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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는 주문을 외쳐 봐!
신체운동_건강
유아
낯선 사람이 전화번호를 물어봐요! 건희는 뾰로통 화가 났어요. 유치원 버스에서 내려 혼자 집으로 가야 했거든요. “엄마는 매일 바쁘대.” 건희는 천천히 집을 향해 걸어갔어요. 그때, 한 아주머니가 다가왔어요. 아주머니는 예쁘고 친절해 보였어요. 건희는 생각했어요. 어른이 묻는 말에는 또박또박 대답해야 하는 거지? 이 아주머니는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하지만 모르는 사람인데. 전화번호도 모른다고 나를 바보로 알면 어쩌지?’ 건희는 아주머니를 바라봤어요. 경비 아저씨의 전화를 받고 엄마가 달려왔어요. “우리 건희, 괜찮니? 잘했어, 정말 잘했어!” 건희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경비실을 나왔어요. 낯선 아주머니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어요. 아마도 똑똑한 건희의 행동에 겁을 먹고 도망쳤나 봐요. 고민하던 건희는 말했어요. “싫어요!” 그리고 곧장 아파트 경비실로 달려갔어요. 집으로 가면 아주머니가 따라와서 주소를 알아낼지도 모르니까요. 집 주소와 전화번호는 가족의 소중한 정보예요. 나쁜 사람들은 집 주소와 전화번호만으로도 우리 가족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할 수 있어요. 낯선 사람은 물론이고 이웃에 사는 낯익은 사람이라도 집 주소나 전화번호를 물어보면 단호하게 말하세요. “싫어요! 꼭 알고 싶으시면, 우리 엄마에게 직접 물어보세요.”라고요. 소지품에 이름은 적당한 크기로 적어 주세요. 가방이나 소지품에 주소와 전화번호를 너무 크게 적어 두지 마세요. 범죄에 이용될 수 있어요. 낯선 사람이 그 이름을 보고 접근해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아이들은 ‘나를 아는 사람인가?’ 하고 생각하거든요. 가방일 경우 이름은 적당한 크기로 가방 안쪽에 적고, “여기 네 이름을 적어 뒀어. 그러니까 네 이름을 안다고 꼭 너를 아는 사람은 아니야.” 라고 꼭 일러두세요. 낯선 사람이 벨을 눌러요! 은규는 길게 기지개를 켰어요. “으아, 심심해. 혼자 집 보는 건 너무 지루해. 누구 놀러 오는 사람 없나?” 그때, 딩동, 딩동! 벨이 울렸어요. 은규는 쿠당탕 신나게 달려 나갔어요. 그러다가 문 앞에 우뚝 멈춰 섰지요. ‘아차차, 누군지 확인해야지.’ 은규는 방범 돋보기로 문밖을 내다봤어요. ‘어? 모르는 아주머니네.’ 벨이 또다시 딩동, 딩동! “엄마 친구야. 어서 문 열어!” 은규는 생각했어요. ‘엄마 친구? 엄마가 친구 온다고 안 하셨는데. 엄마 안 계시다고 다음에 오시라고 할까?’ 이번에는 문을 쿵쿵쿵! “어서 문 열어, 엄마 친구라니까!” 여러분이 은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도 없는 것처럼 하는 게 좋겠어. 혼자 있는 걸 알면 계속 문을 열어 달라고 할 거야.’ 은규는 살금살금 걸었어요. 딩동, 딩동, 쿵쿵쿵! 아주머니는 몇 번을 더 벨을 누르고 쿵쾅거렸어요. 그리고 지쳤는지 돌아갔지요. 얼마 후,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은규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어요. “잘했어. 우리 은규 다 컸네!” 엄마는 은규를 꼭 안아 줬어요. “엄마, 답답해요. 헤헤헤!” 집에 혼자 있다는 것은 비밀이에요! 혼자 집을 보고 있을 때, 낯선 사람이 오면 가능한 한 조용히 있는 게 좋아요. 부모님께서 미리 “삼촌이 오실 거야.” 하는 등의 말씀이 없을 때에는 이웃이라도 문을 열어 주지 말아야 해요. 혼자 열쇠로 문을 열거나, 비밀번호를 눌러 집으로 들어와야 할 때에는 반드시 주변을 살펴보세요. 혹시 낯선 사람이 있을 때는 잠깐 기다렸다가 낯선 사람이 가고 나면 문을 열고 들어가세요. 아이가 혼자 집을 볼 때는 이렇게 하세요. 택배나 우편물은 경비실에 맡겨 달라고 부탁해요. 경비실이 없을 경우, 어른이 집에 있는 시간에 오도록 말해 두세요. 전화기에 부재중 응답 기능을 달아 주세요. 낯선 이의 전화는 받지 않고, 부모님의 전화만 골라 받을 수 있어요. 아이에게 오늘 집에 누가 오는지 미리 알려 주세요. 미리 알려 주지 않은 사람은 문을 열어 주지 않아도 된다고 일러두세요. 낯선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혜리는 오늘 무용 학원에 늦었어요. “친구들이 모두 올라가 버렸네.” 혜리는 할 수 없이 혼자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얘야, 잠깐. 같이 가자!” 엘리베이터로 한 아저씨가 뛰어 들어왔어요. “참 예쁘게 생겼구나. 10층 가니?” 아저씨가 혜리를 음흉하게 바라보며 말했어요. 혜리는 겁이 덜컹 났어요. ‘왜 층 단추도 누르지 않고 나만 보는 거지? 무용 학원 층 단추를 누르고 올라가도 될까?’ 순간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여러분이 혜리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용 학원은 10층이었지만, 혜리는 재빨리 3층 단추를 눌렀어요. 3층은 영어 학원이 있는 층이거든요. 혜리는 3층 문이 열리자마자 부리나케 내렸어요. “선생님, 저 왔어요!” 소리치면서요. 다행히 아저씨는 혜리를 따라 내리지 않았어요. 혜리는 계단을 따라 다시 1층으로 내려갔어요. 그리고 경비실에 있는 인터폰으로 학원에 전화를 했지요. 얼마 후 무용 학원 선생님이 혜리를 데리러 내려오셨어요. “혜리야, 무사해서 다행이야. 다음부터는 지각하지 말고 친구들과 함께 올라오렴.” 혜리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선생님과 약속했어요. 엘리베이터는 혼자 타지 마세요! 엘리베이터는 가능한 한 혼자 타지 마세요. 친구들 여럿이나 부모님과 잘 알고 지내는 이웃과 함께 타는 게 좋아요.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면, 꼭 어른들께 인터폰이나 전화로 알려요. 만약 엘리베이터 안에 낯선 사람이 함께 탔을 경우, 가는 층수보다 낮은 층수도 눌러 놓으면 좋아요. 혹시 낯선 사람이 이상한 행동을 하면, 중간에 내릴 수 있도록 해 두는 거예요. 이웃 간에 서로 친하게 지내요. 부모님 없이 아이 혼자 동네를 다녀야 할 경우가 종종 있어요. 이럴 때, 가까운 이웃과 친하게 지내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아이와 함께 다니며, 이웃의 얼굴을 익히고, 예의 바르게 인사하도록 가르쳐 주세요. 혼자 다니는 낯선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또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는 힘이 된답니다. 단, 평소에 얼굴을 알고 지내는 이웃이라도 엄마의 허락 없이 이웃집에 가거나, 함께 낯선 곳에 가서는 안 된다는 것도 꼭 일러두세요. 가까운 가족이나 이웃이라도, 이상한 것을 요구하거나 기분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면 이해할 거예요. 낯선 사람이 차에 태우려고 해요! 경한이는 심술이 잔뜩 났어요. “엄마 아빠는 게임기도 안 사 주고!” 그때, 빨간 차 한 대가 다가왔어요. “어머나, 우리 경한이 많이 컸구나. 엄마 친군데, 아줌마가 게임기 사 줄게. 어서 차에 타렴.” 하지만 경한이는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고 한 엄마 말씀이 생각났어요. 가슴이 쿵쾅거리고 무서웠지만 크게 소리쳤어요. “싫어요! 안 돼요!” 경한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달려갔어요. 왠지 자꾸 눈물이 났어요. 엄마의 얼굴을 보고서야 경한이는 마음이 놓였어요. 경한이는 조금 전 일을 엄마에게 말했어요. “우리 경한이 많이 놀랐나 보구나. 엄마가 있으니 이제 괜찮아.” 엄마는 경한이를 꼭 안아 주었어요. 나를 지켜 주는 주문, “싫어요! 안 돼요! ” 나쁜 마음을 먹고 다가오는 어른은 내 이름과 집 주소, 심지어 부모님의 이름까지도 알고 있을지 몰라요. 낯선 사람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고 해서 믿고 따라가서는 절대 안 돼요.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겼어. 어서 가자!”라고 무서운 말로 협박하더라도 절대 당황하지 마세요. 일단 “싫어요! 안 돼요!”라고 말하고, 주변에 있는 어른에게 도움을 청하세요. 그러고 나서 집에 전화를 걸거나, 집으로 곧장 가는 것이 좋아요. 여러 상황을 미리 이야기해 주세요. 갈수록 납치나 유괴의 수법이 매우 다양해지고 있어요. 아이와 함께 미리 납치나 유괴의 여러 사례들을 이야기해 두세요. 미리 알고 예방하는 방법이 안전해요. 아이의 마음을 이용해 도움을 청하기도 해요. “길을 좀 알려 줄래?” 혹은 “게임 방법 좀 알려 줘.” 하면서 아이를 유인하는 거지요. 절대 따라가지 말라고 일러두세요. 아이가 좋아하는 물건을 주겠다고 함께 가자고 해요. 예전에는 과자같이 먹을 것을 이용했다면, 요즘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기나 애완동물 등을 준다고 하지요. 아무리 갖고 싶어도 절대 따라가지 말라고 일러두세요. 낯선 사람이 아닌 이웃도 조심해야 해요. 이웃이라도 아주 친한 이웃이 아니라면, 부모님의 허락 없이는 절대 따라가지 말라고 일러두세요. 낯선 사람이 내 몸을 만져요! 가온이네 옆집에는 혼자 사는 아저씨가 있어요. 가온이네 가족과도 인사를 나누는 사이지요. 가온이가 집에 혼자 있으면 아저씨는 가온이를 불러요. “가온아, 우리 집에 와서 과자 먹을래?” 그럴 때면, 아저씨는 가온이의 몸을 만져요. 그러면서 아저씨는 늘 말해요. “이런 걸 엄마 아빠한테 말하면 안 돼! 엄마 아빠가 가온이한테 실망할 거야. 그래서 가온이를 미워할지도 몰라.” 하지만 가온이는 아저씨가 몸을 만지는 게 싫었어요. ‘어떡하지? 어떻게 하면 좋지?’ 여러분이 가온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 어떡하지?" "정말, 엄마 아빠가 나를 미워할까?" 한참을 망설이던 가온이는 엄마에게 달려갔어요. “엄마, 할 말이 있어요!” 가온이는 아저씨와 있었던 일을 모두 말했어요. “엄마, 정말 가온이가 미워요?” 가온이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어요. “아니, 우리 가온이가 용기 내어 말해 줘서 자랑스러운데?” 엄마는 가온이를 꼭 안아 주었어요. “가온이, 잘했어, 정말 잘했어!” 다음 날부터 옆집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어요. 가까이 사는 경한이가 이야기해 줬어요. “경찰관 아저씨가 옆집 아저씨를 잡아갔어.” 가온이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어요. 가온이네 옆집에는 이제 새로운 가족이 이사 왔어요.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지금도 가온이를 사랑해요. 아저씨의 말처럼 실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아요. 가온이는 다짐했어요. “나쁜 비밀은 절대 만들지도 지키지도 않을 거야.”
여우야, 불이 나면 어떻게 해?
신체운동_건강
유아
원숭이 마을에 동상이 나타난 건 달도 뜨지 않은 어두운 밤이었어요. 원숭이들은 그 동상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궁금했어요. 날이 밝자 원숭이들은 옆 마을에 사는 꾀쟁이 여우를 불렀어요. 동상을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던 꾀쟁이 여우는 동상에 달린 단추를 꾹 눌렀어요. “불을 발견하면 ‘불이야!’ 하고 큰 소리로 외치세요!” 동상에서 우렁찬 소리가 났어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지?” 원숭이들이 꾀쟁이 여우에게 물었어요. 사실 꾀쟁이 여우도 몰랐지만, 모른다고 말하기가 싫었어요. 그때 머릿속에 좋은 꾀가 반짝 떠올랐어요. “에헴, 이건 마법의 동상이야. 보물이 숨겨진 곳을 말해 주지.” 신이 난 원숭이들은 동상을 가마에 싣고 보물을 찾으러 나섰어요. 꾀쟁이 여우도 가마에 올라탔어요. 원숭이들은 가마를 들고 산을 넘고 강을 지나 다시 산을 넘었어요. 산을 넘자 피자 가게가 보였어요. 그런데 피자 가게 굴뚝에서 쉴 새 없이 연기가 피어올랐어요. 피자 가게 안에 들어서자, 불이 보였어요. 원숭이들은 동상의 말이 떠올랐어요. “불이야, 불이야!” 불을 보고 원숭이들이 소리쳤어요. 꾀쟁이 여우는 원숭이들의 행동이 우스웠어요. 그래서 동상의 단추를 또 눌렀어요. “비상벨을 누르세요.” 그때 꾀쟁이 여우가 한곳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저기에 비상벨이 있다!” 그러자 한 원숭이가 비상벨을 눌렀어요. 때르르르릉! 비상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어요. “저기 저 건물로 피해!” 꾀쟁이 여우가 소리쳤어요. 원숭이들은 얼른 옆 건물로 갔어요.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 꾀쟁이 여우는 동상의 단추를 계속 눌렀어요. “연기가 나면 최대한 낮은 자세로 기어서 가세요. 물에 적신 담요나 수건으로 몸과 얼굴을 감싸 주세요. 문을 열기 전에 문손잡이를 꼭 만져 보세요. 뜨겁지 않다면 열어도 돼요. 만약 방 안에 갇혔다면 물에 적신 천으로 방문 틈을 모두 막아 주세요.” 동상의 말에 따라 원숭이들은 바쁘게 움직였어요. “소화기는 순서에 따라 사용하세요. 어린이는 소화기를 사용하지 말고 바로 대피하세요.” 소화기라는 말에 원숭이들이 웅성거렸어요. 그러다가 예전에 사람들이 사용하던 모습을 떠올렸어요. 소화기 사용 순서 1. 소화기의 안전핀을 뽑아요. 2. 소화기의 호스를 불 가까이 향하게 잡아요. 3. 바람이 부는 방향을 등지고 사용해요. 4. 손잡이를 힘껏 쥐고 양옆으로 비질하듯이 호스를 움직여요. 지친 대장 원숭이가 얼굴을 찌푸렸어요. “정말로 보물을 찾을 수 있는 거 맞아?”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야?” 꾀쟁이 여우는 도리어 화를 냈어요. 그러면서 또 동상의 단추를 눌렀어요. “침착하게 119번으로 전화하세요. 어디서 불이 났는지 주소를 꼭 알려 주세요.” ‘이제 보니 이 동상은 소방서로 가던 물건이었나 봐.’ 꾀쟁이 여우는 119라는 말에 가슴이 덜컥했어요. 다시 동상이 말했어요. “소방서에서 알았다고 할 때까지 전화를 끊지 말아야 해요.” “소방서라고?” 그제야 원숭이들은 꾀쟁이 여우에게 속은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씩씩거리며 여우에게 다가갔어요. 꾀쟁이 여우는 슬슬 뒷걸음질했어요. 그때 비명이 들려왔어요. 병아리들이 사는 건물에서 들리는 소리였어요. 건물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어요. 불길은 점점 더 심해졌어요. 꾀쟁이 여우는 “맞아!” 하고 외쳤어요. “원숭이들아, 일찍 서둘러! 방금 배운 대로 하면 돼!” 원숭이들은 병아리들을 구하러 달려갔어요. 다음 날, 병아리 신문에는 원숭이들과 꾀쟁이 여우의 사진이 커다랗게 실렸어요. 모두 멋진 메달을 선물로 받았어요. “그것 봐. 마법의 동상 맞지?” 꾀쟁이 여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답니다.
건강 요리사 백설 공주
신체운동_건강
유아
옛날 어느 성에 백설 공주가 살았어요. 왕비가 죽자, 왕은 새 왕비를 얻었어요. 새 왕비는 아름다운 백설 공주를 미워했지요. 어느 날, 새 왕비의 미움을 받던 백설 공주가 성에서 나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숲속에 다다랐어요. 백설 공주는 숲속에 사는 일곱 난쟁이들을 만나 성에서 살던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그러자 난쟁이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어요. “백설 공주님! 우리와 함께 살아요.” 그날부터 백설 공주는 난쟁이들과 같이 지냈어요. 백설 공주는 난쟁이들을 위해 날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어요. “냠냠, 짭짭! 몸에 좋은 시금치! 냠냠, 짭짭! 머리에 좋은 고등어! 냠냠, 짭짭! 새콤달콤한 사과!” 백설 공주는 음식을 만들며 노래를 흥얼거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문을 두드렸어요. “과자와 케이크 사세요. 초콜릿과 사탕도 있어요.” 백설 공주가 문을 열자 심술궂게 생긴 할머니가 서 있었어요. 할머니가 들고 있는 바구니 안에는 먹을 것이 가득 담겨 있었어요. 그때, 난쟁이들이 시무룩한 모습으로 나타났어요. 숲속 마을 달리기 시합에서 졌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할머니의 바구니를 보자 난쟁이들은 신이 났어요. 그러고는 저마다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집어 들었어요. 난 달콤한 초콜릿! 난 크림이 듬뿍 올려진 케이크! 난 쫄깃쫄깃한 캐러멜! 난 설탕이 많이 묻은 도넛! 난 바삭바삭 고소한 과자! 난 단맛이 많이 나는 사탕! 난 부드러운 빵! “아무거나 먹으면 몸에 안 좋단 말이야.” 백설 공주의 말에 난쟁이들은 먹을 것을 도로 바구니에 넣었어요. “그래도 먹고 싶은데.” 난쟁이들은 하는 수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어요. 할머니도 입을 삐쭉이며 사라졌지요. 많이 먹으면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 있어요. 좋은 음식을 많이 먹으면 좋아요. 땅콩, 호두, 잣 등에는 우리 몸에 좋은 지방이 많고, 또 먹을 때 턱과 혀가 움직여 두뇌 발달을 도와줘요. 그리고 미역, 김, 다시마 등에는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 주는 칼륨, 칼슘, 요오드가 풍부해 약해진 체력을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어요. 좋지 않은 음식은 많이 먹지 않아요. 청량음료와 사탕, 초콜릿, 도넛, 캐러멜 등에는 설탕 말고도 단맛이 나는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요. 단맛이 나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다른 음식이 먹기 싫어지고, 이도 썩고, 몸도 뚱뚱해지니까 적게 먹는 것이 좋아요. 다음 날도 백설 공주는 난쟁이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어요. “신선한 채소도 넣고, 싱싱한 생선도 넣고, 달콤한 과일도 넣어야지!” 백설 공주는 음식을 만들며 노래를 흥얼거렸어요. 하지만 어제 군것질을 못 한 난쟁이들은 기분이 안 좋았어요. 며칠 뒤, 누군가 또 문을 두드렸어요. “피자와 치킨 사세요. 음료수와 햄버거도 있어요.” 백설 공주는 살며시 문을 열어 보았어요. 이번에도 심술궂게 생긴 할머니가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서 있었어요. 그때, 난쟁이들이 터덜터덜 걸어왔어요. 숲속 마을 수영 시합에서도 졌는지 힘이 없어 보였지요. 하지만 할머니의 바구니를 보고는 헐레벌떡 뛰어왔어요. 난쟁이들은 이번에도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집어 들었어요. 난 바삭바삭한 치킨! 난 시원한 청량음료! 난 큼지막한 소시지가 든 핫도그! 난 커다란 햄버거! “아무거나 먹으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단 말이야.” 백설 공주의 말에 난쟁이들은 먹을 것을 도로 바구니에 넣었어요. “그래도 먹고 싶은데.” 난쟁이들은 하는 수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어요. 할머니도 투덜거리며 사라졌지요. 몸에 좋은 음식은 무엇일까요?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어요. 신선한 과일과 채소 등에는 비타민과 섬유소가 많이 들어 있어요. 비타민은 우리 몸에 활력을 주고, 얼굴빛을 좋게 해 주지요. 그리고 섬유소는 음식물의 찌꺼기가 몸 밖으로 잘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줘요. 잡곡을 많이 먹어요. 콩, 보리, 팥, 기장, 조 등의 잡곡에는 각종 무기질, 단백질, 비타민 등 여러 가지 영양소가 풍부해요. 그래서 잡곡으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 영양 불균형을 막아 우리 몸에 좋아요. “치, 공주님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만 먹지 못하게 해!” 집에 들어온 난쟁이들은 화가 났어요. “그만 화 풀고 이리 와서 밥 먹자!” 백설 공주는 신선한 생선, 채소와 과일들로 상을 차렸어요. “자, 모두 우리 몸에 좋은 음식들이야. 먹어 봐!” 백설 공주가 차린 음식을 보고 난쟁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어요. 난쟁이들은 그제야 백설 공주의 마음을 알았어요. 그래서 괜스레 미안해졌지요. “자, 이제 맛있게 먹자. 꼭꼭 씹어서, 골고루!” 백설 공주의 말에 난쟁이들은 큰 소리로 대답했어요. “네! 맛있게 먹겠습니다.” 어느 날, 숲속 마을 운동 시합에 참가했던 난쟁이들이 돌아왔어요. “시합에서 우리가 이겼어요!” “한 번도 이겨 본 적 없었는데 처음으로 우리가 이겼어요!”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어서 이겼나 봐요!” “맞아요. 이젠 수영도 잘할 자신 있어요!” 난쟁이들은 왁자지껄 신이 났어요. 백설 공주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지요. 난쟁이들은 자랑을 멈추지 못했어요. “밖에서 돌아오면 손부터 씻어야지!” 식탁에 앉으려던 난쟁이들에게 백설 공주가 말했어요. “맞아, 맞아. 손을 씻어야 해. 깨끗이 손을 씻자!” 난쟁이들은 쪼르르 달려가 손을 씻었지요. 식중독을 예방해요. 식중독을 일으키는 세균은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 있어요. 이 세균들은 날씨가 더워지거나 비가 온 뒤에는 번식이 더 빨라지니까 더욱 주의하세요. 구입한 식품은 오래 두지 말고 바로 조리해서 먹어요. 고기나 생선은 불에 충분히 익혀요. “쩝쩝, 짭짭! 맛있는 음식을 먹어요. 후루룩, 냠냠!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요. 꿀꺽, 꿀꺽! 건강에도 좋은 음식을 먹어요.” 난쟁이들이 음식을 먹기 전에 노래를 부르네요. 그런데 일곱 난쟁이들이 언제 저렇게 많이 컸을까요?
아파요,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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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친구들이 꼬마 의사 진솔이를 찾아왔어요. 하마가 훌쩍, “목이 아파요!” 토끼가 징징, “귀가 아파요!” 진솔이는 오늘도 무척 바쁘겠어요. 하지만 걱정 없어요. 인형 간호사 미미가 도와줄 테니까요. 에취, 감기에 걸렸어요! 하마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입을 쩍 벌렸어요. “이런, 하마가 감기에 걸렸구나.” “진솔아, 어떡하면 감기가 나을까?” “목이 붓고 열이 날 땐 물과 과일을 먹고 푹 쉬렴.” 고릴라가 콧물을 흘리자, 미미가 말했어요. “고릴라야, 공기가 건조하면 감기에 잘 걸려. 잘 때 젖은 수건을 걸어 놓고 자면 도움이 될 거야.” 이번에는 곰이 쿨룩쿨룩 기침을 했어요. “곰아, 기침을 할 때는 손 말고 휴지로 막아야 해.” 동물 친구들은 감기에 좋은 따뜻한 차와 과일을 먹었어요. 꽃가루와 황사가 날리면 마스크를 해요! 늑대가 헐레벌떡 진솔이를 찾아왔어요. “진솔아, 꽃밭에서 놀았더니 눈이 빨개지고 재채기가 나. 나도 감기에 걸린 거야?” “그건 알레르기야. 알레르기는 꽃가루, 동물의 털이나 음식 등이 몸에 맞지 않아서 일어나는 거야. 꽃가루가 날리면 꼭 마스크를 쓰도록 해.” 닭과 오리도 진솔이를 찾아왔어요. “진솔아, 봄에 황사를 쐬면 왜 감기에 걸려?” “중국의 사막에서 불어오는 황사에는 병균과 더러운 먼지가 섞여서 그래. 황사가 있는 날에는 밖에 나가지 말고, 나가야 한다면 꼭 황사 마스크를 해야 해.” 꾸륵꾸륵, 배가 아파요! 뿌웅! 뿌웅, 방귀를 뀌면서 공룡이 찾아왔어요. “며칠째 똥을 못 누고 방귀만 나와.” “고기 대신 싱싱한 야채를 많이 먹어야 해.” 진솔이는 설사를 자주 하는 생쥐와 펭귄에게도 말했어요. “생쥐야, 음식을 먹기 전에는 유통 기한을 꼭 봐. 그리고 펭귄아, 아이스크림은 하루에 한 개만 먹어. 안 그러면 계속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할 거야.” 음식을 먹기 전에는 손을 깨끗이 씻어야 배탈이 안 나! 끙끙, 이가 아파요! 상어가 이빨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진솔이가 바다로 찾아갔어요. 이빨이 아픈 상어의 입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났어요. “휴, 상어야. 이빨을 닦지 않아서 입 속에 충치 세균과 감기 세균이 가득해.” 진솔이는 커다란 칫솔로 상어의 이빨을 닦아 주었어요. 진솔이는 동물 친구들에게 이빨 닦는 방법을 알려 주었어요. 아랫니는 아래에서 위로 치카치카! 윗니는 위에서 아래로 치카치카! 어금니는 위, 바깥, 안 모두 치카치카! 마무리로 혀도 치카치카! 따끔따끔, 눈이 아파요! 물고기들이 눈병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진솔이가 연못으로 찾아갔어요. “저런, 연못이 더러워져 눈병에 걸렸구나. 눈병이 나을 때까지 이곳에 있으렴.” 진솔이는 어항에 깨끗한 물을 담아 물고기들을 옮겼어요. 윙윙, 귀가 아파요! 토끼가 기다란 귀를 잡고서 끙끙대며 진솔이를 찾아왔어요. “귓속이 가려워서 면봉으로 후볐더니 너무 아파.” 진솔이는 토끼의 귓속을 살펴보았어요. “쯧쯧, 귓속이 가렵다고 심하게 파내면 안 돼. 귀지는 쌓이면 저절로 귀 밖으로 나오거든.” 미미는 귀에 물이 들어간 코끼리에게 말했어요. “귀에 물이 들어가면 고개를 기울여 쿵쿵 뛰어 봐. 그래도 안 되면, 귀를 바닥에 대고 누워 있으면 돼.” 미미는 음악을 듣는 강아지에게도 말했어요. “너무 큰 소리로 음악을 들으면 귀가 아프고,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돼.” 긁적긁적, 가려워요! 온몸이 가려운 공룡이 미미를 찾아왔어요. “수두가 나서 몸이 가려웠던 거야. 긁으면 흉터로 남으니까 손발톱을 깎자. 또 수두는 옮으니까 나을 때까지 집에서 쉬어야 해.” 동물 친구들도 가려움증이 생겼어요. 사자는 머리가 가렵다고 긁적긁적. 돼지는 땀띠가 오돌토돌 났다고 북북. 원숭이는 벌레에 물렸다고 벅벅. “모두 씻지 않아서 그래. 따라와!” 진솔이는 동물 친구들을 데리고 목욕탕으로 갔어요. 깨끗하게 씻어요! 보글보글 거품 속으로 풍덩! “가렵지 않고 건강하려면 항상 몸을 깨끗이 씻어야 해!” 진솔이는 목욕하는 동물 친구들에게 흥얼흥얼 노래를 불러 주었어요. “깨끗하면 감기에 걸리지 않아. 깨끗하면 가렵지도 않아. 몸을 깨끗이 씻자. 깨끗하면 건강해져! 옷도 깨끗이, 몸도 깨끗이.” 모두 함께 뛰놀아요! 진솔이는 동물 친구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어요. “야호, 눈사람을 만들자! 몸을 움직이며 신나게 뛰어놀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져.” 모두 따로 사용해요! 진솔이는 동물 친구들과 함께 케이크를 나눠 먹었어요. “잠깐!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컵, 숟가락, 포크, 젓가락, 빗은 따로 사용해야 해. 그래야 병균이 옮지 않아 모두 건강할 수 있어.” 병원에 가요! “진솔아, 병원 가자!”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진솔이는 잠을 깼어요. 오늘은 진솔이가 정기 검진을 받는 날이에요. ‘나도 병원에 간다고? 그동안 나도 건강하게 생활했나? 몸은 깨끗이 씻고, 옷도 깨끗이 입었나? 골고루 먹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나?’ 진솔이는 꿈속의 일을 떠올리며 이것저것 생각했어요. 진솔이는 병원에 가려고 집을 나서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어요. 병원에 가기 전에 뽀글뽀글 목욕을 해요. 치카치카 양치질을 해요. 뽀득뽀득 손을 씻어요. 몸 이곳저곳을 검사해요! 키가 부쩍 자랐어요. 36.5도 열이 없어요. 입 속이 깨끗해요. 시력이 좋아요. 심장이 튼튼해요. 충치가 없어요. 배탈, 설사도 없어요. 다리도 건강해요. “자, 이제 손을 좀 보자.” 의사 선생님은 진솔이의 손을 자세히 살펴보았어요. “손에는 세균들이 많단다.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면, 대소변을 본 후, 음식을 먹기 전에는 비누칠해서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해.” 진솔이는 “예!” 하고 대답했어요. 아얏! 미리미리, 예방 주사를 맞아요! 간호사 선생님이 주사기를 들고 왔어요. “으앙, 주사는 싫어요.” 진솔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어항 안의 흰동가리와 말미잘을 보렴. 흰동가리는 한 번 말미잘 독에 쏘이면 다음에 또 쏘여도 끄떡없단다. 우리도 미리 예방 주사를 맞아야 병을 이겨 낼 수 있어.” 진솔이는 눈을 질끈 감았어요. "아픈 건 잠깐이니 꾹 참자!" 예방 주사 미리미리! 일찍 자야 키가 쑥쑥 자라요! 진솔이가 잠자리에 들자, 별님과 달님이 자장가를 불러요. “새근새근 자는 동안 좋은 음식이 몸으로 쏙쏙, 좋은 공기가 몸으로 쏙쏙, 키도 쑥쑥, 몸도 튼튼. 새근새근 예쁜 꿈을 꾸어요.”
응급 상황! 119번을 눌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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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작은 오두막집에, 엄마 양과 일곱 마리 아기 양이 살았어요. 하루는 엄마 양이 급히 할머니 집에 가야 했어요. “할머니께서 아프시다는구나. 얼른 다녀올 테니 너희는 집을 보고 있거라.” 그러고는 구급상자를 아기 양에게 건넸어요. 엄마 양은 아기 양들에게 단단히 일렀어요. 다치거나 아프면 119번으로 전화를 하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 줄 거야. 구급상자에 우선 필요한 것이 있단다. 참, 늑대는 절대 집 안에 들어오게 하지 말거라! 그리고 종종걸음으로 할머니 집으로 갔지요. “와, 구급상자가 보물 상자 같아!” 아기 양들은 구급상자의 물건을 살펴보았어요. 집에 남은 아기 양들은 심심했어요. 무슨 놀이를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베개 싸움을 시작했어요. 베개를 툭툭 부딪칠 때마다 깃털과 먼지가 폴폴 새어 나왔어요. 깃털과 먼지가 아기 양들의 눈과 코로 들어갔어요. “아야, 눈과 코가 아파. 도와줘요, 119!” 눈과 코에 먼지가 들어갔어요. 눈에 먼지가 들어가면 눈물을 흘려야 해요. 아프다고 손으로 눈을 비비지 마세요. 코에 먼지가 들어가면 다른 쪽 콧구멍을 막고 ‘킁’ 하세요. 똑똑똑! 누가 찾아왔나 봐요. 문밖에 늑대가 서 있었어요. 화들짝 놀란 아기 양들은 딸꾹질을 했어요. “늑대가 못 들어오게 문을 막자!” 아기 양들은 문 앞으로 나무 의자와 탁자를 옮겼어요. 그러다가 “아야!” 나무 의자에 삐죽 나온 가시가 손에 박혔어요. 아기 양은 아파서 울어 댔어요. “아파요, 아파! 도와줘요, 119!” “창문도 꼭꼭 닫아야 해!” 아기 양들은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어요. 그러다가 창문 사이에 손이 끼이고 말았지요. “아야, 아파. 도와줘요, 119!” 손이 문에 끼였어요. 손을 천천히 뺀 다음 움직여 보세요. 손과 손가락이 자유롭게 움직여진다면 괜찮아요. 손이 계속 아프다면, 뼈가 다쳤을 수도 있어요. 딱딱한 것을 아픈 손에 대고 붕대를 감아 고정 한 후 병원으로 가세요. 아기 양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았어요. “집 안에 가만히 있으면 괜찮을 거야.”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웅크렸던 팔과 다리가 찌릿찌릿, 찌릿찌릿 저려 왔어요. “아아, 발이 저려요. 도와줘요, 119!” 편하게 앉아 마사지해요. 저린 부위를 따뜻하게 해 주고 부드럽게 주무르면 금세 좋아질 거예요. 물놀이를 하다가 쥐가 나면 물 밖으로 나와요. 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양손으로 발끝을 당기며 마사지해요. “앗, 따가워!” 비명 소리에 아기 양들이 창밖으로 내다봤더니, 늑대가 벌에 쏘여 버둥대고 있었어요. “굉장히 따가울 텐데, 어쩌지?” “119번으로 전화해 보자!” 마음씨 착한 아기 양들은 서둘러 119번으로 전화를 걸었어요. 벌에 쏘였어요. 먼저 벌에 쏘인 곳을 살펴서 벌침을 찾아요. 신용 카드처럼 얇고 빳빳한 물건으로 긁어서 벌침을 빼내요. 얼음주머니를 대고 있으면 부기가 가라앉아요. 그래도 많이 부풀어 오르면 병원으로 가세요. “도와준 건 고맙지만, 난 너무 배가 고파. 오늘은 꼭 너희들을 잡아먹고 말 거야.” 그런데 그만 늑대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어요. 늑대는 아파서 큰 소리로 울부짖었어요. 119, 119번에 전화를 걸어 줘, 제발! 아기 양들은 119번으로 전화를 걸었어요. “코, 코, 코피다! 늑대 살려, 늑대 살려!” 이번에도 아기 양들이 늑대를 도와주었어요. 코피가 나요. 당황하지 말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요. 고개를 살짝 앞으로 숙여요. 코피가 목으로 넘어가면 불쾌할 수도 있어요.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코를 지그시 눌러 주세요. 10분 이상 코피가 멈추지 않으면, 병원으로 가세요. 그래도 배고픈 늑대의 머릿속은 온통 아기 양들을 잡아먹을 생각뿐이었어요. “옳지! 굴뚝을 타고 오두막집 안으로 들어가야지!” 늑대가 굴뚝을 만지는 순간, “앗, 뜨거워! 손을 데었어.” 아기 양들은 또 119번으로 전화를 걸었어요. 뜨거운 것에 데었어요. 열을 식혀야 하니까 차가운 수돗물에 상처를 대고 있어요. 상처를 소독하고, 깨끗한 붕대로 감아 줘요. 상처가 부풀거나 물집이 생기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요. “열린 창문이 있을지도 몰라.” 늑대는 오두막집을 꼼꼼히 살펴봤어요. “흐흐, 다락방 창문이 열렸구나.” 늑대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어요. 그러다가 그만 쿵! 떨어졌어요. 깜짝 놀란 아기 양들이 119번으로 전화를 걸었어요. 잠시 후 구급차 두 대가 왔어요. 하마 구급 대원 아저씨는 아기 양들이 걱정되었어요. “너희끼리 있는 건 위험할 것 같구나. 할머니 집에 데려다줄 테니 타거라.” 늑대를 실은 구급차는 삐뽀삐뽀 병원으로 가고, 아기 양들을 실은 구급차는 덜컹덜컹 할머니 집으로 갔지요. 아기 양들은 어질어질, 차멀미가 났어요. “웩, 도와줘요, 119!” 멀미가 나요. 창문을 열고 시원한 공기를 마셔요. 벨트나 단추를 풀어 몸을 편안히 해요. 참을 수 없다면 토해도 괜찮아요. 아기 양들이 할머니 집에 도착했어요.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거니?” 엄마 양이 깜짝 놀라 달려 나왔어요. 아기 양들은 늑대 이야기를 말했어요. “저런, 큰일 날 뻔했구나.” 엄마 양은 늑대를 도와준 아기 양들을 칭찬했어요.
장난감이랑 약속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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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새로 문을 연 장난감 가게에 가 볼까? 여기 초대장도 있어. 호랑이 아저씨가 언제든 놀러 오래.” “좋아, 좋아. 어서 가 보자.” 여우의 말에 토끼가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어요. 곰이랑 돼지, 다람쥐도 고개를 끄덕였지요. 그러고는 언덕 너머에 있는 장난감 가게로 뛰어갔어요. “안녕하세요, 호랑이 아저씨!” 모두 큰 소리로 아저씨에게 인사했어요. “오호, 어서 오너라.” 호랑이 아저씨는 동물 친구들을 반갑게 맞아 주었어요. 장난감을 본 동물 친구들의 눈이 휘둥그레지자, 호랑이 아저씨가 싱긋 웃으며 말했어요. “이곳에 있는 장난감은 마음껏 가지고 놀아도 된단다.” 욕심쟁이 곰은 장난감을 잔뜩 꺼내 놓고 가지고 놀 장난감을 골랐어요. 하지만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고르지 못했어요. 이건 너무 커. 이건 너무 작아. 이건 색깔이 마음에 안 들어. 이건 너무 복잡해. 이건 재미없어. “으흠.” 호랑이 아저씨가 화난 얼굴로 다가와 말했어요. “장난감을 이렇게 늘어놓아도 될까?” 호랑이 아저씨의 말에 곰은 눈만 껌벅였어요. “친구들 좀 보렴.” 곰은 친구들을 살펴보았어요. 여기저기 어질러 놓은 장난감 때문에 친구들은 기우뚱기우뚱하며 넘어졌어요. “장난감은 하나씩 꺼내서 놀아야지. 그리고 다 가지고 논 장난감은 제자리에 정리해야 해. 늘어놓은 장난감 때문에 다칠 수도 있단다.” 곰은 머리를 긁적이며 장난감을 정리했어요. 곰이 장난감을 정리하는 동안 돼지는 소꿉놀이하고 있었어요. “이거 맛있게 생겼다.” 돼지는 장난감 포도를 입에 넣었지요. “에이, 맛없어. 퉤퉤퉤.” 돼지는 장난감 포도를 뱉고, 이번에는 장난감 자동차의 문을 입에 넣었어요. “아야!” 돼지는 장난감 자동차의 모서리에 그만 입을 다쳤어요. 먹으면 안 돼! 돼지의 비명에 호랑이 아저씨가 달려왔어요. “장난감은 가지고 노는 거지, 먹는 게 아니야.” 호랑이 아저씨는 돼지의 입 속을 살폈어요. 다행히 살짝 긁히기만 했을 뿐 많이 다치지는 않았지요. “다행이구나. 삼키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절대로 장난감을 입에 넣으면 안 돼. 알았지?” 돼지는 호랑이 아저씨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주의하세요! 장난감을 함부로 입에 넣지 마세요! 인형 털을 빨거나 잡아당기지 마세요. 공 같은 건 절대 입에 넣지 마세요. 플라스틱 장난감을 빨면 안 돼요. 장난감 액세서리도 함부로 입에 넣지 마세요. 작은 블록을 입에 넣으면 위험해요. 장난감을 안전하게 청소, 관리하는 방법. 아무리 안전한 장난감이라도 자주 살펴봐야 해요. 장난감을 만든 재료에 따라 알맞은 관리와 청소로 안전하고 깨끗하게 가지고 놀도록 해 주세요. 고무나 비닐 장난감. 고무나 비닐로 만든 장난감은 유아가 가지고 노는 경우가 많으므로 최소한 주 2회마다 유아용 세제를 스펀지에 묻혀 닦은 뒤,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요. 블록 장난감. 블록 장난감은 먼저 미지근한 물에 30분 정도 담가 두어요. 그런 다음 블록 틈새를 면봉으로 닦고, 세제를 칫솔에 묻혀 먼지와 얼룩을 닦아 내요. 나무 장난감. 나무로 만든 장난감은 얼룩이 많이 묻지 않았다면 물기를 꼭 짠 천으로 닦아 줘요. 하지만 얼룩이 많이 묻었다면 스펀지에 유아용 세제를 묻혀 닦은 뒤 그늘에서 말려요. 천 장난감. 천으로 만든 장난감은 먼지가 많이 붙으므로 먼저 셀로판테이프로 먼지를 없애요. 그런 다음 유아용 세제를 물에 풀어 거품을 내요. 그리고 장난감을 10분 정도 담갔다 깨끗이 헹궈서 햇볕에 말려요. 털이 있는 장난감. 털이 많은 장난감은 작은 솔로 자주 먼지를 털고, 햇볕에 말려요. 물로 세탁할 때는 유아용 세제를 푼 미지근한 물에서 주무르듯 때를 빼고, 세탁기에 넣을 때는 세탁 망에 넣어 주세요. 금속 장난감. 장난감 총이나 칼, 미니카와 같은 금속 장난감에 물수건을 사용하면 녹이 슬어요. 그러므로 마른 수건과 면봉으로 먼지만 없애 주는 것이 좋아요. 플라스틱 장난감. 큰 미끄럼틀이나 그네는 젖은 수건이나 알코올로 자주 닦아 주세요. 하지만 크기가 작거나 장치가 많은 장난감은 유아용 세제를 묻힌 수 건으로 닦아 주세요. 그리고 수건으로 닦아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려요. “야호, 재미있겠다.” 토끼와 곰이 알록달록 긴 줄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놀았어요. 그때였어요. “그만!” 호랑이 아저씨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어요. 깜짝 놀란 토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랑이 아저씨를 바라봤지요. “줄로 몸을 칭칭 감으면 위험해. 그리고 줄이 발에 걸리면 중심을 잡지 못해 넘어질 수도 있어.” 호랑이 아저씨는 곰을 일으켜 주었어요. “줄넘기 줄이나 고무줄도 마찬가지야. 장난감이 모두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단다.” 토끼는 호랑이 아저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장난감의 안전 표시 읽는 방법. 국내에서 만든 제품을 대상으로 생활용품 실험 연구원에서 발행하는 품질 보증 마크예요. 한국의 KS, 일본의 JS처럼 유럽 연합의 표준 규정을 준수한 제품에 붙이는 마크예요. 유럽에서 수입된 장난감에 붙여요. 안전, 보건, 환경, 품질 등 분야별 인증 마크를 국가적으로 통합한 국가 통합 인증 마크예요. 국민의 안전을 위해 법으로 정한 제품을 판매하려면 제품에 이 마크를 표시해야 해요. 장난감 소재도 살펴 주세요. 플라스틱, 얇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제품은 아닌지 살펴봐요. 이어진 부분의 마무리나 색이 쉽게 벗겨지지 않는지, 독성이 없는지 확인해요. 나무, 나뭇결이 긁히는 느낌이 없는지 손으로 문질러 보고, 색이 벗겨지지 않는지, 모서리 부분이 부드러운지 확인해요. 종이, 쉽게 찢어지지 않는지, 약하지 않은지 확인해요. 천, 물거나, 입에 넣고 빨았을 때 보풀이 빠지지 않는지 확인해요. 이음새 부분에 바느질이 꼼꼼한지도 확인해요. 금속, 베거나 찔릴 위험이 있는 날카로운 부분은 없는지 살펴요. 삼키거나 입에 넣으면 위험하다는 내용의 안전 표시가 있는지 확인해요. 호랑이 아저씨는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펴보았어요. 아까부터 다람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거든요. 아저씨는 붕붕 차 뒤와 미끄럼틀 아래도 찾아보았지만, 다람쥐의 몸집이 작아서 쉽게 찾을 수 없었지요. 다행히 다람쥐는 장난감 집 안에서 놀고 있었어요. 그때 갑자기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들렸어요. 다람쥐가 음악이 나오는 장난감들을 한꺼번에 켜 두었기 때문이에요. “다람쥐야! 너무 시끄럽지 않니?” 호랑이 아저씨가 타이르듯 말했어요. “너무 큰 소리는 귀를 아프게 할 수 있어.” 아저씨 말에 다람쥐는 시무룩해져서 소리를 줄였어요. “이 소리 나는 장난감은 밖에서 가지고 놀자. 알았지?” 다람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난감 집을 나왔어요. 장난감 소리를 확인해요! 소리가 나는 장난감을 귀 가까이에 대지 마세요. 장난감 소리를 크게 켜 두지 마세요. 장난감 소리가 크게 나는지 확인해요. “다람쥐야, 어디 있었어? 찾았잖아. 우리 같이 놀자.” 토끼가 다람쥐를 잡아끌었어요. 동물 친구들은 다 같이 장난감 기차를 탔어요.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가 달려요.”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가 섰어요.”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가 굴에 들어가요.” 신이 난 동물 친구들은 노래를 불렀어요.
뽀꾸랑 안전 탐정놀이 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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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이는 엄마에게 화가 잔뜩 났어요. “엄마는 뭐든 위험하다고 해. 나는 도대체 어디서 뭘 하며 놀아?” “안전한 곳에서 놀면 되지!” 방에는 삼촌이 맡긴 강아지 뽀꾸뿐인데 도대체 누가 말을 하는 걸까요? “멍멍! 나야, 뽀꾸.” 강아지가 말하다니 서현이는 너무나 신기했어요. “멍멍, 너희 사촌 오빠들도 놀 데가 없다고 투덜거렸어. 그래서 우리는 안전 탐정 놀이를 했어.” “안전 탐정 놀이가 뭐야? ” “무엇이 위험한지, 어디가 안전한지 찾는 놀이.” “정말 재미있겠다. 나도 할래, 나도!” 서현이의 말에 뽀꾸도 신이 나 꼬리를 흔들었어요. “멍멍, 안전 탐정 뽀꾸와 서현이, 출동!” “출동!” 서현이도 덩달아 신이 나 큰 소리로 외쳤지요. "위험해요, 침대 위에서 뛰어내리면 안 돼요!" “어린이들이 안전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은 집 안이야. 그중에서도 방과 거실에서 제일 사고가 잦지!” 뽀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요. “침대나 소파에서 뛰다 떨어지면 뼈가 부러질 수 있어. 그리고 뛰어다니다 가구 모서리에 부딪히면 멍이 들거나 상처가 날 수도 있어.” 뽀꾸의 말에 서현이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우리 컵라면 끓여 먹을까?” 서현이는 주전자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았어요. “부엌에서 불을 쓸 때는 제일 먼저 엄마한테 허락받아야 해.” 뽀꾸는 요리 기구를 안전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어요. 부엌에 있는 뜨거운 요리 기구를 만지면 피부가 붉게 변하고 심하면 커다란 물집이 생겨요. 이게 바로 ‘화상’이에요. 전자레인지는 혼자 사용하지 마세요. 쿠킹 포일이나 금속 그릇을 넣으면 번쩍! 불꽃이 생기거나 폭발할 수도 있어요. "뜨거운 물이 나올 때는 수도꼭지를 만지지 않도록 해요." 목욕실로 서현이를 찾으러 간 뽀꾸는 깜짝 놀랐어요. 서현이가 욕조에 비누를 풀어 놓고 놀고 있었거든요. “서현아, 목욕실에서 그렇게 놀면 위험해!” 비누에서 향긋한 냄새가 난다고 먹으면 안 돼요. 비누나 샴푸 거품이 입에 들어가면 빨리 물로 헹궈야 해요. 목욕실 바닥은 물기와 비눗기가 있어서 미끄러워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물을 채운 욕조에서 놀고 싶을 때는 반드시 어른과 함께 있어야 해요. 뽀꾸는 서현이에게 세제와 같은 약품이 얼마나 위험한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어요. 살충제를 뿌릴 때는 어른의 도움을 받고 살충제를 뿌린 곳에 가까이 가서는 안 돼요. 세균이나 얼룩을 없애는 세제는 피부나 눈에 닿으면 불에 덴 것처럼 뜨겁고 아파요. 조심, 또 조심해요! 어떤 맛인지 궁금하다고 아무 약이나 먹으면 안 돼요. 모르고 약을 먹었다면 즉시 어른에게 말해야 해요. “휴, 위험한 것들을 열심히 찾아봤더니 덥다. 선풍기 켤게.” 서현이는 아직 땀이 마르지 않은 손으로 전기 플러그를 만지려고 했어요. “잠깐, 서현아! 젖은 손으로 전기 제품을 만지면 위험해! 또 호기심으로 콘센트에 젓가락을 넣어도 안 돼.” “뽀꾸야, 그럼 우리 전기 제품을 만지기 전에 조심해야 할 것을 알아보자.” 물과 땀이 묻은 손으로 전기 플러그를 만지면 전기가 통해 찌릿찌릿 몸이 감전될 수 있어요. 또 콘센트에 젓가락을 넣으면 정말 위험해요. 지하철이나 전봇대의 전선 쇠막대나 알루미늄 풍선이 닿으면 감전의 위험이 있으니 조심하세요. 어린이 안전 신문 “선풍기 대신에 창문을 열고 베란다에서 놀까?” 서현이가 베란다 쪽을 가리켰어요. “베란다는 안전한 놀이 장소가 아니야.” 뽀꾸는 신문을 펼쳐 서현이에게 보여 주었어요. 베란다 안전사고 주의! 아이들이 창밖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늘어나고 있어요. 창문에는 잠금장치를 설치해야 하고, 창에 기대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안전 창살의 머리 끼는 사고 조심! 창살에 머리가 빠져나가면 몸도 같이 빠질 수 있으므로 사고에 주의하세요. 커튼 끈도 사고의 원인! 커튼 끈이 목에 감겨 숨을 쉴 수 없게 되거나, 커튼 끈에 걸려 넘어지면 멍이 들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해요. “서현아, 이제 집 밖의 안전을 살펴볼까?” “그러면 밖으로 나갈 때 이용하는 계단과 엘리베이터부터 살펴보자!” 뽀꾸의 말에 서현이는 신이 나 대답했어요. 계단을 살펴본 서현이와 뽀꾸는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서현아, 엘리베이터 문에 기대면 문이 열리면서 떨어지는 사고가 자주 일어난대. 참, 엘리베이터에서는 쿵쿵 뛰어서도 안 돼.” 안전한 계단 이용 방법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손잡이를 잡고, 앞에 가는 사람과 거리를 두고 걸어요. 안전한 엘리베이터 이용 방법 문이 닫힐 때 손이나 팔을 넣지 마세요. 만약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문이 열리지 않으면 ‘호출’ 버튼을 눌러 도움을 청하세요. 안전한 에스컬레이터 이용 방법 타기 전에 신발 끈이 풀렸는지, 머플러가 길지 않은지 확인해요. 계단에 앉거나 장난치지 않고 구석에 손을 넣지 않도록 해요. “서현아, 주차장이나 찻길에서 놀아 본 적 있니?” 뽀꾸가 서현이에게 물었어요. “응,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차들이 많아서 위험한 것 같아.” 서현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어요. 주차장은 차들이 많아서 안전하지 않아요. 특히 큰 트럭 뒤는 운전자가 볼 수 없어서 차가 뒤로 움직일 때 큰 사고를 당할 수 있어요. 지하 주차장은 어두워서 운전자가 차 사이에 있는 아이들을 발견하기 어려워요. “아하, 안전한 놀이 장소가 생각났어. 바로 놀이터야!” 서현이가 무릎을 '탁' 쳤어요. “맞아. 몇 가지만 조심한다면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어!” 서현이와 뽀꾸는 놀이터로 달려갔어요. 미끄럼틀을 타기 전에는 신발 끈을 단단히 묶어 발에 걸리지 않게 해요. 손잡이를 잡고 오르며 내려갈 때는 아래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해요. 시소를 탈 때는 반드시 친구와 마주 보고 앉아요. 손잡이를 잡고 타며 일어서지 않도록 해요. 내릴 때는 같이 탄 친구에게 미리 알려요. 그네를 탈 때는 떨어지지 않도록 줄을 꼭 잡아요. 그네가 멈추지 않았는데 앞이나 뒤로 달려가면 그네에 부딪힐 수 있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모래밭도 있네.” 서현이는 아주 높고 멋진 모래성을 쌓았어요. 정글짐에서 놀 때는 장난치거나 한 손으로 매달리지 않아요. 정글짐에 손이 닿지 않는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도움을 받으세요. 빠르게 도는 놀이 기구를 탈 때는 반드시 놀이 기구가 멈춘 다음 손잡이를 잡고 타세요. 모래밭에서 놀 때는 눈이나 입에 모래가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요. 놀고 난 뒤에는 꼭 손을 씻어요. “햇볕에서 오래 놀았더니 머리가 어질어질해. 더운 여름에는 어떻게 놀지?” 서현이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여름의 햇볕에 나가 놀 때는 물을 자주 마시고 그늘에서 쉬어야 해. 그러지 않으면 ‘일사병’에 걸릴 수 있어.” “뽀꾸야, 햇볕이 따가운 곳에서 놀 때는 어떻게 해야 해?” “그럴 때는 어린이 전용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모자를 쓰는 것이 안전해.” “뽀꾸야, 고마워. 넌 최고의 안전 탐정이야. 쿨쿨.” “김서현, 뽀꾸가 탐정이라고?” 엄마가 웃으며 서현이를 깨웠어요. 서현이가 벌떡 일어나 보니, 뽀꾸는 바닥에 누워 자고 있었어요. 꿈이었지만 서현이는 기분이 좋았어요. 이제 어디서든 안전하게 놀 수 있을 테니까요. “뽀꾸야, 고마워!”
동물들아, 나랑 같이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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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준이는 내일 동물 병원 수의사이신 할아버지 집에 가요. 할아버지 집에는 동물들이 아주 많아요. 준이는 벌써 걱정이 앞서요. “난 동물들이 무서운데 어떻게 하지?” “으악! 살려 주세요!” 그날 밤 준이는 무서운 꿈을 꾸었어요. “으악, 개가 으르렁거려요. 고양이가 쫓아와요. 누가 나 좀 살려 주세요!” 할아버지 집에 도착하자, 준이는 동물들을 요리조리 피해 다녔어요. “준이가 이제 보니 겁쟁이구나? 동물들을 무서워하면 저 초록 나무집에서 놀 수 없는데.” 할아버지가 느티나무 위에 만든 집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우아, 멋지다!” 할아버지가 만든 집은 요새같이 멋졌어요. “저 집에는 동물 친구들이 많이 놀러 온단다.” 준이는 기운이 쭉 빠졌어요. 준이는 초록 나무집에 가 보고 싶었지만, 여전히 동물들이 무서웠거든요. 할아버지가 준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어요. “동물들과 친해지는 방법이 있는데 알려 줄까?” “네, 알려 주세요.” “동물들을 이해하고 조심하면 된단다.” “그래도 무서워요.” “으르렁거리는 개는 무서워요.” 준이가 할아버지 뒤로 숨으며 말했어요. “개들이 저렇게 으르렁거리면 가까이 오지 말라는 뜻이란다.” 그때 준이가 그만 옆에 있던 개의 밥그릇을 건드렸어요. “할아버지, 이 개는 왜 밥을 먹다가 짖어요?” “개들은 밥을 먹을 때 건드리면 자기 밥을 빼앗아 가는 줄 알고 짖는단다.” “준이야, 개들은 묶여 있어도 조심해야 해.” 할아버지 말에 준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어요. “묶여 있는데 왜 조심해야 해요?” “혹시 끈이 풀리면 사람을 물 수가 있으니까 조심해야 해.” “할아버지, 이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자꾸 따라와요.” 준이가 강아지를 쓰다듬었어요. “그 강아지가 준이랑 친구가 되고 싶은가 보구나.” “정말요? 아유, 귀여워.” 준이가 이번에는 작은 개집 안에 있는 강아지를 가리켰어요. “할아버지, 저 강아지가 아까부터 낑낑거리며 우는 것 같아요.” “밖에 나가고 싶거나 아프다는 뜻이란다. 지금은 집이 답답해서 나가고 싶은 것 같구나.” “할아버지, 제가 꺼내 줄게요.” 준이가 강아지를 꺼내 주자 강아지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어요. 할아버지가 깃털이 달린 막대를 흔들자, 고양이가 장난을 쳤어요. “고양이는 호기심이 많아서 장난감을 좋아한단다. 하지만 발톱이 날카로우니까 조심해야 해.” “할아버지, 저도 해 볼래요. 고양이 점프, 얏!” 준이는 고양이와 친구가 되어 재미있게 놀았어요. “할아버지, 고양이를 한번 안아 볼래요.” 할아버지가 준이에게 고양이를 살며시 안겨 주었어요. “아, 너무 따뜻하고 부드러워요.” “할아버지, 토끼도 안아 봐도 돼요?” “토끼는 이렇게 몸에 발이 모두 달라붙어야 안심한단다.” 준이는 기다란 귀를 쫑긋거리는 토끼가 무척 귀여웠어요. 토끼장 옆 돼지우리에서는 새끼 돼지들이 오물오물 먹이를 먹고 있었어요. “할아버지, 돼지 한번 만져 봐도 돼요?” 준이의 말에 할아버지가 껄껄껄 웃으셨어요. “동물들이 무섭다고 꽁무니를 빼더니 그새 좋아졌구나!” 오리들이 꽥꽥거리며 돼지우리 옆을 지나갔어요. 준이가 다가가자, 오리들은 뒤뚱거리며 물가로 갔어요. 농장 앞 들판에는 온갖 동물들이 가득했어요. 준이가 청개구리를 발견했어요. “청개구리야 어디 가? 나랑 친구 하자!” 준이는 신이 나서 바람개비처럼 팔랑거렸어요. “할아버지, 개미들이 줄지어 가고 있어요!” 준이는 동물들이 신기하고 새롭게 보였어요. “개미들이 신기한가 보구나? 사람을 무는 개미도 있으니까 조심해야 한단다.” 할아버지는 조심해야 할 것들을 설명하셨어요. “이건 노랑쐐기나방이란다. 독이 있으니까 절대 만지면 안 돼. 사마귀나 거미, 지네도 마찬가지란다.” 그때 거미 한 마리가 줄을 타고 내려왔어요. 준이는 할아버지가 일러 준 대로 살짝 피했어요. “준이야, 들판에는 벌과 모기도 많단다.” “할아버지, 벌이 쫓아오면 어떻게 해요?” “벌이 쫓아온다고 손이나 팔을 저으면 오히려 쏘일 수 있어. 그럴 때는 몸을 숙이거나 천천히 다른 곳으로 피하는 게 좋아. 그리고 모기를 조심하는 것도 잊지 말거라.” 다음 날 할아버지는 준이를 뒷산으로 데려갔어요. 준이는 긴팔에 긴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었어요. “할아버지, 산에 갈 때는 이렇게 하고 가야 해요?” “그럼, 불편해도 그렇게 입어야 안전하단다.” “산은 이런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을 더 조심해야 해.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면 위험하단다.” 산을 오르며 할아버지가 말했어요. “저렇게 길이 없는 곳은 위험하니까 들어가지 말고.” 산길을 걷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발소리를 크게 냈어요. “할아버지, 왜 그런 소리를 내요?” “큰 소리를 내며 걸으면 뱀들이 도망을 간단다. 산에서는 뱀을 항상 조심해야 해.” “앗, 이게 뭐예요?” 발밑을 본 준이가 깜짝 놀랐어요. “멧돼지 똥이란다. 동물의 똥에는 병균이 많으니까, 옷에 묻히거나 밟지 않도록 조심해. 알았지?” 풀숲 사이로 버섯들이 보였어요. “독버섯은 빛깔이 곱단다. 예쁘다고 만지거나 먹으면 안 된단다.” “알았어요. 꼭 조심할게요.” 산에서 내려오자, 할아버지가 옷을 탁탁 털어 내셨어요. 준이도 할아버지를 따라 먼지를 탁탁 털어 냈어요. 준이는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었어요. “준이야, 야외 활동을 한 다음에는 손을 꼭 씻어야 한단다.” “네, 알겠어요.” 준이는 이제 할아버지 집에 가는 것을 제일 좋아해요. 할아버지 집에는 초록 나무집과 동물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초록 나무집에서 준이의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요. “동물들아, 초록 나무집으로 놀러 와!”
눈 속에 핀 효심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맹종이 태어났을 때 중국은 아주 혼란스러웠어요. 한나라 황실이 점점 망해 가면서 새로운 나라들이 하나둘 세워지고 있었어요. 전쟁도 심해 백성들은 갈수록 살기가 힘들었어요. 전쟁터에 병사로 끌려가 죽는 사람도 많았고, 굶어서 죽는 사람도 많았어요. 중국 각 지역의 권력자들은 작은 나라를 세워 전쟁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어떤 나라는 세력을 키워 큰 나라로 발전하기도 했지요. 새로 세워진 나라 중에서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가 가장 크고 힘도 강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시기를 삼국시대라고 불렀어요. 맹종이 태어난 곳은 오나라의 강하라는 곳이었어요. 강하 쌍봉산 아래 아름다운 마을이 바로 맹종의 고향이에요. 맹종의 가족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과 남동생까지 모두 다섯 식구였어요. 원래 맹종의 선조들은 꽤 부자였어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집안이 어려워져 맹종 가족은 줄곧 가난하게 살았어요. 아버지는 농사를 짓고 어머니는 베를 짜며 일 년 내내 뼈 빠지게 일했어요. 그러나 다섯 식구의 입에 풀칠하기도 힘이 들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큰일이 생겼어요. 하늘처럼 믿고 따르던 아버지가 어머니와 어린 자식들을 남겨 두고 일찍 세상을 떠나 버리고 만 거예요. 어머니와 어린 자식들은 목 놓아 울며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했어요. 그날 이후로 맹종의 어머니는 혼자 일을 하여 자식 셋을 키우게 되었어요. 생활은 훨씬 더 힘들어졌고 굶는 날도 많았어요. 맹종의 어머니는 홀로 자식들을 돌보느라 잠시도 쉬지 못하고 일을 했어요. 집에서는 밥하고 빨래하고 베를 짰고, 집안일이 끝나면 논과 밭으로 나가 허리가 휘도록 일했어요. 어찌나 힘들게 일했는지 어머니의 머리는 금세 하얗게 세고 말았어요. 어린 맹종은 하얘진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보고 가슴속으로 눈물을 흘렸어요. 늘 혼자 일하는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 보였어요. ‘내가 조금씩이라도 도와 드리자.’ 겨우 일곱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였지만 맹종은 그날부터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청소나 심부름 같은 쉬운 일부터 하나씩 해 나가다가 나중에는 곡식을 베고 장작을 패는 힘든 일도 척척 해냈어요. 그런 맹종을 보고 어머니는 참으로 기특하게 생각했어요. 맹종의 어머니는 집안일을 돕는 아들이 대견했지만 그렇다고 계속 일을 시키지는 않았어요. 어머니는 맹종이 시골 마을에서 한낱 일꾼으로 자라는 것을 바라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맹종이 남들 못지않게 학문을 닦아 장차 큰 인물이 되기를 원했어요. 하루는 어머니가 맹종을 불러 이렇게 말했어요. 사람이 책을 읽지 않으면 세상의 이치를 알 수 없단다. 대장부가 되어 세상의 이치를 모른다면 그것은 개돼지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어찌 훗날 나라와 백성을 위해 큰일을 할 수 있겠느냐. 맹종은 어머니 말씀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얼마 후, 어머니는 맹종을 유명한 학자인 이숙에게 보내 글을 배우게 했어요. 집을 떠나는 날 어머니는 맹종에게 몇 번이나 당부했어요. “열심히 공부하여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알겠느냐?” 맹종은 어머니와 어린 두 동생을 두고 혼자 공부하러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결국 어머니의 뜻에 따르기로 했어요. “어머니, 열심히 공부할 테니 걱정 마시고 몸 건강히 잘 지내세요.” 맹종은 그렇게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비로소 길을 떠났어요. 대문을 나선 맹종은 저만치 가서 돌아보고 또 저만치 가서 돌아보았어요. 어머니와 어린 두 동생이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어요. 맹종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을 떠나는 것이라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어머니 곁을 떠나면 살 수 없을 것만 같았지만 맹종은 이를 악물고 꾹 참았어요. 이 정도도 못 참으면 어떻게 큰일을 할 수 있겠냐고 자기 마음을 다그쳤어요. 그 후로 맹종은 스승의 집에 살면서 학문에 몰두했어요. 낮이나 밤이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어요. 하지만 맹종의 마음속에는 늘 어머니 생각뿐이었어요. 어머니가 자신을 공부시키려고 혼자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면 잠도 편히 잘 수 없었어요. 그래서 맹종은 때때로 스승께 허락을 받고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를 도와드리고 왔어요. 또한 맹종은 친구들 일이면 무엇이든 잘 도와주어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어요.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글도 가르쳐 주고, 생활이 어려운 친구들이 있으면 앞장서서 도와주기도 했어요. 점점 세월이 흘러 맹종은 학문도 깊어지고, 몸과 마음도 든든한 훌륭한 청년으로 자라났어요. 하루는 그런 맹종을 보고 스승 이숙이 이렇게 칭찬했어요. “허허, 참으로 재상이 될 만한 큰 그릇이로다!” 스승의 말에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도 다들 맹종을 부러워했어요. 맹종이 열여섯 살 되던 해 겨울은 매우 추웠어요. 눈까지 펑펑 내려 온 세상이 하얀 눈꽃으로 뒤덮였지요. 이 무렵 맹종은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추운 날씨가 계속 이어지자 원래부터 허약하던 어머니가 덜컥 병이 들고 말았어요. 시름시름 앓던 어머니는 음식을 거의 드시지 못해 갈수록 여위어 갔어요. 그런 어머니를 바라볼 때마다 맹종의 마음은 견딜 수 없이 아팠어요. 할 수만 있다면 자기가 대신 아파 드리고 싶었어요. 하루하루 병이 깊어 가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맹종은 속으로 울고 또 울었어요. 여동생과 남동생도 어쩔 줄 모르고 슬퍼하기만 했어요. 오랜 세월 쌍봉산 아래에서 살아온 맹종의 어머니는 ‘쌍봉산의 보배’로 불리는 죽순을 참 좋아했어요. 죽순은 땅에서 돋아나는 대나무의 어린 싹인데 요리해서 먹으면 참 맛이 좋지요. 해마다 봄이면 어머니는 쌍봉산에 올라가 죽순을 바구니 가득 캐 왔어요. 그 죽순으로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세 남매와 함께 먹었지요. 죽순을 먹는 날은 마치 잔칫날 같았어요. 어머니도 매우 기뻐하며 드셨고 두 동생도 참 좋아했어요. 맹종도 봄날 어머니와 함께 죽순 요리를 해 먹던 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어서 봄이 왔으면...” 맹종은 눈 덮인 쌍봉산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어요. 날씨는 여전히 몹시 추웠어요. 창밖에서는 칼바람이 쌩쌩 몰아치고 있었어요. 날이 추워서 그런지 어머니는 더욱 입맛을 잃고 점점 더 약해지기만 했어요. 속이 상했지만 맹종은 달리 좋은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하루빨리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어요. 어머니의 병은 더욱 깊어져 이제 일어나 앉을 기운도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문득 이렇게 말했어요. “한 번만이라도 죽순을 좀 먹어 봤으면...” 어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어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맹종은 죽순을 캐오기로 작정하고 길을 나섰어요. 맹종은 얼른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말했어요. “어머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바로 죽순을 구해 올게요.” “그만두어라. 이 한겨울에 어디서 죽순을 구한단 말이냐?” “아니에요. 제가 꼭 구해 올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맹종은 곧장 밖으로 나가 쌍봉산으로 떠날 준비를 했어요. 눈 쌓인 산길은 걷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눈이 어찌나 많이 쌓였는지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발이 무릎까지 푹푹 빠져 한 걸음을 옮기기도 힘들었어요. 거기다 차가운 북풍까지 몰아쳐 온몸이 꽁꽁 얼어붙는 것 같았어요. 맹종은 그나마 오르기 쉬운 산길 옆 가시나무 숲을 따라 조금씩 산을 올라갔어요. 얼마 오르지도 않았는데 온몸이 땀에 젖고 숨까지 턱턱 막혔어요. “앗, 따가워!” 맹종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날카로운 가시가 이곳저곳을 찔러 댔어요. 맹종의 온몸은 어느새 가시에 찔려 성한 곳이 없었어요. 얼굴과 손도 피범벅이 되었어요. 얼굴에 박힌 수많은 가시 때문에 맹종은 마치 불에 덴 듯 얼굴이 화끈거리고 쓰라렸어요. 그렇게 고생고생한 끝에 맹종은 겨우 대나무 숲에 도착했어요. 맹종은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어요.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어머니 생각뿐이었어요. 어서 빨리 죽순을 구해 어머니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지요. ‘어서 땅을 파 보자!’ 맹종은 돌처럼 꽁꽁 언 땅을 괭이로 파기 시작했어요. 한참 괭이질을 하자 다시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어요. 차가운 괭이를 쥔 두 손은 금세 얼어서 자줏빛이 되었고, 손바닥에는 물집이 잡혔어요. 하지만 그는 쉬지 않고 부지런히 땅을 팠어요. 맹종은 대나무 숲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온종일 눈과 언 땅을 파헤쳤어요. 하지만 끝내 죽순은 찾을 수 없었어요.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맹종은 맥이 빠져 눈밭에 털썩 주저앉았어요. 언 땅을 파느라 지쳐 이제 움직일 힘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그때 문득 어머니의 실망한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어요. 그러자 그는 자기도 모르게 곁에 있는 대나무를 끌어안고 엉엉 울음을 터뜨렸어요. “아, 불쌍한 우리 어머니!” 맹종은 어린 세 남매를 혼자 키우며 죽도록 고생한 어머니가 너무 가여웠어요. ‘힘든 환경에서도 어머니는 나를 공부시켰는데, 나는 몸져누워 계신 어머니께 죽순 하나 구해 드리지 못하니 얼마나 불효한 자식인가! 이래서야 어떻게 태산 같은 어머니 은혜에 보답할 수 있을까!’ 맹종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슬프고 안타까워 눈밭에 앉아 엉엉 울면서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렸어요. “쌍봉산 산신령님, 제발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도록 죽순 한 줄기만 내려 주십시오! 제발, 제발 부탁입니다!” 기도를 올리고 두어 시간이 지났지만 대나무 숲에는 찬바람만 휘몰아쳤어요. “제발 죽순 한 줄기만! 한 줄기만!” 그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하늘을 바라보며 계속 외쳤어요. 그의 두 눈에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이미 캄캄해진 숲속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웠어요. 맹종은 무서움과 추위에 덜덜 떨다가 자기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어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떠 보니 어느덧 새 아침이 밝아 오고 있었어요. 간밤에 너무 오래 울어서 맹종의 두 눈은 붉게 핏발이 서 있었어요. 그는 더 이상 울 힘도 없었어요. 몸이 얼어붙어 움직이기도 힘들었어요. ‘죽순을 구하지 못한 채 이대로 내려가야 한단 말인가.’ 맹종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어요.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산신령님, 제발 저희 어머니를 살려 주세요! 죽순 한 줄기만 내려 주신다면 제 목숨이라도 내놓겠습니다!” 맹종은 대나무를 붙들고 엉엉 울며 다시 기도를 올렸어요. 한 시간이 넘도록 계속 기도를 올렸지요. 그러던 어느 순간, 이게 웬일인가요! 눈밭에서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요. 마치 쥐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나뭇잎이 바람에 쓸리는 소리 같기도 했어요. 그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소리가 난 곳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어요. “앗!” 맹종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어요. 꽁꽁 언 땅이 쩍 갈라지더니 야들야들한 죽순이 삐죽 머리를 내밀고 있었어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그는 혹시 꿈이 아닌가 싶어 자신의 다리를 힘껏 꼬집어 보았어요. “와, 꿈이 아니야! 이건 진짜 죽순이야!” 맹종은 너무 기뻐 소리를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어요. 갑자기 온몸에 힘이 솟구치는 것 같았어요. 그는 재빨리 괭이로 땅을 파 죽순을 캐냈어요. 그러고는 쌍봉산 산신령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어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맹종의 두 눈에 다시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이번에는 기쁨의 눈물이었어요. 역시 어머니 말씀이 맞았어요.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쌍봉산 산신령님은 옳고 그름을 잘 가린다고 했어요. 또 악한 사람은 혼내 주고 선한 사람은 칭찬해 주는 좋은 산신령님이라고 했어요. 바로 그 산신령님이 도와준 게 틀림없었어요. 맹종은 산에서 내려오기 전에 산신령님께 아홉 번이나 큰절을 올렸어요. 이전에 그는 귀신이나 신선 등을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믿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산신령님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겠어요! 그는 산신령님께 공손히 절을 올리고 난 후 문득 이렇게 다짐했어요. ‘산신령님, 제가 훗날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가 된다면 그들을 하늘처럼 모시고, 천하의 모든 노인들을 나의 부모님처럼 섬기겠습니다.’ 그날 맹종이 죽순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자, 어머니는 깜짝 놀랐어요. 어머니는 얼어서 퉁퉁 부은 아들의 손을 보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어요. 그러자 맹종이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 아무렇지도 않아요. 금세 죽순 요리를 해 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맹종은 여동생과 함께 죽순을 찌고 볶고 지져서 맛난 음식을 만들었어요. 또 따뜻한 죽순탕도 끓였어요. 죽순으로 차린 풍성한 상을 보고 어머니는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오오, 참으로 맛있구나!” 어머니는 죽순으로 만든 음식을 드시고 몸이 점점 좋아졌어요.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건강을 되찾았어요.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어요. 맹종이 한겨울에 죽순을 구해 병든 어머니를 살렸다는 이야기는 백성들의 입을 통해 널리 알려졌어요. “한겨울에 죽순이 솟아나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야.” “그러게 말일세. 맹종의 지극한 마음에 하늘이 감동한 모양이야.” 고을 사람들은 다들 맹종의 효심을 칭찬했어요. 오나라의 왕인 손권도 맹종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감동하여 그 이름을 잘 기억해 두었어요. “음, 맹종이라... 참으로 효심 깊은 젊은이로군.” 당시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 가운데서 오나라의 힘이 가장 약했어요. 그래서 손권은 천하의 능력 있는 인재들을 오나라로 모아 빨리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어요. 그래서 맹종이란 이름을 잘 기억해 둔 것이지요. 얼마 후, 손권은 맹종이 효심만 깊은 것이 아니라 책도 많이 읽어 학식도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참으로 인재 중에 인재로구나!” 손권은 마침내 맹종을 오나라 수도인 건업(오늘날의 난징)으로 불렀어요. 우선 궁으로 불러들여 맹종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에 맞는 관직을 주려고 한 것이지요. 당시 맹종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어요. 맹종은 오나라 궁에 들어가 후한 대접을 받았어요. 어머니에게 효도한 일로 왕에게 상도 받고 칭찬의 말도 들었어요. 맹종은 왕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대를 강하게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글로 적어 왕께 바쳤어요. 왕은 글을 읽어 보고 매우 기뻐했어요. “음, 참으로 좋은 계책이로다!” 손권은 한눈에 맹종의 능력을 알아보고 관직을 내리기로 했어요. 얼마 후 손권은 맹종에게 직접 관직을 내렸어요. 얼마 후 손권은 맹종에게 직접 관직을 내렸어요.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매우 큰 어장을 관리하는 일이었어요. “어장을 잘 관리하여 부디 나라에 보탬이 되도록 하라.” “잘 알겠사옵니다.” 맹종은 왕의 명에 따라 바닷가로 가서 맡은 바 임무를 잘해 나갔어요. 맹종의 고향인 쌍봉산은 산간 지역이라 산에서 나는 음식은 많았지만 물고기는 아주 귀했어요. 그 지역 사람들은 물고기를 일 년에 다섯 마리도 먹어 볼 수 없었어요. 그것은 맹종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맹종은 어장을 돌보는 벼슬을 얻게 되자 제일 먼저 어머니를 떠올렸어요. “그래, 우선 어머니께 물고기를 실컷 대접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직접 어장으로 나가 그물로 고기를 잡았어요. 부하들이 잡아 드리겠다고 하는 것도 뿌리치고 직접 잡았지요. 맹종은 잡힌 고기 중에 제일 좋은 고등어들을 따로 골라냈어요. 그러고는 물고기 절이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맛있게 절였어요. “이 고등어를 내 어머니께 전해 다오.” 맹종은 하인을 시켜 절인 고등어를 집으로 보냈어요. 고등어를 맛있게 드실 어머니를 생각하니 맹종은 벌써부터 마음이 흐뭇했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어머니는 맹종이 보낸 고등어를 보더니 불같이 화를 냈어요. 어머니는 곧장 고등어를 전부 되돌려 보냈어요. 그러고는 맹종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어요. “아들 종아, 어장을 돌보는 관리로서 어찌 네가 나에게 어장 물고기를 보낼 수 있느냐?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구나. 이것은 효가 아니라 오히려 큰 불효이니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거라.” 맹종은 편지를 읽어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저절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얼굴이 빨개졌어요. ‘어장 물고기를 보내 드렸으니 욕을 먹어도 싸다.’ 맹종은 야단을 맞았지만 그래도 어머니께 물고기를 몇 마리 가져다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어시장에 가서 물고기 몇 마리를 사서 집으로 가져갔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이번에도 물고기를 받지 않았어요. 그뿐만 아니라 맹종을 불러 다음과 같이 꾸짖었어요. “아무리 어시장에서 산 것이라도 어장 관리인 네가 물고기를 들고 다니면 남에게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혹시 어장에서 그냥 들고 온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는 말이다. 나는 물고기를 먹지 않고는 살 수 있지만, 내 아들이 백성들에게 욕을 먹는 것을 보고는 살 수 없다. 그러니 부디 나라와 임금께 충성(忠誠)하고 백성들을 하늘로 섬기는 깨끗한 관리가 되어 다오. 내게는 그것이 가장 큰 효도이니라.” 맹종은 어머니에게 두 번이나 꾸지람을 들은 후 다시는 물고기를 집으로 가져가지 않았어요. 어머니 말씀이 모두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앞으로는 오로지 어장 돌보는 일에만 온 힘을 쏟겠다.’ 이렇게 마음먹은 맹종은 수많은 어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잘 돌보았어요. 어부들과 친구처럼 지내며 물고기 키우는 법을 배우기도 했지요. 오나라의 수많은 어장에는 항상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넘쳐났어요. “맹종 님이 맡은 뒤로는 어장이 정말 몰라보게 좋아졌어!” “그러게 말일세! 참으로 친절하고 좋은 분이야!” 백성들은 어장 이야기를 할 때마다 너나없이 맹종을 칭찬했어요. 오나라의 왕 손권은 맹종이 어장을 잘 관리하자 매우 기뻐했어요. “맹종은 참으로 뛰어난 인물이다. 이제는 좀 더 큰 일을 맡겨야겠다.” 손권은 맹종을 오현(오늘날의 쑤저우)으로 보내 그곳을 다스리게 했어요. 쌍봉산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맹종이 드디어 커다란 오현의 현령이 된 거예요. 현령은 넓은 지역인 ‘현’을 다스리는 가장 높은 벼슬이에요. 맹종은 오현을 다스리면서 백성들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어머니 말씀을 늘 떠올리곤 했어요. 맹종은 어머니 말씀대로 백성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일했어요. 때때로 그는 평복으로 갈아입고 백성들의 마을을 일일이 살폈고, 혹시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면 관아로 잡아와 혼쭐을 내 주었어요. 그리고 지나친 세금은 줄여 주고, 억울한 일은 곧바로 해결해 주었어요. 맹종이 현령을 맡은 뒤로 오현은 점점 살기 좋은 고을로 바뀌었고, 해마다 풍년이 들어 백성들의 살림살이도 점점 나아졌어요. 몇 년이 지나자 오현은 어느덧 오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고을이 되었어요. 맹종이 오현을 잘 다스리고 있던 그 무렵 갑자기 고향에서 슬픈 소식이 날아왔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어요. ‘오, 어머니!’ 맹종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어서 고향으로 떠나야겠다.' 그런데 맹종이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우선 왕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어요. 그런데 오현과 건업은 수백 리나 떨어져 있어서 왕에게 허락을 받고 고향으로 가면 장례를 치르기가 힘들 것 같았어요. ‘아, 어쩌면 좋지?’ 어머니 장례를 치르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어요. 그렇다고 왕에게 허락받지 않고 그냥 고향으로 갈 수도 없었어요. 당시 오나라에서는, 왕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다스리는 지역을 벗어난 관리에게는 목을 자르는 무서운 형벌을 내렸어요. 실제로 왕의 허락 없이 다스리는 지역을 벗어났다가 죽은 관리도 여럿이나 되었어요. 맹종은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었어요. 한참 고민하던 맹종은 마침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국법이 엄하다는 걸 내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나는 죽을 때 죽더라도 고향 집으로 가겠다. 비록 돌아가셨지만 나를 애타게 기다리는 어머니를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 부하 관리들이 곁에서 말렸지만 맹종의 마음은 바위처럼 단단했어요. 맹종은 먼저 왕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편지를 써서 전령에게 전하도록 분부했어요. 그러고는 부하들에게 오현을 맡기고 급히 말에 올라탔어요. “자, 가자, 고향으로!” 밤낮으로 말을 달려 고향에 도착한 맹종은 말에서 내리자마자 집으로 뛰어들었어요. “어머니! 어머니!” 맹종은 어머니를 끌어안고 오래도록 목메어 울었어요. 맹종은 두 동생과 함께 어머니의 장례를 잘 모셨어요. 장례를 마친 후 맹종은 어머니 무덤 옆에 움막을 지었어요. 그러고는 49일 동안 밤낮으로 어머니 무덤을 지켰어요. 맹종은 날마다 무덤 옆에서 두 시간 동안 슬피 울었는데, 그 울음소리에 모든 고향 사람들이 감동할 정도였어요. 49일 동안 어머니 곁을 지킨 후 맹종이 남동생에게 말했어요. “나는 이제 언제 돌아올지 기약할 수가 없구나. 그러니 네가 해마다 설 명절과 청명절에 어머니 무덤에 제사를 올려 다오.” “네, 알겠습니다, 형님.” 마침내 맹종은 말에 올라탔어요. “잘 있어라.” 맹종은 두 동생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고향 마을을 떠났어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맹종은 엄한 국법을 어겼으므로 자신은 분명히 죽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미 오나라 전 지역에는 국법을 어긴 맹종을 빨리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져 있었어요. ‘이제 내게 남은 건 죽음뿐이로구나.’ 맹종은 고향에서 삼십 리 떨어진 곳에 이르자 미리 준비한 죄수복으로 갈아입었어요. 그러고는 직접 그 지역 관아로 찾아가 현령에게 말했어요. “나는 국법을 어긴 죄인이오. 그러니 어서 나를 체포하시오.” 맹종은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어요. 맹종이 자수했다는 소식은 금세 오나라 왕 손권에게 보고되었어요. 그러자 손권은 급히 대신들을 불러 맹종을 어떻게 처벌하면 좋을지 의견을 물었어요. 궁에 모인 대신들은 저마다 의견을 말했어요. “국법을 어겼으니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 “죄는 지었으나 어머니 장례를 치르기 위함이니 엄벌은 지나칩니다. 목숨만은 살려 주었으면 합니다.” 두 의견이 팽팽히 맞섰어요. 그러다가 결국에는 맹종을 죽여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아졌어요. “국법을 어긴 자를 용서하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법대로 엄벌에 처해야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는 것이니 맹종을 속히 죽이소서.” 하지만 손권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어요. 자신이 아끼던 맹종인지라 바로 죽이라고 명령하기가 힘들었어요. 왕이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왕의 어머니인 모후가 찾아왔어요. 모후는 아들에게 맹종에 관해 물었어요. “그래, 맹종을 어떻게 처벌하기로 했느냐?” 손권이 모후에게 말했어요. “맹종은 국법을 어겼습니다. 제 허락도 없이 자기가 다스리는 지역을 떠나 고향으로 가 어머니 장례를 치렀습니다. 저는 맹종을 용서할 수도 있지만 국법을 어긴 자를 엄히 다스리지 않아 국가의 기강이 무너질까 걱정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모후는 왕의 말을 듣고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이윽고 모후는 목이 멘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어요.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국법이 중하다는 것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생각해 보아라. 자식으로서 어찌 효를 행하지 않을 것이며, 효를 행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나라에 충성할 수 있겠느냐? 아들아, 맹종이 한겨울에 죽순을 구해 병든 어머니를 살려 낸 이야기를 온 천하가 알고 있다. 이 나라의 왕인 너도 그 때문에 그를 관리로 뽑아 쓰지 않았느냐? 또한 맹종이 어장을 잘 관리한 일과 오현에서 백성들을 잘 다스린 일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니 천하의 백성들이 존경하는 맹종 같은 훌륭한 인물을 어찌 죽일 수 있겠느냐!” 모후의 말에 손권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때리며 말했어요. “어머님이 저를 깨우쳐 주셨나이다. 하마터면 큰일을 저지를 뻔했나이다!” 이튿날 손권은 다시 대신들을 불러 모았어요.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오나라 법을 개정하도록 명령했어요. 바뀐 법은 다음과 같았어요. '부모에게 효를 다하기 위해 자리를 비워야 할 상황이면, 그 관리는 왕이 아니라 자신의 윗사람에게 보고하여 휴가를 얻은 후 집에 돌아가 장례를 마칠 수 있다.' 손권은 당장 맹종을 석방하라고 분부했어요. 그리고 오히려 맹종의 벼슬을 한 등급 올려 주었어요. 다시 얼마 후에는 맹종에게 태공이란 높은 벼슬을 내려 그의 참된 성품과 효심을 만천하 백성들이 알 수 있게 해 주었지요. 오나라 왕 손권이 맹종을 높이 대우하자 한동안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오나라로 모여들었어요. 효자일 뿐 아니라 진심으로 백성을 사랑한 맹종이 대우를 받으니 천하의 영웅들이 모여드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 때문에 오나라는 더욱 강하고 튼튼한 나라가 되었어요. 이 때문에 오나라는 더욱 강하고 튼튼한 나라가 되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삼국 중 가장 약한 나라가 아니라 위나라, 촉나라와 어깨를 겨루는 당당한 나라가 되었지요. 그 이후 맹종이 한겨울에 죽순을 구해 어머니를 살린 이야기와 죽음을 무릅쓰고 어머니 장례를 치른 이야기는 더욱 널리 알려졌어요. 그래서 오늘날까지 가장 아름다운 효행 이야기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답니다.
정성으로 부모를 살린 효자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조선 시대 양반들은 흔히 이름 대신 호를 사용했어요. 이이의 호는 율곡이고 어릴 때 집에서 부르던 이름은 ‘현룡’이라고 했지요. 율곡은 지금으로부터 480년 전 강원도 강릉 오죽헌에 있는 외갓집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멀리 한양에서 과거 공부를 하느라 가족과 떨어져 살았답니다. 나라에서 월급 받는 관리가 되려면 과거 시험에 합격해야 했지요. 조선 시대 여자들은 대부분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어요. 하지만 율곡의 어머니는 달랐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딸들에게도 공부를 가르쳤거든요. 덕분에 율곡의 어머니는 그림도 잘 그리고 책도 아주 많이 읽었어요. 율곡의 어머니는 호가 ‘사임당’이에요. 사임당은 그 시절 드물게 훌륭한 교육자였어요. 율곡이 세 살이었을 때부터 글을 가르쳤답니다. 율곡은 어머니를 닮아서 책 읽기를 아주 좋아했어요. “책은 머리로만 읽어선 안 되고 마음으로 읽어야 해.” 사임당은 늘 이렇게 말했어요. 어린 율곡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어요. “어머니, 어떻게 마음으로 책을 읽어요?” 율곡의 물음에 사임당이 대답했어요. “책에서 읽은 것을 실천할 방법을 생각해 보렴.” “예...” 율곡은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는 게 무언지 알 듯 말 듯했어요. 율곡의 아버지 집안은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어요. 할머니가 떡장수를 하면서 글공부하는 아버지 뒷바라지를 하셨지만 외갓집에 사는 식구들까지 돌볼 형편은 못 되었어요. 강릉에는 율곡의 두 형과 누나 둘이 함께 살고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여섯 식구가 외갓집 신세를 지고 있었던 거예요. 외갓집이라고 부자는 아니었어요. 집이 넓고 방이 여러 개라 같이 살기에 불편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어머니는 아버지가 과거 시험에 급제하기만을 기다렸어요. 가끔은 무슨 속상한 일이 있는지 혼자서 남몰래 우시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율곡은 마음이 너무 아팠지요. ‘효도는 부모를 기쁘게 하고, 걱정 끼쳐 드리지 않는 것이다.’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옛날에는 남자아이들이 세 살만 지나도 서당에 다녔어요. 가난한 율곡의 어머니는 서당에 낼 돈이 없어서 집에서 직접 자식들을 가르쳐야만 했어요. 율곡은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어요. 한번 배운 건 꼭 혼자서 복습을 하곤 했지요. 네 살 무렵엔 어려운 책도 술술 읽어 내려갈 만큼 실력이 쑥쑥 자랐답니다. “아드님이 그렇게 영리하다면서요? 우리 애도 공부를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웃 사람들이 율곡을 칭찬할 때면 사임당은 박꽃처럼 환한 미소를 띠곤 했답니다. 율곡은 어머니가 웃는 모습이 세상에서 제일 좋았어요. 매일 어머니를 웃게 할 수만 있다면 뭐든 열심히 하고 싶었어요. 어느 날, 집 앞에서 친구와 놀고 있던 율곡은 뜻밖의 광경을 보게 되었어요. 아랫마을 의원이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가고 있었어요. “너희 집에 누가 아프신 거야?” 친구가 물었어요. 율곡은 그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어요. 요 며칠 기운 없어 하시던 어머니가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어디가 많이 불편하신지 잘 웃지도 않으셨어요. 얼굴엔 알지 못할 근심이 가득했지요. 대체 무슨 일일까요? 어머니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어요. “나 먼저 갈게.” 율곡은 급히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어요. 그리고 어머니 방문 앞을 서성이던 외할머니와 마주쳤어요. “할머니, 어머니 아프신 거예요?” “의원이 왔으니 너무 걱정 마라.” 외할머니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어요. 형들과 누나들도 표정이 어두웠어요. 한참 후, 의원이 어머니 방에서 나왔어요. “많이 안 좋은가요?” 외할머니가 조심스럽게 묻자 의원은 별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어요. 가족들은 눈앞이 캄캄해졌어요. 방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어머니.” 율곡은 가만히 방으로 들어가 어머니를 불러 보았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율곡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대답도 없이 누워만 있었어요. 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어머니는 하루 종일 잠만 잤어요. 율곡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어머니의 머리맡을 지키고 앉아 병이 낫기만을 기도했어요. 어머니는 음식을 전혀 못 드셨어요. 외할머니가 정성껏 달여 주신 한약도 삼키지 못해서 금세 토해 내곤 했어요. 어쩌다 눈을 떴다가도 금세 까무러치듯 잠에 빠져들었어요. ‘설마 큰 병에 걸리신 건 아니겠지?’ 율곡은 무서운 생각이 들 때마다 세차게 고개를 저었어요. 어머니가 안 계신 세상은 상상하기도 싫었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돼서 밥도 먹기 싫고 잠도 오지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낫게 해 드릴 수 있을까.’ 머릿속에는 온통 그 생각뿐이었어요. 어느덧 날이 훤하게 밝아 오고 있었어요. 율곡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살며시 어머니 곁으로 갔어요. 가냘픈 숨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왔어요. 하루, 이틀, 사흘...... 어머니가 앓아누운 날들을 속으로 헤아려 보았더니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었어요. 어머니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게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 속이 상할 수 없었어요. 어머니는 평소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무척 그리워했어요. 아쉽게도 율곡은 외할아버지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율곡이 태어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에요. 가족들 말로는 외할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어머니를 가장 아꼈다고 했어요. ‘그래!’ 율곡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날 오후, 율곡의 집에선 큰 소동이 벌어졌어요. “어린애가 대체 어딜 갔단 말이냐?” 외할머니와 형제들은 발을 동동 굴렀어요. 율곡이 집에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기 때문이에요. 점점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어요. 온 집안 식구들이 횃불을 들고 사방으로 율곡을 찾아 나섰어요. 근처에 사는 이모 집에도 가 보고 마을 곳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율곡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요. 동네 사람들도 식구들과 같이 율곡을 찾아다녔어요. “현룡아!” “어디 있니?” 달도 없는 깜깜한 밤중이었어요. 율곡은 이때 다섯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였답니다. 마을은 온통 산으로 둘러쳐져 있었어요. 가끔 어린아이들이 호랑이한테 물려 갔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이 돌기도 했어요. 시간이 갈수록 가족들은 간장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어요. “그런데 얘가 언제 사라진 거지?” “글쎄요...” “혹시 낮에 본 사람 없어요?” 마을에선 그날 누구도 율곡을 본 사람이 없다는 말에 작은누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우리 현룡이, 이대로 못 찾으면 어떡해!” 그때 율곡의 큰누나가 혼잣말로 중얼거렸어요. “설마, 거길 간 건 아니겠지?” 큰누나가 떠올린 곳은 외할아버지 사당이었어요. “에이, 설마! 어린애가 겁도 없이 거길 왜 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번 가 보자.” 그래, 그게 좋겠어!” 가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당으로 향했답니다. 마을 뒷산에 있는 사당은 어른들도 밤에는 꺼리는 곳이었어요. 캄캄한 산속 어딘가에서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어요. 사람들은 손에 횃불을 들고 조심조심 산길을 올라갔어요. 이윽고 사당 앞까지 왔을 때, 모두들 눈을 휘둥그렇게 떴답니다. 안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거든요. 사당 문을 열자 더욱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어요. 율곡이 바닥에 엎드려 서럽게 울고 있었던 거예요. “현룡아,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형과 누나들이 일으켜 세우자,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인 채로 율곡이 말했어요. “어머니를 살려 달라고 외할아버지께 빌었어......” 율곡은 형제들한테도 같이 기도하자고 졸랐어요. “형, 누나! 같이 기도하자, 응?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외할아버지께서 들어주실 거야.” “밤이 늦었으니 일단 집으로 가자!” 형제들이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어요. 결국 다 같이 기도한 다음에야 율곡은 자리에서 일어났답니다. “빨리 가자. 어머니가 기다리셔.” “정말?” 율곡은 어머니가 깨어났다는 큰형의 말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답니다. 어두웠던 얼굴빛도 환하게 밝아졌지요. “어머니 이젠 괜찮으신 거지?” 율곡은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물었어요. 그러자 큰형은 조금 망설이는 기색이었어요. “사실은, 네가 없어진 걸 알고 어머니가 많이 우셨어.” “어머니가 나 때문에 우셨다고?” 율곡은 큰형이 전하는 말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어요. ‘항상 집 밖에 나갈 땐 먼저 어른들께 아뢰고, 부모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갈 일이 생기면 반드시 미리 말씀드리고 허락을 구해야 한다.’ 책에서 읽은 구절을 떠올리니 차마 고개를 들 수도 없었어요. 율곡이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겨우 기운을 차린 모습으로 누워 있었어요. 율곡은 먼저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어요. “할머니,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어미가 걱정돼서 그런 거잖니... 어서 일어나렴.” 외할머니는 애처로운 마음에 밥부터 챙겨 주려 했지만 율곡은 배고픔도 잊은 채 눈물을 펑펑 흘렸어요. “아니에요, 할머니. 저는 멋대로 행동하여 편찮으신 어머니를 더 힘들게 해 드린 불효자예요.” 율곡은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꿇어앉아 있을 태세였어요. “알았으면 됐다. 할머니 걱정하시니 그만 울고 밥 먹으렴.” 어머니가 엄하게 타일렀어요. 율곡은 그제야 수저를 들었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난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어요. “세상에! 기저귀 찬 효자가 바로 그 댁에 있었네!” 당시에는 아주 어린 나이에 부모에게 효도하는 아이를 ‘기저귀 찬 효자’라고 했답니다. 세월이 흘러 율곡은 아홉 살이 됐어요. 그사이 많은 변화가 생겼답니다. 우선 귀엽고 예쁜 남동생과 여동생이 태어났어요. 강릉 외갓집을 떠나 한양으로 이사도 했지요.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아버지와 한집에 살게 된 거예요. 율곡은 이런 변화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답니다. 외할머니와 헤어지는 건 정말 슬픈 일이었어요. 외할머니는 손자들 중에서도 특히 율곡을 많이 아껴 주셨어요. 율곡도 외할머니와 정이 많이 들었답니다. 강릉에서 한양까지는 걸어서 열흘도 넘게 걸리는 아주 먼 길이었어요.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야 한다!” 이사하던 날, 외할머니는 율곡의 손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어요. 사랑하는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양 할머니 댁은 비좁아서 여러 식구들이 살기엔 불편했어요. 할머니가 떡을 팔아 번 돈만으로는 생활하기도 어려웠답니다. 율곡의 어머니는 농사철이면 파주에서 농사를 지었어요. 율곡과 두 동생도 어머니를 따라 파주에서 지낼 때가 많았지요. 식구들은 한양 할머니까지 합쳐서 열 명인데 양쪽 집에 절반씩 흩어져 살아야만 했어요. 아버지는 한양과 파주를 오가면서 지냈어요. 율곡은 아버지를 자주 뵐 수 없는 게 슬펐어요. 형제끼리 떨어져 지내는 것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지요. 이제 겨우 함께 살게 됐다고 기뻐했건만 온 식구가 한 상에 앉아 밥 먹는 날이 드물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율곡은 장공예라는 사람의 가족 이야기를 책에서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장공예는 중국 당나라 때 운주 지방에 살았던 사람이랍니다. 하루는 당나라 황제가 이곳을 지나다 놀라운 얘기를 들었어요. 장공예의 집에 백 명의 가족들이 함께 산다는 거였어요. 그것도 9대가 한 집에 살고 있다니! 황제가 놀라는 게 당연했어요. 아버지와 아들, 손자까지 합쳐서 3대라고 해요. 9대가 모여 살려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도 남지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냐?” 황제는 소문이 믿기지 않아서 직접 장공예의 집에 찾아가 보았어요. 그랬더니 정말 백여 명의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 살았던 거예요. “3대가 한 집에 살기도 어려운데, 참으로 놀라운 일이구나!” 황제는 가족이 화목하게 살아가는 비결을 물었어요. 장공예는 대답 대신 참을 인 자 백 개를 써서 바쳤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싸우지 않고 잘 지내려면 무엇보다도 인내심이 중요하다는 뜻이었어요. 이 이야기는 율곡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어요. 율곡은 장공예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렸어요. ‘나도 장공예처럼 가족을 잘 돌보는 사람이 될 거야!’ 율곡은 완성된 그림을 벽에 붙여 놓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답니다. 그림 속에선 어머니가 예쁜 옷을 차려입고 붓글씨를 쓰고 있었어요. 형제들은 맛난 음식을 장만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흐뭇한 얼굴로 대문으로 들어서고 있었지요. 이것이 율곡이 꿈꾸는 가족의 미래였어요. 어느 날, 율곡의 어머니가 이 그림을 보게 되었어요.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어머니가 율곡에게 말했어요. “좋은 옷, 좋은 음식보다 부모를 기쁘게 하는 건 형제들과 우애 있게 지내는 거란다. 자식들이 서로 도와 가며 사는 것만큼 부모를 기쁘게 하는 건 없어.” “예, 어머니!” 율곡은 어머니 말씀을 깊이 새겼어요. 추석이 가까워지고 있었어요. 이 무렵이면 조상님들 산소를 돌봐야 해요. 율곡은 형들과 아버지를 따라서 벌초를 하러 갔답니다. 산소 여기저기 자라난 잡풀을 뽑고 주변을 말끔하게 정리했어요. 일을 다 끝냈을 땐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었지요. 그런데 아버지가 어딘가 모르게 이상했어요.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잘 걷지를 못했어요. “아버지, 어디 편찮으세요?” 큰형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버지를 부축해 드렸어요. “나는 괜찮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얼굴이 백지장 같았어요. 이마에는 식은땀이 쉴 새 없이 흐르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쁜 숨을 몰아쉬었어요. 율곡의 아버지는 집에 돌아온 그 길로 자리에 누웠어요. 어머니는 너무 놀라서 어쩔 줄 몰랐지요. “갑자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어머니, 제가 의원을 모셔 올게요.” 형들과 누나들은 황급히 마을로 뛰어갔어요. 의원이 다녀갔지만 병명을 알아내지도 못했어요. 형제들이 사방으로 약을 구하러 다니는 동안 율곡은 아버지의 침상을 지키며 애를 태웠어요. 아버지는 말을 하지도, 일어나 앉지도 못했어요. 나중엔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져서 피를 토하는가 하면 갑자기 얼음장같이 차갑게 변하기도 했지요. 율곡은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어요. 하루하루 죽을 고비를 넘나드는 아버지를 위해서 수시로 물수건을 이마에 대 드리는 수밖에 없었어요. “아버지는 내가 보살펴 드릴 테니 그만 네 방에 가 쉬어라.” 어머니가 말했어요. 그렇지만 율곡은 마음속으로 고개를 내저었어요. 아픈 아버지를 두고 편히 쉴 수가 없었거든요. “아버지께서 일어나실 때까지 부디 저도 곁에 있게 해 주세요, 어머니!” 율곡은 어머니의 만류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어요. 결국 아무리 엄한 어머니도 율곡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어요. “지성이면 하늘도 감동한다고 했다. 이렇게 착한 자식들이 있으니 천지신명이 보살펴 주실 게다.” 어머니가 율곡을 위로했어요. 율곡은 그 순간, 외할머니 집 앞에 세워진 비석을 생각해 냈어요. 외할머니가 온 정성을 다해 죽어 가는 외할아버지를 살렸다고 해서, 나라에서 상으로 내린 비석이었어요. 이야기는 한참 거슬러 올라가서, 강원도 지방에 전염병이 돌던 무렵이었어요. 율곡의 외할아버지는 한양에서 강릉으로 오던 중 병을 얻어 길가에 피를 토하고 쓰러져 있었어요. 마침 지나가던 마을 사람이 율곡의 외할아버지를 알아보고 가족들에게 급히 알렸답니다. 율곡의 외할머니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지요. 가족들이 달려갔을 때는 어떻게 손을 써 볼 수도 없는 상태였어요. 환자를 살펴본 의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살아날 가망이 없으니 장례를 준비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율곡의 외할머니는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하지만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답니다. 환자를 수레에 싣고 집으로 돌아온 외할머니는 혼자 사당에 올라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바치고 하늘에 기도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이튿날 외할아버지 병이 씻은 듯 나았던 거예요. 당시 사람들은 부인의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켰다고 입을 모았어요. 율곡의 외갓집을 오죽헌이라고 해요. 집 주변에 까마귀 깃털 빛깔의 검은 대나무가 울창하게 자라서 오죽헌이라 부르는 거예요. 율곡의 외갓집은 강릉의 유명한 양반집이었어요. 오래전부터 집안 대대로 물려온 노비들이 여러 명 있었지요. 율곡의 외할아버지가 낫게 된 사연은 노비들의 입을 통해서 집 밖으로 퍼져 나갔어요. 외할아버지는 건강하게 살다가 율곡의 부모님을 결혼시키고 나서야 세상을 떠났어요. 소문은 돌고 돌아서 마침내 임금님 귀에까지 전해졌답니다. 임금님뿐만 아니라 조정의 대신들도 외할머니의 지극한 정성에 감동했어요. 그래서 나라에서는 외할머니에게 큰 상을 내려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후세에 길이 전해지도록 했어요. 얼마 후, 한양에서 관리들이 찾아와 외할머니 집 앞에 작은 정자를 짓고 열녀비를 세웠어요. 남편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거나, 죽음까지도 무릅쓰는 아내를 열녀라고 해요. 또 그 내용을 비석에 글자로 새긴 것을 열녀비라고 한답니다. 조선 시대에는 해마다 열녀 한 명을 뽑아서 상을 내렸어요. 주로 왜란이나 호란 등의 전쟁 때 적군으로부터 절개를 지키다 죽은 여자들에게 상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본인이 살아 있을 때 비석을 세워 주는 건 극히 드물고 특별한 일이었답니다. 율곡의 외할머니 이야기는 워낙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거예요. 율곡은 그 정자 주변에서 놀던 기억이 생생했어요. 방 안에는 누워 계신 아버지와 율곡, 단둘뿐이었어요. 그런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요? 율곡은 품속에 미리 숨겨 온 단도를 꺼냈어요. ‘나의 정성으로 아버지를 구할 수만 있다면!’ 마음을 독하게 먹어도 손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어요. “얍!” 율곡은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고 단도를 내리쳤어요. 당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엮은 (삼강행실도)라는 책에도 자신의 살을 베고 피를 내어 죽어 가는 부모를 살린 여러 효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답니다. 율곡은 손가락이 너무나도 아팠지만, 꾹 참고 아버지 입에 손가락의 피를 짜 넣어 드렸어요. 방에 들어온 어머니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어요. “이게 무슨 짓이냐?” “이대로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할 순 없어요!” 율곡은 한사코 아버지 몸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기가 막혔지요. 이때가 율곡의 나이 겨우 열두 살 때였어요. 율곡의 아버지는 있는 힘을 다해 아들을 밀쳐 냈어요. 정신이 가물가물한 중에도 행동만큼은 필사적이었어요. 아들의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걸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아버지는 너무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어요. “아버지께서 괴로워하시잖니? 이런다고 효도하는 게 아니야!” “아버지를 살릴 수만 있다면 전 못 할 게 없어요, 어머니!” 율곡은 애처롭게 울부짖었어요. 안방에서 때아닌 몸싸움이 벌어졌어요. 율곡은 아버지가 밀쳐 내면 밀쳐 낼수록 몸부림을 쳤어요. 어머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었어요. 어머니는 결국 율곡의 등짝을 힘껏 내리쳤어요. “손가락을 잘라도 내가 자를 것이다. 자식의 피를 받아먹을 부모가 세상 천지 어디에 있겠느냐? 당장 그 칼 이리 내지 못해?” 율곡은 어머니가 칼을 빼앗으려고 다가들자 정신이 번쩍 났어요. 자칫하면 어머니를 다치게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두 분 부모님이 애원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어요. “현룡아, 어머니 말 들어. 어서...!” 아버지 목에선 쇳소리가 났어요. 힘겹게 입술을 달싹거리시는 모습이 말하기도 고통스러운 듯 느껴졌어요. “알겠어요, 아버지...” 율곡은 끝내 눈물을 머금고 두 분 말씀에 따르기로 했어요. 대신 율곡은 한 가지 소망을 말했어요. “아버지께서 음식을 드신다고 약조해 주세요.” 말투는 공손하지만 눈빛만큼은 단호하기 그지없었어요. 아버지는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어요. 안 그러면 아들이 또 금세 단도를 집어 들 것 같았거든요. 어머니는 율곡의 상처에 쑥을 찧어 발랐어요. 쑥은 흐르는 피를 멎게 하는 효능이 있답니다. “아버지, 드시고 싶은 음식을 제게 말씀해 주세요.” 어머니가 손가락을 헝겊으로 동여매 주고 난 뒤 율곡이 다시 아버지에게 물었어요. 율곡의 아버지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말을 잇지 못했어요. “부인, 내게 죽을 좀 가져다주시오.” 이윽고 아버지가 입을 열었어요. 어린 자식이 가련해서라도 기운을 차리기로 마음먹은 것이었어요. 율곡은 아버지가 죽을 드시는 모습을 보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눈물을 그쳤답니다. 아버지가 차차 기력을 되찾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율곡은 좀처럼 마음이 놓이질 않았어요. 아침저녁 문안 인사는 평소에도 하던 일인데 아버지가 편찮으신 뒤부터는 온종일 안절부절못했어요. 수시로 몸 상태를 살펴 드리고, 별문제 없다는 걸 확인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빨리 아버지가 건강해지셔야 어머니도 걱정을 더실 텐데.’ 잠에서 깨어날 때나 잠자리에 들 때도 오직 이 생각뿐이었어요. 한편으로는 누워만 있는 아버지가 적적하실까 신경 쓰였어요. 말벗이라도 해 드리면 아버지가 기뻐하실 것 같았어요. 그래서 책을 읽어도 꼭 아버지 방에서 읽었답니다. “친구들과 밖에 나가서 놀고 싶지 않느냐?” 하루는 아버지가 율곡에게 물었어요. 율곡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율곡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어요. “아버지께서 성가시게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여기 있는 게 좋아요.” “...고맙구나.” 아버지는 몹시 흡족해 했어요. 율곡은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근심이 다 지워져 버린 듯했어요. 사실 어느 때는 율곡도 친구들과 놀고 싶을 때가 있긴 했어요. 하지만 친구들과 노는 건 아버지가 다 나은 뒤로 미뤘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아버지가 산책을 나가고 싶다고 했어요. 율곡은 아버지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뻤어요. 어머니가 정성껏 만들어 주신 음식, 따뜻한 햇볕과 맑은 공기, 여기에 아들의 갸륵한 효심까지 더해져 기적이 일어났답니다. 병석에만 누워 일어나 앉지도 못하던 아버지가 마침내 완전히 건강을 되찾은 거예요! 열세 살 되던 해, 율곡은 조선에서 제일가는 유명 인사가 되었어요. 과거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이지요. 옛날 똑똑한 인재들은 전부 과거 시험장으로 몰려들었어요.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시험이었지요. 서른 살, 아니 마흔 살에도 떨어지는 사람들이 수두룩했어요. 그런데 율곡은 이 어려운 시험을 겨우 열세 살 때 당당하게 통과한 거예요. 놀라운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답니다. 율곡은 조선에서 단 한 명뿐인 ‘구도장원공’이에요. 보통 사람들은 평생 한 번도 붙기 힘든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을 한 거예요! 그리하여 율곡은 훗날 조선 최고의 학자가 되었지만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어요. 그건 변함없는 그의 효심 때문이었어요. 안타깝게도 율곡이 열여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율곡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크게 좌절한 나머지 머리를 깎고 산에 들어가 도를 닦는 승려가 될 생각도 했답니다. 어머니는 율곡이 대학자가 되는 데 누구보다도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율곡은 삼 년 동안 어머니 무덤 곁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죽지 않을 만큼만 음식을 먹었어요. 평생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풀뿌리를 끓여 만든 죽도 목으로 넘기기 힘들었지요. 그렇다고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어요. ‘가장 큰 효도는 형제들이 어려울 때 서로 돕고, 가족이 화목하게 잘 지내는 것이다.’ 살아 계실 때 어머니가 늘 하던 말씀이 귓전에 맴돌았어요. 강릉에 홀로 계신 외할머니도 보살펴야 했어요. 율곡은 훗날 큰 벼슬을 했지만 생활은 힘들었어요. 혼자 벌어서 수십 명의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기 때문이지요. 칠 남매의 가족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촌들, 늙고 병든 외할머니도 율곡이 돌봐야 했답니다. 큰형님이 일찍 돌아가신 뒤 형수님과 조카들도 집으로 불러들였어요. 버는 돈은 적은데 대가족을 데리고 생활하려니 매일 죽만 먹기도 어려운 형편이었어요. 옛날 장공예가 참을 인 자를 백 번 쓰면서 가족을 지켜 낸 것처럼, 율곡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가정을 이끌었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 뜻을 받드는 것만이 마지막까지 효를 다하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지요. 그리하여 율곡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이웃에서 한 푼 두 푼 모아서 장만한 수의로 장례를 치러야 할 정도로 생활이 어려웠어요. 바로 이런 이유로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율곡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답니다.
효행으로 백성을 다스린 임금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슬프다, 우리 부모 나를 낳으실 때 얼마나 고생하셨나.’ 예로부터 중국에 전해 내려오는 시와 노래를 엮은 (시경) 이라는 책 ‘요아편’에 나오는 글이에요. 진나라 때 왕부라는 학자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고 해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 때문이에요. 왕부의 부모님 산소에는 잣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어요. 왕부는 천둥이 칠 때마다 잣나무를 끌어안고 통곡을 했답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천둥소리를 무서워하였기 때문이지요. 왕부가 하도 슬피 울어 나중에는 그 눈물에 잣나무가 말라 죽었다고 해요. “아버지!” 어린 정조도 아버지 생각에 눈물을 뚝뚝 흘렸어요. 나이 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도 슬프고 안타까운데, 누명까지 쓰고 죽었으니 자식의 심정이 오죽할까요? 정조 임금의 아버지도 그렇게 억울하게 돌아가셨어요. 정조 임금의 이름은 ‘이산’ 이에요. 하지만 여기서는 알기 쉽게 정조라고 부르기로 해요. 정조는 1752년 사도 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할아버지는 영조 임금이랍니다. 궁궐에는 권력을 탐하는 신하들이 판을 치고 있었어요. “세자가 왕이 되면 우리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요.” “맞는 말이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방법을 찾아봅시다.” 그들은 어떻게든 사도 세자가 왕이 되는 걸 막으려고 끈질기게 일을 꾸몄어요. 세자가 미쳤다는 헛소문을 지어 내는가 하면 부왕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 왕위를 탐낸다고 거짓으로 보고하여 영조의 노여움을 사게 만들었어요. 화가 난 영조 임금은 사도 세자를 쌀을 넣는 뒤주에 가두어 버리고 말았어요. 정조가 겨우 열 살 때 일이었지요. “할아버지, 제발 아버지를 용서해 주세요!” 어린 정조는 날마다 할아버지를 찾아가 아버지를 살려 달라고 애원했어요. 조선 시대에는 세자가 커서 왕위를 물려줄 때가 되면 대리청정을 하게 했어요. 왕을 대신하여 정치를 돌보는 것을 대리청정이라고 하지요. 원래 사도 세자는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제도를 고치는 등 일찌감치 훌륭한 군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어요. 백성을 위하는 일이라고 판단이 되면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도 끝까지 밀고 나갔지요. 그러자 반대파들은 큰일이다 싶었어요. 세자가 왕이 되면 자신들이 설 자리가 없어질 테니까요. “이참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세자를 없애야 돼.” 그들은 끊임없이 세자를 죽여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어요. 신하들이 벌 떼같이 들고 일어나니 영조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들 사도 세자를 뒤주에 가두었고 결국 세자는 뒤주에 갇힌 지 8일 만에 굶어 죽고 말았어요. 영조는 죽은 세자에게 사도라는 시호를 내렸어요. 임금이나 왕족, 또는 관리들이 죽었을 때 임금이 내리는 이름을 시호라고 해요.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도 세자의 죽음은 어린 정조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어요. 하지만 정조는 드러내 놓고 슬퍼할 수도 없었어요. 아버지를 죽게 만든 이들이 늘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사방에 첩자를 심어 놓고 꼬투리를 잡으려고 했어요. “세손이 빈궁과 무슨 얘길 주로 하는지 잘 살펴봐라.” 세손은 정조를 뜻하고, 빈궁은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정조는 슬픔에 잠긴 어머니를 마음껏 위로할 수도 없었어요. 어머니가 울고 있을 때는 그저 가만히 손을 잡아 주고 숨죽여 눈물을 흘릴 뿐이었지요. 그럼에도 반대파들은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마저 갈라놓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영조는 아들 사도 세자의 죽음을 평생 가슴 아파했고, 그런 이유로 손자만큼은 꼭 지켜 주려고 했답니다. “다른 책은 다 읽어도 좋으나, (시경) ‘요아편’만큼은 보지 않도록 해라.” 영조는 세손 시절 정조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어요. 억울하게 죽은 부모를 애달파하는 왕부의 시가 이 책에 적혀 있기 때문이에요. “요즘 세손이 (시경)을 공부한다고 합니다. ‘요아편’을 읽고 남몰래 불충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영조는 신하들의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의심을 가졌어요. 세손이 자신의 말을 거역하고 그 책을 읽는다면 사도 세자의 죽음에 복수하려는 마음을 가질 게 확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영조는 그럴 경우 세손이 훗날 왕위에 오르면 나라가 엄청난 혼란에 빠질 거라고 염려하여 직접 확인을 해 보기로 했어요. “주상 전하 납시오!” 갑작스러운 내관의 보고에 정조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 영조가 다짜고짜 물었어요. 정조는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하필이면 그때 할아버지가 읽지 말라는 책을 보고 있었거든요. “왜 대답을 못 하느냐?” “시경을 보고 있었습니다.” 정조는 이어지는 물음에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읽었던 시 때문에 오히려 위기에 처한 거예요. “당장 세손이 읽던 책을 가져오너라!” 영조의 불호령이 떨어졌어요. 내관들이 즉시 방으로 들어가 책을 가져왔어요. 영조는 노여움이 가득한 얼굴로 책을 펼쳐 들었어요. 어린 세손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여기 이 장은 어떻게 된 것이냐?” “예?” “왜 책장이 뜯겨 있느냐 말이다.” 정조는 할아버지 물음에 영문도 모르고 책을 살펴보았어요. 왕부의 시가 적혀 있어야 할 부분이 사라져 있었어요. “일부러 없앴다고 하십시오.” 홍국영이라는 신하가 귀엣말을 했어요. 정조는 비로소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눈치를 챘어요. 내관들이 방에 들어오기 전에 홍국영이 미리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아예 찢어 버린 거예요. “혹시라도 전하께서 읽지 말라는 부분을 보게 될까 봐 미리 뜯어냈습니다.” “다들 들었소? 세손이 이렇게 마음이 깊구려!” 영조는 흐뭇한 얼굴로 신하들을 돌아보았어요. 어린 세손에게 불충의 올가미를 씌우려던 신하들은 이로써 더 이상 시비를 걸어오지 못했답니다. 1776년 3월, 마침내 정조는 조선의 왕이 되었어요. “나는 사도 세자의 아들이다.” 왕이 된 정조가 처음으로 조정 대신들 앞에서 한 말이에요. 이때까지 정조는 사도 세자의 아들로 인정받지 못했어요. 사도 세자는 왕명을 어긴 죄로 죽었기 때문에 정조는 죄인의 아들이 되는 셈이지요. 죄인의 아들이 왕이 될 수는 없어서 정조는 죽은 삼촌의 양자로 살아야만 했어요. 할아버지 영조는 죽기 전에 이런 유언을 남겼어요. “내가 죽더라도 절대 아비의 일을 들춰내지 말도록 해라.” 정조는 할아버지의 엄명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유언을 거역하는 건 불효 중의 큰 불효거든요. 게다가 아직 조정에는 정조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정조는 아버지의 한을 풀어 주기까지 아직 오랜 세월을 참고 견뎌야 했어요. 1789년 10월, 경기도 양주의 산기슭에 있는 아버지의 묘에 당도한 정조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어요. 정조가 왕이 된 지 13년 되던 해였지요. “이렇게 누추한 곳에 아버지를 모시다니...!” 왕의 아버지가 묻힌 곳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해서 정조는 돌아오는 길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어요. 마침 사도 세자가 죽기 2년 전에 들렀던 온천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어요. 정조는 아버지가 다리에 난 종기를 고치려고 이 온천에 왔다가 백성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을 알고 호위대장에게 물었어요. “그때 내 아버지와 만난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말을 타고 온천 마을로 달려간 호위대장이 한참 만에 노인들을 몇 명 데려왔어요. 정조는 온천 마을에 사는 노인들을 통해서 아버지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한 노인은 사도 세자가 목욕을 마치고 한강을 건널 때 물이 불어나서 날이 저문 뒤에야 겨우 건너게 되었는데, 배 위에서 물끄러미 강물을 바라보다가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라고 되뇌었다고 전했어요. 백성이 임금보다도 소중하다는 말이었지요. 또 다른 노인은 어느 병사의 말이 달아나 백성들의 콩밭을 마구 짓밟았다는 얘기를 듣고는 사도 세자가 밭 주인에게 곡식값을 후하게 물어 주었다고도 했어요. “저희같이 천한 시골 노인들을 어찌나 잘 돌봐 주셨던지...” 노인들은 지난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어요. 정조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노인들에게 쌀을 선물하고 궁궐로 돌아왔어요. 그 후로 정조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깊어졌어요. 사도 세자의 묘소는 곧 화성으로 옮겨졌어요. 화성은 지금의 경기도 수원 지방을 말하지요. 정조는 아버지 무덤을 왕릉 못지않게 단장하고 ‘현륭원’이라 이름 지었어요. 그리고 근방에는 훗날 자신이 묻힐 자리도 미리 마련해 두었어요. 죽어서라도 부모님과 함께 있고 싶어서였지요. 현륭원 주위에는 용주사라는 낡은 절이 있었는데 정조는 이 절을 수리하고 크게 확장해서 아버지의 명복을 비는 사찰로 삼았어요. 그뿐 아니라 대궐 가까운 곳에도 아버지를 기리는 경모궁이라는 사당이 있었어요. 정조는 궁에서 편히 드나들 수 있도록 출입구를 따로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찾아뵌다’는 뜻의 현판을 써 붙이고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켰어요.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하기만 했어요. 이듬해 6월, 오랫동안 기다리던 기쁜 소식이 들려왔어요. 정조가 서른아홉 살의 늦은 나이에 세자를 얻은 거예요. “할아버지께 인사드리러 가자!” 정조는 매달 초하룻날이면 세자를 안고 경모궁에 가서 제사를 올렸어요. 하루빨리 세자를 현륭원에도 데려가고 싶었지만 그건 어른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한양에서 화성까지 가려면 한강을 건너야 했는데, 왕의 행차를 뒤따르던 사람들이 간혹 물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어요. “한강을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방법이 없겠소?” 정조는 아끼는 실학자 정약용에게 대책을 물었어요. “전하, 배다리를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정약용의 의견은 수십 척의 작은 배를 연결하여 띄워 놓고 그 위에 평평한 나무판자를 이어서 말이나 가마 등이 지나다닐 수 있게 한다는 거였어요. “그것 참 좋은 생각이오!” 정조는 탁 하고 무릎을 쳤어요. “그럼 새 다리를 만드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들고, 필요에 따라 쉽게 설치할 수 있으니 한강을 빨리 건너는 데 이보다 유용한 방법이 없겠구려.” 정조는 즉시 정약용에게 배다리를 만들게 했어요. 이것은 단순히 왕의 행차를 쉽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군사적인 목적으로도 쓰임새가 많은 방법이었어요. 만일 남쪽 지방에 왜적이 쳐들어오기라도 하면 군대가 빠른 시간 안에 한강을 건널 수 있게 되어 백성들의 피해가 한결 줄어들 테니까요. 배다리 덕분에 정조의 화성 행차는 더욱 편해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 묘소에 갔던 정조는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어요. 무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란 소나무는 죄다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서 꼴이 말이 아닌 거예요. 알고 보니 송충이가 소나무 잎을 다 갉아 먹은 것이었어요. 무덤을 죽은 사람의 집이라고 하는데, 아버지의 집 주변을 송충이가 엉망으로 만들었으니 효자 아들은 당연히 속이 상할 수밖에요.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던 정조가 내관에게 말했어요. “가서 송충이를 몇 마리 잡아 오너라.” “예, 전하!” 내관들은 이유도 모른 채 송충이를 잡아 왔어요. 다음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신하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왕이 송충이를 입에 넣고 꿀꺽 삼킨 거예요. 그런 다음 왕은 이렇게 소리쳤어요. “아무리 하찮은 벌레라지만 너희가 어찌 내 아버지 무덤의 솔잎을 갉아 먹을 수 있단 말이냐! 차라리 내 오장을 뜯어 먹어라!” 이 광경을 본 신하들은 모두 눈물을 뚝뚝 흘렸어요. 그런데 얼마 후, 아주 희한한 일이 벌어졌어요. 어디선가 수많은 솔개와 까마귀들이 나타났어요. “갑자기 이게 무슨 난리야?” 현륭원을 지키는 관리들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새 떼들은 일제히 소나무 숲으로 내려앉아 송충이들을 잡아먹기 시작했어요. 며칠이 지나자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소나무 가지에 새잎이 돋아나고 소나무 숲은 서서히 다시 살아나고 있었어요. 이를 보고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입을 모아 말했어요. “임금님의 효성에 하늘도 감동한 거야!” 아버지에 대한 효심뿐 아니라 정조는 일도 참 열심히 하는 것으로 유명한 임금이었어요. 바쁜 와중에도 틈날 때마다 현륭원을 찾아간 것은, 그만큼 효심이 갸륵한 것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어요. 한양에서 화성까지 오며 가며 백성들의 현실을 직접 확인하려고 했던 거예요. “힘 있는 양반들과 손을 잡은 상인들끼리 시장을 독차지하고 있으니 가난한 사람들은 먹고살 길이 막막합니다.” 길에서 만난 한 백성이 억울한 사연을 고했어요. 정조는 신하들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게 했어요. 그 결과 몇몇 상인들이 한양의 상권을 틀어쥐고 다른 사람들은 장사를 못 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누구나 도성 안에서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하라.” 곧 왕명이 떨어졌어요. 그러자 백성들은 좀 더 싼 값에 물건을 사고팔 수 있게 되었고, 시장에는 다시 활기가 넘쳤어요. 정조는 또 재능이 뛰어난 인재는 첩의 자식이라도 벼슬길에 오를 수 있게 법을 뜯어고치기도 했어요. 덕분에 훌륭한 실학자들이 빛을 보게 되었지요. 뿐만 아니라 양반들이 도망친 노비를 멋대로 처벌하는 것도 법으로 금지하고, 아예 노비 제도를 없앨 계획까지 세웠답니다. 조선 시대에는 노비도 양반의 재산이었어요. 노비를 물건처럼 사고팔기도 했지요. 정조는 백성을 괴롭히는 나쁜 정치를 바로잡으려면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자 원래부터 정조가 왕이 되는 것을 꺼리던 대신들은 죽기 살기로 반대하고 나섰어요. 평등한 세상이란 곧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내놓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으니까요. 정조는 그들을 한양에서 떨어뜨려 놓아야 조금이나마 세력을 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마침 그때 정조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아예 수도를 화성으로 옮기는 거였어요. “10년 후에는 왕궁을 차차 화성으로 옮길 것이오.” 이 한마디로 조정은 발칵 뒤집혔어요. 정조는 요즘의 신도시처럼 한양에 버금가는 새로운 도시를 화성에 개발하려는 거예요. 정조는 왜 하필 10년 후를 강조했을까요? 여기에는 남들이 모르는 왕의 깊은 뜻이 있었어요. 조선 시대에 아들이 왕이 되면 죽은 부모도 왕이나 왕비로 봉하는 제도가 있었어요. 그러나 정조는 어릴 때 큰삼촌의 양자가 되었기 때문에 친아버지에 대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었어요. 자신이 왕위에 있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 영조의 유언을 따라야만 했지만 다음 왕이 되는 사람은 이 유언을 지키지 않더라도 불효를 저지르는 게 아니었어요. “네가 열다섯 살이 되면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한을 꼭 풀어 드리도록 해라.” 정조는 어린 세자를 안고 경모궁에 갈 때마다 늘 이렇게 당부했어요. 화성 신도시 개발 계획을 밝힌 지 10년째 되는 해는 바로 세자가 열다섯 살이 되는 해였어요. 정조는 조금 이른 나이지만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그렇게라도 자신의 소망을 이루고 싶었던 거예요. 사도 세자의 능을 옮겨 오기 전까지만 해도 화성은 민가가 거의 없는 허허벌판이었어요. 신도시가 만들어지려면 먼저 사람들이 살 만한 환경이 이루어져야 해요. 먹을 물, 농사지을 물이 충분해야 하고 짐을 운반하는 마차가 다닐 수 있는 길도 닦아야 돼요. 또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이 잘 운영되고 있어야 해요. 10년 앞을 내다보는 계획이라지만 이런 일을 하나하나 해결하려면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어요. 일단 화성에 가서 살겠다는 사람들이 없다는 게 문제였지요. “관청에서 먼저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백성들이 먹고 살아갈 방법이 있어야 할 텐데...” 좌의정 채제공을 비롯한 몇몇 신하들과 매일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짜내던 정조는 어느 날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길 들었어요. 수원에 사는 한 관리가 상소를 올렸어요. “화성 주변에 사는 장사 수단이 좋은 부자를 골라 우선 관청에서 돈을 마련해 주고 원하는 사람들에게 장사 밑천을 빌려주게 해서 삼 년 후에 갚도록 하면 백성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상소를 읽은 정조는 매우 흡족해하며 대신들을 돌아보았어요. “전하!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을 듯합니다.” 신하들이 모두 찬성하며 머리를 조아렸어요. 정조는 곧 화성의 상인들에게 자금 1만 5천 냥을 빌려주도록 관청에 지시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곡식을 파는 상점을 비롯하여 생선 가게, 포목점, 그릇 가게, 신발 가게 등 화성에 온갖 점포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어요. 황무지나 다름없던 곳이 비로소 사람 사는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거예요. 수도를 옮기려면 그 밖에도 많은 준비가 필요했어요. 궁궐을 새로 짓고 성을 쌓는 일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는 작업이었어요. 정조는 최소한의 비용과 인력으로 성을 쌓기를 원했어요. “정약용이라면 충분히 이 일을 해낼 수 있을 거야!” 정조는 즉시 정약용을 불러들이려 했지만 공교롭게도 그는 고향에 내려가 시묘살이 중이었어요. 부모님 돌아가시면 삼 년 동안 무덤을 지키는 걸 시묘살이라고 해요.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정조는 기발한 방법을 떠올렸어요. 정약용을 수원성 공사의 책임자로 하되, 시묘가 끝날 때까지는 집에서 공사 계획서를 짜게 하고, 대신 실학자 중 한 명인 유형원을 현장 감독으로 임명한 거예요. “즉시 정약용에게 사람을 보내 내 뜻을 알리도록 하라.” 마침내 왕명이 떨어졌어요. 고향에 내려가 있던 중에 느닷없이 수원성 공사의 책임을 맡은 정약용은 수많은 책을 읽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어요. 정조가 도읍을 화성으로 옮기려는 바탕에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갸륵한 효심과 더불어 군주로서의 결단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동안 정조는 수없이 화성을 오가면서 나라 걱정에 잠시도 마음 편할 때가 없었어요. 한번은 정약용을 비롯한 신하들 앞에서 이렇게 탄식했어요. “마치 큰 병을 앓은 것처럼 온 나라에 원기가 빠져 있다. 어찌하면 백성들의 아픔을 보듬어 줄 수 있겠는가?” 정조는 화성을 조선 최고의 경제 도시로 만들어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어요. 정약용은 하루빨리 그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수원 성제)라는 계획서를 책으로 엮어 정조에게 바쳤어요. 정약용이 써서 바친 계획서에는 인력을 활용하는 방법과 비용을 절약하는 법은 물론, 큰 돌을 들어 올리는 거중기와 도르래에 대한 설명까지 상세하게 담겨 있었어요. “역시 정약용이야!” 정조는 계획서를 읽어 보고 몹시 만족스러워했어요. 정약용이 중국 책을 보고 발명한 거중기는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하여 힘을 적게 들이고도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장치예요. 요즘으로 치면 크레인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계획서에 적힌 대로 기구를 만들도록 하라.” 정조는 정약용이 설계한 그림을 바탕으로 대궐에서 직접 제작한 거중기 한 대를 공사 현장에 내려보냈어요. 마침내 조선 역사에 빛나는 ‘효의 도시’ 건설이 그 첫발을 내디딘 거예요. 성을 쌓는 작업이 진행되기 전부터 백성들은 이미 많이 지쳐 있었어요. 새 도읍이 들어설 준비만으로도 노동력을 동원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요. 여기에 성을 쌓는 공사까지 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어요. 공사에 참여한 인부만 해도 무려 수천 명이나 되었어요. 성곽을 쌓으려면 산에서 무거운 돌을 캐내고 다듬어 수레로 하나씩 옮겨야 했어요. 백성들이 힘들다고 불평할 만도 한데 백성들은 전혀 그러지 않았어요. “다들 힘을 내서 공사를 빨리 끝내자고!” 저마다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면서 아주 신바람 나게 일을 하는 거예요.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요? 정조는 공사 기간 내내 백성들의 불편을 최대한 덜어 주기 위해 애썼어요. 제아무리 뜻이 좋아도 백성을 괴롭히는 정치는 군주로서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백성들에게 무조건 노동을 강요하지도 않았어요. 모든 일꾼들에게 고생한 대가를 지불하게 하되, 나랏돈이 아닌 왕실 재산을 쓰도록 했어요. 또한 공사에 참여한 기술자와 관리 감독 수천 명의 이름과 출신 지역 등을 기록하여 그 노고를 역사에 남겼어요. “우리 임금님 참 인심도 좋으셔. 날이 춥거나 더우면 공사가 아무리 바빠도 일을 멈추게 하시니 말이야!” “따지고 보면 이게 다 우리 백성들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려고 시작한 일 아니겠나?” 백성들은 두 사람 이상만 모이면 왕을 칭송하기 바빴어요. 그들이 이렇게 왕을 믿고 따른 것은 진심이 통했기 때문이랍니다. 추수철이면 농민들이 곡식을 타작하고 넓은 동네 마당에서 말렸어요. 그런데 왕의 행차가 있을 때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다 보니 마당을 지나다 무심코 곡식을 망가뜨릴 수도 있었어요. “한 톨의 곡식이라도 밟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정조는 절대 농가에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신하들에게 일렀어요. 덕분에 점심나절이면 도착할 행렬이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현륭원에 닿았어요. 또 어느 해 여름은 유난히 찌는 듯한 날씨가 계속 이어졌어요. “공사에 무더위까지 겹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구나.” 정조는 백성들을 위로할 방법을 궁리하던 끝에 왕실에서 더위를 이기는 약을 조제하여 공사 현장에 보내 주었어요. “어떤 임금이 우릴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겠나?” 백성들은 왕이 베풀어 준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이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삼 년의 시묘살이를 마치고 마침내 정약용이 돌아왔어요. “이제야 한시름 놓겠구려. 백성들이 한시라도 빨리 생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대가 힘을 좀 써 주시오.” “예, 전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약용은 왕명을 받들어 곧 화성으로 떠났어요. 현장에서는 다 같이 힘을 합쳐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역시 문제는 성곽을 쌓는 작업이었어요. 수원성은 팔달문, 장안문, 창룡문, 화서문의 사대문과 북수문, 남수문, 공심돈, 장대 등 48개의 시설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런 시설물은 대개 평지에 세워져 일하기가 쉬운 편에 속했어요. 하지만 성곽은 그 길이부터가 5.7킬로미터, 걸어서 4천8백 걸음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어요. “그래, 공사 기간을 줄일 방법은 찾았소?” 얼마 후 현장을 찾은 정조가 정약용에게 물었어요. “전하, 성곽을 동시에 네 곳에서 쌓아 나가면 어떨지요?” 정조는 정약용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어요. 동서남북 네 방향의 성곽 공사는 원래 북성에서 시작하여 남성을 함께 쌓다가 이때는 서성까지 세 곳을 동시에 쌓는 중이었어요. 그런데 정약용은 여기에 동성까지 합쳐서 네 군데 공사를 한꺼번에 진행하자는 의견이었어요. “그러자면 기술자와 일꾼들이 추가로 필요하지 않겠소?” “그 문제는 전혀 염려할 것이 못 됩니다, 전하!” 정약용은 정조의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했어요. 효심 깊은 왕이 백성들을 어버이처럼 아낀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의 기술자와 일꾼들이 너도나도 공사를 돕겠다고 나선 거예요. 얼마나 지원자가 많았던지 원래 모집한 숫자의 네 배나 되는 인원이 몰려들어 현장 관리자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답니다. 공사가 막바지에 이른 1795년 음력 2월 중순에 화성 행궁에서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가 열렸어요. 팔달산 동쪽에 세워진 화성 행궁은 한양의 경복궁 못지않게 규모가 웅장하고 아름다웠어요. 이 궁궐을 모두 돌아보려면 여러 시간이 걸릴 정도예요. 정문 역할을 하는 신풍루는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라는 뜻으로 사도 세자를 기리는 효심이 물씬 깃든 공간이에요. 높다란 이 층 누각으로 오르면 수원성이 한눈에 들어오지요.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한 궁전과 침실도 따로 만들었어요. 정조는 한양에서 수천 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화성에 당도했어요. “주상께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행궁을 처음 본 혜경궁 홍씨가 감격의 눈물을 흘렸어요. ‘아버지도 이 자리에 함께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정조는 어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울컥 목이 메었어요. 정조는 새로운 성에서 열리는 이 잔치가 매우 성대하고 특별한 행사가 되도록 여러모로 마음을 썼어요. 신하들이 혜경궁 홍씨에게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축배를 올릴 때마다 다양한 음악과 궁중 무용이 펼쳐졌어요. 행사 시중을 드는 인원만 200명이 넘었지요. 다음 날에는 화성에 사는 노인 수백 명을 초청하여 경로잔치를 베풀고, 장수를 기원하는 지팡이를 선물했어요. 또 전국 각지의 70세 이상 노인 8만여 명에게도 골고루 상을 내렸어요. 정조는 행사가 진행되는 틈틈이 어머니 상태를 살폈어요. 어머니는 먼 길을 행차한 탓인지 얼굴이 약간 부었고 기력이 떨어진 느낌이 들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상에 차려진 음식이 70가지가 넘는데 어머니는 별로 입맛이 당기지 않는 눈치였어요. 정조는 여간 낙심한 게 아니었어요. 잔칫날 어머니가 입맛을 잃은 것은 자신의 성의가 부족한 탓이라 여겼기 때문이에요. 그는 어머니 앞에 놓인 상을 유심히 살펴보았어요. 진수성찬으로 가득한 밥상이 왠지 부족한 느낌이 들었어요. 뒤늦게 까닭을 알아차린 정조가 상궁에게 은밀히 말했어요. “해삼, 쇠고기, 홍합은 기력이 떨어졌을 때 좋은 음식이다. 미음이나 죽으로 만들어 다시 올리도록 해라.” 환갑을 맞은 어머니는 이가 약해서 아무리 좋은 음식도 씹기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한 거예요. 이윽고 상궁은 쇠고기와 말린 홍합, 해삼을 곱게 갈아서 불린 찹쌀과 섞어 만든 삼합죽을 대령했어요. “처음 먹어 보는 음식인데 맛이 괜찮구나.” 정조는 갑자기 입맛이 돌아온 어머니를 보고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어요.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음식을 ‘효의 음식’이라 불렀어요. 정조 20년(1796년) 9월, 수원성이 웅장한 위용을 세상에 드러냈어요. 애초에 10년을 목표로 계획했던 공사가 2년 반 만에 끝난 거예요. 이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어요. 정약용의 거중기도 기일을 앞당기는 데 큰 몫을 했어요. 이 거중기는 현장 일을 수월하게 해 준 것은 물론, 공사비를 약 4만 냥이나 절감할 수 있게 해 주었어요.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기적의 일등 공신은 백성들이었어요. “임금님 만세!” 수원성이 완공되는 날, 백성들은 왕을 찬양하며 만세를 불렀어요. 공사가 끝난 뒤에도 고향으로 가지 않고 화성 주위를 맴도는 백성들이 아주 많았다고 해요. 그만큼 정조는 역대 어느 왕보다도 백성들에게 사랑받는 군주였어요. 백성들의 환호성도, 또 완공을 축하하러 왔던 대신들도 모두 물러가고 정조는 신풍루 누각에 홀로 서 있었어요. 눈 아래 펼쳐진 신도시를 굽어보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어요. “장하다, 내 아들!” “조금만 기다리시면 꼭 아버지를 왕으로 추존해 모셔 드릴게요!” 정조는 눈물로 다짐했어요. 하지만 이 맹세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1800년 6월,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갔기 때문이에요. 평소 유언대로 정조는 부모님 산소 곁에 묻혀 마지막 슬픈 효심을 역사에 아로새겼어요. 정조가 소원을 풀 수 있게 된 건 그로부터 백 년의 세월이 흐른 1899년이에요. 고종 황제는 사도 세자를 ‘장조’로 추존하여 조선의 역대 왕들과 똑같이 대우하고 제사도 함께 모셨답니다.
예로 조선의 정신을 바로세운 대학자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이황은 1501년 경상북도 안동의 온계리 마을에서 7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어요. 안타깝게도 이황이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요.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 자라는 아이들이 늘 걱정이었어요. 그래서 틈날 때마다 아이들을 앉혀 놓고 말했지요. “세상 사람들이 과부의 자식은 예의도 없고 공부도 못한다며 비웃는다. 그러니 너희는 남들보다 두 배로 더 학문과 예절에 힘써 그런 비웃음을 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린 이황은 어머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 두었어요. 그래서 어른을 보면 항상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친구들 앞에서도 되도록 겸손하려고 노력했어요. 아비 없는 자식이란 놀림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아버지가 없는 집의 가세는 그리 넉넉하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농사와 양잠으로 8남매를 키우느라 늘 힘들어했지요. “글을 배워야 과거 시험도 보고 벼슬을 할 텐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드니 큰일이구나.” 이황은 여섯 살이 되어서야 글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이웃의 노인이 천자문을 잘 안다는 소문을 듣고 어머니가 이황을 가르쳐 주도록 부탁한 것이지요. “이젠 나도 글자를 배울 수 있게 되었어!” 이황은 무척 기뻤어요. 천자문을 배우러 갈 때는 아침 일찍 일어나 깨끗이 씻고 옷차림을 단정하게 하여 스승에 대한 예의를 갖췄어요. 또한 문밖에서 전날 배운 것을 외워 보고 혹시 잊은 것은 없는지 살펴본 다음에야 스승에게 갔어요. 조금이라도 예의를 벗어난 행동을 해서 부모님을 욕보이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이황은 형제들과 우애가 깊었어요. 특히 나이 차이가 많은 큰형은 아버지 같은 존재였어요. “남자는 함부로 울지 않는 거야.” 큰형은 동생들에게 늘 이런 말을 했어요. 이황은 큰형을 무척 존경하고 따랐지요. 하루는 큰형이 칼에 손을 베었어요. “형님! 아파서 어떡해요.” 이황은 큰형의 손을 붙잡고 엉엉 슬피 울었어요. 하지만 정작 다친 형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지요. 울음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어머니가 깜짝 놀라 달려왔어요. 그리고 두 형제를 보고 물었어요. “다친 형은 가만히 있는데 왜 네가 그리 슬피 우는 것이냐?” “어머니, 큰형은 나이가 많아서 아파도 울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피가 흐르는데 어찌 아프지 않겠어요?” 알고 보니 나이 많은 형이 울지 못하는 것을 알고 대신 울어 준 거예요. 형을 끔찍이 생각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지요. 어느 날 이황의 숙부 이우가 진주 목사로 가게 되었어요. “둘째와 넷째 조카는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숙부는 집안이 풍족하지 못해 어머니가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두 형제를 데려다 직접 공부를 시키려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황은 형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서운했어요. 그래서 어머니한테 투정을 부렸어요. “어머니, 형님들이 멀리 가는 건 싫어요. 제발 가지 말라고 해 주세요!” 이황의 말에 어머니가 말했어요. “비록 네 아버님께서 일찍 돌아가셨어도 우리는 선비의 집안이다. 자식 된 너희들 역시 글공부를 열심히 하여 나라에 보탬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네 형님들은 그러기 위해 숙부에게 가는 것이니 아쉽더라도 참아라.” 이때 이황은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달았어요. 형들이 떠나간 뒤로 이황은 더욱 책 읽기에 힘썼어요. 다행히 집에는 아버지가 남긴 책들이 많이 있었어요. 방에서 혼자 책을 읽을 때도 이황은 늘 바른 자세로 앉아 읽었어요.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지요. ‘진정한 예의란, 남들이 보고 있지 않은 곳에서도 항상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이황은 누가 보고 있으나 혼자 있으나 행동이 한결같았어요. 어딜 가나 예의 바르고 단정한 이황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너나없이 칭찬을 늘어놓았어요. “황은 아직 어린데도 책을 읽을 때는 항상 흐트러짐이 없으니 참으로 대견하구나.” “아버지가 안 계신데도 반듯하게 잘 자랐어!” “저렇게만 커 준다면 이다음에 우리 고을뿐 아니라 나라를 빛낼 큰 인물이 되고도 남지 않겠나?” 이황은 이렇게 칭찬해 주는 사람들이 고마워 더욱더 열심히 노력했어요. 이황이 열두 살 때였어요. 갑자기 병이 들어 휴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숙부가 하루는 어머니한테 말했어요. “황이 총명하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제가 잘 가르쳐 볼 테니 집으로 보내십시오.” 숙부는 몸이 아픈데도 틈틈이 이황의 학업을 살펴 주었어요. 어느 날 숙부가 말했어요. “예의 본체는 마음이다.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보다 예를 지키려는 마음을 단련하고 기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숙부는 슬픈 것을 보고 슬퍼할 줄 아는 마음을 기르고, 사치스러운 것을 멀리하며 소박한 생활을 즐기려는 마음을 키우지 않으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모두 거짓된 것이라고 가르쳤어요. 이 말은 이황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했어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마음의 도리가 바로 예의 근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이황의 숙부 이우는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여 조정의 여러 관직에서 일했고,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어요. 또한 성품이 엄격하여 자식들에게도 칭찬하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이황을 대할 때는 조금 달랐어요. 이황이 공부를 열심히 하면 가끔씩 칭찬을 해 주었어요. “형님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크게 슬퍼했는데 너처럼 뛰어난 아이를 남기셨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숙부의 이황에 대한 사랑은 각별해서 기대 또한 컸어요. “너는 장차 가문을 크게 번성시킬 만큼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아까운 재능을 썩히지 않으려면 항상 큰 뜻을 품어야 한다.” 숙부는 이황을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했어요. 하지만 잘못한 일이 있으면 엄한 스승이 되어 꾸중을 내렸어요. 학문에 대해서는 특히 철저했어요. 이황도 그런 숙부의 뜻을 알고 더욱 열심히 정진했어요. 숙부의 가르침 속에 이황의 학문은 나날이 발전했어요. 하루는 논어를 읽고 있었어요. “학문하는 자는 집에 들어오면 마땅히 효도해야 하고 집을 나가면 마땅히 어른들을 공경해야 한다.” 이 구절을 읽자마자 이황은 무릎을 탁 쳤어요. “맞다! 자식 된 도리는 당연히 이래야 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가 몸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혹시 도울 일은 없는지 살피고, 바깥에 나가서도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도록 행동을 더욱 조심했어요. 이처럼 이황은 책을 읽고 배운 것들을 항상 실천했어요. 숙부는 이런 태도를 몹시 대견하게 여겼어요. “너는 굳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많은 걸 알아서 깨우치니 내가 매우 기쁘다! 또한 배운 것을 머리에만 담지 않고 스스로 실천하려고 애쓰는 마음 자세가 참 가상하구나!” 어느덧 이황은 열다섯 살이 되었어요. 그는 형들, 사촌들과 함께 절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이 무렵 이황은 형들이 독서하는 것을 따라갈 만큼 학문 실력이 성장해 있었어요. 절에서 공부하는 동안 이황은 당나라 시대 도연명의 시들을 즐겨 읽었어요. 자연과 함께 깨끗하게 살다 간 도연명의 삶을 참으로 부러워했지요. 그런 마음을 담아 지은 시가 ‘가재’라는 시예요. 돌 지고 모래 파니 저절로 집이 되고 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가니 발이 많기도 하다. 평생을 한 움큼 냇물에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으니 강호에 물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구나. 이황이 열일곱 살이 되었을 때 숙부가 세상을 떠났어요. 그 소식을 들은 이황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숙부는 이황에게 삶의 버팀목이자 스승이었어요. “숙부님께서 나를 친자식처럼 대해 주셨으니 나 또한 자식의 도리를 다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황은 사촌 형제들과 함께 삼년상을 치르며 아버지에게 하듯 정성을 다해 숙부를 보내 드렸어요. 훗날 이황은 숙부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요. “숙부께서는 가르치는 일에 엄격해서 잘했다는 칭찬을 한 일이 별로 없었다. 한번은 (논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게 했는데 그 일을 끝냈는데도 칭찬이 없었다. 배우는 과정을 엄하게 세워 내가 조금이라도 게을러지지 않도록 하셨다. 내가 학문을 부지런히 하게 된 것은 오로지 숙부의 가르침과 격려 덕분이다.” 숙부가 세상을 떠난 후 이황은 스승 없이 혼자 공부했어요. 이미 학문의 길에 들어선 이황에게 공부는 모든 걱정을 잊게 만드는 안식처가 되었어요. 이황은 스승의 빈자리를 보충하기 위해 글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또 아무리 성현의 말씀이라도 의심을 가지고 다시 생각해 보려고 애를 썼지요. 그렇게 학문에 매달리면서 자신만의 성리학 체계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어요. 열아홉 살이 되었을 때 이황은 이런 시를 쓰게 되었어요. 산속 초당에서 홀로 만 권의 책을 즐기며 한결같은 생각으로 지낸 지 십 년. 이제야 근원과 마주한 듯하여 마음 꽉 잡고 태허를 알아본다. 이황은 마침내 성리학의 체계를 이해하기 시작한 거예요. 이황은 스물한 살이 되었을 때 허씨 집안의 딸과 결혼했어요. 이 무렵 이황은 먹고 자는 것까지 잊어 가며 독서에 몰입하느라 건강을 많이 해쳤어요. 이황의 어머니는 아들이 좀 더 안정된 생활을 하기를 바라며 서둘러 혼례를 치른 거예요. 혼례를 치르고 가장이 되자 무언가에 쫓기듯 독서에만 매진하던 이황의 모습은 안정적으로 변했어요. 부인에게도 다정다감하며 가정의 여러 가지 일을 살피는 자상한 남편이 되었지요. 결혼한 다음 해에는 첫째 아들 준이 태어났어요. 아버지가 되자 이황은 뛸 듯이 기뻐했어요. “내가 혼인을 하고 아들까지 두었으니 어머님께 해야 할 작은 도리를 다했구나! 어머님이 저리도 좋아하시니 참으로 기쁘기 한량없구나.” 이황은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성균관에 입학하기로 했어요. 한양으로 떠나면서 이황은 단단히 결심했어요. “성균관은 유학을 배울 수 있는 최고의 교육 기관이니까 가서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지!” 이때만 해도 성균관에 대해 큰 기대를 품고 있었어요. 하지만 막상 가 보니 기대가 곧 실망으로 바뀌었어요. 그 당시는 어진 선비들이 모함을 받아 귀양을 가는 등 나라에 어지러운 일이 많았어요. 그래서 선비들이 학문에 힘쓰기보다 권력자의 눈에 들려고 애쓰던 시절이었어요. “학문을 벼슬을 얻고 출세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은 선비들이 할 도리가 아니다!” 이황은 성균관의 기풍이 흐려진 것을 비판했어요. “쳇! 세상이 다 그런 건데 혼자만 잘난 척하기는.” 동료 선비들은 오히려 이황이 어리석다고 비웃었어요. 하지만 이황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어요. 그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오로지 학문에만 몰두했어요. 이황은 성균관에서 공부하면서 자신이 왜 공부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가치관을 세웠어요. 그리고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지요. ‘불의와 모함, 모든 비극은 탐욕으로 인해 일어난다. 자신만 살겠다는 이기심 때문에 어진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선비들은 학문에 힘쓰기보다 과거에 합격하여 출세를 하고 권력 잡기를 바란다. 학문을 바로 세우는 것만이 잘못된 질서를 되돌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힘들어하는 백성을 바르게 이끌기 위해서는 선비들이 스스로 청렴결백함을 실천하고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발전시킬 일꾼을 길러야 한다.’ 이황은 일부 성균관 선비들의 타락한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분명히 깨달았어요. 그렇게 성균관에서 공부한 지 4년 만에 잠시 고향에 들렀는데 마침 향시가 열렸어요. 지방에서 치러지는 과거 시험을 향시라고 해요. 이황은 그동안 성균관에서 쌓은 학업의 성과를 시험해 보려고 향시에 참가해 2등으로 합격했어요. “장하다, 내 아들!” 어머니는 이황의 합격 소식을 듣고 몹시 기뻐했어요.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는가 싶었는데 뜻밖의 불행이 찾아왔어요. 부인 허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받게 된 거예요. 이황은 급히 집으로 달려갔어요. 하지만 이미 부인은 세상을 뜨고 말았지요. 혼인한 지 6년이 지났지만 공부하느라 대부분 떨어져 지내야 했던 부인이었어요. “부인! 고생만 시켜서 정말 미안하오.” 이황은 크게 슬퍼하며 아내의 장례를 정성껏 치러 주었어요. 아내가 죽은 지 3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어요. 평소 이황이 존경하던 유학자 권질이 찾아왔어요. “이건 조심스러운 말인데, 자네를 믿고 얘기하겠네. 내 딸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네. 자네가 그런 내 딸을 아내로 맞이해 주겠나?” 이황은 처음에 무척 당황할 수밖에 없었어요. 만일 다른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분명히 화를 냈을 거예요. 하지만 이황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권질의 딸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모함을 받아 귀향 가고, 숙부는 형장에서 숨을 거두는 것을 보고는 그만 정신을 놓아 장애가 생긴 거예요. 이황도 그 사정을 알고 있어 혼인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내로 인해 이황은 자주 곤경에 처했어요. 하지만 그는 항상 아내를 너그럽게 감싸고 보호해 주었어요. 아내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무시하거나 함부로 여기지도 않고 항상 예를 갖춰 대했지요. 이황이 서른 살이 되었을 때 한양에서는 초시에 급제한 사람들만 볼 수 있는 진사 회시가 열렸어요. 이황은 이 시험에 응할 생각이 없었지만 둘째 형의 다음과 같은 권유로 마지못해 시험을 보게 되었어요. “스스로 열심히 하는 공부도 의미 있지만, 네 학문이 얼마나 깊어졌는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느냐?” 형은 이미 벼슬길에 나가 훌륭한 인품으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었어요. 이황은 차마 그런 형의 권유를 마다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시험을 치르자마자 고향에서 급한 연락이 왔어요. “아니! 어머님이 쓰러지셨다니.!” 이황은 시험 결과를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고향으로 떠났어요. 어머님이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가는 도중에 과거에 급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황은 서둘러 집으로 향했어요. 다행히 어머니는 차차 건강이 회복되었어요. 한시름 놓은 이황은 다시 공부에 매달렸어요. 그런데 가족들은 오로지 공부만 할 뿐 벼슬에는 통 관심이 없는 이황을 보며 무척 안타까워했어요. 하루는 둘째 형이 어머니한테 말했어요. “어머님, 황이는 인품이나 재주가 참으로 비범합니다. 그런데 벼슬에는 뜻이 없으니 매우 걱정입니다. 저렇게 학문만을 파다 언제 대성하여 집안을 일으키겠습니까? 어머님께서 기회를 보아 잘 좀 일러 주십시오.” 얼마 후 어머니가 이황에게 말했어요. “굳이 중앙의 높은 벼슬이 싫다면 지방 수령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그럼 집안 식구들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거고 너도 학문을 계속 연구할 수 있지 않겠느냐?” 이황은 어머니의 당부를 차마 거절할 수 없었어요. “그래,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학문의 으뜸이야. 어머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도 시험을 치르자.” 마침내 이황은 과거 시험을 보기로 했어요. 서른두 살에 문과 별시 2등에 올랐고, 이듬해 경상도에서 열린 향시에 응시해서는 장원으로 합격했어요. 이황은 비록 자신이 간절히 원해서 본 시험은 아니지만 시험에 합격할 때마다 기뻐하는 어머니를 보며 마음에 큰 위안으로 삼았어요. 서른네 살이 되던 해, 나라에서 대과를 치른다는 포고가 나왔어요. 대과는 모두 세 번의 시험을 치르는데 첫 시험에서는 200명 정도를 뽑고, 두 번째 시험에는 33명을 뽑고, 마지막으로 임금이 직접 낸 문제를 푸는 최고로 어려운 시험이에요. 이황은 이 대과에서 당당히 1등 장원으로 급제를 했어요. 이황은 장원 급제 후 고향으로 내려갔어요. 고향 사람들은 마을 입구에 나와서 축하 인사를 건넸어요. “이는 나라의 복이요, 우리 고을의 경사일세!” 어머니는 어사화를 쓴 아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보았어요. “너만 보면 아비 없이 자란 자식이라 늘 걱정이 많았는데 이렇게 장원 급제를 하였으니 참으로 바랄 게 없다. 돌아가신 아버님도 정말 기뻐하실 게다. 이제 벼슬길에 나가 충직한 신하가 되고, 백성을 사랑하는 관리가 되어라.” “예, 어머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어머니가 기쁨의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이황은 굳은 약속을 했어요. 벼슬보다는 학문의 참뜻을 깨우치려고 시작한 공부지만, 이렇게 기뻐하는 어머니 모습을 보니 백성들을 잘 다스리는 것으로 배움을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이황은 승정원 부정자의 자리에 임명받아 관직 생활을 시작했어요. 승정원 부정자는 그리 높은 벼슬은 아니지만 외교 문서를 다루는 자리여서 상대 나라의 문물이나 제도, 관습 등에 밝아야 했지요. 이황은 이때부터 관심 있는 학문의 연구보다는 나라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했어요. 그 덕분에 이황의 일처리는 매사에 깔끔하고 훌륭했지요. 이런 모범적인 자세를 눈여겨보던 중종 임금은 이황에게 새로운 벼슬자리를 내렸어요. “이황의 학문이 깊으니 예문관 검열과 춘추관 기사관 자리를 겸직하게 하라.” 벼슬자리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이황에게는 파격적인 대우였어요. 하지만 이황은 이런 벼슬에도 자만하지 않고 묵묵히 맡은 일을 잘 처리해 나갔어요. 중종 임금이 이황에게 관심을 보이자 조정의 관료들은 이황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했어요. 그 당시 조정의 실권자였던 김안로도 이황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했어요. 그 소식을 들은 동료들은 다들 한마디씩 했지요. “김안로에게 잘 보이면 출세야 식은 죽 먹기지.” “아무렴, 김안로에게 잘못 보이면 힘들지.” “이제 이황의 앞길은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구나.” 모두들 김안로를 만나 보라고 했어요. 하지만 이황은 김안로와의 만남을 거절했지요. “지조를 지켜야 할 선비로서 떳떳하지 못한 만남입니다!” 김안로는 이황의 거절에 몹시 화가 났어요. 그러자 주변 사람들도 이황의 행동에 당황했어요. 혹시 자신에게 나쁜 일이 생길까 봐 이황을 피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김안로와의 만남을 거절한 것은 곧 나쁜 결과로 나타났어요. 김안로는 이황에게 호송관을 맡으라는 명을 내렸어요. 그 당시는 왜구들의 노략질이 잦아서 사로잡힌 왜구들을 절차에 따라 부산의 동래까지 데려가서 일본에 넘겨주어야 했는데, 그 일을 맡게 된 거예요. 원래 이 일은 무관이 하던 일인데 문관인 이황에게 맡긴 것은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이지요. 사람들이 수군거렸어요. “이황이 김안로를 무시하다 안 해도 될 고생을 하는구나.” 하지만 이황은 싫은 내색 없이 그 일을 성실하고 깔끔하게 처리해 주변을 놀라게 했어요. “과연 이황이 뛰어나다더니 어떤 일을 맡겨도 잘하는구나.” “이러니 어떻게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사람들은 점점 이황의 인품에 대해 칭찬하기 시작했어요. 그 후 임금은 다시 이황을 궁궐로 불러들였어요. “이황이 곁에 없으니 적적하구나. 당장 조정으로 불러라.” 이번에는 벼슬이 더 높아져 성균관 전직과 호조좌랑을 함께 맡으라는 직책이 내려졌어요. 그리고 얼마 후에는 홍문관 부수찬 자리에 올랐어요. 홍문관 부수찬은 궁궐의 중요 문서와 역사 기록을 관리하고 임금이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자리예요. 날이 갈수록 이황의 벼슬은 높아만 갔어요. 벼슬이 높아질수록 주변에 시기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어요. 하지만 학문과 인품이 뛰어난 이황을 존경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너무나 슬픈 소식이 전해졌어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가 온 거예요. “아, 어머니! 이 불효를 어찌하오리까!” 이황은 온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이황은 서둘러 고향으로 내려왔어요. 장례를 치른 후에는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 3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시묘를 했어요. 그 정성이 보통이 아니어서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가슴이 뭉클할 지경이었어요. “이황의 효심은 참으로 대단해.” “저런 자식만 있다면 부모들은 다들 행복할 거야.” 지극한 정성은 자식 된 도리로 당연한 것이었으나 이황의 몸이 그리 건강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어요. 어머니 산소 옆에 움막을 짓고 사는 동안 이황은 빼빼 말라서 자리에서 일어서기도 힘든 지경이었지요. 형제들 모두가 걱정이 되어 말렸지만 이황은 3년 동안 어머니 묘소를 벗어나지 않았어요. 그동안 어머니를 잘 모시지 못한 죄스러운 마음에 가슴이 아려 왔지요. 시묘가 끝났을 때는 건강이 몹시 안 좋아졌어요. 그런데 삼년상이 끝나자마자 한양으로 돌아오라는 임금의 전갈이 도착했어요. 몇 달이라도 쉬라고 친척들이 말렸지만 이황은 바로 한양으로 향했어요. 사실 고향에 계속 머물면 어머니 생각에 더 슬프고 힘들 것 같았거든요. 한양에 도착한 이황은 세자의 스승으로 임명되었고 사헌부 지평이라는 벼슬자리를 받았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홍문관 교리로 승진했어요. 벼슬은 자꾸 올라가고 임금과 조정의 신임은 높아졌지만 이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지쳐 갔어요. 건강하지 못한 것도 문제였지만 하고 싶은 학문을 할 수 없다는 것도 큰 문제였지요. “아, 나랏일도 물론 보람되지만 못 다한 학문을 깊이 연구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한스럽구나. 고향에 가면 지친 마음과 몸도 달랠 수 있을 텐데.” 이황은 벼슬살이보다는 고향으로 내려가 열심히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들을 가르치고 싶었어요. 하지만 임금이 허락해 주지 않으니 별도리가 없었어요. 이황은 벼슬살이를 하며 유명한 이야기를 많이 남겼어요. 그 가운데 좌의정 권철과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어요. 권철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권율 장군의 아버지예요. 하루는 권철이 이황의 집을 방문했어요. 그런데 집이 너무 가난해서 부끄러울 지경이었어요. 이황의 방에는 책상 하나만 단정히 놓여 있고 사방에 책만 쌓여 있을 뿐 별다른 장식이 없었어요. 그러다 저녁이 되어 두 사람은 식사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권철은 밥상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좁쌀로 지은 밥과 나물국, 김치 한 종지가 전부였거든요. 벼슬로 치면 이황도 고관에 속했지만 집도 그렇고 먹는 음식도 너무 소박했어요. 결국 이황이 밥상을 내려다보며 한마디 했어요. “융숭한 대접을 못 해 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일반 백성이 먹는 밥에 비하면 진수성찬입니다.” 권철은 이황의 말에 감동하여 아무 말도 못 했어요. 이런 일도 있었어요. 이황이 벼슬을 살던 시대는 당파 싸움이 극심한 시기였어요.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물러나고 중종이 왕위에 오른 후에는 사회 개혁을 꿈꾸던 조광조가 역모 혐의로 죽임을 당했어요. 또한 왕실의 외척인 윤원형과 윤임의 세력이 두 파로 나뉘어 서로 싸우던 시기였어요. 이황 역시 당파 싸움의 물결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이참에 임금이 신임하는 이황도 몰아냅시다.” 윤원형 일파가 윤임을 역모로 몰아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이황도 역시 벼슬에서 물러나야 했어요. 그러나 청렴결백한 이황을 믿어 주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 나라가 썩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황같이 훌륭한 사람을 몰아낸단 말이오!” 정권을 잡고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윤원형 일파는 결국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밀려 이황의 벼슬을 되돌려 주었어요. 이 사건을 겪으면서 이황은 많은 생각을 했어요. 자신이 남들보다 학문은 깊을지 몰라도 당쟁을 조절하는 역할은 잘 해내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여러 차례 조정에 사직 상소를 올렸어요. 하지만 병이 들어 잠시 관직에서 물러나 있다가도 곧 임금의 부름을 받고 나가는 일이 반복되었어요. 그러다가 이황은 두 번째 부인마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더는 한양에 있고 싶지 않았어요. “부디 고향에서 가까운 곳에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황은 건강이 많이 나빠진 상태에서 다시 상소를 올렸어요. 그러자 임금은 더 이상 청을 거절하지 못하여 그를 단양 군수로 임명했어요. 그런데 요양을 겸하여 간 단양의 사정은 별로 좋지 못했어요. 3년 동안 흉년이 계속되어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었거든요. 이황은 자신의 병든 몸을 돌보지 않고 백성들을 구제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백성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어요. 얼마 후 이황은 다시 풍기 군수로 발령을 받았어요. 단양을 떠날 때 백성들이 몰려와 작별을 아쉬워했어요. “선정을 베푸신 덕분에 이제 고통받는 이들이 줄고 있는데 저희를 두고 떠나시면 어찌합니까!” 이황도 아쉬워하며 백성들과 헤어졌어요. 풍기 군수가 된 후에도 이황의 삶은 변하지 않았어요. 그곳에서는 백운동 서원을 바로 세운 일이 가장 눈에 띄는 업적이에요. 백운동 서원은 우리나라에 처음 성리학을 전한 문선공 안향을 모신 서원이에요. “조선 성리학의 뿌리나 마찬가지인 서원의 관리가 잘못되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낡고 초라합니다.” 이황은 백운동 서원을 보수할 수 있게 도와 달라는 상소를 올렸어요. 당시 임금인 명종은 상소를 보고 많은 돈과 함께 ‘소수 서원’이라는 이름까지 손수 써서 보내 주었어요. 이것으로 백운동 서원은 우리나라 최초로 사액 서원이 되었어요. 풍기 군수를 끝으로 이황은 정계에서 완전히 은퇴했어요. 하지만 명종 임금은 수시로 이황을 불러 곁에 두고 싶어 했지요. 결국 이황이 완전히 정계를 떠나기까지는 스무 차례도 넘게 사직 상소를 올려야 했어요. 1560년, 이황은 고향으로 내려가 그동안 소홀히 했던 학문에 정진했어요. 그러자 이황에게 배우고자 하는 선비들이 이황의 고향집에 구름처럼 몰려들었어요. “스승님, 제발 가르침을 주십시오!” 이황은 이들을 모두 내칠 수 없어 고향의 도산 남쪽에 경치 좋은 터를 잡아 서당을 만들었어요.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많은 책을 집필했지요. 도산 서당을 완성하는 데는 5년이나 걸렸어요. 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지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도 소박한 성격의 이황은 학문하는 곳이 너무 크고 좋다며 서당을 지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답니다. 이황은 명종의 계속되는 부름에 못 이겨 다시 벼슬길에 나가게 되었어요. 그리고 명종이 승하하고 선조 임금이 등극하자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선조 역시 이황을 곁에 두고 싶어 했어요. “이것은 신이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의 도리와 성리학의 기본 원리를 연구해서 정리한 것입니다. 곁에 두고 참고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이황은 (무진봉사)와 (성학십도)를 지어 임금께 바치고 겨우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이 두 가지 글은 성리학의 근본을 밝혀 설명한 것으로 오늘날에도 연구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해요. “내가 죽거든 무덤을 호화롭게 꾸미지 말고 최대한 장례를 간소하게 지내도록 하라.” 이황은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제자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어요. 1570년, 여러 임금의 스승이자 선비들의 정신적 기둥이었던 이황은 칠십 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어요. 이황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단정하게 앉은 자세로 잠든 듯이 세상을 떠났어요. 대학자다운 마지막 모습이었지요. 이황의 죽음에 선조는 몹시 슬퍼하며 큰 벼슬을 내렸고, 이황을 흠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찾아왔어요. 이황의 학문과 저서들은 그 후 성리학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이황의 제자들에 의해 성리학이 완전히 정착되었고, 일본의 유학자들은 공자를 알려면 주자를 알아야 하고, 주자를 알려면 이황을 알아야 한다며 이황을 공자와 같은 높이로 생각했지요. 유럽의 학자들은 공자의 유학을 제1유학, 주자의 성리학을 제2유학, 이황의 실천 유학을 제3유학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그만큼 이황이 평생을 통해 공부한 학문은 대단한 업적이 되어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쳤답니다.
노예를 해방시킨 정직한 대통령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1809년 2월 12일, 햇빛이 눈부신 아침이었어요. 통나무로 지은 자그마한 오두막집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어요. 그 울음소리를 듣고 동네 사람들이 몰려왔어요. “토머스, 축하하네! 아기가 똘똘하게 생겼는걸.” “나중에 큰 인물이 되겠어요. 축하해요, 낸시.” 동네 사람들은 토머스와 낸시 부부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어요. 토머스와 낸시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에이브러햄 링컨이에요. 그 이름은 할아버지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지요. 링컨의 할아버지는 1780년대 초에 버지니아 주에서 켄터키 주로 이사를 왔어요. 그런데 켄터키 주는 사나운 짐승들이 들끓는 험한 땅이었어요. 더욱이 그 땅의 원래 주인인 인디언들의 공격을 받는 곳이기도 했지요. 결국 링컨의 할아버지는 백인에게 적개심을 품은 인디언들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어요. 링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어요. 그래서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몰랐지요. 하지만 두 사람은 부지런하고 정직했어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땀 흘려 일한 대가만을 바랄 뿐, 그 외에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지요. 링컨에게는 두 살 위의 누나 세라가 있었어요. 그리고 토머스라는 남동생이 있었지요. 가난한 탓에 세 아이는 제대로 먹지도 못했어요. “한 끼라도 배불리 먹였으면 좋으련만.” 어머니는 배고파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워했어요. 늘 배고픔에 시달렸지만 링컨과 세라는 잘 자랐어요. 하지만 막내인 토머스는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병에 걸려 일찍 죽고 말았답니다. 링컨은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도와 일을 했어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밭에 씨앗을 뿌리고 잡초를 뽑았어요. 곡식이 익으면 추수도 함께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넌지시 말했어요. “여보, 우리 애들도 학교에 보내는 게 어때요?” “하루하루 겨우 먹고사는 우리 형편에 어떻게.” 아버지는 말끝을 흐렸어요. 어머니는 아버지를 설득했어요. 그래서 링컨은 누나 세라와 함께 학교에 다닐 수 있었지요. 학교는 6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어요. 게다가 통나무로 만든 교실 하나뿐이었지요. 교과서도 공책도 없었어요. 그래도 링컨은 누나와 함께 신나게 학교에 다녔어요. 하지만 링컨이 학교에서 공부한 날은 채 일 년도 되지 않았어요. 농사일이 많을 때마다 링컨은 학교에 가지 못했어요. 또 자주 이사를 했기 때문에 학교에 갈 수가 없었지요. 링컨은 학교에 다니지 못해서 무척 속상했어요. 그런 링컨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고는 했어요. “너무 실망하지 마라. 나처럼 글을 잘 몰라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단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랐어요.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해. 학교에 못 가더라도 무엇이든 배우려고 노력해라. 그럼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하게 될 거야.” 비록 학교에 다니지는 못했지만, 링컨은 어머니의 말에 용기를 얻어 열심히 공부했어요. 링컨이 일곱 살 때였어요. 링컨의 가족은 농사짓기에 좋은 인디애나 주로 이사했어요. “이곳으로 이사 오길 정말 잘했구나!” 이사한 뒤 첫 번째 추수를 할 때 아버지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요. 그런데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을에 괴질이 나돌기 시작했어요. 사람의 혀가 우윳빛처럼 하얗게 변하고 온몸에 불덩이 같은 열이 나는 무서운 병이었지요. 사람들은 그 병을 우유병이라고 불렀어요. 우유병이 나돌면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었어요. “엄마, 왜 그러세요?” “아니, 여보!” 어느 날 밭에 나가 일하고 돌아온 링컨과 아버지는 깜짝 놀랐어요. 어머니가 앞마당에 쓰러져 있었던 거예요. 어머니는 두통과 높은 열로 무척 고통스러워했어요. 우유병에 걸린 거예요. 하지만 당시에는 주위에 병원이 없었어요. 더욱이 고칠 수 없는 병이라서 병원이 있어도 소용이 없었지요. 링컨은 누나 세라와 함께 어머니를 정성껏 간호했어요. 물수건을 이마에 얹어 주기도 하고, 죽도 끓여 드렸지요. 하지만 어머니의 병은 나날이 깊어 갔고, 몸은 갈수록 수척해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링컨과 세라를 조용히 불러 앉히고 말했어요. “얘들아, 이제 너희들과 작별을 해야겠구나." "부디 아버지 말씀 잘 듣고, 항상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가도록 해라.” “엄마, 안 돼요! 엄마!” 링컨과 세라가 울부짖으며 매달렸지만 어머니는 끝내 세상을 뜨고 말았어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링컨 가족은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어요. 집 안에서 웃음소리도 사라졌어요. 세 식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시무룩한 채 말도 잘 하지 않았지요. 세라가 집안일을 맡았지만 아직 어려서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요리 솜씨도 서툴러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었지요. 링컨은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펐지만,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어요. “슬퍼도 씩씩하게 살아가자!” 링컨은 이렇게 다짐했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남긴 말을 되새기면서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가기로 결심했어요. 링컨의 어머니가 죽은 지 1년째 되는 날이었어요. 볼일이 있다면서 집을 나섰던 아버지가 낯선 아주머니를 데리고 왔어요. 아주머니 곁에는 아이들 셋이 서 있었지요. “얘들아, 인사드려라. 새어머니시다.” 아버지가 아주머니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아버지는 링컨과 세라를 돌보기 위해 새어머니를 들인 거예요. “안녕! 난 샐리라고 한단다.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자.” 아주머니가 말했어요.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주머니는 우아한 데다 교양이 있어 보였어요. 아주머니는 세 아이를 링컨과 세라에게 소개해 주었어요. 세 아이의 이름은 각각 엘리자베스, 마틸다, 그리고 존이었지요. 링컨은 새어머니가 어머니 자리를 차지한 것 같아 처음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하지만 집안에 활기가 도는 데다 새로 형제들이 생겨서 다행이다 싶었지요. 새어머니는 상냥하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링컨과 세라를 친자식 셋과 똑같이 잘 돌보았어요. 그리고 저녁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지요. 링컨은 그런 새어머니를 잘 따랐어요. 새어머니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책을 빌려 와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권했어요. “지식을 얻는 데는 책이 최고란다.” 새어머니는 특히 링컨에게 책을 많이 읽도록 했어요. 링컨은 책을 참 좋아했어요. 책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먼 곳이라도 찾아가 책을 빌려서 읽었어요. 어느 날 링컨은 서점에서 책을 한 권 빌려 왔어요. 그리고 읽다가 머리맡에 놓고 잤지요. 그런데 밤중에 폭우가 내린 바람에 책이 흠뻑 젖어 버렸어요. 링컨은 다음 날 서점에 찾아갔어요. 그러고는 책이 왜 젖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이렇게 말했지요. “정말 죄송해요. 책이 못 쓰게 됐으니까 책값을 물어야 하지만 돈이 없어요. 대신 사흘간 여기에서 일할 테니 허락해 주세요.” 서점 주인은 링컨의 정직한 마음에 감동했어요. 그래서 일을 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책을 마음껏 빌려다 읽도록 했답니다. 링컨은 나이가 들면서 키가 쑥쑥 자랐어요. 열여섯 살 때 이미 190센티미터 가까이 되었지요. 그리고 어려서부터 힘든 일을 한 덕에 건강하고 힘도 셌어요. 링컨이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자, 아버지는 링컨이 돈을 벌어 오기를 바랐어요. “식구가 많아서 나 혼자서는 힘들구나.” “예, 알겠어요. 저도 이제 다 컸으니 나가서 돈을 벌겠습니다.” 링컨은 집을 떠나서 닥치는 대로 일했어요. 우물 파기, 장작 패기, 집 짓기 같은 일뿐만 아니라 나룻배로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 일도 했지요. 링컨은 그렇게 해서 번 돈을 집안 살림에 보탰어요. 링컨은 식료품 가게의 점원으로도 일했어요. 늘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손님을 맞이했지요. 손님들은 링컨이 부지런하고 친절하다며 칭찬을 했어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링컨은 하루 장사를 끝내고 그날 판 물건값과 손님에게 받은 돈의 액수를 맞추다가 깜짝 놀랐어요. 물건을 판 액수보다 받은 돈이 조금 더 많았던 거예요. 링컨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한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덜 준 걸 기억해 냈어요. “맞아. 오전에 설탕을 사 갔던 부인에게 거스름돈을 덜 드렸던 거야. 그 부인 집이 어디지?” 비록 적은 돈이지만 링컨은 부인에게 돌려주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링컨은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서 부인의 집을 알아냈어요. 그런데 이미 주위가 캄캄한 데다 부인의 집이 굉장히 멀었어요. 하지만 링컨은 두 시간쯤 밤길을 걸어서 그 집에 찾아갔어요. “오전에 저희 가게에서 설탕을 사셨죠? 제가 부인께 거스름돈을 덜 드렸어요. 죄송해요.” 링컨은 부인에게 잘못을 빌었어요. 그러고는 동전 몇 닢을 내밀었지요. “아니, 몇 푼 안 되는 돈인데 이 밤중에 이렇게 먼 곳까지 오다니.” 부인은 감동한 나머지 말끝을 흐렸어요. 그 일은 곧 소문을 통해 마을에 알려졌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링컨을 ‘정직한 링컨’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링컨이 식료품 가게에서 일하던 어느 날이었어요. 일리노이주 의원을 뽑는 선거를 치른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어요. 주 의원은 주를 대표하는 정치가인데, 그 무렵 링컨은 정치에 관심이 있어서 귀가 솔깃했어요. 그런 터에 사람들이 주 의원에 도전해 보라고 권했지요. “자네는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할 사람이니 도전해 보게.” “그래, 자네는 정직해서 인기가 많으니까 주 의원으로 뽑힐 수 있을 거야.” 링컨은 며칠을 고민한 끝에 선거에 나가기로 했어요. ‘주 의원이 되어 마을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면 그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을 거야.’ 링컨은 열심히 선거 운동을 했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선거에서 떨어지고 말았어요. 비록 주 의원이 되는 데는 실패했지만, 링컨은 선거를 통해 값진 경험을 했어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연설도 하면서 자신감도 얻었지요. 그런데 주 의원 선거에 나간 바람에 많은 돈을 써서 경제적으로 쪼들리게 되었어요. 더욱이 친구와 함께 조그만 가게를 열었는데 얼마 뒤 친구가 사고로 죽는 바람에 가게는 파산하고 빚만 지게 되었지요. ‘앞길이 막막하군.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지.’ 링컨은 절망하지 않았어요. 예전처럼 장작을 패거나 남의 집 울타리를 고치는 등 막일을 했어요. 그러다 나중에는 우편배달부와 측량기사 조수 등을 하며 생활을 꾸려 나갔어요. 링컨은 비록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정직한 가운데 성실하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열심히 일한 덕에 경제적으로 숨통이 조금 트이자 링컨은 다시 한 번 주 의원 선거에 도전했어요. 이번에는 전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선거 운동을 했지요.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기를 밀어 달라고 호소했어요. 한번은 링컨이 밀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게 다가가자 농부들은 이렇게 말했어요. “농사를 지어 보지 못했을 텐데 그런 사람이 우리 같은 농사꾼 마음을 알까?” “저는 대여섯 살 때부터 농사일을 했어요. 제가 낫으로 밀을 잘 베면 저를 믿어 주시겠습니까?” 링컨은 농부들보다 더 능숙하게 밀을 베었어요. 농부들은 링컨의 솜씨에 매우 놀랐어요. “솜씨가 대단한걸! 우리 모두 링컨에게 표를 던집시다!” 그 일로 링컨의 인기는 크게 높아졌어요. 결국 링컨은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로 주 의원에 당선되었어요. 주 의원 선거에 나서기 전, 당에서는 링컨에게 선거 자금으로 200달러를 보냈어요. 그 돈은 선거 자금으로 쓰기에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어요. “아니, 200달러로 어떻게 선거를 치르라는 거야?” 선거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렇게 투덜거렸어요. 하지만 링컨은 선거 자금으로 75센트만 썼어요. 그러고도 주 의원에 당당히 당선되었지요. 링컨은 편지와 함께 남은 돈 199달러 25센트를 당으로 돌려보냈어요.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지요. ‘남은 선거 자금을 돌려 드립니다.' '선거 연설에 든 경비는 제 돈으로 지불했고, 이곳저곳 말을 타고 다녔기에 비용이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동네 어른 한 분이 목마르다고 하셔서 음료수를 대접했는데, 거기에 75센트를 썼습니다.’ 링컨은 이렇게 정직했기 때문에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어요. 링컨이 주 의원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어요. 같은 주 의원이면서 변호사인 친구가 이렇게 말했어요. “링컨, 변호사 공부를 해 보지 않겠나? 마침 내게 법률 책이 많이 있는데 말이야.” 링컨은 정치를 제대로 하려면 법에 대한 지식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친구에게 책을 빌려 법률 공부를 하기 시작했지요. 링컨은 바쁘게 주 의원 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법률 책과 씨름했어요. 그 결과 3년 뒤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지요. 링컨은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메리 토드라는 아가씨와 결혼했어요. 그리고 몇 년 뒤 전국 국회 의원인 연방 의원에 당선되어 국회 의사당이 있는 수도 워싱턴으로 이사했지요. 인문학 인물 탐구2. 노예 해방과 함께 미국을 단결시키다. 당시 워싱턴에는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이 많았어요. 백인들은 흑인 노예들을 짐승처럼 다루었어요. 죽을 때까지 일만 시키는 것도 모자라 창고에 가두어 놓았다가 물건처럼 내다 팔기도 했지요. 어느 날, 링컨은 마차를 타고 워싱턴 시내를 다니다 흑인 노예를 파는 장면을 보았어요. 광장 한쪽에 쇠사슬에 발목이 묶인 흑인 노예들이 팔릴 순서를 기다리며 줄을 지어 서 있었어요. 이윽고 어린아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어요. “엄마, 나도 데려가! 엄마, 제발!” 그 아이는 다른 곳으로 팔려 가는 엄마 노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면서 매달리고 있었어요. “주인님, 제발 제 딸을 데리고 가게 해 주세요!” 엄마 노예가 백인에게 애걸했어요.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매서운 채찍질이었어요. 링컨은 그 광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날 밤, 링컨은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낮에 본 광경이 머릿속에서 맴돌아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이에요. ‘노예도 분명 사람인데 어떻게 그처럼 잔인하게 대할 수가 있을까!’ 링컨은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노예 제도를 없애는 데 앞장서기로 다짐했어요. 당시 미국은 노예 제도를 찬성하는 남부와 이를 반대하는 북부로 나뉘어 있었어요. 그리고 의회에서는 노예 제도를 찬성하는 민주당과 노예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공화당이 맞서고 있었지요. 링컨은 공화당에 가입했어요. 그러고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이렇게 외쳤어요. “노예 제도는 미국의 건국 이념인 자유와 평등의 정신을 거스르는 것이므로 반드시 없애야 합니다!” 링컨이 공화당에 들어오고 나서 얼마 뒤 공화당 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였어요. 곧 대통령 선거가 있기 때문에 후보를 뽑기 위해서였지요. 그 무렵 민주당은 이미 경력이 화려한 더글러스라는 의원을 후보로 정해 놓고 있었어요. 하지만 공화당은 그만한 인물이 없었어요. 그래서 모두 초조한 가운데 시간만 보내고 있었지요. 그러던 중 한 의원이 링컨을 대통령 후보로 내보내자고 했어요. “링컨이라고? 일리노이주 출신의 시골뜨기 말인가?” 나머지 의원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어요. “시골 출신이지만 링컨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놀라운 능력이 있네. 바로 정직함이지. 링컨은 정직한 사람으로 소문나 있어서 인기가 굉장하네.” 결국 공화당 의원들은 민주당의 더글러스와 맞설 대통령 후보로 링컨을 뽑았어요. 링컨은 가슴이 벅찼어요. 오래전부터 대통령을 꿈꾸어 왔거든요. 그런데 경쟁자인 민주당의 더글러스는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어요. 더글러스는 링컨 못지않은 뛰어난 연설가인 데다 일리노이주의 대법원 판사를 지낸 사람이었지요. 하지만 겁먹을 링컨이 아니었어요. 링컨은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미국 독립 선언서의 기본 정신과 정의에 대해 연설했어요. 또 나라가 분열하지 않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노예 제도를 두고 둘로 나뉘면 미국은 미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미국을 하나로 만듭시다!” 링컨의 연설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여 응원의 박수를 보냈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링컨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어요. 링컨은 남부를 빼고 미국 전역에서 큰 지지를 얻었어요. 그래서 1860년 11월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어요.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링컨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뛸 듯이 기뻐했어요. 특히 흑인들은 노예 제도를 반대하는 링컨의 대통령 당선 소식을 듣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환호성을 질렀지요. “링컨 대통령 만세!” 그러나 남부의 백인들은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모두 분개했어요. “노예 제도를 폐지하려는 링컨이 대통령이 되다니, 이건 우리 남부에 대한 선전 포고다!” “맞아, 링컨은 우리 남부의 적이야!” 남부의 백인들은 링컨을 원수로 여기고 증오했어요.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노예 제도를 둘러싼 북부와 남부의 대립은 더욱 심해졌어요. 급기야 남부의 몇몇 주들이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전에 미국 연방에서 탈퇴했어요. 그리고 남부 연합을 결성하고 제퍼슨 데이비스를 대통령으로, 알렉산더 스티븐슨을 부통령으로 선출했지요. 링컨은 나라가 북부와 남부로 갈린 채 맞서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호소했어요. “미국은 여러 주가 모여 이루어진 연방 공화국입니다! 따라서 몇몇 주가 마음대로 떨어져 나갈 수는 없습니다." "북부와 남부의 주가 서로 손을 잡고 함께 미국을 건설해 나가야 합니다!” 링컨의 호소에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분위기는 갈수록 나빠졌지요. 특히 링컨의 대통령 취임식 날이 가까워져 오면서 수도 워싱턴에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어요. 남부 사람들이 링컨을 암살할 거라는 소문이었지요. 실제 워싱턴 시내에서는 군인들이 곳곳을 지키고 있었어요. 그런 데다 총으로 무장한 채 건물에 숨어 있던 사람이 잡히기도 했지요. 링컨은 암살 위험이 있음에도 1861년 3월에 대통령에 취임=했어요. 그리고 국회에서 취임 연설을 했지요. “여러분! 지금 나라가 분열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적이 아니라 동지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서로에게 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링컨이 절실한 마음으로 호소했지만 온 나라가 당장이라도 전쟁이 날 듯 뒤숭숭했어요.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날까 봐 걱정했어요. 그리고 그 걱정은 얼마 안 되어 현실로 나타났어요.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한 달 뒤,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어요. 남부 연합의 군대가 북부의 군인들이 주둔한 섬터 요새를 공격하고 포위한 거예요. 링컨은 그 소식을 듣고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요새에 군대를 보내면 서로 피를 흘릴 게 뻔해. 그렇다고 요새의 병사들을 굶어 죽게 놔둘 수는 없지. 이를 어쩌면 좋을까?’ 결국, 링컨 대통령은 일단 전쟁은 피하자는 생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남부 연합군 쪽에 보냈어요. ‘섬터 요새에 식량만 보내겠습니다. 식량을 막지 않는다면 그곳에 군대나 무기는 절대로 보내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식량을 실은 배가 요새에 접근하려고 하자 남부 연합군이 포격을 가했어요. 결국 미국 역사를 피로 물들인 남북 전쟁이 시작된 거예요. 처음에 사람들은 전쟁이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북부 사람들은 북군이 가볍게 이길 줄 알았지요. “우리 북부는 남부보다 인구가 두 배나 많아." "또 북부는 공업이 발달하여 총과 탄약도 많지.” “어디 그뿐인가? 우리는 군수 물자를 실어 나르는 철도도 있고, 강력한 해군까지 있어.” 북부 사람들은 이런 이유를 들어 북군의 승리를 장담했어요. 그러나 북군은 첫 전투부터 남군에 패했어요. 남군에는 로버트 리 장군 같은 경험 많은 군인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북군에는 그런 뛰어난 장군이 별로 없었지요. 더욱이 남군은 용감하게 싸우는데, 북군은 겁을 먹고 도망가거나 남군에게 무기를 빼앗기는 병사가 많았어요. 전투에서 북군이 패하자 링컨은 초조했어요. 그러던 중에 뜻하지 않은 불행한 일이 생겼어요. 아들 윌리가 심한 열병을 앓다가 그만 세상을 떠난 거예요. 그 무렵 링컨의 건강은 무척 나빠졌어요. 아들의 죽음이 남긴 슬픔과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지요. 링컨은 몹시 지쳐 보였고, 몸은 앙상하게 말랐어요. 전쟁이 길어지면서 국민들도 지치기 시작했어요. 그에 따라 링컨에게 불만을 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어요. 링컨을 지지했던 사람들조차 링컨에게 불만을 품고 뿔뿔이 흩어졌어요. “링컨은 대통령으로서 능력이 없는 것 같아!” “대통령을 잘못 뽑았어!” 링컨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잘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지요. 링컨이 고민에 빠진 사이 전쟁터에서는 수많은 병사들이 죽거나 다쳤어요. 링컨은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어요. ‘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어! 전쟁 때문에 사랑하는 국민들이 희생당하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어떻게든 전쟁을 끝내도록 하자.’ 링컨은 속으로 그렇게 다짐했어요. 그러고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도와 달라고 호소했어요. “대통령인 저의 능력이 부족해서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힘을 보태 주십시오!” 대통령임에도 링컨이 정직하게 고백하자, 곁을 떠났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전쟁의 원인이 노예 제도에 있는 만큼 당장 폐지하라고 조언했어요. 그런가 하면 노예 제도를 인정해서 전쟁을 어서 끝내고 미국을 다시 하나로 통일하라는 사람도 있었지요. 링컨은 노예 제도를 인정할 수 없었어요. ‘노예 제도를 인정하면 전쟁을 빨리 끝낼 수는 있겠지. 하지만 미국은 자유와 평등의 정신을 바탕으로 건설된 민주주의 나라야.' 링컨은 맨 처음 마음먹은 대로 노예 제도를 폐지하는 쪽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했어요. 그 무렵 남부는 목화와 담배 등을 재배하여 영국에 수출하고 있었어요. 따라서 남부에는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는 부유한 농장주들이 많았지요. 그런데 그들은 흑인 노예를 소유하는 것을 아주 당연한 일로 여겼어요. 노예가 필요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조차 노예를 소유하고 마음대로 부리는 걸 정당하다고 믿고 있었어요. 노예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공식 선언하면 남부 사람들이 더 거세게 반발할 게 뻔했어요. 더욱이 남부의 목화와 담배를 수입하는 영국은 남부의 군대를 지원하고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노예 제도 폐지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 같았지요. 몇몇 사람들이 이 점을 들어 노예 제도를 폐지하려는 링컨을 말렸어요. 그때마다 링컨은 이렇게 말했어요. “아닙니다. 나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동등한 혜택과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내 신념을 지키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정직하다고 하는데, 신념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정직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1863년 1월 1일, 링컨은 마침내 미국의 모든 노예는 영원히 자유의 몸이라는 내용의 노예 해방 선언문을 발표했어요. “우리는 이제 해방되었다!”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선언했다는 소식에 흑인 노예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어요. 특히 남부에서 짐승처럼 혹사당하던 흑인 노예들은 자유를 찾아 북부로 몰려왔어요. 그러고는 남부의 군대에 맞서 싸웠어요. 그러던 중에 남부의 군대를 지원하던 영국이 태도를 바꾸었어요. 노예 제도를 옹호하는 나라로 낙인찍힐까 봐 남군 지원을 포기한 거예요. 결국 전쟁은 북부 쪽에 유리하게 흘러가 마침내 북군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어요. 하지만 전쟁은 이긴 쪽이나 진 쪽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겼어요. 4년 동안 계속된 전쟁으로 무려 60만여 명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어요. 그리고 미국의 도시 곳곳이 폐허로 변했지요. 링컨은 전국을 다니며 전쟁으로 희생된 병사의 넋을 기리고 상처를 입은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했어요. 특히 전쟁 탓에 멀어진 남부와 북부 사이를 좁히기 위해 쉴 틈 없이 일했지요. 주위 사람들은 링컨에게 잠시만이라도 쉬라고 권했어요. 링컨은 아들을 잃은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부인 메리를 위로할 겸 연극을 보러 극장에 갔어요. 그러다 노예 해방에 불만을 품은 남부 출신의 연극배우가 쏜 총에 맞았지요. “링컨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총에 맞은 링컨은 이튿날인 1865년 4월 15일 아침, 숨을 거두었어요. 링컨의 시신은 기차에 실려 그의 고향으로 향했어요.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기찻길로 몰려나와 링컨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렸어요. 가난 속에서도 정직하게 살고, 굳은 의지로 노예 해방과 함께 남북으로 나뉜 나라를 하나로 합친 링컨. 오늘날 미국 사람들은 그런 링컨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하고 있답니다.
거짓말을 모르는 기업가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유일한은 1895년에 평양에서 태어났어요. 유일한의 아버지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옷감 장사를 하여 큰돈을 벌었어요. 또 아버지는 서양 문물에 관심이 많아 기독교를 믿었고 서양에서 온 선교사들과 친하게 지냈어요. 하루는 알고 지내던 한 선교사가 아버지에게 말했어요. “이번에 조선 소년 몇 명을 뽑아 미국에 보내려고 합니다. 미국 교회에서 도와주기로 했거든요." "미국에 가면 신학문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럼 앞으로 이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수 있는 훌륭한 인물을 키워 낼 수 있을 겁니다.” 아버지는 선교사의 말에 귀가 솔깃했어요. “그럼 우리 아들을 좀 미국으로 보내 주십시오.” 아버지는 선교사의 손을 꼭 잡고 진심으로 부탁했어요. 아버지의 말에 선교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선교사가 주선을 해 주어 유일한은 마침내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어요. 당시 유일한의 나이는 겨우 열 살이었어요. 아버지와 함께 제물포항으로 나간 유일한은 달랑 가방을 하나 둘러메고 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어요. “어서 배에 타거라.” 유일한은 몇 번이나 아버지를 돌아보며 커다란 배에 올라탔어요. “가서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큰 사람이 되어 다시 돌아와 이 나라를 위해 뜻있는 일을 하거라! 알겠느냐?” 아버지가 손나발을 하고 큰 소리로 외쳤어요. 그 무렵 우리나라는 일본의 침략으로 서서히 기울어져 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나라를 위해 뜻있는 일을 하라고 말씀을 한 것이지요. “네, 열심히 공부할 테니 걱정 마세요!” 유일한은 배 위에서 제법 당당한 목소리로 소리쳤어요. 하지만 사실 유일한은 어린 나이에 혼자 멀고 먼 미국으로 간다는 것이 좀 두렵고 무서웠어요. 미국에 도착한 유일한은 네브래스카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살게 되었어요. 자매인 두 아주머니가 사는 집에 머물면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지요. 두 아주머니는 마음도 따뜻하고 친절한 분이었어요. 유일한은 전혀 영어를 할 줄 몰랐지만 열심히 영어를 익히며 학교에 잘 다녔어요.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냈지요. 어느덧 세월이 흘러 유일한은 미국 생활에 익숙해졌어요. “이제 영어 실력이 꽤 좋아졌네. 말하고 쓰는 데 아무 문제도 없으니 말이야.” “그러게. 우리 리틀 유가 워낙 머리가 좋잖아, 호호호.” 두 아주머니는 작은 일에도 걸핏하면 유일한을 칭찬해 주었어요. 두 아주머니는 친절하고 다정한 성품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엄격한 면도 있었어요. 잘한 일에는 아낌없이 칭찬해 주지만 잘못한 점이 발견되면 따끔하게 혼내는 것도 잊지 않았어요. 무엇보다도 검소하고 절약 정신이 투철한 것,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정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큰 장점이었어요. ‘나도 두 아주머니처럼 검소하고 정직한 사람이 될 거야.’ 유일한은 자기를 보살펴 주는 두 아주머니를 보고 늘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하루는 유일한이 두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다음 주부터 신문 배달을 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두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 물었어요. “공부하기도 힘들 텐데 왜 신문 배달을 하려고 하지?” “제 용돈 정도는 제가 벌어 쓰려고요.” “참 좋은 생각이야. 하지만 힘들면 언제든 그만두도록 해라. 우리가 부자는 아니지만 네 용돈 정도는 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유일한은 신문 배달을 하며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의 학교생활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어요. 오히려 더 활기차고 열정이 넘쳤지요. 그러는 사이에 몇 년이라는 세월이 금세 지나갔어요. 고등학교에 다닐 때 유일한은 미식축구 선수가 되어 뛰어난 실력을 뽐냈어요. 미국에서는 미식축구가 상당히 인기가 좋아서 실력이 뛰어나면 사람들의 우상이 되었지요. “정말 번개 같은 솜씨야!” “우리 학교 최고의 스타라니까!” 친구들도 유일한의 실력에 다들 혀를 내둘렀어요. 유일한은 미식축구부 주장까지 맡아 시합마다 큰 활약을 펼쳤어요. 그뿐 아니라 미식축구 선수에게는 장학금까지 주어서 생활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지요. 어느덧 조국을 떠나온 지 10년이 지났어요. 유일한은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 무렵 아버지에게서 편지가 한 통 왔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이제 그만 조국으로 돌아와 집안을 이끌어 가라는 내용이었어요. “아, 이를 어쩌면 좋지?” 유일한은 고민에 빠졌어요. 당시 조국은 일본에 합방되어 아버지와 가족들은 북간도로 옮겨 가서 살고 있었어요. 그동안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아버지는, 장남인 유일한이 얼른 돌아왔으면 하고 기대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는 고민 끝에 미국에 남아 계속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아버지에게 아직 돌아갈 수 없다고 편지를 보냈어요. 그와 함께 은행에서 100달러를 빌려 아버지께 보내 드렸어요. 당시 100달러는 아주 큰돈이었어요. 아버지는 그 돈으로 넓은 농장을 사서 다시 집안 형편은 괜찮아졌어요. 유일한은 대학에 가기 전에 1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여 은행에서 빌린 돈을 모두 갚았어요. 그러고는 이듬해에 미시간 대학교에 입학했어요. “이제 학비와 생활비를 내가 직접 벌어야겠다.” 그는 어떻게 돈을 벌지 궁리하다가 미국에 건너와 사는 중국인들에게 물건을 팔기로 마음먹었어요. 중국인들은 오래전에 조국에서 떠나와 자기 나라 물건들에 그리움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는 중국에서 만든 비단, 찻주전자, 부채, 수를 놓은 손수건 등을 수입해 중국인들에게 팔기 시작했어요. “와, 이건 정말 오랜만에 보는걸. 참 예쁘다.” 중국인들은 유일한이 내놓는 물건을 아주 잘 샀어요. 장사는 성공적이었어요. 그는 이제 학비 걱정 없이 대학에 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대학을 다니며 장사를 해 본 경험은 유일한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래서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회사에 취직하지 않고 자기 사업을 시작했어요. “어떤 사업을 하는 게 좋을까?”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숙주나물 장사를 하기로 했어요. 숙주나물은 중국인이 즐겨 먹는 만두의 주요 재료였어요. 미국에 사는 중국인들은 자기 나라에서 먹던 만두를 먹고 싶어 했는데, 미국에는 숙주나물이 별로 없어 고민이었어요. “스미스, 나랑 식품 회사를 함께 해 보자.” 유일한은 친구 스미스에게 함께 회사를 차리자고 제안했어요. 스미스는 성실한 유일한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터라 바로 승낙했어요. 두 사람은 숙주나물을 통조림에 넣어 파는 식품 회사를 차렸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숙주나물 통조림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어요. 유일한은 식품 회사가 잘되어 큰돈을 벌었어요. 이 소문은 태평양 건너 조선에까지 알려졌어요. 신문에 ‘조선 청년이 미국에서 식품 회사를 차려 백만장자가 되었다’는 기사가 실릴 정도였지요. 그러던 어느 날, 스미스가 말했어요. “일한, 녹두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 어쩌면 좋지?” 녹두는 숙주나물의 원료예요. 녹두에서 싹이 나서 자란 것이 바로 숙주나물이지요. 유일한은 고민을 하다 녹두를 구하기 쉬운 중국으로 출장을 가기로 마음먹었어요. “중국에 가면 녹두를 싼 가격에 얼마든지 살 수 있어. 내가 다녀올 테니 자네가 회사를 잘 운영하고 있게.” 그는 바로 중국으로 떠났어요. 중국에 도착한 유일한은 녹두를 파는 가게를 찾아갔어요. 가게는 작았지만 거래하는 곡물은 대단히 많은 이상한 가게였어요. 그는 궁금하여 주인에게 물었어요. “이렇게 어마어마한 곡물을 거래하는데 가게는 왜 이렇게 작죠?” “아직 젊어서 잘 모르는 모양이군. 가게를 으리으리하게 차려 놓으면 세무서에서 알고 세금을 많이 내라고 한단 말이야. 세금을 많이 내면 나만 손해라고.” 유일한은 주인의 말에 깜짝 놀랐어요. ‘이 사람은 나라에다 세금을 안 내고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심보로군. 참으로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야.’ 그는 절대 이 사람처럼 되지는 말자고 결심했어요. 사업을 하여 앞으로 아무리 많은 돈을 벌더라도 반드시 정직하게 세금을 내는 깨끗한 사업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거예요. 중국에서 많은 양의 녹두를 사서 배로 부친 뒤 유일한은 가족이 살고 있는 북간도로 갔어요. 무려 21년 만에 가족과 만나는 거예요. “오, 우리 아들! 어서 오너라!” 아버지와 어머니가 반갑게 맞아 주었어요. 그가 미국으로 떠난 후에 태어난 동생들도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어요. 그는 아버지 어머니께 큰절을 하고 미국에서 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어요. “미국에서 대학까지 나와 겨우 숙주나물 장사를 한다고?” 아버지는 그가 하는 사업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요. 미국에서 공부를 했으니 무언가 나라에 보탬이 되는 좀 더 큰일을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는 아버지 마음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비록 식품 회사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 나라에 보탬이 되는,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유일한은 미국으로 곧장 돌아가지 않고 조선 땅으로 건너가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았어요. “아, 아니! 저렇게 험하게 살고 있다니!” 사람들은 너무 힘들게 살고 있었어요. 낡은 옷을 입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사람들, 거리에 쪼그리고 앉아 음식을 파는 아주머니들, 또 그 옆에 앉아 칭얼대는 아이들을 보고 그는 충격을 받았어요. 모두들 제대로 먹지 못해 병에 걸린 듯 얼굴색이 좋지 않았어요. 어떤 사람은 이미 병에 걸린 것 같은데 가난하여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약도 사 먹지 못하고 있었어요.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의약품이다. 국민이 건강해져야 나라가 건강해진다.” 그는 일단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 의약품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미국으로 건너간 유일한은 1년 전에 결혼한 아내 호미리에게 말했어요. “나는 우리나라로 귀국하여 의약품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소. 당신도 함께 갑시다.” 중국인이며 의사인 호미리는 조금 망설였지만 결국 남편의 뜻에 따르기로 했어요. 그는 의약품을 잔뜩 사서 조선으로 떠날 준비를 했어요. 그동안 해 왔던 식품 회사는 친구 스미스에게 넘기고 그 대가로 받은 돈을 조선에서 새로 시작할 의약품 사업의 밑천으로 삼기로 했지요. 스미스는 유일한이 조국으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 몹시 아쉬워했어요. “자네 없이 나 혼자 이 회사를 이끌어 갈 생각을 하니 걱정이네. 어쨌든 조국으로 가서 새롭게 도전하는 사업도 꼭 성공하기를 비네.” 미국을 떠나기 전에 그는 독립운동가 서재필 박사를 찾아갔어요. 서재필 박사는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어요. 서재필 박사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힘을 모아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에게 필요한 사업을 해서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네. 부디 훌륭한 사업가가 되어 국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도록 하게.” 서재필 박사는 그의 성이 버드나무 유씨인 것에 착안하여 사업을 할 때 상표로 쓰라고 버드나무 그림까지 그려 주었어요. “힘을 모아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에게 필요한 사업을 해서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네. 부디 훌륭한 사업가가 되어 국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도록 하게.” 서재필 박사는 그의 성이 버드나무 유씨인 것에 착안하여 사업을 할 때 상표로 쓰라고 버드나무 그림까지 그려 주었어요. 그는 회사 이름을 ‘유한양행’이라고 지었어요. 유한은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고, 양행이란 말은 ‘서양으로 간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회사를 점점 키워 넓은 세계로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그는 사무실을 얻고 바로 사업을 시작했어요. 미국에서 가져온 약품은 결핵 치료제, 학질 치료제, 기생충을 없애는 구충제, 피부병 치료제 등등이었어요. 지금은 별것 아닌 질병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병에 걸려 죽는 사람도 많았어요. 그의 사업은 처음부터 순조롭게 풀려나갔어요. 사람들은 너도나도 유한양행에서 파는 약을 사려고 난리였어요. 약이 잘 팔리자 직원들이 그에게 건의했어요. “사장님, 약값을 더 올리십시오. 약값을 올려도 잘 팔릴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어요. “나는 지금의 가격이 정직한 가격이라고 생각하네. 그러니 다시는 내 앞에서 약값을 올리자는 말 따위는 꺼내지 말게.”
정직을 신념으로 미국의 기틀을 세운 지도자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1789년 4월 30일, 미국 최초로 대통령 취임식장에 오른 조지 워싱턴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어요. “국민의 부름을 받아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안 저는 일체의 개인적 보수를 사절(辭絶)하겠습니다.” 공무원 중에서도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대통령이 무보수(無報酬)로 일하겠다고 선언한 거예요. 의회의 간곡한 설득으로 조지 워싱턴은 결국 자신의 뜻을 꺾었지만 미국인들은 감동할 수밖에 없었어요. 사심 없이 국가를 위해 봉사하려는 대통령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조지 워싱턴은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 중 한 명으로 미국인들은 그를 ‘건국의 아버지’라고 부른답니다. 조지는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농장에서 태어났어요. 당시 버지니아주를 포함한 미국의 13개 주는 영국의 식민지(植民地)였어요. 영국 출신인 조지의 가족들이 버지니아에 살게 된 것은 증조할아버지 때부터였어요. 가족들은 버지니아주에서 대규모 담배 농장을 운영했고, 이 농장은 나중에 조지의 아버지가 물려받았어요. 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은 로렌스와 어거스틴 형제를 낳고 세상을 떠났어요.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인 조지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해 오 남매를 낳았어요. 조지는 그중 첫 번째 아들이에요. 농장 주변에는 큰 강물이 흘렀고 매일 다른 도시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페리(여객선)가 떠다녔어요. “형, 사람들이 왜 우리 농장을 ‘페리 농장’이라고 하는 거야?” 하루는 조지가 이복형(異腹兄)인 로렌스에게 물었어요. “저기 저 페리 주인이 우리 아버지이기 때문이야.” 로렌스가 말했어요. 당시만 해도 페리가 흔치 않은 시절이었어요. 강에는 페리를 비롯하여 보트, 바지선, 돛단배 등 온갖 종류의 배가 떠다녔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조지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사람은 물론 말이며 나귀, 소 등을 페리까지 실어 나르는 보트의 사공(沙工)이었어요. 그 사공은 늘 빨간 셔츠와 파란 바지 차림이었는데, 맵시 나는 긴 부츠에 파란 모자까지 갖춰 쓰고 묵묵히 보트를 몰아갈 때면 마치 강을 다스리는 왕처럼 멋있어 보였어요. “나도 이다음에 저 사람처럼 멋진 사공이 될 거야!” 조지는 늘 강둑에 앉아 공상(空想)에 빠져들곤 했어요. 어린 마음에는 그 사공이 모는 보트가 호화로운 페리보다 백 배 더 훌륭하고 근사해 보였어요. 세월이 흘러 조지는 일곱 살이 되었고, 이복형제인 로렌스와 어거스틴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조지에게는 베티, 사무엘, 존, 찰스 등 네 명의 동생이 있었어요. “형들이 집을 떠났으니 이젠 네가 동생들을 잘 돌봐야 한다.” 농장 살림을 돌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어머니는 조지에게 각별히 당부했어요. 페리 농장 주변에는 목공소, 구둣방, 양초 가게, 대장간, 식료품점, 세탁소 등 온갖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어요. 조지는 매일 이곳들을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언젠가 아버지는 조지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이 큰 농장의 주인이 되려면 농장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다 알고 있어야 한단다.” 그 일을 계기로 조지는 사공이 되겠다는 꿈을 버리고 아버지처럼 농장주(農場主)가 되기로 마음을 정했어요. 조지는 먼저 농장 곳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습을 관찰(觀察)했어요. 모르는 게 있으면 질문을 퍼붓기도 했지요. 일꾼들은 조지가 묻는 말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답니다. 문제는 철없는 동생들이었어요. “앗, 제발 그러지 마!” 막내 동생 찰스가 위험한 기계에 손을 대려 하자 조지가 달려가 동생을 안아 올렸어요. 겨우 찰스를 말리고 났더니 이번에는 사무엘이 목공소(木工所) 바닥에 나동그라졌어요. “사무엘! 괜찮아?” 그러는 사이에도 베티와 존은 숨바꼭질을 한다고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이리저리 뛰어다녔지요. “모두들 나가!” 참다못한 인부(人夫)들이 소리를 질렀어요. 대장간에서도, 구둣방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모두들 조지와 동생들이 나타나면 질색을 하고 내쫓았어요. 조지는 어떻게든 동생들을 떼어 놓고 싶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자신을 상대해 줄 것 같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조지는 동생들 몰래 창고에 숨어 있다가 그만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어요. 조지의 어머니는 무엇보다도 예의범절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식사 시간에 늦는 것은 예의 없는 행동이란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도 식사 종이 울리면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알았지?” 조지는 어릴 때부터 늘 이런 말을 듣고 자랐어요. 그런데 그날은 조지가 너무 깊이 잠이 드는 바람에 조금 늦게 저녁 식사에 참석(參席)했어요. 그동안 동생들은 어머니에게 조지가 자기들과 놀아 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렸어요. “동생들은 널 좋아해서 따라다니는 건데 그러면 안 되지.” 어머니는 동생들 말만 믿고 얼굴에 몹시 실망스런 기색(氣色)을 나타냈어요. “저도 동생들 좋아해요, 엄마. 하지만 저도 할 일이 많다고요.” 조지는 동생들과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어요. 그러자 조용히 듣고만 있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어요. “이제 사업도 잘되고 있으니 아이들을 돌봐 줄 사람을 구합시다.” 조지의 아버지는 벚나무를 무척 좋아해서 틈만 나면 정원에 묘목(苗木)들을 옮겨 심었어요. 그런데 하루는 정원의 벚나무 중 하나가 밑동까지 싹둑 베어져 있었어요. “누가 벚나무를 저렇게 만들었느냐?” 몹시 화가 난 아버지가 소리쳤어요. 아버지의 불호령에 아이들은 잔뜩 겁에 질렸어요. 당장이라도 벼락이 떨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지요. 그때 조지가 앞으로 나섰어요. “제가 그랬어요, 아버지.” “대체 무엇 때문에 나무를 벤 것이냐?” “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손도끼가 잘 드는지 실험해 보다 실수로 그만.” 조지는 크게 꾸지람 들을 각오를 하고 사실대로 고백했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조지를 껴안고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어요. “내가 오늘 아끼는 나무 한 그루를 잃는 대신 정직(正直)한 아들을 얻었구나!” 조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마을 근처에는 초등학교가 한 군데밖에 없었어요. 교회 묘지에 딸린 집에 교실(敎室)을 꾸며 놓고 하비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하비 선생님 수업은 정말이지 기괴하기 짝이 없었어요. 아이들은 해적, 경찰관, 구두쇠라고 쓰여 있는 묘비(墓碑) 앞에서 읽기와 쓰기, 산수 공부를 했어요. 가령 하비 선생님은 뺄셈 공부를 가르치기 위해 ‘사라 그라임즈, 1650년에 태어나서 1698년에 죽다’라고 쓰인 묘비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묻는 거예요. “자, 그럼 1657년에 사라는 몇 살이었지?” 심지어는 조지의 증조할아버지 묘비도 산수 공부에 사용되곤 했어요. “조지, 넌 머리도 안 빗고 학교에 오느냐? 혹시 집에 머리빗도 없는 거 아냐?” 어느 날 조회(朝會) 시간이었어요. 갑자기 하비 선생님이 조지를 놀리기 시작했어요. 조지는 곱슬머리라 약간 부스스한 느낌이 들 뿐, 머리를 안 빗고 가서 그런 건 아니었어요. “아닙니다, 선생님.” “아니긴 뭐가 아냐? 까치집이 그대로 있는데.” 졸지에 조지는 아이들 앞에서 놀림감이 되고 말았어요.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사촌 루이스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조지는 묘지에서 낯익은 가발을 발견했어요. “이거 하비 선생님 가발 아니야?” 조지가 묘비에 걸려 있는 가발을 집어 들었어요. 아마도 햇볕에 말리려고 걸어 둔 것 같았어요. 순간 조지는 장난기가 발동(發動)했어요. “루이스, 이 가발을 감추자!” 루이스는 가발을 높은 나무 위에 걸어 놓자고 했어요. “그러면 영영 찾지 못할지도 모르잖아.” 조지는 하비 선생님이 새 가발을 살 만큼 형편이 넉넉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렸어요. 교회 집사(執事)님이기도 했던 선생님은 일요일 예배 시간마다 영국 사람처럼 가발을 쓰고 나갔어요. 조지는 교회 옷장에 걸린 하비 선생님의 외투 속주머니에 가발을 넣어 두었어요. 가발을 잃어버린 선생님은 몹시 당황하여 학생들을 다그쳤어요. 하지만 가발을 찾을 수는 없었죠. 결국 선생님은 정직한 조지를 찾아왔어요. “조지, 난 이런 모습으로는 절대 교회에 갈 수 없어. 제발 부탁이니 누가 범인(犯人)인지 말해 주렴!” 조지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어요. “제가 감췄어요, 선생님!” 조지의 말에 어머니와 선생님은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조지! 왜 그런 짓을 했니?” 어머니가 놀라서 물었어요. “선생님이 제 머리를 보고 놀리셔서 그만 죄송해요.” 조지는 가발은 외투(外套) 속주머니에 있다고 알려 주었어요. 사정을 알게 된 선생님은 조지에게 사과했어요. “조지, 오히려 내가 미안하구나.” 그 뒤에도 하비 선생님은 여전히 묘비를 이용해서 산수 공부를 시켰어요. 조지의 아버지는 학교 공부보다는 생활 속에서의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조지에게 자주 이렇게 말했어요. “큰 사업가가 되려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해. 그러려면 우선 네가 떳떳하고 강한 지도자(指導者)가 돼야 한단다.” 하지만 조지는 아직 아버지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지요. 어느 날, 버지니아주 일대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당시는 인디언과 정착민들의 갈등이 몹시 심했던 시기였어요. “곧 인디언들이 쳐들어올 겁니다. 어서 대비를 해야 돼요.” 버지니아주 민병대 대장인 헨리 삼촌은 민병대를 소집했어요. 민병대는 정식 군인이 아닌 자원병(自願兵)으로 이루어진 부대예요. 조지는 민병대의 훈련 장면을 눈여겨보았어요. “삼촌, 부대원을 모집한 뒤엔 어떻게 해야 돼요?” “일단 총 쏘는 법부터 가르쳐야지.” 헨리 삼촌은 조카의 질문에 별생각 없이 대꾸했어요. 다음 날, 조지는 사촌들을 포함한 여섯 명의 어린 대원들을 모았어요. 그리고 헨리 삼촌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치며 매일 힘든 훈련을 시켰어요. 어린 대원들은 총 대신 옥수숫대를 들고 훈련했어요. 어느 날, 조지는 어린 대원들을 적군과 아군으로 구분한 다음 몽둥이를 나눠 주고 모의(模擬) 전투를 벌였어요. 이 일로 마을엔 한바탕 난리가 났어요. 모의 전투에서 부상(負傷)당한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떼를 지어 페리 농장으로 쳐들어온 거예요. “어린애들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게 하다니!” “조지는 정신이 어떻게 된 게 분명해요!” 부상당한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한바탕 화풀이를 하고 돌아갔어요. 조지의 어머니는 조지를 헛간으로 부른 다음 하인에게 회초리를 꺾어 오게 했어요. “어째서 아이들에게 몽둥이를 들게 했니?” 네가 그 아이들의 대장이라면 이런 일도 예상(豫想)을 했어야지! 어머니는 호된 꾸지람과 함께 회초리를 내리쳤어요. 조지는 회초리보다 지도자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가슴 아프고 슬퍼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어요. 조지의 농장에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흑인 요리사 부부가 함께 살았어요. 요리사 부부에게는 여섯 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중 장남인 라스투스는 조지와 나이가 같았어요. 라스투스는 흑인 노예 신분인 자신을 친구처럼 대해 주는 조지를 늘 고맙게 생각했어요. 라스투스는 풀이 죽은 조지를 위로(慰勞)하려고 몰래 키우던 새끼 여우를 보여 주었어요. “숲에서 발견(發見)했어. 어미를 잃고 죽어 가던 녀석인데 내가 우유를 먹여서 키우고 있어.” “와! 귀엽다!” 조지는 금방 우울한 기분을 떨쳐 내고 눈빛을 반짝였어요. 하지만 그 눈빛은 금세 걱정으로 바뀌었어요. “어머니에게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하지만 얘는 내가 돌봐 주지 않으면 굶어 죽을지도 몰라.” 라스투스의 얼굴에도 먹구름이 끼었어요. “걱정 마. 새끼 여우가 클 때까지 내가 지켜 줄게!” 조지는 라스투스에게 약속을 했어요. 얼마 후 영국에 유학 갔던 형들이 돌아왔어요. 페리 농장에서는 떠들썩한 환영(歡迎) 파티가 벌어졌어요. 큰형 로렌스는 조지에게 사냥 부츠와 망토를 선물하며 말했어요. “내일 페리 농장으로 손님들을 초대(招待)했단다. 우리는 손님들과 여우 사냥을 할 거야. 너도 꼭 참석하렴.” 조지는 어쩐지 마음이 불안했어요. 그사이 새끼 여우는 혼자 사냥할 수 있을 만큼 자랐지만 라스투스가 아직 산으로 들여보내지 않고 있었어요. 다음 날, 사냥이 한창일 무렵, 갑자기 사람들이 큰 나무 밑으로 몰려갔어요. 조지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라스투스가 새끼 여우를 품에 숨기고 구경을 나왔다가 사냥개들에게 쫓기고 있는 중이었거든요.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내려와!” 사냥꾼들은 겁에 질린 라스투스를 위협했어요. “사냥개들을 모두 물러가게 해 주세요.” 조지는 먼저 개들을 물리친 다음 라스투스를 나무에서 내려오게 했어요. 조지는 새끼 여우를 받아 안고 사냥꾼들에게 말했어요. “어미를 잃어 죽어 가는 새끼 여우를 라스투스가 살려 냈어요. 제가 회복(回復)할 때까지 키워도 좋다고 허락했어요.” 그러자 큰형 로렌스가 정중하게 사냥꾼들을 설득했어요.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오늘 사냥을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과 여우를 데리고 먼저 숲을 나가겠습니다.” 로렌스의 말을 들은 사냥꾼들은 라스투스와 새끼 여우를 놓아주었어요. 그로부터 며칠 뒤 새끼 여우는 안전(安全)하게 숲으로 돌아갔어요. 조지가 라스투스와의 약속을 지킨 거예요. 조지가 열한 살이 되던 해에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로렌스가 집안의 가장 노릇을 했어요. 로렌스는 버지니아주의 유력자(有力者)인 페어팩스 경의 딸과 결혼해서 수십 명의 노예를 거느린 대규모 농장을 경영했어요. 그 무렵 조지는 뛰어난 수학자로 알려진 윌리엄스 선생님의 학교로 전학을 했어요. “조지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실력이 우수한 학생입니다. 이제껏 조지만큼 수학적 계산에 밝은 학생은 보지 못했어요.” 윌리엄스 선생님은 조지가 계산에 탁월한 소질이 있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어요. 열두 살이 되던 해에는 프랑스 출신의 제임스 마리 선생님에게 라틴어와 영어 문법, 작문, 수학 등을 배웠어요. “이 아이는 장래 훌륭한 지도자 감입니다.” 제임스 선생님도 조지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보았어요. 또 열세 살 무렵 조지는 대학 교육 수준의 측량(測量)을 배웠어요. 측량은 조지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과목이었어요. 거룩한 섬광과 같은 것은 부족하지만, 나의 가슴이 살아 숨 쉬도록 하는 것, 그것은 양심이다. 조지가 열네 살 때 쓴 글이에요. 조지는 형들처럼 영국 유학을 다녀오지는 않았지만 항상 정직하고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어요. 조지가 열여섯 살이 되자 로렌스가 한 가지 제안을 했어요. “주지사가 인디언들의 땅을 사서 이곳에 정착할 주민(住民)들에게 나눠 주려고 측량 기사를 구하는 중이야. 내가 너를 추천했는데 한번 일해 보지 않을래?” 조지는 솔깃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측량 기사 일을 하기에는 실력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정직하게 하면 돼, 조지. 성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우선 채소밭부터 시작해서 범위(範圍)를 차차 넓혀 나가도록 해.” 로렌스의 격려는 조지에게 많은 힘이 되었어요. 조지는 사슬과 말뚝을 이용하여 땅의 크기를 재 보고 최대한 정밀하고 자세한 지도를 만들었어요. “잘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꼼꼼하고 정확하게 해낼 줄이야!” 제임스 선생님은 조지의 측량 결과를 보고 무척 놀라워했어요. 그때까지 버지니아주의 드넓은 땅은 거의 대부분이 단 한 번도 측량된 적이 없었어요. 따라서 땅 주인들은 자기 땅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도 잘 몰랐지요. 조지는 측량 사업이 무궁무진(無窮無盡)한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측량 기사로서의 첫 작업은 연습에 그치고 말았어요. 인디언들이 땅을 팔지 않기로 결정한 거예요. 그러자 로렌스는 대신 자신이 운영하는 농장인 마운트 버넌의 측량을 맡겼어요. 정직을 무기(武器)로 최선을 다해 측량한 결과 조지는 로렌스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어요. 마운트 버넌에는 로렌스의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었어요. “다들 널 만나 보면 일감을 의뢰하려고 할 거야!” 로렌스는 조지가 마운트 버넌에 온 것을 환영하며 특별히 새 옷을 네 벌이나 맞춰 주었어요. “평상시에도 세련된 멋을 풍기는 게 도움이 될 거야. 파티가 있는 날에는 조금 화려해도 괜찮아. 하지만 교회에 갈 때는 차분한 정장 차림이 제일이지.” 로렌스는 조지가 때와 장소에 따라서 격식(格式)에 맞는 옷을 갖춰 입도록 배려했어요. “아주 예의 바르고 멋진 청년이군요.” 로렌스의 지인(知人)들은 대부분 조지에게 호감을 나타냈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측량을 맡기려는 고객들이 줄을 이었지요. 페어팩스 경은 그중 가장 영향력 있는 고객이었어요. 페어팩스 경은 산간 지역에 드넓은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땅은 아직 한 번도 측량한 적이 없는 황무지였지요. 페어팩스 경은 조지가 측량 기사인 자신의 사촌을 도와 자신의 황무지를 측량해 주기를 원했어요. 황무지를 개척하다니! 조지는 페어팩스 경의 제안에 두려움보다 벅찬 감동을 느꼈어요. “보수는 원하는 만큼 주겠네. 얼마를 원하는가?” “그런 건 돌아와서 주셔도 늦지 않습니다. 제가 작업을 다 마치면 결과를 보고 액수를 결정(決定)해 주십시오.” 조지는 페어팩스 경의 물음에 힘차게 대답했어요. 조지와 동료들은 온갖 악조건(惡條件) 속에서 측량에 매달렸어요. 어떤 때는 사나운 인디언들에게 포위당해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었답니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삼십 명 정도의 인디언들이 나타났어요. 당시 조지의 일행은 페어팩스 경의 사촌과 인디언 말을 알아듣는 또 다른 측량 기사까지 모두 세 사람뿐이었어요. 무슨 일인지 인디언들은 몹시 화가 나 있었어요.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 측량 기사가 이유를 물어보고는 얼굴이 사색(死色)이 되었어요. “저 인디언들은 다른 부족과 전쟁 중인데, 적의 머리 가죽을 한 개밖에 못 얻었다고 잔뜩 약이 올랐어요.” 측량 기사 말대로 인디언들의 눈에선 살기(殺氣)가 묻어났어요. 자칫하면 세 사람의 머리 가죽이 벗겨질 상황이었어요. 그때 조지가 갑자기 돈을 꺼내 그들에게 내밀었어요.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인디언 부족 중에서도 가장 용맹스러운 부족이 분명하오. 이 돈을 받고 당신들의 춤을 보여 주시오.” 인디언들은 조지의 말에 기분이 좋아져서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조지는 그 틈을 타서 동료들에게 빠져나가자는 눈짓을 보냈어요. 그로부터 한 달 뒤, 조지와 동료들은 무사히 측량을 마치고 버지니아로 돌아왔어요. “조지는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침착성을 잃지 않고 냉정한 판단으로 동료들을 위험에서 구했어요. 만약 그가 군인이 된다면 훌륭한 지휘관(指揮官)이 될 거예요.” 페어팩스 경은 사촌이 전하는 얘길 듣고 조지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보았어요. 페어팩스 경은 조지에게 보통 측량 기사들이 받는 보수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지불했어요. 그리고 조지가 스무 살이 되던 해인 1752년 7월, 평소 건강이 좋지 않던 로렌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조지, 나 대신 마운트 버넌을 부탁한다.” 로렌스는 조지에게 농장 경영을 부탁했어요. 조지는 유언에 따라 농장을 경영하면서 로렌스의 임무였던 민병대 장교까지 맡아 크게 활약(活躍)했어요. 아메리카 신대륙은 영국뿐만이 아니라 프랑스에게도 매력적인 식민지였어요. 서로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두 나라는, 1754년 버지니아 오하이오 주식회사가 영국의 이민자들을 모집하기 시작하자 마침내 전쟁을 시작했어요. “이것은 영국의 부당한 영토 침해 행위이니 묵과할 수 없다!” 프랑스는 군대를 보내 새로운 이민자들을 공격했어요. 조지는 지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민병대를 이끌고 그들과 맞서 싸웠어요. 전쟁은 프랑스와 영국군이 승패(勝敗)를 거듭하면서 근 7년 동안이나 계속되었어요. “영국군이 승리하면 우리들 생활(生活)이 안정될 줄 알았는데 달라진 게 하나도 없잖아?” “결국 고통받는 것은 힘없는 식민지 백성들뿐이란 말인가!” 사람들 사이에서 불평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조지는 뭔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조지는 스물일곱 살이 되던 해에 마사 커스티스라는 아가씨와 결혼했어요. 조지는 잘나가는 측량 기사에다 마운트 버넌의 경영자였고, 아내인 마사 또한 원래부터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어요. 마음만 먹으면 남부럽지 않게 여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었지요. 그러나 당시 미국의 상황이 조지를 편안하게 놓아두지 않았어요. 미국인들이 영국으로부터 독립(獨立)하기로 결심한 거예요. 조지는 13개 주를 대표하는 대륙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어요. 이제 사람들은 그를 조지 워싱턴 장군이라고 불렀어요. 조지 워싱턴 장군은 영국과의 전투에 앞서 이렇게 외쳤어요. “이제 우리 미국인들은 자유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노예가 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때가 왔다!” 마침내 미국이 독립 전쟁의 첫발을 내딛게 된 거예요. 조지 워싱턴의 숭고(崇高)한 선택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이 필요했어요. 미국의 군대라고 해 봐야 제대로 된 훈련조차 받지 못한 지원병이 대부분이었어요. 조지 워싱턴은 유럽에서 제일 강한 영국 정규군과 독일인 용병(傭兵)에 맞서기 위해 치밀한 작전을 짰어요. “우리는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어떠한 경우에도 영국군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거나 위험한 상황에 말려들지 않아야 한다.” 조지는 적군이 방심(放心)한 틈을 파고드는 전술을 택했어요. 또한 전투에 필요한 사소한 물품 하나까지 일일이 챙겨 가며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싸움을 번번이 승리로 이끌었어요. 영국군과 싸우느라 6년 동안 집에 한번 못 가고, 모두 포로가 될 뻔한 적도 있었지만 병사들은 그를 최고의 지휘관으로 믿고 따랐어요. 한번은 사병들이 통나무를 힘들게 옮기고 있는데 상사라는 사람은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어요. 마침 말을 타고 지나던 한 신사가 그에게 물었어요. “당신은 왜 통나무를 운반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상사가 대답했어요. “나는 사병들을 감독(監督)하는 중이거든요.” 상사의 말을 들은 그 신사는 아무 말 없이 말에서 내려 사병들과 함께 통나무를 옮기기 시작했어요. 마침내 통나무를 모두 옮기자 신사가 상사에게 말했어요.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총사령관을 부르게.” 병사들과 함께 통나무를 나른 신사는 바로 총사령관인 조지 워싱턴 장군이었어요. 바로 이런 겸손하고 정직한 마음과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책임질 줄 아는 자세가 조지 워싱턴 장군이 독립 전쟁에서 최후(最後)의 승리자가 된 이유랍니다. 1781년 마침내 영국군이 항복하여 미국은 독립을 쟁취했어요. 하지만 막상 전쟁이 끝나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독립 전쟁에 참여했던 장교와 사병들이 군대가 해산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시위를 벌였어요. “당장 의회로 쳐들어갑시다!” 조지 워싱턴은 즉각 그들의 행동을 말렸어요. “군인이 민간 정부에 도전(挑戰)하는 것은 스스로 자유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어느덧 백발이 된 조지 워싱턴은 연설문을 읽다가 군중들의 양해를 구했어요. “여러분, 제가 안경을 좀 써야겠습니다.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다 보니 벌써부터 눈이 침침해서요.” 그러자 시위를 하던 장교와 사병들이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했어요. 오로지 미국의 독립을 위해 싸워 온 백전노장(百戰老將)의 진심이 군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거예요. 결국 그들은 시위를 끝내고 모두 일상으로 돌아갔어요. 1789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인단은 만장일치(滿場一致)로 조지 워싱턴을 미합중국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어요. 조지 워싱턴은 가장 친한 친구이며 사촌인 루이스와 함께 마차를 타고 뉴욕으로 향했어요. 현재의 미국 수도는 워싱턴 D.C.지만 당시는 뉴욕이 미국의 수도였고 대통령도 이곳에 살았어요. “당신은 우리 모두의 영웅이에요!” “조지,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예요!” 마운트 버넌을 출발한 마차가 뉴욕에 닿을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워싱턴을 연호(連呼)했어요. 당시 미국은 통틀어 13개의 주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조지 워싱턴이 가장 먼저 한 일은 13개 주를 하나도 빠짐없이 돌아보는 것이었어요. 대통령이 굳이 13개 주를 순방(巡訪)할 필요가 없다는 관리들에게 조지 워싱턴은 이렇게 말했어요. “국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직접 눈으로 봐야만 내가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 하루는 수행원(隨行員) 한 명과 시골의 허름한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어요. 주방에서 어린 소년과 여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엄마! 성경책은 언제 사 줄 거야?” “지금 바쁘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밖에 나가서 놀아라.” “성경책 사 줘. 없으면 교회에도 못 간단 말이야. 친구들 중에 성경책 없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야.” 당시는 성경책뿐만 아니라 모든 책들이 귀하고 값도 비쌀 때였어요. “넌 왜 그렇게 철이 없니? 성경책을 못 사 주는 대신 이따가 워싱턴 대통령이 우리 마을에 온다고 했으니 같이 구경 가자.” 그러자 아이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어요. “싫어! 난 대통령보다 성경책이 더 필요하단 말이야!” 어린 소년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밖으로 뛰쳐나왔어요. 조지 워싱턴은 손짓으로 소년을 불렀어요. “얘야, 네 이름이 뭐지?” “톰이에요.” “오, 착하게 생겼구나. 톰, 아저씨가 부탁 하나 해도 될까?” “뭔데요?” 조지 워싱턴은 소년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어요. “어머니도 힘드신 것 같은데, 너무 떼쓰지 말거라.” 소년은 무안(無顔)한 듯 고개를 숙였어요. 다음 날, 이 식당에 소포(小包)가 하나 배달되었어요. 받는 사람은 ‘톰’이라고만 씌어져 있었어요. 식당 여주인은 소포를 풀어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대체 누가 귀한 성경책을 보낸 거지?” 톰은 톰대로 책을 열어 보고 입이 떡 벌어졌어요. 표지 안쪽에 ‘조지 워싱턴으로부터’라고 쓰여 있었으니까요. 미국에서 가장 흔한 1달러짜리 지폐에는 조지 워싱턴의 얼굴이 새겨져 있어요. 조지 워싱턴은 그만큼 미국인들이 매일 보는 친근한 인물이에요.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탄생했을 때 호칭을 어떻게 할지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거리였어요. 의회 의원들과 참모들은 유럽의 국왕에 견주기 위해 ‘대통령 각하’, ‘미합중국 대통령 폐하’ 등의 경칭(敬稱)을 제안했어요. 조지 워싱턴은 국민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려면 먼저 호칭부터 스스럼없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대통령의 공식적인 명칭은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하고, 호칭은 간단하게 ‘미스터 프레지던트(Mr. President)’로 합시다.” 조지 워싱턴은 자신의 생각을 의회에 전달(傳達)했고 의회는 그 의견을 존중했어요. 이때부터 미국 대통령은 미스터 프레지던트라는 친근한 호칭으로 불리게 된 거예요. 조지 워싱턴은 8년 동안 미국의 대통령으로 일했어요. 미국인들이 그를 두 번이나 대통령에 뽑아 주었기 때문이에요. 1797년, 마침내 두 번째 임기를 마친 조지 워싱턴은 퇴임 연설을 통해 정직의 가치를 힘주어 강조했어요. “정직이야말로 최선의 정책(政策)이라는 말은 개인 생활뿐 아니라, 공공 분야(公共分野)에도 딱 들어맞는 격언이 아닐까 합니다.” 지도자가 정직하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에요. 또한 조지 워싱턴은 매우 공정한 대통령이었어요. 그는 자신의 정책을 사사건건 반대했지만 외교 문제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수완을 발휘한 제퍼슨을 외무 장관에 임명했어요. 조지 워싱턴은 개인적인 감정보다 국익을 먼저 생각했기에 제퍼슨의 능력을 높이 평가할 수 있었던 거예요. “조지, 우리는 당신이 미국의 종신(終身) 대통령으로 남아 있기를 원해요.” 두 번째 임기가 끝날 무렵이 되자 조지 워싱턴의 지지자(支持者)들은 또다시 출마를 권했어요. 정 안 되면 한 번만이라도 더 대통령을 맡아 달라고 간청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조지 워싱턴은 아내 마사에게 의견을 물었어요. “당신은 이 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어요. 그러니 이제는 다른 훌륭한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 주는 건 어떨까요?” 조지 워싱턴은 아내의 조언에 마침내 결심을 굳혔어요. 그는 마운트 버넌으로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어요. “이제 내가 할 일은 다했습니다. 후임 대통령들이 이 나라를 더욱 발전시켜 주기를 바랍니다.” 미국인들은 조지 워싱턴이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 뒤에도 오래도록 그를 그리워했답니다.
나는 정직과 성실의 힘을 믿는다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벤자민 프랭클린은 1706년 미국의 보스턴이라는 고장에서 태어났어요. 벤자민의 아버지는 영국에서 살다가 배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사람이었어요. 그는 양초를 만들어 파는 일을 했는데 무척 성실하고 부지런했어요. 벤자민은 17남매중 열다섯 번째, 아들로는 열번 째 막내아들이었어요.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모든 일에 호기심이 많았던 아이는 부모님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어요. “벤자민! 벌써 그 글자를 읽을 줄 안단 말이냐?” “네, 아빠. 책에서 보고 흉내 내어 써 보았어요.” 요즘 아이들처럼 유치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벤자민은 일찍부터 글자를 읽고 쓰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어요. “벤자민은 커서 훌륭한 학자가 될 거야!” “내 생각엔 훌륭한 목사님이 될 것 같은데? 똑똑할 뿐만 아니라 마음씨도 착하고 남을 위할 줄 아니까 말이야.” 동네 어른들은 벤자민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그러면 벤자민의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손을 내저었어요. “그럴까? 저 녀석이 보통 개구쟁이라야 말이지." "한번은 하늘에 날리는 연을 가지고 배를 만든다며 강물 위에 연을 띄우고 건너려 하지 않았겠는가! 게다가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온갖 새로운 장난을 친다네. 도대체 커서 뭐가 되려는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귀엽고 자랑스러웠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지요. ‘가난한 우리 집 형편에 저 녀석을 잘 키울 수 있을까?’ 벤자민은 이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어요. “저 바다 건너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나도 어른이 되면 신나는 모험을 할 수 있을까?” 그러한 벤자민의 궁금증을 풀어 주는 가장 좋은 친구는 바로 책이었어요.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된 벤자민은 제일 먼저 부모님이 읽는 성경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성경책 속의 이야기들은 어린 벤자민에게 아직 어렵기도 했지만 신비롭기도 했어요. 벤자민은 존 버니언이라는 작가가 쓴 천로역정이라는 책도 읽었어요. 천로역정은 주인공이 온갖 신기한 모험을 하는 가운데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는 이야기예요. “나도 이 책의 주인공처럼 모험을 떠날 테야. 그리고 다른 사람을 도울 줄 아는 훌륭한 어른이 될 거야!” “또 밤늦게까지 책을 읽었나 보네.” 이른 아침이면 어머니는 잠든 벤자민의 손에 들려 있는 책을 조용히 빼내어 머리맡에 놓아 주곤 했어요. 벤자민은 어릴 때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반드시 책을 읽었어요. 그 시절에는 전등이 없어서 초를 켜 불을 밝혔는데 초는 무척 비싼 물건이었기에 아껴 써야만 했어요. 다행히 아버지가 초를 만들어 파는 일을 했기 때문에 벤자민은 늦은 밤까지 불을 밝히고 책을 읽어도 크게 혼나지 않았어요. 벤자민의 독서는 성경책과 천로역정에서 끝나지 않았어요. ‘새로운 책들을 산처럼 쌓아 놓고 읽을 순 없을까? 이 세상의 책들을 모두 읽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벤자민은 읽고 싶은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마음속으로 꿈꾸었어요. 벤자민이 살던 시절에는 책이 굉장히 귀했어요. 지금처럼 서점이나 도서관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책의 종류도 그리 많지 않았어요. 부모님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책 읽기를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벤자민을 학교에 보내기로 했어요. “벤자민, 내일부터 학교에 보내 주마.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알겠지?” “정말요? 이야, 신난다! 저 열심히 공부할게요!” 그리하여 벤자민은 여덟 살 때 라틴어 학교에 처음으로 다니게 되었어요. 라틴어는 오랜 옛날 유럽에서 쓰이던 언어였는데, 학자나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라틴어를 잘 알아야만 했어요.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된 벤자민은 무척 신이 났어요. 난생처음 학교라는 곳에 들어가게 된 벤자민은 게으름 피우지 않고 공부했어요. 그래서 얼마 후 다른 아이들을 제치고 1등을 할 수 있었어요. 또 1등으로도 모자라다는 듯 더욱 노력한 끝에 1년도 되기 전에 1학년에서 3학년으로 바로 올라가는 월반을 하게 되었어요. 이대로 계속 공부한다면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빨리 학교를 마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라틴어 학교에서의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어요. 양초를 팔아 많은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벤자민 부모님의 어려운 형편으로는, 비싼 학비를 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에요. “벤자민, 미안하구나. 아무래도 너를 라틴어 학교에 계속 보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대신 글쓰기와 산수를 가르쳐 주는 다른 학교에 보내 주마.” “괜찮아요, 아빠! 전 글쓰기와 산수도 배우고 싶어요!” 벤자민은 라틴어 학교보다 학비가 좀 더 저렴한 학교에 다니며 글쓰기와 산수를 배웠어요. 책 읽기를 좋아했던 만큼 글쓰기 실력도 금세 늘었어요. 하지만 새로운 학교도 그리 오래 다닐 수 없었어요. 아버지의 사업이 점점 어려워져서 벤자민을 더 이상 학교에 보낼 수 없게 된 거예요. “괜찮아요, 아버지. 저는 양초 만드는 것도 배우고 싶어요.” 열 살 때 학교를 그만둔 벤자민은 집에서 부모님의 일을 도와 드리기 시작했어요. 심부름을 하거나 가게를 지키기도 하고, 양초의 심지를 세우고 액체로 녹인 촛물을 부어서 양초를 완성시키는 것도 배웠어요. 또 완성된 양초를 보기 좋게 포장하는 일도 했지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그 시절에는 어린이들도 어른들을 도와 많은 일을 했어요. 벤자민은 고사리 손으로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언젠가 넓은 세상에 나가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잃지 않았어요. 또한 명랑하게 지내며 동네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어요. “벤자민, 놀자!” “오늘은 무얼 하며 놀까?” “강에 수영하러 가는 게 어때?” “아니면 연못에 물고기 잡으러 갈까?” 동네 개구쟁이 소년들 사이에서 벤자민은 대장 노릇을 하며 항상 재미있는 놀이를 찾아 나섰어요. 아이들은 늘 새로운 놀이를 개발하는 벤자민과 함께 노는 것이 즐거웠어요. 하루는 친구들과 자주 가던 연못에서 물고기를 잡기로 했어요. 그런데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 가까이에 있던 연못은 바닥이 진흙탕이라 발이 푹푹 빠지기 일쑤였어요. 특히 연못 가장자리는 온통 진흙탕이었어요. “윽! 발이 푹푹 빠진다!” “벌써 바지 아래쪽에는 진흙이 묻었어!” “바지를 더럽혔다고 엄마에게 혼날 텐데.” “나도 저번에 엄마한테 야단맞았어. 옷에 흙이 많이 묻으면 빨래하기 힘들다며 화를 내셨어.” “어떡하지? 오늘 물이 많이 들어와서 물고기를 실컷 잡을 수 있을 텐데!” “벤자민! 뭐 좋은 방법 없을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벤자민의 머릿속으로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얘들아, 나를 따라와 봐. 갈 데가 있어.” 벤자민이 아이들을 데리고 간 곳은 마을에 있는 공사장이었어요. 그곳에는 집을 새로 짓느라 큰 돌덩이며 벽돌들이 잔뜩 쌓여 있었어요. 벤자민은 그 돌덩이들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우리 다 같이 힘을 합쳐서 이 돌들을 옮기자." "연못가에 돌을 쌓아 둔덕을 만들어서 그걸 딛고 노는 거야.그러면 진흙탕에 발이 빠지지 않아서 물고기도 잘 잡을 수 있고 옷도 더러워지지 않을 거야!” “우와! 좋은 생각이야! 당장 옮기자.”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하자 벤자민은 “쉿!” 하며 손가락을 입에 댔어요. “지금은 집 짓는 아저씨들이 계시니까 조금 기다려!” 벤자민과 친구들은 아저씨들이 일을 마치고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어요. 마침내 아저씨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자, 아이들은 돌들을 나르기 시작했어요. 돌이 무척 무거웠지만, 연못가에 새로운 놀이터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마냥 즐겁기만 했어요.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며 돌을 나른 끝에 연못가에는 발을 디딜 수 있는 튼튼한 둔덕이 만들어졌어요. 벤자민과 친구들은 기대감에 부풀었어요. “얘들아, 이제 걱정 없이 물고기를 잡을 수 있어.”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다시 와서 물고기를 잡자!” “좋았어! 여긴 우리들만의 비밀 놀이터야!” “역시 벤자민은 똑똑하다니까!” 아이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온 마을이 발칵 뒤집혔어요! “마을 공사장의 돌무더기가 갑자기 없어졌대요!” “집을 짓기 위해 쌓아 둔 재료인데 어디로 간 거죠?” “대체 그런 고약한 장난을 친 놈들이 누굴까?” 마을 어른들은 혀를 끌끌 찼어요. 집 짓는 일을 하던 아저씨들도 몹시 화가 나서, 돌을 훔쳐 간 범인을 찾기 시작했어요. 동네 개구쟁이들이 어젯밤에 연못으로 돌을 나르더라는 소문이 퍼지기까지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어요. “벤자민, 이리 와서 앉아 봐라.” “왜요, 아빠?” 벤자민은 다른 때보다 굳어 있는 아버지의 표정과 목소리에 주눅이 들었어요. “네가 이웃집의 집 지을 돌들을 훔쳤다는 게 사실이냐?” “네? 저...” “친구들과 함께 연못으로 돌을 옮겼느냔 말이다.” “네...” “남의 것을 몰래 훔치다니,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니?” “그게요, 아빠. 여러 가지로 쓸모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쓸모 있다니?” “연못가에 돌을 쌓으면 진흙에 발이 빠지지 않으니까요. 그러면 옷도 더러워지지 않아서 엄마가 빨래하실 때 힘들지 않으실 테니까요. 그리고 저희들도 물고기를 훨씬 더 편하게 잡을 수 있고, 그리고 또...” 벤자민은 열심히 설명했어요. 마침내 아버지가 입을 열었어요. “그렇다면 집 지을 돌들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입장은 생각해 보았니?” “그분들의 입장이요? 아니요…….” “벤자민, 잘 들어라. 아무리 쓸모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하는 일은 쓸모가 없는 일이다.” 벤자민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어요. 자신이 했던 행동이 문득 부끄러워졌어요.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되더라도, 그것 때문에 누군가가 자기 것을 빼앗기거나 피해를 본다면, 그건 절대로 좋은 일이 될 수 없단다. 더구나 남을 속이는 일, 정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하는 일이라면 말이다. 명심해라, 벤자민. 좋은 일이란 그 일을 하는 과정도 반드시 정직해야 한다는 것을!” 그날 밤 벤자민은 잠이 잘 오지 않았어요. 잠자리에 누웠지만 눈은 말똥말똥했어요. ‘정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한 일이라면 아무리 뜻이 좋은 일도 결코 좋은 일이 될 수 없다. 부정직한 행동으로 누군가가 피해를 본다면 아무리 결과가 좋더라도 사람들의 존중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버지가 해 주셨던 말씀이 귓가에서 맴돌았어요. 그리고 자신이 했던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돌을 가져가는 건 우리에겐 필요한 일이었지만 집 짓는 분들에게는 도둑질이나 다름없었어. 정직하지 않은 일을 해서 남에게 피해를 준 거야!’ 벤자민은 어떠한 일을 하든 ‘그 일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 일이 정직한 일인지 아닌지를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벤자민은 이 교훈을 마음속 깊이 평생 간직하기로 했어요. 벤자민은 어느덧 열두 살이 되었어요. 비록 학교에는 다니지 못했지만 용돈이 조금만 생기면 그 돈으로 책을 구해서 읽었어요. 벤자민은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책을 통해 배워 나갔어요. 또 벤자민의 아버지는 시내에 나갈 때면 벤자민을 데리고 다니며 세상 구경을 시켜 주었어요. 장사하는 사람, 나무를 다루는 사람, 배 만드는 사람, 벽돌 만드는 사람 등등 저마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며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어린 벤자민에게 큰 공부가 되었어요. “아빠, 저도 이다음에 커서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정직하게 살면서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일을 하는 어른이요.” “그래, 너도 이제 다 컸구나. 네가 장차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자꾸나.” 벤자민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영리한 벤자민이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벤자민을 제임스에게 보내 일을 시켜 보면 어떻겠소?” “제임스가 운영하는 인쇄소에 보낸다고요? 아직 어린 벤자민이 잘할 수 있을까요?” “일찍부터 글자를 깨우치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니 인쇄소 일을 누구보다 빨리 배울 수 있지 않겠소?” 제임스는 벤자민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형님이었는데 자신의 인쇄소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인쇄소란 신문이나 책을 찍어 내는 곳이에요. 오늘날에는 커다란 공장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신문과 책을 빠르고 쉽게 인쇄하지만, 옛날에는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활자들을 찾아 틀에 집어넣어 인쇄를 해야 했어요. 따라서 인쇄소 일은 배워야 하는 것도 많고 글자도 잘 알아야만 했어요. “벤자민, 제임스 형 밑에서 인쇄 일을 배워 보겠니?” 부모님의 말씀에 벤자민은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을 내 손으로 만드는 일!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책과 신문을 실컷 볼 수 있는 곳!’ 벤자민은 상상만 해도 설레었어요. 아버지를 도와 초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감이 생겼어요. “아버지, 어머니, 열심히 해 볼게요!” 그리하여 벤자민은 집을 떠나 제임스 형님의 인쇄소에서 먹고 자며 일을 배우는 도제가 되었어요. 어른이 될 때까지 형님 밑에서 일을 배우기로 하고, 비록 동생이었지만 다른 직원들처럼 계약서도 정식으로 작성했어요. 인쇄공이란 새로운 길이 벤자민 앞에 펼쳐지고 있었어요. 인쇄소 사장님인 제임스 형님은 동생인 벤자민에게 그리 다정하게 대해 주지는 않았어요. 벤자민이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하면 크게 화를 냈고 때로는 벌을 세우거나 매를 들기도 했어요. 제임스는 사람들이 자기 동생이라 봐준다며 흉을 볼까 봐 일부러 더 엄격하게 일을 가르쳤어요. 벤자민은 심부름과 청소를 하고 활자판을 나르는 작은 일부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모든 게 서툴고 늘 엄하게 꾸중하는 형님이 무서워서 힘든 날도 많았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해 주셨던 말씀을 떠올렸어요. “매사에 정직함과 성실함을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온단다.” 그리고 힘든 일과조차 깨끗이 잊게 해 주는 선물이 있었는데, 그것은 금방 인쇄된 책과 신문을 실컷 읽을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오늘은 또 무슨 소식이 있을까?” 벤자민은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나서도 신문이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어요.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책과 신문을 읽다 보면 어느덧 새벽이 되기도 했어요. 특히 신문을 통해 새로운 소식을 접하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어요. 벤자민은 신문을 통해 정치나 경제, 전쟁 소식 등등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배울 수 있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도 글을 써 보고 싶어!" "이 신문에 글을 쓴 사람들처럼!” 무척 엄하고 무서운 제임스 형님도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었어요. ‘벤자민 녀석, 제법 영리하단 말이야.' '일도 빨리 배우고.’ 그래서 벤자민에게 점점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어요. “맞는 활자를 찾아내어 틀에 맞추는 일을 ‘식자’라고 한단다. "이제 직접 네 손으로 식자를 해 봐.” 벤자민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 열일곱 살이 되기도 전에 인쇄 과정의 대부분을 능숙하게 처리할 줄 알게 되었어요. 인쇄공으로서의 실력이 발전하는 만큼, 마음속의 꿈도 쑥쑥 자라났어요. 벤자민은 작가가 되기 위해 밤마다 글쓰기 연습을 했어요. 처음에는 신문에 실린 기사나 사설을 읽으면서 ‘나라면 어떻게 썼을까?’ 상상해 보았어요. 그리고 그 기사를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니라 벤자민 자신의 생각을 보태어 자신만의 새로운 글을 써 보았어요. 처음에는 자기가 쓴 글이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이상한 부분은 고쳐 보기도 하고 신문의 글과 비교도 해 보았어요. 그러자 처음보다 좀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었어요. 계속 연습을 할수록 점점 더 글쓰기가 재미있어졌어요. “내가 쓴 글을 발표하여 진짜 작가가 될 수는 없을까?” 하루는 인쇄소 문 앞에 웬 봉투가 놓여 있었어요. 직원들이 봉투를 열어 보니 그 안에는 정성껏 쓴 글이 들어 있는 게 아니겠어요? 제임스는 인쇄소를 운영할 뿐만 아니라 신문도 발행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신문에 실을 만한 내용의 원고였어요. “제임스 사장님, 이 원고 굉장히 재미있는데요?” “우리 신문에 실으면 딱 좋을 것 같아요.” 직원들의 이야기에 제임스도 원고를 살펴봤어요. “재미있는 글이군. 그런데 누가 쓴 글이야?” “모르겠어요. 이름은 안 적혀 있고 ‘말없이 좋은 일을 하는 부인’이라고만 씌어 있는데요?” 직원들과 제임스는 어떤 이름 모를 부인이 보낸 글일 거라고 짐작했어요. 그 글을 신문에 싣자 아니나 다를까 독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어요. 그런데 얼마 후, 아침 일찍 출근을 하던 제임스는 인쇄소 문 앞에 봉투를 놓고 있던 사람을 발견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동생 벤자민이 아니겠어요?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봉투는 또 뭐고?” 벤자민은 무서운 형님 앞에서 우물쭈물했어요. 제임스가 봉투를 빼앗아 열어 보니 안에 ‘말없이 좋은 일을 하는 부인’의 원고가 들어 있었어요! “이 원고를 왜 네가?" "혹시 이분의 심부름을 했던 거냐?” “형님, 사실은 제가 쓴 글이었어요. 죄송해요.” “뭐? ‘말없이 좋은 일을 하는 부인’이 너라고?” 제임스는 동생이 그런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그보다 더 화가 나는 건 동생이 그동안 자신을 속여 왔다는 점이었어요. “건방진 놈! 이제 인쇄 일을 좀 할 줄 안다고 잘난 척을 하는 게냐?" "정직하지 못하게 감히 나를 속여?” 형님은 불같이 화를 내며 벤자민의 뺨을 때렸어요. ‘그래. 형님을 속인 일은 분명히 잘못한 일이야.' '하지만 항상 무섭게 야단만 치고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형님 밑에서 계속 일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벤자민은 고민을 거듭했어요. 그리고 이제는 형님을 떠나 독립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형님을 속이지 않으면서, 내 힘으로 직접 신문도 만들고 글도 쓰고 싶어! 이젠 나도 할 수 있어!’ 열일곱 살의 벤자민은 그동안 절약하여 모았던 책들을 몽땅 팔아서 여비를 마련했어요. 그리고 형님의 인쇄소가 있는 보스턴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고장으로 떠나기 위해 길을 나섰어요. 대도시 뉴욕을 거쳐 다시 필라델피아라는 도시로 가기 위해 배를 타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험난한 여행을 했어요. 드디어 필라델피아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그 도시의 인쇄소부터 찾아갔어요. “저에게 일자리를 주십시오. 인쇄 일이라면 자신 있어요!” 벤자민은 이제 도제가 아닌 어엿한 인쇄공으로서 실력을 인정받고 새 출발을 하게 되었어요. “벤자민이라는 청년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래.” “그럼 우리도 벤자민이 일하는 인쇄소에 일을 맡기세!” 아직 젊지만 실력 있고 지식도 많은 벤자민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인쇄소에 들어오는 일감도 많아지고 벤자민의 월급도 올라갔어요. 하루는 그 도시의 주지사가 벤자민이 일하는 인쇄소에 찾아왔어요. 주지사는 몹시 거들먹거리며 이렇게 말했어요. “오! 자네가 벤자민인가? 실력이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더군." "내 자네를 도와주겠네. 영국에 가서 고급 인쇄술을 배워 와서 자네의 인쇄소를 차리게! 영국의 높은 사람들은 내가 다 알고 있으니, 내가 보낸 추천서 한 장이면 다들 자네를 도와줄 거야. 나만 믿으라고!” 벤자민은 주지사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솔깃했어요. ‘인쇄 선진국인 영국에? 정말 좋은 기회가 되겠어!’ 벤자민은 주지사의 말만 믿고, 그동안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영국으로 가는 뱃삯을 마련했어요. 비행기가 없는 시절이라 배를 타고 두 달이나 걸리는 여정이었지만,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몹시 설레었어요. 하지만 영국 런던에 도착한 벤자민에게 황당한 일이 벌어졌어요. “추천서? 그런 건 받은 적이 없소.” “필라델피아 주지사 누구라고? 나는 모르는 사람인데?” 벤자민은 그제야 깨달았어요. 큰소리를 치던 그 주지사가 사실은 허풍쟁이였다는 것을! 벤자민은 화도 나고 허탈했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어요. 다행히 런던에 있는 인쇄소에 취직을 하여 미국으로 돌아갈 돈을 마련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벤자민은 다짐했어요.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더라도 거짓말을 하면 안 돼! 나는 절대로 남의 믿음을 저버리는 사람이 되지 않겠어!” 필라델피아로 돌아온 벤자민은 원래 일하던 인쇄소에 다시 들어갔어요. 그런데 어느 날, 벤자민 밑에서 일하던 메레디스라는 청년이 찾아와 새로운 인쇄소를 차리자고 제안했어요. “비용은 저희 아버지가 대 주신대요." "저는 아직 실력이 부족하지만 선배님과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벤자민은 메레디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새로운 인쇄소를 차리고 공동 사장이 되었어요. 하지만 메레디스는 막상 사장이 되고 나자 점점 게을러지고 일을 하기 싫어했어요. 결국 메레디스는 일을 그만두고 자신의 고향으로 가 버렸어요. 어쩔 수 없이 혼자 인쇄소를 떠맡게 된 벤자민은 그 뒤 더욱 성실하게 노력하여 인쇄소를 발전시켰고, 나중에는 신문사까지 인수해서 신문사 사장이 되었어요. “드디어 내 꿈이 이루어졌어!” 이제 벤자민은 인쇄소를 운영하며 신문을 만들 뿐만 아니라 어릴 적 소원대로 마음껏 글도 쓸 수 있게 되었어요. “오늘 신문 봤어? 재미있는 만화가 실렸더군.” “당연히 봤지! 벤자민 프랭클린이 만드는 신문은 내용도 알차고 읽을거리가 많아서 늘 기다려져.” “게다가 큰돈을 번 뒤에도 직접 신문 배달을 다니잖아. 젊지만 참 성실하고 믿음이 가는 사람이야.” 필라델피아 사람들은 입을 모아 벤자민을 칭찬했어요. 그 뒤 벤자민의 인쇄소는 시에서 쓰는 문서들을 도맡아 인쇄하는 공식 인쇄소가 되었어요. 그는 큰 부자가 되었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래! 누구나 책을 볼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드는 거야!” 벤자민은 다양한 일에 종사하는 그 지역의 젊은이들과 힘을 합쳐, 각자 가지고 있는 책들을 모았어요. 그리하여 회원만 되면 누구나 책을 마음껏 빌려 볼 수 있는, 최초의 공공 도서관인 ‘필라델피아 도서관’을 만들었어요. 어느덧 마흔 살이 다 된 벤자민은 인쇄소와 신문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새로운 일에 도전했어요. 바로 발명품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벤자민은 수학, 화학, 생물학, 천문학 등 과학에 대한 책을 읽으며 실험과 연구를 계속했어요. 그는 불이 잘 붙는 난로, 볼록 렌즈와 오목 렌즈가 붙어 있어 가까운 곳과 먼 곳이 모두 잘 보이는 안경 등 누구나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물건을 발명했어요. 그는 또 전기를 연구하여 ‘피뢰침’을 만들었어요. 피뢰침은 건물 꼭대기에 세우는 쇠막대기로, 번개가 칠 때 전기를 흡수해서 사람이나 건물이 번개에 맞지 않도록 해 주는 장치예요. 사람들은 벤자민의 피뢰침에 환호했어요. “벤자민 프랭클린 박사님이 만든 피뢰침 덕분에 천둥 번개가 쳐도 더 이상 무섭지 않아요!” 또한 벤자민은 ‘리처드’라는 주인공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의 독특한 달력도 만들었어요. 벤자민이 만든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에는 날짜뿐만 아니라 일기 예보,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시각, 밀물과 썰물의 정보, 별자리 운세, 속담과 옛날이야기, 교훈을 주는 격언 등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가득했어요. 벤자민은 이 달력을 25년 동안 매년 만들었는데, 미국의 집집마다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어요. 이 달력에 적혀 있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티끌 모아 태산’ 같은 유명한 격언들은 오늘날에도 누구나 다 알 정도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어요. 벤자민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정직과 성실함을 잃지 않는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제 시민들은 벤자민을 보고 이렇게 말했어요.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문을 만든 사람!’ ‘시민들을 위해 도서관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도와주는 활동가!’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발명품을 만든 과학자!’ ‘말과 행동에 거짓이 없어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 벤자민은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필라델피아 시가 속해 있는 펜실베이니아주 의회 의원에 당선되었어요. 그 당시 아메리카 대륙은 아직 독립된 나라가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였어요. 영국과 프랑스는 식민지인 아메리카 대륙의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세금을 매겨 못살게 굴었어요. 사람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요. “벤자민 프랭클린 의원님, 우리 시민들을 도와주세요! 우리를 괴롭히지 말라고 영국 정부에 부탁해 주세요!” 벤자민은 펜실베이니아주의 대표자로서 직접 영국으로 건너가 정치인들을 설득하는 일을 맡았어요. 벤자민은 오랫동안 영국에 머물면서 활동했어요. “식민지의 사람들에게도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만 세금을 더 내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벤자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아메리카의 갈등은 줄어들지 않았어요. 심지어 어떤 영국 사람들은 벤자민을 ‘반역자’라고 부르며 욕까지 했어요. “아,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인가?” 벤자민은 몹시 실망하여 아메리카 대륙으로 돌아왔어요. 바로 그때,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영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독립운동’이 시작된 거예요. 아메리카 대륙으로 돌아온 벤자민은 펜실베이니아주를 대표하여 독립운동을 시작했어요. “여러분, 이제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스스로 일어납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 "다 함께 힘을 모읍시다!” 사람들은 벤자민의 연설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독립운동의 기운이 무르익자 각 지역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모여서 독립 선언서를 발표했어요. 독립 선언서란 이제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미합중국’ 즉 ‘미국’이라는 새 나라를 세우겠다고 선언하는 글이에요. 벤자민은 지도자들의 의견을 모아 선언서를 만드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어요. 몇 년 후, 아메리카 대륙의 연합군은 영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마침내 독립을 쟁취했어요. 그리고 ‘조지 워싱턴’이 미국의 첫 대통령이 되었지요. 그 뒤 벤자민은 미국을 세우는 데 누구보다 중요한 공을 세워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불리게 되었어요. 벤자민은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미국과 미국 시민들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어요. 또한 자신이 일생동안 깨닫게 된 교훈을 글로 써서 ‘프랭클린 자서전’이라는 책을 펴냈어요. 이 책은 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읽히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어요. 벤자민은 여든네 살의 나이에 가족들의 곁에서 평온하게 눈을 감았어요.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 수많은 시민들이 길가에 나와 그의 죽음을 슬퍼했어요. 그리고 평생토록 미국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한 그를 기억하기 위하여, 미국 정부는 100달러짜리 지폐에 벤자민의 초상화를 그려 넣었어요.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은 벤자민이 평소 버릇처럼 말하던 삶의 교훈을 가슴속에 새겨 두고 있답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나라를 빛내기에 평생을 바치니 어린아이까지도 그 이름을 기억하고 한 조각 장한 마음 죽지 않아서 천년토록 태산과 함께 남으리라. 위의 글은 조선 세종 임금 때의 유명한 학자 변계량이 고려의 마지막 충신 최영의 애국심을 기리며 쓴 시예요. 조선은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세운 나라지요. 태조 이성계의 손자가 바로 세종 임금이에요. 세종 때만 해도 고려의 충신을 좋게 평가하는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고려의 충신은 곧 조선을 반대하는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이에요. 더구나 최영은 마지막까지 고려의 충신으로 남아 조선의 개국을 반대하며 이성계와 싸우다 죽은 장군이에요. 변계량이 이 시를 쓴 것은 그만큼 최영이 훌륭하고 위대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지요. 최영은 고려 시대 말기에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어요. “갓난아기가 아주 튼튼하게 생겼네. 장군감이야!” 최영이 태어났을 때 친척들은 모두 이렇게 말했어요. 실제로 최영은 자라면서도 남다른 데가 있었어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몸집이 크고 씩씩한 데다 성격도 무척 정직하고 용감했어요. 최영의 아버지는 사헌부 간관을 지낸 최원직이에요. 간관이란 임금의 잘못을 바른말로 충고하고 관리들의 비행을 밝혀내 고발하는 직책이에요. 성품이 올바르고 정직하지 않으면 맡을 수 없는 직책이지요. 최영의 아버지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어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으면 지위가 높든 낮든 반드시 그 책임을 지게 했지요. “가난하게 사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가장 부끄러운 일은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최영은 아버지에게 항상 이런 말을 듣고 자랐어요. 최영은 학자들을 많이 길러 낸 집안에서 자랐지만 무예 쪽에 관심이 더 많았어요.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 때도 주로 전쟁놀이를 했어요. 어느 날 아버지가 물었어요. “너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 “아버지! 저는 용감한 장수가 될 거예요!” “집안에 장수가 한 명 나오는 것도 나쁘진 않겠구나.”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반대하지 않고 병법에 관한 책들을 구해 주었어요. “꼭 훌륭한 장군이 돼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릴게요.” 최영은 아버지를 무척 의지하고 존경했어요. 그런데 열여섯 살 때 아버지가 큰 병에 걸렸어요. “영아! 이 아비는 이제 얼마 살지 못할 것 같구나...” 최영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어요. 하지만 아버지의 병은 점점 깊어졌어요. “마지막으로 너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하루는 아버지가 최영에게 말했어요. “모든 불행은 남의 것을 탐내는 데서 시작된단다. 그러니 너는 언제나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해라.” 이것이 아버지가 세상을 뜨기 전에 남긴 유언이었어요. “평생 아버지 말씀 잊지 않을게요!” 최영은 돌아가신 아버지 앞에서 눈물로 맹세했어요. 그리고 날마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아버지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한 것은, 단지 재물에 욕심내지 말라는 뜻만은 아닐 거야.” 최영은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에 참으로 많은 뜻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차차 깨우쳤어요. 아버지가 말하는 황금은 우선 재물을 뜻하지만, 이 세상에 내 것이 아닌 것들은 크든 작든 절대 욕심내지 말고, 전부 돌같이 보라는 큰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최영은 평생 특이한 허리띠를 차고 다녔어요. 가죽으로 만들어 직접 글자를 새긴 허리띠였지요. 한 친구가 그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물었어요. “견금여석? 이게 무엇인가?” 최영은 그 친구에게 자랑스럽게 말했어요.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내 아버지 유언이라네. 나의 좌우명이기도 하지!” 최영은 아버지와 약속한 대로 장군이 되었어요. 북쪽의 오랑캐뿐만 아니라 남쪽의 왜구들도 최영 장군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지요. 최영은 많은 병사들을 통솔하는 높은 위치에 있었지만 오로지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밖에 몰랐어요. 다른 장군들은 고위층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며 권력을 욕심내거나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모아 세력을 키우는 등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려고 했으나 최영은 일절 그런 일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요. 한번은 동료 장군 가운데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최영은 평생 군대에 있었지만 아는 얼굴이 별로 없다.” 자기 세력을 키우는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이것은 ‘권력을 돌같이 보았다’는 뜻이에요. 최영의 인물됨을 짐작하게 하는 또 다른 사례가 있어요. 고려 공민왕 때 김용이라는 신하가 있었어요. 당시 고려는 원나라에 왕자를 볼모로 보낼 때였지요. 볼모는 인질과 같은 말이에요. 고려 왕이 말을 듣지 않을까 봐 대신 왕자를 잡아 놓고 있는 것이지요. 김용은 왕자 시절 볼모로 원나라에 있던 공민왕을 극진히 모셨어요. “마마! 용기를 잃으시면 안 됩니다.” “고맙다. 네가 있어서 위로가 되는구나!” 공민왕은 훗날 고려로 돌아와 그에게 높은 벼슬을 주었어요. 그러자 김용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남의 재산을 빼앗고 죄 없는 사람을 모함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어요. 심지어는 공민왕을 죽이려고까지 했지요. 하지만 왕을 살해하려던 음모는 실패로 돌아갔어요. 결국 김용은 일이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어요. 그런데 김용이 죽은 뒤 그의 집에서 엄청난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왔어요. 대부분 뇌물로 받은 것이었어요. 그중에 고양이 눈알 같은 진기한 구슬이 하나 있었어요. 그 구슬은 구하기 힘든 아주 값진 보석이었지요. 대신들은 김용의 집에서 압수한 보물을 구경하다가 구슬을 보고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거참, 희한하게 생긴 구슬일세!” “이게 천하에 둘도 없는 보물이라며?” 대신들 가운데 한 사람이 최영에게 말했어요. “최영, 자네도 와서 구경 좀 해. 이거 진짜 신기하네!” 그러자 최영이 불같이 화를 내며 이렇게 소리쳤어요. “사람을 더럽히는 그까짓 물건이 뭐 대단하다고 난리인가!” 김용이 탐욕으로 인생을 망친 것에 빗대어 대신들을 비판한 말이었어요. 고려 말은 나라가 혼란스러워 부정부패가 심했어요. 벼슬을 돈으로 사고파는 경우도 흔했지요. 하루는 어떤 사람이 최영에게 물었어요. “어떻게 하면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습니까?” 그러자 최영이 대꾸했어요. “장사꾼이 되는 기술을 배우시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을 비꼬아 말한 것이지요. 그 당시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은 툭하면 손님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잔치를 벌였어요. 잔치 분위기도 사치스럽기 짝이 없었어요. “백성들은 먹을 게 없어 굶는데 음식이 썩어 나는군!” 최영은 나라의 녹을 먹는 벼슬아치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호화로운 음식을 차려 놓고 손님을 초대하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어요. 관리 봉급으로는 그런 잔치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최영은 그런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기로 했어요. “우리 집에서 식사 대접을 할 테니 아침 일찍 오십시오.” 최영의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잔뜩 기대했어요. “최영 장군 집에선 어떤 음식을 차리려나?” “오랑캐 때려잡는 용감한 장군답게 멧돼지 구이?”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 욕심에 아침을 굶고 온 사람도 있었어요. 손님으로 온 사람들은 대개 신분이 높은 정승들이었어요. 그런데 아침 먹을 시간이 되어도 음식이 나오지를 않는 거예요. “배고픈데 왜 아직도 밥이 안 나오는 거야?” “진기한 음식을 차리느라 시간이 걸리는 건가?” 손님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어요. 그런데 점심때가 지나도록 나오지를 않는 거예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나옵니다.” 최영은 손님들에게 자꾸 기다리라고만 했어요. 어느덧 시간은 점점 흘러서 저녁 무렵이 다 되었어요. “대체 밥을 주는 거야, 마는 거야?” 아침에 온 손님들은 점심을 건너뛰고도 차마 돌아가겠다는 말을 못한 채 쫄쫄 굶고 있었어요. 최영이 계속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했기 때문이지요. 이윽고 날이 저물어 갈 무렵 드디어 음식이 나왔어요. “역시 기다린 보람이 있어. 이제야 나오는군!” 그런데 음식을 보고 손님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어요. “뭐야?” 커다란 상에 오른 음식은 거친 잡곡을 섞은 밥에 달랑 나물 몇 가지가 전부였어요. “이게 다야?” 손님들은 뭔가 다른 게 또 나오겠지 하는 얼굴이었어요. 그때 최영이 태연하게 수저를 들고 손님들을 돌아보며 말했어요. “자! 차린 건 없지만 많이들 드십시오!” 손님들은 마지못해 수저를 들기 시작했어요. 정승 체면에 반찬 투정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세상에 남부러울 것 없이 떵떵거리고 살아온 부자들이 잡곡이 절반도 넘게 섞인 밥 한 그릇을 순식간에 뚝딱 해치웠어요. “장군, 실례가 안 된다면 밥 한 그릇 더 청해도 될까요?” “저도요!” 여기저기서 밥을 더 달라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대부분 밥알 한 톨도 남기지 않고 그릇을 싹 비운 상태였어요. “잡곡밥에 나물 반찬은 얼마든지 있으니 말만 하십시오.” 최영은 흔쾌히 밥과 나물을 더 내오게 했어요. “오늘 최영 장군 댁에서 먹은 밥은 정말 꿀맛이었어요!” “난 이제껏 어느 정승 집에서 먹어 본 산해진미(山海珍味)보다 훨씬 더 맛있었습니다!” “맛있게 드셨다니 저도 참 기쁩니다, 하하하.” 최영은 이렇게 한 끼 밥의 소중함을 깨우쳐 주었어요. “우리가 힘을 합쳐 못된 관리 놈들을 다 없애 버립시다!” 목호들은 탐라 주민들을 부추겨 반란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어요. 한번은 제주도에서 반란이 일어났어요. 당시 제주도의 이름은 ‘탐라’라고 했지요. 탐라에는 원나라 황실의 말을 키우는 목장이 있었어요. 이 목장에서 말을 돌보는 몽골인들을 ‘목호’라고 불렀어요. 목호가 탐라에 들어온 것은 약 백여 년 전의 일이었어요. 숫자가 많을 때는 1,400명에서 1,700명의 목호가 탐라에 살았어요. 탐라 여인들과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사는 경우도 흔했지요. 목호가 반란을 일으킨 것은 공민왕이 즉위하면서 원나라에 반대하는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부패한 관리들과의 대립 때문이었어요. 나쁜 관리들은 몽골인과 탐라 주민을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돈을 뜯어 갔어요. “세상을 뒤집어엎든지 해야지 억울해서 어디 살겠소?” 이 무렵 명나라가 중국의 새 주인으로 떠오르면서 원나라와 전쟁을 일으켰어요. 원나라는 결국 명나라에 밀려서 멀리 북쪽으로 쫓겨났지요. “도망친 원나라의 잔당들을 치러 가는데 필요한 말을 명나라로 보내 주시오.” 어느 날 명나라 사신이 고려에 들어와 탐라에서 키운 말 2천 필을 내 달라고 요구했어요. 고려는 명나라의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자 탐라 목호들의 우두머리들이 크게 반발했어요. “우리가 원나라 황제를 위해 키운 말들을 어찌 적들의 나라에 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말을 350필만 내주었어요. 그러자 명나라 사신이 노발대발해서 소리쳤어요. “건방진 목호들을 처단하고 말을 더 내놓으시오! 안 그러면 고려가 우리 명나라를 우습게 여기는 것으로 알겠소!” 고려 조정은 마침내 탐라에 군대를 보내기로 했어요. 고려군 총사령관 최영은 배 11척을 탐라 앞바다에 띄우고 목호들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편지를 보냈어요. “흥!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 그만 하라고 해!” 목호들의 우두머리는 최영이 보낸 편지를 전령이 보는 앞에서 갈기갈기 찢어 버렸어요. 그리고 3,000명의 기병들을 내보내 고려군이 타고 간 배를 공격했어요. 갑자기 공격을 당한 고려군은 큰 피해를 입었어요. 그뿐 아니라 조정에서 설득하러 간 신하도 그들에게 살해되고 말았어요. 고려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지요. “탐라 사람들 모두가 한패가 돼서 우릴 공격하면 아무리 군대라도 꼼짝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을 거야.” 병사들은 겁을 먹고 섬에 접근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주민들이 목호와 손잡고 자신들을 공격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싸움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어요. 최영은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병사들의 희생을 최대한 줄이면서 전투를 한 번에 끝내는 방법이 없을까?” 반군이 워낙 드세게 나오는 바람에 골치를 썩던 최영은 마침내 한 가지 묘수를 떠올렸어요. 제주도는 예로부터 여자와 돌, 바람이 많다고 해서 삼다도라고도 해요. 제주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돌담에는 거센 바람의 피해를 막으려는 탐라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지요. 최영은 바로 이 바람을 이용하여 반군을 물리칠 계획을 세웠어요. “최대한 갈대 씨를 많이 모아 오도록 해라!” “먹지도 못할 갈대 씨를 무엇에 쓰려는 거지?” 탐라 주변 섬에 있던 병사들은 최영의 명령에 따라 영문도 모른 채 사방으로 갈대 씨를 모으러 다녔어요. 병사들은 날마다 갈대밭을 돌아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대로 씨를 훑어 왔어요. 그렇게 모인 갈대 씨가 몇 가마니나 되었어요. 최영은 병사들에게 연을 만들라고 지시했어요. “아직 연날리기 할 때가 아닌데 무슨 일이지?” 병사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매일 연을 만들었어요. 이윽고 수천 개의 연이 완성되었어요. 어느 날 최영은 바람의 방향을 확인해 보고 다시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어요. “갈대 씨를 연에 묶어 날려 보내라!” 병사들은 어린아이들처럼 신이 나서 연을 날려 보냈어요. 그리고 몇 달이 지나갔어요. “이제 되었다. 각자 연에 불덩이를 매달아서 날려 보내라!” 드디어 최영의 마지막 명령이 떨어졌어요. 병사들이 불덩이를 매달아서 날려 보낸 연은 정확히 목호의 근거지 앞 갈대숲으로 날아갔어요. “불이야!” “사람 살려!” 목호 진영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어요. 진영을 에워싸고 있는 무성한 갈대숲에서 시작된 불이 순식간에 진영으로 옮겨붙은 것이었어요. “공격하라!” 갑자기 최영이 이끄는 고려군이 나타났어요. 졸지에 불길에 갇혀 우왕좌왕하던 반군은 간신히 진영 바깥으로 빠져나왔지만, 곧바로 고려군에게 포위되어 옴짝달싹 못 하는 신세가 되었어요. “정말이지 기가 막힌 작전이었어!” 고려 병사들은 그제야 갈대 씨를 연에 날려 보내라고 했던 이유를 알아차렸어요. 최영은 목호 진영에 연을 이용해 미리 씨를 뿌려 놓고 갈대가 자라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이 방심한 틈을 타서 병법의 한 가지인 화공으로 승리를 거둔 거예요. 제주도 근방에 추자도라는 섬이 있어요. 최영의 사당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해요. 요즘도 추자도 주민들은 해마다 풍어제를 올리며 최영의 은혜에 감사하는 성대한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옛날 추자도 사람들은 최영 장군을 신처럼 받들었대요.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요. 최영은 왜구를 토벌하러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한동안 군대를 이끌고 추자도에 머문 적이 있었어요. 이때까지 추자도 사람들은 고기를 잡을 때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했다고 해요. 그물 같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한 마리씩 고기를 잡았던 것이지요. “저러다 어느 세월에...!” 최영은 가난한 추자도 사람들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이들을 도울 방법을 생각해 보았어요. “그래! 그물 만드는 법을 알려 주자!” 최영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노끈을 엮어 그물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 주었어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추자도는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았어요. 주민들은 대부분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 갔지요. 그나마 방법이 서툴러서 하루 몇 마리나 잡을까 말까 해서 대부분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물 만드는 방법을 깨우치고 난 다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이것 봐요! 그물에 고기가 한가득이에요!” “난 그것보다 더 많이 잡았어! 하하하!” “이게 다 최영 장군 덕분이지 뭔가?” 고기를 한꺼번에 많이 잡는 방법을 알게 되어 먹고사는 걱정을 덜게 된 마을 사람들은 최영 장군을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로 여겼어요. 공민왕이 죽고 우왕이 겨우 열 살의 나이로 즉위했을 때 최영의 나이는 60세가 지난 때였어요. 이미 조정에서 물러나 편히 쉬어야 할 나이였지만 최영은 항상 노심초사했어요. “안으로는 권력을 탐하는 무리가 어린 왕을 에워싸고 있고, 밖으로는 변방의 오랑캐와 왜구들이 날뛰고 있으니, 과연 이 나라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가!” 충심을 다해 왕을 보필하던 신하들은 거의 다 사라지고 조정에는 이인임이라는 간신이 정치를 쥐락펴락하고 있었어요. 우왕은 그저 이인임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허수아비였어요. “임금이 빨리 철이 들어야 할 텐데.” “최영 장군이라도 없다면 고려는 벌써 무너졌을 거야!” 백성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나돌기도 했어요. 그만큼 나라 돌아가는 모양새가 불안했던 거예요. 최영은 이 시기에 고려의 대들보 같은 존재였어요. 이인임은 공민왕 시절부터 악명 높은 간신배였어요. 나라 살림이 어렵거나 말거나 왕의 환심을 사려고 호화로운 궁궐 공사를 부추겨 엄청난 국고 낭비에 앞장섰던 인물이지요. 그 덕에 지금의 국무총리와 같은 수시중에 올랐어요. “왕자가 선왕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말이 있는데도 왕위를 물려받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왕의 즉위를 앞두고 대신들 사이에 말이 많았어요.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금까지도 뚜렷하게 밝혀진 것이 없지만, 이런 의심을 받는다는 것조차 왕이 되기도 전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큰 약점이었어요. 하지만 이인임은 수시중으로서 모든 반대 의견을 억누르고 우왕을 왕위에 앉혔어요. 그러니 불안에 떨던 우왕이 의지할 곳이라고는 이인임뿐이었어요. “전하는 제 말만 잘 들으시면 됩니다.” 이때부터 세상은 이인임의 손아귀에 들어갔어요. “이인임이 얼굴을 한번 찡그리면 사람이 죽어 나가고, 한번 웃으면 공신이 탄생한다.” 어느 날부터 기가 막힌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어요. “조정 관리들의 자리가 바뀔 때마다 전국 각도에 이인임의 농장이 들어서고, 좌우로 길게 늘어선 집에는 금은보화가 가득 찼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이인임의 탐욕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그는 유능하고 바른말 하는 관리들을 모두 내쫓고 그 자리에 자신의 부하들을 들어앉혔어요. 그리고 돈을 받고 벼슬을 파는 것도 모자라서 온갖 불법적인 일도 서슴지 않았어요. 죄를 짓고 옥에 갇힌 죄인이라도 뇌물을 갖다 바치면 그 즉시 풀려나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어요. 또 나라에 아무런 공을 세우지 않은 사람이 공신으로 둔갑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지요. 어느 날, 최영은 궁에서 우연히 이인임과 마주쳤어요. “아이고, 장군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이인임이 점잖게 인사를 건네자 최영이 물었어요. “나 같은 사람이 수고랄 게 뭐 있겠소. 그런데 대감은 요즘 많이 바쁘시지요?” “하하! 나랏일 하는 사람이 바쁜 게 당연한 일이지요.” 이인임의 넉살 좋은 웃음을 최영이 태연하게 받아쳤어요. “나랏일이라? 그러고 보니 요즘 나라 살림이 곤란한 것은 대감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겠지요?” “그거야 뭐...” “그런데 일국의 재상으로서 어찌 가정 살림에만 그토록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이오?”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해서 정치를 어지럽히는 것에 대한 최영의 서릿발 같은 추궁이었어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할 만큼 권세가 막강했던 이인임도 이 상황에서는 부끄러워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어요. 우왕이 즉위한 지 2년이 되던 해, 충청도 일대에 왜구가 침입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어요. “신이 나가서 왜구를 토벌하겠나이다!” “경은 나이가 많아 직접 싸우기에는 무리가 아니겠소?” 왕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전쟁터에 나가겠다고 청하는 최영에게 물었어요. 그러자 최영이 말했어요.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신은 죽더라도 적과 싸우다 죽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이 총사령관을 맡아 주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최영은 곧바로 충청도로 병사들을 이끌고 나갔어요. 그리고 얼마 후, 홍산(지금의 부여)에서 왜구들을 크게 물리쳤어요. 이 전투가 바로 유명한 ‘홍산대첩’이에요. “웬 백발노인이 전쟁터에 나왔대?” “쯧쯧, 집에서 손자들 재롱이나 볼 것이지.” 홍산 앞바다에서 고려군과 맞닥뜨린 왜구들은 최영이 병사들을 지휘하는 것을 보고 코웃음을 쳤어요. 그러나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웃음기가 싹 가셨어요.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젊은 병사들보다 몇 배는 더 용감하게 싸웠기 때문이에요. “안 되겠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 왜구 중 하나가 최영을 겨냥해서 활을 쏘았어요. 화살은 최영의 얼굴을 스치고 바닥에 떨어졌어요. 최영은 침착하게 바닥에 떨어진 화살을 집어 들었어요. 그러고는 자신을 쏘았던 왜구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어요. 화살은 정확하게 왜구의 심장에 명중했어요. 이것을 보고 왜구들은 싸울 생각도 못 할 만큼 겁을 먹었어요. 그 뒤로 왜구들 사이에서는 이런 소문이 났어요. “고려에서 가장 무서운 상대는 백발 장군이다!” 우왕은 나이가 들어 가면서 방탕하게 변했어요. 정치보다는 노는 일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거예요. 조정에 득실대는 간신배들은 그럴수록 좋아했어요. “마음껏 놀라고 해. 왕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야 모든 걸 우리 뜻대로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하하하!” “왕이 좋아할 만한 놀이를 좀 더 개발해야겠어!” “되도록이면 왕을 바깥으로 돌게 만들어야 해.” 간신배들은 날마다 경치 좋은 곳에 배를 띄워 연회를 즐기거나 사냥을 떠나도록 우왕을 꼬드겼어요. 나랏일에 신경을 쓰다 자신들의 비리를 알아챌까 봐 두려웠던 거예요. “얼굴이 예쁘장하게 생겼구나. 쓸모가 있겠어!” 하루는 이인임이 우왕을 집으로 초대하여 미모가 뛰어난 자신의 여종에게 시중을 들게 했어요. 우왕은 그 여종에게 마음을 빼앗겨 툭하면 말을 타고 이인임의 집으로 달려갔어요. 그러다 결국 도성 한복판에서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났어요. 최영은 즉시 궁궐로 들어가 직접 왕을 만났어요. “충혜왕은 많은 여인을 가까이했어도 밤중에 남몰래 술자리를 열어 즐기는 시간을 가졌고, 충숙왕은 그렇게 놀러 다니기를 좋아했어도 농사철은 피해 다녔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선 아무 거리낌 없이 놀러 다니다 말에서 떨어져 다치셨군요!” 충혜왕은 원나라가 왕좌에서 몰아낼 만큼 타락한 왕이었어요. 그 뒤를 이은 충숙왕도 별반 다르지 않았지요. 최영은 우왕이 그들보다 절제가 부족하다고 대놓고 꼬집은 거예요. “신이 전하를 모시고 있으면서 그런 무리한 행동을 바로잡지 못하니 어찌 남 앞에 떳떳할 수 있겠습니까!” “알았으니 그만하세요.” 처음에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던 우왕도 최영의 거침없는 직언에 할 말을 잃고 말았어요. 최영은 고려의 개국 공신 최준옹의 후손이에요. 이 정도 집안이라면 알아주는 귀족 가문이지요. 이웃 사람들은 그렇게 대단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최영의 집안이 가난한 것을 이상하게 여겼어요. “다른 귀족들 같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재물을 늘이려고 눈이 벌게졌을 텐데, 아버지나 아들이나 평생 가난을 면치 못하는군.” 사람들이 이상히 여길 만도 한 것이 이 무렵 최영은 군대의 최고 책임자이면서 재상까지 겸하여 마음만 먹으면 호의호식하면서 살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집은 누추하기 짝이 없었고 가족들은 옷을 기워 입었으며, 간혹 쌀독이 빌 때도 있었어요. 최영은 사치하는 관리들에게 늘 이런 말을 했어요. “저들이 좋은 의복, 좋은 음식을 누리는 것은 뇌물을 챙겼다는 뜻이다! 이는 개나 돼지만도 못한 짓이다!” 최영이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아버지의 유훈을 철저하게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조정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1380년, 우왕은 왜구를 토벌하고 반란을 진압한 최영의 공을 치하하며 다음과 같은 교서(敎書)를 내렸어요. “지금 장수 중에서 전투를 많이 하고 공이 큰 이는 오직 그대 한 사람뿐이다. 충성을 다하고 의를 떨쳐 임금을 높이고 백성을 보호하니 재상 가운데 참 재상이로다. 이에 토지와 노비로 상을 내리는 것이 마땅하나 그대가 더없이 청렴결백하여 받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공신의 훈장을 주되, 옥으로 족자를 만들어 특별한 예를 보이노라.” 또한, 우왕은 최영의 공에 비해 상이 소박한 것이 미안하다면서 이렇게 덧붙였어요. “혹 그대가 죄를 지어 아홉 번에 이르러도 처벌하지 않을 것이오. 열 번에 이르러도 처벌하지 않을 것이며 자손도 또한 그리할 것이오. 그러니 후대의 임금과 신하들도 내 뜻을 알아주기 바라노라.” 최영은 무장이지만 한가한 날이면 시를 짓는 것을 유일한 즐거움으로 삼았어요. 어느 달 밝은 저녁, 좌시중 경복흥과 뜻을 함께하는 재상들이 술판을 벌여 놓고 최영을 초대했어요. 좌시중은 수시중과 더불어 국사를 돌보는 자리예요. 원래 경복흥은 문관 출신으로 공민왕 때 외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우고 이인임 못지않은 권세를 누렸어요. 그런데 우왕이 즉위한 후 사사건건 이인임과 부딪치면서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매일 술만 마셨어요. “하늘은 옛 하늘이지만 사람은 옛사람이 아니로다.” 경복흥이 먼저 시를 읊고는 최영에게 말했어요. “이 시의 뒤를 이어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최영이 그 뒤를 이었어요. “달은 밝게 떠올랐건만 재상들은 밝지가 못하구나.” 나라의 앞일을 책임져야 할 재상들이 정사는 뒷전이고 무리 지어 술이나 마시는 한심한 행동을 따끔하게 비판한 거예요. 이성계는 최영의 지시에 따라 이인임의 악행을 낱낱이 밝혀냈어요. 곧 사형당할 신세가 된 이인임은 최영에게 싹싹 빌었어요. “부디 남은 생을 조용히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최영은 인간적인 연민으로 마음이 흔들렸어요. 결국, 최영은 이인임을 귀양 보내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는데, 이것은 두고두고 그의 인생에 오점으로 남고 말았어요. 1388년 1월, 하루는 우왕이 은밀히 최영을 불렀어요. “이인임의 횡포를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소.” 더는 이인임의 허수아비 노릇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어요. 이인임은 이때 병이 들어 관직을 물러난 상태였으나 나라의 중요한 일은 모두 그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어요. 최영은 곧 국경 수비 업무를 맡고 있던 이성계를 함경도에서 한양으로 불러들였어요. “전하의 뜻이 이러하니 자네가 일을 잘 처리하게.” 하루는 사신의 편지를 보던 우왕의 손이 덜덜 떨렸어요. ‘철령 이북은 원나라가 다스리던 곳이다. 당연히 전쟁에 승리한 우리 명나라가 관리하는 것이 옳다.’ 마침내 원나라를 멸망시킨 명나라가 요동에서 철령에 이르는 고려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거예요. “즉각 요동을 정벌하여 단 한 명의 명나라 관리도 남아 있지 못하게 하라!” 왕명을 받은 최영은 이성계와 조민수가 이끄는 군대를 요동으로 출발시켰어요. 최영은 평소에 이성계를 아들처럼 믿고 아꼈어요. 그런데 얼마 후 충격적인 장계가 올라왔어요. ‘작은 나라가 큰 나라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옳지 않고,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부적당하며, 우리가 요동을 공격하는 틈에 남쪽에서 왜구가 침범할 염려가 있고, 무더위와 장마에 병사들이 전염병에 걸릴 우려가 있습니다.’ 이성계가 이런 이유를 들어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렸다는 소식이 날아온 거예요. 이성계는 고려의 앞날에 희망이 없다고 보고 오래전부터 새 왕조를 세울 계획을 품고 있었어요.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린 것은 이제는 거사를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이성계가 반란을 일으켜 개경으로 쳐들어오는 중입니다.” “나는 끝까지 고려를 지키겠다!” 최영은 얼마 안 되는 군대를 직접 이끌고 나가 싸웠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 대로 기울어진 상태였어요. 전투는 이성계의 승리로 끝났고 최영은 개경 한복판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어요. 죽기 전에 최영은 이런 유언을 남겼어요. “만일 내가 평생 단 한 번이라도 사사로운 욕심을 품었다면 내 무덤에 풀이 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풀 한 포기도 나지 않을 것이다.” 당시 개경의 상인들은 충신을 죽인 것에 항의하는 뜻으로 가게 문을 꽁꽁 닫아 걸었어요. 최영은 죽어 아버지 곁에 묻혔어요. 무덤에는 마치 최영의 유언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신기하게도 풀이 한 포기도 나지 않았답니다.
인도의 영웅이 된 겁쟁이 소년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어제도 불을 켜고 잔 거니?” 간디의 어머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간디를 바라봤어요. “엄마, 불을 끄면 무서워요. 벽장에서 유령이 튀어나올 것 같고, 창문으로 도둑이 들어올 거 같단 말이에요!” 간디의 어머니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여보, 큰일이에요! 사내아이가 저렇게 겁이 많아서.” 맞아요. 꼬마 간디는 소심하고 겁이 많았어요. 수업 시간에도 부끄러워 발표를 잘하지 못했지요. 친구들은 그런 간디를 보며 놀려 댔어요. “간디는 무서워서 밤에 불을 켜고 잔대! 하하하!” 친구들이 놀려도 간디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뿐이었어요. ‘나도 불을 끄고 자고 싶다고!’ 소심하고 겁 많은 간디는 친구도 별로 없었어요. 어느 날, 간디는 집으로 가는 길에 한 무리의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어요.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이들은 늙은 거지를 향해 침을 뱉고 돌팔매질까지 하고 있었어요. ‘불쌍해!’ 간디는 친구들을 말리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나서지 못했어요. 그때 개 한 마리가 사납게 짖으며 늙은 거지를 향해 달려들었어요. “안 돼! 저리 가!” 간디는 저도 모르게 손을 저어 개를 쫓았어요. “에이! 간디! 너 때문에 좋은 구경을 놓쳤잖아!” 친구들은 간디를 나무랐어요. 그러나 간디는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어요. 다리에서 피를 흘리며 쩔뚝거리는 늙은 거지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어요. 늙은 거지는 아픈 다리를 질질 끌고 우물가로 걸어갔어요. “이봐, 썩 꺼져! 그 우물물은 우리 거야!” 늙은 거지가 두레박을 길어 올리자 아이들이 달려들었어요. 그 바람에 두레박에 있던 물이 사방으로 튀었지요. “이 더러운 거지가 감히!” 아이들은 거지를 마구 때렸어요. 거지는 아이들의 주먹세례를 피해 절뚝거리며 도망치려 했어요. 그러다 그만 돌부리에 걸려 자빠지고 말았어요. 그제야 아이들은 침을 퉤퉤 뱉으며 자리를 떴어요. 아이들이 모두 사라지자, 간디는 늙은 거지에게 다가갔어요. “할아버지, 괜찮아요? 제가 물을 떠다 드릴게요.” 간디가 물을 떠다 주자 늙은 거지는 허겁지겁 물을 마셨어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다리에서 피가 많이 나요!” 간디는 피가 나는 늙은 거지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안 돼요! 제 몸에 손을 대면 안 됩니다!” 늙은 거지는 정색을 하고는 쏜살같이 도망쳤어요. “피가 나는 다리로 아플 텐데.” 간디는 늙은 거지가 사라진 쪽을 가만히 바라보며 중얼거렸어요. 그때 같은 반 친구가 다가와 간디에게 소리쳤어요. “너 방금 저 천한 거지의 몸에 손댔지? 이제 네 몸에 거지의 온갖 더러움이 옮겨 붙을 거야!” 꼬마 간디는 덜컥 겁이 났어요. 그제야 엄마의 말씀이 떠올랐어요. “천민에게 가까이 가지 말거라. 큰일 난단다.” 인도에는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온 카스트라는 제도가 있었어요. 사람들의 신분을 네 가지로 나눠 대대로 세습하는 제도예요. 그중에서도 거지는 손을 대면 안 될 만큼 천한 존재인 ‘불가촉천민’에 속해요. 간디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친구를 바라보았어요. “좋은 방법이 있어! 거지를 만졌던 네 손으로 다른 사람을 만져서 더러운 것이 옮겨 가게 하는 거야! 어때?” 친구의 말에 솔깃해진 간디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았어요. 아빠나 엄마처럼 어른도 있었고, 귀엽고 깜찍한 여자아이도 있었어요. 간디는 잠시 고민에 빠졌어요. 그때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어요.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남을 괴롭히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 간디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어요. “안 돼. 못 하겠어!” “왜? 그럼 넌 더러운 거지를 만져서 벌을 받게 될 거라고!” “그렇다고 해서 나 대신 다른 사람이 벌 받게 할 수는 없어!” 간디는 단호하게 말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어요. “만약 벌을 받아야 한다면, 나의 잘못이니 내가 받는 게 맞아!” 비록 겁 많고 소심한 간디였지만, 옳지 못한 일을 할 수는 없었어요. 몇 년 뒤 간디는 중학교에 입학했어요. 하루는 선생님께서 영국 장학사가 오신다며 학생들에게 주의 사항을 알려 주었어요. “우리는 영국의 지배를 받는 영국의 식민지 국민이다. 그러니까 영국 사람들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영국 장학사들이 내는 문제를 모두 풀어야 한다!” 선생님은 영국 장학사에게 본때를 보여 주자며 학생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100점을 맞으라고 했어요. 드디어 영국 장학사가 교실로 들어와 영어 시험 문제를 냈어요. 아이들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답을 적어 내려갔지요. 아예 대놓고 옆 친구의 답안지를 베껴 쓰는 아이도 있었어요. 선생님은 그런 모습을 보고도 못 본 척 고개를 돌렸어요. 장학사가 돌아가고 난 후, 선생님이 화가 난 얼굴로 교실로 들어왔어요. “간디! 네가 우리 인도 망신을 다 시켰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100점을 맞으라고 했잖니!” 다른 친구들은 모두 다 100점을 맞았지만 간디 혼자 한 개를 틀리고 만 거예요. 선생님은 얼굴이 벌게져서 간디를 나무랐어요. 영국 장학사 앞에서 인도가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한 거예요. 간디는 선생님의 꾸중을 그저 가만히 경청할 뿐이었어요. 선생님은 씩씩거리며 화를 내다 교실을 나갔어요. 아이들은 간디에게 “보고 쓰는 것도 못하냐?”며 놀렸어요. 그러자 간디의 짝꿍이 물었어요. “간디, 왜 베껴 쓰지도 않은 거야? 나 같으면 선생님에게 혼나기 싫어서라도 베껴 썼겠다!” 짝꿍은 정말 안타깝다는 얼굴로 간디를 바라보았어요. 간디는 씩 웃으며 말했어요. “난, 어떠한 경우라도 내 자신을 속이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아!” 이처럼 간디는 비록 겁이 많고 소심했지만, 정직했어요. 스스로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지요. 그 무렵, 간디는 열세 살 동갑내기 여자와 결혼을 했어요. 당시 인도에는 일찍 결혼하는 관습이 있었어요. 간디와 결혼한 카스투르바이는 글을 읽지 못했어요. 인도에서는 따로 여자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았거든요. 간디는 글자를 모르는 신부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었어요. 사람들은 여자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간디를 놀리곤 했지만, 간디는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밤마다 신부에게 글공부를 시켰어요. 간디의 아내가 물었어요.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하면서 왜 나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는 거예요?” “난 여자도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놀림 따위는 걱정하지 말아요.”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 친구인 메타브가 이상한 노래를 불렀어요. “메타브, 그 노래가 뭐야?” “요즘 유행하는 노래인데, 고기 먹고 키가 큰 영국인이 인도를 지배한다는 그런 노래야!” “에이, 거짓말!” “진짜야! 영국 사람들은 고기를 많이 먹어서 키가 크고 힘이 센 거야! 그래서 키가 작은 우리 인도를 지배하는 거라고!” 생각해 보니 그럴듯해 보였어요. 힌두교를 믿는 인도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았거든요. 소를 신성시하고 있어 소고기를 먹으면 처벌을 받지요. “너 그거 모르지? 우리 학교 선생님들도 인도의 독립을 위해 몰래 소고기를 먹으면서 힘을 기르고 있다고!” “뭐? 그게 정말이야?” 간디는 친구의 말에 깜짝 놀랐어요. 선생님들이 소고기를 먹고 있다니요? “우리 인도가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고기부터 먹고 힘을 길러야 한다고!” 메타브의 말을 듣다 보니, 인도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고기를 먹어도 될 것 같았어요. 메타브는 작은 소리로 간디에게 말했어요. “어때? 간디, 너도 고기 먹으러 갈래?” “정말?” 태어나서 한번도 고기를 먹어 보지 않았던 간디는 친구들과 고기 먹기로 한 날을 고대하며 기다렸어요. 어쩐지 굉장한 비밀 결사대라도 된 것 같았어요. 마침내 고기를 먹기로 한 날, 간디를 비롯한 친구들은 냇가에 모여 앉아 염소 고기를 구웠어요. “자, 간디! 먹어 봐!” 간디는 잠시 망설이다 두 눈을 꾹 감고 고기를 입에 넣었어요. ‘나도 이제 인도 독립을 위해 고기를 먹었어!’ 그렇지만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어요. 그날 밤에는 이상한 꿈도 꾸었어요. 염소가 계속 울어 대는 꿈이었는데 몹시 괴로웠어요. ‘내가 염소 고기를 먹은 건, 인도의 독립을 위해서야!’ 간디는 스스로에게 변명을 했어요. 간디는 그 이후로도 계속 친구들과 몰래 염소 고기를 먹었어요. 고기를 먹은 날은 너무 배가 불러 집에 오면 밥을 먹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어요. “얘야, 공부하기 힘들 텐데, 왜 밥도 안 먹니?” 간디의 어머니는 자주 저녁을 거르는 간디를 보며 걱정했어요. 간디는 속이 뜨끔했어요. ‘어머니를 속이면서까지 내가 고기를 먹어야 할까?’ ‘그래,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 동안에는 고기를 먹지 말자!’ 간디는 어머니께 거짓말을 하기 싫어 더 이상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어요. 그런데 더 큰 유혹이 찾아왔어요. “간디! 담배를 피워 봐. 영국 신사처럼 멋있어진다고!” 담배를 사 피우느라 간디는 빚까지 졌어요. ‘빚을 갚아야 하는데 어떡하지?’ 간디는 책상 위에 있던 형의 금팔찌가 떠올랐어요. 간디는 형의 금팔찌를 훔쳐 빚을 모두 갚았어요. 그런데 빚을 졌을 때보다 마음이 더 무거웠어요.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고기도 먹고, 담배도 피우고. 이젠 도둑질까지 했어!’ 간디는 뒤늦게 죄책감이 밀려들었어요. 어쩌다가 자신이 이렇게 됐는지 스스로 한심하기 그지없었지요. ‘그래, 나의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하자!’ 그날 밤, 간디는 용기를 내어 아버지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길고 긴 편지를 썼어요. 그리고 날이 밝자, 편지를 가지고 아버지에게 갔어요. “아버지, 저는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벌을 주세요!” 간디는 그동안 자신이 했던 일을 모두 고백했어요. 간디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그동안 많이 괴로웠겠구나.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면 괴로운 법이란다. 하지만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고백을 한 네가 아버지는 무척이나 자랑스럽구나!” “그러면 저를 용서해 주시는 거예요?”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이 편지를 찢어 버리마.” “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올바르게 살겠습니다!” 간디는 아버지 앞에서 굵은 참회의 눈물을 쏟았어요. 그로부터 얼마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말았어요. 오랜 병마와 싸워 오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간디는 밤마다 아버지가 그리워 눈물을 흘렸어요. 그러나 내내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어요. ‘그래, 이런 모습은 아버지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 거야.’ 그 뒤 공부에 집중한 간디는 대학 시험에 합격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간디는 아버지의 친구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아저씨는 학식이 높고 지혜로운 분으로 간디의 집안을 돌봐 주고 계셨어요. “간디야, 너는 꿈이 무엇이니?” “꿈이요?” 간디는 갑자기 부끄러워졌어요. 그러고 보니 대학을 졸업하면 무엇을 할지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삶의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낸 것 같아 얼굴이 다 화끈거렸어요. “간디야, 영국으로 유학을 가 법률 공부를 해 보렴.” “법률 공부요?” “그래, 법률을 공부해서 힘없고 가난한 인도 국민을 위해 변론을 해 준다면 좋지 않겠니?” 간디는 아저씨의 말을 듣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 우리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려면 나부터 강해져야 해. 열심히 공부해서 인도에 도움이 되는 인재가 되자! 법률가가 되는 거야!’ 영국으로 가 법률 공부를 하리라 마음먹은 간디는 어머니에게 유학을 가겠다고 말했어요. “안 된다! 영국 사람들은 술도 많이 마시고 고기도 많이 먹고 담배도 많이 피운다는데, 영국으로 유학을 가면 너도 그렇게 되지 않겠니? 영국 유학은 안 돼!” 간디의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를 했어요. 그러나 이미 결심이 선 간디를 꺾을 수는 없었어요. 마침내 간디는 영국으로 가는 배에 올랐어요. 영국 유학 생활을 하면서 간디는 고기 때문에 힘들었어요. 어떤 음식에 고기가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어 과일과 채소, 빵만으로 연명해야 했지요. ‘인도로 돌아가고 싶다!’ 배가 고플 때마다 간디는 고향 음식이 간절하게 떠올랐어요. 그럴 때마다 간디는 주먹을 불끈 쥐었어요. ‘한번 뜻을 세웠으면 어떤 고난이 와도 이겨 내야지!’ 간디는 다시 마음을 굳게 먹고 더더욱 공부에 집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간디는 한 모임에 초대를 받았어요. 영국에 유학을 온 이래 첫 모임이었는데 사람들이 간디를 본체만체했어요. ‘사람들이 왜 저러지?’ 집으로 가는 길에 간디는 함께 갔던 친구에게 물었어요. “이보게, 모임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던데, 왜 그런지 혹시 아나?” 간디의 말에 친구는 머뭇거리다 대답했어요. “간디, 자네 양복 한 벌 맞춰 입게나.” “양복? 왜?” “영국 사람들은 격식과 매너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네. 오늘 모임에서 자네를 무시한 건, 자네의 복장이 그들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네.” 친구의 말에 간디는 부끄러워졌어요. “그래, 영국 사회에 발을 딛고 살려면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지! 나도 영국 신사처럼 멋지게 입어야겠어!” 간디는 형에게 편지를 써 돈을 부쳐 달라고 했어요. 그 돈으로 양복과 구두, 그리고 모자와 넥타이도 샀어요. “옷만 가지고는 안 돼! 바이올린도 배워야겠어!” 간디는 영국 신사처럼 옷을 차려입고, 영국 신사들처럼 춤과 바이올린도 배웠어요.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무척 바빴지요. 간디는 영국 신사를 흉내 내느라 공부는 뒷전이었어요. 결국 간디는 그해 법과 대학 시험에 떨어지고 말았어요. “내가 지금까지 뭘 한 거지?” 간디는 알맹이를 채우기보다 겉모양에 신경을 쓴 자신이 한심했어요. “내가 영국 신사가 되기 위해 영국에 왔던가! 정신을 차리자!” 간디는 옷과 구두, 모자, 바이올린까지 모두 버리고 법률 공부에 다시 매진했어요. 그리고 얼마 뒤 간디는 드디어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어요. 영국에 온 지 4년 만의 일이었어요. “이제 고국 인도로 돌아가자!” 간디가 인도로 돌아오자, 슬픈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얼마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거예요. 변호사가 되어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다는 열망으로 한달음에 달려온 간디는 슬픔에 주저앉고 말았어요. “간디야, 어머니는 네가 인도를 위해 훌륭한 사람이 되어 달라고 늘 기도드렸단다.” 간디는 어머니의 바람에 꼭 보답하겠다고 결심했어요. 변호사가 된 간디는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큰 회사에서 제의가 들어왔어요. “남아프리카에 가서 우리 회사의 법률 문제를 맡아 주시오!” 간디는 흔쾌히 승낙했어요. “간디야, 남아프리카는 백인들 세상이야.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이 심한 곳이니 조심하렴.” 남아프리카로 떠날 채비를 하는 간디에게 형이 각별히 주의를 주었어요. 간디가 일등석 기차를 타고 갈 때의 일이었어요. 일등석 안에는 온통 백인들뿐이었어요. 백인들은 간디가 일등석에 오르자 기분 나쁜 얼굴로 쳐다봤어요. 잠시 후 역무원이 다가와 간디에게 말했어요. “이봐요. 다른 손님들이 불쾌해하니, 다른 칸으로 가시오!” “무슨 소리요? 나는 일등석 기차표를 샀어요!” 간디는 차표를 보여 주며 당당하게 말했어요. 그러나 역무원은 간디의 짐을 챙기고는 등을 떠밀었어요. “당신 같은 사람은 일등석에 탈 자격이 없어! 어서 썩 꺼져!” “내 자리는 여기요! 난 다른 칸으로 갈 생각이 없소이다!” 간디는 단호하게 말했어요. 그러자 역무원은 경찰을 불러와 다짜고짜 간디를 강제로 내리게 했어요. 간디는 처음으로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사람은 모두 평등한데 이렇게 차별을 하다니! 이렇게 분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건, 우리가 나라를 잃었기 때문이야. 나는 앞으로 인도의 독립을 위해 온 힘을 바칠 것이다!’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에 대한 차별은 극심했어요. 인도 사람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도 모자라 밤 9시가 넘으면 아예 거리를 다니지 못했어요. 간디는 이러한 차별이 너무 기가 막혔어요. 변호사로 활동하던 간디는 시간이 날 때마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연설을 하며 영국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외쳤어요. 영국 사람이나 인도 사람이나 모두 다 평등합니다! 우리가 왜 차별을 받아야 합니까? 힘을 합쳐 옳지 못한 것을 바꿔 나갑시다! 우리는 영국의 노예가 아닙니다! “맞소! 옳소!”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독립을 쟁취합시다!” 간디의 연설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인도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었지요. 간디는 남아프리카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영국에 맞서 싸우기로 했어요. 그러기 위해선 인도에 있는 가족을 모두 데리고 와야 했어요.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 잠시 인도로 돌아온 간디는 인도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또다시 전국을 돌아다니며 연설을 했어요. 영국의 식민지 정책에 반대하는 간디의 연설은 인도인의 가슴에 불을 지폈어요. 반면 영국 정부는 간디가 눈엣가시였어요. “간디가 사람들을 충동질하고 있어요! 막아야 합니다!” 영국 정부는 간디가 가족과 함께 남아프리카에 정착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있을 수 없었어요. 간디와 가족들이 남아프리카의 더반 항구에 도착하자 많은 영국인들이 항구로 몰려들었어요. “간디는 인도로 돌아가라!” “남아프리카는 간디를 받아들일 수 없다!” 영국 정부의 지시를 받은 영국 사람들은 항구로 달려 나와 돌멩이를 던지며 시위를 했어요. 그러나 간디는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반드시 배에서 내리고 말겠소!” 간디와 함께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간디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어요. “여기는 너무 위험합니다!” “가족들을 먼저 몰래 내려 주시오.” “선생님은요?” “나는 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할 일을 한 것뿐이오! 잘못한 것이 없는데 내가 왜 저들을 피해야 한단 말이오? 나는 당당하게 부두로 내려가겠소!” 간디는 혈혈단신으로 배에서 내려 부두로 걸어갔어요. “저놈이 간디다! 간디를 죽여라!” 간디가 배에서 내리자 순식간에 몽둥이를 든 백인들이 간디를 향해 달려들었어요. 간디는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지요. 바로 그때 한 백인 여성이 나서며 외쳤어요. “이게 무슨 짓이에요! 저항하지도 않는 사람을 이렇게 여럿이서 때리다니! 야만적이에요!” 그 백인 여성은 더반 경찰서장의 부인이었어요. 부인의 도움으로 간디는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어요. 다음 날, 이 사건은 크게 신문에 실렸어요. 영국 정부는 어쩔 수 없이 간디를 폭행한 백인을 잡아들였어요.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했거든요. 그러나 간디는 그들의 처벌을 원치 않았어요.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을 용서하겠습니다.” 이러한 간디의 비폭력 정신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며 존경의 뜻을 표했어요. 1901년부터 간디는 인도와 남아프리카를 오가며 인도의 독립을 위해 싸우기 시작했어요. 1906년, 남아프리카의 트란스발 정부는 아시아인 등록법이란 것을 만들었어요. 모든 아시아인들의 이름, 나이, 직업, 주소, 심지어 지문까지 등록하라고 한 것이지요. 인도 사람들은 크게 반발했어요. 백인들은 하지 않고 아시아인들만 등록하는 것은 매우 불공평하기 때문이었지요. 간디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저항하는 운동을 벌였어요. 이 운동이 바로 ‘사티아그라하’, 우리나라 말로 표현하면 ‘비폭력 저항 운동’이에요. 간디는 사람들을 향해 외쳤어요. “인간이 다른 인간을 폭력으로 심판할 수 없습니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어요. 인도 사람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인 등록법은 시행이 되었어요. 그러나 인도 사람들은 간디의 말에 따라 등록을 하지 않았지요. 화가 난 트란스발 정부는 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어요. 제일 먼저 간디가 잡혀 감옥에 갔어요. “날 잡아 가둔다 해도, 절대 등록하지 않을 것이오!” “인도 사람이 모두 감옥에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불평등한 법에 따를 순 없다!” 인도 사람들의 저항은 날로 거세졌어요. 트란스발 정부는 아시아인 등록법 시행 6년 만에 이 법을 폐지할 수밖에 없었어요. 1915년 간디는 인도로 돌아왔어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영국은 롤라트 법을 만들어 인도인들의 독립 투쟁을 막으려 했어요. 이 법은 인도 사람들이 저항하면 영국 정부가 언제든 체포하거나 감옥에 가둘 수 있다는 법이었어요. “말도 안 되는 법으로 우릴 억압하다니!” 간디는 이에 맞서 하르탈 운동을 벌였어요. 하르탈 운동이란 공장의 노동자들이 모두 일손을 놓고, 상점은 문을 닫으며 영국 정부에 일절 협력을 하지 않는 비폭력 운동이에요. 인도 사람들은 영국 정부의 말도 안 되는 법에 항의하고 하르탈에 참여하기 위해 공원에 모여들었어요. 그런데 너무 많은 군중들이 모여 성토를 하다 보니 금방 분위기가 달아올랐어요. 간디가 폭력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지만 폭동이 일어나고 말았어요. 은행 건물이 부서지고 여기저기서 불길이 치솟았어요. “큰일 났습니다! 간디의 연설을 듣기 위해 공원에 모인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즉각 군대를 파견해 해산하라고 명령했어요. 인도 사람들의 분노는 더욱더 커졌지요. “인도 독립 만세!” “영국은 물러가라!” 탕탕! 영국 군인들이 사람들을 향해 총을 쐈어요. 암리차르 공원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어요. 이 사건으로 400여 명의 사람들이 죽고, 1,0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어요. ‘어떻게 무고한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쏠 수 있단 말인가! 내 반드시 인도의 독립을 쟁취하고 말리라!’ 간디는 피눈물을 흘리며 이날을 잊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반드시 인도의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결심 또한 더 강해졌지요. “절대 폭력은 안 됩니다!” 인도의 독립에 대한 생각이 더욱더 강해지긴 했지만 비폭력 투쟁을 벌인다는 생각이 변한 건 아니었어요. 간디는 비폭력, 비협력 운동을 벌이기로 했어요. 영국인에게서 받은 모든 작위와 직위를 반납하고, 영국인이 운영하는 기관, 학교, 재판을 모두 거부하며 영국 물건 대신 국산품만을 쓰는 운동이었어요. 한마디로 영국과 관련된 그 모든 것들은 일절 쓰지 않는 운동이었지요. 이 운동에 많은 인도 사람들이 동참했어요. 간디는 제일 먼저 영국에게서 받은 훈장을 돌려보냈어요. 그러고는 직접 물레를 돌려 옷을 만들어 입기 시작했어요. “영국 옷감으로 만든 옷은 입지 않겠다!” 간디는 감옥에 갈 때에도 물레를 가지고 갔어요. 그 뒤 간디의 물레는 인도의 민족정신과 자유를 상징하는 특별한 물건이 되었답니다. 간디는 감옥에 갈 때마다 영국에 저항하는 의미로 단식 투쟁을 벌였어요. 또한 투쟁을 하더라도 폭력은 쓰지 않아야 한다고 사람들을 설득하였지요. 이러한 비폭력 저항 운동으로 영국 정부는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었어요. 공공 기관을 공격하는 것도, 사람을 해치는 것도 아닌 간디식의 투쟁 때문에 독립 세력을 공격하는 것도 쉽지 않았으니까요. 1930년, 영국 정부는 ‘소금법’을 만들었어요. 소금법이란 인도에서 만든 소금이 아닌 반드시 영국에서 만든 소금을 사서 먹으라는 법이었어요. 영국 소금에 많은 세금을 매겨 돈을 걷으려고 했던 거예요. “우리는 우리가 만든 소금을 먹는다! 영국 정부는 우리 소금에 관여하지 말라!” 또다시 길고 긴 투쟁이 시작되었어요. 영국 정부의 탄압은 더욱 심해졌어요. 간디는 사람들과 함께 ‘소금 행진’을 벌였어요. 3월 12일, 사바르마티 수도원을 출발하여 350킬로미터나 떨어진 던디 해안을 향해 도보 행진을 벌이기 시작한 거예요. 간디가 행진을 시작하자,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어요. 줄은 끝도 없이 길게 이어졌어요. 간디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길을 맨발로 걸었어요. 3주일 넘게 걷고 또 걷는 그야말로 고난의 길이었어요. 영국 경찰들의 방해도 많았어요. 경찰들이 곤봉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을 때리며 끌어내려 했어요. “비록 나를 끌고 가도, 행진은 계속될 것이다!” “간디 선생님을 따라라!” 영국 경찰들이 행진하는 사람들을 끌어내고 끌어내도 줄은 줄어들지 않았어요. 마침내 4월 5일 간디 일행은 던디 해안에 도착했어요. 해안가는 간디를 따라 행진했던 사람들로 가득 찼어요. 간디는 바닷물을 손으로 받아 햇빛에 비춰 보았어요. 날이 뜨거워 간디의 손은 금세 하얗게 변했어요. 소금 가루가 만들어진 거예요. 간디는 하얗게 변한 소금 한 줌을 쥐고서 다시 행진을 시작했어요. “이 바닷물이 소금물이 되듯이, 우리 인도도 결국 독립을 할 것이다!” 간디는 결국 영국 경찰에 체포되어 또다시 감옥에 갔어요. 이 소식은 금방 전 세계로 퍼져 나갔어요. 사람들은 간디의 평화로운 소금 행진에 대해 존경과 지지를 보냈고, 동시에 간디를 감옥에 보낸 영국 정부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어요. 결국 영국 정부는 간디를 풀어 줄 수밖에 없었어요.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어요. 영국은 인도 사람들에게도 전쟁에 참여하라고 했어요. “영국이 인도의 독립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인도는 참여하지 않겠다!” 간디와 인도의 지도자들은 전쟁을 거부했어요. 영국 정부는 골치 아픈 간디와 지도자들을 다시 감옥에 가두었어요. 감옥 안에서 간디는 단식 투쟁을 벌였어요. “인도의 위대한 지도자 간디를 석방하라!” “인도의 영혼을 가두지 말고 우리 곁으로 보내라!” 영국 정부는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간디를 풀어 주었어요. “인도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 만세!” 마하트마란 ‘위대한 영혼’을 뜻하는 말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시인 타고르가 간디에게 지어 준 별명이었어요.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어요. 이때 인도는 꿈에 그리던 독립을 맞게 되었지요. 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 이번에는 인도의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싸움이 시작되었어요. 간디는 두 종교의 화합을 촉구하며 또다시 단식을 벌였어요. “어렵게 독립을 했는데 내분이라니! 두 종교는 힘을 합치세요!” 간디는 두 종교의 지도자들에게 끊임없이 충고했어요. 그러던 중 1948년 1월 30일 저녁 무렵, 간디가 막 저녁 기도를 마치고 마당으로 나올 때였어요. 탕! 어디선가 한 발의 총알이 간디의 심장을 향해 날아왔어요. 간디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어요. ‘위대한 영혼’, ‘인도 독립의 아버지’ 간디의 죽음에 전 세계인의 애도가 이어졌어요. 간디의 숭고한 비폭력 저항 정신은 갠지스 강물을 따라 오늘도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흐르고 있답니다.
용감한 작은 거인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769년 지중해의 코르시카 섬에서 태어났어요. 코르시카는 매우 가난한 섬이어서 이탈리아 제노바의 지배를 받고 있었어요. 코르시카 사람들은 독립을 위해 자주 싸움을 했어요. 분쟁이 끊이지 않자 이탈리아는 자기 멋대로 코르시카를 프랑스에 팔아 버렸어요. 하지만 코르시카 사람들은 이런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나폴레옹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이탈리아로부터 독립을 얻어 냈거든요. “말도 안 돼! 우리 코르시카는 프랑스의 영토가 아니다! 우리는 독립국이다!” 많은 코르시카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열심히 싸웠어요. 그러나 엄청난 대포와 총으로 무장한 프랑스군을 이길 수는 없었어요. 결국 항복하고 말았지요. 프랑스군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사람 중에는 샤를 보나파르트와 그의 아내 레티치아가 있었어요. 이 부부가 낳은 아들이 바로 나폴레옹이에요.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말로 ‘황야의 사자’란 뜻이에요. “황야의 사자처럼 씩씩하게 자라 코르시카의 독립을 위해 싸워 주렴!” 나폴레옹의 아버지 샤를 보나파르트는 이 같은 염원을 담아 아들의 이름을 지었어요. 나폴레옹은 이름처럼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랐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나폴레옹, 저기 봐! 무지개다!” 나폴레옹은 무지개를 처음 봤어요. “우와, 멋지다! 부리엔, 우리 무지개를 잡으러 가자!” 나폴레옹은 친구 부리엔을 향해 외쳤어요. “뭐라고? 무지개를 잡자고? 나폴레옹, 무지개는 잡는 게 아니야!” “아냐! 난 저 무지개를 꼭 잡고 말겠어!” 나폴레옹은 부리엔을 이끌고 들판을 달렸어요. 두 꼬마를 지켜보던 이웃 아저씨가 의아해하며 물었어요. “얘들아, 대체 무지개를 왜 잡으려고 하는 거니?” “말처럼 타고 놀려고요!” 나폴레옹의 당돌한 말에 아저씨가 껄껄 웃었어요. “하하! 넌 보통 아이가 아니구나! 무지개를 잡아 타게 되면 이 아저씨도 좀 태워 주렴!” “네! 알았어요!” 그러나 무지개는 잡힐 듯 잡히지 않았어요. “나폴레옹! 부리엔과 싸운 거니? 옷이며 신발이.” 나폴레옹이 집에 돌아오자 엄마가 놀라 물었어요. “아니에요! 무지개를 잡으려다 그만.” “나폴레옹, 무지개는 잡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엄마는 헛된 망상이라며 나폴레옹을 말렸어요. 나폴레옹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왜 무턱대고 안 된다고만 하는 거야? 해 보지도 않고! 난 무지개 위에 올라타고 말겠어!’ 그날 밤, 나폴레옹은 무지개 꿈을 꿨어요. ‘이번에는 진짜 너를 잡고 말겠어!’ 나폴레옹은 단단히 결심을 했어요.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나폴레옹의 두 어깨에 날개가 생긴 거예요! 나폴레옹은 새처럼 날아 무지개 위에 앉았어요. 그리고 밤새 이랴! 이랴! 무지개를 타며 놀았어요. 결국 꿈속에서 무지개를 잡고 만 거예요. 나폴레옹은 전쟁놀이를 좋아했어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에 올라 프랑스를 상대로 대포를 쏘며 전쟁놀이를 하곤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나폴레옹의 엄마는 이상한 소문을 들었어요. 나폴레옹이 집에서 가져간 맛있는 흰 빵과 프랑스 군인들이 먹는 딱딱한 빵을 바꿔 먹는다는 거였어요. “나폴레옹! 왜 맛있는 흰 빵을 주고 맛없고 딱딱한 빵을 네가 먹는 거니?” 엄마의 물음에 나폴레옹이 주저하다 대답했어요. “실은 연습하는 거예요!” “연습? 무슨 연습?” 엄마는 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폴레옹을 보았어요. “군인들의 빵은 딱딱하고 맛이 없잖아요. 나중에 군인이 되었을 때, 잘 먹으려고 미리 연습하는 거예요!” “나폴레옹, 너 군인이 되고 싶니?” “네! 저는 군인이 되어 프랑스군을 몽땅 내쫓고 싶어요!” 나폴레옹이 씩씩하게 대답했어요. 나폴레옹의 꿈을 알게 된 부모님은 나폴레옹을 형 조제프와 함께 프랑스로 유학 보내기로 했어요. 그 당시 프랑스 왕은 코르시카와 잘 지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코르시카 사람들 중에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아이들을 골라 프랑스에서 공부할 수 있게 했어요. 그래서 형 조제프는 신학교에, 나폴레옹은 브리엔 유년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어요. 유년 학교는 군인을 양성하는 곳으로 이곳을 졸업하면 사관 학교에 진학할 수 있답니다. 나폴레옹은 열심히 공부했어요. 사관 학교에 들어가 훌륭한 지휘관이 되고 싶었거든요. 열심히 공부한 끝에 3학년이 되자 나폴레옹은 반장이 되었어요. 어깨가 으쓱해졌지요. ‘내가 프랑스 아이들보다 더 뛰어나!’ 전체 조회 시간에 나폴레옹은 맨 앞에 서서 목청껏 구령을 외쳤어요. “차렷! 좌로 가! 우로 가!” 그러나 프랑스 아이들은 콧방귀를 뀌었어요. “너처럼 작고 조그만 애가 무슨 반장이야?” “그래 봐야 프랑스 종 나라에서 온 주제에!” 나폴레옹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지만 꾹 참았어요. 처음 학교에 입학해 아이들과 싸움을 벌여 말썽꾸러기로 찍혔던 전력이 있었거든요. 나폴레옹은 점점 외톨이가 되어 갔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어요. 아이들의 따돌림이 심해질수록 나폴레옹은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반장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통솔하지도 못하고, 함께 어울려 놀지도 못한 거예요. 하루는 교장 선생님이 나폴레옹을 불렀어요. “나폴레옹! 너는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학생이다. 그러나 아무리 성적이 뛰어나도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면 훌륭한 군인이 될 수가 없어! 군인들이 지휘관을 믿고 따르지 않는다면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니?” 나폴레옹은 그제야 깨달았어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요. 그때부터 나폴레옹은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친구들에게 공부도 가르쳐 주고,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놀려고 애를 썼어요. “무슨 일이야? 내가 도와줄게!” “그 친구는 잘못이 없습니다! 부당합니다!” 나폴레옹은 힘든 처지에 놓인 친구들을 돕는 데에도 발 벗고 나섰어요. 또 억울한 일을 당한 친구 대신 학교에 항의를 하기도 했지요. 나폴레옹이 적극적으로 친구들 편에 서자 친구들이 하나둘 다가왔어요. “나폴레옹! 도와줘서 고마워!” “나폴레옹! 우리랑 같이 놀지 않을래?” 시간이 지나자 나폴레옹 주변에는 많은 친구들이 모여들게 되었어요. 어느 해 겨울, 큰 눈이 내리자 학생들끼리 눈싸움을 벌이게 되었어요. 두 팀으로 나눠 작전을 짜 눈싸움을 하는 놀이예요. 나폴레옹은 지휘관 역할을 맡았어요. 눈싸움이 시작되자 나폴레옹은 일단 팀을 둘로 나누었어요. 한 무리는 적을 공격하게 하고, 다른 한 무리에게는 둑을 쌓고 그 뒤에 몰래 숨어 있게 했지요. “너희들은 적군을 향해 공격하다가 내가 신호를 보내면 재빨리 도망쳐 와! 알았지?” 그리고 둑 뒤에 숨어 있는 무리에게는 다른 지시를 내렸어요. “너희들은 여기 숨어서 눈덩이를 열심히 뭉쳐! 그랬다가 내가 신호를 보내면 일제히 공격을 하는 거야! 알겠니?” 작전을 세운 나폴레옹은 공격 팀에게 진격 신호를 내렸어요. “공격하라! 공격하라!” 나폴레옹의 지시대로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 나갔어요. 적군은 적은 수의 학생들이 몰려오자 일제히 맞대응을 했어요. 이를 보던 나폴레옹이 소리쳤어요. “후퇴하라! 전군 후퇴하라!” 나폴레옹의 명령에 따라 공격조가 일시에 후퇴했어요. 적군은 나폴레옹 팀이 후퇴하는 줄 알고 쫓아왔어요. 적군이 진지 안으로 다가오자 나폴레옹은 손을 번쩍 들어 공격 명령을 내렸어요. 그러자 둑 뒤에 숨어 있던 무리들이 일제히 눈덩이를 던졌어요. 난데없는 공격에 적군들이 우왕좌왕 도망을 쳤어요. “공격조와 매복조, 전원 공격하라!” 나폴레옹의 명령에 따라 아이들이 일제히 달려갔어요. 결국 나폴레옹 팀이 큰 승리를 거두었어요. ‘전쟁에서 이기려면 전략과 전술을 잘 짜야 해!’ 나폴레옹은 이 눈싸움으로 전술을 잘 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어요. 열다섯 살이 되자 나폴레옹은 드디어 파리 사관 학교에 입학했어요. 본격적인 군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역사 시간이었어요. “우리 위대한 프랑스와 코르시카는 어떤 관계입니까?” 선생님이 질문을 했어요. “코르시카는 프랑스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식민지입니다!” “코르시카는 프랑스 땅입니다!” “코르시카 사람들은 프랑스의 국민입니다!” 나폴레옹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어요. 그건 옆에 있던 친구 부리엔도 마찬가지였어요. 나폴레옹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손을 번쩍 들려고 했어요. 그때 옆에 있던 부리엔이 나폴레옹을 말렸어요. “그만둬! 나폴레옹!” “넌 분하지도 않아?” “나폴레옹! 여기는 프랑스야! 넌 프랑스 군인이 되는 공부를 하는 중이라고! 문제를 일으켜서 좋을 건 아무것도 없어! 참아!” 부리엔이 그렇게 말렸지만 나폴레옹은 고개를 저었어요. “아무리 여기가 프랑스라고 해도, 잘못된 역사를 듣고 가만히 있는 건 옳지 않아!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해도 난 할 말은 하겠어!” “그렇지만 나폴레옹 겁나지 않아?” “그래. 나도 겁나. 그렇지만 때로 어떤 일을 할 때는 정말 용기가 필요해!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야!” 나폴레옹은 결심이 선 듯 손을 번쩍 들었어요. “선생님! 할 말이 있습니다!” “코르시카는 프랑스에 복종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또한 코르시카는 프랑스의 영토도 아닙니다!” 나폴레옹의 용기 있는 말에 교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어요. 아이들은 웅성거렸고 선생님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어요. “그럼 프랑스와 코르시카는 어떤 관계지?” 선생님이 물었어요. “지금은 프랑스 군대가 힘이 강해 코르시카를 지배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독립을 해야 할 관계입니다! 우리 코르시카는 언젠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것입니다!” 나폴레옹의 자신 있고 당돌한 말에 교실은 다시 시끌벅적해졌어요. “나폴레옹! 그따위 말이 어디 있어?” “코르시카는 오래전부터 프랑스 땅이었어!” “독립? 힘이 있어야 독립을 하지!” 그날의 역사 수업으로 나폴레옹은 한 가지 생각을 마음속에 새겼어요. ‘코르시카가 독립을 하려면 나부터 훌륭한 군인이 되어야 해!’ 그 무렵 고향에서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이 날아들었어요. 나폴레옹은 당장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학교를 떠날 수 없다는 규칙 때문에 고향에 갈 수 없었어요. ‘아버지! 훌륭한 군인이 될 테니 하늘에서 지켜봐 주세요!’ 나폴레옹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다짐했어요. 마치 아버지가 응답을 해 주듯 순간 밤하늘의 별 하나가 반짝 빛났어요. 나폴레옹이 스무 살이 되던 1789년,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일어났어요. 당시 프랑스의 왕이었던 루이 16세는 백성들은 나 몰라라 하고 사치가 아주 심했어요. 궁전에서 일하는 요리사만 300명에 달했고, 파티를 자주 열면서 흥청망청 지냈지요. 이 모든 비용이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채워졌기에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어요. “루이 16세를 몰아내자!” “썩은 정부, 썩은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물러가라!” 프랑스 사람들이 벌 떼처럼 들고 일어났어요. 루이 16세는 군대를 파견하여 백성들에게 총칼을 휘둘렀지만 백성들은 결코 물러나지 않았어요. 그 무렵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포병 부대에서 군인으로 일하고 있었어요. “코르시카가 독립할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지금이야!” 프랑스 혁명을 지켜보던 나폴레옹은 코르시카 독립을 위해 고향으로 향했어요. 여러분! 프랑스는 지금 루이 16세의 방탕한 생활로 큰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드디어 우리에게 기회가 온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코르시카가 독립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나폴레옹의 말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어요. 그리고 모두 한마음이 되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지요. “프랑스는 즉각 코르시카에서 물러가라!” “코르시카는 프랑스 영토가 아니다!” 나폴레옹은 그 누구보다 용감하게 앞장서 싸웠어요. 마침내 프랑스에서는 루이 16세가 쫓겨나고 새로운 공화 정부가 들어섰어요. “이제부터 코르시카 사람들은 스스로 알아서 대표를 뽑아 프랑스 의회로 보내 주십시오. 프랑스와 코르시카 의원들이 힘을 합쳐 새로운 정치를 펼쳐 나가겠습니다!” 프랑스 혁명을 통해 탄생한 공화 정부가 이같이 결정을 하자, 코르시카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어요. 독립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으니까요. 코르시카 사람들은 즉각 대표를 뽑아 프랑스 의회에 보내기로 했어요. 대표로 뽑힌 사람은 파올리로, 예전에 코르시카 독립을 위해 열심히 싸운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파올리는 프랑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프랑스와 사이가 안 좋은 영국의 도움을 받아 독립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영국의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파올리의 생각에 나폴레옹은 반대를 했어요. 나폴레옹은 프랑스에 대해 잘 알고 있었어요. 프랑스의 공화 정부는 예전과 다르다! 코르시카의 독립에 반대하지 않는다! 지금 어렵다고 해서 영국의 도움을 받는다면 결국 나중에는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코르시카 사람들은 두 패로 나뉘게 되었어요. 한쪽은 파올리를 지지했고, 또 한쪽은 나폴레옹의 의견에 동조했어요. 프랑스도 혼란스러웠지만 코르시카도 혼란스러웠어요. 결국 코르시카의 이 싸움은 프랑스에도 알려지게 되었어요.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에 반대하는 파올리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어요. “말도 안 돼! 파올리는 우리 코르시카의 영웅이다!” “파올리를 절대 프랑스에 넘겨줄 수 없다!” “대체 파올리가 나쁘다고 욕하는 사람들은 누구냐!” “파올리에 반대하는 나폴레옹을 잡아들여라!” 프랑스가 파올리를 체포하겠다고 하자 코르시카 사람들의 분노는 점점 커졌어요. 급기야 파올리에 반대하는 나폴레옹에게 비난을 퍼부었어요. “나폴레옹은 프랑스에서 훈련받은 군인이다! 프랑스의 편이야!” “나폴레옹의 집으로 쳐들어가자!” 수많은 사람들이 나폴레옹의 집으로 달려왔어요. 그리고 집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지요. 코르시카의 독립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던 나폴레옹은 코르시카 사람들에 의해 비참하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어요. 결국 나폴레옹의 가족들은 그토록 사랑했던 코르시카를 떠나야만 했어요. 나폴레옹 일가족은 프랑스의 툴롱 항구에 짐을 풀었어요. 그런데 그해 7월, 프랑스와 영국은 전쟁을 시작했어요. 프랑스의 공화 정치를 반대하던 왕의 측근들과 귀족들이 영국에 도움을 요청한 거예요. 공화파에 반대하는 반정부군은 영국군과 함께 대포를 쏘며 프랑스 정부군을 공격했어요. 프랑스 정부군은 반정부군의 공격을 당해 낼 재간이 없었지요. 그 무렵, 나폴레옹은 정부군의 대위로 일하고 있었어요. “저 어린 놈이 무슨 대위라고!” 부하 병사들은 어린 나이에 대위로 부임한 나폴레옹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나폴레옹이 솔선수범하여 병사들을 돕고 보초까지 서자 서서히 나폴레옹을 믿고 따르게 되었지요. 반정부군의 공격은 거셌어요. 나폴레옹은 정부군을 공격하는 왕의 측근들과 귀족들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그때 코르시카 출신의 대의원이 나폴레옹을 찾아왔어요. 그는 나폴레옹이 코르시카 독립운동을 열심히 한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나폴레옹, 우리 정부군이 밀리고 있다네. 무슨 좋은 방도가 없겠나?” 대의원의 질문에 나폴레옹은 바로 대답했어요. 사실 나폴레옹은 어떻게 하면 영국군과 왕권파를 물리칠 수 있을까 내내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영국군을 무찌르기 위해선 우선 영국 군함을 격침시켜야 합니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대포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나폴레옹의 말을 들은 대의원은 곧바로 사령관에게 나폴레옹을 데리고 갔어요. 카르토 사령관은 나폴레옹을 믿지 않았어요. ‘저 어린 애송이가 전쟁을 어떻게 알아?’ 그러나 대의원의 강력한 추천과 자신만만한 나폴레옹의 눈빛을 보고는 일단 한번 맡겨 보기로 했어요. “정말 자네가 적군을 물리칠 자신이 있는가?” “네!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나폴레옹은 자신 있게 대답했어요. “작전은 있는가?” 사령관은 못 믿겠다는 얼굴로 다시 물었어요. 나폴레옹은 툴롱의 지도를 펴 놓고 작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어요. 긴 설명을 들은 사령관은 나폴레옹의 뛰어난 계획에 탄복했어요. “좋아, 나폴레옹! 자네의 작전대로 해 보게!” 나폴레옹은 자신의 계획대로 항구 위에 대포 진지를 구축하고 영국 군함을 향해 포탄을 퍼부었어요. 쉼 없이 날아오는 포탄에 영국군은 깜짝 놀랐어요. 결국 영국 군함은 멀리 항구 밖으로 급히 도망을 쳤어요. “물러갔다! 영군 군함이 물러갔다!” 병사들이 환호성을 질렀어요. 그러나 나폴레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반정부군의 진지를 공격한다! 전원 공격!” 나폴레옹의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이번에는 반정부군의 진지를 향해 대포를 날렸어요. 나폴레옹은 맨 앞에서 병사들을 진두지휘하며 적의 진지를 향해 말을 달렸어요. “공격! 모두 나를 따르라!” 나폴레옹은 누구보다 용감하게 싸웠어요. 앞장서 진두지휘를 하던 나폴레옹을 향해 총알이 날아왔어요. 그 바람에 나폴레옹은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쳤어요. 쓰러진 나폴레옹은 일어서려 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나폴레옹이 주저앉아 어쩔 줄을 모를 때 나폴레옹의 눈앞에 신기한 잎이 보였어요. 네 잎 클로버였어요. ‘이런 적진 한가운데에 네 잎 클로버라니!’ 나폴레옹은 네 잎 클로버를 따려고 고개를 숙였어요. 그 순간, 총알이 나폴레옹의 머리 위로 핑 지나갔어요. ‘앗! 네 잎 클로버가 아니었다면 목숨을 잃을 뻔했어!’ 그때부터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상징하게 되었답니다. 나폴레옹의 부하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앞장서 싸우는 나폴레옹의 용감함에 큰 감명을 받았어요. 그래서 모두들 나폴레옹을 따라 용감하게 싸웠지요. 마침내 영국군들은 더 버티지 못하고 도망을 쳤어요. 툴롱 전투에서 승리한 나폴레옹은 무려 네 계급이나 높은 장군으로 승진했어요. “나폴레옹 장군님 만세! 프랑스 만세!” 부하들은 나폴레옹을 연호하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어요. 용감하게 전쟁터를 누비는 나폴레옹에 대한 소문은 프랑스 전 지역에 퍼졌어요. “나폴레옹 장군만 있으면 절대 지지 않아!”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구한 은인이야!” 나폴레옹의 인기는 점점 하늘을 찔렀어요. 나폴레옹은 승전보를 안고 프랑스로 돌아왔어요. 프랑스에서는 승리 축하 파티를 열었지요. 그 파티에서 나폴레옹은 무척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어요. 바로 조세핀이에요.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뜨거운 사랑을 했어요. 나폴레옹이 스물일곱 살이 되던 해에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어요. 그러나 행복한 생활도 잠시,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나폴레옹은 또다시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어요. 오스트리아군이 프랑스 침공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내 사랑 조세핀! 나는 당신을 정말 사랑하지만 군인으로서의 책무 또한 저버릴 수 없소!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하려면 전쟁터로 가야 하오!” 나폴레옹은 안타까운 마음에 조세핀을 보며 말했어요. “나폴레옹! 당신은 나의 사랑이기도 하지만 프랑스의 사랑이기도 해요! 나가서 열심히 싸워 주세요!” 이번에도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군을 물리치고 개선장군이 되어 프랑스에 돌아왔어요. 나폴레옹을 보자 많은 사람들이 뜨겁게 환영했어요. 그 무렵 프랑스는 매우 혼란스러웠어요. 국민들은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 프랑스를 다스려 주기를 바라고 있었어요. 특히 국민들은 용감하고 지혜로운 장군, 나폴레옹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어요. “나폴레옹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면 좋겠어!”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할 사람은 나폴레옹밖에 없어!” 많은 사람들이 나폴레옹에게 프랑스의 지도자가 되어 달라고 말했어요. ‘그래! 위기에 빠진 프랑스를 내가 나서서 구하자!’ 나폴레옹은 마침내 제1통령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기로 했어요. 제1통령이 된 나폴레옹은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국민들의 세금도 줄이고, 일자리도 만들고, 학교도 많이 지었어요. 프랑스 국민들은 다들 나폴레옹을 칭찬했어요. “나폴레옹은 전쟁뿐 아니라 나라도 잘 다스리네!” 나폴레옹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국민들의 권리와 의무를 위한 여러 가지 법도 만들었어요. “딸도 자식인데, 부모의 재산을 남자들만 물려받는 건 옳지 않아!” 나폴레옹은 남녀 차별을 없애고 신분과 인종이 달라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장치도 마련했어요.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나폴레옹 법전이에요. 나폴레옹이 만든 이 법전은 많은 나라들의 본보기가 될 정도로 유명했어요. 프랑스는 점차 안정이 되었어요. 하지만 나라 밖 사정은 별로 좋지 않았어요.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등이 동맹을 맺어 프랑스를 공격하려고 했던 거예요. 당시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전체를 점령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를 넘보기 시작한 거예요. 비록 지난 전투에서는 나폴레옹에게 패했지만 오스트리아는 약한 나라가 아니었어요. 나폴레옹은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어떻게 하면 오스트리아를 무찌를 수 있을까?’ 오랜 고민 끝에 나폴레옹은 결단을 내렸어요. 오스트리아군이 본국과 연락을 못 하게 단절시킨 다음 무찔러 버리기로 한 거예요. “우리 프랑스군은 알프스를 넘어 진격한다!” 나폴레옹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어요. 그 험한 알프스를 넘어 공격을 하겠다니 놀랄 수밖에요. 그러나 나폴레옹의 생각은 달랐어요. “우리 프랑스군은 겨우 2만, 오스트리아군은 4만이나 된다. 기습 공격을 하지 않으면 오스트리아군을 이길 수 없다!” “각하! 알프스를 넘어 오스트리아를 공격하는 건 무모한 작전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포기하십시오!” 부하 장수들이 충고했지만 나폴레옹은 고개를 저었어요. 도리어 부하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어요.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 나폴레옹은 2만의 병사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올랐어요. 험한 생베르나르 협곡을 지날 때에는 정말 위험했어요. 나폴레옹도 그곳에서 죽을 뻔했거든요. 알프스 산맥을 넘으며 많은 병사들이 죽거나 다쳤어요. 하지만 나폴레옹은 진격을 멈추지 않았어요. 마침내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은 알프스를 넘어 오스트리아군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어요. 오스트리아군은 프랑스군이 알프스를 넘어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어요. “군대를 셋으로 나눠 후퇴하는 적을 섬멸한다!” 나폴레옹군은 맹렬하게 오스트리아군을 공격했어요. 하지만 상황은 금세 변했어요. 오스트리아군이 반격을 해 온 거예요. 프랑스군과 오스트리아군은 치열하게 싸웠어요. 그런데 점차 프랑스군이 오스트리아군에게 밀리기 시작했어요. 나폴레옹은 분산시켰던 병력을 다시 모았어요. 그리고 한낮이 기울기 시작할 무렵, 마침내 프랑스는 다시 전세를 뒤집어 승리의 깃발을 꽂았어요. 이 전투가 바로 그 유명한 ‘마렝고 전투’예요. 오스트리아군은 이 전투에서 일만 명의 병사가 죽거나 포로로 잡혔어요. 또한 이 패배로 인해 이탈리아에서 깨끗하게 물러나게 되었지요. 나폴레옹은 이 전투뿐 아니라 다른 전투에서도 계속 승전보를 울렸어요. 그리고 마침내 프랑스 황제의 자리에 올랐어요. 나폴레옹의 나이 서른다섯, 1804년의 일이었어요. 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영국과의 결전을 준비했어요. 영국은 가장 강력한 나라이자 때마다 프랑스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거든요. 마침내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해군과 영국 해군이 트라팔가르의 넓은 바다에서 만났어요. 당시 영국 해군은 그 유명한 넬슨 장군이 이끌고 있었어요. 이 전투가 바로 ‘트라팔가르 전투’예요. 넬슨 장군은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을 정도로 열심히 싸웠어요. 그만큼 전투는 치열했고 결국 영국이 프랑스를 물리치고 승리를 차지했어요. 프랑스군이 거의 전멸당하다시피 패한 거예요. “으으, 분하다! 내가 패배를 하다니!” 나폴레옹은 분했지만 영국은 그만큼 강한 나라였어요. 나폴레옹은 영국과의 싸움에 패하자 주변 국가들을 압박하기 시작했어요. 영국과의 모든 교역을 금지하라고 명령한 거예요. 그러나 러시아는 나폴레옹의 명령을 듣지 않았어요. “감히 프랑스의 황제인 내 말을 거역해?” 화가 난 나폴레옹은 러시아를 공격했어요. 65만이나 되는 나폴레옹 대군이 러시아로 쳐들어갔지요. 하지만 전쟁은 쉽지 않았어요. 러시아는 매우 춥고 넓은 나라라 결국 프랑스군이 패하고 말았어요. 이 싸움의 패배로 인해 나폴레옹도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어요. 결국 나폴레옹은 남대서양의 외딴 섬에서 쓸쓸하게 최후를 맞았어요. 비록 외딴 섬에서 쓸쓸히 죽어 갔지만, 세상 사람들은 강철 같은 정신과 용기 있는 행동으로 프랑스의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 나폴레옹을 위대한 지도자로, 또 프랑스의 영웅으로 기억하고 있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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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_고학년
“네가 어머니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어라!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1910년 2월 14일, 이토 히로부미 일본 총독(總督)을 살해한 일로 사형 선고를 받은 안중근에게 어머니가 보낸 편지예요. 세상에 아들이 죽기를 바라는 어머니가 어디 있을까요? 게다가 안중근은 아내와 자식들을 둔 가장이에요. 어머니가 이런 편지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죽음이 나라를 위한 의로운 선택이었기 때문이에요. 안중근은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어요. 고종이 왕위에 오른 지 16년 되던 해였어요. 이 시기 조선은 몹시 혼란스러웠어요. 일본의 협박으로 ‘강화도 조약’을 맺은 게 3년 전이었어요. 원래 조선은 일본과 가까워지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당시에는 너무 힘이 약했어요. 일본이 군함을 동원하여 강제로 교역(交易)에 응하도록 조선과 문서를 교환한 것을 강화도 조약이라고 해요. 이것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植民地)로 만드는 첫걸음이었어요. 안중근은 이 무렵 가슴과 배에 일곱 개의 점을 달고 태어났어요. “북두칠성은 비범한 기운을 상징하는 별이오. 이 아이가 장차 큰일을 하게 될 모양이오!” 안중근의 아버지는 첫아들이 태어난 것을 몹시 기뻐하며 집에서 부르는 이름을 ‘응칠’이라고 붙여 주었어요. 응칠은 북두칠성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아이라는 뜻이에요.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은 ‘개화당’에 몸담고 있었어요. 조선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려면 부정부패를 없애고 낡은 제도를 뜯어고쳐야 하며, 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 서양의 새로운 지식과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가 ‘개화당’이에요. “일본이 강해진 것은 일찌감치 서양에 문호(門戶)를 개방하여 그들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오.” 개화당을 이끌던 박영효는 70명의 국비(國費) 유학생을 일본에 파견하려는 계획을 세웠어요. 유학생 명단에는 안태훈의 이름도 들어 있었어요. “일본이 발전한 것을 직접 눈으로 보면 우리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안태훈은 유학 떠날 날을 기다리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어요. 하지만 박영효의 계획은 결국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어요. 청나라가 일본으로부터 조선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군대를 보내면서 상황은 급하게 달라졌어요. 안중근이 다섯 살 때 마침내 ‘갑신정변’이 일어났어요. 박영효, 김옥균, 서재필 등이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사건을 갑신정변이라고 해요. 개화당은 청나라에 대한 조공을 폐지하고 신분과 관계없이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하는 등 14개의 개혁 공약을 내세운 새로운 정부의 수립을 선포했어요. 하지만 새 정부는 사흘을 넘기지 못했어요. 조정의 반대파들이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였기 때문이에요. 정변을 주도한 세력들은 외국으로 피신해서 뿔뿔이 흩어졌고 안태훈의 처지도 위태롭게 되었어요. “개화당으로 찍힌 이상 가족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게 되었다. 다 같이 숨을 곳을 찾아 떠나자!” 안태훈은 여섯 명의 형제들을 설득하여 일가붙이들을 모두 이끌고 천봉산 아래 청계동이라는 깊은 산속 마을로 들어갔어요. 청계동은 작고 조용한 마을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마을이 북적거리기 시작했어요. 안중근의 일가친척들이 자그마치 80명이나 되었기 때문이에요. 아버지는 마을에서 제일 높은 동산에 초소를 설치하고 포수들을 시켜 지키게 했어요. 그리고 서당을 열어 마을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세상과 동떨어져 살수록 배움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그래야 커서 사람 구실을 하는 거야.” 안중근은 아버지에게 늘 이런 말을 듣고 자랐어요. 삼촌들은 틈틈이 말타기와 활쏘기를 가르쳤어요. 천봉산은 포수들이 즐겨 찾는 사냥터였어요. 사냥철이 되면 안중근은 아버지와 포수들을 따라다니면서 엽총으로 사냥하는 법도 배웠어요. “아드님은 이제 곧 명사수가 되겠군요!” 아버지는 포수들이 안중근을 칭찬하는 말을 듣고 무척 흐뭇해했어요. 그 당시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은 온갖 명목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악명 높은 탐관오리였어요. 저수지 공사에 농민들을 동원하여 일을 시키고 제멋대로 물값을 뜯어 가기도 했지요. 심지어 법전에도 없는 이상한 세금을 만들어 내 악착같이 돈을 빼앗아 농민들을 괴롭혔어요. “이웃끼리 싸우면 싸움세, 부모한테 잘못하면 불효세, 놀기 좋아하는 놈은 노름세를 내야 한다!” “우리 모두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농민들은 동학의 지도자 전봉준에게 억울함을 호소했어요. 주로 가난하고 힘없는 농민들이 많이 따랐던 동학은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는 사상을 가진 민족 종교예요. 전봉준은 농민들의 부탁을 받고 관아로 찾아가 가혹한 세금을 줄여 달라고 말했지만 조병갑의 횡포는 오히려 더 심해질 뿐이었어요. 1894년 1월, 마침내 동학 농민군의 봉기가 일어났어요. 전봉준은 분노한 농민들을 이끌고 관아로 쳐들어갔어요. 농민들 손에는 낫과 곡괭이가 들려 있었지요. 관아를 지키던 병사들은 깜짝 놀라 사방으로 흩어졌어요. 동학군은 곡식 창고를 열어 억울하게 재산을 빼앗긴 농민들에게 양식을 나눠 주고 조병갑을 처형했어요.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이쯤에서 해산하시오.” 조정에서 온 조사관은 일단 동학군을 집으로 돌려보냈어요. 하지만 곧바로 동학군을 반란의 무리로 규정하고, 사건과 관계없는 다른 지역 농민들까지 역적으로 몰았어요. 결국, 이 일은 동학 농민 운동의 시초가 되었어요.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된 동학은 전라도는 물론 충청도, 경상도로 순식간에 들불처럼 번져 나갔어요. 다급해진 조정은 청나라에 군사를 요청했어요. 그러자 일본도 덩달아서 군대를 동원했어요. 동학 농민 운동은 3·1 운동의 시초가 되었지만,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1910년까지 동학 농민 운동에 참여한 농민들은 ‘동비’라는 이름의 역도로 불렸어요. 또 이 무렵에는 가짜 동학군 무리도 나타나 백성들의 재산을 마구 빼앗는 일도 생겼어요. 그러던 1894년 12월, 안태훈은 황해도 관찰사로부터 편지를 받았어요. “동학군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숫자가 너무 많아서 역부족이니 도와주십시오!” 안태훈은 동학군 때문에 외국 군대가 우리나라로 들어온다고 생각하여 관청의 편에 서기로 했어요. 열여섯 살의 안중근도 아버지를 따라나섰어요. 이때 조정은 각각 청나라, 일본, 러시아 등 외국에 의지하는 세력들이 권력을 다투는 중이었어요. 정말 이 시기 조선의 정치가들은 무능하기 짝이 없었어요. 국내 문제로 외국 군대를 끌어들일 지경이었으니까요. “청나라와 잘 지내면 일본으로부터 조선을 지켜 주겠지!” “아니야, 일본과 친해야 청나라 간섭을 막을 수 있어!” 나라를 다스린다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결국, 일본이 가장 드세게 개입하여 동학군을 탄압하자 탐관오리를 몰아내려고 일어났던 동학군의 외침도 달라졌어요. “일본을 몰아내고 외세를 몰아내자!” 그럴수록 일본은 더욱 사나운 기세로 밀고 들어왔어요. 결과적으로 외국 군대가 우리 땅에 들어오게 된 것은 조정의 무책임한 대응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겉모습만 보면 동학군 탓으로 여길 수도 있는 거예요. 당시 명성황후는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에 대항하려다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말았어요. 일본은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고도 일본 정부와는 상관없는 사건이라고 발뺌을 했어요. “내가 반드시 조선의 원한을 갚고 말 것이다!” 이때부터 안중근은 항일의 의지를 불태웠어요. 1905년 11월,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 책임자로 파견된 이토 히로부미는 대궐 앞에 군사들을 대기시킨 뒤 노골적으로 고종 임금을 협박했어요. “조선이 부강한 나라가 될 때까지 외국과의 관계를 우리 일본이 감독한다는 내용입니다. 우리 천황 폐하의 뜻이니 알아서 사인하시오.” “조선의 주권을 부정하는 조약에는 절대 사인할 수 없소!” 고종은 끝까지 거부했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눈도 끔쩍하지 않았어요. 사흘 동안 끈질기게 고종을 협박하던 이토 히로부미는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 등을 매수하여 결국 사인을 받아 내고 말았어요. 을사년에 강제로 이루어진 이 조약을 ‘을사늑약’이라고 해요. “친일 매국노들이 끝내 나라를 팔아먹었습니다!” 조약이 체결된 사실을 알고 울분을 토하는 안중근에게 아버지는 아예 전 가족을 이끌고 중국으로 망명하자고 했어요. 산동이나 상해에 조선인들이 많이 산다고 들었다. 망해 가는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 차라리 우리 모두 외국에 나가 살자. “가족들이 짐을 꾸리는 동안 저는 먼저 중국에 가서 상황을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안중근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하고 일단 혼자서 중국으로 떠났어요. 중국에 도착한 안중근은 과거 조선의 거물급 인사들이 산동과 상해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때 안중근은 스물일곱 살의 피 끓는 청년이었어요. 그는 나라의 운명에 대해 의논할 상대를 찾아보았어요. 지금의 서울 시장 격인 한성 판윤을 지낸 민영익도 망명하여 그곳에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안중근은 민영익의 집 대문 안에도 들어가지 못했어요. “우리 대감은 조선인을 만나지 않는단 말이오!” 안중근은 차마 하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다음 날에도 세 번이나 찾아갔지만, 민영익은 끝내 만남을 거절했어요. 화가 난 안중근은 집 안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어요. “조선인이 조선인을 안 만나고 대체 누굴 만난다는 겁니까? 대감처럼 높은 자리에 있는 양반들 때문에 나라가 이 지경이라 얼굴이 부끄러워 그러십니까!” 안중근은 몹시 실망하여 발길을 돌렸어요. 다른 유력자들도 민영익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안중근은 아버지의 권유로 천주교 신자가 되었는데 토마스가 바로 안중근의 세례명이에요. 황해도 해주에서 안중근에게 프랑스 말을 가르쳐 준 신부님은 그 무렵 상해에 머물고 있었어요. 신부님은 안중근에게 뜻밖의 조언을 해 주었어요. “토마스, 망명은 신중하게 생각하시오. 모두가 자네와 같은 마음이라면 결국 조선은 텅 비게 될 것 아니오?” “신부님, 그럼 제가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제일 중요한 건 교육으로 사람들을 깨우치는 것이오. 2천만 조선인이 단결하면 강제 조약 따위는 한낱 종이쪽지에 불과하게 될 것이오.” 안중근은 신부님의 말에 큰 감명을 받았어요. “아버지께 학교를 열자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안중근은 곧바로 신부님과 작별하고 서둘러 조선으로 돌아왔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어요. 안중근에게는 남동생이 둘 있었는데 둘의 이름은 안정근과 안공근이에요. 아버지를 잃고 한동안 슬픔에 잠겨 있던 안중근은 가족들을 이끌고 청계동을 떠나 평안도의 진남포로 이사하면서 두 동생에게 말했어요. 망해 가는 나라의 미래가 청소년들에게 달려 있다. 우리 삼 형제의 힘으로 훌륭한 인재들을 키운다면 저승에 계신 아버지도 기뻐할 것이다. “저희는 무조건 형님이 하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동생들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학교를 세우는 데 쓰려는 안중근의 뜻에 흔쾌히 동의했어요. 얼마 후 진남포에 삼흥 학교와 돈의 학교가 세워졌어요. 안중근은 안창호 선생을 비롯한 애국지사들을 학교에 초청하여 강연회를 열고, 군대식 훈련을 실시하여 학생들을 든든한 일꾼으로 키워 냈어요. 안중근은 자신이 세운 두 학교를 민족 교육의 터전으로 만들기 위해 전 재산을 쏟아부었어요. 1907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만국 평화 회의가 열렸어요. 이 회의는 해마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모여 나라와 나라 사이의 다툼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토론을 벌이는 행사예요. 고종은 이 행사에 세 명의 밀사를 보냈어요. 일본의 부당한 행위를 고발하고 도움을 청하려는 거예요. 하지만 비밀리에 조선을 출발하여 헤이그에 도착한 밀사들은 회의장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 모르는 주요 국가 지도자들이 이야기를 들어 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며칠 후 안중근은 삼흥 학교 학생들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어요. “이준 선생님이 회의장 주변 호텔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돌아가셨답니다!” 한때 삼흥 학교에서 강의했던 이준 열사는 세 명의 밀사 가운데 한 명이었어요. 5일 뒤에는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고종은 이 사건이 있기 전인 1897년 11월 12일에 조선의 국호를 ‘대한 제국’으로 바꾸고 황제 즉위식을 가졌어요. 오래전부터 황제라는 칭호는 중국의 왕만 사용했어요. 그러다 일본이 중국을 흉내 내 자기들의 왕을 천황이라고 불렀어요. 고종은 우리도 중국과 일본에 못지않은 주권을 가진 나라로서 다른 나라의 간섭이나 지배를 받지 않겠다는 뜻으로 대한 제국을 선포한 거예요.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헤이그 밀사 사건의 책임을 물어 고종을 폐위하고 군대를 해산시켰어요.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두 명의 밀사에게 사형을 선고했어요. “아! 이제 조선은 황제의 나라는 고사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일만 남았구나!” 안중근은 화가 치밀어 올라 큰 한숨을 내쉬었어요. 고민하던 안중근은 결국 의병으로 활동하기로 결심했어요. 교육으로 나라를 구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했어요. 1908년, 서른 살이 된 안중근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갔어요. 이곳에는 약 5천 명의 동포들이 모여 살았어요. “재앙에 빠진 조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안중근은 한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조국의 위태로운 상황을 전했어요. 그러고는 뜻을 함께할 동지들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러일 전쟁 때 항일 의병대를 이끌었던 이범윤 장군도 살고 있었어요. “우리에겐 장군처럼 경험이 풍부한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부디 의병 대장을 맡아 주십시오.” 안중근의 부탁에 이범윤 장군이 말했어요.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어떻게 의병을 일으킨단 말인가? 애국심만으로 나라를 구할 수는 없어.” 이 무렵 학교는 운영난에 허덕이고 안중근은 빈털터리였어요. 하지만 안중근은 결코 용기를 잃지 않았어요. “조국의 흥망이 눈앞에 닥쳤는데 하늘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을 순 없습니다. 자금은 제가 어떻게든 마련하겠습니다.” 안중근은 이범윤과 헤어진 뒤 동포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서 항일 의병 활동을 같이하자고 간절히 호소했어요. “몸은 떠나 있어도 우린 조선 사람이오. 함께합시다!” 두 명의 청년이 제일 먼저 동지가 되었어요. 안중근은 그들과 함께 ‘동의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다시 회원 모집에 나섰어요. 안중근의 열정에 감동한 청년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마침내 300명에 달하는 대한의병대가 결성되었어요. “나라를 구하는 일에 우리도 힘닿는 데까지 도울게요.” 동포들은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았어요. 이때 이범윤은 대한의병대 총대장에 추대되고 안중근은 참모 중장에 임명되었어요. 그해 7월, 안중근은 훈련을 마친 의병대를 이끌고 두만강을 넘어 국내로 진입했어요. 한국과 중국, 러시아의 국경이 맞닿아 있는 두만강은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고 안전하게 후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어요. “무조건 총을 쏘아서는 안 된다. 아직 전투 경험이 부족한 우리가 일본군을 상대하려면 최대한 신중히 공격해야 한다.” 안중근은 대원들을 다독이며 치밀한 작전을 펼쳤어요. 의병대는 풀숲에 숨어 있다가 일본군 수비대가 방심한 틈을 타서 기습 공격을 했어요. 처음부터 전투는 의병대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어요. 이런 식으로 몇 차례 승리하면서 대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어요.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어요. 하루는 안중근 부대가 10여 명의 포로를 사로잡았어요. “저희는 억지로 전쟁에 끌려 나온 것뿐입니다!” 일본군 포로들은 저마다 살려 달라고 애원했어요. 대원들은 당연히 그들을 죽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안중근은 이렇게 말했어요. “만국공법에 의하면, 적병이라도 전투 중이 아니면 죽이는 법이 없고, 또한 사로잡혔다 해도 훗날 돌려보내게 되어 있다.” “예? 그럼 저 일본군 놈들을 살려 준단 말입니까?” 대원들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어요. 안중근은 여기서 한술 더 떠 포로에게 무기까지 줘서 돌려보내라는 거예요. “죽기를 각오하고 애써 잡은 포로를 다 놓아주면 우리가 이 고생을 하는 목적은 대체 무엇입니까?” 대원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따지고 들었어요. 그러면 안중근은 어째서 포로를 풀어 준 걸까요? 안중근은 천주교 신자가 된 후 프랑스 말을 배우면서 국제법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전쟁 포로를 자기네 나라로 돌려보내는 국제법이 제대로 지켜지게 된 것은 1949년부터였어요. 안중근이 그보다 40년이나 앞선 때에 일본군 포로를 돌려보낸 것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선택이었어요. 안중근은 포로들을 풀어 주면서 대원들에게 말했어요. “힘없는 나라의 한을 풀려면 의로운 거사로써 겉으로만 동양 평화를 외치는 이토 히로부미의 포악함을 열강에 널리 알려야 한다. 그러니 대원들은 부디 내 마음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강대국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 국권을 회복하려면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의 악행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우리는 거꾸로 국제법을 성실히 지키는 모습을 보여 주자는 거예요. 하지만 대원들은 대부분 포로 석방에 항의하며 떠나 버렸고 안중근 부대는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어요. “기습이다! 느닷없는 총성과 함께 대원들이 쓰러지기 시작했어요. 안중근이 풀어 준 포로들이 일본군을 데려온 거예요. 대원들은 다섯 시간 가까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크게 패하고 말았어요. 안중근은 장대비까지 내리는 캄캄한 산중을 헤매며 대원들을 찾아다녔어요. 그 많던 대원들 가운데 안중근이 찾아낸 대원은 세 명뿐이었어요. “장군, 이제 우린 어찌합니까?” 대원들이 안중근을 원망스럽게 쳐다보았어요. 안중근은 대답 대신 우선 그들의 생각을 물었어요. “패잔병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고 싶습니다.” “포로가 되면 산속을 헤매다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모르겠습니다. 그저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안중근은 그들의 말이 끝나자 시 한 수를 읊었어요. 뜻을 품고 나왔다가 큰일을 못 이루니 몸 두기도 어려워라. 바라건대 죽기를 맹세했으면 의리 없는 귀신은 되지 말게. 의병으로 나선 이상 죽더라도 싸우다 죽자는 뜻이었어요. 안중근은 숙연한 표정의 대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그대들은 각자 뜻대로 하라. 나는 다시 산을 내려가 일본군과 싸우고, 2천만 대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의무를 다한 다음에야 죽어도 한이 없겠다.” 말을 마친 안중근은 휘적휘적 어두운 산길을 내려갔어요. “저희도 함께 가겠습니다!” 세 명의 대원들도 뒤를 따랐어요. 험한 산길을 밤새도록 걸었지만 마을은 보이지 않았어요. 낮에는 일본군 수색대가 산을 에워싸고 있어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꼼짝없이 산속에 숨어 있어야만 했어요. 그러느라 엿새 동안 밥을 한 끼도 못 먹었어요. “저기 불빛이 보입니다!” 밤중에 산길을 헤매다 한 대원이 집 한 채를 발견했어요. “내가 먼저 동정을 살펴보고 오겠다.” 안중근은 혼자서 살금살금 그 집으로 다가갔어요. “누구야?” 개 짖는 소리를 듣고 어떤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나왔어요. 알고 보니 그곳은 일본군 초소였어요! 안중근은 급히 몸을 돌려 정신없이 뛰었어요. 어찌나 놀랐던지 은신처 가까이 왔을 때 너무 어지러워 냇물 앞에 쓰러졌다가 한참 만에야 눈을 떴어요. 안중근은 냇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이렇게 기도했어요. “죽어도 속히 죽고 살아도 속히 살게 해 주소서.” 겉으로는 강한 척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두려웠던 거예요. 그러다 문득 그는 한 인물을 떠올리며 다시 용기를 냈어요. 그 인물은 영국과의 독립 전쟁에서 천신만고 끝에 승리를 쟁취한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었어요. “배가 너무 고파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습니다.” 엿새째 되는 날, 안중근과 대원들은 환한 대낮인데도 겁도 없이 민가를 찾아 나섰어요. 다행히 두메산골에 숨어 있는 집이 한 채 있었어요. 주인 할머니가 급히 잡곡밥 한 그릇을 주면서 말했어요. “여기서 머뭇거리지 말고 어서 가요. 어서!” 어젯밤 아랫마을에 일본군이 들이닥쳐 의병들에게 밥을 준 주민 다섯 명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는 것이었어요. 안중근 일행은 밥을 손으로 받아 담고 산으로 올라왔어요. 엿새 만에 처음으로 꿀맛 같은 밥 한 덩이를 나눠 먹고 네 사람은 다시 엿새를 굶은 뒤에야 밥 한 끼를 먹었어요. 한번은 두만강 입구에 사는 노인이 나물과 밥을 내주면서 말했어요. “이렇게 나라가 어려운 때를 만나 장한 일을 하시는구려.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으니 아무쪼록 힘내시오!” 하지만 그렇게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며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간 안중근에게 동료들은 의병대 해체를 요구했어요. “포로를 석방하여 의병대를 위험에 빠뜨린 동지와는 절대 뜻을 함께할 수 없소!” 끝내 대한의병대는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어요. 그래도 안중근은 끝까지 독립운동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1909년 2월, 연추하리 마을에 열한 명의 동지들이 모였어요. “특별한 목적이 없으면 단체가 흐지부지되기 쉽습니다. 오늘 우리가 손가락 하나씩을 잘라 나라에 목숨 바칠 것을 맹세하고, 마음과 몸을 하나로 묶어, 기어이 서로의 목적을 이루도록 결의하는 게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안중근의 제안에 모두 자신의 손을 탁자에 올려놓았어요. 그런 다음 각자의 맹세를 떠올리며 손가락을 자른 피로 태극기 앞면에 크게 대한 독립이라고 썼어요. 안중근은 이때 속으로 이렇게 맹세했어요. “삼 년 안에 내 손으로 꼭 이토 히로부미를 죽일 것이다!” 1909년 10월, 안중근은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을 듣고 의병 동지인 우덕순을 찾아갔어요.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네. 놈을 잡을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안중근은 우덕순 앞에서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어요. “가야지!” “어디로?” “하얼빈에 가야지!” 이것으로 더는 말이 필요 없었어요. 두 사람은 항상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조선 침략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정치계를 움직여 조선총독부 통감으로 부임해서는 온갖 나쁜 짓을 저질렀어요. 두 사람은 그를 제거하지 않으면 동양의 평화는 없다고 판단하여 그를 저격하기로 결심했어요. 하얼빈 역 바로 전 역은 채가구 역이에요. 안중근과 우덕순은 각각 다른 역을 지키기로 했어요. 이토 히로부미는 의심 많기로 소문난 인물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변덕을 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우덕순은 하얼빈, 안중근은 채가구 역을 맡고, 러시아 말을 잘하는 유동하와 조도선이 동행하기로 했어요. 안중근은 거사를 앞두고 ‘장부가’라는 시를 지어 긴장된 마음을 달랬어요. 사나이 대장부로 세상에 태어나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만들고 영웅이 때를 만드는구나. 천하를 굽어보니 어느 날에 뜻을 이룰까. 동녘 바람은 날로 차가운데 사나이 가슴은 뜨겁기만 하구나. 지난 분함은 떨쳐 버리고 반드시 뜻을 이루리. 안중근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행 열차를 탔어요. 우덕순은 다음 정거장에서 같은 열차에 올랐어요. 또 그다음 정거장에서는 러시아에서 한인 신문사를 경영하는 유진율과 이강이 잠시 합류했어요. “역 광장에서 이토 히로부미 환영 행사가 열린다는데 차림새가 너무 초라하면 의심받을까 봐 준비했어요.” 두 사람은 값비싼 독일제 외투 두 벌을 건네주었어요. 벨기에제 브라우닝 7연발 권총을 마련해 준 것도 바로 이 두 사람이었어요. “삼천리강산을 여러분이 지고 갑니다!” 유진율과 이강은 두 사람과 악수하고 돌아서며 눈물을 훔쳤어요. 그런데 거사 바로 전날 안중근은 문득 이토 히로부미가 채가구 역을 지나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 되겠어. 내가 하얼빈을 맡을게!” 이 한마디로 두 사람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어요. 이때 안중근의 아내와 다섯 살짜리 장남 분도가 하얼빈으로 오는 중이었어요. 안중근은 일이 이렇게 빨라질 줄 모르고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편지를 보냈던 거예요. 분도는 친척들이 과자를 주면 형제들과 나눠 먹으려고 집으로 달려오는 착한 아들이었어요. 하지만 그토록 그리운 가족들을 태우고 오는 열차는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와 같은 시간에 하얼빈 역에 도착할 예정이었어요. “사랑하는 내 아들 분도야! 마중 나가지 못해 미안하다.” 안중근은 거사를 결심한 뒤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어요.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신념이 다시금 뜨겁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어요. 1909년 10월 26일 오전 7시. 하얼빈은 러시아 관할 지역이라 역 광장에는 벌써부터 러시아 경찰이 진을 치고 있었어요. 안중근은 사람들 사이에 몸을 숨기고 때를 기다렸어요. 오전 9시가 되자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가 드디어 역에 도착했어요. “분명 저놈일 것이다!” 안중근은 러시아 관리들과 일본 관리들에 에워싸인 사람 중에 키 작은 한 노인을 주목했어요. 이토 히로부미는 원래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어요.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한 번 조선의 애국지사로부터 습격당한 뒤로는 자기 사진이 공개되는 것을 철저히 금지했기 때문이에요.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키가 작다는 것 정도였어요. 탕! 탕! 탕! “만일 저자가 아니면 어쩌지?” 안중근은 권총을 세 발 쏘는 것과 동시에 그 뒤쪽 고위 관리로 보이는 남자들을 향해 세 발을 더 쏘았어요. “둘 다 아니면 낭패가 아닌가?” 안중근은 총을 쏘고도 자리를 뜨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어요. 손에는 여전히 권총을 들고 있었어요. 러시아 경찰이 자신을 붙잡는 순간에야 비로소 확신한 안중근은 수많은 군중을 향해 이렇게 외쳤어요.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 경찰들이 우르르 달려와 입을 막으려고 했지만 안중근은 계속해서 ‘코레아 우라!’를 외쳤어요. 그리하여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경, 하얼빈 광장을 지나던 수많은 외국인은 러시아 경찰에 끌려가면서 목 놓아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는 한국인의 절규를 똑똑히 듣게 되었어요. 안중근은 하얼빈 역이 러시아 관할임을 알고 일부러 러시아 말로 대한민국 만세를 외쳐서 더욱 많은 외국인들에게 조선의 의지를 알리고 싶었던 거예요. 안중근의 저격 사건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일본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어요. 이토 히로부미는 총리를 네 번이나 지낸 인물이에요. 자신들의 지도자가 한낱 개인의 총탄에 쓰러졌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일본 경찰은 끊임없이 안중근을 회유했어요. “너희 왕이 시킨 짓이라고 하면 목숨을 살려 주겠다.” 안중근은 그들의 속셈을 뻔히 알고 호통을 쳤어요. “죽음이 두려웠다면 큰 뜻을 품지도 않았을 것이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말고 당장 나를 사형시켜라!” 검사가 현장에서 도망치지 않은 이유를 물었을 때는 오히려 검사보다 당당하게 되물었어요.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인데 내가 왜 도망치는가?” 그동안 일본의 위협에 시달려 온 중국의 각 신문은 재판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하게 다루면서 적극적으로 일본에 저항하도록 중국인들을 자극했어요. 일본은 서둘러 안중근을 사형했지만 그의 의로운 죽음은 훗날 상해임시정부 수립과 3·1 운동의 기폭제가 되어, 결국 대한 독립이라는 대업을 완성할 수 있었답니다.
프랑스를 구한 용감한 소녀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지금은 프랑스와 영국이 동맹(同盟)을 맺고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요. 하지만 수백 년 전 옛날에는 별로 좋은 사이가 아니었어요. 두 나라는 무려 100년이 넘도록 전쟁을 계속할 정도로 유럽 대륙에서 유명한 앙숙(怏宿)이었어요. 1328년, 프랑스의 왕 샤를 4세가 갑자기 세상을 뜨고 말았는데 그에게는 왕위를 이을 아들이 없었어요. 그래서 사촌인 발루아 백작이 왕위를 잇게 되었지요. 그런데 당시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가 샤를 4세의 조카라는 것이 문제가 되었어요. “발루아 백작보다 나 에드워드 3세가 샤를 4세와 더 가까운 친척이다. 그러니 내가 프랑스의 왕이 되는 것이 맞다!” 이 말에 프랑스가 말도 안 된다며 발끈했어요. 그렇게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이 시작되었어요. 왕위 계승(繼承) 문제로 시작된 이 오랜 전쟁은 점점 치열한 영토 싸움으로 이어졌어요. 그러다가 1400년대에 프랑스에 큰 위기가 찾아왔어요. 영국과의 전쟁도 힘겨운데 강력한 귀족인 부르고뉴 가문이 영국과 손을 잡은 거예요. 안에서는 부르고뉴 가문이, 밖에서는 영국이 공격해 오자 프랑스는 정말 위태로운 상황에 빠지고 말았어요. 이때 기적처럼 위기의 프랑스를 구해 낼 영웅이 등장했어요! 연달아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 영웅은 놀랍게도 17세의 어린 소녀(少女)였어요. “나는 ‘프랑스를 구하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다. 모두 용기를 내 나를 따르라!” 거침없이 전쟁터를 누빈 이 소녀의 이름은 바로 ‘잔 다르크’예요. 잔은 프랑스 동부(東部)의 ‘동레미라퓌셀’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동레미라퓌셀 마을은 대대로 프랑스 왕가를 따르는 지역이었는데, 하필이면 부르고뉴 가문의 영토에 둘러싸여 있었어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항상 불안에 떨며 지냈어요. 언제 부르고뉴 가문의 병사들이 마을을 공격할지 모르니까요. 이 시골 마을에서 잔의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며 살았어요. 다섯 남매 중 막내인 잔은 언니 오빠들과 함께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는 착한 딸로 자랐어요. 그러던 어느 날, 들판에서 혼자 놀던 잔은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새하얀 날개를 가진 금발의 천사가 빛을 내뿜으며 잔의 앞에 나타났지 뭐예요! “잔 다르크, 영국과 부르고뉴 가문으로부터 프랑스를 구원(救援)하라.” “혹시 내가 꿈을 꾼 건가?” 열두 살의 어린 잔은 조금 어리둥절했어요. 하지만 아름다운 천사들은 계속 잔을 찾아왔어요. 몇 년 동안 비슷한 일들이 반복(反復)되자 잔은 자신이 신의 계시(啓示)를 받은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나는 우리 마을 사람들과 프랑스 국민들을 지켜야 해!” 열여섯 살이 된 잔은 용기를 내 신의 계시를 따르기로 했어요. 잔은 먼저 왕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어린 시골 소녀가 한 나라의 왕을 만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잔은 우선 근처에서 가장 큰 도시인 보쿨뢰르로 향했어요. 그리고 그곳의 군사를 다스리는 사령관을 찾아갔어요. “저는 신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저를 프랑스 군대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사령관 로베르는 잔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 그는 잔을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했어요. 하지만 잔은 포기하지 않고 날마다 로베르를 찾아가 부탁했어요. 천사들을 만난 일과 그들이 한 말도 전했어요. 잔의 열정(熱情)과 노력이 통한 것일까요? 처음에는 황당한 표정만 짓던 로베르도 조금씩 잔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어요. ‘어린 여자아이가 이렇게까지 애쓰는 것을 보면 이 아이의 말이 사실일지도 몰라.’ 마침내 잔을 믿기로 결정(決定)한 로베르는 잔에게 왕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어요. “왕은 지금 서쪽 지역의 시농이란 도시에 계신다.” 잔이 만나러 가는 프랑스의 왕은 샤를 7세예요. 하지만 이때는 아직 정식으로 왕이 된 건 아니었어요. 왕이 되려면 프랑스의 전통에 따라 ‘랭스’라는 지역에서 즉위식(卽位式)을 치르고 왕관을 물려받아야 해요. 그런데 당시 랭스는 영국과 부르고뉴 가문이 차지하고 있어서 정식으로 즉위식을 치를 수 없었어요. 그래서 잔이 도착했을 무렵, 왕은 매우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랭스를 적군으로부터 되찾을 수 있을까?’ 이 고민으로 머리가 깨질 것 같았던 왕은 신하들과 회의를 하던 중에 신의 계시를 받고 군대를 이끌기 위해 왔다는 한 소녀에 대해 듣게 되었어요. “그 소녀를 내 앞에 데려와라.” 잔에게 흥미를 느낀 왕이 명령(命令)했어요. “폐하, 그 소녀의 말은 거짓일 겁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는 건 시간 낭비(浪費)입니다!” 신하들은 강하게 반대했어요. 그래서 왕은 잔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기 전에 먼저 그녀가 정말 신의 계시를 받았는지 시험(試驗)해 보기로 했어요. 왕은 자신의 옷을 벗어 곁에 있는 시종에게 주었어요. 그리고 자신은 시종의 옷을 입었지요. 왕의 부름을 받은 잔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왕은 다른 시종들 사이에 숨어 그녀를 지켜보았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잔이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시종 옷을 입은 왕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깜짝 놀란 왕에게 잔이 인사를 드리며 말했어요. “폐하, 저는 잔 다르크입니다. 제가 폐하의 군대와 함께 전투에 나가게 해 주십시오!” 잔과 왕은 오랜 시간 동안 대화(對話)를 나누었어요. “천사들이 제 앞에 나타나 프랑스를 구하라고 했어요. 제가 랭스를 되찾아 폐하께서 즉위식을 치르고 진정한 프랑스의 국왕(國王)이 되도록 돕겠습니다!” 왕은 잔의 강한 의지와 용기에 감탄했어요. “좋다. 너에게 400명의 병사를 주겠다. 병사들을 이끌고 오를레앙으로 가서 내게 승리를 가져오라!” 마침내 왕이 잔에게 명령을 내렸어요. 랭스로 가기 위해서는 오를레앙을 꼭 거쳐야 했는데, 당시 오를레앙은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어요. 1년이 넘도록 영국군들에게 둘러싸여 늘 공격을 받고 있었지요. 잔은 왕의 명을 받들어 바로 떠날 준비를 했어요. 옛날에는 전쟁에 남자만 참가할 수 있어서 잔은 남장(男裝)을 해야 했지요. 갑옷을 입고 흰 투구로 얼굴을 가린 잔은 마지막으로 흰 깃발을 만들어 손에 들었어요. 그리고 병사들과 함께 오를레앙으로 달려갔어요. 하지만 오를레앙의 지휘관(指揮官)은 잔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요. ‘왕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긴 했지만, 저 어린애가 무슨 전투에 나간다는 거야?’ 지휘관은 잔이 어리다는 이유로 완전히 무시했어요. 회의가 있어도 잔에게 알리지 않았고, 전투가 벌어져도 잔을 부르지 않았어요. 잔은 계속 따돌림을 당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굴하지 않고 어떻게든 회의와 전투에 나가려고 애를 썼어요. “이대로는 영국군에게 오를레앙을 빼앗기고 말 겁니다.” 하루는 회의(會議) 중에 잔이 말했어요. “지금처럼 성을 지키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먼저 용감하게 공격을 해야 합니다!” 성문을 잠그고 그 안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 내자는 지휘관의 의견에 반기(反旗)를 든 거예요. 지휘관은 코웃음을 쳤어요. “지금 적군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무작정 공격을 했다가는 우리 모두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발 제 말을 들어주세요!” 잔은 그 후로도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공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하지만 지휘관은 끝내 잔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늦은 밤, 잔은 홀로 방에서 한숨을 쉬고 있었어요. ‘계속 성 안에만 숨어 있으면 결국 패배하고 말 텐데. 오, 하느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잔은 두 손 모아 신께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때 똑똑 하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성문을 관리하는 장군(將軍)이었어요. “잔, 적을 먼저 공격하자는 당신의 용기에 감동했소. 내가 당신을 돕겠소.” 장군은 자신이 성문을 열어 줄 수 있다고 말했어요. 드디어 잔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나타난 거예요. 잔은 그와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짰어요. 잔이 병사(兵士)들을 모아 신호를 보내면 장군이 성문을 열어 주기로 약속했어요. 이야기를 마친 두 사람은 승리를 기원하며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어요. 장군이 돌아간 뒤에도 잔은 쉽게 잠자리에 들 수 없었어요. 수많은 병사들을 이끄는 일은 어린 잔에게 무거운 짐이자 어려운 숙제(宿題)였어요. 잔은 한숨도 못 자고 내일의 계획을 꼼꼼히 살폈어요. ‘만약 일이 잘못되면 어떡하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잔은 고개를 흔들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아냐. 내가 믿는 대로, 계획한 대로만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거야!’ 날이 밝기도 전에 잔은 은밀히 움직여 병사들을 모았어요. 오늘 우리는 전투에 나설 것이다! 용기를 내 싸우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모두 무기(武器)를 들고 따르라! 병사들은 서둘러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었어요. 그러고는 잔을 따라 성문 앞으로 달려갔어요. 말에 올라탄 잔은 자신의 하얀 깃발을 손에 쥐었어요. 잔은 마지막으로 숨을 한 번 크게 내쉬더니 마음을 가다듬고 깃발을 번쩍 들어 성문 위의 장군에게 신호(信號)를 보냈어요. 철커덕, 쿠쿵! 마침내 커다란 성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어요! “성문이 열렸다! 용감한 프랑스 병사들이여! 나가서 싸우자!” 제일 앞에 선 잔이 말을 타고 달리며 외쳤어요. “와아!” 잔의 하얀 깃발이 휘날리는 것을 본 병사들이 잔을 따라 함성을 지르며 성 밖으로 달려 나갔어요. 잔은 거침없이 적군의 요새(要塞)로 향했어요. 잔과 병사들은 순식간에 영국군의 요새 앞에 도착했어요. 그동안 성안에 숨어서 방어만 하던 프랑스가 먼저 공격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영국군은 크게 당황했어요. 영국군은 서둘러 전투에 나섰지만 맹렬히 싸우는 잔의 군대에 밀리기 시작했어요. 그때 요새의 가장 높은 곳에서 전투(戰鬪) 상황을 살피던 영국 장군의 눈에 잔의 모습이 들어왔어요. “가장 앞에서 하얀 깃발을 들고 싸우는 저 용감한 프랑스 군사는 누구냐?” 그는 잔이 프랑스군의 중심임을 한눈에 알아보았어요. 장군은 곁에 있는 궁수(弓手)에게 명령했어요. “당장 저 하얀 깃발을 든 자를 쏴라!” 명령을 받은 궁수는 즉시 화살을 잔에게 겨누고 활시위를 당겼어요. 피융! 날아간 화살은 정확히 잔의 어깨에 꽂히고 말았어요. “아악!” 화살을 맞은 잔은 휘청거리며 말에서 떨어졌어요. 그것을 보고 프랑스 병사들은 잠시 숨을 멈추었어요. 그러나 잔은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났어요. 떨어지면서 투구가 벗겨져 잔의 얼굴이 드러났지요. “아니, 어린 소녀가 아닌가!” 이번에는 영국군이 놀라 눈이 커다래졌어요. 그사이 잔을 도우러 달려온 부하가 잔에게 손을 내밀었어요. 그 손을 붙잡고 부하의 말에 함께 올라탄 잔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고통(苦痛)에 미간(眉間)을 찌푸렸어요. 생각보다 화살이 깊이 박혔는지 한쪽 팔은 아예 움직일 수도 없었어요. 잔은 어금니를 꽉 물고 다른 쪽 팔을 번쩍 들었어요.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잔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어요. “용맹스런 프랑스 병사들이여! 멈추지 말고 계속 전진(前進)하라!” 잔이 큰 목소리로 병사들을 향해 외쳤어요. 잔의 목소리를 들은 병사들이 그 말에 답하듯 더 큰 목소리로 함성을 지르며 영국군을 향해 진격했어요. 더욱 거세진 프랑스군의 공격을 영국군은 도저히 당해 낼 수가 없었어요. 결국 영국군은 요새를 버리고 후퇴(後退)하게 되었고 잔은 프랑스에 귀중한 승리를 안겨 주었답니다. 부상(負傷)을 당하고도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잔의 지도력은 병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어요. 병사들은 잔을 믿고 진심으로 따르기 시작했어요. 하나로 똘똘 뭉치게 된 잔의 군대는 그 후 전투에 나설 때마다 승리를 거두었어요. 그리고 열흘 뒤, 잔은 드디어 오를레앙의 모든 지역에서 영국군을 몰아냈어요. “아직 멀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잔은 오를레앙에서 멈추지 않고 랭스 주변의 다른 도시들도 차례차례 되찾아 왔어요. 어떤 지역에서는 용맹한 잔에 대한 소문을 들은 영국군이 먼저 항복하고 도시를 내주기도 했어요. 마침내 잔은 랭스까지 되찾았고 곧바로 성대(盛大)한 즉위식이 치러졌어요. 잔은 샤를 7세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어요. “폐하, 이제 프랑스를 다스리는 진정한 국왕이 되셨습니다!” 5년 만에 프랑스의 정식 국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어요. 잔은 용감하게 전투에 나서면서도 필요할 때마다 프랑스 국민들을 잘 살펴 주었어요. 영국과 부르고뉴 가문의 공격을 받고 있는 도시를 구하러 가기 전에는 꼭 그 도시의 주민들에게 친필(親筆)로 글을 써서 보냈어요. ‘곧 프랑스 왕의 군대가 여러분을 구하러 갈 것입니다. 조금만 더 버티며 기다려 주십시오.’ 불안에 떨던 주민들은 잔의 편지를 받고 안심할 수 있었어요. 또한 잔은 도시를 방문(訪問)할 때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도왔어요. 그래서 프랑스 국민들은 모두 잔을 사랑하고 아끼게 되었답니다. 샤를 7세도 그런 잔을 무척 아꼈지만, 즉위식 직후 왕과 잔 사이에 한 가지 의견 충돌이 일어났어요. 프랑스의 수도(首都)인 파리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에요. 랭스는 되찾아 왔지만 파리는 아직 영국과 부르고뉴 가문이 차지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랜 전쟁으로 지친 왕은 부르고뉴 가문과 협상을 통해 휴전(休戰)을 하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잔은 프랑스가 연이어 승리를 하고 있는데 지금 휴전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폐하, 이 기세를 몰아 신속하게 파리를 공격해야 합니다. 제가 파리를 공격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나 왕은 잔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왕의 뜻에 따라 프랑스는 부르고뉴 가문과 4개월 동안 휴전을 하기로 약속을 했어요. 그러나 이것은 파리를 지키기 위한 영국과 부르고뉴 가문의 계략이었답니다. 불길함을 느낀 잔은 군대를 이끌고 파리 주변(周邊)의 도시들을 돌아다녔어요. 그러고는 큰 싸움 없이 평화로운 방법으로 몇몇 도시에서 항복을 받아 냈지요. 그러자 잔의 행동에 위협을 느낀 영국군이 나타났어요. “흠, 생각대로 되고 있군.” 이것은 잔이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어요. 휴전 약속은 부르고뉴 가문과 한 것이기 때문에 영국군과는 전투를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거든요. 기회(機會)를 잡은 잔은 바로 파리를 공격했어요. “다 함께 총진격하여 파리를 되찾아 오자!” 여느 때처럼 잔은 하얀 깃발을 든 채 군대의 맨 앞에 섰어요. 그 모습이 병사들의 사기(士氣)를 북돋아 주었어요. 자신감을 얻은 프랑스 병사들의 공격은 아주 강력(强力)하고 용맹했어요. 그러나 이번만큼은 적군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어요. 수도인 파리는 정말 중요한 지역이라 절대 빼앗겨서는 안 되는 곳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전투는 잔의 생각보다 치열했어요. 잔 역시 적의 공격에 다리를 다치기까지 했답니다.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잔은 물러나지 않고 군대를 계속 지휘했어요. 하지만 곧 왕실로부터 후퇴 명령이 내려졌어요. “지휘관 잔 다르크는 즉시 공격을 멈추고 후퇴하라!” 잔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물러나야 했어요. 샤를 7세와 재회(再會)한 잔은 왕의 명령에 따라 파리가 아닌 다른 도시를 공격하여 되찾아 왔어요. 그 공을 인정하여 왕은 잔과 잔의 가족들을 귀족으로 임명(任命)해 주었지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1430년이 되었어요. 그런데 부르고뉴 가문이 휴전 협정을 깨고 랭스 주변의 도시들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지금 당장 랭스로 가야겠다!” 잔은 망설이지 않고 병사들을 모아 랭스로 향했어요. 충분한 병력을 모을 수는 없었지만 랭스의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을 생각을 하니 잔은 지원군을 기다릴 시간이 없었어요. 그런데 랭스로 가던 중 부르고뉴 군대가 콩피에뉴를 공격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잔은 군대를 나누어 반은 랭스로 보냈어요. 그리고 나머지 반을 이끌고 콩피에뉴로 갔지요. “비록 병사의 수는 조금 적지만 재빨리 기습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잔은 캄캄한 밤에 이동(移動)하여 콩피에뉴로 접근했어요. 그리고 날이 밝자마자 공격(攻擊)을 시작했지요. 잔이 맨 앞에서 소리쳤어요. “용감한 프랑스 전사들이여! 돌격하라!” 잔의 말대로 부르고뉴군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제대로 맞서지 못하고 우왕좌왕했어요. 잔의 군대는 몇 차례의 전투에서 계속 승리했어요. 그런데 잔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어요! 갑자기 영국 지원군이 많은 병력을 이끌고 도착한 거예요. 병사의 수가 너무 많이 차이 나자, 잔은 더 이상 싸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일단 후퇴를 했어요. “내가 뒤를 지킬 테니 너희들을 어서 강을 건너라!” 병사들이 강을 건너 후퇴를 하는 동안 잔은 가장 뒤에 남아 부하들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왔어요. 마지막으로 잔도 말을 달려 강으로 향하는 순간, 적군의 화살 하나가 잔의 어깨에 박혔어요! “으악!” 잔은 화살을 맞고 그대로 말에서 떨어졌어요. 이번에는 부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어요. 결국 잔은 포로로 잡히고 말았어요. 잔이 붙잡히자 부르고뉴군은 잔에 대한 안 좋은 소문(所聞)을 랭스 주민(住民)들 사이에 퍼뜨렸어요. “잔 다르크가 제멋대로 행동하다 포로로 붙잡힌 것이다! 잔은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랭스의 주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어요. 잔은 부르고뉴 가문의 성으로 이송(移送)되었어요. 적군은 귀족이 된 잔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어요. 그러나 잔은 프랑스의 국민들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소식에 무척이나 괴로워했어요. “오, 내가 그들을 지켜 주어야 하는데. 어서 여기서 나가 랭스로 가야 해!” 잔은 자신이 갇혀 있는 탑에서 뛰어내려 탈출(脫出)을 시도하다 부상을 당하기도 했어요.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런 일이 몇 번씩 계속되자, 부르고뉴 가문은 좀 난감해졌어요. 그래서 영국과 상의한 후에 1만 프랑을 받고 잔을 영국 국왕에게로 넘겼어요. 당시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잔을 탐탁지 않게 여겼어요. 전통적으로 교회에서는 하느님과 직접 교류(交流)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성직자들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천사들을 만나 계시를 받았다는 잔은 교회의 질서에 맞지 않는 존재, 즉 이단(異端)이었어요. “잔 다르크에 대한 종교 재판을 열게 해 주십시오!” 영국 왕실은, 프랑스인이지만 영국 편이었던 코숑 주교에게 종교 재판을 요청했어요. 주교는 이를 받아들였어요. 재판을 받기 전까지 잔은 어두운 감옥에 갇혀 있었어요. “그대로 두면 또 탈출을 시도할 거야.” 간수들은 잔을 쇠사슬로 단단히 묶어 두었어요. 재판은 잔에게 굉장히 불리(不利)하게 진행되었어요. 코숑 주교는 잔이 이단이라는 증거를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증거를 거짓으로 만들어 내기까지 했어요. 잔은 변호인의 도움도 전혀 받지 못했어요. 시골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敎育)을 받은 적이 없는 18세 소녀는 홀로 재판관들의 질문에 대답해야 했어요. 그들은 잔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로 질문을 했어요. 하지만 잔은 놀랍도록 논리적으로 답을 했어요. 그런 잔의 모습에 재판관들이 당황할 정도였어요. ‘오, 하느님! 부디 제게 힘을 주세요!’ 잔은 무섭고 두려웠지만 매일 밤 기도를 하며 견뎌 냈어요. 처음으로 공개적인 재판이 있던 날, 법정에 선 잔은 그 자리에 프랑스 성직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어요. 그래서 재판관에게 말했어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저를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를 지지(支持)하는 사람들도 참석하게 해 주십시오!” 안타깝게도 이러한 잔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이 때문에 오히려 잔에 대한 대우(待遇)가 나빠지고 말았지요. 감옥으로 돌아간 잔은 고문에 시달리게 되었어요. 병사들에게 매를 맞기도 했고, 썩은 음식을 먹이는 바람에 병에 걸리기까지 했어요. 잔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지쳐 갔어요. 하지만 아직 마음만은 굳건했어요. 재판관들은 잔이 70가지가 넘는 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어요. 그들은 잔의 자백을 받아 내고 싶어 계속 모질게 닦달을 했어요. 잔은 홀로 깊이 생각했어요. ‘나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그에 따라 행동했어. 죄를 인정하는 것은 그동안의 내 모든 행동을 부정(否定)하는 일이야!’ 잔은 단 한 가지의 죄도 인정할 수 없었어요. 무척이나 괴로운 상황이었지만 잔은 용기를 내기로 결심했어요. 신념(信念)을 지키기로 말이지요. “참으로 굴복을 모르는 소녀로구나!” 결국 재판관들은 자백을 받아 내는 일을 포기했어요. 그들은 잔에게 화형이란 벌을 내리기로 결정했어요. 화형은 사람을 불에 태워 죽이는 아주 무섭고 고통스러운 형벌이에요. 잔의 처형일이 정해졌을 때, 잔은 병에 걸려 있었어요. 오랜 감옥(監獄) 생활과 지독한 고문 때문이었지요. 통증(痛症)이 너무 심해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였어요. 그렇게 밤을 지새우던 잔은 자신이 화형을 당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어요. ‘오, 화형이라니! 지금이라도 저들의 말이 전부 맞는다고 할까? 그럼 살 수 있지 않을까?’ 덜컥 두려운 마음이 든 잔은 감옥의 한구석에서 눈물을 흘리며 갈등했어요. 그리운 가족들의 얼굴이 떠오르자 잔은 두 손에 얼굴을 묻으며 흐느끼고 말았어요. 한참 동안 흐느끼던 잔은 고개를 들었어요. 그러자 달빛에 비친 감옥 창문(窓門)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어요. 창살 때문에 그것은 마치 십자가처럼 보였어요. 그제야 잔은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잔은 눈물을 거두고 마음을 가다듬었어요. ‘아니야, 죽음 때문에 거짓 자백(自白)을 하진 않겠어. 난 끝까지 내 신념을 지킬 거야! 용기를 내자, 잔!’ 잔은 두 주먹을 움켜쥐며 그렇게 다짐했어요. 마침내 잔의 처형일이 다가왔어요. 하지만 처형장으로 향하는 잔의 얼굴에서는 조금의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었어요. 오히려 꿋꿋하고 당당했지요. 잔은 그 어느 때보다 맑은 눈빛으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병사들이 거칠게 잔을 끌고 와, 높고 커다란 나무 장대에 쇠사슬로 단단히 묶었어요. 장대 아래쪽에는 바짝 마른 볏짚단들이 쌓여 있었어요. “형을 집행(執行)하라!” 멀리서 집행관의 외침이 들려왔고 병사들이 횃불을 가져와 볏짚단에 불을 놓았어요. ‘하느님, 이제 저는 당신 곁으로 갑니다. 부디 천사들과 함께 저를 맞아 주세요.’ 잔은 마지막으로 기도(祈禱)를 하고 차분히 눈을 감았어요. 그리고 뜨거운 불길 속에서 열아홉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어요. 이를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은 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어요. 잔이 세상을 떠난 지 25년 뒤, 프랑스에서는 잔에 대한 재조사가 이루어졌어요. 그리스도 교회는 철저히 과거의 자료들을 조사했지요. 그리고 마침내 잔의 무죄(無罪)가 밝혀졌어요. “잔 다르크는 무죄이다! 그녀는 강한 용기와 신앙심을 가진 프랑스의 영웅이다!” 교회는 잔의 무죄를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녀를 ‘성녀(聖女) 잔 다르크’라 부르게 했어요. 그 후부터 지금까지 프랑스 사람들은 하얀 깃발을 들고 군대의 가장 앞에 서서 달리던 어린 소녀를 잊지 않고 있어요. 그들은 오늘날에도 그 어린 소녀, 잔 다르크를 국가의 영웅으로 사랑하며 존경하고 있답니다.
10만 대군을 물리친 꼬마 대장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강감찬은 948년, 금주에서 태어났어요. 금주는 지금의 서울 관악구와 금천구에 걸쳐 있는 지역을 말해요.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낙성대(落星垈)는 바로 강감찬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죠. 낙성대란 이름은 강감찬이 태어날 무렵의 설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어떤 사신(使臣) 일행이 낙성대 근처를 지나다 커다란 별이 어느 집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어요. “방금 큰 별이 떨어지는 걸 봤느냐?” 사신이 하인들에게 물었어요. “보았습니다만 흔한 별똥별이 아닌가요?” “그 별은 흔한 별이 아니다. 별이 떨어진 집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을 텐데 별의 정기를 받아 장차 영웅이 될 것이다!” 하인들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설마요.” “너희들은 속고만 살았느냐? 직접 가서 보자꾸나.” 사신 일행은 별이 떨어진 집으로 향했어요. 그랬더니 사신의 말처럼 방금 태어난 사내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대문(大門) 밖까지 들려왔어요. 이 아이가 바로 강감찬이에요. 감찬의 아버지 강궁진은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이에요. 그런데 그는 늙어서까지 아들이 없어 속을 태우다가 뒤늦게 감찬을 얻게 되었어요. 늦둥이 감찬은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어요. 하지만 강감찬은 또래에 비해 키가 작았고 얼굴도 볼품이 없었어요. “쟤는 귀족의 아들답지 않게 추남(醜男)이네. 저래서야 장가나 들 수 있을까?” 감찬을 보는 사람들마다 이렇게 수군댈 정도였어요. 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감찬은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 학문이 깊었어요. 더구나 영리하고 꾀가 많았지요. 그래서 전쟁놀이를 할 때면 늘 감찬이 대장을 맡았어요. 그러면 항상 백전백승(百戰百勝)을 거두었어요. “키도 작고 못생긴 꼬마가 늘 대장 노릇을 하는 비결(秘訣)이 뭘까?” “나도 그게 궁금해. 게다가 감찬이가 이끄는 부대는 한 번도 진 일이 없대. 어찌나 꾀가 많은지 금주 고을에 신동이 났다는 소문이 자자하던걸.” “하기는 힘이 세다고 싸움에 이긴다는 법은 없지.” “그렇고말고. 힘도 좋아야겠지만 그보다는 얼마나 작전을 잘 짜는가가 더 중요하지.” “맞네. 감찬이는 어른들도 당해 내지 못할 만큼 영리해.” “그래서 꼬마 대장 아닌가! 하하하!” 어른들은 감찬을 볼 때마다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어요. 강감찬은 태조 왕건을 도운 공신(功臣)의 아들이라 과거를 보지 않고도 벼슬을 얻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힘 안 들이고 벼슬을 얻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과거를 보려고 열심히 노력하여 벼슬을 얻는데, 나만 공신의 아들이란 이유로 쉽게 벼슬을 얻을 순 없지!” 이렇게 생각한 강감찬은 십여 년 동안 여러 곳을 떠돌며 여행했어요. 귀족의 아들이 겪어 보지 못할 힘들고 궂은일도 많이 해 보았고, 백성들이 사는 모습도 자세히 살펴보았어요. 그렇게 견문(見聞)을 쌓은 뒤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책을 읽으며 조용히 지냈어요. 강감찬이 과거를 본 것은 서른여섯 살 때였어요. 벌써 다 큰 자식들을 둔 강감찬이 뒤늦게 과거를 본다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지요? 사실 그는 고려의 6대 임금인 성종이 왕위(王位)에 오르기 전만 해도 벼슬자리에 관심이 없었어요. 고려를 창건한 태조 왕건이 세상을 떠난 뒤에 이런저런 일로 나라 안이 시끄러웠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성종이 왕위에 오른 뒤로는 나라가 안정되기 시작했어요. 뿐만 아니라 성종은 어질고 올곧은 성격(性格)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어요. 그래서 강감찬은 이때 새로운 결심을 했어요. “이제 나라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으니 나 또한 보잘것없는 힘이지만 충정을 다해 나라를 위해 일해 보아야겠다!” 주변 사람들도 강감찬이 가진 풍부한 지식과 반짝이는 지혜를 그냥 썩혀 두기에는 아깝다고 했어요. 그러던 강감찬에게 마침내 벼슬을 얻을 기회가 왔어요. 성종이 즉위(卽位)한 이듬해에 과거를 실시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거예요. ‘드디어 때가 왔군. 하지만 내가 젊은이들과 실력을 겨루려면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겠지.’ 강감찬은 그날부터 더욱 열심히 책을 읽으며 과거를 준비했어요. 마침내 과거 시험을 본 강감찬은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고려에서 가장 똑똑한 젊은이들과 실력을 겨루고도 그는 당당히 장원 급제(壯元及第)를 했어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시더니 장원을 하셨군요!” 그의 부인이 축하를 해 주었어요. 강감찬은 처음에 양주 목사(牧使), 동경(경주) 유수 등을 지냈어요. 그는 지방관으로 백성들을 보살피는 일에 최선을 다했어요. 그가 처음 양주 목사로 부임(赴任)할 때의 일이에요. 그때 양주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바라는 게 있었어요. “새 원님께선 제발 호랑이들을 없애 백성들이 안심하고 농사를 짓게 해 주셔야 할 텐데.” 지금은 멸종 위기를 맞았지만 옛날에는 우리나라의 산마다 호랑이가 많아 골치였어요. 호랑이한테 물려 죽거나 큰 피해를 입는 ‘호환’이 그칠 날이 없었어요. 징징거리며 우는 아이에게 “저기 호랑이 온다.” 하면 울음을 뚝 그쳤지요. 그만큼 호랑이는 우리 민족에게 무서운 짐승으로 여겨졌어요. 그래서 호랑이 사냥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나라에서 특별히 상을 내릴 정도였어요. 강감찬이 부임한 양주 주변은 북악산 등 높고 깊은 산들이 둘러싸여 있어서 호랑이들이 많았어요. 양주 백성들은 사냥도 잘하고 힘센 원님이 부임해 호랑이들을 멀리 쫓아내 주는 게 소원이었어요. 하지만 막상 새 원님으로 부임한 강감찬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어요. “아이고, 무슨 원님이 저렇게 작고 못생겼나? 호랑이들이 더 들끓게 생겼군.” “그러게 말이야. 저렇게 보잘것없이 생겼으니 호랑이들도 원님을 무시할 게 아닌가?” “차라리 이 고을을 떠날까 봐.” 백성들은 새로 온 원님에게 걸었던 기대(期待)를 버렸어요. 하지만 그건 기우(杞憂)에 불과했어요. 강감찬이 부임하자마자 아전들이 보고했어요. “나리, 이 고을엔 큰 걱정거리가 있습니다.” 강감찬이 아전들에게 물었어요. “무슨 걱정거리인가?” “이 고을엔 호랑이가 많아 마음 놓고 농사를 지을 수 없고, 가축도 기르지 못합니다. 더구나 경작지(耕作地)도 적어 다른 고을에 비해 소득이 적습니다. 그래서 다른 고을로 떠나는 백성들이 많습니다.” 강감찬이 다시 물었어요. “그렇다면 호랑이를 없애고 농사지을 땅을 늘리는 게 급한 일 아닌가?” “그러하옵니다.” 이튿날 강감찬은 고을 장정(壯丁)들을 모두 모았어요. 장정들이 모여들자 강감찬이 지시했어요. “지금부터 마을마다 주변에 있는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 먼 곳까지 훤히 볼 수 있게 하라!” 장정들은 영문도 모른 채 새 원님이 시키는 대로 했어요. 얼마 후, 양주 고을 전체가 한눈에 보일 만큼 넓어졌어요. 강감찬은 다시 사냥꾼들을 불러서 말했어요. “자네들은 호랑이가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오면 보이는 대로 사냥해 주게.” 사냥꾼들은 확 트인 벌판에서 마음껏 호랑이를 잡았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호랑이들이 자취를 감추었어요. 강감찬은 그렇게 호랑이들을 몰아낸 뒤 나무를 베고 난 넓은 땅을 일궈 농사를 짓게 했어요. 이처럼 강감찬이 호랑이도 없애고 농사지을 땅도 크게 넓혔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였지요. 이때부터 양주 백성들은 마음 놓고 농사를 지어 살림살이도 풍족(豊足)해졌어요. 그러자 다른 고을 사람들이 양주로 몰려와 인구도 꽤 늘어났어요. “사냥 잘하고 기운 센 원님들도 못 한 일을 이번에 오신 원님께서 쉽게 해낼 줄 누가 알았겠나?” “그러니까 사람은 겉만 봐선 모른다니까. 꼬마처럼 작고 못생긴 우리 원님께서 그토록 영리하실 줄이야!” 양주 목사에 이어 동경 유수 등 지방관을 지낸 강감찬은 그 후 임금의 부름을 받아 개경으로 올라갔어요. “그대가 지방관(地方官)으로 있으면서 백성들을 잘 보살펴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노라.” “폐하, 소신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앞으로는 개경을 떠나지 말고 내 곁에서 일하도록 하라.” 임금은 이렇게 당부(當付)하며 강감찬에게 정4품인 한림학사 벼슬을 내렸어요. 그 뒤 강감찬은 중추원사 등 수많은 벼슬을 지내며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했어요. 강감찬은 학문이 깊고 용감했으며 무엇보다 백성을 아끼고 나라를 사랑하는 관리였어요. 그래서 임금은 물론 일반 백성들도 항상 강감찬을 믿고 의지했어요. “우리 조정에 강감찬과 같은 분이 있어 든든하다니까!” 하루는 강감찬이 동림산이라는 곳을 지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마을 농부(農夫)들이 우르르 몰려와 강감찬에게 한목소리로 말했어요. “이 산에는 모기가 얼마나 많은지 도저히 사람이 살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제발 모기 좀 없애 주세요!” “모기? 이 산 어디에 모기가 그렇게 많다는 말인가?” “저 아래 계곡으로 가면 엄청나게 많습니다요.” 농부들의 말에 강감찬은 잠시 생각에 잠겼어요. 그러고는 붓을 꺼내 종이에다 무언가를 써서 농부들에게 건네주었어요. “자, 이 부적(符籍)을 가지고 가서 모기가 가장 많이 들끓는 계곡에다 휙 던지게.” 농부들이 강감찬의 말대로 했더니 정말 그 골짜기에 있던 모기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어요. 이와 비슷한 일화(逸話)가 또 있어요. 어느 날 강감찬이 글공부를 하기 위해 어느 시골 마을로 갔어요. 그런데 가까운 논에서 개구리들이 밤새도록 울었어요. 개구리 울음소리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도무지 독서(讀書)를 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강감찬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논으로 가서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이놈들! 울더라도 사흘에 한 번씩만 울어라!”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요? 개구리들이 정말 사흘에 한 번씩만 울었어요. 덕분에 강감찬은 마음 놓고 글공부를 할 수 있었지요. 강감찬은 신통한 힘으로 오랑캐 나라인 거란에서 보낸 자객(刺客)을 붙잡은 적도 있어요. 하루는 강감찬이 상동림이란 곳으로 소풍(逍風)을 가서 가을 경치를 즐기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강감찬은 무슨 소리를 듣고는 하인에게 물었어요. “얘, 억쇠야! 저게 어디서 나는 소리 같으냐?” “예에? 무슨 소리를 말씀하시는지요? 쇤네에겐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뎁쇼.” “답답한 녀석 같으니라고! 너는 얼른 마을로 달려가 장정 열 명을 데리고 와서 저쪽 고개로 가거라. 그곳에 낯선 놈이 두 명 있을 테니 무조건 잡아 오너라.” 얼마 후, 억쇠는 강감찬이 시키는 대로 낯선 사내 두 명을 붙잡아 왔어요. 강감찬이 그자들에게 물었어요. “네놈들이 거란에서 날 죽이러 온 자객들이지?” 자객들은 깜짝 놀라 살려 달라고 싹싹 빌었어요. 강감찬은 비록 키가 작고 못생겼지만 외모에서 남다른 기품이 느껴졌어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어느 날 강감찬은 송나라 사신을 영접(迎接)할 일이 생겼어요. 그때 강감찬이 하인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넌 키도 큰 데다 인물도 훤하게 생겼으니 나 대신 사신을 대접해 보아라. 과연 사신이 날 알아볼지 궁금하구나.” 하인은 강감찬의 지시대로 했어요. “어서 오십시오. 제가 바로 강감찬입니다.” 그런데 송나라 사신은 그 하인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작고 볼품없는 강감찬에게 가서 인사(人事)를 했어요. 이처럼 강감찬은 작고 못생겼지만 사람들을 이끄는 힘이 있었어요. 뿐만 아니라 마음이 넓고 대범해서 늘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어요. 강감찬이 활약하던 때 고려는 무척 어려운 처지였어요. 거란이 고려를 자주 침략했기 때문이에요. 그 무렵, 우리나라의 북쪽 영토는 지금보다 작았어요. 고구려 때만 해도 굉장히 넓었는데 여러 오랑캐들의 공격을 받아 줄어든 거예요. 오랑캐들은 고구려 땅을 자기들이 가로챈 것도 모자라 고려마저 빼앗으려고 했어요. 그 뒤 서희라는 고려의 외교관이 거란이 지배하던 압록강 동쪽의 여섯 고을을 얻게 되었어요. 훗날 ‘강동 6주’라고 불리게 된 중요한 지역이었지요. 서희는 거란과 전쟁을 하지 않고도 잘 설득(說得)시켜 우리 영토를 넓힌 거예요.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지요. 거란은 그냥 강동 6주를 내준 게 아니라 몇 가지 조건을 달았어요. 첫째는 송나라와 관계를 끊을 것, 둘째는 고려가 거란의 연호(年號)를 쓸 것, 셋째는 고려의 국왕이 거란의 황제를 찾아가 항복 선언을 할 것 등이었어요. 고려는 거란의 요구를 따르기로 했지만 그 약속(約束)을 지킬 수는 없었어요. 오랑캐의 말을 들어주기에는 고려 사람들의 자존심이 무척 상했기 때문이에요. “오랑캐인 거란에게 항복하다니 말도 안 돼!” 고려가 약속을 어기자 거란은 강동 6주를 돌려 달라며 세 번이나 고려를 공격해 큰 피해(被害)를 입혔어요. 이때 거란이 더 이상 고려를 침략하지 못하게 무찔러 버린 사람이 바로 강감찬이지요. 1010년, 거란의 성종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어요. 이것이 거란의 두 번째 침략이지요. 이때 고려 현종 임금은 거란의 대군을 당해 내지 못해 전라도 나주까지 피난을 가야 했어요. 그때 고려 대신들은 거란의 황제를 잘 설득해 위기를 넘겼어요. 하지만 언제 거란이 다시 침략해 강동 6주를 내놓으라고 협박할지 알 수가 없었어요. 강감찬이 현종 임금에게 말했어요. “적들이 물러나긴 했으나 머잖아 다시 고려를 침략할 것입니다. 그러니 어서 국방력(國防力)을 키워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소?” “많은 군사를 모아 체계적으로 훈련시켜 적들이 감히 넘보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고려군은 20만 명으로 늘었어요. 고려 군사들은 날마다 고된 훈련을 받으며 차차 강한 군사력을 갖추게 되었어요. 1014년, 예순여섯 살이던 강감찬은 중추원의 우두머리인 ‘중추원사’가 되었어요. 중추원은 왕명(王命)을 전하며, 궁궐 안팎을 지키고, 더 나아가 고려의 국방을 책임지는 매우 중요한 곳이었어요. 중추원을 책임진 강감찬은 날마다 현종 임금과 나랏일을 상의했어요. “폐하, 고려가 거란의 침략을 자주 당해 나라의 법도(法度)가 흐트러졌습니다. 하오니 백성들이 나라에 충성하도록 법도를 잘 정리해야 합니다.” “중추원사가 나서서 해결해 주시오.” “알겠사옵니다.” 그 무렵, 거란은 해마다 고려의 영토를 침범(侵犯)했어요. 1014년 10월에는 통주와 흥화진을 공격했고, 1015년 1월에는 다시 흥화진을 공격했어요. 하지만 고려는 강감찬의 지시를 받은 여러 장군들의 활약으로 번번이 적을 무찔렀어요. 강감찬은 틈만 나면 국경으로 달려가 적들이 침범하기 쉬운 곳을 찾아내 새로 성을 쌓도록 했어요. 그렇게 몇 년이 지난 1018년 겨울이었어요. “폐하, 큰일 났습니다! 거란군이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우리 고려로 쳐들어오고 있다 합니다!” “그래? 지금 바로 대신들을 불러 모으도록 하라!” 현종 임금은 대신들을 모아 회의(會議)를 열었어요. 이때 겁을 잔뜩 먹은 대신들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어요. 그중 한 대신이 일어나 말했어요. “폐하! 지난날 거란과 맺은 약속을 두 번이나 지키지 않았으니 거란에게 큰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대신도 맞장구를 쳤어요. “그렇습니다! 지금 거란은 군사력이 커져 강한 나라로 발전하는데 우린 쓸데없이 자존심만 세우다 나라가 망하게 생겼습니다. 이번 공격(攻擊) 때는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게 분명합니다.” “폐하! 이번 거란의 공격으로 자칫하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니 그들의 요구대로 강동 6주를 내주어야 합니다.” 여러 대신들이 그 말이 옳다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때 머리가 하얗게 센 강감찬이 벌떡 일어났어요. 당시 그의 벼슬은 정2품 내사시랑평장사였어요. “어림없는 소리 마시오! 우리에게 강동 6주가 얼마나 중요한데 그까짓 오랑캐들에게 내준단 말이오!” 순간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어요. “그렇다면 평장사는 어떻게 할 생각이오?” 현종이 강감찬에게 물었어요. “제가 비록 문신이지만 당장 출정(出征)하여 오랑캐들을 모조리 무찌르겠습니다, 폐하!” 이때 거란에게 항복하자고 주장하던 대신이 물었어요. “평장사께선 일흔이 넘으신 노인인데 적을 어떻게 무찌를 작정이오?” “나는 일찍이 갖가지 병법(兵法)을 익혀 왔으며 군사를 지휘하는 것 또한 무관들 못지않소! 아무리 늙었다 해도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용기는 피 끓는 청춘과 같소!” 강감찬은 현종에게 군사 지휘권을 달라고 요청했어요. 현종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대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뜨거운 용기에 눈물이 나는구려!” 현종은 강감찬에게 상원수란 벼슬을 내리고 20만 고려군을 총지휘하게 했어요. 그 밑으로 부원수 강민첨, 시랑 조원 등 쟁쟁한 장군들이 있었어요. 강감찬이 지휘하는 고려군의 군사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했어요. 더구나 지혜롭고 용맹스런 강감찬의 지휘를 받게 되자 사기(士氣)가 하늘을 찌를 듯했어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강감찬을 ‘강감찬 장군’으로 부르며 그가 처음부터 무신(武臣)인 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강감찬의 84년 인생에서 무신으로 산 것은 겨우 석 달밖에 안 돼요. 거란의 세 번째 침략 때 단 석 달 동안 상원수로 있었던 것이지요. 조선 시대의 이순신 장군은 처음부터 무과 시험에 합격한 뒤 장교가 되었어요. 그다음에 벼슬이 차츰 높아져 나중에는 조선 수군(水軍)을 총지휘했지요. 그런데 고려 때의 문신이던 강감찬은 어떻게 군사들을 지휘하게 되었을까요? 고려 때 무신들의 품계(品階)는 3품이 최고였어요. 3품보다 높은 무신 벼슬은 문신이 겸하게 했어요. 그러니까 무신보다 문신이 높은 대우를 받았지요. 문신이던 강감찬이 고려의 대군을 지휘하는 상원수로 임명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더구나 강감찬은 병법도 잘 알고 군사를 지휘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지요. 거란군이 쳐들어올 때마다 고려의 대신들은 적과 맞서 싸우느냐 아니면 적당히 타협하고 사느냐를 두고 논쟁을 벌였어요. 강감찬은 항상 적을 무찔러 다시는 우리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자고 주장했지요. 그 당시 강감찬처럼 용기를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거란군은 대평원(大平原)을 누비고 다니며 말타기와 활쏘기로 단련된 강한 군대였어요. 그런 데다 날이 갈수록 영토를 넓히며 세력(勢力)을 키웠기 때문에 어떤 나라도 함부로 덤빌 수 없었어요. 그런 때에 강감찬이 용기 있게 나서서 적을 무찌르자며 앞장섰던 거예요. 상원수가 된 강감찬은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평안도의 안주 지역으로 이동했어요. 그곳에서 적의 10만 대군을 기다릴 생각이었지요. “이번에야말로 오랑캐들이 우리 고려를 다시는 넘보지 못하도록 혼내 주겠다! 고려의 군사들이여! 나와 함께 고려군이 얼마나 용맹스러운지 보여 주도록 하자!” “와아아아아!” 군사들이 산이 떠나갈 듯 함성을 질렀어요. 얼마 후 거란의 소배압이 이끄는 10만 대군이 압록강을 건넜다는 소식(消息)이 전해졌어요. 소배압은 거란의 1차 침략 때 거란군을 총지휘했던 인물이에요. 그래서 고려의 지리를 잘 알고 있었지요. 그는 고려의 군사력(軍事力)이 전처럼 형편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고려가 몇 년 새에 몰라보게 강한 나라가 되었다는 걸 꿈에도 몰랐던 거예요. 강감찬이 장군들과 작전 회의를 열었어요. “소배압은 틀림없이 흥화진 쪽으로 올 것이네. 하지만 그곳 지형이 워낙 험하니 에돌아서 남쪽으로 진격할 것이고, 그러자면 삼교천을 반드시 지나야겠지.” “그렇습니다, 상원수!” “좋아. 우리 고려 군사들을 흥화진으로 이동시키게. 그곳에서 적들을 혼쭐내야겠어.” 강감찬의 명대로 고려 군사들은 흥화진으로 이동했어요. 흥화진은 강동 6주 가운데 가장 북쪽에 있어 압록강과 가까운 곳인데 지형(地形)이 가파르고 위험했어요. 소배압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흥화진을 에돌아 남쪽으로 진격할 작정이었어요. 그런데 그러려면 강감찬이 예상한 대로 삼교천이라는 큰 냇가를 건너야 했어요. 삼교천은 장마철만 아니라면 물이 깊지 않아서 쉽게 건널 수 있었어요. 강감찬은 삼교천 양쪽 기슭에 고려의 정예(精銳) 군사 1만 2천 명을 숨겨 두었어요. 그리고 또 다른 군사들에게 이렇게 명했어요. “너희들은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며 쇠가죽이란 쇠가죽은 모조리 걷어 오너라!” 군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뿔뿔이 흩어져 쇠가죽 수백 장을 모아 왔어요. “상원수님! 군사들이 쇠가죽을 전부 걷어 왔으나 수백 장밖에 안 됩니다. 어떻게 할까요?” “음! 그만하면 됐다. 이제 튼튼한 동아줄로 그 쇠가죽을 단단히 꿰매어 한 장으로 크게 이어 붙여라.” 장군들은 군사들에게 강감찬의 명을 전했어요. 얼마 후 쇠가죽 수백 장이 단단히 꿰매어지자 강감찬이 장군들에게 지시했어요. “이 쇠가죽으로 삼교천 상류의 물을 막고 있다가 신호를 보내면 도끼로 줄을 끊어 물을 한꺼번에 흘려보내라!” 그때는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라 물이 얕은 삼교천 하류는 꽁꽁 얼어 있었어요. 하지만 상류(上流)는 굉장히 넓고 깊어서 아직 얼지 않았지요. 고려 군사들이 적을 공격할 모든 준비(準備)를 마치고 며칠 지나서였어요. 거란의 대군이 멋도 모르고 삼교천에 이르렀어요. 소배압이 군사들을 향해 외쳤어요. “여긴 물이 얕은 데다 얼어서 평지나 다름없다! 어서 건너가 고려 임금의 항복(降伏)을 받아 내자!” 신이 난 거란군은 콧노래를 불러 가며 삼교천을 건너기 시작했어요. 앞에 선 군사들이 강을 거의 건넜을 때였어요. 적의 움직임을 감시(監視)하던 강감찬이 소리쳤어요. “지금이다! 지금 바로 상류에 신호를 보내라!” 강감찬의 명을 받은 군사가 깃발을 흔들자 상류에 있던 군사들이 일시에 도끼로 동아줄을 잘랐어요. 그러자 소가죽 안에 갇혀 있던 강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홍수가 난 듯 하류로 콸콸 흘러갔어요. “어이쿠! 한겨울에 웬 물난리냐!” 삼교천을 건너던 거란 군사들은 저마다 살려 달라고 아우성쳤어요. 바로 그때 삼교천 양쪽 기슭에 매복(埋伏)해 있던 고려의 정예병들이 거란군에게 빗발치듯 활을 쏘았어요. 삼교천에서 겨우 살아남은 거란군은 이렇다 할 반격도 못 한 채 화살에 맞아 픽픽 쓰러졌어요. 이렇게 뜻밖의 공격을 당한 거란군은 큰 피해를 입었어요. 그렇지만 아직 살아 있는 군사도 꽤 많았어요. 소배압은 전열(戰列)을 가다듬고 부하들을 다그쳤어요. “고려의 항복을 받아 내지 못하면 황제 폐하는 나를 죽일 것이다! 그럴 바에야 끝까지 싸우다 죽겠다! 당장 개경으로 달려가 고려 궁궐을 치자! 진격하라!” 하지만 거란군 앞에는 항상 강감찬이 있었어요. 강감찬은 이미 얼마 전에 부하 장수 김종현에게 명령을 내려 놓았어요. “그대에게 군사 1만 명을 줄 테니 지금 바로 달려가 개경과 궁궐을 철저히 지켜라!” 이렇게 미리 준비해 놓았던 터라 결국 소배압은 고려군에게 계속 패배한 채 철수(撤收)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거란군은 후퇴할 때도 번번이 고려군의 공격을 받아 쫓기는 신세였어요. 거란군이 평안북도 귀주를 지나갈 때였어요. 이때 강감찬은 거란군을 추격(追擊)하다가 드디어 그들과 딱 마주쳤어요. 거란군은 쫓기는 신세였지만 초원에서 단련된 군사력이 만만치 않았어요. 그때였어요. 개경을 지키던 김종현이 군사들을 이끌고 강감찬을 돕기 위해 달려왔어요. 강감찬은 큰 힘을 얻었어요. 그런데 바람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불고 있는 게 문제였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김종현 부대가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이 거꾸로 불기 시작했어요. 그것은 아군의 화살이 바람을 타고 거란군에게 더 빠르게,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는 뜻이에요. 덕분에 고려군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거란군을 독 안에 든 쥐처럼 공격했어요. 그 공격으로 거란군은 완전히 패해 살아서 도망간 병사가 겨우 수천 명뿐이었어요. “와아! 우리가 이겼다! 강감찬 장군 만세!” 이렇게 강감찬 장군이 흥화진과 귀주에서 거둔 대승을 가리켜 ‘귀주 대첩’이라고 해요. 거란군을 완전히 무찌른 강감찬이 고려 군사들을 거느리고 당당히 개경으로 개선(凱旋)했어요. 그러자 현종 임금이 직접 마중을 나와 강감찬과 군사들을 환영(歡迎)해 주었어요. “상원수! 얼마나 노고가 많으셨소? 그대야말로 우리 고려를 살려 낸 영웅이시오!” “폐하! 소신(小臣)은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또한 이번 승리는 용맹한 우리 군사들 덕분입니다!” 현종은 순금으로 만든 금꽃 여덟 가지를 강감찬에게 직접 꽂아 주었어요. 그리고 높은 벼슬과 넓은 땅을 상으로 내렸어요. 이때 강감찬이 말했어요. “폐하! 소신에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말씀해 보시오. 상원수의 청이라면 뭐든 들어주겠소.” “소신에게는 이미 먹고살 만한 땅이 있습니다. 하오니 제게 내리신 땅은 이번에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군사들의 유가족(遺家族)에게 나눠 주도록 해 주십시오.” 현종은 너무 감격한 나머지 할 말을 잃고 말았어요. “그대는 끝까지 나를 부끄럽게 하는구려. 그리하시오.” 강감찬에게 참패를 당한 거란은 그 뒤 더 이상 고려를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그때부터 고려는 100년이 넘도록 어떤 나라의 침략도 받지 않고 평화로운 시대를 누렸어요. 거란과의 전쟁이 끝난 뒤 강감찬이 임금에게 말했어요. “폐하! 이 몸이 늙어 더 이상 국정(國政)을 볼 수 없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 편히 쉬게 해 주십시오.” 하지만 현종은 그에게 중요한 벼슬을 자꾸 내렸어요. 곁에 두고 나랏일을 상의하기 위해서였지요. 그 때문에 강감찬은 여든세 살까지 문하시중(국무총리) 같은 벼슬을 지내다 결국 여든네 살에 세상을 떠났어요. 지금 강감찬 장군의 무덤은 충청북도 청원군에 있어요. 그 옆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충현사’라는 사당(祠堂)이 세워져 있답니다.
끝까지 절개를 지킨 충신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거참, 이상한 꿈이네?” 이씨 부인은 지난밤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갑자기 주변에 적막한 기운이 감돌고 난초 향기가 짙어지더니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왔어요. 선녀는 부인에게 난초 화분을 건넸어요. ‘이리 귀한 것을 저에게.’ 한눈에도 예사 난초가 아닌 것 같았어요. 그러나 부인은 그만 화분을 놓치고 말았어요. 순식간에 화분은 산산조각으로 깨졌어요.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난초만은 하나도 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욱 신비롭고 짙은 향기를 뿜어내는 것 같았어요. 이씨 부인은 지난밤 꿈 이야기를 남편인 정운관에게 말했어요. “집안에 곧 큰 경사가 있을 것 같소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난초는 예로부터 귀한 꽃으로 여겨졌소. 화분은 깨졌지만 난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으니 우리 집안에 장차 귀한 아이가 태어날 거라는 태몽이외다.” 그로부터 열 달 후, 이씨 부인은 정말 잘생긴 사내아이를 낳았어요. 경상북도 영천 땅에서 1337년 12월에 태어난 아이는 난초가 나오는 꿈을 꾸고 태어났다고 ‘꿈 몽’ 자에 ‘난초 난’ 자를 따 이름을 정몽란이라 지었어요. 이 아기가 바로 고려 최고의 충신으로 불리는 정몽주예요. 몽란은 튼튼하고 씩씩하게 잘 자랐어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어려서부터 매우 지혜롭고 총명했지요. 몽란이 세 살 때의 일이었어요. “여보, 이리 와서 이것 좀 보시오.” 정운관은 부인에게 서툴게 쓴 글씨를 보여 주었어요. “설마 이 글자를 우리 몽란이가 썼나요?” 정운관은 기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쓸 줄도 알고 읽을 줄도 안다오. 참으로 기특하지 않소?” 몽란은 다섯 살 때부터 어려운 책도 읽고 시까지 척척 지을 수 있었어요. 마을에서는 신동이라며 몽란에 대한 칭송이 자자했어요. 몽란이 여덟 살 때 일이었어요. 이번에도 이씨 부인이 예사롭지 않은 꿈을 꾸었어요. 마당 한쪽에 있는 배나무 위에 커다란 용이 올라가 있는 꿈이었어요. “용, 용, 용이다!” 부인은 놀라 소리를 질렀지만 용은 꿈쩍도 않고 물끄러미 부인을 바라보았어요. 깜짝 놀라 깨어난 부인은 마당의 배나무로 가 보았어요. 그랬더니 세상에, 몽란이 배나무에 올라가 있는 거예요. “어머니, 무슨 일이에요?” 배를 따 먹던 몽란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어요. 꿈 얘기를 들은 정운관은 아이 이름을 ‘꿈 몽’ 자에 ‘용 룡’ 자로 바꾸었어요. 이때부터 몽란은 몽룡으로 불리게 되었어요. 몽룡의 나이 아홉 살 때, 어머니를 따라 외가를 갔어요. 한창 신나게 놀고 있는데 어디선가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무슨 소리지?’ 몽룡은 울음소리를 따라 뒷마당으로 갔어요. 외가에서 일하고 있는 하녀가 울고 있었어요. “무슨 일로 그리 슬피 울어?” 몽룡이 묻자 하녀가 대답했어요. “멀리 떠난 남편에게 소식을 전할 수 없어서요.” “왜 소식을 전할 수 없어?” “저는 글을 몰라 편지를 쓸 수 없답니다.” 하녀의 사연을 들은 몽룡은 자신이 대신 편지를 써 주겠다고 했어요. “이렇게 어린 도련님께서 편지를 써 주신다고요?” 하녀는 놀라 눈이 동그래졌어요. “자, 이제 뭐라고 쓰면 돼?” 종이와 붓을 앞에 두고 몽룡이 물었어요. 하녀는 도련님이 알아서 써 보라고 했어요. “구름은 모였다가 흩어지고, 달은 둥글게 떴다가 이지러지지마는 제 마음은 언제나 변함이 없답니다.” 몽룡은 주저 없이 편지를 썼어요. 그리고 큰 소리로 하녀에게 읽어 주었어요. 하녀는 깜짝 놀랐어요. 편지 내용이 마치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본 것 같았거든요. “몸 성히 잘 있으니 얼른 돌아오길 바란다는 말도 썼어.” 하녀는 어린 몽룡이 글 짓는 솜씨뿐 아니라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마음 역시 뛰어난 것에 크게 감탄했어요. 몽룡의 어머니가 두 번이나 신기한 꿈을 꾼 후, 이번에는 아버지 정운관이 기이한 꿈을 꾸었어요. 책을 읽다 꾸벅 잠이 든 정운관 앞에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선비가 나타났어요. “아이를 잘 키우게. 그 아이는 장차 나라의 큰 기둥이 되고 후세에 이름을 빛낼 큰 인물이 될 게야.” “어르신은 누, 누구시옵니까?” “나는 주공이니라.” 주공은 중국 주나라의 유명한 정치가예요. 주나라 때 나이가 어린 성왕이 즉위하였는데 삼촌인 주공이 많이 도와주었지요. 주공은 학문과 덕이 높아 백성을 위한 바른 정치를 펴고 나라를 튼튼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존경을 받은 인물이에요. “주공처럼 온 백성의 사랑과 존경을 받은 훌륭한 분이 꿈에 나와 우리 몽룡이를 부탁하다니!” 정운관의 꿈 이야기를 들은 부인은 너무나 기뻤어요. “우리 몽룡이가 정말 훌륭한 인물이 될 모양이오. 주공의 말씀대로 잘 키워야겠소. 그런 의미에서 몽룡의 이름을 몽주로 바꿉시다!” 아버지 정운관은 주공의 ‘주’ 자를 따서 몽룡의 이름을 다시 몽주로 바꿨어요. 몽주는 부모님이 이름을 세 번이나 바꿀 만큼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더욱더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고 행동거지도 바르게 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르침 덕분에 정몽주는 열세 살에 과거 시험의 관문인 생원시에 합격했어요. 또한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한 정몽주는 높은 산과 넓은 바다, 강, 들판, 나무, 꽃, 바람을 칭송하는 시를 지어 읊었어요. 정몽주의 빼어난 글솜씨는 먼 곳에까지 소문이 났어요. 그 무렵, 정몽주에게 슬픈 일이 일어났어요. 아버지에게 출세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그만 아버지 정운관이 병을 얻어 돌아가신 거예요. “아버지, 아버지! 이 불효자를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정몽주는 돌아가신 아버지 앞에서 구슬피 울었어요. 슬픔에 빠진 정몽주는 사흘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어요. 그러다 그만 아버지 장례를 치르는 날, 정신을 잃고 말았지요. “제대로 효도도 못 했는데 이렇게 돌아가시다니.” 과거를 앞두고 있던 정몽주는 공부를 중단하고 아버지 무덤 옆에서 시묘살이를 했어요. 시묘살이는 무덤 옆에서 3년 동안 움막을 짓고 사는 거예요. 정몽주는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올리고 따뜻한 밥 한 공기를 매일 올리며 정성을 다했어요. “정몽주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그 집에 정표를 세워라.” 정몽주의 지극한 효성은 공민왕에게까지 알려져 정표를 받게 되었어요. 정표는 훌륭한 행실을 한 집을 알리기 위해 그 집 앞에 세우는 명예로운 깃발이에요. “제 효성이 부족해서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셨어요. 저는 저 정표가 부끄럽습니다.” 3년 시묘살이가 끝났지만 정몽주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잠겨 살았어요. “몽주야,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에게 가장 큰 효도가 무엇이냐?” 어느 날 어머니께서 물었어요. 그제야 정몽주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떠올랐어요.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고 나라의 훌륭한 인재가 되어 위로는 왕에게 충성을 다하고 아래로는 널리 백성들을 이롭게 하는 바른 정치를 하여라.” 아버지 정운관의 가르침을 떠올린 정몽주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과거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어요. “어머니, 저는 송도로 떠나겠습니다.” 스물한 살 때 정몽주는 집을 떠나 송도로 갔어요. 송도에 도착한 정몽주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어요. 어느덧 2년이 지나 마침내 과거 시험 날이 다가왔어요. 긴장이 되고 떨렸지만 정몽주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시험을 치렀어요. 정몽주는 과거 시험의 첫 단계 시험인 초시, 다음 단계인 복시, 초시와 복시를 합격한 사람이 왕 앞에서 보는 시험인 전시까지 모두 장원을 했어요. 세 가지 시험 모두 장원을 하는 건 정말 드물고 어려운 일이에요. 시험관들도 깜짝 놀랐어요. 정몽주는 어사화로 장식한 모자를 쓰고 당당하게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가 이 모습을 보셨더라면!” 어머니는 기뻐서 눈물을 흘렸어요. “경사 났네, 경사 났어!” “될성부를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내 이럴 줄 알았어! 오죽 총명했어야지!”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정몽주가 장원 급제를 하자 마을 사람들도 함께 기뻐해 주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정몽주는 예문관 검열이라는 첫 관직을 받았어요. 예문관이란 임금의 명령을 기록하는 곳이에요. 나라의 중요한 문서를 보관하고 임금의 명령을 받아 글을 짓는 곳이었어요. 정몽주는 이곳에서 스승 김득배를 만났어요. 김득배는 정몽주가 과거 시험을 볼 때 감독하는 일을 하면서부터 정몽주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있었어요. 어머니는 정몽주가 벼슬을 하게 되자, 정몽주에게 당부했어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네 한 몸 잘 살기 위한 벼슬아치가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책임감 있는 벼슬아치가 되어야 한다. 알겠느냐?” “네, 어머니. 늘 명심하겠습니다.” 어머니는 정몽주에게 직접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옷을 건넸어요. 옷을 받아 든 정몽주는 깜짝 놀랐어요. 옷의 안쪽에 붉은색의 안감이 덧대어 있었어요. “붉은색의 뜻을 알겠느냐?” “변하지 않는 마음을 뜻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 붉은색은 한마음, 바로 일편단심을 뜻하는 것이다.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은 바로 충성심을 가리키지.” 정몽주는 어머니의 깊은 뜻을 가슴 깊이 새겼어요. “몽주야, 관리는 항상 왕과 나라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스승 김득배는 정몽주에게 늘 그렇게 말했어요. 김득배는 그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답게 매우 강직하고 정의로운 성품이었어요. ‘스승님은 정말 모범이 되는 충신이셔!’ 정몽주는 진심으로 스승 김득배를 존경했어요. 그래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스승처럼 충신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 무렵 고려에는 홍건적이라는 도적 떼가 들끓었어요. 홍건적이란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두르고 다녀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홍건적들은 말을 타고 다니며 마을을 덮쳤어요. 곡식을 빼앗고 가축을 잡아가고 사람들도 마구 죽였어요. “어찌나 잔인한지, 그냥 다 죽이고 빼앗는대!” 사람들은 붉은색만 보면 오들오들 떨었어요. 마침내 홍건적들이 압록강을 건너 고려까지 넘어왔어요. 광야를 달리던 족속이라 매우 날쌔고 난폭했지요. 걱정에 휩싸인 공민왕은 홍건적을 무찌르기 위해 장수들을 보냈어요. 정몽주의 스승 김득배도 이 전쟁에 참여했어요. “서둘러 적을 물리치고 승전보를 전해 주시오.” 공민왕은 홍건적과 싸우기 위해 떠나는 장수들을 격려했어요. 김득배는 이방실 장군과 힘을 합쳐 홍건적에게 큰 승리를 거뒀어요. 홍건적들은 패배하여 정신없이 도망을 가 버렸지요. “공들이 없었다면 고려가 도적 떼의 손에 넘어갈 뻔했소.” 공민왕은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큰 상을 내렸어요. ‘흠, 공민왕이 재상인 나보다 저들을 더 믿다니! 이러다 내 권력을 빼앗기겠어.’ 재상 김용은 공민왕의 신임을 받는 공신들이 미웠어요. ‘계략을 꾸며 저희들끼리 죽이도록 하면 되겠군.’ 김용은 임금의 도장을 훔쳐 공신들에게 가짜 칙서를 전달했어요. 칙서의 내용은 공신 가운데 한 명인 총병관 정세운이 나머지 사람들을 죽이려 하니 그를 먼저 죽여 후한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었어요. 총병관이란 요즘 말로 하면 총사령관이란 뜻이에요. “도저히 믿을 수 없소! 어찌 이런 일이!” 공신들은 모두 놀랐어요. 칙서에 옥새가 찍힌 걸 보면 분명 임금의 명령인데 그 내용은 도저히 믿기지 않았어요. “이건 뭔가 잘못된 칙서요!” 김득배는 특히 더 놀랐어요. 정세운 총병관이 그럴 리가 없다는 걸 믿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사람들은 정세운 총병관을 죽여야 한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김득배는 한사코 반대를 했어요. “그러다가 우리가 먼저 당하면 어쩝니까?” 공신들은 정세운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 두려웠어요. 그래서 김득배 몰래 먼저 선수를 치기로 했어요. “이러지 말고 정세운 총병관과 술이나 한잔합시다.” “그럽시다. 그 자리에서 왕의 칙서 이야기를 물어봅시다.” 공신들이 그렇게 제안하자 김득배도 흔쾌히 승낙했어요. 얼마 후, 홍건적을 물리친 공신들이 한자리에 모였어요. 주거니 받거니 술자리는 흥겨웠어요.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나 정세운 총병관을 공격하여 총병관이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어요. “오, 이런 일이!” 김득배는 정세운 총병관의 죽음을 몹시 슬퍼했어요. 그러나 그렇게 슬퍼할 새가 없었어요. 간신 김용이 다시 모함을 했기 때문이에요. “감히 상관을 죽이다니! 네 죄를 네가 알렷다!” 김용은 공민왕에게 공신 셋이 모의해서 상관인 정세운을 죽였다고 거짓으로 보고했어요. 결국 홍건적을 물리친 공신들은 김용의 모략 때문에 모두 억울하게 죽고 말았어요. “스승님은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야!” 정몽주는 스승 김득배가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 그 일가가 망하자 울분을 참을 수 없었어요. “스승의 누명을 벗겨 드리는 건 제자인 나의 책임이다!” 정몽주는 하늘을 향해 맹세했어요.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스승 김득배의 누명을 벗겨 드리겠다고 자신과 약속했어요. 날마다 진실을 찾아 헤매던 정몽주는 마침내 재상 김용이 모략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나 모두들 김용이 무서워 쉬쉬 입을 다물었어요. “진실을 밝히는 일인데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정몽주는 상소문을 써서 바로 내관을 찾아갔어요. “상감마마를 뵙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내관이 공민왕께 정몽주의 뜻을 전하자 공민왕은 흔쾌히 정몽주를 만나겠다고 했어요. 정몽주의 상소문을 다 읽은 공민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어요. “내가 큰 실수를 했도다!” 공민왕은 그제야 김용이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 바람에 죄 없는 공신들이 처형당한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전하, 스승 김득배 장군의 장례를 치르게 해 주십시오.” 정몽주는 바로 공민왕께 부탁했어요. 공민왕은 김득배의 장례를 허락해 주었고 공신들의 누명도 벗겨 주었어요. “스승님, 이제 누명을 벗고 편히 쉬십시오.” 정몽주가 스승 김득배의 장례를 치러 주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모두 정몽주를 칭송했어요. “정몽주야말로 의리를 아는 정의로운 사람이다!” 한동안 평안하던 고려에 이번에는 여진족이 쳐들어왔어요. 여진족은 백성들을 죽이고 닥치는 대로 곡식을 훔쳐 갔어요. 공민왕은 또다시 왕좌가 위태롭게 되자 이성계 장군과 정몽주를 불러 말했어요. “경들이 출정하여 여진족을 물리쳐 주시오.” 왕명을 받은 정몽주는 이성계와 함께 전쟁터로 향했어요. 이성계는 용맹스러운 장수이고 정몽주는 작전을 세우는 데 뛰어났어요. 둘은 곧 마음이 통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고려군은 이성계의 용맹함과 정몽주의 뛰어난 전술 덕분에 여진족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었어요. “그들은 참으로 믿을 만한 공신들이다!” 공민왕은 두 사람의 공을 높이 치하했어요. 학문에만 뛰어난 줄 알았던 정몽주가 전술에도 능하자 공민왕은 ‘자금어대’라는 상을 내렸어요. 자금어대는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만 내리는 상이에요. “큰 공을 세워 주어 참으로 고맙소.” 공민왕이 칭찬의 말을 했어요. “전하의 신하로서 맡은 바 임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정몽주는 상을 받고도 겸손하게 말했어요. 그날 집으로 돌아온 정몽주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어요. ‘아버지,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제가 나라를 위해 공을 세웠습니다. 모두 아버지 덕분입니다.’ 정몽주의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고였어요. 한편, 그 무렵 중국 땅에 명나라가 생겨났어요. 원나라와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던 고려는 명나라의 세력이 차차 커지자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어요. “원나라와 친하게 지내면 명나라가 못마땅해하고, 명나라와 친하게 지내면 원나라가 시비를 걸어올 테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공민왕은 고민에 빠졌어요. “원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 합니다.” “아닙니다. 원나라는 지는 해입니다. 떠오르는 태양인 명나라와 손을 잡아야 합니다.” 대신들도 서로 의견이 달랐어요. 홍건적, 여진족, 왜구까지 침범해 오던 터라 만약 원나라나 명나라가 전쟁을 일으킨다면 고려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정몽주가 나서서 말했어요. “명과 원, 두 나라 모두 가까이 지내면 될 것입니다.” 정몽주의 슬기로운 답변에 모두들 깜짝 놀랐어요. “오호, 그런 방법이 있었구려!” 공민왕도 정몽주의 말에 솔깃했어요. 공민왕의 신임을 받은 정몽주는 몇 달 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어요. “황제 폐하께서 일으킨 새로운 기운이 대륙을 누비고 은혜롭게도 우리 고려에까지 이르렀나이다.” 정몽주는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을 치켜세웠어요. 주원장은 기분이 좋아져 웃음을 터뜨렸어요. 정몽주는 고려와 명나라가 친하게 지내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를 설명했어요. 정몽주의 높은 학식과 덕망에 감탄한 주원장은 정몽주의 청을 모두 들어주고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자며 미소를 지었어요. 이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하기 위해 사신 일행은 바닷길로 고려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육지로 가려면 원나라를 지나가야 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만 바다 한가운데서 거친 풍랑을 만났어요. 요동치는 거센 파도에 배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어요. 함께 갔던 문신 홍사범과 많은 사람들이 바닷속으로 휩쓸려 들어갔어요. ‘반드시 살아 돌아가 명나라 주원장의 칙서를 상감마마께 전해 드려야 한다. 꼭 살아야 해!’ 정몽주는 부서진 판자 조각을 잡고 죽을힘을 다해 버텼어요. 그러다가 까무룩 정신을 잃었어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몽주는 간신히 눈을 떴어요. 그런데 주변에 아무도 없었어요. 사람이 살지 않는 섬에서 혼자만 살아남은 거예요. 잡초만 무성한 섬에서 정몽주는 꼭 살아 돌아가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했어요. ‘나의 책임이 막중하다! 내 손에 고려의 운명이 달렸다. 반드시 고려로 돌아가 칙서를 전하리라!’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13일이 흘렀어요. 13일째 되는 날, 가까스로 명나라의 배를 발견했어요. “사람 살려요! 살려 주시오!” 정몽주를 구하러 온 것은 명나라 사람들이었어요. 거친 풍랑에 배가 부서진 것을 알게 된 주원장이 군사를 보내 정몽주 일행을 찾도록 한 거예요. 인적 하나 없는 무인도에서 13일을 버텨 낸 정몽주는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살아 고려로 돌아왔어요. “경이라도 살아 돌아와 천만다행이오. 참으로 큰일을 해냈소. 정말 수고가 많았소.” 공민왕은 수척해진 정몽주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어요. 정몽주가 명나라에 다녀온 지 2년이 지나고 공민왕은 세상을 떠났어요. 그 뒤를 이어 공민왕의 어린 아들인 우왕이 왕위에 올랐어요. 임금이 바뀌자 원나라에서는 우왕과 가까운 신하를 원나라로 불렀어요. 우왕은 공신 가운데 한 사람인 이인임을 원나라로 보냈어요. “오랫동안 친교를 맺어 온 원나라와의 의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중립을 지키다간 둘 다 잃게 됩니다.” 원나라를 다녀온 이인임은 명나라보다 원나라와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상감마마, 명나라를 멀리하고 원나라와 가까이 지내는 것은 강한 것을 버리고 약한 것을 좇는 것이어서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일은 빨리 고쳐야 합니다.” 정몽주는 상소문을 올려 반대했어요. 그러나 우왕은 당시 실권을 잡고 있던 이인임의 눈치를 보느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었어요. 이인임은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모조리 귀양을 보냈지요. 결국 정몽주도 미움을 받아 경상도 땅 언양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어요. 당시 고려는 매우 혼란스러웠어요. 북쪽에서는 홍건적이 들끓고, 남쪽에서는 걸핏하면 왜구들이 쳐들어왔어요. 왜구들은 집을 불태우고 죄 없는 백성들을 잡아갔어요. 그러자 우왕은 일본으로 사신을 보내야 하나 고민했어요. 고려가 사신을 보내면 일본은 그 사신을 잡아 가두고 돌려보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아,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구나.” 그러는 중에 왜구의 노략질이 점점 심해져 수도인 개경까지 침략해 왔어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인임은 귀양지에 가 있는 정몽주에게 이 일을 맡기자고 추천했어요. “전하, 정몽주를 일본으로 보내시지요.” 사실 이인임은 평소 못마땅했던 정몽주를 일본으로 보내 없애 버릴 생각이었어요. 정몽주를 따르는 이들은 모두 반대했어요. “안 됩니다! 일본으로 가면 정몽주는 죽게 됩니다.” 하지만 이인임은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어요. “남의 나라에 와서 도적질을 하는 왜구를 보고도 목숨이 아까워 가만히 있으면 되겠소이까?” 결국 사신이 되어 일본으로 떠난 정몽주는 이전의 사신들처럼 감옥에 갇히고 말았어요. “이대로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다.” 정몽주는 왜구 대장에게 진심을 담은 편지를 썼어요. 그러자 편지를 읽은 대장은 큰 감명을 받았어요. “참으로 인품이 높은 분이다. 당장 풀어 줘라.” 왜구 대장은 정몽주에게 다시는 고려를 침범하지 않고, 그동안 잡아간 7백여 명의 백성들도 풀어 주겠다고 약속했어요. 정몽주가 잡혀 갔던 고려 백성들과 함께 무사히 돌아오자 우왕은 정몽주의 뛰어난 외교술에 크게 감탄했어요. 하지만 일 년이 지나자 왜구들은 정몽주와 한 약속을 깨고, 다시 도적질을 하고 백성들을 괴롭혔어요. 우왕은 다시 이성계에게 왜구를 쫓아내라고 명했어요. “전략이 뛰어난 정몽주를 함께 보내 주십시오.” “그리하도록 하시오.” 이성계는 이번에도 정몽주와 힘을 합쳐 왜구를 쫓아내고 큰 승리를 거두었어요. 이런 일이 반복되자 고려 백성들은 이제 임금인 우왕보다 정몽주와 이성계를 더욱 믿고 따랐어요. 그러자 우왕은 이성계를 불안하게 생각했어요. 그가 군사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었지요. 한편, 명나라 주원장이 고려 땅인 요동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이 벌어졌어요. 그러자 평소에 원나라와 친하게 지내자고 주장하던 이들이 명나라와 전쟁을 벌이자고 했어요. 정몽주와 이성계는 질 것이 분명한 싸움이라 반대했어요. 하지만 우왕은 말을 듣지 않았어요. 우왕이 요동으로 가서 명나라와 싸우라고 명령했어요. 왕명에 따라 이성계는 대군을 이끌고 요동으로 떠났어요. 하지만 그는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거꾸로 고려 궁궐로 쳐들어왔어요. “우왕을 몰아내라!” 이성계는 우왕을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공양왕을 왕으로 삼았어요. 어린 왕은 사실 허수아비에 불과했어요. ‘이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정몽주는 끝까지 고려를 지킬 것을 결심하며 공양왕에게 충성을 맹세했어요. 이성계는 내심 정몽주와 함께 새 왕조를 세우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의 아들 이방원은 고려에 충성하는 정몽주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이방원은 마지막으로 정몽주를 설득하기로 하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어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 년까지 누리고저.” 정몽주에게 함께 새 왕조를 세우자는 뜻이었어요. 그러자 정몽주는 이방원의 시에 단심가로 답을 했어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백번을 죽고 또 죽어도 고려 임금을 향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뜻이었어요. 정몽주는 끝내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다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 의해 선죽교에서 죽고 말았어요. 비록 아쉽게 생을 마쳤지만 정몽주는 지금까지 충절을 지킨 가장 위대한 위인으로 기억되고 있답니다.
포기하지 마라, 절대 포기하지 마라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윈스턴 처칠은 1874년 영국에서 태어났어요. 그때 영국은 대영 제국이라고 불렸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했어요. 전 세계 이곳저곳에 영토를 가진 큰 나라였거든요. “영국에서 해가 지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다른 대영 제국의 땅에서 해가 뜬다고!” 그래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거예요. 그때는 인도도 영국이 지배하는 땅이었고 아프리카에도, 아시아에도 영국의 땅이 있었어요. 영국뿐만 아니라 프랑스나 스페인, 포르투갈 등도 세계 곳곳에 땅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었지요. 처칠은 영국의 가장 화려한 시절에 태어난 셈이에요. 처칠의 부모님은 첫아들인 처칠에게 윈스턴 레너드 스펜서 처칠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어요. 처칠의 집안은 귀족 집안으로 대대로 정치가들이 많았어요. 처칠의 아버지도 재무 장관까지 지낸 정치가였어요. 재무 장관은 정부에서 일을 하며 나라의 돈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높은 자리예요. “아들아, 너도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정치가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처칠의 아버지는 윈스턴 처칠에게 좋은 정치가가 되라고 말했어요. 집안에 훌륭한 정치가들이 많았으니 처칠 역시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은 것이지요. 윈스턴 처칠은 무럭무럭 자라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이튼 스쿨이라는 학교에 입학했어요. 이튼 스쿨은 귀족들이 다니는 수준 높은 학교였지요. 처칠이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라던 부모님의 뜻이었어요. 하지만 처칠은 이튼 스쿨에 잘 적응하지 못했어요. “라틴어가 0점이야?” “죄송해요, 아버지.” 처칠은 부모님의 바람과는 달리 라틴어 과목에서 계속 0점을 받았어요. 라틴어는 아주 옛날 로마 사람들이 쓰던 말인데 처칠은 그런 것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어요. 그 대신 영어와 전쟁에 관한 공부에는 아주 관심이 많았지요. 하지만 다른 과목이 아무리 뛰어나도 라틴어에서 0점을 받으니 졸업을 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처칠은 이튼 스쿨에서 나와 다른 공립 학교로 옮겨 졸업을 했어요. 학교를 졸업한 처칠은 이제 대학을 가야 했어요. 아버지는 여전히 처칠이 정치가가 되길 바라고 있었어요. 그래서 정치가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옥스퍼드 대학에 들어가길 바랐어요. 옥스퍼드는 오래된 유명한 대학이고 훌륭한 정치가들도 많이 다녔거든요. 하지만 옥스퍼드에 들어가는 것은 처칠이 바라는 길이 아니었어요. ‘무엇을 해야 좋을까?’ 스스로 고민하던 처칠은 마침내 결정을 내렸어요. ‘그래! 나는 군인이 되어서 내 나라를 지킬 거야!’ 처칠은 어릴 적부터 병정놀이를 좋아했고 학교를 다닐 때도 전쟁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군인이 되기로 결심한 처칠은 샌드허스트 육군 사관 학교에 입학하기로 했어요. 샌드허스트 육군 사관 학교는 장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로 지원하는 유명한 학교였지요. 처칠 역시 훌륭한 군인이 되고 싶어 그 학교에 지원했어요. 하지만 처칠은 입학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어요.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어.’ 처칠은 다시 한 번 공부해 다음 해 시험을 쳤어요. 하지만 이번에도 떨어지고 말았어요. 연달아 두 번이나 떨어진 거예요. 그러나 처칠은 이를 악물고 또다시 시험을 준비했어요.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여 결국 세 번째로 치른 입학시험에서 합격을 했어요. 샌드허스트 육군 사관 학교에는 보병대와 기병대가 있었어요. 보병대는 말을 타지 않고 걸어서 싸우는 군인들이고 기병대는 말을 타고 싸우는 군인들이에요. 입학 성적이 더 높은 곳은 보병대였어요. 처칠의 아버지는 당연히 아들이 보병대에 가길 원했어요. “아들아, 기병대는 말을 타야 하니까 위험하단다. 게다가 보병대가 성적이 더 높으니 낫지 않겠니?” “아니에요, 아버지! 전 기병대에 들어가겠어요!” 결국 처칠은 바라던 대로 기병대로 입학했어요. 다른 학교에서는 잘 적응하지 못한 처칠이었지만 샌드허스트 육군 사관 학교에서는 달랐어요. 처칠은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사관 학교를 졸업했어요. 샌드허스트 육군 사관 학교를 졸업한 후 처칠은 군인으로서 여러 전쟁에 참여했어요. 처칠은 몹시 열정이 넘치는 군인이어서 휴가 도중에도 전쟁 소식을 들으면 달려가곤 했어요. 처칠은 군인으로 전쟁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종군 기자로 일하기도 했어요. ‘사람들에게 전쟁 소식을 알려야 해!’ 종군 기자는 군대를 따라다니며 전쟁 소식을 전하는 기자예요. 처칠은 용감하게 전장을 누비며 기사를 썼고 그 기사는 신문에 실려 사람들에게 알려졌어요. 원래 영어 과목을 좋아했던 처칠은 글재주도 뛰어났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처칠의 기사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전쟁이 일어났다!” 처칠이 스물다섯 살 때 보어 전쟁이 일어났어요. 보어 전쟁은 남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보어인들과 영국인들 사이에서 벌어졌어요. 남아프리카에 정착한 네덜란드 사람들의 자손인 보어인들과 새롭게 이주한 영국인들 사이에 갈등이 생겨 결국 전쟁이 일어나고 만 것이지요. 처칠은 이 전쟁에 종군 기자로 참여했어요. 처칠은 기자로서 전쟁의 모습을 열심히 취재해 영국의 신문사에 보냈어요. 뿐만 아니라 처칠은 누구보다 용감하게 싸우기도 했어요. ‘난 기자이기도 하지만 군인이기도 해!’ 처칠은 기자이면서도 군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전쟁터에서 싸우던 처칠은 그만 보어인들에게 잡혀 포로가 되고 말았어요. 보어인들은 처칠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풀어 주지도 않았어요. “나는 기자입니다. 기자를 포로로 잡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처칠이 따져 물었어요. 원래 종군 기자는 죽이거나 포로로 잡지 않는 것이 모두가 따르는 일반적인 규칙이었거든요. 하지만 보어인들은 기자인 것을 알면서도 처칠을 풀어 주지 않았어요. “당신은 전쟁터에서 총을 들고 싸웠소. 그런데도 당신을 일반적인 종군 기자라고 할 수 있겠소? 우리는 절대로 풀어 줄 수 없소.” 처칠은 목숨을 걸고라도 그곳을 탈출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결국 처칠은 캄캄한 밤에 몰래 탈출을 시도했어요. 그런데 간신히 보어인들의 소굴은 빠져나왔지만 빠져나온 뒤에 갈 곳이 없었어요. 처칠은 혼자서 산속을 헤매었어요. 몸은 지쳐 갔고 먹을 것이 없어 점점 배도 고파 왔어요. 그러다 가까스로 불빛을 발견했어요. 그곳은 보어인들의 마을이었어요. ‘아, 보어인들이 날 보면 자신들의 군대에 신고하겠지. 그러면 난 다시 포로로 잡혀가고 말 거야.’ 처칠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불빛이 보이는 쪽으로 다가갔어요.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여보세요! 아무도 안 계십니까?” 처칠은 용기를 내 어떤 집의 문을 두드렸어요.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나왔어요. 처칠은 단단히 각오하고 입을 열었어요. 나는 영국인 종군 기자입니다. 전투에서 보어인들의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했습니다. 나를 당신네 군대에 넘겨도 좋으니 제발 먹을 것을 좀 주십시오.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습니다. 집주인은 처칠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이윽고 집주인이 처칠을 안으로 들어오게 했어요. 당신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당신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군요. 내 이름은 존 하워드이고 이 마을에 사는 유일한 영국인입니다. 얼마 전에 일 때문에 이곳으로 이민을 왔지요. 처칠은 깜짝 놀랐어요. “당신이 영국인이라고요?” 정말이지 엄청난 행운이었어요. 하워드는 처칠을 숨겨 주고 먹을 것을 주었어요. 물론 보어인들에게 알리지도 않았지요. 또 처칠이 떠날 때 먹을 것과 물을 챙겨 주기도 했어요. “고마워요, 하워드!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게요!” 하워드의 도움을 받은 덕분에 처칠은 무사히 도망을 칠 수 있었어요. 그때 처칠은 480킬로미터를 걸어서 탈출했는데 이 거리는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보다도 더 먼 거리예요. 처칠은 나중에 나이를 먹고 유명해진 뒤에도 하워드의 도움을 잊지 않았어요. 하워드가 어려움에 처하면 기꺼이 달려가 도와주었답니다. “저 사람이 바로 용감한 전쟁 영웅 처칠이야!” 영국으로 돌아온 처칠은 보어인의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일로 유명인이 되어 있었어요. 귀국한 처칠은 하원 의원 선거에 나갔어요. 하원 의원은 우리나라의 국회 의원과 같은 위치예요. 나라의 중요한 정책들을 결정하고 사회의 규칙이나 법을 만드는 일을 하지요. 그때 처칠의 아버지는 이미 몇 년 전에 세상을 뜬 후였어요. 아버지는 건강이 악화되어 정치인으로서 꿈을 다 펼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어요.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제가 꼭 이룰게요.’ 처칠은 선거에서 승리해 아버지처럼 정치가가 된 후 그렇게 다짐했어요. 처칠이 정치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유명인이었기 때문은 아니에요. 그가 정치가가 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도 자신의 피나는 노력 때문이에요. 처칠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멋진 연설로 유명했는데 그것도 스스로의 노력에 따른 결과였어요. 사실 처칠은 어릴 때부터 말을 많이 더듬었거든요. 정치가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빼어난 말솜씨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설득할 필요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는 이렇게 결심했지요. ‘말을 더듬어서는 정치가가 될 수 없어! 꼭 고쳐야 해!’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마침내 말을 더듬는 단점을 고쳤고 사람들 앞에서 훌륭하게 연설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1914년에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어요. 제1차 세계 대전은 수많은 나라가 참여한 큰 전쟁이에요. 이 전쟁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지요. 이전까지는 이렇게 많은 나라가 참여한 큰 전쟁이 없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 전쟁을 세계 대전이라고 불렀어요.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이탈리아, 미국 등 많은 나라와 독일, 오스트리아,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 왕국이 서로 편을 나누어 맞서 싸웠어요. “윈스턴 처칠! 당신이 해군을 지휘해 주시오!” 처칠은 그때 영국의 해군 장관에 임명되었어요. 그는 1차 대전이 영국 쪽의 승리로 끝날 때까지 계속 해군 장관으로 활동하며 여러 전투를 지휘했어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평화의 시대가 왔어요. 사람들은 패전한 독일에게 막대한 벌금을 물게 했어요. 하지만 처칠은 이 벌금에 반대했어요. “독일에게 벌금을 물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돈이 없어 힘들어지면 독일이 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처칠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어요. 처칠은 한동안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어요. 사람들은 1차 대전 때 처칠이 해군 장관으로 일하면서 잘못한 점이 있었다고 지적했어요. 또 처칠은 늘 남들과 다른 주장을 했는데, 사람들은 그런 처칠의 성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처칠은 언제나 남들과 다른 말을 한다니까.” 한때 전쟁 영웅이었던 처칠은 점점 인기 없는 정치인이 되어 버렸어요. 잠시 평화로웠던 유럽에 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어요. 1차 대전이 끝나고 20여 년이 흐른 후 독일에서 ‘나치’라는 세력과 히틀러라는 독재자가 나타난 거예요. 히틀러는 원래 나치를 이끌던 사람이었는데 차차 인기를 얻어 독일 전체의 지도자가 되었어요. 가난에 힘들어하던 독일 국민들은 독일은 위대한 나라이며 독일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히틀러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던 거예요. “나 히틀러의 꿈은 세계 정복이다!” 히틀러는 다시 큰 전쟁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는 군대를 키웠어요. 하지만 다른 나라를 속이기 위해 겉으로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 척하고 있었어요. “히틀러를 경계해야 합니다! 다시 전쟁이 날지도 모릅니다!” 처칠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외쳤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칠의 말을 듣지 않았어요. 다시 한 번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는 처칠의 말이 듣기 싫었던 거예요. 사람들은 또다시 끔찍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처칠을 아예 무시해 버렸어요. “처칠은 정말 재수 없는 소리만 해!” “처칠은 전쟁을 너무 좋아한다니까!”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이런 말을 주고받았어요. 결국 영국 정부는 처칠의 말을 듣지 않고 독일과 협상하여 평화롭게 지내자는 약속을 했어요. 협상 소식을 들은 처칠은 정부를 비판했어요. “독일과의 협상은 잘못된 것입니다. 독일은 절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처칠을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1939년, 히틀러는 다른 나라들과 평화롭게 지내자고 했던 약속을 깨고 폴란드를 공격했어요. 영국과 주변 국가들은 크게 당황했어요. “뭐야, 처칠의 말대로 되고 말았잖아!” 결국 처칠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된 거예요.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또 다른 전쟁,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어요. 전 세계를 삼키려는 히틀러에 맞서 싸우기 위해 영국은 다시 한 번 참전할 수밖에 없었어요. “용기 있고 책임감 강한 처칠을 수상으로 삼자!” 영국인들은 처칠을 새로운 수상으로 선택했어요. 수상은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같은 위치예요. 나라 전체를 이끌 뿐 아니라 군대도 지휘하지요. 참 어려운 시기에 처칠이 영국의 책임자가 된 거예요. 전쟁이 시작되자 히틀러는 많은 전투에서 승리했어요. 전쟁이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프랑스마저 독일에 패배하고 말았어요. 이제 영국을 뺀 유럽 전체가 히틀러의 지배를 받고 있었어요. “유럽에서 벌어지는 나쁜 일들은 모두 유대인들 때문이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가장 미워했어요. 유대인들은 지금의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민족으로 유럽 여기저기에 오랫동안 퍼져 살고 있었어요. 히틀러와 나치는 유대인들을 너무나 미워하여 그들을 모두 잡아 죽이려고 했어요. 실제로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죄도 없이 나치에게 잡혀가 죽었어요. 이런 히틀러의 악마 같은 짓을 막기 위해서라도 얼른 독일과의 전쟁에서 이겨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전쟁에 앞서 처칠은 영국의 수상으로서 연설을 했어요. 우리 앞에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책은 인간이 저지른 범죄 가운데 가장 나쁜 일에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처칠의 연설을 듣고 큰 감동을 느꼈어요. “옳소! 우리가 이겨야 합니다!” “처칠의 손에 우리 영국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어요. 어느새 사람들의 가슴속에 승리에 대한 염원들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어요.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영국이 독일에게 밀릴 때마다 처칠은 영국 국민들에게 연설을 해서 용기를 북돋았어요. 영국은 절대 약해지거나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국은 끝까지 싸울 것이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영국을 지켜 낼 것입니다.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처칠의 연설을 들으며 희망을 가졌고, 처칠은 그런 사람들을 보며 더욱 책임감을 느꼈어요.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자유를 지켜 내야 하는 책임이 바로 나에게 있다!’ 덕분에 영국은 다른 국가들과 달리 독일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끝내 쓰러지지 않고 버텨 냈어요. 만약 영국이 독일에게 패한다면 유럽 전체가 히틀러의 손에 넘어가는 급한 상황이었어요. 처칠은 모든 작전을 지휘하고 다른 나라들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꿋꿋이 독일을 상대로 싸워 나갔어요. “전투기로 도시를 폭격하라!” 어떻게 하면 영국을 물리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독일은 사람들이 사는 도시를 직접 폭격하기로 했어요. “그러면 도시에 사는 죄 없는 국민들이 죽게 되고 영국은 어쩔 수 없이 우리 독일에게 항복할 것이다!” 드디어 히틀러의 명령으로 폭격이 시작되었어요. 처음에는 런던이 아닌 다른 도시들만 폭격하다가 조종사의 실수로 런던 시가지에도 폭탄이 떨어졌어요. 이 일을 시작으로 영국도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을 폭격했어요. 폭격을 받은 히틀러는 본격적으로 수도 런던에 엄청난 폭격을 가했어요. 런던은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어요. 수많은 건물들이 무너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어요. 독일의 폭격은 몇 달 동안이나 계속되었어요. 심지어는 왕궁에도 폭탄이 떨어졌고, 처칠이 근무하는 수상 관저에도 떨어져 건물 일부가 무너졌어요. 하지만 처칠은 절대 런던을 떠나지 않았어요. 처칠은 오히려 이렇게 말했어요. “만일 내가 죽는다면 독일군은 내 시체를 집무실 의자에서 끌어 내려야 할 것입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는 말이었지요. “처칠은 정말 용기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이야!” 수상으로서 끝까지 관저를 지키는 그를 보며 수많은 국민들은 큰 감동을 느꼈어요.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국민들은 끝까지 그를 믿고 따랐어요. 결국 독일은 영국을 굴복시키지 못한 채 폭격을 중단했어요. 2차 대전은 1945년까지 이어졌어요. 영국, 프랑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과 독일, 이탈리아, 일본 세 나라의 동맹이 싸우고 있었지요. 처음에는 연합군이 독일에게 질 것처럼 보였지만 처칠의 지휘와 연합군의 노력으로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연합군이 독일의 기세를 꺾고 승기를 잡은 거예요. 처칠이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온 결실이었어요. 결국 1945년, 길고 긴 전쟁이 끝이 났어요. 연합군이 독일을 무찌르고 승리한 거예요. 악랄한 나치의 손에서 세계를 구해 낸 것이지요. “처칠 수상 만세!” 영국 국민들은 물론 연합국 국민들까지 다들 처칠을 칭찬했어요.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바로 처칠이지요.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이런 일이 있었어요. 처칠은 옥스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축사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졸업식 날, 처칠이 연단에 올라오자 학생들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처칠을 바라보았어요.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던 거예요. 처칠은 연단 위에 모자를 내려놓고 잠시 말이 없더니 첫마디를 꺼냈어요.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처칠은 침묵했어요. 학생들은 처칠의 다음 말을 기다렸어요. “포기하지 마십시오!” 처칠이 다시 한 번 말했어요. 그리고 또다시 한참 말이 없었어요. 모두들 조용한 가운데 처칠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어요.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처칠은 이기기 힘든 전쟁에서 끝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영국의 승리를 이끌어 냈어요. 그것을 졸업식 축사 때 짧게 압축하여 말한 것이지요. 모두들 처칠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처칠 본인은 성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성공은 최종적인 것이 아닙니다. 실패는 치명적인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하고자 하는 용기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칠은 수상 자리에서 물러났어요. 그러자 영국에서는 처칠에게 귀족 작위를 수여하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처칠은 거절했어요. 작위를 받아서 귀족이 되면 더 이상 정치를 할 수 없게 되거든요. 그 뒤로도 처칠은 의원으로 계속 활동하며 영국의 정치를 이끌었어요. 처칠은 스스로 책임감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 국민들의 책임감 있는 모습을 아주 좋아했어요. 처칠이 수상이던 시절에 유명한 일화가 있어요. 그날 처칠은 차를 타고 회의 장소로 가고 있었어요. 회의 시간은 다가오는데 그날따라 길이 막혔어요. “조금 더 빨리 갈 수 없겠나?” 초조해진 처칠이 운전기사를 재촉했어요.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운전기사가 대답했어요. 그때 교통경찰이 처칠이 탄 차를 세웠어요. “지금 신호 위반을 하셨습니다.” 교통경찰이 다가와 말했어요. 마음이 급해진 운전기사가 경찰에게 말했어요. “이 차에 타신 분은 수상 각하십니다. 중요한 회의에 늦었으니 빨리 보내 주세요.” 그러자 교통경찰은 뒷좌석의 처칠을 힐끗 살펴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어요. “거짓말 마세요. 얼굴은 수상 각하와 비슷하지만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보니 수상 각하가 아닌 게 분명해요. 누구보다 질서를 지켜야 할 수상 각하의 차가 신호 위반을 했을 리가 없습니다.” 경찰의 말에 운전기사는 물론이고 처칠 역시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어요. 경찰이 다시 운전기사를 보고 말했어요. “감히 수상 각하가 타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다니 다른 죄도 추가해야겠군요. 그리고 정말로 수상 각하가 타고 있는 차라 해도 신호 위반을 했다면 당연히 범칙금을 내야 합니다. 누구도 예외는 있을 수 없습니다.” 결국 운전기사는 면허증을 내밀고 범칙금 스티커를 받았어요. 그 때문에 처칠은 회의에 늦고 말았지요. 하지만 처칠은 화가 나기는커녕 기분이 좋았어요. ‘저렇게 항상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경찰이 있으니 영국 사회가 정의롭게 유지되는 거겠지.’ 처칠은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빙그레 미소 지었어요. 회의를 마친 후 처칠은 그 훌륭한 교통경찰에게 무언가 상을 주고 싶었어요. 곧바로 처칠은 경시청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했어요. “이렇게 훌륭한 경찰관이 있으니 그 사람을 일 계급 승진시켜 주길 바랍니다.” 그러나 경시청장은 의외의 대답을 했어요. “죄송합니다만 그럴 수 없습니다. 신호 위반자를 단속한 교통경찰을 승진시키라는 규칙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교통경찰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처칠은 또 한 번 감탄했어요. 자기 나라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뻤어요. 수상에서 물러난 후 처칠은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지난 일을 회상해 책을 썼어요. 자신의 젊은 시절의 일도 책으로 펴내고 제2차 세계 대전에 관한 책도 냈어요. 사람들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의 생각이 궁금해 처칠의 책을 너도나도 사서 읽었어요. 처칠은 이런 업적을 인정받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노벨 문학상도 타게 되었어요. 또 영국에서 국가에 큰 공을 세운 자랑스러운 국민에게만 주는 훈장과 기사 작위도 받았어요. ‘그저 소신껏 책임을 다한 것뿐인데.’ 처칠은 겸손한 마음으로 훈장과 기사 작위를 받았어요. 그 후로도 처칠은 오래오래 살면서 영국인들과 세계 정치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어요. 1965년, 처칠은 아흔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우리는 영국의 가장 위대한 국민, 처칠을 잃었다!” 많은 영국인들은 처칠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했어요. 세계 각국에서도 처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사절단을 보냈어요. 독재자 히틀러의 손에서 자유와 평화를 지켜 낸 처칠의 공을 높이 인정한 거예요. 그날만큼은 평소 정치계에서 처칠과 의견이 달라 싸우던 사람들도 모두 처칠의 장례식에 참석했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슬픔 속에서 처칠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어요. 오늘날까지도 영국인들에게 ‘가장 위대한 영국인’을 물으면 여전히 처칠이 제일 먼저 꼽힌다고 해요. 패배할 것 같던 전쟁을 포기하지않고 끝끝내 싸워 승리를 얻어 낸 처칠의 끈기와 책임감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내 꿈은 조선의 독립이오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김구는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도 한참 떨어진 백운방 텃골에서 태어났어요. 원래 이름은 김창수인데 어릴 때 집에서는 김창암이라고 불렀어요. 그러다 나중에 김구라고 이름을 바꾸었지요. 김구는 원래 지체 높은 양반의 후손이에요. 그런데 먼 친척 할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리는 바람에 집안사람들 전체가 평민으로 신분을 속이고 텃골이란 마을에 숨어 살았어요. 김구의 가족은 무척 가난했어요. 어머니는 김구를 낳고 제대로 먹지를 못해 늘 젖이 부족(不足)했어요. 아기는 항상 배가 고파서 어머니를 보챘어요. 어머니는 또 어머니대로 기력(氣力)이 없어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우리 아기, 가엾어서 어떡하나…….” “아기 이리 줘요. 내가 젖을 좀 얻어 먹이고 오겠소.” 어머니가 탄식하는 모습을 보다 못한 아버지는 아기를 안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젖을 얻어 먹였어요. 어린 김구는 자라면서 말썽을 많이 피웠어요. 한번은 어머니가 옷감을 염색(染色)할 때 쓰려고 아껴 둔 물감을 빗물에 풀어 놓고 놀았어요. 어머니한테 그게 얼마나 귀한 것인지도 모르고 물감이 빗물에 섞여 퍼져 나가는 모습이 마냥 신기(新奇)하기만 했던 거예요. 또 한번은 엿장수가 집 앞을 지나갔어요. 집 안에 돈이 될 만한 물건이라고는 숟가락밖에 없었어요. 김구는 멀쩡한 숟가락을 발로 짓밟아서 부러뜨렸어요. 그런 다음 엿장수를 찾아 신나게 달려갔지요. “아저씨! 이걸로 엿 바꿔 주세요!” 부모님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기가 막혔어요. 하지만 이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니었어요. “얘야, 너 그게 웬 돈이냐?” 어느 날 길에서 만난 친척 어른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어요. 여섯 살짜리 아이가 허리에 돈 꾸러미를 차고 있는 거예요. “아, 이거요? 아버지가 이불 밑에 넣어 둔 돈인데, 장에 가서 군것질하려고 가지고 나왔어요.” “네 아버지한테 돈을 가지고 장에 간다고 말했느냐?” “아니요.” 김구는 친척 어른의 물음에 또박또박 대답했어요. 친척 어른은 어이가 없어 혀를 끌끌 찼어요. 김구의 아버지는 성미가 불같은 분이었어요. “네 아버지가 알기 전에 빨리 집으로 가자!” 친척 어른은 서둘러 김구를 집으로 데려갔지만 도중(途中)에 아버지와 맞닥뜨리고 말았어요. “이번에야말로 네 녀석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고 말겠다!” 아버지는 노발대발(怒發大發)하여 회초리를 내리쳤어요. 아무리 철모르고 한 짓이라도 이것은 엄연한 도둑질이었어요. 아버지는 하나뿐인 아들 김구를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행여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까 염려하여 특히 엄하게 가르쳤어요. 김구가 아홉 살 때 일이에요. 하루는 집에 온 친척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노인네가 얼마나 상심(傷心)이 크면 몸져누웠겠나?” “새파랗게 젊은 것들한테 그 꼴을 당했으니…….” 무심코 이야기를 듣던 김구는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친척 할아버지가 사돈집에 가느라 예의상 갓을 썼는데, 양반집 청년들이 ‘상놈이 건방지게 갓을 썼다’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할아버지 갓을 찢어 버린 거예요. “아니, 넌 왜 그렇게 슬피 우는 게냐?” 김구가 펑펑 눈물을 흘리자 어른들이 물었어요. 이에 김구가 어른들에게 되물었어요. “양반들한테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떡해야 하나요?” “과거에 급제(及第)해서 출세하면 돼.” 김구는 갑자기 울음을 뚝 그쳤어요. 어린 마음에도 김구는 양반으로 태어나지 못한 게 억울할 때가 많았어요. 김구는 꼭 과거에 급제하리라 마음먹었어요.
목숨 걸고 약속을 지킨 철학자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70년경에 태어났어요. 그의 아버지는 돌을 다듬는 석공이었어요. 하루는 일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던 소크라테스가 물었어요. “아버지, 돌에 그림을 그린 것도 아닌데 어떻게 멋진 작품을 뚝딱 만드세요?” “마음의 눈으로 보면 된단다. 돌을 다듬는 사람은 그것을 볼 줄 알아야 해.” 소크라테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아, 마음이 중요하구나. 그러려면 올바른 생각을 가져야 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차갑고 딱딱한 돌도 아름답고 부드러운 작품이 되는 거야.’ 소크라테스는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성인이 된 소크라테스는 날마다 거리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했어요.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혜란 무엇일까?” 어른이든 아이든 상관없이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멀리서 소크라테스 모습만 보여도 재빨리 피했어요. “어이쿠, 수다쟁이 소크라테스다. 마주치면 몇 시간 동안 붙잡혀 있어야 할 거야. 아예 멀리 돌아가야겠어.” 사람들이 피하든 말든 소크라테스는 만나는 사람들과 계속 대화를 했어요.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를 깨닫기를 바랐어요. 이렇게 서로 대화를 통해 지혜를 찾는 것을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이라고 해요.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어느 날, 소크라테스가 청년에게 물었어요. “용기란 무엇인가?” “적과 싸우며 후퇴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작전상 후퇴라는 것도 있지 않나?” “용기는 어떠한 것도 참아 내는 인내심입니다.” “무턱대고 참는 무분별한 인내심도 용기인가?” 소크라테스의 말을 들은 청년은 곰곰이 생각했어요.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어요. “어떤 면에서는 인내심도 용기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돈을 버는 일에 인내심을 발휘했다면 그것도 용기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건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소크라테스는 계속 질문을 하면서 상대방이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어요. 소크라테스의 어머니 직업은 산파였어요. 산파는 아이의 출산을 돕는 여자를 말해요. 아기가 태어날 집으로 찾아가 아이도 받고 산모를 돌봐 주는 일도 하지요.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산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산모이고, 생각에서 나온 의견은 마치 아이와 같군. 산파가 아이 낳는 것을 도와주듯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밖으로 꺼낼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야. 질문을 하면서 말이야.” 소크라테스는 산파인 어머니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아이를 돌봐 주듯 아테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올바른 생각을 하도록 돌봐 주었어요.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을 스승이 아니라 산파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소크라테스는 지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같이 묻고 대답하면서 진리를 깨우치려 했어요. 그러다 보니 소크라테스 주위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스승님, 저를 제자로 받아들여 주세요.” “오, 친구여. 나도 친구한테 많은 것을 배우겠네.” “네? 저 같은 사람이 어찌 스승님처럼 훌륭한 분의 친구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어요. “그렇다면 훌륭한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없는가? 훌륭하지 않은 사람만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소크라테스의 말에 젊은이는 할 말을 잃었어요. 잠시 후 젊은이가 다시 물었어요. “그렇다면 저한테서 무엇을 배우신다는 거죠?”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된다네. 내가 친구를 보고 배우면 되니까.” 어느 날, 첫 수업 시간에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말했어요. “가장 간단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을 가르쳐 주겠다. 모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가 다시 뒤로 뻗어 보아라.” 제자들은 소크라테스가 시키는 대로 했어요. “다들 오늘부터 이 동작을 매일 열 번씩 해라. 내가 시킨 일이라 생각하지 말고 너희 자신과의 약속이라 생각하고 해라. 할 수 있겠느냐?” 소크라테스의 말에 제자들은 웃음을 터뜨렸어요. “이렇게 간단한 걸 못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맞아요. 너무 쉽습니다.” 제자들의 말에 소크라테스는 미소만 지었어요. 한 달 뒤,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물었어요. “매일 열 번씩 팔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아라.” 열 명 가운데 아홉 명이 자신 있게 손을 들었어요. 다시 한 달 후에 소크라테스는 같은 질문을 했어요. “팔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아라.” 이번에는 여덟 명이 손을 들었어요. 그렇게 두 달, 세 달이 지나고 어느덧 일 년이 지났어요.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다시 물었어요. “내가 첫 수업 시간에 말한 팔 운동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아라.” 그러자 제자들은 웃으며 대답했어요. “일 년 전 약속을 누가 지키고 있겠습니까? 아마 스승님이 그런 말씀을 한 것조차 잊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한 제자가 손을 번쩍 들었어요. 소크라테스는 그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어요. “나와의 약속을 일 년 동안 지킨 자네는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것 같구나.” 소크라테스가 칭찬한 제자는 바로 플라톤이었어요. 소크라테스와 약속을 지킨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수많은 제자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제자였어요.“소크라테스 제자 중에는 플라톤이 최고지!” 플라톤은 어릴 때부터 정치에 뜻을 두고 있었는데 소크라테스를 만난 후에 그 뜻을 접었어요.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야말로 진정한 철학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소크라테스의 말을 글로 기록하고 발전시켜 훗날 스승 못지않은 훌륭한 철학자가 되었어요. 또한, 수많은 책을 썼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아카데미를 세워 학자들을 길렀지요. 아카데미에서는 철학과 문학, 음악, 천문학, 수학 등 여러 가지 학문을 연구했어요. 아카데미는 900년 동안 계속되면서 서양 학문을 발전시키는 터전이 되었어요. 아테네에는 델포이 신전이 있었어요.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궁금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신전에 가서 신의 뜻을 물었어요. 그것을 신탁이라고 해요. 하루는 카이레폰이라는 사람이 신전에 가서 물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러자 신탁이 내렸어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소크라테스다.” 카이레폰은 그 소식을 아테네 사람들에게 전했어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소크라테스랍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나는 내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네. 그런데 신은 왜 나를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했을까?” 소크라테스는 곰곰이 생각했어요. 그리고 직접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 나서기로 했어요. 소크라테스는 유명한 정치가를 찾아가 물었어요. “당신은 지혜가 있습니까?” “물론이오. 나는 정치에 대해 잘 알고 있소.” 정치가가 자신 있게 대답했어요. “그렇다면 국민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국민에 대해서는 조금밖에 모르오. 나는 정치가이니 정치에 대해서만 물어보시오.” 소크라테스는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당신은 정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소!” “뭐가 어째?” 정치가도 덩달아 화를 냈어요. “무릇 정치는 국민을 빼놓고는 할 수 없는 것이오. 그런데 국민도 모르면서 어떻게 정치에 대해 잘 안다는 겁니까? 당신은 지혜가 없는 사람이오!” 소크라테스의 말에 정치가는 입을 다물고 말았어요. 소크라테스는 다시 작가를 찾아갔어요. “작가는 작품을 쓰려면 지식이 많아야 하지요?” “그럼요.” 작가가 자신 있게 대답했어요. “그렇다면 당신은 지식이 많겠군요?” “그렇다오. 나는 작품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면 그것을 내 감정과 재능으로 표현하여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이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몹시 실망했어요. “그럼 당신은 작품을 쓰는 데 필요한 지식만 알고 있을 뿐이군요. 그렇다면 지혜를 가졌다고 할 수 없지요. 당신은 그저 아는 척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기술자도 찾아가 보았어요. 하지만 기술자 역시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만 알면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어요. 결국 소크라테스는 자신보다 지혜로운 사람을 찾지 못했어요. ‘나는 적어도 내가 지혜가 없다는 걸 알고 있어.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니 다들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구나.’ 순간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전 기둥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맞아.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너의 무지를 알라는 뜻이야. 신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깨우치게 하라고 나에게 신탁을 내린 것이로구나. 그렇다면 내게는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를 깨닫도록 할 책임이 있는 셈이군.” 소크라테스는 그제야 신의 뜻을 이해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아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것은 소크라테스 철학의 중심이 되었어요. 당시 사람들은 신을 사람처럼 생각했어요. 모습도 사람과 비슷하고, 사람처럼 싸우기도 하며, 질투도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돕는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달랐어요. 신은 먼 곳에서 악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이 재물을 바치면 신이 용서한다고 믿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신을 숭배하는 것보다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지혜를 얻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아테네는 도시 국가였어요. 막강한 해군력과 경제력으로 다른 도시 국가에 간섭하다보니 다른 나라들과 사이가 썩 좋지 않았어요. 결국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고 이 전쟁은 30년이나 계속되었어요.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이 전쟁에 세 번이나 나갔어요. 그리고 지휘관의 목숨을 두 번이나 구했지요. 그때마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용기에 감탄했어요.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을 좇지 말고 오로지 지혜를 찾는 데 힘쓰라고 했어요. “전쟁터에서도 생각을 멈추지 말게. 지혜를 구하려 하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야!” 이렇게 소크라테스는 어디서든 지혜를 얻으려고 노력했어요. 소크라테스는 크산티페와 결혼했어요. 하지만 그는 돈을 벌어 오기보다는 연구하고 지혜를 탐구하는 일에만 신경을 썼어요. “당신은 도대체 왜 일을 안 해요? 가장으로서 책임이 있잖아요! 그렇게 돈을 안 벌어 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요!” 아내가 잔소리를 하면 소크라테스는 그저 웃기만 했어요. 하루는 크산티페가 마당에 밀을 널어놓고 일을 나갔어요.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어요. 소크라테스는 제자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밀에 신경도 안 썼어요. 비는 한참 쏟아지다가 그쳤어요. 그러자 집으로 돌아온 크산티페가 잔뜩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어요. “이게 뭐야! 밀이 다 떠내려갔잖아!” 크산티페의 고함 소리를 들은 소크라테스는 제자에게 속삭였어요. “지금 천둥이 몰아치고 있군.” 간신히 얻어 온 밀을 모두 버리게 되었는데도 남편이 태평하게 있는 것을 보고 크산티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어요. 그래서 소크라테스에게 물을 한 바가지 끼얹자, 소크라테스는 또 허허 웃으며 말했어요. “천둥이 치면 비가 오는 게 당연하지.” 이렇게 크산티페는 항상 소크라테스에게 불평을 하고 잔소리를 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크산티페를 악처라고 했지요.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신의 뜻대로 아테네 사람들을 올바르게 이끌 책임을 더 크게 느끼고 있었어요. 그래서 비록 악처지만 혼자 살림을 꾸려 나가고 아이를 키워 주는 크산티페가 늘 고마웠어요. 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제자들과 사과나무 숲으로 갔어요. “자, 각자 마음에 드는 사과 하나만 따 오너라. 단, 다시 숲으로 돌아갈 수 없고 선택은 한 번뿐이다.” 제자들은 가장 좋아 보이는 사과를 하나씩 골랐어요. 소크라테스가 다시 제자들에게 말했어요. “다들 좋은 열매를 골랐겠지?” 그런데 제자들은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누구는 사과를 너무 일찍 골라 좋은 사과를 못 땄다고 하고, 누구는 사과를 너무 늦게 골라 좋은 사과를 못 땄다고 했어요. “스승님, 한 번만 더 고르게 해 주세요. 그러면 지금 들고 있는 것보다 좋은 사과를 고를 수 있을 거예요.” 소크라테스는 어렸을 때부터 못생긴 걸로 유명했어요. 얼굴은 넓적하고 눈은 개구리처럼 툭 튀어나오고, 코는 뭉툭한 데다 콧구멍이 아주 컸어요. 키도 작고 걸음걸이도 이상했으며 늘 낡은 옷을 걸치고 다녔어요. 아이들이 소크라테스를 졸졸 따라다니며 놀려 대면 소크라테스는 웃으며 말했어요. “눈이 툭 튀어나와서 남보다 더 잘 볼 수 있고 콧구멍이 커서 냄새도 더 잘 맡을 수 있단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외모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요. 외모가 뛰어난 사람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지혜로운 소크라테스를 존경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한편에서는 소크라테스를 미워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 가운데 그리스 최고 부자인 알티비데스 역시 소크라테스를 미워했어요. “소크라테스는 잘생기지도 않았고 재산도 없는 가난뱅이야. 그런 사람이 왜 존경을 받지? 나는 집안도 좋고 돈도 많다고! 그런데 왜 나를 더 존경하지 않는 거야!” 알티비데스는 걸핏하면 이렇게 투덜댔어요. 하루는 알티비데스가 우연히 소크라테스를 만났어요. 그는 평소에 자신이 궁금해하던 것을 물었어요. “선생님은 가진 것도 없는데 사람들이 왜 따르고 존경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알티비데스는 소크라테스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비꼬듯이 물었어요. 소크라테스가 세계 지도를 펼치며 말했어요. “알티비데스, 당신은 땅이 많은 부자라지요? 그럼 이 세계 지도 속에 당신의 땅이라고 표시된 곳이 있소?” 알티비데스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어요. “아무리 제가 가진 땅이 넓어도 세계 지도에 나올 리가 없지요. 또 나온다 해도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점으로 표시되겠지요.” 이에 소크라테스가 혀를 차며 말했어요. “쯧쯧쯧, 세계 지도 속에서 찾을 수도 없는 땅을 누가 알아준다고 그렇게 자랑하고 다닙니까?” 알티비데스는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졌어요. 이처럼 소크라테스는 돈이나 외모보다는 아테네 사람들의 내면을 발전시키는 것이 신이 자신에게 준 사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람들과 대화하며 지혜를 찾아다녔어요. 아테네에는 소피스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소피스트는 지혜의 스승이라는 뜻이지요. 소피스트들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말하는 방법이나 지혜 등을 가르치고 돈을 받았어요. 그런데 소피스트 가운데는 온갖 말재주와 거짓말로 부잣집 자녀들에게 돈을 가로채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루는 소피스트가 한 청년에게 말을 걸었어요. “자네 집의 개는 영리한가?” “네. 아주 영리한 암캐입니다. 새끼도 영리하지요.” 소피스트가 다시 물었어요. “자네 머리는 어떤가? 좋은가 나쁜가?” “나쁜 편입니다.”“그러면 자네 어머니도 머리가 나쁘겠군. 머리 나쁜 자식을 낳았으니까 말이야. 자네는 영리한 어미를 만나 영리하게 태어난 강아지만도 못하구먼. 이보게, 내가 자네를 가르쳐 주겠네. 나에게 돈을 내고 배우면 자네 집 강아지처럼 영리해질 거야.” 옆에서 듣고 있던 소크라테스가 참지 못하고 나섰어요. “당신은 왜 머리가 나쁘다는 청년을 영리한 개로 만들려고 하는 것인가? 그럼 돈을 안 받고 가르칠 셈인가?” 소피스트가 발끈해서 말했어요. “내가 바보인가, 돈을 안 받게?” “그 말은 돈을 받으면 바보가 아니고, 안 받으면 바보라는 뜻이군.” 소크라테스의 말에 소피스트는 화를 냈어요. “당신은 누구인데 나서는 거요?” “나는 이 청년의 친구라오.” 그 말에 소피스트는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어요. 이렇게 아테네에는 소피스트들의 꼬임에 빠져 돈을 빼앗기는 청년들이 많았어요. “거짓으로 지식을 사고팔다니, 저들은 마치 엉터리 희극 배우 같아.”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을 그렇게 평가했어요.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소피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했어요. 사실 소크라테스는 돈을 받고 제자들을 가르치지 않았어요. “나는 소피스트가 아니라, 아테네의 등에라오.” 등에는 파리보다 조금 큰 곤충이에요. 길고 뾰족한 입으로 소나 말의 몸에서 피를 빨아 먹지요. 잠이 든 소나 말은 등에가 물면 잠에서 깨고 말아요. “나는 내 조국과 시민들을 위해 등에처럼 잠자는 시민들을 항상 깨어 있게 할 것이오.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설득하고 대화하고 나무랄 것이오.” “그렇다면 스승님이 바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어느 날 한 청년이 물었어요.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사람들이 국가와의 약속인 법을 지키며 사는 나라라오.” 소크라테스는 무엇보다 법을 지키는 것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소크라테스는 평생 아테네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어요. 항상 많은 사람이 따르다 보니 소크라테스의 힘이 커질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생겼지요. 그들은 괜히 소크라테스를 비난하고 모함했어요. “소크라테스는 미치광이야!” “젊은이들을 나쁜 길로 이끌고 있어!”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들과 싸우지 않았어요.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반성하기를 바랐어요. 그런데 하루는 멜레토스라는 사람이 소크라테스를 고소했어요.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모시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청년들에게도 신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국가의 신을 믿지 않는 것은 법에 어긋납니다. 이렇게 계속 소크라테스에게 청년들을 맡기면 청년들도 그처럼 부패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재판을 받게 되었어요.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위해 변명을 했어요. 하지만 무조건 자신이 옳다고 변명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변명이었어요. “나는 신을 믿지 않는 자연 철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늘과 땅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소. 또한 소피스트도 적당한 돈을 받고 진심으로 시민을 가르치는 기술이 있다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오히려 자신에게 불리한 말이었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하늘과 땅을 연구하는 사람은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소피스트들은 신을 믿지 않고 그럴싸한 말로 사람들에게 돈을 뜯어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특히 구름이라는 희극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더욱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어요. 시인인 아리스토파네스는 구름이라는 희극에서 소피스트들을 비아냥거렸어요. 그리고 소크라테스를 대표적인 소피스트로 등장시켰어요. 희극 안에서 소크라테스는 구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요. “신이 화를 내면 천둥이 치고 소변을 보면 비가 온다는 것은 다 거짓이야. 비가 내리는 것도 구름 때문이고, 천둥이 치는 것도 구름 때문이지!” 연극 속의 소크라테스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어요. “이 모든 것은 신이 아닌 자연의 힘이야!” 연극 속에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가 말했어요. “선입견에서 벗어나 새로운 화술과 학문에 몸을 바쳐 자유로이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연극 속에서 소크라테스의 제자는 자신의 아버지를 때리기까지 해요. “이 녀석아, 아버지가 자식을 때리는 법은 있어도 자식이 아버지를 때리는 법은 없다!” 그러자 아들이 대답했어요. “그런 법을 만든 것이 아버지와 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매를 맞은 아들이 매로 대답하는 법을 만들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리스토파네스가 이 작품 제목을 구름이라고 한 것도 소크라테스가 구름처럼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것을 좇는 어리석은 소피스트로 표현하기 위해서였어요. 이 공연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신을 믿지 않고 청년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소크라테스는 애써 변명을 했지만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았어요. 소크라테스를 고소한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벌이 아니라 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나는 신탁을 받은 책임감으로 내 가정을 돌보지 않으면서 여러분을 찾아가 지혜를 찾도록 도왔소. 그런 사람에게 벌을 내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아마 여러분은 내가 국외로 추방될 것을 원할 것이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아테네에 등에처럼 붙어 여러분을 깨우칠 것이오.” 소크라테스는 감옥에서 한 달 정도 지냈어요. 보통 사형이 결정되면 바로 집행했지만 그가 재판을 받을 때 아테네는 제사 기간이었어요. 델로스 섬에서 아폴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를 지내러 간 배가 무사히 아테네로 돌아올 때까지 어떠한 사형 집행도 하지 않았지요. “우리가 나서서 소크라테스를 구해 냅시다!” 사형 집행까지 시간을 번 친구들과 제자들은 소크라테스를 구할 방법을 찾아보았어요. 감옥을 지키는 간수에게도 손을 써 놓고 소크라테스가 도망가서 살 곳도 마련했어요.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친구들은 각오를 단단히 하고, 몇몇 친구들은 도망갈 준비까지 해 두었어요. 곧 델로스 섬에 갔던 배가 돌아올 때가 되었어요. 친구들과 제자들은 서둘러 소크라테스를 찾아갔어요. “이보게, 내일이면 배가 온다네. 어서 도망치세.” “스승님, 얼른 나오세요.”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이미 간수와 보초병에게는 손을 써 놨어. 자네가 지낼 만한 곳도 마련해 두었으니 그냥 일어나서 나오기만 하면 된다네.” “그래요, 스승님. 내일이면 사형이 집행된다고 해요. 얼른 거기서 나오세요.” 잠자코 있던 소크라테스가 말했어요. “우리는 옳지 않은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당연히 하면 안 되지.” “그렇다면 우리가 모두 옳다고 믿는 나라의 법을 지켜야 하나, 지키지 말아야 하나?” 소크라테스의 말에 친구들과 제자들은 할 말을 잃었어요. 아테네 법에는, 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누구든 재산을 가지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가도 좋다고 되어 있었어요. 그러니까 아테네에 머물러 산다는 것은 그 법을 따르기로 약속한 것과 다름없는 것이지요. 법은 국가와 국민의 약속이에요. 그런 법을 어긴다는 것은 소크라테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다들 고맙지만 사형은 내가 선택한 것이네. 이제 와서 나라 밖으로 도망간다는 것은 국법을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동안 약속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라고 주장한 내가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지.” 소크라테스는 말을 이었어요. “또한 내가 도망간다면 내 친구들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모두 국외로 추방되고 재산도 빼앗길 것이 뻔해.” 소크라테스가 다시 말했어요. “나는 국가와의 약속을 지키기로 했네. 내게 불리하다고 도망을 치면 그것은 국가와 한 약속을 깨는 것이네.” “그렇지만 스승님, 지금 도망가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제발.” 제자가 간절히 애원해도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어요. “만약 자신에게 유리할 때는 국가에서 살다가, 국가가 법에 따라 벌을 주려고 할 때 도망을 간다면 우리 조국은 어떻게 되겠는가? 조국은 우리를 낳아 주고 길러 준 곳이네. 나는 조국의 법에 따라 재판을 받았고, 나에게 사형을 선고한 이 법이 정당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법을 어길 수는 없네. 아무리 악한 법이라도 지켜야 하네.” 소크라테스는 단호하게 말했어요. “악법도 법이라네!” 며칠 후, 소크라테스는 법에 따라 독이 든 술을 마시고 죽음을 맞이했어요. 친구들과 제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자 소크라테스는 단호하게 말했어요. “조용히 하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말게!” 그렇게 말하고서 소크라테스는 70년의 생애를 마쳤어요. 평생 허름한 옷을 입고 맨발로 다닌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자연스럽게 진리를 퍼뜨렸어요. 또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지혜를 찾아다녔어요. 그리고 비록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희생되었지만 끝까지 국가와의 약속을 지켰어요.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찾아낸 진리는 훗날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어요. 소크라테스는 지금까지 예수, 붓다, 공자와 더불어 4대 성자로 불리며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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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수녀는 1910년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났어요. 테레사 수녀의 본명은 아그네스였어요. 부모님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는데 아버지는 아그네스가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났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집안의 가장 역할을 맡아야 했답니다. 아그네스는 열 살 때부터 가톨릭 청년 단체에 들어가 가톨릭 교리 공부를 했어요. 이때 한 예수회 신부님과의 편지 교환을 통해 처음으로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알게 됐어요. “인도 사람들은 대부분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순박하고 선한 사람들입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신부님의 편지는 아그네스를 몹시 감동하게 했어요. 한편으로는 인도의 비참한 현실이 너무나 마음 아프게 다가왔어요. 어느 날,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하던 아그네스는 마침내 수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그때 아그네스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어요. “어머니, 저는 수녀가 돼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인도에는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대요. 제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어요.” “생각은 기특하다만, 나이도 어린데 머나먼 인도라니.” 아그네스의 이야기를 듣고 난 어머니는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어요. 하지만 아그네스의 결심이 확고한 것을 알고 따뜻한 격려의 말을 해 주었어요. “아그네스, 네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항상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한다.” 아그네스는 가족들을 떠나 아일랜드에 있는 로레토 수녀원으로 들어갔어요. 이곳에서 2년간 수도회 규칙과 인도어를 익힌 아그네스는 수녀가 되기 위해 ‘테레사’라는 이름을 받았어요. 그 뒤 테레사 수녀는 로레토 수녀회가 운영하는 인도 콜카타의 엔탈리 학교에서 역사와 지리, 영어를 가르쳤어요. 테레사 수녀는 가르치는 일을 아주 좋아했어요. 학생들도 테레사 수녀를 잘 따랐지요. 나중엔 테레사 수녀가 이 학교 교장이 되었답니다.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테레사 수녀는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수녀랍니다!” 로레토 수녀원의 담장 뒤로는 모티즈힐이라는 마을이 있었어요. ‘진주 호수’라는 뜻을 가진 모티즈힐은 콜카타에서 가장 비참한 빈민가였어요. 어느 날 테레사 수녀는 모티즈힐을 지나다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제발 먹을 것 좀 주세요!” 그곳에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먹을 것을 구걸하고 있었어요. 길거리에는 헐벗고 병든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어요. 배가 고파 우는 아이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노인들, 핏기 없는 얼굴로 손을 내미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친 순간 테레사 수녀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어요. “이렇게 고통받는 이웃들이 있는 것도 모르고 수녀원 담장 안에서 나만 편안하게 지냈구나!” 테레사 수녀는 용기를 내어 대주교를 찾아갔어요. “저는 수녀원을 떠나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겠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수녀원 안에서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대주교는 굳이 수녀원을 떠나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테레사 수녀는 단호하게 말했어요. “제가 수녀원을 떠나려는 이유는 의료 선교회에 들어가서 병자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교황청에 편지를 보내 허락을 구하십시오.” 대주교가 할 수 없다는 듯 말했어요. 그리하여 교황청의 허락을 받기까지 꼬박 2년이 더 걸렸어요. 드디어 테레사 수녀는 그녀가 원한 대로 파트나에 있는 성가족 병원에서 응급 처치와 간호법을 배울 수 있었어요. 상처를 치료하는 법과 주사 놓는 법을 비롯하여 산모의 출산을 돕는 방법도 모두 익혔어요. 테레사 수녀는 수녀복 대신 흰색 무명 사리를 걸치고 모티즈힐로 돌아왔어요. 사리는 힌두교를 믿는 인도 여성들의 전통 의상이에요. 부자들은 화려한 색상의 비단 사리를 입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흰색 무명 사리를 입었어요. 모티즈힐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어요. 거리에서 만난 다섯 명의 아이들이 첫 번째 학생이었어요. 테레사 수녀는 나무 그늘 밑에 아이들을 앉혀 놓고 나무 막대기로 알파벳을 가르쳤어요. “저기서 수녀님이 고아들 데리고 뭐 하는 거지?” “아마도 공부를 시키는 것 같은데?”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어요. “우리 아이도 가서 배우라고 해야겠다!” 테레사 수녀가 길거리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은 많은 마을 사람들을 감동시켰어요.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칠판을 가져오고, 어떤 사람은 의자를 만들어 주었어요. 학생들도 점점 늘어나 서른 명이나 되었어요. “누추하지만 저희 집을 아이들 교실로 써도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집을 선뜻 학교로 제공하기도 했어요. 그 옛날 테레사 수녀가 가르쳤던 제자들도 하나둘 찾아와 돕기를 자청했어요. 그들도 테레사 수녀처럼 흰색 무명 사리를 입고 활동했어요. 테레사 수녀는 그들과 함께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했어요.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은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치고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며 거리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을 했어요. 그러자 로마 교황청은 사랑의 선교회를 정식 수녀회로 인정했어요. 어느 날 콜카타 거리의 시궁창에 한 여인이 쓰러져 있었어요. “여보세요! 정신 차려요!” 테레사 수녀가 여인을 흔들어 깨웠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자세히 보니 시궁쥐가 몸을 갉아 먹고 있었어요. 당시 이런 일은 너무나 흔하게 일어났어요. 병든 사람들이 거리에 쓰러져 있으면 굶주린 시궁쥐들이 달려들어 저항할 힘도 없는 육신을 갉아 먹는 거예요. 테레사 수녀는 여인을 들쳐 업고 병원으로 뛰어갔어요. “살려 주세요! 사람이 죽어 가요!” 병원 사람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테레사 수녀의 외침을 못 들은 척했어요. “이봐요! 사람이 죽어 간다고요!” 테레사 수녀는 마구 소리를 질렀어요. 그랬더니 한 병원 직원이 퉁명스레 대꾸했어요. “보호자도 없는 노숙자를 데려오면 어쩌란 말이오?” 병원에서 환자를 외면하는 것은 결국 돈 때문이었어요. 테레사 수녀는 기가 막혔어요. “이대로 놔두면 이분은 결국 죽고 말아요. 사람 목숨은 살려 놓고 보는 게 의사가 할 일 아닌가요?” 테레사 수녀는 겨우겨우 의사들을 설득해서 여인을 입원시킨 뒤 콜카타 시청을 찾아갔어요. “병든 부랑자들을 무료로 치료할 수 있도록 자그마한 병원이라도 지어 주세요.” “뜻은 알겠지만 시에 그럴 만한 돈이 없습니다.” 시청 직원이 난색을 표하자 테레사 수녀가 말했어요. “그럼, 나머지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장소만이라도 빌려주세요. 사람이 길거리에서 죽어 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요?” 테레사 수녀의 간곡한 설득에 시에서는 결국 오래된 힌두교 사원 한 귀퉁이의 숙소를 내주었어요. 테레사 수녀는 이곳을 ‘영생의 집’이라 이름 지었어요. 테레사 수녀와 사랑의 선교회 회원들은 거리의 부랑자들 가운데 몸이 아픈 사람들을 모두 데려와 정성껏 보살펴 주었어요. 영생의 집은 금세 널리 알려졌어요. 테레사 수녀는 죽어 가는 사람일지라도 사랑과 존중 속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루는 길가의 시궁창에서 한 남자를 발견했어요. 얼굴을 제외하고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어요. “아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세요.” 테레사 수녀는 그를 영생의 집으로 데려와 열심히 간호했으나 워낙 병이 깊었어요. 그는 꺼져 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어요. “그동안 저는 거리의 짐승처럼 살아왔습니다. 한번도 따뜻한 정을 느껴 본 적이 없었지요. 고맙습니다! 이젠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남자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눈을 감았어요. 힌두교인들은 영생의 집 운영에 극구 반대했어요. 자신들과 종교가 다른 수녀들이 사원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게 못마땅했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한 정치가에게 항의하며 도움을 청했어요. “수녀들이 신성한 사원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힌두교인들과 함께 영생의 집을 찾은 정치가는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수녀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어요. “저 수녀들과 병자들을 꼭 여기서 쫓아내야겠습니까?” 정치가가 힌두교인들에게 물었어요. 그러자 흥분한 한 힌두교인이 큰 소리로 외쳤어요. “지금 이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하십니까?” 이번에는 정치가가 그 힌두교인에게 물었어요. “그렇다면 지금 저 수녀들이 하는 일을 당신 어머니나 누이들이 대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이 말에 힌두교인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어요. 그러던 중 한 힌두교 승려가 전염병에 걸렸어요. “함께 있다간 괜히 우리까지 병에 걸릴 수 있어!” 힌두교인들은 전염병이 옮을까 두려워 환자를 신전 밖으로 내보냈어요. “저대로 놔두면 죽을 게 뻔한데, 우리가 치료해 줍시다!” 테레사 수녀는 힌두교 승려를 안으로 데려와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과 함께 정성껏 돌봐 주었어요. 힌두교인들은 어안이 벙벙했어요. “겁도 없이 뭐 하는 짓이지?” “잠깐 저러다 말겠지, 뭐. 다 우리 보라고 하는 쇼야!” 그들은 자기들끼리 수군대며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어요. 하지만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은 그들이 보건 말건 환자를 열심히 간호했어요. 얼마 후 전염병에 걸린 힌두교 승려는 기적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났어요. 그 모습을 본 힌두교인들은 이제 더 이상 영생의 집 반대 운동을 하지 않았어요. 테레사 수녀의 숭고한 봉사(奉仕) 정신이 널리 알려지면서 사랑의 선교회와 뜻을 함께하려는 수녀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어요. 더 큰 집이 필요하게 된 사랑의 선교회는 콜카타의 3층 건물로 옮겨 ‘마더 하우스’라 이름 지었어요. 이때부터 사람들은 테레사 수녀를 ‘마더’라고 불렀어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어머니라는 뜻이었어요. 얼마 뒤 테레사 수녀는 ‘시슈 브하반’을 설립했어요. 시슈 브하반은 ‘순결한 아이들의 집’이라는 뜻으로, 장애가 있거나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집이에요. 어느 날, 한 젊은 여인이 아이를 안고 이곳에 찾아왔어요. “이곳에 오기 전에 아이에게 먹일 우유를 조금 얻으려고 몇 군데의 수녀원을 찾아갔어요. 하지만 우유는커녕 욕만 잔뜩 얻어먹었지요.” 말을 마친 여인은 서럽게 울기 시작했어요. “울지 마세요. 제가 우유를 드릴게요.” 테레사 수녀는 여인을 위로하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어요. 하지만 여인은 계속 울기만 했어요. “고맙습니다만 수녀님, 이제 우유는 필요 없답니다.” 한참을 서럽게 흐느끼던 여인이 힘들게 입을 열었어요. 테레사 수녀는 깜짝 놀라 아이를 확인해 보니, 안타깝게도 아이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어요. 엄마가 우유를 얻으려고 사방을 헤매는 동안 아이는 끝내 숨이 끊어진 거예요. 콜카타에는 어딜 가나 영양실조로 죽어 가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결핵으로 목숨을 잃는 아이들도 부지기수였지요. 철도역이나 하수구에 버려지는 경우도 이루 헤아릴 수 없었어요. 테레사 수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버려진 아이들을 발견하거든 모두 데려오세요. 사랑에 굶주린 모든 아이들이 우리의 보호 대상입니다. 우리는 한 명의 어린이도 거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시 인도는 한센병 환자가 점점 늘어나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었어요. 전 세계 2천만 명에 달하는 한센병 환자 중에 5만여 명이 콜카타에 살고 있었어요. 한센병은 심하면 몸이 썩어 들어가고 피부가 짓무르기 때문에 한센병 환자를 괴물 취급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한센병은 치료만 잘하면 나을 수 있는 병이에요. 그런데 인도에는 한센병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이 한 군데도 없었어요. 그로 인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절망적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지요. “한센병은 전염성이 낮고 불치병도 아닙니다. 그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줍시다.” 테레사 수녀는 사람들에게 한센병 환자 돕기를 호소하며 이동 진료소를 만들어 그들을 찾아다녔어요. 가장 중요한 건 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는 일이었어요. “수녀님은 저희가 무섭지 않으세요?” 한센병을 앓는 한 소년이 물었어요. 테레사 수녀는 그 소년을 씻기던 손을 들어 보였어요. “봐라. 아무렇지도 않잖니?”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우릴 마치 괴물처럼 대하잖아요.” 소년은 고개를 숙인 채 울먹였어요. “그들이 잘 몰라서 그래. 네가 말끔히 낫는 모습을 보여 주렴!”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소년이 애처롭게 되물었어요. 테레사 수녀는 다정하게 소년의 볼을 어루만져 주었어요. “희망을 가지렴. 점점 나아질 거야.” “고맙습니다, 수녀님!” 소년은 벌써 다 낫기라도 한 듯 기쁨의 눈물을 흘렸어요. 테레사 수녀와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에게 한센병 환자를 씻기고 안아 주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웠어요. 환자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안이 되었어요. 테레사 수녀와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은 매일 약품을 가득 실은 다섯 대의 구급차를 타고 티타가르로 향했어요. 티타가르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에요. “당신들은 잠시 몸이 불편한 것뿐이에요. 아픈 건 죄가 아니에요. 절대로 움츠러들지 말아요.” 테레사 수녀는 환자들을 격려하며 목욕하는 방법,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는 방법, 간단한 응급 처치와 수술법 등을 가르쳤어요. 아울러 사회와 격리된 채 살아가는 그들을 위해 바느질과 목공예, 벽돌 만들기, 집 짓기 등 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쳤어요. 육신의 고통보다 더한 좌절감에 빠져 신음하던 환자들은 점차 새 삶에 대한 희망을 얻게 되었어요. 그렇게 한두 해가 지나자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상처에 새 살이 돋고 있어요!” 마을 곳곳에서 믿기 힘든 탄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인도 정부는 한센병 환자들의 요양소를 지을 수 있도록 4만 평이나 되는 넓은 땅을 테레사 수녀에게 내주었어요.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수많은 한센병 환자들이 완치되는 것을 보고 감동한 거예요. 테레사 수녀는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요양소를 짓고 ‘평화의 집’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환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벽돌을 쌓고, 못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었어요. “이곳은 여러분의 힘으로 건설한 소중한 보금자리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땀방울이 아니었다면 이번 일은 성공할 수 없었을 거예요.” 평화의 집이 완성되었을 때 테레사 수녀는 환자들을 격려하며 눈물을 흘렸어요. 평화의 집은 자기 한 몸 간수하기도 어려운 환자들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직접 지은 재활촌이에요. 이런 시설은 계속해서 인도 곳곳에 세워졌어요.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인도를 방문했어요. 교황은 로마로 돌아가기 전 마더 하우스를 찾아와 수녀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이렇게 말했어요. “테레사 수녀, 부디 제 성의라 생각하고 받아 주십시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러 다닐 때 이 차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교황은 자신이 인도 방문 때 타고 다니던 고급 승용차를 테레사 수녀에게 선물했어요.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은 먹는 것 입는 것 모두 아껴 가며 최대한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했어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면 한 푼이라도 허투루 쓸 수 없기 때문이었어요. 그 상황에서 고급 승용차는 꿈도 못 꿀 일이었지요. 테레사 수녀는 교황의 배려를 고맙게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테레사 수녀가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어요. 그 차를 팔아서 한센병 환자를 돕는 사업에 썼거든요. 교황이 다녀간 뒤 세계 곳곳에서 후원자들이 나타났어요. 대통령, 국왕, 국회 의원, 기업가들부터 학생, 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성금을 보내왔어요. 수녀가 되어 테레사 수녀와 같은 길을 가겠다고 하는 여성들, 힘을 쓰는 일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찾아오는 육체 노동자들도 줄을 이었어요.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젠 제가 더 바빠지게 생겼어요!” 테레사 수녀는 몸이 안 좋은 상황에도 일거리가 늘어난 것을 기뻐하며 인도 곳곳에 사랑의 선교회 지부를 세웠어요. 약국, 결핵 진료소, 한센병 환자를 위한 이동식 진료소, 노숙자를 위한 숙소,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집, 보육원과 탁아소, 초등학교와 중학교, 무료 급식소 등이 사랑의 선교회 이름으로 세워졌어요. 이제 테레사 수녀의 사랑과 봉사는 전 세계의 화제가 되었어요. 굶주린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음식이에요. 집 없는 사람에게는 당장 쉴 곳이 필요하지요. 하지만 남의 도움을 받고 살아가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테레사 수녀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사람들이 가난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려면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해!” 테레사 수녀는 빈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남자들에게는 목공이나 금속 세공 등의 기술을 가르치고 여자들에게는 자수, 바느질, 육아, 살림을 가르쳐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될 때 느끼는 고독감은 가난 중에서도 최악의 가난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에게 평소 이런 말을 자주 했어요. 상대방의 자존심까지 살펴 주는 것이 진정한 배려이며 봉사의 참뜻이라는 말이에요. 그러던 어느 날, 고향의 언니한테서 편지가 왔어요.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편지였어요. 테레사 수녀는 고향을 떠난 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한 번도 가족을 만나러 가지 못했어요. 그동안 마케도니아는 유고슬라비아의 침략으로 공산 독재 정권의 지배를 받게 되었어요. 테레사 수녀는 적십자사의 도움으로 고향 근처까지 갔지만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부딪혔어요. “가족을 만나려면 인도로 돌아가는 것은 포기하시오.” 테레사 수녀가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것에 부담을 느낀 유고슬라비아는 억지 조건을 달았어요. “일 분만이라도 좋으니 어머니를 보게 해 주세요!” 눈물로 애원하던 테레사 수녀는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부터 불과 십 분 거리밖에 안 되는 곳에서 발길을 돌리고 말았어요. 가난한 인도 사람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거예요. 어머니는 2년 후 끝내 딸의 얼굴을 못 본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1977년, 엄청난 해일이 인도 동부 해안을 덮쳤어요. 바닷물이 육지로 넘쳐 들어오는 현상을 해일이라고 해요.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마다 참혹한 비극이 잇달았어요. 주민 2백만 명이 집을 잃었고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어요. 사나운 폭풍우에 사람들이 휩쓸려 간 것도 모자라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가진 사랑으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홍수가 난 지역에 비상 대책 센터를 세우고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과 함께 매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옷과 음식을 나눠 주고 전염병 예방 주사를 놓아 주는 등 지칠 줄 모르고 봉사 활동을 펼쳤어요. 대부분 집과 가족을 잃고 넋이 나가 있던 생존자들은 수녀들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몸과 마음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어요. 1979년, 노벨 평화상 위원회는 테레사 수녀를 수상자로 선정했어요. 이제 사람들은 테레사 수녀를 ‘가난한 사람들의 성녀’ 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각국의 언론사 기자들이 테레사 수녀를 취재하기 위해 노벨 평화상 시상식장으로 몰려들었어요. 테레사 수녀는 그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사실 제가 한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배가 고파서 길가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데려다 밥을 먹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어렵고 중요한 일은 부모나 형제,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버려진 그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일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베풀어 주기를 호소하며 이렇게 덧붙였어요.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물질의 빈곤이 아니라, 사랑의 빈곤입니다.” 1950년 설립된 사랑의 선교회는 현재 전 세계 200여 개국에 600여 개의 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수천 명의 수녀와 수사, 수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활동에 참여하고 있어요. 테레사 수녀는 노벨 평화상 외에도 인도의 파트아 슈리상, 미국의 슈바이처상, 로마 교황청의 교황 요한 23세 평화상 등 세계 각국에서 100개가 넘는 상을 받았어요. 대부분 인권에 관계되는 상이에요. 테레사 수녀는 사람들이 자신을 칭송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하느님의 손에 쥐어진 작은 몽당연필에 불과합니다. 글을 쓰는 일은 그분이 다 하십니다.” 평생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을 위해 살아왔지만 신의 뜻에 따른 것뿐이라는 겸양의 미덕으로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있는 거예요. 노벨상은 성대한 파티를 열어 주는 것으로도 유명해요. 하지만 파티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지요. 테레사 수녀는 파티 값으로 나가는 돈이 너무 아까웠어요. “내가 노벨상을 탄 것은 가난한 사람들 덕분입니다. 그러니 나를 위한 파티는 생략하고 그들에게 기부하면 어떨까요?” 노벨상 위원회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테레사 수녀가 파티를 거절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 기부금이 잇따라 들어왔어요. 그렇게 해서 모아진 기부금에 파티 비용까지 합쳐서 약 3만 9천 파운드가 사랑의 선교회에 전달되었어요. 테레사 수녀는 어떤 상이든 큰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 다만 상금을 좋은 일에 쓰려고 했을 뿐이에요. 1981년 5월, 테레사 수녀는 한국을 방문했어요.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수환 추기경의 초청에 테레사 수녀가 흔쾌히 응한 거예요. 테레사 수녀는 당시 일흔 살이 넘은 나이였어요.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기에는 무리한 나이임에도 공항에 내려선 테레사 수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어요. 당시 테레사 수녀를 보려고 공항까지 나온 환영 인파만 300여 명에 달했답니다. 별도로 마련된 기자 회견장에서 한 기자가 물었어요. “가난은 구제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자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말했어요. “여러분과 내가 가난을 나눌 때 이미 그것은 가능한 일이 됩니다.” 그리고 또 이런 말도 했어요. “가난을 나눈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한국의 이 도시에서만이라도 외롭게 죽어 가는 사람들이 없도록 사랑을 실천한다면 세상의 가난은 사라질 것입니다.” 결국 위대한 기적은 작은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말이지요. 테레사 수녀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모금을 다니다 가끔 거지 취급을 받기도 했어요. 그럴 때면 신앙심으로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어요. “굶주린 사람,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 이 땅의 소외된 모든 사람들은 내가 섬겨야 할 신의 다른 모습이다.” 어떤 술집에서는 취객이 끼얹은 맥주를 뒤집어쓰기도 했어요. “저에게 시원한 맥주를 기부하셨군요, 선생님.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서는 무엇을 기부하시겠습니까?” 테레사 수녀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어요. 그러자 실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지요. 잠시 후 한 손님이 머뭇거리며 모금함에 돈을 집어넣었어요. 이어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 모금에 동참했어요. 나중엔 맥주를 끼얹은 사람도 겸연쩍은 듯 지갑을 열었어요. 그 순간 지갑 사이로 흘러내린 명함이 바닥에 떨어졌어요. 테레사 수녀는 그 명함을 집어 주며 친절하게 말했어요. “스미스 씨, 아이들이 당신의 이름을 기억할 겁니다.” “테레사 수녀님!” 길거리에서 구걸하던 소년이 테레사 수녀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달려왔어요. “제가 수녀님께 돈을 드리고 싶은데 이것밖에 없어요.” 소년은 빵 한 조각 살 수 있는 정도의 동전을 조심스럽게 내밀었어요. 테레사 수녀는 잠시 골똘한 생각에 잠겼어요. ‘만약 내가 돈을 받으면 이 아이는 오늘 저녁을 굶겠지. 하지만 돈을 받지 않으면 마음에 상처를 받을 거야.’ 테레사 수녀는 기쁜 얼굴로 소년이 내민 동전을 받았어요. “덕분에 오늘 다른 한 사람이 굶지 않을 수 있게 되었구나. 고맙다!” 그 순간 소년의 얼굴이 활짝 펴졌어요. 비록 자기는 저녁을 굶더라도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게 소년을 행복하게 만든 거예요. 테레사 수녀는 이것을 ‘나눔의 효과’라고 불렀어요. “죽어 가는 사람들을 결코 혼자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테레사 수녀가 봉사 활동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이며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원칙이었어요. 1985년 12월 25일, 테레사 수녀는 미국의 뉴욕 시에 에이즈 환자를 위한 집을 열었어요. 사람들이 한센병 환자만큼이나 에이즈 환자를 끔찍하게 여기던 때였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모두 거절당한 채로 이렇게 비참하고 절망적인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건 너무나 불행한 일이에요.” 테레사 수녀는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그들을 가족처럼 대해 주었어요.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환자들은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했어요. 테레사 수녀는 이때의 교훈을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친절한 말은 짧고 말하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그 메아리는 영원히 울려 퍼집니다.” “오늘날 가장 큰 병은 결핵이나 한센병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무관심입니다. 빵 한 조각 때문에 죽어 가는 사람도 많지만 사랑받지 못해 죽어 가는 사람은 더 많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틈날 때마다 이웃에 대한 관심의 중요성을 호소했어요.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정작 그들이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한번은 어린 남자아이가 길바닥에 앉아 있었어요. “부모한테 버려진 모양이에요. 우리가 데려갑시다.” 테레사 수녀는 수녀들과 함께 아이를 평화의 집으로 데려가 깨끗이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어요. 아이는 무척 허기가 졌던지 허겁지겁 밥을 먹었어요. 그리고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평화의 집을 나가 버렸어요. 수녀들이 온 도시를 헤맨 끝에 겨우 찾아낸 아이는 이튿날 저녁에 또 어디론가 가 버렸어요. 도대체 아이는 왜 자꾸 도망을 치는 걸까요? 수녀들은 다시 사라진 아이를 찾아 나섰어요. 이번에는 좀처럼 아이를 발견할 수가 없었어요. 밤중에 비까지 내려서 길이 너무 어두웠기 때문이에요. 수녀들은 날이 밝아서야 그 아이를 찾아냈어요. 아이가 그 캄캄한 빗속을 밤새 달려 찾아간 곳은 부랑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엄마 옆이었어요. 테레사 수녀는 이때 커다란 교훈을 얻었어요.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 주는 것은 가족의 사랑뿐이며,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서 느끼는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예요.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에게 그대가 가진 최고의 것을 주십시오. 물론 그것은 결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최고의 것을 주십시오.” 테레사 수녀는 늘 이렇게 말했어요. 쓰고 남은 것으로 남을 돕는 것은 값싼 동정이지, 결코 봉사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1996년, 테레사 수녀는 심장 마비로 병원에 입원했어요. “나는 죽음 앞에서도 가난하고 싶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의사들의 치료를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어요. “병원 구경도 못 하고 죽어 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토록 안락한 침대에 누워 있는 것도 사치입니다. 왜 나만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합니까?” “수녀님은 연로하셔서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이 정도는 절대 사치가 아닙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의 간곡한 설득이 이어졌어요. 테레사 수녀는 이때 이미 아흔 살이 가까운 나이였어요. 그녀가 수술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불교도들, 힌두교도들, 시크교도들, 이슬람교도들을 포함한 인도 사람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쾌유를 빌어 주었어요. 마침내 타 종교 사람들에게도 진심이 통했던 거예요. 많은 사람들의 기도 덕분에 수술은 무사히 끝났어요. 테레사 수녀는 이듬해 미국 의회에서 인도주의적 자선 활동가에게 주는 황금상을 받았어요. 그동안 미국과 홍콩을 비롯한 전 세계 여러 나라에 장애아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집이 문을 열었어요. 1997년 9월 5일, 테레사 수녀는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에 둘러싸여 평화롭게 눈을 감았어요. 인도 정부는 국장을 선포했어요. 테레사 수녀의 장례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새벽부터 수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어 작별 인사를 나누었어요. “죽어 가는 사람들의 어머니였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친구였던 테레사 수녀님!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장례식은 종교와 인종을 초월하여 전 세계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치러졌어요. 마더 하우스에는 테레사 수녀의 관이 안치되어 있어요. 지금도 해마다 수많은 참배객들이 마더 하우스를 찾아 그녀의 숭고한 생애에 경의를 표한답니다.
아프리카의 위대한 성자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슈바이처는 1875년 독일과 프랑스의 접경(接境) 지역인 알자스에서 태어났어요. 이곳은 슈바이처가 태어났을 때는 독일 땅이었으나 그전에는 프랑스 땅이었어요.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면서 다시 프랑스 땅이 되었어요. 이런 복잡한 사정 때문에 슈바이처는 어릴 때부터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둘 다 배울 수 있었어요. 당시 어머니는 어린 슈바이처를 데리고 마을 근처의 공원으로 자주 산책을 나갔어요. 공원에는 유명한 조각가가 만든 동상(銅像)이 서 있었어요. 슈바이처가 가리킨 것은 장군의 발 아래쪽에 머리를 푹 숙인 채 죄인처럼 엎드려 있는 흑인 남자였어요. 어머니는 그가 아프리카의 흑인이라고 말해 주었어요. 그러자 슈바이처가 다시 물었어요. “저 흑인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저렇게 엎드려 있어요?” “이 동상은 프랑스가 아프리카를 정복한 것을 기념(記念)하려고 세운 거야. 아마도 장군이 흑인들에게 항복을 받았다는 뜻이겠지.” “어쨌든 저 흑인이 무얼 잘못한 건 아니잖아요?” 슈바이처가 다시 묻자 어머니가 대답했어요. “네 말대로 저 흑인이 뭘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니란다. 가난하고 힘이 없어 정복당했을 뿐이야.” “흑인들이 너무 불쌍해요.” 슈바이처는 어머니로부터 강대국(强大國)에 점령당해 고통을 받은 아프리카 흑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목사인 아버지도 교회 예배 시간에 아프리카 흑인들의 비참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해 주었어요. “흑인도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누구도 그들을 짐승처럼 팔아넘길 권리가 없습니다. 백인들은 그들의 보금자리를 빼앗는 것도 모자라서 노예로 팔아먹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만행(蠻行)을 하루 속히 멈춰야 합니다.” 슈바이처는 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렸어요. 그리고 장군의 발아래 엎드려 있는 흑인을 바라보면서 한 가지 다짐을 했어요. “제가 나중에 아프리카 흑인들을 도와줄 거예요!” “어떻게?” 슈바이처는 어머니의 물음에 선뜻 대답을 못 했어요. 하지만 그 흑인의 모습은 보면 볼수록 마음이 아팠어요. 이미 슈바이처의 가슴속에는 인류에 대한 봉사(奉仕) 정신이 싹트고 있었던 거예요. 아버지는 2남 3녀 중 맏이인 슈바이처가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 연주(演奏)를 가르쳤어요. 슈바이처는 악보(樂譜)만 있으면 어려운 곡도 척척 연주했어요. 초등학교 1학년 음악 시간 때 일이에요. 선생님이 오르간을 연주하며 노래를 가르쳤어요. 그런데 갑자기 슈바이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선생님, 멜로디만 치지 말고 악보를 보셔야죠.” 슈바이처는 오르간 연주에 서툰 선생님이 대강 멜로디만 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거예요. “그럼 네가 한번 연주해 보렴.” 선생님은 슈바이처가 한 소절도 틀리지 않고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어요. 이런 음악적 재능은 아버지의 교회에도 도움이 되었어요. 슈바이처가 아홉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말했어요. “예배 시간에 오르간 연주를 맡아 주겠니?” 슈바이처는 아버지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어요. “항상 어려운 이웃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남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이란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항상 이렇게 가르쳤어요. 아버지가 목사였지만 슈바이처네 집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어요. 마을 사람들도 다들 형편이 좋지 않았지요. 슈바이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어요. “우리가 부자도 아닌데 어떻게 어려운 이웃을 도와요?” 아버지가 말했어요. “꼭 돈이 있어야 남을 도울 수 있는 건 아니란다. 자기가 가진 재능(才能)으로도 남을 도울 수 있지.” 어린 슈바이처는 그 말을 골똘히 생각해 보았어요. ‘내가 가진 재능으로 남을 돕는다고?’ 결국 남을 도우려면 먼저 자신의 능력(能力)을 키워야 한다는 뜻이었어요. 이런 깨달음은 슈바이처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어요. 마을 뒤편으로 넓은 포도밭이 펼쳐져 있었어요. 슈바이처와 친구들에게는 아주 좋은 놀이터였어요. “빨리 가자!” 친구들이 슈바이처를 향해 손짓을 했어요. 슈바이처는 고무줄로 만든 새총을 들고 친구들을 따라갔어요. “하나, 둘, 셋, 하면 다 같이 쏘는 거야.” 한 친구가 말했어요. 포도나무 위에 참새들이 내려앉기를 기다렸다가 다 함께 새총을 발사(發射)할 생각이었어요. 슈바이처는 심호흡을 하고 돌멩이를 새총에 끼웠어요. “하나.” 한 친구가 작은 소리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슈바이처는 셋을 셀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어요. “난 못 하겠어.” 슈바이처는 순간 참새 떼가 앉아 있는 곳을 향해 새총을 집어 던졌어요. 놀란 새들이 허공(虛空)으로 흩어졌어요. “야, 왜 그래?” 한 친구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소리쳤어요. “얘들아, 미안해!” 슈바이처는 아버지의 교회를 향해 냅다 뛰어갔어요. 숨이 턱에 닿도록 뛰면서도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어요. 자신이 새들을 구했다는 안도감(安堵感) 때문이었어요. 아버지는 모든 생명은 다 소중(所重)하다고 말했어요. 친구들과 같이 새총을 쐈다면 분명 참새 몇 마리는 죽고 말았을 거예요. 이 일로 슈바이처는 한동안 친구들에게 미움을 받았어요. “배신자!” “참새를 잡기 싫으면 너 혼자 그만둘 것이지 왜 우리가 사냥하는 것까지 방해하는 거야?” 슈바이처는 따지고 드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너희한텐 정말 미안해. 하지만 난 새들이 너무 가여워서 새총을 쏠 수가 없었어.” 당시 알자스에 사는 독일인들은 괜히 죄도 없는 유대인들을 미워하고 멸시(蔑視)했어요. “유대인은 가장 천하고 더러운 족속(族屬)이다!” 슈바이처가 살던 이웃 마을에도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어요. 어른들이 대놓고 유대인들을 깔보자 철모르는 아이들도 힘없는 유대인들을 상대로 짓궂은 장난을 치고는 했어요. 어느 날 슈바이처는 친구들과 숲으로 놀러 갔어요. “어이, 영감!” 한 아이가 앞쪽을 가리키며 외쳤어요. 낡은 옷차림의 유대인 할아버지가 지나가고 있었어요. “영감, 어디 가?” 아이들은 할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가며 약을 올렸어요. 슈바이처도 별생각 없이 아이들을 따라갔어요.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놀리는데도 조용히 미소만 지었어요. 아이들은 계속 뒤따라가며 버릇없이 굴었어요.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가던 길을 갔어요. ‘다른 어른들 같으면 아무리 어린아이들이라도 야단을 치며 혼냈을 텐데 저렇게 참기만 하다니.’ 슈바이처는 순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어요. 어른을 놀리는 건 나쁜 행동이라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무심코 아이들을 따라다니는 자신이 부끄럽게 생각된 거예요. 며칠 후, 그 유대인 할아버지와 우연히 다시 마주쳤을 때 슈바이처는 먼저 다가가 정중(鄭重)하게 인사를 건넸어요.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친구들은 누구나 함부로 대하는 유대인에게 예의(禮儀)를 갖추는 슈바이처를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았어요. “어른을 놀리면 안 되는 거잖아.” 슈바이처는 오히려 그런 친구들을 설득했어요. 유대인이라고 무조건 업신여기는 건 옳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내 수입(收入)으로는 오 남매를 키우기가 벅차구나. 이제부터 너는 작은할아버지 댁에 가서 지내도록 해라.” 슈바이처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버지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어요. 장남만이라도 친척 집에 보내 공부를 시키려고 한 거예요. 슈바이처는 부모 형제와 떨어져 살기 싫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어요. 얼마 후, 슈바이처는 작은할아버지 댁으로 갔어요.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성품을 지닌 작은할아버지는 슈바이처를 격려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 둘만 살아서 적적했는데 네가 와서 기쁘구나. 아무 걱정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렴!” 자식이 없는 작은할아버지 부부는 슈바이처를 친자식처럼 잘 돌보아 주었어요. 덕분에 슈바이처는 학비(學費) 걱정 없이 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되었어요. 슈바이처는 고등학교 때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특히 라틴어에서 실력(實力)이 많이 뒤처졌어요. “라틴어는 무엇보다도 공부 방법이 중요해.” 라틴어를 가르치는 베만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항상 공부법이 중요하다고 했어요. 슈바이처는 베만 선생님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았어요. “선생님, 전 라틴어를 잘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전 소질이 없나 봐요.” “노력해서 안 되는 건 없단다. 너도 잘할 수 있어!” 베만 선생님은 슈바이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어요. 그 후 슈바이처의 라틴어 성적은 점점 좋아졌어요. 베만 선생님은 언제나 교재(敎材)를 철저히 준비했어요. 슈바이처는 이런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어요. 당시에 뮌히 선생님은 독일 작곡가 바흐에 심취해 있었어요.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는 수많은 명곡을 남긴 위대한 작곡가예요. 뮌히 선생님 덕분에 슈바이처도 바흐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이 정도면 정식 연주자로 활동해도 손색이 없겠어!” 선생님은 슈바이처를 자신이 지휘를 맡고 있는 성 슈테판 교회 성가대 오르간 연주자로 추천했어요. 슈바이처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었어요. 이처럼 뮌히 선생님은 슈바이처의 음악적 동반자였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선생님은 슈바이처가 스물세 살 때 장티푸스에 걸려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슈바이처는 선생님과의 추억을 (오이겐 뮌히)라는 책에 그대로 썼어요. 이것이 슈바이처가 처음으로 쓴 책이지요. 음악을 가르쳤던 뮌히 선생님은 슈바이처에게 영향을 준 또 다른 선생님이에요. 슈바이처는 뮌히 선생님에게 1년 동안 오르간을 배웠어요. 슈바이처는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어요. 한편으로는 피아노와 오르간도 꾸준히 연습했어요. 좋은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또 체계적인 음악 공부를 하기 위해 바흐의 음악을 따로 깊이 연구하기도 했어요. 당시 독일 국민은 19세가 되면 군에 입대해야 했어요. 슈바이처도 한창 공부할 나이에 군인이 되었어요. 그런데 중대장은 마음씨가 참 좋은 분이었어요. 그는 슈바이처를 위해 특별한 배려를 해 주었어요. “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면,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 사이에 학교에 갔다 와도 좋다.” 슈바이처는 뛸 듯이 기뻐하며 더욱 열심히 공부했어요. 덕분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1899년에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이듬해에는 다시 신학 박사 학위까지 받게 되었지요. 슈바이처가 스무 살 되던 해 여름이었어요. 군 복무 중 휴가를 맞아 모처럼 집에서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어요. ‘세상에는 정말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만 이런 행복을 누려도 되는 걸까?’ 슈바이처는 그동안 자신이 너무 많은 혜택을 누려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지금까지 중요한 고비 때마다 남의 도움을 받아 왔어. 이제부턴 나도 무언가 베풀면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닐까?” 이것은 슈바이처가 어릴 때부터 마음속에 담고 있던 생각이었어요. 마침 창밖에서 새들이 아름다운 소리로 지저귀고 있었어요. 슈바이처는 이 모든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바로 그때 슈바이처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좀 더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들 원대한 포부를 품게 되었어요. 슈바이처는 한때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목사로 일했어요. 교회 봉급으로 대학 졸업까지 스스로 학비를 마련했지요. 자신의 재능을 키워 남을 돕는 일에 쓰는 것은 슈바이처가 꿈꾸는 인생의 목표였어요. 스무 살 무렵에 슈바이처는 스스로에게 약속했어요. “서른 살까지는 학문과 예술을 위해 살고, 그 이후부터는 인류에 봉사하는 삶을 살자!” 그는 이 약속대로 정확히 서른 살까지 신학을 공부하여 교수가 되었고, 오르간 연주자로도 명성을 쌓았어요. 그는 항상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예수의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전파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방법은 다른 성직자들과 약간 달랐어요. 그는 설교를 통해서 예수의 사랑을 전파하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을 택했어요. 의학 공부를 시작한 건 바로 그 때문이지요. 어느 날 한 잡지에 눈이 번쩍 뜨이는 광고가 실렸어요. “콩고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할 선교사를 모집합니다.” 순간 슈바이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어요. ‘아프리카에서 죽어 가는 환자를 구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 거야!’ 슈바이처는 그날부터 의학 공부를 시작했어요. “의학 공부를 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은데?” 주변 사람들은 다들 슈바이처를 말렸어요. 하지만 슈바이처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어요. 그는 결국 자신이 교수로 있던 대학의 의과 대학 청강생으로 입학했어요. 교수 신분으로는 학생으로 등록할 수 없기 때문에 대학 당국의 허락을 받아 겨우 학생이 된 거예요. 그 후 슈바이처는 6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여 마침내 의학 박사가 되었어요. 슈바이처는 아프리카로 떠나기 위해 대학 교수직과 교회 목사직을 내놓았어요. 막상 떠날 준비를 하고 보니 가슴 한구석이 허전했어요. “정말 떠나시는 거예요?” 학생들과 교회 신도들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지나온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어요. 슈바이처에게도 사실 아프리카로 떠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그 무렵 슈바이처는 헬레네와 열애 중이었어요. 그는 혹시라도 헬레네가 반대하면 자기 마음이 바뀔까 봐 교회나 대학 근처에 가지도 못했어요. 떠나기 전까지는 차라리 헬레네의 얼굴을 안 보려고 한 거예요. 결국 슈바이처가 자기 때문에 고민하는 것을 알고 헬레네가 먼저 손을 내밀었어요. “나는 간호학을 공부했어요. 당신은 나 없이 그 일을 모두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나요?” 헬레네는 기꺼이 그와 함께 가겠다는 뜻을 내비쳤어요. 헬레네의 말은 슈바이처에게 큰 용기를 주었어요. 슈바이처는 헬레네와 함께 본격적으로 아프리카에서 병원을 개업할 준비를 했어요. 의약품과 의료 기기는 물론 함께 일할 사람들까지 구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했어요. 슈바이처는 여러 곳을 다니면서 기부금을 모았어요. “아프리카 흑인들을 위해 우리더러 돈을 내라고요?” “봉사니 뭐니 잘난 척하고 싶으면 당신들이나 해요!” 도와주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은 말도 들어 보지 않고 슈바이처를 내쫓았어요. 하지만 다행히 교수로 일했던 대학과 교회에서 기부금을 내주었어요. 슈바이처는 부족한 금액을 메우기 위해 오르간 연주회도 열었어요. 이렇게 해서 어느 정도 필요한 기부금이 모였어요. 1913년, 슈바이처는 헬레네와 결혼을 한 후 마침내 아프리카로 떠나는 배에 몸을 실었어요. 당시 백인들은 ‘아프리카’ 하면 제일 먼저 금과 후추, 그리고 코끼리 상아를 떠올렸어요. 세 가지 모두 당시 유럽에서는 구하기 힘든 보물이지요. 돈에 눈이 먼 백인들은 아프리카를 총칼로 짓밟았어요. 흑인들은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노예로 끌려가 힘든 육체노동에 시달려야 했어요. 그뿐이 아니에요. 백인들은 아프리카에 독한 술과 나쁜 병을 퍼뜨렸어요. 원주민들은 노동의 고통을 잊기 위해 마신 독한 술에 중독되어 주정뱅이가 되어 버렸고, 백인들이 퍼트린 나쁜 병균 때문에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어요. 그야말로 원주민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어요. 아프리카에 온 첫날 슈바이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는 이곳에 자선 사업을 하러 온 게 아니오. 우리와 같은 백인들이 저지른 악행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합시다.” 슈바이처가 병원을 세우기로 한 곳은 적도 아프리카(지금의 가봉 공화국)에 있는 랑바레네 마을이에요. 힘들게 도착해 보니 병원이 건축되려면 많은 시일이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준비도 되지 않은 그 상황에 의사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원주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몇 시간 동안 배를 타고 온 환자들도 있었어요. “건물이 지어질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어.” 슈바이처는 나무 그늘에 짐을 풀고 얼른 임시 진료소를 만들었어요. 원주민들은 말라리아, 한센병, 이질, 폐렴, 심장병 등 다양한 질병을 앓고 있었어요. 일찍 치료하면 나을 수 있지만 내버려 두면 오랫동안 앓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무서운 병을 가진 환자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또 문제는 그들과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이 친구 이름은 요셉이라고 해요.” 먼저 이곳에 와 있던 선교사가 통역 겸 조수로 일할 원주민을 소개해 주었어요. 요리사 출신인 요셉은 조수로서도 뛰어난 역할을 했어요. 그런데 그는 슈바이처에게 한 가지 이상한 충고를 했어요. “치료가 어려운 중환자는 절대 받아들이지 말고 그냥 돌려보내도록 하세요.” “이유가 뭐죠?” 슈바이처가 물었어요. “환자와 가족들은 치료를 못 받고 죽으면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치료를 받는 도중에 죽으면 의사의 능력을 의심한답니다.” 요셉은 그것이 얼마 전까지 원주민들의 병을 고치던 주술사들이 쓰던 방법이라고 설명했어요. 슈바이처는 의사로서 따끔하게 요셉을 야단쳤어요.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제발 우리 아기를 살려 주세요!” 하루는 원주민 여인이 갓난아기를 안고 달려왔어요. 아기는 온몸이 불덩이 같았어요.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급한 상태였어요. “아이를 그냥 놔두시오!” 뒤이어 주술사와 아이 아빠가 들이닥쳤어요. 주술사는 죽어 가는 사람을 억지로 살리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 수 없다며 수술을 방해했어요. “백인들은 다 우릴 죽이려고 해! 당신도 마찬가지야!” 아이 아빠와 일부 원주민들도 반감을 드러냈어요. “수술하지 않으면 이 아이는 죽습니다! 제발 저를 믿고 맡겨 주세요.” 슈바이처는 그들을 설득하여 겨우 허락을 얻어 냈어요. 하지만 수술에 실패하면 원주민들 손에 죽을 수도 있는 불안한 상황이었어요. 슈바이처는 밤새 수술을 하여 결국 아기를 살려 냈어요. 그러자 원주민들도 하나둘 마음을 열기 시작했어요. 헬레네는 날마다 수십 명의 환자를 돌보고 약품 관리와 의료 용품 소독, 마취등 온갖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 했어요. 슈바이처는 그 옆에서 묵묵히 환자들을 치료했어요. 그런데 그는 치료비를 따로 정해 받지 않았어요. “치료비를 내고 싶으면 형편껏 알아서 내세요.” 그러자 원주민들은 바나나, 닭, 계란 따위를 들고 왔어요. 이런 물건들은 주로 입원한 환자들의 식량으로 썼고 간혹 돈이 들어오면 그것은 약을 사는 데 보탰어요. 뙤약볕 아래서 하루 16시간씩 진료하다 보면 일사병에 걸릴 위험이 있었어요. 그래서 슈바이처는 닭장을 개조해 진료실을 만들기로 했어요. 그러자 공짜로 치료를 받은 원주민들이 돕겠다고 나섰어요. “선생님, 힘쓰는 일이라면 저희들한테 맡기세요.” 얼마 후 닭장을 개조한 진료실이 완성되었어요. 새 진료실을 보고 그들은 슈바이처보다 더 기뻐했어요. 진료는 매일 오전 8시 반부터 시작되었어요. 환자들이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면 조수인 요셉이 큰 소리로 지켜야 할 규칙을 읽어 주었어요. “첫째, 진료실 근처 땅바닥에 침을 뱉지 말 것. 둘째, 시끄럽게 떠들지 말 것. 셋째, 먹을 것은 각자 가져올 것. 넷째, 절대로 병원 주변에서 밤을 새지 말 것. 다섯째, 약을 넣어 준 병이나 깡통은 반드시 돌려줄 것.” 병원 주변에서 밤을 새지 말라는 규칙을 정한 건 말라리아 같은 전염병을 옮기는 모기 때문이었어요. 슈바이처는 보통 하루에 40명의 환자를 진료했는데 저녁 6시가 되면 진료실 문을 닫았어요. 어두워지면 모기들이 불빛을 보고 달려들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집이 너무 먼 사람들은 병원 근처에서 밤을 새다가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 걸리곤 했어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슈바이처는 너무 안타까웠어요. 아프리카에는 모든 게 부족했어요. 랑바레네는 습도가 높아서 약을 환자들에게 줄 때 병이나 깡통에 담아 줘야 했어요. 요셉은 환자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했지만 약병을 도로 가져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어요. “저번에 가져간 약병을 돌려주세요.” “약병 없는데요?” “그럼 약을 줄 수 없어요.” 진료실 밖에서 날마다 똑같은 실랑이가 벌어졌어요. 슈바이처는 할 수 없이 유럽의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서 병이나 깡통을 좀 보내 달라고 부탁했어요. 한 달 후에 엄청나게 큰 화물이 도착했어요. 화물을 풀어 본 슈바이처는 깜짝 놀랐어요. 병과 깡통이 든 커다란 박스 뒤에 무언가 더 큰 게 있었어요. 그것은 파리의 바흐 협회에서 봉사 활동을 격려하는 의미로 보내 준 피아노였어요. 이 피아노는 슈바이처의 고된 아프리카 생활에 많은 위안이 되었어요. “싫어요! 난 절대로 들어가지 않을 거예요!” 하루는 심한 피부병에 걸린 소년이 부모에게 소리쳤어요. 진료실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거예요. 소년의 부모는 어쩔 줄을 몰라 발을 동동 굴렀어요. 결국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소년을 진료실로 옮겼어요. “왜 안 들어오려고 한 거니?” 소년을 정성껏 치료해 준 뒤 슈바이처가 물었어요. “선생님이 저를 잡아먹으려는 줄 알았어요.” 놀란 슈바이처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어요. “잡아먹다니?” 알고 보니 그 지역에는 원래 식인종들이 살고 있었어요. 그래서 낯선 백인 의사를 식인종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슈바이처는 그럴수록 정성을 다해 그들을 치료해 주었어요. 결국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에요. 차차 세월이 흐르자 랑바레네 사람들은 슈바이처를 형제처럼 여기기 시작했어요. 원주민들은 슈바이처를 ‘오강가’라고 불렀어요. 오강가는 그들 말로 ‘마술사’라는 뜻이에요. 당시 아프리카에는 수면병이 유행했어요. 수면병은 처음에는 머리가 아파서 잠을 못 자다가 나중에는 계속 잠만 자고, 결국에는 기억 상실에 걸려 목숨을 잃게 되는 무서운 병이에요. 병을 옮기는 주범은 체체파리였어요. 이 파리가 수면병 환자의 피를 빨아서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키는 거예요. “오강가는 뭐든 다 고치니까 수면병도 고칠 수 있겠죠?” “살려는 의지만 있으면 병은 다 낫는답니다.” 슈바이처는 환자들을 위로하며 치료에 최선을 다했어요. 수면병은 약이 독해서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했어요. 슈바이처가 날마다 밤을 새워 가며 환자들을 돌보자 원주민들은 다들 감동을 받았어요. 결국 슈바이처의 정성으로 수면병 환자들은 모두 치료가 되었어요. 슈바이처는 아프리카 원주민들과 함께 지내면서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깊이 생각했어요. 원주민들은 온갖 질병과 자연재해, 백인들의 횡포까지 겪으며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도 순박한 삶을 살고 있었어요. 유럽인들은 무식한 야만인으로 취급했지만 그들의 선한 영혼은 슈바이처로 하여금 가여움을 넘어서 경외심을 느끼게 했어요. 그런 마음이 들수록 슈바이처는 더 좋은 병원을 지어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슈바이처는 국제 선교사 협회에 도움을 청했어요. “닭장 진료실은 좁고 비위생적이라 환자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습니다. 넓고 쾌적한 병실이 필요합니다.” 선교사 협회에서는 많은 기부금을 모아 주었어요. 그 돈으로 슈바이처는 깨끗하고 넓은 새 병원을 지었어요. 슈바이처는 방충망이 있는 병실을 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어요. 이제 말라리아와 수면병을 예방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런데 슈바이처는 생각지도 못한 일로 병원 문을 닫게 되었어요.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져 독일이 패하고 프랑스가 승전국이 된 거예요. “슈바이처 박사, 이제부터 병원은 우리가 접수하겠소. 당신은 허락이 있을 때까지 외부 출입을 삼가시오.” 프랑스 군인들은 슈바이처의 국적이 독일이라는 이유로 병원 문을 강제로 닫게 하고 집 안에 가두었어요. “그럼 내 환자들은 어쩌란 말이오!” 슈바이처는 집으로 끌려가면서 소리쳤어요. 하지만 프랑스 군인들은 입원한 환자들을 모두 내쫓고 병원 문을 닫아 버렸어요. 슈바이처는 집 안에 갇혀 있는 건 참을 수 있었지만 환자를 돌보지 못한다는 건 견딜 수가 없었어요. 슈바이처는 한동안 실의에 빠져 지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밤, 원주민들이 그의 집으로 몰려왔어요. 죽을 각오를 하고 슈바이처를 구하러 온 거예요. “오강가를 풀어 줘라!” 원주민들은 횃불을 들고 와서 슈바이처의 집을 지키는 프랑스 군인들과 맞섰어요. 슈바이처는 이러다 큰일이 나겠다 싶었어요. 프랑스 군인들이 총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자칫하면 원주민들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슈바이처는 얼른 창문을 열고 그들을 향해 외쳤어요. “여러분! 나는 안전하게 잘 있으니까 돌아가세요! 이분들은 날 지켜 주는 것이지 해치려는 게 아니에요!” “오강가,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이고말고요! 곧 여러분 곁으로 돌아갈 겁니다!” 원주민들은 슈바이처의 말을 믿고 해산했어요. 슈바이처는 비로소 안심하고 가슴을 쓸어내렸어요. 그리고 얼마 후 슈바이처는 프랑스 군대의 손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었어요. 슈바이처는 다시 병원 문을 열었지만 자금이 부족해 병원을 제대로 운영할 수가 없었어요. “아무래도 알자스에 다녀와야겠다.” 그는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알자스로 건너갔어요. 그런데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아 그는 또 프랑스 군대에 체포되고 말았어요. 알자스는 이제 독일 땅이 아니고 프랑스 땅이 되어 있었어요. 포로수용소에 갇힌 슈바이처는 발을 동동 굴렀어요. “어서 기부금을 모아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하는데.” 슈바이처는 다행히 얼마 후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났어요. 그때 그는 자신의 국적을 독일에서 프랑스로 바꾸었어요. 병원이 있는 지역이 프랑스령이기 때문에 봉사 활동을 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국적까지 바꾼 거예요. 그리고 그는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전 유럽을 돌아다녔어요. 책을 출판하고, 강연회와 연주회를 열어 돈을 모으기도 했어요. 그렇게 6년 동안 기부금을 모은 후 그는 다시 아프리카로 향했어요.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온 슈바이처는 그곳 원주민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더욱 봉사 활동에 힘썼어요. 그러는 동안 원주민들과 끈끈한 정이 생겼어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원주민들은 오염된 물을 마시고 툭하면 설사병에 걸렸어요. “절대로 동물이 빠져 죽은 물을 마시면 안 돼요!” 슈바이처가 수십 번이나 말해 주었지만 원주민들은 평소 습관대로 오염된 물을 마시다 병에 걸리곤 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슈바이처는 너무 속이 상해서 이렇게 중얼거렸어요. “이런 답답한 사람들을 치료하겠다고 이곳 아프리카까지 와서 생고생을 하다니, 나도 참 멍청이야!” 그러면 요셉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어요. “맞아요. 박사님은 지구에서 제일가는 멍청이예요. 하지만 하느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요!” 요셉은 슈바이처가 원주민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농담을 한 거예요. 슈바이처 말고도 수많은 선교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아프리카를 다녀갔어요. 하지만 슈바이처만큼 원주민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흑인들은 전부 게으르다. 한마디로 구제 불능이다.” 아프리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원주민들을 이렇게 평가하면, 슈바이처는 그것이 모두 백인들 때문이라고 반박했어요. 이처럼 슈바이처는 평생 아프리카에서 살며 병든 흑인들을 치료하고 돕는 것을 천직으로 알았어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1952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어요. 기자들이 노벨상을 받은 소감을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좋은 일이죠. 상금으로 새 병원을 지을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슈바이처는 노벨상 상금으로 아프리카의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전문 병원을 지었어요. 슈바이처는 무려 50년 동안 헌신적인 봉사 활동을 하다가 90세에 아프리카에서 그 위대한 삶을 마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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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려는 191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어요. 할아버지는 부잣집의 소작농(小作農)을 관리하였고 아버지는 글솜씨가 뛰어난 향교(鄕校)의 학자였어요. 그래서 장기려는 넉넉한 집안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그러나 또래 친구들보다 키가 작고 몸이 약해서 찬물을 먹고 나면 배탈이 나고는 했어요.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품에 안고 배를 문질러 주었어요. “이리 오렴. 할머니 손은 약손이란다.” 할머니는 손자가 단단한 보석 같은 사람이 되라고 다이아몬드를 뜻하는 ‘금강석’이라고 불러 주었어요. “금강석아, 이다음에 자라서 금강석처럼 귀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라.” 장기려의 아버지는 학교를 세우고 교장 선생님이 되어 많은 어린이들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했어요. 장기려가 자라던 시절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해 자유와 말과 글을 빼앗아 간 일제 강점기였어요. 그래서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했어요. “기려야,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독립(獨立)하려면 새로운 것을 익히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단다.” 장기려는 아버지 말을 머리에 꼭 새겨 두었어요. 어려서부터 장기려는 배우는 것이 참 재미있었어요. 여섯 살 때 아버지에게서 ‘천자문’을 처음으로 배웠지요. ‘하늘 천(天), 땅 지(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하고 한자의 모양과 뜻을 하나하나 익히는 게 신기했어요. “우리 마을에 신동(神童)이 났구나!” 동네 사람들은 천자문을 금세 배우는 기려를 칭찬했어요. 장기려는 의성 소학교에 입학(入學)했어요. ‘소학교’는 지금의 초등학교를 말해요. 소학교에 들어간 장기려는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열심히 배워서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될 테야! 우리를 괴롭히는 나쁜 일본 사람들을 우리나라 땅에서 꼭 몰아내고 말 거야!” 친구들보다 허약하고 몸집도 작았지만 마침내 장기려는 소학교를 1등으로 졸업(卒業)했어요. 소학교를 마친 장기려는 고향을 떠났어요. 개성에 있는 송도 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예요. ‘고등보통학교’는 지금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합친 것과 같아요. 그런데 집을 떠나 부모님이 안 계신 낯선 곳에서 홀로 학교를 다니는 것은 참 힘들고 외로웠어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고 싶어도 꾹 참아야 했지요. 그러다 친구들의 꼬임에 넘어가고 말았어요. “기려야, 공부만 하지 말고 우리랑 놀자.” 장기려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놀았어요. 공부하는 것보다 노는 게 훨씬 재미있었어요. 하루는 화투라는 오락(娛樂)을 하며 내기를 하다가 그만 많은 돈을 잃고 말았어요. 그 돈은 고향에서 부모님이 보내 준 것이었어요. 그 무렵 장기려의 집은 형편이 몹시 어려워졌어요. 아버지가 일본과 싸우는 독립군을 돕기 위해 논밭을 팔아 독립 자금(資金)을 대주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어머니가 어렵게 이웃집에서 돈을 빌려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 준 것이었어요. 장기려는 밤새워 엉엉 울며 후회했어요. “부모님, 용서해 주세요. 저를 위해 보내 주신 돈을 친구들과 못된 놀이를 하느라 모두 잃고 말았어요. 다시는 이런 잘못을 하지 않겠습니다.” 장기려는 그 후 두 번 다시 오락에 빠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하면 일본을 물리칠 수 있을까?’ 장기려는 공부를 하며 고민했어요. ‘일본이 우리나라를 함부로 침략할 수 있었던 건 총과 무기를 잘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 우리도 무기를 잘 만들면 일본을 이길 수 있겠지.’ 이렇게 생각하자 그는 앞으로 기술자(技術者)가 되고 싶었어요. 기술자가 되어 우리나라의 공업을 발전시키고 뛰어난 무기를 많이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장기려는 고등보통학교 4학년 때 여순 공과대학 입학시험을 보았어요. 그런데 그만 불합격하고 말았지요. 하지만 장기려는 크게 실망하지 않았어요, 기술자가 되는 것보다 더 큰 꿈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그것은 바로 의사 선생님이 되는 꿈이었어요. ‘그래!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자!’ 장기려가 의사의 꿈을 가지게 된 것은 몸이 약한 여동생 기자 때문이었어요. 기자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뜀박질을 잘 못하고 얼굴이 창백(蒼白)했어요. 조금만 뛰어도 숨을 헐떡이며 입술이 파래졌어요. 태어날 때부터 심장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오빠를 따르는 착하고 다정한 아이였어요. “오빠, 훌륭한 의사가 되어 내 병을 고쳐 줘.” 동생은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고는 했어요. 하지만 몸이 너무나도 약했던 기자는 오빠가 의사가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그날 장기려는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어요. ‘네 병을 고쳐 주지 못한 오빠를 용서해 다오. 반드시 의사가 될게! 뛰어난 의사가 되어서 너처럼 고통받는 환자들을 치료(治療)해 줄게!’ 장기려는 경성 의학 전문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했어요. ‘경성’은 지금의 서울이고, 경성 의학 전문 대학은 지금의 서울대학교 의과 대학이에요. 그 학교에 가면 의학을 공부할 수 있고 학비도 비싸지 않아서 부모님에게도 덜 미안했어요. 아버지는 아들의 결심(決心)을 듣고 격려해 주었어요. “기려야, 너는 장차 큰일을 할 사람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네 학비는 꼭 보내 줄 테니 아무 걱정 말고 열심히 공부하도록 해라.” 장기려는 아버지 말씀대로 온 힘을 다해 공부했어요. 그래서 고등보통학교 졸업 시험에서 1등을 했고, 의과 대학 입학시험에도 당당히 합격(合格)했어요. “이제 나는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될 것이다! 좋은 의사가 되어 우리나라의 독립에도 큰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할 테다!” “조선 놈이 뭐하러 의사가 되려고 해!” 의과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교생활이 쉽지는 않았어요. 다른 일본 학생들은 무턱대고 장기려를 깔보았어요. 장기려가 다닌 경성 의학 전문 대학은 조선인 학생보다 일본인 학생이 훨씬 많았어요. 전교생 320명 중 조선 학생은 고작 60명뿐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일제가 우리나라의 발전을 막기 위해 조선의 어린이와 청년들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빼앗아 갔어요.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말과 글을 배우지 못하게 하고, 일본 말과 글을 가르쳐서 우리 민족의 얼을 말살(抹殺)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장기려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애국심(愛國心)을 키워 나가며 계속 공부했어요. 일본 친구들이 깔보고, 공부할 것도 너무 많았지만 장기려는 힘든 줄을 몰랐어요. 장차 어엿한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자기를 깔보던 일본 학생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스물두 살이 되자 어른들이 그에게 말했어요. “자네도 이제 나이가 찼으니 장가를 가야지.” 그 당시는 스무 살이 넘으면 다들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고 살았어요. 하루는 친구 백기호가 장기려에게 말했어요. “내과 의사 김하식 선생님의 따님을 만나 보게. 아주 착하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야.” 그렇게 해서 장기려는 김봉숙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녀는 피아노를 잘 치고 노래를 잘 부르며, 그림까지 잘 그리는 예의 바르고 착실한 아가씨였어요. 장기려는 아가씨의 고운 마음에 반해 편지를 보냈어요. “비록 부족한 것이 많지만 나와 결혼해 주겠소?” 장기려는 마침내 의과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어요. 보란 듯이 1등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졸업하자 일본 학생들이 질투의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어요. “쳇, 조선인이 제법이군.” 뿐만 아니라 청혼의 편지를 보냈던 아가씨와도 결혼식을 올릴 수 있게 되었어요.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셔 와 아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된 장기려는 본격적인 의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하루는 아내의 아버지인 장인 김하식이 말했어요. “자네는 외과를 전공(專攻)하는 것이 어떤가?” 외과는 상처를 치료하거나 내장의 병을 수술하는 과목이에요. 뛰어난 실력과 열정을 지닌 장기려는 장인의 말대로 외과 의사가 되어 경성의 대학 병원에서 환자도 치료하고 의학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어느 날 급한 환자(患者)가 병원에 실려 왔어요. “의사 선생님, 살려 주세요! 배가 너무 아파 죽을 것만 같아요!” 환자는 배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했어요. 장기려는 그를 자세히 살펴보았어요. 그의 증상은 틀림없는 맹장염이었어요. 맹장염은 요즘엔 간단한 수술로 고칠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었어요. 장기려는 맹장염 수술이 처음이라 긴장이 되었어요. ‘혹시 내 실수로 환자가 잘못되면 어쩌지?’ 장기려는 수술을 준비하며 마음을 가다듬었어요. 그리고 그동안 배우고 익혔던 것을 차분히 떠올렸어요. ‘우리 할머니가 정성껏 내 배를 문질러 주셨던 것처럼 나도 정성을 다해 환자를 치료하자! 할 수 있을 거야!’ 다행히도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 끝났어요. 장기려는 더할 나위 없이 뿌듯했어요. ‘내 손으로 한 사람의 생명(生命)을 구했구나!’ 한번은 춘원 이광수 선생이 입원했어요. 그는 우리나라의 첫 근대 소설인 <무정>을 쓴 유명한 작가(作家)였어요. 조선 최고의 의사이자 장기려의 스승인 백인제 교수가 이광수 선생의 수술을 맡았어요. 수술이 잘 끝나자 장기려가 주치의(主治醫)가 되어 6개월 동안 이광수 선생을 돌보아 주었어요. “조선 최고의 의사 선생님이 수술을 해 주시고 그분의 제자가 돌봐 주시니 저는 걱정이 없습니다!” 이광수 선생은 날마다 자신을 돌봐 주는 장기려의 변함없는 정성과 친절에 크게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서 퇴원 후에 장기려 같은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사랑>을 써서 그를 영원히 기억했지요. 장기려는 의사로서 나날이 발전(發展)했어요. 하지만 항상 마음 한구석이 아팠어요. 그 시절에는 병원 가는 것이 쉽지 않아서 가난한 사람들은 치료도 받지 못하고 앓다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많았어요. 장기려는 그런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스승 백인제 교수를 찾아가 말했어요. “평양으로 가서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이들을 돕고 싶습니다.” 백인제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좋은 생각이네.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 한번 해 보게.” 그리하여 장기려는 1940년에 경성을 떠나 평양에 있는 기독병원으로 옮겼어요. 거기서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쉬는 날에는 외딴 마을을 찾아가 병원 구경도 못 해 본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했어요. 너무 가난해서 치료비를 못 내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 월급(月給)을 털어 돈을 대신 내 주기도 했어요.
사랑으로 기적을 만든 백의의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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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_고학년
“페기! 이제부터 내가 너의 친구가 되어 줄게!”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페기를 정성껏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페기는 플로렌스의 아버지가 오래전부터 타던 말이에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만 병이 들고 말았어요. 페기는 이제 달리지도 못하고 마구간에 버려지다시피 방치되어 있었어요. 플로렌스는 나이도 많고 병이 든 페기가 불쌍했어요. “아빠, 페기가 너무 가여워요. 힘이 하나도 없나 봐요!” 플로렌스가 아빠에게 슬픈 표정으로 말했어요. “나도 안타깝단다. 하지만 어쩌겠니? 늙어 힘이 없어진걸.” “아빠, 앞으로 제가 페기에게 먹이도 주고, 노래도 불러 주고, 산책도 시켜 줄래요. 그러면 힘이 날지도 모르니까요!” 그날부터 플로렌스는 날마다 페기에게 가서 직접 먹을 것도 주고, 함께 들판을 거닐기도 했어요. 플로렌스의 노력 때문인지 페기는 나날이 좋아졌어요. 혼자서는 제대로 서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플로렌스가 다가가면 슬쩍 몸을 일으킬 정도였어요. “와! 페기도 막내 아가씨가 반가운가 봐요!” 마구간 책임자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어요. “정말요? 페기가 내가 온 걸 알까요?” 플로렌스는 너무 기뻐 활짝 웃으며 페기를 쳐다보았어요. ‘플로렌스 아가씨, 매일 저에게 찾아와 따뜻하게 대해 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기분도 좋아졌고 기운도 나네요!’ 그렇게 말하는 페기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플로렌스가 페기를 쓰다듬자 페기가 히잉 소리를 내며 몸을 번쩍 일으켰어요. 마치 즐겁다는 듯 말이에요. “다행이야! 페기가 점점 나아지고 있어!” 이처럼 착한 마음씨를 가진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1820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어요. 부유한 영국 귀족인 플로렌스의 부모님은 이탈리아 여행 중에 두 딸을 낳았어요. 첫째 딸은 나폴리에서 낳아 이름을 파세노프라고 지었어요. 파세노프란 나폴리의 그리스식 이름이에요. 둘째 딸은 피렌체에서 낳아 이름을 플로렌스라 지었어요. 플로렌스는 ‘꽃의 도시’라는 뜻으로 피렌체의 영어식 이름이지요. 둘째 딸 플로렌스는 정말 꽃처럼 예쁘게 자랐어요. 방실방실 웃기도 잘하고요. “우리 둘째 딸은 정말 예쁘게 자랄 거예요. 장미꽃이 활짝 핀 5월에 꽃의 도시 피렌체에서 태어났잖아요! 마음씨도 꽃처럼 예쁘겠지요!” 플로렌스의 부모님은 플로렌스를 볼 때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며 흐뭇해했어요. 플로렌스의 아버지는 두 딸에게 공부를 가르쳤어요. 특히 플로렌스는 아버지와 공부하는 걸 좋아했어요. 배우면 배울수록 신기한 것이 정말 많았거든요. 처음에는 언니와 함께 공부를 하다가 어느새 플로렌스만 아버지와 마주 앉아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친구가 찾아왔어요. “요즘에 통 나오지 않던데, 대체 집에서 뭐 하는 건가?” 아버지의 친구가 물었어요. “하하! 요즘 우리 플로렌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말일세!” 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말하자 친구가 깜짝 놀라 고개를 갸우뚱거렸어요. “윌리엄! 딸들에게 공부를 가르친단 말인가? 딸들은 그저 마음씨만 고우면 되네! 결혼해서 살림 잘하고 아이들만 잘 키우면 된단 말일세!” 아버지의 친구가 집으로 돌아간 후 플로렌스가 아버지에게 물었어요. “아버지, 다른 여자애들은 공부를 하지 않나요?” 플로렌스의 말에 아버지 윌리엄은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렇단다. 여자애뿐 아니라 가난한 집 아이들도 공부를 하지 못해. 열 살이 안 된 아이들이 생계를 위해 공장에 나가 일을 하기도 한단다. 공장법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니?” 플로렌스의 아버지는 1833년에 생긴 공장법에 대해 설명해 주었어요. 공장법이란 열 살이 안 된 어린아이들에게는 일을 시키면 안 된다는 법이었어요. 하지만 그 당시 가난한 집 아이들은 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공장에 나가 힘들게 일을 해야 했어요. “아버지!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도울 방법이 없을까요?” “오! 우리 플로렌스는 참 마음씨가 곱구나! 지금은 그들을 도울 방법이 없지만, 네가 열심히 공부해서 그 방법을 찾아보렴.” “그래야겠어요! 그런데 왜 사람은 가난한 사람과 부자로 나뉘는 걸까요? 저번에 시내에 나갔다가 거지들을 보았어요. 그들도 다 같이 잘 살 수는 없을까요?” 플로렌스는 금방 눈물이라도 흘릴 듯한 표정으로 물었어요. 그때 곁에 있던 언니 파세노프가 끼어들며 말했어요. “게으르니까 거지가 된 거야! 동정할 필요는 없어!” 그 말에 플로렌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어요. “아니야, 언니! 태어나면서부터 가난한 사람들도 있잖아! 그 사람들은 밥을 못 먹을 정도로 가난해! 그래서 열 살이 되기도 전에 공장에 나가서 일을 하는 거라고! 언니는 그 사람들이 불쌍하지도 않아?” “흥, 뭐가 불쌍해. 나만 아니면 되지 뭐!” 두 딸의 말을 듣고 있던 아버지가 말했어요. “물론 게을러서 가난한 사람들도 있단다! 그런 사람들을 동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러나 아파서 일을 할 수가 없거나 부모님이 안 계신 아이들도 있어. 그런 사람들은 우리 같은 귀족들이 돌봐야 하는 거란다.” 아버지의 말에 플로렌스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어요. “스미더 할아버지처럼 돌봐 주라는 말이지요? 노예처럼 부리지 않고요? “그렇지! 우리 플로렌스는 정말 하나를 알려 주면 두 개를 아는구나! 노예는 또 어떻게 알았니?” “외할아버지가 노예 제도를 반대했던 것도 아는걸요!” 플로렌스가 웃으며 말했어요. 플로렌스의 말은 사실이었어요. 플로렌스의 외할아버지는 노예 제도를 반대해 노예 대신 일꾼들을 고용해 쓰고 있었어요. 스미더 할아버지도 마부로 고용된 사람이었어요. “곧 노예 제도가 폐지된다던데, 정말 다행이에요! 그런데 노예들은 처음에 어떻게 노예가 되었어요?” 플로렌스가 정말 궁금한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어요. “노예가 생겨난 건 우리 영국처럼 힘이 센 나라가 다른 나라에 쳐들어가서 땅도 빼앗고 금도 빼앗고 그곳 사람들까지 잡아 와 노예로 만든 거란다!” “왜 남의 나라에 쳐들어가는 거예요?” “그야 욕심 때문이겠지.” “사람들이 욕심 부리지 않고 다 같이 잘 살면 좋겠어요! 어떻게 하면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요?” 플로렌스가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어요. “음, 그런 세상을 만들려면 사랑이 있어야 한단다.” “사랑이요?” “그래, 예수님처럼 사랑을 실천하며 살면 되지!” “예수님처럼 사랑을 실천하라고요?” 아버지가 플로렌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그래. 예수님은 외롭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낮은 곳으로 와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단다. 예수님처럼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이 세상이 천국처럼 좋아지지 않겠니?”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던 플로렌스는 뭔가 벅찬 기운이 느껴졌어요. 그날 밤 플로렌스는 굳은 결심을 했어요. ‘그래, 나도 예수님처럼 값지고 보람된 일을 하며 살 거야!’ 플로렌스는 어떤 일을 해야 좋을지 깊이 고민했어요. 그리고 매일 밤마다 하느님께 자신이 해야 할 사명을 달라고 기도를 올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플로렌스는 이상한 경험을 했어요. 마음속에서 신비로운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플로렌스, 너는 앞으로 중요한 일을 할 사람이다! 그러니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걷도록 해라! 그것이 나의 뜻이니라!” 플로렌스는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하느님이 자신에게 사명을 주었다고 생각했어요. 아직 정확하게 무엇을 하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분명 뜻있는 길로 인도하리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하느님! 저는 무조건 하느님 뜻에 따르겠어요!’ 그날 이후 플로렌스는 더욱 검소한 생활을 하며 살았어요.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보면 늘 친절히 돌보아 주었고, 잠들기 전에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어요. 어느새 플로렌스는 스무 살이 되었어요. 그해 여름, 플로렌스는 가난한 환자들이 많이 입원해 있는 어느 병원에 가게 되었어요.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플로렌스를 맞이한 건 코를 찌르는 악취였어요. ‘환자들을 돌보는 병원에서 이게 무슨 냄새지?’ 플로렌스는 충격을 받았어요. 게다가 그들을 돌보는 의사나 간호사들이 환자들을 함부로 대하고 있었어요.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더욱 정성껏 돌봐야 하는데 저렇게 함부로 대하다니! 정말 너무해!’ 그 무렵 영국에서는 산업 혁명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떠돌고 있었어요. 거리에는 실업자와 부랑자, 굶주린 사람들과 아픈 사람들이 넘쳐났어요. 플로렌스는 깊은 생각에 잠겼어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은 병원에서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구나.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플로렌스는 그때부터 집 주변에 있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돌보기 시작했어요. 먹을 것도 주고, 병원에서 약을 가져다 치료도 해 주었어요. 그들을 돌보면서 플로렌스는 어렴풋이 하느님이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 이런 보람된 일을 하라는 말씀이었어!’ 그러던 어느 날, 플로렌스의 집에 하우 박사가 찾아왔어요. 하우 박사는 직장을 잃은 사람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간호사를 많이 양성하려고 노력하는 자선 사업가였어요. 하우 박사를 만나자 플로렌스는 그동안 자신이 가졌던 생각을 털어놓았어요. “박사님, 저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요?” 하우 박사가 웃으며 말했어요. “불쌍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면 되지요.” “아니요! 저는 제가 직접 도울 수 있는 일을 원해요. 혹시 제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할 수 있을까요?” 플로렌스의 말에 하우 박사는 깜짝 놀랐어요. 귀족 집안의 딸인 플로렌스가 간호사로 일하고 싶다니 놀랄 수밖에요. 하우 박사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어요.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요?” “네. 저는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나이팅게일 양, 사람들은 간호사를 천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편견을 이겨 낼 수 있겠어요?” “네. 그건 저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프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간호사들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사랑을 실천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사람들의 의식도 분명 바뀔 거예요.” 하우 박사는 플로렌스의 두 손을 꼭 잡았어요. “나이팅게일 양처럼 생각하는 귀족 아가씨가 있다니 참으로 놀랍군요! 그래요. 나이팅게일 양이 간호사가 되어 그 직업이 얼마나 훌륭하고 귀한 직업인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주세요! 전 언제나 나이팅게일 양을 지지하겠어요!” 하우 박사의 말에 플로렌스는 용기를 얻었어요. ‘그래! 간호사가 되는 거야! 병원으로 가서 아프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거야!’ 플로렌스는 눈앞이 환해졌어요. 그제야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같았거든요. 플로렌스는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그 무렵, 한 청년이 플로렌스의 집에 찾아왔어요. “플로렌스! 이분은 유명한 정치가이자 시인이신 리처드 밀즈라는 분이시란다!” 어머니가 리처드를 소개해 주었어요. 웃는 모습이 멋지고 호감이 가는 남자였지요. 플로렌스가 힐끗 쳐다보자 리처드가 활짝 웃었어요. 그날 리처드가 돌아가고 나서 어머니가 말했어요. “플로렌스, 리처드는 훌륭한 가문의 아들이란다. 오래전부터 너를 마음에 두었다는구나! 그러니 리처드와 결혼을 하는 건 어떻겠니?” 어머니의 말에 플로렌스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어요. 한 번도 결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게다가 이제 막 간호사가 되리라 결심한 터라 마음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조금만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겠어요, 어머니.” 그 이후 리처드는 자주 플로렌스를 찾아왔어요. 두 사람은 아주 잘 어울렸어요. 플로렌스 역시 만나면 만날수록 리처드가 좋아졌어요. ‘이렇게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남자와 결혼하면 평생 행복하겠지!’ 플로렌스는 고민에 빠졌어요. ‘리처드와 결혼하면 절대 간호사는 될 수 없어!’ 당시 영국에서는 여자가 결혼한 후에 일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어요. 결혼한 여자는 무조건 아이를 낳아 잘 키우면 된다고 생각하던 때였거든요. ‘나는 평생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돌보며 살고 싶어! 그것이 하느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야! 그래, 결혼보다는 간호사가 되자!’ 오랜 고민 끝에 플로렌스는 간호사가 되기로 결정했어요. 마침내 플로렌스는 리처드에게 말했어요. “리처드, 당신은 최고의 신랑감이에요. 앞으로 저는 당신 같은 남자를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거예요.” 플로렌스의 말에 리처드가 활짝 웃었어요. “그럼 나와 결혼해 주겠소?” 리처드는 한껏 기대에 부풀어 플로렌스를 바라보았어요. “리처드, 미안해요. 결혼은 할 수 없어요!” “아니, 왜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소?” 리처드가 실망한 표정으로 물었어요. “아니에요. 당신을 좋아해요. 하지만 저에게는 꿈이 있어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꿈이요!” “대체 그 꿈이 뭡니까?” “저는 간호사가 되어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살피며 평생을 사는 것이 꿈이에요. 저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이 사명을 포기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 리처드.” 리처드가 가만히 플로렌스를 바라보았어요. “플로렌스, 당신은 아마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할 겁니다. 마음씨가 착하니까요. 당신과 결혼하지 못한다니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당신이 존경스럽군요. 난 언제나 당신을 지지할 겁니다.” 결국 리처드는 플로렌스와의 결혼을 포기하고 돌아갔어요. 믿었던 결혼이 허사가 되자 집안은 발칵 뒤집혔어요. “플로렌스, 왜 리처드와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거니?” 어머니가 물었어요. 언니 파세노프 역시 궁금해했어요. 플로렌스는 망설이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어요. “저는 평생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돌보며 사는 것이 꿈이에요. 그런데 리처드와 결혼하면 그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결혼을 포기했어요. 전 간호사가 되겠어요!” 플로렌스의 말에 온 가족은 놀라 눈이 동그래졌어요. “플로렌스! 너 지금 뭐라고 했니?” “간호사가 되겠다고?” “간호사는 천한 직업이야!” “왜 그런 일을 하려는 거야?” “우리 가문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포기해!” 온 가족이 반대했어요. 그러나 플로렌스는 뜻을 굽히지 않았어요. “아버지, 어머니! 전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 하느님이 제게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간호사가 되어 병원에서 일하고 싶어요!” “병원? 너 병원이 얼마나 더러운 곳인지 아니? 게다가 귀족 집안의 딸이 밖에 나가 간호사가 되겠다고? 허락할 수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가족들의 반대는 거셌어요. 그러나 플로렌스 역시 절대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래, 천천히 가족들을 설득하자!’ 플로렌스는 가족들의 설득은 뒤로 미루고 우선 간호법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로 했어요. 영국 병원은 물론 프랑스나 이탈리아 병원에 편지를 보내 여러 가지 자료들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러고는 날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날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플로렌스는 몸이 점점 허약해졌어요. “플로렌스가 간호법을 계속 공부하나 봐요. 어쩌지요?”가족들은 플로렌스 때문에 골치가 아팠어요. “결혼을 하면 좀 나아질 텐데 결혼할 생각은 아예 없는 거 같고, 여행을 보내는 건 어떻겠소? 넓은 곳을 다니다 보면 간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할지도 모르고, 또 몸도 건강해져서 돌아오지 않겠소?” 플로렌스는 부모님의 권유로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어요. 그곳에서 플로렌스는 친절한 영국인 부부를 만났어요. 남편의 이름은 허버트였는데 그는 영국에서 장관까지 지낸 사람으로 자선 사업가였어요. 함께 식사를 하며 플로렌스는 자신의 꿈이 간호사라는 것과 가족들의 반대에 대해 털어놓았어요. “이제 보니 나이팅게일 양! 정말 멋진 여성이군요! 귀족 집안에서 곱게 자란 여성이 그런 생각을 하다니 말예요!” 허버트 부부는 그녀의 꿈을 지지한다며, 영국으로 돌아가면 런던에 있는 병원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어요. “나이팅게일 양처럼 귀족 집안의 따님이 간호사가 되면 사람들의 인식 또한 많이 바뀔 거예요! 그러니 자신의 꿈이 옳다고 믿는다면 끝까지 밀고 나가세요! 우리도 도울 수 있는 한 나이팅게일 양을 돕겠어요!” 플로렌스는 허버트 부부의 말에 천군만마를 얻은 듯 힘이 났어요. 얼마 후, 허버트 부부와 플로렌스는 함께 독일의 한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어요. 플로렌스는 지난번에 악취가 나는 병원을 가 본 적이 있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독일의 병원에 들어선 순간, 그녀는 너무도 깔끔한 병동과 간호사들의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독일의 카이제르스베르트 병원은 영국의 지저분한 병원과 완전히 달랐어요. ‘어쩜 이렇게 병원이 깨끗할 수가 있지?’ 병원뿐만 아니라 간호사의 복장도 깨끗했어요. 푸른색 무명옷을 입은 간호사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에는 하얀 모자를 쓰고 일하고 있었어요. 그뿐이 아니었어요. 의사와 간호사들 역시 친절한 말과 미소로 환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있었어요. ‘아,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다!’ 영국으로 돌아온 플로렌스는 가족들에게 말했어요. “독일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를 도와 일을 해 봤어요. 아무래도 저는 정식으로 간호사가 되어야겠어요.” 플로렌스의 말에 가족들은 크게 화를 냈어요. 여행을 보내면 간호사가 되는 걸 포기할 줄 알았는데 간호사 실습까지 하고 왔다니 놀랄 수밖에요. “너 아직도 간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니? 기껏 간호사를 시키려고 너를 애지중지 키운 게 아니다! 맘대로 해라! 네가 간호사가 되겠다면 우리는 너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겠다!” 플로렌스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렸어요. 반대를 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요. 그녀는 가족들의 반대에 마음이 아팠어요. 그러나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언젠가 내가 하는 이 일이 옳다는 걸 알아주실 거야!’ 플로렌스는 마음을 다잡고 독일의 병원으로 떠났어요. 그녀가 떠나는 날, 어머니와 언니 파세노프는 내다보지도 않았어요. 그녀는 겨우 아버지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떠났어요. 독일의 병원에 도착한 플로렌스는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간호법에 대해 배우게 되었어요. 간호법 훈련은 생각보다 고되고 힘이 들었어요. 차가운 마룻바닥에서 자야 했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힘들었어요.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여기서 내가 포기한다면 지금까지 해 왔던 그 모든 일들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 거야! 내가 말했던 모든 것들이 거짓말이 되는 거라고! 난 절대 꿈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을 받았어요. 그리고 가장 높은 점수로 교육을 마쳤어요. 그 무렵 그녀에게 좋은 소식이 하나 날아왔어요. 런던에 있는 ‘가난한 여성 환자를 돕는 모임’에서 운영하는 자선 병원의 부장 자리가 비었다는 거예요. 이탈리아 여행을 함께했던 허버트 부부가 그녀를 그 자리에 추천했어요. 그녀는 뛸 듯이 기뻤어요. ‘드디어 내가 정식으로 환자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어!’ 그러나 곧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어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요? 아니, 온실에서 곱게 자란 귀족 집안의 딸이 간호에 대해 뭘 알겠소?” 사람들이 강하게 반대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아프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간호학을 배웠습니다. 그 일 자체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인정하실 때까지 저는 월급을 받지 않고 일하겠어요. 제발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사람들이 플로렌스의 진심을 알아주어 그녀는 드디어 런던 자선 병원의 부장이 되었어요. 그녀는 하루 종일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제일 먼저 침대 시트와 커튼 등 병원의 시설부터 깨끗하게 바꾸었어요. 환자들이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식단도 영양이 풍부한 식단으로 바꾸었어요. 각 층마다 뜨거운 물이 나오도록 했고 승강기도 설치했어요. 또 언제나 환자들이 의사나 간호사를 부를 수 있게 병실마다 종도 달았어요. 플로렌스는 직접 청소도 하고 환자들을 찾아가 살피기도 했어요. 이러한 그녀의 노력에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았어요. “나이팅게일 부장님은 정말 대단하셔! 최고야!” 이러한 소문은 금세 퍼져 가족들에게도 전해졌어요. “우리가 플로렌스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던 것 같소!” 부모님은 병원으로 찾아와 그동안 미안했다며 사과했어요. 그러자 플로렌스도 기뻐하며 부모님을 와락 끌어안았어요. “아니에요! 이제라도 제 마음을 알아주셔서 고마워요!” 얼마 후 크림 전쟁이 터졌어요. 당시 러시아는 남쪽에 있는 터키를 점령하려고 했어요. 그러자 영국과 프랑스가 힘을 합쳐 터키를 도와 러시아와 싸웠어요. 이것이 바로 1853년에 일어난 ‘크림 전쟁’이랍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연합군을 만들어 계속 러시아와의 전투에서 승리했어요. 그러나 승리했다고 좋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어요. 전쟁은 이기고 있었지만 부상병이 너무 많이 생긴 거예요. 야전 병원에는 의사나 간호사도 부족하고 의약품도 없어 병사들이 계속 죽어 간다는 내용이 신문에 실렸어요. ‘그래! 내가 전쟁터로 가서 부상병들을 치료해야겠어!’ 플로렌스는 곧바로 허버트 부부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당시 허버트는 영국의 육군성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허버트 씨, 저를 전쟁터로 보내 주세요. 제가 당장 간호사들과 함께 가서 부상병들을 치료하고 싶습니다!” 마침 허버트도 전쟁터에서 부상병을 치료할 적임자로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이팅게일 양, 여자의 몸으로 전쟁터로 달려갈 결심을 하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육군성의 허버트는 그녀와 함께 전쟁터로 달려가 부상병을 치료할 간호사들을 모집했어요. 영국 최초의 간호사 부대가 탄생하게 된 거예요. 이 일은 신문에 크게 실렸어요. 신문을 본 사람들은 다들 깜짝 놀랐어요. “귀족 집안의 딸인 데다 공부까지 많이 한 여성이 간호사가 되어 전쟁터로 가겠다고 나서다니!” 사람들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용기 있고 헌신적인 행동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마침내 그녀는 전쟁터로 향했어요. 스쿠타리 야전 병원에 도착해 병원장으로 일을 시작한 그녀는 그곳의 비참한 상황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생각보다 너무 열악했거든요. 제일 급한 것은 청결 문제였어요. ‘이대로 두면 병이 낫는 게 아니라 더 걸리겠어!’ 플로렌스는 침대보와 이불을 모두 걷어 내어 빨았어요. 그리고 부상병들의 식사도 딱딱한 콩에서 부드러운 스프로 바꾸었어요. 아픈 부상병들이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에요. 플로렌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병원은 차차 자리를 잡아 갔어요. 플로렌스는 부상병들을 직접 돌보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밤마다 등불을 들고 찾아가 세세히 살폈어요. “많이 아프지요? 조금만 참아요. 곧 나을 테니까!” “이제 곧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힘을 내요!” 그녀는 부상병들의 손을 꼭 잡고 용기를 주었어요. “저 멀리 등불이 보일 때마다 하늘에서 천사가 온 것 같은 기분이야!” 어느새 부상병들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을 ‘등불을 든 사랑의 천사’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플로렌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부상병들은 하나둘 자리를 털고 일어났어요. 고향으로 돌아가는 부상병들은 그녀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어요. “나이팅게일 원장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완쾌되어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플로렌스는 활짝 웃으며 병사들을 배웅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헌신적으로 일하던 플로렌스는 병에 걸리고 말았어요. 당시 유행하던 ‘크림 열병’이었어요. 크림 열병은 몸이 점점 약해지다 결국 죽게 되는 무서운 병이었어요. 플로렌스는 2주 이상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를 못했어요. “큰일이야. 나이팅게일 원장님이 일어나질 못하셔!” 사람들은 그녀를 위해 날마다 기도를 해 주었어요. 사람들의 기도 덕분이었는지 그녀는 2주 후에 기적적으로 일어났어요. “다시 부상병들을 돌봐야겠어요.” 일어나자마자 그녀는 다시 일을 하겠다고 나섰어요. “안 됩니다. 고향으로 돌아가 조금 쉬세요.” 군의관이 반대를 했지만 플로렌스는 고개를 저었어요. “저는 전쟁이 끝나 최후의 영국군이 모두 돌아갈 때까지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환자를 돌보는 것이 저의 보람이자 삶의 이유예요. 무리하지 않을 테니 일을 하게 해 주세요.” 그녀의 간곡한 말에 군의관도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럼 약속하세요. 다시는 무리하지 않겠다고!” 그녀는 약속을 하고서야 다시 환자들을 돌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얼마 후 전쟁은 드디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어요. 사람들은 뛸 뜻이 기뻐하며 열심히 싸운 영국 병사들과 병사들의 치료에 헌신적이었던 플로렌스를 칭찬했어요. “나이팅게일 선생님이 수많은 병사들의 생명을 구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플로렌스는 돌아가지 않았어요. 아직 부상병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그들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사람들은 이런 그녀의 헌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어요. 사람들은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 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뜻을 이어받자며 ‘나이팅게일 기금’을 만들었어요. 이 기금으로 1860년에는 그녀의 오랜 꿈이었던 간호사 양성 학교가 문을 열었어요. 그리고 학교 입구에는 등불을 든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동상이 세워졌지요. “간호사들에게는 간호에 대한 지식과 경험뿐 아니라 자기를 희생하는 정신과, 환자를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학교에서는 그러한 것들을 가르칠 것입니다!” 플로렌스는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책을 쓰기도 했어요. 병원에 대한 노트와 간호 노트라는 책인데, 이 책들은 훗날 간호법과 간호사를 양성하는 데 초석이 되었어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적십자 훈장도 받았어요. 그러나 그녀는 영광스런 훈장을 받고도 별로 기뻐하지 않았어요. 그러자 누군가 물었어요. “선생님은 훈장을 받은 것이 기쁘지 않으세요?” “나는 세상에서 존경받고 칭찬받는 것보다 하늘나라에 가서 상을 받고 싶어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다 했으니 이제 하느님의 나라로 가고 싶어요!” 이처럼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자기를 돌보기보다는 평생 아프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며 살았어요. 그러던 1910년 8월 13일, 그녀는 마침내 하느님의 나라로 떠나고 말았어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세상을 떠나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잠겼어요. 사람들은 그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나이팅게일상’을 만들어 세계 여러 나라의 훌륭한 간호사들에게 상을 주기로 했어요. 이 상으로 인해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숭고한 사랑과 봉사 정신은 지금도 길이길이 이어지고 있답니다.
한센병 환자를 위해 일생을 바친 신부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다미안 신부는 1840년, 유럽 벨기에의 트레멜로라는 작은 마을에서 여덟 명의 아이들 중 일곱 번째로 태어났어요. 어릴 때 이름은 요셉이었지요. 요셉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농장 일을 하며 부지런히 살아가는 분들이었어요. 부모님은 성당에 열심히 다니며 아이들이 착하게 살아가기를 기도했어요. 하루 일과가 끝나면 어머니는 세상을 위해 자신을 바친 위대한 성인들에 대한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 주곤 했어요. 요셉이 네 살 때, 하루는 부모님을 따라 마을 축제에 놀러 갔어요. 그런데 그만 손을 놓쳐 부모님과 헤어지고 말았어요. 부모님은 온 동네 구석구석 요셉을 찾아다녔어요. “여보! 저기 있는 아이가 우리 요셉 아니오?” 부모님이 요셉을 찾은 곳은 마을의 성당이었어요. 요셉은 그곳에서 의젓하게 두 손을 모으고 있었어요. “녀석도 참! 길을 잃었다고 기도를 하나 봐요!” 요셉은 어려서부터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고 하느님을 위해 헌신한 순교자들의 이야기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어요. 물론 요셉도 또래 친구들과 놀러 다니며 장난을 치는 개구쟁이 어린이였어요. 겨울에는 얼어붙은 강가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놀았고, 덜컹덜컹 달리는 마차에 매달려 신나게 소리를 지르며 놀기도 했어요. 하지만 다 놀고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아름다운 들판과 양 떼들을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것이었어요. ‘이 아름다운 들판과 온 세상을 만든 하느님은 도대체 어떤 분일까?’ 요셉은 건강하고 명랑하지만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사색을 즐기는 철학적인 소년이었어요. “아주머니, 저 왔어요. 소는 다 나았어요?” 한번은 이웃집에 놀러 갔다가, 그 집 소가 아파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 집에는 나이 드신 아주머니가 혼자 살고 계셔서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어요. 요셉은 아주머니도 가엾고 아픈 소도 불쌍했어요. 그래서 소에게 먹이와 물을 챙겨 주고 정성껏 쓰다듬어 주며 밤새워 돌봐 주었어요. 아주머니는 어린 요셉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어요. “정말 고맙구나. 네가 큰 힘이 되었어.” 요셉은 불쌍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 동물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늘 도와주었어요. 한번은 친구들이 요셉에게 장난을 쳤어요. “요셉, 내가 도시락을 안 싸 왔으니 네 것을 내놓으렴.” 친구들이 키득거렸지만 요셉은 당황하지 않았어요. “자, 여기! 내 것을 먹어. 나는 괜찮아.” 요셉의 너그러운 태도에 친구들은 아무 말도 못 했어요. 요셉은 아버지로부터 농사일도 배우고 이웃 아저씨로부터 목공 기술도 배웠어요. 부모님은 어른 못지않게 부지런하고 일 잘하는 요셉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어요. “요셉, 아버지 뒤를 이어 농사를 지으렴. 농작물을 내다 팔면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농작물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어를 배워야 했어요. 요셉은 머리가 아주 똑똑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참을성이 강하고 끈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프랑스어도 꾸준히 공부해 금세 잘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부모님의 바람과는 달리 요셉의 마음속에는 앞날에 대한 새로운 꿈이 싹트기 시작했어요. “난 농사보다는 하느님과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 요셉에게는 형들과 누나들이 많았어요. 그중 요셉보다 세 살 많은 형 아우구스티노와 누나 두 명은 집을 떠나 수도원에 가서 성직자가 되었어요. 요셉은 무럭무럭 자라 18세의 청년이 되자 형처럼 수도원에 가서 하느님에 대해 공부하고 기도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 더더욱 강해졌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부모님께 편지를 썼어요. “사랑하는 부모님, 저도 형님과 누님들이 간 길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우리 가족만을 위해 살기보다는 이 세상의 더 많은 가족들을 위해 일하고 싶어요.” 요셉의 부모님은 안타깝고 슬펐지만 곧 아들의 굳은 결심을 이해하고 허락해 주었어요. “그래.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을 하려무나.” 아우구스티노 형님은 수도원에 간 후 ‘팜필’이라는 이름의 신부님이 되었어요. 팜필 신부는 자신과 같은 길을 가게 된 동생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요셉, 성직자가 되려면 옛 로마 언어인 라틴어를 반드시 공부해야 한단다. 네가 아직 라틴어를 잘하지 못하니 내가 도와줄게.” 19세에 수도원에 들어가 신부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한 요셉은 자신의 세례명으로 ‘다미안’ 을 골랐어요. 다미안은 요셉이 가장 존경하는 옛 성인의 이름인데 아픈 사람들을 평생 돌보며 봉사한 훌륭한 분이었어요. 요셉은 이제 ‘다미안’ 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다미안은 새벽에 제일 먼저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했고, 먹을 음식이 부족할 때는 자신의 음식을 아낌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주기도 했어요. 어려서부터 농장 일과 목공 기술을 익혔기 때문에 새로운 성당이나 굴뚝을 지을 때면 앞장서서 일했어요. 뚝딱뚝딱 벽돌도 잘 쌓았어요. 사람들은 그를 ‘마음씨 착한 다미안’이라고 불렀어요. 그러나 동료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다른 누군가를 흉보거나 안 좋은 말을 하면 다미안은 화를 냈어요. “성직자가 될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합니까? 남을 흉보는 사람은 신부가 될 자격이 없어요.” 다미안의 말에 동료들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맞아. 우리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 모든 과정을 마친 다미안은 마침내 수도사가 되겠다는 서약을 하게 되었어요. 함께 공부한 동료들과 바닥에 엎드리자 다미안의 몸 위로 검은색 보자기가 덮여졌어요. 그것은 하느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었어요. 신부가 되려면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했지만 다미안은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어요. 그날 밤 다미안은 두 손 모아 기도했어요. “하느님, 이 세상의 수많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어디든 달려가 그 사람들을 도와주겠습니다.” 그 무렵 다미안의 형인 팜필 신부는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태평양에 있는 아름다운 섬나라 하와이에 선교를 하러 가야 했기 때문이에요. 그 시절에는 비행기가 없었기 때문에 하와이까지 가려면 배로 몇 달이나 걸렸어요. 그런데 팜필 신부가 덜컥 병에 걸리고 말았어요. 장티푸스라는 무서운 병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아픈 환자들을 돌봐 주던 팜필 신부가 그만 그 병에 전염되고 만 것이에요. 다행히 목숨을 잃지 않고 나을 수 있었지만 몸이 너무 약해져서 배를 탈 수 없었어요. 그러자 다미안은 대주교님에게 편지를 썼어요. “대주교님, 형님 대신 제가 가게 해 주세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지만 잘할 수 있습니다.” 다미안의 편지를 받은 대주교님과 신부님들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선교를 가기 위해서는 신부가 되어야 했는데, 다미안은 아직 신부가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다미안의 열정이라면 할 수 있을 거요.” “그래요. 팜필 대신 다미안을 보내기로 합시다.” 그리하여 다미안은 고향을 떠나 배를 타고 머나먼 섬나라를 향해 떠나게 되었어요. 1863년 가을에 출발한 배는 이듬해 3월이 되어서야 하와이에 도착했어요. 사나운 폭풍우에 배가 뒤집힐 뻔한 적도 있고, 뱃멀미가 많이 나 무척 힘이 들었어요. 하지만 배 안에서도 다미안은 힘겨워하는 다른 사람들을 돌봐 주었어요. 다섯 달 가까이 걸려 하와이의 호놀룰루라는 항구 도시에 닿자 다미안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어요. 그리고 하와이 사람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어요.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여러 개의 화산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하와이는 바닷물이 맑고 키 큰 야자나무가 초록색 이파리를 뻗으며 자라는 아름다운 섬이었어요. 그곳에는 갈색 피부의 원주민들과 흰색 피부의 백인들이 함께 살고 있었어요. 갈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하와이에 원래 살던 사람들이고, 하얀 피부를 가진 백인들은 유럽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사람들이었어요. 다미안은 섬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하와이 말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하와이 말을 할 줄 알아야 해. 그래야 사람들이 아프고 힘들다고 할 때 알아듣고 도와줄 수 있을 테니까.’ 다미안은 하와이 말을 금세 익혔고, 갈색 피부의 원주민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어요. 호놀룰루에 도착한 지 두 달이 지나자 다미안은 마침내 진짜 신부가 되었어요. 이제는 어엿하게 ‘다미안 신부님’이라 불리며 성당에서 하느님에게 드리는 예배를 뜻하는 ‘미사’를 직접 거행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어요. 다미안 신부는 종소리를 울리는 대신 소라 껍데기를 ‘뿌우’ 하고 불어서 미사 시간을 알렸어요. 그러면 갈색 피부의 원주민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모여들었어요. “성당은 무얼 하는 곳이지? 저 사람이 중얼거리는 말은 무슨 뜻일까?” 또 다미안 신부는 농장을 만들어 닭과 돼지도 키우고 감자와 콩도 심어서 사람들이 먹을 것을 얻게 도와주었어요. “다미안 신부님이 오신 후로 우리 마을이 살기 좋아졌어. 우리에게 항상 상냥하게 대해 주시고 말이야.” 사람들은 친절한 다미안 신부가 점점 더 좋아졌어요. 다미안 신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부지런히 다녔어요.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말이나 노새를 타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어려운 이들을 돕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통나무 속을 파서 만든 작은 배인 ‘카누’ 를 타고 파도를 헤치며 이웃 마을로 가다가 배가 뒤집혀 물에 빠지기도 했어요. 물을 잔뜩 먹고 가까스로 헤엄쳐 나오느라 힘이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씩씩하게 사람들을 향해 나아갔어요. “우와! 저기 다미안 신부님이 오고 계셔!” “오늘은 우리 집에 오시기로 했어. 싱싱한 생선을 구워 대접해 드려야지!” 다미안 신부가 집집마다 방문하면 하와이 사람들은 무척 반가워하며 식사를 대접하고 짚으로 만든 잠자리를 기꺼이 내주었어요. 사람들은 다미안 신부를 존경하였고, 다미안 신부는 하와이 사람들처럼 먹고 자며 그들의 친구가 되었어요. 다미안 신부는 집과 성당을 더 많이 짓기 위해 노력했어요. 사람들과 함께 농장에서 키운 것을 팔아 돈을 마련하고, 부자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아서 집을 지을 수 있는 건축 자재를 사들였어요. 통나무와 벽돌로 집을 지을 때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나무도 나르고 벽돌도 쌓았어요. 다미안 신부는 몸이 튼튼해서 무거운 통나무도 번쩍 들어 올릴 수 있었어요. 새로운 성당이 다 지어진 날,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축하를 하며 잔치를 벌였어요. 다미안 신부는 하루하루 행복하고 기뻐서 멀리 있는 형님 팜필 신부에게 편지를 썼어요. “어린 시절에는 낳아 주신 부모님의 아들로 살았지만, 청년이 되어서는 하느님의 아들로 공부하였고, 이제는 하와이 사람들의 부모와 같은 신부가 되었습니다. 형님, 이 사람들을 위해 제 인생을 바치고 싶습니다.” 다미안 신부가 하와이에 간 지도 어느덧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어요. 어느 날 하와이의 여러 섬 중 하나인 마우이 섬에서 새로 성당을 지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주교님과 많은 신부님들이 모였어요. 그때 메그레 주교가 신부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이웃 섬인 몰로카이 섬에 수많은 나병 환자들이 수용되어 있습니다. 그들을 돌봐 주고 친구가 되어 줄 사람이 필요한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미안 신부도 몰로카이 섬에 갇힌 나병 환자들을 알고 있었어요. 그들을 본 적도 있었지요. 그들을 떠올리자 다미안 신부는 가슴이 아팠어요. 그 섬으로 쫓겨난 환자들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나병이란 오랜 옛날부터 문둥병이라고 불리던 무서운 질병이에요. 피부가 짓무르며 손가락과 발가락이 썩어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변했는데, 옛날에는 아무도 치료 방법을 알지 못했어요. 하와이 사람들은 오랜 세월 건강하게 살았지만 섬에 백인들이 마구 들어오면서 감기나 콜레라 같은 나쁜 병들을 원주민들에게 옮겼어요. 원주민들은 면역력이 약해서 여러 가지 병에 걸리고 그중 많은 사람들이 나병에 걸리고 말았어요. 그러자 병이 옮을까 봐 두려워한 사람들이 환자들을 억지로 잡아서 외딴 섬으로 쫓아낸 것이었어요. 하지만 의사도 보내 주지 않고 돌보지도 않아서 환자들은 고통스러워하며 죽어 갔어요.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나올 수 없는 섬!” “괴물들이 사는 무시무시한 섬!” 어느덧 몰로카이 섬은 공포의 섬이 되었어요. “제가 가겠습니다! 저를 보내 주세요!” 메그레 주교의 이야기를 들은 다미안 신부는 그 섬에 가게 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어요. 병들고 버려진 사람들을 꼭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메그레 주교는 망설였어요. 그 섬은 의사도 군인도 가기 싫어하는 위험한 곳이라 젊고 실력 있는 선교사들을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다미안 신부는 고집을 꺾지 않았어요. “그럼 딱 2주일만 있다 올게요. 그 후에는 다른 신부들과 교대로 갔다 오면 되지 않겠어요?” 메그레 주교는 하는 수 없이 허락을 해 주었어요. 몰로카이 섬의 북쪽에 삐쭉하게 나와 있는 ‘칼라우파파’라는 작은 반도는 높이 솟은 푸른 절벽과 바위투성이 해변으로 둘러싸인 곳이었어요. 이곳으로 보내진 환자들은 절벽과 바다에 갇혀 다른 곳으로 도망가기가 어려웠어요. 다미안 신부를 태운 배가 도착하자 수많은 환자들이 신부를 구경하러 우르르 몰려나왔어요. 멍한 표정의 환자들을 보고 다미안 신부는 마음이 아팠어요. ‘세상에! 생각했던 것보다 환자들의 상태가 훨씬 안 좋잖아!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어!’ 얼굴이 일그러지고 손과 발이 뭉툭하게 뭉개진 환자들은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고, 먹을 게 없어 굶주리고 있었어요. 배에서 내려 섬을 둘러본 다미안 신부는 더욱 놀랐어요. 그들이 사는 집은 나뭇잎과 풀로 만든 허름한 움막이 전부였는데 그 안에는 침대도 창문도 없었어요. “아아! 이 불쌍한 사람들을 이렇게 버려두다니!” 다미안 신부는 가슴이 아프고 화가 났어요. ‘더 일찍 올걸!’ 하는 마음에 안타까웠어요. 칼라우파파 반도에는 600명 정도 되는 나환자들이 살고 있었지만, 아무리 마을을 둘러보아도 깨끗한 건물은 보이지 않았어요. 섬에 도착한 첫날 밤, 다미안 신부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등을 기대고 자야 했어요. 머물 수 있는 집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다음 날 아침, 다미안 신부는 버려진 성당 건물 한 채를 발견했어요. 오랫동안 아무도 쓰지 않은 건물이라 그 안에는 먼지와 쓰레기가 가득했어요. 청소를 할 수 있는 빗자루도 보이지 않았어요. 다미안 신부는 야자수 나뭇잎을 빗자루 모양으로 만들어 청소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 하루에 한 가지씩 시작해 보자.’ 앞날이 막막하게 느껴졌지만 다미안 신부는 주먹을 불끈 쥐고 용기를 냈어요. 다미안 신부가 땀을 뻘뻘 흘리며 청소를 하자 환자들 몇 명이 기웃거리며 구경을 했어요. 하지만 다미안 신부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자 모두들 도망가고 말았어요. 힘들게 혼자 일하는 다미안 신부를 아무도 도와주려 하지 않았고 가까이 다가가면 고개를 돌리며 어두운 구석으로 숨었어요. 다미안 신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아무도 이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모두들 괴물이라고 하며 무서워하니까 이 사람들도 마음에 상처를 입은 거야.’ 다미안 신부도 처음에는 환자들의 흉한 모습이 조금은 무서웠어요. 하지만 이내 가엾고 미안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 사람들은 괴물도 악마도 아니야! 그저 나쁜 병에 걸려 몸이 아픈 환자이고 우리의 친구일 뿐인걸!’ 이런 생각을 하자 환자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다미안 신부는 날마다 조금씩 마을을 가꾸었어요. 성당을 깨끗이 청소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목공 솜씨를 발휘해 뚝딱뚝딱 새 집도 지었어요.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안녕하세요!” 하고 밝게 인사를 했어요. 아직 집이 없어서 밤에는 나무 아래에서 자고 낮에는 바위 위에서 밥을 먹었지만 힘들지 않았어요. 마을의 환자들은 새로 온 신부가 며칠이 지나도 도망가지 않고 자기들에게 “괴물! 저리 가!” 하면서 쫓아내지도 않자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예전에 왔다 갔던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 무서워하며 비명을 지르고는 얼마 후 섬을 떠났지. 그런데 저 사람은 왜 안 그러는 거지? 오히려 먼저 인사를 하면서 마을을 깨끗하게 가꾸고 있잖아?” 그러던 어느 날, 한 환자가 용기를 내어 다미안 신부에게 다가와서는 산에서 따 온 먹음직스러운 과일을 수줍게 내밀었어요. 그러자 다미안 신부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과일을 받고 하와이 원주민 말로 인사를 했어요. “고맙습니다!” 환자는 깜짝 놀랐어요. 다미안 신부가 과일을 뿌리치지 않고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와이 말을 아주 잘했기 때문이에요. 그 후 마을의 환자들은 하나둘 마음의 문을 열고 다미안 신부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들판에서 예쁜 꽃을 꺾어 성당 앞에 한 묶음 놓아두고 가는 사람도 있었어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다미안 신부는 우리를 괴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다미안 신부는 우리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자 사람들은 조금씩 성당에 와서 다미안 신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노래도 함께 불렀어요. 다미안 신부는 메그레 주교에게 2주일만 있다가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섬에 온 것이지만, 2주일이 지나도 섬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어요. 그래서 주교에게 편지를 썼어요. “불쌍한 우리 나환자들을 위해 계속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이 섬에 계속 머무르겠습니다.” 섬에는 의사도 간호사도 없었기 때문에 다미안 신부가 의사 역할을 하며 환자들을 돌보았어요. 하루 종일 집집마다 다니며 깨끗한 붕대를 감아 주고 아픈 사람들의 손을 꼭 잡아 주었어요. 상처가 심한 환자들의 몸에서 악취가 났지만 다미안 신부는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어요. 그 대신 독한 연기가 나는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악취를 견디고 환자들을 치료해 주었어요. “이곳은 죽음의 섬이 아니야! 환자들이 잘 살 수 있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좋은 마을로 만들자!” 이렇게 다짐한 다미안 신부는 환자들이 지낼 수 있는 새 집을 여러 채 짓고 깨끗한 병원 건물도 지었어요. 몸이 덜 아픈 사람들과 힘을 합쳐 농장을 만들고 고구마를 심어서 식량을 얻을 수 있도록 했어요. 성당 근처에는 예쁜 꽃밭을 만들어 가꾸었어요. 또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위해 무덤을 만들었어요. 다미안 신부가 오기 전까지는 죽은 사람을 땅에 대충 묻고 나면 야생 돼지들이 무덤을 파헤치곤 했어요. 다미안 신부는 관을 만들고 땅속 깊이 묻어 주어 돼지들이 파헤치지 못하도록 했고, 세상을 떠난 가여운 영혼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 무덤 앞에 비석도 세워 주었어요. 공포의 땅이었던 칼라우파파 반도는 점점 깨끗한 마을이 되어 갔어요. 환자들의 표정도 밝아져 갔어요. 어느 여름, 바다에서 태풍이 불어왔어요.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 나무들이 뿌리째 뽑히고 집들이 다 날아가 환자들이 비에 젖어 덜덜 떨었어요. 다미안 신부는 하와이 정부에 편지를 보냈어요. “비바람에 집을 잃은 우리 환자들을 도와주세요. 새 집을 지을 수 있는 목재와 도구를 보내 주세요.” 처음에는 다미안 신부의 편지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다미안 신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보냈어요. “다미안 신부가 또 편지를 보냈는데요?” “어휴, 벌써 몇 통째야! 귀찮아 죽겠네! 달라고 하는 것을 그냥 보내 줘. 안 그러면 또 편지를 보낼 테니.” 다미안 신부는 정부의 높은 관리들이 좋은 집에서 배불리 먹고 살면서 불쌍한 환자들을 도와주지 않아 화가 났어요. 그래서 목재뿐만 아니라 새 붕대와 약을 보내 달라는 편지도 보냈어요. 편지에 답이 없어도 실망하지 않고 계속 보내자, 다미안 신부가 요구하는 것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았어요. 섬에는 수도 시설이 없어서 깨끗한 물을 구하기가 무척 어려웠어요. 물 한 동이를 길어 오기 위해 다른 마을까지 한참을 걸어가야만 했지요. 그래서 먹을 물도 씻을 물도 늘 부족했어요. 다미안 신부는 마을에 수도 시설을 만들기로 하고 다시 한 번 정부에 편지를 썼어요. “우리 환자들에게는 깨끗한 물이 꼭 필요합니다. 수도를 만들 수 있는 파이프를 보내 주세요.” 이번에도 처음에는 답이 없었지만 편지를 보내고 또 보내자 드디어 파이프와 나사를 보내 주었어요. 다미안 신부는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서 땅을 파고 파이프를 묻고 공사를 했어요. 몇 달이 지나자 마을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시원하고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어요. “와! 우리 마을에도 깨끗한 물이 나온다!” 사람들은 모두 얼싸안고 뛸 듯이 기뻐했어요. “고통받는 나환자들의 아버지! 진정한 친구!” 섬의 환자들은 다미안 신부를 믿고 따랐어요. 병에 걸리지 않은 다른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섬을 방문한 신부들과 의사들까지도 몰로카이 섬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버려진 환자들이 죽어 가던 ‘공포의 땅’은 온데간데없고 아름다운 농장과 깨끗한 병원이 세워진 마을의 모습에 모두들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다미안 신부에 대한 이야기가 다른 나라의 신문에 실리자 더 많은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았어요. 다미안 신부는 가끔 하와이의 큰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말했어요. “여러분이 조금만 도와주어도 우리 환자들에게는 큰 힘이 된답니다. 먹을 것과 약을 보내 주세요.”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여 자선 물품을 보내 주었어요. 어느 날, 하와이 왕의 여동생인 공주가 몰로카이 섬에 방문했어요. 섬에 환자 마을이 생긴 후 처음 있는 일이라 800명에 이르는 환자들은 며칠 전부터 마음이 설레었어요. “우리 섬에 공주님이 오신대!” “청소도 깨끗이 하고 노래 연습도 열심히 하자.” “공주님을 환영하는 우리 마음을 보여 드리자.” 공주가 섬에 도착하자 환자들은 가장 깨끗한 옷을 입고 꽃다발을 바치고 악기를 연주했어요. 병에 걸려 아프고 뭉툭한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것이라 서투르고 소리가 잘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환자들은 최선을 다했어요. 공주는 그들을 보며 가슴이 너무 아파 엉엉 울었어요. 방문을 마치고 돌아간 공주는 환자들을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많이 보내 주고 다미안 신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훈장을 내려 주었어요. 환자들의 마을은 점점 크게 발전했어요. 이제 마을에는 병원뿐만 아니라 부모를 잃은 어린 고아들을 위한 집도 새로 지어지고 소년 소녀들을 위한 학교도 세워졌어요. 몰로카이 섬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지자 또 다른 신부들과 수녀들이 스스로 찾아와 다미안 신부를 도와주기도 했어요. 다미안 신부는 이제 이 섬이 자신의 고향처럼 느껴졌어요. 멀리 있는 가족들과 형님이 보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면 편지를 썼어요. “형님, 이곳의 환자들은 저의 가족이자 친구입니다. 저는 언제까지나 이 섬에서 살 것입니다.” 어느덧 다미안 신부가 몰로카이 섬에 온 지 10년이 지났지만 단 하루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어요. 매일매일 마을 곳곳을 다니며 환자들을 치료하고 부지런히 일을 하느라 자신의 건강은 전혀 돌보지 않았어요. “다미안 신부, 위험할지 모르니 환자들을 집에 들이지 말게. 그리고 자네의 건강도 챙기도록 하게.” 메그레 주교는 다미안 신부가 아플까 봐 늘 걱정을 했어요. 하지만 다미안 신부는 모든 환자들을 가족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집에 사람들이 놀러 오면 언제나 반갑게 맞아 주며 이야기를 들어 주었어요. 또한 1,000명 가까이 늘어난 마을 환자들을 돌보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며 일을 했어요. 그 무렵 다미안 신부는 청년을 지나 중년의 나이가 되었는데,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몸이 약해졌어요. 폐렴에 걸렸다가 겨우 낫기도 했지요. 그런데 하루는 발이 아프고 열이 나는 것이었어요. 처음에는 심각하지 않게 여겼는데 점점 더 심해지고 등에 얼룩덜룩한 점까지 생기는 거예요. 얼마 후 다미안 신부를 진찰한 의사가 말했어요. “신부님, 아무래도 병에 걸리신 것 같아요.” 다미안 신부가 섬의 환자들과 같은 병에 걸렸다고 말하며 의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어요. 하지만 다미안 신부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어요. 언제부턴가 다미안 신부는 스스로를 성직자가 아니라 환자들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이 섬에서 눈을 감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별로 놀라거나 화가 나지 않았어요. 다미안 신부가 아프다는 소문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어요. “그동안 열심히 봉사를 하셨으니 이제는 고국으로 돌아가 치료를 하시지요?” 하지만 다미안 신부는 고개를 내저었어요. “내가 떠나면 우리 가족들은 어떻게 합니까? 나는 이 섬에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합니다.” 다미안 신부의 병은 점점 악화되어 살갗이 헐고 눈썹이 빠지고 걸을 때마다 발이 아팠어요. 그러나 사람들은 다미안 신부의 모습을 보고 두 눈을 의심했어요. “저분이 다미안 신부님 맞아?” “믿을 수가 없어! 아프다는 분이 어떻게 저렇게 밝은 표정으로 활기차게 돌아다닐 수가 있지?” 다미안 신부는 마을이 점점 더 좋아지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어요. 심지어 새 성당을 짓기 위해 높은 지붕 위에 올라가 큰 소리로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하기도 했어요. 너무 아파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지자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지만,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친구들에게 열심히 설명해 주었어요. 다미안 신부는 그렇게 평소처럼 생활하다가 1889년 4월에 마치 깊이 잠든 것처럼 세상을 떠났어요. 다미안 신부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참석했어요. 모두 조용히 눈물 흘리며 친구와의 이별을 슬퍼했어요. 다미안 신부가 세상을 떠난 후 전 세계의 의사들은 나병을 치료할 방법을 부지런히 연구했어요. 노르웨이의 한센 박사가 병균을 발견하여 이 병은 이제 한센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요. 20세기가 되자 치료약이 만들어졌고 의사들은 한센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어요. “한센병은 더 이상 무서운 병이 아닙니다. 괴물이 되는 병도 아니고요. 오늘날에도 한센병 환자들이 있지만 약을 먹고 잘 치료하면 얼마든지 나을 수 있어요. 그리고 건강하기만 하다면 쉽게 전염되는 병이 아니랍니다.” 하와이에서도 환자들이 거의 사라져 몰로카이 섬은 이제 아름다운 관광지가 되었어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다미안 신부가 지은 성당을 방문하여 그의 위대한 삶을 기리고 있지요. 아프고 버려진 사람들에게 다가가 기꺼이 친구가 되어 준 다미안 신부의 사랑과 용기는 지금도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답니다.
인종차별의 벽을 부순 대통령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만델라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 만델라에게 아프리카 민담을 들려주고는 했어요. “늙고 병든 여인이 어떤 여행자(旅行者)에게 도움을 청했단다. " "하지만 여행자는 눈곱이 덕지덕지 낀 늙은 여인의 눈길을 피해 버렸지." 만델라는 1918년 남아프리카 연방 트란스케이 움타타에 있는 템부 족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만델라의 아버지 가들라는 원래 템부 족 족장이었는데 안 좋은 일에 말려들어 욘긴타바 족장에게 자리를 물려주었어요. 그 후에는 욘긴타바 족장의 조언자 역할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에게 또 문제가 생겼어요. 마을의 어떤 흑인이 아버지를 백인 치안 판사에게 고발하는 부당한 사건이 벌어진 거예요. 강직한 만델라의 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치안 판사는 당장 그를 소환했어요. 그러자 만델라의 아버지는 그 명령을 거부했어요. “나는 절대 안 간다!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이에 화가 난 치안 판사는 아버지의 재산과 지위를 모두 빼앗고 가족과 함께 마을에서 추방했어요. 이 사건으로 병이 난 아버지는 얼마 후 세상을 뜨고 어린 만델라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아버지의 죽음으로 만델라는 한동안 방황했어요. 그런데 다행히도 아버지의 도움으로 족장이 된 욘긴타바 족장이 만델라를 양자(養子)로 삼고 도움을 주었어요. 욘긴타바 족장은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훌륭한 사람이었어요. 족장이 주관하는 마을 회의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고, 족장을 비판할 수도 있었어요. 족장은 누가 자신을 욕해도 귀를 기울일 뿐 변명을 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어요. 그러다 회의가 끝날 무렵이면 지금껏 나온 다양한 의견을 모아 합의(合意)를 이끌어 냈어요. 욘긴타바 족장은 만델라에게 종종 이렇게 말했어요. “지도자의 역할은 마치 목동처럼 양들이 스스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란다.” 만델라는 욘긴타바 족장을 통해 참된 리더십과 사람끼리 지혜롭게 소통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어요. 만델라는 욘긴타바 족장의 도움으로 정식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영국(英國) 사람이 세운 학교(學校)에 다니게 된 것이지요. 당시 남아프리카 연방의 흑인 학생들은 철저하게 영국을 모델로 교육을 받았어요. 그래서 흑인 학생들은 영국 사람들이 자신들의 교육을 위해 애쓰는 것을 무척 고맙게 생각했지요. “가장 좋은 것은 영국의 사상이고, 가장 좋은 정부는 영국 정부이며,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신사는 영국 남자뿐이다.” 학교에서는 항상 이렇게 가르쳤어요. 만델라도 그 말을 크게 의심하지 않았어요. 자기가 받은 영국식 교육이 항상 옳다고 생각했고, 영국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 또 영국의 문화와 제도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어요. 만델라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유명한 코사인 시인이 학교를 방문했어요. 시인은 표범 가죽을 걸치고 창을 든 전통 의상 차림으로 연설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갑자기 시인이 창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어요. 그 바람에 천장 커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어요. 그 순간 시인이 큰 목소리로 외쳤어요. “이 창은 아프리카의 역사에서 영광된 것, 참된 것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이 커튼 줄은 정교하고 아주 잘 만들어졌지만 차갑고 혼이 깃들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문화를 아끼지 않는 백인들이 우리나라를 점령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만델라는 백인 교장과 백인 선생들 앞에서 당당하게 연설하는 시인의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자신이 백인이 아니라 아프리카인이라는 인식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어요.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연방에서 가장 훌륭한 흑인 대학인 포트헤어 대학에 입학했어요. 일 년 후, 선배들의 졸업식 때 유명한 정치가인 얀 스뫼츠가 연사로 나왔어요. 세계적인 지도자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만델라는 흥분했어요. 스뫼츠는 이렇게 말했어요. “남아프리카 사람들은 영국을 지지해야 합니다. 우리 영국은 남아프리카와 똑같은 가치를 추구합니다.” 많은 학생들이 열렬히 환호했어요. 하지만 만델라의 친구 가운데 한 학생이 그가 인종 차별주의자라며 비판했어요. “스뫼츠는 우리를 ‘검은 영국인’ 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영국인은 우리를 교육시켜 주는 척하면서 오히려 억압하고 있다고!” 만델라는 친구의 말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만델라는 무조건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라는 걸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어요. 대학 2학년 때 만델라는 학생회 운동을 하다가 학교와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퇴학당할 처지에 놓이고 말았어요. 만델라는 괴로운 마음에 일단 집으로 돌아왔어요. 욘긴타바 족장의 친아들인 저스티스가 만델라를 반겨 주었어요. 둘은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였어요. 하루는 욘긴타바가 저스티스와 만델라를 함께 불렀어요. 그곳에는 어떤 예쁜 처녀도 와 있었어요. 욘긴타바 족장이 만델라와 처녀를 보며 말했어요. “난 너희 둘이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싶구나.” 만델라와 저스티스는 깜짝 놀랐어요. 왜냐하면 그 처녀는 저스티스와 사랑하는 사이였기 때문이에요. “이 결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만델라가 반대했지만 족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어요. 결국 만델라와 저스티스는 집을 나와 큰 도시인 요하네스버그로 도망쳐 버렸어요. 만델라는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요하네스버그에서 일자리를 찾아 돌아다녔어요. 다행히도 흑인 사업가 월터 시술루의 도움으로 법률 사무소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와 동시에 만델라는 공부도 계속 이어 가기로 했어요. 그래서 변호사가 되리라 마음먹고 법학 대학으로 유명한 비트바테르스란트 대학에 입학했어요. 그 무렵 만델라는 ‘아프리카 민족 회의’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어요. 친구 가우어는 만델라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아프리카 민족 회의만이 아프리카를 변화시킬 수 있어!” 알고 보니 아프리카 민족 회의는 백인 정부와 투쟁하며 흑인들의 권리를 찾는 단체였어요. 만델라는 흑인들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가우어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그래서 민족 회의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만델라가 민족 회의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 무렵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어요. 리프 지역에서 광산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킨 거예요. 7만 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한 그 파업은 남아프리카 연방 역사에서 가장 큰 파업이었어요. 형편없는 작업 환경을 견디지 못한 노동자들은 임금을 인상해 줄 것과 거처할 곳을 마련해 달라며 시위를 벌였어요. “우리는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살고 싶다!” 하지만 백인 정부는 경찰을 동원하여 흑인 노동자들을 잔혹하게 진압했어요. 진압 과정에서 12명의 흑인이 목숨을 잃었고, 광산 노조는 해체되고 말았어요. 만델라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어요.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만델라는 바로 아프리카 민족 회의에 가입했어요. 만델라는 민족 회의 청년 동맹의 집행 위원이 되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활발하게 활동했어요. 그 무렵 야당인 국민당이 집권당인 통일당을 누르고 선거에서 승리했어요. 그 당시 흑인들은 투표권이 없었고 백인들만 선거(選擧)를 할 수 있었어요. 이전의 통일당은 흑인들을 억압하면서도 달래는, 당근과 채찍 정책을 폈어요. 그런데 새로 집권한 국민당은 백인 우월주의를 주장하며 노골적으로 흑인을 탄압하는 정책을 폈지요. “백인은 아프리카 연방의 영원한 주인으로 남을 것이다!” 국민당은 정권을 잡자마자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악명 높은 인종 차별 정책을 실행에 옮겼어요. 그러잖아도 힘든 흑인들의 삶이 더욱 힘들어진 거예요. 아프리카 민족 회의는 부당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맞서 여러 가지 불복종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어요. 만델라는 아프리카 민족 회의 청년 동맹의 의장이 되었어요. 만델라는 국민당의 인종 차별 정책에 반기를 들고 저항하면서 계속 흑인 인권 운동을 펼쳐 나갔어요. 마침내 1950년 5월 1일, 총파업이 시작되었어요. “파업에 참가하는 사람은 무조건 체포할 것이다!” 국민당 정부는 겁을 주며 협박했어요. 하지만 이날 남아프리카 전체 노동자의 3분의 2가 출근하지 않고 함께 파업에 동참했어요. “우리도 노동자들과 함께하자.” 만델라와 월터 시술루도 총파업 집회에 참가했어요. 시위대는 질서 정연하게 행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경찰이 시위대를 포위하더니 진압봉을 휘두르며 총을 쏘기 시작했어요. 요란한 총소리가 탕탕! 울려 퍼졌어요. “폭력 시위를 한 것도 아닌데 총을 쏘다니!” 이날 18명이 목숨을 잃고 많은 사람들이 부상당했어요. 총파업 사건으로 국민당 정부는 거센 비난을 받았어요. 하지만 국민당 정부는 ‘공산주의 활동 금지법’을 만들어 오히려 더 거세게 흑인들을 탄압했어요. ‘공산주의 활동 금지법’은 반정부 단체나 인사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마구 체포하기 위한 나쁜 법이에요. 그러자 아프리카 민족 회의는 이 금지법을 막기 위해 다시 총궐기 대회를 열었어요. ‘자유의 날’로 이름 붙여진 그날의 총궐기 대회는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할 정도로 매우 규모가 컸어요. “악법을 철폐하라!” “우리는 결코 인종 차별 정책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총궐기 대회 이후 국민당 정부는 흑인들을 탄압하는 또 다른 법을 만들어 오히려 인종 차별 정책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어요. 아프리카 민족회의는 국민당 정부의 악법에 맞서 절대 폭력은 쓰지 않기로 결의했어요. 그래서 흑인들은 백인 전용 구역에 들어가거나 백인 전용 출입문을 이용하는 식으로 인종 차별법을 어기는 행동을 했어요. 총궐기 대회를 하던 그날은 만델라도 백인들만 사는 마을에 허가 없이 들어가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어요. 만델라는 다시 풀려나온 후에도 계속 저항 운동을 이어 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이 만델라가 일하고 있는 법률 사무소로 들이닥쳤어요. “만델라, 공산주의 활동 금지법을 어긴 죄로 체포하겠다!” 만델라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부당하게 체포한 거예요. 그런데 체포된 건 그만이 아니었어요. 1952년 6월부터 12월까지 무려 8,500명이 비폭력 저항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어요. 감옥에서 풀려난 만델라는 얼마 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정식으로 변호사가 되었어요. 만델라는 흑인 변호사로는 최초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어요. 그러던 1955년에 아프리카 민족 회의는 인종 차별 정책에 맞서는 새로운 대응책으로 자유 헌장을 발표했어요.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정부만이 피부색이나 종족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기본적인 권리를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아프리카 연방의 국민으로서, 형제로서 우리는 엄숙히 자유 헌장을 선포하는 바이다.” 발표를 들은 흑인들은 열렬히 환호했어요. “자유 헌장 만세! 자유 헌장 만세!” 경찰은 역시 이 집회도 강경(强硬)하게 진압했어요. “너희들은 지금 반역죄를 저질렀다! 경찰의 허락 없이 아무도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경찰은 결국 만델라를 반역죄 혐의로 체포했어요. 만델라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민족 회의 지도자 대부분이 체포되었지요. 얼마 후 반역죄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어요. 검사들은 모든 증거와 증인을 조작했어요. 자유 헌장의 한 부분에 공산주의 사상이 들어 있다고 고발한 사람이 증인으로 법정에 나오자 아프리카 민족 회의 쪽 변호사가 물었어요. “이 부분이 공산주의 사상을 담고 있는 것 맞습니까?” “맞소! 그런 걸 쓴 놈은 분명히 철저한 공산주의자요!” 그러자 변호사가 그 증인에게 말했어요. “이 부분은 당신이 쓴 글입니다. 그러면 당신이 바로 공산주의자로군요?” 증인으로 나온 사람은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 했어요. 알고 보니 문제가 된 그 내용은 증인으로 나온 그 사람이 쓴 글이었어요. 이렇게 해서 검사가 제시한 증거들이 모두 거짓으로 들통나고 말았어요. 그러나 정부의 태도는 그 후에도 변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공산주의자로 몰아 탄압을 가했어요. 그러던 1960년에 요하네스버그 남쪽에 있는 샤프빌 마을에서 대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어요. 수천 명의 시위대가 경찰서를 포위하자 겁에 질린 경찰들이 갑자기 탕탕탕! 총을 쏘기 시작했어요. 거리는 금세 화약 연기로 가득했고 총에 맞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나뒹굴었어요. 이 참극으로 무려 69명이 죽고 400여 명이 부상을 당했어요. ‘샤프빌 대학살 사건’은 금세 전 세계에 알려졌어요. 그러자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남아프리카를 거세게 비난하며 인종 차별 중지를 요구했어요. “경찰은 잘못이 없다.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일 뿐이다!” 정부는 모든 것을 공산주의자들의 탓으로 돌리려 했어요. 그러자 흑인들은 물론 백인들까지 정부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시위는 전국으로 퍼져 나갔어요. 샤프빌 대학살 사건 이후 전국적으로 시위가 끊이지 않자 국민당 정부는 위기를 느꼈어요. 그러자 정부는 군대를 동원하여 계엄령을 선포했어요. 계엄령이 선포되면 군인이 나서서 아무나 쉽게 체포할 수 있게 돼요. 만델라는 다시 체포되어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감옥으로 끌려갔어요. 그와 함께 2,000명의 시위자들도 함께 체포되었어요. 국민당 정부는 계엄령 아래에서 아프리카 민족 회의를 아예 불법 단체로 만들어 버렸어요. 얼마 후 강대국의 압력으로 계엄령은 해제되었지만 반역죄 재판은 계속되었어요. 민족회의 쪽 변호사가 마지막 변론을 했어요. “자유를 위해 저항 운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린 폭력을 사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의 평화 시위는 반역죄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 재판에서 만델라는 다행히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어요. 하지만 아프리카 민족 회의가 불법 단체가 되는 바람에 늘 비밀경찰에 쫓겨야 했어요. 만델라는 은신처로 몸을 숨긴 채 은밀히 비밀 조직을 만들어 계속 반정부 활동을 했어요. 국민당 정부는 만델라를 찾을 수 없게 되자 전국에 지명 수배를 내렸어요. 하지만 만델라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경찰을 농락했어요. 그러자 언론(言論)은 소설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그에게 ‘검은 별봄맞이꽃’이라는 별명을 붙였어요. 그리고 날마다 신문에 크게 실어 주었어요. 검은 별봄맞이꽃, 수개월째 경찰 추격 따돌리다! 경찰의 체포망을 유유히 따돌린 만델라는 어느새 모든 흑인의 영웅이 되었고, 그의 비밀 활동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어요. 샤프빌 대학살 사건이 벌어진 후 영국과 미국은 남아프리카 연방의 아파르트헤이트, 즉 인종 차별 정책을 맹렬히 비판했어요. 그러자 국민당 정부는 영국 연방을 탈퇴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선포해 독립국이 되었어요. 남아프리카 연방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된 거예요. 국민당을 지지하는 백인들이 자신들만의 공화국을 만들어 인종 차별 정책을 더욱 강화할 속셈이었지요. “우리도 가만히 있지 말고 끝까지 싸웁시다!”
미국을 감동시킨 소통의 여왕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오프라 윈프리는 1954년 미국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은 흑인(黑人)이에요. 당연히 오프라도 피부색이 검었지요. 오프라는 어릴 때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답니다. 군인이었던 아빠는 딸이 태어난 줄도 몰랐어요. 엄마는 양육비(養育費)를 벌기 위해 일을 해야만 했지요. 오프라의 원래 이름은 ‘오르파’예요. 우두머리가 되라는 뜻에서 외할머니가 성경책을 보고 지어 준 이름이랍니다. 그런데 동네 할머니들은 그 이름을 발음하기가 어려웠나 봐요. 엄마가 ‘오르파’라고 일러 줘도 자꾸만 ‘오프라’로 불렀어요. 먹고살기도 힘든 마당에 이름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는지 결국 엄마는 딸의 이름을 아무 의미도 없는 오프라로 정했어요. 그러고는 돈을 벌겠다고 큰 도시로 떠났지요. 오프라가 돌이 되기도 전이었답니다. 외할머니 집은 마을에서도 한참 외따로 떨어진 시골이었어요. 마을 사람이라고는 나이 든 어른들뿐이었죠. 놀아 줄 친구도 없고 텔레비전도, 장난감도 없었어요. 외할머니 집에서 키우는 소와 양, 닭과 돼지, 그리고 강아지가 오프라의 유일한 친구들이었어요. 집에는 수돗물도 나오지 않았고 변변한 농기구(農器具)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외할머니 혼자 가축(家畜)들을 키우기에는 너무 벅찼어요. 한창 바쁠 때는 가축들 먹이 줄 시간도 없었어요. 오프라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오고, 가축들을 들판으로 끌고 나가 풀을 뜯기거나 벌레를 잡아먹게 하면서 하루를 보냈어요. 외할머니 일을 조금이나마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 오프라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어요. 또래 친구라곤 한 명도 없고, 놀이 시설도 게임기도 휴대 전화도 없는 시골 마을에서 오프라는 심심할 때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까요? 다행히 오프라에게는 동물 친구들이 있었어요. “강아지야, 넌 왜 집 안에만 있니? 친구랑 싸웠어?” “병아리야, 밥 흘리면 안 돼. 밥 잘 먹고 열심히 운동하렴. 그래야 알을 많이 낳을 수 있거든.” “소야, 수고했어. 우유 잘 마실게!” 오프라에게는 동물 친구들이 유일(唯一)한 말벗이었어요. 지루하고 외로운 시간도 동물 친구들이 있어 즐겁게 보낼 수 있었지요. 오프라는 특히 말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눌 상대(相對)가 없는 게 조금 아쉬웠어요. 외할머니는 자기 전에 오프라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했어요. 오프라는 그 이야기를 동물 친구들에게 들려주기로 했답니다. 동물 친구들은 오프라 덕분에 심심할 틈이 없었어요. 오프라는 매일 외할머니를 돕고 남는 시간이면 신이 나서 동물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를 했어요. 이야깃거리는 얼마든지 있었답니다. 어떤 날은 교회 갔다 오는 길에 동네 할머니들끼리 수다 떠는 이야기도 귀담아 두었다가 동물 친구들에게 들려주고는 했어요. 조금 재미없으면 일부러 이야기를 꾸며 넣기도 했지요. 그러면서 말솜씨와 상상력이 점점 풍부(豊富)해졌어요. 가끔은 혼자만의 비밀(秘密)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어요. 외할머니한테 하기 힘든 얘기들 말이에요. 그럼 비밀이 새어 나갈 염려도 없고, 외할머니가 속상해하실 이유도 없었어요. 그런데 오프라가 동물 친구들에게만 들려준 비밀 이야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오늘은 교회에 갔었단다." "그런데 이상하지? 다른 아이들은 다 엄마 아빠가 있어." "외할머니 손을 잡고 간 건 나밖에 없어." "엄마 아빠는 언제 오실까?” 그날따라 오프라의 목소리가 시무룩했어요. 오프라는 여섯 살이 될 때까지 엄마 아빠 얼굴을 한 번도 볼 수 없었어요. 외할머니는 그저 열심히 기도(祈禱)하라는 말만 했어요. 오프라는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 자꾸만 눈물이 났어요. 그랬더니 삐악삐악, 병아리가 울었어요. 소는 눈을 끔벅대고, 염소는 안절부절, 강아지는 꼬리를 유난히 세게 흔들었어요. 오프라는 동물 친구들의 위로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뚝 그쳤어요. 마침내 동물 친구들과 오프라가 소통(疏通)을 하게 된 거예요. 오프라는 외우기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어요. 외할머니는 오프라가 세 살 때부터 글자를 가르쳤답니다. 오프라가 집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는 성경(聖經)뿐이었어요. 동화책이나 만화책 같은 것을 사 볼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이에요. 외할머니는 오프라가 성경을 잘 외운다고 동네방네 자랑했어요. 오프라를 데리고 나가서 성경을 외워 보게 할 때도 있었어요. “들어 보세요. 우리 손녀딸이 얼마나 영리한지!” 시골 사람들은 오프라가 성경을 줄줄 외우는 것을 보고는 입이 마르게 칭찬을 늘어놓았어요. “오프라 할머니, 똑똑한 손녀를 두셔서 얼마나 좋으세요!”
평생 겸손을 실천한 정승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맹사성은 1360년 충청도 온양에서 태어났어요. 그 당시는 고려 시대가 거의 끝나 갈 무렵이었지요. 여기저기서 외적들이 나타나 고려 백성들을 괴롭혔고, 궁에서도 시끄러운 일이 자주 일어났어요. 당시 맹사성이 태어날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맹사성의 어머니 조씨 부인이 하루는 신기한 꿈을 꾸었어요. 한낮에 뜰을 거닐고 있는데 갑자기 태양이 불쑥 다가왔어요. 부인은 깜짝 놀라 그만 태양을 꿀꺽 삼켜 버렸어요. 그 순간 잠에서 깬 조씨 부인은 남편 맹희도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그러자 맹희도가 말했어요 “그건 태몽인 것 같소. 훗날 크게 출세할 아들을 낳을 징조이니 한번 기다려 봅시다.” 맹희도의 말처럼 부인은 열 달이 지나자 씩씩한 아들을 낳았어요. 그 아이가 바로 맹사성이었어요. 사성이란 이름은 ‘정성을 생각’한다는 뜻이에요. 맹사성은 어려서부터 유학을 공부해 학문이 깊었고 효성도 지극했어요. 유교에서는 임금께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를 다할 것을 가르쳤지요. 맹사성이 열 살 되던 해의 어느 날이었어요. 병환으로 몸져누운 어머니 때문에 맹사성은 걱정이 태산 같았어요.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도 어머니의 병을 고치려고 좋다는 약을 모두 구해 달여 드렸어요. 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어요. 어머니의 병은 점점 더 깊어지고 몸은 야위어 갈 뿐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맹사성을 불러 손을 꼭 잡고 물었어요. “얘야, 내가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겠느냐?” “어머니, 무슨 말씀이든 들어 드릴게요.” 어머니가 맹사성에게 말했어요. “부디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인물이 되어라. 그리고 네 동생 사겸이를 잘 보살펴 다오.” 어머니는 그런 유언을 남기고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맹사성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슬퍼했어요. 하늘이 무너진 것만 같았고, 해가 없어진 것처럼 눈앞이 캄캄했어요. 음식이라고는 물 한 모금도 넘길 수 없었어요. 그가 그토록 슬퍼하자 집안 어른들이 말했어요. “그렇게 음식을 입에 대지 않으면 네 몸이 금세 상할 것이다. 그러면 저승에 계신 어머니가 네 모습을 보고 얼마나 걱정을 하시겠느냐?” 그래도 맹사성은 도저히 음식을 먹을 수 없었어요. 무려 7일 동안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답니다. 그뿐이 아니었어요.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자 맹사성은 어머니 무덤가에 초막을 짓고 시묘살이를시작했어요. 옛날 사람들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무덤 주변에 초막을 짓고 삼 년 동안 부모님이 살아 계신 것처럼 절하고 무덤 주변을 돌봐 드리는데 이것을 시묘살이라고 해요. 맹사성도 겨우 열 살이란 어린 나이에 시묘살이를 시작한 거예요. 맹사성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머니 무덤을 지키며 하루 세 번씩 음식을 올리고 절을 드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갑자기 멧돼지 한 마리가 나타나 어머니 무덤 앞에 있는 잣나무를 향해 달려들었어요. 멧돼지는 잣나무를 마구 물어뜯어 가지를 꺾고 나무껍질을 벗겼어요. 그 잣나무는 맹사성이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직접 심은 것이었어요. 맹사성은 멧돼지가 너무 사나워 쫓아낼 수가 없었어요. 그저 어머니를 위해 심어 놓은 잣나무 가지가 꺾이는 것이 마음 아파 멍하니 선 채 통곡을 했어요. 그런데 얼마 후 어디선가 호랑이가 나타났어요. 호랑이가 멧돼지를 향해 “어흥!” 하고 울부짖자 멧돼지는 제자리에 얼어붙었어요. 호랑이는 멋모르고 까불던 멧돼지를 공격해 눈 깜빡할 사이에 숨을 끊어 놓았어요. 그리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어디론가 사라졌어요. 그런데 멧돼지에게 가지가 꺾인 잣나무가 다시 생생하게 살아난 거에요. 나중에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어요. “맹 도령의 효성에 감동한 하늘이 호랑이를 보내 맹 도령을 돕게 한 거야!” “맞아, 맞아!” 삼 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고 난 맹사성은 어머니의 유언대로 아우를 잘 보살피며 학문을 닦았어요. 그 뒤 그는 스물여섯 살이 되던 1386년에 과거에 급제했어요. 그리고 곧바로 춘추관 검열을 시작으로 여러 벼슬을 지냈지요. 그가 처음 벼슬을 한 춘추관은 역사책을 만들기 위해 나라의 일들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곳이에요. 맹사성은 그때 비록 낮은 벼슬을 살고 있었지만 앞으로 승진하여 가장 높은 벼슬인 정승에까지 라가려는 야망이 있었어요. 그것은 어머니의 유언을 들어 드리는 일이기도 했어요. 그 무렵, 고려에는 나옹이란 도가 높은 스님이 있었어요. 고려의 임금도 가끔 궁궐로 초청해 가르침을 청할 만큼 나옹 스님은 유명한 분이었어요. ‘나옹이란 스님이 그토록 유명하지만 학문으로는 나도 만만치 않다. 언제 한번 찾아가 만나 보아야겠다.’ 얼마 후 맹사성은 나옹 스님이 머물고 있는 절로 찾아갔어요. “어서 오시오. 무슨 일로 찾아오셨소?” “저는 지금 춘추관 검열로 있는 맹사성이라 합니다. 스님께서 덕이 높은 분이란 이야기를 듣고 훌륭한 가르침을 받고자 왔습니다.” “젊은 선비께서 학문이 높아 과거에 급제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벼슬을 살고 있군요. 하지만 소승이야 산속에서 사는데 세상에 대해 무얼 알겠습니까?” 나옹 스님이 겸손하게 말하자 맹사성은 속으로 우쭐한 마음이 들었어요. ‘말을 들어 보니 시시하군. 정말 도가 높은 고승일까?’ 맹사성은 이렇게 의심하면서도 스님이 하는 말을 한번 들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시 이렇게 물었어요. “스님, 벼슬아치로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나옹 스님이 대답했어요. “젊은 관리께서 그리 물으니 무식한 소승이 감히 한 말씀 드리겠소. 첫째는 겸손해야 합니다. 둘째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셋째는 백성을 하늘같이 섬겨야지요. 그리고 넷째는 임금께 충성해야 합니다.” “네에?” 맹사성은 어이가 없었어요. 스님의 말 정도라면 어려서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어 왔기 때문이에요. 괜히 아까운 시간만 빼앗겼다는 생각에 맹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어요. “스님 말씀은 고맙지만 그런 말은 코흘리개 때부터 많이 들었습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맹사성이 일어서려는데 나옹 스님이 한마디 했어요.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차나 한잔하고 가시지요.” 맹사성은 나옹 스님이 차를 달이는 모습을 지켜보았어요. 스님은 화로에다 주전자를 올려놓고 물을 끓였어요. 그다음 찻잎을 넣어 적당히 우려낸 뒤 연한 연두색 차를 맹사성의 찻잔에 따랐어요. 그런데 나옹 스님은 잔이 넘치는 것을 보면서도 계속 차를 따랐어요. 그것을 보고 맹사성이 소리쳤어요. “스님, 잔이 넘쳐 방바닥이 다 젖습니다!” 그때 나옹 스님이 맹사성에게 말했어요. “찻물이 넘치면 방바닥이 젖어 더러워지는 것처럼 자만심이 넘치면 그 사람의 인품이 더러워진다오.” 그 말을 듣는 순간 맹사성은 속으로 크게 깨달았어요. ‘아, 내가 책을 좀 읽어 지식이 있다고 오만했구나!’ 맹사성은 나옹 스님께 이런저런 가르침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그런데 밖으로 나오다가 방문 문틀이 낮아서 그만 이마를 쿵 박고 말았어요. 얼마나 세게 부딪혔는지 머리가 어찔할 지경이었어요. 그것을 보고 나옹 스님이 껄껄 웃으며 말했어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개를 숙일 줄 안다면 그렇게 부딪칠 일이 없을 거외다.” 맹사성은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어요. “스님, 정말 큰 가르침을 얻어 갑니다. 앞으로는 스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늘 조심하며 살겠습니다.” 그날부터 맹사성은 누구 앞에서든 항상 겸손해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었어요. 맹사성이 관직에 앉은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나라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어요. 고려가 멸망하고 태조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인 조선을 세운 거예요. 새 왕조가 들어서자 모든 제도가 바뀌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숭유억불’ 정책이었어요. 이 말은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누른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유학을 배운 선비들은 높이 존경받았지만 수많은 절들은 불타 없어지고, 스님들은 탄압을 받아 깊은 산으로 들어가 숨죽이며 살았어요. 이처럼 많은 게 바뀌자 맹사성과 같은 관리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어요. 맹사성은 고려 때 그랬던 것처럼 왕조가 바뀐 조선 시대에도 여러 벼슬을 거치며 차츰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어요. 조선의 세 번째 임금인 태종 때였어요. 이 무렵 맹사성은 대사헌의 자리에 올라 있었어요. 대사헌은 법률을 다루는 으뜸 벼슬이에요. 하루는 목인해라는 사람이 태종 임금에게 밀고를 했어요. “전하,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조대림이 지금 반역을 꾸미고 있다 하옵니다.” “뭣이? 내 둘째 사위 조대림이 역모를 했다고? 그럴 인물이 아닌데. 네 말이 사실이렷다?” 목인해가 대답했어요. “제가 여러 사람에게 들어 보니 조대림이 역모를 한 게 분명하다고 하옵니다.” 목인해는 본래 노비였는데 오랫동안 태종을 섬겼고 활 쏘는 솜씨도 뛰어나 호군이란 무관 벼슬을 얻었어요. 당시 노비가 벼슬을 받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어요. 그런데 목인해는 더 높은 벼슬과 상을 받기 위해 조대림을 모함한 거예요. 목인해의 말을 듣고 태종은 몰래 사람을 시켜 조대림이 정말 역모를 꾸미고 있는지 알아보게 했어요. 얼마 후 태종은 조대림이 나라에 반역하려는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모든 것이 목인해의 모함이란 걸 알아낸 거예요. 그런데도 태종은 대사헌인 맹사성을 불러 명했어요. “내 사위 조대림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 하니 철저히 조사한 뒤 보고하시오.” 왕명을 받은 맹사성은 조대림을 붙잡아 조사를 시작했어요. 예로부터 역모를 꾸미거나 그 일에 관련된 사람은 누구든 사형을 시켰어요. 역모는 그만큼 무거운 죄였어요. 맹사성은 조대림을 꽁꽁 묶고 물었어요. “네가 역모를 꾸몄다는 게 사실이냐?” “그건 터무니없는 모함이오. 난 결코 그런 적이 없소. 임금의 사위인 내가 무엇이 부족해 반역을 꾸미겠소?” “좋은 말로 해선 안 되겠구나!” 맹사성은 곧 아랫사람을 시켜 조대림의 주리를 틀게 했어요. ‘주리’란 죄인을 조사할 때 두 다리를 묶고 다리 틈에 두 개의 주릿대를 끼우고 비트는 형벌이에요. 매우 무서운 고문 중 하나였지요. 하지만 조대림이 결백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역모를 꾸몄다는 증거도 없었어요. 맹사성이 주변 사람들을 불러 증언을 들어 보아도 조대림의 무죄가 분명했어요. 조사를 마치고 맹사성은 임금께 나아가 아뢰었어요. “전하! 소신이 철저히 조사해 보니 조대림은 절대 역모를 꾸미지 않았습니다.” 그때 태종이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요. “그런데 왜 내 허락도 받지 않고 조대림을 고문했소?” 맹사성이 당황해하며 말했어요. “전하! 그, 그것은.” 그러자 태종이 무섭게 소리를 질렀어요. “네 이놈! 네가 감히 왕족을 능멸했겠다? 여봐라! 저자를 당장 끌고 가 저잣거리에서 처형하라!” 맹사성은 그만 눈앞이 캄캄해졌어요. 대사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사형을 시키라니 기가 막혔어요. 맹사성은 곧바로 포승줄에 묶여 궁궐 밖으로 끌려갔어요. 이제 임금의 마지막 명령만 떨어지면 망나니가 목을 벨 참이었지요. 그때였어요. 영의정 성석린이 임금께 달려가 말했어요. 조선 시대의 영의정은 임금 바로 다음의 최고 벼슬이었어요. “전하! 맹사성을 죽여서는 아니 되옵니다!” “왜 안 된다는 것이오?” “맹사성은 대사헌으로서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왕족이라 해도 역모했다는 고발이 들어오면 고문을 해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하오니 맹사성과 같은 충신을 죽여선 아니 되옵니다.” 태종 임금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마침내 말했어요. “그럼 그를 살려 주시오. 대신 멀리 유배를 보내시오.” 겨우 목숨을 구한 맹사성은 며칠 후 유배를 갔어요. 유배란 죄인에게 내리는 형벌 중 하나로 먼 지방으로 쫓겨나 갇혀 지내는 것을 말해요. 하지만 맹사성은 유배를 간 뒤에도 영의정 성석린의 도움으로 금세 풀려나 다시 벼슬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맹사성은 자기 목숨을 구해 주고 유배에서도 풀어 준 성석린의 은혜를 늘 가슴에 간직하고 살았어요. 그래서 성석린이 살았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죽은 뒤에도 그의 집 앞을 지날 때면 반드시 말에서 내려 정성스럽게 예를 표했어요. 맹사성이 예순 살 무렵 세종 임금이 왕위에 올랐어요. 신하들의 인품과 능력을 잘 알고 있던 세종은 맹사성을 중요한 자리에 앉혀 국정을 돕게 했어요. 그래서 맹사성은 이조판서, 예문관 대제학 등을 지내다가 1427년에는 우의정에 올랐어요.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언대로 열심히 노력하여 정승이라는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지요. 맹사성이 우의정으로 있던 어느 날이었어요. 이때 맹사성은 태종실록을 감수한 뒤 완성시켰는데, 세종이 그를 불러 은밀히 부탁했어요. “내가 태종실록을 잠깐만 보고 싶은데 안 되겠소?” 맹사성은 임금의 부탁인데도 단호히 거절했어요. “안 됩니다! 전하께서 실록을 보시고 맘에 안 드는 부분을 고치면 후세 임금들도 그걸 본받을 텐데, 그러면 어떤 사관이 역사를 사실대로 기록하겠습니까?” 맹사성의 말에 세종은 자신의 잘못을 금세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 이후 맹사성을 더욱 믿고 의지하게 되었어요. 조선 시대에는 유교를 바탕에 둔 정치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예의와 음악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어요. 예의와 음악을 합쳐서 ‘예악’이라고 하는데, 맹사성은 이것을 새로 정비하는 데 큰 공을 세웠어요. 하루는 세종이 맹사성을 불러 이렇게 말했어요. “우상께선 글도 잘 쓰시고 악기도 직접 연주할 만큼 음률에도 밝다지요? 그런데 요즘 젊은 선비들이 예로부터 전해지는 향악을 버리고 중국의 음악에 관심이 더 많다 하니 우상이 우리 향악을 잘 정비해 주길 바라오.” 향악이란 먼 옛날부터 전해지는 우리나라의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세종의 명을 받은 맹사성은 우리 전통 음악과 중국에서 전해진 음악을 잘 조화시켜 조선 왕조의 음악을 새로 정비했어요. 이번에는 맹사성이 좌의정으로 있을 때의 일이에요. 그 무렵, 조선의 북쪽 두만강과 압록강 건너에는 여진족이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여진족은 걸핏하면 강을 건너와 약탈을 일삼았어요. 참다못해 세종이 대신들을 불러 말했어요. “삼국 시대만 해도 우리 영토가 꽤 넓었는데 지금은 두만강과 압록강 주변마저 여진족에게 빼앗기게 생겼소. 그래서 여진족을 정벌하여 그 지역을 우리 영토로 되찾고 싶은데 경들은 어찌 생각하시오?” 그때 영의정 황희와 우의정 권진이 말했어요. “전하! 여진족을 건드려 봐야 좋을 게 없습니다. 하오니 그냥 놔두는 게 좋겠습니다.” 하지만 맹사성은 그들과 생각이 달랐어요. “전하! 여진족 같은 오랑캐가 우리 영토를 넘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소신이 평안도 절제사 최윤덕과 함께 여진족을 정벌하겠나이다!” 세종의 허락을 받은 맹사성은 여진족을 정벌할 전략을 치밀하게 짜서 최윤덕에게 전해 주었어요. 최윤덕은 맹사성의 전략대로 군사들을 이끌고 나가 여진족을 완전히 정벌했어요. 그 뒤 압록강 지역에 여진족을 막기 위한 4군도 세웠어요. 여진족이 정벌되자 맹사성이 세종에게 아뢰었어요. “전하, 여진족을 정벌하고 4군을 세운 것은 모두 최윤덕의 공이옵니다. 소신은 이제 물러나고자 하오니 그를 새로운 좌의정으로 임명해 주소서.” 세종은 자신이 세운 공과 정승이란 자리까지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맹사성의 겸손함에 깊이 감동했어요. “좌상이 물러나다니 허락할 수 없소. 그 대신 최윤덕을 우의정으로 승진시키려 하는데 어떻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 후 세종은 두만강 쪽에도 여진족을 막기 위한 6진을 만들었어요. 4군과 6진의 설치로 조선의 영토는 지금의 우리나라 지도처럼 넓어졌어요. 이처럼 맹사성은 조선 초기의 문화와 예술, 역사, 국방 등 여러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세웠어요. 그런데도 평상시에 참으로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아 백성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았어요. 하루는 비가 내리는데 어떤 대감이 맹사성의 집을 방문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맹사성의 집은 오래된 초가집이었어요. ‘아니, 정승이란 분이 어찌 이런 집에서 사실까?’ 대감은 속으로 깜짝 놀라며 사랑방으로 들어갔어요. 그러자 천장 곳곳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어요. 맹사성은 그 자리마다 빈 그릇을 놓아 빗물을 받기에 바빴어요. 그러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어요. “하필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비가 온단 말인가.” 대감이 혀를 내두르며 맹사성에게 말했어요. “맹 정승께서 이처럼 비가 줄줄 새는 초가집에서 사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맹사성이 미소 지으며 말했어요. “그런 말씀 마시오. 이보다도 못한 집에서 사는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데.” 대감은 속으로 크게 느낀 바가 있었어요. 사실 그는 그 무렵 자기 집 사랑채 건물을 멋지게 짓고 있었어요. 집으로 돌아간 그는 바로 하인들을 불러 말했어요. “당장 공사를 중단하고 헐어 내라.” 하인들이 깜짝 놀라며 그 이유를 물었어요. “내가 방금 맹 정승 댁에 다녀오는 길인데 백성들이 사는 집보다 초라한 집에서 살고 계시더구나. 정승께서 그런 집에서 사시는데 훨씬 아래인 내가 사랑채를 따로 지어서야 되겠느냐?” 맹사성이 가난하게 사는 것은 물론 그의 성품이 원래 청렴했기 때문이에요. 그는 재물에 욕심내지 않고 나라에서 받는 녹봉만으로 생활을 꾸려 갔답니다. 어느 날 아침, 밥을 먹던 맹사성이 부인에게 물었어요. “오늘 밥은 나라에서 받은 쌀로 지은 게 아닌 것 같은데 어찌 된 것이오?” 부인이 부끄러워하며 대답했어요. “녹봉으로 받은 쌀은 하도 오랫동안 묵은 것이라 냄새가 심하고 차마 먹을 수가 없어서 이웃집에서 새 쌀을 조금 빌려 왔습니다.” 맹사성이 조용히 아내를 타일렀어요. “벼슬아치가 나라에서 주는 쌀을 먹는 건 당연한 일이오.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마시오. 정승이 몇 년이나 묵은 쌀로 끼니를 때우다니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이처럼 소박한 맹사성이다 보니 궁궐에 나갈 때가 아니면 옷차림도 남루하기 짝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보잘것없는 노인으로 여길 때가 많았어요. 한번은 맹사성이 고향인 온양으로 휴가를 가서 낚시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한 양반이 맹사성에게 다가와 말했어요. “여보게, 내가 이 냇가를 건너려는데 버선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려니 양반 체통에 말이 아니네그려. 그러니 날 업어서 저 건너편으로 좀 데려다 주게.” 맹사성이 기꺼이 대답했어요. “그렇게 하시지요.” 맹사성이 양반을 업고 냇가를 절반쯤 건널 때였어요. “자네 삿갓 때문에 영 불편하구먼.” 양반이 맹사성의 삿갓을 툭 치니 삿갓이 벗겨지면서 금으로 만든 관자가 나타났어요. 관자는 망건에 달아 줄을 꿰는 작은 단추 모양의 고리를 말해요. 그런데 신분에 따라 금, 옥, 뿔 등 그 재료가 각각 달라요. 조정 대신들을 정3품부터 금관자를 사용하는데 그것도 정1품, 정2품, 정3품의 생김새가 조금씩 달라요. 그래서 모양만 보고도 어떤 신분인지 알 수 있지요. 맹사성에게 업혀 가던 양반은 금관자가 정1품 모양인 것을 보고 까무러칠 정도로 놀랐어요. 그는 냇물로 철퍽 내리더니 엎드려 사죄했어요. “소인이 대감을 몰라뵙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맹사성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어요. “앞으론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 마시게.” “소인, 대감의 말씀을 평생 가슴에 새기고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그는 몇 번이나 굽실굽실 절을 하고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어요. 조선 시대의 지위가 높은 대감들은 가마나 말을 타고 다녔어요. 그런데 맹사성은 검은 소를 타고 다니는 일이 많았어요. 도대체 왜 검은 소를 타고 다녔을까요? 어느 날 온양에 머물던 맹사성이 뒷산으로 산책을 나갔어요. 그런데 동네 아이들이 검은 송아지를 에워싸고 장난을 치고 있었어요. 아이들이 나뭇가지로 때리거나 돌멩이를 던져도 송아지는 눈만 껌뻑일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걸 발견한 맹사성이 아이들에게 야단을 쳤어요. “이 녀석들아!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함부로 때리고 괴롭히면 되겠느냐? 너희들이 만약 이 송아지라면 얼마나 아프고 서럽겠느냐!” 아이들은 맹사성의 꾸지람에 쏜살같이 도망쳤어요. 맹사성은 꼼짝 못 하는 송아지를 겨우 일으켜 세우고 집으로 데려왔어요. 그런 다음 소죽을 쑤어 먹이며 정성껏 돌보아 주었어요. 며칠이 지나자 송아지는 기운을 차린 듯 맹사성을 보고 꼬리를 흔들었어요. “네가 이제야 힘이 나는가 보구나. 하지만 네 주인은 따로 있을 것이니 가서 잘 살려무나.” 맹사성은 하인들을 시켜 검은 송아지의 주인을 찾아보았어요. 그런데 여러 마을을 돌아다녀도 송아지의 주인은 영 나타나지 않았어요. 하는 수 없이 그는 검은 송아지를 기르기로 했어요. 반년쯤 지나자 송아지는 훌쩍 자랐어요. 녀석은 마치 강아지가 주인을 따르듯 맹사성만 보면 반가워했어요. “네가 나를 좋아하니 말 대신 널 타고 다녀야겠다.” 이때부터 맹사성은 어딜 가든지 검은 소를 타고 다녔어요. 어느덧 맹사성의 나이는 일흔셋이나 되었어요. 그해에 그는 검은 소를 타고 서울을 떠났어요. 그러자 다른 대감들이 물었어요. “좌의정 대감께선 어딜 그리 바삐 가시오?” “이제 곧 선친의 제삿날이라 고향에 가는 길이오.” 그때는 서울에서 충청도 온양까지 갔다 오는 데 6일이나 걸렸어요. 맹사성은 부지런히 고향으로 가 아버지의 제사를 마친 뒤 다시 서울로 향했어요. 그가 용인쯤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어요. 그는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 주변을 살펴보다가 한 누각을 발견했어요. “옳거니! 저기서 잠시 쉬었다 가자.” 맹사성은 누각 아래에 검은 소를 매어 놓고 위로 올라갔어요. 그런데 누각 위에 어떤 젊은이가 있었어요. 그는 누각 현판에 적힌 시를 소리 내어 읽고 있었어요. 젊은이는 말끔한 새 옷차림이었어요. 한눈에 보아도 부잣집 아들이 분명했어요. 게다가 한시를 읽고 있는 걸 보니 글깨나 읽은 것 같았어요. 거기에 비하면 맹사성은 초라한 옷차림에 소나기까지 맞아 후줄근한 시골 늙은이처럼 보였어요. 그런 맹사성이 한시를 읽자 젊은이가 물었어요. “보아하니 산골에서 농사나 짓는 노인 같은데 이 시를 읽을 줄 아시오?” “산골 늙은이가 뭘 알겠소? 무슨 글인지는 모르나 글씨는 참으로 명필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마침 그때 소나기가 뚝 그쳤어요. “날도 저물어 가는데 어디 주막에 가서 하룻밤 묵어야겠소. 선비께선 어떻게 하려오?” 맹사성이 검은 소의 고삐를 풀며 묻자 젊은이가 말했어요. “나도 그래야겠소.” 맹사성이 젊은이와 주막집에 가 보니 손님들이 많아 작은 방 하나만 남아 있었어요. “어쩔 수 없이 이 방을 같이 써야겠소.” 맹사성이 젊은이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어요. 둘이 가만히 앉아 있자니 좀 어색했어요. “심심하게 이렇게 앉아 있지 말고 말끝에 ‘공’ 자와 ‘당’ 자를 넣어 이야기나 나눕시다. 어떻소?” 맹사성이 제안하자 젊은이가 좋다고 했어요. 먼저 젊은이가 물었어요. “영감은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 길인공?” “온양에서 왔다 한양으로 가는 길이당.” “한양엔 무슨 일로 가는공?” “일 때문에 간당. 젊은이는 한양에 왜 가는공?” “녹사 시험 보러 간당.” 녹사란 궁궐 등에서 일하는 하급 관리를 말해요.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얻는 사람을 ‘벼슬아치’라 하고 그 밑에서 일하던 사람을 ‘구실아치’라고 하는데 구실아치가 바로 녹사예요. 맹사성이 다시 물었어요. “내가 좋은 자리에 임명해 줄공?” 그러자 젊은이가 화를 내며 소리쳤어요. “무례하당! 산골 노인이 선비를 놀리면 안 된당!” 이튿날 아침이 되자 두 사람은 밥을 먹은 뒤 서로 갈라져 한양으로 길을 떠났어요. 며칠 후 한양 시험장에서 녹사 시험이 끝나고 합격자를 발표했어요. 그런 후에 맹사성 등 재상과 대신들이 합격자들을 일일이 면접했어요. 용인에서 공당 문답을 나눴던 젊은이가 들어서자 맹사성이 빙긋 웃으며 물었어요. “이번 시험에 합격했는공?” 젊은이는 맹사성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어요. 용인에서 만난 후줄근한 노인이 바로 좌의정이었으니 놀라는 게 당연했지요. “대감을 몰라뵙고 죽을죄를 졌습니당!” 대신들은 두 사람의 대화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어요. 잠시 후 맹사성이 용인에서의 일을 얘기해 주자 다들 박장대소를 했어요. 맹사성은 일흔다섯 살이 되어서야 벼슬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어요. 그만큼 세종대왕이 그를 아끼고 믿어 주었기 때문이지요. 그는 고향으로 내려가서도 가만히 앉아 쉬지 않았어요. 늘 농민들과 어울려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지었지요. 하루는 새로 부임한 사또가 아랫사람들을 거느리고 맹사성에게 찾아와 인사를 드리려고 했어요. 하지만 밭에서 일하던 맹사성은 좀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사또는 하는 수 없이 아랫사람들과 밭일을 거들었어요. 그날 저녁, 일이 끝난 후 맹사성이 사또에게 말했어요. “내가 자네들에게 밭일을 시킨 건 농부들이 얼마나 어렵게 살고 있는지 직접 체험해 보고 백성들 입장에 서서 고을을 다스리라는 뜻이었네.” 사또는 맹사성의 큰 가르침에 감동해 큰절을 올렸어요. 이처럼 많은 교훈과 이야기를 남긴 맹사성은 일흔아홉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가 세상을 떠나자 세종대왕은 물론 온 나라의 대신들과 백성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했어요. 어디를 가든 맹사성을 태우고 다니던 검은 소도 슬프게 울부짖다가 사흘 뒤에 숨졌어요. 소의 충성에 감동한 사람들이 무덤을 만들어 검은 소를 고이 장사 지내 주었어요. 지금도 그 무덤에는 ‘흑기총’이란 비석이 남아 있어요. ‘흑기총’이란 검은 소의 무덤이란 뜻이랍니다.
백성을 사랑한 실학자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사람들은 가마 타는 즐거움만 알고 가마를 메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네 정약용이 쓴 시의 한 대목이에요. 옛날 양반들은 가마를 타고 다녔어요. 한 사람이 탄 가마를 네 명의 가마꾼들이 앞뒤로 멨지요. 타는 사람한테 가마는 더없이 편안한 탈것이지만, 가마를 메는 사람 입장에선 여간 힘든 노동이 아니랍니다. 가마는 대개 두꺼운 나무로 만들어졌어요. 여기에 사람까지 태우고 먼 길을 걷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가마꾼들은 어깨가 빠질 듯 아프고 팔다리가 후들거려도 양반이 멈추라고 할 때까지는 쉴 수가 없어요. 정약용은 이 시를 통해서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정약용은 조선 정조 때의 문신으로 유학은 물론 시와 철학, 과학에도 능한 천재였어요. 또한 훌륭한 목민관이기도 했답니다. 흔히 천재들은 교만한 성격을 갖기 쉽다고 해요. 하지만 정약용은 평생 남을 존중하는 삶을 살았어요. 다른 사람을 대할 땐 항상 너그러웠고 좀처럼 남을 비난하지도 않았어요. 정약용이 살던 시대에는 당파 싸움이 심각했어요. 조정의 관리들이 편을 갈라서 자기들 입장만을 주장하는 것을 당파 싸움이라고 해요. 상대방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주장만 내세우며 상대방을 헐뜯는 일도 많았지요. 하지만 정약용은 평소 아들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 조상들은 당쟁에 앞장서서 남을 헐뜯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너희들도 사람을 대할 때는 항상 정성을 다하도록 해라.” 정성을 다해 사람을 대하는 마음, 그게 바로 존중이에요. 어릴 때부터 정약용은 소문난 책벌레였어요. 책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 읽었지요. 집에 있는 책을 다 읽으면 당나귀를 끌고 이웃 마을에 가서 책을 빌려 올 정도였어요. 하루는 매형인 이승훈이 찾아와 물었어요. “처남, 내가 새로운 책을 많이 읽게 해 줄 테니 어디 좀 같이 갈 텐가?” 정약용의 누나와 결혼한 이승훈은 조선에서 최초로 천주교 세례를 받은 사람이에요. 이승훈이 정약용을 데려 간 곳은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 중 한 명인 이가환의 집이었어요. 실학이란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학문을 말해요. 당시 대부분의 선비들은 실학이라는 개념을 잘 모르던 때였어요. 정약용은 이가환을 만난 뒤 실학의 매력에 흠뻑 빠졌어요. ‘왜 세상에는 가난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정약용은 평소 고민하던 문제에 대한 답을 실학에서 찾았어요. ‘양반이라고 해서 빈둥빈둥 놀고먹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실학자들은 양반도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해서 나라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정약용은 실학뿐만 아니라 천주교 서적도 열심히 읽어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사실도 깨우치게 되었어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사람도 신분이 낮으면 벼슬에 나갈 수 없는 현실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일세. 이런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는 나라가 발전할 수 없어.” 정약용은 이가환과의 대화를 통해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어요. 실학에 관심이 많았던 정조 임금은 정약용의 건의에 따라 많은 실학자들을 중용했어요. 그러자 정약용을 시기하는 무리들은 불안감을 느꼈어요. 그들 중 이기경이라는 관리가 정약용을 천주교 신자라고 고발했어요. 당시는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잃는 때였어요. 하지만 정약용은 천주교 서적을 많이 읽긴 했어도 신자는 아니었어요. 조사 결과 정약용이 신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번에는 시험관으로서 부정을 저질렀다고 모함했어요. 그러나 그것도 거짓으로 밝혀져 이기경은 귀양을 가게 되었어요.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일세!” 정약용을 걱정하던 친구들이 기뻐하며 말했어요. 하지만 정약용은 이기경의 집에 찾아가 가족들을 위로하고 아이들을 보살폈어요. 이기경의 어머니 장례식을 치룰 땐 가지고 있던 돈을 다 털어 조의금을 내기도 했답니다. 또 나중에는 임금을 설득하여 이기경을 사면하는 데 앞장섰어요. 진심은 언젠가 통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기경은 이후에도 끈질기게 정약용을 모함했어요. 일찍이 정약용의 재능을 알아본 정조 임금은 스물세 살의 정약용에게 경연에서 중용을 강의하게 했어요. 임금이 학식과 덕망이 높은 관리로부터 학문을 배우는 것을 경연이라고 해요. “정약용의 강의는 언제 들어도 신선해. 항상 귀에 쏙쏙 들어온단 말이야!” 임금은 대신들 앞에서 정약용을 크게 칭찬했어요. 또한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면 항상 정약용에게 먼저 의견을 물었어요. 이기경 일파에겐 정약용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지요. 그들은 틈만 나면 정약용을 헐뜯었어요. “왕이 정약용을 신임하는 건 ‘팔대옥당’ 출신이기 때문이야. 집안 좋다고 너무 편애하는 것 아냐?” 팔대옥당은 학문이 높은 사람만 오를 수 있는 홍문관 관리를 8대째 연속 배출한 집안이라는 뜻이에요. 정약용 또한 홍문관에 들어가 구대옥당의 명예를 얻었지요. 정약용의 아버지 정재원은 오랫동안 지방 관리로 일했어요. 정재원은 성품이 어질고 청렴한 목민관이었어요. 정약용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닌 덕분에 고을 수령들이 저지르기 쉬운 잘못을 훤히 알게 되었어요. 목민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제때 세금을 거둬들이는 일이었어요. 조정에 아부하려는 일부 목민관들은 밀린 세금을 가족들에게 대신 물게 하는 횡포를 부리기도 했어요. “궁핍한 백성들에게 다른 가족의 세금까지 부담하게 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일이다.” 정재원은 백성을 괴롭히는 악법을 엄히 금하고 이 지역 터줏대감이나 마찬가지인 아전들에게 각 고을의 형편을 조사해서 보고하도록 했어요. “아무래도 세금으로 거둬들일 곡식이 얼마 되지 않을 듯합니다.” 아전들은 흉년을 핑계로 세금을 줄여서 보고하고 남은 금액을 중간에서 가로챌 계획이었어요. 정재원은 결코 아전들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았어요. “흉년이 심하게 들었다고 한 마을은 얼마 전에 추수를 마쳤다고 들었다. 때맞춰 비가 와 준 덕분에 농사를 망칠 지경은 아닐 것이다. 조사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니 다시 보고하도록 하라.” 아전들은 정재원의 엄명에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어요. “아버지께선 직접 현장에 가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전들이 속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까?” 아들들의 물음에 정재원은 이렇게 대답했어요. “뭐 그리 신기하게 여길 일도 아니다. 언제 어느 마을에서 모심기를 하고 언제 추수를 했는지 이 지역 돌아가는 상황을 내가 훤히 파악하고 있는데, 아전이 어찌 감히 속이겠느냐?” 정약용은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랫사람을 잘 다스리려면 윗사람이 그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쳤어요. 정약용의 아버지 정재원은 진주 목사로 근무하다 63세가 되던 해에 돌아가셨어요.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간 정약용은 방금 전까지 일하고 있었던 듯 온갖 문서가 어지럽게 쌓여 있는 방 안 광경에 넋을 잃었어요. “아버지 머리맡에 놓인 저건 뭐지?” 정약용은 상자 하나를 집어 들었어요. 그 안에 관청 각 부서의 수입과 지출 내역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서류가 들어 있었어요. 돈의 씀씀이를 얼마나 꼼꼼하게 기록했는지 관청 살림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어요. “존경합니다, 아버지!” 정약용은 마음으로 외쳤어요. 그리고 죽는 날까지 목민관으로서 최선을 다하고자 했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평생의 가르침으로 삼았어요. 한편 정조 임금은 아버지 사도 세자의 무덤이 있는 수원 화성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려고 했어요. 그러자면 성을 쌓고 도로를 만들고 궁궐도 지어야 했지요. 정조 임금은 정약용에게 수원 화성 건축을 맡겼어요. “최대한 경비를 줄이고 공사 기간도 줄여야 해. 그러자면 새로운 건축 기술이 필요하겠어.” 정약용은 건축에 필요한 책들을 연구하며 여러 가지 기계 장치들을 만들었어요. 그중 가장 힘을 기울인 것은 거중기 개발이었어요. 거중기는 밧줄과 도르래를 이용해 무거운 돌을 옮기는 기계 장치를 말해요. 거중기를 사용하면 경비도 절감하고 공사 기간도 단축할 수 있어요. 게다가 일하는 백성들의 고통도 줄여 줄 수 있지요. 정약용은 아버지 상을 당해 시묘살이를 하던 중에도 거중기 연구를 손에서 놓지 않았어요. 결국 거중기 개발에 성공한 정약용은 수원 화성을 계획대로 착착 지어 나갔어요. 어느 날, 정조 임금이 정약용을 불렀어요. “올해 어머님 환갑잔치를 수원 화성에서 하고 싶은데 걱정이 하나 있소.” “무슨 걱정이십니까?” “한강을 건너는 게 문제요. 어머님을 편히 모시려면 강을 건널 다리가 필요한데 무슨 방법이 없겠소?” 정약용은 임금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기 위해 다리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연구를 거듭했어요. 정약용은 마침내 한강을 건널 멋진 배다리를 설계했어요. “강의 중앙에 큰 배를 띄우고 양 옆으로는 작은 배를 길게 띄워 다리를 만들면 강을 건너기가 수월할 것입니다.” 정약용은 직접 만든 배다리 설계도를 임금에게 가져갔어요. 배다리는 정조 임금의 효심을 존중한 정약용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선물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정약용은 경기도 암행어사로 파견됐어요. 왕의 특사(特使) 자격으로 지방 관아의 부정과 비리를 밝혀내는 사람을 암행어사라고 해요. 암행어사는 왕명의 상징인 마패를 가지고 다니며 비밀리에 임무를 수행한답니다. 정약용은 신분을 가리기 위해 허름하게 차려입고 맨 먼저 경기도 연천 고을에 당도했어요. “악질 현감 등쌀에 우리 다 죽게 생겼어.” “누가 아니래나. 근거도 없는 세금 명목으로 곡식을 뜯어 가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 가는 곳마다 연천 현감에 대한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어요. 연천 현감은 수원 화성에 궁터를 잡을 때 참여한 공으로 현감 자리에까지 오른 자였어요. 정약용은 현감의 악행을 낱낱이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연천 현감은 부정부패로 똘똘 뭉친 탐관오리였어요. 그는 병역이며 세금 등 모든 일에 뇌물을 받아 챙겼어요. 심지어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나라에서 빌려주는 곡식에 모래를 섞기도 했어요. 그러고는 백성들이 곡식을 갚을 때가 되면 빌려 간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뜯어내는 만행을 일삼았답니다. 한마디로 연천 고을은 무법천지였어요. 시달리다 못해 집과 농토를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 산적이 된 백성들의 숫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어요. “임금이 특별히 은혜를 내렸으면 열심히 봉사할 궁리를 해야지, 목민관이라는 자가 백성들의 피와 땀을 갈취하다니!” 분노한 정약용은 어사출두를 외치며 현감을 잡아들였어요. 그리고 현감이 부정한 방법으로 긁어모은 세금을 모두 백성들에게 돌려주었어요. 돌아다녀 보니 다른 고을의 사정도 마찬가지였어요. 백성들은 한겨울에도 입을 것이 없어 다 해진 누더기를 입고 들로 산으로 풀뿌리를 캐러 다녔어요. 몸이 아파도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갓난아이들마저 제대로 먹지를 못해 빼빼 말라 갔어요. 하지만 탐관오리들은 백성들에게 빼앗은 재물로 기름진 음식을 먹고 따뜻한 방에서 편하게 지냈어요. 정약용은 몹시 큰 충격을 받았어요. “사태가 이 모양이니 대체 나라가 어찌 될 것인가!” 그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으로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탐관오리는 광주 관찰사 서용보라는 자였어요. “서용보는 조정에 패거리가 많은 자입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나리가 다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존중해야 될 대상은 임금과 백성들뿐이다!” 정약용은 수행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용보의 비리를 밝히기 위한 증거 수집에 나섰어요. 비리는 상상을 초월했어요. 서용보는 정조 임금의 행차 길을 단장한다는 명목으로 관가의 쌀을 시장보다 몇 배 더 비싼 값으로 팔아넘겼어요. 이익금은 고스란히 그의 손 안에 들어갔고, 피해를 보는 건 억지로 관가의 쌀을 떠안은 백성들이었어요. 또 그 시절에는 고을마다 향교라는 게 있었어요. 나라에서 세운 지방의 학교지요. “향교 땅의 기운이 좋지 않아 이곳에선 훌륭한 인물이 나오기 어렵다.” 서용보는 헛소문을 퍼뜨린 뒤 향교를 없애고 그 땅에 자기 집안 묘지를 이장하려고 했어요. “양심도 없는 자에게 백성들을 맡겼으니 한심스럽구나!” 서용보의 죄상을 기록한 보고서를 읽고 분노한 정조 임금은 당장 그를 옥에 가두도록 명했어요. 이 일로 서용보와 가까운 무리들은 정약용을 원수 취급했어요. 정조 임금은 정약용을 다시 황해도 곡산 부사로 임명했어요. 곡산은 그 당시 민심이 가장 흉흉한 고장이었지요. 얼마 전 이계심이라는 사람이 천여 명의 백성을 이끌고 관가에 쳐들어간 거예요. “농민의 등골을 빼먹는 탐관오리를 즉각 처벌하고 가혹한 세금을 중지하라!” 농민들은 구호를 외치며 저항했지만 창검으로 무장한 관군을 당할 도리가 없었어요. 결국 농민군은 뿔뿔이 흩어졌고 도망자가 된 이계심은 정약용이 부임하는 길에 숨어 있었어요. “부디 저희들의 억울한 사연을 좀 들어 주십시오!” 이계심은 바닥에 엎드려 정약용에게 문서를 한 장 바쳤어요. “이것이 무엇이냐?” “백성을 괴롭히는 열 가지 폐단을 적은 것입니다.” 이계심이 올린 문서에는 부당한 세금으로 인한 고통이 조목조목 적혀 있었어요. “이놈은 민란의 주동자입니다. 체포하겠습니다.” 정약용을 수행하던 관원들이 이계심을 잡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정약용이 말리며 말했어요. “관에서 모르는 것을 알려 주었으니 이것은 민란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은 관에서 천금을 주고 써야 한다.” 이유가 어쨌든 관청에 쳐들어간 것은 중범죄에 해당돼요. 하지만 정약용은 이계심을 처벌하기는커녕 부패한 관리를 고발하고, 관청의 부당한 조치에 항의한 것에 대해 아낌없는 격려와 칭찬을 해 주었어요. 그런 다음 이계심이 알려 준 문제를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 갔어요. 이로써 폭발 직전까지 갔던 민심은 안정되고, 곡산 지방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어요. 당시 고을의 수령은 백성들에게 왕을 대신하는 역할을 했어요. 일반적인 관청의 업무뿐만 아니라 세무서, 경찰, 사법부의 역할도 고을 수령의 몫이었어요. 지역 살림을 풍족하게 만들고 군역을 공정하게 하는 것, 또 학교를 세우고 부역을 고르게 하는 일도 고을 수령의 임무였지요. 그 시절에는 면포를 세금으로 받았어요. “백성들에게 정해진 양보다 조금이라도 더 받아선 안 된다.” 정약용은 백성들이 면포를 가져오면 보는 앞에서 그 치수를 재도록 하고 직접 현장을 감독했어요. 그러다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어요. “면포를 재는 자가 규격보다도 두 치나 길지 않은가!” 자가 규격보다 길면 그만큼 백성의 피해가 생긴다는 뜻이에요. 사소한 것 같아도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어요. 정약용은 즉시 규격에 맞는 치수의 자로 바꾸도록 지시했어요. 어느 해에는 곡산 면포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어요. 정약용은 관청에서 여윳돈 2,000냥을 투자하여 평양 등지에서 값싼 면포를 사들였어요. 그리고 백성들에게는 사 온 면포값만 세금으로 거두었어요. “집집마다 송아지 한 마리 값이 저절로 굴러 들어왔다고 백성들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곡산 관아에는 모처럼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왔어요. “우리 같은 아전들이 가는 곳마다 고맙다는 말을 듣게 되다니, 예전 같으면 꿈도 못 꿀 일 아닌가?” “이게 어진 목민관을 만났기 때문일세.” 관청 관리들도 일할 맛이 절로 나서 더욱 열심히 뛰었어요. 곡산은 원래 먹을 게 귀한 지방이었어요. 농사도 잘 안 되고 특별히 상업이 발달한 고장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정약용이 부사로 취임한 지 3년 만에 곡산은 부자 동네로 바뀌었어요. 모든 잘못을 바로잡고 오로지 민생에 힘쓴 결과였어요. 어느 추운 겨울날, 정약용은 한가로운 시간을 틈타 아전들을 데리고 산기슭으로 산책을 나갔어요. 산기슭 돌 틈 사이로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어요. 이를 본 정약용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얼른 관아로 가서 기름종이와 왕겨, 그리고 삽을 가져오너라.” 하인들은 곧 정약용의 지시에 따랐어요. 정약용은 우선 맨 땅에 구덩이를 파게 했어요. 그런 다음 깊은 구덩이 속에 샘물이 흘러들게 했어요. 물은 추운 날씨에 금세 얼음이 되었어요. “이제 얼어붙은 물 위에 기름종이와 왕겨를 덮어라.” 정약용은 기름종이와 왕겨를 덮은 물이 얼면 몇 번이고 다시 물을 끌어들여 켜켜이 얼음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맨 위에는 두껍게 왕겨와 짚을 덮어 놓았지요. 이듬해 여름에 구덩이를 파 보니 얼음이 녹지 않고 그대로였어요. 냉장고도 없던 시절에 얼음 저장고를 만든 거예요. 이 얼음은 중국 사신들이 왔을 때 아주 요긴하게 쓰였어요. 어느 날에는 한성으로부터 중국에서 사신이 온다는 전갈을 받았어요. 당시 곡산 관아에서는 중국에서 사신이 오기 약 두 달 전부터 중국 황제가 조정에 보내는 칙서를 지킬 두 명의 교생을 뽑았어요. 또 칙서를 보관할 장소도 따로 마련하고 교생들이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했지요. “조정으로 가는 칙서가 곡산 관아에 머무는 시간이라야 겨우 하루뿐인데, 단지 그 하루를 위해 두 달씩 대기하는 건 너무 불합리하지 않은가?” 정약용은 쓸데없이 백성들을 헛고생시키면서 국고를 낭비한다는 생각에 아예 교생을 뽑지 않기로 했어요. “지금껏 교생을 뽑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아전들은 경우에 없는 일이라며 반대하고 나섰어요. 하지만 정약용은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어요. 마침내 사신이 도착한다는 기별이 왔어요. 정약용은 그제야 아전 두 명에게 교생 옷을 입히고 칙서 보관 장소를 지키게 했어요. 교생은 사신들과 마주칠 일도 없는데 굳이 별도의 인원을 뽑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거예요. 그 대신 얼음 저장고에 있던 얼음을 꺼내서 사신들에게 정성껏 냉차를 대접했어요. “한여름에 시원한 냉차라니, 대접 잘 받고 갑니다!” 사신들은 매우 흡족해하면서 사례비까지 주고 갔어요. “이 돈은 고을 사람들을 위해 쓰도록 하라.” 정약용은 사례비로 받은 돈을 지역 발전 기금으로 내놓아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어요.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정치가 아닌 오로지 백성을 위한 정치, 항상 실용적이고 검소하게 관청 살림을 이끌어 가는 것이 정약용의 원칙이었어요. 한번은 황해도 관찰사가 곡산 관아를 방문한 김에 뱃놀이를 제안했어요. 부사에게 관찰사는 직속상관이라 여간해선 쉽게 청을 거절할 수 없어요. 정약용은 그가 기분 상하지 않도록 점잖게 에둘러 말했어요. “지금은 농부들이 가장 바쁜 철이 아닙니까? 만일 관찰사 어른과 제가 뱃놀이를 즐기면 그들도 놀고 싶은 마음이 들 것입니다. 마침 저도 바쁜 용무가 있으니 뱃놀이는 다음으로 미루시는 게 어떨지요?” “허허! 역시 듣던 대로 정 부사는 훌륭한 목민관입니다.” 관찰사는 흔쾌히 자신의 제안을 거둬들였어요. 정약용은 곡산 부사로 있는 동안 정말 많은 일을 했어요. 당시는 홍역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흔했어요. 어릴 때 홍역을 심하게 앓았던 정약용은 여러 의학 서적을 살펴보고 치료법을 연구하여 마과회통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답니다. 이렇듯 정약용은 고을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발 벗고 나서서 해결책을 마련했어요. 진심으로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정약용이 2년의 임기를 마치고 한성으로 떠날 때 많은 고을 사람들이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어요. 정조 임금은 한성으로 돌아온 그에게 형조참의라는 높은 벼슬을 내렸어요. 그러자 반대파들은 기다렸다는 듯 공격의 포문을 열었어요. “정약용은 나라에서 금지하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그런 자를 형조에 앉힐 순 없습니다!” 정조 임금은 계속되는 천주교 논란에 골머리를 앓았어요. 정약용은 깊은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어요. 임금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 거예요. “그대 같은 충신을 지키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구려.” 임금은 훗날을 기약했지만 이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이었어요.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고향인 경기도 마재로 내려간 정약용은 모처럼 책을 읽으며 조용한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성에서 내관이 찾아왔어요. “전하께서 다섯 권은 집 안에 두고, 다섯 권은 제목을 써서 올리라 합니다.” 내관은 열 권의 책을 건네며 왕명을 전했어요. “전하께서 이 미천한 신하를 잊지 않으셨구나!” 정약용은 임금의 깊은 사랑에 눈물을 삼켰어요. 그로부터 몇 달 후, 정조 임금은 다시 그를 한성으로 불렀어요. 임금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말이 들릴 때였어요. 며칠 동안 망설이던 정약용은 마음을 굳히고 집을 나섰어요. 그런데 한성으로 가던 중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어요. “백성들이 무슨 일로 거리에 나와 통곡을 하는 걸까?” 불길한 예감이 든 정약용은 사람들에게 우는 까닭을 물었어요. 그리고 눈앞이 캄캄해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어요. 갑자기 정조 임금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어요. 정조의 어린 아들인 순조가 왕위에 오르고 정순 왕후의 수렴청정 시대가 열렸어요. 왕실의 웃어른이 어린 왕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수렴청정이라고 해요. 정순 왕후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했어요. 이 일로 이승훈과 정약용의 셋째 형 등 백여 명이 처형을 당하고 400여 명이 귀양을 갔어요. 이가환은 모진 고문 끝에 감옥에서 목숨을 잃었어요. 의금부에서 정약용은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끈질기게 처벌을 요구하는 세력들이 있었어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경기도 광주 관찰사를 지내면서 향교 땅을 가로채려 했던 서용보였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약용은 결코 살려 둘 수 없소!” 이때 우의정이라는 막강한 자리에 있던 서용보는 정약용을 천주교 주동자로 몰아 사형을 시키려고 했어요. 이때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주장하고 나선 사람이 황해도 곡산 출신의 정일환이라는 선비였어요. “정약용을 절대 죽여서는 안 됩니다. 그가 곡산 부사로 있을 때 얼마나 많은 선정을 베풀었는지는 황해도 백성들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가 천주교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습니다. 만일 그를 처형한다면 백성들은 아무도 조정에서 하는 말을 믿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정일환은 정약용의 무죄를 입증할 만한 사실들을 조목조목 열거했어요. 덕분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정약용은 사형을 면하고 전라도 강진으로 귀양을 떠났어요. 유배 생활은 무려 18년 동안이나 이어졌어요. 정약용은 이 절망적인 시간에 가장 빛나는 업적을 이루었어요. 강진 사람들은 처음에 정약용을 몹시 경계했어요. “한성에서 큰 죄를 짓고 귀양 왔다지?” “우리한테 무슨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겁이 나서 대문을 열어 주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정약용은 할 수 없이 주막집 뒷방을 얻어 생활했어요. 말벗이라고는 아전의 아들인 황상이라는 소년뿐이었어요. 정약용은 황상에게 글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어요. 그러자 황상은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세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둔하고, 앞뒤가 꽉 막혔으며, 답답한 것입니다. 이런 저도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배우는 사람에게는 큰 단점이 세 가지 있는데 너는 그것이 없구나. 그건 스스로 빠르게 외우고, 빠르게 쓰고, 빠르게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병이란다.” 정약용은 한껏 용기를 북돋워 주었어요. 덕분에 황상은 훗날 뛰어난 시인으로 성장했답니다. 정약용은 억울한 귀양살이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남을 탓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백성들의 삶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여 나라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았어요. 당시 농촌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탐욕스러운 관리들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도를 더했고 힘없는 백성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어요. “어떻게 하면 이 혼란을 극복할 수 있을까?” 궁리 끝에 정약용이 생각해 낸 방법은 책을 쓰는 것이었어요. “정치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다면 단 한 명의 목민관이라도 자기 고을을 잘 다스리게 하는 것이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쓴 책이 유명한 목민심서예요. 곡산 부사 때의 경험과 강진의 농촌 현실을 바탕으로 쓴 목민심서는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불후의 명저로 꼽힌답니다. 정약용은 아홉 명의 자식을 두었지만 대부분 일찍 죽고 두 아들과 딸 하나가 남았어요. 장남 학연과 둘째 학유는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지만 아버지가 유배지에 갇힌 몸이 되자 관직의 꿈을 버렸어요. 정약용은 편지를 써서 간곡히 두 아들을 격려했어요. “폐족이라고 해서 성인이나 훌륭한 문장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너희들은 집에 책이 없느냐? 몸에 재주가 없느냐? 아니면 눈이나 귀에 총명이 없느냐? 어째서 스스로 포기하려 하느냐? 영원히 폐족으로 지낼 작정이냐? 망한 집안의 자식들이 일어설 수 있는 길은 독서뿐이다. 신세 한탄만 하지 말고 무조건 많은 책을 읽어 실력을 키워라." 두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열심히 책을 읽었고 때때로 시를 교환하며 부자간의 정을 나누었어요. 어느 날 정약용은 학연이 의술을 배운다는 것을 알고는 심하게 꾸짖는 편지를 보냈어요. “만약 네가 의원 노릇을 계속한다면 나는 일절 연락도 안 할 것이고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니 마음대로 하여라.” 정약용 자신도 의술에 관한 책을 펴낸 적이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화를 내는 걸까요? 학연은 권력자들의 병을 고쳐 주고 환심을 사서 아버지를 유배에서 풀려나게 하려고 했어요. 정약용은 자신 때문에 아들이 학문을 포기하고 남들 앞에서 비굴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거예요. 학연은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고 의원으로 활동하면서도 학문의 끈을 놓지 않았어요. 그 결과 훗날 말단 관리로나마 벼슬길에 나갈 수 있게 되었고 추사 김정희 등 훌륭한 문인들과 교류하며 ‘문학적인 면에서는 아버지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둘째 아들 학유는 양계장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보내왔어요. 닭이라도 키우지 않으면 생계가 막막하기 때문이에요. 정약용은 학유에게 이런 답장을 보냈어요. “양계야말로 참으로 좋은 농사다. 아무쪼록 닭 키우는 법에 관한 책을 완벽하게 읽어 남의 집 닭보다 더 살찌고 더 잘 번식하게 하여라. 이것이 바로 독서하는 사람의 양계이다.” 정약용은 아들이 비록 닭을 키워서 먹고살더라도 자긍심을 가지고 현실에 절망하지 않기를 바랐어요. “어떤 일을 하는가보다 어떻게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네가 하는 일을 공부와 일치시켜 보아라.” 정약용은 세상에 공부 아닌 것이 없다고 아들을 가르쳤어요. 덕분에 학유 또한 어렵게 살면서도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조선의 농업 기술과 민속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는 농가월령가가 바로 학유의 작품이에요. 정약용은 마침내 18년 동안의 유배 생활을 마치고 한성으로 돌아왔어요. 이때 서용보는 벼슬에서 물러나 정약용의 이웃에 살고 있었어요. “묵은 감정일랑 씻고 서로 도울 것이 있으면 돕고 살아갑시다.” 정약용은 먼저 사람을 보내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으나 서용보는 끝내 거절했어요. 정약용은 끈질기게 자신을 미워하는 세력과 맞서기보다는 고향으로 내려가 은둔하는 삶을 택했어요. 그는 평생 500권이 넘는 책을 펴냈어요. 주로 백성을 존중하고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리는 방법에 관한 책이에요. 정약용은 우리 역사상 가장 많은 저술 작품을 남긴 실학자이자 사상가예요. 하지만 정약용의 책들이 빛을 발하게 된 것은 그가 죽은 지 100여 년이 지난 후였어요. 현재 정약용의 사상과 학문은 ‘다산학’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르친 선생님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페스탈로치는 1746년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태어났어요. 페스탈로치의 아버지는 지역에서 존경받는 의사였어요. 아버지가 의사였지만 페스탈로치네 살림살이는 그리 넉넉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아버지가 가난한 환자들을 공짜로 치료해 주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선생님은 참된 인술을 펼치는 훌륭한 분이야.” 병원은 소문을 듣고 찾아온 가난한 환자들로 항상 붐볐어요. 아버지는 가난한 환자일수록 더욱 정성껏 치료해 주었어요. 그러다 보니 밤낮없이 병원 일에 매달려야 했지요. 그러던 중 페스탈로치의 아버지는 갑자기 큰 병에 걸려 서른세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그때 페스탈로치는 겨우 여섯 살의 어린아이였답니다. 가장을 잃고 난 페스탈로치 가족은 깊은 슬픔에 빠졌어요. 얼마 뒤 아버지를 간호하던 어머니마저 건강이 나빠져 병석에 눕게 되었어요. 슬픔에 빠진 어린 페스탈로치는 걸핏하면 눈물을 흘렸어요. 그럴 때마다 바벨리 누나가 타일렀어요. “이럴 때일수록 힘을 내야지.그렇게 울기만 하면 어쩌니?” 바벨리는 페스탈로치의 외삼촌이 보내 준 하녀예요. 마음씨가 착한 바벨리는 페스탈로치 가족을 자신의 가족처럼 보살펴 주었어요. 어린 페스탈로치는 바벨리를 친누나처럼 따르고 좋아했어요. 바벨리의 헌신적인 보살핌 덕분에 페스탈로치 가족은 차츰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페스탈로치는 몸이 허약하고 또래보다 키도 작았지만, 종종 당돌한 행동으로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했어요. 한번은 수업 중에 지진이 일어난 적이 있었어요. 선생님과 아이들은 모두 교실 밖으로 몸을 피했지요. 그런데 아이들은 지진이 끝난 뒤에도 무서워서 교실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가방이랑 모자랑 다 두고 나왔는데 어떡하지?” 아이들은 교실 밖에서 발만 동동 굴렀어요. 그때 페스탈로치가 혼자 교실로 뛰어 들어가 친구들의 가방을 모두 가지고 나왔어요. “페스탈로치가 최고야! 정말 고마워!” 아이들이 감탄하며 고마워했어요. 페스탈로치도 지진이 무서웠지만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은마음에 큰 용기를 냈던 거예요. 페스탈로치가 다니던 학교의 선생님들은 커다란 회초리를 들고 아이들을 엄하게만 가르쳤어요. “오늘 숙제는 이 기도문을 모조리 외우는 것이다. 내일 시험을 쳐서 못 외우는 학생은 종아리를 열 대씩 맞을 것이니 그리 알도록!” 페스탈로치는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궁금했어요. ‘왜 기도문을 무조건 외워야 할까? 기도문을 외우기 전에 그게 무슨 뜻인지, 왜 외워야 하는지를 먼저 아는 것이 옳지 않을까?’ 페스탈로치는 어머니와 외삼촌에게 자기 의견을 말했어요. 그랬더니 모두들 페스탈로치의 생각에 맞장구를 쳐 주었답니다. 그건 네 생각이 옳은 것 같다. 뜻도 모른 채 무조건 외우기만 하는 것은 좋은 교육 방법 같지 않아.” 페스탈로치는 가족들의 호응에 큰 힘을 얻었어요. 페스탈로치는 방학 때면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의 교회로 놀러 가곤 했어요. 할아버지는 페스탈로치가 몸이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할아버지는 틈만 나면 페스탈로치를 데리고 높은 봉우리로 등산을 가거나 산길을 빠르게 걸었어요. “헉헉! 할아버지, 힘들고 숨이 차요. 좀 천천히 걸어가면 안 돼요?” “이렇게 운동을 해야 몸이 튼튼해지고 강한 인내력도 키울 수 있단다.” 페스탈로치는 힘들었지만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꾸준히 운동을 했어요. 알프스 산비탈에 피어난 온갖 꽃들과 흰 눈이 덮인 산봉우리, 파란 하늘, 수많은 폭포들이 페스탈로치의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페스탈로치는 하루하루 더 튼튼해졌고,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끈기 있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인내력도 생겼어요. 목사이신 할아버지는 늘 어렵고 가난한 이웃을 찾아가 도와주었어요. 페스탈로치는 할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며 큰 영향을 받았어요. 할아버지의 교회가 있는 마을의 농부들은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어요. 병이 나도 병원에 갈 돈이 없어 집에서 시름시름 앓는 사람도 많았지요. “돈은 내가 어떻게든 마련해 볼 테니 걱정하지 말고 어서 병원에 가 보게. 하나님이 자네를 도와주실 게야.” 페스탈로치의 할아버지는 아픈 이웃들에게 치료비를 보태 주거나 하루빨리 완쾌하기를 바라며 정성껏 기도해 주었어요. 페스탈로치는 할아버지와 함께 지낸 덕분에 언젠가 자신도 목사가 되어 어려운 이웃을 돕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목표를 갖게 되었어요. 청년이 된 페스탈로치는 할아버지처럼 목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기로 했어요. 그러나 막상 대학에 들어간 페스탈로치는 신학보다 역사학, 철학, 법학, 정치학 등에 더욱 관심이 많아졌어요. 정치학을 가르치던 보드머 교수의 영향을 깊이 받았기 때문이지요. 보드머 교수는 딱딱한 이론을 강의하기보다는 학생들과 토론하는 때가 많았어요. “모두 이 책을 읽어 오게. 다음 강의는 이 책의 내용을중심으로 서로 토론하는 시간을 갖겠네.” 페스탈로치는 보드머 교수의 수업(授業)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스스로 책을 읽고 정리해서 다른 학생들과 토론하는 동안 저절로 학문을 익힐 수 있을 거야.’ 페스탈로치는 보드머 교수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틈틈이 찾아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자네는 신학을 공부하려고 이 대학에 들어왔다지?” 어느 날 보드머 교수가 페스탈로치에게 물었어요. “하지만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계획이 달라졌어요. 보드머 교수는 두 가지 부탁을 했어요. 첫째는 스위스가 주변 국가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으니 젊은이들이 힘을 모아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것, 둘째는 귀족과 부자들에게 시달리고 있는 힘없는 농부들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당부였어요. 할아버지가 계신 시골에 갈 때마다 농부들이 힘겹게 사는 모습을 익히 보아 왔던 페스탈로치는 보드머 교수의 말에 깊이 감동했어요. 보드머 교수의 강의와 연설에 감동받은 학생들은 곧 ‘애국단’이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페스탈로치도 애국단 회원으로 가입 했답니다. 애국단 회원들은 자주 모여 정부의 잘못을 비판하는 토론을 하고 책을 펴내기도 했어요. 그러자 경찰관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책을 쓴 사람을 처벌하겠다며 애국단 회원들을 마구 잡아들였어요. 이때 페스탈로치도 같이 잡혀가 감옥에 갇혔어요. 얼마 뒤 감옥에서 나온 페스탈로치는 자신의 앞날에 대해 깊이 고민했어요. 그는 농촌으로 내려가 직접 농민들을 돕는 일에 나서기로 결심했어요. ‘말보다는 실천이 앞서야 해. 말로만 농민들을 위하는 체하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지.’ 이처럼 페스탈로치의 꿈은 목사에서 법률가로, 다시 농민 운동가로 바뀌었어요. 농촌 운동을 펼치기로 한 페스탈로치는 애국단 동료인 안나에게 자신의 뜻을 밝혔어요. 안나는 페스탈로치가 좋아하던 여학생이었어요.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지만 쉽게 결혼할 처지가 아니었어요. 안나가 페스탈로치보다 일곱 살이나 많고, 안나의 부모님이 페스탈로치를 싫어했기 때문이지요. 안나와 페스탈로치의 집은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어려서부터 서로가 어떤 환경 속에서 자랐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어요. “넌 페스탈로치와 결혼할 수 없어. 그 녀석은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데다 아직 나이도 어리잖니? 게다가 볼품없이 생긴 꼴이라니.” 안나의 부모님은 두 사람의 결혼을 한사코 반대했어요. 하지만 페스탈로치와 안나의 사랑은 점점 깊어만 갔어요. “안나, 나는 곧 키르히베르크로 내려가 농사짓는 법을 배울 생각이오.” 안나는 페스탈로치의 계획에 찬성하면서도 눈시울을 붉혔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멀리 떨어져 지내야 했기 때문이지요.
모든 생명이 함께 사는 세상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제인 구달은 193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어요. 공학자인 아버지 모티머와 소설가인 어머니 반느에게서 자연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모험심을 물려받은 제인은 어려서부터 유난히 곤충과 동물을 좋아했어요. “여보, 이번 생일에 제인에게 무얼 선물 할까요?” 하루는 엄마가 아빠에게 물었어요. “제인은 친구가 없으니 침팬지 인형을 선물합시다.” 제인이 숲에서 노는 걸 좋아해서 생각해 낸 선물이에요. 그날부터 제인은 침팬지 인형과 어디든 함께 다녔어요. 제인은 침팬지 인형을 끼고 집 주변을 돌아다니며 곤충과 동물을 관찰하는 것을 가장 좋아했어요. 하루는 흙에서 지렁이를 발견하고 침대로 가져왔어요. 제인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지렁이를 지켜보자 어머니가 “지렁이는 흙이 없으면 곧 죽는단다.” 라고 알려 주었어요. 제인은 결국 아쉬워하며 지렁이를 다시 땅에 놓아 주었어요. 다섯 살 때, 제인의 가족은 프랑스로 이사했어요. 그곳은 숲이 많아서 제인의 마음에 꼭 들었어요. 제인은 엄마 심부름하는 걸 특히 좋아했는데 가장 좋아한 건 달걀을 모아 오는 일이었어요. 제인은 아침마다 닭장에 들어가 신선하고 따뜻한 달걀을 바구니에 담아 왔어요. 제인은 닭이 알을 낳는 모습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인은 몰래 닭장 안에 들어갔어요. 물론 닭이 알을 낳는 장면을 직접 보려고요. 가족들은 사라진 제인을 찾아 마을을 돌아다녔어요. “제인! 도대체 어디 있는 거니?” 가족들이 찾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인은 닭을 관찰했어요. 제인은 저녁이 되어서야 온몸에 닭똥을 묻힌 채 닭장에서 나왔어요. “암탉의 다리 사이에서 하얗고 둥근 알이 나왔어요. 전 그걸 보기 위해 꼼짝도 않고 있었다고요!” 놀란 가족들에게 제인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어요. 제인이 열 살이 되었을 때의 일이에요. 그 당시는 세계 2차 대전이 한창이어서 국가들끼리 서로 총을 겨누고 싸우는 통에 많은 사람들이 집과 가족을 잃고 떠돌아야 했어요. 제인은 전쟁 중인데도 다락방에 숨어서 책을 읽으며 꿈을 키웠는데 특히 타잔을 좋아했어요. 제인은 동물들과 함께 사는 타잔 이야기를 읽은 후 어른이 되면 아프리카로 가겠다고 마음먹었어요. 타잔을 너무 좋아해 타잔의 여자 친구를 미워하기도 했어요. ‘내가 타잔과 더 잘 어울려!’ 하고 말이에요. 제인은 하루빨리 아프리카로 가서 타잔을 만나고 싶었지만 현실에서 그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군대에 자원해서 옆에 없었고 어머니는 다친 사람들을 돕느라 무척 바빴거든요. 제인이 열일곱 살이 되었을 때 부모님이 성격 차이로 헤어지게 되었어요. 부모님이 이혼하여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제인은 흔들리지 않았어요. 제인에게는 어릴 때부터 간직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난 포기 하지 않아. 꼭 아프리카로 갈 거야!” 제인은 타잔처럼 날마다 동물들과 함께 살며 동물 친구들을 연구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동물을 연구하는 일은 대단히 위험해서 여자인 제인이 동물학자가 되겠다고 하자 다들 비웃었어요. “넌 동물들이 얼마나 사나운지 모르지?” 그럴수록 제인은 입술을 꽉 깨물었어요. ‘난 반드시 동물학자가 되고 말 거야. 불쌍한 동물들을 우리에 가두어 놓고 관찰하는 게 아니라 넓은 초원으로 내가 동물을 만나러 갈 거야.’ 어느 날 상담 선생님이 제인에게 조언(助言)했어요. “제인, 여자의 몸으로 동물을 연구하는 건 무리야. 받아 주는 대학도 없을 테고. 차라리 사진사가 되는 건 어때? 사진사가 되어 동물을 찍으며 연구도 하는 거야.” 제인은 선생님의 말에 실망했어요. 제인은 사진사가 아닌 동물을 관찰하는 연구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제인은 어머니 반느에게 도움을 청했어요. “외국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보자.” 딸의 꿈을 응원해 주고 싶었던 어머니는 고민하는 제인에게 비서학 공부를 제안했어요. 비서가 되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닐 수 있고 아프리카에 갈 수 있는 기회도 생길 거라면서요. 결국 1953년 5월, 제인은 런던으로 건너가 퀸스 비서 학교에 입학했어요. 꿈을 이루기 위한 그녀의 첫 발걸음이었지요. 제인은 비서 자격증을 딴 후 옥스퍼드 대학에서 일자리를 얻었어요. 하루하루 편안한 생활이었지만 제인은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지 못했어요, 자신의 꿈과는 거리가 먼 일이기 때문이에요. 제인은 비서를 그만둔 뒤 영화사로 자리를 옮겼어요. 영화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언젠가 아프리카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영화사의 일도 그녀의 꿈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그녀는 답답한 사무실에 앉아 날마다 한숨을 쉬었어요. ‘이러다가는 평생 의미 없이 살다 늙어 죽고 말 거야.’ 그녀는 일이 끝나면 런던 교외의 숲으로 들어가 어떻게 하면 이 도시를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아프리카로 갈 수 있는 기회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찾아왔어요. 어느 날 고등학교 친구인 클로에게서 편지가 왔어요. 편지에는 코끼리와 기린 우표가 붙어 있었는데 자기 부모님이 아프리카 케냐에 농장을 사서 제인을 초대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제인은 당장이라도 케냐에 가고 싶었지만 문제가 있었어요. “아, 어쩌지? 잘못하면 기회가 사라지겠어.” 꿈에 그리던 아프리카로 가는 길이 드디어 열렸는데 670달러나 하는 왕복 뱃삯이 부족한 거예요. 그녀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사 일 대신 식당에서 웨이트리스 일을 시작했어요. 다섯 달 동안 쉬지 않고 일한 덕에 겨우 뱃삯을 모을 수 있었어요. 은행에서 돈을 찾던 날, 제인은 기뻐서 소리쳤어요. “와우, 드디어 아프리카에 간다!” 제인은 큰 행복감을 느꼈어요. 1957년 3월, 스물두 살의 제인은 부푼 마음을 안고 ‘케냐 캐슬호’에 올랐어요. 파도가 무척 심해 사람들이 멀미를 할 때도 제인은 갑판에 나와 돌고래와 새를 관찰했어요. 자신이 아프리카로 가는 배에 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그녀는 들떠 있었어요. 긴 항해였음에도 제인은 전혀 지치지 않았어요. 험난한 항해가 마침내 끝나고 케냐에 도착했을 때 클로와 클로의 가족이 그녀를 마중 나왔어요. 그들은 함께 키낭곱에 있는 농장으로 향했어요. 제인은 그때 놀라운 광경을 보았어요. 먼지가 풀풀 날리는 도로를 기린이 달리고 있었어요. 어떤 기린은 혀를 날름거리며 아카시아를 씹고 있었어요. ‘아아, 내가 정말 아프리카에 왔구나!’ 제인은 차가 달리는 내내 행복한 비명을 질렀어요. “아프리카 동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으면 박물관의 루이스 리키 박사를 찾아가 봐.” 어느 날 친구가 조언했어요. 리키 박사는 나이로비의 코리든 박물관에서 인류학자와 고생물학자로 일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아프리카 사람들과 동물들에 대해 대단히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며칠 후 제인은 리키 박사를 만나러 갔어요. 리키 박사는 제인에게 박물관을 구경시켜 주며 전시품을 보고 느낀 소감을 물었어요. 이미 아프리카에 관해 책을 많이 읽은 터라 제인은 박사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었어요. “아주 열정적인 젊은이군. 내 옆에서 함께 일을 해 주게.” 리키 박사는 제인을 비서로 채용하고 박물관에서 함께 동물과 자연을 연구할 수 있게 해 주었어요. 제인에게는 두 번 다시 찾아올 수 없는 좋은 기회였지요. 리키 박사와의 역사적인 만남은 제인이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는 징검다리였어요. 리키 박사는 제인에게 탐험을 제안했어요. 박사는 매년 여름 아내 메리와 세렝게티 평원에 있는 올두바이 협곡으로 연구를 하러 나갔어요. 그 협곡은 여러 개의 작은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가파른 경사를 따라 끝없이 이어져 있었어요. 당시 세렝게티는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서 제대로 된 길조차 나 있지 않았어요. 올두바이 탐험은 제인에게 낯선 경험이었어요. 물이 부족해서 목욕은커녕 머리도 감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머리를 질끈 묶어 버렸어요. “이렇게 묶으니 훨씬 편하네.” 지금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지만 그때는 야생에서 편하게 지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헤어스타일이었어요. 올두바이에서 야생 환경을 연구하는 동안 제인은 많은 동물들을 관찰할 수 있었어요. “아아,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야!” 제인은 그랜트가젤 무리를 만나 처음으로 가젤의 이동 과정을 지켜보았어요. 어떤 날은 기린 떼와 만나고, 어떤 날은 검정코뿔소 무리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기도 했어요. 또 어린 사자가 10여 미터 앞에서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고 무시무시한 경고의 눈빛을 보낸 적도 있었어요. 저녁이 되면 사자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코뿔소의 발걸음 소리, 하이에나의 울음소리로 평원은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어요. 아프리카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야생 그대로의 모습이었어요. 올두바이 탐사대는 9월이 되어서야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로 돌아왔어요. 제인은 그곳에서 어미 잃은 동물들을 키웠어요. 처음 가족이 된 동물은 갈라고원숭이였어요. 다람쥐같이 생긴 갈라고원숭이의 이름은 ‘레비’였어요. 제인은 출근할 때마다 레비를 데려갔는데 레비는 방문객들의 어깨에 올라타 장난을 치고는 했어요. 이어 긴꼬리원숭이 코비가 제인과 친구가 되었고 난쟁이몽구스와 고슴도치, 쥐와 강아지 두 마리도 제인의 친구가 되었어요. 뿐만 아니라 샴고양이와 덩치 큰 갈라고원숭이까지 그녀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어요. “너희들은 모두 내 친구고 가족이야!” 날마다 동물들과 가족처럼 살아가는 제인은 마치 꿈을 꾸듯이 하루하루가 행복했어요. 박물관에서 일한 지 아홉 달쯤 지나면서 제인은 아프리카 생활에 점점 익숙해졌어요. ‘혼자 계시는 어머니를 아프리카로 초대하자.’ 어머니가 보고 싶어 견딜 수 없게 된 제인은 그동안 모은 돈으로 어머니의 비행기 표를 샀어요. 덕분에 어머니는 제인과 석 달 동안 함께할 수 있었어요. “말만 못 할 뿐이지 동물도 인간과 다를 게 없어요.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도요.” 리키 박사는 어머니 반느가 아프리카의 경이로운 자연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고, 함께 외딴섬을 탐험하기도 했어요. 두 사람은 제인의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때 제인은 남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는 대신 평생 동물과 함께 생활하겠다고 말했어요. 어머니는 언제나 의지가 강한 제인을 자랑스러워했어요. 리키 박사는 제인에게 올두바이 서쪽에 다양한 침팬지들이 살고 있음을 알려 주었어요. 게다가 자신이 침팬지 연구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도 말해 주었지요. “침팬지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너무 부족해. 침팬지 연구에 제인이 적격이라고 생각하는데 제인은 어떻게 생각해?” “제가 어떻게 감히.” 제인은 학위도 없고 침팬지 분야의 공식적인 교육도 받지 못한 자신에게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박사는 그런 제인에게 프로젝트를 제안했어요. 제인은 편견 없이 자신의 능력을 평가해 준 리키 박사가 정말 고마웠어요. 제인은 당장이라도 연구를 시작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아 제인은 우선 어머니와 함께 잠시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1959년, 제인은 런던으로 돌아와 잠시 아버지의 아파트에 머물며 연구 자료를 준비했어요. 그녀는 이미 발간된 동물 연구서들을 조사하며 침팬지에 대한 이론적인 특성들을 공부했어요. 낮에는 런던 동물원의 영상 자료실에 나가 영상을 보았고 틈날 때마다 연구 계획을 짜서 목록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엄청난 액수의 연구 자금은 어디서 구한담?” 연구 준비가 착착 진행되어 갔지만 자금을 지원해 줄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없었어요. 그때 떠오른 인물이 친구인 레이른 윌키였어요. 윌키는 자선 단체인 윌키브라더스의 창시자였어요. “제인의 연구를 도울 수 있어서 나도 기뻐.” 윌키는 흔쾌히 3,000달러를 연구비로 내주었어요. 그날 밤, 제인은 기쁜 마음으로 리키 박사에게 편지를 썼어요. 곧 케냐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요. 1960년 6월, 케냐로 돌아간 제인은 어머니와 함께 베르베트원숭이가 사는 룰루이 섬으로 들어갔어요. 침팬지 연구에 앞서 베르베트원숭이를 만나기 위해서였어요. 그녀는 섬에 도착하자마자 원숭이들을 살펴보았어요. 어린 시절의 제인이 농장에서 암탉을 관찰했던 일을 기억하나요? 그녀는 그때처럼 조심스럽게 원숭이에게 다가갔어요. 그러고는 하루 종일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원숭이들을 지켜보았어요. 그렇게 오래 관찰한 다음, 원숭이들의 행동을 꼼꼼하게 기록했어요. “너는 코가 못생겼으니까 주먹코, 너는 심술이 많으니까 심술보, 또 저 녀석은.” 제인은 일일이 이름을 붙여 원숭이를 구별했어요. 원숭이를 친구처럼 대하다 보니 이름까지 짓게 된 거예요. 제인은 탄자니아의 곰베에 꼭 가 보고 싶었어요. 곰베에는 야생 침팬지 보호 구역이 있었어요. 하지만 정부가 허락해 주지 않아 곰베에 갈 수 없었어요. 그런데 그해 7월에 드디어 곰베에 가도 좋다는 정부의 허락이 떨어졌어요. “와, 이제 정말 침팬지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어요!” 제인은 어머니를 끌어안고 아이처럼 기뻐했어요. 제인은 어머니와 새로 고용한 요리사 도미니크를 데리고 침팬지 보호 구역인 곰베로 들어갔어요. 그들은 숲 주변에 텐트를 치고 몇 개월 동안 머물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갔어요. 침팬지 보호 구역은 한쪽이 자갈밭이었고 다른 쪽은 가파른 절벽이었어요. 제인은 여자인 자신이 그런 곳에서 정말 침팬지를 연구할 수 있을지 약간 걱정이 되었어요.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동물을 사랑했고 동물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침팬지와 친구가 되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 침팬지를 연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침팬지들은 제인을 보고 도망치기 바빴거든요. 침팬지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어요. 게다가 침팬지를 한 마리도 볼 수 없는 날도 많았어요. “이러다가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나면 어떡하지?” 연구를 맡긴 리키 박사가 실망할 것을 생각하자 낙담이 컸어요. 하지만 쉽게 포기하지는 않았어요. 그곳의 지리와 지형을 익히며 계속 자료를 모았어요. 그러던 1960년 8월 16일이었어요. 드디어 침팬지 한 마리가 그녀의 코앞으로 다가왔어요. ‘와, 침팬지가 내게로 다가오다니!’ 그녀는 기쁜 나머지 침팬지처럼 행동했어요. 자신을 마구 긁으며 벌레를 찾아 먹는 시늉도 하고 침팬지들에게 전혀 관심 없는 척도 했어요. 그러자 침팬지들은 그녀를 친구로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제인은 침팬지를 관찰하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건 바로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었어요. 지금은 침팬지가 나뭇가지나 잎을 사용한다는 걸 알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도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걸 알지 못했어요. 제인은 그걸 발견한 최초의 사람이에요. 제인은 어떻게 그 사실을 발견했을까요? 제인은 닭장의 닭을 관찰하듯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흰개미 굴로 다가오는 침팬지를 만났어요. 침팬지는 지푸라기를 흰개미 굴속에 집어넣었어요. 잠시 후 지푸라기를 빼내자 흰개미가 잔뜩 묻어 나왔어요. “설마, 침팬지가 도구를!” 침팬지가 입으로 흰개미를 훑어 먹기 시작했어요. 그녀는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침팬지들이 인간처럼 도구를 제작해 ‘흰개미 낚시’를 하다니 정말 놀라웠어요! 그뿐이 아니었어요. 제인은 침팬지들이 육류를 먹는다는 사실도 새로 알아냈어요. “뭐, 침팬지가 도구를 제작하고 고기를 먹는다고?” 리키 박사는 제인의 말을 듣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어요. 얼마 후 리키 박사는 제인을 케임브리지 대학 박사 과정에 등록 시켜 계속 야생 침팬지를 연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어요. 제인은 공부를 하는 중에도 바쁘게 밀림을 돌아다니며 더 많은 침팬지들을 관찰했고 새로운 연구를 해 나갔어요. 먼 거리를 걸어 다니느라 제인의 발가락은 늘 짓물렀고 거의 매일 밤마다 열과 두통에 시달려야 했어요. “오늘도 비에 흠뻑 젖어 버렸네. 내일은 폭풍우를 만나지 말아야 할 텐데.” 제인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 모든 고통을 묵묵히 견뎌 냈어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게 된 제인은 침팬지를 주제로 논문을 쓰기 시작했어요. 제인의 논문은 지나치게 인간적이었어요. “침팬지는 인간이 아니에요. 동물이란 말입니다.” 동료 학자들이 충고했지만 제인의 생각은 달랐어요. “침팬지도 감정이 있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어요.” 제인의 연구는 기존의 동물 연구들과 달랐어요. 제인은 그동안 만난 침팬지 하나하나에 이름을 지어 주고 그들에게도 감정과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어요. 마치 사람처럼 말이에요. “침팬지에게 이름 대신 숫자를 붙여서는 안 돼요! 우린 그들을 진심(眞心)으로 대해야 해요!” 제인은 논문을 발표할 때마다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계속 밀고 나갔어요. 대학에서 제인은 야생 침팬지의 먹이 활동과 야생 침팬지들의 보금자리 짓기라는 논문을 완성했어요. 그녀의 발표를 들은 많은 과학자들은 열광했어요. “여러분!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지금껏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여성이 나타나 침팬지에 대한 새롭고 놀라운 연구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침팬지가 인간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뛰어난 연구 성과에 박수를 보냈어요. ‘다행히 결과가 좋았지만 아직 내 일은 끝나지 않았어!’ 여기저기서 편안한 연구직 제안이 잇따랐지만 제인은 모두 거절하고 또다시 침팬지들을 만나기 위해 곰베 초원으로 들어갔어요. 제인은 휴고 반 라빅이라는 사진작가와 함께 곰베로 떠났어요. 침팬지들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서였지요. 그들은 1962년 7월에 곰베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갑자기 침팬지들이 제인에게 다가오는 게 아니겠어요? “오, 나를 기억하고 있다니!” 밀림을 떠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왔는데도 침팬지들은 제인을 잊지 않았던 거예요. 침팬지들은 아예 텐트 안으로 들어와 바나나를 먹으며 제인을 놀려 댔어요. “휴고, 이리 좀 와 봐요. 이 녀석들이 자꾸 장난을 걸어요.” 제인은 곰베에서의 생활이 무척 즐거웠어요. 제인과 휴고는 침팬지 사진을 찍으며 더욱 가까워졌어요. 두 사람은 자연을 사랑한다는 점도 비슷했고, 동물에 대한 열정 또한 많이 비슷했어요. 제인과 휴고는 거의 하루 종일 함께 지냈어요. 사진을 찍는 틈틈이 그들은 플로라고 이름 붙인 침팬지의 가족 관계를 같이 연구하기도 했어요. ‘우리의 대화 주제는 대부분 침팬지였어요. 휴고는 나랑 똑같은 것에 관심이 많아서 우리는 지금 서로를 아주 신뢰하고 있답니다.’ 제인은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 자기 마음을 고백했어요. 제인은 휴고와 함께라면 일의 즐거움은 물론 고통까지도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진 작업이 모두 끝난 뒤 제인은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돌아갔어요. 하지만 여전히 휴고를 잊지 못하고 있는데 하루는 휴고로부터 뜻밖의 편지가 날아왔어요. 편지에는 ‘제인, 나와 결혼해 줄래?’라는 글이 들어 있었어요. 그녀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어요. 그렇게 하여 둘은 1964년 3월에 결혼식을 올렸어요. 당시 제인의 나이는 서른 살이었어요. 제인의 연구는 점점 더 폭이 넓어졌어요. 이미 유명 인사가 된 제인은 각지에서 후원을 받았는데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의 후원 덕분에 몇 채의 건물로 이루어진 ‘곰베 스트림 연구소’가 세워지기도 했어요. 야생 동물과 시간을 보내는 틈틈이 제인은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돌아가 침팬지와 관련된 많은 글을 발표했어요. 제인은 과학계에 이름을 알리며 ‘구달 박사’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어요. “제인 구달은 현재 침팬지 연구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과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연구 위원장인 레너드 카마이클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인을 치켜세웠어요. 협회의 요청에 따라 그녀는 미국 전역을 순회강연하며 침팬지의 세계를 알리는 데 온 힘을 다했어요. 제인은 곰베에서 또다시 놀라운 발견을 했어요. 도구를 사용하는 이집트대머리수리를 만난 거예요. 이집트대머리수리들은 식사를 하기 위해 사냥한 조류나 파충류의 알 위에 돌멩이를 떨어뜨렸어요. “알을 깨는 거야! 돌멩이로 알을 깨서 먹고 있어!” 제인은 그 모습을 보고 매우 흥분했어요. “제인, 그게 사실입니까? 대단한 발견입니다!” 소식을 전해 들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장도 기뻐했어요. 하지만 그녀의 연구가 항상 즐거운 것은 아니었어요. 어느 날 제인은 침팬지들의 이상 행동을 보게 되었어요. 밀림의 침팬지들이 발이나 손을 질질 끌고 있었어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제인과 친하게 지내던 데이비드라는 녀석도 한쪽 다리를 쓸 수 없게 되었어요. 세균성 소아마비가 유행처럼 번져 침팬지들을 병들게 한 거예요. 한 마리, 두 마리 침팬지들이 죽어 나가자 제인은 자신의 가족이 죽은 듯 괴로워했어요. 하지만 마냥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어요. “이럴 게 아니라 병의 원인을 찾아보자.” 제인은 소아마비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어요. 마침내 그녀는 소아마비의 원인이 곰베와 키고마 마을에 퍼져 있는 바이러스 때문이란 걸 알아냈어요. “녀석들이 마을에서 버린 음식을 먹고 감염된 것인지도 몰라!” 그녀는 리키 박사에게 재빨리 이 사실을 알리고 소아마비 약을 부탁했어요. 그러고는 그 약을 바나나에 넣어 침팬지들에게 먹이기 시작했어요. 그녀의 노력으로 전염병은 차츰 진정되어 갔고 소아마비로 죽은 네 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침팬지들은 모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어요. 1967년 3월에 제인에게 새로운 식구가 생겼어요. 휴고와의 사랑의 결실로 사내아이를 낳은 거예요. 그녀는 아이에게 ‘휴고 에릭 루이스 반 라빅’이라는 긴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가자, 너에게 멋진 선물을 보여 주마.”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곰베로 향했어요. 자신이 어릴 때 그랬듯 아이에게 숲과 그곳의 동물 친구들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어요. 제인은 그곳에서 암컷 침팬지 플로의 양육법을 관찰하며 아이를 사랑으로 키웠어요. “아가야, 저 침팬지가 바로 너의 친구란다.” 침팬지 가족들이 곁에 있었기에 그녀는 결코 외롭지 않았어요. 제인의 미래는 마냥 밝아 보였어요. 인간의 그늘 아래서라는 책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제인 구달이라는 이름이 점점 유명해졌거든요. 하지만 그녀에게도 하나둘 불행이 닥쳐왔어요. 남편 휴고와의 사이가 점점 나빠졌고, 존경하던 루이스 리키 박사마저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제인은 스승이자 친구였던 리키 박사가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큰 슬픔에 잠겼어요. “리키 박사님은 저에게 정말 좋은 선생님이었어요. 언제 어디서나 저를 격려해 주셨답니다.” 제인은 진심으로 루이스 리키 박사의 죽음을 애도하고 명복을 빌었어요. 마흔 살이 되던 해에 제인은 휴고와 이혼하기로 했어요. “사랑하지 않는데 더 이상 같이 사는 건 무의미해요.” 연구를 계속할 수밖에 없어서 제인과 휴고는 자주 떨어져 있었고, 그 결과 점점 관계가 멀어진 거예요. 하지만 그들은 좋은 친구로 남기로 합의했어요. “제인, 당신의 연구가 계속되기를 기원할게.” 휴고는 제인의 손을 잡으며 그녀를 격려했어요. 휴고와 헤어진 후 제인은 한동안 연구에만 매달렸어요. 그런데 얼마 뒤 또 한 명의 남자가 운명처럼 나타나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탄자니아 국립 공원의 총감독을 맡고 있는 데릭이라는 남자였어요. 데릭은 아주 편안하게 제인을 보호해 주었어요. 그래서 제인은 곰베에서 침팬지 연구를 계속 이어 갈 수 있었어요. 제인이 마흔여섯 살이 되었을 때 다시 또 불행한 일이 찾아왔어요. 사랑하는 데릭이 암에 걸려 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거예요. 제인은 데릭 없이 어떻게 살지 앞날이 막막했어요. 하지만 제인은 눈물을 꾹 참고 데릭에게 말했어요. “데릭, 힘내요. 내가 끝까지 당신 곁에 있어 줄게요.” 두 사람은 남은 시간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음악을 듣고, 함께 기도했어요. 데릭을 살리려는 제인의 애타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해 10월에 데릭은 결국 제인의 곁을 떠나고 말았어요. 제인은 너무나 슬퍼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오, 불쌍한 데릭! 부디 천국에서 행복하길 빌어요.” 슬픔에 빠져 있던 제인은 다시 곰베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그녀는 사랑했던 데릭을 추억하며 다시 침팬지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어요. 제인은 항상 침팬지를 자신의 친구라고 말했어요. 그렇게 제인은 동물들과 웃고 웃으며 점차 그들과 한 가족이 되어 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인은 깊은 생각에 잠겼어요. ‘언제까지 침팬지 곁에 머물 수는 없어. 동물 친구들을 위해 더 큰일을 해 보자.’ 생각 끝에 제인은 침팬지 보호 프로젝트를 계획했어요. 첫 번째 일은 동물원의 침팬지들에게 야생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어요. 우리 안에 흰개미 굴이나 짚으로 된 잠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이었지요. 그다음은 야생에 사는 침팬지들을 보호하는 일을 계획했어요. 그녀는 연구원들이 침팬지를 함부로 잡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자고 주장했어요. 그 밖에도 그녀는 실험실의 침팬지들은 물론 수많은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 나갔어요. “인간과 동물은 똑같이 지구촌의 주인이에요. 인간과 동물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듭시다!” 제인이 강연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어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제인은 ‘뿌리와 새싹’이라는 환경 보호 운동을 펼쳤어요. 이 운동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이에요. 시간이 갈수록 제인의 프로젝트는 점점 힘을 얻었어요. “세상을 구하는 건 여러분 손에 달렸습니다!” 고등학생들까지도 그녀의 운동에 관심을 가져 세계 각지에서 참여의 뜻을 전해 왔어요. 그 결과, 수백 만 그루가 넘는 나무가 심어졌고, 많은 학생들이 동물과 자연 보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침팬지 연구로 시작하여 동물 보호와 환경 운동에 이르기까지 제인 구달의 발걸음은 끝없이 이어졌어요. 어릴 때부터 타잔을 좋아한 한 소녀의 꿈은 오늘도 아프리카의 초원을 힘차게 달리고 있답니다.
백성들과 고통을 함께 한 조선의 명의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으아앙!”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온 집 안에 울려 퍼졌어요. 앞마당에서 초조한 모습으로 서성거리던 허론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어요. 잠시 뒤 산모의 시중을 들던 몸종이 산실 밖으로 나와 허론에게 말했어요. “대감마님, 방금 안방마님께서 옥동자를 순산하셨어요!” “오! 그래?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더냐?” “네, 마님.” 허론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허론은 산실로 들어가 부인의 손을 꼭 잡아 주며 말했어요. “부인, 아이를 낳느라 고생이 많았소.” 며칠이 지난 뒤 허론은 새로 태어난 아들에게 허준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허준은 어려서부터 영특했고 기억력이 좋았어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스스로 지혜롭게 풀어 나갔고, 한번 가르쳐 준 것은 쉽게 잊지 않았어요. 하지만 허준에게는 남모르는 고민이 있었어요. 어느 날 아침, 아버지와 마주친 허준이 무심코 인사를 드렸어요. “아버지,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근엄하게 꾸짖었어요. “이놈! 아버지가 아니라 대감마님이라 부르라고 하지 않았느냐? 똑똑한 녀석이 어찌 그걸 잊었던고?” 허준은 아차 싶었어요. 하지만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왜 잘못인지 무척 궁금했어요. “한데 대감마님, 다른 형님들은 아버지라 부르는데 왜 저만 대감마님이라 불러야 하는지요?” “네가 좀 더 크면 자세히 알게 될 것이다.” 허준은 몇 해 지나서야 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지 이유를 알았어요. 요즘엔 한 남자가 한 여자와만 결혼해야지 여러 여자와 결혼할 수 없어요. 이런 제도를 한자로는 일부일처라고 불러요. 그런데 조선 시대에는 벼슬이 높거나 재산이 많은 남자들은 부인을 두세 명 정도 두기도 했어요. 허준의 아버지도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을 두었어요. 이럴 때 첫째 부인이 낳은 아들은 ‘적자’라 했고, 둘째 부인이 낳은 아들은 서자라고 불렀지요.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하필 나를 서자로.” 허준은 고개를 떨구었어요. 똑같은 아버지의 아들인데도 적자와 서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어요. 서자는 적자에 비해 심한 차별 대우를 받아야 했어요. 허준의 아버지는 높은 벼슬을 지냈으며 재산도 넉넉했어요. 그래서 훈장님을 집으로 모셔 허준의 배다른 형들에게 글공부를 시켰어요. 하지만 허준은 형들과 함께 글을 배울 수가 없었어요. 서자인 허준의 신분으로는 감히 형들과 함께 앉아 글공부를 할 수 없었던 거예요. 허준은 형들이 공부할 때마다 방문 밖에 쪼그려 앉아 훈장님 말씀에 귀를 기울였어요. “천명을 따르는 자는 살 것이요, 천명을 따르지 않는 자는 죽는다. 자, 따라서 소리 내어 읽어 보거라.” 형들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문밖에 있던 허준도 앵무새처럼 따라 읽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글 읽는 흉내를 내도 책이 없으니 글자를 익힐 수가 없었어요. 어느 날 허준이 어머니께 말씀드렸어요. “어머니, 저도 글을 배우고 싶어요.” 어머니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어요. 그러더니 허준을 감싸 안으며 울먹였어요. “준아! 모두 이 어미의 잘못이다.차라리 너를 낳지 않았더라면 이런 차별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벌써 아홉 살이 된 허준은 글조차 마음대로 배울 수 없는 세상이 정말 싫었어요. 그래서 매일 이 동네, 저 동네 혼자 돌아다니고는 했어요. 어떤 날은 그가 허론 대감의 서자라는 걸 알아본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기도 했어요. “어이, 하인만도 못한 허 서자야. 어딜 그렇게 미친개처럼 돌아다니는 게냐?” 아이들은 허준을 졸졸 따라다니며 놀려 댔어요. 그럴 때마다 허준은 마음 깊이 다짐했어요. ‘내가 반드시 과거에 급제해 높은 벼슬자리를 얻을 것이다. 그땐 날 놀린 너희들이 땅을 치며 후회하겠지?’ 며칠 뒤 허준은 책을 파는 가게로 찾아가 천자문, 사자소학, 동몽선습 등 몇 가지 책을 사들였어요. 형들은 벌써 사서삼경을 배우고 있었지만 허준은 글자부터 익혀야 했지요. 글자를 읽고 쓰는 연습을 하다가 아주 어려운 한자가 나타나면 훈장님을 몰래 찾아가 여쭤 보기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갑자기 나타난 형들이 허준의 앞을 가로막고 다짜고짜 물었어요. “너 요즘 글 도둑질을 한다며?” “글을 도둑질하다니 무슨 뜻인지요?” “네가 훈장님을 몰래 찾아가 글을 배우는 게 글 도둑질이지.” “제가 사자소학을 읽어 보니 아우에게 입을 옷이 없다면 형이 반드시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눠 주어야 한다는 구절도 있던데 형님들은 제가 글을 배우고 익히는 게 그리도 못마땅하신가요?” “형님들? 서자 주제에 감히 누구더러 형님이래? 앞으로 우릴 형님이라고 부르거나 훈장님을 다시 찾아갔다가 들키면 멍석말이를 당할 줄 알아.” 형들이 말한 멍석말이라는 것은 멍석으로 온몸을 말게 한 뒤 사정없이 몽둥이찜질을 하는 걸 뜻해요. 그날 허준은 형들의 구박이 너무 분하고 억울했어요. 그래서인지 혼자 와들와들 떨다가 그만 병석에 눕고 말았어요. 어머니가 밤잠을 설쳐 가며 간호를 해 주신 덕분에 허준의 병은 이틀 만에 깨끗하게 나았어요. ‘똑같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는데 왜 서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차별을 받아야 할까?’ 허준은 사람을 차별하는 신분 제도가 정말 원망스러웠어요. 며칠 뒤 대감마님이 허준을 급히 찾고 있다는 전갈이 왔어요. “듣자 하니 네가 요즘 글을 배우려다가 혼이 났다며?” “네, 대감마님.” “왜 글을 배우고 싶으냐?” “하루빨리 학문을 익혀 과거에 급제하고 싶어서요.” “과거에 급제해서 뭐하게?” “벼슬을 얻어 떳떳하게 살고 싶어요. 그리고 저처럼 차별받는 사람들을 도울 거예요.” 허론 대감이 말했어요. “그게 네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더구나 서자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무반에 그칠 뿐 문반이 되는 건 불가능하단다.” 허준은 서자들이 과거에서조차 차별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눈앞이 캄캄해졌어요. “그러나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네 신분을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 가거라. 그곳에서 공부도 마음껏 하고, 과거에 급제해 출세도 하도록 해라.” 허준은 아버지의 말씀에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어요. 더 이상 형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하늘을 날 것만 같았지요.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허준은 어머니와 집을 나섰어요. 허준은 집을 떠나기 전 사랑방에 들러 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드렸어요. “그럼 대감마님, 평안하십시오.” 허론 대감이 눈시울을 붉히며 대답했어요. “오냐, 기특하구나! 너도 내 아들인데 그동안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해서 미안하다. 지금 떠나면 자주 만날 수 없으니 아버지라고 한번 불러 보거라.” 허준이 어렸을 때 혼이 난 뒤로 한 번도 불러 보지 못했던 아버지란 호칭이었어요. “네, 아버지.” 허론 대감은 어머니에게 패물이 가득 담긴 상자를 내주면서 말했어요. “이걸 팔아서 집도 사고 농사지을 땅도 마련하시오.” 그날부터 허준 모자는 남쪽을 향해 한없이 걷기 시작했어요. 하루 종일 걷다가 날이 저물면 주막으로 들어가 하룻밤 머물고 이튿날 아침 다시 걸었어요. 허준 모자가 충청도 공주 고을에 이르렀을 때였어요. 한 남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아내를 업고 뛰어가는 게 보였어요. 남편의 등에 업힌 여인은 “아이고, 여보! 나 죽겠소!” 하면서 계속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어요. “환자가 무척 아픈 모양이구나. 어떤 의원을 찾아가는지 몰라도 병을 잘 고쳐 주어야 할 텐데.” 허준의 어머니가 혀를 차며 말했어요. 허준도 환자가 무슨 병으로 저렇게 아파하는지, 어떤 의원을 찾아가는지 궁금했어요. 더구나 아픈 아내를 업고 뛰는 남편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 걱정스러웠답니다. 허준은 환자를 업고 달려가는 남자를 무턱대고 따라 갔어요. 어머니가 물었어요. “얘, 왜 그 사람을 자꾸 따라가니?” “어떤 의원한테 가는지, 그 의원이 병을 고칠 수 있는지 한번 보고 싶어요.” 사내를 따라가던 허준 모자는 얼마 후 큰 기와집이 있는 대문 앞에 다다랐어요. 언제부터 모여든 것인지 서른 명 가까이 되는 환자들이 한 줄로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때 방금 도착한 사내가 말했어요. “여러분, 매우 죄송한데 제 아내가 다 죽어 가고 있어요. 제발 차례 좀 양보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자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어요. “여기서 급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소? 우리도 아까부터 순서를 기다려 왔는데.” “젊은 새댁이 정말 다급한 것 같으니 자릴 양보해 줍시다.” 허준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물었어요. “여기 의원님이 정말 병을 잘 고치시나요?” “그걸 모르는 걸 보니 먼 데서 왔구나? 이 댁 박 의원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업혀 왔다가 나갈 때는 뛰어다니게 할 정도로 못 고치시는 병이 없단다. 게다가 학문도 얼마나 높으신지 때만 되면 내로라하는 선비들과 어울려 시회를 여시는 분이야.” “정말 대단한 분이시군요.” 허준이 놀라워하자 그가 다시 말했어요. “그뿐인 줄 아니? 박 의원께선 양반이든 상민이든, 노비든 그 어떤 환자들도 공평하게 대하신단다. 더구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겐 약값도 받지 않고 약을 지어 주시는 분이지.” 그 말을 듣는 순간 허준은 더 이상 힘들게 돌아다닐 필요가 없을 것 같았어요. “어머니, 저는 박 의원께 의술을 배우고 싶어요. 우리 이 마을에서 사는 게 어때요?” 어머니가 물었어요.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하겠다더니 웬 의술을 배운다는 게냐?” “어차피 과거를 본다 해도 문관은 넘볼 수 없다 하니 차라리 의술을 배우고 싶어요. 그래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싶어요. 박 의원처럼 가난한 사람, 신분이 낮아 고생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정말 그러고 싶어? 네가 서자로 태어나 톡톡히 서러움을 당하더니 신분 차별에 한이 맺혔구나. 그러자면 먼저 박 의원께서 널 제자로 받아주셔야 할 텐데.” “그건 걱정 마세요.” 그날부터 어머니와 함께 동네 주막에 머물게 된 허준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박 의원 댁으로 찾아갔어요. 허준은 조리 있게 자기소개를 한 다음 찾아간 용건을 말했어요. “저를 의원님의 제자로 받아 주신다면 반드시 명의가 되어 결초보은 하겠습니다.” 뭐, 결초보은을 해? 아주 맹랑한 녀석이로구나. 보아하니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지도 않고, 글도 제법 읽은 모양인데 뭐하러 의술을 배우려는 게냐. 병을 고치고,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며칠 더 생각해 보고 그래도 의원이 되고 싶으면 그때 다시 찾아오너라. 박 의원은 이렇게 허준을 돌려보냈어요. 하지만 허준은 날마다 박 의원 댁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들여 줄 것을 청했답니다.
힘을 합쳐 나라를 구한 의병들과 홍의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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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13일, 호시탐탐 우리 땅을 노리던 일본군 함대가 부산포로 쳐들어왔어요. 이때까지 조선 조정은 아무런 대비도 없었어요. 일본에 다녀온 사신들이 ‘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보고해도 ‘설마’ 하고 믿지 않는 분위기였지요. 그 결과 부산포를 지키던 관군은 불과 4시간 만에 무너졌어요. 순식간에 옆에 있던 동래성까지 일본군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지요. 연이어 남쪽 바다를 통해 일본 함선이 새까맣게 몰려왔어요.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도 이 소식이 전해졌어요. “동래성이 지척인데 이러다 우리도 다 죽게 생겼다!” 백성들은 다들 공포에 떨었어요. 길목마다 살림살이를 이고 지고 북쪽으로 떠나는 피난민들이 긴 줄을 이루었어요. 곽재우의 가족들도 불안에 떨었어요. “우리도 어서 떠나야 되지 않을까요?” 짐을 싸려고 준비하는 가족들에게 곽재우가 호통을 쳤어요. “집을 두고 어디로 간단 말이냐!” 하지만 이미 고을 수령도 도망을 가 버린 뒤였어요. 마을을 지켜야 할 최고 책임자가 줄행랑을 친 거예요. “조용해지면 돌아올 테니 너희는 농사나 열심히 짓고 있어라.” 염치없는 양반들도 노비들만 남겨 두고 허겁지겁 떠나 버렸지요. 의령 땅에는 하루가 다르게 빈집이 늘어갔어요. “난리통에 힘 있는 자들은 다 도망가고 우리만 죽게 생겼구나!” 남은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우왕좌왕했어요. 그러는 동안에도 흉흉한 소문은 계속 들려왔어요. 사방에서 민가가 약탈당하고 관청이 불탔으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일본군에게 목숨을 잃었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 눈에 비친 곽재우는 그저 낚시나 하며 빈둥대는 팔자 좋은 양반에 불과했어요.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곽재우는 의령에서도 알아주는 명문가에서 태어났어요. 그가 세 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는 양반집 외동딸이었어요. 황해도 관찰사와 의주 목사 등을 지낸 아버지 곽월은 청렴결백한 관리였어요. 뛰어난 유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무예 실력도 남달랐지요. 곽재우는 그런 아버지를 무척 존경했어요. “조식 선생이 낙향하여 이웃 마을에 머물고 계신다는구나. 찾아뵙고 스승으로 모시도록 해라.” 열 살 무렵 아버지가 말했어요. 이황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유학자로 꼽히는 조식은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어요. 이미 천여 권의 책을 읽고 학문에 재미를 붙인 곽재우는 조식의 제자가 된 후로 더욱 열심히 공부했어요. 하지만 과거 시험에 붙고도 불합격 처리되어 벼슬을 하지는 못했어요. 그의 답안지에 선조 임금이 싫어하는 내용이 들어 있어 탈락을 하고 만 거예요. 곽재우는 그 후 가족들을 이끌고 세간리로 돌아왔어요. 평안도 의주는 조선과 여진족의 국경 지역이었어요. 곽재우는 젊은 날 의주 목사로 임명된 아버지를 모시고 삼 년 동안 그곳 병영에서 지내기도 했어요. 의주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었어요. 장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그때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임진왜란이 나고 일주일 만에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어요. 경상 감사 김수가 지레 겁을 먹고 도망을 친 거예요.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워야 할 자가 백성을 버리다니!” 곽재우는 화가 치밀어 칼을 들고 밖으로 뛰어나갔어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김수를 죽일 작정이었어요. “관리를 해치면 당신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놀란 부인이 울며불며 말렸지만 곽재우는 듣지 않았어요. “자네 미쳤나? 그런 놈 하나 죽인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집안 어른들이 설득한 끝에 겨우 그를 집으로 데려왔어요. 하기는 임금도 궁궐을 버리고 피난을 떠난 마당이었어요. 곽재우는 이제 관군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집으로 돌아온 곽재우는 전 재산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논밭은 물론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팔아 돈을 만들었어요. 그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넉넉한 편이었으나 평생 청렴결백하게 산 아버지를 본받아 근검절약하는 생활을 철저히 지켜왔어요. 워낙 돈을 안 써서 구두쇠로 불릴 정도였지요. 그런데 갑자기 재산을 모두 처분하는 것을 보고 다들 의아해했어요. “피난 짐도 싸지 말라면서 땅은 왜 파시는 겁니까?” 곽재우는 가족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어요.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곳에 살기 위해서다! 재산을 없애려는 게 아니라 도적들로부터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다!” 가족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렸어요. 나중에야 겨우 그가 의병을 일으키려고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곽재우가 의병장으로 나선 데에는 스승인 조식의 영향이 매우 컸어요. 별명이 ‘칼 찬 선비’였던 조식은 무엇보다 실천을 중요하게 여겼어요. 성품도 대쪽 같기로 유명했지요. 그는 항상 몸에 칼을 지니고 다녔는데 제자들에게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어요. “스스로 잘못된 생각을 하거나 모순된 일이 생기면 칼로 잘라내듯 과감하게 나쁜 싹을 잘라내려는 것이다!” 곽재우를 아꼈던 조식은 자신의 외손녀와 혼인시키고 틈틈이 그를 집으로 불렀어요. 또한 여러 제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병법을 가르치기도 했지요. “만일 이 땅에 왜적이 얼씬거리기라도 하면 모가지를 잡아 부러뜨려야 한다!” 때론 이렇게 과격한 표현까지 써 가며 일본을 경계하라고 당부하기도 했어요. 이때 스승 조식에게 배운 병법은 훗날 임진왜란에서 왜적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지요. 곽재우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날은 음력 4월 22일이에요. 이 날을 양력으로 계산해서 6월 1일이 현재의 ‘의병의 날’이 되었지요. 지금도 세간리에는 현고수라 불리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그날의 진실을 말해주고 있어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것이 바로 의병을 일으킨 협동과 단결의 정신이에요.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약하지만, 다 같이 뜻을 모으면 그 작은 힘이 모여서 엄청난 기운을 불러일으킨답니다. 곽재우는 제아무리 드센 20만 일본 대군도 우리 백성이 힘을 합치면 너끈히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어요. 곽재우는 우선 용맹스러운 10여 명의 청년들을 모아 훈련을 실시했어요. 그런 다음 마을 앞 느티나무에 커다란 북을 매달고 이렇게 외쳤어요. “여러분은 가만히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것입니까?” 둥둥 북소리가 울리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어요. 하지만 정작 의병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은 곽재우 집안의 노비 몇 명뿐이었어요. “먹고 살기도 힘든 마당에 우리가 전쟁터에 나가면 처자식은 굶겨 죽이란 말인가?” “까짓것, 굶어 죽으나 난리통에 죽으나 마찬가진데 집에서 몸이라도 편하게 있는 게 낫지!” 구경꾼들은 씁쓸한 얼굴로 발길을 돌렸어요. 전쟁도 무섭지만 배고픔이 더 끔찍했던 거예요. 곽재우는 우선 그들을 위해 곳간 문을 활짝 열었어요. 돈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돈을, 양식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쌀을 내주었지요. 나중에는 친척들 재산까지 빌려왔어요. 그러자 의병에 나가면 돈과 먹을 것을 준다는 소문이 퍼져서 지원자가 한 명 두 명 늘어났어요. 그사이 일본군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곽재우는 더 이상 거병을 미룰 수 없었어요. 일본군이 부산 앞바다에 나타난 지 9일째 되던 날, 세간리 느티나무 동산에서 역사적인 장면이 펼쳐졌어요. “와와!” 우렁찬 함성에 이어 붉은 옷에 백마를 탄 장군이 나타났어요.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으니 두려울 게 무엇인가! 부모 형제와 처자식의 운명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 “홍의 장군 만세!” 장군의 말에 화답하며 의병들이 힘차게 외쳤어요. 이날 출정식에 모인 의병의 수는 약 50명쯤 되었어요. 하지만 무기를 다뤄본 경험 있는 청년 몇 명을 빼고는 대부분 전쟁이 뭔지도 모르는 가난한 농민들이었어요. 비록 규모는 작고 초라했지만 의병들은 목숨을 걸고 그 자리에 모였어요. 바로 이들이 일본군이 그 이름만 듣고도 도망쳤다는 홍의 장군 의병대의 원조랍니다. 경상 감사 김수는 도망치면서 정말 어이없는 일을 했어요. 각 고을에 격문을 보내 일본군을 피하라고 한 거예요. 그러자 대다수 고을 수령들은 기다렸다는 듯 몸을 피했어요. 일본군은 그 틈에 주인 없는 관청을 노략질하고 다녔지요. “더 이상 왜적들이 날뛰지 못하게 해야 한다!” 곽재우는 의병대를 이끌고 일본군을 추격했어요. 하지만 의병들이 왜적을 상대하기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어요. 조총이라는 최신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 비해, 조선 관군들이 쓸 수 있는 무기라고는 활이나 칼뿐이었어요. 그나마 의병들은 이런 무기조차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했어요. 그러던 차에 운 좋게도 텅 빈 관아에서 관군이 버리고 간 무기를 발견했어요. “장군님, 여길 보십시오!” 바닷가에서는 버려진 배 한 척을 발견했어요. 군량미가 실려 있는 배였어요. 이렇게 무기와 양식을 마련한 의병대는 곧장 낙동강으로 향했어요.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은 전쟁에 필요한 병력과 물자를 나르기 위해 주로 낙동강을 이용했어요. “기강 나루에서 적의 수송선을 공격하자!” 곽재우는 참모들과 치밀한 작전을 세웠어요. 낙동강으로 가는 길목에 기강 나루가 있었어요. 의병대는 강바닥에 말뚝을 박아 밧줄로 이어 놓고 적의 수송선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어요. 한참을 기다리자 마침내 수송선이 나타났어요. “앗! 갑자기 배가 왜 꼼짝을 안 하지?” 밧줄에 걸린 3척의 왜선이 중심을 잃고 흔들렸어요. 의병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불화살을 퍼부었어요. 바로 이틀 후에는 같은 장소에서 왜선 11척을 물리쳤어요. 의병대가 생긴 지 불과 보름 만에 이룬 멋진 승리였어요.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어요. 며칠 후, 일본군의 움직임을 살피러 갔던 의병이 황급히 돌아왔어요. “정암진 나루터에 일본군이 나타났습니다!” 보고를 받은 곽재우는 직접 그곳으로 향했어요. 일본군 정찰대가 바삐 움직이고 있었어요. 장군은 나루터 근처 언덕에 숨어 그들을 관찰했어요. 그리고 곧 그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차렸어요. 정암진 일대는 늪지대로 이루어졌어요. 일본군 정찰대는 배가 늪지대를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곳곳에 나무 조각으로 표시를 해두고 있었던 거예요. 곽재우는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부하들에게 지시했어요. “저것들의 방향을 모두 늪지 쪽으로 바꿔놓아라!” 다음 날 새벽, 아무것도 모르는 일본군 선봉대는 나무 조각 표시가 되어 있는 쪽으로 배를 몰았어요. 의병대는 곳곳에 매복하여 때를 기다렸어요. 선봉대에 뒤이어 나타난 배들도 늪지대로 향했어요. “공격하라!” 곽재우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불화살이 날아올랐어요. 늪에 빠진 일본군 함대는 꼼짝없이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어요. “와, 우리가 이겼다!” 의병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어요. 일본군 주력 부대도 늪지대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그들 중 일부는 강어귀로 빠져나가려다 근방에 숨어 있던 의병들의 기습 공격을 받았어요. 당황한 일본군은 모두 물에 빠져 죽거나 의병들이 쏜 화살에 맞아 죽었어요. 곽재우의 의병대는 이 전투에서 놀라운 성과를 올렸어요. 불과 수십 명의 인원이 힘을 합쳐 무려 2천 명에 달하는 일본군을 거의 한 명도 남김없이 무찌르고 만 거예요. 이날의 승리는 의병대에 또 다른 기적을 불러왔어요. 정암진은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에요.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길목이기 때문이에요. 만일 의병대의 활약이 없었다면 전라도 지역은 손쉽게 적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았을 거예요. “홍의 장군이 정암진에서 왜군을 전멸시켰다며?” “그랬다네! 의병들이 똘똘 뭉쳐 크게 승리했다네!” 승리 소식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어요. 늘 관군이 패했다는 우울한 소식만 들었던 백성들에게 의병대가 일본군과 싸워 대승을 거뒀다는 소식은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어요. “우리도 같이 싸우게 해주십시오!” 의병에 참여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줄을 이었어요. 그래서 수십 명에 불과했던 의병대는 2천여 명으로 불어났어요. ‘홍의 장군 부대’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도 이때부터랍니다. 정암진 전투는 육지에서 거둔 조선의 첫 번째 승리였어요. “싸움터에서 잔뼈가 굵은 장수들도 겁을 내는 판인데, 의병들이 무슨 수로 조총 부대를 물리쳤다는 거지?” 홍의 장군 부대의 승전 소식을 듣고 가장 놀란 건 조정 대신들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서양식 첨단 무기였던 조총은 관군이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칠 만큼 엄청난 위력을 자랑했어요. 멀리서 총소리만 나도 우리 병사들이 파랗게 질릴 정도였지요. 홍의 장군 부대는 어떻게 그 무서운 조총 부대에 맞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걸까요? 그 비밀은 강한 지도력이었어요. 일본군을 상대하면서 조총에도 허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곽재우는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조총은 거리가 가까울 때나 위험한 무기다. 또한 일단 쏘고 나서 다시 발사하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그 시간 안에 적을 무찌를 수 있다.” 한 부하 의병이 물었어요. “어떻게 말입니까?” “부대를 여럿으로 나누고 적과 멀리 떨어져 지켜보다가 때가 되면 곳곳에서 일시에 공격하는 것이다!” 곽재우 장군의 설명이 이어졌어요. “그러면 적은 곧 혼란에 빠져 제아무리 대단한 무기를 갖고 있어도 결국 쓸모없게 될 것이다!” “그럼 조총도 겁낼 게 아니네요!” “그렇다. 전쟁에서 가장 큰 적은 두려움이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말을 명심하라!” 곽재우는 부하들을 격려하며 항상 전투에 앞장섰어요. 의병들은 하나같이 그런 곽재우 장군을 믿고 따랐어요. 얼마 후, 일본군의 군량미를 실은 배가 낙동강으로 들어왔어요. 홍의 장군 의병대는 이때 일본군을 전멸시키고 식량을 모조리 압수하여 적을 곤경에 빠뜨렸어요. 지금의 경상도 서쪽을 당시에는 경상우도라고 불렀어요. 경상우도는 곽재우가 의병대를 창설한 이후 조식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어요. 전투가 끝나면 의병들도 관군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보고서를 올려야 했어요. “아니, 의병대가 물리친 적의 숫자가 빠져 있지 않습니까?” 곽재우의 보고서를 읽어본 대신들은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간혹 조정에 잘 보이려고 적의 숫자를 부풀리는 장수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곽재우의 보고서에는 어느 날 어느 곳에서 일본군과 싸워 이겼다는 내용만 적혀 있었어요. 오로지 적을 무찌르겠다는 일념 외에는 다른 욕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 그런 보고서를 올린 거예요. 선조 임금은 정암진에서의 승리를 치하하며 벼슬을 내렸지만 곽재우는 그것도 거절했어요. “우리 장군님은 정말 대쪽 같은 분이야!” 곽재우의 진심에 감동한 의병들은 더욱 그를 믿고 따랐어요. “큰일 났습니다!” 어느 날, 부하가 웬 벽보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왔어요. 곽재우는 관아의 무기와 군량미를 훔쳐간 도적이다. 누구든 이 자를 보거든 포도청에 알리고 잡아들여라. 곽재우의 얼굴이 그려진 벽보를 보고 다들 깜짝 놀랐어요. 알고 보니 경상 감사 김수의 농간이었어요. 임진왜란이 일어난 직후 경기도 용인으로 도망친 김수는 그곳에서 일본군과 마주쳐 어쩔 수 없이 전투에 참여했으나 크게 패하고 처벌이 두려워 다시 경상도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의병들의 활약이 대단한 걸 알고 시기심에 눈이 멀어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을 흩어지게 만들었어요. 특히 그가 곽재우에게 앙심을 품은 건 과거 자신의 잘못이 알려질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에요. 그런 이유로 전에 수령들이 버리고 간 관아의 무기와 식량을 갖다 쓴 일을 트집 잡아 곽재우를 도둑으로 몰았던 거예요. “감사 나리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어떨까요?” 의병들은 김수의 뻔뻔함에 치를 떨면서도 불안해했어요. 그날 밤, 곽재우는 아무도 모르게 감영으로 들어가 김수와 단둘이 마주 앉았어요. “신하의 도리를 안다면 외적과 맞서 싸우다 죽는 게 마땅하거늘, 부끄러움을 알고 반성은 못할망정 어찌 감히 의병의 앞길을 가로막는단 말인가!” “도적놈 주제에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냐!” 김수는 사뭇 기세등등했어요. 그러자 곽재우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긴 칼을 뽑아들고 조용히 말했어요. “내 손에 죽고 싶지 않으면 관군에게 그대의 죄를 묻게 하라.” 낮은 목소리였으나 곽재우의 눈빛은 단호했어요. “남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해 주시오.” 겁에 질린 김수는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며 사정했어요. 곽재우는 칼을 거두고 감영을 빠져 나왔어요. 하지만 김수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어요. 그 날 새벽, 은밀히 한성으로 탈출한 김수는 곽재우를 모함하는 말을 퍼뜨려 조정을 발칵 뒤집어 놓았어요. “관의 허락도 없이 무기와 식량을 탈취한 자는 의병이 아니라 역적입니다!” “더구나 관리를 죽이려고 한 죄는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당장 곽재우를 잡아들여 사형에 처하는 게 마땅합니다!” 대부분의 대신들이 곽재우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런데 그때 곽재우는 오히려 김수를 처벌해야 한다며 당당하게 다음과 같은 상소를 올렸어요. 왜적을 맞아 싸우지 않고 도성을 왜적에게 빼앗기게 한 김수는 나라를 망친 큰 도적입니다. 제가 김수의 목을 베어 전하께 보낸다면 적장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목을 바치는 것보다 몇 배는 큰 공이 될 것입니다. 상소를 받아본 선조 임금은 깜짝 놀라 이렇게 말했어요. “조정에서 보낸 관리를 죽이려 하다니, 위험한 자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곽재우를 당장 옥에 가두고 문초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의병들과 힘을 합쳐 왜적을 무찌르는 등 큰 공을 세웠습니다. 제대로 진상을 파악한 후에 처벌을 논하는 게 옳습니다.” 대신들의 의견은 두 갈래로 나뉘었으나 결국 곽재우는 체포되어 옥에 갇히고 말았어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곽재우를 구해준 것은 경상도 초유사 김성일이었어요. “김수에게 죄가 있으면 조정에서 처리할 것이니 섣불리 행동하지 마시오. 만일 김수를 해친다면 반역으로 몰려 죽게 될 것이오.” 철저한 조사를 하여 사정을 모두 알게 된 김성일은 곽재우를 설득했어요. 그리고 바로 조정에 보고서를 올려 곽재우가 석방될 수 있게 도와주었어요. 전쟁터로 돌아온 곽재우에게 끔찍한 소식이 전해졌어요. 정암진 전투에서 군량미를 모두 빼앗긴 일본군은 죄 없는 백성들에게 잔인한 보복을 했어요. 남자와 여자, 노인과 어린아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군에게 목숨을 잃었어요. 곽재우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어요. “적의 주둔지로 갈 것이다!” 곽재우는 일본군 부대가 있는 현풍성을 공격하기 전에 의병대를 이끌고 성이 마주보이는 산으로 올라갔어요. 그리고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가 의병들에게 말했어요. “병사 한 사람당 다섯 개씩 횃불을 들어라!” 일본군에 비해 상대도 안 될 만큼 적은 병력을 과장하려고 다섯 개씩 횃불을 들게 한 거예요. 또한 의병들에게 징과 꽹과리를 울리면서 다음과 같이 외치라고 지시했어요. “하늘에서 내려온 홍의 장군이 이곳에 와 있으니 내일이면 너희 일본군은 다 죽고 말 것이다!” “조선 병사들의 말이 사실일까?” 일본군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었어요. 산은 온통 붉은 횃불로 가득 차고 꽹과리 소리, 징 소리가 밤새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통에 잠을 잘 수도 없었어요. “하늘에서 내려온 홍의 장군이 여기 있다! 너희는 내일 반드시 다 죽게 될 것이다!” 겨우 잠이 들 만하면 들려오는 이 소리는 일본군의 사기를 완전히 떨어뜨려 버렸어요. 다음 날 새벽, 곽재우는 의병대의 맨 앞에 서서 공격을 개시했어요. 밤새 공포에 시달리던 일본군은 곽재우의 붉은 옷만 보고도 깜짝깜짝 놀랐어요. 결국 겁에 질린 일본군은 성을 버리고 도망쳤어요. 숫자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불리한 상황에서 적의 심리를 이용한 작전이 승리를 불러온 거예요. “의령에는 홍의 장군이 있으니 피해야 한다!” 일본군 사이에서 이런 말이 떠돌기 시작했어요. 곽재우는 그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존재였어요. 1592년 10월 5일, 2만여 명의 일본군이 진주성으로 쳐들어왔어요. 이때 진주성을 지키는 관군은 불과 3,800여 명뿐이었어요. 조정은 김성일을 경상우도 순찰사로 임명하고, 진주 목사 김시민과 함께 전투를 지휘하도록 했어요. “진주성이 무너지면 경상도는 물론 전라도까지 위험합니다.” 김성일은 곽재우에게도 협조를 구했어요. 이날 저녁 진주성에 당도한 곽재우는 현풍성에서와 비슷한 작전을 세웠어요. 일단 엄청나게 많은 병력을 이끌고 온 것처럼 보이기 위해 200여 명의 의병을 진주성 부근의 뒷산으로 올려 보내 밤새 호각을 불고 함성을 지르며 불을 피우게 했어요. 그리고 10여 명의 날랜 장수들에게 자신과 똑같은 붉은 옷을 입혔어요. 의병은 정식으로 훈련 받은 군대가 아니기 때문에 일본군과 맞서 싸우려면 치밀한 작전이 필요했어요. 곽재우는 적의 눈을 속여 혼란에 빠뜨릴 목적으로 여러 명의 가짜 홍의 장군을 내세웠어요. 붉은 옷을 입은 홍의 장군들이 사방에서 백마를 타고 나타나자 일본군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방금 저쪽에서 봤는데 어느새 이리 온 거야?”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다!” 일본군은 붉은 색만 보아도 넋이 나갈 지경이었어요. 성 안에서는 김시민 장군이 이끄는 관군과 일반 백성들이 똘똘 뭉쳐 적을 막아내고 있었어요. 그렇게 6일 동안 밤낮으로 목숨을 건 전투가 이어졌어요. 일본의 대군은 조총을 쏘아대며 계속 공격을 했지만 결국 큰 피해만 입고 패하고 말았어요. 이 전투가 바로 임진왜란 3대 대첩 가운데 하나인 진주대첩이랍니다. 전쟁을 앞두고 곽재우 장군은 늘 이런 고민을 했어요. ‘적진이 앞에 있어 불을 피울 수가 없으니 오늘도 병사들이 굶게 생겼구나!’ 그러다 하루는 망개 잎에 밥을 싸가지고 다니면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망개 잎에는 일종의 방부제 성분이 들어 있어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잡곡으로 지은 밥은 밥알이 잎에 잘 달라붙지 않는 단점이 있었어요. 이 사실을 알게 된 곽재우 장군의 부인이 밥 대신 떡을 망개 잎으로 싸서 의병들에게 보내주었어요. 여기에서 유래하여 망개떡이라는 훌륭한 음식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해요. “홍의 장군이 버티고 있는 한 우리는 안전하다!” 경상우도의 백성들은 곽재우를 수호신처럼 여겼어요. “바다에서는 이순신이, 육지에서는 권율과 곽재우가 가장 큰 골칫거리다.” 일본군 장수들은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어요. 특히 의병은 그들이 전혀 예상 못했던 상대였어요. 곽재우 장군뿐 아니라 김덕령, 고경명, 김천일 장군 등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장들은 다들 한몸처럼 힘을 모아 일본군의 사기를 꺾어놓았어요. 그러는 동안 명나라 원군이 당도했어요. 하지만 원군은 이름뿐이고 명나라는 애초부터 조선을 위해 전쟁을 해 줄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일본은 그런 명나라에 휴전을 제의하고 거제도 장문포에 성을 쌓기 시작했어요. 잠시 물러나는 척하면서 힘을 키우려는 속셈이었지요. “육군이든 수군이든 적을 공격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장수들은 팔짱만 끼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일본군 주력 부대가 장문포에 주둔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선조 임금은 노발대발했어요. 총지휘관으로 임명된 권율 장군은 이순신과 곽재우, 김덕령에게 수륙 합동 작전으로 장문포를 공격하도록 했어요. 하지만 이것은 처음부터 조선군에 불리한 전투였어요. 일본군은 바닷가에 배 몇 척을 띄워놓고 섬 깊숙이 숨어 일절 공격에 응하지 않는 작전을 썼어요. 수륙 합동 작전은 일본 함선 두 척을 침몰시키는 것으로 그쳤어요. 이렇게 한 달 넘게 시간을 끌던 일본군은 팻말에 글자를 새겨놓고 유유히 섬을 빠져나갔어요. 명나라와 평화 협상이 진행 중이니 전쟁을 할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은 굳이 병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수륙 합동 부대를 해체하고 한산도로 돌아갔어요. 곽재우 장군과 김덕령은 매우 각별한 사이였어요. 김덕령은 당시 20대의 청년 의병장이었지만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왜적과 싸웠어요. 정암진 전투에서도 곽재우를 도와 선봉에 섰던 김덕령은 곽재우를 마치 아버지처럼 따랐어요. “열심히 싸우다 좋은 날 다시 만나세!” “예! 장군님도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두 사람은 장문포에서 아쉬운 작별을 하고 헤어졌어요. 그로부터 2년 뒤, 충청도에서 이몽학이 난을 일으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어요. 더욱 기가 막힌 건 반란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곽재우와 김덕령이 모함을 받게 된 거에요. 다행히 곽재우는 반란과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나 김덕령은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어요. “하루아침에 충신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다니!” 곽재우는 충격으로 한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어요. “김덕령 같은 의병장이 역적 누명을 쓰고 죽는 나라에 대체 무슨 희망이 있다고 우리가 이 고생을 하는 거지?” 김덕령의 죽음은 곽재우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힘을 모아 싸우는 의병들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안겨 주었어요. 적과 맞서 싸울 의욕을 잃고 집으로 돌아가는 의병도 수두룩했어요. 그 무렵 조정에서는 곽재우 장군을 성주 목사로 임명했어요. 하지만 곽재우는 관직에 대한 의미나 보람을 느낄 수가 없었어요. 아무 죄도 없는 동료를 죽음으로 몰아간 조정에 대한 실망이 무엇보다 컸기 때문이에요. 결국 벼슬도 마다하고 고향으로 내려간 곽재우는 또 한 번 가슴 아픈 현장을 목격해야 했어요. 의병대를 꾸리느라 전 재산을 날리는 바람에 가족들이 굶고 사는 것도 몰랐던 거예요. 곽재우는 이제 두 아들과 함께 패랭이를 만들어 팔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야만 했어요. 곽재우 장군에게는 낳아주신 어머니 외에도 새어머니인 허씨 부인이 있었어요. 아버지와 혼인한 뒤 곽재우와 형제들을 친자식 못지않게 정성껏 보살펴 주신 분이지요. 장군은 허씨 부인이 돌아가시자 삼 년 동안 무덤을 지키며 제를 올렸어요. 그러는 사이에도 조정에서는 수차례 관직을 내려 곽재우를 한성으로 불렀어요. 상중에는 벼슬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임금의 명을 받으면 상복을 벗고 벼슬을 받아들여야 했어요. 하지만 곽재우는 뜻을 굽히지 않고 관직을 사양했어요. “늦게나마 불효한 죄를 갚고자 하오니 부디 명을 거두어 주소서.” 그러던 중 한동안 잠잠했던 일본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졌어요. 그러자 다시 조정에서 곽재우에게 경상좌도 방어사라는 벼슬을 내렸어요. 이번에는 곽재우도 어쩔 수 없이 벼슬을 받아들이고 울산의 도산성으로 향했어요. “적어도 2천 명의 군사를 이곳에 주둔시켜야 합니다.” 도산성에 당도한 곽재우는 즉시 조정에 보고서를 올렸어요. 적의 본거지인 부산에서 가까운 이 성을 지켜야 조선군이 전쟁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훗날 도산성을 두고 큰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선조는 거듭된 요청에도 군대를 보내지 않았어요. “바다의 일은 수군에게 맡기면 될 것이다.” 실망한 장군은 임금의 허락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사직서를 내고 훌쩍 울산을 떠나 버렸어요. 이 일로 곽재우는 2년 동안이나 귀양살이를 했어요. 당시 선조는 무능하고 의심이 많은 왕이었어요. 이순신과 곽재우 같은 전쟁 영웅은 늘 감시 대상이었지요. 사람들이 그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우러러볼수록 왕의 마음 깊은 곳에는 경계심이 싹트고 있었어요. 곽재우는 결코 이런 조정에 몸담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가 뛰어난 신무기를 지니고도 전쟁에 실패한 것은 이순신과 곽재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런 말을 했어요. “태양의 아들인 나에게 대항하면 멸망하고 만다. 나는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무조건 빼앗는다.” 이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선조에게 보낸 편지예요. 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말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시미 성에서 죽고 말았어요. 곽재우 장군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어요. 그로 인해 스물아홉 번이나 관직에 임명되었지만 전쟁 중이 아니면 곧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어요. 당시 일본군 병사들은 곽재우를 ‘곽쥐’라고 불렀다고 해요. “곽쥐가 온다!” 이 말 한 마디면 일본군이 모두 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쳤으니 제아무리 태양의 아들이라도 똘똘 뭉친 의병들과 홍의 장군 곽재우를 당할 재간이 없었던 거지요.
전쟁터를 지키는 사랑의 적십자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앙리 뒤낭은 1828년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태어났어요.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시의회 의원이자 성공한 사업가였고 어머니는 부유한 집에서 자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어요. 앙리 뒤낭은 부족할 것 없는 집에서 교양(敎養) 있는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하게 자랐어요. 부모님은 매일 아침 침대에 누워 있는 앙리를 보며 그들의 소망을 나누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어요. 아버지는 방긋방긋 웃는 앙리를 번쩍 안고 말했어요. “나는 네가 훌륭한 정치가(政治家)가 되어 스위스를 더 강한 나라로 이끌면 좋겠구나. 너도 좋지, 앙리?” 옆에서 바라보던 어머니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어요. “저는 앙리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아이 말이에요.”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으며 앙리를 꼭 끌어안았어요. “허허허, 물론이지! 앙리는 당신의 그 따뜻한 마음을 닮아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될 거요!” 1800년 전후, 스위스는 유럽의 큰 나라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항상 두려움에 떨어야 했어요. 주변의 나라들이 영토나 종교, 민족 간의 갈등으로 늘 크고 작은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스위스는 중립국이 되기를 원했고, 1815년에 국제적으로 영세 중립국을 인정받았어요. 영세 중립국이란 다른 국가 간의 전쟁에 관여하지 않으며, 자국의 독립을 보장 받은 나라를 말해요. 하지만 언제든 강한 나라가 침범할 수 있었기에 스위스는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어요. 앙리의 아버지도 스위스를 어떻게 하면 강한 나라로 만들 수 있을까, 늘 고심했어요. 그래서 아들을 훌륭한 정치가로 키우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요. 하지만 어머니의 생각은 달랐어요. 어머니는 앙리가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사랑을 베푸는 사회 봉사자가 되길 바랐어요. 앙리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의 일이에요. 그해 생일날, 생일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앙리는 차분하게 대답했어요. “무엇을 받든 제 선물을 모두 고아원에 있는 불쌍한 아이들에게 나눠 주고 싶어요.” 어머니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참 기특하구나, 앙리!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자꾸나.” 어머니는 앙리와 도시 외곽의 고아원으로 향했어요. 마차 뒷좌석에 실은 선물 보따리를 보며 앙리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줄 생각에 마냥 기뻤어요.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쩔렁거리는 쇳소리가 들려왔어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산 귀퉁이에서 죄수들이 양발에 쇠고랑을 차고 흙을 파내며 일하는 모습이 보였어요. 앙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게 일하고 있는 그들이 가여웠어요. ‘얼른 어른이 되어서 저 사람들을 모두 도와줄 테야.’ 앙리는 죄수들을 보며 마음 깊이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요. 고아원에 도착한 앙리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어요. 선물을 받고 뛸 듯이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며 앙리는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날 앙리는, 자기로 인해 친구들이 행복해지면 자신 역시 행복해진다는 걸 깨달았어요. 원장 선생님은 앙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어요. “생일 선물을 아낌없이 가난한 아이들에게 나눠 주다니, 참 착한 아이로구나. 넌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될 게다.” 앙리는 공손하게 웃으며 말했어요. “감사합니다, 원장 선생님. 앞으로 자주 놀러 올게요!” 그렇게 앙리는 고아원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어요. 그날 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하며 앙리가 많이 성숙해진 것 같다고 말했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앙리도 곧 학교에 들어갈 나이니까 집에서 조기 교육을 시키는 건 어떻소?”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좋은 생각이라며 기뻐했어요. 어머니가 앙리의 교육을 위해 모셔 온 선생님은 똑똑하고 생각이 깊은 젊은 대학생이었어요. 하루는 선생님이 앙리에게 늑대가 어린 양을 잡아먹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그러자 앙리는 눈물을 뚝뚝 흘렸어요. “앙리, 갑자기 왜 우는 거니?” 선생님이 묻자 앙리가 대답했어요. “어린 양이 너무 불쌍해요!” 선생님이 앙리를 꼭 안아 주며 말했어요. “세상에는 어린 양처럼 약한 사람들이 많단다. 그러니까 앙리가 어른이 돼서 그들을 도와주렴.” 앙리는 눈물을 닦으며 며칠 전 거리에서 봤던 죄수들과 자신이 준 선물로 기뻐하던 고아원 친구들을 떠올렸어요. 그 순간 앙리는 꼭 남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드디어 앙리는 학교에 들어갔어요.그런데 앙리는 학교 공부를 하면서도 마음은 늘 다른 곳에 가 있었어요. 가난한 사람, 불쌍한 사람을 보면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어요. 점점 자라 청소년이 된 앙리는 이제 학교 공부보다 사회 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어요. 질병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곤 했지요. 하루는 앙리가 친구들과 제네바 뒷골목을 가게 되었어요. 그는 거기서 쇠고랑을 차고 벌을 받는 죄수들을 보았는데 그날 앙리는 대부분의 죄수들이 가난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들도 나랑 똑같은 사람이야. 다만 가진 게 없을 뿐이지. 죄는 미워하더라도 사람은 미워하면 안 되는데’ 그 후 앙리는 친구들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랑의 돌격대’라는 모임을 만들었어요. ‘사랑의 돌격대’는 고아원과 양로원, 교도소 등을 다니며 공연도 하고 선물도 나눠 주는 모임이었어요. 그뿐 아니라 앙리는 국제적인 기독교 청년 운동 단체인 ‘기독교 청년회 YMCA’ 활동도 열심히 했어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독교 청년회’ 회담에도 참석했지요. 앙리는 어른이 된 후에도 구호 활동을 계속해 나갔어요. “더 많은 활동을 하려면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해!” 앙리는 활동하면서 자금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는 프랑스의 식민지인 알제리로 가서 밀밭을 사고, 큰 제분소를 세워 밀가루를 생산하기 시작했어요. 밀가루를 생산하여 가난한 알제리 국민들에게 싼 값으로 팔자는 생각에 친구들과 시작한 사업이었어요. 그러나 앙리는 곧 큰 문제에 부딪혔어요. 밀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수로를 놓아 강물을 이용해야 하는데, 프랑스 사령부에서 허락을 해 주지 않았던 거예요. “프랑스 황제를 찾아가 부탁해야겠어!” 앙리는 프랑스 황제인 나폴레옹 3세에게 직접 허락을 받기로 마음먹었어요. “황제를 만나려면 전쟁터로 가야 하는데 너무 위험해!” 동료들은 앙리를 말렸어요. 하지만 앙리는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마차에 몸을 실었어요. 당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는 병사들을 이끌고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하고 있었어요. 앙리는 마차를 탄 채 양쪽 군인들이 대치하고 있는 벌판 가운데로 나아갔어요. “아, 아니!” 그날 앙리는 끔찍한 전쟁의 참상을 목격했어요. 프랑스군과 오스트리아군은 서로에게 총칼을 휘두르며 거칠게 싸웠고 들판에는 크게 다친 병사들이 방치되어 있었어요. 머리 위로는 총알이 날아다니고 사방에서 포탄이 터졌어요. 마부는 겁에 질려 더 나가지 못하고 덜덜 떨었어요. 마차에서 내린 앙리는 울부짖으며 한탄했어요. “아아, 젊은 목숨들이 저렇게 끔찍하게 죽어 가다니!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그때였어요. 앙리의 마차 옆으로 포탄이 날아와 ‘펑!’ 하고 터졌어요. “아이고, 손님! 더 이상 못 가겠습니다!” 마부가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어요. 앙리는 마차에서 내려 언덕으로 올라갔어요. 높은 곳에서 보니 더 충격적인 장면이 그대로 드러났어요. 죽고 다친 병사들이 산과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었어요. “아아, 세상에!” 심한 고통으로 울부짖는 병사들의 비명 소리와 서로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고함 소리, 그리고 포탄 소리와 말 울음소리가 뒤섞여 마치 지옥을 보는 것 같았어요. 앙리는 참혹한 현장을 지켜보다 울음을 터뜨렸어요. ‘아, 내가 저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앙리는 전투가 빨리 끝나기를 바랐지만, 아침에 시작된 전투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끝났어요. 이 전투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약 4만 명의 사상자를 냈어요. 이 전투가 바로 그 유명한 ‘솔페리노 전투’예요. 전투가 끝나자 앙리는 언덕에서 달려 내려가 다친 병사들을 도와주었어요. “자, 편히 누워 있어요. 내가 돌봐 줄게요.” 피를 흘리는 부상병은 붕대로 감아 주고, 뼈가 부러진 부상병은 나무를 대고 수건으로 싸매 주었어요. 그러는 동안 근처 농가에 야전 병원이 마련되고 동네 사람들도 다가와 부상병들을 치료해 주었어요. 앙리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남을 도우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어요. 앙리는 며칠 동안 뛰어다니며 부상병들을 도왔어요. “우리는 모두 형제입니다!” 앙리는 프랑스군이든, 오스트리아군이든 가리지 않고 똑같이 돌봐 주었어요. 그러면서 함께 일할 자원봉사대를 모집했어요. 그러자 주변 마을 사람들과 교회 사람들이 몰려와 그를 도와주었어요. 그곳에서 600명이 넘는 부상병들이 응급 치료를 받아 위기를 넘겼어요. 앙리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잘 돌봐 주자 사람들이 그를 눈여겨보기 시작했어요. “전쟁터에서는 자기 목숨도 위험한데 저렇게 남을 위해 봉사하다니! 참 대단한 사람이야!” “그러게 말이야. 나도 저 사람과 함께 봉사하겠어!” 사람들은 하나같이 앙리를 입이 닳도록 칭찬했어요. 이 소식은 프랑스 황제의 사령부에도 전해졌어요. 앙리가 프랑스 사령부로 찾아가자 프랑스 장교들이 모두 몰려나와 앙리를 환대했어요. 그런데 프랑스 황제는 마침 그곳에 없어서 만날 수가 없었어요. 앙리는 황제가 돌아오기까지 며칠 동안 그곳에 머무르며 쉬지 않고 부상병들을 돌봐 주고 위로해 주었어요. 마침내 사령부로 돌아온 나폴레옹 3세는 앙리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바로 자기 집무실로 불렀어요. “황제 폐하께서 만나자고 하십니다!” 말끔한 군복을 차려입은 사령관이 부관과 함께 앙리를 부르러 왔어요. 앙리는 깜짝 놀랐어요. ‘수로 때문에 황제를 만나러 이곳에 왔는데, 내가 청하기도 전에 황제께서 먼저 나를 부르다니!’ 앙리는 교회 안에 마련된 황제의 집무실로 들어갔어요. 그가 들어서자 황제가 환하게 웃으며 반겼어요. “자네가 앙리 뒤낭인가? 우리 아군뿐만 아니라 적군도 치료해 주었다는 얘길 들었네. 어떻게 그런 훌륭한 생각을 해 냈는가?” 앙리는 공손하게 대답했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보살펴 주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부상병들을 기꺼이 도와주었을 뿐입니다.” 황제는 앙리의 말에 크게 감동했어요. 그래서 의사와 부상병들을 위한 의료품을 병원에 넉넉히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어요. “자네의 그 따뜻한 마음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네.” 앙리는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말했어요. 그는 문득 수로가 생각났지만 말하지 않았어요. 전쟁이 끝나지 않은 이 처참한 환경에서 자기 사업을 도와 달라고 말할 수는 없었어요. 앙리는 황제에게 인사를 하고 집무실에서 나왔어요. “그래, 지금 사업이나 수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그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혼자 생각했어요. 비록 자신이 목적한 바는 이루지 못했지만, 더 많은 부상병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그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어요. 얼마 후, 앙리는 뜻밖의 상을 받았어요. 그것은 이탈리아의 가톨릭 교단에서 주는 감사장이었어요. 솔페리노 전투에서 보여 준 그의 희생 정신을 높이 평가하여 주는 상이었어요. 하지만 앙리는 자신과 함께 부상병들을 돌봐 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상을 자신이 대표해서 받은 것뿐이라고 생각했지요. 상을 받은 후에 앙리는 고향으로 돌아갔어요. 그가 알제리에 벌여 놓은 사업은 안타깝게도 실패로 끝났고, 몸과 마음은 많이 지친 상태였어요. “우리 아들, 얼굴이 많이 야위었네? 소식을 듣지 못해 걱정했는데, 이렇게 돌아오니 정말 반갑구나!” 어머니가 앙리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어요. “죄송해요, 어머니. 그동안 너무 정신이 없어서 편지를 쓸 여유조차 없었네요.” 앙리는 가족들과 오랜만에 식사를 하며 알제리의 사업과 솔페리노 전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앙리는 고향에 돌아와 쉬고 있었지만 마음이 조금도 편하지 않았어요. 전쟁터에서 보았던 처참한 광경들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이 세상에서 전쟁을 아예 없애 버릴 수는 없을까?’ 앙리는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사람들이 전쟁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조금이라도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나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야.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할 수 있어!’ 앙리는 우선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주장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려면 책을 써서 출간하는 방법이 가장 좋을 것 같았어요. 그는 자신의 뜻을 가족에게 알리고 방으로 들어가 책상에 앉았어요. 앙리는 솔페리노 전투 때 적어 놓은 메모지와 일기장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어요. “아, 기억하기도 싫은 일인데 다시 떠올리려니 정말 마음이 아프구나!” 앙리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또 지금도 고통받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이를 악물고 글을 썼어요. 솔페리노에서 보았던 끔찍한 광경들을 보고 느낀 대로 낱낱이 서술했어요. 그리고 전쟁이 벌어졌을 때 부상병들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자기 생각을 밝혔어요. 또 앞으로 벌어질 전쟁에 대비해 국제적인 구호 단체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자세히 썼어요. 앙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글을 마쳤어요. ‘마음 안에 사랑이 가득한 여러 나라 봉사자들이 협력한다면 반드시 우리 모두 행복해질 것입니다!’ 앙리는 자신이 쓴 원고를 들고 창가로 가서 밖을 바라보았어요. ‘정성을 다해 글을 썼지만 사람들이 과연 읽어 줄까? 너무 현실적이고 내 주장만 내세운 건 아닐까?’ 앙리는 걱정이 되어 한숨을 내쉬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와 앙리의 어깨를 다독이며 격려해 주었어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니 네 뜻을 잘 보살펴 주시겠지. 만약 이번 일이 잘 안 되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해 보아라!” 앙리는 어머니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어머니의 격려에 힘을 얻은 앙리는 출판사에 원고를 넘겨 솔페리노의 회상 초판을 출판했어요. 자신의 뜻이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앙리는 초조하게 독자들의 반응을 기다렸어요. 앙리의 걱정과 달리 독자들의 반응은 놀라웠어요. 솔페리노의 회상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베스트셀러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 시작했어요. “솔페리노의 회상은 정말 좋은 책이야!” 책을 읽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칭찬의 말을 했어요. 유명한 사람들도 앙리에게 격려의 글을 보냈어요. 빅토르 위고와 찰스 디킨스 같은 작가들과 유럽의 왕들, 귀족들, 장군들도 편지를 보내왔어요. ‘백의의 천사’로 불리는 간호사 나이팅게일도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어요. ‘전쟁 외에도 천재지변이나 세계적인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구조 단체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앙리의 생각도 그녀의 편지 내용과 다르지 않았어요. 솔페리노의 회상으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스위스의 구호 위원회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앙리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책 보급에 힘썼고, 제네바 공익 협회는 앙리의 주장대로 일을 추진하자고 뜻을 모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앙리의 친구 귀스타브 모이니에가 찾아왔어요. 모이니에는 변호사로 일하면서 제네바의 공익 협회 회장을 맡고 있었어요. “솔페리노의 회상을 감명 깊게 읽었네. 자네가 책에서 주장한 그런 단체를 실제로 만들어 보세!” 그런 단체란, 전쟁터에서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부상병이라면 누구나 도와주는 민간단체를 말해요. “우리가 협력하면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네!” 모이니에가 손을 내밀며 말했어요. 앙리는 그의 손을 잡고 함께 단체를 세우기로 했어요. 두 사람은 새로운 조직의 기본 틀을 세우고 차근차근 준비를 해 나갔어요. 그러자 얼마 후에 루이 아피아 박사와 외과 의사 모누아르, 뒤푸르 장군 등이 그 모임에 동참했어요. 그렇게 모인 ‘5인 위원회’는 마침내 첫 회의를 시작했어요. “전쟁 중 부상당한 사람들을 돌봐 주는 세계적인 단체를 만드는 것이 우리 모임의 목적입니다!” “맞습니다! 또 전쟁터에 간호 요원을 보내는 일 외에도 치료 시설, 치료법 개선에도 힘을 써야 합니다!” 5인 위원회는 오랜 시간 회의를 하여 여러 가지 계획을 정했어요. 그리고 정해진 계획을 유럽 여러 나라에 알리고, 자신들의 단체를 국제적인 기구로 만들기로 했어요. “그렇다면 누가 나서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각국의 황제와 귀족들을 만나 설득해야 합니다. 누가 하는 게 가장 좋겠습니까?” 뒤푸르 장군의 말에 앙리가 선뜻 손을 들었어요. “제가 하겠습니다!” 5인 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앙리를 선정했어요. 그들은 앙리가 누구보다 추진력이 뛰어나고 성실하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이렇게 하여 앙리는 유럽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어요. 스위스를 떠난 앙리는 제일 먼저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3세를 만나러 파리의 궁전으로 갔어요. “오, 어서 오게. 앙리 뒤낭!” 황제는 앙리를 반갑게 맞이했어요. 앙리는 황제에게 5인 위원회의 계획을 자세히 설명했어요. “아주 훌륭한 일을 계획하고 있군!” 황제는 적극적으로 후원하기로 약속했어요. 이에 자신감을 얻은 앙리는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 여러 나라를 방문했어요. 각국의 국왕과 귀족들을 만나 솔페리노의 회상을 전하고, 새로 창설할 국제기구의 후원자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몇몇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앙리의 뜻에 공감하고후원자가 되기로 약속했어요. 앙리는 베를린에서 군의관을 상대로 강의를 하는 등매우 바쁜 일정을 보냈어요. 앙리는 유럽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왔어요. “정말 수고 많았네! 자네의 추진력은 당할 사람이 없어!” “당연히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앙리는 빠른 시일 내에 여러 나라 대표를 초청해 회의를 열자고 제안했어요. 5인 위원회는 앙리의 뜻에 그대로 동의했어요. 얼마 후 각국에 초청장을 보냈는데 생각보다 많은 16개국 대표가 참석했어요. “10개국도 참가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놀랍군!” 이 회의에서 앙리는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했어요. 그리고 각 나라에서 구호 단체를 만들고, 각국 정부에서 이 구호 단체를 후원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리고 전쟁터에서 부상병을 돕는 봉사자가 공격당하지 않도록 단체의 표식도 만들었어요. “앙리의 모국인 스위스 국기 색깔을 반대로 하여 흰 바탕에 붉은 십자가 표식을 만듭시다!” 이렇게 해서 국제 적십자가 태동하게 되었어요. 회의를 마친 16개국 대표들은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지도자들에게 적십자에 대해 설명했어요. “그렇다면 참으로 필요한 구호 단체로군.” 지도자들은 다들 적십자가 꼭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마침내 1864년에 ‘제네바 협약’이 이루어졌어요. 제네바 협약이란 국제 적십자를 중심으로 전쟁 때 부상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인 약속이에요. 다른 말로는 ‘적십자 조약’이라고도 해요. 처음에는 12개 국가만 참여했는데 이어서 다른 나라들도 제네바 협약에 참가하면서 점점 국제법의 틀을 갖추게 되었어요. 국제 적십자 창설은 세상을 이렇게 변화시켰어요. 그날 밤 앙리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신께 기도를 올렸어요.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전쟁에서 다친 가엾은 부상자들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때 유럽에서 다시 전쟁이 터졌어요. 독일의 통일을 둘러싸고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전쟁을 시작한 거예요. “아, 또 전쟁이 터지고 말았어!” 앙리는 프로이센으로 달려가 부상병 구호 활동을 펼쳤어요. 프로이센은 이미 제네바 협약에 서명하고 전쟁 중에 부상병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지 대책을 세워 놓았어요. 하지만 오스트리아는 부상병들에 대한 대책이 없었어요. 이 전쟁은 프로이센의 승리로 끝났는데 프로이센은 약 1만 명의 사상자를 내는 데 그쳤어요. 하지만 오스트리아는 무려 2만 5천 명의 사상자를 냈어요. “정말 적십자의 구호 활동이 큰 역할을 했어!” 이 전쟁으로 적십자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입증되었어요. 적십자 깃발 아래서 완장을 차고 구호 활동을 펼친 봉사자들은 다들 전쟁터의 영웅으로 칭찬받았어요. 프로이센의 국왕은 앙리를 초청하여 감사의 뜻을 전했어요. 하지만 앙리는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희생된 오스트리아 군인들 생각에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에요. 앙리는 세계 평화를 위해 훌륭한 일을 했지만 개인적인 사정은 갈수록 나빠졌어요. 알제리에서의 사업 실패로 많은 빚을 지게 되었고 솔페리노의 회상으로 번 돈도 유럽 여행과 적십자 설립 비용 등으로 써서 바닥이 나 버렸어요. 그뿐 아니라 그가 이사로 있던 ‘제네바 신용 금고’가 파산하여 다시 큰 빚을 지게 되었어요. 이어서 그는 적십자 위원 자격까지 박탈당하고 말았어요. “아, 도대체 왜 이렇게 일이 꼬이는 거지?” 빈털터리가 된 앙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제네바 뒷골목으로 가서 방 한 칸을 얻어 살았어요. 난로를 지필 돈이 없어 추운 방에 웅크리고 앉아 며칠씩 굶주린 배를 안고 덜덜 떨어야 했어요. 이제 그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어느 날, 누군가 앙리의 방문을 노크했어요.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예요, 앙리?” 앙리는 깜짝 놀라 찾아온 여인을 바라보았어요.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지내던 베르체데스였어요. 앙리는 베르체데스와 식탁에 마주 앉아 오랫동안 지난 이야기를 주고받았어요. “신문에서 봤는데 정말 훌륭한 일을 해냈더군요.” 앙리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어요. “적십자가 정말 훌륭한 일을 해낼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지 이룬 것만으로도 나는 이제 후회가 없소.” 앙리는 비록 가난하고 외로웠지만 자신이 창설한 국제 적십자를 생각하면 마음이 흐뭇하고 행복했어요. 그날 베르체데스가 앙리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어요. “파리로 가요.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베르체데스는 앙리에게 약간의 생활비를 주고, 파리로 가서 자신의 삼촌을 만나 보라고 했어요. “고맙소.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으리다.” 앙리는 다음 날, 바로 파리로 떠났어요. 파리에 도착한 그는 허름한 동네에 하숙방을 얻었어요. 그러고는 베르체데스의 삼촌을 찾아가 보았어요. 그런데 그녀의 삼촌은 이미 일선에서 은퇴한 뒤였어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던 앙리는 다행히 기독교 청년회 활동을 할 때 알던 친구를 만나 남의 글을 대필하거나 정리하는 일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일감이 늘 있는 것도 아니고, 보수도 적어서 그는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는 늘 초라한 차림으로 말라빠진 싸구려 빵을 사서 겨우 끼니를 때웠어요. 동네 사람들은 그런 앙리를 보고 혀를 쯧쯧 차며 가여워했어요. 앙리가 마흔두 살이 되던 1870년에 다시 전쟁이 터졌어요. 프랑스와 프로이센이 전쟁을 시작한 거예요. 앙리는 전쟁이 터지자마자 바로 전쟁터로 달려갔어요. 자신도 힘들게 살면서 남을 먼저 생각한 거예요. “전쟁터에서 죽어 가는 사람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사람은 없어!” 그는 젊은 시절에 했던 것처럼 죽을힘을 다해 부상자들을 돌보며 전쟁터를 뛰어다녔어요. 앙리가 프랑스 적십자사와 함께 헌신적으로 구호 활동을 하자 국방 위원회에서 그에게 이런 제안을 했어요. “국방 위원회의 구호 분과에서 일해 주시오!” 앙리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정부 자금으로 구호 활동을 하고, 보수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가난한 앙리로서는 다행한 일이었어요. 다음 해에 드디어 전쟁이 끝났어요. 이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는 프로이센이었어요. 전쟁에서 진 나폴레옹 3세는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났어요. 전쟁은 끝났지만 프랑스는 큰 혼란에 빠져들었어요. 왕정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혁명 정부를 만들어 정부군과 싸움을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우리에게 더 이상 황제는 필요 없다!” 파리는 순식간에 광란의 도시로 변하고 말았어요. 앙리는 눈에 불을 켜고 싸우는 사람들 틈에서 절망하며 울부짖었어요. “같은 동족이자 이웃끼리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혁명군과 정부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는 워낙 치열해서 적십자 자원봉사자의 도움도 소용이 없었어요. 그들은 눈에 얼씬거리는 사람이면 모두 붙잡아 가 처형하려고 했어요. 앙리는 그 위험한 상황에서도 적십자 깃발을 흔들며 다친 사람들을 보살펴 주었어요. 앙리는 혁명 정부를 찾아가 눈물로 호소했어요. “제발 제네바 협약을 지켜 주시오! 부상자들을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게 해 주시오!” 하지만 혁명 정부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혁명군과 정부군의 전투는 점점 더 심해졌어요. 앙리는 솔페리노 전투에서도 보지 못한 끔찍한 광경들을 지켜보며 괴로움에 몸부림쳤어요. 그러다 정부군의 요청으로 프로이센 군대가 개입하여 함께 혁명군을 공격했어요. 그 바람에 혁명 정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어요. 끔찍한 내란이 끝나고 난 후에도 파리는 한동안 혼란스러웠어요. 내란이 끝나자 앙리는 다시 파리 뒷골목 자신의 하숙방으로 돌아왔어요. 내란 후에 프랑스는 공화정 국가가 되어 대통령이통치하는 나라가 되었어요. 그러자 파리에는 얼마간 평화가 찾아왔어요. 세월이 흘러 이제 세상 사람들은 앙리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렸어요.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어요. 1887년, 쉰아홉 살이 된 앙리의 건강은 점차 나빠지고 있었어요. 피부병이 심했고 귀까지 어두워졌어요. “으악, 전쟁이다! 전쟁이야!” 앙리는 밤마다 전쟁의 참혹한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헛소리를 하며 식은땀을 흘렸어요. 앙리가 파리의 빈민가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스위스 의사인 아르텔 박사가 우연히 그를 발견했어요. “내가 존경하는 앙리 뒤낭이 이런 빈민가에 살고 있다니!” 아르텔 박사는 앙리 뒤낭을 설득하여 그의 고향인 스위스로 모셔 갔어요. 앙리는 스위스의 알프스 산과 아름다운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양로원으로 옮겨졌어요. 앙리는 양로원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 신문 기자가 양로원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왔어요. 그는 이곳에 앙리 뒤낭이 머물고 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앙리 뒤낭이라면 적십자를 만드신 분이 아닌가!” 그때 앙리 뒤낭은 흔들의자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는 앙리 뒤낭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어요. “선생님이 앙리 뒤낭이십니까?” 앙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제가 선생님에 대한 기사를 써도 되겠습니까?” 앙리는 그렇게 해도 좋다고 허락해 주었어요. 그러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어요. 1895년, 예순일곱이 되던 해에 앙리는 그 기자가 쓴 기사로 인해 다시 세상에 알려졌어요. ‘적십자의 아버지’ 앙리 뒤낭이 살아 있다는 소식은 유럽에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어요. “우리의 영웅이 가난과 고독 속에서 홀로 살고 있다니!” 사람들은 마치 죽은 사람이 살아온 듯 놀랐어요. 그 뒤 앙리 뒤낭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로부터 많은 선물과 후원금을 받았어요. 그 덕분에 이전보다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1901년, 앙리 뒤낭에게 더욱 영광스런 일이 생겼어요. 제1회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이 된 거예요. “앙리 뒤낭이 노벨 평화상을 받는 건 당연해!” 사람들은 다들 몰려와 축하해 주었어요. 국제 적십자 운동의 창시자인 앙리 뒤낭이 드디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순간이었어요! 그는 노벨상도 자랑스러웠지만 이 일로 인해 더 많은 나라가 적십자에 참여할 거라는 생각에 무척 행복했어요. 그는 상금으로 받은 돈을 모두 국제 적십자에 보내고 양로원에서 독서를 하며 보내다 1910년에 조용히 세상을 떠났어요.
지구환경을 지키는 전사들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1975년 6월의 어느 날. 넓은 바다 한가운데에 거대한 배들이 떠다니고 있었어요. 그 배들은 고래를 잡는 포경선이에요. 포경선 주변 바닷물은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어요. 작살을 맞고 죽은 고래들에서 흘러나온 핏물 때문이에요. 작살 끝에는 밧줄이 달려 있는데, 죽은 고래를 포경선으로 끌어 올리는 데 쓰이는 밧줄이에요. 고래가 갑판으로 올라오면 선원들이 재빨리 달려들지요. “작업 개시!” 선원들은 고래 고기를 잘라 내고 지방을 떼어 냈어요. 고기는 냉동고로 들어가고, 지방은 기름을 만들기 위해 불에 끓였어요. 고래의 고기는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고, 기름은 연료로 사용되기도 해요. 포경선은 또 다른 한 무리의 고래들을 향해 작살을 쏘았어요. 그 가운데 한 마리가 작살에 맞았어요. 고래는 고통스러워하면서 몸부림쳤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작살이 살 속 깊이 파고들었어요. 그러다가 더 이상 버둥거릴 힘마저 잃은 고래는 밧줄을 따라 포경선으로 끌려갔어요. 포경선이 두 번째 작살을 쏘려는 찰나였어요. 갑자기 빨간색 고무보트 두 대가 나타났어요. 각각의 고무보트에는 사람이 세 명씩 타고 있었어요. “살생을 중단하시오, 당장!” 고무보트를 탄 사람들은 거대한 포경선을 향해 확성기를 들고 외쳐 댔어요. 그리고 포경선에서 볼 수 있도록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어요. 노란 깃발에는 큼지막한 글씨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어요. ‘STOP KILLING!’(살생을 멈춰라!) “성가신 놈들이 나타났군, 제기랄!” 포경선의 선장이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어요. 깃발을 든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고무보트에 탄 사람들은 그린피스 대원들이었어요. 선장뿐 아니라 다른 선원들도 투덜댔어요. 이렇게 된 이상 싸움이 불가피했기 때문이에요. “그냥 하던 대로 해!” 포경선은 그린피스의 경고를 무시하고 작살을 쏘았어요. 그린피스 보트들은 포경선으로 바짝 접근했어요. 바위처럼 거대한 포경선에 비하면 보트는 마치 성냥갑처럼 작아 보였어요. 지금처럼 빠르게 달리다가 포경선에 부딪혀 보트가 뒤집히기라도 하면 대원들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어요. “맙소사!” 여섯 명의 대원들은 포경선 꽁무니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핏물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보트 주위의 바닷물도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어요.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어요. 그린피스 대원들은 더욱 맹렬하게 포경선을 뒤쫓으며 아슬아슬한 작전을 펼쳤어요. 그들은 포경선과 고래 떼 사이로 보트를 몰면서 계속해서 경고를 보냈어요. “살생을 중단하라!” “저리 가! 가란 말이야!” 포경선은 막무가내로 대원들을 위협해 쫓아내려 했어요. 대원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작살들이 날아갔어요. “조심해!”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대원들은 더욱 끈질기게 포경선을 방해했어요. “정말 고래 힘줄보다 질긴 놈들이군!” 포경선 선장은 할 수 없이 선원들에게 작살을 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어요. 결국 포경선은 고래 사냥을 포기하고 멀리 가 버렸어요. 덕분에 나머지 고래들은 무사히 살아남았어요. 그 포경선은 일본에서 온 것이었어요. 일본은 오래전부터 마구잡이식 고래 사냥으로 악명을 떨치던 나라예요. 일본 사람들이 고래 고기를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포경선의 숫자도 많았어요. 그런데 고래를 잡는 나라는 일본뿐만이 아니었어요. 그때만 해도 일본은 물론 다른 많은 나라들도 고래를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어요. “이러다간 머잖아 고래가 멸종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저들을 막아야 해!” 동물 보호 단체나 지구 환경 지킴이들은 걱정과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어요. 그린피스도 그런 단체 가운데 하나였어요. 대원들은 포경선의 고래 사냥을 끈질기게 방해하고 고래를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을 촬영해 세상에 알렸어요. 여섯 명의 대원들이 포경선에 맞서 싸우는 장면은 텔레비전에도 방송되었어요. “정말 눈뜨고 못 보겠군!” “꼭 저렇게까지 해서 고래 고기를 먹어야 돼?” “그나저나 저 그린피스라는 단체 말이야, 우리가 뭐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텔레비전을 지켜본 사람들은 저마다 탄식을 내뱉었어요. 이렇게 해서 그린피스는 차차 세상에 알려졌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게 되었어요. 그린피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환경 보호 단체로 떠올랐고, 1986년부터는 고래잡이가 완전히 금지되는 성과를 올렸어요. 그린피스가 성공한 것은 사람들이 그들의 용감한 행동에 감동받아서만은 아니에요. 인간과 동물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그린피스의 순수한 협동정신이 전 세계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거예요. 고래 구하기 운동은 그린피스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그전부터였어요. 1971년, 미국이 알래스카의 암치카 섬에서 핵 실험을 실시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알려졌어요.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소리도 못 들었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기 전에 막아야 해!” 캐나다와 미국의 반전 운동가, 사회사업가, 대학생, 언론인 등 12명의 환경 운동가들이 그린피스라는 단체를 만들어 ‘해일을 일으키지 말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나섰어요. 암치카 섬은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으로 핵 실험을 하면 그 충격으로 지진과 해일이 연달아 발생해 알래스카는 물론 이웃 나라인 캐나다에도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해 9월 15일, 그린피스 대원들은 암치카 섬을 향해 출발했어요. 대원들이 타고 가는 작고 낡은 어선은 핵 실험 현장으로 가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했어요. 만일 핵폭발이 일어나는 곳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간다면 배는 산산조각이 나고도 남을 지경이었어요. 이렇게 보잘것없는 배의 몸통에는 그린피스가 미국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문이 걸려 있었어요. “해일을 일으키지 말라!” 이것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핵 실험만은 막아야 한다는 대원들의 굳은 결의가 담긴 경고문이었어요. 그러나 처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어요. 항해에 나선 지 겨우 이틀 만에 엔진이 고장 나고 나침반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거예요. 그뿐 아니라 대원들 대부분이 심한 뱃멀미에 시달렸고 날씨도 최악이었어요. 겨울이 다가오면서 바닷물이 얼어붙기 시작했어요. 대원들은 추위와 뱃멀미를 견디며 27일을 버텼어요. 핵 실험이 실시되려면 앞으로도 30일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대원들은 점점 지쳐 갔어요. “인류 평화를 위해 미국의 핵 실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합니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 봅시다!” “아무래도 상황이 안 좋아요. 냉정하게 판단합시다. 이러다 우리 대원들만 희생될 수도 있어요.” 대원들은 오랜 시간 고민 끝에, 안타깝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어요. 이후로도 강대국의 핵 실험이 계속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그린피스가 핵 실험을 반대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해요. 핵은 우리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지고 있어서 목숨을 걸고 막으려는 거예요. 그린피스가 철수하자 미국은 곧바로 핵 실험을 했어요. “이럴 수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암치카 섬 일대에서 지진이나 해일이 발생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사람들은 미국의 핵 실험에 분노했어요. “미국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다!” 자칫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미국이 위험한 핵 실험을 강행한 것에 대한 비난이었어요. 그린피스는 비록 미국의 핵 실험을 막는 데는 실패했지만, 전 세계에 핵 실험의 위험을 알리는 데는 성공했어요.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어요. 인류의 평화를 지키려면 각 나라의 협조도 중요하지만 그린피스 같은 열성적인 활동가들의 역할이 큰 몫을 할 때가 있어요. 그들은 개인이나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뭉친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1972년, 이번에는 프랑스가 핵 실험을 하겠다고 나섰어요. “프랑스는 핵 실험을 당장 중단하라!” 세계 각국에서 비난 여론이 들끓었으나 프랑스는 끄떡도 하지 않았어요. 이런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볼 그린피스가 아니지요. 그들은 곧바로 핵 실험 현장으로 떠날 계획을 세웠어요. “문제가 생겼어요. 프랑스의 핵 실험 장소는 남태평양이랍니다!” 대원 중 한 명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어요. 남태평양은 그린피스 보트가 있는 캐나다 해안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게다가 그린피스에는 마땅한 배가 없었어요. 망망대해를 지나 목적지까지 가려면 지금의 작고 낡은 어선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어요. 시간은 초조하게 흘러갔어요. 당장 출발하지 않으면 인류에게 어떤 불행이 닥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우리 형편상 남태평양까지 가는 건 불가능해요.” “그렇다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지난번 항해의 실패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그린피스 입장에서는 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어요. 대원들은 오랜 시간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결과, 다음과 같은 대책을 마련했어요. 우선 남태평양 가까운 지역의 자원봉사자 중에서 선발대를 구하고, 배를 빌려줄 사람을 찾는 한 줄의 광고를 내보냈어요. ‘핵 실험 반대 시위를 위해 모루로아 섬으로 갈 배를 빌려주실 분을 찾습니다.’ 세계 곳곳에 그린피스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자원봉사자를 구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하지만 핵 실험장으로 갈 배를 빌려줄 사람이 나타날지는 의문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무조건 남태평양까지 다녀올 배를 빌려 달라는 얼토당토 않은 광고가 나간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자신의 요트를 빌려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어요. 게다가 자기도 요트를 타고 항해에 참여하겠다는 거예요. “나는 캐나다에서 태어나 뉴질랜드에 살고 있어요. 예전에 캐나다 배드민턴 챔피언이었지요. 이름은 데이비드 맥타가트라고 합니다.” 맥타가트는 얼마 전까지 뉴질랜드에서 사업을 했는데, 어느 날 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이 죽고 다치는 사고가 생기자 양심의 가책을 느껴 사업을 포기했다고 자신을 소개했어요. 바로 이 사람이 훗날 그린피스의 국제 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되는 데이비드 맥타가트랍니다. 이렇게 해서 맥타가트와 두 명의 선발대는 요트를 타고 프랑스의 핵 실험 장소로 떠날 수가 있었어요. 요트에는 ‘그린피스호’라는 녹색 깃발을 달았어요. 남태평양의 모루로아 섬에서 계획된 핵 실험은 또다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어요. “이번 핵 실험은 지상에서 벌어진다며?” “지하 방공호에라도 숨어야 되는 거 아냐?” 이웃 나라 국민들까지 불안감에 빠졌어요. 그린피스 대원들은 지난번 항해 때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았어요. 겨우 세 명이서 요트 한 척에 의지하여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대원들은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어요. 어느 때보다 굳은 결의가 필요한 때였어요. “지상 실험은 지하에서 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폭발력이 커서 훨씬 더 위험하고 심각합니다. 우리 모두 용기를 잃지 맙시다!” 거친 바닷길에서 두려움이 밀려들 때면 세 명의 대원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힘을 냈어요. 그리하여 마침내 한 달 만에 목적지 근방까지 진입하게 되었어요. 접근 금지 지역으로 다가갈수록 긴박한 상황이 펼쳐졌어요. 대원들은 한 달 넘게 거친 바다와 힘겹게 싸웠어요. 사나운 파도도, 거센 바람도, 뜨거운 날씨도 그들을 가로막지는 못했어요. 정작 대원들을 위협하는 것은 바다가 아닌 프랑스 군대였어요. 모루로아 핵 실험 지휘관은 보통 지독한 인물이 아니었어요. 그는 빠른 시간 안에 그린피스를 쫓아낼 궁리를 했어요. “비행기를 출동시켜라!” 어느 날 아침이었어요. 갑자기 눈앞에 비행기가 나타났어요. 프랑스 기지에서 날아온 비행기였어요. “핵 실험을 중단하라!” 대원들은 그린피스호로 날아오는 비행기를 향해 깃발을 펼쳐 들었어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한 대원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어요. “앗, 어서 피해!” 비행기가 그린피스호에 닿을 듯 바짝 다가오고 있었어요. 대원들은 더 이상 갑판 위에 서 있을 수 없었어요. 위험을 느낀 그들은 급히 바닷물로 뛰어들었어요. 그린피스호를 들이박을 기세(氣勢)로 돌진해 온 비행기는 대원들 머리 위를 바로 스쳐 지나갔어요. 그린피스를 겁주려는 노골적인 위협이었어요. “비겁하게 비행기까지 동원(動員)하다니!” “그런다고 물러갈 우리가 아니다!” 세 명의 그린피스 대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 요트를 몰아갔어요. 그날 저녁, 마침내 그린피스는 목적지에 닿았어요. 핵 실험 경계선 밖 19킬로미터까지 접근한 거예요. “여기에 닻을 내립시다!” 그린피스 대원들은 깃발을 들고 당당하게 일어났어요. 이제 본격적인 반대 시위가 시작된 것이었어요. 프랑스군과 그린피스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일단은 덩치 큰 골리앗이 몸집이 작은 다윗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모양새였어요. 나중에는 비행기뿐만 아니라 전함까지 나타났어요. 그린피스호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전함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어요. “이러다 큰일 나겠어요! 전함이 전속력으로 달려와 요트를 밀어붙이려고 해요!”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섭시다!” 몇 날 며칠 프랑스군의 위협이 계속되자 세 명의 대원들은 교대로 밤을 새워 가며 버텼어요. 그러는 바람에 핵 실험은 하루하루 미뤄지고 있었어요. 마침내 프랑스 정부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모루로아의 전함에 이렇게 명령을 내렸어요. “지금 당장 핵 실험을 강행하라!” 명령을 받은 프랑스 전함은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어요. “우릴 방해하는 자는 누구든 가만두지 않겠다!” 그들은 마치 섬의 무법자같이 굴기 시작했어요. 강철로 된 전함이 종이배와 같은 그린피스호를 깔아뭉갤 듯 더욱더 바짝 다가왔어요. “당신들 지금 떠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어!” “여기서 누가 죽는다 해도 쥐도 새도 모를걸?” 프랑스군은 그린피스 대원들이 죽으면 폭발 사고로 위장할 것이란 협박도 마다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런 일이 말처럼 쉽게 일어날 수는 없어요. 만일 그린피스 대원들이 해를 입게 되면 프랑스의 입장이 난처해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진짜 사고가 나고 말았어요. 다른 프랑스 군함이 거친 파도 때문에 속도 조절을 잘못해서 그린피스호 측면에 부딪힌 거예요. 다행히 그린피스호는 겨우 침몰 위기를 넘겼어요. 하지만 요트가 크게 부서지면서 고장이 나고 말았어요. 이 상태로는 더 이상 거친 파도 속에서 배를 지탱할 수도 없었어요. 그동안 프랑스군의 온갖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해 버텨 왔던 대원들은 너무나 허탈했어요. “기가 막히는군. 배 수리를 프랑스군에게 맡겨야 하다니.” “아! 이번에도 실패하고 그냥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세 명의 대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어요. 어차피 식량과 물도 거의 바닥이 나서 시위를 계속할 수도 없었어요. 그린피스가 현장을 떠나자 프랑스는 기다렸다는 듯 핵 실험을 강행했어요. 하지만 그린피스가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에요. 그들은 잠시 물러난 것뿐이에요. 그린피스는 활발한 활동을 위해 배를 한 척 더 구했어요. 배 이름은 자연을 지키는 인디언의 신을 뜻하는 ‘무지개 전사호’였어요. 1985년, 무지개 전사호는 핵 실험에 항의하기 위해 다시 모루로아로 향했어요. 그런데 이 배는 뉴질랜드 오클랜드항에 정박해 있다가 폭탄이 터져 침몰하고 말았어요. 이때 안타깝게도 한 명의 대원이 희생되었어요. 프랑스 정보 요원들이 배에 폭탄을 설치했던 거예요. 사실이 알려지자 비판 여론이 빗발치기 시작했고 프랑스 정보국장은 자리에서 쫓겨났어요. 그런데 이 상황에서도 정보 요원들은 그린피스를 계속 협박했어요. 하지만 그린피스는 2년 뒤에 다시 힘을 모아 프랑스 핵 실험 반대 시위를 끈질기게 이어 갔어요. 결국 모로루아 핵 실험장은 1996년에 문을 닫고 말았어요. “소수의 용감한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서 강대국을 이겼다!”사람들은 비로소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고 말했어요. 그린피스는 바다표범을 보호하는 일에도 앞장섰어요.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해마다 수천 마리의 새끼 바다표범이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했어요. 사람들이 새끼 바다표범을 죽이는 이유는 돈 때문이에요. 새끼 바다표범의 가죽으로 모피코트를 만들지요. 새끼 바다표범 아홉 마리를 죽여서 얻은 가죽으로 겨우 모피 코트 한 벌을 만든답니다. 사냥꾼들은 어미 바다표범이 보는 앞에서 새끼 바다표범의 머리를 때려 죽이고는 그 자리에서 가죽을 벗겨 내는 끔찍한 짓도 서슴지 않았어요. “인간이 어찌 저렇게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눈 뜨고 못 보겠네!” “엄마, 아빠! 새끼 바다표범이 너무 가여워요!” 새끼 바다표범을 사냥하는 장면이 그린피스를 통해 텔레비전에 공개되자 사람들은 다들 그 잔인함에 치를 떨었어요. 그린피스는 죄 없는 동물의 희생을 막기 위해 발 벗고 나섰지만, 돈에 미친 사냥꾼들을 막기란 쉽지가 않았어요. 대원들은 때때로 현장에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어요. “너희들이 뭔데, 저리 비켜!” 사냥꾼들은 그린피스 대원들이 다가가면 거칠게 뿌리치고 어린 바다표범을 사정없이 때려잡았어요. 대원들이 새끼 바다표범을 온몸으로 껴안고 인간 방패가 되어 막아서도 그들의 우악스러운 힘을 당할 재간이 없었어요. 일부 사냥꾼들은 그린피스 사무실로 쳐들어와 다시는 방해하지 말라며 난동을 부리기도 했어요.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사냥꾼들이 원하는 걸 필요 없게 만들면 돼!” 생각다 못한 그린피스 대원들은 녹색 물감을 새끼 바다표범에게 뿌려 가죽을 못 쓰게 만들었어요. 그렇게라도 해서 새끼 바다표범을 구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완전한 해결 방법이 될 수 없었어요. “우리가 뭉치면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정치가들을 설득해 봅시다!” 그린피스는 사냥터가 아닌 곳에서 해결책을 찾기로 했어요. “바다표범 사냥 방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그린피스 운동에 동참해 주십시오!” 그린피스는 전 세계 언론에 모피 반대 광고를 내보내고 정치가들에게 참여를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어요. 그러자 1983년 세계 최대의 모피 무역 국가인 노르웨이가 바다표범의 학살을 중지하겠다고 선언했어요. 이로써 그린피스의 모피 반대 운동은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어요. 1989년 7월,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났어요. 전 세계 시민이 돈을 모아 ‘무지개 전사 2호’를 탄생시킨 거예요. 그린피스 대원들은 무지개 전사가 되어 이 배를 타고 지구상의 모든 바다를 순찰하고 있어요. 이제 그린피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단체로 성장했어요. 지금의 러시아를 예전에는 소련이라고 불렀어요. 그때만 해도 소련은 한반도의 안전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공산 국가였어요. 하지만 핵무기 실험장에 조각배 하나 달랑 타고 들어가는 그린피스가 소련이라고 겁을 낼 리가 없지요. “포경선이다!” 바다를 순찰하던 무지개 전사들은 소련 포경선을 발견하자 고무보트를 타고 용감하게 그 앞으로 돌진했어요. “살생을 중지하라!” 대원들은 포경선과 고래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가며 구호를 외쳤어요. 아무리 위협해도 그린피스가 끄덕도 하지 않자 소련도 결국 고래잡이를 포기하고 말았어요. 무지개 전사들은 우리 한국을 위해서도 고마운 일을 했어요. 1993년, 소련이 무너지고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러시아는 방사능 폐기물을 몰래 동해로 가져와서 버렸어요. 우리 정부는 그런 사실을 감쪽같이 모르고 있을 때였어요. “러시아는 비양심적인 행동을 반성(反省)하라!” 갑자기 그린피스 무지개 전사들이 나타났어요. “뭐야? 저것들이 또 어떻게 알고 왔지?” 러시아 화물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기가 막혔어요. 한국 정부도 모르게 화물선으로 위장(僞裝)한 그들을 그린피스가 귀신같이 알아차렸으니 말이에요. “기껏해야 고무보트를 탄 놈들이다. 겁을 줘서 따돌리자!” 화물선은 그린피스의 방해를 물리치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그러나 무지개 전사들은 화물선에 딱 붙어서 꿈쩍도 하지 않았고, 아예 떨어지는 폐기물 통을 온몸으로 막을 기세였어요. 우리 정부도 사실을 알고 강력히 항의했어요. 러시아는 곧장 비겁한 범죄 행위를 중단했지만 그린피스의 고발로 이 일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국가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어요. 또한 이 사건은 훗날 한국에 그린피스 지부가 설립되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그린피스는 정치적 독립을 최고의 가치 중의 하나로 내세운 순수 민간단체예요. 그런 이유로 정부나 정당, 기업의 후원금은 절대 받지 않아요. 만약 그들의 돈을 받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자유로운 활동에 걸림돌이 될 테니까요. 그린피스의 용감한 행동들은 따지고 보면 약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해요. 우리나라 부산 다대포에서 참치 장례식 행사를 벌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어요. 그린피스는 어린 참치까지 그물로 마구 잡아들여 멸종 위기에 빠진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이 행사를 기획했어요. “자연이 살아야 우리도 살 수 있습니다!” 그린피스의 구호에는 사람과 자연이 서로 지켜 주고 협동하면서 더불어 살아가자는 상생의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덕분에 요즘은 그물 대신 낚시를 이용하여 한 마리씩 잡아 올린 참치가 시장에 나올 수 있게 되었어요. 핵 실험의 후유증으로 신음하는 남태평양 북쪽의 작은 산호섬 사람들도 그린피스가 외면할 수 없는 약자들이었어요. “이곳에서 핵 실험을 했던 국가는 물론 어떤 나라도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아요!” 주민들이 먼저 그린피스에게 구원을 요청했어요. 1985년 3월 15일, 미국 지부에서 활동하는 대규모 그린피스 자원봉사대가 섬으로 출발했어요. 도착해 보니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어요.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병에 걸려 죽었고, 살아남은 3백여 명의 주민들도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어요. 그린피스는 주민들을 안전한 섬으로 옮길 계획을 세웠어요. 그전에 주민들이 거처할 집을 지어야 했어요. 대원들은 2주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땀 흘려 일해서 드디어 집을 완성하고, 네 차례에 걸친 힘든 항해 끝에 주민들을 새로운 섬으로 이주시켰어요. 남극은 지구에서 환경이 가장 잘 보전된 지역이에요. 1983년, 그린피스는 남극을 ‘세계 공원’으로 만들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어요. “남극을 놀이공원이나 관광지로 만들자는 게 아닙니다. 아직 오염되지 않은 이곳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지역으로 영원히 남겨 두자는 것입니다!” 그린피스가 이렇게 주장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어요.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나라들이 남극에서 광물을 캐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만일 너도나도 남극에서 광물을 캔다면 어떻게 될까요? 남극의 환경은 금세 망가지겠지요. 그린피스는 이 운동을 위해 크게 두 가지 일을 했어요. 세계 언론을 통해서 남극의 중요성을 알리는 동시에 남극의 광물에 눈독 들이는 여러 나라들을 찾아가 설득도 하고 항의도 한 거예요. 수많은 세계 시민들이 그린피스의 주장에 박수를 보냈어요. “세계 공원 좋아하네. 우리가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 얼만데!” 광물을 노리는 나라들은 그린피스의 주장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어요. 남극을 주인 없는 보물 창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선뜻 그 욕심을 내려놓을 리가 없으니까요. “우리에게 힘을 보태 주세요!” 그린피스는 남극 지키기 운동을 알리는 데 더욱 열을 올렸어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힘이 강해지기 마련이에요. 기자들과 함께 남극으로 가서 감시 활동도 벌였어요. 그러던 중에 기어코 사건이 터지고 말았어요. 1989년, 그린피스가 남극의 두몽드빌이라는 곳에 있는 프랑스 기지를 방문했을 때였어요. “세상에!” 눈앞에서 끔찍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놀란 그린피스 대원들은 일제히 구호를 외쳤어요. “살생을 중단하라!” 임시 활주로를 만들고 있는 일꾼들이 무려 3만 마리나 되는 펭귄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있었어요. “펭귄들이 원래부터 살고 있던 곳에 활주로를 만들려고 저렇게 잔인한 짓을 벌이는 거야!” 분노한 그린피스 대원들은 즉시 그곳으로 달려가 일꾼들과 몸싸움을 벌였어요. 어떤 대원은 공사를 못 하도록 활주로에 드러누웠어요. “징그러운 놈들, 여기까지 찾아와서 훼방을 놓다니!” 프랑스 일꾼들은 그린피스 대원들을 질질 끌다시피 해서 활주로 밖으로 쫓아냈어요.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 대원들은 몇 번이고 다시 활주로로 달려가 바닥에 누웠어요. 양쪽의 싸움은 열흘 동안이나 계속되었어요. 이 장면은 위성 중계를 통해 전 세계로 방송되었어요. 그린피스가 활주로 공사를 그렇게 악착같이 방해한 것은 펭귄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었어요. 활주로 공사는 광물을 캐는 기계를 비행기로 실어 오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기 때문이에요. 방송을 본 세계인들은 놀라움과 분노를 금치 못했어요. “남극 파괴를 즉각 멈춰라!” 각국의 시민들이 들고일어나자 프랑스는 물론 남극에 군침을 흘리던 다른 나라들도 움찔 놀랐어요. 1989년 여름, 오스트리아 수상은 세계의 지도자로는 최초로 남극을 세계 공원으로 만들자는 그린피스의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곧이어 프랑스도 광물을 캐는 사업에 반대한다는 뜻을 발표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남아 있었어요. 그린피스는 8년 동안 끈질기게 노력하여 1991년 10월, 마침내 남극을 노리던 22개국 대통령의 서명을 받아냈어요. “앞으로 50년간 남극에서 광물을 캐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이것은 그린피스가 거둔 가장 위대한 승리 가운데 하나였어요. 1971년 미국의 핵 실험을 막기 위해 처음 결성된 이래, 지구 온난화를 막는 일을 비롯하여 숲과 생물을 보호하는 일 등 인류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일에 그린피스가 함께하고 있어요. “무지개 전사들이다!” “정말?” 2011년 6월 무지개 전사 2호가 ‘원자력 없는 한국’이라는 깃발을 내걸고 한반도 바다를 항해하는 것을 발견하고 많은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어요. 무지개 전사들은 원자력 발전소 주변 마을을 방문해 주민들을 격려하고, 그린피스 서울 사무소에 기념품을 전달하기도 했어요. 이 행사는 무지개 전사 2호가 20년 넘게 이어 온 항해를 정리하는 마지막 행사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었어요.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5천여 명의 온라인 그린피스 지원단이 조직되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답니다. 전 세계의 그린피스 회원들은 모두가 평범한 민간인 신분이에요.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와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이 엄청난 단체를 이끌어 가고 있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핵 실험을 막고, 고래를 구하고, 남극을 지킬 수 있었을까?” “어떻게 감히 강대국과 맞설 생각을 했을까?” “과연 무엇이 그린피스라는 보통 사람들을 그렇듯 용감하고 강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 그린피스를 알고 나면 누구나 이런 의문을 품게 될 거예요. 그 비결은 바로 ‘협동’이에요. 협동이야말로 그린피스가 지닌 가장 강력한 힘이랍니다. 영국의 그린피스 지도자 피터 멜체트는 이런 말을 했어요. “그린피스는 환경 운동이 언젠가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활동합니다. 우리에게는 같은 목적으로 같이 일할 500만 명이나 되는 동지들이 있으니까요.”
고통받는 어린이를 돌보는 사람들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1876년, 영국의 한 귀족 집안에 예쁜 딸이 태어났어요. “이 아이는 교양 있고 예쁘게 자라서 모두가 탐내는 최고의 신부가 될 거예요.” 엄마와 아빠가 기뻐하며 말했어요. 부모님은 아이의 이름을 ‘에글렌타인’이라고 지었어요. 에글렌타인은 귀족의 딸답게 부족함 없이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하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는 부모님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왜 다들 예쁘게 치장이나 하고, 파티나 즐기다가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기만을 바라지? 나는 인생을 조금 더 뜻깊게 살고 싶어!’ 대학을 졸업한 에글렌타인은 선생님이 되었어요. 당시 학교에는 끼니를 거르며 다니는 어린이들이 많았어요. 너무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도 있었지요. “어떻게 하면 이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에글렌타인은 가난한 어린이들을 보며 늘 고민했어요. 그러나 몸이 약했던 에글렌타인은 병이 생기는 바람에 학교도 그만두어야 했지요. 그 뒤 유럽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졌어요. 전쟁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어요. 전쟁이 끝난 직후, 연합군은 패전국인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지 못하도록 국경을 봉쇄해 버렸어요. 당시 건강이 조금 나아진 에글렌타인은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하루는 한 스위스 의사로부터 패전국의 어린이들이 처한 비참한 상황을 듣게 되었어요. “지금 오스트리아 빈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은 여섯 살이 되어도 몸이 유아처럼 아주 작아요. 제대로 먹지를 못해 영양실조에 걸렸기 때문이에요.” 에글렌타인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어요. “이게 다 봉쇄 정책 때문이야. 봉쇄 정책만 풀리면 외국에서 먹을 것을 들여와 어린이들도 더 이상 굶주리지 않을 거야.” “우선 영국 정부만이라도 설득을 해야 해.” 에글렌타인은 정부의 담당자를 찾아가 부탁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어린이들이 죽어 가고 있어요.” 하지만 영국 정부는 에글렌타인의 말을 듣지 않았어요. “어린이들을 위해 먹을 것만 보내 주시면 돼요.” 에글렌타인이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영국 정부는 단호했어요. “당신이 하는 짓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겠소? 봉쇄 정책을 푸는 것은 적국을 도와주는 것이오. 잘못하다가는 반역죄로 잡혀갈 수도 있어요!” 영국 정부는 오히려 에글렌타인에게 엄포를 놓았어요. 에글렌타인은 배가 고파 울고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견딜 수 없었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생 도로시가 위로했어요. “언니, 너무 괴로워하지 마.” “언니 탓이 아니야. 봉쇄 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잖아.” “도로시, 나는 어른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가엾은 어린이들이 굶어 죽는 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언니, 방법을 찾아보자. 나도 도울게.” 도로시도 언니와 뜻을 같이하기로 결심했어요. “고마워, 도로시. 어쩌면 봉쇄 정책이 문제가 아닐지도 몰라. 봉쇄 정책이 풀린다고 당장 어린이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럴 때 여유 있는 사람들이 도와주면 좋은데.” 그때 에글렌타인에게 좋은 생각이 반짝하고 떠올랐어요. “그래! 어린이를 위한 기금을 모금하는 거야!” 당시 에글렌타인이 가진 것이라고는 고작 10파운드뿐이었어요. “언니, 겨우 10파운드로 어떻게 어린이들을 도와주지?” “우선 인쇄물을 만들자. 굶어 죽어 가는 어린이들의 사진을 실어서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거야.” 에글렌타인은 전단지를 들고 거리로 나가 외쳤어요. “여러분! 굶주린 어린이들을 도와주세요!” 전단지에는 뼈만 남은 앙상한 몸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소녀의 사진이 실려 있었어요. 그러나 전단지를 받아 든 사람들은 크게 화를 냈어요. “뭐야, 독일의 어린이들을 도와주자고? 이 사람이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어린이들을 돕자면서 그 돈으로 적국을 도와주는 거 아냐?” 독일은 세계 대전을 일으킨 나라예요. 그래서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독일을 싫어했어요. “배신자! 우리가 누구 때문에 힘들게 사는 건데!” “전쟁을 일으킨 놈들의 자식들은 굶든 말든 내버려 둬!” 어떤 사람은 창문에 썩은 사과를 던지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글렌타인은 쉬지 않고 전단지를 돌리면서 구호 활동을 계속했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누군가 에글렌타인을 고소했어요. 결국 재판을 받은 에글렌타인은 벌금 5파운드를 내야 했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어요. 에글렌타인의 재판에 참여했던 검사가 ‘세이브더칠드런’에 5파운드를 기부한 거예요. 검사도 마음속으로는 에글렌타인의 구호 활동을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1919년 5월 19일, 에글렌타인은 동생 도로시와 함께 5파운드의 벌금을 선고받은 후 ‘세이브더칠드런’이라는 단체를 설립했어요. 재판을 계기로 ‘세이브더칠드런’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어요. 그러자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적국이라고 해도 죄 없는 어린이들까지 굶으면 안 되죠. 적은 돈이지만 꼭 어린이를 위해 써 주세요.” ‘세이브더칠드런’에 기부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어요. 어린 소년이 편지와 함께 자신의 용돈을 보내오기도 했지요. ‘세이브더칠드런’이 세워진 첫해,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인 돈이 40만 파운드쯤 됐어요. 당시에 40만 파운드면 어마어마하게 큰돈이었어요. 지금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하면 약 180억 원이 넘으니까요. 힘을 얻은 ‘세이브더칠드런’은 유럽 곳곳에 사무실을 열고 활기차게 모금 활동을 계속해 나갔어요. 1920년 이후 러시아에서는 흉년이 계속되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었어요. 세계 대전을 치르느라 너무나 많은 돈을 썼기 때문에 나라에서 도울 힘이 없었던 거예요. 그 소식을 알게 된 에글렌타인은 마음이 아팠어요. “러시아 어린이들이 굶고 있어요. 우리가 도와야 해요.” “러시아는 공산주의 국가라 반대가 심할 거예요.” 동료들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요. 당시 유럽에서 공산주의는 절대 환영받지 못했어요. “적국이었던 오스트리아나 독일의 어린이들도 도왔잖아요. 러시아를 돕는 것도 가능할 거예요.” “이러다가 민주주의 국가 사람들이 기부를 끊으면 애꿎은 어린이들이 힘들어질 수 있어요. 지원이 끊길 수도 있으니까요.” 동료들이 걱정하며 말렸어요. 에글렌타인은 동료들을 설득했어요. “우리에게 기부하는 사람들은 어린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정치 이념 때문에 기부를 포기하지는 않을 거예요.” 에글렌타인의 예상대로 러시아 어린이들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기부를 했어요. 노르웨이의 탐험가이자 과학자인 난센도 러시아의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어요.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인 버나드 쇼는 “일곱 살 미만의 어린이들 중에는 적이 없다!” 라고 외치며 에글렌타인의 편을 들어 주었어요. 교황 베네딕트 15세 역시 ‘세이브더칠드런’의 모금 활동에 적극 참여하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보냈어요. 그러자 마침내 영국 정부도 ‘세이브더칠드런’의 모금 활동에 참여하기로 약속했답니다. 1921년, 이슬람 국가인 터키에서 기독교를 믿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을 학살하고 박해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터키에서 도망친 아르메니아인들은 난민이 되었어요. “엄마, 동생이 계속 잠만 자.” 난민 가운데 한 어린이가 엄마에게 말했어요. 엄마가 아이를 안아 보니 아이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어요. “아, 동생이 죽었구나.” 엄마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어요. 그러자 어린이가 물었어요. “그러면 동생 몫으로 남겨 놓은 거 내가 먹어도 돼?” 너무 배가 고파서 동생의 죽음보다 먹을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온 거예요. 난민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세이브더칠드런’은 이들을 돕기 위해 유럽 전체에서 모금 활동을 시작했어요. 전쟁이 끝났어도 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어렵게 살았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생활이 나아지지 않자 엄마가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나는 일도 생겼어요.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에글렌타인은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엄마가 아이의 목숨까지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거야!” 에글렌타인은 어린이들에게도 존중받아야 하는 인격이 있다고 주장했어요. “엄마가 아기를 낳았다고 해도 아기의 생명에 대한 권리까지 엄마에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 부모들은 아이를 자신들의 재산이나 소유물로 생각했어요. 11세만 되면 어른처럼 일을 시키기도 했지요. 에글렌타인의 주장은 당시 부모들에게는 놀라운 것이었어요. “어린이도 한 인간으로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해.” 1923년, 에글렌타인은 세계 최초의 어린이 권리 선언인 ‘아동 권리 선언문’을 발표했어요. 이 선언문은 이후 ‘유엔 아동 권리 선언문’의 기초가 되었어요. 그리고 1989년, 유엔은 마침내 전 세계 회원국들과 ‘유엔 아동 권리 협약’을 체결했답니다. ‘유엔 아동 권리 협약’은 어린이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협약에 서명한 나라는 자기 나라의 어린이들이 권리를 제대로 인정받고 있는지를 살펴 5년마다 유엔에 보고해야 해요. “드디어 에글렌타인의 뜻이 결실(結實)을 맺었어요.” ‘세이브더칠드런’의 동료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어요. 하지만 오랫동안 병을 앓아 온 에글렌타인은 자신이 이룬 업적을 보지 못하고 1928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에글렌타인을 간호했던 의사는 그녀를 ‘세계의 누이’라고 불렀어요. 또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금발이 하얗게 세도록 오로지 소외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헌신한 그녀를 ‘하얀 불꽃’이라고 부르기도 했지요. 에글렌타인은 검소한 생활로도 유명했어요. 사무실에서 종이 한 장 낭비하는 일도 두려워했지요. “아니, 이 종이는 왜 버리는 것입니까?” “이 종이 한 장이 어쩌면 배고픈 어린이의 한 끼와 맞먹을 수도 있어요.” 세계 어디서인가 고통받고 있을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절대 함부로 돈을 쓸 수가 없었던 거예요. 에글렌타인의 이런 검소한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세이브더칠드런’의 전통으로 지켜지고 있답니다. 비록 에글렌타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세이브더칠드런’의 활동은 계속되었어요. 유럽에서는 끊임없이 내전이 발생하고 난민들이 생겼어요. “난민들이 고통받고 있어요. 얼른 구호 센터를 설치하고 이동 병원을 만들도록 합시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어려운 이웃이 있는 곳으로 끊임없이 구호 활동을 나갔어요. 그러는 동안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지요. 어떤 마을에서는 코코아 가루를 엉뚱한 곳에 사용한 적도 있어요. “코코아 가루로 집을 칠했다고요?” 코코아를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마을 사람들이 식량으로 준 코코아 가루를 페인트인 줄 알았던 거예요. 난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려면 무엇보다 먼저 교육이 필요했어요. ‘세이브더칠드런’은 한 가지 실험을 했어요. 불가리아의 습지에 사는 50여 가족의 난민들에게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는 일이었어요. ‘세이브더칠드런’의 자원봉사자들은 난민들과 함께 밭을 만들어 씨를 뿌리고, 벽돌을 구워 집을 지었어요. “기운도 없는데 왜 자꾸 일을 하라는 거야? 그냥 먹을 거나 주고 가면 좋잖아!” 반대하는 주민도 있었지만 모두들 용기를 냈어요. “우리도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지. 언제까지 얻어먹을 수는 없잖아!” 난민들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일했어요. 첫 겨울은 ‘세이브더칠드런’이 먹을 것을 마련해 주었지만, 그다음 해에는 난민들이 직접 수확을 할 수 있었어요. 결국 난민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거예요. ‘세이브더칠드런’은 이 경험을 토대로 다른 나라에서도 난민들이 스스로 삶의 터전을 개척할 수 있게 도와주었어요. 세상 모든 어린이들을 위해. 우리나라도 6.25 전쟁이 끝난 뒤 ‘세이브더칠드런’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요. 당시 우리나라는 거리에 굶주리고 헐벗은 고아들이 넘쳐났고, 전쟁 피난민들은 판자와 천막으로 겨우 살 곳을 마련했지요. 먹을 것은 늘 부족했고 판자촌과 천막촌은 비위생적이라 질병에 걸릴 위험이 많았어요. “한국이 전쟁으로 황폐해져 사람들이 굶고 있어요. 어린이들의 생명이 위태롭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상황이 기사를 통해 전 세계로 알려졌어요. 얼마 뒤, 영국과 미국, 캐나다, 스웨덴 등 ‘세이브더칠드런’의 4개 회원국이 한국에 지부를 설립하고 구호 활동을 시작했어요. 곳곳에 보건소와 급식소가 세워졌어요. 그러자 엄마들이 배고프고 아픈 아기를 업고 찾아왔어요. “차례차례 줄을 서세요. 다 나누어 드릴 거예요.” ‘세이브더칠드런’은 가루우유와 밀가루를 사람들에게 배급해 주었어요. 덕분에 4~5만 명의 사람들이 끼니를 이어 갈 수 있었지요. 그 뒤 우리나라가 발전하면서 우리 국민들이 직접 참여한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가 세워졌어요. 현재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는 농촌이나 낙도 등 소외받는 지역에 사는 어린이들을 꾸준하게 돕고 있어요. 또한 세계 여러 나라의 어려운 어린이들도 돕고 있지요.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하게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기 때문이야. 이제 우리도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지!” 이렇듯 전쟁 이후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한 곳은 세계에서 우리나라 뿐이랍니다. 한편에서는 다른 나라 어린이들에게 기부금을 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뭐하러 다른 나라 어린이들을 도와주는 거야?” 선진국 사람들이 내는 적은 기부금이 가난한 나라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하기도 하지요. 식량은 물론 학비를 내거나 의약품도 살 수 있어요. 우리나라 돈 2만 원이면 굶주린 어린이들 30명에게 꼭 필요한 영양식을 제공할 수 있답니다. 에티오피아는 내전이 계속되고 비가 오지 않아 기근이 계속되고 있었어요. 어느 날, ‘세이브더칠드런’에 한 여자 어린이가 찾아왔어요. “배가 너무 고파요.” “제발 먹을 것 좀 주세요.” 여자 어린이는 온몸이 바싹 말라 마치 나무젓가락 같았어요. ‘세이브더칠드런’은 어린이를 당장 병원에 입원시켰어요. “살 수 있을까요?” “글쎄요. 너무 심각한 상태라 뭐라 말하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영양 섭취를 잘한 여자 어린이는 몰라보게 달라졌어요. 살도 찌고 사라졌던 웃음도 되찾았지요. 그리고 나중에 어른이 되어 결혼도 했어요. 이 여자 어린이를 살리는 데 쓴 돈은 우리나라 돈으로 겨우 약 2만 3천 원 정도였어요. 굶주림만큼 질병도 어린이의 목숨을 위협하지요. 네팔 어린이들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데, 과일이나 채소 같은 비타민이 풍부한 음식을 먹지 못해 영양 결핍으로 인한 질병이 많았어요. “영양 결핍 때문에 어린이들이 병을 이길 힘이 없어요.” “우선 잘 먹여야 해요!” ‘세이브더칠드런’은 의사와 병원이 거의 없는 네팔에 진료소를 세우고 의약품과 식량을 나누어 주었어요. 그리고 주민 스스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기도 했지요. “예방 접종을 하면 질병에 저항력이 생겨요. 어린이들은 예방 주사를 꼭 맞도록 합시다!” 이처럼 ‘세이브더칠드런’은 그 나라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를 깨닫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1년에 260만 명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다행히 살아남는다고 해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어린이가 전 세계에 1억 7천만 명이나 됩니다. 세상에 죽기 위해 태어난 어린이는 없어요!” 모든 어린이들이 행복하게 살기 바라는 ‘세이브더칠드런’은 계속해서 굶주린 어린이들에게 음식과 옷을 나누어 주고 치료를 받게 해 주고 있어요. 물론 어른들에게도 어린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도록 교육의 기회를 주고 있지요. 하지만 몇몇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더욱 심한 고통 속으로 내몰고 있어요. 바로 어린이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키는 어른들이에요. 어스름하게 해가 떠오르는 이른 새벽이면 서부 아프리카 한 농장에서는 어린이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카카오나무에 올라가야 해요. “빨리빨리 하지 못해!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농장 주인의 고함 소리에 어린이들의 손길이 더욱 바삐 움직이지요. “흑흑! 엄마가 보고 싶어.” 나이가 어린 대여섯 살 꼬마들은 울음을 터뜨리기도 해요. 형이나 누나들이 달래 주고 싶지만 그럴 틈이 없어요. 그랬다가는 또 채찍이 날아올 테니까요. 어린이들은 학교도 가지 못하고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요. 일을 게을리하거나 농장에서 도망을 가다가 잡히면 하루 종일 먹지 못하고 채찍을 맞아야 해요. 그렇게 끔찍한 생활을 견디지 못한 어린이들은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어린이들에게 강제로 일을 시키는 농장들을 전 세계에 알리려고 애를 써 왔어요. 하지만 강제 노동에 시달리던 어린이를 구제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어요. “우리도 위험한 것은 알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우리는 돈을 벌어야 해요. 안 그러면 우리 가족이 굶어 죽어요.” 어린이들이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요. 아프리카에서는 어린이들이 어두운 금광에서 일을 해요. 어른보다 몸집이 작아서 좁은 공간에서 작업을 하기가 쉽기 때문이지요. 또 파키스탄에서는 축구공을 가지고 뛰어놀아야 할 어린이들이 가죽을 이어 붙여 가며 축구공을 만들어요. 방글라데시에서는 어린이들이 학교 대신 공장에 나가 옷감을 짜고, 페루의 어린이들은 힘들게 벽돌을 만들지요. 모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는 거예요. 노예처럼 일하는 어린이들은 학교도 못 다니고, 또 열심히 일해도 정당한 돈을 받지 못하지요. “‘세이브더칠드런’은 무조건 어린이 노동을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어린이들이 일을 해야 하는 가난한 나라도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어린이 노동자들도 정당한 임금을 받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어린이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고 일하는 곳의 환경을 개선해 줄 것을 요구했어요. 더불어 어린이에게는 위험한 일을 시키지 말아야 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는 꼭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어린이들이 노동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 학교에 가고 싶어요.” 아프리카에 사는 열한 살 소녀는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돌아와서 엄마에게 말했어요. “네 남동생이 이번에 학교에 가야 하잖니. 우리 집 형편에 아이 둘을 학교에 보낼 수가 없구나.” 엄마가 안쓰럽게 말했어요. 물론 엄마도 배우지 않으면 가난하게 살게 될 거라는 것을 잘 알아요. 하지만 너무 가난해서 여자아이까지 가르칠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렇게 전 세계에서 수천만 명의 소녀들이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어요. ‘세이브더칠드런’은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프리카 소녀들을 위해 ‘스쿨미’ 캠페인을 벌이고 있어요. 소녀들이 배움을 통해 당당한 여성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면서 후원금을 지원하는 것이지요. 한편,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어린이들은 전쟁으로 고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총을 들고 직접 전쟁터에 나가기도 해요. “몸집이 작아서 총알을 피하기 좋겠어.” 이 녀석들은 밥만 주면 시키는 대로 다 할 거야.” 어른들은 전쟁터에서 어린이들을 도구로 사용해요. 전쟁에 나갔던 어린이들은 단순히 목숨만 위협받는 것이 아니에요. 정신적으로도 많은 충격을 받게 되지요. “전쟁에 나간 어린이들은 살아남는다고 해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을 배우지 못해 어른이 되어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유엔을 비롯한 여러 단체와 함께 전쟁터의 어린이에 대해 알리고 군인의 연령을 제한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어요. “쾅!” 아프가니스탄의 한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어린이들이 갑작스런 폭발음에 깜짝 놀랐어요. “지뢰다! 피해!” 어린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팔방으로 흩어졌어요. 그런데 한 어린이가 다리를 붙잡고 울고 있어요. 조금 전까지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뛰어놀던 그 어린이는 안타깝게도 지뢰 때문에 다리 하나를 잃고 말았어요. 전쟁이 끝났다고 고통까지 끝난 것은 아니에요. 전쟁의 잔재는 여러 곳에 남아 있어요.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지뢰예요. 전 세계 60여 개의 나라의 땅 밑에 약 1억 개 정도의 지뢰가 묻혀 있다고 해요. 전투가 벌어졌던 곳 뿐만 아니라 들판이나 길거리, 시장, 심지어 어린이들이 공부하고 뛰어노는 학교 운동장에도 지뢰가 묻혀 있어요. “어, 이게 뭐지?” “그러게. 파내서 내다 팔면 돈이 될 거 같아.” 땅에 박힌 투박하게 생긴 쇳덩어리를 보고 호기심이 생긴 어린이들은 함부로 파내기도 하고 던지고 놀기도 해요. 그것이 무시무시한 지뢰인지도 모르고 말이에요. 그렇게 해마다 지뢰 폭발로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어린이들이 2만 6천 명 이상이라고 해요. “어린이들에게 지뢰가 얼마나 위험한지, 지뢰를 발견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야 해.”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뢰가 많이 매설된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지뢰의 위험을 알리는 교육을 해 오고 있어요. 또 지뢰 반대 캠페인을 벌여 지뢰의 생산과 수출을 막는 데 앞장서고 있지요. 이러한 지뢰 반대 운동으로 1997년에는 오슬로 회의에서 ‘대인 지뢰 금지 협정’을 통과시키기도 했답니다. 어느 날, ‘세이브더칠드런’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아프리카에서는 많은 신생아들이 추위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고 해요.” 사람들은 깜짝 놀랐어요. 아프리카는 더운 대륙이에요. 그런데 추위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니 놀랄 수밖에요. 아프리카의 말리는 낮에는 섭씨 47도까지 올라가요. 하지만 밤에는 4도까지 떨어져 일교차가 무려 30도가 넘는 곳이에요. 게다가 말리 사람들은 난방 시설이 없는 흙과 짚으로 만든 집에서 살지요. “어른들은 일교차를 견딜 수 있지만 갓 태어난 신생아는 이런 환경에 적응할 수 없어요. 태어나서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죽는 신생아가 10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태어나자마자 목숨을 잃는 신생아들을 살릴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머리만 따뜻해도 체온이 2도 정도 올라간다고 해요. 모자를 씌우면 체온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세이브더칠드런’은 즉시 새로운 캠페인을 시작했어요. 바로 신생아 털모자 뜨기 운동이에요. “조금만 시간을 내면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니, 나도 시간을 내서 털모자를 만들어 보내야겠어!”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털모자 뜨기 운동에 동참했어요. 이 캠페인을 통해 털모자 수백만 개와 후원금이 아프리카의 신생아들에게 전달됐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정성이 모여 아프리카의 수많은 아기들을 살려 낸 거예요. 2010년 1월 12일에는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인 아이티에 엄청난 지진이 덮쳤어요. 도시의 건물들이 무너지고 50만 명이 죽거나 다쳤어요. 피해를 입은 이재민의 수만도 150만 명이 넘었지요. “절망에 빠진 아이티를 도웁시다!” 수많은 구호 단체들이 앞다투어 아이티로 모여들었어요. 당시 ‘세이브더칠드런’은 지진이 나기 훨씬 전부터 아이티에서 구호 활동을 펼치던 중이었어요. ‘세이브더칠드런’의 활동가들은 평상시의 구호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절망에 빠진 아이티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구호 활동 계획이 필요해요.” 활동가들은 새로운 장기 구호 활동 계획을 세웠어요. 지금도 ‘세이브더칠드런’은 이 계획에 따라 아이티를 돕기 위한 활동을 계속해 나가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후원금을 보내 돕고 있지만, 아프리카에는 여전히 배고픈 어린이들이 많이 있어요. “아프리카에 빨간 염소를 보냅시다!” ‘세이브더칠드런’은 2010년부터 긴급 구호가 선포 된 서아프리카 사헬 지역에 빨간 염소를 보내기로 했어요. “왜 하필이면 빨간 염소예요?” “빨간 염소는 건조한 날씨에도 조금만 먹고 살아남을 수 있어요. 게다가 염소젖은 어린이들에게 단백질과 영양소를 공급해 주는 훌륭한 음식이에요. 또 염소는 1년에 3~4마리의 새끼를 낳기 때문에 가정 경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이렇게 시작된 ‘아프리카에 빨간 염소 보내기’ 운동은 ‘세이브더칠드런’의 새로운 생계 수단 지원 운동으로 현재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큰 희망이 되고 있어요. ‘세이브더칠드런’에서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여 서로 협동하며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우리는 재난이 발생한 곳에 직접 가서 난민을 도와요.” “우리 엄마들은 아기들을 위해 뜨개질을 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학생들이나 아빠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지요.” “우리는 후원금을 내고 있어요.” 이렇게 자원봉사자들은 직접 봉사 활동에 참여하거나, 또는 결연을 맺은 개인이나 지역에 후원금을 기부하는 방법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오늘도 ‘세이브더칠드런’의 자원봉사자들은 ‘고통받는 어린이가 없는 세상’을 꿈꾸며 세계 곳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답니다.
불우한 이웃을 돕는 사랑의 군대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번화한 거리 한 가운데서 모금 활동을 하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요. 그들은 붉은색으로 칠한 냄비를 길 한가운데 걸어 놓고 딸랑딸랑 종을 울리며 큰 소리로 외치지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사랑을 나눕시다.” 이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구세군 병사들이에요. 구세군은 군인처럼 제복을 갖춰 입고 활동하지만 전쟁을 하는 군대가 아니라 어려운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기독교 선교회예요. 구세군 병사들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모금 운동을 벌여요. 가난한 이웃들을 돕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지요 1864년 어느 날, 한 쌍의 중년 남녀가 영국의 수도인 런던 동쪽 빈민가를 찾았어요.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골목을 차례로 돌며 따뜻한 빵과 음식을 나눠 주었어요. 눈이 쏟아지는 추운 겨울이었지만 주민들은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채 거리로 나와 도움을 청하고 있었어요. 석탄이 없어 불을 때지 못하는 집이 대다수였고, 심지어는 아이를 낳았지만 젖이 나오지 않아 아이를 안은 채 울고 있는 여인도 있었어요. “아,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러게 말예요. 곳곳에 하느님의 집인 교회가 넘치는데 어찌하여 저들은 저토록 비참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요?” 남자와 여자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어요. 중년의 남녀는 감리교회 목사인 윌리엄 부스와 그의 아내 캐서린 부스였어요. 그들은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빈민가에서 구호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윌리엄은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가 필요해요. 지금의 교회로는 그들의 아픔을 충분히 어루만질 수가 없어요.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새로운 교회,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필요해요.” 남편의 말에 캐서린도 맞장구를 쳤어요.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여보, 우리 함께 방법을 찾아봐요.” 잠시 뒤 아내가 다시 물었어요. “그렇다면 기존의 교회를 버려야 할까요?” 남편 윌리엄이 고개를 저었어요. “오오, 아니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지금의 교회와 똑같이 해야 해요. 다만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빈민 구제에 적극 나서자는 거예요. 이를테면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사업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거예요.”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가 기쁜 얼굴로 대답했어요.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저도 최선을 다해 도울게요.” 부스 부부는 서로의 손을 마주 잡고 남은 생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기로 맹세했어요. 가난한 집의 아들로 태어난 윌리엄은 한때 아버지의 뜻에 따라 전당포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윌리엄에게 전당포 일은 맞지 않았어요. “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 윌리엄은 목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당포 일을 그만두고 거리에서 설교를 하기 시작했어요. 동갑내기였던 캐서린은 14세 때 척수염을 앓아 1년 동안 누워 지내며 많은 책을 읽었어요. 이때 읽은 성경에 깊은 감동을 받아 성경 공부 모임을 만들기도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캐서린은 우연히 광장을 지나가다가 ‘가난한 사람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윌리엄의 설교를 듣고 깊이 공감했어요.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1855년 6월,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 부부가 되었답니다. 결혼 이후 윌리엄은 감리교회 목사로 일하며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어요. 자신이 속한 교단이 아니더라도 설교를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온 힘을 다해 설교를 했어요. 윌리엄은 성경의 내용을 앵무새처럼 외는 설교가 아니라 진심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설교를 했기 때문에 그의 명성은 점점 더 높아만 갔어요. “윌리엄 목사님, 목사님은 우리 교회 소속이 아닙니까?” 하루는 그를 시기하던 동료 목사가 물었어요. “맞습니다. 무슨 일이죠?” 윌리엄이 정중하게 묻자 그가 대답했어요. “우리 교회 소속이면 우리 교회를 위해서만 일하세요.” 동료 목사의 정중한 충고에 윌리엄은 절망했어요. ‘아아, 신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경계가 어디 있단 말인가.’ 결국 윌리엄은 감리교회를 나와야 했어요. 그는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여기저기를 떠돌며 순회 복음 전도사로서 일했어요. 전국을 떠돌며 일을 하느라 그의 가족들은 자주 이사를 가야 했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윌리엄의 설교를 듣던 캐서린은 자신도 남편처럼 청중 앞에서 설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요. “여보, 오늘은 나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당신이라면 틀림없이 훌륭한 설교를 할 수 있을 거요.” 윌리엄은 캐서린에게 용기를 주었어요. 용기를 얻은 캐서린은 앞으로 나가 간증을 했어요. 그날 그녀의 간증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으로 이끌었어요. 이 일은 그 뒤 구세군에서 남녀가 어떤 차별도 받지 않고 평등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빈민가에서 가난한 이들의 아픔을 목격한 뒤 부스 부부는 ‘기독교 선교회’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하지만 이들 부부의 활동은 기존 교회로부터 수없이 많은 공격을 받았어요. 그 이유는, 교회가 외면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했기 때문이에요. “술에 취해 거리에서 잠자는 부랑아들을 교회에서 받아 주자니 미친 거 아냐?” “맞아요. 부랑아는 하나님도 버린 자들이잖아요.” “심지어는 길에서 술을 파는 여자들에게까지도 구원받을 수 있다며 숙소를 제공한다고 해요.” 사람들을 모이기만 하면 부스 부부가 하는 일을 비난했어요. 하지만 그들 부부는 흔들리지 않았어요. “가난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자식입니다. 인간은 평등합니다. 거리의 부랑아도, 술을 파는 여인도 다 사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부스 부부는 사람들을 설득했어요. 그러자 큰 교회, 부자 교회에서 강제로 쫓겨난 사람들이 하나둘씩 기독교 선교회로 모여들었어요. 당시에는 영국의 산업 혁명 시기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온 사람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해 먹을 것조차 구걸해야 하는 가난한 신세가 되었지요. 부스 부부는 빈민가를 돌며 천막을 치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파했어요. 가까운 곳에 천막 교회가 생기자 평소 교회를 가지 못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교회로 찾아왔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버린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사람들은 교회에 들를 때마다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표현했어요. 당시 교회는 부자들을 위해 존재했어요. 부자들은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 교회에 모여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에 오는 건 용납하지 않았어요. 교회에 용무가 있는 가난한 사람들은 쪽문을 통해 겨우 교회에 들어올 수 있었고, 이때도 몸에서 냄새가 난다며 경비들에 의해 밖으로 쫓겨나기 일쑤였어요. ‘저들은 입으로 사랑을 실천한다고 중얼거리면서 교회에 앉아 자신이 천국 갈 궁리만 하고 있구나!’ 윌리엄은 이런 교회와 신도들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있었어요. 교회에 나올 것을 권유해도 그들은 고개를 저었어요. “교회는 부자들이 다니는 곳 아닌가요? 우리는 예배에 입고 나갈 변변한 옷 한 벌 없답니다.” 윌리엄과 캐서린은 그들의 생각을 바꾸고자 노력했어요. “하나님은 좋은 옷과 헌 옷을 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구분할 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졌다고 생각하던 많은 사람들이 윌리엄 부부의 설교를 듣고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어요. “우린 이제 새사람이 되기로 했어요. 술도 끊고 담배도 끊었답니다. 제발 우리를 받아 주십시오.” 그들 부부 주변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하루는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이었어요. 비가 내리자 포장되지 않은 빈민가 골목길은 금세 진흙탕으로 변하고 말았어요. 천막 교회에도 비바람이 몰아쳐서 천막이 날아가고 사람들은 모두 비에 흠뻑 젖고 말았어요. “비 때문에 예배를 멈추어야 하다니!” 윌리엄이 하늘을 쳐다보며 한탄할 때였어요. “괜찮다면 우리 집으로 갑시다. 우리 집에 가면 비를 피해 예배를 계속 진행할 마땅한 곳이 있어요.” 다리를 저는 마부노인이 다가와 제안했어요. “좋습니다. 노인장의 집으로 갑시다.” 노인이 안내한 곳은 말들을 키우는 마구간이었어요. “비를 피하기엔 아주 훌륭한 곳입니다.” 비록 냄새나는 마구간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예배를 마칠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았어요. 기독교 선교회는 어느 곳이든 사람들이 모이면 교회가 되었어요. 먼지 쌓인 창고와 지하실, 버려진 옥상과 물건을 파는 상점, 심지어는 돼지우리에서 예배를 보기도 했어요. “드디어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만났어.” “이게 다 대장 덕분이야.” 사람들은 윌리엄 부스를 대장이라고 부르며 그를 믿고 따랐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기독교 선교회에 참여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 갔어요. 1878년이 되자 부스 부부가 이끄는 기독교 선교회는 교역자만 36명에 이르는 매우 큰 단체가 됐어요. ‘이러다가 기존의 교단처럼 타락하는 건 아닐까?’ 선교회가 성장할수록 윌리엄의 고민도 커졌어요.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는 원래 로마 가톨릭교회와 그리스 정교로 나뉘어 있었어요. 그러다 가톨릭교회가 면죄부를 파는 등 타락의 길을 걷자 루터와 칼뱅이 종교 개혁을 단행, 개신교라는 새로운 종파를 만들었지요. 윌리엄은 기독교 선교회 역시 그들처럼 나중에 타락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거예요. “다른 교단보다 엄격한 윤리 규칙이 필요해. 차라리 군대식으로 교회를 바꾸는 건 어떨까?” 윌리엄이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의견을 물었어요. “우선 교역자 회의에서 당신의 의견을 말해 봐요.” 아내의 태도는 신중했어요. “오래도록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우리 조직을 군대식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또 이름도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는 군대라는 뜻으로 ‘구세군’으로 부를까 합니다.” 윌리엄은 교역자 회의에서 자신의 뜻을 전했어요. “대장님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군대가 되어 세상에 사랑을 전파합시다!” 교역자들은 만장일치로 찬성했어요. 힘을 얻은 윌리엄은 1878년 11개 조의 ‘구세군교리문’을 제정했어요. 회심은 일종의 선언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고용된 봉사자의 삶을 살겠다는 맹세예요. 병사가 되면 술과 담배를 금하고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함은 물론, 늘 타인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야 해요. “구세군 병사들은 항상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며 한 국가의 시민이기 이전에 세계 시민이라는 생각을 갖고 차별과 맞서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윌리엄은 병사들에게 힘주어 말했어요. 구세군 병사의 진정한 의미는 세상의 악과 싸우는 하나님의 병사라는 뜻이며, 그들이 속한 군대가 바로 구세군이 되는 거예요. 한편 구세군이 빠르게 교세를 확장해 나가자 이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수시로 구세군을 공격하고 비난했어요. 구세군 교회의 대부분은 여전히 마땅한 건물도 없이 거리에 천막을 짓고 예배를 드렸어요. 구세군 병사들이 모여 예배를 보고 있으면 수시로 불량배들이 나타나 돌을 던지고 괴롭혔어요. 1882년 한 해에만 부상을 당한 사관과 병사의 수가 700명으로 집계되었어요. “큰일 났습니다! 교회 천막이 불에 타 버렸어요.” 구세군 천막이 하룻밤 사이에 불타 버리고 교역자가 돌에 맞아 쓰러져도 경찰은 오히려 폭력을 먼저 유도했다며 구세군 병사들을 탓했어요. 구세군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상인들의 불만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어요. “구세군 때문에 술집 손님이 반으로 줄었단 말이오. 도대체 술과 하나님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요?” 구세군이 술을 엄격히 금했기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알코올에 중독되었던 사람들이 술을 끊자 하나둘 문을 닫는 술집이 늘어났어요. 상인들은 구세군이 경제를 망치고 있다며 원망을 퍼부었어요. 그러나 구세군에 대한 핍박이 늘어 갈수록 오히려 신도의 수는 점점 더 증가했어요. 이제 구세군은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가 교회의 수가 200여 개에 이르는 거대한 조직이 되었어요. 구세군은 먼 나라에도 사관들을 파견했어요. 1880년 1월에는 조지 스콧 레일턴과 여섯 명의 여사관이 전도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어요. 뉴욕에 도착한 그들은 예배 모임을 열 수 있는 적당한 장소를 빌리려 했으나 뉴욕 시장이 허가를 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이미 충분한 수의 목사들과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 군복을 입은 선교사들은 필요 없소.” 레일턴 일행은 고민 끝에 마침내 결심했어요. “이럴 게 아니라, 밖으로 나갑시다. 우리 구세군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우리는 가난한 자들의 편이었어요.” 그들은 거리로 나가 노숙자와 술주정뱅이들을 대상으로 예배를 보기 시작했어요. 어떤 때는 극장에서 공연하는 중간 쉬는 시간에 설교를 하기도 했지요. 그러자 뉴욕 시민들이 서서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몇 년 뒤 뉴욕의 구세군 신도는 수천 명으로 불어났답니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은 세계 각국에 널려 있습니다. 머물지 말고 진군을 계속하세요.” 총사령관 윌리엄의 지휘에 따라 구세군의 사관들은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전도를 계속해 나갔어요. 선교를 나가는 사관들은 구세군 사관 학교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고 해외로 파견되었어요. 또 가는 곳마다 군악대를 만들어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어요. “가난한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눕시다!” 구세군 병사들은 노래를 부르며 소리쳤어요. 그러자 처음에는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던 사람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구세군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이제 구세군이 나타나면 이렇게 외쳤어요. “군복을 입은 하나님의 병사들이 나타났다!” 어느 추운 겨울날, 윌리엄은 큰아들과 런던 다리를 지나다 노숙자들이 추위에 몸을 떨며 자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집으로 돌아온 윌리엄이 큰아들에게 질문했어요. “너는 길에서 잠든 사람들을 보면서 무얼 느꼈느냐?” 큰아들이 대꾸했어요. “아버지, 노숙자는 어딜 가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윌리엄이 소리쳤어요. “그럼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아야만 한단 말이냐? 지금 당장 나가서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은 큰아들은 우선 노숙자들이 추위를 피해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을 찾았어요. 그는 이웃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100여 명이 잠을 잘 수 있는 커다란 창고를 구할 수 있었어요. 이 일을 계기로 구세군은 노숙자들이 추위에 얼어 죽지 않도록 방비하는 쉼터 사업을 새롭게 시작했어요. 1890년, 윌리엄은 그간 활동하며 느낀 점을 적은 암흑의 영국과 그 출구라는 책을 출판했어요. 암흑의 영국과 그 출구는 영국 시민의 3분의 1이 극도의 가난 속에서 살고 있으니, 부자들이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호소하는 내용이었어요. 정치가들은 윌리엄의 책을 대놓고 비난했어요. “누가 보면 런던 사람 대부분이 굶어 죽는 줄 알겠어.” “윌리엄은 공산주의자가 분명해. 선동을 해서 조만간 폭동을 일으킬 아주 위험한 인물이라고!” 하지만 윌리엄이 말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조 대책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았어요. 이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만 부나 팔려 나갔어요. 윌리엄은 이 책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쓸 수 있는 13만 파운드라는 거금을 모을 수 있었어요.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일자리가 필요해요.” 구세군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영국의 주요 도시에 직업 안내소를 설치했어요. 또한 일자리를 찾는 노동자들이 며칠씩 머물며 쉴 수 있는 장소도 만들었지요. 구세군은 직접 농장을 사들여 일꾼들을 고용하는 등 계속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찾아 주었어요. 1890년대 이후 구세군이 있는 모든 지역에는 아동 복지 시설과 알코올 중독자 및 부랑아를 위한 시설, 여성과 노인들을 위한 시설들이 세워졌답니다. 구세군은 아직 ‘복지’라는 개념이 무르익지 않았던 시기에 가진 자들과 못 가진 자들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상호 협동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갔어요. 구세군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만 한 것이 아니에요. 사회를 바꾸는 일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구세군 안전성냥’도 그중 하나예요. 당시에는 성냥의 불을 붙이는 빨간 부분을 만들 때 사람에게 해로운 인을 사용해서 많은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다가 인 중독으로 쓰러졌어요. “인은 위험하니 재료를 바꾸도록 해 주세요.” 구세군은 정부를 상대로 수없이 민원을 넣었어요. 그러나 누구도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어요. 인을 대신할 재료값이 비쌌기 때문이에요. 그러자 윌리엄은 직접 공장을 사들여서 인이 들어가지 않은 ‘안전성냥’을 생산해 팔기 시작했어요. “안전한 성냥 사세요! 인이 없는 안전성냥 사세요!” 구세군의 안전성냥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어요. 그러자 기존의 성냥 공장들도 어쩔 수 없이 안전성냥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갔어요. 1890년 윌리엄은 큰 슬픔을 겪어야 했어요. 구세군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반평생을 구세군과 함께했던 동지인 아내 캐서린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거예요. “사랑하는 캐서린! 비록 당신이 먼저 내 곁을 떠나지만 우리는 언제나 함께 뜻을 펼칠 거요.” 윌리엄은 눈물을 흘리며 캐서린에게 작별 인사를 했어요.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윌리엄은 쉬지 않고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어요. 구세군은 전 세계로 활동 범위를 넓혀 갔어요. 미국, 호주, 아프리카, 아시아에도 구세군이 생겨났어요. “영혼을 구원하고, 세상의 악을 무찌르러 가자!” 여든 살이 된 윌리엄은 백내장으로 시력마저 잃었지만 선교 활동은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1912년 4월, 런던으로 돌아온 윌리엄은 천여 명의 사관들을 모아 놓고 연설을 했어요. 윌리엄은 단상에 올라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세상의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구세군의 사랑은 멈춤 없이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다 같이 기억합시다. 신은 결코 높은 곳이 아니라 늘 낮은 곳을 바라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윌리엄이 연설을 마치자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어요. 그날은 윌리엄의 83번째 생일날이었어요. 가난한 자들의 아버지였던 윌리엄은 그날 연설을 끝으로 은퇴한 뒤, 같은 해 8월 20일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어요. 윌리엄은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어요. “세상에는 국경이 없다. 오직 인류애만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 구세군이 처음 들어온 것은 1908년이에요. 그보다 한 해 전인 1907년, 윌리엄은 일본을 방문하여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직업여성들의 권리를 되찾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어요. 그때 두 명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찾아왔어요. “우리는 조선에서 온 유학생들입니다. 우리 조선은 지금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습니다. 구세군이 조선에 들어와 준다면 우리 국민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윌리엄은 즉석에서 이들의 청을 들어주었어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1908년 윌리엄의 명을 받은 호가드 사관과 그의 부인이 조선 땅으로 들어와 선교를 시작했어요. 그 뒤 약 10여 년 만에 한국 구세군은 78개의 교회와 5만여 명의 신도를 가진 조직으로 발전했어요. 우리나라에 들어온 구세군은 먼저 빈민 구제부터 시작했어요. 추운 날씨와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급식소와 장작 배급소를 세웠고, 고아원도 세웠어요. 당시 조선 사람들은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 술에 의지하는 일이 많았어요. “조선이 독립을 하려면 힘을 모아야 하는데 일부 남자들이 절망에 빠져 술로 세월을 낭비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먼저 정신을 차리고 술부터 끊어야 합니다!” 구세군은 거리로 나가 금주 운동을 시작했어요. 또 1920년에는 우리나라에 자선냄비가 처음 등장했어요. “어려운 이웃을 도웁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눕시다!” 구세군의 자선냄비는 전국적으로 큰 호응을 얻어 현재까지 이어진 대표적인 연말 행사가 되었답니다. 초대 사령관이었던 윌리엄 부스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아들 윌리엄 브람웰 부스가 구세군의 2대 사령관을 맡게 되었어요. 브람웰은 때때로 사람들 앞에서 아버지와 함께 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아버지는 런던 다리의 노숙자들을 보고 제게 왜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냐며 혼을 내셨지요.”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뜻을 잘 이해하고 있던 브람웰은 세계 곳곳에 구세군 군대를 키우는 일을 계속해 나갔어요.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커다란 시련이 닥쳤어요. 연이어 1, 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진 거예요. 두 번의 전쟁으로 많은 구세군 건물들이 불에 타고 각 교회 사이의 연락도 두절되었지요. 그러나 구세군 병사들의 활약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되었답니다. “아, 맛있는 커피 한잔 마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날, 영국 병사들은 흐르는 땀을 닦으며 커피를 그리워했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총알과 포탄을 뚫고 민간인 트럭 한 대가 병사들이 있는 방공호 옆으로 다가왔어요. 차에서 내린 이들은 커피를 손에 든 구세군 병사들이었어요. 구세군은 독일군 비행기 때문에 영국 군인들이 방공호에 고립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들은 곧바로 이동식 식사 부대를 조직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전쟁터로 달려온 거예요. “구세군이 커피와 음식을 가지고 왔다!” 며칠 동안 음식을 먹지 못했던 병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구세군 병사들을 얼싸안았답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이 모두 끝난 뒤 런던에 본부를 둔 구세군은 다양한 사업을 계속해 나갔어요. “전쟁이 끝났습니다. 이제 다시 세상을 구원하러 나갑시다!” 구세군의 이름 없는 병사들은 곳곳에서 헌신적으로 일했고 젊은 사관들의 활약도 계속되었어요. 네덜란드의 의사 빌헬름 빌은 인도네시아 자바 섬으로 들어가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평생을 그들을 도왔어요. 또 프랑스의 젊은 장교 찰스 뱅은 악명 높은 죄수들이 수감된 ‘악마의 섬’으로 자원하여 들어가 살인죄를 저지른 죄수들을 회심시켰어요. 6·25 전쟁이 발발한 대한민국에서는 노영수, 김삼석 등 젊은 사관들이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에 반대하며 신도들을 지키다가 목숨을 잃기도 했답니다. 1883년,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는 한 언론 기관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가난한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구세군은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영원토록 활약할 것입니다.” 윌리엄 부스의 말은 이미 현실이 되었어요. 구세군은 현재 세계 120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2만여 개의 교회에서 112개 이상의 언어로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어요. 또한 전 세계적으로 3,000개가 넘는 사회 복지 단체와 병원, 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지요. 지금도 수십만 명의 구세군 병사들은 창립 초기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어요. 윌리엄 부스와 캐서린 부스는 작은 결심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마법을 불러일으켰어요. 가난한 이웃과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일으켜 세웠지요. 그렇다면 이것이 오직 부스 부부의 결심만으로 이루어진 것일까요? 부스 부부는 매일 거리로 나가 이렇게 외쳤어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힘을 모아 봉사하면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큰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합시다!” 부스 부부는 뜻을 같이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협력을 이끌어 냈고, 또한 그들의 힘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구세군을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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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기간 동안 백성들의 삶을 편안하게 하고 정치, 경제, 문화, 국방, 과학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업적을 남긴 임금을 성군이라고 해요. 조선 왕조는 태조부터 순종까지 총 27명의 왕이 나라를 다스렸어요. 그중에서도 세종은 ‘대왕’이라는 호칭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성군으로 꼽히지요. 나라가 평안하여 백성들이 행복하게 사는 시대를 태평성대라고 해요. 세종 대왕은 32년 동안 나라를 태평성대로 이끌었어요. “그 당시는 외적의 침입이 잦은 데다 가뭄과 홍수가 심해서 흉년이 자주 들었다는데, 어떻게 나라를 잘 다스릴 수가 있지?” 세종 때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어요. 그런데도 세종은 어떻게 성군이 되었을까요? 세종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어요. 이 시기 조선은 건국한 지 얼마 안 되는 때라 정치적으로 무척 불안정 했어요. 그래서 태종은 이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강력한 ‘왕권 정치’를 펼쳤어요. 주로 왕이 혼자 나라의 중요한 일을 모두 처리하는 것을 왕권 정치라고 해요. 왕의 권력이 너무 커지자 신하들이 반발했어요. “독재 정치를 하면 아니 되옵니다, 전하!” 하지만 태종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어요. “아직은 나라가 안정되지 않았으니 내 뜻에 따르시오!” 태종 시절에는 이렇게 임금 마음대로였어요. 하지만 세종 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세종 대왕은 왕과 신하, 그 어느 쪽으로도 권력이 기울지 않도록 바른 정치를 펼쳤어요. 크든 작든 모든 일을 신하들과 의논하여 차근차근 풀어 갔지요. 왕과 신하들이 권력을 두고 다투지 않으니 정치가 잘 풀려 저절로 태평성대가 이어진 거예요. 세종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충녕 대군으로 불렸어요. 위로는 세자인 양녕 대군과 효령 대군이라는 두 형이 있었지요. 태종은 자신의 왕권을 튼튼히 하고, 세자에게 안정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어요. 누구든 권력을 탐하면 가차 없이 처단해 버렸지요.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왕자들의 외삼촌도 목숨을 잃었어요. 양녕 대군은 이 일에 크게 상심하여 마음을 못 잡고 방황했어요. 요즘으로 치면 비행 청소년이 된 거예요. 태종은 그런 양녕 대군이 못마땅했어요. “장차 왕위를 이어받아야 할 세자가 학업은 뒷전이고 노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으니 어쩌면 좋단 말이냐!” 날이 갈수록 세자의 행실을 탓하는 신하들이 점점 많아졌어요. 그러자 결국 태종은 양녕 대군을 폐하고 새로이 충녕 대군을 세자에 봉했어요. 태종이 둘째도 아닌 셋째 충녕 대군을 세자로 봉한 것은 워낙 지혜롭고 총명한 데다 성품도 어질었기 때문이에요. 충녕 대군의 동생 성녕 대군은 어릴 때부터 몸이 많이 아팠는데 충녕 대군은 동생이 아플 때마다 방으로 달려가 밤을 지새우며 간호했어요. 그뿐 아니라 맏형인 세자 양녕 대군의 행실이 지나치다 싶을 때는 진심 어린 충고를 하기도 했어요. 부왕이 자신을 세자로 봉했을 때는 둘째 형인 효령 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도록 설득하기도 했지요. 태종은 그 착한 마음에서 성군의 자질을 발견한 거예요. 또한 충녕 대군은 어릴 때부터 책을 너무 많이 읽어 눈병이 날 정도로 학문에 열중했어요. 충녕 대군이 지나치게 독서에 몰두하자 보다 못한 태종이 하루는 내관들에게 명을 내렸어요. “세상에!” 얼마 후, 내관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조용히 쉬고 있는 줄 알았던 충녕 대군이 온 방을 뒤져 병풍 뒤에 숨어 있는 책을 찾아내 읽고 있었던 거예요. 태종은 결국 그런 충녕 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어요. “부디 진정으로 백성들을 위하는 좋은 임금이 되어라.” 태종은 왕위를 물려주면서 간곡한 당부의 말을 했어요. 이로써 조선 제4대 임금, 세종의 시대가 열린 거예요. 세종이 즉위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집현전’을 궁궐 안에 설치한 것이었어요. 집현전은 고려 때부터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이었으나 이 시기에는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해 있었어요. 세종은 집현전을 궁궐 안으로 들여 인재들을 불러 모았어요. 그들을 집현전 학사라고 하지요. 집현전은 조선 초기 유학의 발달에 큰 역할을 했어요. 집현전 학사들은 왕 앞에서 유학을 강의하고 나라를 이끌어 갈 방향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였어요. 이것을 경연이라고 해요. 세종은 아무리 바빠도 경연에 꼭 참석했어요. 신하들이 왕과 대화할 기회가 많아질수록 정치에 도움이 되는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농업, 천문, 지리, 의학, 문화, 예술 등 세종 때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한 온갖 아이디어가 대부분 집현전 학사들과의 경연장에서 나왔지요.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며, 임금의 하늘이다!” 세종은 신하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어요. 백성이 없으면 국가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에요. 실제로 세종은 모든 일을 백성들 편에서 생각했는데 관리를 등용하는 일도 마찬가지였어요. 황희는 세종 때의 유명한 재상이지만 한때는 세종의 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이었어요. 태종이 양녕 대군을 폐하고 충녕 대군을 세자로 삼을 때 앞장서서 가장 반대했던 사람이 황희였어요. “맏아들이 아닌 왕자에게 왕위를 잇게 하면 나라에 큰 혼란이 닥칠 것입니다!” 태종은 평소에 누구보다 신임했던 황희가 강하게 반기를 들고 나서자 난감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다면 끝내 왕명을 거역할 것이오?” 태종은 협박도 하고 달래도 보았으나 황희는 뜻을 꺾지 않았어요. 결국 태종은 황희를 귀양 보내고 말았어요. 그런데 세종은 자신이 왕위에 오른 뒤 황희를 다시 조정으로 불러들였어요. 비록 자신을 반대한 인물이지만 최고 권력자 앞에서도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은 황희의 기개를 높이 샀던 거예요. 맹사성은 세종 때의 대표적인 청백리예요. 그는 만백성이 우러러보는 정승의 자리에 올라서도 공적인 업무가 아닌 일에는 말이나 가마를 타지 않았어요. 대신 걷거나 소를 타고 다녔지요. 맹사성의 고향은 온천으로 유명한 지금의 충청남도 온양인데, 여기에는 세종과 얽힌 사연이 있어요. 세종은 날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정사를 돌보느라 당뇨병, 관절염, 눈병 등에 시달렸어요. “전하, 저희 고향에는 따뜻한 물이 솟는 온천이 있는데, 관절염에 효험이 있다 하옵니다.” 맹사성의 권유에 따라 세종은 온천욕을 다녀왔어요. 그러고는 몹시 흡족해하며 ‘온양’이라는 마을 이름을 내렸어요. 또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일반 백성들이 오랜 기간 머물면서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필요한 시설을 마련하게 했어요. 온양 온천에는 좋은 것을 백성들과 나누고자 하는 세종의 따스한 마음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답니다. 세종은 황희, 맹사성, 윤회 세 정승을 등용하여 각자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업무를 맡겼어요. 황희는 모든 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편이었어요. 맹사성은 성품이 어질고 섬세한 데다 예술가 기질이 강했어요. 그래서 세종은 인사와 행정, 군사의 권한을 황희에게 맡기고, 훗날 김종서와 같이 국방을 분담하게 했어요. 또한 맹사성은 제도 정비와 교육을 맡게 하고, 윤회는 맹사성과 함께 과거 시험과 예술 분야를 나누어 맡게 했어요. 어느 한 사람에게만 권력이 집중되면 정치가 어지러워질까 봐 염려한 거예요. 세종은 복지 정책에도 관심이 많아 직접 다음과 같은 명을 내렸어요. “남편이 없는 여자와 고아들에게는 곡식을 지급하고 노인과 장애인의 세금을 면제하는 것은 물론, 장정 한 명씩을 보내 돌봐 주도록 하라!” 왕명이 내리자 많은 백성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어요. 다음은 왕의 일상을 기록한 (세종실록)에 나오는 글이에요. “내가 두 눈이 흐릿하고 아파서, 봄부터 어두운 곳은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는 걷기가 힘들었다.” 세종이 문안 인사를 온 관리에게 했던 말이라고 해요. 당시 사관은 왕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심각한 눈병에 걸렸다고 적었어요. 현대 의학으로 보면 이 무렵 세종의 시력에 큰 문제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고 해요.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까지 할 정도로 눈병이 심했던 세종은 시각 장애인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궁궐에 드나드는 시각 장애인에게 벼슬을 내리고 시각 장애인을 위한 관청에 쌀과 콩을 지원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정작 본인은 몸이 아파도 쉴 수가 없었어요. 왕으로서 할 일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에요. 세종은 조선의 왕들 가운데 가장 많은 업적을 남겼어요. 우선 백성들이 농사를 잘 지어 풍년이 들도록 직접 나서서 관리들을 다그쳤어요. “관리들은 앉아만 있지 말고 지방으로 내려가라! 가서 농사 경험이 많은 사람들에게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는 비법을 알아 오도록 해라!” 세종의 명을 받은 관리들은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벼농사가 잘되게 하려면 제일 중요한 게 무엇입니까?” “종자는 어떻게 골라야 합니까?” 관리들은 각 지역의 경험 많은 농부들에게 듣고 배운 것을 하나부터 열까지 기록해 왔어요. 세종은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합쳐 책으로 펴냈어요. 이 책이 바로 (농사직설)이에요. 관리들은 이 책의 내용을 백성들에게 알려 주고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또한 세종은 백성들의 건강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세종은 다시 관리들에게 명을 내렸어요. “가난한 백성들이 비싼 약값을 들이지 않고도 스스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하라!” 세종은 우리 땅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초의 종류와 효능, 그리고 사용법까지 정리하여 (향약집성방)이라는 책을 편찬하게 했어요. 또한 동양의 의학 서적을 모두 모아서 (의방유취)라는 의학 백과사전을 편찬하기도 했어요. 이 모든 일이 집현전 학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어요.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은 뜻이 착착 맞았어요. 그만큼 소통이 잘되었던 거예요. 하루는 집현전 학사 박연이 말했어요. “전하께서 허락하시면 제가 우리 고유의 향악과, 중국의 당악, 그리고 궁중 음악인 아악을 정리해서 한 권의 책으로 편찬할까 합니다.” 세종 대왕은 무릎을 탁 치면서 기뻐했어요. 당시 조선은 문묘에 제사를 지낼 때 고려에서 쓰던 음악을 그대로 쓰고 있었어요. 그것도 음에 기준이 없어서 연주하는 사람마다 제각각이고, 악기도 제대로 갖추어진 것이 없었지요. “그렇다면 공이 우리 조선의 실정에 맞는 악보와 악기, 가사를 새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이오?” “예, 전하.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참 좋은 생각이오! 도움이 필요하면 내게 말하시오.” 세종은 박연의 말을 듣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어요. 당시 음악은 천한 사람들만 하는 것으로 생각해 관리들은 누구도 음악에 관심이 없었어요. 박연은 세자 시절 세종의 스승이었고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양반집 자손이었어요. 그래서 조정 신하들 중에도 박연을 비웃는 사람이 많았어요. 하지만 박연은 이 일에 자신의 모든 재능을 쏟아부어 우리 돌로 만든 편경이라는 악기를 개발하고 중국에서도 오래전에 사라진 아악을 되살렸어요. 당시 농민들은 그해 추수한 곡식의 10분의 1을 세금으로 내도록 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지역의 벼슬아치들과 서울에서 내려온 관리들에게 이중으로 착취를 당했어요. 그들은 세금을 깎아 준다는 구실로 뇌물을 요구했어요. 세종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땅의 상태와 수확량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공법’을 실시하기로 하고 한 가지 조건을 달았어요. “백성이 원하지 않으면 시행할 수 없다! 이제부터 공법 시행의 찬반 의견을 알아보도록 하라!” 1430년 3월, 세종 대왕은 국민 투표를 실시했어요. 그해 8월까지 실시된 투표 결과 총 17만여 명이 참여하여 9만 8,657명이 찬성하고, 7만 4,148명이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어요. 그 시절에 국민 투표를 실시하다니, 정말 놀랍지요? 세종이 위대한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에요. 공법의 시행으로 땅의 넓이에 따라 곡식의 수확량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정해졌어요. 곡식을 손으로 집었을 때 쥐어진 양을 한 줌이라고 해요. 이것이 열 줌이면 한 묶음, 열 묶음이면 한 짐이에요. 그리고 백 짐을 거둬들일 수 있는 땅을 1결이라고 해요. 세금을 매기는 기준은 풍년과 흉년에 따라서 달라졌어요. 농사가 잘되어 세금을 가장 많이 거둬들이는 해는 ‘상상년’, 흉년이 심하게 든 해를 ‘하하년’이라 하고, 이를 다시 9단계로 나누어 정확히 정해진 만큼만 세금을 거둬들였어요. “이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군!” “그러게 말이야. 이제 나라에 세금 내는 게 아깝지 않아.” “이게 다 훌륭한 임금님 덕분이지!” 백성들은 저마다 세종의 덕을 칭송했어요. 관리들이 제멋대로 세금을 거둬 가는 일이 없어지자 나라 곳간도 든든해졌어요. 농업이 경제의 중심을 이루는 시대에 천문학은 매우 중요한 분야였어요. 곡식의 파종과 수확의 시기를 맞출 수 있기 때문이에요. 또한 옛날 사람들은 일식과 월식 같은 천체의 변화에 하늘의 계시가 담겨 있어 만일 그것을 알아맞히지 못하면 나라에 큰 재앙이 닥친다고 믿었어요. 당시 지금의 기상청과 같은 역할을 한 곳은 서운관이에요. 간혹 서운관에서 일식을 예보한 시간이 틀릴 때가 있었어요. 그때마다 조정이 발칵 뒤집혔어요. 당시만 해도 전 세계에서 자기들만의 달력을 가진 나라는 중국과 아라비아뿐이었어요. 이에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에게 명했어요. “우리에게 맞는 정확한 시간 계산법을 개발하도록 하라!” 집현전 학사들은 왕명에 따라 현대의 역법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정교한 달력을 만들어 냈어요. 이것이 바로 우리 고유의 역서인(칠정산)이에요. 어느 해에는 충청도와 황해도 일대에 왜구들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들어왔어요. 왜구들은 고려 때부터 끈질기게 우리 해상에 들어와 노략질을 한 일본의 해적 집단이에요. 분노한 세종은 이종무에게 명을 내렸어요. “저들의 소굴을 쳐서 본때를 보여 주도록 하라!” 이종무는 즉시 군대를 이끌고 나가 쓰시마를 정벌하고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들까지 모두 데리고 돌아왔어요. 그런데 얼마 후 왜구들은 사신을 보내 조선과 무역을 계속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했어요. 세종은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조건을 달았어요. “배는 50척만 들어오고 상인들은 20일 안에 떠나야 한다.” 그 후에도 왜구들은 장사를 더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항구 주변에서 소란을 피웠어요. 세종은 그들이 조공을 바치며 얌전히 굴면 잘 대해 주고, 반항하면 가차 없이 공격하는 방법으로 해상의 평화를 지켰어요. 왜구들뿐만 아니라 북방의 여진족들도 극성을 부렸어요. 가축을 기르며 한반도 북쪽과 만주에 흩어져 살던 여진족은 겨울이 되면 늘 곡식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우리 국경을 넘어와 노략질을 일삼았던 거예요. 조정 대신들 중에는 북쪽은 땅이 척박하여 별 쓸모가 없으니 차라리 여진족에게 내주자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지만 세종의 생각은 달랐어요. “한 뼘의 땅이라도 오랑캐들에게 내줄 순 없다!” 세종은 김종서에게 두만강과 압록강 유역에 4군 6진을 설치하게 하고 왕명을 내렸어요. “누구든 북쪽에 가서 살기 원하면 벼슬을 주고, 천민은 그 신분을 면하게 해 줄 것이다!” 왕명이 떨어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북으로 향했어요. 삭막했던 땅은 점점 조선인들로 채워졌어요. 원래 이곳은 추위가 심해 사람이 살지 않았으나 세종의 이민 정책으로 우리 영토가 되었어요. 세종은 능력이 뛰어나면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일을 맡겨 큰 성과를 이루어 냈어요.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 등을 발명한 당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은 관청의 노비였어요. 세종은 그가 발명에 특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중국으로 유학까지 보냈어요. 하지만 세종은 유학에서 돌아온 장영실이 계속 뛰어난 발명을 해 내자 노비 신분을 면해 주고 벼슬까지 내렸어요. 장영실은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천체 관측 기계인 혼천의를 비롯한 수많은 발명품으로 세종 시대를 빛나게 했어요. 장영실을 누구보다도 아꼈던 세종은 이런 말까지 했어요. “내가 장영실과 같은 시대에 산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인류 최고의 문자 ‘한글’의 탄생. 어느 날, 한 집현전 학사가 세종에게 아뢰었어요. “관리들이 횡포를 부려도 하소연할 데가 없는 백성들이 억울한 사정을 글로 써서 벽에 붙이기도 하지만, 글자를 모르는 백성들은 아무런 방법이 없습니다.” “신문고가 있지 않소?” 신문고는 태종 때 만들어진 제도로,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신문고라는 북을 울리면 왕이 직접 얘기를 듣고 판결을 내려 주는 제도예요. 그런데 신문고는 한양 궁궐 앞에 있어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이용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게다가 북을 치려면 먼저 그 앞을 지키는 관리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서 그냥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세종은 백성들의 어려움을 덜어 줄 방법을 궁리하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어요. “어려운 한자 대신 백성들이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우리 글자를 만들까 하는데, 경들 생각은 어떻소?” 세종의 말에 조정의 신하들은 깜짝 놀랐어요. “한자를 쓰지 않는 민족은 오랑캐들뿐입니다!” 최만리를 비롯한 유학자들은 기겁을 했지만 세종은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어요. “한자를 아주 없애자는 게 아니라 백성들이 배우기 쉬운 글자를 만들어 주자는 것이오.” “전하! 그래도 안 됩니다. 만약 우리가 글자를 따로 쓴다고 하면 중국이 어찌 생각하겠습니까?” 사대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던 유학자들은 당장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어요. 그러나 세종은 성삼문, 신숙주, 박팽년 등 몇몇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비밀리에 새로운 문자를 연구했어요. 세종이 새로운 문자를 창제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독서만큼 중요한 교육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일일이 관리를 시켜 백성들에게 알리는 것은 한계가 있었어요. “백성들이 책을 읽고 농사짓는 법이며 의학, 역사, 삼강오륜 등을 깨우칠 수만 있다면 그 이상의 태평성대가 어디 있겠소!” 세종은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했어요. 눈병은 점점 심해지고 갈수록 건강이 나빠졌지만 세종은 백성들이 글자를 읽고 쓰는 모습만 상상하면 기운이 불끈불끈 솟았어요. 새로운 글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우선 중국과 이웃 나라 문자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 가며 수도 없이 많은 책을 읽었어요. 하루는 밤이 늦도록 집현전의 불이 꺼지지 않고 있었어요. 세종은 내관을 시켜 누가 있는지 살짝 보고 오게 했어요. “신숙주가 숙직을 하면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내관이 말했어요. 시간이 지나 새벽닭이 울었어요. 세종은 아직도 집현전에 불이 켜 있는지 물었어요. 내관은 방금 전에 신숙주가 막 잠들었다고 말했어요. 세종은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내관에게 주면서 이렇게 명했어요. “깊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눈치채지 않게 덮어 주거라.” 세종은 이런 식으로 집현전 학사들에게 은근한 사랑을 베풀었어요.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임금의 배려에 감동한 신숙주는 더욱더 학문에 힘쓰게 되었어요. 세종 25년(1443년)에 마침내 훈민정음이 완성되었어요. 훈민정음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인데 지금은 보통 ‘한글’이라고 하지요.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맞지 않는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니, 이를 가엾게 여겨 스물여덟 글자를 새로 만들었다.” 세종이 한글을 만든 이유를 설명한 내용이에요. 훈민정음은 세계의 문자 중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이며,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된 인류의 보물이에요. 하지만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를 비롯한 유학자들은 즉시 훈민정음의 폐기를 주장했어요. 이번만큼은 세종도 언짢은 마음을 드러냈어요. “이두를 만든 설총에게는 아무런 비판도 없으면서 한글을 만든 자신의 임금에게는 끝까지 반대하는 최만리는 도대체 어느 나라 신하인가?” 최만리도 굽히지 않고 아뢰었어요. “만약 이 문자가 세상에 알려지면 수십 년이 지난 후 한자를 아는 사람은 사라질 것이고, 후학들은 한문으로 된 성현의 말씀을 멀리할 것입니다. 그리 되면 조선의 근본이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세종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어요. “우리가 이두를 사용해 온 지 오래되었지만 한자가 이 땅에서 사라졌소? 오히려 훈민정음은 한자의 학습에도 도움이 될 것이오.” 세종은 인내심을 가지고 최만리를 설득했어요. 하지만 최만리를 비롯한 여러 신하들은 끝내 새 문자 훈민정음을 반대했어요. 화가 난 세종은 그들을 모두 의금부에 가두었어요. 하지만 세종은 그들을 단 하루 만에 풀어 주었어요. 세종은 적어도 생각의 차이만으로 신하를 버리는 임금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훈민정음을 반대하는 무리 가운데 유일하게 김문과 정창손에게는 엄한 벌을 내렸어요. 김문은 처음에 훈민정음 창제에 찬성했다가 나중에 말을 바꾼 죄로 곤장을 맞았어요. 정창손은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하는 이유를 묻자 오히려 이렇게 되물었어요. “삼강행실도를 반포한 후에도 그 영향이 적었던 이유는 한문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사람은 본디 타고난 자질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한글로 삼강오륜을 가르친다고 해서 백성들이 그 뜻을 헤아리겠습니까?” 이것은 세종의 통치 철학을 부정하는 말이었어요. 어리석은 백성은 가르쳐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니까요. “그것이 백성을 하늘로 알고 덕을 베풀어 바른 길로 이끌어야 마땅한 관리가 할 소리란 말인가?” 분노한 세종은 정창손을 파직시켰어요. 김문과 정창손을 처벌한 후로 반대 세력은 더 이상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어요. “이제부터 한글로 된 책을 편찬하여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하도록 하자.” 세종은 훈민정음을 조정에 공개한 지 3년 만에 마침내 백성들에게도 알렸어요. 우리에게도 고유한 문자가 생겼다고 말이지요. 훈민정음, 즉 한글이 있기 전에는 어떤 소리도 우리 문자로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소리를 정확히 표현하는 한자음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이제 우리는 훈민정음을 통해 바람 소리와 동물 소리는 물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를 받아쓸 수 있게 되었다!” 훈민정음 편찬에 참여한 정인지의 말이에요. “말도 안 돼! 한자는 5만 자가 넘는데도 소리를 글로 쓸 수 없었는데, 고작 훈민정음 28자만으로 모든 소리를 받아쓸 수 있다고?” 사람들은 정인지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결국 훈민정음이 어떤 소리도 표기할 수 있는 완벽한 문자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어요. 얼마 후 세종은 다음과 같은 명을 내렸어요. “아전의 과거 시험에 훈민정음을 포함시키도록 하라.” 당시 최초로 나온 한글 번역서는 세종의 둘째 아들인 수양 대군이 번역한 석보상절이에요. 이 책은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다룬 것으로 세종과의 사이에서 8남 2녀를 낳은 소헌 왕후를 기리기 위한 책이에요. 세종이 정인지 등에게 명하여 완성한 용비어천가는 조선의 건국 시조들을 찬양하는 최초의 한글 노래로 현재 국가 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요. 세종은 석가모니의 공덕을 기리는 월인천강지곡을 직접 짓는 등 한글 보급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어요. “기역은 왜 ㄱ의 모양이 됐고, 니은은 왜 ㄴ이 되었을까?” “또 ㅏ와 ㅓ라는 모음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된 후 이 궁금증에 대한 비밀이 풀렸어요. 자음의 기본 글자는 ‘ㄱ ㄴ ㅁ ㅅ ㅇ’이에요. 이 다섯 자는 인체의 발성 기관 모양을 따온 거예요.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ㄴ은 혀가 윗잇몸에 닿는 모양, ㅁ은 입 모양, ㅅ은 이 모양, ㅇ은 목구멍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어요. 기본 모음은 자연의 모습을 나타낸 거예요. 아래아는 하늘의 둥근 모양, ㅡ는 평평한 땅의 모양, ㅣ는 똑바로 서 있는 사람의 모양을 본뜬 것이지요. 훈민정음은 원래 28자였는데 지금은 세 개의 자음과 한 개의 모음이 사라져 24자가 남았어요. “한글이 놀라운 점은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당시에 사람의 발음 기관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언어학자들이 한글의 우수성을 설명할 때 하는 말이에요. 또 다른 한글의 신비는 모음에 있어요. 모음의 기본 글자는 ㅡ ㅣ 인데, 가장 간단한 점과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들은 하늘, 땅, 사람의 모양을 상징하며 음양오행 사상이라는 동양 철학의 원리를 담은 것이기도 해요. 세종은 백성들이 쓰게 될 문자에 이런 철학적 의미를 새겨 둔 것이지요. 세상이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으로 이루어지듯이 이 세 개의 기본만 있으면 나머지 모음은 ㅏ ㅓ ㅗ ㅜ ㅑ ㅕ ㅛ ㅠ 이런 식으로 오른쪽, 왼쪽, 위, 아래에 하나나 둘씩 더해 가며 만들어지는 거예요. 1450년, 세종 대왕은 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어요. 백성들은 마치 어버이를 잃은 것처럼 슬퍼했지요. 문종은 한자의 소리를 훈민정음으로 정리한 동국정운을 과거 시험 과목으로 정해 부왕의 유업을 이어 갔어요. 또한 세조도 성균관의 교육 과정에 훈민정음을 포함시켜 세종 대왕의 뜻을 받들었지요. 그러나 연산군 때 한글은 뜻밖의 수난을 겪게 돼요. “앞으로는 언문을 가르치지도 말고 배우지도 말며, 이미 배운 자도 사용 못 하게 하라!” 연산군은 언문, 즉 한글을 쓰면 대역죄로 처벌한다는 왕명과 함께 한글 책을 모두 불살랐어요. 자신을 비난하는 한글 벽보가 나돌았기 때문이지요. 연산군은 이를 막으려고 애를 썼지만 비슷한 내용의 글이 자꾸 나타나자 결국 한글 사용을 금지시켰어요. 비록 한때는 천대받고 억압당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한글은 세종 대왕이 우리에게 선사한 정말 자랑스럽고 소중한 문화유산이에요. 유네스코에서는 매년 문맹 퇴치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나 단체에게 상을 주는데, 이 상 이름이 바로 ‘세종 대왕 문해상’이랍니다. 뿐만 아니라 한글의 우수성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인도네시아의 소수 민족인 찌아찌아 족이 한글을 공식 문자로 정하기도 했지요. 영국의 작가 존 맨은 이런 말을 했어요.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다!” 미국의 언어학자 게리 레드야드는 이에 질세라 더 큰 찬사를 보냈어요. “한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문자의 사치이며,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문자다!” 어때요? 말만 들어도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지지요? 이토록 자랑스러운 한글, 우리가 소중히 지켜 나가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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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어요. 손바닥만 한 작은 기계 하나에 휴대폰과 컴퓨터의 기능이 둘 다 들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스티브 잡스가 바로 이 스마트폰을 맨 처음 만든 장본인이에요. 사실 컴퓨터와 휴대폰을 처음 만든 사람들은 따로 있어요. 그런데 잡스는 휴대폰과 컴퓨터라는 전혀 다른 제품을 하나로 뭉쳐 완전히 새로운 물건을 만들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잡스의 위대함을 말할 때 이렇게 말해요. “잡스는 융합의 천재다!” 융합은 ‘서로 다른 것들을 잘 섞는 것’을 뜻하는 말로 발명에 못지않게 뛰어난 창의성이 있어야 해요. 스마트폰 역시 융합 기술을 통해 탄생한 가장 창의적인 물건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왜 그를 융합의 천재라고 하는지 알겠지요? 스티브 잡스가 세계 최초로 만든 물건은 스마트폰만이 아니에요. 그는 개인용 컴퓨터를 가장 먼저 만든 사람이기도 해요. 물론 잡스 말고도 개인용 컴퓨터를 만든 사람들은 여럿 있어요. 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쉽고 편리한 제품을 만들어 낸 사람은 바로 스티브 잡스였어요. 컴퓨터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일반인들은 개인용으로 쓸 수가 없었어요. “이거야 원! 사용법은 어떻게든 배우면 되겠지만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잖아!” 사람들은 컴퓨터가 좋다는 것은 알아도 집에 들여놓고 쓸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그 당시에 만들어진 컴퓨터는 물건 자체가 하나같이 엄청나게 컸기 때문이에요. 초기 컴퓨터는 높이가 거의 3미터에 길이 26미터, 무게가 무려 30톤이나 되는 것도 있었어요. 가장 작은 것이라 해도 보통 장롱만큼은 되고 사용법도 무척 까다로워, 국가와 기업 같은 큰 조직에서나 쓸 수 있는 물건이었지요. 스티브 잡스가 이 컴퓨터를 오늘날의 소형 컴퓨터로 만들 생각을 한 것은 겨우 초등학교 6학년 때였어요.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초등학생의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 불과 10년 정도밖에 안 걸렸다는 사실이에요. “저 컴퓨터를 내 방에 들여놓을 수 없을까?” 잡스가 거대한 컴퓨터의 몸집을 확 줄여 자신의 방에 들여놓고 자유롭게 써 보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혁신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거예요. 1955년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남자아이가 태어났어요. 아이의 운명은 시작부터 순탄하지 못했어요. 친부모가 아기를 키울 형편이 안 돼 태어나자마자 다른 집에 보내졌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요? 친아빠는 아이를 입양시키기 전에 중요한 조건을 한 가지 내걸었어요. “이 아이를 꼭 대학까지 마치게 해 주세요.” 친아빠는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찾아온 폴과 클라라라는 젊은 부부에게 그렇게 말했어요. “알겠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아이를 책임지고 대학까지 졸업시킬 것을 약속합니다.” 폴과 클라라는 계약서에 사인을 한 다음에야 아이를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어요. 그들은 아이에게 ‘스티븐 폴 잡스’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잡스의 양부모는 따뜻한 성품을 지닌 분들이었어요. 아빠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중고차를 수리해서 판매하는 일을 했어요. 엄마는 평범한 가정주부였고요. 한때 아빠의 꿈은 기계를 만드는 기술자였어요. 그래서 아빠는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잡스에게 물려주고 싶었어요. 잡스가 자라 장난감이 필요한 나이가 되자 아빠는 부속품을 뜯어 조립할 수 있는 물건을 가지고 놀게 했어요. “좋은 물건도 내부가 허술하면 가치가 떨어지는 법이란다.” 아빠는 잡스에게 어떤 물건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어요. 이때만 해도 잡스는 아빠가 가르쳐 주는 일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그보다는 전자 제품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자 아빠는 주말마다 잡스를 중고 부품 가게에 데려가 라디오나 전축 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을 구해 주었어요. 어른이 되면 예전에 무심코 들은 한마디가 불쑥 되살아나 중요한 역할을 할 때가 있어요. 어린 시절 아빠가 들려준 말은 잡스가 만드는 모든 제품의 철학이 되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철저하게 계산할 것!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유일무이한 제품만을 만든다!” 잡스가 평소 직원들에게 늘 강조하던 말이에요.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아빠와 값싸고 질 좋은 부품을 구하러 중고품 가게를 돌아다녔던 일은 잡스가 물건을 대하는 안목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또한 잡스가 사는 동네에는 어떤 건축가가 설계한 깔끔하고 단순한 구조의 아담한 주택들이 독특한 풍경을 이루고 있었는데, 잡스는 이때 느낀 강렬한 느낌을 절대 잊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느낌을 기억했다가 나중에 애플사를 창립하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컴퓨터 디자인의 기본으로 삼았어요. 잡스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의 일이에요. 어느 날 엄마 아빠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영원한 비밀은 없어. 아이에게 사실을 말해 줍시다.” “그래요. 커서 입양 사실을 알고 혼란스러워하는 것보다 지금 솔직히 말해 주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대신 우리가 잘 보듬어 줍시다.” 두 분은 잡스에게 친부모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차분하게 말해 주었어요. “그렇다고 널 사랑하지 않았던 건 아니야. 친부모님한테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단다.” 두 분은 잡스가 상처받지 않도록 더욱 정성껏 보살폈어요. “스티브, 누구 앞에서나 당당해야 돼. 넌 아주 특별한 아이야!” 잡스는 항상 이런 말을 들으면서 자랐어요. 너무 특별한 아이여서 그랬을까요? 어린 잡스는 정말이지 못 말리는 호기심쟁이였어요. 한번은 엉뚱한 일이 벌어졌어요. “애가 왜 저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거야?” 잠시 밖에 나갔다 돌아온 아빠는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잡스가 비틀거리며 온 집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거예요. “세상에!” 엄마는 식탁에 설거지를 하려고 놓아두었던 맥주잔이 깨끗이 빈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너 설마 이걸 마신 거니?” “무슨 주스가 이렇게 써.” 어린 잡스는 횡설수설했어요. 엄마가 잠시 한눈을 팔고 있는 사이에 아빠가 남긴 맥주를 음료수로 착각해 마셔 버린 거예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어느 때는 바퀴벌레 약을 삼켜 부모님을 깜짝 놀라게 했고, 또 어떤 날은 전기 콘센트 구멍에 철사를 집어넣어 감전 사고로 손가락을 다치기도 했어요. “여보! 우리 애가 또 사고를 친 모양이에요.”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깜짝깜짝 놀랐어요. 잡스는 아빠가 큰맘 먹고 사온 새 라디오를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기도 했어요. 아빠의 창고에는 온갖 기계와 공구들이 넘쳐났어요. 어린 잡스에게 창고야말로 호기심 천국이었어요. “가게에서 파는 장난감은 재미없어!” 잡스는 장난감을 사지 않고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창고는 거대한 놀이터였고, 연구소이자 실험실이었어요. “얘가 하루 종일 대체 어디서 뭐 하는 거야?” “창고에서 뭐든 만들고 있겠지.” 엄마 아빠가 혹시나 해서 창고 문을 열어 보면 잡스는 늘 그렇듯이 기계 부품들을 만지작거리며 열심히 무언가를 조립하고 있었어요. “학교에서 창고까지 오는 길이 너무 멀어.” 초등학생이 된 잡스는 자주 이렇게 투덜거렸어요. 학교 공부는 따분하기 짝이 없었어요. 입학 전에 엄마가 글자를 다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단어를 쓰고 외우는 게 시시했던 거예요. 그저 빨리 창고에 가서 놀고 싶은 생각뿐이었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집까지 너무 멀다고 투덜거린 거지요. 선생님들한테는 수업 시간에 집중을 못 한다고 문제아로 찍혔어요. 그럴수록 더욱 학교가 가기 싫어 결석도 밥 먹듯이 했어요. 하루는 단짝 친구랑 선생님 의자에 장난감 폭탄을 설치해서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았어요. 그러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선생님이 둘에게 외쳤어요. “너희는 정말 사고뭉치야! 당장 교실에서 나가!” 그날 잡스는 부모님한테 된통 꾸중을 들을 각오를 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어요. 부모님은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처럼 크게 야단치지는 않았어요. “다음부턴 절대 위험한 장난하면 안 돼! 약속할 수 있지?” “네! 약속할게요.” 잡스는 부모님과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도 한동안 짓궂은 장난을 계속했어요. 몇몇 선생님들은 잡스가 학교에 오는 것마저 꺼릴 정도였어요. 결국 하루는 아빠가 학교에 불려 가게 되었어요. 아빠는 잡스를 잘 타이르지 않고 못마땅하게만 여기는 선생님에게 사과할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아들 편을 들면서 이렇게 항의했어요. “학생이 공부에 흥미를 잃은 것은 교사 책임이지 아이가 잘못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하면서 바보 같은 내용만 달달 외우게 하는 학교가 문제입니다.” 잡스가 4학년이 될 때까지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났어요. 어느 날, 잡스는 기분이 시무룩해져서 교실 한구석에 고개를 처박고 앉아 있었어요. 다음은 수학 시간이에요. 잡스는 선생님이 들어온 줄도 모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었어요. “스티브, 선생님이랑 내기하지 않을래?” 담임인 힐 선생님이 바로 눈앞에 서 있었어요. 힐 선생님은 학교에서 유일하게 잡스를 야단치지 않는 여선생님이었어요. “이건 5학년 형들이 푸는 문제인데 한번 풀어 보렴. 네가 숙제를 잘해 오면 사탕이랑 상금 5달러 줄게!” 선생님의 얼굴에는 ‘과연 이 내기에서 누가 이길까?’라고 쓰여 있는 것 같았어요. 잡스는 꼭 문제를 풀어서 자기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힐 선생님에게 보여 주고 싶었어요. 잡스는 꼬박 이틀 만에 선생님이 내 준 문제를 풀었어요. “와, 대단하다, 스티브!” 힐 선생님은 아낌없는 칭찬을 해 주었어요. 약속대로 사탕과 상금도 받았지요. 이때 잡스는 처음으로 공부에 재미를 붙였어요. 힐 선생님은 그 후로도 몇 번 어려운 숙제를 내 주었어요. “사탕이랑 상금은 안 주셔도 돼요, 선생님!” 잡스는 힐 선생님을 기쁘게 하려고 더 열심히 공부했어요. 전처럼 말썽을 부리지도 않았고요.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부쩍 커진 건 바로 이 무렵이었어요. “라디오나 전축은 어떻게 해서 소리가 나는 거예요?” “마이크는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잡스는 궁금한 게 너무 많았지만 학교 선생님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것 외에는 질문을 받는 것조차 싫어했어요. 아빠는 한참 공부에 열의를 나타내는 잡스에게 과외 공부라도 시켜 주고 싶었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되었어요. 잡스가 사는 동네에 래리 랭이라는 엔지니어가 살고 있었어요. 전기나 기계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을 엔지니어라고 해요. 래리 랭은 미국의 유명한 전자 통신 기업인 ‘휴렛팩커드’의 직원이었어요. 아빠는 잡스를 래리 랭에게 데려가 도움을 청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만 제 아들에게 기계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이웃인데 그 정도도 못 해 주겠습니까? 스티브,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너라!” 래리 랭은 흔쾌히 승낙했어요. 덕분에 잡스는 전자 공학의 기본 원리를 쉽게 깨우치게 되었어요. “스티브, 네 실력을 평가해 볼 좋은 기회야.” 4학년이 끝나갈 무렵 힐 선생님이 수학 능력 평가 시험을 보라고 권했어요. 그런데 시험 결과가 나오자 모두들 깜짝 놀랐어요. 무려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의 성적이 나온 거예요. 잡스는 다른 아이들보다 한 학년 빨리 진급하여 4학년에서 6학년으로 올라갔어요. 그리고 이때 평생 잊지 못할 두 가지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첫 번째는 휴렛팩커드사에 견학을 간 거예요. “이것은 우리 휴렛팩커드에서 만든 컴퓨터랍니다. 이 기계 하나로 복잡한 수학 계산도 단번에 끝낼 수 있죠.” 래리 랭 아저씨가 견학 온 학생들에게 설명을 해 주었어요. 컴퓨터가 계산을 하다니! 잡스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어요. “나도 크면 컴퓨터를 다루는 멋진 엔지니어가 될 거야!” 집에 돌아온 잡스는 아빠에게 말했어요. 그리고 며칠 후, 두 번째로 놀라운 일을 겪게 되었어요. “너에게 보여 주고 싶은 곳이 있어, 스티브.” 아빠가 데려간 곳은 미국 항공 우주국 연구소였어요. 잡스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컴퓨터를 중심으로 일 처리를 하는 것을 보고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어요. “아빠 나 저 컴퓨터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휴렛팩커드사와 미국 항공 우주국 연구소를 견학한 후로 잡스는 완전히 달라졌어요. 머릿속에는 온통 컴퓨터에 대한 생각뿐이었지요. 거인처럼 덩치가 크고 이상한 기계음을 내는 차가운 네모 통 속은, 일사불란한 마법의 세계였어요. 사람의 머리로는 몇 시간은 족히 걸려야 계산할 수 있는 수학 문제도 컴퓨터는 순식간에 풀어냈어요. 잡스는 이때부터 컴퓨터와 사랑에 빠졌어요. 학교가 끝나면 날마다 아빠의 창고에 틀어박혀서 고장 난 라디오나 텔레비전, 전축, 하다못해 냉장고까지 뜯어 보고 다시 조립해 가며 컴퓨터를 최대한 작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어요. “스티브, 컴퓨터를 만든 건 신이 아니야. 그러니까 반드시 개선할 방법이 있을 거야!” 아빠는 항상 곁에서 용기를 주었어요. 중학생이 된 잡스에게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생겼어요. 학교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패싸움이 벌어지는 거예요. 잡스는 조용히 공부만 하고 싶었지만 몇몇 껄렁한 아이들이 자꾸 시비를 걸어왔어요. 날이면 날마다 불량한 학생들과 실랑이를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다 보니 학교고 뭐고 정나미가 떨어졌어요. 할 수 없이 잡스는 부모님한테 이사를 가자고 졸랐어요. “아빠가 하는 일도 있는데 갑자기 이사를 어떻게 가니?” “하지만 이 학교에 계속 다니다가는 진짜 깡패가 돼서 감옥에 갈지도 몰라요.” 부모님은 잡스가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자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어요. 얼마 후 잡스 가족이 이사한 곳은 완전 별세계였어요. 인문학 인물 탐구 2. 스물한 살에 꿈을 이루다. 지금의 실리콘 밸리 지역에 해당하는 로스앨터스라는 동네가 잡스 가족의 새 보금자리였어요. 실리콘 밸리는 전 세계의 청년 사업가들이 성공의 꿈을 키우는 첨단 산업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에요. 이 무렵에는 미국 항공 우주국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과 휴렛팩커드 같은 큰 기업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전자 공학과 출신 기술자들이 모여 살고 있었어요. 차고를 작업실로 꾸며 놓고 창의적인 발명이나 연구에 몰두하는 숨은 컴퓨터 실력자들도 아주 많았어요. 잡스는 날마다 그 차고들을 기웃거리며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어요. “넌 왜 친구들하고 놀지 않고 항상 혼자 다니니?” 그들 중 몇몇은 잡스에게 말을 걸어 주기도 했지만 대부분 자기 일에 바빠서 길게 상대해 주지 않았어요. 그곳에 살면서 잡스는 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이제 잡스는 혼자서 라디오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전자 기기의 작동 원리를 웬만큼 깨우치게 되었어요. 돈만 있으면 텔레비전도 만들 자신감이 있었지만 이사 오면서 아빠의 단골손님이 많이 끊기는 바람에 집안 형편은 전보다 더 어려워진 상태였어요. 고등학교에서도 잡스는 여전히 외톨이였어요. 사실은 친구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놀기만 좋아하는 아이들과 어울릴 시간에 랭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훨씬 행복했어요. 하루는 랭 아저씨가 잡스를 휴렛팩커드사로 불러 한 동호회를 소개해 주었어요. “전자 공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우리 회사 엔지니어들이 도움을 주는 모임이야.” 잡스는 랭 아저씨의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뻤어요. 드디어 관심사가 같은, 통하는 사람들을 만난 거예요. 동호회 이름은 ‘탐구자들의 모임’이었어요. “이렇게 만나서 얘기만 하다가 끝날 게 아니라 각자 한 가지씩 과제를 정해서 전자 기기를 만들어 보기로 하자.” ‘탐구자들의 모임’ 회원들은 담당 엔지니어의 제안에 따라 스스로 과제를 선택했어요. 잡스는 주파수 계수기를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주파수 계수기란, 전파나 음파가 1초 동안 몇 번이나 뛰는지 측정하는 기계를 말해요. 컴퓨터, 라디오, 무전기 등에 주로 쓰이지요. 그런데 이것을 만들려면 휴렛팩커드에서 판매하는 부품 몇 개가 필요했어요. 그런데 잡스는 그 당시 신문 배달과 전자 상가에서 재고 정리 일을 하면서 어렵게 용돈을 벌어 쓰는 처지였어요. “아빠가 나 때문에 자꾸 돈을 쓰게 할 순 없어.” 잡스는 몇 번을 망설이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어요. 그리고 다음 날 부품을 손에 쥐게 되었어요. 잡스가 도움을 요청한 상대는 휴렛팩커드의 사장이었어요. “저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스티브 잡스라고 해요. 주파수 계수기를 만들려고 하는데 사장님 회사에서 나온 부품이 꼭 필요합니다. 혹시 남은 부품이 있으면 보내 주실 수 있나요?” “허허! 재미있는 학생이군. 이름이 뭐라고?” 휴렛팩커드의 사장은 유쾌하게 20분이나 통화를 했어요. 감히 고등학생이 얼굴도 모르는 대기업 사장에게 전화로 부품을 요구하는 용기가 가상했던 거예요. 덕분에 잡스는 원하는 부품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여름 방학에 아르바이트를 해 보라는 제의까지 받았어요. 휴렛팩커드의 사장이 주선해 준 아르바이트는 다름 아닌 주파수 계수기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었어요. 잡스는 뛸 듯이 기뻤어요. 비록 나사를 고르는 허드렛일이었지만 첨단 산업이 이루어지는 현장에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었어요. “간절히, 뜨겁게, 목마른 사람처럼 희망하라. 설령 남들이 쓸모없는 일이라고 해도. 그리고 마지막에는 도움을 청하라.” 잡스가 평소에 자주 하던 말이에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는 게 잡스의 특기였어요. “왜 안 되는 거지?”, “왜 꼭 그래야만 하지?” 이것은 잡스가 창의적인 생각을 떠올리기 전에 스스로에게, 또 동료들에게 늘 물었던 말이에요. “설마 휴렛팩커드 같은 대기업 사장이 고등학생 말을 들어 주려고나 하겠어? 부품은커녕 통화도 힘들 거야.”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았을 거예요. 하지만 잡스는 직접 부딪쳤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 냈어요. 잡스는 이때의 경험을 훗날 자서전에 이렇게 썼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일을 성취하는 사람과 단지 꿈만 꾸는 사람의 차이이다.’ 어느 날, 한 동네에 사는 페르난데스가 잡스에게 말했어요. “전자 공학 천재라고 소문난 형이 있는데 만나 볼래?” 잡스는 전자 공학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어요. 당시 버클리 공과 대학생이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보다 다섯 살이 많았지만, 두 사람은 컴퓨터로 인해 금세 친구가 되었어요. “이거 진짜 형이 만든 컴퓨터야?” 이제껏 자신만만했던 잡스는 워즈니악이 만든 컴퓨터 앞에서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두 사람은 매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워즈니악은 정말 타고난 엔지니어였어요. 잡스는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느꼈어요. 컴퓨터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직접 기계를 만드는 일만큼은 워즈니악을 뛰어넘을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1971년 가을, 두 명의 스티브는 짜릿한 모험을 계획했어요. 한 명은 스티브 잡스, 다른 한 명은 스티브 워즈니악이지요. 당시 청년들 사이에는 히피 문화가 한창 유행하고 있었어요. 사회적 제도와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주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히피라고 해요. “캡틴 크런치 소문 들었어?” 어느 날 워즈니악이 잡스에게 솔깃한 뉴스를 전해 주었어요. 히피 중 한 명인 캡틴 크런치가 전화를 공짜로 쓰는 일명 ‘블루 박스’를 만들었다는 소문이었어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두 사람은 곧 블루 박스의 간단한 원리를 알게 되었어요. 장난감 호루라기가 통신망에 혼선을 일으켜 전화국에서 통화한 사실을 알지 못하게 되는 거였어요. 혹시나 해서 실험해 보았더니 잡음이 들리는 것과 통화할 때마다 호루라기를 불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어요. “우리가 좀 더 편리한 방법을 찾아볼까?” 워즈니악은 대학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 자료를 모으고 열심히 부품을 구하러 다녔어요. 블루 박스 제작 과정에서는 잡스가 전에 만들었던 주파수 계수기가 요긴하게 쓰였어요. 마침내 워즈니악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전 세계 어디든지 공짜로 통화가 가능한 방법을 찾아냈어요. 둘의 첫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어요. “국제 전화 한번 써 보자!” 워즈니악이 한쪽 눈을 찡긋하며 공중전화로 향했어요. “아, 저는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라고 하는데, 용건이 있어 교황님과 통화하고 싶습니다.” “지금 바티칸은 새벽 3시 50분이라 교황님은 주무십니다.” “네, 그럼 깨어나실 때쯤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공짜 전화로 천연덕스럽게 통화를 마친 뒤, 두 사람은 배꼽이 빠져라 웃음을 터뜨렸어요. 블루 박스 사건으로 두 명의 스티브는 히피들 사이에서 유명 인사로 떠올랐어요. 소문을 듣고 물건을 사겠다는 사람들까지 나타났어요. “형은 본체를 만들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잡스는 워즈니악이 핵심 기술을 만드는 동안 제품 구성과 포장, 가격 등을 결정하고 대학 기숙사를 중심으로 배달을 다녔어요. 부품값으로 40달러가 들어간 블루 박스는 두 사람의 인건비를 포함해서 150달러에 내놓았는데 순식간에 100개가 넘게 팔렸어요. 장난으로 시작한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은 아무래도 불법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에요. 따지고 보면 철모르던 시절의 여러 가지 경험이 애플사의 시초가 된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이 일로 인해 두 사람은 자신들이 만든 물건이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어요. 잡스는 리드 대학교에 진학했으나 흥미를 못 느꼈어요. 결국 한 학기만 마치고 중퇴한 뒤 사과 농장에서 히피들과 공동체 생활을 했지요.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자유분방한 기질이 더욱 강해졌어요. 어느 날, 한 줄의 구인 광고가 잡스의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즐기면서 돈 버는 곳!’ 세계 최초의 비디오 게임 회사 아타리의 광고였어요. 잡스는 무작정 이 회사로 달려갔는데 꼴이 말이 아니었어요. 경비원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턱수염은 더부룩하며 슬리퍼 차림인 그를 면접 시험실로 들여보내 주지 않았어요. “날 취직시켜 주기 전까지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겠어요.” 잡스는 회사 로비에 버티고 앉아서 계속 떼를 썼어요. 참다못한 경비원이 경찰을 부른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잡스는 막무가내였어요. 경비원은 결국 잡스를 면접실로 안내했어요. 잡스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사람들은 하나같이 인상을 찌푸렸어요. 사실 밖에서 한바탕 소란이 있던 것 말고도 그들이 달가워하지 않을 다른 문제가 있었어요. 평소 철저한 채식주의였던 잡스는 그 무렵 한 가지 과일 외에는 다른 음식을 일절 먹지 않았어요. 과일만 먹으면 몸에 해로운 물질이 없어진다고 생각했지요. 심지어 샤워를 자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어요. 주변에서 아니라고 해도 잡스는 워낙 고집불통이라 다른 사람 말은 듣지도 않았어요. “윽! 이게 무슨 냄새지?” 시험관들은 잡스가 가까이 다가오자 비명을 질렀어요.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났던 거예요. “자, 면접 진행하세요.” 회사 창업자인 부쉬넬 사장이 시험관들에게 말했어요. 이렇게 해서 잡스는 겨우 면접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잡스는 성격도 괴팍해서 직원들이 같이 일하기 싫어합니다.” 인사 담당자의 반대에도 사장은 그에게 호감을 느꼈어요. “고집이 세서 문제지만 일은 똑 부러지게 할 친구야.” 부쉬넬 사장은 특별히 잡스를 밤에 일할 수 있도록 배려했어요. 밤에 혼자 일하면 사람들과 부딪칠 필요가 없으니까요. 잡스는 복잡한 설명서 없이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비디오 게임에 신선한 매력을 느꼈어요. 얼마 후 사장은 잡스에게 새로운 게임을 설계하는 임무를 맡겼어요. 그러자 잡스는 이미 아타리가 내놓은 게임에 푹 빠져 있던 워즈니악에게 연락했어요. 워즈니악은 실컷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말에 당장 회사로 달려왔어요. “게임은 마음대로 해. 대신 형이 나 좀 도와줘.” 잡스는 2 3개월 안에 게임 설계를 끝낼 예정이었으나 워즈니악의 도움으로 4일 만에 일을 마쳤어요. 이렇게 세상에 나온 게임이 바로 벽돌 깨기 게임이에요. 1975년 1월, 한 장의 사진이 수많은 컴퓨터 동호회 회원들을 열광하게 만들었어요.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알테어’가 탄생한 거예요.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 당시 휴렛팩커드에서 공학용 계산기를 개발하고 있던 워즈니악은 자신의 실력으로 알테어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었어요. 부품값은 한 달 치 방세보다 비쌌어요. 그는 어렵사리 똑같은 성능을 가진 제품을 만들어 동호회 회원들에게 발표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어요. 사람들은 좀 더 새롭고 획기적인 것을 원하고 있었지요. 사실 회로 기판에 수십 개의 칩이 꽂혀 있는 알테어는 크기가 작아졌다는 것 외에는 큰 장점이 없었어요. 워즈니악은 다시 키보드와 모니터를 갖춘 새로운 컴퓨터를 설계했고, 잡스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중요한 부품을 구해 왔어요. 그렇게 해서 1976년 4월, 마침내 ‘애플1’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어요. 컴퓨터에 대한 열정 하나로 똘똘 뭉친 두 명의 스티브는 서로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었어요. 워즈니악은 처음부터 컴퓨터를 팔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난 내 프로그램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으로 만족해.” 하지만 잡스는 달랐어요. “이 설계도로 컴퓨터를 만들어 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직접 만들면 충분히 상업적인 가치가 있어.” 워즈니악의 컴퓨터가 지닌 가치를 누구보다 높이 평가했던 잡스는 아예 회사를 차리자고 끈질기게 설득했어요. 그래서 워즈니악은 자신이 개발한 계산기를 팔고, 잡스는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팔아서 작은 사무실을 얻은 다음, 마침내 ‘애플 컴퓨터’를 창업했어요. 컴퓨터 동호회에 ‘애플1’ 100대를 팔기로 하고 6천 달러짜리 수표를 받은 것이 애플 컴퓨터가 올린 최초의 수입이었지요. 그때 스물한 살의 청년 사업가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외쳤어요. “이것은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해!” 1977년, 드디어 ‘애플2’가 탄생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덩치 큰 계산기에 불과했던 컴퓨터가 남녀노소 누구나 집에서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는 생활의 도구가 된 거예요. ‘애플2’는 전 세계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어요. 하지만 이것 또한 그가 평생을 바쳐 이룬 결실의 일부분에 불과했어요.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일일이 복잡한 명령어를 입력해야만 컴퓨터를 쓸 수 있었어요. “전문가들은 일반 사용자들의 고충을 제대로 알지 못해. 그러니까 컴퓨터의 ‘컴’ 자도 모르는 사람을 전문가한테 붙여서 구체적인 불편 사항을 듣게 해야 돼!” 잡스는 시장의 원리를 꿰뚫어 보는 감각으로 이제껏 컴퓨터를 한 번도 써 보지 못한 시골 농부를 개발 과정에 참여시켰어요. 그 농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탄생한 것이 바로 우리가 쓰고 있는 마우스랍니다. 2007년 1월 9일, 아이폰이 세상에 첫선을 보였어요. 잡스는 수많은 청중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아이폰으로 한 커피숍을 검색한 다음 전화를 걸었어요. “스타벅스죠? 지금 카페라테 4천 잔 주문될까요?” “예? 4천 잔이나요?” “아, 죄송합니다. 장난 전화였어요.” 잡스가 통화를 마치자 장내에 폭소가 터졌어요. 애플이 이때 사용한, 세계 최초로 만든 스마트폰을 아이폰이라고 해요. ‘주머니 속 컴퓨터’로 불리는 아이폰은 약 5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세계적인 상품이에요.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 하지 않는 제품은 그냥 쓰레기다.” 이것은 잡스의 원칙이고 철저한 경영 철학이에요. 결국 그는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은, 제품의 기능 못지않게 중요한 디자인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던 거예요. 덕분에 애플은 지구 상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으로 떠올랐고, 잡스는 자신의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세상을 변화시켰어요. 그리하여 스티브 잡스는 오늘날까지 가장 창조적인 경영자의 모델로 손꼽히고 있답니다.
세상의 기준을 바꾼 천재 과학자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아인슈타인 박사는 1879년 독일에서 태어났어요. 아빠는 유대인이고 엄마는 독일인이지요. 아인슈타인이 태어난 곳은 울름이라는 작은 마을이에요. 엄마 배 속에서 갓 나온 아인슈타인은 유난히 몸집이 크고 머리 모양이 일그러져 있었어요. 외할머니는 아인슈타인을 자리에 눕힐 때나 안아 줄 때 머리 모양이 바로잡히도록 특별히 신경을 썼어요. 다행히 머리는 차츰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뒤통수가 불룩 튀어나온 것 만은 어쩔 수가 없었어요. 아인슈타인이 세 살 때 여동생 마야가 태어났어요. “어? 바퀴가 안 달렸잖아?” 아인슈타인이 여동생을 보고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에요. 아기가 너무 작아서 장난감인 줄 알았던 거예요. 이처럼 아인슈타인은 어릴 때부터 엉뚱한 아이였답니다. 아인슈타인의 아빠와 삼촌은 마을에서 작은 전기 공장을 운영했어요. 아인슈타인은 여동생보다도 말을 배우는 속도가 더딘 편이었어요. 그래서 또래 친구들은 벙어리, 또는 말더듬이라고 놀렸어요. “쟤는 다섯 살인데도 말을 못하는 바보야!” 자꾸 놀림을 당하다 보니 아인슈타인은 점점 밖에 나가기가 싫어졌어요. 엄마는 아들이 날마다 혼자 노는 게 안쓰러워 바이올린을 가르치려고 했어요.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고집이 여간 센 편이 아니었어요. 하기 싫은 일은 누가 뭐래도 안 하려고 했어요. 엄마가 아무리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지요. “배워 보면 바이올린이 얼마나 멋진 악기인지 알게 될 거야.” 하루는 엄마가 예쁜 바이올린 선생님을 집으로 데려왔어요. 과연 아인슈타인은 어떻게 했을까요? “바이올린은 이렇게 켜는 거야. 한번 해 보렴.” 선생님이 바이올린 다루는 법을 알려 주었지만 아인슈타인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선생님 말씀 들어야지!” 엄마가 꾸짖어도 마찬가지였어요. “싫어! 난 바이올린 같은 건 배우지 않을 거야!”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을 냅다 집어 던지며 소리쳤어요. 그 바람에 놀란 선생님이 집 밖으로 뛰어나갔어요. 하지만 엄마도 고집이 만만치 않았어요. 엄마는 아인슈타인의 성격이 산만하다는 걸 일찌감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집중력 키우기에 음악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한 엄마는 계속 다른 선생님을 불러들였어요. 훗날 억지로 배운 바이올린 연주가 자신의 재능을 키워 줄 소중한 취미가 되리라는 걸 아인슈타인은 꿈에도 상상을 못 했어요. 가족들 모두 아인슈타인을 사랑했어요. “이거 가지고 밖에 나가서 놀아.” 하루는 삼촌이 작은 나침반을 선물했어요. 밖에는 따뜻한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지요. 아인슈타인은 신이 나서 밖으로 나갔어요. 들판에서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어요. 아인슈타인은 멀찍이 떨어진 냇가로 갔어요.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었어요. 혼자 우두커니 냇가에 쪼그려 앉아서 한참 동안 나침반을 관찰하던 아인슈타인은 자꾸만 고개를 갸우뚱거렸어요. 아인슈타인은 나침반을 손바닥에 올리고 뚫어져라 쳐다보았어요. 두 손으로 양쪽 끝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 보기도 했지요. 나중에는 나침반을 손에 떠받치고 제자리에서 빙빙 맴을 돌았어요. “쟤 왜 저러는 거야?” 아이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어요. “쯧쯧!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야.” 아이들은 안됐다는 듯 혀를 차기도 했어요.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 거예요. 아인슈타인은 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요? 그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침반이 어떤 물건인지를 알아야 해요. 나침반은 자석으로 이루어졌고 가운데 열 십 자 모양의 바늘이 있어요. 이 바늘이 동서남북을 가리키면서 방향을 알려 주지요. 아인슈타인이 나침반에 강한 호기심을 가진 건 어떻게 움직여도 바늘이 항상 같은 방향을 가리켰기 때문이에요. “바보야. 나침반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거야.” 친구들은 별걸 다 궁금해한다며 놀렸어요.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왜?’ 아인슈타인은 끊임없이 ‘왜’ 그럴까 의문을 가졌어요. 나침반의 원리는 단순했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데는 뭔가 비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유가 뭘까?’ 나침반은 이제껏 아인슈타인이 갖고 놀던 어떤 장난감보다 재미있고, 신기하고, 궁금한 물건이었어요. 매일 그렇게 나침반을 갖고 놀다가 어느 날 불쑥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세상을 움직이는 건지도 몰라!’ 세상에 자기가 알지 못하는 어떤 비밀이 있다는 사실은 어린 아인슈타인을 몹시 흥분하게 만들었어요. 그 비밀이 뭔지 말로 표현할 수는 없어도 머리로는 온갖 창의적인 생각들이 꿈틀대기 시작한 거예요. 이때부터 아인슈타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건 바로 과학적 호기심의 시작이었지요.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기는 일도 아인슈타인은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했어요. 이런 생각이야말로 창의성의 첫걸음이랍니다. 개울가에 외톨이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아인슈타인의 놀이 상대는 얼마든지 많았어요. 졸졸졸, 맑고 깨끗한 시냇물이 흘러가고 있어요. 나뭇잎이 시냇물에 실려 오기도 하고, 아이들이 실수로 빠뜨린 장난감이 떠내려가기도 하네요. 물결이 일렁이면서 나뭇잎과 장난감은 점점 눈앞에서 멀어지고 있어요. 시냇물은 가까이서 들을 때와 멀리서 들을 때 소리가 달라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셔요. 빛은 어디서 어떻게 와서 얼굴에 닿는 걸까요? 아인슈타인은 이 모든 일에 어떤 법칙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을 알아내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어요. 이제 곧 학교에 가야 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인슈타인은 여전히 유치원생보다도 말이 서툴렀어요.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닐까요?” 엄마는 아빠에게 심각하게 말했어요. 하지만 아빠는 사업이 어려워져 아인슈타인을 병원에 데려갈 형편이 못 되었어요. 아인슈타인의 가족은 가톨릭 신자였어요. 아인슈타인도 일요일이면 동네 작은 성당에 다녔지요. 결국 아빠 회사가 문을 닫게 되면서 아인슈타인 가족은 울름을 떠나 뮌헨으로 이사했어요. 뮌헨은 울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대도시였어요. 이곳에서 아인슈타인은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몹시 충격적인 말을 했어요. “유대인은 이걸로 예수님을 죽게 만든 나쁜 민족이야.” 선생님 손에는 커다란 대못이 들려 있었어요. 그 당시 독일은 이민족을 차별하는 나라였어요. 그중에서도 유대인은 가장 심한 차별을 받았어요. 부모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 유대인이면 자식들마저 같은 취급을 당했지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가롯 유다라는 사람은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유대인이에요. 유다는 로마 총독에게 예수님을 고발하여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지요. 하지만 유다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쳤어요. ‘유대인이라고 다 나쁘진 않아요!’ 아인슈타인은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자꾸 말을 더듬다 웃음거리만 되고 말았어요. 아이들은 누구도 아인슈타인과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다시 외톨이가 된 아인슈타인은 다른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도 교실 한 귀퉁이에 남아 혼자만의 공상에 잠겨 있었어요.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는 아이들의 시간과 교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들의 시간은 같은 걸까요? 빛에도 속도가 있는 걸까요? 머릿속에는 밑도 끝도 없는 궁금증이 차올랐어요. 선생님들은 점점 말을 잃어 가는 아인슈타인을 문제아 취급했지만 사실 아인슈타인은 호기심 대장이었어요. 눈에 보이는 세상이 온통 궁금증투성이였지요. ‘물결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왜 번개가 치고 난 후에 천둥소리가 나는 걸까?’ 아인슈타인은 ‘어떻게’와 ‘왜’라는 질문에 매달려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그러는 동안 성적은 밑바닥을 맴돌았지요. 선생님들은 교과서에 없는 내용을 질문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학생들에게는 무조건 교과서를 외우라고 하셨지요. “쓸데없는 건 묻지 말고 하라는 공부나 해!” “자꾸 수업 분위기 흐리면 교실에서 쫓아낼 테다.” 아인슈타인은 가끔 용기를 내서 질문했다가 심한 꾸중을 듣기도 했어요. 이런 학습법은 아인슈타인의 학교생활을 점점 힘들게 만들었어요. “쟤 좀 이상한 애 아냐?” “아무튼 맘에 안 들어.” 학년이 올라가도 친구들의 따가운 눈총은 여전했어요. 선생님은 아인슈타인의 부모님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이 학생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공부로는 성공할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초등학교 졸업 시험에서 낙제를 하고 말았어요. 엄마는 아인슈타인을 혼내지 않고 한껏 격려해 주었어요. “남들과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 건 너의 장점이란다.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은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까 네가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단다.” 또한 삼촌은 집에서 과학과 수학을 가르쳐 주었어요. 이 두 과목은 아인슈타인이 가장 흥미를 느끼는 과목이었어요. 만일 가족들마저 그러한 재능을 외면했다면 아인슈타인의 창의성은 영영 묻혀 버렸을지도 몰라요. 바람, 모래, 흙, 지구, 달. 아인슈타인이 호기심을 갖는 대상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었어요. 이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들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빛은 어떻게 해서 생기는 것이며 시간은 우주 공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인슈타인은 열두 살 때부터 이미 과학의 비밀을 풀 준비가 되어 있었던 거예요. 바이올린이 진가를 발휘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어요. 집에는 동생 친구들이 자주 놀러 왔어요. 그보다 어린 조카들이 찾아와 시끄럽게 떠들 때도 있었지요. 아인슈타인은 집 안이 어수선할 때마다 화를 버럭 내면서 바이올린을 집어 들었어요. 떠드는 소리가 듣기 싫어 자신의 귀를 막는 대신 아이들 목소리를 바이올린 소리로 잠재우려는 거예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죠?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 연주를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평안해지는 걸 느꼈어요. 악보를 보고 연주에 열중하는 동안만큼은 그 어떤 소음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거예요. 사람의 뇌는 좌뇌와 우뇌로 나누어져 있다고 해요. 좌뇌가 발달하면 집중력이 강해져서 수학이나 과학처럼 계산하는 걸 좋아하고 우뇌가 발달하면 창의적인 상상력이 풍부해진답니다. 하지만 양쪽 뇌를 골고루 쓰지 않으면 주의력이 산만해져요. 아인슈타인은 원래 우뇌보다 좌뇌가 발달한 편이었어요.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부족했지만 수학 방정식만큼은 열심히 풀었어요. 그만큼 좋아하는 과목에 대해서는 집중력이 강했어요. 여기에 바이올린 연주는 우뇌를 발달시키는 역할을 했어요. 아인슈타인은 결국 양쪽 뇌를 활발히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집중력과 창의력,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된 거예요. 얼마 후, 아인슈타인의 가족은 이탈리아로 이민을 떠나게 되었어요. 아인슈타인은 홀로 독일에 남아서 우리의 중, 고등학교에 해당되는 김나지움에 입학했어요. 김나지움은 학생의 개성을 무시하고 오로지 대학 진학을 위한 외우기 공부만 중요하게 여겼어요. 또 유대인에 대한 차별은 더욱 심했고요. 하루는 아인슈타인이 선생님에게 물었어요. “제가 왜 야단을 맞는지 이유를 말해 주세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태연하게 대답했어요. “네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바로 야단맞는 이유야.” 아인슈타인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건강까지 나빠졌어요. 결국 열일곱 살의 아인슈타인은 학교를 중퇴하고 가족들이 있는 이탈리아로 가서 혼자 공부를 했어요. 하지만 대학 입학시험에 세 번이나 떨어지면서 자신감을 잃고 말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어요. 스위스 공과 대학의 학장이 아인슈타인의 수학적 재능을 알아보고 연락을 한 거예요. 그는 아인슈타인을 스위스의 고등학교에 입학시켜 1년 동안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와주었어요. 독일과는 달리 수업 분위기가 무척 자유로운 학교였어요. 덕분에 아인슈타인은 역사와 언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고 반에서 2등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연방 공과 대학에 입학했어요. 어릴 때부터 관심을 가져 온 과학의 세계가 한층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끌리는 건 빛과 시간, 그리고 공간의 비밀이었어요. 아인슈타인은 물리학과 수학에서 높은 성적을 올리며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으로 연구에 매달렸어요.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취업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닥쳤어요.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국민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어렵사리 스위스 시민권을 얻게 된 뒤에도 제대로 된 직장을 얻기는 힘들었어요. 유럽 일대에 퍼져 있던 유대인 차별 의식 때문이었어요. 아인슈타인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라고는 과외 선생이나 임시직 교사, 천문학자의 사무실에서 계산을 돕는 것 등의 잡다한 아르바이트뿐이었어요. “아, 정말 하루하루가 힘들구나.” 고달픈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낡은 바이올린 한 대뿐이었지요. 언제부터인가 아인슈타인은 힘들 때나 외로울 때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생각을 가다듬는 버릇이 생겼어요. 덕분에 항상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지요. ‘우주에서의 시간과 지구에서의 시간은 똑같을까?’ ‘빛의 속도는 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인슈타인은 매일 이 문제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그러다 뭔가 콱 막히는 느낌이 들 때면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머리를 식히고는 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 생각도 없는 것 같은 그런 순간에도 아인슈타인의 머릿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아이디어가 반짝이고 있었어요. 그렇게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하루하루가 제법 즐겁게 지나갔어요. 자신의 연구 결과에 서서히 빛이 보였기 때문이에요. 원래 아인슈타인은 건망증이 엄청 심했어요. 심지어 펜을 옆에 놓고도 어디 있는지 몰라 한참을 찾아다녔지요.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때면 우선 자세히 메모를 했어요. 기록으로 남겨 두지 않으면 곧 잊어버릴 위험이 있으니까요. 말하자면 그에게 바이올린과 메모는 창의성의 보물 창고였던 셈이지요. 아인슈타인은 스물두 살 되던 해에 스위스 특허청의 말단 검사원으로 취직한 뒤 더욱 열심히 연구에 매달렸어요. 스물여섯 살에는 독일의 과학 잡지에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했어요. ‘움직이는 물체들의 전기 역학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첫 번째 논문이 발표되자마자 독일은 물론 전 세계 과학자들의 주목을 끌었어요. “정말 대단한걸! 도대체 아인슈타인이 누구야?” 과학자들은 다들 혀를 내둘렀어요. 놀라운 일은 이것뿐만이 아니었어요. 아인슈타인은 첫 번째 논문을 발표한 얼마 후 이제껏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논문들을 다시 또 세상에 내놓았어요. 그가 발표한 여러 편의 논문은 각각 노벨상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인정할 정도였지요. 말더듬이 외톨이 소년이 마침내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위대한 업적의 주인공이 된 거예요. 아인슈타인이 논문을 통해 발표한 내용 가운데 전 세계 과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론을 흔히 ‘상대성 이론’ 이라고 해요. 상대성 이론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각자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공간에서의 시간은 서로 다르게 지나간다.’는 거예요. 훗날 과학자들은 우주인을 상대로 이 이론을 실험했는데 그들의 노화가 같은 기간에 지구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에 비해 실제로 약간 더디게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쌍둥이 가운데 형이 빛의 속도로 1년 동안 우주여행을 하고 지구로 돌아오면 동생이 자기보다 훨씬 더 늙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물론 이것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사실이기는 해요. 지금까지는 사람이 그만큼 오랜 시간 우주에 머물다 온 적이 없었으니까요. 상대성 이론의 중요한 발견 가운데 또 하나는, ‘물체의 질량이 에너지로 변한다.’는 거예요. 어떤 물체에 속도를 가하면 질량이 점점 커지는데, 속도가 빨라질수록 물체는 더 큰 에너지를 가지게 돼요. 이런 식으로 계속 그 물체의 질량이 증가하면 결국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에너지로 변한답니다. 당시만 해도 과학자들은 질량은 절대 변하지 않으며 에너지와 질량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질량과 에너지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었어요. 이처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기존의 상식을 뒤엎고, 움직이는 모든 물체는 질량을 가지고 있으며 중력에 따라 시간과 공간이 변한다는 것을 밝혀냈어요. 예를 들어 블랙홀은 중력이 크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는 거예요. 아인슈타인 이전의 훌륭한 과학자였던 뉴턴도 중력의 존재는 알았지만, 여기까지 밝혀내지는 못했어요. 이제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과학자로 떠올라 스위스, 독일, 체코 등 여러 나라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쳤어요. “저것 좀 봐. 헝클어진 머리에 바이올린을 든 모습, 아인슈타인이 분명해!” 비행기에 오르는 아인슈타인의 모습은 이렇게 종종 뉴스거리가 되곤 했어요. 아인슈타인은 독일을 떠난 후 두 번 다시 독일 땅을 밟지 않으려 했지만 끝내 고국을 외면하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스위스를 떠나 독일의 연구소에 머물고 있을 때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는 바람에 아내와 두 아들과 헤어지고 말았어요. 이때부터 아인슈타인은 학자로서는 드물게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전쟁에 참여한 독일 정부에 대한 비난도 서슴지 않았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히틀러가 정권을 잡게 되면서 아인슈타인은 점점 독일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되었어요. 1919년 5월, 영국 런던의 왕립학회는 기니 만에 있는 프린시페 섬에서 일식을 관측한 결과 상대성 이론을 뒷받침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고 발표했어요. 이로써 누구도 상대성 이론을 부정할 수 없게 되자 아인슈타인의 명성은 날로 높아졌어요. 아침부터 연구소 앞에는 아인슈타인을 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어요. 밖에 나가도 어딜 가나 기자들이 따라붙었어요. 아인슈타인은 이런 일이 별로 즐겁지 않았어요. 사람들 때문에 조용히 연구할 시간이 줄어드니까요. 그럴수록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커져만 갔어요. 이럴 때도 바이올린은 그의 슬픔을 달래 주고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도와주는 유일한 친구였어요. 아인슈타인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1921년의 일이었어요.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노벨 물리학상을 탄 뒤에 했던 유명한 말이에요. ‘증명하지 못하는 학설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지요.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아인슈타인은 여전히 위대한 과학자인 동시에 열성적인 평화주의자였어요.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을 평화주의자라고 하지요. 아인슈타인은 늘 전쟁이야말로 인류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잔악한 행위라고 주장했어요. 독일의 과학자들과 평화를 외치는 서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지요. 이런 일은 독일 히틀러 정부의 미움을 사는 원인이 되었어요. 결국 독일 시민권을 포기한 아인슈타인은 미국으로 망명하여 평생 그곳에서 살게 되었어요.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일하면서 아인슈타인은 점차 마음의 안정을 찾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하루는 한 학생이 조금 엉뚱한 질문을 던졌어요. 성공의 조건을 수학 공식으로 풀어 달라는 것이었어요. 아인슈타인은 곧바로 칠판에 글자를 쓰기 시작했어요. ‘성공의 세 가지 조건은 ( ) 더하기 ( ) 더하기 ( )’ 그런 다음 학생들에게 빈칸을 채워 보라고 시켰어요. 한 학생은 ‘노력, 성실, 천재성’이라고 썼어요. “음, 그럴듯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답은 아니군요.” 아인슈타인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어요. “노력과 성실은 성공의 기본적인 것입니다. 여기에 천재성까지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지요. 이 세 가지를 가지고도 성공하지 못한다면 이상한 일이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천재성이에요.” 학생들은 선뜻 아인슈타인의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했어요. 천재는 백 명 가운데 한 명 날까 말까 합니다. 본인이 원한다고 천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그럼 나머지 아흔아홉 명은 포기해야 할까요? 이건 너무 억울한 일입니다. 사람은 천재성이 없어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어요. 아인슈타인은 학생이 말한 답은 천재만을 위한 것이지 다른 많은 사람을 위한 공식은 될 수 없다고 덧붙였어요. 그러자 다른 학생이 ‘성공은 노력 더하기 성실 더하기 재수’ 라고 적었어요. 학생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지요. 아인슈타인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어요.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렇지만 역시 내가 생각하는 답은 아니에요.” 아인슈타인의 설명을 계속 들어 볼까요? 아인슈타인은 칠판을 지우고 다시 천천히 글자를 써 보였어요. ‘성공은 노력 더하기 재미 더하기 침묵’ 학생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다음 설명을 기다렸어요. “천재도 노력하지 않으면 능력을 발휘할 수 없지요. 아무것도 안 하는데 재수, 즉 행운이 제 발로 찾아오진 않아요. 행운은 노력의 보너스일 뿐입니다.” 여기까지 말했을 때 한 학생이 물었어요. “선생님 공식에서 ‘성실’이 빠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어요. “성실은, 노력이란 말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어요. 노력이란 말은 ‘애써 힘을 기울인다.’는 뜻입니다. 노력에는 어쩔 수 없이 고통이 따른다는 거죠. 그래서 ‘재미’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재미를 느끼며 하면 훨씬 덜 힘들겠죠? “예!” 학생들은 큰 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아인슈타인은 세 번째 조건에 대해서도 설명했어요. 세 번째 조건인 ‘침묵’은 여유를 말합니다. 우리는 힘들 때 불평하고 때로는 엄살을 떨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면 ‘힘들다!’는 말 대신 재미있게 일할 방법을 찾게 되지요. 재미를 찾는 시간, 그것은 바로 창의성을 이끌어 내는 ‘침묵’의 시간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열정적인 강의가 끝나자 강당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과학자로, 또 대학교수로 바쁜 생활을 보내는 중에도 아인슈타인은 계속 반전 운동을 펼쳐 나갔어요. 그러던 1939년, 독일의 히틀러는 결국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어요. 아인슈타인은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동료 과학자들로부터 끔찍한 소식을 들었어요. 독일의 과학자들이 자신의 이론을 바탕으로 원자 폭탄을 만들고 있다는 거였어요. “세상에! 이런 끔찍한 일이 있나!” 아인슈타인은 눈앞이 캄캄했어요. 자신의 이론이 이런 일에 쓰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었지요. 히틀러 같은 전쟁광이 원자 폭탄을 가지게 된다면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는 건 시간문제였어요. 아인슈타인은 더 큰 비극을 막으려면 독일보다 먼저 연합군이 원자 폭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내용을 담은 편지를 당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냈어요. 루스벨트 대통령은 아인슈타인의 건의를 받아들여 미국의 과학자들이 먼저 원자 폭탄을 만들도록 했어요. 그 결과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 사막에서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원자 폭탄 실험이 이루어졌어요. 이때까지도 아인슈타인은 원자 폭탄 실험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지 못했어요. 뒤늦게 소식을 듣고는 실험에 성공했더라도 원자 폭탄이 실제로 사용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어요. 당시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은 곳곳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었어요. 먼저 독일이 항복을 선언했지요. 하지만 일본은 계속해서 연합군을 공격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머지않아 일본에 원자 폭탄이 떨어질 거란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어요. 아인슈타인은 실험에 도움을 준 과학자들과 함께 미국의 국방부 장관에게 편지를 썼어요. ‘연합군의 승리가 가까워졌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러니 제발 일본에 원자 폭탄을 투하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러나 미국은 끝내 과학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결국 일본에 두 차례나 원자 폭탄이 떨어졌고 폭탄이 떨어진 도시 전체가 끔찍한 불바다로 변했어요. 일본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어요. 이로써 전쟁은 막을 내렸지만 아인슈타인은 평생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원자 폭탄 같은 건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했어!” 미국 정부에 원자 폭탄 개발을 제안하는 편지를 썼던 일을 뼈저리게 후회했지만 이미 일어난 비극은 되돌릴 수 없었어요. 이때부터 아인슈타인은 과학자라기보다 사상가로, 철학자로, 또한 철저한 반핵 운동가로 거듭났어요. 강연을 할 때도 과학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핵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핵무기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에 앞장서기도 했어요. 자신이 평생을 바쳐 일궈 낸 순수한 학문적 성과가 더 이상 끔찍한 전쟁 무기를 만드는 데 이용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기 때문이에요. 제2차 세계 대전의 상처는 아인슈타인뿐만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과학자들에게도 의미 있는 고민을 하게 만들었어요. 과학의 발전은 인류의 문명을 한발 앞서가게 하지만 그것이 잘못 쓰이면 엄청난 재앙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거예요. 1950년 1월에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수소 폭탄 개발 계획을 발표했어요. 수소 폭탄은 원자 폭탄의 1,000배 이상의 폭발력을 지녀, 주변의 모든 생물을 날려 보내는 무시무시한 무기예요. 아인슈타인은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트루먼의 계획에 반대했어요. 하지만 미국이 실험에 성공한 이듬해 소련(지금의 러시아)도 질세라 수소 폭탄 실험을 밀어붙여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뜻있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어요. 1952년,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아인슈타인에게 전보를 보냈어요. 이스라엘의 제2대 대통령으로 취임해 달라는 내용이었어요. 유대인이 세운 이스라엘은 아인슈타인의 조국이기도 했어요. 아인슈타인은 오랜 고민 끝에 정중히 사양하는 답장을 보냈어요. ‘둘 다 힘든 문제인데 나에겐 방정식이 더 중요합니다. 정치는 현실을 해결하지만 방정식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3년 후, 아인슈타인은 건강이 악화되어 병실에서 마지막 유언을 남겼어요. “나의 시신은 의학의 발전을 위해 대학에 기증하겠소. 나를 위한 그 어떤 기념비도, 동상도 세우지 말아요. 그저 아무도 모르는 곳에 내 뼈를 뿌려 주시오.” 이렇게 해서 아인슈타인이 살았던 집과 연구소가 있던 도시에는 거의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답니다. 위대한 과학자의 발자취를 보기 위해 이 도시를 찾는 관광객들은 ‘아인슈타인 길’이라 적힌 산책로의 작은 팻말만 볼 수 있을 뿐이지요.
끊임없이 솟아나는 창작의 샘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피카소는 1881년, 스페인 남쪽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화가이면서 미술 선생님이었어요. 아버지 이름은 호세 루이스 블라스코이고, 어머니는 마리아 피카소 로페스예요. 스페인은 부모님 성을 모두 물려받는 전통이 있어요. 그래서 피카소를 스페인식으로 부르면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라고 하는데, 이름만 부를 경우에는 파블로라고 해요. 피카소의 아버지는 쉬는 날이면 늘 집에서 그림을 그렸어요. 어머니가 집안일을 할 때 피카소는 그림 그리는 아버지 옆에서 놀았지요. “이것 봐. 아기가 그림을 그리고 있어!” 어느 날, 피카소의 부모님은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어요.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기가 종이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거예요. “물통을 그렸군! 형태가 아주 그럴듯해!” 아버지는 신기한 듯 그림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감탄했어요. 피카소가 세 살 때였지요. 이전에 그림을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어린아이가 저 혼자 연필을 가지고 놀다가 아버지 흉내를 낸 거였어요. “우리 아들이 당신 닮아서 화가가 될 모양이에요.” 어머니도 무척 좋아했어요. 피카소는 눈에 보이는 물건의 특징(特徵)을 잘 잡아내는 소질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피카소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소묘를 가르쳤어요. 한 가지 색깔로 사물을 자세히 그린 그림을 소묘라고 하지요. 얼마 후, 두 여동생이 태어났고 가족들은 스페인 북쪽의 코루나라는 곳으로 이사를 했어요.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피카소의 가족은 무척 행복하게 살았어요. 그러나 코루나로 오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어요. 가장 슬픈 일은 둘째 동생 콘치타가 병으로 앓아누운 거예요. 콘치타는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동생이었어요. 가족 모두 콘치타를 무척이나 아꼈지요. ‘하느님, 제 동생 콘치타가 안 아프게 해 주세요!’ 피카소는 동생이 하루빨리 낫기를 간절히 기도했어요. 하지만 콘치타는 끝내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어요. 가족들은 모두 슬픔에 잠겼어요. 집 안에는 웃음이 사라지고 피카소는 점점 우울한 성격으로 변했어요. 콘치타 생각만 하면 저절로 눈물이 흘러나왔어요. ‘내가 잘 돌봐 주지 못했기 때문이야!’ 피카소는 모든 게 다 자기 탓인 것만 같았어요. 가족들이 코루나로 이사하게 된 건 아버지가 이곳 미술 학교 선생님으로 오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피카소도 아버지의 수업을 듣는 학생 가운데 한 명이었지요. 콘치타가 죽은 뒤 피카소는 자신의 일기에 그림을 그려 넣기 시작했어요. 가엾은 콘치타가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 어릴 적 고향에서 즐겁게 뛰놀던 장면, 콘치타가 좋아하던 밤하늘…. 피카소의 일기장은 온통 콘치타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가득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우연히 일기장을 보게 된 아버지가 피카소에게 물었어요. “이, 이게 다 네가 그린 그림이냐?” “네. 그런데 왜요, 아버지?” 아버지는 감탄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어요. “아들인 네가 화가인 나보다 미술에 더 재능이 있구나!” 그날 저녁, 아버지는 가족들 앞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어요. “나는 이제부터 화가로서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고 우리 아들 뒷바라지만 하면서 살 계획이다.” “예?” 어머니와 여동생은 물론 피카소도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아버지는 가족들이 당황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에서 커다란 화구 상자를 들고나오더니 그것을 피카소에게 건넸어요. “이건 미래의 훌륭한 화가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에게 주는 선물이다.” “아버지! 그걸 제가 어떻게!” 피카소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아버지는 처음으로 그림을 가르쳐 준 선생님이었어요. 그런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그림을 포기한다는 거예요. 더구나 피카소는 이제 겨우 열세 살이었어요. 아버지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어요.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다. 넌 충분히 그럴 만한 재능이 있어. 아버지가 힘닿는 데까지 뒷바라지를 해 줄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그림만 열심히 그리면 돼!” 그해 가을, 피카소네 가족은 바르셀로나로 이사를 하였어요. 아버지가 더 큰 도시에서 피카소를 공부시키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바르셀로나는 아름다운 바닷가가 있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였어요. 피카소는 아버지가 교사로 있는 미술 학교에 입학했는데, 입학하자마자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어요. 첫 시험에서 두 과정을 건너뛰어 고급반으로 올라간 거예요. 아버지는 그 기념으로 바르셀로나에 작은 작업실을 차려 주었어요. 바르셀로나 미술 학교에서 피카소는 가장 주목받는 학생이었어요. 그가 열다섯 살 때 그린 자화상은 왠지 슬프고 어두운 느낌이 깃들어 있는데, 미술 학교의 선생님들은 그의 그림에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어요. 열여섯 살에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열린 전국 미술 전시회에 출품한 <과학과 자선>이라는 작품이 특상을 차지하면서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어요. ‘16세 소년의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솜씨다!’ 피카소는 마드리드의 왕립 미술 학교 장학생으로 뽑히기도 했어요. 왕립 미술 학교는 화가로 성공하는 지름길이라고 할 만큼 경쟁률이 높은 학교예요. 하지만 피카소는 입학한 지 6개월도 안 돼서 이 학교를 그만두었어요. 책상 앞에서만 하는 미술 수업이 너무 따분했기 때문이에요. “바르셀로나는 어딜 가나 활기가 넘치는군!” 피카소는 바르셀로나라는 도시를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날마다 카페나 시장 뒷골목을 돌아다녔지요. 그렇다고 할 일 없이 이곳저곳 기웃댄 것은 아니에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그림의 소재를 찾으려는 거예요. 바르셀로나에는 화가들도 많이 살고 있었어요. ‘네 마리의 고양이’라는 이름을 가진 카페는 피카소와 화가 친구들이 자주 만나는 곳이었어요. 그중 카를로스라는 화가와는 거의 날마다 어울려 다니다 작은 아파트를 얻어 함께 생활했어요. 피카소는 가구라고는 거의 없는 초라한 아파트 벽에 책꽂이와 가구들을 직접 그려 넣었어요. 가난하지만 친구가 있고 그림이 있어 행복한 나날들이었지요. 피카소는 정말 그림을 열심히 그렸어요.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림 연습을 했지요. 그림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때부터 날마다 아침 식탁에 놓인 계란을 먼저 그리고 나서야 하루를 시작할 정도였어요. 가족의 초상화, 풍경, 교회나 성당, 동물, 투우 등 그리고 싶은 소재는 끝이 없었어요. 피카소가 축제 포스터 경연 대회에 출품한 포스터는 창의성이 넘치는 기발한 작품으로 유명해요. “무슨 포스터가 이래?” “와! 그런데 이상하게 눈에 쏙 들어온단 말이야?” 사람들은 처음에는 황당해했지만, 두 번째는 너나없이 감탄사를 쏟아 냈어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바로 피카소의 특기였는데 사람들이 그걸 알아본 거지요. 실력이 입소문을 타자 피카소는 용돈도 벌 수 있게 되었어요. 식당이나 가게 등에서 포스터 주문이 들어온 거예요. 피카소는 열아홉 살에 첫 번째 전시회를 열었어요. 이때 선보인 작품 가운데 한 편이 파리 만국 박람회의 스페인관에 전시할 작품으로 뽑혔어요. “카를로스! 우리 함께 파리로 가지 않을래?” 피카소는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카를로스에게 전하고 함께 파리로 가자고 제안했어요. 카를로스도 기분 좋게 받아들였어요. 두 친구는 파리 만국 박람회도 구경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파리에 머무는 동안 피카소는 자기 그림을 좋아하는 고객들로부터 여러 점의 주문을 받았어요. 피카소는 흥분하여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어요. 파리는 옛날부터 예술의 본고장이라고 할 만한 도시예요.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나이에 파리에서 인정받는다는 건 대단한 성공을 의미했어요. 스페인을 떠나오기 전부터 카를로스는 아픈 상처를 안고 있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기 때문이지요. “지나간 일은 잊어버려, 친구야!” 피카소는 시간이 흐르면 마음이 안정될 거라 믿었지만 카를로스는 계속 괴로워했어요. 보다 못한 피카소는 카를로스와 함께 스페인으로 돌아왔어요. 그러고는 함께 미술 잡지의 삽화 그리는 일을 시작했어요. 그로부터 1년 뒤,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어요. 파리로 떠난 카를로스가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었어요. “불쌍한 카를로스!” 피카소는 세상을 다 잃어버린 것만 같은 슬픔에 빠졌어요. 이때부터 피카소는 한동안 어둡고 우울한 그림만 그리기 시작했어요. 또 가난하고 슬픈 예술가의 삶을 살아가는 자화상도 이 무렵에 그린 거였어요. 피카소는 어두운 배경과 창백한 얼굴로 채워진 그림들을 가지고 파리로 날아갔어요. 그런데 전시회는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덕분에 피카소는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어요. 피카소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파리의 부유한 그림 상인이 연락해 왔어요. “이곳에서 전시회를 열어 보지 않겠소?” 친한 친구의 죽음으로 상처받은 피카소가 가지고 있던 그림이라고는 전부 우울한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뿐이었어요. 그중 <비둘기를 안고 있는 아이>라는 작품은 어릴 때 죽은 여동생 콘치타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었어요. 파리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피카소의 그림에는 또 다른 변화가 찾아왔어요. 처음에 피카소는 파리에서 유행하는 화가들의 그림을 모방했어요. 그렇게 하면 특별히 눈에 띄지는 않더라도 평균 점수는 받을 수 있었지요. ‘그런데 왜 꼭 남이 하는 대로만 따라가야 하지?’ 스무 살이 넘은 뒤부터 피카소는 이런 의문을 가졌어요. ‘다들 똑같은 방식으로 그려야 한다면 그 많은 화가는 왜 필요한 거야?’ 피카소는 미술의 공식처럼 여겨지던 기법들을 모두 거부하고 그림 안에 자기만의 독특한 감정을 불어넣기 시작했어요. 남들이 두껍게 그리면 가늘게 그려 보고, 색상도 자유자재로 섞는 등 창의적인 실험을 시작한 거예요. 흔히 예술가를 ‘배고픈 직업’이라고 해요. 크게 성공하기 전에는 생활이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파리의 화가로서 조금 이름이 알려지기는 했지만, 피카소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집세를 아끼려고 프랑스의 시인 막스 자코브와 파리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함께 살아야 했어요. 침대 두 개를 들여놓을 수도 없을 만큼 비좁은 아파트에서 피카소는 낮에, 자코브는 밤에 잠을 잤어요. 피카소는 물감 살 돈이 떨어지면 연필로 스케치했어요. 또 침대를 쓸 수 없는 밤이면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주정꾼, 떠돌이, 눈먼 거지 등의 모습을 스케치했지요. “여자 감옥에 있는 죄수들은 아이를 그 안에서 키운다는군.” 하루는 귀가 번쩍 뜨이는 소문을 듣고 파리의 여자 감옥으로 달려갔어요. 다른 화가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특별한 모델을 찾아낸 거예요. 감옥에서 어린아이와 함께 지내는 여자 죄수들을 그린 그림은 보는 사람들에게 몹시 낯설고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어요. 이때부터 피카소는 일 년 동안 바르셀로나로 돌아가 청색의 색조를 주로 사용한 작품 50점을 완성했어요.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인생> 등의 유명한 작품은 모두 청색 색조로 그려진 그림이에요. 그래서 이 시기를 피카소의 ‘청색 시기’라고 한답니다. 특히 <인생>이라는 작품은 죽은 친구 카를로스를 애달파하는 심정을 표현한 그림이에요. 가난하고 외로운 뒷골목 사람들의 삶을 통해 세상의 어두운 모습들을 담은 피카소의 그림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창의적인 기법으로 이루어졌어요. “볼수록 화풍이 독특해! 자넨 분명 성공할 거야!” 파리로 돌아오자, 동료 화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그들 사이에서도 피카소는 가장 장래가 밝은 화가였어요. 피카소는 마침내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 작은 화실을 얻었어요. 몽마르트르 언덕은 집세가 다른 곳보다 싸기 때문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어요. 그의 화실은 ‘떠다니는 세탁선’이라고 불렸어요. “예전에 빨래하기 위해 센 강변에 떠다니는 배가 있었는데, 이 집을 보면 딱 그 배 모양이 생각난다니까?” 자코브는 가끔씩 이런 농담을 던지고는 했어요. 빨래를 하는 배처럼 생겼든 아니든 피카소는 너무 행복했어요. 이제는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생겼으니까요. 그곳에는 친구들도 자주 찾아왔어요. 친구들은 모두 빈털터리였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만은 뜨거운 화가들이었어요. 피카소는 이곳에서 생활하며 또 다른 변화를 시도했어요. 어두운 느낌의 청색 색조를 차츰 벗겨 내고 생기발랄한 느낌의 붉은 색조를 더 많이 사용하기 시작한 거예요. 이 시기를 피카소의 ‘장밋빛 시기’라고 해요. 장밋빛 시기에 그려진 대표적인 그림으로 <두 소년>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장밋빛 시기의 피카소 화풍을 잘 드러내고 있어요. 벌거벗은 형이 역시 알몸인 어린 동생을 업고 있는 그림이에요. 특별한 기교나 자세한 묘사도 거의 없는 그림이지만 순수한 형제의 정을 느끼게 하는 감동이 있지요. 이 무렵 피카소는 서커스단 곡예사와 어릿광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붉은색 색조만으로 이루어진 소년과 말을 모델로 한 유화와 소묘도 여러 편 남겼어요. 피카소는 피레네산맥에 있는 스페인의 오래된 마을에 머물면서 소년들을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특히 <담배 파이프를 든 소년>은 걸작으로 꼽히지요. 하지만 피카소는 결코 한 가지 화풍에 매달리는 법이 없었답니다. 스페인을 여행하던 중에 피카소는 놀라운 경험을 했어요. 기독교의 옛 조각 작품들을 보고 어떤 강렬한 힘을 느낀 거예요. “잘 살펴보면 뭔가 영감을 떠올릴 만한 게 있을 거야!” 파리로 돌아온 피카소는 여러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고대 조각품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어요. 박물관에는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한눈에 보여 주는 온갖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고대 인디언과 아프리카 흑인들의 조각품이었어요. 피카소는 그 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었어요. 눈, 코, 입은 물론 인체를 특이하고도 기이한 형태로 일그러뜨린 조각품은 피카소를 완전히 사로잡았어요. “이럴 수가!” 피카소는 탄성을 질렀어요. 그날 피카소는 마치 이 세상의 비밀이 열리는 듯한 충격을 느꼈어요. 이제 장밋빛 시기를 벗어날 때가 된 거예요. 피카소는 인디언들의 예술품 속에서 원뿔, 직육면체, 동그라미, 세모 같은 도형들로 이루어진 단순하고 순수한 형식들을 발견했어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유화를 그리겠어!” 박물관을 나서는 순간 피카소의 머릿속에는 벌써 기발한 아이디어가 꿈틀대기 시작했어요. 피카소는 한여름의 찜통더위에도 불구하고 화실에만 틀어박혀 있었어요. 연습 삼아 그린 소묘만 해도 수백 점이나 되었어요. 손님이 찾아와도 절대 문을 열어 주지 않고 오로지 작업에만 열중했어요.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성큼 다가선 어느 날, 마침내 피카소는 친구들을 화실로 불러들였어요. “드디어 작업이 다 끝난 건가?” 몇 달 만에 친구들이 한 명씩 한 명씩 모습을 나타냈어요. 다들 파리에서 웬만큼 이름을 떨치는 화가들이었지요. 친구들은 잔뜩 기대에 부풀어 피카소의 그림 앞에 섰어요. “뭐지?” 잠시 후, 친구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어요. 마치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이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서는 친구도 있었어요. “어떤가? 그림 제목은 <아비뇽의 처녀들>이라네!” 피카소는 의기양양하게 말했어요. 그러자 친구들은 더욱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어요. “이건 엉터리야! 완전히 사기라고!” “자넨 어떻게 이걸 그림이라고 그릴 수 있나?” 한 친구가 말을 꺼내자, 봇물 터지듯 비난이 쏟아졌어요. 다들 불쾌하기 짝이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지요. 피카소는 대체 어떤 그림을 그린 걸까요? 그림 안에는 벌거벗은 여인들이 기괴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어요. 몸은 뒤로 돌아서 있는데 얼굴은 앞쪽을 향하는가 하면,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얼굴에 붙은 코는 옆을 향하고 있었어요.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괴물 같은 형상과 얼굴에 탈바가지를 쓴 것 같은 모습도 있었어요. 제목을 <아비뇽의 처녀들>이라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아비뇽의 괴물들>이라고 해야 어울릴 것 같은 그림이었어요. “이건 말도 안 되는 그림이야!” “기가 막혀서 웃음밖에 안 나오는군.” 친구들은 계속해서 피카소를 비웃었어요. 누구도 이 작품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지요. 심지어 욕을 퍼붓는 친구도 있었어요. 파리의 평론가들도 친구들과 같은 반응을 나타냈어요. 예전에는 그 누구도 이렇게 창의적인 그림을 그린 적이 없었어요. <아비뇽의 처녀들>에 대해 가장 많이 쏟아지는 비난은 ‘그림이 아니다.’라는 것이었어요. 사람들이 이토록 흥분하는 이유는 전통적인 미술의 표현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피카소는 그들과 생각이 달랐어요. “난 그림이 반드시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세상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옮겨 놓으려면 사진을 찍으면 될 일이지, 굳이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새로운 사상과 기법을 그림에 담으려는 피카소의 생각은 전통이라는 틀에 갇힌 사람들에 의해 완전히 무시당했어요. 그로부터 17년 후, 한 미술 애호가에게 팔릴 때까지 <아비뇽의 처녀들>은 피카소의 작업실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어야만 했어요. 하지만 <아비뇽의 처녀들>은 현재 20세기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어요. <아비뇽의 처녀들>은 완전히 새로운 미술의 세계를 열었어요. 이에 따라 그림을 평가하는 기준도 크게 달라졌어요. 유럽의 화단을 중심으로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미술의 표현 방식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거예요. 또한 피카소는 이 한 점의 그림을 통해 앞으로 자신이 추구해야 할 미술의 방향을 찾게 되었어요. 그건 바로 ‘입체주의’라는 전혀 색다른 작업이었어요. 입체주의란,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는 대상의 각기 다른 모습을 한 폭의 그림에 모두 그려 넣는 방법이에요. 그 당시, 피카소는 조르주 브라크라는 프랑스 화가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기뻤어요. 그래서 두 사람은 함께 작업을 하며 전시회도 했어요. “아니, 이건 또 뭐야?” 두 사람의 작품이 발표되자 미술계는 또다시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어요. 피카소가 파리의 유명한 그림 상인을 모델로 한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초상화>는 입체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어요. 녹색과 갈색의 두 가지 색과 무수히 많은 선을 통해서 기존의 형태를 파괴한 이 작품은 초상화라기보다는 움직이는 조각품에 가까운 느낌이 들게 해요.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사람들도 점점 입체주의의 신비한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이것은 미술의 혁명이다!” 이로써 사람들의 비난은 찬사로 바뀌었어요. 피카소는 몽마르트르 언덕의 허름한 화실을 벗어나 파리의 고급 주택가로 이사할 만큼 많은 돈을 벌어들였어요. 이후로도 피카소의 도전은 계속되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입체주의도 막을 내렸어요. 피카소는 전쟁 기간 내내 파리에서 우울하게 지냈어요. 친구들이 대부분 전쟁터로 나간 파리는 텅 빈 것만 같았어요. 그러던 중 시인이며 유명한 극작가인 장 콕토가 뜻밖의 말을 꺼냈어요. “<어릿광대의 촌극>이라는 발레 공연을 하는데 무대 장치와 의상을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도전을 좋아하는 피카소에게는 솔깃한 제안이었어요. 피카소는 무대 장치와 배우들의 의상을 입체주의 형식으로 꾸며 열심히 작업했어요. 하지만 공연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어요. 대신 올가 코홀로바라는 아름다운 무용수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 뒤 아들 파울로를 낳았어요. 피카소는 이 기쁨을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그림으로 표현했어요. 결혼 하고 아이도 낳자 그림에 대한 열정도 다시 살아났어요. ‘그동안 너무 한 가지 형식에만 매여 있었어.’ 마흔 살이 넘어서도 피카소는 여전히 새로운 미술 형식에 관심을 가졌어요. 1925년에 그린 <세 무용수>라는 그림은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다른 느낌이 들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세 명의 무용수가 즐겁게 춤을 추는 것 같은데, 또 어떻게 보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에요. 색채도 한결 다양해진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림에 입체주의 형식은 어느 정도 남아 있지만 전체적으로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에 가까워요. 꿈속의 일이나,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잠재의식의 세계를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을 초현실주의라고 해요. 이제 피카소는 노르망디 해변에 귀족의 성처럼 웅장한 저택을 가진 엄청난 부자가 되었어요. 보통 사람들은 꿈도 못 꿀 만큼 큰 성공을 이루었지만, 미술에 대한 열정은 나이가 들수록 뜨거워졌어요. 그림은 물론 조각이며 금속 공예까지, 피카소가 손대지 않는 작업이 없었어요. ‘좀 더 색다른 삽화를 제작해 봐야지!’ 이런 식으로 미술의 영역을 점차 넓혀 가기 시작했어요. 삽화에 대한 관심은 왕성한 창작욕을 불러왔어요. 피카소는 그냥 평범한 삽화가 아니라 동판화 기법을 이용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삽화를 그렸어요. 금속판을 날카로운 기구로 긁어서 매우 가는 선들을 인쇄한 동판화 작업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피카소 자신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 창의적인 예술의 기쁨을 선사했어요. 피카소가 전시회를 통해 선보인 동판화 가운데 <동굴에서 나온 미노타우로스와 죽은 말>은, 고전적인 미술의 기법과 청색 시기의 화풍, 그리고 만화적 상상력이 결합한 특이한 작품이에요. “느낌이 왠지 불길하고 어두워.” “인간의 양면성을 표현한 건 아닐까?” 전시회를 찾은 사람들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어요. 반은 사람이고 반은 황소의 모습을 한 미노타우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의 이름이에요. “조국의 현실은 암담한데, 나만 이렇게 편안하게 살아도 되는 걸까?” 피카소는 파리의 친구들에게 종종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어요. 그 무렵 스페인은 온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져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어요. 피카소는 고국의 불행에 대한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을 통해 표현한 거예요. 스페인 내전은 파시스트들이 공화당 정부를 무너뜨리려고 일으킨 반란이었어요. 폭력으로 정권을 빼앗고 독재 정치를 펼치려는 사람들을 파시스트라고 해요.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조국에 돌아가 저 못된 놈들과 싸울 거야!” 피카소와 같은 스페인 출신의 친구들은 짐을 꾸려 파리를 떠났어요. “자네는 같이 안 갈 텐가?” “미안하게 됐네...” “비겁한 사람 같으니! 자넨 스페인 사람 아닌가?” 친구들이 겁쟁이라고 비난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피카소는 끝내 파리에 남아 있었어요. 이렇게 해서 스페인으로 돌아간 친구 중 몇몇은 반란군과 전투를 벌이다 목숨을 잃기도 했어요. 이 일은 피카소에게 두고두고 죄책감을 느끼게 했어요. 1937년, 스페인 반란군은 독일의 파시스트 집단인 나치와 손을 잡고, 게르니카라는 작은 도시에 폭격을 퍼부었어요. 게르니카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고 죄 없는 사람들이 공포 속에 죽어 갔어요. “오,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피카소는 조국의 참상을 전해 듣고 몸서리를 쳤어요.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내전은 결국 파시스트들의 승리로 끝이 났어요. 피카소는 억울하게 희생된 게르니카 시민들을 애도하며 그림을 팔아 기금을 전달했어요. 하지만 늘 조국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스페인 공화당 사람들이 한 가지 부탁을 해 왔어요. “파리 만국 박람회의 스페인관에 전시할 벽화를 선생님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피카소는 이제야말로 조국에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어요. “게르니카의 비극을 벽화로 만들어 파시스트와 나치가 스페인에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온 세상 사람들에게 고발하겠소!” “좋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앞으로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데 가능하시겠습니까?” “박람회 전까지는 작업을 마칠 수 있을 거요.” 피카소는 공화당 사람들을 안심시켜 돌려보낸 뒤 곧바로 파리 시내로 달려갔어요.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는 벽화를 그리기에는 자신의 화실이 너무 좁았기 때문이에요. 넓은 작업실을 구한 피카소는 밤낮없이 그림에 매달렸어요. 그로부터 3주일 후, 마침내 폭이 6미터가 넘는 대작 <게르니카>가 탄생했어요. <게르니카>는 흑백으로만 이루어진 화면에 폭격당한 도시의 참상을 묘사한 그림이에요. “붉은색을 안 썼는데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공포에 질린 표정 좀 봐!” 파리 만국 박람회에 온 사람들은 충격과 한숨, 그리고 감동으로 몸을 떨었어요. 어린아이와 노인, 여자, 남자뿐만 아니라 소와 말 등 동물들의 공포에 찬 표정까지 화폭 가득 담은 <게르니카>는, 마치 폭격당한 도시를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고발한 작품이에요. 피카소는 이 벽화 한 장으로 엄청난 명성을 얻었어요. 대부분 화가는 전쟁을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리면서 예술적인 표현에 신경을 많이 써요. 하지만 피카소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적 묘사로 전쟁의 공포를 나타내 20세기 미술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탄생시켰어요. <게르니카>는 피카소를 세계적인 유명 인사로 만들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파리가 나치의 수중에 들어가면서 뜻밖의 시련이 닥쳤어요. 어느 날, 한 나치 장교가 피카소의 화실로 찾아왔어요.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당신이오?” <게르니카>를 알아본 장교의 물음에 피카소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으며 이렇게 말했어요. “아니, 당신들이오.” 화가는 피카소 자신이지만, <게르니카>를 그리게 만든 원인은 그들에게 있다는 말이에요. 피카소를 눈엣가시처럼 여긴 나치는 ‘타락한 예술가’라는 딱지를 붙이고, 전시회도 열지 못하게 했어요. 피카소는 나치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겨 다시 가난해졌어요. 그러나 피카소는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계속 독특하고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었어요. 이런 열정이 있었기에 피카소는 지금껏 세계 어느 곳에서든 예술의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거예요.
사랑으로 인류를 구한 성인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이스라엘 민족은 아주 오래전부터 고난의 역사를 견뎌 왔어요. 멀고 먼 옛날에는 아시리아에게 나라를 빼앗기기도 했고,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로 끌려가 힘든 노예 생활을 하기도 했어요. 그 후에도 시련은 끝나지 않았어요. 갑자기 로마 제국이 쳐들어와 그들의 지배를 받게 된 거예요.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의 억압 아래 힘든 생활을 이어 갔어요. 하지만 유대인들은 실망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서로 만나기만 하면 몰래 그런 말을 주고받았어요. 그러나 곧 올 거라던 구세주는 좀처럼 오지 않았어요. 구세주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가 보면 그 사람은 실망스럽게도 진짜 구세주는 아니었어요. 그 당시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 마을에 마리아라는 처녀가 살고 있었어요. 마리아는 목수인 요셉과 곧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이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마리아 앞에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났어요.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축복을 내리셨습니다. 당신의 몸에서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날 것이니 그분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으십시오. 그분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것입니다.” 마리아는 깜짝 놀라 물었어요. “저는 아직 처녀인데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나요?” 천사 가브리엘이 다시 말했어요.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잉태를 도울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요셉은 마리아에게 그 말을 전해 듣고 크게 놀랐어요. 요셉은 고민에 빠졌어요. 마리아를 몹시 사랑했기 때문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어요. ‘마리아를 위해서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하나?’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날 밤 요셉의 꿈에 천사가 나타났어요. “마리아의 말은 모두 사실이니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시오.” 요셉은 아침이 되자 마리아에게 달려가 말했어요. “나도 천사를 보았소. 이제는 당신 말을 모두 믿소. 나는 당신과 결혼하겠소.” 요셉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마리아를 꼭 안아 주었어요. 그 무렵 로마 정부는 모든 사람들의 호적을 새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도 결혼을 한 뒤 호적을 만들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떠났어요. 마리아는 이미 임신한 상태라 베들레헴까지 가는 길이 매우 힘들었어요. 요셉 부부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지만 빈 여관이 한 곳도 없었어요. 요셉은 여관 주인에게 부탁하여 여관 옆에 있는 마구간을 빌렸어요. 요셉은 걱정이 태산 같았어요. 마리아가 만삭이라 언제 아기를 낳을지 알 수 없었어요. 요셉은 마구간 바닥에 지푸라기를 깔고 그 위에 아내를 눕혔어요. “오, 아기가 곧 나올 것 같아요.” 마리아는 바닥에 눕자마자 진통이 온다며 괴로워했어요. 마침내 마리아는 한밤중에 어여쁜 아들을 낳았어요. 천사 가브리엘이 말한 그 아기가 태어난 거예요. 요셉은 아기를 안아 따뜻한 천으로 감싼 뒤 말 먹이를 담는 그릇인 말구유에 가만히 내려놓았어요. 그런데 그날 밤,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하늘에서 환한 불빛과 함께 천사가 나타났어요. 또 하늘에 황홀한 빛이 가득하고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크게 흔들렸어요. 하늘이 황홀한 빛으로 가득하고 천사까지 나타나자 베들레헴 근처에서 양을 키우는 목자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어요.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했어요. “놀라지 말라. 오늘 구세주가 태어나셨다. 너희들의 주님이 세상에 오셨다. 주님은 지금 말구유에 누워 있도다.” 목자들은 재빨리 베들레헴으로 달려갔어요. “도대체 어디야?” 목자들은 베들레헴을 샅샅이 뒤지며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한 마구간을 발견했어요. “앗, 저기다!” 마구간에서 환한 불빛이 쏟아졌어요. 그리고 마구간 안의 말구유에 귀여운 아기가 누워 있었어요. 목자들은 마구간으로 들어가 천사에게 들은 말을 마리아에게 전해 주었어요. 마리아는 그 말을 듣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어요. 그 무렵 동쪽에 있는 나라에서 박사 세 사람이 별을 연구하다가 이상하게 큰 별이 나타난 것을 발견했어요. “저것은 훌륭한 왕이 나신 것을 상징하는 별이다!” 세 명의 동방 박사는 낙타에 예물을 싣고 큰 별이 나타난 유대 땅으로 건너갔어요. 이들은 먼저 유대의 왕인 헤롯에게 찾아가 물었어요. “왕이시여, 우리는 별을 보고 유대의 왕이 태어났음을 알았습니다. 그분께 경배를 드리고 싶은데 혹시 알고 계십니까?” 헤롯 왕은 유대의 왕이 태어났다는 말에 화가 치밀었어요. 자신이 유대의 왕인데 새로 유대의 왕이 태어났다니 갑자기 불안해진 거예요. 하지만 헤롯 왕을 화를 꾹 참고 이렇게 물었어요. “유대의 왕이 언제 어디서 태어났다는 말이오?” “베들레헴입니다.” “호, 그렇다면 그 아기를 보거든 내게도 알려 주시오. 나도 찾아가서 경배를 드리고 싶소.” 왕궁을 나온 동방 박사들은 바로 베들레헴으로 찾아갔어요.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발견한 동방 박사들은 예수 앞에 절을 하고 가져온 예물을 내놓았어요. 그것은 금과 유향, 몰약이었어요. 유향은 향기를 내는 향료이고, 몰약은 값비싼 향수나 향료의 재료로 쓰는 거예요. 모두 그 당시 아주 귀한 물건이었어요. 그날 밤 동방 박사들의 꿈에 하나님이 나타났어요.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 예수를 보았다는 말을 하지 말라.” 동방 박사들은 그 말대로 헤롯의 왕궁에 들르지 않고 곧장 자기 나라로 돌아갔어요. 그러자 헤롯은 잔뜩 화가 나서 군사들에게 명령했어요. “당장 베들레헴으로 가서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여라!” 하지만 군사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하기 전에 천사가 요셉에게 그 사실을 먼저 알려 주었어요. “아기를 데리고 어서 이집트로 떠나라.” 요셉은 천사의 말대로 마리아와 급히 이집트로 피신해 아기 예수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어요. 요셉 가족이 이집트에 피해 있는 동안 헤롯 왕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그제야 요셉 가족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어느덧 예수의 나이는 열두 살이 되었어요. 하루는 예수가 유월절을 맞아 부모님과 예루살렘에 갔어요. 예루살렘은 사람도 많고 시끌벅적했어요. 부모님이 예루살렘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예수가 보이지 않았어요. 요셉과 마리아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예수를 찾았지만, 예수는 어디로 갔는지 영 찾을 수가 없었어요. 사흘 뒤에 마침내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를 찾았어요. 예수는 성전에서 나이 많은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마리아가 사흘이나 찾았다며 나무라자 예수가 말했어요. “제가 아버지의 집인 성전에 있으리라는 걸 모르셨어요?” “아버지의 집이라고?” 마리아는 예수의 말에 할 말을 잃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 당시 이스라엘 땅에는 요한이라는 예언자가 있었어요.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회개하시오! 이 요단 강에 죄를 씻고 새로운 사람이 되시오.” 요한은 강에 몸을 씻는 것을 세례라고 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세례 요한’이라고 불렀지요. 어느덧 세월이 흘러 서른 살이 된 예수가 세례 요한을 찾아갔어요. 요한은 예수를 보자마자 그가 메시아임을 알았어요. 메시아란 구세주인 그리스도를 뜻하는 말이에요. 요한이 말했어요. “오, 드디어 우리 죄를 모두 씻어 줄 그분이 오셨다!” 요한은 예수를 강으로 이끌고 가서 강물에 몸을 담그게 했어요. 예수가 세례를 받고 나자, 갑자기 하늘에서 놀라운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그는 나의 아들이니라.” 요한은 감격하여 하나님께 경배를 올렸어요. 세례를 받은 예수는 광야로 가서 40일 동안 밤낮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어요.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예수는 몹시 배가 고팠어요.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로 떡을 만들어 보라.” 예수는 그것이 마귀의 목소리라는 걸 알아챘어요. “떡보다 더 귀한 것은 하나님 말씀이다.” 이번에는 마귀가 예수를 성전 꼭대기로 데려갔어요. “여기서 뛰어내려도 죽지 않으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겠다.” “성경에 너의 주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했다!” 마귀는 다시 예수를 높은 산으로 데려가 세상 모든 나라를 내려다보며 말했어요. “나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저 모든 나라를 너에게 주겠다.” “나는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긴다!” 예수가 그렇게 외치자 마귀는 마치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어요. 그 후 예수는 갈릴리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어요. 하루는 갈릴리의 한 마을에서 결혼식이 열렸어요. 결혼식에 모인 사람들은 다들 음식과 포도주를 마시며 축제를 벌였어요. 그런데 그만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어요. “포도주가 다 떨어졌으니 어쩌면 좋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 광경을 보고 말했어요. “결혼식 날 포도주가 떨어지면 손님들에게 큰 무례인데 어쩌면 좋지? 정말 큰일이네.” 그때 예수가 하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어요. “저기 큰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가득 채워 넣어라.” 하인들은 시키는 대로 항아리에 물을 가득 부었어요. 그러자 예수가 다시 말했어요. “이제 항아리에 든 물을 손님들에게 가져다 드려라.” 이게 웬일인가요? 항아리를 들여다보니 물 대신 향기로운 포도주가 가득 들어 있었어요. 손님들은 포도주를 마시고 다들 잘 담근 포도주라고 칭찬을 했어요. 이것이 바로 예수가 행한 첫 번째 기적이에요. 베드로는 예수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얼른 말했어요. “선생님, 저희를 인도해 주십시오.” 예수는 그 자리에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제자로 받아들였어요.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로 가서 두 형제 어부의 배에 올라탔어요. 예수는 형제 어부에게 하나님의 고귀한 사랑에 대해 말했어요. 그러자 두 형제 어부 베드로와 안드레는 깊이 감동하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예수는 말을 마치고 이제 고기를 잡자고 했어요. 그러자 베드로가 말했어요. “저희가 밤새 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예수가 말했어요. “호수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져 보라.” 베드로는 예수의 말대로 배를 몰고 가 그물을 던졌어요. 그러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와, 세상에!” 두 형제 어부는 입을 쩍 벌리고 기뻐했어요. 베드로는 언제나 예수를 믿고 따랐어요. 하루는 베드로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제 장모님이 열병에 걸렸는데 좀처럼 낫지를 않습니다.” 예수는 바로 베드로의 장모에게로 가서 말했어요. “열이여, 이분의 몸에서 당장 나가거라.” 그러자 신기하게도 베드로의 장모는 금세 병이 나았어요. 이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이 그날 오후에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를 찾아왔어요. 예수는 거절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치료해 주었어요. 어떤 날은 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왔어요. 나병은 손가락과 발가락이 문드러지고 코와 귀도 떨어져 나가는 무서운 병이에요. 나병 환자가 나타나자 다들 도망가기 바빴어요. 하지만 예수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머리에 손을 얹고 말했어요. “내가 진실로 원하노니 깨끗해질지어다!” 예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사람은 멀쩡하게 나았어요. “오, 감사합니다.” 나병 환자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어요. 예수가 계속 기적을 일으키자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질투했어요. 한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따랐지만 자신들이 만든 율법이 너무 많아 문제가 되었어요. 그들은 세상에서 자기들만 착하고 지혜롭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예수가 나타나 기적을 행하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자 화가 난 거예요. 하루는 예수가 어떤 집에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보러 왔어요. 마침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리가 마비되어 걷지 못하는 환자를 예수 앞에 데려왔어요. “이 사람은 저희의 친구입니다. 부디 고쳐 주십시오.” 예수는 친구들의 우정에 감동하여 그 환자에게 말했어요. “너의 죄는 이미 용서받았다. 일어나 걸어라.” 그러자 환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뚜벅뚜벅 걸었어요.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어요.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몹시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예수가 가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어요. 사람들은 하나같이 예수의 제자가 되고 싶어 했어요. 예수가 그들에게 말했어요. “나를 따르려면 목숨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십자가를 질 용기가 없다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사람들은 십자가라는 말에 깜짝 놀랐어요. 살인이나 강도 짓을 한 사람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것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얼마 후 예수는 많은 사람 중에 12명의 제자를 뽑았어요. 그들은 어부, 농부, 목수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바돌로매, 도마,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시몬, 가롯 유다가 바로 12명의 제자예요. “너희들은 이제 사도가 되었으니 세상의 여러 곳을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라.” 예수는 12명의 제자들을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어요. 어느 날,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의 말을 들으려고 찾아왔어요. 세리는 세금을 걷는 관리예요. 예수는 그들을 향해 말했어요. “바리새인들은 내가 죄 있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백 마리의 양 중에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당연히 그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귀를 기울였어요.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구하는 일이 더욱 소중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회개할 것이 없는 착한 사람 아흔아홉 명보다 죄를 회개하는 한 사람이 더욱 소중한 것이다. 하늘나라에서도 죄를 회개한 한 사람을 더욱 귀하게 여긴다.” 하루는 지체 높은 한 남자가 울면서 예수를 찾아왔어요. “지금 제 딸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예수는 곧장 제자들과 함께 그의 집으로 갔어요. 그런데 마침 하인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어요. “나리, 좀 전에 아가씨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남자는 절망하여 그 자리에 주저앉았어요. 예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집으로 들어갔어요.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도 따라 들어왔어요. 이미 숨진 아이는 고요히 누워 있었는데 예수가 소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어요. “아이야, 이제 그만 일어나라.” 그러자 갑자기 소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어요. 아이는 ‘후우’ 숨을 내쉬더니 번쩍 눈을 떴어요.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무 기뻐 펄펄 뛰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예수가 병자들을 고쳐 준다는 소문이 퍼지자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어요. 하루는 예수가 제자들과 들판으로 나서자 수천 명이 따라왔어요. 그날 저녁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했어요. “이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싶구나.” “주변에 마을이 없어 음식을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럼 음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아라.” 제자 안드레가 한 소년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이 아이가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를 가지고 있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것을 이리 가져오라.” 예수는 우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바구니에 든 물고기와 떡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물고기와 떡을 아무리 나누어 주어도 바구니에 든 것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어요. 모여 있던 오천 명이 모두 배불리 먹은 후에 남은 음식을 보니 열두 개 바구니에 가득 찰 정도였어요. 그날 밤 제자들은 배를 타고 호수를 가로질러 갔어요. 그런데 밤이 되자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 제자들이 탄 배가 호수 한가운데서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어요.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예수가 호숫가로 가서 마치 땅 위를 걷듯 물 위를 사뿐사뿐 걸었어요.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유령이다!’라고 소리쳤어요. “겁내지 말고 나를 보라.” 제자들은 그제야 예수를 알아보고 한숨을 내쉬었어요. 그때 베드로가 예수에게 말했어요. “주여, 정말 주님이라면 저도 물 위를 걷게 해 주소서.” 예수가 ‘베드로야, 이리 오너라.’ 하고 말했어요. 베드로는 용기를 내어 물 위로 한 발 내디뎠으나 몇 발자국 걷다가 물에 풍덩 빠져 버리고 말았어요. 그러자 예수가 베드로를 구해 주고 나서 말했어요. “베드로야, 믿음이 부족하구나. 왜 의심을 하느냐?” 베드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예수와 베드로가 배에 오르자 비바람은 금세 잠잠해졌어요. 제자들이 들판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하늘나라에서 누가 가장 위대한 사람일까?” “예수님께서 천국을 다스리는 위대한 왕이 될 터이니 그분이 가장 위대할 거야.” 제자들은 그런 대화를 하며 자신들도 하늘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예수가 다가오자 한 제자가 물었어요. “저희 중에 누가 천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될까요?” 마침 그때 어린아이가 옆에서 놀고 있었어요. 예수는 아이를 불러 곁에 앉히고는 제자들에게 말했어요. “너희가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제자들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예수가 이어서 다시 말했어요. “어린이를 공경하는 건 나를 공경하는 것과 같다. 항상 어린이를 사랑하고, 그 순수한 마음을 배우도록 해라. 예수가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비싼 옷을 차려입은 부자가 다가와 물었어요. “천국에 가려면 어떤 착한 일을 해야 합니까?” 예수가 그에게 말했어요. “십계명을 잘 지켜야 한다.” 그러자 부자가 다시 물었어요. “저는 십계명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다른 건 없습니까? 예수가 다시 말했어요. “당신은 부자이니 가진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천국에서 몇 배로 보답받을 것이다.” 부자는 예수의 말에 당황했어요. 이윽고 부자는 찡그린 얼굴로 재빨리 그 자리를 떠났어요. 그러자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했어요.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제자들은 예수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한 율법 학자가 예수에게 물었어요. “죽은 후에도 계속 행복하게 살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예수가 말했어요.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 그러면 죽은 후에도 행복할 것이다.” 율법 학자가 다시 물었어요. “도대체 이웃이란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예수가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했어요. “어떤 여행자(旅行者)가 산길에서 강도를 만났다. 강도는 여행자를 때리고 돈과 옷을 빼앗아 도망갔다. 여행자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마침 그때 성전의 제사장(祭司長)이 그 불쌍한 여행자 곁을 지나갔다. 하지만 제사장은 그 사람을 힐끗 보고는 그냥 가 버렸다. 다음에는 교회당에서 일하는 율법 학자가 그곳을 지나갔다. 그는 쓰러진 사람을 보더니, 죽은 사람을 건드리는 건 율법에 어긋난다며 역시 그냥 가 버렸다.” 예수가 계속 말을 이었어요. “세 번째로 사마리아인이 그 길을 지나갔다. 사마리아인은 여행자의 피와 상처를 닦아 준 다음 헝겊으로 잘 싸맸다. 그러고는 그를 여관으로 데려가 여관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을 잘 보살펴 주시오. 비용은 모두 내가 내겠소.” 자, 이 이야기에 나온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를 당한 사람의 진정한 이웃이겠느냐?” 율법 학자가 말했어요. “그거야 당연히, 여행자를 도와준 사마리아인입니다.” 그러자 예수가 미소 지으며 말했어요. 모두가 이웃이고 형제이니 모든 사람을 가엾게 생각하라. 가서 너도 그렇게 하라.” 율법 학자는 예수에게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물러갔어요. 예수가 제자들과 거리로 나서자 사람들이 ‘예수님이 오셨다!’고 소리쳤어요. 장님 거지 바디매오도 예수를 만나고 싶어서 마구 소리를 질렀어요. “다윗의 자손이여! 예수님이여! 어디 계십니까!” 사람들이 그에게 핀잔을 주었어요. “앞도 못 보는 거지 놈아! 입 닥쳐!” 그때 예수가 말했어요. “나를 부르는 자가 누구냐? 그를 이리 데려오너라.” 제자들이 바디매오를 데려오자 예수가 그의 이름을 듣고 바로 이렇게 물었어요. “바디매오야, 내게 무엇을 원하느냐?” “주여, 앞을 보게 해 주십시오.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예수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너의 믿음이 눈을 뜨게 하리라. 바디매오야, 눈을 떠라.” 순간 바디매오는 눈을 번쩍 떴어요. “와! 보인다, 보여! 앞이 보인다!” 예수가 제자들과 어떤 마을을 지나다 보니 사람들이 마당에 모여 한 여자를 재판하고 있었어요. 그 여자는 당시의 관습상 나쁜 짓을 한 죄인이었어요. 그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이렇게 물었어요. “예수여, 이런 죄인은 돌로 치는 게 모세의 율법입니다. 그러나 돌로 치는 건 너무 잔인하고, 그렇다고 용서하면 율법에 어긋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가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어요. “너희 중에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자가 있다면 이 여자를 돌로 쳐라.” 예수의 말에 바리새인들과 구경꾼들은 깜짝 놀랐어요.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들은 할 말이 없어 슬슬 꽁무니를 뺐어요. 이제 그 자리에는 예수와 여자밖에 남아 있지 않았어요. 예수가 여자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어요. “여인이여, 가서 다시는 죄 짓지 말라.”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어요. 큰 도시 여리고에 삭개오라는 세리가 살고 있었어요. 삭개오는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걷었는데, 세금에 대해 잘 모르는 유대인들을 속여 많은 돈을 벌었어요. “삭개오는 침략자인 로마보다 더 나빠.” 사람들은 같은 유대인이면서 유대인의 피를 빨아먹는 그를 증오했어요. 하루는 그 도시에 예수와 제자들이 찾아왔어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자 삭개오도 거리로 나갔어요. 삭개오는 예수를 보려고 뽕나무로 기어 올라갔어요. 나무 위에 올라서자 예수와 제자들이 보였어요. 삭개오는 예수를 자세히 보려고 뽕나무 잎 사이로 얼굴을 쑥 내밀었어요. 그때 예수가 삭개오를 보고 말했어요. “삭개오야, 이리 내려오너라.” 삭개오는 예수처럼 위대한 성자가 자기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게 너무 놀라웠어요. 삭개오가 나무에서 내려오자 예수가 다시 말했어요. “삭개오야, 오늘은 네 집에서 식사를 하고 싶구나.” 예수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는 순간, 삭개오는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삭개오는 예수 일행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서 식사를 대접했어요. 그런데 식사가 끝나자 삭개오가 갑자기 예수 앞에 꿇어앉았어요. “주님, 저는 그동안 나쁜 짓을 많이 했습니다. 예수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어요. “잘 생각했다, 삭개오. 오늘 용서와 구원이 너의 집에 이르렀구나. 이것이 바로 내가 여기 온 까닭이니라.”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제자들과 손님들은 큰 감동을 받았어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삭개오를 회개시킨 예수의 능력이 정말 신기하고 놀라웠어요.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음모(陰謀)를 꾸몄어요. 어느 날, 한 종교 지도자가 예수에게 물었어요. “우리가 로마 황제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내는 게 옳은 일입니까? 옳지 않은 일입니까?” 예수는 이 질문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았어요. 만일 세금을 내는 게 옳다고 하면 로마를 증오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를 따르지 않을 거예요. 반대로 세금을 내는 게 옳지 않다고 하면 로마의 탄압을 받을 거예요. 잠시 후 예수가 그에게 동전 하나만 달라고 했어요. 그가 1데나리온짜리 동전을 건네주었어요. 예수가 동전을 보며 다시 말했어요. “이 동전에 누구의 얼굴이 새겨져 있느냐?”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얼굴입니다.” 그 순간 예수가 이렇게 말했어요. “앞으로 카이사르에게 속한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에게 속한 것은 하나님에게 바쳐라!” 예수의 말에 그는 할 말을 잃고 말았어요. 종교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은 다시 음모를 꾸몄어요. 깊은 밤에 예수를 체포하기로 계획을 세운 거예요. 그들은 예수의 제자 중에 가롯 유다를 매수하기로 했어요. “은 30냥을 줄 테니 예수가 밤에 어디 있는지 알려 다오.” 가롯 유다는 돈에 눈이 멀어 알려 주겠다고 했어요. 얼마 후, 예수는 제자들을 모두 불러 다락방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어요. 그때 이미 예수는 자신에게 불길한 일이 생길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식사 후에 예수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요. “오늘 너희 가운데 하나가 나를 팔 것이다.” 제자들은 깜짝 놀라 외쳤어요. “저희는 절대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가롯 유다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어요. “저를 두시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예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요. “그렇다, 유다야. 너는 가서 네가 할 일을 그대로 하라.” 깊은 밤이 되자 예수는 제자들과 기도를 하러 올리브 산 서쪽의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갔어요. 같은 시간에 유다는 병사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 근처에 숨어 있었어요. 유다가 병사들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어요. “내가 예수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며 인사하겠소. 내가 입을 맞춘 이가 예수이니 당신들이 체포하시오.” 그날 예수는 다른 때와 다르게 간절히 기도를 올렸어요. “아버지, 다른 방법이 없다면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그때 유다가 예수 앞으로 다가왔어요. 유다는 평소에 하는 것처럼 예수에게 입을 맞추며 인사했어요. “유다야, 너는 입맞춤으로 나를 팔려는구나.” 예수는 슬픈 눈으로 유다를 바라보았어요. 그때 칼과 창을 든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예수를 체포했어요. 병사들은 예수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혔어요. 또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예수의 등에 짊어지게 했어요. 예수는 십자가를 짊어진 채 비틀거리며 걸었어요. 골고다 언덕에서 병사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어요. 못질을 할 때마다 예수의 비명이 메아리쳤어요. 예수의 양 옆에는 도둑 두 명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었어요. 그들 중 한 사람이 예수에게 말했어요. “주님, 하늘나라에 가시면 저를 기억해 주소서.” 예수는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보았어요.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예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십자가 아래서 울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와 제자 요한을 바라보았어요. 한참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있던 예수는 마침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말을 남겼어요.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도다!” 예수가 숨을 거두자 갑자기 폭풍이 몰아치면서 지진이 일어나 땅이 마구 흔들렸어요.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예수의 장사를 지냈어요. 막달라 마리아는 마귀에게 시달리다가 예수의 도움으로 구원을 받은 여자였어요. 이들은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려 동굴 무덤에 안치했어요. 그러고는 둥글넓적한 돌로 입구를 막았어요. 막달라 마리아는 장사를 지내고 나서 삼 일 후에 다시 무덤으로 가 보았더니 무덤 입구가 활짝 열려 있었어요. 막달라 마리아가 놀라 들어가 보니 두 명의 천사와 예수가 서 있었어요. “오, 예수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발을 꼭 끌어안았어요. 그러자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말했어요. “마리아야, 제자들에게 나를 보았다고 전하여라. 나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 가는 길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본 것을 그대로 전했어요. 그 뒤에도 예수는 몇 번이나 제자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어요.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도마가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데 갑자기 예수가 나타났어요. 예수가 베드로에게 말했어요. “베드로야, 앞으로 네가 내 양들을 먹여라.” 예수는 같은 말을 세 번이나 반복했어요. 베드로는 예수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챘어요. 그것은 베드로에게 신도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라는 말이었어요. 베드로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요. 예수는 그 뒤 갈릴리 호수와 올리브 산에도 나타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떠난 후에 성령이 너희에게 내릴 것이다. 그 전까지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성령이 내리면 너희는 이 세상 끝까지 가서 나의 말을 전하라.” 예수는 그렇게 말한 뒤 밝은 구름과 눈부신 빛에 싸여 하늘로 승천했어요. 그 뒤로 제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온 세상에 전했어요. 지금까지도 예수의 큰 사랑과 평화의 정신은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답니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인도 북부에 샤카국이라는 작은 왕국이 있었어요. 샤카국의 숫도다나 왕은 현명하고 어진 왕이었어요. 숫도다나 왕은 아름다운 마야 왕비와 함께 수도인 카필라밧투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어요. 하지만 왕과 왕비에게는 딱 한 가지 근심이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왕위를 이을 왕자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마야 왕비가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상아가 여섯 개나 달린 흰 코끼리가 제 몸 안으로 들어오는 꿈이었습니다.” 숫도다나 왕은 태몽이라며 무척 기뻐했어요. 왕비는 꿈을 꾸고 얼마 후 임신을 했어요. 아기를 낳을 때가 되자 왕비는 친정인 콜리야국으로 떠났어요. 그런데 왕비는 가는 길에 갑자기 산통이 와서 룸비니 동산에서 아기를 낳았어요. 숫도다나 왕은 아들의 이름을 ‘싯다르타’라고 지었어요. 왕자가 태어나자 유명한 아시타 성자가 왕궁으로 찾아왔어요. 백발이 성성한 아시타 성자가 지팡이를 짚고 찾아오자 왕이 반갑게 맞았어요. 아시타 성자는 아기 왕자를 보더니 두 팔로 안았어요. 그리고 한참 보더니 갑자기 울기 시작했어요. 숫도다나 왕이 놀라 왜 우느냐고 물었어요. 그러자 아시타 성자가 말했어요. “아기 왕자께서는 장차 위대한 스승이 되실 것이오.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의문을 해결할 진리의 왕이 되실 것이오!” “그런데 왜 우십니까?” “나는 늙었고 이제 곧 죽을 것이오. 이런 위대한 분께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죽을 걸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 것이오.” 아시타 성자는 그렇게 말한 뒤 왕궁을 떠났어요. 마야 왕비가 일찍 세상을 떠나 싯다르타는 이모인 마하파자파티가 키워 주었어요. 소년으로 자란 싯다르타 왕자는 매우 총명했어요. “왕궁 밖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싯다르타는 시종 찬나와 궁궐 밖으로 나가 보았어요. 하루는 동쪽 문 밖에서 나이가 많은 노인을 보고, 다음 날에는 남쪽 문 밖에서 병든 환자를 보았어요. 또 다음 날에는 서쪽 문 밖에서 장례식 광경을 보았어요. 싯다르타는 노인과 병자와 장례식 광경을 보고 ‘자신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며칠 뒤 싯다르타는 북쪽 문 밖에서 홀로 수행하는 수행자를 보고 그에게 물었어요. “왜 수행을 하십니까?”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깨달음을 얻으면 어떻게 됩니까?”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싯다르타는 수행자의 말에 큰 감명을 받았어요. 싯다르타는 때때로 나무 아래서 명상에 잠겼어요. “싯다르타는 참으로 생각이 깊은 아이 같소.” 왕은 그런 왕자를 보고 과연 나중에 왕이 되어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어요. 세월이 흘러 싯다르타는 콜리야국의 야소다라 공주와 결혼식을 올렸어요. 싯다르타는 결혼을 한 후 한동안 행복했어요. 싯다르타에게는 여름 궁전과 겨울 궁전, 그리고 우기에 머무는 궁전이 따로 있었어요.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 라훌라까지 태어나 궁전에서는 축제가 열리고 다들 행복해 했어요. 하지만 싯다르타는 자기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왕궁에서 화려하게 사는 것은 그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어요. ‘사람은 왜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일까? 도대체 고통은 뭐고 행복은 뭘까?’ 싯다르타는 날마다 이런 고민을 했어요. 사실 싯다르타는 왕궁을 떠나 수행자가 되기를 원했어요. 수행을 통해 삶의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 보고 싶었어요. 하루는 야소다라의 꿈에 흰 소가 나타났어요. 흰 소는 궁궐을 빠져나가더니 숲으로 사라졌어요. “아, 남편이 곧 궁궐을 떠나 수행자가 되겠구나.” 꿈에서 깬 야소다라는 그런 예감이 들었어요. 숫도다나 왕도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왕은 아들이 떠나지 못하도록 자주 연회를 열어 주었어요. “예쁜 무희들을 불러 늘 왕자를 즐겁게 해 주어라!” 날마다 밤늦도록 화려한 연회가 이어졌어요. 하지만 싯다르타는 연회가 조금도 즐겁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연회가 끝나자 새벽 별이 떠올랐어요. 싯다르타는 그 별을 보고 중얼거렸어요. “이제 때가 되었다!” 싯다르타는 잠든 아내와 아들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어요. 그러고는 곧장 말을 타고 왕궁을 떠났어요.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다음 날, 싯다르타가 떠난 것을 알고 왕궁은 큰 슬픔에 빠졌어요. 싯다르타는 숲에서 한 사나이를 만나 이렇게 말했어요. “내 옷을 장에 가지고 가서 팔면 큰 돈이 생길 것이오. 그러니 나와 옷을 바꾸어 입읍시다.” 사나이는 자신의 낡은 옷을 얼른 벗어 주었어요. 낡은 옷을 입은 싯다르타는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날부터 싯다르타는 유명한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수행을 하기 시작했어요. 수백 명이 넘는 큰 공동체에 가서 수행을 했고, 몇몇 사람이 모인 작은 공동체에서도 수행을 했어요. 수행을 하는 동안 싯다르타는 점점 높은 경지에 올랐어요. 싯다르타를 가르친 스승들은 다들 싯다르타의 뛰어난 능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싯다르타는 칭찬을 받을 때마다 겸손하게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싯다르타는 공동체를 떠나 홀로 수행을 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공동체를 떠나 동굴 속에서 수행을 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수행을 해도 깨달음은 얻을 수 없었어요. 하루는 고행하는 수행자들이 싯다르타에게 말했어요. “육신을 철저히 통제하면 정신이 맑아진다오. 그러니 당신도 우리처럼 고행을 해 보시오.” 싯다르타는 고행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당장 그날부터 고행을 하기 시작했어요. 동굴에 앉아 음식은 거의 먹지 않고, 목욕도 하지 않았어요. 6개월이 지나자 싯다르타의 몸은 뼈밖에 남지 않았어요. 그렇게 힘든 수행을 하고 있는데 이전에 같이 수행하던 다섯 명의 수행자가 싯다르타를 찾아왔어요. 그들은 싯다르타가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수행을 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싯다르타, 우리도 여기서 함께 수행하게 해 주시오.” “원한다면 그렇게 하시오.” 싯다르타는 그들을 위해 자리를 내주었어요. 그날부터 싯다르타는 다섯 수행자와 함께 수행을 했어요. 싯다르타는 홀로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어요. 그때 문득 고행으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몸과 마음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몸을 아무리 통제해도 내가 원하는 깨달음은 얻을 수 없다.’ 싯다르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가로 내려갔어요. 강에서 오랜만에 옷을 빨고 목욕도 하고, 강가로 나오다가 그만 풀밭에 픽 쓰러졌어요. 그동안 먹은 것이 없어 기운이 하나도 없었던 거예요. 마침 한 소녀가 지나가다가 싯다르타를 발견했어요. “어머, 수행자님! 어서 일어나세요.” 소녀는 싯다르타를 일으켜 세우고 우유죽을 먹여 주었어요. 싯다르타는 우유죽을 먹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어요. “네 이름이 무엇이냐?” “수자타라고 합니다.” 싯다르타가 수자타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자 수자타는 앞으로 싯다르타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겠다고 했어요. 수자타가 마을로 돌아간 뒤 싯다르타는 보리수 아래에 앉아 명상을 했어요. 강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어요. “이제 다시는 고행을 하지 않겠다.” 싯다르타의 마음에 평화의 기운이 가득했어요. 싯다르타는 수자타가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으며 그 자리에서 며칠 동안 명상에 잠겨 있었어요. 명상을 하는 동안 싯다르타는 자신과 세상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어요. 해와 바람, 나무, 흙 같은 것도 모두 자신과 이어져 있음을 느꼈어요. 또한 싯다르타는 우리의 삶이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 드디어 깨달음을 얻었도다!” 어느 날, 새벽 싯다르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감돌았어요. 순간 그의 몸에서 빛이 쏟아져 나와 우주로 뻗어 나갔어요. 지상에서 갑자기 찬란한 빛이 쏟아지자 하늘을 다스리는 마왕 파피야스가 깜짝 놀랐어요. “앗, 싯다르타가 곧 깨달음에 이를 모양이다!” 파피야스는 부하들과 함께 싯다르타에게로 가서 창을 던지고 화살을 쏘았어요. 하지만 창과 화살은 모두 연꽃으로 변해 버렸어요. “안 되겠군. 다른 방법을 써야겠다.” 파피야스는 자신의 어여쁜 세 딸을 싯다르타에게 보내 유혹하게 했어요. 세 딸은 싯다르타 앞에서 춤을 추며 아양을 떨었어요. 하지만 싯다르타가 한 번 쳐다보자 세 딸은 금세 쭈글쭈글한 노파로 변해 버렸어요. 파피야스는 화가 나서 소리쳤어요. “네가 어떤 공덕이 있기에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냐?” 그러자 갑자기 지진이 나면서 땅의 신들이 나타나 말했어요. “저분의 공덕은 우리가 증명한다! 저분은 위대한 스승이 되어 온 세상에 광명을 주실 분이다!” 결국 마왕 파피야스는 멀리 도망치고 말았어요. 깨달음을 얻은 싯다르타는 아직도 고행으로 수행하는 다섯 수행자를 찾아갔어요. 다섯 수행자는 싯다르타가 고행을 포기한 것을 알고 실망했어요. “저기 싯다르타가 온다. 아는 체도 하지 말자.” 하지만 그들은 싯다르타의 온몸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보고 금세 마음을 바꾸어 반갑게 맞았어요. 싯다르타가 그들에게 말했어요. “친구들이여, 이제 난 깨달음에 이르렀다. 그대들에게 깨달음의 열매를 나누어 주려고 여기에 왔다.” 싯다르타는 다섯 수행자에게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일러 주었어요. 다섯 수행자는 매우 기뻐하며 물었어요. “싯다르타여! 이제는 붓다라고 불러야겠군요. 붓다는 ‘깨달은 사람’이란 뜻이니까요. 그리고 이제 저희를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싯다르타는 그들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붓다라고 부르는 것도 허락해 주었어요. 숲길을 가다가 우연히 화려한 옷을 입은 젊은이들을 만났어요. 젊은이들은 몹시 화가 나서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었어요. 그들 중 한 젊은이가 물었어요. “수행자님, 혹시 달아나는 여자를 못 보셨습니까?” “왜 그 여자를 찾는가?” 붓다가 묻자 젊은이들이 자세히 설명했어요. 그들은 숲으로 놀러 나온 부유한 젊은이들인데, 재미있게 놀려고 여자를 한 명 데리고 왔어요. 숲에서 놀다가 잠시 나무 그늘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 그 여자가 그들의 보석과 장신구 같은 귀중품을 모두 가지고 도망가 버린 거예요. 그래서 그 여자를 잡으려고 이렇게 달려온 것이었어요. 붓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물었어요. “생각해 보아라. 지금 이 순간, 그 여자를 찾는 게 중요한가? 아니면 그대들 자신을 찾는 게 중요한가?” 젊은이들은 붓다의 질문에 깜짝 놀랐어요. 그 중 한 젊은이가 얼른 대답했어요. “수행자님, 저희는 저희 자신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붓다가 미소 지으며 말했어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누군지 잘 모른 채 살고 있다. 나를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그 무엇보다 자신의 참된 모습을 찾는 일에 힘쓰도록 해라. 그래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젊은이들은 감동하여 붓다를 바라보았어요. 붓다는 깨달음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어요. 젊은이들은 열심히 듣더니 모두 무릎을 꿇고 제자로 받아 달라고 간청했어요. 붓다는 그들 모두를 제자로 받아들였어요. 붓다의 제자는 점점 늘어났어요. 다른 곳에서 수행하던 수행자들도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것을 알고 다들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왔어요. 이제 붓다의 제자는 1,250명이나 되었어요. 붓다가 마가다국의 야자나무 숲에서 머물고 있을 때 마가다국의 빔비사라 왕이 찾아왔어요. 왕의 주변에는 많은 수행원이 따르고 있었어요. 빔비사라 왕은 붓다를 만나자 공손히 인사하고 말했어요. “저에게도 깨달음의 열매를 나누어 주십시오.” 붓다는 깨달음에 대해 친절히 설법해 주었어요. 붓다의 설법을 들은 왕의 표정이 금세 환해졌어요. “붓다여, 어렸을 때 저에게는 세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왕이 되는 것인데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두 번째는 깨달음을 얻은 스승을 만나는 것인데 그것도 지금 이루어졌습니다. 세 번째는 그런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인데 그것도 지금 막 이루어졌습니다!” 빔비사라 왕은 붓다에게 합장을 하고 다시 말했어요. “붓다의 가르침 덕분에 저도 이제 깨달음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부탁하건대 저를 붓다의 속가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붓다는 기꺼이 왕을 속가 제자로 받아 주었어요. 빔비사라 왕은 붓다와 1,250명의 수행자들을 모두 궁전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했어요. 붓다는 식사 후에 보통 사람들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에 대해 설법했어요. 붓다의 설법이 끝나자 빔비사라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어요. “저는 붓다의 승단에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라자가하 북쪽에 베누바나라는 아름다운 대나무 숲이 있는데 그곳에 수도원을 지어 드리겠습니다.” 붓다는 왕의 선물을 고맙게 받아들였어요. 행복을 위한 다섯 가지 계율. 1.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는 것. 2. 도둑질을 하지 않는 것. 3. 남녀 사이의 예절을 지키는 것. 4.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5. 술이나 자극제를 사용하지 않는 것. 붓다가 왕궁을 떠나온 지도 어느덧 7년이 지났어요. 하루는 왕궁에서 사람이 찾아와 숫도다나 왕이 붓다를 보고 싶어 한다고 전했어요. 붓다도 아버님과 아내, 아들이 잘 지내는지 궁금했어요. 붓다는 300명의 제자를 데리고 고향으로 향했어요. 붓다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숫도다나 왕이 마차를 타고 마중을 나왔어요. “오, 아들아!” 숫도다나 왕은 붓다의 모습을 보고 예전에 아시타 성자가 예언한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붓다는 숫도다나 왕과 왕궁으로 들어갔어요. “어서 오세요!” 궁전에 도착하자 마하파자파티 왕비와 아내 야소다라, 그리고 아들 라훌라까지 달려 나왔어요. 일곱 살 소년인 라훌라는 달려와 붓다에게 안겼어요. 붓다는 라훌라를 꼭 안아 주었어요. 마하파자파티 왕비는 건강이 좋아 보였고, 야소다라도 여전히 예전처럼 아름다웠어요. 마하파자파티 왕비와 야소다라는 붓다를 마주 보며 조용히 울고 있었어요. 기쁨의 눈물이었어요. 붓다는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라훌라를 옆에 앉혔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야소다라가 묻자 붓다는 수행과 깨달음에 대해 자세히 들려주었어요. 붓다는 가족들도 수행과 깨달음에 대해 관심을 갖기를 바랐어요. 붓다의 마음이 통했는지 라훌라가 수행에 대해 관심을 가졌어요. 라훌라가 붓다에게 물었어요. “저도 출가할 수 있나요?” 붓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다른 제자들이 라훌라가 아직 너무 어리다고 하자 붓다가 말했어요. “아직 어리지만 예비 수련을 하면 문제없을 것이다.” 인문학 인물 탐구 2. 온 세상에 행복을 전하다. 붓다는 고향을 떠나 베누바나 수도원으로 돌아왔어요. 그 무렵 붓다의 승단에 마하카사파라는 뛰어난 제자가 새로 들어왔어요. 마하카사파는 마가다국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어요. 마하카사파는 결혼하여 10년 넘게 살았지만 부유한 생활에서는 기쁨을 얻지 못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내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앗, 독사다!” 독사가 잠든 아내의 팔뚝으로 기어오르고 있었어요. 마하카사파는 놀라 몸이 얼어붙었어요. 그러나 다행히 독사는 아내의 팔을 타고 넘어 밖으로 나가 버렸어요. 마하카사파는 그것을 보고 삶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지 깊이 깨닫게 되었어요. 얼마 후, 그는 수도원으로 붓다를 찾아가 말했어요. “붓다여, 부디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붓다는 한눈에 그가 뛰어난 수행자가 될 것임을 알고 그 자리에서 제자로 받아들였어요. 하루는 수닷타라는 상인이 붓다를 찾아왔어요. 곁에서 붓다를 모시는 제자 아난다가 그를 맞이했어요. 그는 코살라국의 수도인 사밧티에 살고 있는데 엄청난 부자였어요. 또 고아와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자선 사업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었어요. “붓다여, 깨달음에 대해 제게 좀 말씀해 주십시오.” 붓다는 그에게 자비와 이해에 대해 일러 주고 깨달음을 얻는 바른 길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었어요. 수닷타는 붓다의 말을 듣고 큰 기쁨을 느꼈어요. 수닷타는 그 자리에서 속가 제자가 되기를 원했고 붓다는 그를 제자로 받아 주었어요. 수닷타는 이튿날 다시 붓다를 찾아와 말했어요. “앞으로 코살라국 사람들도 붓다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시면 제가 큰 수도원을 지어 기증하겠습니다.” 붓다가 수닷타의 제의를 고맙게 받아들이자, 수닷타는 기뻐하며 코살라국으로 돌아갔어요. 코살라국은 마가다국 못지않은 크고 부강한 왕국이었어요. 수닷타는 코살라국의 수도인 사밧티에 도착하여 수도원을 지을 만한 장소를 찾아보았어요. 가만 보니 코살라국의 제타 왕자가 가지고 있는 공원이 수도원을 짓기에 가장 적당했어요. 수닷타는 곧바로 제타 왕자를 찾아가 말했어요. “왕자님, 저는 붓다와 승단을 위해 수도원을 지으려 합니다. 그러니 제타 공원을 제게 파십시오.” 제타 왕자가 웃으며 말했어요. “당신이 그 공원 전체를 금화로 덮는다면 팔겠소.” 제타 왕자는 팔지 않겠다는 뜻을 그런 식으로 돌려서 말했어요. 하지만 수닷타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당장 제타 공원을 금화로 덮기 시작했어요. 드넓은 제타 공원이 점점 금화로 덮이자 제타 왕자가 수닷타를 불러 말했어요. “그만하시오. 저 정도로도 충분하오. 나머지 땅은 선물로 주겠소. 팔지 않으려 했는데 당신의 정성에 내가 손을 들었소. 정말 붓다와 그의 승단은 대단한 모양이군.” 수닷타는 왕자의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어요. 수닷타는 그날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몇 달 만에 제타바나 수도원을 완성했어요. 수도원이 완성되자 수닷타는 마가다국으로 가서 붓다를 모셔 왔어요. 붓다는 300명의 제자들과 코살라국으로 건너가 제타바나 수도원을 보고 수닷타를 칭찬했어요. “아름다운 수도원을 짓느라 참 수고가 많았소.” 하지만 수닷타는 모든 공을 제타 왕자에게 돌렸어요. 그러자 붓다는 수닷타의 겸손한 마음을 다시 칭찬해 주었어요. 어느 날, 붓다는 수행자들과 강변을 걷다가 오물을 운반하고 있는 한 사내와 마주쳤어요. 사내는 붓다 일행을 보고 후닥닥 달아나 강으로 뛰어들었어요. 고귀한 분들께 자신의 더러운 몸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그때 붓다가 강가로 다가가 사내에게 말했어요. “친구여, 가까이 오라.” 그러자 사내는 손을 모아 합장을 하며 말했어요. “저는 갈 수 없습니다. 저는 더러운 천민입니다.” 붓다가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요. “우리들의 길에는 귀하고 천한 것이 없다. 또한 사람을 더럽힐 수 있는 건 오물 따위가 아니라 탐욕, 증오, 미움 같은 것일 뿐이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저는 수니타라고 합니다.” 붓다가 다시 말했어요. “수니타, 깨달음의 길에는 빈부와 귀천이 없다. 너도 원한다면 수행자가 될 수 있다.” 수니타는 깜짝 놀랐어요. “그동안 어느 누구도 제게 이토록 친절을 베푼 분은 없었습니다. 붓다께서 저를 받아 주시기만 한다면 생명을 바쳐 가르침에 따르겠습니다!” 붓다는 수니타의 손을 잡고 제자들에게 말했어요. “함께 수니타를 목욕시키자. 당장 이 자리에서 수니타를 제자로 받아들이겠다.” 붓다와 제자들이 수니타를 깨끗이 씻겨 주고 긴 머리도 깎아 주었어요. 천민이 수행자가 되었다는 소문은 금세 퍼졌어요. 이에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 된다며 화를 냈어요. 코살라국 역사상 천민이 수행자가 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에요. 계속 심한 비난이 쏟아지자 코살라국의 파세나디 왕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왕도 천민이 수행자가 된 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어느 날, 파세나디 왕은 수도원으로 찾아갔어요. 그때 왕은 수도원 입구에서 어떤 수행자가 사람들에게 무언가 가르치는 것을 보았어요. 그 수행자는 무척 고결하고 평화로워 보였어요. 왕은 지나치며 잠시 그의 설법을 듣고 감명을 받았어요. ‘이따 갈 때 저분에게 따로 가르침을 받아야겠다.’ 왕은 그렇게 생각하고 붓다를 만나러 갔어요. 파세나디 왕이 붓다에게 물었어요. “저 앞에 있는 수행자는 누구입니까?” 붓다가 그쪽을 보고 가만히 미소 지었어요. “그는 수니타입니다. 한때는 오물을 나르던 천민이었지요.” 순간 왕은 당황했어요. 그토록 고결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수행자가 천민이었다니 믿기지 않았어요. 붓다가 다시 말했어요. “수니타는 불과 삼 개월 전에 입문했으나 지금은 아주 뛰어난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왕이 말했어요. “제가 오늘 여기 온 건 수니타 수행자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수니타 수행자에게 공양을 드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붓다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어요. “왕이여, 깨달음의 길은 평등합니다. 모든 사람의 피는 붉고, 모든 사람의 눈물을 짜답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인간입니다. 내가 수니타를 받아들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왕이 합장을 하며 말했어요. “붓다의 용기와 지혜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최선을 다해 승단을 돕겠습니다.” 왕은 흡족한 마음으로 수도원을 떠났어요. 수행자 중에는 붓다의 동생인 난다도 있었어요. 그는 수행자가 된 후에도 고민이 많았어요. 난다는 출가하기 전 약혼했던 카리아니를 잊지 못하고 있었어요. 난다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생각날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고, 명상을 할 때도 늘 카리아니가 생각났어요. 붓다가 난다의 마음을 알고 어느 날 그를 불렀어요. “카리아니가 그리워 수행이 되지 않는 모양이구나?” 난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붓다가 다시 말했어요. “세상에는 카리아니만큼 아름다운 여자들이 많단다.” 난다는 고개를 저었어요. “그러나 저는 오직 카리아니만을 좋아합니다.” “집착하지 말거라. 집착은 수행의 가장 큰 적이다. 너는 세상 모든 것이 변한다는 진리를 모르느냐?” 붓다는 그렇게 말한 뒤 저 앞에 걸어가고 있는 한 할머니를 가리켰어요. “저 할머니도 한때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카리아니의 아름다움도 세월이 흘러가면 또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도 너는 깨달음의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가겠느냐?” “난다야, 저기 나무 위에서 노는 두 마리 원숭이를 보아라. 네 눈에는 저 원숭이가 전혀 예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 수컷 원숭이는 암컷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원숭이로 보인단다.” 난다는 붓다의 말을 듣고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듯 환한 표정을 지었어요. “아, 알겠습니다!” 붓다는 난다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어요. “난다야, 깨달음이 주는 행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참된 행복이란다. 그것은 절대 사라지는 법이 없다. 그러한 행복을 구하도록 해라.” 하루는 망상에 빠진 제자 말룽카가 붓다를 찾아왔어요. “붓다여, 세계는 영원한 것입니까? 저 우주의 끝에는 무엇이 있나요? 저는 이런 게 너무 궁금해서 도저히 수행을 할 수 없습니다. 제발 가르쳐 주십시오!” 붓다가 그에게 되물었어요. “어떤 사람이 독화살에 맞았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얼른 독화살을 뽑고 의사를 불러와 치료를 해야지요.” “그런데 만일 독화살을 누가 쏘았는지, 독화살에 어떤 독이 묻었는지, 독화살은 어떤 나무로 만들었는지 알기 전에는 절대 치료받지 않겠다면 어떠하겠느냐?” “그럼 그 사람은 죽게 될 것입니다.” 붓다가 다시 말했어요. “그와 마찬가지다. 너는 수행은 하지 않고 늘 망상에 빠져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나이를 먹고 죽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젠 망상에서 벗어나 수행에만 힘쓰도록 해라.” 말룽카는 붓다의 말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다시는 망상에 빠지지 않게 되었어요. 하루는 붓다가 제자들과 함께 밭 근처를 가고 있었어요. 마침 씨앗을 뿌리는 계절이라 밭에는 많은 일꾼들이 농장 주인과 함께 일을 하고 있었어요. 농장 주인은 붓다를 보더니 비꼬는 말로 투덜거렸어요. “우린 땀 흘려 쟁기질을 하고, 씨를 뿌리고, 물소를 이끌고, 열매를 거둡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붓다가 조용히 대답했어요. “우리들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오. 참된 마음의 밭에 믿음의 씨앗을 뿌리지요.” “우리의 쟁기는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고, 우리의 물소는 부지런한 수행이오. 그리고 우리의 열매는 사랑과 자비라오. 잘 생각해 보시오. 만약 믿음과 이해, 사랑과 자비가 없다면 이 세상이 어찌 되겠소? 그런 세상은 오로지 고통뿐이오.” 농장 주인은 붓다의 말에 크게 감동했어요. “수행자야말로 가장 훌륭한 농사를 짓는 사람이군요.” 농장 주인은 붓다에게 합장으로 인사를 했어요. 어느 날, 붓다가 설법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모든 제자들이 법당으로 모였어요. 붓다가 법당에 앉아 잠시 아무 말도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어요. 이윽고 붓다는 연꽃 한 송이를 가만히 들어 올리더니 제자들을 돌아보았어요. 제자들은 어리둥절하여 서로 쳐다보기만 했어요. 그런데 그때 마하카사파만 혼자 붓다의 뜻을 알아채고 빙그레 웃었어요. 마하카사파의 미소를 보더니 붓다 역시 빙그레 웃었어요. 잠시 후, 붓다가 제자들을 향해 말했어요. “불법은 말과 글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 전에 나는 마하카사파에게 그것을 전해 주었다.” 모든 제자들이 마하카사파를 돌아보았어요. 마하카사파는 여전히 빙그레 미소 짓고 있었어요. 그의 얼굴은 다른 때보다 더 평온해 보였어요. 세월이 흘러 붓다도 이제 나이가 많아졌어요. 붓다가 아난다와 함께 수도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갑자기 땅이 크게 흔들리며 지진이 일어났어요. 아난다가 놀라 주저앉자 붓다가 말했어요. “아난다야, 나는 석 달 안에 세상을 뜰 것이다.” 아난다는 깜짝 놀라 엎드려 애원하듯 말했어요. “안 됩니다! 좀 더 저희들을 이끌어 주십시오!” 붓다는 대답 없이 수행자들을 법당으로 모이게 했어요. 모든 수행자들이 법당에 모이자 붓다가 말했어요. “그동안 나는 깨달음을 위해 수행하는 것만이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고 가르쳤다. 너희들도 더욱 열심히 수행하여 꼭 깨달음에 이르기를 바란다.” 이윽고 붓다가 다시 석 달 안에 세상을 뜰 것이라고 말하자, 수행자들은 깜짝 놀라며 슬퍼했어요. 몇몇 수행자들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어요. 붓다는 제자들과 여러 곳을 여행하며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었어요. 어느 날, 붓다는 커다란 망고 과수원에 도착했어요. 쿤다라는 신도가 붓다를 초대한 거예요. 쿤다는 제자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차려 주었고, 붓다를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준비한 버섯 요리를 드렸어요. 그런데 그날 밤, 붓다는 심한 복통에 시달렸어요. 버섯 요리가 이상을 일으킨 것이었어요. 이튿날 붓다는 다시 제자들과 길을 떠났어요. 길을 걷는 동안에도 붓다의 복통은 계속되었어요. 곁에 있던 제자가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붓다여, 쿤다가 공양한 버섯 요리가 나빴습니다.” 그러자 붓다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어요. “그렇게 생각하지 말거라. 쿤다는 정성을 다해 나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그러니 쿤다를 만나면, 그 식사는 내 생애에 있어 가장 소중한 식사였다고 말해 주어라.” 붓다는 쿠시나가라의 사라수 숲에 도착했어요. 아난다는 두 개의 사라수 사이에 붓다가 누울 자리를 마련했어요. 붓다 주변의 사라수들은 아직 봄이 되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붉은 꽃으로 뒤덮여 있었어요. 이윽고 붓다가 한 제자에게 물었어요. “아난다가 보이질 않는구나. 그는 어디 있느냐?” “아난다는 나무 뒤에서 울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붓다는 아난다를 불러오게 한 뒤 그를 위로했어요. “아난다야, 슬퍼하지 마라. 너는 오랫동안 정성을 다해 나를 보필해 주었다. 그리고 그동안 열심히 수행했으니 반드시 깨달음의 열매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붓다는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어요. “다들 진리를 등불로 삼아 힘써 수행하도록 하라.” 붓다는 그렇게 말한 뒤 눈을 감았어요. 순간 땅이 크게 흔들렸고, 사라수 꽃잎이 소나기처럼 떨어져 흩날렸어요. 붓다는 그렇게 열반에 들었어요.
꿈과 행복의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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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_고학년
“이 녀석!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냐?” 디즈니는 큰 고함 소리에 깜짝 놀라 뒤로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어요. 심부름을 가던 길에 잠깐 헛간 벽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그만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거예요. “아, 아버지. 죄송해요. 얼른 심부름 갔다 올게요.” 디즈니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려고 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어요. 아버지의 고함 소리를 듣고 놀라서 달려온 엄마와 로이 형도 크게 웃고 말았지요. “하하하! 월트, 네 얼굴 좀 봐. 온통 페인트로 엉망이야.” “대체 뭘 하느라 그렇게 정신이 빠진 거야?” 아버지는 월트가 그린 그림을 보았어요. 그리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오, 다섯 살짜리가 그린 그림치고는 정말 훌륭한데? 월트가 그림에 소질이 있구나!” 디즈니는 시카고에서 태어났어요. 하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시골로 이사를 했어요. 디즈니 가족은 모두 힘을 합쳐 농장을 꾸려 나가며 생활했어요. 농장 일이 힘들기는 했지만 디즈니는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걸 좋아했어요. 학교에서는 어릿광대처럼 행동하며, 친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연기든, 코미디든 뭐든지 하려고 애를 썼지요. 또 한 가지, 디즈니는 그림 그리는 것을 참 좋아했어요. 부모님이 사 준 물감과 그림 도구로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지요. 물감이 없을 때는 땅에 그림을 그리거나 물로 바위에 그림을 그렸어요. 그림도 꽤 잘 그려서 마을 사람들이 종종 디즈니에게 “그림을 좀 그려 줄래?” 하고 부탁을 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시골에서도 집안 형편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디즈니 가족은 다시 캔자스라는 곳으로 이사했어요. 아버지는 캔자스에서 신문 보급소를 차렸는데 신문 배달은 디즈니 형제들의 몫이었어요. 아홉 살인 디즈니도 다른 형제들과 함께 신문 배달을 해야 했어요. 배달을 하고 남은 신문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팔았어요. “신문이요, 신문! 새로운 소식이 가득한 신문이요!” “녀석, 아주 활기가 넘쳐서 좋구나!” 디즈니가 큰 목소리로 우렁차게 외치면 사람들도 기분 좋게 신문을 사 갔어요. 아침에 신문을 돌리고 나면 피곤해서 학교를 지각하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 졸기도 했어요. 게다가 학교 수업이 끝나면 또 식당으로 달려가 일을 하기도 했지요. 몸은 힘들었지만 디즈니는 늘 즐겁게 일했어요. 모든 일을 마치고 나면 혼자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니까요. ‘오늘은 어떤 만화를 그려 볼까?’ 디즈니는 신문에 실린 만화를 흉내 내어 그렸어요. 만화를 그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요. 집에서뿐만 아니라 교실 칠판에 우스운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교과서 귀퉁이에 동물을 그려 책장을 빨리 넘기면 마치 움직이는 듯한 재미있는 그림도 그렸어요. 그렇게 그림에 빠져 살던 디즈니가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디즈니 가족은 다시 시카고로 이사를 갔어요. 디즈니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수업은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 그저 학교 신문에 만화를 그리는 것만 재미있었지요. ‘만화를 그릴 때면 정말 행복해! 내가 행복한 것처럼 내 만화를 보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결국 디즈니는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두었어요. 하지만 꿈과 희망만은 버리지 않았어요. ‘나는 만화가가 될까?’ ‘아니면 사업가가 될까? 뭐가 됐든 꿈만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이룰 수 있을 거야.’ 디즈니는 시카고 예술 학교에서 수업을 받았어요. 그리고 카메라를 사서 친구와 짧은 영화를 만들기도 했어요.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한편, 생활을 위해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도 찾아야 했어요. 이런저런 일자리를 찾던 디즈니는 우체국에 취직하려 했어요. 하지만 너무 어려 보인다고 거절당했어요. ‘말도 안 돼! 어려 보인다고 일자리를 줄 수 없다니! 좋아, 그럼 어려 보이지 않으면 되잖아.’ 디즈니는 집으로 가서 양복을 입고 중절모자를 쓰고, 수염까지 그렸어요. 그런 다음에 다시 우체국으로 찾아갔어요. 그렇게 해서 결국 디즈니는 우체국에 취직할 수 있었답니다. 디즈니가 우체국에서 일을 하는 동안 형 허버트와 로이는 군대에 들어갔어요. 당시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미국이 전쟁에 가담하자 젊은이들은 너도나도 군대에 지원했어요. 디즈니도 해군에 지원했지만 나이가 어려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나도 형들처럼 나라를 위해 싸우고 싶어. 그런데 열여덟 살이 되어야 군대에 갈 수 있다니 너무 아쉽다.’ 그런데 디즈니가 군대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생겼어요. 적십자에서 새로 만든 구급 부대는 나이가 조금 어려도 지원할 수 있었어요. 디즈니는 당장 훈련소에 들어가 부상병을 치료하고 간호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그리고 곧 프랑스로 파견되었어요. 디즈니가 전쟁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전쟁이 거의 끝나 가고 있었어요. 디즈니는 부상병을 치료하는 일 대신 장교들의 심부름을 하거나 만화를 그리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부대 안에 디즈니의 그림 솜씨가 소문이 나면서 병사들이 자기들의 초상화를 그려 달라고 찾아왔어요. 하루는 동료 병사가 디즈니에게 이런 제안을 했어요. “이봐, 그 솜씨로 돈을 좀 벌자. 독일군 철모에 그림을 그려서 본국으로 돌아가는 병사들에게 파는 거야.”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디즈니는 동료와 함께 멀쩡한 독일군 철모를 일부러 닳게 하고, 총으로 구멍까지 내 진짜 전쟁터에서 가져온 것처럼 만들었어요. 그리고 거기에다 그림을 그렸어요. “와, 전쟁 기념품으로 고국에 가져가면 정말 좋겠는걸!” 독일군 철모는 날개 돋친 듯이 팔렸어요. 그래서 디즈니와 동료 병사는 꽤 많은 돈을 벌었어요. 디즈니가 전쟁터에서 무사히 돌아오자 아버지가 말했어요. “월트, 이제 내 일을 좀 도왔으면 좋겠구나.” 그때 아버지는 젤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디즈니는 젤리 공장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버지, 저는 온통 만화 생각밖에 없어요. 저는 만화가가 될 거예요.” 아버지는 디즈니를 설득하려 했지만 결국 디즈니의 결심에 지고 말았어요. 디즈니는 캔자스에서 그림 공부를 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 관련 일자리도 찾아보았어요. 마침 디즈니 눈에 한 구인 광고가 들어왔어요.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어요. 디즈니는 그 스튜디오에 찾아가 운 좋게 취직이 되었어요. 비록 견습생이지만 스튜디오에서 일을 하게 된 디즈니는 무척 기뻤어요. 누구보다 먼저 회사에 출근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그림을 그렸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하루 종일 그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했어요. 그런데 일주일쯤 지났을 때 사장이 디즈니를 불렀어요. “디즈니 씨, 미안하지만 당신의 그림은 우리 회사와 맞지 않는 것 같군요.” 디즈니는 깜짝 놀랐어요. “네? 제 그림이 어디가 마음에 안 드시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 당신 그림은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봐 줄 수가 없어요. 솔직히 당신은 그림에 소질이 없는 것 같으니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나을 겁니다.” 그는 그제야 직원들이 자신의 그림을 보고 웃었던 일이 생각났어요. 알고 보니 자신의 그림을 비웃은 거였어요. 항상 그림에 자신 있던 디즈니는 몹시 실망했어요. 그때 어브라는 동료가 다가왔어요. “월트, 너무 실망하지 마. 난 너의 뛰어난 재능을 믿어.” 어브는 그림 실력이 대단한 동료였어요. 디즈니와 서로 마음도 잘 맞아 금세 친해진 사이였지요. 어브의 격려에 디즈니는 다시 용기를 얻었어요. 디즈니와 어브는 아예 둘이 회사를 차렸어요. 그 무렵, 움직이는 만화 영화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어요. 디즈니와 어브도 만화 영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많은 연구를 했어요. 하루 종일 만화를 그리고 촬영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았지요. “이야기를 만들려면 대체 몇 장을 그려야 하는 거야?” “대략 1초에 16장 정도가 필요하다고 보면 1분짜리 만화 영화는 960장을 그려야 해. 엄청나군.” 그래도 디즈니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완성된 만화 영화를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났지요. 디즈니와 어브는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뉴먼 극장 지배인이 디즈니를 찾아왔어요. “만화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해 보겠소?” 마침 일거리가 없어서 힘들게 지내던 디즈니에게 극장 지배인의 제안은 마치 단비와 같았어요. 디즈니는 어브와 함께 구상에 들어갔어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첫 작품이 꼬마 선생이에요. 드디어 영화가 상영 되는 날, 디즈니와 어브는 떨리는 마음으로 관람석에 앉아 영화를 지켜보았어요. “사람들이 우리 영화를 마음에 들어 할까?” “글쎄, 제발 마음에 들어 하면 좋겠는데.” 하지만 두 사람의 걱정과 달리 결과는 좋았어요. 겨우 1분짜리였지만 꼬마 선생을 본 사람들은 움직이는 만화를 재미있고 신기해했어요. 소문이 나자 디즈니에게 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영화사도 많아지고, 만화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디즈니는 이어서 장화 신은 고양이, 빨간 모자 같은 옛이야기를 다시 만화 영화로 만들었어요. “어휴, 바쁘다. 바빠. 그런데 돈은 아직 입금이 안 되었나?” 영화를 만들고 나면 영화 필름을 여러 영화관에 배급해 주는 회사가 필요해요. 하지만 디즈니의 영화를 가져간 배급 회사는 돈을 바로바로 주지 않고 계속 미루기만 했어요. 일은 아주 바빴지만 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자 회사는 점점 어려워졌어요. 필름이나 그림 재료를 샀던 상점에서는 외상값을 독촉해 왔어요. 빚에 쪼들리게 된 디즈니와 어브는 결국 회사 문을 닫고 말았어요. 직원들도 모두 회사를 떠나고 디즈니와 어브도 헤어졌어요. 디즈니는 가지고 있던 카메라까지 모두 팔았지만 밥 한 끼 사 먹을 돈조차 없었어요.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거리를 걷던 디즈니는 누군가 버린 빵을 주웠어요. 곰팡이가 핀 빵이었지만 디즈니에게는 그것도 감지덕지였어요. 사무실로 돌아와 빵을 먹는데 어디선가 생쥐 한 마리가 나타났어요. “찍찍.” 생쥐는 디즈니를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고 주변을 맴돌았어요. “너도 배가 고픈가 보구나. 하긴 이 사무실에 먹을 게 하나도 없으니...” 디즈니는 생쥐가 가여워서 들고 있던 빵을 조금 떼어 주었어요. 그러자 잠시 눈치를 살피던 생쥐는 빵을 냉큼 먹었어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디즈니는 얼른 펜을 들었어요. “아주 귀여운걸! 스케치를 해 두면 좋을 것 같아.” 디즈니는 쥐의 모습과 표정을 자세하게 관찰하며 그림을 여러 장 그렸어요. 회사도 부도나고 돈도 하나도 없었지만 디즈니는 할리우드로 가기로 결심했어요. ‘여기서 이러고 있을 바에는 할리우드로 가서 무슨 일이든 찾아보자.’ 1923년, 미국 영화의 중심지 할리우드에 도착한 디즈니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두고 봐! 난 꼭 해낼 거야! 훌륭한 만화를 만들어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라게 해 줄 거야!’ 하지만 할리우드 역시 만만한 곳이 아니었어요. 그는 취직도 못 하고 이리저리 시간만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뉴욕에서 전보가 날아왔어요. 디즈니가 캔자스에 있을 때 뉴욕의 한 영화사에 샘플로 보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거예요. 그것도 열두 편이나 되는 시리즈를 모두 사겠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만화 영화를 제작할 돈이 문제였어요. “일이 생긴 건 좋은데 제작할 돈이 없으니 큰일이네.” 디즈니는 돈을 구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녔어요. 그때 로이 형이 디즈니에게 용기를 주었어요. “월트, 이 기회에 나랑 같이 회사를 차려서 영화를 만들자. 돈 걱정은 마. 내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디즈니는 형과 함께 디즈니 브라더스라는 회사를 차렸어요. 그리고 로이 형이 투자를 받아 와 사무실도 얻고 카메라도 사들였어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실제 소녀를 찍은 사진에 동물 그림을 합성한 작품이에요. 디즈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출연할 여자아이를 섭외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도 그렸어요. 갑자기 할 일이 많아지자 디즈니는 어브에게 도움을 청했어요. 어브는 바로 달려와 디즈니를 도와주었어요. 사실 디즈니의 회사에서 일하던 만화가들이 회사를 그만둔 더 큰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어요. 행복한 토끼 오스왈드를 사들인 배급사 사장이 디즈니 회사에 있던 만화가들을 꾀어 자기 회사로 데리고 간 거예요. 그러면 디즈니에게 돈을 주고 만화 영화를 살 필요가 없으니까요. 결국 디즈니는 직원들은 물론 오스왈드 캐릭터까지 빼앗기게 되었어요. ‘세상에 이럴 수가!’ 디즈니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무엇보다 믿었던 직원들이 자신을 배신한 것이 너무 분했어요. ‘그래도 난 주저앉지 않아! 오스왈드보다 더 재미있는 캐릭터를 만들 거야!’ ‘그래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그런 놀라운 작품을 만들 거야!’ 디즈니는 어금니를 꽉 물었어요. 그리고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어요. 잔뜩 기대를 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잠깐 인기를 끄는가 싶더니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반응이 시들해졌어요. 디즈니는 재빨리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그건 바로 토끼였어요. 귀여운 토끼 캐릭터에 ‘오스왈드’라는 이름을 짓고 행복한 토끼 오스왈드라는 만화 영화를 만들었어요. 다행히 오스왈드는 많은 인기를 끌었어요. 또다시 일이 많아져서 디즈니는 사무실을 더 큰 곳으로 옮겼어요. 회사 이름도 ‘월트 디즈니’로 바꾸었지요. 그런데 오스왈드 시리즈를 빠른 시간 안에 많이 만들다 보니 디즈니는 마음이 급해졌어요. “빨리빨리 좀 해요!” “이봐, 자네는 왜 이렇게 굼뜬 거야!” 만화를 그리는 직원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화풀이를 하기도 했어요. 그러자 그와 같이 일하던 직원들이 하나둘 회사를 그만두기 시작했어요. “그래, 생쥐를 주인공으로 만화를 만들어 보자!” 어느 날, 디즈니는 곰팡이가 핀 빵을 나누어 먹었던 생쥐가 떠올랐어요. 디즈니가 생쥐 캐릭터가 어떠냐고 묻자 로이 형과 어브는 반대했어요. “왜 하필이면 쥐야. 사람들이 쥐를 얼마나 싫어하는데. 다른 동물을 찾아보자.” “아니야, 생쥐에 옷도 입히고 구두도 신기면 재미있어 할 거야. 아, 장갑이랑 모자도 씌우면 멋있겠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미키 마우스’예요. 디즈니는 미키 마우스를 주인공으로 만화 영화를 만들었어요. 마침 영화계에는 화면과 함께 소리도 들리는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소리가 나오지 않는 무성 영화는 보려고 하지 않을 거야.” “앞으로는 전부 유성 영화로 바뀔 테니까. 물론 만화 영화도 마찬가지지.” 디즈니도 유성 만화 영화를 제작했어요. 그래서 탄생한 것이 미키 마우스가 주인공인 증기선 윌리호예요. 디즈니는 자신의 목소리로 미키 목소리를 녹음했어요. 그리고 다양한 효과음뿐만 아니라 음악도 넣었지요. “만화 영화에 음악을 넣는다고요?” “그렇게 하려면 악단이 있어야 해요. 돈이 많이 들 텐데요?” “사람들이 좋아하기만 하면 괜찮습니다.” 30명이나 되는 악단이 음악을 녹음하다 보니 정말 제작비가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디즈니는 제작비에 신경 쓰지 않고 온 정성을 다해 증기선 윌리호를 완성했어요. 1928년, 뉴욕시의 한 극장에서 증기선 윌리호의 시사회가 열렸어요. 시사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휘파람을 부는 미키에 푹 빠졌어요. “생쥐가 휘파람을 불다니, 대단하다!” “소리가 나니까 더 실감 나는 거 같아.” 사람들은 미키 마우스를 아주 좋아했어요. 최초의 소리 나는 만화 영화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어요. 미키 마우스를 보러 온 사람들로 극장은 날마다 북적거렸어요. 영화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자 디즈니는 밤낮없이 일을 했어요. 쉬지 않고 일만 해서 늘 피곤했어요. “여보, 병원에 가서 진찰 좀 받아 봐요.” “이렇게 무리하다가는 정말 큰일 나겠어요.” 아내가 걱정스럽게 말했어요. “이 정도 가지고 무슨 병원을 가라는 거야?” “건강을 잃으면 다 소용없어요. 오늘은 꼭 가 봐요.” 디즈니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병원에 갔어요. 진찰을 마친 의사가 말했어요. “더 무리를 하면 쓰러질 수도 있어요. 그러니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요양을 좀 하세요.” 의사의 충고에 따라 디즈니는 일을 잠시 중단하고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났어요. 그렇게 한동안 푹 쉬고 건강을 회복한 후에 다시 회사로 돌아왔지요. “이제 몸도 회복되었으니 다시 일을 시작하자!” 디즈니는 이전보다 더 열심히 만화 영화에 매달렸어요. 영화계에는 또다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어요. 흑백 영화가 컬러 영화로 바뀌기 시작한 거예요. “드디어 만화 영화에 무지개를 그릴 수 있겠어!” 디즈니는 컬러 화면을 보고 즐거워할 사람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어요. 하지만 컬러 영화 역시 유성 영화를 만들 때처럼 많은 돈이 필요했어요. 그 무렵 디즈니는 숲의 아침이라는 흑백 만화 영화를 거의 완성해 두었는데, 이것을 버리고 컬러 영화로 다시 만들자고 했어요. “그건 안 돼!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든다고!” 로이 형이 걱정스럽게 말했어요. 하지만 디즈니를 말릴 수는 없었어요. 일단 마음먹으면 그 누구도 디즈니를 방해할 수 없었어요. 1932년, 드디어 컬러로 만든 숲의 아침을 개봉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어요. 최초의 컬러 만화 영화인 숲의 아침으로 디즈니는 아카데미상까지 받았어요. 디즈니는 더욱 바빠졌어요. 돈도 많이 벌었지만 버는 대로 모두 만화 영화 제작에 투자했어요. 스튜디오도 넓히고 직원도 더 많이 두었어요. 그리고 만화가들이 만화를 더욱 잘 그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냈어요. “그래, 스튜디오 안에 미술 학교를 세우는 거야.” 디즈니는 미술 학교뿐만 아니라 스튜디오에 작은 동물원도 만들었어요. 만화가들이 동물의 움직임을 관찰해 생생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말이에요. 또한 사진도 열심히 찍어 두었어요. 만화 영화 밑그림을 그리는 데 중요한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예요. 이렇게 디즈니는 만화 영화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냥 넘기지 않았어요. 디즈니의 머리에는 늘 만화 영화 생각뿐이었어요. 어느 날, 디즈니는 라디오에서 짐승 울음소리를 잘 내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어요. “진짜 기가 막히는군. 어쩌면 저렇게 똑같을까.” 감탄하던 디즈니는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래, 저 사람을 우리 스튜디오로 데려오자. 우리 만화 영화에 목소리를 입히면 재미있겠는걸.” 그는 라디오에 출연한 내시라는 사람에게 연락했어요. “내시, 당신의 동물 흉내 소리가 우리 만화 영화에 꼭 필요해요. 우리와 함께 일하지 않겠습니까?” 그날 이후 내시는 디즈니와 함께 일하게 되었어요. 디즈니의 새 영화인 영리한 암탉에는 암탉 한 마리가 나와요. 암탉이 밭에 옥수수 씨앗을 뿌리면 오리 한 마리가 나타나 방해하는 장면이 있지요. 내시가 내는 독특한 오리 소리가 이 장면과 아주 잘 들어맞았어요. 그 오리의 이름이 바로 ‘도널드 덕’이랍니다. ‘귀하는 미키 마우스를 만들어 전 세계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한 공로가 매우 큽니다. 이에 우리 국제 연맹에서는 디즈니 부부를 파리로 초청해 그 공로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국제 연맹에서 디즈니에게 휘장을 준다는 내용도 쓰여 있었어요. 디즈니는 기쁜 마음으로 파리로 가서 감사의 마음을 전했어요.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즐거움을 드리려고 만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저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런데 이렇게 큰 상을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키 마우스’는 국제 연맹의 국제 친선 마스코트로도 선정되었어요. 이렇게 해서 ‘월트 디즈니’란 이름이 온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어요. 디즈니가 만든 만화 영화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어요. 캐릭터는 물론이고 영화에 나오는 노래도 미국 곳곳에 유행처럼 퍼졌지요.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디즈니를 찾아왔어요. “디즈니 선생, 당신이 그린 미키 마우스의 생쥐 그림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물론 값을 치르고요.” “제 그림을 어디에 쓰려고 하십니까?” “초등학생들의 공책이나 학용품에 미키 마우스 그림을 넣었으면 해요.” 디즈니는 그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그 후 디즈니 만화 영화의 주인공들이 공책 표지는 물론 장난감으로도 만들어졌어요. 디즈니의 캐릭터 상품도 디즈니의 만화 영화처럼 큰 인기를 끌었어요. 그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던 1935년, 국제 연맹에서 반가운 연락이 왔어요. 디즈니의 꿈은 늘 하나였는데 바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더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지요. 그는 또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지금까지 단편 영화만 만들었지만 이제 장편 만화 영화를 만들어야겠어!” 그 말에 로이 형이 깜짝 놀라 물었어요. “장편 만화 영화라니? 만화 영화를 한 시간 넘게 보여 준단 말이야? 사람들이 과연 보러 올까?” 자신이 없는지 로이는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걱정 마, 형. 잘될 거야.” 디즈니는 자신 있게 말했어요. “아니야. 이건 무모한 짓이라고.” “글쎄, 형. 걱정 말라니까.” “무슨 일이든 처음이 힘든 법이야. 하지만 힘들다고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무슨 발전이 있겠어.” 디즈니는 끝까지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어요. 디즈니는 장편 만화 영화인 백설 공주를 완성하기 위해 온 정성을 다했어요. 직원들과 다른 유명한 영화를 보면서 배우들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연구했어요. 또 백설 공주가 실제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무용수를 고용해 백설 공주의 옷을 입히고 춤을 추게 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3년 동안 디즈니와 직원들은 열성을 다해 백설 공주를 만화 영화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1937년, 드디어 디즈니의 첫 장편 만화 영화인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완성되었어요. 영화가 개봉되자 첫날부터 인기가 하늘을 찔렀어요. “우와, 대단하다! 월트 디즈니는 만화 영화의 마술사야!” 백설 공주를 본 사람마다 감탄사를 쏟아 냈어요. 백설 공주의 인기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 나갔어요. 그해 디즈니는 백설 공주로 아카데미 특별상까지 휩쓸었어요. 디즈니는 늘 새로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어요. 백설 공주에 이어 신데렐라 같은 만화 영화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등장하는 극영화 보물섬을 비롯해 물개의 생활을 소개한 기록 영화 물개의 섬 등 다양한 영화를 만들었어요. 디즈니의 영화는 인기가 좋아서 만들기만 하면 순식간에 세계 곳곳으로 팔려 나갔어요. 그런데 디즈니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려고 획기적인 구상을 하고 있었어요. “나는 지금까지 상상한 것들을 만화 영화로 만들어 왔다. 그런데 만일 만화 영화 속의 장면을 실제로 만나면 사람들은 또 얼마나 행복해할까.” 디즈니는 문득 두 딸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어요. “옛날엔 아이들과 공원도 자주 가고, 집에서 장난감 기차도 만들고 놀았지. 그때 참 재미있었는데...” “아, 그래! 공원을 만들자! 만화 영화 속의 세계를 현실로 만들어 보는 거야!” 디즈니는 회사 직원들에게 말했어요. “만화 영화 속의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은 놀이공원을 만들어 봅시다. 꿈과 환상을 펼칠 수 있는 곳 말입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만화 영화의 주인공들과 함께 꿈과 희망을 키워 갈 것입니다.” 하지만 회사 직원들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언제나 그에게 도움과 격려를 주던 로이 형도 그의 뜻에 반대했어요. “무슨 놀이공원을 만들겠다는 거야? 만화 영화와 놀이공원이 무슨 관련이 있어? 공원을 만들려면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들 거야. 다시 생각해 보자.” 하지만 디즈니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어요. “형, 나는 아이들이 가족들과 즐길 수 있는 멋진 놀이공원을 만들고 싶어. 그곳에서 아이들이 가족과 추억을 만들고, 행복을 느낀다면 정말 근사할 거야.” 결국 디즈니는 할리우드에서 40킬로미터 떨어진 애너하임에 넓은 땅을 샀어요. 그리고 엄청난 공사가 시작되었지요. 1955년 7월 17일, 드디어 지금까지의 놀이공원과는 다른 새로운 놀이공원이 문을 열었어요. 바로 ‘디즈니랜드’예요! 디즈니랜드는 동화의 나라, 서부의 나라, 모험의 나라, 미래의 나라 등 일곱 개로 나뉘어져 있어요. 그리고 강 위에는 유람선이 떠다니고, 물을 뿜는 코끼리와 불꽃을 터뜨리는 궁전, 음악을 연주하는 동물 등 마치 만화 영화 속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어요. 또한 직원들은 디즈니 만화 영화의 주인공 옷을 입고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었지요. 문을 연 지 일주일 만에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디즈니랜드로 몰려왔어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찾아왔지요. 디즈니랜드의 일이 바빴지만 디즈니는 만화 영화 만드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그 당시 텔레비전이 새로 나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어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텔레비전의 등장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어요. 텔레비전 때문에 사람들이 영화관을 잘 찾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디즈니는 다르게 생각했어요. “텔레비전을 겁낼 필요는 없어.” “오히려 텔레비전에 맞는 만화 영화를 만들면 돼.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내 만화 영화를 보겠지.” 디즈니의 생각은 빗나가지 않았어요.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그의 만화 영화는 큰 인기를 끌었어요. 디즈니는 직접 텔레비전에 출연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친근하고 자상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출연하여 아이들도 디즈니를 참 좋아했어요. 디즈니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어요. 일생 동안 550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세계 최고의 놀이동산인 디즈니랜드도 만들었어요. 평생 어린이를 위해 만화 영화를 만들고,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큰 상을 받기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디즈니는 건강이 점점 안 좋아져 병원을 찾아갔어요. 디즈니를 진찰한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폐에 이상이 있습니다.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해요.” 의사의 말에 디즈니는 깜짝 놀랐어요.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이대로 병원 신세를 진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의사 선생님, 저는 아직 아이들을 위해 할 일이 많습니다. 제발 아이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해 주세요.” 디즈니는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어요. 디즈니의 가족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디즈니가 다시 일어나기를 바랐어요. 그 역시 빨리 병원에서 나가고 싶었어요.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월트, 이제 좀 쉬어라.” 로이 형이 말했지만 디즈니는 고개를 저었어요. “형, 나한테는 아직 꿈이 있어. 내가 새로 구상한 미래의 공원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꼭 보고 싶어.” 당시 디즈니는 에프콧이란 새로운 테마 공원을 구상하고 있었어요. 그는 죽어 가는 순간까지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새로운 공원을 구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1966년 12월 15일, 디즈니는 6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말았어요. 그 후 에프콧은 1982년에 완공되어 문을 열었지요. 디즈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있어요. 꿈과 희망, 즐거움과 행복을 나누어 준 세계 최고의 만화 영화 마술사로 말이지요.
서로 돕는 세상을 꿈꾼 사상가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톨스토이는 러시아 백작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어요. 방이 무려 42개나 되는 큰 저택에서 형들과 여동생 그리고 책을 아주 좋아하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어요. 어머니는 안타깝게도 톨스토이가 두 살 때 여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셨어요. 톨스토이 형제들에게 아주 자상했던 아버지 역시 톨스토이가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게다가 형들도 공부하러 먼 도시로 떠났기 때문에 톨스토이는 친척 아주머니가 돌보아 주었어요. 당시 러시아는 황제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땅을 가진 영주는 농민을 부리면서 호화롭게 살았고, 농민은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영주를 위해 일만 하며 어렵게 살았어요. 이렇게 영주를 위해 일하는 농민을 ‘농노’라고 해요. 톨스토이의 큰형은 상상력이 풍부해서 동생들과 재미있는 놀이를 곧잘 만들어 내고는 했어요. 하루는 큰형이 동생들에게 말했어요. “얘들아, 내가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밀을 알고 있어.” “세상에 그런 비밀이 어디 있어?” “있어. 그 비밀만 알면 세상 사람들이 싸우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아. 모두 똑같이 먹을 것을 나누어 먹고 같이 일하고 같이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비밀이야.” 큰형의 말에 동생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비밀이 얼마나 신기한지 모르는구나. 어쨌든 내가 그 비밀을 아무도 모르게 ‘초록색 지팡이’에 새겨서 뒷산에 묻어 두었어.” “어디에? 가르쳐 줘, 형.” 하지만 큰형은 뜸을 들였어요. “좋아, 그럼 내가 찾아볼래!” 동생 중 하나가 말하자 큰형이 다시 말했어요. “그 지팡이를 찾는다 해도 내가 쓴 글을 읽을 수는 없어.” “너무 소중한 비밀이라 내가 이상한 글씨로 써 놓았거든. 하지만 약속을 지키면 읽을 수 있지.” 큰형 말에 동생들은 안달이 났어요. “무슨 약속인데? 꼭 지킬게, 형!” 동생들의 반응에 큰형이 더욱 진지하게 말했어요. “흰곰을 절대로 생각하면 안 돼. 그리고 일 년 동안 토끼도 보면 안 되고, 무엇보다 이 비밀을 누구에게도 가르쳐 주면 안 돼.” “형, 그것만 지키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아프거나 죽지 않는 방법도 알게 되는 거야?” “그렇지.” 큰형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어요. 이날 큰형과의 대화를 톨스토이는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었어요. 어느 날, 톨스토이는 마당에서 형제들과 늙은 말을 타고 놀고 있었어요. 큰형부터 그 말을 타고 넓은 마당을 한 바퀴씩 돌았어요. 드디어 톨스토이가 말에 올라탔는데 말은 이미 많이 지쳐 있었어요. 비 오듯 땀을 흘리며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지요. 그런데도 톨스토이는 빨리 달리고 싶은 마음에 말에게 채찍질했어요. 지친 말은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자 톨스토이는 더 힘껏 채찍을 내리쳤어요. 그때 하인이 톨스토이에게 외쳤어요. “도련님은 정말 동정심이 없군요! 늙은 말에게 그렇게 모질게 채찍질하면 어찌합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톨스토이는 자신이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 깨달았어요. 톨스토이는 엉엉 울면서 늙은 말의 머리에 뺨을 비비며 사과했어요.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앞으로 다시는 괴롭히지 않을게.” 그 후로 톨스토이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고통을 주면 안 된다는 바른 마음을 가지게 되었어요. 톨스토이가 사는 마을은 성 소피아 성당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어요. 그래서 성당을 찾아 멀리서 온 여행객들이 마을에서 묵고는 했어요. 대부분 긴 여행에 지친 사람들이라 쉴 곳과 굶주린 배를 채울 곳을 찾았어요. 톨스토이의 집에도 여행에 지친 사람들이 자주 찾아왔어요. “죄송합니다만 먹을 것을 조금만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습니다.” 남루한 옷차림의 여행객들이 찾아오면 하인들은 탐탁지 않게 여겼어요. 하지만 톨스토이를 돌보아 주는 친척 아주머니는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 여행객들을 아주 친절하게 맞이했어요. 아주머니는 톨스토이에게 늘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 집에 찾아온 사람들은 하느님을 찾아온 귀한 손님과 똑같단다. 그러니 함부로 대하면 안 돼.” 상냥한 친척 아주머니를 보고 자란 톨스토이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며 함께 사는 법을 배우게 되었어요. 열세 살이 된 톨스토이는 고향을 떠나 형들이 공부하고 있는 카잔으로 갔어요. 형들과 함께 공부하던 시절, 톨스토이는 자기 외모를 무척 못마땅해했어요. “어휴, 나는 어쩜 이렇게 못생겼을까.” 거울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는 톨스토이를 보고 큰형이 물었어요. “뭐 하고 있어?” “형, 나는 너무 못생겼어!” 그러자 큰형이 톨스토이를 다독여 주며 말했어요. “사람은 겉모습보다 마음이 더 중요해. 사람은 신이 만들어 준 얼굴로 살아가는 거야. 신의 뜻대로 착하게 살면 못생긴 얼굴도 아름다워진단다.” 형의 말에 톨스토이가 물었어요. “형은 정말 신이 있다고 믿어?” “물론이지. 신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시는 분이야.” “신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 준다고? 하지만 농노들은 힘들게 일만 하잖아! 만약 신이 우리 귀족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면 농노들도 행복하게 해 줘야지.” 큰형은 어린 줄로만 알았던 동생이 책을 많이 읽고 꽤 어른스러워진 것 같아 속으로 기뻤어요. “그래, 네 말이 맞아. 그건 그렇고 너 내년에는 대학 시험을 봐야 하잖아?” “열심히 해, 알았지?” “알았어, 형.” 그런데 톨스토이는 공부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은 열심히 했지만, 관심이 없는 과목은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두 번이나 시험에 떨어지고 말았어요. 그러다가 다시 도전하여 겨우 대학에 합격(合格)했어요. 대학생이 된 톨스토이는 제법 열심히 공부했어요. 하지만 곧 대학 생활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시험 점수 때문에 하는 공부는 재미없어!” 그는 계속 외우기만 하는 학교 공부에 흥미를 잃었어요. 톨스토이는 돈 많은 귀족 친구와 어울려 날마다 놀러 다니고 파티를 열었어요. 술도 마시고 도박도 하면서 돈을 흥청망청 썼어요. 그런데 톨스토이는 그렇게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면서도 늘 마음속으로 후회했어요. “이게 무슨 짓인가? 대학에 가면 좋을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고, 놀면 좋을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잖아.” 결국 톨스토이는 큰형에게 말했어요. “형, 이곳에 계속 있다가는 인생을 망칠 것 같아. 나는 고향으로 돌아갈래.” 그러자 큰형이 물었어요. “고향으로 가서 뭘 하려고?” 순간 톨스토이는 어린 시절을 떠올렸어요. “형, 어렸을 때 형이 숲속에 숨겨 두었다던 초록 지팡이 기억나?” “누구든 찾아내면 소원을 이루어 주는 초록 지팡이가 있다고 했잖아. 나는 그 지팡이를 찾으러 갈 거야. 그리고 훌륭한 영주가 되어 농노들을 행복하게 해 주겠어.” 결국 톨스토이는 고향으로 돌아왔고, 항상 좋은 영주가 되려고 노력했어요. 가난한 농노들에게 먼저 다가가 작업복을 입고 그들과 함께 일을 하기도 했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무슨 일을 하는 겁니까? 나도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지만 농노들은 톨스토이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 농노들은 저희끼리 수군거렸어요. “쳇, 귀족이 우리 같은 사람이랑 같이 일을 한다고?” “믿을 수 없어. 거짓말일 거야.” 농노들이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자, 톨스토이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어요. 어느 날, 장교가 된 큰형이 고향으로 찾아왔어요. “아우야, 좋은 영주가 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란다. 이곳에서 이러지 말고 나와 함께 카프카스로 가자. 그곳은 아주 아름다운 곳이지.” 톨스토이는 큰형을 따라 카프카스로 갔어요. 형 말대로 카프카스는 무척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게다가 풍물과 기후 등이 톨스토이에게 매우 새롭게 느껴졌어요. ‘그래, 여기서 글을 쓰자. 소설로 사람들의 고통과 사랑을 표현하는 거야. 만약 내 글이 인류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거야.’ 그렇게 결심한 톨스토이는 소설을 쓰기 시작해 처음으로 유년 시절이란 작품을 완성했어요. 그리고 그 작품이 잡지에 실리자, 사람들은 아주 잘 쓴 소설이라며 호평을 해 주었어요. 그 무렵, 러시아와 터키 사이에 크림 전쟁이 일어났어요. 수많은 러시아 군인이 목숨을 잃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톨스토이는 전쟁에 참전했어요. 그는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군인들을 직접 보고 몹시 마음이 아팠어요. ‘전쟁은 정말 쓸데없는 짓이야! 전쟁은 없어져야 해!’ 톨스토이는 전쟁에 대한 소설을 써서 전쟁이 얼마나 나쁜 일인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군대에서 세바스토폴 이야기라는 소설을 썼어요. 이 소설 역시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어요. “톨스토이가 누구지? 글을 아주 잘 쓰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톨스토이를 훌륭한 작가라고 칭찬했어요. 비로소 자신의 재능을 분명히 알게 된 톨스토이는 무척 기뻤어요. “그래,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써서 좋은 작가가 되자!” 그는 비로소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분명히 알았어요. 4년 동안 계속된 크림 전쟁에서 러시아는 패하고 말았어요. 전쟁 때문에 농노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져 견디다 못한 농노들은 귀족들에게 땅을 나누어 달라고 소리쳤어요. “농노들의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소.” “그대로 두면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소. 그들에게 땅을 나누어 줍시다.” 귀족들 사이에서도 농노를 해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톨스토이 역시 같은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농노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기로 마음먹었어요. “땅을 나누어 줄 테니 일 년에 얼마씩 돈을 내시오.” “그러면 25년 후에는 땅을 완전히 넘겨주겠소.” 하지만 농노들은 여전히 톨스토이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황제가 땅을 공짜로 나누어 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에요. ‘아, 내 진심을 몰라주다니! 내가 농노들의 행복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걸 왜 그들은 모른단 말인가!’ 몹시 실망한 톨스토이는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어요. 첫 여행지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였는데 톨스토이는 파리의 거리가 무척 인상 깊었어요. ‘파리 시민들은 모두 자유롭구나! 그래, 사람들은 이렇게 자유를 누리며 살아야 해.’ 톨스토이는 파리 시민들이 부러웠어요. 그렇게 파리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흠뻑 젖어 지내던 그는 어느 날, 믿을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광경을 보았어요. 그건 바로 사형을 집행하는 장면이었어요. 죄를 지은 사람을 단두대에 올려놓고 목을 자르는 장면을 본 톨스토이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어요. ‘사람의 생명은 가장 소중한 것인데 저렇게 함부로 처형하다니!'’ 그 광경을 본 뒤로 톨스토이는 지금까지 자유의 도시로만 알았던 파리가 끔찍하게 여겨져 싫어졌어요. 파리를 떠나면서 톨스토이는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 한번 가슴 깊이 느끼게 되었어요. 농노들은 일을 하느라 바빠서 시간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우선 그들의 아이들을 불러 모았어요. 하지만 농노들은 자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어요. “공부할 시간이 있으면 일이나 해!” “맞아, 학교에 다닌다고 우리가 잘살게 되는 줄 알아? 겉멋만 들어서 귀족들에게 대들다 쫓겨날 게 뻔해.” 톨스토이는 또다시 농민들의 마음이 자신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실망했어요. 게다가 학교를 세우기는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농노들이 잘살려면 무조건 배워야 해. 하지만 어떻게 해야 더 좋은 학교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던 톨스토이는 유럽에 가서 노동자들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알아보기로 했어요. 6개월 동안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톨스토이는 소설을 쓰면서도 늘 농노들에게 관심을 가졌어요. ‘농노들이 내 말을 믿지 않는 건 내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마음만 앞섰기 때문이야. 무엇보다 그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을 가르쳐야 해.’ 톨스토이는 농노들이 글을 몰라서 자주 억울한 일을 당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어요. ‘농노들이 글을 읽을 줄 안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한 톨스토이는 농노들에게 글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었어요. ‘우선 그들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필요해!’ 마침내 톨스토이는 마을에 학교를 세웠어요. 누구나 무료로 배울 수 있는 학교였어요. 서른두 살이 된 톨스토이는 다시 유럽으로 떠났어요. 그는 유명한 학자들을 만나고 강의를 들었어요. 또 공장 노동자들이 다니는 야간 학교에 가 보기도 하고, 학자와 노동자들이 벌이는 토론을 지켜보기도 했어요. 그렇게 공부하다 보니 톨스토이도 농노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알 것 같았어요. 톨스토이가 유럽에서 돌아왔을 때 마침 러시아 황제가 농노 해방령을 발표했어요. “러시아의 모든 농노가 해방되었음을 선포한다!” 농노들은 무척 기뻐했어요. 이제 농노들도 땅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농노가 아니라 농민으로 불리게 되었어요. 하지만 황제가 땅을 그냥 주는 것은 아니고, 돈을 주고 사야 했어요. 그런데 글을 모르는 농민들은 영주에게 속아 비싼 돈을 주고 좋지 않은 땅을 사기도 했어요. 톨스토이는 그들에게 농노 해방령에 관해 설명해 주고 좋은 땅을 속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톨스토이는 학교를 더욱 열심히 이끌어 가기로 했어요. 그는 찾아온 학생들에게 읽기와 쓰기는 물론 땅의 넓이를 재는 방법도 가르쳤어요. 그러자 농민들은 차차 그의 진심을 알아주기 시작했어요. “저분은 귀족이지만 고맙게도 우리 편을 들어 주셔.” 좋은 소문이 나자 더 많은 농민이 학교로 찾아왔어요. 톨스토이는 학생들에게 공책과 연필을 무료로 주고, 학생들과 어울려 썰매도 타고 씨름도 했어요. 이렇게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질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다른 귀족들은 톨스토이가 농민들에게 자유로운 교육을 펼치는 걸 싫어했어요. 그래서 러시아 황제에게 터무니없는 내용을 보고했어요. “톨스토이가 황제 폐하에게 반대하는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장 학교 문을 닫게 해야 합니다!” 결국 러시아 황제는 귀족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학교 문을 닫게 했어요. 톨스토이는 서른네 살에 의사의 딸과 결혼했어요. 아내 소피아는 톨스토이의 소설을 무척 좋아하여 때때로 남편에게 좋은 소설을 써 보라고 권했어요. “좋아! 멋진 소설을 한 편 써 보자!” 톨스토이는 그때부터 전쟁과 평화라는 아주 긴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이 러시아에 쳐들어왔다가 패하고 돌아가는 내용이었어요. 톨스토이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도서관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책을 읽고 공부했어요. 아내 소피아도 남편을 열심히 도왔어요. 소피아는 문학에 대한 안목이 깊어서 톨스토이가 쓴 원고를 깨끗이 다시 써 주기도 했어요. 등장인물만 500명이 넘는 이 소설은 무려 6년 만에 완성됐어요. 전쟁과 평화는 발표되자마자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았어요. 책이 너무 잘 팔려 인쇄 시설을 늘려야 할 정도였지요.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로 일약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어요. 톨스토이는 소설 못지않게 학교에도 애정을 쏟았어요. “아이들이 쉽게 배우려면 재미있는 교과서가 필요해.” 그는 동화와 옛이야기에 수학까지 곁들여 아주 재미있는 교과서를 만들었어요. 그가 만든 교과서에는 가난하지만 착하고 행복하게 사는 러시아 농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어요. 그는 대부분 직접 글을 썼는데, 천문학에 대한 어떤 글을 쓸 때는 무려 1년 동안 별을 관찰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해서 초등 교육 독본이라는 교과서 네 권이 완성되었어요. 그가 만든 교과서는 귀족의 자식이나 농민의 자식이나 다 같이 볼 수 있었어요. “교육은 평등해야 해!” 이것이 바로 교육에 대한 톨스토이의 생각이었어요. 일부 귀족들은 톨스토이가 만든 교과서를 싫어했어요. 하지만 거의 모든 러시아 사람은 그의 교과서를 좋아했어요. 반응도 아주 뜨거워서 초등 교육 독본은 러시아 안에서만 무려 수백만 부나 팔렸어요. 많은 양의 소설을 쓰고 초등 교육 독본을 완성하느라 톨스토이는 조금씩 건강이 나빠져 러시아 서쪽의 사마라 지방으로 요양하러 갔어요. 그런데 그때 마침 사마라 지방에 심한 흉년이 들었어요. 농민들은 대부분 양식이 떨어져 굶주리다가 거리로 나가 구걸을 했어요. “농민들이 이렇게 힘든데 나는 요양이나 하고 있다니!” 톨스토이는 병상에서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사마라의 농민들이 얼마나 힘든지 자세히 써서 신문사에 보냈어요. 그리고 황제가 사는 궁에도 편지를 보내 구호를 부탁했어요. 톨스토이의 호소문이 신문에 실리자, 러시아 각 지역에서 많은 구호품이 왔어요. 궁에서도 구호금을 보내왔어요. 톨스토이는 빵과 우유는 물론 수프까지 끓여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어요. 그 후 톨스토이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고향으로 돌아온 톨스토이는 큰 슬픔에 빠졌어요. 어렸을 때 자신을 돌봐 주던 친척 아주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이어서 자기 아들과 딸도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에요. 당시는 아직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서 어린 나이에 죽는 아이들이 참 많았어요. 톨스토이는 심한 우울증에 빠졌어요. 음식도 먹을 수 없었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어요. 한동안 힘들어하던 톨스토이는 조금씩 기운을 차렸어요. ‘이러고 있을 수는 없어. 그래, 다시 소설을 쓰자. 글을 쓰는 일이 나를 구원해 줄 거야.’ 그는 우울증에서 벗어나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4년 만에 안나 카레니나라는 소설을 완성했어요. 이 소설에서 그는 귀족들의 이기적인 행동을 비판하고 진정한 사랑과 가정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했어요. 톨스토이와 쌍벽을 이루는 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안나 카레니나를 ‘훌륭하고 흠이 없는 위대한 명작’이라고 높이 평가했어요. 어느덧 톨스토이는 쉰 살에 가까운 나이에 되었어요. 그는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게는 땅도 있고 말도 수백 마리나 있다. 작가로서도 성공했다. 하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여전히 사치스러운 귀족에 불과하다. 여전히 농민들은 힘들게 살고 있다. 모두 다 같이 행복하게 살 수는 없을까?’ 톨스토이는 늘 농민들을 위해 애를 썼지만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그런 생각을 하니 소설도 쓰고 싶지 않았어요. 톨스토이는 오로지 가난한 농민들 걱정뿐이었어요. ‘작은 일이라도 하나씩 실천해 보자.’ 톨스토이는 집 앞 노송나무 가지에 종을 하나 매달았어요. 그리고 지나가던 배고픈 사람들이 그 종을 치면 맨발로 달려 나가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어요. 아내 소피아는 남편의 그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쳇, 천국이 따로 없군. 도대체 소설은 언제 쓰려고 저러는 거지?” 아내 소피아는 자꾸 모스크바로 이사를 하자고 했어요. “여기서 날마다 가난한 농민들이랑 어울리니까 우리도 거지가 될 거 같아요. 당장 도시로 이사 가요!” 톨스토이는 안 가겠다고 했지만, 아내는 계속 졸라 댔어요. 결국 톨스토이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모스크바로 이사를 했어요. 하지만 농민들과 떨어져 사는 게 괴로웠어요. 그러던 어느 날, 톨스토이는 모스크바 시민들의 생활을 조사하는 위원으로 뽑혔어요. 얼마 후 톨스토이는 모스크바의 빈민가를 조사했어요.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다니!” 그는 빈민가를 둘러보다가 큰 충격에 빠졌어요. 어른들은 누더기를 걸친 채 햇볕 아래 힘없이 앉아 있었고, 너무 굶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들은 죽은 듯 쓰러져 있었어요. 빈민가 사람들은 다들 헐벗고 병들어 있었어요. ‘아, 나는 지금껏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몰랐어!’ 톨스토이는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살아온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자신도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어떻게 해야 저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글을 써서 돈을 모을까? 아니야, 그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톨스토이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마라 지방의 흉년 때처럼 잡지와 신문에, 빈민가에 대한 이야기를 썼어요. 하지만 귀족들은 나 몰라라 하며 여전히 사치를 일삼았어요. 늘 비싼 옷을 입고 밤이면 화려한 무도회와 음악회를 열었어요. ‘아, 정말 너무하구나.’ 톨스토이는 몹시 실망해서 가족들을 모스크바에 남겨 두고 혼자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어요. 톨스토이는 꼭 필요한 땅 이외의 토지를 갖는 것은 죄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는 아내에게 말했어요. “여보, 우리에게는 땅이 너무 많소.” “필요 이상의 땅을 갖는 것은 죄악이니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누어 줍시다. 어떻소?” 아내 소피아는 펄쩍 뛰었어요. “여보, 우리는 귀족이에요! 귀족이라는 신분에 맞게 행동해야 해요.” “게다가 우리에게는 아이들이 있어요. 당신이 땅과 재산을 다 나누어 주면 우리는 진짜 거지가 되고 말 거예요!” 톨스토이는 아내의 주장을 꺾을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꼭 아내를 설득하리라 마음먹었어요. 톨스토이는 혼자 고향에서 살면서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얻었어요. 그래서 오래전부터 써 오던 참회록을 완성하고 다른 글도 쓰기 시작했어요. 고향으로 돌아온 톨스토이는 들판에서 땀 흘려 일하는 농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어요. ‘귀족들은 일도 하지 않고 농민들이 피땀 흘려 수확한 것을 가로채 사치를 일삼고 있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실천하자. 말로만 농민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몸으로 농민의 행복을 위해 일하자.’ 그날부터 톨스토이는 직접 씨를 뿌리고 밭을 갈았어요. 집을 고칠 때도 직접 나무를 베어다 고쳤어요. 그리고 가족이 있는 모스크바를 오갈 때도 마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니고, 신발도 직접 만들어 신었어요.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비싼 신발을 신지 못하게 했어요. “이건 너무한 거 아녜요?” 아내는 남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늘 불만이었어요. 유명한 작가이자 귀족인 톨스토이가 농부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소문이 나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러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그를 만나러 왔어요. 위대한 소설가라고 불리면서도 톨스토이는 거들먹거리거나 잘난 체를 하지 않았어요. 하루는 그가 길을 걷다가 구걸하는 거지를 만났어요. 그는 얼른 주머니를 뒤졌지만 마침 돈이 한 푼도 없었어요. 그는 너무나 미안해서 거지의 손을 잡고 말했어요. “친구여, 미안하네. 부디 나를 용서해 주게.” 그러자 거지가 울먹이며 말했어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돈보다 더 귀중한 사랑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평생 살면서 저에게 친구라고 불러 준 사람은 선생님이 처음입니다!” 이렇듯 톨스토이는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서 따뜻한 말 한마디로 상대방에게 행복을 주었어요. 1891년, 톨스토이가 예순세 살이 되던 해에 러시아에 큰 흉년이 들었어요.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아 많은 사람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어요. 먹을 것이 없자 아예 농촌을 떠나는 사람들도 생겼어요.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냐? 정녕 나의 노력이 부족한 것이냐!’ 톨스토이는 깊은 시름에 잠겼어요. ‘아니야. 농민들이 힘들게 사는 것은 서로 돕지 않고,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야. 서로 돕는다면 적어도 굶어 죽는 사람은 생기지 않을 거야.’ 톨스토이는 딸과 함께 무료 급식소를 세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면서 농사일을 포기하지 말라고 농부들을 설득했어요. 톨스토이가 무료 급식소를 세우자 돕겠다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겼어요. 이렇게 농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어도 귀족들은 여전히 사치스러웠어요. 러시아 정부도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어요. ‘농민들이 행복하게 살려면 우선 귀족들이 반성해야 해.’ 톨스토이는 부활이라는 소설을 썼어요. 잘못된 삶을 살던 귀족이 반성하고 착한 사람으로 태어나는 내용을 그렸지요. 이 소설은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함께 톨스토이의 3대 작품으로 유명해요. 톨스토이는 부활을 쓰기 위해 여러 재판에도 가 보고 감옥을 조사하기도 했어요. 그곳에서 만난 부패한 귀족을 비난하고, 러시아 정부를 공격하기도 했지요. 게다가 교회는 사랑이 아닌 권위만 내세운다고 비판했어요. 그러자 정부는 그에게 부활의 내용을 고치라고 했어요. 또 교회에서는 그가 진정한 크리스트교 신자가 아니라면서 파문을 해 버렸어요. 하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어요. ‘옳지 못한 사람들의 말을 들을 필요는 없어!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1904년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고 러시아는 또 전쟁에서 패했어요. 그리고 이듬해에는 러시아 노동자들이 살기 힘들다고 시위를 벌였어요. 이때 정부군이 노동자들에게 총을 쏴 100여 명이 죽고 말았어요. 이것을 ‘피의 일요일 사건’이라고 해요. 이 사건에 분노한 러시아 국민들은 혁명을 일으켰어요. 톨스토이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지만, 혁명만은 반대했어요. “혁명은 안 됩니다! 폭력은 안 됩니다!” 톨스토이는 폭력보다 사랑의 힘이 강하다고 믿었어요. 이러한 생각은 나중에 간디에게도 영향을 주었어요. 간디는 비폭력 운동으로 인도를 영국으로부터 독립시킨 영웅이에요. 1909년 간디는 톨스토이에게 이런 편지를 썼어요. ‘저와 제 친구들은 오래전부터 폭력으로 악에 맞서서는 안 된다는 당신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혁명 때문에 혼란스러웠지만 톨스토이는 이전처럼 가난한 농민들과 함께 살고 있었어요. 그는 늘 소박하게 살았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어요. 아직 땅과 재산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는 아내 소피아에게 말했어요. “도저히 못 참겠어! 내 땅과 재산은 농민들이 일해 준 덕분에 생긴 거야. 그러니 원래 주인들에게 돌려줍시다!” 하지만 아내는 끝까지 반대했어요. “싫어요! 무도회에 가려면 옷도 사야 하고 보석도 사야 해요. 나는 절대로 재산을 나누어 줄 수 없어요!” 아내가 톨스토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톨스토이도 아내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결국 톨스토이는 집을 떠나기로 작정했어요. ‘나는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사는 것이 괴롭소. 조용한 곳에 가서 남은 생애를 보내고 싶으니 나를 찾지 마시오.’ 그는 아내에게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집을 나섰어요. 톨스토이는 자신을 돌봐 주는 의사와 함께 기차를 타고 여행길에 올랐어요. 10월의 날씨는 꽤 추웠어요. 여든두 살의 톨스토이는 3등 객차 안에서 추위에 덜덜 떨었어요. “추워...추워...” 의사는 톨스토이에게 담요를 덮어 주다가 깜짝 놀랐어요. “아니, 몸이 불덩이잖아!” 의사가 체온을 재 보더니 얼른 짐을 챙겼어요. “아무래도 폐렴 같습니다! 다음 역에서 내려야겠어요.” 의사는 톨스토이를 부축해 허겁지겁 다음 역에서 내렸어요. 그리고 그 역의 역장에게 부탁했어요. “이분은 톨스토이 선생님입니다. 지금 건강이 나빠져서 그러니 이 역에서 잠시 쉬며 치료해도 될까요?” 역장이 깜짝 놀라 말했어요. “아니, 그 유명한 톨스토이 선생님이시라고요? 저도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어서 역 관사로 모시세요!” 톨스토이는 역 관사에서 응급 치료를 받았어요. 하지만 워낙 열이 높고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선생님, 정신 차리세요!” 의사는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굴렀어요. “농민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땅을 모두 나누어 주시오.” 1910년 11월 7일, 여든두 살의 톨스토이는 결국 이 말을 남기고 작은 시골 역에서 눈을 감고 말았어요. 톨스토이의 장례식은 고향에서 치르기로 했어요. 만약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일까 봐 장례를 조용히 치르기로 했어요. 하지만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이 톨스토이의 고향으로 몰려들었어요. 평생 위대한 작품을 쓴 톨스토이는 비록 외롭게 세상을 떠났지만, 많은 조문객이 함께 슬퍼해 주었어요. 또한 모든 인간의 행복을 꿈꾸고 평화를 사랑한 톨스토이의 정신은 그의 작품을 통해 지금도 수많은 사람에게 전해지고 있답니다.
장애를 딛고 행복을 노래하다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헬렌 켈러는 1880년, 미국 앨라배마주 터스컴비아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헬렌 켈러는 태어난 지 여섯 달밖에 안 되었을 때 ‘안녕’ 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매우 영특하고 활달했어요. 그렇게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지내던 어느 날, 헬렌 켈러는 큰 병에 걸리고 말았어요. 뇌와 위에 심한 충혈이 오는 병이었어요. 의사가 말했어요. “열이 내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사흘, 어쩌면 이틀밖에는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세상에! 우리 헬렌이 죽는다고요?” 헬렌의 부모님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어요. “제발, 우리 헬렌을 살려 주세요! 선생님!” “안타깝게도 지금 헬렌을 살릴 수 있는 분은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수밖에요.” 헬렌의 부모님은 헬렌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밤낮으로 열심히 헬렌을 간호했지요. 며칠 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열이 내리기 시작한 거예요. 헬렌의 부모님은 뛸 듯이 기뻤어요. “헬렌! 이제 정신이 드니? 엄마야, 엄마를 보렴!” 그러나 헬렌은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어요. 이름을 불러도, 손짓을 해도 반응이 없었어요. 헬렌의 부모님은 다시 의사를 불렀어요. 헬렌의 눈과 귀를 신중하게 진찰한 의사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어요. “아무래도 시력과 청력을 잃은 것 같습니다.” 겨우 두 살 남짓한 헬렌은 그때부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살게 되었어요. 말을 배우기 전에 청력을 잃어서 의사 표현도 할 수 없었어요. 그저 손짓과 몸짓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야 했지요. 고개를 저으면 ‘아니’, 끄덕이면 ‘예’라는 의미였어요. 등을 밀면 ‘가라’는 것이었고 잡아당기면 ‘오라’는 거였어요. 빵을 먹고 싶을 땐, 빵을 썰어 버터를 바르는 시늉을 했어요. 그러나 손짓과 몸짓만으로는 아무래도 힘들었어요. ‘왜 다들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거야?’ 헬렌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이 짜증 났어요. 그럴 때면 발을 구르고 떼를 썼지만, 헬렌의 부모님은 그런 헬렌이 마냥 안쓰러워 혼을 내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헬렌은 점점 막무가내가 되어 갔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헬렌은 인형을 찾기 위해 더듬더듬 벽을 짚어 방으로 걸어갔어요. 그 방에는 이제 막 태어난 동생, 밀드레드가 요람에 누워 있었어요. 헬렌은 동생이 미웠어요.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 같았거든요. 게다가 인형도 동생에게 빼앗기고요. 헬렌은 요람을 마구 흔들었어요. 동생이 큰 소리로 울어 댔지만 헬렌에게는 들리지 않았어요. “헬렌! 뭐 하는 짓이니?” 엄마가 야단을 쳤지만 헬렌은 오히려 엄마를 때리며 화를 냈어요. 엄마는 수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헬렌을 바라보았어요. ‘아무래도 헬렌을 맡아 교육해 줄 사람이 필요하겠어.’ 헬렌을 가르칠 선생님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그러나 헬렌의 부모님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끝에 그레이엄 벨 박사가 헬렌과 같은 아이에게 관심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벨 박사는 전화를 발명한 사람인데, 눈이 멀고 귀먹은 사람들을 교육하는 훌륭한 교육자이기도 했어요. 헬렌을 만난 벨 박사는 장애인 학교로 유명한 퍼킨스 교장 선생님께 편지를 보내 주기로 했어요. “퍼킨스 교장 선생님이라면 헬렌을 위한 가정 교사를 꼭 구해 줄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반가운 소식이 날아왔어요. 드디어 헬렌의 선생님이 나타났다는 거예요. 얼마 후, 앤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의 집으로 찾아왔어요. 설리번 선생님이 나타나자 헬렌은 잔뜩 겁을 먹고 기둥 뒤에 숨었어요. 낯선 사람이 무서웠거든요.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에게 다가갔어요. “안녕, 헬렌!”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을 안아주자 헬렌의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어요. 헬렌은 조심스럽게 선생님의 옷이며, 머리를 만져 보았어요. 선생님이 궁금했거든요. 설리번 선생님은 미소를 띤 채 헬렌을 지켜보았어요.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얌전하고 병약한 아이일 줄 알았는데 호기심도 많고 건강해서 다행이야.’ 이것이 헬렌과 설리번 선생님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었어요.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에게 지화를 가르치기로 했어요. ‘헬렌은 다른 사람이 수화를 해도 볼 수 없으니까, 지화가 제일 적당할 거야.’ 지화란 손바닥에 글자를 써서 의사소통을 하는 거예요. 설리번 선생님은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는 헬렌의 손에 ‘인형’이라는 글자를 썼어요. ‘손바닥 놀이?’ 헬렌은 선생님이 놀이를 하는 줄 알고 선생님 손바닥에 똑같이 낙서를 했어요. 설리번 선생님이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여전히 헬렌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헬렌은 모든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이 인형을 가지고 놀 때마다 손바닥에 ‘인형’이라고 썼어요. 헬렌은 점점 짜증이 났어요. ‘왜 자꾸 인형을 빼앗는 거야?’ 노는 걸 방해한다고 생각한 헬렌이 화를 냈지만, 설리번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한 손으로는 인형을 만지게 하고 다른 손바닥에는 ‘인형’이라고 쓰기를 반복했지요. 그때마다 헬렌은 소리를 지르며 떼를 썼어요. ‘무언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어!’ 설리번 선생님은 잔뜩 뿔이 난 헬렌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어요. 산책을 하며 헬렌의 기분을 풀어 주고 싶었거든요. 헬렌과 선생님은 산들바람이 부는 정원을 거닐었어요. 한결 기분이 좋아진 헬렌은 정원을 마구 뛰어다녔지요. 정원에서 한참을 뛰어놀자 목이 말랐어요. 헬렌은 빈 컵을 들어 마시는 시늉을 했어요. ‘물이 먹고 싶어요!’ 헬렌을 본 선생님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선생님은 헬렌의 손을 잡고 뒤뜰로 향했어요. 그곳에는 물을 끌어 올리는 펌프가 있었거든요. 선생님은 헬렌의 손을 잡아끌어 펌프 주둥이에 갖다 댔어요. 그러고는 다른 손으로 펌프의 손잡이를 힘껏 눌렀지요. 시원한 물줄기가 헬렌의 손바닥으로 쏟아졌어요. ‘아!’ 그 순간, 헬렌은 신비한 깨달음을 느꼈어요. 선생님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게 된 거예요. 선생님은 재빨리 헬렌의 다른 손바닥에 ‘물’이라고 썼어요. 또 빈 컵을 헬렌의 손에 쥐여 주고는 손바닥에 ‘컵’이라고 썼어요. 헬렌은 그제야 모든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물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어요. 헬렌의 머릿속은 마치 등불이 켜진 것처럼 환해졌어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줄줄이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헬렌은 자신을 가리켰어요. 설리번 선생님은 손바닥에 ‘나’ 라고 써 주었어요. 헬렌은 잔뜩 고조된 표정으로 설리번 선생님을 가리켰어요. 선생님은 다시 헬렌의 손에 ‘선생님’이라고 썼어요. 헬렌은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 같았어요. 자신의 눈, 코, 입을 만지고 풀들을 만지며 물었어요. 코를 킁킁대며 하늘을 가리키기도 했어요. 그때마다 선생님은 헬렌의 손에 글씨를 써 주었어요. 그날 그 자리에서 헬렌은 한꺼번에 30여 개의 단어를 알게 되었어요. 헬렌은 문득 예전에 망가뜨린 인형이 떠올랐어요. 헬렌은 얼른 방으로 뛰어 들어갔어요. 인형은 방구석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어요. 더듬더듬 인형을 찾아낸 헬렌은 눈물을 흘렸어요. ‘내가 인형한테 나쁜 짓을 했구나!’ 그동안 헬렌은 나쁜 짓을 했다는 자각도, 죄책감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각각의 물건들에 이름이 있다는 것도, 모두 소중한 것들이라는 사실도 몰랐으니까요. ‘인형아, 미안해!’ 그날 이후 세상 모든 것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새로운 단어를 알아 갈 때마다 헬렌 앞에 새로운 세상이 열렸어요. 헬렌은 배우면 배울수록 궁금한 것이 더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설리번 선생님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어요. 따뜻한 바람이 부는 어느 봄날이었어요.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에게 제비꽃을 주었어요. 그리고 헬렌과 지화를 했어요. “따뜻한 햇볕과 비와 바람이 꽃과 나무들을 자라게 해. 그게 사랑이야.” “제비꽃밖에 없는데요?” 헬렌은 고개를 갸웃했어요.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사랑에 대해 알 길이 없었거든요. “사랑은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마치 헬렌의 부모님이 헬렌을 사랑해서 아끼고 돌봐 주는 것과 같아. 사랑은 보이지 않지만 여기 마음 안에 있단다.” 선생님은 헬렌을 꼭 안아 주었어요. 선생님의 품에 안긴 헬렌이 물었어요. “선생님, 사랑이란 제비꽃처럼 좋은 향기가 나고 선생님의 품처럼 따뜻한 건가요?”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을 더욱더 꼭 안아 주었어요. “사랑이란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냄새도 맡을 수 없지만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거야. 선생님은 헬렌을 사랑해.” “저도 선생님을 사랑해요.” 헬렌은 선생님의 손바닥에 몇 번이나 ‘사랑’이라고 썼어요. 그러자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졌어요. ‘이런 게 사랑이구나!’ 헬렌은 그제야 깨달았어요. 선생님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이 이어지는 것, 선생님의 품처럼 따뜻하고 편안하고 행복한 것이 사랑이란 것을요. 여덟 살이 된 헬렌은 퍼킨스 맹아 학교에 입학했어요. 그곳에서 헬렌은 점자를 배우게 되었어요. 점자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점으로 만든 특별한 글자예요. 헬렌은 오돌토돌 튀어나온 글자들을 손가락으로 익히며 열심히 점자를 배웠어요. 이제는 선생님이 손바닥에 지화를 써 주지 않아도, 점자책으로 혼자 공부할 수 있게 되었어요. ‘드디어 나도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어!’ 신이 난 헬렌은 더욱 공부에 몰두했어요. 며칠 사이, 헬렌은 열 권 넘게 점자책을 읽었어요. 책 속에는 너무나 신기한 것들이 많았어요. 헬렌은 재미있는 책에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몰랐어요. 헬렌은 빠른 속도로 지식을 쌓아 갔어요. 점자책을 읽을 수 있게 되자 헬렌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욕구가 피어났어요. ‘내 목소리로 생각을 전하고 싶어!’ 자기 입으로 직접 말이 하고 싶어진 거예요. 헬렌은 친구들에게 고민을 토로했어요. ‘나도 너희들처럼 내 목소리로 말하고 싶어.’ 그러나 친구들은 알고 있었어요. 헬렌이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요. 헬렌은 너무 어린 시절에 청력을 잃어서 어떻게 말을 하는지 몰랐거든요. 친구들은 헬렌을 말렸어요. 말하는 것에 실패했을 때, 헬렌이 낙담할까 봐 걱정스러웠던 거예요. 그러나 헬렌의 ‘말하고’ 싶은 욕구는 점점 커져만 갔어요. 고민을 하던 헬렌은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선생님, 저도 말을 하고 싶어요!’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의 손을 꼭 잡았어요. “아주 힘든 일인데 괜찮겠니?” ‘그럼요! 저는 할 수 있어요!’ 헬렌의 의지가 뚜렷하다는 것을 알게 된 선생님은 호레이스 맨 농아 학교에 있는 사라 풀러 선생님에게 헬렌을 데리고 갔어요. 사라 풀러 선생님은 듣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말을 할 수 있게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어요. 헬렌은 사라 풀러 선생님에게 발성법을 배웠어요. “아.어.오.” 사라 풀러 선생님은 크게 입을 벌려 소리를 냈어요. 헬렌에게 자신의 목과 입을 만지게 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알려 주었어요. 헬렌은 선생님의 입과 목을 만지며 입술과 혀의 위치로 각각 소리가 다르게 나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헬렌은 하루 종일 발성 연습을 했어요. 사라 풀러 선생님과 똑같이 입과 목을 움직이도록 애썼지만 쉽지 않았어요. “아.어.우.” 특히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는 정말 어려웠어요. 그러나 헬렌은 좌절하지 않았어요. 하루 종일 연습을 하느라 목이 쉬고 아팠지만 멈추지 않았어요. ‘나는 할 수 있어! 절대 포기하지 않아!’ 헬렌은 마음을 다지며 연습하고 또 연습했어요. 옆에서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의 등을 두드려 주었어요. 마침내, 헬렌은 온전한 한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오. 난 더 이상 벙어리가 아니에요!” 헬렌과 설리번 선생님은 너무 감격스러워 서로를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어요. 헬렌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빨리 헬렌을 만나고 싶었어요. “헬렌, 집으로 가자!” 몇 주 후, 헬렌은 선생님과 함께 고향으로 내려갔어요. 헬렌의 부모님은 기차역에서 헬렌을 기다렸지요. 헬렌은 가는 내내 기차 안에서 설리번 선생님과 대화를 하며 발성 연습을 했어요.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거든요. 터스컴비아 역에 내리자 가족들이 모두 나와 있었어요. 헬렌은 가족들에게 달려갔어요. “엄마, 아빠, 밀드레드! 다녀왔습니다!” 헬렌의 목소리를 듣자 엄마, 아빠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어요. “오오! 헬렌! 네가 말을 하다니!” 어느새 헬렌의 눈에서도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헬렌은 오랜만에 집에서 많은 책을 읽었어요. 책을 읽다 보니 이 세상이 너무너무 궁금해졌어요.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은 누구죠?” “영혼이 뭐예요?” “나는 누구인가요?” 헬렌의 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졌어요.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을 데리고 브룩스 신부님을 찾아갔어요. 브룩스 신부님은 유명한 학자이자 신부인데, 헬렌에게 종교와 영혼, 사랑과 평화, 행복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그때마다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의 손바닥에 신부님의 말씀을 써 주었어요. 그 말씀을 모두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거룩하고 아름다운 말씀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어요. 그 뒤로 헬렌은 자기보다 약하고 불쌍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헬렌은 토미에 대해 듣게 되었어요. 토미는 헬렌처럼 앞도 못 보고 말도 못 하는 네 살짜리 사내아이였는데, 엄마도 없었어요. 토미의 아버지는 너무 가난해 토미를 자선 단체에 보내기로 했대요. 헬렌은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선생님, 토미도 저처럼 책을 읽거나 말을 배울 방법이 없을까요?” “그렇게 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해. 쉽지 않을 거야.” 설리번 선생님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러나 헬렌은 토미를 꼭 도와주고 싶었어요. 생각 끝에 헬렌은 가장 먼저 자신의 저금통을 털었어요. 그리고 토미의 사정을 알리는 편지를 곳곳에 보냈어요. 토미를 위한 모금을 시작한 거예요. “선생님! 사람들이 돈을 보내왔어요!” 헬렌은 뛸 듯이 기뻤어요. 드디어 사람들이 헬렌의 편지에 답을 보내온 거예요. ‘이제 조금만 더 모으면, 토미를 도울 수 있어!’ 헬렌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어요. 헬렌의 이야기는 미국 전역에 퍼졌어요.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기도 어려운데, 거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보다 못한 아이들을 돕는 헬렌의 모습에 다들 감동한 거예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돈을 보내왔어요. “선생님, 토미를 이제 농아 유치원에 보낼 수 있어요!” 헬렌은 너무 기뻐 깡충깡충 뛰었어요. ‘세상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헬렌은 잡지나 신문에 글을 써서 발표했어요.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읽고 더 많은 돈을 기부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헬렌은 토미를 도와준 것에 멈추지 않고 더 많은 일들을 하고 싶었어요. 불행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나 도서관을 짓고 싶었거든요. 자신의 불행보다 다른 사람들의 불행과 아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거예요. ‘나도 설리번 선생님처럼 사랑과 헌신으로 불행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 헬렌은 다과회나 강연회를 열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렸어요. 헬렌의 노력으로 유치원을 세우기 위한 다과회에서 무려 2,000달러나 되는 큰돈이 모였어요. 헬렌의 나이 겨우 열두 살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열네 살이 되자 헬렌은 뉴욕에 있는 라이트 해머슨 농아 학교에 들어갔어요. 그곳은 말 못 하는 아이들에게 발음하는 법을 가르치는 학교였어요. 헬렌의 말하기 실력은 나날이 늘었어요. 그러나 말하기와 달리 다른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는 것은 별로 늘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의 입술에 손을 대고 말을 알아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사람들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어.’ 헬렌은 더욱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2년 후, 헬렌은 미국 농아 교육자 대회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어요. 헬렌의 노력이 차차 빛을 보기 시작한 거예요. 헬렌은 600명이 넘는 청중들 앞에서 연설을 했어요. 자신이 어떻게 말을 하게 되었는지, 그 순간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저는 말 못 하는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경험을 하길 바랍니다. 또한 농아들을 가르치는 분들이 포기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지금의 어려운 처지에 굴복하지 마세요!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큰 기쁨이 여러분 앞에 찾아올 거예요! 슬픔을 딛고 일어나세요!” 열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눈먼 소녀의 연설은 청중의 마음을 흔들었어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어요. 헬렌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지만 그들을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어요. 뭔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거든요. 헬렌이 열아홉 살이 되었을 때 반가운 전화가 걸려 왔어요. 하버드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온 것이지요. 헬렌의 꿈은 최고의 대학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는 것이었어요. 시력과 청력을 잃은 헬렌이 마침내 꿈을 이룬 거예요. 헬렌은 대학에 들어가 더 열심히 노력했어요. 몸이 성한 사람들보다 몇십 배는 더 어려웠지만 좌절하지도, 절망하지도 않았어요. 어느덧 4년의 세월이 흘러 졸업식 날, 총장님은 헬렌의 피나는 노력을 칭찬했어요. 사람들도 아낌없는 박수를 쳐 주었어요. 그날 헬렌은 17년 동안 자신을 돌봐 준 설리번 선생님에게 달려가 안겼어요.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어요. “장하구나! 헬렌!” “고맙습니다! 선생님! 사랑해요!” 그 무렵, 설리번 선생님의 건강이 악화되었어요. 사실 설리번 선생님도 어릴 적에 사고를 당해 헬렌처럼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였는데, 눈 수술이 성공하여 시력을 되찾았다고 해요. 하지만 설리번 선생님이 나이가 많아지면서 다시 눈에 문제가 생긴 거예요. 헬렌은 아담한 농가를 사서 선생님과 함께 지냈어요. 그리고 헬렌은 불행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더욱더 힘을 쏟았어요. 그들을 돕기 위해서라면 자기 몸이 힘들고 고달파도 꾹 참았어요. 헬렌은 설리번 선생님이 자신을 돌봐 주었듯이 세상의 불행한 사람들을 돌보며 살겠다고 다짐했어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도우며 살 거야. 그들의 처지를 세상에 알리고 그들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지! 우리 설리번 선생님처럼!’ 헬렌은 맹아와 농아를 위한 교육 사업을 시작했어요. 이들을 위한 교육 시설이 부족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헬렌은 이들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원고를 쓰고, 강연을 하고, 전국으로 모금 행사를 다녔어요. 그러던 어느 날, 설리번 선생님이 그만 과로로 쓰러지고 말았어요. ‘안 되겠어. 선생님을 쉬시게 해야 해.’ 헬렌은 설리번 선생님 대신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아보았어요. 그러나 설리번 선생님 같은 분을 찾기란 쉽지 않았지요. 그러던 헬렌 앞에 마침내 폴리 톰슨 양이 나타났어요. 폴리 톰슨 양의 도움으로 헬렌은 더욱더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헬렌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어요. 헬렌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헬렌은 직접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어요. 또 서커스단과 계약을 맺고 함께 전국 강연을 다니기도 했어요. 이렇게 모은 돈으로 불행한 이웃들을 돕고 싶었거든요. 그러나 사람들은 수군거렸어요.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광대들과 함께 다니다니!” “훌륭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과시욕이 있군! 쯧쯧!” 주변 사람들도 헬렌을 말렸어요.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헬렌이 가여워 보였거든요. 하지만 헬렌은 고개를 저었어요. “불쌍한 이들을 돕기 위해 무대에 오르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에요! 그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지요. 난 앞으로도 계속 무대에 오를 거예요!” 헬렌은 순회강연을 멈추지 않았어요. 그 무렵, 슬픈 소식이 날아들었어요. 헬렌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거예요. 대학 입학 무렵,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헬렌은 너무 슬펐어요. ‘나 때문에 언제나 마음 졸이며 사셨던 부모님! 이제 두 분 모두 내 곁에 없어!’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의 손을 꼭 잡고 말했어요. “헬렌, 슬프겠지만 하던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 만약 네가 여기서 멈춘다면, 천국에 계신 부모님들이 슬퍼하실 거야.” 헬렌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러고는 나약한 자신의 모습에 실망할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렸어요.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그 후 헬렌은 더욱더 열심히 일을 했어요. 1929년, 드디어 헬렌의 바람대로 맹인들을 위한 국립 도서관이 세워졌어요.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전국으로 뛰어다녔던 헬렌은 그 어느 때보다 기뻤어요. 그리고 이런 헬렌의 박애 정신은 바다 건너 전 세계로 퍼져 나갔어요. “나도 헬렌을 돕고 싶소!” “저도 헬렌의 박애 정신을 배우고 싶어요!” 헬렌과 함께하겠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어요. 1931년, 헬렌은 템플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이 박사 학위는 신체장애를 극복하고 꿋꿋하게 일어나 많은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한 헬렌에게 감사와 존경을 전하는 의미 있는 학위였어요. 1936년 10월 20일, 너무도 슬픈 일이 생겼어요. 설리번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거예요. 스물한 살에 헬렌을 만나 거의 50년 동안 헬렌의 눈과 귀가 되어 준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자 헬렌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을 느꼈어요. 그렇지만 마냥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어요. ‘선생님을 실망시켜 드릴 수는 없어!’ 헬렌은 선생님이 보고 싶을 때마다 더욱더 열심히 강연을 다녔어요. 그러는 동안,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어요. 헬렌은 전쟁터에서 눈을 잃은 수많은 병사들을 만났어요. 너무나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헬렌은 인류를 불행하게 만드는 전쟁을 하지 말라며 정치인들을 향해 호소했어요. 1960년, 헬렌은 여든 살이 되었어요. 전 세계 사람들이 그녀의 여든 살 생일을 축하해 주었어요. 축하 전보와 선물을 많이 보내 주었지요. 그해 미국 맹인 협회에서는 헬렌 켈러 탄생 80주년을 기념하여 헬렌 켈러 기념재단을 만들어 120만 달러의 기금을 마련했어요. 또 헬렌 켈러 국제상을 만들어 맹인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표창을 하기도 했어요. 1964년, 헬렌은 일반 시민에게 주는 미국 최고의 훈장인 ‘자유 훈장’을 받았어요. “부끄럽습니다! 저에게 이런 큰 상을 주시다니!” 그 이후로도 헬렌은 복지와 교육 사업에 힘썼어요. 헬렌의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많은 일을 할 수는 없었지만, 책을 읽고 원고를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1968년 6월 27일, 헬렌의 여든여덟 번째 생일을 준비하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갑자기 헬렌이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난 거예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에 사람들은 큰 슬픔에 빠졌어요. “태양이 보이냐, 보이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마음속에 빛을 가지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몸이 부자연스러운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닙니다. 육체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세요! 행복은, 우리 마음속에 있으니까요!” 헬렌 켈러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녀의 숭고한 박애 정신은 우리 가슴속에 영원한 등불로 남아있답니다.
대답하는 건 정말 귀찮아!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우리 아들, 오늘은 어떻게 지냈니?” 아빠는 회사에서 돌아오자마자 엄마랑 똑같은 질문을 했어요. 바다는 정말이지 대꾸도 하기 싫었어요. 엄마 아빠는 왜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 걸까요. 매일 즐거운 일만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 더구나 오늘은 엄청 짜증 나는 일이 있었어요. 산이는 바다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예요. 바다는 산이와 같은 반이 됐을 때부터 친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산이는 그렇지 않았나 봐요. “선생님, 짝꿍 언제 바꿔요?” 오늘 종례 시간에 있었던 일은 생각할수록 자존심이 상했어요. 선생님은 당분간 짝꿍은 그대로라고 하셨지만 산이가 그런 말을 꺼낼 줄은 진짜 몰랐어요. 무슨 친구가 그래요? 이제 싫증 났으니 짝을 바꿔 달라고 한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바다야, 학교 끝나고 뭐 할 거야?” 방과 후에 산이가 태연하게 말을 걸었어요. ‘흥! 치사해서 나도 너랑 짝꿍 안 한다.’ 보기 좋게 한 방 먹이고 싶었지만 못 들은 체했어요. 어떤 말로도 기분이 풀릴 것 같지 않았거든요. 집에 와서도 서운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어요. “뭐 해? 아빠가 물어보시잖니?” 엄마가 아빠 눈치를 살피면서 바다에게 말했어요. “그냥 놔둬요. 한창 그럴 땐데.” 아빠가 바다를 편들어 주려고 하는 말은 더 어이가 없었어요. 대체 왜 어른들은 뭐든 다 이해하는 듯 말하는 걸까요. 살짝 하소연하고 싶었던 마음이 짜증으로 변했어요. “선생님한테 야단이라도 맞았나?” 거실에서 엄마 아빠가 걱정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바다는 아예 방문을 걸어 잠그고 싶었어요. “바다야, 혹시 무슨 고민 있니?” 저녁 식탁에서 아빠가 또 슬그머니 말을 걸었어요. 보나 마나 이건 엄마 아빠의 합동작전이에요. 아무래도 두 분은, 바다가 선생님한테 야단이라도 맞은 걸로 착각한 모양이에요. “아빠한텐 말해도 되잖아?” “그런 거 없어요.” “시험 때문에 그래?” “아니라니까.” 바다는 짧게 대답하고 꾸역꾸역 밥알을 삼켰어요.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엄마도 한마디 거들었어요. “아, 좀!” 바다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저었어요. 말하고 싶어질 때까지는 엄마 아빠가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어요. 두 분은 참을성이 너무 없어요. 오늘은 일요일이에요. 바다는 산이의 메시지를 받고 한결 기분이 나아졌어요. 너 내가 어제 짝꿍 얘기한 것 때문에 화났니? 사실은 선생님한테 짝꿍 바꾸지 말아 달라고 말할 참이었어. ‘그러면 그렇지.’ 바다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답장을 보냈어요. 정말이야? 응! 산이한테도 즉각 답이 왔어요. 얼었던 마음이 봄눈 녹듯 풀어진다는 게 이런 걸까요? 이럴 줄 알았다면 산이한테 미리 물어볼 걸 그랬어요. 독후감 쓸 책은 샀니? 아니. 같이 사러 갈까? 그럼 율곡 서점에서 만나자. 알았어. 역시 바다와 산이는 죽이 척척 맞았어요. 숙제는 율곡 이이에 대한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쓰는 것이었어요. 율곡 슈퍼, 율곡 문구점, 율곡 서점. 바다가 사는 동네는 가게나 식당, 학원 이름 중에 율곡의 이름을 딴 간판이 유난히 많았어요. 서점 앞에 아이스크림 코너도 있네요. 바다와 산이는 약속이나 한 듯 아이스크림 코너로 갔어요. “율곡이 이 사람 맞지?” 산이가 오천 원짜리 지폐를 펼쳐 들었어요. 바다도 주섬주섬 돈을 꺼내 보았어요. 할아버지 얼굴 밑에 율곡 이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어요. “너희들 오만 원짜리 지폐는 본 적 있니?” 서점에서 나온 아저씨가 빙그레 웃으며 오만 원짜리 지폐를 보여 주었어요. 인자하게 생긴 아주머니 얼굴이네요.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이란다. 이곳 파주에 그분들의 가족묘가 있지.” 아저씨가 아이스크림을 내주곤 다시 서점으로 들어갔어요. “경기가 너무 안 좋아. 사람들이 책값을 아끼면 안 되는데 말이야.” 서점 아저씨는 혼잣말을 하다가 두 친구를 돌아보았어요. “뭐 필요한 거 있니?” “예. 율곡 선생님에 관한 책이요.” 아저씨가 두 친구를 진열대로 안내했어요. 초등학생이 읽을 만한 율곡의 책들이 생각보다 꽤 많이 있었어요. “앞부분부터 조금 읽어 보고 어려우면 다른 책으로 고르자.” “응. 그래!” 바다는 산이 말에 무조건 찬성이었어요. 친절한 주인아저씨가 의자를 내주셨어요. “친구 사이가 아주 좋아 보이는구나.” 아저씨가 두 친구를 유심히 보더니 또 혼잣말을 중얼댔어요. “율곡 선생도 붕우유신을 강조하셨지. 친구란 서로 믿음이 없으면 오래갈 수가 없는데 말이야.” 바다는 아저씨 말에 찔리는 데가 있어 산이 눈치를 살폈어요. “너희들이 부럽구나. 오래오래 좋은 친구로 지내거라.” 아저씨는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고는 계산대로 돌아갔어요. 바다는 늦기 전에 산이한테 속마음을 털어놓기로 했어요. “미안해. 네가 짝꿍이 되기 싫어한다고 오해하기 전에 솔직하게 물었다면 좋았을 텐데.” “나도 너랑 먼저 얘기하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었어.” 두 친구는 사과의 말을 건네며 책을 펼쳐 들었어요. 마음속에 있던 말을 다 하고 나니 친구 사이가 더 가까워진 것 같았어요. 말로 해서 안 풀릴 오해는 없다고 하잖아요. 그러다 문득 바다는 엄마 아빠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 아빠는 내가 걱정돼서 자꾸 물어보신 건데 왜 그렇게 퉁명스럽게 굴었던 걸까.’ 아무리 속이 상해도 묻는 말에 대꾸를 안 한 것은 너무 예의 없는 행동이었어요. 서점은 한산해서 책 읽기가 아주 좋았어요. 책 내용도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듯했어요. 조용히 책을 읽어 내려가던 바다의 눈길이 어느 한 대목에서 멈췄어요. ‘요즘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덜하다. 부모가 말을 걸면 공손히 대답하고, 자식이 감히 말을 끊거나 대답을 성의 없이 해선 안 된다. 설령 부모가 틀린 말씀을 하더라도 목소리와 태도는 반드시 부드럽게 해야 한다.’ 바다는 마치 율곡 선생님이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아서 얼굴이 마구 화끈거렸어요. “뭐, 독후감에 쓸 만한 거라도 있어?” 산이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다를 쳐다보았어요. “있잖아. 넌 엄마 아빠가 말하기 싫은 걸 물으면 어떻게 해?” 계산대로 가면서 바다가 산이한테 물었어요. “음, 난 그냥 나중에 말씀드리겠다고 해.” “그럼 서운해하지 않으실까?” 바다가 되물었어요. 그러자 산이도 잠시 생각해 보더니 천천히 대꾸했어요. “이건 내 생각인데 말이야, 부모님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상처를 쉽게 받는 것 같아." "묻는 말에 대꾸 안 하면 무시당한다고 여길지도 몰라." "그럴 땐 입 다물고 있는 것보단 솔직히 말씀드리는 게 나을걸?” 산이가 확신하는 표정으로 말했어요. 엄마 아빠도 상처를 받는다니! 어른이 어떻게 아이들 말에 상처를 받을 수 있을까요? 바다는 왠지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어요. “맞는 말이야." "항상 자식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란다.” 서점 아저씨가 두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조언을 해 주었어요. 책을 포장해 주는 아저씨 얼굴에서 인자함이 느껴졌어요. “이건 너희들에게 주는 선물이야.” 서점 아저씨는 율곡과 사임당의 그림이 그려진 예쁜 책갈피도 덤으로 주었답니다. “여기 부자유친이라고 쓰여 있지?” “네.” 바다와 산이는 아리송한 글귀와 아저씨를 번갈아 보았어요. “부모와 자식은 항상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뜻이야.” “어떻게요?” “묻는 말에 대답만 잘해도 친하게 지내는 거지.” 바다는 집으로 가는 내내 아저씨가 한 말을 되새겨 보았어요. “다녀왔습니다!” 엄마는 현관으로 들어서는 바다를 반갑게 맞아 주셨어요. “엄만 너 나가는 거 못 봤는데?” “서점에 갔었어요.” “아, 그 독후감 숙제 때문에?” “네.” “그래. 서점에는 친구랑 같이 갔었니?” “네, 엄마.” “친구 누구?” 엄마의 꼬치꼬치 캐묻기가 또 시작됐어요. 하지만 바다는 이상하게 짜증이 나지 않았어요. 대신 묻는 말에 시원시원 대답을 했어요. “오, 바다 왔구나.” 안방에서 나온 아빠도 같은 걸 물었어요. “그래. 어디 갔다 왔니?” 바다는 엄마에게 한 것처럼 똑같이 시원시원하게 대답했어요. 사실 엄마 아빠가 묻는 말에 대답하는 건 어려운 일도, 짜증 나는 일도 아니었어요. 바다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관심을 보이는 엄마 아빠가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다는 이런 게 바로 소통이란 것도 알았어요. 이날 엄마 아빠는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으셨어요. 덩달아서 바다도 많이 웃었어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엄마 아빠가 뭘 자꾸 물어보시는 건, 슬픈 일이든 기쁜 일이든 작은 것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이란 걸 알았어요. “여보, 우리 바다가 좀 달라진 것 같지 않아요?” “그러게. 녀석! 오늘따라 믿음직하군.” 거실에서 엄마 아빠가 흐뭇하게 주고받는 얘기가 들려왔어요. 바다는 방문을 살짝 열고 귀를 쫑긋 세웠답니다. 어느 날 공자가 길을 걷다가 몹시 슬퍼하며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어요. 공자가 그에게 물었어요. “그대는 무슨 일로 그리 슬피 우는 것이오?” 그 사람은 더욱 서럽게 울면서 공자의 물음에 대답했어요. “저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첫째는 젊었을 때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사실도 몰랐던 것입니다. 제가 집에 와 보니 부모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신 뒤였습니다. 둘째는 왕이 사치를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의 충고를 듣지 않아 그에게서 도망쳐 온 것입니다. 셋째는 저로 인해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을 몰랐던 것이 가장 슬픕니다.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지만 바람 잘 날이 없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는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때를 놓치면 간절히 효도하고 싶어도 부모를 만날 수 없으니 제가 이리 슬피 우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그 사람은 비통함을 견디지 못하고, 마른 나무에 기대어 죽고 말았어요. 이때부터 효도를 다하지 못한 채 부모를 잃은 자식의 슬픔을 가리키는 ‘풍수지탄’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어요.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효도를 다하라는 뜻이지요. 풍수지탄 효도를 하려고 해도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어쩔 도리가 없는 자식의 슬픈 심정을 나타내는 말이에요.
내 걱정은 하지 마!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쫑이야, 이번 주 토요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 산이는 쫑이한테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어요. 쫑이는 산이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이름이에요. “멍멍!” “안다고? 정말 내 생일인 거 아는 거야?” 산이는 ‘생일’이라는 말에 특히 힘을 주었어요. 부엌에서 엄마가 듣고 있기 때문이지요. 산이는 이번 생일에 꼭 받고 싶은 선물이 있는데 아직 엄마한테 말을 못 했어요. 산이가 받고 싶은 선물은 자전거예요.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지금까지 엄마 혼자 마트에서 일하면서 산이를 키웠어요. 그런데 자전거를 갖고 싶다고 하면 엄마 형편에 부담이 될지 몰라서 망설이는 중이에요. “산아, 어서 와! 밥 먹자.” 엄마가 식탁에 식사를 차려 놓고 손짓을 했어요. “우리 산이 좋아하는 계란말이야.” 엄마가 계란말이를 앞에 놓아 주었어요. 산이는 맛있는 계란말이도 먹는 둥 마는 둥 했어요. 속으로는 온통 자전거 생각뿐이었지요. 옆집 민영이가 자전거를 타고 뽐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민영이네 아빠는 큰 회사 부장님이에요. ‘나도 아빠가 살아 계시면 이런 고민 안 해도 될 텐데.’ 문득 아빠 생각이 떠올라 목이 콱 막혔어요. “그러다 체할라. 천천히 먹어.” 엄마가 얼른 물잔을 옆에 놓아 주었어요. 산이는 울고 싶은 걸 꾹 참고 꾸역꾸역 밥을 먹었어요. 그러면서 일찌감치 생일 선물에 대한 기대를 지워 버렸어요. 괜히 말을 꺼냈다가 엄마를 속상하게 할지도 모르니까요. “내일은 학교 끝나고 곧바로 들어오렴.” 식사가 끝난 뒤 엄마가 말했어요. 오늘은 금요일이에요. 산이는 엄마가 시킨 대로 방과 후 바로 집으로 갔어요. 웬일인지 엄마가 집을 지키고 있었어요. “엄마, 오늘 마트 휴일이야?” “좀 있다 다시 나가 봐야 해.” 엄마는 잠깐 집에 일이 있어 들렀다고 했어요. “누구지?” 무심코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산이는 벨 소리를 듣고 현관문을 연 순간, 입이 떡 벌어졌어요. “이산 학생! 자전거 배달 왔어요.” 택배 아저씨가 자전거를 문 앞에 세워 놓고 있었어요. “수고하셨어요.” 엄마는 아저씨가 내민 종이에 태연하게 사인을 하고는 산이를 돌아보았어요. “마음에 드니? 내일 생일 선물 미리 주는 거야.” 산이는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엄마는 어떻게 알았는지 산이가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파란색 자전거를 주문한 거예요. “산아, 이거 하나만 약속해.” 정신없이 자전거를 살펴보고 있는 산이에게 엄마가 말했어요. “항상 안전이 제일이야. 알았지?” “걱정 마, 엄마!” 산이는 큰 소리로 대답했어요. 자전거는 누구보다 잘 탈 자신이 있으니까요. “엄마, 내가 마트까지 태워 줄게!” “이건 어린이용 자전거잖아.” 엄마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어요. “아차!” 산이는 쑥스럽게 웃고는 공원으로 향했어요. “이 자전거 네 거야?” 공원 입구에서 마주친 민영이가 자전거와 산이를 신기하게 쳐다보았어요. “내 생일 선물이야. 엄마가 사 줬어!” 산이는 자랑스럽게 대꾸하며 공원을 휘둘러보았어요. “저쪽에 무료 게임장이 있어. 누가 먼저 가나 시합할래?” 민영이가 광장 쪽을 눈으로 가리켰어요. 산이는 별생각 없이 자전거에 올라탔어요. 공원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로 충분히 연습한 덕분에 민영이를 이기는 것쯤 문제도 아니었어요. “쯧쯧! 요즘 애들은 도무지 무서운 걸 몰라.” 게임장 앞을 지나던 어떤 할머니가 못마땅한 듯 혀를 찼어요. 산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민영이에게 물었어요. “근데 여긴 무슨 게임장이야?” “따라와 보면 알아.” 민영이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어요. 게임장에 들어서자 산이는 기분이 얼떨떨했어요. 스포츠 경기장처럼 꾸며진 커다란 광장 곳곳에 인라인이나 스케이트보드, 자전거 스턴트를 하는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어요. “우린 헬멧도 없잖아?” “저기 가서 자전거 묘기나 구경하자는 거야.” 민영이는 형들이 자전거 타는 곳으로 산이를 이끌었어요. 다들 정말 실력이 대단했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사도 형이 가장 돋보였어요. 대학생인 사도 형은 산이와 같은 가람 초등학교를 졸업했어요. “저 형 우리 학교 사이클부 주장이었던 거 알지?” 민영이가 말했어요. 가람 초등학교에서 사도 형을 모르면 간첩이지요. “와!” 옆에서 구경하던 아이들이 탄성을 내질렀어요. 사도 형이 자전거를 탄 채로 공중제비를 돌고 있었어요. 산이는 사도 형의 아찔한 묘기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어요. 민영이도 넋이 나간 모습이었어요. 잠시 후, 또 다른 형이 광장 뒤쪽으로 자전거를 몰아가더니 마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처럼 붕 하고 날아올랐어요. “와! 진짜 신기하다!” 형들의 묘기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 감탄사를 연발하는 산이에게 민영이가 물었어요. “너 혹시 엑스 게임이라고 들어 봤니?” “엑스 게임?” “지금 저 형들이 하는 게 엑스 게임이야.” 엑스 게임이라면 산이도 들어 본 기억이 났어요. 민영이는 엑스 게임에 대해 제법 아는 게 많았어요. 민영이는 형들이 하는 엑스 게임을 따라 해 보자고 했어요. “게임장에선 강습을 받아야 되니까 일단 우리끼리 연습하는 거야!” 산이는 귀가 솔깃했어요. 한편으로는 겁이 나기도 했지만 겁쟁이라고 놀림받을까 봐 싫다고 말하기도 찜찜했어요. 무엇보다 엑스 게임이라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컸어요. ‘설마 다치기야 하겠어? 엄마한텐 비밀로 하면 돼.’ 마음속에서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왔어요. “봐라!” 민영이가 한 손으로 자전거를 몰면서 앞으로 씽씽 달려갔어요. 산이도 질세라 뒷짐을 지고 자전거를 몰았어요. 꽈당! 넘어지면서 눈앞에 별들이 오락가락하는 순간, 와장창! 자전거 거울이 박살 나는 소리가 크게 들렸어요. “어, 자전거가 왜 이래?” 엄마는 거울이 부서진 자전거를 보더니 거의 기절할 듯했어요. “너 이러려고 자전거 사 달랬어?” “죄송해요.” 산이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지만 엄마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어요. “안 되겠다. 이 자전거 도로 팔아야겠어.” “이제부터 조심할게요.” “시끄러워! 뭘 잘했다고 떠들어!” 엄마는 싸늘한 눈빛을 보내며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산이는 그깟 거울 좀 깨졌다고 자전거를 팔겠다고 협박하는 엄마가 원망스러웠어요. ‘엄마는 날 미워하는 거야!’ 산이는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했어요. 어쩌면 엄마가 마음에도 없는 비싼 선물을 해 주고 이제 와서 치사하게 아까워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한편으로는 엄마가 자전거를 팔아 버린다 생각하니 너무 속이 상했어요. 자전거를 끌고 터덜터덜 가다 보니 공원 앞이었어요. 산이는 자전거를 세워 두고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겼어요. ‘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그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어요. “이산, 맞지?” 산이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어요. 사도 형이 바로 앞에 서 있었어요. “거울이 깨질 정도면 너도 부상당했을 텐데, 괜찮니?” 사도 형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전거와 산이를 번갈아 쳐다보았어요. 산이는 사도 형 앞에서만큼은 진심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엄마가 자전거를 팔아 버린대요!” “엑스 게임은 어른들도 다치기 쉬워서 반드시 안전 장비를 갖추고 교육을 받은 다음에나 할 수 있어. 초등학생이 즐기기에는 정말 위험한 게임이야.” 산이의 하소연을 듣고 사도 형이 말했어요. “너희 엄마는 네가 다칠까 봐 염려하시는 거야. 세상 모든 부모님들 마음은 똑같아. 우리 엄마는 내가 중학교 다닐 때까지도 엑스 게임 때문에 날마다 우셨어.” “왜요?” “자꾸 다치니까 그렇지. 너무 걱정하다 마음에 병이 생겨서 병원까지 다니셨어.” 사도 형은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엑스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고 했어요. “효도는 못할망정 부모님 걱정은 시키지 말아야지!” 산이는 공원을 나오면서 사도 형이 했던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어요. 한편으로는 밤마다 무릎에 연고를 발라 주면서 소리 없이 울던 엄마 모습이 아프게 떠올랐어요. 산이는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이 마트로 향했어요. “산아! 너 왜 여기 있어?” 한참 만에 정문 앞에 나타난 엄마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어요. 산이는 일부러 깡충깡충 뛰어 보였어요. “엄마! 나 무릎 다 나았어요!” “아직 상처도 안 아물었는데 그렇게 뛰면 어떡해?” “엄마가 약 발라 줘서 괜찮아요!” “원 녀석도!” 엄마는 산이가 달려가 품에 안기자 빙그레 웃으며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어요. “엄마가 싫어하면 자전거 안 탈게요!” “우리 산이 다칠까 봐 그랬지! 네가 조심하면 괜찮아!” 산이와 엄마는 어느 때보다 다정하게 손을 꼭 잡고 집으로 향했어요. 효도의 진정한 의미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이는 열세 살 때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그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뽑혀 ‘구도장원공’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어요. 이이는 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효자로서도 지금껏 널리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위인이랍니다.
인사는 행복 비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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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여름도 어느새 한풀 꺾였는지 바람이 제법 선선해졌어요. 거리를 가득 채우던 매미 울음소리도 이제는 많이 작아졌지요.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 재민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갈 준비를 했어요. 책가방에 공책과 필통을 넣는 재민이의 가슴이 두근거리며 설레었어요. 오늘은 여름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이에요. 오랜만에 친구들을 모두 만날 생각을 하니 조금 떨리기도 했어요. '다들 얼마나 즐겁게 방학을 보냈을까?' 재민이는 씩씩하게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섰어요. "엄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재민이는 배웅을 나온 엄마에게 또랑또랑하고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에 탔어요. 엘리베이터에는 15층 할머니가 타고 있었어요. 재민이는 오늘 무척 기분이 좋아서 평소와는 다르게 "할머니, 안녕하세요!" 하고 큰 소리로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어요. 먼저 인사를 하기는 했지만 수줍은 마음에 재민이의 볼이 발갛게 물들었어요.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재민이의 인사를 받아 주었어요. "아이고, 우리 잘생긴 왕자님이 학교 가는구나!"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 주었어요. "이렇게 인사성이 바르니 우리 왕자님은 아주 훌륭한 학생이 되겠는걸." 할머니가 칭찬해 주자 재민이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어요. "고맙습니다!" 재민이는 꾸벅 고개를 숙였어요. 할머니가 준 사탕은 재민이가 제일 좋아하는 새콤달콤한 딸기 맛 사탕이었어요. 사탕을 입에 넣은 재민이는 통통 뛰듯이 학교로 향했어요. 아파트 단지 입구에 다다른 재민이는 앞서서 가고 있는 또래 남자아이를 발견했어요. 같은 반 친구 태호였어요. 반가운 마음에 재민이는 큰 소리로 태호에게 인사했어요. "태호야, 태호야! 안녕!" 재민이의 밝은 목소리에 앞서가던 태호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어요. 재민이를 알아본 태호도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어요. "재민이구나! 안녕, 재민아!" 어제도 태호와 함께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지만 재민이는 오늘따라 태호가 더욱 반가웠어요. 재민이와 태호는 같이 학교로 향했어요. 둘은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어요. 태호가 어제 축구를 하다 넘어진 친구 흉내를 내자 재민이는 고개를 젖히고 크게 웃었어요. 그러다가 그만 앞에서 걸어오던 아저씨와 부딪치고 말았어요. 아저씨는 얼굴을 찌푸리며 재민이를 나무랐어요. "길을 갈 때는 앞을 잘 살피면서 걸어야지!" 아저씨는 친구 흉내를 낸 태호보다 재민이에게 더 많이 화를 냈어요. '왜 아저씨는 나만 혼내는 거야? 태호가 이상한 흉내를 내는 바람에 웃다가 그런 건데!' 재민이는 태호에게도 화가 났어요. '같이 장난을 쳐 놓고 모른 척하는 거 좀 봐!' 교실에 도착해서도 재민이는 책가방을 뒤적거리며 태호를 본체만체했어요. 때마침 종소리가 울렸어요. 재민이가 무척 좋아하는 담임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어요. 하지만 기분이 상한 재민이는 선생님을 보지 않고 책상만 만지작거렸어요. 반장 경호가 일어나 "차렷, 경례!" 하고 외쳤어요. 반 친구들은 모두 함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드렸어요. 선생님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좋은 아침이에요, 여러분! 방학은 즐겁게 보냈나요?" 하고 인사를 해 주었어요. 아침 인사를 끝내고 선생님은 "새 학기부터는 아침마다 여러분과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하고 말했어요. 그러고는 칠판에 큼지막하게 '인사'라고 썼어요. "오늘의 대화 주제는 바로 인사랍니다." "세상에는 참 많은 종류의 인사들이 있어요. 여러분은 오늘 아침, 어떤 인사를 나누었나요? 한번 발표해 볼까요?" 반장 경호가 제일 먼저 손을 들었어요.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 아빠께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고 인사했어요." "그래요, 아침에 일어나면 부모님께 안녕히 주무셨는지 먼저 여쭤 보며 인사를 드려야 하지요." 경호를 칭찬한 선생님이 이번에는 지우를 지목했어요. "저는 학교에 올 때 엄마께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리고 나왔어요." 지우의 대답에 재민이는 '아, 나도 오늘 아침에 엄마한테 그렇게 인사했는데.' 하고 생각했어요. 발표를 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다가 재민이는 선생님 말씀에 조금씩 귀를 기울이게 되었어요. "지우가 참 잘했군요. 옛날 중국에 공자라는 어질고 예의 바른 분이 살았는데, 그분께서도 '집 밖에 나가기 전에는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드리고, 집에 돌아와서도 다녀왔다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부모님께 효도와 예절을 다하는 가장 간단하고도 중요한 방법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지우는 오늘 효도를 한 거예요."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친구들이 "선생님, 저도 효도했어요!" "저도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했어요!"라고 외쳤어요. 재민이는 크게 외치지는 못했지만 옆자리 짝꿍에게 속삭였어요. "나도 했어. 그럼 나도 오늘 효도한 거지?" 재민이는 뿌듯한 마음에 스스로가 자랑스러웠어요. 재민이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어요. 이번에는 영준이가 발표했어요. "저는 오늘 아침에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지각을 할 것 같아서 학교까지 막 뛰어왔어요. 그러다가 어떤 누나랑 부딪쳐서 누나 가방이 땅바닥에 떨어졌어요." 영준이의 발표를 들은 재민이의 눈이 커다래졌어요. 재민이가 아침에 겪은 일과 비슷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마음이 급했지만 누나의 가방을 주워 드리며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를 했어요. 누나는 '괜찮아.' 하고 사과를 받아 주었어요." 영준이의 발표가 끝나자 선생님은 "영준이가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해 주었네요." 라고 말했어요. 선생님은 기특하다는 듯이 영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다시 말했어요. "여러분, 영준이의 말처럼 사과나 감사를 표현하는 말들도 모두 인사말이랍니다." 선생님은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처럼 만나고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뿐만 아니라, 사과나 감사의 말도 인사말이라고 알려 주었어요. '죄송합니다.'나 '감사합니다.' 같은 말들이지요. 또,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하는 말도 인사의 일종이라고 했어요. "이렇게나 많은 인사말들을 상황에 맞게 잘 사용해야 정말 예의 바른 어린이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선생님의 설명을 듣던 재민이는 오늘 아침에 태호와 떠들면서 길을 걷다가 아저씨와 부딪친 일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어요. 그때 선생님이 재민이의 어두운 표정을 보았어요. "재민아, 왜 갑자기 그렇게 시무룩해졌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 친구들에게 이야기해 주지 않을래?" 잠시 망설이던 재민이는 용기를 내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오늘 아침에 어떤 아저씨랑 부딪쳤는데 죄송하다는 말을 못 했어요. 그게 마음에 걸려요." 재민이는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고백했어요. 재민이의 고백을 들은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며, "괜찮아! 누구나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는 거란다. 재민이처럼 자기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는 것이 더 어렵고 대단한 일이야! 선생님 눈에는 재민이가 정말 자랑스럽고 훌륭해 보이는구나!" 라고 말해 주었어요. "여러분, 우리 재민이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의미로 재민이에게 박수를 쳐 줄까요?"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재민이에게 박수를 쳐 주었어요. 친구들의 응원을 받은 재민이는 앞으로 사과를 잘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재민이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교했어요. 그때 저만치 앞에 태호가 걸어가고 있었어요. 재민이는 태호를 향해 달려갔어요. "태호야, 아까 아침에 미안했어! 교실에서도 모른 척하고. 정말 미안해!" 재민이는 태호를 손을 잡고서 말했어요. "아니야, 괜찮아. 먼저 사과해 줘서 고마워, 재민아." "우리 다음부터는 길을 다닐 때 조심하자!" 태호는 웃으며 재민이의 사과를 받아 주었어요. 재민이와 태호는 또 비슷한 일이 생기면 죄송하다고 꼭 인사를 하기로 약속하고 집으로 향했어요. 집으로 돌아온 재민이는 아침에 집을 나설 때보다 더 크고 씩씩한 목소리로 엄마에게 인사를 했어요.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어쩐지 아침보다 더 자란 것 같은 재민이의 모습에 엄마도 재민이를 꼭 안아 주며 반갑게 맞아 주었어요.
왜 나만 미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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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그래." 운동장 벤치에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진주에게 은결이가 말했어요. "마음에도 없기는. 진짜 한번 혼나야 한다니까."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걸려?" 진주는 무슨 말을 하려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가만 보니 진주가 진석이를 좋아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에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을 보면 말이죠. 문제는 눈치 없는 진석이에요. 진석이는 실수를 저질러 놓고도 잘 알지 못해요. 책도 많이 읽고 머리도 좋아서 이것저것 아는 것은 많지만 너무 잘난 척하는 행동은 아무리 맘씨 좋은 사람도 받아들이기 힘들지요. 오늘 진석이가 성환이에게 했던 말은 정말 최악이었어요. 진석이는 왜 다른 사람의 마음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요? "내가 뭐 진주한테 잘못한 거 있어?" 자신에게 짜증을 내고 나가 버린 진주의 뒷모습을 보며 진석이는 옆에 앉은 짝꿍에게 물어보았어요. "잘못했지. 너 성환이한테 잘난 척했잖아." "그게 무슨 잘난 척이야. 도와준 거지." "그래서 진주가 화낸 거야. 넌 네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도 모르잖아." "도와준 거라니까." "그런데 왜 도움받은 사람이 화를 내?" "그거야 도움받은 애가 제 처지를 모르는 거지." "처지 바꿔 생각 좀 해 봐. 잘난 척만 하지 말고." "너희들, 진짜." 진석이는 확 짜증이 일었어요. 친구들은 모두 진석이가 잘못했다고 말하지만 정작 진석이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맹세코 성환이를 진짜 도와주려는 마음이었으니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진석이는 오늘 성환이와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았어요. 수학 시간에 성환이는 선생님이 낸 문제를 잘 풀지 못했어요. 엄청 쉬운 문제인 데다, 엊그제 숙제로 내 준 문제인데도 못 풀었어요. 그래서 진석이는 쉬는 시간에 성환이에게 다가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어요. 잘 이해할 수 있게 말이죠. 반장인 자신이 아니면 누가 그런 일을 하겠어요? 그런데 갑자기 성환이가 버럭 화를 냈고 그걸 보던 진주는 짜증을 내며 나가 버리고 다른 친구들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거나 한심한 눈빛으로 진석이를 보는 거예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거죠? 왜 모두 자신만 비난하는 걸까요? 진주하고는 더 잘 지내고 싶은데 뒤도 안 돌아보고 가 버렸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진주야, 무슨 일 있니? 표정이 안 좋은데?" 엄마는 진주의 얼굴만 봐도 기분이 어떤지 금방 알아내는 재주가 있어요. 진주의 목소리 톤이 조금 올라갔어요. "넌 화나면 꼭 그렇게 말하더라." "아이, 몰라요." 진주는 가방을 내려놓고 소파에 철퍼덕 앉았어요. "시원한 음료수 줄까?" 엄마는 얼음까지 넣은 과일 주스를 가져와 진주에게 내밀었어요. 진주는 냉큼 주스를 마셨어요. 그러고는 궁금했던 것을 엄마에게 물었어요. "엄마, 똑똑한 거랑 잘난 체하는 거랑 뭐가 달라요?" "글쎄. 똑똑한 게 현명한 거라면, 잘난 체하는 것은 좀 어리석은 거 아닐까?" "엄마, 성환이 알지요?" "응. 아빠는 출장 가시고 엄마는 입원하셔서 요즘 병원에서 지낸다며." "그런데 오늘 성환이한테 진석이가, 아, 정말 짜증 나." "아니, 진석이가 어떻게 했기에 짜증까지 나?" "병원에서 지내니까 성환이가 숙제를 못 했나 봐요. 수학 시간에 선생님이 문제 풀이를 시켰는데 못 풀었거든요. 그런데 쉬는 시간에 진석이가 가르쳐 준다며 성환이를 비꼬았어요." "비꼬다니?" "문제를 못 풀어서 성환이도 창피해하고 있는데 진석이가 먼저 나서서 문제를 풀어 주는 거예요. 그러고는 '좀 더 열심히 해. 그래야 나처럼 잘하지.' 이런 식으로 말했어요. 그리고 또 옆에 있는 애들한테 '얘들아, 내 말 맞지?' 그러는 거예요." "저런. 성환이가 기분 나빴겠다." "당연하죠. 그런데 진석이는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몰라요. 도와주려고 했다면서 여전히 잘난 척만 해요." "성환이는 화가 났고 진석이는 잘못한 게 뭔지 모른다고?" "네. 심각해요." "넌 누가 걱정되는 거야? 성환이야? 진석이야? 진석이지?" "엄마!" "엄마 귀 안 먹었어." "얘기가 왜 그렇게 흘러요!" "아무튼 너는 진석이가 바보 같은 짓을 해서 화가 난 거야?" "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들으려고도 안 해요." "어려운 일이다." "어려워요?" "사람은 자기 잘못 인정하는 게 가장 어렵거든." "그럼 어떻게 해요?" "스스로 잘못을 깨달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제일 좋을 것 같은데. '아,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것. 비슷한 상황을 체험하게 해 보든가." "그런 게 가능할까요?" 다음 날 학교에 간 진주는 우선 봉주를 찾았어요. 봉주는 반에서 가장 운동을 잘하는 친구예요. 특히 달리기를 잘했어요. "봉주야, 우리 진석이 좀 혼내 줄까?" "둘이 싸웠어? 네가 진석이를 혼내 주자는 말을 하다니?" "아니, 싸운 건 아니고 요즘 너무 잘난 척을 해서." "야, 그러지 마라. 너무 챙기는 거 아니야?" "할 거야, 말 거야?" "아, 물론 네가 시키면 해야지. 언제?" "오늘 체육 시간에." "체육 시간?" "진석이가 제일 약한 게 체육이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서 네가 필요해. 달리기는 네가 최고니까." "어떻게 하면 되는데?" 진주는 밤새 짜낸 계획을 봉주에게 들려주었어요. 체육 시간이 되자 봉주는 진석이에게 다가갔어요. "진석아, 이따 선생님이 조별 달리기 시합한다더라." "들었어. 나 달리기 싫어하는데." "우리 같은 조 할래?" "너랑? 싫어. 너는 너무 빨라!" "진주랑 은결이도 같이 할 건데?" "엥? 걔네들이 너랑 같은 조 한대?" "응, 거리가 짧거든. 결승 30미터 남기고 시작해서 결승선까지만 전력 질주하면 된대. 그전까지는 천천히 달리는 거고. 여자애들이랑 하면 할 만하지 않겠어?" "그 정도라면 뭐 나쁘지 않은데." 진주와 한 조가 되고 싶은 진석이는 결국 봉주 말대로 그 조에 합류하기로 했어요. 드디어 달리기 시간! 한 조가 된 봉주, 진석이, 진주, 은결이가 달리기 시작했어요. 봉주와 진석이, 진주, 은결이는 서로 눈치를 보며 천천히 운동장을 돌았어요. 진석이는 마음속으로 전의를 불태웠어요. 진주에게 잘 보이고 싶었거든요. 드디어 결승선 30미터를 남기고 '탕!' 소리가 났어요. 네 명은 온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비슷하게 달렸지만, 곧 차이가 났어요. 가장 선두에는 봉주, 그다음은 은결이, 그리고 진석이, 마지막으로 진주가 진석이 뒤를 바짝 따르고 있었어요. 네 명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아 언제든 순위가 바뀔 것 같았어요. 진석이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다른 때보다 더 힘을 냈어요. 하지만 순위는 바뀌지 않고 경기가 끝났어요. 진석이는 너무 힘든지 헉헉거렸어요. 그때 봉주가 진석이에게 다가가 말했어요. "숨을 더 크게 쉬어야 해." 그러고는 진석이 팔을 잡고는 크게 벌렸다 좁혔다 하기를 반복했어요. "봉주야, 됐어. 나 좀 내버려 둬." 하지만 봉주는 진석이의 말을 듣지 않았어요. "이렇게 해야 숨이 빨리 돌아온다니까." "헉헉! 그게 더 힘들어. 제발 그만해." "저질 체력! 그러니까 평소에 운동 좀 하지. 난 거뜬하잖아. 반성 좀 해라." 진석이는 봉주의 말에 점점 기분이 나빠졌어요. "됐다고! 그만해!" 봉주는 어깨를 으쓱하고 물러서더니 숨을 고르는 진주와 은결이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저질 체력은 매력 없지 않냐? 나 정도는 되어야지. 얘는 완전 꽝이야." 마침내 진석이가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어요. "너 정말 왜 이래? 잘난 척 그만하고 꺼져!" 봉주와 은결이, 진주가 진석이를 가만히 쳐다보았어요. "뭐야?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얘들아, 나 이제 진석이랑 얘기 좀 할게." 진주의 말에 다른 친구들이 자리를 피해 주었어요. 진석이와 진주는 운동장 벤치에 앉았어요. "진석아, 방금 봉주가 잘난 척해서 화났어?" "저 녀석이 갑자기 왜 저래." "힘들어 죽겠는데 팔을 막 벌리고 난리야. 그리고 너도 들었지? 뭐? 나보고 저질 체력? 쳇, 자기는 얼마나 강철 체력이기에. 재수 없어!" "내가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했어." "뭐? 그게 정말이야?" "응. 너한테 알려 주고 싶었어. 오늘 상황 어제 그 일하고 비슷하지 않니?" "그 일이라니? 성환이 말하는 거야?" "맞아. 넌 어제 도와주려고 했다지만 다른 친구들 눈에는 그렇지 않았거든. 그래서 내가 상황을 만들었어." "그럼 내가 어제 봉주처럼 행동했단 말이야?" "그래. 넌 도와 달라고 하지도 않은 성환이에게 문제를 풀어 준다며 으스댔어. 그런 쉬운 문제를 풀지 못한다며 다른 애들한테 흉도 봤잖아." "그랬네. 내가 정말 그랬네." "성환이 어머니 병원에 입원한 것은 알지? 아버지도 출장 중이래. 그래서 요즘 병원에서 학교 다녀." "숙제도 잘 안되나 봐. 그런 애를 네가 비꼰 거지." 진석이는 어제 일을 가만히 생각해 보았어요. 어제 성환이에게 자신이 한 말들이 오늘 봉주가 잘난 척한 것과 똑같이 닮아 있었어요. 진석이는 비로소 어제 일이 후회되었어요. "진주야, 정말 미안해.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나한테 미안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친구들에게 사과해야지. 특히 성환이에게." "알았어. 나 정말 바보 같다." "우리 엄마가 그러더라. 잘난 척하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멋지다고 뻐기고 싶을 때 나오는 행동이래. 너 가끔 그래. 그런 것만 없으면 정말 멋질 텐데 말이야." "그래? 그것만 조심하면 나 계속 좋아해 줄 거지?" "참, 너란 애는 구제 불능이다." "하하하." 공경지심. 공경지심이란 다른 사람을 받들고 존경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맹자라는 책에 나오는 글이에요. 맹자는 사람이면 누구나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그리고 남을 공경하는 마음과 옳고 그른 일을 가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했어요. 여기서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인, 즉 어질다는 것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로운 것이며, 공경하는 마음은 예, 옳고 그른 일을 가리는 마음은 지혜를 의미하고 있어요. 맹자는 또 이렇게 말했어요. "인의예지는 누구나 본래부터 지니고 있다." "다만 생각하지 않는 것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구하면 얻고, 버리면 잃을 것이다." 이 말은 곧 사람은 본래 선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가졌으나 스스로 그것을 잊고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된다는 뜻이에요. 예의를 지킨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되지요.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함부로 굴거나 나보다 약한 상대를 못살게 구는 것,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무시하는 것도 공경지심을 모르는 행동이에요. 효도의 진정한 의미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이는 열세 살 때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그뿐만 아니라 평생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뽑혀 '구도장원공'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어요. 이이는 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효자로서도 지금껏 널리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위인이랍니다. 율곡 이이,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 율곡 이이의 공부법. 율곡 이이 선생님의 공부법은 아래의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입지(뜻을 세우다) 공부법'입니다. 실천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워라. 두 번째 '교기질(기질을 바로잡는다) 공부법'입니다. 자기 잠재력을 믿고 주변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가능하다, 공부하는 체질로 바꿔라. 세 번째 '혁구습(잘못된 옛 습관을 버려라) 공부법'입니다. 몸에 밴 잘못된 옛 습관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씩 없애나가는 것입니다. 잘못된 옛 습관을 타파하라. 네 번째 '구용구사 공부법'입니다. 9가지의 바른 몸가짐과 9가지의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서 기본자세를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옛 습관의 자리를 수신으로 채워라. 다섯째 '일목십행 공부법'입니다. 늘 책을 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공부의 가치를 더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서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여섯째 '택우문답 공부법'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보완해 공부를 더욱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벗과 함께 논쟁하며 일취월장하라. 구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발의 모습은 정중하게 하라. 둘째 손의 모습은 공손하게 하라. 셋째 눈의 모습은 단정하게 하라. 넷째 입의 모습은 멈추게 하라. 함부로 말하지 마라. 다섯째 말소리의 모습은 차분하게 하라. 여섯째 머리의 모습은 곧게 하라. 일곱째 기운의 모습은 엄숙하게 하라. 여덟째 서 있는 모습은 덕성스럽게 하라. 아홉째 얼굴빛의 모습은 굳세게 해야 한다. 구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라. 둘째 들을 때는 귀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하라. 셋째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넷째 용모는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다섯째 말은 충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여섯째 일할 때는 경건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일곱째 의문이 생기면 물을 것을 생각하라. 여덟째 화가 나면 뒤에 야기되는 어려움을 생각하라. 아홉째 이득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라.
거짓말은 마술풍선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는 날이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인 준호는 아침 일찍 학교로 향했어요. “준호야, 안녕. 그동안 잘 지냈어?” 교실로 들어선 준호를 민지가 반갑게 맞이했어요. 민지는 준호가 좋아하는 같은 반 여자아이예요. “안녕. 너도 잘 지냈지?” 준호가 인사하며 민지에게 다가갔어요. 민지 곁에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어요. 민지는 예쁘고 상냥해서 특히 남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어요. “얘들아, 반갑다!” 기태가 교실로 들어오며 한 손을 높이 쳐들고 소리쳤어요. 기태는 반장인 데다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고 공부도 무척 잘했지요. 준호는 기태를 볼 때마다 은근히 신경이 쓰였어요. 기태도 민지를 좋아하거든요. “너희들 방학 동안에 뭐 하고 지냈냐?” 기태가 아이들을 둘러보며 물었어요. “난 부모님과 함께 미국에 갔다 왔어. 캘리포니아에 있는 디즈니랜드에 갔었는데, 엄청 재미있었어.” 아빠가 큰 사업을 하는 성재가 말했어요. 성재는 디즈니랜드에서 탔던 놀이 기구와 그곳에서 구경한 것들에 대해 신나게 설명했어요. “와, 대박!” “정말 재밌었겠다!” 아이들은 성재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감탄했어요. “유치하게 놀이 기구 같은 걸 왜 타냐? 그런 건 꼬맹이들이나 타는 거잖아. 안 그래?” 기태가 평소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어요. 아이들이 일제히 기태 쪽으로 시선을 돌렸어요. 이 몸은 코끼리를 타고 정글을 누비고 다니셨어. 방학 동안에 동남아시아 여행을 했거든. 너희들 코모도섬 가 봤어? 코모도왕도마뱀 본 적 있어? 코모도왕도마뱀은 텔레비전에서 본 적 있어. 기태가 묻자 옆의 아이가 대답했어요. “텔레비전에서 본 것도 본 거냐? 난 바로 코앞에서 코모도왕도마뱀을 봤는데 와, 정말 무시무시하더라!” 기태는 코모도왕도마뱀에 대해서 의기양양하게 설명했어요.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기태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지요. 준호는 갑자기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방학 동안에 성재는 미국 디즈니랜드에 갔다 오고, 기태는 동남아시아에서 코끼리도 타고 코모도왕도마뱀도 봤다는데 대체 나는 뭐람.’ 준호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어요. “준호, 너는 방학 동안 뭐 했어? 새끼 도마뱀이라도 봤냐?” 기태가 얕보는 말투로 준호에게 물었어요. 준호는 기분이 나빠 얼굴이 벌게지면서 당황했어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당황한 채 머뭇거리는 준호를 민지가 빤히 바라보았어요. 준호는 민지를 의식하자 더욱 초조해졌어요. ‘방학 동안에 뭘 봤지? 아, 그거다!’ 준호는 한 달 전에 아빠와 함께 경상남도 고성의 공룡 박물관에 갔던 일을 떠올렸어요. “난 공룡 알을 봤어.” “공룡 알? 진짜 공룡 알을 봤어?” 준호의 말에 기태가 재빨리 물었어요. 준호는 공룡 박물관에서 본 공룡 알이 가짜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가짜라고 하면 기태가 비웃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대꾸했어요. “당연히 진짜지!” “진짜 공룡 알이었다고?” 기태가 확인하듯 또 물었어요. “그렇다니까!” 준호는 물러설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더 큰 소리로 대답했어요. 아이들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준호를 바라보았어요. 민지는 왠지 불안한 표정이었어요. “진짜 공룡 알을 어디서 봤는데?” 기태가 수사관처럼 캐물었어요. 준호는 고성의 공룡 박물관에서 봤다고 말하려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어요. 그렇게 말하면 기태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그건 가짜야!’ 라고 소리치며 창피를 줄 게 뻔했기 때문이에요. “어디서 봤는지 말해 봐. 영화 ‘쥐라기 공원’ 에서 보셨나?” 준호가 잠자코 있자 기태가 놀리듯 능글맞게 물었어요. 준호는 얄미운 기태에게 지고 싶지 않았어요. 민지가 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더 들었어요. 준호는 예전에 본 만화 영화를 떠올렸어요. “마다가스카르에서 봤어.” “마다가스카르? 거기가 어디지?” 아이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어요. 기태도 마다가스카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어요. “ 아프리카에 있어.” 준호도 알지 못했지만 짐짓 자신 있게 말했어요. “거기서 진짜 공룡 알을 봤단 말이지. 그런데 왜 공룡 알만 봤어? 진짜 공룡 알을 봤으면 진짜 공룡도 봤어야 하는 거 아닌가?” “맞아. 진짜 공룡 알을 봤으면 진짜 공룡도 봤어야지.” 기태의 말에 성재가 맞장구를 쳤어요. “진짜 공룡은 못 봤냐?” 기태가 의심의 눈초리를 빛내며 물었어요. 준호는 대답을 못 하고 망설였어요. 그때 교실 문이 열리면서 선생님이 들어왔어요. 아이들이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어요. 준호는 자리에 앉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다들 방학 잘 보냈지? 오늘은 개학이니까 수업은.” 선생님이 말했지만 준호의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어요. 대신 ‘진짜 공룡은 못 봤냐?’ 라는 기태의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어요. 준호는 곁눈질로 기태 쪽을 흘끗 보았어요. ‘공룡 알을 봤다면 그런 줄 알 것이지, 사람 난처하게 왜 자꾸 꼬치꼬치 캐묻는 거야?’ 준호는 기태가 원망스럽다 못해 원수처럼 여겨졌어요. 애초에 공룡 알을 봤다고 말한 것이 후회되기도 했어요. ‘이따 쉬는 시간에 기태가 또 물을 텐데 뭐라고 하지? 진짜 공룡도 공룡 알도 본 적이 없다고 솔직히 말할까?’ 준호는 고민에 빠졌어요. ‘아니야, 안 돼. 솔직히 말하면 기태가 뭐라고 하겠어? 애초에 왜 거짓말을 했냐면서 창피를 줄 거야.’ 준호 생각에 기태는 그러고도 남을 아이였어요. 더욱이 기태도 준호가 민지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민지 앞에서 준호를 망신시키려고 할 게 뻔했지요. 준호는 마음이 켕겼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갈 데까지 가 보자. 여기서 물러나면 기태 녀석이 나를 바보 취급할 거야.’ 이윽고 쉬는 시간이 되자 예상했던 대로 기태가 아이들과 함께 준호에게 다가와 물었어요. “야, 준호. 진짜 공룡도 봤냐?” “봤어. 그것도 티라노사우루스를 봤어.” 준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깔고 말했어요. “그 무서운 티라노사우루스를 봤다고?” 기태가 물었어요.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준호는 ‘에라, 모르겠다’ 는 심정으로 더욱 과감하게 나갔어요. “사실은 아빠가 당분간 비밀로 하자고 해서 입 다물려고 했는데, 자꾸 물으니까 말할게. 대신 너희만 알고 있어.” 준호의 말에 기태와 아이들이 바짝 긴장했어요. “우리 아빠는 공룡을 연구하는 고생물학자야. 그래서 공룡 화석을 찾아 자주 여행을 떠나는데 이번에 나도 따라갔다가 마다가스카르에서 티렉스를 본 거야.” “티렉스가 뭐야?”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의 준말이야.” 준호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 거만하게 말했어요. “증거는 있어?” 기태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기태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이었지만 기가 팍 꺾인 목소리였어요. “티렉스를 찍은 사진도 있고, 비디오도 있어. 아빠가 정리해서 며칠 뒤 언론에 발표할 거야. 그러니까 너희들은 그때까지 비밀로 해 줘.” 준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스스로 놀랐어요. 어떻게 자기 입에서 그런 말이 술술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아이들은 이제 준호를 완전히 믿는 눈치였어요. 기태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어요. ‘흐음, 이것으로 게임 끝이군.’ 준호는 기태에게 한 방 멋지게 먹인 것 같아 통쾌했어요. 하지만 민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왠지 불안했어요.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았어요. 아무튼 준호가 진짜 공룡을 보았다는 이야기는 삽시간에 이웃 교실을 넘어 학교 전체에 퍼졌어요. “그게 사실이야?” 수업이 끝나고 준호가 교문을 나설 때였어요. 민지가 준호 곁으로 다가와 물었어요. 준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대답 안 해도 돼. 하지만 난 네가 정직했으면 좋겠어.” 민지는 그렇게 말하고 먼저 가 버렸어요. 준호는 정글 속을 헤매고 있었어요.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있어 어두컴컴하니 앞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금방이라도 사나운 동물이 튀어나올 것 같아 무섭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요. 준호는 슬그머니 뒤 돌아보았어요. 그때 무시무시한 티라노사우루스가 준호를 삼키려고 입을 쫙 벌렸어요. “으아악!" 준호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어요. “아니, 왜 그래?” 비명 소리에 놀란 엄마가 준호의 방으로 뛰어들어 왔어요. “어머, 땀 좀 봐! 악몽을 꿨나 보구나.” 준호는 꿈이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왜 하필 티라노사우루스가 나오는 꿈을 꾸었는지 생각하자 기분이 찜찜했어요. 더욱이 학교에 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어요. “어떻게 너희 학교는 개학 다음 날이 개교기념일이니.” 엄마가 방을 나서며 말했어요. 준호는 그제야 오늘이 개교기념일이라서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준호는 하루 종일 우울했어요. 기태와 아이들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어요. 특히 ‘네가 정직했으면 좋겠어’ 라는 민지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저녁 무렵, 준호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회사에서 돌아온 아빠가 준호에게 대뜸 말했어요. “할 얘기가 있으니 내 방으로 들어와라.” 준호는 문득 불길한 느낌이 들었어요. “낮에 네 담임 선생님을 우연히 만났다. 네가 어제 학교에서 이상한 말을 했더구나. 왜 그런 거짓말을 했니?” 아빠는 준호가 무슨 거짓말을 했는지 다 알고 있었어요. “외국 갔다 온 거 자랑하는 애들 앞에서 꿀리기 싫어.” 준호는 말을 하다 말고 울먹였어요. 녀석, 거짓말한 게 후회되는 모양이구나. 그래, 거짓말은 마술풍선 같은 거야. 한번 하면 계속 하게 되고, 작은 거짓말은 점점 더 큰 거짓말이 된단다. 내일 친구들에게 사과해라. 알았지?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러자 아빠가 준호를 살포시 안아 주었어요. 심청사달. 마음이 맑으면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정직하게 살라는 말이에요. 심청사달이란 마음이 깨끗하고 욕심이 없어야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명심보감이란 책에 나와요. ‘명심보감’ 은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 이란 뜻이지요.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이루려고 애써요. 공부를 잘하려고 애쓰고, 건강해지려고 애쓰지요. 또 무엇이 되려고 애쓰기도 하고, 어떤 물건을 가지려고 애쓰기도 해요. 물론 무언가를 얻으려고 애쓰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 없어요. 오히려 그런 노력으로 인해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가 발전할 수 있지요. 그러나 많은 것을 얻으려고 애쓰다 보면, 우리의 마음은 욕심으로 가득 차게 돼요. 게다가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생각하는 이기심이 늘게 되지요. 언뜻 보기에 욕심과 이기심은 무엇을 이루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너무 욕심과 이기심을 앞세우면 될 일도 잘되지 않아요. 더구나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욕심과 이기심은 결국 스스로를 가두는 결과를 낳게 돼요. 그래서 우리의 조상들은 ‘심청사달’ , 즉 무언가를 이루려면 마음을 깨끗이 비워서 맑게 하라고 가르쳤답니다. 효도의 진정한 의미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이는 열세 살 때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뽑혀 ‘구도장원공’ 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어요. 이이는 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효자로서도 지금껏 널리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위인이랍니다. 율곡 이이의 공부법. 율곡 이이 선생님의 공부법은 아래의 여섯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입지 공부법’ 입니다. 실천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워라. 두번째 ‘교기질 공부법’ 입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주변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가능하다, 공부하는 체질로 바꿔라. 세번째 ‘혁구습 공부법’ 입니다. 몸에 밴 잘못된 옛 습관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씩 없애나가는 것입니다. 잘못된 옛 습관을 타파하라. 네번째 ‘구용구사 공부법’ 입니다. 9가지의 바른 몸가짐과 9가지의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서 기본자세를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옛 습관의 자리를 수신으로 채워라. 다섯째 ‘일목십행 공부법’ 입니다. 늘 책을 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공부의 가치를 더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서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여섯째 ‘택우문답 공부법’ 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보완해 공부를 더욱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벗과 함께 논쟁하며 일취월장하라. 구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발의 모습은 정중하게 하라. 둘째 손의 모습은 공손하게 하라. 셋째 눈의 모습은 단정하게 하라. 넷째 입의 모습은 멈추게 하라. 다섯째 말소리의 모습은 차분하게 하라. 여섯째 머리의 모습은 곧게 하라. 일곱째 기운의 모습은 엄숙하게 하라. 여덟째 서 있는 모습은 덕성스럽게 하라. 아홉째 얼굴빛의 모습은 굳세게 해야 한다. 구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라. 둘째 들을 때는 귀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하라. 셋째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넷째 용모는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다섯째 말은 충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여섯째 일할 때는 경건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일곱째 의문이 나면 물을 것을 생각하라. 여덟째 화가 나면 뒤에 야기되는 어려움을 생각하라. 아홉째 이득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라.
욕심은 끝이 없어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유한초등학교 2학년 1반 일규는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최고예요. 왜냐고요? 예쁘고 멋진 모형 자동차가 가장 많기 때문이에요. 5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자동차지만 뒤로 당겼다가 놓으면 아주 잘 굴러가는 귀여운 미니카지요. 그런데 요즘 철이가 일규의 인기에 도전하고 있어요. 부잣집 아들인 철이는 아빠를 졸라 한꺼번에 많은 모형 자동차를 샀어요. 그러고도 날마다 몇 대씩은 사는 것 같았어요. "이건 전부 어제 산 거야. 어때, 멋지지?" 철이가 다섯 대의 자동차를 일규 앞에 척 내놓았어요. 남자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철이의 미니카를 구경했어요. 여자아이들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어요. "와, 정말 귀엽고 예쁘다!" "일규 것보다 더 멋진 차도 있다!" 아이들의 말에 일규는 입을 삐죽 내밀었어요. 그날 오후에 일규는 신나게 문구점으로 달려갔어요. 미니카를 살 돈이 생겼거든요.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일규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내일 미술 준비물 사야 해요. 돈 좀 주세요." 엄마는 아무 의심 없이 돈을 주었어요. 바로 그 돈을 가지고 문구점으로 달려간 거예요. "와, 새로 나온 미니카가 몇 개나 되네!" 일규는 이것저것 만져 보다가 미니카 두 개를 샀어요. 다른 것도 더 사고 싶은 욕심이 생겼지만 더 살 수는 없었어요. 돈이 모자랐거든요. 미술 준비물은 어떻게 할 거냐고요?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내일 아침 학교 갈 때 산다고 하면 돼요. 미술 시간에 만든 것을 엄마가 보자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요? 그것도 문제없어요. 학교에 두고 왔다고 하면 되거든요. 문구점에서 나오는데 뒤에서 누군가 불렀어요. 돌아보니 저쪽에서 철이가 자전거를 타고 다가왔어요. "너 또 미니카 샀냐? 애걔, 겨우 두 개? 이제는 너보다 내가 더 많을걸. 이제 미니카는 내가 최고야. 히히히." 철이가 놀리듯 웃었어요. 일규는 미니카 두 개를 새로 사 좋아졌던 기분이 단번에 나빠졌어요. 철이는 혀를 쏙 내밀더니 자기 집 쪽으로 씽씽 달려가 버렸어요. 일규는 새로 산 미니카를 바지 주머니에 푹 집어넣었어요. 그 순간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내일은 동화책을 산다고 해야지. 그리고 다음 날은 토요일이니까 친구 생일 선물을 산다고 하고.' 그날 저녁에 갑자기 시골에 사는 사촌 형이 집에 왔어요. "어? 일한이 형? 혼자 왔어?" 일규가 반갑게 맞으며 물었어요. "그럼 혼자 왔지. 내 나이가 벌써 열세 살이야." 일한이 형은 마치 어른처럼 목소리를 낮게 깔고 흠흠 헛기침까지 했어요. 한복을 입고 헛기침까지 하니 정말 어른 같아 보였어요. 형이 왜 한복을 입었냐고요? 일한이 형은 특이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옛날처럼 한복을 입고 명심보감이나 사자소학 같은 옛날 책을 배우는 학교래요. 정말 특이하죠? 형이 다시 말했어요. "내일 금요일에 교육청에서 전국 어린이 회장 모임이 있어. 그래서 온 거야." "와! 형, 어린이 회장 됐어?" 일규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어요. 일한이 형은 대답 대신 빙그레 미소 지었어요. 일한이 형은 일규 방으로 들어와 방을 둘러보았어요. "와, 모형 자동차 정말 많네. 다 네가 모은 거니?" 일규는 어깨를 으쓱이며 자랑스럽게 말했어요. "물론이지. 정말 멋지지, 형?" "그래, 멋지게 생긴 차가 아주 많네." 일규는 책꽂이와 장식장에 길게 늘어선 미니카들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어요. 일한이 형이 멋지다고 말해 주니 더 기분이 좋았어요. 바로 그때 일규의 머리에 반짝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형, 나랑 같이 우리 동네 구경 갈래? 내가 안내 할게." 형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일규는 재빨리 형의 손을 잡고 거실로 나갔어요. "엄마, 일한이 형하고 나갔다 올게요." "어딜 가려고 그러니?" "동네 구경이요. 간식 사 먹게 용돈 좀 주세요. 그리고 내일 학급 문고에 낼 책도 한 권 사야 해요." 일규는 재빨리 말하고 손을 쑥 내밀었어요. 엄마는 별말 없이 돈을 주었어요. 다른 때 같으면 자세히 물어보았을 텐데 곁에 일한이 형이 있으니 자세히 묻지 않는 것 같았어요. 일규는 돈을 받고서 일한이 형과 집을 나섰어요. "형, 여기가 시립 도서관이고, 저기는 우리 학교야." 일규는 형에게 대충대충 동네 주변을 안내했어요. 그러다가 분식점에 가서 떡볶이와 어묵, 튀김을 사 먹었어요. 그러고 나서 일규는 우다다다 달려 문구점으로 갔어요. 일한이 형은 영문도 모르고 일규 뒤를 따라왔어요. 일규는 신형 미니카 세 대를 사고 돈을 지불했어요. 일한이 형은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어요. 일규가 신이 나 휘파람을 휘휘 불며 문구점을 나오자 일한이 형이 뒤에서 일규의 팔뚝을 잡아챘어요. "너 학급 문고에 낼 책 산다며?" "아, 그거? 그건 나중에 사도 돼, 형." "너 엄마한테 책 산다고 거짓말하고 미니카 산 거지? 맞지?" 일규는 변명할 말을 생각하느라 미간을 좁힌 채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학급 문고 책은 나중에 내도 돼." 일규가 얼버무리는 듯한 자신 없는 말투로 말했어요. "유일규, 너 실망이다!" 일한이 형이 일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외쳤어요. 일한이 형은 일규를 이끌고 아파트 벤치로 향했어요. 벤치에 나란히 앉자 일한이 형이 말했어요. "너 소탐대실이란 말 들어 봤어?" "몰라. 처음 들어." 형이 흠흠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어요. "작은 것을 욕심내다가 큰 것을 잃는다는 말이야." "작은 것? 큰 것?" 일규는 형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 알 것 같았어요. 그때 형이 다시 말했어요. "넌 미니카를 사려고 엄마한테 거짓말을 했어. 네 욕심대로 작고 예쁜 미니카를 가지게 되어 기분이 좋을지 모르지만 넌 더 큰 것을 잃었어.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와 부모 자식 사이에 꼭 필요한 신뢰를 잃은 거야. 알아?" 어린이 회장이 되어서 그런지 형은 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말을 잘하는 것 같았어요. 일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얼굴이 벌게졌어요. 일규는 일한이 형과 자기 방으로 돌아왔어요. 한동안 조용히 앉아 있던 형이 다시 말했어요. "사람은 거짓말을 하면 자꾸 비굴하고 비겁해지는 거야. 당당하게 살 수 없다고!" "난 내 동생 일규가 비굴하고 비겁해지는 거 정말 싫어." 일규는 그동안 엄마에게 거짓말을 해서 타낸 돈으로 미니카를 사면서도 그것이 비굴하고 비겁한 행동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일한이 형 말을 들으니 정말 비겁하고 치사한 행동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머릿속에서 '소탐대실' 이란 말이 뱅뱅 맴을 돌았어요. 일한이 형은 일규가 자기 말을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빙긋 웃더니 장식장에 놓인 미니카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농담을 던졌어요. "이건 거짓말 1호, 이건 거짓말 2호, 이건 거짓말 3호." 농담이었지만 뼈가 있는 농담이었어요. 다음 날 아침, 일규는 일한이 형과 집을 나섰어요. 일규는 학교로 가고, 일한이 형은 교육청으로 가는 길이에요. 일한이 형은 엄마가 차로 데려다준다고 해도 끝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겠다고 했어요. "하도 어른스럽게 말을 하니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그래, 그럼 지하철 타고 조심히 가렴." 엄마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지요. 형은 교육청 모임에 갔다가 혼자 시골로 내려간다고 했어요. 일규는 모든 일에 자신 있고 당당한 형이 참 멋져 보였어요. 아파트 앞길에서 헤어질 때 갑자기 형이 일규에게 다가와 아무 말도 없이 살짝 포옹을 해 주었어요. 일규는 왠지 마음이 찡했어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형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어요. 교실로 들어서자 철이가 바로 일규를 불렀어요. "어제도 다섯 대 샀다. 어때, 이 스포츠카 멋지지?" 어제와는 다르게 일규는 철이의 말에도 별로 질투가 나지 않았어요. "이제 내가 미니카 왕이야. 너보다 훨씬 멋진 게 더 많으니까." 철이의 말에 일규는 그냥 고개를 끄덕여 주었어요. 사실 엄마한테 거짓말로 돈을 타 미니카를 사는 방법은 철이가 가르쳐 준 거예요. 오늘 가져온 다섯 대의 미니카도 자기 엄마에게 뭔가 거짓말을 하고 사 온 것인지도 모르지요. 일규는 말없이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어요. 철이는 일규가 별로 부러워하는 것 같지 않자 조금 실망한 것 같았어요. 그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 일규는 자기 미니카들을 둘로 나누었어요. 한쪽은 정당하게 자기 용돈으로 산 것, 다른 한쪽은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고 산 것이에요. 거짓말을 하고 산 것이 열다섯 개나 되었어요. 자기 용돈으로 산 것은 다시 장식장에 넣고, 거짓말을 하고 산 것은 작은 종이 박스에 담아 구석에 치워 놓았어요. 일규는 종이 박스에 담긴 미니카들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어요. "난 너희들이 거짓말 1호, 2호, 3호로 불리는 게 싫어." 일규는 바로 오늘부터 엄마를 위해 무언가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엄마 심부름을 하고 설거지도 도울 거예요. 또 방 청소도 하고 아빠 구두도 닦아 놓을 거예요. 왜냐고요? 그렇게 해서 종이 박스에 갇힌 미니카를 하나씩 구해 줄 거예요. 용기가 없어 아직 엄마에게 거짓말한 것을 고백할 수는 없지만, 미니카를 다 구하고 나면 언젠가는 엄마에게도 용서를 빌 거예요. 일규가 자기 방 청소를 시작하자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어요. "이게 웬일이야?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엄마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어요. 일규는 말도 없이 헤헤 웃으며 계속 청소를 했어요. 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지요. '엄마, 미안해요. 다시는 비겁하게 거짓말하지 않을게요. 당당한 아들이 될게요.' 방 청소를 마치자 목욕을 하고 났을 때처럼 기분이 개운했어요. 엄마한테 칭찬도 받아서 그런지 붕 뜨는 기분이었어요. 일규는 방구석에 놓인 상자에서 미니카 하나를 꺼내 장식장으로 옮겼어요. "넌 이제 거짓말 1호가 아니야." 일규의 말에 미니카도 방긋 웃는 것 같았어요. 지족가락 무탐즉우. 이 말은 명심보감이란 책에 나오는 말이에요. 명심보감은 조선 시대 때 어린이들이 인성 수양을 위해 읽던 책이에요. '지족가락 무탐즉우' 는 욕심을 경계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흔히 사람들이 정직하지 못하고 때때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모두 욕심 때문이에요. 남보다 더 가지려 하고, 남보다 더 잘난 것처럼 보이고 싶어 자기도 모르게 욕심을 부리는 것이지요. 옛날 선비들은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자기 삶에 만족할 줄 알았지요. 만족하는 순간 삶이 즐거워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쓸데없이 욕심내는 것을 가장 경계했어요. 욕심을 내는 순간 거기서 근심이 생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효도의 진정한 의미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이는 열세 살 때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뽑혀 ‘구도장원공’ 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어요. 이이는 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효자로서도 지금껏 널리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위인이랍니다.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유민이는 오늘따라 몸이 많이 피곤했어요. 학원끝나고 곧바로 집에 왔어야 했는데 친구들과 축구를 너무 오래 했기 때문이에요. 저녁밥을 먹고 났더니 식곤증 때문인지 졸음이 쏟아져 책상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책가방은 방 한구석에 밀어 둔 채 침대에 눕는 유민이를 엄마가 걱정스럽게 쳐다보았어요. “그냥 자면 어떡해? 숙제 안 하니?” “오늘 숙제 없어.” 유민이는 얼떨결에 거짓말을 하고 말았어요. “숙제가 하나도 없어?” 엄마는 믿기기 않는 듯 재차 물었어요. 유민이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시치미를 뗐어요. “진짜야.” “그래. 엄마가 아들을 안 믿으면 누굴 믿겠니?” 다행히 엄마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어요. ‘선생님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지?’ 다음 날 아침부터 유민이는 심정(心情)이 조마조마했어요. 막상 숙제를 안 하고 학교에 가려니 불안했던 거예요. ‘이럴 줄 알았으면 힘들더라도 숙제를 할걸!’ 교실에 앉아 있는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웠어요. 반에서 숙제를 안 해 온 학생은 유민이 하나뿐이었어요. 선생님은 숙제를 안 해 온 이유를 물었어요. “제가 어제 열이 나고 아팠어요.” 유민이는 선생님한테 혼나는 게 두려워 또 거짓말을 하고 말았어요. “지금은 괜찮니?” 아무것도 모르는 선생님은 유민이를 위로했어요. 벌을 세우지도, 야단을 치지도 않았어요. 유민이는 양심이 찔렸지만 이왕 뱉어 낸 말을 도로 주워 담을 수도 없었어요. 오늘은 아빠가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이상했어요. 평소와는 달리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거예요. “엄마가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란다.” “엄마, 어디 아픈 거야?” 유민이가 걱정스럽게 엄마를 살펴보았어요. “그냥 감기 몸살이야.” 엄마는 괜찮다고 했지만 몹시 힘들어 보였어요. “유민아, 이제 뭐 할 거니?”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엄마가 물었어요. “응, 지금부터 숙제할 거야.” 유민이는 얼른 책상 앞에 앉았어요. 다른 때 같으면 게임이라도 좀 하다가 숙제를 했을 텐데 엊그제 거짓말한 게 마음에 걸렸어요. 숙제를 다 끝마치고도 잠이 오지 않았어요. 유민이는 엄마가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오늘은 중간고사 시험 결과가 나오는 날이에요. “큰일 났다!” 유민이는 완전히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어요. 설마 했는데 성적이 너무 많이 떨어진 거예요. ‘엄마가 보면 엄청 실망할 텐데.’ 유민이는 아픈 엄마를 기쁘게 해 주지는 못할망정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더구나 이번 시험은 엄마도 많이 기대하는 눈치였어요. 성적표를 다 나눠 준 다음, 선생님이 말했어요. “다음 주 월요일까지 부모님 도장이나 사인 받아 오너라.” 유민이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어요. 일단 아빠한테라도 솔직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하필 출장 중이었어요. 엄마는 성적표가 나온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요. 속으로 끙끙 앓던 유민이는 결국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고 말았어요. 마침 엄마는 세탁실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어요. 유민이는 안방으로 들어가 떨리는 손으로 서랍을 열었어요. 엄마 도장이 담긴 작은 지갑이 보였어요. 성적표에 도장을 찍고 나오는데 심장이 마구 뛰었어요. 안방에서 거실을 건너 방에 들어오기까지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어요. 다행히 들키지는 않았어요. “유민이 간식 뭐 해 줄까?” 엄마가 방문을 열었어요. 유민이는 도저히 엄마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었어요. “무슨 고민이라도 있니? 뭐가 그렇게 심각해?” “엄마, 아픈 건 괜찮아?” “괜찮고말고! 이제 다 나았어.” 엄마는 유민이를 바라보며 다정한 미소를 지었어요. 유민이는 지금이라도 모든 걸 털어놓고 용서를 빌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그 뒤로 일주일이 지났어요. 유민이가 한 일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어요. 엄마도 선생님도 성적표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어요. 그런데 유민이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엄마 앞에서 전처럼 밝게 웃을 수도 없었어요. 엄마가 유민이를 바라보는 표정도 예전 같지 않았어요. 엄마는 간혹 답답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어요. 그 모습이 왠지 많이 슬퍼 보였어요. “유민아,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하루는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하기도 했어요. 유민이는 이제 엄마가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숙제를 알아서 척척 하곤 했어요. 그런데 엄마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까요? 비밀을 가진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 될 줄은 유민이도 몰랐어요. 오늘 사회 시간에는 속담 공부를 했어요. “거짓말에 대한 속담과 그 뜻풀이를 알아보도록 하자.” 선생님은 먼저 칠판에 속담 한 가지를 적었어요. 거짓말은 십 리를 못 간다. “일시적으로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오랫동안 속이지는 못한다는 뜻이지.” 유민이는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마치 선생님이 자신을 향해 하는 말 같았거든요. “거짓말이 나쁜 건 새끼를 치기 때문이야.”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한 아이가 질문을 했어요. “새끼를 치는 게 뭔데요?” “하나의 거짓말을 숨기려고 또 다른 말을 꾸며 대는 거지.” “그런데 이미 거짓말을 해 버렸으면 어떡해요?”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진심으로 사과하는 거야.” 유민이는 수업이 모두 끝난 뒤 교무실로 갔어요. 선생님은 거짓말이 무서운 습관이 될 수도 있다고 했어요. “사소한 거짓말이 반복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나쁜 버릇이 들게 되는 거야.” 유민이는 문득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떠올렸어요. 양치기 소년은 재미로 시작한 거짓말이 습관이 되었어요. 그러다 나중엔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죠. 유민이는 이러다 양치기 소년처럼 될까 봐 겁이 났어요. 선생님은 유민이가 교무실로 들어서자 친절하게 물었어요. “왜, 무슨 할 말이 있니?” 유민이는 지난번 숙제 때문에 거짓말한 사실을 고백했어요. “잘못했어요, 선생님.” “늦게나마 용기를 냈으니 칭찬해 주고 싶구나. 선생님도 얼마 전에 우연히 너희 어머니를 만났을 때 대강 눈치를 챘단다.” 선생님은 너무나 뜻밖의 말을 했어요. 엄마도 유민이의 거짓말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네가 숙제도 못 할 만큼 아팠다는 게 생각나서 몇 마디 했던 건데, 어머니가 무척 당황하시더구나.” 선생님은 엄마에게도 먼저 고백하라고 넌지시 권했어요. 엄마는 오늘도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어요. 유민이는 숙제를 하는 척하면서 머리를 굴렸어요. ‘지금 말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좀 이따가 하는 게 좋을까? 엄마가 먼저 말을 걸어 주면 좋을 텐데.’ 유민이는 저녁 식사 시간 내내 엄마 눈치를 살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고백할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어쩌면 가만히 있으면 조용히 지나갈 일을 괜히 들춰내서 야단맞을 구실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몰라요. ‘긁어 부스럼 만든다는 속담도 있잖아. 나만 입 다물고 있으면 돼!’ 유민이는 결국 고백할 기회를 놓쳐 버렸어요. “유민아, 오늘은 아빠랑 같이 나가자.” 웬일인지 아빠가 학교까지 태워다 준다고 했어요. 유민이는 신이 나서 아빠 차에 올라탔어요. “요즘 뭐 별다른 일은 없니?” “별다른 일이요?” 아빠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유민이를 보았어요. “유민이가 아빠한테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유민이는 순간 속이 뜨끔했어요. 아빠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듯했어요. “그게, 저, 사실은요.” 유민이는 두 번의 거짓말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았어요. “첫 번째 거짓말은 무조건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엄마한테 더 좋은 성적표를 갖다 드리고 말할 작정이었어요.” 아빠는 유민이 말을 듣고 표정이 무거워졌어요. “아빠 생각엔 두 번째가 더 나빠." "좋은 뜻에서 하는 거짓말이라고 용서가 되는 건 아니야." "또 그 거짓말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었다면 뜻이 좋아도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니?” 아빠는 안타까운 눈길로 유민이를 바라보았어요. “넌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랬겠지만 방법(方法)이 옳지 못했다는 건 알고 있지?” “네.” “그럼 왜 이제껏 아무 말도 안 했던 거야?” “두 번이나 거짓말한 걸 알면 엄마가 더 실망할까 봐 겁났어요.” 유민이는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속마음을 다 털어놓았어요. 이야기를 듣고 난 아빠는 한결 부드러운 미소를 띠었어요. “솔직하게 말해 줘서 고맙구나. 그런데 엄마도 아빠랑 같은 심정 아닐까?” 유민이는 그제야 아빠가 학교까지 태워 준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 아빠는 유민이가 이 상황을 잘 풀어 가기를 바랐던 거예요. 그날 저녁, 유민이는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엄마는 오늘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잘못을 인정하고 나면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야." "이젠 안심이 되는구나!” 엄마는 유민이의 사과를 너그럽게 받아 주었어요. 혼자만의 비밀에 갇혀 있을 땐 그렇게 무거웠던 마음이 어느새 깃털처럼 가벼워졌어요. 유민이는 엄마가 말수를 잃을 만큼 우울해했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엄마는 유민이의 거짓말이 습관이 될까 봐 두려웠던 거예요. “엄마가 바라는 건 네가 무슨 일이든 거짓 없이 정직하게 말해 주는 거야.” "약속할게, 엄마!” 유민이는 다시는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어요. 엄마의 얼굴에도 비로소 환한 웃음이 떠올랐어요. 선징악의 참뜻은 ‘선한 것이 결국 이긴다’는 교훈이에요. 우리 전래 소설 중에는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작품을 흔히 볼 수 있어요. 콩쥐팥쥐전, 흥부전, 장화홍련전, 심청전, 춘향전 등이 모두 권선징악의 주제를 담고 있어요. 이런 소설의 공통점은 누가 보더라도 벌을 받아 마땅한 악인이 등장한다는 점이에요. 대개 이 악인들은 천사 같은 주인공을 갖은 방법으로 괴롭히지요. 힘이나 권력을 이용하여 남의 재물을 빼앗거나 온갖 거짓된 행동으로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해요. 그렇지만 결국 마지막에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은 악인이 아니라 착한 주인공들이랍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항상 착한 일을 하며 살도록 노력하세요. 그래야 마지막에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이는 열세 살 때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뽑혀 ‘구도장원공’ 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어요. 이이는 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효자로서도 지금껏 널리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위인이랍니다. 율곡 이이 선생님의 공부법은 아래의 여섯가지로 정리할 수 있 습니다. 첫번째 ‘입지(뜻을 세우다) 공부법’ 입니다. 실천하고자 하는 목 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워라. 두번째 ‘교기질(기질을 바로잡다) 공부법’ 입니다. 자신의 잠재력 을 믿고 주변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가능하다, 공부하는 체질로 바꿔라. 세번째 ‘혁구습(잘못된 옛 습관을 버려라) 공부법’ 입니다. 몸에 밴 잘못된 옛 습관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씩 없애나가는 것입니다. 잘못된 옛 습관을 타파하라. 네번째 ‘구용구사 공부법’ 입니다. 9가지의 바른 몸가짐과 9가지 의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서 기본자세를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옛 습관의 자리를 수신으로 채워라. 다섯째 ‘일목십행 공부법’ 입니다. 늘 책을 곁에 두고 시간 날 때 마다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공부의 가치를 더해갈 수 있기 때문 입니다. 독서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여섯째 ‘택우문답 공부법’ 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학문적 인 교류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보완해 공부를 더욱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벗과 함께 논쟁하며 일취월장하라. 구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발의 모습은 정중하게 하라. 둘째 손의 모습은 공손하게 하라. 셋째 눈의 모습은 단정하게 하라. 넷째 입의 모습은 멈추게 하라. (함부로 말하지 마라) 다섯째 말소리의 모습은 차분하게 하라. 여섯째 머리의 모습은 곧게 하라. 일곱째 기운의 모습은 엄숙하게 하라. 여덟째 서 있는 모습은 덕성스럽게 하라. 아홉째 얼굴빛의 모습은 굳세게 해야 한다. 구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라. 둘째 들을 때는 귀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하라. 셋째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넷째 용모는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다섯째 말은 충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여섯째 일할 때는 경건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일곱째 의문이 나면 물을 것을 생각하라. 여덟째 화가 나면 뒤에 야기되는 어려움을 생각하라. 아홉째 이득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라.
숙제는 정말 지겨워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으악, 이걸 언제 다 해?" 승찬이는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소리쳤어요. 그러자 짝꿍 지유가 물었어요. "왜? 숙제(宿題) 때문에?" "응! 숙제도 너무 어렵고 해야 할 일도 너무 많아!" 지유가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어요. "뭐가 많은데?" "나 이번 주에 학원에서 시험 두 개나 본단 말이야!" "나도 내일 학원 시험 있는데." 지유의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에 승찬이는 의아(疑訝)했어요. "뭐? 그런데 너는 걱정도 안 돼?" "걱정할 게 뭐가 있어?" 지유는 콧방귀를 뀌었어요. "넌 나보다 학원도 두 군데나 더 다닌다면서? 그런데 어떻게 숙제를 항상 빠뜨리지 않고 해 올 수 있어?" 선생님께서 다음 주까지 해 오라고 내 주신 숙제는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어요. "오늘 배운 인물에 대해 써 오세요. 이 인물에 대한 책 세 권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써 보는 거예요." "집에 있는 책도 좋고 도서관에서 빌려도 좋아요. 그 대신 책을 그대로 베끼거나 다른 친구의 숙제를 흉내 내서는 절대로 안 돼요. 알았죠?" 승찬이는 자기 생각을 쓰는 글쓰기가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어요. 게다가 이번에는 책을 세 권이나 읽고 나서 써야 한다니 더더욱 눈앞이 캄캄할 수밖에요. 더구나 내일과 모레는 학원에서 시험을 보는 날! 저번 시험을 망쳤기 때문에 이번에도 점수가 낮게 나오면 엄마한테 엄청 혼이 날 거예요. 승찬이는 울고 싶었어요. 지유가 승찬이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어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숙제를 하는 애가 어디 있니?" 놀란 승찬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어요. "그럼 넌 어떻게 하는데?" "인터넷에 다 나오잖아. 검색하면 다 뜨니까 그중에서 아무거나 베끼면 되지!" "하지만 남의 것을 베끼면 절대 안 된다고 선생님이." "어휴! 그렇게 하다가 언제 숙제랑 시험공부를 다 하니? 난 지난번에도 그렇게 했는걸!" 지유의 목소리는 당당했어요. "정말이야?" "당연하지!" 지유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승찬이는 정말로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어요. '그럼 다른 애들은 숙제를 쉽게 베껴 온단 말이야? 자기 힘으로 정직하게 하지 않고?' 승찬이는 문득 억울한 기분이 들었어요. 언제나 숙제도 완벽하게 해 오고 준비물도 빠트리지 않고 발표도 잘하는 지유의 평소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집으로 돌아온 승찬이는 마음이 무거웠어요. 그런 승찬이의 기분도 모른 채 엄마가 또 잔소리를 했어요. "승찬아, 너 이번 주에 학원 시험 있지? 저번 시험보다 점수가 낮게 나오면 다음 주까지 컴퓨터 게임 못 하는 거야. 엄마랑 약속한 것 잊지 않았지?" "네." "대답이 왜 그래? 약속 안 지킬 거야?" "아휴, 알았다고요." 승찬이는 자기도 모르게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어요. 엄마가 미운 것도 아니고, 짜증을 내려던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숙제도 어렵고, 시험도 봐야 하고, 하고 싶은 게임은 마음껏 못 하고. 지유는 나더러 바보라고 하고.' 아무도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승찬이는 서운했어요. 그러나 서운해할 겨를도 없었어요. 이틀이나 연달아 학원 시험을 보려면 얼른 공부를 시작해야 하니까요. '숙제는 주말에 해도 되니까 일단 시험공부를 하자.' '에잇, 몰라! 어떻게 되겠지.' 시험 점수가 나쁘면 승찬이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을 하지 못할 거라는 엄마와의 약속을 떠올리자, 더 이상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승찬이는 컴퓨터 게임이라면 자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해 본 적도 있어요. "매일 게임을 하는 것이 이번 주 숙제예요. 게임 점수가 제일 높은 어린이에게 상을 줄 거예요." 이런 숙제라면 틀림없이 승찬이가 제일 잘할 거예요. "우리 아들! 점수가 올랐네? 기특해라!" 다행히도 승찬이의 학원 시험 점수는 지난번보다 조금 올랐어요. 몹시 기뻐하는 엄마를 보자 승찬이도 마음이 놓였어요. "엄마, 그럼 게임 한 시간만 해도 되지요?" "으이그, 하여간 못 말려!" "딱 한 시간만! 네?" "그럼 정말 딱 한 시간만이야? 그 이상은 안 돼." "네!" 엄마가 컴퓨터 게임을 허락해 주시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승찬이는 더더욱 신이 났어요. 게임을 하는 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어요. 시작한 지 10분밖에 안 지난 것 같은데 벌써 엄마가 곁에 오셔서 "자, 이제 그만!"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으아, 더 하고 싶다." 승찬이는 아쉬워하며 게임을 끝냈어요. 사실은 아까부터 게임보다 훨씬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어요. 그건 바로 글쓰기 숙제! 책을 세 권이나 읽고 자기 생각을 써야 하는 그 숙제가 승찬이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어요. 주말까지 숙제를 마쳐야만 다음 주 숙제 검사 때 제출을 할 수 있을 거예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맘껏 놀지 못하고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할 생각을 하자, 벌써부터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어요. 승찬이는 짝꿍 지유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어요. '인터넷을 검색해서 대충 베끼면 돼!' 또 지유가 승찬이더러 '바보'라고 하던 말투와 표정도 떠올랐어요. 승찬이는 고민에 빠졌어요. '정말 다른 친구들은 그렇게 숙제를 하는 걸까? 선생님 말씀처럼 책을 읽은 뒤 자기 생각을 쓰지 않고, 인터넷에서 남의 것을 베껴서 내는 게 사실일까?' 그런데 그날 저녁, 엄마가 뜻밖의 이야기를 하셨어요. "승찬아, 이번 주 일요일은 할아버지 생신이란다. 그래서 토요일에 할아버지 댁에 가서 하룻밤 자고 일요일 저녁에 돌아올 거야." "사촌 형들이랑 누나들도 모두 올 거래. 좋겠지?" 할아버지 댁에 가다니! 승찬이의 할아버지 댁은 차를 타고 네 시간도 더 걸리는 먼 시골에 있어요. 승찬이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가는 게 제일 즐거웠어요. 그곳에 가면 승찬이를 예뻐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반겨 주시고, 사촌들과 냇가에서 하루 종일 놀아도 아무도 공부하라는 소리를 하지 않거든요. 승찬이는 들뜬 마음에 일단 숙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어요. 승찬이가 글쓰기 숙제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숙제를 제출하기 하루 전날이었어요. 승찬이가 기대했던 대로 할아버지 댁에서의 주말은 너무도 재미있었어요. 할아버지 생신이라서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었고, 친척 형들과 누나들과도 신나게 놀았어요. 숙제 따위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어요. '왜 재미있는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 거야?' 승찬이는 밤늦게까지 턱을 괴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어요. 책도 읽지 못했고 글의 첫 문장도 쓰지 못했어요. 승찬이는 혼잣말로 변명을 해 보았어요. '지난주에는 학원 시험을 보느라 바빴고, 주말에는 할아버지 댁에 다녀오느라 시간이 없었어.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고!' 승찬이의 머릿속에서는 지유가 가르쳐 준 '숙제 방법'이 자꾸만 맴돌았어요. '아아! 어떡하지?' 마침내 그날이 오고야 말았어요. 선생님께서는 반 아이들의 글쓰기 숙제를 걷어 갔다가 전부 검사를 한 후 그다음 날 나눠 주었어요. 숙제를 낼 때도, 그리고 돌려받을 때도, 승찬이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어요. 마치 큰 죄를 지은 것만 같고, 금방이라도 선생님이 자기를 불러내어 혼을 낼 것만 같아 조마조마했어요. 숙제를 다 나눠 주고 나서 선생님이 말했어요. "지유, 민호, 그리고 유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볼까?" 이름이 불린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자신의 숙제 중에서 첫 문단을 소리 내어 읽어 보세요. 먼저 지유부터!" 세 아이들은 어리둥절하다가 차례대로 자신의 숙제를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어요. 반 아이들은 영문을 몰랐어요. 그런데 유빈이까지 다 읽고 나자 모두의 얼굴엔 같은 표정이 떠올랐어요. 세 명이 쓴 글이 글자 하나까지 똑같은 게 아니겠어요? 지유, 민호, 유빈이는 그제야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숙였어요. "세 사람은 숙제를 해 왔지만 방법은 옳지 않았어요. 자기 생각을 쓰지 않고 어디선가 베꼈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이번에는 또 다른 이름을 불렀어요. "승찬이 자리에서 일어나 볼래?" 승찬이는 깜짝 놀라서 쭈뼛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승찬이도 써 온 것을 읽어 봐." 승찬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쓴 것을 읽기 시작했어요. "저는 윤봉길 의사에 대한 글쓰기 숙제를 잘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학원 시험공부를 하고 시골 할아버지 댁에 다녀오느라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승찬이의 글에 아이들은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렸어요. "숙제를 저렇게 해 오다니 틀림없이 더 혼이 날 거야!" 그런데 선생님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말을 했어요. "승찬이가 숙제를 해 오지 못한 것은 분명히 잘못한 일이에요. 하지만 선생님은 지유, 민호, 유빈이보다 승찬이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었어요. 왜일까요?" 선생님의 질문에 교실 전체가 조용해졌어요. "그건 승찬이의 정직함 때문이에요. 숙제를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 힘으로 정직하게 하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 숙제를 한 번 더 내겠어요. 이번에는 '정직함'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써 오세요!" 글쓰기를 또 해 오라는 선생님 말씀에 아이들은 다들 한숨을 쉬었어요. 하지만 승찬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뿌듯했어요. 이번에는 왠지 멋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하교하는 승찬이의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답니다.
용돈은 많을수록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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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용돈 받는 날이에요. 은찬이는 항상 이날이 기다려졌어요. 하지만 막상 엄마가 주는 용돈을 받아 들고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아무리 아껴 써도 일주일에 이천 원은 너무 적어요." "무슨 소리야? 초등학교 3학년은 천오백 원이 적당하다던데." "넌 오백 원이나 더 받고 있으면서." "어휴, 인터넷 좀 그만 봐요. 그게 언제 적 얘긴데." "다 너랑 같은 또래 애들을 키우는 엄마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얻은 결론이야!" 엄마는 딱 잘라 말하고는 지갑을 닫아 버렸어요. 엄마는 인터넷 동호회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이라면 무조건 다 맞는 말인 줄 아는 게 문제예요. "이천 원으론 떡볶이 한 번 사 먹으면 끝이에요." "떡볶이는 집에서 만들어 줄게, 언제든지 말만 해." 아무래도 엄마를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어요. "너희는 용돈 얼마씩 받아?" 은찬이는 반 친구들은 어떤지 차례로 물어보았어요. "난 일주일에 이천 원." "난 천오백 원." "난 오천 원." "뭐라고?" 은찬이는 이야기를 듣던 중 입이 떡 벌어졌어요. 자그마치 일주일에 오천 원을 받는다는 주원이 말에 다른 아이들도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사실은 원래 엄마가 주는 용돈은 이천 원이었는데, 내가 막 졸라서 이번 주부터 삼천 원 더 받게 된 거야." 주원이가 오천 원짜리 돈을 자랑스럽게 보여 주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탄성을 질렀어요. "주원이는 부자라서 좋겠다!" 은찬이도 용돈을 풍족하게 쓰는 주원이가 무척 부러웠어요. 하지만 조른다고 들어줄 엄마가 아니었어요. 엄마는 건망증이 심해서 가끔 엉뚱한 실수를 해요. "오늘 은찬이 용돈 주는 날이지." 학교에서 돌아왔더니 엄마가 또 지갑을 여는 거예요. 은찬이는 아침에 받았다고 말하려다 침을 꼴깍 삼켰어요. "안 받고 뭐 해?" 엄마가 이천 원을 주면서 은찬이를 쳐다보았어요. "어, 알았어요. 엄마, 고마워요." 은찬이는 돈을 받아 들고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어요. 마음 한편으로는 이게 웬 횡재냐 싶었지요. 아침에 받은 용돈 중에서 천 원은 벌써 써 버렸어요. 나머지 천 원으로 다음 월요일까지 버틸 생각으로 학교가 파하자마자 군것질을 했던 거예요. '그래! 용돈은 많을수록 좋아. 사실 내가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뭘!' 한편으로는 죄책감이 들었지만 엄마한테 사실대로 말해서 굴러 들어온 행운을 놓치기는 싫었어요. 다음 날도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어요. 은찬이는 갑자기 두 배로 불어난 용돈을 지갑에 꼭꼭 숨기고 학교로 갔어요. '이따가 실컷 군것질이나 해야겠다!' 가게를 지나치면서 저절로 입이 벌어졌어요. 엄마한테는 미안하지만 이번 한 번만 눈 딱 감고 마음껏 돈을 써 보고 싶은 욕심이 죄책감을 잊게 했어요. '용돈을 오천 원이나 받는 주원이도 있는데 한 번쯤 엄마를 속인다고 해서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닐 거야.' 지갑을 열 때마다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월요일에 받은 용돈 이천 원을 수요일에 다 써 버렸어요. "너도 우리랑 똑같이 이천 원 받지 않았어?" 친구들은 목요일에 은찬이가 또 천 원짜리를 꺼내자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나도 엄마한테 졸라서 용돈을 올려 받았어." 은찬이는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와, 정말?" "우리 엄만 눈도 꿈쩍 안 하는데!" 친구들이 부러운 눈으로 은찬이를 쳐다보았어요. "너희들 먹고 싶은 사탕 하나씩 골라." 은찬이는 한껏 으스대며 친구들에게 인심을 썼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에요. 친구들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호기를 부린 뒤부터는 그냥 허풍을 떤 게 아니라 진짜로 엄마가 은찬이를 생각해서 용돈을 올려 준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거예요. 주말에 은찬이는 으슬으슬 몸살이 났어요. "일단 약 먹고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엄마가 감기약을 사다 주었어요. 은찬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약 먹는 거였어요. "약은 써서 먹기 싫은데." "쓰다고 안 먹으면 더 아파." 엄마는 약봉지와 물을 탁자에 놓고 나갔어요. 그것도 하필이면 은찬이가 삼키기 힘들어하는 알약이었어요. 엄마는 주방 식탁에 앉아서 가계부를 정리하고 있었어요. 은찬이는 일단 물을 마신 다음, 몰래 약을 들고 화장실로 갔어요. 그러고는 볼일을 보는 척하며 약을 변기에 버리고 소리가 나게 물을 내렸어요. "은찬이 이리 와 봐!"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엄마가 은찬이를 불러 세웠어요. "약은 먹은 거니, 아니면 버린 거니?" "먹었는데요?" 은찬이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물음에 태연히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몹시 당황했어요. '약은 이미 버렸고 물도 마셨는데 엄마가 어떻게 알아차릴 수가 있지?' 은찬이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엄마 눈치를 살폈어요. 어쩐 일인지 엄마는 표정이 몹시 어두웠어요. "은찬아." 물끄러미 은찬이를 쳐다보던 엄마가 조용히 입을 열었어요. "엄마한테 뭐 하고 싶은 말 없어?" "저기, 엄마. 그게." 은찬이는 머뭇거리다 솔직하게 잘못을 고백했어요. "사실은 약을 변기에."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이 그게 다니?" 엄마는 더 들어야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은찬이를 쳐다보았어요. 식탁에 놓인 가계부가 왠지 마음을 뜨끔하게 했어요. 엄마는 건망증 때문에 종종 잊어버리기 쉬운 것들을 가계부에 적어 놓는 습관이 있었어요. 하지만 겨우 용돈 이천 원 더 준 것까지 기록해 놓았을 리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는 은찬이가 아무 대꾸를 못 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어요. 대신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는 네가 항상 정직했으면 좋겠다." 이 말은 은찬이를 갈등에 휩싸이게 만들었어요. '엄마는 모든 걸 알고 있는 걸까? 하지만 이제 돈을 다 써 버려서 돌려 드릴 수도 없는데 어떡하지? 아니야. 엄마가 괜히 떠보려고 한 말이었을 거야.' 은찬이는 괜히 용돈 얘기를 사실대로 털어놓았다가 더 크게 야단맞을 일이 두려웠어요. 엄마가 다시 건네준 약을 먹고 몸살 기운은 말끔히 가라앉았지만 그동안 잊고 지냈던 죄책감이 다시 살아났어요. 은찬이는 집 밖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아빠가 퇴근해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어요. 아빠라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어? 은찬이 왜 여기 나와 있어?" "아빠, 부탁이 있어요." "엄마한테 말하면 안 되는 얘긴가 보구나?" 아빠는 은찬이를 아파트 놀이터 벤치로 데려갔어요. "사실은 제가 잘못한 일이 있어요." 은찬이는 아빠한테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고 도움을 부탁했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아빠. 저한테 이천 원만 주세요." "음, 그런데 은찬아. 돈을 돌려 드린다고 해서 엄마를 속인 사실이 없어지겠니?" 아빠가 의미심장한 물음을 던졌어요. "그래도 돈을 다 썼다고 말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요?" 은찬이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했어요. 아빠한테 이천 원을 받으면 엄마한테 돌려주고 용서를 구할 생각이었어요. 그러면 엄마도 화를 내지는 않을 것 같았거든요. 아빠는 그 말에 빙그레 웃으면서 다시 물었어요. "아빠한테 사실대로 얘기하고 나니까 기분이 어떠니?" "이젠 조금 안심이 돼요." "아빠도 네가 정직하게 말해 줘서 안심이 돼." 은찬이는 아빠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엄마를 속인 건 잘못이라고 꾸중부터 할 줄 알았거든요. "은찬아, 누구나 잘못은 할 수 있어. 하지만 더 나쁜 건 얼렁뚱땅 대충 넘어가려는 태도란다. 너라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는 거야." 은찬이는 아빠가 해 준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어요. '사실대로 얘기하고 나니까 기분이 어떠니?' 잠자리에 누워서도 이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았어요. 아빠는 어째서 내가 잘못을 털어놓았을 때 오히려 안심이 된다고 했을까요? 처음에 은찬이가 안심했던 건 아빠가 도와줄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아직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했지만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에요. 아빠한테 이야기를 털어놓는 순간부터 그랬어요. 다음 날 은찬이는 엄마에게 솔직하게 고백했어요. "엄마가 깜빡하고 용돈을 한 번 더 준 걸 알면서도 다 써 버렸어요. 대신 이번 주는 용돈 안 받을게요." "그랬구나! 엄마가 착각한 모양이네?" 잘못을 고백하고 자진해서 용돈을 사양하는 은찬이에게 엄마가 말했어요. "너한테 선물이 하나 있어." 엄마가 작은 수첩을 하나 내밀었어요. "이건 네 용돈 기록 수첩이야." "적은 돈이라도 씀씀이를 알면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있단다." 엄마는 수첩을 선물하는 이유를 설명했어요. "엄마도 계획 없이 돈을 쓰다 보면 아빠가 가져다주는 봉급으로 살림을 꾸려 가기가 힘들 때가 있어. 그래서 가계부를 쓰기 시작한 거야." 엄마는 일단 씀씀이를 기록해 보고, 더 필요할 것 같으면 나중에 용돈을 올려 줄지 말지 다시 의논해 보자고 했어요. 은찬이는 그보다 더 궁금한 게 있었어요. "근데 엄마, 저번에 내가 약 안 먹은 거 어떻게 알았어요?" "엄마들은 안 봐도 다 아는 수가 있지." 엄마의 대답이 싱거워서 은찬이는 피식 웃고 말았어요. 하지만 앞으로 용돈 수첩은 정직하게 적기로 했어요. 용돈이 오르든 말든 엄마를 속이는 일만큼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친구를 왜 왕따 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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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첫날이에요.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야지!' 지영이는 교실을 둘러보며 생각했어요. 첫날이라 그런지 조금 긴장이 되는 것 같았어요. 그때 누군가 지영이의 옆자리에 와 앉으며 말했어요. "나는 서아람이야! 친하게 지내자!" "안녕! 난 한지영이야! 사이좋게 지내자!" 아람이와 지영이는 서로를 보며 배시시 웃었어요. 지영이는 벌써부터 좋은 친구를 만난 것 같아 기분이 매우 좋았어요. 지영이와 아람이가 서로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 예쁜 여자 선생님이 앞문을 열고 들어오셨어요. '선생님도 좋은 분 같아!' 지영이는 한 학년 동안 지낼 반이 마음에 쏙 들었어요. "자, 그럼 출석을 한번 불러 볼까?" 선생님이 출석부를 펴며 말씀하셨어요. "어머, 우리 반에 이름이 똑같은 친구들이 있구나! 아람이! 어디 있지?" 지영이의 짝꿍, 아람이가 손을 번쩍 들자, 뒤에 앉아 있던 한 왜소한 남자아이도 손을 들었어요. 그 아이는 작고 빼빼 마른 데다 옷차림도 후줄근했어요. "뭐라고 불러야 할까? 여아람? 남아람?" 선생님은 호호호 웃었지만 아람이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 입을 삐쭉거렸어요. "저런 애랑 이름이 같다니, 기분 나빠!" 지영이는 의아했어요. "왜?" "못생겼잖아!" "맞아! 나도 걔 싫더라!" 갑자기 다른 여자아이가 대화에 끼어들었어요. '못생긴 게 나쁜 건가?' 그 뒤 아람이는 남자 아람이의 사소한 것까지 트집을 잡고 불평 불만을 쏟아 냈어요. "키가 작아서 싫어!" "못생겼어!" "걸음걸이가 이상해!" 지영이는 그만두라고 몇 번이고 말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그러는 사이 아람이와 아람이 친구들의 소곤거림은 점점 더 커졌어요. 남자 아람이가 지나갈 때면 일부러 들으라는 듯 더 큰 소리로 떠들기도 했어요. "어디서 이상한 냄새 나! 씻지도 않고 다니나?" "맞아 맞아! 이상한 냄새 나." 남자 아람이는 뒤를 한 번 돌아봤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지영이는 그런 남자 아람이가 답답했어요. '반박이라도 하지, 왜 아무 말도 안 한담!' 시간이 지날수록 아람이는 더욱 기세가 등등해졌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큰 소리로 나쁜 말을 했지요. 심지어 남자 아람이가 지나갈 때 발을 걸어 넘어뜨리기도 했어요. 아람이와 친구들은 깔깔거리며 좋아했어요. 지영이는 나서서 말리고 싶었지만, 선뜻 그러지 못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선생님은 종이를 나눠 주며 자기소개를 써 보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종이에 간단하게 나에 대해서 쓰는 거야. 친한 친구 이야기를 써도 좋고, 고민을 적어도 좋단다." 지영이는 친한 친구 이름에는 아람이를 적었어요. 아람이의 이름을 적고 나니 줄줄이 사탕처럼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랐어요. 지영이는 막힘없이 줄줄이 써 내려갔지요. 그러다 문득 손을 멈췄지요. '이걸 다 써도 될까?' 지영이는 결국 몇 가지 내용을 지우개로 박박 지워 버렸어요. 지영이는 청소를 끝내고 운동장으로 달려갔어요. 저만치에서 아람이와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어요. "하하! 거지가 따로 없네!" "얘들아, 무슨 일이야?" "지영아, 얘 봐라. 진짜 거지 같지?" 거기에는 남자 아람이가 있었어요. 아람이와 친구들은 남자 아람이에게 과자 부스러기를 던지며 놀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남자 아람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바닥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줍고 있는 거예요. '쟤는 왜 말 한마디도 못 하고, 저걸 줍고 있는 거야?' 지영이는 남자 아람이가 신기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감히 나서서 하지 말라고 말할 용기도 없었지요. 아람이가 남자 아람이에 대해 험담을 하자, 반 전체 아이들 역시 남자 아람이를 싫어했어요. 마치 전염병에 걸린 환자처럼 남자 아람이를 멀리했지요. "야, 쟤랑 놀지 마!" "어? 그거 쟤가 만진 건데!" 어느새 아이들은 남자 아람이를 마치 유령처럼 취급했어요. 누구도 선뜻 나서서 남자 아람이를 도와줄 수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체육 시간이었어요. 주번인 지영이는 주전자를 들고 수돗가로 갔어요. 주전자에 물을 가득 담으니 꽤나 무거웠어요. 지영이는 낑낑거리며 주전자를 들고 운동장을 향해 걸었어요. 그때 갑자기 남자 아람이가 다가왔어요. "내가 같이 들어 줄게." 지영이는 내심 반가웠지만 이내 퉁명스럽게 말했어요. "됐어! 나 혼자 들 수 있어!" 지영이가 남자 아람이의 도움을 거절한 건, 운동장에서 아람이가 빤히 보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순간, 지영이는 자신의 태도에 놀랐어요. 남자 아람이가 지영이에게 나쁜 짓을 한 것도, 귀찮게 군 것도 아닌데 그렇게 쌀쌀맞게 거절하다니요. 그제야 지영이는 남자 아람이에게 미안했어요. 그날 방과 후 선생님이 지영이를 따로 불렀어요. "지영아, 잠깐 상담실에 들렀다 가렴." 지영이는 왠지 두려웠어요. 상담실에 도착하자 선생님이 다정하게 물었어요. "지난번에 쓴 자기소개서를 보다가 궁금한 게 있어 불렀어. 여기 뭘 쓰려다가 지운 것 같은데 뭔지 물어봐도 되겠니?" 지영이는 가슴이 철렁했어요. 지영이는 망설이다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놨어요. 물론 자신이 했던 짓까지 모두 말씀드렸지요. 선생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지영이의 말을 들었어요. 지영이의 얘기가 끝나자, 선생님은 지영이를 격려해 주셨어요. "하기 어려운 말인데, 말해 줘서 고맙구나." "하지만 그 애를 도와주기는커녕, 저도 같이 나쁜 짓을 했는걸요? 말리지도 못했고요!" "원래 그런 상황에서는 혼자 대항하기 힘들단다. 하지만 지영이는 용기를 내서 선생님에게 말해 주었잖니." "그렇지만 애들이 그러니까 점점 저도 그 애가 싫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럼 오늘부터 아람이의 좋은 면을 하나씩 찾아보는 건 어떨까?" "좋은 점이요?" "용기를 내 보렴. 선생님도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줄게." 지영이는 다음 날부터 남자 아람이를 유심히 관찰했어요. 하루는 국어 시간에 남자 아람이가 지목되어 글을 읽게 되었어요. 더듬더듬, 느리게 읽어 나갔지만 목소리가 굉장히 듣기 좋았어요. '지금까지는 왜 몰랐지?' "쟤는 글도 제대로 못 읽어! 한글을 모르는 거 아냐?" 아람이는 지영이의 동조를 구한다는 듯 비아냥거리며 물었어요. "그래도 목소리는 듣기 좋은데?" 지영이가 씩 웃으며 말했어요. 아람이는 어이없다는 듯 지영이를 쳐다보며 물었어요. "너 어디 아파?" 그러거나 말거나 지영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어요. 남자 아람이는 그림도 잘 그렸어요. 오늘 미술 시간에는 자기가 가고 싶은 장소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어요. 남자 아람이는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 떼를 멋지게 그렸어요. "쟤 그림 잘 그린다, 그치?" 지영이의 말에 아람이가 힐끗 돌아보더니 입을 비죽거렸어요. "잘 그리긴 뭐가 잘 그려! 내 것을 베끼고 있잖아!" 아람이는 신경질을 내며 그리던 바닷속 그림을 구겨 버리고 다른 걸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는 바람에 결국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지요. 화가 난 아람이는 남자 아람이에게 다가가 시비를 걸었어요. "너 왜 나 따라 그려? 내 그림 보고 베낀 거지?" 아람이가 남자 아람이의 도화지를 바닥에 팽개쳤어요. "앞으로 얘가 그린 그림은 쳐다보지도 말자!" 아람이의 말에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지영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아람이에게 말했어요. "아람아! 너 왜 자꾸 친구를 왕따 시켜?" 지영이의 말에 교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어요. "내가 언제 왕따 시켰어?" 아람이는 지영이의 단호한 태도에 살짝 놀란 것 같았어요. "남자 아람이한테 그랬잖아. 그건 나쁜 행동이야!" "그건 쟤가 나쁜 애니까 그런 거지!" "어디가 나쁜데?” "못생기고, 키도 작고, 말도 못하고, 또." 아람이는 말문이 막혔어요. 지영이가 또박또박 아람이에게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너도 나도 누구나 단점은 있는 거잖아. 내가 만약 네 단점을 잡아서 너를 왕따 시키면 너는 좋겠니? 난 우리 모두 다 같이 웃으면서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 아람이는 한참 동안 지영이를 쏘아보더니 교실 밖으로 나가 버렸어요. 그 일로 지영이와 아람이는 서먹서먹해졌어요. 수업을 마치고 나오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어요. 현관 입구에는 아람이가 우산이 없는지 서성이고 있었어요. 지영이도 우산이 없었어요. 아람이는 지영이를 힐끔 쳐다보더니 빗속으로 내달렸어요. 지영이도 질세라 같이 뛰었지요. 그런데, 빗속을 달리던 아람이가 그만 철퍼덕하고 넘어졌어요. "괜찮아? 다치지 않았어?" 지영이가 손을 내밀며 걱정스레 물었어요. 아람이는 주저하다가 지영이가 내민 손을 맞잡았어요. 두 친구는 언제 싸웠냐 싶게 배시시 웃었지요. 그때 누군가 두 친구에게 우산을 씌워 주었어요. 바로 남자 아람이였어요! 그리고 언제 왔는지 선생님이 다가오며 소리쳤어요. "멋진 아람이가 예쁜 아람이에게 우산을 씌워 주는구나!"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딱 맞는 별명 같았어요. 지영이는 활짝 웃으며 두 아람이에게 말했어요. "멋진 아람, 예쁜 아람아! 우리 집에 같이 갈래?" 용기백배. 지영이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친구를 위해 용기를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이럴 때 우리의 용기를 키워 주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를 용기백배로 만들어 주는 마법은 다름 아닌 진정 어린 격려와 아낌없는 칭찬이랍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요. 실제로 훌륭한 조련사들은 적절하게 칭찬하는 방법으로 바다의 무법자인 사나운 범고래를 순하게 길들이고 춤까지 추게 만든다고 해요. 요즘 어린이들 사이에서 왕따가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먼저 여러분들의 용기가 필요해요. 혹시라도 주변에 왕따를 당하는 친구가 있다면 먼저 조금만 용기를 내서 그 친구의 편에 서 주세요. 그리고 그 친구에게 격려와 아낌없는 칭찬을 해 주세요. 여러분의 격려와 칭찬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친구에게는 용기백배할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 될 거예요. 사람의 마음 중에 가장 훌륭한 것은 자기보다 약한 것을 보호하려는 마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효도의 진정한 의미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이는 열세 살 때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뽑혀 '구도장원공' 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어요. 이이는 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효자로서도 지금껏 널리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위인이랍니다. 율곡 이이의 공부법. 율곡 이이 선생님의 공부법은 아래의 여섯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입지 뜻을 세우다 공부법' 입니다. 실천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워라. 두번째 '교기질 기질을 바로잡다 공부법' 입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주변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가능하다, 공부하는 체질로 바꿔라. 세번째 '혁구습 잘못된 옛 습관을 버려라 공부법' 입니다. 몸에 밴 잘못된 옛 습관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씩 없애나가는 것입니다. 잘못된 옛 습관을 타파하라. 네번째 ‘구용구사 공부법’ 입니다. 9가지의 바른 몸가짐과 9가지의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서 기본자세를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옛 습관의 자리를 수신으로 채워라. 다섯째 '일목십행 공부법' 입니다. 늘 책을 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공부의 가치를 더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서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여섯째 '택우문답 공부법' 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보완해 공부를 더욱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벗과 함께 논쟁하며 일취월장하라. 구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발의 모습은 정중하게 하라. 둘째 손의 모습은 공손하게 하라. 셋째 눈의 모습은 단정하게 하라. 넷째 입의 모습은 멈추게 하라. 함부로 말하지 마라. 다섯째 말소리의 모습은 차분하게 하라. 여섯째 머리의 모습은 곧게 하라. 일곱째 기운의 모습은 엄숙하게 하라. 여덟째 서 있는 모습은 덕성스럽게 하라. 아홉째 얼굴빛의 모습은 굳세게 해야 한다. 구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라. 둘째 들을 때는 귀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하라. 셋째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넷째 용모는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다섯째 말은 충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여섯째 일할 때는 경건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일곱째 의문이 나면 물을 것을 생각하라. 여덟째 화가 나면 뒤에 야기되는 어려움을 생각하라. 아홉째 이득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라.
한 번 더 용기를 내 봐
신체운동_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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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발!' 은수는 바지에다 손바닥을 쓱 문지르고는 심혈을 기울여 가위바위보를 준비했어요. 마치 결전을 치르듯 말이에요. 맞아요. 은수에게 지금 이 순간은 결전과 다름없어요. 오늘은 방과 후 체육 교실 추첨이 있는 날이에요. 그런데 수영반 인원이 너무 많아 가위바위보로 결정을 하게 되었어요. 사실 은수는 등산반에 들어가려 마음먹었지만 오늘 학교에 와서 바꾼 거예요. 왜냐고요? 수영반에 은수가 좋아하는 미희가 있었거든요. 그러니 가위바위보는 반드시 이겨야 해요! "가위바위보!" 하마터면 환호성을 지를 뻔했어요. 이긴 거예요! '야호! 미희랑 같이 수영을 한다!' 미희는 남자애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착하거든요. 물론 은수도 미희를 좋아하지만 한 번도 내색한 적은 없어요. 저번에 미희와 같은 모둠이 된 적이 있었는데 은수는 미희와 한 마디도 하지 못했어요. 이상하게 미희 앞에선 꿀 먹은 벙어리가 되거든요. 은수는 어젯밤에 형에게 이 고민을 털어놨어요. 미희와 친해지고 싶다고 말하자, 형이 조언을 해 주었어요. 형은 남녀 사이에 대해 잘 알아요. 은수와 달리 여학생들한테 인기도 많고요. "그러면 방과 후 체육 교실 정할 때 무조건 그 애가 하는 걸 같이 해! 같이 운동을 하다 보면 친해질 수 있으니까!" 방과 후에 은수는 재빨리 수영 교실을 향해 달렸어요. 최대한 미희 옆에 가까이 자리를 잡으려고요. '미희에게 수영을 알려 주며 친해져야지!' 은수는 자신의 생각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었어요. 사실 은수는 수영을 아주 잘했어요. 따로 수영반에 들어가 배우지 않아도 될 만큼이요. 별명이 '물개'인걸요. 그러나 이런 은수의 계획은 수영 교실에 들어서자 산산이 깨지고 말았어요. "여자애들은 수영 기본기를 배우고, 남자애들은 다이빙을 배우자!" 남자애들이 항의를 했지만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어요. "사내자식들이 뭔 겁이 그리 많아? 게다가 너희들 동네 문화 센터에서 모두 수영반이었잖아!" 맞아요. 이번에 학교 수영 교실을 책임진 선생님은 예전에 문화 센터에서 수영을 가르쳤던 분이었어요. 특히 남자애들 모두 그 선생님에게 배운 적이 있었지요. 수영을 배우는 척하며 미희와 친해지고자 했던 은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어요. 게다가 다이빙이라니요! 다이빙대를 바라보던 은수는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어요. '저 높이에서 뛰어내리라고?' 저절로 한숨이 나왔어요. 은수는 높은 곳이 정말 무서웠어요. 높은 곳에 올라가기만 하면 심장이 쿵쿵 뛰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어요. 어릴 때 높은 곳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게 정말 무서워진 거예요. 지금 은수네 가족이 사는 곳도 아파트 저층이에요. 은수는 다이빙을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어요. 게다가 미희 앞에서 망신을 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었고요. '아, 다이빙을 어떻게 하지?' 집에 들어간 은수는 형 은호에게 짜증을 부렸어요. "형 때문에 다이빙하게 생겼어! 어떡해!" 은수의 말에 형이 하하 웃으며 말했어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이 기회에 고소 공포증을 이겨 내 보라고!" '남의 일이라고 저렇게 쉽게 이야기하다니!' 은수는 형이 미워 한 방 때려 주고 싶을 지경이었어요. 은수는 다음 주 수요일이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음 주 수요일이면 미희 앞에서 제대로 망신살이 뻗칠 테니까요. 마침내 수요일이 다가왔어요. 은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수영장으로 향했어요. 어제는 다이빙을 할 생각에 잠도 못 잤어요. 밤에는 악몽까지 꿨고요. 수영장에 들어서자, 첨벙! 물소리가 들려왔어요. 친구 종철이가 벌써부터 다이빙대에 올라가 뛰어내리고 있었어요. 종철이는 유치원 때부터 한 동네에서 자란 친구예요. 호기심도 많고 장난도 심해 어릴 때부터 팔이며 다리가 몇 번이나 부러졌지요. 그 정도로 겁이 없으니 다이빙 따위를 무서워할 리도 없을 거예요. 오늘처럼 종철이가 부러운 때도 없었어요. 은수가 준비 운동을 하며 몸을 풀고 있을 때 종철이가 물에서 고개를 내밀며 말했어요. "너 미희 때문에 수영 교실 들어온 거지?" 종철이의 말에 은수는 저도 모르게 사방을 둘러보았어요. '그런 말을 저렇게 크게 하다니!' 은수는 종철이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어요. 그러고는 짐짓 아닌 척 고개를 저었지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럼 다이빙을 하고 싶어서 수영반에 들어온 거냐?" "그 그렇지!" 은수는 저도 모르게 대답을 해 버렸어요. 은수의 말에 종철이가 씩 웃었어요. "네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좀 이따 다이빙할 때 보면 되겠지!" '저런 얄미운 녀석!' 은수는 종철이를 노려보았어요. 어릴 때부터 친구라 종철이는 은수가 높은 곳을 무서워한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종철이는 다시 다이빙대에 올라가 크게 발돋움을 하고는 물속으로 뛰어들었어요. 은수는 부러운 눈으로 종철이를 바라보았어요. '나도 저렇게 뛰고 싶다!' 남자애들은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수영을 했어요. 은수 역시 누구보다 빨리 물살을 갈랐어요. 마침내 선생님이 남자애들에게 말했어요. "한 명씩 다이빙대로 올라가서 서 봐!" '아! 오늘은 그냥 수영만 하지!' 남자애들은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한 명씩 다이빙대에 올라가 멋지게 뛰어내렸어요. 그때마다 여자애들 사이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어요. 드디어 은수의 차례가 되었어요. 은수는 한 발 한 발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어요. 겨우 여덟 개밖에 되지 않는 계단이 너무 높게 느껴졌어요. '미끄럼틀보다 조금 높을 뿐이야! 괜찮아!' 은수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어요. 은수는 천천히 다이빙대를 향해 발을 떼었어요. 그때였어요. 은수는 저도 모르게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어요. 다리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갑자기 쥐가 난 거예요. "은수는 수영을 너무 많이 했나 보다. 내려와서 다리를 풀어 주렴!" 그날 결국 은수는 다이빙을 하지 못했어요. 은수를 바라보던 종철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어요. 그 이후 두 번이나 더 시도를 했지만 결국 은수는 뛰어내리지 못했어요. 선생님이 괜찮다며 어깨를 두드려 주셨지만 은수는 하나도 괜찮지 않았어요. 은수는 화가 나고 짜증이 났어요. '수영은 자신 있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오늘 미희가 오지 않아서 은수의 한심한 모습을 보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미희는 오늘 왜 안 온 걸까요? 은수는 힘없이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어요. 오늘처럼 굴욕적인 날은 없다고 생각하면서요. 그때 종철이가 은수를 툭 치고 달려가며 외쳤어요. "수영은 몰라도 다이빙은 나한테 안 될 거다, 강은수!" 은수는 너무 화가 나서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어요. '혼자서 다이빙 연습을 해 볼까?' 은수는 돌아서서 다시 수영 교실로 향했어요. 종철이에게 지고 싶지 않았거든요. 수영 교실에 들어서던 은수는 깜짝 놀랐어요. 수업에 오지 않았던 미희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미희 역시 놀랐는지 은수를 빤히 바라보았어요. "수업도 끝났는데, 은수 너는 왜 다시 왔어?" "어 어 수영을 좀 더 하려고!" "수영 잘하던데 뭘 더 연습해?" 은수는 깜짝 놀랐어요. 미희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걸까요? "밖에서 다 봤어. 너 수영 잘하더라. 다이빙하는 것도 보고 싶었는데!" 미희의 말에 은수의 얼굴이 빨개졌어요. "그런데 왜 수업에는 안 들어온 거야?" 미희가 풀이 죽은 얼굴로 대답했어요. "나 실은, 수영 못해. 몸이 약해서 너무 심한 운동을 하면 안 되거든. 구경이라도 하려고 수영반에 들어온 거야. 나도 언젠가 할 수 있을까 싶어서." 미희의 말에 은수는 마음이 아팠어요. 몸이 약한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요. "그랬구나. 사실 나도 다이빙 못해!" "높은 곳에서 한 번 떨어진 후로 너무 무섭거든!" 은수는 저도 모르게 비밀을 고백해 버렸어요. "그렇지만 넌, 수영을 잘하니까 조금만 연습하면 곧 다이빙대에서 뛸 수 있을 거야!" 그 순간 은수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어요. "다시 한 번 뛰어 볼까!"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은수는 다이빙대로 올라갔어요. 그러고는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갔어요. 다이빙대에 서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어요. 저 아래에서 두 손을 꼭 모으고 있는 미희가 보였어요. '미희를 위해서라도 꼭 해 보고 싶다!' 은수는 미희를 보며 큰 소리로 외쳤어요. "미희야! 난 용기를 낼 테니까, 넌 힘을 내!" 말을 마치자마자 은수는 힘껏 발돋움을 했어요. 다이빙대가 출렁이며 은수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어요. 비로소 은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어요.
위험에 빠진 내 친구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진서와 현우는 1학년 때부터 3학년이 될 때까지 줄곧 단짝 친구였어요. 학원도 같이 다니고 집에서 숙제도 같이 하지요. 진서는 현우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어요. 현우한테는 진서도 비밀이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현우가 약간 달라진 것 같아요. 여간해선 안 그러던 현우가 가끔 별것도 아닌 일로 짜증을 내는 거예요. 학기 초만 해도 원래대로 활달한 성격이었어요. 쉬는 시간이면 장난이 심하면 심했지 절대로 조용히 지내는 법이 없던 현우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분위기가 진짜 이상해져요. 어느 때는 괜히 눈치가 보일 정도예요. "이따가 학교 끝나고 놀까?" 오늘은 무슨 고민 있냐고 묻고 싶은 걸 꾹 참고 이렇게 물었는데, 진서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에요. "야, 너 왜 그래?" 진서는 무심코 현우의 어깨를 툭 치면서 걱정스럽게 물었다가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세게 친 것도 아닌데 현우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르르 몸을 떨면서 모기 소리만 하게 중얼댔어요. "그러지 좀 마." "아파?" 진서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현우에게 물었어요. 현우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어요. "놀 거야?" 진서는 아까 하던 말을 마저 꺼냈어요. 오늘은 수요일, 학원도 안 가는 날이에요. 다른 날 같으면 게임을 하자든가 축구를 하자든가 현우가 금세 종목을 선택하는 게 정상이에요. 현우는 학원 안 가는 날은 항상 신이 나서 미리 놀 계획을 짜 놓는 버릇이 있었어요. "어디 갈 데가 있어." 현우가 힘없이 말했어요. "어디 가는데?" "그냥." 진서는 답답해서 현우를 한 대 쥐어박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디 가냐고 묻는데 밑도 끝도 없이 '그냥'이라고 대꾸하는 친구 앞에서 차마 화를 낼 수도 없었어요. 오늘따라 표정이 너무 어두웠기 때문이에요.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궁금하고 걱정돼서 진서도 기분이 우울해졌어요. "잘 가." 방과 후에 진서와 현우는 교문 앞에서 헤어졌어요. 집은 같은 방향인데 현우는 다른 쪽으로 갔어요. 현우는 마치 목적지가 없는 아이처럼 뒷모습이 무척 쓸쓸해 보였어요. 매일 하던 게임도 혼자 하려니 재미가 없었어요. '현우가 도대체 왜 그럴까?' 진서는 따분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겼어요. 진서나 현우나 둘 말고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없었어요. 현우는 아빠가 안 계시고 엄마는 낮에 직장에 나가서 집에 혼자 있는 것을 싫어했어요. "왜 오늘 혼자야?" 엄마가 방문을 열어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어요. 다른 날은 몰라도 수요일은 항상 현우를 집에 데려왔기 때문이에요. "거봐, 친구도 다양하게 사귀는 게 좋지. 달랑 둘이서만 노니까 없으면 그렇게 허전한 거야."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 진서는 괜히 엉뚱한 말을 꺼내는 엄마한테 짜증을 냈어요. 오늘은 금요일. 진서와 현우는 모처럼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놀았어요. 현우는 기분이 한결 좋아 보였어요. 전처럼 말투가 장난스러운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자전거를 한참 탔더니 목이 말랐어요. 현우도 이마에 땀이 흘렀어요. 진서는 매점이 있는 곳으로 자전거를 돌리면서 현우에게 물었어요. "목마르지 않니?" "응, 조금." "콜라 마실까?" "별로. 난 그냥 물 마실 거야." "콜라 귀신이 웬일이냐?" "귀신도 질릴 때가 있는 거 모르냐?" 현우는 수돗가 쪽으로 자전거 핸들을 돌렸어요. 진서는 현우가 수돗물을 마시는 모습이 왠지 낯설었어요. "저기서 좀 쉬었다 놀까?" "그래!" 두 친구는 사이좋게 자전거를 세워 두고 공원 벤치에 앉았어요. "합기도 같은 거 배우면 싸움 잘하나?" 현우가 무심코 하는 말처럼 내뱉었어요. 눈으로는 공원 앞을 지나가는 형들의 운동 가방에 찍힌 합기도 도장 마크를 보고 있었어요. "너도 합기도 배우게?" "저런 거 배워서 뭐해? 그냥 하는 말이지." 대답을 흐리는 현우 얼굴이 언뜻 화난 것처럼 보였어요. "난 합기도나 태권도처럼 힘쓰는 것보다는 농구 같은 거 배워서 키 크고 싶어." 진서가 말했어요. "키만 크면 뭐하냐? 남자는 힘이라던데." 현우는 평소 안 하던 말을 했어요. 화요일, 학교가 파할 무렵 진서가 현우에게 물었어요. "내일 우리 집 갈 거지? 엄마한테 뭐 해 달라고 할까?" 현우는 책가방을 정리하다 말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어요. "어디 가야 돼." "어디?" "그냥." "넌 수요일마다 그냥 어딜 그렇게 가냐?" 진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렇게 물었어요. 그런데 현우가 진서를 흘깃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리면서 무뚝뚝하게 내뱉었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지 좀 마." 진서는 현우가 저렇게 정색할 때마다 괜히 억울한 느낌이 들었어요. 전 같으면 더한 농담도 잘 받아 주던 현우였기 때문에 더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수요일이 되었어요. 오늘도 현우는 교문 앞에서 헤어져 늘 가던 방향으로 향했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진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어요. 분명 태도가 달라진 것은 맞는데 무엇 때문인지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진서는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아 생각을 이리저리 굴려 보았어요. 현우는 화요일부터 기분이 가라앉아 있다가 수요일마다 그냥 어디를 가요. 목요일은 화요일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우울한 기운이 남아 있어요. 그러다 금요일부터 다시 본모습을 찾기 시작해요. "현우한테 사촌 형이 둘이나 있었니?" 마트에 다녀온 엄마가 말했어요. "현우가 제과점 건물 뒤에서 웬 남자애랑 심각하게 얘길 하고 있기에 누구냐고 물었더니 사촌들이라던데?" 현우한테 사촌 형들 이야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어요. 진서는 아무래도 느낌이 수상했어요. 군것질 좋아하던 현우가 요즘 거의 돈 쓰는 걸 못 봤어요. 합기도 배운다는 것도 그래요. 현우는 일주일에 한 번 학원 안 가는 날을 무척 좋아하는데 어디 가서 누구한테 또 뭘 배울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진서는 현우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어요. 울 엄마 만났다며? 형들이랑 같이 있냐? 5분이 지나도 답장이 오지 않았어요. 직접 통화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통화 버튼을 눌렀어요. 벨이 아무리 울려도 현우는 전화를 받지 않았어요. 진서는 일단 집 밖으로 나가면서 계속 전화를 걸었어요. "어." 다행히 현우가 전화를 받았어요. 그런데 목소리가 좀 이상했어요. 뭔가 곤란한 일이 있는 것 같았어요. 진서는 휴대폰 밖으로 목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신경 쓰면서 차분하게 말했어요. "현우야. 어, 아니, 그렇게만 대답해." "어." "진짜 사촌 형 아니지?" "어." "아직 제과점 뒤야?" "어." "맞았어?" "어, 그건 아니." "그럼 기다려! 나 지금 그리 가는 중이야." 진서는 통화를 마친 뒤 전속력으로 뛰었어요. 덩치는 얼마나 클까? 옆집에서 야구 방망이라도 빌려 가지고 올 걸 그랬나? 뛰면서 별별 생각이 다 났어요. 진서는 제과점에 가까워질수록 뛰는 속도가 느려졌어요. 솔직히 겁이 많이 났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현우가 못된 애들한테 얻어맞는 걸 보니 갑자기 두려움이 용기로 바뀌었어요. 그 애들은 현우보다 키가 조금 크고 덩치도 그다지 큰 편이 아니었어요. 그런 애들이 하나밖에 없는 친구 정강이를 사정없이 차고 배를 쥐어박고 있었어요. 진서는 일단 심호흡을 했어요. 그런 다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내달리면서 목이 터져라 외쳤어요. "기다려! 내가 구해 줄게, 친구야!" 이때부터는 눈에 보이는 게 없었어요. 한 명을 잡고 냅다 주먹을 날린 것까진 좋았어요. 다른 애가 등짝을 내리치며 바닥에 처박을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진서 무릎이 까져 피가 나는 것을 본 현우가 갑자기 머리로 그 애를 들이박았어요. 진서도 남은 한 명을 붙들고 바닥에 나뒹굴었어요. "야, 이 나쁜 놈아!" 현우는 진서를 공격했던 애를 와락 떠다밀었어요. 진서는 현우 정강이를 걷어찬 놈의 팔을 잡아 꽉 깨물어 버렸어요. 둘이서 괴력을 발휘해 덤비자 놈들이 슬슬 꽁무니를 빼면서 '너희들 나중에 두고 봐!' 하고 허세를 부렸어요. "괜찮아?" 진서와 현우는 동시에 서로에게 물었어요. 둘 다 머리가 얼떨떨해서 얻어맞은 자리가 아픈 줄도 몰랐어요. 그 애들은 그동안 현우와 진서가 떨어져 있게 만든 다음 현우의 돈을 뺏고, 마음에 안 차면 때리기까지 했던 거예요. 현우가 어깨동무하면서 말했어요. "진서야, 우리 합기도 배울까?" "그래, 배우자!" 안 그래도 진서가 먼저 얘기하려던 참이었어요. 둘은 어깨동무를 한 체 씩씩하게 집을 향해 걸었어요. 파죽지세란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라는 뜻으로, 세력이 강하여 걷잡을 수 없이 나아가는 모양을 말합니다. 파죽지세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라는 뜻으로, 적을 거침없이 물리치며 쳐들어가는 기세를 이르는 말이에요. 진서에서 유래한 말이에요. 두예는 진나라 무제의 명으로 오나라를 공격한 군대의 총사령관 이름이에요. 진나라 군대는 3월에 오나라 무창을 점령했어요. 두예는 휘하 장수들과 오나라를 일시에 무너뜨릴 마지막 작전 회의를 열었어요. 그때 한 장수가 이렇게 건의했어요. "지금 당장 오나라의 도읍을 치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곧 잦은 봄비로 강물이 범람할 것이고, 또 언제 전염병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단 돌아갔다가 겨울에 다시 공격하시지요." 이 말에 찬성하는 장수들도 많았지만 두예는 단호했어요. "그건 안 되오. 지금 아군의 사기는 파죽지세요." "대나무란 처음 두세 마디만 쪼개면 그다음부터는 칼날이 닿기만 해도 저절로 쪼개지는 법인데, 어찌 이런 좋은 기회를 버린단 말이오!" 두예는 곧바로 전군을 몰고 오나라의 도읍으로 쳐들어가 단숨에 오왕의 항복을 받아 냈어요. 이처럼 '파죽지세'는 대나무를 쪼갤 때처럼 맹렬한 기세로 밀고 들어가면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만큼 세력이 강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이는 열세 살 때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뽑혀 '구도장원공' 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어요. 이이는 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효자로서도 지금껏 널리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위인이랍니다. 율곡 이이의 공부법 율곡 이이 선생님의 공부법은 아래의 여섯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입지(뜻을 세우다) 공부법' 입니다. 실천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워라. 여섯째 '택우문답 공부법' 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보완해 공부를 더욱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벗과 함께 논쟁하며 일취월장하라. 셋째 눈의 모습은 단정하게 하라. 넷째 입의 모습은 멈추게 하라. 함부로 말하지 마라. 다섯째 말소리의 모습은 차분하게 하라. 여섯째 머리의 모습은 곧게 하라. 일곱째 기운의 모습은 엄숙하게 하라. 여덟째 서 있는 모습은 덕성스럽게 하라. 아홉째 얼굴빛의 모습은 굳세게 해야 한다.
난 할 수 있어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시원한 바람이 부는 어느 날이었어요. 여름인데도 햇살이 뜨겁지 않았어요. 한 소년이 야트막한 동산에 올랐어요. 소년은 자기 몸만 한 파란색 자전거와 함께였답니다. 드디어 동산의 꼭대기에 다 올라온 소년의 얼굴은 조금 불안해 보였어요. 소년은 자전거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망설였어요. "난 할 수 있어. 할 수 있을 거야." 소년은 혼자 중얼거렸어요. 그러고는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결연한 표정을 지었어요. 이 소년은 왜 홀로 자전거를 끌고 동산 위에 올랐을까요? 소년의 이름은 김재석이에요. 동산 근처의 마을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지요. 재석이네 집은 작은 마당이 딸린 이층집이에요. 친구들은 흔한 아파트가 아니라 예쁜 단독 주택에 사는 재석이를 부러워했지만, 하지만 재석이는 북적거리는 이층집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사실 재석이네 집이 조금 북적거리기는 해요. 재석이네는 식구가 정말 많거든요.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님 그리고 5남매까지 무려 아홉 명이 함께 이 이층집에 살고 있답니다. 그래서 재석이네 가족의 아침은 언제나 바빠요. "재홍이 형! 빨리 나와! 빨리 나오라니까?" 며칠 전 아침에도 재석이네 집은 화장실 문 앞에서 재홍이 형을 부르는 재석이의 목소리로 쩌렁쩌렁 울렸어요. 5남매 중 셋째인 재석이에게는 쌍둥이 형들과 쌍둥이 여동생들이 있어요. 재홍이 형은 첫째인 재민이 형보다 3분 늦게 태어난 둘째 형이지요. 달리기도 잘하고 수영도 잘하는 재민이 형과 달리 재홍이 형은 항상 행동이 느렸어요. 성격이 급한 재석이는 그게 늘 마음에 들지 않았지요. 그래서 화장실 문을 발로 쾅쾅 차며 소리를 지르고 말았어요. "김재홍! 빨리 나오라고! 너 때문에 나까지 지각하겠어!" "재석이, 너 이 녀석! 형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안 되지!" 저런, 결국 할아버지에게 또 꾸중을 듣고 말았네요. '느림보 재홍이 형 때문에 또 나만 혼났잖아!' 심통이 난 재석이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어요. 할아버지가 쯧쯧쯧 혀를 차며 부엌으로 들어가고, 쌍둥이 여동생 재희와 재연이가 이층에서 우당탕탕 뛰어 내려왔어요. 재석이는 요즘 여동생들 때문에도 참 속이 상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이고 부모님도, "아이고, 우리 귀염둥이들!" 하고 여동생들을 예뻐하면서 재석이에게는 늘 야단만 치거든요. 여동생들한테는 상냥하게 "오늘은 엄마가 저녁 반찬으로 뭘 해 줄까?" 하고 묻는데, 재석이가 반찬 투정을 하면 "편식을 하면 못써! 골고루 잘 먹어야 건강하게 쑥쑥 크지!" 하고 나무라곤 해요. 그럴 때마다 재석이는 여동생들이 너무 얄미웠어요. 재석이는 서둘러 아침밥을 먹다가 시계를 보고 깜짝 놀라 후다닥 뛰어나왔어요. 아침잠이 많은 재석이는 종종 이렇게 지각을 할 위기에 놓이고는 하지요. 그럴 때는 재석이보다 30분이나 늦게 학교에 가는 저학년 여동생들이 부러울 뿐이에요. '나도 학교에 늦게 갈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던 재석이의 눈에 마당 한쪽에 놓인 자전거가 보였어요. 재민이 형이 타던 파란색 두발자전거예요. 지난 봄, 중학생이 된 형들이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하게 되면서 자전거는 마당에 덩그러니 남겨졌지요. 자전거를 타고 가면 학교에 금방 도착할 수 있을 텐데, 어쩐 일인지 재석이는 자전거를 휙 지나쳐 대문 밖으로 달려 나갔어요. 학교로 뛰어가던 재석이는 짜증이 많이 났어요. 아까 본 자전거가 자꾸 생각났기 때문이에요. 요즘 아빠도, 형들도 매일같이 재석이에게 자전거를 타라고 하거든요. "재석아, 너도 이제 자전거를 타 보도록 하렴! 언제까지 자전거 타는 것을 무서워할 거니? 아빠가 퇴근하고 오면 같이 연습해 볼까?" 전날 저녁에도 아빠가 재석이에게 말했어요. 아빠는 안타까운 마음에 한 말이지만 아빠의 물음에 재석이는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아빠는 재석이가 겁이 많아 큰일이라고 걱정했지만 재석이가 자전거를 소 닭 보듯이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 그러니까 쌍둥이 여동생들보다도 더 어렸을 때 재석이는 달려오는 자전거에 치여서 크게 다친 적이 있어요. 자전거 도로도 아닌 인도에서 쌩쌩 빠르게 달려오던 자전거가 길모퉁이를 돌다가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재석이와 부딪친 거예요. 그 사고로 재석이는 병원에 가서 찢어진 상처를 꿰매고 오른팔에는 깁스를 해야 했어요. 재석이는 너무 아파서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지요. "엉엉, 자전거는 정말정말 싫어!" 그때 이후로 재석이에게 자전거는 무섭고 위험한 물건이 되고 말았답니다. 그날 밤, 재석이는 살금살금 마당으로 나왔어요. 그러고는 조심스레 자전거의 손잡이를 만져 보았어요. 사실 재석이도 자전거를 무척 타 보고 싶었어요.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노는 친구 상준이가 부럽기도 하고, 쌍둥이 여동생인 재희와 재연이가 "재석이 오빠는 자전거도 못 타지?" 하고 놀릴 때마다 창피하기도 했기 때문이에요. 무엇보다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슝 하고 한번 내려가 보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면,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하는 모습을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절대 보여 주고 싶지 않았어요. 용기를 낸 재석이가 자전거 안장 위에 앉아 페달을 아주 살짝 밟은 순간, 중심을 잡지 못한 자전거가 그만 옆으로 휙 넘어졌어요. 그 바람에 재석이의 발목이 자전거 뒷바퀴에 긁히고 말았지요. "아야! 이 바보 멍청이 같은 자전거! 아프잖아!" 모처럼 큰마음을 먹고 한 시도에 다치게 되자, 재석이는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그때 누군가 다가와 넘어진 자전거를 바로 세워 주었어요. 느림보 재홍이 형이었어요. "재석아, 자전거 타는 게 좀 어렵지?" 재홍이 형이 상냥하게 물었어요. "칫, 자전거 따위 누가 타고 싶대? 그냥 만져만 본 거야!" 재석이는 괜히 창피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 버렸어요. 재홍이 형은 화내지 않고 재석이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어요. "재석아, 형이 도와줄까? 형은 자전거 면허도 있는데?" "자전거 면허?" 늘 행동이 느려 답답해 보였던 재홍이 형이 자전거 면허를 가지고 있다니 정말 의외였어요. 재홍이 형은 저녁때마다 둘이 몰래 공원에 가서 자전거 타기 연습을 하자고 했어요. 형도 정말 자전거를 못 탔는데 혼자서 열심히 연습을 해서 잘 타게 된 거래요. "자꾸 넘어지고 비틀거리는 모습을 가족들한테 보이고 싶지 않은 거지? 형도 그래서 혼자 몰래 연습했었어." 꼭 재석이 마음속에 들어갔다 온 것 같은 재홍이 형의 말에 재석이의 기분도 조금 풀어졌어요. "내가 정말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걱정 어린 재석이의 말에 재홍이 형이 대답했어요. "그럼, 물론이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용기 내서 꾸준히 연습하면 곧 잘 탈 수 있게 될 거야!" 재홍이 형의 말에 재석이는 불끈 용기가 났어요. 다음 날부터 재석이는 저녁 식사를 하고 재홍이 형과 공원에 갔어요. 쉽지는 않았지만 재석이는 열심히 연습했어요. "그래, 그렇게 손잡이로 중심을 잡는 거야! 우리 재석이 잘한다!" 재홍이 형도 그런 재석이를 도와주며 응원해 주었어요.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형이 붙잡아 주지 않아도 혼자서 제법 탈 수 있게 되었어요. 조금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공원 한 바퀴를 도는 데 성공한 재석이는 신이 나서 재홍이 형에게 말했어요. "형, 형! 나 이제 혼자서도 잘 타지? 하하하!" "그러게. 이제 내리막길에 도전해도 되겠다." 내리막길! 재석이의 가슴이 두근거리며 떨렸어요. 다음 날, 재석이는 파란 자전거를 끌고 집 근처 동산에 올랐어요. 손에 자꾸 땀이 차고 긴장이 되었어요.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재석이는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었어요. 그러고는 마침내 자전거의 페달을 힘껏 밟았어요. "야호!" 자전거가 미끄러지듯 내리막길로 부드럽게 내달렸어요. "성공이야!" 씽씽 자전거를 타는 재석이의 얼굴에 어느새 환한 웃음이 가득했어요. 호연지기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울 만큼 넓고 바른 기운을 뜻하는 말로, 정의롭고 당당하여 어떤 경우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를 일컫는 고사성어예요. 호연지기란 세상에 꺼릴 것이 없는 크고 넓은 도덕적 용기를 말합니다. 옛날 중국 추나라의 학자 맹자가 제자인 공손추와 대화를 하고 있었어요. 두 사람이 열성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공손추가 맹자에게 물었어요. "스승님께서는 어떤 장점을 가지고 계십니까?"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르고 있다네." 호연지기가 무엇인지 몰랐던 공손추는 다시 물었어요. "호연지기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에 맹자는 '도덕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굳건히 양심을 지키는 용기'라고 설명해 주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도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예요. 그래서 맹자는 이렇게 덧붙였어요. "호연지기를 올바르게 기르면 그 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 차게 되나 이는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하여 호연지기를 잃지 않도록 일상생활에서 항상 의롭게 행동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네." 즉 맹자의 호연지기는 늘 정의롭고 바르게 행동하는 것도 하나의 용기라는 중요한 가르침이랍니다. 효도의 진정한 의미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율곡 이이,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이는 열세 살 때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뽑혀 '구도장원공' 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어요. 이이는 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효자로서도 지금껏 널리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위인이랍니다. 율곡 이이의 공부법 율곡 이이 선생님의 공부법은 아래의 여섯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입지(뜻을 세우다) 공부법' 입니다. 실천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워라. 두번째 '교기질(기질을 바로잡다) 공부법' 입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주변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가능하다, 공부하는 체질로 바꿔라. 세번째 '혁구습(잘못된 옛 습관을 버려라) 공부법' 입니다. 몸에 밴 잘못된 옛 습관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씩 없애나가는 것입니다. 잘못된 옛 습관을 타파하라. 네번째 '구용구사 공부법' 입니다. 9가지의 바른 몸가짐과 9가지의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서 기본자세를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옛 습관의 자리를 수신으로 채워라. 다섯째 '일목십행 공부법' 입니다. 늘 책을 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공부의 가치를 더해갈 수 있기 때문 입니다. 독서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여섯째 '택우문답 공부법' 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보완해 공부를 더욱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벗과 함께 논쟁하며 일취월장하라. 구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발의 모습은 정중하게 하라. 둘째 손의 모습은 공손하게 하라. 셋째 눈의 모습은 단정하게 하라. 넷째 입의 모습은 멈추게 하라. 함부로 말하지 마라. 다섯째 말소리의 모습은 차분하게 하라. 여섯째 머리의 모습은 곧게 하라. 일곱째 기운의 모습은 엄숙하게 하라. 여덟째 서 있는 모습은 덕성스럽게 하라. 아홉째 얼굴빛의 모습은 굳세게 해야 한다. 구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라. 둘째 들을 때는 귀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하라. 셋째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넷째 용모는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다섯째 말은 충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여섯째 일할 때는 경건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일곱째 의문이 나면 물을 것을 생각하라. 여덟째 화가 나면 뒤에 야기되는 어려움을 생각하라. 아홉째 이득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라.
친구야, 미안해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동수는 마송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어요. 어느 날 동수가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단짝 친구인 정호가 다급하게 불렀어요. “나 화장실이 급해서 그러는데 이것 좀 맡아 줘.” 정호는 신발주머니를 동수에게 맡기고 부리나케 화장실로 달려갔어요. “알았어. 빨리 갔다 와.” 그런데 정호는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질 않았어요. 5분, 아니 10분도 더 지난 것 같은데 오지 않는 거예요. ‘조금 있으면 학원 버스 올 시간인데 어쩌지?’ 동수는 발을 동동 구르며 화장실 쪽을 바라보았지만 정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요. 동수는 할 수 없이 정호의 신발주머니를 들고 학원 버스가 정차하는 곳으로 달려갔어요. 그날 저녁이었어요. “동수야, 이리 좀 나와 봐!” 동수는 엄마가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장난감 비행기를 조립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어요. 설명서에 나온 순서대로 부품을 하나씩 떼어 서로 조립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어요. 엄마가 다시 동수를 불렀어요. “동수야, 이리 나와 보라니까!” 동수는 그제야 엄마 목소리를 듣고 거실로 나갔어요. “너, 정호 신발주머니 어떻게 했어?” 엄마가 무서운 표정으로 물었어요. 동수는 아차 싶었어요. 학원 끝나고 집으로 올 때 자기 가방과 신발주머니만 챙긴 채 정호 것은 깜박 잊어버리고 그냥 학원에다 두고 온 거예요. “어, 그거 학원에 두고 왔는데.” “친구 물건을 맡았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아무 데나 두고 오면 어떡해? 정호는 너 때문에 실내화를 신은 채 집에 왔대. 얼른 학원에 가 보자.” 동수는 엄마와 함께 부리나케 학원으로 달려갔어요. 하지만 정호의 신발주머니는 감쪽같이 사라진 뒤였어요. “하여간 너 때문에 내가 못 살아!” 엄마는 화를 참으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어요. “정호 엄마예요? 동수가 학원에 두고 왔다기에 함께 와서 찾아봤는데 감쪽같이 없어졌네요. 이를 어쩌면 좋아요?” 엄마는 똑같은 신발과 신발주머니를 사 주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정호 엄마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며 사양하는 것 같았어요. 엄마는 한참이나 미안하다고 사과하고는 전화를 끊었어요. 엄마가 전화를 끊고 동수에게 말했어요. “너, 내일 아침에 정호한테 꼭 사과해. 알았지?” “아, 알았어요.” 동수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어요. 이튿날, 동수는 학교 현관 앞에서 정호를 만났어요. “정호야, 저기.” “왜? 무슨 할 말 있어?” 정호가 쌀쌀맞은 목소리로 물었어요. 정호는 새 운동화를 신었고 신발주머니도 새것이었어요. 동수는 사과를 하고 싶었지만, 왠지 쑥스러워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어요.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엉뚱한 말을 하고 말았어요. “어? 새 신발 신었네! 그거 어디서 샀니?” “그게 다야?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하는 거 아냐? 왜? 자존심이 상해서 사과 못 하겠어?” 정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실로 들어갔어요. ‘어, 이게 아닌데.’ 왜 이렇게 바보 같이 말이 나오지 않는 걸까요? 동수는 마음이 답답했어요. ‘친구야, 미안해.’ 동수는 마음속으로 연습을 해 보았어요. 하지만 결국 동수는 정호에게 사과를 하지 못했어요. 정호가 하루 종일 쌀쌀맞게 굴었기 때문이에요. ‘쳇, 친구 사이에 그럴 수도 있지. 그렇다고 하루 종일 말도 안 하는 건 좀 심한 거 아냐?’ 동수는 괜히 화가 치밀었어요. 어쨌든 그 사건은 그렇게 흐지부지 지나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국화꽃 향기가 참 좋구나. 이거 누가 가지고 왔니?” 담임 선생님이 탁자 위에 놓인 화분을 보며 기분 좋은 목소리로 물었어요. “엄마가 국화 향이 정말 좋다고 교실에 갖다 놓으라고 주셨어요.” 반장인 혜리가 대답했어요. “어머님께 감사하다고 꼭 말씀드려라.” 선생님은 눈을 감고 다시 한 번 꽃향기를 맡았어요. 혜리네 엄마는 꽃집을 운영하고 있어요. 우리 반 아이들은 거의 모두 혜리를 좋아해요. 혜리는 얼굴도 예쁘지만 왠지 같이 있으면 아주 기분 좋은 꽃향기가 나는 것 같거든요.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국화꽃 화분으로 몰려왔어요. “음, 역시 향기가 좋군.” 정호가 코를 벌름거리며 너스레를 떨었어요. “우리 누나 화장품 냄새하고 비슷하다.” “가을엔 역시 국화가 최고지.” 아이들이 화분을 만지작거리며 한마디씩 떠들었어요. 그러는 통에 화분이 탁자에서 떨어질 듯 흔들렸어요. 그것을 본 동수가 아이들을 밀쳐 내며 외쳤어요. “야, 흔들리잖아! 화분에 손 좀 대지 마!” 그때 정호가 동수를 막아서며 이죽거렸어요. “네가 뭔데 그래? 네가 화분 주인이라도 돼?” “저리 좀 비켜 봐! 화분이 떨어지려고 하잖아!” 화가 난 동수는 정호를 확 밀쳤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뒤로 넘어지는 정호의 손에 걸려 화분이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거예요. ‘퍽’ 소리와 함께 화분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어요. “누가 이랬어?” 선생님이 화난 얼굴로 물었어요. “저는 가만히 서 있는데 동수가 먼저 밀었어요.” 정호가 쭈뼛거리며 대답했어요. “정호 때문에 화분이 떨어지려고 해서 잡으려다 그런 거예요.” 동수도 억울하다는 듯 말했어요. “이 녀석들이 친구라면서 서로 잘못을 미루고 있네! 잘못했으면 먼저 실수를 인정해야지! 자기 잘못을 모르는 녀석들은 혼이 좀 나야 해. 너희 둘 다 오늘부터 일주일간 화장실 청소해!”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어요. 동수는 정호를 째려보았어요. ‘다 너 때문이야!’ 정호도 눈을 부릅뜨고 동수를 쏘아보았어요. 동수는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반장 혜리를 만나러 갔어요. “난 화분이 떨어질 것 같아서 잡으려고 그랬던 거야.” 동수가 변명하듯 말했어요. “알아. 그렇지만 너와 정호한테 좀 실망했어.” 혜리가 차분하게 말했어요. 어쨌든 너와 정호가 실수한 건 분명하잖아? 그럼 먼저 실수를 인정해야지. 난 자기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사과하는 사람이 멋지다고 생각해! 동수는 할 말이 없었어요. ‘내가 정말 잘못한 걸까?’ 동수는 밤새 혜리의 말이 떠올라 잠을 설쳤어요. 마치 감옥에 갇힌 듯 답답한 심정이었어요. 어느덧 가을이 끝나 가고 있었어요. “정호야, 겨울 방학에 뭐 할 거니?” 동수가 숨을 몰아쉬며 물었어요. “난 이번 겨울 방학에는 스케이트를 배울 거야.” 정호가 힘껏 돌을 던지며 대답했어요. 동수와 정호는 아파트 공사장 주변에 떨어진 작은 돌멩이들을 주워 멀리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었어요. “이제 그만하고 학원 가자!” 돌 던지기가 시들해졌는지 정호가 말했어요. 동수는 아직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 하나를 공사장 쪽으로 휙 집어 던졌어요. 때마침 공사장 쪽에서 나오던 차가 끼익 하고 멈췄어요. “앗? 이거 또 사고 친 거 아냐?” 동수와 정호는 놀라서 서로를 바라보았어요. 다음 날 아침, 선생님이 동수와 정호를 불렀어요. “너희들, 어제 집에 가다가 돌 던지기 장난쳤지?” 동수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어요. “어제 공사장 근처를 지나가던 승용차에 돌을 던진 게 너희 둘 중 누구야?” 선생님은 감시 카메라의 정지 화면이 인쇄된 종이를 보여 주면서 다그쳤어요. 거기엔 공사장에 서 있는 동수와 정호의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어요. 하지만 돌을 던지는 장면은 보이지 않았어요. 정호는 차마 동수가 범인이란 말을 못 하고 머뭇거렸어요. 그 순간 동수는 혜리의 말이 번쩍 떠올랐어요. ‘난 자기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사과하는 사람이 멋지다고 생각해!’ 동수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어요. “선생님, 제가 그랬어요!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가 승용차에 돌을 던졌어요.” 그러자 화를 낼 줄 알았던 선생님이 의외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어요. “다음부터는 절대 그런 장난치지 마. 승용차 운전자가 큰 피해를 입지 않아서 용서해 주신다니 다행이지만 만약 사람이라도 다쳤으면 어쩔 뻔했니.” “네, 선생님.” 동수가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동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어요.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용기가 있지만 자기 잘못을 당당하게 인정하는 것도 큰 용기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동수는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어요. ‘자기 잘못을 당당하게 인정하는 것도 큰 용기다!’ 선생님의 말이 메아리처럼 계속 귓가에 울렸어요. 남방지강. 중국 남쪽 지방 사람들의 강함이란 뜻으로, 너그럽게 용서하고 인내하여 오히려 남에게 이기는 것을 말해요. 주로 군자의 용기를 가리키는 말로 쓰여요. 남방지강이란 중국 남쪽 지방 사람들의 강점이라는 뜻으로, 인내의 힘으로 사람을 이겨 내는 군자의 용기를 이르는 말입니다. 이 말은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중용에 나와요. 어느 날 공자의 제자인 자로가 물었어요. “스승님, 강한 것이란 무엇입니까?” 공자가 말했어요. “너그럽고 부드럽게 가르쳐 도에 어긋나더라도 앙갚음을 하지 않는 것이 남방의 강함이니 여기가 바로 군자가 있을 곳이다. 칼과 창 같은 무기를 깔고 죽어도 싫어하지 않음은 북방의 강함이니 여기는 강한 사람이 있을 곳이다.” 여기에서 ‘남방지강’ 과 ‘북방지강’ 이란 말이 생겼어요. 공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중국의 남쪽 지방 사람들은 참을성이 있고 부드러운데 그런 힘으로 오히려 상대방을 이길 수 있었다고 해요. 거꾸로 북쪽 지방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함을 갖추고 있었지요. 그렇다면 어떤 것이 진정한 용기일까요? 용기란 씩씩하고 굳센 기운을 가리켜요. 그런 점에서 북방지강이 용기의 본뜻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요. 효도의 진정한 의미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이는 열세 살 때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뽑혀 ‘구도장원공’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어요. 이이는 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효자로서도 지금껏 널리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위인이랍니다. 율곡 이이의 공부법. 율곡 이이 선생님의 공부법은 아래의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입지 공부법’ 입니다. 실천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워라. 두번째 ‘교기질 공부법’ 입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주변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가능하다, 공부하는 체질로 바꿔라. 세번째 ‘혁구습 공부법’ 입니다. 몸에 밴 잘못된 옛 습관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씩 없애나가는 것입니다. 잘못된 옛 습관을 타파하라. 네번째 ‘구용구사 공부법’ 입니다. 9가지의 바른 몸가짐과 9가지의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서 기본자세를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옛 습관의 자리를 수신으로 채워라. 다섯째 ‘일목십행 공부법’ 입니다. 늘 책을 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공부의 가치를 더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서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여섯째 ‘택우문답 공부법’ 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보완해 공부를 더욱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벗과 함께 논쟁하며 일취월장하라. 구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발의 모습은 정중하게 하라. 둘째 손의 모습은 공손하게 하라. 셋째 눈의 모습은 단정하게 하라. 넷째 입의 모습은 멈추게 하라. 다섯째 말소리의 모습은 차분하게 하라. 여섯째 머리의 모습은 곧게 하라. 일곱째 기운의 모습은 엄숙하게 하라. 여덟째 서 있는 모습은 덕성스럽게 하라. 아홉째 얼굴빛의 모습은 굳세게 해야 한다. 구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라. 둘째 들을 때는 귀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하라. 셋째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넷째 용모는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다섯째 말은 충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여섯째 일할 때는 경건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일곱째 의문이 나면 물을 것을 생각하라. 여덟째 화가 나면 뒤에 야기되는 어려움을 생각하라. 아홉째 이득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라.
청소를 꼭 해야 해?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푸름이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한솔이는 다섯 살짜리 동생 푸름이가 정말 부러웠어요. 아직 유치원생인 푸름이는 하루 종일 노는 게 일과예요. 반면 한솔이는 학교 가랴, 학원 가랴, 숙제하랴, 하루 종일 재미없고 지겨운 일투성이예요. “한솔아, 네 방 좀 치워 줄래?” 퇴근한 엄마가 설거지를 하며 한솔이에게 말했어요. “엄마가 좀 하면 안 돼?” 한솔이는 입이 잔뜩 나와 투덜거렸어요. 강한솔, 엄마랑 한 약속 기억 안 나? 네가 먼저 엄마한테 약속한 거야! 생일 선물로 네가 갖고 싶은 인형 사 주면 네 방 청소는 오늘부터 스스로 하기로 했잖아. 엄마가 턱짓으로 벽에 걸린 달력을 가리켰어요. 오늘 날짜에는 한솔이가 직접 빨간 펜으로 그려 놓은 동그라미가 보였어요. ‘벌써 그날이야?’ 인형을 꼭 가지고 싶은 마음에 한솔이는 날짜도 제대로 보지 않고 동그라미를 그렸어요. “엄마, 오늘 하루만 봐주면 안 돼? 내일부턴 진짜 열심히 청소할게!” 한솔이는 엄마에게 찡긋 윙크를 하며 말했어요. 윙크는 한솔이가 엄마한테 뭔가 부탁할 게 있거나, 잘못한 게 있을 때 쓰는 마법이에요. 엄마는 늘 한솔이의 윙크에 마음이 약해졌거든요. "강한솔! 엄마가 또 속을 것 같아? 내일 되면 또 모레로 미룰 거잖아! 네가 달리 꾸물이니?" "엄마는 한솔이가 자기가 한 말은 꼭 지키는 사람이 되길 원해." 엄마가 허리에 손을 얹고 말했어요. 허리에 손을 얹고 말하는 건 엄마가 진짜 화가 났다는 의미예요. 오늘따라 한솔이의 방은 정말 가관이었어요. 옷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어제 먹었던 과자 봉지, 사탕 껍질, 껌 종이까지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어요. ‘나중에 하면 안 되나?’ 한솔이는 정말 청소가 싫었어요. 누군가 한솔이에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딩동댕! 맞아요, 바로 청소라고 답할 거예요. 한솔이는 왜 매일매일 청소를 해야 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어요. 느릿느릿 꼼지락대고 있던 한솔이의 눈에 꾸물이가 보였어요. 참, 꾸물이는 엄마가 한솔이한테 붙여 준 별명이지만 한솔이의 인형 이름이기도 해요. 가지기 전까지는 정말 예뻐 보였는데 꾸물이 때문에 청소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꾸물이 얼굴이 너무 미워 보였어요. “이게 다 너 때문이야!” 한솔이는 괜히 심통이 나서 꾸물이의 뺨을 꼬집었어요. 순간 꾸물이가 찡긋 윙크를 하는 것 같았어요. “어, 뭐야? 꾸물이, 너! 지금 나한테 윙크했어?” 깜짝 놀란 한솔이가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침대 위에 놓인 꾸물이는 언제 윙크했냐는 듯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어요. “청소 다 했어?” 그때 방문 사이로 엄마의 얼굴이 빼꼼 보였어요. “지금 하고 있거든!” 한솔이는 엄마의 눈치를 보며 열심히 청소하는 척했어요. 바닥에 흩어진 책들을 주워 책꽂이에 그냥 되는대로 마구 꽂았어요. 심지어 제목이 보이지 않게 뒤집어 꽂기도 했어요. 책꽂이 여기저기 울퉁불퉁 책들이 키가 맞지 않아 볼썽사나웠지만 빨리 끝내서 흐뭇했어요. ‘쳇, 그래도 책꽂이에 꽂은 건 맞잖아?’ 바닥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옷들도 옷장 문을 열고 그냥 휙 구겨 넣었어요. ‘쳇, 어쨌든 옷도 다 옷장에 넣었어!’ 바닥에 떨어진 과자 봉지, 사탕 껍질도 눈에 띄지 않는 책상 밑으로 쓱쓱 밀어 넣었어요. “만세, 청소 끝!” “언니, 꾸물이 한 번만 빌려주면 안 돼?” 청소를 끝내고 거실로 나오자 푸름이가 졸랐어요. 괜히 심술이 난 한솔이는 푸름이를 골탕 먹이고 싶었어요. “강푸름, 너도 나랑 약속 하나 하면 꾸물이 빌려줄게!” “뭐? 어떤 거 약속하면 돼?” 순간 아주 멋진 생각이 떠올랐어요. 한솔이는 푸름이의 귀에 대고 속삭였어요. “푸름이 네가 언니 방을 청소해 주면 꾸물이를 빌려줄게!” “진짜? 그것만 해 주면 돼?” 푸름이는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좋아했어요. “히힛, 그럼 내일 예약!” 푸름이가 한솔이의 새끼손가락에 자기 손가락을 걸었어요. “어? 내가 좋아하는 티셔츠가 어디 갔지?” 옷장 문을 연 한솔이는 한숨이 나왔어요. 어제 빨리 청소를 끝낸다고 대충 구겨 넣었더니 제일 좋아하는 분홍색 티셔츠가 어디론가 사라졌어요. 한 덩어리처럼 뭉쳐진 옷들을 방바닥으로 꺼내 하나하나 살펴봤지만 분홍색 티셔츠는 안 보였어요. “강한솔, 얼른 옷 입고 나와. 꾸물대다 지각하고 싶어?” 출근 준비를 끝낸 엄마가 한솔이를 재촉했어요. ‘어제 제대로 정리해 둘 걸!’ 좋아하는 티셔츠를 못 입는다는 생각에 한솔이는 그만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어요. 서둘러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티셔츠나 입고 거실로 나가려던 한솔이는 순간 멈칫했어요. 뭔가 깜빡 잊어버린 것 같았어요. ‘분명히 어제까지만 해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방 안을 휘둘러보던 한솔이의 눈에 책꽂이에 삐뚤빼뚤 꽂힌 책들이 보였어요. ‘아, 맞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반납해야 돼.’ 한솔이는 책꽂이를 뒤적이며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찾아보았어요. 하지만 어제 급히 대충 꽂아 놓아 일일이 책을 뽑아 제목을 확인해야 했어요. “강한솔! 꾸물이! 너 진짜 이러다 지각한다!” 엄마의 목소리가 더 커졌어요. 한솔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었어요. 도대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한솔이는 하루 종일 기분이 엉망진창이었어요. “강한솔! 너, 진짜 껌 좋아하나 봐?” 늘 잘난 척하기 일등인 얄미운 친구가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빨개져서 말했어요. “무슨 소리야?” 한솔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었어요. 친구는 씩 웃으며 한솔이의 옷을 가리켰어요. 아뿔싸, 티셔츠에 커다란 껌이 붙어 있었어요. 어제 지겨운 청소를 억지로 참고 하느라 방 여기저기 떨어진 옷가지들을 발로 밀었더니 바닥에 떨어진 껌이 티셔츠에 붙었나 봐요. 한솔이는 얼굴이 빨개졌어요. ‘아, 청소 때문에 하루가 완전 꽝이었어!’ 한솔이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어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보니 거실에서 푸름이가 꾸물이와 놀고 있었어요. “야! 강푸름! 너 언니 방 청소했어?” “이따 할 거야.” “청소해야 꾸물이 빌려준다고 약속했잖아!” “치사해! 먼저 놀고 나중에 청소하면 안 돼?” “자기가 한 말은 꼭 지켜야 되는 거, 몰라?” 화가 나서 푸름이를 혼내면서 한솔이는 속으로 뜨끔했어요. ‘어제 엄마도 이렇게 화가 났겠지?’ “자기가 한 말은 꼭 지켜야 돼. 네가 먼저 약속 지키면 꾸물이 빌려줄게.” 한솔이는 푸름이 손에서 꾸물이를 빼앗았어요. “언니도 약속 안 지키면서! 왜 나한테만 약속 지키래?” 울먹울먹 울음이 터지기 일보 직전인 푸름이가 고함을 질렀어요. “내가 언제? 난 약속 꼭 지켰거든?” “거짓말! 어제 청소 안 했잖아!” “어제 청소했거든!” “그게 무슨 청소야? 언니는 거짓말쟁이! 미워!” 푸름이는 엉엉 울면서 자기 방으로 가 버렸어요. ‘어제 청소만 제대로 했어도 오늘 이렇게 힘들진 않았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 한솔이는 기운이 쭉 빠졌어요.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와 보니 방은 어제와 사뭇 다른 풍경이었어요. 바닥은 반짝반짝 윤이 났고 책꽂이에 책도 가지런히 꽂혀 있었어요. ‘엄마가 우렁 각시처럼 몰래 다녀갔나 봐!’ 혹시나 싶어 한솔이는 옷장 문을 열어 봤어요. 옷장 안에는 아침에 그렇게 찾아도 안 보이던 분홍색 티셔츠가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려 있었어요. 책꽂이에도 제목이 보이게 꽂힌 책들이 사이좋게 키를 맞춰 맵시를 뽐내고 있었어요. 그 책들 사이에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온 충절을 지킨 고려 충신 정몽주가 보였어요. 한솔이는 충절을 지킨 정몽주처럼 엄마와의 약속을, 아니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래, 앞으로는 그까짓 청소 열심히 할 거야!’ 그렇게 하면 엄마 속도 썩이지 않고, 푸름이 앞에서도 당당한 언니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나 자신에게도 말이지요! 또 다른 인성 다지기 고사성어. 세한송백. 추운 겨울의 소나무와 잣나무라는 뜻으로, 어떤 역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굳은 절개를 말해요. 세한송백이란 어떤 역경 속에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는 사람, 또는 그 지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추운 계절이 오면 모든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으로 변하지만, 소나무와 잣나무 같은 상록수는 계절에 상관없이 늘 푸름을 간직해요. 그래서 예로부터 선비의 변함없는 지조와 절개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에 빗대어 표현했어요.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에요.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에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지요. 공자는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지조와 절개를 굽히지 않는 군자의 모습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빗대어 표현했어요. 평화로운 시절에는 별로 표가 나지 않지만 큰일을 겪어 보면 비로소 그 사람의 지조와 절개를 알 수 있다는 뜻이랍니다. 효도의 진정한 의미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이는 열세 살 때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뽑혀 ‘구도장원공’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어요. 이이는 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효자로서도 지금껏 널리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위인이랍니다. 율곡 이이의 공부법. 율곡 이이 선생님의 공부법은 아래의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입지 공부법’입니다. 실천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워라. 두 번째 ‘교기질 공부법’입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주변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가능하다, 공부하는 체질로 바꿔라. 세 번째 ‘혁구습 공부법’입니다. 몸에 밴 잘못된 옛 습관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씩 없애나가는 것입니다. 잘못된 옛 습관을 타파하라. 네 번째 ‘구용구사 공부법’입니다. 9가지의 바른 몸가짐과 9가지의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서 기본자세를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옛 습관의 자리를 수신으로 채워라. 다섯째 ‘일목십행 공부법’ 입니다. 늘 책을 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공부의 가치를 더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서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여섯째 ‘택우문답 공부법’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보완해 공부를 더욱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벗과 함께 논쟁하며 일취월장하라. 구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발의 모습은 정중하게 하라. 둘째 손의 모습은 공손하게 하라. 셋째 눈의 모습은 단정하게 하라. 넷째 입의 모습은 멈추게 하라. 다섯째 말소리의 모습은 차분하게 하라. 여섯째 머리의 모습은 곧게 하라. 일곱째 기운의 모습은 엄숙하게 하라. 여덟째 서 있는 모습은 덕성스럽게 하라. 아홉째 얼굴빛의 모습은 굳세게 해야 한다. 구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라. 둘째 들을 때는 귀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하라. 셋째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넷째 용모는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다섯째 말은 충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여섯째 일할 때는 경건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일곱째 의문이 나면 물을 것을 생각하라. 여덟째 화가 나면 뒤에 야기되는 어려움을 생각하라. 아홉째 이득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라.
그 많은 용돈, 어디로 갔을까?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오늘은 설날이에요. 도훈이는 설날을 참 좋아해요. 할머니 댁에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고, 세뱃돈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도훈이는 올해는 세뱃돈을 얼마나 받을까 궁금했어요. “할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도훈이는 얼른 절을 하고 일어났어요. “그래, 한 살 더 먹었으니 의젓하고 더 책임감 있는 아이가 되렴.”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어요. “이건 할미가 주는 용돈이니 아껴 써야 해.” “네!” 도훈이는 씩씩하게 대답했어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도훈이는 하얀 봉투를 열어 봤어요. 봉투 안에는 만 원짜리 세 장이 들어 있었어요. 도훈이는 신이 나서 팔짝팔짝 뛰었어요. 엄마는 늘 천 원짜리 세 장 정도만 주셨거든요. 천 원짜리 세 장이 있으면 떡볶이도 먹고 과자도 살 수 있지만 도훈이에게는 너무 적은 돈이에요. 도훈이는 먹을 것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아직 먹고 싶은 것이 있는데도 금방 용돈이 떨어지기 일쑤였지요. ‘엄마가 용돈을 너무 적게 줘서 그래.’ 그때마다 도훈이는 속으로 투덜댔어요. “어머, 도훈아. 할머니가 주신 세뱃돈이니?” 그때 엄마가 다가왔어요. 엄마는 도훈이 손에 들린 만 원짜리 세 장을 보았어요. “큰돈이니까 엄마가 보관해 줄게.” 하지만 도훈이는 이미 알고 있었어요. 엄마가 가져가면 절대 세뱃돈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싫어요! 엄마가 쓸 거잖아요?” “아니야. 엄마가 잘 보관해 주는 거야.” “아니에요! 엄마는 작년에도 그렇게 말했잖아요.” 도훈이는 봉투를 꼭 쥐고 고개를 저었어요. 엄마는 빙그레 웃더니 도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그래? 그러면 이번에는 도훈이가 가지고 있을래?” “네!” “대신 며칠 만에 다 써 버리면 안 돼. 알겠니?” 엄마는 몇 번이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이렇게 많은 돈을 어떻게 며칠 만에 다 써 버린다는 거야.’ 도훈이는 속으로 생각했어요. ‘우리 엄마는 너무 걱정이 많아.’ 도훈이는 그렇게 엄마의 말을 금방 잊어버리고 어떻게 세뱃돈을 쓸까 궁리하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먹고 싶었던 것도 실컷 먹고 사고 싶었던 장난감도 사야지. 엄마는 구두쇠라서 잘 사 주지 않으니까.’ 도훈이는 세뱃돈이 든 봉투를 서랍에 잘 넣어 두었어요. 그날 밤 도훈이는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군것질을 하고 장난감을 한 아름 사는 꿈을 꾸었어요. 다음 날 도훈이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어요. “새해가 되더니 일찍 일어났네. 기특하구나.” 엄마가 놀란 얼굴로 말했어요. 사실 도훈이는 엄마가 깨워야 겨우 일어나는 늦잠꾸러기거든요. “빨리 나가서 과자도 사 먹고 장난감도 살 거야.” 도훈이가 들떠서 말했어요. 집을 나선 도훈이는 집 앞에 있는 슈퍼로 달려갔어요. 과자도 사고, 초콜릿과 사탕도 두 개씩이나 샀어요. 언제 먹어도 시원하고 맛있는 음료수도 샀지요. 슈퍼에서 배를 채운 도훈이는 문구점으로 달려갔어요. 문구점에는 가지고 싶던 장난감 자동차도 있었고 조립식 로봇이나 움직이는 강아지 인형도 있었어요. ‘전부 다 사 버릴까?’ 도훈이는 고민하다 하얀 털의 강아지 인형을 골랐어요. 스위치를 켜면 멍멍 짖는 인형이에요. 도훈이는 신이 나서 인형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인형을 사고도 세뱃돈은 많이 남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도훈이는 친구들을 불러 같이 놀기로 했어요. 도훈이와 가장 친한 석훈이와 장우가 나왔어요. “오늘은 내가 맛있는 걸 사 줄게.” 도훈이가 큰소리를 쳤어요. 도훈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분식점으로 갔어요. “아줌마, 여기 떡볶이랑 어묵이랑 순대 주세요.” 도훈이는 평소보다 많은 음식을 주문했어요. 하지만 석훈이와 장우도 도훈이 못지않게 먹성이 좋았어요. 셋은 금방 음식을 다 먹어 버렸어요. “야, 도훈아. 튀김도 사 줘.” 석훈이가 졸랐어요. “그래. 마음껏 먹어. 내가 사는 거야.” 도훈이가 잔뜩 뽐내며 말했어요. 이렇게 친구들에게 먹을 것을 사 주니 어쩐지 형이 된 기분이었어요. 설날 연휴가 끝나고 피아노 학원에 가는 날이에요. 도훈이는 세뱃돈 봉투를 챙겨서 학원에 갔어요. 석훈이가 와서 또 맛있는 것을 사 달라며 졸랐어요. “그럴까?” 도훈이는 잠시 고민했어요. 그때 교실 문을 열고 지선이가 들어왔어요. 지선이는 도훈이와 동갑인 2학년 여자아이예요. 도훈이는 어른스럽고 똑똑한 지선이가 좋았어요. “아니야, 난 오늘은 지선이랑 놀 거야.” 도훈이의 말에 석훈이는 실망한 얼굴이 되었어요. 지선이가 자리에 와서 앉자 도훈이가 물었어요. “지선아, 오늘 내가 맛있는 피자 사 줄까?” “정말? 좋아!” 지선이가 생긋이 웃으며 대답했어요. 학원을 마친 후 도훈이는 지선이와 함께 학교 앞에 있는 작은 피자 가게로 갔어요. 피자 가게로 가는 길에 문구점이 있었어요. “지선아, 너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왜?” “나 얼마 전에 여기서 강아지 인형 샀는데 엄청 귀여워. 너도 갖고 싶은 거 있으면 사 줄게.” 도훈이의 말에 지선이는 고개를 갸웃했어요. “그렇게 돈을 많이 써도 괜찮아?” “괜찮아. 세뱃돈 많이 받았거든.” 도훈이가 큰소리쳤어요. 둘은 문구점 안으로 들어가 장난감 구경을 했어요. 도훈이는 지선이에게 병아리 모양의 연필깎이를 선물했어요. 지선이가 고맙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도훈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어요. 둘은 피자 가게에서 조각 피자 네 개와 컵 치킨까지 시켜 먹었어요. 지선이와 함께 먹으니 더 맛있는 것 같았어요. 한참 웃고 떠들다 보니 집에 갈 시간이 되었어요. 도훈이는 계산을 하려고 아주머니에게 갔어요. “얼마예요?” “팔천 원이란다.” 그런데 봉투 안에는 오천 원밖에 남아 있지 않았어요. 당황한 도훈이는 어쩔 줄 몰라 우물쭈물했어요. “왜 그러니?” 아주머니가 물어보자 도훈이는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선이가 다가와서 천 원짜리 세 장을 내밀었어요. “이거랑 합쳐서 계산해.” 도훈이는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졌어요. 그런 도훈이를 지선이가 괜찮다며 위로해 주었어요. 도훈이와 지선이는 피자 가게를 나왔어요. “내 세뱃돈이 다 어디로 갔을까?” 도훈이가 풀이 죽어 혼잣말로 말했어요. “용돈은 신경 쓰지 않으면 금방 다 써 버려.” 지선이가 어른스럽게 말했어요. “어디에 썼는지도 잘 모르겠어. 별로 쓴 거 같지 않은데.” 도훈이가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너 용돈 기입장은 있어?” “용돈 기입장이 뭐야?” 지선이는 책가방 안에서 노란 수첩을 꺼내 보여 주었어요. "이게 용돈 기입장이라는 거야. 네가 받은 돈과 쓴 돈을 날마다 기록하는 거지." "맨 왼쪽 칸에 날짜를 쓰고 받은 용돈의 액수와 쓴 용돈의 액수, 그리고 무엇에 썼는지를 적어 두는 거야. 이걸 쓰면 용돈을 어디 썼는지 금세 알 수 있어. 너도 써 봐." 집으로 돌아온 도훈이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어요. ‘맞아! 내 돈은 내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는 거야!’ 도훈이는 엄마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했어요. 그러고는 자신도 지선이처럼 용돈 기입장을 쓰고 싶다고 했어요. 그러자 엄마는 도훈이를 혼내는 대신 용돈 기입장을 쓰겠다는 건 참 좋은 생각이라며 작고 귀여운 파란 수첩을 주셨어요. 그리고 아껴 쓰라며 용돈 삼천 원도 주셨어요. 도훈이는 곧장 용돈 기입장에 받은 돈 삼천 원을 기록했어요. 그날부터 도훈이는 꼬박꼬박 용돈 기입장을 적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신기하게도 매일 부족하게 느껴졌던 용돈이 더 이상 부족하지 않았어요. 이전과 다르게 계획적으로 용돈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용돈 기입장을 쓰니 절약을 할 수 있구나!’ 도훈이는 더욱 열심히 용돈 기입장을 썼어요. 한 달 뒤, 도훈이가 피아노 학원에 가 보니 울상이 된 석훈이가 보였어요. “무슨 일이야?” “용돈을 다 써 버렸어.” “어쩌다가?” “모르겠어.” 석훈이의 말에 도훈이가 혀를 쯧쯧 찼어요. “내 돈은 내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는 거야! 용돈 기입장을 쓰면 절대 용돈을 낭비하지 않아. 너도 용돈 기입장을 써 봐, 석훈아!” 도훈이가 선생님처럼 말했어요. 그리고 가방에서 용돈 기입장을 꺼내 자랑스럽게 석훈이에게 보여 주었지요. 바로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 달라진 도훈이의 모습을 보고 있었어요. 지선이였어요. 지선이의 입가에는 미소가 담겨 있었어요. 또 다른 인성 다지기 고사성어. 임중도원. 맡은 짐은 무겁고 길은 멀다는 뜻으로, 책임은 무겁고 그 실천은 어렵다는 것을 말해요. 임중도원이란 맡은 책임은 무겁고 이를 수행할 길은 멀다는 뜻입니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에요. 공자의 제자인 증자는 아래와 같이 말했어요. “선비는 가히 넓고 굳세지 않을 수 없으니, 맡은 일은 무겁고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으로써 자기의 일로 삼으니 또한 무겁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니 또한 멀지 아니한가?” 선비로서 책임이 막중하고 무거우니 그 책임을 달성하기 위해 항상 긴장을 풀지 않고 노력하라는 말이에요. 옛날 중국 사회에서 지도층이었던 선비들은 그만큼 짊어지고 있는 책임과 의무가 많았어요. 항상 많은 사람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했으니까요.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쉴 새 없이 공부해야 했고,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는 일도 게을리할 수 없었답니다. 효도의 진정한 의미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이는 열세 살 때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뽑혀 ‘구도장원공’ 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어요. 이이는 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효자로서도 지금껏 널리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위인이랍니다. 율곡 이이의 공부법. 율곡 이이 선생님의 공부법은 아래의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입지 공부법’ 입니다. 실천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워라. 두번째 ‘교기질 공부법’ 입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주변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가능하다, 공부하는 체질로 바꿔라. 세번째 ‘혁구습 공부법’ 입니다. 몸에 밴 잘못된 옛 습관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씩 없애나가는 것입니다. 잘못된 옛 습관을 타파하라. 네번째 ‘구용구사 공부법’ 입니다. 9가지의 바른 몸가짐과 9가지의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서 기본자세를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옛 습관의 자리를 수신으로 채워라. 다섯째 ‘일목십행 공부법’ 입니다. 늘 책을 곁에 두고 시간 날 때 마다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공부의 가치를 더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서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여섯째 ‘택우문답 공부법’ 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보완해 공부를 더욱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벗과 함께 논쟁하며 일취월장하라. 구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발의 모습은 정중하게 하라. 둘째 손의 모습은 공손하게 하라. 셋째 눈의 모습은 단정하게 하라. 넷째 입의 모습은 멈추게 하라. 다섯째 말소리의 모습은 차분하게 하라. 여섯째 머리의 모습은 곧게 하라. 일곱째 기운의 모습은 엄숙하게 하라. 여덟째 서 있는 모습은 덕성스럽게 하라. 아홉째 얼굴빛의 모습은 굳세게 해야 한다. 구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라. 둘째 들을 때는 귀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하라. 셋째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넷째 용모는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다섯째 말은 충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여섯째 일할 때는 경건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일곱째 의문이 나면 물을 것을 생각하라. 여덟째 화가 나면 뒤에 야기되는 어려움을 생각하라. 아홉째 이득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라.
고양이와 친구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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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우고 싶어요.” 홍걸이가 아빠에게 말했어요. “글쎄, 그럼 누가 고양이를 보살피지?” 홍걸이는 자신 있게 대답했어요. “그야 물론 제가 주인이니까 제가 보살피지요.” 그러나 아빠는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엄마에게 한번 얘기해 보렴.” 홍걸이는 부엌에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 엄마에게 가서 말했어요. “엄마,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요.” 하지만 엄마는 고개를 저었어요. “돌보아 줘야 하는 새 식구가 들어오는 건 곤란하단다.” 홍걸이는 부모님의 반응에 기분이 상했어요. ‘왜 안 된다는 거지? 난 고양이를 잘 돌볼 자신이 있는데.’ 홍걸이는 짜증이 났어요. 같은 동네 사는 영철이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을 때, 홍걸이는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했어요. 전부터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항상 안 된다고만 해요. 홍걸이네 엄마 아빠는 두 분 다 일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녁에는 홍걸이 혼자 집에 있을 때가 많아서 같이 놀아 줄 친구가 필요했어요. 영철이는 집에서 고양이와 아주 잘 놀아요. 그래서 홍걸이도 고양이가 있었으면 했던 거지요. “영철이는 엄마가 집에서 살림을 하는 주부니까 고양이를 돌보아 줄 수 있지만 우린 어렵단다.” 하지만 홍걸이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저 자신 있어요. 저도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라고요. 텔레비전에도 제 또래 아이들이 동물 키우는 거 자주 나오잖아요. 저도 키우게 해 주세요! 그리고 홍걸이는 실력 행사에 들어갔어요. 그건 엄마 아빠가 허락할 때까지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거예요. 여차하면 하루 정도는 굶을 각오도 되어 있었어요. 홍걸이는 잘 알고 있어요. 자신이 이렇게 나오면 엄마 아빠가 결국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예요. “어떡하지? 키우게 해 줄까?” 거실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럼 고양이 뒤치다꺼리는 당신이 책임질 거예요?” 엄마의 목소리도 희미하게 들렸어요. 그리고 그다음 말은 듣지 못하고 홍걸이는 잠이 들고 말았어요. 다음 날 아침, 늦잠을 자는 바람에 학교에 늦은 홍걸이는 정신없이 집을 나섰어요. “홍걸아, 잠깐만! 아빠랑 같이 가자!” 웬일인지 아빠가 아직까지 출근을 하지 않았어요. “아빠 회사 오늘 쉬는 날이란다. 이따 집에 오면 같이 고양이 데리러 가자.” 고양이라는 말에 홍걸이는 펄쩍펄쩍 뛰었어요. “정말요! 그럼 고양이 키우는 거예요?”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래, 어제 엄마랑 그러기로 했단다.” “야호!” 홍걸이는 신이 나서 깡충깡충 뛰며 학교로 갔어요. 아빠는 그런 홍걸이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어요. “어떤 녀석이 좋을까?” 홍걸이는 아빠와 함께 영철이네 집에 가서 데려갈 새끼 고양이를 골랐어요. 작고 귀여운 새끼 고양이가 여섯 마리나 있었거든요. “아빠는 어떤 녀석이 좋아요?” 홍걸이가 아빠에게 물었어요. 글쎄다. 수놈은 활기 있고 암놈은 얌전한 편이지. 그런데 처음 키우는 거니까 수놈이 좋겠다. 암놈은 나중에 새끼를 낳으면 손이 많이 간단다. 홍걸이는 아빠 말에 따라 수놈을 한 마리 골랐어요. 수염이 난 듯 턱에 얼룩이 진 예쁜 고양이였지요. 집으로 돌아올 때 아빠가 물었어요. “그래, 이름은 뭐로 할 거니?” “아, 맞다! 이름을 지어야지! 음, 잘 생각이 안 나요. 아빠가 지어 주세요.” 그러자 아빠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어요. “그럼 ‘모돌이’ 라고 하자. 아빠가 어렸을 때 키웠던 고양이 이름이란다.” 모돌이는 홍걸이의 친구가 되었어요. 하지만 홍걸이는 모돌이와 놀기만 할 뿐 돌보아 주는 건 모두 아빠의 몫이었어요. 모돌이는 홍걸이와 잘 놀다가도 아빠가 오면 아빠에게로 달려갔어요. 홍걸이는 그런 모돌이가 좀 서운했어요. “야, 모돌아! 넌 나보다 아빠가 좋아?” 하지만 모돌이는 못 들은 척 아빠의 다리에 얼굴을 비벼 댔어요. 홍걸이는 마치 배신 당한 기분이었어요. “홍걸아, 모돌이 밥 좀 줘라!” 토요일 아침, 모처럼 달게 늦잠을 자는데 엄마가 깨웠어요. “아이참, 더 자고 싶어요.” “모돌이는 아까부터 일어나 있어! 배고플 것 같은데?” 홍걸이는 귀찮아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어요. “아빠보고 주라고 해요. 모돌이는 아빠를 더 좋아해요!” 그러자 엄마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뭐? 이럴 거면서 왜 고양이를 키우자고 한 거니?” 엄마가 화가 난 것 같았어요. “책임 못 질 거면 아예 데려오지를 말아야지.” 홍걸이는 듣기 싫다는 듯 머리 위까지 훌떡 이불을 뒤집어썼어요. 점심을 먹은 후에 엄마가 말했어요. “홍걸이가 모돌이를 돌보지 않으니 잘 보살필 수 있는 집에 데려다주어야겠어요.” 모돌이와 끈을 가지고 놀던 홍걸이는 깜짝 놀랐어요. “안 돼요! 모돌이는 내 친구라고요!” 엄마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처음부터 보살필 사람이 없어서 고양이는 못 키운다고 엄마가 말했지? 넌 오늘 아침에도 모돌이 밥도 안 주고 그냥 잤잖아! 그게 친구가 할 도리니? 홍걸이는 할 말이 없어서 도와 달라는 눈빛으로 아빠를 쳐다보았어요. 하지만 아빠는 그런 홍걸이를 외면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한 번만 봐주세요.” 그러자 엄마가 말했어요. “그럼 이번 일주일 동안 홍걸이가 하는 거 보고 결정할게.” “홍걸아, 일어나! 모돌이 밥 줘야지!” 늦잠을 자도 되는 일요일이었지만 홍걸이는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왔어요. 모돌이가 홍걸이를 보고 “야옹!” 하고 인사를 했어요. 홍걸이는 사료를 찾아서 모돌이 밥을 주고 물그릇도 갈아 주었어요. “홍걸아, 모돌이 화장실 모래도 갈아 주어야 해.” 아빠가 말했어요. 홍걸이는 냄새가 지독한 모돌이의 화장실 청소도 해야 했어요. 그런 홍걸이를 보면서 아빠가 말했어요. “아주 잘하네! 일하는 거 보니 이따 밥도 많이 먹겠네.” “왜 밥을 많이 먹어요?” “이따 보면 알 거야.” 정말 아빠 말대로였어요.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여서 그런지 배가 많이 고팠어요. 그래서 다른 때보다 아침 식사를 많이 했어요. 엄마 아빠는 그런 홍걸이를 보고 빙그레 웃었어요. “자, 이제 가장 힘든 일을 해 볼까?” 아빠가 홍걸이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그러고는 홍걸이에게 고무장갑을 끼라고 했어요. “잘 잡아야 한다.” 그것은 모돌이를 목욕시키는 일이었어요. 고양이는 원래 물을 싫어해서 목욕이라면 질색을 해요. 모돌이도 홍걸이가 안고 욕조에 들어가자마자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어요. 아마 홍걸이 혼자였으면 목욕을 시킬 수 없었을 거예요. 홍걸이가 모돌이를 잡고 아빠가 목욕을 시키는데도 한참이나 걸렸어요. 목욕을 끝내고 나오니 아빠도, 홍걸이도, 모돌이도 모두 물을 뒤집어써서 물에 빠진 생쥐 같았어요. “아니,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목욕을 시킨 거예요?” 엄마가 어이없다는 듯 호호 웃었어요. 다음 날 홍걸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모돌이가 보이지 않았어요. ‘어? 어디로 갔지?’ 한참 찾아보니 모돌이는 책상 밑 구석에 누워 있었어요. 그런데 모돌이가 좀 이상했어요. 평소 같으면 반갑다고 야옹야옹 난리를 칠 텐데 기운이 없는지 자꾸 눈을 감았어요. ‘어디 아픈가? 어쩌지? 엄마 아빠가 오시려면 아직 멀었는데.’ 홍걸이는 모돌이를 고양이 이동장에 넣고 재빨리 동물 병원으로 달려갔어요. 의사 선생님은 모돌이가 장염에 걸렸다고 했어요. “며칠 약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그때 엄마 아빠가 함께 동물 병원에 도착했어요. 의사 선생님은 엄마 아빠에게 ‘홍걸이가 고양이를 아주 잘 돌보고 있다’고 칭찬해 주었어요. “따르르릉!” 또 새 아침이 밝았어요. 하지만 이제 홍걸이는 엄마가 깨우기 전에 먼저 일어나요. 그리고 모돌이 밥을 주고, 물을 갈아 주고 화장실도 깨끗한지 살펴보지요. 모돌이는 마루에서 뒹굴며 놀다가 홍걸이를 보고 반갑다고 쫓아와 다리에 얼굴을 문지르면서 가르릉가르릉거려요. 그건 홍걸이가 좋다는 뜻이지요. “자식, 잘 잤냐? 형아가 밥 줬다. 잘 먹고 잘 놀고 있어!” 고양이를 보살펴 주고 홍걸이는 학교 갈 준비를 했어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홍걸이가 뛰어가는 길 위 창문에서 모돌이가 손을 흔들고 있네요. 해님도 그 모습을 보고 방긋방긋 웃고요. 어떤가요? 우리 홍걸이가 이제 한 뼘은 더 큰 거 같지요? 또 다른 인성 다지기. 고사성어. 유비무환.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뒤에 걱정스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유비무환이란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유비무환은 서경과 춘추좌씨전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에요. 서경에는 은나라의 왕 고종과 어진 재상 부열이 등장하는데, 부열은 고종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해 주었어요. 그 말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어요. “일이 잘되려면 미리 준비해야 하고,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이 말에서 유래하여 유비무환이란 말이 생겼답니다. 또 춘추좌씨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요. 진나라 왕이 12개 나라와 연합하여 정나라를 공격했어요. 정나라는 깜짝 놀라 진나라 왕에게 휴전을 요청했어요. 진나라가 휴전을 받아들이자 정나라는 진나라 왕에게 많은 보물과 하인들을 선물로 바쳤어요. 진나라 왕은 그 선물을 공이 많은 신하 위강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위강은 선물을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마음을 놓지 마십시오.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라 했으니, 미리 준비하면 걱정이 없습니다.” 항상 준비를 철저히 하라는 충고의 말이었지요. 이 말에서 유비무환이란 말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어요. 효도의 진정한 의미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이는 열세 살 때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뽑혀 ‘구도장원공’ 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어요. 이이는 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효자로서도 지금껏 널리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위인이랍니다. 율곡 이이의 공부법. 율곡 이이 선생님의 공부법은 아래의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입지 공부법’ 입니다. 실천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워라. 두번째 ‘교기질 공부법’ 입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주변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가능하다, 공부하는 체질로 바꿔라. 세번째 ‘혁구습 공부법’ 입니다. 몸에 밴 잘못된 옛 습관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씩 없애나가는 것입니다. 잘못된 옛 습관을 타파하라. 네번째 ‘구용구사 공부법’ 입니다. 9가지의 바른 몸가짐과 9가지의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서 기본자세를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옛 습관의 자리를 수신으로 채워라. 다섯째 ‘일목십행 공부법’ 입니다. 늘 책을 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공부의 가치를 더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서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여섯째 ‘택우문답 공부법’ 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보완해 공부를 더욱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벗과 함께 논쟁하며 일취월장하라. 구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발의 모습은 정중하게 하라. 둘째 손의 모습은 공손하게 하라. 셋째 눈의 모습은 단정하게 하라. 넷째 입의 모습은 멈추게 하라. 다섯째 말소리의 모습은 차분하게 하라. 여섯째 머리의 모습은 곧게 하라. 일곱째 기운의 모습은 엄숙하게 하라. 여덟째 서 있는 모습은 덕성스럽게 하라. 아홉째 얼굴빛의 모습은 굳세게 해야 한다. 구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라. 둘째 들을 때는 귀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하라. 셋째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넷째 용모는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다섯째 말은 충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여섯째 일할 때는 경건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일곱째 의문이 나면 물을 것을 생각하라. 여덟째 화가 나면 뒤에 야기되는 어려움을 생각하라. 아홉째 이득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라.
나만의 시간표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윤서야, 일어날 시간이야!" "엄마, 조금만." "빨리 일어나! 시간 없어!" 오늘도 윤서는 엄마랑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어요. 5분만 더 누워 있고 싶은데 엄마는 금세 방문을 열었어요. "우리 딸, 이러다 또 학교 늦겠다." "알았어." 두 번째로 엄마가 깨울 때도 건성으로 대꾸하고 게으름을 피웠어요. 아침마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나오기가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어요. "왜 아직 그러고 있어? 빨리 씻고 학교 가야지!" 엄마가 세 번째로 방문을 열었을 때에야 윤서는 마지못해 눈을 비비고 침대에서 나왔어요. "앗! 일곱 시가 넘었네?" 시계를 보니 씻고 바로 학교에 가기도 빠듯했어요. 부랴부랴 세수를 하고 욕실을 나오자, 주방에서 고소한 음식 냄새가 풍겨 왔어요. "얼른 옷 갈아입고 나와서 밥 먹어." "시간 없어요, 엄마." 윤서는 밥을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호랑이 같은 선생님을 떠올리며 힘없이 대답했어요. "조금이라도 먹고 가야지!" 엄마는 밥을 계란에 비벼서 들고 윤서를 따라다녔어요. 오늘따라 엄마가 떠먹여 주는 밥이 꿀맛이었어요. 식탁에는 햄이랑 김도 있고 더 맛있는 음식이 차려져 있는데, 못 먹고 나간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쉬웠어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번 아침마다 이게 무슨 난리니?" 엄마는 잔소리를 하면서도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를 썼어요. "우리 윤서, 오늘도 5분만, 5분만 했구나?" 서재에서 나온 아빠가 윤서를 보고 빙그레 웃었어요. 윤서는 반에서 별명이 '지각 대장'이에요. "수업 시간에 늦지 않는 건 학생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약속이야. 학생이 기본도 안 지키는데 선생님이 뭘 어떻게 가르치겠니?" 호랑이 선생님의 화난 얼굴이 눈에 아른거렸어요. 윤서는 허겁지겁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다행히 아직 조회가 시작되려면 몇 분 남아 있었어요. 숨이 턱에 차서 자리에 앉는 윤서를 짝꿍 진영이가 신기한 눈길로 쳐다보았어요. "항상 느끼는 건데, 너 진짜 아슬아슬하다!" "힘들어. 말 시키지 마." 아침밥을 먹다 말고 와서 윤서는 힘이 하나도 없었어요. 혹시 누구 지각한 사람 없나 교실 안을 휘둘러보았어요. "빈자리가 하나도 없네?" "누구누구만 안 늦으면 우리 반에 지각할 사람 없을걸?" 진영이가 윤서 들으라는 듯 짓궂게 말했어요. "벨이 울리면 무조건 일어나야지!" 그날 밤, 윤서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알람을 7시에 맞췄어요. 시끄러운 알람을 머리맡에 두고 자면 엄마가 깨우지 않아도 자동으로 눈이 떠질 것 같았어요. "엄마, 나 꼭 내일 아침밥 먹고 갈 거예요!" "그래만 준다면 엄마는 무지무지 고맙지!" 엄마는 윤서가 아침을 굶고 학교에 가는 날이면 하루 종일 속이 상한다고 했어요. 윤서는 엄마한테 미안해서라도 약속을 지키려고 했어요. 다음 날 아침 7시. "따르릉! 따르릉!" 정확하게 알람이 울렸어요. 윤서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가 다시 악마의 유혹에 빠졌어요. '세수하고 옷 입는 건 10분이면 충분해. 밥 먹는 시간 10분, 그럼 최소한 10분은 여유가 있는 거네?' "알람 울릴 때 일어난 거 아니었어?" "일어나긴 했는데." 윤서는 엄마를 볼 낯이 없었어요. 제시간에 일어나서 침대에서 뭉그적거리다 늦었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거든요. "엄마는 널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이게 뭐니?" "죄송해요." 윤서는 오늘도 아침밥을 먹다 말고 집을 나섰어요. 엄마의 한숨 소리가 걸음을 더 무겁게 했어요. "아차! 내 준비물!" 학교까지 허겁지겁 뛰어가서 교실에 도착했을 때 윤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등교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서두르다 보니 그만 미술 준비물을 깜빡하고 온 거예요. "학생이 대체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는 거야?" 결국 윤서는 호랑이 선생님한테 된통 꾸중을 들었어요. 방과 후, 윤서는 진영이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걸 물어보았어요. "넌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나?" "보통 9시까지 숙제하고 10시쯤 자서 아침 7시면 일어나." "그건 나랑 똑같은데." "다른 애들도 다 그럴걸?" 진영이는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어요. 윤서가 다시 물었어요. "아침에 일어나는 거 힘들지 않아?" "매일 그 시간에 일어나는 게 버릇이 돼서 별로 안 힘들어." 진영이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윤서는 벽에 붙여 놓은 시간표를 쳐다보았어요. '10시에 잠자기, 7시에 일어나기'라고 적힌 부분이 유난히 크게 적혀 있었어요. '남들한텐 당연한 일이 나한텐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걸까.' "오, 그래. 마침 나도 쉬려던 참이다." 아빠는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다 말고 윤서에게 의자를 내주었어요. "아빠는 새벽에 일어나서 글 쓰는 게 힘들지 않으세요?" 윤서가 물었어요. 평소 아빠는 늘 새벽 4시에 서재로 들어가서 윤서가 일어날 때쯤 거실로 나와 신문을 읽었어요. "아빠는 새벽에 글 쓸 때가 제일 힘이 덜 드는데?" "어째서요?" "조용한 새벽에 일어나서 움직이면 머리가 맑아지고, 또 하루를 여유 있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지." 윤서는 아빠의 대답이 뜻밖이었어요. "잠을 적게 자면 더 피곤한데 어떻게 머리가 맑아져요?" "잠을 적게 잤다고 생각하면 피곤할 수도 있어.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그만큼 시간을 벌었다고도 할 수 있지." "시간을 벌었다고요?" "시간표를 한 시간만 앞당겨도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단다." 윤서는 아빠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아빠는 새벽 4시에 글을 쓰고 또 뉴스를 보거나 신문을 읽고, 일주일에 두 번은 약수터에 가서 물을 떠 왔어요. 그러면서도 아빠는 항상 활기차 보였어요. "사람은 각자 자기한테 맞는 시간표가 있는 거야!" 아빠는 그렇게 말하고 빙그레 미소 지었어요. 자기한테 맞는 시간표! 방으로 돌아온 윤서는 이 말의 의미를 잘 되새겨 보았어요. 늘 아침 7시에 눈을 뜨기는 하면서 등교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하는 이유는 침대에서 5분만, 5분만 하고 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이었어요. 윤서에게 필요한 건 여유 있는 아침 시간이었어요. 우선 일어나는 시간을 당겨 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아빠는 알람이 울렸을 때 좀 더 누워 있고 싶으면 어떡해요?" 윤서는 저녁 식탁에서 다시 아빠한테 물었어요. "그럴 때는 일단 침대를 벗어난단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해 보면 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돼." 아빠가 너무 간단하게 대답해서 윤서는 약간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어요. 그래도 속는 셈 치고 일단 '오전 6시에 일어나기'로 시간표를 변경하고 알람을 맞췄어요. 다음 날 오전 6시. "따르릉! 따르릉!" 어김없이 알람이 울렸어요. 윤서는 얼떨결에 벌떡 일어나 알람을 꺼 버리고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어요. '따르릉, 따르릉!' 알람을 꺼 버리고 한참 지나도록 윤서의 마음속에는 알람의 메아리가 떠나지 않았어요. 어느새 잠은 다 달아나고 정신은 말똥말똥했어요. '그럴 때는 일단 침대를 벗어난단다.' 어제저녁 아빠가 했던 말이 계속해서 뇌리에 스쳤어요. '지금 일어나 봤자 뭐 별로 할 일도 없잖아!' 윤서는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하려다 생각을 바꿨어요. 아빠 말대로 일단 침대를 벗어나 보기로 한 거예요.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우리 집 잠보가 웬일이래?" 방문을 열고 나가자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침대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새 시간은 30분이 지났지만 평상시에 비하면 엄청 일찍 일어난 거예요. 윤서는 나온 김에 세수부터 하기로 했어요. 세수를 하고 나니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어요. 아침 식사 시간까지는 아직 20분이나 남았어요. 윤서는 엊그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준비물부터 꼼꼼히 챙겼어요. "아, 맞다! 가족사진!"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요. 사회 시간 준비물인 가족사진 가져가는 것을 또 깜빡했던 거예요. 윤서는 아침밥도 든든히 먹고 기분 좋게 집을 나섰어요. 길가에 예쁜 봄꽃들이 피어 있었어요. 항상 마음이 급해서 못 보고 지나치던 풍경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어요. 윤서는 서두를 필요 없이 천천히 여유롭게 걸어서 학교에 도착했어요. "어? 네가 웬일이냐?" 한발 늦게 교실에 들어온 진영이가 화들짝 놀라 물었어요. "내일부턴 아마 내가 일등으로 학교에 올걸!" 윤서는 이참에 지각 대장 꼬리표를 떼어 내기로 마음먹었어요. 오늘은 아빠가 약수터 가는 날이에요. 윤서는 6시 알람이 울리자마자 미련 없이 침대를 벗어났어요. "피곤하지 않니?" "아니요. 저도 아빠랑 같이 약수터 갈래요!" 윤서는 신이 나서 운동화를 찾아 신고 아빠를 따라갔어요. 아빠와 함께하는 아침 산책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이른 시간인데 벌써 약수터에서 내려오는 사람도 있었어요. 윤서가 한창 꿈나라에 있을 시간에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어요. 모처럼 상쾌한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니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어요. 무엇보다 기분 좋은 일은 아빠와 단둘이 오붓하게 거닐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늘 혼자 산책하다가 윤서랑 같이 나오니까 참 좋구나!" 일낙천금 일낙천금이란 한번 승낙한 것은 천금같이 귀중하다는 뜻으로, 약속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에머슨은 이런 말을 했어요. "누구나 약속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는 것은 누구한테나 쉽지 않은 일이다." 약속은 그 사람과 나와의 계약 같은 거예요. 문서에 사인을 하는 것만 계약은 아니지요. 그러니까 약속은 서로의 마음에 사인을 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어요. 약속이 깨지면 믿음도 깨지기 마련이지요. 물론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대개 이런 사정이라는 것도 조금만 주의하면 생기지 않을 문제들인 경우가 많아요. 약속을 하기 전에 신중하게 한 번 더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노자는 이렇게 말했어요. "가벼운 승낙은 믿기 어렵고, 너무 쉽게 보이는 일에는 반드시 어려움이 따른다." 한번 한 약속이 천금과 같이 되려면 반드시 지키려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약속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사실이에요. 일낙천금 한번 승낙하면 그것이 천금과 같다는 뜻으로, 일단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말이에요. 효도의 진정한 의미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율곡 이이(1536~1584)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이는 열세 살 때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뽑혀 '구도장원공' 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어요. 이이는 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효자로서도 지금껏 널리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위인이랍니다. 율곡 이이의 공부법 율곡 이이 선생님의 공부법은 아래의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입지(뜻을 세우다) 공부법' 입니다. 실천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워라 두 번째 '교기질(기질을 바로잡다) 공부법' 입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주변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가능하다, 공부하는 체질로 바꿔라 세번째 '혁구습(잘못된 옛 습관을 버려라) 공부법' 입니다. 몸에 밴 잘못된 옛 습관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씩 없애나가는 것입니다. 잘못된 옛 습관을 타파하라 네 번째 '구용구사 공부법' 입니다. 9가지의 바른 몸가짐과 9가지 의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서 기본자세를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옛 습관의 자리를 수신으로 채워라. 다섯째 '일목십행 공부법' 입니다. 늘 책을 곁에 두고 시간 날 때 마다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공부의 가치를 더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서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여섯째 '택우문답 공부법' 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보완해 공부를 더욱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벗과 함께 논쟁하며 일취월장하라 구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발의 모습은 정중하게 하라. 둘째 손의 모습은 공손하게 하라. 셋째 눈의 모습은 단정하게 하라. 넷째 입의 모습은 멈추게 하라. (함부로 말하지 마라) 다섯째 말소리의 모습은 차분하게 하라. 여섯째 머리의 모습은 곧게 하라. 일곱째 기운의 모습은 엄숙하게 하라. 여덟째 서 있는 모습은 덕성스럽게 하라. 아홉째 얼굴빛의 모습은 굳세게 해야 한다. 구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라. 둘째 들을 때는 귀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하라. 셋째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넷째 용모는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다섯째 말은 충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여섯째 일할 때는 경건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일곱째 의문이 나면 물을 것을 생각하라. 여덟째 화가 나면 뒤에 야기되는 어려움을 생각하라. 아홉째 이득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라.
내 별명은 '공갈빵'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연후네 반은 이번 달에 학예회를 해요. 아이들이 직접 조를 짜서 솜씨 뽐내기를 하기로 했어요. 다들 저마다 솜씨를 뽐낼 수 있는 장기를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연후는 고민이 되었어요. ‘어쩌지?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에라, 모르겠다.’ 연후는 연극과 댄스 두 가지를 하기로 했어요. “연극이랑 댄스는 여러 명이 같이 연습을 해야 해. 다들 시간 약속을 하고 연습할 텐데, 둘 다 할 수 있겠어?” 친구들이 걱정스럽게 물었어요. “걱정 마. 약속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지키니까.” 연후가 자신있게 말했어요.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연후가 진수에게 물었어요. “진수야, 너는 이번 학예회 때 뭐해?” “나는 아무것도 안 해.” “왜?” 진수가 머뭇거리다가 말했어요. “사실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싶은데 피아노 반주를 해 줄 사람이 없어서 포기했어. 바이올린 독주도 가능하지만 피아노랑 협주하면 더 멋있거든.” 연후는 진수 어깨를 툭 치며 말했어요. “그런 거면 나한테 말을 하지. 내가 해 줄게.” “정말?” 진수가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어요. “하지만 연후야, 너는 연극이랑 댄스 두 가지나 하잖아. 거기에 내 바이올린 반주까지 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걱정 마. 나 김연후를 믿어 봐.” 연후는 자신 있게 말했어요. 학예회를 앞두고 아이들은 팀끼리 모여 연습을 했어요. 연후도 연극과 댄스 두 팀 사이를 오가며 연습에 참여했어요. 거기다가 연극 팀에서는 소품도 책임지게 되었어요. “연극 연습을 갈 때마다 뭐 이렇게 들고 갈 게 많아.” 연후는 소품 가방을 보고 짜증스럽게 말했어요. “어휴, 게다가 댄스는 외워야 할 동작이 많잖아. 그냥 음악 틀어 놓고 추는 것은 재미있는데, 이렇게 다른 친구들이랑 맞춰 추려니 쉽지 않네.” 연극과 댄스, 그리고 진수 반주 연습까지 하려니 시간이 모자랐어요. 연후는 슬슬 꾀를 내기 시작했어요. “오늘은 댄스 하고 바로 연극이네. 몸도 피곤한데 오늘은 하나만 가자.”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연후는 댄스 연습을 하러 학교 운동장으로 갔어요. “김연후, 얼른 와. 왜 이렇게 늦었어.” 댄스 팀을 맡고 있는 지연이가 소리쳤어요. “연후, 연극 연습하고 오나 보다. 두 개 다 하려니 힘들지?” 다른 친구가 슬쩍 연후 편을 들었어요. “연극 연습은 안 갔어. 피곤하기도 해서 집에서 쉬다 왔어. 어차피 내 역할이 그리 큰 게 아니라 나 없어도 잘 됐을 거야.” “그렇다고 약속을 안 지키면 어떻게 해.” “어차피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거야. 만약 좋은 역할을 줬다면 내가 약속을 깨는 일은 없었을 텐데.” 연후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어요. “그나저나 나는 어디에 서?” 연후가 묻자 지연이가 한쪽 자리를 가리켰어요. 응, 공갈빵 자리는 저기 끝.” “공갈빵?” 연후가 다시 묻자 지연이가 약간 당황한 듯 웃으며 말했어요. “아, 내가 빵이 먹고 싶나 봐. 헛소리가 나오네.” 지연이 말에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었어요. 연습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음악에 맞춰 조금씩 동작을 맞췄어요. 그런데 연후 혼자 자꾸만 틀렸어요. 김연후, 너 왜 자꾸만 틀리니?” “아, 미안. 몸이 아직 안 풀렸나?” 연후가 괜히 팔다리를 이리저리 흔들었어요. “몸이 안 풀리기는. 또 연습을 안 해 왔구나.” 아이들이 연후를 째려보며 투덜댔어요. 우리 옷도 맞춰 입자. 청바지에 빨간 티 어때?” 연습을 마친 지연이가 말했어요. “여자애처럼 빨간색이 뭐야.” 연후가 질색을 했어요. 그러자 지연이가 힐끗 쳐다보며 말했어요. “김연후, 너는 꼭 빨간색 티셔츠 입고 와! 안 그러면 진짜 눈에 띌 테니까. 어쩌면 동작이 하나도 안 맞니? 연습을 하기는 한 거야?” “걱정 마. 오늘은 진짜 집에서 연습할 테니까. 약속!” 연후가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말했어요. 하지만 지연이는 콧방귀를 뀌며 연후 손가락을 본체만체했어요. “공갈빵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데 누가 손가락을 걸어?” 지연이는 연후가 듣지 못하게 작게 속삭였어요. 댄스 연습을 마치자 연후는 연극 연습이 있다면서 먼저 갔어요. 뒷정리를 하던 친구들이 지연이에게 물었어요. “그런데 지연아, 연후한테 왜 공갈빵이라고 해?” “만날 공갈만 치잖아. 공갈빵이 겉은 빵빵해 보이지만 속은 텅 빈 게 꼭 연후 같아. 말은 번지르하게 하면서 약속은 하나도 지키지 않고.” 아이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킥킥거렸어요. “연후한테 딱 어울리는 별명이다.” “연후는 연습 약속도 안 지키니까 동작도 제대로 못 할 거야. 그리고 어차피 빨간 티도 안 입고 올 테니까 아예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하자.” “그래, 그래.” 아이들이 맞장구를 쳤어요. “어휴, 바쁘다 바빠. 연예인이 따로 없네.” 연극 연습을 하고 집으로 향하던 연후는 집 앞에서 진수를 만났어요. “김연후, 너 뭐야? 오늘 바이올린 반주 연습하기로 했잖아. 30분씩이나 늦으면 어떻게 해!” 그러잖아도 피곤한 연후는 진수 말에 짜증이 났어요. “30분 기다린 거 가지고 뭘 그래!” 연후가 오히려 짜증을 내자 진수는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화를 냈어요. “뭐? 시간 약속을 했잖아! 그럼 지켜야지! 아니면 사정이 있다고 미리 연락을 주든가.” 연후는 한숨을 푹 쉬고 진수에게 사과했어요. “알았어, 미안해. 내일은 약속 꼭 지킬게.” “연후야, 너 오늘 소품 가지고 온다면서?” 다음 날, 연극 연습을 하러 온 연후에게 성준이가 말했어요. “아, 깜박했다. 다음에는 가지고 올게.” 연후가 웃으면서 말했어요. 하지만 성준이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지난번에도 다음에 가져온다더니 또 약속을 어겼어. 지난 연습 때도 안 나오고 말이야. 도대체 넌 연극을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뭘 그렇게 화를 내고 그러냐? 다음에는 꼭 가지고 올게.” 연후도 조금 기분이 나빴어요. 대강 연습을 마치고 연후가 서둘러 나오며 말했어요. “나는 진수 연습하는 거 맞춰 주러 가야 해. 미안하지만 너희끼리 정리 좀 해. 나는 갈게.” 남은 아이들은 연후 자리는 비워 두고 연극 연습을 했어요. 연습을 하던 하영이가 투덜댔어요. “이게 뭐야. 소품이 없으니까 연습도 제대로 안 되고. 그리고 진수는 다른 애한테 반주 맡긴다던데 무슨 연습? 약속도 안 지키고 거짓말만 하고. 진짜 공갈빵이야.” “공갈빵?” 성준이 말에 지우가 냉큼 말했어요. “응, 연후 별명이 공갈빵이잖아. 댄스 팀 애들이 그러더라.” “그래? 그건 그렇고 우리는 어떻게 하지? 연후 아직 대사도 다 못 외운 거 같은데?” 성준이가 걱정스럽게 말하자 하영이가 말했어요. “그러면 연후는 불안하니까 다른 애를 알아보자. 내 짝이 연극하고 싶다고 하는데 그 애한테 맡기자.” 하영이 말에 지우도 성준이도 찬성했어요. “그래. 누가 해도 연습 약속만 잘 지키면 잘할 거야.” 아이들은 연후 역할을 다른 아이로 바꿔 버렸어요. 학예회 발표날이 되었어요. 성준이는 얼른 연극 팀으로 달려갔어요. “어, 이거 분장이 너무 진하면 다음 댄스 팀 할 때 부담이 되는데.” 연후가 너스레를 떨었어요. 그러자 성준이가 심드렁하게 물었어요. “너, 약속대로 대사는 다 외웠어?” “뭐, 내가 즉흥 대사로 하면 되니까.” 그러자 하영이가 말했어요. “너는 댄스 팀에나 신경 써. 너 부담될까 봐 이미 내 짝한테 부탁했으니까.” 하영이의 쌀쌀맞은 말에 연후는 살짝 놀랐어요. “어, 그래? 하긴 댄스 팀이 날 더 원하더라고.” 연후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댄스 팀으로 갔어요. “자자, 내가 왔습니다. 그러면 어?” 연후는 댄스 팀이 모인 곳에 갔다가 깜짝 놀랐어요. “김연후, 그럴 줄 알았어! 혼자 파란 옷 입고 왔네?” 지연이 말이 연후 가슴에 콕콕 찔렸어요. 지연이는 연후가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말했어요. “어차피 네 자리는 맨 끝이라 잘 보이지도 않아. 댄스 안 해도 되니까 그냥 진수 반주나 하러 가.” 연후는 얼굴이 빨개져서 자리로 돌아왔어요. “진수는 어디 있지?” 연후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렸어요. 그런데 진수는 지민이랑 같이 있었어요. 연후가 진수를 부르려는 순간, 입을 다물고 말았어요. 지민이 손에 악보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에요. 결국 연후는 연극도, 댄스도, 반주도 못 했어요. 아무것도 못 하고 자리에 앉아 아이들의 공연을 보기만 했지요. “뭐야, 다들! 왜 나는 안 끼워 주냐고!” 연후는 화가 나 두 볼이 빵빵해졌어요. 그러자 마치 얼굴이 진짜 공갈빵처럼 보였어요. 이 말은 사자소학에 나오는 말이에요.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지요. 자신이 한 말은 상대방과의 약속이에요. 그 말과 행동을 지키지 않으면 약속을 어기는 것이고, 그렇게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믿음도 신용도 떨어져요. 또 남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히기도 해요. 만일 건물을 지을 때 정해진 약속대로 하지 않는다면 튼튼한 건물을 지을 수 없어요. 자칫 잘못해서 건물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요. 그뿐 아니라 교통 법규도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약속이에요. 만약 교통 법규를 어긴다면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약속은 크든 작든 모두 소중해요. 만약 우리가 친구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친구와 사이가 멀어질 거예요.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미덥지 못한 아이라고 야단을 맞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약속을 잘 지킨다면 나에 대한 신뢰가 쌓여 언제 어디서는 환영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답니다. 효도의 진정한 의미.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 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이는 열세 살 때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뽑혀 ‘구도장원공’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어요. 이이는 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효자로서도 지금껏 널리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위인이랍니다. 율곡 이이의 공부법. 율곡 이이 선생님의 공부법은 아래의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입지(뜻을 세우다) 공부법’입니다. 실천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 ‘교기질(기질을 바로잡다) 공부법’입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주변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세 번째. ‘혁구습(잘못된 옛 습관을 버려라) 공부법’입니다. 몸에 밴 잘못된 옛 습관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씩 없애나가는 것입니다. 네 번째. ‘구용 구사 공부법’ 입니다. 9가지의 바른 몸가짐과 9가지의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서 기본자세를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일목십행 공부법’입니다. 늘 책을 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공부의 가치를 더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택우 문답 공부법’ 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보완해 공부를 더욱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구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발의 모습은 정중하게 하라. 둘째. 손의 모습은 공손하게 하라. 셋째. 눈의 모습은 단정하게 하라. 넷째. 입의 모습은 멈추게 하라. 다섯째. 말소리의 모습은 차분하게 하라. 여섯째. 머리의 모습은 곧게 하라. 일곱째. 기운의 모습은 엄숙하게 하라. 여덟째. 서 있는 모습은 덕성스럽게 하라. 아홉째. 얼굴빛의 모습은 굳세게 해야 한다. 구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라. 둘째. 들을 때는 귀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하라. 셋째.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넷째. 용모는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다섯째. 말은 충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여섯째. 일할 때는 경건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일곱째. 의문이 나면 물을 것을 생각하라. 여덟째. 화가 나면 뒤에 야기되는 어려움을 생각하라. 아홉째. 이득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라.
내가 도와줄까?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월요일 아침, 담임 선생님이 전학생을 데리고 들어왔어요. "다들 주목! 오늘부터 너희들과 함께 공부할 친구를 소개하겠다. 김진호, 3학년 3반 친구들한테 인사해야지?" 선생님 소개가 끝나자 진호라는 아이가 인사를 했어요. "안녕? 난 김진호라고 해." 인사는 그게 다였어요. 반 아이들 사이에선 맥 빠진 웃음소리가 흘러나왔어요. 진호는 순간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어요. "인사 다 했으면 저기 가서 앉아." 선생님이 비어 있는 호준이 옆자리를 가리켰어요. 빈자리가 하나뿐이라 호준이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조금은 당황스러웠어요. 진호는 천천히 호준이 옆자리로 왔어요. 아이들이 두 사람을 힐끔거렸어요. 호준이는 괜히 어색해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어요. 진호는 왼쪽 다리가 불편한 친구였어요. 진호는 성격이 무척 점잖은 편이었어요. 그리고 항상 꼭 필요한 말만 했어요. 그렇다고 내성적이거나 소심(小心)한 편은 아니었어요. 수업 시간에 손 들고 질문이나 발표도 곧잘 했으니까요. "진호랑 짝꿍 되니까 어때?" 반 아이들이 은근히 진호에 대한 호감을 나타냈어요. 호준이도 진호와 친해지고 싶었어요. 사실 호준이는 성격이 활달한 편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남자치고는 약간 수줍음을 타는 편이지요. 때로는 말보다 행동이 먼저 나가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해요. 준비물이 많은 날은 가방을 두 개 들고 학교에 와야 돼요. 그런 날 진호는 걷는 게 더욱 불편해 보였어요. 하루는 호준이가 대신 가방을 집어 들었어요. "왜 이래?" 진호는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어요. "이건 내가 들어 줄게." 진호는 호준이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가방을 낚아챘어요. "신경 쓰지 마." 호준이는 까칠한 말투에 무척 자존심이 상했어요. 자기 딴에는 기껏 친절을 베풀었는데 본의 아니게 무안을 당했기 때문이에요. 이런 일이 있은 후로는 한동안 둘 사이가 서먹서먹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과학 시간이었어요. "실험 준비물은 모두 책상에 올려놓도록." 선생님은 앞줄부터 차례로 준비물 검사를 시작했어요. "어? 내 자석이 어디 갔지?" 당황한 호준이는 책가방을 뒤집었어요. 분명 준비물을 챙긴 것 같은데 자석이 안 보이는 거예요. "나한테 두 개 있어." 진호가 슬그머니 자석 하나를 옆으로 밀어 주었어요. 덕분에 호준이는 선생님의 꾸중을 면할 수 있게 되었어요. "고마워." 과학 수업이 끝난 뒤 호준이가 진호에게 말했어요. "됐어. 뭘, 그런 걸 가지고." 진호는 여전히 무뚝뚝한 말투였어요. 하지만 호준이는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이 봄눈 녹듯 사라지는 듯했어요. 진호가 호준이에게 물었어요. "학교 끝나고 뭐 할 거니?" "오늘?" "응." "할 거 없는데?" "그럼 같이 게임이나 할래?" 웬일로 진호는 자기 집에 가서 놀자는 말까지 했어요. "나도 오늘은 학원 안 가는 날이니까." 호준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오늘 호준이는 진호가 말수는 적어도 속정이 깊은 친구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어요. 진호네 집은 학교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어서 와라. 진호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우리 아들 잘 부탁한다." 진호 엄마는 호준이를 반갑게 맞아 주었어요. 집에 친구를 데려온 건 무척 오랜만이라고 했어요. 호준이는 진호와 게임도 하고 만화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진호 엄마가 만들어 준 간식도 맛있게 먹었어요. 한참 재미있게 놀다가 진호는 뜻밖의 말을 꺼냈어요. "사실 난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사귀지 못했어." "왜?" "내가 좀 그렇잖아. 다리도 이런 데다 성격도 안 좋고." 진호는 약간 쓸쓸한 미소를 지었어요. 진호는 자신이 왕따였다고 고백했어요. "네가 뭐 어때서." 호준이는 갑자기 말문이 막혀 버렸어요. 호준이는 진호에 대해 몰랐던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진호는 친구들이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나 행동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어떤 아이들은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나를 판단하려고 해. 쓸데없이 동정하거나 무시하거나. 그럴 땐 무척 화가 나." 진호는 자신을 남들과 똑같이 대해 주지 않는 친구들에게 서운한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미안해, 진호야. 지난번엔 내 생각이 짧았어." 호준이는 일방적으로 가방을 뺏으려고 했던 일이 떠올라서 진호에게 사과했어요. "아니야. 그땐 내가 좀 당황해서 그런 거야. 내가 먼저 사과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다행히 진호는 호준이를 오해하고 있지는 않았어요. "좋은 뜻으로 날 도와주려고 했던 거 알아." 말을 마친 진호는 겸연쩍은 미소를 떠올렸어요. '몸에 장애가 있다는 것은 어떤 걸까?' 호준이는 집에 돌아와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동안 장애를 가진 친구에게 몸이 불편한 것보다 더 힘든 게 있다는 사실은 미처 깨닫지 못했어요. 무엇보다도 진호가 전학 온 첫날 다리가 불편한 것을 알고는 속으로 부담스러워했던 일이 가장 미안했어요. "밥 먹다 말고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 친구 집에 놀러 간다더니 무슨 일 있었니?" 저녁 식탁에서 엄마가 눈치를 주었어요. "친구 누구네? 우리 아들 여자 친구라도 생겼나?" 아빠는 친구라는 말에 관심을 나타냈어요. 호준이는 문득 아빠가 다리를 다쳤을 때 일이 떠올랐어요. 퇴원한 후로도 아빠는 한동안 목발을 짚고 다녔어요. "아빠, 다리 다쳤을 때 제일 큰 문제가 뭐였어요?" "새삼스럽게 그건 왜?" 아빠가 물었어요. "친구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서요." 호준이는 진호와 있었던 일을 아빠한테 솔직히 털어놓았어요. "그거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빤 그때 제일 곤란한 게 다른 사람들보다 행동이 굼뜨다는 거였어." 아빠는 바쁜 시간에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면 남들한테 폐를 끼칠까 봐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했어요. "그 밖에도 노심초사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그렇고, 아빠는 심지어 엄마랑 같이 걸을 때도 속도를 못 따라가 미안하고 신경 쓰였단다." "당신도 참! 누가 들으면 내가 눈치라도 준 줄 알겠어요." "하하! 꼭 눈치를 줘야 신경이 쓰이나. 그만큼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는 얘기지." 아빠는 엄마를 돌아보며 회상하듯 말을 이었어요. "만일 그때 엄마가 아빠를 배려한다고 너무 티 나게 천천히 걸었어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거다." "왜요?" 호준이가 물었어요. "목적지까지 걷는 동안 내내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을 테니까." 아빠가 말했어요. "엄마가 일부러 아빠를 힘들게 하려고 그런 게 아니잖아요?" "당연하지. 그래도 결국 신세를 지게 됐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한 거야." "부자끼리 얘기하면서 자꾸 가만히 있는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할 거예요?" 엄마가 아빠를 밉지 않게 흘겨보다 생각난 듯 말을 이었어요. "하긴, 그때 당신이 좀 소심해진 것 같기는 해요." 아빠가 웃으면서 엄마 말을 받았어요. "당신 말이 맞아! 그래서 자기 몸이 자유롭지 않으면 가까운 사람한테도 예민해질 수 있으니 남에게 친절을 베풀 땐 더욱 신중해야 된다는 말을 호준이한테 해 주려던 참이야." 아빠는 드러내지 않고 마음을 써 주는 게 진정한 배려라고 했어요. "내가 널 위해서 이만큼 해 주고 있다는 걸 생색내는 건 상대방을 언짢게 하고 상처를 주는 행동이야." 호준이는 아빠의 조언을 마음에 새기고 학교로 향했어요. "안녕?" 교문 앞에서 만난 진호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어요. "안녕?" 호준이는 오늘따라 기분이 아주 좋았어요. 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공기도 다른 날보다 상쾌하게 느껴졌어요. 두 친구는 교실까지 나란히 걸어갔어요. 호준이는 진호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평소보다 걸음 폭을 살짝 늦췄어요. 걷는 동안 휘파람이 절로 나왔어요. "휘파람도 불 줄 알고, 너 제법이다?" "어? 너 지금 나 비웃었냐?" 호준이가 따져 묻자 진호가 처음으로 피식 웃었어요. 호준이와 진호는 통하는 게 많았어요. 좋아하는 게임도 똑같고, 오이는 싫어하면서 피클은 잘 먹는 것까지 닮았어요. "사실은 나도 친구 없어. 우리 이제부터 친하게 지내자!" 호준이가 이렇게 호감을 표현한 친구는 진호가 처음이에요. "그래, 좋아!" 호준이는 둘의 우정을 기념하는 뜻에서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던 속마음을 털어놓았어요. "엄마 아빠는 내가 이다음에 검사나 판사가 되길 원하는데 난 그런 거 흥미 없어.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거든!" "그게 뭔데?" "탐정!" "와! 진짜? 이따가 수업 끝나고 자세히 얘기해 줘라!" 진호가 의외라는 듯 눈을 반짝였어요. 호준이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비밀을 털어놓고 나니 둘 사이가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었어요. 방과 후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어요. 호준이는 사물함에서 우산을 꺼내 왔어요. "진호야, 너 우산 없어?" "어, 있어." 진호는 왠지 머뭇거리며 우산을 들고 왔어요. 교문 밖은 생각보다 길이 미끄러웠어요. 비로소 진호가 당황한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 호준이는 속으로 조마조마했어요. 하지만 만약 진호가 미끄러진다 해도 우산 때문에 몸이 둔해서 얼른 도와줄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진호야, 내 우산이 잘 안 펴지는데 같이 써도 될까?" "그래." 진호는 선선히 옆자리를 내주었어요.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어요. 호준이는 자연스럽게 친구를 부축할 수 있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다정했어요. 그때 안영이 온몸에 흰 눈을 뒤집어쓰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왕이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참 이상하오. 올해는 며칠씩이나 큰 눈이 내리는데도 추운 줄을 모르겠으니." 왕은 더워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안영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어요. "옛날 어진 임금은 배가 부르면 백성이 주릴까 생각하고, 따뜻한 옷을 입으면 백성이 추울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 말에 왕은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했어요. 즉 '부지천한'은 '자기 배가 부르면 종이 배고픈 줄 모른다'는 말과 같은 뜻의 사자성어로, 자신이 편한 것만 생각하면 남을 배려하기 어렵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에요. 효도의 진정한 의미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율곡 이이(1536~1584)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이는 열세 살 때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뽑혀 '구도장원공' 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어요. 이이는 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효자로서도 지금껏 널리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위인이랍니다. 율곡 이이의 공부법. 율곡 이이 선생님의 공부법은 아래의 여섯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입지(뜻을 세우다) 공부법' 입니다. 실천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워라. 두번째 '교기질(기질을 바로잡다) 공부법' 입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주변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가능하다, 공부하는 체질로 바꿔라 세번째 '혁구습(잘못된 옛 습관을 버려라) 공부법' 입니다. 몸에 밴 잘못된 옛 습관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씩 없애나가는 것입니다. 잘못된 옛 습관을 타파하라 네번째 '구용구사 공부법' 입니다. 9가지의 바른 몸가짐과 9가지의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서 기본자세를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옛 습관의 자리를 수신으로 채워라 다섯째 '일목십행 공부법' 입니다. 늘 책을 곁에 두고 시간 날 때 마다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공부의 가치를 더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서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여섯째 '택우문답 공부법' 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보완해 공부를 더욱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벗과 함께 논쟁하며 일취월장하라 구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발의 모습은 정중하게 하라. 둘째 손의 모습은 공손하게 하라. 셋째 눈의 모습은 단정하게 하라. 넷째 입의 모습은 멈추게 하라.(함부로 말하지 마라) 다섯째 말소리의 모습은 차분하게 하라. 여섯째 머리의 모습은 곧게 하라. 일곱째 기운의 모습은 엄숙하게 하라. 여덟째 서 있는 모습은 덕성스럽게 하라. 아홉째 얼굴빛의 모습은 굳세게 해야 한다. 구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라. 둘째 들을 때는 귀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하라. 셋째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넷째 용모는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다섯째 말은 충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여섯째 일할 때는 경건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일곱째 의문이 나면 물을 것을 생각하라. 여덟째 화가 나면 뒤에 야기되는 어려움을 생각하라. 아홉째 이득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라.
아름다운 양보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봄이 왔어요. 아직 바람은 쌀쌀하지만 나뭇가지에 볼록한 싹들이 튀어나오고 있어요. "콜록! 콜록!" 민정이는 겨울에 걸린 감기가 아직 낫지 않았어요. 기르던 고양이 체리가 없어져서 찾아다니느라 찬 바람을 많이 쐬었거든요. 체리는 어느 추운 겨울날 민정이가 학원을 다녀오다가 만난 새끼 길고양이예요. 민정이네 아파트 주차장에서 야옹거리며 울고 있었지요. "엄마를 잃어버렸니?" 민정이는 노란 줄무늬 고양이 체리가 가여웠어요. 그래서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지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체리는 민정이의 고양이가 되었지요. 체리는 엄마가 좋아하던 과일이에요. 민정이도 좋아하기 때문에 아빠는 가끔 체리를 사 가지고 왔어요. 그러면 엄마와 민정이는 서로 더 많이 먹으려고 경쟁을 했어요. 그런데 엄마는 작년에 병으로 돌아가셨어요. 민정이가 아홉 살 때였어요. 민정이는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슬펐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어요. 그냥 엄마가 안 계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지요. 내일 아침에 눈 뜨면 언제나처럼 엄마가 웃으면서 안아 줄 것 같았어요. 하지만 엄마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벌써 일 년째 민정이는 아빠와 살고 있어요. 아빠는 민정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면 밤늦게야 와요. 그래서 저녁에는 일해 주는 아주머니가 저녁을 차려 주고 가지요. 아빠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말수가 적어졌어요. 민정이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어서 두 사람만 집에 있으면 너무 조용했어요. 그런데 체리가 들어오면서부터 집에 조금씩 활기가 생겼어요. 체리가 후다닥 뛰어다니고 심심하면 놀아 달라고 앞에 와서 야옹거렸어요. "야아옹!"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안 놀아 줄 수가 없었어요. 아빠는 원래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전에도 키우고 싶었지만 키울 수가 없었지요. 하지만 이번에 민정이가 고양이를 안고 와서 이름을 체리라고 지었다니까 아빠도 키우는 걸 반대하지 않았어요. 민정이 마음을 아빠도 아는 것 같았어요. "체리야, 언니 왔어. 어디 있니?" 어느 날 집으로 돌아왔는데 체리가 보이지 않았어요. "청소하려고 문을 잠깐 열어 놓았는데 고양이가 나가 버렸구나." 일하는 아주머니가 미안해하셨어요. 민정이는 정신없이 밖으로 뛰어나가 체리를 불렀어요. "체리야! 체리야, 어디 있니?" 하지만 찬바람 부는 아파트 단지에 체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요. "아저씨, 저희 고양이 못 보셨어요? 노랗고 아직 어린데." 민정이는 경비실 수위 아저씨에게 물어보았어요. "글쎄다. 오늘은 추워서 아무도 보이지 않던데." 하지만 민정이는 수위 아저씨가 고양이만 보면 멀리 내쫓는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아저씨, 노란 줄무늬 고양이 보시면 꼭 좀 알려 주세요." "원래 길고양이들은 집에 있는 걸 싫어한단다." 울고 있는 민정이를 안아 주며 아빠는 그렇게 말했어요. "이렇게 날씨가 추운데 체리가 살 수 있을까요?" "그럼, 체리는 건강한 고양이니까. 분명 어디서 잘살고 있을 거야." 하지만 민정이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체리도 엄마처럼 죽으면 어떡해요?" 아빠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어요. 민정이가 울다 지쳐 잠든 뒤에도 아빠는 불 꺼진 거실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어요. 그리고 다시 옷을 입고 나가서 체리를 찾아다녔어요. 수위 아저씨와도 한참을 얘기했어요. 하지만 끝내 체리는 찾을 수 없었어요. 체리는 거짓말처럼 완전히 사라져 버렸어요. 민정이는 길에서 끔찍한 장면을 보았어요. 길가에 고양이 시체가 있었어요. 추워서 얼어 죽었는지 마른 몸집에 거친 털이 마치 걸레 뭉치 같았어요. 민정이는 체리가 생각나서 길에서 또 울었어요.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자꾸 나는지 민정이는 울면서도 엄마에게 미안했어요. "아마 체리도 죽었을 거야." 민정이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해 겨울은 너무 추웠어요. 민정이는 자다가도 겨울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나 소리 없이 울었어요. 엄마가 없다는 슬픔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어요. 다시 봄이 왔어요. 민정이는 3학년이 되었고 이제 조금 덜 울게 되었어요. 사실 울어 봤자 좋아질 게 하나도 없다는걸, 괜히 아빠만 슬프게 만든다는 걸 민정이는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밝은 표정을 하고, 아빠에게 이야기할 때도 조금은 높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아빠, 오늘은 은주네 집에 놀러 가기로 했어.” 민정이는 학교를 마치고 아빠와 통화를 했어요. "조금만 놀다가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올게." 민정이는 은주와 손을 잡고 꽃길을 걸었어요. "저 노란 꽃은 이름이 뭐야?" "바보, 저건 개나리야!" 민정이는 꽃 이름을 아는 은주가 부러웠어요. "우리 집은 화원을 하잖니!" 맞아요. 은주네 집은 화원을 해서 큰 온실에 꽃들이 가득하답니다. 은주네 집으로 가는 길에 민정이는 뭔가 눈을 끄는 물체를 보았어요. 그것은 담장 위를 걸어가고 있는 고양이였어요. 노란 줄무늬의 그 고양이는 체리 같았어요. 민정이는 정신없이 그 고양이를 따라갔어요. "체리야, 체리야!" 하지만 고양이는 듣지 못했는지 하얀 꽃들이 피어 있는 나무들 사이로 사라졌어요. "무슨 일이니, 민정아?" "저 고양이, 내가 잃어버린 체리 같아!" "그래? 그럼 찾아보자!" 민정이와 은주는 꽃나무 너머로 달려갔어요. 꽃나무 너머는 동네가 끝나고 산으로 가는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이었어요. "여긴, 집이 없는 곳인데?" 은주가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두 아이는 한참을 찾다가 결국 그냥 돌아오고 말았어요. "아빠, 오늘 체리를 닮은 고양이를 봤어요!" 아빠는 민정이를 한참 쳐다보다가 일어났어요. "그래? 그럼 우리 한번 찾아보자꾸나." 아빠와 민정이는 하얀 꽃나무가 있는 곳으로 갔어요. "매화가 예쁘게 피었구나." 아빠는 하얀 꽃을 보고 중얼거렸어요. 어디를 봐도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빠와 민정이는 손을 잡고 꽃을 바라보았어요. 그런데 그때 민정이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어요. 그 할머니는 폐지와 빈 병 같은 것들을 담은 작은 수레를 끌고 있었어요. 할머니는 담이 끝나는 곳으로 가서 사라졌어요. "아빠, 저쪽으로 가 봐요." 그리로 가니 담이 끝나는 곳에 작은 출입문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곳을 지나자 개나리가 활짝 핀 마당에 집이 한 채 서 있었어요. 그 집은 오래되어 낡았지만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어서 아늑해 보였어요. "실례합니다." 아빠가 사람을 부르자 안에서 아까 그 할머니가 나왔어요. 그런데 아까 본 할머니는 남루한 옷에 모자를 쓰고 허리도 굽어 보였는데, 이 할머니는 옷도 깨끗하고 허리도 꼿꼿했어요. "응? 아까 그 할머니가 아닌가?" 민정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어요. "제 딸이 키우던 고양이를 잃어버렸는데 혹시 노란 줄무늬 고양이를 보지 못하셨나요?" 그러자 할머니가 대답했어요. "흠, 우리 집에 고양이가 한 마리 있긴 하답니다. 하지만 그 고양이는 우리 손자가 키우지요."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럼 안으로 들어오세요." 방에는 민정이보다 어린 소년이 누워 있었어요. "우리 손자는 몸이 약해서 누워 있는 시간이 많지요. 병철아! 고양이는 어디 있니?" 아이는 이불을 들춰 그 안에 든 고양이를 보여 주었어요. "아빠, 체리예요!" 민정이는 아빠의 손을 꼭 잡았어요. 하지만 아빠는 고개를 저으며 다른 말을 했어요. "비슷하긴 하지만 아닌 것 같군요." 그러자 할머니는 다행이라는 듯 말했어요. "그래요. 우리 손자가 워낙 친구가 없어서 저 고양이가 다예요." "체리야, 체리야!" 민정이가 부르자 고양이는 민정이를 빤히 쳐다보았어요. "실례가 많았습니다. 워낙 닮았네요. 우리 딸이 가끔 보러 와도 될까요?" 그러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럼요. 내가 일하러 나가면 손자만 있답니다." "아빠, 왜 체리를 데리고 오지 않았어요?" 돌아오는 길에 민정이가 물었어요. "민정아, 이번엔 네가 양보하렴." 민정이가 답답하다는 듯 물었어요. "왜 제가 양보해야 해요?" 그러자 아빠가 민정이 손을 꼭 잡으며 말했어요. "엄마가 돌아가셔서 민정이가 너무 슬펐을 때 체리가 와서 친구가 되어 주었잖니. 그런데 이제는 병에 걸려 친구도 없는 꼬마가 민정이보다 더 체리가 필요할 거 같구나. 아빠 생각에는 민정이가 꼬마를 위해 체리를 양보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때?" 민정이는 한참을 말없이 걸었어요. "알았어요, 아빠. 그럼 체리 보러 가도 되는 거지요?" "그럼, 가서 아픈 동생하고도 잘 놀아 주렴." 아빠는 민정이를 꼭 안아 주었어요. 매화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어요. 사양지심 사양지심은 겸손히 마다하며 받지 않거나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유교의 성인인 맹자는 이렇게 말했어요.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이어서 다시 이렇게 덧붙였어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짊의 극치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 이 말은 맹자가 독창적으로 주장한 인성론으로 '사단설' 또는 '성선설'이라고도 해요. 성선설이란 사람의 본성은 원래 '선하다'라고 보는 것이지요. 반대되는 학설로는 '성악설'이 있어요. 즉 '사양지심'은 사단 가운데 하나로 예절의 극치이며 인간으로서 꼭 갖춰야 할 인성이란 말이지요. 여러분도 양보하는 마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워 인성을 쑥쑥 키워 보세요. 효도의 진정한 의미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율곡 이이(1536~1584)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이는 열세 살 때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뽑혀 '구도장원공' 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어요. 이이는 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효자로서도 지금껏 널리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위인이랍니다. 율곡 이이의 공부법 율곡 이이 선생님의 공부법은 아래의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입지(뜻을 세우다) 공부법' 입니다. 실천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워라. 두 번째 '교기질(기질을 바로잡다) 공부법' 입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주변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가능하다, 공부하는 체질로 바꿔라 세 번째 '혁구습(잘못된 옛 습관을 버려라) 공부법' 입니다. 몸에 밴 잘못된 옛 습관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씩 없애나가는 것입니다. 잘못된 옛 습관을 타파하라. 네 번째 '구용구사 공부법' 입니다. 9가지의 바른 몸가짐과 9가지의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서 기본자세를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옛 습관의 자리를 수신으로 채워라. 다섯째 '일목십행 공부법' 입니다. 늘 책을 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공부의 가치를 더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서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여섯째 '택우문답 공부법' 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보완해 공부를 더욱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벗과 함께 논쟁하며 일취월장하라. 구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발의 모습은 정중하게 하라. 둘째 손의 모습은 공손하게 하라. 셋째 눈의 모습은 단정하게 하라. 넷째 입의 모습은 멈추게 하라. (함부로 말하지 마라) 다섯째 말소리의 모습은 차분하게 하라. 여섯째 머리의 모습은 곧게 하라. 일곱째 기운의 모습은 엄숙하게 하라. 첫째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라. 둘째 들을 때는 귀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하라. 셋째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넷째 용모는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다섯째 말은 충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여섯째 일할 때는 경건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일곱째 의문이 나면 물을 것을 생각하라. 여덟째 화가 나면 뒤에 야기되는 어려움을 생각하라. 아홉째 이득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라.
나도 힘들단 말이야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신난다! 드디어 내일이야!" 사랑이는 일요일인 내일이 너무나도 기다려져 잠이 잘 오지 않았어요. 내일은 사랑이네 반 친구들과 함께 어린이 박물관에 체험 학습을 하러 갈 거예요. 예전에는 부모님이 데려다 주었지만 내일은 친한 친구들 여러 명이랑 가기로 했어요. 어린이 박물관에 가려면 지하철을 타고 열 정거장쯤 가야 해요. 하지만 이제는 어른들 도움 없이도 스스로 갈 수 있어요. 지난번에 가 보았기 때문에 길도 잘 알고 또 친구들 여럿이 함께 가기 때문에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박물관을 구경하고 오는 길에는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갈 거예요. 사랑이는 생각만 해도 신이 났어요. 사랑이는 아침 일찍 일어났어요. "사랑아, 만날 늦잠을 자더니 웬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그렇게 신이 나니?" 깨우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일어난 사랑이를 보고 엄마는 깜짝 놀랐어요. "그럼요! 저절로 눈이 떠지던걸요?" 사랑이는 세수를 하고 아침밥도 다 먹고 가방도 꼼꼼하게 챙겼어요.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하는지 잘 알고 있지? 무슨 일 있으면 엄마한테 바로 전화하렴. 다 구경하고 출발할 때도 꼭 전화해야 해. 알았지?" "아유, 엄마도 참. 저도 이제 어린애가 아니에요." 사랑이는 아직도 아기 취급을 하는 엄마 표정을 보자 슬며시 웃음이 나왔어요. 어른들 없이 친구들끼리 체험 학습을 가는 게 얼마나 신이 나는지 엄마는 모를 거예요. 사랑이의 부모님은 맞벌이를 해서 늘 바빠요. 아빠는 며칠 전 출장을 가서 오늘 밤에 돌아오기로 했어요. 엄마는 일요일인데도 잠깐 회사에 나갔다 와야 한대요. 그래서 사랑이는 주말에도 혼자 집에 있어야 할 때가 많았어요.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엄마가 사랑이를 할머니 댁에 데려다주고 "엄마 갔다 올게. 할머니랑 잘 놀고 있어."라고 했지만 이제는 많이 컸기 때문에 혼자 집에 있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 날이면 엄마는 "사랑아, 정말 미안해." 하면서 꼭 안아 주곤 했지요. 부모님이 모두 열심히 회사에 다니며 일을 하는 건 하나도 서운하지 않아요. 그래도 가끔은 엄마 아빠와 주말에 함께 여행을 가는 친구들이 조금 부럽기도 했어요. 오늘도 친구들과의 박물관 나들이가 아니었다면 혼자 집에서 라면이나 피자를 먹어야 했을 거예요. 그래서 더더욱 사랑이는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집을 나서서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면서 사랑이는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를 불렀어요. 날씨도 좋고 발걸음도 가벼웠어요. 사랑이와 친구들은 지하철 역 매표소 앞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사랑이는 자기가 일등으로 도착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매표소 앞에는 벌써 두 명이나 와 있는 게 아니겠어요? 서연이와 민혁이가 사랑이에게 손을 흔들었어요. "사랑이가 3등이네!" 일곱 명의 친구들이 함께 가기로 했으니까 앞으로 네 명이 더 와야 해요. 사랑이가 도착하자마자 맞은편에서 또 다른 친구들이 차례로 달려왔어요. 다들 들떠서 신이 난 표정이었어요. "모두 도착했어?" "아냐. 아직 준서가 안 왔어." "준서가 꼴등이네!" 그 말을 하기가 무섭게 저쪽에서 준서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어요. 모두 모였으니 박물관을 향해 출발해야 해요. "이쪽 방향으로 가는 것 맞지?" "응, 맞아! 반대 방향으로 타면 안 돼!" "내가 지난번에도 지하철 타고 갔다 와서 잘 알아. 너희는 나만 따라오면 돼." 일곱 명이 왁자지껄 재잘거리며 승강장에서 열차가 오기를 기다렸어요. 까르르 웃고 떠드는 소리에 주변의 어른들이 흘끗흘끗 사랑이와 친구들을 쳐다보았어요. 하지만 모두들 마냥 신이 났어요. 마치 신기한 모험을 떠나는 탐험대가 된 기분이었어요. 드디어 열차가 도착한다는 신호가 땡땡 울리며 "곧 열차가 들어오니 한 걸음 물러서 주십시오." 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어요. 사랑이와 친구들은 출입구 근처에서 나란히 줄을 서서 열차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어요. "얘들아, 줄을 서야 되는 거 알지?" "맞아. 안의 승객들이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다 내리면 그다음에 차례대로 타야 돼." "자, 문 양쪽으로 줄을 서자." 문이 열리자 다른 사람을 밀치거나 새치기하지 않고 차례차례 열차 안으로 들어갔어요. 주변에서 흘끔거리며 쳐다보던 어른들은 사랑이와 친구들의 의젓한 모습을 보고 기특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어요. 일곱 명 모두 열차에 타고 문이 닫혔는데 주말의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자리가 많이 비어 있어서 사랑이와 친구들은 모두 다 앉을 수 있었어요. "우와! 자리 많다!" "신난다! 모두 앉을 수 있어!" 이제 열 정거장만 가면 도착이에요. 지하철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달리자 창밖으로 멋진 바깥 풍경이 보였어요. 다들 고개를 돌려 창밖을 구경했어요. 그런데 일곱 정거장쯤 지났을 때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나는 게 아니겠어요? 음악이 들리는 곳을 바라보니 웬 할아버지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어요. 할아버지의 한 손에는 지팡이가 들려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작은 바구니가 들려 있었어요. 바구니 안에는 동전 몇 개가 들어 있고 어깨에 멘 카세트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어요. 그때 옆에 앉은 서연이가 소곤소곤 귓속말을 했어요. "거지 할아버지야." 자세히 보니 앞이 안 보이는지 눈도 반쯤 감고 있었어요. "불쌍하다." "그냥 모른 척해. 우리 엄마가 저런 사람들한테 함부로 돈 주지 말랬어." "그래도 불쌍하잖아?" "아냐. 가만히 있어."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바닥을 더듬거리며 열차 통로 한가운데를 따라 천천히 사랑이 앞을 지나갔어요. 다른 친구들을 보니 모두들 그 할아버지를 슬쩍 훔쳐보고만 있을 뿐 아무도 먼저 가서 바구니에 동전을 넣지는 않았어요. 사랑이는 친구의 말에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주머니 속의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안절부절못했어요. '얼른 달려가서 동전이라도 드릴 걸 그랬나?' 공연히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이미 할아버지는 다른 칸으로 가 버린 후였어요. "얘들아, 우리 이번 역에서 내려야 돼!"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내려야 할 역이 가까워 오고 있었어요. 박물관을 구경할 생각에 사랑이는 조금 전의 일을 잊고 다시 기운을 냈어요. 박물관은 지하철 역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박물관 안은 어린이들로 만원이었어요. 사랑이와 친구들은 이것저것 신나게 구경도 하고 매점에서 음료수도 사 먹었어요. 전에도 부모님과 와 본 적이 있었지만 친구들끼리 오니 더욱 재미있었어요. "얘들아, 우리 다음에도 또 오자!" "그래그래, 우리끼리 같이 오자." 신나게 돌아다니고 나니 슬슬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기 시작했어요. "배고파! 우리 이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떡볶이 먹을까, 햄버거 먹을까?" "난 떡볶이!" "나는 햄버거!" "나도!" 근처 가게에서 햄버거와 떡볶이를 배불리 먹은 사랑이와 친구들은 다시 지하철을 탔어요. 그런데 열차 안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어요. 사랑이는 박물관에서 열심히 돌아다닌 탓에 다리가 아파 서 있기가 힘들었어요. 빈자리가 나자 가까이 있던 친구들이 먼저 앉고, 다음 역에 도착했을 때 사랑이와 서연이도 운 좋게 나란히 앉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바로 다음 역에서 열차 문이 열리자 어떤 아주머니가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왔어요. 아주머니는 아기를 가졌는지 배가 불룩 나왔고 다섯 살쯤 된 아이는 칭얼거리고 있었어요. 그때 아이 손을 잡은 아주머니가 하필 사랑이의 앞으로 와서 손잡이를 잡았어요. 사랑이와 서연이는 동시에 눈이 마주쳤어요. '앗! 어쩌지? 어떡해야 하지?' '나도 다리가 아파서 일어나기 싫은데.' 사랑이는 앞에 서 있는 아이와 배부른 아주머니를 가만히 올려다보았어요. 손잡이를 꽉 움켜쥔 아주머니와 떼를 썼는지 눈물이 글썽글썽한 어린아이를 보자 사랑이는 더 이상 망설여지지 않았어요. 사랑이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어요. "아주머니, 여기 앉으세요!" 그러자 옆에 있던 서연이도 기다렸다는 듯 일어났어요. "아이랑 같이 여기 앉으세요."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며 말했어요. "어머나, 착하기도 해라. 둘 다 정말 고맙다!" 사랑이와 서연이는 서로를 쳐다보며 씩 웃었어요. 다른 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들도 이쪽을 보고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보였어요. 다리가 조금 아프기는 했지만, 사랑이는 왠지 풍선처럼 날아갈 것 같은 기분에 자꾸 웃음이 났어요. 측은지심 다른 사람의 불행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착한 마음씨를 뜻하는 말이에요. 측은지심이란 남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뜻합니다. 이 말은 중국의 사상가 맹자가 한 말이에요. 맹자는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아프거나 어려움에 놓인 것을 보면 '아, 내가 도와줘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아기가 위험한 물가에서 놀다가 물에 빠지려 할 때, 또는 강아지가 찻길에 있을 때 우리는 "위험해!"라고 소리치며 그 아기나 강아지를 도와주려고 할 거예요. 그것은 '착한 행동을 해서 칭찬받아야지'라든가 '아기를 구해 주면 부모님이 용돈을 많이 주시겠지'라는 이기적인 생각 때문은 아니에요. 남을 구해 주고 싶은 마음이 나도 모르게 저절로 솟아나기 때문이지요. 그 마음을 실천에 옮기고 나면, 누군가가 칭찬해 주지 않아도 '아! 내가 정말 잘했구나!'라는 뿌듯함이 느껴진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 안에 가지고 있는 착한 마음씨를 자주 꺼내 쓸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해야 해요. 효도의 진정한 의미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율곡 이이(1536 1584)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이는 열세 살 때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뽑혀 '구도장원공' 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어요. 이이는 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효자로서도 지금껏 널리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위인이랍니다. 율곡 이이의 공부법 율곡 이이 선생님의 공부법은 아래의 여섯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입지(뜻을 세우다) 공부법' 입니다. 실천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워라. 두번째 '교기질(기질을 바로잡다) 공부법' 입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주변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가능하다, 공부하는 체질로 바꿔라. 세번째 '혁구습(잘못된 옛 습관을 버려라) 공부법' 입니다. 몸에 밴 잘못된 옛 습관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씩 없애나가는 것입니다. 잘못된 옛 습관을 타파하라. 네번째 '구용구사 공부법' 입니다. 9가지의 바른 몸가짐과 9가지의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서 기본자세를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옛 습관의 자리를 수신으로 채워라. 다섯째 '일목십행 공부법' 입니다. 늘 책을 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공부의 가치를 더해갈 수 있기 때문 입니다. 독서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여섯째 '택우문답 공부법' 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보완해 공부를 더욱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벗과 함께 논쟁하며 일취월장하라. 구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발의 모습은 정중하게 하라. 둘째 손의 모습은 공손하게 하라. 셋째 눈의 모습은 단정하게 하라. 넷째 입의 모습은 멈추게 하라. 함부로 말하지 마라. 다섯째 말소리의 모습은 차분하게 하라. 여섯째 머리의 모습은 곧게 하라. 일곱째 기운의 모습은 엄숙하게 하라. 여덟째 서 있는 모습은 덕성스럽게 하라. 아홉째 얼굴빛의 모습은 굳세게 해야 한다. 구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라. 둘째 들을 때는 귀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하라. 셋째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넷째 용모는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다섯째 말은 충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여섯째 일할 때는 경건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일곱째 의문이 나면 물을 것을 생각하라. 여덟째 화가 나면 뒤에 야기되는 어려움을 생각하라. 아홉째 이득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라.
알고 보면 좋은 친구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에잇, 신경질 나!" 유리는 단짝 보미를 만나자마자 울상을 지었어요. 보미는 궁금해서 유리에게 질문을 퍼부었어요. "누구야? 네 짝은 누가 됐어? 민호랑 됐어?" "몰라, 몰라! 이제 나는 망했어. 망했다고!" 유리는 민호와 짝이 되지 못해 서운했어요. 민호는 얼굴도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해서 유리네 반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어요. 다들 '민호와 짝이 되었으면' 하고 속으로 바랐어요. 유리랑 제일 친한 친구 보미는 작년에 유리와 같은 반이었다가 올해는 다른 반이 되었는데, 거기서도 민호를 모르는 아이는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유리가 속상한 것은 민호랑 짝이 되지 못해서만은 아니었어요. 유리의 짝이 된 아이 때문이기도 했어요. "나는 진수랑 짝이 되었지 뭐야." "뭐? 진수? 하하하! 너 되게 불쌍하다." 보미는 키득키득 웃었어요. "진수 걔, 엄청 이상하대. 말도 잘 못하고." 진수는 작년에 전학을 왔는데, 성격이 무뚝뚝해서 말도 잘 안 하고 친구도 별로 없다는 것이었어요. 아이들이 진수에 대해 수군거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진수의 얼굴 색깔이 약간 까무잡잡한 데다 생김새도 조금 다르기 때문이에요. 유리도 얼마 전에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어요. "진수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야." "그럼 외국인이야?" "아빠는 한국 사람이지만 엄마는 한국 사람이 아니래." "바보야, 아빠가 한국 사람이면 진수도 한국 사람이지." "그런데 걔 한국말 잘 못하는 것 같던데?" 그때 유리는 민호랑 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느라 진수에게는 관심도 없었어요. 그러다 느닷없이 진수와 짝이 되어 몹시 실망했어요. 새로운 짝과 앉게 된 첫날, 유리는 아침부터 괜히 짜증이 났어요. 오늘따라 늦잠도 더 자고 싶고 학교 가기도 귀찮았어요. 유리는 어제 보미가 헤어지기 전에 말해 준 소문이 자꾸 떠올랐어요. "유리야, 너 그거 알아? 민호가 유정이 좋아한대. 우리 반 애들이 그러는데 둘이 사귄다고 하던걸?" "뭐? 말도 안 돼! 너희 반 애들이 뭘 안다고 그래?" 유리는 보미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콧방귀를 뀌었어요. 민호의 여자 친구가 유정이라는 걸 믿을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유정이는 그리 예쁘지도 않으면서 마치 자기가 공주라도 되는 것처럼 늘 잘난 척을 하니까요. '쳇, 그럴 리 없어. 유정이가 뭐가 예쁘다고!' "얘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게으름을 피워? 준비물은 다 챙겼어? 알림장은? 너 그러다 또 지각할라!" 유리가 걸핏하면 준비물을 빼먹고 학교에 가거나 심지어 알림장을 잃어버린 적도 몇 번 있었기 때문에 엄마는 아침마다 유리를 챙겨 주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아유 참, 다 챙겼다니까!" 엄마의 재촉에 유리는 책가방을 메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학교로 향했어요. 교실에 도착했더니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어요. 유리 옆자리에는 새 짝꿍 진수가 교과서를 보며 조용히 앉아 있었어요. 아이들 중 누구도 진수에게 말을 걸지 않았어요. 유리는 어쩐지 어색하고 불편해서 진수에게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자리에 앉았어요. 반듯하게 앉아 책장을 넘기는 진수를 힐끗 보면서 유리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어요. '얘 정말로 한국말 못 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유리는 짝꿍 진수에게 신경 쓸 수가 없었어요. 교실 반대편에 있는 민호가 유정이와 이야기를 하며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딱 들어왔기 때문이에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유리는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민호 쪽을 흘끔흘끔 쳐다보았어요. '쳇! 둘이 무슨 이야기를 저렇게 재미있게 하는 거야? 유정이 쟤는 오늘도 공주 같은 옷을 입고 왔네? 하나도 안 어울려!' 유리는 민호의 잘생긴 옆모습과 유정이의 얄미운 얼굴을 번갈아 보느라 선생님이 들어오는 것도 몰랐어요. 수업이 시작되어 마지못해 교과서를 펼치면서 유리는 마음속으로 단단히 결심했어요. '오늘은 꼭 민호한테 말을 걸어야지. 유정이 같은 애랑 사귀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그날 하루 종일 유리는 민호에게 말을 걸 기회를 만들려고 쉬는 시간마다 애를 썼어요.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민호 앞으로 지나가기도 하고, 거울을 보며 앞머리도 예쁘게 매만지고 옷매무새도 정리했어요. 혹시 눈이 마주치면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려고 목소리도 "흠, 흠." 가다듬었어요. 하지만 민호 곁에는 늘 여자아이들 몇 명이 둘러싸고 같이 장난을 치거나 떠들고 있어서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았어요. 급식 시간 후에 좋은 기회가 생겼어요. 교실 뒷문으로 들어오는데, 민호와 유정이가 교실 앞 칠판에 나란히 서서 분필로 낙서를 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마침 교실은 아이들이 아직 다 들어오지 않아서 조용했어요. '잘됐다! 지나가는 척하면서 인사해야지.' 유리는 심호흡을 하고 민호를 향해 발걸음을 떼었어요. 바로 그때, 유정이의 말소리가 유리의 귀에 똑똑히 들렸어요. "아까 유리가 계속 너 쳐다보더라?" "유리? 걔가 누구야? 맨 뒷줄에 앉은 애?" "아니, 창가 쪽에 앉은 진수 짝꿍." "아, 까만 애 옆에 앉은 못생긴 애가 유리구나?" "하하하! 맞아, 맞아! 너 되게 웃긴다!" 유정이가 까르르 웃자 민호도 킥킥 웃음을 터뜨렸어요. 민호는 분필로 계속 낙서를 하며 말했어요. "그런데 진수라는 애는 생긴 것도 이상하고 성격도 못됐다고 하더라?" "맞아. 한국말도 못 할 것 같고 왠지 기분 나빠. 근데 칠판에 낙서한 거 우리가 다 지워야 하는 거 아니야?" 유정이가 묻자 민호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어요. "쳇, 알 게 뭐야. 누군가가 지우겠지." 유리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어요. 발걸음을 멈춘 유리는 민호와 유정이에게 들키지 않게 교실 뒷문 밖에서 몸을 숨기고 가만히 서 있었어요. 방금 전 민호가 했던 말은 너무나 충격이었어요. 그동안 유리는 민호를 멋있고 착한 아이라고 생각했고 앞으로 친한 친구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민호는 유리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데다 심지어 못생겼다고 하다니! 그런 이야기를 유정이랑 하면서 깔깔 웃다니! 유리는 속이 상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어요. 그날 저녁 유리는 입맛이 없어서 밥을 반이나 남겼어요. "유리야! 맛이 없어? 너 좋아하는 햄도 있는데?" "먹기 싫어. 그만 먹을래요." 유리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엄마에게 물었어요. "엄마! 내가 못생겼어?" "뭐? 누가 그런 소리를 해?" "어떤 애가 그랬는걸." "어머머! 그 애는 눈이 엉덩이에 달렸나 보다! 우리 유리가 얼마나 예쁘고 똑똑하게 생겼는데!" "정말?" "당연하지! 다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마음이 비뚤어져 있어서 남도 그렇게 보이는 거야."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은 남을 배려할 줄 모른단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마구 하거나 이기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그게 얼마나 나쁜 것인지 깨닫지 못하지. 그런 아이가 하는 말이라면 신경 쓸 것도 없어. 알겠지?" 유리는 그날 밤 잠자리에 들면서 아까 엄마가 해 준 말을 떠올리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민호는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몰래 내 흉을 봤어. 그리고 나는 민호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겉모습만 보고 그 애가 착하고 멋있는 줄 알았어.' 그때부터 유리는 민호가 그렇게 잘생긴 것은 아니라고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이 착하거나 나쁘다고 하는 건 정말 바보 같아. 민호는 마음의 눈이 비뚤어져서 남을 생각할 줄 모르고 그래서 나한테 상처를 준 것인지도 몰라.' 유리는 다음 날 아침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어요. 간밤에 이것저것 생각을 하다 늦게 잠들었기 때문이에요. "이러다 정말 지각하겠다! 준비물 다 챙겼지?" 등교 준비를 돕느라 엄마는 난리가 났어요. 유리는 지각을 하지 않으려고 교문 앞에서부터 헐레벌떡 뛰어, 겨우 지각은 피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날 미술 시간이 시작되기 전, 준비물인 크레파스를 깜빡 잊고 안 가져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유리는 울상이 되었어요. "아까 책상 위에 챙겨 놓았는데 까먹었나 봐! 어떡하지?" 그때였어요. 짝꿍 진수가 유리에게 말했어요. "유리야, 내 크레파스 같이 쓰자." 진수는 크레파스를 유리 쪽으로 슬쩍 밀어 주었어요. 유리가 깜짝 놀라서 진수의 얼굴을 쳐다보자, 진수도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유리를 마주 보았어요. "어? 정말 네 거 써도 돼?" "당연하지. 마음대로 써도 돼." 아이들 말과 달리 진수는 한국말을 못 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상냥한 목소리와 친절한 말투가 우리나라 사람하고 똑같았어요. 유리는 머뭇거리며 물었어요. "애들이 너 한국말 할 줄 모른다고 하던데?" 그러자 진수는 씩 웃으며 대답했어요. "그렇지 않아. 나는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 사람인걸." 그때 진수의 스케치북에 있던 그림이 보였어요. 지난번 숙제였던 '우리 가족'의 그림이었어요. "너 그림 잘 그린다! 그런데 이건 누구야?" "이건 우리 엄마 아빠, 그리고 이건 형이랑 여동생." "우와! 너 동생도 있어?" "응. 일곱 살인데 정말 귀여워. 형은 6학년인데 나랑 우리 형은 떡볶이를 제일 좋아해." 그림 속에서 진수와 형은 떡볶이를 먹으며 환하게 웃고 있었어요. 유리는 반가워서 자기도 모르게 외쳤어요. "어! 나도 떡볶이 진짜 좋아하는데!" "정말? 나 학교 앞 '엄마 분식집' 떡볶이 좋아해." "나도!" "그럼 이따 학교 끝나고 떡볶이 사 먹으러 가자!" "그래!" 둘은 서로 마주 보며 활짝 웃었어요. 진수의 배려로 미술 시간을 무사히 마친 유리는 앞으로 둘이 좋은 친구이자 짝꿍이 될 것 같아 기분이 참 좋았어요. 동병상련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불쌍하게 여겨 도와준다는 말이에요. 동병상련이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기고 돕는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같은 병을 가진 사람끼리 서로를 불쌍하게 여긴다는 말이에요. 중국의 초나라에 오자서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못된 신하가 왕에게 고자질을 하여 아버지와 형님이 목숨을 잃고 말았어요. 그는 슬프고 억울하여 더 이상 초나라에서 살지 못하고 이웃 나라인 오나라로 떠났어요. 거기서 큰 공을 세우고 오나라 왕을 모시게 되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백비라는 사람이 오자서를 찾아왔어요. "저도 못된 신하의 고자질 때문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오자서는 예전의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은 그가 가여워, 그를 왕에게 소개해 주고 나랏일을 시키며 도와주었어요. 그런데 오자서가 백비를 도와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백비는 나중에 마음이 변해 오자서를 배신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마치 오자서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려는 마음씨를 갖고 있답니다. 효도의 진정한 의미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율곡 이이(1536 1584)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이는 열세 살 때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뽑혀 '구도장원공' 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어요. 이이는 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효자로서도 지금껏 널리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위인이랍니다. 율곡 이이의 공부법 율곡 이이 선생님의 공부법은 아래의 여섯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입지(뜻을 세우다) 공부법' 입니다. 실천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워라. 두번째 '교기질(기질을 바로잡다) 공부법' 입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주변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가능하다, 공부하는 체질로 바꿔라. 세번째 '혁구습(잘못된 옛 습관을 버려라) 공부법' 입니다. 몸에 밴 잘못된 옛 습관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씩 없애나가는 것입니다. 잘못된 옛 습관을 타파하라. 네번째 '구용구사 공부법' 입니다. 9가지의 바른 몸가짐과 9가지의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서 기본자세를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옛 습관의 자리를 수신으로 채워라. 다섯째 '일목십행 공부법' 입니다. 늘 책을 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공부의 가치를 더해갈 수 있기 때문 입니다. 독서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여섯째 '택우문답 공부법' 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보완해 공부를 더욱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벗과 함께 논쟁하며 일취월장하라. 구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발의 모습은 정중하게 하라. 둘째 손의 모습은 공손하게 하라. 셋째 눈의 모습은 단정하게 하라. 넷째 입의 모습은 멈추게 하라. 함부로 말하지 마라. 다섯째 말소리의 모습은 차분하게 하라. 여섯째 머리의 모습은 곧게 하라. 일곱째 기운의 모습은 엄숙하게 하라. 여덟째 서 있는 모습은 덕성스럽게 하라. 아홉째 얼굴빛의 모습은 굳세게 해야 한다. 구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라. 둘째 들을 때는 귀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하라. 셋째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넷째 용모는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다섯째 말은 충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여섯째 일할 때는 경건하게 할 것을 생각하라. 일곱째 의문이 나면 물을 것을 생각하라. 여덟째 화가 나면 뒤에 야기되는 어려움을 생각하라. 아홉째 이득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라.
엄마 아빠는 자기들 맘대로야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효주야, 어서 일어나렴. 학교 가야지!" "예, 엄마!" 효주는 부스스 몸을 일으키면서 기지개를 켰어요. 부엌에서 구수한 냄새가 풍겼어요. 엄마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가 봐요. "엄마, 계란말이 꼭 해 줘요!" "알았어. 얼른 씻고 나오렴." 잠시 후 식탁 앞에 앉으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말이가 맛깔나게 접시에 담겨 있었어요. "우와, 맛있겠다!" 효주는 허겁지겁 계란말이부터 집어 먹었어요. "다른 반찬이랑 골고루 먹어. 어떻게 넌 좋아하는 반찬만 먹니?" "헤헤, 그래도 맛있는 걸 어떡해요." 식사를 마친 효주는 출근하는 아빠와 함께 현관으로 나섰어요. “엄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효주는 수업을 마치자마자 단짝 친구인 예나와 학교 앞 슈퍼로 달려갔어요. 어제 예나랑 군것질하기로 약속했거든요. 아침에 '아빠, 천 원만 주세요'라고 아양을 떨며 아빠를 조른 것도 그 때문이었지요. 효주는 예나와 과자 코너로 쪼르르 달려갔어요. "우리 '뽀셔뽀셔' 먹자!" "난 불고기 맛이 좋아. 넌 뭐 먹을래?" "난 양념 치킨 맛이 좋아!" 효주와 예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과자를 다 먹어 치웠어요. 그런 다음 둘은 손을 맞잡고 깡충거리며 걸었어요. 그때 분식집에서 매콤한 냄새가 흘러나왔어요. "와, 떡볶이다! 정말 먹고 싶어. 너 돈 있니?" "아니, 아까 다 써 버렸잖아." 효주는 군침만 삼키고 그냥 돌아서야 했어요. 효주는 피아노 학원을 마치고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섰어요. 그때 작년에 같은 반 친구였던 규호가 눈에 들어왔어요. "규호야, 안녕!" "와우, 효주야, 안녕!" 규호는 환환 표정을 지으며 인사했어요. "오랜만이네. 근데 너 이거 먹을래?" 규호가 봉투에서 붕어빵 하나를 꺼내며 물었어요. "어디서 난 붕어빵이야?" "요 앞에서 샀어. 아주 맛있어." "잘 먹을게." 효주는 붕어빵을 오물오물 뜯어 먹으며 집으로 들어갔어요. 오늘은 아빠가 일찍 퇴근했어요. "여보, 나 왔어." "웬일로 이리 일찍 오셨담." 엄마가 황급히 부엌에서 나오며 말했어요. "오늘 한턱 쏠 테니, 간만에 외식이나 하지?" "뭔 일이래? 해가 서쪽에 뜨려나." "저번에 말한 새로운 일이 오늘 성사됐어." "어머, 정말이에요? 축하해요." 며칠 전부터 새로운 일을 계약한다고 했는데 아마 잘 풀린 모양이에요. "효주야, 너도 어서 옷 입어. 아빠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효주는 냉큼 점퍼를 걸치고 아빠에게 달려갔어요. 효주와 엄마는 아빠 차에 올라탔어요. "그건 그렇고, 뭘 먹지?" 효주는 아까 군침만 삼킨 떡볶이가 눈에 아른거렸어요. "떡볶이, 난 떡볶이 먹을래요!" "안 돼! 아빠가 힘들게 일하고 오셨는데 영양가 있는 음식 든든하게 먹어야지." "싫어! 난 무조건 떡볶이야!" 효주는 과자도 먹고, 붕어빵도 먹은 터라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어요. 매콤하고 달짝지근한 떡볶이만 먹고 싶을 뿐이었어요. "요런, 못된 녀석 같으니라고. 오늘은 간만에 하는 외식이니까 오랜만에 일식집에 갈 거야. 여보, 일식집으로 가요." "흥, 너무해!" 드르륵 일식집 문이 열리더니 눈앞에 진수성찬이 펼쳐졌어요. 하지만 효주는 오직 떡볶이 생각만 간절했어요. "효주야, 여기 쫄깃쫄깃한 회 좀 먹으렴." 아빠가 회를 한 점 집어서 효주에게 건네며 말했어요. "뭐가 쫄깃쫄깃하다는 거예요. 질기기만 한걸." 뾰로통한 표정으로 효주가 말했어요. "여기 바삭바삭한 튀김도 먹으렴." "냄새가 이상해요. 느끼해." 효주는 두어 젓가락 깨작깨작하다 말았어요. "너 정말 이럴래?" "여긴 떡볶이도 없잖아요?" "뭐야! 여보, 그만 집에 가요. 이 녀석 때문에 더는 못 먹겠어!" 엄마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어요. 마는 집에 돌아와서도 화를 냈어요. 효주는 문을 쾅 닫고 침대에 올라가 이불을 뒤집어썼어요. '쳇, 엄마 아빤 자기들 맘대로야! 내가 먹고 싶다고 해도 들어주지도 않고, 만날 엄마 아빠 먹고 싶은 것만 먹잖아!' 효주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텔레비전 볼 때도 어린이 프로그램 보고 있으면 드라마 본다고, 뉴스 본다고, 엄마 아빠 맘대로 채널을 막 돌리면서.' 효주는 너무 억울하고 속이 상했어요.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 아빠가 밉기만 했어요. 다음 날 효주는 아침을 굶은 채 학교에 갔어요. 딩동댕!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어요. 효주는 급식판을 들고 예나 옆에 앉았어요. 효주는 터덜터덜 힘없이 집을 향해 걸었어요. 도로를 건너 공원에 다다르자 놀이터가 보였어요. 놀이터에는 몇몇 친구들이 까르르 웃으며 재미있게 놀고 있었어요. 효주는 친구들이 하나둘 모두 떠날 때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어요. 친구들이 모두 떠나자 휑한 놀이터에서 효주는 홀로 그네에 앉아 있었어요. 학원에도 집에도 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게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 보니 어느덧 주위가 어둑어둑해졌어요. "효주야! 너 여기 있었구나. 학원도 안 가고. 엄마가 너 얼마나 찾았는데!" 고개를 들어 보니 엄마가 눈앞에 있었어요. 효주는 와락 눈물을 터뜨리며 엄마 품에 안겼어요.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집에 돌아오자 아빠가 효주를 꼭 안아 주었어요. "원 녀석도. 다음부터 이러면 안 된다. 네 엄마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하마터면 경찰서에 전화할 뻔했잖아." 아빠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요. "아빠,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너, 엄마 아빠가 네 말 안 들어주고 뭐든지 맘대로 한다고 삐쳐서 그런 거지?" 아빠는 엄마에게 눈을 찡긋하며 말했어요. "맞아요. 우리 공주님 얼마나 속상했을까." 엄마도 활짝 웃으며 효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효주가 좋아하는 반찬 만들었으니 어서 먹으렴." 엄마가 식탁에 앉으며 말했어요. 배가 고팠던 효주는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어요. 엄마가 효주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어요. "다음부터는 뭐든지 결정할 때 우리 가족이 함께 상의하도록 하자. 그렇게 할 수 있지?" 효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오늘은 주말, 즐겁게 노는 날이에요.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 보니 아빠는 베란다에서 뭔가 짐을 챙기고 있고 엄마는 부엌에서 왔다 갔다 꽤 바빠 보였어요. "엄마 아빠, 뭐 해요?" "오늘 날씨도 좋으니까 캠핑 갈 거야!" "야호, 신난다!" 효주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하러 갔어요. "효주가 제일 좋아하는 계곡으로 갈 거야." "와우! 얼른 가요! 가서 물놀이하고 싶어!" 역지사지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한다는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본다는 말이에요. 역지사지 역지사지란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역지사지는 맹자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에요. 중국 하나라의 우임금 시절을 태평성대라고 해요. 임금이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들이 고생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 당시 농업에 관한 일을 맡았던 '후직'이라는 사람은 훌륭한 관리였어요. 안회는 누추한 집에서 하루 한 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 물만 먹고 살았어요. 그렇게 가난하게 살면서도 항상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위에 나오는 세 사람의 공통점은 어질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맹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어요. "안회도 태평성대에 살았다면 우임금이나 후직처럼 행동했을 것이며, 우임금과 후직도 난세에 살았다면 안회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셋 다 천성이 어질기 때문에 처지를 바꿔 생각해 봐도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는 말이에요. 효도의 진정한 의미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율곡 이이(1536~1584)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이는 열세 살 때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뽑혀 ‘구도장원공’ 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어요. 이이는 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효자로서도 지금껏 널리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위인이랍니다.
선생님은 나만 미워해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담임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두레는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갔어요. 오늘은 2학년 1학기 첫날이에요. 1학년 때 선생님은 두레를 많이 예뻐했어요. 작은 일에도 기분이 으쓱해지도록 칭찬을 해 주셨지요. "김새미 선생님이 우리 반 담임 선생님으로 오신대!" 교실에선 아이들이 신나게 떠들고 있었어요. "정말이야?" "교무실 게시판에서 봤어." 두레는 귀가 번쩍 뜨였어요. 김새미 선생님은 학교에서 제일 멋쟁이 선생님이에요. 다른 반 아이들이 부러워할 걸 생각하니 괜히 어깨가 들썩거려지기도 했어요. 두근두근. 교실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던 두레는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두레는 조금이라도 빨리 선생님과 인사하고 싶어서 복도로 나갔어요. 다른 반 교실 앞에도 몇몇 아이들이 서 있었지요. 잠시 후, 선생님들이 한 분씩 복도로 들어서기 시작했어요. 두레는 고개를 삐죽 내밀고 김새미 선생님을 찾았어요. "다들 교실로 들어가자." 옆 반 선생님이 방긋 웃으며 아이들을 교실로 데려갔어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두레는 김새미 선생님이 앞으로 다가오자 꾸벅 인사를 했어요. 그런데 뜻밖에도 선생님은 엄한 표정으로 두레를 쳐다보았어요. "넌 왜 조회시간에 나와 있어?" "저, 저는 그냥." 두레는 당황해서 우물쭈물 대답했어요. 이미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던 선생님이 두레를 돌아보았어요. "안 들어오고 뭐 해?" 두레는 약간 주눅이 들어 교실로 들어갔어요. 곧 조회가 시작됐지요. 선생님은 출석부를 펼쳐 들고 차례로 이름을 불렀어요. '교실에 그냥 있을 걸. 괜히 나갔어.' 두레는 아까 복도에서 무안했던 일을 떠올리자 머릿속이 복잡해졌어요. 선생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강두레! 왜 대답 안 하니?" 선생님이 굳은 얼굴로 두레를 보고 있었어요. 두레는 기분이 몹시 우울했어요. 선생님과 잘 지내고 싶었는데 첫날부터 실수만 하고 말았으니까요.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두레를 반갑게 맞아 주었어요. "오늘 담임 선생님과 첫 인사한 날이지?" "응." 두레는 힘없이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갔어요. "학교에서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니?" 엄마가 따라 들어와서 걱정스럽게 물었어요. 두레는 별로 말할 기분이 아니었지요. "표정이 왜 그래? 선생님이 뭐라 그러셔?" 엄마는 계속 꼬치꼬치 캐물었어요. "네가 뭘 잘못하기라도 한 거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두레는 속이 뜨끔해서 괜히 엄마한테 짜증을 냈어요. 두레는 학급 회의 시간에 여간해선 의견을 내놓지 않는 편이에요. 속으로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남들 앞에서 얘기하는 게 쑥스럽기 때문이에요. 다음 날, 두레네 교실에선 반장 선거가 열렸어요. "반장이 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 봐요." 선생님 말씀이 끝나자 교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어요. "지원자가 아무도 없어?" 선생님은 실망한 얼굴로 아이들을 돌아보았어요. "그럼 이름 순서대로 반장을 정할 건데, 반대하는 사람?" 아무도 선생님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어요. "오늘부터 2주일 동안 강두레가 반장이야." 출석부를 훑어보던 선생님은 두레를 반장으로 정했어요. 한글 순서대로 적은 출석부에 두레 이름이 맨 앞에 있었던 거예요. "반장, 이제부터 우리 학급을 잘 부탁한다!" 선생님의 따뜻한 미소에 두레는 서운했던 마음이 말끔히 사라졌어요. 집에 돌아오자, 엄마 아빠도 그 소식을 듣고 "잘됐다, 두레야.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우리 두레, 어깨가 무겁겠는걸?" 하며 축하해 주었어요. 생각지도 못한 반장이라니! 두레는 너무 갑작스런 일이기는 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어요. 두레는 반장이 하는 일을 곰곰이 따져 보았어요. 우선 떠오르는 건 수업 시간에 반 아이들을 대표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차렷! 선생님께 경례!'하고 구령하기와 숙제 걷기였어요. 두레는 이 정도야 뭐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일단 용기를 내기로 했어요. 무엇보다 반장이 되면 선생님과 더 가까워질 거라고 기대했거든요. 하지만 이건 착각이었어요. 막상 반장이 되고 나니 선생님께 야단맞을 일만 늘어났어요. "반장! 교실이 왜 이렇게 시끄러워?" "반장이면 학급을 잘 이끌어야지!" 반 아이들이 떠들거나 저희들끼리 싸워도 모든 화살은 반장인 두레에게 날아왔어요. 선생님은 진짜 두레만 미워하는 걸까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간 두레는 얼굴이 활짝 펴졌어요. "오프라 이모!" 미국에 사는 오프라 이모가 온 거예요. "두레야, 이건 반장이 된 기념으로 주는 거야." 이모는 예쁜 토끼 인형을 주면서 말했어요. "배에 녹음기가 들어 있어. 이야기 들어 주는 인형이야." 역시 두레 마음을 알아주는 건 이모밖에 없어요. 두레는 남들 앞에 서면 자기도 모르게 울렁증이 생겨 말도 못 하고 끙끙 앓는 때가 많아요. 이모는 두레 성격을 알고 말하기 연습을 시키려는 거예요. 두레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모한테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소통이 부족한 것 같은데?" 이모는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게 소통이라고 했어요. 두레는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서로 마음을 알아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선생님이 반장한테 바라는 게 뭔지 생각해 보렴." "아이들이 싸우지 않고 조용히 자습하는 거!" "그럼 친구들과 먼저 소통을 해야겠구나." 이모는 점점 알쏭달쏭한 말만 했어요. 저희들끼리 떠들고 싸우는 아이들과 무슨 수로 소통을 할까요? "네가 친구들을 잘 설득하면 되지." "아, 몰라. 반장은 너무 어려워!" 이모는 두레가 머리를 감싸는 걸 보고 빙그레 웃었어요. "어려워할 것 없어. 네 생각을 말로 전달하는 연습을 하면 돼." 두레는 이모가 조언해 준 대로 토순이에게 말을 걸어 봤어요. "난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내가 뭐 도와줄 건 없니?" 토순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어요. 두레는 마음속에 있는 말을 토순이에게 들려주면서 몇 번이고 계속 말하기 연습을 했어요. 그랬더니 차츰 울렁증이 가라앉기 시작했어요. 이모는 학기 초에 잠깐 오해가 있었던 것 때문에 두레가 선생님을 너무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어요. "선생님도 학생들 마음을 다 알 순 없어. 직접 네 의견을 말하면 잘 들어 주실 거야." 생각해 보니 두레는 선생님께 자신의 의견을 말한 적이 없었어요. 다음 날, 두레는 조회가 시작되기 전 교무실로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선생님,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음, 반장. 네 생각은 어떤데?" 선생님은 부드러운 말투로 되물었어요. "자습 시간에 한 명씩 돌아가며 책을 읽게 하면 어떨까요?" 두레는 용기를 내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오, 그것참 좋은 방법이구나. 선생님은 반장을 믿는다. 잘할 수 있지?" "네!" 두레는 마침내 속이 후련해져서 교무실을 나왔어요. 교실은 여전히 시끌시끌했어요. 두레는 국어 책을 들고 차분하게 앞으로 나갔어요. "얘들아, 선생님 말씀 전할게." 그러자 교실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어요. "선생님이 조회 시작 전에 번호 순으로 책을 읽어 보라고 하셨어." 두레는 아이들에게 한 쪽씩 국어 책을 읽도록 시켰어요. 그때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어요. "수고했어, 반장." 수업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알아차린 선생님은 믿음직한 눈빛으로 두레를 바라보았어요. "어, 강두레. 제법인데?"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농담을 건넸어요. 두레는 친구들과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어요. 생각해 보니 소통은 어려운 게 아니었어요. 무엇보다도 기쁜 건 선생님이 두레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예요. 방과 후, 두레는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향했어요. 답답했던 속이 확 풀리는 기분이었지요. '오프라 이모에게 고맙다고 해야지!' 두레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기 무섭게 오프라 이모를 찾았어요. 이모는 손님방에서 짐을 꾸리고 있었어요. "이모, 벌써 가려고?" "며칠 있으면 이모부 생신이야." 오프라 이모는 저녁 비행기를 타야 한대요. 두레는 이모와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웠어요. "두레야, 이 액자의 글은 네 책상 앞에다 놓고 항상 기억해." 이모가 준 액자에는 다음과 같은 짧은 글귀가 적혀 있었어요. 진정한 소통은 남의 얘기를 먼저 들어 주는 것이다. 이청득심 '남의 말을 들음으로써 마음을 얻는다'는 뜻으로, 자기 말만 앞세우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자세히 귀를 기울이라는 뜻이에요. 이청득심이란 귀 기울여 들으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중국은 당나라의 태종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기에 가장 많은 발전을 이루었어요. 이때를 중국 문화의 황금시대라고 한답니다. 당나라 태종이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게 된 것은 위징이라는 신하의 말을 귀담아들었기 때문이에요. 태종은 왕위에 올랐을 때 위징에게 조언을 구했어요. "내가 어떻게 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겠소?" "간혹 신하들의 의견이 둘로 나뉠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양쪽 의견을 들으면 나라의 앞날이 밝게 되지만, 한쪽 의견만을 들으면 미래가 어둡게 됩니다." 위징은 이 한 가지만 잊지 않는다면 항상 나라를 바르게 다스릴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당 태종은 위징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어요. 아무리 신임하는 신하가 내놓은 의견이라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이유를 자세히 들어 본 후에 판단을 내렸지요. 처음엔 왕을 두려워해서 입 다물고 있던 신하들도 왕이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어요. 그 결과 정치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고, 태종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답니다. 효도의 진정한 의미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율곡 이이(1536~1584)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이는 열세 살 때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뽑혀 '구도장원공' 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어요. 이이는 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효자로서도 지금껏 널리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위인이랍니다. 율곡 이이의 공부법 율곡 이이 선생님의 공부법은 아래의 여섯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입지(뜻을 세우다) 공부법' 입니다. 실천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워라. 두번째 '교기질(기질을 바로잡다) 공부법' 입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주변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가능하다, 공부하는 체질로 바꿔라. 세번째 '혁구습(잘못된 옛 습관을 버려라) 공부법' 입니다. 몸에 밴 잘못된 옛 습관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씩 없애나가는 것입니다. 잘못된 옛 습관을 타파하라. 네번째 '구용구사 공부법' 입니다. 9가지의 바른 몸가짐과 9가지의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서 기본자세를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옛 습관의 자리를 수신으로 채워라. 다섯째 '일목십행 공부법' 입니다. 늘 책을 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공부의 가치를 더해갈 수 있기 때문 입니다. 독서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여섯째 '택우문답 공부법' 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보완해 공부를 더욱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벗과 함께 논쟁하며 일취월장하라. 구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발의 모습은 정중하게 하라. 둘째 손의 모습은 공손하게 하라. 셋째 눈의 모습은 단정하게 하라. 넷째 입의 모습은 멈추게 하라. 함부로 말하지 마라. 다섯째 말소리의 모습은 차분하게 하라. 여섯째 머리의 모습은 곧게 하라. 일곱째 기운의 모습은 엄숙하게 하라. 여덟째 서 있는 모습은 덕성스럽게 하라. 아홉째 얼굴빛의 모습은 굳세게 해야 한다. 구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라. 둘째 들을 때는 귀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하라.
수상한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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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_고학년
태훈이는 아파트 10층에 살아요. 어느 날, 11층이 이사를 가고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었어요. 공사하는 소리가 며칠 계속되자 엄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쳤어요. "어휴, 시끄러워! 도대체 공사를 언제까지 하는 거야!" 참다못한 엄마가 위층으로 올라갔어요. "좀 조용히 공사할 수는 없나요? 아래층에서 너무 시끄러워요." "아니, 공사를 어떻게 조용히 해요? 공사해도 괜찮다고 사인해 주셨잖아요. 그러면 좀 참으셔야지요!"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관리 사무실에 민원 넣기 전에 제발 소음 좀 줄여 주세요!"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려왔어요. 공사가 시작되고 열흘쯤 지난 뒤 위층이 이사를 왔어요. "엄마, 이삿짐 올라와요!" 태훈이와 엄마는 어떤 사람이 이사 올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베란다에 나가 이삿짐이 올라가는 것을 보았지요. 가전제품이 올라가고 책상이 올라갔어요. "엄마, 초등학생이 있나 봐요. 내 책상이랑 비슷해." 태훈이가 신이 나서 말했어요. 그다음에 피아노가 올라갔어요. "흠, 혹시 밤늦게까지 피아노를 치는 건 아니겠지?" "요즘 여름이라 문 열어 놓고 치면 더 시끄러울 텐데." 엄마가 걱정스럽게 말했어요. 엄마는 좀 예민한 편이에요. 그래서 작은 소리에도 잠을 잘 못 자요. 위층이 열흘쯤 공사를 하는 동안 엄마는 두통약을 몇 번이나 먹었어요. 하지만 엄마의 걱정과는 상관없이 태훈이는 어떤 친구가 이사를 온 것인지 그것만 궁금했어요. 다음 날, 태훈이는 복도에서 옆 반 기영이를 만났어요. "태훈아, 오늘 우리 반에 남자애가 전학 왔어. 그런데 너희 집 위층에 산다고 하더라." "그래?" 태훈이는 반가운 마음에 옆 반으로 달려갔어요. 그리고 전학 온 친구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어요. "안녕, 나는 너희 아랫집에 사는 김태훈이라고 해." 그런데 위층 아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사했어요. "으응, 나는 박민규라고 해." 그렇게 인사만 하고 민규는 휙 자리를 피했어요. '뭐야, 이상한 녀석이네?' 태훈이는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그날 태훈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아파트 아주머니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어요. "어머, 정말? 왜 그랬지?" 무슨 이야기인지 엄마 표정이 좋지 않았어요. 엄마가 아주머니들과 헤어지는 것을 보고 태훈이는 얼른 엄마에게 다가갔어요. "무슨 일 있어요?" "우리 윗집 말이야. 우리 집만 쏙 빼놓고 이웃들한테 이사 떡을 돌렸단다. 다들 떡이 맛있었다고 하네." "정말요? 에이, 뭐야. 왜 우리 집만 따돌린 거예요?" 태훈이도 기분이 나빠 입을 삐죽거렸어요. "아마 공사할 때 엄마가 뭐라고 한마디 했다고 그랬나 봐." "정말 속 좁은 사람들이네. 그럼 시끄러운데 말도 하지 말고 살라는 거야, 뭐야." 엄마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렇게 툴툴거렸어요. 그날 저녁, 태훈이는 엄마 아빠와 함께 저녁을 먹었어요. '쿵쿵쿵!' 세 식구는 밥을 먹다 말고 천장을 올려다보았어요. "지금 위층에서 나는 소리지?" "뭐야, 우리 집만 쏙 빼고 떡을 돌리더니 일부러 층간 소음까지 내는 거야?" 엄마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말하자 아빠는 그럴 리가 있냐며 무심하게 말했어요. "애들 발걸음 소리겠지." "아직 9시도 안 되었는데, 뭘." "이게 어디 애들 발걸음 소리예요? 일부러 발을 굴러서 쿵쿵 소리를 내는 것 같은데!" 엄마 말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피아노 소리가 들렸어요. "어휴, 이제는 피아노까지!" 엄마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어요. 피아노 소리는 9시가 넘도록 그치지 않았어요. "흠, 아파트에서 지켜야 할 기본예절도 모르나!" 엄마는 두통약을 한 알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어요. 그날 이후로도 위층은 저녁 무렵에 느닷없이 쿵쿵거리고 9시가 넘어서까지 피아노를 쳤어요. "도저히 못 참겠어!" 어느 날 저녁, 그렇지 않아도 이사 떡 때문에 기분 상하고 두통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진 엄마가 위층에 가서 한마디 하겠다고 나섰어요. 그러자 아빠가 말렸어요. "참고 나중에 얘기해. 괜히 이웃 간에 감정 상하지 말고." "왜 만날 우리가 참아야 해요?" "분명 위층이 잘못을 하고 있잖아요!" "아파트에서 살다 보면 층간 소음 정도는 이해해야지. 우리도 애 키우면서, 속 좁게 왜 그래?" "누가 속이 좁다고 그래요? 정말 속이 좁은 게 누군데!"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어요. 층간 소음 때문에 엄마 아빠까지 다투는 것을 보니 태훈이의 마음도 좋지 않았어요. 태훈이는 학교에서 민규를 봐도 인사를 하지 않았어요. 인사는커녕 못 본 척하거나 흘겨보았어요. '너희 집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피해를 보는지 알아?' '한 번만 걸려 봐. 아주 혼쭐을 내 줄 테니까.' 태훈이는 속으로 벼르고 있었어요. 그때 옆 반 친구인 기영이가 태훈이에게 말했어요. "태훈아, 민규랑 싸웠니? 둘이 말은 안 하고 왜 서로 노려보기만 해?" "싸우면 풀리기라도 하지." "어디서 저런 속 좁은 녀석이 이사를 와서! 진짜 우리 가족이 많이 참고 있다!" 태훈이는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나서 씩씩거렸어요. 기영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어요. "민규가 속이 좁아? 친구들 배려도 잘하고 착하던데?" "아니야! 속 좁은 녀석이야!" 태훈이는 이사 떡 생각이 나서 다시 그렇게 말했어요. 민규네가 이사 온 지 보름 정도가 지났어요. 낮에는 그럭저럭 괜찮다가 저녁때만 되면 층간 소음이 심해졌어요. 태훈이 아빠가 출장을 간 어느 저녁이었어요. 층간 소음을 참다못한 엄마가 결국 위층에 인터폰을 했어요. "여기 아래층인데요, 지금이 몇 시예요? 아파트에 살면서 서로 배려를 해야지, 도대체 상식이 있는 거예요?" 엄마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어요. 상대편에서 뭐라고 했는지 갑자기 엄마 얼굴이 빨개졌어요. "뭐, 뭐라고요? 좋아요!" 엄마는 인터폰을 끊고 씩씩거리며 현관문을 나섰어요. 태훈이도 드디어 일이 터지나 싶어서 엄마를 따라갔어요. 엄마는 계단에서 잔뜩 화가 난 위층 아주머니와 딱 마주쳤어요. 아주머니 뒤에는 민규도 서 있었어요. "이보세요, 그렇게 쿵쿵거리면 아래층은 어떻게 해요!" 엄마가 화가 나서 말했어요. "저희야말로 죽겠어요. 그렇게 매일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워 대면 위층은 어떻게 살라는 거예요?" "담배라니요?" "지금 아저씨가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고 계시잖아요!" 그때 태훈이가 말했어요. "저희 아빠 어제 출장 가셨는데요?" 위층 아주머니는 말문이 막혀 잠시 머뭇거렸어요. 그러자 엄마가 의기양양하게 말했어요. "피아노도 그래요. 밤 9시 넘어서까지 치면 어떻게 해요.아파트에서는 주의해야 하는 거 모르세요?" 위층 아주머니가 한층 수그러든 목소리로 말했어요. "방음 공사를 하고 왔는데 그래도 들린다면 미안해요. 우리 큰애가 예술고등학교에 다니거든요." 아주머니 말에 엄마가 갑자기 반가운 얼굴로 말했어요. "어느 예술고등학교요? 저도 예술고등학교 다녔거든요." "그래요? 바로 길 건너에 있는 학교예요." "어머! 저도 그 고등학교 나왔어요." 어느새 엄마 얼굴에서 화난 표정이 싹 사라졌어요. 그러자 아주머니도 어느새 부드러운 얼굴로 말했어요. "그러면 저희 딸 선배네요. 더운데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잠깐 저희 집에서 차 한잔하고 가세요. 그렇지 않아도 지난 일요일에 이사 떡 돌릴 때 댁에 안 계셔서 인사도 제대로 못 했네요." "네? 이사 떡, 저희 집만 안 주신 게 아니고요?" 그때 태훈이가 팔꿈치로 엄마를 쿡쿡 찔렀어요. "엄마, 우리 수영장 갔던 일요일이었나 봐요." 그러고 보니 엄마도 태훈이랑 아빠가 하도 덥다고 해서 점심때 수영장에 갔다가 늦게 온 것이 기억났어요. "이사를 하다 보니 정신이 없어서 이 여름에 떡을 냉장고에 안 넣었지 뭐예요. 그래서 다 쉬어서 다음에 드린다는 게 이렇게 되었네요." 이야기를 들어 보니 민규네는 이사 오자마자 화장실에서 담배 냄새가 나 아래층에서 피우는 거라고 생각했대요. 그래서 관리실에 알려 방송도 하고 안내문도 붙였는데 계속 담배 냄새가 올라와 참다못해 일부러 발을 구른 거라고 해요. "그것도 모르고 저희는 공사할 때 제가 뭐라고 해서 이사 떡도 안 돌리고 층간 소음도 일부러 크게 낸다고 오해했네요. 미안해요." 엄마 얼굴이 빨개졌어요. "뉴스에서 보니까 화장실 담배 냄새는 바로 아래층이 아니라 더 아래층에서 올라오기도 한대요. 담배 냄새날 때 바로 얘기했으면 이런 오해가 없었을 텐데, 저도 미안해요." 아주머니도 엄마에게 사과했어요. 태훈이와 민규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태훈이가 슬쩍 민규에게 속삭였어요. "그래서 매일 그렇게 나를 노려봤냐?" "그러는 너는?" 태훈이와 민규는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어요. "저 아래층 담배 냄새가 너희 집까지 올라갈 줄은 몰랐어." "누나 방은 방음 공사를 해서 괜찮을 줄 알았지." 태훈이와 민규는 다시 한마디씩 주고받았어요. "그러니까 이게 엄마들이 서로 말을 안 해서 생긴 오해구나." 태훈이 말에 민규도 얼른 말을 받았어요. "우리라도 말할 걸 그랬어. 괜히 서로 노려보기만 하고." "그래, 맞아. 싸우더라도 서로 말을 했으면 더 큰 오해는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태훈이와 민규는 서로 마주 보며 멋쩍게 웃었어요. 그걸 보고 태훈이 엄마와 아주머니도 호호호 웃음을 터뜨렸어요. 대면공화 심격천산 상대방과 내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말을 해도 마음 사이에는 천 개의 산이 가로막혀 있다는 뜻이에요. 대면공화 심격천산이란 얼굴을 대하고 함께 이야기하나 마음은 천 개의 산이 막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이에요. 아무리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상대라고 해도 그 말에 진심이 들어 있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기가 참 어려워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어요. 물은 아무리 깊어도 들어가면 끝을 알 수 있지만, 사람 속은 들어가 볼 수 없으니 알 수 없다는 말이에요. 그러므로 가까이 지내고 있다 해서 무조건 마음까지 가까운 것은 아니랍니다. 여러분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아는 친구라고 믿었는데 가끔 섭섭한 일이 생겨 다투는 경우가 있을 거예요. 내가 그 친구가 아니고, 그 친구 역시 내가 아니기 때문에 친구의 마음을 모두 헤아리기는 쉽지 않아요. 또 아무리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고 해도 진심이 담겨 있지 않으면 좋은 관계를 지켜 나갈 수 없답니다. 그러므로 친한 사이일수록 진심으로 대하고 예의를 지켜야 해요. 그렇게 내가 먼저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자연스럽게 참된 소통의 문이 열린답니다.
동생은 나를 귀찮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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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나랑 놀아 줘!” “어휴, 저리 가! 언니 숙제해야 된다고 했잖아!” “히잉, 나 심심하단 말이야!” 희주는 동생 희연이가 옆에서 계속 칭얼거리자 화가 나기 시작했어요. 학교 갔다 와서 영어 학원과 수학 학원까지 차례로 갔다 오고 나면 희주는 힘이 쭉 빠졌어요. 집에 오면 학원 숙제와 학습지도 해야 하고 내일 가져갈 학교 준비물도 미리 챙겨 두어야 해요. 사실은 희주도 마음속으로는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텔레비전도 보고 싶고 컴퓨터 게임도 실컷 하고 싶어요. 하지만 숙제를 하지 않으면 학원 선생님한테 혼나고 학습지를 빼먹고 안 해 놓으면 엄마한테 혼날 거예요. 희연이는 희주의 책상 앞에서 계속 징징거렸어요. “나랑 놀고 나서 숙제하면 되잖아!”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니? 넌 이제 잘 시간이니까 빨리 잠이나 자.” “언니 미워!” 희연이는 인형을 품에 안은 채 쿵쿵 발소리를 내며 자기 방으로 가서는 문을 탁 닫았어요. 조금 전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던 동생의 눈빛이 떠올라 희주는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하지만 나도 할 일이 많은걸.’ 희주는 주섬주섬 학습지를 펼치기 시작했어요. 요즘 들어 동생은 떼쟁이가 되었어요. 다니던 영어 유치원을 그만두게 되어 심심해서 그런가 봐요. 얼마 전 희주는 엄마가 아빠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어요. “아무래도 희연이 유치원을 옮겨야겠어요. 희연이랑 안 맞는 것 같아요. 단어 쓰기 숙제도 여섯 살짜리가 하기엔 너무 어려운 것 같고.” “요즘엔 그 정도는 해야 한다더니? 당신이 거길 꼭 보내야 한다고 해서 보낸 거잖아.” “처음엔 그런 줄 알았지요. 다른 엄마들이 다들 좋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희연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네. 며칠 전에는 유치원에서 바지에 오줌을 쌌다면서 원장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지 뭐예요.” 안방 문틈으로 새어 나오던 엄마 아빠 목소리가 작아져서 그 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어요. 그 다음 날부터 희연이는 정말로 유치원에 안 갔어요. 학교 끝나고 집에 왔더니 동생은 쿵쿵 뛰어나오며 언니한테 자랑을 했어요. “언니! 나 오늘 집에서 놀았다!” “집에서 놀았다고? 유치원 안 갔어?” “응! 엄마가 이제 안 가도 된대.” 그날따라 동생은 신이 난 것 같았어요. 마치 아기 때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엄마한테 어리광도 부리고, 밥 먹을 때마다 투정을 하면서 안 먹겠다고 도망 다니던 아이가 웬일인지 밥도 잘 먹는 게 아니겠어요? 늦잠도 잘 수 있고 영어 숙제도 안 해도 되니까 기분이 좋았나 봐요. 희주는 그런 동생이 부러웠어요. “아아! 나도 늦잠도 자고 숙제도 안 하면 좋겠다!” 하지만 숙제하기 싫다거나 학원에 가기 싫다는 말을 엄마한테 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 얘기를 하면 엄마는 야단을 칠 테니까요. 희주는 언제부턴가 이렇게 생각했어요. ‘내 마음속 생각을 엄마한테 전부 솔직하게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럼 싫어하실 거야.’ 엄마가 다니라고 한 학원을 빼먹지 않고 열심히 다니고 숙제는 미루지 않고 꼬박꼬박 해 놓아야 마음이 더 편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야 엄마가 화도 안 내고 얼굴도 찌푸리지 않으니까요. 어쩌다 너무 졸려서 숙제를 못 하거나 그날 해 놓기로 한 학습지를 깜빡 잊고 못 했을 때 엄마는 한숨을 쉬며 말했어요. “이게 다 너를 위한 건데...” 그때 희주는 차라리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가 화낼 때보다 조용히 타이를 때 희주의 마음은 더 답답하고 어두워졌어요.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면 숙제도 학습지도 전부 열심히 해야 했어요. 물론 숙제도 학원도 희주가 좋아하는 건 하나도 없지만 말이에요. 희주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우리 반 진서는 나보다 학원을 더 많이 다니던데 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동생 희연이가 유치원에 안 가게 된 다음부터 밤마다 귀찮은 일이 생긴 거예요. 희주는 자기 전에 숙제를 다 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동생은 언니 바쁜 줄도 모르고 놀아 달라며 방해를 했어요. 숙제할 시간을 빼앗는 동생이 얄미워 화를 냈지만 동생이 토라져서 혼자 잠들고 나면 희주는 그제야 미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동생이 하자는 대로 다 하면 그날 해야 할 일을 못 할 것 같았어요. “숙제를 해야 하는데 나더러 어쩌라고!” 희주는 동생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애써 모른 척했어요. 며칠 후,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희주는 그날도 자기 전에 숙제를 하려고 가방에서 책을 꺼냈어요. 그런데 왠지 어제와는 다른 기분이 들었어요. ‘왜 이렇게 허전하지?’ 책상 앞에 앉아 학습지를 꺼낼 때 희주는 비로소 깨달았어요. ‘어? 오늘은 희연이가 놀아 달라고 떼쓰지 않네?’ 그러고 보니 희연이는 저녁을 먹자마자 일찍부터 잠이 든 모양이에요. 희주는 동생이 방해를 하지 않고 일찍 잠이 들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휴, 오늘은 숙제를 더 빨리 끝낼 수 있겠다. 얼른 해치우고 자야지.’ 희주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학원 숙제와 오늘 해야 할 학습지를 책상 위에 차곡차곡 펼쳤어요.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에요. 숙제하는 내내 자꾸만 동생이 궁금해서 자기도 모르게 방문 쪽을 힐긋거리게 되는 것이었어요. 금방이라도 동생이 문을 확 열고 들어와서는 “언니, 나랑 놀자!” 하며 귀찮게 굴 것만 같았어요. 희주는 괜히 목이 마른 것 같아서 물을 한 잔 마시려고 부엌으로 가며 동생 방 쪽을 쳐다봤어요. 하지만 희연이의 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물을 마시고 다시 방으로 돌아오는데 이번에도 안방에서 엄마 아빠의 말소리가 들렸어요. 희주는 발소리를 줄이고 쫑긋 귀를 세웠어요. “그래서 오늘부터 새 영어 유치원에 보냈다고?” “네. 첫날이라 긴장했나 봐요. 피곤한지 일찍 잠들었어요.” “새로운 환경이라 힘들었겠지. 그런데 굳이 벌써부터 영어를 가르쳐야만 하는 거야?” “벌써라니요. 요즘엔 다 일찍부터 한다니까요.” “그래도 아이들은 그저 뛰어놀아야 하는 건데.” “어휴, 답답한 소리 하지 마요. 요즘 애들이 놀 시간이 어디 있어요? 희주도 학원을 더 보내야 하는데.” 자기 이야기가 나오자 희주는 화들짝 놀랐어요. 그래서 더 듣고 싶었지만 조용히 방으로 돌아왔어요. 희주는 책상 앞에 앉아 멍하니 학습지를 바라보았어요. 이제 조금만 하면 다 끝내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지만 자꾸 딴생각이 나서 집중이 되지 않았어요. ‘희연이가 새 유치원이 힘들었나 봐. 그래서 오늘은 놀자고 조르지도 않고 일찍 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희주는 왠지 동생이 가여웠어요. 희주는 그동안 동생의 말을 한 번도 들어주지 않은 것이 떠올라 갑자기 너무 미안했어요. ‘희연이는 나를 방해하려고 했던 게 아니야. 그냥 언니랑 함께 놀고 싶었던 거야. 그런데 나는 늘 화만 냈으니 얼마나 서운했을까?’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운 다음에도 희주는 어쩐지 잠이 잘 오지 않아 한참을 뒤척였어요. 그 후 며칠이 지나도 희연이가 언니를 귀찮게 하거나 숙제를 방해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 집에 엄마는 없고 외할머니가 와 있었어요. “희주 왔구나?” “네, 할머니! 그런데 엄마는요?” “엄마는 희연이 데리고 병원에 갔단다.” “왜요? 희연이가 어디 아파요?” "뭘 잘못 먹었는지 배탈이 났다는구나. 그래서 이 할미가 네 간식 차려 주려고 온 거란다." 희주는 할머니가 만들어 준 간식을 먹고 학원에 갔지만, 수업 시간 내내 선생님 말씀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어요. ‘희연이는 괜찮은 걸까? 많이 아픈 거면 어떡하지?’ 희주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왔어요. 그리고 현관에서 신발을 벗기도 전에 동생부터 소리쳐 불렀어요. "희연아!" 희연이는 침대에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있었어요. "희연이 많이 아파?" "언니! 나 배 아야 해서 주사 맞았어." 엄마는 부엌에서 흰쌀로 죽을 끓이다가 두 자매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어요. 희주는 동생의 조그마한 손을 꼭 잡아 주었어요. 그리고 엄마에게 말했어요. “엄마, 오늘은 우리 둘이 같이 잘래요. 학습지는 내일 해도 되지요? 네?” “그래, 알았다. 그러려무나.” 희연이는 언니 손을 잡고 배시시 웃었어요. “헤헤, 신난다! 나 이제 배 안 아픈 것 같아.” 그날 밤 희주는 희연이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어요. “그래서, 아까 주사 맞았는데, 안 울고 잘 참았다고 의사 선생님이 사탕 이만한 거 주셨다!” “우와! 그랬구나! 우리 희연이 용감하네?” 희주는 희연이가 무슨 말을 하든 잘 들어 주고 칭찬도 많이많이 해 주었어요. 동생이 먼저 잠이 들 때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하나도 귀찮지 않았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동생에게 화내지 말고 자주 같이 놀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스르르 눈을 감았어요. 아주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은 행복한 밤이었어요.
우리는 종교가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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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까까머리! 같이 가." 지영이가 뒤에서 별명을 부르자 선재가 걸음을 멈췄어요. 두 친구가 처음 만난 것은 3학년 첫 수업이 시작되던 날이었어요. 선재는 북한산 기슭에 있는 도솔사에서 사는 아이예요. 스님들처럼 머리를 빡빡 깎고 승복을 입었지요. 그래서 도솔사에 다니는 신도들은 다들 '선재 스님'이라고 불러요. 하지만 반 친구들은 그냥 선재라고 부르거나 까까머리라는 별명으로 부르지요. 지영이는 처음에 선재를 '사탄'이라고 부른 적도 있어요. 지영이는 유치원 때부터 교회에 다녔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특히 절에 다니는 사람들은 다들 사탄인 줄 알았거든요. 선재를 처음 만났을 때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이 괴상해서 저도 모르게 사탄이라는 말이 튀어나왔어요. 지영이는 선재를 볼 때마다 '사탄과 말을 하면 혹시 벌을 받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들었어요. 하지만 짝꿍인 선재를 영 모른 체 할 수는 없었어요. 예를 들면 실수로 연필을 떨어뜨렸는데 그걸 선재가 집어 준 적이 있었어요. 그럴 때 저도 모르게 "고마워!" 하고 인사를 하게 되었지요. 어떤 날은 선재가 교과서를 안 가져왔는데 그 과목을 공부할 때 "내 책 같이 봐." 하고 말을 걸었어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 선재는 아무리 생각해도 사탄 같지는 않았어요. 교회의 어린이반에서 본 사탄의 모습과도 전혀 다르게 생겼어요. 그래서 차츰 까까머리란 별명으로 부르게 되었지요. 선재는 매일 아침마다 도솔사 스님의 승용차를 타고 등교해요. 도솔사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멀고 북한산을 오르내려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어요. 하교 때는 북한산 입구로 걸어가 마을버스를 타고 도솔사까지 간대요. 선재는 유치원 때 교통사고를 당해 부모님을 잃었어요. 갑자기 고아가 된 선재는 오갈 곳이 없게 되었어요. 그때 아직 결혼을 안 한 고모가 도솔사에 선재를 맡겼대요. 그때부터 선재는 도솔사 스님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게 되었어요. 지영이는 그런 이야기를 듣자 선재가 가엾고 불쌍했어요. 그래서 다시는 선재가 사탄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어요. 지영이는 교회를 오래 다녀서 절보다 교회를 좋아해요. 주일마다 교회 어린이반에서 배우는 찬송가도 재미있고 예쁜 선생님이 들려주는 성경 이야기나 동화 구연도 흥미진진했어요. 그래서 하루는 선재에게 물었어요. "너 이번 주일에 교회에 올래?" "교회에 왜?" "교회 다니는 게 얼마나 재밌는데. 나랑 찬송가도 배우고 성경 이야기도 들으면 참 좋을 것 같아서." 선재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어요. 그러고 보니 선재는 한 번도 활짝 웃은 적이 없는 것 같았어요. "갈 수 없어. 교회에 가려면 우리 스님께 먼저 허락을 받아야 해." 지영이는 절에서 사는 아이가 교회에 가는 게 뭘 뜻하는지 생각해 본 일이 없었어요.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선재를 초대한 거예요. 하지만 선재는 부모님과 마찬가지인 스님들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날 저녁, 선재가 도솔사의 주지 스님인 진묵 스님께 물었어요. "스님!" "왜?" "이번 주 일요일에 교회에 놀러 가도 돼요?" "교회에? 안 될 건 없다만 네가 승복 차림으로 교회에 가면 거기 목사님이랑 신도분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볼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겠니?" 선재는 그제야 자기 반 친구의 초대를 받았다고 말을 했어요. 그러자 주지 스님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정 가 보고 싶으면 갔다 오너라. 가서 교회 신도들은 어떻게 예배를 보는지 잘 보고 오너라. 그 대신 네가 혹시 듣기 싫은 말을 듣더라도 꾹 참아야 한다." 허락을 받은 선재는 기분이 좋아졌어요. 교회가 도대체 어떤 곳인지 알고 싶었는데 드디어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으니까요. 주지 스님은 미리 예수님에 대해 쉽게 일러 주었어요. 또 교회 안에 부처님 대신 십자가가 놓여 있다는 것도 가르쳐 주었어요. "그리고 우리 절 신도들이 복전함에 시주금을 넣는 것처럼 교회에서도 신도들에게 헌금을 받는단다." 선재는 교회와 절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차이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일요일 아침에 주지 스님이 선재의 방으로 왔어요. "아이고, 이 녀석아! 방이 이게 뭐냐?" 선재의 방은 엉망이었어요. 장난감에 과자 봉지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이불과 베개도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어요. "지금 치우려고 했단 말예요." 선재가 얼굴을 붉히며 변명했어요. 그때 주지 스님이 선재에게 쇼핑백을 내밀었어요. "자, 오늘 교회 갈 때 이 옷으로 갈아입고 가거라. 운동화도 새로 샀으니 신고 가고." 선재는 승복을 벗고 반 친구들이 입는 옷과 같은 셔츠와 바지로 갈아입었어요. 그런데 새 운동화는 발이 꽉 낄 정도로 작아 평소에 신던 운동화를 신기로 했어요. "이렇게 하고 가야지, 승복을 입고 교회에 가면 거기 신도들이 아무래도 놀랄 것 같구나." 얼마 후 주지 스님은 지영이가 다니는 교회 앞에 선재를 내려 주었어요. "이따가 끝나면 전화해라. 내가 데리러 올 테니까." 주지 스님의 차가 떠난 뒤 조금 기다렸더니 지영이가 나타났어요. "어? 네가 까까머리야? 그렇게 입으니까 몰라보겠네?" 지영이가 선재를 보고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그날 선재는 교회 안의 이런저런 시설을 살펴보았어요. 길고 튼튼하게 만든 나무 의자에 수백 명이나 되는 신도들이 앉아서 기도하는 모습도 보았고, 단상 위의 십자가와 목사님이 설교하는 강대상도 보았어요. 지영이를 따라 어린이반으로 가서 여러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어요. 몇몇 애들은 같은 반 친구라 더욱 반가웠어요. 선재를 처음 본 아이들은 빡빡 깎은 머리를 보고는 이상하게 여기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선재는 그런 표정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선재는 아이들과 함께 찬송가를 배우고 성경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었어요. 그날 예배 시간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였어요. "어때? 재밌지?" 지영이가 물었어요. "응." 선재는 짧게 대답하고는 도솔사가 있는 북한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어요. 지영이가 그 모습을 보고 다시 물었어요. "너, 앞으로 우리 교회에 다닐래?" 선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휘휘 저었어요. "아니. 그래도 난 우리 도솔사가 좋아." 지영이는 크게 실망하는 눈치였어요. 그날 선재는 도솔사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한 가지 결심을 했어요. 이튿날이었어요. 다시 승복을 입고 학교에 간 선재가 지영이에게 먼저 말을 걸었어요. "어제 교회에 초대해 줘서 고마워. 그래서 이번 주 토요일엔 널 도솔사로 초대하고 싶어. 와 줄래?" 지영이는 펄쩍 뛰며 말했어요. "싫어. 절에는 사탄과 마귀가 있을지도 몰라. 그런 곳에 내가 왜 가?" 선재가 빙긋 웃으며 물었어요. "너 처음에 나한테 사탄이라고 했지? 그런데 지금도 내가 사탄 같아?" "아니." "그것 봐. 내가 사탄이 아닌 것처럼 절에 계신 스님들도 사탄이 아냐." 지영이는 가만히 생각해 보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밝은 얼굴이 되었어요. "알았어. 나도 도솔사에 갈 테니까 토요일에 우리 교회 앞으로 데리러 와." 이윽고 선재가 기다리던 토요일이 되었어요. 드디어 지영이가 도솔사를 방문했어요. 주차장에서 내려 널찍한 숲길을 걸어 올라간 지영이는 절의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건물 앞에 멈춰 섰어요. 무시무시하게 생긴 조각상들이 금방이라도 달려 나올 듯 지영이를 쳐다보았어요. "어머, 무서워!" 지영이가 선재의 손을 꼭 잡으며 소리쳤어요. 선재가 말했어요. "겁낼 거 없어. 이분들은 동서남북 네 군데서 부처님과 이 절을 찾는 사람들을 지켜 주는 천왕님들이야. 네 분이라서 사천왕이라고 해. 이 문은 사천왕문이고." 사천왕문을 지나자 비로소 크고 작은 여러 건물들이 보였어요. 건물마다 한자로 적힌 이름이 있었는데 지영이는 아직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이었어요. 대웅전이라는 세 글자 중 '큰 대'자만 읽을 수 있었어요. 선재는 그 건물로 걸어가며 지영이에게 말했어요. "여기 들어오니까 건물들이 참 많지? 그중에서도 대웅전이 가장 중요해. 저 안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셨기 때문이야." 지영이는 점점 더 선재의 말이 어려워졌어요. 부처님은 어렴풋이 알겠는데 석가모니는 또 뭘까 궁금했던 거예요. 하지만 지영이는 석가모니나 부처님이 무슨 뜻인지, 서로 어떻게 다른지 묻지는 않았어요. 그걸 물으면 선재가 점점 더 어려운 말로 대답할 게 뻔했거든요. 그런데 지영이에게 신기한 일이 생겼어요. 처음에는 절이 무서운 곳인 줄 알았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와 보니 아무렇지도 않았던 거예요. 그날 지영이는 대웅전, 관음전, 극락전 등 여러 법당을 둘러보았어요. 그리고 스님들이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서 수행하는 모습도 보았어요. 또 주지 스님의 방으로 들어가 선재와 함께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먹었어요. 주지 스님이 지영이에게 물었어요. "어떠냐? 여기 와 보니 절에 다니고 싶지?" 선재가 그랬던 것처럼 지영이도 고개를 저었어요. "아니요. 전 그래도 교회가 좋고 예수님이 좋아요." 주지 스님이 껄껄 웃고는 다시 말했어요. "그럼 교회에 열심히 다니려무나. 사람들이 교회나 절에 다니는 것은 좀 더 행복하고 착하게 살기 위해서란다. 그러니까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절에 다니는 사람도 미워하거나 욕해선 안 된다. 알겠지?" 지영이는 "네에, 스님!" 하고 크게 대답했어요. 그러자 옆에 있던 선재가 처음으로 밝게 웃었어요.
넌 옷이 하나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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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옷이 하나뿐이니? 수연이는 오늘 아주 기분이 좋아요. 새 옷을 여러 벌 얻었기 때문이에요. 이모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아동복을 판매하는 사장님이에요. “이거 다 이모가 직접 디자인한 거야. 예쁘지?” 이모는 수연이를 스튜디오에 세워 놓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어요. 수연이가 옷 입은 모습을 인터넷 쇼핑몰에 올리려는 거예요. “이모는 모델료를 아끼고 우리 수연이는 새 옷이 생겼으니 상부상조하는 거네?” “아니지. 수연이는 옷도 생기고 아동복 모델까지 됐으니 일석이조가 맞는 거야.” 이모가 엄마 말에 대꾸하면서 트레이닝복을 꺼내 들었어요. “아, 그건 싫어!” 수연이는 문득 같은 반 석이가 떠올라 질색을 했어요. 트레이닝복은 석이가 줄기차게 입고 다니는 옷이에요. 석이가 매일 입고 다니는 트레이닝복은 튀어도 너무 튀었어요. 그렇다고 유명 메이커도 아니고 디자인이나 색상이 세련돼 보이지도 않았어요. 냉정하게 말하면 촌스러움 그 자체였어요. “아무리 남자애라도 너무 심한 거 아냐? 쟤네 엄마는 옷도 안 사 주나 봐.” 여자아이들 중에는 옷 입는 게 너무 이상해서 같이 다니기 창피하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어요. 사실은 수연이도 그런 편이에요. 운동복처럼 생기지도 않고 곧 흘러내리기라도 할 것처럼 헐렁한 석이의 트레이닝복은 꼭 집에서 잘 때나 입는 옷 같았어요. “집이 너무 가난해서 저런 것은 아닐까?” 가끔은 무릎이 튀어나온 바지를 입고 오기도 해서 불쌍하게 보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내일은 예절 박물관 견학을 가는 날이에요. “배울 점을 스스로 찾는 게 이번 견학의 과제다. 번호순대로 네 명씩 한 팀을 짜서 움직일 거니까 준비물은 팀원들끼리 의논해서 정하도록 해.” 선생님 말씀에 수연이는 맥이 빠졌어요. 가능하면 석이랑 한 조가 되지 않기를 원했지만 번호순이라 어쩔 수 없이 한 팀이 되고 만 거예요. 하지만 과제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석이를 설득해 보기로 했어요. “석아, 내일은 뭐 입고 올 거야?” “난 이 옷이 편한데, 왜?” “견학 가는데 트레이닝복은 좀 그렇지 않을까?” “선생님은 옷에 대해 아무 말씀 안 하셨는데?” 석이는 도무지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았어요. 수연이는 화가 나서 쏘아붙이듯 말했어요. “넌 옷이 하나밖에 없니?” “우리 딸 아무리 봐도 예쁘네!” 엄마가 거울 앞에 서 있는 수연이를 흐뭇하게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요즘 애들 옷값도 장난 아닌데 이모 덕에 엄마가 한시름 놓는구나.” “옷값이 비싸?” “그럼. 다행히 우리 수연이는 건강한 체질에 유명 브랜드 같은 거 따지지 않는 성격이라 부담이 덜한 편이지만 안 그러면 엄마도 고민이 많았을 거야.” 엄마는 수연이가 무심코 묻는 말에 진지하게 대답했어요. 수연이는 속으로 뜨끔했어요. 만약 이모가 경영하는 쇼핑몰 모델이 아니었다면 수연이도 유명 메이커를 졸랐을 것이기 때문이에요. 한편으로는 어제 석이한테 짜증 냈던 일 때문에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수연이, 미라, 성호, 석이는 한 팀이에요. 미라와 성호는 견학 버스에 오르기 전부터 신경전을 벌였어요. 둘 다 석이 옆에 앉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미안한 것도 있고 해서 수연이가 석이 옆자리로 갔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석이는 마냥 즐거워 보였어요. “우리 엄마가 만든 건데, 먹을래?” 석이가 음료수를 건넸어요. 수연이가 싫어하는 토마토 주스였어요. “아니, 난 됐어.” “알았어.” 석이는 수연이의 거절을 선선히 받아들이며 이렇게 말했어요. “토마토 싫어하는 애들 많더라. 나도 전엔 별로였는데 몸에 좋은 거라니까 먹는 거야.” 수연이는 새삼 석이가 다시 보였어요. 석이는 볼수록 장점이 많은 친구였어요. 우선 남한테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줏대 없는 성격으로 보이지도 않았어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도 강했어요. “어떡해. 내 도시락 가방!”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미라가 울상을 지었어요. 도시락 가방을 두고 내린 거예요. 버스는 아이들을 다 내려놓고 막 출발하려던 참이었어요. “잠깐만!” 석이는 잽싸게 손을 흔들며 버스로 뛰어갔어요. 그리고 무사히 도시락 가방을 되찾아 왔어요. 덕분에 미라는 점심을 굶지 않게 되었어요. 수연이는 석이의 이런 모습이 살짝 뜻밖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겉보기로는 엄청난 고집불통일 것 같았거든요. 남이 없으면 나도 없다. 예절 박물관 입구에 나붙은 글귀가 왠지 예사롭지 않았어요. “선생님, 저건 무슨 뜻이에요?” 석이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질문을 던졌어요. “우리는 모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남에게 존중과 배려를 베풀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안내를 맡은 선생님이 글귀의 뜻을 알려 주었어요. 안쪽으로 들어갔더니 벽면마다 사진과 그림, 동영상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어요. “자료가 너무 많아서 과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박물관을 한 바퀴 돌고 난 뒤 성호가 말했어요. 수연이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나마 인상적인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올바른 예절을 속담을 예로 들어 설명한 만화였어요. 수연이네 팀원들은 이제부터 과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머리를 짜내야 했어요. “감상문으로 할까?” “찍어 온 사진으로 스크랩을 만들면 어떨까?”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나오긴 했지만 다들 썩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았어요. 선생님은 이번 견학에서 배울 점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보고 들은 것만을 그대로 옮기라는 뜻은 아닐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어요. 한창 골머리를 앓던 중에 석이가 묘안을 떠올렸어요. “각자 마음에 드는 속담 한 가지씩 정해서 토론하다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좋은 생각인 것 같다!” “맞아. 그거야!” 세 명의 팀원들 모두 대찬성이었어요. 먼저 수연이가 말했어요. “나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어. 앞으로는 좋은 말, 예쁜 말만 쓰도록 노력할 거야.” 수연이는 이 속담을 접한 순간 석이를 생각했어요. ‘넌 옷이 그거 하나밖에 없니!’ 이렇게 심한 말을 듣고도 기분 나쁜 내색은커녕 음료수까지 챙겨 주는 배려, 더구나 토마토 주스는 싫다고 딱 잘라 거절했는데도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했던 그 말 한마디가 석이를 다시 보게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성호는 ‘남의 눈의 티끌보다 내 눈의 들보가 더 크다’는 속담을 꼽은 이유를 설명했어요. “남의 단점을 탓하기 전에 자기 잘못을 되돌아보라는 뜻이잖아. 그런 면에서 난 반성할 점이 많아. 항상 나만 옳다고 생각했거든.” “나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가 떠올라.” 미라가 이어서 말했어요. “친구들이 날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이 많은데 어쩌면 나한테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 이제부터는 까칠하다는 말 안 듣도록 노력할 거야!” 대화가 길어질수록 팀원들은 서로를 더 깊이 알아 가는 느낌이었어요. 각자 자신의 단점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결국은 서로 배워야 할 것들이기도 했어요. 석이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라는 속담을 마음에 새기겠다고 했어요. “나무 타기라면 일등인 원숭이도 실수할 때가 있는 것처럼 사람이 항상 완벽할 수는 없는 거잖아. 그런데 나는 가끔 이런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있거든.” 수연이는 석이처럼 착한 애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했어요. 석이는 엄마 때문이라고 했어요. “너희는 잘 모르겠지만 난 아토피를 앓고 있어. 엄마가 열심히 보살펴 준 덕분에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어쩌다 몸 상태가 안 좋을 땐 아주 신경질적인 아들로 돌변해.” “왜, 어떻게?” 세 명의 팀원들이 동시에 물었어요. 아토피 얘기는 금시초문이기 때문이에요. 더욱 놀라운 건 석이 엄마가 피부에 자극이 없도록 천연 섬유로 직접 만들어 준 옷이 그 트레이닝복이라는 거예요. “우리 엄마는 건망증이 있거든. 내 옷은 전부 손빨래를 해야 되는데 엄마가 깜빡한 날은 낡은 옷을 입고 학교에 가야 돼. 그러면 엄마가 잘 챙겨 주지 않아서 힘들다고 막 떼를 쓰기도 했거든.” 수연이는 아이들이 뒤에서 수군대는 말을 듣고 상처를 받았을 석이 생각에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우린 몰랐어. 미안해.” “아냐, 너희들과 속마음을 얘기할 수 있게 돼서 정말 기뻐!” 석이는 팀원들의 사과(謝過)에 환한 미소를 지었어요.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따뜻한 우정이 네 친구를 하나로 만들어 주었어요. 수연이가 팀원들을 돌아보며 외쳤어요. “얘들아, 오늘 우리가 배운 과제가 뭔지 알 것 같아!” “그게 뭔데?” “존중!” 수연이는 자신 있게 말했어요. “오늘 견학 와서 보고 듣고, 우리가 대화하면서 느낀 것들을 모두 한마디로 표현하면 존중, 이거 맞지?” 팀원들의 눈빛이 반짝였어요. 수연이네 팀원들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 각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를 발표했어요. 발표가 끝나자 우렁찬 박수가 터져 나왔어요. 선생님은 이번 과제의 우승팀으로 수연이네 팀을 뽑았답니다. 압이경지. 압이경지란 아주 친근한 사이일지라도 공경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만종이란 그림으로 유명한 프랑스 화가 밀레는 젊은 시절 몹시 가난했어요. 하지만 그는 자존심이 강해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어요. 밀레의 아주 가까운 친구였던 철학자 루소는 어떻게든 그를 도와주고 싶었어요. 어느 날, 루소가 밝은 표정으로 밀레를 찾아왔어요. “밀레, 내가 드디어 자네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을 찾았네.” “그림값도 미리 준다기에 300프랑이나 받아 왔다네. 그림은 자네가 추천하는 것으로 사고 싶다더군.” 밀레는 몹시 기뻐하며 접목하는 농부를 내주었어요. 밀레는 루소 덕분에 생활비를 해결하고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몇 년 뒤 유명한 화가가 된 밀레가 루소의 작업실을 찾았어요. 그런데 루소의 방을 둘러보던 밀레는 깜짝 놀랐어요. 루소의 방에 접목하는 농부가 걸려 있었던 거예요. 그제야 밀레는 친구의 우정을 알아차리고 감동하여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어요. 이렇듯 가까운 사람일수록 서로 존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더욱 진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거랍니다.
네 장점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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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우등생인 수진이는 진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진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거제도 다음으로 큰 섬이에요. 처음 진도로 여행을 간 사람들은 그곳이 섬인지 깊은 산골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고 해요. 진도에는 여러 가지 특산물이 많지만, 무엇보다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된 '진돗개'가 가장 유명하지요. 수진이네도 '푸름이'라는 진돗개를 키우고 있어요. 이제 다섯 살인 푸름이는 수진이의 단짝이에요. 수진이는 유치원 때부터 아나운서나 기상 해설자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어요. "오늘의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수진이는 예쁘고 세련된 옷차림을 한 언니들이 뉴스나 일기 예보 등을 전하는 모습을 보면 언제나 부러웠어요. 수진이가 3학년이 되어 첫 수업을 하던 날이었어요. 새로 담임을 맡은 선생님이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 다음 아이들에게 말했어요. "이번엔 한 사람씩 일어나 각자의 꿈을 말해 보드라고." 수진이는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거침없이 말했어요. "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멋진 아나운서가 될라요." 그러자 담임 선생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요. "잉, 그려? 근디 아나운서가 되려믄 공부도 잘해야겄지만 먼저 그 사투리부터 고쳐야 쓰것다. 안 그러냐?" 수진이는 그만 얼굴이 뜨거워졌어요. 날마다 아나운서 언니들을 부럽게만 여겼지, 하루빨리 표준어를 익혀야 한다는 생각을 못 했기 때문이지요. 그날 수진이는 뉴스와 일기 예보를 더욱 열심히 시청하면서 표준어 발음을 자꾸 연습했어요. 사투리는 어찌할겨! 하지만 수진이가 표준어를 매끄럽게 쓰는 건 쉽지 않았어요. 부모님과 오빠, 친구들, 그리고 담임 선생님마저 사투리를 썼기 때문이죠. 표준어를 빨리 익히려면 표준어를 쓰는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데, 어떻게 하면 표준어를 쓰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수진이가 이런 고민에 빠져 있던 어느 날이었어요. 옆 반 친구인 국화가 비밀 정보를 알려 주었어요. "내일 너희 반에 남자애가 전학을 온다드만. 서울서 살던 아이래." 당장 호기심이 생긴 수진이가 물었어요. "서울서 왔다는 게 참말이여? 잘생겼냐?" 국화가 뾰로통한 얼굴로 대답했어요. "나도 못 봤어야." 수진이는 전학생이 멋쟁이에다 공부도 잘하는 서울 아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음 날 아침, 수진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했어요. 양치와 세수를 마친 뒤 머리카락도 가지런히 빗어 예쁜 리본으로 묶었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울 사는 이모가 생일 선물로 보내 준 원피스를 꺼내 입었어요. '이걸 입고 나가면 우리 반 애들이 깜짝 놀라겄지?' 수진이는 조심스럽게 원피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섰어요. 그러자 이 세상의 어떤 공주보다 예뻐 보이는 소녀가 거울 앞에 나타났어요. '난, 너무 이쁘고 똑똑한 게 탈이라니까.' 잠깐 착각에 빠져 있던 수진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생각을 바꿨어요. '아녀. 이렇게 이쁜 티를 내면 내가 전학해 오는 애를 좋아하는 줄로 오해할 것이구만.' 그날 수진이는 엄마가 여러 번 재촉하고 나서야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학교로 달려갔답니다. 헐레벌떡 교실에 도착한 수진이는 자기 자리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어요. 얼마 뒤, 담임 선생님이 한 아이를 데리고 교실로 들어왔어요. 수진이는 담임 선생님보다 새로 온 서울 아이가 여간 궁금하지 않았어요. 갑자기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고 얼굴도 뜨거워졌어요. '서울말이 표준어랑 가장 가까우니까 저 녀석을 단짝으로 맹글면 저절로 서울말을 배울 수 있을 거여.' 그런데 전학해 온 아이는 키가 1학년 동생들처럼 작고 얼굴은 어디가 몹시 아픈 것처럼 창백해 보였어요. 게다가 인사를 할 때는 말을 약간 더듬기까지 했어요. "안녕, 나는 궈, 권성권이라고 해." 수진이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어요. '어쩌면 좋아? 아나운서의 꿈을 포기해야 하나?' 서울에서 전학해 온 성권이는 며칠 만에 '거북이'라는 별명을 얻었어요. 성권이는 약삭빠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말할 때도 느릿느릿했고 체육 시간에 달리기는 늘 꼴찌를 맡아 놓았지요. "야, 거북아! 넌 도대체 잘 허는 게 뭐야? 도대체 너의 장점이 뭐냐고?" 친구들이 놀려 대며 킬킬거렸어요. 성권이는 귀가 빨개져서 아무 말도 못 했어요. 그런데 수진이는 왠지 모르게 성권이에게 관심이 갔어요. 겉으론 보이지는 않지만 뭔가 특별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았거든요. 어느 날, 하교하던 수진이가 저만치 앞서가는 성권이를 발견했어요. "야야! 거북아, 같이 가자." 수진이는 성권이와 나란히 걸어가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어요. "너희 가족은 무슨 일로 여그까지 온 것이여?" 그러자 성권이가 자세히 말해 주었어요. 서울의 대기업에 다니던 성권이 아버지와 빵 가게를 운영하던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전원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살고 싶은 꿈이 있었어요. 그런데 성권이는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했고, 유치원생인 성권이 여동생은 아토피 증세가 무척 심했어요. 그래서 성권이 부모님은 하루빨리 서울에서 벗어나 공기 맑고 물맛도 좋은 시골로 귀농을 한 거예요. "진도는 본래 아버지의 고향이라 할아버지께 물려받으신 땅도 있어서 거기에다 농사를 지으실 거래." 어떻게 된 일인지 성권이는 전혀 말을 더듬지 않고 또박또박 말했어요. "어라? 근디 이제 봉께 말을 하나도 안 더듬네?" 수진이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아, 네가 편안한가 봐. 친해져서 마음이 편해지면 말 더듬는 버릇이 없어지거든." 성권이가 겸연쩍어하며 대답했어요. "야야, 이제 니가 내 말 선생 허면 되것다!" 수진이는 성권이와 손바닥을 마주치며 소리쳤어요. 그날 이후, 수진이는 성권이와 등하교를 같이 하며 서울말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관심을 가지고 보니 성권이는 장점이 의외로 많았고 웬만한 아이들이 다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도 없었어요. 또 쉬는 시간에 다른 애들이 휴대전화 게임을 하거나 문자를 주고받을 때도 성권이는 책을 읽는 데 집중했어요. 책 읽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어린이용 삼국지 다섯 권을 사흘 만에 읽은 적도 있었어요. 책을 읽을 때는 '거북이'란 별명이 절대 어울리지 않았던 거예요. 그런데 수진이가 서울말을 배우는 데 막 재미가 들었을 무렵 진도에서 큰 사건이 터졌어요. "큰일이 났어야. 큰 배가 뒤집혀서 시방 침몰하고 있다드만." 떠벌이 준호가 호들갑을 떨며 소리쳤어요. 준호는 최신형 스마트폰을 자랑스럽게 열어서 '긴급 속보'라고 뜬 기사를 아이들에게 읽어 주었어요. 커다란 여객선이 진도의 남쪽 바닷길에서 침몰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날부터 진도는 전쟁터처럼 어수선해졌어요. 처음 얼마 동안은 여러 구급차와 수십 군데 언론사의 취재 차량,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을 항구로 수송하는 차량 등으로 큰길이 막혔답니다. 수진이는 진도에 그렇게 많은 차가 오가는 모습은 처음 보았어요. 수진이는 심각하고 슬픈 사건이라는 걸 실감했어요. 방송에선 계속 '긴급 속보'라는 자막을 띄워 놓고 뉴스 시간마다 여객선 침몰 소식을 생중계로 알렸어요. "아나운서 언니들도 징하게 슬퍼 보이네." 수진이는 방송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났어요.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어서 배를 인양해야 합니다." 수상 구조 전문가들이 인터뷰에 나와서 다급하게 말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이 모두 끝나자, 성권이가 슬며시 수진이 곁으로 다가왔어요. "수진아, 몇 시간만 할 일이 있는데 같이 갈래?" "무슨 일인데 그런다냐?" "가 보면 알게 될 거야." 성권이가 나지막한 소리로 대답했어요. 그날 성권이는 수진이를 항구로 안내했어요. 항구는 구조 전문가들과 방송사 기자들, 그리고 승객의 가족들과 그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로 가득했어요. 항구를 따라 길게 늘어선 가로수를 따라 긴 줄이 매여 있었고, 그 줄 위에 노란 리본들이 묶여 있었어요. 가족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하는 리본들이었어요. 어떤 리본에는 승객의 부모 형제가 직접 쓴 글도 있었어요. 수진이는 우연히 그런 글들을 읽다가 저도 모르게 그만 울음을 터뜨렸어요. 사랑하는 아들, 딸을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님들은 얼마나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아플까요? 그때 성권이가 한 리본을 가리켰어요.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힌 리본이었어요. '형들, 누나들. 꼭 살아서 돌아오세요!' 성권이가 쓴 글씨란 걸 눈치챈 수진이가 물었어요. "그란디 이걸 언제 매달구 글까지 쓴 것이여?" "어제 집에 가다 보니까 자원봉사 하러 나온 사람들이 여기서 리본들을 묶고 있더라." "그래서 나도 돕게 된 거야. 난 아직 힘든 일을 못 하지만 이런 작은 일이라도 열심히 도우며 유가족들의 슬픔을 덜어 드리고 싶어." 그 순간 수진이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던 성권이의 장점을 하나 더 알게 되었어요. 성권이는 어려움에 빠진 이웃을 말없이 돕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씨를 가졌던 거예요. 그렇다면 성권이는 누구보다 큰 장점을 가진 게 아닐까요? 그날 수진이는 성권이와 함께 컵라면도 나르고 물병도 열심히 날랐어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간절하게 빌었어요. 제발 모두 무사히 돌아오게 해 달라고. 각자무치 뿔이 있는 짐승은 이가 없다(또는 쓸모가 없다)는 뜻으로, 한 사람이 모든 장점을 다 가질 수 없다는 말이에요. 또 단점이 많아 보이는 사람도 눈여겨 살펴보면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해요. 각자무치는 뿔이 있는 짐승은 이가 없다(또는 쓸모가 없다)는 뜻으로, 한 사람이 모든 장점을 다 가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호랑이, 사자와 같은 맹수들은 날카로운 이빨이 있는 대신 뿔은 없어요. 하지만 들소들은 이가 뭉툭하지만, 강한 뿔이 있어서 사자들의 공격을 막아 낼 수가 있지요. 이처럼 아무리 단점이 많아 보이는 사람이라도 몇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때로는 단점이 장점으로 바뀔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답니다. 예를 들면 탐험을 떠난 친구들 앞에 좁고 낮은 동굴이 나타났다고 상상해 보세요. 이럴 때는 키가 작고 몸집이 야위었다고 놀림당하던 친구가 가장 먼저 동굴을 통과할 수 있겠죠? 즉, 단점이 장점으로 바뀌는 거예요. 또 시각 장애인들은 앞을 못 보는 대신 소리에 매우 민감하답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목소리만 듣고도 어떤 표정과 마음가짐으로 말하는 것인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어요. 앞을 못 보는 단점 대신 소리를 잘 듣는 장점을 가지게 된 것이죠. 그러니 어떤 친구에게 단점이 많다고 해서 멀리하거나 놀리지 말고 그 친구의 장점을 찾아내 잘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너희 나라로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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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초등학교 3학년 3반 최한별. 문화초등학교 3학년이라면 모르는 친구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학생이에요. 단지 3학년뿐만이 아니에요. 고학년 선배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까지 한별이가 밝게 인사를 하며 지나가면, "오, 한별이구나, 밥은 먹었니?" 하고 아는 척을 해 주는 거예요. 한별이는 또래에 비해 키가 크고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의협심이 강해서 어려움에 빠진 친구를 보면 바로 도와줄 줄 아는 착한 아이예요. 1학년 때부터 3학년까지 내내 반장을 하고 있지요. 또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들어서 엄마 아빠의 사랑도 듬뿍 받고 있어요. 그런 한별이에게 요즘 새로운 고민이 하나 생겼어요. 한별이의 고민은 바로 학교 진입로 좌우에 있는 가구 공장이에요. 그곳에서 일하는 피부가 까만 외국인들이 한별이의 고민거리랍니다. 왜냐고요? 그건 바로 의협심이 강한 한별이의 성격 때문이에요. 보름 전, 한별이는 친한 친구 민지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어요. "한별아, 너무 무서워!" 집에 도착해서 막 대문을 열려는데 옆집에 사는 민지가 울면서 한별이에게 달려왔어요. "무슨 일인데?" 한별이가 묻자 민지가 울먹이며 말했어요. "나쁜 사람들이 나를 쫓아오는 것 같아." 한별이는 민지를 안정시킨 뒤에 물었어요. "나쁜 사람들이라니? 자세히 말해 봐." "응, 저쪽에 있어, 나쁜 사람들. 콧수염이 달렸어." "아휴, 답답해.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누군데?" 민지는 우느라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다음 날, 한별이는 민지로부터 자세한 얘기를 들었어요. "어제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데 갑자기 비가 오더라고. 근데 학교 앞 가구 공장에서 무섭게 생긴 콧수염 아저씨가 나를 쳐다보며 뭐라고 소리쳤어. 그래서 막 도망갔는데, 버스 정류장까지 그 아저씨가 따라오는 거야." 민지는 생각만 해도 무서운지 숨을 할딱였어요. "그 아저씨 얼굴 기억나니?" 한별이의 물음에 민지는 고개를 저었어요. "잘 모르겠어. 콧수염이 있고 피부가 까만 사람이야."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화장실에 다녀오던 주호가 아는 척을 하며 대화에 끼어들었어요. "너희들 아프리카 얘기하는구나?" "아프리카?" 한별이는 주호의 아는 척이 왠지 걱정돼서 물었어요. 주호는 평소에도 잘난 척을 잘해서 종종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였거든요. "아프리카라니? 무슨 소리야?" 한별이의 물음에 주호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어요. "우리 학교 앞 가구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전부 아프리카에서 왔대. 아프리카는 물이 없어서 사람들 피부가 까맣게 타들어 간대. 그리고 말을 할 때도 원숭이처럼 끼익! 끼이익! 한대." 주호가 원숭이 흉내를 내자 아이들이 와르르 웃었어요. "주호야, 사람을 원숭이에 비교하면 안 돼." 지켜보던 한별이가 지적하자 주호가 입을 씰룩거렸어요. "쳇, 그 아프리카 사람들이 민지를 괴롭혔다며?" "괴롭힌 건지 아닌지 아직 확실하지 않아." 주호가 한별이를 무시하고 친구들에게 소리쳤어요. "얘들아, 오늘 아프리카 사람들 놀려 주러 가자!" 아이들 몇 명이 주호의 의견에 동의했어요. "그래, 가서 아프리카 사람들 골려 주자!" 학교가 끝나자 아이들을 우르르 가구 공장으로 몰려갔어요. 구경을 하러 따라 나온 아이들까지 열 명도 넘는 아이들이 가구 공장 뒤로 살금살금 돌아갔어요. 한별이는 혹시라도 친구들이 다칠까 봐 걱정이 돼서 그들의 뒤를 슬슬 따라가 보았어요. "아프리카다!" 주호가 자세를 낮추고 소리쳤어요. 가구 공장 한 귀퉁이, 비닐 천막 안에서 피부가 검은 외국인들 서너 명이 웃고 떠들며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고 있었어요. "식사를 하나 보다. 그만 돌아가자." 한별이가 그렇게 말했지만 아이들은 듣지 않았어요. "아프리카로 돌아가라!" “너희 나라로 꺼져!” 아이들은 합창을 하듯 소리치며 킬킬거렸어요. 바로 그때, 흰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 한 분이 공장 안에서 뛰어나오며 소리쳤어요. "이놈들, 무슨 짓이냐!" "앗, 한국 사람이다. 도망가자!" 아이들은 재빨리 학교 쪽으로 줄행랑을 쳤어요. 친구들과 섞여 엉겁결에 도망을 친 한별이는 한참 후에 다시 가구 공장으로 가 보았어요. 외국에서 온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을 무조건 무서워하고 피할 게 아니라, 함께 대화해서 친구가 될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한별이가 가구 공장으로 다시 가 보았을 때 공장에는 셔터가 내려져 있었고, 음식을 먹던 외국인들도 보이지 않았어요. 한별이는 아쉬워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어요. "뭐라고? 아프리카?" 저녁에 한별이는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아빠에게 말했어요. "그 사람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아냐. 인도 사람들이지." 가구 영업을 하는 아빠는 그곳을 잘 알고 있었어요. "인도라고요?" "그래, 정식으로 비자를 받고 들어와 우리나라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야. 정부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와 중소 업체의 모자란 일꾼들을 채우고 있단다. 가족들과 헤어져 멀고 먼 우리나라까지 와서 고생하는 사람들이니까 우리나라 사람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어야 해." 아빠의 말을 듣고 한별이는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주호랑 친구들이 가구 공장으로 몰려가 '너희 나라로 꺼져!'라고 소리친 게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오늘은 학교에 가서 오해를 풀도록 해야지.' 쉬는 시간에 한별이는 친구들을 모아 놓고 아빠에게 들은 얘기를 해 주었어요. 그러자 주호가 불쑥 나서서 한별이를 몰아붙였어요. "그럼 아프리카가 민지에게 한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래?" "뭔가 오해가 있었겠지." "오해는 무슨!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외국인 노동자들 때문에 우리 동네 범죄가 더 늘어나고 있대." 아빠가 경찰인 주호는 툭하면 '아빠'를 들먹였어요. "사람이 사는 데니까 범죄가 생기는 거지. 꼭 외국인이 많아서 범죄가 느는 건 아니야." 한별이가 그렇게 말했지만 이미 아이들은 주호의 말을 믿는 듯한 표정이었어요. 다음 쉬는 시간에 한별이가 민지에게 물었어요. "지난번에 콧수염이 난 외국인이 따라왔다고 했지?" "응, 맞아." 생각만 해도 무서운지 민지가 몸을 부르르 떨었어요. "나랑 이따가 그곳에 가 보지 않을래?" "무서워." 민지가 금세 울상이 되었어요. "하지만 오해는 풀어야지? 무서우면 너는 밖에 있어." 한별이는 학교가 끝나고 민지랑 다시 그곳으로 가 보았어요. 민지가 가리킨 곳은 '제일가구'란 간판이 붙은 공장이었어요. 공장 안에 가구들이 놓여 있고, 그 뒤쪽 가건물 안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서 윙윙 소리를 내며 기계 같은 것을 조작하고 있었어요. '가구를 만드나 보다. 저 중에 콧수염 아저씨가 있겠지.' 한별이와 민지가 제일가구 앞에서 서성거리자 가게 문이 열리더니 수염 난 할아버지가 나왔어요. "너희들 문화초등학교 학생들이구나. 무슨 일이냐?"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요." 한별이가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어요. "그래, 말을 해 보렴. 학교에서 숙제라도 낸 모양이지?" "저, 그건 아니고." 한별이는 또박또박 자초지종을 설명했어요. "흠,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서 아이들이 공장으로 몰려와 외국인은 물러가라며 소리를 지른 게로군." 할아버지는 한별이와 민지를 공장 안으로 안내했어요. 푹신한 소파에 앉자 할아버지가 차를 내주며 말했어요. "이제야 무슨 일인지 알겠다. 잠시만 기다려라." 할아버지가 공장 안쪽을 향해 소리쳤어요. "파힘, 안에 있으면 이리 좀 나오게!" 잠시 후, 피부색이 까맣고 콧수염을 기른 외국인 노동자가 장갑을 벗고,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어요. "사장님, 저 불렀어요? 왔어요." 콧수염 아저씨가 어색한 한국말로 말했어요. "이봐, 파힘. 혹시 이 학생들 기억하나?" "네, 알아요." 파힘이 민지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그날 비 왔어요. 그때 저 학생 비 맞고 갔어요. 그래서 우산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불렀어요." 민지는 말없이 가만히 듣고만 있었어요. "그러니까 비가 오는데 이 학생이 비를 맞고 지나가서 우산을 빌려주려 했던 거로구먼?" "네, 비 맞으면 감기 와요. 저도 딸이 있어요."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어요. "어때, 이제 오해 풀렸니?" 한별이와 민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말했어요. "이제 오해 풀렸어요. 감사합니다." 다음 날, 발표를 하는 시간에 한별이가 교실 앞으로 나갔어요. 한별이는 어제 가구 공장에서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해 주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서워할 게 아니라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자고 말했어요. "피부색이 다르고 나라가 다르고, 말도 다르지만 우리는 다 같이 이해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우리 같은 자식이 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이해하고 존중할 때, 그분들도 마음을 열게 되고 그러면 우리가 사는 지구촌에서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전쟁도 사라지고, 모두가 다 같이 도우며 잘사는 세상이 올 겁니다." 한별이의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짝짝짝 박수를 쳤어요. 가만 보니 주호도 빙긋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어요.
누가 쓰레기봉투를 찢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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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짜증 나." 아침 운동을 나갔던 은수가 화를 내며 들어왔어요. "또 무슨 일인데?" 식사를 준비하던 어머니가 물었어요. "쓰레기장에 내놓은 쓰레기봉투를 또 찢어 놓았잖아?" 은수는 눈살을 찌푸렸어요. "그러게 말이다. 요즘 들어 계속 그런 일이 생기네." 어머니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어요. "혹시, 고양이나 길짐승들 짓이 아닐까?" 아무래도 어머니는 짚이는 게 있는 모양이었어요. "하지만 전엔 그런 일이 없었잖아." 맞아요. 쓰레기봉투가 찢기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에요. 정확히는 보름 전부터, 밤마다 어떤 못된 손님이 다녀가는 것 같았어요. 은수네 집은 도시에서 떨어진 산 밑에 위치해 있어요. 주변에 큰 저수지가 있어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에요. 그곳에서 은수네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해요. 낚시꾼들이 잡아 온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주기도 하고, 직접 기른 오리와 닭을 이용해 백숙을 팔기도 해요. 초등학교 3학년인 은수는 부모님을 도와주는 착한 아이예요.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놀지 않고 곧장 집으로 돌아와 닭과 오리 사육장에 물과 먹이를 가져다 놓기도 하고 더러워진 우리를 청소하기도 했어요. 식당의 온갖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은수의 몫이에요. 은수는 매일 저녁, 쓰레기를 정성껏 분리수거한 뒤에 식당 뒤편 쓰레기 수거장에 가져다 놓았어요. 그러면 일주일에 한 번씩 구청에서 청소차가 와서 쓰레기들을 가져가곤 했어요. 보름 전 아침이었어요. 그날 은수는 쓰레기장에 갔다가 두 눈을 의심했어요. 어제 저녁,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쓰레기봉투들이 죄다 찢겨져 흉하게 내용물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에요. 범인은 일부러 그런 것처럼 집요하게 봉투를 물어뜯었어요. 온갖 종류의 납부금 고지서를 비롯하여 은수가 그림을 그리다 버린 도화지와 부러진 크레용, 먹다 버린 과자 봉지까지 마치 회오리바람을 맞은 것처럼 바람에 나뒹굴고 있었어요. '이건 짐승들 짓이야.' 은수는 학교에서 배운 것을 떠올렸어요. 배가 고픈 짐승들이 산에서 내려와 민가를 맴도는 게 분명했어요. 하지만 먹이가 귀한 겨울도 아닌데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혹시, 친구들이 장난을 친 건 아닐까?' 마침 은수의 머리에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었어요. "강호와 대한이, 어쩌면 녀석들이 장난을 치는 건지도 몰라." 은수는 화가 나서 주먹으로 제 머리를 콩콩 쳤어요. "학교에 가면 반드시 이 문제를 따지고 말 테다." 강호와 대한이는 은수의 둘도 없는 친구예요. 하지만 서로 장난이 심해서 늘 골려 줄 궁리만 했어요. 은수도 마찬가지였는데 한 달 전, 은수는 귀신 분장으로 강호와 대한이를 놀라게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너무 놀란 나머지 대한이는 오줌까지 지렸지요. "은수, 너 반드시 복수하고 말 거야." 그날 대한이가 했던 말이 생생히 기억났어요. "맞아. 이건 녀석들의 장난이 분명해!" 은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학교로 달려갔어요. 점심시간에 은수는 강호와 대한이를 복도로 불러냈어요. "너희들 장난 이제 그만 쳐. 너희 때문에 집 안팎에 쓰레기 냄새가 진동하잖아!" 은수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강호와 대한이는 펄쩍 뛰었어요. "무슨 소리야! 우린 전혀 모르는 일이야."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어요. "흥, 그럼 멀쩡하던 쓰레기봉투가 왜 뜯겨져 있냐고!" 강호가 화를 버럭 내며 말했어요. "그건 길고양이 짓이겠지!" "우리 집 근처엔 그런 거 없어." "없긴 뭘 없어. 지난번에 내가 산에서 고양이 봤어." 은수는 학교가 끝날 때까지 친구들과 고양이가 마을에 사는지 안 사는지 입씨름을 벌였어요. '흥, 내가 그런 거짓말에 속을 줄 알아?' 기분이 상한 은수는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혼자 집으로 향했어요. 집 근처에 이르렀을 때 누군가 아는 체를 해 왔어요. 지난해 귀농한 이웃집 방정환 아저씨였어요. 방정환 아저씨는 도시에서 어린이를 위한 서점을 하다가 공기가 맑은 곳을 찾아 내려왔다고 해요. "은수구나, 오늘은 왜 혼자 오니?" 채소를 가꾸던 아저씨가 벙거지 모자를 벗으며 물었어요. "친구들과 다투었어요." 은수는 울상이 돼서 그동안의 일을 얘기했어요. "이런, 은수가 실수를 한 모양이구나." 아저씨가 껄껄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제가 실수를 했다고요?" "그래, 쓰레기봉투를 헤집어 놓은 녀석은 길고양이가 맞다. 우리 집에도 몇 번이나 찾아왔었지. 아마도 이웃 마을에서 건너온 녀석일 거야." "이리 와 봐." 아저씨가 휴대폰을 꺼내 동영상을 보여 주었어요. 거기에는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길고양이가 찍혀 있었어요. "이런, 나쁜 고양이 녀석!" 은수는 주먹을 쥐며 녀석을 혼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왜 그러니, 은수야?" 아저씨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어요. "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물어뜯어 집에 냄새가 난단 말예요. 그리고 그 일로 오해가 생겨 친구들과 싸움까지 했다고요." 아저씨가 빙긋 웃고 말했어요. "후훗, 은수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구나. 오늘은 늦었으니 집에 가서 쉬고 내일 다시 오는 게 어때? 어쩌면 아저씨가 해결 방법을 알려 줄 수도 있을지 몰라. 하지만 그 전에 네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아보렴." "해결 방법을 찾아보라고요?" 은수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왔어요. 집으로 돌아온 은수는 곰곰이 아저씨의 말을 되새겼어요. 아저씨는 분명히 해결 방법을 알려 준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 전에 스스로 찾아보라고도 했는데, 은수는 왜 아저씨가 그런 과제를 냈는지 궁금했어요. '아저씨 말을 들어서 나쁠 건 없지.' 은수는 해결 방법을 찾아 끙끙거렸어요. 쓰레기봉투 근처에 고양이가 싫어하는 물건을 가져다 놓는 건 어떨까? 아니면 쓰레기장 주변에 철망을 치든가. 그도 아니면 고양이를 잡아서. '좋아. 고양이를 사로잡자. 쥐덫을 이용하면 될 거야.' 은수는 식당으로 달려가 엄마에게 물었어요. "엄마, 생선 남은 것 좀 줘 봐요. 고양이 잡게." 엄마가 눈살을 찌푸리며 나무랐어요. "쓰레기봉투 물어뜯는 범인이 고양이 맞단 얘기지?" "네. 얼른 생선 남은 것 좀 줘요." 생선을 덫 위에 올려놓아 고양이를 잡을 생각이었어요. "괜한 헛수고야. 고양이는 영리해서 덫을 건드리지 않거든." 멀찍이서 듣고 있던 아빠가 끼어들었어요. "그러지 말고 이번 기회에 우리 그 녀석을 길러 볼까?" 은수가 놀라 눈을 크게 떴어요. "고, 고양이를 기른다고요? 녀석은 도둑고양이라고요." "아무렴 어떠냐.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걸 보니 누군가 기르던 고양이일 게다. 밥을 주어 가족으로 만들자." 은수는 고개를 저으며 식당을 빠져나왔어요. "저는 싫어요. 고양이 때문에 친구랑 싸웠단 말예요." 아빠가 뒤에서 잔소리를 했어요. "녀석아, 싸웠으면 당장 가서 화해하면 되지." 기분이 상한 은수는 막대기를 들고 집 근처를 돌아다녔어요. 고양이를 발견하면 멀리 쫓아 버릴 생각이에요. '남의 집 쓰레기봉투나 물어뜯는 도둑고양이 녀석, 걸리기만 하면 혼을 내 줄 테다!' 은수의 속마음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먼 곳에서 야옹, 하고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어요. "은수구나. 뭐 뾰족한 방법이라도 생각해 봤니?"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난 방정환 아저씨가 물었어요. "고양이를 잡으려고 하는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요." 은수가 입술을 물어뜯으며 대답했어요. "왜 고양이를 잡으려고만 하니. 같이 살 수는 없는 거야?" 아저씨가 허리를 펴며 물었어요. "같이 산다고요? 왜요. 녀석이 먼저 피해를 준걸요." "은수야, 그렇지 않단다. 고양인 배가 고팠을 뿐이야. 굶주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쓰레기봉투를 뒤진 거지." 아저씨는 산기슭에 있는 빈집을 가리키면서 그곳에 고양이의 집이 있다고 말해 주었어요. "새끼를 낳은 모양이야. 그래서 먹이가 필요했던 거고." "새끼를 낳았다고요?" 은수는 갑자기 고양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정말이야. 아저씨가 먹이를 주러 갔다가 직접 봤단다." 은수가 머리를 긁적이자 아저씨가 덧붙였어요.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란다. 동물과 인간, 자연이 모두 나누어 쓰는 곳이지. 또 동물과 인간, 자연은 서로 돕는 존재야. 그런 의미에서 고양이에게 먹이를 줄 수 없니?" "네?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라고요?" "그래. 너희 집은 식당을 하니까 버리는 생선 토막이 많을 거야. 새끼를 낳은 길고양이를 위해 먹이를 나누어 줘 봐. 그럼 내가 가진 걸 나누는 기쁨도 알게 될 거야. 또한 인간과 자연이 존중하며 사는 의미도 알게 될 테고." "네, 그럴게요." 은수는 얼떨결에 대답하고는 집으로 뛰어왔어요. '그래, 아저씨 말대로 먹이를 나누어 주자. 다른 건 몰라도 쓰레기봉투 물어뜯는 일은 더 이상 생기지 않겠지.' 은수는 엄마가 요리하고 남은 생선을 잔뜩 모았어요. "그걸 뭐하려고 그래?" 엄마의 질문에 은수는 신이 나서 대답했어요. "쓰레기봉투를 지키려고요!" 다음 날 새벽, 은수는 생선이 가득 든 바가지를 조심스럽게 쓰레기장으로 들고 가 눈에 띄는 곳에 놓았어요. 그러고는 창문을 조금 열고 고양이가 나타나길 기다렸어요. 그러기를 30여 분, 멀리서 동이 트기 직전이었어요. 산등성이를 타고 빛이 희미하게 내리비칠 무렵 고양이 한 마리가 조심스럽게 쓰레기장으로 들어왔어요. 아니, 한 마리가 아니었어요. 그 뒤로 새끼 고양이들이 세 마리나 꼬물거리며 따라 왔어요. 고양이들은 배가 고팠는지 정신없이 바가지에 담긴 생선을 먹기 시작했어요. '정말 배가 고팠던 모양이구나.' 은수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짠해졌어요. '날이 밝으면 아빠를 졸라서 고양이 집을 만들어야지.' 인간과 자연이 서로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는 방정환 아저씨의 말을 떠올리며 은수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어요.
여자는 여자, 남자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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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는 밤새 이상한 꿈에 시달렸어요. 시커먼 귀신에게 쫓겨 벼랑 끝으로 몰린 거예요. 잔뜩 겁을 먹은 채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는데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귀신이 진수를 벼랑 아래로 확 떠다밀었어요. 몸이 허공에 뜬 진수는 비명을 지르며 벼랑 아래로 떨어졌어요. “으악! 사람 살려!” 그 순간 어디선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어요. “진수야! 어서 일어나. 학교에 가야지.” 신기하게도 바로 그때 엄마가 깨운 거예요. ‘어휴, 꿈이었구나. 정말 죽는 줄 알았네.’ 창밖은 벌써 환하게 밝아 있었어요. 진수는 밤새 꿈에 시달린 탓인지 잠을 잔 것 같지가 않았어요. ‘그런데 그 귀신 누구랑 많이 닮은 것 같은데?’ 진수는 이불을 머리 위로 뒤집어쓰고 다시 침대에 누웠어요. ‘에이, 꿈인데 뭐’ 진수는 꿈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진수야, 그만 일어나.” “엄마, 조금만 더 자면 안 돼요?” “벌써 일곱 시 반이야. 아빠는 벌써 나가셨어.” “조금만 더 잘게요. 5분만!” “너 좋아하는 불고기 해 놨어. 얼른 일어나 세수해.” 그러고 보니 열린 방문 틈으로 고소한 불고기 냄새가 풍겨 왔어요. 진수는 벌떡 일어났어요. 침대에서 빠져나온 진수는 화장실로 달려갔어요. “오빠, 조금 이따 들어와. 나 씻고 있잖아!” 여동생 진희가 양치질을 하다 말고 소리쳤어요. “넌 씻는 데 오래 걸리잖아? 너 양치질하는 사이에 나부터 얼른 씻고 나갈게. 불고기도 먹어야 하는데 잘못하면 지각하겠다.” 진수는 진희를 옆으로 밀어내고 후다닥 양치와 세수를 마쳤어요. “어휴, 물 튀었잖아!” 진희가 짜증을 냈지만, 진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충 닦고 나오며 소리쳤어요. “엄마, 나 불고기 많이 줘!” “우리 아들 많이 먹어라.” 엄마가 식탁 한가운데 놓여 있는 불고기 접시를 진수 앞으로 당겨 놓으며 말했어요. “와! 맛있겠다.” 진수는 식탁에 앉자마자 젓가락으로 불고기를 양껏 집어 입으로 가져갔어요. “좀 천천히 먹어라. 그러다 체하겠다.” 엄마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요. “엄마, 내 밥은?” 그제야 화장실에서 나온 진희가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물었어요. “어, 네가 좀 갖다 먹으렴.” 엄마는 진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어요. “엄마!” 화가 난 진희가 소리쳤어요. “아이고,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질러?” 엄마가 놀란 눈으로 진희를 바라봤어요. “엄마 눈에는 진수 오빠만 보여? 난 자식으로도 안 보이냐고?” “그게 무슨 말이야? 버릇없이!” “엄만 늘 오빠만 챙기잖아! 난 밥도 직접 갖다 먹으라고 하고.” 진희가 서운한 듯 투덜거렸어요. “또 왜 그러니. 아침에 바쁜데 네가 좀 챙겨 먹으면 안 돼?” “오빠는 늘 먼저 챙겨 주면서 난 알아서 차려 먹으라니, 이건 엄연한 남녀 차별이라고!” 그러자 진수가 불고기를 가득 문 입을 우물거리며 말했어요. “남녀 차별? 나야말로 매일 여자들 때문에 차별받고 있다고.” 겨우 시간에 맞춰 학교에 도착한 진수는 빠른 걸음으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갔어요. 그때, 민희가 갑자기 나타나 진수의 어깨를 잡아챘어요. “야, 깐돌아. 왜 대답을 안 해?” “내가 널 몇 번이나 부른 줄 알아?” 깐돌이는 진수의 별명이에요. 호기심이 많은 진수가 매일 이것저것 따지거나 입바른 소리를 자주 한다고 그런 별명이 붙었지요. 진수는 짜증이 나서 되물었어요. “오, 미니 피그. 난 못 들었는데 왜 불렀어?” 미니 피그는 민희가 뚱뚱하다고 해서 아이들이 붙인 별명이에요. 미니는 민희의 이름을 발음대로 바꾼 것이고 피그는 영어로 돼지라는 뜻이죠. 민희는 그 별명을 무척 싫어해서 별명을 부르면 몹시 화를 낸답니다. “내가 그 별명 부르지 말라고 했지?” 민희가 목소리를 높이며 눈을 치켜떴어요. 그 순간 진수는 어제 꿈속에서 본 귀신이 민희를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요. 등골이 오싹했지만 민희에게 질 수는 없었어요. “나도 깐돌이란 별명 싫어하거든. 네가 먼저 내 별명을 불러서 나도 부른 거야. 알았니?” “이 뚱뚱이 미니 피그야!” 진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민희가 달려들었어요. 민희의 힘이 어찌나 센지 진수가 손을 맞잡고 버텼지만 힘이 부칠 정도였어요. 그때, 하필 담임 선생님에게 그 장면을 딱 들켰어요. “너희들, 지금 왜 싸우는 거야?” 선생님이 둘 사이를 떼어 놓으며 소리쳤어요. 진수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어요. “싸우는 게 아니에요. 그냥 민희가 다짜고짜 일방적으로 덤볐다고요.” 진수가 변명을 하려고 하자 민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선생님에게 말했어요. “제가 듣기 싫다는데도 자꾸 제 별명을 부르며 놀렸어요.” “네가 먼저 내 별명을 불렀잖아!” 진수는 하도 어이가 없어 다시 소리쳤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진수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때렸어요. “진수야, 넌 남자잖아. 남자가 못나게도 여학생을 놀리고 괴롭혀?” “한 번만 더 그랬다간 정말 혼날 줄 알아.” 민희한테 느닷없이 당한 것도 억울한데 선생님에게 꿀밤까지 맞은 진수는 갑자기 눈물이 날 것만 같았어요. 선생님이 가시자, 민희는 주변을 쓱 둘러보더니 혀를 쏙 내밀어 ‘메롱’ 하고 놀리며 교실로 들어가 버렸어요. ‘이건 남녀 차별 아니에요? 왜 남자만 항상 당해야 해요?’ 진수는 하늘을 보며 속으로 눈물을 삼켰어요. 그날 4교시는 체육 시간이었어요. 아이들이 운동장에 모이자, 선생님이 말했어요. “오늘은 팔 굽혀 펴기를 하겠다. 여학생은 다섯 번, 남학생은 열 번을 채워야 만점을 준다.” 그때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진수가 선생님에게 따졌어요. “선생님, 남녀평등이라면서 왜 남학생은 열 번을 하고, 여학생은 다섯 번만 해요?” 선생님이 웃으면서 대답했어요. “진수야!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여자들보다 뼈가 굵고 근육의 힘이 세니까 이런 종목에선 차등을 두는 거야. 이건 남녀평등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거야.” “그렇지만 민희는 저보다 힘이 더 세다고요.” 진수가 억울하다는 듯 투덜거렸어요. 그러자 선생님과 아이들이 큰 소리로 웃었어요. 그날 저녁 진수네 가족은 아빠가 일찍 퇴근하셔서 오랜만에 저녁을 함께 먹었어요. “오늘 저녁은 꽃게탕이다. 우리 아들 맛있게 먹어라.” 엄마는 여전히 진수를 먼저 챙겼어요. “아빠, 엄마는 너무하는 것 같아요. 항상 오빠만 먼저 챙겨 줘요.” 진희가 아빠를 보고 하소연했어요. “그래? 우리 진희에게는 아빠가 있잖아. 우리 진희도 맛있게 많이 먹어라.” 아빠가 웃으며 진희의 그릇에 꽃게탕을 듬뿍 담아 줬어요. “넌 늘 네가 여자라서 차별을 받는다고 하지만 진짜 차별을 받는 건 바로 남자들이라고.” 진수가 게 다리를 맛있게 뜯으며 말했어요. “남자가 차별을 받다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아빠가 의아한 듯 물었어요. 진수는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씩씩거리며 설명했어요. “오늘 진수가 많이 억울했겠네? 하지만 오늘 일이 꼭 남자라서 차별을 받은 것 같지는 않구나.” 아빠가 진수를 다독이며 말했어요. “하지만 여자는 군대도 안 가잖아요.” 진수가 억울하다는 듯 따졌어요. “그럼 남자는 아기를 낳을 수 있어?” 진희도 지지 않고 대꾸했어요. “흠, 그건 남자와 여자의 특징이 서로 달라서 그런 거지 남녀 차별 때문이 아니란다. 요즘은 여군도 많이 늘고 있잖아.” “그럼, 엄마는 남녀 차별하는 게 맞지요, 아빠?” 이번에는 진희가 물었어요. “엄마가 오빠를 먼저 챙기는 건 오빠가 몸이 좀 약해서 그런 거지. 진수가 남자라서 그러는 게 아냐!” 엄마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요. “엄마의 행동을 진희가 오해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 대신 진희는 아빠가 특별히 더 챙겨 주잖아. 그럼, 그것도 진수가 보기에는 남녀 차별로 보이지 않을까?” “엄마 아빠는 언제나 너희를 똑같이 사랑하고 있단다.” 아빠가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진희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자, 엄마가 제안했어요. “저녁 준비는 진희와 내가 했으니까, 설거지는 남녀평등을 실천하는 의미로 남자들이 하세요.” “당연하지요.” 아빠가 기분 좋은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아빠와 진수는 빈 그릇을 모아들고 주방으로 향했어요. 지과필개. 지과필개란 누구나 허물이 있는 것이니, 허물을 알면 즉시 고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남존여비’라 하여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하다는 사상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어요. 그래서 결혼한 여자가 사내애를 낳으면 집안에 큰 경사가 났다며 잔치를 벌였지만, 여자애를 낳으면 그 엄마뿐만 아니라 아이마저 쌀쌀한 눈총을 받아야 했지요. 사람은 누구나 평등한데 옛날에 남녀 차별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전쟁이나 사냥을 할 때 강한 힘을 가진 남자들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져요. 현재 우리 사회는 남녀평등 사상이 뿌리를 내려 남자가 주로 하는 힘든 일까지 여자들이 진출할 정도로 남녀 차별 문제가 많이 사라졌어요. 그러니까 아직도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남녀를 차별하는 친구가 있다면 ‘지과필개’, 반드시 그 생각을 고쳐야 하겠죠?
혼자 다 할 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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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모둠 과제는 서로 협동하며 봉사하는 단체에 대해 조사해 오는 거예요!" 선생님의 말에 민수가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쉬었어요. "휴, 우리 모둠 걱정된다." 민수는 옆자리에 앉은 민경이를 보며 투덜댔어요. 민수의 말에 민경이 역시 입을 비죽거리며 대답했어요. "누군 좋은 줄 알아? 나도 너 싫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민수와 민경이는 팽하니 돌아앉았어요. 뒤에 앉은 세란이가 두 친구를 보며 웃었어요. "또, 또 싸운다! 왕 쌍둥이들! 왕민수, 왕민경, 너희들이 쌍둥이라는 게 놀랍다!" 민수와 민경이는 이란성 쌍둥이에요. 5분 먼저 태어난 민수가 오빠고 민경이가 동생이지요. 게다가 올해는 같은 반, 같은 모둠, 짝꿍까지 되었어요. 보통 쌍둥이들은 서로 텔레파시도 통하고, 이심전심으로 서로를 잘 안다고 하지요. 하지만 민수와 민경이는 달라도 너무 달랐어요. 쌍둥이지만 이란성이라 얼굴도 닮지 않았어요. 민수는 엄마를, 민경이는 아빠를 닮았거든요. 또 민수는 오동통하고, 민경이는 홀쭉한 편이에요. 그래서 친구들은 두 사람이 같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뚱뚱이와 홀쭉이'가 걸어간다며 놀려 댔어요. "제발 저만치 좀 떨어져서 가! 친구들이 놀린다고!" "너야말로 나 좀 따라다니지 마!" 민수와 민경이는 서로 같이 다니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어요. 그래서 집에 갈 때도 일부러 멀찌감치 떨어져 걸었어요. 두 사람은 성격도 판이하게 달랐어요. 민수는 엄마를 닮아 '빨리! 빨리!'를 입에 달고 살았고, 민경이는 아빠를 닮아 매사에 느릿느릿 느림보였어요. 그런 느림보 민경이와 같이 모둠 숙제를 해야 하다니 민수는 시작부터 가슴이 답답했어요. 게다가 같은 모둠인 세란이나 창호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어요. "먼저 인터넷으로 서로 협동하며 세상에 봉사하는 사람이나 단체에는 어떤 것이 있나 조사해 보자." 느림보 민경이가 말했어요. 성격 급한 민수는 민경이의 의견에 반대했어요. "그런 걸 뭐 자료 조사까지 해! 그냥 '국경없는의사회'로 하자! 특별하니 좋잖아!" 그러자 세란이가 아는 체하며 맞장구쳤어요. "아! 나도 거기 알아! 전 세계 의사들이 모여 어려운 지역으로 달려가 의료 봉사를 하는 단체야!" 세란이가 동조를 해 준 덕분에 단체는 금방 정해졌어요. 민수는 내친 김에 어떻게 발표할지도 혼자 다 정해 버렸어요. "내일까지 '국경없는의사회'에 대해 각자 조사해서 토론해 보자." "그리고 이번 과제는 인형극으로 꾸며서 발표하면 아마 선생님도 만족하실 거야." 민수는 제 할 말만 따따따 떠들고 난 후 축구 교실에 가야 한다며 쌩하니 나가 버렸어요. 민수가 나가고 나자 민경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어요. "협동에 대해서 숙제하고 있는데, 우린 전혀 협동이 안 되네. 어이구, 독불장군 왕민수!" 민경이가 투덜대자 창호가 한마디 보탰어요. "민수는 성격이 너무 급해! 난 내일까지 힘든데." "나도. 오늘은 학원 숙제가 많아서 어려워!" 아이들의 말에 민경이 나섰어요. "내가 집에 가서 민수한테 전할게. 모레 만나자고!" 민경이는 세란이와 창호의 의견을 민수에게 전했어요. "에이, 후딱후딱 해치우지. 뭐하러 시간을 끌어!" "모둠 숙제는 같이 해야 하는 건데, 아이들이 시간이 안 된다잖아!" "그럼 세란이가 하기로 한 건 내가 하고, 창호가 하기로 한 건 민경이 네가 하면 되겠다!" 민수의 말에 민경이가 발끈했어요. 모둠 숙제를 둘이서 도맡아야 하는 게 맘에 들지 않았던 거예요. "왜 오빠 맘대로 정하려고 해?" 민경이의 말에 민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하는 김에 같이 하면 되잖아! 그게 그렇게 어려워?" "나도 학원 갔다 와서 피곤하단 말이야!" "내가 한다! 내가 해!" 민수가 성질을 내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민경이는 제 맘대로 하려는 민수 때문에 속이 상했어요. 다음 날, 방과 후에 모둠 아이들이 다시 모였어요. 민수는 한 뭉치의 자료를 아이들 앞에 내려놓았어요. "너희들이 바쁘다고 해서 어제 내가 조사 다 했어." "와! 역시 민수가 최고야!" 창호와 세란이가 민수를 치켜세웠어요. 민수는 아이들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아이들은 인형극을 어떻게 할지 서로 의견을 나눴어요. 이번에도 역시 민수가 적극적으로 나섰어요. "활동 지역을 표시한 세계 지도를 배경 그림으로 하고, '국경없는의사회'의 활약을 인형극으로 보여 주는 게 어때?" 별다른 생각이 없던 민경이도 민수의 의견에 찬성했어요. 배경으로 쓸 세계 지도는 그림을 잘 그리는 창호가 맡기로 했어요. 국경없는의사회의 깃발과 자료 사진은 민수가 맡기로 했고요. 꼼꼼한 민경이는 인형극 대본과 발표 자료를, 손재주가 좋은 세란이는 인형을 만들기로 했지요. "이틀 뒤 토요일 날 예행연습을 하자!" 민수의 제안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어요. 민경이는 먼저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을 적은 예쁜 표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표를 만들다 보니 '국경없는의사회'가 정말 엄청나게 많은 지역으로 의료 봉사를 나간 걸 알게 되었어요. "와! 정말 대단해!" 민경이는 감탄하여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쳤어요. 그때 민수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어요. "이 깃발 어때? 멋지게 만들었지?" 민수가 '국경없는의사회' 깃발을 흔들며 자랑했어요. 그러고는 민경이가 만든 표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어요. "이렇게 작게 만들어서 글자나 보이겠어? 나처럼 크게! 눈에 확 띄게 만들어야지!" 민수의 말에 민경이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어요. "그렇게 맘에 안 들면 네가 다시 만들어!" "알았어! 내가 다시 만들고 만다!" 민수가 씩씩거리며 방을 나갔어요. 다음 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민수는 운동장 관중석 계단에서 창호를 만났어요. 창호는 모둠 숙제를 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민수가 다가가 그림을 보며 투덜댔어요. "좀 알록달록하게 그려야지? 너무 밋밋하잖아!" "그런 말 마라, 나 지금 학원도 빠져 가면서 그리는 거야." "그럼 너는 학원에 가. 내가 완성할 테니까!" "이거 색칠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 그러자 민수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어요. "그림 좀 잘 그린다고 되게 생색 내네. 내가 멋지게 그려 올 테니 걱정하지 마!" 민수는 창호의 그림을 챙겨 들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그날 저녁 세란이도 전화를 했어요. "엄마가 지금 아프셔서 도저히 나 혼자서는 인형을 만들 수 없을 거 같아." "민경이 오면 우리 집에서 같이 만들자고 전해 줘." "걱정하지 말고 엄마나 잘 돌봐 드려. 인형은 민경이하고 내가 알아서 만들게!" 민수는 큰소리치며 전화를 끊었어요. 그러나 일이 민수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어요. 학원에서 돌아온 민경이가 감기 기운이 있다며 곧장 제 방으로 들어가 잠이 들어 버린 거예요. "하여튼 도움이 안 돼! 나 혼자 하지 뭐." 민수는 투덜거리며 책상에 앉았어요. 민수는 먼저 창호가 그리던 세계 지도를 완성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내 깃발에 비해 지도가 너무 작은 것 같은데? 어차피 그릴 거 이왕이면 좀 더 크게 그리자!' 민수는 창호의 그림을 팽개쳐 두고 다시 커다랗게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지도를 그리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한 시간 내내 끙끙대며 밑그림을 그리던 민수는 마침내 생각을 바꿨어요. '안 되겠다! 다시 창호 그림으로 마무리하자!' 민수는 창호가 그리다 만 그림을 완성해 나갔어요. 역시 처음부터 그리는 것보다 훨씬 쉬웠어요. 창호가 그리던 세계 지도를 완성하고 나니 이번에는 민수가 만든 깃발이 문제였어요. "깃발이 너무 커서 지도랑 어울리지가 않네." 민수는 투덜거리며 깃발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어요. 어느새 시간은 밤 12시가 넘어가고 있었어요. '내일 1시에 예행연습을 하기로 했는데.' 민수는 그때까지 인형을 다 만들 수 있을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민수는 그만 잠이 들고 말았어요.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민수는 발을 동동 굴렀어요. "아! 어떡하지? 인형을 아직 못 만들었는데!" 민수는 부랴부랴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먼저 도화지 위에 등장인물들을 그렸어요. 의사와 간호사를 그리고, 굶주린 아프리카 사람들과 총칼을 들고 선 무서운 병사들을 대충대충 그렸어요. 민수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어요. 그때 문득 의문이 생겼어요. '아니, 다 같이 협동해서 하는 게 모둠 숙제인데 왜 나만 숙제를 하고 있는 것 같지?' 그제야 민수는 후회가 되었어요. '아! 내가 너무 혼자서 다 하려고 했구나! 친구들하고 같이 했으면 금방 했을 텐데.' 그러나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어요. 벌써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가거든요. 그때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어요. "왕민수! 뭐 하냐?" "민수야! 우리가 왔어!" 창호와 세란이의 목소리였어요. 친구들은 민수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어요. "내가 모두 불렀어!" 뒤따라온 민경이가 웃으며 말했어요. "혼자서 끙끙대며 고생하지 말고 우리 모두 같이 하자!" 창호가 의자를 끌고 오며 말했어요. "이번 모둠 숙제의 주제가 협동이잖아! 우리 모둠도 제대로 협동 한번 해 보자고!" 세란이가 맞장구를 쳤어요. "어휴, 잘 왔다! 혼자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다고! 역시 모둠 숙제는 모두 함께 해야 돼!" 민수가 겸연쩍게 웃으며 친구들을 맞이했어요. "어때? 역시 급할 땐 동생이 최고지?" 민경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어요. "물론이지! 너는 나의 쌍둥이 동생, 왕민경이잖아!" 민수의 말에 세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기분 좋게 웃었어요. 일인불과이인지 혼자서는 두 사람의 지혜를 넘지 못한다는 뜻으로 아무리 잘난 사람도 여럿이 힘을 합하는 것만은 못하니 서로 도우며 협동하라는 말이에요. 일인불과이인지이란 혼자서는 두 사람의 지혜를 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친구는 너무 잘나서 뭐든 자기 맘대로 일을 처리하려고 하지요. "무조건 내 말만 들어!" "내 말이 맞으니까! 나만 따라와!" 그런 친구는 서로 의논하면 더 좋은 해결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부리곤 해요. 그럴 때 쓰는 말이 바로 '일인불과이인지'예요. 예로부터 우리 조상님들은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나 함께 나누라고 했어요. 특히 어렵고 힘든 일일수록 여러 사람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했지요. 우리나라에도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바로 '일인불과이인지'와 비슷한 뜻으로 쓰인답니다.
고집불통 소녀의 자선바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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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_고학년
사랑이는 한빛초등학교 3학년 1반 교실로 들어갔어요. 교실은 아침부터 떠들썩했어요. 바로 오늘이 다음 주에 있을 자선 바자회 모둠을 정하는 날이거든요. "자, 한 명씩 앞으로 나와서 종이를 뽑아 1조부터 6조를 정하겠어요. 앞줄부터 나오세요." 아이들이 하나둘씩 나가서 바구니에 담긴 흰색 종이를 뽑았어요. 사랑이도 나가서 종이를 뽑은 후에 살짝 펴 보니 '5조'라고 쓰여 있었어요. 잠시 후, 아이들은 같은 모둠끼리 모여 앉았어요. 사랑이와 함께 5조가 된 아이들은 서로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여서 약간 어색하게 앉아 있었어요. "우리 반 친구들이 자선바자회에서 모은 돈으로 불치병에 걸린 어린이들을 도와줄 거예요. 그러니까 모두 기쁜 마음으로 바자회를 준비해 주세요!"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이 "네!" 하고 대답했어요. 모둠별로 모인 아이들은 회의를 시작했어요. 모둠의 이름도 정해야 하고, 바자회에서 무엇을 팔지, 가격은 어떻게 할지도 정해야 했거든요. 금세 소란해진 교실 안에서 사랑이네 5조만 아무 말이 없었어요. 답답해진 사랑이가 말문을 열었어요.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는 바자회니까, 내 이름을 따서 우리 모둠은 '사랑의 마음'으로 하자. 어때?" 반장 형철이가 못마땅한 듯 얼굴을 찌푸렸어요. "왜 네 이름으로 모둠 이름을 정하니? 나는 사람들이 다들 관심 가질 만한 독특한 이름으로 정했으면 좋겠어." "쳇, 독특한 게 뭐가 좋아? 그냥 내 말대로 ‘사랑의 마음’로 하자니까!" 사랑이네 조는 처음부터 의견이 엇갈렸어요. 사랑이는 자기 생각이 가장 좋은 것 같은데, 친구들은 자꾸 이상한 이름을 내놓았어요. '빅뱅 짱', '하하호호' '안드로메다' 같은 이름은 정말 이상하지 않나요? 사랑이는 이런 이름을 제안하는 친구들이 싫어졌어요. 결국 사랑이네 조는 회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모둠 이름을 정하지 못했어요. 처음으로 아픈 사람들을 돕기 위해 참여하는 자선바자회인 만큼 잘해 보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자 사랑이는 무척 속이 상했어요. "안 되겠다. 학교 끝나고 수위실 옆 느티나무 아래로 다들 모여. 거기서 다시 회의를 하자." 형철이의 말과 함께 5조 회의는 끝이 났어요. 회의는 끝났지만 사랑이는 수업 시간 내내 혼자 어떻게 하면 바자회를 멋지게 해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요. 학교가 끝난 후 사랑이는 5조 친구들과 느티나무 아래 동그랗게 둘러앉았어요. 친구들이 집에 있는 어떤 물건을 가져와 팔지 의논하고 있는데 사랑이가 불쑥 모둠 이름 팻말을 친구들에게 보여 주었어요. 그 팻말은 쉬는 시간에 사랑이가 혼자 만든 것이었어요. "이렇게 빨간색 글씨로 '사랑의 마음'이라고 쓰고 옆에 하트를 그려 주는 거야. 어때, 예쁘지?" "뭐야, 김사랑! 모둠 이름은 아직 정하지도 않았는데 혼자 이렇게 팻말을 만들어 오면 어떡해?" 민우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자 사랑이는 기분이 나빠졌어요. 자신이 생각한 대로만 하면 바자회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친구들이 자꾸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냥 내 말대로 하면 안 돼? 솔직히 내가 제일 공부도 잘하고 너희보다 그림도 잘 그리잖아." 사랑이는 귀찮다는 듯 손을 저으며 그렇게 말했어요. 사랑이의 말에 친구들은 모두 기분이 상했어요. 반장 형철이는 사랑이가 내민 팻말을 돌려주며 말했어요. "이번 바자회는 모둠끼리 협동해서 하는 거야! 사랑이 네가 그렇게 잘났으면, 너 혼자 해!" 다른 친구들도 형철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사랑이는 친구들이 자기 말에 따르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이상한 눈초리로 자기를 바라보는 친구들을 보자 사랑이는 갑자기 짜증이 났어요. "그래. 나는 너희 없이도 혼자 바자회를 멋지게 해낼 수 있어! 너희끼리 어디 한번 잘해 봐라!" 사랑이는 '흥!' 하고 돌아서서 곧장 집으로 가 버렸어요. 사랑이는 집에서 도화지에 큰 글씨로 '사랑의 마음'이라고 썼어요. 그런 다음, 여러 색깔의 색종이를 하트 모양으로 오려 붙여 정식으로 팻말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돗자리도 빨간색 하트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따로 준비했어요. "그럼 이제부터 팔 물건을 찾아보자." 사랑이는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과 학용품을 하나하나 골라 냈어요. 찾아보니 쓰지 않는 물건이 꽤 많았어요. 크레파스, 연필깎이, 머그컵, 손수건, 원피스 등등 모두 스무 가지도 넘었어요. 사랑이는 자신만만했어요. 혼자 해도 친구들보다 훨씬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흥! 나 혼자 멋지게 바자회를 해서 아픈 사람들을 제일 많이 도와줄 거야! 그럼 친구들도 다들 부러워하겠지.' 사랑이는 자기에게 찾아와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부러워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어요. 그러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 키득키득 웃었어요. 토요일 오후 1시. 드디어 바자회가 시작되었어요. 학교 운동장은 수많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했어요. 정문에는 '한빛초등학교 자선바자회'라고 쓰인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었고, 바로 그 아래서 한 아저씨가 솜사탕을 팔고 있었어요. 운동장 입구 바로 왼편 천막 아래에서는 학부모님들이 떡볶이와 김밥,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고요. 사랑이는 운동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돗자리들을 요리조리 피해 중앙에 있는 자신의 자리로 찾아갔어요. 사랑이와 같은 학년의 아이들은 모두 조별로 모여 돗자리를 3개씩 이어 붙이고 팻말을 옆에 깃발처럼 꽂아 놓은 채 신나게 물건을 팔고 있었어요. "어서 오세요! 여기 좋은 물건 많아요!" 손님은 정말 많았어요. 마을의 노인분들과 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와 아빠들도 아주 많았고 중학생, 고등학생 언니와 오빠들도 참 많았어요. 5조 친구들도 열심히 물건을 팔고 있었어요. "여기는 장난감과 학용품을 파는 '하하호호'입니다! 예쁜 장난감과 학용품이 엄청 많습니다!" 개그맨 흉내를 잘 내는 민우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어요. 가만 보니 제법 손님이 많았어요. 돗자리에 놓인 물건들도 아주 많고 좋아 보였어요. 손님이 다가오면 말을 잘하는 형철이와 은주가 응대하여 물건도 곧잘 팔고 있었어요. "근데 왜 내 물건은 안 팔리지?" 사랑이는 아직 물건을 하나도 팔지 못했어요. 아예 물건값을 물어보는 사람조차 없었어요. 사랑이는 돗자리에 앉아 친구들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어요.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사랑이는 '여기에도 좋은 물건 있어요!' 하고 큰 소리로 외쳐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사랑이는 즐겁게 물건을 팔고 있는 5조 친구들을 바라보다가 괜히 심술이 나서 물건들을 싸 들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어머, 사랑아! 바자회는 어쩌고 벌써 돌아왔니?" 사랑이가 돗자리와 팻말, 물건들이 든 쇼핑백을 안고 집으로 들어오자 엄마가 깜짝 놀라 물었어요. 사랑이는 엄마 얼굴을 보는 순간 괜스레 슬퍼져서 엉엉 울음을 터뜨렸어요. "내가 만든 팻말이 가장 예쁘고 물건들도 좋은데, 이상하게 내 물건만 안 팔려요! 너무 속상해요!" 사랑이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모두 말했어요.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서 엄마가 살포시 사랑이의 어깨를 안아 주며 말했어요. "그랬구나. 우리 사랑이가 많이 속상했겠네. 하지만 이렇게 친구들과 단체로 해야 하는 일에서는 사랑이 혼자 행동하면 안 되는 거야. 친구들 모두의 의견을 다 들어 보고, 다 같이 힘을 합해야 일이 술술 풀리고 잘되는 거란다. 알겠니?" 사랑이는 엄마의 말을 듣고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보았어요. 그러자 자기 의견만 내세우며 친구들을 무시했던 일들이 떠올라 몹시 부끄러웠어요. '내가 공부도 제일 잘하고 그림도 제일 잘 그리잖아!' 특히 이 말이 가장 부끄러웠어요. 친구들이 자신을 얼마나 거북하게 여겼을지 생각하니 저절로 얼굴이 빨개졌어요.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사랑이는 엄마에게 말했어요. "엄마, 제가 잘못한 거 같아요. 단체 활동에서는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졌더라도 혼자 결정하고 행동해서는 안 되는데 저는 그렇게 한 것 같아요. 지금 당장 친구들에게 사과하러 가야겠어요!"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사랑이는 자기가 팔려고 했던 물건 중에 장난감과 학용품을 골라 들고 바로 밖으로 달려 나갔어요. "안녕하세요! '하하호호'입니다! 어서 오세요!" 사랑이는 열심히 물건을 팔고 있는 5조 친구들 앞으로 쭈뼛거리며 다가갔어요. "어, 사랑이잖아? 잠깐 안 보이더니 다시 왔네?" 반장 형철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어요. 사랑이는 들고 온 장난감과 학용품을 친구들에게 내밀며 말했어요. "얘들아, 내 생각이 짧았어. 혼자 이기적으로 굴어서 정말 미안해. 너희와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나도 너희랑 함께 바자회를 성공적으로 마쳐서 불치병 환자들을 도와주고 싶어. 그래도 될까?" 5조 친구들은 멀뚱히 서서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때 형철이가 사랑이가 내민 장난감과 학용품을 건네받으며 말했어요. "물론이야! 이런 일은 많은 사람이 할수록 좋은 거니까 우리 한번 열심히 해 보자!" 형철이가 사랑이를 받아 주자 다른 친구(親舊)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사랑이를 반갑게 맞아 주었어요. 사랑이는 친구들이 너무도 고마웠어요. 그래서 그 시간부터 누구보다 열심히 손님들을 불러 모으고 물건도 열심히 팔았어요. 친구들이 놀랄 정도로 아주 열심히 일해서 제법 물건도 많이 팔았어요. "와, 우리가 돈을 이만큼이나 벌었어! 아픈 사람들을 많이 도와줄 수 있겠다! 정말 기쁘지 않니?" 형철이가 친구들에게 모금함을 보여 주며 말했어요. 사랑이는 혼자서 하지 못했던 일을 친구들과 함께 해냈다는 사실이 참으로 뿌듯했어요. '앞으로는 절대 혼자 멋대로 행동하지 않을 거야.' 사랑이는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큰 소리로 외쳤어요. "어서 오세요! 좋은 장난감과 학용품이 있습니다!" 사랑이와 친구들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따뜻한 노을 속으로 멀리멀리 퍼져 가고 있었어요.
형은 나의 우상이야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오늘은 무지개 초등학교 3학년 1반과 2반의 축구 시합이 벌어지는 날이에요. 1반과 2반은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한 달에 두 번씩 축구 시합을 하고 있어요. 이제까지 모두 세 번 시합을 했는데 그중 두 번을 2반이 이겼어요. 잠시 뒤, 운동장에 1반 선수들이 둥글게 모였어요. 주장 민호가 손을 내밀며 소리쳤어요. “1반! 오늘은 꼭 이기자! 아자! 아자! 파이팅!” “아자! 아자! 파이팅!” 선수들도 합창하듯 큰 소리로 외쳤어요. “목소리로 축구하나? 이번에도 우리 2반이 이길 거야!” “오늘은 복수의 날이다! 1반 파이팅!” 응원석에서도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어요. 이윽고 축구 경기가 시작됐어요. “와!” 경기는 어느덧 후반전 막판, 1반 응원석은 난리가 났어요. 1반 선수들이 전반전에 이어 다시 한 골을 넣은 거예요. 야유를 보내던 2반 응원석은 찬물을 끼얹은 듯 잠잠해졌어요. “더 볼 것도 없네. 오늘은 우리가 이건 거야!” 1반 응원석은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어요. 예상을 뒤엎고 1반이 2반에게 2:0으로 앞서가자 2반 아이들은 초조하게 시계를 보았어요. 경기 시간은 이제 5분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기기라도 해라. 제발!” 2반 응원단들은 두 손을 맞잡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그런데 후반전 종료 직전, 갑자기 주심의 호루라기가 울렸어요. “삑! 핸드볼 반칙!” 마음이 급했던지 2반 선수가 골문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그만 손으로 쳐 낸 거예요. 페널티 구역 안에서 반칙을 하면 상대에게 페널티 킥 기회가 주어져요. “형주야! 빨리 와!” 주장인 민호가 소리쳤어요. 형주는 1반 골키퍼예요. 형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달려왔어요. “골키퍼도 골을 넣을 수 있다는 걸 보여 줘!” 형주가 달려오자 1반 선수들이 박수를 치며 응원했어요. “뭐야, 골키퍼가 차다니? 다 이긴 게임이라 이건가?” 응원석이 술렁이기 시작했어요. 2반 골키퍼 재준이는 별명이 ‘거미 손’이에요. 오늘은 운수가 사나워서 두 골을 먹긴 했지만 여간해서는 골을 먹지 않는 선수예요. “뭐야? 페널티 킥은 공격수가 차야 되는 거 아냐?” 1반 응원석에서 불평이 터져 나왔어요. 형주가 골을 못 넣을 것 같아 불안했기 때문이에요. 마침내 주심이 호루라기를 불자 형주는 이를 악물고 골문 모서리를 향해 힘껏 공을 찼어요. 공은 보기 좋게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어요. “골인! 와! 우린 골키퍼도 골을 넣는다!” 1반 응원석이 환호성으로 뒤덮였어요. “잘했어, 형주야!” 1반의 모든 선수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형주에게 달려갔어요. 형주는 너무 기쁜 나머지 그라운드에 이마를 대고 눈물을 흘렸고, 선수들은 형주를 가운데 두고 서로 뒤엉켰어요. 마치 결승전에서 강팀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 이라도 거둔 것 같은 광경이었어요. 만약 종료 직전 역전 골을 넣은 거라면 그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 상황은 좀 지나치지 않나요? “쟤들 너무 오버하는 거 아냐?” 1반 응원석에서도 좀 의아해했어요.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일주일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야 해요. 일주일 전, 1반 주장인 민호는 집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형주를 만났어요. 형주는 휠체어를 밀고 가고 있었는데 휠체어에는 형주의 동생인 영주가 타고 있었어요. 1학년인 영주는 작년에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쳐 걷지를 못하거든요. 그래서 날마다 형주가 휠체어로 영주를 데리고 다녀요. “어? 민호 형이다! 형, 안녕?” 영주가 밝게 웃으며 인사했어요. “안녕, 영주도 잘 지내지?” 민호도 반갑게 인사했어요. 그러자 영주가 엄지를 척 세우며 말했어요. “민호 형은 내 우상이야!” “내가 왜?” 민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어요. “형은 축구를 정말 잘하잖아. 그래서 내 우상이야.” 영주가 부끄러워하며 말했어요. “축구라면 네 형이 더 잘하지. 우리 반 최고의 골키퍼잖아.” 민호가 형주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어요. “그렇지만 골키퍼는 골을 못 넣잖아.” “야! 김영주. 골을 넣는 공격수도 중요하지만 상대편의 골을 막는 골키퍼도 아주 중요하거든.” 형주가 동생에게 꿀밤을 한 대 먹이며 투덜댔어요. “알아! 하지만 난 골 넣는 공격수가 더 좋단 말이야. 상대편 골망을 흔드는 강력한 슈팅! 정말 멋지잖아! 골키퍼는 골을 못 넣으니까 별로야.” 영주가 몸을 흔들며 신나게 떠들었어요. 영주의 말에 형주는 조금 서운한 표정을 지었어요. 그날 밤 민호는 평소처럼 인터넷으로 축구 기사를 검색했어요. 그러던 중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발견했어요. ‘골 넣는 골키퍼! 팀을 구하다!’ 기사의 내용은 프로 구단에서 골키퍼로 활약하는 어느 유명한 선수의 이야기였어요. 이 선수는 골키퍼인데도 팀이 위기에 처할 때면 직접 나서서 골까지 넣는다는 내용이었어요. 민호는 호기심에 ‘골 넣는 골키퍼’를 검색해 보았어요. 그러자 수많은 기사들이 화면에 떴어요. 골을 넣는 골키퍼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세계 유명 프로 리그에는 꼭 한두 명씩 골을 넣는 골키퍼가 있었어요. “바로 이거야! 골 넣는 골키퍼!” 민호는 뭔가 좋은 생각이라도 떠올랐는지 환한 미소를 지었어요. 다음 날 민호는 형주 몰래 축구부원들을 모아 놓고 말했어요. “너희들한테 제안할 게 하나 있어.” 민호는 어제 형주 형제를 만났던 일과 인터넷에서 검색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설명했어요. “골 넣는 골키퍼, 어때? 생각만 해도 멋질 거 같지 않니?” 민호가 모두를 돌아보면서 물었어요. “멋진 생각이긴 해. 영주도 좋아할 것 같고.” “그런데 형주가 골을 넣을 기회를 어떻게 만들지? 지금도 2반한테 내리 두 번이나 지고 있는데 괜히 그러다 또 지면 아무 의미도 없잖아.” 아이들은 뜻은 좋지만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어요. 민호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문제였어요. 민호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결정을 내렸어요. “우리 모두의 뜻이 중요하니 투표로 정하자.” 투표는 15명 가운데 13명의 찬성으로 통과됐어요. “그럼 이제 방법을 찾아보자.” 민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요. “골키퍼가 골을 넣게 도와주려면 페널티 킥을 얻어야 해. 아니면 상대방 문전에서 직접 프리 킥을 얻어야지.” “그렇지만 골키퍼가 상대 문전까지 와서 슛을 하면 거꾸로 역습을 당할 수도 있어. 그럴 땐 어떡해?”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생각을 얘기했어요. “형주가 슛을 하러 나오면 내가 골문을 지킬게. 완벽하진 않지만 만약에 실패하더라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 민호가 힘주어 말했어요. “우리 모두 힘을 합치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어.” 수비수인 정호도 나서서 거들었어요. 드디어 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어요. 우리가 후반전에 두 골 이상 앞서면 무조건 형주에게 기회를 준다. 페널티 킥과 프리킥 모두 형주가 차게 한다. 일주일 뒤, 양 팀의 축구 경기가 펼쳐졌어요. 1반 선수들은 2반과의 경기에서 무조건 이기고 싶었어요. 두 팀은 시합 때마다 팽팽한 경기를 펼쳤지만, 두 번의 뼈아픈 패배로 1반 선수들은 잔뜩 독이 올라 있었어요. 1반 선수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또 달렸어요. 저마다 마음속에는 이기고 싶다는 열정과 함께 형주 형제를 돕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1반은 전반전에 한 골을 넣어 1:0으로 앞서다가 후반전에 한 골을 더 넣어 두 골 차로 벌어졌어요. 2반은 한 골이라도 넣겠다고 줄기차게 공격해 왔어요. 그럴수록 1반 선수들은 더욱 똘똘 뭉쳐 한 걸음이라도 더 뛰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그러자 하늘이 감동했는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1반 선수가 마지막 공격으로 코너킥을 찼을 때였어요. 공이 문전으로 날아가는 순간 2반 수비수가 갑자기 손으로 공을 쳐 낸 거예요. “삐익!” 호루라기 소리에 모든 선수가 동작을 멈췄어요. 상대팀 선수들도 뜨악한 표정이었어요. 반칙을 한 선수는 그 자리에서 퇴장당하고, 주심이 페널티 킥을 선언했어요. 그러자 민호가 형주에게 큰 소리로 외쳤어요. “형주야! 골을 넣는 골키퍼가 될 기회야. 영주 앞에서 보란 듯이 시원하게 슛을 날려 봐!” “이건 우리 모두의 뜻이야.” “골을 넣지 못해도 널 탓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차!” 친구들이 다들 형주를 격려했어요. 형주는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어요. 친구들은 골을 못 넣어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이 소중한 기회를 날려 버리고 싶지 않았어요. 더구나 2:0으로 이기고 있는 경기를 자기 때문에 위태롭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형주는 친구들의 응원을 뒤로하고 비호같이 슛을 날려 보기 좋게 골을 넣었어요. 친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한꺼번에 달려왔어요. “와아! 우리 형이 골을 넣었어! 이제 형은 내 우상이야!” 경기를 지켜보던 동생 영주가 마구 손을 흔들며 소리쳤어요. 형주는 친구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어요. “어이, 골 넣는 골키퍼!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형주 네가 그동안 골문을 잘 지켜 주어서 우리도 마음 놓고 뛴 거야!” 수비수 정호가 형주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어요. 주장 민호는 선수들과 일일이 하이 파이브를 하며 소리쳤어요. “우리 1반, 똘똘 뭉치는 협동 정신 하나는 정말 끝내준다니까!” 상부상조. 상부상조란 서로 의지하고 돕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상부상조는 제아무리 어려운 일도 서로 힘을 합하면 잘 해결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 담긴 사자성어예요. 중국 속담에도 ‘혼자서는 두 사람의 지혜를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어요. 비슷한 우리 속담으로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지요. 비슷한 뜻의 십시일반이라는 사자성어도 있어요.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나온다는 뜻이에요. 한번 상상을 해 보세요. 열 명의 친구가 도시락을 싸 가지고 공원에 놀러 갔어요. 그런데 한 친구가 깜빡 잊고 도시락을 안 가져왔어요. 다들 도시락을 펼쳐 놓고 먹을 때 한 사람은 굶고 있어야 해요. 한 친구가 안타까운 마음에 자기 도시락을 내밀었어요. “나랑 반씩 나눠 먹자.” 만약 한 명 분의 도시락을 둘이서 나눠 먹으면 둘 다 금세 배가 고파질 거예요. 하지만 나머지 아홉 명이 조금씩 밥을 덜어 준다면 열 명의 친구들은 밥을 모자라게 먹었다는 느낌도 들지 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도시락을 안 가져온 친구는 자기도 나중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친구들을 돕고 싶어지겠지요?
친구야, 같이 가자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주호는 지금 어린이 캠프에 와 있어요. 오늘은 해변에서 '손잡고 달리기'를 하는 날이에요. 교육관은 먼저 50명의 아이들을 다섯 명씩 짝을 이루어 10개 조로 나누었어요. "자, 이제 각 조의 배정된 다섯 명이 조원이에요. 이제 조원들끼리 손을 꼭 잡고 해변 끝에 있는 결승점까지 달리는 거예요. 단, 절대로 손을 놓아서는 안 돼요!" "만약에 달리다가 손을 놓치면 무효, 즉 처음부터 다시 달리기를 하는 거예요. 잘 알았죠? 그럼 1조부터 출발!" "어휴, 미치겠네!" 주호는 이마의 땀을 씻으며 투덜거렸어요. '햇볕이 이글거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날씨에 친구들과 손을 잡고 해변 모래밭을 뛰라니?' 주호는 교육관을 원망스런 눈빛으로 쳐다봤어요. 벌써 4조가 출발하고 있었어요. 다음은 주호가 속한 5조예요. 주호는 조원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지었어요. 뚱뚱이 대한이 때문이에요. 주호와 같은 조에 속한 대한이는 체중이 10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아이예요. 주호가 보기에 대한이는 숨쉬기도 어려워하는 것 같았어요. '대한이와 함께 전원이 결승점까지 간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해!' 주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자! 5조, 출발!" 교육관이 소리쳤어요. "자, 가자! 파이팅!" 주호네 팀은 씩씩하게 소리치며 출발했어요. 물론 대한이를 생각해서 최대한 천천히 달렸어요. 그런데 한 50미터쯤 달렸을까요? 갑자기 뭔가 가벼워진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얼굴이 빨개진 대한이가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있었어요. "야! 손을 놓고 앉으면 어떡해!" 주호가 대한이를 나무랐어요. "미안해, 하지만 숨이 너무 차서." 대한이는 거의 우는 얼굴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어요. "세 번 무효가 되면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한단 말이야! 제발 최선을 다해 줘." 하지만 두 번째 달리기에서도 주호네 조는 또다시 대한이를 놓치고 말았어요. 숨이 찬 대한이가 결국 손을 놓고 주저앉아 버린 거예요. "난 못 하겠어!" 화가 난 주호는 친구들을 놓아둔 채 숙소를 향해 뛰어갔어요. "야, 달리기하다 말고 너만 가면 어떻게 해?" 같은 조의 친구들이 말렸지만 주호는 막무가내였어요. "싫어! 또 해 봐야 뻔해. 대한이하고는 절대 결승점까지 갈 수가 없다고!" 주호는 어린이 캠프에 온 걸 엄청 후회했어요. 주호는 원래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적인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아빠가 회사에서 갑자기 퇴직하시고 동네 상가에 식당을 차린 뒤부터 이상해졌어요. 엄마 아빠는 하루 종일 식당에 매달려 있느라 주호가 변하는 걸 눈치채지 못했어요. 주호는 부모님이 안 계신 틈을 타 게임을 하기 시작했어요. '지나치지만 않으면 엄마 아빠도 눈치채지 못할 거야.' 하지만 게임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어요. 점점 게임을 하는 시간이 늘어 갔지요. 그러다 온라인 게임에 빠지면서 중간고사 성적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쳐 버렸어요. "도대체 이유가 뭐니? 성적도 떨어지고 독서 기록장이랑 수행 평가도 엉망이잖아?" 상담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물었어요. 주호는 게임 때문이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오늘부터 더욱 열심히 할게요." 주호는 선생님 앞에서 다짐을 했어요. 하지만 한번 맛을 들인 온라인 게임은 좀처럼 끊을 수가 없었어요. '엄마 아빠가 나를 위해 고생하시는데 내일부터 게임도 끊고 전처럼 공부도 열심히 하자!' 거의 매일 결심을 했지만 그때뿐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집에 온 삼촌에게 그만 게임하는 것을 들키고 말았어요. "이 녀석! 그동안 공부는 안 하고 게임만 했구나?" 삼촌이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물었어요. "삼촌, 그런데 게임이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주호는 삼촌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도움을 요청했어요. 마음은 게임을 끊고, 엄마 아빠도 도와 드리고 싶은데, 매사에 짜증만 나고 마음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게임을 하는 게 잘못은 아니란다. 다만, 일주일에 한두 번, 시간을 정해서 절제하면서 해야 하는 거지." 그러면서 삼촌은 자기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어린이 캠프 얘기를 꺼냈어요. "게임을 못 끊는 것도, 공부가 하기 싫어진 것도, 다 생활 습관이 잘못 든 거야. 어린이 캠프에 가서, 다른 사연을 가진 친구들과 어울려 생활하며 잘못된 습관들을 고쳐서 돌아오자." 굳게 마음을 먹고 들어온 어린이 캠프였지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던 주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요. 밥을 먹을 때도 음식물을 남기면 벌점을 받았고, 모든 과제는 항상 친구들과 협동하며 풀어 가야 했어요. '숲에서 길 찾기' 같은 프로그램은 오히려 여러 친구들과 함께 숲을 탐험했기에 무섭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손잡고 달리기'는 예외였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야?" 숙소로 찾아온 삼촌이 물었어요. "한 명 때문에 우리 조원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게 싫어!" "그건 해 보나 마나 한 경기였다고." 주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어요. 삼촌이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어제 있었던 '숲에서 길 찾기' 때는 어땠니? 인적도 없고 길도 없는 숲에서 네 곁을 지켜 주었던 건 오로지 친구들이었잖아." 주호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손잡고 달리기도 마찬가지야. 우린 1등을 원하는 게 아냐. 다섯 명 모두가 서로 도우며 결승점을 통과하는 걸 경험해 보라는 거지." 주호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혀야 했어요. "대한이는 음식을 자제하지 못하고 먹는 습관을 고치려고 캠프에 참여한 거야. 그러니 주호 네가 도와줘." "대한이의 손을 절대로 놓지 말고 결승점에 닿을 때까지 함께 이끌어 줘. 그럴 수 있겠어?" 주호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주호다. 어서 와." 주호가 돌아가자 대한이가 제일 먼저 반겨 주었어요. "아까는 내가 미안해." "너무 더워서 화가 났나 봐. 이 경기의 목표는 다 함께 결승점에 도착하는 거야. 그걸 이제야 깨달았어." 주호는 조원들에게 사과했어요. "괜찮아. 우린 네가 반드시 돌아올 줄 알았어." 친구들도 웃으며 주호를 반겨 주었어요. "자, 출발 준비! 5조 너희가 마지막이다!" 교육관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조원들이 달리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아까와는 완전히 달랐어요. 주호와 친구들은 서로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어요. 모두 대한이의 발걸음에 맞춰서 천천히 움직였어요. "모두 집중해! 하나둘, 하나둘, 천천히, 천천히." 역시 중간쯤 달렸을 때 대한이가 넘어지면서 위기가 찾아왔어요. "대한아, 괜찮니?" 친구들은 손을 놓지 않은 채 대한이가 일어나길 기다렸어요. "힘들면 포기해도 돼." "우린 이미 하나인 걸 확인했잖아?" 주호의 말에 대한이가 고개를 저었어요. "아냐. 손을 놓지 말아 줘." "계속 갈 거야. 그리고 앞으로 살도 뺄 거야. 고마워, 친구들." 5조는 중간에 세 번이나 쉬었지만 결국 손을 놓지 않고 모두 함께 결승점에 골인했어요. 주호와 조원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어요. "여러분 이렇게 서로 협동하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어요. 이 점을 절대 잊지 말아요!" 교육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요. "주호가 웬일이니? 가게에도 다 나오고?" 캠프에 다녀온 뒤 주호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엄마 아빠 바쁘잖아? 시간이 좀 나서 도우려고 나왔지." 음식 배달을 가던 아빠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요. "원, 녀석. 전엔 마지못해 끌려 나오더니." 그러자 주호가 대답했어요. "지금 비록 우리 가족이 힘든 시기지만 저는 엄마랑 아빠랑 있어서 정말 든든해요. 이렇게 셋이서 함께 노력하면 지금보다 더 좋아질 거예요." 아빠는 기분이 좋은지 큰 소리로 웃었어요. "하하, 네 말이 맞다. 아빠도 하루하루 힘들 때마다 우리 가족을 생각하며 이겨 낸단다." 아빠의 말에 주호네 가게는 행복한 가족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어요.
새로운 생각이 필요해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저는 서해의 작은 어촌에 사는 박두수라고 해요. 그리고 우리 마을의 이름은 석수예요. “예전에 조기가 많이 나서 마을 이름도 그렇게 지었어. 조기의 한자 이름을 석수어라고 한단다.” 어른들이 말해 준 마을 이름에 얽힌 사연이에요. 하지만 현재 우리 마을 앞바다에서는 조기가 전혀 잡히지를 않아요. 예전에는 사람들도 많이 살았다고 하는데, 조기가 잡히지 않게 되면서 대부분 이사를 떠났다고 해요. 저는 석수마을 석수초등학교 3학년이에요. 3학년은 저까지 포함해서 다섯 명뿐이에요. 그리고 저는 발명가예요. 어른으로 치면 직업이 두 개인 거죠. 아니다. 직업이 하나 더 있네요. 아빠가 낚싯배를 운영하는데 제가 손님들 잔심부름을 해요. 그래서 낚시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지요. 제 자랑 하나 할게요. 한 달 전에 제 이름으로 낸 발명품이 아빠 낚싯배에서 팔려 나가기 시작했어요. 제가 발명이라는 것을 한 이유는 친구 영찬이가 희한한 허수아비를 만들어서 주위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영찬이한테 지는 건 못 참거든요. 발명이란 말은 선생님한테 처음 들었어요. 방학을 한 달 남겨 두고 별안간 선생님이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어요. “석수초등학교 발명 대회를 연다. 전원 다 참가하도록!” “선생님, 발명이 뭐예요?” 영찬이가 손을 들고 질문을 했어요. 언제나 나서기를 좋아하는 녀석이죠.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어요. “그건 지금까지 없었던 기술이나 물건을 새롭게 생각하여 만드는 걸 말한단다.” “어려워요, 선생님.” 투정쟁이 미현이가 머리를 싸매는 시늉을 하자 선생님은 근엄하게 말했어요. “이건 숙제야.” “우선 발명이 뭔지 알아보고, 우리 생활과 밀접한 발명품을 생각해 봐. 알았지?” 방과 후에 민석이가 물었어요. “두수야, 넌 뭐 만들 거야?” “몰라. 넌 뭐 할 건데?” “글쎄. 발명이 뭔지 모르겠어. 에디슨이 발명왕이었지?” 민석이가 다시 물었어요. 저는 머릿속이 복잡했어요. “에디슨이 전구를 만들었지? 어릴 때 거위도 품고...” “어이구! 거위가 아니라 알이지.” 뒤따라오던 영찬이가 끼어들었어요. 저는 영찬이의 머리를 쥐어박았어요. 다른 건 몰라도 제가 영찬이보다 싸움은 잘하거든요. 하지만 전 늘 영찬이에게 져요. 운동하고 싸움 빼면 이기는 것이 없어요. 보름 정도가 지난 어느 날이었어요. 아버지 심부름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마을 한복판에 있는 영찬이네 논에 희한한 것이 눈에 띄었어요. 그건 허수아비였어요. 허수아비야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지만 신기하게도 그 허수아비는 춤을 추었어요. 바람이 불어도 춤을 추고, 몸에 연결된 밧줄을 당겨도 춤을 추었어요. 더 놀라운 것은 춤을 출 때마다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온다는 거였어요. “저게 뭐야? 소리가 좀 듣기 싫지만, 신기한 물건일세!” 아빠가 허수아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그렇게 말했어요. 곧 선생님이 그 논으로 갔고 영찬이가 그 옆에서 허수아비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보았어요. 기분이 영 좋지 않았어요. 다음 날 선생님은 영찬이에게 발표를 시켰어요. 저는 영찬이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어요. 겨우 알아들은 말이라고는 서울 친척 집에 갔을 때 길거리에서 춤추는 기린 인형을 봤고, 그 원리를 허수아비에 적용했다는 거예요. 미현이가 손을 들었어요. “선생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영찬이가 그런 걸 만들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영찬이는 좀 쭈뼛거리더니 말했어요. “사실 아이디어는 내 것이 맞는데 만들 때 우리 막내 삼촌이 많이 도와줬어.” “야, 너네 막내 삼촌은 무지 유명한 대학교 다닌다며? 이건 반칙이야, 반칙!” 민석이가 핀잔을 주었어요. 저는 박수를 치고 싶었지요. “그리고 음악 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요.” 말이 없기로 유명한 정미마저 거들고 나섰어요. 선생님이 영찬이를 다독이며 말했어요. “춤추는 허수아비라는 발상이 신선한 것은 사실이야. 그리고 허수아비가 농사일에 상당히 도움이 될 거란 것도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겠지.” “하지만 영찬이가 만든 게 아니에요! 춤추는 허수아비는 발명 대회에 나갈 수 없어요!” 제가 말하자 선생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흠, 맞는 말이지만 친구의 노력을 그런 식으로 비난하면 안 돼. 분명한 것은 영찬이도 나름대로 생활에 도움이 되는 발명을 하려고 노력했다는 거야. 자, 그럼 다른 친구들은 숙제를 잘하고 있나?” 저는 입을 꾹 다물었어요. 그때 미현이가 손을 들었어요. “선생님, 저는 발에 끼우는 걸레를 만들 거예요.” 이번에는 민석이가 말했어요. “저는 양쪽에서 짜는 치약을 만들 거예요.” 다음 날 미현이와 민석이는 발명품을 들고 왔어요. 미현이 작품은 신발에 걸레가 달려 있는 거였어요. “저는 허리가 아픈 할머니가 좀 편안하게 청소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어요. 그래서 허리를 굽히지 않고도 청소할 수 있는 이걸 만들었어요.” 미현이의 작품을 보고 선생님이 칭찬해 주었어요. 저도 투정쟁이 미현이가 달리 보였지요. 민석이는 뚜껑이 앞뒤로 달린 치약을 발표했어요. 가운데에 테이프를 붙인 걸 보면 치약 두 개를 잘라 이어서 만든 것이 분명했어요. “저는 치약을 완전히 다 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어요. 그래서 앞뒤로 뚜껑이 달린 치약을 만들게 되었어요. 양쪽으로 짜면 치약을 끝까지 쓸 수 있어요.” 짠돌이 민석이다운 발명품이었어요. “그럼, 두수하고 정미만 남았네. 두 친구들은 숙제 준비를 잘하고 있나?” 선생님의 물음에 저는 대답할 수 없었어요. 정미는 양계장을 하는 자기 집에 도움이 되는 발명을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 말에 저도 불쑥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선생님, 저는 친환경 낚싯봉을 만들어 볼래요.” “오호, 그래?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선생님도 놀랐고 친구들도 놀란 표정이었어요. 사실 저도 놀랐어요. 어렴풋이 혼자 생각하고 있던 것이 입 밖으로 나와 버린 것이니까요. 아빠는 낚싯배를 운영하면서도 항상 걱정했어요. “저 납으로 된 낚싯봉이 우리 바다를 망치고 있어.” 낚시하러 온 손님들이 낚싯봉을 보통 서너 개는 잃어버려요. 중금속인 납은 서서히 바닷물 속에서 녹는다고 해요. 저는 집에 오자마자 바다로 나갔어요. 우리 마을에 자갈이 깔린 해변이 있거든요. 돌의 색깔은 모두 다른 색이에요. 연노랑, 회색, 검은색, 연초록... 낚싯봉으로 사용하려면 무게가 가벼우면 안 돼요. 그건 제가 전문가라서 잘 알지요. 하지만 좋은 돌을 골랐어도 그 돌에 구멍을 내어 낚싯바늘을 매다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마당에서 한참 낑낑거리고 있자 아빠가 물었어요. “뭐 하냐?” 저는 발명 숙제를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드릴, 아주 작은 송곳 같은 드릴이 있어야 해.” 아빠는 밖으로 나갔어요. 그리고 잠시 후 영찬이와 영찬이 삼촌을 대동하고 돌아왔어요. 영찬이의 손에는 공구가 들려 있었어요. “너 나하고 공동 작품으로 하자는 거냐?” 영찬이는 친환경 낚싯봉이라는 기발한 제 발명품을 탐냈어요. 저는 무조건 싫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그럴 수가 없었어요. “우선 구멍을 내 봐! 성공하면 그때 가서 얘기하자.” 영찬이는 작은 드릴로 순식간에 돌을 뚫고 낚싯줄까지 꿰었어요. 전 속으로 감탄을 했지요. “너 아는지 모르겠는데, 내 작품의 핵심은 친환경이자 물고기를 더 잘 낚는 낚싯봉이라는 데 있어. 그러니까...” 저는 물고기가 색깔과 진동에 반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어찌 아냐고요? 기존의 낚싯대를 잘 살펴보세요. 낚시찌와 낚싯봉 모두 점점 화려해지는 중이에요. 그리고 낚싯봉과 낚싯줄의 연결 부위에는 스프링이 달려 있어요. 물속에서 마치 살아 있는 먹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지요. “돌에 색을 입히고 스프링을 달아야 한다는 말이지?” 이번에는 영찬이 삼촌이 물었어요. “그렇죠. 이왕이면 황금색이나 주황색이 좋겠어요.” 저는 전문가예요. 여러 낚싯봉 중 물고기가 가장 잘 반응하는 색깔은 뭘까요? 그건 황금색이에요. 그리고 지렁이 색깔도요. 이유는 제가 물고기가 아니라서 확실히 대답할 수는 없어요. 이번에는 영찬이의 기술로는 무리인지 영찬이 삼촌이 돌의 표면을 깎기 시작했어요. 유명한 대학의 공대생이라더니 역시 못 하는 게 없네요. “그럼 이제 된 거지? 이거 공동 작품인 거다?” 영찬이가 제게 물었어요. “아니, 물고기가 잡히는 걸 확인해 봐야지. 안 잡히면 말짱 도루묵이야.” 우리는 바닷가에 나갔어요. 그리고 저녁까지 낚시를 했어요. 결과를 말하자면, 저의 발명품은 대성공이었어요! 선생님은 제 발명품을 칭찬해 주었어요. 그리고 저는 영찬이와 공동 개발자로 발명 대회에 나갔어요. 우리는 미현이와 민석이와 함께 상을 받았어요. 그것보다 중요한 건 우리 발명품이 우리 배에서 팔리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손님들에게 적극 추천한 덕분이지요. 요즘은 학교가 끝나고 시간이 나면 영찬이와 함께 돌을 찾으러 다니고 있어요. 그리고 돌에 구멍을 뚫고, 무늬를 넣고, 색깔을 입히고 아주 작게 우리 이름을 새겨 넣지요. 저희 마을 바닷가의 물고기들은 낚시꾼들에게 잡히거나 잡히지 않거나 모두 제 이름을 알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영찬이 이름도 알겠지요. “발명, 이거 정말 재미있네요!” 연석보천. 연석보천은 돌을 다루어 무너진 하늘을 고친다는 뜻으로, 큰 공을 세운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연석보천은 중국 전설에서 유래한 말이에요. 먼 옛날 중국의 공공씨와 축융씨가 싸움을 벌였어요. 그러다 그만 큰 산에 부딪쳐 하늘 기둥이 부러지고 땅이 갈라지는 큰 사고가 났어요. 그러자 여와씨가 오색 돌을 불려 하늘과 땅을 수리하고, 자라 다리를 잘라 하늘 기둥을 세웠다고 해요. 여기에서 유래하여 아주 큰 공을 세운 것을 가리켜 ‘연석보천’이라고 하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보통 어떤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내가 그걸 어떻게 해.” 또는 “내 능력으로는 어림도 없어.” 하고 미리 포기해 버려요. 하지만 위의 이야기처럼 돌로 하늘과 땅을 고치고, 자라 다리로 하늘 기둥을 수리하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남은 생각지도 못할 큰일을 해낼 수 있어요. 세상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은 모두 독창적인 생각, 자신만의 창의적인 생각으로 어려운 일을 해결했어요. 여러분도 자기만의 톡톡 튀는 생각으로 세상을 바꿀 멋진 아이디어를 구상해 보세요.
아빠는 주말 요리사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연두는 항상 일요일이 기다려져요. 일요일에는 아빠가 요리를 해 주기 때문이에요. 아빠는 컴퓨터 만드는 회사의 직원이에요. 그런데도 국이든 찌개든 못하는 음식이 없답니다. 엄마도 음식을 아주 못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가끔 아빠 음식이 그리운 이유가 있어요. 연두는 어릴 때 몸이 많이 아팠어요. 지금은 다 나았는데 엄마는 늘 연두가 말랐다고 걱정이에요. "엄마가 특별히 실력 발휘했으니까 맛있게 먹어!" 연두는 엄마가 이런 말을 할 때 은근히 불안해요. 엄마의 특별 요리는 보통 때 먹는 음식보다 오히려 입맛에 안 맞을 때가 더 많기 때문이에요. "진짜 창의적인 요리가 뭔지 확실히 보여 주겠어!" 며칠 전에 큰소리치면서 만든 카레와 오징어가 들어간 엄마의 김치볶음밥은, 정말이지 맛도 없고 그냥 특이하기만 한 음식이었어요. 기다리던 일요일, 엄마가 동창회 모임 때문에 집을 나서며 연두에게 말했어요. "아빠가 해 주는 음식은 다 맛있지? 점심 맛있게 먹으렴." 엄마는 아직도 그날 일로 화가 안 풀린 얼굴이에요. 연두는 엄마의 그 '창의적인' 김치볶음밥을 거의 손도 대지 않았거든요. "우리 딸!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뭐든 말해." 아빠는 메뉴 선택권을 연두에게 주었어요. 연두는 오징어만 들어가지 않으면 상관없다고 했어요. 오징어는 연두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기 때문이에요. 아빠는 김치볶음밥을 만들기로 했어요. 그러고는 우선 국 냄비를 꺼냈어요. "먼저 김치볶음밥과 같이 먹을 국을 안쳐 놔야지! 음식은 두 가지 이상을 동시에 하는 게 요리사의 기본 아니겠니?" 아빠는 냄비에 맹물을 붓고, 국간장을 약간 떨어뜨린 다음 소금을 넣었어요. "국간장만으로 간을 맞추면 안 좋단다. 일단 국물 색깔도 새카맣게 돼서 보기가 안 좋고, 맛도 깔끔하지가 않아. 그래서 국간장 특유의 향을 내는 정도만 넣고, 간은 소금으로 마무리하는 거야." 아빠는 집에 있는 재료로 간단한 계란탕을 만든다고 했어요. "맹물에다 간장과 소금만 넣어선 아무 맛이 없겠지?" 아빠는 굵은 멸치 서너 마리와 마른 다시마 두어 장을 넣고, 가스 불을 약하게 켜 놓았어요. "멸치와 다시마 맛을 우려내려면 약한 불로 천천히 끓여야 돼." 이어서 아빠는 파를 송송 썰고, 계란 두 개를 풀어 놓았어요. "파는 처음부터 넣는 게 아냐. 너무 오래 익히면 흐물흐물해지니까. 파는 국이 충분히 끓었을 때 넣고, 미리 풀어 놓은 계란을 수면 위로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골고루 넣어 줘야 해. 이때 가스 불을 최대한 크게 해서 국물을 펄펄 끓여야 계란이 물 위에서 금방 익지." 계란탕이 끓는 동안 아빠는 묵은 김치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흐르는 물에 씻고, 꽉 짜서 물기를 빼 주었어요. "김치를 그냥 넣으면 매워. 그렇다고 깨끗하게 씻어 버리면 색깔도 보기에 좋지 않고, 김치 맛도 덜하단다. 김치의 빨간색이 반 정도 남아 있을 정도면 적당해. 그리고 물기를 충분히 빼 줘야 기름에 볶을 때 빨리 익고 모양도 깔끔해져." "아빠, 창의적인 요리는 어떤 거예요?" 연두는 문득 아빠 생각이 궁금했어요. "창의적인 요리라고 해서 재료를 이것저것 많이 넣거나 특이한 것을 쓴다고 되는 건 아니야. 남들이 똑같이 쓰는 재료라도 자기만의 솜씨로 잘 연구해서 쓰면 되지." 아빠는 빙그레 웃으며, 볶은 돼지고기를 프라이팬에서 꺼내 따로 준비해 둔 접시에 담았어요. "이걸 김치랑 같이 볶으면, 돼지고기의 바삭한 맛이 한풀 꺾인단다. "아빠는 돼지고기를 볶을 때 생긴 기름을 절반쯤 따라냈어요. "기름이 많으면 느끼한 데다 식구들 건강도 생각해야지." "그렇게 하는 것도 창의적인 요리법인가요?" 연두가 묻는 말에 아빠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꼭 기발한 아이디어만 창의적인 것은 아니야.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부분까지 한 번 더 생각하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도 중요한 창의성이라고 아빠는 생각해." 연두는 아빠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어요. 아빠는 돼지기름을 덜어 낸 만큼 올리브유를 넣고, 미리 준비해 둔 김치를 넣은 다음 센 불에서 볶기 시작했어요. "약한 불에 오래 볶으면 김치에서 물이 나와 맛도 덜해지고, 요리 시간도 오래 걸린단다." 김치를 볶을 때 소나기가 내리듯 요란한 소리가 났어요. 아빠는 주걱으로 김치를 쉴 새 없이 뒤적거리고, 때때로 진짜 요리사처럼 손목을 꺾으며 프라이팬을 들었다 놓았어요. 그때마다 김치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 솟구쳤다가는 고스란히 프라이팬 속으로 들어갔어요. 아빠는 신이 난 듯 휘파람을 불어 가며 한 5~6분쯤 볶고 나서, 불을 끄고 이마의 땀을 닦았어요. 그리고 물엿과 참기름, 참깨를 넣고 주걱으로 몇 번 뒤적거렸어요. 조금 있다가 새 프라이팬을 가스 불 위에 올려놓고 식용유를 약간 두르더니 찬밥을 넣고 볶기 시작했어요. 밥이 뭉치지 않도록 주걱으로 부지런히 헤집고, 또 아까처럼 프라이팬을 들었다 놓았어요. "와!" 연두는 탄성을 질렀어요. 밥을 다 볶고 나자 밥알 하나하나에 윤기가 좔좔 흐르는 듯했어요. 아빠는 볶은 김치와 밥을 섞었어요. 김치도 미리 볶고, 밥도 따로 볶았으니 더는 불에 익힐 필요가 없었어요. 아빠는 김치볶음밥을 예쁘게 접시에 담고 나서 말했어요. "이제 마지막으로 계란 프라이다!" 연두는 군침을 꼴깍 삼키며 냉장고로 달려가 달걀 두 개를 꺼내 아빠한테 전달했어요. 그리고 식탁 위에 숟가락과 젓가락 두 벌을 놓았어요. "우리가 흔히 먹는 계란 프라이도 신경 써서 만들면 제법 특별한 음식이 되지!" 아빠는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약간 두르고 가스 불을 세게 틀었어요. 기름이 어느 정도 달궈지자 불을 약하게 줄인 다음, 아빠는 계란을 넣고 노른자를 살짝 터뜨렸어요. 한쪽 면이 어느 정도 익자 계란을 뒤집었어요. "계란 프라이에 소금은 넣을 필요가 없어. 김치볶음밥에 짠맛이 충분하니까. 음식은 같은 맛이 서로 겹치면 곤란해." 계란의 나머지 면이 거의 익자, 아빠는 다시 불을 세게 키운 다음, 두 번 뒤집어서 계란의 겉면을 노릇노릇하게 익혔어요. "이렇게 해야 계란 프라이가 보다 풍부한 맛을 내지! 겉은 바삭바삭하고, 안은 말랑말랑해서 씹는 맛이 좋아. 부드러움과 톡 튀는 느낌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거야." 연두는 계란탕을 국그릇에 담고 후춧가루를 살짝 뿌렸어요. 그러자 아빠가 뜻밖이라는 듯 쳐다보았어요. "오, 연두 제법인데? 기특하게 후추 뿌릴 생각을 했네!" "나도 3학년인데 그 정도는 알아요!" 연두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아빠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어요. 계란탕은 특히 연두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마지막에 후추 넣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어요. "그래? 그럼 계란탕에 후추는 왜 넣었지?" 아빠가 묻는 말에 연두는 자신 있게 대답했어요. "계란의 비린 맛을 살짝 잡아 주려면 후추가 필요하죠." "와, 꼬마 요리사 납셨네!" 아빠는 흐뭇하게 웃으며 보충 설명을 했어요. "계란 프라이는 기름에 구워서 비린 맛이 연기와 함께 사라져. 하지만 계란탕은 계란의 비린 맛이 국물 안에 그냥 남게 돼. 비린 맛은 물을 만났을 때 더 비린 맛을 내. 굽거나 튀겼을 때는 반대이고 말이야." 연두는 아빠의 설명이 너무 길어서 다 외우지는 못해도 무슨 뜻인지는 대충 알아들을 것 같았어요. 김치볶음밥 위에 볶은 돼지고기를 뿌리고, 그 위에 계란 프라이를 얹자 작품이 완성되었어요. 연두가 한 숟가락 뜨자 아빠가 물었어요. "어때?" "정말 신기해요!" 연두는 '맛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는 재료들로만 만들어진 그냥 평범한 김치볶음밥인데 맛은 입 안에 척척 감겼어요. 매콤한 김치와 고소한 계란, 그리고 돼지고기의 기름진 맛이 아주 잘 어울렸어요. 연두는 아빠에게 또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아빠가 아까 했던 얘기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겠어요." "무슨 얘기?" "기발한 아이디어만 창의적인 생각이 아니라는 거요.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새로운 맛을 낼 수 있으면 그것 역시 훌륭한 창의력이에요! 맞죠, 아빠?" 연두는 오늘따라 밥맛이 꿀맛이었어요. 아빠와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먹는 밥이라 더 맛있게 느껴졌는지도 몰라요. "연두야, 요리사가 가장 기쁠 때가 언젠지 아니?" "언젠데요?" "그건 바로 자신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 주는 사람이 있을 때야. 엄마가 너에게 음식을 만들어 줄 때도 그런 심정일 거야." 아빠는 속으로 뜨끔해하는 연두에게 부드럽게 말을 이었어요. "엄마는 네가 또 아프게 될까 봐 자꾸 이것저것 영양가 있는 재료를 넣는다더라. 그러다 가끔 생각했던 것과 다른 맛이 나오기도 하는 거야." 연두는 툭하면 엄마한테 밥투정했던 게 조금 미안했어요. 엄마의 정성이 지나친 것은, 자신을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이란 걸 이제 알게 된 거예요. 월요일 저녁, 밥 색깔이 이상했어요. 밥알이 전부 녹색으로 물들어 있는 거예요. 연두는 엄마가 또 몸에 좋은 것을 넣었을 거라 생각했어요. "엄마, 밥 색깔이 왜 이렇게 예쁜 거야?" "해조류를 먹으면 피가 맑아진다기에 다시마를 갈아 넣은 거야." 연두는 다시마 밥을 맛있게 먹었어요. 그런데 연두는 문득 아빠가 요리를 잘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어요. 엄마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신혼 초에 엄마는 결핵이라는 병을 앓았어. 결핵에는 특히 음식을 골고루 잘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아빠가 열심히 요리 공부를 해서 맛있는 음식을 해 주셨단다." 그러니까 아빠의 요리가 유난히 맛있었던 건 창의력에 세심함과 사랑이 더해져 더욱 창의적인 맛을 내기 때문이었어요. '아빠가 들어오시면 와락 포옹을 해 드려야지.' 연두는 벌써부터 아빠의 퇴근이 기다려졌어요.
할아버지 사랑해요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오늘은 영주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사 오는 날이에요. 원래 두 분은 시골에 살았는데 아빠가 집으로 모셔 오기로 한 거예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이제는 연세가 많아서 우리가 보살펴 드려야 해.” “할아버지가 하나뿐인 손녀딸이라고 널 얼마나 예뻐하시는지 알지?” 영주는 명절 때마다 시골집에 가면 할아버지가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던 모습을 떠올렸어요. 하지만 영주는 할아버지가 왠지 낯설었어요. 아마도 얼굴에 커다란 흉터가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때 현관 초인종 소리가 울렸어요. “얼른 문 열어 드려. 이제 오셨나 보다.” 영주가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자 할아버지가 영주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렸어요. “어디 보자. 우리 귀여운 손녀딸!” “앗, 따가워!” 영주는 할아버지의 까칠한 턱수염이 뺨에 닿는 순간 화들짝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어요. 얼굴이 가시에 찔린 것처럼 화끈거렸어요. “영주야.” 엄마가 눈짓으로 영주를 나무랐어요. “괜찮다. 애가 놀란 모양이지.”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겸연쩍은 듯 어색하게 웃었어요. 영주는 어쩐지 마음이 무거웠어요. 아무리 그래도 턱수염으로 뺨을 비비는 건 정말이지 고역이었어요. “영주가 크면 좀 나아질 줄 알았더니 아직도 낯가림이 심한 모양이구나.” 할머니는 은근히 서운한 표정을 지었어요. 할아버지는 날마다 아침과 저녁에 두 번씩 운동 삼아 동네 약수터로 산책을 나갔어요. 일요일 오후에 할아버지가 영주에게 물었어요. “심심하면 할아버지랑 같이 산책 갈까?” “숙제해야 돼요.” 영주는 숙제를 핑계로 거절했지만 사실은 다른 이유가 있었어요. 그건 바로 할아버지 얼굴에 난 흉터 때문이에요. 약수터에 따라갔다가 혹시 친구라도 만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던 거예요. “오냐. 그럼 숙제하렴.” 할아버지는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선선히 산책을 나갔어요. 영주가 계속 데면데면하게 굴어도 할아버지는 전혀 언짢은 내색을 하지 않았어요. 그럴수록 영주는 점점 죄책감이 들었어요. 한번은 학교에서 돌아오다 아파트 입구에서 할아버지와 마주친 적이 있어요. “우리 영주 이제 오니?” 할아버지는 반가운 얼굴로 말을 걸었어요. “할아버지가 맛난 거 사 줄까?” “아니요.” 영주는 마침 배가 고팠으나 힘없이 고개를 저었어요. 이날따라 할아버지 얼굴의 흉터가 더 도드라져 보였어요. “얘가 웬일이야?” 엄마는 영주가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는 모습을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어요. “배가 많이 고팠나 보네. 천천히 먹어라. 체할라.” 할머니가 물을 챙겨 주었어요. 할아버지는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말없이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어요. 어딘가 모르게 표정이 어두웠어요. “영주야.” 저녁에 아빠가 영주 방으로 들어왔어요. “할아버지가 오셔서 불편하니?” 영주는 아빠의 물음에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첫날 영주가 그렇게 짜증을 낸 이후로 할아버지는 더 이상 턱수염으로 뺨을 비비지 않았어요. 단지 영주를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볼 뿐이었어요. 어쩌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할아버지가 먼저 슬며시 고개를 돌리고는 했어요. 영주는 오히려 할아버지가 더 불편해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아빠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물었어요. “할아버지가 도로 시골로 가셨으면 좋겠니?” “그런 거 아닌데...” 영주는 차마 아빠한테 할아버지 흉터에 대해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할아버지는 보통 사람보다 몸집이 큰 편이고 목소리가 아주 우렁찼어요. 게다가 억센 이북 사투리 때문에 조금만 말투가 빨라져도 마치 싸우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어요. 영주는 가끔 할아버지 얼굴에 난 흉터를 보며 안 좋은 상상을 했어요. “어쩌면 누구랑 싸우다가 그렇게 됐는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들면 할아버지가 옆에 오는 것도 꺼려졌어요. 그래서 어쩔 땐 못되게 굴기도 했어요. 영주가 거실에서 피아노 연습을 할 때였어요. “우리 손녀딸이 피아노를 잘 치는구나.” 할아버지가 방문을 열어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어요. “듣기 좋은데 계속하렴.” 하지만 영주는 연주할 마음이 사라졌어요. “저 이제 공부할 거예요.” 영주는 괜히 심통이 나서 피아노 뚜껑을 닫았어요. 오늘은 현충일이에요. 아빠는 아침 일찍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외출했어요. 영주는 모처럼 휴일이라 늦잠을 잤어요. 한참을 자다가 거실에 나갔더니 엄마 혼자 청소를 하고 있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시골 가셨어요?" 영주는 괜히 뜨끔해서 집 안을 휘둘러보았어요. 할아버지한테 쌀쌀맞게 대한 것 때문에 두 분 다 시골로 내려간 줄 알았던 거예요. "할아버지 친구분한테 가셨단다." "친구분이 어디 계신데요?" "국립묘지에 계신단다." 엄마는 영주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말해 주었어요. "할아버지는 네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베트남 전쟁에 나가 용감하게 싸우셨어. 전투 중에 여러 명의 동료를 구하셨단다. 그 일로 정부에서 주는 훈장도 받으셨어." "할아버지가 전우들을 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전쟁이 끝나고도 한참 지난 후의 일이야. 할아버지가 훈장을 받고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셨는지 모른단다."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는 정말 뜻밖이었어요. 영주는 할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싸우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어요. 할아버지는 포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가운데 부상당한 동료를 구하기 위해 적진을 뚫고 들어가고 있어요. 당황한 적군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모습도 보이네요. 마침내 할아버지가 동료를 들쳐 업고 뛰고 있어요. 영주는 마음속으로 힘껏 박수를 쳐 주었어요. 그러자 할아버지 얼굴의 흉터가 마치 훈장처럼 느껴졌어요. 알고 보니 그것은 영광의 상처였어요! 영주는 그런 줄도 모르고 할아버지를 오해했던 일이 너무 부끄러웠어요. 저녁이 되어 식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어요. 영주는 새삼 존경스러운 마음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보았어요. 이제는 할아버지와 얼굴을 마주 보는 게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식사가 끝나도록 아무 말이 없었어요. 평상시와 달리 영주와 눈길을 마주치려고 하지도 않고 표정도 몹시 슬퍼 보였어요. 텔레비전에서는 현충일 추념식에 관한 뉴스를 하고 있었어요. "피곤하구나. 일찍 자야겠다." 할아버지는 몇 번 헛기침을 하다가 방으로 들어갔어요.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어요. "오늘따라 친구분 생각이 많이 나는 모양이더라." "왜 안 그러시겠어요." 엄마 아빠가 할머니를 위로했어요. 그런 말을 들으니 영주도 덩달아서 기분이 우울해졌어요.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영주는 친구들과 노인정 앞을 지나다 걸음을 멈추었어요. 할아버지가 늘 앉아 있던 평상이 텅 비어 있었어요. "어디 가셨지?" 영주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어요. "누굴 찾는데?" 한 친구가 물었어요. "우리 할아버지." 영주가 자랑스럽게 말했어요. "너희들 베트남 전쟁 알아?" "그게 뭔데?" "우리 할아버지가 바로 베트남 전쟁의 영웅이야!" 친구들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어요. 마침 그때 할아버지가 저만치서 걸어오고 있었어요. "할아버지!" 영주는 반갑게 손을 흔들며 할아버지에게 달려갔어요. 할아버지도 영주를 발견하고 빙그레 미소 지었어요. "돌아오는 일요일이 할아버지 생신이란다." 엄마가 말했어요. 영주는 할아버지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돼지 저금통에 남은 돈이 얼마 되지 않았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용돈을 아껴 쓰는 건데..." 할 수 없이 아빠한테 도움을 청했어요. "할아버지 선물 사게 용돈 미리 주시면 안 돼요?" "선물은 꼭 비싼 물건이 아니라도 돼. 뭔가 너만의 창의적인 선물을 생각해 봐. 정성이 담긴 거라면 뭐라도 좋아."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한번 잘 생각해 보렴." 영주는 아빠의 충고를 듣고 고민에 빠졌어요. 엄마는 더 어려운 숙제를 내 주었어요. "받는 분이 감동할 수 있는 좀 특별한 걸 생각해 봐. 그런 게 정말 좋은 선물이거든." 영주는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선물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우리 손녀딸 피아노 연주 솜씨가 그렇게 좋다면서?" 다행히 할머니가 힌트를 주었어요. 영주는 그동안 심통 부렸던 일도 사과할 겸 할아버지를 위해 특별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로 했어요. 잘 아는 동요에다 창의적인 가사를 붙여 미리 연습도 했어요. 일요일 아침, 온 가족이 둘러앉아 케이크에 촛불을 켰어요. 준비하고 있던 영주는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렀어요. 베트남 전쟁의 영웅 할아버지. 생신 축하합니다.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전우를 구한 용감한 할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해 주세요. 생신 축하합니다. 할아버지는 노래를 듣고 대단히 기뻐했어요. "허허! 내가 오늘 세상에서 제일 귀한 선물을 받는구나!" 연주를 마친 영주는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와락 안겼어요. 그러고는 턱수염에다 볼을 비비며 “할아버지 최고!”라고 속삭였어요. 그때 영주는 분명히 보았어요. 할아버지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제나라의 유명한 재상 안영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어요. 초나라 영왕은 일부러 모욕을 줄 생각으로 이렇게 물었어요. "그대의 나라에는 그렇게도 사람이 없소?" 안영의 키가 작은 것을 비웃는 말이었어요. 하지만 안영은 태연하게 대꾸했어요. "우리 제나라에선 사신을 보낼 때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보낸답니다." 안영의 뛰어난 말솜씨에 영왕은 순간 당황했어요. 마침 그때 장군이 한 죄인을 끌고 왔어요. "그 죄인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제나라 사람인데, 도둑질을 했습니다.” 영왕은 장군의 말에 기가 살아서 안영에게 물었어요.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하오?" 이에 안영이 다시 기발한 대답을 했어요. "강남의 귤나무를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는데 그건 토질 때문입니다.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이 뭔지 모르는데 저 사람은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을 했으니 아마도 초나라의 나쁜 풍토 때문인 듯합니다." 안영에게 모욕을 주려던 영왕은 안영의 창의적인 대답에 결국 코가 납작해지고 말았답니다.
외계인이 온다, 지구를 구하라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오늘은 창의력 키우기를 위한 별난 과학 시간이에요. 선생님은 또 무슨 재미있는 과제를 내주실까? 영수는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이 시작되길 기다렸어요. 담임 선생님은 별명이 '아인슈타인 선생님'이에요. 머리가 사진으로 본 아인슈타인처럼 항상 부스스하고 과학에 대한 지식이 아주 풍부하기 때문이에요. "만일 외계인 군대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 선생님의 첫마디에 아이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어요. "다들 주목!" 선생님이 칠판을 탕탕 두드린 다음 말을 이었어요. "외계인이 서울에 도착하기까지 정확히 24시간 남았다. 그렇다면 우린 그들을 먼저 공격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니면 무슨 다른 방법이 있나? 이게 오늘의 과제다." 선생님은 각자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의견을 말해 보라고 했어요. "자, 누가 먼저 발표할래?" 선생님 말에 반장 상철이가 용감하게 손을 들었어요. "무조건 먼저 공격해야 합니다." "왜지?" "그냥 외계인이 아니라 군대잖아요. 당연히 우리가 먼저 무찔러야죠." "군대라고 해서 무조건 우릴 공격할까?" 선생님이 다시 상철이에게 물었어요. "혹시 그들이 공격을 안 할지도 모르는데, 꼭 그래야 할까?" 영수도 선생님과 같은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일단 상철이 말을 들어 보기로 했어요. "물론 외계인이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싸우면 안 되죠. 그런데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가만히 있다가 앉아서 당하기 전에 잽싸게 먼저 공격을 해야죠." 상철이 말에 몇몇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저도 상철이 의견에 찬성이에요." 이번에는 진영이가 손을 들었어요.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우리의 F15 전투기로 미사일 공격을 퍼부어야 한다고 하더니, 미사일로 안 되면 핵무기라도 써야 한다는 말에 아이들은 '와'하고 탄성을 내뱉었어요. "선생님, 저는 두 사람 의견에 반대합니다!" 영수가 손을 높이 들고 큰 소리로 말했어요. "쟤, 뭐야?" 상철이와 진영이가 아니꼬운 듯 영수를 쳐다보았어요. 선생님은 어서 말해 보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어요. "먼저 공격하는 건 평화를 깨는 행동이에요. 그랬다간 우리가 더 큰 피해를 입을지도 몰라요. 처음부터 외계인은 우릴 공격할 마음이 없는데, 괜히 먼저 건드렸다가는 화가 난 외계인들이 지구를 온통 불바다로 만들지도 몰라요." 영수는 흥분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했어요. 상철이가 영수의 의견에 반대하고 나섰어요. "영화에서 보면 외계인들은 꼭 우리 지구를 공격했어요." "그건 영화일 뿐이야. 실제로는 다를지도 몰라." 영수도 다시 손을 들고 일어나 말했어요. "뭐가 다르지?" 선생님이 흥미로운 듯 영수에게 물었어요. "외계인이 싸움을 싫어할 수도 있잖아요." "넌 영화도 못 봤냐?" "넌 영화만 보냐?" 상철이가 비웃는 말에 영수도 지지 않고 반격했어요. "지금은 회의 시간이야. 흥분하지 말고 차근차근 말해." 선생님의 엄한 표정에 영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침착하게 말을 이었어요.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지구인이 만든 영화고, 지금껏 외계인 침공은 실제로 일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외계인이 우릴 공격할 거라 믿는 거죠?" "영수는 제일 중요한 걸 놓치고 있어요. 영수 말대로 외계인이 평화를 사랑한다면 군대를 이끌고 오지 말았어야죠." "평화군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평화를 지키는 군대가 자기네 영토에 있어야지 무엇 때문에 남의 나라에 들어와요?" "상철이 말도 맞아요. 그런데 낯선 존재가 나타나면 무조건 공격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도 살기 위해서 군대를 데려오는 것 아닐까요?" 토론이 길어지면서 반 아이들의 의견은 먼저 공격을 하자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어요. 그러자 이제껏 잠자코 듣고만 있던 선생님이 진지하게 반 전체를 돌아보았어요. "자, 그럼, 우리가 뭘 준비해야 할까?" "미사일이요!" "우주선도요!" 반 아이들이 너도나도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어요. "선생님!" 영수는 불안한 마음으로 다시 손을 들었어요. "그런데 먼저 공격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요. 우선 외계인 군대와 우리 군대를 비교해 봐야 해요. 어쩌면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강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확실한 건 아니죠.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과학이 발달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껏 증명된 사실은 없으니까요." "그것참 좋은 의견이로구나! 외계인이 무조건 우리보다 강하라는 법은 없지. 틀에 박힌 생각을 깨는 것도 창의적인 발상이란다." 선생님은 몹시 흡족한 얼굴로 영수를 바라보았어요. 갑작스런 칭찬에 영수는 어깨가 으쓱해졌어요. "외계인이 더 강한지 아닌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그, 그건." 이어지는 질문에 영수는 잠시 말꼬리를 흐렸어요. "우리 군대를 보내서 확인하게 해야죠." 상철이 말에 선생님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어요. "전쟁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 설마 진짜로 전쟁이 일어나는 걸 바라지는 않겠지?" "네!" 아이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어요. "그런데 외계인은 이미 지구를 향해 오고 있고, 우린 싸우지 않고 그들이 온 목적을 알아내야 해. 그렇다면 누가 그 임무를 맡아야 할까?" 선생님의 입가에 알 듯 말 듯 미소가 떠올랐어요. 영수는 좀 전에 선생님이 했던 말을 곰곰이 되새겼어요. '틀에 박힌 생각을 깨는 것도 창의적 발상이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군대는 아닌 게 분명했어요. 군대를 군대로 맞선다는 건 너무 틀에 박힌 생각이니까요. "우리가 뽑은 대표를 보내서 대화를 하게 해 보면 어떨까요?" 이번에 영수가 한 말에는 모두가 찬성이었어요. "좋아. 그럼, 이제부터 결정해야 할 게 있다." 선생님은 두 번째 토론 과제를 내렸어요. "우리나라에 접근 중인 외계인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우리와 대화를 원한다는 메시지야. 그런데 조건이 있어." 아이들은 선생님 말씀에 귀를 쫑긋 세웠어요. "반드시 두 사람만 우주 함대로 오라는 거야. 한 명은 대통령, 또 한 명은 자기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인정할 만한 사람을 '평화의 사절'로 보내라는 조건이야. 물론 외계인의 명예를 걸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약속도 했지." "다른 한 명은 왜 가야 하는데요?" 선생님은 영수의 질문에 외계인의 방식대로 대화하기 위해서라고 했어요. 그들은 눈빛만으로도 속마음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에 거짓을 말하면 즉시 지구를 공격할 거라는 설명이었어요. 과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이들은 대통령과 함께 갈 사람을 누구로 결정할 것인지 토론하다가 다시 의견이 여럿으로 나뉘었어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면 답은 하나예요. 미스 코리아를 미의 사절단이라고 하잖아요?" 민수가 말했어요.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찬성이었어요. 그런데 이제껏 가만히 있던 미정이가 손을 번쩍 들었어요. "저는 민수 의견에 반대합니다!" 선생님은 미정이 말을 들어 보자고 했어요. "미스 코리아는 우리들이 볼 때나 예쁘겠죠. 외계인은 우리와 다른 세계에 사니까 보는 눈도 다르지 않을까요? 그리고 영화에서 보면 외계인이 죄다 똑같이 생겼잖아요." 미정이는 우리가 잘생긴 외계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도 지구에서 누가 미인인지 구분하기 힘들 거라고 했어요. 영수는 미정이 의견에 더 마음이 끌렸어요. 이 밖에도 몇 가지 의견이 더 나왔어요. 자기 엄마를 추천한 준성이도 만만치는 않았지요. "이제 또 누구 추천할 사람 없니?" 아이들이 내놓는 의견들을 다 들어 본 다음 선생님이 말했어요. "의견이 이렇게 갈리는 건 당연한 일이야.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른 거란다. 어떤 사람에겐 그게 외모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겐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일 수도 있지. 그러니까 이 문제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정답이야." '만일 내가 외계인이라면 어떤 입장일까?' 영수는 선생님 말씀에 뭔가 중요한 실마리가 있다고 느꼈어요. 우선 외계인으로 지구에 첫걸음을 떼는 심정은 어떨지 생각해 보았어요. 아무래도 처음이라 약간은 겁이 날 거예요. 이쪽이 더 강한지 어떤지는 그들도 확실히 모를 테니까요. 그렇다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러 오는 것이 아마 맞을 거예요. 만일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강하다면 메시지고 뭐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 거잖아요. 또 대통령과 함께 갈 사람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요? 그것도 그냥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라 '자기들이 인정할 수 있는'이란 조건까지 달아서 말이에요. 아마도 그들을 해치지 않고 믿을 만한 사람이란 뜻 아닐까요? 마음속까지 정직하고 꾸밈없는 사람 말이에요. "선생님, 저요!" 영수는 뇌리에 번쩍 스치는 생각이 있어 손을 번쩍 들었어요. 아이들의 눈길이 일제히 영수를 향했어요. "평화의 사절로 아기를 보내는 건 어떨까요?" 영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폭소를 터뜨렸어요. "이유는?" 홍당무가 된 영수에게 선생님은 진지하게 물었어요. "동물이나 사람이나 세상 모든 아기들은 정말 사랑스러워요. 외계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음,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니?" "무서운 사자도 아기는 예쁘잖아요. 아기를 보면 그들도 마음이 풀어져 협상이 잘될 거라 생각합니다." 영수의 말이 끝나자, 아이들이 탄성을 내질렀어요. "좋아! 생각에 생각을 뒤집는 것, 그게 바로 창의적 발상이야.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다음 시간에 발표하도록 해. 갈수록 수업이 재미있겠는걸!" 아인슈타인 선생님은 기분 좋게 수업을 마쳤어요. 아이들은 또 어떤 기발한 발상으로 지구를 구할까요? 여러분도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노자 60장에 나오는 '치대국 약팽소선'의 줄임말이에요. 작은 생선을 요리할 때 자꾸 뒤적거리면 원래의 모습이 어그러져서 맛도 없고 볼품도 없게 돼요. 요리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은 이럴 때 생선이 적당히 익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린답니다. '약팽소선'에서 말하는 요리사는 어떤 단체의 책임자일 수도 있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어요. 만일 단체의 책임자라면 아랫사람들을 너무 들볶거나 재촉하지 않아야 다 같이 힘을 합쳐서 하는 일이 잘 돌아갈 것이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너무 잘하려고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일을 처리해야 실수가 없다는 뜻이에요. 비슷한 뜻을 가진 우리 속담으로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도 기억하세요.
나는 엄마가 창피해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아, 냄새." 엄마가 현관으로 나가자 누나가 코를 움켜쥐고 말했어요. 냄새가 나지도 않는데 민희 누나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민호와 민희의 엄마는 시장에 있는 예수교회 맞은편에서 생선 가게를 하고 있어요. 엄마의 생선 가게는 제법 소문난 가게예요. 늘 싱싱한 생선을 싸게 판다고 소문이 자자하지요. 또 친절한 가게라는 소문도 있고요. 엄마는 가게를 닫고 집에 오면 늘 샤워를 하고 옷도 자주 세탁하지만, 생선 비린내는 쉽게 사라지지 않나 봐요. 민희 누나는 엄마가 그렇게 깨끗이 씻고 닦아도 어디선가 은은하게 비린내가 난다고 하거든요. 사실 민희 누나는 친구들이 놀려서 엄마한테 화가 났는지도 몰라요. 누나 친구들은 누나를 '미스 피시'라고 놀리거든요. '생선 아가씨'라는 뜻이래요. 그래서 누나는 괜히 엄마에게 심술을 부리고 걸핏하면 늦게 들어오고는 하지요. 엊그제는 누나가 이렇게 말했어요. "오늘 엄마 생일인데 엄마는 그것도 모르나 봐. 차라리 잘됐지 뭐." 그래서 엄마 생일은 아무 일도 없이 그냥 지나갔어요. 민호는 괜히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앞에 나서서 뭐라고 할 수도 없었어요. 그날 엄마는 밤늦게 들어와서 금세 잠들었어요. 다음 날 새벽에 도매 시장에 가야 했거든요. 아빠가 엄마 생일을 챙겨 주지 않냐고요? 아빠는 안 계세요. 아빠는 벌써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셨어요. 민희도 민호도 아빠 얼굴도 못 보았지요. 겨우 사진으로만 보았을 뿐이에요. 그 뒤로 엄마는 계속 생선 가게를 하여 민희와 민호를 키워 주었어요. 민희 누나가 책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나서며 민호에게 물었어요. "참, 너희 반 참관 수업한다며? 엄마 오신대?"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시간 나면 오신다고 했어." "아마 안 가실걸. 엄만 바쁘잖아. 하긴 뭐, 너도 안 오시는 게 더 낫지 않아?" 민호는 누나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 것 같았어요. 민희 누나는 엄마가 학교에 오는 걸 싫어해요. 엄마가 학교에 오면 창피하대요. 민호는 책가방을 들고 누나와 함께 학교로 갔어요. 누나는 문구점 앞에서 친구를 만나 먼저 저만큼 앞서가 버렸어요. 민호는 혼자 터벅터벅 걸으며 엄마가 학교에 올지 안 올지 생각해 보았어요. 그리고 솔직히 엄마가 오는 게 더 좋은지, 안 오는 게 더 좋은지도 생각해 보았어요. 학교 교문 앞에 도착했을 때 민호는 비로소 자기 마음을 분명히 알았어요. 민호는 입속말로 이렇게 중얼거렸는데 그건 자신에게도 조금 놀라운 말이었어요. '엄마가 안 왔으면 좋겠어.' 민호는 엄마한테 조금 미안했지만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어요. 작년 1학년 때만 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민호도 이제 민희 누나처럼 변하나 봐요. 참관 수업은 2교시예요. 1교시가 끝나자 학부모님들이 교실로 들어와 교실 뒤쪽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어요. 민호는 힐끔거리며 엄마가 왔는지 찾아보았어요. 2교시가 시작될 때까지 엄마는 오지 않았어요. 민호는 엄마가 오지 않은 게 서운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잘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2교시를 시작하고 5분쯤 지났을 때 교실 뒷문이 드르륵 열렸어요. 칙칙한 회색 치마에 검은 티셔츠를 입은 엄마가 불쑥 들어왔어요. 민호는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어요. "너희 엄마다!" 짝꿍 종수가 민호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어요. 민호가 종수에게 물었어요. "너희 엄마는 안 오셔?" "응, 우리 엄마는 못 와. 아빠도." 종수의 말에 민호는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참관 수업이 끝나고 엄마는 민호에게 다가와 볼을 살짝 꼬집었어요. 민호는 괜히 인상을 찡그렸어요. 싫다는 느낌이 아니라 장난스럽게 찡그린 거예요. "얼른 가세요, 엄마." 민호가 말하자 엄마가 방긋 웃었어요. "그러잖아도 바빠서 바로 가야 해. 우리 아들 파이팅." 그 광경을 짝꿍 종수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어요. 엄마는 곧바로 교실 밖으로 나갔어요. 민호는 엄마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 밖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안 보는 척하면서 다 보았어요. 민호는 화장실로 가서 손과 볼을 박박 씻었어요. 어디선가 은은히 생선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어요. "칫, 다른 엄마들은 예쁜 옷을 입고 왔는데." 민호는 손을 씻으며 그렇게 중얼거렸어요. 방과 후, 민호는 집으로 가지 않고 놀이터에서 놀았어요. 이상하게 집에 가기가 싫었어요. 가 봐야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요. 생선 가게에 가서 엄마한테 용돈이라도 달라고 할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내키지 않았어요. 예수교회 뒷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민호는 우연히 짝꿍 종수를 만났어요. "어, 민호야. 어떻게 우리 집까지 왔니? 들어와." 예수교회 뒷골목에 있는 허름한 집이 종수네 집이었어요. 종수는 할머니와 둘이만 살고 있었어요. 종수 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민호는 종수에게 자기 기분을 다 말했어요. 생선을 파는 엄마가 조금 창피하다고. 또 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고. 그러자 종수가 말했어요. "우리 아빠와 엄마는 이혼해서 지금 어디 사시는지도 몰라. 지난 삼 년 동안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어." 늘 명랑해서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는데 종수에게도 그런 말 못 할 슬픔이 있었나 봐요. 종수가 민호에게 다시 말했어요. "넌 그래도 행복하겠다." 민호가 손을 내저으며 아니라고 했어요. 그러자 종수가 "그래도 넌 같이 사는 엄마가 있잖아. 난 없어." 하더니 이어서 자기 소원을 말했어요. "엄마 얼굴 한 번만 보는 게 소원이야. 또 엄마가 해 주는 밥 먹어 보는 거, 엄마 옆에서 껴안고 잠자는 거." 민호는 종수의 말에 조금 충격을 받았어요. 얼마 후, 민호는 종수네 집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어요. 예수교회 앞에서 보니 건너편 생선 가게가 훤히 보였어요. 엄마는 구석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어요. 예수교회 담장을 따라 집으로 가는데 누군가 담장에 핀 꽃을 어루만지고 있었어요. 가만 보니 목사님이었어요. 목사님 손에는 예쁜 꽃이 몇 송이 들려 있었어요. 민호는 민희 누나와 함께 그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목사님을 잘 알고 있었어요. 민호는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무언가 부탁을 했어요. 민호는 슈퍼에 들러 팩에 든 초코 우유를 하나 샀어요. 그리고 목사님한테 얻은 것을 소중히 들고서 집으로 왔어요. 식탁에 앉아 민호는 짧은 편지를 썼어요. 그러고는 우유와 편지를 식탁 위에 잘 놓았어요. 그 위에 목사님한테 받은 것도 함께 놓아두었어요. 엄마가 간식으로 만들어 놓은 샌드위치를 먹고 민호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어요. 연둣빛 바다에서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어요. 민호도 물고기들과 함께 헤엄을 치고 있었어요. 물속에 있는데도 전혀 숨이 막히지 않았어요. "민호야!" 누군가 불러 돌아보니 산호초 무성한 곳에서 엄마가 풍성한 머리칼을 휘날리며 민호 쪽으로 다가왔어요. 엄마는 마치 인어처럼 날렵하게 헤엄을 쳤는데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워 보였어요. 가게에서 돌아온 엄마가 식탁에 놓인 것을 보았어요. "이게 뭐야?" 엄마는 편지를 펼쳐 읽었어요. 엄마, 이틀이나 지났지만 생일 축하해요! 엄마가 좋아하는 초코 우유랑 장미꽃이에요. 알라뷰, 엄마 사랑해요! 엄마는 다섯 송이 장미꽃과 초코 우유를 바라보다가 식탁에 얼굴을 묻었어요. 눈물을 참고 있는 것 같았어요. "민호야, 일어나 봐." 엄마가 민호를 깨웠어요.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 엄마가 민호를 꼭 안아 주었어요. 바로 그때 민희 누나가 현관으로 들어왔어요. 민희 누나는 무언가 손에 들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케이크였어요. 민희 누나가 작은 케이크 상자를 치켜들고 말했어요. "엄마 생일 깜빡 잊었어. 미안해, 엄마!" 누나는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술술 했어요. 어쨌든 엄마는 민희 누나에게도 감동하여 꼭 안아 주었어요. 그때 민희 누나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또 하고 말았어요. "엄마, 냄새나. 샤워부터 하세요." 엄마가 샤워하는 동안 민호가 누나에게 물었어요. "누나가 어떻게 케이크를 다 사 왔어?" 누나가 히히 웃으며 말했어요. "예수교회 목사님이 말해 줬어. 네가 엄마 생일 선물로 드린다고 목사님한테 장미꽃 얻어 갔다며? 그래도 내가 누나인데 동생한테 질 수는 없잖아." "돈이 어디서 났어?" "용돈 모아 둔 거로 샀지 뭐. 그래서 제일 작은 거로 샀어." 민호도 누나를 따라 히히히 웃었어요. 날마다 생선 비린내가 난다고 투덜거리지만 누나도 엄마를 사랑하는 게 분명했어요. "엄마 나오시기 전에 준비하자." 누나가 케이크를 식탁 위에 꺼내 놓고 촛불에 불을 켰어요. 그리고 거실 불을 끄고 엄마를 기다렸지요. 어두운 거실에서 촛불이 아름답게 빛났어요. 엄마가 샤워하고 나와서 케이크 촛불을 불어 끄고 민희와 민호는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어요. "엄마 일생에 오늘이 가장 기쁜 날이야. 행복해." 엄마가 소녀처럼 호호호 웃음을 터뜨렸어요. 민희 누나도 엄마와 하이 파이브를 하며 즐거워했어요. 그때 문득 민호는 종수의 말이 떠올랐어요. 자기 소원을 말하며 울적한 표정을 짓던 종수의 얼굴도 떠올랐어요. '그래도 넌 같이 사는 엄마가 있잖아.' 갑자기 민호는 엄마를 향해 이렇게 외쳤어요. "나 오늘 엄마 껴안고 잘 거야!" 그러자 누나도 따라 외쳤어요. "나도! 나도!" 엄마가 다시 호호호 웃음을 터뜨렸어요. 그 순간 민호는 비록 아빠는 없지만, 그래도 엄마와 함께 사는 자기 가족이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가화만사성 집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뜻이에요. 가족이 화목하면 하는 일도 잘되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이지요. 가화만사성이란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는 뜻입니다. 집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뜻이에요. 가족이 서로 화목하면 웃음이 끊이지 않고 날마다 즐거워요. 마음에 근심이 없으니 하는 일도 잘되고, 모든 일에 긍정적인 마음이 돼요. 하지만 가족이 서로 미워하고 다투면 짜증이 나고 하루하루가 지옥 같아요. 집에 들어가기도 싫고 하는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지요. 언뜻 생각하면 이 세상의 모든 가정이 화목하게 지내는 것 같지만, 의외로 문제가 있는 가정이 참 많아요. 서로 양보하고 조금만 이해하면 될 것을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고,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여 결국 싸움이 일어나지요. 가족은 날마다 얼굴을 보고 살아요. 그래서 서로 미워하게 되면 참으로 마음이 불편해요. 그러므로 작은 일이라도 가족에게 친절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해 보세요. 가족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지고, 나아가 나의 미래도 행복해진다는 걸 절대 잊지 마세요.
내가 형이 되어 줄게
신체운동_건강
초등_고학년
현우는 잔뜩 뿔이 나서 씩씩거렸어요. 컴퓨터를 사 달라고 졸랐다가 엄마한테 된통 혼나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어요. “칫, 도대체 왜 안 사 준다는 거야?” 현우는 혼잣말로 투덜거렸어요. 사실 현우 방에는 컴퓨터가 한 대 있었어요. 문제는 그것을 현철이 형이 주로 쓴다는 거지요. 방을 함께 쓰는 현철이 형이 날마다 컴퓨터를 독차지하여 게임도 하고, 인터넷도 하는 통에 현우는 불만이 많았어요. 그래서 컴퓨터를 따로 쓸 수 있게 한 대 더 사 달라고 조른 것인데 엄마는 듣지도 않고 화만 냈어요. 더 기분 나쁜 건 엄마가 ‘넌 언제 철이 들래? 하여간 막내는 어쩔 수가 없다니까!’ 하고 말한 거예요. 현우가 막내인 건 사실이에요. 집에서도 형제 중 막내이고 사촌 형제가 다 모여도 막내예요. 현우 아빠가 막내아들이기 때문에 막내아들의 아들로 태어나 집안의 막내가 된 거예요. 사실 막내라서 불편한 건 별로 없어요. 오히려 좋은 점이 더 많아요. 큰아빠와 고모도 막내인 현우를 제일 예뻐해 줘요. 먹을 것도 잘 챙겨 주고 용돈도 잘 줘서 최고지요. 특히 외할머니는 ‘아이고, 우리 강아지!’ 하며 엄청나게 예뻐해 주지요. 그런데 그게 좋기만 할까요? 천만에요! 현우는 “난 막내가 싫어!”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자신이 막내인 것을 싫어해요. 막내라서 귀여움을 받는 건 사실이지만 거꾸로 친척들은 모두 현우를 아기 취급해요.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이나 되었는데도 외할머니는 밥을 떠먹여 주려고 하고 세수까지 해 주려고 해요. 아기 취급을 받으면 현우는 정말 짜증이 나요. 당당한 소년으로 대접받고 싶은데 왜 자꾸 아기 취급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그렇고 엄마는 왜 컴퓨터를 안 사 준다는 거야!” 현우는 다시 또 입을 씰룩거렸어요. 그러고는 발을 쿵쿵 굴러가며 행복 슈퍼 앞을 지나 용호산 가는 길로 접어들었어요. “야, 김현우!” 누군가 불러 돌아보니 같은 반 친구 진희였어요. 방학을 한 지 일주일 되었으니까 일주일 만에 진희를 만난 거예요. 진희 뒤를 보니 ‘성심 보육원’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너 여기서 뭐 해?” 현우가 묻자 진희가 보육원 간판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내가 말 안 했나? 우리 아빠가 여기 보육원 원장님이셔.” “보육원? 보육원이 뭐 하는 곳인데?” 진희가 현우의 손을 잡아끌었어요. “궁금하지? 내가 가르쳐 줄 테니까 같이 들어가자.” 얼떨결에 현우는 성심 보육원 안으로 들어갔어요. 진희가 넓은 거실로 들어서자 네다섯 살쯤 되는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어요. “누나, 놀아 줘, 놀아 줘!” “그래그래, 알았어. 같이 놀자.” 진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들과 뒹굴며 놀았어요. 현우는 그런 진희가 참 대단해 보였어요. 현우가 멍하게 서 있는데 얼굴이 동그랗고 귀엽게 생긴 아이가 다가와 손을 잡았어요. 현우는 조금 놀라 뒤로 물러서며 아이 얼굴을 보았어요. “형아, 나랑 놀아 줘.”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현우를 빤히 쳐다보았어요. “현우야, 걔 이름은 민규야. 조금만 놀아 줘.” 진희가 이쪽을 바라보며 말했어요. “어, 어.” 현우는 얼떨결에 그렇게 대답하고, 구석에서 장난감을 들고 와 민규와 놀아 주었어요. 민규를 등에 태우고 말타기 놀이도 했어요. 민규는 처음 보는 아이인데 이상하게 현우를 잘 따랐어요. 현우도 마치 아는 동생처럼 민규가 친하게 느껴졌어요. 진희는 아이들과 놀다가도 잠시 세탁실에 들어가 세탁기를 돌리고, 빗자루로 거실도 청소했어요. ‘와, 진희 참 어른스럽다!’ 현우는 진희가 완전히 다르게 보였어요. 학교(學校)에서는 새침데기 같았는데 보육원에서 보니 보육원생들의 엄마처럼 믿음직해 보였어요. 현우가 집으로 돌아갈 때 진희가 보육원 앞까지 배웅을 나왔어요. “민규가 원래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아무나 잘 안 따르는데 아까 보니까 너를 참 좋아하더라." "자주 놀러 와서 민규랑 놀아 주면 좋겠다.” “응? 응. 알았어, 가끔 올게.” 현우는 마지못해 그렇게 대답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현우는 이런저런 생각을 했어요. 보육원은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곳이에요. ‘그 아이들은 왜 엄마 아빠가 없는 걸까? 엄마 아빠 없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그렇게 생각하니 보육원 아이들이 무척 불쌍하게 느껴졌어요. 거꾸로 현우는 자신이 무지하게 행복(幸福)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았어요. 현우에게는 아빠 엄마가 다 있고 형까지 있으니까요. 집으로 들어가니 엄마가 차가운 얼굴로 현우를 쳐다보았어요. 현우도 ‘흥’ 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어요. “어휴, 저 철없는 막내!” 엄마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현우는 괜히 곰 인형을 발로 뻥 찼어요. ‘칫, 하여간 걸핏하면 막내래!’ 현우는 침대에 벌렁 누웠어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현우의 머리에 불쑥 민규 얼굴이 떠올랐어요. “형아, 나랑 또 놀아 줄 거지?” 보육원을 나올 때 민규가 그렇게 물었어요. “그럼 당연하지!” 현우는 웃으면서 그렇게 대답했어요. 삐쩍 마른 몸에 동그란 얼굴을 가진 민규. 그 아이의 엄마 아빠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돌아가신 걸까요? 어디 멀리 도망간 걸까요? 다음 날 현우는 다시 성심 보육원으로 갔어요. 현우의 손에는 큰 비닐 봉투가 하나 들려 있었어요. 보육원으로 들어서자 진희가 쪼르르 달려 나왔어요. “너 오늘 또 왔어?” “네가 자주 놀러 오랬잖아?” “그래도 이렇게 바로 올지는 몰랐지. 근데 그건 뭐야?” 현우가 비닐 봉투를 열었어요. 안에는 장난감이 잔뜩 들어 있었어요. “형이랑 내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건데 창고 구석에 박혀 있어서 가져왔어. 민규랑 아이들 주려고.” 현우는 장난감 중에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을 골라 민규에게 주었어요. 공평하게 다른 아이들에게도 하나씩 나누어 주었고요. “헤헤, 좋아, 장난감 좋아!” 민규가 장난감 포클레인을 굴리며 방긋 웃었어요. 방긋 웃는 민규를 보는 순간 현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묘한 기분을 느꼈어요. 무언가 남에게 주었을 때도 행복하다는 것을 말이에요! 현우는 막내라서 늘 무언가를 받기만 했어요. 또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사 달라고 떼만 썼지요. 그런데 오늘은 달랐어요. 자기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들고 와 민규와 보육원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 거예요. “너 참 착하고 의젓해 보인다.” 진희가 미소를 지으며 현우에게 말했어요. 현우는 그 말에 날아갈 것만큼 기뻤어요. 그날 현우는 민규와 놀아 주고, 진희와 함께 보육원 청소도 했어요. 청소도 즐겁다는 걸 처음 알았지요. 날마다 보육원에 왔다 갔다 하느라 현우는 엄마에게 컴퓨터 사 달라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그러자 엄마가 ‘웬일이지?’ 하며 오히려 걱정하는 눈치였어요. 현우는 날마다 보육원에 놀러 가 아이들과 놀아 주고 진희를 도와주었어요. 또 맛있는 게 생기면 몰래 민규에게 가져다주기도 했어요. 하루는 진희의 아빠인 보육원장님이 현우에게 말했어요. “세상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거란다. 서로서로 아껴 주고 도와주면 세상이 점점 더 행복해지지.” 현우는 진희 아빠의 말이 귀에 쏙쏙 들어왔어요. 요즘 현우는 자기도 모르게 한 뼘쯤 키가 커진 것 같았어요. 자주 보육원에 가면서 진희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된 것도 참으로 기쁜 일이었어요. 컴퓨터 때문에 갈등했던 현철이 형과도 다시 사이가 좋아졌어요. 어느 날 현철이 형이 이렇게 제안했어요. “한 시간씩 교대로 게임을 하기로 하자! 약속!” 사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현우가 좀 잘못한 게 있었어요. 컴퓨터 게임을 할 때 형에게 절대 양보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형이 화가 나서 현우에게 아예 컴퓨터를 못 하게 한 거예요. 오후에 민규가 좋아하는 크림빵을 사 들고 보육원으로 가는데 보육원 마당에서 민규가 우는 소리가 들렸어요. 가만 보니 키가 큰 아이가 민규를 때리고 있었어요. 현우가 재빨리 달려가 민규 앞을 막아섰어요. “작은 아이를 왜 때리니? 싸우면 나쁜 사람이야!” 현우가 큰 아이를 혼내 주고 민규의 손을 잡았어요. “가자, 민규야.” 민규를 데리고 보육원 거실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민규가 현우를 와락 안았어요. 그러고는 울먹이며 말했어요. “난 형아가 좋아.” 현우는 마음이 찡해 민규의 등을 토닥여 주었어요. 크림빵을 민규에게 건네주면서 현우는 속으로 다짐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넌 내가 지켜 줄게. 넌 내 동생이니까!’ 눈물이 핑 돌아 현우는 슬쩍 고개를 돌렸어요. 거실 저쪽에서 진희가 현우를 보고 있었어요. 엄마는 누구한테 말을 들었는지 현우가 보육원에 봉사활동 다니는 걸 알고 있었어요. “너 기특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런 봉사활동을 다 하고! 너 혹시 진희 좋아하는 거 아냐?” “아니에요 엄마.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그건 그렇고, 아빠랑 상의해서 너 컴퓨터 사 주기로 했는데 어떤 걸로 사 줄까? 노트북은 어때?” 현우는 히죽 웃더니 제법 의젓한 말투로 말했어요. “안 사도 돼요. 형이랑 교대로 쓰기로 했어요.” “와, 정말? 너 얼마 전부터 완전히 철든 거 같다? 이젠 막내 티가 하나도 안 나!” “그럼요. 이제 전 막내가 아녜요! 보육원에 가면 내 동생 열 명도 넘어요. 히히히!” 엄마가 깜짝 놀라며 말했어요. “거기 아이들 다 동생 삼았어? 대단하네, 우리 막내!” “저 막내 아니라니까요!” 현우가 귀엽게 항의하자 엄마가 호호 웃음을 터뜨렸어요. 웃음이 넘치는 집은 누가 보아도 화목한 집이에요. 가족끼리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작은 일에도 서로 칭찬하고 기뻐하면서 저절로 자주 웃게 돼요. 하지만 화목하지 않은 집은 이와 달라요.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없어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짜증을 내 가족의 평화가 깨지기 일쑤예요. 그러니 가족끼리 웃는 일도 거의 없지요. 만일 이런 두 종류의 집이 있다면 어느 집에 복이 찾아올까요? 당연히 화목한 집에 복이 찾아올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복을 나누어 주는 천사가 그 집을 찾아갔는데 가족끼리 서로 헐뜯고 싸운다면 복을 주겠어요? 아마 복을 주려다가도 그냥 가 버릴 거예요. 하지만 비록 가난해도 서로 아끼고 배려하는 착한 가족이 있다면 기꺼이 복을 나누어 주겠지요. 즉 ‘소문만복래’는 가족의 평화와 사랑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강조하는 고사성어라 할 수 있어요.
건강한 게 행복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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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줘요! 사 달라고요!" 민재는 마트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어요. "얘가 창피하게 왜 이래? 지난번에 사촌 형이 준 장난감 있잖아. 뭘 또 사 달라는 거야!" 엄마는 단호하게 말하며 카트를 끌었어요. 민재는 엄마 카트 앞을 막아섰어요. "형이 준 거는 헌 거잖아요. 그리고 이 장난감, 우리 반 애들은 다 있단 말예요. 나만 없어요. 나만 없으니까 애들이 따돌린다고요!" 민재는 거의 울듯이 엄마에게 말했지만 엄마는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장난감 때문에 친구를 따돌리는 애라면 사귈 필요 없어." 엄마는 카트를 끌고 가면서 말을 이었어요. "이번 달도 생활비가 빠듯해. 그런 장난감 같은 거 살 돈 없어." 집으로 오는 길에 엄마와 민재는 동생 민희를 데리러 유치원에 들렀어요. 민희는 민재 얼굴을 보고 물었어요. "오빠, 얼굴이 왜 그래? 울었어?" "울긴 누가 울어!" 민재가 민희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어요. 그 모습을 봤는지 못 봤는지 엄마는 계속 걸어가면서 말했어요. "날씨 좋다. 이런 날은 밖에서 뛰어노는 게 최고야. 뛰어놀아야 키도 크고 건강해지지." 엄마 말에 민희가 냉큼 말을 받았어요. "응,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튼튼한 거야. 햇빛도 많이 받아서 감기도 안 걸리고. 그치, 엄마?" "그럼. 우리 민희가 오빠보다 똑똑하네." 엄마가 민희 편을 들자 민재가 입을 삐죽 내밀고 중얼거렸어요. "난 감기 걸려도 장난감만 가지고 놀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텐데." "오빠, 장난감이 있으면 뭐해? 아프면 가지고 놀지도 못해." 민희가 야무지게 말했어요. "조그만 게 뭘 안다고 그래?" 그러자 엄마가 민재에게 말했어요. "민희 말이 맞네. 아프면 장난감이 수백 개라도 무슨 소용이야? 장난감 가지고 누워서 놀 거야?" "쳇, 사실은 돈이 없어서 못 사 주는 거잖아요." 민재는 자기도 모르게 속마음을 툭 내뱉고 말았어요. 그 말에 엄마가 걸음을 딱 멈추었어요. "장민재!" 순간 움찔한 민재는 재빨리 놀이터 쪽으로 뛰어갔어요. "몰라요! 나는 놀다가 들어갈 거야!" 엄마는 민재의 뒷모습을 보고 한숨을 푹 쉬었어요. "저 녀석은 언제 철이 들려고 저러나. 진짜 아파 봐야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지. 쯧쯧." "쳇, 그깟 장난감 하나 사 주면 어때서. 영준이는 몇 개나 가지고 있는데." 민재는 미끄럼틀 끝에 앉아 투덜댔어요. 그때 마침 놀이터를 옆을 지나가던 영준이가 민재를 발견하고 소리쳤어요. "야, 장민재! 뭐 해?" 민재는 영준이보다 영준이의 새 자전거가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민재는 얼른 다가가 영준이에게 말했어요. "어, 이거 뭐야? 너 자전거 샀어?" "응, 우리 아빠가 사 주셨어. 지금 한 바퀴 돌고 오는 길이야. 참, 승현이가 자기 집에서 게임하자던데. 같이 가자." 민재는 영준이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민재는 영준이의 자전거를 요리조리 살펴보고 나서 부러운 듯이 말했어요. "자전거, 정말 멋지다!" "기어가 20단이야. 너도 이 자전거 산다고 했지? 얼른 사. 늦으면 다 팔린대." 영준이 말에 민재는 어색하게 웃었어요. "으응, 우리 아빠도 곧 사 주신다고 했어." 하지만 그 말은 거짓말이에요. 지난번에 아빠가 지금 타고 있는 자전거로 충분하다고 했거든요. 그때 영준이가 자전거에 올라타면서 말했어요. "승현이가 이번에 새로운 게임 시디를 샀대. 같이 가자. 아, 태워 주고 싶어도 내 자전거는 일인용이라 안 돼. 넌 그냥 뒤에서 뛰어와." 영준이 말에 민재는 기분이 상했어요. 그래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요. "어, 나는 학원에 가야 해. 승현이네는 나중에 갈게." "그래? 그러면 다음에 봐." 영준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전거를 타고 쌩 달려갔어요. 멀어지는 영준이의 뒷모습을 보며 민재는 중얼거렸어요. "쳇, 잘난 척은." 민재는 다시 놀이터로 돌아와 그네에 앉았어요. "아, 영준이는 얼마나 좋을까. 아빠가 사 달라는 것도 다 사 주고. 나는 엄마가 그깟 장난감 하나도 안 사 주는데. 영준이는 정말 행복하겠다." 민재는 발끝으로 모래를 툭툭 치다가 발을 힘차게 굴렀어요. "에잇! 우리 엄마는 짠순이! 구두쇠!" 그네가 공중으로 붕 떠올랐어요. 그때였어요. "민재 오빠!" 민희 목소리에 민재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어요. 그 바람에 중심이 흔들리면서 그네가 출렁거렸어요. "어, 어!" 민재는 중심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만 그네에서 뚝 떨어지고 말았어요. "으윽." 민재가 오른쪽 팔을 부여잡고 일어났어요. "오빠, 괜찮아!" 민희가 민재에게 뛰어왔어요. "네가 갑자기 부르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떨어졌잖아!" 민재가 소리쳤어요. "아파? 다쳤어? 어디 봐." 민희가 민재의 팔을 잡았어요. "아앗, 아파! 만지지 마!" 민재는 털썩 주저앉았어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어요. "어떻게 해, 오빠. 다쳤나 봐. 내가 엄마 불러올게." 민희가 집으로 뛰어갔어요. 민재는 아프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그 자리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어요. "민재야!" 곧 엄마가 뛰어왔어요. 엄마 얼굴을 보자 민재는 그만 울음이 터지고 말았어요. "으앙, 엄마! 아파요!" "어쩌다가 그런 거야? 일단 병원부터 가자." 엄마는 민재와 함께 택시를 타고 서둘러 병원으로 갔어요. "다행히 부러지지는 않았네요. 살짝 금이 가기는 했는데, 깁스를 하는 것이 좋겠어요." 의사 선생님 말에 민재가 물었어요. "얼마 동안이요?" "글쎄, 한 달은 지켜봐야 할 거야. 그동안 팔을 움직이면 안 돼. 뛰는 것도 조심하고." 민재는 울상이 되고 말았어요. 집으로 돌아온 민재와 민희는 늦은 저녁을 먹었어요. 상에 수저를 내려놓던 엄마가 한숨을 쉬었어요. "어휴, 다쳐도 하필 오른팔을 다쳐서." 엄마는 민재 자리에 포크를 놔 주었어요. "어, 오빠가 아기야? 포크로 밥을 먹게." "조용히 해라." 민재가 민희에게 퉁명스럽게 말했어요. 민재는 포크를 왼손으로 잡고 어색하게 밥을 먹었어요. 오른팔을 못 쓰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어요. 밥을 먹는 것은 물론이고 옷을 입고 벗는 것도 엄마가 도와주어야 해요. 친구들과 뛰어놀 수도 없고, 혼자서 씻는 것도 불편했어요. "어휴, 가려워. 엄마, 오른팔이 너무 가려워요." 거의 한 달을 제대로 씻지 못하니 깁스한 곳이 무척 가려웠어요. 엄마가 얇은 나무 꼬챙이를 가지고 와서 깁스 사이에 넣고는 가려운 부분을 살살 긁어 주었어요. 그런데 민재가 또다시 얼굴을 찡그렸어요. "으윽, 그런데 엄마, 나." 민재가 엄마 귀에 대고 소곤거렸어요. 그러고는 급히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어요. "엄마, 오빠 왜 저래?" "응, 손을 다쳐서 응가하고 혼자 닦지를 못한다고." "엄마, 오빠가 진짜 아기가 되어 버렸네?" 민희가 깜짝 놀라서 말했어요. 드디어 깁스를 푸는 날이 되었어요. "엄마, 빨리 가요. 얼른 깁스 좀 풀고 싶어요." 민재가 신이 나서 집 현관문을 나섰어요.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조심해서 좀 놀아, 오빠." 민희 말에 민재가 혀를 날름 내밀었어요. "싫어. 지금도 놀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하거든." 병원으로 가는 길에 민재는 영준이와 영준이네 엄마를 만났어요. "어머, 민재 다쳤다고 하더니 아직도 깁스하고 있구나?" "그렇지 않아도 지금 풀러 가는 길이에요." 엄마가 웃으면서 말했어요. "이제 우리 오빠는 혼자 똥 닦을 수 있어요." 민희가 자랑스럽게 말했어요. "야!" 민재가 얼굴이 빨개져서 민희 입을 얼른 막았어요. "그런데 영준이는 어디 갔다 와요?" "피부과에요. 얘가 아토피가 있어서요." 그러고 보니 영준이 두 볼에 빨갛고 도톨도톨한 것이 나 있었어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거든요. 그래서 조심하는데 애 아빠가 자전거를 사 주는 바람에 아주 고생이에요." 영준이네 엄마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어요. 영준이는 창피한지 엄마 뒤로 숨었어요. "그리고 승현이는 또 감기래요. 둘이 단짝이라 만날 방에 틀어박혀 게임이나 하니까 면역력도 약해졌는지 감기를 달고 살아요. 그래서 밖에서 뛰어놀면서 건강해지라고 자전거를 사 줬더니 이번엔 아토피 때문에 타지도 못하네요." "그랬군요. 속상하시겠어요. 애가 아프면 정말 속상해요." 엄마가 영준이네 엄마를 위로해 주었어요. "글쎄 말예요. 애가 몸이 아프니까 자꾸 짜증만 내요. 성격도 건강해야 좋아지나 봐요." 민재는 영준이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어요. 영준이는 얼굴을 보여 주는 게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려 버렸어요. 그렇게 영준이네와 헤어지고 병원에 간 민재는 드디어 깁스를 풀고 홀가분하게 나왔어요. "우와, 진짜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거 같아요. 오른팔이 자유로우니까 온몸이 다 편해진 거 같아요." 깁스를 푼 민재는 오른팔을 이리저리 돌려 보며 말했어요. 그런 민재를 보며 엄마도 환하게 웃었어요. "오빠, 이제 혼자 똥 닦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민희도 민재가 깁스 푼 것을 축하해 주었어요. "엄마, 정말 팔 하나 불편한 건데 너무 힘들었어요. 아픈 팔이 낫는 걸로 이렇게까지 행복해질 줄은 몰랐어요." "그래. 건강해야 공부든 뭐든 다 할 수 있는 거야. 민재가 행복하다니 엄마도 행복하다. 좋아! 깁스 푼 기념으로 엄마가 장난감 사 줄게." 엄마 말에 민재는 쑥스럽게 웃었어요. "아니요. 장난감 나중에 사 주세요. 친구들이랑 축구하기로 했거든요. 애들이 제가 깁스 풀기만을 기다렸대요. 이래 봬도 제가 우리 반 스트라이커라고요. 갔다 올게요!" 민재는 두 팔을 휘두르며 학교 운동장으로 뛰어갔어요. 근위무가지보 신시호신지부. 이 말은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이에요. 예로부터 부지런하면 하늘 아래 어려운 일이 없다고 했어요. 무슨 일이든 부지런하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고, 그 결실로 행복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만약 그 행복이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것이라면 더욱 값진 것이겠지요. 또 부지런한 것만큼 내 몸이나 내 주위를 돌보는 것도 중요해요. 행동 하나하나 조심하고 신중하면 실수와 실패를 막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건강을 잘 살펴야 한다는 거예요. 건강을 살피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어요.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반을 잃은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은 것이다.' 라는 말이 있어요. 아무리 돈과 명예가 중요하다 해도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또한 오로지 내 행복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곤란해요.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이나 시샘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나의 성공과 목표만을 위해 나아갈 것이 아니라 항상 내 주위도 잘 살펴야 해요. 그래야 모두가 다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답니다.
너의 웃는 모습을 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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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후는 학교가 끝나자 서둘러 가방을 챙겼어요. 책이며 공책을 아무렇게나 가방에 쑤셔 넣고 부랴부랴 운동장을 내달렸어요. 빨리 집에 가고 싶었거든요. 지후가 운동장을 달리고 있을 때 짝꿍 동주가 달려왔어요. "오늘은 왜 이렇게 서둘러?" 지후가 활짝 웃으며 말했어요. "오늘 저금통을 깨는 날이거든!" "아, 그거! 정말로 해외여행 가는 거야?" "응! 저번에 엄마가 저금통이 가득 차면 가족 여행을 가자고 말씀하셨거든!" 여행을 간다고 생각하니 지후의 마음이 붕 떠올랐어요. 무척 설레기도 했고요. 지후는 오늘을 무척이나 기다렸어요. 왜냐고요?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간 적이 없었거든요. "너 정말로 외국에 나가 본 적 없어?" 동주가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을 때 지후는 조금 창피했어요. 반 친구들 중에 외국에 가 보지 못한 친구들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거든요. 할머니랑 사는 호건이랑, 집이 너무 가난한 주희랑, 지후가 다예요. 지후는 호건이와 주희와는 다르다며 짐짓 태연하게 말했어요. "난 몸이 아파서 못 간 거야!"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어요. 누나 지희는 어릴 때 할머니를 따라 하와이도 가고, 중국에도 다녀왔지만 지후는 몸이 약해 매번 병원 신세를 졌거든요. 그래서 이번 해외여행이 더 기다려졌지요. "비행기가 붕 뜨면 귀가 먹먹해진다! 하늘로 올라갈 때 기분 최고야! 비행기에서 주는 음식도 되게 맛있어!" 지난 방학 때 태국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온 동주가 자랑할 때 지후는 정말 배가 아팠어요. 부럽기도 했고요. "엄마, 나도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 집에 돌아와 투덜거리자 엄마가 말했어요. "저 저금통이 가득 차면 해외여행 갈까?" "정말요?" "저금통을 가득 채우려면 엄마 아빠를 더 많이 도와줘야겠네!" 엄마 아빠를 돕는 일이라면 문제없어요. 평소에도 누나보다 더 많이 엄마 아빠의 심부름을 하니까요! 그 후, 지후는 수시로 저금통을 흔들어 보았어요. "빨리빨리 배가 불러라! 돼지 저금통아!" 엄마가 돼지 저금통을 깨야겠다고 말했을 때 지후는 환호성을 지르며 거실을 뛰어다녔어요. "야호! 이제 해외여행 간다!" 저녁을 먹고 나서 온 가족이 모여 앉았어요. 돼지 저금통의 배를 가르자 와르르 동전들이 쏟아졌어요. 짤랑짤랑 동전 소리가 정말 경쾌하게 들렸어요. 돼지 저금통 안에는 천 원짜리 지폐도 많았어요. 심지어 만 원짜리도 있었지요. 사실 만 원짜리 지폐를 넣은 건 지후였어요. 하루라도 빨리 돼지 배가 부르기를 기다렸거든요. 돼지 저금통 안에는 꽤 많은 돈이 들어 있었어요. "엄마, 아빠! 해외여행은 어디로 가요?" 지후가 신이 나서 말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안방에서 분홍색 봉투를 하나 가지고 나왔어요. "해외여행도 좋지만, 후원을 하는 건 어떨까?" 지후는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어요. 정말 하늘이 무너진다는 건 이런 기분일 거예요. 엄마의 말을 못 알아듣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여행을 후원으로 바꿀 수가 있냐고요! 이게 말이 돼요? 지후는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았어요. "지후야, 엄마 말을 들어 보렴. 세상에는 정말 가난한 사람들이 많단다. 먹고 싶어도 먹을 게 없고, 아파도 병원에 갈 수가 없지." "너무 가난한 나라라서 병원조차 없거든. 엄마 아빠는 이번 여행 경비를 그런 아이들을 위해 썼으면 좋겠구나.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니?" "아니요! 못 알아듣겠어요!" 지후는 엄마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어요. 지후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심술을 부리자 엄마는 여행을 갈지, 후원을 할지 지후에게 선택권을 주겠다고 했어요. "칫! 난 이미 선택했다고요! 내 여행을 포기하면서 가난한 나라 애들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지후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방으로 들어왔어요. 괜히 침대 옆에 있는 여행 가방을 발로 툭툭 찼어요. 사실 지후는 며칠 전부터 옷이며 장난감, 과자들을 넣었다 뺐다 하며 미리 연습을 했어요. 그런데 그 해외여행이 물거품이 된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가난한 나라 아이들을 돕느라 여행을 못 간다는 건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이번에 여행을 가고 담부터 도우면 안 돼?' 지후는 침대에 누워 투덜거렸어요. 그때 아빠가 지후 방으로 들어와 지후의 엉덩이를 툭 때렸어요. "우리 지후가 속이 많이 상했구나? 아빠가 예전에 우리 지후 아팠던 때 이야기했던가?" '아 또 그 얘기!' 그 얘기라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후는 입을 꾹 다물었어요. 어릴 적에 지후는 크게 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어요. 유치원 버스가 다른 차와 부딪혀 전복된 거예요. 그 사고로 지후는 크게 다쳐서 응급실에 실려 갔어요. 지후의 혈액은 희귀한 알에이치 마이너스 오(RH-O)형이었는데, 혈액이 없어서 정말 힘들었대요. 그때 많은 사람들이 지후를 살리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도와주어 간신히 수술을 할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야." "지후야,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란다. 그러니 남을 돕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돼!" 엄마 아빠는 틈만 나면 지후에게 그렇게 말했어요. 지후도 알아요. 그렇지만 지금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거잖아요! 아빠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았지만 지후의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았어요. 책상 위에 아빠가 놓고 간 분홍색 봉투가 있었어요. 지후는 슬며시 봉투를 열어 보았어요. 전단지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통장이 보였어요. '한지후 지구촌 후원 통장?' 지후의 이름이 적힌 통장이었어요. '어? 나는 한 번도 후원을 한 적이 없는데?' 지후는 고개를 갸웃하며 통장을 펴 보았어요. '우와! 내가 태어날 때부터 후원을 했어!' 통장에는 달마다 후원한 사연도 적혀 있었어요. '지후 생일을 축하하며', '지후 감기 나은 날 기념', '지후가 친구 사귄 날' 등 그 이유도 가지가지였어요. 통장의 사연을 보자 지후는 기분이 좀 이상했어요. 뭐랄까, 가슴을 무언가가 콕콕 찌른다고 할까요? 그때 전단지 사이에 끼어 있던 사진이 눈에 들어왔어요. 아주 조그맣고 까만 아이의 사진이었어요. 사진에는 '파트샤' 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어요. 카메라를 가만히 응시하는 파트샤는 표정도 없었어요. 입을 꾹 다물고 그저 퀭하니 쳐다볼 뿐이었어요. '불쌍해.' 괜히 미안한 기분이 들었어요. 지후는 사진을 넘겨 보았어요. 옷도 바뀌고 머리 모양도 바뀐 파트샤가 보였어요. 또 그다음 사진에는 공책을 펴 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모습이었어요. 지후는 마지막 사진을 보았어요. '아!' 내내 무표정하던 파트샤가 활짝 웃고 있었어요. 지후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어요. 처음 사진과는 달리 점점 파트샤가 변해 가는 모습이 가슴 뭉클했거든요. 기분도 참 좋았고요. 지후는 마지막 사진 속의 파트샤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문득 사진을 뒤집어 뒷면을 보았어요. '앗!' 거기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파트샤의 손 편지가 있었어요! '한국인 친구 한지후야! 안녕! 고마워!' '네 덕분에 난 이렇게 잘 지내고 있어! 보고 싶어!' 파트샤의 편지를 보니 기분이 묘해졌어요. 후원을 한 건 지후이고 도움을 받은 건 파트샤인데 왜 지후의 마음이 이렇게 꽉 차오르는 걸까요? 그때 거실에서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지후는 파트샤의 사진을 들고 거실로 나왔어요. 엄마랑 아빠, 누나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어요. 탁자 위에는 지후 방에 있던 분홍색 봉투가 있었고요. 여러 아이들의 사진도 있었어요. 귀엽고 깜찍한 여자아이 사진도, 까만 눈이 예쁜 아기 사진도 보였어요. 지후보다 큰 형 사진도 있었고요. 그건 아마도 엄마 아빠가 후원하는 아이들 사진인가 봐요. 지후를 보자 엄마가 물었어요. "그래, 해외여행 어떻게 할지 결정했니?" 엄마가 지후를 보며 물었어요. 지후는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어요. "파트샤 웃는 모습이 너무 좋더라고요! 더 웃게 해 주고 싶어요!" "해외여행은 담에 가요!" 지후의 대답에 엄마, 아빠, 누나의 얼굴이 더 환해졌어요. "지후, 멋지다! 이제 지후 통장에 행복이 가득가득 쌓이겠구나! 엄마, 아빠, 누나처럼 말이야! 하하하!"
선녀 금이의 특별한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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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못한 하늘나라 임금이 금이를 불렀어. “더는 네 게으름을 봐 줄 수가 없구나! 땅으로 내려가 한 달 안에 특별한 음식상 여섯 개를 차려 내지 못하면 다시는 하늘나라로 올라오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금이는 하늘나라에서 쫓겨나 어느 산골로 내려갔지. 금이는 산골을 헤매다가 친절한 할머니의 집에서 손자 셋과 함께 지내게 되었어. 그런데 할머니의 집은 너무나 가난해서 특별한 음식상은커녕 한 끼의 밥상도 차리기 힘들었지. 양반집 마나님은 무척 흡족해하며 남은 음식을 싸 주었어. 금이는 싸 온 음식으로 저녁상을 차렸지. 모처럼 맛난 음식을 먹은 할머니와 아이들은 무척 행복해했어. 며칠 뒤, 금이는 또 다른 집에 일하러 갔어. 이번에는 포목점 손자의 돌상을 차리는 일이었어. 금이는 밥그릇에는 흰밥을, 대접에는 국수를, 목판에는 과일과 백설기, 수수경단, 송편을 담았어. 포목점 주인은 금이가 차려 낸 돌상을 보고 싱글벙글거렸지. “수고가 많았네. 남은 음식과 함께 비단 몇 필도 가져가게.” 아랫마을의 가장 큰 부잣집에서도 청이 들어왔어. “우리 딸이 시집을 가는데 혼례상 좀 차려 주시오.” 금이는 높은 상에 밤, 대추, 흰콩, 팥, 떡을 각각 그릇에 담아 앞뒤로 한 벌씩 차렸어. 그리고 잔칫집에서 먹을 여러 가지 음식들을 뚝딱 해냈지. 부잣집 마나님은 무척 만족해하며 며칠 뒤에 있을 어머님의 회갑상도 금이에게 부탁했어. 금이는 회갑상을 정성을 다해 준비했어. 큰상에 떡과 과일, 유과를 높이 고여 멋스러운 회갑상을 차렸지. 금이가 만든 음식을 먹고 모두 감탄을 했어. 부잣집 마나님은 무척 고마워하며 남은 음식과 함께 금화도 주었어. 금이는 매번 일하고 얻은 음식으로 할머니와 손자들에게 정성껏 밥상을 차려 주었어. 할머니와 손자들은 금이에게 무척 고마워했지. 금이는 맛있게 먹는 할머니와 손자들을 보면 한없이 기쁘다가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어. “하늘나라 임금님과 약속한 한 달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특별한 음식상은 아직 두 개 더 남았어. 이를 어쩐담!” 다음 날, 누군가가 금이를 찾아왔어. “사또 아버님의 첫 제삿날이니 와서 일해 주게나.” 금이는 다섯 번째 특별한 음식상을 만들게 되어 무척 기뻤지. 금이는 전을 부치고, 생선을 굽고, 떡을 쪄서 제사상을 떡하니 차려 냈어. “아니, 정말 대단한 솜씨로구나!” 제사상을 본 사또의 입이 떡 벌어졌어. 금이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지. 그때,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왔어. “금이야, 함께 하늘나라로 가자꾸나.” 금이는 선녀들과 함께 하늘나라로 올라갔어. 하늘나라 임금은 어리둥절해하는 금이에게 말했어. “금이야, 네가 차린 특별한 다섯 음식상 외에 아주 특별한 음식상이 하나 더 있었단다.” “그건 바로 할머니와 손자들에게 매일 차려 준 오첩반상이란다.” 금이는 다시 하늘나라에서 살게 되었어. 그리고 금이가 떠난 뒤에도 할머니네 마루에는 종종 맛난 오첩반상이 차려져 있었지. 음식 솜씨가 빼어난 선녀 금이는 게으름을 피우다 하늘나라에서 쫓겨났어요. 하늘나라 임금은 금이에게 한 달 안에 특별한 음식상 여섯 개를 차려 내지 못하면 하늘나라로 올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했어요. 선녀 금이는 한 달 안에 특별한 음식상 여섯 개를 차려 낼 수 있을까요? 옛날 하늘나라 임금에게 골칫거리가 하나 있었어. 바로 선녀 금이 때문이야. 금이는 음식 솜씨가 무척 빼어났어 하지만 언제나 빈둥빈둥 뺀질뺀질 게으름 피우기 일쑤였지. “금이야, 너도 이리 와서 좀 거들어.” 다른 선녀들이 아무리 말해도 금이는 듣질 않았어. 금이는 곰곰이 생각하다 할머니에게 말했어. “할머니, 제가 음식을 꽤 잘해요. 요리할 일이 있는 집이 있다면 소개 좀 해 주세요.” 금이는 할머니의 소개로 아랫마을 양반집 일을 도우러 갔어. 마침 그날은 양반집 손녀의 백일이었어. 금이는 흰밥에 미역국과 백설기, 수수경단, 인절미, 송편을 정성껏 만들어 복스러운 백일 상을 만들었지. “금이야, 너에게 보답을 하고 싶구나. 원하는 것을 말해 보아라.” 사또의 말에 금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어. “산골에 손자 셋을 홀로 키우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형편이 어려워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잦으니 좀 도와주십시오.” 사또는 매달 할머니에게 쌀을 줄 것을 흔쾌히 약속했지. 마침내 하늘나라 임금과 약속한 한 달이 되었어. “백일 상, 돌상, 혼례상, 회갑상, 제사상까지 특별한 음식상을 다섯 개밖에 차리지 못했어. 이제 나는 하늘나라로 다시는 못 가겠구나.”
수라상에 빠질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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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모락모락, 구수한 하얀 쌀밥은 너른 호남 평야에서 나고 자란 쌀로 지은 밥이야. 이 땅의 모든 음식들이 그러하듯이 쌀밥도 임금님의 수라상에 오르는 것이 꿈이었어. “이렇게 밋밋한 하얀 쌀밥이라니! 임금님 수라상 근처에나 가 볼 수 있으려나, 어휴!” 쌀밥이 한숨을 쉬자, 누룽지 할아버지가 허허 웃으며 말했어. “너는 윤기가 자르르한 것이 쌀밥 중에서 최고란다.” 누룽지 할아버지가 위로했지만, 쌀밥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어.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고 기다리던 날이 되었어. 바로 임금님의 수라상에 오를 최고의 음식을 뽑는 날이야. 대궐 안 너른 마당이 갖가지 맛깔스러운 음식들로 가득 찼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음식들은 저마다의 모습을 뽐내고 있었어. 쌀밥은 그만 더 풀이 죽고 말았지. “어디에도 나처럼 밋밋하기 짝이 없는 음식은 없네.” “허허,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하니 군침이 도는구나. 어서어서 맛난 음식들을 먹어 보자꾸나.” 그러자 수라간 최고 상궁이 나서서 말했어. “자, 지역별로 모여 주시길 바랍니다. 지금부터 임금님의 수라상에 오를 최고의 음식들을 가리겠습니다.” 전국 각지의 대표 음식들이 조르르 모여 섰지. 전라도 대표 음식 옆에 쌀밥도 자리 잡았어. “서울, 경기의 음식입니다. 맛깔스럽고 멋스러운 것이 특징이지요. 특히 조랭이떡국은 맛이 담백하니 좋습니다.” “그럼 그럼, 내가 말랑말랑 조랭이떡국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말이다. 모두 수라상에 오르거라.” “바다에서 난 재료로 만든 제주도 음식입니다.” 임금님은 제주도 음식들을 한 젓가락씩 먹어 보았어. “전복김치와 옥돔구이가 정말 맛나구나!” 그때 임금님의 눈에 감자옹심이가 눈에 띄었어. “아니, 너는 내가 세자 시절 즐겨 먹던 감자옹심이가 아니더냐. 쫄깃쫄깃 맛난 너를 내가 어찌 잊을까? ”울퉁불퉁한 감자옹심이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어. “강원도에서 자란 감자로 만들었습니다.” “저기 한반도 북쪽 땅의 대표 음식입니다. 겨울이 춥다 보니 한겨울에 먹는 음식이 발달했지요. 사계절 어느 때나 먹어도 별미이긴 합니다만.” “내가 면을 좋아하는 걸 어찌 알았을까? 동태순대 냄새도 아주 구수하구나!” 모두 맛깔스럽기가 비할 데가 없네. 순서가 다가올수록 쌀밥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어. 역시 예상한 대로 쌀밥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지. 비빔밥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말이야. 쌀밥은 속상해서 한숨을 포옥 내쉬었어. 임금님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말했어. “윤기 좔좔 흐르는 하얀 쌀밥 말이다! 짭조름한 어리굴젓에 쌀밥 한 숟갈을 먹으면, 카! 그 맛이야말로 진짜 최고지!” 쌀밥은 제 이름이 나오자 깜짝 놀라서 상 아래로 쏙 숨어 버렸어. 수라간 최고 상궁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쌀밥에게 다가왔어. “뭘 하는 게냐, 임금님께서 찾으시질 않느냐.” 쌀밥은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임금님에게 다가갔어. “저, 저는 호남평야에서 나고 자란 쌀로 지은 쌀밥이옵니다.” 임금님은 쌀밥을 반겨 주었지. “그래그래, 아무리 맛난 음식이 가득해도 쌀밥 한술 푸욱 떠먹어야 밥을 먹은 것 같지 않겠느냐. 하하하!” 그 후로도 매일매일 새로운 음식들이 수라상에 오르고 내렸어. 하지만 늘 임금님 바로 앞자리를 차지한 음식이 있었어. 바로 김이 모락모락, 구수하고 하얀 쌀밥이었지. 드디어 전라도 음식이 선보이는 차례가 되었어. 쌀밥의 가슴이 두근거렸어. “아니, 너는 비빔밥 아니냐! 색색이 곱기도 하구나.” 임금님은 비빔밥을 보고 손뼉을 쳤어. “재료의 맛을 살린 경상도의 콩잎김치도 별미이옵니다.” 수라간 최고 상궁의 말에도 임금님은 비빔밥에서 눈을 떼지 못했어. “곡식과 채소, 해산물이 고루 풍부한 충청도의 대표 음식들입니다. 재료의 맛을 살린 독특한 음식이 많사온데, 그중에 최고는 어리굴젓과 호박범벅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임금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 “응? 향긋한 굴 향이 일품인 어리굴젓이라고? 그렇다면 꼭 필요한 게 있지.” 수라상은 임금님이 평소 아침과 저녁에 받는 밥상이에요. 아침 수라는 열 시 넘어, 저녁 수라는 오후 다섯 시 넘어 받았어요. 12가지 반찬을 차렸으며 계절에 따라 바뀌었어요.
호랑이가 떡을 만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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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할머니가 떡을 팔고 고개를 넘는데 커다란 호랑이가 턱 하고 나타났어. “에구머니나.” 할머니는 깜짝 놀라 떡 하나를 휙 던졌는데 그게 호랑이의 입 속으로 쏙 들어갔어. 호랑이는 얼떨결에 오물오물 떡을 먹었지. 그 틈에 할머니는 슬금슬금 집으로 도망갔어. 흰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 아침이었어. 할머니는 어제 일이 꿈만 같았지. 그런데 마당에 호랑이가 우두커니 있지 뭐야? “할머니, 배고파. 다 잤으면 떡 좀 만들어 줘.” 어제 호랑이가 할머니를 졸졸 따라왔던 거였어. “으으으! 호랑이네.” 할머니는 부들부들 떨면서 떡을 만들었어. 다음 날도 호랑이는 할머니를 찾아왔어. 할머니는 떡시루에 찹쌀을 폭폭 찌고 떡메로 쿵쿵 치고 콩가루를 솔솔 묻혀 쫄깃쫄깃 고소한 인절미를 만들어 주었어. “아, 맛 좋다.” 호랑이는 날마다 인절미를 열 개씩 받아먹었어. “후유! 살았네.” 할머니는 호랑이가 돌아가면 가슴을 쓸어내렸어. 그런데 하루, 이틀, 보름, 한 달이 지나자 더는 호랑이가 무섭지 않았어. “저 녀석! 오늘도 또 왔군.” 할머니는 호랑이를 곯려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 할머니는 호랑이를 보고 끙끙 앓는 척을 했어. “에구구, 허리도 아프고 팔다리도 쑤셔서 오늘은 꼼짝도 못 하겠어. 아마 내일도 모레도 아플 거야. 그러니 떡이 먹고 싶으면 떡메 치기는 네가 하여라.” 그러자 호랑이가 떡메를 번쩍 들고 말했어. “그래, 이렇게 치면 되지?” 호랑이는 오랫동안 쿵덕쿵덕 떡메 치기를 했어. 그 후로도 날마다 호랑이는 할머니를 찾아왔어. 어느덧 따뜻한 봄, 삼짇날이 되었어. “날마다 인절미만 먹지 말고 다른 떡도 좀 가르쳐 주랴?” “그거 좋지, 뭣부터 할까?” 할머니는 먼저 호랑이에게 진달래 꽃잎을 따 오라고 했지. 호랑이는 찹쌀 반죽을 노릇노릇 굽고 분홍 꽃잎을 올려 예쁜 화전을 만들었어. 햇살이 쨍쨍한 여름이 다가왔어. “오월 단오에는 수리취떡을 먹어야지.” 호랑이는 할머니의 말에 산에 가서 수리취를 뜯어 왔어. 나뭇잎이 울긋불긋한 가을이 왔어. 할머니는 호랑이에게 송편도 시켜 볼 생각이었어. “추석에는 송편을 든든히 먹어야지. 산에 가서 토실토실 잘 익은 밤도 따 오고 솔잎도 뜯어 오거라.” “신난다, 오늘은 송편을 만드네.” 호랑이는 엉덩이를 씰룩이며 산에 가다 말고 할머니에게 물었어. “그런데 할머니, 아직도 많이 아파?” “으으응. 에구구, 난 날마다 아파.” 할머니는 손 하나 까딱 않고 호랑이에게 송편을 만들라고 이것저것 시켰어. “송편 속에 넣을 소부터 만들 거라. 달짝지근한 밤도 넣고, 고소한 깨랑 콩도 넣어라.” 그날 밤, 호랑이는 할머니 몰래 송편을 많이 만들었어. 아침이 되었어. 그런데 자고 일어나 보니 호랑이가 없었어. 호랑이가 잔뜩 만들어 놓은 송편도 없었지. “얘가 어디로 갔지? 떡 만들기도 이젠 지쳐 버렸나? 내가 그동안 호랑이에게 너무 못되게 굴었나? 아직 가르쳐 줄 떡도 많은데.” 할머니는 저녁때가 다 되도록 호랑이 생각만 했어. 어둑어둑 날이 저물자, 어슬렁어슬렁 호랑이가 돌아왔어. “아이고, 호랑이야? 너 어디 갔었니?” 할머니는 호랑이를 반갑게 맞았어. 호랑이는 약 꾸러미를 내밀며 할머니에게 말했지. “할머니, 내가 송편을 팔아 약을 사 왔어. 이거 먹고 얼른 나아야 해.” “어이구, 기특한 것!” 할머니는 호랑이의 등을 살살 어루만져 주었어. 호랑이는 할머니에게 떡 만들기를 더 열심히 배웠어. 가래떡, 백설기, 시루떡, 쑥떡, 꿀떡 할머니는 호랑이가 만든 떡을 동네방네 자랑했어. “우리 호랑이가 만든 떡이에요. 탱글탱글 쫀득쫀득 얼마나 맛있다고요.” 그 후, 호랑이는 떡장수가 되어 할머니와 알콩달콩 잘 살았대.