦은데, 가장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영화 2개가 바로 [[해리 포터 시리즈]]와 [[007 (영화 시리즈)|제임스 본드 시리즈]]이다. 또한 현재 영업 중인 가장 오래된 영화 스튜디오인 얼링 스튜디오(Ealing Studios)도 바로 영국에 있다. 2009년 기준, 영국 영화계는 전세계적으로 약 20억 달러를 벌어들였으며 세계 영화시장의 7%를 차지하였다. 영국의 박스오피스는 2009년 기준으로 9억 4,400만 파운드 정도였다. [[파일:Wembley Stadium (49789469466).jpg|섬네일|[[웸블리 스타디움]]]]
=== 요리 ===
{{본문|영국 요리}}
[[파일:Fish & Chips at the Bellagio.jpg|섬네일|가장 대표적인 영국 요리로 알려져 있는 피시앤드칩스]]
[[영국 요리]]는 그 수가 많고 재료들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맛이 없다는 편견이 있다. 영국 요리는 영국 역사 내내 있었던 수많은 이주민들의 유입, 그리고 세계 각국과의 교류, 식민지 등을 통하여 들어온 식문화들로 인하여 급격히 발전하였다. 가장 옛날로는 켈트족과 브리튼족이 서로 융합하면서 수많은 요리들이 탄생하였고, 앵글로색슨족들은 유럽에서 스튜가 일반화되기도 전에 고기와 허브를 넣어 스튜를 끓이는 방법을 미리 고안하여 주식으로 삼기도 하였다. 또한 노르만인들의 영국 침공으로 인하여 중세 영국에 향신료들을 이용한 요리들이 소개되었고, 대영제국 시기에는 [[인도 요리]]가 큰 인기를 얻어 강하고 자극적인 냄새를 가지는 허브들과 [[향신료]]를 이용한 요리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얻어 인기를 끌었다. 이 때문에 본래 인도에서 유래한 요리를 영국식으로 개량하여 영국식 요리로 만들기도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도 닭요리에서 유래한 [[치킨 티카 마살라|앵글로-인디안 치킨 티카 마살라]]이다. 그 외에도 [[피시 앤드 칩스|피시앤드칩스]], [[샌드위치]], [[로스트 비프|로스트비프]], [[파이]], 영국식 푸딩 등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 언론 ===
{{본문|영국의 언론}}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방송사인 [[영국방송공사|BBC]]의 국가일 정도로 언론계의 중심지인 나라이다. BBC는 1922년에 영국 정부의 공영 방송사로 개국하여,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정확한 보도로 명성을 날릴 정도로 활약하며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공신력 있고 유명한 언론들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BBC는 현재에도 수많은 프로그램 채널들과 라디오 방송들을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해외까지도 서비스들을 수출하고 있다. 현재 영국 방송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다른 방송사들에는 [[ITV (영국)|ITV]]<ref>[[런던]] [[ITV]] 본사 [[ITN]](인디펜덴트 텔레비전 뉴스) [[보도]] 전담 기구의 구성한다.</ref>는 현재 영국 15개 지역들 가운데에서 11개의 텔레비전 채널을 장악하고 있을만큼 그 영향력이 크다. 또한 민영방송 등장으로 [[1955년]]에 [[ITV]]가 개국하였고, [[BBC]]를 제외한 [[광고|상업광고]]가 시작했다. [[1982년]]에 개국한 [[채널 4]] 준공영체계로 [[1997년]]에 마지막 지상파 방송 개국하였으며, [[채널 5]]가 있다.
세계적인 영미권 미디어 복합사인 뉴스 코퍼레이션도 영국 언론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영국의 대표적인 타블로이드지인 [[더 선]]과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일간지인 [[타임스|더 타임스]] 지 등을 소유하고 있다. [[뉴스 코퍼레이션]]은 2018년까지만 해도 영국위성중계서비스(British Sky Broadcasting)의 최대 주주이기도 했다. 현 영국의 언론 중심지는 당연히 수도인 런던으로, 대부분의 언론 본사들이 런던에 위치하고 있으며 편집국, 방송국들도 웬만하면 런던에 자리하고 있다. 맨체스터가 런던의 뒤를 이어 제2의 언론 중심지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지역의 경우에는 에든버러, 글래스고, 카디프 등이 그나마 언론사들이 집중되어 있는 곳들이다. 한편 영국의 인쇄업도 상당한 수치라서, 영국에서 생산되는 책, 정보, 저널, 잡지, 비즈니스 잡지, 신문 등 모든 인쇄 서비스들의 가치를 합하면 그 가치가 20억 파운드가 넘으며 167,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다고 한다.
2009년 기준으로 평균적인 영국인은 매일 텔레비전을 3.75시간 정도 시청하며, 라디오는 약 2.81시간 정도를 청취한다고 한다. 한편 모든 텔레비전 채널들 중 가운데에서 28.4%나 되는 채널들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BBC의 소유라고 전해진다. 나머지 영국 3대 방송사들이 약 29.5%를 차지하고 있으며, 독립된 위성이나 중소 방송국들이 나머지 42.1%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한편 영국의 신문업계는 날로 쪼그라들고 있어서, 1970년대 이후 감소세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들의 수는 굉장히 많아서, 2010년 기준으로 국민들의 41%가 일간신문을 구독한다고 한다. 다만 인터넷 기사들과 뉴스들의 범람들로 인하여 신문 구독자의 수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파일:Shakespeare.jpg|섬네일|영국의 최고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 상징 ===
영국의 국기는 [[유니언 잭|유니언기]], 다른 말로는 유니언잭(Union Jack)이라고 부른다.<ref>{{웹 인용|title=Union Jack or Union Flag? |url=https://www.flaginstitute.org/wp/uk-flags/the-union-jack-or-the-union-flag |access-date=26 September 2022 |website=The Flag Institute |language=en-GB}}</ref> 초기의 유니언잭은 하얀 바탕에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잉글랜드의 깃발에서 푸른 바탕에 하얀 십자가가 그려진 스코틀랜드의 기가 합쳐져 1600년대에 처음으로 만들어졌으며, 1801년에 성패트릭의 기가 합쳐졌다. 다만 드래곤이 그려져 있는 웨일스의 깃발은 유니언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영국의 국가는 ‘[[영국의 국가|신은 국왕을 보우하소서]](God save the King)'으로, 군주가 여성일 경우에는 가사 속의 단어를 ’국왕'이 아니라 ‘여왕'으로 바꾼다.
영국을 의인화한 인물은 [[브리타니아 (의인화)|브리타니아]]라고 하는데, [[브리타니아|로만 브리튼]] 시절에 처음 유래하였으며 금발이나 갈색 머리를 하고 그리스 투구를 쓰고 있으며 하얀 로브를 걸치고 있는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포세이돈의 삼지창과 방패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국장에는 사자와 유니콘, 혹은 드래곤이 그려져 있는데, 이 외에도 불독도 국가를 상징하는 동물로 있다. 브리타니아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존 불]]도 영국을 상징하는 캐릭터 중 하나이다.
=== 스포츠 ===
[[축구]], [[크리켓]], [[럭비]], [[테니스]], [[골프]], [[권투|복싱]] 등이 모두 영국을 그 기원을 하거나 아니면 영국에서 주로 발전한 스포츠들에 속한다. 영국은 19세기 전세계적인 영향력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현대 스포츠의 규칙들과 기본적인 틀을 잡았으며, [[빅토리아 시대]] 말에 이르자 현재 우리가 즐기는 스포츠들 대부분의 골격을 잡았다. 이같은 공헌 때문에 2012년에는 [[국제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IOC 위원장]]이 직접 ‘이 위대하고 스포츠를 사랑하는 국가는 현대 스포츠의 발생지로 이미 잘 알려져 있으며, 이 곳에서 스포츠맨십과 페어플레이의 개념이 명료한 규칙과 룰의 이름으로 정리되었다. 또한 이 곳에서 처음으로 스포츠를 교육용 목적으로 학교 교과에 넣었기도 하다.’라고 칭찬했기도 했을 정도이다.
* 2019년 기준 영국의 스포츠 인기 순위<ref>[https://humankinetics.me/2019/07/11/most-popular-sports-in-europe/ The Most Popular Sports In Europe]</ref>
{| class="wikitable"
|+
! 순위 || 종목
|-
| 1위 ||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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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위 || [[골프]]
|-
| 3위 || [[럭비 유니언]]
|-
| 4위 || [[크리켓]]
|-
| 5위 || [[복싱]]
|}
1860년대 이래로 축구는 영국에서 가장 인기있고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영국은 [[국제 축구 연맹|FIFA]]로부터 축구의 종주국으로 인정받았으며, 영국의 [[잉글랜드 축구협회|축구협회]]는 가장 오래된 축구협회로 1863년에 축구의 기본적인 룰을 정했기도 하다. 또한 영국은 현재의 [[리그전]] 방식을 처음으로 도입하기도 한 국가이며 영국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는 세계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시청하는 축구 리그전이기도 하다. 또한 처음으로 열린 축구 국제경기도 1872년 11월 30일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에서 열렸다고 전해진다. 간혹 같은 영국이라는 이름 하에 속해있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경기를 왜 국제전이라고 하는지 궁금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영국은 연합왕국이기 때문에 서로를 스포츠전에서 같은 국가로 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는 보통 국제 스포츠 전에서 독립된 팀으로 따로 출전한다.
골프는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처음으로 발원하였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 코스도 영국에 위치해 있다. 1764년, 18개의 홀을 가지고 있는 골프 코스 방식이 성앤드류 왕립 골프 클럽에서 결정되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주요 [[골프]] 토너먼트인 [[디 오픈 챔피언십|오픈 챔피언십]]도 매년 7월의 세 번째 금요일을 낀 주말에 치러진다.
[[파일:Beatles ad 1965 just the beatles crop.jpg|왼쪽|섬네일|영국의 대표 음악가인 비틀즈]]
럭비 역시 영국 잉글랜드가 종주국으로 영국에서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잡았으며 특히 [[2003년 럭비 월드컵]]에서 영국 [[잉글랜드]]가 우승한 이후 실시된 영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여론조사에서 기존 8위에서 2위까지 부상하였다.<ref>[http://www.ipsos-mori.com/researchpublications/researcharchive/928/Rugby-Union-Britains-Second-Most-Popular-Sport.aspx MORI Sports Tracker - Interest in Sports] ''Ipsos MORI'' Retrieved 2 May 2011</ref>
세계에서 처음으로 열린 럭비 국제전은 1871년 3월 27일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에서 열린 것으로, 이외에도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프랑스, 이탈리아는 따로 6개국 챔피언십을 열어 경기를 열고는 한다. 럭비도 축구와 비슷하게 4개의 왕국들이 따로 출전하며, 다만 매 4년마다 ‘브리티시 앤 아이리시 라이언즈’라는 이름으로 합동 팀을 구성하여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와 같은 [[영연방]]의 국가들과 친선 경기를 펼치고는 한다.
영국과 인도 등지에서 인기가 있는 대표적인 스포츠인 크리켓도 영국에서 발명되었다. 크리켓의 규칙은 1788년에 영국에서 처음 제정되었던 것이다. 현재 영국은 '잉글랜드 웨일스 크리켓 협회'가 주관하는 잉글랜드 크리켓 팀과 '아일랜드 크리켓 협회'가 주관하는 아일랜드 크리켓 팀만을 공식적인 국가대표 크리켓 팀들로 인정하고 있다. 각각의 팀 멤버들은 잉글랜드와 웨일스 각지에서 함께 뽑기에, 잉글랜드와 웨일스를 확실히 구분짓는 축구와 럭비 등의 스포츠와는 약간 다른 면이 있다. 스코틀랜드의 경우에는 독자적인 협회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보통 규모가 더 큰 잉글랜드 쪽으로 가서 선수 자격을 취득하며, 크리켓 국제대회에 진출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와 웨일스, 아일랜드(북아일랜드 지역 포함)은 [[크리켓 월드컵]]에 함께 진출하며, 2019년 기준으로 잉글랜드가 승리하였다. 또한 그 외에도 17개의 영국권 국가들과 웨일스가 참가하는 리그 챔피언십이 따로 있다.
현대 테니스 또한 기본적으로 1860년대 영국 버밍엄에서 유래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테니스 토너먼트전인 [[윔블던 선수권 대회|윔블던 챔피언십]]도 1877년에 영국에서 처음 열렸으며, 현재는 6월 말과 7월 초 사이에 있는 2주 동안 열린다. 그 외에도 자동차 경주에도 관련이 깊어서, [[포뮬러 원|포뮬라 원]] 등 여러 저명한 경기에 참가하는 팀과 선수들이 영국에 본적을 두고 있으며 실버스톤에서 처음으로 1950년에 [[포뮬러 원|F1 그랜드 프릭스]]를 열었으며, 현재도 이를 기념하여 매 7월마다 같은 장소에서 영국 그랜드 프릭스를 열고 있다.
=== 법정 휴일 ===
{| class="wikitable"
!colspan="2"|법정 휴일
|-
!style=background:#efefef|일자
!style=background:#efefef|이름
|-
|[[1월 1일]] || [[설날]]
|-
|[[1월 2일]] || 설날 ([[스코틀랜드]]에 한함)
|-
|[[3월 17일]] || St Patrick's Day ([[북아일랜드]]에 한함)
|-
|[[부활절]] 직전 [[금요일]] || [[성 금요일]]
|-
|[[부활절]] 다음날([[월요일]])|| [[부활절]] 연휴 (스코틀랜드 제외)
|-
|5월 첫째 [[월요일]]||May Day
|-
|5월 마지막 주 [[월요일]] ||Spring Bank Holiday
|-
|[[7월 12일]] ||Battle of the Boyne - [[Orangemen's Day]] (북아일랜드에 한함)
|-
|8월 첫째 [[월요일]] || Summer Bank Holiday (스코틀랜드에 한함)
|-
|8월 마지막 주 [[월요일]] || Summer Bank Holiday (스코틀랜드 제외)
|-
|[[11월 30일]] || St Andrew's Day (스코틀랜드에 한함)
|-
|[[12월 25일]] ||[[크리스마스]]
|-
|[[12월 26일]] ||[[박싱 데이]] (크리스마스 연휴)
|}
[[파일:UK-2014-Oxford-All Souls College 03.jpg|섬네일|영국의 대표적인 대학인 옥스퍼드 대학]]
== 경제 ==
{{본문|영국의 경제}}영국의 경제 체제는 ‘정부의 통제를 일부 받는 시장경제체제’라고 정의할 수 있다. 현재 영국은 세계에서 5번째로 거대한 경제대국이며, 유럽에서는 독일에 이어 2번째로 경제 규모가 거대한 국가이다. 영국 경제는 영국 재무부에서 독자적으로 담당하며, 그 수장인 재무부장관은 정부 공공금융 정책과 경제 정책들을 담당할 의무가 있다. 영국의 중앙은행은 [[잉글랜드 은행|영국은행]]으로, 영국의 화폐인 [[파운드 (통화)|파운드화]]를 발행하고 환율을 조절하는 업무를 본다.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또한 독자적인 은행이 있고, 이 은행들도 자신들의 독자적인 화폐를 발행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나 이를 위하여 영국은행이 발행한 파운드화를 일정량 이상 보유하고 있어야만 한다. 파운드화는 달러화와 유로화 다음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외환보유고|외환보유량]]이 많은 [[기축 통화|기축통화]]이기도 하다. 1997년 이래 영국의 환율을 정해온 것은 ‘금융정책위원회(Monetary Policy Committee)로, 위원장은 영국은행장이며 경제의 인플레이션을 막고 환율을 적절히 조절하는 역할을 하고 매년 경제 목표를 제시하기도 한다.
영국 경제 최대 부문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서비스업으로, 전체 GDP의 79%를 차지하고 있다. 런던은 뉴욕 다음가는 세계 2의 금융수도이기도 하다. 또한 유럽에서는 가장 거대한 GDP를 가지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에든버러가 세계 17위이고, 2020년 기준으로 서유럽에서도 무려 6위라는 경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또한 관광업으로도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데, 2004년 기준으로 약 2,700만 명의 관광객들이 영국을 찾았으며 영국은 세계에서 6번째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국가라고 한다. 또한 그 수도인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제선 방문객들이 찾는 도시라고 전해진다. 이외에도 정보산업도 그 규모가 상당해서, 1997년과 2005년 사이에 매년 약 6% 씩 성장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기틀을 놓은 [[산업 혁명|산업혁명]]이 바로 영국에서 시작했고, 이덕분에 영국은 타 국가들보다 훨씬 빨리 주요 산업들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직물업을 가장 먼저 손에 넣었고, 그 다음으로는 조선업, 석탄업, 철강업 등을 장악한 것이다. 영국의 상인, 무역업자, 은행업자들은 이 발달된 선진 산업을 바탕으로 식민지와 주변 국가들의 경제계를 장악하였고, 19세기 내내 전세계의 경제를 쥐락펴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다른 국가들도 급격한 산업화에 들어가고, 2개의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소련과 미국이 양대 강대국으로 떠오르자 영국의 경제적 지위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여 20세기 내내 경제가 하락세로 접어들 수 밖에 없었다. 이때 영국의 주력이었던 제조업도 크게 쇠퇴하여 2003년 기준으로 전체 GDP의 16.7% 정도 밖에 차지하고 있지 못하다고 한다.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약 80만 명의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2015년 기준으로 약 700억 파운드 정도나 되는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영국의 전체 수출액의 11.8%를 차지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영국은 약 160만 대의 승용차들을 생산하였으며 94,500대의 상업용 차량들을 생산하였다. 또한 엔진 제작에도 매우 뛰어나서, 2015년 기준으로 약 240만 개의 엔진들을 따로 제작하기도 하였다. 영국의 모터스포츠 업계도 대단히 발달되어 있기에 대략 41,000명의 고용 효과를 내고 있으며 4,500여 개의 회사들이 있고 약 60억 파운드에 달하는 경제 효과를 내고 있다. 그 외에도 영국의 항공우주산업도 꽤나 발달되어 있어서, 세계에서 2번째에서 3번째로 거대한 규모이며 매년 약 300억 파운드에 달하는 매출을 내고 있다.
영국의 국방 관련 기업인 [[BAE 시스템스|BAE 시스템즈]]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항공방위산업체들 중 하나로, [[타이푼 유로파이터]]의 대다수 부품들을 제작하고 있으며 영국 왕립 공군에도 수많은 부품들을 납품하고 있다. 또한 미국 최고의 제트기들 중 하나인 [[F-35 라이트닝 II|F35]]의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다양한 제트기 부품들을 디자인하고 제조하는 일을 맡고 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제트훈련기인 호크을 제작하기도 한다. 에어버스 UK는 군용기의 날개 부분을 따로 제작할 정도로 기술력이 높으며, 30여 종이 넘는 특수 엔진들을 제작할 수 있으며 대략 30,000개가 넘는 다양한 엔진 도면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이름이 높다.
영국의 우주 산업은 2011년 기준으로 약 91억 파운드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약 29,000여 명의 고용 효과를 내고 있다. 매년 약 7.5% 정도로 급격히 성장하고 있으며 영국 정부 측에서도 다양하게 지원을 쏟아붇고 있다. 이처럼 기술 집약적인 산업들 외에도, 농업과 같은 전통적인 1차 산업도 발달되어 있다. 영국의 농산업의 경우, 여타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고도로 기술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으며 이 덕분에 전체 인구의 1.6% 만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내 소비량의 약 60%를 자급하고 있다. 영국 국내 농산물 생산량의 3분의 2 정도는 가축들의 사료로 사용되며, 나머지 3분의 1만이 사람들이 먹을 목적으로 이용된다. 또한 그 외에도 국내에 묻혀있는 풍부한 석탄, 석유, 천연가스, 주석, 석회암, 철광석, 점토, 석회, 납, 규소, 암염 등 여러 자원들을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2008년 4분기에 영국 경제는 1991년 이래 미국과 프랑스 등 여러 경제대국들의 뒤를 따라 1991년 이래 처음으로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2013년에는 [[무디스]], [[피치|피치 신용등급]]에서 1978년 이래로 처음으로 신용등급 AAA 등급을 박탈당했다. 다만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스탠다드앤푸어스]] 측에서는 여전히 AAA 등급을 유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성장세를 이어가기 시작하였고, 2014년 말 즈음, 영국의 경제 성장률은 G7과 유럽 대다수의 국가들보다도 훨씬 빠른 속력으로 성장하였으며, 2015년 9월에는 실업률이 5.3% 정도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성장하던 영국의 경제도 2020년에 불어닥친 [[코로나19 범유행|코로나 19 사태]]로 인하여 위축되었는데, 영국 경제는 4월과 6월 사이에 전달에 비해 20.4%나 경제 규모가 수축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11년만에 다시 정체기로 진입하고야 말았다.
1980년대 이래 영국의 경제적 불평등은 호주나 캐나다 같은 타 선진국들에 비하여 매우 급격한 속도로 벌어져만 왔다. 영국의 경제적 빈곤선은 중산층 평균 수입의 60% 미만 정도인데, 국가 통계청에서는 2011년 경우에 140만 명에 달하는 국민들이 ‘심각한 물질적 빈곤’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1977년의 30만 명보다도 훨씬 많은 수치라고 경고했다. 2018년에 영국을 방문한 UN 빈곤조사위원회 측에서는 독자적인 조사를 거쳐, 사회적 안정을 보장해주어야할 정부가 오히려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끊어내고 있으며 ‘빈곤율을 높이고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라고 강도높게 비판하기도 할 정도였다. 현재 영국의 대외채무는 약 9.6조 달러 정도로,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높다. GDP와 비교했을 경우에는 약 408% 정도로, 룩셈부르크와 아이슬란드 다음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순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파일:Charles Darwin by Julia Margaret Cameron, c. 1868.jpg|섬네일|진화론을 창시한 찰스 다윈]]
=== 기술 ===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17세기 이래 [[과학 혁명|과학혁명]]의 시기부터 세계 과학계를 이끌어왔다. 영국은 18세기부터 산업혁명을 주도하며 기술발전을 이끌어왔는데, 수많은 영국 출신의 과학자들과 걸출한 인물들이 과학 발전에 업적을 남겼던 것이다. 17세기와 18세기 영국 출신의 대표적인 과학자들에는 [[운동 법칙|운동의 법칙]]과 중력을 밝혀내며 세계 과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아이작 뉴턴]], 진화론과 자연선택을 주창하고 현대 생물학의 기초를 놓은 [[찰스 다윈]], 고전 전자기학의 시초를 놓은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클라크 막스웰]], 최근에는 세계 과학계의 거두이자 우주학, 양자학, 블랙홀 연구에 큰 공헌을 한 [[스티븐 호킹]] 등이 있다.
이외에도 18세기의 영국 과학자들 중에서는 수소를 발견한 [[헨리 캐번디시]], [[페니실린]]을 합성한 [[알렉산더 플레밍]], DNA 구조를 발견한 [[프랜시스 크릭|프란시스 크릭]] 등이 있다. 유명한 영국계 발명가들 중에서는 [[제임스 와트]], [[조지 스티븐슨]], [[로버트 스티븐슨]],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 등이 있다. 19세기에는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기모터를 발명하였고, [[찰스 배비지]]가 첫 컴퓨터를 발명하였다. 또한 조셉 스완이 첫 백열전구를 발명하였고,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처음으로 전화에 대한 특허를 얻어내는 데에 성공하였다. 20세기에는 [[존 로지 베어드]]가 처음으로 텔레비전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또한 프랭크 휘틀은 제트 엔진을 개발하였고, [[앨런 튜링]]이 현대 컴퓨터의 기본 틀을 놓았으며 [[팀 버너스리]]는 [[월드와이드웹]]을 개발하였다.
이 때문에 영국은 아직도 과학기술 개발을 최대의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 막대한 돈을 쏟아붇고 있다. 2004년과 2008년 사이에 영국은 전체 과학 관련 논문의 7%를 독자적으로 제출하였으며, 인용된 건수도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전체의 8%나 되었다. 또한 저명한 과학 잡지인 [[네이처]], [[영국의학저널]], [[란셋]] 등도 모두 영국에 기반을 둔 잡지사들이다.
=== 교통 ===
해운국으로서의 지위는 대전 전에 비하면 크게 후퇴했으나 보유 선박은 3,292만 t(1976)으로서 세계 제3위를 차지하며 세계 해운 시장의 일대 중심지로 되어 있다. [[런던]]을 비롯하여 [[사우댐프턴]]·[[리버풀]]·[[맨체스터]]·[[글래스고]] 등이 대표적인 항구이며, [[템스강 하구]], [[클라이드 강구]], [[맨체스터 운하]]에는 10만 t급 탱커를 넣는 터미널이 완성되어 있다. [[철도]]의 총연장은 약 2만km로서 세계 제2의 밀도(密度)이다. 1947년 이후 국유화했으나, 철도 발상지인 만큼 낡은 시설이 많은 데다가 자동차의 보급으로 큰 결손이 누적되고 있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합리화 계획을 실시하였으나 해결되지 않거나 오히려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도로 연장은 약 36만 6,000km로서 거의 포장이 되어 있다. 간선도로는 운수성(運輸省) 직할로 운영되며, 그 밖의 것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고 있다. 항공은 [[원월드]]의 주축 항공사 [[영국항공]]과, [[저비용 항공사]]의 대표주자인 [[이지젯]]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버진 애틀랜틱 항공]] 등 유수의 항공사가 존재한다. [[런던 히드로 국제공항]]은 세계 3위이자 유럽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이기도 하다. 우편물의 항공수송 서비스도 발달되어 있다. 한편 다년간 국내외의 주목을 받아왔던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유러터널(영국해협터널)은 1994년 5월 개통되었다.
== 해적 ==
영국은 [[해적]]으로 악명높은 나라였으며 이름난 영국 해적들이 많이 존재한다. [[에드워드 티치]], [[윌리엄 키드]], [[프랜시스 드레이크]], [[앤 보니]] 등등 영국 출신 해적들은 대항해시대에 엄청난 악명을 떨쳤다.
== 국가 ==
{{본문|영국의 국가}}
영국의 국가는 《[[영국의 국가|하느님 국왕 폐하를 지켜주소서]]》이다. 이외에 비 공식 국가로 《[[룰 브리타니아]]》 등이 있다.
== 역대 군주 ==
{{본문|영국의 군주}}
=== [[스튜어트 왕가]] ===
* [[앤 (영국)|앤]] (1707년~1714년)
=== [[하노버 왕가]] ===
* [[조지 1세]] (1714년~1727년)
* [[조지 2세]] (1727년~1760년)
* [[조지 3세]] (1760년~1820년)
* [[조지 4세]] (1820년~1830년)
* [[윌리엄 4세]] (1830년~1837년)
* [[빅토리아]] (1837년~1901년)
=== [[윈저 왕가|작센코부르크고타 윈저 왕가]] ===
* [[에드워드 7세]] (1901년~1910년)
* [[조지 5세]] (1910년~1936년)
* [[에드워드 8세]] (1936년)
* [[조지 6세]] (1936년~1952년)
* [[엘리자베스 2세]] (1952년~2022년)
=== [[마운트배튼가|마운트배튼 윈저 왕가]] ===
* [[찰스 3세]] (2022년~현재)
== 같이 보기 ==
* {{임시링크|영국의 개요|en|Outline of the United Kingdom}}
== 각주 ==
=== 내용주 ===
{{각주|group=주}}
=== 참조주 ===
{{각주}}
== 참고 자료 ==
{{글로벌세계대백과}}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영국}}
* {{언어링크|ko}} [http://www.newspaperindex.com/ko/%EC%8B%A0%EB%AC%B8%EB%B3%84/%EC%98%81%EA%B5%AD 뉴스 소재지 영국]
* {{언어링크|en}} [https://www.gov.uk/ 정부 공식 홈페이지]
* {{언어링크|ko}} [http://www.visitbritain.com/ko/KR/ 영국 관광청 홈페이지] {{웨이백|url=http://www.visitbritain.com/ko/KR/ |date=20120621170746 }}
* {{언어링크|ko|en}} [https://web.archive.org/web/20081015003054/http://www.koreanembassy.org.uk/ 주영국 대한민국 대사관]
* {{언어링크|ko}} [https://web.archive.org/web/20061205041747/http://krsuk.org/ 재영국 한인회]
{{영국 주제}}
{{유럽}}
{{유럽 평의회}}
{{북대서양 조약 기구}}
{{유엔 창립 회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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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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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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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제도 포럼}}
{{파리 클럽}}
{{전거 통제}}
[[분류:영국| ]]
[[분류:영어권]]
[[분류: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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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801년 설립]]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참고|영국의 군주}}
[[파일:Royal Coat of Arms of the United Kingdom (Both Realms).svg|섬네일|400px|왼쪽에 있는 문장은 [[영국의 왕실 문장]]으로서, 1837년 [[빅토리아 (영국)|빅토리아]] 즉위 이래 내려오는 것이다. 4등분으로 나뉜 방패의 좌측 위와 우측 아래는 [[잉글랜드의 왕실 문장]]이며, 우측 위는 [[스코틀랜드의 왕실 문장]], 좌측 아래는 [[아일랜드의 국장]]이다. 그리고 오른쪽의 문장은 스코틀랜드에서 자체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국장이다.<ref>{{웹 인용|url=http://www.royal.gov.uk/MonarchUK/Symbols/Coatsofarms.aspx| title=Symbols of the Monarchy. Coats of Arms. - The official website of The British Monarchy|accessdate=2011-05-09}}</ref>]]
'''영국의 군주 목록'''은 [[그레이트브리튼 왕국]]부터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영국)의 군주들을 다루고 있다. 1603년 [[잉글랜드 왕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사망한 후, [[스코틀랜드 왕국]]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의 왕위를 이어받아 제임스 1세로 즉위하였다. 이때부터 1707년까지 잉글랜드의 군주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군주를 겸직했다. 그러다가 [[1707년 연합법]]에 의해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이후, [[1801년 연합법]]에 의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과 아일랜드 왕국이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1922년 12월 6일 [[아일랜드 자유국]]이 독립함에 따라, 1927년 4월 12일 나라 이름을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으로 개정하였다.
== 스튜어트 왕가(1707–1714) ==
{{본문|스튜어트 왕가}}
앤 여왕은 1702년 3월 8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여왕으로 즉위하였으며, 1707년 연합법이 제정됨에 따라,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이 통합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즉 영국의 첫 번째 군주가 되었다.
{|style="text-align:center; width:100%" class="wikitable"
!width=15%|이름!!width=105px|초상화!!width=20%|탄생!!width=20%|배우자!!width=19%|죽음!!계승 권리
|-
|'''[[앤 (영국)|앤]]'''<br /> [[1707년]] [[5월 1일]] ~<br />[[1714년]] [[8월 1일]]||[[파일:Dahl, Michael - Queen Anne - NPG 6187.jpg|100px]]||[[1665년]] [[2월 6일]]<br /><small>세인트제임스 궁전<br />[[제임스 2세 (잉글랜드)|제임스 2세]](7세)와 [[앤 하이드]]의 딸</small>||[[덴마크의 조지]]<br /><small>세인트제임스 궁전<br />[[1683년]] [[7월 28일]]<br />자녀 없음</small>||[[1714년]] [[8월 1일]]<br /><small>켄징턴 궁전<br />향년 49세</small>||<small>제임스 2세(6세)의 딸([[동계 상속]]; [[1689년 권리 장전]]);<br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연합 조약]]과 [[1707년 연합법]])</small>
|}
== 하노버 왕가(1714–1901) ==
{{본문|하노버 왕가}}
잉글랜드 의회에서 1701년 왕위 결정 법이 통과되면서, 하노버 왕가가 왕위 계승권을 갖게 되었지만, 가톨릭 신자는 왕위 계승권에서 제외되었다. 1707년 스코틀랜드 의회에서도 하노버 왕가의 왕위 계승권을 비준하였다.
앤 여왕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서거하자, 그와 가장 가까운 친척이자 제임스 1세의 증손녀인 팔츠의 조피의 아들인 데다가,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던 조지 1세가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다.
{|style="text-align:center; width:100%" class="wikitable"
!width=15%|이름!!width=105px|초상화!!width=20%|탄생!!width=20%|배우자!!width=19%|죽음!!width=16|계승 권리!!width=16|<small>비고</small>
|-
|'''[[조지 1세]]'''<br/><span style="color:#0000FF;"><small>조지 루이(게오르크 루트비히)</small></span><br>[[1714년]] [[8월 1일]] ~<br>[[1727년]] [[6월 11일]]||[[파일:King George I by Sir Godfrey Kneller, Bt.jpg|100px]]||[[1660년]] [[5월 28일]]<br><small>[[라이네 궁전]]<br>[[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선제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팔츠의 조피]]의 아들</small>||[[첼레의 조피 도로테아]]<br><small>[[1682년]] [[11월 21일]]<br>1남 1녀</small>||[[1727년]] [[6월 11일]]<br><small>[[오스나브뤼크]]<br>향년 67세</small>||[[제임스 1세 (잉글랜드)|제임스 1세]]의 증손자||<ref>{{웹 인용|url=http://www.royal.gov.uk/HistoryoftheMonarchy/KingsandQueensoftheUnitedKingdom/TheHanoverians/GeorgeI.aspx|title=George I|publisher=Official website of the British Monarchy|accessdate=2010-08-03}}</ref>
|-
|'''[[조지 2세]]'''<br/><span style="color:#0000FF;"><small>조지 오거스터스(게오르크 아우구스트)</small></span><br>[[1727년]] [[6월 11일]] ~<br>[[1760년]] [[10월 25일]]||[[파일:George II by Thomas Hudson.jpg|100px]]||[[1683년]] [[10월 30일]]<br><small>[[헤렌하우젠]]<br>[[조지 1세]]와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의 아들</small>||[[안스바흐의 캐롤라인]]<br><small>[[1705년]] [[8월 22일]]<br>3남 5녀</small>||[[1760년]] [[10월 25일]]<br><small>[[켄징턴 궁전]]<br>향년 76세</small>||조지 1세의 아들||<ref>{{웹 인용|url=http://www.royal.gov.uk/HistoryoftheMonarchy/KingsandQueensoftheUnitedKingdom/TheHanoverians/GeorgeII.aspx|title=George II|publisher=Official website of the British Monarchy|accessdate=2010-08-03}}</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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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3세]]'''<br/><span style="color:#0000FF;"><small>조지 윌리엄 프레더릭(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small></span><br>[[1760년]] [[10월 25일]] ~<br>[[1820년]] [[1월 29일]]||[[파일:Allan Ramsay - King George III in coronation robes - Google Art Project.jpg|100px]]||[[1738년]] [[6월 4일]]<br><small>[[노퍽 하우스]]<br>[[웨일스 공 프레더릭]]과 [[작센고타의 아우구스타]]의 아들</small>||[[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샬럿]]<br><small>[[세인트제임스 궁전]]<br>[[1761년]] [[9월 8일]]<br>9남 6녀</small>||[[1820년]] [[1월 29일]]<br><small>[[윈저 성]]<br>향년 81세</small>||조지 2세의 손자||<ref>{{웹 인용|url=http://www.royal.gov.uk/HistoryoftheMonarchy/KingsandQueensoftheUnitedKingdom/TheHanoverians/GeorgeIII.aspx|title=George III|publisher=Official website of the British Monarchy|accessdate=2010-08-03}}</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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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4세]]'''<br/><span style="color:#0000FF;"><small>조지 오거스터스 프레더릭(게오르크 아우구스트 프리드리히)</small></span><br>[[1820년]] [[1월 29일]] ~<br>[[1830년]] [[6월 26일]]||[[파일:George IV 1821 color.jpg|100px]]|| [[1762년]] [[8월 12일]]<br><small>세인트제임스 궁전<br>[[조지 3세]]와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샬럿]]의 아들</small>||(1) [[마리아 피츠허버트]]<br><small>[[파크레인 (런던)|파크레인]]<br>1785년 9월 15일<br>(2) [[브라운슈바이크의 캐롤라인]]<br>세인트제임스 궁전<br>1795년 4월 8일<br>1녀</small>||[[1830년]] [[6월 26일]]<br><small>[[원저 (버크셔주)|윈저]]<br>향년 67세</small>||조지 3세의 아들||<ref>{{웹 인용|url=http://www.royal.gov.uk/HistoryoftheMonarchy/KingsandQueensoftheUnitedKingdom/TheHanoverians/GeorgeIV.aspx|title=George IV|publisher=Official website of the British Monarchy|accessdate=2010-08-03}}</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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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4세]]'''<br><span style="color:#0000FF;"><small>윌리엄 헨리
(빌헬름 하인리히)</small></span><br/>[[1830년]] [[6월 26일]] ~<br>[[1837년]] [[6월 20일]]
||[[파일:William IV.jpg|100px]]||[[1765년]] [[8월 21일]]<br><small>[[버킹엄 궁전]]<br>[[조지 3세]]와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샬럿]]의 아들</small>||[[작센마이닝겐의 아델레이드]]<br><small>[[큐 궁전]]<br>[[1818년]] [[7월 13일]]<br>2녀</small>||1837년 6월 20일<br><small>[[윈저 성]]<br>향년 71세</small>||조지 3세의 아들||<ref>{{웹 인용|url=http://www.royal.gov.uk/HistoryoftheMonarchy/KingsandQueensoftheUnitedKingdom/TheHanoverians/WilliamIV.aspx |title=William IV|publisher=Official website of the British Monarchy|accessdate=2010-08-03}}</ref>
|-
|'''[[빅토리아 (영국)|빅토리아]]'''<br><span style="color:#0000FF;"><small>알렉산드리나 빅토리아</small></span><br/>[[1837년]] [[6월 20일]] ~<br>[[1901년]] [[1월 22일]]||[[파일:Coronation portrait of Queen Victoria - Hayter 1838.jpg|100px]]||[[1819년]] [[5월 24일]]<br><small>[[켄징턴 궁전]]<br>[[켄트와 스트래선의 공작 에드워드]]와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녀 빅토리아]]의 딸</small>||[[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br><small>세인트제임스 궁전<br>[[1840년]] [[2월 10일]]<br>4남 5녀</small>||[[1901년]] [[1월 22일]]<br><small>[[오스본 하우스]]<br>향년 81세</small>||조지 3세의 손녀||<ref>{{웹 인용|url=http://www.royal.gov.uk/HistoryoftheMonarchy/KingsandQueensoftheUnitedKingdom/TheHanoverians/Victoria.aspx|title=Victoria|publisher=Official website of the British Monarchy|accessdate=2010-08-03|archive-date=2018-12-25|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81225035558/http://www.royal.gov.uk/HistoryoftheMonarchy/KingsandQueensoftheUnitedKingdom/TheHanoverians/Victoria.aspx|url-status=}}</ref>
|}
==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1901–1917) ==
{{본문|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
에드워드 7세는 빅토리아의 아들이자 후계자이긴 하지만, 부친의 가문 이름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그가 즉위하면서 왕가의 이름이 바뀌었다.
{|style="text-align:center; width:100%" class="wikitable"
!width=15%|이름!!width=105px|초상화!!width=20%|탄생!!width=20%|배우자!!width=19%|죽음!!width=16|계승 권리!!width=16|<small>비고</small>
|-
|'''[[에드워드 7세]]'''<br><span style="color:#0000FF;"><small>앨버트 에드워드</small></span><br/>[[1901년]] [[1월 22일]] ~<br>[[1910년]] [[5월 6일]]||[[파일:Edward VII in coronation robes.jpg|100px]]||[[1841년]] [[11월 9일]]<br><small>[[버킹엄 궁전]]<br>[[빅토리아 (영국)|빅토리아]]와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의 아들</small>||[[덴마크의 알렉산드라]]<br><small>[[세인트조지 경당 (윈저 성)|세인트조지 경당]]<br>[[1863년]] [[3월 10일]]<br>3남 3녀</small>||[[1910년]] [[5월 6일]]<br><small>[[버킹엄 궁전]]<br>향년 68세</small>||빅토리아의 아들||<ref>{{웹 인용|url=http://www.royal.gov.uk/HistoryoftheMonarchy/KingsandQueensoftheUnitedKingdom/Saxe-Coburg-Gotha/EdwardVII.aspx|title=Edward VII|publisher=Official website of the British Monarchy|accessdate=2010-08-03}}</ref>
|}
== 윈저 왕가(1917–현재) ==
{{본문|윈저 왕가}}
제1차 세계 대전 시기에 영국에 반독일 감정이 커지자 1917년 왕가의 이름을 윈저로 개명하였다.
{|style="text-align:center; width:100%" class="wikitable"
!width=15%|이름!!width=105px|초상화!!width=20%|탄생!!width=20%|배우자!!width=19%|죽음!!width=16|계승 권리!!width=16|<small>비고</small>
|-
|'''[[조지 5세]]'''<br><span style="color:#0000FF;"><small>조지 프레더릭<br/>어니스트 앨버트</small></span><br/>1910년 5월 6일 ~<br>1936년 1월 20일||[[파일:George V of the united Kingdom.jpg|100px]]||[[1865년]] [[6월 3일]]<br><small>[[말보로 하우스]]<br>[[에드워드 7세]]와 [[덴마크의 알렉산드라]]의 아들</small>||[[테크의 메리]]<br><small>[[세인트제임스 궁전]]<br>[[1893년]] [[7월 6일]]<br>5남 1녀</small>||[[1936년]] [[1월 20일]]<br><small>[[샌드링엄 하우스]]<br>향년 70세</small>||에드워드 7세의 아들||<ref>{{웹 인용|url=http://www.royal.gov.uk/HistoryoftheMonarchy/KingsandQueensoftheUnitedKingdom/TheHouseofWindsor/GeorgeV.aspx|title=George V |publisher=Official website of the British Monarchy|accessdate=2010-08-03}}</ref>
|-
|'''[[에드워드 8세]]'''<br><span style="color:#0000FF;"><small>에드워드 앨버트 크리스천<br/>조지 앤드루 패트릭 데이비드</small></span><br/>[[1936년]] [[1월 20일]] ~<br>[[1936년]] [[12월 11일]]<br />(자진 퇴위함)||[[파일:His Majesty King Edward VIII in Garter Robes (cropped).jpg|100px]]||[[1894년]] [[6월 23일]]<br><small>[[화이트로지 (리치먼드 공원)|화이트로지]]<br>[[조지 5세]]와 [[테크의 메리]]의 아들</small>||[[윌리엄 심슨]]<br><small>[[캉데 성]]<br>[[1937년]] [[6월 3일]]<br>자녀 없음</small>||[[1972년]] [[5월 28일]]<br><small>[[뇌이쉬르센]]<br>향년 77세</small>||조지 5세의 아들||<ref>{{웹 인용|url=http://www.royal.gov.uk/HistoryoftheMonarchy/KingsandQueensoftheUnitedKingdom/TheHouseofWindsor/EdwardVIII.aspx |title=Edward VIII|publisher=Official website of the British Monarchy |accessdate=2010-08-03}}</ref>
|-
|'''[[조지 6세]]'''<br><span style="color:#0000FF;"><small>앨버트 프레더릭 아서 조지</small></span><br/>[[1936년]] [[12월 11일]] ~<br>[[1952년]] [[2월 6일]]||[[파일:King George VI.jpg|100px]]||[[1895년]] [[12월 14일]]<br><small>[[샌드링햄 하우스]]<br>[[조지 5세]]와 [[테크의 메리]]의 아들</small>||[[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br><small>[[웨스트민스터 사원]]<br>[[1923년]] [[4월 26일]]<br>2녀</small>||[[1952년]] [[2월 6일]]<br><small>샌드링햄 하우스<br>향년 56세</small>||조지 5세의 아들||<ref>{{웹 인용|url=http://www.royal.gov.uk/HistoryoftheMonarchy/KingsandQueensoftheUnitedKingdom/TheHouseofWindsor/GeorgeVI.aspx|title=George VI|publisher=Official website of the British Monarchy|accessdate=2010-08-03}}</ref>
|-
|'''[[엘리자베스 2세]]'''<br><span style="color:#0000FF;"><small>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small></span><br/>[[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br>||[[파일:Queen Elizabeth II in Coronation Robes.jpg|100px]]||[[1926년]] [[4월 21일]]<br><small>[[메이페어]]<br>[[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딸</small>||[[에든버러 공 필립|그리스와 덴마크의 필립]]<br><small>[[웨스트민스터 사원]]<br>[[1947년]] [[11월 20일]]<br>3남 1녀</small>||[[2022년]] [[9월 8일]]<br><small>[[밸모럴성]]<br>향년 96세</small>||조지 6세의 딸||<ref>{{웹 인용|url=http://www.royal.gov.uk/HMTheQueen/HMTheQueen.aspx|title=Her Majesty The Queen|publisher=Official website of the British Monarchy|accessdate=2010-08-03}}</ref>
|-
|style=background:#EAEAEA| '''[[찰스 3세]]'''<br /><span style="color:#0000FF;"><small>찰스 필립 아서 조지</small></span><br/> [[2022년]] [[9월 9일]] ~
|style=background:#EAEAEA| [[파일:Prince Charles 2012.jpg|100px]]
|style=background:#EAEAEA| [[1948년]] [[11월 14일]]</br><small>[[버킹엄 궁전]]<br />[[엘리자베스 2세]]와<br />[[필립 마운트배튼]]의 장남</small>
|style=background:#EAEAEA| (1) [[다이애나 스펜서]]<br /><small>[[세인트 폴 대성당]]<br />[[1981년]] [[7월 29일]]<br />2남</small><br /><br />(2) [[카밀라 파커 볼스]]<br /><small>[[세인트 조지 성당]]<br />[[2005년]] [[4월 9일]]<br />자식 없음</small>
|style=background:#EAEAEA| ||엘리자베스 2세의 장남||
|}
== 같이 보기 ==
* [[영국]]
* [[영국의 군주 배우자]]
* [[영국의 총리 목록]]
* [[독일의 대통령 목록]]
* [[독일의 총리 목록]]
* [[프랑스의 대통령 목록]]
* [[잉글랜드 국왕]]
* [[스코트인의 왕]]
== 각주 ==
<references/>
{{영국의 군주}}
{{영국 왕실 작위}}
[[분류:군주 목록]]
[[분류:영국의 군주|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연도표기원후|2004}}
{{기년법|2004}}
{{요즘 화제 년월|2004년}}
'''2004년'''은 [[목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다.
== 사건 ==
* [[1월 1일]] - [[노무현]]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경제회복과 민생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다.
* [[1월 3일]] - [[이집트]] 민간 [[항공사]] 플래시 에어의 [[보잉 737]] 전세기가 [[홍해]]에 추락, 탑승자 148명이 전원 사망하다.
* [[1월 5일]] - [[부룬디]]의 [[후투족]] 무장 조직인 FNL([[:fr:Forces nationales de libération (Burundi)|fr]])이 2003년 12월 31일 발표한 [[선전 포고]]를 철회하고 도미티앵 은다이제예([[:fr:Domitien Ndayizeye|fr]]) 대통령과 협상할 것을 받아들이다.
* [[1월 11일]] - [[열린우리당]]은 전당대회를 열어 [[정동영]] 의원을 당의장으로 선출하다.
* [[2월 4일]] - 안상영 [[부산광역시장]]이 구치소에서 자살하다.
* [[2월 8일]] - [[러일 전쟁]] 개전 100주년
* [[3월 11일]] - [[알 카에다]] 국제테러단체가 [[스페인]]에서 마드리드의 아토차역에서 동시다발테러사건을 일으킴.
* [[3월 12일]] -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다.
* [[3월 20일]] - [[2004년 중화민국 총통 선거|중화민국 총통 선거]]에서 [[천수이볜]] 총통이 재선되다.
* [[4월 1일]] - [[한국고속철도|KTX]]가 개통되고 [[통일호]]가 종운 되었다. 이후 남은 열차는 [[통근열차 (대한민국)|통근열차]]로 명칭을 변경하여 지금까지 운행 중이다.
* [[4월 15일]] -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다.
* [[4월 22일]] - [[룡천 열차폭발 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북도]] 용천에서 가연성 물질을 싣고가던 열차가 폭발하다. 30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4월 28일]] - [[광주 도시철도 1호선]] [[녹동역 (광주)|녹동역]]~[[상무역]] 구간이 개통하다.
* [[5월 1일]] - [[유럽 연합]] 확장: 라트비아·리투아니아·몰타·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에스토니아·체코·키프로스·폴란드·헝가리 가입하다.
* [[5월 5일]] - 개기월식이 일어나다.
* [[5월 10일]] - [[일본]]의 황태자 [[나루히토]]가 [[기자회견]]에서 부인 발언을 시작하다.
* [[5월 14일]] -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기각하다.
* [[5월 25일]] - 탄핵소추 기간 동안 대통령직을 맡았던 [[고건]] 총리가 사임하다.
* [[5월 26일]] - [[제1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이 개최되다.
* [[5월 28일]] - 이야드 알라위가 [[이라크]] 임시정부 총리에 선출되다.
* [[5월 29일]] - [[대한민국 제16대 국회]] 임기 종료.
* [[5월 30일]] - [[대한민국 제17대 국회]] 임기 시작.
* [[5월 31일]] - 이라크에서 [[김선일]]이 [[알 자르카위]]가 이끄는 무장단체에 피랍되다.
* [[6월 9일]] - 불량 [[만두]] 파동이 일어나다.
* [[6월 22일]] - 이라크에서 [[김선일]]이 [[알 자르카위]]가 이끄는 무장단체에 의해서 피살되다.
* [[6월 28일]]
** [[이라크]] 연합국 임시행정처가 [[이라크]] 임시정부에 주권을 이양하다.
** [[리비아]]가 [[미국]]과 재수교하다.
* [[6월 30일]] - [[이해찬]]이 [[국무총리]]에 취임하다.
* [[7월 4일]] - 태풍 <민들레>가 [[대한민국]]에 상륙하다.
* [[7월 18일]] -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체포되다.
* [[7월 27일]] - [[탈북자]] 468명 집단 입국하다.(~28일)
* [[8월 25일]] - [[김영란 (법조인)|김영란]]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에 임용되다.
* [[8월 31일]] -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방화범 [[김대한 (범죄인)|김대한]]이 진주교도소에서 지병으로 사망하다.
* [[9월 1일]] - [[러시아]] [[북오세티야공화국]] [[베슬란]] 시의 한 [[학교]]에서 [[체첸]] 반군에 의한 [[베슬란 학교 인질극|인질 사태]]가 벌어지다. (~3日) 인질 1000여 명 이상 사상.
* [[9월 4일]] - 대한민국의 유명 사극 [[불멸의 이순신]]이 첫 방송 되었다.
* [[9월 5일]] - 야구선수와 연예인들에 대한 [[병역비리]] 수사가 시작됐다. 여기서 [[송승헌]], [[한재석]], [[장혁]] 등의 연예인이 연루되었으며, [[한재석]]은 [[11월 15일]], [[송승헌]]과 [[장혁]]은 [[11월 16일]] 군에 입대했다.
* [[9월 9일]] - 북한 [[양강도]]에서 수력 발전소 건설을 위한 폭파가 원자력 발전소 폭파로 잘못 포착되어 언론에 보도되다.
* [[9월 23일]] -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되다.
* [[10월 21일]] - [[2004년 대한민국 행정수도 이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가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에 대하여 위헌 판결하다.
* [[10월 23일]] - [[일본]] [[니가타현]]에서 [[2004년 니가타 현 주에쓰 지진|지진]]이 일어나다.
* [[10월 26일]] - [[강원도]] 중부전선에서 DMZ 3중철책 절단사건이 벌어지다.
* [[10월 27일]] -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와우리에서 경기도 ㄱ모 대학교 관광학부 2학년 노 모양이 실종되었다가 46일 만에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 [[10월 30일]] - 기초단체장 재·보궐 선거가 실시되다.
[[파일:2004-tsunami.jpg|섬네일|[[2004년 인도양 지진 해일 사태]].]]
* [[11월 2일]] -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공화당 (미국)|공화당]] 소속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다.
* [[12월 8일]] - [[대한민국군 이라크 파병]]: [[노무현]] 대통령, [[이라크]] 파견 자이툰부대 방문.
* [[12월 11일]] - [[중화민국]] 6대 입법원 총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하다.
* [[12월 26일]]
** [[2004년 인도양 지진 해일]]
**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유셴코]] 후보가 대통령선거 결선 재투표에서 승리하다.([[오렌지 혁명]])
== 문화 ==
* [[1월 1일]]
** [[한국철도시설공단]](현 [[국가철도공단]]) 출범.
** 증산도미디어(현 STB미디어) 출범.
** SMBC 드라마채널(SMB 플러스의 후신)이 SMB 드라마 (현 SMBC 플러스) 채널명을 변경하였다.
* [[1월 16일]]
**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97]]의 판매와 지원을 종료되었다.
** [[분당선]] [[이매역]]이 개통되었다.
* [[2월 2일]] - [[K리그]]의 [[안양 LG 치타스]]가 [[서울특별시]]로 연고이전을 하여 [[FC 서울]]로 변경됐다.
* [[2월 27일]] - [[KBS 2TV 어린이 드라마]] [[매직키드 마수리]]가 496회를 끝으로 종영되면서 역대 최장수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 [[2월 28일]] - [[생방송 브라보 나눔로또]] 방송을 65회까지 서울영등포경찰서만 하고 끝났다.
* [[3월 1일]] - [[SBS]]가 [[여의도]] 시대를 마감하고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 (서울)|목동]]에 신사옥으로 이전하였다. YTN 남대문 사옥 입주
* [[3월 7일]] - [[생방송 브라보 나눔로또]] 방송을 66회부터 서울양천경찰서에서 참관하였다.
* [[3월 23일]] - MBC 드라마 [[대장금]]이 종영했다.
* [[3월 31일]] - [[통일호]] 열차가 49년만에 마지막 운행을 끝으로 퇴역하였다.
* [[4월 1일]] - [[한국고속철도]](KTX)([[동대구역|동대구]]~[[경주역|경주]], [[울산역|울산]] 경유 [[부산역|부산]] 구간 제외)가 개통되었다.
* [[4월 26일]] -
** 한솔교육 올챙이와 개구리 율동동요 1탄가 출시되다.
** [[KBS 제2FM]] [[키스 더 라디오]] 첫방송.
* [[4월 28일]] - [[광주 도시철도 1호선]] [[녹동역 (광주)|녹동]] ~ [[상무역|상무]] 구간이 개통되었다.
* [[5월 1일]] - [[서울광장]] 개장.
* [[5월 10일]]
** [[명탐정 코난]] 2기가 한국에서 [[투니버스]]를 통해 새로 방영되다.
** [[아따맘마]]가 한국에서 [[투니버스]]를 통해 첫 방영되다.
* [[5월 21일]] - [[국제축구연맹|FIFA]] 창설 100주년.
* [[5월 24일]] - 대한민국 [[국회방송]] 개국.
* [[6월 7일]] - [[소닉 어드밴스 3]]가 발매되었다.
* [[6월 12일]] ~ [[7월 4일]] - [[유로 2004]] 대회가 [[포르투갈]]에서 개최되었다. (우승: 그리스)
* [[6월 15일]] -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청]] 시노드에서 [[한국 정교회]]를 수도 대교구로 승격시켰다.
* [[6월 20일]] -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수도 대주교가 초대 [[한국 정교회]] 수도 대주교로 착좌했다.
* [[6월 23일]]
** [[경남도립미술관]]이 개관하였다.
** [[원적산터널]]이 개통되었다.
* [[6월 24일]] - 대한민국 [[천주교 의정부교구]]가 설정되었다.
* [[6월 30일]] -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우 NT 4.0]]과 [[인터넷 익스플로러 3]]의 모든 지원을 종료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2000]]의 메인스트림 지원을 종료했다.
* [[7월 1일]] - [[2004년 서울특별시 버스 개편|서울특별시 버스 교통개편]].
* [[8월 5일]] - [[중화인민공화국]] [[광저우 바이윈 국제공항]] 개항.
* [[8월 13일]]~[[8월 29일]] - [[2004년 하계 올림픽]]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되었다.
* [[9월 1일]] - [[현대자동차]]에서 NF쏘나타를 출시하다.
* [[9월 10일]] ~ [[11월 13일]] - [[광주 비엔날레|2004 광주비엔날레]].
* [[9월 17일]] - 남부운전면허시험장에서 운전면허학과시험이 컴퓨터학과시험을 운영을 하기 시작했다.
* [[9월 19일]] ~ [[9월 28일]] - [[2004년 하계 패럴림픽]]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되었다.
* [[9월 22일]]
** [[대한올림픽위원회]]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체조 개인종목에서 오심으로 인해 금메달을 놓친 [[양태영]] 선수에게 자체 제작한 금메달과 함께 금메달에 상응하는 격려금도 주었다.
** [[LG텔레콤]]과 한국대중음악비상대책협의회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MP3폰의 무료 [[MP3]] 파일 재생에 사용제한을 두지 않기로 합의했다.
* [[9월 24일]] - [[분당선]] [[구룡역 (서울)|구룡역]]이 개통되었다.
* [[10월 11일]] - [[이한택]] 주교가 초대 [[천주교 의정부교구|천주교 의정부교구장]]에 착좌하였다.
* [[10월 28일]]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월드 시리즈]] 4차전에서 [[보스턴 레드삭스]]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3대 0으로 꺾고 시리즈 전적 4승으로 1918년 이후 86년만에 통산 6번째 우승을 달성하였다.
* [[10월 30일]] - [[로또 6/45]]가 100회를 맞이했다.
* [[11월 1일]] - [[한국프로야구]] [[200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9차전 끝에 현대 유니콘스가 통산 4번째 우승하였다.
* [[11월 17일]] - [[대한민국]],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실시하다.
* [[11월 26일]] - [[분당선]] [[보정역]]이 개통되었다.
* [[12월 15일]] - [[개성공단]]에서의 남북 협력 첫 생산품인 [[리빙아트]] 냄비 세트가 서울 [[롯데백화점]]에서 첫 판매되었다.
* [[12월 31일]]
**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우 NT 4.0 서버와 [[인터넷 익스플로러 4]]의 모든 지원을 종료했다.
** [[경인방송]], 방송위원회의 재허가 추천 거부로 TV 방송 폐국.
* [[교수신문]]이 정한 [[교수신문이 정한 올해의 사자성어|2004년의 사자성어]]: 黨同伐異
== 탄생 ==
{{분류 참고|2004년 출생}}
=== 1월 ===
* [[1월 4일]]
** 대한민국의 배우 [[김주아 (배우)|김주아]].
** 프랑스의 농구 선수 [[빅토르 웸바냐마]].
* [[1월 5일]] - 대한민국의 배우 [[안지호 (배우)|안지호]].
* [[1월 7일]] - 미국의 배우 [[소피아 와일리]].
* [[1월 8일]]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권효진 (2004년)|권효진]].
* [[1월 10일]] - 대한민국의 래퍼 [[NSW 윤]].
* [[1월 11일]] - 대한민국의 가수 예원.
* [[1월 12일]] - 대한민국의 배우 [[안서현]].
* [[1월 13일]] - 대한민국의 가수 [[유현승 (가수)|현승]] ([[PICKUS|피커스]]).
* [[1월 15일]] - 대한민국의 배우 [[이영은 (2004년)|이영은]].
* [[1월 16일]] - 대한민국의 가수 하윤.
* [[1월 18일]]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이연 (바둑 기사)|이연]].
* [[1월 19일]] - 대한민국의 래퍼 [[터치 더 스카이 (래퍼)|터치 더 스카이]].
* [[1월 20일]]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세훈 (2004년)|김세훈]].
**일본의 가수 [[야마구치 키라]].
* [[1월 21일]]
** 대한민국의 가수 우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혁구]].
** 노르웨이의 공주 [[잉리드 알렉산드라 아브 노르게]].
* [[1월 26일]] - 대한민국의 가수 설윤.
* [[1월 27일]] - 대한민국의 가수 [[정승환 (2004년)|정승환]].
* [[1월 29일]] - 대한민국의 배우 [[조용진 (배우)|조용진]].
* [[1월 30일]] - 대한민국의 가수 젬마.
* [[1월 31일]]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제우스 (프로게이머)|제우스]].
=== 2월 ===
* [[2월 3일]] - 일본의 가수 레이.
* [[2월 5일]]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김윤태 (2004년)|김윤태]].
* [[2월 6일]] - 대한민국의 배우 [[이재인 (배우)|이재인]].
* [[2월 7일]] - 대한민국의 치과의사 김기현.
* [[2월 9일]]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카우 (프로게이머)|카우]].
** 대한민국의 가수 정원 ([[ENHYPEN]]).
* [[2월 11일]]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카엘]].
* [[2월 13일]] - 대한민국의 배우 [[류한비]].
* [[2월 15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장한결]].
* [[2월 18일]]
** 대한민국의 배우 [[이효제]].
** 대한민국의 가수 [[규리 (가수)|규리]].
** 미국의 배우 [[카일리 로저스]].
* [[2월 19일]] - 잉글랜드의 배우 [[밀리 보비 브라운]].
* [[2월 20일]] - 대한민국의 가수 노아.
* [[2월 21일]] - 대한민국의 배우 [[이찬주 (배우)|이찬주]].
* [[2월 23일]] - 대한민국의 가수 아리.
* [[2월 25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석민 (2004년)|박석민]].
* [[2월 27일]] - 대한민국의 수필가 박세현.
=== 3월 ===
* [[3월 5일]] - 대한민국의 배우 [[최수인]].
* [[3월 7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정민 (2004년)|김정민]].
* [[3월 8일]] - 대한민국의 수영 선수 [[김민섭 (수영 선수)|김민섭]].
* [[3월 9일]] - 대한민국의 배우 [[유은미]].
* [[3월 10일]] - 일본의 가수 [[코토네]].
* [[3월 11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조영광 (축구 선수)|조영광]].
** 대한민국의 연습생 [[최민서 (2004년)|최민서]] ([[소년판타지]]).
* [[3월 12일]] - 대한민국의 가수 [[김우석 (2004년)|김우석]].
* [[3월 16일]]
** 대한민국의 육상 선수 [[양예빈]].
** 일본의 아이돌 [[키타가와 리오]].
* [[3월 18일]]
** 대한민국의 당구 선수 [[장가연]].
** 대한민국의 가수 [[이재희 (가수)|이재희]].
* [[3월 20일]]
** 대한민국의 가수 [[벨 (2004년생 가수)|벨]] ([[KISS OF LIFE (음악 그룹)|키스 오브 라이프]]).
** 대한민국의 피아니스트 [[임윤찬]].
* [[3월 21일]] - 대한민국의 가수 [[앤톤]].
* [[3월 24일]] - 대한민국의 가수 [[다민]].
* [[3월 25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현서]].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준민]].
* [[3월 28일]] - 러시아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안나 셰르바코바]].
* [[3월 29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주찬 (축구 선수)|김주찬]].
=== 4월 ===
* [[4월 5일]] - 일본의 가수 하루토.
* [[4월 9일]] - 대한민국의 배우 [[김수정 (2004년)|김수정]].
* [[4월 12일]]
** 대한민국의 양궁 선수 [[김제덕]].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곽도규]].
* [[4월 14일]] - 대한민국의 가수 윤.
* [[4월 16일]]
** 대한민국의 가수 [[지니 (2004년)|지니]].
** 대한민국의 가수 [[윤예찬]].
* [[4월 19일]] - 대한민국의 배우 [[김현빈]].
* [[4월 20일]]
** 일본의 성우 [[신도 아마네]].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윤영철 (야구 선수)|윤영철]] ([[KIA 타이거즈]]).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문현빈]].
* [[4월 21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정운 (2004년)|김정운]].
* [[4월 26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한결 (2004년)|박한결]].
=== 5월 ===
* [[5월 2일]] - 대한민국의 배우 [[윤송이 (배우)|윤송이]].
* [[5월 3일]] - 대한민국의 가수 [[김연규 (가수)|김연규]].
* [[5월 4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손승범]].
* [[5월 7일]] - 대한민국의 가수 민지. ([[NewJeans]])
* [[5월 9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민석 (야구 선수)|김민석]].
* [[5월 10일]] - 모로코의 축구 선수 [[빌랄 엘 카누스]].
* [[5월 11일]] - 대한민국의 가수 [[민주 (2004년생 가수)|민주]].
* [[5월 12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도현 (2004년)|김도현]].
* [[5월 13일]] - 미국의 배우 겸 성우 [[에이바 에이커스]].
* [[5월 14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전지완]].
* [[5월 15일]] - 미국의 테니스 선수 [[코코 고프]].
* [[5월 20일]] - 대한민국의 가수 [[리키 (2004년)|리키]].
* [[5월 21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범석 (야구 선수)|김범석]].
* [[5월 22일]] - 대한민국의 가수 아민.
* [[5월 24일]] -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유세프 셰르미티]].
* [[5월 25일]] - 대한민국의 가수 [[김소연 (가수)|김소연]].
* [[5월 26일]] - 대한민국의 가수 현빈. ([[트라이비]])
* [[5월 27일]]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신다정]].
** 대한민국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유영 (피겨스케이팅 선수)|유영]].
* [[5월 28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권후]].
* [[5월 31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강상윤]].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서현 (야구 선수)|김서현]].
=== 6월 ===
* [[6월 1일]] - 일본의 배우 [[혼다 미유]].
* [[6월 2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진하 (야구 선수)|이진하]].
* [[6월 3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최준호.
* [[6월 5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현빈 (2004년)|박현빈]].
* [[6월 6일]] - 대한민국의 태권도 선수 [[박태준 (태권도 선수)|박태준]].
* [[6월 8일]] - 미국의 배우 [[프란체스카 카팔디]].
* [[6월 9일]] - 대한민국의 쌍둥이 배우 [[송예담]], [[송예준]].
* [[6월 14일]] - 대한민국의 가수 키조.
* [[6월 15일]] - 미국의 배우 [[스털링 제린스]].
* [[6월 17일]] - 일본의 배우, 가수 [[스즈키 후쿠]].
* [[6월 20일]] - 대한민국의 래퍼 [[김상민그는감히전설이라고할수있다]].
* [[6월 23일]]
** 일본의 배우, 가수 [[아시다 마나]].
** 러시아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 [[6월 24일]]
** 대한민국의 모델 [[린애]].
** 대한민국의 가수 [[기석 (2004년)|기석]].
* [[6월 29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정현 (2004년)|김정현]].
* [[6월 30일]] - 대한민국의 배우 [[김예론]].
=== 7월 ===
* [[7월 1일]]
** 대한민국의 가수 [[원빈 (가수)|원빈]].
** 스페인의 축구 선수 [[알레한드로 가르나초]].
* [[7월 2일]]
** 대한민국의 가수 [[저미]].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승원 (야구 선수)|이승원]].
* [[7월 4일]] - 대한민국의 가수 예원.
* [[7월 5일]]
** 대한민국의 탁구 선수 [[신유빈]].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한태희 (축구 선수)|한태희]].
* [[7월 8일]]
** 미국의 가수 [[게일 (가수)|게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홍성민 (2004년생 축구 선수)|홍성민]].
* [[7월 9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동규 (야구 선수)|김동규]].
* [[7월 11일]] - 대한민국의 가수 [[황윤정]].
* [[7월 12일]]
** 대한민국의 가수 [[지한 (가수)|지한]].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강건 (야구 선수)|강건]].
** 대한민국의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 [[김다원 (프로게이머)|김다원]].
* [[7월 15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동헌 (야구 선수)|김동헌]].
** 대한민국의 래퍼 [[디아크 (래퍼)|디아크]].
* [[7월 16일]] - 브라질의 축구 선수 에메르송.
* [[7월 18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최우진 (축구 선수)|최우진]].
* [[7월 21일]] - 대한민국의 가수 [[트레이드 엘]].
* [[7월 26일]] - 대한민국의 전직 배우 [[정준원 (2004년)|정준원]].
* [[7월 27일]] - 대한민국, 미국의 가수 [[휴닝바히에]].
* [[7월 31일]] - 대한민국의 배우 [[이디엘]].
=== 8월 ===
* [[8월 1일]] - 케냐의 육상 선수 [[이매뉴얼 와뇨니]].
* [[8월 4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현종 (야구 선수)|김현종]].
* [[8월 5일]] - 스페인의 축구 선수 [[가비 (축구 선수)|가비]].
* [[8월 7일]] - 대한민국의 시인 황인혁.
* [[8월 11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승준 (축구 선수)|이승준]].
* [[8월 12일]] - 대한민국의 가수 [[이신혁]].
* [[8월 13일]] - 대한민국의 배우 [[이채은 (2004년)|이채은]].
* [[8월 14일]] - 대한민국의 가수 사랑.
* [[8월 15일]] - 대한민국의 배우 [[김이온]].
* [[8월 19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성빈 (축구 선수)|박성빈]].
* [[8월 20일]] - 대한민국의 쌍둥이 배우 [[김태원 (2004년)|김태원]], [[김태용 (배우)|김태용]].
* [[8월 23일]] - 대한민국의 가수 [[지성 (2005년)|김지성]] ([[NTX (음악 그룹)|엔티엑스]]).
* [[8월 24일]] - 대한민국의 가수 [[빈나]].
* [[8월 25일]] - 대한민국의 배우 [[최정은]].
* [[8월 30일]] - 대한민국의 가수 [[김규빈]].
* [[8월 31일]]
** 대한민국의 가수 [[장원영]] ([[아이즈원]], [[아이브]]).
** 벨라루스의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의 아들 [[니콜라이 루카셴코]].
=== 9월 ===
* [[9월 1일]] - 대한민국의 가수 예주. ([[아이칠린]])
* [[9월 11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로운 (2004년)|이로운]].
* [[9월 13일]] - 대한민국의 가수 [[이진우 (2004년)|이진우]] ([[틴틴]]).
* [[9월 20일]] - 대한민국의 배우 [[오은찬]].
* [[9월 22일]] - 대한민국의 배우 [[구승현]].
* [[9월 23일]] - 미국의 배우 [[앤서니 곤살레스]].
* [[9월 24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정진우 (축구 선수)|정진우]].
* [[9월 26일]] - 대한민국의 배우 [[홍다혜]].
* [[9월 28일]] - 대한민국의 가수 [[박정우 (가수)|박정우]].
* [[9월 29일]] - 대한민국의 가수 [[나영 (2004년)|나영]].
=== 10월 ===
* [[10월 1일]] - 대한민국의 배우 [[박민상]].
* [[10월 3일]] - 미국의 배우 [[노아 슈냅]].
* [[10월 4일]]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임혜림]].
* [[10월 5일]]
** 대한민국의 배우 [[최권수]].
** 대한민국의 배우, 모델 [[오예주]].
* [[10월 6일]]
** 오스트레일리아 태생 대한민국의 가수 [[하니 (2004년생 가수)|하니]].
** 대한민국의 가수 알렉스.
* [[10월 11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류승민 (야구 선수)|류승민]].
* [[10월 19일]]
** 대한민국의 가수 시온.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대환 (2004년)|김대환]].
* [[10월 20일]] - 대한민국의 가수 이한.
* [[10월 21일]] - 대한민국의 배우 [[황현정 (배우)|황현정]].
* [[10월 26일]] - 대한민국의 가수 소정.
* [[10월 28일]] - 대한민국의 가수 나린.
* [[10월 29일]] - 대한민국의 연극배우 박시민.
=== 11월 ===
* [[11월 1일]] - 대한민국의 가수 [[김예빈 (가수)|김예빈]].
* [[11월 2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조동욱]].
* [[11월 5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다이빙 선수 [[조진미]].
** 대한민국의 모델, 배우 [[소아린]].
* [[11월 7일]]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건희 (야구 선수)|김건희]].
* [[11월 10일]] - 대한민국의 래퍼 [[남도현]] ([[X1 (음악 그룹)|X1]]).
* [[11월 11일]] - 대한민국의 래퍼 [[황지상]].
* [[11월 15일]] - 대한민국의 래퍼 [[폴로다레드]].
* [[11월 16일]]
** 일본의 가수 [[메이 (2004년)|메이]] ([[체리블렛]]).
** 대한민국의 배우 [[신혜지 (배우)|신혜지]].
* [[11월 18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강민승 (축구 선수)|강민승]].
* [[11월 20일]] - 대한민국의 배우 [[최다인]].
* [[11월 21일]]
** 대한민국의 가수 리즈 ([[IVE]]).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리코 루이스]].
* [[11월 29일]] - 대한민국의 배우 [[신수연]].
* [[11월 30일]]
** 대한민국의 사격 선수 [[최대한 (2004년)|최대한]].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찬우 (2004년)|이찬우]].
=== 12월 ===
* [[12월 4일]] - 대한민국의 가수 [[김채연 (2004년)|김채연]] ([[버스터즈]]).
* [[12월 6일]] - 대한민국의 배우 [[조현도]].
* [[12월 7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배예빈]].
* [[12월 9일]]
** 대한민국의 가수 재이.
** 영국의 배우 [[니코 파커]].
* [[12월 11일]] - 대한민국의 배우 [[이유진 (2004년)|이유진]].
* [[12월 15일]] - 대한민국의 가수 다인.
* [[12월 21일]] - 대한민국의 가수 [[한음 (가수)|한음]].
* [[12월 24일]]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지수 (2004년)|김지수]].
* [[12월 27일]] - 대한민국의 가수 [[서영은 (2004년)|서영은]].
* [[12월 28일]] - 대한민국의 체조 선수 [[이다영 (체조 선수)|이다영]].
* [[12월 29일]] - 대한민국의 래퍼 [[황세현]].
== 사망 ==
[[파일:Ronald Reagan 1981 presidential portrait.jpg|섬네일|120px|로널드 레이건]]
[[파일:Ray Charles FIJM 2003.jpg|섬네일|120px|레이 찰스]]
[[파일:Marlon Brando in 'Streetcar named Desire' trailer.jpg|섬네일|120px|말런 브랜도]]
[[파일:Zenko Suzuki 19800717.jpg|섬네일|154x154픽셀|스즈키 젠코]]
[[파일:C Reeve in Marriage of Figaro Opening night 1985b.jpg|섬네일|120px|크리스토퍼 리브]]
[[파일:Yasser-arafat-1999-2.jpg|섬네일|120px|야세르 아라파트]]
[[파일:Prince Bernhard 1942cr.jpg|섬네일|120px|베른하르트 왕자]]
{{분류 참고|2004년 사망}}
* [[1월 25일]] - 헝가리의 축구 선수 [[페헤르 미클로시]]. (1979년~)
* [[1월 26일]] - 대한민국의 언어학자 [[허웅 (1918년)|허웅]]. (1918년~)
* [[2월 4일]] - 대한민국의 정치인 [[안상영]]. (1938년~)
* [[2월 13일]] - 이츠케리아 체첸 공화국의 2대 대통령 [[젤림한 얀다르비예프]]. (1952년~)
* [[2월 21일]] - 영국의 축구 선수, 축구 감독 [[존 찰스]]. (1931년~)
* [[3월 7일]] - 미국의 영화배우 [[폴 윈필드]]. (1939년~)
* [[3월 11일]] - 대한민국의 기업인 [[남상국 (1945년)|남상국]]. (1945년~)
* [[3월 20일]] - 네덜란드의 여왕 [[율리아나]]. (1909년~)
* [[4월 10일]] - 대한민국의 배우 [[독고성 (배우)|독고성]]. (1929년~)
* [[4월 11일]] - 대한민국의 배우 [[이미경]]. (1960년~)
* [[4월 29일]] - 대한민국의 정치인 [[박태영]]. (1941년~)
* [[5월 5일]] - 캐나다의 화제인물 [[데이비드 라이머]]. (1965년~)
* [[5월 24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의 [[모친]] [[고용희]]. (1952년~)
* [[5월 25일]] - 미국의 활동가, 저술가 [[데이비드 델린저]]. (1915년~)
* [[6월 4일]]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준원 (1953년)|이준원]]. (1953년~)
* [[6월 5일]] - 미국의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1911년~)
* [[6월 10일]] - 미국의 가수, 작사가 [[레이 찰스]]. (1930년~)
* [[6월 13일]] - 대한민국의 배우 [[김일우 (1953년)|김일우]]. (1953년~)
* [[6월 22일]] - 대한민국의 통역사 [[김선일]]. (1970년~)
* [[7월 1일]] - 미국의 배우 [[말런 브랜도]]. (1923년~)
* [[7월 19일]] - 일본의 정치인, 총리대신 [[스즈키 젠코]]. (1911년~)
* [[7월 20일]] - 대한민국의 제10대 대통령 [[최규하]]의 영부인 [[홍기 (1916년)|홍기]]. (1916년~)
* [[8월 4일]]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정은임]]. (1968년~)
* [[8월 9일]] - 대한민국의 모델 [[오지혜 (모델)|오지혜]]. (1986년~)
* [[8월 11일]] - 대한민국의 가수 [[서재호]]. (1981년~)
* [[8월 14일]] - 폴란드의 시인, 소설가 [[체스와프 미워시]]. (1911년~)
* [[8월 31일]] - 대한민국의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방화범 [[김대한 (범죄인)|김대한]]. (1947년~)
* [[9월 13일]] - 멕시코의 화학자, 경구피임약 발명가 [[루이스 미라몬테스]]. (1925년~)
* [[9월 24일]] - 미국의 프로레슬링 선수 [[레이 트레일러]]. (1963년~)
* [[9월 28일]] - 러시아의 극작가 [[빅토르 로조프]]. (1913년~)
* [[10월 3일]] - 미국의 배우 [[재닛 리]]. (1927년~)
* [[10월 7일]] - 일본의 가수 [[마츠바라 미키]]
* [[10월 9일]] -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 (1930년~)
* [[10월 10일]] - 미국의 영화배우 [[크리스토퍼 리브]]. (1952년~)
* [[10월 11일]] - 대한민국의 성우 [[장정진]]. (1953년~)
* [[11월 9일]] - 스웨덴의 언론인, 작가 [[스티그 라르손]]. (1954년~)
* [[11월 11일]] - 팔레스타인의 정치가 [[야세르 아라파트]]. (1968년~)
* [[12월 1일]] - 네덜란드의 군인 [[네덜란드 여왕 부군 베른하르트]]. (1911년~)
* [[12월 7일]] - 미국의 기업인 [[제이 밴앤덜]]. (1924년~)
* [[12월 8일]] - 미국의 기타리스트 [[다임백 대럴]]. (1966년~)
* [[12월 9일]]
** 대한민국의 기업인 [[이맹기]]. (1925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외교관 [[김동조]]. (191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민우]]. (1915년~)
4월 15일: 일본의 유명 만화가 요코야마 미츠테루 (1934년)
== 노벨상 ==
* '''경제학상''': [[핀 쉬들란]], [[에드워드 프레스콧]]
* '''문학상''': [[엘프리데 옐리네크]]
* '''물리학상''': [[데이비드 그로스]], [[데이비드 폴리처]], [[프랭크 윌첵]]
* '''생리학 및 의학상''': [[리처드 액설|리처드 액셀]], [[린다 B. 벅|린다 버크]]
* '''평화상''': [[왕가리 마타이]]
* '''화학상''': [[어윈 로즈]], [[아론 치카노베르]], [[아브람 헤르슈코]]
== 76회 [[아카데미상]] 수상 ==
* '''작품상''': [[반지의 제왕 영화 삼부작|반지의 제왕-왕의 귀환]]
* '''감독상''': [[피터 잭슨]]([[반지의 제왕 영화 삼부작|반지의 제왕-왕의 귀환]])
* '''남우주연상''': [[숀 펜]]([[미스틱 리버]])
* '''여우주연상''': [[샬리즈 시어런]]([[몬스터 (2003년 영화)|몬스터]])
* '''남우조연상''': [[팀 로빈스]]([[미스틱 리버]])
* '''여우조연상''': [[러네이 젤위거]]([[콜드 마운틴]])
== 달력 ==
{{연간달력|2004}}
===음양력 대조 일람===
{| class="wikitable"
|-
! 음력월 !! 월건 !! 대소 !! 음력 1일의<br />양력 월일 !! 음력 1일<br/>간지
|-
| [[음력 1월|1월]] || [[병인]] || 소 || [[1월 22일]] ||[[경자]]
|-
| [[음력 2월|2월]] || [[정묘]] || 대 || [[2월 20일]] || [[기사 (간지)|기사]]
|- style="background:#ddddff;"
| [[윤달|윤]]2월 || || 소 || [[3월 21일]] || [[기해]]
|-
| [[음력 3월|3월]] || [[무진]] || 대 || [[4월 19일]] || [[무진]]
|-
| [[음력 4월|4월]] || [[기사 (간지)|기사]] || 대 || [[5월 19일]] || [[무술 (간지)|무술]]
|-
| [[음력 5월|5월]] || [[경오]] || 소 || [[6월 18일]] || [[무진]]
|-
| [[음력 6월|6월]] || [[신미 (간지)|신미]] || 대 || [[7월 17일]] || [[정유 (간지)|정유]]
|-
| [[음력 7월|7월]] || [[임신 (간지)|임신]] || 소 || [[8월 16일]] || [[정묘]]
|-
| [[음력 8월|8월]] || [[계유]] || 대 || [[9월 14일]] || [[병신]]
|-
| [[음력 9월|9월]] || [[갑술]] || 소 || [[10월 14일]] || [[병인]]
|-
| [[음력 10월|10월]] || [[을해]] || 대 || [[11월 12일]] || [[을미]]
|-
| [[음력 11월|11월]] || [[병자]] || 소 || [[12월 12일]] || [[을축]]
|-
| [[음력 12월|12월]] || [[정축]] || 대 || [[2005년]] [[1월 10일]] || [[갑오]]
|}
{{전거 통제}}
[[분류:2004년|*]]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__NOTOC__
{{다른 뜻|한국의 산 목록 (북부 제외)}}
[[파일:산골짜기_1.jpg|400px|섬네일]]
[[파일:겨울_산.jpg|400px|섬네일]]
[[한국]]은 지형학상 [[산지]]가 국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북쪽에서 남쪽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고저의 차가 심하다. [[한반도|대한민국의 영토인 한반도]]에 위치한 [[산]]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은 [[백두산]]이며, [[대한민국|남한]]에서는 [[한라산]]이 가장 높다. 남한 내륙에서는 [[지리산]]이 가장 높다. 오래된 [[한국의 지질|기반암]]이 많은 한반도는 [[선캄브리아기]] 이후 오랜 기간 침식을 받아 산의 고도는 90% 이상이 2,000m 미만이다. 국가통계포털(KOSIS)의 국토지리정보현황 자료에 의하면 남한의 산은 8,751개이다.
다음은 '''한국의 산'''에 관한 목록이다.
== 개요 ==
{{참고|한국의 지질}}
[[한반도]]는 산지 면적이 전국토의 약 70% 이상(남한 69.4%)을 차지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높은 편은 아니다. 대부분의 산지의 높이는 2,000m 이하이며, 가장 높은 백두산이 2,744m, 남한의 최고봉인 한라산도 1,947.06m에 불과하다. 해발 1,000m 이상의 고지대는 국토의 약 10%이며, 200~500m의 저산성 산지가 약 40% 이상을 차지한다.
남한 본토(내륙)에서 가장 높은 산은 지리산천왕봉으로 높이가 1,915m이다.
산지의 높이는 북쪽과 동쪽으로 감에 따라 높아지고 험하다. 따라서 한반도의 산지는 북쪽과동쪽의 높은 산지와 서쪽과 남쪽의 비교적 낮은 구릉성 산지로 구분되며, 남서쪽으로 완만히기울어지는 '경동성 지형'을 이루고 있다.
한반는 오랫동안 침식을 받아 전반적으로 낮고 편평했으나, 단층 요곡 운동과 함께 융기 운동을 받아 현재와 같은 지형이 형성되었다. 특히 북동쪽은 융기가 크게 나타나 높고 험한 산지를 이루었다. 비교적 높은 곳에 융기 이전의 평탄한 면인 '고위 평탄면'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오랫동안 산이 깎이고 쌓여서 준평원이 다시 지각 운동으로 인하여 몇 차례 솟아오르며, 단단한 부분이 그대로 굳어 버린 것으로 개마고원 지대에 가장 넓게 분포한다. 그리고 태백산맥의 대관령 부근과 삼척 부근을 비롯한 여러 곳에 남아 있다.
== [[산경표]] ==
{{본문|산경표|백두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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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 [[백두대간]]
* [[한국의 산맥]]
* [[한국의 고개]]
* [[오름]]
== 각주 ==
{{각주}}
== 참고 자료 ==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산경표}}
[[분류:한국의 산| ]]
[[분류:한반도]]
[[분류:산 목록]]
[[분류:한국의 지리]]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한국의 산맥'''(韓國-山脈)은 [[한반도]]에 있는 [[산맥]]을 지칭한다. 한국의 산맥은 고토 분지로의 지질학적 분류와 [[신경주]]의 [[산경표]]에 따른 수계학적 분류가 있다.
== 역사 ==
통일신라후기 [[도선]](道詵, 827~898)의 옥룡기(玉龍記)에서는 '우리나라의 지맥은 [[백두산]]에서 일어나 [[지리산]]에서 그치는데, 그 산세는 뿌리에 물을 품은 나무줄기의 지형을 갖추고 있다.'(我國始干白頭終于智異 其勢水根木幹之地)며, 한반도를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하였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백두산을 국토의 조종(祖宗)으로 보고 도읍지를 국토의 중심(中心)으로 보는 관점이 자리잡았다. [[신경준]]은 [[백두대간]]으로 대표되는 [[산경표]] 체계를 만들어 하천의 수계를 기준으로 산줄기를 분류하였다.<ref name = "국토연구원">{{웹 인용 |제목=한반도 산맥체계 재정립 연구 : 산줄기 분석을 중심으로 |url=https://www.krihs.re.kr/publica/reportView.es?mid=a10102000000&pageIndex=1&searchKeyword=%EC%82%B0%EC%A4%84%EA%B8%B0&num=000000516965 |출판사=[[국토연구원]] |날짜=2004년 12월 31일}}</ref>
== 지질학적 분류 ==
{{참고|한국의 지질|한국의 단층}}
다음은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1907)에 의한 분류이다.
* 한국 방향: 마천령·낭림ㆍ태백-남남동으로 한반도의 방향과 거의 일치하며, 단층 구조를 이루어 동해사면은 경사가 급하고 황해사면은 경사가 완만하다.
* 랴오둥 방향: 강남·함경·적유령·묘향·언진·멸악산맥 등과 같이 동북동-서남서의 방향이며, 주로 습곡구조이다. 특히 북부지방에 잘 발달되어 있다.
* 중국 방향: 광주·차령·소백·노령산맥 등과 같이 북북동-남남서로 뻗은 산맥이다. 주로 습곡 구조이며 대개 노년기 산지로 곳곳에 잔구가 남아 있다.
* 랴오둥 방향
** [[강남산맥]]
** [[함경산맥]]
** [[적유령산맥]]
** [[묘향산맥]]
** [[언진산맥]]
** [[멸악산맥]]
* 중국 방향
** [[마식령산맥]]
** [[광주산맥]]
** [[차령산맥]]
** [[소백산맥]]
** [[노령산맥]]
* 한반도 방향
** [[마천령산맥]]
** [[랑림산맥|낭림산맥]]
** [[태백산맥]]
그러나 [[국토연구원]]의 보고서(2004)에서는 고토 분지로의 산맥 체계를 [[한국의 지질]] 현황과 비교 분석하고, [[한국의 지질]]과 [[단층]]과는 전혀 상관없이 산맥이 지나고 있다고 하여 위 산맥체계가 지질자료를 근거로 설정되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대표적으로 [[태백산맥]]은 [[중생대]] [[대보 화강암]], [[경상 누층군]], [[신생대]] [[연일층군]] 등이 서로 교차하는 지역을 관통한다. 산맥의 대부분은 [[한국의 단층]]선과는 전혀 무관하게 설정되어 있다.<ref name = "국토연구원" />
==[[산경표]]에 따른 분류==
{{본문|산경표}}
[[파일:Nakdongjeongmaek.jpg|섬네일|400px|[[낙동정맥]]]]
# [[백두대간]]
# [[장백정간]]
# [[청북정맥]]
# [[청남정맥]]
# [[해서정맥]]
# [[임진북예성남정맥]]
# [[한북정맥]]
# [[한남금북정맥]]
# [[한남정맥]]
# [[금북정맥]]
# [[금남호남정맥]]
# [[금남정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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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남정맥]]
# [[낙동정맥]]
== 같이 보기 ==
* [[한국의 산]]
* [[산경표]]
== 각주 ==
<references />
== 참고 자료 ==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산경표}}
[[분류:한국의 산맥|*]]
[[분류:한국의 지리]]
[[분류:한반도]]
[[분류:산경표]]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지리|지형학적]]으로 산이 국토에 차지하는 면적이 매우 큰 까닭으로 산악 지형의 한 특징인 동굴을 적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한반도의 산맥 형성이 북쪽과 동쪽에서 남서쪽으로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동굴은 남한에서는 [[강원특별자치도]]에 밀집하여 있다. 그리고 [[화산]]에 의해 생긴 [[제주도]]에 역시 긴 동굴들을 찾아 볼 수 있다. 더군다나 몇몇 동굴들에서는 오늘날 [[한국의 선사시대]]의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 지역별 동굴 ==
아래 목록은 대한민국의 동굴들을 지역별로 분류한 것이다. 그러나 이 목록에 기재되지 않은 동굴도 많으므로 정확하지 않다.
=== 강원특별자치도 ===
* [[고씨굴|고씨동굴]]: [[영월군]]
* [[대야동굴]]
* [[동대동굴]]
* [[백룡동굴]]: [[평창군]]
* [[비룡동굴]]
* [[비선동굴]]
* [[서대동굴]]
* [[연하동굴]]
* [[옥계동굴]]: [[강릉시]]
* [[용연동굴]]
* [[월둔동굴]]
* [[용담동굴]]
* [[저승동굴]]
* [[초당동굴]]: [[삼척시]]
* [[화암동굴]]
* [[활기동굴]]
=== 제주특별자치도 ===
* [[만장동굴]]
* [[김녕동굴]]
* [[협재동굴]]
* [[제주 어음리 빌레못동굴|빌레못동굴]]
* [[미천동굴]]
* [[쌍용동굴]]
* [[용천동굴]]
=== 충청북도 ===
* [[고수동굴]]: [[단양군]]
* [[노동동굴]]: [[단양군]]
=== 전북특별자치도 ===
* [[천호동굴]]: [[익산시]]
* [[화순동굴]]: [[익산시]]
== 선사시대 유적 동굴 ==
* [[제주 어음리 빌레못동굴|빌레못 동굴]]: [[제주도]]
* 화순동굴: [[전라북도]] 익산시
== 외부 링크 ==
* [https://web.archive.org/web/20070928001641/http://www.koreacave.org/korean/main.htm 한국 동굴 연구소 홈페이지]
== 같이 보기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동굴 목록]]
{{색인 모음 문서}}
[[분류:나라별 동굴 목록]]
[[분류:대한민국의 동굴|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파일:Korea rivers (ko).svg|섬네일|250px|한국의 주요 강]]
'''한국의 하천'''은 분수령이 동해안 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은 짧고 급류가 많으나, 서쪽 또는 서남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완만하고 길다. 대개 하천은 노년곡과 [[준평원]]상을 흘러 경사가 극도로 완만한 평형 하천을 이루며, 오랫동안의 침식으로 중류와 하류에 침식 분지와 [[범람원]]·[[자연제방]] 등이 발달하고, 상류에는 [[하안단구]]를 이루는 곳이 많다. 계절에 따른 [[강수량]] 분포가 고르지 못하여 우량의 변화가 매우 커서 하천의 개발 이용이 곤란하며 특히 하기의 집중적인 호우로 [[화강암]] 산지에서 [[풍화]]된 토사의 유출이 많아 이것이 하저에 퇴적되어 하상을 높여 잦은 [[홍수]]를 유발한다.<ref>{{서적 인용|url=|제목=수문학|저자1=이재수|이름=|날짜=2018|판=2|출판사=구미서관|쪽=11|isbn=9788982252914}}</ref>
== 하천 구분 ==
대한민국에서 하천은 [http://www.law.go.kr/%EB%B2%95%EB%A0%B9/%ED%95%98%EC%B2%9C%EB%B2%95 하천법]에 의한 국가하천과 지방하천, 그리고 소하천정비법에 의한 소하천으로 구분하고 있다.
{| align="right"
|-
| {{하천명 표지|국가하천}}
|}
; 국가하천
국가하천은 국토보전상 또는 대한민국 국민 경제상 중요한 하천으로, [[대한민국의 국토교통부 장관|국토교통부장관]]이 아래 사항 중 하나에 해당하면 국가하천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 유역면적 합계가 200km<sup>2</sup> 이상인 하천
# [[다목적댐]]의 하류 및 [[댐]] 저수지로 인한 배수영향이 미치는 상류의 하천
# 유역면적 합계가 50km<sup>2</sup> 이상 200km<sup>2</sup> 미만인 하천으로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하천
## 인구 20만명 이상의 도시를 지나거나 범람구역 안의 인구가 1만명 이상인 지역을 지나는 하천
## 다목적댐, 하구둑 등 저수량 500만m<sup>3</sup> 이상의 저류지를 갖추고 국가적 물 이용이 이루어지는 하천
## 상수원보호구역, 국립공원,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문화재보호구역, 생태·습지보호지역을 지나는 하천
# 범람으로 인한 피해, 하천시설 또는 하천공작물의 안전도 등을 고려하여 [[행정명령|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하천
하천법 7조 2항 4호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하천은 다음 각 호의 사항을 고려하여 국토교통부 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하천이다.
# '[[수자원]]의 조사, 계획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홍수 위험지도 및 하천유역[[수자원]]관리계획
# 자연재해대책법에 따른 재해지도
# 최근 10년 간 홍수피해 이력 및 규모
{| align="right"
|-
| {{하천명 표지|지방하천}}
|}
; 지방하천
지방하천은 지방의 공공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하천으로서 시장 또는 도지사가 그 명칭과 구간을 지정하는 하천을 말하며, 시장 또는 도지사가 하천을 관리한다.
지방하천을 지정할 때는 국가하천과 연결될 경우 국가하천의 종점과 지방하천의 기점이 일치해야 하며, 지방하천이 다른 지방하천과 연접할 경우 연접하는 다른 지방하천의 기점과 종점이 일치해야 한다. 또한 하나의 하천을 2개 이상의 명칭으로 지정할 수 없으며, 공유수면의 매립 등으로 해안선이 변경될 경우 하천의 종점이 변경된다. 만약 기존 지방하천이 국가하천으로 지정될 경우 지방하천의 효력을 잃게 된다.
{| align="right"
|-
| {{하천명 표지|소하천}}
|}
; 소하천
소하천은 국가하천 또는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지 않은 하천으로, 일시적이 아닌 유수(流水)가 있거나 또는 있을 것이 예상되는 구역으로서 평균 하천 폭이 2m 이상이고 시점에서 종점까지 전체길이가 500m 이상인 하천을 말한다.<ref>{{웹 인용|url=http://www.law.go.kr/%EB%B2%95%EB%A0%B9/%EC%86%8C%ED%95%98%EC%B2%9C%EC%A0%95%EB%B9%84%EB%B2%95%EC%8B%9C%ED%96%89%EB%A0%B9|제목=소하천정비법 시행령|성=|이름=|날짜=2017-07-26|웹사이트=국가법령정보센터|출판사=|확인날짜=2019-09-16}}</ref> 소하천은 국가하천과 지방하천과 달리 하천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며 소하천 만을 다루는 [http://www.law.go.kr/%EB%B2%95%EB%A0%B9/%EC%86%8C%ED%95%98%EC%B2%9C%EC%A0%95%EB%B9%84%EB%B2%95 소하천정비법]을 따른다. 소하천의 지정은 특별자치도지사, 시장, 군수 또는 자치구 구청장이 할 수 있으며, 만약 기존 소하천을 특별시장, 광역시장, 도지사 또는 특별자치도지사가 지방하천으로 지정할 경우 소하천의 효력을 잃게 된다.
== 하천기본계획 ==
대한민국 하천법 25조에 따라 하천관리청은 자신이 관할하는 하천에 대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10년 단위로 하천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내용은 하천 이용, 자연친화적 관리, 보전에 필요한 기본사항들이다. 구체적으로는 아래와 같다.
# 하천기본계획의 목표
# 하천의 개황(槪況)에 관한 다음 각 목의 사항
## 유역의 특성 등 일반현황
## 강우ㆍ기상 등 자연조건
## 하천의 수질 및 생태
## 수해 및 가뭄의 피해현황
## 하천수의 이용현황
## 하천유역의 지형ㆍ지물 등을 파악하기 위한 측량기준점에 관한 사항
# 제방ㆍ댐ㆍ저류지ㆍ홍수조절지ㆍ방수로 등 홍수방어시설의 홍수방어계획
# 토지이용계획 등에 따른 홍수방어계획
# 홍수방어계획의 연차별 시행 방안
# 하천공사의 시행에 관한 다음 각 목의 사항
## 기본홍수량(제방ㆍ댐ㆍ저류지ㆍ홍수조절지ㆍ방수로 등 홍수방어시설의 홍수조절계획을 반영하지 아니한 자연상태의 홍수량을 말한다) 및 홍수량의 배분에 관한 사항
## 계획홍수량
## 계획홍수위
## 계획하폭 및 그 경계
## 하도(河道)와 유황(流況)의 개선
# 하천구역 및 홍수관리구역의 결정을 위한 기초자료의 제공에 관한 사항
# 자연친화적 하천 조성에 관한 사항
#:8의2. 법 제84조제1항에 따른 폐천부지등의 보전 및 활용에 관한 사항
# 그 밖에 하천의 환경보전과 적절한 이용에 관한 사항
== 홍수 ==
2020년 8월 기준, 전국 홍수 피해의 98%는 소하천에서 발생한다. 2018년 12월 31일 기준, 지방하천 정비율은 48.07%<ref name=":0">{{서적 인용|제목=한국하천일람|성=국토교통부|이름=|날짜=2018-12-31|판=|출판사=|쪽=|장=}}</ref>이며 지방정부가 관리하는데 예산 부족으로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2018-2019년 [[수해]]를 입은 하천 중 98.4%는 지방하천이었다. 2018년 12월 31일 기준 국가하천 정비율은 81.41%이다.<ref>{{뉴스 인용|url=http://www.cnews.co.kr/uhtml/read.jsp?idxno=202008131424537020252|제목=550㎜ 물폭탄에 멀쩡 산청군의 ‘치수평천하’|성=최지희|이름=|날짜=2020-08-14|뉴스=|출판사=건설경제신문|확인날짜=2020-08-17}}</ref><ref name=":0" />
== 주요 하천 ==
*길이 순
** [[압록강]] (808km)
** [[두만강]] (525km)
** [[낙동강]] (517km)
** [[한강]] (514km)
** [[대동강]] (430km)
** [[금강]] (401km)
** [[섬진강]] (212km)
== 흐르는 방향별 하천 ==
{{col-begin}}
{{col-4}}
* [[황해]]로 흐르는 강
** [[금강]]
** [[대동강]]
** [[보통강]]
** [[합장강]]
** [[남강 (평안남도)]]
** [[예성강]]
** [[한다리내]]
** [[정자천]]
** [[루천]]
** [[오조천]]
** [[재령강]]
** [[동진강]]
** [[만경강]]
** [[발안천]]
** [[안성천]]
** [[압록강]]
** [[영산강]]
** [[황룡강]]
** [[임진강]]
** [[한탄강]]
** [[청천강]]
** [[대령강]]
** [[한강]]
** [[경안천]]
** [[능원천]]
** [[양지천]]
** [[운학천]]
** [[공릉천]]
** [[나진포천]]
** [[남한강]]
** [[섬강]]
** [[복하천]]
** [[청미천]]
** [[달천]]
** [[동강]]
** [[서강]]
** [[평창강]]
** [[북한강]]
** [[홍천강]]
** [[소양강]]
** [[안양천]]
** [[도림천]]
** [[중랑천]]
** [[청계천]]
** [[창능천]]
** [[탄천]]
** [[양재천]]
** [[여수천]]
** [[분당천]]
** [[풍덕천]]
{{col-4}}
* [[동해]]로 흐르는 강
** [[관성천]]
** [[금야강]]
** [[남강 (강원도)|남강]]
** [[남대천]]
** [[두만강]]
** [[북대천]]
** [[성천강]]
** [[수성천]]
** [[신명천]]
** [[어랑천]]
** [[어물천]]
** [[방방천]]
** [[오십천]]
** [[왕피천]]
** [[외황강]]
** [[청량천]]
** [[두왕천]]
** [[남천]]
** [[장안천]]
** [[용소천]]
** [[정자천]]
** [[무룡천]]
** [[태화강]]
** [[국수천]]
** [[대곡천]]
** [[구량천]]
** [[미호강]]
** [[동천강]]
** [[송정천]]
** [[동천]]
** [[명촌천]]
** [[양정천]]
** [[진장천]]
** [[무법천]]
** [[상천천]]
** [[작천천]]
** [[가천천]]
** [[여천천]]
** [[척동천]]
** [[하서천]]
** [[형산강]]
** [[기계천]]
** [[북천]]
** [[회야강]]
** [[남창천]]
** [[대북천]]
** [[주남천]]
** [[천곡천]]
** [[효암천]]
** [[화산천]]
{{col-4}}
* [[남해]]로 흐르는 강
** [[남강 (경상남도)]]
** [[경호강]]
** [[밀양강]]
** [[서낙동강]]
** [[영강]]
** [[황강]]
** [[섬진강]]
** [[보성강]]
{{col-4}}
* [[만주]] 방향으로 흐르는 강<ref>http://weekly.khan.co.kr/khnm.html?www&mode=view&art_id=200910071103201&dept=116</ref><ref>{{웹 인용 |url=http://pds.nktech.net/book.jsp |제목=백두산총서(수문) 109페이지 |확인날짜=2018-02-21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80222043911/http://pds.nktech.net/book.jsp |보존날짜=2018-02-22 |url-status=dead }}</ref>
** [[삼도백하]]
** [[백두천]]
{{col-end}}
== 같이 보기 ==
* [[대한민국의 국가하천 목록]]
== 참고 자료 ==
*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 {{서적 인용|제목=하천공학|날짜=2010|성=이종형 외|이름=|출판사=구미서관|쪽=|판=|장=하천과 하천공학}}
== 각주 ==
{{각주}}
[[분류:한국의 강| ]]
[[분류:한국의 지리에 관한 목록|강]]
[[분류:강 목록]]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한국]]의 [[섬]] 목록'''은 [[대한민국]] 및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섬의 목록이다.
== 대한민국의 섬 목록 ==
=== 도서 분포 현황 ===
* 출처 : [http://www.coast.kr/portal/html/stat/Stat_Graph.asp?info_code=040&info_Name=%B5%B5%BC%AD%BA%D0%C6%F7&Curpage=M1_3 해양수산부 연안포탈] {{웨이백|url=http://www.coast.kr/portal/html/stat/Stat_Graph.asp?info_code=040&info_Name=%B5%B5%BC%AD%BA%D0%C6%F7&Curpage=M1_3 |date=20071023172344 }}
* 면적 단위 : (km<sup>2</sup>)
{| class="wikitable" style="font-size:90%"
|-
! rowspan=3 align=center | 광역시/도
! rowspan=3 align=center | 해안선<br /> 연장 (km<sup>2</sup>)
! colspan=6 align=center | 도서부
! colspan=2 align=center | 유인도서
|-
! colspan=2 align=center | 계
! colspan=2 align=center | 유인 도서
! colspan=2 align=center | 무인 도서
! rowspan=2 align=center | 가구수<br /> (가구)
! rowspan=2 align=center | 인구수<br />
|-
! align=center width=55 | 개소
! align=center width=55 | 면적
! align=center width=55 | 개소
! align=center width=55 | 면적
! align=center width=55 | 개소
! align=center width=55 | 면적
|-
| [[인천광역시]]
| align=right | 880.30
| align=right | 154
| align=right | 687.02
| align=right | 42
| align=right | 680.91
| align=right | 112
| align=right | 6.11
| align=right | 33,046
| align=right | 94,172
|-
| [[경기도]]
| align=right | 303.57
| align=right | 65
| align=right | 44.57
| align=right | 11
| align=right | 43.74
| align=right | 54
| align=right | 0.83
| align=right | 2,768
| align=right | 7,215
|-
| [[충청남도]]
| align=right | 1,204.60
| align=right | 261
| align=right | 163.01
| align=right | 37
| align=right | 150.48
| align=right | 224
| align=right | 12.54
| align=right | 6,867
| align=right | 20,26
|-
| [[전북특별자치도]]
| align=right | 301.70
| align=right | 109
| align=right | 37.95
| align=right | 26
| align=right | 35.31
| align=right | 83
| align=right | 2.64
| align=right | 1,985
| align=right | 6,468
|-
| [[전라남도]]
| align=right | 5,554.90
| align=right | 2210
| align=right | 1,836.49
| align=right | 278
| align=right | 1,790.55
| align=right | 1,688
| align=right | 45.92
| align=right | 78,071
| align=right | 219,542
|-
| [[경상남도]]
| align=right | 2,173.64
| align=right | 428
| align=right | 930.05
| align=right | 82
| align=right | 918.21
| align=right | 346
| align=right | 11.84
| align=right | 99,673
| align=right | 313,551
|-
| [[부산광역시]]
| align=right | 313.92
| align=right | 82
| align=right | 75.80
| align=right | 6
| align=right | 69.16
| align=right | 76
| align=right | 6.64
| align=right | 119,402
| align=right | 384,366
|-
| [[울산광역시]]
| align=right | 135.83
| align=right | 8
| align=right | 0.09
| align=right | -
| align=right | -
| align=right | 8
| align=right | 0.09
| align=right | -
| align=right | -
|-
| [[경상북도]]
| align=right | 428.00
| align=right | 47
| align=right | 73.73
| align=right | 4
| align=right | 73.60
| align=right | 43
| align=right | 0.13
| align=right | 3,840
| align=right | 10,426
|-
| [[강원특별자치도]]
| align=right | 318.10
| align=right | 32
| align=right | 0.26
| align=right | -
| align=right | -
| align=right | 32
| align=right | 0.26
| align=right | -
| align=right | -
|-
| [[제주특별자치도]]
| align=right | 419.95
| align=right | 63
| align=right | 15.45
| align=right | 8
| align=right | 13.80
| align=right | 55
| align=right | 1.65
| align=right | 2,232
| align=right | 5,98
|-
| 총계
| align=right | 12,035
| align=right | 3,215
| align=right | 3,824
| align=right | 494
| align=right | 3,736
| align=right | 2,721
| align=right | 89
| align=right | 347,884
| align=right | 1,061,984
|-
|}
=== 면적 순 섬 목록 ===
* 출처 : 2012년 지적통계연보<ref>{{웹 인용|url=http://www.molit.go.kr/portal/common/download/DownloadMltm2.jsp?FilePath=/upload/portal/DextUpload/201204/20120418_143412_203.hwp&FileName=120417(%C1%B6%B0%A3)_2012%B3%E2%B5%B5_%C1%F6%C0%FB%C5%EB%B0%E8%BF%AC%BA%B8_%B9%DF%B0%A3(%C1%F6%C0%FB%B1%E2%C8%B9%B0%FA1).hwp |제목=120417(조간)_2012년도_지적통계연보_발간(지적기획과1) |date=2012년 4월 16일|format=HWP |accessdate=2013년 5월 13일 }}</ref>
* 면적 단위 : (km<sup>2</sup>)
{| class="wikitable sortable"
|-
! 순위 !! 섬 이름 !! 소재지 !! 면적
|-
| 1 || [[제주도]] || [[제주특별자치도]] || 1,833.162
|-
| 2 || [[거제도]] || [[경상남도]] [[거제시]] || 382.2<ref>[https://data.geoje.go.kr/board/list.geoje?boardId=BBS_0000010&categoryCode1=CATE1&menuCd=DOM_000000203001000000&contentsSid=94 제27회 거제시 통계연보 출처(2021년 기준)], 2013년 이후 지적통계연보 상의 도서(섬) 크기 통계자료가 제외됨</ref>
|-
| 3 || [[진도 (진도군)|진도]] || [[전라남도]] [[진도군]] || 374.981
|-
| 4 || [[강화도]] || [[인천광역시]] [[강화군]] || 302.582
|-
| 5 || [[남해도]] || 경상남도 [[남해군]] || 300.935
|-
| 6 || [[영종도|영종용유도]] || 인천광역시 [[중구 (인천광역시)|중구]] || 115.52<ref>[https://www.data.go.kr/data/15077426/fileData.do?recommendDataYn=Y 인천광역시 법정동별 데이터], 20240731. 2012년 지적통계연보 기준으로는 97.48km<sup>2</sup>.</ref>
|-
| 7 || [[안면도]] || [[충청남도]] [[태안군]] || 113.460
|-
| 8 || [[완도]] || 전라남도 [[완도군]] || 90.074
|-
| 9 || [[울릉도]] || [[경상북도]] [[울릉군]] || 72.861
|-
| 10 || [[돌산도]] || 전라남도 [[여수시]] || 70.307
|-
| 11 || [[거금도]] || 전라남도 [[고흥군]] || 64.765
|-
| 12 || [[지도 (신안군)|지도]] || 전라남도 [[신안군]] || 54.703
|-
| 13 || [[창선도]] || 경상남도 남해군 || 54.127
|-
| 14 || [[자은도]] || 전라남도 신안군 || 52.193
|-
| 15 || [[백령도]] || [[인천광역시]] [[옹진군 (인천광역시)|옹진군]] || 51.086
|-
| 16 || [[압해도]] || 전라남도 신안군 || 49.232
|-
| 17 || [[안좌도]] || 전라남도 신안군 || 48.923
|-
| 18 || [[교동도]] || 인천광역시 강화군 || 47.141
|-
| 19 || [[비금도]] || 전라남도 신안군 || 46.249
|-
| 20 || [[고금도]] || 전라남도 완도군 || 45.558
|-
| 21 || [[도초도]] || 전라남도 신안군 || 43.398
|-
| 22 || [[석모도]] || 인천광역시 강화군 || 42.344
|-
| 23 || [[임자도]] || 전라남도 신안군 || 40.049
|-
| 24 || [[암태도]] || 전라남도 신안군 || 37.251
|-
| 25 || [[청산도]] || 전라남도 완도군 || 32.963
|-
| 26 || [[보길도]] || 전라남도 완도군 || 32.142
|-
| 27 || [[신의도]] || 전라남도 신안군 || 31.668
|-
| 28 || [[신지도]] || 전라남도 완도군 || 30.832
|-
| 29 || [[조약도]] || 전라남도 완도군 || 28.701
|-
| 30 || [[금오도]] || 전라남도 여수시 || 27.508
|}
=== 그 밖의 주요 섬 ===
* [[가덕도]]
* [[교동도]]
* [[금호도]]
* [[내나로도]]
* [[노화읍|노화도]]
* [[대흑산도]]
* [[덕적도]]
* [[사옥도]]
* [[소안도]]
* [[영도]]
* [[영흥도]]
* [[외나로도]]
* [[장산도]]
* [[증도]]
* 대도
* [[죽도 (홍성군)|죽도]]
* [[팔금도]]
* [[평일도]]
* [[하도 (통영시)|하도]]
* [[하의도]]
* [[하조도]]
* [[한산도]]
* [[흑산도]]
==== 국토 끝섬 ====
* 최동단 - [[독도]]
* 최서단 - [[연평도]]
* 최남단 - [[마라도]]
* 최북단 - [[백령도]]
==== [[하중도]] ====
* [[한강]]
** [[서울특별시]] - [[여의도]], [[밤섬]], [[노들섬]], [[선유도공원|선유도]], [[난지도]]
** [[강원특별자치도]] - [[남이섬]], [[붓꽃섬]], [[중도 (섬)|중도]]
* [[낙동강]]
** [[부산광역시]] - [[을숙도]]
=== 통계상 섬으로 인정되지 않는 주요 인공섬 ===
* [[김포반도]]
* [[미륵도]]
* [[송도국제도시]]
* [[마산해양신도시]]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섬 목록 ==
=== [[강원도 (북)|강원도]] ===
* [[국도 (통천군)|국도]](國島, [[통천군]])
* [[삼도 (통천군)|삼도]](三島)
* [[송도 (고성군)|송도]](松島, [[고성군 (북)|고성군]])
=== [[평안남도]] ===
* [[초도 (서해)|초도]](椒島, [[남포시]])
* [[덕도]](德島, [[남포시]])
* [[상취라도]](上吹螺島, [[온천군]])
* [[피도 (용강군)|피도]](避島, [[남포시]])
* [[하취라도]](下吹螺島, [[온천군]])
=== [[평안북도]] ===
* [[가도 (철산군)|가도]](椵島, [[철산군]])
* [[납도]](蠟島, [[선천군]])
* [[대감도]](大甘島, [[곽산군]])
* [[대화도]](大和島, [[철산군]])
* [[반성렬도|반성열도]](盤城列島, [[철산군]])
* [[삼차도]](參瑳島, [[철산군]])
* [[소감도]](小甘島, [[곽산군]])
* [[소랍도]](小蠟島, [[선천군]])
* [[소화도 (평안북도)|소화도]](小和島, [[철산군]])
* [[신미도]](身彌島, [[선천군]])
* 애도(艾島, [[정주시]])
* [[우리도]](牛里島, [[철산군]])
* [[운무도]](雲霧島, [[정주시]])
* [[탄도]](炭島, [[철산군]])
==== [[하중도]] ====
* [[압록강]]
** [[관마도]](官馬島, [[의주군]]) - [[구리도]](九里島)의 부속섬. 섬의 서쪽에 소관마도(小官馬島, 새알섬)가 있다.
** [[구리도]](九里島, [[의주군]])
** [[다지도]](多智島, 북부 [[의주군]], 남부 [[신의주시]]) - 옛 '''검동도'''(黔同島), 난자도(蘭子島), 다지도(多智島), 마도(麻島) 등이 퇴적으로 합쳐진 섬.
** [[동류초도]](東柳草島, [[신의주시]])
** [[류초도]](柳草島, [[신의주시]])
** [[비단섬]](緋緞島, [[신도군]]) - 신도(薪島)와 [[마안도]](馬鞍島) 등을 [[1958년]]에 둑으로 연결하여 만든 인공섬.
*** [[마안도]](馬鞍島, [[신도군]]) - [[한국]]의 가장 서쪽 땅.
** [[수구도]](水口島, [[의주군]]) - 섬의 동서쪽 양 끝이 중국 영토와 붙어 있다.
** [[어적도]](於赤島, [[의주군]]) - 옛 어적도와 승아도(勝阿島)가 퇴적으로 합쳐진 섬.
** [[위화도]](威化島, [[신의주시]]) - [[조선 태조]]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고 [[조선 왕조]]를 개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 [[임도 (신의주시)|임도]](荏島, [[신의주시]]) - 옛 임도와 그 서쪽의 신도(薪島)가 퇴적으로 합쳐진 섬.
** [[황금평]](黃金坪, [[신도군]]) - 옛 이름은 황초평(黃草坪)으로, 중국 영토와 붙어 있다.
=== [[함경남도]] ===
* [[금초도]](金椒島)
* [[대저도]](大猪島)
* [[마양도]](馬養島)
* [[소저도]](小猪島)
* [[신도 (원산시)|신도]](薪島)
* [[여도]](麗島)
* [[웅도]](熊島)
* [[화도 (함경남도)|화도]](花島)
* [[황토도]](黃土島)
=== [[함경북도]] ===
* [[난도]](卵島)
* [[대초도]](大草島)
* [[소초도]](小草島)
* [[쌍도]](雙島)
* [[양도 (길주군)|양도]](洋島)
* [[적도 (경흥군)|적도]](赤島)
* [[피도 (경흥군)|피도]](避島)
==== [[하중도]] ====
* [[두만강]]
** 큰섬 ([[라선특별시]])
** [[류다섬]](柳多島, [[경원군 (함경북도)|경원군]])
** [[매기도]](每基島, [[경원군 (함경북도)|경원군]])
=== [[황해남도]] ===
* [[기린도]](麒麟島)
* [[대수압도]](大睡鴨島)
* [[마합도]](麻哈島)
* [[무도 (섬)|무도]](茂島)
* [[석도 (섬)|석도]](席島)
* [[소수압도]](小睡鴨島)
* [[순위도]](巡威島)
* [[어화도]](漁化島)
* [[용매도]](龍媒島)
* [[용호도]](龍湖島)
* [[월내도]](月乃島)
* [[창린도]](昌麟島)
=== 섬 인정 여부가 애매한 주요 인공섬 ===
* [[보통강구역]]
== 각주&참고 문헌 ==
{{각주}}
* [[한국의 해안]]
* [[하중도]]
[[분류:한국의 섬| ]]
[[분류:나라별 섬 목록]]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음은 '''한국의 고적지''' 목록이다.
== 시대/국가 별 고적지 ==
=== 선사시대 ===
* [[한국 선사시대 유적지]]
===고구려===
* [[아차산성]]
* [[오녀산성]]
===백제===
* [[낙화암]]
===신라===
* [[불국사]]
* [[석굴암]]
===고려시대===
* [[만월대]]
===조선시대===
* [[경복궁]]
* [[창덕궁]]
* [[종묘]]
* [[덕수궁]]
* [[동대문]]
* [[남대문]]
* [[서대문]]
== 같이 보기 ==
* [[한국의 고분]]
== 외부 링크 ==
* [https://web.archive.org/web/20050305110653/http://hyangto.pe.kr/ 향토 문화 자료실]
* [http://www.google.at/url?sa=U&start=54&q=http://www.ggcf.or.kr/Open_bbs/kcf_pubnews_View.asp%3Fidx%3D764&e=10012 경기 문화재단]
{{토막글|한국 문화}}
[[분류:한국에 관한 목록]]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한국의 명절'''은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중국]]·[[베트남]]·[[일본]]의 [[명절]]과 겹치는 날이 많다.
== 개요 ==
한자 문화권의 다른 명절처럼 중양(重陽)에 드는 때가 많다. [[음양|양(陽)]]이란 수(數)에서 [[홀수]]를 가리키며, 중(重)은 수가 겹칩을 뜻한다. 이에 따라 중양(重陽)은 1월 1일 및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을 가리키며, 특히 음력 9월 9일을 중양절이라 한다. 또한 보름달이 뜨는 날을 명절도 삼은 때도 역시 많아서 1월, 6월, 7월, 8월, 10월의 보름이 명절이다.
이와 같은 명절은 대개 보름마다 한 번씩 있는 절기(節氣)와는 구분되는 것으로 계절에 따라 뜻깊은 날을 정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음력 1월의 설과 대보름, 음력 8월의 추석 외에는 대부분 명절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이것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옮겨옴에 따라 생겨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목록==
아래는 한국의 명절 목록이다. 음력으로 기념되는 전통 명절과 양력이 도입되고 기념되는 명절 전부를 기재한다.
* [[새해 첫날]] : 양력 [[1월 1일]], 양력설
* [[설날 (한국)|설날]] : [[음력 1월 1일]]
* [[정월 대보름]] : [[음력 1월 15일]]. 상원(上元)
* [[영등날]] : [[음력 2월 1일]]
* [[삼짇날]] : [[음력 3월 3일]]
* [[한국의 단오|단오]] : [[음력 5월 5일]]
* [[유두 (명절)|유두]] : [[음력 6월 15일]]
* [[칠석]] : [[음력 7월 7일]]
* [[백중날]] : [[음력 7월 15일]]. 중원(中元)
* [[추석]] : [[음력 8월 15일]], 한국 최대의 명절
* [[중양절]] : [[음력 9월 9일]]
* [[시월보름]] : [[음력 10월 15일]]. 하원(下元)
* [[동지]] : [[12월 22일|양력 12월 22일]]경.<ref>[[윤년]]의 경우는 [[12월 21일|양력 12월 21일]]이다.</ref> [[음력 11월]]에 들며, [[24절기]] 가운데 하나이다.
* [[섣달그믐]] : [[음력 12월 29일]] 또는 [[음력 12월 30일|30일]]. [[대한민국]]에서는 섣달그믐 이튿날이 설날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주로 설 연휴의 첫째 날이다. “까치 설날”이라고도 부른다.(까치는 설빔을 뜻하는 말이라서 까치 설날은 어저께라고 하는 것이다.)
==명절과 관련한 세시==
{{본문|세시}}
[[세시]](歲時)가 명절과 관련을 가지기도 한다.
* [[중화절]] : [[음력 2월 1일]]. 한해 농사를 시작하는 날. 원래 [[당나라]]의 명절이다.
* [[머슴날]] : [[음력 2월 1일]] 또는 [[음력 7월 7일]]. 노비일이라고도 하며, 오늘날 [[노동절]]과 비슷하게, 주인이 노비에게 하루 휴식을 주고 잔치를 벌여준다. 2월 1일의 경우 하리아드랫날이라고도 부른다.
* [[한식 (절기)|한식]]: 보통 [[4월 5일]] 또는 [[4월 6일]]이며,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24절기]] 가운데 하나이다. 음력 2월의 명절로 오해되기도 한다.<ref>{{글로벌세계대백과2|제목=명절}}</ref>
* [[복날]] :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있는 세 번의 절기로서 경일(庚日)이다.
* [[말날]] : [[음력 10월]] 중의 [[지지|오일(午日)]].
* [[강신일 (절기)|강신일]](降神日) : [[음력 10월]] 중 천신이 내려왔다는 날.
* [[납일]](臘日) : 동지 뒤의 셋째 [[지지|미일(未日)]]. 납향일(臘享日) 또는 납향날, 납평(臘平), 납(臘)으로도 불린다. 납향은 농사 등의 일을 천지신명에게 고하는 제사이다.
또한 설날과 복날, 납일을 아울러 [[세시복랍]](歲時伏臘)이라고도 부른다.
==명절 증후군==
{{본문|명절 증후군}}
명절 증후군의 대표적인 신체 증상으로는 소화불량, 구역감, 식욕 저하와 두통·어지러움 등의 신경계 증상 및 불안, 두근거림, 답답함, 불면, 초조, 걱정, 무기력감 등이 있다. 명절 이후에 이혼이 급증하는 현상이 있다.
가족 내의 재산 분배나 경제적 문제가 이슈가 되면 첨예한 갈등이 표출될 수도 있다. ‘결혼 언제하니?’, ‘취직은 했니?’등 친지가 무심코 던진 말도 상처가 된다.
취업난, 실직 등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더욱 과민해지고 가족 간 갈등이 증가하고 있어 명절증후군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 같이 보기 ==
* [[대한민국의 음악제 목록]]
== 각주 ==
<references/>
== 참고 자료 ==
{{글로벌세계대백과}}
{{한국의 명절}}
[[분류:한국의 명절|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철학자 정보
| 시대 = [[고대 그리스]]
| 색상 = #B0C4DE
| 그림 = Socrates Louvre.jpg
| 그림설명 = 소크라테스
| 이름 = 소크라테스
| 원어이름 = Σωκράτης
| 출생일 = 기원전 470/469년 경
| 출생지 = [[아테나이]]
| 사망일 = 기원전 399년(약 71세)
| 사망지 = [[아테나이]]
| 학파 = 고대 그리스 철학
| 연구분야 = [[인식론]], [[윤리학]]
| 주요업적 = 소크라테스식 문답법<br />소크라테스식 반어법
| 영향받음 =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 영향줌 = 소크라테스 이후 대부분의 서양 철학자, 특히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티포스]], [[안티스테네스]]
| 상자너비 =
| 종교 = [[그리스 신화|그리스 다신교]]
| 배우자 = [[크산티페]]
| 설명 =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소크라테스의 대리석 흉상, [[리시포스]]가 조각한 소크라테스의 청동 흉상의 복제품으로 추정된다.
}}
'''소크라테스'''({{llang|el|Σωκράτης|}}, '''Socrates,''' [[기원전 470년]] 경 – [[기원전 399년]] [[5월 7일]])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기원전 469년]] 고대 그리스 [[아테나이]]에서 태어나 일생을 [[철학]]의 제 문제에 관한 토론으로 일관한 서양 철학에서 첫 번째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죽음은 멜레토스, 아니토스, 리콘 등에 의해 '신성 모독죄'와 '젊은 세대들을 타락시킨 죄'로 기소당하고 [[기원전 399년]]에 71세의 나이로 사약을 마시고 사형을 당했다. 실존철학의 거장인 [[카를 야스퍼스]]의 저서 《[[위대한 사상가들]]》에서도 그렇게 보고 있다.
영국의 철학자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화이트헤드]]는 "서양의 2000년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라고 말했으며, 시인 [[에머슨]]은 "철학은 플라톤이고, 플라톤은 철학"이라 평하였는데,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수제자이다. 플라톤이 20대인 시절, 스승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에 의해 끝내 사형당하는 것을 보고 크게 분개했으며, 이는 그의 귀족주의(철인정치) 지지의 큰 계기가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소크라테스의 증손 제자로,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과 달리 민주주의를 지지했다.
== 소크라테스 문제 ==
역사상의 소크라테스와 그의 철학적 관점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상당한 논쟁거리이다. 이 문제를 소크라테스 자신과 생애, 철학에 대한 지식은 그의 제자들과 당대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플라톤]]의 기록이며, 그 밖에도 [[크세노폰]],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파네스]]도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런 저작들은 정확한 사실이 아닌 철학 또는 극적인 글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제" 소크라테스를 알기는 어렵다. 당대 고대 그리스에서 [[투퀴디데스]](일반적으로 소크라테스나 철학자들에 대해 언급한 바가 없다)를 제외하고는, 소크라테스 시대를 사실에 입각해서 서술하는 한 사람들은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역사가들은 소크라테스의 삶과 업적에 대하여 정확하고 일관성 있는 역사를 쓰기 위해 당대 인물들이 쓴 여러 사료들을 일치시켜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반드시 사실적이지는 않으며 다만 일관성을 갖추었을 따름이다. 일반적으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삶과 철학에 대해 가장 믿을 만하고 유용한 지식을 제공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동시에 일부 저작에서 플라톤은 자신이 저작속에서 구현한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실제 소크라테스의 언행보다 더욱 미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저작이나 유물을 통해서 소크라테스가 단지 플라톤이 날조한 인물은 아님이 드러난다. 크세노폰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증언과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 (아리스토파네스)|구름]]'은 플라톤의 저작에 나오는 일반적인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확인하는 데 유용하다.
== 생애 ==
플라톤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석공소를 운영한 석공이자 조각가였던 소프로니코스를 아버지로, 산파였던 파이나레테를 어머니로 하는 [[고대 아테네|아테네]]의 서민가정에서 태어났다. 성장 초기에는 직업을 세습하던 당시 문화에 따라 아버지 밑에서 석공 기술을 배우며 철학, 기하학, 천문학 등을 공부했고, 청년에서 40세까지 세 번에 걸친 전쟁에 중장보병으로 전투에 직접 참여하였다. 40세 이후에는 교육자로 청년들의 교화에 힘썼다. 기원전 406년, 500명 공회의 원로 일원이 되어 1년간 정치에 참여하기도 했다.
[[파일:David - The Death of Socrates.jpg|섬네일|300px|오른쪽|〈[[소크라테스의 죽음]]〉, [[자크루이 다비드]], 1787년]]
그는 자연 철학을 배웠으나, 그 기계론적 세계관에 불만을 품었다. 그때는 아테네의 몰락기였으므로 보수적이고 귀족적인 정신과 진보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비판적 정신이 소용돌이치는 시대였다. 그도 이러한 경향을 지니게 되었으나 당시의 [[소피스트]]들처럼 궤변으로 진리를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태도를 배격하고, 객관적이고 보편 타당한 진리를 찾아서 이상주의적, 목적론적인 철학을 수립하려고 하였다.<ref>{{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2}}</ref>
그는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의·절제·용기·경건 등을 가르쳐 많은 청년들에게 큰 감화를 끼쳤으나, 공포정치 시대의 참주였던 [[크리티아스]] 등의 출현이 그의 영향 때문이라는 오해를 받게 되어 '청년을 부패시키고 국가의 여러 신을 믿지 는 자'라는 죄명으로 고소되고, 배심원들의 투표 결과 40표로 사형이 언도되었다. 그는 도주할 수도 있었으나 태연히 독배를 들어 마시면서 자신이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을 졌다며 자신 대신 달라고 친구에게 당부하였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학의 신으로 그의 신전에서 치료받은 사람은 닭을 대가로 바쳐야 했다고 한다.)
참고로, 흔히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과 함께 담담히 사약을 받아들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야기가 후에 변질된 것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중 하나인, 에우렐이 말년에 작성한 '''파타모닐리아'''에 묘사한 내용을 보면,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내려진 사약을 몇 번이고 뒤엎어서 결국 마지막에 간수장이 간수들을 시켜 억지로 사약을 먹여 최후를 맞이했다고 한다.
== 사상 ==
{{참고|고대 그리스 철학}}
아무런 저서도 남긴 바 없는 소크라테스의 확실한 사상을 알기는 어려우나 [[아리스토텔레스]], [[디오게네스]], [[라이르티우스]], [[크세노폰]], 특히 [[플라톤]]의 저서 등에 언급된 것을 보면 그는 [[델피]]의 신탁인 "만인 중에 소크라테스가 제일 현명하다."는 말을 들었다. 스스로의 무지를 자처하던 소크라테스는 신의 신탁이 사실인가 확인하기 위해 의아심을 품고 여러 현명한 사람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말을 확실히 알고 언표하는 사람이 없었다.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 이전에 활동하던 [[소피스트]]의 [[상대주의]]와 [[회의주의]]에 맞서, 소크라테스는 장인이 [[아레테]](ἀρετή, 훌륭함, 탁월함이라는 뜻)를 발휘하려면 자신의 기술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듯, 인간으로서의 아레테, 즉 덕을 발휘하려면 덕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ref>[[W. K. C. 거스리]] 저, 박종현 역, 《희랍 철학 입문》, 서광사, 2001년.</ref>
그 방법으로 [[엘레아의 제논|제논]]의 [[변증법]]을 활용하여 논변을 진행시키는 사이에 잘못된 판단의 모순을 깨우치고 다시금 옳은 판단으로 유도시켰는데, 이것이 유명한 '''산파술'''이다. 그는 [[합리주의자]]였으나, 때로는 초경험적인 내심의 소리, 즉 '''다이몬의 소리'''를 경청하고, 때로는 깊은 명상에 잠기기도 하였다.(다이몬은 고대 신비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찾았던 의식의 바탕이 되는 일종의 심연의 의식이다. 불가의 참나, 도교의 원신 등과 일맥상통 한다. 다이몬이 영어로 데몬이 되었고, 이것은 악마를 뜻하게 됐다. 이는 모든 이교도 학자, 신비주의자 일체를 이단으로 여긴 후대의 기독교도들에 의해서다.)
덕은 인간에 내재한다고 믿고 사람들에게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해 온갖 계층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사람들에게 자신의 무지함을 일깨워 주고 용기나 정의 등에 관한 윤리상의 개념을 설교하고 다녔다. 그는 대화를 통해 누군가를 가르치지 않고 질문을 함으로써 자신에게 무엇이 잘못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젊은이를 타락시키고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부당한 고발을 당해 사약을 마시게 되었다. 그의 탁월한 지적·도덕적 성격에 의해 비단 철학자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감화시켜 '인류 최대의 교사'로 불리고 있다.
=== 도덕론 ===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대는 전반적으로 아테네 민주주의가 부패하던 시기였고, 이로 인한 개인윤리 타락이 극심한 시대였다. 그는 여러 악덕을 '무지'에 기인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덕은 이성적 사고의 기초 하에 생겨난다. 또한, 덕의 확대는 사회를 더 이성적인 상태로 만들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점이다. 또한, 이성의 냉소로 인한 부덕함이란 개념 자체를 비판했다. 그는 악덕한 자는 필연적으로 앎이 부족한 무지한 상태에 있다고 봤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냉소적 이성'은 성립할 수 없다고 봤다. 그의 이러한 지행합일론은 그가 윤리·도덕적인 측면을 강조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실제로 그는 일상생활에서도 절제를 추구했으며, 자신의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청년들을 무료로 가르쳤다. 그리고 '선'을 중시하여 토론 과정에서도 관련된 질문을 많이 던졌다. 그의 이러한 관점은 사후 '스토아학파'에 의해 계승됐으며, 기독교의 윤리관에도 큰 영향을 줬다. 그러나 이는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그리스 철학이나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기독교 윤리관과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ref>박홍순 저, 『사유와 매혹』(2014년, 서해문집) pp. 332-340 참조</ref>
=== 영혼 중심적 사고 ===
소크라테스는 육체-영혼 이원론자였다. 그는 육체는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그저 껍데기일 뿐이고, 만 지식은 영혼 안에 내재된 개념이라고 봤으며, 영혼은 불멸한다고 봤다. 인간은 영혼을 소유한 존재이지만, 육체의 감각적 요소에 의해 영혼에 내재된 진리를 통찰하는 것을 계속 방해 당한다고 봤으며, 그는 이를 극복하면 만 지식을 얻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극복 방법은 바로 이성적 사고에 기초한 산파술로 감각으로 인해 얻은 여러 '오류'를 하나씩 잡는 것에 있다고 봤다. 이러한 신념에 기초하여 그는 '죽음'이란 영혼이 육체에서 탈출하는 것으로 봤기 때문에 '죽음'을 긍정하기도 했다.<ref>김태우, 『소크라테스 대화법을 응용한 앎·깸·삶 대화법에 관한 연구 : 조직몰입 효과를 중심으로』(2015년, 서경대학교, 박사) pp.62-66 참조</ref>
=== 변론과 크리톤 ===
{{참고|소크라테스의 변론|파이돈}}
'[[악법도 법이다]]'({{llang|la|Dura lex, sed lex}})라는 말이 회자되지만, 소크라테스가 직접 이런 말을 했다는 증거가 없다. 이 경구가 처음 등장한 것은 로마시대이며 말한 사람은 [[도미티우스 울피아누스]]로 기록되어 있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변론]]》에서 법정이 철학을 포기한다면 석방해주겠다는 제안을 하더라도 자신이 철학을 하는 이유는 하늘의 명령이기 때문에 그러한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 외에도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법 이상의 철학적 원칙과 신념에 기초하여 의사결정을 했던 몇가지 사례들이 있다. 반면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독배를 내린 법률에 대해 자신이 국외 추방을 제의하지 않음으로써 소극적으로 동의한 절차적 정당성을 뒤늦게 훼손할 수 없다고 친구인 크리톤에게 밝힌다. 그러나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는 평소의 냉정한 변증법적·이성적 논법을 구사하지 않고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모습으로 크리톤을 설득하고 있기에 이는 진의를 모두 파악하기 어려운 책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변론》과 《크리톤》의 이런 모순적인 모습 중 《크리톤》에 실린 모습이 과장되어 《변론》에 담긴 법령 불복종자로서의 모습을 누르고 지금까지 이어져왔는데 소크라테스의 일관된 삶과 철학에 비추어 볼 때 이런 말은 결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진정한 철학자는 [[진리]]조차도 회의하고 가짜로 드러나는 순간 바로 폐기시키는 엄중함이 있는데, 기껏해야 인위적인 [[실정법]]을 무조건 옹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철학과 법의 기본 성격조차 모르는 무지의 소치였다.<ref>이러한 범주는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3장에 따른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현경 옮김 《미의역사》(열린책들, 2005) 48쪽.)</ref>
=== 산파술 ===
{{본문|문답법}}
소크라테스는 구두언어 - 흔히 당대에 [[로고스]](Logos)라 불리던 -의 형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었다. 그는 구두언어는 지(知)의 매개인 정신을 다른 상대방에게 전하는 유일한 운송 수단으로 봤다. 즉, 그에게 있어서 구두언어는 현대의 관점에서 말하는 단순한 규칙적인 음파의 개념이 아닌, 발화자의 사유 자체를 어떠한 오류도 없이 밖으로 내보내서, 듣는 이의 사유에 영향을 주는 절대적인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토론했는데 제자들이 던진 질문에 즉각적인 답을 주는 것보단 거꾸로 질문을 던지는 것을 선호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의견이 무지에 기인한 의견 또는 그에 준하는 단견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이 만 지식을 알지 않는 한 단견으로 토론을 중지시켜 '앎의 변증'을 멈추는 것은 비이성적인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질문에서 확신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끝없이 질문했으며, 이러한 변증의 과정을 통해 진리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 미적 범주 ===
소크라테스는 미학적인 범주를 적어도 세 가지로 나누었다. 그 세 범주는 부분의 조립을 통해 자연을 표현하는 '이상적인 미', 시선을 통해 영혼을 표현하는 '정신적인 미', 그리고 '유용한(혹은 기능적인) 미'이다.<ref>강정인.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인가?''. 문학과 지성사. 1994 {{ISBN|89-320-0703-9}}</ref>
== 영향 ==
그의 사상은 그의 제자들에게 전해져 [[메가라 학파]], [[키니코스 학파]], [[키레네 학파]] 등을 이루고, 특히 수제자인 [[플라톤]]의 관념주의로서 피어나, 그 후의 서양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ref>{{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2|제목=[[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인명사전/세계인명/ㅅ/소크라테스|소크라테스]]}}</ref> 기독교 수도원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는 일생을 통해 자신이 직접 책을 쓴 일이 없고 또한 문학적 흥미도 지닌 바 없으나 그가 철학의 방법으로 취한 대화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걸작 대화집을 낳았다. 또한 그의 독창적 개성과 비극적인 죽음은 전기문학의 소재가 되었다.<ref>{{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2|제목=[[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언어II·세계문학·논술/남서 유럽 문학/그리스·로마 문학/소크라테스|그리스·로마 문학 - 소크라테스]]}}</ref>
== 같이 보기 ==
* [[나는 내가 알지 못함을 안다]]
* [[알키비아데스]]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
* [[철학]]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위키공용|Socr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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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배움터}}
* {{SEP|socrates|소크라테스|Debra Nails}}
{{포털|철학}}
{{그리스 철학의 학파}}
{{고대 그리스}}
{{위대한 그리스인}}
{{전거 통제}}
[[분류:소크라테스| ]]
[[분류:기원전 469년 출생]]
[[분류:기원전 399년 사망]]
[[분류:아테나이의 철학자]]
[[분류:인문주의자]]
[[분류:윤리학자]]
[[분류:인식론 학자]]
[[분류:종교 비평가]]
[[분류:반어법 이론가]]
[[분류:독살된 사람]]
[[분류:강제로 자살한 사람]]
[[분류:이단죄 사형수]]
[[분류:기원전 5세기 그리스 사람]]
[[분류:기원전 5세기 철학자]]
[[분류:과학철학자]]
[[분류:명언가]]
[[분류:도덕철학자]]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중화인민공화국 표}}
'''중화인민공화국'''({{zh-stp|s=中华人民共和国|t=中華人民共和國|p=Zhōnghuá Rénmín Gònghéguó|h=중화런민궁허궈}}) ({{소리|Zh-Zhonghua renmin gongheguo.ogg}})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국가이다. 줄여서 '''[[중국]]'''({{zh-stp|s=中国|t=中國|p=Zhōngguó|h=중궈}})이라고도 한다.
수도는 [[베이징시]]이며, 최대 도시는 [[상하이시]]이다. 이 밖의 주요 도시로는 [[광저우시]], [[난징시]], [[시안시]], [[푸저우시]], [[칭다오시]], [[충칭시]], [[홍콩]] 등이 있다.
근대 중국에서는 1911년 [[국민당 정부]]가 들어섰으나,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면서 각지에서 군벌정부가 권력을 휘두르는 [[군벌 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이후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5·4 운동]]의 반제국주의 강령을 중심으로 창당된 [[중국공산당]]은 1920년 이후 세력을 급격히 키웠고, 국민정부과 계속해서 [[국공 내전|내전]]을 벌였다. [[중일 전쟁]] 이후 중국 대륙의 주도권을 두고 1946년 [[제2차 국공 내전]]이 발발하였고, 그 결과 타이완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영역이 공산당 측으로 넘어가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을 초대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국가주석]]으로 하여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이 선포되었다.
소련의 막대한 영향력을 받는 중국공산당은 마오쩌둥으로 [[대약진 운동]]을 펼쳤고, [[문화 대혁명]]도 실시하며 사회주의 국가의 틀을 굳히려 하였다. 다만 대약진 운동도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해 실패하였고, 문화 대혁명도 수많은 국가적, 문화적 피해와 민간인 피해를 남겼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은 사회주의의 한계를 실감하게 되었고, 이후 소련의 영향력이 낮아지면서 [[덩샤오핑]]의 지도로 개혁·개방을 시행하면서 시장경제체제가 도입되어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받아들였다. 덩샤오핑은 [[흑묘백묘|흑묘백묘론]]을 내세우며 광활한 영토와 막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어냈고, [[화평굴기]]를 외교 기조로 삼아 평화로운 공존 및 팽창 정책을 추구하였다.<ref>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49910286.amp</ref><ref>신상미.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2254984 신압록강대교 완공으로 본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 오마이뉴스. 2020년 1월 31일.</ref><ref>이재원.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56&aid=0010849157 미, 러와 이달 중 핵무기 통제 협상키로 합의…“중국도 초청”]. KBS. 2020년 6월 9일.</ref><ref>심재훈.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11371629 창당 100주년 앞두고 중국공산당 '흔들']. 연합뉴스. 기사입력 2020년 2월 2일. 기사수정 2020년 2월 3일.</ref> 이에 중국과 미국은 [[투키디데스의 함정]] 상황에 놓여있다는 평가가 있다.<ref>오애리.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9873627 막가는 美中 관계...SCMP "트럼프·시진핑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져"]. 뉴시스. 2020년 5월 21일.</ref><ref>[https://www.youtube.com/watch?v=0zBab1d6Jyo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이유와 한국의 선택은? - 중국의 문제는 내부에 존재한다! 중국경제의 좀비화 가능성?]. [[최배근]]TV. 2020년 7월 29일.</ref>
== 국명 ==
국명의 약칭은 중국({{lang|zh|中国}})이고 중화({{lang|zh|中华}})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밖에도 국외에서는 중공({{lang|zh|中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공은 본래 [[중국공산당]]의 약칭이지만,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에서 중국공산당을 중화인민공화국의 집권 정당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공산당 정부의 의미로도 사용한다.
건국 초기에는 [[1949년]] 이전의 시대를 구중국,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를 신중국으로 구분해 부르기도 하였다. [[1949년]] [[국공 내전]]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은 [[분단국가]]로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중국의 합법 정부는 자국임을 표방하므로, [[중화민국]]의 독립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 기원 ==
{{본문|중국의 역사}}
{{정리 필요 문단|날짜=2020-10-18}}
=== 하나라 ===
[[파일:Yellowrivermap-2.jpg|섬네일|200px|황하]]
고고학계는 대략 224만 년에서 25만 년 전 사이부터<ref>{{뉴스 인용|url=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9D%B8%EB%A5%98%EC%A1%B0%EC%83%81-210%EB%A7%8C%EB%85%84-%EC%A0%84-%EC%A4%91%EA%B5%AD-%EA%B1%B0%EC%A3%BC/|제목=인류조상 210만년 전 중국 거주|성=사이언스타임스|이름=|날짜=|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중국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하였다고 추측하며, 베이징에서는 불을 사용한 [[호모 에렉투스]]의 유골이 발견되어 [[베이징 원인]]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중국 고전에 의하면 중국의 첫 왕조는 기원전 2100년에 등장한 [[하나라]]이다. 하나라는 처음으로 중국에서 세습 군주제를 정립하였으며 이후 몇 천년간 이어내려 가는 왕조제의 기틀을 잡았다. 다만 하나라의 존재 자체는 중국 역사학계에 의하여 주장될 뿐, 실제로 하나라의 실존 여부를 증명할 역사적인 사료는 제대로 발굴된 바가 없다. 현재까지 고고학적으로 완벽하게 입증된 첫 중국 왕조는 하나라의 뒤를 이은 [[상나라]]이다.<ref>{{서적 인용|제목=The History of China|성=Pletcher, Kenneth|이름=|날짜=2011|판=|출판사=Britannica Educational Publishing|쪽=|장=}}</ref> 상나라는 기원전 17세기부터 11세기까지 황하 유역을 다스렸다. 그들이 남긴 [[갑골 문자|갑골문]]은 지금의 한자의 원형으로 일컬어진다.<ref>{{서적 인용|제목=The Oxford Handbook of the History of Linguistics|성=Allan, Keith|이름=|날짜=|판=|출판사=Oxford University Press|쪽=|장=}}</ref> 상나라는 그 뒤를 이은 [[주나라]]에 의하여 멸망 당했고, 주나라는 11세기부터 5세기까지 지속하였다. 다만 이때 중국은 중앙집권체제가 아니라 봉건 제후들의 힘이 강해졌으며, 강력한 몇몇 제후들은 아예 주나라의 통치를 거부하고 300여 년 동안 [[춘추 전국 시대|춘추전국시대]]를 일으키며 천하의 패권을 다투었다. 5세기와 3세기 동안 춘추전국시대가 끝날 즈음에 이르자, 중국에는 가장 강력한 7개국만이 남아있었다.
=== 전국시대와 청나라 ===
춘추전국시대는 [[진나라]]가 나머지 6개국을 양첸이통합하며 천하를 통일하며 끝났다. 진나라의 군주였던 영정은 자신을 진나라의 [[진 시황제|시황제]]로 불렀고, 법치주의에 입각한 개혁을 진행하여 도량형, 문자, 도로, 통화 등을 통일하였다. 다만 15년 밖에 지속하지 못하였고, 시황제가 죽은 이후에는 곳곳에서 진나라의 가혹한 통치에 대항하여 반란이 일어나 멸망하고 말았다.<ref>{{서적 인용|제목=The Cambridge History of China: Volume I: the Ch'in and Han Empires, 221 B.C. – A.D. 220.|성=Bodde, Derk|이름=|날짜=1986|판=|출판사=|쪽=|장=}}</ref>
진나라가 힘을 잃자 전역에서 내전이 벌어졌고, 이 내전에서 초나라 출신 [[전한 고제|유방]]이 패권을 얻어 [[한나라]]를 세웠다.<ref>{{서적 인용|제목=The Early Chinese Empires : Qin and Han|성=Lewis, Mark Edward|이름=|날짜=2007|판=|출판사=London: Belknap Press|쪽=|장=}}</ref> 한나라는 진나라에 비하여 지방분권적인 제도를 실시하고 법가를 공자가 개창한 유가로 바꾸었으나, 진나라의 법과 제도들은 대부분 한나라와 그 후계 왕조들 에게까지 전해 내려갔다.<ref>{{서적 인용|제목=World History: Journeys from Past to Present – Volume 1: From Human Origins to 1500 CE|성=Goucher, Candice; Walton, Linda|이름=|날짜=2013|판=|출판사=|쪽=|장=}}</ref>
한나라 말기, 위나라,촉나라, 오나라로 삼국이 나뉘어 졌다.<ref>{{서적 인용|제목=Imperial Chinese Military History.|성=Whiting, Marvin C|이름=|날짜=2002|판=|출판사=iUniverse|쪽=|장=}}</ref> 삼국 시대의 끝에는 결국 위나라가 승기를 잡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진나라에 의하여 멸망 당했다. 다만 진나라도 얼마 지나지 못하고 내부분렬(8왕의난)과 이민족 침공으로 멸망하였고, 이민족중 오호가 북부에서 중국으로 침략해 들어와 16국을 세웠다. 이후 이민족이 통합되어 화북을 점령하여 [[북위 (북조)|북위]]를 세웠고 더, 한편 한족들은 밀려내려가 남부에서는 송나라가 세워졌다. 이 나라들은 이후에도 흥망을 거듭하며 건국되고 멸망하기를 반복하는데, 이시기를 [[남북조 시대]]라고 한다. 이민족인 북주와 북제는 남조를 자주 침략하였고 이후 북주에서 581년에 [[수나라]]로 이어져 남조를 멸망시켰다. 농업을 장려하였고 대운하를 파 무역을 촉진하였다. 수나라는 지나치게 많은 공공 공사를 추진하여 결국 국민들의 불만이 쌓이며 반란이 일어나 멸망하였다.<ref>{{서적 인용|제목=A new history of Korea|성=Ki-Baik Lee|이름=|날짜=1984|판=|출판사=Harvard University Press.|쪽=|장=}}</ref><ref>{{서적 인용|제목=Medieval Chinese warfare, 300–900.|성=David Andrew Graff|이름=|날짜=2002|판=|출판사=|쪽=|장=|isbn=0-415-23955-9}}</ref><ref>{{서적 인용|제목=T'ang China: The Rise of the East in World History.|성=Adshead, S. A. M.|이름=|날짜=2004|판=|출판사=New York: Palgrave Macmillan.|쪽=54|장=}}</ref><ref>{{서적 인용|제목=Cambridge History of China: Volume I: the Ch'in and Han Empires, 221 B.C. – A.D. 220|성=Nishijima, Sadao|이름=|날짜=1986|판=|출판사=Cambridge University Press|쪽=|장=|isbn=978-0-521-24327-8}}</ref> 거란족 등 이민족의 침입을 받아 시달리다 당나라는 8세기에 일어난 안사의 난으로 크게 약화되었고, 결국 절도사들이 분열되어 약화되었고 후량에 당나라를 선양하게 된다. 하지만 당나라와 후량은 907년에는 거란족에 의해 멸망하였다. 거란족에 의해 남쪽으로 밀려난 한족은 송나라를 건국하였다. 하지만 [[요나라]]에 의해 송나라는 지속적으로 침략을 받아 조공하게 되었고 이후 금나라에 의해 북송이 멸망하게 되었다.<ref>{{서적 인용|제목=Chronicle of the Chinese Emperors.|성=Paludan, Ann|이름=|날짜=1998|판=|출판사=Thames & Hudson.|쪽=|장=136|isbn=0-500-05090-2}}</ref>
10세기와 11세기 사이 송나라는 [[유교]]를 장려했으며 철학과 예술, 도자기 기술 등을 크게 진흥하였다.<ref>{{웹 인용|url=http://d.wanfangdata.com.cn/thesis/Y1795153|제목=从汝窑、修内司窑和郊坛窑的技术传承看宋代瓷业的发展|성=wanfangdata.com.cn.|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 허나 지나치게 문치에 입각한 송나라의 정책은 군대의 약화를 불러왔고, 결국 북부에서 기회를 엿보던 [[여진|여진족]]의 [[금나라]]에게 공격을 받고 말았다. 1127년, [[송 휘종|송나라 휘종]]과 수도 변경이 금나라에 함락되어 잡혀갔고, 송나라의 유신들은 남쪽으로 후퇴하여 남송을 세웠다.
13세기에는 [[몽골족]]들이 크게 발흥하여 중국을 침입하였다. 1271년, 몽골의 [[쿠빌라이 칸]]이 [[원나라]]를 세웠고, 1279년에는 송나라의 잔재를 모두 부수었다. 몽골 침략 이전에 많았던 송나라의 인구는 학살로 인해 급격히 줄어 들었으나 경제, 군사적으로 황금기를 맞았다.<ref>{{서적 인용|제목="An Estimate of the Total Population of Sung-Chin China"|성=Ping-ti Ho|이름=|날짜=1970|판=|출판사=Études Song, Series 1, No 1,|쪽=|장=}}</ref> 그러나 원나라는 지나친 인종주의와 차별 정책으로 한족의 반발이 심했다, 1368년에 [[홍무제|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웠다. 하지만 남왜북로에 의해 남쪽에는 왜구의 침략이 심하였고 북쪽에서는 이민족의 침략이 심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0/jul/25/kenya-china|제목=Chinese archaeologists' African quest for sunken ship of Ming admiral|성=The Guardian|이름=|날짜=2010년 7월 25일자|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명나라 초에 [[난징시|난징]]에서 [[베이징시|베이징]]으로 수도를 천도하기도 하였다. [[왕수인|왕양명]]과 같은 유학자들은 정통 유학을 비판하고 개인주의와 실용주의와 같은 가치들을 도입하고자 하였다. 후기에는 황제들이 국정을 방만하게 운영하자 신료들이 힘을 얻어 관료제적 요소가 강해지기도 하였다. 다만 명나라는 [[임진왜란]]에 군대를 파병하고 만주족들이 침입해오며 점차 무너지기 시작하였다.<ref>{{웹 인용|url=http://www.docin.com/p-378667223.html|제목=论明末士人阶层与资本主义萌芽的关系|성=docin.com|이름=|날짜=2012|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
1644년에 베이징은 [[이자성 (영창제)|이자성]]이 이끄는 반란군에 점령당했고, 만주족이 후금을 일으켜 이자성을 죽이고 베이징을 점령하자 명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는 [[자금성]] 경산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이후 수백년간 만주족이 중국을 식민 지배하였다.
청나라는 1644년부터 1912년까지 지속하였으며, 중국의 마지막 왕조 국가였다. 청나라 초기에 명나라의 잔재들을 정복하였고, 명나라의 2500만 명의 한족들을 학살하였다. 마지막 [[남명]]까지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시킨다. 변발 등 만주족의 문화를 한족들에게 강요하였고 한족들의 반청 감정을 완화하기 위하여 상업을 장려하고 농업을 촉진, 중앙집권화를 추진하였다. 청나라는 [[문자의 옥]]을 일으켜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문학들을 불태우거나 탄압하였는데, 이 때문에 기술과 문학의 발전이 정체되기도 하였다.<ref>{{서적 인용|제목=中国通史·明清史. 九州出版社|성=|이름=|날짜=|판=|출판사=|쪽=|장=|isbn=978-7-5108-0062-7}}</ref><ref>{{서적 인용|제목=中华通史·第十卷. 花城出版社|성=|이름=|날짜=1996|판=|출판사=|쪽=|장=|isbn=978-7-5360-2320-8}}</ref> 19세기 중반부터 청나라는 [[아편 전쟁]]을 통하여 프랑스와 영국 등 서구 열강들과 갈등을 겪었다. 이 때문에 치외법권, 홍콩 통치권 등을 임대할 수 밖에 없었으며 불평등 조약들을 연이어 맺으며 국력을 깎아 나갔다. 게다가 [[청일 전쟁|청일전쟁]]에서 청나라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잃었으며, 일본에게 타이완섬을 주어야만 하였다.<ref>{{서적 인용|제목="Sino-Japanese War (1894–95)"|성=Encyclopædia Britannica|이름=|날짜=|판=|출판사=|쪽=|장=}}</ref> 청나라는 점차 불안정해졌고, 수 천만 명의 사람들이 특히 [[백련교도의 난|백련교의 난]]으로 인하여 목숨을 잃었다. 게다가 1850년대에는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나며 중국 남부에 대대적인 소요가 일어났고, 결국 청나라도 1860년대에 [[무술변법|자강변법 운동]]을 통하여 개혁을 실시하였으나 결국 1880년대와 90년대에 군사적인 패배를 겪으며 실패로 드러나고 말았다.
19세기, 1876년에 대기근이 발생하며 청나라는 점차 멸망의 길로 빠져들었다. 대략 9백만 명에서 1300만 명의 사람들이 죽은 것으로 전해진다.<ref>{{웹 인용|url=http://www.fao.org/3/U8480E/U8480E05.htm|제목=People and populations at risk|성=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이름=|날짜=1995|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 [[광서제]]는 입헌군주정을 만들기 위한 개혁정책을 실시하였으나, 보수적인 [[서태후]]의 반대로 실패하여 유폐되었고 게다가 [[의화단]]이 일어나며 청나라의 국력은 갈수록 약화되었다. 서태후도 나중에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개혁을 실시하려 하였으나, 1911년에 [[신해혁명]]이 발발하며 결국 청나라도 멸망하게 되었다.
=== 공화국 ===
청나라는 서양 열강들에 의해 반식민지로 전락했었고 멸망하였다. 1912년 1월 1일에 [[쑨원]]의 주도로 [[중화민국]]이 건국되었고, [[중국국민당|국민당]]은 중국 대륙의 임시 정부를 선포하였다. 하지만 중화민국 또한 서양 열강들의 반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또한 일본 침략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ref>{{서적 인용|제목=China: Understanding Its Past. Volume 1|성=Eileen Tamura|이름=|날짜=1997|판=|출판사=University of Hawaii Press|쪽=146|장=|isbn=0-8248-1923-3}}</ref> 그러나 이후 중화민국의 주권은 옛 청나라의 장군이었던 [[위안스카이]]에게 넘어갔고, 위안스카이는 [[중화제국]]을 세우며 야심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국민들 사이에서 원망이 들끓고, 그의 세력 기반이었던 [[북양함대]]에서조차 반대 의견이 강해지자 결국 퇴위하였고 공화정을 재창립하였다.
1916년에 위안스카이가 죽은 이후, 중국은 정치적으로 갈래갈래 나뉘었다. 베이징에 수도를 둔 중화민국은 국제적으로는 정당한 합법정부로 인정받았으나, 실제로는 유명무실한 상태였고 군벌들이 각지에서 주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또한 서양 열강들의 반식민지가 된 중국에서 군벌들은 서양 열강들과 서로 협조하여 중국 인민들을 더욱 파탄에 몰아갔다. 이렇게 혼란과 소요가 지속되던 중, 1920년대 후반에 [[장제스]]의 지휘 하의 중국국민당이 [[북벌 (국민당)|북벌]]을 실시하여 중국을 재통일하였다. 국민당은 수도를 베이징에서 난징으로 옮겼고, 쑨원의 [[삼민주의]]에 근거한 개혁을 실시하여 중국을 현대적인 민주공화국으로 만들고자 하였다.<ref>{{서적 인용|제목=Government and Politics in Kuomintang China,|성=Hung-Mao Tien|이름=|날짜=|판=|출판사=Stanford University Press|쪽=60|장=|isbn=0-8047-0812-6}}</ref><ref>{{서적 인용|제목=China and Democracy: Reconsidering the Prospects for a Democratic China.|성=Suisheng Zhao|이름=|날짜=|판=|출판사=Routledge|쪽=416|장=|isbn=0-415-92694-7}}</ref> 그러나 [[소련]]의 도움을 받은 [[중국공산당|공산당]]들이 산악 지역에서 힘을 키우며 준동하기 시작하였고, 1927년부터는 본격적인 내전이 터져 국민당과 공산당이 대대적으로 충돌하였다. 초기에는 국민당이 승기를 잡았고, 중국공산당은 [[장정|대장정]]을 통하여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제국]]이 중국 본토를 침략하였고 장제스는 이에 맞서기 위하여 [[국공 합작|국공합작]]을 벌여 공산당과 손을 잡았다.
[[중일 전쟁|제2차 중일전쟁]]은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불안정한 연합을 구성하게 내몰았다. 이 전쟁에서 일본 군대는 수많은 전쟁 범죄들을 저질렀으며, 총 2천만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하는 등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참극을 벌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bbc.co.uk/history/worldwars/wwtwo/nuclear_01.shtml|제목=Nuclear Power: The End of the War Against Japan|성=BBC|이름=|날짜=|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특히 [[난징 대학살]] 때에 일본군은 4만 명에서 3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피바다를 만들기도 하였다.<ref>{{서적 인용|제목="Declaration by United Nations"|성=United Nations.|이름=|날짜=|판=|출판사=|쪽=|장=}}</ref> 1945년에 일본이 패망한 이후 중국은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되었으며 또한 서양 열강들의 반식민지에서도 해방되었다. 또한 타이완섬 등이 중국에게 되돌아왔으나 홍콩과 마카오 등은 아직도 서양 열강의 식민지로 남았었다. 중국은 명목상 승전국이었으나 오랜 전쟁과 내분으로 피폐해진 상태였고, 게다가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곪은 불화가 일본이라는 공적이 사라지자 드디어 폭발하며 본격적인 [[국공 내전|내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국민당 주도의 중화민국은 1947년에 헌법을 제정하였으나, 워낙 사태가 불안정하여 헌법 규정 대다수가 중국 본토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였다.
== 역사 ==
{{본문|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
[[제2차 국공 합작]] 이후 국민당은 지방군벌의 고질적인 부정부패, 통일적이지 못한 비효율적인 전술 등으로 인하여 공산당을 상대로 패색이 만연해졌고, 공산당은 곧 중국 본토 전역을 장악하였다. 국민당 주도의 중화민국은 결국 국부천대를 통하여 본토를 버리고 타이완성, 푸젠성 진먼도로 파천하였다. [[마오쩌둥]]은 서양열강에서 패배하기만 하던 이전 중국에서 탈피하고 공산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신(新)중국을 구상하였다.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에선 만주족과 몽골족 그리고 한족의 인구가 비슷하였다. 인구 80% 이상이 아무런 족보에도 해당되지 않는 백성이였다. 공산당은 아무런 "족"에도 포함되지 않는 인구 80%를 한족으로 편입시켰기 때문에 현재는 한족이 인구에 가장 많다.
[[1949년]] [[10월 1일]] [[베이징시|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서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공식 선언하였다.<ref>{{서적 인용|제목="The Chinese people have stood up"|성=UCLA Center for East Asian Studies.|이름=|날짜=|판=|출판사=|쪽=|장=}}</ref> 이 날을 [[중화인민공화국 국경절]]이라고 한다. 1950년에는 국민당이 차지하고 있던 하이난섬을 점령했으며 중국 본토 대부분을 장악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해 마오쩌둥은 “5억 중국 인민이 분연히 일어나 혁명을 이룬 만큼 국가 건설의 과제를 달성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혁명에 성공한 마오쩌둥은 이른 시일 내에 온전한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조급증에 시달리게 된다. 중국공산당은 거의 1백만~2백만 명의 지주들의 땅을 몰수하고<ref>{{서적 인용|제목=Communism in History and Theory|성=Busky, Donald F|이름=|날짜=2002|판=|출판사=Greenwood Publishing Group|쪽=11|장=}}</ref> 그 토지들을 농민들에게 나누어주며 큰 호응을 얻었으며 독자적인 산업 정책을 펴고 핵무기도 개발하기 시작하였다.<ref>{{서적 인용|제목="A Country Study: China"|성=www.loc.gov|이름=|날짜=|판=|출판사=|쪽=|장=}}</ref> 이 때문에 중국의 인구는 1950년대에 5억 5천만 명이었던 데에서 1974년에는 9억 명에 이르렀다.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은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추진하면서 [[인민공사]]와 전국적인 [[대약진 운동]]을 실시하였는데, 중국의 현실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진행된 급진적이고 무모한 대진 운동은 농촌부의 황폐화로 인해 식량난과 3천 5백만 명에 달하는 대량의 아사자를 발생시키며 결국 실패로 끝났다.<ref>{{서적 인용|제목=Communism: A Very Short Introduction|성=Holmes, Leslie.|이름=|날짜=2009|판=|출판사=Oxford University Press|쪽="Most estimates of the number of Chinese dead are in the range of 15 to 30 million."|장=|isbn=978-0-19-955154-5}}</ref>
그 후 경제를 재건할 방법으로 마오쩌둥과 [[류사오치]]가 대립하였고, 마오쩌둥은 권력 탈환을 위해 [[문화 대혁명]]을 일으켰다. 혁명 중 마오쩌둥으로부터 반혁명파로 규정된 많은 사람이 탄압당하거나 [[학살]]되어, 국내는 일시 내란 상태가 되었다. 또 중국 각지의 귀중한 전통 문화재도 반혁명적인 존재로 간주되고 파괴되었다. [[문화 대혁명]]은 1976년에 마오쩌둥의 죽음과 함께 종결되었다. 한편 1971년 10월에는 공산당의 중화인민공화국이 본래의 국민당 주도의 중화민국을 밀어내고 국제연합에서 중국의 대표권을 찾아갔으며, 상임이사국 지위도 함께 획득하였다.<ref>{{서적 인용|제목=Taiwan in a Time of Transition.|성="Taiwan's and Beijing's Campaigns for Unification" in Harvey Feldman and Michael Y. M. Kao|이름=Michael Y.M. Kao.|날짜=1988|판=|출판사=New York: Paragon House.|쪽=188|장=}}</ref> 마오쩌둥이 죽은 직후, [[사인방|4인방]]이 마오쩌둥 대신 문화대혁명의 책임을 지고 체포되었고, [[화궈펑]]이 그의 뒤를 이었다. 화궈펑 이후에는 [[덩샤오핑]]이 1978년에 권력을 잡았고, 대대적인 경제 개방, 개혁 정책을 실시하였다.
[[파일:Xi Jinping in 2016.jpg|섬네일|시진핑 중국 주석|대체글=]]
덩샤오핑의 개혁 정책과 함께, [[소련의 붕괴]] 이후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은 더욱 자유롭게 [[미국]]과 [[서방]] 세력에 개방적인 정책을 펼 수 있었다.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은 [[중국공산당]]의 일당 독재 체제를 견지함과 동시에, [[혼합경제]]를 도입하는 등 경제 개방 정책을 실시하여 중국의 현대화를 진행했고 이를 계기로 중화인민공화국은 경제와 국방이 빠르게 발전했다. 다만 경제의 민주화와 함께 정치의 민주화에 대한 목소리도 함께 높아졌는데, 1989년, 중국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시위를 억압하며 [[톈안먼 사건|천안문 사건]]을 일으켰고, 이로 인하여 세계 각국의 지탄을 받았다.<ref>{{서적 인용|제목="The Impact of Tiananmen on China's Foreign Policy"|성=Harding, Harry|이름=|날짜=1990년 12월|판=|출판사=|쪽=|장=}}</ref>
[[장쩌민]], [[리펑]], [[주룽지]] 등의 지도자들이 1990년대 중국을 이끌었다. 중국은 이 시기에 눈부신 경제 성장을 보여 1억 5천만 명에 달하는 빈민들을 가난에서 구제하였으며, 매년 11.2%에 달하는 기록적인 경제 성장률을 보였다.<ref>{{서적 인용|제목="China's Average Economic Growth in 90s Ranked 1st in World"|성=인민일보|이름=|날짜=2000년 3월 1일|판=|출판사=|쪽=|장=}}</ref> 2001년에는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였으며, 2000년대에도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주석의 영도 하에 높은 경제 성장률을 유지하였다. 허나 지나치게 빠른 성장은 자원과 환경을 심각하게 고갈시켰고, 사회적 빈부격차와 불안정과 같은 부작용들도 함께 불러왔다. 중화인민공화국은 2010년에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고,<ref>{{뉴스 인용|url=https://www.voakorea.com/archive/china-econ-116219319|제목=중국, 일본 제치고 2위 경제대국 발 돋음|성=VOA|이름=|날짜=2011년 2월 15일|뉴스=|출판사=|확인날짜=|archive-date=2021년 3월 7일|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10307151745/https://www.voakorea.com/archive/china-econ-116219319|url-status=}}</ref> 1인당 GDP는 4,000달러를 넘기는 데에 성공하며 기존의 계획보다 10년보다 앞당긴 시점에 목표를 이룩하였다.<ref>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49910286.amp</ref>
현재의 지도자인 [[시진핑]] 주석은 2012년부터 집권하고 있다. 시진핑은 주석의 3연임을 금지하는 헌법을 폐기하며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으며,<ref>{{뉴스 인용|url=https://news.joins.com/article/22410259|제목=[국제핫이슈] 시진핑, 연임제 폐지로 장기집권 길 열어|성=중앙일보|이름=|날짜=|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집권 초기부터 실시한 [[반부패 운동]]을 통하여 정적들을 숙청하고 1인 독재의 지위를 굳히고 있다는 평가를 대외적으로 듣고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yna.co.kr/view/AKR20160406051600009|제목=WSJ "파나마 페이퍼스로 시진핑 반부패 운동 '이중잣대' 드러나"|성=연합뉴스|이름=|날짜=2016년 4월 6일|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한편 시진핑 시대 해외 중국 외교관들의 무례한 언행과<ref>{{뉴스 인용|url=https://www.bbc.com/news/uk-36263685|제목=Queen filmed calling Chinese officials 'very rude'|성=BBC News|이름=|날짜=2016년 5월 11일|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ref>{{뉴스 인용|url=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4/feb/27/julie-bishop-faced-unprecedented-rudeness-from-china-says-diplomat|제목=Julie Bishop faced unprecedented rudeness from China, says diplomat|성=The Guardian|이름=|날짜=2014년 2월 17일|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공격적인 태도는 타국에게 ‘[[전랑 외교]]’ 또는 ‘늑대 외교’라고 불리며 타국민들의 비판을 사고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25/2020052501867.html|제목=늑대외교 비판에 中 "우리는 공인된 예의지국"|성=조선일보|이름=|날짜=2020년 5월 25일|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2019년 12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COVID-19)가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발원하였고,<ref>{{뉴스 인용|url=https://www.bbc.com/news/world-asia-china-52016139|제목=Coronavirus: Wuhan to ease lockdown as world battles pandemic|성=BBC News|이름=|날짜=2020년 3월 24일|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중국의 다른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결국에는 전세계로 대대적으로 번지며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이어졌다.
== 생활 ==
중국 학계에선 [[환경]]의 생활방식의 일부분일 뿐인 것을 마치 민족을 유목민족, 농경민족으로 나눠 한국과 일본도 농경민족으로 나누는 [[동북공정]]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많은 민족들이 농경을 하다가 유목으로 발전하였고 이후 다시 정주하며 농경을 한 적이 많기 때문에 생활방식으로 농경민족, 유목민족 농경국가, 유목국가로 나눌 수가 없다. 또한 한국이나 일본도 농경생활이 퍼졌지만 귀족층은 [[소작]]을 하지 않고 유목적 생활을 하였다. 또한 선비족, 투르크, 퉁구스는 지역에 따라 농경생활을 하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몽골공화국의 경우 농경지 부족으로 유목을 주로 하고 있어 이들이 역사적으로 유목만 하였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정주하여 농경을 하게 된 민족이라고 해도 귀족층은 유목적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유목민족, 농경민족을 마치 다른 민족으로 나누는 것은 잘못된 중국 학계의 방법이다.
== 지리 ==
[[파일:Two-point-equidistant-asia.jpg|섬네일|200px|[[중국 대륙]]의 위성 사진]]
중화인민공화국의 면적은 9,596,961 km<sup>2</sup>이며, 이는 전세계에서 4번째로 넓은 국가이다.<ref>중화인민공화국보다 넓은 나라는 [[러시아]], [[캐나다]], [[미국]] 밖에 없다.</ref> [[2015년]] 11월 3일 [[러시아 연방]]으로부터 과거 [[아편전쟁]] 시기 [[러시아 제국]]에 할양했던 [[외만주]]에서 4.7km<sup>2</sup>의 영토를 반환받아 중화인민공화국의 면적은 9,596,965.7 km<sup>2</sup>이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유라시아]] 대륙 동부에 있다. 국경은 총 22,117km로, 국경이 세계에서 가장 긴 국가이다. 북동쪽으로 [[러시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 북한), 북쪽으로 [[러시아]], [[몽골]],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남서쪽으로는 [[히말라야산맥]]을 경계로 [[남아시아]]의 [[네팔]], [[부탄]], [[아프가니스탄]], [[인도]], [[파키스탄]]과 접하며, 남쪽으로는 [[동남아시아]]의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과 접한다. 해상으로는 [[황해]]를 사이에 두고 [[대한민국]], [[동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 [[타이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화민국]]과 접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상당히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으므로 지방마다 기후 등 지리 특색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지형은 서고동저로 동쪽에는 [[화베이 평원]]과 [[둥베이 평원]] 등의 평지가 있고, 서쪽에는 [[티베트고원]], [[톈산산맥]] 등의 험준한 산지가 많다. 중국에서 가장 높은 곳은 [[티베트 자치구]]에 위치한 [[에베레스트산]](주무랑마봉)으로 높이는 8,850m이다. 가장 낮은 곳은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에 위치한 [[투르판 분지]]로 높이는 -154m이다.
== 정치 ==
{{본문|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파일:Great Hall Of The People At Night.JPG|섬네일|left|[[인민대회당]]]]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당시에는 정당, 정파, 군, 기타 개인 등으로 구성된 인민정치협상회의가 중화인민공화국 정권을 탄생시킨 모체로서 국가권력기관의 핵심을 이루었으나 사실상 공산당의 절대우위가 인정되었고 [[1954년]] 이후에는 공산당이 정치권력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1949년]] 임시 헌법인 [[공동 강령]]의 채택 이래 중화인민공화국의 헌법은 [[1982년]]까지 4차의 개정을 거치는 동안 국가권력기관·[[인민해방군]]에 대한 권력구조 조정작업이 수반되었다. 헌법에 의하면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원수는 [[국가주석]]이고 최고권력기관은 [[전국인민대표대회]]으로 국가주석은 의전상의 지위에 지나지 않으나, 전인대 역시 공산당이 우위에 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총서기]]·정치국·[[군사위원회]] 주석)에 정치권력이 집중되어 있다.
형식적으로는 당과 정부는 동등한 권력을 가지나, 중국공산당은 정부보다 높은 위치에 있으며 실질적으로는 당 위원회와 당의 대표가 정부 요인 뿐만 아니라, 대학교 총장과 외국계 기업의 대표를 포함한 국가의 거의 모든 조직과 기관의 대표를 구성하게 된다. 명목상 중국공산당의 최고 지위는 총비서이고 이에 대해 전국인민대표회의가 통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ref>{{harvnb|Dumbaugh|Martin|2020|p=2|ref=dumbaugh}} "The main political structure of the PRC is comprised of two vertically integrated, but interlocking institutions: Throughout China, Party and Government structures closely parallel one another, with Party committees and representatives present not only in government agencies, but also in most organizations and institutions, including universities and foreignowned enterprises. The nominal leader of the CCP is the General Secretary, but control of the Party is held collectively by its Standing Committee. China’s Government is managed by the State Council, which is headed by its Premier."</ref>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57조에 따라 전국인민대표회의를 중국 최고권력기관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가장 높은 직책을 전인대에서 선출된 의장과 부의장으로 규정하고 있으나,<ref>{{harvnb|Dumbaugh|Martin|2020|p=2|ref=dumbaugh}} "According to Article 57 of China’s constitution, “The National People's Congress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is the highest organ of state power.” Its highest officers are the President and Vice-President of the NPC, which are directly elected by the members of the NPC."</ref>
실질적으로는 전인대는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국무원]]과 공산당 위원회에 종속되어 있다.<ref>{{harvnb|Dumbaugh|Martin|2020|p=3|ref=dumbaugh}} "in reality, for all of the PRC’s 60 year history, the NPC has been subordinate to the State Council and the Party Standing Committee."</ref>
실제로 국정을 움직이는 중심에는 공산당이 있으며, 당의 최고 지도집단인 정치국이 있고 정치국안에 상설집행기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政治局常務委員會)가 권력을 장악하는 구조이다. 중국공산당은 중앙뿐만 아니라 말단 행정기구까지 장악한다. 지방행정기구 역시 중앙과 같은 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각급 지방 행정기구는 해당 지역 공산당 서기가 실력자이며 공산당 부서기인 장이 행정을 관리한다.
형식적으로는 최고 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에 권력이 집중되는 민주집중제를 취한다.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서구의 의회에 상당하는 기구로 32개의 성, 자치구, 직할시, 홍콩 특구 및 인민해방군에서 선출되는 대표로 구성된다. 헌법의 개정과 헌법 실시, 감독 및 기본 법률을 제정, 개정하며 국가 주석과 부주석을 선출하고, 국가 경제, 사회 발전 계획 및 진행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심의, 비준한다. 산하의 상무위원회가 소집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중국의 인민대표는 18세 이상의 중국 공민에 의하여 선출되는데, [[인민대표]]는 직접선거를 거쳐 선출되지만, 인민대표의 상위 직책은 간접으로 선출된다. 전국인민대표대회의 대표들은 성급인민대표들의 선거로 선출된다. 사실상 [[중국공산당]]의 [[일당제]] 체제로 유지되고 있으며, 그 외에 [[민주제당파]]라는 8개의 정당이 존재하지만 중국공산당의 지도를 받는 [[위성정당]]으로 사실상 정치적인 영향력을 거의 갖지 못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국가 주석]]은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선출하며, 임기는 5년으로 2회를 초과하여 연임할 수 없다. 국가주석은 국내외에 국가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며, 법률을 공포하고, 총리, 부총리, 국무위원, 각 부장, 각 위원회 주임, 국무원 비서장을 임명한다. 하지만 2018년 3월 11일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헌법에 국가주석 임기를 폐지하였다.
총리가 수장인 [[국무원]]은 전국인민대표회의의 집행기관으로 [[법률]]에 근거한 행정법규 및 명령을 제정, 공포한다. 인민 경제, 사회 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국가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한다.
인민검찰원은 중국 최고 검찰기관으로 지방의 각급 [[인민검찰원]]과 전국인민검찰원의 활동을 지도한다. 전국인민대표회의와 상무위원회의 감독을 받는다.
=== 홍콩과 마카오의 일국양제 ===
{{본문|일국양제}}
1997년 [[영국]]에서 반환받은 [[홍콩]]과 1999년 [[포르투갈]]에서 반환받은 [[마카오]]는 고도의 자치권을 가지고 다른 체제 하에 유지되며, 입법부의 일부 의원은 직접 선거로 선출된다. 이러한 자치 체제를 [[일국양제]]라고 한다. 그러나 홍콩인들과 마카오인들은 리보실종사건 등의 발생을 보며 지켜지지 않는 일국양제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특히 현재 홍콩같은 경우는 독립을 주장하는 본토주의가 유행할 정도이다.
=== 타이완 ===
{{참고|중화민국|타이완 문제|타이완성 (중화인민공화국)|하나의 중국|두 개의 중국|양안 관계|양안통일}}
타이완은 청나라 때 중국의 영토였다가, 일본과 [[청일전쟁]]에서 진 후 [[센카쿠 열도]](중국명:댜오위다오)와 타이완섬을 일본에 할양하였다. 이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지고 중국 최초의 공화국인 [[중화민국]]이 1912년에 수립되었으나, 워낙 국내 상황이 혼란스러웠던 탓에 제대로 된 통치를 하지 못했으며 타이완섬 등도 여전히 일본의 영향권 내에 속해있었다. 그러던 중 1945년 8월 15일 [[일본제국]]이 전쟁에서 무조건 항복으로 패망하자, 타이완섬은 당시 중국 대륙을 지배하던 [[중국국민당|국민당]]의 중화민국에 다시 편입되었다. 그러나 1945년부터 1949년 사이에 일어난 [[국공 내전|국공내전]]에서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이 중화민국 정부를 쫒아내고 대륙을 점거하였고, 한때 중국 전역을 다스리던 합법 정부인 중화민국과 [[장제스]]를 위시한 정부 수반들은 공산당을 피해 타이완섬으로 도피, 즉 [[국부천대]]를 하였다. 이후 마오쩌둥은 1949년 10월 1일에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하였으나, 정작 1970년대까지는 미국을 포함한 다수의 서양 국가들과 국제 사회는 국민당의 중화민국을 중국의 유일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있었으며<ref>{{웹 인용|url=https://learning.blogs.nytimes.com/2011/10/25/oct-25-1971-peoples-republic-of-china-in-taiwan-out-at-un/|제목=Oct. 25, 1971 People’s Republic of China In, Taiwan Out, at U.N.|성=뉴욕타임스|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 UN에서의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이사국 목록|상임이사국]] 지위도 중화민국이 여전히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1971년에 [[베트남 전쟁]]을 겪으며 외교적 돌파구가 필요했던 미국과,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하고자 했던 중화인민공화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자 그해 10월 25일에 2758호 결의안으로 중화민국의 중국 대표권을 탈취해갔다.<ref>{{웹 인용|url=https://www.history.com/this-day-in-history/the-u-n-seats-the-peoples-republic-of-china-and-expels-taiwan|제목=The U.N. seats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and expels Taiwan|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은 90년대 이후로 경제 개방 정책을 펴며 국력을 급격히 신장시켰고, 이 증대된 국력을 이용하여 중화민국을 외교적, 국제적으로 압박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주장하며 중화민국의 국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현재 타이완섬의 중화민국은 옛 중화민국의 참칭 정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로 중화민국 측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을 반란 세력으로 보고 있으며, 여전히 중국 대륙의 합법적인 정부는 중화민국이라고 주장하면서 양안 관계는 아직까지도 안정을 찾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 행정 및 행정 구역 ===
{{본문|중화인민공화국의 행정 구역}}
[[파일:Chaina-administrative-koraan.png|섬네일|400px|오른쪽|중화인민공화국의 행정 구역]]
중화인민공화국의 최고행정기관은 [[국무원]]으로 즉 중앙인민정부이다. 국무원은 내정, 외교, 재정, 경제, 문화, 교육, 위생, 공공사업 등 행정사무를 조직하고 관리하여 행정결정과 명령을 반포하고, 전국 지방 각급 국가행정기관의 사업을 통일적으로 지도한다. 국무원은 총리, 부총리, 국무위원, 각 위원회 주임, 각부부장, 심계서 계장, 비서장으로 구성된다. 28개의 부서로 조직되어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행정 구역]]은 22개의 [[중화인민공화국의 행정 구역|성]](省)<ref name="taiwan">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은 [[타이완]]을 [[타이완 성 (중화인민공화국)|23번째 성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타이완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실효 통치 지역이 아니며 현재 [[중화민국]]의 [[타이완 성|영토]]이다.</ref>, 5개의 [[자치구]]({{zh|s=自治区|t=自治區}}), 4개의 [[직할시]]({{zh|s=直辖市|t=直轄市}}), 2개의 [[특별행정구]]({{zh|s=特别行政区|t=特別行政區}})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 [[특별행정구]]({{HKG}}, {{MAC}})를 제외한 지역을 [[중국 대륙]]({{zh|s=中国大陆|t=中國大陸}}; 중국 본토)으로 칭한다.
=== 사법 ===
중화인민공화국은 아직까지 [[사법부]]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아서, 사법 절차에서 자백을 얻기 위한 [[고문]], [[영장]] 없는 자의적인 체포 등의 [[인권]] 유린이 발생하기도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현대법은 [[1949년]] 당시 초강대국이던 [[소련]] [[법률]]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형성되었고, [[1979년]] 이후 경제 현대화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 등지의 투자에 발맞추기 위해 새로운 법안들이 통과되고 있다.
== 외교 ==
{{본문|중화인민공화국의 대외 관계}}
[[파일:Hu Jintao Bush.jpg|섬네일|250px|오른쪽|[[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전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
소련이 붕괴되고 소련의 지배적인 영향력에서 자유로워진 중화인민공화국은 자유 경제 체제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세계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ref>수립 초기에는 수교국이 적었으나, 1970년대 들어서 많은 나라랑 수교했다.</ref> 1950년 5월 9일 [[스웨덴]]이 서방 국가로서는 최초로 중화인민공화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외교에 있어서 특필해야할 것은 [[분단국가]]인 [[중화민국]]에 대비하여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스스로를 "중국의 정통한 정부"라고 하고 있는 점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냉전 구조 하에서, 건국 당초에는 완전히 동측 진영에 편입되어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 사후의 중소 대립을 거쳐, [[1964년]] 1월에 [[프랑스]]와 수교한 이후,<ref>1964년 1월에~: 강준만,《한국현대사산책》(1960년편 3권) (2004년, 인물과사상사) 19쪽.</ref> [[1979년]] [[1월 1일]]부터 [[미국]]과 수교하는 등 서방 측과의 관계 회복을 이루고, 동시에 [[중화민국]]을 대신하여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또한, 냉전 하에 있어서 서방측 여러나라와 [[소련]]과의 대립 관계의 미묘한 밸런스의 중간에서 {{모호}}, "중국을 대표하는 정당한 정부는 중화민국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이다"라는 기정 사실을 서방측의 다수 국가로부터 확인받아 하나의 중국 정책도 성공을 거두었다. 1989년 소련의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함으로써 소련-중국 간의 오랜 원한이 종지부를 찍었다. 1978년부터 시작된 경제개혁 이후부터 경제 면에서의 민주주의인 여러 나라와의 관계도 강화하고, 2001년에는 [[세계무역기구]]에도 가맹하였다. [[우크라이나]]는 1992년경에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 한 것으로 보인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을 자국 영토로 간주하고 ‘하나의 중국’이라는 사상을 내세워 타이완을 실효적으로 통치하는 [[중화민국]] 정부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중화민국]]을 승인하는 국가와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국제 연합|UN]] [[국제 연합 가입국|회원국]] 중 [[중화민국#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12개국]]([[바티칸]]은 준회원국)은 중화민국을 승인하고 있고, [[부탄]]은 중화인민공화국 및 중화민국 모두와 외교관계가 없다. [[폴란드]]는 1949년 10월 5일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하고, 양국은 10월 7일 대사급 외교 관계를 맺었다.<ref>{{뉴스 인용 |url= http://www.chinadaily.com.cn/english/doc/2004-06/08/content_337598.htm |제목= Major events in Sino-Polish relations | 날짜= 2004-06-08 | 출판사= China Daily }}</ref><ref>[http://www.mfa.gov.cn/eng/wjb/zzjg/xos/gjlb/3210/ Poland]</ref>
=== 외교 문제 ===
* 영토
중국과 [[일본]]은 센카쿠·댜오위다오가 각각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중화민국]]도 센카쿠·댜오위다오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센카쿠·댜오위다오가 [[타이완성 (중화인민공화국)|타이완성]]에 속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인도]]가 실효지배하고 있는 [[남티베트]]에 대해 과거 [[청나라]]의 영토였다고 주장하며 인도와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고, 중국이 실효지배 중인 [[악사이친]]을 두고도 인도와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다.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서는 [[이어도]]와 [[파랑초]] 문제가 놓여 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7/27/2011072700474.html (중국 이어도 도발)]
그 외에도 [[남중국해]]에 있는 [[스프래틀리 군도]]와 [[파라셀 제도]]를 둘러싼 문제도 있다. [[파라셀 제도]]는 중국과 베트남의 영토 분쟁 지역이며, [[스프래틀리 군도]]는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의 영토 분쟁 지역이다. 예전에는 소련과 [[중소 국경 분쟁]]이 일어났다. 하지만, [[1991년]] [[5월 16일]]에 체결된 [[중소 국경 협정]]으로 양측은 이들 섬이 중국의 영토라는 것에 합의했으나 중국이 더 강력해지면 [[외만주]]도 되찾으려할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경에 있는 백두산 일대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영유한 일부 지역에 대해 [[대한민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 역사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서 동북공정이 대표적인 외교 분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부여]]와 [[고구려]], [[발해]]를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베트남]], [[몽골]] 등 주변의 이웃 국가와도 역사 문제로 서로 대립하고 있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은 [[내몽골 자치구]]에 [[칭기스칸]]의 묘를 만들어 몽골의 역사를 왜곡하기도 했다.
대만 문제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 간에 벌어지고 있는 문제이다.
=== 대외 정책 ===
{{본문|중국의 대외정책}}
[[1970년대]] 이전, 국제사회가 공산주의 혁명과 전쟁의 시대에 놓여있다고 인식하고 전쟁이 필연적이라고 생각했던 마오쩌둥 중심의 대외정책이 그런 상황에서 우방인 소련과의 전쟁을 막기위한 동맹정책이었다면, 마오쩌둥 사망부터 [[1991년]] [[소련 붕괴]] 전 [[덩샤오핑]]와 [[장쩌민]] 중심의 대외정책은 국제사회가 평화의 발전 단계에 놓여있으며 전쟁은 피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독립자주 비동맹정책을 고수하는 대신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국가이익을 중시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소련 붕괴 이후 기존의 군사적 위협보다 정치, 경제, 사회적 위협이 증가하자 장쩌민은 전통적 안보위협요인에만 주목하는 기존의 안보관이 아닌 신안보관을 주요 안보정책의 기조로 활용하게 되었다.
== 국방 ==
{{본문|중국 인민해방군}}
[[파일:Prcinfantry.jpg|섬네일|250px|[[중국 인민해방군]]의 훈련 모습]]
헌법상 중화인민공화국의 군대는 국가(정부)의 군대가 아닌 [[중국공산당|당]]의 군대이다.<ref>이는 [[베트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라오스]], [[쿠바]] 등 공산주의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ref> 따라서 군대의 정식 명칭은 ‘중국군’이 아닌 ‘[[중국 인민해방군]]’이다. 병력 삭감 이전에는 현역병이400만명이었다. 병력 삭감 이후 현역병이 2,285,000명이다. 전차 7,470대, 전투기 4,092대, 전함 562척을 보유하고 있다. 결국 [[러시아]]를 제치고 다시 [[세계 군사력 순위]] 2위의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중국은 러시아의 [[T-72]]를 개량한 '99식'전차를 주전차로 사용하며, [[IL-28]]이라는 구형 폭격기를 보유하고 있다. 숫자만 많고 약하다고 무시당하던 [[중국인민해방군]]은 현대화로 해군·공군 및 사이버·위성 전력을 크게 확대하고 [[러시아]]의 [[쿠즈네초프 항공모함]]을 사들여 급속도로 강력해지고 있다. 이에 [[대한민국]], [[일본]], [[몽골]], [[필리핀]], [[베트남]] 등은 국가안보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 양탄일성 ==
중국의 핵개발은 1955년 첸쉐썬 박사와 함께 매카시즘 분위기의 미국에서 감시와 사찰을 받던 100여명의 과학자들이 귀국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 중 최고의 커리어였던 MIT-Caltech 교수를 역임했던 첸쉐썬 박사는 상하이교통대학 출신으로 MIT에서 석사를, Caltech에서 수학과 항공 공학에 박사 학위를 받은 인재였다. 그 뒤 MIT 교수를 거쳐 캘텍 교수로 재직하던 중, 미국의 미사일 개발에 참여한 바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대부분은 국민정부 시절 유학 보내준 중화민국 국비장학생 출신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이들은 모두 미국 정부의 사찰대상이 되었고, 이들은 대부분 국민당이 지배하는 대만 대신 공산당이 지배하는 대륙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결국 이들은 한국 전쟁에서 잡힌 미군 포로들과 교환되어 중국에 돌아왔다. 첸쉐썬 박사의 경우는 장인이 장개석의 고문으로서 말하자면 국민당쪽에 가까운 인물이었음에도, 미국 당국으로부터 빨갱이 소리를 듣고 가택연금을 당해야 했고, 첸박사는 이 원한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았다. 1970년대 미중관계는 매우 좋아졌고, 칼텍은 중국 미사일의 대부였던 첸쉐썬 박사를 초청했지만, 첸쉐선은 미국이 사과하지 않는 한, 미국 땅을 다시 밟지 않겠다고 했고, 끝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미국을 다시 가지 않았다.
중국은 중국은 처음에 소련에게 기술을 이전받아 미사일과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했으나, 소련은 거액을 챙기고도 중국에 기술을 이전해주는 척만 하고 핵심 기술은 알려주지 않았다. 거기에 중소결렬로 그나마 있었던 소련 기술진들도 1959년 중국에서 철수하여 중국은 자체 기술진이 독자적으로 개발하게 되었다.
1950년대 말이 되자 중국은 해상으로부터 미국에 의해 봉쇄되었고, 소련과 사이가 틀어져서 북쪽으로도 안보의 위협을 받게 되었고 여기에 인도와도 사이가 매우 나빠져서 남북 양쪽에서 위협을 받게 되었다.
중국의 첫 핵무기를 실질적으로 설계한 사람은 미국 유학파인 덩자셴(邓稼先, 1924-1986)박사였다. 1941년 중일전쟁 당시 쿤밍으로 도피한 여러 대학이 연합해 만든 서남연합대학에 입학해 1945년 졸업했다. 1946년 미국 유학을 떠나 1950년 미국 퍼듀 대학교 물리학과에서 핵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친한 고향 친구이자 유학 동기인 양전닝(1957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은 미국에 남는 것을 선택했지만, 덩자셴은 귀국을 선택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지 1주일 만에 중국행 선편을 타고, 1950년 10월 바로 귀국하여 중국과학원에서 핵물리학을 연구했다. 소련과의 결별로 1959년 독자 핵무기 개발이 결정되자 이론 팀을 맡아 여러 계산과 시뮬레이션을 실행하여 핵무기 개발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덩자센은 직접 핵실험을 참관하기도 했는데, 이때 여러번 방사선에 노출되어 비교적 젊은 나이인 1986년 암이 발병해 6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양탄일성에 참가한 대부분의 다른 과학자들이 모두 90대까지 살아남은 것을 보면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몸이 갈려 나간 것이다.
중소결렬 후 1959년 미사일 독자개발을 시작하여 소련의 R-2의 복제부터 시작했고, 이후 자체 기술을 축적하여 유명한 둥펑(DF) 시리즈 미사일을 개발하게 된다. 한편 핵무기는 1962년부터 개발을 추진했고, 2년만인 1964년 10월 16일 타클라마칸 사막에 있는 뤄부포 지역에서 최초의 핵실험인 596 프로젝트(원자폭탄)를 성공했다. 그리고 3년뒤 1967년 6월 17일에는 미국, 소련, 영국에 이어 TNT 3.3메가톤 위력의 수소폭탄 개발에도 성공했다.
당시 미국은 중국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핵처리 시설의 폭격을 검토했다. 케네디 행정부는 니키타 흐루쇼프에게 미국과 소련이 합동으로 중국의 핵시설을 외과수술식으로 정밀하게 폭격하자고 제안했으나 흐루쇼프는 케네디의 제안을 거절하였고,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던 시절에 베트남 방면에서 중국의 전면적인 개입을 부를 수 있는데다가, 오히려 중국이 다시 소련에 접근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어서 포기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결국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패배했다. 10년이 지나서 브레즈네프가 닉슨에게 역으로 미국과 소련이 합동으로 중국을 혼내주자는 제안을 하였으나 그때는 닉슨이 거절해버렸다.
핵실험 직후, 세계 최초로 핵폭발 상황에서 벌어지는 모의전투를 했다. 이때 사용된 핵폭탄의 폭발력은 22킬로톤으로 팻 맨과 거의 유사한 수준이다.
당시 중국은 미국-소련과 같은 양대 강국에 덤으로 인도까지 모두 적으로 두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죽기살기로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으면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돈도 없고, 기술도 없는 중국의 안보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핵실험이 성공한 직후 [[김일성]]이 방중했는데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와 회견하던 도중 "핵개발에 도대체 얼마 들었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저우언라이가 국가기밀이라 답변에 머뭇거리자 마오쩌둥이 "김일성 동지는 우리와 혈맹인데 비밀이 어딨나. 약 40억 달러 들었다네."라고 답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1960년대 40억 달러면 상상하기 어려운 액수임엔 틀림없다.
중국의 ICBM개발은 위의 첸쉐썬 박사의 귀국과 함께 소련과 유도탄 라이센스 협정을 맺으면서 시작된다. 소련은 이미 대륙간 탄도탄급인 R-7을 보유하고 있었고, 중국은 당시 소련의 외교방침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었지만, 전략무기인 R-7을 제공하지는 않고, V2의 단순복제형인 R-1과 이의 사정거리만을 늘린 R-2를 제안했다. 미사일을 포함한 전투기, 구축함, 잠수함에 대한 광범위한 라이센스 계약이 체결되자 소련은 총 1400여명의 기술진을 파견하였고, 이들 중 미사일 전문가는 100여명이었다.
중국은 소련의 설계국을 모방한 여러 "연구원"을 설립하였고, 첸쉐썬 박사는 탄도 미사일만을 담당하는 제5연구원의 원장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은 기반기술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기술흡수가 매우 미진하였다. 기초적인 기계제작 기술마저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대장장이들이 무기제작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소련 측은 계약과는 무관한 용접기술이나 공작기계 취급법까지 전수해야 했다.
하지만 흐루쇼프 서기장이 집권하면서 공산주의의 세계혁명론을 수정,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오쩌둥은 흐루쇼프의 수정주의를 반대했고, 이렇게 중국과 소련의 사이가 점점 나빠짐에 따라서 소련의 기술 전수는 무성의해지고, 특히 핵심 기술에 관련된 문서는 절대로 중국인에게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사이가 흔들리던 중국과 소련은 1960년 완전히 결렬되었고, 중국에서 기술개발을 돕던 소련 기술진은 모두 소련으로 돌아갔다. 중국측에 남겨진 것은 첸쉐썬 박사를 비롯해 국공내전 이전에 미국-유럽에서 공부한 석박사급 인재 100여명, 소련에서 수입한 R-2 시제품 및 소련인들이 귀환하면서 미처 파기하지 못한 문건들, 그리고 소련에서 공부를 마쳤거나 혹은 재학중 송환된 젊은 인재들이었다.한편 이 소련에서 유학중 소환된 귀국자들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여 몰살당하는 사고도 있었고, 중국측은 이를 소련의 음모라고 주장한다.
첸쉐썬 박사는 한편으로는 미사일 기술 인재들을 기르면서 한편으로는 소련의 기술고문단이 지도하던 복제작업을 독자적으로 감독했다. 첸쉐썬팀은 1960년 11월 내몽골에 위치한 주취안 우주기지에서 R-2 복제형인 둥펑(DF)-1의 발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하지만 약 1000km의 사정거리만을 갖는 DF-1은 전술적인 가치밖에 없었기 때문에, 중국은 좀 더 늘어난 사정거리를 보유한 미사일의 개발에 착수하였다. 이번에는 카피할만한 원본을 입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순수히 중국 기술진이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하고 제작해야만 했다.
하지만 고유 모델을 개발하는 것은 단순 복제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었기 때문에 중국은 몇년간 큰 어려움을 겪었다. 중거리 탄도미사일인 DF-2는 일본을 사정거리로 두기 위해 개발된 것이었으나 계속 실패했다. 첸쉐썬 박사는 몇년간 베이징 자택에도 돌아오지 않고 주취안에 상주하면서 미사일 개발을 감독할 정도였다. 5년간의 실패 끝에 DF-2의 여러 문제점을 해결한 개량형 DF-2A는 1965년 발사에 성공했으며, 여기에 막 개발된 중국의 핵폭탄을 탑재하여 발사하는 실험도 성공하였다. 이 실험 성공으로 첸쉐썬 박사는 일약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다. 특히 "첸 박사가 미국에서 연구하면서 얻은 지식은 이미 구식이기 때문에 별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라며 첸을 중국으로 추방한 미국 관계자들이 땅을 치고 후회했다고 한다.
1966년부터 벌어진 문화대혁명 때문에 중국의 여러 연구기관은 타격을 입었고, 제5연구원도 홍위병 직원들이 난동을 벌여서 원장이었던 첸쉐썬이 2주간 물러나고 홍위병이 접수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저우언라이가 개입하여 홍위병의 접수는 진압되고 연구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문화대혁명이 여러 차질을 빚기는 했지만, 중국정부는 안보를 위해서 (외국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홍위병의 습격대상이 될 수 있는 여러 과학자들에게 보디가드를 붙여주었을 정도였다.
첸쉐썬 박사는 DF-2를 개량한 동방홍 로켓을 개발, 동방홍 위성을 띄워서 중국이 스페이스 클럽에 세계 5번째로 가입하게 하는 대업적을 이뤘다. 사실 동방홍 위성은 프로파간다용이었고, 실제로 중국은 모스크바와 워싱턴 D.C.를 공격 가능한 DF-5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첸쉐썬 박사는 4인방을 지지하고, (4인방이 싫어하던) 덩샤오핑 주석 인맥인 제2포병 사령관 장아이핑을 디스하다가 1970년대 후반 4인방이 몰락하자 제5 연구원에서 영향력을 거의 잃어버린다. 하지만 그 때쯤 되면 중국은 첸쉐썬 박사급의 인재들이 여러 명인데다가, 첸쉐썬 박사가 이미 수백여명의 인재들을 길러냈기 때문에, 미사일 개발에 차질을 빚지는 않았으며, 1980년 주취안에서 발사한 ICBM이 태평양 공해에 착지하는 실험을 완료하고 세계에서 세번째로 ICBM 클럽에 가입했다. 이 ICBM은 DF-5라는 이름으로 1981년 실전 배치된다.
2010년 중국이 공식적으로 보유했다고 천명한 핵탄두 수는 240기이다. 냉전 이후 핵 군축을 하고도 여전히 수천기를 보유 중인 미국과 러시아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숫자이다. 다만 중국의 국방비와 마찬가지로 실제 중국의 핵무기 수량은 공개된 자료보다 많을 수 있다.
워싱턴 D.C., 뉴욕, 모스크바 등 사실상 전세계를 타격 가능한 대륙간 탄도 미사일은 2000년대 초반까지 20여기 정도였다가 현재는 150여기까지 늘었으며, DF-41 등 신형 ICBM 개발도 계속 진행 중이다. 한편 중국의 대부분 핵미사일은 사정거리 5000km 내의 중거리 탄도탄인데, 전략핵이든 전술핵이든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의 태평양 기지들은 모두 이 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간다.
그동안 일반에 공개한 적 있었던 세계 최대의 지하 핵무기 제조공장을 5차 북핵 이후에 다시 공개했다.
중국은 핵보유국 중에 유일하게 "적국이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한, 중국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허나 적국이 중국에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중국은 반드시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천명한 적이 있다.("인불범아 아불범인 인약범아 아필범인") 중국의 핵개발은 사실 재래식 무기를 확충할 재원이 없을 때 최소한의 핵개발로 필요한 전쟁억지력을 보유하자는 이유로 실행된 것이기 때문에 이런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세계 최빈국을 벗어나고 이제 세계 2위의 경제력을 가지게 되며 패권국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최근 국방백서에서는 그 조항을 빼버리는 등 이 조항을 포기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경제 ==
{{본문|중화인민공화국의 경제}}
모택동의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과 더불어 중국경제를 급속한 계획경제체제로 변경시켰다. 그들은 토지를 모두 국가 소유로 몰수하고 국민당의 관료나 자본가들의 자본을 몰수하면서 전반적인 산업의 국유화를 진행하였으며 소련의 사례를 참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민공사체제는 대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불렀으며 그들은 결국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민영화를 시도하여 농가책임경영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공산당은 현재에도 그 당시 관료들이 주도하는 국영기업이 어느 정도 성과는 이루었다고 변명하고 있다.
1978년에 덩샤오핑의 주도 하에 개혁적인 경제 정책을 실시한 이래 최소 6%를 상회하는 경제 성장률을 보여주고 있으며, 미국 뒤를 이은 제2의 수입국이기도 하다. 2010년과 2019년 사이, 중국의 세계GDP 차지비율은 25%에서 39%로 급격히 상승하였다.
1978년의 대대적인 개혁 이래, 중국은 다원화된 경제 구조를 가지고 세계 무역에 가장 활발히 참여하는 국가로 떠올랐다. 특히 상대적으로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하여 제조업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며, 그 외에도 소매업, 광산업, 철강업, 직물업, 자동차 산업, 발전업, 은행업, 전기업, 통신업, 부동산업, 관광업 등에서 크게 발달하고 있다. 중국에는 세계의 10대 주식 거래소들 중 3개가 위치하는데, 크게 상하이, 홍콩, 선전 주식 거래소가 있다. 이 거래소들을 합치면 2019년 기준으로 10조 달러에 이르는 자본금을 자랑한다.
중국은 전기 차량 제조업 국가이기도 하며, 2018년 기준으로 전세계 플러그인 전기차의 50%를 사들였다. 2018년 말 기준으로 중국은 174GW 용량의 태양량 발전을 가동하고 있으며, 전세계 태양량 발전량의 40%를 차지한다.
중국은 1978년 이래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사람들을 빈곤에서 구제하였는데, 1981년에 1.9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율이 88%였던 것에 반하여 2013년에는 이를 1.85%로 줄이며 8억에 가까운 사람들을 구제해낸 것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국 극빈자들의 수는 1990년과 2013년 사이에 7억 5천6백만 명에서 2,500만 명으로 줄었다고 전한다. 게다가 현재에는 극빈자를 규정하는 기준도 훨씬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적인 빈곤율은 2017년의 3.1%에서 2018년에는 1%로 줄었다.
=== 경제사 ===
{{덩샤오핑주의}}
==== 경제발전시기 ====
[[파일:Shanghaistockexchange.jpg|섬네일|right|상하이 증권거래소]]
중화인민공화국은 농업을 중심으로 한 대생산국으로 특히 1949년 정부수립 후 각종 산업의 생산고가 점차 증가일로를 걸어왔다. 제2차세계대전 후 중화인민공화국의 산업·경제의 발전단계는
# 1949~52년의 경제부흥기
# 1953~57년의 제1차 5개년계획기
# 1958~60년의 제2차 5개년계획기 (2년 앞당겨 달성)
# 1961~63년의 조정기
# 1966~70년의 제3차 5개년계획기
# 1971~75년의 제4차 5개년계획기
# 1976~85년의 경제발전 10개년계획
을 착수했으나 결함이 노출되어, 1979~81년의 경제조정기를 거쳐 1986~90년의 제7차 5개년계획에 이어 2010년까지 제9차 5개년계획에 들어갔다.
[[파일:Shanghainanjingroadpic4.jpg|섬네일|left|상하이의 주요 쇼핑가 [[난징루]]의 야경]]
==== 경제부흥기 ====
이들 각 시기의 특징은, 경제부흥기에는 1952년에 이미 전전의 최고생산고에 도달하여 문자 그대로 경제재건에 성공했고, 제1차 5개년 계획기(1953~57년)에는 소련의 원조로 중공업의 확충이 단행되었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말기에는 (a) 중공업의 중시와 농업의 경시, (b) 중공업 편중, 경공업 경시, (c) 대규모화·기계화의 무리한 목표설정에서 오는 자금의 낭비와 국내기술의 부실, (d) 공업의 내륙편중 등의 결함이 노정되었다.
==== 대약진 운동 ====
1958년에 시작된 제2차 5개년계획([[대약진운동]])에서, [[마오쩌둥]] 전 주석의 정책으로 [[계획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했다. 경제부흥기의 미해결문제의 해결을 위해 (a) 농업과 지방공업, (b) 경공업과 중공업, (c) 중앙공업과 지방공업, (d) 대규모 공업과 소규모 공업, (e) 재래식 생산과 외래식 생산의 조화를 지향했고, 이 기간중 공업생산 증가율은 40%에 달했다. 그러나 공업발전은 내용적으로 극히 불건전하여 (a) 생산품이 품질조악으로 사용가치가 적었고, (b) 재래식 생산 방식은 원료, 노동력, 연료의 낭비를 초래했고, (c) 기술문제가 등한시되었기 때문에 사고의 발생률이 높았으며, (d) 공업부문의 균형적 발전이 저해되었다.
==== 인민공사 ====
농촌을 현대화시키기 위해 1958년부터 [[인민공사]]가 조직되었다. 소위 대약진기라는 이 시기에 이어 1959~61년에 걸친 연속적인 자연재해로 인민공사에 대한 회의가 고개를 들어 농업생산은 크게 줄고 공업원료는 부족하여 경공업생산도 그 파급으로 타격을 입는 등 농·공 사이의 균형이 크게 문제가 되고 게다가 1960년 7월 국경 분쟁으로 인한 중·소대립의 악화로 소련의 공업전문가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고 소련의 무상원조, 자재지원도 중단되어 심각한 경제위기가 찾아들었다.
==== 경제조정기 ====
그래서 1961년부터는 경제조정기가 시작되어 농업재해, 대약진의 실패, 소련의 원조중단 등에서 온 위기를 극복하는 데 노력이 집중되었다. 1961년에는 조정·공고화·충실·생산제고 등의 목표로 정책이 전환되어 공업의 규모는 대폭 축소되었다. 1962년부터 농업생산이 호전하여 경제 전반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에는 농업, 경공업, 중공업의 순차적인 발전이 도모되어 공업의 위치가 2차적인 것이 되었으며 공업구조 내부의 조정이 중시되었고, 농업 지원도의 재고로 공업의 내적 충실화가 모색되었다.
==== 현대공업체제 ====
3차 5개년계획(1966~70년) 실시 이후 독립되고 거의 완전한 근대공업체제의 건설단계에 들어갔다. 1967년 이후 홍위병 난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각종 산업, 특히 광공업 부문에서 생산이 상당히 저하했다. 중국의 산업건설의 기본방향은 농업을 기초로 하고 광공업에 선도구실을 시키려는 것인데, 1968년 이후 홍위병 난동이 수습단계에 들어가면 생산도 다시 호전의 기미를 보였다.<ref>《[[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시아/중 국#중국의 산업|중국의 산업]]〉</ref> 결국, 국가 성립 후 1970년대 중반까지의 경제는 대약진정책의 실패와 문화대혁명에 의하여 뒤떨어져 있었다.
==== 개혁개방 ====
1978년에는 경제발전 10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4개 현대화에 착수했으나 각종 누적된 결함이 노출되어, 1979년 조정방향이 설정되면서 본격적인 개방과 개혁정책이 건의되었다. 1980년초에는 기업의 자율화, 외국기업의 투자 보강, 금융의 자율화, 세제 도입 등의 조치를 단계적으로 채택한 후, 1984년 대규모 경제개혁이 채택되었다. 이에 1985년 인플레와 과열경기현상이 나타났고, 1986년 4월 안정과 균형에 기저를 둔 지속적 성장을 목표로 한 제7차 5개년계획(1986~90년)을 채택했다.<ref>《[[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시아/중 국#중국의 전후 경제발전|중국의 전후 경제발전]]〉</ref>
==== 세계의 공장 ====
[[덩샤오핑]]에 의한 [[자본주의]] 경제제도 도입 등의 개혁 개방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경제는 급속히 발전하여 ‘세계의 공장’이라고도 불리고 있다.<ref>{{뉴스 인용 |url=http://news.hankooki.com/lpage/economy/200903/h2009031114552721500.htm |제목=[금융위기 6개월] ⑥ 흔들리는 세계의 공장 중국 |날짜=2009-03-11 |확인날짜=2010-03-06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01026163136/http://news.hankooki.com/lpage/economy/200903/h2009031114552721500.htm |보존날짜=2010-10-26 |url-status=dead }}</ref>[[세계무역기구]](WTO)의 발표로는, [[2003년]]의 대 중국 직접투자는 535억 달러가 되어 [[미국]]을 제치고 실질적으로 세계 최대의 직접투자 수입국이 되었다.{{출처|날짜=2010-01-09}} 세계 최대의 인구와 강한 경제력 덕분에 중국 경제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 중화인민공화국 국내 노동자들은 연안부나 대도시 근교를 제외하면 지방 인민의 대다수가 [[아프리카]] 여러 나라와 동일한 정도의 빈민층이며, 농업을 할 수 없는 계절에 도시 지역에 유입되어 객지에서 노동하고 있다.{{출처|날짜=2010-01-09}} 그들은 매우 저렴한 임금으로 도시 지역에서 일하기 때문에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값싼 노동력을 목적으로 [[미국]], [[서구]]나 [[대한민국]]·[[일본]]의 기업 진출도 번성하여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릴 정도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에서도 [[대한민국]]에 무역 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출처|날짜=2010-01-09}}
현재 경제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는 점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8.5%로 예상하였다. 다른 나라인 인도 역시 경제성장률을 6.3%로 큰 폭으로 예상하였다.{{출처|날짜=2010-01-09}}
=== 농업 ===
[[파일:Xianning-fields-9731.jpg|섬네일|right|[[물소]]를 이용하여 농사를 짓는 모습]]
중국에는 농사를 짓기에 편리한 3대 평야가 있는데, [[후베이성|호북평야]], [[후난성|호남평야]], [[쓰촨성|사천평야]]이다.
==== 지역별 농업 ====
중화인민공화국의 국토는 [[신석기 시대]]에 이미 경작되어 있었고, 경지도 널리 분포해 있어 각지의 토지 이용이나 농업 경영방식은 지역별 자연조건이라든가 사회환경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중국인 학자들과 함께 치밀한 현지조사를 한 로싱백은 [[화이허(淮河)]]와 친링(秦嶺)선에서 수도(水稻)지역과 소맥(小麥) 지역으로 크게 둘로 나누고, 나아가서 다시 소맥지역을 창장(長江)수도 소맥구, 쓰촨 수도구, 수도·차(茶)구, 서남수도구, 수도 2기작구(二期作區)로 세분하고, 한편 북부의 소맥지대를 겨울보리·수수구, 겨울보리·조구, 봄보리구로 구분했다.
==== 전통적인 농업방식 ====
이러한 지역구분은 주변 지대로의 확대도 가능하여 동북지구를 콩·수수구로 보고 내몽골 지방과 티베트 및 [[칭하이]] 지방을 목축구로, [[타이완섬]]과 [[하이난섬]]을 2기작구로 볼 수도 있다. 종래 중화인민공화국의 농가는 주로 자급용기의 곡물과 콩 종류를 재배하고, 여력이 있으면 판매용 작물을 길렀다. 수도(벼)는 기온이 높고 강우량이 많은 화이허 이남에서 주로 생산되는데 특히 광둥·푸젠 양성(兩省) 연해 지방은 [[이모작]]이 가능하다.
==== 쌀 ====
[[쌀]]의 총생산량은 17,825만t(1994년 기준)으로 [[방글라데시]]에 이어 세계 제2위이지만 국내소비가 많기 때문에 수출은 소량이다.
==== 밀 ====
소맥([[밀]])은 중국본토 북부와 동부지구 북부를 중심으로 하며 화이허와 양쯔강에 연하여 평야지대에서도 제2기작으로서 재배된다. 산시(陜西), 산시(山西) 북부에서 [[옌산산맥]] 북서에 걸치는 지방에서는 기후가 한랭한 관계로 춘경보리가 재배된다. 총생산 3,200만t(1994년 기준)으로 만주, 바오즈 등을 주식으로 하기 때문에 대부분 국내에서 소비된다.
==== 고구마 ====
[[고구마]]는 [[산둥]], [[허베이]], [[허난]]에서 재배되고 조, 수수 등은 동북과 화북의 평야 및 [[쓰촨]] 분지에서 많이 산출된다.
==== 옥수수 ====
[[옥수수]]는 [[랴오둥반도]], 황하 이북의 후베이(湖北)평야, 산시·산시의 남부에서 쓰촨에 걸치는 지대에서 많이 나는데 식량과 사료로 쓰인다.
==== 콩 ====
[[콩]]은 [[둥베이 평원]]과 [[산둥반도]]에서 많이 나오는데 총생산고는 약 1,212만 t이다. 면화는 [[랴오허강]] 하류의 평야에서부터 후난(湖南, 쓰촨, 구이저우(貴州)의 각 성에 이르는 지역에 분포해 있으며 허베이 평야지대, 산시·산시의 남부, 후난, 장쑤, 안후이, 후베이의 제성이 그 생산 중심이 되어 있다.
==== 면화 ====
[[면화]]는 관개작물로 결실기의 건조한 기후가 양질의 작물을 낳는다.
==== 가축 ====
가축은 돼지, 닭, 오리 외에 노력과 배료원으로서 나귀, 노새(밭농사지대), 소, 물소(수전지대), 말(초원지대) 등이 많으며 양은 식육 및 모(毛) 자원으로서 동북지구, 내몽골 지방, 신장·위구르 지방, 티베트 등 변경 지대에서 많이 사육된다.<ref>《[[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시아/중 국#중국의 농업|중국의 농업]]〉</ref>
==== 문제점 ====
중화인민공화국에는 고도 경제 성장의 이면에, 농업의 저생산성, 농촌의 황폐, 농민의 저소득이라는 3농 문제가 심각하여 경제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도시와 농촌의 수입격차가 계속 확대하면서 토지 수용에 과한 쟁의도 빈발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농업생산진흥책과 농업세의 폐지 등에 열의를 보여서, 2007년 3월의 제10기 전인대 제3회 회의에서는, 물권법을 제정하여 토지사용권의 물권화를 인정하고 농촌대책비를 긴급 증편하여, 농촌의 의료와 교육에 대한 보조금의 증액을 결정하였다.
=== 공업 ===
[[파일:Factory in China at Yangtze River.JPG|섬네일|left|[[장강]] 유역의 공장 지대]]
2차대전 전의 중화인민공화국의 공업 분포는 일본이 지배했던 동북지구와 함포(艦砲) 외교 아래 열강이 투자한 연해 지역·대하천 유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중일 전쟁]]이 1937년에 발발하면서 국방상의 배려로 공업이 내륙지방으로 소개되고, 또 전후에는 공업의 적정재배치가 단행되어 종래의 공업 편재상은 상당히 수정되었다. 전전 동북지구의 안산 벤시후를 비롯해 허베이, 산시, 쓰촨, 후베이 등지가 중심이 되었던 제철·제강업은 전후 기간산업으로서 중요성을 더하여 [[우한]], [[바오터우]] 등지에 거대한 철강공업 기지가 신설되었다. 중기계공업을 보면, 광산·야금기계가 [[타이위안]], [[선양]], [[치치하얼]] 등지에서, 발전기가 [[상하이]], [[하얼빈]] 등지에서, 그리고 정유기계가 [[란저우]]에서 제조되고 있다. 중형 기계공업으로는 방직기계가 [[위츠]], 상하이, [[칭다오]] 등지에서, 조선(造船)이 [[뤼다]], 상하이 등지에서, 철도 차량이 뤼다, 치치하얼, 칭다오 등지에서 자동차가 [[장춘]], [[뤄양]], 정밀기계가 상하이, 하얼빈, [[샤먼]], 염료·의약품이 상하이에서, 비료가 [[난징]]에서 생산되고 있다.전전(戰前) 중화인민공화국의 공업은 경공업 위주였는데 특히 방적업이 성한 [[톈진]], 칭다오와 면방직이 성한 상하이, [[우시]], [[난퉁]] 등 양쯔강 연안의 여러 도시가 그 중심이 되어 있었다. 전후(戰後) 상하이의 면방직공장이 확충되고 면화지대인 [[스자좡]], [[한단]], [[정저우]], [[시안]], [[셴양]], 우한, [[우루무치]] 등지에 대공장이 건설되는 등 내륙의 원료 산지로의 공업 진출이 활발하다.식품공업은 전전 상하이, 칭다오 등지가 중심이 되어 연초가공, 제분, 육류가공, 양조 등이 성했는데 전후에는 유류(乳類)를 가공하는 대공장이 [[하이라얼]], [[시닝]]에, 육류가공공장이 우한·[[청두]]에 건설되고 또 상하이로부터 이전한 [[방푸]]의 일용품공업이나 뤄양의 제분·착유공업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동북지구는 유지·제당, 본토 북·동부는 제분·연초·유지·남부는 제당으로 각각 알려져 있다.<ref>《[[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시아/중 국#중국의 공업|중국의 공업]]〉</ref>
=== 무역 ===
2017년 기준으로 중국의 주요 수출 상대국은 미국 (19.01%), 홍콩(12.34%), 일본(6.06%), 한국(4.54%), 베트남(3.16%)이다. 주요 수입 상대국은 한국(9.63%), 일본(8.99%), 아시아(8.46%), 미국(8.38%)으로 주요 수출입 상대국은 모두 인접 아시아 국가들이다. 2017년 기준으로 총수출액은 2,263,371백만 달러, 총수입액은 1,843,793백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 품목은 변속기 장치(165,991,555.66달러), 저장 장치(89,690,331천 달러), 전자 부품(74,102,011천 달러), 반도체(68,167,379천 달러), 전화기 부품(51,057,293천 달러)이다. 주요 수입 품목은 반도체(260,920,122천 달러), 석유(163,820,666천 달러), 철광석,604,641천 달러), 금광석(48,740,696천 달러), 전화기 부품(41,293,629천 달러)이다.<ref>[https://wits.worldbank.org/, World Integrated Trade Solution] Worldbank</ref>
=== 소득 격차 ===
개혁 개방 이후의 활발한 경제 발전의 이면에는 국민의 80%를 차지하는 농민과 도시 지역 사람들과의 소득 격차 문제가 있으며, 이는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산주의]]로부터의 일탈을 의미한다. 이 빈부 격차 문제는 향후의 중국 경제의 방향을 결정하는 요소이며, 새로 출범한 [[후진타오]] 정권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농촌과 도시 지역 간의 빈부 격차 문제 해소를 논의하는 등 긴급하게 대응하고 있다. 2005년 3월의 전인대 이후, 후진타오 지도부는 "조화로운 사회 건설"의 건설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는 경제성장의 이면에, 빈부의 격차, 치안, 실업, 부패 등의 문제가 심각하게 되었다. 생활고 및 토지수용이나 독직 등 당국에의 불만으로부터 중국 각지에서 데모와 폭동이 빈발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사태의 악화를 염려하며, "조화로운 사회"의 건설을 중요과제로서 제기하였다. 그 실현을 위해서는, 부의 재분배 시스템을 확립하고, 빈부의 격차의 해소에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기득권층의 이해에도 저촉하기 때문에, 그 실현에는 곤란이 뒤따르고 있다.<ref name="고쿠분 료세">{{서적 인용 |저자= 고쿠분 료세{{lang|ja|(国分良成)}} |제목= 현대용어의 기초지식{{lang|ja|(現代用語の基礎知識)}} |장={{lang|ja|中国}} |출판사=지유고쿠민샤{{lang|ja|(自有国民社)}} |판=| 언어=일본어 |ISBN=978-4-426-10128-2}}</ref> {{Rp|497}} [[1990년]] 빈곤율은 50%이나, 최근 많이 줄었다. {{출처|날짜=2009-06-17}} 또한, 열악한 노동 환경도 개선되어야 할 문제점이다.
=== 교통 ===
[[파일:Beijing Terminal 3.jpg|섬네일|right|아시아에서 제일 바쁜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
{{본문|중화인민공화국의 교통}}
'중화인민공화국의 교통'은 1949년부터, 특히 1980년대 초반부터 크게 발전하였다.
공항, 도로, 철도 건설은 2010년대에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운송 수단으로서 중요한 철도는 20세기 중반이래 2배의 길이로 늘어났고, 전국을 잇고 있다. 주요 대도시들은 전철 시스템을 운영 또는 건설중이거나 계획 단계에 있다. 고속도로와 도로 체계도 급속히 성장하였고 그 결과 중국 전역에서 자동차도 급속히 증가하였다. 중국의 교통 체계는 방대한 국토에 걸쳐 넓은 교통 교차점의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으나, 교차점들은 비교적 경제적으로 발달한 해안 지대와 주요 강을 따라 발달한 도시들에 집중되어 있다. 중국 교통 기반시설의 물적 상황과 그 이용 실태는 지리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시골 지역에서는 아직도 비기계적인 운송 수단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반면, [[상하이]]와 [[푸동 국제공항]]을 연결하는 [[자기부상열차]]도 건설되었다.
[[티베트]]의 [[말 (동물)|말]]과 중국의 [[녹차]]를 주로 교환한 것에서 유래한 전통적인 [[차마고도]] (윈난 성 ~ 티베트)도 지금은 국도와 고속도로, 티베트 철도로 대체되어, 이제는 관광객들이 일부 이용할 뿐이다. 현재 중국의 교통 체계의 상당수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중국은 현재 교통 인프라의 업그레이드를 광범위하게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까지, 중국의 경제는 인프라 개발 부족에 불구하고, 교통 인프라를 개발할 여력이 부족했었다. 그러나 이제 중국 정부는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물자를 수송하고 사람을 이동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세계 은행]]의 1990년대 중반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열악한 교통 인프라로 인하여 손실되는 물류량이 중국 GDP의 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물류 비용은 생산 원가의 20%로서 미국의 10%, 기타 선진국의 5%와 크게 대비된다. 중국의 항구는 수로의 이용을 위해 크게 개선되고 있으며 공항 설비도 향상되고 있다. 건설 장비, 엔지니어링, 콘테이너 보안, 전자산업, 안전 도구와 같은 교통 관련 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파일:BEIJING_RAILWAY_STATION_CHINA_OCT_2012_(8807738400).jpg|섬네일|left|베이징 역]]
철도는 동북지구와 북부에 편재해 있다. 철도는 중국에 있어서 현대 운수의 근간을 이룬다. 중국 철도의 총 길이는 2009년에 86,000km로 연장되었다. 철도 밀도는 89.6km/10,000km<sup>2</sup>로, 이웃한 대한민국에 비하여 0.29배에 불과하다. 여객 수송은 연간 215억명/km, 철도선은 60여개를 헤아리고, 수송량은 전수송량의 85%에 이르고 있다. 새로운 도로의 적극적인 건설로 1978년에는 자동차의 통행이 가능한 도로의 총연장이 89만km에 이르렀다.<ref>《[[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시아/중 국#도로|도로]]〉</ref> 항공 교통이 1990년대 말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철도 교통은 여전히 가장 이용객이 많은 교통 수단이다. 1990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노력으로 중국의 고속도로는 2009년 기준으로 65,000km를 넘는다.<ref>{{뉴스 인용 |url = http://www.chinadaily.com.cn/bizchina/2010-01/16/content_9331001.htm |제목 = Chinese highways for fast traffic add up to 65,000 km |출판사 = China Daily |날짜 = 2010-01-16}}</ref> 이것은 길이 기준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자랑하는 수치이다.
1,200여개의 하천은 예로부터 가장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고 경제적 동맥이 되어 왔으며, 특히 [[장강]]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예부터 중국에서 남선북마(南船北馬)라 일컬은 것은 [[장강]] 수계가 차지하는 경제적 의의를 설명하는 것이다. [[수나라]] 때부터 화중의 농산물을 화북으로 운송할 목적으로 건설된 [[대운하]]는 현재는 국부적으로 이용될 뿐이고, 남북간의 물자 수송은 경한선·진포선 등의 철도로 하고 있다.<ref name="아시아">《[[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시아/아시아의 교통|아시아의 교통]]〉</ref> [[주강 (강)|주강]], [[쑹화강]]도 주요한 하천이다. 1956년 중국의 민간항공로의 총 연장은 1만7,194km였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모스크바, 평양, 하노이, 양곤, 울란바타르 등지에 정기항로가 개설되어 있고 국내 주요도시를 연결하는 항공망도 정비되어 있다. 영토가 광대한 중국에서는 항공 발전은 큰 의미를 가진다. 예컨대 철도편으로 10~15일이 소요되는 베이징 우루무치간의 거리는 항공로로 8~10시간이면 갈 수 있다.<ref>《[[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시아/중 국#항공로|항공로]]〉</ref> 중국과 대한민국 사이에는 대한항공이 중국 내 20개 도시에서 26개 노선을, 아시아나 항공은 22개 도시 30개 노선을 각각 운항 중이다. 2010년 8월, 대한항공은 83%, 아시아나항공은 83.6%의 탑승율을 기록했다. 8월 한달 동안, 각각 35만2천명과 29만4천명의 탑승객을 운송하였다.<ref name="biz.chosun.com">{{뉴스 인용 |url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05/2010090500823.html | 제목 = 중국 노선 탑승률 사상 첫 80% 돌파 | 출판사 = 조선일보 | 날짜 =2010-09-06}}</ref>
== 사회 ==
=== 인구와 주민 ===
{{참고|중화인민공화국의 인구}}
중국의 사회는 신해혁명 이후 매우 근대화되었다. 신해혁명 이전에 중국 인구 80% 이상은 성씨를 가지고 있지 않은 백성들이였으며 이들은 한족으로 구분되지도 않았다. "족"이라는 족보 명칭은 소수 귀족 또는 강등된 귀족만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신해혁명 이후에 쑨원은 서양열강들처럼 근대화에선 농노비 해방의 중요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고 일부 족보 귀족들만 사용할 수 있었던 성씨를 백성들도 사용할 수 있게 하여 대대적 민적법을 실행하였다. 중국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던 농노들을 해방시켜 산업활동을 할 수 있게 하였다. 신해혁명 이후, 만주족이 아닌 한족의 국가를 표방하고 인구 80% 이상의 성씨가 없던 백성들이 [[한족]](漢族)으로 등록되었기 때문에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중국 인구의 92%는 한족이며 그 외 55개의 소수 민족들이 8%이다. 이후 한족이지만 청나라 시절 만주족의 잡역을 담당하며 만주족으로 불렸던 한족계 만주족들은 민적법 이후 스스로 한족으로 변경하였으나, 이후 1970년 이후 소수민족혜택 정책이 나타나면서 다시 만주족으로 변경하는 자들이 늘고 있다.
원래 중국은 현재처럼 인구가 많은 국가는 아니였다. 공산당의 정책은 가족의 구성 숫자대로 양식과 돈을 분배를 하는 정책을 썼기 때문에 인민들은 자녀가 많을 수록 분배되는 양식과 돈이 많았다. 그래서 당시 많은 자녀들의 숫자는 많은 양식과 돈의 분배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였으며 또한 농업에 종사하는 가족의 구성원이 많을 수록 분배가 많았기 때문에 농업 지역의 인구 수가 비정상적으로 늘었다. 이러한 가족 구성원 수대로 공정한 분배를 원칙으로 하는 공산정책으로 인해 중국인들은 가족의 숫자를 늘리려 하였고 이로 인해 중국의 인구가 늘어난 것이다. 이후 경제개방 정책을 펼쳐 도시에서는 가족 구성원 수대로 분배하는 정책을 줄이게 되었고 1970년대에는 1자녀 정책으로 자녀 수를 제한시켰다.<ref>制度与人口:以中国历史和现实为基础的分析 王跃生</ref> 중국 전체의 인구는 2015년 말에 13억 5,569만 명이었으며,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인구증가율은 0.52%(2010년~2015년)이며 1995년 이후 1% 미만의 낮은 증가율을 지속하고 있다. 1979년부터 인구 억제책으로서 한 부부에 한 자녀라고 하는 정책이 실시되고 있다. 1자녀 가정에는 장려금, 학교에의 우선 입학 등의 혜택이 주어지나, 위반한 자에게는 반대로 벌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농촌 지역에서는 다(多)자녀의 전통적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강하여, 정책이 형해화된 지역도 많다. 중위 연령은 37.0세이며 2015년 노인 인구 비율이 9.55%로 고령화 사회에 해당한다. 2040년경에는 65세 이상의 노령 인구가 20%에 달하고, 초고령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것을 반영한 것인지, 정부는 2002년 9월 1일에 "인구와 계획 출산법"을 시행하여, 조건부로 1자녀 정책을 완화하였다.<ref name="고쿠분 료세" /> {{Rp|497}}<ref>[http://esa.un.org/unpd/wpp/Download/Standard/Population/, UN 경제 사회국 인구 분과]{{깨진 링크|url=http://esa.un.org/unpd/wpp/Download/Standard/Population/, }} UN 세계 인구 추계 2015년 판</ref> 중국에서 가장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는 성(省)은 서남부의 [[윈난성]](雲南省)으로 35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21세기부터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중화인민공화국의 인구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2023년 12월 중국은 인도에 인구대국 1위 타이틀을 빼앗겼다.
=== 언어 ===
{{참고|중국어}}
중국 국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공용어인 [[표준 중국어]](普通話)는 세계에서 가장 사용자가 많은 언어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으며 이 중 대부분이 [[중국어]]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중국어는 여러 가지 방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북방방언]](北方方言), [[오어]](吳語, 상하이어 등), [[광둥어]](廣東語), [[푸젠어]](福建語), [[객가어]](客家語)의 5개로 대별되며 방언들 간에는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중국 전 지역에서 통용되는 표준 중국어는 베이징화(北京話)의 발음을 표준음으로 하고 북방어를 기초로 하여 현대백화(現代白話, 구어)의 문장을 문법 규범으로 하고 있다.
중국어를 표기하는 [[한자]]는 총 6만 자 가량으로, 그 중 2,500자가 상용한자로 지정되어 있다. 한자 간략화 정책 때문에 중국 대륙에서는 [[한국어의 한자|한국어에서 사용되는 한자]]인 정체자와 다른 [[간체자]](簡體字)가 통상 사용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56개의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으나 98%는 중국인 한족(漢族)으로 소수민족의 인구는 매우 적다. 한족(漢族)의 비율이 98%가 되기 때문에 중국은 한족(漢族) 단일 민족으로 봐도 무관하나 신분증 표기에 소수민족과 한족(漢族)의 구분이 되게 표기되어 있으며 중국은 사실상 외국인의 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소수민족이 될 수 없으며 원래 살고 있던 매우 적은 인구의 소수민족들이 신분증에 표기되어 있다. 소수민족은 대부분 각 민족 언어와 표준 중국어를 병용한다. 소수 민족 언어로는 [[좡어]], [[티베트어]], [[위구르어]] 등이 널리 쓰인다. 그중에는 극 소수의 인구인 [[나시족]](納西族)의 [[동파 문자]](東巴文)와 같은 [[표의 문자]]도 있다.
표준 중국어와 함께 1990년대 말에 반환된 [[홍콩]]에서는 광둥어와 영어를, [[마카오]]에서는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사용된다.
=== 교육 ===
국가 전체의 [[문맹률]]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조사를 따르면 약 9.1%로, 중간 이하이다. 도시 지역에서는 문맹률이 많이 낮아졌으나 [[티베트 자치구]]나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 서부 지방에서는 아직도 문맹률이 높다. [[2003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국민들의 [[의무 교육]] 기간을 [[초등교육]]의 6년에서 [[중학교]]의 9년으로 확대하였다. 학년은 [[9월]]에 시작해서 이듬해 [[7월]]에 끝난다. 중국에서는 고등학교 수학에서 [[미적분]]을 아예 다루지 않고 있는 대신 [[복소평면]]과 [[역삼각함수]]를 다루고 있다. 또한 중국의 대학 입시는 [[가오카오]]라고 부르며, 고급중학(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 3학년 말인 [[6월 7일]]과 [[6월 8일]]에 치른다. 과목은 어문, 수학, 문과종합, 이과종합, 외국어를 치른다.
=== 미디어 ===
2019년 6월 5일 미국 프리덤하우스는 중국의 언론 지수에 최고 점수 4점 중 가장 낮은 점수인 0점을 주었다. 즉 언론의 자유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완전히 편향적이라는 것이다.<ref>http://www.newsis.com/view/?id=NISX20190606_0000673617&cID=10101&pID=10100</ref>
국영통신으로는 [[신화통신]]이 있다. [[신화통신]]은 [[1931년]]에 [[장시성]] [[루이진]]에서 '홍색중앙통신사'로 처음 발족했고, [[1934년]]에는 [[대장정]]에 [[마오쩌둥]]과 함께 올랐으며 [[1937년]]에는 [[옌안]]에서 '신화통신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현재에 이른다. 이곳은 《[[인민일보]]》, [[중국중앙방송]]의 기사를 보내고 있다. 또 이 통신사에서 발간하는 간행물로는 《[[신화매일전신]]》, 《[[참고신문]]》, [[중국신화방송]] 등이 있는데, 《참고신문》은 주로 공산당원이 많이 읽는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대표적인 신문은 《[[인민일보]]》로써, 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이다. 이 신문은 [[1948년]]에 창간되었다. 이 신문은 당보인 것처럼 중국공산당의 입장, 정책설명, 당의 공보 등을 발표하고 있으며, 영어판과 한국어 서비스를 비롯해 7개의 외국어판을 발행하고 있다. 이 외에 《[[해방군보]]》, 《[[광명일보]]》, 《[[공인일보]]》를 발행하며, 《[[중국일보]]》는 외국인들을 위한 영문판 일간지이다. 외국어판 신문인 《[[베이징타임스]]》는 재미있는 기사와 강렬한 천연색 사진을 편집하여 외국인과 중국인에게 많은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방송은 국영방송인 [[중국중앙방송]]([[CCTV]])과 [[베이징 텔레비전]], [[홍콩스타TV방송]] 등이 있으며, 중국중앙전시대는 원래 광고편성을 하지 않았으나, [[1980년대]]에 [[광고]]를 시작했다. 중국정부에서는 언론을 검열하므로 [[BBC]]를 들을 수 없다.<ref>《열정의 편집》/앙드레 쉬프랭 지음/류병훈 옮김/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ref>
=== 환경 ===
중국 각지에서 대기오염, 수질오염, 고형 폐기물, 소음, 사막화, 산성비, 물부족 등의 환경문제가 심각하게 되었다. 1973년에 제1회 전국환경보호회의가 개최된 이래, 환경보전에 대한 조직적 대응이 시작되어, 1979년의 환경보호법(시행) 채택을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1983년에는 환경보전을 기본 국책으로 위상을 높였다. 1988년에 환경보호법이 수정되어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기업에게 벌칙이 강화된 이외에, 1997년의 형법 개정으로 자원환경파괴죄가 신설되었다. 또한 1998년의 국무원 개혁으로 1984년에 설치되었던 국가환경보호국이 국가환경보호총국으로 격상되었고, 2008년 3월에는 환경보호성으로 승격되었다. 이러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환경문제는 의연히 악화경향에 있다. 이것은 환경개선에의 기술적, 자금적인 문제도 있으나, 환경보호단체를 비영리단체로서 조직하는 것이 일부 규제되고 있는 등, 일반시민에게 환경보전의식이 침투하기 어렵다고 하는 정치체제에 기원하는 것도 크다.<ref name="고쿠분 료세"/> {{Rp|497}}
== 사회문제 및 국제문제 ==
=== 인권문제 ===
{{본문|중화인민공화국의 인권}}
외국 정부들, 언론, NGO는 중국의 낮은 인권 점수를 비판해오고 있다. 또한 법정재판 없이 가해지는 형벌, 강제 낙태, 강제 자백, 고문, 기본권 침해, 사형제 남용<ref>{{뉴스 인용|url=https://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08/12/23/AR2008122302795.html|제목=China's Capital Cases Still Secret, Arbitrary|성=워싱턴포스트|이름=|날짜=|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등도 주 비판 대상이다. 정부는 경찰력과 군대를 동원하여 대규모 대중 시위를 차단하며,<ref>{{뉴스 인용|url=https://www.ft.com/content/602b650e-dc69-11e1-a304-00144feab49a#axzz24qLQjsqF|제목=China bans religious activities in Xinjiang|성=Financial Times|이름=|날짜=|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가장 대표적으로 1989년의 [[톈안먼 사건|천안문 사건]]과 같이 ‘사회 안정’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요소들은 모두 빠르게 제거한다. 톈안먼 사건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국내에서는 일당 독재 체제에 반대하는 대규모 움직임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국외에서는 미국의 화교 매체인 [[대기원시보]]가 중국공산당을 비판하는 사설 ‘[[구평공산당]](九評共産黨)’을 발표하는 등의 민주화 요구 운동이 지속되고 있다. 2010년 중화인민공화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중국 정부가 반발하기도 했다.
중국의 민주화 운동가, 사회적 활동가들, 그리고 공산당 일부 개혁파 인사들은 중국이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인 개혁을 거쳐야만 한다고 믿는다. 1990년대부터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크게 정부의 통제가 풀리고 개인의 자유가 허가되었으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인 자유는 아직까지도 극히 제한되어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헌법에는 시민들에게 주어진 ‘기본권’에 발언의 자유, 언론의 자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자유, 종교의 자유, 평등한 투표권, 재산권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법률 조항들은 정부의 강력한 권력 앞에서는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ref>{{서적 인용|제목=World Report 2009:China|성=Human Rights Watch|이름=|날짜=|판=|출판사=|쪽=|장=}}</ref> 또한 인터넷 상에서도 정기적인 검열을 통하여 시민들의 발언을 엄격히 통제하며, 여론을 조작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nytimes.com/2012/12/29/world/asia/china-toughens-restrictions-on-internet-use.html|제목=china-toughens-restrictions-on-internet-use|성=NewYork Times|이름=|날짜=2012년 12월 28일|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ref>{{서적 인용|제목="How Censorship in China Allows Government Criticism but Silences Collective Expression"|성=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이름=King, Gary; Pan, Jennifer; Roberts, Margaret E.|날짜=2013년 5월|판=|출판사=|쪽=|장=}}</ref> 2020년까지 중국 중앙정부는 시민들에게 각각 ‘사회신용평가점수’를 부여하여 그들의 행동을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기도 하였다. 사회신용평가제는 이미 여러 중국 도시들에서 실행되고 있는데, 외국 전문가들은 이를 빅데이터 분석을 활용하여 대규모의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방법의 일환이라고 평가한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cbsnews.com/news/china-social-credit-system-surveillance-cameras/|제목=china-social-credit-system-surveillance-cameras|성=CBS News|이름=|날짜=|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1992년부터 공공에 전파되기 시작한 종교 운동 [[파룬궁]]은 세를 급격히 확장하여 1999년에 7천만 명에 달하는 수련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허나 중국 정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파룬궁 탄압을 시작하였고, 대규모로 수련자들을 체포하였으며 초법적인 권한으로 형벌 집행을 하고 고문과 죽음에 대한 보도를 엄금하였다.<ref>{{서적 인용|제목=Changing the soup but not the medicine: Abolishing re-education through labor in China|성=엠네스티 인터네셔널|이름=|날짜=2016년 2월 6일|판=|출판사=|쪽=|장=}}</ref>
2016년 세계노예지수는 중국에서 전체 인구의 0.25% 즉 380만 명보다 많은 사람들이 검열, 강제 결혼, 아동 노동, 국가 주도하의 강제 노동 등으로 인하여 ‘현대 노예와 비슷한 상태’와 살고 있다고 평가하였다.<ref>{{서적 인용|제목=China : Global Slavery Index 2016|성=Global Slavery Index|이름=|날짜=2016년|판=|출판사=|쪽=|장=}}</ref> 국가 주도의 강제 노동은 공식적으로 2013년에 폐지되었으나, 몇 십년 동안 다양하게 이루어진 강제 노동 정책이 제대로 폐지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중국의 감옥 시스템에는 로개(劳改) 제도라고 불리는 노동 수용소, 재교육 캠프 등이 교화 목적으로 포함되어 있는데, 미국에서 조사한 결과 이 과정에서 비민주적인 절차와 인권 탄압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적으로 조사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중국에서 사형수를 대상으로 벌어지는 장기 적출도 심각한 상황이라 추측된다.<ref>{{웹 인용|url=https://chinatribunal.com/|제목=차이나트리뷰널|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 2019년에 400개가 넘는 장기이식 관련 논문들에 논문의 철회가 요구되었는데{{출처|날짜=2020-09-22}}, 이는 논문에 사용된 장기들이 감옥 수감자들에게서 불법으로 떼온 것이라는 의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연구원에서는 주로 이 장기들이 사형당한 양심수들에게서 거두어진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theguardian.com/science/2019/feb/06/call-for-retraction-of-400-scientific-papers-amid-fears-organs-came-from-chinese-prisoners|제목=Call for retraction of 400 scientific papers amid fears organs came from Chinese prisoners|성=The Guardian|이름=|날짜=2019년 2월 5일|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 소수민족 문제 ===
중화인민공화국은 1950년대 초에 합병한 [[티베트]]에서 인권과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있는 것에 관해 계속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bbc.com/news/world-asia-15617026|제목=Dalai Lama: 'Cultural genocide' behind self-immolations|성=BBC News|이름=|날짜=2011년 11월 7일|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정부는 티베트 영토 내에서 과도한 공권력을 행사하고 종교 모임의 금지 등을 통하여 사람들의 결집을 막고 있다고 비판받는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bbc.com/news/world-asia-china-23081653|제목=China resettles two million Tibetans, says Human Rights Watch|성=BBC News|이름=|날짜=2013년 6월 27일|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살고 있는 최소 1백만 명에 이르는 위구르 무슬림들은 대규모 집단 수용소에 갇혀 ‘사회 재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 재교육 프로그램에서 수감자들은 자신의 국적, 정체성, 종교적 신념 등을 다시 재교육받아 중국 정부가 원하는 방식으로 개조된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9/nov/24/china-cables-leak-no-escapes-reality-china-uighur-prison-camp|제목='Allow no escapes': leak exposes reality of China's vast prison camp network|성=The Guardian|이름=|날짜=2019년 11월 24일|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ref>{{뉴스 인용|url=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9/jan/11/if-you-enter-a-camp-you-never-come-out-inside-chinas-war-on-islam|제목='If you enter a camp, you never come out': inside China's war on Islam|성=The Guardian|이름=|날짜=2019년 12월 19일|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2019년 1월, UN은 한 패널이 이 수용소에 110만 명에 달하는 위구르족, 소수 민족들이 갇혀 있다는 주장을 한 이후에 수용소들에 대한 직접적인 감사를 요구하였다. 정부는 신장에 대한 보도를 하는 것도 차단하고 있는데, 주로 자국 내에 있는 기자들의 가족들을 인질로 삼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washingtonpost.com/world/china-detains-relatives-of-us-reporters-in-apparent-punishment-for-xinjiang-coverage/2018/02/27/4e8d84ae-1b8c-11e8-8a2c-1a6665f59e95_story.html|제목=China detains relatives of U.S. reporters in apparent punishment for Xinjiang coverage|성=워싱턴포스트|이름=|날짜=2018년 3월 1일|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 언론 검열 ===
중국공산당은 독재 체제에 반대하는 언론 및 표현의 자유를 탄압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reuters.com/article/us-china-dissident/china-jails-rights-activist-outspoken-on-tibet-idUSPEK10194620080403|제목=China jails rights activist outspoken on Tibet|성=로이터 통신|이름=|날짜=2008년 4월 3일|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현대에는 [[금순공정]] 또는 황금방패로 불리는 대규모 인터넷 차단<ref>예를 들어 [[구글]], [[유튜브]],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ref>으로 천안문 사태, 티베트 독립운동 등 체제에 반하는 정보들을 검열하고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침해하고 있다.
=== 인구문제 ===
인구 과잉 문제는 중국 정부의 오래된 문제로 과거부터 출생의 통제 정책 등이 이루어져 왔다. 또한 이에 관해 2018년 [[임신중절]]을 전면 합법화하는 정책이 통과되었으며, 중국의 ‘부녀권익보장법’에 따라 임신중단수술을 하는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국가가 보장하도록 의무화하였다. 또 남편은 임신중단수술 후 6개월 이내에는 이혼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한다.<ref>{{웹 인용|url=https://news.joins.com/article/22598068|제목=중국선 낙태 전면 합법화 … 스웨덴은 18주 태아까지 허용|성=지면보기|이름=입력 2018 05 05 01:18 수정 2018 05 05 04:03 582호 11면|날짜=2018-05-05|웹사이트=|출판사=|언어=ko|확인날짜=2020-04-12}}</ref> 한편 21세기에 들어 저출산 및 고령화 문제가 진행됨에 따라 출산 통제 정책을 약화시키고 있다.
==환경문제==
중화인민공화국은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환경오염 우려가 크고 또한 사막에서 날라오는 황사와 합쳐져 환경문제가 가장 심한 국가이기도 하다.
== 문화 ==
전통적으로는 부계 중심의 가족, 확대 가족이며 조상 숭배를 강조한다. 아들의 출산을 통해 가족의 혈통을 계승하려 한다. 효도를 중시하며, 결혼은 가문의 관심사이자 대(代)를 잇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는 핵가족화 추세이나 농촌은 대가족 제도를 계속 유지한다. 연애 결혼과 중매 결혼이 공존하며, 가족 중심적이고 이혼율이 증가 추세에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보다는 낮은 편이다. [[만리장성]]이나 [[자금성]] 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문화재가 중국 영토 곳곳에 많이 존재하고 있다. [[설날]], [[청명]], [[노동절]], [[현충일]], [[단오]], [[추석]], [[중화인민공화국 국경절]] 등에 연휴가 있으며 [[대체평일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영토가 넓은 대신 비행기 등을 이용할 능력이 되는 사람이 적어서 고향 방문이나 여행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연휴를 길게 하는 대신 주말근무로 대체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중국 문화는 고대 이래 유교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아왔다. 한나라부터 왕조기 내내 관리가 되는 가장 주된 방법은 학문을 통한 과거제였다. 이 때문에 중국 사회에서는 문학과 글에 대한 동경이 두드러졌으며, 이 때문에 서예, 시, 그림과 같은 문학적 예술들이 춤이나 연극같은 것들보다 더 고급스러운 예술이라는 인식이 일어나게 되었다. 중국 문화는 주로 왕조기부터 내려온 전통의 영향을 받아 시험과 능력주의가 크게 평가받는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초기 지도부는 청나라 시기에 태어났으나, 공산주의를 접하며 혁명적인 사상들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전통적이고 폐쇄적인 사상들을 배격하고 가족과 순종의 태도는 유지하는 동시에 지주세, 성차별주의, 유교식 교육 등을 타파하려 노력하였다. 어떤 학자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전통적인 중국 문화를 잘 지켜왔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상당수의 학자들은 1960년대에 일어난 [[문화 대혁명|문화대혁명]]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중국 전통문화가 ‘봉건의 잔재’, 혹은 ‘퇴폐적이고 해롭다’라고 평가받아 대규모로 파괴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유교, 문학, 예술, 경극과 같은 전통문화들은 공산당의 입맛에 맞는 방식으로 변질되었으며, 외국 미디어나 정보에 대한 접촉은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
현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내부 결집과 정통성 확보를 위해 옛 전통들을 대거 부활시키고 있다. 특히 국가주의, 민족주의가 대두하고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다시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옛 문화들이 다시 되살려진 것이다. 현재 중국은 세계에서 3번째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국가이며, 2010년에만 5,570만 명에 달하는 방문객들을 맞아들였다. 게다가 막대한 인구로 인하여 국내 여행 수요도 가지고 있는데, 2012년 10월에 7억 4천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들이 연휴 기간을 맞아 자국 내를 여행하였다고 전해졌다.
[[파일:Peking Opera (4348315041).jpg|섬네일|경극]]
=== 문학 ===
중국 문학은 옛 주나라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고전 문학에는 여러 사상들과 달력, 병법, 천문학, 약초학, 지리학 등 여러 귀중한 문화들이 담겨 있다. 가장 유명한 책들에는 주로 [[역경]], [[서경 (책)|서경]], [[사서오경]] 등이 있는데, 주로 춘추전국시대에 공자와 같은 사상가들이 남긴 유산들을 정리해놓은 책이다. 중국의 시가는 주로 [[시경]]에서부터 시작되어 당나라 시기에 크게 번성기를 맞았는데, [[이백]]과 [[두보]]와 같은 당대의 명시인들이 사랑과 현실주의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중국의 역사학은 [[서경 (책)|서경]]에서부터 시작하여, 명나라 대의 이십사서까지 내려오며 주로 중국의 신화와 민화까지도 모두 써놓았다. 고전문학은 주로 [[수호전]], [[삼국지연의]], [[서유기]], [[금병매]]와 같은 소설들이 주로 인기를 끌어 통칭 [[사대기서]]라고 불린다. 이 문학들은 현대까지도 재창조, 재해석되어 내려오며, 동아시아의 문화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청나라 말기의 계몽기에, 중국은 [[백화문]]이라 불리는 새로운 문학 형식이 등장하였으며 [[루쉰]]이나 [[후스]]와 같은 거장들이 나타나 현대 문학의 길을 열었다.
=== 의상 ===
중국 전통의상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여성전통의상인 [[치파오]]가 있다.
=== 요리 ===
중국 요리는 수 천년에 걸친 역사와 다양한 식생으로 인하여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조리법과 재료로 유명하다. 크게 쓰촨 요리, 광둥 요리, 산동 요리, 장쑤 요리, 푸젠 요리, 후난 요리, 안후이 요리, 저장 요리로 8가지로 나뉜다. 이 모든 요리들은 모양, 열, 색감, 향신 등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으며, 중국 전통 약학에 기반하여 맛과 함께 건강도 함께 갖추고 있다. 보통 중국의 주식은 남부에서 나는 쌀이고, 북부에서는 밀로 만든 빵이나 면을 주로 먹는다. 현대 중국인들의 주식은 대부분 곡물과 간단한 채소류, 그리고 특별한 경우에는 고기도 먹는다. 또한 콩으로 만든 요리들도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데, 두유나 두부 등이 유명하며 주 단백질 공급원으로 사용된다. 중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고기류는 돼지고기이며, 국가 전체 고기 소비의 4분의 3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돼지고기가 육류 시장에 압도를 점하고 있기는 하다만, 중국에는 불교를 믿는 채식주의자용 식단과 이슬람교를 믿는 할랄용 음식들도 있다. 남부 지방의 음식들은 해양 근접성과 온화한 날씨 덕에 해산물 종류가 풍부하며 채소도 더 많이 사용한다. 반대로 북부에서는 곡물에 기반한 요리들을 주로 만들어 먹는다. 이처럼 다양한 요리들은 국제화시대에 다양한 외국 문화들과 결합하여 홍콩 요리나 미국식 중국 요리와 같이 혼합한 요리 문화를 창조하고 있기도 하다.
[[파일:Beijing national stadium.jpg|섬네일|베이징 국제경기장]]
=== 스포츠 ===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스포츠 문화를 지닌 나라들 중 하나이다. 궁술은 서주 시대부터 전래되어왔다는 기록이 있으며, 검술과 [[축국]] 등도 고대부터 활발히 이루어졌다. 참고로 축국은 후대에 발전되어 중국식 축구와 비슷하게 변형되었다.
중국에서는 신체 단련을 중요시하는데, 이 때문에 현대까지도 [[기공 (대체 의학)|기공]]이나 [[태극권]]이 활발히 대중들 사이에서 단련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관련 모임들이 성업 중이다. 현재 가장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스포츠 종목은 농구로, 중국 농구 연맹과 미국 [[전미 농구 협회|NBA]]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젠롄이나 [[야오밍]] 같은 선수들이 인기가 많다. 중국의 프로 축구리그인 [[중국 슈퍼리그]]는 1994년에 시작되었으며, 아시아에서 가장 거대한 축구 시장이다. 그 외에 대중적인 스포츠는 무술, 탁구, 배드민턴, 수영 등이 있다. 보드게임의 경우 장기, 마작, 최근의 경우에는 체스 등이 유명하며, 전문적인 대회도 있다. 또한 자전거도 매우 인기가 많은데, 2012년에만 4억 7천만 개의 자전거가 보급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또한 전통적으로 전해져내려오는 용선 경주, 몽골식 레슬링, 경마도 매우 유명하다.
중국은 1932년 이래 올림픽에 계속 참가해왔으나, 다만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참가한 것은 1952년부터이다. 중국은 베이징에서 [[2008년 하계 올림픽|2008년 올림픽]]을 개최하였으며, 51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참가국들 중 최다 금메달 수를 기록하는 영예를 안았다. 중국은 [[2012년 하계 패럴림픽|2012년 패럴림픽]]에서도 95개의 금메달을 포함한 231개의 메달을 따내며 가장 많은 메달을 따냈고, 2011년에는 선전에서 [[2011년 하계 유니버시아드|2011년 여름 유니버시아드]]를 개최하였다. 중국은 2013년 동아시아 게임을 텐진에서 개최하였으며 난징에서는 [[2014년 하계 청소년 올림픽]]을 열었다. 베이징과 인접 도시는 [[2022년 동계 올림픽]]을 개최했으며, 이로서 베이징은 처음으로 하계 올림픽과 동계 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도시가 됐다.
== 종교 ==
{{bar box
|title=종교구성 (중화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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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분율 막대|[[무신론]] 및 [[민간신앙]], [[도교]] |red|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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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Lingyinsi1.jpg|섬네일|오른쪽|250px|[[항저우]]의 영은사(링인쓰)]]
[[1982년]] 제정된 〈공산주의 종교법〉에서 중국 정부는 인민들과의 협조를 위한 공산당원의 종교 활동을 인정하는 등 종교 활동에 대한 자유를 인정하고 있지만,<ref>《중국선교 핸드북》/중국 어문선교회 편역/두란노</ref> 만 18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선교 활동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불교, 도교, 이슬람교, 천주교, 개신교 등 5개 제도성 종교(制度性宗教)는 각각 중국불교협회(中国佛教协会), 중국도교협회(中国道教协会), 중국이사란교협회(中国伊斯兰教协会), 중국천주교애국회(中国天主教爱国会), 중국천주교교무위원회(中国天主教教务委员会), 중국천주교주교단(中国天主教主教团),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中国基督教三自爱国运动委员会), 중국기독교협회(中国基督教协会) 등 8개 관방 종교 단체로 통합되어 있다.
중국 정부의 종교 정책은 자치(自治, 스스로 다스림), 자양(自養, 스스로 키움), 자전(自傳, 스스로 전파시킴)을 중점으로 하는 삼자 정책이라고 하는데, 이는 외세를 배격하는 자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이다.
=== 불교 ===
{{본문|중국의 불교}}
=== 천주교 ===
{{본문|중국의 로마 가톨릭교회}}
[[로마 교황청]]과의 교류가 단절되어 있다. [[2006년]]에는 [[쉬저우 시|쉬저우]] 교구장인 천위룽 주교가 로마 교황청과의 협의없이 천주교 주교 서품을 집전하여 교황청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ref>[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175372.html 중국, 또 천주교 주교일방 임명 한겨레 2006년 11월 30일 이상수 기자]</ref>
현재 [[중국공산당]]에서 인정하는 천주교 단체는 다음 3개이다.
* [[중국천주교애국회]](中国天主教爱国会, 약칭 애국회) – 중국공산당의 영도에 따르는 천주교회 단체이다. [[1942년]]부터 [[중화민국]]과 외교관계를 가지고 있던 [[로마 교황청]]은 [[국공 내전]] 이후인 [[1951년]]에 [[중국공산당]]이 주중 교황사절을 추방하고 천주교회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자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는 악화일로에 들었으나, 중국 대륙에서의 천주교 전파를 위해 중국 천주교애국협회의 천주교회에 대한 정책을 존중할 생각이라는 피에트로 삼비 [[바티칸]] 대사의 말을 예샤오원 중국 국가종교사무국장이 전하는 등 [[로마 교황청]]과의 관계가 어느정도 개선되고 있으며<ref name="autogenerated1">[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271421.html 바티칸-중국 ‘화해’ 급진전 한겨레 2008년 2월 22일 유강문 기자]</ref> 교황청은 신임 베이징 주교 임명을 승인한 바도 있다. 현재 바티칸 교황청 홈페이지에는 중국어 웹페이지도 개설되어 있다.<ref>[http://www.vatican.va/chinese/index.html 바티칸 교황청 중국어 누리집]</ref> 하지만 [[종교의 자유]]가 없는 중국 내 종교상황에 대한 개선 등의, 중국공산당 정부가 해결해야 할 숙제들도 있다.<ref name="autogenerated1" />
* [[중국천주교교무위원회]](中国天主教教务委员会)
* [[중국천주교주교단]](中国天主教主教团)
=== 개신교 ===
현재 [[중국공산당]]에서 인정하는 개신교 단체는 다음 2개이다. [[삼자애국운동]]과 [[중국기독교협회]]를 중국기독교양회(中国基督教兩会)로 통칭하기도 한다. 주요 정책 발표 등이 공동의 명의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中国基督教三自爱国运动委员会) - 중국 [[개신교회]]는 특정한 교파 구분 없이, [[1957년]]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로 통일되었다. [[성공회]](聖公會)도 여기에 속해있다.<ref>절강교구 주교인 정광훈(丁光训)이 주석을 맡기도 하였다. [http://viamedia.or.kr/2001/06/03/63 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ref>
* [[중국기독교협회]](中国基督教协会) – 중국 [[개신교회]]가 외부와 단절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현재 [[세계 교회 협의회]](WCC)에서 활동하고 있다.
기독교양회에 속하지 않은 가정교회에서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가정교회는 비공인된 것으로 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기독교양회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발전한 토착적인 교리를 중요시하며, 반외세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ref>{{웹 인용 |url=http://www.antioch.co.kr/Antioch/AH300/AH30110?BookletId=0102&BookletSubId=14 |제목=보관된 사본 |확인날짜=2019-04-16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923172434/http://www.antioch.co.kr/Antioch/AH300/AH30110?BookletId=0102&BookletSubId=14 |보존날짜=2015-09-23 |url-status=dead }}</ref> 최근엔 정부에 협력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중국 공안부가 사교(邪教)로 지정해 탄압하는 기독교 계열 종교들이 있다. 널리 알려진 단체로는 [[호함파]]([[지방교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동방번개]]) 등이 있다. 일부 단체는 중국내에서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지리적으로 가까운 [[대한민국]]으로 전도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중국의 법률은 외국 개신교 단체의 중국 내 선교를 금지하고 있다.
== 같이 보기 ==
* [[전국인민대표대회]]
* [[하나의 중국]]
* [[중화민국의 외교]]
* [[홍과 전]]
* [[국가자본주의]]
* {{임시링크|중화인민공화국의 사상개조|en|Thought reform in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 [[중화인민공화국의 검열]]
* {{임시링크|중화인민공화국의 언론매체|en|Media of China}}
* [[중화인민공화국의 인터넷 검열]](금순공정/만리방벽)
* {{임시링크|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선전|en|Propaganda in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 [[환구시보]]
* [[지나]]
== 각주 ==
{{각주}}
== 참고 자료 ==
* {{보고서 인용 |성=Dumbaugh |이름=Kerry |성2=Martin |이름2=Michael F |url=https://www.refworld.org/pdfid/4b73cd512.pdf |제목=Understanding China’s Political System |날짜=2009-11-31 |확인날짜=2020-07-30 |ref=dumbaugh}}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 외부 링크 ==
{{위키공용과 분류|China}}
{{위키낱말사전|중화인민공화국}}
{{위키인용집|중국 속담}}
{{메타|Wikimedia_Mainland_China|중화인민공화국}}
{{위키여행|en:China|중화인민공화국{{언어링크|en}}}}
=== 정부 기관 ===
* [http://www.gov.cn/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 공식 홈페이지] (중국어 간체자/번체자, 영어)
* [https://web.archive.org/web/20170408041706/http://www.chinaemb.or.kr/kor/ 주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대사관]
* [http://busan.china-consulate.org/kor/ 주 부산 중화인민공화국 총영사관]
* [https://web.archive.org/web/20070825201015/http://gwangju.kr.china-embassy.org/kor/ 주 광주 중화인민공화국 영사사무실]
* {{언어링크|zh|en|fr|ru|es|ar}} [http://www.fmprc.gov.cn/chn/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공식 홈페이지]
* {{언어링크|ko}} [http://korean.china.org.cn/ 중국망]
=== 대한민국 ===
* [https://web.archive.org/web/20120815060325/http://chn.mofat.go.kr/korean/as/chn/main/index.jsp 주 중화인민공화국 대한민국 대사관]
* [http://www.mofat.go.kr/mofat/mk_a003/mk_b015/mk_c007/mk_cncn/index.jsp 국가정보, 중국 (외교통상부)]{{깨진 링크|url=http://www.mofat.go.kr/mofat/mk_a003/mk_b015/mk_c007/mk_cncn/index.jsp }}
* [http://www.mofat.go.kr/ek/ek_a001/ek_cngu/ek_03.jsp 주 광저우 대한민국 총영사관]{{깨진 링크|url=http://www.mofat.go.kr/ek/ek_a001/ek_cngu/ek_03.jsp }}
* [https://web.archive.org/web/20051213054914/http://www.mofat.go.kr/ek/ek_a001/ek_cnsh/ek_03.jsp 주 상하이 대한민국 총영사관]
* [https://web.archive.org/web/20170701202503/http://chn-shenyang.mofat.go.kr/ 주 선양 대한민국 총영사관]
* [https://web.archive.org/web/20090404114220/http://chn-chengdu.mofat.go.kr/kor/as/chn-chengdu/main/index.jsp 주 청두 대한민국 총영사관]
* [https://web.archive.org/web/20060823084741/http://www.qdcon.org.cn/ 주 칭다오 대한민국 총영사관]
=== 미국 ===
* [http://www.cia.gov/cia/publications/factbook/geos/ch.html 미국 CIA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자료(영어)] {{웨이백|url=http://www.cia.gov/cia/publications/factbook/geos/ch.html |date=20060626030415 }}
=== 기타 ===
* [http://www.lonelyplanet.com/destinations/north_east_asia/china/ China Travel Information (영어)] 론리플래닛의 정보
* [https://web.archive.org/web/20050513192649/http://mission.missionseed.net/info/oversea/asia_china.html 중국 개요 - 세계선교네트워크의 정보]
* [http://www.modetour.co.kr/Eagle/Area/SubMain2.asp?MLoc=300101&Pid=82 중국에 대하여 모두 투어의 정보] {{웨이백|url=http://www.modetour.co.kr/Eagle/Area/SubMain2.asp?MLoc=300101&Pid=82 |date=20051104064750 }}
* [http://www.shoestring.co.kr/destinations/asia/chi.htm 중화인민공화국 신발끈 여행사의 정보] {{웨이백|url=http://www.shoestring.co.kr/destinations/asia/chi.htm |date=20050210165406 }}
* [https://web.archive.org/web/20051113132743/http://www.tourtotal.com/asp/information/info-hw/if-12000.asp?country_code=CN 해외정보(중국편) - 하나투어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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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span="2"|[[UTC+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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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zh-stp|s=中国|t=中國|p=Zhōngguó|h=중궈}}, {{llang|en|China|차이나}})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중화민국|대만]]을 일컫는 단어이다. 본디 중국 대륙은 [[청나라]] 때까지 한 국가였으나, [[1949년]]에 [[국공내전]]에서 승패가 갈리면서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중화민국|대만]], 실질적으로 두 국가로 된 이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나 양측은 [[하나의 중국]], [[일국양제]] 원칙에 합의하였다. 다만 둘 중 어느측이 합법 정부인지는 각자의 해석에 맡긴다는 단서를 달았다. [[유엔]]에서의 국제법과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수교하는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압도적인 인구와 영토를 점유하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을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합법적인 중국 정부로 인정하며]] 대만은 그 일부로 받아들인다. 다만 최근 전략 경쟁의 일환으로 미국 등 일부 국가가 이를 뒤집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 중국과의 심각한 외교 문제가 되고 있다. 중화민국으로도 불리는 [[중화민국|대만]]과 정식 수교하며 합법 중국 정부로 인정하는 국가는 2023년 현재 전세계 12개국이며 그 수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다.
== 중국의 범위 ==
사람들마다 개인별로 차이가 있으나 [[중화인민공화국|중국]]만을 지칭하는 경우가 [[중화민국|대만]]을 지칭하는 경우보다 훨씬 많아졌고, 문맥에 따라서는 둘을 포괄하여 지칭되기도 한다. 때로는 [[중화권]]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1980년대까지만 하여도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지 않은 대한민국에서는 '자유중국'이라고 하여 대만을 중국이라 불렀으나,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의 수교 이후부터는 점차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을 포괄하여 중국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 역사 ==
{{본문|중국의 역사}}한나라와 같은 전근대 중화 제국은 흔히 실증사학자나 서양 학자들에 의해서 보통 그리스 문명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보다 수학적 기술 등이 부족하여 전반적으로 열세하다고 추정되는 편이며 인도와 비슷하게 평가된다. 그러나 문과적인 제도는 여러 원인으로 근현대의 민중적 제도와 유사한 부분도 있다.
=== 문명 ===
* [[장강 문명]](長江文明)
* [[황허 문명]](黃河文明)
* [[하나라|하]](夏) ([[기원전 21세기]]? - [[기원전 17세기]]?): 논란의 여지가 많으나 중국에서는 실존했었던 국가로 인정한다.
* [[상나라|상]](商) ([[기원전 17세기]]? - [[기원전 11세기]] 중반): 은허로 천도하고서 은(殷)이라고도 부르며, 한때 신화로 알려졌었지만, 은허의 유적 발굴 이후 실존했던 국가로 인정되었다.
=== 고대 ===
* [[주나라|주]](周) 본래 상나라의 제후국이었으나 상나라 말기 [[제신|주왕]](紂王)의 폭압으로, 상나라를 무너뜨리고 패권을 잡은 나라다.
* [[춘추 전국 시대|춘추전국시대]]
** [[춘추 시대|춘추시대]]: 주나라의 여러 제후국이 주 왕실을 존중하고 각자의 세력을 다투던 시기로, 세력이 강한 여러 제후국 중에 주 왕실의 이름으로 천하를 호령한 제(齊)-환공(桓公), 진(晉) 문공(文公), 초(楚) 장왕(莊王), 오(吳) 합려(闔閭), 월(越) 구천(勾踐)의 5나라를 [[춘추 오패]]라고 부른다.
** [[전국 시대|전국시대]]: 주 왕실을 향한 충성마저 약화하기 시작한 시기로서 주의 [[제후국]]인인 진(秦), 한(韓), 제(齊), 위(魏), 조(趙), 연(燕), 초(楚)가 차례로 왕을 칭하고 오로지 천하통일을 목적해 질주하였다.(초는 춘추시대 후반기부터 칭왕하였다)
* [[진나라|진]](秦) ([[기원전 221년]] - [[기원전 207년]]): [[전국 칠웅]] 중 [[진 (영성)|진]](秦)나라가 주 왕실과 여타 6국을 멸하고 중국을 통일하고서 진 왕 영정이 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 시황제|시황제]]라고 자칭하였다.
* [[전한|한]](前漢) ([[기원전 206년]] - [[9년|서기 9년]]): 진(秦)나라의 무리한 통치와 폭압으로 각지에서 반란하였다. 그 뒤 진나라는 멸망하였고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대립하다가 유방의 승리로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한다. 한나라는 200년 넘게 유지된 중앙집권 국가로서 서양에 최초로 이름이 알려진 나라이기도 하다. [[25년]]에 세워진 한나라(후한)와의 구분하고자 '''전한'''이라고 부른다.
* [[신나라|신]](新) ([[9년]] - [[23년]]): 한나라(전한)의 외척이었던 [[왕망]]이 황위를 찬탈하여 세운 나라이나 급격한 개혁이 민중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각지의 반란으로 망하였다.
* [[후한]](後漢) ([[25년]] - [[220년]]): 한나라(전한)를 계승한 국가로 통일국가를 다시 유지하였으나 화제 이후 환관과 외척으로 말미암아 크게 약화하였다.
* [[삼국 시대 (중국)|삼국 시대]](三國時代)
** [[위 (삼국)|위]](魏): 후한의 황제에게 제위를 직접 선양받은 국가로서 중원 지역을 차지하였다.[[조조]]가 세운 국가로, [[조조]]의 아들 [[조비]]가 후한 말의 [[후한 헌제]]를 몰아내고, 황제를 자칭하였다.그 후 [[조예]], [[조방]], [[조모 (삼국지)|조모]], [[조환]]순으로 6대로 제위가 이어진다. [[위 (삼국)]]의 제상이었던 [[사마의]]의 손자[[사마염]]이 세운 [[진 (위진)]]에 의해 멸망한다.
** [[촉한|촉]](蜀): 후한 황실의 후예 [[유비]]가 세운 나라로 세력권은 서남 지방([[쓰촨성]])에 한정되었다. 중국에서 무신으로 칭송받는 [[관우]]를 포함한 [[오호대장군]]([[장비 (삼국지)|장비]], [[마초 (촉한)|마초]], [[황충]], [[조운 (촉한)|조운]]),재상 [[제갈량]]과 같은 훌륭한 장수를 많이 배출하였다. 명재상이었던 [[제갈량]]이 죽자, 얼마 버티지 못하고, 2대 황제 [[유선]] 대에 멸망한다.
** [[오 (삼국)|오]](吳): 독자성을 띤 세력으로서 [[장강]] 이남(현재의 [[저장성]], [[장쑤성]]을 중심으로 한)지역을 차지하였다. 후한의 장수[[손견]]을 중심으로 하던 세력이 [[손책]], [[손권]]으로 이어져, [[손권]]대에 조조와의 대전인 [[적벽대전]]에서 승리한 후 세력을 구축하였으며,조조와 유비가 황제를 자칭하자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손량]], [[손휴]], [[손호]]로 4대째 이어지며, [[사마염]]의 [[진 (위진)]]에 의해 멸망한다.
* [[서진]](西晉) ([[265년]] - [[316년]]): 위나라의 제위를 다시 양위받은 국가이다. 초기부터 황실 분란인 [[팔왕의 난]]으로 혼란스럽다가, 흉노족의 전조에게 멸망당한다.
* [[5호 16국 시대]](十六國時代) ([[316년]] - [[439년]]): 서진의 멸망 이후 서진이 있던 양자강 이북지역에 흉노족, 갈족, 저족, 강족, 선비족의 국가 16개가 들어서 패권을 겨뤘다. 전조, 후조, 전진이 한때 큰 세력권을 과시했으나 결국 북위로 통합된다.
** 비한족: 전조(前趙)·후조·전연(前燕)·후연· 남연, 관중(關中)에 있던 전진(前秦)·후진·서진과 하투(河套)의 하(夏), 사천(四川)의 성한(成漢), 하서(河西)의 후량·북량·남량.
** 한족: 북연, 하서(河西)의 전량(前涼), 서량.
* [[동진]](東晉): 서진 황실을 계승한 국가로서 세력권은 주로 [[장강]] 이남으로 한정되었다. 서진의 영토를 되찾으려고 여러 차례 노력했으나 모두 실패한다.
*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439년]] - [[589년]])
** [[북조 (중국)|북조]]: [[장강]](양자강) 이북 지역의 16국 시대의 혼란이 북위로 통일되어서 계승된 시대.
*** [[북위 (북조)|북위]](北魏): [[선비족]] 탁발씨의 국가로서 제3대 태무제의 시기에 [[화북]]을 통일하였다.
*** 북위가 국가 이 개로 분리
**** [[동위 (북조)|동위]](東魏) ⇨ [[북제]](北齊)
**** [[서위]](西魏) ⇨ [[북주]](北周)
** [[남조 (중국)|남조]]: 양자강 이남 지역의 동진을 계승한 여러 국가가 이어진 시대이다.
*** [[송 (남조)|송]](宋)=유송(劉宋)
*** [[제 (남조)|제]](齊)=남제(南齊)
*** [[양 (남조)|양]](梁)
*** [[진 (남조)|진]](陳)
* [[수나라|수]](隋) ([[581년]] - [[618년]]): 선비족 탁발씨 북조의 외척인 양견이 건국한 나라로서 [[남조]]의 [[진 (남조)|진]]을 멸망시키고 통일하나 과도한 세금 징수 탓에 건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하였다.
* [[당나라|당]](唐) ([[618년]] - [[907년]]):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등장한 국가로서 북방 민족의 침입을 받고 멸망하여 오대십국시대가 시작되었다.
** [[무주 (당나라)|무주]](武周) ([[690년]] - [[705년]]): 당나라의 [[측천무후]]가 조정을 장악하고 당나라 왕족들을 격하시키고 세운 국가. 측천무후가 반대파를 대규모로 숙청하는 공포 정치를 펼쳤으나 인재를 중심으로한 정치도 펼쳐서 백성의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 [[오대십국 시대]](五代十国时代) ([[907년]] - [[960년]]): 이민족들이 내륙 깊숙히 칩입하면서 화북의 정권을 다투던 대국 5개와 나머지 소국 10개가 혼재했던 시기이다.
=== 중세 ===
* [[요나라|요]](遼) ([[916년]] - [[1125년]]): [[내몽골]] 지역과 [[만주]] 지역을 다스렸던 국가로서 [[거란족]]이 세운 국가이다.
* [[송나라|송]](宋) ([[960년]] - [[1279년]])
** [[북송]](北宋): 5대 10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등장한 통일국가이나 요나라에 의거해 [[베이징]] 이북의 많은 지역을 빼앗기고 요나라와 서하에 조공을 납부하면서 별 위세를 떨치지 못하다가, 금나라에게 화북 지방을 빼앗기고 멸망한다.
** [[남송]](南宋): 북송의 황실을 계승한 국가로서 [[몽골 제국]]과 함께 금나라를 멸망시키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몽골 제국을 계승한 [[원나라]]에 멸망한다.
* [[금나라|금]](金) ([[1115년]] - [[1234년]]): [[여진족]]이 요나라를 전복하고 세운 국가로서 북송을 멸망시키고 화북 지방을 차지한다. 몽골 제국과 남송의 연합군에 멸망한다.
* [[원나라|원]](元) ([[1271년]] - [[1368년]]): 중앙아시아, 만주, 서남아시아에서 시작한 몽골 제국의 칸인 [[쿠빌라이 칸]]이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 대륙을 정복하여 중국에 식민지를 건설한다.
=== 근대 ===
* [[명나라|명]](明) ([[1368년]] - [[1644년]]): 원나라를 몽골 고원으로 몰아내고 건국된 한족의 왕조이다. 초기에는 외국과 교류하며 선진 문물을 과시했으나 후기로 갈수록 [[북로남왜]] 샌드위치 형태로 칩략을 받았고 [[임진왜란]]에 막대한 물자를 사용하고 문화 침체로 쇠퇴하다가 여진족과의 [[사르후 전투]] 패배와 [[숭정제]]의 실책으로 멸망한다.
** [[남명]](南明) ([[1644년]] - [[1662년]]): 명나라의 왕실을 계승한 나라로서 명의 부흥을 기도하였으나 청나라에 망하였다.
* [[청나라|청]](淸) ([[1616년]] - [[1912년]]): [[금나라]]의 후예인 [[만주족]]이 몽골인 등 유목민들과 함께 '''후금'''을 세워 중국을 정복한 왕조이다. 원나라와 같이 한족을 정책상으로 차별했다. 한때 [[강희제]]와 [[건륭제]] 등 명군들이 연이어 등장하였다. 허나 19세기에 들어 [[양무 운동]]을 이용해 근대국가 진입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서구 열강의 이권 침탈이 심화되면서 더욱 쇠퇴하였다. 결국 [[1911년]]에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일본 괴뢰국 만주국으로 이어진다.
=== 현대 ===
{{참고|중화민국의 역사|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
중국은 "아시아의 병자"라는 이야기가 있었을 만큼 서양 열강과 일본 제국에 먹혀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하고 만다. 소련은 중국을 직접 지배하는 것 보다 소련 정부의 간섭에 좌지우지 되는 공산당을 중국에 만들고 싶어 하였다. 그리하여 노비, 소작농 등 농민들로 이루어진 중국 공산당원들은 소련의 지지 아래서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 하게 된다.
* [[중화민국 (1912년~1949년)|중화민국]] ([[1912년]] - ): [[신해혁명]]으로 건국된 중국 최초의 공화국이다. 일본 제국은 중국[[만주]]와 타이완을 식민지 지배하며 흡수하였는데 일본 제국이 패망하고 중국 [[만주]]와 난징, 상하이 등 중국 남부 지역 그리고 [[타이완]]은 독립하게 된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 되었지만, [[국공 내전]]으로 인하여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중국 대륙]]을 잃고 정부를 [[타이완]]으로 옮기게 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진영의 지지를 받아 발전을 이룩했으나, [[1971년]]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엔에서 상임이사국 지위는 물론 모든 의석을 가져가게 된 사건을 계기로 세계적으로 고립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 [[중화인민공화국]] ([[1949년]] - ): [[국공 내전]] 중에 [[중국 공산당]]이 건국한 공화국이다. 결국 [[중화민국]]의 영토를 동중국해의 몇 가지 섬으로 축소 시켜 유리한 입지에 섰지만, [[1950년]] [[한국 전쟁]]에서 침략국으로 규정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원하기 위해 개입한 사실 때문에 서방 세계의 주도로 국제적인 고립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국력이 성장하여 [[1971년]]에는 유엔에서 [[중화민국]] 대신 모든 의석과 지위를 차지하였고, [[1972년]] 미국 닉슨 정부와의 핑퐁외교로 급물살을 탔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마카오]]를 [[중화민국]]이 아닌 중화인민공화국에게 차례로 반환 되었다. [[1992년]]에는 한국전쟁의 적성국이었던 [[대한민국]]과도 전격적으로 수교하였다. 이후 본격적인 경제 개방을 실시하여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고, 현재는 [[시진핑]]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총서기]]의 영도 하에 세계 2위의 강국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실질적 국가파워는 미국에 비해 한참부족하며 소프트파워는 바로 옆나라인 대한민국에게도 밀려 오히려 대한민국의 문화를 훔쳐가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 양안 관계 ====
{{참고|양안 관계}}
현재 중국은 여러 가지 정치상 문제로 말미암아 완벽한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있으며, 다수의 정부가 존재한다.
* {{TWN}} ({{zh|t=中華民國}}): [[타이완]], [[펑후 제도]], [[진먼섬]], [[마쭈 열도]]를 통치하는 정부 (혹은 국가). [[1911년]] [[신해혁명]] 이후, [[난징시]]에서 건국하였으며, [[장제스]]의 [[북벌 (국민당)|북벌]]로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서 [[1949년]]까지 [[중국 대륙]]에 존속하였다. 본토인(本土人)들은 [[1949년]] 이전의 대만을 구중국 (舊中國) 혹은 민국시대 (民國時代)라고 칭하며, [[1949년]] 이후의 대만은 ‘타이완 정권’(臺灣政權)이라고 한다.
* {{CHN}} ({{zh|s=中华人民共和国}}, {{zh|t=中華人民共和國}}): [[중국 대륙]]과 부속 도서 대부분을 통치하는 정부 (혹은 국가).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으로 통용되고 [[국공 내전]]에서 승리한 [[중국 공산당]]을 주축으로 [[1949년]] [[베이징시|베이징]]에서 건국했다.
** {{HKG}} ({{zh|t=香港特別行政區}}, {{llang|en|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HKSAR}}): [[1997년]] [[영국]]으로부터 이양받음. [[가우룽]], [[신제]], [[홍콩섬]]을 포함한다. [[광둥성]] [[선전 시]]와 접한다.
** {{MAC}} ({{zh|t=澳門特別行政區}}, {{llang|pt|Região Administrativa Especial de Macau, RAEM, MSAR}}): [[1999년]] [[포르투갈]]서 이양받았다. [[마카오반도]], 마카오 낙도, [[코타이]]로 구성됨. [[광둥성]] [[주하이 시]]와 접한다.
**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중국대륙에서 타이완섬으로 건너와 세운 정권인 [[중화민국|대만]] 모두 [[하나의 중국]](One China) 정책을 강하게 천명하여(물론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이전부터 타이완에서 살던 타이완인들은 중국과의 영원한 결별을 원한다. [[타이완 공화국]] 참고), 자국과 수교하는 모든 국가는 중국의 다른 정부와 수교하는 것을 원칙상으로 금지한다. 예컨대 [[1992년]]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수교한 [[한국|대한민국]]은 [[타이완|중화민국]]과 단교해야 했다. [[유엔]]과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승인받은 정부인 중화인민공화국은 이 정책을 내세워 [[타이완|중화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주권국을 암시하는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이나 [[타이완 공화국|타이완의 독립]]을 암시하는 ‘타이완 (대만)’(Taiwan)이라는 두 가지 명칭 모두 사용하지 못하게 압력을 행사해서 [[중화민국|대만]]은 비공식 명칭으로 국제사회에서 ‘타이완’으로 불리고거나 스스로 그렇게 부르더라도, 국제 기구에서는 반드시 묵시로 합의된 국가명인 '''[[중화 타이베이]]''' (中華臺北)를 사용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중화민국(대만)의 국기]], [[중화민국(대만)의 국가]]를 위시한 [[중화민국|대만]]의 상징물 사용은 [[하나의 중국]] 정책 위반이고 특히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영토 내에서 불법성을 띤 사용은 [[반분열국가법]]에 제재받는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중화민국|대만]]을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타이완 지구]]를 자국의 영토로 간주하듯이, 제한되게 승인받았지만 국가 대부분에 ‘사실상 독립국’ (sovereign de facto)으로 ‘간주’되는 [[중화민국|대만]] 정부도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정부를 인정하지 않으며, 공식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을 일컫는 말로 ‘중국 대륙’ 혹은 ‘본토’,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정부를 일컫는 말로 [[중국 공산당]] 정부라는 뜻의 ‘중공정부’를 쓰는데도 [[양안 관계]]가 호전되어 본토인들이 [[중화민국|타이완]]을 ‘타이완’이라고 부르며 타이완인들이 본토를 ‘중국’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자연스러워지기도 하였다.
중화민국(대만)은 1992년부터 92공식(92共識)에 의거해 3불(三不)정책(不統, 不獨, 不武. 통일이나 독립을 추구하지 않으며 무력을 사용하지도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다.
{| class="wikitable"
|-
!rowspan="2"|조직||colspan="3"|참여 명의
|-
! {{TWN}} || {{HKG}} || {{CHN}}
|-
|[[국제올림픽위원회]]
|Chinese Taipei Olympic Committee (Chinese Taipei; TPE)<br />{{lang|zh-tw|中華台北奧林匹克委員會(中華台北、TPE)}}<br />중화 타이베이 올림픽 위원회 (중화 타이베이; TPE)
|Sports Federation and Olympic Committee of Hong Kong, China (Hong Kong SAR; HKG)<br />{{lang|zh-hk|中國香港體育協會暨奧林匹克委員會(中國香港、HKG)}}<br />중국 홍콩 체육 협회 올림픽 위원회 (홍콩특별행정구; HKG)
|Chinese Olympic Committee (China; People's Republic of China; CHN)<br />{{lang|zh-cn|中国奥林匹克委员会(中国、中华人民共和国、CHN)}}<br />중국올림픽위원회(중국; 중화인민공화국; CHN)
|-
|[[세계무역기구]]
|Separate Customs Territory of Taiwan, Penghu, Kinmen and Matsu (TPKM; Chinese Taipei)<br />{{lang|zh-tw|台灣、澎湖、金門、馬祖個別關稅領域(TPKM、中華台北)}}<br />타이완·[[펑후 제도|펑후]]·[[진먼 현|진먼]]·[[마쭈 열도|마쭈]] 개별 관세 영역 (TPKM; 중화 타이베이)
|Hong Kong, China<br />{{lang|zh-hk|中國香港}}<br />중국 홍콩
|China (People's Republic of China)<br />{{lang|zh-cn|中国(中华人民共和国)}}<br />중국 (중화인민공화국)
|-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Chinese Taipei<br />{{lang|zh-tw|中華台北}}<br />중화 타이베이
|Hong Kong, China<br />{{lang|zh-hk|中國香港}}<br />중국(령) 홍콩
||People's Republic of China (China)<br />{{lang|zh-cn|中华人民共和国(中国)}}<br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
|[[아시아개발은행]]
|Taipei, China (TAP)<br />{{lang|zh-tw|中國台北(TAP)}}<br />중국 타이베이(TAP)
|Hong Kong, China (HKG)<br />{{lang|zh-hk|中國香港(HKG)}}<br />중국 홍콩(HKG)
|People's Republic of China (PRC)<br />{{lang|zh-cn|中华人民共和国(PRC)}}<br />중화인민공화국(PRC)
|}
한편 [[마카오]]는 [[세계무역기구]]에 중국 마카오 (Macao, China, {{lang|zh-hk|中國澳門}})라는 이름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국제올림픽위원회]],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아시아 개발은행]]에는 참여하고 있지 않다.
== 언어와 문자 ==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중화민국|대만]] 모두 [[허베이성]]에서 쓰이는 표준 [[중국어]]인 푸퉁화(普通話) 혹은 궈위(國語)가 사용되나 소수민족이 사용하는 다른 언어도 있다. 중국어의 경우 같은 표준 중국어(푸퉁화)와 [[상호의사소통성]]이 없는 방언이 여러 가지 있다.
소수민족의 언어로는 [[몽골어]], [[좡어]], [[위구르어]], [[티베트어]], [[후이어]] 등이 있다.
== 지리 ==
{{참고|중국 대륙|타이완|펑후 제도|푸젠 성 (중화민국)|홍콩|마카오}}
== 같이 보기 ==
{{포털|중국|국가}}
* [[양안 관계]]
== 외부 링크 ==
{{위키공용|중국}}
{{위키공용분류}}
{{위키인용집|중국의 속담}}
{{위키낱말사전|중국}}
* {{언어링크|ko|en}} [https://web.archive.org/web/20150208092252/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19j3919b 브리태니커(중국편)]
{{동아시아}}
{{전거 통제}}
[[분류:중국|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출처 필요|날짜=2013-7-10}}
'''실시간 운영체제'''({{문화어|실시간조작체계}}) 또는 '''RTOS'''(←{{lang|en|Real Time Operating System}})는 [[실시간 컴퓨팅|실시간]] 응용 프로그램을 위해 개발된 [[운영체제]]이다. 운영체제의 기능 중 CPU 시간 관리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설계되었다. 실시간 운영체제는 프로그래머가 프로세스 우선 순위에 더 많은 제어를 할 수 있게 한다. 응용 프로그램의 우선 순위가 시스템 프로그램의 우선 순위를 넘어설 수도 있다. 시스템 코드의 [[임계 구역]]을 최소화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응용 프로그램의 처리 요청을 정해진 시간 안에 처리해 줄 수 있다.
실시간 운영체제의 핵심은 응용 프로그램 [[테스크]] 처리에 걸리는 시간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는 정도에 있다. 처리 시간의 변동폭은 지터(''jitter'')(실제 신호와 기준점과의 시간 편차)라 부른다. 경성(''hard'') 실시간 운영체제와 연성(''soft'') 실시간 운영체제로 구분할 수 있으며, 전자가 후자에 비해 지터가 적다. RTOS의 주된 설계 목표는 높은 [[처리율]](throughput)이 아니라, [[실시간 컴퓨팅|실시간 성능 보장]]에 있다. 실시간 시스템의 데드라인을 ''대체로'' 맞추는 RTOS를 연성 실시간 운영체제라 하고, 데드라인을 [[결정론적 알고리즘]](deterministic algorithm)에 의해 만족하는 경우를 경성 실시간 운영체제라 한다.<ref name="Tanenbaum">{{서적 인용|last=Tanenbaum|first=Andrew|title=Modern Operating Systems|year=2008|publisher=Pearson/Prentice Hall|location=Upper Saddle River, NJ|isbn=978-0-13-600663-3|page=160}}</ref>
규모가 큰 실시간 운영체제의 초기 예는 "제어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는 [[아메리칸 항공]](American Airlines)과 [[IBM]]이 [[세이버]](Sabre) 항공 예약 시스템을 위해서 개발한 것이었다.
== 설계 방식 ==
두 가지 기본적인 설계 방식이 존재한다.
* 이벤트 구동(event-driven) 방식: 우선 순위 기반 스케줄링 또는 선점형 스케줄링 이라고 부른다. 태스크(task) 전환이 현재 수행중인 태스크보다 높은 우선 순위를 갖는 이벤트가 서비스를 요청할 경우에 일어난다.
* 시분할(time-sharing) 스케줄링 방식: 클럭 인터럽트나 [[라운드 로빈 스케줄링|라운드 로빈]]과 같은 주기적인 이벤트가 발생할 때 태스크의 전환이 일어난다.
엄밀히 말해, 시분할 스케줄링 방식은 실제 필요한 것보다 더 자주 태스크 전환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러한점 덕분에 좀 더 자연스럽고, 예측하기 쉬운 [[멀티태스킹]]을 제공하며, 하나의 프로세스나 한명의 사용자가 장치를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제공한다. 때문에 이 방식이 좀 더 나은 멀티태스킹 방식처럼 보일 수 있다.
== 스케줄링 ==
전통적인 설계 방식에서, 태스크는 수행(running), 대기(ready), 블록(blocked)의 세 가지 상태(state) 중 한 가지 상태로 존재한다. 대부분의 태스크가 블록상태이고, 오직 1개의 태스크만 수행상태이다. 간단한 시스템 일수록 대기 상태의 태스크 목록이 짧으며, 많은 경우도 2~3개 정도이다.
일반적으로 스케줄러 대기 태스크 목록의 [[자료구조|데이터 구조]]는 스케줄러의 임계 구역 (CPU의 선점이 금지되며, 어떠한 경우에는 모든 인터럽트가 비활성화된다.)에서 소비되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게 설계 한다. 하지만, 데이터 구조의 선택은 대기 리스트에 들어갈 수 있는 최대 태스크의 숫자에도 좌우된다.
만약 대기 목록에 2~3개 정도에 적은 수의 태스크만 존재하는 구조라면, 단순히 [[이중 연결 리스트]] 구조로 대기 목록을 구현하는 것도 효율적이다. 반면, 통상 적은 수에 태스크만 존재하지만 가끔 그보다 많은 수가 존재하는 경우라면, 태스크를 실행할 때마다 전체 목록을 뒤져 우선 순위가 높은 태스크를 찾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지 않도록 우선 순위를 기준으로 미리 정렬하거나 높은 우선 순위의 태스크를 낮은 우선 순위의 태스크보다 먼저 대기 리스트에 추가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즉, 대기 목록을 검색하는 동안 CPU의 선점을 금지하지 않거나 긴 임계 구역을 작게 나누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말은 낮은 우선 순위의 태스크를 리스트에 추가하는 동안이라도, 높은 우선 순위의 태스크를 대기 상태로 만드는 인터럽트가 발생하면, 높은 우선 순위의 태스크를 먼저 대기 목록에 추가하고 바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태스크가 생성되면 이 태스크는 일단 대기 상태가 된다. 스케줄러는 현재 수행중인 태스크 역시 대기 상태로 변경하고, 두 개의 태스크를 대기 상태 태스크 목록에 집어 넣는다. 그 후, 가장 우선 순위가 높은 태스크를 다시 수행하는데 이 전체 과정에 걸리는 시간을 중요 응답 시간(critical response time) 혹은 플라이백 타임 (flyback time) 이라고 부른다. 잘 설계된 실시간 운영체제의 경우, 새로운 태스크를 대기 상태로 만드는 데 3-20개의 명령어를 사용한다. 또, 가장 높은 우선 순위를 가진 대기 태스크를 수행 상태로 변경하는데 5-30개의 명령어를 사용한다.
고급 실시간 운영체제에서는 실시간으로 동작하는 태스크들이 실시간으로 동작하지 않는 태스크들과 컴퓨터 자원을 공유한다. 따라서 대기 리스트는 상당히 길어질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스케줄러 대기 리스트를 간단한 [[연결 리스트]](linked list)로 구현하는 것은 알맞지 않다.
=== 스케줄링 알고리즘 ===
일반적으로 RTOS에서 사용되는 스케줄링 알고리즘에는 아래와 같은 것이 있다.
* 협력형 스케줄링 (cooperative scheduling)
* 선점형 스케줄링 (pre-emptive scheduling)
** 라운드 로빈 스케줄링 (Round-robin scheduling)
** 고정 우선순위 선점형 스케줄링 (fixed priority pre-emptive scheduling)
== 태스크 간 통신과 자원 공유 ==
멀티태스킹 시스템은 여러 개의 태스크 사이에 공유되는 데이터와 하드웨어 자원을 관리해 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두 개 이상의 태스크가 동시에 같은 데이터나 하드웨어 자원에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 ("위험"하다는 것은 한 태스크가 복수의 데이터를 갱신하는 중일 경우, 결과가 일관성이 없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다른 태스크가 이 데이터들에 접근해도 되는 시점은 갱신이 시작하기 전이나 완전히 종료된 후 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보통 사용되는 3가지 방식을 소개한다.
=== 일시적인 인터럽트 비활성화 ===
[[운영체제|범용 운영체제]]에서는 사용자가 [[인터럽트]]를 마스크(비활성화)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사용자의 프로그램이 운영체제의 핵심 자원인 [[중앙 처리 장치|CPU]]를 너무 긴 시간 동안 점유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재 사용되는 대다수의 CPU들은 [[사용자 모드]] 코드가 인터럽트를 비활성화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임베디드 시스템과 실시간 운영체제들은 응용 프로그램이 운영체제의 간섭 없이 [[시스템 콜]]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커널 모드]]에서도 동작할 수 있도록 한다.
단일 프로세서 시스템에서, 만약 응용 프로그램이 현재 커널 모드로 동작하고, 인터럽트를 비활성화할 수 있다면, 대개 인터럽트 비활성화야말로 두 개 이상의 태스크가 동시에 공유자원에 접근하는 것을 막아주는 최고의 기법이다. 인터럽트가 비활성화되어 있는 경우, 현재 돌고 있는 태스크는 다른 태스크나 인터럽트가 CPU를 제어할 수 없기 때문에 "배타성"을 띠며, 따라서 [[임계 구역]]은 보호 받는다. 태스크가 임계 구역에서 벗어나게 되면, 대기중인 인터럽트가 있다면 실행되도록 인터럽트를 다시 활성화시켜야 한다. 일시적으로 인터럽트를 비활성화하는 것은 [[임계 구역]]의 가장 긴 경로가 인터럽트 대기 시간보다 짧은 경우 유효한 전략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방법을 통하여 시스템의 최대 인터럽트 대기 시간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임계 구역]]이 단지 몇 개의 명령어로 이루어졌거나, 반복구문을 포함하지 않은 경우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 세마포어 ===
세마포어는 잠기거나 풀려있다. 잠겨 있을 때 작업들의 대기는 세마포어(가 풀리기)를 기다린다. 세마포어 디자인들이 가지는 문제점들은 잘 알려져 있다: [[:en:Priority inversion|우선 순위 역전]]과 [[교착 상태]]이다. 우선 순위 역전은 높은 순위의 작업이 낮은 순위의 세마포어를 가지는 작업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해결법은 세마포어를 가지는 작업이 최우선 순위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교착에서는 두 개의 작업이 두 개의 세마포어를 역순으로 잠근다. 이것은 대개 대기열을 구현할 때 면밀하게 설계하거나 또는 floored semaphores(정해진 상황에서 세마포어의 제어권을 높은 순위의 작업에 넘기는)를 추가함으로써 해결된다.
=== 메시지 전달 ===
다른 해결책은 작업들이 서로 메시지를 주고 받게 하는 것이다. 이것 또한 똑같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작업이 낮은 우선 순위의 메시지를 수행하느라 in-box에 있는 더 높은 순위의 메시지를 무시할 때 우선 순위 역전이 일어난다. 두 개의 작업이 서로 상대방의 응답을 기다릴 때 교착이 일어난다.
실시간 동작은 세마포어 시스템의 경우보다는 덜 분명하지만, 메시지 기반 시스템들은 자체적으로는 고정적이지 않아 일반적으로 세마포어 시스템들보다는 더 잘 동작한다.
== 인터럽트 핸들러와 스케줄러 ==
인터럽트 핸들러는 실행중인 가장 높은 우선의 태스크 조차도 중단 시킬 수 있으며, 실시간 운영체제는 스레드 대기시간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인터럽트 핸들러의 기능은 가능한 최소화되기 마련이다.
== 메모리 할당 ==
실시간 운영체제의 [[메모리 할당]]은 다른 운영체제에서보다 더 치명적이다.
첫째로, 안정성을 위해서 [[메모리 누수]](할당되었지만 사용후 반환되지 않은 메모리)는 있을 수 없다. 장치는 한번의 재부팅도 필요없이 무한정 동작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메모리 할당|동적 메모리 할당]]은 눈살이 찌푸려진다. 가능할 때에는 반드시, 모든 요구되는 메모리 할당은 컴파일 시간에 정적으로 명시된다.
동적 메모리 할당을 피하는 다른 이유는 메모리 단편화이다. 단편화된 할당과 작은 메모리 덩이들의 반환으로, 사용가능한 메모리가 여러 섹션으로 나눠져, 충분한 여유 메모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RTOS가 충분히 연속적인 큰 메모리 블록을 할당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둘째로, 할당 속도가 중요하다. 일반적인 메모리 할당 설계는 적절한 여유 메모리 블록을 찾기 위해 가늠할 수 없는 길이의 연결 리스트를 스캔한다.<ref>[http://courses.engr.illinois.edu/cs241/sp2012/lectures/08-malloc.pdf CS 241, University of Illinois]</ref> 이는 메모리 할당이 확실한 시간안에 일어나야하는 연유로 RTOS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물리적인 디스크는 훨씬 더 길고 예측할 수 없는 응답시간을 가지기 때문에, 디스크 파일로 교환하는 것은 위에서 논의한 RAM 할당과 같은 이유로 사용되지 않는다.
간단한 [[임베디드 시스템]]에는 단순한 [[메모리 할당#고정 크기 블록 할당|고정 크기 블록]] 알고리즘이 낮은 고정 비용때문에 상당히 잘 동작한다.
== 임베디드 시스템의 메모리 사용 ==
몇몇의 RTOS(임베디드 운영체제)는 ''XIP'' (즉석에서 실행)를 지원한다. 커널과 응용 프로그램들이 코드를 [[랜덤 액세스 메모리|RAM]]으로 먼저 전송하지 않고 [[고정 기억 장치|ROM]]에서 직접 실행된다. 운영체제의 필요한 RAM 크기와 ROM 크기 사이의 교환을 제공한다. [https://web.archive.org/web/20040803025236/http://www.mvista.com/tech2.html]
== 다양한 RTOS들 ==
* [https://web.archive.org/web/20170825082447/http://mdstec.com/ 국방/항공용 실시간 운영체제 NEOS]
* [[BeOS]]
* [[ChorusOS]]
* [[CsLEOS]]
* [[eCos]]
* [http://www.freertos.org FreeRTOS]
* [[ITRON]]
* [[LynxOS]]
* [[MicroC/OS-II]]
* [[Nucleus RTOS]]
* [[OS-9]]
* [[운영 체제 임베디드|OSE]]
* [[OSEK/VDX]]
* [[pSOS]]
* [[QNX]]
* [[RMX]]
* [[RSX-11]]
* [[RT-11]]
* [[RTOS-UH]]
* [http://www.rtos.com ThreadX]
* [[Virtual Real-Time Executive|VRTX]]
* [http://www.velos.com Velos]
* [[VxWorks]]
* [[윈도우 CE]]
* [[RTLinux]]
* [[RTAI]]
* [https://www.rtst.co.kr/rtworks RTWORKS]
많은 회사들이 [[리눅스]]에 실시간 기능을 가미한 버전을 판매하고 있다. [[2004년]] [[10월 8일]] [[몬타비스타]]는 [[리눅스 커널 메일링 리스트]]를 통해 리눅스에 실시간 성능을 향상하기 위한 [http://lkml.org/lkml/2004/10/9/12 실시간 패치] {{웨이백|url=http://lkml.org/lkml/2004/10/9/12 |date=20041012174302 }}를 공개했다.
== 같이 보기 ==
* [[DO-178B]]
* [[최단 마감 우선 스케줄링]]
* [[펌웨어]]
* [[FreeRTOS]]
* [[OSEK/VDX]]
* [[POSIX]]
* [[QNX]]
* [[VxWorks]]
* [[비율 단조 스케줄링]]
* [[로봇 운영체제]]
* [[스카다]]
* [[ThreadX]]
* [[MicroC/OS]]
* [[운영체제 목록]]
== 각주 ==
{{각주}}
[[분류:실시간 운영체제| ]]
[[분류:임베디드 운영체제]]
[[분류:운영체제 기술]]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자연보전'''(自然保全, {{llang|en|Nature conservation}})은 20세기 중반부터 점차로 비중을 가지고 토론되고 제기된 [[사회문제]]의 하나이다. 현대문명이 공업 기계화됨과 함께 인간 생존의 필수적 요건인 [[자연]]과 주변 환경의 [[오염]]은 급속한 현대 문명 발달이 가져온 커다란 해악의 하나로 간주할 수 있다. 자연환경의 보호 문제는 이제 어느 개별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가 함께 한 마음으로 진지하게 토론하고, 또한 현대의 문명이 가진 문제점과 관련하여 생각해야 할 인류의 공동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 중요성 ==
환경 오염 문제는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지구의 온난화, 오존층 파괴, 산성비, 지구 사막화, 중국의 황사, 해수면 상승, 열대 우림의 감소, 생태계 파괴 등이다.<ref>{{웹 인용|url=http://www.greenpeace.org/korea/campaigns/|제목=캠페인|언어=ko-KR|확인날짜=2017-12-26}}</ref>
산성비는 수소이온 농도 5.6 이하일 때를 말하며 화석연료가 연소할 때 나오는 황산화물이나 질소산화물이 빗물에 섞여 강산성을 띠게 된다. 산성비는 눈을 자극하고 식물체를 고사시키거나 문화재를 부식시켜 수명을 단축시키고 전철의 전선을 부식시켜 대형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다. 지구온난화는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CO₂) 메탄(CH₄), 오존(O₃), 이산화질소(N₂O), 수증기(H₂O) 등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지구 온도가 서서히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 지구전역의 강수량의 변화가 일어나며 해면 기압과 토양수분의 변화가 일어나며 이로 인한 각종 기상재해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고 지구온도가 상승하면서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게 되면 0.5미터 ~ 2미터 정도 상승하여 10억명의 환경난민이 발생하게 되고 농업생태계의 변화로 재배 작물 생육이 불가능하게 된다. 환경호르몬에 의한 식품오염물질과 장염비브리오균, 살모넬라균, 리스테리아균, 캄필로박토균, 황색포도상구균, 장관출혈성대장균, 보툴리누스균 등에 의한 식중독, 알레르기는 환경오염으로 비롯된다.
== 자연보호운동 ==
자연보호운동(自然保護運動)은 자연적 파괴 또는 인위적 훼손으로부터 지키거나 돌보아 원상태로 복구함으로서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국민정서 및 생활을 좀더 윤택하게 하려는 운동을 말한다(자연환경보전법 제3조 제1항 제5호).<ref>{{글로벌2|제목=자연보호운동|주소=https://ko.wikisource.org/wiki/%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B%B2%95%EB%A%A0/%EB%B2%95_%EB%A5%A0_%EC%9A%A9_%EC%96%B4/%ED%96%89%EC%A0%95%EB%B2%95/%ED%99%98%EA%B2%BD%ED%96%89%EC%A0%95#%EC%9E%90%EC%97%B0%EB%B3%B4%ED%98%B8%EC%9A%B4%EB%8F%99}}</ref>
== 같이 보기 ==
* [[보전생물학]]
* [[환경 보호]]
* [[자연 환경]]
* [[천연 자원]]
* [[지속농업]]
* [[물보전]]
* [[야생생물보전]]
== 각주 ==
{{각주}}
{{생물종 보전}}
{{전거 통제}}
[[분류:자연보전|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출처 필요|날짜=2013-5-13}}
'''엔트로피 인코딩''' 혹은 '''엔트로피 부호화'''({{lang|en|entropy encoding}})는 심볼이 나올 확률에 따라 심볼을 나타내는 코드의 길이를 달리하는 부호화 방법이다. 보통 [[정보 엔트로피|엔트로피]] 인코더는 모든 심볼에 대해 같은 길이를 갖는 코드를 심볼이 나올 확률값의 음의 로그에 비례하는 서로 다른 길이의 코드로 바꾸어 부호화한다. 즉 가장 자주 나오는 심볼에 대한 코드가 가장 짧다.
[[정보 엔트로피|새넌 정리]](Shannon's source coding theorem)에 따르면, 가장 좋은 코드 길이는 ''b''를 부호화할 진수(2진수로 부호화 할 경우에는 b=2가 된다), ''P''를 심볼이 나올 확률이라고 할 때 −log''<sub>b</sub>P''라고 한다.
엔트로피 코딩 중에 가장 자주 쓰이는 세 가지는 [[허프만 부호화]], [[범위 부호화]]와 [[산술 부호화]]이다. 이 부호화 기술들은 입력 데이터의 값 분포에 따라 할당 방법이 동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별도로 분포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보내 주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데이터 스트림의 대략적인 엔트로피 성질을 미리 알고 있을 때에는(특히 신호 압축에서) [[범용 부호]] 기술로서 [[단항 부호]], [[엘리어스 감마 부호]], [[피보나치 부호]], [[골롬 부호]], [[라이스 부호]] 등을 쓰기도 한다.
== 같이 보기 ==
* [[정보이론]]
* [[데이터 압축]]
== 외부 링크 ==
* ''[http://www.inference.phy.cam.ac.uk/mackay/itila/book.html Information Theory, Inference, and Learning Algorithms]'', by [[David MacKay (scientist)|David MacKay]] (2003), gives an introduction to Shannon theory and data compression, including the [[Huffman coding]] and [[arithmetic coding]].
* ''[http://iphome.hhi.de/wiegand/assets/pdfs/VBpart1.pdf Source Coding],'' by T. Wiegand and H. Schwarz (2011).
{{압축 방식}}
{{전거 통제}}
[[분류:정보 엔트로피]]
[[분류:무손실 압축 알고리즘]]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넘어옴|가가린}}
{{우주인 정보
| 이름 = 유리 가가린<br />Юрий Гагарин
| 다른 이름 = Yuri Alekseyevich Gagarin
| 그림 = Gagarin in Sweden.jpg
| 그림 크기 = 220px
| 설명 = 1964년 [[스웨덴]]을 방문한 가가린
| 종류 = [[파일:Gagarin Signature.svg|150px]]
| 국적 = {{국기|소련}}
| 상태 = 사망
| 출생일 = {{출생일|df=yes|1934|3|9}}
| 출생지 = [[소련]]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러시아 SFSR]] [[클루시노]]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df=yes|1968|3|27|1934|3|9}}
| 사망지 = [[소련]]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러시아 SFSR]] [[노보숄로보 (블라디미르주)|노보숄로보]]
| 직업 = [[비행사]]
| 계급 = [[소련 공군]] 대령
| 시간 = 1시간 48분
| 선발 = [[:en:List of astronauts by year of selection#1960|Air Force Group 1]]
| eva1 =
| eva2 =
| 임무 = [[보스토크 1호]]
| 휘장 =
| 우주비행 성공 횟수 = 6번
| 상 = [[소비에트 연방영웅]]<br/>[[레닌상]]
}}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llang|ru|Ю́рий Алексе́евич Гага́рин}}, [[1934년]] [[3월 9일]]~[[1968년]] [[3월 27일]])은 [[소련]]의 [[우주비행사]], [[군인]]으로, [[1961년]] [[4월 12일]]에 인류로서는 최초로 [[보스토크 1호]]을 타고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 비행]]을 하였으며, 6번이나 우주 비행에 성공하였다.
가가린은 그 공적으로 각국으로부터 메달을 수상하였다. [[1968년]] [[3월 27일]], 7번째 우주비행 훈련 중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 어린 시절 ==
가가린은 1934년 3월 9일 [[소련]]의 크루시노(현재 [[스몰렌스크주]] 가가린스키 군 크루시노)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알렉세이 이바노비치 가가린은 목수였고 어머니 안나 티모페예브나는 낙농업자로 부모님 모두 집단 농장에서 일했다.
1941년 10월 18일 나치 독일군이 크루시노를 점령했고 학교를 불태워 가가린은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나치는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에게 농장일을 강요하였고 이를 거부한 사람들은 구타를 당하거나 그자츠크에 설치된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다.<ref>Jenks 2013, p. 36.</ref> 가가린의 집은 독일 장교에게 빼앗겼고 가족들은 독일군이 철수하기까지 21개월 동안 집 뒤에 진흙으로 오두막을 지어 생활했다.<ref>Moskvitch, Katia (3 April 2011). "Yuri Gagarin's Klushino: forgotten home of space legend". ''BBC News''.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4 April 2011. Retrieved 4 April 2011.</ref> 독일 병사 중 한 명이 막내 동생 보리스를 스카프로 사과나무에 매달려고 하자 이에 분노한 가가린은 탱크 배터리에 흙을 붓고 독일군이 사용하는 화학물질들을 무작위로 섞어버리는 등 병사들의 일을 방해했다. 1943년 초, 독일군은 노동력이 부족하자 가가린과 형 발렌틴을 강제로 폴란드로 보내려 하였다. 그러나 두 형제는 탈출에 성공하고 자신들을 발견해준 소련군을 도왔다.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 가족들은 두 형제가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었다.<ref>Rodgers, Paul (3 April 2011). "Yuri Gagarin: the man who fell to Earth". ''The Independent''.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4 April 2011.</ref>
[[파일:Yuri Gagarin parents Home (cropped).jpg|섬네일|가가린 가족이 크루시노 마을에 살때 살던 집]]
1946년 그가 12살이 되던 해, 유리 가가린의 가족은 그자츠크로 이주하였다. 가가린은 당시 마을에 한 젊은 여성이 자원해 세워진 조잡한 학교를 다녔는데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기 위해 새로 온 선생님이 전직 러시아 비행사였다. 함께 모형 비행기를 만들면서 비행 공예에 매료되었고 전쟁 중 야코블레프 [[전투기]] 추락 사고가 발생하자 비행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ref>Doran & Bizony 2011, pp. 18–20.</ref>
== 공군 생활 ==
1950년 그가 16살이 되었을 때는 [[모스크바주]] [[류베르치]]에 있는 철강 공장에서 주물공으로 견습생 생활을 시작했고 지역에 있던 청년 노동자들을 위한 직업학교에 등록하였다. 7학년의 과정을 마친 후 가가린은 주형 제작 및 주조 공장 작업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사라토프]]의 산업 기술 학교에 선발되어 트랙터를 공부했다. 사라토프에서 지내는 동안 지역에 있던 비행 클럽에서 비행 훈련을 받기 위해 소련 공군 사관생도로 자원했고 [[복엽기]]와 야코블레프 Yak-18을 조종하게 되었다.<ref>Bizony, Piers (14 March 2011). "First man of Space – the flight and plight of Yuri Gagarin". ''Engineering & Technology''. '''6''' (3).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6 March 2013.</ref>
[[파일:Yuri Gagarin como cadete del club de vuelo de Saratov.jpg|섬네일|사라토프 비행클럽의 공군생도시절 가가린]]
1957년 11월 5일, 가가린은 166시간 47분의 비행시간을 가진 소련 공군 소위로 임관했다. [[무르만스크주]]의 노르웨이 국경 근처의 루오스타리 공군 기지로 배치되어 북부 함대에서 2년간 복무하였다. 1959년 7월 7일 그는 3급 군사 조종사로 임명되었고 1959년 10월 6일 [[루나 3호]] 발사 이후 우주 탐사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후, 바부시킨 중령의 승인을 받아 그가 제안한 소련 우주 프로그램을 추진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265시간의 비행시간을 축적한 상태였다.<ref>Lindsay 2013, p. 42</ref> 그리고 다음 달 11월 6일 중위로 진급하였다.
== 소련 우주 프로그램(보스토크 프로그램) ==
=== 선발과 훈련 ===
가가린의 [[:en:Vostok_programme|보스토크 프로그램]]<ref>지구 저궤도의 진입과 무사귀환을 목표로 한 소련의 최초 유인 우주선 프로젝트.</ref> 선발 테스트는 소련 육군 의료국의 콘스탄틴 표도로비치 보로딘 소장이 이끄는 중앙 비행 의료 위원회에 의해 진행되었다. 가가린은 모스크바에 있는 중앙 항공 과학 연구 병원에서 우사노프 대령의 지휘 하에 신체 및 심리 검사를 받았는데 당시 명시된 신체 기준은 25세에서 30세 사이의 나이, 72kg 이하의 몸무게, 1.70m 이하의 키였다.<ref>Impey 2015, p. 51</ref> 154명의 조종사 중 29명이 군의관의 승인을 받았고 이 중 20명이 정부에게 자격을 증명받아 승인되었다. 1960년 3월 15일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호딘카 비행장에서 훈련을 시작했고 4월에는 사라토프주에서 [[낙하산]] 훈련을 시작하여, 각각 육지와 해상에서 저고도와 고공에서 약 40~50회의 점프를 완료했다.<ref>Siddiqi 2000, p. 248</ref>
가가린은 동료들에게 매우 신임받는 후보였는데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을 뽑는 익명 투표에서 3표를 제외한 모든 표를 받았다고 한다.<ref>Siddiqi 2000, p. 262</ref> 동료 중 한명인 예브게니 흐루노프의 증언에 따르면 가가린은 매우 집중력 있고 도움이 필요할 때 큰 힘이 되는 동료라고 한다. 1960년 5월 30일, 가가린은 보스토크 프로그램의 첫 우주비행사로 선발된 [[:en:Vostok_programme#Vanguard_Six|뱅가드 식스]] 가속 훈련 그룹에 추가로 선발되었다. 그룹의 다른 멤버들로 아나톨리 카르타쇼프, 안드리안 니콜라예프, 파벨 포포비치, 게르만 티토프, 발렌틴 발라모프가 선발되었으나 카르타쇼프와 발라모프는 부상을 입어 흐루노프와 그리고리 넬류보프로 대체되었다.<ref>Hall, Shayler & Vis 2007, p. 122</ref> 가가린을 포함한 일부 멤버들은 어렸을 때 전쟁으로 인해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주코프스키 공군공업학교에서 통신과정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가가린은 우주 비행사들의 신체적, 심리적 지구력을 시험하도록 설계된 실험의 후보가 되어 격리된 방에 갇혀 천천히 공기를 뿜어내는 산소 결핍 테스트와 열흘간 무반향실의 완전한 격리실험을 받았고 다가오는 비행을 위해 원심분리기에서 G-force 경험 훈련 등을 실시하였다.<ref>Doran & Bizony 2011, pp. 34–38</ref> 실험을 진행한 한 소련 공군 의사는 가가린을 겸손하고, 높은 수준의 지적 발달을 지녔으며 구별 능력과 반응력이 뛰어나며 천체 역학, 수학 공식, 고등 수학 등에서 뛰어난 활용력을 보인다고 평가했다.<ref>Siddiqi 2000, p. 262</ref>
뱅가드 식스는 1961년 1월 36일 조종사 칭호를 부여받았으며 보스토크 프로젝트의 감독관인 니콜라이 카마닌 중장이 이끄는 특별 위원회에서 이틀간 시험을 치렀다. 위원회는 인류의 첫 보스토크 프로젝트의 임무에 대한 준비도를 기준으로 후보들의 순위를 매겼는데 가가린은 첫째 날의 면접과 둘째 날의 필기시험에서 모두 우수한 성적을 받아 가장 적합한 후보로서 1등을 차지했고 공동 2등으로 티토프와 넬류보프가 차지했다.<ref>Siddiqi 2000, p. 261</ref> 4월 8일 국무위원회 회의에서 카마닌은 가가린을 1차 조종사로, 티토프를 예비 조종사로 공식 선언하였으며 가가린이 발사 전 건강 이상 등의 문제가 생길 경우, 티토프가 1차 조종사를 대행하고 넬류보프가 예비 조종사를 대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 보스토크 1차 비행 ===
[[파일:Gagarin-skafander.jpg|섬네일|보스토크 1차 비행 가가린의 우주복]]
1961년 4월 12일 오전 6시 7분에 보스토크 3KA-3 우주선이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발사되면서 가가린은 호출 부호 Kedr(히말라야 삼목)를 이용해 우주에 진입한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ref>Siddiqi 2000, p. 283</ref>
"무중력 상태는 지구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다소 생소했습니다. 여기서는 스트랩을 매고 수평으로 매달린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고 가가린은 비행 후 보고서에서 말했다. 같은 해 출간된 자서전에도 재입국 할 때 '조국은 듣고, 조국은 알고 있다'라는 곡을 불렀다고 적었다. 가가린은 비행 중 소령으로 진급했다.<ref>Gagarin, Denisova & Borzenko 1961</ref>
약 7,000 미터 상공에서 가가린은 계획대로 하강 캡슐에서 탈출하여 낙하산을 이용해 착륙했다. 가가린의 우주 비행 기록은 FAI에 의해 인증 및 재확인되었고, FAI는 규정을 개정했으며, 조종사의 안전한 발사, 궤도 및 귀환을 위한 주요 단계가 달성되었음을 인정했다. 가가린은 지구 궤도를 선회한 최초의 인간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ref>Lewis, Cathleen (12 April 2010). "Why Yuri Gagarin remains the first man in space, even though he did not land inside his spacecraft".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18 June 2019. Retrieved 12 June 2019.</ref>
=== 보스토크 1차 비행 이후 ===
가가린의 비행은 소련 우주 프로그램의 성공이었고, 그는 소비에트 연방과 동구권의 국가적 영웅이자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다. 전 세계의 신문들은 가가린의 비행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찼고 가가린은 모스크바의 거리를 지나 크렘린궁까지 가는 긴 행렬에 호위되었고, 호화로운 연회에서 니키타 흐루쇼프에게 소련의 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다. 소련의 다른 도시들도 대규모 시위를 벌였는데, 그 규모는 [[제2차 세계 대전]] 승리 퍼레이드에 버금가는 규모였다.<ref>Pervushin 2011, Chapter 7.1</ref>
가가린은 능숙한 공인으로서 명성을 얻었고 카리스마 넘치는 미소로 유명했다. 가가린은 보스토크 1호 미션을 마치고 3개월 만에 영국 런던과 맨체스터를 방문했다.<ref>French, Francis (July 1998). "Yuri Gagarin's visit to manchester". ''Spaceflight''. British Interplanetary Society. '''40''' (7): 261–62.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14 March 2011. Retrieved 7 March 2011 – via YuriGagarin50.org.</ref> 맨체스터에 있는 동안 폭우에도 불구하고 환호하는 관중들이 그를 볼 수 있도록 우산을 거부하고 자신이 타고 있는 컨버터블 자동차의 지붕을 열어 서 있었다.<ref>Gerovitch 2015, p. 175</ref> 가가린은 비행 후 약 30개국의 초청을 받아 해외 순회공연을 했다. 그의 인기는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가가린의 인기로 인한 미국 방문을 막을 정도였다.<ref>Orange, Richard (12 April 2011). "Yuri Gagarin: 50th anniversary of the first man in space". ''The Telegraph''. ISSN 0307-1235.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4 July 2019. Retrieved 4 July 2019.</ref>
1962년 가가린은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부대표로 선출되었고 소련 공군의 중령으로 진급했으며 1963년 11월 6일 대령으로 진급했다. 12월 20일에는 우주비행사 훈련 시설의 부훈련 책임자가 되었다. 2년 후, 그는 소비에트 연방의 대의원으로 재선되었지만 이번에는 입법부의 상원인 연방 소비에트에 선출되었다. 이듬해 그는 전투기 조종사 자격을 다시 얻어 5년 만에 친구 블라디미르 코마로프의 소유스 1호 예비 조종사가 되었다. 가가린은 체중이 늘고 비행 기술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카마닌은 가가린의 우주비행사 훈련 복귀에 반대했었다.
소유즈 1호의 발사는 추가적인 안전 예방이 필요하다는 가가린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암묵적인 정치적 압력에 의해 서둘러 이루어졌다.<ref>Krulwich, Robert (18 March 2011). "Cosmonaut crashed into Earth 'crying in rage'". Krulwich Wonders. ''NPR''.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7 April 2011. Retrieved 12 April 2011.</ref> 가가린은 발사 전에 코마로프와 동행하여 지상통제실에서 코마로프에게 여러 차례의 시스템 고장에 따른 지시를 전달했다.<ref>Siddiqi 2000, pp. 581–84</ref> 그러나 결국 소유즈 1호는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추락했고, 코마로프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소유즈 1호 추락 사고 이후 가가린은 우주 비행 훈련과 참가를 영구히 금지당했다.<ref>Siddiqi 2000, p. 622</ref> 그는 또한 비행기의 단독 비행에 대하여 금지당했는데, 이는 그가 힘들게 끌어올린데 반한 강등이었다. 그는 비행 훈련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면직되었다. 1968년 2월 17일, 가가린은 우주 비행기의 공기역학적 구성에 관한 자신의 논문을 성공적으로 발표했고, 주코프스키 공군 공학 아카데미에서 우등으로 졸업했다.<ref>Siddiqi 2000, p. 627</ref>
== 사망 ==
가가린은 비행 교관 블라디미르 세료긴과 함께 1968년 3월 27일 키르자흐 근처에서 [[미코얀-구레비치 MiG-15|미코얀구레비치 MiG-15]]의 시험 비행 훈련 중에 연습기 추락으로 사망하였다. 가가린과 세료긴의 시신은 화장되었고 그들의 재는 크레믈린 벽에 묻혔다.<ref>Cavallaro 2018, p. 248</ref> 추락 사고의 원인은 불분명하였기에 여러 음모론을 포함한 여러 이론의 주제가 되었다. 추락 사고에 대한 조사는 공군, 정부 공식위원회, KGB에 의해 최소한 세 번 실시되었다.<ref>Doran & Bizony 2011, p. 221</ref>
2003년 3월 기밀 해제된 KGB의 보고서는 공군기지 요원의 행동이 추락에 기여했다고 지적하며 다양한 음모론들을 일축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항공 교통 관제사가 가가린에게 부정확한 기상 정보를 제공했으며 비행 당시 상태가 크게 악화됐다고 밝혔다. 또한 지상 승무원들은 가가린의 비행 계획에 필요 없었던 외부 연료 탱크를 항공기에 부착했다. 조사 결과 가가린의 항공기는 새의 충돌 또는 다른 항공기를 피하려는 갑작스러운 움직임으로 인해 회전에 돌입하였고 부정확한 기상정보 때문에 승무원들은 당시 고도를 더 높게 판단하여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ref>Aris, Ben (28 March 2008). "KGB held ground staff to blame for Gagarin's death". ''The Daily Telegraph''.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 December 2008. Retrieved 1 August 2008.</ref> 2005년 최초 충돌 조사관이 제안한 또 다른 이론은 승무원이나 이전 조종사가 실수로 실내 공기 통풍구를 열어두고 산소 결핍으로 이어져 승무원이 항공기를 제어할 수 없게 되었다는 가설이다. 이와 유사한 이론으로, 에어 앤 스페이스 잡지에 게재되었는데, 승무원들이 개방된 환풍구를 감지하고 낮은 고도로 급강하하여 절차를 따랐으나 급강하로 인해 의식을 잃고 추락했다는 것이다.<ref>Osborn, Andrew (September 2010). "What made Yuri fall?". ''Air & Space''.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19 September 2010. Retrieved 24 September 2010.</ref>
2007년 4월 12일, 구 소련 정부는 가가린의 죽음에 대한 새로운 조사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새로운 조사를 시작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ref>Osborn, Andrew (12 April 2007). "Kremlin vetoes new inquiry into mystery death of Yuri Gagarin". ''The Belfast Telegraph''.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14 January 2013. Retrieved 30 March 2008.</ref> 1968년에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이 사고를 조사하기 위해 설치한 위원회의 문서는 2011년 4월에 기밀 해제되었다. 이 문서에 따르면 가가린이나 세료긴이 기상 관측 기구를 피하거나 "구름 덮개의 첫 층의 상한선 진입"을 피하기 위해 급작스럽게 움직여서 제트기를 "초임계 비행 체제"로 만들고 복잡한 기상 조건에서 정지시켰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ref>Malpas, Anna (8 April 2011). "Russia sheds light on Gagarin death mystery". Agence France-Presse.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6 March 2013. Retrieved 8 April 2011.</ref>
== 상훈 ==
[[파일:Yuri Gagarin and Zakaria Mohieddin 05-02-1962 Cairo Almaza Air Base Egypt.jpg|섬네일|이집트,1962]]
1961년 4월 15일, 소련 과학 아카데미는 가가린에게 러시아 우주 항공학의 선구자의 이름을 딴 콘스탄틴 치올콥스키 금메달을 수여했다. 가가린은 또한 그의 경력 동안 4개의 소련 기념 메달을 받았다.<ref>"Юрий Алексеевич Гагарин" [Gagarin Yuri Alekseevich]. ''Astronaut.ru'' (in Russian).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2 June 2019. Retrieved 2 April 2019.</ref>
1961년 4월 29일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노동영웅 칭호를 받았으며, 같은 해 4월 29일 사회주의 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다. 7월 26일에는 쿠바 혁명의 시작 8주년을 맞아 쿠바의 오스발도 도르티코스 대통령에게 새로 만들어진 플라야 지론 훈장을 수여받았다.<ref>Ryan, William L. (27 July 1961). "Castro to unify his gains". ''The Morning News''. Wilmington, Delaware. Associated Press. p. 3.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 April 2019. Retrieved 2 April 2019 – via Newspapers.com.</ref>
가가린은 또한 1960년 스위스 에로나우티크 국제 페데레이션으로부터 1960년 골드 에어 메달과 1961년 데 라 폴크스 메달을 받았다. 그는 그 해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별(2등급), 폴란드 그룬발트 십자 훈장(1등급), 헝가리 국기 훈장, 베트남 민주 공화국 노동영웅상, 이탈리아 콜럼버스 훈장 등 다른 나라들로부터 수많은 상을 받았다.<ref>"Honours and Awards". ''Weather''. '''10''' (4): 133. 1955. Bibcode:1955Wthr...10..133.. doi:10.1002/j.1477-8696.1955.tb00173.x.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9 August 2018. Retrieved 15 June 2019.</ref> 1961년 8월 2일 브라질의 대통령 Jánio Quadros에게 사령관 등급의 항공 훈장을 받았고, 1962년 1월 말 이집트 순방 중에 가가린은 나일강 훈장과 카이로의 황금 열쇠를 받았다.<ref>"Gagarin honored". ''Lincoln Journal Star''. Lincoln, NE. UPI. 1 February 1962. p. 20.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 April 2019. Retrieved 2 April 2019 – via Newspapers.com.</ref> 1963년 10월 22일 가가린과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는 독일 민주 공화국으로부터 카를 마르크스 훈장을 받았다.<ref>"Rednauts Get Top Marx". ''Daily News''. New York. 22 October 1963. p. 210.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1 April 2019. Retrieved 1 April 2019 – via Newspapers.com.</ref>
== 헌사 ==
가가린의 우주 비행 날짜인 4월 12일은 기념되었다. 1962년부터 소련과 옛 영토 대부분에서 우주 비행사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ref>Russia marks Cosmonautics Day. Russian Radio, 12 April 2014</ref> 2000년부터, 우주 탐험의 이정표를 기념하기 위해 국제적인 기념 행사인 유리의 밤이 매년 열리고 있고<ref>"Darwin's Day to Yuri's Night: Some science dates to remember". ''The Guardian''. 20 September 2014.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1 March 2019. Retrieved 20 March 2019.</ref> 2011년, 국제 연합에 의해 국제 우주 비행의 날로 지정되었다.<ref>"Celebrating the beginning of the space era for mankind". ''International Day of Human Space Flight: 12 April''. United Nations. 7 April 2011.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1 January 2015. Retrieved 19 January 2015.</ref>
많은 건물들과 장소들이 가가린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1968년 4월 30일, 스타시티에 유리 가가린 우주비행사 훈련 센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스푸트니크 1호와 보스토크 1호가 발사된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의 발사대는 현재 가가린의 시작점으로 유명하다. 세바스토폴에 있는 가가린 라이온은 소련 시절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러시아 공군사관학교는 1968년에 가가린 공군사관학교로 개칭되었다.<ref>"Создана Военно-воздушная академия им. Ю. А. Гагарина" [Established Air Force Academy. Yu. A. Gagarin]. ''Boris Yeltsin Presidential Library''.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2 March 2019. Retrieved 21 March 2019.</ref> 폴란드 바르샤바의 한 거리는 유리 가가린 거리라고 불리며 1961년 아르메니아 가가린이라는 마을이 그의 이름을 따서 개칭되었다.<ref>Kiesling, Brady (June 2000). ''Rediscovering Armenia: An Archaeological / Touristic Gazetteer and Map Set for the Historical Monuments of Armenia''</ref>
가가린은 우주비행사와 천문학자들로부터 기려졌다. 1969년 미국 우주 프로그램의 아폴로 11호 임무 동안,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달 표면에 가가린과 코마로프를 기념하는 메달이 담긴 기념 책가방을 남겼다. 1971년, 아폴로 15호 우주비행사 데이비드 스콧과 제임스 어윈은 우주 경쟁에서 사망한 미국 우주비행사와 소련 우주비행사를 추모하기 위해 그들의 착륙 지점에 작은 폴른 우주비행사 조각상을 남겼다.<ref>Pocock 2012, pp. 335–36</ref> 가가린은 1976년 뉴멕시코주 국제 우주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ref>Locke, Robert (6 October 1976). "Space Pioneers Enshrined". ''Las Vegas Optic''. Las Vegas, New Mexico. Associated Press. p. 6.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7 March 2019. Retrieved 27 March 2019 – via Newspapers.com.</ref>
[[파일:RR5514-0005R 40-летие космического полета Ю. А. Гагарина.png|섬네일|가가린 비행 40주년 기념주화]]
1981년에는 그의 비행 20주년을 기념하는 구리 니켈로 된 1루블 기념주화, 1991년에는 그의 비행 30주년을 기념하는 은으로 된 3루블 기념 주화가 발행되었다. 2001년에는 가가린의 비행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러시아에서는 그의 모습이 새겨진 4개의 동전이 발행되었다.<ref>"База данных по памятным и инвестиционным монетам" [Database of commemorative and investment coins]. ''CBR.ru'' (in Russian).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19 December 2008. Retrieved 30 March 2008.</ref> 2011년, 러시아는 그의 비행 50주년을 기념하여 금으로 된 1,000 루블 동전과 은으로 된 3 루블 동전을 발행했다.<ref>Alexander, Michael (14 April 2011). "Yuri Gagarin Featured on Russian Gold and Silver Coins". ''Coin Update''.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31 March 2019. Retrieved 22 March 2019.</ref>
== 참고 문헌 ==
* Cavallaro, Umberto (5 October 2018). ''The Race to the Moon Chronicled in Stamps, Postcards, and Postmarks: A Story of Puffery vs. the Pragmatic''. Chichester, UK: Praxis Publishing.
* Doran, Jamie & Bizony, Piers (2011). ''Starman: The Truth Behind the Legend of Yuri Gagarin'' (50th Anniversary ed.). London: Bloomsbury.
* Gagarin, Yuri; Denisova, N. & Borzenko, S. (1961). "Среда, 12 апреля" [Wednesday, 12 April]. In Kamanin, Nikolai & Novikova, L. (eds.). ''Дорога в космос'' [''Road to Space''] (in Russian). Moscow: Pravda. OCLC 30661794.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15 March 2008. Retrieved 30 March 2008 – via TestPilot.ru.
* Gerovitch, Slava (24 July 2015). ''Soviet Space Mythologies: Public Images, Private Memories, and the Making of a Cultural Identity''. Pittsburgh, PA: University of Pittsburgh Press.
* Hall, Rex D.; Shayler, David J. & Vis, Bert (2007). ''Russia's Cosmonauts: Inside the Yuri Gagarin Training Center''. Chichester, UK: Praxis Publishing.
* Impey, Chris (13 April 2015). ''Beyond: Our Future in Space''.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 Jenks, Andrew L (2013). ''The Cosmonaut Who Couldn't Stop Smiling: The Life and Legend of Yuri Gagarin''. DeKalb, IL: Northern Illinois University Press.
* Lindsay, Hamish (11 November 2013). ''Tracking Apollo to the Moon''. London: Springer.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6 January 2021. Retrieved 10 June 2019.
* Moskvitch, Katia (3 April 2011). "Yuri Gagarin's Klushino: forgotten home of space legend". ''BBC News''.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4 April 2011. Retrieved 4 April 2011.
* Pervushin, Аnton (2011). ''108 минут, изменившие мир: вся правда о полете Юрия Гагарина'' [''108 minutes that changed the world: the whole truth about the flight of Yuri Gagarin''] (in Russian). Moscow: Eksmo.
* Pocock, Philip (2012). "Look up! Art in the age of orbitization". In Geppert, Alexander C. T. (ed.). ''Imagining Outer Space: European Astroculture in the Twentieth Century''. Palgrave Macmillan.
* Rodgers, Paul (3 April 2011). "Yuri Gagarin: the man who fell to Earth". ''The Independent''.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4 April 2011.
* Siddiqi, Asif A (2000). ''Challenge to Apollo: The Soviet Union and the Space Race, 1945–1974''. Washington.
== 각주 ==
<references/>
== 같이 보기 ==
* [[나라별 최초의 우주인]]
* [[유리 가가린 우주비행사 훈련 센터]](GCTC)
* {{임시링크|스타시티 (러시아)|en|Star City, Russia}}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분류-줄}}
* {{Find a Grave|3485}}
* {{언어링크|en}} [http://www.lostcosmonauts.com/ Lost Cosmonauts]
* [https://www.chosun.com/national/people/2021/04/09/D2G36V3BBFGU7MCEB7CCTRZ6MQ/ 유리 가가린의 우주비행 60주년 행사]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전거 통제}}
{{기본정렬:가가린, 유리}}
[[분류:유리 가가린| ]]
[[분류:1934년 출생]]
[[분류:1968년 사망]]
[[분류:20세기 러시아 사람]]
[[분류:소련의 우주인]]
[[분류:소련의 공군 장교]]
[[분류:러시아의 비행사]]
[[분류:러시아의 탐험가]]
[[분류:러시아의 동방 정교도]]
[[분류:우주 개발 선구자]]
[[분류:소비에트 연방영웅]]
[[분류:레닌 훈장 수훈자]]
[[분류:1961년 우주 개발]]
[[분류:주철장]]
[[분류:스몰렌스크주 출신]]
[[분류:소련의 동방 정교도]]
[[분류:항공 사고로 죽은 비행사]]
[[분류:보스토크 계획 우주인]]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출처 필요|날짜=2010-5-26}}
{{다른 뜻}}
[[파일:E1266601 (5398889640).jpg|섬네일]]
'''패션'''(Fashion)은 현재의 (끊임없이 변하는) 유행으로 이루어진다. 논리적이거나 추상적인 이유보다는 사소한 취향에 따라서 변한다. 종종 옷이나 모습에 쓰이곤 하지만, 패션의 개념은 [[음악]], [[예술]], [[정치]] 그리고 심지어는 [[수학]]과 [[프로그래밍]] 기술의 선택까지도 포함한다. 주로 의복의 유행을 가리켜 쓰이곤 하지만 가구, [[공예]], 건축, 인테리어, 액세서리등 광범위한 범위에 적용되어 쓰이기도 한다. 패션은 미학과 혁신의 틈에 있는 것이다.
== 어원 ==
'''패션'''(Fashion)은 행위나 활동하는 것(doing) 또는 만드는 것(making)을 뜻하는 라틴어의 팩티오(factio)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전적 의미는 '양식, 방식, 형, 유행, 관습, 습관' 등 다양하며, 실제로 모든 생활양식 그 자체가 패션이라 할 수 있다.
== 패션 산업 ==
패션 산업은 현대의 산물이다. 19세기 중반 이전에 대부분의 옷은 주문 제작 되었다. 즉, 옷은 개인에 의해 또는 재봉사와 재단사로부터 주문에 의해 수작업 되었다. 20세기가 시작하면서 재봉틀과 같이 새로운 기술의 발달과 함께 전 세계적 자본주의와 공장제도가 발달하면서 백화점 아울렛이 급증하였고 옷은 점점 더 표준치에서 대량생산되고 고정된 가격에서 팔리기 시작했다. 패션산업은 유럽과 미국에서 처음으로 발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5년 기준으로 국제적이고 매우 세계화된 산업이 되었다. 한나라에서 디자인되어 다른 나라에서 제조되고 또 전 세계로 팔렸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한 패션 회사는 중국에서 천은 얻어 베트남에서 제조된 옷을 가지고 이탈리아에 팔았고 이 옷들은 국제적인 소매 판매점에 분배하기 위해 다시 미국의 창고로 옮겨졌다. 패션산업은 오랫동안 미국의 가장 거대한 고용주들 중 하나가 되어왔고 21세기 또한 그럴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고용은 생산이 점점 해외로 특히 중국으로 옮겨짐에 따라 상당하게 감소하였다. 패션산업의 자료는 전형적으로 국제적 경제에 의해 보고되고 산업의 많은 세분화된 분야에 관해 표현되기 때문에 직물과 옷의 세계적인 생산에 관한 총계수치는 얻기 어렵다. 하지만 틀림없이 의류 산업은 세계 경제 산출에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패션 산업은 네 개로 구성된다:
# 가죽이나 털 뿐만 아니라 주로 섬유와 [[직물]] 등의 가공되지 않은 물질로 생산
# 디자이너, 제조업자, 계약자 그 외에 의해 패션 상품 생산
# 소매영업
# 다양한 형태의 광고와 홍보
이 단계들은 많이 세분화되어있지만 상호의존적이다. 이 분야들은 직물 디자인과 생산, 패션 디자인과 생산, 패션 [[소매 (상업)|소매업]], 마케팅과 상업, 패션쇼, 그리고 매체와 마케팅으로 나뉜다. 각각의 분야는 이익에 맞게 운용되는 산업에서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하에 옷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헌신한다.
== 같이 보기 ==
* [[패션 디자인]]
* [[헤어스타일]]
* [[드레스 코드]]
* {{임시링크|메이크오버|en|Makeover}}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 {{언어링크|en}} [https://web.archive.org/web/20050804235500/http://www.thefashionxchange.com/ ''The Fashion Xchange Fashion Forum'']
* [https://ebusinessware.com/ 패션 브랜드 순위]
{{전거 통제}}
{{토막글|패션}}
[[분류:패션| ]]
[[분류:미학 개념]]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군사 정보
|명칭 = 국가인민군
|원어 명칭 = Nationale Volksarmee
|그림 = Coat of arms of NVA (East Germany).svg|center|100px|Coat of arms of the National People's Army
|그림크기 = 300px
|설명 =
|창립일 = [[1956년]] [[3월 1일]] (창립)<br/>[[1990년]] [[10월 2일]] (해산)
|국적 = {{국기나라|동독}}
|편제 = [[국가인민군 육군]]<br/>[[국가인민군 공군]]<br/>[[인민해군]]<br/>[[독일민주공화국 국경부대]]
|충원방식 = [[징병제]] (18개월)
|본부 ={{국기나라|독일 민주 공화국}} [[동베를린]] [[슈트라우스베르크 군]]
|병력 = 약 235,000명 (1989년)
|통수권자 = [[자비네 베르크만폴]] (1990년)
|국방장관 = [[라이너 에펠만]] (1990년)
|예산 =
|GDP 대비 = 6.1%<ref>{{웹 인용 |url=http://www.dtic.mil/cgi-bin/GetTRDoc?AD=ADA221839 |제목=동독 국방지출 GDP 대비 |확인날짜=2013-05-08 |archive-date=2013-06-26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30626170922/http://www.dtic.mil/cgi-bin/GetTRDoc?AD=ADA221839 |url-status=dead }}</ref>
|정부재정대비 =
|군사비 기타 =
}}
'''국가인민군'''({{llang|de|Nationale Volksarmee, '''NVA'''}})은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의 [[군대]]다.
== 역사 ==
=== 창설 ===
국가인민군(이하 동독군)은 [[1956년]] [[3월 1일]]에 창설되었다. 동독군의 뿌리는 [[1952년]]에 창설된 ''병영화된 인민경찰(KVP)''이다. NVA는 직업군인으로 일하는 [[모병제]]가 [[1962년]] [[1월 24일]], [[징병제]] 발표 이전까지 시행되었다. 징병은 18세에서 26세의 성인 남성을 위주로 징병했으며, 최소 복무기간은 18개월이었다. 과감히 구 [[나치 독일]]이나 귀족들의 잔제를 청산하면서도, 나치 독일의 군복과 철모를 조금 변환해서 사용하는 등, 구 [[독일 국방군]]의 문화를 많이 유지했다. 창설 첫해에 동독군 장교의 27%가 구 독일 국방군 출신이였고 6년동안은 모병제를 유지해오다가 징병제를 통해서 1962년에 17만 명의 병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60년대에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경력이 있던 병력들은 퇴역하게 되었다.
=== 냉전기 ===
동독군은 공산권과 관련한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진 않았지만 [[바르샤바 조약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당시 바르샤바 조약군의 진압 임무를 지원했으며 아프리카에 군사 고문단을 파견하였다. [[프라하의 봄]] 당시 동독은 7전차사단과 11차량화소총사단을 파견해 소련군을 지원할 계획을 세웠지만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독일 군대가 타국을 침공했다는 국제적 비판이 우려되어서 실행되지는 않았다. 대신 소련군의 병참을 지원하였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동독군은 전투 준비(Gefechtsbereitschaft)에 들어갔는데 [[북대서양 조약 기구]]가 [[잠수함발사 탄도유도탄]]과 같은 막강한 병기들을 잇달아 전개했기 때문이다. 결국 동독군의 85%는 끊임없는 경보에 시달리며 25~30분 안에 그들의 주둔지에서 5~7km를 벗어나는 훈련을 했다. 동원령은 이틀 안에 완료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1970년대 초에 [[주동독 소련군]] 최고 사령부는 전시 동독군의 서베를린 점령에 할당했다. '작전명 도심'으로 명명된 작전에서는 두 개 사단으로 이루어진 32,000여 명의 병력들이 주동독 소련군 6독립근위차량화소총여단과 함께 서베를린을 장악하자는 내용이였다. 390여 대의 전차, 400여 대의 장갑차, 400여 기의 대전차화기, 450여 문의 포병 전력이 동원되는 것으로 계획되었으며, 해당 작계(작전 계획)은 1988년까지 갱신되었다.<ref>{{웹 인용|url=http://ciar.org/ttk/mbt/armor/armor-magazine/armor-mag.1994.nd/6berlin94.pdf}}</ref>
1980년부터 벌여진 폴란드의 노동 운동으로 1981년에 동독군은 소련의 폴란드 침공시 소련군을 지원할 계획을 했지만 1981년 12월 13일 폴란드 수상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가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일단락되었다.
동독군이 비상 전투태세를 발령했을 때는 1961년 [[베를린 장벽]]건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1968년 [[바르샤바 조약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그리고 1989년이였다.
=== 대체복무제와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 ===
동독에서는 [[종교]]적 이유 이외에는 군 복무를 대체할 만한 근무는 없었으나, [[1964년]] ''바우졸다텐''(건설단)이 대체근무를 할 수 있도록 창설되었다. [[건설단]]은 주로 [[군사시설]] [[건설]]에 동원되었고, 몇몇은 [[병원]]이나 기타 사회 봉사에 동원되었다. 그러나 건설단으로 군 복무 하게 되면, 일하는 동안은 물론 군복무를 마치고 나서도 불이익이 많았다. [[신념에 의한 병역 거부]] 또한 불법이었고, 군 복무 기간만큼 복역해야 했다. 때로 그들은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를 허용하는 [[서독]]으로 탈출하기도 했다. [[건설단]]은 조직도나 그 기능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속도전 청년돌격대]]와 매우 유사한 형태이다.
=== 독일 통일 이후 ===
[[1990년]], 동독군은 서독의 독일 연방방위군(Bundeswehr)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1:1 통합은 아니어서 대다수의 현역 장교들은 그들의 임무를 중단해야 했고, 설사 편입된다 하더라도 대부분 1 계급 강등과 함께 임금도 삭감되는 불이익을 받았다. 대부분의 막사는 폐쇄되었고, 많은 동독군의 장비는 다른 국가의 군대로 수출되었다.
1990년 당시 구 동독군의 장비와 수량은 다음과 같다.
* 767대의 항공기([[MiG-29]] 24대 포함)
* 208척의 군함
* 2,761대의 전차
* 13만 3,900대의 차륜형 차량
* 2,199문의 포병
* 137만 6,650정의 화기
* 30만 3,690톤의 탄약
* 1만 4,335톤의 연료와 세제
== 편제 ==
동독군은 4개의 주요 편제가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 12만의 [[국가인민군 육군]](Landstreitkräfte)
* 16,300명의 [[인민해군]](Volksmarine)
* 39,000명의 [[국가인민군 공군|국가인민군 공군 및 방공군]](Luftstreitkräfte/Luftverteidigung)
* 50,000명의 [[동독 국경부대|독일민주공화국 국경부대]](Grenztruppen der DDR) - 정확히는 국가인민군 편제는 아니다. 동독 내무부 직할부대였다.
== 제복 ==
{| cellpadding="2" style="float: right; width: 307px; background: #e3e3e3; margin-left: 1em; border-spacing: 1px;"
! 군기
|- style="background: #ffffff;" align="center"
| style="width: 145px;" | [[파일:Flag of NVA (East Germany).svg|가운데|150px|Flag of the National People's Army]]
|}
나치를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 등의 휘장이 폐지되고, 간부용 정모 크라운의 디자인이 소련식을 참고한 디자인으로 변경된 것 외에는 대체로 나치 시대. 독일 국방군 군복 디자인을 유지하였다. 독특한 형태로 유명한 철모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독일 국방군이 시험적으로 일부 도입했던 철모 디자인을 사용한 것이다. 독일 통일 이후 중고품으로 방출된 동독 군복이 나치 시대 군복으로 개조되어 군사 매니아들에게 팔리는 일이 종종 있다.
=== 계급 ===
{| class="wikitable" align="center" width="100%"
!colspan=5 style="background:#dadada" | '''동독군의 장군계급'''
|-
!원수
!대장
!상장
!중장
!소장
|-
|[[파일:GDR_Army_OF10_Marschall_der_DDR.gif|가운데|65px]]
|[[파일:GDR_Army_OF9_Armeegeneral.gif|가운데|65px]]
|[[파일:GDR_Army_OF8_Generaloberst.gif|가운데|65px]]
|[[파일:GDR_Army_OF9_Generalleutnant.gif|가운데|65px]]
|[[파일:GDR_Army_OF8_Generalmajor.gif|가운데|65px]]
|}
{| class="wikitable" align="center" width="100%"
!colspan=7 style="background:#dadada" | '''동독군의 장교계급'''
|-
!대령
!중령
!소령
!대위
!상위
!중위
!소위
|-
|[[파일:GDR_Army_OF7_Oberst.gif|가운데|75px]]
|[[파일:GDR_Army_OF6_Oberstleutnant.gif|가운데|75px]]
|[[파일:GDR_Army_OF5_Major.gif|가운데|75px]]
|[[파일:GDR_Army_OF2_Hauptmann.gif|가운데|65px]]
|[[파일:GDR_Army_OF1_Oberleutnant.gif|가운데|65px]]
|[[파일:GDR_Army_OF2_Leutnant.gif|가운데|65px]]
|[[파일:GDR Army OF1с Unterleutnant.gif|가운데|65px]]
|}
{| class="wikitable" align="center" width="100%"
!colspan=4 style="background:#dadada" | '''동독군의 준사관계급'''
|-
!1등상급준위
!2등상급준위
!3등상급준위
!준위
|-
|[[파일:GDR_Army_W4_Stabsoberfähnrich.gif|가운데|65px]]
|[[파일:GDR_Army_W3_Stabsfähnrich.gif|가운데|65px]]
|[[파일:GDR_Army_W2_Oberfähnrich.gif|가운데|65px]]
|[[파일:GDR_Army_W1_Fähnrich.gif|가운데|65px]]
|}
{| class="wikitable" align="center" width="100%"
!colspan=5 style="background:#dadada" | '''동독군의 하사관계급'''
|-
!참모상사
!상급상사
!상사
!중사
!하사
|-
|[[파일:GDR_Army_OR8_Stabsfeldwebel.gif|가운데|75px]]
|[[파일:GDR_Army_OR7_Oberfeldwebel.gif|가운데|75px]]
|[[파일:GDR_Army_OR6_Feldwebel.gif|가운데|75px]]
|[[파일:GDR Border Troops OR5 Unterfeldwebel.gif|가운데|75px]]
|[[파일:GDR_Army_OR4_Unteroffizier.gif|가운데|75px]]
|}
{| class="wikitable" align="center" width="100%"
!colspan=3 style="background:#dadada" | '''동독군의 병사계급'''
|-
!참모병장
!병장
!병
|-
|[[파일:GDR_Army_OR3_Stabsgefreiter.gif|가운데|75px]]
|[[파일:GDR_Army_OR2_Gefreiter.gif|가운데|75px]]
|[[파일:GDR_Army_OR1_Soldat.gif|가운데|75px]]
|}
== 대 나토 전쟁에서 동독군의 임무 ==
중부에서 동독군이 소련군과 함께 루르 지역과 프랑스의 알자스-로렌 지방까지를 목표로 진격하기로 했다. 동독군은 보고서에 의하면 타 바르샤바 조약 가맹군에 비해서 나토 가맹국들을 상대할 때 상대적으로 전투의지가 크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독군을 상대할 때는 사기가 매우 저하된다고 예측되었다.<ref name=>{{괄호 없는 하버드 인용|Sadykiewicz|1987|p=52}}</ref>
== 같이 보기 ==
* [[국가인민군 공군]]
* [[국가인민군 육군]]
* [[인민해군]]
* [[동독 국경부대]]
* [[동독의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자]]
* [[노동자 전투단]]
* [[국가인민군 공로메달]]
* [[주동독 소련군]]
== 외부 링크 ==
* [http://www.axishistory.com/index.php?id=5528 AHF - 국가인민군 (NVA)]
* [http://www.kamouflage.net/camouflage/00137/en_index.php kamouflage.net > 유럽 > 독일민주공화국]
== 각주 ==
<references/>
{{전거 통제}}
[[분류:1956년 설립]]
[[분류:1990년 폐지]]
[[분류:국가인민군| ]]
[[분류:해산된 군대]]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넘어옴|GUI|조사=는}}
[[파일:Linux kernel INPUT OUPUT evdev gem USB framebuffer.svg|섬네일|GUI는 컴퓨터 화면에 표시된다. 처리된 사용자 입력의 결과물이며 보통은 인간-기계 상호작용을 위한 주 인터페이스이다. 소형 모바일 장치에서 대중적인 [[터치 사용자 인터페이스|터치 UI]]는 시각적 입력에 대한 시각적 출력의 오버레이이다.]]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lang|en|graphical user interface, '''GUI'''}})는 사용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입출력 등의 기능을 알기 쉬운 아이콘 따위의 그래픽으로 나타낸 것이다.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화면 위의 물체나 틀, 색상과 같은 그래픽 요소들을 어떠한 기능과 용도를 나타내기 위해 고안된 사용자를 위한 컴퓨터 [[사용자 인터페이스|인터페이스]]이다.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에서 어떤 요소를 제어하려면 그 요소에 해당하는 그래픽을 [[직접 조작 인터페이스|직접 조작]]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2차원의 공간에서 그 기능을 은유적 혹은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그래픽으로 요소를 꾸미고 이를 선택, 이동, 복사하여 작동한다. 이를테면, X자와 같은 형태의 그래픽 요소는 이를 선택하면 삭제하거나 취소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되며 어떤 파일을 나타내는 아이콘을 어느 위치에서 다른 하드 디스크의 장소를 나타내는 공간으로 이동하면 복사가 된다. [[컴퓨터 자판]]의 명령어 입력이 요구되는 [[명령 줄 인터페이스]](CLI)의 가파른 [[학습 곡선]]에 대응하여 GUI가 도입되었다.<ref name="computerhope.com">[http://www.computerhope.com/issues/ch000619.htm Computerhope.com]</ref><ref name="blogs.technet.com">{{웹 인용 |url=http://blogs.technet.microsoft.com/mscom/archive/2007/03/12/the-gui-versus-the-command-line-which-is-better-part-1.aspx |제목=Technet.com |확인날짜=2018-05-21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80612184928/https://blogs.technet.microsoft.com/mscom/2007/03/12/the-gui-versus-the-command-line-which-is-better-part-1/ |보존날짜=2018-06-12 |url-status=dead }}</ref><ref name="blogs.technet.com 2">{{웹 인용 |url=http://blogs.technet.microsoft.com/mscom/archive/2007/03/26/the-gui-versus-the-command-line-which-is-better-part-2.aspx |제목=Technet.com |확인날짜=2018-05-21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80612184608/https://blogs.technet.microsoft.com/mscom/2007/03/26/the-gui-versus-the-command-line-which-is-better-part-2/ |보존날짜=2018-06-12 |url-status=dead }}</ref>
GUI의 동작은 일반적으로 그래픽 요소의 [[직접 조작 인터페이스|직접 조작]]을 통해 수행된다.<ref>{{웹 인용 |url=https://www.pcmag.com/encyclopedia_term/0,2542,t=window+manager&i=54598,00.asp |title=window manager Definition |accessdate=12 November 2008 |work=PC Magazine |publisher=Ziff Davis Publishing Holdings Inc. |date= |archive-date=2012-10-05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21005074526/http://www.pcmag.com/encyclopedia_term/0%2C2542%2Ct%3Dwindow+manager%26i%3D54598%2C00.asp |url-status=dead }}</ref> 컴퓨터를 넘어 GUI는 [[MP3]] 플레이어 등, 포터블 미디어 플레이어, 게이밍 장치, [[스마트폰]], 소형 가전, 사무 및 [[분산 제어 시스템|산업 제어]] 등 수많은 휴대용 [[모바일 장치]]에 사용된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윈도우]]와 [[리눅스]], [[OS X]]을 비롯한 대부분의 현대 [[운영 체제]]들이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지원한다. [[리눅스]] 및 [[유닉스 계열]] 운영 체제에서는 [[X 윈도 시스템]]을 주로 사용하며, [[모티프 (위젯 툴킷)|모티프]], [[Qt (프레임워크)|Qt]], [[김프 툴킷|GTK+]] 등의 툴킷으로 확장할 수 있다.
== 예시 ==
<gallery width="180px" height="120" caption="그래픽 데스크톱 환경 예시">
파일:GNOME 3.32.1.png|[[그놈 셸]]
파일:KDE Plasma 5.16.png|[[KDE 플라즈마 5]]
파일:Ubuntu 16.04 Desktop.png|[[유니티 (사용자 인터페이스)|유니티]]
파일:Ubuntu Mate 18.04.1 with MATE 1.20.1.png|[[마테 (소프트웨어)|마테]]
파일:Wayland demo 2.png|창 예시 - [[웨이랜드|웨이랜드 컴포지터]]
파일:XFCE-4.12-Desktop-standard.png|[[Xfce]]
파일:E17 bw screenshot.png|[[인라이튼먼트 (소프트웨어)|인라이튼먼트]]
파일:Sugar-home-view-0.82.jpg|[[슈거 (소프트웨어)|슈거]]
파일:X-Window-System.png|A [[Twm]] [[X 윈도 시스템]] 환경
파일:Dwm-shot.png|[[dwm]] [[타일 창 관리자]]
파일:Linux Mint 19.1 "Tessa" (Cinnamon).png|[[시나몬 (소프트웨어)|시나몬]]
</gallery>
== 역사 ==
{{출처 필요 문단|날짜=2014-4-29}}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아이디어는 [[1960년대]]에 제안되었다. [[이반 서덜랜드]]가 [[1963년]]에 개발한 [[스케치패드]]는 [[컴퓨터 지원 설계]](CAD) 소프트웨어의 조상이자 최초로 완전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구현한 것이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더글라스 엥겔바트]]를 비롯한 [[SRI 인터내셔널]]의 연구자들은 [[하이퍼링크]]를 기반으로 [[마우스]]를 사용하는 NLS(On-line System)를 개발하였다.
NLS의 하이퍼링크 개념은 [[제록스 파크]]에서 그래픽으로 확장되었으며, [[1973년]]에 개발된 [[제록스 알토]] 컴퓨터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다. 현재 대부분의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들은 기본적으로 이 인터페이스로부터 유래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이들을 ‘파크 사용자 인터페이스(PUI)’라 부르기도 한다. 파크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창 (컴퓨팅)|윈도]], [[메뉴 (컴퓨팅)|메뉴]], [[아이콘]], [[라디오 단추]], [[체크 상자]] 등의 그래픽 요소들을 사용하며, [[마우스]]와 같은 포인팅 장치를 [[컴퓨터 자판|키보드]]와 함께 사용한다.
이후 [[애플|애플 컴퓨터]]는 [[제록스 파크]]에서 만든 이러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보고 당시 비상장이었던 애플의 주식 액면가 100만 달러 어치를 지불하고 기본적인 기술을 전수받았다. 1981년에 [[개인용 컴퓨터]]인 1983년에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기반한 컴퓨터 [[애플 리사|리사]](LISA)를 출시했지만 값이 너무 비싼 탓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이후 [[1984년]]에 나온 애플의 [[매킨토시]]는 상업적인 성공을 이뤘다. 한편 [[매킨토시]]가 이러한 성공을 거두자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를 개발하였다. 이는 매킨토시의 아이디어를 다시 모방한 것이었으며 이후 법정소송을 거치기도 하였다.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윈도우 95]]를 출시하여 성공을 거둠으로써 본격적인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대중화를 이루었다. 한편 CUI(character user interface, [[명령 줄 인터페이스]]) [[운영 체제|OS]]인 [[유닉스]](UNIX)와 [[유닉스 계열|그 계열]]의 [[리눅스]]에서는, [[X 윈도 시스템]]을 통해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구현하고 있다.
== 같이 보기 ==
* [[아이콘]]
* [[인간공학]]
* [[룩 앤드 필]]
* [[내추럴 사용자 인터페이스]]
* [[Ncurses]]
* [[리치 인터넷 애플리케이션]]
* [[스큐어모피즘]]
* [[테마 (컴퓨팅)]]
* [[사용자 경험 디자인]]
*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
* [[벡터 기반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분류-줄}}
* [http://www.slideshare.net/rajeshlal/evolution-of-user-interface-26414802 Evolution of Graphical User Interface in last 50 years] by Raj Lal
{{운영 체제}}
{{사용자 인터페이스}}
{{전거 통제}}
[[분류: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
[[분류:미국의 발명품]]
[[분류:소프트웨어 구조]]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음정'''(音程, interval)은 음악이론에서 두 음의 [[음높이|높이]] 차이, 즉 두 음 사이의 거리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두 음이 시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울리는 것을 [[선율적 음정]], 동시에 울리는 것을 [[화성적 음정]]이라고 한다.
[[음이름]]에 준하여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가에 따라서 [[도수]]가 결정되고, 같은 [[도수]] 안에서도 실제 음과 음의 간격에 따라서 [[도수]] 앞에 성질을 표기한다.
즉, 완벽한 음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 성질 + [[도수]] " 로 표기되어야 하며, 한글로는 완전5도, 장3도, 증4도, 단2도, 감1도 와 같이 표기, 영어로는 Perfect 5th, Major 3rd, Augmented 4th, minor 2nd, diminished 1st 와 같이 표기한다. (영문의 앞글자를 따서 P5, M3, A4, m2, d1 등으로 축약하여 쓰기도 한다.)
보통 음악가들간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쓰이는 음악이론의 기초이며, 대개 [[화성학]]에서 초반부에 다룬다.<ref>트럼펫과 같은 [[이조악기]]의 연주자들과의 의사소통, 코러스 보컬 녹음 등에서 의사소통을 위해 음정단위가 쓰이곤 한다.</ref>
음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 [[12음계]]에 대해 알아야 한다.
* [[악보]](오선지)를 볼 줄 알아야 한다.
* [[음이름]]과 [[계이름]], 그리고 그 둘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 계산 원리 ==
=== 도수 ===
음 사이의 간격에 대한 [[도수]]는 [[음이름]]에 따라 결정되는데, C D E F G A B C, E F G A B C D E의 순번에 준한다.
[[파일:Interval Frequency.png|없음|도수]]
* C, E를 기준으로 했을 때, C, E는 첫번째 순번이자 같은 음이므로 C - C, E - E의 도수는 1도,
* C, E를 기준으로 했을 때, D, F는 두번째 순번이므로 C - D, E - F의 도수는 2도,
* C, E를 기준으로 했을 때, E, G는 세번째 순번이므로 C - E, E - G의 도수는 3도,
* C, E를 기준으로 했을 때, F, A는 네번째 순번이므로 C - F, E - A의 도수는 4도,
* C, E를 기준으로 했을 때, G, B는 다섯번째 순번이므로 C - G, E - B의 도수는 5도,
* C, E를 기준으로 했을 때, A, C는 여섯번째 순번이므로 C - A, E - C의 도수는 6도,
* C, E를 기준으로 했을 때, B, D는 일곱번째 순번이므로 C - B, E - D의 도수는 7도,
* C, E를 기준으로 했을 때, (한 [[옥타브]] 위) C, (한 [[옥타브]] 위) E는 여덟번째 순번이므로 C - (한 [[옥타브]] 위) C, E - (한 [[옥타브]] 위) E의 도수는 8도이다.
=== 성질 ===
이렇게 음과 음 사이의 [[도수]]가 정해졌을 때, 그 정해진 [[도수]]를 기반으로 정확한 간격을 나타내기 위해 [[도수]] 앞에 성질을 표시해야 하는데, 장음계의 [[계이름]]을 기준으로 두 음 모두 샵(♯)이나 플랫(♭)이 붙지 않았을 경우, 2, 3, 6, 7도 간격의 경우에는 장(Major) 성질을 붙여서 표기하며, 1, 4, 5, 8도 간격의 경우에는 완전(Perfect) 성질을 붙여서 표기한다.
여기서 기준음, 혹은 비교대상으로 하는 음에 샵(♯) 이나 플랫(♭) 이 붙게되어 음 사이의 간격이 더 넓어지거나 좁아지면, [[도수]]는 변하지 않으나, 장(Major) 성질이었던 음정은 단(minor), 감(diminished), 증(Augmented) 과 같은 성질로 변화하게 되고, 완전(Perfect) 성질이었던 음정은 감(diminished), 증(Augmented) 과 같은 성질로 변화하게 된다.
[[파일:Intervals example.png|없음|예제]]
* 도 - 미의 도수는 3도이며 샵(♯) 이나 플랫(♭) 이 없으므로 성질은 장(Major)이다. (장3도)
* 도 - 미♭는 장3도였던 도 - 미에서 [[반음]]만큼 간격이 좁아졌으므로 성질이 단(minor) 이 된다. (단3도)
* 도♯ - 미b는 단3도였던 도 - 미♭에서 [[반음]]만큼 간격이 더 좁아졌으므로 성질이 감(diminished) 이 된다. (감3도)
* 도 - 솔의 도수는 5도이며 샵(♯) 이나 플랫(♭) 이 없으므로 성질은 완전(Perfect)이다. (완전5도)
* 도 - 솔♯ 은 완전5도였던 도 - 솔에서 [[반음]]만큼 간격이 넓어졌으므로 성질이 증(Augmented) 이 된다. (증5도)
* 도♭ - 솔♯ 은 증5도였던 도 - 솔♯에서 [[반음]]만큼 간격이 더 넓어졌으므로 성질이 겹증(Doubly Augmented) 이 된다. (겹증5도)
[[파일:Interval korean.png|없음|음정의 성질변화]]
이와같은 음정의 성질변화는, 위와같은 그림을 통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설명하곤 한다.
== 계산법의 종류 ==
음정을 계산하는 방법으로는 크게 3가지 계산법이 많이 사용되며, 계산하는 사람이 상대음감이냐, 절대음감이냐에 따라 어떤 계산법을 선호하는지가 달라지기도 한다.
=== 계이름 계산법 ===
상대음감의 경우 음정을 계산할 때 [[계이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어떤 음과 어떤 다른 음의 음정을 계산해야 한다면, 기준음을 '도', '미' 로 보고 음정을 계산한다.
* 장음계는 도 - 레 - (미 - 파) - 솔 - 라 - (시 - 도)
* 1-2음과 5-6음 사이가 반음이고 나머지는 온음일 경우 (미 - 파) - 솔 - 라 - (시 - 도) - 레 - 미
=== 음이름 계산법 ===
절대음감의 경우 음정을 계산할 때 [[음이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로 음을 치면서 "도~", "미~" 라고 노래하면, 귀에서는 음이 들리는데 앞에 있는 사람이 "도", "미" 라고 말하는 것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러워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들은 음정을 계산할 때도 기준음을 [[계이름]] '도', '미' 로 생각하고 계산하는 것보다 [[음이름]] 그대로 계산한다.
* C - E를 기준으로 할 때 : C Major Key (다장조)는 C - D - E - F - G - A - B - C 이므로 E - F - G - A - B - C - D - E
* D♭ - F를 기준으로 할 때 : D♭ Major Key (내림라장조)는 D♭ - E♭ - F - G♭ - A♭ - B♭ - C - D♭ 이므로 F - G♭ - A♭ - B♭ - C - D♭ - E♭ - F
* D - F♯를 기준으로 할 때 : D Major Key (라장조)는 D - E - F♯ - G - A - B - C♯ - D 이므로 F♯ - G - A - B - C♯ - D - E - F♯
* E♭ - G를 기준으로 할 때 : E♭ Major Key (내림마장조)는 E♭ - F - G - A♭ - B♭ - C - D - E♭ 이므로 G - A♭ - B♭ - C - D - E♭ - F - G
* E - G♯를 기준으로 할 때 : E Major Key (마장조)는 E - F♯ - G♯ - A - B - C♯ - D♯ - E 이므로 G♯ - A - B - C♯ - D♯ - E - F♯ - G♯
* F - A를 기준으로 할 때: F Major Key (바장조)는 F - G - A - B♭ - C - D - E - F 이므로 A - B♭ - C - D - E - F - G - A
* F♯ - A♯를 기준으로 할 때: F♯ Major Key (올림바장조)는 F♯ - G♯ - A♯ - B - C♯ - D♯ - E♯ - F♯ 이므로 A♯ - B - C♯ - D♯ - E♯ - F♯ - G♯ - A♯
* G♭ - B♭를 기준으로 할 때: G♭ Major Key (내림사장조)는 G♭ - A♭ - B♭ - C♭ - D♭ - E♭ - F - G♭ 이므로 B♭ - C♭ - D♭ - E♭ - F - G♭ - A♭ - B♭
* G - B를 기준으로 할 때: G Major Key (사장조)는 G - A - B - C - D - E - F♯ - G 이므로 B - C - D - E - F♯ - G - A - B
* A♭ - C를 기준으로 할 때 : A♭ Major Key (내림가장조)는 A♭ - B♭ - C - D♭ - E♭ - F - G - A♭ 이므로 C - D♭ - E♭ - F - G - A♭ - B♭ - C
* A - C♯를 기준으로 할 때 : A Major Key (가장조)는 A - B - C♯ - D - E - F♯ - G♯ - A 이므로 C♯ - D - E - F♯ - G♯ - A - B - C♯
* B♭ - D를 기준으로 할 때 : B♭ Major Key (내림나장조)는 B♭ - C - D - E♭ - F - G - A - B♭ 이므로 D - E♭ - F - G - A - B♭ - C - D
* B - D♯를 기준으로 할 때 : B Major Key (나장조)는 B - C♯ - D♯ - E - F♯ - G♯ - A♯ - B 이므로 D♯ - E - F♯ - G♯ - A♯ - B - C♯ - D♯
* C - E를 기준으로 할 때 : C Major Key (다장조)는 C - D - E - F - G - A - B - C 이므로 E - F - G - A - B - C - D - E
=== 반음 개수 계산법 ===
장음계의 계이름을 떠올리는 것, 또는 기준음을 으뜸음으로 하는 Diatonic Scale (Major Scale) 을 떠올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나, 암기능력과 속셈에 자신있는 사람들은 음정을 계산할 때 기준음과 비교대상으로 하는 음 사이에 반음이 몇개 들어있는지를 계산해서 암기해놓은 음정을 도출해내는 계산법을 쓰기도 한다.
* 반음 개수가 0개일 때 : 완전1도
* 반음 개수가 1개일 때 : 단2도
* 반음 개수가 2개일 때 : 장2도
* 반음 개수가 3개일 때 : 단3도
* 반음 개수가 4개일 때 : 장3도
* 반음 개수가 5개일 때 : 완전4도
* 반음 개수가 6개일 때 : 증4도, 감5도
* 반음 개수가 7개일 때 : 완전5도
* 반음 개수가 8개일 때 : 단6도
* 반음 개수가 9개일 때 : 장6도
* 반음 개수가 10개일 때 : 단7도
* 반음 개수가 11개일 때 : 장7도
* 반음 개수가 12개일 때 : 완전8도
하지만 이렇게 계산해 낸 것이 꼭 정확한 값이라고 볼 수는 없다. 피아노 건반을 기준으로 생각하자면 C♯ - D♯ 은 반음 개수가 2개이므로 장2도가 맞지만, 만약 악보(오선지) 에 표기되어있는 음들을 비교할 때 C♯ 과 E♭ 이라고 적혀있는 경우에는 장2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C♯ 과 E♭ 을 피아노로 쳐보면 반음 개수가 2개이므로 장2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C♯ 과 E♭ 은 도수를 3도로 해석해야하기 때문에 장2도가 아니라 감3도가 맞다.
때문에 반음 개수 계산법이 사실 정확한 계산법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음정을 공부하는 목적이 문제풀이에서 정답을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음악가들끼리 음정단위를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느냐 하는 언어학적 목적인 경우에는 이런 계산법을 사용하는 것이 꼭 틀렸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1cm 와 10mm는 표기법이 다르지만 같은 간격을 나타내듯이 장2도와 감3도는 표기법이 다르지만 사실 같은 음을 지칭하므로 의사소통엔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ref>화성학을 심도있게 공부하다보면 장2도와 감3도가 완전히 다른 해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시점이 오게되므로 반음 개수 계산법보다는 계이름 계산법이나 음이름 계산법을 익혀두는 것을 권장한다. Caug7(♯9) 코드를 예로 들 수 있는데, ♯9 텐션음을 C 와 단3도 관계인 E♭으로 해석하면 그 음이 이론적으로 불협화음이 된다. 하지만 이 코드가 실제로는 불협화음처럼 들리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이 ♯9 텐션음이 E♭ 이 아니라 C와 증2도 관계인 D♯ 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음정을 정확하게 계산할 줄 알아야 한다.</ref>
=== 계산 시 주의점 ===
계이름 계산법이나 음이름 계산법으로 계산할 때 [[계이름]]과 [[음이름]]에 대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음정을 계산하면, 음정의 성질을 잘못 계산할 수 있다.
[[계이름]]이라는 것은 원래 [[조성]]에 따라 [[음이름]]이 달라진다. C Major Key (다장조)에서 [[계이름]] '도'는 실제 [[음이름]]도 마찬가지로 C이지만, G Major Key (사장조)에서 [[계이름]] '도'는 실제 [[음이름]]이 G이다. 이렇듯 [[조성]] 이 무엇인지에 상관없이 [[계이름]]은 으뜸음을 '도'부터 시작해서 부르는 것이 권장된다.<ref>장음계의 경우에는 계이름이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가 되므로, 2, 3, 6, 7음을 반음 내릴 경우에는 계이름이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가 된다. 하지만 ♯ 이나 ♭ 이 붙는 것을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장음계에서 2, 3, 6, 7음을 반음 내린 음계의 계이름을 '미 파 솔 라 시 도 레 미' 로 부르기도 한다.</ref>
예를 들어, F Major Key (바장조) 에서의 [[계이름]]인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는 실제 [[음이름]]으로 봤을 때 F G A B♭ C D E F 가 되므로 F Major Key (바장조)에서 2, 3, 6, 7음을 반음 내릴 때 [[계이름]]인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는 실제 음이름으로 봤을 때 F G♭ A♭, B♭ C D♭ E♭ F 가 되며 B Major Key (나장조) 에서의 [[계이름]]인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는 실제 [[음이름]]으로 봤을 때 B C♯ D♯ E F♯ G♯ A♯ B 가 되므로 B Major Key (나장조)에서 2, 3, 6, 7음을 반음 내릴 때 [[계이름]]인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는 실제 음이름으로 봤을 때 B C D E F♯ G A B 가 된다.
따라서 F - B 가 [[도수]]만 놓고 봤을 때는 4도가 맞지만<ref>F (0) → G (2) → A (4) → B (6)</ref>, 완전4도는 아니다. 실제로 F 와 B 가 완전4도 이려면 B 가 B♭ 로 또는 F 가 F♯ 로 바뀌어야만 F - B♭ 또는 F♯ - B 가 되어 완전4도가 되며 B - F 가 [[도수]]만 놓고 봤을 때 5도가 맞지만<ref>B (0) → C (1) → D (3) → E (5) → F (6)</ref>, 완전5도는 아니다. 실제로 B 와 F 가 완전5도 이려면 F 가 F♯ 로 또는 B 가 B♭ 로 바뀌어야만 B - F♯ 또는 B♭ - F 가 되어 완전5도가 된다.
[[파일:Intervals example2.png|없음|예제]]
* [[음이름]] 기준 F - F는 [[계이름]] 기준 도 - 도, 미 - 미 이므로 완전1도이다.
* [[음이름]] 기준 F - G는 [[계이름]] 기준 도 - 레, 미 - 파♯ 이므로 장2도이다.
* [[음이름]] 기준 F - A는 [[계이름]] 기준 도 - 미, 미 - 솔♯ 이므로 장3도이다.
* [[음이름]] 기준 F - B는 [[계이름]] 기준 도 - 파♯, 미 - 라♯ 이므로 증4도이다.
* [[음이름]] 기준 F - C는 [[계이름]] 기준 도 - 솔, 미 - 시 이므로 완전5도이다.
* [[음이름]] 기준 F - B♭는 [[계이름]] 기준 도 - 파, 미 - 라 이므로 완전4도이다.
* [[음이름]] 기준 F - D는 [[계이름]] 기준 도 - 라, 미 - 도♯ 이므로 장6도이다.
* [[음이름]] 기준 F - E는 [[계이름]] 기준 도 - 시, 미 - 레♯ 이므로 장7도이다.
* [[음이름]] 기준 B - B는 [[계이름]] 기준 도 - 도, 미 - 미 이므로 완전1도이다.
* [[음이름]] 기준 B - C는 [[계이름]] 기준 도 - 레♭, 미 - 파 이므로 단2도이다.
* [[음이름]] 기준 B - D는 [[계이름]] 기준 도 - 미♭, 미 - 솔 이므로 단3도이다.
* [[음이름]] 기준 B - E는 [[계이름]] 기준 도 - 파, 미 - 라 이므로 완전4도이다.
* [[음이름]] 기준 B - F는 [[계이름]] 기준 도 - 솔♭, 미 - 시♭ 이므로 감5도이다.
* [[음이름]] 기준 B - F♯는 [[계이름]] 기준 도 - 솔, 미 - 시 이므로 완전5도이다.
* [[음이름]] 기준 B - G는 [[계이름]] 기준 도 - 라♭, 미 - 도 이므로 단6도이다.
* [[음이름]] 기준 B - A는 [[계이름]] 기준 도 - 시♭, 미 - 레 이므로 단7도이다.
== 장/단, 완전의 구분 ==
1, 4, 5, 8도 음정의 경우에는 "장/단" 표기를 절대 사용하지 않고, 2, 3, 6, 7도 음정의 경우에는 "완전" 표기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음 과 음 사이의 조화로운 울림에 영향을 끼치는 [[배음]]과 관계가 있다.
[[사인파]]를 제외한 모든 음(音)은 실제로 하나의 음이 아닌 여러개의 음이 같이 울리는데, 이와 같이 함께 울리는 음들을 [[배음]]이라고 부르며, 인간은 그 [[배음]]들 중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잘 들리는 1배음을 주로 듣기 때문에 음을 하나로 느끼는 것이다.<ref>조용한 공간에서 피아노로 2옥타브 도를 쳐봤을 때 2배음, 3배음 등의 소리를 느끼기가 쉽다고 하여 배음을 공부할 때 이 방법이 주로 사용된다.</ref>
이 [[배음]]들을 근음인 1배음부터 12배음까지 나열해봤을 때, 각각의 배음들의 음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파일:Interval harmonics series.png|없음|배음]]
* 근음 C2 와 1배음 C2는 완전1도이다.
* 1배음 C2 와 2배음 C3는 완전8도이다.
* 2배음 C3 와 3배음 G3는 완전5도이다. (실제로 정확한 3배음은 G3에서 +2 센트만큼 높은 음이다.)
* 3배음 G3 와 4배음 C4는 완전4도이다.
* 4배음 C4 와 5배음 E4는 장3도이다. (실제로 정확한 5배음은 E4에서 -14 센트만큼 낮은 음이다.)
* 5배음 E4 와 6배음 G4는 단3도이다. (실제로 정확한 6배음은 E4에서 +2 센트만큼 높은 음이다.)
* 6배음 G4 와 7배음 Bb4는 단3도이다. (실제로 정확한 7배음은 Bb4에서 -31 센트만큼 낮은 음이다.)
* 7배음 Bb4 와 8배음 C5는 장2도이다.
* 8배음 C5 와 9배음 D5는 장2도이다. (실제로 정확한 9배음은 D5에서 +4 센트만큼 높은 음이다.)
* 9배음 D5 와 10배음 E5는 장2도이다. (실제로 정확한 10배음은 E5에서 -14 센트만큼 낮은 음이다.)
* 10배음 E5 와 11배음 F#5는 장2도이다. (실제로 정확한 11배음은 F#5에서 -49 센트만큼 낮은 음이다.)<ref>49센트 정도 차이는 일반인도 음이 나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인데, 배음을 오선지에 12음계로 표현하다보니 가장 가까운 음을 적어서 설명해야하므로 F#으로 표기된 것이다. 실제로는 F 와 F# 사이에 있는 음이 나는 것이 맞다.</ref>
* 11배음 F#5 와 12배음 G5는 단2도이다. (실제로 정확한 12배음은 G5에서 +2 센트만큼 높은 음이다.
음정에는 [[센트 (음악)]]라는 단위가 있는데, 이것은 음정에서 유니즌을 제외한 가장 낮은 음정단위인 단2도 보다 더 좁은 간격, 즉 12음계를 벗어난 그 사이사이의 미세한 간격을 측정할 때 쓰는 단위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5센트까지의 차이는 잘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4배음까지의 울림에서는 부조화를 느끼지 못해서 완전한 울림이라고 불리었고, 5배음부터는 울림의 부조화를 느꼈기 때문에 완전 대신 장/단 을 쓰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 그 외 명칭 ==
몇가지 음정의 경우에는 " 성질 + 도수 "의 표기법을 벗어나 하나의 단어로 바꿔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5가지 경우가 있다.
* 완전1도 (Perfect 1st)의 경우에는 [[유니즌]](Unison) 이라고 부른다.
* 단2도 (minor 2nd)의 경우에는 [[반음]](Semitone, half tone, half step) 이라고 부른다.
* 장2도 (Major 2nd)의 경우에는 [[온음]](Tone, whole tone, whole step) 이라고 부른다.
* 증4도 (Augmented 4th) 와 감5도 (diminished 5th)는 도수의 해석은 다르나 음과 음 사이의 실제 간격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음정을 [[셋온음]](Tritone) 이라고 부른다.<ref>셋온음은 [[온음]]을 3번 거쳐서 만들어진 간격이라는 뜻인데 (예: 도-레 + 레-미 + 미-파#), 실제로는 트라이톤이라는 말이 더 자주 사용된다.</ref>
* 완전8도 (Perfect 8th)의 경우에는 [[옥타브]](Octave) 라고 부른다.
== 평균율 음정 기억법 ==
다음의 음악은 해당 음정으로 시작한다.<ref>음악가들은 각각의 음정들을 귀에 익히고, 언제 어디서나 입으로 소리낼 수 있도록 시창/청음 훈련을 하기도 하는데, 특정 음악을 떠올려서 그 음정을 바로 떠올릴 수 있게 도와주는 훈련법을 소개하는 내용이다.</ref>
{| class="wikitable bordered"
|-
! 음정 !! 약자 !! 높아짐 !! 낮아짐
|-
|단2도|| m2 || [[신세계 교향곡]] 4악장, 모차르트의 자장가 (잘자라 우리아기) || [[엘리제를 위하여]], 아침 이슬
|-
|장2도|| M2 || [[생일 축하합니다]], 학교종, 아리랑, 고요한 밤, 루돌프 || 고드름, 군밤타령, [[비행기 (동요)|비행기]], 개똥벌레
|-
|단3도|| m3 || 따르릉, 봄(엄마엄마 이리와) || 개나리, 산토끼, 나비야, 설날, 그대로 멈춰라, 뽀뽀뽀
|-
|장3도|| M3 || 딩동댕 종소리, 똑같아요, 바둑이 방울, 우리들은 일학년, 곰 세마리 || 운명 교향곡, 수업 종소리
|-
|완전4도|| P4 || 애국가, 결혼행진곡, 고기잡이, 어린 음악대, 과수원 길 || 산중호걸, 파란마음 하얀마음(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경찰차 싸이렌
|-
|[[트라이톤]]|| TT || 더 심슨 주제곡, 마리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완전5도|| P5 || 반짝반짝 작은별, 스타워즈 메인 테마 || 바흐 미뉴에트(솔 도레미파 솔 도 도), 플린스톤, 수퍼맨
|-
|단6도|| m6 || 러브스토리, 엔터테이너 ||
|-
|장6도|| M6 || 오빠 생각, 등대지기, 스승의 은혜, 코끼리 아저씨, 징글벨(흰 눈 사이로), 새싹들이다, Ich liebe dich || 청혼 (이소라)
|-
|단7도|| m7|| 스타트랙, 난 행복해, 금지된 사랑 ||
|-
|장7도|| M7|| [[노라존스]]의 'Don't know why' ||
|-
|완전8도|| P8|| 썸웨어 오버 더 레인보우 ||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Bulls on Parade' 기타 리프.
|}
== 같이 보기 ==
* [[오도권]]
== 각주 ==
<references />
{{기보법}}
{{전거 통제}}
[[분류:음정| ]]
[[분류:음악 용어]]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점근 표기법'''(漸近 表記法, {{llang|en|asymptotic notation}})은 어떤 함수의 증가 양상을 다른 함수와의 비교로 표현하는 [[수론]]과 [[해석학 (수학)|해석학]]의 방법이다. [[알고리즘]]의 [[복잡도 이론|복잡도]]를 단순화할 때나 [[무한급수]]의 뒷부분을 간소화할 때 쓰인다.
대표적으로 다음의 다섯 가지 표기법이 있다.
* 대문자 [[O]] 표기법
* 소문자 [[o]] 표기법
* 대문자 오메가([[Ω]]) 표기법
* 소문자 오메가([[ω]]) 표기법
* 대문자 세타([[Θ]]) 표기법
이 중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는 것이 대문자 O 표기법으로, [[에드문트 란다우|란다우]] 표기법이라고도 한다.
특히, [[알고리즘]]의 [[복잡도 이론|복잡도]]를 나타내는 용어로는 "[[계산 복잡도 이론]]" 또는 "[[시간복잡도]]"로 대문자 [[O]] 표기법이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 대문자 O 표기법 (Big-O notation)==
=== 정의 ===
함수 ''<math>f(x)</math>'', ''<math>g(x)</math>''에 대해 ''<math>f(x)</math>''가 ''<math>O(g(x))</math>''라는 것은 '''상한 점근'''에 관한 다음의 동치인 정의와 같다.
* <math>x>x_0</math>를 만족하며 충분히 큰 모든 <math>x</math>에 대하여 <math>|f(x)| \le M |g(x)|</math>가 성립하도록 하는 양의 실수 <math>M</math>과 실수<math>x_0</math>가 존재한다.
* <math>|x - a| < \delta</math>를 만족하는 <math>x</math>에 대하여 <math>|f(x)| \le \; M |g(x)|</math> 가 성립하도록 하는 양수 <math>\delta</math> 와 <math>M</math>이 존재한다.
* <math>\limsup_{x\to a} \left|\frac{f(x)}{g(x)}\right| < \infty.</math>
이를 <math>f(x) = O(g(x))</math> 혹은 <math>f(x) \in O(g(x))</math>로 표기하기도 한다.
=== 예 ===
두 [[다항식]] <math>f, g</math>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math> f(x) = 6x^4 -2x^3 +5</math>
:<math> g(x) = x^4</math>
이때 <math>f(x) = O(g(x)) \mbox{ or } O(x^4)</math>이 된다. 증명은 다음과 같다.
:<math> |6x^4 - 2x^3 + 5| \le 6x^4 + 2x^3 + 5</math> (<math>x > 1</math>일 때)
:<math> |6x^4 - 2x^3 + 5| \le 6x^4 + 2x^4 + 5x^4</math> (<math>x^3 < x^4</math>와 같은 방법)
:<math> |6x^4 - 2x^3 + 5| \le 13x^4 </math>
:<math> |6x^4 - 2x^3 + 5| \le 13 |x^4|</math>
=== 표기법 문제 ===
<math>f(x) = O(g(x))</math>라는 표현에서, [[등호]]는 원래의 등호와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어, 어떤 함수가 <math>O(x)</math>이면 <math>O(x^2)</math>이므로 <math>O(x) = O(x^2)</math>로 표기할 수는 있지만, <math>O(x^2) = O(x)</math>와 같이 쓰는 것은 잘못된 표기이다. 이 때, 등호 표기는 일반적인 표기법과 다르게 사용된 [[기호의 남용]]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math>O(g(x))</math>를 원래 정의에서 해당하는 함수들의 집합으로 정의하는 경우도 많이 사용된다. 이러한 경우 <math>f(x) \in O(g(x))</math>과 같이 표기할 수 있고, 이것은 기호의 원래 정의와 잘 맞아 떨어진다.
== 다른 표기법들 ==
대문자 [[O]] 표기법과 비슷하게, 다음의 표기법들이 사용된다.
{| class="wikitable"
!표기법
!설명
!수학적 정의
|-
|<math>f(n) \in O(g(n))</math>
|상한 점근
|<math>\lim_{n \to \infty} \left|\frac{f(n)}{g(n)}\right| < \infty</math>
|-
|<math>f(n) \in o(g(n))</math>
|<!--asymptotically negligible-->
|<math>\lim_{n \to \infty} \frac{f(n)}{g(n)} = 0</math>
|-
|<math>f(n) \in \Omega(g(n))</math>
|하한 점근
|<math>\lim_{n \to \infty} \left|\frac{f(n)}{g(n)}\right| > 0 </math>
|-
|<math>f(n) \in \omega(g(n))</math>
|<!--asymptotically dominant-->
|<math>\lim_{n \to \infty} \frac{f(n)}{g(n)} = \infty</math>
|-
|<math>f(n) \in \Theta(g(n))</math>
|상한/하한 점근
|<math>0 < \lim_{n \to \infty} \left|\frac{f(n)}{g(n)}\right| < \infty</math>
|}
또한 Õ 표기법은 대문자 O 표기법의 일종으로, <math>\tilde{O} (g(n))</math>는 <math>O(g(n) \, \log^k g(n))</math>(<math>k</math>는 임의의 상수)를 의미한다. 이 표기법은 함수의 로그 증가 비율을 무시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같이 보기 ==
* [[상극한과 하극한]]
* [[마스터 정리]]
* [[근삿값의 순서]]
{{전거 통제}}
[[분류:수학 표기법]]
[[분류:점근 해석]]
[[분류:알고리즘 분석]] |
'''ISO'''는 다음을 뜻한다.
* '''ISO'''는 [[국제 표준화 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의 통칭이다.
** 필름과 디지털 카메라의 [[감광 속도]]. 필름의 경우 ISO 5800:1987 표준에,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 ISO 12232:1998 표준에 따르는 값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 '''ISO'''는 [[국제 설탕 기구]](International Sugar Organization)의 약어이다.
* '''[[.iso]]'''는 [[ISO 9660]] 및 [[유니버설 디스크 포맷|UDF]] 형식을 가진 디스크 이미지의 확장자이다.
* [[적외선 우주 관측소]](Infrared Space Observatory)
== 같이 보기 ==
* [[이소]]
{{동음이의}}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OSI스택}}
{{IP스택}}
[[파일:Crystal 128 yast dns.png|thumb]]
'''도메인 네임 시스템'''(Domain Name System, '''DNS''')은 호스트의 도메인 이름을 호스트의 네트워크 주소로 바꾸거나 그 반대의 변환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특정 컴퓨터(또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임의의 장치)의 주소를 찾기 위해, 사람이 이해하기 쉬운 도메인 이름을 숫자로 된 식별 번호(IP 주소)로 변환해 준다. 도메인 네임 시스템은 흔히 "전화번호부"에 비유된다. 인터넷 도메인 주소 체계로서 [[TCP/IP]]의 응용에서, www.example.com과 같은 주 컴퓨터의 도메인 이름을 192.168.1.0과 같은 IP 주소로 변환하고 라우팅 정보를 제공하는 분산형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이다.
인터넷은 2개의 주요 [[이름공간]]을 관리하는데, 하나는 도메인 네임 계층<ref name="rfc1034">RFC 1034, ''Domain Names - Concepts and Facilities'', P. Mockapetris, The Internet Society (November 1987)</ref>, 다른 하나는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 공간]]이다.<ref name="rfc781">RFC 781, ''Internet Protocol - DARPA Internet Program Protocol Specification'', Information Sciences Institute, J. Postel (Ed.), The Internet Society (September 1981)</ref> 도메인 네임 시스템은 도메인 네임 계층을 관리하며 해당 네임 계층과 주소 공간 간의 변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터넷 [[네임 서버]]와 [[통신 프로토콜]]은 도메인 네임 시스템을 구현한다.<ref name="rfc1035">RFC 1035, ''Domain Names - Implementation and Specification'', P. Mockapetris, The Internet Society (November 1987)</ref> DNS 네임 서버는 도메인을 위한 DNS 레코드를 저장하는 서버이다. DNS 네임 서버는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쿼리의 응답 정보와 함께 응답한다.
== 역사 ==
호스트의 숫자 주소 대신 더 단순한, 더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사용하는 일은 [[ARPANET]]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탠퍼드 연구소(현재의 [[SRI 인터내셔널]])는 ARPANET의 컴퓨터들의 숫자 주소와 호스트 이름을 매핑하는 [[hosts|HOSTS.TXT]]라는 이름의 텍스트 파일을 관리하였다.<ref name="rfc2467">RFC 3467, "Role of the Domain Name System (DNS)", J.C. Klensin, J. Klensin (February 2003).</ref><ref>{{서적 인용
|title = DNS and BIND
|edition = 5th
|page = 3
|year = 2006
|first1 =Cricket |last1=Liu |first2=Paul |last2=Albitz
|publisher = O'Reilly Media
|isbn = 978-0-596-10057-5
}}</ref> 할당 번호 목록(Assigned Numbers List)이라 불리던 숫자 주소들은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정보과학연구소]] 소속(소속팀은 SRI와 함께 밀접하게 일했음) [[존 포스텔]]에 의해 관리되었다.<ref>IEEE Annals [3B2-9] man2011030074.3d 29/7/011 11:54 Page 74</ref>
== 구조 ==
=== 도메인 이름 공간 ===
도메인 이름 공간은 도메인 이름을 트리 형태로 구성한 것이다. 트리의 각 노드는 0개 이상의 ''리소스 레코드(resource record)''를 가진다. 트리는 루트 존(root zone)에서 시작하여 여러 개의 하위 존으로 나뉜다. 각 DNS 존은 하나의 권한 있는 ''네임 서버(authoritative name server)''에 의해 관리되는 노드들의 집합이다. (하나의 네임 서버가 여러 개의 존을 관리할 수도 있다.)
관리 권한은 분할되어서 새로운 존을 형성할 수 있다. 이때, 기존의 도메인 이름 공간의 일부분이 서브도메인 형태로 다른 네임 서버에 권한이 ''위임''된다고 한다. 그리고 기존의 존은 새로운 존에 대한 권한을 잃게 된다.
=== 도메인 이름 형성 ===
도메인 이름 형성에 관한 규칙은 RFC 1035, RFC 1123, RFC 2181<nowiki/>에 정의되어 있다.
도메인 이름은 한 개 이상의 부분(레이블)로 이루어지고, 점으로 구분하여 붙여 쓴다.(예: <code>example.com</code>)
* 가장 오른쪽 레이블은 [[최상위 도메인]]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도메인 이름 <code>www.example.com</code>은 최상위 도메인 <code>com</code>에 속한다.
* 도메인의 계층 구조는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내려간다. 왼쪽의 레이블은 오른쪽의 서브도메인이다. 예를 들어, 레이블 <code>example</code>은 <code>com</code> 도메인의 서브도메인이며, <code>www</code>는 <code>example.com</code>의 서브도메인이다. 서브도메인은 127단계까지 가능하다.
* 각 레이블은 최대 63개 문자를 사용할 수 있고, 전체 도메인 이름은 253개 문자를 초과할 수 없다. 실제로는 도메인 레지스트리에 더 짧은 제한을 가질 수 있다.
* 도메인 이름은 기술적으로 옥텟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문자를 사용할 수 있다(RFC 3696). 그러나 DNS 루트 존과 대부분의 서브도메인에서는 제한된 형식과 문자들만 허용한다. 레이블에 사용될 수 있는 문자는 아스키 문자 집합의 부분집합과 알파벳 a부터 z, A부터 Z, 숫자 0부터 9와 하이픈(-)을 포함한다. 이 규칙은 letter(문자), digit(숫자), hyphen(하이픈)의 첫글자를 따서 LDH 규칙이라고 한다. 도메인 이름은 대소문자 구분없이 해석되고, 레이블은 하이픈으로 시작하거나 끝날 수 없다.
== 주요 DNS 목록 ==
DNS를 잘못 설정할 경우 인터넷 이용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신뢰할 수 없는 DNS는 해킹, 파싱 등에 노출되므로, 신뢰할 수 있는 DNS 서버만 이용하는 것이 권장된다.
{| class="wikitable" style="font-size:85%; text-align:center"
!width=25%| 운영주체
!width=25%| 기본 DNS
!width=25%| 보조 DNS
!width=25%| 기타
|-
| rowspan="2" | [[KT]]
| 168.126.63.1
| 168.126.63.2
| 열린 주소창이 작동하던 주소였으나 현재는 열린 주소창이 작동하지 않음.
|-
|211.45.150.201
|211.45.151.201
|열린 주소창이 작동하지 않는 주소였음. 현재는 사용 불가.
|-
| [[LG유플러스]]
| 164.124.101.2
| 203.248.252.2
|-
| [[SK브로드밴드]]
| 210.220.163.82
| 219.250.36.130
|
|-
| [[CJ헬로비전]]
| 180.182.54.1
| 180.182.54.2
|-
| [[구글]]
| 8.8.8.8
| 8.8.4.4
| [https://developers.google.com/speed/public-dns/ 구글 Public DNS]
|-
| [[시만텍]]
| 199.85.126.10
| 199.85.127.10
| [https://web.archive.org/web/20150407081603/https://dns.norton.com/ 노턴 ConnectSafe DNS]
|-
| 코모도
| 8.26.56.26
| 8.20.247.20
| [https://www.comodo.com/secure-dns/ 코모도 Secure DNS]
|-
|[[Cloudflare]]
|1.1.1.1
|1.0.0.1
|[http://1.1.1.1 Cloudflare DNS]
|-
|[[IBM|IBM Quad9]]
|9.9.9.9
|149.112.112.112
|[https://www.quad9.net/ IBM Quad9 DNS]
|-
| rowspan="4" |[[스프린트 (통신사)|SprintLink]]
|206.228.179.10
|144.228.254.10, 144.228.255.10
| rowspan="4" |[https://www.sprint.net/index.php?p=faq_dns SprintLink DNS]
|-
|213.206.128.130
|217.147.96.130, 217.149.32.130
|-
|203.222.32.130
|203.222.36.130, 203.222.38.130
|-
|204.117.214.10
|199.2.252.10
|}
기본적으로 통신사가 제공하는 DNS는 서버가 한국에 소재하여 빠른 응답 속도를 보여준다.
구글과 시만텍의 DNS는 한국에 서버가 소재하진 않지만, 인접국인 일본에 서버가 소재하고 있어, 40ms 미만의 응답 속도를 보여준다.
클라우드플레어(cloudeflare)의 DNS는 한국에
서버를 두어 응답속도가 3~5ms정도의 응답속도를 보인다
== 같이 보기 ==
* [[DNS 하이재킹]]
* [[DNS over HTTPS]]
* [[DNS over TLS]]
* [[DNS 레코드 타입 목록]]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분류-줄}}
{{전거 통제}}
[[분류:인터넷 표준]]
[[분류:인터넷 프로토콜]]
[[분류:도메인 네임 시스템| ]]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뜻}}
{{생물 분류
|이름=조강
|색=동물
|그림=Bird Diversity 2013.png
|그림_크기=230px
|그림_설명=왼쪽 상단부터 오른쪽으로<br />
(1열) 붉은관부채머리, [[넓적부리황새]], 흰꼬리열대새 (2열) [[참수리]], [[회색관두루미]], [[인도공작]] (3열) [[바위비둘기]], 안나벌새, [[코뿔바다오리]] (4열) 큰화식조, 오색앵무, [[쿠바홍학]] (5열) [[젠투펭귄]], [[왜가리]], [[푸른발얼가니새]] (6열) ''M. strigula'', [[수리부엉이]], 톱부리왕부리
|계=[[동물|동물계]]
|문=[[척삭동물|척삭동물문]]
|아문=[[척추동물|척추동물아문]]
|미분류_강=[[조룡강]]
|강='''조강'''(Aves)
|강_명명=[[칼 폰 린네|Linnaeus]], 1758
|하위_링크=아강
|하위=
* †고조아강 (Archaeornithes)
* †에난티오르니테스아강 (Enantiornithes)
* †헤스페로르니스아강 (Hesperornithes)
* †이크티오르니스아강 (Ichthyornithes)
* 신조아강 (Neornithes)
** [[고악류|고악하강]] (Paleognathae)
** [[신악류|신악하강]] (Neognathae)
}}
'''새''' 또는 '''조류'''(鳥類)는 깃털을 가진 수각류 공룡으로 백악기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공룡으로 알려져 있다. 새는 현대적 의미의 [[파충류]]로 간주되며, 가장 가까운 생물학적 친척은 [[악어]]이다. 또한 조류는 보통 비행이 가능하며, 계통적으로는 [[석형강]] [[공룡상목]] ‘조강’(鳥綱)에 속한다. 새는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심장]]이 2[[심방]], 2[[심실]]이며, [[허파]]로 [[호흡]]하는 [[항온동물]]이다. 조류는 ‘날짐승’이라고도 한다.
== 특징 ==
=== 진화 ===
{{본문|조류의 진화}}
분류에 따라 8,800 ~ 10,200 종이 분포한다. 가장 작은 종은 [[벌새]]이며, 현재 가장 큰 종은 [[타조]]이다. 보통 공룡의 멸종기인 6천 600만년전 이후 조류가 생겨났다고 인식되나, 1877년에 독일 졸로호펜에서 발굴된 [[시조새]]와 [[중국]]에서 발견된 안키오르니스의 화석 등을 통해 수각류 공룡이 약 1억 5,000만 년 전부터 조류의 형태로 진화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고, 백악기 때부터 [[오리]]나 [[닭]]이 될 조류가 분화되었다. 현재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수각류]]에 속한다. 각질의 깍지로 덮여 있는 부리와 비늘이 있는 다리, 날개 이외의 뼈대 구조 등은 [[파충류]]와 유사하나 체표가 깃털에 싸여 있는 점과, 앞다리가 날개로 변화해 있는 점은 현생하는 다른 동물 무리에서는 볼 수 없다.
=== 감각기관 ===
조류는 대체로 머리에 비해 눈알이 크고, 망막의 시신경이 발달해 있어 [[시력]]이 예민하다. [[부엉이]] 등의 야행성 종에서는 시세포가 간상세포만으로 되어 있으나, 주행성 종에서는 원추세포가 발달해 사람이 느끼는 색상을 거의 대부분 감지할 수 있다. 귀는 머리 부분의 좌우에 한 쌍이 열려 있는데, 모두 깃털로 싸여 있기 때문에, 겉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청각도 잘 발달해, 시각과 함께 조류가 생활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감각 기관이다. 반면 후각은 [[타조목]]·[[슴새목]] 이외에는 예민하지 않으며, 미각도 그리 발달해 있지 않다. 철새 같은 경우는 이동을 해야하는데 이 넓은 지구를 길 한번 잃지 않고 간다.
=== 활동시기 ===
거의 대부분의 새는 낮에 활동하지만, [[올빼미]] 등 [[맹금류]]는 야행성이다.
=== 먹이 ===
먹이는 종류에 따라 [[꿀]], 나무 [[열매]], [[곤충]], [[쥐]], [[물고기]], 작은 새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 번식 ===
모든 종류가 보통 열개 안팎으로 비교적 적은 수의 알을 낳는데, 대부분 어미새가 몸의 열로 알을 데워 부화시킨다. 알은 다량의 난황을 포함하는 단황란으로, 미수정란의 난황 부분은 하나의 세포로는 동물 중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한다.
=== 이동 ===
많은 종은 계절에 따라 이주하며, 이러한 새들을 [[철새]]라 부른다. 언제, 어느 곳에서 이주하느냐에 따라 여름철새, 겨울철새로 나뉜다. 또, 한 곳에 머무르며 서식하는 새를 [[텃새]]라고 하며, 그중에서 한 나라 안에서 단거리로 이동하는 새를 떠돌이새라고 하고, 먼 길을 가기 위해 한 곳에 잠시 머무르는 새를 [[나그네새]]라고 한다. 서식지나 이동 경로에서 벗어나 있는 새들은 미조나, 길잃은새라고 한다.
=== 지능 ===
모든 조류는 보통 지능이 높고 [[까마귀]]와 [[앵무새]]는 침팬지의 지능에 가까운 수준으로 높다고 알려져 있다. 심지어 평범한 닭이나 [[비둘기]]도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능이 굉장히 높다.
== 생식 ==
새의 [[성염색체]]는 ZZ-ZW형으로, 성[[염색체]]가 ZZ이면 수컷, ZW이면 암컷이다. 따라서, 새의 정자와 난자 중 성을 결정하는 것은 난자이다.
== 하위 분류 ==
조강이 [[석형류]]에 포함되지 않을 경우의 하위 분류와 조강에 속하는 목은 다음과 같다.
* [[고악류]] 또는 고악하강 (Paleognathae)
** [[타조목]] (Struthioniformes) - [[타조]]
** [[도요타조|도요타조목]] (Tinamiformes) - [[도요타조]](티나무)
** [[레아과|레아목]] (Rheiformes) - [[레아 (새)|레아]]
** [[키위 (새)|키위목]] (Apterygiformes) - [[키위 (새)|키위]]
** [[화식조목]] (Casuariiformes) - [[화식조]], [[에뮤]]
* [[신악류]] 또는 신악하강 (Neognathae)
** [[닭기러기류]] (Galloanserans)
*** [[닭목]] (Galliformes) - [[닭]], [[꿩]], [[칠면조]]
*** [[기러기목]] (Anseriformes) - [[기러기]], [[오리]]
** [[미란도르니테스류]] (Mirandornithes)
*** [[홍학목]] (Phoenicopteriformes) - [[쿠바홍학]]
*** [[논병아리목]] (Podicipediformes) - [[논병아리]]
** 두루미류 (Gruimorphae)
*** [[두루미목]] (Gruiformes) - [[두루미]]
*** [[도요목]] (Charadriiformes) - [[깝작도요]]
** 호아친 및 쏙독새류
*** [[호아친목]] (Opisthocomiformes) - [[호아친]]
*** [[쏙독새목]] (Caprimulgiformes) - [[쏙독새]]
*** [[칼새목]] (Apodiformes) - [[칼새]], [[벌새]]
** 비둘기류 (Columbaves)
*** [[느시목]] (Otidiformes) - [[느시]]
*** [[부채머리목]] (Musophagiformes) - [[부채머리]]
*** [[뻐꾸기목]] (Cuculiformes) - [[뻐꾸기]]
*** [[비둘기목]] (Columbiformes) - [[집비둘기]]
*** [[메사이트목]] (Mesitornithiformes) - [[메사이트]]
*** [[사막꿩목]] (Pteroclidiformes) - [[사막꿩]]
** 뱀눈새류 (Eurypygimorphae)
*** [[열대새|열대새목]] (Phaethontiformes) - [[열대새]]
*** [[뱀눈새목]] (Eurypygiformes) - [[뱀눈새]]
** [[수조류]] (Aequornithes)
*** [[아비목]] (Gaviiformes) - [[아비]]
*** [[슴새목]] (Procellariiformes) - [[바다제비]], [[신천옹]]([[알바트로스]])
*** [[펭귄|펭귄목]] (Sphenisciformes) - [[황제펭귄]]
*** [[황새목]] (Ciconiiformes) - [[황새]]
*** [[가다랭이잡이목]] (Suliformes) - [[가마우지]]
*** [[사다새목]] (Pelecaniformes) - [[펠리칸]]
** [[아프리카조류]] (Afroavians)
*** 신세계독수리목 (Cathartiformes) - [[캘리포니아콘도르]]
*** [[수리목]] (Accipitriformes) - [[독수리]], [[수리매]]
*** [[올빼미목]] (Strigiformes) - [[부엉이]], [[올빼미]], [[소쩍새]]
*** [[쥐새목]] (Coliiformes) - [[얼룩쥐새]]
*** [[뻐꾸기파랑새목]] (Leptosomatiformes) - 유일종 [[뻐꾸기파랑새]]
*** [[비단날개새목]] (Trogoniformes) - [[케찰]]
*** [[코뿔새목]] (Bucerotiformes) - [[코뿔새]]
*** [[파랑새목]] (Coraciiformes) - [[후투티]]
*** [[딱따구리목]] (Piciformes) - [[오색딱따구리]]
** [[오스트레일리아조류]] (Australavisians)
*** [[느시사촌목]] (Cariamiformes) - [[느시사촌]]
*** [[매목]] (Falconiformes) - [[매]]([[송골매]])
*** [[앵무목]] (Psittaciformes) - [[회색앵무]]
*** [[참새목]] (Passeriformes) - 연작류
== 계통 분류 ==
{{계통도/척삭동물}}
{{계통도/새}}
== 같이 보기 ==
* [[시조새]]
* [[한국의 야생 새 목록]]
* [[가금|가금류]]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줄|Aves}}
* {{위키낱말사전-줄|새}}
*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새}}
{{척삭동물}}
{{조류}}
{{분류군 식별자|from=Q5113}}
{{전거 통제}}
[[분류:새| ]]
[[분류:깃털공룡]]
[[분류:칼 폰 린네가 명명한 분류군]]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출처 필요|날짜=2012-10-24}}
'''위지위그'''({{lang|en|WYSIWYG: What You See Is What You Get}}, "보는 대로 얻는다")<ref name="dictionary">{{웹 인용| url = http://dictionary.reference.com/browse/wysiwyg | title = Dictionary.com Unabridged (v 1.1) | access-date = 9 November 2007 | archive-url = https://web.archive.org/web/20071130002644/http://dictionary.reference.com/browse/WYSIWYG | archive-date = 30 November 2007 | url-status = live }}</ref>는 인쇄된 문서, 웹 페이지, 슬라이드 프레젠테이션 등 완성된 결과물로서 인쇄 또는 표시될 때의 모습과 닮은 형태로 콘텐츠의 편집이 가능한 시스템이다.<ref>{{웹 인용| url=http://oxforddictionaries.com/view/entry/m_en_gb0963250| archive-url=https://archive.today/20130131064847/http://oxforddictionaries.com/view/entry/m_en_gb0963250| url-status=dead| archive-date=31 January 2013|title=Oxford English Dictionary: WYSIWYG|publisher=Oxford University Press}}</ref> 이는 편집 명령어를 입력하여 글꼴이나 문장 형태를 바꾸는 방식과 구별된다.
현재 대부분의 [[워드 프로세서]]는 위지위그 방식을 쓰고 있으나 HTML이나 TeX는 편집 명령어를 통해 편집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문서의 호환성, 범용성 때문이다.
== 역사 ==
위지위그 기법이 채택되기 전에, 레이아웃([[여백]], 공백 등)에 거의 관계 없이 시스템 표준 글꼴과 스타일을 사용하여 텍스트가 편집기들에 나타났다. 사용자들은 일부 텍스트가 굵게, 기울임을 써야 하는지, 또 어떠한 크기나 글꼴을 사용해야 하는지를 지시하기 위해 특수한 비인쇄 제어 코드(현재는 마크업 코드 태그라고 함)를 입력해야 했다. 이 환경에서는 [[문서 편집기]]와 [[워드 프로세서]] 간 차이가 거의 없었다.
1974년 [[제록스 PARC]]에서 [[버틀러 램슨]], [[찰스 시모니]] 및 동료들이 개발한 [[제록스 알토|알토]]용 문서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인 [[브라보 (소프트웨어)|브라보]]가 일반적으로 위지위그 기술을 통합한 최초의 프로그램으로 간주되며<ref>{{웹 인용|url=https://www.computer.org/web/computingnow/annals/extras/wordvol28n4|title=Computing Now}}</ref> 글꼴, 자간과 같은 형식으로 텍스트를 보여주었다.<ref>http://bits.blogs.nytimes.com/2007/10/18/the-real-history-of-wysiwyg/?_r=0</ref>
== 뜻 ==
[[파일:Lorem Ipsum - WYSIWYG en Latex - tekst als paden.svg|섬네일|300px|right|왼쪽은 문서 편집을 위한 위지위그 에디터 프로그램이다. 오른쪽은 왼쪽과 최대한 비슷한 모양을 얻을 있는 [[LaTeX]] 코드로서, 컴파일 과정을 거치면 왼쪽과 비슷해진다. 컴파일 과정을 거치는 경우 위지위그라 할 수 없다. ]]
* 이 용어는 사용자가 얻을 수 있는 최종 [[문서]]와 이미지와 가장 근접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말한다.
* 레이아웃 명령의 이름을 꼼꼼히 기억하거나 입력할 필요 없이 문서 [[페이지 레이아웃|레이아웃]]의 수정을 말한다.
현대의 소프트웨어는 특정한 종류의 출력을 위해 화면 디스플레이를 최적화한다. 이를테면, [[워드 프로세서]]는 일반 프린터의 출력물에 최적화되어 있다. 이 소프트웨어는 프린터의 해상도를 가상으로 구현하고 위지위그에 최대한 가깝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그저 사용자가 작업한 것을 보여준다는 능력 자체가 위지위그의 주된 매력 포인트는 아니다.
여러 상황에서, "What You See Is What You Get"이라는 표현이 중요하지 않을 만큼 약간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사실 응용 프로그램들은 다른 수준의 "현실주의"와 더불어 여러 개의 위지위그 모드를 제공하기도 한다.
* 복합 모드
* 레이아웃 모드
* 미리 보기 모드
== 문제와 해결 ==
위지위그 응용 프로그램들의 디자이너들이 보통 저마다 다른 기능을 갖춘 다양한 출력 장치를 고려하기 때문에, 수많은 문제가 비롯될 수 있다. 여러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라면, 여러 해결책을 포함한 응용 프로그램들을 사용하는 것이 낫다.
위지위그 응용 프로그램의 설계 목표:
* 특정 프린터에 높은 품질의 인쇄 출력을 제공한다.
* 다양한 프린터에 높은 품질의 인쇄 출력을 제공한다.
* 화면 위에 높은 품질의 출력을 제공한다.
* 인쇄된 화면과 최대한 비슷하게 볼 수 있도록 사용자에게 미리 보기 기능을 제공한다.
위의 모든 목표를 한 번에가지고 있다. 프린터는 한 인치에 보통 240에서 1440 화소를 가지고 있다. 일부 프린터의 수직 해상도는 저마다 다르다. 레이아웃 텍스트를 출력하려고 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출력 기술이 문자열들 사이에 공간(스페이싱)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다음을 포함한다:
* 언제나 실현할 가능성이 있는 더 높은 해상도를 사용하여 문자열을 레이아웃 처리한다. 낮은 해상도 장치에서 품질이 떨어질 수 있지만 고정된 레이아웃을 제공함으써 사용자의 문자열 가식성을 높여 준다.에서 사용되고 있는 방식이다.
* 사용하고 있는 프린터의 해상도로 텍스트를 레이아웃 처리한다.
화면에 보여 줄 때 품질을 떨어트리고, 문서가 다른 프린터에 출력된다면 레이아웃이 변경될 수도 있다. (높은 해상도의 프린터에서는 라운딩 문제가 더 적어지므로 이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적다)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 출력할 장치를 위한 해상도로 문자열을 레이아웃 처리한다. 화면 디스플레이에 인쇄 출력 화면의 레이아웃에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잘 쓰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위지위그 도구를 제공하는 웹 페이지에 잘 쓰인다.
==블로그에서의 위지위그==
보통의 가입형 [[블로그]] 가입자는 [[HTML]]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므로 글을 쓰기가 힘들다. 따라서 글을 쓸때에 위지위그 방식을 많이 이용한다.
대한민국의 네이버 블로그, 다음 블로그, 이글루스 블로그, 티스토리 블로그 등은 모두 지원하며, 또한 HTML로 바로 쓸 수도 있다.
== 위지위그와 관련된 낱말 ==
'보는 것'은 사용자가 입력한 것, '얻는 것'은 출력되는 것을 가리킨다. S는 ㅅ으로 풀이하였으며 ㅈ로도 읽힐 수 있다.
{| cellpadding="20"
|- style="color:green"
| 이름 || 영문 || 풀이 || 영어풀이 || 해설
|-
| 위시몰위그 || WYSIMOLWYG || 네가 보는 것은 네가 얻는 것과 대략 비슷하다. || what you see is more or less what you get || 대부분의 WYSIWYG의 구현이 불완전함을 짚음
|-
| 위시아위그 || WYSIAWYG || 네가 보는 것은 네가 얻는 것과 거의 일치한다 || what you see is almost what you get || 위시몰위그와 비슷하다.
|-
| 위시아그 || WYSIAYG || 네가 얻을 수 있는 건 네가 보는것 뿐이다. || what you see is all you get || WYSIWYG UI의 한계로 전문가를 위한 옵션들이 제한됨을 꼬집음.
|-
|위시윔 || WYSIWYM || 네가 보는 것은 네가 뜻하는 것이다 || what you see is what you mean || 위지위그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새로 등장한 용어.
|-
|위키위크 || WYCIWYG || 네가 캐시한 것은 네가 얻는 것이다 || what you cache is what you get || "wyciwyg://" 가 가끔 [[파이어폭스]] 같은 [[게코]] 기반 [[브라우저]]에서 캐시로 나타나고는 한다.<br>파이어폭스 15에서 수정되었다고 한다.
|-
|위지위스 || WYGIWYS || 네가 얻는 것은 네가 보는 것이다 || what you get is what you see || 이 표현은 제이콥 닐센이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2007]]의 '리본' 기능을 표현하기 위해 쓰였다고 한다.
|-
|위시윈 || WYSIWYN || 네가 보는 것은 네게 필요한 것이다 || what you see is what you need || 사용자가 정말 원하는 것만 볼 수 있다는 뜻.
|-
|위시휘그 || WYSYHYG || 네가 보는 것은 네가 얻기 바라는 것이다 || what you see you hope you get || 1991년 Microsoft Windows video collection에서 사용됨.
|-
|위시피그 || WYSIPWYG || 네가 보는 것은 아마 네가 얻을 것이다 || what you see is probably what you get || HTML과 마크업에 관련됨.
|-
|위시위스 || WYSIWYS || 네가 보는 것은 네가 뜻하는 것이다 || what you see is what you sign || 디지털 소프트웨어와 관련됨. 사용자가 원하는 것은 어떠한 숨겨진 것 없이 보인다는 말.
|}
== 같이 보기 ==
* [[미리 보기]]
* [[HTML 편집기 목록]]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 [http://catb.org/~esr/jargon/html/W/WYSIWYG.html The Jargon File entry for WYSIWYG]
[[분류:워드 프로세서]]
[[분류:사용자 인터페이스]]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각주 부족}}
{{철학자 정보
|지역 = [[서양 철학]]
|시대 = [[고대 철학]]
|그림 = Plato Silanion Musei Capitolini MC1377.jpg
|그림설명 =
|이름 = 플라톤
|출생일 = 기원전 428/427년 또는 424/423년
|출생지 = [[아테네]]
|사망일 = 기원전 348/347년
|사망지 = 아테네
|학파 = [[플라톤주의]]
|연구분야 = [[수사학]], [[예술]], [[문학]], [[인식론]], [[정의]], [[덕]], [[정치]], [[교육]], [[가족]], [[군국주의]], [[공산주의]]
|주요업적 = [[이데아론]], 플라톤 이상주의, 플라톤 실재론
|영향받음 = [[소크라테스]], [[호메로스]], [[헤시오도스]], [[아리스토파네스]], [[이솝]], [[프로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오르페우스교]]
|영향줌 = 플라톤 이후 대부분의 서양 철학자,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서명 =
|상자너비 =
}}
'''플라톤'''({{llang|grc|[[:en:wikt:Πλάτων|Πλάτων]]}}, 플라톤, "넓은, 어깨 폭이 넓은";<ref>Diogenes Laertius 3.4; {{harvnb|Sedley|2003|p=21}}; Seneca, Epistulae, VI, 58, 30: ''illi nomen latitudo pectoris fecerat''.</ref>, {{llang|en|Plato|플레이토}}{{sfn|Jones|2006}}; [[기원전 428년]]/[[기원전 427년]] 또는 [[기원전 424년]]/[[기원전 424년]] {{Ref label|A|a|none}} ~ [[기원전 348년]]/[[기원전 347년]])은 다양한 서양 학문에 영향력 있는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객관적 관념론]](objective idealism)의 창시자이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며, 대학의 원형인 고등 교육 기관 ‘[[아카데메이아]]’의 교육자이다.<ref>{{웹 인용|title=아카데미아(교육학용어사전)|url=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11453&cid=42126&categoryId=42126}}</ref>
플라톤은 [[아카데메이아]]에서 폭넓은 주제를 강의하였으며, 특히 [[정치학]], [[윤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등 많은 철학적 논점에 관해 저술하였다. 플라톤 저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그의 [[대화편]]이다. 비록 일부 편지는 단지 그의 이름을 붙여서 전해지지만, 플라톤이 쓴 진짜 대화편은 모두 온전하게 전해진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학자들의 합의에 따라, 그리스인들이 플라톤의 것으로 생각하는 ‘알키비아데스 I’과 ‘클레이토폰’ 등과 같은 대화편은 의심스러우며 ‘데모도코스’와 ‘알키비아데스 II’ 등과 같은 대화편은 대개 위조되었다고 판단한다. 편지는 거의 모두 위조되었다고 대개 여기며, 예외로 일곱 번째 편지만 위조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자주 등장하는 주요 등장인물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있는 내용과 주장 가운데 무엇이 소크라테스의 것이고 플라톤의 것인지에 관해 많은 논쟁이 있었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남긴 저술이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종종 ‘소크라테스의 문제’라고 부른다. 그러나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게 확실하다. 따라서 수많은 플라톤의 아이디어, 적어도 그의 초기 연구는 소크라테스에게서 가져오거나 발전시켰을 것이다.
그가 이성 우위의 전통을 가진 서양 철학에 미친 영향은 더할 수 없이 크다. 영국 철학자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화이트헤드]]는 “서양의 2000년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라고 말했으며, 시인 [[에머슨]]은 “철학은 플라톤이고, 플라톤은 철학이다”라고 평하였다.
== 삶 ==
{{플라톤주의}}
플라톤은 아테네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났다. 젊었을 때 [[소크라테스]]에게 배우고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는데, 그의 저서는 모두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으로 된 [[변증론]]에 관한 《[[대화편]]》이어서 그와 스승과의 학설을 구별하기 힘들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정치가로서의 꿈을 버리고 정의를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다. [[이탈리아]]를 여행하여 [[키레네 학파]]로부터 이데아와 [[변증법]]의 기초를 얻었고, [[피타고라스 학파]]를 접하며 실천적 정신과 실생활에의 흥미를 얻어 그의 독자적인 사상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 사이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라케스]]〉 등을 쓰고, 40세에 귀국하여 〈[[고르기아스]]〉, 〈대(大)히피아스〉, 〈소(小) 히피아스〉를 썼다.
그는 그의 이상 국가를 실현해 보고자 친구인 디온의 권고로 [[시켈리아]]의 [[참주]] [[디오니시오스 1세]]의 초청에 응하였으나, 그의 [[과두 정치]]를 비난함으로써 분노를 얻어 노예로 팔리기까지 하였다. 후에 그의 저작을 본 퀴레네 사람 덕분에 구출되어 귀국할 수 있었다.
이후 [[아카데메이아]] 학원을 건립하고 제자 양성에 전력하면서 저작에 몰두하였다. 〈[[향연]]〉, 〈[[파이돈]]〉, 〈[[국가 (플라톤)|국가]]〉, 〈[[파이드로스]]〉 등 주요 저술이 여기서 이루어졌고, 이 학원은 529년까지 계속되었다. [[대학교]]의 초기 형태인 ‘아카데미’(''Academy'')라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기원전 357년]] [[디오니시오스 2세]]의 간청을 받자 망설이던 끝에 다시 [[시켈리아]]로 가서 이상 정치를 펴보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1년 만에 귀국하여 〈[[법률 (플라톤)|법률]]〉 등 몇 개의 저서를 더 쓴 뒤 81세에 세상을 떠났다.
== 이데아론 ==
{{본문|이데아론}}
플라톤은 ⟪[[파이돈]]⟫부터 스승 소크라테스의 사상에서 독립하여 [[이데아론]]이라고 불리는 독자적인 학설을 제창하였다. 우리가 삼각형을 생각할 경우에 현실적으로 삼각형을 아무리 정확하게 그린다고 해도 어느 하나도 완전하게 그려 낼 수 없다. 그것은 이미 한 변의 직선마저 완전하게 긋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완전한 직선, 완전한 삼각형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으며 그 존재를 인정하고 계산도 하여 해답한다. 결국 현실에 있어서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현실의 삼각형은 이 이데아를 인정하는 까닭에 삼각형으로 인식할 수가 있다고 하겠다.
수학의 대상뿐만 아니라 선(善)의, 미(美)의, 용기의 이데아라는 것도 거기에서 생각해 낼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완전한 선은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겠으나 완전한 선의 이데아는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보다 이것이 낫다고 하는 비교는 할 수 없게 된다. 아름다운 꽃은 조락(凋落)하고 아름다운 경치가 폐허가 되어도 아름다움 자체는 그것 때문에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미의 이데아이다. 이 미의 이데아에 현실의 개체가 의탁될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개체가 된다. 즉 미의 이데아는 아름다운 개체의 원인이다.
사람의 영혼은 원래 이러한 이데아계(界)에 있었는데 육체를 갖추고 이데아를 망각하여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므로 진·선·미를 인식하는 것은 영혼이 원래 살던 이데아계를 상기하는 것과 같다는 상기설을 주장하였다.
== ‘플라톤의 교육관’ 목적 ==
그는 인간의 영혼이 육체와 결합된 충동적이며 감각적 욕망을 추구하는 정욕과, 육체와 결합되지 않으며 불사적인 순수한 이성으로 되어 있다고 하고, '이성'은 매우 순수한 것이지만 이 세계의 배후에 있는 완전 지성 실체계인 이데아를 직관할 수 없으며 세상에 탄생하여 육체 속에 듦으로써 이데아를 잊고 있다. 이 잊었던 이데아를 동경하는 마음이 에로스이며, 현상을 보고 그 원형인 이데아를 '상기'하여(상기설), 인식하는 것이 진리라고 한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적 부분의 덕이 지혜이며, 정욕적 부분의 덕을 절제, 이성의 명령에 복종하여 정욕을 억압하는 기개의 덕을 용기라고 하는 것이다. '올바름(dikaiosyne, 또는 '정의')란 여러 덕이 알맞게 그 기능을 발휘할 때의 상태를 말한다.' 그는 이러한 덕론을 통하여 인간 개인의 윤리학을 논하였다. 그러나 정의의 실현은 개인의 덕을 달성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사회 전체의 윤리설을 주장하였다. 그것이 그의 [[폴리테이아|'국가(Politeia)']]이다.
== 플라톤의 교육방법 ==
그는 국가를 개인의 확대로 생각하여 개인에 있어서의 정욕의 부분이 농·공·상업의 서민이며, 기개의 부분은 군인·관리, 이성의 부분은 통치자라고 하고, 이성은 당연히 선의 이데아를 인식하여야 하므로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을 해야 한다"고 하는 유명한 철인 정치론을 전개했다. 이러한 통치자의 교육 제도와 방법에서 그의 교육학을 엿볼 수가 있다.
플라톤은 교육을 5단계로 나누었다.
첫째 단계는 출생부터 17세까지로서, 이 시기는 기초적인 도야(陶冶)의 단계로 보아, 문예·음악·조형미술 등 비교적 수준이 낮은 지적 도야 및 일반적으로 정서적 방면에 해당되는 학예와 체육을 주로 하였다. 체육도 단지 육체의 단련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 이상의 정신적 도야를 위한 것이었다. 이들 과목은 유희적인 방법으로 가르치게 하였고, 이런 자유로운 학습활동을 하는 가운데 각자의 개성이 발견되게 하였다.
둘째 단계는 17세부터 20세까지로, 이 시기의 교육은 군사훈련의 기초가 되게 하며, 어떤 곤경에도 참아낼 수 있는 강인한 심신을 기르기 위하여 체육만을 전수시킬 것을 주장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성적이 불량한 자는 생산자 계급으로 남게 했다.
셋째 단계는 20세에서 30세까지로, 이 시기에는 철학의 예비교과로써 수학·기하·천문·음악 이론을 체계적으로 배우게 했다. 이 시기에 성적이 불량한 자는 군인으로 남게 했다.
넷째 단계는 30세에서 36세까지로서, 이때에는 전적으로 협의(狹義)의 변증법을 배웠다. 이 시기에는 감각적인 것을 떠나 순수하게 관념적으로 사물의 본질을 취급하는 시기로 설정하였다.
다섯째 단계는 35세에서 50세까지로서, 이 시기를 플라톤은 '동굴에 들어가는 시기'로 비유하였다. 이때가 되면 인간은 속세에 나와 군사와 정치를 실습·연구하고, 풍부한 경험과 견문을 쌓는다.
50세 이후에는 평생토록 변증법의 초보적인 대상인 선(善)의 이데아를 연구하고, 교대로 정치를 맡으며 후진을 교육한다. 플라톤이 주장했고 또한 '아카데미아'에서 실행한 교육방법은 [[소크라테스적 방법]]이었다. 그것은 [[소피스트]]들의 논쟁술·궤변술에 빠지는 대화법이 아닌, 자기 성찰과 진리탐구를 위한 방법이며, 생명이 없고 또 문자에 의한 교육이 아닌 살아 있는 말을 존중하는 대화법이었다.
== 아동발달 연구 ==
플라톤은 《[[국가 (플라톤)|국가]]》({{llang|el|πολιτεία|폴리테이아}}, {{llang|en|The Republic}})에서 인간발달에는 세 가지 국면이 있는데, 그것은 욕망, 정신, 그리고 신성이라고 하였다. 가장 낮은 수준의 욕망(desire)은 오늘날 본능, 욕구, 충동으로도 표현되며,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론에서 말하는 원초아의 개념과도 비슷하다. 플라톤에 의하면 욕망은 주로 신체적 욕구만족과 관련되어 있다. 그 다음 수준인 정신은 용기, 확신, 절제, 인내, 대담과 같은 개념이며, 최고의 수준인 신성은 초자연적이고 영원하며 우주의 본질을 이룬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정신으로서 오늘날 이성으로 표현된다. 플라톤은 이미 그 시대에 인간이 성장함에 따라 낮은 수준이 높은 수준으로 대체되는 과정이 발달이라는 생각을 했다.
플라톤에 의하면 3세까지 유아는 공포나 고통, 슬픔의 감정을 경험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유아기는 그 어느 시기보다도 습관에 의해 성격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Platon, 1953)면서 유아에게 쾌락을 제공하는 것은 아이를 버려놓는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플라톤은 성격형성에 있어서 초기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경험에 의해 인간의 성격이 수정될 수 있다는 점 또한 인정하였다. 아동기에는 이성이 성숙되지 않기 때문에 아동교육은 주로 음악이나 스포츠 등에 중점을 두고 같은 또래와 어울림으로써 사회성발달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플라톤은 6세가 되면 “남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끼리 놀게 하고, 여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끼리 놀게 하라”고 하면서 성의 분리를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전통 아동교육에서의 ‘남녀칠세부동석’ 개념과 유사하다.
청년기가 되면 최고의 국면인 이성이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때는 이성적,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교육과정을 과학이나 수학으로 대체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교육철학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는 교육을 환경의 영향을 받는 정신의 발달이라고 해석하였다. 플라톤은 이미 그 때 개인차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우리 인간은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므로, 각기 적성에 알맞은 일에 종사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Muuss, 1996).<ref>{{서적 인용|저자=정옥분|제목=아동발달의 이해|출판사=학지사}}</ref>
== 철인 정치 ==
철인 정치론을 전개한 플라톤은 기본적으로 엘리트에 의한 지배를 옹호한다. 일반적으로 귀족정은 평등사회가 아닌 신분사회를 옹호하는 데, 플라톤 또한 신분사회를 옹호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귀족정의 궁극적인 목적과 그 실현 양태는 일반적인 귀족정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가 말하는 귀족정에서의 왕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같은 높은 신분으로서 도덕적 의무를 중시해야 하는데, 그 실현은 한가지 예를 들면 왕의 사유재산의 형태로 나타난다. 플라톤은 왕의 [[사유재산]]은 오직 공익을 위해서만 쓰여야한다(공유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 밑의 귀족들까지도 사유재산을 공유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장 높은 신분의 상징인 왕이라면 그만큼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해야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한 정치 일선을 담당한 일선 ‘귀족’들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무사 계급에 기반한 귀족 또는 세습에 의한 귀족이 아니라, 철학 지식이 충만한 철학자들을 가리킨다. 그는 ‘지식인에 의한 독재’를 줄곧 주장해왔으며, 시민 계급에 의한 토론 정치인 아테네의 [[민주정]]을 ‘[[중우정치|우민 정치]]’라고 비판해 왔다.
뿐만 아니라 그의 ‘세 가지 주된 덕’(''cardinal virtues'')에서는 ‘조화’라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데, ‘네가지 주된 덕’에 맞는 각각의 신분이 각자 맡은 일만을 해야하며 그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일을 한다거나 서민이 전쟁을 한다는 것과 같은 용기를 보이는 것은 플라톤의 관점에선 ‘사회적 부조화’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 초기 공산주의 ==
오늘날 공산주의라고 하면 일컬어지는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전제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만, 인간은 정치·사회적으로 독립될 수 없는 개인이며, 더 나은 정치·, 사회 체제를 만드려는 것이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진리라고 설파했다. 또한 인간은 더 나은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서 '이성적 존재'가 되어야 하는 '의무'가 부여된 존재라는 목적론적 인간관이란 개념을 만들었기 때문에 초기 관념적 공산주의 기조의 창시자라고 알려졌다. 이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으로 계승이 되기도 했다.
== 저작 ==
현존하는 저작의 대부분은 《대화편》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고,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주요 해설자로 한다.<ref>[[카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未來社)</ref><ref>[[사사키 다케시]], 《플라톤의 주박》, 코단샤 학술 문고</ref><ref>《현대 용어의 기초 지식》, 자유국민사 1981년 90p</ref><ref>[[난바라 시게루]], 《정치 철학 서설》, 1973년</ref>
35편의 《대화편》과 13편의 서간은 전통적으로 플라톤의 것으로 여겨졌으나 현대 학자들은 최소한 일부 저작에 대해서는 진위 여부를 의심하고 있다. 플라톤의 저작은 여러 방식으로 간행된 바 있는데, 그에 따라 플라톤의 글을 명명하고 배열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가 되었다.
플라톤의 글을 분류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16세기 [[앙리 에티엔]](헨리쿠스 스테파누스)의 플라톤 판본에서 비롯되었다.
또 플라톤의 글을 배열하는 방식으로 [[4부극]]에 따르는 전통이 있었는데,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이 방식이 고대의 학자이자 [[티베리우스]] 황제의 궁정 점성가였던 [[트라쉬불로스]]의 것이라고 여겼다.
아래 플라톤의 저작 목록에서 학자간에 플라톤이 쓴 글인지 합의가 되어 있지 않은 책은 (1) 표시를, 그리고 일반적으로 플라톤의 저작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책은 (2) 표시를 달았다. 표시가 없는 저작은 플라톤이 쓴 것으로 여겨진다.
:I. [[에우튀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II. [[크라튈로스]], [[테아이테토스 (플라톤)|테아이테토스]], [[소피스트 (플라톤)|소피스트]], [[정치가 (플라톤)|정치가]]
:III. [[파르메니데스 (플라톤)|파르메니데스]], [[필레보스]], [[향연]], [[파이드로스 (플라톤)|파이드로스]]
:IV. [[알키비아데스 1]] (1), [[알키비아데스 2]] (2), [[히파르코스 (플라톤)|히파르코스]] (2), [[에라스타이]] (2)
:V. [[테아게스]] (2), [[카르미데스]], [[라케스]], [[뤼시스 (플라톤)|뤼시스]]
:VI. [[에우튀데모스]], [[프로타고라스 (플라톤)|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플라톤)|고르기아스]], [[메논]]
:VII. [[대 히피아스]] (1), [[소 히피아스]], [[이온 (플라톤)|이온]], [[메넥세노스]]
:VIII. [[클레이토폰]] (1), [[국가 (플라톤)|국가]], [[티마이오스 (플라톤)|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플라톤)|크리티아스]]
:IX. [[미노스 (플라톤)|미노스]] (2), [[법률 (플라톤)|법률]], [[에피노미스]] (2), [[편지들 (플라톤)|편지들]] (1)
그 밖에 저작은 플라톤의 이름을 빌었으나 상당수는 고대에 이미 위작으로 여겨졌으며, 트라쉴로스는 자신의 4부극식 저작 배열에서 이런 류를 넣지 않았다. 아래 작품은 "위작"(Notheuomenoi) 또는 "위서"(Apocrypha)라 불린다.
: [[악시오코스 (플라톤)|악시오코스]] (2), [[정의 (플라톤)|정의]] (2), [[데모도코스 (플라톤)|데모도코스]], [[시 (플라톤)|시]], [[에뤽시아스 (플라톤)|에뤽시아스]] (2), [[할퀴온 (플라톤)|할퀴온]] (2), [[올바름에 대하여]] (2), [[덕에 대하여]] (2), [[시쉬포스 (플라톤)|시쉬포스]] (2)
== 한국어 번역 ==
* [[소크라테스의 변명]]
** 《소크라테스의 변명》, 강철웅 역, 아카넷, 2020년.
** 《소크라테스의 변명》, 강철웅 역, 이제이북스, 2014년.
** 《소크라테스의 변론》, 천병희 역, 숲, 2012년.
* [[카르미데스]]
** 《카르미데스》, 유혁 역, 아카넷, 2021년.
* [[크리톤]]
** 《크리톤》, 이기백 역, 아카넷, 2020년.
** 《크리톤》, 이기백 역, 이제이북스, 2009년.
** 《크리톤》, 천병희 역, 숲, 2012년.
* [[에우튀프론]]
** 《에우튀프론》, 강성훈 역, 아카넷, 2021년.
** 《에우티프론》, 박종현 역, 서광사, 2003년.
* [[고르기아스 (플라톤)|고르기아스]]
** 《고르기아스》, 김인곤 역, 아카넷, 2021년.
** 《고르기아스》, 김인곤 역, 이제이북스, 2011년.
* [[소 히피아스]]
* [[대 히피아스]]
* [[이온 (플라톤)|이온]]
** 《이온》, 천병희 역, 숲, 2014년
* [[라케스]]
** 《라케스》, 한경자 역, 아카넷, 2020년.
** 《라케스》, 한경자 역, 이제이북스, 2014년.
* [[뤼시스]]
** 《뤼시스》, 강철웅 역, 아카넷, 2021년.
** 《뤼시스》, 강철웅 역, 이제이북스, 2007년.
* [[프로타고라스 (플라톤)|프로타고라스]]
** 《프로타고라스》, 강성훈 역, 아카넷, 2021년.
** 《프로타고라스》, 강성훈 역, 이제이북스, 2012년.
* [[크라튈로스]]
** 《크라튈로스》, 김인곤 이기백 역, 아카넷, 2021년.
** 《크라튈로스》, 김인곤 이기백 역, 이제이북스, 2007년.
* [[에우튀데모스]]
** 《에우튀데모스》, 김주일 역, 아카넷, 2019년.
** 《에우튀데모스》, 김주일 역, 이제이북스, 2008년.
* [[메논]]
** 《메논》, 이상인 역, 아카넷, 2019년.
** 《메논》, 이상인 역, 이제이북스, 2009년.
* [[파르메니데스 (플라톤)|파르메니데스]]
** <s>《파르메니데스》, 송영진 역, 철학과현실사, 2000년.</s>
** 플라톤의 다섯 대화편 - 테아이테토스 / 필레보스 / 티마이오스 / 크리티아스 / 파르메니데스, 천병희 역, 도서출판 숲, 2016년.
* [[파이돈]]
** 《파이돈》, 전헌상 역, 아카넷, 2020년.
** 《파이돈》, 전헌상 역, 이제이북스, 2013년.
** 《파이돈》, 천병희 역, 숲, 2012년.
* [[파이드로스]]
** 《파이드로스》, 김주일 역, 아카넷, 2020년.
** 《파이드로스》, 김주일 역, 이제이북스, 2012년.
* [[국가 (플라톤)|국가]]
** 《국가·정체(政體)》, 박종현 역, 서광사, 2005년 개정보증판.
* [[향연]]
** 《향연》, 강철웅 역, 아카넷, 2020년.
** 《향연》, 강철웅 역, 이제이북스, 2010년.
** 《향연》, 천병희 역, 도서출판 숲, 2016년.
* [[테아이테토스 (플라톤)|테아이테토스]]
** 《테아이테토스》, 정준영 역, 아카넷, 2022년.
** 《테아이테토스》, 정준영 역, 이제이북스, 2013년.
* [[메넥세노스]]
** 《메넥세노스》, 이정호 역, 아카넷, 2021년.
** 《메넥세노스》, 이정호 역, 이제이북스, 2008년.
* [[소피스트 (플라톤)|소피스트]]
** 《소피스트》, 이창우 역, 아카넷, 2019년.
** 《소피스트》, 이창우 역, 이제이북스, 2012년.
* [[정치가 (플라톤)|정치가]]
** 《정치가》, 김태경 역, 한길사, 2000년.
* [[필레보스]]
** 《필레보스》, 이기백 역, 아카넷, 2020년
** 《필레보스》, 박종현 역, 서광사, 2004년.
** 《필레보스》, 이기백 역, 이제이북스, 2015년.
* [[티마이오스]]
** 《티마이오스》, 김유석 역, 아카넷, 2019년
** 《티마이오스》, 박종현 역, 서광사, 2000년.
* [[크리티아스 (플라톤)|크리티아스]]
** 《크리티아스》, 이정호 역, 아카넷, 2020년.
** 《크리티아스》, 이정호 역, 이제이북스, 2007년.
* [[법률 (플라톤)|법률]]
** 《법률》, 박종현 역, 서광사, 2009년.
** 《법률》, 천병희 역, 도서출판 숲, 2016년.
* [[편지들]]
** 《편지들》, 강철웅 김주일 이정호 역, 아카넷, 2021년.
** 《편지들》, 강철웅 역, 이제이북스, 2009년.
* [[알키비아데스 1]]
** 《알키비아데스 1·2》, 김주일 정준영 역, 아카넷, 2020년.
** 《알키비아데스 1》, 김주일 정준영 역, 이제이북스, 2007년.
* [[알키비아데스 2]]
** 《알키비아데스 2》, 김주일 정준영 역, 이제이북스, 2007년.
* [[에라스타이]]
** 《플라톤전집 7 - 알키비아데스 1.2 / 힙피아스 1.2 / 미노스 / 에피노미스 / 테아게스 / 클레이토폰 / 힙파르코스 / 연인들 / 서한집 / 용어 해설 / 위작들》 중 《연인들》, 천병희 역, 도서출판 숲, 2019년.
** 《미노스·사랑하는 사람들》 중 《사랑하는 사람들》, 강철웅 역, 아카넷, 2021년.
*미노스
**《미노스·사랑하는 사람들》, 강철웅 역, 아카넷, 2021년.
== 각주 ==
{{각주}}
== 참고 문헌 ==
{{참고 자료 시작}}
* [http://philinst.snu.ac.kr/bbs/download.php?bo_table=supplement&wr_id=10&no=0 플라톤 『고르기아스』 / 김인곤] pdf
* [http://philinst.snu.ac.kr/bbs/download.php?bo_table=supplement&wr_id=13&no=0 플라톤 『국가』 / 김인곤] pdf
* [http://philinst.snu.ac.kr/bbs/download.php?bo_table=supplement&wr_id=85&no=0 플라톤 『향연』 / 김인곤] pdf
* {{서적 인용|last=Jones|first=Daniel|editor1-last=Roach|editor1-first=Peter|editor2-last=Hartman|editor2-first=James|editor3-last=Setter|editor3-first=Jane|title=Cambridge English Pronouncing Dictionary|edition=17|publisher=Cambridge University Press|year=2006|ref=harv}}
* {{서적 인용|last=Sedley|first=David|title=Plato's Cratylus|year=2003|publisher=Cambridge University Press|ref=harv}}
*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참고 자료 끝}}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포털|철학}}
* {{맥튜터|id=Plato|title=Plato|date=1999-01}}
* [https://terms.naver.com/alikeMeaning.nhn?query=00000627 플라톤: 네이버 백과사전]
{{플라톤}}
{{위대한 그리스인}}
{{전거 통제}}
[[분류:플라톤| ]]
[[분류:기원전 5세기 출생]]
[[분류:기원전 4세기 사망]]
[[분류:아테나이의 철학자]]
[[분류:아테나이의 시인]]
[[분류:고대 그리스의 물리학자]]
[[분류:그리스의 노예]]
[[분류:정치철학자]]
[[분류:사회철학자]]
[[분류:교육철학자]]
[[분류:예술철학자]]
[[분류:법철학자]]
[[분류:형이상학자]]
[[분류:인식론 학자]]
[[분류:윤리학자]]
[[분류:플라톤주의자]]
[[분류:합리주의자]]
[[분류:소크라테스의 학생]]
[[분류:기원전 4세기 그리스 사람]]
[[분류:기원전 4세기 철학자]]
[[분류:기원전 4세기 시인]]
[[분류:쉬라쿠사이]]
[[분류:그리스 사화집]]
[[분류:과학철학자]]
[[분류:지성주의]]
[[분류:명언가]]
[[분류:도덕철학자]]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국제 표준화 기구|ISO]] 639'''는 전 세계의 [[언어]] 명칭에 고유 부호를 부여하는 국제 표준이다. ISO 639 표준은 몇 개의 세부 표준으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 두 가지가 현재 발표되어 있고 나머지는 아직 작업 중이다.
== ISO 639의 세부 표준 ==
세부 표준은 다음과 같다.
{| class="wikitable sortable"
!표준
!명칭 (''Codes for the representation of names of languages – ...'')
! 관리 기관
!초판 작성 연도
!최신판 작성 연도
!목록 중 항목 수
|-
| [[ISO 639-1]]
| ''Part 1: Alpha-2 code''
| Infoterm
| 1967 (ISO 639로서)
| 2002
| 184
|-
| [[ISO 639-2]]
| ''Part 2: Alpha-3 code''
| [[미국 의회도서관]]
| 1998
| 1998
| 450 이상
|-
|[[ISO 639-3]]
| ''Part 3: Alpha-3 code for comprehensive coverage of languages''
| [[국제 SIL|SIL International]]
| 2007
| 진행 중
| 7704 + α
|-
| [[ISO 639-4]]
| ''Part 4: Implementation guidelines and general principles for language coding''
| ISO/TC 37/SC 2
| 2010-07-16
| 2010-07-16
| 언어 코드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관한 지침으로, 언어 코드의 목록이 아님
|-
|[[ISO 639-5]]
| ''Part 5: Alpha-3 code for language families and groups''
| 미국 의회도서관
| 2008-05-15
| 2008-05-15
| 114
|-
|[[ISO 639-6]]<br>(중단)
| ''Part 6: Alpha-4 representation for comprehensive coverage of language variants''
| Geolang
| 2009-11-17
| (중단)
| 21000+
|}
== 언어 부호 목록 ==
언어의 한국어 명칭에 따라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ㄱㄴㄷ 바로가기}}
== ㄱ ==
{| class="wikitable"
|- style="background-color: #a0d0ff;"
!Alpha-3!!Alpha-2!!한국어 명칭!!영어 명칭!!프랑스어 명칭
|-
|gaa|| ||[[가어]]||Ga||{{lang|fr|ga}}
|-
|gay|| ||[[가요어]]||Gayo||{{lang|fr|gayo}}
|-
|lug||lg||[[간다어]]||Ganda||{{lang|fr|ganda}}
|-
|glg||gl||[[갈리시아어]]; 갈레고어||Galician|galicien||
|-
|gem|| ||[[게르만어파]] (기타)||Germanic languages||{{lang|fr|langues germaniques}}
|-
|gez|| ||[[그으즈어]]||Geez||{{lang|fr|guèze}}
|-
|gla||gd||게일어; [[스코틀랜드 게일어]]||Gaelic; Scottish Gaeli||{{lang|fr|gaélique; gaélique écossais}}
|-
|got|| ||[[고트어]]||Gothic||{{lang|fr|gothique}}
|-
|gon|| ||[[곤드어]]||Gondi||{{lang|fr|gond}}
|-
|grn||gn||[[과라니어]]||Guarani||{{lang|fr|guarani}}
|-
|guj||gu||[[구자라트어]]||Gujarati||{{lang|fr|goudjrati}}
|-
|grb|| ||[[그레보어]]||Grebo||{{lang|fr|grebo}}
|-
|grc|| ||[[고대 그리스어|그리스어 (고대)]] ([[1453년]] 이전)||Ancient Greek||{{lang|fr|grec ancien}}
|-
|gre/ell||el||[[현대 그리스어|그리스어 (현대)]] ([[1453년]] 이후)||Modern Greek||{{lang|fr|grec moderne}}
|-
|kal||kl||[[그린란드어]]; 칼랄리수트||Greenlandic; Kalaallisut||{{lang|fr|groenlandais}}
|-
|gba|| ||[[그바야어]]||Gbaya||{{lang|fr|gbaya}}
|-
|gwi|| ||[[그위친어]]||Gwich'in||{{lang|fr| }}
|-
|mis|| ||기타 언어||Miscellaneous languages||{{lang|fr|langues diverses}}
|-
|}
== ㄴ ==
{| class="wikitable"
|- style="background-color: #a0d0ff;"
!Alpha-3!!Alpha-2!!한국어 명칭!!영어 명칭!!프랑스어 명칭
|-
|nav||nv||[[나바호어]]||Navajo; Navaho||{{lang|fr|navaho}}
|-
|nah|| ||[[나우아틀어|나우와틀어]]; 나와틀어||Nahuatl||{{lang|fr|nahuatl}}
|-
|nau||na||[[나우루어]]||Nauru||{{lang|fr|nauruan}}
|-
|ssa|| ||[[나일사하라어족]] (기타)||Nilo-Saharan languages||{{lang|fr|langues nilo-sahariennes}}
|-
|nap|| ||[[나폴리어]]||Neopolitan||{{lang|fr|napolitain}}
|-
|sai|| ||[[남아메리카 인디언 제어]] (기타)||South American Indian languages||{{lang|fr|langues indiennes d'Amérique du Sud}}
|-
|dut/nld||nl||[[네덜란드어]]; 플라망어||Dutch; Flemish||{{lang|fr|néerlandais; flamand}}
|-
|dum|| ||[[중세 네덜란드어|네덜란드어 (중세)]] (1050년-1350년경)||Middle Dutch||{{lang|fr|néerlandais moyen}}
|-
|new|| ||[[네와르어]]; 네팔바사||Newari; Nepal Bhasa||{{lang|fr|newari; nepal bhasa}}
|-
|nwc|| ||[[고전 네와르어|네와르어 (고전)]]||Classical Newari; Old Newari||{{lang|fr|newari classique}}
|-
|nep||ne||[[네팔어]]||Nepali||{{lang|fr|népalais}}
|-
|nog|| ||[[노가이어]]||Nogai||{{lang|fr|nogaï; nogay}}
|-
|non|| ||[[고대 노르드어|노르드어 (고대)]]||Old Norse||{{lang|fr|vieux norrois}}
|-
|nor||no||[[노르웨이어]]||Norwegian||{{lang|fr|norvégien}}
|-
|nno||nn||[[뉘노르스크|노르웨이어 (뉘노르스크)]]; 신노르웨이어||Norwegian Nynorsk||{{lang|fr|norvégien nynorsk}}
|-
|nob||nb||[[보크몰|노르웨이어 (보크몰)]]; 덴마크-노르웨이어||Norwegian Bokmål||{{lang|fr|norvégien bokmål}}
|-
|nub|| ||[[누비아어군]]||Nubian languages||{{lang|fr|langues nubiennes}}
|-
|nya||ny||[[니안자어]]; 체와어; 치체와||Chichewa; Chewa; Nyanja||{{lang|fr|chichewa; chewa; nyanja}}
|-
|nym|| ||[[니암웨지어]]||Nyamwezi||{{lang|fr|nyamwezi}}
|-
|nyo|| ||[[니오로어]]||Nyoro||{{lang|fr|nyoro}}
|-
|niu|| ||[[니우에어]]||Niuean||{{lang|fr|niué}}
|-
|nic|| ||[[니제르코르도판어족]] (기타)||Niger-Kordofanian languages||{{lang|fr|langues nigéro-congolaises}}
|-
|}
== ㄷ ==
{| class="wikitable"
|- style="background-color: #a0d0ff;"
!Alpha-3!!Alpha-2!!한국어 명칭!!영어 명칭!!프랑스어 명칭
|-
|dar|| ||[[다르과어]]||Dargwa||{{lang|fr|dargwa}}
|-
|day|| ||[[다야크어]]||Dayak||{{lang|fr|dayak}}
|-
|mul|| ||다중 언어||Multiple languages||{{lang|fr|multilingue}}
|-
|dak|| ||[[다코타어]]||Dakota||{{lang|fr|dakota}}
|-
|dan||da||[[덴마크어]]||Danish||{{lang|fr|danois}}
|-
|del|| ||[[델라웨어어]]||Delaware||{{lang|fr|delaware}}
|-
|doi|| ||[[도그라어]]||Dogri||{{lang|fr|dogri}}
|-
|dgr|| ||[[도그리브어]]||Dogrib||{{lang|fr|dogrib}}
|-
|ger/deu||de||[[독일어]]||German||{{lang|fr|allemand}}
|-
|goh|| ||[[고대 고지 독일어|독일어 (고대 고지)]] (750년-1050년경)||Old High German||{{lang|fr|vieux haut allemand}}
|-
|gmh|| ||[[중세 고지 독일어|독일어 (중세 고지)]] (1050년-1500년경)||Middle High German||{{lang|fr|moyen haut allemand}}
|-
|dua|| ||[[두알라어]]||Duala||{{lang|fr|douala}}
|-
|dyu|| ||[[듈라어]]||Dyula||{{lang|fr|dioula}}
|-
|dra|| ||[[드라비다어족]] (기타)||Dravidian languages||{{lang|fr|langues dravidiennes}}
|-
|div||dv||[[디베히어]]||Divehi language||{{lang|fr|Divehi}}
|-
|din|| ||[[딩카어]]||Dinka language||{{lang|fr|Dinka}}
|-
|}
== ㄹ ==
{| class="wikitable"
|- style="background-color: #a0d0ff;"
!Alpha-3!!Alpha-2!!한국어 명칭!!영어 명칭!!프랑스어 명칭
|-
|lad|| ||[[라디노어]]; 유대스페인어||Ladino||{{lang|fr|judéo-espagnol}}
|-
|rar|| ||[[라로통가어]]||Rarotongan||{{lang|fr|rarotonga}}
|-
|lao||lo||[[라오어]]||Lao||{{lang|fr|la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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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v||lv||[[라트비아어]]||Latvian||{{lang|fr|lett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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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ap|| ||[[라파누이어]]||Rapanui||{{lang|fr|rapanui}}
|-
|lah|| ||[[란다어]]||Lahnda||{{lang|fr|lahnda}}
|-
|lam|| ||[[람바어]]||Lamba||{{lang|fr|lamba}}
|-
|rus||ru||[[러시아어]]||Russian||{{lang|fr|russe}}
|-
|lez|| ||[[레즈긴어]]||Lezghian||{{lang|fr|lezghien}}
|-
|roh||rm||[[로만슈어]]; 레토로망어; 라이티아 로망스어||Rhaeto-Romance||{{lang|fr|rhéto-roman}}
|-
|roa|| ||[[로망스어군]] (기타)||Romance languages||{{lang|fr|langues romanes}}
|-
|jbo|| ||[[로지반]]||Lojban||{{lang|fr|lojban}}
|-
|loz|| ||[[로지어]]||Lozi||{{lang|fr|lozi}}
|-
|qaa-qtz|| ||로컬 사용 예약||Reserved for local use||{{lang|fr|réservée à l'usage local}}
|-
|rom|| ||[[롬어]]; 로마니어; 집시어||Romany||{{lang|fr|tsigane}}
|-
|rum/ron||ro||[[루마니아어]]||Romanian||{{lang|fr|rouma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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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ub||lu||[[루바카탕가어]]||Luba-Katanga||{{lang|fr|luba-katang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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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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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uo|| ||[[루오어 (케냐와 탄자니아)]]||Luo (Kenya and Tanzania)||{{lang|fr|luo (Kenya et Tanzanie)}}
|-
|lui|| ||[[루이세뇨어]]||Luiseno||{{lang|fr|luiseno}}
|-
|ltz||lb||[[룩셈부르크어]]||Luxembourgish; Letzeburgesch||{{lang|fr|luxembourgeo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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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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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mj|| ||[[룰레 사미어]]||Lule Sami||{{lang|fr|sami de Lu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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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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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m||li||[[림뷔르흐어]]||Limburgan; Limburger; Limburgish||{{lang|fr|limbourgeo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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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ㅁ ==
{| class="wikitable"
|- style="background-color: #a0d0ff;"
!Alpha-3!!Alpha-2!!한국어 명칭!!영어 명칭!!프랑스어 명칭
|-
|mag|| ||[[마가드어]]; 마가히어||Magahi||{{lang|fr|magah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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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ni|| ||[[마니푸르어]]; 마니푸리어||Manipuri||{{lang|fr|manip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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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g||mg||[[마다가스카르어]]||Malagasy||{{lang|fr|malga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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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o/mri||mi||[[마오리어]]||Maori||{{lang|fr|ma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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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k|| ||[[마카사르어]]||Makasar||{{lang|fr|makassar}}
|-
|mac/mkd||mk||[[마케도니아어]]||Macedonian||{{lang|fr|macédonien}}
|-
|mdr|| ||[[만다르어]]||Mandar||{{lang|fr|mand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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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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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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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y/msa||ms||[[말레이어]]||Malay||{{lang|fr|malais}}
|-
|glv||gv||[[맨어]]; 맹크스어||Manx||{{lang|fr|manx; mannois}}
|-
|men|| ||[[멘데어]]||Mende||{{lang|fr|mend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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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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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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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kh|| ||[[몬크메르어파]] (기타)||Mon-Khmer languages||{{lang|fr|langues môn-khmer}}
|-
|cnr|| ||[[몬테네그로어]]||Montenegrin||{{lang|fr|Monténégrin}}
|-
|mol||mo||[[몰도바어]]||Moldavian; Moldovan||{{lang|fr|moldave}}
|-
|mlt||mt||[[몰타어]]||Maltese||{{lang|fr|maltais}}
|-
|lol|| ||[[몽고어]]||Mongo||{{lang|fr|mongo}}
|-
|mon||mn||[[몽골어]]||Mongolian||{{lang|fr|mongo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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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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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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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pha-3!!Alpha-2!!한국어 명칭!!영어 명칭!!프랑스어 명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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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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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u||[[고대 교회 슬라브어|슬라브어 (고대 교회)]]; 고대 슬라브어; 교회 슬라브어; 고대 불가리아어||{{lang|fr|Church Slavic; Old Slavonic; Church Slavonic; Old Bulgarian; Old Church Slavonic}}
||{{lang|fr|slavon d'église; vieux slave; slavon liturgique; vieux bulga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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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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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pha-3!!Alpha-2!!한국어 명칭!!영어 명칭!!프랑스어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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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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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ㄴㄷ 바로가기}}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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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O 15924]]
* [[언어 코드]]
* [[공용어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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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링크 ==
*{{언어링크|en}} [http://www.loc.gov/standards/iso639-2/php/code_list.php ISO 639에 관한 전반적 안내]
{{ISO 표준}}
[[분류:ISO 표준|#00639]]
[[분류:ISO 639|*]]
[[분류:식별자]]
[[분류:국제화와 지역화]]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전쟁 정보
|분쟁=진주만 공격
|전체=[[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
|그림=USSArizona_PearlHarbor.jpg
|설명=[[:en:USS Arizona (BB-39)|미국 전함 애리조나]]는 [[일본군]]의 폭탄에 피격 받은 뒤 이틀 동안 불타올랐다. 함선 일부는 나중에 인양되었으나, 나머지 부분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날짜=1941년 12월 7일
|장소=[[하와이주]] [[오아후 섬]] [[진주만]]
|결과=[[일본 제국]]의 기습 공격 성공, [[미국]]의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교전국1=<div style="text-align: center;">{{국기그림|미국|1912|크기=85px}}<br />[[미국]]</div>
|교전국2=<div style="text-align: center;">{{국기그림|일본 제국|크기=65px}}<br />[[일본 제국]]</div>
|지휘관1=[[허스밴드 킴멜]] ([[미국 해군]])<br />[[월터 쇼트]] ([[미국 육군]])
|지휘관2=[[야마모토 이소로쿠]] ([[일본 제국 해군]])<br />[[나구모 주이치]] ([[일본 제국 해군]])<br />[[이와사 나오지]]†
|병력1=전함 8척<br />순양함 6척<br />구축함 29척<br />잠수함 9척<br />항공기 약 390대
|병력2=항공모함 6척<br />전함 2척<br />순양함 3척<br />구축함 9척<br />항공기 441대<br />소형 잠수함 5척
|사상자1= 군인 2,334명 사망, 1,143명 부상<br />민간인 103명 사상<br />전함 4척 침몰, 1척 좌초, 3척 손상<br />순양함 3척 손상<br />구축함 3척 손상<br />기타 함선 2척 침몰, 1척 좌초, 2척 손상<br />항공기 188대 상실, 159대 손상
|사상자2= 항공기 29대 상실, 74기 손상<br />소형 잠수함 4척 침몰, 1척 좌초<br />군인 64명 사망, 포로 1명
|}}
{{전역상자 태평양 전쟁}}
'''진주만 공격'''(眞珠灣 攻擊, {{llang|ja|真珠湾攻撃|신쥬완코게키}}, {{llang|en|Attack on Pearl Harbor}}) 또는 '''진주만 공습'''({{llang|en|Pearl Harbor Air Raid}}) 혹은 '''진주만 폭격'''({{llang|en|
Battle of Pearl Harbor}})는 [[1941년]] [[12월 7일]] [[미합중국]] [[하와이주]] [[오아후섬]]의 [[미합중국 해군]]의 [[진주만]] 기지를 [[일본 제국 해군]]이 기습한 공격이다.
진주만 공격은 [[1941년]] [[12월 7일]] 아침, 일 해군이 [[진주만]]에 대한 공격을 가했다. [[하와이주]] 오아후 섬에 위치한 [[진주만]]에 대한 기습 공격은 미국 태평양 함대와 이를 지키는 [[공군]]과 [[해병대]]를 대상으로 감행되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관이 폭격을 계획하였고, [[나구모 주이치]] 부사령관이 지휘를 맡았다. 진주만 공격으로 12척의 미 해군의 함선이 피해를 입거나 침몰했고, 188대의 [[비행기]]가 격추되거나 손상을 입었으며, 2,335명의 [[군인]]과 68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나왔다. 한편 [[일본군]]은 이 작전에서 단 64명의 희생자를 내었다. 이때 항구에 있지 않았던 [[미국 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 3척과 유류 보관소와 병기창 등은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미국은 이와 같은 자원을 이용해서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원상복구를 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다소 [[고립주의]]적 입장을 취해 오던 미국 여론이 급변, 일치단결하여 미국의 참전을 지지하게 되었다. 공습 당일 일본은 [[일본의 대미영 선전포고|대미영 선전포고]]를 발표하였으나 다음날까지 전달되지 않았고, 공격 다음날인 12월 8일 오후 미국 의회가 일본에 선전포고하며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다. 같은 날 미국보다 9시간 앞서 영국이 일본에 선전포고하였고 12월 11일에는 [[삼국 동맹 조약]]을 근거로 [[나치 독일|독일]]과 [[이탈리아 왕국|이탈리아]]가 미국에 선전포고하였다.
== 일본의 준비 ==
[[일본]]은 [[만주]]를 점령한 몇 년 뒤인 [[1937년]]부터 [[중국]]과 전쟁을 하고 있었다([[중일전쟁]]). [[1941년]]에는 일본과 미국과의 오래된 긴장이 더 고조되었다. [[미국]]과 [[영국]]은 일본에 무기 제조에 필요한 고철 수출을 금지했으며, [[석유]] 수출 금지, 미국 내 일본 재산 동결, 일본 선박의 [[파나마 운하]] 통과 거부로 [[중국]] 내에서의 군사행동을 위축시키고자 했다. [[1941년]] [[11월 26일]]의 [[헐 노트]]를 마지막으로 외교적 노력은 절정에 다다랐고, [[도조 히데키]] 수상은 자신의 각료들에게 이것이 [[최후통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석유]] 봉쇄는 유전이 없어서 대부분의 석유를 [[미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하던 일본에게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일본의 지도자들은 세 가지의 선택을 할 수 있었다.
* [[미국]]과 [[영국]]의 요구에 응하여 [[중국]]에서 철수하는 것.
* 유류 부족이 군사력 약화를 가져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 충돌을 확대하여 [[동남아시아]]의 자원 획득을 시도하는 것.
일본의 지도자들은 이 세 가지 중에 마지막을 선택하였다.
진주만 공격의 목표는 미국의 태평양에서의 해군력을 무력화하여 전면전이나 동시 다발적인 준비된 공격을 잠시나마 막는 것이었다.
[[11월 26일]]은 일본의 연합 함대가 [[진주만]]을 향해 출정한 날이다. 일본은 미국이 제시한 헐 통지문 내용과 상관없이 그 이전부터 전쟁을 준비해 왔었다. 그 근거로 일본이 [[전쟁]]을 준비한다는 보고서를 주일 미국 대사관의 [[조지프 그루]](Joseph Grew) 대사가 본국에 송신하였으나, 유럽 내 [[전쟁]] 문제에 몰두하던 미국 정부는 그것을 묵살하였다.<ref>《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 2권-미국의 역사》, [[이원복 (만화가)|이원복]] 글, 그림, [[김영사]].</ref>
{{출처|날짜=2011-12-7|일본은 진주만의 수심이 15~30m밖에 되지않아 그정도 수심에서 어뢰공격을 하기 위해 어뢰머리에 충격완화장치와 수평안정장치를 장착하여 B5N 뇌격기로 뇌격하여 최소 16발에서 최대 21발이 적함에 명중하였다.}}
[[파일:Battleship row.jpg|오른쪽|250px]]
일본군의 공격 임박설에 대한 사전 정보들은 많았으나, 아무도 이 정보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1941년 1월 주일대사 조셉 그류는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 계획 정보를 입수했다. 공격개시 수시간 전에 진주만 외곽에서 한 대의 잠수함이 발견되고 다른 한 대는 원인 불명인 채 침몰되었으며, 오아우 북쪽 해안 레이다 기지에서는 거대한 비행물체가 포착되었다. 많은 관리들은 일본군의 공격임박설을 알고 있었으나, 그 대상이 일본으로부터 5,000 마일 떨어진 진주만이 아닌 필리핀이라고 생각했다. 1941년 진주만의 일요일 아침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루의 일과가 진행되었지만, 진주만 북쪽 200마일에서는 차가운 물살을 가르며 항진하는 항모 위에서 항공기들이 발진하고 있었다. 일본군 항공기의 라디오에는 하와이 방송국에서 흘러 나오는 달콤한 음악이 들려 오고,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어서 공격 목표물을 훤히 볼 수가 있었다고 그 당시 공격에 참가했던 일본제국 해군 소좌 미쯔오 후지다(Mitsuo Fuchida)는 회고했다.
심지어, 레이다에 일본군 전투기와 폭격기가 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당일 아침녘에 오기로 한 B-17 폭격편대로 오인하게 된다.<ref>전쟁영화로 마스터하는 제 2차 세계대전</ref> 다만 당시 일본군 함재기는 항공모함의 위치가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크게 우회해 진주만의 북동쪽 방향에서 접근하였기 때문에 충분히 오인의 여지가 있었으며, 실제로 이후 군사재판에서도 당시 근무자들에 대한 태만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 일본의 선전포고 ===
{{본문|일본 제국정부 대미통첩각서}}
진주만 공격은 일본 제국이 공식적으로 미국에 선전포고하기 전에 일어났지만, 이것이 그들의 본래 의도였는가에 대해서는 반론점이 있다. 실제로, 해당 작전을 수행한 야마모토 제독 역시 "전쟁 전에 미국에 먼저 선전포고를 해야하며, 공격은 평화 협상이 끝났다고 알린 지 30분 후에 개시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historyonthenet.com/when-was-pearl-harbor/ |title=When was Pearl Harbor? |date=2014-11-26 |work=History |access-date=2018-08-17 |archive-date=August 17, 2018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80817161358/https://www.historyonthenet.com/when-was-pearl-harbor/ |url-status=live}}</ref> 12월 7일, 진주만 공격 전에 5,000자 가량의 두 본문으로 이루어진 암호문이 워싱턴 주재 일본대사관에 전달되었다. 이 문서의 예상 수령 시각은 진주만 공격이 시작되기 거의 직전이었다. 거기에는 미국에 대한 일본제국의 선전포고와 함께 공습 직전인 오후 1시에 이를 발표하라고 적혀져 있었지만, 노무라 대사는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 오후 2시에 미 국무장관 [[코델 헐]]을 찾아갔다. 이때는 하와이 기준으로 8시 50분이었고 이미 1시간 전에 진주만 공격이 보고된 뒤였다.{{sfn|Toland|1983}}<ref name=codebreakers>{{서적 인용|last1=Kahn |first1=David |title=The Codebreakers: The Comprehensive History of Secret Communication from Ancient Times to the Internet |date=1996 |publisher=Simon and Schuster |isbn=978-1-4391-0355-5}}</ref>{{rp|pp.2ff}}
이렇게 된 이휴는 암호문이 5,000자가 넘어가서 해독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소모되었을 뿐더러, 보안인가가 있는 고위 관료가 방금 해독한 선전포고문을 직접 하나하나 타자했기 때문이다. 본래 타자기를 다루는 직원은 외국인이었지만, 기밀문서라는 이유로 관내의 모든 외국인들을 다 내보냈던 상태였다. 거기다가 내용의 핵심인, 일본군이 전쟁을 선포한다는 내용은 문서 가장 마지막에 써놓았기 때문에 일본 대사관 직원들도 해독이 끝날 시점에야 전쟁이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전까지 많은 미국 관료들과 군 고위 장성들은 언제라도 일본 제국과 협상이 종료될 가능성이 크며,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고 우려해왔지만,{{sfn|Prange|Goldstein|Dillon|1981|pp=424, 475}}{{sfn|Prange|Goldstein|Dillon|1981|pp=493–494}} 미 정부는 먼저 선전포고를 하거나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12월 8일 저녁(미국에선 12월 7일 말)에 일본에선 '[[일본의 대미영 선전포고|미국 및 영국에 대한 선전의 조서]](米国及英国ニ對スル宣戦ノ詔書)'라는 일종의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다.<ref>{{웹 인용|mode=cs2 |author=Emperor of Japan Hirohito |date=December 8, 1941 |title=Declaration of War against the United States and Britain |url=https://www.gilderlehrman.org/sites/default/files/inline-pdfs/T-01415_0.pdf |access-date=December 10, 2021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10715210137/https://www.gilderlehrman.org/sites/default/files/inline-pdfs/T-01415_0.pdf |archive-date=July 15, 2021 |url-status=live |via=[[Gilder Lehrman Institute of American History]]}}</ref> 이것은 공격 다음날이 되서야 미국 정부에게 전달되었다.
위와 같은 요인들 때문에, 학자들은 전후 수십년 동안은 일본 제국이 우연과 실수로 인해 선전포고문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해 왔다.<ref>{{뉴스 인용|mode=cs2 |last=Sterngold |first=James |date=November 21, 1994 |title=Japan Admits It Bungled Notice of War in '41 (Published 1994) |work=The New York Times |url=https://www.nytimes.com/1994/11/21/world/japan-admits-it-bungled-notice-of-war-in-41.html |access-date=December 1, 2020 |issn=0362-4331 |archive-date=December 10, 2020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01210000317/https://www.nytimes.com/1994/11/21/world/japan-admits-it-bungled-notice-of-war-in-41.html |url-status=live}}</ref> 그러나 1999년 도쿄 국제기독교대학의 법학 및 국제관계학 교수인 이구치 다케오는, 일본 제국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을 일체 중단하고 전쟁을 일으킨다는 의사를 '어떻게 통보할 지에 대해서' 정부 내에서도 논쟁이 있었음을 지적하는 기록을 발견했다. 12월 7일 전쟁 기록에 "우리의 기만적인 외교는 성공을 향해서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라고 적혀져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것이 일본 제국육군과 해군이 미국에게 제대로 된 선전포고나 협상 종료에 대한 사전 통지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고 하는 증거라고 덧붙혔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nytimes.com/1999/12/09/world/pearl-harbor-truly-a-sneak-attack-papers-show.html |title=Pearl Harbor Truly a Sneak Attack, Papers Show |author=Howard W. French |newspaper=The New York Times |date=December 9, 1999 |access-date=February 14, 2017 |url-status=live |archive-date=December 5, 2016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61205202932/http://www.nytimes.com/1999/12/09/world/pearl-harbor-truly-a-sneak-attack-papers-show.html}}</ref><ref>{{뉴스 인용|mode=cs2 |last=Kawabata |first=Tai |date=December 9, 2014 |title=Historian seeks to clear embassy of Pearl Harbor 'sneak attack' infamy |newspaper=[[The Japan Times]] |url=https://www.japantimes.co.jp/news/2014/12/09/national/history/historian-seeks-to-clear-embassy-of-pearl-harbor-sneak-attack-infamy/ |url-status=live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210516225555/https://www.japantimes.co.jp/news/2014/12/09/national/history/historian-seeks-to-clear-embassy-of-pearl-harbor-sneak-attack-infamy/ |archive-date=May 16, 2021}}</ref>
그리고 일본 제국이 공격 시작 전에 선전포고문을 해석하고 전달했더라도, 이것이 미국과의 공식적인 외교 단절이나 전쟁 개시라는 본래 의도에 있어 내용이 대단히 애매모호했기 때문에 소용없었다는 시각도 있다.<ref>{{harvnb|Prange|Goldstein|Dillon|1981|p=485}}. "[The] fourteenth part was not a formal declaration of war. It did not even rupture diplomatic relations. It merely broke off the discussions."</ref> 마지막 두 단락은 다음과 같다.<ref>{{웹 인용|mode=cs2 |date=December 7, 1941 |title=Japanese 'Fourteen Part' Message of December 7, 1941 |type=Memorandum |via=HyperWar Foundation |url=https://www.ibiblio.org/hyperwar/PTO/Dip/Fourteen.html |access-date=December 10, 2021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70917001957/http://www.ibiblio.org/hyperwar/PTO/Dip/Fourteen.html |archive-date=September 17, 2017 |url-status=live}}</ref>
{{인용문|Thus the earnest hope of the Japanese Government to adjust Japanese-American relations and to preserve and promote the peace of the Pacific through cooperation with the American Government has finally been lost.<br />이리하여 일본 정부가 미국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일본-미국 관계를 조정하고 태평양의 평화를 보존하고 증진하려는 간절한 희망이 마침내 사라졌다.
...The Japanese Government regrets to have to notify hereby the American Government that in view of the attitude of the American Government it cannot but consider that it is impossible to reach an agreement through further negotiations.<br />일본 정부는 미국 정부의 태도로 볼 때 추가 협상을 통해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고려할 수 밖에 없음을 미국 정부에 통보해야 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
== 미국의 피해 현황 ==
=== 침몰 함선 ===
{| class="wikitable"
|-
! 함명
! 종류
! 번호
! 기준 배수량 (톤)
! 비고
|-
| BB-37 오클라호마 || [[전함]] || BB-37 || 27,500 || 1943년 12월 28일 인양.<br />1946년 12월 해체를 위해 본토로 이동 중 1947년 5월 17일 태풍으로 침몰
|-
| BB-39 애리조나 || 전함 || BB-39 || 32,100 || 인양포기. 1961년 침몰 위치에 기념관 설립
|-
| BB-44 캘리포니아 || 전함 || BB-44 || 37,000 || 1942년 3월 24일 인양. 수리 후 1943년 10월 전열 복귀
|-
| BB-48 웨스트버지니아 || 전함 || BB-48 || 32,600 || 1942년 6월 8일 인양. 수리 후 1944년 7월 전열 복귀
|-
| CM-4 오글라라 || 기뢰 부설함 || CM-4 || 3,746 || 1942년 7월 3일 인양. 수리 후 1944년 2월 28일 전열 복귀
|-
| AG-16 유타 || 표적함 || AG-16 || 21,825 || 인양 포기. 원래 전함이었으나 1931년 연습 표적함으로 개조
|-
| 합계 || colspan=2 | 7척 || 182,271톤 ||
|-
|}
=== 파손 함선 ===
{| class="wikitable"
|-
! 함명
! 종류
! 번호
! 기준 배수량 (톤)
! 비고
|-
|BB-36 네바다 || 전함 || BB-36 || 27,500 || 1942년 2월 12일 인양. 수리 후에 1942년 12월 전열 복귀
|-
| BB-38 펜실베이니아 || 전함 || BB-38 || 31,400 || 진주만에서 수리 후 1942년 8월 전열 복귀
|-
| BB-43 테네시 || 전함 || BB-43 || 37,000 || 진주만에서 수리 후 미국 본토에서 현대식으로 개장. 1944년 2월 전열 복귀
|-
| BB-46 메릴랜드 || 전함 || BB-46 || 32,600 || 미국 본토에서 수리 후 1942년 6월 전열 복귀
|-
| CL-7 롤리|| 경순양함 || CL-7 || 7,450 || 1942년 2월, 미국 본토로 이동하여 수리. 수리 후 전열 복귀
|-
| CL-48 호놀룰루 || [[경순양함]] || CL-48 || 10,000 || 1942년 1월 2일, 진주만에서 수리 후 전열 복귀
|-
| CL-50 헬레나 || 경순양함 || CL-50 || 10,000 || 1942년 1월 5일, 진주만에서 수리 후 전열 복귀
|-
| DD-372 캐신 || [[구축함]] || DD-372 || 1,500 || 미국 본토에서 수리 후 1944년 2월 전열 복귀
|-
| DD-373 쇼 || 구축함 || DD-373 || 1,500 || 미국 본토에서 수리 후 1942년 가을 전열 복귀
|-
| DD-375 다운스 || 구축함 || DD-375 || 1,500 || 미국 본토에서 수리 후 1943년 11월부터 전열 복귀
|-
| AV-4 커티스 || 수상기 모함 || AV-4 || 8,625 || 1942년 5월 말, 진주만에서 수리 완료 후 전열 복귀
|-
| AR-4 베스탈 || 공작함 || AR-4 || 8,100 || 1942년 2월 말, 진주만에서 수리 완료 후 전열 복귀
|-
| 합계 || colspan=2 | 11척 || 149,675톤 ||
|-
|}
== 진주만 공격 이후 상황 ==
루즈벨트 대통령은 [[12월 7일]]을 치욕의 날로 선포했고, 그로부터 3일 뒤 미국 의회는 전쟁을 선포했으며 미국인들은 일본이 본토로 쳐들어 올 것을 대비해 전쟁 준비를 했고, 애국심에 군대에 자원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한인들은 진주만 공격 이후 일본인에게 반감을 사게 된 미국의 생각을 반겼으며 미 정부에 한인으로 구성된 미 육군부대를 훈련시켜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주]] 방위군 휴스 대령은 한인 중대를 조직하는데 협조해 주겠다는 약속을 해왔으며 이에 나이가 18세부터 64세까지인 한인들 50명이 지원했고 중국인들과 필리핀인들도 가세하여 동양인 대대가 구성되었다. 이 대대의 이름은 '맹호군'이었고 대대장은 김용성이었다. 맹호군의 정식 인가가 [[1942년]] 4월 26일에 나왔고 대대기가 수여되었다.
== 진주만 기습과 관련된 음모론(통킹만) ==
태평양 전쟁 발발과 관련하여 미국이 일본의 공격을 유도했다는 소위 “[[음모론]]”이 떠돌고 있고, 그중 하나가 진주만 공격 당시 미 해군이 일부러 격침되어도 상관없는 구식 전함들만을 배치했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BB-39 애리조나|애리조나호]] 등 정박 중이던 미군 전함들은 [[1941년]] 기준으로 취역한 지 30년 가까이 된 전함이었다. 가장 젊은 편인 애리조나호도 취역 연도가 [[1915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상황을 모르는 오해에 불과하다. [[미군]]은 [[1922년]] [[워싱턴 군축 조약]]에 따라 [[1920년대]] 이후에 신형 전함을 한 척도 건조하지 못했다. 워싱턴 군축 조약 결과 [[미국]]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왕국|이탈리아]], 일본은 일정한 비율의 전함만을 보유할 수 있었을뿐더러 신형함 건조는 제한되었다. 이미 건조 중이던 전함 및 대형 [[중순양함]]은 1920년대에 [[항공모함]]으로 용도 변경되었다(1920년대와 [[1930년대|30년대]]에 각국이 항공모함을 취역시킨 원인은 항공모함의 가치에 주목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일찌감치 군축 조약에서 탈퇴한 일본은 신형함 건조를 1930년대 초부터 진행해 왔으나, 미국은 [[1937년]] 이후부터 서둘러 신형함 건조를 시작했고, [[1941년]] 12월까지 신규 건조된 최신형 전함은 단 2척이었다. 위의 피해 현황에도 나오지만, 전쟁 초기 군함이 부족했던 미국은 가능한 한 인양하여 수리한 후에 재투입했다. 문제가 된 구식 전함 가운데 애리조나호와 연습 표적함이던 유타호를 제외한 나머지 전함은 모두 일선에 복귀하였다.
뒤늦게 신형함 건조를 시작한 탓에 가용 가능한 군함은 구식함뿐이었던 미군이었지만, [[일본군]]은 그 함대가 두려워 조기에 기습했던 것이다. 참고로 신형함 건조 시작 이후에도 미군은 전함이 모자라 진주만 공격 당시 파손된 구식 전함을 수리해서 다시 전투에 투입했다.
특히, 만약 미군이 일본의 공격을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하게 둘 필요도 없이 차라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중간 해역에서 요격하여 참전 명분은 명분대로 얻고 훨씬 적은 피해로 일본을 무력화할 수 있었을 것이나, 실제로는 진주만이 궤멸만 간신히 면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는 점에서도 미국이 일본의 공격을 유도했다는 설은 신빙성이 부족하다.
== 진주만 공격 후 일본인들의 피해 ==
일본의 진주만 공격후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들은 큰 반감을 사게 되었다. 미국 정부는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일본인수용소를 만들었고, 전쟁이 끝날때까지 [[일본인]]들을 강제수용시켰다.
== 애리조나호 기념관 ==
진주만에 있는 애리조나호 기념관(USS Arizona Memorial)은 진주만 공격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애리조나호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애리조나호는 그 당시 공격을 받은 지 불과 9분만에 침몰하였고, 총 인명피해 2403명 중 1177명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선체를 옮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가 그 위에 기념관을 만들었다. 이 기념관을 설계한 사람은 알프레드 프레이스이고 2차 세계대전 이후 1958년에 기념관 착공 그로부터 3년 후에 완공되었다.
== 관련 영화 ==
* [[도라 도라 도라]]
* [[진주만 (영화)|진주만]]
* [[일본의 비밀첩보원]] - 진주만 공격후 미국에서 제작된 첫 반일(反日)영화
* [[HAAN 한길수]]
* 미드웨이
== 같이 보기 ==
* [[일본내막기]](Japan Inside Out: The Challenge of Today) -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예언한 것으로 화제가 된 이승만의 저술서
* [[맥컬럼 메모]]
* [[진주만 사전인지 음모론]]
* [[헐 노트]]
* [[리하르트 조르게]]<ref>진주만 침공일을 정확하게 알아내어 소련으로 보내려다 체포되었다.</ref>
* [[한길수]]<ref>[[한국의 독립운동가]]로 미국과 일본사이에서 이중첩보활동으로 진주만 공격 계획을 알아냈다.</ref>
* 미드웨이
== 출처 ==
''The Attack on Pearl Harbor: An Illustrated History'' by Larry Kimmett and Margaret Regis is a careful recreation of the "Day of Infamy" using maps, photos, unique illustrations, and an animated CD. From the early stages of Japanese planning, through the attack on [[Battleship Row]], to the salvage of the U.S. Pacific fleet, this book provides a detailed overview of the attack.
* ''At Dawn We Slept: The Untold Story of Pearl Harbor'' by [[Gordon W. Prange]] is an extremely comprehensive account of the events leading up to the Pearl Harbor attack and is considered by most scholars to be the best single work about the raid. It is a balanced account that gives both the Japanese and American perspectives. Prange spent 37 years researching the book by studying documents about Pearl Harbor and interviewing surviving participants to attempt the most exhaustive account of what happened: the Japanese planning and execution, why US intelligence failed to warn of it, and why a peace agreement was not attained. The book is the first in the so-called "Prange Trilogy" of Pearl Harbor books co-written with Donald Goldstein and Katherine Dillon, the other two being:
** ''Pearl Harbor: The Verdict of History'' – a dissection of the various [[Historical revisionism|revisionist]] theories surrounding the attack.
** ''1941년 12월 7일: The Day The Japanese Attacked Pearl Harbor'' – a recollection of the attack as narrated by eyewitnesses.
* ''Day of Infamy'' by [[Walter Lord]] was one of the most popular nonfiction accounts of the attack on Pearl Harbor.<ref>Walter Lord, ''Day of Infamy'' (Henry Holt and Co., 1957. ASIN: B002A503FA; Holt Paperbacks, 60th ed. 2001, {{ISBN|0-8050-6803-1}}, {{ISBN|978-0-8050-6803-0}})</ref>
* ''Pearl Harbor: Final Judgment'' by [[Henry C. Clausen]] and Bruce Lee tells of Clausen's top-secret investigation of the events leading up to the Pearl Harbor attack. Much of the information in this book was still classified when previous books were published.
* ''Pearl Harbor Countdown: Admiral James O. Richardson'' by Skipper Steely is an insightful and detailed account of the events leading up to the attack. Through his comprehensive treatment of the life and times of Admiral [[James O. Richardson]], Steely explores four decades of American foreign policy, traditional military practice, U.S. intelligence, and the administrative side of the military, exposing the largely untold story of the events leading up to the Japanese attack.
* ''Pearl Harbor Papers: Inside the Japanese Plans'', released by Goldstein and Dillon in 1993, used materials from Prange's library to further flesh out the Japanese perspective of the attack, including diaries from some officers and ship logs.
* [http://mises.org/books/pearl_harbor_greaves.pdf ''Pearl Harbor: The Seeds and Fruits of Infamy''] by [[Percy L. Greaves, Jr.]] The first part provides a detailed history of pre-war U.S.-Japan relations, documenting the sources of rising tension. The second part suggests that the attack on Pearl Harbor was neither unexpected nor unprovoked.
== 참조 ==
{{참고 자료 시작|colwidth=30em}}
;책
* {{인용
|last=Barnhart
|first=Michael A.
|title=Japan prepares for total war: the search for economic security, 1919–1941
|url=http://books.google.com/books?id=q6hgAAAAIAAJ
|year=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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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
|last=Bix
|first=Herbert P.
|authorlink=Herbert P. Bix
|title=[[Hirohito and the Making of Modern Japan]]
|year=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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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978-0-7567-5780-9}}
* {{인용
|last1=Borch
|first1=Frederic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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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Kimmel, Short, and Pearl Harbor: the final report revealed
|url=http://books.google.com/books?id=7jQfiAmaX9IC
|year=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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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978-1-59114-090-0}}
* {{인용
|ref=CITEREFConn2000
|last=C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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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2=Fair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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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Guarding the United States and Its Outpo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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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r=Center of Military History United States Ar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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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CITEREFGailey1995}}<!-- published in 1995 and 1997 -->{{인용
|title=War in the Pacific: From Pearl Harbor to Tokyo 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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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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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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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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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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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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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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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
| title = History of United States Naval Operations in World War II: The rising sun in the Pacific, 1931 – April 1942
| last= Morison
| first = Samuel Eliot
| publisher =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 year = 2001
| isbn = 0-252-06973-0}}
* {{인용
|title=The Campaigns of the Pacific War
|last=Ofstie
|first=Ralph, A., RADM USN, Naval Analysis Division, United States Strategic Bombing Survey (Pacific)
|author-link=Ralph A. Ofstie
|publisher=United States Government Printing Office
|year=1946}}
* {{인용
|ref=CITEREFPeattie1997
|title=Kaigun: Strategy, Tactics, and Technology in the Imperial Japanese Navy
|last=Peattie
|first=Mark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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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l=http://books.google.com/?id=ogwJAAAACAAJ
|publisher=Naval Institute Press
|year=1997
|isbn=0-87021-192-7}}
* {{인용
|ref=CITEREFPeattie2001
|title=Sunburst: The Rise of Japanese Naval Air Power, 1909–1941
|last=Peattie
|first=Mark R.
|url=
|publisher=Naval Institute Press
|year=2001
|isbn=1-59114-664-X}}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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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The United States in the Pacif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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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r=The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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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
|last1=Prange
|first1=Gordon William
|last2=Goldstein
|first2=Donald M.
|last3=Dillon
|first3=Katherine V.
|title=1941년 12월 7일: The Day the Japanese Attacked Pearl Harbor
|publisher=McGraw-Hill
|year=1988
|isbn=978-0-07-050682-4
|url=http://books.google.com/?id=iydtAAAAIAAJ}}
* {{인용
|title=Pearl Harbor 1941: The Day of Infamy; Osprey Campaign Series #62
|last=Smith
|first=Carl
|publisher=Osprey Publishing
|year=1999
|isbn=1-85532-798-8}}
* {{인용
|title=Tora! Tora! Tora!: Pearl Harbor 1941; Osprey Raid Series #26
|last=Stille
|first=Mark E.
|publisher=Osprey Publishing
|year=2011
|isbn=978-1-84908-509-0}}
* {{인용
|last=Thomas
|first=Evan
|title=Sea of Thunder: Four Commanders and the Last Great Naval Campaign 1941–1945
|url=http://books.google.com/books?id=G-bOZnz2At0C
|year=2007
|publisher=Simon and Schuster
|isbn=978-0-7432-5222-5}}
* {{인용
|last=Willmott
|first=H. P.
|title=The barrier and the javelin: Japanese and Allied Pacific strategies, February to June 1942
|url=http://books.google.com/books?id=Uid6AAAAIAAJ
|year=1983
|publisher=Naval Institute Press
|ref=harv}}
* {{인용|last=Zimm|first=Alan D.|title=Attack on Pearl Harbor: Strategy, Combat, Myths, Deceptions|url=http://books.google.com/books?id=LgkaTwEACAAJ|year=2011|publisher=Casemate Publishers|location=Havertown, Pennsylvania|isbn=978-1-61200-010-7|ref=CITEREFZimm2011}}
;U.S. Government Documents
* {{인용
|title=US Navy Report of Japanese Raid on Pearl Har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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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1942
|publisher=United States National Archives, Modern Military Bra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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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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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Peace and War, United States Foreign Policy 1931–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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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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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Report of the Joint Committee on the Investigation of the Pearl Harbor Att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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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icles
* {{인용
|work=Naval History
|title=Pearl Harbor – Attack from Below
|url=http://www.usni.org/navalhistory/Articles99/Nhrodgaard.htm
|last=Rodgaard
|first=John
|coauthors=Peter Hsu, Carroll Lucas, and Captain Andrew Biach
|date=December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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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r=[[United States Naval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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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quires subscription)<!-- Cached copy may be available at http://216.230.103.132/navalhistory/Articles99/NHrodgaard.htm -->
* {{인용
|last=Wetzler
|first=Peter
|title=Hirohito and war: imperial tradition and military decision making in prewar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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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sources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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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Organization of the Japanese Air Attack Units 1941년 1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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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2003
|publisher=NavSource Naval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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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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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USS Sh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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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용
|ref=CITEREFWallin
|url=http://www.ibiblio.org/hyperwar/USN/Wallin/index.html#contents
|title=Pearl Harbor: Why, How, Fleet Salvage and Final Appraisal
|author=[[Homer N. Wallin]]
|work=[http://www.ibiblio.org/hyperwar/USN/ Hyperwar]
|publisher=[http://www.ibiblio.org ibiblio.org]
|accessdate = 2011-10-10}}
{{참고 자료 끝}}
=== 기타 문서 ===
{{참고 자료 시작|colwidth=30em}}
* George Edward Morgenstern. ''Pearl Harbor: The Story of the Secret War''. (The Devin-Adair Company, 1947) {{ISBN|978-1-299-05736-4}}. The detailed analysis and documentation of event and its many boards of enquiry set up at this time.
* James Dorsey. "Literary Tropes, Rhetorical Looping, and the Nine Gods of War: 'Fascist Proclivities' Made Real," in ''The Culture of Japanese Fascism'', ed. by Alan Tansman (Durham & London: Duke UP, 2009), pp 409–431. A study of Japanese wartime media representations of the submarine component of the attack on Pearl Harbor.
* [[McCollum memo]] A 1940 memo from a Naval headquarters staff officer to his superiors outlining possible provocations to Japan, which might lead to war (declassified in 1994).
* [[Gordon W. Prange]], ''At Dawn We Slept'' (McGraw-Hill, 1981), ''Pearl Harbor: The Verdict of History'' (McGraw-Hill, 1986), and ''1941년 12월 7일: The Day the Japanese Attacked Pearl Harbor'' (McGraw-Hill, 1988). This monumental trilogy, written with collaborators Donald M. Goldstein and Katherine V. Dillon, is considered the authoritative work on the subject.
* Larry Kimmett and Margaret Regis, ''[https://web.archive.org/web/20140201201747/http://www.navpublishing.com/index.htm The Attack on Pearl Harbor: An Illustrated History]'' (NavPublishing, 2004). Using maps, photos, unique illustrations, and an animated CD, this book provides a detailed overview of the surprise attack that brought the United States into World War II.
* [[Walter Lord]], ''Day of Infamy'' (Henry Holt, 1957) is a very readable, and entirely anecdotal, re-telling of the day's events.
* W. J. Holmes, ''Double-Edged Secrets: U.S. Naval Intelligence Operations in the Pacific During World War II'' (Naval Institute, 1979) contains some important material, such as Holmes' argument that, had the U.S. Navy been warned of the attack and put to sea, it would have likely resulted in an even greater disaster.
* Michael V. Gannon, ''Pearl Harbor Betrayed'' (Henry Holt, 2001) is a recent examination of the issues surrounding the surprise of the attack.
* Frederick D. Parker, ''[http://www.history.navy.mil/books/comint/ Pearl Harbor Revisited: United States Navy Communications Intelligence 1924–1941] {{웨이백|url=http://www.history.navy.mil/books/comint/ |date=20110804231059 }}'' (Center for Cryptologic History, 1994) contains a detailed description of what the Navy knew from intercepted and decrypted Japan's communications prior to Pearl.
* Henry C. Clausen and Bruce Lee, ''Pearl Harbor: Final Judgment'', (HarperCollins, 2001), an account of the secret "[[Clausen Inquiry]]" undertaken late in the war by order of Congress to Secretary of War [[Henry L. Stimson]].
* [[Robert A. Theobald]], ''Final Secret of Pearl Harbor'' (Devin-Adair Pub, 1954) {{ISBN|0-8159-5503-0}} {{ISBN|0-317-65928-6}}Foreword by Fleet Admiral [[William F. Halsey, Jr.]]
* [[Albert Coady Wedemeyer|Albert C. Wedemeyer]], ''Wedemeyer Reports!'' (Henry Holt Co, 1958) {{ISBN|0-89275-011-1}} {{ISBN|0-8159-7216-4}}
* [[Hamilton Fish]], ''Tragic Deception: FDR and America's Involvement in World War II'' (Devin-Adair Pub, 1983) {{ISBN|0-8159-6917-1}}
* John Toland, ''Infamy: Pearl Harbor and Its Aftermath'' (Berkley Reissue edition, 1986 {{ISBN|0-425-09040-X}}).
* [[Robert Stinnett]], ''[https://web.archive.org/web/20050616074335/http://www.pearlharbor41.com/ Day of Deceit: The Truth About FDR and Pearl Harbor]'' (Free Press, 1999) A study of the Freedom of Information Act documents that led Congress to direct clearance of Kimmel and Short. {{ISBN|0-7432-0129-9}}
* [[Edward L. Beach, Jr.]], ''Scapegoats: A Defense of Kimmel and Short at Pearl Harbor'' {{ISBN|1-55750-059-2}}
* Andrew Krepinevich, [https://web.archive.org/web/20090926005957/http://www.csbaonline.org/4Publications/Archive/R.20020225.Lighting_the_Path_/R.20020225.Lighting_the_Path_.pdf] ''(Center for Strategic and Budgetary Assessments)'' contains a passage regarding the Yarnell attack, as well as reference citations.
* Roberta Wohlstetter, ''Pearl Harbor: Warning and Decision'', (Stanford University Press: 1962). Regarded by many as the most important work in the attempt to understand the intelligence failure at Pearl Harbor. Her introduction and analysis of the concept of "noise" persists in understanding intelligence failures.
* John Hughes-Wilson, ''Military Intelligence Blunders and Cover-Ups''. Robinson, 1999 (revised 2004). Contains a brief but insightful chapter on the particular intelligence failures, and broader overview of what causes them.
* Douglas T. Shinsato and Tadanori Urabe, "For That One Day: The Memoirs of Mitsuo Fuchida, Commander of the Attack on Pearl Harbor". (eXperience: 2011) {{ISBN|978-0-9846745-0-3}}
* {{인용
| last = Horn
| first = Steve
| authorlink =
| year = 2005
| chapter =
| title = The Second Attack on Pearl Harbor: Operation K And Other Japanese Attempts to Bomb America in World War II
| publisher = Naval Institute Press
| location =
| isbn = 1-59114-388-8
}}
* Seki, Eiji. (2006). [http://www.brill.com/mrs-ferguson-s-tea-set-japan-and-second-world-war ''Mrs. Ferguson's Tea-Set, Japan and the Second World War: The Global Consequences Following Germany's Sinking of the SS Automedon in 1940.''] {{웨이백|url=http://www.brill.com/mrs-ferguson-s-tea-set-japan-and-second-world-war |date=20130117104210 }} London: [[Global Oriental]]. {{ISBN|1-905246-28-5}}; {{ISBN|978-1-905246-28-1}} (cloth) Published by BRILL/Global Oriental, 2006. Previously announced as ''Sinking of the SS Automedon and the Role of the Japanese Navy: A New Interpretation''.
* Daniel Madsen, ''Resurrection-Salvaging the Battle Fleet at Pearl Harbor''. U.S. Naval Institute Press. 2003. Highly readable and thoroughly researched account of the aftermath of the attack and the salvage efforts from 1941년 12월 8일 through early 1944.
* Takeo, Iguchi, ''Demystifying Pearl Harbor: A New Perspective From Japan'', I-House Press, 2010, ASIN: B003RJ1AZA.
* {{저널 인용|last1=Haynok |first1=Robert J. |year=2009 |title=How the Japanese Did It |journal=Naval History Magazine |volume=23 |issue=6 |publisher=United States Naval Institute |url=http://www.usni.org/magazines/navalhistory/2009-12/how-japanese-did-it }}
{{참고 자료 끝}}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 [http://www.nps.gov/history/NR/twhp/wwwlps/lessons/18arizona/18arizona.htm ''"Remembering Pearl Harbor:The USS Arizona Memorial",'' a National Park Service Teaching with Historic Places (TwHP) lesson plan]
* [https://web.archive.org/web/20100217050639/http://libweb.hawaii.edu/digicoll/hwrd/HWRD_html/HWRD_welcome.htm Hawaii War Records Depository], Archives & Manuscripts Department, University of Hawaii at Manoa Library
* [https://web.archive.org/web/20110215213541/http://www.life.com/image/first/in-gallery/53071/pearl-harbor-december-7-1941 Pearl Harbor: 1941년 12월 7일] – slideshow by ''[[Life magazine]]''
* [http://www.ibiblio.org/hyperwar/AAF/7Dec41/index.html 7 December 1941, The Air Force Story]
* [http://www.ibiblio.org/pha/magic/ The "Magic" Background] (PDFs or readable online)
* [http://www.ibiblio.org/pha/congress/ The Congressional investigation]
;사이트
* [http://www.history.army.mil/books/wwii/Guard-US/ch7.htm Guarding The United States And Its Outposts], in ''[http://www.history.army.mil/books/wwii/Guard-US/index.htm#contents Guarding the United States and Its Outposts] {{웨이백|url=http://www.history.army.mil/books/wwii/Guard-US/index.htm#contents |date=20071225041653 }}'' Official U.S. Army history of Pearl Harbor by the [[United State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
* [http://starbulletin.com/1999/09/13/special/index.html War comes to Hawaii] {{웨이백|url=http://starbulletin.com/1999/09/13/special/index.html |date=20080627011621 }} ''Honolulu Star-Bulletin'', Monday, 1999년 9월 13일
;미디어 자료
* [http://www.britishpathe.com/record.php?id=22493 Video of first Newsreel from 1941년 12월 23일 attack on Pearl Harbor] {{웨이백|url=http://www.britishpathe.com/record.php?id=22493 |date=20110708095249 }}
* [http://cgi2.nhk.or.jp/shogenarchives/jpnews/movie.cgi?das_id=D0001300467_00000&seg_number=006 Attack on Pearl Harbor 1] {{웨이백|url=http://cgi2.nhk.or.jp/shogenarchives/jpnews/movie.cgi?das_id=D0001300467_00000&seg_number=006 |date=20120406201539 }}, ''Nippon News'', No. 82. in the official website of [[NHK]].
* [http://cgi2.nhk.or.jp/shogenarchives/jpnews/movie.cgi?das_id=D0001300469_00000&seg_number=004 Attack on Pearl Harbor 2] {{웨이백|url=http://cgi2.nhk.or.jp/shogenarchives/jpnews/movie.cgi?das_id=D0001300469_00000&seg_number=004 |date=20120406201547 }}, ''Nippon News'', No. 84. in the official website of NHK.
* [http://www.criticalpast.com/video/65675029979_attack-on-Pearl-Harbor_Harbor-installations_USS-Arizona-burns_black-smoke-rises Historic footage of Pearl Harbor during and immediately following attack on 1941년 12월 7일]
;역사적 기록물
* [http://ww2db.com/doc.php?q=45 WW2DB: US Navy Report of Japanese Raid on Pearl Harbor]
* [http://www.worldwar-two.net/acontecimentos/130/ Second World War – USA Declaration of War on Japan.]
* [http://www.ibiblio.org/pha/monos/097/index.html Collection of extensive Japanese preparation military documents]
{{-}}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
{{2차대전 도시폭격}}
{{전거 통제}}
[[분류:진주만 공격| ]]
[[분류:1941년 미국]]
[[분류:1941년 일본]]
[[분류:1941년 분쟁]]
[[분류:미국이 참가한 해전]]
[[분류:일본이 참가한 해전]]
[[분류:태평양 전쟁의 해전]]
[[분류:미국-일본 관계]]
[[분류:하와이주의 역사]]
[[분류:1941년 12월]]
[[분류:오아후섬의 역사]]
[[분류:1941년 전투]]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X11 색 이름'''은 [[X 윈도 시스템]]에서 [[RGB]] [[색]]에 대응하는 고유한 명칭의 색 이름이다.
아래의 표는 [[CSS]]에서 사용되는 색상 이름의 목록이다.{{-}}
== 상세 ==
HTML에서 "Gray"는 검은색과 흰색을 정확히 1:1 비율로 섞은 (128, 128, 128)로 정의되지만, X11에서의 "Gray"는 HTML에서의 "Silver"(192, 192, 192) 에 가까운 (190, 190, 190)으로 정의된다. HTML에서의 "Gray"는 X11에서의 "LightGray" (211, 211, 211), "DarkGray" (169, 169, 169)보다 더 어둡다.
기본 색상에서 수정된 색상을 정의하고 이를 RGB로 환산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 Gray''n''의 RGB 값은 ({{수직분수|255×''n''|100}}, {{수직분수|255×''n''|100}}, {{수직분수|255×''n''|100}})이다. 이때 ''n''이 가질 수 있는 값은 0, 1, 2, ..., 99, 100이다. n이 0에 가까울수록 검은색에 가깝고, 100에 가까울수록 흰색에 가깝다.
예를 들어 Gray30은 채도가 0%, 명도가 30% 이므로 ''k'' = {{수직분수|255×30|100}} = 76.5에서 Gray30의 RGB값은 (77, 77, 77) 이고, X11 회색에 가장 가까운 Gray75의 RGB값은 (191,191,191)이다.
또한, Gray 계열이 아닌 기본 색상의 수정된 색상을 정의하려면 기본 색상 이름 뒤에 1, 2, 3, 4를 붙여 'Color1', 'Color2', 'Color3', 'Color4'와 같이 짓는다. 이때, Color1은 기본 색상의 HSV 상 명도(Value)를 100%로 변경한 색이고, Color2, Color3, Color4는 각각 기본 색상의 명도가 93.2%, 80.4%, 54.8%로 변경한 색이다. 이를 식으로 쓰면 다음과 같다:
* HSV 색 공간에서는 명도 값을 변경하면 되지만, RGB 색 공간에서는 R, G, B 모두 변경된다.
* Color1 = Color의 RGB를 구성하는 각 R, G, B 좌표 중 가장 큰 값의 좌표를 ''L''이라고 할 때 R, G, B 좌표에 모두 (255/''L'')을 곱하여 어느 한 쪽을 255로 맞춘다.
* Color2 = Color1×0.932
* Color3 = Color1×0.804
* Color4 = Color1×0.548
== 색 목록 ==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text-align:center"
! rowspan="2" | 색 이름
! colspan="3" style="border-bottom:1px solid transparent" | RGB 좌표
! rowspan="2" | [[16진수|HEX]] 코드
|-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R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G !! B
|-
| bgcolor="#FFFAFA" | Snow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0 || 250
| #FFFAFA
|-
| bgcolor="#F8F8FF" | GhostWhit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8 || 255
| #F8F8FF
|-
| bgcolor="#F5F5F5" | WhiteSmok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5 || 245
| #F5F5F5
|-
| bgcolor="#DCDCDC" | Gainsboro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0 || 220
| #DCDCDC
|-
| bgcolor="#FFFAF0" | FloralWhit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0 || 240
| #FFFAF0
|-
| bgcolor="#FDF5E6" | OldLac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5 || 230
| #FDF5E6
|-
| bgcolor="#FAF0E6" | Line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0 || 230
| #FAF0E6
|-
| bgcolor="#FAEBD7" | AntiqueWhit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5 || 215
| #FAEBD7
|-
| bgcolor="#FFEFD5" | PapayaWhip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9 || 213
| #FFEFD5
|-
| bgcolor="#FFEBCD" | BlanchedAlmond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5 || 205
| #FFEBCD
|-
| bgcolor="#FFE4C4" | Bisqu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8 || 196
| #FFE4C4
|-
| bgcolor="#FFDAB9" | PeachPuff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8 || 185
| #FFDAB9
|-
| bgcolor="#FFDEAD" | NavajoWhit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2 || 173
| #FFDEAD
|-
| bgcolor="#FFE4B5" | Moccasi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8 || 181
| #FFE4B5
|-
| bgcolor="#FFF8DC" | Cornsilk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8 || 220
| #FFF8DC
|-
| bgcolor="#FFFFF0" | Ivory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240
| #FFFFF0
|-
| bgcolor="#FFFACD" | LemonChiffo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0 || 205
| #FFFACD
|-
| bgcolor="#FFF5EE" | Seashell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5 || 238
| #FFF5EE
|-
| bgcolor="#F0FFF0" | Honeydew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240
| #F0FFF0
|-
| bgcolor="#F5FFFA" | MintCream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250
| #F5FFFA
|-
| bgcolor="#F0FFFF" | Azur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255
| #F0FFFF
|-
| bgcolor="#F0F8FF" | AliceBlu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8 || 255
| #F0F8FF
|-
| bgcolor="#E6E6FA" | lavender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0 || 250
| #E6E6FA
|-
| bgcolor="#FFF0F5" | LavenderBlush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0 || 245
| #FFF0F5
|-
| bgcolor="#FFE4E1" | MistyRos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8 || 225
| #FFE4E1
|-
| bgcolor="#FFFFFF" | Whit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255
| #FFFFFF
|-
| bgcolor="#000000" | <span style="color: #ffffff;">Black</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0
| #000000
|-
| bgcolor="#2F4F4F" | <span style="color: #ffffff;">DarkSlateGray</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47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79 || 79
| #2F4F4F
|-
| bgcolor="#696969" | <span style="color: #ffffff;">DimGray</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5 || 105
| #696969
|-
| bgcolor="#708090" | <span style="color: #ffffff;">SlateGray</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8 || 144
| #708090
|-
| bgcolor="#778899" | <span style="color: #ffffff;">LightSlateGray</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6 || 153
| #778899
|-
| bgcolor="#BEBEBE" | Gray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0 || 190
| #BEBEBE
|-
| bgcolor="#D3D3D3" | LightGray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1 || 211
| #D3D3D3
|-
| bgcolor="#191970" | <span style="color: #ffffff;">MidnightBlue</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 || 112
| #191970
|-
| bgcolor="#000080" | <span style="color: #ffffff;">NavyBlue</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128
| #000080
|-
| bgcolor="#6495ED" | CornflowerBlu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9 || 237
| #6495ED
|-
| bgcolor="#483D8B" | <span style="color: #ffffff;">DarkSlateBlue</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7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61 || 139
| #483D8B
|-
| bgcolor="#6A5ACD" | <span style="color: #ffffff;">SlateBlue</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6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90 || 205
| #6A5ACD
|-
| bgcolor="#7B68EE" | <span style="color: #ffffff;">MediumSlateBlue</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4 || 238
| #7B68EE
|-
| bgcolor="#8470FF" | LightSlateBlu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2 || 255
| #8470FF
|-
| bgcolor="#0000CD" | <span style="color: #ffffff;">MediumBlue</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205
| #0000CD
|-
| bgcolor="#4169E1" | <span style="color: #ffffff;">RoyalBlue</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6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5 || 225
| #4169E1
|-
| bgcolor="#0000FF" | <span style="color: #ffffff;">Blue</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255
| #0000FF
|-
| bgcolor="#1E90FF" | DodgerBlu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3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4 || 255
| #1E90FF
|-
| bgcolor="#00BFFF" | DeepSkyBlu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1 || 255
| #00BFFF
|-
| bgcolor="#87CEEB" | SkyBlu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6 || 235
| #87CEEB
|-
| bgcolor="#87CEFA" | LightSkyBlu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6 || 250
| #87CEFA
|-
| bgcolor="#4682B4" | <span style="color: #ffffff;">SteelBlue</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7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0 || 180
| #4682B4
|-
| bgcolor="#B0C4DE" | LightSteelBlu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6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6 || 222
| #B0C4DE
|-
| bgcolor="#ADD8E6" | LightBlu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6 || 230
| #ADD8E6
|-
| bgcolor="#B0E0E6" | PowderBlu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6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4 || 230
| #B0E0E6
|-
| bgcolor="#AFEEEE" | PaleTurquois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238
| #AFEEEE
|-
| bgcolor="#00CED1" | DarkTurquois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6 || 209
| #00CED1
|-
| bgcolor="#48D1CC" | MediumTurquois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7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9 || 204
| #48D1CC
|-
| bgcolor="#40E0D0" | Turquois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6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4 || 208
| #40E0D0
|-
| bgcolor="#00FFFF" | Cy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255
| #00FFFF
|-
| bgcolor="#E0FFFF" | LightCy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255
| #E0FFFF
|-
| bgcolor="#5F9EA0" | <span style="color: #ffffff;">CadetBlue</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9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8 || 160
| #5F9EA0
|-
| bgcolor="#66CDAA" | MediumAquamarin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170
| #66CDAA
|-
| bgcolor="#7FFFD4" | Aquamarin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7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212
| #7FFFD4
|-
| bgcolor="#006400" | <span style="color: #ffffff;">DarkGreen</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0 || 0
| #006400
|-
| bgcolor="#556B2F" | <span style="color: #ffffff;">DarkOliveGreen</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8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7 || 47
| #556B2F
|-
| bgcolor="#8FBC8F" | DarkSeaGree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8 || 143
| #8FBC8F
|-
| bgcolor="#2E8B57" | <span style="color: #ffffff;">SeaGreen</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46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87
| #2E8B57
|-
| bgcolor="#3CB371" | MediumSeaGree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6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9 || 113
| #3CB371
|-
| bgcolor="#20B2AA" | LightSeaGree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3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8 || 170
| #20B2AA
|-
| bgcolor="#98FB98" | PaleGree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1 || 152
| #98FB98
|-
| bgcolor="#00FF7F" | SpringGree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127
| #00FF7F
|-
| bgcolor="#7CFC00" | LawnGree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2 || 0
| #7CFC00
|-
| bgcolor="#00FF00" | Gree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0
| #00FF00
|-
| bgcolor="#7FFF00" | Chartreus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7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0
| #7FFF00
|-
| bgcolor="#00FA9A" | MedSpringGree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0 || 154
| #00FA9A
|-
| bgcolor="#ADFF2F" | GreenYellow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47
| #ADFF2F
|-
| bgcolor="#32CD32" | LimeGree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5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50
| #32CD32
|-
| bgcolor="#9ACD32" | YellowGree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50
| #9ACD32
|-
| bgcolor="#228B22" | <span style="color: #ffffff;">ForestGreen</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3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34
| #228B22
|-
| bgcolor="#6B8E23" | <span style="color: #ffffff;">OliveDrab</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7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2 || 35
| #6B8E23
|-
| bgcolor="#BDB76B" | DarkKhaki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3 || 107
| #BDB76B
|-
| bgcolor="#EEE8AA" | PaleGoldenrod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2 || 170
| #EEE8AA
|-
| bgcolor="#FAFAD2" | LightGoldenrodYellow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0 || 210
| #FAFAD2
|-
| bgcolor="#FFFFE0" | LightYellow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224
| #FFFFE0
|-
| bgcolor="#FFFF00" | Yellow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0
| #FFFF00
|-
| bgcolor="#FFD700" | Gold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5 || 0
| #FFD700
|-
| bgcolor="#EEDD82" | LightGoldenrod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1 || 130
| #EEDD82
|-
| bgcolor="#DAA520" | goldenrod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5 || 32
| #DAA520
|-
| bgcolor="#B8860B" | <span style="color: #ffffff;">DarkGoldenrod</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4 || 11
| #B8860B
|-
| bgcolor="#BC8F8F" | RosyBrow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3 || 143
| #BC8F8F
|-
| bgcolor="#CD5C5C" | <span style="color: #ffffff;">IndianRed</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92 || 92
| #CD5C5C
|-
| bgcolor="#8B4513" | <span style="color: #ffffff;">SaddleBrown</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69 || 19
| #8B4513
|-
| bgcolor="#A0522D" | <span style="color: #ffffff;">Sienna</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82 || 45
| #A0522D
|-
| bgcolor="#CD853F" | <span style="color: #ffffff;">Peru</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3 || 63
| #CD853F
|-
| bgcolor="#DEB887" | Burlywood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4 || 135
| #DEB887
|-
| bgcolor="#F5F5DC" | Beig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5 || 220
| #F5F5DC
|-
| bgcolor="#F5DEB3" | Wheat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2 || 179
| #F5DEB3
|-
| bgcolor="#F4A460" | SandyBrow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4 || 96
| #F4A460
|-
| bgcolor="#D2B48C" | T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0 || 140
| #D2B48C
|-
| bgcolor="#D2691E" | <span style="color: #ffffff;">Chocolate</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5 || 30
| #D2691E
|-
| bgcolor="#B22222" | <span style="color: #ffffff;">FireBrick</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34 || 34
| #B22222
|-
| bgcolor="#A52A2A" | <span style="color: #ffffff;">Brown</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42 || 42
| #A52A2A
|-
| bgcolor="#E9967A" | DarkSalmo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0 || 122
| #E9967A
|-
| bgcolor="#FA8072" | Salmo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8 || 114
| #FA8072
|-
| bgcolor="#FFA07A" | LightSalmo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0 || 122
| #FFA07A
|-
| bgcolor="#FFA500" | Orang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5 || 0
| #FFA500
|-
| bgcolor="#FF8C00" | DarkOrang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0 || 0
| #FF8C00
|-
| bgcolor="#FF7F50" | Coral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7 || 80
| #FF7F50
|-
| bgcolor="#F08080" | LightCoral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8 || 128
| #F08080
|-
| bgcolor="#FF6347" | Tomato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99 || 71
| #FF6347
|-
| bgcolor="#FF4500" | <span style="color: #ffffff;">OrangeRed</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69 || 0
| #FF4500
|-
| bgcolor="#FF0000" | <span style="color: #ffffff;">Red</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0
| #FF0000
|-
| bgcolor="#FF69B4" | HotPink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5 || 180
| #FF69B4
|-
| bgcolor="#FF1493" | DeepPink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 || 147
| #FF1493
|-
| bgcolor="#FFC0CB" | Pink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2 || 203
| #FFC0CB
|-
| bgcolor="#FFB6C1" | LightPink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2 || 193
| #FFB6C1
|-
| bgcolor="#DB7093" | PaleVioletRed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2 || 147
| #DB7093
|-
| bgcolor="#B03060" | <span style="color: #ffffff;">Maroon</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6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48 || 96
| #B03060
|-
| bgcolor="#C71585" | <span style="color: #ffffff;">MediumVioletRed</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 || 133
| #C71585
|-
| bgcolor="#D02090" | <span style="color: #ffffff;">VioletRed</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32 || 144
| #D02090
|-
| bgcolor="#FF00FF" | Magenta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255
| #FF00FF
|-
| bgcolor="#EE82EE" | Violet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0 || 238
| #EE82EE
|-
| bgcolor="#DDA0DD" | Plum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0 || 221
| #DDA0DD
|-
| bgcolor="#DA70D6" | Orchid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2 || 214
| #DA70D6
|-
| bgcolor="#BA55D3" | <span style="color: #ffffff;">MediumOrchid</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6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85 || 211
| #BA55D3
|-
| bgcolor="#9932CC" | <span style="color: #ffffff;">DarkOrchid</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50 || 204
| #9932CC
|-
| bgcolor="#9400D3" | <span style="color: #ffffff;">DarkViolet</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211
| #9400D3
|-
| bgcolor="#8A2BE2" | <span style="color: #ffffff;">BlueViolet</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43 || 226
| #8A2BE2
|-
| bgcolor="#A020F0" | <span style="color: #ffffff;">Purple</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32 || 240
| #A020F0
|-
| bgcolor="#9370DB" | <span style="color: #ffffff;">MediumPurple</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7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2 || 219
| #9370DB
|-
| bgcolor="#D8BFD8" | Thistle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6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1 || 216
| #D8BFD8
|-
| bgcolor="#FFFAFA" | Snow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0 || 250
| #FFFAFA
|-
| bgcolor="#EEE9E9" | Snow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3 || 233
| #EEE9E9
|-
| bgcolor="#CDC9C9" | Snow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1 || 201
| #CDC9C9
|-
| bgcolor="#8B8989" | <span style="color: #ffffff;">Snow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7 || 137
| #8B8989
|-
| bgcolor="#FFF5EE" | Seashell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5 || 238
| #FFF5EE
|-
| bgcolor="#EEE5DE" | Seashell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9 || 222
| #EEE5DE
|-
| bgcolor="#CDC5BF" | Seashell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7 || 191
| #CDC5BF
|-
| bgcolor="#8B8682" | <span style="color: #ffffff;">Seashell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4 || 130
| #8B8682
|-
| bgcolor="#FFEFDB" | AntiqueWhit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9 || 219
| #FFEFDB
|-
| bgcolor="#EEDFCC" | AntiqueWhite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3 || 204
| #EEDFCC
|-
| bgcolor="#CDC0B0" | AntiqueWhite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2 || 176
| #CDC0B0
|-
| bgcolor="#8B8378" | <span style="color: #ffffff;">AntiqueWhit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1 || 120
| #8B8378
|-
| bgcolor="#FFE4C4" | Bisqu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8 || 196
| #FFE4C4
|-
| bgcolor="#EED5B7" | Bisque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3 || 183
| #EED5B7
|-
| bgcolor="#CDB79E" | Bisque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3 || 158
| #CDB79E
|-
| bgcolor="#8B7D6B" | <span style="color: #ffffff;">Bisqu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5 || 107
| #8B7D6B
|-
| bgcolor="#FFDAB9" | PeachPuff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8 || 185
| #FFDAB9
|-
| bgcolor="#EECBAD" | PeachPuff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3 || 173
| #EECBAD
|-
| bgcolor="#CDAF95" | PeachPuff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5 || 149
| #CDAF95
|-
| bgcolor="#8B7765" | <span style="color: #ffffff;">PeachPuff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9 || 101
| #8B7765
|-
| bgcolor="#FFDEAD" | NavajoWhit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2 || 173
| #FFDEAD
|-
| bgcolor="#EECFA1" | NavajoWhite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7 || 161
| #EECFA1
|-
| bgcolor="#CDB38B" | NavajoWhite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9 || 139
| #CDB38B
|-
| bgcolor="#8B795E" | <span style="color: #ffffff;">NavajoWhit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1 || 94
| #8B795E
|-
| bgcolor="#FFFACD" | LemonChiffon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0 || 205
| #FFFACD
|-
| bgcolor="#EEE9BF" | LemonChiffon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3 || 191
| #EEE9BF
|-
| bgcolor="#CDC9A5" | LemonChiffon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1 || 165
| #CDC9A5
|-
| bgcolor="#8B8970" | <span style="color: #ffffff;">LemonChiffon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7 || 112
| #8B8970
|-
| bgcolor="#FFF8DC" | Cornsilk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8 || 220
| #FFF8DC
|-
| bgcolor="#EEE8CD" | Cornsilk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2 || 205
| #EEE8CD
|-
| bgcolor="#CDC8B1" | Cornsilk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0 || 177
| #CDC8B1
|-
| bgcolor="#8B8878" | <span style="color: #ffffff;">Cornsilk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6 || 120
| #8B8878
|-
| bgcolor="#FFFFF0" | Ivory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240
| #FFFFF0
|-
| bgcolor="#EEEEE0" | Ivory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224
| #EEEEE0
|-
| bgcolor="#CDCDC1" | Ivory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193
| #CDCDC1
|-
| bgcolor="#8B8B83" | <span style="color: #ffffff;">Ivory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131
| #8B8B83
|-
| bgcolor="#F0FFF0" | Honeydew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240
| #F0FFF0
|-
| bgcolor="#E0EEE0" | Honeydew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224
| #E0EEE0
|-
| bgcolor="#C1CDC1" | Honeydew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193
| #C1CDC1
|-
| bgcolor="#838B83" | <span style="color: #ffffff;">Honeydew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131
| #838B83
|-
| bgcolor="#FFF0F5" | LavenderBlush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0 || 245
| #FFF0F5
|-
| bgcolor="#EEE0E5" | LavenderBlush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4 || 229
| #EEE0E5
|-
| bgcolor="#CDC1C5" | LavenderBlush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3 || 197
| #CDC1C5
|-
| bgcolor="#8B8386" | <span style="color: #ffffff;">LavenderBlush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1 || 134
| #8B8386
|-
| bgcolor="#FFE4E1" | MistyRos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8 || 225
| #FFE4E1
|-
| bgcolor="#EED5D2" | MistyRose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3 || 210
| #EED5D2
|-
| bgcolor="#CDB7B5" | MistyRose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3 || 181
| #CDB7B5
|-
| bgcolor="#8B7D7B" | <span style="color: #ffffff;">MistyRos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5 || 123
| #8B7D7B
|-
| bgcolor="#F0FFFF" | Azur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255
| #F0FFFF
|-
| bgcolor="#E0EEEE" | Azure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238
| #E0EEEE
|-
| bgcolor="#C1CDCD" | Azure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205
| #C1CDCD
|-
| bgcolor="#838B8B" | <span style="color: #ffffff;">Azur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139
| #838B8B
|-
| bgcolor="#836FFF" | <span style="color: #ffffff;">SlateBlue1</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1 || 255
| #836FFF
|-
| bgcolor="#7A67EE" | <span style="color: #ffffff;">SlateBlue2</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3 || 238
| #7A67EE
|-
| bgcolor="#6959CD" | <span style="color: #ffffff;">SlateBlue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89 || 205
| #6959CD
|-
| bgcolor="#473C8B" | <span style="color: #ffffff;">SlateBlu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7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60 || 139
| #473C8B
|-
| bgcolor="#4876FF" | <span style="color: #ffffff;">RoyalBlue1</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7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8 || 255
| #4876FF
|-
| bgcolor="#436EEE" | <span style="color: #ffffff;">RoyalBlue2</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67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0 || 238
| #436EEE
|-
| bgcolor="#3A5FCD" | <span style="color: #ffffff;">RoyalBlue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5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95 || 205
| #3A5FCD
|-
| bgcolor="#27408B" | <span style="color: #ffffff;">RoyalBlu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64 || 139
| #27408B
|-
| bgcolor="#0000FF" | <span style="color: #ffffff;">Blue1</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255
| #0000FF
|-
| bgcolor="#0000EE" | <span style="color: #ffffff;">Blue2</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238
| #0000EE
|-
| bgcolor="#0000CD" | <span style="color: #ffffff;">Blue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205
| #0000CD
|-
| bgcolor="#00008B" | <span style="color: #ffffff;">Blu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139
| #00008B
|-
| bgcolor="#1E90FF" |DodgerBlu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3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4 || 255
| #1E90FF
|-
| bgcolor="#1C86EE" | <span style="color: #ffffff;">DodgerBlue2</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4 || 238
| #1C86EE
|-
| bgcolor="#1874CD" | <span style="color: #ffffff;">DodgerBlue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6 || 205
| #1874CD
|-
| bgcolor="#104E8B" | <span style="color: #ffffff;">DodgerBlu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78 || 139
| #104E8B
|-
| bgcolor="#63B8FF" | SteelBlu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9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4 || 255
| #63B8FF
|-
| bgcolor="#5CACEE" | SteelBlue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9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2 || 238
| #5CACEE
|-
| bgcolor="#4F94CD" | <span style="color: #ffffff;">SteelBlue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7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8 || 205
| #4F94CD
|-
| bgcolor="#36648B" | <span style="color: #ffffff;">SteelBlu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5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0 || 139
| #36648B
|-
| bgcolor="#00BFFF" | DeepSkyBlu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1 || 255
| #00BFFF
|-
| bgcolor="#00B2EE" | DeepSkyBlue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8 || 238
| #00B2EE
|-
| bgcolor="#009ACD" | <span style="color: #ffffff;">DeepSkyBlue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4 || 205
| #009ACD
|-
| bgcolor="#00688B" | <span style="color: #ffffff;">DeepSkyBlu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4 || 139
| #00688B
|-
| bgcolor="#87CEFF" | SkyBlu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6 || 255
| #87CEFF
|-
| bgcolor="#7EC0EE" | SkyBlue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6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2 || 238
| #7EC0EE
|-
| bgcolor="#6CA6CD" | SkyBlue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6 || 205
| #6CA6CD
|-
| bgcolor="#4A708B" | <span style="color: #ffffff;">SkyBlu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7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2 || 139
| #4A708B
|-
| bgcolor="#B0E2FF" | LightSkyBlu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6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6 || 255
| #B0E2FF
|-
| bgcolor="#A4D3EE" | LightSkyBlue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1 || 238
| #A4D3EE
|-
| bgcolor="#8DB6CD" | LightSkyBlue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2 || 205
| #8DB6CD
|-
| bgcolor="#607B8B" | <span style="color: #ffffff;">LightSkyBlu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96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3 || 139
| #607B8B
|-
| bgcolor="#C6E2FF" | SlateGray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6 || 255
| #C6E2FF
|-
| bgcolor="#B9D3EE" | SlateGray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1 || 238
| #B9D3EE
|-
| bgcolor="#9FB6CD" | SlateGray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2 || 205
| #9FB6CD
|-
| bgcolor="#6C7B8B" | <span style="color: #ffffff;">SlateGray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3 || 139
| #6C7B8B
|-
| bgcolor="#CAE1FF" | LightSteelBlu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5 || 255
| #CAE1FF
|-
| bgcolor="#BCD2EE" | LightSteelBlue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0 || 238
| #BCD2EE
|-
| bgcolor="#A2B5CD" | LightSteelBlue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1 || 205
| #A2B5CD
|-
| bgcolor="#6E7B8B" | <span style="color: #ffffff;">LightSteelBlu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3 || 139
| #6E7B8B
|-
| bgcolor="#BFEFFF" | LightBlu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9 || 255
| #BFEFFF
|-
| bgcolor="#B2DFEE" | LightBlue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3 || 238
| #B2DFEE
|-
| bgcolor="#9AC0CD" | LightBlue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2 || 205
| #9AC0CD
|-
| bgcolor="#68838B" | <span style="color: #ffffff;">LightBlu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1 || 139
| #68838B
|-
| bgcolor="#E0FFFF" | LightCyan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255
| #E0FFFF
|-
| bgcolor="#D1EEEE" | LightCyan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238
| #D1EEEE
|-
| bgcolor="#B4CDCD" | LightCyan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205
| #B4CDCD
|-
| bgcolor="#7A8B8B" | <span style="color: #ffffff;">LightCyan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139
| #7A8B8B
|-
| bgcolor="#BBFFFF" | PaleTurquois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7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255
| #BBFFFF
|-
| bgcolor="#AEEEEE" | PaleTurquoise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238
| #AEEEEE
|-
| bgcolor="#96CDCD" | PaleTurquoise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205
| #96CDCD
|-
| bgcolor="#668B8B" | <span style="color: #ffffff;">PaleTurquois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139
| #668B8B
|-
| bgcolor="#98F5FF" | CadetBlu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5 || 255
| #98F5FF
|-
| bgcolor="#8EE5EE" | CadetBlue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9 || 238
| #8EE5EE
|-
| bgcolor="#7AC5CD" | CadetBlue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7 || 205
| #7AC5CD
|-
| bgcolor="#53868B" | <span style="color: #ffffff;">CadetBlu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8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4 || 139
| #53868B
|-
| bgcolor="#00F5FF" | Turquois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5 || 255
| #00F5FF
|-
| bgcolor="#00E5EE" | Turquoise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9 || 238
| #00E5EE
|-
| bgcolor="#00C5CD" | Turquoise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7 || 205
| #00C5CD
|-
| bgcolor="#00868B" | <span style="color: #ffffff;">Turquois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4 || 139
| #00868B
|-
| bgcolor="#00FFFF" | Cyan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255
| #00FFFF
|-
| bgcolor="#00EEEE" | Cyan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238
| #00EEEE
|-
| bgcolor="#00CDCD" | Cyan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205
| #00CDCD
|-
| bgcolor="#008B8B" | <span style="color: #ffffff;">Cyan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139
| #008B8B
|-
| bgcolor="#97FFFF" | DarkSlateGray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255
| #97FFFF
|-
| bgcolor="#8DEEEE" | DarkSlateGray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238
| #8DEEEE
|-
| bgcolor="#79CDCD" | DarkSlateGray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205
| #79CDCD
|-
| bgcolor="#528B8B" | <span style="color: #ffffff;">DarkSlateGray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8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139
| #528B8B
|-
| bgcolor="#7FFFD4" | Aquamarin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7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212
| #7FFFD4
|-
| bgcolor="#76EEC6" | Aquamarine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198
| #76EEC6
|-
| bgcolor="#66CDAA" | Aquamarine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170
| #66CDAA
|-
| bgcolor="#458B74" | <span style="color: #ffffff;">Aquamarin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6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116
| #458B74
|-
| bgcolor="#C1FFC1" | DarkSeaGreen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193
| #C1FFC1
|-
| bgcolor="#B4EEB4" | DarkSeaGreen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180
| #B4EEB4
|-
| bgcolor="#9BCD9B" | DarkSeaGreen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155
| #9BCD9B
|-
| bgcolor="#698B69" | <span style="color: #ffffff;">DarkSeaGreen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105
| #698B69
|-
| bgcolor="#54FF9F" | SeaGreen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8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159
| #54FF9F
|-
| bgcolor="#4EEE94" | SeaGreen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7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148
| #4EEE94
|-
| bgcolor="#43CD80" | SeaGreen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67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128
| #43CD80
|-
| bgcolor="#2E8B57" | <span style="color: #ffffff;">SeaGreen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46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87
| #2E8B57
|-
| bgcolor="#9AFF9A" | PaleGreen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154
| #9AFF9A
|-
| bgcolor="#90EE90" | PaleGreen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144
| #90EE90
|-
| bgcolor="#7CCD7C" | PaleGreen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124
| #7CCD7C
|-
| bgcolor="#548B54" | <span style="color: #ffffff;">PaleGreen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8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84
| #548B54
|-
| bgcolor="#00FF7F" | SpringGreen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127
| #00FF7F
|-
| bgcolor="#00EE76" | SpringGreen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118
| #00EE76
|-
| bgcolor="#00CD66" | SpringGreen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102
| #00CD66
|-
| bgcolor="#008B45" | <span style="color: #ffffff;">SpringGreen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69
| #008B45
|-
| bgcolor="#00FF00" | Green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0
| #00FF00
|-
| bgcolor="#00EE00" | Green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0
| #00EE00
|-
| bgcolor="#00CD00" | Green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0
| #00CD00
|-
| bgcolor="#008B00" | <span style="color: #ffffff;">Green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0
| #008B00
|-
| bgcolor="#7FFF00" | Chartreus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7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0
| #7FFF00
|-
| bgcolor="#76EE00" | Chartreuse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0
| #76EE00
|-
| bgcolor="#66CD00" | Chartreuse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0
| #66CD00
|-
| bgcolor="#458B00" | <span style="color: #ffffff;">Chartreus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6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0
| #458B00
|-
| bgcolor="#C0FF3E" | OliveDrab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62
| #C0FF3E
|-
| bgcolor="#B3EE3A" | OliveDrab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58
| #B3EE3A
|-
| bgcolor="#9ACD32" | OliveDrab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50
| #9ACD32
|-
| bgcolor="#698B22" | <span style="color: #ffffff;">OliveDrab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34
| #698B22
|-
| bgcolor="#CAFF70" | DarkOliveGreen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112
| #CAFF70
|-
| bgcolor="#BCEE68" | DarkOliveGreen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104
| #BCEE68
|-
| bgcolor="#A2CD5A" | DarkOliveGreen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90
| #A2CD5A
|-
| bgcolor="#6E8B3D" | <span style="color: #ffffff;">DarkOliveGreen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61
| #6E8B3D
|-
| bgcolor="#FFF68F" | Khaki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46 || 143
| #FFF68F
|-
| bgcolor="#EEE685" | Khaki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0 || 133
| #EEE685
|-
| bgcolor="#CDC673" | Khaki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8 || 115
| #CDC673
|-
| bgcolor="#8B864E" | <span style="color: #ffffff;">Khaki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4 || 78
| #8B864E
|-
| bgcolor="#FFEC8B" | LightGoldenrod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6 || 139
| #FFEC8B
|-
| bgcolor="#EEDC82" | LightGoldenrod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0 || 130
| #EEDC82
|-
| bgcolor="#CDBE70" | LightGoldenrod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0 || 112
| #CDBE70
|-
| bgcolor="#8B814C" | <span style="color: #ffffff;">LightGoldenrod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9 || 76
| #8B814C
|-
| bgcolor="#FFFFE0" | LightYellow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224
| #FFFFE0
|-
| bgcolor="#EEEED1" | LightYellow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209
| #EEEED1
|-
| bgcolor="#CDCDB4" | LightYellow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180
| #CDCDB4
|-
| bgcolor="#8B8B7A" | <span style="color: #ffffff;">LightYellow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122
| #8B8B7A
|-
| bgcolor="#FFFF00" | Yellow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0
| #FFFF00
|-
| bgcolor="#EEEE00" | Yellow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0
| #EEEE00
|-
| bgcolor="#CDCD00" | Yellow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0
| #CDCD00
|-
| bgcolor="#8B8B00" | <span style="color: #ffffff;">Yellow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0
| #8B8B00
|-
| bgcolor="#FFD700" | Gold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5 || 0
| #FFD700
|-
| bgcolor="#EEC900" | Gold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1 || 0
| #EEC900
|-
| bgcolor="#CDAD00" | Gold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3 || 0
| #CDAD00
|-
| bgcolor="#8B7500" | <span style="color: #ffffff;">Gold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7 || 0
| #8B7500
|-
| bgcolor="#FFC125" | Goldenrod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3 || 37
| #FFC125
|-
| bgcolor="#EEB422" | Goldenrod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0 || 34
| #EEB422
|-
| bgcolor="#CD9B1D" | Goldenrod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5 || 29
| #CD9B1D
|-
| bgcolor="#8B6914" | <span style="color: #ffffff;">Goldenrod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5 || 20
| #8B6914
|-
| bgcolor="#FFB90F" | DarkGoldenrod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5 || 15
| #FFB90F
|-
| bgcolor="#EEAD0E" | DarkGoldenrod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3 || 14
| #EEAD0E
|-
| bgcolor="#CD950C" | <span style="color: #ffffff;">DarkGoldenrod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9 || 12
| #CD950C
|-
| bgcolor="#8B6508" | <span style="color: #ffffff;">DarkGoldenrod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1 || 8
| #8B6508
|-
| bgcolor="#FFC1C1" | RosyBrown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3 || 193
| #FFC1C1
|-
| bgcolor="#EEB4B4" | RosyBrown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0 || 180
| #EEB4B4
|-
| bgcolor="#CD9B9B" | RosyBrown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5 || 155
| #CD9B9B
|-
| bgcolor="#8B6969" | <span style="color: #ffffff;">RosyBrown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5 || 105
| #8B6969
|-
| bgcolor="#FF6A6A" | IndianRed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6 || 106
| #FF6A6A
|-
| bgcolor="#EE6363" | <span style="color: #ffffff;">IndianRed2</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99 || 99
| #EE6363
|-
| bgcolor="#CD5555" | <span style="color: #ffffff;">IndianRed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85 || 85
| #CD5555
|-
| bgcolor="#8B3A3A" | <span style="color: #ffffff;">IndianRed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58 || 58
| #8B3A3A
|-
| bgcolor="#FF8247" | Sienna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0 || 71
| #FF8247
|-
| bgcolor="#EE7942" | Sienna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1 || 66
| #EE7942
|-
| bgcolor="#CD6839" | <span style="color: #ffffff;">Sienna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4 || 57
| #CD6839
|-
| bgcolor="#8B4726" | <span style="color: #ffffff;">Sienna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71 || 38
| #8B4726
|-
| bgcolor="#FFD39B" | Burlywood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1 || 155
| #FFD39B
|-
| bgcolor="#EEC591" | Burlywood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7 || 145
| #EEC591
|-
| bgcolor="#CDAA7D" | Burlywood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0 || 125
| #CDAA7D
|-
| bgcolor="#8B7355" | <span style="color: #ffffff;">Burlywood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5 || 85
| #8B7355
|-
| bgcolor="#FFE7BA" | Wheat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1 || 186
| #FFE7BA
|-
| bgcolor="#EED8AE" | Wheat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6 || 174
| #EED8AE
|-
| bgcolor="#CDBA96" | Wheat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6 || 150
| #CDBA96
|-
| bgcolor="#8B7E66" | <span style="color: #ffffff;">Wheat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6 || 102
| #8B7E66
|-
| bgcolor="#FFA54F" | Tan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5 || 79
| #FFA54F
|-
| bgcolor="#EE9A49" | Tan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4 || 73
| #EE9A49
|-
| bgcolor="#CD853F" | <span style="color: #ffffff;">Tan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3 || 63
| #CD853F
|-
| bgcolor="#8B5A2B" | <span style="color: #ffffff;">Tan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90 || 43
| #8B5A2B
|-
| bgcolor="#FF7F24" | Chocolat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7 || 36
| #FF7F24
|-
| bgcolor="#EE7621" | <span style="color: #ffffff;">Chocolate2</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8 || 33
| #EE7621
|-
| bgcolor="#CD661D" | <span style="color: #ffffff;">Chocolate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2 || 29
| #CD661D
|-
| bgcolor="#8B4513" | <span style="color: #ffffff;">Chocolat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69 || 19
| #8B4513
|-
| bgcolor="#FF3030" | <span style="color: #ffffff;">FireBrick1</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48 || 48
| #FF3030
|-
| bgcolor="#EE2C2C" | <span style="color: #ffffff;">Firebrick2</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44 || 44
| #EE2C2C
|-
| bgcolor="#CD2626" | <span style="color:#ffffff;">Firebrick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38 || 38
| #CD2626
|-
| bgcolor="#8B1A1A" | <span style="color: #ffffff;">Firebrick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6 || 26
| #8B1A1A
|-
| bgcolor="#FF4040" | <span style="color: #ffffff;">Brown1</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64 || 64
| #FF4040
|-
| bgcolor="#EE3B3B" | <span style="color: #ffffff;">Brown2</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59 || 59
| #EE3B3B
|-
| bgcolor="#CD3333" | <span style="color: #ffffff;">Brown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51 || 51
| #CD3333
|-
| bgcolor="#8B2323" | <span style="color: #ffffff;">Brown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35 || 35
| #8B2323
|-
| bgcolor="#FF8C69" | Salmon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0 || 105
| #FF8C69
|-
| bgcolor="#EE8262" | Salmon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0 || 98
| #EE8262
|-
| bgcolor="#CD7054" | <span style="color: #ffffff;">Salmon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2 || 84
| #CD7054
|-
| bgcolor="#8B4C39" | <span style="color: #ffffff;">Salmon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76 || 57
| #8B4C39
|-
| bgcolor="#FFA07A" | LightSalmon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0 || 122
| #FFA07A
|-
| bgcolor="#EE9572" | LightSalmon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9 || 114
| #EE9572
|-
| bgcolor="#CD8162" | <span style="color: #ffffff;">LightSalmon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9 || 98
| #CD8162
|-
| bgcolor="#8B5742" | <span style="color: #ffffff;">LightSalmon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87 || 66
| #8B5742
|-
| bgcolor="#FFA500" | Orang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5 || 0
| #FFA500
|-
| bgcolor="#EE9A00" | Orange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4 || 0
| #EE9A00
|-
| bgcolor="#CD8500" | <span style="color: #ffffff;">Orange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3 || 0
| #CD8500
|-
| bgcolor="#8B5A00" | <span style="color: #ffffff;">Orang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90 || 0
| #8B5A00
|-
| bgcolor="#FF7F00" | DarkOrang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7 || 0
| #FF7F00
|-
| bgcolor="#EE7600" | DarkOrange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8 || 0
| #EE7600
|-
| bgcolor="#CD6600" | <span style="color: #ffffff;">DarkOrange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2 || 0
| #CD6600
|-
| bgcolor="#8B4500" | <span style="color: #ffffff;">DarkOrang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69 || 0
| #8B4500
|-
| bgcolor="#FF7256" | Coral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4 || 86
| #FF7256
|-
| bgcolor="#EE6A50" | Coral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6 || 80
| #EE6A50
|-
| bgcolor="#CD5B45" | <span style="color: #ffffff;">Coral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91 || 69
| #CD5B45
|-
| bgcolor="#8B3E2F" | <span style="color: #ffffff;">Coral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62 || 47
| #8B3E2F
|-
| bgcolor="#FF6347" | Tomato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99 || 71
| #FF6347
|-
| bgcolor="#EE5C42" | <span style="color: #ffffff;">Tomato2</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92 || 66
| #EE5C42
|-
| bgcolor="#CD4F39" | <span style="color: #ffffff;">Tomato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79 || 57
| #CD4F39
|-
| bgcolor="#8B3626" | <span style="color: #ffffff;">Tomato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54 || 38
| #8B3626
|-
| bgcolor="#FF4500" | <span style="color: #ffffff;">OrangeRed1</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69 || 0
| #FF4500
|-
| bgcolor="#EE4000" | <span style="color: #ffffff;">OrangeRed2</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64 || 0
| #EE4000
|-
| bgcolor="#CD3700" | <span style="color: #ffffff;">OrangeRed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55 || 0
| #CD3700
|-
| bgcolor="#8B2500" | <span style="color: #ffffff;">OrangeRed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37 || 0
| #8B2500
|-
| bgcolor="#FF0000" | <span style="color: #ffffff;">Red1</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0
| #FF0000
|-
| bgcolor="#EE0000" | <span style="color: #ffffff;">Red2</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0
| #EE0000
|-
| bgcolor="#CD0000" | <span style="color: #ffffff;">Red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0
| #CD0000
|-
| bgcolor="#8B0000" | <span style="color: #ffffff;">Red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0
| #8B0000
|-
| bgcolor="#FF1493" | DeepPink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 || 147
| #FF1493
|-
| bgcolor="#EE1289" | <span style="color: #ffffff;">DeepPink2</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 || 137
| #EE1289
|-
| bgcolor="#CD1076" | <span style="color: #ffffff;">DeepPink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 || 118
| #CD1076
|-
| bgcolor="#8B0A50" | <span style="color: #ffffff;">DeepPink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 || 80
| #8B0A50
|-
| bgcolor="#FF6EB4" | HotPink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10 || 180
| #FF6EB4
|-
| bgcolor="#EE6AA7" | HotPink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6 || 167
| #EE6AA7
|-
| bgcolor="#CD6090" | <span style="color: #ffffff;">HotPink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96 || 144
| #CD6090
|-
| bgcolor="#8B3A62" | <span style="color: #ffffff;">HotPink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58 || 98
| #8B3A62
|-
| bgcolor="#FFB5C5" | Pink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1 || 197
| #FFB5C5
|-
| bgcolor="#EEA9B8" | Pink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9 || 184
| #EEA9B8
|-
| bgcolor="#CD919E" | Pink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5 || 158
| #CD919E
|-
| bgcolor="#8B636C" | <span style="color: #ffffff;">Pink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99 || 108
| #8B636C
|-
| bgcolor="#FFAEB9" | LightPink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4 || 185
| #FFAEB9
|-
| bgcolor="#EEA2AD" | LightPink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2 || 173
| #EEA2AD
|-
| bgcolor="#CD8C95" | LightPink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0 || 149
| #CD8C95
|-
| bgcolor="#8B5F65" | <span style="color: #ffffff;">LightPink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95 || 101
| #8B5F65
|-
| bgcolor="#FF82AB" | PaleVioletRed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0 || 171
| #FF82AB
|-
| bgcolor="#EE799F" | PaleVioletRed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1 || 159
| #EE799F
|-
| bgcolor="#CD6889" | <span style="color: #ffffff;">PaleVioletRed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4 || 137
| #CD6889
|-
| bgcolor="#8B475D" | <span style="color: #ffffff;">PaleVioletRed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71 || 93
| #8B475D
|-
| bgcolor="#FF34B3" | Maroon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52 || 179
| #FF34B3
|-
| bgcolor="#EE30A7" | <span style="color: #ffffff;">Maroon2</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48 || 167
| #EE30A7
|-
| bgcolor="#CD2990" | <span style="color: #ffffff;">Maroon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41 || 144
| #CD2990
|-
| bgcolor="#8B1C62" | <span style="color: #ffffff;">Maroon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8 || 98
| #8B1C62
|-
| bgcolor="#FF3E96" | VioletRed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62 || 150
| #FF3E96
|-
| bgcolor="#EE3A8C" | <span style="color: #ffffff;">VioletRed2</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58 || 140
| #EE3A8C
|-
| bgcolor="#CD3278" | <span style="color: #ffffff;">VioletRed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50 || 120
| #CD3278
|-
| bgcolor="#8B2252" | <span style="color: #ffffff;">VioletRed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34 || 82
| #8B2252
|-
| bgcolor="#FF00FF" | Magenta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255
| #FF00FF
|-
| bgcolor="#EE00EE" | Magenta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238
| #EE00EE
|-
| bgcolor="#CD00CD" | <span style="color: #ffffff;">Magenta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205
| #CD00CD
|-
| bgcolor="#8B008B" | <span style="color: #ffffff;">Magenta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139
| #8B008B
|-
| bgcolor="#FF83FA" | Orchid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1 || 250
| #FF83FA
|-
| bgcolor="#EE7AE9" | Orchid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2 || 233
| #EE7AE9
|-
| bgcolor="#CD69C9" | <span style="color: #ffffff;">Orchid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5 || 201
| #CD69C9
|-
| bgcolor="#8B4789" | <span style="color: #ffffff;">Orchid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71 || 137
| #8B4789
|-
| bgcolor="#FFBBFF" | Plum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7 || 255
| #FFBBFF
|-
| bgcolor="#EEAEEE" | Plum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4 || 238
| #EEAEEE
|-
| bgcolor="#CD96CD" | Plum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0 || 205
| #CD96CD
|-
| bgcolor="#8B668B" | <span style="color: #ffffff;">Plum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2 || 139
| #8B668B
|-
| bgcolor="#E066FF" | MediumOrchid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2 || 255
| #E066FF
|-
| bgcolor="#D15FEE" | MediumOrchid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95 || 238
| #D15FEE
|-
| bgcolor="#B452CD" | <span style="color: #ffffff;">MediumOrchid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82 || 205
| #B452CD
|-
| bgcolor="#7A378B" | <span style="color: #ffffff;">MediumOrchid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55 || 139
| #7A378B
|-
| bgcolor="#BF3EFF" | <span style="color: #ffffff;">DarkOrchid1</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9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62 || 255
| #BF3EFF
|-
| bgcolor="#B23AEE" | <span style="color: #ffffff;">DarkOrchid2</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58 || 238
| #B23AEE
|-
| bgcolor="#9A32CD" | <span style="color: #ffffff;">DarkOrchid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50 || 205
| #9A32CD
|-
| bgcolor="#68228B" | <span style="color: #ffffff;">DarkOrchid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34 || 139
| #68228B
|-
| bgcolor="#9B30FF" | <span style="color: #ffffff;">Purple1</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48 || 255
| #9B30FF
|-
| bgcolor="#912CEE" | <span style="color: #ffffff;">Purple2</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44 || 238
| #912CEE
|-
| bgcolor="#7D26CD" | <span style="color: #ffffff;">Purple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38 || 205
| #7D26CD
|-
| bgcolor="#551A8B" | <span style="color: #ffffff;">Purpl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8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6 || 139
| #551A8B
|-
| bgcolor="#AB82FF" | MediumPurpl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7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0 || 255
| #AB82FF
|-
| bgcolor="#9F79EE" | <span style="color: #ffffff;">MediumPurple2</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1 || 238
| #9F79EE
|-
| bgcolor="#8968CD" | <span style="color: #ffffff;">MediumPurple3</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7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4 || 205
| #8968CD
|-
| bgcolor="#5D478B" | <span style="color: #ffffff;">MediumPurpl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9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71 || 139
| #5D478B
|-
| bgcolor="#FFE1FF" | Thistle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5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25 || 255
| #FFE1FF
|-
| bgcolor="#EED2EE" | Thistle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10 || 238
| #EED2EE
|-
| bgcolor="#CDB5CD" | Thistle3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1 || 205
| #CDB5CD
|-
| bgcolor="#8B7B8B" | <span style="color: #ffffff;">Thistle4</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23 || 139
| #8B7B8B
|-
| bgcolor="#1C1C1C" | <span style="color: #ffffff;">gray11</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8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8 || 28
| #1C1C1C
|-
| bgcolor="#363636" | <span style="color: #ffffff;">gray21</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5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54 || 54
| #363636
|-
| bgcolor="#4F4F4F" | <span style="color: #ffffff;">gray31</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7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79 || 79
| #4F4F4F
|-
| bgcolor="#696969" | <span style="color: #ffffff;">gray41</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5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05 || 105
| #696969
|-
| bgcolor="#828282" | <span style="color: #ffffff;">gray51</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0 || 130
| #828282
|-
| bgcolor="#9C9C9C" | <span style="color: #ffffff;">Gray61</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6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56 || 156
| #9C9C9C
|-
| bgcolor="#B5B5B5" | gray7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81 || 181
| #B5B5B5
|-
| bgcolor="#CFCFCF" | gray8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7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07 || 207
| #CFCFCF
|-
| bgcolor="#E8E8E8" | gray91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2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2 || 232
| #E8E8E8
|-
| bgcolor="#A9A9A9" | DarkGray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69 || 169
| #A9A9A9
|-
| bgcolor="#00008B" | <span style="color: #ffffff;">DarkBlue</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139
| #00008B
|-
| bgcolor="#008B8B" | <span style="color: #ffffff;">DarkCyan</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139
| #008B8B
|-
| bgcolor="#8B008B" | <span style="color: #ffffff;">DarkMagenta</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139
| #8B008B
|-
| bgcolor="#8B0000" | <span style="color: #ffffff;">DarkRed</spa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39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0 || 0
| #8B0000
|-
| bgcolor="#90EE90" | LightGreen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144 || style="border-right:1px solid transparent" | 238 || 144
| #90EE90
|}
== 같이 보기 ==
* [[색]]
* [[웹 색상]]
[[분류:X 윈도 시스템]]
[[분류:색 이름]]
[[분류:CSS]]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예술가 정보
| 이름 = 알브레히트 뒤러
| 그림 = Dürer Alte Pinakothek.jpg
| 설명 = 《자화상》 (1500)
| 원어이름 = Albrecht Dürer
| 출생일 = {{출생일|1471|5|21}}
| 출생지 = [[신성 로마 제국]] [[뉘른베르크]]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528|4|6|1471|5|21}}
| 사망지 = [[신성 로마 제국]] [[뉘른베르크]]
| 분야 = [[회화]]·[[판화]]
| 사조 = 전성기 르네상스
| 직업 = 값찾기
| 대표작 = 값찾기
| 수상 = 값찾기
| 영향줌 =
| 영향받음 = 값찾기
| 스승 = 값찾기
| 제자 = 값찾기
| 배우자 = 값찾기
| 동거인 = 값찾기
| 자녀 = 값찾기
| 부모 = 값찾기
| 형제 = 값찾기
| 친척 = 값찾기
| 웹사이트 =
| 서명 = 값찾기
| 서명설명 =
| 묘소 = 값찾기
| 묘비 = 값찾기
}}
'''알브레히트 뒤러'''({{llang|de|Albrecht Dürer}}, [[1471년]] [[5월 21일]] - [[1528년]] [[4월 6일]])는 [[독일]]의 [[화가]], [[판화가]], [[조각가]]다. [[르네상스]]의 대표적 화가이며, 특히 [[목판화]], [[동판화]] 및 [[수채화]]에서 독창적 재질을 보였다.
== 삶과 창작 활동 ==
[[파일:Albrecht Dürer - Coat of Arms of the House of Dürer - WGA07258.jpg|섬네일|왼쪽|자신의 상의를 입은 모습을 새긴 뒤러의 목판화]]
[[파일:Durer-self-portrait-at-the-age-of-thirteen.jpg|섬네일|왼쪽|위오른쪽|[[자화상]] [[동판화]] 13세 때 뒤러가 그린 것이다, 1484.]]
[[파일:Albrecht-self.jpg|섬네일|왼쪽|위오른쪽|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 (1493) 유화, [[파리 (프랑스)|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뉘른베르크]]에서 금세공의 아들로 태어나, 처음에는 부친 아래서 금세공을 배웠으나 화가가 되기 위해 [[미하엘 볼게무트]](Michael Wolgemut)의 문하생이 되었다. 1490년 부활절부터 1494년 오순절까지 알브레히트 뒤러는 오버라인 각지를 편력했다. 살아생전 했던 세 번의 장기 여행 가운데 첫 번째였던 이 여행의 여정은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처음에는 네덜란드나 중부 라인 지역에 머물렀다가, 1492년에 엘사스 지역에 머물렀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자신에게 커다란 인상을 준 작품을 만든 [[마르틴 숀가우어]]를 만나기 위해서 [[콜마르]]를 찾아갔지만, 숀가우어가 이미 1419년 2월 2일에 죽었기 때문에 그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나중에 뒤러는 바젤에서 활동했는데, 그곳에서 [[세바스티안 브란트]]의 책〈[[바보배]]〉(Narrenschiff, 1494년 초판 인쇄)에 실린 유명한 목판화를 제작했다. 여행에서 뉘른베르크로 돌아온 그는 1494년 아그네스 프라이(Agnes Frey)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오래되고 명망이 있는 뉘른베르크 가문의 출신이었지만, 둘 사이에 자식은 없었다. 그와 그의 두 형제 모두 자식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뒤러 가문은 대가 끊기고 사라졌다.
결혼하고서 약 3개월이 지난 1494년 10월 초순에 그는 신혼인 아내를 혼자 남겨 두고 [[베네치아]]로 여행, 이듬해인 1495년에 귀국하였다. 이 제1차 이탈리아 여행에서 당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미술을 가까이 한 게 뒤러 자신에게서나, 또 후의 독일 회화 전체를 위해서도 커다란 의의 있는 일이었다. 그때 구체적인 성과는 그가 여행 도중 틈틈이 그린 몇 점의 수채화에 있었다. 여기에는 새로운 자연을 접할 때 느끼는 화가의 신선한 감동이 싱싱한 서정성과 날카로운 자연 관조를 바탕으로 하여 훌륭하게 표현했으며, 이른바 도나우 파의 작품과 더불어 그 후 유럽 풍경화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파일:Albrecht Dürer - Adorazione dei Magi - Google Art Project.jpg|섬네일|200px|<span style="font-size:9pt"> 동방박사의 경배(Anbetung der Könige)'' (1504년)</span>]]
알브레히트 뒤러는 1497년부터 독립을 했고, 1503년부터는 한스 쇼이펠라인(Hans Schäufelein), 한스 폰 쿨름바흐(Hans von Kulmbach), 한스 발둥 그리엔(Hans Baldung Grien)과 함께 작업장을 운영했다. 그는 뉘른베르크 알트슈타드에 있던 그의 작업장에서 아주 열심히 일했다. 이 시기 주로 초상화와 몇 점의 자화상을 만들었다. 〈아버지의 초상화〉(1498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자화상〉(1498년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린다우의 상인〈오스볼트의 초상화〉(1499년 바이어른 국립 회화 수집소 소장), 〈자화상〉(1500년 뮌헨 미술관 소장) 등 이 시기 그린 그림들이었다. 당시 이미 작가로서 뒤러의 명성은 꽤 높았으나, 그의 명성을 결정적으로 만든 게 오히려 [[판화]]였다. 특히 1498년 간행한 목판 연작 <요한 묵시록>(1498년)은 뒤러의 삶 뿐만 아니라 유럽 목판화 역사에서도 기념비적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을 이루는 16점 작품은 한 점씩마다 고도의 기술적 완성과 탁월한 화면 구성을 보여 주는데, 그 가운데서도 <네 사람의 기사>는 특히 널리 알려져 있다.
인문주의와 뒤러가 맺고 있는 관계는 [[콘라트 첼티]]의 책 〈지형학으로서의 사랑 quatuor libri amorum〉(1502년)을 위해서 뒤러가 제작한 삽화에 잘 드러나 있다. 첼티는 뒤러를 제2의 [[아펠레스]]라고 칭찬했다.
=== 이탈리아 여행과 그 이후 활동 ===
[[파일:Knight-Death-and-the-Devil.jpg|섬네일|200px|오른쪽|<span style="font-size:9pt">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Ritter, Tod und Teufel'') (1513년)</span>]]
1505년 뒤러는 [[베네치아]]를 향해 두 번째 여행을 떠났다. 당시 베네치아에는 티치아노, 조르조네, 팔마 일 베키오가 활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조반니 벨리니]]가 그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한 편지에서 뒤러는 벨리니를 "회화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언급을 하기도 했다. 진지한 학구열, 근면함, 통찰력을 통해서 뒤러는 고향 도시 뉘른베르크에서도 정확한 소묘의 가치를 평가하는 법과 진실된 자연관을 배우기는 했지만,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서 그는 전혀 예감하지 못했던 색채가 지닌 힘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런 발견은 그의 작품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베네치아에 거주하는 독일의 상인들은 바르톨로메우스 교회를 위해서 커다란 크기의 그림 〈묵주〉를 주문했다. 후에 신성로마 제국 황제 루돌프 2세가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고 그 그림을 구입해서 프라하로 옮기도록 해서, 지금은 프라하의 국립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 그림에는 두 명의 천사가 마리아에게 관을 씌워주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다. 마리아가 황제에게, 아기 예수가 교황에게, 성 도미니크와 여러 천사들이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묵주를 건네주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서 베네치아에서 받은 영향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뒤러는 베네치아에서 상당한 인정을 받았고, 베네치아 시 위원회가 만약 그가 영구히 베네치아에 거주한다면 200두카트의 연금을 지급하겠다는 제의를 했지만, 그는 1506년 늦가을 고향 도시로 되돌아오는 여행길에 올랐다.
=== 1506-1514년 ===
1509년부터 뒤러는 뉘른베르크 시위원회에 의해서 임명된 미술가가 되었다. 사람들은 도시의 예술 계획을 입안하는데 뒤러가 상당부분 관여를 했다고 가정을 한다. 이 시기 동안 작은 크기의 동판화와 목판화 이외에 중요한 목판화 연작을 간행했다.
* 작은 크기의 수난 연작(1509/1510년)
* 커다란 크기의 수난 연작(1510년)
* 마리아의 삶(1510/1511년)
* 성 삼위일체(1511년)
* 성 그레고르의 미사
* 성 그리스토프
* 안나와 함께 있는 성가족
* 묵주를 들고 있는 요아힘 등을 언급할 수 있다.
그 당시 뒤러는 드라이포인트 기법을 이용해서 [[판화]]를 제작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렇게 해서 〈성녀 베로니카〉(1510년), 〈고통을 겪는 구세주〉(1512년), 〈참회하는 성 히에로니무스〉(1512년)가 제작되었다. 이 시기부터 뒤러의 작품에서는 목판화가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되었고, 뒤러가 그린 회화는 점점 드물게 보게 되었다. 1512년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그린 유화가 있다. 작은 크기의 동판화 연작의 상당 부분이 이 해에 제작되었다. 그리고 뒤러는 막시밀리안 황제로부터 자신의 목판화와 동판화를 복제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는 특별한 권리를 얻었다.
뒤러는 여러 번 황제 [[막시밀리안 1세 (신성 로마 제국)|막시밀리안 1세]]의 주문을 받아서 일을 했다. 늦어도 1510/1511년 이후부터는 관계가 이루어졌다. 뒤러의 친구인 빌리발트 피리크하이머(Willibald Pirckheimer)가 그 관계를 중재했다. 모든 작품은 간접적으로나마 황제의 결혼과 명성을 위한 것이었다.
또한 이 시기에 그의 유명한 동판화 〈기사, 죽음과 악마〉,〈서재의 성 히에로니무스〉,〈멜랑콜리아I〉이 제작되었다. 또한 〈파움가르트너 제단화〉도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2달 전에 뒤러는 목판화로 어머니의 초상화를 제작했는데, 이 그림은 서양 미술사에서 죽을 정도로 병약해진 인간을 그린 최초의 초상화였다.
=== 1518-1520년 ===
이 시기에 뒤러는 집중적으로 비례학과 같은 이론적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1518년 뉘른베르크 시의 대표자로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열렸던 제국회의에 참석했으며, 그곳에서 유명 인사들의 모습을 작품으로 남겼다.
=== 네덜란드로의 여행(1520-1521년) ===
1520년 6월 12일부터 뒤러는 아내와 함께 [[밤베르크]],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쾰른]]을 거쳐서 [[안트베르펜]]과 [[네덜란드]]의 다른 도시들로 여행을 갔다. 네덜란드로의 여행은 진짜 개선행진과도 같았다. 도처에서 뒤러는 열렬하게 환영을 받았다. 안트페르펜의 시행정당국은 정착을 하도록 뒤러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 300굴덴의 연금, 아름다운 저택, 무료 숙식과 공공 작업에 대한 보수를 지불하겠다는 제안을 내놓았지만, 시행정당국의 제안은 허사였다. 영주들, 각국의 대사들, 학자들 그리고 예술가들이 그를 열렬하게 찬양했고, 그를 자신들의 모임의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새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된 [[카를 5세]]도 이전의 특권들을 다시 확인해주었다. 특권을 재확인받으려는 것이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이었다. 네덜란드의 보물같은 예술품을 보고, 그곳의 예술가들과 교류를 할 수 있었던 것이 그에게는 상당히 중요했다. 수 많은 영주, 고위 성직자, 예술가들의 그림도 이번 여행의 결과물이었다. 1521년 7월 2일 그는 뉘른베르크로 돌아가는 여행길에 올랐다. 고향 도시로 돌아온 이후에 뒤러는 다시금 미술작품을 제작하는 데 몰두했다. 1520/1521년에 그는 뉘른베르크 시청사의 장식을 책임졌다. 그 장식은 오늘날에서 사라지고 없지만, 1530년에 제작된 모조품이 빈 알베르티나 미술관에 보관되어 전해지고 있다. 뮌헨의 알테 피나코텍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뒤러의 가장 중요한 작품에 속하는 두 점의 거대한 목판화가 1526년에 제작되었다. 이 목판화는 [[바오로]], [[베드로]], [[복음사가 마르코|마르코]] 복음 저자, [[요한]] 복음 저자의 실물 크기의 인물상이었으며, 동시에 4가지 체액을 믿는 이론을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뒤러는 원래 이 목판화를 뉘른베르크 시에 선사했고, 시청사에 세워져 전시되었다. 뒤러가 그린 그림 중에서 가장 훌륭한 그림으로 간주되는 뉘른베르크의 상인〈히에로니무스 홀츠슈우어〉라는 유화가 1526년에 그려졌다. 같은 해에 〈요한 클레베르거〉의 그림이 제작되었는데, 그림이 뒤러가 그린 마지막 그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네덜란드 여행 이후로 말라리아로 고통을 받고 있던 뒤러는 1528년 4월 6일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
== 업적 ==
그는 르네상스 최성기에 이탈리아에 유학하여 그 영향을 받았으나, 뒤에 독자적인 화풍을 창조하고, 북유럽적·독일적인 미의 전통을 쌓은 화가이다. 이론적 연구에도 뛰어나 <인체 비례론> 및 <원근법에 관한 고찰> 등의 저서도 내고, 또 이상미(理想美)에 관하여도 논하였다. 수채화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으며, [[인문주의]]와 [[종교 개혁]]에도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주로 종교화·초상화·풍경화 등을 제재로 하였으며, 동판·목판 등 판화에도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작품으로 <아담과 이브> <동방 세 박사의 예배> <자화상> <요한 묵시록> 등이 있다.<ref>{{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2}}</ref>
== 참고 ==
<references/>
== 외부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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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공용분류}}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3718&path=|183|194|&leafId=232 네이버 캐스트 : 오늘의 인물 - 알브레히트 뒤러]{{깨진 링크|url=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3718&path=%7C183%7C194%7C&leafId=232 }}
* [http://100.naver.com/travelworld/theme.php?codestr=10040202_2_13_5_0_1 뒤러의 집(Albrecht-Dürer-Haus)]{{깨진 링크|url=http://100.naver.com/travelworld/theme.php?codestr=10040202_2_13_5_0_1 }} - 테마백과
* [https://web.archive.org/web/20150924062821/http://www.owlstand.com/exhibition/room/00a7cd9a-c4b6-412d-a2e4-199d8d9f5e64 알브레히트 뒤러의 온라인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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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론'''<ref>번역본마다 'Άπολογία'의 번역이 차이가 있다. 천병희·박종현·오유석 번역본은 '변론'을, 강철웅·박문재 번역본에서는 '변명'을 채택하고 있다.</ref>》( {{llang|grc|Άπολογία Σωκράτους}}, {{llang|en|Apology of Socrates}})은 [[플라톤]]의 저작 가운데 대화록이 아닌 유일한 작품이다. 작품의 주제는 이미 제목이 예시하듯이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면서, 당시의 일반적인 인간 생활에서 관찰하게 되는 사회적, 윤리적 문제점에 대한 토론이다.
== 개요 ==
주된 내용은 [[기원전 399년]] 부당한 죄상으로 피소된 소크라테스의 법정(法廷) 변론이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부당한 죄상의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은 무지(無知)에 대한 지(知)의 가르침이었다. 즉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기는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과 같으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만큼 다른 사람에 비하여 얼마간은 지자(知者)일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첫째가는 현자(賢者)이다"라고 하는 델포이의 신탁(神託)에 대한 그의 해석이었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무지를 깨우치는 일이 신의 뜻에 좇는다고 생각하여 엄격한 대화를 통해서 사람의 억단(臆斷)의 꿈을 깨뜨려 나갔다. 이것이 사람들의 앙심을 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람의 무지를 자각하게 하고 알게 하는 일에만 전념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들은 신의 지(知)에 대해서는 무지와 다름없으므로, 그러면 그러할수록 진지(眞知)를 사랑하고 정신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신체나 재산보다 먼저 이 일에 마음을 써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지를 사랑하고 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가장 큰 열쇠라고 하였다. "아테네의 시민들이여, (중략) 어떻게 하든 나는 결코 나의 행동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설사 몇 번이나 죽음의 운명에 위협을 받는다 해도."라고 애지(愛知)에 대한 각오가 언급되고 있다. 결국은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시종일관 두려움 없이 자기의 소신을 말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떠날 때가 왔다. 나는 죽기 위하여,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그러나 그 어느 것이 더 행복한가에 대해서는 신 이외에 아는 자는 없다." 이것이 이 글의 마지막 구절이다. 또한 이 책은 위대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의 영혼의 서(書)이며 제자인 플라톤이 심혈을 기울여 지난날의 소크라테스를 같은 세대의 사람이나 후세에 전해 주려고 한 불후의 명저이다.
== 구성 ==
* 17a - 18a: 머릿말
* 18a - 19a: 변론의 주제
* 19a - 20c: 첫째 고소에 대한 반증
*: 20c - 24b: 반증에 덧붙이는 이야기
* 24b - 28b: 둘째 고소에 대한 반증
* 28b - 31c: 첫째 반론에 대한 변론
* 31c - 34b: 둘째 반론에 대한 변론
* 34b - 35d: 끝맺는 말 1
*: 35e - 38d: 끝맺는 말 2
*: 38c - 42a: 끝맺는 말 3
== 읽어보기 ==
*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황문수 옮김, 문예출판사, 1973(제1판), 1999(제2판)
*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 천병희 옮김, 숲, 2017
* 《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박종현 옮김, 서광사, 2003.
* 《소크라테스의 변명》, 강철웅 옮김, 아카넷, 2020
*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오유석 옮김, 마리북스, 2023
*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 2019
* R. Hackforth, The Composition of Plato's Apology, 1933 Cambridge.
* T. C. Brickhouse, N. D. Smith, Socrates on Trial, 1989 Oxford.
* E. de. Strycker, S. R. Slings, Plato's Apology of Socrates, 1994 Leiden-N.Y.-Köln.
* Perseus 프로젝트의 희랍어 원문 보기 [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Perseus%3Atext%3A1999.01.0169%3Atext%3DApol. Ἀπολογία Σωκράτους]
== 같이 보기 ==
*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 각주 ==
{{각주}}
== 참고 문헌 ==
{{위키공용분류}}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플라톤의 대화편}}
{{플라톤 둘러보기상자}}
{{전거 통제}}
[[분류:소크라테스의 대화법]]
[[분류:플라톤의 대화편]]
[[분류:정치학 책]]
[[분류:정치철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